마왕 이야기-시작하기에 앞서 옛날옛날 아아주 멀고 먼 옛날. 너무나도 멀고 멀어서 왠만하면 다 잊어버리는 그 멀고 먼 옛날. 사악하고 잔인무도하며 동시에 아름답고 고고한 한 마왕이 있었으니, 사람들은 그를 두려워 하다 못해 증오하여 잊고 살려 노력하였으나. 마왕의 잔인무도함이 기준치를 넘어섰기에 누구도 잊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그대들은 그 마왕의 이야기를 듣게 되겠지요? 귀를 귀울일 필요도 없고 크게 눈뜰 필요도 없으니, 단지 이 이야기를 왜 하는지 정도만 생각해 주시길. 자아, 들어가볼까요? 응? 내가 누구냐구요? 훗...그건 글쎄 따라와 보면 안다니까요! 마왕 이야기-1 마왕 이야기 (1) 마왕. 대저 어둠이란 이름으로 실존하며, 빛이란 이름의 반대로 존재하는 힘. 그러나 어둠이전의 어둠이며. 가장 강하고, 가장 두렵고, 가장 위대한 존재. 그 신의 숨결마저 죽이게 만들고, 어둠을 흩뿌리는 세상 그 어떤 존재보다 고귀한 자. 그를...'마왕'이라 칭한다. "...졸려..." 웅얼웅얼. 뭔가 굉장히 불만이라는 듯이 몇 마디 하는 자. 역시 굉장히 불만이라는 듯한 얼굴로 그의 배게 신세에 처해져 있던 남자 도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190이 넘는 엄청난 장신과 늘씬하게 빠진 몸매. 특이한 적 자줏빛 눈동자가 날카롭게 반짝이고, 누가 생각해도 미남이라는 찬탄과 남성적인 아름다움의 결집체 같은 얼굴. 아마 지나가던 여자라면 한번쯤은 돌아보고, 남자라도 돌아볼 만큼 완벽한 미모였다. 그런 그의 품에 안겨서...라기 보다는 반쯤 제멋대로 차지하고서 새근새근 대면서 자고 있는 이. 마침 안락한 난롯가다 보니 더 졸음이 올 테니 얼마든지 잘만 하지만, 그렇 다곤 해도 저렇게 남의 몸에 무리를 주는 자세로 자고 있다니. 무릎을 배고서 갸릉 거리는 고양이처럼 졸고 있는 남자. 길디긴, 누가 보더라도 입을 벌릴 만큼 엄청난 길이의 검은 머리카락, 마 치 밤하늘처럼 눈부시게 난롯불을 반사해서 아름답게 빛을 반사하는 그 머 리카락 사이로 존재하는 뽀얗고 새하얀 피부. 길게 드리워진, 왠지 찔릴까 걱정될 정도로 긴 속눈썹. 도톰하게 선이 그려진 고운 입술 선과 빨갛게 고운 입매. 한번 쳐다보면 정말 눈이 떨어지지 않을 듯한 아름다움. 기분 좋게 잘 자다가 깨서인지 조금 불만스럽고 부루퉁한 표정으로 눈을 가 느다랗게 떴다. 새카만 다크블랙의 눈동자. 역시 아름다운...왠지 가면 갈수록 더욱더 미모 묘사에 치중되고 있는 글 필...에서보듯 작가도 비정상이다. "졸리다고." 불퉁해서 툭 던지는 한마디. 장신의 남자는 일그러진 얼굴로 내뱉았다. "3일 내도록 자고서도 뭐가 모자라단거야! 바보!" "...바보라니, 주인한테 건방지게." "인정한 적 없어!!" 그러면서도 입만 놀리고 움직이진 않는다. 흐응, 하면서 품에 안겨서 늘어지게 자고 있던 이는 아음...하면서 한차례 기지개를 켰다. 나름대로 귀여운 행동이지만, 머리카락이 엉키는 바람에 한차례 바둥바둥... 아주 멍청해 죽겠다는 얼굴로 바라보고 있는 장신의 남성. "엉켰어. 풀어 줘 미노..." 결국 제손 으로 못 풀고 칭얼댄다. 익숙한지 그 남자는, 아니 미노는 엉켜버린 그의 머리카락을 끌어내서 엉 킨 부분을 잘 풀었다. 윤기가 잘 흘러서 엉켜도 쉽게 풀리는 거니 굳이 자기가 풀어도 될 것을... 하고 투덜대며 머리카락을 다 고르고, 정리하고, 빗으로 빗어 내리고... "우음...날씨 좋은 건가...?" "눈이 내리고 있잖아!" "흐응. 그럼 좋은 거지 뭐. 난 검은 설빙(雪氷)의 마왕이라고...우응." 겨우 잠이 깼는지 비척비척... 그래도 끝내 미노의 품을 벗어나려 하지 않는 가증스러움. "이봐, 죽은 것처럼 자는 건 좀 그만두고...!!" "아아 시끄럽게 굴면, 아프게 해줄 거야." 귀찮다는 듯이 손을 휘휘 젖는다. ....이, 이봐. 청소년도 보고 있는데 아프게라니... 역시나, 알아들었는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서 미노는 소리쳤다. "무슨 헛소리야 이 변태마왕!!" "호오, 나의 또 다른 이름을 잘도 알고 있군. 알면 그렇게 뻔뻔하게 굴면 안 되지..." 미노는 움찔하면서 그가 가느다란 손으로 그의 목을 훑자 조금 뒤로 몸을 물렸다. 검은 설빙의 마왕. 두 번째 이름을 계승한 자. 차가운 눈보라의 정령. 순백혈화... 그리고 또한 변태마왕. 등등으로 묘사되고 있는 존재. 바로바로 히드레안 드 이크립스... 현재 마왕들의 위에 군림하는 만인지상(萬人地上). 아니 만마지상(萬魔地上), 마신왕. 모든 존재들 중 가장 위대하고 아름답...다는 소문 따위는 안 들어도 된다. 이미 충분히 닭살과 찬미로 가득한 마왕에 관한 이야기들 들었을 테니... 히드레안 드 이크립스. 그는 변덕이 죽 끓듯 하고 제멋대로 구는 것을 인생에 보람으로 여김과 동 시에 여자와 남자를 불문하고 건드리는 것을 삶의 지상명제로 삶고 있는 가...하고 인간들이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수많은 인간과 이종족, 뭐 어쨌 든 성별과 국경과 종족을 뛰어넘는 수집벽이 있는 것으로...알려졌다. 특히 유명했던 사건이. 저 이름도 고고하고 콧대높고 세상에서 지들 말고는 문명종족이 없는 줄 착 각하고 살고 있는 가루다 족과 관련된 사건. 그것은 가루다 족의 '전적인' 잘못이라고 볼 수 있었다. 원래 가루다 족은 천상의 아름다움과 신을 대신해 임무를 수행하며 그 날개 와 강한 마력과 화려한 힘 등으로 모든 종족들 중에서 상당한 우위에 처해 져 있긴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이 매우 건방진 발언을 하고야 말았던 것이다. "세상에 어떤 존재라고 하더라도 우리 가루다 족을 침범할 순 없다!" 오호 통제라. 그 말을 듣고 나서 구미가 당겼는지 히드레안은 몸소(?) 가루다 족의 영역 으로 들어가 그 말을 확인해 보기로 했다고 한다. 확인이라기보다는, 일방적인 학살에 가까웠지만. 어쨌든 가루다 족을 거의 다 학살하고 이제 그들의 운명이 풍전등화에 처해 있을 때. 이 잘난 마왕이 내뱉은 한마디. "...헛소리 따위로 이 몸을 귀찮게 하다니..." 그에게 있어서 종족 살육 따위는 점심 찬거리 따위인가? 아아, 어쨌든 이런 문제가 아니고. 그리고 나서가 더 문제였다. 그는 이제 살육이 '귀찮아져서'멈추고서, 쭉~살아남은 가루다 족을 살펴보 았다고 한다. 알다시피 가루다 족이 한 미모 한하는 것은 누구라고 해도 아는 사실. 뭐, 족장의 딸이었던 슈 가루라와 족장의 아내였던 리니아 가루라. 두 부녀가 그대로 이 변태마왕의 손에 떨어져서 장난감으로 전락한 후, 얼 마 지나지 않아 돌아온 그들이 자살했단 사건은 아주 유명하다. 그러자 이제 죽기를 각오하고 분노한 우리의 가루라 족장은 히드레안에게 감히 도전을 신청하고 대들었던 것이다. 결과는? 뭐, 족장까지 노리갯감이 되어서 가지고 놀다가 싫증나자 죽여서 목만 돌려 보냈다고 하던데... 어찌됐을지. 묵념. 두번째 사건은 저 인계 최고의 미녀라는 이드릴 공주. 그녀와 관련된 사건이었다. 어느 날 히드레안-이 변태마왕-은 갑자기 미인대회를 열고 싶었던 것 같다. 세상 모든 미인들-남성포함-을 모조리, 깡그리, 아래에 있던 '선하고, 순진 하고, 힘없는'마왕들을 시켜서 잡아온 후, 각 종족들이 흥분해서 마왕퇴치 를 외치는 순간에... 인계에서 미인대회를 열었던 것이다. .... 그리고 선발된 것이 이드릴 공주였는데-인간이 대다수가 투표했으니-이드 릴 공주는 결과적으로 히드레안에게 상납품이 되고야 말았다. 주최자의 권한 운운하며.... 많은 용사들이 피를 뿌리며 달려들었지만, 역시 오호 통제라. 이드릴 공주 는 이 마왕에게 빠져서 용사들을 자신이 쫓아버리고 아직도 마계에 산다고 하니, 세상사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세 번째 사건. 드디어 세 번째인가? 그래봤자지만... 어쨌든 어느 날인가 히드레안이 또 심심해진 때였다고 전해진다. ...참고로 그는 늘 심심하다는 사실을 미리 상기시켜둔다. 어쨌든 무지무지 심심했었는지, 엘프족을 쓸데없이 습격해서 숲을 불태우 고..등등등의 만행을 저질렀단다. 불쌍한 엘프들은 복수랍시고 덤비려고 해봤자 히드레안의 애완용 드래곤 세 마리에 처참하게 당할 뿐이었을 뿐. 그러나 그런 파괴활동(?)에도 별 재미를 못 느낀 히드레안이 선택한 일은? 결국 하이엘프 동쪽계는 절멸했다. 하나하나 엘프 고문하는 재미 들려서 범하고 죽이다보니 한달 만에 그 많 던 엘프들이 일일이 다 고통스럽게 죽었던 것이다. ...하아.... 말이 뭐가 더 필요한가? 극악변태 대마왕. 그것이 그다. 마왕 이야기-2 (2) "...미친...소리할래!" 그래도 미노의 목소리는 조금 기가 죽어있었다. 히드레안은 으음, 하면서 뭔가 불만이란 듯이 그를 스윽 훑더니 다가가 천 천히 느릿~느릿한 거북이 마냥 그의 목에 매달렸다. 반항따위를 할 리가 없겠지.(하면 죽으니까.) "주인님이라고 불러야지 착하지." "....으극..." "자, 착하게 어서 주인님이라고 해야지?" "싫어!!" 또다시 가늘어지는 눈매. 이내 입가에 묘한 미소가 걸린다. "전부터 너도 가지고 싶었어." "...으악! 싫엇!!" . .. ... .... ..... ...... ....... 아, 시간 좀 지났나? 히드레안은 여전히 졸려죽겠다는 얼굴을 한체 난롯가에서 불을 쬐고 있었 다. 저기 구석에서 검은 어둠을 드리우고 있는 친구는...미노군. "뭐야, 구석은 안추워?" "..." "내참. 미안하다 그래. 그래도 몇십년은 산놈이 아직도 순결할지 낸들 알았 냐." 빠직. 아, 핏줄이 터져서 피가 흘러나오는 것이 보일 정도로 미노의 혈관이 불거 져 나오는데.... 저 변태마왕, 역시 남자도 건드리는 게 분명했다. "세상 만사가 다 너처럼 변태틱한줄 아냐! 이 미친 녀석아!" "어라? 나한테 당해서 움직이지도 못하는 주제에 고녀석 참." "....으...으윽..." 씨익. 못되게도 웃으면서 히드레안은 손짓을 해서 장작을 불길 속으로 집어넣었 다. 저절로 허공을 휙휙 날아다니는 장작을 보며 무심하게 타는 난롯불을 보 다, 그는 문득 중얼거렸다. "으음, 심심하군." 헉. 심심하다니. 심심하다니이이! "....이제야 겨우 움직일 셈이야? 하아, 그럼 어서 여기서 떠나자고." "아아, 하지만 할게 아무 것도 없는걸." 무척이나 안타깝고 지루하다는 듯이 무심히 대꾸하는 히드레안. 미노는 짐짓 모른 체 하면서 부스스 겨우 몸을 일으켰다. 역시 하프로니안의 자아 치유력은 최강인가? 참고로 미노는 하프로니안 족-수인족-으로 왠만한 종족따위는 깔보는 고위 종족에 속한다고 한다. 뭐, 본인은 착실하게 살고 있으니까 매우 다행이지만. "...세계정복이라도 해볼까?" "관둬. 네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사느니 차라리 혀 깨물 거야." 히드레안은 조금 불퉁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손짓을 해 서 난롯가의 불을 꺼버리곤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하얀색의 옷자락이 치렁하고 흔들리고, 그의 귀에 걸린 붉은 레드 다이아몬 드와 루비들이 차랑차랑댄다. 팔찌와 목걸이, 이마의 장식, 반지까지 모 두 붉은 색 보석으로 통일한 그의 모습에서 보듯이 그는 상당히 보석을 좋 아했다. 사실, 아름다운건 다 좋다는 무사안일 한 작자이긴 하지만서도. "하기야, 세계 따위 정복해도 별 재미가 없지. 난 지배 같은건 적성에 안 맞 아...." 나름대로 저 좋을 데로 해석하며 히드레안은 3일 동안 죽은 듯이 자느라 굳 은 몸을 조심스럽게 풀었다. 워낙 게으르고 무기력한 작자라서 다들 알고 있겠지만, 히드레안은 자는데 깨어있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그 덕에 그나마 세상이 이렇게 아름답게(?) 남아있는 거라고 할까나. "...하암...어디 신경 거스르게 하는 종족 같은 거 없나?" "미쳤다고 거스르겠냐." "하다못해 예쁘장한 녀석들이라도 있으면 끌고 오는건데." "변태얏!!" 히드레안은 으음, 하면서 고개를 휘휘 저었다. "지금은 안 당겨. 성욕은 식욕의 부수적 욕망일 뿐이니까." "넌 단순히 상대를 괴롭히는 게 좋아서 건드리는 거잖아!!!" "이런, 익숙해지면 좋아하는걸." "그건 본능이니까 그렇지! 이 색골대마왕앗!" 흐응. 가볍게 무시하며 차랑대는 머리카락을 한차례 쓸어올려서 들어올렸다 내린 다. 철렁하는 소리가 나며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퍼졌고, 아슬아슬하게 발뒤꿈치 에 걸리는 머리카락을 흔들며 히드레안은 오두막의 문을 열었다. 설원 2펜큐빗의 고도에 위치하고 있는 거대 빙각. 그 위에 만들어진 조금마한 오두막에서, 히드레안은 막 걸어나오며 뽀득뽀 득 밟히는 눈의 감촉에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눈의 감촉? 수천미터의 고원지대 눈이라면 날카로운 가시같은 건데... "아아, 정말 좋은 날씨군." 싱글싱글. 뭐가 좋은지 연신 웃어댄다. 그러다 그는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고개를 돌 렸다. "재밋는게 생각났다 미노." "뭔데." "3일동안 전 세계에 혹설이 몰려왔으니, 이번엔 눈사람 괴물을 출연시키는 거다" "....누.....눈사람 괴물?" 어안벙벙해서 말하자 히드레안은 아주 당당하고도 즐거운 말투로 입을 열었 다 "그래. 이 내가 숭고한 목적을 위해 귀찮음을 감수하고 마물을 만들어 주겠 단 거다." "...대체 어떤 숭고한 목적인데...." "그거야 강해지라고 그러는 거지. 괴물에게 습격 당하다보면 저절로 강해 진단 말이다. 자자, 시간이 없군." "히....히드레아아안!!!" 히드레안은 뭐야? 하는 눈으로 미노를 흘낏 쳐다보았다. 미노는 식은땀을 흘리며, 히드레안이 출현시킨다고 한 그 눈사람 괴물을 생 각해 보았다. ....지지리도 센스 없는 이 인간, 아니 마족이니만큼 만들겠다고 한 이상 만들긴 분명 만들거다. 근데 그걸 어떤 식으로 만들지 그걸 누가 아는가? "눈사람 괴물보다는 그냥 설인 쪽이 낳을 것 같은데. 평범하게, 평범하게." "그 정도 가지곤 강해지지 않아. 자자, 날 말리지 말아 줘." "이봐아앗!" ....... 저것이 진정 마왕인가..... 결국 누가 뭐라던 심심함 극복을 위해 히드레안은 눈사람 괴물을 급조해 냈 다. 거대한 눈사람의 모습에 코는 거대당근, 눈은 거대양파, 머리는 거대배추...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눈사람은 손에는 거대빗자루를 들고 거대 숯검댕이 눈썹을 지켜 올리며 인간의 도시를 습격하기 시작했다. ...... 3일간의 이유 없는 폭설-H마왕이 일으켰다곤 입이 찢어져도 말 못한다. 다 만 쓴다!-로 엉망이 된 도시에 이젠 거대눈사람까지 쳐들어오다니. 거기다 황당하게도 이 눈사람 괴물은 레벨 10의 마법을 난무하고 일류전사 못지 않은 검술-대체 왜 있어야 하는지 모를-과 강철보다 단단한 눈으로 된 몸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크기 역시 보통 건물 10층 정도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하나 밟 는 건 아주아주 우습기 짝이 없었다. "후후후후훗." "뭐가 그렇게 좋은거냐 멍청앗!" "즐겁지 않나? 멋진 피조물이라구. 완벽한 육체, 완벽한 마법..으음, 저 잔인무도한 학살. 놀라워 놀라워." "헛소리하냐앗!" 인간이야 죽거나 말거나 알바 아닌 우리의 미노. 단지 히드레안에게 시비를 걸고 싶다는 일념으로 계속 투덜대고 있었지만 히드레안은 깡그리 씹어주면서 허공에서 눈사람 괴물이 설치고 다니는 꼴 을 보고 있었다. 그때, 그 참상을 지켜보다 못했는지 한사람이 찬란한 섬광(성의 헤드라이 트 불빛)을 받으며 고고히 등장했다. 마왕 이야기-3 (3) 반짝대는 금발, 푸른 눈동자. 저 조각같은 외모와 백색 갑옷. 찬란하게 빛나는 검. 히드레안은 그만 오오, 하고 감탄해 버렸다. "용사다." 미노는 그만 크악, 하면서 머리를 쥐뜯으며 허공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이해한다. 세상에 이런 말도 안돼는 일이 일어나는 것 자체가 사람 미치게 만들기 마 련이니까. 어쨌거나 찬란한 빛을 받으며 성루에 올라선 남자는 검을 지켜들고 눈사람 괴물...아니 이러면 왠지 멋이 없으니까 스노우 맨을 향해 외치기 시작했다. 자고로 용사란 목소리도 크고 쩌렁쩌렁해야 한다. 이건 만고의 진리라 하지 않았던가? "나 세리오스 폰 루그만 마시리안...........(생략).....헬리오르! 정의의 이름으로 죄 없는 시민을 학살하는 어둠의 사도인 그대를 용서할 수 없다! 나의 정의의 검을 받아라!" 용사는 검을 하늘로 지켜들었고 하늘에서는 거대한 한줄기 빛이 쏟아지더 니 한 가운데에 구름이 쫘악하고 갈라지면서 다섯개의 빛나는 물체가 서서 히 그 위용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벤트를 좋아하는 히드레안은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며 눈을 반짝대고 있었 고, 미노는 거의 발작하는 기분으로 그 물체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저것은... 그 이름도 유명한.. ...아이언...골렘... "간다! 정의의 합체! 솔라 가디언!" 히드레안은 또한번 감탄성을 울렸다. "오오, 로봇 전대물이다." "...그게...뭔....데?" "몰라도 된다." 미노는 무시했다. 이내 스노우 맨이 그만 멍해져서 있는 동안 그 빛나는 아이언 골렘들은 서 서히 모습을 멋드러지게 변신시키면서 합체를 시작했다. 장장 그장면 한다고 거의 10분 이상이 흘러가고 있었지만 누가 부정하는가? 절대로! 용사의 로봇부대가 변신 중일땐 공격하면 안된다! 변신합체골렘이 된 거대하면서 금칠을 워낙해대서 번쩍대는 모습으로 등장 한 거대 골렘. 용사는 차앗! 하는 기합과 함께 아이언 골렘의 가슴에서 뿜 어져 나오는 빛을 타고 골렘의 내부로 들어갔다. ....... ......에...그러니까.... ...어쨌거나!!!! 금칠삐까번쩍하는 아이언 골렘은 어떻게 한건지 허공에서 갑자기 불타는 검 을 생성시킨 후 번쩍번쩍 뒤에서 날아오는 마법의 헤드라이트 불빛에 맞춰 서 조명효과까지 맞춰가며 검을 휘어잡았다. "멋지군!" ......감탄하고 있는 이 변태마왕따위 무시하자. "차아아아아앗! 간다! 이 악마의 사도여!" 어디선가 스테레오 고확성 마법에 따라 들려오는 용사의 목소리. ....또다시 스테레오 고확성 마법이 약간 바뀌어 꺄악대는 여인들의 목소리. 크억...어째서 이 상황에서도 이 마법시스템은 이렇게도 잘 굴러가는 것인 가? 새삼 인간의 마법문명이 원망스러워 진다. "하아압! 빛의 파워 솔러자이져(에너쟈이저 아님!) 키익!" 용사의 화려한 공격난무. 생긴건 좀 웃기게 생겼지만 그래도 명색이 10클래스의 마법과 엄청난 검술 을 지니고 있는 눈사람 괴물..아니아니 스노우 맨은 루나틱 실드를 쳐대고 그 거대 빗자루를 돌려대며 아이언 골렘과 잘 맞써싸우고 있었다. 와장창! 쿵쾅! 거의 호각지세에 다다르다 용사는 한순간 궁지에 몰렸다. 스노우 맨의 일격이 가해질려는 찰나! 갑자기 용사가 타고 있는 금칠삐까번쩍하는 아이언 골렘의 가슴에 있는 브 이자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하아아아! 정의의 철퇴! 솔라해머엇!" 온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힘! 드디어 정의가 승리했는지 지랄했는지(어머 실수.)어쨌든 어쨌든간에!!! 눈사람 괴물, 아니아니 스노우맨은 퇴치되었고 찬란한 위용을 드러낸체 용 사의 금칠삐까번쩍하는 아이언 골렘은 당당히 걷혀가는 구름아래에서 황금 빛으로 번쩍대며 어디서 흘러나오는지 모를 BNG에 맞춰서 폼을 잡고 위풍 당 당히 서있었다. ".....우후후후후훗..." ...삐질... 허공에서 들려오는 왠지 음흉한 웃음소리. 미노는 흠칫! 하면서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며 씨익하고 웃고있는 히드레안을 바라보았다. "...이...이봐 히드레안?" "재밋는게 생각났다." 히드레안은 이미 고개를 지켜들며 입을 열고 있었다. "용사놀이를 하는거다!" "....으아아아아아악!" 미노는 비명을 질러대며 자신의 아까운 머리를 쥐어뜯었다. 가엾은지고, 불행한 지고, 할말 없는지고...으으... 묵념. ...아아... 저 하늘에 어째서 이런 어둠이 드리워져야 하는지. 마왕 이야기-4 마왕, 용사놀이하다-1 뚜벅뚜벅뚜벅. 넓디넓은 공간에서 발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멋모르고 어두침침한 거 좋아하는 이들은 마계하면 무작정 시커멓고 어둡 고 분위기 침침한걸 상상할지 모르겠지만, 히드레안의 미적 감각은 다행인 지 불행인지 저주인지 고통인지 절망인지 잘은 몰라도 '아름다운 것'을 좋 아하는 성격이었다. 고로 한때 음침하고...사악하고 으시시...어, 어쨌든 마계의 중앙관리센터 (...;)-히드레안의 작명센스다-는 히드레안의 재건축 명령으로 화려하고 우 아하며 고급스럽고 여느 고위 신들의 신전에 비교해도 못지 않은 위용을 자 랑하고 있었다. 현재 고위 마왕들은 모두 히드레안의 한마디에 "심심해. 빨리 와라." 모두 공포로 몸을 떨면서 도살장에 끌려오는 소마냥 공포로 점철된 얼굴을 하고 대회의장에 앉아들 있었다. 그냥 있어도 음침하고 살벌한 마왕들이 더 시커먼 구름을 띄워대니 회의장 은 마치 세계정복을 모의하기 위해 모이기라도 한 것처럼 더없이 살벌한 풍 경을 일궈내고 있었으니... 정작 소집한 당사자인 히드레안은 그런 음침한 분위기 띄우고 있는 작자들 을 한마디로 깔아 뭉갰다. "음침해. 웃어." ... 씨이익.... .....으윽!!!! 히드레안은 그 모습을 보더니 조용히 다시 한마디했다. "죽기 싫으면 면상 내려." 저런 변덕쟁이 같은.... 하지만 누가 감히 그에게 대들겠는가? 그는 대마왕, 마신왕, 위대한 어둠이며 모든 마왕들의 지배자임과 동시에 이 마계를 통솔하는 자. 그 누구보다 위대하며 강력하며 고결한 존재. 고로, 설사 그가 단지 조금, 아주 조오금 심심하다고 그들을 공 굴리듯 가 지고 논다거나 마계 지도 만든답시고 마계를 평평한 사각지대로 만들어 버 린다거나 마계의 이쁘장한 여자들의 씨를 말려가며 납치해 버린다거나 하 는 짓을 해도 모든 것을 힘없고 연약하고 순진하다는 이유로 대항할 수 없 는 것이었다. 누가 감히 그에게 대항하겠는가? 잘못 대항했다가는 그날로 지옥 저 밑바닥행이었다. 히드레안은 만족했는지 가장 상좌에 비스듬히 걸터앉아서-그의 취향에 철 저 히 맞춰서 침상과 비슷하다-히죽 웃으며 입을 열었다. "별건 아니고...이 몸이 좀 심심해서." 헉스! 한순간 방안의 공기가 저 아래로 침전했고 마왕들은 모두 죽음을 각오하며 마지막 순간 그래도 한마디 해보겠다는 각오를 다지기 시작했다. 불쌍한...그래도 마왕이라는 자들이 이렇게 무참하고 한심한 신세로 전락하 다니... "그러니까, 현재 인상이 가장 험악한 자가 자진해서 인계에서 마왕 노릇 좀 해야겠다." 사실 인계에서 '마왕'어쩌구 설치는 것들은 아직 어린 녀석들이었다. 나이 먹고 놀만큼 논 중년 마족이 무슨 심심하다고 헛짓하고 놀겠는가? 어린것들이 멋모르고 설치다 용사들에게 목 베이면 마계에서는 또 참한 어 린것이 갔구만...하면서 혀를 차는 거였다. 그런데. 고위 마왕 급의 존재들을 소환해서 한다는 소리가. 인계에 나가서 광대 짓을 하라니!? "...저....그러나..." "하라면 해!" "에엡!!" 비굴하다. 그러나. ...세상에 목숨보다 귀중한 건 없다고 했다. "..그런데 대체 왜...." 히드레안은 잘 물었다는 듯한 표정으로 다시 한번 환하게 웃고는 입을 열었 다. "응, 용사놀이를 할거거든." "으에에에에엑!!" 마왕들의 비명. 그러나 어쩌리. 한번 한다면 죽어도 하고야 마는 고집의 소유자이자 악착 같고 치사하고 성깔 더럽기 짝이 없기로 마계에서 유명한 히드레안이다. 괜히 까불었다가는 목숨이 위험했다. "뭐 하는 거냐?" 마왕들은 말없이 구석으로 모여들어서 죽음의 제비뽑기 통을 들었다. ...히드레안의 장난감이 될 불쌍한 마왕은 대체 누구인가. 매번 정한 거지만 이번엔 더 침통함이 돌았다. 인간계에서 마왕 노릇하려면 마물도 풀고 성도 짓고 기타등등의 자본금과 노력이 엄청나게 필요했다. ...다른 종족이 보기엔 마족이야말로 히드레안의 그 잔악한 장난에서 벗어 난 유일한 존재라고 착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누가 알까. 심심할 때 히드레안의 마법사격이 되주고, 약재 실험이 되주며, 온갖 장난 과 악랄한 주문과 극악 그 자체의 공포를 당하는 것이 마족이란 것을. 그리고, 히드레안의 심심함을 풀어줌으로 인해서 그들이 세상을 구원하고 있다는 것을... 세상사 정말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든다. ...이게 중요한게 아니고. 어쨌든 단지 험악하게 생겼단 이유로 뽑힌 탐욕의 마왕 불트는 히드레안의 순진한 미소를 대하며 죽음을 맞이한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히드레안은 더없이 즐거운 미소를 띄우며 자리를 박찼다. "자아, 이제 마왕도 준비했겠다 용사를 찾자!" 미노는 그의 뒤에 서 있다가 물음을 던졌다. "네가 할거 아니었어?" 감히 히드레안에게 반말 짓거리를 해대며 건방지게 굴 수 있는 유일한 존 재. 마왕들은 미노를 우러러보면서 살려달라는 외침을 보냈지만 미노는 고개를 돌리곤 나도 이미 말렸다는 쓸쓸한 메세지만을 날릴 수밖엔 없었다. "난 아름다운 묘령의 마법사 할거야." ".....아름...다운 뭐...?" 미노는 역겹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고 히드레안은 당당하게 다시 말했 다. "내가 검 따위를 휘두르는건 전혀 어울리지 않아...! 난 마법사로 하겠어." 삐질... 미노는 두려움에 떨면서 슬슬 빠지려고 했지만 히드레안은 다시 입을 열었 다. "어둠계열에 속하는 전사는 너다 미노!" "뭐라고오오오!" "감격해야지? 특별히 끼워주는 거다." "누가 끼고 싶다고 했냐아앗!" 히드레안은 철저히 그의 말을 꾸깃꾸깃 밟아버리고-단 한번도 그가 남의 말 을 들어본 적은 없지만-혼자서 신나서 중얼대고 있었다. "이제 드워프랑 엘프랑 도적하고 사제만 구하면 되겠다!" "멋대로 정하지 말란 말야 이 변태바보마왕아!" 여전히 미노를 씹으며 히드레안은 개운하게 인계로 향하는 워프게이트를 열 었다. "자아! 용사놀이다!" 마왕 이야기-5 마왕, 용사놀이하다 -2 미노는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세상에, 대체 이게 어쩌자고 하는 짓인지. "왜그러냐 미노?" 『책갈피』 "...이봐 히드레안.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라...어떻게 인간계의 공주의 반 을 납치할 생각을 하냐앗!!" 히드레안은 쯔쯧, 하고 혀를 차는 듯 하더니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마치 그 태도는, '뭘 몰라'라는 듯한 얼굴이라서 미노의 이마에 빠직마크 를 생성시켰으나 이내 히드레안은 고고한 척 아름다운 척 혼자 다하면서 입 을 열었다. "자고로 경쟁자는 많아야 재미있는 법! 납치된 공주가 많으면 많을 수록 용 사의 숫자도 늘어나겠지! 하지만 최후에 승리하는 것은 내가 이끄는 용사! 아하하하핫! 그야말로 완벽한 계획이 아닌가!" ....... 으득. 미노는 주먹을 꾹 쥔 후 외쳤다. "죽어 이 멍청한 변태마왕아!!" 콰아앙! 히드레안은 주변의 파인 크레이터를 무시한 체 허공에 떠오른 아름답고 고 고한, 검은 머리카락을 사방으로 흩날리며 흰 옷자락을 나풀대는 의도적으 로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 훤히 보이는 동작을 하며 우아하게 입을 열었다. "어리석은 이가 뭘 알겠어. 후후..." 미노는 으아앗! 하면서 다시 발작을 일으켰다. 누가 그랬던가. 용사가 무적이라고...사실 알고 보면 진짜 무적은 마왕이었을 지도 모른다. "이거 놓으십시오! 리오나 공주가...리오나 님이!" 그는 절망적인 고통을 호소하며 머리를 감싸 안았다. 그를 앞에 두고 사제복장을 하고 있는 남자도 그를 달래려는 듯이 어깨를 감싸안았다. "너무 그렇게까지 고통스러워 할 필요는 없다고! 넌 그때 거대괴물(...)을 퇴치하기 위해 나가있었잖아! 그사이에 납치 된 건 네 탓이 아니야 세리오 스!" "하지만...그녀가!" 휘청. 녹을 듯이 반짝대는 금발, 아름다운 청색의 눈동자. 조각을 만들어도 어울릴 듯한 깎아서 만든 듯한 외모와 격식에 가득 찬 몸 동작. 세리오스 폰 (중간생략) 헬리오르. 이 나라의 공작 가의 장남이며, 성검 세인트 소드를 지닌 이. 그리고 이 나라 최고의 신성방어무기 솔라 가디언을 다룰 수 있는 유일한 존재. 그의 약혼녀이자 한떨기 꽃과 같았던 아름다운 공주 리오나가 갑자기 쳐들 어온 악의 마왕 군에 의하여 납치된 것이다. 그가 양심의 가책으로 어쩔 줄 몰라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마왕군의 떨거지들이 남기고 간 말에 의하면, 납치된 공주들은 곧 제물로 쓰일 예정이라고 한다. 걱정스레 아직 18밖에 되지 않은 세리오스의 어깨를 두드리며 고위신관이 자 세리오스의 친형제나 다름없는 아벨은 남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후후후후훗! 계획대로 되어가는군. 역시 나의 계획은 완벽했다." "미친 자식!" "아아, 무지몽매한 자들의 비판 따위는 들리지 않는다." 미노는 히드레안의 목을 휘어 감고는 졸라대며 바락바락 악을 썼다. "너 지금 니가 제정신이라고 생각하냐! 어떻게 대.마.왕.이 용사의 파.티. 원이 되어서 마.왕.을 헤치우겠단거야! 거기다 저 녀석 능력치로 봐서는 마 왕은커녕 상급마족 하나도 못 이길 것 같다고!" 히드레안은 슥하고 손을 뻗어서 미노의 머리카락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는 몸을 뒤로 당겨서 목을 졸린 상태에서 안긴 상태로의 전환을 이루 며 중얼댔다. "자, 용사와 마법사, 전사에 이어 사제도 생겼다. 이제 남은 것은 도둑과 엘프, 드워프뿐인가. 하하핫!" "이 자식아! 남의 말 좀 들어 보라니까안!" ...히드레안은 기분 좋게 웃어젖히고 있었고. 아무 것도 모르고 있는 세리오스와 아벨, 잡혀간 불쌍한 들러리 역활의 리 오나 공주... 아아..대체 어떻게 될 것인가! 단지 심심하다는 히드레안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억지로 마왕 역활 떠맡 고 죽을 운명의 불트. 장난감 겸 패트가 될 운명에 처해 있는 용사 역활 세리오스. 얼떨결에 막 사제로 찍힌 아벨. ...... 과연 어떤 불쌍한 도둑과 엘프와 드워프가 그의 마수에 걸려들 것인지... 마왕 이야기-6 마왕, 용사놀이하다 -3 여기는 엘프들의 숲. 히드레안은 남의 숲에 함부로 들어가서 휘적휘적 걷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히드레안의 뒤를 따라가야 하는 신세인-한마디로 말하면 보 호 자, 두 마디로 말하면 변태 퇴치자-미노는 아까 덤비다 결국 한대 맞아서 욱신대는 뒤통수를 꾸욱 꾹 누르면서 그를 노려보아 주었다. 그래봤자 녀석이 끄떡이나할까? ...훗, 다들 알고 있었군. 끄덕도 안 한다. 히드레안은 한참 걷다가, 걷고 또 걸어도 엘프가 안나오자 조금 신경질이 받쳤는지 바락하고 악을 썼다. "야! 왜 안 나오는 거냐!" 세상에 저 같으면 나오겠는가. 극악 사악 잔악 포악 그자체인 마왕하고 맞 짱을 뜨게. 거기다 동쪽 엘프들을 절멸시켰다는 끝내주는 과거의 소유자가 바로 그 이 름도 유명하고 잘나신 히드레안 드 이크립스. 자기가 한 짓에는 그만큼의 대가를 받아야 하는 것이었다. "호라...감히 이 몸을 무시한단 말이지?" 히드레안은 갑자기 끝도 없는 분노를 일으키며, 단지 자기가 못 찾아서 못 만난 엘프들을 향해 마력으로 목소리의 음감을 최대한으로 높인 체 바락하 고 외쳤다. "당장 나오지 않으면 숲 체로 없애주겠다!!" 그렇게 10초 후. 간이 너무나도 작은 엘프들은 싸그리 히드레안의 앞에 나타났다. 마족들이라면 20초 정도 뻐팅겼을지도 모르고, 아마 용족이라면 한 1분쯤 견뎠을 지도 모르겠으나... 히드레안은 언령의 소유자였다. 단지 입 밖으로 내는 것만으로도 그가 가진 극대화된 마법의 힘은 모든 것 을 가능하게 했으니... 단지 그가 중얼거림 한마디하는 것만으로도 나라가 날아갈지도 모르는 위기 가 성립된다고 하면 말 다했다. 히드레안은 매우 만족한 듯한 미소를 지으면서 하하핫하고 웃었다. ...역시 단순한 끼가 약간이나마 존재한다더니 그 말이 거짓은 아니었는 모 양인 것인가? 단순하면 그만큼 무식해서 무섭다더니. 히드레안이 딱 그 짝이었다. "...무..슨 일이요, 위대한 일식의 왕이시여." 히드레안은 훗! 하고 건방진 미소를 띄우더니 머리카락을 한차례 뒤로 쓸 어 넘기고 옷자락을 정리한 후 자신의 아름다움을 한껏 들어낸 후 상당한 미모를 지닌 장로를 아래 위로 쭉 훑어봤다. 마치 먹잇감이라도 보는 듯한 그의 눈길에 불쾌해 졌는지 장로는 인상을 찌 푸리며 조금 물러섰고, 히드레안은 27, 8쯤 보이는 외모의 장로를 잘 살펴 본 후 고개를 흔들었다. "잠자리에 쓰긴 좋지만 파티원으론 아니군." "무...무슨 그런 말을 하는 거요!!" 새빨갛게 달아올라서 장로가 외쳤지만...히드레안은 누구의 말도 듣지 않 고 제멋대로 하기로 유명한 작자다. 이미 수도 없는 반복을 통해 그 사실을 증명 받았을 텐데도 멍청하게스리 그걸 모르고 있다니... "흐음...장로!" "...뭐, 뭐요!" 히드레안은 턱짓을 까닥하더니 입을 열었다. "불트라는 마족 알아?" "...잘 모르겠습니만..." "그놈이 지금 여기 노리고 있다. 알아서 살길을 모색하도록." "뭐....뭐요!?" 히드레안은 잔혹한 미소를 지었다. "불트녀석은 엘프를 무지무지 싫어 하나봐. 후훗, 얼마 안 가서 절멸당할 엘프족을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지는군. 내 손으로 없애도 좋겠었는데." 혀로 할짝, 하고 자신의 입술을 핥은 후 히드레안은 그대로 미노에게로 등 을 돌렸다. 미노는 당황한 엘프족을 내버려두고 돌아선 히드레안의 입가에 즐겁기 짝 이 없는 음모 성립의 미소가 스치는 것을 보고 두려움에 떨었다. ...이놈은... 대체 정신구조가 어떻게 생겨먹은 거냐!! "자아, 꾸물거릴 시간이 없다! 다음은 드워프족이다!" "야 임마!!" "후후훗! 저 살고자 엘프족은 반드시 용사에게 협력하겠지! 물론 그때 내 가 이끄는 용사가 이 숲을 찾게 될 거고 그럼 제일 예쁘장하고 능력 있는 한 100대 초반의 엘프녀석을 파티원으로 참가시킬 수 있는 거다!" 미노는 저도 모르게 그를 향해 중얼거렸다. "네 정체가 들통나는 건 어쩌고...?" "아아, 그건 상관없어! 나의 아름다움은 약간의 변화만으로도 얼마든지 고 칠수 있으니까! 아하하하핫!" 미노는 그의 머리를 후려치며 바락바락 악을 썼다. "이 미친 우주4차원 황태자병 말기증상 변태 대마왕앗!" 히드레안은 맞은 자리를 잡고 한참 투덜대다가 미노를 허공으로 날려버렸 다. ..... 왜 드워프 마을로 가는 길목 어귀에서 메테오 스웜과 화려한 마법들이 허공 을 난무하는걸까? 생각컨데. 미친 마왕에겐..........약도 없다고 했다. 과연, 엘프 동료가 생기긴 했는데... 드워프 동료도 생길 것인가? ..... 마왕 이야기-7 마왕, 용사놀이하다-4 한차례의 대지진과 세계멸망의 위기가 지난 후, 히드레안은 먼지가 잔뜩 달 라붙은 옷자락을 털어내며 미노를 노려보았다. 미노는 헉헉대면서도 그를 노려보고 있었고, 히드레안은 짜증섞인 목소리 로 외쳤다. "멍청한 놈! 귀걸이가 부서졌잖아!!" "이자식아! 늑골 부러진건 안보여!?" "넌 괴수니까 얼마든지 낫지만 귀걸이는 다시 주조해야 한단 말이야!" 쨍알쨍알... 꼭 돈많은 것들이 더 벌벌 떤다고, 얼마든지 많고 많은 돈과 보석과 귀한 물건들 다 놔두고 엄살 떠는 꼴이라니... 사실상 히드레안과 맞먹는 엄청난 부의 소유자는 천상의 아멘 카나 아니면 드래곤 로드 샤크리아(전승되는 이름이다), 그것도 아니면 저 명왕계의 라 그나 칸트라이트나 시에 정도일 것이다. 부서진 귀걸이를 가지고 한참 짜증을 부리던 히드레안은 어디서 꺼냈는지 화려한 보석함과 전신 거울, 그리고 쭉 늘어선 옷들을 살피며 피부를 살펴 보았다. "아아~짜증나는군! 역시 쓸데없이 싸우면 피부가 상한다니까. 아드레날린 은 피부에 나쁜데..." ...저 미모를 유지하려면 역시 각고의 노력이 필요했던 것일지도. 보석함에 나란히 세트로 놓여져 있는 보석들을 살피고, 거울에 비추면서 걸 어보고, 옷도 이것저것 꺼내고... 세상에, 사방이 박살나서 적어도 주변 2~3Km는 황폐화 된곳에서 전신거울 로 사방을 도배한체 저러고 있을 수 있는 정신이 남아있단 말인가? 미노는 완전히 통달한 기분으로 그런 히드레안의 "쇼"를 보고 있었다. 한참 수선을 떨고 부선을 떨더니 붉은 레드와인 빛의 화려한 백금세공이 들 어간 팔찌와 귀걸이, 커다란 루비를 박아 넣은 목걸이를 걸고 청백색의 길 고 화려한 드레스에 가까운 로브로 갈아입은 히드레안은 거울에 자신을 비 춰보며 흐음, 하고 만족하고 있었다. "...손톱색은 역시 붉은색이 최고야." 히드레안이 혼자서 이짓 저짓하며 있는 동안 늑골 부상을 치료한 미노는 파 드득 하고 날개를 펼쳐서 떨었다. 보석이 녹아든 듯이 반짝대는 아름다운 박쥐와 비슷한 날개. 옷의 먼지를 털어 낸 후 미노는 증오스럽다는 듯이 히드레안을 노려보았다. 거울과 기타등등의 분장도구를 치운 히드레안은 나풀대는 머리카락을 뒤로 휘익하고 넘기며 입을 열었다. "그런 눈으로 본다고 해서 여기선 안아줄 수 없다고." "...시, 시끄러 변태야!" "머리." 미노는 으윽, 하다가 어쩔 수 없이 다가가 머리카락을 빗어 내렸다. 윤기가 흘러내리는 것이 어느정도나 다듬었는지 알법했다. 대체... 왜 싸운건지 궁금해 지는데... 초토화 된 대지만이 하늘을 향해 울부짖고 있었지만 그걸 들을 수 없는 히 드레안은 손톱이 부러지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워 하면서 흥얼흥얼 콧 노래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드워프 동료는 어쩔거냐?" "응? 무슨 소리야?" "너랑 나랑 싸운다고 드워프 마을이 날아갔잖아." "오오, 그랬군." 히드레안은 조금 심각하게 그에 대해 생각해 보는 눈치더니 이내 생긋이 웃 으며 입을 열었다. "사실 못생긴 드워프를 꼭 집어넣을 필요는 없는 것 같애." "....그...러냐...?" 얼굴이 일그러지는걸 꾹 참으면서 하는 말. 히드레안은 미노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불태워 버릴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모 른척, 아니 진짜로 모른체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이왕 하는거 까짓 못생긴 드워프보다 예쁘고 우아하고 힘도 좋은 용족은 어떨까? 아아, 그게 좋겠다. 그지?" 등 뒤로 흐르는 식은땀... 히드레안은 그게 좋을거야, 그지그지? 하는 눈빛 공격을 미노에게 펼쳤고 미노는 머리를 쥐어뜯으려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드래곤은...어떻게 꼬시려고...?" 잠시 생각에 빠진 히드레안... 그는 이내 활짝 웃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노는 머리카락을 잘 마무리해서 한가닥으로 솜씨좋게 거의 1초의 시간을 들여 땋아내렸고, 아슬아슬하게 발목에 걸리던 머리카락은 출렁대며 땋여 져 나풀댔다. "....어...어이?" "어쩔거냐고?" 히드레안은 정말 환하게 웃으며 종알종알 뭔가를 읊기 시작했다. 설마...하면서 공포에 떨며 그런 히드레안을 바라보는 미노. 그 사이 히드레안은 주문을 완성시켰다. "전능한 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들을지어다. 게이트 인...블랙홀." 헉... 미노는 그만 비명을 지르고야 말았다. "미쳤어어!!" "깔깔깔! 모름지기 도박은 이겨야 재밋는 법!" .... 그리고... 전세계의 하늘에는 거대한 블랙홀이 모습을 드러냈다. 시공간을 찢고 어느 곳에서나 고개를 들면 존재하게 된...거대 블랙홀. 히드레안은 랄라라~하고 노래를 부르면서 모든 준비를 마친 것을 뿌듯이 생 각하며 옷자락을 펄럭하고 털었다. 화려하게 새겨진 금빛 문양이 물결치고, 그의 얼굴에 요염하기 그지없는 미 소가 떠올랐다. "...이럴수가!!" "마왕은 이 세계를 멸망시킬 작정이란 말인가! 어떻게 창조주마저 사용할 수 없다는 무계의 차원을 마왕이!!" 절대적 공포. 멸망의 위기가 인간만이 아닌 모든 종족에게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이것은 죽음과 흡사한 공포이며...동시에 위기. 하지만. 정작 게이트를 펼친 본인은 느긋한 기분으로 오후의 낮잠을 자신의 시종의 무릎에서 보내고 있었다. -따르르릉! 묵묵부답... -따르르르르르르릉!! 역시 대답없음. -벨렐렐렐렐렐렐레!!!!! 히드레안은 씨...하고 중얼거리곤 소매자락을 뒤적였다. 조그마한 수정경이 거기에 자리잡고 있었고, 그는 그걸 꺼내든 후 가운데 를 펼쳤다. 그러자 화면이 생성되고 보기에도 험악한 인상의 불트가 바락바락 악을 쓰 기 시작했다. "...로...로드시여! 대체 이게 어떻게 된것입니까!? 저건 전 종족에게 금지 된 최고의 금단마법이 아니지 않습니까?!" "하암, 그렇지. 근데 왜?" 불트는 '그렇지'라는 그의 무사안일한 태도에 입을 쩌억 벌렸다. 히드레안은 수정경을 다시 닫으며 중얼댔다. "멍청하긴, 이왕 즐길 거면 철저한 게 좋은 거란 말야." ... 사실 드워프 마을을 절멸시켰다는 당황함에 그냥 만든 것뿐이잖아? 하지만 히드레안은 그런 사실을 조금도 인정하지 않고 수정경의 마력을 뽑 아 정지시키곤 다시 미노의 무릎을 배고 드러누웠다. 따사롭게 쏟아지는 햇살. 그리고 우우우...하는 귀곡성을 울리기 시작한 하늘. 각지에서 궐기하는 무명의 용사들과 마왕과의 전투를 치루기 위해서 분투하 는 각 종족들. 그리고, 그 모든 상황을... 단지 '심심해서' 만들어 본 잘나디 잘나신... 대마왕 히드레안 씨. 아아... 대체 이 세상의 미래는 어찌 되는 것인가!? ============================================================= ========= -_-; 난 몰러....;;; 마왕 이야기-8 마왕, 용사놀이하다-5 세상에 많고 많은 마왕이 있지만. 세상에서 가장 위험하고도 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는지 모를 마왕은... 다른 이가 아닌 히드레안 드 이크립스. 두번째 이름을 계승한 자. 위대한 검은 설빙의 마왕...바로 그다. 나풀나풀... 왠지 아릿한 바이올렛 향기가 퍼져나가며 주변을 휘어감고, 모든 남자들은 고개를 길게 꺽으며 한 여인(?)을 바라보았다. 백옥같은 새하얀 피부... 나풀대는 검은색의 새카맣고 아름다운 머리결... 흩날리는 옷자락에서 반짝이는 너무나도 어울리는 붉은빛 보석. 검고 아름다운 눈동자의 반짝임. 아...정말 한떨기 꽃과 같음이라. (쓰면서 닭살 돋고 있다 그래.) 어쨌든 수많은 남자들의 그런 눈빛을 받으면서도 당당하고도 우아한, 사뿐 하기 그지없는 고고함에 다들 거의 연인들의 꼬집힘에도 굴하지 않고 쳐다 보던 많은 남성들은 갑자기 그녀(?)의 등뒤에 나타난 190에 육박하는 엄청 난 키의 남성을 보고는 헉하고 입을 다물었다. 차가운 눈매. 더없이 날카로운 보랏빛 눈동자와 위압감 넘치는 외모. 더군다나 입고 있는 날카로운 선의 제복은 그를 바라보는 이들을 주눅들게 하기 충분했다. 수도에 갑자기 나타난 일행을 보며 상당히 겁먹고 있던 이들을 무시하면서 그 미모의 여인(?)은 성으로 당당히 걸어갔다. "저...무슨 일이신지...?" 미녀는 대꾸부터 틀린 것인가... 여인(?)은 생긋이 한번 웃고는 대답해 주었다. "귀찮으니 꺼져라." ....? 뭔가 잘못 들은게 아닌가...? 근데 그런것 같지는 않은데....으음... 문지기가 멍하니 있자 뒤에 있던 장신의 남성이 입을 열었다. "세리오스란 사람때문에 온거다. 비켜라." "...뭐....으악!" 귀찮다는 듯이 남성이 손을 흔들자 콰앙하고 문이 열렸다. 거대한 성문을 아무런 생각없이 열어버린 문을 바라보며 여인(?)은 싱긋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비켜라." 나풀대는 옷자락. 안으로 들어가는 여인을 보면서 입을 쩌억 벌리고 있는 우리의 불쌍한 문지 기들. 그러나 어쩌겠는가. '무적의 문지기'가 세상에 존재하면 그만큼 재미 없는건 없다. 세리오스는 물에 젖은 금발을 뒤로 넘긴 후 고개를 들었다. 길게 늘어진 그의 애검 세인트 소드. 전설적인 성검이 그의 허리께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지만, 정작 그의 푸르 고 아름다운 눈동자에는 빛이 없었다. "리오나..." 그의 입가에서 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고, 이내 입술을 꾹 깨물었다. "리오나...꼭 찾으러 가겠습니다. 나의 레이디..." 그때였다. 하늘을 뒤덮는다고 느껴지는 새까만 와이번 떼. 거의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나며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이럴수가! 세리오스는 그렇게 외치며 검을 굳게 쥐고 비명이 울린 쪽으로 달려나갔다. "이봐 히드레안." "응? 왜?" "대체 와이번 떼는 왜 동원하는데...?" 히드레안은 오호호호하고 여성스럽게 웃더니 대꾸했다. "그거야 용사가 기념할 만한 동료를 만나는 순간인데 이런 극적 연출이 필 요한건 당연한 결과지." 입이 쩍 벌어지는 그의 말... 하지만 미노는 짧게 말했다. "애완용 드래곤이라도 데려와야 할거 아냐." 히드레안은 오호호호호하고 다시 웃더니 입을 열었다. "데려왔어." ...미노의 등뒤를 흐르는 땀. 그는 저도 모르게 히드레안의 옷자락을 쥐면서 중얼댔다. "...히드레안..앞의 말 취소할테니까 그거 델고가라..." "왜애! 기껏 데려왔단 말이야!" 아아...저 삐진 듯한 음성마저 어찌 저리 귀여울 수가. ...설마 나도 동화되고 있단 말인가? 크억! "미쳤냐! 네 드래곤들은 모두 광룡이잖아! 한번 풀어놓으면 살아 움직이는 건 모두 파괴하는 괴물들이라고 이 자식아!" 히드레안은 미노의 손을 타악하고 쳐버리더니 차갑게 고개를 패액 돌려버 린 후 허공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내 귀여운 아이들을 그런 식으로 말하지마. 더군다나 제어장치도 달았으 니까 용사랑 사제는 안 죽일거라고." ...미노는 하하...하고 허무하게 웃다가 말없이 히드레안의 목을 거머쥐었다. 하지만 이정도 협박에 굴할 히드레안이... 확하고 미노는 히드레안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긴 후 거칠게 입을 맞췄다. 한순간 멍해지는지 히드레안의 눈이 흐려졌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인간 을 습격하던 와이번떼도 제멋대로 흩어지며 흥분해서 칵칵 대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냥 멍하게 있다가 이내 미노의 목에 손을 감고 열렬하게(?) 받아 들이기 시작하는 히드레안. ...지금...뭔 일이 일어난걸까? "...읍..." 잠시후 미노가 입술을 땠을때 히드레안은 완전히 멍한 표정으로 서있었다. "드래곤들 돌려!" "....미노." "그래그래 죽여라 죽여! 어쨌든간에 돌리란 말야!" "미노." 히드레안은 눈을 반짝대면서 그의 소매를 잡았다. "...뭐...뭐야..." 꿀꺽하고 숨을 삼키면서 미노는 어떻게 죽을까, 어떻게하면 조금이라도 안 전하게 살수 있을까 따위를 머리에 떠올리며 히드레안을 내려다 보았다. "한번만 더 해주면 생각해 볼게." "....이....색골 변태대마왕아!!"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바락 외치는 미노. 어느새 하늘엔 시커먼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히드레안의 애완동물-오직 본인만 그렇게 생각하지만-인 미라클 에이션트 드래곤. 폭주한 광룡들로 누구도 손댈 수 없는 자들. 골드 드래곤 골든데스, 실버 드래곤 실버블러드, 블랙 드래곤 다크니언. 세마리 모두 히드레안의 말 한마디에 이 세상 어디라도 멸절시키는 존재들 이었다. 검은 그림자. 거대한 드래곤의 몸체의 날개짓 소리. 허공을 울리는... 드래곤 피어. 히드레안은 그들에게 명령을 내릴 생각도 하지 않은 체 미노의 소매를 꼭 잡은체 웅얼댔다. "...미노오...해줘어...응?" "으윽! 뭐냐구 그런 얼굴따위!" ... 제발....이제 그만!! 조금이라도 좋으니까 정상적으로 움직일 순 없는거야!? ============================================================= ========= +_+; 난 멀러...그러니깐... 마왕 이야기-9 마왕, 용사놀이하다-6 히드레안이 멍하게 있던 말건 거대한 그림자들은 한차례 성곽을 훑어가며 허공을 맴돌더니 이내 고오오...하는 소리와 함께 엄청난 압력을 지닌 물체 를 아래로 내쏘았다. -카아아아아아! 드래곤 피어에 이어 브레스의 직격. 엄청난 열기가 휘몰아치고 쏟아 부은 빙계의 브레스 덕에 바깥으로 밀린 열 기는 사람들의 피부 위를 화상으로 뒤범벅 만들어 버렸다. "저..미친것들!" 미노는 욕지거리를 내뱉았지만 히드레안은 오호, 하면서 그 장면을 감탄하 며 바라보았다. 나름대로 조절해서 쓴 브레스의 새로운 위력이라니. 꽤나 재미있다고 생각하면서. "뭐하는 거야! 말리라니깐!" "키스해주면 생각해 본다니까. 아아, 용사나 찾으러 가볼까." 히드레안은 귀찮다는 듯이 머리카락을 나풀대며 돌아섰다. 미노는 화가 났 는지 그의 등 뒤에다 대고 바락하고 악을 썼다. "히드레안!!" "뭐야?" 으음, 아무렇지 않게 미노를 깔아뭉개면서 히드레안은 척척 걸어나갔고, 미 노는 성큼 걸어서 따라잡으며 외쳤다. "너, 또 죄없는 이들을 학살할 생각이야!?" "재밋잖아?" 꽉. 미노가 어깨를 너무 세게 쥐자 살짝하고 히드레안의 고운 눈썹이 휘어졌 다. 아프다는 듯이 불만스럽게 미노를 향해 지켜뜬 눈. 카아앗하는 소리가 다시금 울리는 가운데 미노는 이글대는 적자주색 눈동자 로 히드레안을 노려보다가 이내 억눌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키스해주면 치우는거지...?" 묘하게 눈매가 가늘어 지더니 히드레안은 피식하고 웃었다. "뭐야, 인간들이 그렇게나 중요한가? 고귀한 영왕의 자존심마저 버릴 정도 로..." "일방적인 학살을 보고서도 무시할 정도로 아직 미치진 않았으니까. 놀이 도 좋지만...이건 그만두란 말이야!" "아아...좋아." 미노의 목에 팔을 감으며 히드레안은 살짝 웃었다. "키스해줘." 후우, 하고 널부러진 시체들의 피내음을 무시한체 미노는 히드레안의 입술 에 가만히 자신의 입술을 겹쳤다. 와장창! 깨어진 유리 파편을 망토로 휘돌려 우아하게 막아낸 세리오스는 가차없이 검을 휘둘러 와이번을 베어넘겼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솔라 가디언을 가동시켜야 하지만, 저번의 전투로 마법 력이 상당히 바닥난 상태였다. 더군다나...드래곤이라니! 입술을 꼭 깨물면서 세리오스는 차앗하는 기합성을 내지르며 검을 뿌렸다. 피가 튀지만 그런걸 신경쓸 때가 아니었다. ..왜 이렇게도 무력한가? 여인 한명 지키지 못하고 성 하나 제대로 못 지키는...! "아앙~싫어요 히드레안님, 그냥 보내실 거에요?" 반짝대는 은빛 머리카락과 풍만한 가슴, 쭉 빠진 몸매에 흰색의 나풀대면서 도 가슴 부분은 달라붙은 옷을 입고있는 여인은 은근히 히드레안의 품에 안 겨서 섹시하게 애교를 부렸다. "기껏 왔는데 도움도 못돼나요오? 네 주인니임..." 구불대는 금발과 화려한 보석이 점점히 박힌 드레스를 입고있는 화려하면서 도 우아한 여인도 히드레안의 팔에 매달리며 한껏 매력을 발산해 애교를 떨 고 있었다. 검은색 직모에 검은가죽 옷으로 찰싹 붙는 옷차림을 하고 허벅지에 검은 용 문신을 세긴 차갑지만 매력적인 인상의 여인도 히드레안의 목에 매달려서 후우, 하고 뜨거운 입김을 불어넣고 있었다. "쿡..귀여운 것들..근데 어쩌지? 지금은 안된단다. 말 잘들으면 나중에 귀 여워 해주지..." 여인들의 뺨에 다 한번씩 키스해 주면서 히드레안은 그야말로 양손의 꽃들 에 휘감겨 존재하고 있었다. "적당히 하라고. 레즈같아 보인다 히드레안" "감히 주인님께 말버릇이 그게 뭐야!" 앙칼진 여인들의 목소리에 미노는 살벌하게 대꾸했다. "시끄러! 이 미친 여깡패들아!" "깡패라니 무슨 그런 심한 말을! 히드레안님, 아아앙~" 우엑, 하고 속이 거북하다는 얼굴로 가증스럽게 애교떠는 여인들의 무리를 무시하고 미노는 저기 먼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만하고들 가라. 골든데스, 실버블러드, 다크니언...." "네에~나중에 꼭 귀여워 해주시기에요오?" 아쉽다는 듯이 재잘재잘 대면서 여인들은 이내 사라졌다. ...설마 저 여인들이 그 유명한 광룡들? 역시, 이 세상엔 정상적인 존재는 있을리가 없다. 아아...어째서? 어째서? 왜 세상은...? 어째서어어어!! "아아, 입술 부었네. 미노...거친 플레이는 싫어어..." "닥쳐 변태야." 까르르하고 웃고는, 히드레안은 와이번 떼와 인간들의 살육이 넘쳐흐르는 곳으로 폴짝폴짝 뛰어가고 있었다. 마왕, 용사놀이하다-7(-_-; 왜 한꺼번에 올렸나고 묻지 마시라.) 헐떡대며 세리오스는 스무마리 째의 와이번을 쓰러뜨렸다. "세리오스! 위험해!" 아벨의 외침이 귀를 울렸지만 세리오스는 후들거리는 손으로 세인트 소드 를 쥔체 그자리에 서있는 것만으로도 모든 힘을 다 쏟아붓고 있었다. '여기서 끝인가?' 세리오스는 눈을 감으며 마지막으로 리오나의 모습을 떠올렸다. ...리오나... 미안해요. 그리고 그 순간. 너무나도 섬뜩한 한기가 몰아치며 그의 주변을 숨막힐 듯 강렬한 마력으로 채웠다. 공기의 흐름마저 바꿔버릴 정도로 진한 마력의 농도에 세리오스는 고통을 느끼며 눈을 떴고 순간 호흡을 멈췄다. 새하얗게 몰아친 눈보라. 얼어붙은 상태로 습격하려는 그 추악한 모습그대로 얼어붙은 와이번들. 더없는 고요와 더없는 죽음이 그자리에 서있었다. 새카만 검은머리를 고혹적으로 흩날리며 청색빛도는 옷자락을 휘감아 쥐고 자신을 향해서 너무도 당당한 미소를 짓는 이 마치 그 자리에 서있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한... "...당신...은?" "도우러 왔다, 용사여." 파차장! 허공에서 쏟아내리는 기의 파동음. 얼어붙은 와이번들을 가벼히 부숴버린 후 마치 보석을 녹여 만든 듯 아름답 게 빛나는 검은 날개의 남성은 차가운 보랏빛 눈동자와 색을 바꾸어 변하 는 흑녹색 머리결을 흩날리며 아래로 내려섰다. 세리오스는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았다. 세리오스 폰...(중간생략)...헬리오르. 막 히드레안의 '장난감'이 되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저어, 하드라." "왜." "어째서 엘프의 숲을 지나야 하는거죠?" 히드레안, 아니아니 하드라는 흐음, 하더니 간단한 경갑옷에 가벼운 무장, 성검 세인트 소드를 허리에 차고 있는 세리오스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무안한지 조금 물러서서 아벨의 뒤로 숨는 세리오스의 모습에서 더 없는 순 진함이 느껴진다. 아벨은 흰로브차림으로 전투로드를 허리에 찬체 공손한 표정으로 히드레안 을 바라보고 있었다. 23세로, 연한 백금색 머리카락과 맑은 크고 녹색 눈동자 때문에 종종 세리 오스와 같은 나이 취급을 받긴 하지만 속이 깊고 생각도 많아서 고위사제 의 직책을 가지고 있는 이였다. 물론 히드레안은 이미 아벨을 파티원으로 점찍어 뒀기에 그가 합류한 것을 보곤 흐뭇한 미소를 띄웠다. "이 세계가 저 블랙홀 때문에 멸절 이기란 것은 알고 있겠지?" "네." "엘프족의 전사라면 그만한 능력의 소유자. 분명 도움을 줄거야. 더군다 나 마왕성의 복잡한 미로는 정령의 도움 없이는 쉽게 통과할 수 없지." "아아...그런 깊은 뜻이!" 순진하게 눈을 반짝이는 세리오스. 미노는 쯔즛하고 혀를 찬 후, 말없이 일행의 맨 뒤에 서서 따랐다. 과연 마왕이 나타나서 인지 사방에는 안보이던 몬스터들이 수도 없이 많았 다. 일행이 조금 전진할때마다 몬스터들은 돌격했고, 세리오스는 차앗! 하면서 검을 뽑아들었다. ....이것도 극적 효과라며 만족하는 히드레안이었다. 세리오스는 둘의 모습을 본 후 그자리에서 스륵하고 쓰러졌다. 흰 갑주 안은 온통 피칠갑이었고 파리하게 질린 세리오스를 발견하고 달려 온 아벨도 새하얘졌다. 히드레안은 완벽한 극적효과를 이뤘으니 세리오스를 살릴 생각으로 가볍게 손을 움직여 그의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멈췄고 아벨은 빠르게 주문을 외어서 상처를 치유했다. "세리오스...세상에 이런 상처를 입고서도...!" 아벨은 침통한 표정으로 이젠 숨을 그나마 고르게 쉬고 있는 세리오스를 내 려다보았고, 히드레안은 아벨의 뽀얀 얼굴에 떠오른 수심어린 모습을 보고 예쁘장하다고 멋대로 생각하며 음흉한(?) 눈빛을 띄우고 있었다. "후우...누구신지는 모르겠으나 정말 감사합니다." "고마울 것 없다. 어차피 내 목적은 용사를 돕는 거니까." 건방진 히드레안의 말투에도 아벨은 일단 그가 보여준 힘에 존경을 표하며 인사를 취했다. 히드레안은 피식 웃으며 그를 향해 말했다. "자리를 옮기지." 마왕 이야기-10 마왕, 용사놀이하다 -8 히드레안은 넓은 방안으로 안내되었다. 인간들의 방치고는 확실히 넓고 우아하게 조각되어 있다고 믿겠지만 히드레 안이 보기에는 조잡하고 유치한 조각들로 둘러싸인 돌멩이 쯤으로 보여서 드워프가 지어도 이것보단 잘 하겠다...어쩌구 중얼대면서 코웃음을 쳤다. "먼저 세리오스를 구해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이쪽은 국왕전하이신 셈 야나입니다." 히드레안은 고개만 까닥해서 다 늙어죽을 기운 빠진 미이라를 힐끗 보았다. 용사 이야기에 전형적으로 등장하는 공주의 아버지인가, 하고 멋대로 생각 하면서 히드레안은 내심 '죽어가는' 처절한 존재를 보면서 별 생각없이 멀 뚱이 서있었다. 조금 당황한 아벨은 큼, 큼하면서 히드레안의 주의를 돌렸다. "...저, 국왕저하께 예를 표하셔야죠." "아, 미안하군. 난 예법이란 것에 좀체 익숙해지지 않아서." 당연한 것을. 날 때부터 왕이었고 죽는 그 순간까지 왕인 존재가 무엇이 모자라서 예법을 익혀야 하겠는가? 히드레안의 엉터리 주장에 의하면 예법이란 무지몽매하고 힘없고 노예근성 을 지닌 자들만이 지켜야 할 쓸모없는 것들 중의 하나라는 것이었으니 그냥 내버려두자. "괜찮소...왕국을 구원한 존재 아니오." 괜찮지 않다는 듯이 인심쓰며 웃고있는 국왕의 얼굴을 보고 히드레안은 고 개를 돌렸다. 바깥의 풍경을 쳐다보며 내심 건방떠는 히드레안을 보며 둘러있던 시종들과 약간의 뱃살을 지닌 관료들은 그를 찢어 죽일 듯이 노려보았지만 히드레안 이 무슨 상관을 하겠는가? 덜컹. 방문이-사실 대회의장이지만-열리면서 약간 파리한 인상의 세리오스가 나 왔다. 조금 흐트러진 옷차림을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의 미모가 모든 것을 가려 주고 있었으니 별 상관은 없을 것이다. "세리오스! 아직 움직이면 안된다!" 아벨의 외침도 무시한체 세리오스는 히드레안을 바라보았다. "...날 돕는다고 하셨습니까?" "그렇다." 세리오스는 천천히 숨을 한번 들이키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왜...입니까?" 히드레안은 준비해 놓은 말들을 술술 읊기 시작했다. 밤잠 안자고 피부 미용 헤쳐가며 대본까지 만들어 달달 외었던 보람이 있을 것이다. "게이트 오브 카오스. 늦어도 한달, 빠르면 20여일이 지나면 저 문은 세상을 집어삼킨다. 세계가 파멸되는 것을 바라는 이는 아무도 없다. 나도 이 세계 에 거주하는 자중의 하나. 너의 도움을 빌어 세상을 구원하고 싶다." 세리오스는 하악하악하고 거칠게 숨을 쉬었다. 복부는 베이고 상처를 감싼 붕대에서 피가 배어나와서 인지 옷자락이 붉게 물들고 있었지만 그래도 세 리오스는 외쳤다. "당신이 어떻게 절 돕는단 말입니까?! 성 하나 지키지 못하는 자가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여인 하나 지키지 못하는 한심한 자가...!" 히드레안은 으음, 하더니 그런 그를 그윽하게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렇기에 그대를 '돕는' 것이 아닌가 용사여?" "...당신은...누구...십니까...?" 히드레안은 씩하고 매혹적인 아름다운 미소를 입가에 걸면서 말했다. "하드라." 그리고 세리오스는 또 쓰러졌다. 원래 용사는 저렇게 상처 도졌음에도 불구 하고 괜히 용쓰다가 쓰러지는 장면을 꼭꼭 만들어서 사람들의 애간장을 태 워야 할 엄청난 사명이 있기 마련이다. 히드레안은 그따위 사명은 내 알바 아니라는 듯한 생각을 지니고 살아가는 이였기 때문에 별로 감동은 받지 않았지만, 번져가는 피가 꽤나 아름답다는 시시껄렁하면서도 조금 무시무시한 생각을 떠올리곤 픽 웃었다. 세리오스를 들어내고 한동안의 소동이 일었고, 정리되자 왕은 히드레안을 바라보았다. "그렇다면...현자여, 그대는 마왕을 물리칠 수 있는 방도를 안다는 것인 가...?" 히드레안은 속으로 혀를 조금 찼다. 하여튼, 인간은 이 정도로 무지몽매하다. 세상에 절대적인 강함보다 더 위대 하고 대단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약점? 전설의 무구? 다 필요 없다. 더 없는 강함만 있다면 그 육신 하나만으로도 모든 것이 가 능하게 되어야 한다. 세상 누구보다 가장 고귀한 자신이 그렇듯이 말이다, 하고 우주 4차원 대 황자병의 진수를 유감없이 보이고 있는 그였다. 그러나 히드레안은 귀찮음을 감수하고 늙어빠져서 말라비틀어지기 직전인 왕에게 역시 준비해 뒀던 대사를 읊었다. "아아...걱정하지 마라. 단지 그것은 내가 쓸 수는 없기 때문에, 용사가 필요 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말에 왕과 대신들, 그리고 아벨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비장함 어린 모 습을 하고 서있는 히드레안을 상당한 존경이 흘러 넘치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히드레안은 그런 존경의 눈길을 받으며 혼자 속으로 다짐의 다짐을 계속하 고 있었다. 아암, 그렇고 말고. 그는 용사가 아닌 '묘령의 마법사'를 하기로 했기 때문 에 절대적으로 마왕을 퇴치할 수 없었다. 어느 로망소설을 보고, 어떤 용사 이야기를 들어도 용사 옆에 붙어있던 비 쩍 마른 마법사가, '이이잇! 최후의 일격이다 파이어 볼! 커억!'하고는 최후 의 힘을 쏟아 부어 마왕을 죽였다는 이야기는 없다. 오로지 용사만이 멋드러지게 성검이나 전설의 검이나 전대 용사가 쓰던 무 기를 대물림해서 받은 후 그걸 지켜들고 '하아아앗! 죽어간 사람들의 원망 을 받아라!'어쩌구 저쩌구 잔뜩 신파극 해대면서 마왕에게 돌진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용사 이야기의 묘미라고 볼 수 있었다. 히드레안은 그 전형을 철저히 지키기로 마음먹은 모양이다. ...뭐, 그래서...조금 억지 같기는 하지만 히드레안은 세리오스와 아벨을 잘 꼬드겨(?) 용사와 용사파티의 사제로 둔갑시켜 버렸던 것이다. "아, 곧 숲이네요." 경량화 마법이 걸린 갑옷이어서 인지 숨 하나 안차고 가볍게 언덕길을 뛰어 가는 세리오스. 전에 그 금칠 삐까번쩍하는 아이언 골렘을 타고 설칠 때는 유치해서 차마 듣기 괴로울 정도의 대사를 해대며 칼 휘둘러대는 용사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의외로 순진한 끼가 있고 귀여운 맛이 있는 창창한 10대 소년이었다. 히드레안은 그것도 나쁘지 않지...하면서 자신의 선택에 만족하고 있는 모양 이었지만, 미노는 저 어린것을 이런 악마에게 떠넘긴 자신이 저주스러울 정 도로 고통스러운 상황이었다. ".....인간이란 의외로 힘도 좋은 존재야..." 미노는 발끈해서 중얼거렸다. "네가 약한 거란 생각은 안드냐?" "훗! 이 세상에서 날 이길 자란 존재하지 않는다!" 뛰어가는 세리오스가 걱정되는지 따라가고 있는 아벨, 뒤에서 더위에 지쳐 미노의 등을 빌려 편안하게 가고 있는 히드레안. 얼마나 더우면 저지경일까? ...조금 덥기는 했지만 날씨는 비교적 좋은 편이었다. 단지 모든 것은 히드레 안의 투정때문이었다. ...내버려두자. 모든 것은 다 신의 공평한 뜻이 있는 것이다. 끈기라곤 지지리도 없고 성격은 나쁘고 생긴 건 또 여자 뺨치게 이쁘장 하 게 생겨서 얼굴가지고 사람 홀리고 능력은 넘쳐흘러서 모자라는 게 없다고 혼자 세상만사 잘난 척 다하고 살지 주제에 우주4차원황태자 병까지 말기... ...아무리 생각해도 신의 뜻이 조금도 공평하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아아, 도대체 히드레안. 저 존재가 세상에 왜 존재한단 말인가!! "아아, 그러면 내 등에서 좀 내려오지 않으려냐? 앙?" "시종주제에 말이 많군!" "억울하면 마차 타고다녀!" "후훗, 용사의 파티는 걸어서 이동한다...!" 미노는 묵묵히 입을 다물고 히드레안을 바닥으로 패대기쳤다. 아슬아슬하게 험한 꼴 보이기 직전에 패더 폴을 이용해 우아하기 짝이 없게 바닥으로 내 려선 히드레안은 허리에 손을 얻고는 한손으론 미노를 가르키며 외쳤다. "감히 이 몸을 패대기 치다니! 나 권능의 이름으로 말하노니 내가 말하매 죽음을 받아들이라 함은 곧..." "으아아아악! 파워 워드 킬은 왜쓰는거야!?" 따사로운 여름 햇살 아래... 용사와, 사제와, 마법사를 가장한 대마왕과, 그 마왕의 시종인 이... 이렇게 이들은 모험을 시작했다. ...시작...한 .거... 맞지? 마왕 이야기-11 마왕, 용사놀이하다-9 세리오스는 입을 다물었다. 엘프의 숲을 본 사람은 누구나 그렇게 되고 만다. 그 절대적인 고요함. 그 절대적인 정지감. 녹빛으로 찬란하게 빛나고 있는 숲은 고요했다. 인간들이 말하는 단순한 고요가 아니라, 정적이면서도 동시에 멈춰있는, 끝 없이 반복되는 사슬에서 벗어나 홀로 고요한 그런 정지감. "...이것이...엘프의 숲?" 세리오스의 찬탄에 아벨도 동의했다. 업혀서(?) 고이고이 모셔온 히드레안은 팔다리를 투닥대면서 그런 분위기를 마구 망가뜨리고 있었고, 미노는 입을 열지 않았다. 인간이 엘프의 숲을 본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더군다나 인간의 숲은 변화를, 엘프의 숲은 고요를 각기 상징하는 이상, 둘 은 융합할 수 없었고 숲이되 서로 숲이 아닌 것이었다. 말이 좀 어렵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엘프 숲엔 엘프만 살고 사람 숲엔 사람만 산다! 사실, 인간의 숲을 덮고있는 베일을 벗기면 바로 엘프의 숲이지만, 인간들은 그 사실을 모를 뿐이었다. 고요함과 동시에 한없는 적막감을 지니고 있는 그 숲. 히드레안은 한차례 머리카락을 뒤로 휘익하고 넘기고는 앞으로 나섰다. "엘프여, 용사의 전인을 맞이하러 왔다." 그제서야 숲의 구석구석진 그늘에 있던 엘프들이 희미하게나마 모습을 드러 냈다. 녹색의 옷을 입고 있는대다 안그래도 침침한 숲의 구석에 숨어있으니 그 모 습이 제대로 보일 리가 없었다. 그나마 표면에 선 장로는 나름대로의 위엄 을 차리며 히드레안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다른 엘프들은 노골적으로 그에 게 적의와 두려움이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철모르는 세리오스는 옛이야기 속에나 나오는 엘프들의 아름다움에 내심 감 탄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앞으로, 한 엘프가 걸어나왔다. 엘프답지않게 새하얀 색의 옷을 걸치고 있는, 빛의 반사에 따라 기묘하게 뒤바뀌는 색을 지닌 머리카락의 엘프. 지금은 강렬한 태양빛에 의해서 백금발로 빛나고 있었지만, 아까 숲 속에 있었을 때는 그녀의 머리카락은 분명히 청녹색이었다. 더군다나 역시 은빛으로 반짝이는 눈동자에는 고요함이 깃들어 있었다. 대략 13살쯤의 겉모습을 지닌 이. 무표정하니 앞으로 나선 그녀는 일행에게 다가와 세리오스부터 시작해 찬찬 히 훑어보기 시작했다. 히드레안은 홱하고 고개를 돌려서 장로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야 장로!" "...뭐, 뭡니까? 일식의...아니 그대여." 약사빠르게 히드레안의 눈빛을 본 장로는 '일식의 왕'이라는 말을 쓰려고 했다가 재빨리 바꿨다. ...역시, 오래살면 저만큼의 눈치는 있어야 한다. "고작 80살도 안돼 보이는 애를 들이밀면 어쩌겠다는거냐?! 적어도 120살 정도는 된 꼬마를 줘야 할거 아냐? 자고로 용사 파티에는 쭉 빠진 8등신의 끝내주는 엘프 미녀가 포함되어 있어야 제맛...읍!" 미노는 히드레안의 입을 막은 체 어안벙벙해서 둘을 쳐다보는 세리오스와 아벨을 향해 억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녀석이 더우면 가끔 이래." ...말이 되는 변명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세리오스는 적어도 믿었다. 아벨 은 하핫...하고 헛웃음을 흘렸고, 차가운 표정을 하고 있는 그 어려 보이는 엘프는 히드레안을 힐끗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만나뵈서 반갑습니다. '왕'의 전인들이여. 엘렌디아라고 합니다." 한순간 히드레안과 툭탁대던 미노의 얼굴이 납덩이처럼 굳었다. 히드레안도 거의 미티워 스웜까지 가려고 했던 모습에서 그대로 멈춘체 엘 렌디아를 노려보기 시작했고, 아벨도 입을 벌린체 뭐라고 말을 하려고 더듬 대고 있었다. 아아, 놀랍다. 저 천하의 악랄하고 치사하고 잔인하고 사악한 대마왕 히드레안조차 놀란 상황에서 눈만 깜빡이고 있는 이가 있었으니. 그 이름 용자 세리오스라 하더라... "...디아...?" 미노의 입에서 겨우 그 단어가 튀어나왔고, 히드레안은 미노가 멍해져 있는 사이 재빠르게 손을 치우고 거의 튀어나가듯이 그녀의 앞에 서서 물었다. "엘렌디아 드 뉴렌?" 한차례 웅성거림이 엘프들 사이에서도 일었다. 고요와 정지를 지키는 그들 에게는 좀체 없는 일이었다. 인간은 변하를 선택했고 엘프는 고요와 유지를 선택했었다. 엘프들은 함부로 입을 열지도 않고 함부로 말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정지된 세상에서 그들만의 법칙에 따라 생활하는 자들이었다. 히드레안이라는 사악하고 못된 마왕이 동쪽 엘프의 숲을 절멸시켰을 때도 소란한번 일어난 적 없는 그 엘프들이 웅성댐이라니? "...과연, 저를 알고 계시다니...오랜만에 들어보는 풀 네임에 몸둘 바를 모르 겠습니다. '디아'도 아닌 이께서 저에 관해 알고 있다는 것은..." 잠시 그녀의 눈가가 가늘어 지며, 150의 단신 때문에 어쩔수 없이 히드레안 을 올려다 보면서 중얼대듯 입을 열었다. "당신은..." 히드레안은 마치 수수께끼 놀이라도 하듯이 히죽 웃어보였다. 그리고 엘렌디아도 망설임 없이 말을 끝냈다. "...레안." 그 말이 키워드라도 된 것인지, 화아앗 하면서 세상이 무너져 가기 시작했 다. 하늘도 땅도 물도 바람도, 모든 것이 망가지고 흐려졌다. 어두운 회색, 회색빛의 세계에서 더 어두운 검은빛 세상으로 그 모습이 뒤 바뀌었다. 엘렌디아는 순식간에 허차원으로 이동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 놀라지 않 은 얼굴로 마주 서 있는 히드레안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입가에는, 조금은 신경질 적인 미소가 맺혀 있었고, 그는 제멋대로 키 득대며 말을 시작했다. "놀라운데, '디아'란 잘나고 고귀하신 존재가 뻔히 알면서 내 장난에 끼어드 시나? 뭐, 나야 재밋으니까 별로 상관없지만 말이야." "....무슨 속셈인지 알고 싶군요. 아인디아를 없앤 것으로 모자라 인간을 당 신의 장난감으로 전락시킬 생각입니까? 그대가 무책임하다는 이야기는 수도 없이 들었으나..." 서늘한 감촉이 엘렌디아의 목을 휘어 감았다. 날카로운, 모든 눈들이 순식간에 그녀에게 집중되며 차가운 불꽃의 눈길을 번뜩였다. 히드레안은 거의 광기에 사로잡힌 듯한 눈을 빛내며 엘렌디아를 쏘아보았 고, 엘렌디아는 무표정 그 자체로 그의 앞에 서있었다. "Aindea 란 단어 하나 때문에 멸망한 종족으로 후세에 이름을 남기고 싶 나?" 엘렌디아는 여전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얼굴로 그의 말에 대꾸 했다. "같은 '디아'로서 또 다른 디아의 이름을 입에 담을 수 없게 하는 당신이 더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들어야 할 의무가 있고 동시에 권리가 있 습니다." "...쿡, 큭큭큭...그래그래, 역시 '디아'들은 이래서 재밋어!" 히드레안은 높은 고음의 목소리로 깔깔대면서 손을 내저었고, 이내 엘렌디 아의 목에 휘감겨 있던 차가운 기류도 소멸했다. 엘렌디아는 무표정하니 히드레안을 응시하며 물었다. "당신은 인간의 '디아'인 아인디아를 죽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디아'를 잃었음에도 멸망하지 않고 오히려 더 빠른 성장을 보이고 있지요. ...그것은, 당신 때문입니까?" 히드레안은 히죽하고 한번 웃어 보이며 빙글돌려서 대꾸했다. "그럴지도 모르지. 이몸에겐 하찮은 디아를 대신하고도 남을 힘이 있으니까 말이야." "그래서 인간이 그렇게 미쳐 날뛰는 모양이군요." 무표정한 얼굴을 옆으로 살짝 돌리는 것이 왠지 비웃음과 비슷하다. 히드레안도 그걸 느꼈는지 발끈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말 다했나?" "별로. 감히 저같이 미.천.한. 디아가 어찌 레안께 대들겠습니까?" 왠지 싸늘한 공기가 주변을 흐르며 팽팽한 긴장을 만들어냈다. 히드레안은 그냥 이걸 죽여말어, 하는 표정으로 그녀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 보고 있었고, 엘렌디아는 시종 무표정이었다. 디아-Dea 디아란 최초, 처음. 시작, 동요, 움직임, 일어나는 물보라. 처음의 처음, 의지의 발현. 시초. 엘프의 디아는 엘렌디아-최초의 별 드워프의 디아는 카디아-최초의 불꽃 하프로니안(수인족獸人族)의 디아는 아디아-최초의 혼돈 아스트란(마족魔族)의 디아는 베나디아-최초의 배반. 그리고 인간의 디아. 모든 디아들 중 가장 종잡을 수 없었던, 동시에 모든 신들의 사랑을 받았던 자. 아인디아-하나 세상의 이름이 아인디아였고, 한 인간의 이름도 아인디아였다. 모든 신의 어버이, 모든 중심의 어머니. 라우레안-위대한 질서, 그녀의 품에서 탄생한 가장 아.름.다.웠.던. 존재. 동시에 히드레안-위대한 심연의 손에 살해되었던 가장 아.름.다.운. 존재. 히드레안은 그녀의 말에 대번에 코웃음을 쳤다. "흥! 레안 좋아하는군. 라우드의 헛소리에 빠져서 히드의 중요성을 눈치채지 못하는 머저리들 주제에...!" 엘렌디아도 지진 않았다. "오만하게 히드레안이란 이름을 받으신 분과는 달라서." "당연한거 아닌가! 내가 아니고서야 감히 누가 레안을 칭한다는 거지? 위선 자인 라우레안 같은 자가 칭하기엔 아깝다!" "과연, 소문 이상으로 오만방자가 하늘을 찌르고 바다를 뒤엎는군요." 이마에 솟아오르는 핏줄을 꾹꾹 누르면서 히드레안도 가시돋친 악담을 내뱉 았다. "너역시 디아 최강의 이상취향을 지녔다는 것은 사실인 듯 하군." "아니, 그 무슨 사실무근한 말씀을." "어린애 모습으로 있는 것만 봐도 충분히 알겠는걸 아줌마." 우아한 척 살짝 눈을 내리깔면서 엘렌디아는 말싸움을 피했지만 그녀의 이 마에도 한줄기 작은 힘줄이 솟아나 있는 것을 잘 관찰하면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그보다 정말 네가 나설거냐? 뻔히 내가 하는 심심찮은 장난인걸 알면서 도 말이다." 히드레안은 나름대로 조금 염려해 주는 듯한 말을 내뱉었고, 엘렌디아는 반 격의 기회를 잡고 통렬한 독설을 입에 담았다. "아아, 그 용사의 일행에 엄청나게 사악한 변태가 있기 때문에 어린 것들을 보내면 절대로 돌아오지 못할거라는 장로들의 워낙 강력한 주장 때문에 말 이죠. 거기다 위대한 히드레안께서는 이미 디아를 둘이나 죽였던 전적을 가 지고 계시다보니...저라고 해도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오라..." 저 긴긴 말들의 수식을 다 빼고 간단히 줄여서 정리하면 이렇다. '너 변태라 아무도 안간대! 나도 죽을까봐 무서워서 가기 싫어!' 히드레안은 머리카락을 휘익하고 멋지게 쓸어 넘기면서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마라. 아디아처럼 쓸데없이 정의감이 흘러넘쳐 내 일에 훼방을 놓는 것도 아닌데 왜 널 일부러 해하려 들겠느냐? 더군다나 내가 특별히 너 에게 악감정을 품고 있는 것도 아니고 하니..." 역시 듣지말고 단순하게 압축한 글을 보도록 하자. '누가 죽인대!' ...좀 짧았지만 내용의 요지는 모두 포함되었다. 어째서 옛 성인들은 저렇게 말을 길게 늘여서 미사여구로 포장하고 뒤집어 씌우고 박박 문질러서 장식을 해야 말이라고 생각하는지... 하나 중요한건. 그래서 왠지 옛 성현들의 말씀은 잘나 보인다는 거였다. 이렇게 합의가 끝나자 천천히 안개가 주변을 휘감으며 원래의 세계와 천천 히 맞춰지기 시작했다. 이내 텁텁한 공기가 한차례 사방을 훑자, 아가와 같은 녹빛의 숲의 정경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아까와 똑같은 모습으로 서있는 일행의 모습이 나타났고, 시공간의 뒤틀린 느낌을 받았는지 미노는 가볍게 눈살을 찌푸리며 히드레안을 흘낏 보았다. 세리오스는 눈을 반짝이면서 히드레안의 소맷자락을 잡았다. 둘다 키가 비슷하긴 하지만, 훨씬 어려보이는 세리오스다보니 그래도 그리 이상해 보이진 않았다. "저기 하드라, 디아하고 레안이란게 무슨 뜻이에요?" 히드레안은 귀여운 세리오스의-눈이 삐었다거나 역겹다는 말로도 부족한 그의 악취미적 언어행태에 분노하자.-머리를 슥슥 쓰다듬어 주면서 미소지 었다. "몰라도 돼." ...미소 지었다고 저 인간, 아니 저 마족이 뭐 가르쳐 주진 않는다. 아벨의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도 그럴 것이 신관들에게 있어서 디아라던 가 레안이라는 것은 제례나 의식때나 겨우 입에 담을 수 있는 숨겨진 언어 였고 고결하고 귀한 단어였다. 그리고 절대로 미소지을 것 같지 않던 엘렌디아의 입가에 묘하게 비뚤어진 미소가 겹쳤다. "...하드라? 참으로 멋진 이름이십니다." 히드레안은 발끈한 목소리로 외쳤다. "시끄러 아줌마!" 하드라. 히드레안의 귀엽기 짝이 없는 애칭이자 감히 입에 담았다가는 삼대가 절멸 하고 일족이 사라지고 종족이 없어진다고 알려진 금단의 이름. 그 뜻은 작은 심연, 굳이 인간의 언어에 짜맞추어 해석하자면 '꼬마악마'나 '꼬마악동'정도로 보면 될 것이다. ...참으로 귀여운 이름 아닌가? 물론 입 밖에 내서 당하는 정신적 물질적 고통 따위는 절대 책임 못 진다. 이렇게 하여서... 일행에 엘프가 합류함으로 더욱더 용사일행은 서로에 대한 결의를 다지게 되었...으면 좋겠다. 과연 다질까나...? 마왕 이야기-12 마왕, 용사놀이하다-10 여행도 중반부에 이르렀다. 히드레안의 강력한 주장으로 각지를 떠돌며 파워 업을 위한 수련을 거쳐야 한다는 이유로, 일행은 세계멸망(?)까지 고작 한달 남은 시점에 용의 계곡으 로 향하고 있는 와중이었다. 물론 거기에는 히드레안 나름대로의 용사 스토리가 깔려있었다. 잘빠지고 늘씬하고 멋지기 짝이없는 드래곤을 일행에 넣으면 얼마나 용사이 야기의 극치를 달리며 아름답겠는가? 수집적 가치, 심미적 가치, 공격적 가치 다 좋은게 바로 이 드래곤이었다. 물론 맛도 괜찮긴 하지만. 히드레안은 마지막 생각은 귀여운 아이들인 골든데스와 실버블러드, 마지막 으로 다크니온의 가슴에 더없는 상처를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내 고개 를 저어서 포기했다. "저....헥...헥...하드라, 이 길이 맞아요?!" "당연한걸 왜 묻느냐. 설마 내가 길도 모를거라는 생각따위를 하는거냐!?" "그치만...헉헉..." 히드레안은 유유히 플라이 마법으로 허공을 유영하면서 절벽을 오르고 있었 고, 남는건 체력뿐인 젊은 세리오스는 히드레안의 말도 안돼는 강압-이것도 일종의 시련이야!-에 져서 죽어라고 그 절벽을 맨몸으로 오르고 있었다. 사제인 아벨은 신성마법에 의지해서 별 걱정없이 떨어져도 상관 없다는 듯 이 절벽을 오르고 있었고, 미노는 애시당초 날개가 있는 몸이었다. 엘렌디아는 명색이 엘프의 디아라는 점을 이용해서 실프를 이용하고 있는 듯 했지만. 아벨은 도와주고 싶은 모양이었지만 히드레안이 세리오스의 옆에 찰싹 붙어 서는 '그래, 넌 할 수 있어!'라던가, '힘내라고 세리오스!' 따위의 말을 지껄 이고 있었으니 절대로 도울 수가 없었다. 거기다 미노마저도 히드레안의 계속되는 용사 키우기엔 질렸는지 그저 한숨 만 푹푹 내쉬며 뒤에서 세리오스가 죽기 직전쯤에서야 말려주는 경우가 허 다했기 때문에 죽어나는 것은 세리오스였다. 절벽 위에 도착한 세리오스가 탈진과 탈수, 그리고 심한 타박상 등등으로 인해 기절하기 직전인 동안, 히드레안은 절벽 아래에 끝도 없이 펼쳐진 계 곡을 내려다보며 흐음...하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천하의 히드레안도 그리 쉽게 손대지 않는 용의 계곡. 참으로 구태의연한 이름이지만 어쩌겠는가? 용들은 '용의 계곡'이란 단어에 엄청난 집착을 지니고 있는지 그렇게 부르지 않으면 대꾸도 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어쩌다보니 용의 계곡으로 명명된 이곳. 넓게 펼쳐진 대지 위에는 상당한 수의 드래곤들이 모여있었다. 드래곤들이란 혼자서 고즈넉하게 사는 것을 좋아할지도 모르겠지만, 일단적 으로는 이렇게 무리생활을 하고 있었다. 워낙 계곡이 넓어서이기도 하지만, 용들도 사회성이 있는 동물이다. 언어를 가진 종족은 반드시 밀집생활을 하기 마련이라는 뜻. "아아, 좋은 날씨군." 히드레안은 그렇게 중얼대면서 기지개를 켰다. ...왠지 아까 굉장한 폼을 잡았던게 무색해지는 모습... 어쨌든 히드레안은 잠깐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내 결국은 기절해버린 세리오 스를 돌아보았다. 아벨은 뭔가 하고싶은 말은 잔뜩 있지만 상대가 히드레안 이라 못하는지 치유마법만 펼치고 있었고, 엘렌디아는 무표정하니 계곡만 바라보고 있었다. "으흠...이왕이면 용왕 같은 자들을 불러 볼까나?" 히드레안은 자신만만하게 그렇게 말했고, 미노는 그를 쥐어박았다. 새삼 생각하는 거지만, 저 미노의 자신만만함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단 지 자기 몸에 손댔다는 이유로 나라를 멸망시키고도 남을 히드레안을 아무 렇지 않게 쥐어박고 패대기치고 시비걸고 말리고 심지어는 덥치기(!)까지!!! ...아, 마지막건 아니었다. 큼큼! "왜 때려! 감히 시종주제에!" "시끄러 이 멍청앗! 드래곤들이랑은 철천지원수 주제에 용왕을 불러?!" 아벨은 원수에요? 하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고, 엘렌디아는 아주 조금 창 백해 진 듯 했다. 히드레안은 머리를 감싸며 잠시 뭐라고 중얼댔고, 미노가 그 말을 듣고 뭐라 대꾸하려 하다 순간적으로 입을 다물었다. 쉐에에에엑... 뭔가가 떨어지는 듯한 소리. 하늘에 갑자기 때아닌 구름이 물결치고 어둠이 몰려오고 시뻘건 불꽃들이 떨어진다고 해서 새삼스레 대체 누가 그랬나! 를 따지는 것은 정말이지 어 리석은 짓이다. 말 안해도 이제는 대번에 누군지 알 수 있지 않겠는가. 잠시후 콰콰콰쾅! 하는 소리가 울려퍼지면서 운석들은 우윳빛의 막에 튕겨 져 나갔고, 용의 계곡에는 엄청난 소란이 일어났다. 이내 혈기 왕성한 어린 드래곤들이 떼지어서 일행이 있는쪽으로 날아오기 시작했고, 히드레안은 목적의식을 상실한체 오호호호하고 웃어젖혔다. "감히 이 내게 도전하다니 아직 천년 만년 멀었어! 뜨거운 맛을..." 미노는 다시금 주먹을 굳게 쥐고 히드레안의 뒤통수를 세게 후렸다. 아앗... 혹시 이 까앙하는 소리는 히드레안의 머리에서? 엘렌디아는 존경스럽다는 듯이 미노를 힐끗 바라보았다. "종종 때려주세요." "안 그래도 그럴참이거든." 히드레안은 뒤로 돌아서 빽하고 소리를 질렀다. "이놈!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 시종이라고 봐주는 것도 한계가 있지!" "누가 한계를 가지래! 이 싸가지 없는 색골 변태 마...아니 녀석앗!" 한순간 마왕이란 단어가 튀어나올 뻔했지만 다행히도 미노는 어떤 단어를 구별해서 써야하는지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어쨌든간에 둘이서 티격태격하며 한참 유치한 싸움을 해대고 있는 동안, 허 공에 도착한 드래곤들은 무참히도 자신의 존재가 잊혀질 수 있다는 것을 발 견했다. 히드레안은 한참 싸우다가 문득, 하늘에 그늘이 진걸 발견하고 그제서야 드 래곤들을 올려다보았다. "뭐야, 새끼들이잖아?" [감히 인간주제에 드래곤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사용하는가...!] "놀고있네. 날개도 덜 여물어 가지고...거기 너!" 히드레안은 맨 앞에 나서있는 금색으로 반짝대는 드래곤을 가르켰다. 그 드 래곤은 움찔해서 한순간 히드레안 쪽으로 고개를 휘휘 돌렸고 히드레안은 당당히 손가락으로 그를 가르킨 자세로 입을 열었다. 아아, 진정 용사 모험극에 기록될 만한 위대한 과업이였다. 드래곤에게 손가락질을 하다니.... 그러나 안타깝게도 바드가 끼여있지 않았기에 위업을 당장 시한수로 바꾸어 찬양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너, 카룬더 세 번째 자식녀석 맞지? 저번에 봤을 때는 요만해서 거의 도롱 뇽 같더니 좀 컸다고 거만 피우는 꼴이라니...꼭 제 아비를 닮아선!" 히드레안의 말에 그 용은 당황했는지 크게 소리를 쳤다. [무례하다!] 그러나 아벨이나 깜짝 놀랐을 뿐, 평소에 워낙 드래곤 피어라던가 실전 훈 련을 끔찍하게 받은 세리오스는 상처가 치료되자 눈하나 깜빡하지 않고 쳐 다보고 있었고, 남은 이들 중에서도 그리 크게 놀랠 정도로 간이 작은 이는 없었다. "무례? 내 나이 반에 반에 반에 반에 반에 반에 반에 반에 반에 반에 반에 반에....헉..헉..." 히드레안은 숨을 다 못 쉬고 미노에게 기대서 헥헥대기 시작했고, 히드레안 이 더없이 한심해 보였는지 미노는 크윽...하고 한숨을 쉬다가 자신이 대신 입을 열었다. "어쨌든 이 녀석 나이에 한자리수도 차지 못하는 어린 게 너무 설친단 소리 다." [뭐시...!!] 그 황금룡은 분노해서 브레스라도 쏠 듯이 펄펄 뛰었고, 히드레안은 겨우 숨을 고르곤 다시 외쳤다. "시끄럽다! 어린것이 괜히 어른 일에 끼어들려 하지말고 썩 물러가!" 미노는 한순간 '정신연령은 너보다 높아'라는 말을 해주고 싶단 생각을 했 으나 한창 흥분해서 신나 하고 있는 히드레안한테 그런 말을 했다간 척추가 날아갈 정도로 잔인무도한 일을 당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입을 다물었다. [크오오오오!] 결국 그 황금룡은 주변의 다른 드래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브레스를 쏘려 입가 가득 숨을 들이켰다. 세리오스는 헉! 하면서 재빨리 검을 수직으로 지 켜들고 히드레안 앞으로 튀어나갔고, 히드레안은 상당히 그런 세리오스의 행동에 감격한 듯 했지만... 그 황금룡은 브레스를 쏠 기회를 가지지 못했다. [멈춰라..!!] 카아아앗...하면서 엄청난 소음이 울려 퍼지고 앞에 있던 황금룡은 찍소리도 못하고 멈추었다. 허공에서 찬란한 태양 빛 아래, 그 엄청나게 거대한 몸을 드러낸 황금룡... 대여섯마리나 되는 드래곤들 전체를 능가하는 거대한 몸을 가진 그가 날개 짓을 한번 하자 주변에 모래폭풍이 일어날 정도였다. 히드레안은 히죽히죽 웃었다. "나타났군. 지상최대 거대도마뱀." 모래폭풍이 걷히자 그 자리엔 금발머리를 깔끔하게 뒤로 넘겨서 묶고 있는 20대의 미청년이 나타났다. 활활 타는 듯한 금색의 눈동자는 일직선으로 히 드레안을 응시하고 있었고, 그는 이내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지 여기는...!" "아아, 별건 아니고 아주아주 사소한 문제..." "네놈만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 그 남성은 으르렁대듯이 말했고 히드레안은 유들유들하게 미소지으며 대꾸 했다. "너무 그러지마. 밤까지 함께 한 사이에." ... ...... 한순간 더 없는 한기가 주변을 스쳤다. 공중에 떠있던 드래곤들은 그럴 수가...를 전음으로 연발하면서 허둥대고 있 었고 미노는 크으...하면서 자신의 이마를 짚었으며, 엘렌디아는 그냥 무시했 다. 아벨은 그냥 한숨만 내쉬었고 세리오스는 헤? 하면서 한순간 손에서 힘이 빠지는지 검을 비켜들었다. "....누...가...밤을 함께 했다는 거냐 이 악마 같은 놈아!!" 크아아아아악! 하는 소리와 함께 드래곤 피어와 브레스가 쏘아져 나갔다. 히드레안은 오~호호호호호! 하는 여왕님 웃음소리와 함께 허리에 한 손을 얹고 한 손은 입가에 댄 체로 머리카락을 휘익, 하고 넘겼다. "카룬더, 결국 네가 네 무덤을 파는구나...!" ...혹시 이 둘에게 얽힌 비사를 듣고 싶은가? 그것은 아주아주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세상에 드래곤이란 존재가 나타난 것은 신들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그 중에서도 불사의 용이라 불리는 용왕이라는 존재, 그러니까 일곱의 드래 곤 로드들은 각기 자신의 지배영역을 가지고, 용의 계곡에 흩어져 살며 고 즈넉한 삶을 즐기고 있었다. 카룬더 이그니스. 골드 드래곤의 왕이자 동시에 용족 최고의 마이스터(주-make master)인 존 재. 왜 그가 용족 최고이냐하면, 세계 최고의 마이스터는 바로 히드레안이란 작 자이기 때문이었다. 순간 믿지기 않는다고 말하면서 쓰러지는 수많은 종족들의 울분과 애환이 느껴진다. 사실 최고의 마이스터라고 불리는 이는 마족인 미야나 폰 소울스터커였다. 히드레안은 어느날 뭔가를 만든다는 데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는지 그런 미 야나를 찾았다. 그리고 그 장끼인 미모와 엄청난 힘으로 미야나를 협박과 실력(?)으로 굴복 시켜 강제로 자신에게 기술을 전수하게 했다. 당연하지만, 기술 전수가 끝나자마자 히드레안은 가차없이 미야나를 숙청해 버렸고, 그로 인해서 히드레안은 최고의 마이스터가 되었던 것이다. 모든 마이스터들은 그게 억지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히드레안에게 개길 용기가 없었기에 그냥 입다물고 있었다. 하지만 고귀한 용왕인 카룬더는 당연히 불만을 표하며 일어섰다. 히드레안의 독재이자 억지이며 고결한 장인의 혼을 더럽히는 그의 행위를 응징하기 위해서! 하지만. 히드레안은 자신이 만든 무구를 처음으로 사용해보면서 카룬더를 무참히 패 배시켰다. ...물론, 히드레안이 넘치다 못해 흘러내리는 마법력의 소유자이며 동시에 더 없이 남아도는 시간과 더없이 남아도는 보물과 그 끝을 알 수 없는 광기를 가지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카룬더를 패퇴시키자 용족과 마족의 사이는 극도 로 나빠졌다. 미야나 때는 졌어도 기분 안나빠했던 용족이었지만. 생각해 보라. 히드레안, 그것도 그 재수없는 마왕한테 지다니! 어쨌든 히드레안은 무참히 패배한 카룬더를 강제로 범했다거나 하는 소문을 뿌리긴 했었으나, 본인의 입으론 단 한번도 그 사실을 인정한 적이 없었건 만... 결국 드높고 지고하며 대단하고 잘나고 어쨌든 굉장한 용족의 자존심을 바 로 오늘날에서야 그가 파괴시키는 이유는? 대체 왜 묻는가? 그거야 재밋으니까! ...겠지...아마도... 마왕 이야기-13 마왕, 용사놀이하다-11 승리는 너무도 어이없게, 한심하게, 쉽게 이루어졌다. 히드레안이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화한 카룬더를 발로 지긋이 밟아 누르고 있는 장면을 보면서 새삼 세리오스는 감탄을 금치 못했고 아벨의 눈에는 이 제 진한 의심의 눈길이 서렸다. 히드레안은 씨익 웃으면서 한번 더 카룬더를 지긋이 내리눌렀다. 인간의 몸에 가해지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그는 비명을 질렀다. "으윽...!" 히드레안은 신기한(?) 거라도 발견했는지 오호오, 하면서 눈을 동그랗게 떴 다가 진지하게 물었다. "매저기질이 높은지는 몰랐는데 그래..." "무슨 헛소리냐! 닥쳐라!" "이런이런, 이 내게 아직까지도 그런 말투를 쓰다니..." 히드레안은 가차없이 발에 힘을 주며 카룬더를 밟았고, 한번더 비명소리가 튀어나왔다. 엘렌디아는 미노를 바라보았고, 미노는 책임의식을 느꼈는지 우 둑우둑하고 근육을 풀었다. 그 소리를 들은 히드레안은 그제서야 발로 짓밟는 걸 포기하고는 손을 털었 다. "알았어 알았다고. 그보다 이봐 카룬더, 너 드래곤 로드였지? 아마?" "그래! 그리고 아마가 아니라 역시라는 단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도 모르 나!?" "몰라." ...다들 자기 편한대로 취향껏 웃음을 터트렸고 미노는 히드레안의 목을 한 손으로 휘감고 주먹을 꾸욱 쥔다음 그의 머리에다 대고 빙빙 돌렸다. "으아아악! 아프잖아 이 쓸모없는 시종놈!" "시끄러! 도대체가 너란 녀석은 예절이란걸 배워야 할 필요성에 관해서 전 혀 자각을 못하고 있어! 이 한심하기 짝이 없는 녀석아!" "감히 누가 한심하다는거냐! 이 놈!" 둘이 실컷 으르렁대는 사이 아벨은 조심조심 기어가다 시피해서 접근해서는 카룬더의 몸에 나있는 상처를 치료해주기 시작했다. 승부는 '순식간'이었다. 히드레안과 카룬더가 서로 노려보다가 갑자기 카룬더가 큭! 하면서 쓰러지 더니, 히드레안이 다가가서는 신나게 밟기 시작했던 것이다. "...누구의 사제인가?" 카룬더는 무뚝뚝하니 물었고, 아벨은 상처치료를 끝내고는 공손히 대답했다. "빛에 따르는 그림자, 빛의 신 마이아의 하이 프리스트인 것으로 아룁니다." "...마이아의...인간치곤 어린 듯 한데 하이 프리스트라...훌륭한 사제로군." 아벨은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실컷 싸우고 결국 미노를 이긴 히드레안은 옷자락을 툭툭 털면서 불량스럽 게 카룬더를 향해 물었다. "카룬더, 용 한 마리만 줘." "무엇 때문에?" "마왕퇴치." "어떤 마왕?" "마왕이 마왕이지 그럼 마왕이란 이름이 또 있나봐?" 히드레안은 '나같이 연약하고 예쁘고 순진하고 깜찍한 마법사'가 어떻게 마 왕같은 위험한 것에 관해서 제대로 알겠냐는 매우 함축적이고도 애달픈 눈 빛으로 카룬더를 바라보았고, 카룬더는 갑자기 밟혔던 속이 미식대는지 우 욱하면서 몸을 숙였다. [저...카룬더 님.] "뭐냐 로느?" 카룬더는 위에 둥실둥실 떠있는 드래곤들 중 맨 앞에선 이에게 그렇게 물었 고 로느라 불린 드래곤은 아래를 굽어보며 음을 진동시켰다. [제가 일행에 참가할 수는 없을까요?] "네가? 대체 무엇 때문에...!" 당황한 카룬더를 발로 다시 콱 밟아버리며 히드레안은 손을 흔들었다. "물론이지! 환영한다! 이런 늙은 바보 도롱뇽따위는 신경 쓰지말고!" 카룬더는 크아앗! 하면서 히드레안의 발을 잡아서 위로 휙 던져버리고 벌떡 일어나 외쳤다. "도대체 내가 왜, 무엇 때문에, 어째서 너따위 놈에게 밟혀야 한단 말이냐!!" 히드레안은 그를 화이어 볼 한방으로 날려버린 후 손을 털며 로느를 향해 더없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손짓했다. "그러지말고 플리모프라도 해서 내려오지 않으련?" 로느는 머뭇대다가 이내 빛에 휩싸여서 천천히 내려오기 시작했다. 히드레안은 당연하게 '미소년'을 기대하면서 눈을 반짝대고 있었고, 다른 일 행들도 어떨까 하면서 눈을 빛내고 있었다. 이내 화아...하면서 빛에 휩싸였다가 좀 작은 뭉치로 모여들더니 빛은 모양 을 갖추었다. 빛은 마치 조그마한 어린아이같이 변했고, 이내 그 빛은 더욱더 모여들어 아름다운 모습으로(?) 화했다. "...." 엘렌디아는 거의 한숨과 함께 고개를 숙였으며 미노는 푸흡,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세리오스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 있었고, 아벨도 창백하게 질렸다. 히드레안 마저도 멍해졌는지 멍청하니 그를 쳐다보고 있었거늘... 반짝이면서 떨어져 내려있는 금발. 갈색의 구릿빛 피부. 튼튼하고 굵은 팔다리. 빛나기 까지하는 우수젖은 금색 눈동자. 맥주부대같이 푹 퍼진 허리. 짜리몽땅한 키. ...혹시 금발 드워프에 관해 들어본 이가 혹시 있는가? "...뭐, 드워프 동료가 필요하긴 했으니까!" 히드레안은 멋대로 단정지으면서 자신의 기대가 깨졌다는 것을 절대적으로 부인했다. 미노는 결국 헛웃음에서 시니컬한 웃음소리를 내며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 다. "크하하하핫! 드, 드워프으...금발 드워프...헉...우하하하핫!" [그렇게 웃깁니까?] 불쾌하다는 듯이 그렇게 말하는 로느. 아벨은 디바인 마크를 꼬옥 쥐고서는 고개만 숙이고 있었고 세리오스도 결 국은 웃음을 터트릴 수밖엔 없었다. "역시, 당신 곁에는 정상적인 존재가 좀체 없는 듯 하군요." "그럼 너도 비정상이냐...?" "어머나, 저는 '좀체'라고 했는걸요." 얄밉게 생글생글 웃는 우리의 엘렌디아. 히드레안은 '시끄러!'라고 웃고있는 죄없는 일행을 향해 고함을 질렀고, 왜 자신이 웃음을 사는건지 영문도 모르는 로느는 고개만 갸웃거리고 있었다. 마왕 이야기-14 마왕, 용사놀이하다-12 히드레안은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벌떡 일어났다. "더는 참을 수 없다! 어째서 도적이 없는 거냐!" "도적이 그럼 나 도적이라고 이마에 써 붙이고 다니겠냐? 상식적으로 생각 을 해보란 말이다..." "에이잇! 시끄럽다! 도적은 빠질 수 없는 절대불가결 요소다!" "멋대로 정하지마!" ...이젠 모르겠다. 될대로 되라지...아암... 결국 일행은 다음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히드레안의 강압적인 설교를 들어야 했다. "도둑이 필요해!!" "왜요?" "................마왕성의 보물이 필요하니까." 아주 힘겹게 내뱉은 히드레안의 말에 아벨이 대꾸했다. "...어째서요?" "마왕 때문에 무너진 수도 및 왕성들을 복구해야 될 거 아니겠어? 그런 당 연한 걸 되묻지 말란 말이다!" 세리오스는 아아, 하면서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순진하긴. "그런데 도둑을 어떻게 동료로 마련한다죠?" "흐음, 그건 우리가 감옥에 잡혀서 마침 만난 도적의 도움을 받아 탈출한 다음 그 보답으로 읍읍...!!" 미노는 황당하게 히드레안을 쳐다보고 있는 일행들의 앞에서 히드레안의 입 을 틀어막으며 한숨을 쉬었다. 그리곤 위압적인 눈동자로 그들을 훑어본 후, 히드레안을 품에 안고는 그대 로 여관을 나섰다. 이내, 여관 상공에 자리잡은 히드레안과 미노는 한동안 못 풀었던 한을 풀 기 시작했다. "왜 방해야!?" "멍청아! 그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냐!? 거기다 그런 식으로 굴어봐라! 네 정체가 들통하는 건 시간문제야!" "어쨌든 도둑은 구해야 해!" "구하라고! 누가 뭐라냐!?" 히드레안은 진지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미노를 쳐다보다가 휙하고 고개를 돌 렸다. "구할 방도가 생각나질 않는군." "....죽어 이 한심하고 멍청한 마왕 녀석아아아아!" 히드레안이 허공에서 난동을 부리는 동안 일행은 주변의 눈길을 한몸에 사 고 있었다. 확실히 훤칠한 키에 앳된 면이 남아있는 세리오스나, 사제치고는 예쁘장하기 그지없는 아벨, 결 좋은 금발에 금색 눈동자를 지닌 드워프, 그 리고 시시각각으로 뒤바뀌는 머리색을 지닌 엘프하나. 세리오스는 이런 '음침하고 좀 이상한' 술집에 들어오는게 부끄러운지 신기 한지 얼굴이 발게져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확실히 군데군데서 여인의 야릇한 교성이나 심심찮은 남성의 신음소리가 들 려오니만큼 그가 부끄러울 만도 했다. 아벨도 적잖게 이런 곳을 고집한 히드레안에게 원망을 느꼈지만, 히드레안 에게는 '인간이란 다 똑같은 거야'라는 지론이 있으니만큼 어떤 곳이든 별 상관없었던 것이다. (단지 이런 곳에 도적이 더 많다는 말도 안되는 속설을 믿고 있건 말건...) "....세리오스 님" "예!? 예엣!" 그래서 한참 엉뚱한 생각에 빠져있던 세리오스는 그제서야 엘렌디아가 그를 부른 것을 눈치채고는 얼른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고요하면서도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눈동자를 들어 입을 열었다. "하드라 님과는 어떤 관계십니까?" "아...그건..." 세리오스는 차례대로 그 과정을 나열하기 시작했고 엘린디아의 눈썹도 그 말에 따라서 점차점차 꿈틀대기 시작했다. 이내 엘렌디아는 전후사정을 모두 듣자 긴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다시 세리오스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하드라 님을 믿는겁니까?" "예." 한치의 어긋남도 없는 미소를 짓는 세리오스를 보자 히드레안이 왜 하필이 면 그를 용사로 선택했는지 알 수 있었다. 마왕이 용사를 선택한다니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긴 하지만... "...전부터 묻고 싶은게 있었는데..." 아벨은 그런 엘렌디아를 향해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드워프, 아니 드래곤인 로느 이그니스(남성이다)는 드워프 답게(?) 맥주를 홀짝 대면서 그들의 말 을 듣고 있었고 아벨은 입을 열었다. "...하드라란 분과 분명 어떤 인연이 있으시다면...설명 좀 해주실 수 있습니 까? 저분...어떤 분입니까?" "...좋은 이는 결코 아니죠. 그렇다고 악한 이도 결코 아닌...중요한건, 그를 믿었다간 별로 크게 도움되는 건 없다는 겁니다." "...마도와 관계된...사람이라면, 마왕을 없애는건 엄청난 실수일텐데...없앤다 고 하는 것부터 조금 수상해서 그럽니다. 그는...어떤 존재입니까?" 순간 스륵하고 아벨의 목에 새하얀 팔이 감겨들었다. 뽀얗고 기분 좋은 서늘함을 지닌 팔의 감촉에 아벨은 흠칫했고 히드레안의 조각 같은 얼굴이 아벨의 바로 옆에서 스윽하고 다가왔다. "...그렇게나 내가 궁금했어?" "...아..그...그게..." 순간 히드레안의 눈에 서늘한 이채가 스쳤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는 생긋 하고 한번 웃더니 아벨의 목에서 팔을 풀었다.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모양이지? 하기야, 내 정체가 좀 궁금하기도 할 거야." 그는 털썩하고 나무로 된 의자에 주저앉아서는 머리카락을 스윽 넘겼다. 그 모습조차 조각처럼 아름다워 보임이니 주변에 넘쳐흐르는 저 눈빛들은 다 무엇이란 말인가? "난 바보 아버지와 마녀 엄마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었고, 현재는 실험과 쉬는걸 반복하고 있는 일종의 유산 많은 백수라고나 할까...후훗! 양부가 돈 이 굉장히 많아서 말이지. 그리고 어느 정도 마법에 통달한 상태고. 그래, 가장 궁금한 것. 내가 '인간'이냐 아니냐겠지?" 아벨의 얼굴이 납덩이 처럼 굳었다. 히드레안은 스윽하고 일어나서 그를 바라보며, 엄지손가락으로 자신의 가슴 을 가르킨체 천천히, 말을 시작했다. "내 몸의 반은 인간이다." "...그..그럼..." "그 나머지 반이 무엇일지는 네가 의심한 그대로일 수도 있겠지. 그럼..." 히드레안은 검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문을 나섰다. 아벨은 희게 질린 얼굴 그대로였고 세리오스는 벌떡 일어났다. "어딜 가려는 겁니까 세리오스님?" "말이 너무 심했잖아요! 대신 사과하고 올게요, 그대로 되죠 아벨...?" 그리고 세리오스는 성검 세인트 소드를 허리에 비껴찬 체 달려나갔다. "세리오스...!" "좋은 분이시군요. 순수하고, 열정적이고, 더없이 타오르는." 엘린디아는 자리에 일어선 그대로 달려나가는 세리오스의 등을 보고 있었 다. "...정말 이상하군요. 인간의 디아는 더 이상 존재치 않는데 어째서 인간은 저리도 활기 넘치는지." 아벨은 휘청댈 것만 같은 표정으로 자리에 주저앉으려했다. "...그리고 이상하군요. 인간은 디아가 사라진걸 다들 모르고 있으니 말이 죠." 그녀의 표정엔, 아무 것도 떠올라 있지 않았다. 잔인하다고 할 수도 없는...그런 표정. "하드라! 하드라!?" 히드레안은 갑자기 세리오스의 머리 위에서 불쑥 나타나며-허공에 떠있었 다-입을 열었다. "찾았느냐?" "우앗! 그, 그런데 떠있으면 어떻게 해요!!" "뭐시라...찾은 주제에 감히 찾았던 사람에게 그런 말투를 쓰다니!" "으악! 잘못했어요!" 다행히 히드레안의 힘은 그리 세지 않았는지 세리오스는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구타당했지만 다행히 목숨을 건질 수는 있었다. 구타라고 해봤자 남자치고는 지나치게 낮은 히드레안의 쓸모 없는 근력 탓 에 별로 효과를 보진 못했지만. "저기...아까 아벨이 한 말에 기분 나빴죠? 미안해요. 난 그런 줄도 모르 고..." 히드레안은 고개를 연신 숙이며 사과하는 세리오스를 빤히 보다가 품에 끌 어안았다. "귀여운 것!" "으, 으악! 놔줘요 하드라!" "...." 히드레안은 흐음, 하면서 껴안고 있던 세리오스를 놓았다. "뭐냐, 이 내가 안는 게 기분 나쁘단 거냐?" 마치 '감히 나처럼 고귀하고 위대하신 분이 안아주는데 그따위 행동을 취하 다니...!' 따위의 표정을 아주 리얼하고 당당하게 만들어서 세리오스를 노려 보는 히드레안. 세리오스는 뭔가 잘은 모르지만 자신이 엄청나게 잘못했을지도 모른다는 생 각을 하면서 우음...하다가 결국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치만, 남자들끼리 안고 있는건 좀 이상하잖아요?" 히드레안은 새카맣게 윤기가 휘날리면서 아슬아슬하니 바닥에 닫지 않는 머 리카락을 양손으로 높이 들었다가 촤악 펼치면서 당당히 말했다. "감히 어느 누가 나를 못생기고 한심한 인간의 남성으로 보겠느냐?" "...그, 그야 하드라가 잘...생기긴 했지만..." 삐질대며 변명하고 있는 불쌍한 세리오스. 확실히 히드레안의 외모는 반드시 뒤를 돌아보게 만들만큼 매력적이고 아름 다웠다. 문제는, 그런 그가 '남성'이란 거겠지만. 어쩌면 사실은 남성이 아닐지도 몰랐다... "아름다운 거다." 히드레안은 츳츳하면서 손가락을 흔들어 그런 그의 말을 고쳐주었다. 할말 이 없어졌는지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세리오스는 휴우, 하고 한숨을 쉬고는 히드레안을 응시했다. "하드라는 정말 이상한 것 같애요." "어디가?" 히드레안이 걸음을 옮기자 세리오스도 천천히 따라서 그를 따라 걷기 시작 했다. "음...그러니까, 보통의 사람이라면 자기가 아름답거나, 멋있다거나, 잘났다는 걸 표현하지 않잖아요? 그치만 하드라는..." "그건 한심한 행동이다. 아름다운 것도 내가 아름다운 거고 능력이 있는 것 도 내가 있는 것이다. 내가 가진 것을 스스로 겉으로 들어내 자랑하는 것은 결코 어리석은 일이 아니다. 높이 올라선 자는 그 위치에 있을 만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당당히 보여야 한다. 인간의 왕들은 그것을 실천하지 못하니 당연히 같은 인간의 손에 살해당하는 거겠지." 히드레안의 말이 너무도 당당해서 세리오스는 한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하 고 입을 다물었다. "...저기....하드라." "왜 그러느냐?" "아 저기...자꾸 그러니까 오해받는 것 같아요. 하드라도 그래도 사람인데, 자꾸 '인간', '인간'하니까 다른 사람들도 오해하잖아요?" 히드레안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 그는 갑자기 피식 웃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나도 인간이었지." 히드레안이 걸음을 멈춘 곳은 어떻게 이런 곳이...? 하면서 의심을 할만한 숲이었다. 마을 외각지까지 걸어왔다니, 하면서 세리오스는 뒤를 돌아보았고 자기가 걸어왔던 길이 상당하단 것을 알고는 아찔했는지 머리를 집었다. "...이것도 하드라가 한 거에요?" "그래. 난 몸이 약해서 많이 걷는 건 질색이다." "...저..." "뭐냐?" 세리오스는 뺨을 글적 대면서 수풀에 편하게 앉아있는 히드레안 옆에 슬그 머니 앉아서 입을 열었다. "저기...아까 그 얘기 좀 자세히 해주실래요? 제 아버님은...전장에서 일찍 전 사하셨다고 해요. 음...그러니까...." "...어떤 부분부터?" 세리오스는 활짝 웃었다. "아 예, 처음부터요!" 히드레안의 입술이 천천히 벌어지면서 그의 청아한 목소리가 가락을 만들기 시작했다. "내 아버진 미천한 자였지. 감히 내 어머니 된 자를 처다 볼 수도 없는 미 천한 존재. 내 어머니의 손길 한번으로도 그 목숨이 날아가 버릴 쓸모 없도 록 한심한 존재. 어느 날 어머니는 병에 걸렸다. 그리고 그를 찾아갔지. 그 게 시작이었던 것 같다." 세리오스는 뭔가 말이 좀 심하다고 생각하다가도 그냥 하하...하고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순식간에 아버지에게 빠져들었다. 어쩌면 그게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지. 아버지는 참 아름다웠거든. 비록...그러니까...너희들 말로는, 장애 자...였긴 했어도." "장애자?" "눈이 부자유스러웠어." "하지만 그 정도는 치유마법으로..." "세상엔 돈 많은 존재들만 흘러 넘치는 게 아니란다." 히드레안은 그렇게 말하곤 다시 한참 뭔가 생각을 더듬는 듯 하더니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확실히 서로를 사랑했다. 각기 자신이 지니고 있던 모 든 걸 포기하고 달아났지. 멀고 먼, 동토...누구의 눈도 닫지 않는, 새 삶을 시작할 곳으로. 그러던 어느 날 둘 다 죽었다." "어쩌다가...!?" "그건 몰라도 된다. 어쨌든, 둘 다 죽었다. 어머니는 왕이였고 계승자가 필 요했다. 나는 왕의 표식을 가지고 있었기에 어머니의 수하들은 날 미친 듯 이 찾아 헤맸지. 하지만 난 구속이 싫었다. 자유롭게 내가 내키는 대로 살고 싶었으니까." "...그런..." 히드레안은 먼 곳을 바라보는 듯한 눈빛으로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래, 그때 내 양부를 만났지. 내가 본 이들 중 가장 강한 존재였다." "아...마음씨 좋은 분 이었나요?" "설마. 상당히 음흉하고 잔인하고 치사하고 더러운 성격의 소유자였는걸. 더 군다나 내 어머니의 전 애인이었지. 애인이었던가? 어쨌든 어머니와 관계가 있긴 했어. 난 멋모르고 그에게서 달아나겠다고 바둥거렸고 그럴 때마나 호 되게 당하는 그런 관계. 거기다 어렸던 나를 멋대로 범하기까지 한 작자였 거든." 세리오스의 눈이 커졌다. 그리곤 이내 뭔가 할말을 찾다가 힘겹게 내뱉았다. "...그...저...남자잖아요?" "따지지마 바보야." 히드레안은 잡다한 것까지 설명해 주기 귀찮은지 그렇게 말을 잘랐고 계속 해서 말을 이었다. "그러나 정말 구사일생으로 탈출했었지. 그리곤 난 내 나름대로 살아오면서 여기까지 왔다. 됐나?" "...그...그랬던 거에요? 난 정말 아무 것도 모르고..." 아직도 아무 것도 모르고 있는 거야 세리오스. 어쨌건 히드레안은 그것만으로도 만족했는지 고개를 끄덕끄덕거렸다. 세리오스는 그저 한없이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그런 히드레안을 바라보며 글 썽대기까지 하고 있었고, 히드레안은 고개를 조금 돌리고 '거짓말을 한 건 아니니까 뭐...'라는 생각을 곱씹고 있었다. 그의 입가에 스친 저 비열한 미소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어머나~사이좋은 연인들이네? 마구마구 방해하고 싶어지는걸?" 아아, 하필이면 꼭 이런 판타지 물, 아니 전 소설 및 기타등등 전형에 따라 등장하는 저런 싸가지 없는 악당 1,2,3 등등 트리오라니... 히드레안은 전형적 용사인 세리오스가 히드레안을 보호하는 자세를 취하면 서 검을 뽑아들자 히드레안은 흐음, 하면서 보호 당하는 역답게 살짝 뒤로 물러섰다. "오라, 검 좀 쓴다 이거지?" 등장한 새빨간 머리카락의 여인. 탄탄한 갈색 피부에 풍만하고 잘 빠졌다고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는 늘씬한 몸매. 가죽 슈츠에 높히 올려 묶은 찰랑대 는 붉은 머리카락 사이로 반짝대는 보석 귀걸이. 거기다 채찍... ....혹, 혹시 저것은 그 이름도 유명한... 여왕님!? ...아, 잠깐 헛소리였고. 그녀의 주변에서 나타난 적어도 서른 명은 될 것 같은 남자들은 하나같이 전형적인 산적의 외모를 지니고서 대거나 길다란 소도 쯤을 들고서 킬킬대 고들 있었다. 하나같이 히드레안을 약간 느끼한 눈으로 보는 걸로 봐서는 아마도 불순한 생각이라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오호호호, 가진 거 다 내놓고 거기 허여멀건 여자는 곱게 몸 풀어 주실까 나?" 히드레안은 주먹을 꽉 쥐며 하늘을 향해 외쳤다. "도적이군!!" "....뭐, 뭐냐?" 여자는 당황했는지 그렇게 말했고 세리오스도 그 순간 당황했다. "하드라?" 히드레안은 순간 휙하고 세리오스를 밀치더니 앞으로 나서선 그 여자를 뚫 어져라 쳐다보았다. 순간 당황해서 그녀는 뒤로 물러섰고 히드레안은 그대 로 한발짝 더 나서더니 갑자기 그녀의 허리를 감싸쥐었다. "꺄악! 뭐하는 거야!! 이 변태같은 여자가!" 후두둑하면서 떨어지는 암기를 보면서 히드레안은 흐음, 흐음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여인은 이를 갈면서 채찍을 또르륵 풀었고 히드레안은 눈을 반짝대면서 뒤 에 서있는 세리오스를 향해 입을 열었다. "세리오스, 다 상대할 수 있겠지?" "예, 성검 세인트 소드도 가져왔고...쉽습니다." 쉽다는 말 한마디에 일그러지는 도적들. 그러나 세리오스는 전혀 상관하지 않았고, 히드레안은 다시 뒤로 토도도 물 러났다. 여인은 이이익! 하면서 잔뜩 화가 났는지 외쳤다. "거기 서지 못해 네년!" "좀 있다 실컷 볼테니 그런 줄 알아." "뭐라구!! 이 생긴건 꼭 여우같은 게!" 그렇게 한시간 정도 지났을까. 히드레안은 바닥에 꿇어앉아서 손이 달아라 삭삭 비벼대고 있는 여인을 내 려다보았다. 마지막 도적까지 깨끗하게 처리한 세리오스는 피 한방울 묻지 않은 세인트 소드를 잘 갈무리했고, 히드레안은 여인의 어깨에 척하고 발을 얻으면서 입 을 열었다. "아까 이 몸을 보고 뭐라고 했지? 허여멀건 여자? 변태? 여우?" 하여튼 기억력은 무지하게 좋아 가지고 기억할 건 정확히도 하고 있는... "그...그랬을 리가요! 이렇게 아름다운 분께 제가 왜 그런 말을 하겠어요오오 오?" "오호라, 그래? 그럼 내 귀가 잘못됐다 그거냐?" 세리오스는 땀방울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었고 여인은 손이 발이 되도록 싹 싹 빌고 있었다. "요...용서해 주세요! 목숨만 살려주시면 뭐든 할께요! 정말이에요! 살려만 주세요오!" "저기...하드라, 이렇게 애원하는데..." 히드레안은 흥! 하더니 싸늘하기 그지없는 눈으로 여인을 응시했다. "감히 이 아름다운 내게 그따위 말을 한건 용서할 수 없다." "그렇다고 죽이기라도 할거에요? 아무리 잘못했다지만..." "죽여버릴 수도 있겠지..." 그의 눈빛이 점점 더 싸늘해 져가자 꺄아아아악하면서 여인은 바닥에 엎드 리다시피 하면서 비명을 질렀다. "제발 목숨만 살려주세요!!" "....만...우리 일행이 된다면 또 생각을 해볼 수 있지?" 여인은 화들짝 놀라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히드레안은 거만하게 눈을 내리 깔곤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여인은 이를 사려물며 속으로 악담을 퍼부 었다. '젠장! 뭐 이런 마녀 같은 여자가 다 있어! 생긴 건 꼭 살쾡이 저리가라한 게! 어유 어째 오늘 일진이 안 좋더라니...! 바람의 롯테도 여기서 끝장이란 말야!?' 히드레안은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다가 빠직하고 힘줄을 세우며 쿡쿡 하고 그녀의 어깨를 다시 밟았다. "뭐라...? 살쾡이? 이것이 아직 매운 맛을 덜 본 모양이군 그래애..." "꺄, 꺄악! 제가 언제 그런 말을 했다고 그러세요!" "하, 하드라...좀 심하다구요..." 히드레안은 철저히 세리오스를 씹으며 불쌍한 여인, 아니 롯테를 처참히 즈 려밟기 시작했다. ...아아, 이렇게 해서 드디어 그들에게 새로운 일행, 도적도 합류했음이니... ......근데 과연 살아서 합류할 수 있을까? 마왕 이야기-15 마왕, 용사놀이하다-13 롯테가 일행에 반강제적으로 합류한 지도 이제 일주일이 지났다. 여행의 막바지에 도달하려면 아직 멀고도 멀었지만, 어느새 한달은 다 채워 져 가 있었고, 일행의 머리 위에도 또렷한 검은 게이트가 보이기 시작했다. 롯테는 그 상당한 애교만점의 행동과 쾌활한 행동 등으로 여자가 적은 일행 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었다. 거의 인형과 흡사할 정도의 무표정을 지닌 엘렌디아는 여자라기 보다는 그 냥 한 일행으로 느껴졌지만, 롯테는 그것과 다른 여성 특유의 아름다움이 있었다. 미노는 탁탁하고 손으로 나무를 잘라내며 일행의 앞에 서있었다. 손끝에는 날카로운 날이 서있었지만, 그걸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롯테는 아직도 슬금슬금 히드레안을 피하고 있는 중이었다. 나중에서야 히드레안이 여자가 아니라 남자란 걸 알고는, '에에에에에에엣! 나...남자였어!'를 외쳤던 그녀였으니까. 히드레안은 수려한 자신의 미모 가득히 근심 어린 표정을 띄운 체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 생각 없는 이들이라면 '아아, 뭔가 고민하는 모양이구나'하겠지만 미노 는 단박에 그의 표정을 꿰뚫고는 차갑게 한마디 내뱉었다. "걷기 귀찮아도 좀 걸어라. 워프를 남발하면 마물들이 몰려들테니까." "그래서 애써서 이 몸이 이렇게 걷고 있잖느냐!!" "시끄러!! 대체 누구 때문에 내가 이 고생을 한다고 생각해!" "덩치가 큰 녀석이라면 충분히 그 정도는 해야 하는 것 아니냐!" 미노는 으아아악! 하면서 주먹을 쥐어 들었고 세리오스와 아벨이 양팔에 매 달렸다. "제, 제발 참아요 미노!" "맞습니다! 여기서 일행끼리 싸우면 어쩌겠단 말입니까?!" "이거 ! 저놈은 이정도 맞아도 절대로 안 죽는단 말야!!" 미노의 처절한 외침을 무시한 체 히드레안은 그들이 팔을 잡고 있는 사이를 노리기라도 하듯이 미노의 턱을 톡톡 치고는 오호호, 하고 웃으며 미노가 미리 만들어 둔 길 사이로 사라졌다. "으아아악! 나 말리지마!!" "참으래도요오오!" ....시끌벅적하기 짝이 없는 일행들이라니까... 저녁, 마왕성에 가까워졌음에도 불구하고 겁 없는 이 무적의(?)일행은 잘도 잠자리를 정리하고 야숙, 노숙, 등등으로 불리는 야외에서의 잠을 청하기 시 작했다. 롯테는 가죽으로 된 채찍을 손질하면서 힐끔힐끔 히드레안과 미노를 바라보 았다. 미노는 평소와 다름없이 길게 치렁대는 히드레안의 머리를 빗어서 정리해 주고 있었고, 히드레안은 그런 미노의 무릎을 편하게 배고 앉아서는 손톱소 재에 여념이 없었다. ...히드레안, 손톱도 좋지만 자신이 남자란걸 제발 자각해 줘... "저기 말야, 엘렌." 무례하게 감히 '디아'의 이름을 줄여 불렀지만 별 상관없다는 표정으로 엘 렌디아는 롯테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저 두 사람 좀 묘하지 않니?" 롯테는 속삭이면서 손가락을 히드레안과 미노를 가르켰고 엘렌디아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부러져 타고있는 나무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어떻게 말입니까." "그러니까, 꼭 연인사이 같지 않냐구..." "군신의 관계입니다." 롯테는 군신? 하다가 아하, 하면서 다시 엘렌디아를 향해 속삭댔다. "하지만 정말 묘한걸, 흐음흐음. 이 바람의 롯테 님의 감이 틀릴 리가 없 지." 엘렌디아도 무심하게 자신의 옷자락을 쓸면서 옷감의 결을 손질하다가 대꾸 했다. "그럴지도 모르겠지요." "그렇지? 그럴 것 같지?" "예. 만약 [미노트 아신...]" 타악하면서 왠 돌맹이 하나가 엘렌디아에게로 날아들었다. 엘렌디아는 슬쩍 손을 내밀어 그 돌을 잡았고 히드레안은 손톱소재를 끝냈는지 날타로운 눈 으로 그녀를 쏘아보고 있었다. "그 입 좀 그만 놀리는 게 어때 아줌마?" "이런 실례를, 무례했나보군요." 엘렌디아는 그렇게 말하며 돌을 아래로 내던졌고, 히드레안은 흥!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선 이미 푹 잠든 세리오스를 흘낏 보았다. 아벨은 아직도 기도를 올리느라 무념의 경지에 빠져있는 참이었다. 여자 둘 남은 것은 자기들끼리 또 수다(-일방적인 로테의 말에 엘렌디아가 대꾸하는 정도였지만)떠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한가할 정도로 조용하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불트 놈." 미노는 여상스레 빗과 기타 물품을 정리하며 대꾸했다. "살고싶다는 생각이겠지." "그럴까?" 히드레안은 붉게 물들고 있는 천공의 달 알테미스를 바라보았다. 현세의 달 루나와 저승의 달 셀레나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이런 달을 크레이지 블러디 문이라 부르지 않았던가? 온통 광기로 물든 붉은 달. "...멋진 달빛이야..." "변태들이 좋아하는 달이지 그래..." "시끄러!!" 미노는 흥, 하면서 담요를 꺼내 바닥에 넉넉할 만큼 깔았다. 당연하지만 뻔 뻔스레 담요 위에 드러누운 히드레안을 보며 롯테는 흐음흐음, 하면서 생각 을 굳히는 것 같았다. 숲에선 찌릇, 찌릇, 하는 풀벌레 소리만 들려올 뿐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달이 천공을 일주하고 이제 '밤'의 품으로 돌아가 쉬려 내려갈 쯤이었다. 바스락.... 엘렌디아는 스르르 일어나서는 가운데 일렁대고 있는 불길을 죽였다. 불길 은 이내 수그러 들었고 엘렌디아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적입니다." 미노는 스륵하고 히드레안에게 해주던 무릎배게를 한 상태에서 빠져나오더 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엘렌디아는 그런 미노를 흘낏 바라보았고, 어둠 속에 서 괴기스럽게 빛나고 있는 보랏빛 눈동자도 그런 엘렌디아를 바라보았다. "깨울까?" "그러는 게 좋..." -카카카캇! 갑자기 들려온 신음 소리 같기도 하고 한숨 같기도 한 소리에 이어서 캇캇 대는 짐승들이 스믈스믈 기어 나왔다. 뱀 같기도 하고, 눅눅하게 젖어는 이끼 끼인 관목 같기도 한 것들. 눈도 없고 다만 크게 벌린 입에서 뚝뚝 떨어져 내리는 축축하게 보이는 체 액만이 눈에 들어왔다. 쉭쉭대는 소리까지 들리는 뱀은 뱀 같기도 한데...엘렌디아는 여전한 무표정 으로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 미노는 흐읍, 하고 숨을 한번 들이키더니 큰소리로 외쳤다. "기상!!!" 효과는 즉시였다. 으아악! 하면서 귀가 멍해졌는지 벌떡 일어나는 세리오스, 아벨도 일어나긴 일어났지만 귀가 장난이 아니게 멍한지 얼떨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저...저건 뭐죠?!" 미노는 우둑하고 손을 풀면서 짧게 대답했다. "괴물." "대단한 작명센스로군요." 엘렌디아는 그렇게 말하고는 곧바로 양손을 모은 후 주문을 읊기 시작했다. [영원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이들이여, 시작이며 시초이며 태초이며 그 끝을 영원히 신과 함께하는 불멸의 존재들이여. 지금 나, 처음의 처음, 시작의 시 작, 시초의 시초의 이름으로 기원하옵노니 내 앞에 나타나 나의 적을 물리 치어라.] 화라락하고 덜 여물었던 불티에서부터 엄청난 크기의 무엇인가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글대는 불길 위에 서있는 남성의 얼굴을 하고 있는 이프리트. [내 앞에 나타나 나의 적을 물리치어라, 물리치어라, 물리치어라...] 엘렌디아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손을 그 관목괴물(?)들을 향해 내리그 었고 쿠오오, 하면서 이프리트는 허공으로 떠오르더니 입안 가득히 불꽃을 끌어 모아 내던졌다. -카카카카카! 괴물들은 몸을 뒤틀면서 그 불길을 피하려 했지만, 워낙 거대한 불길이라 카칵대면서 괴물들은 타들어갔다. 그리고 그들의 타느라 낸 불길 덕에, 그들 은 숲 사이에서 계속해서 기어나오고 있는 그 이끼 낀 관목 같은 쓸모없는 괴물들을 산더미처럼 마주하게 되었다. "...저...저게 대체 뭐죠!?" "말했잖아. 괴물이래도." "꺄아아악! 너무 징그럽잖앗!" 롯테는 그렇게 비명을 지르면서도 채찍을 휘둘러 관목괴물들을 휘돌려 날리 고 있었다. 아벨은 당황한 얼굴로 일행을 돌아보며 외쳤다. "[고 어웨이]도 통하지 않습니다!" "...역시 마왕의 마물인 것 같군요." 미노는 투둑하고 손톱을 살짝 꺼내보는 것 같더니 이내 줄였다 늘였다 하면 서 그 관목괴물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생각났는지 도끼를 휘두르고 있는 금발 드워프를 바라보았다. "어이 로느! 본체로 플리모프 할 수 있겠어!?" [가능합니다, 하지만...] "하지만!?" [여기서 어떻게요?] 그러고보니깐, 이곳은 사방이 막힌 곳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야영지로 선택 한 거였는데 맙소사...미노는 등뒤를 축축하게 적시는 땀을 무시하면서 입술 을 꾹 깨물었다. "망했군." -캇캇캇캇캇! 일행을 비웃는 듯한 울음소리와 같은 것들은 계속해서 조여들고 있었다. 마왕, 용사놀이하다-14 -카카카카카카캇! 계속해서 들려오는 그 징그러운 울음소리. 아벨은 귀를 막고 싶다는 표정을 절실히 내비치며 원안에 자리잡은 금빛 삼 각형이 새겨져 있는 성표를 잡았다. "빛에 따르는 그림자, 빛을 주관하시고 동시에 그림자를 주관하시는 이시여. 지금 저를 어여삐여겨 그대의 기적을 강림시켜 주소서...! 그대는 빛을 지배 하시는 자, 낮을 지배하시는 분, 그림자를 보호하시는 분, 원하노니, 이 낮과 밤을 뒤엎어 우리들 앞에 환한 예지를 비추어 주소서...!!" 아벨의 기도가 끝나자 그를 중심으로 환한 빛이 뿜어져 오르기 시작했다. 캇캇대는 괴물들도 움찔할 정도로 사방은 휘황하게 빛나기 시작했고, 이내 나무도 땅도 하늘도 저절로 빛을 내며 사방을 환히 밝혔다. 아벨은 거의 쓰러지기 직전의 창백한 얼굴로 비틀대며 일어났다. "...어...어디선가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군집생활을 하는 몬스터들에게는 핵이 되는 마물만 없애면 그 기능이 멈춘다는...커억!" "아벨!!" 세리오스는 피를 토하면서 다시 자리에 주저앉는 아벨을 향해 달려가려 했 지만 엘렌디아는 차가운 목소리로 제지했다. "앞을 보세요." 세리오스는 이를 악 물고는 그런 그녀의 말에 따라서 앞을 바라보았지만... 이건... 빛이 미치는 모든 영역에는 썩은 관목같은 눅눅한 녹갈색으로 문드러지고 있는, 커다랗게 벌린 입만 있는 뱀같은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입에서 뚝뚝 떨어져 내리는 기괴한 녹색의 체액.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캇캇대는 그것들 중 어떤 게 그 문제의 '핵'이란 걸 어떻게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이거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미노는 캇캇대며 달려드는 마물의 배를 손톱으로 쭉 갈라버리면서 기억을 더듬었다. 캇캇대며 바닥으로 뒹굴대는 괴물. 웩웩하면서 몸 안에 있는 체액들을 전부 토해내는 괴물을 이리저리 굴리면 서 확인하는 미노를 보면서, 롯테는 먹은걸 다 게워낼 정도로 역겹다는 표 정을 지었다. "어디서 본 것 같다뇨 미노?" "아아...분명 이것과 비슷한 걸 내가 본 적이 있단 말이야. 그러니까 이건..." 미노는 갑자기 뒤로 휙 돌더니 일행이 죽도록 싸우는 동안 쿨쿨쿨 잘 자고 있는 히드레안이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그사이에도 이 놈의 괴물들은 지치지도 않는지 또다시 밀고, 밀고 또 밀고 들어오고 있었으니 남은 네 명만 죽어나는 꼴이었다. 다행히 롯테와 로느의 합동 공격은 잘 먹히고 있었다. 롯테가 채찍으로 후려쳐 잡으면 로느가 도끼로 풀 스윙을 해서 찍어 죽이는 한 마디로 잔인, 엽기, 호러, 그로테스크한 녹색 체액 괴물들의 피튀기는 장 면들이 연속 촬영되고 있었지만 세리오스나 엘렌디아도 그 무지막지한 수요 에 밀리는 와중이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일어나!" 미노는 자고 있는 히드레안의 귓가에 대고 큰 소리로 외쳤지만, 히드레안이 잠이 많다는 건 세 살 바기 어린애도 잘 아는 사실이었다. 미노는 후우, 하고 숨을 한번 더 들이쉬더니 그의 귓가에다 대고 뭐라고 작 게 속삭였다. 순간 흠칫하면서 벌떡 일어나는 히드레안. "응? 방금 안긴다고 그랬어 미노?" "꿈 꾼 거야 꿈! 그보다 저것좀 보라고!" 히드레안은 밝아진 주변에 잠시 눈이 부신지 눈을 찡그렸다가 사방을 둘러 보았다. 그리고 나서 모든 걸 확인하자 휙하고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리면 서 입을 가렸다. "어쩌면 저렇게 미학적으로 끔찍하게 역겨울 수가..." 미노는 퍼억하고 히드레안을 후려치면서 외쳤다. "네가 만든 거잖아!!" "기억에 없다. 내가 언제 저런걸..." 히드레안은 휙하고 이번엔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리면서 모른척 가증을 떨었 고 호오, 그래? 하면서 미노는 손에서 아직도 뚝뚝 떨어지고 있는 녹색의 체액을 그의 눈 앞으로 들이 밀었다. "이거, 네가 전에 연구하던 핵을 지닌 몬스터 연구에 쓰던 혈액 대체용 용 액 아냐?" "...생각났군, 설탕 맛 슬라임을 만들려다가 실패했던..." "그딴 게 중요한게 아니잖아 이 멍청한 자식앗! 네놈이 만든 저 괴물들이 지금 습격중이란 말이다!" 히드레안은 우응? 하면서 눈을 커다랗게 뜨고 미노를 바라보았다. 마치 '그래서 내가 뭐 어쩌란 거야? 난 아무 것도 모르는 걸?'이라는 단어 를 압축시킨 듯한 그 백치미 적인 미소... 미노는 씨익, 하고 한번 웃어 준 후 그를 가차없이 후려쳤다. "넌 웃는 얼굴에도 맞을 놈이야!" "그렇다고 감히 이 몸을 치다니!" 히드레안과 미노는 상황 파악도 못하고 또 자기들끼리 싸우기 시작했고 롯 테는 그런 둘을 향해 비명을 질렀다. "그만하고 좀 도와줘!! 꺄아아앗!" "아아, 시끄럽기 짝이 없군." 히드레안은 자리에서 일어나 스윽하고 사방을 매우고 있는 괴물들을 훑어보 더니 턱을 괴었다. 그사이 치유마법을 마친 아벨은 창백한 체 앉아 있다가 비틀대며 히드레안 쪽으로 일어났다. "...하드라 씨, 저건 마치 무한 증식이라도 하는 것만 같은데...혹시 핵이 어 딧는지 아실 수 있습니까?" "불가능 해." "예?" 히드레안은 자느라고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스윽하고 쓸어 넘기고는 천천히 팔짱을 끼고 입을 열었다. "저건 핵이 이동하는 생명체라고. 만약 핵이 공격당해서 파괴되면 근처에 있던 또다른 녀석에게로 핵이 이동되지. 핵과 핵의 교감상태랄까...그리고 한 개체만 파괴해서 될 게 아니라 뒤에 있는 것들은 앞으로 나가기 위해서 계 속해서 증식을 하지. 증식이 일어나면 놈들은 계속해서 앞으로 나가고, 증식 을 위해 필요한 걸 취하려 하지. '단백질'을 말이야. 거기다 베고 베어도 놈들은 몸 속의 체액에서 하루나 이틀이면 다시 살아난 다." 아벨은 허옇게 굳어 버렸다. "대단위 공격마법도 아무런 소용이 없어. 미티워 스웜을 날리든, 미티워 샤 워를 쏟아 붓든 한번 당한 공격은 차츰차츰 기억해서 다음 세대 녀석들은 그 공격을 받아도 멀쩡하게 살아나거든. 멋지지?" 아벨은 입만 쩌억 벌리고서 그런 히드레안의 말을 듣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 세리오스의 당황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거...검을 튕겨 냈어!?" 아벨은 어디서 그런 힘이 튀어나왔는지 히드레안의 멱살을 잡으면서(!) 외 쳤다. "방법이 그래서 전혀 없다는 겁니까!!" "응." 아벨은 희게 질려서 털썩하고 주저앉았다. 미노는 한숨을 쉬고는 앞으로 달려나가서 그대로 한 마리의 그 뱀 비슷한 것을 찢어 발겼다. 히드레안은 하암, 하고 하품을 하더니 머리카락을 스윽 쓸어 넘겼다. "저게 언제부터 나타났지?" 아벨은 더듬대면서 겨우 입을 열었다. "아까...알테미스가...알테미스가 한 가운데 왔을 때..." "흐음..." 히드레안은 턱을 쓰다듬다가 천천히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스윽하면서 그 의 손이 느릿하게 잔상을 그리면서 움직였다고 생각될 때, 눈앞이 갑자기 어둠으로 물들었다. 캄캄한 어둠의 한가운데에서 히드레안은 천천히 손을 놀렸다. 사방에 뻗어있는 가느다랗고 반짝대는 실을 하나 끌어다, 저기서 다시 움직 이는 실을 손 끝에 걸고 움직인다. 사방을 매운 체 가득히 빛나고 있던 실이 사방에서 흔들리며 따라서 움직이 고, 히드레안의 손길에 따라서 빛을 뿜으며 가만히 흔들렸다. 움직이던 실은 이내 그 모습을 갖추어서 움직이며 꼬이기 시작했다. 균형을 유지하고 있던 실들이 제각각 흐트러지자 그 모습이 기괴하게 변했 고, 히드레안은 가는 실들을 다시 흔들고 밀고, 사방으로 휘어 감아서 모양 을 갖추었다. "졸리군...감히 날 쳤겠다 미노 놈, 나중에 두고보자." 히드레안은 그렇게 중얼대면서 다시 손을 아래로 늘어뜨렸고, 이내 그의 시 각은 빛으로 둘러싸인 숲으로 돌아왔다. 아벨은 그대로 굳어서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 괴물들, 괴물들이... "...이게...어떻게 된 겁니까?" 연기로 화해 사라졌다. 눈앞에서, 울부짖고 계속해서 움직이던 그것들이...순식간에 투명한 연기로 화해 소멸해 버렸다. 남은건 바닥에서 켁켁대는 녹색 체액 더미에서 꾸물대는 시체와 덜 죽은 괴 물들뿐이었다. 아벨의 떨리는 물음에 히드레안은 여상스레 대꾸했다. "아아, 조금 바꿨어." "바꾸...다뇨?" "일정 시간이 지나면 소멸하도록 바꿨다고.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어?" 엘렌디아는 온 몸에 자잘하게 난 피부를 찢긴 상처를 살피며 아벨과 히드레 안 쪽으로 걸어왔다. 일행 중 싸움에 참가한 상태에서 그나마 몸이 제일 성 한 롯테도 온통 땀 범벅에 팔에는 피가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거의 질릴 정도로 기분 나쁘다는 표정이 깃들어 있었고 로 느는 묵묵히 걸음만 옮기고 있었다. "기, 기분 나빠 이 체액!" 히드레안은 모포 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면서 중얼댔다. "핥아봐라." "뭐가 어째!?" "핥아봐, 피로 회복에 좋은 단맛이 날거니까." 그리고 히드레안은 모포로 기어 들어가 잠을 청했다. 어이없어졌는지 롯테는 온 몸에 체액을 뒤집어 쓴 체로 멍하니 서 있었고, 세리오스는 뭔가 결심을 한 듯 할짝 하고 검에 묻어있는 체액을 핥아보더니 묘한 표정이 돼서 일행들을 둘러보았다. "...정말 맛있는데요?" "우에에엑! 그래도 아까 그 역겹던 놈들 몸에서 나온 거잖아!" 롯테는 구역질을 하면서 구석으로 뛰어갔고, 미노는 피식 웃으면서 머리카 락에 아직도 찐득하게 달라 붙어있는 체액을 떨구었다. 히드레안이 이 실험을 포기 했던건 생긴 게 역겨워서 먹을 맛이 안 난다는 이유였으니까. 생각해 봐라. 카캇대는 녹색 체액을 뿜으며 기어다니는 뱀을 쭉 갈라서 그 몸에 든 체액을 쪽쪽 빨아먹고 있는 모습을... 그거야말로 궁극의 엽기였다. "...정말 피로회복에 효과도 있는 것 같군요. 상당히 진한 단맛입니다. 꿀에 가까울 정도...?" "우웩! 그만해 엘렌!!" "...맛있는데요, 롯테도 먹어봐요..." 세리오스는 아에 바닥에 굴러다니는 그 괴물들 중 하나를 잡아서 입에서 뚝 뚝 떨어지는 녹색의 체액을 받아서 마시고 있었다. 아무리 각종 전투에 나 가서 업적을 쌓다보니 고블린 구이도 먹어볼 정도로 비위가 좋아졌다곤 하 지만....대체 저 적응력이란... "어디어디? 흐음, 정말 맛이 괜찮은데?" ....미, 미노마저...? 아벨은 질린 얼굴로 머리를 감싸쥐었다. "대체 당신들의 비위는 어디까지 강한 겁니까...?" "정말 맛있는데 아벨..." 엘렌디아는 끄덕대면서 말없이 체액을 마시는 데에 골몰하고 있었다. 누가 지나가다 보면 '충격! 용사일행 망가지다!' 쯤으로 신문사에 제보할...... 말이 헛 나왔다. 어쨌든 그렇게 켁켁대면서 바닥을 구르고 있는 녹색의 썩 은 관목같은 괴물들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체액으로 피로를 회복하며...일행 은 스스로 엽기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아아! 그래도... 해는 뜬다!! 마왕 이야기-16 마왕, 용사놀이하다-15 용사일행은 수 없는 마왕이 배치한 위기를 겪으며 드디어 최종 목적지에 도 달했다. 마왕성은 검고 천둥번개를 내리 떨어뜨리는 배경을 무대로 펼쳐져 있었고 그 아래에는 쌓여있는 사람의 시체들이 그 모습을 간간히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용사는 언덕 위에 서서 그 모습을 낱낱이 보며 천천히 허리에 차있 는 성검 세인트 소드를 뽑아 성을 두 조각으로 가를 듯한 기세로 가르키며 외쳤다. "자아, 드디어 우리의 모험이 종착역에 다다랐다...! 모든 사람들의 공포였던 마왕이지만, 나는 반드시 물리치고야 말겠다!" ...라고 말했으면 좋겠지만. 어쩌겠는가, 이 글의 주인공은 '용사'가 아니라 '마왕'인 것을. 괜히 제목이 '마왕 이야기'가 아니란 말이다! 일행은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천신만고의 고생 끝에 겨우 언덕 위를 헥헥 대며 올라왔을 때는, 아직 한낮이었다. 하필 날씨는 또 끝내주게 좋아서 하늘에는 해가 떠있고 구름은 한적하게 흘 러가고 있었으며, 때마침 여름날씨답게 사방이 청녹색으로 물들어 새소리까 지 들려왔으니 한 마디로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상당히 멋스럽고 고풍스런, 색이 검은 색만 아니라면 일개 국왕의 성이라고 봐도 문제없을 만큼 커다란 성이 내려다보면 그림같이 그 자리에 서있었고 주변에는 거기까지 도달하는 길이 잘 닦여져 있었다. "...뭔가...좀 기운 빠지는 것 같지 않아?" 롯테는 머리카락을 한차례 쓸어서 북북 긁으면서 그렇게 물었고, 세리오스 는 흐읍, 하고 숨을 삼키더니 주먹을 꽉 쥐었다. 그는 기운차게 큰소리로 외쳤다. "가죠!!" 일행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각기 무기를 다잡았다. "잠깐!" 히드레안은 좋아! 라고 외치면서 막 돌진하려던 일행을 제지하면서 팔짱을 낀 자세로 진지한 얼굴로 일행을 한번 쭉 둘러보더니 입을 열었다. 일행은 뭣 때문에 그러나 싶어서 진지하게 그를 응시했고, 별말 안나올 걸 알고있는 미노만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밥은 먹고 가자." 쿠당탕! 하는 소리는 대체 뭐지? ......크음! 거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라! 아무리 용사라고 해도 빈속으로 마왕성에 돌진해 봤자 나올게 뭐가 있겠는 가? 히드레안은 그것을 매우 적재적소에 제대로 배치해서 말했다. 더군다나 용사 이야기나 전설 이야기에 보면 꼭 용사가 '3일 낮으로 싸우고 3일 밤으로 싸웠으며 그 흐르는 피가 강을 이뤄 대지를 끊임없이 흘렀으니 오직 은빛 갑옷으로 찬란히 쌓인 체 그는 거기 그렇게, 영원히 존재할 것처 럼 서 있었다' 따위의 말로 용사의 궁극 [잠 안자고 죽어라 싸우기]를 칭송 하곤 했지만, 3일 밤낮으로 한번 싸워봐라. 그런 소리가 나오나... 아무리 정신력이 높다고 해도 3일 밤낮으로 혼자만 싸워대고 혼자서 검을 휘두르면 검의 날이 아무리 좋아도 피에 절어 무뎌지기 마련이고 갑옷도 상 하기 마련이었다. 하여튼 용사 이야기란 과장은 좋아해서... ...얘기가 왜 샜지? 어쨌든!! 일행은 어쩔 수 없이 피크닉 돗자리를 펼치고, 히드레안이 꺼내 온 바구니 를 펼쳐서 그 안에 들어 있는 샌드위치와 고로케, 홍차 등을 먹고 마시면서 고즈넉한 점심을 즐기기 시작했다. 등뒤에 펼쳐진 마왕성과는 상관없이 날씨는 따뜻했고 하늘은 맑았으며 풍경 도 좋았다. 이런 날이야말로 피크닉 가기 딱 좋은 날씨가 아닐까...? "아아, 정말 날씨 좋군. 이런 날은 낮잠이나 자면서 편히 쉬어야 하는데 말 이야." "그러게나 말입니다." 엘렌디아도 히드레안의 말에 대꾸하면서 홍차의 향을 음미하고 있었다. 드워프, 아니 드래곤다운 식욕으로 로느도 샌드위치를 벌써 30여개 가량 깨 끗이 비웠고 히드레안은 홍차 잔만 든 체로 허공을 바라보며 후우, 하면서 매우 여성스럽고 아름답게 한숨을 한번 내쉬고는 한 모금 홀짝였다. ...새...새끼손가락은 왜 세우는 건데... "저어...그렇지만 마왕성 앞에서 이렇게 점심을 먹어도 될까요?" "괜찮아. 세리오스 넌 마왕이 용사가 쳐들어가기 직전에 쳐들어오는 거 봤 느냐?" "....아뇨." 히드레안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당연히 없지! 이건 예의야! 그러니까 밥이나 든든하게 먹어라! 그래야 앞으 로 있을 전투에 대비할 수 있는 거야...훗훗훗..." 이, 이봐 히드레안. 그런 음흉한 웃음은 뭐냐구... 한편 이곳은 마왕성 안. 불트는 거대한 '나 마왕이로소이다' 옥좌에 앉아서 멍하니 입구에 있는 커 다란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음 같아선 당장 짐 싸들고 '항복!'을 외치곤 도망가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더 끔찍하게 히드레안의 장난감이 되서 죽도 살도 못하고 괴롭힘 당할 거였다. 그러느니 차라리 멋있게 죽는 게 나을지도 모르지... "...불트님..." "...물러가라. 네가 나설 일이 아니다." "이대로...이대로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체 그럼 죽으실 건가요!? 저 간악한 마신왕의 손에 그냥 허무하게, 장난감이 돼서 돌아가실 거냐구요! 불트님!" 불트는 다른 이들이 보았다간 공포로 질려서 비명도 못 지르고 주저앉을 듯 한 얼굴을 한 체 천천히 자신을 애타게 바라보는 여인에게로 고개를 돌리곤 한숨을 쉬었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것...모든 것은 내 운명이다." "그런건 싫어요! 이렇게 허무하게...이렇게..." 여인은 바닥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렸고, 불트는 허공을 응시했다. 그대로 유리로 만들어진 천장...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진 않았다. 그 위에는 거대한 카오스 게이트가 입을 벌린 체 잔악한 미소를 짓고서 일그러진 모양을 취하고 있었다. "...힘없는 자의 운명은 이것일 뿐이야..." 그는, 그렇게 무거운 한마디를 토해냈다. 마왕 이야기-17 마왕, 용사놀이하다-16 불트가 진지하게 뭔가를 생각하며 폼을 잡고 있던 간에 말던 간에, 히드레 안은 점심식사를 끝내고 오후의 낮잠까지 즐기려고 했다가 일행의 차갑고 싸늘한 눈총을 받아야했다. 천상 놀고먹고 자는데 정신이 팔려있었던 그니 만큼 너무해! 를 외칠 만도 하지만, 다행히 미노가 알아서 그를 가볍게 후려 패 줌으로 그 상황은 마무 리되었다. 진정 다행 아닌가? "후우...일단 문지기가 제일 문제로군. 마왕 성의 구조는 일반성의 구조와 그 리 틀리지 않는 것 같은데... 아마 알현실은 3층 이상의 곳에 있을 것이 뻔 하고...또, 여기서 이렇게 바뀌게 되면..." 롯테의 상세한 설명을 들으며 일행은 각기 자신이 할 일을 숙지했다. 졸려서 아직도 꿈결을 헤메고 있는 저 '히드레안'은 빼고. "그럼...만약의 경우, 인질을 포기해야 한다는 건가요?" "당연하지. 그럴 경우엔 어쩔 수 없는 거야." 롯테는 그렇게 말하며 펼쳤던 양피지를 두르르 말아서 품안에 넣었고 세리 오스는 뭔가 망설이는 듯 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이를 악 물었다. "...해보죠." "좋아. 근데 정말 저 성의 보물의 반을 나 주는 거야?" 롯테가 그렇게 말하자 히드레안이 대꾸했다. "뭐, 보물 가지고 싶어하는 놈은 적으니까. 왕성 수리비 빼면 쓸데도 없고, 돈 넘쳐흐르는 드래곤이 돈을 어디다 쓰겠어. 엘프가 돈 밝히길 하나, 내가 돈이 필요하나, 성직자가 돈 가지고 싶겠나..." 히드레안의 말에 롯테는 만족한 웃음을 지으며 허리에 손을 얹었다. 그녀의 빨간 머리카락이 유달리 돋보인다. 엘렌디아는 정령계에서 소환한 화살과 화살대를 손질하며 묵묵히 앉아 있었 다. "...그런데 잠깐만, 드래곤이 어딨어?" 롯테는 손을 휘저으며 히드레안에게 그렇게 물었고, 히드레안은 머리카락을 휙, 하고 멋지게 쓸어 넘기며 입을 열었다. "금발 드워프." "...." 롯테는 눈을 멀뚱멀뚱 뜨고 로느를 바라보았고, 로느는 부끄러운지 고개를 살짝 숙이고 얼굴을 붉혔다.(드워프 주제에 말이다!) 히드레안은 윤기 흐르는 금발과 반짝대는 금색 눈을 가진 우락부락한 드워 프가 얼굴을 붉히는 장면을 보고는 공포와 오한, 엽기로 인해 한순간 손끝 이 떨릴 정도가 되었지만 꾹 참으며 입을 열었다. "로느 이그니스, 일단 저 성문을 부서줘야겠는데...이 곳은 넓으니 얼마든지 플리모프 해제가 가능하겠지?" [예, 가능합니다.] "세리오스?" 히드레안은 그렇게 물었고 뭔가 생각하고 있던 세리오스는 예? 하면서 화들 짝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공주는 무사할테니까 아무런 걱정을 하지 말아." 공주에게는 손대지 말라고 명령해 뒀으니 당연히 무사할 거야, 라는 말은 쏘옥 빼고 그렇게 위로하자 세리오스는 예...하면서 떨리는 고개를 끄덕댔다. "...그럼, 부탁합니다 로느 씨." 로느는 천천히 눈을 감고 환한 금빛으로 몸을 부풀리기 시작했다. 그의 몸은 천천히 떠오르기 시작하더니 그 모습을 커다랗게 부풀리고 이내 더 커다랗게 부풀리면서 거대한 모습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내 거대한 황금빛으로 변한 로느를 발견한 허공에 떠있던 몬스터들은 일 제히 카아앗, 하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로느는 천천히 날개를 빼어내며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있었고, 엘렌 디아는 13살 소녀의 키와 맞먹는 강궁에 빛으로 반짝대는 화살을 재어 그대 로 하늘에서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는 와이번과 타락 용, 하피 떼를 향해 고정시켰다. [영원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이들이여, 시작이며 시초이며 태초이며 그 끝을 영원히 신과 함께 하는 불멸의 존재들이여. 지금 나, 처음의 처음, 시작의 시작, 시초의 시초의 이름으로 기원하옵노니 내 앞에 나타나 나의 적을 물 리치어라.] 엘렌디아는 화살을 그대로 쏘아 올리며 외쳤다. [바람의 왕이여, 나와 함께 하는 영원한 존재여, 폭풍 같은 노도로 내 적을 물리치어라!] 화살은 마치 바람의 소용돌이를 일으키듯이 몬스터 떼를 향해 날아갔고 소 용돌이를 일으키면서 엄청난 풍압을 이용해 몬스터들이 로느가 완전히 플리 모프를 해제할 동안 날아들지 못하게 만들었다. 엘렌디아는 두 번째 화살을 재어 놓았고, 로느는 플리모프 해제를 마치고 거대하고 아름다운 드래곤의 모습으로 화한 체 고고히 고개를 들어 숨을 삼 키기 시작했다. "어린것이 제법. 브레스까지 사용할 줄 아는 모양이군." 히드레안은 그렇게 말하며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곤 귀를 막았다. 일행도 재빨리 그런 그의 행동을 보자마자 화닥닥 자신의 귀를 막았고, 현 명한 그들의 선택이 옳았기라도 한지, 로느는 거대한 소리를 내뱉으며 황금 빛의 구체를 내쏘았다. -크아아아아아앙! 드래곤 피어에 이어서 드래곤 브레스가 성에 직격하자, 파직대며 결계가 검 은빛을 발하며 밀어내기 시작했다. 로느는 그정도는 예상했다는 듯이, 뻐기듯 가슴을 부풀리며 다시 숨을 들이 마시기 시작했다. 허공에서 우왕자왕하던 몬스터를 향해 엘렌디아는 그 기회를 노려 다시 화 살을 내 쏘았다. [영원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이들이여, 시작이며 시초이며 태초이며 그 끝을 영원히 신과 함께 하는 불멸의 존재들이여. 지금 나, 처음의 처음, 시작의 시작, 시초의 시초의 이름으로 기원하옵노니 내 앞에 나타나 나의 적을 물 리치어라.] 화살은 이번에는 마치 불꽃처럼 화려하게 불타오르더니 그대로 몬스터들을 휘감고 있는 바람과 섞여 폭팔했고, 엘렌디아는 무표정하니 세 번째 화살을 재었다. "...굉, 굉장하다야 엘렌!" 롯테가 호들갑스럽게 손을 휘두르며 그녀를 칭찬하건 말건, 엘렌디아는 묵 묵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세리오스도 후두둑하고 반수 이상 떨어진 몬스터의 숫자에 입을 다물지 못 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히드레안은 뭐가 모자란 지 그런 엘렌디아를 향해 날카롭게 한마디 쏘았다. "형편없는 능력이군. 아디아도 한번의 외침으로 저 정도의 몬스터는 내쳤어. 같은 디아라도 이 정도로 능력 차가 나다니, 엘프는 뭘 믿는 거라지?" "108의 정령왕께서 그 거처를 다른 존재의 몸으로 옮기셨기에." 엘렌디아는 짤막하게 대꾸했지만 나름대로 자존심에 상처 입었는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가 다시 놓았다. 두 번째는 좀 오래 걸렸지만 아직도 파직 대며 돌고있는 금색의 브레스를 향해서 로느는 가차없이 직선으로 쭉 뻗어져 나가는 브레스를 쏘았다. -크아아아아! 그와 동시에 결계도 무너졌는지 기이한 귀곡성을 남기고 터져 나갔다. "성공이군요!" 아벨은 환호성을 질렀고 세리오스는 성검 세인트 소드를 뽑았다. 새하얗게 빛나는 검을 손에 쥔 체 그는 소리쳤다. "가자!!" 그답지 않게 존댓말이 빠졌지만, 오히려 지금에선 그게 더 박력 있어 보였 다. 일행은 다들 무기를 쥐고 앞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오는가." 불트는 거대한 수정거울에 비치고 있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눈쌀을 찌푸렸 다. 긴 검은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히드레안의 모습이 약간 뒷편에 처져있었고, 그는 약간 미소를 지은 체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등뒤로 식은땀이 주륵하고 흘러내린다. 엿보고 있다는 것조차 눈치챘단 말인가? 불트는 화려하고 거대한 의자를 박 차고 일어났다. "대체 당신은 뭐란 말인가! 마족의 구원자인가 파괴자인가! 놀이를 위해 죄 없는 마족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희생시킬 수 있다는 건가!!" 그는 으아아! 하면서 의자의 모서리를 쥐었다. 으드득하면서 그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모서리는 부서졌고, 불트는 부서진 조각을 수정 거울을 향해 집어던졌다. 쨍그랑하는 소리가 넓고 검은 색으로 치장된 공허한 알현장을 휘어 감고 한 차례 웅웅댔고, 불트는 다시 의자에 주저앉았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일. ...그가 하고자 하면 감히 반항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그렇다고 해도...그렇다고 해도... 히드레안은 싸늘한 비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그래봤자..." 그의 손에서 마력이 점차 뭉쳐가기 시작하고, 차가운 얼음의 기둥이 그를 가로막는 몬스터들을 꿰뚫고 위로위로 올라갔다. 마치 얼음으로 만든 꼬챙이에 꽂힌 듯한 모습이 돼서 기분 나쁜 적갈색 체 액을 떨어뜨리는 몬스터들. 히드레안은 점점 짙어지는 미소를 띈 체로 말을 끝맺었다. "...그래봤자 너희는 고작 내 노리개 감일 뿐이다." 사방으로 얼음의 마력이 휘어 감기기 시작했고, 세리오스는 흐윽, 하면서 몸 을 숙였다. 등 뒤에서 퍼져 나오는 얼음의 마력 때문에 입에서 입김까지 서 려나올 정도였다. 히드레안은 세리오스를 향해 외쳤다. "먼저 가라! 뒷처리는 해주지!" "...고, 고마워요 하드라!" 세리오스는 단숨에 검을 휘둘러 몬스터들을 견제하고 달려나가기 시작했고, 미노는 그 밤하늘을 녹여서 가볍게 흩뿌린 듯 빛나는 날개를 활짝 펼쳐 히 드레안을 감싸며 속삭였다. "...어쩔까 주인님?" 히드레안은 피식, 하고 웃으며 대꾸했다. "용사는 최후까지 살아남는 법이라지?" "젠장할 놈의 자식, 끝까지 용사놀이는 포기 못하겠다는 거냐?" "시끄럽다 시종주제에!" 미노는 날개를 다시 활짝 펼쳐서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몬스터들을 가볍게 뛰어넘어서, 그는 세리오스를 따라 날아가기 시작했다. 마왕 이야기-18 마왕, 용사놀이하다-17 아래에 모여있는 것들이 전부인지, 위로 올라가자 의외로 한산한(?) 배치가 되어있었다. 덕분에 아무런 거칠게 없이 뛰어나가던 세리오스는 주춤하며 갑자기 멈춰섰 다. 첫 번째 갈림길, 대체 어느 쪽으로 나아가야 하는 거지? 왼쪽인가 오른쪽인가...그러다 그는 칼을 허리에 잠깐 차고-매우 위험한 행 동이었지만 비록-바닥에 쓸려있는 자국을 확인했다. 그리고 비교적 자국이 많은 쪽을 확인하곤 가볍게 바닥의 먼지를 훑어본 후, 그는 천천히 왼쪽 길을 향해 검을 뽑아든 체 뛰어나갔다. 탁탁탁탁.... 발소리가 거세게 울린다. 가벼운 가죽을 대고, 소리도 경쾌하긴 했지만...세리오스의 귀에는 계속되는 추의 속삭임으로 들려왔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다가갈 때마다 리오나의 하얀 피부 위에도 붉은 꽃처 럼 떨어지는 핏방울...세리오스는 흠칫하면서 그런 상념을 털어 버리곤 검을 제대로 쥐었다. 후우, 하고 한번 호흡을 고른다. 그는 거대한 검은 문에 도달했다. 여기서는 혼자였다. 비록 얼마간이지만 함께 여행했던 동료도 없는...그는 한번 더 활짝 웃고 있 는 리오나의 미소를 생각해 본 후 천천히 검을 굳게 다잡았다. "하압!" 문을 걷어차자, 문은 당연한 것처럼 콰앙 하면서 밀려났다. 그리고 온통 어두운 색조로 꾸며진 마왕의 알현실이 들어 났고, 거대하고 위압적인 옥좌 위에 앉아있는,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확연하게 알만한 사악 하고 음침하고 어둡고, 보는 것만으로도 비명소리가 나올 만큼 무시무시하 게 생긴 마족이 거기에 앉아 있었다. 그의 주변에는, 검은 그림자가 드리울 듯 했다. 세리오스는 그를 노려보며 예의 그 큰 목소리로 외쳤다. "마왕이여! 나 세리오스 폰 (...중간생략...)....헬리오르! 그대에게 지금 도전한 다! 카오스 게이트를 닫고 잡아간 공주들을 모두 풀어줘라! 그렇지 않다면 내 이 검으로 널 심판하겠다!" 아아...감격. 역시 용사 혼자만 나와야 진정 멋있는 글을 쓸 수 있는 것이었다. 불트는 천천히 그 거대하고 육중한 몸을 의자에서 일으키면서 파란 눈동자 를 크게 뜨고있는 인간을 바라보았다. "...가소로운 인간이여, 고작 그대의 힘으로 위대한 마왕의 힘을 이길 수 있 을 것이라 생각하는가? 여기까지 온 것은 칭찬해 주겠다...하지만!" 불트는 허공에서 나타난 검을 지켜들고는 콰앙하고 바닥으로 내리 꽂았다. "여기서 그대의 운명을 달리하게 될 것이다!!" 불트는 허공에 떠있는 컨닝 페이퍼를 의식하면서 히드레안이 적어준 대사 그대로를 줄줄 읊었다. 만약 한마디라도 틀리면 넌 죽어, 라는(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똑같건만) 말을 들었기 때문에, 그는 허공에 떠있는, 대상자에 게만 모습이 보이는 마법의 종이를 열심히 훑고 있었다. 물론 아무 것도 모르는 바보 같은 우리의 세리오스... 그는 검을 수직으로 지켜세웠다. "그전에 묻겠다! 고결하신 나의 레이디 리오나 폰 스프라이트 인 (....중간생 략)...야나께서는 어찌 되셨는가!" 멋...멋지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용사 이야기! 쓰는 자의 피를 들끓게 하는 대사들이 아니겠는가! 불트는 흐응, 하면서 검을 치켜들었다. "알고 싶다면 날 쓰러뜨려라!" 불트도 시키는 데로 하느라 고역이 장난이 아니었다. 마법 쪽지의 맨 마지막에는 '만약 위에 언급한 질문 외의 질문을 용사가 할 시에는 알고 싶다면 날 쓰러뜨려라 라는 단어로 얼버무리고 공격해 버려라' 는 친절한 주석까지 붙어있었다. 진정 노는데 목숨 걸고 있는 히드레안다운 처사였다. "간다!" 세리오스는 차앗! 하면서 기합과 함께 옥좌를 향해 달려나가기 시작했고, 불트도 검을 든 체 옥좌에서 내려와 그와 대치했다. 그때, 불트 뒤에 있는 옥좌에서 늘씬한 8등신의 미녀가 튀어나오더니 외쳤 다. "그만해요! 이건 모두 연극일 뿐이라고요!" 불트는 흠칫하고 검을 거두며 그녀를 향해 외쳤다. "당장 들어가라! 네 목숨마저 끝나고 싶은 거냐...!" "하지만...하지만 불트님! 이렇게 허망하게 생을 마감하실 건가요!? 마족에게 존재하는 생존 본능조차 무시되는 겁니까!? 이건 너무하잖아요!" 여인은 피를 토하듯이 외쳤고 세리오스는 그만 멍해져서 여인을 바라보더 니, 검을 아래로 늘어뜨렸다. 그의 입에선, 믿기지 않는 다는 듯이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리...리오나?" 히드레안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상당히 깨끗하게 정리된 존재들. 그는 흐음, 하고는 한번 미소짓고는 뒷정리 에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가 갑자기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왜 그러시는지." 엘렌디아는 거칠게 흩어진 자신의 옷자락을 정리하면서 히드레안에게 그렇 게 물었고, 히드레안은 약간 삐뚤어진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그녀에게 답했 다. "무대 위에 쓸모 없는 배우가 하나 올라와 있어." "...변수를 예상 못하신 건 아닐텐데요." "곧바로 이동한다! 세리오스를 도와야지!" 히드레안은 엘렌디아의 말을 무시한 체 그렇게 말했고, 히드레안의 마법 덕 에 상당히 별 고생이 없었던 일행은 재빨리 그의 주변으로 다가왔다. 이내 히드레안의 입에서 워프의 주문이 완성되었고, 그들은 얼음으로 뒤덮 힌 몬스터의 시체더미에서 사라졌다. "이럴...이럴 수가...리오나! 지금 어떻게 당신이 여기에!?" 흘러내린 구불구불한 금발. 붉은 입술. 크고 맑은 푸른 눈동자... 그녀는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서 그 자리에 당당히 서 있었고, 이내 세리오 스를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세리오스! 지금 당신은 크게 착각하고 있는 거예요! 제가 납치된 것은 맞지만 그건..." "세리오스! 괜찮나!?" "어이 세리오스! 안 다쳤어?" [세리오스 님] "..." "좋은 타이밍이군 그래." 히드레안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고, 일행은 각기 세리오스를 살피며 재빨 리 전열을 정비했다. 리오나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서 히드레안을 바라보 고 있었고, 히드레안도 그런 리오나를 바라보더니 차가운 눈빛을 한번 던졌 다. "...세리오스...이 모든 일의 원흉은..." 리오나는 겨우겨우 힙겹게 입을 떼기 시작했고, 히드레안은 갑자기 큰 소리 로 외쳤다. "비겁하군! 마왕 불트!" "...무, 무슨?" 히드레안이 갑자기 앞으로 나서며 불트를 가르키자, 거의 본능적으로 불트 는 당황해서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히드레안은 그대로 청산유수로-며칠 연습했는지는 묻지 말지어다-말을 마구 해댔다. "저 현명하고 아름다우며 고귀한 여인에게 마법을 걸어 우리를 미혹시키려 고 하다니...! 하지만 그런 잔인한 수에 우리가 굴할 줄 아느냐! 너의 운명은 여기서 끝이다! 정신 차리시오 공주!" ..... 둘러대는 데에도 천재적 재주가 있었군 히드레안... 리오나는 완전히 멍해져 버린 얼굴이었고, 세리오스는 아아, 하면서 검을 다 시 쥐었다. "그런 거였을 줄야...!" "그런...리오나 님! 이리 오십시오! 터닝으로 주문을!" 리오나는 어쩔 줄 몰라하면서 머리를 감싸쥐다가 다시 외쳤다. "그런 게 아니에요! 이 모든 일의 원흉은 불트 님이 아니에요! 이건 전부다 저자, 히드레안이 꾸민 일이라구요!" 그녀는 히드레안을 정확히 손가락으로 가르켰고, 히드레안은 쳇, 하면서 고 개를 살짝 돌렸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에요 리오나? 지금 당신은 마법에 걸려서 그런 건가 요?" 리오나는 세차게 고개를 젖고는 아무 것도 못한 체 그대로 굳어있는 불트의 앞을 가로막으며 눈물이 글썽대서 말을 이었다. "불트 님은 나쁜 분이 아니에요. 저자의 명령으로 절 납치하긴 했지만, 절 얼마나 잘 돌봐주셨는지 몰라요. 언제나 기사도만을 따지는 세리오스 당신 보다 더! 절 아껴 주셨다고요! 이런 분을 죽이면 절대로 당신을 용서하지 않을 거에요! 왜 모르는거에요! 지금 세리오스 당신은 저자의 놀이 대상이 란 말에요!" 세리오스는 충격을 받은 체 그대로 서 있었고, 불트는 시퍼렇게 질려서 히 드레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히드레안은 모두 침묵으로 일관한 체 다들 자신을 쳐다보고 있자, 한숨을 푹 내쉬더니 고개를 살래살래 젖고는 입을 열었다. "계획변경, 내가 악의 대마왕을 하겠다." "........................뭐, 뭐야! 진짜 마왕이었어!?" "...갑자기 계획을 변경한다고 그게 말이 될법합니까." 엘렌디아는 아주 당연하게 그에게 그것을 지적해 주었고, 아직도 패닉상태 에 빠져있던 일행은 정말로 히드레안이 '마왕'이란걸 알아낸 듯 했다. 히드레안은 에이잇! 하면서 짜증을 내었다. "시끄럽다! 내 완벽한 계획에서 이런 흠집이 생기다니...묘령의 마법사는 중 도 하차! 그냥 악의 대마왕으로 바꾸겠다!" ....이, 이봐. 갑자기 바꾼다고 그게 맘대로 될 리가 없잖아. 일행은 너무나 황당해서 그런 히드레안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기만 했고, 히 드레안은 찌릿하고 눈길을 돌려서 리오나를 노려보았다. "저 멍청한 것만 없었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을...." "멍청한건 당신이에요!" "...무어라?" 히드레안은 난생 처음으로 자신에게 대놓고 '멍청하다'고 말하는 인간 여자 를 보면서 멍한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자신이 허락한 것도 아닌데 저런 무례한 말투라니, 하고 히드레안이 어이없 어하던 말던 그녀는 가차없이 내쏘았다. "악마 같은 작자! 당신한텐 놀이일지 모르겠지만 그 놀이 때문에 얼마나 많 은 게 희생 되었는 줄 알아요!? 힘이 있으면 다가 아니란 말야! 잔인한..." 히드레안은 스윽 하고 눈을 가늘게 떴다. "버릇없는 것이군." 그가 손을 갑자기 휙하고 쳐내는 듯한 시늉을 하자 짜악 소리가 나며 리오 나는 뺨을 감싸쥐고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는 손을 거두고는, 천천히 아직도 패닉에 빠져있는 일행을 바라보더니 입 을 열었다. "계획변경이라고 했다. 살고 싶으면 재주껏 덤벼라." "...무, 무슨 말도 안돼는...하드라!" 세리오스는 그렇게 외쳤고, 히드레안은 천천히 허공으로 몸을 떠올리더니 흐응, 하고 차갑기 짝이 없는 얼굴로 대답했다. "계획변경이라고 했다. 날 즐겁게 해주지 못하면 모두 죽음이다." 그리고 차가운 얼음의 마력이 그들을 휘어 감았다. 마왕 이야기-19 마왕, 용사놀이하다-18 불트는 공포로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다가 그제서야 뭔가 생각이 났는지 기합 성을 냈다. [프로텍트 프롬 매직!] 콰아앙하고 얼음의 화살들이 사방으로 튕겨 나갔고, 히드레안은 으흠, 하면 서 턱을 쓰다듬었다. "...넌 그럼 인간 편에 선 마왕할테냐 불트?" "...왕이시여! 대체 저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어째서 이런 행동을 하시는 겁니까? 이것은 대체 무엇입니까? 놀이라뇨! 아무리 그대가 아무런 생각이 없다고는 해도 이것은...!" 히드레안은 에이, 하더니 한번 더 얼음의 마력을 모아 불트가 만든 보호막 을 후려쳤다. 퍼청하면서 막은 깨어지고 자잘한 얼음 알갱이들이 그들을 향해 부서져 내 렸다. "시끄럽긴. 인형 주제에 잔말 하지 말란 말이다." "....마...맙소사...정말로...마왕?" 아벨은 완전히 굳어서 그렇게 중얼거렸고, 히드레안은 쯧, 하더니 말을 고쳤 다. "마신왕이다. 하찮은 인간아." 슈우우...하면서 그의 주변으로 마력이 휘어 감기기 시작했고 불트는 주문을 외우려 했다가 절망했다. 당연하지만, 절대 마력을 지닌 존재가 있으면 그 옆에 있는 작은 존재들은 마력은커녕 마법의 마자도 구경할 수 없게 된다. "...피해라 인간들이여. 저 분이 마음먹으면 살아남을 수 있는 존재란 아무 것도 없다. 지금 내 힘으론 너희들을 구하는 것조차 벅차다." 불트는 마지막으로 그렇게 말하며 떨리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불트님!" 리오나는 그렇게 외쳤고, 세리오스는 세인트 소드를 떨어뜨리곤 피를 토하 는 듯한 목소리로 히드레안을 향해 외쳤다. "어째서...! 어째서 이러는 겁니까! 장난...이었습니까? 그럼 뭡니까 나는! 당 신에게 있어 난 뭐고 이 모든 건 대체 무엇이었죠!? 말해봐요 하드라!" 히드레안은 핏, 하고 웃어버리더니 천천히 내려와 세리오스와 눈을 마주칠 정도까지 아슬아슬하니 떠서는 공포로 물들어 가고 있는 그의 눈동자를 깊 숙이, 아주 깊숙이 까지 각인 시키며 서늘한 입김이 묻어 나오는 속삭임을 흘려 넣었다. "넌 꿈과 현실을 착각하고 사느냐? 인간이여." 카아아앙! 날카로운 얼음의 파동이 세리오스를 덮쳤고, 그의 차가운 웃음소리와 함께 모든 게 얼음으로 물들어 버렸다. 천천히, 투명하게 얼어 들어간다. 비명을 지르거나 도망칠 새도 없이 그들은 그대로 투명하고 아름다운 차가 운 수정 속에 박힌 벌레가 되버렸다. ...어이없게도, 히드레안은 악의 마왕 역에 푹 빠져선 용사일행은 얼음 박제 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는 후후훗...하더니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곤 차갑게 얼어서 전시된 동상을 살짝 훑더니 중얼댔다. "...참으로 허무하군...인간이란..." 퍼억! 미노는 그런 히드레안의 뒤에서 갑자기 나타나 그를 후려 패면서 고함을 빽 질렀다. "이 멍청한 놈아! 그렇다고 갑자기 일행을 얼려 버리냐!?" "아아, 계획이 틀어져 버려서. 너야말로 또 길을 헤멘게냐?" "...윽... 그, 그건..." 미노는 어설프게 어물거렸고 히드레안은 팔짱을 끼곤 흐음, 하고 한마디 중 얼거렸다. "잘나가다가 어째서 중간에서 실수한 거지. 다음엔 좀 더 연구를 제대로 해 야겠군. 미노, 한번 더 해볼래? 이번엔 실수하지 않도록..." 미노는 으엑, 하면서 고함을 빽 질렀다. "싫어! 대체 이 말도 안돼는 짓을 몇 번을 하자는 거야! 이봐 히드레안. 시 간변형도 좋고 시간역류도 좋지만, 이번 건 좀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냐?!" "뭐가 말이냐?" "너 말야. 자신이 굉장히 비정상적 사고를 한다고 생각해 본적 없어?" 없다." 미노는 크윽, 하고 머리를 한번 움켜쥐더니 천천히 놓고는 다시 입을 열었 다. "...넘어가자 그래. 일단 불트하고 디아는 풀어줘야 하는 거 아니냐? 인간이 나 드래곤 정도야 얼린 상태로 있던 말던 상관없지만 그 두 존재는 중요하 지 않아?" 히드레안은 흐음, 하더니 얼어버린 상태로 그대로 서있는 조각들을 바라보 았다. "...새로운 용사를 찾아서 한번 더 놀아보고 싶은데. 평민 출신의 용사." "그만하래도!!" 히드레안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좋다. 관두겠다."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얼어붙었던 그들은 각기 허억, 하고 숨을 내쉬며 겨 우 그 상태에서 풀려났다. 불트는 덜덜 떨면서 히드레안을 바라보고 있었고 세리오스는 털썩하고 주저 앉았다. 나머지 일행들도 각기 편한 대로 자세를 취했고, 히드레안은 생긋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관두기로 했다." "...그...그럼..." "아아 불트. 넌 내 실험재료나 되버려라. 멍청한 것 같으니라고." 불트는 더 허옇게 질려서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미노는 으이구, 하면서 머리를 글적대더니 바닥에 주저앉아 아무 것도 못하고 있는 이들을 향해 입 을 열었다. "이봐들, 정신차려." "...하...하하하...그런건 가요? 고작 장난감? 꿈? 대체...우린 뭐냐구!!" 미노는 그렇게 발악하는 세리오스를 어이없다는 듯이 한번 내려다보더니 한 번 대꾸해 주었다. "넌 평생 연극 속에서 살아가냐 그럼?" 히드레안은 머리를 휘익 넘기곤 뒤로 돌아서서 걸어갔다. "몰라몰라, 다 귀찮다. 네가 뒷처리해라 미노." "떠넘기지마 이 자식아!" "....아 깜빡했군. 증거 없애버려, 안 그래도 신들이 호시탐탐 기회 보는 것 같으니까." "죽이라고?" 히드레안은 흐음, 하고 잠시 고개를 들어 허공을 바라보았다. 카오스 게이트는 그대로 열려있었다. "...죽여버려." 또각또각. 그의 발소리는 점차 멀어지기 시작하고 있었고, 미노는 짧은 한숨만을 내쉬 었다. 마왕 이야기-20 에필로그epilogue ... 카오스 게이트는 마왕성을 뒤엎고 사방의 모든 것을 죽음의 덩어리로 만들 며 타올랐다. 하지만 그 외의 모든 게이트들은 스스로 그 모습을 감추었으며 세상은 구원 받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용사의 격전지를 찾자 거기엔 쓸쓸히 꽂혀 있는 성검 세인트 소드 만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용사는 세상의 구원을 가져다주었다. 비록 그것은 자신의 목숨과, 용사의 일행들의 목숨, 그리고 그가 사랑하던 한 여인의 목숨을 대가로 한 것이겠지만.... 누가 알 것인가. 허무하게 피어오르는 모래 먼지에 뒤엉켜 날아오르는 저 바람결에도 용사의 숨결이 담겨 있을지. <전설의 용사 이야기 제 17권 456쪽 발췌....> 히드레안은 읽던 책을 덮는 미노를 보면서 우응? 하면서 침대에서 딩굴댔 다. "왜 그만 읽는 거냐 미노." "가증스러워서 목소리가 더 안나와서 그런다 왜...?" "뭐가 말이냐." "카오스 게이트 열어서 성까지 통체로 날려버리곤 그게 뒷.처.리. 라는 단어 로 설명이 가능하다고 생각 하냐!? 에라이 미친놈아!" 히드레안은 히죽히죽 웃었다. "그래도, 제법 재미있었다. 괜찮은 실험재료도 건졌고 말이다." "...그래서, 불트의 몸에다 저주의 각인을 이용한 광전사를 만들어 낸 게 '괜 찮은'실험이냐?" 히드레안은 허어, 하면서 고개를 살짝 저었다. "뭘 묻는 것이냐? 실험은 실험이기에 고귀한 것이다." 미노는 한숨만 푸욱하고 내쉬었다. 히드레안은 그런 미노의 무릎으로 슬슬 기어오더니 무릎배게를 하고서는 부 비적 댔다. "아아, 역시 그래도 여기가 제일 편하다. 자고 싶어." "그래...자라 자. 넌 자는 게 인류평화를 위해서도 좋은 놈이다." 미노는 그렇게 말하곤 벽으로 편하게 몸을 기대었고, 히드레안은 깊히 잠에 빠지기 시작했다. 다음에 깨어나 그가 무슨 일을 벌리지는....누가 알겠는가? -마왕, 용사놀이하다 편 완결- ==================================================== 이렇게 제 1편을 완결하며.... 무슨 생각을 가장 많이 했는가...? [히드레안은 정말 미친놈이 맞구나.....] 보고서 이게 뭐야! 말도 안돼! 황당해! 따위의 말씀을 하실 분이 많을 걸로 압니다... 그러나.....여러분, 제가 말 안했던가요? 이 소설은 마왕이 주인공이란 것을...용사는 그냥 들러리고 마왕이란 존재를 부각시키기 위한 소도구 일뿐! 오호호호호호!!!(역시 난 변태 엽기 작가였구 나...으흠...? ㅡㅡ?) 그리고 점차 히드레안의 잔인성과 엽기성에 관해서도 서서히 밝혀 가기로 하죠... 애써서 히드레안이 조금쯤은 생각이 있을 것이다, 뭔가 그래도 있는 놈이겠 지, 하고 자신을 위로하고 계시는 분계십니까? .....죄송합니다. ㅡㅡ; 생각 전혀 없는 놈입니다. 앞으로도 저 좋을데로 황당하게 구는 모습들을 많이 보여드릴 겁니다. 이 글은 옴니버스 식으로 진행 될 것이기 때문에...상당히 구성상 과거 현재 미래가 뒤엉킬 겁니다... 보는데 크게 불편은 없어요. 이 소설은 쉽게 쓰고 있기 설라무네....^m^ 그리고 다음 편은 아마 마왕의 취미생활 편이 될 거구요. 그 다음 3편에서는 미노의 팬(?) 여러분을 열광케 할 그의 과거가 나옵니 다. 유일하게 히드레안의 곁에 있는 자, 유일하게 그를 때리고 치고 괴롭힐 권 한이 있는 존재... 과연 둘 사이에는 무슨 과거가 있을 것인가~! 기대해 주세용~(오옷....광고까지?) ============================================================= 마왕 이야기-21 마왕의 취미생활-1 왕이여. 첨예한 혼돈의 아래에 존재하는 우리들의 왕이여. 혼돈을 지배하시되 지배하지 않는 존재여. 영원히 존재하시며 또한 불멸하시는 분이여. 그대는 어둠, 혼란, 파멸. 모든 심판의 저울 끝에 서 있는 자. 추를 지배하는 존재. 시간의 흐름 속에 고고히 존재하시는 분. 일곱 시간의 축을 지배하는 이. 왕이여. 그로 인해 그대 왕이라 불리는 존재. 히드레안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부스스 눈을 떴다. 그는 아하암 하면서 한차례 크게 기지개를 펴더니 눈을 부볐다. "...재수 없는 꿈을 꿨네. 계승식(繼承式)처럼 따분한 걸 꿈에서까지 보다 니..." 그는 상당히 불만이었는지 조금 더 투덜대다가 비척비척 침대에서 구르기 시작했다. 워낙 넓다보니 침대에서 빠져 나오는 것도 곤욕일 지경이니... 히드레안은 한참동안 푹푹하고 빠지는 침대를 뒹굴대면서 기어 나오기 시작 했다. 미노는 창가에 기대어서 읽던 책을 덮으면서 그렇게 악전고투하는 히드레안 을 흘낏 보았고, 작은 안경을 살짝 끌어올리며 한숨을 쉬었다. "그러게 누가 침대를 그렇게 크게 만들라냐." "보고만 있을 거냐..." "응. 당연한걸 묻지마." 미노는 그렇게 말해주고선 다시 책으로 빠져들었고, 히드레안은 이잇! 하더 니 결국 굴러서(...) 상당히 힘겹게 침대에서 빠져 나왔다. 방안은 일단 넓었다. 하얗고, 수정과 비슷한 성질의 투명한 원석으로 만들어진 방은 여러 각도에 서 그림자를 만들어 내어 사물을 비추어냈고, 그래서 사방으로 신비로운 음 영이 둘러 퍼져 있었다. 방의 한 가운데 커다랗게 자리잡고 있는 흰색 커버가 씌여진, 커튼으로 여 러겹 둘러서 과연 어디에 어떤 용도로 쓰는지 살짝 의심을 구가할 만한 침 대. 그리고 그 침대에서 일어나면 정면에 보이는 벽의 한쪽을 계속해서 꽉 메우 고 있는 끝도 없는 창. 창 밖에서는 소담스럽게 눈이 내려 모든 것을 새하얗게 만들고 있었다. 방안 가득히 멋대로 자라고 있는 녹색의 나무들은 각기 제멋대로 사방을 휘 어 감고 있었고, 창문이 나있는 벽과 침대 주변을 제외하면 모두가 녹색의 산림이었다. 중간중간 무슨 정원 흉내라도 내려는 것인지 조그마하게 소형 분수까지 놓여있는 것이... 이 방의 제작자가 얼마나 돈이 남아돌고 얼마나 시간이 남아돌고 얼마나 할 일이 없는지 보여줄 정도로 방은 거대하고 화려하고 넓고 끔찍하게스리 사 치스러웠다. "...무슨 책이냐?" "인간의 역사와 문화, 전체적인 변화기에 관한 고찰." "재미없는 거로군." 그는 그렇게 단정짓고는 머리카락을 끌어 모으려다가 휘릭하고 머리카락에 엉켜서 잠깐 주춤댔다. 미노는 으이구, 하더니 머리카락과 사투를 벌이고 있 는 히드레안을 번쩍 들어선 창가에 앉히곤 머리카락을 다듬어 주기 시작했 다. "대체 관리하기도 싫다면서 머리는 뭐 하러 기르는 건데?" "가지고 놀기 좋잖아." "재미로 죽어볼 놈." 미노는 그렇게 투덜대면서 그의 머리카락을 솜씨 좋게 깔끔하게 빗어서 다 섯 갈래로 나눈 후 꼬아서 아래로 늘어뜨려 주었다. 상당히 멋스럽게 만들어진 머리 모양에 히드레안은 조금 만져보더니 만족한 미소를 띄었다. "흐음...마음에 드는군." "그보다 히드레안, 여긴 언제까지 있을 거냐?" "내키는 만큼." "...너한테 전부터 가르쳐 주고 싶었던 게 있는데...야 이놈아! 시간 개념이란 것 좀 가지고 살수는 없는 거냐!" 히드레안은 후후후 하면서 대꾸했다. "싫다." 그렇게 말하곤 히드레안은 천천히 문 쪽으로 걸어나갔다. 그러니까 그 엄청난 밀림에 유일하게 나있는 길로 걸어갔다는 게 맞는 말 일까나...? 히드레안이 천천히, 울림조차 들려오지 않는 수정의 복도를 걸어가자 사방 에서 천천히 움직이던 시종들이 모두 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여기에서도 볼 수 있듯이, 여기는 히드레안 드 이크립스. 바로 그의 성이었 다. 동화나 민담에 자주 등장하는 그 '마왕성'이란 말씀. 차갑게 몰아치는 눈보라 한가운데 서 있는 순백색, 수정으로 만들어 낸 마 왕성. 시간의 흐름을 살짝 비켜나가 시공과 모든 흐름 속에 동시에 존재하는, 그 렇기에 길 잃은 존재들을 끌어들여 그 얼음으로 빛나는 수없이 많은 첨탑으 로 뒤덮힌 성을 보게 하는 소문만 무성한 에슈드 기엔 셀-얼음과 눈보라의 성-사시사철 조용한 눈만이 내린다는 그 마법의 사각지대... 이렇게 말하니 조금 멋있어 보일지 몰라도 실체는 그게 아니었다! 히드레안의 취향에 맞춰서 눈이 그치지 않고 내리고-그는 광적일 정도로 눈과 얼음에 기이한 집착을 보인다-계약으로 인해 그 육신과 혼이 묶인 자 들을 시종 삼아 부리며 모든 시공간 틈에 존재하기 때문에 거꾸로 말하면 모든 시간과 공간을 엿볼 수 있으니 그의 관음증 적 취미 또한 만족시키질 않나.... 한마디로 변태에게 매우 잘 어울리는 성이었다. (히드레안이 변태라는 사실을 모르는 자가 없길 빈다. 부디...) 어쨌거나 히드레안은 오늘따라 재수 없는 꿈을 꾼 터라 상당히 별로 좋지 않는 기분으로 복도를 걷고 있었다. 그의 취향에 따라 은은한 백색과 투명한 수정에 가깝게 꾸며져 있어 아름답 고 우아하고, 고풍스러우며 각종 칭찬을 들어 마땅하지만 근처를 소리도 없 이 슬금슬금 지나가고 있는 하얀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이나 엘프, 기타 종족 들 때문에 왠지 으시시한 유령의 집 같은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히드레안은 한참 이리저리 움직여대는 복도를 지나서 한 문 앞에 다다랐다. 넓고 거대한 문, 한마디로 웅장함과 동시에 고귀함을 느끼게 할 만하지만, 히드레안은 그 문을 올려다보는 것이 무척 목이 뻐근했는지 한숨을 내쉬면 서 입을 열었다. "이거 그냥 자동문으로 바꿔 버릴까나...문 열어!" [이 문을 열 수 있는 이의 존재는...] "히드레안 드 이크립스!" [...음성 확인, 들어오십시오......] 문은 끼이익이라는 특유의 소음을 내며 열릴 것이라 기대했던 모든 이의 기 대를 버리고 그냥 휙하고 사라졌다. 히드레안은 천천히 그 문 안쪽으로 들어섰고, 이내 문은 다시 나타났다. 대부분의 악당들은 기괴한 실험을 좋아한다. 특히 그 실험에는 아름다운 소녀가 쓰인 다거나 잔혹하다던가 정의로운 주 인공들을 분노케 하는 사악한 종류의 것들이 많아서, 악당은 늘 지탄 당하 는 것 이였다. 하지만, 히드레안은 그를 퇴치할 용사가 없는 고로 어쩔 수 없이 그의 모든 실험은 묵인 되었다기 보다는...그냥 분노를 참는 수준으로밖엔 없는 지경이 었다. "오퍼레이터." 들어본 적 없는 이상한 말을 하자, 곧 허공에서 아름다운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오십시오 마스터.] "아아...전에 하던 실험 말인데, 드래곤과 인간의 합성 연구..." [실험 도중 실험체의 도주로 인한 성의 파괴로 분노하신 마스터께서 가차없 이 그 자리에서 살육을 자행하신 후 일곱 갈래로 나누어 찢어 버리고 그 살 을...] 히드레안은 허공에다 손에 쥐이는 실험물품 하나를 던지며 빽하고 소리를 질렀다. "시끄럿! 이상한 것까지 다 말하지 말란 말이야!" [즉각 시정하겠습니다 마스터.] ...그럴 줄 알았다. 히드레안은 역시 저런 놈이었던 것이다. 어쨌든 그는 의자에 털썩 앉으며-온통 백색밖에 없는 빈 공간에 언제 그런 것이 생겼는지는 전혀 알 수 없지만-손가락을 모아 깍지를 꼈다. "그럼 전에 설탕 슬라임 연구는?" [징그럽다고 그만 두셨습니다. 그 후 한동안 마스터께서는 설탕으로 만들어 진 물질에 강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임으로서 성안에 실존하고 있는 자들에 게 모든 설탕으로 된 물질을 없애겠다고....] 히드레안은 의자를 들어서 휙하고 던져 버리면서 바락바락 악을 썼다. "실패한 과거얘기 하지 마!!" 재밋는데 뭘 저러나.... 히드레안은 한참 헥헥 대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전에 만들다 말았던 매직 건에 관한 건?" [사용 후 총피의 불가피적인 생성에 따라 총피를 무계로 던진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그 계획의 실패로 인계의 한 곳을 완전히 무계로 날려 버린 후 신 들의 강한 항의로 인해 봉인하셨던 걸로....] 히드레안은 다시 손에 쥐이는-대체 어디서 나오는지는 몰라도-물건을 허공 으로 던지며 빽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런 거 말하지 말라니까 이게!" [시정하겠습니다 마스터.] ...그는 연구랍시고 수많은 인명을 가볍게 학살해 왔던 것이다. 으음, 이런 식으로 계속 나가다간 당연하겠지만 히드레안의 모든 작품에 관 한 무시무시한 이야기들을 듣게 될텐데... 히드레안은 한참 고민하다가 오퍼레이터라고 불리는 존재에게 질문을 던졌 다. "그럼 질문하겠는데,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실험재료가 뭐가 있지?" [현재로선 없습니다.] "훌륭하군 오퍼레이터, 인간의 지능과 유사한 대답을 내렸어." [감사합니다 마스터.] 히드레안은 그러면서 생긋생긋 웃는 모습 그대로 허공을 향해 아이스 스톰 을 날려버렸다. "그렇지만 누가 남의 신경 긁으래! 이 쓸모 없는 고철 계집애 같으니라고!" ...그럼 그렇지... 저 성격에 안 저러고 배기나...결국 쿠웅하면서 불쌍한 오퍼레이터는 고철로 화해서 바닥에 뭉개져 버렸다. 기분 좋게 손을 탁탁 털고는 히드레안은 다 시 방을 나섰다. "오퍼레이터 자동 재생 시스템 작동." ...그런데 왜 다시 재생시키는 것인지 알고 싶은 사람? 없으면 그냥 넘어가자!! 히드레안은 한숨을 쉬면서 중얼거렸다. "할 수 없군...새 실험재료를 구해야 겠어." ....허...허억! 이럴 수가! 드디어 인간과 전 종족에게 죽음과 공포의 피바람이 몰아 치는 것인가! 히드레안은 천천히,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그 긴긴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마왕 이야기-22 마왕의 취미생활2 마왕은 자고로 돈이 무지하게 많다. 인간들이 바치는 공물, 각종 보물을 가차없이 털어 가도 항의를 못하는 칼 있으마, 아니 카리스마!(...그러나 칼 가지고 협박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 은 부정할 수 없다!) 비싸디 비싼 보석들도 아낌없이 뿌려대고 잘난 척 하며 화려한 옷을 입고 멋드러지게 용사들 앞에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돈이 어디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질인가! 나중에 즐기고 살려면 젊었을 때 인간들 위협하며 돈 챙겨야지, 금광에 보 석 채석장 개설해야지, 마녀나 마법사와 계약해 아낌없이 마력 뿌려대야지, 비싼 마법 개발해서 마법서에 넣을 때마다 갤런티 팍팍 우려내야지... 한 마리로, 아니 한마디로 마왕들도 젊을 때는 일을 한다는 거였다. 하지만 일 안 해도 물려받은 재산이 워낙 든든한 '재벌' 2세라고 볼 수 있 는 마왕들도 간간히 등장하는 경우가 있는데, 보통 용사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는 재수 좋은 마왕의 자식들이다. 히드레안도 그와 같은 케이스라서 인지, 워낙 돈이 많은 터라, 동시에 그는 '반짝이고 예쁜 것'을 무척 사랑하는 터라 주변에 널리고 바닥에 깔린 게 돈 처바른 물품들이었다. 조금 억울해도 어쩔 수 없다. 세상에 가난한 마왕이 어디 있겠는가? 물론 있다고 주장하겠지만, 가난하면 마왕 지위를 취득할 수 없다. (현금으로 재산이 약 수억 골드에 다다라야 가능하므로...) "아아, 이 드레스도 질렸어." 이옷 저옷 뒤적대다 신경질을 내며 옷을 팽개치는 히드레안. 미노는 부루퉁하게 볼을 부풀린 체 그가 입어 본다고 꺼내서 산처럼 쌓인 (절대 비유가 아니다, 정말로 산처럼 이다.) 옷 더미에서 헤엄치고 있는 그 를 보았다. 히드레안은 미노를 힐끗 보더니 생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미노, 먼저 쇼핑부터 하자!" "으엑! 싫어!" "시끄럽다! 차도 못 끓이는 시종 주제에 말이 많아!" ...그래서 누가 말했던가. 돈 많은 마왕들의 취미 중 하나가... '쇼핑'이라고. "어때?" "어머머 손님! 너무너무 잘 어울리세요!" 화려한 표범 무늬가 세겨진 이브닝 드레스 차림으로 한바퀴 돌아보며 히드 레안은 흐음, 하고 자신을 바라보았다. 가슴도 없는 남자 주제에...정말 더럽 게도 잘 어울리는 건 사실이었다. 어쩌겠는가...잘 생겼는걸 어떻게 하라고... "어디...그럼 이건?" "어쩜 그렇게 잘 어울리세요! 환상적이에요 손님!" "이건 어떤데?" "예술이에요! 어쩜 이렇게 옷들이 다 어울리실까!" 이내 제 3계 종족통합 백화점의 고급 옷가게가 밀집이 되어있는 제 3층을 몽땅 물품 동결시켜버린 히드레안은 산더미 같은 쇼핑 물품들-주로 경량화 의 마법이 걸려있거나 축소의 마법이 걸려있지만 전 매장을 통틀어 다 사봐 라, 그걸로 가능한가-을 짊어지고 있는 미노를 흘낏 돌아보았다. "조금 쉴까?" ...저 존재에게 어쩌면 약간의 배려란 게 존재할 지도 모른다. 어쨌든 히드레안은 생글생글 웃으면서 새로 맞춘 은녹색의 얇고 하늘하늘해 서 잘못 움직이면 속살이 비칠 수도 있는 신 패션(...)의 로브와 깔끔한 쇼트 부츠를 신은 체 카페 가에 기대어 쉬고 있었다. 짐꾼이 되었던 미노는 완전히 지친 얼굴로 그런 히드레안을 보고 있었고 시 원한 오렌지 쥬스를 마시면서 자신의 아름다움을 사방에 과시하던 히드레안 은 이내 미노를 향해 씨익하고 잔인하게 웃어 주었다. "다음은 액세서리 점." "으아아아악!" 불쌍한 미노... 귀걸이, 팔찌, 반지, 목걸이, 핀, 발찌, 링, 피어싱, 분, 펄 가루, 등등등... 옛부터 아름다움을 유지하고자 하는 인간의 애처로운 몸부림에 의해 더없이 아름다운 물품들은 사방에 널려있었다. 이곳은 '전 종족 통합 백화점'이기 때문에 이 백화점을 목숨을 걸고 만들었 던 인간족의 전설적으로 내려오는 왕 마이안은 아직도 칭송되고 있었음이 니, 이곳에선 살생 및 각 종족의 싸움이 금지되어 있고, 전 종족들이 물건을 사고 팔 수 있음과 동시에 각종 정보와 세계의 정세가 움직이는 곳이었다. 가끔 마왕들이 특별히 낸 지점 '마계산 특별 몬스터 한정 판매 세일!'등등 의 문구도 친숙하게 걸려 있어서 히드레안은 가끔 지나가다 들려서 구경하 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히드레안의 미모에 의해 멍청한 점원들은 공짜 물 품들을 안겨주곤 했다. ...히드레안, 의외로 저런 구석도 있었던 것이다. "아아, 이건 북드워프 제논의 물건이군." "과연 눈이 높으십니다. 10년에 한번 내놓는 특수 세공품으로 대부분의 물 품이 소실되고 이것은 초기 작품임으로 여기 있는 세공에서 보시듯이 그의 젊었을 적의 포부와 포용이 이렇게 작용하고 있음이니..." 미노는 히드레안의 과소비에 죽어나는 불쌍한 짐꾼인 자신을 한탄했다. 대체, 왜, 저놈의 마왕은 여자보다 더 쇼핑하길 좋아하는 거야! "아아, 목욕용 쏠트펄이다." "으윽! 또 사냐!?" "어쩔 수 없잖느냐. 마이스터는 아무 물건이나 만들지 않는다고." 잘난 척 해대며 향수와 목욕용 바디로션, 허브, 쏠트펄, 비누 거품등 또 한 가득의 물품을 사대는 히드레안. ...아아, 여자의 쇼핑은 끝이 없고 짐꾼의 짐은 끝이 없다더니... "아앗! 저 곰인형 너무 귀엽다!" "켁! 그만 사라니까!" "...아앙, 사고 싶단 말야! 살래살래!" 미노는 소매를 잡고 칭얼대는 히드레안을 보며 힘없이 고개를 숙였다. 절대 히드레안의 키가 작은 것은 아니지만, 190에 육박하는 키의 미노에게 있어서 170이 간신히 넘을까 말까한 히드레안은 '작았다' "...히드레안...이 왠수 같은 녀석아! 대체 저 곰인형은 어디 쓰게! 도대체 네 녀석의 과소비 때문에 인계의 물품이 동이 나서 한때 전쟁까지 일어났던 거 생각 안나!? 평지 전체의 곡식을 사들여서 그걸 가지고 거대 문어(...) 주먹 밥 따위는 왜 만든 거냔 말야! 결국 소풍간 마왕들중 반이 배 터져서 죽었 을 뿐이고 인계에선 식량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서 당시 네 녀석 죽이겠단 용사가 평소의 10배나 나왔던 거 기억 안나!? 과소비는 나쁜 거란 말야!" 으음...미노가 과소비를 싫어하게 된 대에는 그런 슬픈 이야기(?)가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히드레안은 굴하지 않고 칭얼댔다. "그치만, 그치만 그치만..." 종알종알... 입술을 삐죽대면서 잔뜩 부은 얼굴로 히드레안은 곰인형을 바라보았다 다시 미노를 쳐다보았다. 무거운 걸 절대로 못 드는 이상한 신체구조의(정신구조가 맞겠지만) 소유자 인 히드레안이니 만큼 미노가 안 들면 사갈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차원 이동이란 방법이 있지만 히드레안은 워프 좌표 같은 것 따위를 외우지 못한다. 어쨌거나 히드레안이 계속 삐짐포즈를 취하고 있자 주변을 지나가는 남성들 의 눈이 일순간 모여들었다. 주로 부러워 죽겠다는 시선+죽일 놈 같다는 시 선이었는데, 모두 미노의 등 뒤로 꽂히고 있었으니 미노도 주르륵 흐르는 식은땀을 막을 수가 없었다. "...거 인형 하나가지고 너무 하는구만, 자자, 아가씨 가져요." 인심 좋게 생긴 주인은 커다란 곰인형을 히드레안에게 건냈다. 금새 삐진 표정에서 환하게 변하는 저 얼굴... 미노는 크으윽하면서 결국 곰인형을 차지한 히드레안을 향해 마구 살기를 뿜어 보았지만 그런 거에 끄덕하면 아직까지 살아있을 리가 없는 히드레안 이었다. "미노, 저것도 사가자." "으앗! 저건 노예잖아!" "뭐 어때, 예쁘잖아, 사자사자." "노예시장은 쇼핑 장소가 아니라구! 저긴 3계 통합 백화점 내에서도 가장 질 나쁜 공간이야!" 늘 그렇듯 히드레안은 남의 말을 안 듣는 데에는 뭐가 있는 자였다. 당연히 씹혀버린 미노는 포기하곤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좋다고, 대신 짐은 좀 갖다놓고 올테니까 천천히 구경하자. 됐냐?" "....음, 어쩔 수 없군." 히드레안은 타협했고, 미노는 짐을 든 체로 그대로 워프해서 사라졌다. 원래 이 3계 통합 백화점 내에서는 마법사용도 금지돼 있긴 하지만, 물품을 한꺼번에 옮길 때에는 저렇게 허락하고 있었다. 히드레안이 산 물품은 거의 백화점 내부의 약 7층 가까이에 사용될 물품이 었으니 충분히 가능하고도 남았다... 히드레안은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조금 한적한 곳으로 저벅저벅 걸어가서(-백화점 내부는 차원이 조금 씩 나누어져 있기 때문에 한 층이 하나의 공간이다, 즉 일반 도시 하나와 동일하다) 조금 한적한 곳의 벤취에 살짝 앉았다. 조금 시간이 흘렀을까, 머리 위에 그림자가 지자 히드레안은 인상을 살짝 구기며 고개를 들었다. 미노가 주변에 있으면 이상한 것들이 꼬이지 않았지만, 그가 없어지자 금새 주제 파악도 못하는 날파리들이 앵앵대며 그의 주변에 다가오곤 했다. 히드레안은 눈살을 찌푸렸고 이내 머리카락을 살짝 쓸어 넘기면서 고압적인 눈빛으로 그것들을 노려보았다. "무슨 볼일이냐?" 히드레안의 외모와 별로 어울리지 않는 말투에 다가오던 좀 우락부락한 남 자 둘과 조금 이상하게 생긴 지팡이를 쥐고 있는 남자 하나는 조금 움찔한 듯 싶었으나, 이내 맨 앞에서 거의 존재감도 없던 생쥐 비슷하게 생긴 남자 가 입을 열었다. "아니 그저...우리는 아가씨가 길을 잃은 것 같아 도와드리려고..." "너희같은 버러지의 도움은 필요 없다. 꺼져라." 히드레안은 기분 나쁘다는 듯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고, 그들은 또 약간 물 러났다. 하지만 모욕 받았다는 것은 알았는지 버러지 주제에 조금 꿈틀한다. 히드레안은 흐응, 하면서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리곤 가차없이 쏘아 붙였다. "징그럽게 생긴 것들이 말을 하다니..." 으음, 인간 이하 취급을 해버렸군. 으득하면서 그 생쥐 비슷한 남자는 이를 갈더니 뒤에 있는 남자들을 향해 손짓했다. 타악하고 그 덩치들은 히드레안의 팔목을 잡아챘고, 씨익하고 웃으면서 그 생쥐남자는 다가왔다. "건방진 계집애 같으니라고, 제법 예쁘게 생겨서 비싸게 팔릴 줄 알았더니 교육이 아주 많이 필요하잖아?" "...꺼지라고 말했을 텐데." 히드레안은 억눌린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고, 생쥐는 자신에게 닥치는 위험 을 모른 체 코웃음 쳤다. "흥! 잡힌 주제에 잘도 씨부렁대는군. 이곳에선 마법이 금지돼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을텐데...더군다나 노예의 층(노예시장)에선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말 야, 멍청한 여자로군..." 히드레안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꺼지라고 했다니까..." "이 계집이!" 철썩! 오옷, 이럴 수가... 그 어떤 마왕도 소망했지만 단 한번도 못해봤던 일, 전 신들이 원했지만 시 도했던 신은 드물다는 그 궁극의 일, 전 인간 및 모든 종족이라면 한번쯤 생각해 봤던 그일! 놀랍게도 그 생쥐 닮은 남자는 히드레안의 뺨을 후려쳤던 것이다! 히드레안은 잠시 멍해졌는지 묵묵히 아파 오는 뺨에 관해서 생각해 보고 있 었다. 그로서는 '인간'에게, 그것도 '저급한 인간'에게, 그것도 모자라서 '버러지' 같은 존재에게 맞아본 적에 관해서 잠시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결과는 금새 나왔다. ...단 한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너, 지금 감히 이 몸을 친 거냐?" "그럼 어쩔 거냐!" 히드레안은 그를 뚫어져라 노려보더니 이내 으흠하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원래대로라면 죽여 버리겠지만, 심심하니까 관둬 주겠다. 이 몸을 노예로 쓰겠다고 했나?" ...완전히 미친 여자 보는 눈으로 히드레안을 보던 노예상은 저도 모르게 고 개를 끄덕였다. 히드레안은 그를 계속해서 노려본 상태로 입을 열었다. "좋다, 써봐라. 대신 재미없으면 죽여버린다." "...그...뭐 이런..." "시끄럽다, 덩치만 큰 바보 시종이 오기 전에 날 네놈의 노예장으로 옮겨 라." 어이 히드레안? 어쨌거나 히드레안은 전후무후 한 '날 노예로 쓰지 못해!'하는 협박을 하는 마왕으로 기록에 남을지도 모르겠지만, 현재로선 아무 것도 모르는 이 노예 상은, 그냥 히드레안이 미쳤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의 생각을 읽은 히드레안은 조금 더 기분이 상했지만 딱 이번 한번만 참 기로 하고 그의 무례함을 눈감아 주었다.(이건 기적이었다.) 그리하여, 히드레안은 노예가 되었다(?) 마왕 이야기-23 마왕의 취미생활3 "아프잖나 이 멍청한 것들!" 퍼억하고 결국 바닥을 구르고 만 불쌍한 남자들. 투덜대는 히드레안을 멍청한 얼굴로 쳐다보는 다른 이들을 무시하고, 그는 당당히 노예들을 묶어 두는 곳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렇게 해서, 희대의 마이스터, 인간들의 공포, 마족의 파멸, 죽음과도 같은 그림자라고 불리며 위대한 자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던 히드레안은 납치(?) 되어서 노예시장에 끌려(?) 온 후 어쩌다보니 동물 우리 같은 곳에 갇히게 되었다. ...뭐, 본인이 납치라고 주장하거나 끌려왔다고 주장한다고 믿어 주는 이들이 몇 명이나 될까만... 히드레안은 아까 그 재수 없는 근육덩어리 들이 세게 잡는 바람에 살짝 피 멍이 든 팔목을 핥으면서 가볍게 주변을 훑어보았다. 사방은 어둡고 탁했고, 이상한 짐승들의 사념과 침침하게 가라앉은 감정 덩 어리로 주변은 더욱더 어두운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막사 같은 곳의 구석구석에서는 울음소리나 신음소리들이 들려오기도 했으 며, 뿌옇게 비쳐드는 입구의 햇빛이나 군데군데 걸려있는 횃불이 아니라면 빛도 하나 없는 칠흑 같은 곳이었다. "저어..." 히드레안은 같은 우리(?)에 갇힌 소녀가 말을 걸자 힐끗하고 돌아봤다. 소녀는 탈색된 듯한 새하얀 머리카락에 반짝이면서 어둠에서도 빛나는 새빨 간 눈동자를 지니고 있어서 잘못하면 섬뜩함에 일반인이라면 기절했을 지도 몰랐다. 히드레안은 그런 그녀를 쳐다보다가 무심하게 중얼거렸다. "뮤 족이냐?" "...아, 아예. 전 뮤 족의 세네타라고 해요. 오빠도 잡혀오신 거예요?" 히드레안은 잠시 생각해 보았다. 자신을 오빠라고 부르다니...누가 보더라도 그녀는 비리비리한 여자로 보였 지 남자로는 결코 보이지 않았다. 목소리 또한 여자 못지않는 미성인데다 평생 '검술따윈 싫어! 난 고고하고 아름답게 살거야!' 를 외쳐왔으니 만큼 몸에 근육이란 것이 존재하지가 않았다. 더군다나 그는 매우 저주스럽긴 하지만, 아직 성별 적 구분이 나타나기 전 인-목 울대라던가, 변성기라던가-청소년 이전의 육신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외견상으로 드러나는 것도 없었다. 비록 외모는 20대에 가까워도 말이다... "내가 어떻게 남성인걸 알았느냐?" 히드레안의 말투에 조금 질렸는지 우물우물하다가 세네타는 입을 열었다. "그건 저어...전 눈이 안 보이는 대신 후각이 발달했기 때문에...그런...거예 요." 히드레안은 흐음, 하면서 천천히 기어서는 그녀가 웅크리고 있는 쪽으로 다 가갔다. 가까이 접근하자, 정말로 동공이 맞지 않는 눈동자가 확연히 보였 다. 세네타는 조금 움찔하면서 창살 가까이로 붙었고 히드레안은 그녀를 물 끄러미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품에 그건 뭐냐?" "...아, 이애는..." 세네타는 얼굴을 붉히면서 아이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 아직 눈도 뜨지 못한 젖먹이는 놀랍게도 검은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다. 히드레안과 비슷한 남빛을 띄는 검은색, 밤하늘 빛 같은 검은 머리카락을... "네 아이냐?" 16도 안돼 보이는 불쌍한 여인에게 그런 잔인한 말을... 역시 저놈은 빨리 죽는 게 세상에서 제일 좋은 일이다. "...예..." 엥? 그녀는 거이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조그맣게 대답했고 히드레안은 혀를 가볍게 찼다. "뮤 족의 임신기간은 대략 5개월 정도니...네가 그럼 여기 들어온 것도 그쯤 됐겠군." "어...어떻게?" "인간 사냥꾼이라면 잡고 나서 즐기고 파는 게 대부분이니까. 어차피 뮤 족 은 박제나 눈을 뽑는 용도로 많이 쓰이니 괜히 귀한 취급해줄 필요도 없으 니." 히드레안의 그런 말투에 질려서인지 어둠 속에서도 확연하게 세네타의 얼굴 을 파리하게 질리게 만들었다. 개의치 않고 히드레안은 그녀의 바로 앞에 자리잡고 앉았다. "....저...그럼...죽...죽는 건가요?" "아마 그렇겠지." 세네타를 가늘게 몸을 떨었고 히드레안은 여전히 멍한 눈빛으로 주변을 구 경하고 있었다. 이내 구석에서 덜덜 떨던 세네타는 작게 울음을 터트렸고 히드레안은 슬쩍 고개를 돌려서 그런 그녀를 쳐다보았다. "왜 우는 거냐?" "...내가 죽으면...그럼...이 애는...그게 너무 슬퍼서..." 히드레안은 조금 이상한 기분에 그런 그녀의 품에 안겨있는 아이를 다시 보 았다. "그러냐?" "...예...미안해요 오빠...오빠도 여기 잡혀오면서 고생 많이 하셨을텐데...정말 죄송해요..." 히드레안은 고생했나? 라는 생각을 하자 아까의 그 생쥐 닮은 인간이 생각 났는지 조금 울컥해 버렸다. 하지만 다 놀기 위해서 하자는 거니까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짧은 한숨을 쉬었다. "몇 살이냐?" "...열...열 다섯이에요." 히드레안은 하암, 하면서 밖을 바라보는 여유로운 자세 그대로 가볍게 턱을 괴었다. 이런 분위기도 그리 나쁘진 않았다. "...오빤...참 예쁜 사람일 것 같아요...향기가 너무 좋아요..." 아까 허브며 향수를 너무 뿌려댔나, 하고 생각하는 히드레안이었다. 세네타 는 계속 조심스레 중얼거렸다. "전...너무 추하죠...? 사냥꾼들...그들 때문에 마을도 불타고...초점 없는 온통 붉은 눈동자가 더 비싸다고...그들이 눈을...제 눈을 바늘로...새빨갛게 달군 바늘로... 윽... 흐윽... 돌맹이... 차가운 자갈밭에서...몇 번일지도 모른...한사람 이 하면..다음 사람이...너무 무서웠...너무 아파도...소리도 지르지 못했...난..나 는..." 히드레안의 머리 속으로 그녀의 기억이 생생히 들어왔다. 그는 모든 것을 꿰뚫는 첨예한 혼돈의 아래에 선 왕, 이렇게 격하게 흘러나 오는 감각이라면 원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볼 수 있었다. 새하얀 눈. 붉게 타는 화염과 붉은 피, 말을 타고 사방을 휩쓸고 있는 남자들... 뽀얀 숨이 앞을 가리면서 거칠게 뛰어간다, 뛰고 또 뛰어서...앞을 가로막는 남자들. 차가운 바닥. 눈은 계속 내리고, 자갈밭 가득히 온통 순백색으로 변한다. 눈...붉은 핏자국, 비명, 울음소리. 웃음소리, 역겹고 더러운 웃음소리. 계속해서 울려 퍼지는... 히드레안은 천천히 눈을 한번 감았다 떴다. "죽으면 너의 혼은 어디로 가는가." "...예...예에...?" "죽으면 너의 혼은 어디로 가는가? 신의 곁인가 아니면 환생인가...그것도 아니면..." 조금 고민하더니 세네타는 입을 열었다. "저희... 뮤족을 도우시는 신께선...하얀 눈밭으로...데려간데요...우리 뮤족을 처음으로 만들었던 곳으로..." "그러냐?" 아직도 숨이 거칠어서 헐떡대고 있는 세네타를 흘낏 보더니 히드레안은 중 얼거렸다. "너, 혹시 나랑 계약할 생각 없느냐?" "....예?" "소원하나 들어 줄테니, 네 육신과 혼을 내게 다오." 세네타는 멍하니 히드레안을 바라보았다. 그는 무성의한 눈빛으로 그녀를 흘낏대며 중얼댔다. "내가 이런 맘이 드는 것은 드물다. 알았으면 빨리 빌어." "...저, 저기 그치만 오빠...." 히드레안은 약간 인상을 구기면서 그녀를 노려보았다. "닥치고 빌어! 감히 나 히드레안에게 세 번까지 말하게 하다니 간이 부은 거냐!" 세네타는 으흑, 하면서 다시 있는 대로 몸을 웅크리면서 덜덜 떨었다. 품에 안긴 아기도 조금 불편한지 옹알댔고 히드레안은 네 번 말하는 엄청난 수고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서서히 끓어오를 듯한 머리를 잠깐 내리 눌렀 다. "저....저기....소원 빌면 죽는 거 아니에요....?" "안 죽어! 난 다른 마왕들처럼 그렇게 치사한 짓은 하지 않아! 죽을 때까지 혼과 육신은 네 것이다. 대신 죽는 순간 네 육신과 혼은 내 것이 된다. 또한 동시에 극한의 지옥을 헤매게 되지, 대신 이 인계에서라면 그 어떠한 소원 도 적용 될 수 있다." 히드레안은 어울리지 않게 긴 설명까지 한 자신을 무척이나 뿌듯하게 생각 하면서 세네타를 바라보았다. 세네타는 부들부들 떨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 었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확연한 증오심과 분노가 깃들어 있었다. "내가...원하는 건....." 그리고 그녀의 입에서 말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마왕 이야기-24 마왕의 취미생활 -4 차릉. 기분 나쁘게 삐걱대는 쇠사슬 소리가 거슬리는지, 히드레안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뒤에 서있던 덩치만 큰 근육덩어리-어디까지나 히드레안의 시점이다-는 그 런 히드레안의 목을 쓰다듬으며 이죽댔다.(후환이 두려울 뿐이다) "곧 멋진 걸 볼 수 있을 거라구. 너희 같은 노예들은 한번쯤 봐야 하는 거 지." 누런 이를 내밀고 히죽, 웃는 녀석을 보다 히드레안은 슬쩍 그를 향해 고개 를 돌렸다. "...닥치지 않으면 어디 한군데 부러질 줄 알아라." 서늘하기 짝이 없는 눈빛과, 풀풀 넘치는 마력에 의한 살기까지. 근육덩이는 찔끔해서 뒤로 물러섰다. 히드레안은 천막처럼 만들어진, 노예를 팔기 위해 세워진 무대 뒤에서, 무대 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두침침하긴 하지만 횃불에 의한 조명이 있었고 그 아래엔 세네타가 서 있 었다. 아슬아슬하게 걸친 옷, 그리고 품에 안긴 아기. 사람들은 뭔가 재밋는 구경거리라도 있다는 듯이, 소근 대면서 어둡고 칙칙 한 이 공간에 더한 사념을 불어넣고 있었다. 히드레안은 살짝 혀끝으로 입술을 핥았다. 이런 분위기는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래서, 조금이긴 하지만 그 의 기분도 아주 조금씩 불쾌해져 가고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세네타는 알 수 없었다. 주위에서 갑작스레 들려오는 환호소리. 사캉, 하는 차가운 금속성이 마찰 대는 소리. 품안에 안고 있던 아이의 입에 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빈 공간을 떠도는 어린아이의 울음소리와, 그리고 살을 에는 듯한 공포. "신사숙녀 여러분! 오늘도 저희 노예상을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세네타는 부들부들 떨면서 아이를 품에 꼭 안았다. 그리고 최대한 고개를 숙이고 몸을 웅크렸다. 두렵고, 무서웠다...어둠 속에 서 누군가가 자신을 주시하고, 그것도 무엇인가 그녀를 괴롭게 하려고 버티 고 있다. "오늘은 특별히, 뮤족의 아름다운 붉은 눈동자를 그대로 뽑아내는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오호, 하는 감탄성. 군데군데서 여성들의 장난스런, 그렇지만 자지러지는 비명소리도 울려 퍼졌 다. 그리고 세네타는, 지옥으로 떨어져 내렸다. "싫어어어어어어!!" 비명을 질렀지만 남자들은 꿈쩍도 않고 그녀를 붙들어서 아이를 품에서 뺏 고 의자에 앉히고 끈으로 그녀의 자유를 구속했다. 새빨갛게 달궈진 쇠집게 가 그녀의 눈가에 다가가자 화끈한 열기가 세네타의 뺨을 후렸고, 그녀는 다시 한번 비명을 질렀다. "싫어! 살려줘요! 제발! 내 아이...!" 알 수 없는 단어들의 나열과 비명. 사람들은 재미있는 구경거리라도 보듯이 즐겁게 깔깔대고, 또는 어줍잖은 비명을 지르며, 또는 눈을 크게 뜨고 '무대'를 그리고 '배우'를, 죽음의 공 포에 질린 토끼 한 마리를 응시했다. 아이의 울음소리는 커져간다. 세네타는 덜덜덜 떨면서 의자 위에서 발버둥쳤다. 이내 쇠집게가 세네타의 눈가에 다가서면서, 노예상인 쥐새끼와 닮은 남자 의 목소리도 커졌다. "자! 보십시오! 저 새빨간 붉은 눈동자가 지금 뽑혀 나오는 것입니다! 바로 살아있는 보석이!" 치이이익... 불에 달군 집게가 눈 속으로 파고들자, 세네타는 견디지 못하고 비명을 질 렀다. "아아아아아악!" 동시에 환호소리가 한차례 더 커졌다. 실신하는 척 울리는 여성들의 비명 아래도, 묘한 쾌감이 깃들어 있다는 건, 이 밀폐된 괴상쩍은 공간에서 벌어 지는 기괴한 인간의 잔혹성 때문일까. "자! 이 붉은 눈동자의 주인은 누가 되실 겁니까!" "천!" "천 이백!" "천 오백!" 곳곳에서 목소리가 커졌다. 붉은 핏방울이 점점이 굴러 떨어지는 새빨간 붉은 눈동자. 그 눈동자를 크게 들고 노예상은 더없이 즐거운 미소를 띄었다. 힘없는 존 재를 괴롭히는 강자의, 그 특유의 미소를. "뮤 족은 어린애의 눈동자가 더 값비싸다고 들었는데, 그 어린애 건 왜 뽑 지 않지?" 세네타는 화상과 신경의 절단, 그리고 과다한 출혈로 몽롱해진 가운데서도 그 목소리를 똑똑히 들었다. "오, 물론입니다 손님! 여러분들이 원하신다면 이 아이의 눈도 뽑아드리지 요!" 안돼. 세네타는 입을 열어서 그렇게 외치고 싶었다. 아이가 바닥에 팽개쳐 진다. 그리고 급하게 달구어진 단검으로, 아직 눈도 채 뜨지 못한 아이의 눈 속으로, 단검이 박혀들었다. 비명, 붉게 번지는 피. 아이의 높디높은 울음소리를 들으며 그 자리에 있던 인간들은... 환.호.했.다. 안돼. 세네타는 다시 한번 그렇게 입을 열어 외치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렇게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빈 동공에선 눈물이 흘러내리 지 않지만, 남은 한쪽 눈동자에선 끊임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혀를 내밀고, 이로 그것을 물었다. "나...나으리, 저 계집이..." "이런! 여러분! 이 계집이 혀를 물었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 직 뮤족은 세 마리나 남아있습니다!" 추욱 늘어진 세네타는, 결국 실험용 토끼와 같았을 뿐이었다. 히드레안은 일련의 상황을 차례차례 보고 있다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 가 한발자국 내딛자, 그를 감시하던 근육덩이는 히드레안의 어깨를 잡았다. "이봐! 가만있지 못해!? 너도 저렇게 되고 싶은...크아아악!" "...도대체가 인간이란..." 차륵...쩡! 쇠사슬이 뭉개지는 소리가 나며, 얼어붙은 파편처럼 히드레안의 손에 매여 있던 사슬을 끊어졌다. 비릿하게 감도는 혈향(血香). 터져 버린 눈동자를 쥐 고서 미친 듯이 울부짖는 인간을 내버려두고, 히드레안은 '무대'의 위로 올 랐다. "저건 또 뭐냐...? 저 계집은?" 노예상은 얼떨떨하니 그를 바라보고 있었고, 히드레안은 천천히 걸어와서 바닥에서 얕은 숨을 쉬고 있는 피투성이의 아이의 팔을 잡았다. 그대로 들어올리자, 덜렁대면서 늘어진 모습이 보인다. 마치 무슨 물건이라도 쥐듯이 아이를 잡은 후 히드레안은 이리저리 돌려 본 후, 작은 미소를 띄었다. "아직 살아있군." "어이, 넌 내려가 있어. 아직 손님들께 보일 시간이..." [세네타 유 멜른, 너와의 계약을 지금 이 순간 이행하겠다.] 차가운 그의 목소리에 이어서 그의 몸을 중심으로 서늘한 한기가 회오리를 그리며 모여들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웅성대기 시작했고, 노예상도 주변의 남자들에게 호통을 쳤다. "뭐 하는 거야! 저년 잡아!" 히드레안은 살짝 고개를 돌려서 그 생쥐 같은 사내를 바라보았다. 약간이긴 하지만, 그건 혐오감을 주고 있었다. 인간이라고 부르기에도 미천 한 생물... 역겨운 냄새를 풍기는 짐승 같은 것. "...굳이 말할 필요는 없겠지만...세네타의 소원은 아주 간단했어..." 히드레안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한발짝, 그 남자에게로 다가갔다. 그의 몸에 서 소용돌이치는 한기를 이기지 못하고 부딪칠 때마다 쩡쩡! 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것들은 모두 얼어붙고 있었다. 히이이 하면서 생쥐남자는 뒤로 물러났고, 히드레안은 한발 내딛었다. "이 아이가 행복해지게 해달라고 했지." 피에 젖어서 덜렁대고 있는 아이를 살짝 그의 눈앞에 흔들어 보이곤, 히드 레안은 더없이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사....살려줘! 그거하고 내가 무슨 상관이야...!" "멍청하긴. 그거야 내 맘이지." ...어, 엉터리 같은... 전혀 상관없잖아! 라고 항의해봤자 씨알도 안 먹히니까 관두자. 히드레안은 한기로 이루어진 날카로운 얼음의 조각 중 하나를 길다랗게 창 처럼 만들어 냈다. "아, 감사해." 히드레안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그렇게 말했다. "...뭐...뭐..." "아직도 난 네 녀석이 내 뺨을 때렸던걸 잊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말이 야...!" ...역시... 남한테 당한 건 절대로 안 잊어버리고 자기가 한 짓은 잘만 잊어먹는 사악 하고 잔인한 두뇌체계의 소유자 히드레안. 히드레안은 그 얼음의 창을 그의 복부에 처박았다. 그리곤 아주 친절하게 갈라진 뱃속에서 흘러나오는 찢어진 장의 파편을 밟으며 '무대' 아래로 뛰 어내렸다. "끄아아악!" "장이 파열해도 인간은 산다구. 비록, 몸의 혈액과 신진대사의 마비로 아주 아주 오랫동안 천천히 고통스럽긴 해도 말이지." 깔깔대면서 히드레안은 비명을 울리며 도망가는 인간들을 향해 중얼거렸다. "하여튼 간에..." 그는 나풀대면서 사방으로 휘날리는 자신의 검은 머리카락을 가라앉히며 아 침 식후 디저트 찾는 어조로 중얼댔다. "인간이란 너무 이율배반적인 존재라니까..." 카아아아아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히드레안이 뿜어내는 한기의 군데군데, 눈의 마물 크루자이져가 생성되기 시작했다. "약자에겐 강하고, 강자에겐 처참하리만큼..." 피가 튀고, 사방이 차갑게 얼어 붙어간다. "비굴하지." 그렇게 천천히, 3계 통합 백화점 노예의 층은 영영 유명을 달리해 버렸다. 아에 지도상에서 사라졌다 든가의 말로 멋드러진 고전적 표현을 만들어 보 고 싶지만, 어쩌겠는가...백화점 내에서 건물하나 뭉개진 것뿐인데. 비록 사상자는 도시 하나만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히드레안의 몇백년 만에 쇼핑은 피바다와 함께 끝나버렸다. 마왕 이야기-25 마왕의 취미생활 -5 털썩! 히드레안은 손에 쥐여있던 걸 바닥으로 내팽겨 치면서 손에 묻은 핏자국을 스윽스윽하고 문질러 닦았다. 그가 바닥에 내팽겨친 '물건'을 치우기 위해서 '인형'들이 스르르 나타나자 미노는 으아악하면서 그 '물건'을 들어 올렸다. "애를 바닥에 내팽겨 치지마!" "그럼 바닥에 꽂아?" 미노는 할말을 잊었고 히드레안은 승리를 거머쥐었다. 히드레안은 의자에 털썩 앉았고, 미노는 피투성이에다 숨이나 유지할까 싶 은 아이를 살피다 으으으, 하고 히드레안을 한 대 치고픈 욕망을 꾸욱 참으 며 옆에 서서 명령을 기다리는 인형에게 던져주었다. "...그 애...일단 치유의 샘물에다 좀 넣어둬라." "예." 스르르 물러나는 인형들, 미노는 주먹을 우득하고 푼 후 아까의 욕망을 억 눌렀던 것까지 쳐서 가차없이 히드레안의 머리를 후려쳤다. 오오, 까앙이라...정말 훌륭한 소리였다. "야 이 자식아! 있으라는 데는 없더니 갑자기 백화점의 층 하나 무너뜨리고 는, 이번엔 또 피투성이 애까지?! 솔직히 말해봐! 너 저거 잡아먹으려고 가 지고 온 거지!?" 미노는 히드레안의 목을 짤짤짤 흔들어 댔고 히드레안은 시종의 손에 죽는 주인이라는 별로 독창성 없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뻔했으나, 미노의 사지 를 얼음 창살로 내다 박아서 피투성이 카펫으로 만들어 버린 후, 바둥대는 미노를 향해...청천벽력과 같은 한마디를 꺼냈다. "아니, 키울 거야." 미노는 버둥대다가 겨우 얼음 창살에서 빠져 나왔다가 다시 휘청하고 바닥 으로 주저앉았다. 역시 피를 많이 흘리면 빈혈이 일어나게 되어있다. 하지만 이건 빈혈과는 별 상관이 없을 듯 하기도 하고... 미노는 멍한 눈빛으로 머리를 집고 가만히 앉아 있더니, 다시 고개를 들었 다. 그의 눈에는, 분명히 히드레안이 비치고 있었다. "히드레안...너 설마 사고 친 거냐...? 아니야...너란 녀석은 사고를 쳐도 절대 로 책임지는 놈이 아니란 말야...그런데 갑자기 애를 키운다니...혹시 넌...그 렇군! 넌 히드레안이 아니지!" "넌 대체 날 뭘로 보는 거냐!!" "짐승, 색골 대마왕, 변태." ....아주 정확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히드레안은 미노의 머리에다 대형 얼음 창을 처박아 주고는 씩씩대다 의자에 앉았다. 철철 흘러내리는 피에도 불구하고 미노는 얼음의 창을 뽁, 하는 귀여운 효 과음과 함께 호러 분위기를 연출하며 뽑아 낸 후, 다시 멀쩡히 자기 회복력 을 이용해 복귀했고, 히드레안은 미노가 그 엽기적인 일을 다 끝내기까지 기다렸다가, 턱을 괴고서는 진지하게 말했다. "계약자에게, 저 아이를 행복하게 만들라는 말을 들었단 말이다. 그럴려면 내가 키우는 게 제일이지." "...그게 어째서 그렇게 되는데?" 히드레안은 갑자기 후훗, 하고 웃더니 매우 당당하게 외쳤다. "나란 존재 자체와 함께 하는 것이 행복이다!" "...야 히드레안..." 미노는 한숨을 푸욱 쉬면서 그런 그의 어깨를, 바닥에 앉아있는 상태로 탁 탁쳤다. 의자에 앉아있던 히드레안은 왜? 하면서 그런 미노를 바라보았고 미노는 딱 잘라서 말했다. "너, 애 키울 줄 알아?" 히드레안도 딱 잘라서 대답했다. "모른다." 미노는 퍼억! 하고 어퍼컷을 히드레안의 턱에 작열 시키면서 마하의 속도로 벌떡 일어나서는 바락바락 고함을 질렀다. "그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 하냐 이 바보자식아! 이 살벌하고 무시무시한 마 왕성에서 애를 키우긴 뭘 키워! 더군다나 가장 중요한 거...!" "뭐!" 아픈 턱을 부여잡고 잔뜩 부어서 하는 히드레안의 말에 미노는 가차없이 한 마디를 했다. "넌 애를 행복하게 해줄 수 없어." "무슨 소리냐!" "너란 녀석 자체와 함께 있다는 것 자체가 불행이라고! 아아...보인다! 히드 레안과 쏙 빼닮게 생겼다는 것만으로 인간들에게 손가락질 받고 마왕의 손 에 커서 파탄 난 성격의 소유자가 되어 있는 불쌍한 아이가...!" 히드레안은 빠직하고 튀어나오는 힘줄을 꾹하고 한번 누른 후 바락 하고 외 쳤다. "시끄러! 제대로 키울 수 있어!" "어떻게!" 히드레안은 흠칫하다가(생각조차 안 해봤다는 것이 들통나고 있다) 이내 다 시 당당하게 외쳤다. "내가 아빠가 돼주면 되잖아!" ....미노는, 천천히 석화 되었다가,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에, 모래가 되어 서... 천천히...휘날렸다... ...그렇게 해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히드레안은 아빠...가 되었다? 누, 누가 저 녀석 좀 말려 줘!!! 마왕 이야기-26 마왕의 취미생활 -6 히드레안은 책을 쥐고는 웅얼대면서 손톱을 물어뜯었다. 상당히 신경질이 배인 듯한 행동에 미노는 그런 그의 행동을 차근차근 보고 있다가 피익, 하고 비웃었다. "읽어주랴?" "닥쳐라!" "글도 못 읽는 녀석이 무슨 책이냐, 하나도 안 어울려." 날아오는 것은 얼음의 송곳들뿐이었다. 그러게 입은 함부로 놀리면 맞고, 잘못 놀리면 죽고, 실수하면 영혼까지....여 기서 왜 이런 얘기가 튀어나오는지는 잘 몰라도, 어쨌든!. 히드레안은 책을 뒤적대다가 못 참겠는지 주문을 외었다 "해독!" "거봐라, 네가 그러고 말지..." "시끄럽다니깐!" 히드레안은 미노를 향해 괜시리 필사의 신경질을 바락 하고 내었고, 미노는 피식 웃고는 조용히 작은 안경을 걸치곤 책을 펼쳤다. 히드레안은 투덜대면서도 책을 다시 펼쳐들었다. 그 누가 알겠는가, 천하의 마신왕, 위대한 자, 그리고 모든 왕들의 중점에 선 자...그런 그가 문맹이라니. 기절할 듯이 놀라는 이들의 처절한 절규가 들 려오지만, 누가 뭐라고 해도 히드레안은 글씨를 읽을 줄 몰랐다. 각설하고, 히드레안이 스스로 책을 펼치는 이런 진귀한 상황이 드물게 연출 되는 것에 관해서 누가 토를 달겠는가? 더군다나 그는 비리비리한 외모...아, 아니! 유약하고 곱살한 외모의 소유자 이기 때문에 책을 들고 있는 모습은 상당히 어울렸다. 비록 본인이 싫어한다고 할지라도. "...성장하는 어린이에게는 모유를 제공하는 것이 두뇌 성장 및 스킨쉽을 통 한 유대관계를 다지는 것으로서 필수적 사항이다..." 히드레안은 한참동안 웅얼대다가 힐끗 미노를 바라보았다. "...미노, 그런데 모유는 어디서 구하지?" 한순간 이 얼음의 마왕성에 더 싸늘한 공포가 찾아왔다. "......내, 내가 아냐!" 히드레안은 진지하게 생각해 보더니 다시 책으로 파고들었다. 즉, 일단 그 문제는 넘기기로 했다는 것이다. "어린아이의 방은 원색적이면서도 컬러풀하게 해서 아이의 창의력을 자극하 는 것이 좋다. 또한 3개월을 지나는 아이의 경우는 주변에 있는 것에 관심 을 쉽게 가지고 뭐든지 손을 뻗어 만지려고 한다...그럴 때는 그냥 놔두는 것이 좋다..." 히드레안은 잠시 또 책을 바라보다 고개를 들어서 주변을 휘휘 둘러보았다. 주변에서 지나가던 얼음의 정령들은 괜히 움찔했고, 라이미아의 변형체인 시종 하나도 잠시 멈춰섰다. 히드레안은 자신의 몇 번째일지 모를 응접실 바닥에 굴러다니는 책 더미 중간중간에 끼여있는 엄청난 마법력이 담겨있는 수정구, 폭팔용 스크롤 등을 뒤지다가 다시 책으로 고개를 돌렸다. 즉, 이번 것도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는 것이다. "특히 어린아이에게는 감성을 발달시켜줘야 함으로 육아기부터 애완동물을 키우는 것도 나쁘지 않다...이것은 성장기 청소년이 된 후에도 나쁘지 않은 것으로..." 히드레안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에는 눈의 마물들이 떼거지로 우르르 몰려다니며 노는 모습이 비쳤 고 다시 책으로 고개를 돌렸다. 즉, 이번 것도 또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는...어이 어이! 히드레안은 무시하고 계속해서 책을 읽어 내려가다가, 뭔가를 생각하다가, 잠시 더 생각해 보다가 이내 열이 받힐 데로 받혔는지 책을 찢어 버렸다. "아아아악! 도대체 가능한게 없잖아!" "...그만큼 네놈이 비정상적으로 산다는 걸 증명하는 거야..." "시끄럽다! 젠장...도대체가 무슨 애 하나 키우는 게 이렇게 복잡한 거냐!" 히드레안은 찢긴 책을 발로 걷어차고, 약간의 신경질을 부려댔고, 미노는 무 시하면서 창가에 비스듬히 기대앉아서 책에 몰두하다가 눈만 흘낏 돌려서 중얼거려 주었다. "히드레안." "왜!" "너라는 괴물도 무척이나 그나마 정상적으로 키워놓은 존재가 딱 있지 않 냐? 세상에 하려고 하면 안돼는 건 없다잖아. 직접 몸으로 부딪치면서 체험 해 보면 돼." 히드레안은 무슨 소린가 싶어서 미노를 바라보다가 짝! 하고 손뼉을 쳤다. 미노는 후우, 하고는 한숨을 내쉰 후-히드레안의 발작을 매우 효율적으로 봉인하고-다시 책으로 파고들었고 히드레안은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미노 를 향해 중얼거렸다. "...생각해 보니까, 난 전혀 저 책대로 자라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냥 넘어가 좀!" 히드레안은 잠시간 더 고민하더니 진지한 얼굴로 미노를 향해서 물었다. "있잖아 미노...." "왜 또!" "아무래도 나 어디 좀 다녀와야겠어." 미노는 헤요,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그래, 가자 가..." "아니 넌 됐어." 미노는 잠깐 멈칫했다가 히드레안을 향해서 물었다. "아아...그렇군, '거기'냐?" "응." 히드레안은 고개를 끄덕였고 미노는 다시 창가에 털썩하고 주저앉았다. 그 리고 그는 책에서 눈을 떼지 않은 체 지나가듯이 중얼거렸다. "이번엔 제발 팔다리는 붙이고 와라." "거야 보고."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가는 저 살벌한 대화란 무엇이란 말인가...크윽... 어쨌든 히드레안은 식후 운동이라도 나가듯이 손을 한번 흔들어 보이고는 워프를 했다. 참고로, 히드레안이 알고 있는 워프 좌표란 단 하나도 없기 때 문에 그가 워프를 제대로 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볼 수 있으나...지 금 그가 가려고 하는 곳은 확실히 제대로 도착할 수도 있을 지도 또 몰랐 다. 미노는 한숨을 쉬면서 책을 덮고는,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혹시 시체가 돌아오는 거 아니야?" 어, 어이? 히드레안... 어디 가는 거야? 마왕 이야기-27 마왕 이야기-7 신은 세상의 모든 것을 창조했다. 그들은 법이고 질서고 곧 유지자였다. 그들은 전능했으며, 무한했고, 위대했고, 아름다웠으며 또한 고귀했다. 그러나...그'들'은 단수로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논리적 오류, 전체적 논란, 신의 존재가치에 관한 증명할 수 없음. 그러나, 신이 전능하지 않는 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것은 성립할 수 있는 이 야기이다. 신들도 그 오류를 알았고, 그렇기에 자신들의 과오를 숨기기 위해 필사적이 었다. 그들은 전능했다. 그들은 무한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창조했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들이 창조하지 않은 '혼돈'이 존재한다. 새카만 어둠. 아니, 어둠이라고 칭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그것이 어떤 색인지는 누구도 분간할 수 없으리라, 왜냐면 그 색은 없는 것 이니까. 아무 것도 자각할 수 없었다. 자신의 몸에서 느껴지는 맥박소리도, 숨쉬는 호흡소리도, 피부를 스치는 그 무엇인가의 감각도... 평범한 존재라면 이 말도 안돼는 현상에 당장 울부짖으며 쓰러져야 했다. 하지만 히드레안은 너무도 '익숙'한 이 곳의 느낌에 천천히 '말'을 만들어 내었다. "또 자는 거야?! 이 우주최고 비만도마뱀!" 그의 '말'에 대한 또 다른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히드레안은 다시 큰 목소리로 외쳤다. "일어나 봐! 나 왔단 말야!" 찌잉, 하는 소리... 히드레안은 그럼 그렇지 하는, 아주 즐거워 죽겠다는 웃음을 지으면서 다시 외쳤다. "어서 이 지긋지긋한 혼돈 좀 걷어 보라고!" 그제서야 답변과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여튼 무례한 건 여전하구나...] 히드레안은 이제 혼돈에서 어둠으로 바뀌어 가는 세계의 중심에 존재하고 있는 그 무엇인가의 위에 발을 딛었다. 서로 엉켜있는 7개의 목, 어둠 속에서도 확연히 빛을 띄고 있는 열 두장의 날개,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넓게 퍼져있는 둥글게 감싸여진 몸. 칠두십이비천(七頭十二飛天)의, 모든 드래곤의 시조. 신을 능가하는, 태초부터 존재해 왔던 자... 명룡왕(冥龍王) 라그나 칸트라이트나 시에. 히드레안은 통통 튀듯이 아래로 내려와서는 가장 가운데, 그나마 이리저리 엉켜있는 목 중에서도 제일 멀쩡한 머리 위에 털썩하고 엎드렸다. "오랜만이야 아빠!" .... 한순간, 아직 어둠뿐인 세계에 폭설이 휘몰아친다는 것은 오직 착각이었을 까? 어쩌면 그것은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어떻게 이뤄지는가는 내 알 바도 아니지만.... 순식간에 주변은 정말로 얼음과 눈보라가 몰아치는 새하얀 설경으로 뒤바뀌 었다. 아까까지 있던 거대한 드래곤의 자취는 온데간데없고, 있는 것은 그 허허벌 판 속에 위치한 작은 정자. 히드레안은 그 정자 안에 있는 푹신한 쿠션더미 위에 누워있는 자신을 발견 하곤 조금 투덜거렸다. [그래, 우리 말썽만 많은 아기. 오늘은 또 무슨 일로 오셨지?] 잠시 다함께 귀를 의심해 보자. 아...아기? 탁, 하고 바깥이 모두 보이도록 설계된 정자 위에 있는 탁자에 따뜻하게 김 이 오르는 찻잔이 놓여졌다. 히드레안은 여전히 찻잔을 무시한 체 뒹굴 거 리고 있었고, 그런 히드레안의 목 주위에 날카로운 예기가 모이면서 부드러 운 목소리도 들려왔다. [내가 차 마실 때 뒹굴 거리라고 가르쳤든?] ...히드레안은 조용히 일어나서 말없이 탁자 앞에 앉았다. 이, 이런 기적 같은 일이! 하얀 손이 조용히 히드레안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이내 부 드러운 목소리로, 그는 말하기 시작했다. [어머나, 우리 아기...왜 이렇게 생각이 많지? 무슨 큰 일이라도 일어난 모양 이구나?] 살짝 의자에 나풀대는 옷자락을 정리하며 앉는 이... 대략 15~6이나 되었을까? 확연히 소년 티가 나는 외모, 검은색 바탕에 화려 한 금실로 수놓아진, 로브라고 보기에도 뭣하고 드레스라고 보기에도 뭣한... 꼭 동방대륙의 복식과 비슷한 옷차림을 하고 있는 이. 우아하게 정리 된 보랏빛의, 곱고 아름다운 색감의 머리카락. 귀 옆으로 늘어진 머리카락과, 눈가를 살짝 가리는 앞머리, 뒤는 깔끔하게 정리돼 있었다. 대략 보아도 찬탄이 터져 나올 듯한 초절정의 아름다움!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눈을 가볍게 감고 있었기에, 눈동자가 드러나지 않 았다. 고요하면서도 부드러운 외모의 소유자... 왠지 느낌상 '보모'란 말이 탁 튀어나올 법도 한데? "나, 애 키울 거야." [어머나, 우리 아기가 벌써 가정까지 꾸민 거니?] 히드레안은 마시던 찻잔을 든 상태로 가만히 있다가 뺨에 살짝 손을 대고는 고개를 앵무새가 90도 각도로 갸웃하는 자세 그대로 웃고 있는 이를 향해 찻잔을 날렸다. "자꾸 애 취급할래! 이 변태 비만 도롱뇽 같으니라고!" [어머...우리 귀여운 하드라.] 우드득하면서 어느새 히드레안의 팔을 잡은 상태 그대로 뒤로 꺽어 버리면 서 여전한 미소를 띄운 체, 아무렇지도 않게 그는 히드레안의 팔을 으스러 뜨리고 있었다. [그래도 아직 넌 애란다. 원래 어린애들은 자기가 다 큰 줄 알기 마련이지 만...너같이 착한 아이가 반항을 하면 슬퍼요.] "아아악! 아파!" 히드레안이 비명을 지르자 오히려 소년의 모습을 하고 있는 정체불명의 존 재는 생글생글 웃으면서 팔을 좀더 압박했다. [우리 귀여운 아기. 어른에게 말할 때는...?] "아악! 아파...요!" 그제서야 손을 풀어주는 그. 히드레안은 어긋한 어깨와 부러진 팔을 쥐고는 투덜대면서 치유마법을 시전 하려고 했지만, 그는 상당히 아픔에 민감한 편이었기에 마법을 제대로 시전 할 수가 없었다. 천천히 다가와서 그런 히드레안의 어깨를 바로 잡아주고, 팔에 치유마법을 걸어 준 것은 부러뜨린 장본인이었으니... "우주최고 변태 비만 도롱뇽..." [칸.나.] "도롱뇽..." [아직 덜 맞았구나?] "...칸나." 히드레안은 의외로 상황판단력이 높은 축에 속했던 것 같았다. 다시 스윽스윽하고 히드레안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변태 비만 도롱뇽... 이 아니라 칸나는 쿠션들 사이에 앉아서 히드레안을 끌어당겨 무릎 위에 그 의 머리를 얹어 주었다. ['미노트 아신레이져'가 어쩌다 네 전용 미용사로 전락했는지 모르겠구나? 이 예쁘게 정리된 결이라니...귀찮은 건 싫어하는 우리 아기가 용케도 정리 했구나.] "시끄러 칸나. 미노는 내 거야. 내 거에 대고 이러쿵저러쿵 하면 너라도 싫 어." [그럼, 잘 알지. 하드라 넌 내 도움이 필요해도 끝까지 입만 다물고 자존심 세우다가 결국엔 후회하는 일들이 참 많기도 많았으니까. 생각해 보면 참 그립기도 하지, 어렸을 때는 칸나, 칸나하면서 침대 위에서 자주 울곤 하던 어린애가 언제 이렇게 커서...] 히드레안은 여상스레 중얼거렸다. "...난 침대 위에선 당하던 기억밖에 남아있지 않는데..." [그것도 다 추억이지 뭘 그러니? 요즘엔 전혀 안기려고 들지 않아서 귀여운 맛이 없어졌잖니. 그래도 그렇지 명색이 키워준 부모도 부모라는데 어떻게 그런...흑...] "칸나. 자식 건드리는 패륜 부모는 부모 자격도 없대." [......누군지 몰라도 자식 키우는 부모의 노력을 깡그리 뭉개는 발언이구나.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그런 말을...] 히드레안은 잠시 있다가 으음, 하면서 입을 열었다. "그래서 말인데, 어떻게 키우면 돼는 거야?" [뭘 말이니?] "애." 잠시 생각해 보더니 칸나는 으흠, 하고 입을 열었다. [평범한 보통의 인간 아이였지? 네가 지금 데리고 있는 아이...일단 적으로 먹을 거 주고 입혀주고 재워주면 된단다. 그럼 애들은 무럭무럭 잘 크게 되 어있어.] 그러면서 무릎을 베고있는 히드레안의 머리를 톡톡 쳐주는 칸나였다. "...정말 그것만하면 돼?" [응.] 히드레안은 뭔가 다짐을 하는...어이어이! 아, 하면서 칸나는 입을 열었다. [그렇지만 적어도 몸을 지킬 수 있게 뭐라도 가르쳐 주는 게 좋겠지...되도 록이면 예의범절은 가르키는 게 좋고...너처럼 버릇없이 자라면 다 부모망신 이지 누구 망신이겠니? 하기야 양부니까 어쩌면 너란 녀석은 날 조금도 좋 아하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지...흑...] 하지만 히드레안을 향해서 '네 녀석 부모가 누구냐! 얼마나 못 가르쳤으면 너 같은 자식이 나오겠냐!'라고 질문하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세상에 마왕한테 그런 말할 시간이 어딧는가? 다 잘못했으니까 잘못인 거야, 라고 하면 되는 거지... 아니, 한 명 있기는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어쨌거나 히드레안은 에에, 하면서 중얼거렸다. "어쨌든...미노한테 큰소리 쳐놨단 말야. 애는 키워야해!" [훌륭한 정신이구나 우리 아기~♡] 대체 어디가 훌륭한 걸까... 역시 그 아비의 그 아들이라고...왠지 옛 성현 말씀에 틀린 거 없다는 말이 나올 법도 했다. 아아 과연... 히드레안의 육아 대작전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걸 내가 아냐!!! 마왕 이야기-28 마왕의 취미생활-8 "아아아악! 꺄악! 아파욧!" 응? 이게 대체 왠 비명인가... 이곳은 에슈드 기엔 셀, 얼음과 눈보라가 존재하는 차가운 불모지. 모든 공간에 다아 있는, 가장 기이하면서도 아름다운 공간. 히드레안 외에는 살아있는 존재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된다고 자부 할 수 있는 그 공간에, 이렇게 거대한 비명소리라니? "아부부~" 귀여운 아기의 목소리까지? ...정말 여기가 그 의문의 마왕성이 맞단 말인가? 히드레안은 보기 드물게 땀 투성이가 되어서 겨우겨우 욱씬대는 몸을 이끌 고 쇼파로 기어갔다. 한편, 예쁜 검은 머리카락과 한쪽은 검고 한쪽은 붉은 눈동자를 가진 꼬마아이-대략 생후 9~10개월-로 보이는 아이는 그 이름도 전능하고 위대한, 광룡 실버블러드의 어깨 위에 걸터앉아 그녀의 머리카락 을 잡아당기며 '말타기'라는 매우 고전적이면서도 어린애다운 놀이를 하고 있었다. "...저...저건 괴물이야..." 히드레안은 탈진 직전에서 그렇게 중얼거렸고, 미노는 책을 펼쳐들고 있다 가 한숨을 쉬며 그런 히드레안을 바라보았다. "그러게 어제 재우라고 했잖아." "......그래도 노는 게 재밋는걸 어떻게 하나." "하여튼 정신연령은 똑같아 가지고..." "뭐라고!" 히드레안의 일갈에 미노는 다시 책으로 고개를 돌리며 삐죽하고 웃었다. 어느새 아기, 히드레안은 아기에게 '뮤'라는 무척이나 성의 없는 이름을 지 어주었기 때문에 다들 그렇게 부르고 있긴 하지만, 정작 히드레안은 곧잘 그 이름을 까먹곤 했다. "아바바바~아바아~"(아빠라고 발음하는 것 같다.) 헉, 하고 숨을 삼키며 얼굴이 새하얘지는 히드레안. 그 어떤 자 앞에서도 질리지 않았던 그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가고 있었 다. 그가 고개를 돌아보자, 실버블러드마저 뮤의 막강한 '놀아줘 파워'에 져 서 바닥에 거의 피를 토하고 쓰러져 있는 게 보였다. 뮤는 아직도 더 놀고싶다는 눈을 반짝반짝 빛내면서 그 귀여운 다리로 아장 아장 히드레안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고, 히드레안은 저도 모르게 조금 물러 나고 말았다. "아부?"(아빠? 하면서 의문을 표하는 것 같다.) "...저...저기 뮤...지금 아빠가 피곤해서 그러는데..." 아아, 삐질대면서 땀방울을 흘리는 히드레안이라니,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미노는 숨죽여 웃으면서 창가에서 책에 파묻혀 있는 척 했다. 뮤는 해맑은, 그리고 동시에 히드레안을 공포에 빠트리는(!) 웃음을 지으면 서 그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검은색의 길고 하늘하늘한 머리카락이 뮤의 손에 쥐이자, 히드레안은 허망 하면서, 마지막 희망을 가지고 뭐라고 입을 열려고 했다. "아부우우~!"(기쁨의 괴성을 지르는 것 같다....가 아니라 지르고 있다.) "아야야얏!" 그렇게 생후 십 개월의 귀여운 아기는 히드레안을 탈진시키고 공포에 질리 게 하고 겁먹게 만들고 강제적인 노동에 시달리게 만든 후 기분 좋게 새근 새근 잠들어 버렸다. 폭신한 하얀 이불 위에 불그스레 뺨을 붉히고 옹알대면서 잠든 아기. 히드레안은 그 옆에서 헉헉대면서, 거의 죽음에 임박한 환자의 모든 면모를 보여주고 있었다. "원래 아이들은 어른보다 운동량이 높기 때문에 실제로 끈기가 없으면 쉽게 지치기 마련이다." 미노는 책의 한 구절을 읽어 내려갔고, 히드레안은 무시무시한 신음소리를 울리면서 그런 미노를 향해 손만 휘익 하고 내밀어서 저주에 가득 찬 눈빛 으로 그를 응시했다. "...너...너만 감히 놀았겠다..." "어이어이, 난 보모가 아니라고. 더군다나 네 녀석 애잖아?" "죽여버릴테다! 크윽! 허...허리가..." 아까 뮤가 좀 심하게 타고 놀았던 모양이었다. 우두둑 소리가 울려 퍼지는 불쌍한 허리를 손으로 집고 히드레안은 바닥에 주저앉았다. 만세 뮤! 너의 그 놀이로 인해 세상이 구원받을 지도 모르는 것이다! "쯧쯧..." "혀 차지 마라! 으윽...정말 저걸...!" 히드레안은 살기가 휘감긴 눈으로 홱! 하고 고개를 돌려 뮤를 바라보았고, 천사처럼 새근새근 자고 있는 뮤의 얼굴을 보더니 이내 또 얼굴의 근육이 풀려서 어느새 멍청하게 바라보고 있기 시작했다. ...결국, 히드레안이라고 해도 어린애엔 저리 약한 것인가...? "히드레안." "응?" 미노는 어느새 히드레안의 등 뒤에 다가와 있었고, 히드레안은 멋도 모르고 멀뚱멀뚱 미노를 올려다보았다. 아앗, 한순간 스치는 미노의 저 비열하기 그 지없는 미소! 과연, 미노도 악당이었던 것인가? 하는 의문 따위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미 노는 쿡, 하고 히드레안의 허리께를 주저앉은 자세로 살짝, 아주 살짝, 이때 까지의 모든 원한을 가득히 담고서 찔렀다. "으아아아악!" 오오오, 저 고통에 찬 절규의 신음소리. 미노는 씨이익 웃으면서 부들부들 떨며 눈물까지 고인 히드레안을 바라보았 고, 다행히 그의 비명 때문에 뮤는 깨지 않았지만 대신 잠자던 히드레안의 본성(?)이 튀어나왔다. "...너...너 이놈...감히..." 쿡. "아아악!" 히드레안... 애 하나 때문에 시종에게마저 장난감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쯧쯧...묵념. 마왕 이야기-29 마왕의 취미생활-9 "아빠!" 똘망똘망한 붉은 눈동자. 그리고 한쪽은 검은빛을 띄고 있는 정령의 눈(색 이 다른 눈동자를 지닌 이는 '인간이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을 소유하고 있는 귀여운 소녀. 히드레안과 닮았다고 볼 수 있는 푸른빛을 띄는 검은 머리카락을 양 갈래로 올려서 묶고, 하얀 원피스를 입은 소녀는 정말이지 한없이 귀여움으로 넘쳐흘렀다. "...어쩜 이리 예쁠까!" "꺄악! 껴안지마 아빠!" 꼭 부둥켜안고 부비적대는 중에 아주 어이없다는 얼굴로 손에 든 책을 아슬 아슬하니 잡고는 멍해져 있는 미노. 그가 얼이 빠져있건 말건, 히드레안은 사랑스럽기 그지없게 소녀를 쓰다듬으면서 입을 열었다. "그래그래, 뭐 때문에 그러지 우리 뮤?" "아빠! 있잖아..." 히드레안은 응, 응, 하면서 뮤 앞에 눈을 맞춘답시고 쪼그려 앉아있었다. 나 름대로 귀여운 모습이기는 했지만, 평소 거만하게 남을 내려다보기 좋아하 는 히드레안 치고는 상당히 파격적인 일이었다. 어느 교육책에서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라는 등의 이야기가 써있긴 했지만... "응...왜 난 엄마가 없는건데?" 쿠르르르르릉! 갑자기 창문을 배경으로 벼락과 함께 천둥이 떨어졌다. 번쩍하고 빛을 반사해서 순식간에 어두워지는 방안. 히드레안은 창백해진 표정으로 눈을 똥그랗게 뜨고서 '응? 응? 응?'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뮤를 바라보았다. 미노는 에휴, 하면서 한숨을 쉬고는 책으로 얼굴을 덮어 버렸고 히드레안은 등 뒤로 흘러내리는 땀방울들을 느끼며 뮤를 바라보고 있었다. 과연 그는 어떻게 위기를 탈출할까? 현재 패닉상태에 빠져서 아무 것도 못 하고 있는 듯 한데... "그게...말이지 뮤..." "안 가르쳐주면, 뮤 삐질꺼야!" 핫...히드레안을 상대로 저런 귀엽기 짝이없는 협박을 하다니... 장하다 뮤! 놀랍다 뮤! 위대하다 뮤! "아...사실은 말야." 히드레안은 손가락을 하나 척하고 들어서는 입을 열었다. "미노가 엄마야." 콰아아아앙! 첨탑 어디쯤에 벼락이 떨어진 것 같다. 사방을 흩날리는 시커먼 살기를 대 하면서 뮤는 움찔하고 몸을 떨었고, 히드레안의 뒤에서 거대한 장신으로 휘 날리는 살기의 소유자는 성큼성큼 걸어서 휘번뜩하고 살기로 흩날리는 눈을 가진 체 히드레안의 목을 손으로 움켜쥔 체 짤짤짤하는 소리가 나도록 흔들 기 시작했다. "대체 내가 어디로 봐서 여자로 보이냐! 이 멍청한 변태 마왕아! 차라리 네 가 엄마를 하면 될거 아냐! 엄마를! 안되면 게이라도 되면 되는거 아냐!?" "시끄럽다! 내가 [아빠]라고!" "너처럼 여자 같은 데다가 비리비리한 아빠가 어디있어! 차라리 하면 내가 아빠를 하고 만다! 거기다 내 어디가 모자라서 여자 역을 해야 하냐!? 여장 취향이 있는 내녀석이 차라리 백배 천배 만배 어울린다구!" "뭣이! 감히 시종 주제에!" ....원래의 목적을 상실한 체 둘은 각기 자신의 필살기라고도 볼 수 있는 마 법과 능력을 아낌없이 시전하며 성 위를 휙휙 날아다니는 번개처럼 일을 시 작했다. 우르릉대는 소리가 들려오긴 하지만, 뮤는 하암, 하고 하품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아빠, 그럼 난 엄마가 없는거야?" "누가 그래!? 절대로 그렇지 않아! 뮤에게도 엄마는 있어!" "하지만 그럼 왜 없는 건데? ...아항, 그렇구나. 아빠가 변태색골바람둥이대 마왕이라서 어린 나를 버려 두고 가출한 거구나!" 순간 히드레안은 너무나도 논리정연한 그녀의 말에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하 고 우물대다가 한숨을 푸욱 쉬었다. "그게 아니야 뮤. 네 엄마는 아주 먼 하늘나라에 여행을 가 있는거야." ...이럴 수가, 그냥 아버지가 말했다면 씁쓸한 마음과 소녀의 동심을 자극하 는 말로 들렸겠지만, 히드레안이 저렇게 말하니 그건 동화풍이 아니라 엽기 적인 희극으로 돌변해 버렸다. 뮤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다가 손을 타악 쳤다. "그럼 죽은 거구나!?" 아아, 진정 똑똑하다 못해 찬탄이 흘러나오는 말이었다. 히드레안은 그걸 확 인하고서는 털썩하고 바닥으로 추락했다. 뮤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히드레안 의 머리카락을 살짝 잡고는 헤헤헤 웃었다. "아빠 아빠, 그럼 무덤은 어딧어?" "몰라! 없어!" 팩 돌아서서는 그 자리에서 아에 털썩 주저앉아버린 그. 저런, 삐졌군 히드레안... 뮤는 그런 히드레안을 달래기 위해서 애교를 떨어보았다. "아이~아빠도 잘 알잖아, 뮤는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걸, 크면 아빠한테 시집갈꺼야!" 저런 아빠에게 하는 유치한 애교적 말을 해대다니...히드레안은 조금 귀가 쫑긋해 지나 했더니 팩하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래도 없어! 흥!" "...아빠 자꾸 그럼 나 미노오빠랑 결혼한다!?" "뭐, 뭐시!" 히드레안은 홱하고 돌아서서 뮤의 어깨를 잡았고 미노는 으윽, 하면서 뮤에 게 외쳤다. "난 또 왜 끌어들이는 거야 뮤!" "미노 네 녀석! 아무리 너라고 해도 뮤를 넘보면 지금 즉시 척살해 버리겠 다!" '"내가 너처럼 어린애 밝히는 변태인 줄 아냐!" 히드레안은 뮤를 꼬옥 품에 끌어안으면서 그런 미노를 찌릿하고 노려보았 다. "측실만 해도 10명이 넘던 녀석에게 그런 말들을 이유는 없다!" "으아아악! 왜 지나간 과거를 가지고! 거기다 손대지도 않았단 말야!" "데리고 있었다는 사실이 중요해! 있었다는!" "그러는 너야말로 건드린 여자하고 남자가 몇이나 되는지 알고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애 앞에서 교육에 나쁜 이야기하지마!" "네가 먼저 했잖아!" ...아아...정녕 끝이 나지 않을 입씨름이로니... 뮤는 오늘도 변함없이 그런 비교육적인 환경에 버려진 체 꿋꿋이 살고 있었 다. 마왕 이야기-30 마왕의 취미생활-10 손톱소재를 하고있는 골든데스와, 채찍에 박어넣은 스파이크(...)를 확인하고 있는 다크니언과 달리 벽에 기대서 있던 실버블러드는 툭하고 내뱉듯이 입 을 열었다. "맘에 안 들어." "뭐가 맘에 안 드는데 실드?" "그 여자애 말이야! 정말 맘에 안 든다구. 히드레안 님도 그래, 아무리 귀엽 다고는 하지만, 그런 어린애한테 신경 써주시고 말이야!" 실버블러드의 말에 골든데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래. 요즘 히드레안 님은 성부수기 놀이도 안하고 인간 사냥도 안하 고 마왕 괴롭히기라던가, 천계와의 싸움도 전혀 안 하잖아." ...안하면 좋은 것 같은데 그런 것들은... 하지만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지 고개를 끄덕댔다. "아무래도, 항의를 해야겠어...! 예전의 히드레안 님으로 돌아오라고 말이야!"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의자에 앉아서, 두꺼운 사전 같은 책을 작은 안경을 걸치고 책을 보고 있던 미노를 노려보면서 실버블러드는 앙칼지게 외쳤다. "너 같이 겁쟁이 녀석에겐 좋은 일이겠지만 우린 아니야! 솔직히 미노 너도 그 여자애한테 히드레안 님을 뺏긴 것 같지 않냐구? 매일같이 뮤, 뮤하면서 그런 여자애한테나 매달리다니...히드레안 님 같지 않아!" 미노는 책을 탁, 하고 덮으면서 의자 등받이에 등을 쭉 펴고 기댔다. 그는 목을 주무르며 짜증을 부리고 있는 세 명의 여인...이라기보다는 암컷 용들을 바라보았다. "누가 매달려?" "그러니까, 히드레안 님이 온통 그 애한테만 신경이 빠져서....!" "곧 실증 낼 거야...인간의 일생은 채 백년도 되지 않아. 그 정도의 시간은 양보할 수 있잖아. 그 정도의 시간이라면 히드레안도 충분히 꿈을 꿀 수 있 을 거고." 미노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고 실버블러드는 입을 꾹 다물었지만, 여전히 불만으로 가득 찬 눈으로 미노를 바라보았다.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한 허공을 바라보면서, 미노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까 양보하자구. 한 존재의 행복과, 세계의 구원과, 그리고 그의 꿈 을 위해." "알아들을 수 없는 헛소리는 그만해! 그 여자애가 히드레안 님에게 무슨 영 향을 끼치는지 너도 잘 알잖아! 파괴를 지향하지 않는 마신왕이라니, 그게 말이나 돼?! 그 백년의 시간동안 얼마나 많은 균형과 조화가 파괴될 지 아 냐구!" 미노는 콰앙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시끄러워! 제발 그놈의 균형과 조화타령 좀 닥쳐! 수 백 명의 인명이 학살 되는 게 균형이냐? 한 종족이 사라지는 게 조화냐고! 히드레안이 맞추는 조 화와 균형이란 어거지에 사라지는 존재들의 입장에서 서서 볼 수는 없냐 구!" "그게 법칙이잖아! 결국 미노 넌 도망치고 싶은 거 아니야?! 그런 여자애에 게 히드레안 님이 빠져있는 동안 파괴와 피를 보지 않은 게 좋은 겁쟁이 같 으니라고...! 어차피 멸망된 일족의 왕 주제에...!" 순간 미노의 손에서 근육이 활성화되더니 날카로운 손톱이 비져나와서 실버 블러드의 목을 낚아챘다. 커억 하는 소음과 함께 벽에 처박히다시피 한 실 버블러드를 보며, 골든데스와 다크니언도 벌떡 일어났고, 미노는 억눌린 목 소리로 천천히 버둥대는 실버블러드의 귓가에 대고 중얼댔다. "...닥쳐." "윽...커억...컥...!" "시끄럽군, 둘 다 그만 둬라." 미노는 손을 풀었고, 실버블러드는 바닥에 떨어져 컥컥댔다. 히드레안은 팔짱을 낀 자세로 어색하게 서있는 그런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 고, 히드레안의 등뒤에서 까맣고 붉은 눈동자를 굴리며, 불안한 표정으로 뮤 가 서있었다. "...미노, 나간다. 준비해라." "히드레안..." 미노의 억눌린 목소리에 히드레안은 차갑게 대꾸했다. "너는 나의 것이다. 반항하고 싶다면 인형으로 만들어 주겠다." "...알았어." 히드레안은 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웃었다. "뮤, 아빠랑 인간사냥 나갈래?" "....웅...?" "재밋는 거 보여줄게." 환하게 웃는 골든데스와 다크니언의 얼굴과, 어두운 음영이 진 미노의 얼굴 을 흘낏하고 보다가, 뮤는 생긋대고 있는 히드레안을 바라보았다. 아빠니까, 뮤는 으응하면서 히드레안의 목에 매달렸다. "으응, 같이 갈래!" "...들었지? 준비해 미노." 뮤를 안아들면서 살짝 짓는 히드레안의 미소는, 왠지 잔인해 보였다. 더군다나 그 눈동자에 맺혀있는 광기는, 미노의 등줄기를 서늘하게 만들었 다. 쉐에엑하면서 바람을 가르는 소리. 오랜만에 본체로 돌아가 활공하는 기분을 느끼며, 그들은 하늘을 질주했다. 거대한 하늘도 셋이나 되는 거룡을 지탱하기는 힘든지, 파공음을 울려대고 있었다. "꺄아! 아빠아빠, 저 아래가 새카맣게 보여!" "그렇지?" 소풍 나온 부녀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두 존재...쯧쯧. 미노는 휴우, 하면서 그저 골든데스의 등에서 노닥대는 두 존재의 뒤에 앉 아 있을 뿐이었다. 지금 히드레안이 오랜만의 인간사냥에 나선 대다가, 나오면서 엄청난 마력 을 뿜어댔으니 인간들 쪽에선 난리도 아니었다. 한동안 잠잠하던 광기가 재 발했다느니, 한꺼번에 몰아서 죽이느니...각종 말이 오가고 있었지만, 히드레 안의 생각을 누가 알랴. 혹시 아는 이 있으면 좀 설명해 주길 바란다....휴우... "어디부터 할건데 히드레안?" "아아, 일단 경치 좋은 데로 하자. 뮤도 구경해야하니까." "..." 미노는 뭔가 할말이 있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히드레안은 그저 싸늘하게 웃 으며 뮤의 손을 잡고는 활짝 웃었다. "지금부터 재밋는 거 보여줄게 뮤." 제 세상 만난 듯이 브레스를 뿜고 광폭 하게 날뛰는 크레이지 드래곤, 뮤는 히드레안의 품에 안긴 체 박살나는 성과 밟히는 인간의 무리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린아이다운, 뭐가 뭔지 잘 모르고 있는 눈으로. 미노는 인상을 찌푸리며 조금 먼 산을 바라보았고, 히드레안은 생글생글 웃 으면서 그 학살의 현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잘보렴 뮤, 세상이란 저런 거란다. 약하고 쓸모 없는 놀이개들은 때가 되면 밟히고 죽음을 맞이할 뿐이지. 세상이 제것이라고, 강자가 자신들을 돌봐줄 거라고 착각하고 있건 말건 말이다." "아빠! 그치만 약자는 지켜주는 거라고 책에 쓰여있는걸?" 그의 대답은 짧고도 확고했다. "책은 진실이 아니야." 히드레안은 천천히 활공을 멈추고 거리에 내려섰다. 우직, 하면서 불꽃이 옮 겨 붙어 부러지는 기둥과, 그사이를 비명을 지르며 피하는 이들. 뮤는 동그 래진 눈으로 그런 그들을 바라보다 히드레안의 품에 파고들었다. "히드레안." 미노는 천천히 그런 그의 뒤에 날개를 접으며 내려섰고, 히드레안은 그 쪽 은 보지도 않은체 입을 열었다. "왜." "...제발 그만둬." "뭘 그만두라는 거지? 난 파괴자잖아." 비웃듯이 그렇게 말하고는 히드레안은 천천히 손을 들어올렸다. 그의 손짓 이 보이지 않을 텐데, 마치 홀리기라도 하듯이 골든데스는 거체를 움직여 히드레안의 앞에서 정신없이 움직이는 사람들의 무리 위로 발을 '살짝' 얹 었다. 우두둑! 비명이 울리고, 사람들이 흩어졌다. 뮤는 그런 장면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히드레안 의 옷자락을 잡았다. "...이런 게 이것들의 운명이지. 때가 되면, 장난감답게 운명을 맞이하는." 히드레안은 살짝 뮤의 손을 옷자락에서 땠다. 천천히 걸음을 옮겨, 히드레안은 다리가 짓밟혀 움직이지 못하는 노인의 앞 에 섰다. 스치는 냉정한 비웃음, 그의 한 손에 어느새 떠오른 날카로운 얼음 의 창날이 노인의 목을 꿰뚫었다. "인간이란 허약한 장난감일 뿐이야." "...아, 아빠..." 뮤는 미노의 품에 안겨서 덜덜 떨면서도 어린 소녀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피에 젖어 질척하게 되었으면서도, 살기 위해 기고 있는 어린, 자신과 똑같 은 나이대로 보이는 아이를 보며, 뮤는 입을 열었다. "그만해 아빠! 아파하잖아! 싫다고 하잖아! 괴롭히지 마!" 히드레안은 천천히 돌아서서 뮤를 바라보고는 조금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 었다. "왜 뮤? 이건 장난감일 뿐인걸. 가지고 노는 거야. 아파하는 것도 싫다고 하 는 것도 전부다 입력된 대로 움직이는 몸 때문인걸." "아빠가 나빠! 왜 죽이는 거야?!" "..." 뮤는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히드레안을 향해 외쳤다. "왜 죽이는 거야! 이 사람들은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 히드레안은 대답하지 못했다. 미노는 천천히 울먹대고 있는 뮤를 품에 안아, 그녀의 눈에 더 이상의 것들이 보이지 않게 하며 작게 중얼거렸다. "대답해 줘라 히드레안, 어째서 너는 파괴자인 거냐." "........" 히드레안은 한동안 그대로 멍하니 서 있었다. 그는, 아직 한번도 그런 질문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솔직히 당연한 것이 아닌가? 마왕은 인간을 죽이고, 괴롭히고, 절망케 한다. 모든 존재에게 파멸을 불러다 주고, 죽음을 준다. 그가 인간을 괴롭히건 죽 이건 엘프들을 절멸시키던, 한 종족을 사라지게 하던, 다들 그 행동에는 치 를 떨면서도 근본적인 질문은 하지 않았다. '왜 그는 죽이는 것인가?'하는. 이유 없는 파괴란 없다. 최소한의 이유가 있어야 결과는 성립될 수 있는 법 이고, 본질적으로 결과를 봤을 경우에는 이유에 의문을 기울이는 것이 옳았 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에게 '어째서'란 질문은 하지 않았다. 다만 '대가를 받으리라'라는 말은 자주하곤 했지만. "...뮤." 히드레안은 조금 당황한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뮤는 대답없이 미노의 품 으로 더 파고 들었고, 히드레안은 다시 입을 열었다. "뮤...?" "싫어! 아빠 미워!" 뮤의 앙칼진 목소리에, 히드레안은 보기 드물게 움찔했다. 그는 손을 약간 말아 쥐더니, 옷자락을 움켜쥐었다가, 고개를 들었다. "...미안...미안 뮤, 다시는 안 그럴게. 아빠가 잘못했어...응? 뮤..." 히드레안의 간절한 목소리에도 뮤는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아아, 놀랍도다...히드레안을 아무렇지 않게 기게 만드는 존재! 그 이름 뮤! "...뮤도...인간이잖아..." 뮤의 말에 순간적으로 히드레안의 얼굴색이 변했다. "뮤도 인간인데...그럼 아빤 뮤도 죽일 거야...? 뮤도 쓸데없는 장난감이야? 아빠는...그럼 왜 뮤를 딸이라고 한건데! 아빠 미워!" "...누가...누가 그런 말을!?" "싫어! 아빠 안 볼 거야! 뮤 성에 돌아갈래!" 히드레안은 당황한 듯이 얼굴을 찌푸렸고, 미노는 커다랗게 울음을 터트린 뮤를 감싸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데리고 돌아간다. 방해해도 간다. 그리고 히드레안...오랜만의 인간사냥이니 까 실컷 즐기라고." 미노는 비웃음을 남기고는 뮤를 데리고 워프했다. 뭔가 짜증이 울컥 밀려오는 감각에, 히드레안은 빠득 하고 이를 갈았다. "...젠장...!" 마왕 이야기-31 마왕의 취미생활-11 미노는 따뜻하게 덥혀 온, 따뜻한 우유를 히드레안의 앞에 놓아주었다. 히드레안은 멍한 얼굴로 그런 우유잔을 바라보다가 살짝 고개를 숙였고, 미 노는 그런 그의 머리를 툭툭 쳐주었다. "...모르겠어." 히드레안은 머리를 집으면서 중얼거렸다. "모르겠어. 어째서 나는 파괴자로 태어났는지, 어째서 죽음을 내리지 않으면 안돼는 지, 어째서...나란 존재는 그게 아무렇지도 않았을까?" 미노는 히드레안의 손에 우유잔을 쥐어주면서 대수롭잖게 말했다. "네가 그런 생각을 다 하다니, 애란건 키워 볼만한 건지도 모르겠다." 히드레안은 우유잔을 잡고,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호, 호, 하고는 불어서 우 유를 식혔다. 심각하게 분위기 잡다가 갑자기 왜 망가지는 건지 누가 알랴. 단지 아는 것은 히드레안은 의외로 따뜻하게 데워져서 설탕 탄 우유를 무척 좋아한다는 것 뿐. "...뮤 얼굴을 어떻게 보지?" "엄마라고 하고 보면 돼잖아." ".......그거 상당히 좋은 방법이다." 이, 이봐! 이런 상황에서 농담을 갑자기 하지 말란 말이야! 순간적으로 진담인 줄 알잖아! 도대체가 생각이 있는 것들이야 없는 것들이 야?! ...그러니까!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구... 저 녀석들...울고 싶어지는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둘다 시덥잖은 농담을 했다는 사실을 모른 체 그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히드레안은 호륵, 하고 따뜻한 우유를 한 모금 마시곤 의자에 푸욱 파묻혔 다. "...대체 누가 가르쳐 준거야?" "뮤가 인간이란 거? 그거 아마 지나가던 시종에게 뮤가 '저기, 난 뭐야?'라 고 하니까 인형 중 하나가 '인간입니다'라고 말했던 것 같은데? 히드레안 넌 가끔 인형의 업그레이드는 해주는 거야?" "......다 내 잘못이란 거냐 뭐냐!" 미노는 우유잔을 휙 던지면서 일어나는 히드레안을 보면서 같이 바락하고 소리를 질렀다. "사실 전부다 네 잘못이잖아! 누가 그러게 애를 키우래! 사지 멀쩡한 인간 에게 맡겼으면 이런 쓸모 없는 고생 안하고 좋잖아!" "에이이 시끄럽다! 인형 버전 업 패치판이나 만들련다!" "넌 대충 만들고 나중에 수정판만 많이 재발매 하는 게 문제라고!" "어차피 다 살건데 무슨 잔말이 많아!" 갑자기 이상한 헛소리로 세어버린 그들이지만 자신들은 그렇게 위화감을 느 끼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둘이서 오랜만이라고도 볼 수 있는 입씨름을 하고 나선, 히드레안은 잔뜩 골이 나서 실험실에 처박혀 버렸고 미노는 도서관으 로 들어갔다. 투덜대면서 뮤에게 줄 동화책이라도 고르려고 고개를 휘휘 젖던 미노는 잠 깐 멈춰서서 책장 아래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좀 작은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히드레안의 성에는 인격체라곤 자신뿐이다. 아니, 뮤도 있기는 하지만, 어쨌 든 대부분은 히드레안이 만든 육신에 생명체의 혼을 봉인시켜 만든 '인형' 과 애완동물 격인 것들만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도서관에서 책이라...? 그럼 남은 거라곤 한사람 뿐. "뮤." "...미노 오빠." 뮤는 눈물이 글썽글썽해서 미노를 돌아봤다. 그녀의 주변에는 꽤 여러 개의 책이 난잡하게 펼쳐져 있었고, 개중에는 두껍고 낡은 책에서부터 각종 책들 이 가득 널려 있었다. 뮤가 읽기에는 조금 어려운 빽빽한 글씨들이 가득한 책들까지... 뮤는 눈을 슥 슥 부비곤 미노를 올려다 보았다. 미노는 측은함에 그녀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고, 그녀가 읽던 책들 중 한 권을 들어 올려보았다. "...뮤." 미노는 천천히 책을 다시 덮어서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너...이 책에 쓰여있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고나 본 거야?" "...뮤...잘은 모르지만...아빠가 나쁜 거야? 아주...아주 나쁜 사람이야? 사람도 마구 죽이고, 세계의 균형을 파괴하고, 불신과 악 따위를...그런걸 조장하 는....사람을 죽이는 건 나쁜 거라고 하는데...아빤....그럼 대체 몇 명을 죽인 거야...?" "뮤." 뮤는 다시 흐느끼면서 책들을 밀쳐냈다. "뮤는 아빠가 좋단 말야...근데 아빤 나쁜 사람이잖아...악당인 거잖아..." "...그러니까 뮤...세상엔 꼭 책이 진실이라고만 볼 수 없어." 미노는 흐느끼는 뮤를 품에 꼭 안았다. 조그맣고 가녀린 여자애, 거기다 언 제나 보호받고 천진하게 자라 세상물정 모르는 순진한 아이. 비록, 히드레안 이라는 초변태엽기마왕의 손에서 자라긴 했어도 용케 선한 심성을 유지한... 얼마나 울었는지 옷자락도 축축해져 있었고 생각보다 꽤 말라 있었다. "그치만...그 사람들...무서웠단 말야...아빠는..." "...책은 언제나 진실을 말하지 않고 정의가 늘 승리하는 것은 아니지. 그리 고...사랑이 모든 것을 이해해 줄 수는 없는 거야." 미노는 뮤를 토닥대면서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너는 그저 히드레안에게, 그 외로워서 늘 혼자 웅크리는 녀석을 사랑해 주 기만이라도 해줘라 뮤. 이해하거나 용납할 필요따윈 없어. 그냥 사랑해 주 고, 사랑 받아. 어차피 이해한다는 것은 주관적이고 형편없이 독선적인 것일 뿐이니까..." "오빠아아...." 뮤는 서럽게, 그렇게 커다랗게 울음을 터트렸다. 목을 부여잡고 입을 막고, 끝내 꾹꾹 눌러 참았던 울음을 그렇게 터트렸다. 마왕 이야기-32 마왕의 취미생활-12 "음...이렇게 하면 볼 수 있는 거야? 그런 거야 미노 오빠?" "그래, 하지만 신중하게 생각해 뮤. 히드레안이 짊어진 세월은 네가 볼만한 것이 아니야." "...그치만..." 뮤는 옷자락을 꼭 말아 쥐면서 고개를 들고는 외쳤다. "난 아빠를 사랑하는 걸!"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콰당, 하는 문이 닫히는 소리. 미노는 문가에 주저앉아, 이때껏 억눌려진 한 숨을 겨우 내쉬었다. 답답해져 오는 가슴, 미노는 눈을 감았다. 온통 새하얀 공간. 뮤는 의문을 느끼고 다시 돌아서서 미노에게 뭔가를 묻기 위해 방문의 손잡 이를 잡았다. 그와 동시에, 음울한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를 휘어잡았다. 원한의 강은 세월을 거슬러 흐르리. 영원한 죽음도 없고 영원한 삶도 없듯이. 원한도 영원하지는 않지만. 기억하여라, 원한은 세월의 강을 거슬러 올라 반드시 너의 앞에 다시 서리 라. 그 뿌리까지 없애고, 그 원한의 원한조차 파괴했다 하더라도. 반드시 너는 그 대가를 받게 되리라. 지금 이 순간 나의 죽음에 기뻐하여 축배를 들라. 시간이 흘러 너의 목에 차가운 원한의 칼날이 닿는 그 순간까지. 웃어라, 축배를 들어라. 그러나 너는 반드시 원한의 강에 발을 담그게 되리라. 네가 눈을 돌려 다시 너의 행적을 보는 순간, 너는 원한의 강물에 뒤덮이게 되리라. 뭘까? 뮤는 몸을 움츠리면서 다가오는 서늘함에 몸을 떨었다. [그럼, 나와 내기할 생각은 없는지, 어리석은 신들이여?] [시르스, 그래, 네 이름은 시르스로 하자!] [...미안해...미안해...하지만 난 죽을 거야...] [어째서? 왜 하필이면 나야! 왜!] [저주할 테다! 더러운 마왕이여! 네 모든 것을!] [거부한다, 나의 인생은 나의 것! 설사 죽음의 끝자락에 서더라도 맞선다!] [상관없어! 절망의 끝에 서더라도! 나는 심연!] [우리 아기...눈을 감으렴...너는 아무 것도 보지 말아라...] [죽고싶어. 네 손으로, 날 죽여줘.] [네가 알아?! 그 끝없는 시간동안! 그 기나긴 세월동안 오직 홀로 존재하는 그 고통을!] [아하하핫! 그래, 나는 심연이 되겠어! 하지만 초월하는 자가 된다! 내 이름 은....] [사랑해요.] [그대의 이름, 그대가 불리어 질 절대적 의지, 명하노니, 검은 설빙의 마 왕...] [사랑해요, 그러니까 울지 말아요...] [....히드레안.] 몰아친다. 폭풍 같은 눈보라에 뒤덮인 기억들이, 흔적들이, 그가 살아왔던 것들이. 마치, 한순간 그가 되기라도 한 것처럼 노도와 같은 물결이 그녀를 휘감고 터져 나갔다. 마치 원한이라도 맺힌 것처럼 그 기억들은 그녀를 할퀴고 물어뜯고 짓이겼 다. 그것은... 그의 [기억]이었다. 피로 물들어 버린 계곡과 들판이 보인다. 피에 굶주려 허공을 떠돌고 있는 까마귀 떼들, 새카만 그림자, 새카만 인영, 핏빛으로 물든 둔덕 가득히 쌓여있는 시체들. 그 둔덕의 끝자락에, 새카만 검은 옷과 검은 갑옷을 걸친, 무척이나 고요한 표정의 여인이 앉아 있었다. 새카만 검은 머리카락은 사방으로 흐트러져 있었고, 냉혹하게 느껴지는 그 무표정은 다가오는 모든 것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것만 같았다. '이것이 네가 원한 결과였던 것인가...이 덧없는 풍경이 네가 원한 것이었 나?' '예. 저는 살고 싶습니다.' 금발머리에, 진한 녹색의, 그래서 거의 금색으로까지 보이는 눈동자의 소년 은 천천히 걸어서 그녀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멍한 눈으로 다른 곳을 응시하고 있는 듯 했는데, 순간적으로 바닥의 무엇인가에 걸려 휘청했다. 여인은 순식간에 무표정을 지우며 벌떡 일어나 그를 부축했다. 그녀의 몸에 서 흘러내리는 피는 소년의 하얀 피부를 적셨고, 여인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렸다. '...시오, 피가...어떻게 네게 피가...' '...이제야 겨우 손을 내미시는 겁니까, 연약하신 마신왕이시여.' 소년은 미소를 지었고, 여인은 금방이라도 울 듯한 얼굴로 그에게 묻은 핏 자국에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말해주십시오. 저를 사랑한다고.' 소년은 그녀의 뺨을 천천히 감싸쥐면서, 따스한 미소를 지었다. '저는 당신을 위해 살고 싶습니다. 말해주십시오. 저를 사랑합니까 에리나쟈 드...?' 여인은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어린애 같은, 목놓아서 엉엉대며 우는 그녀를 작은 몸으로 안아주며, 소년은 입을 열었다. '저 시오 마이안. 위대한 빛의 신 마이아의 대사제, 그러나 지금. 그대에게 종속하는 바입니다. 나의 에리나쟈드.' 휩쓸렸다. 순간적으로 사방이 위이이잉하는 소음과 함께 지워지고, 눈앞은 순백색으로 물들었다. 하얀, 새하얀...더없이 새하얀. 눈밭이었다. 하늘에선 끊임없이 눈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고 사방은 온통 하 얗게 물든 것만 같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물든 것 같아 보일 뿐이었다. 눈밭은 핏빛의 얼룩이 군 데군데 져 있었고 조금이라도 눈이 덜 쌓여있는 곳에선 인간의 시체가 보였 다. 하얀 순백색의 묘지. 눈은 마치 모든 것을 감싸버릴 듯 그렇게 끝도 없이 내리고 있었다. 그 눈이 몰아치는 평원, 아니 한때는 도시였다 사라진 평원 위에, 마치 죄를 짓고 버려진 죄인처럼 소년은 고개를 쳐들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검은 머리카락, 검은 눈동자. 피 한 방울 묻지 않은 하얀 옷자락에는 눈이 가끔 스쳐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이런, 어린 아기가 춥겠구나...' 보라색 그림자가 술렁대더니 소년의 눈앞에 맺혔다. 길게 늘어진 보라색 앞 머리를 지닌, 동방풍의 금실자수가 놓여진 검은 옷을 입은 이. 천천히 자신 이 덮고 있던 길게 끌리는 보라색의 겉옷을 벗어 아이에게 둘러주는 그의 입가에는 따스한 웃음이 맺혀 있었다. '...난...악마야...제발 저리가. 널 죽일 거야.' '귀여운 아기, 네가 왜 나를 죽이겠니?' '오지...마!' 소년이 고개를 틀자 주변의 눈들이 소용돌이치며 창의 모양으로 비틀어졌 다. 보라색 머리카락의 남성은 호오, 하는 감탄사를 내뱉으면서 잠시 그런 모습을 보다가 차갑게 얼어서 떨고있는 아이를 품에 안았다. '하여튼 에리나쟈드 넌 속 썩이는 아이구나.' '난....에리나쟈드가 아니야....나는...' '그렇구나, 넌 이제 이름을 버렸으니 새 이름이 필요하겠지.' 남성이 아무렇지도 않게 소년을 품에 안아드는 동안, 얼음의 창들은 산산히 부서져 내리거나 자기들끼리 충돌하며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나는 칸나란다. 라그나 칸트라이트나 시에. 황혼 지는 언덕에 선 배덕자. 혼돈의 요람이지, 귀여운 아이야.' 소년은 혼란스럽다는 듯이 도리질을 해댔지만, 그는 익숙하게 소년은 달래 품에 안고는 차갑게 식은 뺨에 손을 얹어 주었다. '그래, 우리 귀여운 아가. 우리 에리나쟈드, 새 이름을 받아야지.' '...난...에리나쟈드가 아니야...' '그래그래, 넌 이제 에리나쟈드가 아니지. 새 이름을 받을 테니까. 내 귀여 운 아이야.' 그는 소년의 이마에 살짝 키스하면서 점차 줄어드는 소년의 목소리에 하나 하나 대꾸해주면서 품에서 어르며 안아들었다. 묘지에서, 그렇게 한 존재가 되돌아 나갔다. 아릿한 꿈처럼 물방울이 크게 부풀어올랐다. 바람소리는 가라앉았지만, 소음은 더욱더 커져갈 뿐이었다. 귀를 멍멍하게 메워버릴 듯한 소음... 그것은...비명소리였다. 긴 회색머리카락, 물에 비친 듯 뿌옇기 짝이 없었다. 눈을 크게 뜬다고 해도 잘 볼 수 없을 지 몰랐다. '가지마, 제발 내게 등돌리지마.' '제발이라, 그런 건 아껴둬. 정말로 사랑하는 이를 잡을 때 쓰라고.' '싫어! 왜 넌 떠나는 거야? 어째서, 내 운명이면서, 어째서 운명인 네가 떠 나가는 거야?' 회색머리를 가진 이는 잠시 돌아서더니 울고있는 검은머리의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점점 더 물을 탄 듯이 뿌옇게 흐려져 간다. '...너는 운명 때문에 날 사랑하는 거냐?' '그래...그렇잖아...넌 분명 내 반신이고 운명이잖아...' '나는, 나는 고작 운명 때문에 널 사랑하고 싶지 않다. 날 소유하고 싶으면 죽여라. 나는 자유로운 영혼, 아인디아.' '싫어!!' 회색 머리카락이 춤추듯이 움직인다. 애달픈 손짓도 소용없이, 그는 당당한 웃음을 짓는다. '죽이고, 나를 대신해 내 눈으로 미래를 봐라.' '...싫어.' '뒤를 바라보지 말고 앞을 봐라.' '싫어...' 점점 더 숨이 가빠오고 흐려져 간다. 답답한 감각에 겨우 손을 휘젖지만, 다 가오는 것은 새카만 어둠이다. 그 어둠 속에서, 한 자루의 검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빛으로 화하고 있는 검, 그것은 길게 늘어져 반짝대는 한 자루의 검 이었다. 투명한, 마치 유리로 이루어져 있기라도 한 듯한 검... '나는 나를 위해 존재한다' '...싫다는 건가...' 검은 머리카락, 눈을 스치는 찌르는 듯한 보라색의 눈동자... 길게 늘어진, 피곤한 듯한 밤하늘처럼 반짝이는 날개. 뮤는 익숙한 그의 이름을 부르려고 숨을 삼켰다. '아아아아악! 차라리 네 인형이 되라고, 영혼을 달라고 해! 이런 삶 따위...!' 그의 처절한 비명에 뮤는 귀를 막았다. 피투성이가 된 여인의 시체를 끌어 안고, 그는 오열하고 있었다. '나는...절대로 널 용서하지 않아...!' 처절한 피맺힌 외침. 뮤는 눈을 뜨고, 소리를 냈다. "아빠..." 그와 동시에 그녀의 청각을 자극하는 날카로운 비명이 들려왔다. [어째서 너는 존재하는 가 히드레안!] 귀울음 같은 거대한 소리. 한 존재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수도 없이 섞여있는 목소리들이, 그 목소리들 이 한꺼번에 외쳤다. 그 웅웅대는, 끔찍하게 소름끼치는 목소리로... "싫어! 그만!" 뮤는 눈을 감으며 바닥에 주저앉았고, 귀 울음 같은 목소리는 그녀를, 그리 고 무엇인가를 비웃듯이 소음을 만들어냈다. [너는 영원히forever 행복할 수 없으리...차가운 심장의 마왕이여...] [영원히forever...] [forever....] [for.....r.....] [.........r....] "싫어! 그만해애애애애!" 뮤는 처음으로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끼며 고통스런 비명을 내질렀다. 마왕 이야기-33 마왕의 취미생활-13 라뮤 슈미안. 그것이 그의 이름이자, 귀족이면서 용병단의 대장이기도 한, 조금 괴짜같은 그가 지니고 있는 공식적 명함이었다. 외모도 어디 모자랄 데 없고, 나이도 고작 25세, 검술 실력 있고, 용병단장에다 동시에 백작의 지위를 지니고 있 어서 뭇 여인들의 유혹도 수도 없이 받아봤던 이였다. 180이 약간 넘는 키, 수려한 갈색 눈동자, 그리고 타는 듯한 붉은 머리카락, 세 개의 성과 두 개의 영지를 소유한 대귀족. 그야말로 모자란 게 없는 이 란 말이다! 하지만, 그가 지금 이런 일을 겪고 있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봐...아가씨, 그러니까 내가 잘못했어." "잘못했다는 말로 모든 게 끝날 것 같아! 물어내 물어내 물어내 물어내 물 어내 물어내 물어내!! 이건 아빠 생일 선물이란 말야!" ...그러니까 30분 전. 라뮤는 용병단의 일을 끝내고 이제 귀족으로서 한 나라에 근무하는 이의 임 무를 다하기 위해서 성으로 돌아가던 도중, 이 길고 긴 흑발 머리와 새카만 검은 눈동자와 동시에 붉은 눈동자를 지닌 기묘하게 아름다운 소녀를 마주 했다. 그녀는 하얀 원피스를 입고, 뒤에 있는 시녀쯤으로 보이는 금발의 여자와 함께 뭔가 대화를 나누며 아주 행복한 미소를 띈 체 하얗고 예쁜 컵을 쥐고 있었다. 아마 사려고 하는 듯해 보였고, 라뮤는 미녀를 보았다는 즐거움에 살짝 웃 고는 그냥 지나가려고 하던 찰나, 그녀가 갑자기 돌아서는 바람에 부딪치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뭐, 쨍강하는 차가운 소리가 그의 귓가를 울려 퍼졌을 뿐이지... "이봐..." 라뮤는 결국 자신의 머리를 살짝 쥐었다가 눈을 아래로 내리깔며 바락하고 외쳤다. "솔직히 말해서 그쪽에서 부딪친 데다가 물어준다고 하잖아! 대체 왜 사람 을 30분 째 붙잡고 그러는 거냐고!" "몰라! 이거 말고는 맘에 안 든단 말야! 도로 붙여 놔!" ...으...으아아.... 라뮤는 입을 쩌억 벌리고 그대로 굳어 버렸다. 이건...인간이 할 수 있는 억지가 아니었다. 얼마나 응석받이에다가 제멋대로 에 귀하게 자랐으면 성격이 저 모양같이 개판일 수가 있을까. 라뮤는 나중 에 애가 태어나면 절대로 저렇게는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결국 소리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똑같은 컵은 산처럼 쌓였는데 어째서 저것들은 안되고 부서진 것만 되는 건데! 여자가 생긴 게 별로면 성격이라도 좋아야 할 거 아냐! 물어주면 돼 지 왜 자꾸 시비는 시비야!" 여자는 갑자기 얼굴이 멍해진 듯 했다. 아마도 난생 처음으로 남에게 안 좋은 소리를 들어 본듯한 그런 표정. 이내 그녀의 고운, 정령의 눈동자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고, 그녀는 뒤에 서있는 금발의 엄청난 미녀의 품으로 파고 들어갔다. "아아아아앙! 아빠한테 다 일러줄거야!" 대체 나이가 몇인데 아빠 타령이야! 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여자가 우는데 그렇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는 지끈대는 머리를 잡고, 대체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에 관해 의심하며, 엉엉 울면서 여인의 품에 안겨있는, 소녀를 슬쩍 건드려 보았다. "이봐." "몰라 몰라! 아아아앙...16호, 어떻게 해. 뮤가 생긴 게 별로래!" ...했던 말도 아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자 16호라는, 어찌보면 아주 이상한 이름을 지닌 여인은 침착하면서도 어쩐지 무척 차가운 느낌이 드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인간 천명을 놓고 실험했을 경우, 예외-장님, 비인간적인 말을 제외한다면 약 98%의 인간이 주인님의 아름다움을 인정합니다." ...내용은 더 음침했다. "아악! 취소하면 되잖아! 좀 그만 울어! 제발!" 머리가 부서질 듯해서 라뮤가 외치자, 그제서야 소녀는 울음을 뚝 그치곤 헤헤, 하고 웃어보였다. ...저것은, 땡깡의 고단수, 진정한 울음의 전문가만이 할 수 있는, 그 이름도 유명한........ ....'우는 척 하기' 라뮤는 속았다는 것을 느꼈지만, 때는 늦었다. "곤란합니다. 시간을 되돌리는 마법은 저로서는 불가능해요." "에게! 그것도 못해? 우리 아빠는 그 정도는 가볍다구." 소녀의 말에 빠직, 하면서 수염이 성성한 8클래스의 마스터는 그녀를 손가 락으로 가르켰다. "...대체 이 레.이.디.는 누굽니까 라뮤님?" "길거리에서 만난 싸구려 컵 깨졌다고 고쳐놓으라고 하는 여자애." 빼액하면서 여자의 목소리가 방안을 울려 퍼졌다. "내 이름은 뮤야! 그리고 난 여자애가 아니고 숙. 녀. 라고! 한번만 더 그렇 게 말하면 아빠한테 다 일러줄 거라구!" 라뮤는 눈을 부릅뜨고 그녀를 향해서 마저 외쳤다. "시끄러! 이 파더 콤플렉스 환자 같으니라고! 새 컵을 사면될걸 가지고 왜 자꾸 신경질이냔 말이야!" 그러자 소녀, 아니 뮤는 다시 금발미녀...정확히는 16호의 품으로 달려가서 와락 울음을 터트렸다. "내가 파더 콤플렉스야!? 아아아앙! 어떻게 저런 말을! 어흐흐흑...." 라뮤는 하마터면 검을 뽑아서 그 소녀를 내리칠 뻔했지만, 극성의 인내심으 로 그 모든 것을 참아냈다. "그만 울고...우리 대화로 진지하게 모든 것을 풀어보자..." "컵 물어내!" "물어낼 테니까 말 좀 하자!" 결국, 라뮤는 소녀를 의자에 앉히는 데에 성공했고 그녀는 탁자 위에 차가 놓여 질 때까지 시끄럽게 굴지도 않았다. 더불어 그 시녀인 듯한 16호라는 기괴한 이름의 여인도 우아한 거동으로 뮤라는 소녀의 뒤에 서 있었고, 라 뮤는 하아, 하고 숨을 들이마시곤 의자에 앉았다. "그러니까, 똑같은 컵은 거기 많았잖아. 돈을 줄 테니 새 걸로 사." "싫어! 아까 그게 제일 맘에 들었단 말야!" "....컵 말고 그럼 다른 걸 사는 건 어때?" "아빤 컵이 제일 필요해! 매일 오빠랑 싸우느라고 컵을 깨는걸! 그래서 늘 컵이 남아나지 않아서 이번 뮤 생일 때는 아빠한테 컵을 선물하려고 했는 데...했는데..." "아악! 울지마!" 라뮤는 이 대책 없는 파더 콤플렉스 환자에다가 16~7세쯤으로 보이는 얼굴 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무책임한 말투. 더군다나 저 얼마나 곱게 자랐으 면 아무한테나 어거지를 부리고 존댓말이라곤 할 줄도 모르는 방만함에 치 를 떨었다. 뮤는 볼이 부어선 라뮤를 노려보았고, 라뮤는 끄응하다가 입을 열었다. "네 아빠란 사람도, 저런 깨진 컵보다는 똑같은 컵을 더 좋아할 것 같은데." "아냐! 거기 컵들은 하나같이 다 틀렸다고!" "뭐가 틀려! 다 똑같은 흰색에다 똑같은 제품이잖아!" 뮤는 발끈해서 외쳤다. "틀려! 아빠한테서 배운 마이스터의 감정법이 틀렸을 리 없어!" "...혹시 네 아빠란 사람...마이...스터냐...?" "응!" 그, 그래서 그렇군. 어째 물건에 대한 집착이 비정상적 이더라니...라뮤는 끄 응, 하면서 머리를 짚었다. 확실히, 마이스터쯤 되는 이라면 자기 딸에게도 마이스터 일을 가르쳤을 지 모르는 일이고, 그런 그녀가 비정상적으로 물건 에 대한 감별력이 높은 것도 이해할 만했다. 결과적으로, 지금 다른 걸 사줄 수 없게 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잠깐, 그런데 데느자우 국에 마이스터라면 딱 두 명뿐이었다. 한 명은 아까 뮤에게 개망신을 당한 자신의 아버지 때부터 친우였던 마법사 이자 마이스터 젠. 그리고 한 명은 사망한 젠의 스승인 쿨린. 쿨린에게 딸은 없었다. "...이봐 잠깐." "왜?" "데느자우 국엔 살아있는 마이스터라곤 젠 뿐이라고! 어떻게 네 아빠란 작 자가 마이스터야?!" "아빤 마이스터 맞아! 세계 최고의 마이스터란 말야!" ....서...설마 정신이상 환자인가. 라뮤는 간절한 눈빛으로 뮤의 뒤에 서있는 금발의 16호를 바라보았다. 그녀 는 그의 눈빛을 감지했는지 딱딱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미친 여자들이었다. 라뮤는 머리를 꽈악 잡고는 한 손으로 방문을 가르켰다. "...제발....나가 줘...으으으..." "깨진 컵은!" "그딴 거 내가 알게 뭐야! 도대체가 무슨 여자가 예의가...!!" "뭐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라뮤와 고개를 숙여 라뮤의 뺨이라도 후려치려고 했던 뮤의 얼굴이 겹친 것은 바로 그 순간~!!! 그리고 둘의 입술이 맞닿은 것은 역시 순간! 아아...진정 보이지 않는 손길의 농간이 눈에 너무도 훤히 보이는 순간이었 다. 순간 굳어버린 것인지, 뮤는 멍하니 있었고 털썩, 하고 라뮤도 자리에 주저 앉았다. "...아...아하하..." "...내...뮤의 첫키스가! 아악! 아빠랑 하기로 철썩 같이 약속했는데...! 물어내 애애!" 바닥에 주저앉아 서럽게 우는 그녀... 라뮤는 그저 삐질삐질 식은땀만을 흘리며, '나도 첫키스였단 말이다!'라는 말을 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그냥 입을 다물 었다. 역시 남자는 입을 다물 때와 다물지 않을 때에 관해서 잘 알고 있어 야...이게 아니라. 어느새 저녁 담이 되버렸고, 울다 지친 뮤는 결국 라뮤의 집의 손님방을 차 지하고 잠들어 버렸다. "...정말 오늘 같은 날은 취하고 싶어지잖아..." 라뮤는 머리를 잡으며 절대로 마시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실의 상태에 빠진 체 술을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16호라고 불리는 여인은 어둠 속에서 천천히 스르르 걸어 나오더니 입을 열었다. "이런 시간, 그런 감정 상태로 술을 마시면 몸에 해롭습니다. 또한 감정적 제한을 위해서 타인의 충고를 받아들이시는 게 좋습니다." "시끄러! 아윽...저런 쪼끄마한 여자애 한테 첫키스를 뺏기다니 그게 말이나 돼...!" 실의에 빠져서 술을 마시는 이유도, 남자에겐 다 있는 법이었다. "주인님의 나이는 32세입니다." "푸웃!!" 발작하기 직전으로 몰린 라뮤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16호는 결정타를 날렸 다. "그리고 아직 순결하십니다." "그, 그런건 말할 필요가 없잖아!" "남자라면 책임을 지셔야..." '무, 무슨 책임!!" 16호는 그저 입을 다물었을 뿐이었다. 라뮤는 끄응, 하면서 고개만 설레설레 저었고, 16호는 그저 입을 다물고 가만히 서 있었을 뿐이었다. "나도 할거야!" "아악! 제발 저리가! 대체 무슨 여자가 투핸드 소드부터 들겠다는 거야!" "그게 제일 크고 멋지단 말야!" ...따지는 게 너무도 많았다. 뮤는 라뮤가 용병단에게 가자 이번에는 그것도 보겠답시고 따라온 거였다. ...아아, 정녕 무서운 여자...그녀의 이름은 뮤! "저리가지 못해 정말!" "....윽....흑....." "우, 울지맛!" 용병들의 왁자지껄한 웃음. 이미 조에게선 드디어 도둑놈이 되시는 군요 어 쩌구저쩌구 하는 말을 들었을 정도였다. 맘 같아서는 죽여버리고 싶었지만, 부단장이라서 참아준다. 그리고 돌아서서 뒤를 돌아본 라뮤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라뮤에게 계속해서 이 검 저 검, 이 무기 저 무기 뒤적대는 무시무시한 여 자는 공포고 고통이었다. 결국 그는 비명을 질렀다. "제발 다른데 가서 놀아!" ....그것도 비명이라면 말이다. 어쨌든 뮤는 점심까지 라뮤의 성에서 얻어먹고 오후까지 업무를 하는 데서 놀았다. 그리고 그날 저녁엔 다시 라뮤의 집에서 자고...뭐, 뭔가 당하고 있다는 느낌 이 들었지만 라뮤는 눈치채질 못했다. 그리고 그 다음 날의 다음 날의 다음 날이 되가고... 라뮤는 그제서야 발견했다. '....발목잡혔다!' 이봐, 그게 아니잖아! 어쨌거나 시간은 흘러흘러, 누구 맘대로 그렇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뮤와 라 뮤는 꽤 친해졌다.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정말 뮤의 정신건강이 의 심되긴 했지만 말이다. 굳이 예를 들자면... "으응, 가끔 아빠랑 같이 놀러 나가면, 새카맣고 덩치가 커다랗고 등에 날개 달리고 머리에는 뿔이 이만큼 난 사람들이 좌우로 부복하곤 했어. 그러다가 아빠가 '시커먼 것들이 눈앞에 알짱거리니까 뮤가 무서워하잖아! 저리 안 가!?'하면 금새 막 사라지고 그랬거든. 그러고보니 아빤 시커먼 것들만 나오 면 짜증냈어." .....이런 것들이었다. 그러나 나름대로 예쁜 얼굴에, 마법에 관해서라면 젠을 놀라게 할 정도의 능력자였다 그녀는. 용병단에서는 실력 있는 마법사로, 성에서는 귀엽고 예 쁜 아가씨로 슬슬 인정 받아가는 하루하루들. 어느새 뮤는 당연하게스리 성 에 눌러 붙어 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그게 너무나도 당연해서 다들 그녀의 천연덕스러운 뻔뻔함에 기절할 듯이 놀라고야 말았다. 그리고 라뮤는 결국 결심해 버렸다. 무슨 결심? 묻지 마라, 당연한 것을.... "뮤, 오랫동안 고민해 봤는데..." "뭔데?" "...나랑...평생을 함께 해 줄 수 없니?" 커억, 저 깔리는 꽃 배경의 분위기는 대체 뭣이란 말인가?! 이, 이봐! 이 이야기는 연애물 따위가 아니란 말이야! 거기다 저 붉어지는 뮤의 얼굴과 진지한 버전의 라뮤는...어이어이, 둘 다 지 금 3달도 안 지난 시점에서 하는 짓이란 거 알고 있는 거야? 운명적 만남이니 그런 걸로 얼버무릴 수 있는 거냐고! 아무리 그런 진부한 설정이 잘 먹힌다고는 하지만 말야! 너희들 그러면 안 된단 말이야! 뮤는 위의 모든 말을 싸그리 무시해 버리곤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리고 그녀는 한마디 추가했다. "그런데...아빠한테 말해야 해?" "응? 그거야 당연하지. 장인어른을 보지 않고선 결혼할 수가 없잖아?" ....어이 라뮤. 너 지금 네 목숨, 그리고 나아가서 네 영지의 목숨, 더군다나 나라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나 있어? 마왕 이야기-34 마왕의 취미생활 -14 콰르르르르릉! 라뮤는 왠지 섬뜩한 분위기에 움찔했다. 뮤는 라뮤의 말에 눈을 반짝이면서 '아빠는 굉장히 먼 곳에 있어서 소환해야돼. 그래도 돼?'라고 해서 마법에 는 거의 문외한인 라뮤는 그러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녀는 소환을 한답시고 젠에게 이것저것 준비를 시킬 때 젠의 얼 굴이 시퍼렇게 질려선 기절한 것으로 봐선 뭔가 아주 무시무시한 짓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왠 자연변화에서 음침한 기운이란 말인가? 뮤는 새카만 옷으로 갈아입고 너풀대는 옷자락을 휘날리게 내버려 둔체 허 공으로 손을 내뻗었다. 그녀의 입에선 음울하기 짝이 없는 주문이 흘러나오 기 시작했다. [나의 권속에 있는 마왕들이여 들으라. 지금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바노니, 가장 어두운 세계, 가장 위대한 자가 있는 세계까지 길을 열으라. 나의 피를 지배하는 분의 이름을 말하노니, 당장 달려와 무릎꿇고 나를 경배하며 내 명을 들으라. 그분의 이름은...] 두근대는 가슴을 누르며 뮤를 조마조마하게 보고 있는 라뮤를 무시한 체 뮤 는 주문을 완전히 외었다. [.....아빠.] 콰당! ...으음, 라뮤와 젠이 동시에 넘어간 걸 가지고 너무 나무라지 말기 바란다. 그러자 갑자기 마법진에서 엄청난 스파이크가 튀었다. 젠은 비명처럼 외쳤 다. "이런....! 장난 삼아 말을 해서 소환된 마왕들이 노한 것 같습니다! 이런 격 렬한 마력이라니!" 젠의 말에 라뮤도 희게 질렸고, 이내 마법진에선 고통스러울 정도의 고함소 리들이 들려왔다. [아아앗! 작은아가씨! 어째서 이제야 연락하시는 겁니까! 히드레안 님이 그 동안 저희를 얼마나 괴롭혔는데!] "어머, 미안해. 뮤 바빴어 퓨란." 인간에겐 철혈의 퓨란이라고 불리는 그도 많이 망가질 정도면 히드레안의 히스테리가 슬슬 정도를 넘어갈 수준이었나 보다. [으흐흑! 아가씨! 히드레안 님이 얼마 전에 마왕들을 모아다가 단체로 마그 마 덩이에 던져넣고는 마법력을 봉해버렸다구요!] "꺄악! 아빠가 또 그런 야만적인 짓을?! 괜찮았어 시르누?" 저, 저런. 마그마의 시르누가 저렇게 비명을 지르다니...말이 되야지 원. [거기다 하필이면 미노 님도 아가씨를 찾으러 잠깐 나간 터라 기회를 잡아 선 저희를 볼링 핀으로...꺼이꺼이...] ....으으....눈물이 다 나려고 하는 이 상황... 마왕이란 것이 얼마나 가엾고 불쌍하고 괴로운 존재란 말인가...아아...그들의 말을 들으며 뮤는 일일이 모두다 대꾸를 해주고 있었다. 라뮤는 마법의 언 어를 알아들을 수 없어서 그냥 가만히 있었지만, 젠의 얼굴은 점차 창백하 게 질리고 있었다. 그도 들은 적이 있었다. 모든 마왕을 부리는 존재, 그리고 마신왕 히드레안의 사랑을 받는 이. 그녀 의 말 한마디에 한 나라가 파멸된다는 죽음의 꽃! 그녀는...마신왕 히드레안의 하나뿐인 딸이자 그의 연인이라고 알려진... 클레시 미류뉴 민 뮤 이클립스...! (클레시 미류뉴 민-잔인한 작은아가씨) "그...그럼...그녀가 소환한다는 아버지...라는 존재는...!" 절망적인 그의 목소리. 라뮤는 눈을 멀뚱하니 뜨고 그런 젠을 바라보았고 이내 마법진은 터지듯이 폭팔적인 마력을 내뿜었다. 이내 마법진 너머에서 엄청난 마력의 기운으로 뭉쳐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냐...지금은 집나간 애 찾느라고 잠시간 소환모드를 해제했단 말야! 마법사라는 것이 멍청하게 스리 그것도 모른단 말이냐...! 소환하지 마라! 바 쁘단 말이다!] ...내용은 좀 그랬지만, 그 위압감에 젠은 으으윽! 하면서 바닥으로 주저앉았 고 뮤는 애교스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이 아빠~뮤라두~?" [뭐, 뭐야!? 뮤? 너 어딜 나간 거야?! 3달 동안이나 가출을 하다니 그게 말 이 돼! 거기 어디야! 당장 안 들어오면 용돈 없어!] ...애 아빠 다 됐군 히드레안. 그대의 화려한 솔로 시절의 여성 편력 및 남성 편력의 그 아름답던 시절에 위로의 국화 꽃 한 송이...아니아니 이게 아니고. 뮤는 생긋이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아빠아빠! 뮤 결혼할 거야!" [결혼? 뜬금 없이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니 뮤?] "응! 아빠 이제 사위 보는 거야!" 순간 잠잠해졌다. 마력의 흐름조차 끊긴 것 같은 고요. 이내 저쪽에서 전해져 오는 마력의 흐름이 부드럽고 조용한 것으로 바뀌었 다. [어이 뮤, 히드레안 기절했다. 하기야 축하한다 뮤, 잘못했으면 이런 녀석에 게 시집 왔을 수도 있으니까, 거기 어디냐? 지금 갈테니까.] 다정하면서도 사려 깊고 조용한 목소리. 뮤는 생긋생긋 웃으면서 미노의 말 에 대답했다. "워프 게이트 열테니까 지금 와 미노 오빠!" [그렇게 하지. 아아, 결혼식이면 지참금이 필요하겠구나. 잠깐만, 어이 일어 나 히드레안...] 잠시 후 갑자기 마력의 느낌이 거세게 부풀어올랐고 이내 고함소리가 마법 진에서 폭사하듯이 들려왔다. [인정 못해! 아니 안 해! 이건 배반이야 뮤! 날 내버려두고 갑자기 결혼이라 니! 절대로 인정 안할 거야! 악! 미노 네 이 녀석! 감히 이 몸을 치다니...!] 뭔가 투닥투닥 소리가 나더니 마력의 느낌이 다시 부드럽게 변했다. [...신경 쓰지 말고, 그럼 물러나라.] 퍼어엉! 하는 소리와 함께 이내 폭사하는 기운의 속에서 두 개의 인영이 나 타났다. 라뮤는 성공한 건가보다 싶어서 활짝 웃었고 젠의 얼굴은 이제 흙 빛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마신왕, 가장 종잡을 수 없는 존재이자 설사 소환해서 계약을 맺고 영혼의 가침을 했다고 하더라도 기분 나쁘면 재수 없다는 이유로 근처를 몽땅 날려 버리는 최악의 성깔을 지닌 존재. 더군다나...기분도 상당히 안 좋은 상태의... "뮤, 오랜만이다. 그동안 잘 지냈나 보네? 여전히 예뻐." 다정한 오빠 같은 목소리. 그리고 걸어나오는 190을 가볍게 넘긴 듯한 장신 의 남성을 보고는 라뮤도 기가 죽을 뻔했다. 그 정도의 키에, 거기다 균형 잡힌 몸매. 딱 알맞게 잘려진 머리를 한참 내려가 턱 끝에서 찰랑대는 검은 색의 앞머리. 자줏빛을 발하고 있는 눈동자와, 검은색과 흰색을 적절하게 조 화한 제복. 그는 따스한 미소를 지으며 뮤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그런 그를 보고 라뮤 도 오빠란 사람에 관해서 좋은 인상을 가질 수 있었다. "뮤!!!" 마법진의 안개가 순식간에 헤쳐지면서 등장한 이. 뮤와 똑같은 새카만, 오히려 남빛의 밤하늘을 닮은 듯한 극히 선명한 검은 머리카락은 사방으로 흩날리면서 아름답게 흩어져 있었고, 심연처럼 아름다 운 검은색의 눈동자는 크게 뜨여져 있었다. 쌍꺼풀이 없어서 조금은 날카롭 게 보이는 눈매와 긴 속눈썹, 뽀얀 피부 위에 놓여진 새빨간 붉은 입술. 미 의 극에 다다른 외모와 흩날리는 백색의 옷자락과 은실로 자수를 놓은 옷.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별이 불가능한 이는 빠른 걸음으로 뮤를 스쳐 지나서 는 라뮤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두...둘째 오빠인가? 하면서 속 편하게 생각하며 라뮤가 한 발짝 물러나자 그는 단숨에 라뮤의 턱을 잡아채고는 자기 앞까지 끌어당겨 이리저리 돌려 보았다. "...내 취향이네?" "예?" 라뮤는 처음으로 그가 내뱉은 말에 삐질하고 땀방울을 흘렸고 미노는 고개 를 설레설레 저었다. "히드레안, 너 아까까지 죽이겠다고 했잖아." "아! 맞아! 감히 네 녀석! 뮤를 꼬시다니! 반반한 상판은 인정하겠다만 네놈 이 아직 나도 손 못 대본 뮤를 먼저...!" 그....저기 히드레안 그게 아닌데.... 미노는 으으하더니 퍼억! 하고 히드레안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멍청한 자식아! 딸 시집 보내는 데서 그런 말 따위 하지 말란 말야!" "누가 이 결혼 인정이나 한 대! 시종인 넌 끼지마! 절대 용납 못해! 뮤 너도 아빠랑 결혼한다고 했잖아!" ...라뮤는 뭔가 생각을 정리해야 됨을 느꼈다. 인자한 한 4~50대쯤 되어 보이는 마이스터의 연륜을 가진 이를 상상했건만, 갑자기 성별불가능한 초절정의 미인이 튀어나오더니 입에 담기도 뭐한 유치 한 정신연령의 수준으로 말을 해대면서 장신의 남성과 입씨름을 해대고 있 었다. ...지금 이게 어떻게 된 상황이란 말인가? "아빠. 자꾸 그러면..." 뮤의 입이 열렸다. "뮤 아빠 싫어한다?" ...헉, 마찬가지로 유치하다. "...해, 해...누가 뭐라든..." 그리고 히드레안은 잔뜩 기가 죽어서는 시덥잖게스리 고개를 끄덕거렸다. ... 크윽...이것이 자식은 부모를 이긴다는 것인가. 진정 몸으로 체험하는 바였 다. 라뮤는 땀방울에 질식사하기 직전으로 몰렸고, 히드레안은 억울하다는 듯이 뭔가 중얼거리더니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잘 장식되어 있는 핀 같은 물건... 그는 그걸 아무렇지 않게 라뮤에게로 던졌다. "지참금이다." "에에...?" 받아든 핀은 조그마한데다가 볼품도 솔직히 없었다. 금으로 된대다 여인의 모습으로 조각되 있고 지나치게 섬세하다는 것을 빼면... "...이...이건...오리할콘으로 된 마법핀! 여기 담겨있는 마법력이라면 나라 하 나를 살 수 있다는!" 그래 똑똑해서 좋겠수다 젠씨. 라뮤는 그런가? 했다가 어쨌든 지참금이라니까 그런가 보다 했지만 역시 머 리 속이 엉키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게, 라뮤는 아리따운 신부를 맞이했다. 따지지 마라! 맞이한 거다! "그래도...인정하기 싫어!" 라뮤는 히드레안이 눈을 부라리면서 자신을 노려보자 또 삐질삐질 땀방울을 흘리면서 뒤로 물러났다. 뮤는 용병단 사람들과 미노와 함께 술을 마시면서 즐겁게 곧 있을 결혼식 준비에 관해서 들뜬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느 라 바빴기 때문에, 졸지에 그가 히드레안과 마주 앉아있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신경질이 극에 다다라서는 찌릿대는 눈빛을 내뿜는, 누구 죽여버 릴 듯한 그의 눈은...라뮤는 속으로 살려줘! 하는 비명을 질렀지만 아~무도 구해주지 않았다. "...에...그...저기요..." "더군다나 예쁘게 생겼긴 하지만 말이야! 아무리 내 취향이라고 하지만 말 이야! 역시 너무 아까워!" "...저...그, 그러니까 그래서..." 어째서 예쁜 게 나오고 취향 문제가 나와야 하는 지 누구도 모르지만, 어쨌 든 히드레안의 기세가 상당히 무서웠기에 라뮤는 뭣도 모르고 무조건 기고 있어야 했다. "아빠아! 드레스는 뭘로 할까? 역시 하얀 색이 제일 예쁘겠지?!" 뮤의 화사한 목소리에 히드레안은 투욱! 하고 피가 불거져 나오기 직전인 이마를 누르면서 고오오오...하는 소리가 날 정도로 마력을 끌어올리면서 라 뮤를 노려보았다. 죽었다! 순간 적으로 라뮤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숨을 삼켰다. 이건 죽음이고 삶의 끝에 다가선 인간의 마지막 발악이다! "자, 잠깐! 솔직히 말해서 나도 손해라구요!" "뭐라고....손해라고...이 내가 손수 키우고 뺨 한번 안 때리고 곱게 키운 뮤 를 날걸로 잡아먹는 주제에 뭐가 손해라고..." ...자극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라뮤도 지지 않고 외쳤다. "하,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도 아직 동정인 데다가...그...뮤는 32살이잖아 요!" "뭐얏! 나이 차가 뭐가 대수라는 거야! 거기다 남자가 순결한 게 자랑인 줄 알아!" "남녀차별입니다 그거!" ...미노 못지 않게 히드레안과 수준이 잘 맞는 라뮤였다. 히드레안은 결국 열이 받힐 대로 받혀서 눈에 보이는 게 없어졌는지 자기보 다 상당히 큰 라뮤의 목을 잡고 끌어내려서 눈을 맞추었다. "네 녀석!" "아빠 죽이지 마!" 과연 라뮤는 이대로 명을 달리하는 것일까!? 히드레안은 그대로 눈을 질끈 감는 라뮤의 목을 끌어 당겨서 갑자기 입을 맞추었다. 헉...갑자기 주변은 쥐죽은듯이 고요해 졌다가 갑자기 열화와 같은 환호성이 들려오면서 특히 용병들을 중심으로 엄청난 환호성이 들려왔다. ...어째서? 머리가 멍해질 정도로 가해지는 자극에 멍청해져 있던 라뮤는 화급히 입술 을 땠다. 정신이 들었을 때에는 묘하게 약올리는 듯한 눈빛을 하고 있는 히 드레안. ...지, 지금 혀까지 집어넣었잖아!! "...그...그...그아..." "뮤가 첫날밤이라고 아플 수는 없지. 오늘밤엔 내가 특별히..."(무슨 짓을 하 는 거냐 히드레안...이건 청보 법에 보호되는 작품이란 말이다!) 까아아앙! 날아온 돌멩이가 히드레안의 뒤통수를 가격하고 거의 일그러져서 악귀와 비 슷한 형상이 되어서 성큼성큼 다가온 미노는 히드레안의 목덜미를 잡아 올 려서 어깨에 올리곤 생긋이 미소지어 보였다. 조금 억눌린 미소 기는 했지 만 말이다... "괜찮아. 원래 이 녀석이 약간 비정상 적인 데다가 예의라고는 눈꼽만큼도 없거든. 다 잊. 어. 버. 리. 라. 구...!" "...예...에..." 기가 잔뜩 줄어서 라뮤는 입을 다물었고, 뮤는 그런 라뮤를 향해 청천벽력 과 같은 한마디를 던졌다. "라뮤, 그럼 오늘은 아빠랑 자?" "아...안자!!" ...인생이란, 때로는 미친 녀석과의 조우를 담보로 하기도 한다. 마왕 이야기-35 마왕의 취미생활 -15 "축하합니다! 축하해요!" "에잇 도둑놈! 잘 살아야 합니다!" "밤에 각오 하라구요!" 화창한 오후. 시원스레 쏟아지는 빛의 폭우 속에서 비둘기들이 날아올랐다. 아름다운 연 인이 그 한가운데에서 축복 받고 있었다. 새하얀 순백색의 옷을 입고서, 서 로를 사랑스레 마주보고 있는 너무도 잘 어울리는 연인. 뮤는 가슴에 꼭 껴안고 있던 부케를 들고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는 히드레 안에게로 다가왔다. 그녀의 뒤로 활기찬 기쁨의 목소리들이 들려왔지만, 히드레안의 주변은 어 쩐지 소음이 차단 된 듯한 느낌이었다. 천천히 다가온 뮤는 활짝 웃으면서 부케를 내밀었다. "자아 아빠." "...이런 건 결혼해야 할 사람에게 줘야 하는 거다. 난 아직 결혼할 마음 없 어." "행복해 지는 주문이야. 뮤는 지금 너무너무 행복하니까!" 뮤는 커다란 웃음을 띄면서 그 새하얀 꽃무더기를 히드레안에게로 재차 내 밀었다. 히드레안은 천천히, 왠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면서 손을 내밀었다. "행복하니?" "응!" "정말...행복하니?" 뮤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꽃무더기를 히드레안의 품에 안겨주었다. "지금 이순간, 세상에서 최고로!" 챙그랑. 무엇인가가 어긋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히드레안을 중심으로, 천천히 모든 것이 어긋나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 리고, 천천히 퍼지는 그 가느다란 유리가 깨지는 듯한 실금은, 계속해서 퍼 져나가 뮤를 지나서서 그 건너편에 있던 어둠마저 모두 깨트렸다. "지금 너의 소망이 이루어 졌다." 한마디의 선언처럼, 허공을 떠도는 먼지 속에 그의 목소리가 녹아들었다. 그리고 처음의 천막으로, 어둡고 침침한 조명 아래로, 그리고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은 자세로 노예상은 그렇게,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어두운 무대 위에, 침침한 불빛 아래에 턱으로 한줄기의 붉은 선혈을 늘어 뜨리고 있던 세네타의 눈가에도 눈물이 맺혔다. 히드레안은 천천히, 아까 안아들었던 아이를 품에 조심스레 안고서 그녀에 게 한 발짝 씩 다가갔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숙여 그녀의 눈을 가리고 있 던 머리카락을 걷어, 아직까지 붉은 빛을 띄고 있는 한쪽 눈동자를 바라보 았다. "아름다운 꿈은 잘 꾸었는가 계약자여." "...아...으흑...흐윽...." 품안에 있던 아이는 천천히 빛으로 변하고 있었다. 빛은 더 흐려지다가 이 내 한무더기의 새하얀 꽃으로 변했다. 어떤 종류인지는 모르지만, 그 꽃은 시든 듯 빛을 뿌리며 흩어져가기 시작했다. 많은 꽃들은 모두 세네타를 휘 감았다. "...그 아이...내 아이...행복...으흑...흑..." "행복했다. 세상 누구보다. 그리고 너도." "...나는..." "또한 그대도 행복한가? 나의 계약자여." 속삭이는 그의 목소리는 흐느끼고 있는 듯이, 더없이 슬프게 들렸다. 누구도 입을 열지 않고서, 모두들 눈을 크게 뜨고 있을 뿐. 실날같은 불빛 아래서, 세네타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은 천천히 감기었고, 처음으로 그녀의 얼굴에는 안도감이 깃들었 다. 더없이 환한, 그리해서 조용한 안도감이... "...행복...해요..." 빛으로 변한 그 환한 꽃무더기. 하얀빛의 꽃들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이 내 흩어진 꽃은 허공으로 사라졌고, 히드레안은 천천히 고개를 숙여서 그녀 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겹쳤다. 연한 녹빛의 기운이 그의 몸으로 흘러간 듯 했지만, 그들 중 누구도 그 혼란한 상황에서 뭐라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말해봐라 인간들이여." 히드레안의 입이 열렸다. "너희들에게 질문하겠다. 너희는 짊어질 수 있는가? 한 인간의 운명, 앞으로 뻗어나갈 그 운명들. 기나긴 세월의 끝자락에 있는 한 인간의 인연, 삶, 기 억, 감정, 그 모든 것을 너희는 짊어질 수 있는가?" 그의 몸에서는 마력의 기운도 차가운 얼음의 기운도 퍼져 나오고 있지 않았 다. 그는 눈을 들어 그 누구도 바라보지 않은 체, 처연하리 만큼 차가운 비웃음 을 띄며 말했다. "그 등에 한 인간의 삶도 지지 못할 연약하고 버러지 같은 인간들 주제에, 누군가의 죽음을 결정하고 즐기기까지 할 수 있는 것인가?" 공허하고 메마른 그의 웃음에,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준 선물을 마음껏 즐겨 보거라 인간들이여. 내가 부여한 달콤하면서 도 아름다운 악몽 속에, 너희가 존재하지 않게 한 아이의 인생에 녹아들어, 그 세계를 구성하며, 그렇게 영원히 꿈을 꾸어라." 그는 천천히, 누구도 말하지 않고 누구도 자신을 응시하지 않는 그 곳을 지 나서, 천천히, 그 천막 밖으로 걸어나갔다. 마왕 이야기-36 에필로그epilogue "히드레안 네 녀석!" "뭐냐, 늦었다 미노." "너야말로 어디 앉아 있으라고 했더니 도대체 어딜 싸다닌 거야! 가만 안둘 테다 이 멍청한 자식!" 히드레안은 훗! 하면서 잘난 척 하듯이 머리카락을 스윽하고 쓸어 넘기면서 고개를 쳐들었다. "어리석군 미노...! 원래 주인이란 시종이 생각하지도 못할 만큼 중요한 일 때문에 한때 자리를 비울 수도 있는 것!" "넌 그런 놈 아니야!" 딱 잘라서 말하는 미노의 말에 히드레안은 아까의 그 도도한 여왕님 자세에 서 고개를 홱 돌리면서 그런 미노의 가슴을 후려쳤다. 비록 모기 물린 것 이상으로 아프진 않지만... "흥, 정말로 중요한 일이었단 말이다." "뭐야 그 혼의 느낌은...뮤, 뮤 족?" "그래." 미노는 순간적으로 조심스레 히드레안의 뺨을 잡고 그의 얼굴을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조금 불쾌하게 일그러져 있기는 하지만, 이내 그냥 가만히 내버 려두었다. "...뭐야, 뮤 족이라면 네가 만든 거 아니야?" "그래, 예전에 내가 심심해서 한번 만들어 봤던 종족이지. 그것도 이미 400 년 전에 말이다." "그래?" 히드레안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조금 흐트러져 있던 그의 머리카락은 이내 곱게 정리되었고, 그는 인공으로 만들어진 허공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처음에 태어났던 그 하얀 눈밭을 기억하기에, 조금 변덕을 부려 본 것뿐이었다." "...하아...창조주다운 감상이로군." "그럼 쇼핑이나 해볼까! 쇼핑 끝나면 인간 사냥이나 가자 미노!" "아아아악! 조금쯤은 자중해 보란 말이야!" 히드레안은 유쾌한 웃음을 터트리면서 그런 미노를 무시한체 앞으로 걸어나 갔다. "시끄럽다! 시종이면 시종답게 시키는 대로 해라!" 하얀색의, 투명한 빛 같던 꽃잎이 나풀댄다.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그렇지만 아름답게 존재하는 투명한 꽃잎이. [행복하니? 응! 정말...행복하니? 뮤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꽃무더기를 히드레안의 품에 안겨주었다. 지금 이 순간, 세상에서 최고로! ] E.N.D ======================================================== 휴우, 이렇게... 제가 그렇게 원하던 제 2편도 완결되었군요. 전개 속도가 느리다고 잼 없다고 불평하는 불평불만 분자가 계시던데...-_-; 할말 없슴다. 1, 2편은 일명 삽질 복선 깔기의 토대였기 때문에.... (나 이 버릇 고쳐야해...ㅠ.ㅠ) 이번 편 역시 히드레안, 그의 엽기적 행동의 극치를 보여주었다고 볼 수 있 군요... (원래 엽기적인 놈이지마는....) 역시 이번편도 독자의 뒤통수를 후려치는 사악한 결말, 아아...난 왜 이렇게 히드레안이란 놈이 사랑스러운 것이냐. 과연 3편도 뒷통수를 칠까요? ㅡㅡ? 다음 편은 드디어 미노 팬 여러분을 열광케 할...(대체 팬이 어딧다는거야? -_-;) 그의 과거가 드러나는 군요. 아아...개인적으로 전혀 취향 없는 내용이지만....(신파극은 정말 싫어해요. -_-+) 어쩌겠습니까...사실은 미노는 과거가 많은 놈인데.....(울린 여자만 여럿이었 다던가? 으음...) =========================================================== 마왕 이야기-37 Please forgive me-1 신이여, 이 죄 많은 자를 용서해 주소서. 그리고 사해주소서. 그 모든 죄를. 신이여, 잊어주소서. 부디 이 어리석은 자를. 신이여.... 이제 그대의 품에 죄 많은 자 편히 잠들기를 기원해 주소서... 밤이었다. 아니, 이곳은 언제나 밤이었다. 하늘에는 늘 세 개의 달, 알테미스와 루미너스, 그리고 셀레나가 만월의 광 기를 내뿜으며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으며, 새카맣고 칠흑 같은 밤하늘에서 는 소담스레 언제나 처럼 눈송이가 가벼히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하얗게 달빛을 반사하며 끝없이 펼쳐진 눈밭은 하늘하늘 떨어지는 눈을 흡 수하면서, 동시에 소리조차 흡수하고 있었다. 크게 소리를 질러도 이 곳에선 흡수될 것이다. 왜냐면 이곳은 침묵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곳, 금단을 저지른 자의 도피 처이면서 동시에 보호지니까...그렇기에 투명하게 빛나는 저 유리처럼 창백 한 빛을 띈 어린 소녀 같은 성도 그 아름다운 위용에도 불구하고 초라하고 쓸쓸해 보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성의 주인, 아니 이 세계의 주인, 그는 어쩌면 본능적으로 이런 메마른 세계 를 원했을 것이다. 버림받은 자의 낙원, 외로운 자들의 안식처. 끝없이 내리는 하얀 눈으로 뒤덮혀 있는 침묵과 함께 하는 세계... "난 싫어." 그 빈 공간에서, 그는 당당히 목소리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설사 내가 버림받았다고 해도, 그리고 내가 금기면서 금단이고, 존재해선 안돼는 존재라고 할지라도, 난 싫다. 안식처니 보호지니 하는 어줍잖은 말에 혹하지 않는다. 나는 왕, 나는 짊어진 짐을 부여받고 살아가는 자...등을 돌 리고 돌아서지 않는다." 새하얀 눈밭. 그 눈보다 더 새하얀 옷자락을 휘날리는 이. 길게 늘어진 새카만 검은 머리카락이 그 눈의 공간에 유일하게 빛깔을 띈 것처럼 유난히 밤하늘과 동화돼 빛을 내뿜었다. 파랗게 질렸다고도 볼 수 있는 피부. 새카만 검은 눈 가득히 비웃음을 띄고 서, 말없이 그 자리에 서있다. "...세계가 너의 존재를 인정할 것 같은가. 위대한 영왕이여...그대의 동족은 이미 이 세상에 없다. 내가 멸망시켰으니까. 그대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내 가 창조한 존재이니까. 기나긴 절망의 시간 속에서 헤매느니 나의 곁에 존 재해 다오. 그것이 너를 위한 것이다." "나는 나를 위해 존재한다." "...싫다는 건가..." 미노, 아니 미노트 아신레이져, 그는 눈을 떴다. 그의 길게 늘어진 앞 머리카락이 잠시 그의 시야를 가리고 흔들렸다. 적자 주 빛의 깊고 어두운 포도주 같은 눈동자. 이미 여러 군데가 찢어져 형체를 알 수 없는 옷자락. 넓게 퍼져있는 여섯 장의 박쥐와 같은, 그렇지만 밤하늘을 녹여 만든 듯한 아름다운 빛깔을 띄 고 있는 날개. 미노트 아신레이져, 그는 입을 열었다. "나는 미노트 아신레이져...왕이 아닌 왕의 수호자. 나의 왕은 없다. 나의 검 은 이미 꺾어졌다. 바로 너...히드레안 드 이크립스! 네 놈 때문에!" 살기가 눈을 진동시켰다. 히드레안은 투명하기 짝이 없는 수정으로 만든 검을 지켜 올렸다. "와라, 어리석은 자여. 수호의 대상을 착각한 이여." "닥쳐! 나의 왕은 내가 결정한다! 일족을 멸망시킨 네 놈의 말 따위에 귀를 기울이진 않는다!" 날개짓을 한다. 그의 몸이 눈을 휘날리며 허공으로 떠올랐다. 새카만 검은 날개가 어두운 하늘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보석가루를 흩트린다. 이미 검은 피가 달라붙어 날카로움이 무마된 손톱이 그의 손에서 비져나와 있었다. 히드레안은 비웃음을 띄면서 검을 허공으로 겨누었다. "그 일족을 멸망시키는 도구는 무엇이었더냐." "닥쳐!" "바로 너! 미노트 아신레이져!" "으아아아앗!" 격돌, 비명, 소음, 무음의 공간, 이단자들의 안식처 가득히 퍼져나가는 잔인 한 혈향. 그렇게 눈 위로, 계속해서 내리는 눈 위로, 붉은 핏방울의 비가 내렸다. 마왕 이야기-38 Please forgive me-2 "...." 눈을 뜨자 천장 가득히 내리는 소담스런 눈과, 그 눈 위로 어렴풋이 보이는 세 개의 달이 그의 시야를 가득히 매웠다. 달은 붉은빛을 띄고 있었다. 새빨간 붉은 빛을... 당장이라도 피가 뚝뚝 떨어질 듯한 붉은 색. 미노는 잠시 손을 움직여 보았다. 살짝 움직여지는 감각이 몸을 자극한다... 꿈. 꿈. 꿈이란 단어가 뇌리를 지배했다. 안도의 한숨, 다시 눈을 한번 감았다 뜨고, 미노는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다 그는 다시 행동을 멈추었다. 눈가를 가득히 채우고 흘러내리는 액체...미노는 손을 들어, 붉을 달을, 달빛 과 함께 춤추는 눈을, 방안의 투명한 정경을 가리웠다. "...왕이여...아디아...나의 유일한 왕이여." 숨죽인 듯한 그의 목소리가, 탁하게 허공을 휘감았다. 그의 목에선 억눌린 듯한 울음소리가 흘러나왔지만, 아무도 그의 울음의 이 유를 알 수 없었고, 알려하지 않았다. 눈은 끝없이 내린다. 소담스럽게....피와 그 아래 쌓여있는 시신을 덮고서, 끝도 없이, 계속해서 내 린다. 눈 위에 펼쳐진 아름다운 새하얀 풍경 아래에 물들어 있는 새빨간 피의 향 연. 어둡고 끈적대는 것이 그의 어깨를 잡고 망가뜨릴 듯 하다.... 미노는 날개를 펼쳤다. 눈빛에 반사된 날개는 보석가루를 녹여 만든 듯, 어두운 밤하늘에 점점히 뿌려진 별빛 같은 날개는 조금 힘없이 파드득, 하는 소리를 내며 그의 등을 작게 만들었다. "...가는 거냐." 어두운 그늘이 진 기둥 가에 서서, 히드레안은 막 날아오르려는 미노의 등 뒤에 대고 입을 열었다. 미노는 천천히 쓰게 웃으며 날개를 크게 펼쳤다. "그래." "돌아올 거냐...?" "...히드레안 드 이크립스." 미노는 퍼득, 하고 날아올랐다. "난 너란 존재가 정말 증오스러워..." "그럼 돌아오겠구나. 언젠가 네가 내 목숨을 끊으려면 살아 있어야 할 거 아니냐?" 조금 안도했다고 볼 수 있는 히드레안의 목소리. 미노는 대답하지 않고 그 저 날아올랐을 뿐이었다. 천천히 작아지는 날갯짓 소리와 그의 모습. 히드레안은 천천히 눈을 들어 허공을 바라보았다. 달빛은 핏빛이었다. '바람이여 불어다오, 내 사랑하는 이의 뺨을 스쳐지나가 다오' 파득... 미노는 날개를 접고 대지 위에 떨어져 내렸다. 온통 사방을 메우고 있는, 어디서 날려왔을지 모를 풀 씨들이 피워 낸 꽃들 로 사방은 온통 물들어 있었다. 누구도 살지 않는지 그 어마어마한 끝을 알 수 없는 곳에는 꽃과 작은 관목들 뿐,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바람이여 불어다오, 내 사랑하는 이의 뺨을 스쳐지나가 다오' 낯익은 목소리, 낯익은 그 웃음... 따스한 손길...기나긴 시간동안 오직 단 한번 결정했던, 나의 주군. 내가 진정으로 지키고 싶었던...한 여인. 미노는 꽃무더기에 파묻혀서 천천히 눈을 감았다. 온 몸의 힘이 빠져나가면 서, 천천히...그의 몸은 줄어들고 있었다. 마왕 이야기-39 Please forgive me-3 어릴 적의 기억이란 것은 거의 없었다. 왜냐면 그는, 원래 존재하지 않는 아이었으니까. 자신은 기분 나쁜 아이였다. 부모의 목숨을 담보로 태어난 존재라고 했고, 그의 몸에 흐르는 피는 절대 로 있어서는 안돼는 잔인한 혈통을 받은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저주받은 존재였다. "어머,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하지만 아디아, 나는 일족 내에서 장로들도 받아주지 않는 녀석이야...그러 니까 신경 쓰지 않는 편이 좋아." "어머나...미노트 아신레이져...! 당신은 이름에 걸맞지 않는 행동을 하는군 요." 미노는 쓴웃음을 지으며 그런 여인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난 지켜줄 왕이 없어 아디아. 그리고 우리 일족은 왕권제가 아니잖아?" "미노트 아신레이져. 그럼 당신은, 날 여왕으로 인정하지 않을 건가요? 우 흠, 실망이에요. 난 적어도 당신은 날 여왕님으로 생각해 주길 바라고 있었 는데." "할머니 여왕님 말이지." "미, 미워요!" "풋! 농담이야 농담." 미노는 새빨갛게 얼굴을 붉히고 자신의 어깨를 툭탁대는 여인을 달랬다. 구 불대는 아름다운 파란 머리카락. 그리고 더없이 아름다운 정령의 눈동자. 한 쪽은 파란 색으로, 한 쪽은 녹색으로 빛나는 활기 넘치고 아름다운, 하프로 니안의 어머니, 시초, 시작, '디아'인 존재. 그리고, 자신을 유일하게 이해해주는 아름다운 여인. 어째서 자신을 두려운 존재쯤으로 취급하는지 미노는 알지 못했다. 장로회에서 하는 일을 일일이 따지고 들어봤자 좋을 게 하나 없다는 것은 잘 알고있는 일이었고, 어차피 두렵든 사악하든 어둡고 괴롭던 자신은 하프 로니안 족에서 빠질 수 없는 존재였다. 유래가 없는 강한 힘. 하나의 짐승의 능력이 아니라, 모든 존재의 능력을 한 몸에 지니고 있는... 어찌보면 조금 섬뜩하기도 했지만, 미노는 아무런 불안감도 가지지 않았다. 그래, 그때까지는... [바람이여 불어다오, 내 사랑하는 이의 뺨을 스쳐다오.] 바람이 불지 않는 허공에 대고, 그녀는 조심스레 속삭이듯, 비밀 이야기를 하듯이 소근소근, 조심조심 뭐라고 조잘댄다. 빨갛고 작은 입으로 중얼대는 귀여운 소녀같은 이. 아디아가 하고 있는 일을 보면서 미노는 어이없는 웃음을 한차례 터트렸다. "아디아, 그렇게 해선 바람은커녕 풀씨 하나도 안 움직일 거야." "언젠가는 움직일 거에요. 정령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으음. 분명히." "그렇다기 보다는, 사랑하는 님이 눈앞에 없어서 여기선 불지 않는 게 아니 고?" 토닥토닥! 때린다기 보다는 안마에 가까운 수준으로 커다란 미노의 어깨를 폴짝 뛰어 올라 올라타고는 두들겨 대는 아디아. 그녀는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서 마구 소리쳤다. "몰라몰라 몰라요!" "커억! 아파 아디아!" 아픈척 엄살을 부려보았지만, 새빨갛게 달아올라서 어쩔 줄 몰라하는 아디 아로서는 이미 미노를 두드려 패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그녀는 아름다웠다. 지혜롭고 현명하고 고귀했다. 아디아, 위대한 시초를 연 '디아'...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녀는 한 존재다. 생명이 있고 언젠가는 죽을 것이 분명한 생명체. 그렇기에 미노는 그녀를 지켜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에게 그런 힘이 있다고 생각했 다. 그래, 그 때가 올 때까지는.... "있잖아요 미노. 이건 비밀이지만요...후훗, 저 굉장히 아름다운 이를 본 적 이 있어요." "헤에, 아디아 보다 더?" "뭐, 뭐에욧! 놀리지 말아요. 얘기 안 해줄 거에요 뭐." 삐져서 볼을 부풀릴 때에는 영락없는 귀여운 아가씨에 불과했지만, 그녀는 디아, 미노보다 수만 살이나 더 많을 거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행동에 미노 는 미소를 띄면서 책을 덮었다. "그래, 어떤 사람인데?" "아음...그게 사람이 아닐지도 몰라요. 너무 아름다웠거든요. 새카만 검은머 리에 검은 눈동자.... 온통 검은색으로 된 상복을 입고 있었는데...빨간 입술 에다가 눈동자가 촉촉히 젖어서 얼마나 예뻤는지...알아요? 정말 백옥 같은 피부였다구요...!" "...그...그래?" 여자들의 취향은 이해 못하겠다고 생각하면서 미노는 고개를 끄덕였다. 꿈꾸듯 황홀한 눈으로 아디아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정말 아름다웠죠, 너무 아름다워서 누구라도 한순간 시선을 빼앗겨 버릴 정도로 아름다운 이였다구요. 미노도 어때요? 보면 반할 거에요, 뭐하나 조 금도 빠질 데가 없는 완벽한 미인이었거든요!" 미노는 난 그런 여자보다는 아디아가 훨씬 아름다워, 라고 말하면 그녀가 어떤 반응을 보일 지 생각해 보았다. ...그녀는 왕. 그리고 나는 수호자. 미노는 활짝 웃으면서 그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정말 반할 것 같은데?" "그렇죠? 만약 혹시라도 만나거든 아주 잘해줄 거죠?" "아아 그래, 그러지 뭐." 그래,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불안감조차 없었다. 평화롭고, 따스한...그녀가 존재함으로 생겨나는 더 없는 따스함. 그 공간이 좋았고, 누구도 파괴하지 못하게 지켜주고 싶었다...오직 하나뿐 인, 내가 사랑하는 나의 왕. 오직 나만의 왕. 마왕 이야기-40 Please forgive me-4 혹시 사랑을 해본 기억이 있는 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그 사랑이란 것이, 얼마나 애달프고 얼마나 가슴아픈지... 생각만으로도 가끔 고이는 눈물에 얼마나 속 상한지. 사랑해 보지 못한 이들은 꿈꿀 것이다. 아름답고, 행복하고, 즐겁고, 깨끗 한... 사랑이란 행위가 주는 그 텅빈 공허함, 초조함, 가슴 가득히 메우지 못하는 그 빈 가슴을 어떻게 매워야 할지 고민하기 전에는. 사랑이란, 가슴이 너무도 넓어져 누군가를 담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을 정도 로 빈자리가 커져 버리는 것... 때로는 질식해 버릴 듯한 그 빈자리에 채워진 이를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은 것이라는 것... "아디아, 아디아?" 소리쳐 불러 보지만, 도대체 어디로 간 건지 알 수가 없다. 그것은 '불안'이라고 부르기에도 뭣한, 알 수 없는, 뭔가가 조여드는 듯한 감각. 미노는 다시 한번 입을 열어 그녀를 부르려고 했다. 그리고, 그는 그녀를 발견했다. 푸른 들판, 들판의 끝자락에서 누군가를 바 라보고 있는 뒷모습. 뒷모습뿐이기는 하지만 분명한 그녀였다. 아디아. 미노는 날개를 펼쳐 그녀에게 다가가려고 하다, 순간적으로 멈추었다. 새카만 검은 머리결. 새하얀 피부 위에 떠올라 있는 검은 눈동자, 적당하게 딱 만들어진, 마치 선 으로 그어서 내린 듯한 완벽한 얼굴과 새빨갛게, 어쩐지 기분 나쁠 정도로 붉은 입술. 더 없는 차가운 얼굴에, 아주 짧은 미소가 스친다. ...그 미소는... 꿀꺽, 하는 침을 삼키는 소리가 미노의 귀에도 고동쳐 들어왔다. 검은 상복 을 입고 있는 그는 분명 미노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새카만, 마치 빨려들어 갈 것만 같은 검은 눈동자로 기묘하게 응시한다. 아디아가 분명 뭐라고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조용하고 끊임없는 눈 빛으로 미노를 그렇게 바라보고 있었다. 두근. 처음으로 심장이 떨려왔다. 그러나...그렇지만, 아직까진 아니었다. 아직까지는... 그때까지는, 아무런 불안도 다가오지 않았으니까. 아디아는 금새 미노를 발견하고는 그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미노를 향해 웃 어주었다. 그 환한 웃음에 미노는 같이 얼떨결에 미소를 지었고, 그러자 '그 '의 얼굴은 왠지 뭔가가 불쾌하다는 듯이 변해서 미노를 바라보았다. 그런 그의 얼굴은 계속해서 미노에게 시선이 박혀 있다가, 이내 소리도 없 이 사라져 버렸다. 뭔가 일어났다면 차라리 이상하지도 않았을 텐데, 소리도 없이 스르르 사라 져 버린 그의 행동에 미노는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기분 나쁜 사내. 생긴 것도 옷차림도 마치 여자 같지만, 미노는 그가 '남성'이라는 것을 본능 적으로 알아차렸다. "아디아, 방금 그..." "쉬잇! 비밀이에요 미노. 전에 미노한테만 얘기해 줬던 그 미인이에요. 정말 예쁘죠? 미노도 좋아해 줘야해요?" 순간적으로 미노는 울컥해 버렸다. 저런 기분 나쁜 사내를, 하필이면 어째서 아디아가? ...뭔가 굉장히 오해해 버렸지만, 미노는 그렇게 생각하며 조금 불쾌해 져서 몸을 돌렸다. "아디아가 좋다면 난 상관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난 별로 좋은 느낌은 못 받겠는데." 심술에 가까운 말에, 아디아는 소리를 질렀다. "그럼 안돼요 미노!" "...어...째서?" 두근두근. 뭔가 굉장히 기분 나쁜 느낌이 조금씩 들어버린다. 아디아는 파랗게 질린 얼굴로 미노를 보고 있었고, 그렇게 까지 내 말이 기분 나빴을까, 따위를 생 각하며 미노는 그녀의 질린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이렇게 아름다운데, 어째서 그녀는 왕이고. 나는...수호자일까. "미노는...안돼요, 저 사람을 싫어하면 안돼요. 알았어요? 절대로 다시는 그 런 말 입에 내지 말아요. 알았죠? 싫다고 하지 말아요." "아디아, 난 그냥 좋은 느낌은 아니라고 한 것뿐이었잖아..." 미노는 억울한 마음으로 그렇게 그녀에게 항의했지만, 아디아는 오히려 더 단호한 얼굴로 그런 미노에게 명령하듯이 말했다. "다시는 그런 말하지 말아요! 다른 이라면 몰라도 절대로 미노는 그렇게 말 하면 안돼는 거예요. 절대로. 나랑 약속했잖아요? 그를 좋아해 주기로." "...싫어!" 미노는 어린애처럼 그렇게 외쳤다. 아디아의 얼굴은 더 파래져서, 거의 하얗게 질릴 정도가 됐고 미노는 거칠 게 내뱉았다. "도대체 뭐야! 난 이름도 모르는 작자를 나쁘게 말해도 안돼는 거고, 무작정 그자를 좋아해 줘야 한다 이거지? 내가 인형인 줄 알아?! 난 아디아에게 무 슨 의미야! 나도 말할 권리 정도는 있어!" 씹어버리듯 내뱉고는 홱 돌아서서 가버리는 미노. 아디아는 그런 그를 잡기 위해서 뭐라고 말하려 했지만, 미노는 날개를 펼 쳤다. ...싫은 느낌. 그런 게 미노의 가슴 한구석을 쿠욱, 하고 기분 나쁘게 박혀 들어왔다. 그 새카만 검은 머리카락. 검은 눈동자. 상복을 가지런히 입고 있던, 그 기묘하게 차가운 사내의 얼굴이 뇌리에 박 혔다. ...기분이...점점 더 나빠졌다. 뭔가가, 마치 뭔가가 일어날 듯한 그런 기분 나쁜 느낌은, 그때가 시작이었 다. 마왕 이야기-41 Please forgive me-5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말라. 그보다 너의 영혼과 영혼의 두 언덕 사이에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두라. 서로의 잔을 채워 주되 한쪽의 잔만을 마시지 말라. 서로의 빵을 주되 한쪽의 빵만을 먹지 말라.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하되 서로는 혼자있게 하라. 마치 현악기의 줄들이 하나의 음악을 울릴지라도 줄은 서로 혼자이듯이. 서로 가슴을 주라. 그러나 서로의 가슴속에 묶어두지는 말라. 오직 큰 생명의 손길만이 너희의 가슴을 간직할 수 있다. 함께 서 있으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고 참나무와 삼나무는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다. 칼릴 지브란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바람소리. 활공처럼 자유로운 바람소리가 선율을 타고 울리는 느낌. 늘 꿈을 꾸면 보게 되는 그 자유로운 바람소리... 미노는 호흡을 하며 자연스레 그 바람에 녹아들었다. 눈을 떴을 때는, 걱정스런 얼굴의 아디아가 그를 내려보고 있었다. 글썽대는 눈물, 파란 머리카락 사이로 자리잡은 정령의 눈동자에 고인 눈물을 닦아주 며, 미노는 쓰게 웃었다. 그의 그런 행동에 아디아는 기어코 울음을 터트렸 고, 미노는 중얼거렸다. "며칠이나 지났지...?" "삼일...흑...으흑...이번엔 정말 깨어나지 않는 줄 알았어요...죽지마요, 제발 죽지마..." 왕을 울리는 수호자라니. 완전히 개그가 다름없군...미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자신의 품에 고개를 묻 고 흐느끼는 여인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점차 주기가 늘어나고 있었다.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적어도 천년은 전에, 아니 그보다 훨씬 전에 미 노가 태어났던 때 그는 죽어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살아났지만 그후로 불규칙한 주기이긴 하지만 가끔 미노는 가 사상태에 빠지곤 했다. 늦어도 하루 이틀이면 깨어나곤 했고, 100년이나 2, 300년쯤에 어쩌다 한번이었던 기간이 요즘 들어서 점차 늘어나고 있었다. 거의 일년에 두 세 번 꼴일까... 이렇게 늘어가다간, 정말 잠들어 있는 시간이 훨씬 많을 지도 몰랐다. 활공처럼 자유로운 바람 속에서 영원히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기분이 들 지만, 여기 이 가녀린 어깨를 가지고 있는 왕이 있는 이상은 이 세계에 미 련을 지니게 될 것만 같았다. 미노는 쓰디쓴 미소를 지으면서 그런 아디아의 어깨를 감싸주었다. "죽지 마요...안 죽을 거죠?" "당연하지, 절대로 안 죽을 거야. 적어도 내가 아디아 보다 어리니까 할머니 가 별세하고 나서도 오래오래 살겠지?" "미, 미워요!!" ...두근두근두근. 빨라져 오는 심장의 고동소리. 무엇인가가 뒤바뀌고 있다. 미노는 아디아를 바라보며, 그녀만은 지켜주겠노라고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 다. 비록 그녀는 이미 사랑하는 이가 있지만... 인간과의 전투는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하프로니안의 특성상, 인간이면서 동시에 짐승인-어떻게 보면 자신들에게서 인간과 짐승들이 갈라졌을 수도 있는데-자신들이 이해가지가 않을 것이다. 정확히는 짐승이 아니라, 분해된 몸의 형질을 자유자재로 바꾸는 것일 뿐이 지만. 미노는 길게 뻗어난 손톱으로 자신의 눈앞에 달려드는 인간의 목을 절단해 버리곤 허공으로 떠올랐다. 화살 따위를 무시하고 미노는 그 상태로 길게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몇몇 하프로니안이 그 모습을 발견하고 재빨리 엄호에 들어갔고, 미노는 손 끝을 내밀어 주문을 완성시켰다. [그리하여 나 기원하노니 어둠에서 태어나 어둠에서 자란 존재여, 지금 내 앞에 현신하여 나의 적을 물리치라...!] 콰아앙! 폭음이 들려오고 전장에서 몸부림치는 인간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다. 왜, 인간들은 저런 무의미한 싸움을 반복하는 것일까? 그리고 하프로니안들 은 언제까지 숨죽인 체 이렇게 그저 입다물고 인간들의 살육을 반복해야 하 는 것일까. 미노는 인간의 일개 대대를 없애고 피곤한 몸으로 각기 서 있는 하프로니안 들을 바라보며 허무하단 생각을 했다. 이유 없는 살육. 자신을 지킨다는 명목만으로는 너무나도 이유 없는 살육. 미노는 천천히 몸을 돌려서 걸어갔다. 바람소리에 귀가 따가울 정도로 팽팽 한 신경을 유지하고 있어서 걸음을 옮기는 것도 힘들었지만, 피에 젖은 손 톱과 날개를 접어 넣으며, 불거져 나왔을 지도 모르는 송곳니를 감추고, 몸 안에서 비져 나오려고 하는 뼈들과, 두꺼워 지는 짐승의 피부를 누르며, 그 는 천천히 눈을 들어 허공을 바라보았다. 두근... 심장은 아직도 아까의 전투로 계속해서 흔들리고 떨리고 있었다. 불안감이 아닌 허무함으로도 심장은 이렇게 떨릴 수 있는 것일까... 격렬한 노도의 감정 이상으로 고통스러운 것은, 밀려드는 주체할 수 없는 처연한 허무. "미노트 아신레이져 님, 장로회에서 복귀하시라는 명령이..." 조심스레 어린 하프로니안 한 마리가 미노에게 말을 걸었다. 미노는 생각의 잔념을 털어 내고 고개를 끄덕였고, 그 하프로니안은 숨을 삼키곤 재빨리 제 동료들에게 달려가서 뭔가 자랑하는 것 같았다. 저주받은 존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미노는 다음 차기 대장로로 예정돼있 을 정도로 신생 하프로니안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다. 강한 힘. 그 어떤 존재의 모습도 빌릴 수 있는, 마법과 육신 모두 발달한 완 전한 육체. 장로들에게 더러운 피, 저주받은 피라 경멸받지만 오히려 그들에게는 추앙 받는 모양이었다. 한심한 꼴. 미노는 비척비척 다시 날개를 펼치고 몸을 웅크렸다. 다시, 이제 그녀의 곁으로...수호자다운 노릇을 하기 위해서. 날개를 한껏 펼치고 날아가려고 하는 순간, 미노는 들어올린 고개, 피로 물 든 뺨에 닫는 이상한 감촉에 살며시 눈을 하늘의 한 부분에 집중했다. 우울한 잿빛 하늘. 그 아래 소담스레 떨어져 내리는 것은... 피와 같은 붉은 대지를 감싸안는 성스런 신의 손길. "...눈..." 그 때, 그 때는 겨울이었다. 미노는 손을 내밀어서 처음으로 떨어지는, 아니 떨어진다고 생각되는 그 하 얀 눈송이를 잡으려 했다가, 자신의 감상적인 행동에 피식 웃었다. "어? 눈이다!" "좋아할 게 아니야. 전사자들이 위에 쌓인 눈은 마신왕 히드레안의 축복이 란 거 몰라?" "아 맞다맞다, 그렇지. 그보다 대체 언제까지 이런 전투나 반복해야해? 아에 인간 나라 몇 개를 쓸어서 본때를 보여주면 그것들도 조용할 텐데." "몰라, 역시 장로회라는 것들은 무능하기 짝이 없다니까. 미노트 아신레이져 님이 빨리 대장로에 오르셨으면 좋겠는데...그렇게만 되면 그 늙은이들도 입 다물 거 아냐?" 시끄럽게 재잘대는 어린것들의 말에 미노는 그저 조용히 날개를 펴고 날아 올랐을 뿐이었다. 아디아, 그녀의 미소가 보고 싶었다. 그저 그것뿐이었다. 마왕 이야기-42 Please forgive me-6 하얀 눈이 소담스레 내리고 있는 가운데, 아디아는 얇은 천 하나를 걸치곤 뽀얀 입김을 내뿜으며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전당은 넓게 벌려진 기둥들 사이로 아무런 방비책이 없어서 어린 하프로 니안도 가끔 떨어져 죽곤 하는 곳이었기에 왠만해선 아이들은 다니지 않곤 했다. 아디아는 그렇게 하얀 눈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왜일까. "어머나 미노, 어서 와요. 장로들이 뭐라고 해요?" "별로...그냥 이번 전투 경과보고 정도였을 뿐이야." "그래요? 음, 저기 미노. 나 밖에 나가고 싶거든요..." 반짝대는 아디아의 눈동자. 미노는 주춤해서는 뒤로 물러났고 아디아는 성 큼 한발을 내딛으면서 미노를 협박하기 시작했다. "눈밭에서 뒹굴면 감기 걸릴텐데 아디아...?" "어머머 왠 걱정! 미노가 이만할 때도 전 멀쩡하게 살아있었던 여자라구요!" 아디아는 괜히 손으로 자신의 무릎께를 휘휘 저어 보였고, 미노는 왠지 할 말없음을 느끼곤 어설프게 고개를 끄덕였다. 미노는 아디아를 품에 안고, 슬 쩍 날개 짓을 해서 날아올랐다. "아앗! 아디아 님! 미노트 아신레이져! 밖으로 나가면 금족령을 내릴 테..크 억! 혈압이!" "대, 대장로님!!" 미노는 으윽, 하면서 안 들린 다는 얼굴로 고개를 휘휘 저었고 아디아는 까 르르하고 웃었다. ...결국 불쌍한 것은 대장로 뿐인가? 파앗! 하고 튀기는 눈가루에 미노는 눈살을 찌푸리며 물러났다. "꺄하...정말 너무 예뻐요!" 눈 만난 강아지군...미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그녀가 노는 꼴(?)을 떨떠름하 게 바라보았다. 디아라고 해서 뭐 별다를 거 있냐고 생각하겠지만, 단지 그 들의 존재만으로 한 종족의 창생사멸이 결정되니 만큼 그들은 어쨌든 고귀 하고 위대해 보이기 마련이었다. ...생각보다 그리 고귀하지 않아서 문제기는 하지만. 새하얗게 변해버린 들판. 하프로니안들이 사는 곳은 북쪽 땅 끝이다. 눈이 한번 쏟아지면 발이 푹푹 빠질 정도가 되어 버린다. 혹독한 추위는 아니지만, 이렇게 온통 새하얗게 변해서 나무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면, 하프로니안 들로서도 조금은 곤 란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파란 머리카락의 소녀가 환한 웃음을 지으며 눈밭에 서 뛰어 노는 모습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비록, 조금 눈을 맞고...비록, 아주 조금이긴 하지만 그런 그녀의 장난감 대 상이 되어서 눈사람과 같이 서 있어야 하고...이내 눈에 젖어서 몸이 축축해 지더라도...! "아아...정말 너무 예쁘죠? 매일같이 눈만 내리는 곳에 살고 싶어요...너무 아 름다워...소리 없이 계속해서 내리기만 하는...." 잔뜩 부푼 목소리. 미노는 허공에서 떨어지는 눈을 바라보다 중얼거렸다. "...영원히 눈이 내리는 곳이 있다면, 그 곳보다 더 쓸쓸한 곳은 없을 거야." "어째서요?" 미노는 쓸쓸한 웃음을 지으면서 손을 내밀었다. 눈송이가 처음에는 조금씩 그의 손에서 달아나다가, 이내 한 송이가 살짝 떨어져 내리며 녹아 내렸다. "...눈이 내리면 세상은 모두 차가워지잖아. 모두 얼어붙고, 모든 게 정지되 버리지. 멈춰버린 곳에서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누가 행복할 수 있을까. 감정조차 얼어붙을 정도로 차가운 곳, 다가오는 봄이 없기에 메마른 대지 위에 내리는 눈 속에선 누구도 행복해 질 수 없을 거야...누구도." 마치 내가 겪고 있는 어리석은 모순처럼. 미노는 펴고 있던 손을 접었다. 아디아는 천천히 눈을 감고, 고개를 한껏 젖 힌 체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가 경쾌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렇지 않아요." "...." 아디아는 눈을 뜨고, 아름다운 정령의 눈동자로 허공을 응시하며 확신에 찬 어투로 말을 이어나갔다. "온통 눈만 내린다고 마음까지 얼어붙는다면, 분명히 따뜻한 마음도 그대로 얼음 속에서 멈출 거에요. 분명히, 유리성에 사는 공주님은 차가운 몸을 가 지고 있겠지만 마음만은 누구보다 따뜻해서, 늘 여행자들이 끊이지 않겠죠. 추위에 몸을 녹일 여행자들이." 미노는, 픽 하고 웃고 말았다. "아디아, 동화책을 너무 많이 봤다구." "뭐, 뭐에요! 미워요 미워!" 토닥토닥... 아디아는 미노의 어깨에 올라타 열심히 그의 어깨를 두드렸고, 미노는 으레 하던 것처럼 비명을 울렸다. "아, 아파 아디아!" 눈의 그 차갑지만 묘하게 따스한 감각이, 살을 비틀어 버리는 차가움이 될 지는 몰랐다. 계속해서 언제까지나 내릴 듯한, 내 마음속에 자리잡은 눈밭은... 미소 지어줄 공주님 따윈 없는걸 아디아.... 미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에 자신의 입술을 겹쳤다. "...미노?" 언제까지 내리는 눈들에 둘러싸여, 이대로 얼어붙은 마음을 지니고 사느니... "저 미노트 아신레이져, 왕의 수호자이며 동시에 하프로니안 제 7대 수장. 지금 아디아 드 제뤼느에게..." 크게 뜨여진 그녀의 눈. 하얗게...모든 것을 얼려버릴 듯 계속해서 내리는 눈. 그리고 언제까지나 눈뿐인 내 마음 속. 이것이 구원이 될지 차가운 겨울을 계속해서 몰고 올지...그것은 그녀의 대 답에 달렸을 뿐. "...그대를 사랑함을 전합니다." 조금 차게 굳어버린 작은 손가락에, 정성스레 입을 맞춘다. 미노는 고개를 무릎을 꿇고 그녀의 손을 자신의 이마에 대었다. 어쩔 줄 몰 라한다고 느끼는, 아디아의 가쁜 호흡소리가 들려왔다. 미노는 천천히 눈을 들어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정령의 눈동자와, 발갛게 달아오른 뺨. 미노는 묵묵히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고, 아디아는 어, 어...하다가 뚝하고 눈 물을 방울방울 흘리면서 중얼거렸다. "바보같이...이런데서 고백하면 증인도 없잖아요...하여튼 늘 엉터리라니까..." 그것으로 충분했다. 언제까지 마음속에 계속되는 눈이 내린다고 하더라도.... 그녀가 있다면 그 설원의 들판에서도 언제까지고 기다릴 수 있을 테니까. 마왕 이야기-43 Please forgive me-7 인간들은 가끔씩 시간이란 노도와 같이 흘러간다는 말을 쓰고는 한다. 그들은 생이 짧기 때문에 그 시간이 너무나 적어서 그런 것일까? 미노는 그 말을 조금쯤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점차 길어지고 있는 깊게 잠들었다가 일어나는 주기. 그는 눈을 들어, 꺼칠하게 질려버린 자신의 피부를 한번 쓰다듬고, 비척대며 일어섰다. 묘하게 멍한 느낌이 귓가를 윙윙대며 울리고 있었고, 눈도 흐릿했다. 입가는 말라붙어서 이상하게 목이 탔다. 전에는 늘 깨어나면 아디아가 옆에 있어주었지만, 어떻게 된건지 이번에는 그녀가 없었다. 조금은 섭섭한 마음으로, 조금은 불안한 기분으로 미노는 손을 겨우 뻗어 벽을 집고 일어났다. 두근... 심장의 고동이 들려온다. 뭔가 질척한 것이 벽을 쓸고, 지익하는 소리를 내며 달라붙는 것 같았지만, 아무런 생각을 하기 싫었다. 후우, 하면서 숨을 다시 들이쉬고 미노는 기억 을 더듬어 밖으로 나가는 문을 찾아서 몸을 움직였다. 그의 처소에는 시종도 시녀도 없었다. 모든 일을 대부분 자신이 하는 탓도 있었지만, 아디아가 늘 와서는 청소며 빨래며 가끔씩은 요리도-먹을 만한 것은 아니었지만-하기 때문에 특별히 필요도 없었기 때문이다. 위대한 디아를 감히 부려먹다니, 하면서 장로회에서 난리를 친다고 해도 미 노는 아디아가 하고 싶으니까 하는 건데, 하는 말로 모든 걸 밀어붙여 버렸 다. 이상하게 호흡이 가빴다. 후각이 마비 된 듯, 계속해서 한가지 향기만이 접해지고 있었다. 대체 왜 이 러는 걸까. 평소에는 아무리 오랜 시간-그래봤자 3일 정도지만-잠들어 있어 도 이랬던 적이 없었다. 시간도 자각이 안된다. 미노는 조금씩 더 불안해 졌 지만 겨우 비틀대며 거실 쪽의 입구에 기대섰다. 뭔가 소리가 들려온다. 답답한 마음에 미노는 하악, 하고 숨을 다시 들이마시고 귀를 기울여 보았 다. 웅웅대는 이상한 소음이 조금 줄어들고 누군가가 다투는 목소리가 들려 왔다. 두근두근... 심장이 이상한 소음을 내면서 흔들려댄다. "어째서죠? 어째서에요!? 이렇게 기간이 길어질 리가 없다고 당신 스스로도 말했으면서! 이건 차라리 없는 게 낳아!! 한달이란 말이에요, 한달! 이대로 그가 깨어나지 않으면 내 모든 힘을 걸고서라도 당신을 죽일 거야!" 누구의 목소리더라...? 너무도 낯익은... "네가? 우습군...저건 내 것이다. 내 것을 내가 어떻게 하든 네가 상관할 바 아닐텐데." 차가운...순간 얼음이라도 끼얹은 것처럼 거짓말처럼, 정말 거짓말처럼 몸의 감각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어렴풋하던 눈이 뜨이고, 호흡이 돌아오고, 몸의 감각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당신은 악마야! 미노는...미노는 저렇지 않아요. 언제나 상냥하고 다정하고... 사람들을 죽여도 늘 왜 그래야 하는지 가슴 아파하고, 책을 좋아하는...웃는 모습이 누구보다 멋진...저건 내가 아는 미노가 아니에요....돌려줘....제발 돌 려줘요..." "원한 건 너였다 아디아 드 제뤼느, 일족을 멸망에서 건져줬으면 감사하단 말 한마디 정도 하는 게 예의라고 들었는데." "그딴 거 필요 없으니까 제발 돌려줘요...!" 생각났다. 이건...아디아의 목소리. 멍하던 머리가 겨우 뜨이는 듯한 느낌. 미노는 조금 어질대는 머리를 짚고 는 거실로 들어섰다. 두근두근두근... 깨질 듯이 아파 오는 머리 속을 윙윙대게 만들고 있는 것은 심장소리...? 머리를 짚기 위해 미노는 손을 들어서 자신의 뺨에 댔다. 뭔가 끈적한 것이 뺨에 달라붙는다. ...이건...뭐지? 미노는 겨우 눈을 집중시켜서 자신의 손을 내려보았다. 새빨간...아니, 조금 굳어서 그런지 검붉은 색을 띄고 있는 것... "안돼요 미노!" 아디아의 비명소리도 제대로 느껴지지 않았다. "...피...?" 미노는 반사적으로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새빨갛게, 그리고 축축하게 젖어든 붉은 색의 피. 바닥에 끌리도록 나있는 핏자국. 벽을 쓸려있는 피... 뭐지? 이 피는. 미노는 순간적으로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어째서 자신이 이렇게 피 투성이가 되어 있는지, 그리고 어째서 지금 이 순간 아디아조차 피로 물들 어서, 그 새하얀 옷자락이 피로 물들어서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지... 그리고...저 검은 눈동자의, 기묘한 검은색의 상복을 입고 있는 자가 자신을 바라보며 기분 나쁘도록 새빨간 입술에 묘한 미소를 띄고 있는지... "제발...안돼...보지 말아요 미노!" 아디아의 비명소리. 미노는 순간적으로 비틀하면서 벽을 다시 짚었다. 뭔가가, 아주 조금 틀어진 모양이었다. 심장이 파열할 듯이 소리를 내고 있지만, 그런 소리조차 들려오지 않는다. 무채색으로 느껴지는, 그렇지만 맑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남자는 입을 열었 다. "히드레안 드 이크립스. 너의 창조주다." 그것이 히드레안에게서 처음으로 들었던, 그가 자신에게 처음으로 던졌던 한마디였다. 돌아본 순간 마주친 그 서늘한 눈동자에 미노는 오싹할 정도의 한기를 느끼 곤 뒤로 조금 물러섰다. 피, 온통 피. 후각을 마비시킬 정도로 계속되는 이 혈향. 이게 대체 뭐지? 아무리 반복해서 생각해도...머리에 남는 것은 텅빈 공간뿐이었다. "아아아...재워두겠다고...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잖아요! 아무 것도 보여주지 않겠다고 나와 약속했잖아요! 히드레안!!" 처절하게까지 들려오는 아디아의 절규에, 히드레안이라 불린 이는 처연하고 가엾다는, 더없이 불쌍한 존재를 본다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흘낏 바라보았다. 마치, 별 상관없는 무생물이 살짝 떨어지기라도 한 듯이... "내가 너 따위와의 약속을 지켜야 될 이유는 뭐냐." 히드레안은 아무렇지도 않게 아디아를 나락으로 굴러 떨어뜨리곤 미노에게 로 점차 한 걸음씩 다가왔다. 미노는 메마른 듯한 그의 퍼석하게 까지 느껴지는 주변 공기에 숨막힐 듯한 압박감을 느꼈다. 천천히 다가와서는,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피로 절어있는 미노의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고, 그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감각이 아직 다 돌아오지 않았나. 아직까지 불완전한 모양이군, 자아 억 제가 되지 않은 체 폭주라니." "...넌...누구지?" "앞으로 차차 알게 될테니 그런 건 넘어가도록 하지. 자, 입을 벌려봐라." "..." 미노는 왠지 그의 말은 모두 거부하고 싶은 느낌에 그저 그를 뚫어져라 노 려보고 있을 뿐,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그게 그의 기분을 아무래도 거슬렸는지, 묘한 미소를 띄고 있던 그의 얼굴 도 약간 일그러졌다. "내 말을 거부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싶나?" "...난...수호자야, 왕 이외의 자에게...명령받지 않아..." 히드레안의 얼굴이 기묘하게 변했다. 마치 이럴 리가 없을 텐데? 하는 완벽 하게 신뢰하고 있었던 것이 무너진 듯한 표정. 그는 아주 조금 그런 표정을 지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의 왕은 나다." 그의 약간은 차가운 입술이 미노의 입술에 닿았을 때도, 미노는 반항할 수 가 없었다. 아니 멍하게 자꾸 흐려지는 머리 때문이라고도 생각하지만, 그 이상한 서늘 함에 점차 몸이 풀려가기 때문이라는, 자신이 생각해도 어설픈 변명이 그의 머리 속을 휘감고 돌았다. 그것이, 미노가 기억하고 있는 두 번째 만남이었다. 마왕 이야기-44 Please forgive me-8 울고 있었다. 그녀.... 피에 젖은 몸을 씻어 내리고, 향유에 몇 번이고 몸을 담가 봤지만, 피 냄새 는 잘 빠지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 착각하고 있을지도 몰랐고... 사실 잠들었다고 생각했던 그 시간동안...미노는 무슨 일을 했는지 모르니까. 어쩌면 수도 없이 그런 짓을 반복했을지도 모르는 거였다. 미노는 침대에 잘 부풀린 베개에 등을 대고 앉아서, 아디아가 손수 해준 조 금은, 아니 솔직히 맛없는 죽을 떠먹고, 그녀가 울고 있는 것을 그저 지켜만 봐야 하는 지금의 상황이 조금 떨떠름했다. 차라리 뭔가 이야기를 해줬으면 좋을 텐데, 아디아는 그저 울기만 했다. 미노는 결국, 조용히 있을 거라는 다짐을 깨고 입을 열었다. "아디아, 나는 괜찮아. 그러니까 울지마." "...미안..윽....흑...나는...감추려던 게...정말 미안...미안해서...." 하도 울어서 목이 부었는지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으면서 뭐라고 열심히 말 하려 드는 그녀의 모습에, 미노는 측은해 져서 그녀의 눈가를 살짝 쓸어주 었다. "나는 괜찮아. 울지마..." 괜찮다는 말은 거짓말. 그녀에게만 하는...참담하리만큼 비겁한 거짓말. 사실을 알고 싶지 않았다. 그저, 전처럼 그냥 '잠든 것'이라고만 듣고 싶었 다. 차라리 그 때 깨어나지만 않았더라면-어쩌면 그 남자, 히드레안이라는 자가 일부러 그렇게 했을 지도 모른다...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미노는 아까 남아있던 입술의 차가운 감촉에 기분이 나빠져 잠시 손등으로 다시 입술을 거칠게 문질렀다. 기분 나쁜 사내. 그 차가운 눈동자, 빨려들어 갈 것 같은 서늘함. 무엇하나 제대로 바라보지 않는, 오직 자신만이 의지를 가진 생명체처럼 도 도하게 서있다는 것 자체가 기분이 나빴다. 거기다 아디아를 그따위로 취급하다니... 더군다나 왕? "...말해...줄께요..." 아디아는 눈물로 엉망이 된 아름다운 정령의 눈동자를 들어서 미노를 응시 했다. 듣고 싶지 않아. 마음속에서 터져 나가는 심장의 두근거림. 듣고 싶지 않아, 듣고 싶지 않아. 그렇게 계속해서 외치는 마음과, 그 마음을 따라 울려 퍼지는 두근거림. 아디아는, 그런 미노의 외침을 무시한 체 천천히 입을 벌렸다. "...끅...끅...힐링..." 그녀는 자신의 목에 힐링을 걸어서 부은 목을 완화시키고는, 조금 나아졌는 지 입을 열었다. "...미노는...부모님에 관해서 아무 것도 모르죠...?" "응." 하지만 들어야 한다. 아디아가 겨우 결심하고 말하려고 하고 있으니까... 그녀는 더없이 처연하게, 눈물이 날 정도로 처연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 었다. "내가 당신의 어머니에요...." 두근... 두근두근.... 심장이 터질 듯이 두근댄다. 이때껏 쌓아왔던 모든 것이, 이때껏 겨우 쌓아왔던 것들이....산산조각으로 조각나서... 모두 조각이 나서... "...거, 거짓말. [디아]는, 시초는 절대로 자식을 못 가져." "그렇지만 가질 수 있어요." ....조각나서... 사라진다. 모든 것, 지탱하고 있던 그 모든 것이...너무나도 산산이. "...정확히는...내가 당신의 마지막 어머니였어요." "그게...무슨 말이지?" 이제 들어야한다. 되돌이킬 수 없는, 저주받았다고 불리던 자신의 피의 비밀을. 미노는 부서진 마음의 파편이, 그 새하얀, 계속되는 눈 위에 붉은 피를 뿌린 다. 굳어 버렸을 거라 생각했던 마음에 박혀드는 현실의 파편이... "미노, 당신은 지금 몇 살이죠...?" "...천 살이 약간 넘은 걸로 알고있는데...물론 어린 시절의 알 상태로 있었던 7백여년 정도는 제외한다면 300여살...?" 아디아는 쓰게 웃었다. "만약, 당신이 나와 나이가 비슷하다면 믿을 거에요?" "전혀." 그녀는 짧은, 왠지 힘없는 미소를 한번 띄고는 눈가를 문질렀다. 옷소매가 금새 더러워졌지만 거기에 상관하지 않고 그녀는 눈을 감고, 조용조용한 목 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느 일족에게나 멸망의 때리는 것은 반드시 다가오기 마련이죠. 저 또한 한 일족의 흥망성쇠를 책임지는 디아. 신께서 정한 디아. 그리고, 일족에게 다가온 파멸의 운명을 피한 비겁한 자이기도 하죠..." "...그게...무슨 뜻이지?" "전설을 아나요 미노? 마족은 사실은 버림받은 종족, 멸망하게 될 종족들이 었으나, 태초의 마왕이라고 불리는 에리나쟈드에게 계약물을 바치고 그 삶 의 기간을 연장한 자들이라고...." 순간적으로 미노는 비틀했다. 아디아는 그런 그의 가슴에, 망가져 버린 그의 심장에 다시 한번 비수를 들 이밀었다. "...나는...나의 일족들을...살리고 싶었어요. 그저 그뿐이었어요. 그와 한 계약 이 이런 결과를 초래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어, 아아...이렇게 될 줄은 정말 몰랐어요." 모든 것이, 극명해 졌다. 히드레안 드 이크립스. 기억난다. 그것은 두 번째 이름을 계승한 자, 검은 설빙의 마왕이자, 동시에 가장 잔혹하고 사악한 마왕의 이름.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손에 넣고, 그것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이든 서슴치 않는다는... "...그리고 그와 계약한 거겠군. 대가는 아마 나? 그리고 그 결과물로 지금의 하프로니안들이...그렇게 되면 난..." "아니에요! 그런 게!" 아디아는 고함을 질렀고 미노는 입을 다물었다. "...아니에요, 그 정도가 아니었어...그가 원한 건, 그가 궁극적으로 원한 건 그런 게 아니었어요. 미노, 당신은 한번도 이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 요? 당신 몸 안의 그 힘, 그 능력...일족의 수 십 배, 아니 수 백 배가 넘는 모든 것을 소화하는 그 힘이....다른 일족은 하나의 동물의 변화 능력 외엔 없는데 당신은 수십의 동물을 동시에 몸 안에 담고도 괜찮은지...단 한번도 이상한 적이 없었어요...? 어째서 당신만 일족을 뛰어넘는 마법력을 지니고 있고, 어째서 당신만이...그렇게 700년의 세월을 깊히 잠들어 있었는지...?" 아디아의 질문은 오싹하게 미노의 피부를 달구어 버렸다. 그녀가 하는 질문, 미노가 가져왔던 근본적인 의문과도 일맥상통하는 그녀 의 물음... 어쩌면 그녀는 그 모든 사실을 알면서도 이 때까지 날 단순히 기만한 것뿐 이었던 건가... 미노는 치밀어 올라오는 토기에 입을 막았다. "...당신의 몸에는...모든 일족의 피가 담겨 있어요." 아디아는 조금 허탈하게 웃었다. "다른 수태능력, 다른 동물의 모습으로 탈피할 수 있는 자들끼리 결합하면 그 후손이 나지 않는 다는 것은 알죠...? 하지만 당신은 아니에요. 그 수십, 수만...아니 얼마나 많았을 지 모르는, 그 수없이 많던 일족의 모든 피를 그 몸 안에 담고 있어요. 사라진 일족, 아니 히드레안이 당신을 만들기 위해 죽 여 없앴던 일족의 피도 그 몸 안에..." 미노는 겨우 손을 뻗었다. 그녀의 어깨, 그 작은 어깨에 손을 얹는 다는 게 이렇게까지 힘든 일이었던 가? 나는...나는 뭐지 그럼? "...그럼...." 미노의 머리 속에 맴도는 의문점. "그럼...아디아에게 있어서...나는...뭐지...?" 그 사랑스럽도록 작은 입술에서, 너무나도 귀엽던, 그래서 사랑하게 되 버렸 던 걸지도 모르는 그녀의 입술이 열렸다. "...계약물." 그리고. 그것으로 모든 것이 깨어졌다. 산산히 부서지는 기억들.... 애정, 미움, 슬픔, 분노, 신뢰, 믿음, 기쁨, 노여움, 즐거움, 지겨움....근본적인 기억. 추억...추억이라고 이름하는 그것. 그렇다면 나는...? 미노는 그렇게 부서진 파편들의 가운데서 소리쳤다. 그렇다면 나는? 소리 없는 비명처럼, 그렇게 산산히 부서져...마치 눈가루처럼 뿌려지는 마음 의 파편들 속에서, 미노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거...였어?" "미안해요 미노, 하지만 나는 일족을 살리고 싶었어요. 그리고...그리고 난..." "...고작...그거였어?" 당장 이 자리를 벗어나고픈 욕망. 하지만 미노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떨려오는 몸의 감각에, 몸부림치고 당장 이라도 그녀를 찢어 발겨버리고 싶은 그 욕망 때문에, 그는 그저 손끝을 꽉 쥐고 억눌렀을 뿐이었다. "...갈게요. 신중하게 생각해 줘요 미노, 당신이 일족의 운명을 책임지고 있 는 거니까...일족을 위해서라도....날 위해서라도 서툰 짓은 말아줘요." 울지도 웃지도 못한 체 그저 멍하니 있는 미노의 눈에는... 그 아름답던 파란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조용한 걸음으로 방을 나서는 한 여인의 모습만이 잡혔을 뿐이었다. 그것이... 그것이 끝이었던가...? 나는...고작 그거였던가...? 미노의 입가에서는 결코 나올 수 없는 말들이 맴 돌았다. 마왕 이야기-45 Please forgive me-9 "상처받은 모양이군. 꼴사납게." "...!" 순간적으로 돌아보자, 언제부터 있었는지 아디아가 앉아 있던 곳의 반대편 에, 미노의 침대 위에 당연하다는 듯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가 있었 다. 내가 누워있었는데 어떻게...? 하는 의문 따위는 들지 않았다. 어쨌거나 그는, 자신이라는 존재를 만들기까지 할 정도의 능력을 지닌 마왕 아닌가. 융합할 수 없는 피를 융합한 존재. "내가 왜 나타났는지 궁금한 모양이지? 그것도 이렇게 갑작스레." "...솔직히 말하자면...그렇다." "네게 좀더 꿈을 꾸게 해줄 수도 있었어. 솔직히 꿈꾸고 있는 너를 보는 것 도 즐거웠고." "이건 꿈이 아니야...! 닥쳐!" 히드레안은 그런 미노의 말을 무시했다. 그는, 아주 당연한 듯이 자신의 검 은 머리카락을 슥슥 끌어당기더니 미노의 손위에 덥썩 올려놓았다. 굉장히 길고, 또 윤기 있는 머리카락이었지만 어떻게 된 건지...엉켜있었다. "좀 풀어봐라." "몇 번씩 말했지만 너 따위의 명령을 들을 이유는....!" "하아? 그럼 이 몸이 '제발 부탁합니다, 그러니까 머리카락 엉킨 것 좀 풀 어주세요 상냥한 미노트 아신레이져 님'하면서 애교라도 떨어야 한다는 거 냐 뭐냐?" 예제를 들면서 직접 닭살스런 소녀의 목소리를 내면서 얼굴 붉히는 것까지 해 보일 필요는 없었을 텐데 히드레안.... 미노는 순간 황당해 졌지만 이내 묵묵히 입을 다물고 그런 그의 머리카락을 끌어당겨 매만져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젠 질렸어. 꿈꾸는 널 보는 것도 나름대로 재밋지만 말이야." "무슨 말이지?" 반사적으로 손에 힘을 줬는지 히드레안의 머리카락이 끌어당겨졌다.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미노의 손등을 타악! 하고 쳤다. "살살해라." "...." 왠지 처음 당해보는 하인 대우에 조금 울컥해 버린 미노였지만, 자신이 심 하게 당긴 것 같기도 해서 참고 힘을 빼고 다시 다듬었다. "...그러니까, 그만 나와 가자는 거다. 미노트 아신레이져." "거절....하겠어." "어째서." 미노는 잘 정리해서 그런 히드레안의 머리카락을 한 갈래로 잘 땋아주었다. 의외로 손재주가 있어서 어릴 적에는 곧잘 아디아의 머리도 이렇게 만들어 주곤 했던 추억이 떠올라 미노는 씁쓰레해졌다. "날 네가 만들었는지...그런 건...솔직히 잘 모르겠군. 하지만 아마 맞겠지. 네 지독하게 한기가 도는 마력은 지금도 충분히 느끼고 있으니까. 아디아가 날 어떻게 생각 했었는 지도 알고 있지만...그렇다고 갑자기 널 따라가는 게 옳 은 건 아니야." 히드레안의 입에서는 미노가 상상도 못할 말이 튀어나왔다. "그럼 아에 여기서 한번 당해보면 끌려갈테냐." "...당....뭐?" "굳이 머리에다 입력을 해줘야 알다니 어리석은 녀석. 속어로 하자면 깔리 고 싶냐는 거다." "...뭐...뭐야?" 머리가 순간적으로 빙글 돌아버렸다. 히드레안은 저 요염하고 매혹적이고 우아하고 어쨌거나 무척이나 아름다운 얼굴을 하고서, 거기다 도도하고 고 귀한 척 다할 것 같은 얼굴에 옷차림도 거기에 맞게 고풍스럽게, 비록 상복 이긴 하지만 우아하게 입고 있었고 소문이나 기타등등을 다 조합해 봐도 완 벽한 모습으로 있는 그가, 아주 간단하게 퇴폐적인 말 따위를 내뱉았던 것 이다. "몸으로 시범을 보여달라는 거라면 간단하지. 처음에만 조금 아플 뿐이니까 별 걱정하지 말고..." "....헤?" 미노의 추종자들이 보면 '아아아악!' 하면서 투신자살하러 갈 듯한 멍청하 고 얼빠진 얼굴을 하면서 그는는 히드레안을 바라보았다. 히드레안은 호오 오, 하더니 그런 미노의 뺨을 톡톡 쳤다. "제법 귀여운 표정도 지을 줄 알잖나. 그렇게 귀엽게만 있으면 예뻐해 줄 것을, 매일 웃기지도 않은 인상이나 쓰고 있다니. 하기야 차도 제대로 못 끓 이는 시종주제에 이런 맛이라도 있어야지." 억울하게도....자신은 히드레안보다 적어도 20cm정도는 컸다! 그런데도 놀림 당하고 있는 것이다...자기보다 작은 상대한테...그것도 여자같 이 곱상하고 야리야리한 녀석에게.... ...울컥. 미노는 결국 벌떡 일어나고야 말았다. "꺼 !!" "차도 못 끓이고 청소도 못하면 말이라도 곱게 써야하는 것을. 쯧쯧." "맘대로 시종으로 만들지마! 난 이래뵈도 긍지 높은 하프로니안이야! 더군 다나 난 네 녀석이 싫.어!" 미노는 그리고 돌아서서 나가버렸고, 히드레안은 온기가 남아있는 침대 위 에 폭하고 파묻히면서 중얼거렸다. "안 그래도 더 싫어하게 해줄 참이었는데 고민거리가 줄었군." ...과거나 현재나, 변한 게 전혀 없는 놈이 있다면....바로 저 녀석일지도 모른 다. 아마 평생 변하지 않을 지도....모른...다... 히드레안 덕에 조금 기분이 나아진...아니 더 나빠진 미노는 괜히 주변물에 화풀이 따위를 하면서 잠시 투덜거렸다. 몸은 완전히 회복 됐고, 비록 아디아에게 그런 말은 들었지만...그렇다고 그 렇게 쉽게 무너질 존재라면, 여기 이렇게 서있지도 못했다. 하프로니안이란 종족의 특성상, 위기는 어떤 경우라도 넘긴다는 강력한 바 퀴벌레 생명력의 소유자들뿐이어서 그럴 지도 모르지만. 더군다나, 심한 충격을 받게 되면 오히려 그 상황을 대부분 무시하거나 잊 음으로서 벗어나려고 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방어본능이기도 했다. 미치지 않기위한... "....미노...? 안...갔어요?" 아디아. 어째서 여기 이렇게 서 있었을까. 내 거처의 앞에, 제대로 걸친 것조차 없 이. 왜 저렇게? 나 따위 계약물을 위해... "...안...따라갔어요?" 새빨갛다. 달아올라서...빨갛게 된 손가락, 빨갛게 된 뺨....하아하아 거리고 있는... 눈에는 금방이라도 떨어져 내릴 듯한 눈물 방울이... "아디아?" "나는...난...난...미안해...미안해요! 그렇게 될 줄은 몰랐어요. 단지 그는 우리 일족의 피를 조금씩 필요로 했을 뿐이었고....나는...난 당신을 속이고 싶지 않았어요...정말로...나는..." 그녀는 주저앉아서 펑펑 울기 시작했고 미노는 어쩔 줄을 몰라서 일단 그녀 를 일으켰다. 아디아의 입이 열렸다. "...차라리...차라리 그냥 히드레안을 따라가는 게 낳을 것 같아서....나는...난... 난....미노의..." 두근... 울먹대는 그녀의 입에서, 진실 된 말이 튀어나왔다. 아니 진실이라 믿고 픈 말이 들려왔다. "난...미노의 왕인데..." 떠나고 싶지 않다. 살고 싶다. ...그것이 그녀가 전해준 감정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가르쳐 준 것으로 인해서 그녀를 파멸시키고 죽음으로 몰아 넣은 것이라 해도. 미노는 그 순간 그 감정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마왕 이야기-46 Please forgive me-10 가끔, 또는 자주 생각해 봐도. 미노는 히드레안을 이해할 수 없다. 아마도 그것은 영원히... 그가 고개를 들었을 때는 어느새 밤이 되어있었고, 하늘은 청명한 남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어느새 잠들어 버렸던 걸까.... 씁쓰레한 미소를 지으며 미노는 하늘을 향해 크게 팔을 벌렸다. 누워서, 거 기다 잔뜩 뒹굴대고 낮잠까지 잔 터라 풀 즙이 묻어난 데다가 온통 꽃잎 투 성이었지만... 미노는 어쩌면 닫을 것 같은 기분에 손을 뻗어서 별을 잡으려 해보았다. "...바람아 불어다오...내 사랑하는 이의 뺨을 스쳐다오..." 미노는 중얼거려 보았다. 살랑... 바람이 불어온다. 하지만 그것은 정령의 바람 따위가 아니었다. 미노는 눈을 감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역시...난 널 이해할 수 없어...히드레안..." [네 선택이 그럴 거라는 것은 예상했다.] "아니야! 아니에요 히드레안! 미노! 빨리 말해요 제발!! 안돼요 히드레안...! 죽이지 말아요 제발!" 미노는 피식, 웃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죽여라. 난 네 것이 되지 않겠다. 죽어도 아디아의 수호자로 남을 것이고, 설사 살아 있다고 하더라도 난 널 선택하지 않아." 선택 따위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는데. 어째서 그렇게 말했을까. 몰랐다, 그 때는...왕이 수호자를 선택해도 수호자 가 왕을 선택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히드레안, 히드레안...차라리 내가 죽을게요. 제발, 제발 미노는 살려줘요 제 발...내가 잘못했어요, 다시는 미노를 데려가지 말라고 때도 안 쓸게요, 그러 니까 제발, 죽이지 말아요 제발...응?" "물러나 아디아...!" 미노는 울면서 히드레안에게 매달리려고 하는 아디아를 뒤로 물리면서 날개 를 펼쳤다. 히드레안은 어차피 자신을 아디아의 곁에, 하프로니안 들의 곁에 둘 생각이 라곤 전혀 없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자신의 것인 미노트 아신레이져였지... 다른 이들과 공유하는 자신은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히드레안이 왜 자신의 앞에 나타났는지 미노도 알 수 있었다. ...그는, 미노가 아디아를 '왕'으로 선택한 것에 화가 났던 것이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는 다시 미노를 되찾아 가고 싶어했고, 정식으로 그가 대장로의 지위에 오르고 공식적으로 아디아와의 관계를 공표하자 그 분노가 극에 다다랐던 것이고...아에 강제로라도 취하려고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꼭 계승식 당일 날 저렇게 등장하는 건 너무 전형적인 악당이 아닐까, 하는 쓸모 없는 고민 따위를 해본다. "나는, 누구의 것도 되지 않아. 나의 왕은 내가 선택한다." [그래? 아주 우습군 미노트 아신레이져...네가 네 것 인줄 아나?] 히드레안은 잔인하리만큼 두려운 미소를 띄우면서 미노를 손가락으로 가르 켰다. [너, 내가 그렇게 우습게 보이던가? 이 히드레안이? 네가 날 거부하고도 지 옥을 맛보지 않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던 건가?] 순간적으로 미노는 히드레안의 눈에 광기보다 뭔가 더한 것이 서린다고 생 각했다. 그게 무엇인지 느낄 새도 없이 히드레안은 천천히 한발 내딪었다. [너를 만든 것은 나다. 너를 창조하고, 이때껏 기다려온 보람이 겨우 이것이 냐? 너의 왕은 내가 아닌가....!] "네가 날 만든 것은 인정한다. 또한 내 인생전반을 모두 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미노는 고요히 말하며 길게 늘어난 손톱에 가득히 예기를 모았다. "...난 너를 위해 존재하진 않는다. 신이 자신을 위해 인간을 창조했던가? 내 가 너의 창조물이라면, 넌 내게 아무런 권한도 가질 수 없다. 나는 '창조'된 것이지 '도구'로 만들어 진 것이 아니니까." 히드레안은 그런 미노를 묵묵히 바라보았다. 뭔가 생각하는 것인지, 아니면 주변을 서서히 메우고 있는 하프로니안들을 경계한 것인지 그는 일순간 움직임을 멈추었다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오직 미노뿐이지만...순간적으로 그의 눈에서 이글대는 죽음의 살기 를 보았다. [...최소한...인간은 신에게 알량한 경배나마 바칠 줄 안다.] 그리고, 몸 안에서 무엇인가가 터져 버렸다. 제어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던...이루 말할 수 없는 잔인한 고통이. [네게 주는 선물이다. 미노트 아신레이져, 꿈에서 깨어나는 기념으로 즐거운 파티를 해야지.] "...크...크악...악..." 히드레안의 어찌보면 히스테릭한 웃음소리가, 미노의 귓가를 때렸다. 그, 섬뜩하리만치 잔인한 웃음소리가... 그리고 기억한다. 그 가슴을 찢어버리는 슬픔을. "...아니야." "왜 그래? 사랑하는 왕의 입술에 키스를 해주지 못할 망정." 비꼬는 히드레안의 음색에 미노는 덜덜 떨면서 그를 노려보았다. "...아니야...이건....이건 아니야!" 히드레안은 조금 심술궂게 웃으면서, 자신의 손에 들려있던 여인의 목을 미 노를 향해 던졌다. 데구르르...하면서 구르는 소리마저 들려온다. 깔깔깔 웃 으면서 그는 입을 열었다. "네 왕이잖아? 아름다운 파란 머리카락, 그 푸르면서도 초록빛의 정령의 눈 동자. 흰 피부위로 물든 장밋빛 뺨. 아아...비록 그 늘씬하던 몸은 없지만, 킥...나름대로 그것도 아름답지 않아?" 피. 또다시 피로. ....어떻게 된거지? 어떻게? 눈 뜬 곳은 어딘지 모를 곳. 주변에 널려 있는 것은 시체. 그리고 내 손은 피로 물들어 있다면...그럼? 그럼 난... ...난...무슨 짓을 한거지? 미노는 혼란스레 엉켜대는 말들을 조합하려고 애쓰다가 입만 벙긋거렸다. 그리고 기억한다. 그때의 그 공허한 절망감을. "아, 그렇지 미노트 아신레이져. 그건 내 선물이야." 히드레안은 킥킥댔다. 미노는 그를 향해 뭐라고 외치려고 하다가, 히미한 신 음소리에 비명조차 삼켰다. 늘 듣던 아름답고 곱던 그 목소리. ...아디아의 목에서... 그녀의 목에서...갸냘픈 울음소리와 함께, 신음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깔깔깔깔! 걸작이지? 그렇지? 멋진 파티가 아니냐고! 그래, 울면서 매달리 는 저 가엾은 여인의 목을 가차없이 쥐었던 잔인한 손길로, 그녀의 피가 묻 어있는 그 타락한 입술로, 아직까지 삶의 고통에 떠는 그 가엾은 여인의 입 술에 죽음과 같은 축복의 키스를. 아하하하핫! 재밋잖아? 안 그래? 미노트 아신레이져...!" 비명소리마저 비져 나오지 않는다. 단 한순간도 잊을 수 없는, 피로 물든 내 손에 들려 있던 그녀의 목. 아무 것도 남지 않고 오직 목뿐인... 그리고 기억한다. 끊임없이 귓가를 매우는 그녀의 목소리를. "죽여....줘요....제발.....날.....죽여....죽여요....나를...." 피, 온통 피로 물든... 내가 멸망시킨, 내가 지켜주겠다고 했던 나의 일족. 나의 왕. 나의... "꿈에서 깨어난 것을 환영한다. 미노트, 아신레이져...." 그리고 기억한다. 꿈에서 나를 일깨우던...그의 차가운 눈동자를. 마왕 이야기-47 Please forgive me-11 말을 한지 얼마나 지났는지도 제대로 생각나지 않았다. 그저 입을 다물고, 눈을 감고, 차가운 금속 마냥 그저 그렇게 있었다는 것만 이 히미하게 머리 속으로 들어올 뿐... "정말 심심하군....그렇게 아무런 말도 안 할 거야?" 그의 성이라는 곳으로 끌려 온지, 아니 강제성은 없었다. 아무런 생각조차 못하는 자에게 끌려가고 끌려오고 따위가 있을 리 없으니까... 얼마나 지났 는지 생각도 안 나지만, 어쨌든 히드레안은 다른 것에는 쉽게 질린다는 그 성격으로 잘도 지치지 않고 미노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자꾸 그렇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으면, 또 피에 젖게 만들 수도 있 어." 히드레안은 멍하니 있는 미노의 눈앞에 자신의 손을 가져갔다가 재미가 없 어졌는지 거두었다. "장님도 아닌 주제에 동체가 반응이 없다니." 다가온다는 느낌조차 제대로 인지할 수 없었다. 생각나는 것은, 그 피. 새빨간...사방에 걸려있던 그 시체들. 찢어버리고, 갈라버리고, 이리저리 상처 입혀버리고, 물어뜯은...불에 타버리기도 하고...온 몸의 뼈가 모두 빠져 나와 있기도 하고... 죽여달라고 애원하던 그녀의 입술. 오직 목 밖에는 남아있지 않은.... ...꿈...그 모든 게 꿈... 바싹 말라버린 입술에 미적지근한 물의 감촉이 다 왔지만, 미노는 그것조차 삼키지 못했다. 히드레안은 여전히 그 속모를 잔인한 웃음을 띄고 미노의 뺨을 잡은 체 아 주 조용하고, 정확한 발음으로 말했다. "그래봤자 넌 못 죽어. 음식을 거부한다고 죽을 정도로 약한 몸은 아니거 든...햇빛만 쬐도 충분히 사는 거야 넌. 내가 널 죽이기 전까진, 누구도 널 못 죽여...알겠어?" 그...소름끼치도록 잔인한 목소리. 귓가를 메우던, 누구의 것인지 모를 비명소리... "...죽..여줘..." "뭐야? 그 말 외에는 아무런 할말이 없는 거냐? 웃긴 녀석이군." 히드레안은 깔깔 웃으면서 물 컵을 아무렇게나 뒤로 던져 버렸다. 인형들이 사르르 소리 없이 다가와서는 깨진 컵을 치우는 것 같았다. 인형. 히드레안과 계약한 모든 자들이 결국 귀착해 버리는 것. 혼과 육신을 빼앗기고, 혼은 녹지 않는 얼음의 감옥에 갇히고, 육신도 차가 운 푸른 피가 흐르는 인형이 되어 감정도 없이 그저 시키는 데로 충실히 입 다물고 일만 하는 인형... 그것이 히드레안과 계약한 자가 되 버리는... 영원한 삶의 계약. "아, 그렇지. 아디아도 아주 귀여운 인형이 됐어..그거 알아? 말도 아주 잘 듣지. 원하면, 내가 원하면 창녀처럼 그 고귀하던 네 왕이 내게 몸을 벌리기 도 하지. 재밌지 않아?" ...어린애가 하는 아무렇지도 않은 장난처럼, 그렇게 미소지어 버린다. 잔인한 건지 아니면 천진한 건지 알 수 없는 웃음. 울컥 올라오는 알 수 없는 분노도, 힘없이 사라져 버린다... 아무 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하아, 시시해라. 뭔가 좀더 재밋는 반응이 있을 거라고 기대했단 말야." 히드레안은 아쉬운지 미노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계속 그의 곁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이곳에 온 후로 줄곧 이런 모양이었다. 단지 미노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는지, 아니면 미노가 반응하지 않아 도 뭔가 괴롭히는 게 즐거운지, 그는 계속 미노의 반응을 살피고 있었다. "네가 하프로니안 들의 대부분을 학살한 덕에 실험체 들이 아주 많아졌어. 아, 아직 살아있는 것들도 있는 덕분에 실험실에 가면 그대로 정지시켜놓는 바람에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것들이 훨씬 많거든, 그런데..." 목을 타고 올라오는 토기. 몸 안에 든 모든 걸 뱉어내고 싶은 욕망... 히드레안은 생긋 웃으면서 입을 열어 말했다. "...아무도 널 원망하지 않던걸. 아주 멍청한 종족이라니까." 나를...인정해 주던...내가 어리석게도 믿지 못한다 생각했던.... 나의...나의 전부였던...그리고 지금도 전부인.... 죽음조차도 원망하지 않는...나의...왕이여, 그리고 나의 백성들이여. 주륵... 남아 있지도 않은 수분이 모인 것인지, 붉은 빛의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몸 안에 얼마 남아있지 않던 수분을 다 끌어당긴 건지, 안구도 터질 듯이 아파 왔다. 실핏줄이 터진 것뿐이겠지...이것이 진혼을 위한 눈물일리는 없다... 하지만 붉은 피눈물이 그의 시야를 붉게 가리어왔다. 붉은 피가, 그러나 용서하는 자의 성혈처럼. 그렇게 붉게 물들었다. "...차라리..." 천천히, 현실의 감각이 느껴졌다. 그 고통스런 현실의.... "차라리 죽여..." 히드레안은 그런 미노의 반응에 만족했는지 기분 좋은 미소를 띄고 있었다. 억눌렸던, 지르지 못했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아아아악! 차라리 네 인형이 되라고, 영혼을 달라고 해! 이런 삶 따위...!" 겨우, 현실로 돌아왔지만... 나를 반겨줄 나의 왕도, 나의 백성도, 그리고 내가 사랑하던 모든 것들은 이 미 내 손으로 내가 파괴해 버렸다. 그리고 누구도 기억해 주지 않을 테지... 미노의 목에선 쉬어버린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런 삶 따위...차라리 죽음으로 속죄할 수라도 있다면....나는...나는....!" "파하핫! 웃기고 있네. 누구 맘대로 죽어? 몇 번씩 말하지만 넌 내 거야. 누 구에게도 안 줘. 영원히." 그 잔인한, 잔혹한, 그리고 동시에 무엇보다 매혹적인 그 존재. 증오해 마지않아야 할....그 존재. "날 죽이고 싶다면 언제라도 죽어주겠어. 단, 네가 날 죽일 만큼의 힘 정도 는 있어야 하겠지? 큭, 아마 평생 불가능하겠지만." "...할 수...있어." "아아, 그 몸으로? 입이 있다고 잘도 지껄이는 구나. 그리고 하나 더 말해주 지만, 넌 내 시종이다. 날 섬기는 일에 소홀하면 얼마든지 네놈을 죽여버릴 수 있는 권한이 있다는 거지. 날 죽이기도 전에." 미노는 크윽, 하면서 일어나려고 했지만 그 동안 굳어있던 몸은 전혀 그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아 주었다. "살아서 날 죽일 생각도 못하다니, 별로 근성도 없는 한심한 녀석이었나? 크크큭..." "죽여...버린다! 히드레안 드 이크립스!" "무섭지도 않아, 그딴 멍청한 얼굴 따위. 날 죽이려면 먼저 살아야 할텐데? 응? 지금 맘 바뀌어서 죽이고 싶어지는데?" 미노는 이를 악 물었다. 조금이라도 기운을 끌어 모으기 위해서, 그런 히드 레안을 올려다보았다. 히드레안은 마치 선심이라도 쓴다는 듯이 잔인하게 웃으며 말했다. "날 너의 왕으로 한다면, 조금쯤 생각을 바꿔 줄 수도 있지 그래. 내 발에 입맞추고, 내게 충성을 맹세한다고 해라. 날 죽이려면 어떻게든 기회를 엿봐 야 할 거 아니야?" "크윽..." 히드레안은 반쯤 일어난 미노의 한쪽 무릎을 걷어차서는 마치 기사가 예를 취하는 듯한 모습으로 만들어 놓고는, 세워진 무릎 위에 발을 올렸다. 새카만 빌로드 같은 검은색 상복 아래에는 가죽으로 만들어 진 듯 한 고급 스런, 그리고 바닥에 닫지도 않은 것 같은 구두가 있었다. 히드레안은 차갑 게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맹세하지 못하겠지? 결국 네 녀석도 한심한 비겁자 일 뿐이다. 죽음으로 속죄니 뭐니 하면서 정작 제 자존심은 챙기는. 뭐 상관없어, 난 죽이던 살리 던 상관없으니까." 도로 떼려는 히드레안의 발을 잡으면서 미노는 이를 악물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입술의 그의 구두에 가져다 대었다 다시 때고는 천천히, 억눌린 목 소리로 더듬대며 입을 열었다. "....나...미노트 아신레이져...는...히드레안 드 이크립스, 그대에게 지금 이 순 간부터...수호자로서 충성할 것을....다짐하며..." 그렇게, 아마 그와의 그 지겹도록 끈질긴 악연이 시작되었던 것 같다. 마왕 이야기-48 Please forgive me-12 후우... 눈가에 고인 눈물을 가리기 위해서 손을 다시 내리면서 미노는 짓씹듯이 중 얼거렸다. "젠장.....잊어버려서 미안해...너희들을 잊어버린 거...미안해..." 미노는 애써서 흐느낌을 눌러 참으며 눈가에서 흘러 넘치는 눈물을 꾹 눌렀 다. 속죄따위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터져 나오는 말들을 억누를 수는 없었다. "제발...나를 용서해 주기를...나의 왕이여...나의 백성들이여...내 전부였던..." 터져나오는 흐느낌에 섞여있는 사죄라 할지라도 누가 들어줄까. 그의 목소리를 들어줄 혼들은 이곳에 없었다. 그 긴긴 세월이 지나는 동안 어떤 혼이라도 본래로 환원했으리라... "...나는..." 미노는 흠칫하면서 몸을 일으켰다. 히드레안은 조용히 들판에서 미노에게 등을 보인 체,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 었다. 그 폭포수 같이 물결치는 검은 머리카락, 장신구조차 걸치지 않은 몸 은 마치 진혼을 위한 상복 같은 새하얗고 투명한 로브로 감싸여져 있었다. "...난...외로웠다. 그저 그것뿐이었어." 히드레안의 말에 미노는 머리라도 얹어 맞은 듯이 멍해졌다. "그래서 널 만들었다. 어쩌면 네가 나와 같아질 지도 모른 다는 것을 알면 서도. ...널 파멸시켜가면서도, 그래도 난 외로웠다. 누군가의 온기가 조금쯤 은 필요했지...난 마족도 신도 아니라...인간이니까 말이다." 자조 섞인 그의 목소리. "...지금은...별로 안 외로우니까...기회라면 지금이니...죽여도 된다." "히드레안, 그런 말. 후회한다." 미노는 천천히 일어섰다. 지금이라면, 어쩌면 죽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들 어올려진 손에서 날카롭게 뻗어 나온 손톱이 천천히 히드레안의 목을 그저 그어 내리기만 하면, 그리고 그의 혼이 부활하기 전에 속박해 부숴 버리면... 뿜어져 나오는 살기에, 미노는 손을 지켜 올렸다. 지금....이라면, 나도 속죄하고 그들의 곁으로 갈 수 있을 지 모른다. '바람이여 불어다오, 내 사랑하는 이의 뺨을 스쳐지나가 다오.' 쏴아아아아! 거세게 바람이 몰려들었다. 정령에 의한 강렬한 바람, 수도 없이 계속됐던 기원으로 이뤄지는 정령력의 행사. 그들이 이뤄내는... 달빛, 새빨간 붉은 달빛 아래에, 창백한 푸른 달무리를 드리운 붉은 달빛에 서 퍼져 나온 우울한 조명의 하늘에서, 그 청명하게 느껴지는 별빛에서... '바람이여 불어다오, 내 사랑하는 이의 뺨을 스쳐지나가 다오' 쏴아아아... 휘날렸다. 어디서 날려 온 지도 모를 풀씨 들이 피워낸 꽃들이, 그 꽃잎들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마치 의지라도 가지고 있듯이, 그 하얀 꽃잎들이 마치 눈처럼...그 날의 그 새하얀 눈처럼 휘날렸다. 히드레안은 고개를 꺾어 그런 미노를 바 라보았고, 쓸쓸하지만 고요한 미소를 띄고 있는 미노를 보고는 말없이 눈을 감았다. 새하얀 눈. 따뜻한 마음이 얼어붙으면.....그러면 어떻다고 했지 아디아? "...넌...재수 없는 데다 변태고...빌어먹을 정도로 제멋대로에...이 세상에 아무 런 도움도 안돼는 악마 같은 놈이야..." "약간은 인정해 주지." "거기다 늘 사고만 치고 걱정만 시키는 데다...한심한 어린애 같은..." 휘날린다. 꽃잎들이. 눈꽃이. 새하얗게 빛나는, 붉은 달빛 아래서도 아름다운 그 꽃잎들이. "...나는...그런 네 녀석의 수호자고..." "미노." 히드레안은 결국 무릎을 꿇고는 아무 말 없이 흐느끼는 미노에게 말을 걸었 다. "...넌 평생 내 곁에 있을 거지?" "빌어먹을...난....으흑..." 히드레안은 허공을 바라보았다. "오랜만에 뜨는 셀레나의 적월(赤月)이야. 악몽의 달 셀레나가 선사한 꿈은 언제나 쓴맛일 뿐이지..." "넌...내 왕이다 히드레안." 히드레안은 털썩, 하고 드러누우며 입을 열었다. "언젠간 날 죽여봐라 미노." "반드시 죽여주겠다 그래." "기대하고 있지." 붉은 달은, 광기와 동시에 과거의 악몽을 꾸게 하는 법.... 히드레안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따라하기라도 하듯이...아주 작은 목소리로. "제발...그를 용서해 주기를..." 물론,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아주아주 작은 목소리였긴 하지만. 마왕 이야기-49 에필로그epilogue 덥썩, 미노는 히드레안의 뒷목을 잡으면서 외쳤다. "히드레안! 제발 부탁인데 인형가지고 놀 거면 밖에서 놀아! 왜 내 옆에서 어기적 거리냐고!" "심심해서 그러는 거다. 넌 시종이니 만큼 이 몸과 놀아줘야 할 지대하고도 숭고한 목적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거냐?" 미노의 대답은 더없이 심오했다. "없어!" 그런 미노의 말에 히드레안은 볼을 부루퉁하게 부풀렸다. "그래, 어제 침실에서 좀 거칠게 다루긴 했군...." "아아아악! 그런 속된 말로 내 귀를 더럽히지 마 제발! 누가 들으면 진짜인 줄 안단 말이야!" ...혹시 그 누구가 자신이라고 찔리는 이는 조용히 그냥 입다물고 있는 것이 신상에 이로울 것 같다. 비명을 질러대는 미노의 등에 거머리처럼(...) 찰싹 달라붙어서는 히드레안은 특유의 승리를 점찍는 미소를 지었다. "자아~노는 거다 미노, 오늘은 어디로 가볼까?" "난 싫다니까! 제발 며칠간 쉬게 해줘! 적월 때는 나라도 피곤해!" "닥쳐랏! 이 몸이 놀자면 노는 거다! 그래서 오늘은 신계를 습격하겠다!" 원래 거기서는 그래서라는 연결동사가 쓰이기엔 어딘지 모르게 말이 안 된 다고 생각되지 않아 히드레안...? 그러나 목숨이 아까운 이상 그 누구도 그 것을 지적해 줄 리가 없었다. ...미노는 절망적인 몸짓을 하면서 울부짖고 싶은 것을 억누르며 힘없이 중 얼거렸다. "...제발 난 빼 줘..." 아하하핫, 하고 웃으면서 히드레안은 하늘을 향해서 손가락을 뻗어 올렸다. "자아! 전진이다 미노! 이 몸이 세계를 지배하는 그날까지!" "자, 잠깐! 원래 세계지배 같은 건 없었잖아!" "뭐 어떠냐! 내가 신이 되어서 세계를 지배하는 게 어디가 어때서!" "이 세상을 산 지옥으로 명명하고 싶은 거야! 오늘은 그냥 얌전히 낮잠이나 자란 말이야!" 바둥대는 히드레안과 툭탁대면서 그런 그를 침대로 마구 밀어 넣는 미노의 입가에도 어쩔 수 없이 미소가 맺힐 수밖에 없었다. 겨우 침실에 처박곤, 미노는 겨우 후우...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마의 땀을 닦아 내리자 정말 흥건한 땀이 주루룩 흘러내렸다. "수호자 말고 보모라고 하면 나도 이의는 전혀 없겠는데 말이야...." 미노는 피식 웃으면서 소담스레 내리는 눈을 바라보았다. "...누가 그랬던 것 같은데...좋은 게 좋은 거라고...." 이봐, 그 말을 한 당사자는 정작 그런 뜻으로 쓰지 않았는데.... 어쨌든 미노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래, 좋은 게 좋은 거야." 아아...미노마저 단순해져 가는 이 무시무시한 상황이여. 과연 앞으로 히드레안의 앞날은 어떻게 될 것인가? 알고 싶어도 내가 어떻게 알아! ============================================================= 아아....감동은 없습니다... 정말 힘들었던 3편 플리즈 폴겟 미....-_-(틀리더라도 양해를...영어엔 약합니 다) 엽기적 이야기도 아니고, 진지물에다 피는 튀기고(피 튀기는 장면은 정말 좋았어요, 10분이면 뚝딱이었죠) 거기다 히드레안과 미노는 전혀 알 수 없 는 말들이나 해대면서 좋은 게 좋은 거라고나 생각하고.... 나 같으면 절대로 저렇게 못살아....라고 생각하면서.... 히드레안의 잔인성에 쓰면서도 히죽히죽 댔던 한편이었습니다....-_-; 요즘 들어 스트레스가 쌓이는지 이렇게 풀고 있다는.....후훗....; 다음 편, '마룡의 육아수첩'편도 사랑해 주십시오(참고로 저 제목은 막 지었 습니다. -_-;) 파하하하핫!! ;; 드디어 다음 편부터 궁극18금(청소년 시청금지....잠깐...나는 청소년 아니었던가?)엽기가 진행되는군요.....+_+ 개인적으로 러브리 칸나님♡이 나오시기에 다 좋다는.... 기대해 주십시오 엽기팬 여러분! 드디어 마왕 이야기가 진지(?) & 시리어스 (?) & 비엽기(?) & 초건전(?)탈피해서 다시 엽기 & 잔인 & 음란해 지는 군요.(난 왜 마왕 이야기가 음란물이라서 청보법에 걸릴까 밤마다 고민하며 글을 쳐대야 하는 걸까... -_-;;) 크흐흐흣....이제 제어는 끝났습니다. -_-+ 결론!!! 마왕 이야기는 18금이었던 거쉽~니다~!(작가가 비록 청소년이라고 할쥐라도~! 캬하하핫!) ============================================================= ===== 마왕 이야기-50 3회 기념 좌담회 펜릴 : 안녕하세요, 3회 기념 특별 좌담회 쿨럭....그리고 3회 기념 일러스트 까지 완비입니다. 히드레안 : 이것 봐 작가. 펜릴 : 아아 주인공이신 히드레안 군. 히드레안 : 군? 펜릴 : 아뇨, 히드레안 씨. 히드레안 : 덜 맞아본 모양이군, 겁대가리를 상실했어.(파지직) 펜릴 : ...당신의 신실한 종이라고 불러 주십시오 히드레안 님. 히드레안 : 과연, 나를 창조할 정도로 비굴하고 치사하며 생존능력이 바퀴벌 레를 넘나드는군 작가. 펜릴 : (히죽)칭찬으로 알겠습니다 히드레안 님. 히드레안 : 그보다, 고작 3회 종결가지고 이 몸을 오라가라 하다니 간 경화 를 의심해 봐도 되겠군 그래, 대체 이런 시시껄렁한 게 무슨 재미가 있다는 거지? 펜릴 : 거기에 대해선, 오직 작가와 독자만이 알 거라구요. 히드레안 : 주인공이신 이 몸이 모르고 넘어가도 된다는 거냐? 아직 죽어보 지 못해서 입은 살았군 그래.(두번째 잔인한 전격) 펜릴 : ......아, 왠지 좌담회라는 게 재밋어 보이고 또, 독자들에게 자신을 어 필하실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요 히드레안 님? 소설 상에선 그대의 우아한 모습이 전혀 드러나질 않잖아요. 히드레안 : 다 네 글 실력이 형편없어서 그런 거다. 감히 이 몸을 그따위로 묘사하다니 말이야. 펜릴 : 훗, 독자에게 전 진실을 전할 의무가 있다구요. 히드레안 : 쓸모 없는 이유로 목숨을 재촉하는 군. 펜릴 : 작가 된 도리. 후후훗...그보다 히드레안 님, 곧 본편의 외전 스토리로 들어갈텐데, 혹사시키는 걸 용납해 달라구요. 미노 : 아아, 내 등장횟수는 그럼 더 줄어드는 거야? 펜릴 : 아아, 미노군. 물론 그대의 등장횟수가 줄 리가 없지. 사실, 히드레안 보다 훨씬 주인공다운 당신이 주역으로 나서야 된다는 이들도 있으니까 말 이야. 암암. 미노 : ...뭐야, 당신의 글을 보는 사람 중 그런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이가 있단 말이야? 펜릴 : 미노군, 방금 대산 대본에 없었던 거야. 마이너스 감점 처리하겠어. 히드레안에게 당하게 할테야. 히드레안 : 호오, 간만에 맘에 드는 짓을 하는군 그래 작가. 펜릴 : 그러게 당신의 신실한 종이라 불러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히드레안 님.(씨익) 미노 : 그럼 그렇지! 이 변태들 같으니라고! 히드레안 : 저런 음흉하고 치사한 변태와 동일시하지 말아 줘. 그래도 내 사 전엔 양심이란 단어는 남아있단 말이야. 펜릴 : 훗, 이미 떠난 기차에 대고 손 흔들어도 소용없다구 미노군. 난 이미 히드레안 님께 내 영혼마저 팔아 넘긴 거야! 미노 : 멋대로 결정하지마 멋대로! 히드레안 : 바친다니 감사히 받도록 하지. 펜릴 : 아, 그보다 히드레안님, 4편에서는 줄창 당하는 역할인데 그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히드레안 : 괜찮아, 결국 난 지금 이렇게 잘 살고 있으니까. 펜릴 : 앞으로도 당하는 이벤트는 넘치도록 많은걸요. 사실, 욕심같아선 강 간 씬도 넣어보고 싶지만. +_+ 후후후훗..... 히드레안 : 작가, 그러니까 네가 쓸모없는 변태란 소리를 듣는거야. 펜릴 : 그걸 바라는 독자들도 없잖아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지 말아주세요. 미노 : ...둘다 똑같은 비정상들.... 펜릴 : 미노 넌 3편에서 거의 반죽음으로 몰렸으니 봐주겠어. 미노 : 솔직히 작가, 나만 미워하는 거 아냐? 툭하면 나만 괴롭히고 말이야, 어째서! 내가 뭘 잘못했는데! 펜릴 : 내 엽기적인 글에서 정상적인 네놈 때문에 히드레안 님께서 폭주를 하실 수 없으니까. 당연한걸 묻지 말라구. 후훗.... 미노 : 이봐! 당신이 지나치게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해 보지 않았어!? 펜릴 : 전혀!(단호히) 히드레안 : 훌륭해! 저렇게 딱 자르다니! 미노 : 전혀 훌륭하지 않단 말이야!!!! 펜릴&히드레안 : 시끄러워! 원래 그런 거란 말이야! 미노 : 아악! 똑같이 말하지맛!! 펜릴 : 자아, 이것으로 3회 쫑기념 좌담회 였습니다. 히드레안 : 아아, 피곤하군. 말이 많았어. 미노 : 다시는 하지맛! 마왕 이야기-51 마룡의 육아수첩-1 -그렇게 귀여운 아이가 다시 내 곁으로 왔고, 상당히 도전 적인 눈빛으로 쳐다봤다. 앞으로의 생활이 참 기대되는 바이다. 만약 어제까지 지옥의 바닥에서 살아가다가, 다음날 아침 자신을 원망하고 눈을 뜬 순간, 눈부시게 아름다운 미인과 화려한 비단침상에 나란히 누워있 다면, 거기다 둘 다 알몸이라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 같은가? "...으아아아악!" ...과연, 정석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한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비명을 울리자, 침대에서 잘 자고 있던 그 눈부시게 아름다운 미인은 눈을 뜨고는, 아니 눈은 감은 상태지만 비명을 지른 이 쪽으로 고개를 슬쩍 들었다. [시끄러우니 조금만 더 자고 얘기하자꾸나...] 그리고 다시 그 눈부시게 아름다운 미인이 잠들어 버리자, 벙쪄 서는 그대 로 앉아있는 이. 검은색의 단발머리와 역시 동그랗게 뜨여진 검은 눈, 그리고 무엇보다 저 하얗고 여린 피부 위에 떠오른 당혹감. 고작 8살이나 됐을까 의심이 가는 얼굴...어째서 자신이 나신인가에 대해서 위험한 상상을 하기에는 아직 어린 나이였다. 아, 물론 그 눈부시게 아름다운 미인이 로리콘 취향이면 충분히 그럴 수 있 지 않겠는가, 따위의 말을 하며 이상한 전개를 원한다면 지옥으로 꺼져버려 라. "....저기...이봐..." 소년은 쿡쿡, 잠든 그 사람을 용기를 내고 찔러보았다. [...잔다니까...조금만 더.] "...우..." 소년은 한숨을 내쉬면서 잠든 사람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목까지 덮는 보랏빛의, 진한 청색이면서도 연한 보랏빛을 띄기도 하는 기묘 한 색의 머리카락. 결도 좋고 우아하게 흐트러져 있어서 보기도 좋았다. 어떻게 보면 창백하게, 거의 새파랄 정도의 피부와 선이 고운 외모. 단출한 입술선은 어디라도 아픈 건지 조금 파리하게 질려 있었다. 길게 늘 어진 속눈썹도 보랏빛... 소년은 결국 결론에 도달했다. '미인이네.' ...그것도 결론이냐고 반박하고 싶지만 그냥 일단은 넘어가고. 소년은 그 눈부시게 아름다운 미인이 일어나지 않자 옷이라도 찾기 위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분명 벗고 자고 있다면 옷이 어디에든 있어야 한다는, 아주 당연하고도 논리적인 생각에 입각해서 소년은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면 서 옷을 찾았고 이내 주변에 옷가지로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 에 절망했다. 소년은 용기를 가지고 다시 한번 푹 잠든 듯한 그 눈부시게 아름다운 미인 을 쿡 찔러보았다. "저기..." [...아함...알았다 일어나마.] 소년은 자신이 해냈다는 성취감을 느꼈고, 부스스 머리를 털면서 일어난 미 인은 한번 눈을 부비고, 소년을 바라보았다. 눈은 감은 상태이긴 했지만 그 모습이 그리 이상해 보이진 않았으니 상관은 없으리라. "저...옷 좀...줄 수 없을까?" [...뭐라고 했니?] "옷 좀 줄 수 없...을까...라구..."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묻자 어안이 없는지 하, 하고 그 눈부시게 아름다 운 미인은 한숨을 내쉬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기억이 사라지면 성격도 바뀌는 건가?] "저기...?" 소년이 거의 위기의식으로 붉은 등을 깜빡거리고 있을 지경이 되서야 곰곰 히 생각하는 포즈를 풀더니, 그 미인은 시트를 헤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왁! 잠깐만!" 자신이 나신이라는 것을 개의치 않는지, 그 미인은 한 발짝 내딛었고 그러 자 연한 빛이 그를 휘감고 돌며 이내 새카만 검은 색의 동방 풍의 옷으로 휘감았다. 몸의 굴곡이 딱 드러나는...검은색의 옷차림, 매우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면서 소년은 오랜만에 본 '마법'에 입을 벌리고 있었다. [아, 그렇군. 식사부터 하련?] 딱, 하고 손을 퉁기며 그가 그렇게 말하자 소년의 몸에도 아까 같은 빛이 휘감겼다. 놀랄 새도 없이 우아한 하얀색의 평상복을 입게 된 소년은 얼떨 떨해져서 그를 올려다보았고, 그의 입이 다시 한번 열렸다. [계속 침대 위에 있다간 후회한단다 얘야.] "아 응..." 끄덕끄덕, 고개를 끄덕이며 소년은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내려왔고, 순간 비 틀했다. 유리처럼 깨끗하게 닦인 바닥에 비춰지는 자신의 얼굴이, 너무 섬칫했기에 눈을 감을까 잠시 고민했지만, 그랬다간 다칠 것 같아서 일단 그만 두었다. "저기 근데..." [칸나, 라그나 칸트라이트나 시에. 애칭으로 칸나라고 부르렴. 그리고 존댓 말은 일상생활에서 쓰지 말 것. 그리고 난 네 모친과 아는 사이야.] 소년이 질문하려고 했던 것. 이름이 무엇인가, 여긴 어디인가, 그리고 왜 돕는가, 세 가지였다. 그중 두 가지 답변에 만족할 만한 대답을 얻은 소년은 우물대다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식사하자꾸나.] 그가 말을 자르자 소년도 일단은 입을 다물었다. 그, 그러니까 칸나가 멈춰 선 곳은 튼튼한 목재로 보이는 문이 서 있는 곳이었다. 그가 손짓하자 이내 문은 슬쩍 열렸고 소년도 놀란 눈으로 살짝 바라보다가 그를 따라 들어갔 다. 잘 만들어진 요리들. 럼주를 살짝 섞어서 부풀린 듯한 시폰 케이크와 벌꿀 주, 오리 속을 양념으 로 체워 넣어서 구운 오리구이, 소스를 발라서 튀긴 베이컨, 소의 등심을 이 용한 스테이크... 호화롭기 짝이 없는 음식들을 보고 소년은 저도 모르게 놀라서 눈을 동그랗 게 떴다. [자, 먹으련?] "저기...난..." [아, 나도 단지 할 일이 없어서 그런 거니 그냥 맛을 즐긴다고 생각하고 먹 으렴.] 아무렇지 않게 대꾸하며 자리에 앉는 당당함에 소년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계속 머뭇대자 그도 그걸 느꼈는지 싱긋이 미소지었 다. [알았다, 식사는 그만두도록 하마. ...에리나쟈드라고 부르면 안되겠고, 이름 이 뭐지?] "...없...어." 아무래도 나이가 차이가 나는 만큼, 존댓말을 하려다가 뭐가 걸렸는지 우물 우물 대꾸하는 소년의 말에 그는 조금 심술궂게 고개를 갸웃했다. [넌 내가 데려올 때도 그런 말을 했지. 이름이 없다고. 우리 귀여운 에리가 지어준 이름은 어디로 갔나?] "...난...악마니까 그런 거 없어. 필요 없단 말야!" [그래그래, 하드라(단순히 여기선 고집 센 아이, 꼬마악마란 뜻으로 쓰이는 고어다.). 네 이름 가지고 내가 뭐라 할 수는 없는 것이지.] 소년은 입을 꾹 다물고 있었고, 그의 손짓에 따라서 사라진 식탁 위의 음식 들만 애꿋게 희생이 되었을 뿐이었다. "당신...엄마 랑은 어떻게 아는 사이지...?" 기분이 나빴는지, 조금 노려보는 눈빛으로 소년이 입을 열자 칸나는 살짝 웃더니 대답했다. [아버지이자, 연인이자, 친구이자, 동반자이자, 보호자이며 수호자 였던 이라 고 모 책에 쓰여있더군.] "연인...?" [옛 연인이겠지? 네 아버지에게 빼앗겨 버렸으니까 말이다.] 싱긋대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소년은 내뱉듯이 입을 열었다. "날...뭣 때문에 구해준 거지?" [너였기 때문에.] 마왕 이야기-52 마룡의 육아수첩-2 -일단 애칭으로 하드라라고 부르기로 함. 그 아이는 에리와 달리 성격이 무 척 난폭한 편이다. 앞으로 어떻게 길들여야 할까? ...먹을 걸로는 이미 실패 했다. 일단 적으로 원숭이보다는 지능이 높다는 거겠지? "저리 가!" [훌쩍, 너무 하잖니? 잠 정도는 같이 자 줘도 좋을텐데...] "꺼져! 변태 비만 도마뱀!" [호오라, 아버지한테 그렇게 말하다니....양부라고 무시하는 처사인 거냐?] "악! 저리갓!" 바둥대는 소년, 아니 하드라를 누르면서 칸나는 그의 옷을 휙휙 벗겨냈다. 과연, 저런 식으로 순진한 소년을 겁탈......이게 아닌가? [몸에 뭐 걸치고 자는 건 혈액순환에 나쁘단다.] "아악! 놔 이 변태얏!" ...으음, 과연 미래가 기대되는 아이였다. 벌써부터 변태의 선별법을 알고 있 으니까 말이다... [자자 꾸나.] "으으으으으!" [어젯밤도 충분했으니까 오늘은 건드리지 않을게.] "어제 밤에도 그렇게 말했잖아 이 변태!" [좋았으면서 뭘 그래?] ....귀가 더러워지는 것 같다. 그냥 입다물자...눈 닫자....귀 막자... 어떻게 저렇게 아름다운 외모들로, 지성 넘치는(...) 두뇌로 저따위 말밖에는 하지 못하는 것일까? 과연 오래 살면 할 일 없어져서라도 성격이 비뚤어진 다고 하더니... 중년 아저씨 변태 같은 말투를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면서 하드라를 가벼이 누른 칸나는 그를 침대에 눕히곤 자신도 이내 파고들어서 한번 생긋이 미소 짓고는 잠을 자기 시작했다. 원래 시간이 없는 곳이니 뭐니 하면서 몇 년이 지난지도 가르쳐 주지 않는 이 변태 드래곤-드래곤이란 걸 알게 된 것은 우연히 발견한 방으로 들어가 니까 엄청나게 거대한 혼돈 덩어리에서 잠들어 있는 머리가 무려 아홉 개 인, 날개를 사방으로 퍼트려 혼돈을 감싸고 있는 괴생명체를 본 후였다. 아무렇지도 않게 칸나에게서 '그건 나야~'라는 엽기적인 말을 듣고 확신한 셈이긴 하지만. 더군다나 참고 오면 좋은 날이 있겠거니 하고 열심히 뭔가 배우려고 해도 가르치는 게 있어야지...! 가르치는 걸 굳이 찾아내라고 윽박 질러댄다면 매 일 밤 침대 위에서 하는 일 정도? 굳이 침대가 아니라도 하긴 하지만.....이 라고 또다시 청소년의 건강에 심각한 유해현상을 일으키는 생각 따위를 하 면서 하드라는 궁리했다. 어떻게 하면 이 변태 비만 도롱뇽을 누를 수 있을까? 그것도 최대한 단시간 내에! 자고 있는 것 같던 칸나의 입이 열린 것도 그때였다. [도서관에 가서 마법을 배워보면 어떻겠니...? 난 예절과 아이다운 귀여움을 가르치기도 힘겨우니까 그런 간단한 건 네가 배우렴.] 빠직하고 터져 오르려고 하는 힘줄을 억누르며 하드라는 쿡쿡하고 칸나의 뺨을 찔렀다. "자기보다 수억만살은 어린애를 덮치는 변태가 누군데 이거 왜 이래? 거기 다 언제 예절 따위를 가르쳤는데!" [네가 매번 배우지 않으려고 해서 그런 거잖니?] 아무렇지 않게 대꾸하곤 다시 돌아서서 자버리는 그... 하드라는 으으윽, 하면서 아주 죽여버릴 작정으로 손을 들었다가 꾸욱 참았 다. 여기서 이런 전개로 나가면 꼭 다음엔 어느새 밑에 깔려 있고 다음은 지옥이었다. 하드라는 주먹을 불끈 쥐면서 생각했다. 그래, 능력도 하지 못하는 마력으로 싸우다 지쳐서 내가 먼저 쓰러지느니 차라리 마법을 배워서 저 변태 비만 도롱뇽을 쓰러뜨리고 광명을 찾아보자! ...하지만 무사안일 하게도, 소년은 마법이란 스승 없이 쉽게 배울만한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비록 소년의 마력이 무한대 급이며 마왕을 넘나들고 머리 또한 나쁜 편이 아니긴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마법은 글로 전해져서는 퇴색되지만, 말로 전하면 살아나는 이상하면서도 쓸데없이 복잡하고 비능률적인 구조를 지니 고 있으니까 말이다. "라그나 칸트라이트나 시에의 마법서 시아의 서여, 나에게 너의 지식을 전 해다오." 아름다운 미청년 모습의 마법서 시아는 고고한 표정으로 그런 하드라를 내 려다보았다. 마법력을 탐색해 보고, 기초를 확인하는 듯 했다. 이 세상에는 마법서라고 이름 붙은 것들이 시도 때도 없이 난무하곤 했다. 하지만 마법서, 그러니까 '마법사의 책'은 대부분 숨겨져 있기 마련이다. 마 법의 힘과 언어가 새겨진 책은 저절로 그 모여든 마법력으로 자신의 자아를 성립하기 마련이고, 강한 마법사일수록 마법서의 자아 또한 뛰어나기 마련 이었다. 하드라는 쉬운 마법의 기초도 다 팽개치고 처음부터 무리한 욕심을 부려서 라그나 칸트라이트나 시에, 세간에서나 전설에선 명룡왕이라고 불리는 자의 마법서에게 거만하기 짝이없이, 자신에게 '마법'을 가르쳐 달라고 말하고 있 는 것이었다. 물론, 그의 마법서이니 만큼 뛰어난 자아를 지니고 있는 시아는 잠시 생각 을 하는 듯 하더니 입을 열었다. [당신의 능력은 무척 뛰어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왕의 마법서인 제가 당신 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명예의 문제입니다.] "...그래? 그럼 딴 거 찾아볼게..." ...그는, 의래 이럴 때면 '그렇다면 네가 인정할 때까지 해보겠어!'라는 중간 과정따위 다 건너가고 간단히 귀찮은 것을 피해 기초부터 배우기로 한 매우 기특하고도 똑똑한 생각을 했던 것이다. 시아는 쩌억 굳어 있다가 겨우 자아를 회복하고 외쳤다. [아직 말 안 끝났으니까 좀 들어요...!] 막 다른 마법서를 찾아 두리번대던 하드라는 다시 시아를 바라보았다. "안 가르쳐 준다며? 더 할말 있어?" [...당신이 왕의 자질이 있다면 가르쳐 드릴 수는 있습니다. 왜냐면, 저는 왕 의 마법서니까요.] "...어디 보자, 마법서만 따로 보관한 데가 여기 라고 했지..." 또한 그는 시험이란 쓸모 없는 것을 봉쇄하는 방법도 효과적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장하다 소년, 너의 미래에 그 잔머리로 인해 한줄기 광명이 비춰지기를! 시아는 결국 악을 바락바락 쓰고야 말았다. [간단하니까 말 좀 끝까지 들으래두요!] "진작 그럴 것이지, 그래 뭐하지?" 싱글대면서 소년은 승리를 거머쥐었다. 마왕 이야기-53 마룡의 육아수첩-3 -그 녀석은 머리 쓰는 것도 싫어하고 몸 쓰는 것도 싫어하는데 어째서 마 법만은 악착같이 익혔을까? ...역시 매일 밤 괴롭히는 건 심했다고 생각한다. 인간들이 정한 마법의 법칙으론 이미 6 클래스에 도달한 귀여운 내 아이. 언제 한번 대련이나 해볼까? "승부다 칸나!" 칸나는 생긋이 미소 짓다가 오른 쪽으로 구십도 각도로 고개를 갸웃하더니 다시 생긋생긋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타올라라.] 화르르르륵... 화려한 불꽃놀이가 눈앞에 떨어지고, 땔감으로 쓰인 인간형의 물질은 아아 악! 하면서 비명을 울리곤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저것이 바로 분신자살, 또는 화형이라고 불리는 궁극의 자살법이란 말인가... 칸나는 오호호호호, 하고 웃으며 그런 하드라에게 말했다. [어리석은 우리 아기, 환각이 내 특기란 걸 또 그새 있었구나.] 환각에 걸려서 한번 불타 죽은(...) 하드라는 눈물까지 글썽해서 칸나를 손끝 으로 가르키곤 정의의 용사처럼 한마디했다. "절대로, 반드시 네 놈만은 이길테닷!" 그리곤 다시 도서관으로 열심히 뛰어가는 소년이었다. 이왕 뛰어가는 거 수련장이 멋지겠지만 그는 기초체력 없는 마법사였던 것 이다. 그래도 당당하게 뛰쳐나가는 저 뒷모습에 서린 소년다운 패기여, 영원 하라! 아아 과연, 젊었을 때는 저렇게 당당한 맛이 있어야 좋은 것이다. 칸나는 저렇게까지 이기고 싶을까, 하고 생각하면서-자신이 저지른 만행 따 위는 무시하고- 여유로운 승자의 미소를 띄었고, 하드라는 시아를 석판 위 에서 들어올려 자신의 무릎 위에 올리곤 파락파락 넘기면서 강한 마법의 장 부터 뒤져대기 시작했다. [분하신 건 알겠지만 라그나 칸트라이트나 시에 님을 이기기엔 무리십니다.] "시끄러! 어째서 이 내가 그 변태 비만 도롱뇽보다 약할 수가 있는 거지! 마력도 내가 더 많다고 했잖아 시아!" [...그건, 하드라 님께서 아직 계승식을 하지 않으셨기 때문이죠. 정식으로 문을 열고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왕의 힘을, 잊지 않고 그저 받은 '표식' 을 통해 조금 틀어진 틈에서 힘을 퍼다 쓰는 것과 같으니까요.] 하드라는 파악하고 거칠게 장을 넘기면서 외쳤다. "계승식 따위를 왜 해? 그런 거 없어도 강해지면 돼. 그보다, 칸나를 이길 수 있는 방법 좀 생각해 보라구!" 책장이 하마터면 찢어질 뻔 하자 땀방울을 주륵 흘리면서 시아는 입을 열었 다. [방법이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아? 그래?" 막 시아를 피어 올린 불에 집어넣으려고 쪼그리고선 모닥불 쬐는 포즈를 잡 고 있던 하드라는 샥하고 책을 다시 건져서 털어 주는 가증스러움을 보이면 서 생글생글 웃었다. "빨리 말해봐." 어째서 내가 생명의 위협까지 받아가면서 이 무시무시한 아이에게 마법을 가르쳐야 하는 것일까, 따위의 불행하고도 고통스럽고 무섭고도 음울한 생 각 따위를 하며 차라리 이 기회에 하드라를 없애고 행복하고도 조용했던 과 거의 삶으로 돌아가 볼까, 하다 어쩌면 이 시대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위대 한 천재를 썩힐 수는 없다는 비장한 결심을 하면서 그는 천천히 말을 시작 했다. 하드라는 시커먼 푸른색의 혼불을 띄우면서 음울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다 가 갑자기 푸른색의 공기를 띄워대며 후후거리면서 자신을 조금 무시무시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간, 이내 다시 먼 곳을 응시하며 향수 어린 노인의 표 정을 짓다가, 비장한 각오를 한 얼굴로 자신에게 말을 시작하는 시아를 보 며, 역시 주인이 이상하니까 마법서도 개판이라는 생각을 굳히고 있었다. [하드라 님은 마법의 시작에 대해서 아십니까?] "몰라." [...저어기...그런 건 당당하게 말하는 게 아닌데요...?] "시끄러! 닥쳐! 내가 맞다고 하면 맞는 거야!" ...원래 애들은 잘 우긴다고 하지만, 하드라는 그것 이상으로 자신을 합리화 시키는 데 능숙했다. 칸나, 대체 애한테 뭘 가르친 거냐? 저러니까 커서도 그 모양인 것일까? [끄응...그러면서 어떻게 6클래스의 마법을 습득하셨습니까?] "그거야 이 몸이 천재니까." 확신한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저 모양이었다! 시아도 그렇게 느꼈는지 스스로 마법서를 들고 불길로 뛰어들어 분신자살 하고픈 욕망을 억누르며 입을 열었다. [...그럼 마법의 시초에 대해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잠깐 시아. 그냥 책을 읽어보면 될 걸 어째서 네가 힘들여서 설명하는 거 지?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지, 지나치게 예리하군. [그러고 보니 그것도 그렇 네요.] 예리한 것도 정도가 있지! 편의를 봐달란 말이야! 뭔가 절망 어린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드는 데에도 불구하고 하드라는 손을 저어서 그런 시아를 제지시켰다. 그리고 그는 단호히 말했다. "그 누군가의 간단함을 위해서 너와 내가 희생할 필요는 없지. 말하지 마." ...하, 하지만 너에겐 극복할 수 없는 약점이 있다는 사실을 잊었느냐! 분명히 들릴 텐데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발악을 무시하며 하드라는 훗, 하고 웃으면서 책을 펼쳐들었다. 거기에는 큼지막한 글씨로, '칸나 님께서 특별히 쓰신, 유치원생도 쉽게 알 수 있는 마법의 기초적인 원론 이야기'라는 고어 로 휘갈겨 쓴 글이 있었지만, 하드라는 무시하고 책장을 뚫어져라 쳐다보다 이내 한숨을 쉬었다. 그렇다! 그에게 있는 최강의 약점! "...깜빡했어, 나 글 읽을 줄 몰라." [그런 걸 잊어버리시는 게 자랑입니까?] "시끄러! 나 같은 미소년은 그 정도를 잊어도 이 미모 때문에 누구든 용서 해 준다고!" 찰랑찰랑한 어깨까지 오는 검은 머리카락과 검은 눈동자. 진한 속눈썹과 고운 선을 가진 갸름한 얼굴. 누가 보더라도 과연, 이라고 동 조할 말이지만 왠지 그래서 더 무시해 버리고 싶지 않은가? [...마법의 시초는, 이 세계를 창조한 절대자의 법칙을 신이 알게 되면서 시 작되었습니다. 처음으로 태어난 자들, 위대한 존재, 세상의 유지자인 신들은 절대자가 창조한 법칙을 알아냈고 그 법칙을 이용하면 불가능 한 것을 이루 는 힘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수려하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그가 설명하건 말건, 하드라는 조용히 책들을 꺼내 차곡차곡 포개서 잠자리를 만들고 있었다. [그것이 태초의 마법, 바로 '언령 마법'입니다. 그리고 그 마법에서 법칙을 하나하나 일일이 실행 시켜야 하는 지금의 마법들이 갈라져 나온 것이지요. 아시겠습니까?] "아함, 벌써 낮잠시간이었군. 잘 자 시아." [들어욧!!!] 엄청난 그의 비명에 으윽, 하면서 귀를 막으며 불평하던 하드라는 투덜대면 서도 애써 만든 책들의 침대를 포기하고 얌전히 공부하는 학생 자세를 복구 했다. 만족한 표정을 지으면서 시아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언어란 것은 신비한 것입니다. 사물에 형체를 부여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 드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스스로 선택한 이름은 반드시 그 업을 지게 되는 것입니다. 언젠가 하드라 님께서도 자신의 이름을 선택하시면 알 수 있게 될 터. '언어' 자체를 힘으로 바꾸는 언령은 곧 정신적인 파동을 소리로 바 꾼다는 것도 될 수 있습니다. 즉, 언령의 기초를 터득하면 생각만으로도 세 계를 뒤바꿀 수 있지요.] 하드라는 지겨운 걸 참는다는 얼굴로 그런 시아를 바라보다 질문했다. "그럼, 죽은 자도 살릴 수 있는 거야?" [그건 불가능합니다.] "어째서?" [그건...이미 만들어진 규칙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계는 회전하고 있지만, 회 전의 법칙을 벗어나 시간과 공간을 뚫고 다시 같은 수레바퀴의 찰나에 그 육신을 부여하는 것은 불가합니다. 아무리 신이라고 하지만, 이미 죽음에 도 달한 자를 지나간 과거에 돌려놓는 것은 불가능하죠. 하지만 언령의 힘으로 그 반대는 가능하니까...] "시시한 힘이군." [그래, 내가 생각해도 시시한 힘이지.] 소리도 없는 걸음으로 하드라의 등뒤를 차지한 체 음흉한 웃음을 짓고 있는 이. 후닥닥 일어나서 시아의 투명한 몸 뒤로 숨으며 하드라는 바락 소리를 질렀 다. "어, 어떻게 여길 변태 비만 도롱뇽!" [호라? 시아 만으론 벅찰 것 같아서 내가 가르쳐 주려고 하는데 어째서 그 렇게 놀라지 우리 아기?] 하드라는 의심스런 눈으로 그를 바라보다 우물쭈물 입을 열었다. "어떻게 가르쳐 줄건데?" [대련이지 뭐겠니?] 마왕 이야기-54 마룡의 육아수첩-4 -사춘기, 반항기, 질풍노도의 시기.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것이 보통의 아이들 이라지만, 그에 비해 내 아기는 전혀 그런 게 없어서 행복한 걸까? 하기야 원래 성격이 뭐 같으니 설사 사춘기라고 해도 더 이상 나빠질 성격 이 없는 건 죄악이지만. 대련이랍시고 매일 같이 죽음을 넘나드는 수련을 해가고, 매일 밤 침대에서 당하기만 하며, 별별 고생을 다하면서도 꿋꿋이 살아가는 이. 인간 승리요, 의지와 정열의 승리가 바로 그것이 아니고 뭐겠는가? 정확한 시간을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드디어 궁극의 클래스인 10클래스를 완성하고 언령마법마저 깨닫고야 만-매일같이 구워지고 태워지고 얼려지고 지져지면 싫더라고 반드시 마스터하게 되리라-그였지만, 정작 아직도 수행 의 성과는 없는지 승리를 거두진 못하고 있었다. "억울해 억울해 억울해! 어째서 맨날 지기만 하는 거냐구!" [고정하시죠, 이미 마법의 영역에선 다다를 데가 없으신 하드라 님이십니 다.] "그래봤자 변태 비만 도롱뇽 한 마리도 못 이기는 게 무슨 마스터야? 아무 런 쓸모도 없잖아...씨이." 시아는 오늘도 대련에서 전격의 마법을 피하고 여유 있게 언령으로 자신의 몸에 보호막을 친 체 빙계의 아이스 스톰을 날려서 칸나를 제압하려고 했지 만, 보호막을 강제로 해체하고 비겁하게 마법이 아니라 육탄공격으로 허리 를 꺾어서-드롭 킥-으로 간단히 오늘도 상처 없이(?) 이겨버린 칸나 때문에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하드라를 달랬다. [정 그러시다면, 이제 육신을 단련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하드라 님은 육신 이 기존의 인간보다 훨씬 취약하시기 때문에 간단한 육탄공격에도 지는 것 입니다.] "절대로 싫어!" [어째서 입니까? 강함을 추구하시는 게 아니 었나요?] 하드라는 조금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우물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그런 거 하면, 피부도 거칠어지고 근육 때문에 보기도 흉해지고 땀에 질 척한 것도 싫고, 손도 별로 안 좋아지고...어쨌든 안 좋잖아!" 그거야 네가 여자여야 해당하는 상황 아냐. 라고 반박하고 싶어진다고 해도 그냥 입다물자, 클래스 10의 마스터에 언령 마법의 소유자이다. 괜히 개기면 무료 저승관광코스에 당첨될 지도 모른다. [왠지 이유가 부실하다고 생각됩니다만.] "...칸나가...그러니까..." 더 새빨갛게 되서는 우물댄다. 시아는 감을 잡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근육이라도 나오면 안아주지 않는다고 하셨던 모양이군요. 어릴 때부 터 당하게 되면 다 그렇게 되...취소하겠습니다. 제발 용서해 주세요. 다시는 그딴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하드라는 막 태우려던 시아의 서를 들고 북북 찢을 기세로 시아를 노려보았 다. 그러나, 왜 얼굴은 불타는 토마토가 되어 있는 것일까? [하드라 님.] "왜." [...라그나 칸트라이트나 시에 님을...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드라는 뺨을 글적대면서 잠시 자신의 상당히 길어서 허리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을 한번 쓰다듬었다. 그러다 고개를 휘휘 젖고는 뒤로 돌아서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모르겠어." [물어보고 싶은 게 사실 있었단다 우리 아기.] "뭔데?" [우리 아기는 여자가 될 거니 남자가 될 거니?] 우음, 하고 조금 생각해 보다가 하드라는 고심해서 입을 열었다. "역시, 남자가 될래." [어째서? 네 그 아름다운 외모로 남자가 된다니! 덩치만 크고 쓸모 없고 무 식한 생명체 따위는 되지 말아! 모름지기 아름다움이란 여자의 독점품이고 더군다나 넌 매일 밤 수고하는 내 고생을 생각해서라도 절대로 남자는 되면 안된단다 아가. 흑흑...] "그래서 남자가 되고 싶다는 거얏! 누가 변태 비만 도롱뇽에게 계속 깔릴 줄 알아!?" [후훗, 그래봤자 아직 날 이기지 못하면서 말만 거하구나 우리 아기...] 갑자기 주변에 음울하게 떠도는 기운에 움찔하면서 하드라는 뒤로 물러섰 다. 하지만 어느새 건축했는지 커다란 기둥이 그의 등에 받혔고, 칸나는 벌 써 그의 코앞까지 다가와 생긋생긋 웃고 있었다. 경계 경보가 살짝 떠오르면서 위험하다는 것이 온 몸으로 느껴지지만, 도망 치면 전치 8주고 안 도망치면 잠깐 아프고 끝나는데 왜 도망을 가겠는가? 하지만 본능을 이기지 못하고 살고자 도망치는 경우가 더 많았던 것은 부정 할 수 없겠지? "그..그래도 여자는 안 될 거야!" 최후의 발악을 한번하고 나자, 그때까지 착실하게(?) 기다리고 있던 칸나는 살짝 그의 뺨을 혀로 핥았다. 따스한 감촉에 움찔하면서 맞을까 감고 있던 눈을 뜨자, 칸나는 싱긋이 웃어 보이더니 곧장 10자 꺾기로 들어갔다. "아아아악! 이 변태 비만 도롱뇽!" [저번에 부러진 척추가 붙은지 얼마나 됐다고 그런 버릇없는 말투를 쓰니 우리 아기?] 그 나풀대는 옷으로 어떻게 저렇게 신속하게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지는 모 르겠지만 하드라의 한 손을 잡아서 자신의 손과 꼬이게 만들어 그대로 근육 을 손상시키며 팔을 뽑아 내고는, 그는 생글생글 웃으면서 팔을 다시 한번 세게 잡아 당겼다. "아야야얏! 아팟!" [아아, 비명소리마저 사랑스럽구나 우리 아기...] "으악! 소름 돋아 이 변태야!" 정말로 오돌토돌하게 돋아난 닭살에 하드라는 부르르 떨었다. 그의 웃음이 왜 저리도 사악해 보이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 하드라의 뇌리 에는 '죽음'이라는 글자가 선명히 각인되고 있었다. [...언제까지 착한 아가로 남아 있으면 좋으련만...] 우두둑! 뼈가 틀어져서 어깨에서 빠져 나오고, 비명을 지를 시간도 주지 않은 체 칸 나는 그대로 그의 어깨를 잡은 후 꽉 움켜쥐고 허리 아래, 정확히는 척추와 대퇴부를 연결하고 있는 부위를 걷어찼다. "아아아아악!" [이걸로 며칠 더 누워있어야 겠구나~우리아기~?] "이 새디스트 같으니라고! 악마야!" 기절하기 직전, 저 한마디를 남기는 그의 근성에 칭찬을 가하자. 칸나는 콕 콕 쓰러진 하드라를 찔러보다가 허공을 향해 중얼거렸다. [그렇다고 그 영혼이 추구하는 바를 내가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아 가야...] 마왕 이야기-55 마룡의 육아수첩-5 -여전히 버릇없고 말도 안 듣고 예절이라곤 조금도 없지만, 그래도 나름대 로 귀여운 맛이 있는 우리 아기. 이번에도 날 즐겁게 해주...고 있다. 이런 엉덩이에 뿔난 망아지 같으니라고! 애써서 뺨에까지 돋아나려고 하는 힘줄을 꾹 억누르면서 입을 열려고 하는 칸나 앞에서, 아주 건방진 태도로 고개를 까닥까닥하며 앉아 있었고 결국 칸나는 폭팔했다. [벌써 이번이 세 번이다! 세. 번! 대체 얼마나 해야 만족을 하겠니 아가!] "시비는 그쪽에서 걸었단 말이야!" [시비를 걸고 안 걸고 가 문제가 아니라 살아있는 존재가 어째서 망자의 땅 에 들어가 그 소란을 피우냔 거다! 못된 것도 정도가 있지 영혼을 파괴하면 어쩌겠다는 거냐! 카르마가 이번에도 지옥이 무너지면 널 생사부에 관계없 이 데려가겠다고 했단 말이다!] 건들건들하니 다리를 흔들며 다른 곳을 쳐다보던 하드라는 삐딱하게 대답했 다. "재주 있으면 데려가 보라고 그래. 그 바보 같은 신." [...아...가...너 지금...나랑 한번 또 해보겠다는 거냐!?] "내가 뭘 하던 칸나가 무슨 상관이야! 맨날 애 취급만 하고 툭하면 아가, 아 가...나도 강하다고! 그렇게 애 취급 할 것까진 없잖아!" [넌 아직 어려! 그리고 아무 것도 모르고! 보호받을 존재가 그런 엉뚱한 짓 을 해대다니, 거기다 명계 밖으로 나가기까지 하고...! 네가 얼마나 잘못했는 지 알기나 하고 그렇게 말하는 게냐!?] 발끈해서 하드라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늘 감고 있는 칸나의 눈에 미 미한 경련이 이는 것을 보고서, 그는 목소리를 높여서 외쳤다. "그럼 내가 언제까지 애라는 거야! 난 잘못한 거 없어! 보호받지 않아도 돼! 칸나야 말로 내가 무슨 생각하는지 알기나 하는 거냐고! 난 엄마가 아니야! 에리나쟈드가 아니라고! 난 물건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도대체...이런 뿔난 망아지 같으니라고!] 번쩍! 아아 결국...칸나도 이성의 끈을 상실하고 그대로 눈을 떴다. 본능적으로 하 드라는 한발짝 물러나며 몸의 모든 마력을 끌어올려 보호막을 펼쳤고, 순식 간에 그의 주변은 어둠으로 물들어 갔다. 그것이 어둠이라 불릴 수 있는 것 인지 모르겠지만... 살아있는 생명체 같은 어둠도 아니고 빛도 아닌 것. 어둡지만 동시에 밝고, 생명력 넘치지만 죽어있는 것. 상반되면서 상반되지 않는...어둠. [...이런 실수를...눈을 떠버렸군. 이게 다 아가 네 탓이다...끄응...] 왠지 상당히 한숨 섞인 목소리. 하드라는 목소리를 내려고 했지만,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명계는 실존하지 않는 두 개의 세계중 하나란 건 알고 있겠지 우리 아기. 네 덕분에 꿈이 깨졌으니 한동안 이러고 있어야 겠구나.] 말을 할 수 없으니 뭐라고 질문할 수도 반박할 수도 없었다. 아릿하게 흐려져 가는 머리를 추스르면서...겨우. [이것은 태초란다. 시간도 공간도 물질도, 네가 존재하고 있던 곳에 있던 것 은 아무 것도 없지. 말하고 싶으냐? 존재를 자각하고 싶으냐? 생각해라. 이 세계를. 네가 발 디딘 곳을 구성하는 모든 것을. 공간과, 그 공간 안에 존재 하는 모든 것을. 그리고 언어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상상해라, 그 리고 자각해라. 그리하면...] "...말 한번 하는데...그거 되게 힘드네 그거." [과연 우리 아기. 존재를 잊지 않았구나.] 그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면서 천천히 입을 여는 이. 눈을 뜨고 있는, 황금빛으로 아련하니 빛나고 있는 눈동자와 보랏빛 머리카 락을 흐드러지게 핀 자줏빛 수선 마냥 펼치고 있는 칸나의 모습을 보며 하 드라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오호라...이게 네가 가지고 있는 내 심상이냐?] "빈정대지마!" [빈정댄 건 아니란다 우리 아기.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처음부터 세계를 구 성해 볼까? 같이 보련?] "어차피 봐야 되면서 무슨 선심 쓰듯이...흥." [누가 그렇게 건방지게 말하라고 가르치드은 우리 아기?] 칸나는 어느새 그에게 다가와 일그러진 얼굴로 쿡쿡 하드라를 찔렀고 지지 않고 하드라도 외쳤다. "아파 이 변태비만 도롱뇽!" [아프라고 찔렀다! 요 맹랑한 것, 하여튼 누구한테 배웠는지 건방지기만 건 방져서는...] 혀를 차면서 칸나는 눈을 뜨고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는 혼돈을 바라보았 다. 처음엔 움직임이라 자각할 수 없었던, 그 무엇인가의 움직임이 시작되었 고, 하드라도 입을 다물고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아가, 넌 이 세상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니?]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고 하면 때릴 거야?" 퍽! 칸나는 어디서 꺼냈을 지 모를 손수건으로 손을 스윽스윽 닦으면서 중얼거 렸다. [꼭 사서 매를 벌어요 매를...] "아프잖아 이 변태 비만 도롱뇽아!" [도롱뇽은 양치류라 비늘이 없어요 아가.] "...큭!" 자신의 실수에 통감하면서 부르르 떠는 하드라였다. 건방지게 후훗, 하고 한 번 웃어 보인 후 천천히 앞으로 한발짝 내딪으며 입을 열었다. [우리 아기...절대자에 관해서 알고 있니? 이 세계를 창조한 자, 전능하며 동 시에 위대한 존재, 끝없는 영혼의 갈구를 바라보는 자, 끝이자 처음이고 시 작이자 종결이며 죽음이자 삶인, 모든 것인 자를.] 그의 손짓에 따라, 천천히 혼돈의 가운데서부터 무엇인가가 조금씩 움직이 기 시작했다. 편안한 웃음을 띄면서 칸나는 말을 이었다. [언제인지도 모를 아주 옛날일거야. 그때는 시간이란 것조차 없었으니까 말 이다. 절대자는 완전한 자, 즉 변화 없는 자이며, 모든 것이지. 생각해 봐라, 완전한 자가 무엇을 할 필요가 있을까? 그에겐 그 어떤 것도 필요치 않았단 다. 그야말로 절대적인 것이었지.] "그래서?" 하암, 하면서 지겨운 역사를 듣느니 그냥 무시한다고 치면서 눈을 하드라는 눈을 부볐고 칸나는 살짝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절대자는 자신이 없어. 그를 비출 수 있는 것도 없지. 자신의 모습을 자각 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무엇인가가 존재해야 하니까. 완전한 절대자 자신은 자각조차 불가능 한 거야. 완전하다는 것은 어떻게 말하면, 정지돼 있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하드라는 아에 자리에 앉아서는 칸나가 하는 양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의 손짓에 따라 때로는 빛이, 때로는 어둠이 모여들었다 혼돈 속으로 사라져 가고 있었고, 그는 눈을 감은 체 여유로운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잘 몰라. 하지만 절대자가 무엇인가를 했다는 것은 확실하지. 그는 자신을 자각하고 싶었던 거야, 완전한, 지겨움도 없고 고통도 없고 괴로움과 무료함도 없는, 그 모습에서 자신이란 것을 자각할 만한 것이 필요했지.]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군." [넌 아직 어리니까.] 칸나는 타이르듯이 그렇게 말하며 살짝 웃어 보여 주었다. 하드라는 볼이 불퉁해서는 그래그래 나 어리고 바보고 멍청하다, 따위를 중얼대면서 투덜 댔고 칸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래,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지. 그는 완전 대신 불완전을 선택했으니까. 그는...] 칸나는 팔을 활짝 벌렸다. [그래서 꿈을 꾸기 시작했지....] 그리고 찬연한 빛이 주변을 휘어 감았다. 아름답게 반짝이는, 투명하게 부서져 내리는 빛. 그 빛으로 인해 어둠과 빛 이 구별되었고, 혼돈은 그로서 사라졌다. 달콤하게, 너무도 따스하게, 자애롭 게 쓸어 내려와 감기는 빛의 감각에 하드라도 반사적으로 눈을 조금 내리깔 았다. [끝나지 않는 영원의 꿈을, 계속되는 찰나의 꿈을, 기나긴 세월동안 계속되 는 꿈을.] 그리고 부서져 내린 빛들은 찬란히 빛나면서 점점히 흩어지기 시작했다. 몰 리고, 쏠리고 제각기 자리를 잡아간다. 저도 모르게 부서져 흩어지는 별가루 들을 바라보며 하드라는 감탄성을 울렸다. "예뻐..." [아름답지 아가? 이게 그가 만든 세계란다. 허무하고...두렵고, 아무 것도 없 는 쓸쓸함뿐이지만, 이것이 그가 만들어 낸 유희의 장소지.] "유희라고?" 칸나는 말없이 손을 휘저었다. 마치 주변이 급하게 흘러가는 것만 같더니 아름답고 색색으로 빛나는 푸른빛의 구 앞에서 멈추었다. 구의 안에는, 마치 무엇인가가 흐르기라도 하듯이 하얀 기운들이 끊임없이 맥박하고 있었으며 빛에 반사돼 생명력을 뿜는 듯 했다. [이것이 절대자가 부여한 우리들의 세계지.] "...작아. 너무." [그래, 그의 세계 속에 속한 작은 우리들의 세계. 끝없이 펼쳐진, 몇 번일지 모르는 끝나지 않는 꿈을 위해 만들어진 그저 작은 세계, 공간. 우리는 이 작은 세계를 벗어날 수 없단다. 넓게, 감히 작은 세계 안에 존재하는 이가 다른 세계로 넘어가지 못하도록, 작은 세계 밖 외계는 아무 것도 없는 혼돈 그대로니까.] 하드라는 멍한 눈빛으로 그 푸른빛으로 반짝이는 공간을 바라보다 칸나를 바라보았다. "이 작고 여린 게...세계라고? 이게? 그럼 내가 발을 딪고 존재하던 그건 뭐 지? 그 광활하고 넓던...!" [모르겠니 아가?] "무엇을?" 칸나는 살짝 미소지었다. 마치, 귀여운 어린아이에게 자상하게 일러주는 아버지 같은 모습으로 그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우린 혼돈이야.] "...혼돈...이라고? 나랑? 칸나가? 말도 안돼, 혼돈이라는 건 아무 것도 없고, 이것저것 뒤섞인...그런 거잖아?" 칸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마치 알건 다 안다는 듯이. 하드라는 그런 그를 바라보며 '인정할 수 없다'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고 여 전히 알듯 모를 듯한 그 신비로운 미소를 띄고서는 하드라는 입을 열었다. [너는 그럼 네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니?] "...난...나는..." [인간? 네 아버지가 인간이었으니까? 아니면 마족? 네 어머니는 마족이었으 니까? 에리나쟈드가 마족이 아니었다는 것은 네가 더 잘 알고 있겠지?] 칸나는 하드라가 자신의 주변에 둘러놓은 방어막 안으로 손을 뻗어서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따스한 감촉에, 하드라는 겨우 마음이 놓이는 지 금방이라도 울듯한 그의 얼굴을 지웠다. [...그래, 넌 인간도 마족도 아니라 단지 혼돈일 뿐이지. 그리고 나도. 이 세 계도. 그의 꿈을 위해 하나의 세계를 유지해야만 하는 슬픈 운명을 지닌, 혼 돈들일 뿐이지...] "칸나...?" 그의 뺨을 쓰다듬어 주면서 칸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말해줄 때도 되었을 것 같아. 사랑하는 내 아기...] 화아....주변은 어느새 아까 그 자리로 돌아가고 있었다. 앉아 있던 의자, 빛 이 조금 적게 들어오는 채광량을 지닌 테라스. 늘어선 하얀 기둥들. 끊임없 이 반짝대는 주변을 떠도는 빛의 기운들. 테라스 너머로 넓게 펼쳐진 녹빛 들판... 몰랐었다. 이 모든 것이 만들어 낸 것이란 것을, 한바탕의 꿈이란 것을. [계속되는 우리들의 운명을 말이야.] 마왕 이야기-56 마룡의 육아수첩-6 -아아, 쭉 생각해 왔던 것이긴 하지만. 역시 우리 아기는 천재가 분명했다.(애 가진 이라면 누구나 하는 쓸모 없는 망상) "칸나아아..." [왜?] 호르륵, 하고 차를 마시면서 칸나는 싱글싱글 웃었고 하드라는 빠직해서는 찻잔을 부서져라 아래로 내리쳤다. "말해 준다구 해놓고 아까부터 왜 딴청이냐곳! 이 변태 비만 도롱...아니 도 마뱀아!" [느긋하게 차나 마시면서 즐기고 난 후에 생각해 보자꾸나, 왜 이럴 때일수 록 여유를 즐겨야 하지 않겠니?] "죽일 거야." 헤요요, 하면서 칸나는 '티타임을 즐길 줄 모르는 미개인이라니까...' 따위의 무척 뼈대있는 말을 중얼거렸고, 분노에 찬 하드라가 빙계 마법을 휘날리려 고 막 극악한 주문을 외우려고 할쯤에야 그는 차를 다 마시고 찻잔을 내려 놓았다. [어차피 너도 알겠지만, 이 세계는 몇 개로 이루어져 있는지 알고 있니?] "인계, 신계, 마계, 정령계, 명계, 용계, 지옥계, 무계." [어머나 그걸 다 외우다니 아빠는 기뻐요.] "닭살 돋으니까 잔말 빼고 빨리 말이나 해봐." 조금 투덜댄 후 칸나는 차 한잔을 더 따른 후 입을 열었다. [정확히는 신계, 마계, 명계, 무계. 이렇게 네 개의 계층만이 진짜 '계'란다.] "나머지는?" 칸나는 호륵하고 차를 한모금 마신 후, 우아하게 쿠키를 하나 집어서 오독 오독 씹고, 마침내 다시 히드레안이 열불 받힐 때까지 장난치다가 호호, 하 면서 입을 열었다. [왜 그 네 개만이 진짜 계층인지 알겠니?] "...'왕'이 있는 곳이군." [그래, 신계에는 신왕 라우레안 아인 아이네스 페인 소프 크리스. 마계에는 마신왕 에리나쟈드 드 이크립스가, 명계에는 나 명룡왕 라그나 칸트라이트 나 시에가, 마지막으로 무계에는 허공왕 룬이 있지.] 칸나는 말하고도 자기 스스로가 목이 마른지 헥헥 대면서 차를 한모금 더 삼켰다. 무슨 왕 이름 부르는데 거의 1분 가까이 걸릴까 하면서 스스로도 고민해 보았지만 해답은 없었다. [그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뭘까?] "...설마...그 네 존재가...혼돈?" 칸나는 감격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끄덕 거렸고 하드라는 조금 질린 표정 으로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면서 뭔가 생각에 빠진 듯이 보였다. 칸나는 생 글대면서 말했다. [그리고 그건, 너도 마찬가지지 에리나쟈드.] "난 엄마가 아니야." [네 자신이 잘 알고 있을텐데? 넌 에리나쟈드야. 그리고 동시에 아니기도 하지. 왜냐면 에리나쟈드는 '소멸'했으니까.] 칸나는 다시 한모금 차를 마시다가 살짝 찌푸렸다. 차가 너무 식어서 맛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다음에는 찻잔에도 보온의 마법을 걸어놔야지, 하면 서 중얼거리곤 그는 다시 새로 차를 따른 후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혼돈은 죽을 수 없어. 왜냐면 그것이 우리들의 본질이니까. 인간을 이루고 있는 것은 수십수만개도 넘는 무한한 개체지만, 우리를 이루는 것은 머리부 터 발끝까지, 그 피 한 조각까지 혼돈이니까. 그래서 우리는 죽을 수 없는 거야.] "그럼 이 모습은 뭐야! 혼돈이라면 아무 것도 없는 상태일 뿐 아니었어!?" [그러니까 우리는 혼돈이야. 네가 자각하고 있는 모습은 네가 만든 게 아니 라 내가 만든 거니까. 정확히는, 내가 존재를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에리나 쟈드를 위해 만들어준 헛것으로 이루어진 육신이지. 내 것과 마찬가지로.] "모르겠어, 나는..." 칸나는 홀짝, 하고 다시 채운 차를 마시면서 천천히 미소지었다. [지금부터, 너에게 들려줄게.] 아주 먼 옛날. 그러니까 절대자가 숨결을 불어넣어 이 아인디아를 창조했을 때, 세상은 흑 도 백도 아닌 그저 아무 것도 없는 텅빈 곳이었다. 그 곳에는 오직 네 개의 혼돈만이 자리잡고 있었다. 한 혼돈은 시간이라 했고, 한 혼돈은 파멸이라 했며, 한 혼돈은 중도라 했 고, 한 혼돈은 창생이라 했다.... 시간은 잠 깨지 않고 영원히 그 흐름에 묻혔으며, 창생은 혼돈은 유한하다 는 법칙을 깨고 스스로를 분할시켜 수 없는 존재들을 만들어 가기 시작했 다. 파멸은 존재들을 산산히 부수어 나갔고, 중도는 그 가운데서 어느 누가 승리하지 않도록 조용히 시간의 추를 옮기고 우연을 배치해 나갔다. 세상은 그렇게 빛과 어둠으로 나뉘고, 다시 빛과 어둠과 바람으로 나뉘고, 빛과 어둠과 바람이 결합하여 물과 불을 생성시키고. 그로 인해 빛과 어둠, 바람과 물과 불은 별빛을 만들어 내고, 별빛은 모여 천둥을 이뤄내어, 폭풍은 공포를 부르니, 세계가 완성되었다. "...그게 무슨 헛소린데?" [과연, 네 두뇌로는 비유라는 게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단다 우리 아 기.] "카악!" 칸나는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려고 하는 하드라의 입에 쿠키 두세개를 동시 에 넣어 버렸고 켁켁대는 그를 보여 여유롭게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혼돈의 객체는 모두 해 네 개, 현재 이 지상에 생명을 자처하는 것들은 혼돈에서 파생된, 어찌보면 꿈속의 꿈이라고 볼 수 있지.] 쪼르륵... 다시 차를 따르면서 칸나는 쿠키 접시에 손을 뻗었고, 접시가 비어있자 다 시 손을 움직여 몇 개의 과자를 더 생성시키더니, 만족한 듯이 미소 지으며 그것들을 집어먹었다. "어떻게 보면...혼돈은 신보다 상위의 존재가 되는 거야?" [그렇지. 물론 상위라고는 하지만 혼돈의 힘은 한정되 있으니까 말이다. 그 외의 영역에는 손을 댈 수가 없지.] "...칸나는....그럼 뭐지?" [나 말이니? 그건 비밀~] 호륵 하면서 차를 마저 마시는 칸나 앞에서 탁자를 뒤집으려고 했다가 그의 가차없는 쿠키 어택에 다시 한번 목에 걸린 쿠키와 사투를 벌이게 된 하드 라. 칸나는 피식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해답을 찾아보렴. 혼돈이 나는 혼돈이요, 하면서 정체를 밝히는 것도 너무 식상하잖니?] "이미 혼돈이라고 밝혔잖아!" [어머머, 소심하게스리 그런 거 가지고 일일이 따지면 밴댕이 소갈딱지란 소리 들어요 우리 아기~?] "...거기 서! 잡히면 죽엇!" 깔깔대면서 어느새 도망가기 시작한 칸나와 따라가는 하드라. 어쩌면 저렇게 정신연령 수준이 비슷하기도 할까? 뭐, 덕분에 정작 중요한 이야기는 얼렁뚱땅 마무리 되 버렸으니까 어쩔 수 없다고 치더라도 거기에 넘어가는 하드라는 과연 바보일까 천재일까? 그건...아무도 모르겠지 아마도...? 마왕 이야기-57 마룡의 육아수첩-7 -오늘은 오랜만에 룬이 내 계로 놀러왔다. 사실 특별히 우리 아기의 미래를 점치기 위해서 내가 부른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우웃...맘에 안 들어. 어째 서 내가 더 이쁜데 우리 아기는 룬을 더 좋아하는 거지? 훌쩍훌쩍...(평소 행실을 생각해 줘.) 보람찬 하루 일과, 아침에 일어나서 칸나와 한번 대련하고 잠시 누워서 치 료마법 받으면서 이를 부득부득 간 후에는 하기 싫지만 시아의 지시에 따라 고금의 서적을 모두 불러주는 대로 들어야 하고, 외우기 싫은 잡다한 것들 을 외우고 배우고... 가끔 '바깥'으로 놀러나가려고 하다가 걸려서 또 된통 당하고 혼나고...칸나 랑 하기 싫은 티타임을 보내고 그 뒤는 아무 일 없이 뒹구는 게 하드라의 속 편한(?) 일과였는데! 지금 그 '티타임' 시간에 의외의 인물이 그의 눈에 들어와 있었다. 칸나의 옆자리에, 옆자리 라기 보다는 옆에 위치한 쇼파 위에 가만히 앉아 서 찻잔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는 이. 이건 말이 필요 없었다. 아름답다. 다른 모든 수식어를 가져다 붙여서 장식하고 치장할 필요도 없이 그 한마디 만 끝나게 되는 그 외모. 짧지도 길지도 않은 어중간한 허니 블론드 빛의 금발머리, 연한 금빛이 떠도는 흰 피부. 피라도 베어져 나오지 않는 게 이상 한 붉은 색의, 더없이 붉은 입술. 크게 뜨여져 있는, 잔잔함이 배어져 나오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황금빛 눈 동자... 길게 드리워진 속눈썹도 금빛, 몸을 두르고 있는 반짝대면서 묘한 빛으로 이리저리 움직이는 금색 빛 옷... "...예...예쁘군." 자화자찬의 극을 달리는 하드라조차도 거의 보통(!)으로 여겨질 정도로 아 름다운 존재라면 정말 말 다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이 세상에서 나보다 아름다운 이는 없어!' 따위의 망발을 서슴치 않던 그였다. 하지만 이 순간에는 조금 고쳐서 '이 세상에서 두 번 째로 아름다워!'라고 하는 건 좀 자존심 상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뛰어넘어 그 존재는 아름다웠다. 저도 모르게 손을 뻗쳐서 하드라는 그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고, 칸나는 조금 눈살을 찌푸리며 그런 하드라의 손을 탁 쳐냈다. "아얏! 왜 쳐!" [닳아.] "치사하잖아!" 정작 그 상대는 대답도 없었다. 투덜대면서 한번 더 손을 내밀려고 했다가 이번엔 칸나에게 머리를 맞은 하 드라는 부루퉁해서는 자기 자리에 앉았고, 칸나는 그제야 만족한 듯이 끄덕 대며 그에게 차를 내주었다. "...그런데 누구야?" [누구 같니? 일번, 내 애인이다. 이번, 숨겨놓은 친아들이다. 삼번, 너랑 맞 선...] 퍽! 쨍그랑! 찻잔이 벽에 부딪치고 칸나는 오호호호, 하고 웃으면서 살짝 미소지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 존재가 입을 열었다. "저 녀석인가?" 목소리 또한 옥구슬 굴러가는 듯이 청명하고 아름다우며 또한 매혹적이어 라. 가히 천상의 미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라 불릴 만한 고고함이 배 어져 있었다. [그렇게 됐어. 좀 도와줘어 룬? 으응?] "룬...? 허공왕 룬!?" 하드라의 감탄성 섞인 놀라움의 말에, 룬은 그를 흘낏 보더니-그 모습마저 예술이요 신의 경지이자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입을 열었다. "...그래." "확실히 아름다워." 거의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대답. 룬은 만족한 듯이 눈을 한번 감았다 뜨고 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악! 저 뇌살적이도록 아름다운 모습! 제발 당신의 발 치에 한송이 꽃을 두는 것을 허락...이게 아니고. 칸나는 싱글싱글 웃으면서 멍해져 있는 하드라의 이마를 톡하고 건드렸다. [룬은 그렇게 계속 쳐다보는 거 싫어한단다 아가야. 조금은 이 아빠도 봐주 렴. 훌쩍훌쩍...] "시끄럿 이 변태 비만 도롱...아니 도마뱀아!" "...새 별명인가?" [아잉, 그렇게 너무 노골적으로 쳐다보면 부끄러워 룬~] 룬은 멍한 눈빛으로 그런 애교를 떨고 있는 엽기적인 칸나를 바라보다 고개 를 돌려 바닥을 쳐다보았다. "어울리는 본명이 될 것 같군." "저 변태랑 당신이 동류가 아닌 걸 감사해." "훗." 왠지...하드라와 룬 사이의 묘한 연대감 같은 것이 생성된 것 같다는 것은 착각일까? 확실히 외모만은 한번 쳐다보면 꿈에서도 잊을 수 없고 잊고 싶 어도 그 고고하고 우아하며 미의 극치에 다다른 완벽함 때문에 잊을 수 없 는 그였지만, 말투는 솔직히 영... [어째서 내가 변태라는 거니 아가? 사실 그런 걸로 치자면 룬이 훨씬 더...] 퍼억! 하드라는 순간적으로 눈을 의심했다. 천하의 칸나가 맞다니! 그것도 맞아서 처박히다니! 그가 혼자 감격하고 있건 말건 룬은 언제 때렸냐는 듯이 손을 회수해서는 다시 그 아름답고 고귀하고 새침한 아름다움을 한결 빛내며 눈 을 내리깔았다. [여전히 맵구나...끄응...] 하드라는 룬에게 권법을 배워보면 어떨까 진지하고 심각하게 고민해 보았고 칸나는 하드라에게 룬을 접근시키지 않은 것이 좋을까 역시 진지하게 생각 해 보았다. 그리고 오직 룬만이 그런 둘의 상념에서 벗어나 무념무상의 경 지를 헤메고 있었다. "...그런데 다른 계의 존재를 본 건 처음인 것 같은데. 어째서 룬을 데려온 거야 칸나?" [룬이 놀러온 거야.] "...그거나...그거나..." 빠직해서 한 대 때려주고 싶은 마음이 솔직히 드는 말투였지만, 하드라는 참아냈다. 정녕 인간승리! 어찌됐건 간에 룬은 여전히 조용히 자리에 앉아 있었고 칸나는 약간 부어서 빨갛게 된 뺨을 문지르며 입을 열었다. [룬에 관한 이야기는 시아에게 많이 들었겠지? 4개의 계층에 존재하는 왕에 관한 자료를 많이 보여주라고 했으니까.] "...미안, 잤어." 때리려고 주먹을 들어올리는 칸나를 그 아름다운 미모로 쳐다봄으로 봉쇄한 룬은 조용히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얼떨결에 칸나는 그것을 받아들었고, 하아...하고 한숨을 쉬더니 읽기 시작했다. [무계의 왕 룬. 성별 확인 불가, 나이 확인 불가, 단지 한번 보면 절대 잊을 수 없는 아름다움이라고 전해지며 일설에는 그를 능가하는 아름다움이란 존 재치 않는 다고 한다. 보통은 온통 금빛에 둘러싸인 모습으로 나타나며, 허 공왕, 허무의 왕, 잊혀진 시공의 왕, 어둠에 반대편에 선 금빛 그림자, 회색 빛을 등진 황금전령, 혼돈의 가운데 홀로 빛나는 자라 알려져 있으며 미래 를 예언하고 운명의 끈을 이어 주인에게 전달해 주는 자로 알려져 있다. 그 외의 능력은 미지수....] ...프로필이었던가? 룬은 고개를 끄덕끄덕 거리고 있었고 하드라도 질렸다는 듯이 입을 쩌억 벌 렸다. 칸나는 흐음, 하면서 그 종이를 하드라에게 건내 주었고 차를 한모금 마셨 다. [그리고 어린아이들에게 미래의 지표를 보여주는 이이기도 하지.] "난 애가 아니야!" 그러면서 종이를 잡고 투덜대며 보던 하드라는 또 한번 알 수 없는 한기에 몸을 떨어야 했다. 하얀 빈 종이 위에는 글씨라곤 조금도 없고, 고급스런 종이답게 반짝대는 광택만을 미묘하게 보일 뿐이었으니...일명 백지라고 불리는 종이는 그저 하 드라의 손에 쥐인체 자신의 본모습을 고수하고 있을 뿐이었다. ...역시 이해할 수 없어, 따위를 중얼대면서 하드라는 자신의 머리를 감싸쥐 고 자신만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같은 존재의 미래를 두 번 보라는 건가...?" 룬의 입에선 지루하다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고, 그를 지루하게 만드는 것 은 마치 천벌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그의 미모에도 고운 한자락의 수심이 걸렸다. 아악! 어찌 아름다운 그에게 그런 시련을 준단 말인가. 진정 보고 있는 이의 가슴에 아픔을 드리울 정도로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설득력 있었다. "...정말 예쁘군. 예쁜 것도 저 정도면 마력인 거 아니야?" 칸나도 대꾸했다. [몰랐니? 룬이 유명한 건 다 저만큼 아름답기 때문이지. 지금도 저 미모로 능력도 없으면서 다른 사람한테 빌붙어 산다니까.] "죽는다 둘 다." 룬의 말에 둘은 재빨리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적어도, 룬의 그 강력한 어퍼컷을 본 이상 하드라는 그가 능력 없다 는 말은 신봉하고 싶지 않았다. "미래를 봐준다고? 그럼...예언자인 거야?" [그건 아니야. 룬은 그냥 지표를 보여줄 뿐이니까. 솔직히 예언자 축에 낄 만큼 대단한 능력도 없거든.] "..." 퍼억! 빠직! 던진 다음 발로 밟아 버리는 것까지 완수한 룬은 손을 탁탁 털고는 다시 자 리에 앉았다. 저 고고한 아름다움의 이면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숨겨져 있었 던 것이다. 맞고 나서 끙끙대는 칸나를 내버려두고 룬은 하드라를 향해 손 을 내밀었다. "...같은 존재의 미래는 두 번 보지 않지만, 넌 특별이다." "언제 내가 본적이...으악!?" 룬은 스윽하고 손을 뻗어서 그대로 하드라의 몸 안으로 빨려들어 가듯이 손 을 집어넣었다. 뭔가 말하려고 하기도 전에 룬은 스르르 황금빛으로 화해서 하드라의 몸 안으로 빨려 들어갔고 칸나는 뭐가 좋은지 꺅꺅거리면서 그런 하드라를 바라보았다. "뭐가 좋아 이 변태 도마뱀아!?" 순간적으로 급해서 줄여 불렀지만 상관하지 않고 칸나는 오호호호, 하고 웃 으며 대답했다. [룬이 미래를 보는 모습은 굉장히 아름답거든. 그 자체가 추한 것이라곤 조 금도 모여있지 않은 아름다움의 결정체이기 때문이지만...] "그딴 게 중요한 거냐...윽!" 꿈틀하고 몸 안에서 뭔가가 뿜어져 나오려고 하자, 하드라는 반사적으로 억 누르고 말았다. 정신이 조금 아득해 지는 기분이 들었고, 이내 귓가에 속삭 이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근소근....누군가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 니면 일부러 들으라는 것 같기도 하지만...자신들의 이야기에 빠져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보이기도 했다. [...확실히 암흑성이야. 너무 검어.] [아니야 아니야, 빛을 발견할 수 있는 심안은 틔여 있는 걸?] [그렇지만 정작 본인이 너무 멍청해서 다 쓸모 없다구.] [아아, 그건 동감이야. 하지만 봐. 암흑성의 기운이 주변의 모든 별을 빨아 들이지만...오히려 그것이 반작용을 해서 없던 인연도 끌어오는군. 한 개체의 운명이 이리도 다를 수가 있나?] [아니야, 이 녀석은 다른 존재야. 그때 그 존재는 소멸했어-믿기지 않지만- 그래, 소멸했지.] 소근소근...시끄럽게 귀에다가 뭐라고 속삭여 대는지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 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선명하게 잘 들렸 다. [중요한 건 미래야. 과연 어떻게 될까? 반신을 찾을 수 있을까?] [그것보다 중요한 건 몸이지, 몸...제 본래 몸으로 돌아갈 생각이 전혀 없나 봐-] [소중한 걸 잃고 후회하면 돌아가게 될테지, 자신의 운명과는 상관없는 다 른 운명조차 빨아들여 버리지만, 소유하기도 전에 망가뜨려 버릴 거야] [아아, 너무 강한 기운이야. 누구의 운명도 함께 할 수 없군,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못견뎌 죽어버릴 지도-?] 이 날파리 같은 것들이... 하드라는 저도 모르게 웅웅대는 그 시끄럽고 왠지 짜증나는 말만 해대는 것 들에게 뭔가 말하고 싶었지만, 그들은 하드라의 인지가 미치지 않는 곳에 있어서 인지 그들은 하드라를 구석구석 관찰하며 시끄럽게 떠들어대지만, 자신의 말은 들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래, 불가능해. 사랑 받지 않으면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외로움인데, 정작 자신의 별에 휘말려 모든 것을 잃게 될 테니. 평생토록 사랑 받을 수는 없 을 거야.] [사랑할 수도 없을 거야. 보는 순간 그 누구든 사랑에 빠져 버리니, 정작 자 신은 사랑할 세도 없이 그 존재의 사랑에 빠져버리겠지. 안타까워. 조금만 불완전했더라도...] [겉이 모든 것은 아니지. 어리석은 녀석이야. 파멸의 가운데 서서 홀로 고통 받을 어리석은...너라면-?] [너라면-?] [어쩌면 디아라면 해결책을 줄지도 모르지-그녀의 강한 운명이라면 이 녀석 을 붙잡아 줄지도 모르지-] [그녀의 별은 너무 환해-다가가기도 전해 부서져 버릴 거야, 이런 녀석의 운명을 뒤바꿀 수 있는 반신이 될 수도 있지만...] [되지 않을 수도 있지.] 디아? 반신? 그 반신이란 단어가 묘하게 기대감으로 다가왔다. 주절주절 말많던 것들이 순간적으로 입을 꾹 다물고 뭔가 생각하는 듯 하자, 오히려 하드라 쪽이 훨 씬 초조해 졌다. 이내 그것들은 뭐가 결정한 것 같은지 속삭였다. [아인디아의 운명과 이 녀석의 운명이 겹치면 어떻게 될까?] [소용없어. 먼 훗날의 더 큰 빛이 녀석을 잠식해 버릴 테니까-] [그 빛을 쐬기 전에 작은 빛을 미리 쐬야 하지 않을까...?] [평생에 걸쳐 세 번 밖에 못 만나는 빛이야, 조금은 신중하게-] [그래 신중하게...] 대화의 결말은 거의 끝나가고 있는 것 같았다. 뭐야, 세 번? 내가 그렇게 사악하냐! 라고 외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그 날 파리들은 하드라의 의견 따위는 조금도 생각하고 있지 않은 것만 같았다. [행복하지 못할 거야.] [하지만 행복하게 해주겠지.] [그것도 행복이라 할 수 있을까?] [행복이길 바라진 않아, 하지만 그런 것조차 잊어버리겠지.] [불행하지도 않아, 그냥 한없이 외로울 뿐.] [슬픈 운명이라도 그게 너의 별이 지니고 있는 과업.] [한번 운명을 어기고, 대신 받는 대가.] [안돼....] [....안돼....] 뭐라는 거지? 점차점차 목소리는 줄어들고 있었다. 이런 젠장! 날파리면 목소리라도 커야 될 거 아냐! 잠깐!? [영원히 행복해 질 수 없을 거야...] 그리고 그것으로 한줄기 꿈같은 몽롱함을 사라졌다. "헉...!" [괜찮니 우리 아기? 룬, 좀 살살하지...] "운명이 이상한 건 녀석 탓." 찻잔을 잡고 만지작대고 있는 룬의 가차없이 날카로운 대답이었다. 마왕 이야기-58 마룡의 육아수첩-8 -언젠가 아주 먼 옛날, 그 아이가 했던 말이 문득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이것이 나의 운명...이라는. 시아는 천천히 자신의 몸을 움직이는 소년, 아니 청년을 바라보았다. 길게 늘어진 새카만 검은 머리카락, 잠행이라도 떠나려 하는 것인지 새카만, 몸에 거의 달라붙게 만들어진 옷을 입고 있는 이. 조그마한 돈주머니 하나 와, 몇 개의 아이템을 소리소문 없이 슬쩍슬쩍 챙기고 있는 모습은 영락없 는 도둑으로 착각할 만 했다. [뭐 하시는 건지 여쭤 보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막 물음을 던지겠으니 부디 대답해 주시길 진심으로 바라시면서, 뭐하십니 까?] "가출준비." 딱 잘라서 잘도 말한다. 시아는 한숨을 쉬면서 그런 하드라를 바라보았고, 그는 한번 씨익 웃어 보 여주더니 짐을 다 챙긴 것 같았다. "뭘 그렇게 이상하게 쳐다보는 거야 시아?" [적어도 당신의 어머니라 불리었던 분, 피어오르는 태초의 혼돈, 죽음과 함 께 나란히 선 자, 혼돈의 가운데 스스로 실을 자아내는 이라 불리었던 분은 적어도 그렇게 몰래 살금살금 도망가거나 하는 짓 따위는 결코 하지 않으셨 습니다.] "가출이란 원래 살금살금 도망가는 거야. 더군다나, 상대가 무지 강할 때는 더욱더!" [지금 그래서 칸나 님에게 이기지도 못하고 도망가는 것을 합리화시키고 있 는 자신이 무척이나 성격 나쁘고 신경질 날 정도로 멍청하다고 생각해 보신 적은 없으십니까?] "응." 하드라는 그렇게 말하며 짐을 확실히 챙겨서 단단히 자신의 몸에 부착시켰 다. 대부분이 무게가 없을 정도로 가벼운 것들인 것을 감안할 때, 그가 평소 에 얼마나 운동을 안 했는 지 알만했다. 마력과 체력은 반비례한다, 라고 누가 말했는지는 몰라도 그게 적어도 하드 라에게는 진실일 수 있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든다. 어쨌든 히드레안은 당당 하게 자신의 허리에 손을 얹으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시아 너 이르면 죽어." [...그렇게 말하지 않더라도 어차피 이르지는 않을 생각이었지만...정말 이렇 게 몰래 도망가실 겁니까? 들키기라도 하는 날에는...적어도 다리 부러지는 것 정도로 끝나진 않을 것 같다는 의견을 조심스레 피력하는 바입니다만.] "훗, 그 정도에 내가 도망을 포기할 것 같으냐." [도망가는 건 그렇게 당당하시면서 왜 정작 잠시 나갔다 들어오겠다는 말 한마디하는 게 싫어 도망가시는지 도저히 알 수 없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만...] 하드라는 끙끙대면서 머리카락을 단단히 묶어 내리고는, 도망갈 준비를 완 벽하게 마친 사람답게 씨익하고 웃었다. 그리곤 시아를 향해 까닥까닥 하면 서 한번 가벼이 손을 저어 보였다. "가출은 남자의 로망이야." [별로 그런걸 로망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데요, 거기다 가출은 청소년의 로망 이 아닐까요...] "그런가...? 어쨌든 잘 부탁해 시아!" [전 도망가는걸 돕고 싶지 않아요...] 끄응, 하면서 시아는 머리를 감싸쥐었지만 하드라는 무시하면서 마법진의 가운데에 섰다. 어제 밤새도록 고생하면서 겨우 틀을 유지해 놓은, 공간 이 동의 마법진. 이때까지는 약한 마법진을 썼기 때문에 가장 가까운 지옥계로나 겨우 전송 됐지만, 이번엔 정말 완벽한 마법진, 말 그대로 완벽한 마법진이기 때문에 어디든지 자유 워프가 가능한 것이었다! 물론, 엄청나게 많은 마력을 소모해야 하는 것은 별반 다름없지만. "일단 칸나가 깨더라도 내가 어디로 갔는지 말만 안 하면 될 거 아니야? 명 계만 벗어나면 마법따위 맘대로 쓸 수 있다구! 기척을 지우고 도망 다니면 되는 거지, 큭큭큭..." 잔인한 웃음을 지으면서 천천히 마법 주문을 외우는 그의 모습은 머리만 커 다란 괴물 외계인으로 보였다. 시아는 한숨을 푸욱 쉬고는 워프의 마법을 발동시키고 공간을 왜곡해 나가는 그를 보았다. 칸나는 차를 홀짝대다가 시아의 말에 대꾸했다. [호라, 가출을 했다구?] [네에...수행을 하고 돌아와서 꼭 이기겠다며...] [이게 무슨 청춘열혈소년물을 위한 얘기도 아니고...쯧쯧...수행해봤자 이길 수 없는 상대라는 것이 있는 것이지. 훗.] 그러면서 왜 정작 자신은 그 청춘열혈소년물에 나오는 라이벌의 전용 대사 를 하고 있는 것일까 칸나? 어쨌든 칸나는 다시 찻잔을 들어서 차를 한모금 마셨다. [떠날 거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불완전한 힘을 지닌 체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마계는 완전히 신났겠군. 도망쳤던 후계자가 다시 자기들 손으 로 굴러들어 왔으니까 말이야.] 씨익, 하고 그런 무시무시한 웃음을 지으면서 말하면 아무리 내용이 좋은 거라도 전혀 신뢰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그는 알까 모를까? 시아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하지만...이미 깨어진 계약인데...아무리 동일한 존재라 하더라도, 계약을 계속 유지한다는 건...불가능하지 않습니까?] [글세? 그 아이는 내가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을테니...괜히 나서서 도와준다 면, 날 미워할 지도 모르잖니?] 내심 지켜보는 것도 재밋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걸 누가 모를까봐서...칸나 는 속마음은 감춘 체 마법서를 위로했다. [걱정하지 마라, 연약하지 않은 존재다. 오히려 너무 강해서 문제인 존재니 까 신경 쓸 거 없단다. 마계의 모든 마족이 몰려오지 않는 이상은 무사하게 잘 놀다가 돌아올 거야. 그렇다고 생각하지?] [...자신이...혼돈이란 걸 자각하게 된다면?] [글세...] 호륵, 칸나는 다시 차를 한 모금 더 마셨다. 달작지근 한, 보온의 마법을 걸 어서 맛 또한 변하지 않은 차. 따스한 온기가 담겨져 있는 그 차를 물끄러 미 눈을 감은 체 바라보다, 그는 찻잔을 놓았다. 찻잔은 그대로 허공에 떠 있었고, 홍색으로 옅게 빛나는 액체만이 허공으로 떠올라 찰박거리는 유희를 만들고 있었다. 손이라도 내밀면 퐁, 하고 튀길 것 같은 감각. [그럼 내가 그 아이에게 뭐라고 해야하지? 넌 단순히 에리나쟈드가 기억을 봉해버리고 만든 임시의 인격체라고 할까? 자신이 에리나쟈드가 만든 단순 히 혼돈의 조각이고, 그 안에 담긴 인격은 원래 존재하지도 않는 쓸모 없는 거라고? 네 말처럼 혼돈인 걸 자각해서 다시 에리나쟈드로 돌아가, 혼돈 원 래의 임무를 행하라...그렇게 말할까?] 씁쓰레하게 웃으면서 칸나는 다시 물방울을 튀겼다. 포옹, 하고 떠오르는 감각과 함께 튀겨져 나온 홍차는 또르르 허공을 굴렀 다. [존재하지 않으면 그것은 있어선 안돼는 것이냐? 그렇게 친다면 우리도 절 대자의 꿈! 혼돈도 가장 처음의 꿈일 뿐, 수없이 많은 꿈들의 하나일 뿐...그 아이도 새로이 탄생한 꿈처럼 그저 존재할 수는 없는 것일까?] [하지만...이대로 계승식을 하지 않고, '표식'을 버리게 되면...마계는 멸망하 게 될 겁니다. 비록 명왕이신 라그나 칸트라이트나 시에 님께는 아무 것도 아니겠지만, 그들도 엄연한 생명체가 아닙니까?] [시아야, 꿈은 아릿하지...?] [네?] 얼떨결에 대답하자, 칸나는 비스듬히 쇼파에 기대며, 허공을 향해 고개를 꺾 었다. 닫힌 눈가가 이상스레 아파 온다. 답답함이라고 할 수 있는... 못내 이상한 자극. [꿈에선 고통이 없지? 아무리 격렬한 감각이라고 하더라도...꿈에선 곧 깨어 나고, 현실보다 중요한 것이 아니지? 아릿하고, 순서 없고, 엉망이지?] 그는 쓰게 웃으며 말을 마저 이었다. [우리는 그래서 쉽게 버릴 우리란 존재를 창조한 자를 저주하고, 우리가 창 조한 존재는 우릴 증오하고 배척한다, 그리고 우리의 창조물이 창조한 존재 는 그 존재를 경외하면서도 동시에 저주한다. 묘하지 않니?] 칸나는 허공에 뜬 강제력을 풀었다. 챙강, 하는 소리가 들리며 물이 바닥을 홍빛으로 물들였다. [꿈은...꿈꾸는 자를 사랑하지 않아...] [라그나...칸트라이트나 시에...님?] 애써서 이름을 말해보려 하지만, 칸나는 입을 열지 않았다.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왜이지? 왜 꿈꾸는 자는 꿈을 사랑하는 걸까?] 그의 눈가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인데, 거기에 자신은 없는데, 깨어나면 허무할 것이란 걸 알면서도, 왜 그 꿈을 사랑해 버리는 거지? 왜...난 그 아이를 다시 에리 나쟈드로 돌릴 수 없는 것일까...? 혹여 꿈이 현실이 될 거란 어리석은 기대 라도 하는 걸까?] [칸나 님!] 어두워지고 있었다. 인공으로 만들어진 풍경이지만, 세계는 어긋남 없이 빛의 조율에 따라 점차 어두워지고 있었다. 칸나는 눈가에 흘러내린 물을 닦아내며 살짝 미소 지었 다. [에리나쟈드는 그걸 알아냈지. 자신의 기억, 자신의 존재를 말살하는 것이... 가장 완전한 죽음이라는 것을. 설사 살아 있다해도, 그 육신이 남아 있다해 도, 그것이 사라지면 그건 삶이라고 할 수 없다는 걸...가장 늦게 자각했던 그 애가 먼저 안 거야.] 칸나는 다시 새 찻잔을 꺼내 차를 따르면서 여유로히 말을 끝맺었다. [난, 우리 아기가 그 운명을 이겨내고 그 존재하던 모습 그대로 돌아오길 바란단다.] 그러다 갑자기 칸나는 무슨 생각이 났는지 부드럽게 질문했다. [그보다 아까 우리 아기가 뭘 들고 갔다고 했니?] [네? 그...명계에 있는 보물의 1/2이 담겨져 있는 4차원 주머니와, '토울'-스 스로 보호하는 검-과, 몽환향과, 이계의 붉은 천...또 스크롤 마법서 다섯 권 정도...입니다만?] ...명계에 존재하는 보물의 반이 하드라의 손에 들어간 것이다. 특히, 마력구 는 최강의 물품만 깨끗이 도둑맞은 이 황당한 사태는... [...으...당장 가서 마계에다 연락해! 잡아죽이던 말던 난 상관 안 한다고! 아 니, 죽이면 내가 상금도 준다고 해! 위치도 알려줘! 이 엉덩이에 뿔난 망아 지 같은 녀석! 들어오기만 해봐라!] [지, 진정하십시오 칸나님!] 하드라... 집에 들어오면 이제 죽을 각오를 해야하는 이 무시무시한 상황에서...그는 과연 훌륭히 여행을 마칠 것인가? 그걸 누가 알겠나, 그냥 그러려니 해야지. 마왕 이야기-59 에필로그epilogue 온통 피투성이가 된, 길고 긴 검은 머리카락.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붉게 충혈 되다 못해 파열되어 버릴 것 같은, 튀겨져 서 온통 피 얼룩이 진 새하얀 옷. 목이 부었는 지 목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하면서, 그 어리디 어린아이는 서 럽게 울고 있었다. "칸나...칸나...으흑...으흐흑..." 매달려서 서러운 울음을 터트리는 그 아이를, 칸나는 겨우 감싸줄 수 있었 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체...그저 울기만 하는, 그를 토닥일 수밖엔 없었 다. "...난...왜 존재해야 하는 거지...? 아무도 없어...날 사랑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단 말이야...왜...왜! 왜 나만!" [우리 아기...착하지...편히 잠들면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을 거란다.] 덜덜 떨면서 안겨서 그저 울고만 있는, 뭔가가 나가 버린 듯한 이. 맑고 투 명했던 검은 눈동자엔 이제 아무 것도 비치지 않았다. 그것은 심연, 무엇이든지 빨아들이는 처연할 정도로 어두운 심연. "죽였어...내가 죽인 거라고...왜 하필 나였는데? 내가 아니면 안됐어...? 난..." [하드라...그러지 말렴...] 큭큭큭, 하고 억눌린 목소리가 그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한껏 고개를 젖히 면서 그의 입에선 한기 어린, 누군가를 피맺히도록 저주하는 듯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난 이제 하드라가 아니야...나는..." 흘러내리는 것은 눈물. 갈라진 목소리로 입을 여는 그 존재. "나는...히드레안, 혼돈의 가운데 서서 세계를 관망하는 자.... 검은 설빙의 마 왕 히드레안. 누구에게도 사랑 받을 수 없는 존재. 스스로 파멸시킨 존재... 빌어먹을! 난 이제 어린애가 아니라고!" 칸나는 그를 감싸안고 그저 토닥댈 뿐, 더 이상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칸나...가지마...제발...너라도...나한테 남은 건 너 뿐이잖아...? 이 이상...이 이 상...어떻게 되버리면...더이상 난 존재하지 않는 거지? 싫어...싫어...난 살고 싶어..." [그래, 내가 보호해 줄테니...이젠 울지말렴 우리 아기. 여긴 괜찮단다. 그러 니까 울지 말아야지...? 응?] 흐느끼고 있는 아이. 그가 검은 설빙의 마왕이라고 불리게 되는 자. 히드레안이었다. ============================================================= ======= 왜 그는 행복할 수 없을까요? 그건 작가 성격이 싸가지 없어서라고 어떤 분들은 추측할 지도 모릅니다. ㅡ_ㅡ; 또는 히드레안이 어떻게 조금이라도 더 괴롭힘을 당하길 바라는 이들이 많 기 때문이라는 어설픈 변명도 있을 지 모릅니다.(하하하하하하...) 또는 작가가 언 해피 신봉자라서 그럴 지도 모른다는.....(퍼버벅! 헉, 돌 날 라 온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합니다. 이번 편을 쓰면서 미치도록 힘들었다는 거 하나는...ㅡ_ㅡ; 히드레안 하나도 모자라서 성격 파탄자 왕들이 대거로...쿨럭.... 네 명 다 하나같이 이상한데 셋이나....쿨럭쿨럭.... 그럼....다음 편, '엽기적인 그녀'도 많은 사랑 해주시길...(아마 그녀를 이미 눈치채신 분들도 적잖아 있을 겁니다. 씨익....) ============================================================= ======= 마왕 이야기-60 [4편 종결 기념회] 펜릴 : 안녕하세요, 반응이 너무 좋아서 그만 4편 종결 후기도 쓰게 되는군 요. -_-v 미노 : 이봐...이번 편에선 내가 한번도 없잖아! 저번 후기에서 한말은 다 거 짓말 아냐!? 펜릴 : 시끄러워, 어차피 넌 히드레안 님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단역일 뿐이 야 미노군. 히드레안 : 당연한 것을, 훗...그보다 벌써 5화까지인가? 몇 챕터까지 진행할 생각이지 작가? 펜릴 : 아, 아무래도 이건 외전이니까 외전 격의 이야기들을 잔뜩 집어넣고, 나중에 본편에서 가끔 '외전을 봐주세요~'코멘트로 쓸 꺼에요. +_+ 외전의 광고도 하고 본편의 인지도도 늘릴 수 있는 말 그대로의 윈&윈 전략. 히드레안 : 과연. 섬뜩할 정도의 상술이군 그래. 펜릴 : 물론이죠. 만약 게임화 된다면 어드벤쳐 물로 해서 3X3 아이즈 게임 처럼 영화 형식으로 진행하는 것까지 생각해 히드레안 님의 작화 및 게임용 시나리오도 짜놨다구요. 미노 : 이...이봐, 당신 대체 어디까지 설정해 놓은 거야? 펜릴 : 훗, 캐릭터 성을 최대한으로 살리기 위해서 각 캐릭터의 시트 및 애 용 악세사리까지 준비해 놓았지. 캐릭터 상품으로도 충분한 데다 평소 자주 입는 옷도 정해 놨기 때문에 각종 캐릭터로도 쓸 수 있다는 말씀, 표지 디 자인도 있어! +_+ 미노 : 그거 다 어디다 쓰게! 펜릴 : 뭐긴 뭐냐. 나중에 마왕 이야기를 동인지로 낼 때 사줄 사람을 한명 이라도 늘리기 위한 발악이지. ㅡㅡ+ 미노 : 그...그런 말도 안돼는!! 펜릴 : 아, 엽서용 리프 스케치도 있어~♡ 여기 미노를 묶어서 히드레안 님 이 선물로 받는... 미노 : 으악! 그만해!! 뭐하는 짓이야! 펜릴 : 난 돈이 필요할 뿐! 오호호호홋! 내년 아카 때 이거 팔아서 한달 생 활비를 벌테야! 히드레안 : 그렇다면 동인지에는 본 편에서 나오지 않은 각종 내용들도 실 을 작정인가? 펜릴 : 네, 특히 18금만 골라내서....+_+ 히드레안 : 과연 너다워 작가. 그 끈질긴 상술과 비열한 권모술수에는 높은 점수를 주마. 펜릴 : 아 미노, 이거 봐 바라~뺏지랑 열쇠고리도 있어. 미노 : 으악! 그만해 이 상술작가 같으니라고!!! ;; 펜릴 : 오호호호호호! 왜 나한테 따지고 그래! 히드레안 : 그보다 작가, 궁금한 게 있는데. 펜릴 : 뭐든지 말씀해 주세요 히드레안 님.(히죽) 히드레안 : 내가 당하길 바라는 독자가 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는 사실이 어떻게 된거냐? 펜릴 : 물론 미노 군이 히드레안 님을 당당히 덮쳐주길 바라는 독자가 늘고 있지만(휘번뜩) 미노 : ...내가 왜 저 변태색골대마왕을 덮쳐서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해줘야 하는데!? 펜릴 : 아니, 쓰면 나야 즐겁거든. 미노 : 으악! 말도 안돼! 절대로 싫어! 히드레안 : 나야 뭐 언제라도 벗을 준비가 되어 있지. 원한다면 반 누드로... 펜릴 : 오옷! 바로 그 정신입니다 히드레안 님! 미노 : 안돼!!!! 날 거기다 끼워 맞추지 말란 말이야! 펜릴 : 쪼짠하게 굴지 말자구 미노~+_+ 독자들이 원하는 거야, 이 기회가 아니면 언제... 미노 : 청소년 주제에 이상한 말하지 말라구 작가! 난 저딴 변태를 덮칠 생 각 없어! 펜릴 : 오호호호호호, 작가가 원하면 불가능은 없다. 히드레안 : 물론 이 몸이 협조하면 당연히 더 불가능한 것은 없지. 미노 : 안돼! 싫다고!!!! 펜릴 : 자아~좌담회 문 닫습니다~ 마왕 이야기-61 엽기적인 그녀-1 인연(人煙)이라고 불리는 것이 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 그것으로 그들이 마음에 서로의 모습을 받아들이 는 것, 그것을 연이라 부른다. 연이란 가장자리를 가르켜 이른다. 인이란 사람을 가르켜 말한다. 인연이란 사람의 가장자리, 즉 서로 닫는 부분이 겹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운명(運命)이라 불리는 것이 있다. 명이란 수레바퀴처럼 휘도는 것이고, 사람의 명이란 의레 하늘이 부여한 것 이다. 운이란 수레바퀴, 돌아감, 천체의 움직임, 하늘의 의지를 뜻한다. 명이란 인간의 목숨, 곧 삶을 말한다. 운명이란 계속되는 반복적으로 이루어져 있는 인간의 삶의 일환, 곧 천체의 거대한 움직임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연은 운명에 종속된 것일까, 아니면... ...운명이 인연에 종속된 것일까? 서로의 가장자리를 인식하고, 겉으로 드러난 것을 받아 들였다고 하더라도, 그 본질을 꿰뚫지 못한다면? 그것은 인연일수도 운명일 수도 있다.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일 수도... 따스한 햇살. 기분 좋게 보송보송한, 마치 솜털 같은 잔디. 녹색으로 반짝이는 잔디 위에 누우면, 하늘을 쭉 가로 질러가는 구름이 보인다. 나무 그늘의 서늘함과 딱 조화롭게 느껴지는 바람의 살랑대는 유혹. 낮잠을 자기엔 너무나도 좋은 날씨, 그 나른한 오후를 넘어가는 오전에 걸 린, 미묘한 시간에 잠드는 느낌은 누가 뭐라고 해도 행복감으로 충만해서 절대 빼앗길 수 없다. "거기 서라! 아니 거기 서십시오! 아니 거기서 제발 서주십시오!" "생포만 하면 어디 한군데 부러져도 상관없다! 이렇게 된 거 육탄돌격이다!" "대장 님! 하지만 어떻게...!" ...비록 조금 시끄럽기는 해도, 낮잠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애교애교, 약 과! 낙관적으로 생각하자면 세상에 안 시끄러운 데가 어딨을까? 그냥 그러려니 하고 푹 자는 게 몸에도 좋고 인생에도 좋은 법. "젠장! 지금 눈에 보이는 게 있나 제군들! 3년치 예산이 눈앞에서 사라지는 순간이란 말이다! 월급을 위해서라도 돌진이다!" "으읏! 3년치란 말입니까!" "이렇게 되면 그물을 포기! 검을 들어라!" 우당탕하고 뭔가 몰려들고, 이리저리 사람들이 난무해 대지만, 그래도 누가 뭐라고 해도 그냥 입 다물고 있는 것이 최고였다. 아무리 시끄러워도 아주 조금의 시간만 투자하면 곧 사라지는 것이 소음이라는 거니까. 꾹 참으며, 낮잠을 위해 눈을 감자 시원한 바람이 코끝을 간지럽혔다. "크억! 다...당했다! 쿨럭...날 넘고서라도 무슨 일이 있더라도 월급만은!" "크윽, 네 희생은 잊지 않겠다! 제군들이여, 검을 들어라! 우리들의 어깨에 3년치 월급과 보너스가...아, 아니! 이 신성령(神聖嶺)과 모든 나라의 미래가 걸려있는 것이다!" "와아아아아! 월급! 보너스! 나가자!" 아무리 시끄러워도 인내심에는 반드시 보답이 있는... "크아아아아악! 이대로 죽을 순 없다! 배수의 진을 쳐!" 있는... "대장님! 1부대가 당했습니다! 제 3부대도 타격이...쿨럭! 뒤...뒤를..." "신이시여! 정녕 저희에게서 월급을 뺏어 가시렵니까!?" ...있는 거라고 누가 말한 거야!! 빠직하면서 낮잠을 방해받은 이는 벌떡 하고 일어났다. 한 무리의 군대쯤으 로 보이는 사람들과, 자욱한 먼지를 배경으로 회색빛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남성이 대치하고 있었다. '언뜻 보기에도' 군대 쪽의 열세가 처절하리 만큼 보이고 있었고, 회색 머리 카락을 높히 묶고 휘날리고 있는 이는 '언뜻 보기에도' 자신만만해 보였다. 그러나, 낮잠을 방해받은 이에게 '언뜻 보기에도' 따위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는 법. 눈에 뵈는 게 없는 상태에서 그는 손을 허공으로 지켜 올린 체 격렬한 주문 을 외우기 시작했다. [나의 의지로 명하노니, 태초에 영원하리라 여겨졌던 차가운 광풍의 바람 아...! 내가 부르나니 그 천둥치던 날 밤의 차가운 설원을 재현하여라! 천지 의 조화를 어기는 광포한 힘이여, 너의 이름을 내가 부르나니 너는 나의 말 에 따를 지어다, 이름 받지 않은 자의 이름으로 말하노니 나에게 대적하는 자들을 쓸어라! 그랜드 아이스 스톰!] 우우우우웅! 찬 기운이 몰아치듯이 사방으로 몰려들어 주변을 잠식했다. 그의 손에 모여 든 한기가 이내 폭풍 치듯이 사방을 휘감아 버리더니 차가운 결정들이 사방 을 매꾸기 시작했다. 바람도, 풀도, 대지도, 모든 것이 그의 손끝에서 일어난 역사 하나로 물들어 버린다. 병사들을 모조리 얼려 버린 후 그는 후우, 하면서 자신의 검고 길디긴 머리 카락을 스윽하고 쓸어 넘겼다. "누군지 몰라도 도와줘서 고맙군." "뭐 이 정도를 가지고..." 별거 아니라는 듯이 깝죽대며 손을 흔들어 주려다, 순간적으로 흠칫 하면서 그는 눈을 들어서 그 '광풍'의 틈에서 살아 나온 이를 보았다. 회색 머리카 락, 회색의 눈동자, 언뜻 보기엔 멍하기도...또 다르게 보기엔 차가워 보이기 도 하는 얼굴. 밝은 회색의 사제복 같은 것을 입고 있지만, '언뜻 보기에도' 길게 올려 묶어서 자유분방하게 흩어진 회색 머리카락에서 봐도 전혀 사제 답지는 않았다. "...어...어떻게 살아남은 거지?" 너무도 황당해서 되묻자, 그는 손가락을 까닥까닥 대더니 대꾸해 주었다. "마무리가 약했어 베이비." "....베이...비?" 느끼함에 몸서리치며 순간적으로 구토증을 일으킬 뻔한 긴 흑발에 검은 눈 동자를 지닌 미소년이면서 미청년 같은 이. 그는 뒤를 돌아보면서 얼어버린 병사들을 힐끗 훑어보더니 다시 소년을 바라보았다. "따라와." "그럴 필요는 없을텐데. 저놈들도 모두 얼어버렸고 말이야." 쩌적... 들려오는 그 효과음에 저도 모르게 몸서리치면서 눈을 크게 뜨는 소년. 얼음이 녹아 내리는, 아니 얼음이 부숴 지면서 그 안에서 함께 얼어 산산히 부숴졌어야 분명한 인간이, 그 절대 영도에서 피 한방울 안 얼어붙은 듯이 멀쩡하게 살아 나오는 공포스러운 장면을 보면서 소년은 할말을 잃었다. 빙계 계열 최강의 대인공격 마법인 그랜드 아이스 스톰. 맞는 순간 뼈까지 얼어붙어 순식간에 절대영도 공간에서 산 체로 산화되어버린다는, 얼음의 마왕 쉰의 주특기 마법. 그런 마법에서 저렇게 뻔뻔스레 기어 나올 수 있는 인간이 존재했던 것인 가? "이 정도로 불타는 월급에 대한 열정을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얼 음따윈 무섭지 않다! 돌격만이 있을 뿐이다!" "...대장님, 저기...근데 시그널은 여전히 얼었는데요." "...근성부족이닷! 뜨거운 물 부어!" "옙! 여기서 물 끓일까요?!" 완전히 무방비 상태로 멍해져서 활발히 움직이는 그들을 보며 소년은 질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저...저게 사람이냐...?" "훗, 제법 식견이 있군. 대아인디아 가출 방어용 특수 기갑부대 캡틴 이하 일 천명. 주 원동력은 월급이며 아인디아가 나타나는 곳에는 언제라도 랜덤 으로 24시간 안에 반드시 등장하며 그 무시무시한 바퀴벌레를 능가하는 생 명력은 전 종족을 통틀어서 유래가 없다고 전해지지. 기타 능력은 별볼일 없지만 체력만은 무한대 급이고 어떤 경우라도 살아남는 끈질긴 저력으로 유명한 판단불가의 신종 몬스터야." 아주 자세하고 친절한, 대체 왜 해주는 건지 알 수 없는 쓸모 없는 설명에 소년은 얼떨결에 대꾸했다. "...그거 진짜야?" "그거야 물론 거짓말. 믿는 네 놈이 바보지." ...어쩐지 대책이 없어지는 성격이었다. 쩌억하고 입을 벌린 소년의 손을 끌어당기면서 회색머리의 남자는 그에게 일침을 가했다. "너도 날 도왔으니 지명 수배범이다. 따라와." "...어째서 따라가야 돼는..." "쯧쯧, 세상을 잘 모르는군 베이비.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 질질 끌려가다 이내 탁탁대면서 발걸음이 빨라지고, 둘은 손을 잡은 체 거 리 쪽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병사들은 아직 미 해동된 시그널 대원을 위해 물을 끓여서 붓다가 그를 삶은 문어로 만들게 되는 약간의 소동이 있 은 후, 그들은 다시 비명을 울렸다. "으아아악! 놓치면 안 다! 빨리 찾아라!" "벌써 도망갔습니다 대장님!" "...크억! 이렇게 되면 아인디아 님의 수호기사단인 그랜드 소울 나이트인 우 리가 무슨 명목으로 신성령으로 돌아가겠나! 돌진이다 제군드을! 월급을 위 해서라도!" ...대 아인디아 가출 방어용 기갑부대가 아니라 아인디아 수호기사단인 그랜 드 소울 나이트였나 보다. 하지만 저렇게 쪼잔하게 스리 월급에 집착하면서 죄 없는 미소년을 쫓는 그들에게 내려질 것은 신의 천벌 뿐! 달아나면서 질질 끌려가던 소년 쪽이 먼저 입을 열었다. "너...헉헉...이름이!?" "아인. 그쪽은 꼬마?" "꼬마가 아니라 하드라야!" "풋." (※하드라-꼬마 악마, 장난꾸러기, 작은 심연) "이 자식! 웃지마!" 실없는 웃음을 터트리면서 그는 하드라의 손을 더 강하게 끌어당겼다. 인연의 시작, 그리고 운명의 반복이었다. 마왕 이야기-62 엽기적인 그녀-2 헥헥대면서 뒷골목에 기대서 숨을 고르는 그를 보며, 회색 빛 머리를 정 가 운데 올려 묶어 엉덩이 근처까지 찰랑되도록 해 놓은 미청년, 즉 아인은 그 런 하드라를 보며 쯧쯧하고 혀를 찼다. "헥...헥...누구 죽일 작정이었어!? 난 운동이란 걸 해본 적이 없단 말이야!" "쯧쯧쯧, 정신은 5세. 육체는 60세. 행동은 10세로군." "...이, 이상한 헛소리 하지맛!" 너무도 맞는 말이어서 순간적으로 앞에 망설여 버린 것은 비밀. 그가 바락바락 신경질 내거나 말거나, 뚱한 표정을 지은 체 아인은 골목 밖 을 주시하고 있었다. 겨우 숨을 고르고 하드라는 그를 찬찬히 살펴보기 시 작했다. 키는 170정도, 탄탄하게 잘 받혀진 골격과 언뜻 보기에도 선이 단정하고 강 건해 보이는 외모. 결이 그리 좋다고 볼 수 없는, 사자갈기 같이 흐트러져 있는 꽤 긴 편인 회색 머리는 앞머리 몇 가닥을 남겨 놓고 머리 한가운데 고정시켜서 아래로 흐트러지게 내버려두고 있었는데, 끝이 엉덩이 근처에서 살랑댈 정도였다. 같은 빛으로 보이는, 그렇지만 짙은 딥 그레이의 눈동자는 눈꼬리가 조금 처져서 멍해 보이기도 어떻게 보면 날카롭게 보이기도 했지만, 나름대로 호 감 가는 얼굴이었다. 선이 단정하면서 길게 뻗어난, 조금 고집 있어 보이는 콧날과 턱선. 입고 있는 것은 회색 빛의 사제복이었지만, 겉옷을 하나 더 두르고, 안쪽은 조금 진한 색으로 갖춰 입어서 사제 복 같지는 않았다. 길게 끌리지 않도록 로브는 무릎쯤에서 멈추고, 그 아래는 바지를 입고 있는 데서 보듯이 성격 도 활동적인 편에 속하는 것 같았다. 장신구라곤 일체 없는 몸. 거치적거리는 것을 싫어하고 대범하지만, 조금 작은 일에는 세심하게 신경 을 못 기울이는 성격이 그대로 반영되고 있는 그의 모습에서 알 수 없는 기 품 같은 것도 느껴졌지만, 신경 쓸 건 아니었다. "반했나 보군 꼬마. 하기야 쉽게 볼만한 미모는 아니니 마음껏 감상해 두도 록." ...자신보다 훨씬 철면피에다 자화자찬을 더 잘하는 인간이 있다는 사실이 충격으로 와 다았는지 하드라는 하? 하고 입을 벌린 체 멍청하니 그를 쳐다 보았다. 후후훗, 하면서 그는 결정타를 날렸다. "그렇게 넋 나간 표정 짓지 말라고 베이비." "...이..." 콰아아앙! 얼음의 마기가 한꺼번에 폭팔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동시에 미성이라고 느 껴지는 비명도 울려 퍼졌다. "나르시즘이 극에 다다른 변태 자식아!" ...자기도 만만찮으면서 너무 그렇게 과민 반응할 필요는 없을텐데. 가볍게 마법을 피한 아인은 씩씩대는 하드라의 이마를 손끝으로 톡하고 튕 기곤 고개를 까닥, 바깥쪽으로 움직였다. "따라와, 배고플텐데." "어째서 내가 너 따위의 이상한 놈에게 끌려 다녀야 해!?" "내가 잘났으니까." 그리고 하드라는 그 말 한마디로 인해 정신에 심각한 타격을 입고 굳어버렸 다. 굳어버린 하드라를 질질 끌고서, 가까운 음식점으로 납치하고 있는 아인. 어 린아이 유괴 및 납치 미수 등등으로 제소될지도 모르지만, 저렇게 굳어버린 사람을 길거리에 그냥 세워두기도 너무 심하지 않겠는가? 어쨌든 식당까지 끌려와서, 멋대로 시킨 요리들을 앞에 두고, 하드라는 멍청 히 앉아 있었다. 뜨거운 종류의 요리는 모두 없고 하나같이 서늘하다고 알 려진 음식들. 샤베트에서 아이스크림까지의 디저트는 다 봐줄 수 있지만, 차갑게 식힌 캐 비어라든가, 무화과 육즙을 끼얹은 얇게 자른 오리 안 날개 살 요리, 기타등 등의 음식들을 바라보면서, 그는 당당히 앉아서 자신을 쳐다보는 남자를 향 해 약간의 짜증을 느꼈다. "...사실...음식 가지고 특별히 따질 생각도 없고 먹을 생각도 없지만...그래도, 굳이 따지라고 말한다면...어째서 모두 고기냐고!" "야채는 싫으니까. 너무 그렇게 과민반응 할 거 없이 즐겁게 먹자고." 당당하게도 말하면서, 캐비어 알을 한 숫가락 입에 넣고는 오독오독 씹어 먹으며 그는 하드라의 말을 무시했다. 기가 차서 말도 안나온다는 듯이, 그 는 끄응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더 이상 상관하고 싶지 않으니까, 그럼 이만..." 콰당! 날개 살을 찢어서 입으로 가져가며, 그는 바닥에 널부러져서 처참한 모습을 구가하고 있는 하드라를 향해 한마디했다. "먹고 가지 그래?" "이 자식! 감히 발을 걸었겠다!" "이래서 어린애들은 안 된다니까, 그런 걸 여유롭게 넘기질 못하다니." ...여유로움 탓하기 전에 먼저 발을 건 사람이 잘못이 아닐까? 아인은 설레설레 고개를 저으며 시원하게 만들어진 레모네이드를 한잔 마셨 다. 하드라는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서는 손에 마기를 모으기 시작했다. "이 날개 살 맛있어." 주문을 외우려는 입에 음식을 집어넣으면? ....쯧, 뭘 질문하는가. 당연히 강하게 호흡을 하려고 숨을 들이마시던 상태였 으니까 기도가 막혀 죽음으로... .......죽음으로? "이런...그렇게 쉽게 죽을 거라면 재산 양도쯤은 해두고 죽어야 덜 억울할텐 데." 숨이 막혀서 죽기 직전으로 향하는 사람에게 나름대로 친절하게 말하고 있 는 아인이었다. 순간 막 저승으로 향하는 특별칸 관광 티켓을 잡을 뻔했던 하드라는 켁켁대 면서 목에 걸린 날개 살을 겨우 뱉어냈다. 절대로 농담이 아니다. 막 주문을 외우려고 하는 순간, 그것도 마기가 몸 안에 막 집중되려고 한 그 순간에 아무렇지 않게 손을 놀려서 사람의 입안에다가 고기 조각을 던져 넣다니, 삶의 미련이 전혀 없거나 아니면 백치거나 그것도 아니면 미친 게 아니곤 절대로 불가능한 그 행동! 위험치수가 서서히 넘어가면서, 하드라는 절대로 이 녀석과 상종하다간 더 이상 명줄을 늘이기 힘들다는 완벽한, 아주 완벽한 판단을 내렸다. 더불어 여기서 도망가면 된다는 아주 간편하면서도 손쉽고 즉각 실행할 수 있는 타 개책을 동시에 떠올렸다. "안 먹어? 여기 토마토 토핑 얹은 스테이크 맛이 괜찮은데." "...갑자기 아주 중요한 볼일이 생각이 나버렸거든...아하하...그럼 이만!" 전형적인 변명을 늘어놓고 돌아서서 손을 흔드는 하드라. 휙 돌아서 도망간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그의 행동에, 아인은 가차없이 그 길고 치렁치렁한 하드라의 머리를 잡아당겼다. 머리카락이 졸지에 뒤로 끌어당겨 진 대다, 거기다 상당히 세게 끌어당겨지자 우당탕 소리가 나며 하드라는 다시 바닥과 뒷통수의 달콤한 입맞춤을 경험했다. 아까는 정면으로 키스하더니, 이번엔 뒤로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여 실히 증명해 주는 그. 으으음, 이것은 정녕 바닥과의 조우를 위한 축복인가 저주인가?! "먹고 가." "...도대체 인간계는 왜 인간은 없고 이런 것들만 있는 거야...?" 중얼대는 그의 울음 섞인 목소리에 대한 그의 대답은 가차없었다. "식으면 맛없어. 어차피 다 식어있지만." 결국 와앙, 하고 울음을 터트려 버린 불쌍한 하드라였다. 자자, 다함께 묵념. 마왕 이야기-63 엽기적인 그녀-3 지끈대는 머리를 부여 쥐고 아인은 침대 가에 걸터앉았다. 어제 길 가던 꼬 마(?)를 하나 납치해서 억지로 이것저것 먹이고 술까지 먹여가며 괴롭혔던 것 같은데, 왠지 기억이 가물가물 한 것이 좀체 생각이 나질 않았다. 침대 아래에 널부러진 옷가지를 뒤적여서, 가느다란 담뱃대를 찾아낸 그는 입에 그걸 물었다. 치익, 하고 손끝을 공기와 마찰시켜 불을 일으킨 그는 그걸 담 배 끝에다 붙였다. 극비로 부쳐져 있는 이 가느다란 종이 담배를 만드는 비법은 대대로 신성령 에서만 내려왔다. 휴대도 간편하고 피우기도 쉽고, 파이프에 비해서 멋까지 있지만, 비에는 좀 약하다는 취약점을 가지고 있는 이 담배는, 그 향이 특히 그만이었다. 맛도 굉장히 부드럽고 유연한 편이고 말이다. "으음..." 못 마시는 술을 퍼마신 꼬마는 옆에서 부스럭대며 일어나는 모양이었다. 아 인은 손끝에 담배를 가볍게 쥐곤 잔뜩 찡그리고 일어나는 꼬마에게 아침 인 사를 해주었다. "잘 잔 얼굴이군." "으윽...머리가...어제 마신 그 이상한 게 너무..." 잠시 굳어선 아인을 바라보는 하드라. 아인은 다시 입에 담배를 물고는 느릿느릿하니 허공을 유영하는 연기의 도 가니에서 기분 좋은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너...너, 너....!" 후우, 하고 그대로 담배연기를 하드라의 얼굴에 뿜어낸 아인은 꽁초를 손으 로 비벼 끄곤 바닥에 툭하고 던졌다. 공공기물의 중요성을 모르는 행동이긴 하지만, 일단 봐준다. "쿨럭쿨럭! 너...너 여자였어!?" 하드라의 비명에 아인은 특유의 그 멍한 무표정으로 대꾸해 주었다. "넌 남자였냐?" 천으로 동여매져 있지만, 자느라고 잠시 풀려서 그런지 느슨해진 천의 사이 로 보이는 가슴, 적당히 강건한 근육 덕분인지 굴곡도 완연히 잡혀져 있었 다. 하드라는 멍해져서 그대로 뚫어져라 그의, 아니 그녀의 가슴을 쳐다보고만 있었고, 아인은 물끄러미 그런 하드라를 바라보다 결정타를 날렸다. "새삼 반하는 건 관둬 줘 베이비." "웃기는 소리 하지맛!" 그러면서도 충격 때문에 한순간 휘청한 하드라였다. 자신이야말로 그 매끈매끈한 피부와 희디흰 살결, 가느다랗고 유약한 팔다 리와 길고 치렁대는 머리카락 때문에 여자로 오인 받았다는 것을 조금도 눈 치 못 채고 있는 그였다. 순간적으로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스윽, 하고 이불 을 들춰보는 그의 행동에, 아인은 딱! 하고 뒷통수를 가격해 버렸다. "아래는 입고 잤어." "악! 누가 그딴 거 확인하려고 한 건줄 알아!?" "...괜찮아, 아무리 내가 술을 퍼마셨다고 해도 너랑 자고 애를 가졌다고 애 아빠 되라는 잔인한 말 같은 건 안 할게. 물론 애 가지면 당연하게 양육비 는 그쪽이 대야겠지만. 애 성 정도는 네 녀석 걸 따주도록 하지." 너무 앞서가고 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지, 당연히도 말하면서 새 담 배를 하나 꺼내 입에 무는 아인. ...과연, 엽기도 극치를 달리는 무적의 여인 이었다. 아하하...하다가 하드라는 바락하고 소리를 질렀다. "......아아아악! 누가 이 망할 여자 좀 어떻게 해줘!" "포기하라구 베이비." ...비명과 담배연기가 어우러진 조용한 아침이었다. 해장술이랍시고 아침부터 술 퍼 마시고 있는 무시무시한 남자, 아니 남장여 자인 아인을 바라보며, 하드라는 지끈대는 머리를 탁자에 얹고 있었다. 술이 란 것은 만독의 근원이며 몸에도 안 좋다고 했던 칸나의 충고가 정말 구구 절절이 가슴에 와 닫는 이유는 뭘까. 정말 저 여자만 보고 있으면 돌아가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하고 튀어나오는 것이, 얼마나 이때껏 안이하게 살아왔으며 평소 너무나 나약했으면 고작 인 간인 여자 하나 못이기는 자신에 대해서 그는 중얼중얼 뭔가 한탄을 하며 벌써 두 병을 넘기고 쌓아져 가는 브랜디 병을 보았다. "왜, 너도 마실려고?" "미쳤냐! 무슨 여자가 대낮부터 낮술을 마시는 거야!" 빼액, 하고 나이 지긋한 아저씨(...)처럼 잔소리를 해대는 하드라를 물끄러미 보고 있던 아인은 세 번째 병을 퐁, 하고 따서는 잔에 따랐다. 그리곤 그 잔 을 단숨에 원샷하더니 타앙! 소리나게 탁자에 놓고는 상당히 살벌하기 그지 없는 눈초리로 찌릿하고 하드라를 노려보았다. "...따라." 그 무시무시하다고 밖에는 느낄 수 없는 박력에 저도 모르게 손을 들어서 술잔에 술을 따르고 있는 자신을 보며, 하드라는 절규하고 싶었다. ...어째서 이 세상에는 여자라는 사실조차 망각한 여자라는 생명체가 있는 거냐! 그러면서 용케 술잔에 넘치지 않고 술은 잘 따르고 있는 하드라였다. 저것을 보고 눈 가리고 아웅한다는 말이 나온 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을 가한다. "어제는 미처 못 물었는데, 너 몇 살이지." "몰라." 실제로 명계에서는 시간의 계산법이 절대로 맞지 않았다. 때때로 칸나의 기 분 여하에 따라서는 눈이 거꾸로 내리기도 하고, 나무가 점차점차 어려지다 나중엔 씨앗으로 돌아가는 말도 안돼는 일도 적잖아 있고는 했으니까. 하드라 자신도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데, 누가 그의 나이를 짐작해 주랴? "그럼 누님이라고 해 베이비." 울컥. 저도 모르게 병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가고, 하드라는 또 바락바락 소 리를 질러댔다. "누가 누님이라는 거야! 너 따위 남장여자에다 말투 괴상하고 성격 이상하 고 그것도 모자라 인간 같지도 않은 인간한테 왜 내가 누님이라고 해야 되 는데!" "맞고 할래 그냥 할래?" 움찔. 하드라는 곰곰히 어제 일을 생각해 보았다. 결국 음식까지, 입에도 대지 않 던 음식까지 먹고, 마시기 싫다는 술도 팔다리를 봉한 체 강제로 먹이고, 심 지어 침실로 끌고 가기까지 한(오해의 요지가 있지만 그냥 그러려니 해라) 괴물 같은 여자다. 설마 칸나처럼 잔인하게 패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짐작이란 것이 불가능한 위험한 여자. 목숨과 자존심을 가볍게 저울질 하다가 하드라는 짧게 입을 열었다. "누님. 크흑...!" "삶에 대한 의지가 훌륭하군 그래. 동생." 우앙, 하고 불쌍하게도 술병을 껴안고 우는 하드라였다. 길게 흩날리는 흑발 과 뽀얀 피부, 거기다 왠지 수심 어린 그 얼굴과 여리여리한 모습으로 술병 을 껴안고 우는 모습은 뭇 남성들의 마음을 애잔하게 파고들었고, 빈 술잔 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아인은 조용히 손을 들어서 새로이 브랜디를 시켰다. "인생이란 그런 거야, 그런 남자는 잊어버려." ...왜, 왜 그런 말이 나오지? 울다 말고 하드라는 다시 빽 외쳤다. "갑자기 무슨 헛소리야!" "아니, 그냥 분위기에 어울리잖아." ...진정으로 썰렁한 농담도 아니고 진담도 아닌 그녀의 말에 하드라는 울다 말고 하아, 하고 멍한 눈으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아인은 자신의 말 한마 디로 변해버린 분위기를 눈치채지 못하는지 다시 술잔을 기울였고, 하드라 는 대체 왜 자신이 그녀에게 질질 끌려 다니는 지에 대해 생각하며 고개를 풀썩 숙였다. 너무나도 막강한 엽기적인 그녀의 이름은, 바로 아인! 마왕 이야기-64 엽기적인 그녀-4 -존재가치란 무엇인가? 네가 존재함은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너라는 존 재가, 이 자리에 서 있다는, 존재를 한다는, 이 세상에 너 자신이 있음을 어 떻게 알 수 있는가? 그리고 네가 아닌 다른 모든 것들은, 각기 어떻게 세상 에 존재한다고 할 수 있는가? 너는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가? 그의 입이 열리고, 그는 대답했다. "꿈은 존재한다. 이 세계가 꿈이므로." 사륵...아인은 머리를 빗어 내린 후, 가볍게 묶어주고는 아래로 내려갔다. 술 병을 껴안고 울다가 얼떨결에 마신 한잔에 뻗어있는 불쌍한 꼬마를 데리러 말이다. 그녀는 깔끔하게 갈아입은 길고 치렁대는, 드레스에 가까운 신관복 을 한번 더 살펴보았다. 혹시라도 발은 걸리지 않는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다, 그녀는 아래층 에서 여전히 술병을 안고 훌쩍대고 있는 꼬마를 발견하곤 그 자리로 다가갔 다. 꽤 여러 명의 남자가 달래려다 실패했는지 잘 얼어붙은 냉동식품이 돼 있었지만. "그렇게 술이 약해서 인생을 어떻게 살려는지 모르겠군, 베이비." 난데없이 등장한 두 번째 미녀의 모습에 헬렐레 하는 남자들이야 상관없이, 그녀는 살짝 턱을 괴고는 자리에 앉았다. 그제서야 고개를 푸욱 숙이고 술 병만 안고 있는 하드라는 눈을 지켜뜨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남이야 어떻든..." 그러더니 눈을 깜빡깜빡하고서, 다시 눈을 크게 뜨곤 그는 아인을 바라보았 다. 연한 분홍빛이 도는 입술하며, 청색을 띄고 있는 드레스라고 봐도 무방한 치마같이 넓게 퍼지는 디자인의 사제복, 거기다 휘날리던 머리까지 단정하 게 하고서 완전히 '나 여자요'를 강조하는 듯한 그 모습에 하드라는 쩌억, 하고 입을 벌렸다. "...누...눈이 나빠진건가...?" "무례하잖아." 그게 술병을 뺏어서 머리를 후려칠 정도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다행히 술병은 깨지지 않았지만, 대신 하드라는 머리에 커다란 혹을 선물로 받았다. "크윽...이 무식하기만 무식한 여자가!" "무식한데 도움 준 적도 없으면서 뭘 그래." 능글능글하고 뻔뻔하게 한마디하고는, 고개를 획 돌려버리는 아인이었다. 하드라가 뭐라고 바락 소리치려고 하는 순간, 우당탕 소리가 나면서 1층에 남자들이 꾸역꾸역 밀려들었다. 하나같이 깨끗한 은색 갑옷을 입고 단정하 게 검을 들고 있는 기사같은 무리들. "이제 도망가실 수 없을 겁니다 아인디아 님! 하하하핫! 이렇게 찾아낼 거 라고는 생각하지 못하셨죠!?" 아인디아라, 하면서 하드라는 두리번두리번 거리다 사람들이 모두 놀라서 벌떡 일어나는 가운데, 빈 술병을 잡고서 뚱한 표정을 하고 있는 여자를 바 라보았다. 아인, 아인이라. 아인. ...아인디아. 그리고 하드라는 콰앙! 하고 저도 모르게 탁자에 머리를 박았다. 룬이 한 예언, 그 운명에 등장하는 반신인 아인디아가...빛이라는, 강렬한 빛이라고 불리는 존재가...저런 엽기적인 여자란 말인가! "후후후훗! 순순히 수갑을....아니아니, 순순히 포박 마법을 받으십시오! 3년 치 예산과 함께 돌아오셔야 겠습니다!" 득의양양하게 말하는 사내를 힐끗 보더니, 아인은 당당히 일어섰다. 하드라 도 얼떨결에 그녀가 손을 잡아당기는 바람에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맨앞에서 입이 찢어져라 웃고 있는, 30대 쯤으로 보이는 남성을 향해 입을 열었다. "날 보내줄 수는 없겠나 캡틴." "물론 보내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캡틴이 아니라 기사단장이란 말입니 다 아인디아 님!!" "순순히 물러나진 않겠다 이건가?" "여긴 일반시민도 있습니다! 대인공격 마법은 절대로 사용할 수 없을걸요! 그걸 노리고 여기 계시는 때에 점거했던 겁니다! 우하하하핫!" ...기사단장이란 자가 일반 시민을 인질로 잡고 자신의 주군을 협박할 수 있 는 것인가. 진지하게 고민해 봤자 뭐 나오는 게 없으니 넘어가고, 그런 그의 말을 듣자 마자 아인은 씨익, 하고 살짝 숙인 고개 너머로 잔인한 웃음을 지었다. 챙강! 쥐고 있던 병을 돌려 잡아 끝을 깨곤, 그녀는 '바로 옆에 서 있던 사람'을 잡아서 그 날카로운 파편을 목에 겨눴다. 차가운 표정으로 아인은 입을 열 었다. "물러나지 않으면 인질을 죽이겠다." "그...그런 비겁한!!" ...이제봤더니 주군에게서 물려받은 근성이었지 싶다. 그리고 '바로 옆에 서있던 사람'인 하드라는 착잡한 심정으로 그저 천장을 우러러보며 입술을 자근자근 깨물었다. 예감은 했지만 이런 무시무시하면서 도 엽기적인 행동으로 나올 줄이야... "훗, 못할 것 같나. 어차피 막 나가는 인생이다. 인질의 몸값과 도망갈 교통 수단을 수배해라." "제길! 요구를 들어줄 테니 인질의 안전을 알려다오!" 참아보려고 했던 하드라는, 결국 악을 바락바락 쓸 수 밖에 없었다. "갑자기 왠 헛소리야!" "...분위기가 딱 알맞길래 나도 모르게 그만." "그, 그렇네 그러고 보니...크음! 아인디아 님! 인간의 디아라는 막중한 책임 이 있는 몸으로 그 무슨 비겁한 짓입니까!? 당장 그 여인을 풀어주고 순순 히 투항하십시오!" 아인은 피식, 웃더니 깨어진 병을 하드라의 목에 쿡쿡 찌르듯이 대면서 위 협적인 어조로 한마디 했다. "니네가 먼저 했잖아." ...애냐, 그런 거 가지고 따지게. 하지만 충분히 중요한 문제였는지 크윽, 하면서 캡틴, 아니 기사단장은 바닥 에 무릎을 꿇었다. "졌습니다!" "훗, 비켜라."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지만 그녀가 이긴 것 같다.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여전히 하드라를 인질로 잡고서, 아인은 유유히 여관 이자 음식점의 바깥으로 나왔다. 바깥에도 기사들이 구름처럼 몰려있었지만, 아인은 가볍게 스펠을 외었다. 기사들은 긴장하며 검을 쥐었고, 아인은 고개를 팩 돌리곤 큰소리로 외쳤다. "내가 여기서 워프 스펠을 외워서 치사하고 한심스러운 모습으로, 그것도 기사들을 상대로 절대 이기지 못할 것 같으니까 두고보자는 한마디를 남기 고 도망갈 것 같다고 안심하면, 그건 천만에! 내가 그럴 것 같나?" ...그녀의 엽기성을 짐작해 볼 때, 확실히 안 그럴 것 같다. "하지만 난 워프할거다, 왜냐하면 워프하는 게 제일 속편하고 간단한 회피 방법이니까! 두고보자!" 왜 그럼 저딴 말을 하는 건데!! 누가 울부짖건 말건 아인은 그대로 워프 스펠을 외웠고, 하드라와 함께 그 들의 눈앞에서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테이블을 박살내면서 캡틴, 아 니 기사단장은 외쳤다. "당장 마법사 부대 불러어!" 그의 눈에서 흐르는 통한의 눈물은 왜일까 따위는 생각하지 말자. 원래 박봉인 사람에게 월급이란 귀중한 거니까. 마왕 이야기-65 엽기적인 그녀-5 상쾌한 공기가 청명히 떠도는 한적한 숲. 지저귀는 새 소리와 시냇물 소리가 적막한 숲만을 따라 흐르고, 안개가 고 즈넉히 흘러서 좋은 분위기를 만들고 있는... 마치 선경과 같은 곳이었다. 그리고 파앗, 하는 소리와 함께 그 숲의 한가운데에 연한 빛이 떠돌더니 두 사람의 모습이 허공에 떠올랐다가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쿠당탕하는 소리와 함께 먼지가 일고, 이내 사뿐히 바닥에서 일어나며 아인 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흐음, 안전하게 제대로 왔군." 바닥에 거의 찌그러지다시피 해서 아인의 쿠션이 되었던 하드라는 머리에 떠오르는 힘줄을 의식하지 못한 체 부들부들 떨면서 몸을 일으켰다. "누가 안전해!? 날 쿠션으로 쓰다니 가만두지 않겠어!" "...난 여자잖아, 여자를 위해 그 정도도 할 수 없는 거야? 흐윽..." 갑자기 연약한 척 닭살공격을 펼쳐대는 아인에게 처절하게 무너지고야 마는 하드라. 이것으로 아인 1승, 스코어는 1:0 옷에 묻은 먼지와 이물질을 털어 내고는 그는 밟힌 허리를 툭닥 대면서 몸 을 일으켰다. 하필이면 왜 허리인지...흐음? 거기 무슨 이상한 상상 하는건 가. "그보다...여긴 어딘데?" "아무도 인적을 알 수 없는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숲." "...어디냐고!" "아무도 인적을 알 수 없는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숲이라니까." 모른다면 모른다고 그냥 말하면 될 것을 꼭 뻔뻔스레 숨기려고 드는 그녀의 말에 하드라는 결국 또 빼액, 하고 소리를 지르고야 말았다. 저렇게 소리를 질러도 괜찮다니...나중에 음유시인으로 나서면 분명히 성공할 것이다. "모르면 모른다고 말해 이 여자야!" "몰라." ...너무 쉽게 말해서 허무해져 버린 하드라는 털썩하고 다시 바닥에 주저앉 았다. 이걸로 아인의 2승, 스코어는 2:0 한참 그렇게 허무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가 하드라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몸 을 일으켰다. "...너란...여자는..." "흐음, 그보다 우린 만난지 하루만에 동료가 된 것 같군. 여기서 연인으로 발전하기 위해 노력해 보자고." "안 해도 돼! 하고 싶지도 않아!" 그래도 동료가 된 것 같은 두 사람, 아니 한 인간과 한 마족...뭐 어쨌든 그 비슷한 거. 아인은 투덜대는 하드라를 가볍게 일으킨 후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일단 걸으면서 서로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논해보자." "안 해도 돼는데..." "난 아인디아 드 라렌. 인간의 디아야, 지금은 총 합산 346,235,806,568,148,578번째 출가이고." "...346,235,805,000,000,000...뭐....?" "그게 아니라 346,235,806,568,148,578번째 출가라고." 친절하게 고쳐주면서 아인은 여전히 멍한 그 표정으로 힐끗 근처의 지형을 훑어보았다. 일일이 저런 걸 기억하면서 남이 틀린 것까지 고쳐주다니, 정말 무지하게 할 일없고 심심했음이 틀림없다. "...나도 가출 중인데." "과연, 악당은 악당을 알아본 다고 하는거군." ...그게 아니라 동류는 동류를 알아보는 거겠지... 하드라는 흐트러진 머리를 한번 스윽 쓸어 넘기곤 사뿐사뿐 옷자락이 스치 지 않도록 가벼운 걸음으로 걷고 있는 아인의 뒤를 따라 걸었다. "디아라면 떠받들림 당하며 아름답고 고귀하게 존재해야 할 것들 아닌가? 왜 이렇게 나다니고 있는 거지?" "디아가 고귀하지도 아름답지도 않기 때문이랄까." 동감하는 하드라였다. 그는 뚝, 하고 나뭇가지 하나를 밟으면서 아인과 나란히 걸음을 옮기기 시 작했다. 숲은 넓었고, 빽빽한 나무숲도 존재하지 않았다. 적당적당히, 마치 정원처럼 꾸며져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드는 곳이었기 때문에, 두 사람이 나 란히 걷는 다고 문제될 것이 없을 정도로 아늑하고 넓게 퍼진 침엽수림이 두 사람을 감싸안았다. "그럼 대체 왜 쫓기는 건데..." "훗, 출가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신성령 3년치 예산을 들고 나왔기 때문이 지. 한푼도 안 남겨 놓고 들고 와 버렸고 하니까. 지금쯤 재정파산의 위기에 서 내 이름이 새겨진 인형이라도 만들어 저주하고 있을지도..." 자기보다 더한 존재를 본 하드라는 질릴 데로 질렸다. 자기도 나오면서 이 것저것 챙겨들고 왔기는 하지만, 어떻게 저 여자보다 더할 수 있을까? 신성 령이라고 불리는 인간에겐 가장 신성한 땅을 유지하는 비용을 몽땅, 그것도 3년치를 들고 나르다니... 진정 신의 저주가 깃들이고도 말 존재가 아닌가? "...뻔뻔함도 극에 다다랐군..." "훗, 칭찬으로 받아들이지." "칭찬이 아닌데...." 웅얼대는 하드라의 목소리에 아인은 가차없는 대꾸를 가했다. "맞고 싶다면 아까 그 말 다시 해봐라." 물론 대답할 리가 없는 하드라였다. 아인은 바스락, 하면서 거치적거리면서 내려와 있는 나뭇가지 하나를 꺾으 며 우아한 어조로 말을 이어나갔다. "넌 왜 가출한 거냐?" "...명목상은 수련, 진짜 목적은 탈출이라고나 할까." 하드라는 나름대로 심각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아직 동안이라고 볼 수 있 는 외모와 눈매에 귀여운 얼굴이라서 별로 심각한 표정은 어울리지 않았지 만. "가출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돌아가지 않을 거니까 상관없지." 자신이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지 못하는 하드라. 아인은 흐응, 하면서 그런 하드라의 앞으로 한발자국 정도 더 나서서 걸음 을 옮겼다. 사삭사삭 하는 소리가 나면서 수풀이 움직이고, 청명한 공기도 따라서 움직여갔다. 그들의 모습이 숲 바깥쪽으로 나갈 때, 천천히 그들이 지나간 길 위로, 검은 잔상이 떠올랐다. [...찾았다...후계자...] 녹색으로 반짝이는 기괴한 색의 눈동자를 가진 검은 그림자는,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이내 다시 바닥으로 스르르 녹아들었다. 그렇게, 약간의 위험성을 내포한 체 하드라는 영문모를 여행을 시작하게 되 었다. 마왕 이야기-66 엽기적인 그녀-6 타닥... 결국 숲을 빠져나가지 못한 그들은 숲의 외각부에서 불을 피우고 야영을 하 기 시작했다. 불꽃이 화려한 모습을 빛내며 타오르고, 아인은 거추장스런 나 풀나풀한 옷자락을 몇 개 찢어서 땔감 대용으로 날려 버린 체 편안한 슈츠 차림으로 불꽃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배고프군..." "누가 알면 아무 것도 안 먹은 줄 알겠네 그래." 비꼬는 하드라의 말에 아인은 말없이 돌 하나를 지켜 올려 보였다. 시끄럽게 굴면 돌 맞는다는 말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그녀를 보며, 하드라는 찍소리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이것으로 아인의 3승, 현재 스코어는 3:0 바닥을 뒹굴고 있는 토끼 뼈다귀며, 저쪽에 널부러져 있는 해체된 멧돼지 내장 등을 보았을 때, 당연하지만 무슨 일이 있었다고 가볍게 추측해 본다. "...자려면 불침번을 정해야 겠지." "불침번?" "음, 잠을 안자고 밤을 새야하는 이를 가르키는 거지. 주로 몬스터에서 동료 를 보호하기, 잠든 동료의 뺨에 키스하기, 또는 잠자는 동료를 보면서 이상 한 상상하기를 해야 하는 일이라고나 할까? 난 이왕이면 두 번째 게 좋아." ...설명이 이상하잖아, 설명이! 알아들었는지-알아들을 수 없어야 함에 불구하고- 하드라는 고개를 끄덕댔 고, 아인도 물끄러미 그런 그를 바라보았다. 선선히 하드라는 대답했다. "내가 설게." "...왠 일이냐, 반항 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반항하길 바랬다는 그 말투는 뭐야!" "훗, 눈치 챘군." 농담 따먹기나 하면서 놀고 있는 저들은 그냥 무시하는 게 신상에 매우 이 롭다는 착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아인은 부스럭대면서 입고 있던 로브를 벗어서 바닥에 깔았고, 자리에 누웠 다. 밤하늘은 어두침침한 것이 별 하나도 보이지 않아서 무드있는 분이기는 전혀 나지 않았다. 비라도 내릴 듯한 우중충한 하늘을 바라보다, 아인은 하 드라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너 마족이랑 원한 관계 같은 거 있어?" "없는데. 난 마족은 본 적도 없어." 아인은 흐음, 하면서 팔베개를 하고서 다리를 꼬았다. 치마가 찢어져서 속살 이 드러나 보일텐데 전혀 상관하지 않는 그녀의 추태에 하드라는 뭔가 한마 디 해주고 싶은 모양이었지만, 상관하지 않고 아인은 계속 혼잣말처럼 중얼 거렸다. "그럼 네 주변에 마족하고 원수 질 일 같은 거 하는 사람은?" "없는 것...같은데?" "하다못해서 평소에 널 사모하는 마족 같은 거라도?" "없어!!" 빼액하고 하드라가 소리지르자 아인은 고개를 까닥, 하더니 몸을 부스스 일 으켰다. 어리둥절한 얼굴로 아인을 바라보고 있던 그를 딱하다는 표정으로 한번 바라본 그녀는, 아까 집어들었던 돌을 수풀 너머로 휘익하고 던졌다. 느리고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날아간 돌은 툭, 하는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소리를 냈다. "들켰으니 나오지 그래?" 하드라는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쪽을 바라보았고, 크으..하는 신음소리가 들리더니 '반대쪽 수풀'이 바스락거리며 한 무리의 인영이 걸어 나왔다. 아인이 돌을 던진 수풀 쪽을 바라보고 있다가 괜히 엉뚱한 짓만 한 하드라 는 다시 반대쪽 수풀을 바라보았고, 이내 아인을 노려보았다. ...아인은 무안한 걸 감추려고 하기라도 하듯이 나뭇가지로 열심히 불가를 건드리고 있었고, 하드라는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그런 그녀를 지긋이 바라 보았다. "...시끄러, 그런 표정으로 보지마." 말은 하지도 않았는데 괜히 무안해하다니...쯧쯧. "훗." 하드라는 저도 모르게 승리의 비웃음을 날리고야 말았다. ...드디어 감격적인 일승을 쟁취하고야 만 그! 하드라 1승, 이걸로 스코어는 3:1 둘이서 서로 무시하고 무시 받기 놀이하고 있는 터라 졸지에 등장한 보람도 없어지는 한 무리의 인영은 그저 가만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 미안, 깜박하고 있는 걸 잊었지 뭐야. 왜 감시한 거지?" 아인은 그렇게 말하며 손을 흔들어 보였고, 맨 앞에 서 있는 긴 은발 머리 의 여자는 공손하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언뜻 보기에도 하얀 옷차림이 잘 어울리는 미인으로, 누가 보더라도 살짝 건드리면 부러질 것만 같은 아름다 움을 지니고 있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후계자시여...] 아인은 멀뚱이 생각하다 하드라를 바라보았고, 하드라는 별 생각 없이 인사 하고 있는 여인을 바라보았다. 여인은 살짝 웃더니 하드라를 바라보며 말했 다. [후계자를 모시러 왔습니다. 이렇게 함부로 뒤를 따라온 것을 용서해 주시 길...] 예의바른 그녀의 행동에도 불구하고 아인은 여전히 멍하다고 볼 수 있는 표 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하드라는 의아한 얼굴로 그런 그녀를 바 라보다 물었다. "후계자라면...날 말하는 거야?" [그렇습니다. 이렇게 초라한 곳에서 처음 뵙는 것은 저도 가슴이 아픕니다 만...곧 왕의 거처로 가실 테니 아무런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인의 미소는 더더욱 가늘고 부드러워 지고 있었지만, 하드라는 이상할 정 도로 싸늘하게 느껴지는 그녀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아인을 힐끗 바라보았 다. 아인은 하드라 쪽으로 손만 까닥해 보이더니, 그가 손을 보자 가볍게 손 끝으로 엑스 자를 그려 보였다. "별로 가고 싶지 않은데." 여인은 살짝 교태롭 게 몸을 꼬으며 호오? 하고 미소짓더니 이내 말을 이었 다. 왠지 뱀 같은 번들거림이 느껴져서, 어떻게 보면 역겨운 기운까지 풍겼다. [번거롭게 해 죄송하나...쳐!] 그녀의 뒤에 서 있던 자들이 갑자기 움직이자 아인은 기다렸다는 듯이 사 악, 하고 뒤로 낮게 고양이처럼 웅크려서 물러섰다가 벌떡 일어나 주문을 외웠다. "타올라라, 영원의 불꽃이여." 그녀의 주문에 불꽃에 스파크처럼 파란 기운이 일 더니, 순간 적으로 마력 이 웅하는 소음과 함께 울렸다. 화르륵하고 모닥불이 거대한 기운을 이루며 타올랐고, 덮쳐오는 검은 그림 자를 튕기듯이 날려버렸다. 튕겨서 나무들 쪽으로 날아간 그림자들은 부딪 치는 소리도 없이 나무를 휙휙 스쳐 사라져 버렸고, 여인의 얼굴을 일그러 졌다. [감히...! 미천한 인간이 방해를!] "미안하지만 우린 곧 연인으로 발전할 사이라서 말이야. 연인은 일심동체." "누구 맘대로 연인이야!" "내 맘대로 라고 알아줘 베이비." 어떻게 저 상황에서도 농담을 할 수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아인은 그렇게 한마디 해주곤 옷자락을 툭툭 털면서 일어났다. 은발의 여인은 눈빛으로 사 람을 죽일 수 있다는 걸 여실히 증명하려고 라도 하듯이 아인을 짓이겨 죽 일 듯이 노려봤고, 하드라도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여 기서 자신이 나서서 뭔가 말해야 같은 의무감이 느껴져서 랄까?-그는 자신 이 아인을 은연중에 닮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내게 바라는 게 뭐야 너?" 하드라는 옷자락에 잔뜩 묻어버린 덤불 조각이 거슬리는지 투덜대며 옷자락 을 탁탁 터는 것도 모자라서 이리저리 옷을 돌려보았다. 물어놓고 사람 무 안하게 하는 건 둘이 똑같은 데...으음, 역시 사랑하면 닮는...관두자. [...무례를 범해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꼭 후계자 님을 모셔가야 하기에 이런 불필요한 행동을...저는 베나디아 님을 섬기는 자 중 하나로, 크라드(Krad)라 고 합니다. 후계자를 모시라는 명을 받들어 이 자리에 온 것이지요.] "내가 가기 싫다는 데도?" [후계자라면...당연히 오셔야 합니다. 세계를 거머쥘 수 있는 힘이 그대를 기 다리고 있다고 해도...오지 않으실 겁니까?] "응." 하드라의 너무도 당당한 대꾸에 잠시 휘청한 크라드였다. 그는 팔짱을 낀 체 당당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난 내 멋대로 사는 게 좋아. 누가 갑자기 나와서 나더러 이러라 저러라 하 면 하려고 했던 것도 하기 싫어. 난 어두침침하기로 유명한 마계 따위에 가 고픈 생각 따윈 없으니까 그런 줄 알아." "훌륭한 정신이야." 오오오, 하면서 박수따윈 칠 필요가 없을 텐데. 아인의 박수에 크라드의 얼굴은 더 일그러졌다. 그녀의 눈길이 얼마나 사납 던 별 관계가 없는지 아인은 멀뚱한 표정으로 그녀를 마주보고 있을 뿐이었 다. [...감히...인간 따위가 우리들의 일에...] 손가락을 까닥해 보인 아인의 한마디. "감히 마족 따위가 사랑스런 연인들의 밤을 방해할 수 없지." 파캉! 기운이 뭉쳤다 싶더니 순식간에 크라드를 뒤로 처박아 버렸다. 저런 것에 맞았다가는 뼈가 남아나지 않을 것이 지당한 바. 기운의 움직임조차 느끼지 못했던 하드라는 등뒤로 흐르는 식은땀을 느끼며 '누가 연인인데!'라고 말 대꾸하려고 했던 것을 접었다. 삶에 대한 저 욕구, 과연 칭찬 받을 만 했다. 의외의 역전사항으로 다시 아인의 4승. 이것으로 스코어는 4:1. 압도적인 그녀의 승리. 과연 역전의 기회는 올 것인가? 으흠으흠, 안 와도 상관없지만. 이미 세상은 여성 상위시대 그 자체! 끄윽...하는 괴로운 신음소리를 내면서 크라드는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부서 져서 박힌 나무의 파편을 뽑아내고는, 아인을 노려보며 일어섰다. 피로 젖어버린-마력덩어리일 뿐이지만-하얀 옷과 은발. 그녀는 쿨럭, 하고 피를 한웅큼 토해내더니 분한 표정으로 아인을 바라보았다. [미...미천한 인간이...어떻게...크윽...] "미천한지 미천하지 않은 지 모르겠지만, 난 적어도 너보단 강한 것 같다는 걸 생각해 줬으면 좋겠군, 새대가리 마족 같으니라고." 아인은 짜증 어린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곤 손끝을 한번 가볍게 오므렸다가 튕겼다. 펑!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크라드는 다시 구석으로 찌그러져 처박혔다. [카하하학! ...크흑...어, 어떻게...!?] "경멸대상 1위. 강한 걸 눈으로 봐야만 납득하는 멍청이들." 아인은 그렇게 말하곤 다시 손을 내밀어 기운을 모았다. 그녀의 손안에 하 얀 색의 구체가 서서히 실체화되더니, 거의 환하게 뿜어져 나올 정도로 변 했고...이내 그 기운은 쉐엑하는 소리를 내며 빛의 궤적을 그리더니 가차없 이 크라드를 후려쳤다. [넌...! 넌 아인디...] 그녀는 견딜 수 없었는지 육체를 흩어 버리곤 이공간으로 사라졌다. 훗, 하면서 승리의 미소를 짓더니 머리카락을 스윽 넘겨 보이는 아인. 하드 라는 자신이 들러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어쩔 수 없이 처절한 패배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꼬마 너..." "꼬마가 아니라 하드라!" "어쨌든 너, 생각 외로 골치 아픈 녀석이구나." 무너져 버린 나무와 꺼져버린 불,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즐거운(?) 첫 야영. 아인은 알 수 없는 무표정으로 하드라를 쳐다보다가 후우, 하고 한숨을 쉬 더니 살짝 미소지었다. 조금은 장난기 섞인, 조금은 애교스런, 평안하고 기분 좋게 느껴지는...그런 미소. "......에?" 순간적으로 쿵, 하고 심장이 떨리는 느낌에 하드라는 흠칫했다. 아인은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가선 마족들을 날리느라 꺼진 불이라도 지필 생각인지 주섬주섬 땔깜이 될만한 부서진 나무 파편들을 주워 모으기 시작 했고, 하드라는 한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고는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가린 체 멍청하니 서 있었다. 아아, 아무리 어두운 달밤이라도 저 불타는 토마토 같은 하드라가 있으면 등불 걱정은 없으리. 이걸로 아인의 1승 추가. 스코어는 5:1. 아무래도 반해버린 것 같아 하드라? 마왕 이야기-67 엽기적인 그녀-7 - ...만약에...아무도 손을 잡아 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힘들어서...손을 내 밀었는데...누구도 그 손을 보지 못하면...잡아주지 못하면...그럼 어떻게 하 지? 그녀는 담배를 비벼 끄고, 허공을 한번 쳐다본 후, 그를 바라보았다. "잡아달라고 하면 되잖아." 아인은 여전히 담배하나를 물고는 후우, 하고는 제법 멋들어지게 담배를 피 웠다. 회색의 단정한 사제복과 비슷한 옷으로 갈아입고, 또 여자 티도 안나 게 차려입고 있는 꼴이라니. 하드라는 한심스럽다는 표정으로 그런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그녀였다. "담배...그거 맛있어?" "맛없어. 몸에도 나쁘고, 정력도 안 좋아지고, 애도 못 가지게 되고, 암이나 기타 질병에도 걸릴 확률이 높아지지." 너무나도 확고한 그 답변에 잠시 굳어있던 하드라는 하아, 하고는 한숨을 내쉬곤 턱을 고았다. "그럼 왜 피는데?" "혹시 죽을 지도 몰라서." ...더 황당한 대답이었다. 하드라는 질문을 포기하고 그냥 의자에 기대앉았다. 숲을 빠져 나온지 이틀, 겨우 발견한 마을의 식당에 앉아서 시덥잖은 대화나 나누고 있자니 솔직히 좀이 쑤신 하드라였지만 생각할 게 많아서 그런 하드라의 투정을 들어줄 여 유가 없는 아인이었다. "...계속 대답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아인 너...그 마족이 하는 말이 무슨 뜻 인지 알고 있지?" "문어와 오징어가 결혼하면 당연히 문징어가 태어나지. 오어라는 건 태어날 수 있을려나?" ...왜...대답이 저 모양일까? 하드라는 그만 턱을 괴고 있던 팔을 삐끗해 버렸고, 턱을 탁자에 처박을 수 밖에 없었다. 아인은 후우, 하고 연기를 내뿜으며 한마디 중얼댔다. "그래서 네가 아직 어리단 거야 베이비." "크윽...자꾸 피하지 말란 말야! 알면 좀 얘기해 주면 덧나!?" 아인은 담배를 빙글 돌리더니만 결국 비벼 꺼 버렸다. 손끝으로 데이지 않 고 비벼 끄는 기술은 이미 고수의 경지를 넘어서 한계 치에 다다른 능력. 특수 어빌리티 중의 어빌리티라고 볼 수 있었다. 아인은 담배꽁초를 툭하고 바닥에 아무렇지도 않게 던지곤 입을 열었다. "알긴 하지만 들려주긴 싫어." "난 듣고 싶어!" "...너 그럼 눈 세 개 달린 괴물이 되고 싶어? 그게 될 수 있다 면야 대답해 줄 수도 있지..." 순간적으로 고민하는 하드라였다. ...농담으로 들을 수는 없는 거야? 농담으로! "어디에...눈이 붙는데?" "배나 엉덩이, 심하면 거기에 붙을 수도 있지." "으엑! 그럼 싫어!" "잘 생각했어 베이비." 놀림 당했다는 사실을 모른 체 헥헥 대면서 식은땀을 흘리는 하드라였다. 나름대로 귀엽지 않을까? 엉덩이에 붙은 깜찍한 눈. 물론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악취미라며 비난하지만 그딴 건 들리지 않는다. 하드라는 입술을 삐죽, 귀엽게 한번 삐진 표정을 지어 보이더니 투 덜댔다. "치사해." "사실 말하기가 귀찮아서. 누구의 편의를 위해서 말이지." ....큭! 제길, 하나같이 사악한 것들...누군가가 절규토록 저주하는 목소리를 듣지 못 하는지 아인은 새 담배를 하나 꺼내서 입에 물었다. 손끝으로 톡톡 치자 불 이 붙고, 이내 그녀는 후우, 하고 한모금 빨아 당기더니 등을 깊숙이 기댔 다. "...확실하진 않지만, 각 종족에겐 디아가 있지. 적어도 하나의 종족에게는." 조금 아는 얘기가 나오자 하드라는 으흠,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인은 담배를 손 사이에 끼운 체로 느릿느릿 말을 시작했다. "하나의 종족이 멸망하면 디아도 같이 사라지지. 디아가 소멸하면 종족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지만...아직 디아가 중간에 죽었다는 말은 못 들어봤으 니까. 하지만, 마족의 디아인 베나디아는 엄밀하게 말하면 살아있는 상태가 아니야." 다시 한모금 끌어당겨 피우는 모습이 그래도 제법 멋들어진 티가 났다. 그 녀는 잠시 생각을 가다듬는 것 같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원래 마족은 멸망했어야 했다지. 하지만 멸망의 시기를 늦추는 방법이 있 다고 하더군." "멈추는 방법이라고?" "그래, 시간을 느리게 가게 만들어 버리는 거야." 하드라는 별것도 아니라는 듯이 쳇, 하고 혀를 찼다. 아인은 자신의 말이 무 시당하자 하드라의 손등에다 담배를 비벼 끄고는 창가 쪽을 바라보며 말을 계속 이었다. '아 뜨거!'라는 비명 정도는 이 경우 무시해도 좋을 듯 하다. "시간은 하나가 아니라 다수고 수도 없이 많지. 인간의 시간과 엘프의 시간 이 틀리 듯이 말이야. 또한 시간은 그런 시간만이 있는 게 아니야. 시간이라 이름하는 것, 정신에도 시간이 있고 육신에도 시간이 있지. 같은 건 아니지 만 같은 것일 수도 있는, 한없이 많은 그 변화를 모조리 합해서 시간이라고 치는 거야." "어려워." 아인은 무료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여기 오렌지 쥬스 두 잔." 아인은 그렇게 말하며 주문을 하고서는 다시 느릿느릿한, 그 특유의 허스키 하면서도 저음인, 딱 듣기 좋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종족의 시간을 멈춘다는 건, 멸망의 시기를 멈춘다는 것과 같지. 똑같이 살 아가고, 말하고, 걷고, 행동하고, 번식행위도 하고, 하지만 멸망하지는 않아. 죽음으로 가는 시간도 있는데, 멸망하지는 않지. 묘하게, 아주 묘하게 살짝 비틀어져 있는 거야." 아인은 허공에다 살짝 휘어지는 듯한 선을 그어 내렸다. "멸망. 멸망이 라는 것은 소멸. 소멸이란 것은 창조되지 않는 것. 파멸이라 불리는 시간을 늦춰버리면, 아니 멈춰버리면, 그 종족에게만 해당되는 그 미 묘한 변화를 멈춰버리면, 그 종족은 멸망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거 지. 그래, 영원히. 영원히 말이야." 아인의 말에는 무료함과 동시에 약한 비웃음도 서려있었다. 얼음이 듬뿍 담겨있는 오렌지 쥬스 안에 담겨있는 얼음은 쨍, 하는 기분 좋 은 소리를 내면서 부서져 내렸고, 햇빛에 얼음은 미묘한 무지개 빛을 내면 서 살짝 반짝였다. 오렌지 쥬스 위에 살짝 떠 있는 거품을 손끝으로 찍어 살짝 핥으면서 아인은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해되냐? 사실 나도 이해가 잘 안 가는데." "뭐...대충은 이해했어. 어떤 시간이란 걸 멈추면 그 종족은 소멸, 즉 멸망하 지 않는다...뭐 그런 거야?" 아인은 고개를 끄덕이고 빨대를 걷어내곤, 쥬스를 홀짝였다. "마족은 시간과 계약했어. 그리고 유예기간을 할당받았지." "...시간과 계약을 해? 시간하고? 저기 말야, 시간이라는 건 살아있는 생명체 가 아니라..." 아인은 설교할 거면 죽인다는 표정으로 하드라를 노려보았고, 그는 찍소리 도 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시간이 사라져 버렸지. 그리곤 시간이 소멸했어. 그러자 계 약은 파기 고 마족은 멸망되게 생겼지. 그들은 미친 듯이 찾아 헤메기 시작 했어. 시간을." "이...이봐, 시간은 분명히 정상적으로..." "정확히는 살아있는 시간을. 존재하는 시간이 아니라." 점점 더 알쏭달쏭한 말로 빠져들고 있는 아인을 추스르기 위해서라도 뭔가 말해보려고 했던 하드라는 머리의 한계를 느끼곤 털썩 고개를 숙였다. 아인 은 그래야지, 하는 표정으로 얼음 하나를 건져서 굴리다 오독오독 씹어 먹 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곤 녀석들은 겨우 찾아낸 것 같아. 시간을." "...?" "너 말야 너. 시간." 아인의 아무렇지도 않은 그 말에, 에? 하고 멍해져 버린 하드라였다. 마왕 이야기-68 엽기적인 그녀-8 잠깐의 침묵이 돌았다. 한 사람은 쥬스를 홀짝대며 무료한 얼굴로 앉아 있 고, 한 사람은 멍한 표정으로 누가 옆에 와서 살짝 건드려도 모를 정도의 표정을 한체, 어떻게 보면 언 밸란스 한, 어떻게 보면 어울리는 얼굴들로 앉 아 있는 그들. 먼저 입을 연건 긴 흑발과 아름다운 검은 눈동자를 지닌 소년-어떻게 보면 청년이지만-이었다. "...시계가 거꾸로 돌면 계시라고?" "호오, 제법 멋진 농담이었어." 드디어 물들어 버렸군 하드라. 너의 망가진 인생에 한줄기 광명 같은 축복 을. 어색한 얼굴로 하드라는 아인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특유의 멍한 표정으로 남아있는 얼음을 오독오독 씹어 삼키곤 다시 말을 이었다. "이해하긴 어렵겠지만, 대충 그런 거야. 살려고 하는 끊임없는 몸부림이랄 까, 아둥바둥 대는 거랄까..." 하드라는 멍하니 그런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가 겨우 중얼거렸다. "...시간...? 그럴 리가..." "어쨌든 그래서, 네가 시간이기 때문에 그들이 널 찾는 거야. 깨어진 계약을 되찾기 위해서 말이지." 우물거리면서 오렌지 쥬스가 담겨있는 잔만 만지작대는 하드라를 보며, 아 인은 답답하단 표정을 한번 지어 보였다가 중얼거렸다. "그냥 그런 의미로 받아드리라고. 누가 강요한, 억지로 짜맞추어 놓은 관념 만 생각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하지만...넌 어떻게 내가 '시간'이라고 말할 수 있는거지?" 아인은 말없이 눈을 돌렸다. 아마도 그녀라고 해도 그리 유쾌한 질문은 아 닌 것 같은 듯, 잠시 둘 사이엔 어색한 침묵이 흘렀고 아인은 간단히 대답 했다. "추측일 뿐이야. 그냥, 마족 녀석들이 찾는 후계자라는 건 그런 것뿐이니 까." "추측치고는 너무 잘 아는걸. 마치 다 알고 있기라도 하듯이." 묘한 공기가 팽팽히 맞섰다. 아인은 뚱한 표정으로 하드라를 바라보다, 작게 한숨을 쉬고는 빈 유리컵을 한쪽으로 밀어냈다. 그녀의 행동에 하드라는 혹 시 저 유리컵으로 때리는 건 아니겠지, 하고 긴장된 얼굴로 그녀를 노려봤 고, 아인은 설마 내가 때리겠다는 무표정으로 맞섰다. "...처음에는 추측이었어, 그리고 다음엔 확신이 섰지." "추측은 뭐고 확신은 뭔데." "네 얼굴, 네 마력, 그리고 무엇보다 어린애 같이 멍청하기 짝이 없는 행동 에서 추측을 가했지. 혹시 네가 시간이 아닐까 하고." "누, 누가 어린애 같이 멍청하다는 거야!" 하드라의 항의를 가차없이 씹어버린 후 아인은 말을 이었다. "그리고, 마족들이 널 찾아내어 데려가려 했을 때, 그게 확신으로 이어졌어. 됐나?" "...내 얼굴하고, 내 마력이 무슨 상관인데?" "넌, 전에 내가 봤던 시간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으니까." 두 번째 침묵이 돌았다. 하드라는 할말을 찾기 위해서 침묵했고, 아인은 그런 하드라를 기다려 주기 위해 참고 침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천천히 하드라의 입이 열렸다. "그럼...아인 넌...아니 아인디아 넌..." 하기 싫지만 튀어나오려고 하는 말. 칸나가 그렇게 누누이 이르던, 믿을 것 은 믿지 말고, 믿을 수 없는 것도 믿지 말라던 그 말. 인간을 믿느니 차라리 지옥에 떨어지는 게 낫다던 그 말... 그녀도, 단지 자신을 이용하기 위해 이렇게 잘(?) 대해주는 걸까, 하는 배신 감에 가까운 감정으로 순간적으로 말도 안돼는 생각을 하고 있는 하드라였 다. "어설픈 추측은 하지 말아. 단순히 추측이었을 뿐이라고 했잖아. 난 인간멸 망이 온다면 만세 열창할 사람 중 한명이야. 종족 멸망 시간 늦춰보겠다느 니, 뭔가 어설픈 수작 걸려고 널 잡았던 게 아냐. 그냥..." 아인은 후우, 하더니 중얼댔다. 순간적으로 미묘한 기분에 조금 얼굴이 달아올라버린 하드라지만, 아인의 대답은 조금 엉뚱했다. "...귀여운 미소년을 건드려 보고 싶었던 아줌마의 심리라고나 할까." "이... 변태얏!" 아인은 하드라의 오렌지 쥬스까지 뺏어들면서 피식 웃었다. "너도 늙으면 내 말을 실감할 수 있을 걸 베이비." "시끄러! 많아봤자 얼마나 많다고!" "너보다 많지. 왜냐면 자칭 네 엄마 아빠란 사람이 야반 도주 할 때도 내가 아직 살아있었던 때란 말씀. 즉, 네가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던 때 이 몸은 인생무상함을 느끼고 있었단 거다." 할말없게 만드는 그녀의 말에 하드라는 볼을 부루퉁하니 부풀리면서 조잘댔 다. "...말도 안돼..." 아인은 오렌지 쥬스와 함께 얼음을 오독오독 씹으면서 말없이 흥얼댈 뿐이 었다. 마왕 이야기-69 엽기적인 그녀-9 어두운 촛불이 사람의 인영을 비추고 있었다. 정확히 사람이라고 볼 수 있을지, 아니면 사람이 아니라고 보아야 할지 도 통 짐작을 할 수 없는 외모의 소유자들. 그것은 동굴과 같았다. 차갑게 몰아 치는 차가운 광풍이 미묘하게 대기를 떠돌고 있었고, 촛불은 흔들흔들 대며 기괴한 음영을 계속해서 허공에 드리우고 있었다. 푸른빛으로 빛나고 있는, 차갑게 느껴지지만 훨씬 뜨거운 촛불은 녹지도 않 은 체 사방을 원형으로 돌며 계속해서 올라가는 나선형의 동굴을 꽉 메우고 있었고 동굴의 가운데에는 길게 늘어진 종유석과 어울리는 진한 갈빛도는 마법진. 넓고 넓게, 마치 무엇인가를 봉인이라도 하듯이 겹겹이 이중 삼중으로 쳐진 결계의 위. 거기에 서 있는 인영들은 무거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계약이 파기된지 이제 고작 300년. 그러나, 확연하리 만치 그동안 묶어두었 던 시간의 흐름이 돌아오고 있다. 이대로 멸망하여야 하는 것인가? 내 혼을 걸고한 맹약이, 고작 이렇게 무너져 내리는 것인가?] [글세요, 이대로 멸망해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만.] 정중하게까지 들리는 목소리에 처음 들려왔던 중후하고 침중한 여인의 목소 리는 벽력같은 소리를 냈다. [닥쳐라 미체르니아! 신의 농간에 놀아나 멸망하겠다는 거냐?! 우리가 왜 신이란 배덕한 존재의 뜻에 따라 멸망해야 하는 것이지!?] [멸망이 없으면 생성도 없고 유지도 없는 법. 우리가 멸망하면 다른 종족의 사활이란 것도 있지 않겠습니까?] 여유로운 미체르니아의 말에 여인은 더욱 분노했는지, 촛불은 흔들대면서 공기의 미묘한 변화를 감지시켰다. [지금이 싸울 때입니까? 지식의 자랑은 그만 두시고, 해결방안부터 모색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시하르니아, 이미 그 분은 거부의 의사를 밝히지 않으셨던가요? 싫 다는 남자를 붙들면 좋은 여자라고 할 수 없죠.] 시종일관 여유만만한 미체르니아의 말투에, 시하르니아의 목소리도 높아졌 다. [장난은 그만 두시죠 미체르니아! 언제까지 그렇게 탐탁잖다는 듯이 행동할 겁니까? 일족의 멸망은 종족의 사할과 직결되는, 우리의 목숨과도 관계되는 일이 아닙니까?] 다른 목소리가 두 사람의 언쟁에 끼어들었다. [알 바 아니지. 애초에 우리가 시간을 붙든 다는 것 자체가 무리지 않았어? 멸망한다는 것은 꽤나 귀찮은 일이지만, 반인반마로 피가 섞여들어 나름대 로의 멸절은 피했다고 보는데.] 우습다는 듯이 들려오는 명백한 조롱의 목소리에, 미체르니아는 가벼운 웃 음으로 동의했다. [아아, 만나기만 하면 싸움질이니 이야기가 진척이 안 나가는 게 당연하지. 말싸움은 지겹다고, 몸으로 싸우는 게 훨씬 재밋지 않아? 싸우는 건 그만두 고 의견을 모아야지, 후계자 님을 잡아와야 하니까.] [플레르니아, 너도 멸망에 동참할 생각은 없는 건가?] [당연한 말을 하고 있군 그래 위카르니아. 이봐 베나디아, 언제까지 그렇게 오만 상 쓰고 있을 거야? 마계의 사천왕을 소집해 놓고 싸움만 붙일 생각?] 처음의 목소리는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 [우리에겐 시간이 더 이상 없다. ...별 볼일 없는 인간 나부랭이들 조금 희생 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분을 모셔와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계약을, 그로 인 해 새로운 영생을...!] 미체르니아는 열망에 들뜬 그녀의 말에 찬물을 끼얹었다. [하지만 아인디아도 전처럼 멍하니 서서 쉽게 빼앗기진 않을 텐데요? 누가 뭐라고 해도, 그녀는 모든 디아들 중에서도 가장 특별한 존재니까.] [엑? 그 여자가 끼어든거야? 그렇담 난 질색이야.] [위카르니아! 싸우기도 전에 내빼다니, 그게 사천왕으로서 할 말이야?!] [넌 닥치라구 이 싸움밖에 모르는 바보야!] [그 무슨 무례한 언행들입니까? 여기는 신성한 장소입니다! 말을 금하세요!] 쿡쿡 웃으면서 미체르니아는 손을 벌렸다. 그의 행동에 다른 이들도 입을 다물고 그가 하는 일을 바라보았고, 미체르니아는 공간의 문을 열더니 잠깐 서서 나머지 네 마족을 바라보다 한마디를 남겼다. [행동은 빠른 게 좋다죠. 각기 준비나 해두는 게 어떨까요.] 그의 모습이 사라지자, 나머지 존재들도 이내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엣취!" 하드라는 코끝을 잡으면서 웅얼댔고, 아인은 그런 그를 바라보더니 중얼거 렸다. "설마 이런 상황에서 누가 내 욕하나? 라는 아주 함축적이면서도 의미 있 는, 고전적이고 낡아빠진 표현을 쓰는 건 아니겠지?" 길게 말할 필요까지야 없을텐데 얄밉게도 그렇게 말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하드라는 쳇, 하고는 대꾸했다. "그런 거 아냐. 그냥 좀 으슬거리네..." "호오, 같이 목욕할까 베이비? 감기 예방엔 뜨거운 물이 최고야." "됐네! 욕실바닥에서 당하는 건 질색이야!" 꼬셨다가 퇴짜를 맞은 아인은 쩝, 하면서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다. 하 드라는 정말 추운지 한차례 부르르 떨었고, 아인은 슬금슬금 수건을 목에 두르고 목욕하려고 탕에 들어 가려다만, 잘빠진 여자라면(절대로 덜 빠진 여자는 아니다) 누구라도 섹시하게 보이는 목욕가운 모습으로 하드라와 몸 을 밀착시켰다. "역시 같이 하는 게 어떨까 베이비?" "아악! 다가오지맛! 남자한테 당하는 것도 끔찍한데 여자한테까지 당하는 건 질색이야!" "여성 상위체제에서 뭘 그런걸 따지는 지 모르겠군 그래 베이비..." 츳츳하면서 혀를 차는 아인이었다. "넌 깔려본 적이 없어서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거야..." 음울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면서 갑자기 방구석에 콕 처박혀 안 그래도 어두 운 조명을 더 어둡게 만들고 있는 하드라를 바라보며, 아인은 살짝 보이지 않을 정도로 웃었다. 아직도 궁시렁 대면서 우울하게 앉아있던 하드라는 갑자기 고개를 슬쩍 돌 리곤 아인을 쳐다보았다. "...?" 아인은 의아한 표정으로 하드라를 바라보았고, 하드라는 여성에게는 더없이 충격적인 말을 중얼중얼 거렸다. "더군다나 나보다 몸무게 많이 나가는 여자한테 깔리긴 더더욱 싫어..." 오...하드라의 기적적인 1승 추가, 이걸로 스코어는 5:2... 하지만 하드라는 승리에 대한 차가운 대가를 맛보고야 말았다. 쨍강하면서 여관의 창문은 깨어지고, 앞으로 인공위성 하드라, 아니 외계행성 하드라, 그게 아니라...혜성 하드라라고 이름 붙여지게 될 작은 점이 저 하늘로 치솟 았다. ...그러게 옛어른이 말씀하시길, 여자의 한은 오뉴월에 서리를 내린다고 하셨 음이다. 다가오는 위기 하에도 시시각각으로 엽기적으로 놀고 있는 그들의 앞에 나 타나는 것은 과연 무엇일 것인가? 알고 있어도 다음을 기대하시라! 마왕 이야기-70 엽기적인 그녀-10 마족과 악마가 같은 것이냐는 논제에 대해 수백년간 아직도 학자들은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서로 자신의 학설이 옳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마족과 악마는 서로 다른 것으로, 악마는 인간을 대가없이 도울 수 없지만 마족은 인간을 대가 없이 도울 수 있다. 악마는 계약을 위반하지 않 지만 마족은 계약을 깰 수 있다. 그것은, 악마가 신의 시종인 천사와 동일한 존재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지만, 마족은 하나의 종족으로 봐도 무방하다 는 것으로서, 그들에게 인간은 동일한 대상에 서 있는 존재가 아니라 하등 한 존재일 뿐이라는 것도 증명될 수 있다. 악마는 인간을 유혹하지만, 마족은 인간을 파멸시킨다. 악마가 시험관이라면 마족은 파멸자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악마와 마족은 동시에 그 숙명이라 볼 수 있는 '인간에 대한 기생' 이라는 점에서 동질성을 가지고 학자들에게 많은 의문을 구가하게 했다. 어째서 마족은 정신에 기생하며 육신을 가지지 못했는가? 마족은 왜 인간에 게 기생해서 그 목숨을 늘여야 하는가? 그에 대해 그는 그렇게 대답해 주었다. [악마는 신에게서 인간을 유혹할 의무를 받았기에 그들에게 도움을, 때로는 절망을 줘가며 충실하게 기생하는 것일 뿐이지. 하지만 마족에게 있어서 인 간은 수도 없이 많은, 그 중에서 조금 맛있는 먹이일 뿐이야. 인간이 재배하 는 과일들 중에서 특별한 상등품처럼. 우리는 그저 인간이라는 생명체를 키 울 뿐, 돕지는 않아. 돕는 것은 동일한 선상에서만 가능한 일이잖아? 아, 하 지만 난 너를 도울 거야. 인간이 친구라는 이름을 애완견에게 부여하는 것 처럼.] -Kain과의 대화, 제 15장. 이른 아침, 아인은 느릿느릿 일어나서는 옷을 뒤적여 담배를 찾았다. 하지만 누가 말을 너무 시키는 바람에 쓸데없이 많이 피워서 그런지, 담배 케이스만 달랑 남아있을 뿐, 아무 것도 남는 건 없었다. 아침에 식전 담배가 없다니, 왠지 모르게 찜찜한 기분을 느끼는 니코틴 중 독자 아인. 그녀는 궁시렁 대면서 옆에서 속편하게 늦잠을 즐기고 있는 치렁치렁한 흑 발머리의 미소년을 바라보았다. 뺨까지 발그스레하게 물들여서, 무슨 좋은 꿈이라도 꾸는지 살짝 미소까지 띄고 있는 모습은 가희 천상의 미인에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아침에 담배라는, 필수 아이템을 섭취하지 못한 아인은 행복해 보이 는 어린애의 모습에 울컥하는 못된 어른이 되어 버렸고, 쿡쿡하고 뺨을 찌 르면서 괜시리 남의 잠을 방해하는 참으로 유치한 짓을 하기 시작했다. "우응..." 하드라가 웅얼대면서 몸을 웅크리자, 왠지 재미가 붙은 아인은 더 콕콕 건 드려 보았다. "힝...싫어..." 이불 속으로 꼬물꼬물 기어 들어가는 모습이, 못내 재밌어져 버렸나 보다. 아인은 슬쩍 이불을 들추고 침대 속에 파묻혀 자고 있는 하드라를 보더니 씨익, 하고 잔인한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잠시 후... "아악! 이 변태같은 여자가!" "훗, 뭘 그런걸 가지고 베이비..." 목에 남아있는 퍼런 자국을 가리면서 입을 뻐끔뻐끔대고 있는 하드라. 아인 은 어떻게 구했는지 담배 한 개피를 입에 물고 후우, 하고 연기를 뿜으며 킬킬댔다. 잔뜩 붉어진 얼굴로 하드라는 그런 그녀를 향해 항의했다. "하필이면 가리지도 못하게 목이 뭐야 목이!" "목에 하늘하늘한 천이라도 두르지 그래 베이비? 그리고 키스마크가 잘 남 는 피부를 가진 게 죄악이야." ...하드라는 발작하기 직전까지 가서 아인의 목을 졸라댈 기세였지만, 아인은 상관없이 흥얼댔다. 특유의 여유로움에 거의 살기까지 내뿜으며 그런 그녀 를 노려보는 하드라였으나...산전수전 다 겪은 여인을 상대하기엔 너무 어렸 다. "억울하면 일찍 일어나, 일찍." "네가 너무 일찍 일어나서 그렇잖아! 누가 늙은이 아니랄까봐 잠 없긴!" "뭐라고 해도 난 들리지 않는다네." ...아인의 여유로운 일승 추가. 이걸로 스코어는 6:2. 아슬아슬한 접전이 펼쳐 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으윽, 하면서 하드라는 입을 다물고 털썩하고 의자에 앉았고 아침식사가 날려져 왔다. 토스트와 에그, 간단한 커피 정도로 차려진 음식들의 앞에서 아인은 담배를 비벼껐다. "...두고보자...내일은..." "일찍 일어나서 네가 남기게? 아서라, 그러다 당한다." "시, 시끄럿!" 평생 당하고 살 팔자인 모양이다 하드라... 그는 칸나를 떠올리며 궁시렁 댔고, 아인은 커피를 홀짝이면서 웨이트리스 가 가져다 준 커다란 종이를 반 접은 물체를 들고서 훑어보고 있었다. 이것 저것 글자가 가득히 적혀 있는 내용들로 꽉 찬 종이를 훑어보던 아인은 흐 음, 하면서 뒷장으로 넘겼다. "...그건 뭐야?" "신문이라는 거지. 각 나라의 정세 같은 게 올라와 있어. 흠...이런, 신성령이 결국 파탄났다는데? 과연, 3년치는 무리였나보군." 킬킬댈 일이 아닌데...정말 어찌 저렇게 잔인할 수 있을까. 하드라는 차마 묻기 싫었지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재밌는 거지?" "훗...꼭 내 대답을 들어야 할 의무가 있다면, 더군다나 내가 불쾌한 추측을 타파하기 위해 한마디함으로서 이 위기를 벗어나려 생각하고 있다면, 그대 에게 봄날에 날리는 미풍처럼 우아하기 그지없는 한줄기 미혹을 뚫을 평화 로운 대화법을 내가 선택하고자 노력한다면, 그리고 그대가 대답을 들을 확 고한 의지가 있다면, 솔직하게 진심을 토로하자면..." 하드라는 막 그만 닥치지 못해! 하고 비명을 지를 뻔했을 때서야 아인은 능 글맞게 입을 열었다. "재밌어." "...나가 죽어." 아인은 토스트를 입에 물고 우물대면서 고개만 까닥였다. 하드라는 하아, 하면서 커피 잔에 담긴 커피를 한모금 마셨다가 그 쓴맛에 고개를 찌푸리곤 손을 들어 웨이트리스를 불렀다. "여기 홍차 한잔, 밀크 티로..." [저랑 차 취향이 비슷하시다니, 의외의 충격에 놀라게 되는군요.] 우아한 말투의 정신파. 누구도 그 말을 듣지 못한 것 같았지만, 하드라와 아 인은 듣고서 고개를 흘낏 돌렸다. 길게 늘어진 갈색 머리카락, 갈색의 눈동 자. 단정하고 진하게 차려입고 있는 남색의 로브. 이마에는 기묘하게, 검은색으로 육망성이 낙인처럼 찍혀 있었다. 안쪽에는 금빛으로 빽빽하게 가득 차있는 진형 따위가 그려져 있었고, 살짝 걸쳐 쓴 안경이 조금은 지적으로 보이는 인상이었지만, 그보다는 그의 인간 같지 않 은 오싹한 한기가 먼저 느껴지는 존재. 그는 마치 원래부터 거기에 서 있었다고 주장하기라도 하듯이, 너무나도 자 연스레 그들이 있는 테이블 쪽으로 한발자국을 옮겼다. 느끼지도 못하는 사 이 접근했다는 것을 느끼며, 하드라는 식은땀을 흘렸다. 그는 불안을 풀어주기라도 할 셈인지 기분 좋게 싱긋이 웃으며 입을 열었 다. [처.음. 뵙겠습니다, 후계자라 불리는 시간의 전인, 파멸을 막아 타락을 부르 는 잔인한 여신, 에리나쟈드시여. 저는 미체르니아 드 지첼, 사천왕 중 대지 의 천왕이라 불리는 미천한 존재입니다.] 아인은 호륵, 하고 커피를 마시며 여상스레 중얼댔다. "서 있기 힘들면 앉던가 미첼..." [오랜만입니다 아인디아 님도.] 알 수 없는 미묘한 불쾌감에 인상을 살짝 찌푸리게 되는 하드라였다. 마왕 이야기-71 엽기적인 그녀-11 갑자기 난입해버린, 더군다나 왠지 모르게 정체 불명이라고 느껴지는 행동 에 기분 나빠진 하드라는 경계하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너무 티가 나 도록 쳐다봤는지, 그는 살짝 웃으며 하드라를 바라보았다. 속을 들킨 것 같아 얼굴을 붉히는 하드라를 힐끗 보다, 아인은 천천히 커피 잔을 내려놓으며 여상스레 질문했다. "얼마나 왔어?" [대략 300정도? 그리고 사천왕도 전부 왔답니다.] "마을 안에만?" [물론이죠. 외벽 쪽에는 천명 정도를 모아 두었지요.] 뭔가 무시무시한 대화가 오간다 싶더니 아인은 거세게 커피잔을 집어던졌 다. 챙강하고, 미체르니아를 거쳐서 벽에 처박힌 잔은 산산히 부서져 내렸고 아인은 짜증 난다는 듯이 외쳤다. "그만큼 살았으면 됐지 도대체 뭘 바란대 그 멍청한 계집애는?" [욕심이란 건 원래 한도 끝도 없는 것이라 하지 않습니까?] 살짝 웃으면서 대꾸한 그는 천천히 손을 벌렸다. [게임 시작입니다.] 촤라락! 뻗어져 나온 넝쿨줄기는 기다렸다는 듯이 하드라를 휘감아 당겼다. 일층 바 닥을 뚫고 이층까지 올라온 녹색빛 도는 줄기들은, 사람들은 모두 휘감아 당겼고 아인도 마찬가지로 마법을 쓰지 못하도록 굵고 거친 줄기가 목을 휘 감고 팔다리를 결박해 버리자 아둥바둥 댈 수밖에는 없었다. [...흠...너무 간단한 걸요? 넝쿨을 풀어낼 수는 없을 겁니다.] 넝쿨이 점차 감겨들어서 거의 건물을 메꿀 정도가 되고, 하드라도 팔다리가 모두 넝쿨에, 아니 아에 넝쿨로 도배를 했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휘감겨져 있었다. 미체르니아는 자신의 승리에 만족하는 미소를 지었고, 동시에 하드 라의 언령도 완성되었다. [너의 말은-] 정신적인 파장으로 들려오는 하드라의 언령에 미체르니아는 저도 모르게 흠 칫하고야 말았다. 각성하지 못하고 아인디아에게 끌려 다니는 줄 알았던 후 계자가 언령까지 마스터 한 상태라니? [너의 말은-어긋나리라-] 하드라의 언령은 완벽한 게 아니었다. 남이 말한 것을 뒤집어 버리는 정도? 물론 상대가 세상은 절대 멸망하지 않 을 것이다! 라고 한다면 그 말도 뒤집을 수 있기야 하지만. 그리고 마침 미 체르니아가 '뒤집을 수 있는' 말을 해 주었기에 그는 언령을 성립시키고 저 절로 풀려 버리기 시작하는 덩굴들을 발로 걷어찼다. "재수 없는 자식! 죽여주겠다!" 얼음의 마력이 휘몰아치고, 미체르니아는 잠깐 굳어있었다가 다시 여유로운 미소를 띄면서 자신의 마력도 끌어당겼다. 둘이 막 건물을 날려보낼 정도로 마력을 증폭시킬 때, 아인은 슬쩍 하드라의 목을 휘어 감아 뒤로 잡아당겼 다. "우윽? 컥! 모...목 졸려!" "베이비, 전술상 후퇴다." 와장창! 커다란 나무 탁자를 한 손으로 집어 던져서 창문을 깨트리곤, 엉켜 드는 덩 굴을 밟으며 아인은 창문으로 하드라를 붙든 체 뛰어 내렸다. 미체르니아는 황당하리 만치 빠른 행동을 보여준 아인디아의 궤적을 바라보다 퍼득 정신 을 차리고 허공에 대고 외쳤다. [잡아라! 상처 내도 상관없다, 숨만 붙어있으면 돼...!] 하드라를 쿠션 삼아서 떨어져 내린 아인은 후우, 하면서 옷자락을 털곤 바 닥에 찌그러져 있는 하드라를 일으켜 주었다. "윽...대체 뭐가 어떻게 된거야?" "뭐가 어떻게 되긴, 납치범들이 희대의 미소년을 납치해 가려는 거지." "납치해 가서 뭐하게?" 아인은 물끄러미 하드라를 바라보다가 슬쩍 웃었다. 그리곤 어깨를 탁탁 쳐 주더니 손을 잡고 뛰기 시작했다. "일단 뛰어!" "왜 뛰어야 되는데!?" 콰앙! 폭음이 울려 퍼지면서 그들이 떨어져 내린 자리로 화려한 불꽃의 세례가 쏟 아졌다. 기세좋게 타오르는 불길에 사람들도 나왔다가 다들 당황해서 웅성 대기 시작했고 아인은 투덜댔다. "매정하게스리 저들을 구해주지 않으면 넌 뭐라고 할래 베이비?" "잘-했어 아인디아!" "좋아, 내 알바 아니라고 생각하면 되는 거로군. 후후후훗...." 웃음이 사악해 지고 하드라는 괜히 잘했다고 했나, 하는 극심한 후회상태로 빠져들었다. 아인은 손을 들어서 하얀빛으로 빛나고 있는 신성력을 끌어당 겼다. 그녀의 행동에 즉각 허공에서 까만 점 같은 것들이 휙휙 비져 나오더 니, 이내 마족의 모습으로 뒤바뀌었다. 주변을 완전히 포위하고도 남을 만한 존재들. 하드라는 저도 모르게 혀를 내두르고야 말았다. 아인은 그러던 말던 뛰면서 잘도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 고, 그들도 지지 않고 각기 마법의 포화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육체 적으로 야 인간을 이길 수 없는 정신계 고위 마족이 아니고서야, 이렇게 쉽게 인간 계에 숨어 들 수 없을 테니까 육체적으론 어떻게 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나 바라노니 찰나를 부르는 영광된 이름..." 콰앙! 두 번째 화염이 뿜어져 내렸다. 아인은 말없이 옆으로 몸을 뒤틀어서 한바 퀴 굴렀고, 하드라는 보호막으로 화염을 막으며 뒤로 돌아 몇걸음 뛰어 아 인의 뒤를 가로막았다. 주문이 거의 끝나 가는지 발로 바닥을 이리저리 밟 아가면서 결계를 치는 의식으로 넘어가고 있는 그녀는, 상당히 고위의 마법 이라도 쓰는지 땀을 비오듯이 흘리고 있었다. "영원을 지속되는 공간..." 크오오오...강하게 끌어당겨진 마력으로 땅과 하늘이 동시에 진동했다. 다시 한번 허공에 떠 있는 마족들에게서 전격과 화염이 뒤섞여 난무하는 마법들 이 터져 나왔고 하드라는 팔을 벌렸다. [나 거론하노니 위대한 그의 이름! 내가 아닌 나 외의 존재의 이름을 말하 노니! 내가 말하는 이름에 종속된 자 무릎꿇을 지어다! 그의 권능을 빌어 말아노니 파괴되라! 디멘션즈!] 허공이 교차롭게 갈라지면서 마법의 포화를 삼켜버렸고, 마족들도 공간에 빠져들지 않기 위해 잠시 몸을 사리느라 공격이 조금 느슨해 졌다. 헉...하고 겨우 숨을 삼키며 하드라는 비틀거릴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마스터 급의 마법사라지만, 마력에는 한계가 있는 법. 더군다나 아까의 마법은 칸나의 힘 을 끌어다 쓴 거였다. 두 번은 없고...마족은 넘치도록 많고... 아인은 주문을 완성시키고 손을 들어 외쳤다. "지금 성립된 나의 공간을 이 땅에 소환할 것을 명한다!" 화려한 빛의 난무, 마족들도 주춤해서 어떤 녀석은 땅에 내려서고 어떤 녀 석은 허공에서 모습을 감추기도 했다. 엄청난 신성력이 물결치더니, 이내 사 방에서 마족들보다 더 많은 존재들이 소환되기 시작했다. "저...저것들은?" 아인디아 수호기사단, 소울 나이트. 그들은 각기 목욕하다가 소환 됐는지 타월만 두르고 있는 이, 갑옷을 챙겨 입다가 거꾸로 뒤집어져서 끙끙대는 이, 말하기 뭣한 일을 하다 왔는지 바 지조차 제대로 못 끌어다 입는 이, 맥주잔을 들고 멍하니 서 있는 이 등...이 루 말할 수 없이 다양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마족들을 부르르 떨게 했다. 물론 공포가 아닌 너무나도 황당한 일에 압도적인 썰렁함에 대한 분노로 말 이다. "아, 아인디아 님! 이게 뭡니까?!" 기사단장, 캡틴의 말에 아인은 숨을 한번 몰아쉬고는 곧바로 외쳤다. "번호!" 그녀의 말에 거의 반사적으로 캡틴은 우렁차게 외쳤다. "일!" 그리고 그가 후회할 세도 없이 소환된 이들은 본능에 따라 구령을 붙이기 시작했음이니... "이!" "삼!" "사!" 이내 번호가 천번 남짓하게 불리자 끝에서 '번호 끝! 이상 모두 소집! 딸꾹' 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아인은 곧바로 하드라의 목을 끌어당겨 안으면서 외 쳤다. "보너스 20%인상에 3달간 가출하지 않겠다! 명령은 저 마족들을 말살시킬 것!" "오오오오! 보너스!" "가출도 안하신대!" 갑자기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기사들의 종자들이 거의 번개와 같은 속도 로 그들의 갑옷을 착용시켜 주고 그림자처럼 사라지자, 그들은 각기 검이나 자신의 무기를 지켜들며 엄청난 투기를 내뿜었다. "말살시켜라! 제 1부대 돌격!" [이....미천한 인간 놈들이 감히!?] 이미 추태를 다 본 뒤라 마족들은 코웃음을 치면서 닥치는 대로 마법을 난 사하기 시작했지만, 과연 보너스와 업무부담 하락의 힘이란 것은 엄청난 것 인지 소울 나이트들은 거침없이 마족들과 맞붙고 있었다. 마왕 이야기-72 엽기적인 그녀-12 아인은 하드라의 목을 그대로 끌어당겨서 달려나갔고, 하드라도 목졸려 죽 느니 뛰는걸 선택하고 뛰기 시작했다. "기사단을 전부 희생시킬 셈이야!?" "훗, 무슨 소리. 오히려 마족들이 불쌍하지." "웃기지마! 인간이 어떻게 마족한테...!" 하드라는 뛰어가다가 그렇게 말하곤 힐끗 뒤를 돌아보았다가 경악으로 잠시 휘청거렸다. 그의 눈에 비치는 곳에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 었다. 마족을 산 체로 오독오독 잡아먹고 있는 놈이 있지를 않나, 마법에 반쯤 구 워졌음에도 불구하고 Ba-cas라고 쓰여 있는 포션을 마시자마자 너무나도 쉽게 회복하고는 '피로 회복엔 Ba-cas!!'라는 뭔가 알 수 없는 말을 외치며 마족을 후려 패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며, 바닥에 거의 피떡이 되어 버린 슬라임과 같은 몸에 캡틴이 재빠르게 '월급 외 수당 없어!'라는 특수 주문 을 외우자 곧바로 살아나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는 그들... 아인디아 대 가출방어용 인간 외 신종 몬스터! 그 전설적인 존재들의 위력을 실감한 마족들은 저도 모르게 주춤주춤 밀리 고 있었다. 거기다 마을 사람들까지 합세해서 포션인 Ba-cas를 나르고, 저 항하는 움직임이 있자 그야말로 인간의 저력이 새삼 드러나고 있는 것이었 다. "...마...말도 안..." "그러게 절대로 죽여도 안 죽는 놈들이라고 했잖아." 여유롭게 말하며 마을 외각지로 아무런 방해도 없이 도망치고 있는 그녀, 하드라는 이 세상에 인간이란 생명체는 이미 멸종된 것이 아닌가하는 매우 건실한 생각을 하면서 있는 대로 숨이 달리는 상황에서 뛰어갈 수 밖에 없 었다. [과연 여기로 도망올 줄 알았지 아인디아!] 그리고 눈앞에 붉은 머리를 하고 있는, 갑옷을 입고 있는 소년 같은 이가 튀어나오자 아인은 말이 필요 없다는 듯이 그가 막 자세를 취하고 뭔가 하 기도 전에 그대로 마력탄을 내 쏘았다. 퍼엉! 하는 소리와 함께 그가 뒤로 자빠지자 아인은 가차없이 자근자근 짓밟고는 뛰어가 버렸고, 하드라는 불쌍하다는 생각에 측은히 혀를 찼다. [거기 서지 못해! 이 망할 여자야!] 화염의 기둥이 뒤에서 튀어나와 후려치자, 하드라는 얼음의 장벽으로 맞섰 고, 아인은 응수했다. "시끄러! 거기에 털도 안 난 꼬맹아!" [누, 누가 거기에 털이 없다는 거야?!] "훗! 무모증이란 사실은 이미 다 알고 있어! 어린애 모습으로 있는 것도 그 런 이유라지! 마계 사천왕이라는 플레르니아가 사실은...!" [으아아악! 그만두지 못해!] 마계 사천왕 중 불의 왕인 플레르니아의 비밀이 낯낯이 대낮에, 그것도 인 간들에게 밝혀지는 가운데 지나가는 사람들은 혀를 차면서 '거기에 털도 안 났대요, 어머 망측해라...' 따위의 말을 하고 지나감으로서, 그의 전투의욕을 바닥으로 치닫게 했다. 하드라는 너무도 불쌍하게 느껴지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다 조심스레 뭔가 를 중얼거린 후 손을 내뻗었다. 곧바로 시전된 아이스 스톰은 가차없이 플 레르니아를 덮치고, 그는 방어할 틈도 없이 얼어버리고야 말았다. [으악! 비겁하게...!] "...관두고 가자." 아인과 하드라는 사이 좋게 손을 잡고 얼어버린 플레르니아를 내버려두고 달려가기 시작했고, 거의 외각성문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물론 거기에도 또 하나의 사천왕이 기다리고 있었음으니...이런 식상한 등장 좀 제발 그만했으 면 좋겠다. [오호호호, 오랜만이네요 에리나쟈드 님. 그리고 아인디아 씨, 저 위카르니 아가 배알하옵니다.] 출렁대는 금발 머리를 지니고 있는 여인은 도도하게 옷자락을 펼치며 인사 해 보였다. 풍만한 가슴과 가녀린 허리 사이즈를 지니고 있을 것 같은 그녀 의 모습은 확실히 매혹적이었지만, 지금 그런 거 따지게 생겼는가? 하드라는 다시 한번 마법을 쓸까 하다가, 도저히 마법력의 한계를 실감하곤 소매자락을 뒤적였다. 칸나한테서 슬쩍 해온 물건들이 대부분 거기 담겨 있 었으니까 말이다. [마력이 두분 다 바닥 난 것 같은데 순순히 잡히시죠. 오호호호홋!] 자랑스레 지껄이는 그녀를 향해 하드라는 품에서 꺼낸 녹이 쓴, 아무런 문 양도 없고 심지어 소잡이 조차 없는 길다란 검날만 있는, 그래도 검이라고 애써서 생각한다면 할 수 있는 물체를 아인의 손에 쥐어주었다. 아인은 그런 하드라를 바라보았고 하드라는 뻔뻔스레 대꾸했다. "나에게 육체노동을 요구하지마! 남은 마력이 없으니까 네가 알아서 하라고, 스스로 지키는 검 토울이니까 검술 못하면 그냥 막노동을..." 퍽! 아인은 볼 것도 없다는 듯이 검신으로 하드라를 후려쳐 버리곤 그를 밟고 뛰어올라 허공에 서 있는 위카르니아를 찔러 들어갔다. 위협적인 공격에 흠 칫하면서 뒤로 물러난 위카르니아, 아인은 빠르게 주문을 외었다. "레이 윙!" [치잇! 그래봤자 그따위 녹쓴 검으론....꺄악!] 아인은 스스로 뻗어나 찔러 가는 검 토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씨익 웃었 다. 위카르니아는 거의 소멸해 가는 왼팔을 화급히 움켜쥐면서 뒤로 물러났 고 아인은 검을 비껴들었다. "요컨데...늘어날 수 있다 이거지." [...무...무슨...] 아인은 토울을 그대로 내뻗었다. 토울은 기다렸다는 듯이 파악 소리나게 뻗 어나가기 시작했고, 이내 고기써는 소리를 내며 위카르니아를 꿰뚫은 체로 계속해서 앞으로 뻗어 나갔다. [아아아악! 다음에 만나면....반드시...!] "어이 베이비! 고정 주문 써!" 하드라는 아인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눈치 챘다는 듯이 씨익, 하고 웃 었고 그대로 토울을 허공에 고정시켜버렸다. 검은 계속해서 뻗어나갈 테고, 토울의 마력에 걸려든 위카르니아는 과연 어디쯤에서 멈출 수 있을까? "으아아아아! 성문 돌파! 이대로 도망이다!" 아인은 기운차게 손을 허공으로 지켜 올리며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댔고, 하 드라도 있는 대로 숨이 찬 상황에서도 손을 흔들어 대답을 대신 했다. 마왕 이야기-73 엽기적인 그녀-13 아인은 허리에 척하고 손을 얹으면서 그런 하드라를 비꼬아주었다. "어린 녀석이 벌써부터 그래서야 어디 쯧쯧..." "남이사!" 대드는 하드라는 신경도 쓰지 않고 아인은 츳츳하고 혀를 차준 후 걸음을 옮겼다. 하드라도 투덜대면서 애써 몸을 움직였고, 둘은 또다시 그 자리에서 굳고야 말았던 것이다. 아아...산너머 산이라더니, 어떻게 된게 아까보다 거 의 두배 가까이 될 듯한 엄청난, 하늘을 새까맣게 메우고 있다는 말이 절대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가득 차 있는 마족들. 그 앞에 서 있는 녹빛 도는 피부에 푸른 머리를 휘날리는 여자는 보나마나 말하지 않아도, 물의 사천왕 시하르니아일 터였다. 아인은 반사적으로 품을 뒤적대 담배를 찾았지만 그런 게 있을 리 없었다. 여기서 빠져나가기만 한다면 정말 담배를 끊어버릴테다, 라고 굳게 결심하 면서 아인은 팔을 활짝 벌리곤 외쳤다. "진정으로 인간계에 강림한 마족 여러분들을 맞이하여 감명 깊어서 몸둘 바 를 어찌할 줄 모르며! 잘 왔다는 칭찬의 말과 위로를 한 체 함께 어울리고 싶지만! 빌어먹을 것들! 왜 와서 지랄이얏!" 그녀는 성심성의껏 최대한의 악의를 담고 욕을 퍼부어 주었고, 정신적으로 예민한 마족들은 부르르 떨 정도로 그녀의 악랄한 파장은 깊히 박혔다. [훗...반항도 소용없습니다, 여기 있는 마족 전부를 이길 수 없을 테니까요. 순순히 저희에게 오십시오 후계자시여.] 닭살이 오돌토돌 돋을 정도로 느끼한 미소를 짓는 시하르니아를 보다가 하 드라는 부르르 떨었고 아인은 헥헥대면서 하드라를 바라보았다. 수 있느냐 는 그녀의 표정에 하드라는 어깨만 으쓱해 보였고 아인은 다시 고개를 돌려 허공에 떠서 느끼하기 짝이 없는 시하르니아를 바라보았다. "빌어먹을...그 여자가 아주 단단히 조약을 어기기로 작정했군, 제 4차 천지 대전! 좋지! 신까지 끌어들여서 한번 해볼까?! 응!" 아인의 협박에도 시하르니아는 아무렇지 않게 대꾸했다. [후후후후...꼬리 만 개 같은 행동은 그만 두시죠. 후계자만 있으면 마계가 멀쩡하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그렇게 조약을 들먹거릴 것까지야...] 아인은 제길, 하면서 하드라를 쳐다보곤 비장한 결심을 했다는 듯이 그를 향해 천천히 손을 뻗었다. 움찔해서 하드라는 한발짝 물러났고, 아인은 살기 가 이글대는 눈을 한체 중얼대기 시작했다. "나를 원망하지마, 저런 변태들에게 잡혀가서 생을 마감하느니 차라리 내가 이 손으로 고통없이 죽여주도록 하지 베이비." "무...무슨 말도 안돼는 소리를 하는 거야! 악! 이러지맛!" 비명을 질러대는 하드라였지만, 피차 마력 떨어진건 마찬가지라면 체력이 높은 쪽이 이기는 것이 아닌가? 그들이 하는 노릇을 보며 당황하던 시하르 니아도 정신을 차리고 외쳤다. [아, 안돼! 후계자가 죽으면 모두 헛일이다! 저 여자를 죽여!] 마족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공격태세를 갖추었고, 아인은 씨익하고 웃으면서 하드라의 목을 끌어안고 속삭였다. "뭐...? 말도 안돼!" "할 수 있어, 나만 믿으라니까!" 아인은 자신만만하게 가슴을 펴고 다시 외쳤다. "시하르니아! 넌 우리가 절대 도망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어림없는 수작! 우린 최후의 수단이 있었다!" [뭐...뭐라고?] 당황한 그녀에게 아인은 계속해서 정신공격을 가하기 시작했고, 마족들도 그녀의 말에 눌렸는지 차마 공격은 하지 못하고 시하르니아와 아인만을 번 갈아 보았다. "훗...! 안됐군! 이대로 우리가 도망치면 너희는 쪽도 못쓰고 베나디아한테 끝장나겠지!" 시하르니아는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고야 말았다. [닥치지 못해! 도망갈 수단 따위는 어디에도 없어!] 그리고 하드라는 억지로 목소리를 짜내다시피 해서 겨우 외쳤다. [너의 말은 거짓! 지금 나의 말이 성립할지니!] 언령! 위카르니아는 그 절대적인 말의 위력에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하드라를 바라보았고 하드라는 없는 마력을 다 끌어올리느라 고통스 러움에도 불구하고 싸늘하게 한번 미소 지었다. "그럼, 보다시피 성공 시켰으니까 우리는 이만 안녕." 아인은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하드라와 함께 서서히 공간이동 되어가 버렸 다. 언령의 힘은 절대적, 이미 성립한 언령을 뒤엎는 것은 불가능했다. 허망하게 둘을 놓쳐버린 시하르니아는 그 녹빛의 피부가 끈적하 게 녹아 내리는 지도 모르고 멍청하니 있었고, 마족들은 그야말로, 허탈함의 극치를 이룬 표정으 로 멍청하니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이런, 결국 놓쳤군요.] 여유만만하게 말하면서 등장한 미체르니아는, 사천왕 중 그나마 비교적 정 상적이었다. 플레르니아는 얼어붙은 얼음 조각들 때문에 덜덜 떨면서 등장 했고, 위카르니아는 꼴이 말이 아닐 정도로 복부가 흐려져 금방이라도 소멸 되기 직전이었다. 세상에 마계의 사천왕이 모두 모여서 덤볐는데도 이렇게 된 적은 처음이었 다. 하기야 따로 개인 플레이를 하다 보니 결국 이렇게 되고야 말 팔자이기는 했지만. [제길...그 자식! 후계자만 아니라면 죽일텐데!] [크으...그 검, 대체 뭐였지?] [그보다 중요한 건, 후계자를 놓쳤단 말입니다!] 미체르니아는 여유만만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그 리고 그는 조용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찾는 거야 어렵지 않지만...그래도 주군이 되실 분인데 좀 얌전히 모셔가 면 좋으련만...] 그의 입가에 스치는 웃음이 무엇을 뜻하는 지는 조금 지켜봐야 알듯 하다. 남은 세 마족은 뭐가 맘에 안 드는지 그를 향해서 각기 한마디 빽하고 던졌 다. [너만 알고 있음 다냐! 이 치사한 자식앗!] [맞아요! 맨날 식물하고만 노는 변태가 이럴 때 말고 언제 도움이 되겠느냐 구요!] [너도 찔려봐! 지금 그렇게 웃게 생겼어!? 이 녹색 변태야!] 빠직. 미체르니아는 결국 참지 못하고 그들을 향해 외쳤다. [해보겠다는 겁니까 뭡니까!?] 으음...뭐 지켜봐야 알지 않을까...? 아마도. 마왕 이야기-74 엽기적인 그녀-14 풍덩! 전과 비슷한 전개를 보이며 허공에서 뚝 떨어진 둘은 이번엔 어느 산간의 호수에 처박혔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조그마한 폭포에 가까운 샘에 떨 어졌고 이번엔 돌 모서리에 머리가 처박혀 정말로 유명을 달리할 뻔했던 하 드라는 용케 그 둔한 몸이나마 날려 목숨을 건졌다. 아인이 깔아뭉개기 전에 겨우 피한 그는 목숨을 건졌고, 아인은 얼얼한 엉 덩이를 쓰다듬으며 투덜댔다. 일단 그렇게 둘은 도피에 성공한 것이다. 아인은 물에 젖어든 옷을 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중얼댔다. "...담배를 끊어야 하는 것인가. 후훗... 뭐, 작심 삼일이라는 말도 있는데." 결국 자신이 한 말에서 회피해 버리는 그녀, 하드라는 머리카락이 물을 먹 어서 무지막지하게 무거워져 버렸기 때문에 아둥바둥 대면서 일어나려고 했 지만, 그럴수록 길기만 치렁치렁하니 긴 덕에 물을 먹어서 무거워진 옷과 역시 무거워진 머리카락 덕으로 일어나지는 못하고 허우적대는 것이 다였 다. 아인은 그런 한심한 꼴을 하고 앉아 있는 하드라를 보다가 한마디 내뱉았 다. "어디 아프냐?" "무거워서 일어날 수가 없어서 그런 거야!" "그러게 평소에 체력단련을 좀 해뒀어야 할 거 아냐 베이비..." 그러는 아인 자신도, 머리카락이 무거워서 차마 못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관해서는 입을 다무는 영악함을 보이고 있었다. 둘다 한동안 앉은 자세로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거의 발작적으로 웃음을 터트렸다. 아까까지는 사선을 넘나들며 쫓기다, 이제는 이런 꼴이라니. "파하하핫! 아, 정말 너 웃겼어. 그런 식으로 도망 갈 수 있을 줄이야..." "뭐 이 정도야 간단한 거지. 도망의 경력은 이 몸이 더 대단하다는 말씀." 하드라는 킥킥 웃으면서 물을 튀겼고, 아인은 찬물을 다시 뒤집어쓰자 발끈 해서는 조금 크게 물을 일으켰다. 철벅철벅하는 소리가 나고 이내 첨벙첨벙 이 되더니 거의 목숨걸고 놀기 시작하는 둘... 정말 연인이라면 딱 맞을 둘의 미래를 은근히 점쳐 보자. 젖어든 옷자락 때문에 강건한 몸의 굴곡이 그대로 다 드러나고 있는 아인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하드라는 후우, 하면서 고개를 획 돌렸다. 그런 하드라의 반응에 아인은 히죽히죽 웃으며 중얼댔다. "반했군 베이비?" "누갓!" "오오, 강한 부정은 곧 긍정. 이리와! 이 기회에...!" 뭐, 뭐하는 거야! 이건 청소년도 보는 거라니까! 하드라는 주춤주춤 물러나다가 이내 폭포 끝에 다다랐고 점차 덮쳐오는 두 려운 검은 손길(?)에 눈을 감고는 비명을 질렀다. "싫어! 이러지 마! 꺄악! 누가 좀 도와줘!" "후후후훗! 아무도 도와줄 사람은 없어!" ...배역이 바뀐 것 같지 않은가? 어째서 남성인 하드라가 저렇게 비명을 지 르며 당하는 쪽에...으음, 아무리 여성 상위시대라지만 저건 에로틱이 아니라 호러다 호러. "하지 말라니까!" 바둥대면서 하드라는 달라붙는 아인을 밀쳐내려고 했고 아인은 그럴수록 더 재밌어 하면서 달라붙었다. 결국 물에 젖은 대다 머리까지 긴 두 사람-비슷 한 존재-들이 엉켜서 그러자, 결국 서로 머리카락에 손이 엉켜서 쿠당소리 나도록, 그리고 첨벙하는 소리도 나게 물에 빠져버렸다. 다행히 폭포를 이루고 있는 외벽이라서 인지 물이 깊지 않은 것은 천우신조 였달까, 아니면 누군가의 음흉한 수작이었달까...후후훗, 상상은 자유라네. "으...아파 제길." 하드라는 찡하니 눈물 맺힌 눈으로 뚝뚝 떨어지는 물기를 걷어내곤 겨우 눈 을 떴고 아인도 하드라의 위에서 내리 누르는 듯한 미묘한 자세가 된 체로 그를 바라보았다. 어색한 침묵. 음, 그리고 어색한 눈빛. 젖어든 옷자락 사이로 기묘하게 비껴가는 빛의 굴곡에 농염하게 익은 여인 의 몸이 그대로 드러나 보일 지경이었다. 절대로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침묵의 가운데, 아인은 천천히 몸을 숙였다. 아아, 그 어떤 선지자께서 말하셨던가? 숲이 있고 남과 여가 있고, 남과 여가 숲으로 들어가니, 그것을 가르켜... '뻔할 뻔' 자라 하더라~ 젖은 옷을 널어놓고, 하드라는 사차원 주머니를 뒤져서 대충 아무 거나 건 져온 옷을 꺼내놓았다. 아인은 하늘하늘하고 헐렁대는 옷들은 모두 취향이 아닌지 하드라를 타박해 댔지만 그 정도 타박에 굴할 정도로 심성이 약한 그가 아니었다.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헐렁대고 하늘하늘하고..." "주면 주는 대로 입어 좀!" "...옷 취향도 계집애 같기는." 순간 적으로 스파크가 튀면서 부르르 떠는 하드라. 으음, 오랜만의 스코어! 아인 1승! 이렇게 여유롭게 7:2, 스코어는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고 하드라는 과연 역전이 가능할 지? "남장여자 주제에!" "생긴 것도 여자 같은 너한테 들을 말은 아니야!" "이게!" ...싸, 싸울 필요까지야... 급기야 인간과 마족, 아니 혼돈의 양 대표자가 세기의 접전을 벌이려고 하 는 순간, 둘다 알몸에 가까운 서로를 바라보다 결국 고개를 떨어뜨릴 수 밖 에 없었다. "제길, 옷부터 입고 싸우자, 일차 휴식이다 베이비." "아, 알았어." ...으음... 무슨 일이 있었는데? 무슨 일이 있었는데에? 무슨 일이 있었구나아아? 의심에 의심을 구가하게 만드는 이 미묘한 상황. 자아...앞으로 어떻게 타개될 것인가? 마왕 이야기-75 엽기적인 그녀-15 "이젠 지겨워!" "동감이야!" 둘은 동시에 외치면서 바닥을 한바퀴 굴렀다. 콰앙하고 또다시 터지는 폭 음! 마족이라면 이제 진저리 날 정도가 돼버렸지만 둘은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또다시 다다다 잘도 뛰고 있었다. 벌써 쫓고 쫓기기 시작한지 7일. 이미 마족과 인간의 싸움으로 번져가고 있고, 인간들 멋대로 '아인디아를 없애 인간정복을 꾀한다'라는 거창한 명분아래 전 인간족이 단결해 마족들 과 싸우기 시작했고, 마족들은 마족대로 '인간들이 후계자를 빼돌려 우리를 멸망시키려 한다'라는 얼토당토않은 말을 내세워서 역시 전면전쟁에 나서고 있었다. 아아, 놀라워라. 이것이 바로 오해에서 빚어지는 협소한 다툼(?)인 것이다. 협소한 다툼이 아니라고 고래고래 고함 지르지 마라,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작은 실수는 눈감아 주는 게 좋다. 아인은 허공을 향해 고래고래 비명을 질렀다. "어째서 왜! 이왕 납치해 갈 거라면 귀여운 미소년도 많잖아! 이런 싸가지 없는 녀석은 내버려두라고!" "누가 싸가지 없다는 거야! 그러는 댁이야말로 절벽에 성격만 나쁜 여자면 서!" "뭐라고!?" ...왜 싸우는 걸까. 일단 내버려두고 쫓는 마족들의 입장도 생각해 보자. 3일 밤낮을 쉬지 않고 쫓아다니고 있는데 쫓기는 쪽은 기운이 펄펄 넘쳐서 자기들끼리 시시덕대며 싸우는데, 쫓는 쪽은 있는 기운이란 기운은 다 빠져서 고통을 겪고 있으니, 이거 뭔가 말이 되지 않지 않은가? [서지 못해! 이번엔 절대로 슬쩍 못 넘어가! 거기섯!] "시끄러 무모증 꼬마!" "로리취미 변태 마왕 주제에!" 둘의 합심으로 이루어진 정신공격은 기존의 데미지에 두 배를 능가해 4배 이상의 효과를 내며 플레르니아를 강타했다. 저것이 그 유명한 '동시에 약 점 잡아 외침으로서 죽음의 데미지 주기'라는 어빌리티!? 결국 플레르니아는 전투의 천왕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싸워보지도 못하 고 정신공격으로 에너지를 소모한 체 마계로 강제소환 돼 버렸고, 나머지 하급 마족들은 차마 무서워서 말도 못 걸고 그냥 마법구나 날리고 결계나 쳐서 방해할 뿐이었다. 수가 압도적인 것이 오히려 불리한 것을 모른 체, 그렇게 서로 쫓고 쫓기는 지겨운 릴레이는 계속 되었고 아인은 잔인한 웃음을 지으면서 그 자리에서 멈춰섰다. 하드라도 헥헥대면서 멈춰서고, 그녀는 자신만만한 웃음을 지으며 품에서 무엇인가를 꺼내들었다. [...뭐, 뭘까요?] [글세, 일단 경계해라...만약을 대비해서 마법을 준비해 두도록...!] [기회입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죽이겠습니까!? 아인은 천천히 그 물건을 꺼내 허공으로 들어올렸다. 그것은, 보통 흰 손수건이라 불리는 물체. "항복." 후두두두둑! 허공에 떠있던 마족들은 정신적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아래로 모두 떨어져 내렸으며, 겨우 살아남은 시하르니아도 휘청대면서 정신공격으로 인한 충격 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하드라는 고개를 끄덕대면서 그런 그녀가 허공을 향해 손수건을 흔들고 있 는 모습을 바라보았고, 텅 빈 허공을 보며 손수건을 흔들던 아인은 갑자기 감정이 북받치는지 흑! 하면서 외쳤다. "당신의 희생은 절대 잊지 않을 거에요! 뱃속의 아기를 위해서라도 이 전란 은 내가 해쳐나갈 거야!" 하드라는 말없이 마찰 주문을 이용해 허공의 공기들을 마찰시켰고, 슬픈 멜 로디를 만들어내서 연주했다. 배경음마저 깔리는 걸로 모자라, 이내 그녀가 띄운 특수 비홀더 들이 비춰 내리는 라이트가 그녀를 중앙에 서게 했다. 일 단 느낌상 중앙이란 말이다. "이렇게 해서 그녀는 새로운 삶을 살아갈 것을 결심했다. 아아, 하지만 모진 게 운명이라. 그녀의 앞에는 새로운 시련이 다가오고 있음이니!" 뭐, 뭐 하는 거냐 하드라. 설마 배경음악만 아니라 해설도 담당하는 거냐? 아인은 비극의 여주인공처럼 손수건을 살짝 입으로 물고는 그나마 허공에 있던 시하르니아를 향해 외쳤다. "사랑을 노래하던 내 젊은 시절은 갔지만! 저 하늘에 있는 그대, 그 푸른 머 리카락과 푸르딩딩하게 부은 녹색피부를 한 체 저승으로 가고 있는 그대만 은 절대 잊지 않을 거에요! 왜냐면...!" 두둥, 하고 효과음도 추가됐다. 하드라...상당한 연습을 거친 것 같은 저 조 명효과와 배경효과는...음, 어쩌면 연출가로서의 소질이 바로 저때부터 발견 되었던 것일지도. "이 아이는 당신의 아이니까!" 손수건으로 헝겁인형을 재빨리 만들어 허공으로 지켜 올리자, 그걸 모두 두 눈 뜨고, 그것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어야 했던 시하르니아는 더 이상 창 백해 질 수 없는 얼굴로 비틀대다 결국 추락하고야 말았다. 아아...묵념. 대신 30초만, 그 이상하면 눈치 보인다. "...이런, 너무 감상에 빠져 버렸잖아. 말리지 그랬어 하드라?" 하드라는 배경음악을 멈추고 비홀더를 다시 잡아넣고 종이에 적어넣은 해설 문을 슬쩍 챙겨넣더니 뻔뻔스레 대꾸했다. "말리지 않아도 잘 제어할 거라고 믿었어." "과연, 그래서 네가 더 사랑스러운 거야." ...차, 차라리 죽여라. 모든 마족들은 크억, 하면서 고통으로 몸부림쳤고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 고 아인은 하드라의 턱을 지켜 올리며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역시 내가 사랑할 만한건 너밖에 없어. 자, 이리와! 내 사랑을 확인시켜주 지!" "아앗, 짐승...! 이런데서!" "후후훗! 순순히 내 사랑을 받아들여!" "꺄아아아아!" 결국 일부 마족들은 더 이상 계속되는 그들의 퍼포먼스를 견디지 못하고 그 만 소멸을 택하느니 소환을 택한다고, 마계로 소환되어 가기 시작했다. 특히 정신충격이 심했던 시하르니아는 빈사상태로 사라졌고, 남아있는 마족들도 더 이상 삶의 의욕을 가지지 못하는지 모두 퀭한 눈빛으로 허공을 응시하거 나 주저앉아 있었다. 저것이 바로 그 유명한, 우는 아이도 뚝 그치게 하고 칼부림하던 원수도 인 생의 허망함을 알게 하며 자살하려던 사람의 의욕마저 끊는다던... '만담' 으음...뭐, 어떻게든 되겠지. 마왕 이야기-76 엽기적인 그녀-16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둘의 기적적인 만담으로 인해 어이없게 끝나버리고, 마족들과 인간의 전쟁이 가속화되기 시작함에도 불구하고 아인은 내 알바 아니라는 태도로 신성령으로 돌아가지 않고 여전히 여행 중이었다. 그렇다고 '이럴 때 백성들의 곁에서 그들을 돕겠어...!'라는 살신성인의 정신 을 발하는 것도 아니라, 사람들이야 어떻게 되건 말건 상관없으니 혼자 잘 놀아보겠다는 깊은 뜻으로 여행 중이었으니, 도대체 누가 아인디아가 고고 하고 고귀하고 고결하고 고아하며 고풍스럽고 고매한 존재라 주장했던가? 저 극악, 포악, 잔악, 사악, 악랄의 대명사라고 불러도 모자람 없는 여인에 게... "전쟁이라, 우습게 일이 돌아가는군." 코코넛에 박힌 빨대를 열심히 쪽쪽 빨고 있다가 갑자기 그렇게 무거운 어투 로 입을 연다고 해도 아무도 멋지게 봐주지 않을텐데, 상관없다는 듯이 그 렇게 말하면서 아인은 다시 코코넛 쥬스를 빨았다. "어째서지? 전쟁은 인간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어. 왜 나를 계속 돕는거 야?" "왜냐고?" 아인은 고개를 끄덕대면서 의문으로 가득한 눈을 빛내고 있는 하드라를 바 라보았다. 기분 좋게 살랑이는 더운 바람이지만, 전혀 덥게 느껴지진 않았다. 왜냐하면 바로 성벽 위였기 때문이고, 그 성벽 바깥의 결계에서는 마물들이 대거로 쳐들어오고 있고, 성벽의 바깥에서 결계를 유지하며 필사적으로 버티고 있 는 신관들과 기사들이 배치돼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성벽이 높고 넓고 화랑이 길어도, 그 위에서 코코넛 쥬스를 마시면 서 고즈넉한 하루를 보낸다고 하더라도, 솔직히 괜시리 신경이 한번쯤은 쓰 이게 되는 게 바로 이 상황이다. 아인은 빨대를 뽑아내고 통체로 벌컥벌컥 마신 후, 코코넛 껍데기를 아래로 집어던졌다. 휘잉, 하는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딱! 하는 코코넛 껍질에 누가 맞는 소리. 재수도 지지리 없긴 하지만, 뭐 코코넛 껍데기 정도에 맞는다고 무슨 일 있 겠는가. "악! 대장님! 이럴 수가, 적의 포환에...! 이렇게 허무하게 가시면 안됩니다!" "혼이 빠져나가고 있어!" "코코넛 껍데기라니, 이런 비겁한 짓을...! 두고보자 마족들!" ...정정해서, 무슨 일 난다. 하드라는 멍하니 그런 상황을 보고 있다가 자신도 먹다남은 코코넛 껍데기 를 아래로 던져보았다. 이내 휘잉하는 다시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다시 딱! 하는 코코넛 껍데기 맞는 소리. 으음, 설마 이번에도 무슨 문제가 일어나겠는가. "아아아악! 겨우 정신을 차리시나 했는데! 이 사악한 마족들!" "이번엔 액체까지 그대로...! 대장님! 이렇게 허무하게 가시다니!" "임시대장을 뽑도록 합시다! 이렇게 된 이상 마지막 한사람이 남을 때까지 싸우는 겁니다!" "으흐흐흑...대장니이이이임! 코코넛 껍데기에 맞아서 돌아가시다니이이!" 제길, 그래! 무슨 일 난다고! 어린이 여러분, 그리고 어른 여러분, 높은 데서 쓰레기 함부로 투여하지 맙 시다. 잘못하면 그 쓰레기가 누군가를 황천 절벽으로 밀어버립니다. ...혹시 비정상적인 인간이라면 시도해도 별 상관은 없습니다. "...뭐, 이런 거라고 생각해." "이런 거라면 코코넛 껍데기에 맞아서 죽을 뻔하다 살아났는데 다시 떨어진 두 번째 코코넛 껍데기에 맞아 죽어버리는 상황 같은 거?" "뭐, 그런 거." 아인은 어깨를 으쓱하며 그렇게 대답했고, 궁수를 위해 파여진 화랑의 홈에 발을 딛고 올라선 하드라는 멀리까지 계속되고 있는 싸움을 바라보았다. 잘 못 하면 화살이나 마법 맞기 딱 좋지만 아직까진 결계가 있으니 아무런 걱 정없음이다. "그러니까 우연한 만남에 우연이 겹치면 필연이 되는 것 같은 거?" "음, 그런 거." 팔을 휘둘러 바람을 휘저으려는 듯한 행동을 하면서 하드라는 계속해서 말 했다. "우연을 가장하고 필연을 성립시키기 위해서 만나는 것 같은 거?" "...글세, 그런 거." 애매하게 늘어지는 말꼬리를 잡으며 하드라는 말을 마쳤다. "운명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게 정말인지 알고 싶어 숨기는 것 같은 거?" "....응, 그거." 하드라는 어떻게 보면 쓸쓸한 웃음을, 어떻게 보면 기쁘게 보이는 듯한 웃 음을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특유의 그 무표정을 한 체, 아인은 입을 열 었다. "난 널 도울 거야. 네가 어떻게 생각하든, 그리고 이유가 무엇인지 밝히지도 않겠지만, 절대로 대답해주지 않아도 널 도울 거야..." 하드라는 그대로 몸을 돌려 등을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한 성벽 아래로 제꼈 다. 손은 벽의 끝을 잡고 있었으므로 떨어지진 않았지만 출렁대는 검은 머리카 락이 휘날려 금새라도 떨어질 듯 위험해 보인다. 하드라는 그 상태로 한 손 을 들며 물었다. "그건, 내가 너의 반신이고 운명이니까?" "...알고 있었어?" "한번, 예정을 들었던 적이 있었지. 너와 만날 거라는." "예정대로 되어서 기뻐 그래?" 하드라는 한손을 마저 놓았다. 금새라도 휘익하고 떨어질 것만 같아 보이던 그의 몸은 살짝 허공으로 떴고, 무중력의 공간이 그를 휘감았는지 머리카락 과 옷자락은 제멋대로 나풀대고 있었다. 허공에 떠있는 듯 떠있지 않은 듯 살짝 들린 발끝을 의식하지 못하는 지, 하드라는 그 상태로 말을 이었다. "기쁘지 않아. 넌 날 거기서 만날 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속였으니까." "나도 기쁘지 않아. 운명이 이루어지는 것 따위는. 네가 그 운명을 알고 있 었기에 나와 연을 맺는 거라면." 하드라는 쿡, 하고 웃었고 아인도 살짝 미소지었다. 그리고 둘은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 "하지만 널 만난건 기뻐." 둘은 그렇게 서로 같은 미소를 지었다. 거울에 비치는 영상처럼 닮은 것도 아니고, 물에 비춘 것만큼도 닮지 않았지만, 빛으로 굴절돼 보이는 영상이 아닌 조금 더 깊은 곳에서 말이다. 마왕 이야기-77 엽기적인 그녀-17 - 디아가 소멸하는 것과 한 종족의 삶이 끝나는 것에 관한 수많은 의문과 연관성이 전개되어 왔다. 이때껏 무려 세 명의 디아를 없앴던 히드레안 드 이크립스라는 존재에 대해서 잠시 상기하도록 하자. 그는 세 종족을 멸망으 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물론 그 전에 모든 종족을 멸망시키고, 그 뒤에 디아 를 없앴다. 물론 처음으로 죽였던 인간의 디아인 아인디아 같은 경우에는 디아를 먼저 없앴지만 인간은 멸망하지 않았다. 이에서 보듯이 과연 '디아'란 한 종족의 생환을 보장하는 존재인가에 관한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며... 흥겹지 않은 노랫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왔다. - 소중한 것은 사그라지지, 미풍에 흔들리는 낙엽같이, 허공을 떠도는 슬픈 메아리처럼. 순간에 사라지는 것이라면 영원을 기억할 증표를. 밤은 깊어가고 피는 여전히 전장에 흩뿌려졌다. 마족의 붉은 기가 하늘을 넘실대고 인간의 마법이 허공을 질타한다. - 사랑을 노래하는 어리석은 바드들에게 사랑이란 감정이 있다면, 그것을 영원토록 알지 못하게 노래하지 않아야 하는 것을. 검과 검이 부딪쳤다 멀어지고 빛과 어둠이 공존하며 피를 머금은 불꽃이 피 어난다. 쌓여진 시체 위로 가해지는 무례한 안식의 방해자들의 발자국. 그러 나 누구도 그것을 알지 못하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것은 피와 피를 부르는 전투. - 세상의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기에 언제나 소멸되고 마는 것. 사랑을 노 래하려면 사그라듬을 두려워해야 하고 사그라듬을 두려워하면 사랑을 노래 하지 못하니, 이 어이 계속되는 모순인가. 함성도 고함도 들리지 않고 휘두르는 검뿐, 피에 젖어 더 이상 날조차 들지 않는 검을 버리고 전사자의 검을 쥐어든다. 피를 토하는 외침도 묻혀버리는 어두운 밤의 귀곡성. 외롭게 빛나는 별들은 대지를 굽어보지 않은 체 고고히 빛날 뿐. - 최초로 사랑을 한 존재는 누구였을까, 그리고 최초로 회한과 슬픔을 느낀 이는 누구였을까. 노래해, 그 최초의 연을. 그 슬픈 사랑이란 것에 관해서. 검이 꺾인다. 떨어지는 불꽃의 유희에 무너지는 것은 피와 살을 가진 인간. 사랑을 속삭이던 입술도 왕을 위해 충성한다 외치던 목소리도 대지를 박차 던 강건하던 팔다리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 꿈도 사라지고 웃음도 사라진다. 그리고 죽음의 사신이 배부르게 망자의 혼을 포식한 체 별은 계 속해서 밝은 빛만을 뿜어댄다... - 노래해, 부디 영원하지 않은 사랑의 아픔에 대해서. 순간에 사라지는 아 릿한 아픔과 사랑을 배반하는 영원하지 않은 삶에 대해서. 깨어졌다. 결계는 갈라지고 튕겨져 나가는 마력의 파편에 성벽은 할퀴어졌다. 날카로 운 손톱자국으로 벽은 온전치 못한 모습을 밤의 적막으로 감추었고 파공성 의 채찍이 사방을 휘둘러 사람들을 쓰러뜨렸다. - 노래해, 죽음조차 영원하지 못하니 영원한 것에 대해서. 영원한 사랑이란 것이 있다면. 피로 얼룩진 성문이 부숴지고 비명이 어우러진다. 하루 낮과 밤을 지나 이제 모든 것이 성립해 간다. - 영원한 사랑이란 것이 있다면 영원하지 못한 사랑을 노래해. 영원한 사랑 이 없다면 영원하지 않은 사랑을 노래하지 말아 줘. 흩날리는 회색빛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휘날려 마치 강물을 이루어 낸 듯이 보였다. 밤하늘 아래 우울하게 펼쳐진 잿빛의 유희는 허공에 자신을 각인 시키기라도 하려는 듯 한없이 휘날렸다. - 영원한 사랑이 될 거라 믿으며 사랑을 할 수 있도록, 영원한 사랑을 노래 해... 그리고 노래는 끊어졌다. 하드라는 피식 웃으면서 성벽에 기댄 몸을 일으켰다. "끝난건가." "그래, 끝나버렸지. 역시 성안으로 도피하지 말 걸 그랬나? 조금쯤 더 견뎠 을 지도 모르잖아. 예를 들어서 시골집에서 평범한 아낙과 그 남편으로 위 장하고 있었다면 말야 베이비?" "아아, 할머니와 그 아리따운 손자라면 생각해 보도록 하지." 주먹이 날아가자 하드라는 민첩한 몸놀림을 이용해 피하려다 결국 맞고야 말았다. 맞아도 싸다고 생각한다. 미모의 여인에게 저런 말을 하게 되면 반 드시 그 응분의 보답은 가해지는 것이리니...쿨럭! 아인디아는 팔을 활짝 벌렸다. 옷자락이 물결치고 그녀의 입가에 맺힌 웃음도 물결쳤다. "자! 이제 도망갈 곳 없는 우리들을 어쩔 건가? 멸망 앞에서 몸부림치는 어 리석은 여인의 자손들이여!" [지겹도록 징그러운 여자...] 짓씹듯이 지껄이는 화려한 금발을 피로 물들이고 있는 바람의 사천왕 위카 르니아를 보다 아인은 찡긋, 하고 한쪽 눈을 윙크해 보이며 입을 열었다. "너무 그러지마! 사실 여자취향인 거 다 알고 있어!" [뭐, 뭐얏!?] "오호, 부정할 수는 없겠지. 내 침실에 숨어 들어와 감미로운 속삭임을 가하 려다 성수에 맞고 하마터면 뒈질뻔 했던 그 영광스런 날의 일을..." [다, 닥쳐! 말하지 마앗!] "저 얼굴로 그 취향이라니, 저거 변태잖아?" 하드라의 충격어린 말에 아인의 대꾸가 뒤따랐다. "원래 변태야 변태." "믿을 수 없어. 어째서 하필이면 여자취향일까?" "글세, 그건 다 몸에 나름대로의 콤플렉스가 있어서가 아닐까? 그건 여자의 비밀로 남겨줘." "아앗! 아인은 심술쟁이!" 둘의 '만담'을 지켜보고 있던 위카르니아는 부들부들 떨다 결국 경기를 일 으키고 넘어가 버렸다. 킥킥 웃으며 하드라는 성벽 위로 살짝 떠서 올라섰 고, 마족들은 그들이 이번에 또 무슨 짓을 하려는지 경계하며 바라보았다. "너희를 따라가겠어." 웅성, 조금 소란스런 소음이 일어나고 아인은 난 모른다는 제스쳐로 어깨를 으쓱해 보이면서 모른 체 했다. [저, 정말입니까 후계자?] 기쁨에 찬 시하르니아의 대꾸, 그 동안 '느끼물뱀' 이라는 아인의 말도 안돼 는 별명에 갖은 오명을 뒤집어쓰던 그녀였으니 기쁜 것도 당연했다. 이어서 '녹색변태'로 낙인찍혔던 미체르니아도 후우,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무모증 꼬마'라는 불쾌하기 짝이 없는 말을 들어왔던 플레르니아도 감동에 겨운 모양이었다. 으음, 사천왕의 위신이 한 여인의 말 한마디에 바닥으로 추락할 수 있다는 것을 오늘 확실히 깨달은 바이다. 하드라는 피식, 하고 웃어보이곤 고개를 끄덕였다. [아...뭣들 하느냐! 모셔라!] 태도가 바뀌는 그들, 당장이라고도 간들을 모두 날려버릴 듯한 흉흉한 기세 는 어디로 갔는지 고분고분 태도가 바뀌는 것을 보니 역시 마족이라는 생각 이 들었다. 하드라는 하아, 하면서 의외로 쉽게 일이 풀리는 상황에 한숨을 내쉬었다. [잠깐만.] 미체르니아는 손을 들어 그들의 행동을 제지했고 그는 살짝 웃었다. 상당히 그 동안의 원한이 가득히 담겨 사악하기 그지없는 웃음이었고, 하드라는 불 안하게 그를 올려다보았다. [당신은 후계자지만 그 몸은 인간의 것...거꾸로 말하자면...우리를 위협하는 것은 당신 안에 담긴 불멸의 혼이 아니라 인간의 몸을 입고 있는 마력과 그 마력을 이용할 줄 아는 당신이라는 말이 되겠지요?] 하드라는 비웃었다. "팔다리라도 자를 건가?" [당연한 말을.] [잠깐! 아무리 그래도 후계자의 몸을...!] 시하르니아의 말에 미체르니아는 고개를 저었다. [...농담이었습니다. 그동안 당한 수모가 갑자기 모조리 떠오르는 바람에.] ...으음, 그러자 즉시 아무도 대꾸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들의 원한이 깊이 느껴졌다. 그러게 분별력이 있다면 좀 적당히 괴롭히지. [하지만 속박은 해두지요. 만약을 위한 것이니 너무 그렇게 원망하지 마시 길, 본래의 당신으로 돌아가시면 우리를 이해하실 겁니다.] 아인은 아무런 말도 없이 묵묵히 서있었다. 하드라는 하! 하고 크게 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휘휘 젖고는 끄덕댔다. "좋아, 좋다고! 맘대로 해봐. 팔다리를 자르던 뭘 하던!" 촤라라락! 성벽을 이루던 돌이 제각각으로 모습을 뒤바꾸어 솟아올랐다. 디디고 있던 받침대가 사라지자 순간적으로 하드라는 몸의 균형이 무너졌으나 자신을 휘 감는 돌무더기에 다시 고정되는, 그리 유쾌하지 않은 기분을 느꼈다. [아인디아, 그대로 지켜보실 겁니까? 모든 디아 중 가장 사랑 받는 분?] "뭐하러? 원래 여자란 물러날 때를 아는 법이야." 여상스레 말하는 아인디아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미체르니아는 흠, 하고 고 개를 끄덕였다. [당신은 역시 냉정하신 분이군요. 디아이면서도 자신의 종족을 사랑하지 않 는 존재에게 더 말을 해 무엇하겠습니까만...] "날 가운데 두고 니들끼리 말하지 말란 말야! 이거 못 풀어!?" 아둥바둥 대면서 체면을 구기고 있는 하드라따위는 내버려둬도 별 상관없을 것이다. 원래 저 모양인 녀석이니까. 아인은 무시했고 미체르니아도 무시했 다. "갈 거면 빨리 가. 나도 피부미용을 위해서 자야되니까." [하아? 예, 실례했습니다. 그럼 이만 사라지죠...] 그는 기분 좋을 정도로 생긋 웃으며 사라졌다. 이내 공간과 공간이 서로 겹 쳐지며 순식간에 마족들의 모습은 사라져갔다. 그리고 그건 하드라도 마찬 가지었다. 그가 서있는 그 자리는 그저 덩그러니 빈 성벽만이 남아 있을 뿐, 남은 것 은 아무런 것도 없었다. - 소중한 것은 사그라지지, 미풍에 흔들리는 낙엽같이, 허공을 떠도는 슬픈 메아리처럼. 순간에 사라지는 것이라면 영원을 기억할 증표를. 마왕 이야기-78 엽기적인 그녀-18 - 넌 나의 반신이야? - 그래, 그래, 내가 너의 반신이야. 그 빌어먹을 운명에 하나 뿐이라고 하 는. - 운명을 싫어해? - 아, 상당히 싫어해. - 흐음, 그래...? - ...그렇다고 해서 널 만난걸 원망 안할테니 그렇게 섭섭한 표정 좀 하지 마! 갈 녀석이! - 돌아오면 되잖아? - ...너 운명이란 거 믿냐? - 아니, 전혀. - 나도 안 믿어. 근데 안 믿어도 이루어지거든. - 난 돌아올 거야. 넌 영원히 사니까 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 수 있잖 아? - 너, 운명이라는 게 어떤 녀석인 줄 알아? - 몰라 그런 거. - 잔인하고 심술 맞은 녀석이지. 누구의 소원도 들어주지 않는 바람보다 억 압받은 존재. - 돌아올 거라니까, 왜 대답을 안 하는 거야? - 빌어먹을 운명이 원망스러워서 그런다! 왜! 정신이 들었을 때는 방안 같지 않은 방안이었다. 어떤 곳이었냐고 물어 본 다면 당연히 '이상한 곳'이라고 대답할 수 있었겠지만, 다행히 어떤 곳이냐 고 물어보는 사람이 없어서 그의 대답과 함께 신경질 적인 마법을 맞을 일 은 생기지 않았다. 방은 분명히 방이었다. 벽도 있고 침대 비슷한 것도 있고 그리고 창문도 있 고. 그런데 방은 아니었다. 사방에서 모두 자신을 볼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는 삭막하리만치 아무 것도 없는 곳. "...뭐야...이건...야! 내가 새냐!? 꺼내 줘!" 새장, 은색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새장... 사람이 들어가고도 뒹굴뒹굴 굴러도 모자람 없을 정도로 큰, 화려하고 수려 한 넝쿨줄기 같은 은제 장식으로 뒤덮여져 있는 새장. 침대와 비슷한 하얀 색의 쿠션 몇 개가 늘어져 있고, 그 바깥의 사방은 온통 새하얀 색뿐인 방 안. 아니, 한쪽 벽면은 일렬로 늘어선 스탠드 글라스로 가득 차 있어서 바깥의 암울하리만치 어두운 공간이 제대로 보였다. 그야말로 정신병자나 변태취미를 가진 사람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을 것 같은 그 방안에 있는, 허공에 걸려있는 커다란 새장 속에 갇힌 신 세가 된 하드라는 짜랑짜랑하게 방안에 목소리가 울리도록 큰소리를 쳐댔 다. "꺼내주지 못해! 어디선가 훔쳐보고 있을 거 아냐! 이 변태들아! 꺼내 줘!" 얼마나 악을 썼을까, 이내 그는 손을 지켜들었다. "이것들을 그냥...!" 마력을 응집했지만 허무하도록 쉽게 스러들었다. ...하드라는 기운이 빠지는지 하아, 하고는 그대로 창살을 잡고 주저앉았다. 마족들이 변태 비슷한 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사람을 새장에 가두다니 이 게 어디 말이나 될 법한 이야기 인가! "아아아악! 꺼내 줘 꺼내 줘 꺼내 줘! 이 변태집단들!" 소리쳐봤자 꺼내줄 사람도 없을 텐데 정말 신경질적인 그의 비명과 같은 외 침이 방안을 가득 매웠다. 그래봤자 웅웅대는 목소리만이 방을 가득히 매웠 다가 사라져갈 뿐이었지만, 밀폐된 공간에 갖힌 체 아무런 것도 알려지지 않는 다는 것은 인간에게 상당한 심적인 고통을 부여하기 마련이다. 큰소리를 지르며 뭔가 좀 더 발악할 거라는 기대를 깨고 하드라는 창살만 부여잡은 체 그대로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아 있었다. 마법을 못 쓴다는 것, 그것은 무력해 진다는 것. 힘이 있다면 어른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빌어먹을..." 어린애라는 말이 싫었다.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 벗어나고 싶지만 기대지 못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신세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달아나려고 해도 그 뒤에 다가오는 현실이라는 문제에 맞부딪쳐 정작 도망 이란 것은 불가능했다. 달아나려 하면서도 정작 잡아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가버리라고 쉽게 대답할 수 있었다면, 차라리 묻지 말걸 그랬다... "...어린애 취급은 싫단 말야..." 어떻게 하면 어른이 될 수 있는 거지? 어떻게 하면 더 이상 '어린애'라고 불리지 않아도 되고, 누군가를 보호해 줄 수 있을까? 이렇게 불안하고 무서운 기분이 싫었다. 결국 가지고 있었다고 믿었던 '힘' 이란 것도 가시적인 것 일뿐, 가장 중요한 것은 여전히 제자리걸음 뿐. "...흑..." 결국 창살에 기대서 하드라는 어린애처럼, 아니 어린애 맞으니까 그냥 애답 게 울음을 터트렸다. 뚝뚝 굴러 떨어지는 눈물 방울, 처음엔 소리 죽여서 울 던 것이, 왜 한번 울면 더 크게 울어 버리는 게 어린아이들 패턴이라고...이 내 점차 큰소리가 되어간 울음은 거의 악을 쓰는 정도로 발전해 버렸다. ... 쓸모 없는 것도 왜 발전이 되는걸까. 울면 추해지는 데도 불구하고 누구의 농간인지 빽빽 소리를 질러대며 세 살 먹은 어린애가 투정하듯이 우는 것과 같은데도, 상당히 그 모습은 귀여웠다. 흐음, 목소리가 청아해서 우는소리조차 아름다...... ...어쨌든 그렇게 기운이 남아도는지 울고 있는 그도 결국 목이 아픈지 잠시 울음을 그치고 끅끅거렸다. 아무리 커도 정신이 성숙하지 않으면 저 정도 수준이라는 건가. 소매로 눈 물을 훔치는 모습은 정말 영락없는 3세...혹시 정말 정신연령은 3세? 그럼 아인은 아동추행범? 아, 말이 샜다. 어쨌든 실컷 울고 속이 시원해 졌는지 눈을 부비적대고 있는 어린애 하드라. [귀청이 다 끊어지겠군, 이렇게 어린애가 후계자라니 원.] 사박사박하고 소리도 없이 걸어오고 있는 우아한 걸음, 크고 투명하게 빛나 는 노란색 보단 오렌지 빛에 가까운 눈동자. 군살 없이 하얗게 반짝대는 몸 과 귀엽게 살랑대는 꼬리. 새하얀 털이 짧은 고양이 한 마리가 자신에게 그렇게 시비를 걸자 하드라는 가볍게 대꾸했다. "시끄러, 고양이 주제에." [예예, 귀청 찢어질 정도로 울어제낀 누구보다 시끄러운 녀석은 입 닥쳐야 지요.] "..." 하드라는 창살을 잡고 있다가 이거 혹시 끊어서 던지면 맞아 죽을 수 있을 까? 하는 생각 따위를 하며 입술을 오물거렸다. 하얀 고양이는 새장에서 자 신이 보이는 위치쯤에 자리를 잡아 배를 깔고 드러누웠고, 그의 몸은 어두 운 음영이 진 바깥의 풍경과 비례해 보았을 때 이상하게 반짝여 보였다. "...넌 뭐야?" [보면 몰라? 애완용 고양이잖아 바보 후계자.] "누가 바보야! 거기다 후계자가 아니라 내 이름은...!" [넌 이름이 없잖아?] 놀리듯이 말하면서 고양이는 고양이 식 세수를 하기 시작했다. 야옹야옹하 는 효과음이 잠시 방안을 메운다. 새장을 흔들어서라도 신경질을 내보고 싶 었지만, 이 새장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무거운지 좀체 흔들리지도 않았다. "나가기만 하면 절대로 가만 두지 않겠어!" [얼씨구, 나오기나 하실 수 있으셔? 마법봉인에 물질력 봉인에 마나포스 봉 인에 시간 봉인까지 돼있는 물질인데.] "...모, 못나가?" 기운 없이 추욱 처져서 버림받은 고양이 포즈를 잡고 있자 고양이가 더 어 의가 없는지 냥냥 거리다 위로해 주었다. [나갈 수는 있지,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언제가 될지 모르지마안? 그런 게 어딨어! 그것도 모르면서 넌 왜 살아?!" 그렇다고 왜 사는지에 관한 철학적 문제까지 논해야 하는 것인가? 저런걸 성격 나쁘다고 표현하는 거겠지. [내가 그걸 알아야 할 이유도 말해줄 이유도 없잖아 후계자.] 건방진 고양이. 부르르 떨면서 하드라는 손을 내밀어서 그 건방진 고양이를 한 대라도 때려 주려고 했지만, 손을 내밀지 못하게 아주 교묘하게 만들어진 새장의 능력만 을 실감했을 뿐이었다. "나가고 싶어! 난 새가 아니란 말이야! 꺼내 줘 꺼내 줘 꺼내줘어!" [시끄러, 애처럼 때 쓰지 마.] "몰라! 난 애라고! 애니까 때 쓸 거야! 꺼내줘어! 너같이 성격 나쁜 바보 같 은 고양이 따위하고 있는 건 싫단 말야! 으아아아앙!" ...때로 애라는 것은 어른보다 영악할 때도 있는 법이다. 암암, 그럴 수도 있는 거지. 마왕 이야기-79 엽기적인 그녀-19 [시끄럽게 굴지마, 바보 같은 녀석아.] 고양이는 귀찮다는 듯이 그렇게 하드라의 울음에 반응했다. 우는 것도 통하 지 않자 결국 울음을 그치고야 만 고양이지만, 그렇다고 울지 않는다는 것 이 그의 기분이 풀렸다거나 다른 방법으로 고양이를 들볶는 일을 하지 않는 다는 것은 아니었다. "웃기는 고양이." [우습지 않다면 웃긴다는 말은 쓰지 말라고.] 비꼬듯이 대꾸하는 그 말투가, 별로 하드라의 맘에 들지 않았다. "아냐 웃겨! 생긴 것도 모습도 거기다 하는 짓도 전부 다!" [이래뵈도 평범한 고양이처럼 행동하고 있잖아?] 냐옹, 하면서 하품하는 모습은 정말로 여느 평범한 고양이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 하드라는 고개를 휘저으며 대답했다. "넌 말하잖아!" [행동한다고 했지 평범한 고양이라고는 하지 않았어 바보야.] "우, 우잇!" ...져버렸다 하드라가. 과연, 저런 성격파탄 고양이하고 있으니 하드라도 상당히 유치해져 가는 모 습을, 원래 유치했지만 한단계 더 유치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으니 그것도 나름대로 재미있다. "너 마족 맞지?" [오, 이제야 그걸 알아내다니 과연 마계의 미래가 축복되는 바...] "시끄럿! 알았지만 그냥 물어본 것뿐인데, 그런걸 가지고 치사하게 뭘 그 래!" 고양이는 비웃는 듯한 웃음을 해 보이며 낄낄댔다. 그의 소리가 맘에 들지 않는지 불퉁해버린 하드라지만, 뭔가 알 수 있는 것도 있을 거라는 생각에 하드라는 계속해서 끈질기게 말을 걸었다. "...아 그래, 너 이름이 뭐야?" [이제서야 묻다니 바보 같기는.] "그래애 나 바보다! 말이나 해!" [그냥 미야라고 불러. 본명은 미야나 폰 소울스터커. 하암, 긴 이름은 좋아 하지 않지만 너같은 바보들은 꼭 풀네임을 부르라고 윽박지르더라고.] 안그래도 풀네임을 말해! 라고 할뻔했던 하드라는 욱, 하면서 얼굴을 붉혔 다. 딱 맞췄다는 표정으로 씨익, 하고 고약한 웃음을 짓는 미야나를 노려보 던 하드라는 애써서 떠듬떠듬 말을 이었다. "그...그럼 미야. 여기는 어디지?" [왕의 방.] "...마왕은 수도 없이 많잖아?" 미야는 놀랍다는 표정으로 냐옹, 하고 해 보인 후 뒹구르르 몸을 굴려 보이 더니 씨익 비웃어 준 후 대답해 주었다. [내가 왕이라고 부를 만한 존재를 내 말을 통해서 유추해 보도록 하라고, 그래도 말을 돌려서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 [아직 말을 돌려서 할 줄 모르는 애송이로군, 냐옹.] 한번 약올리고 나서 미야는 대답해 주었다. [에리나쟈드 드 이크립스, 피어나는 첨예한 혼돈의 마왕의 거처다.] 에리나쟈드 드 이크립스, 하드라의 어머니라고 불리었던 존재. 그를 인간들에게 내팽겨쳐 버리고 돌아선 존재. 어리석을 정도로 아름다웠 지만 동시에 오만할 정도로 연약했던 이. 하드라는 아무런 감흥 없이 되물었다. "하지만 여기는 감옥이잖아?" [마왕은 다 변태란 소리 못 들어 봤어? 감금되는 것을 좋아한 변태라고 생 각해.] "도망 쳤잖아?" [가두는 것을 좋아하는 녀석들이 있었기 때문이겠지 뭐.] 성의없는 대답에 성의있는 질문이 이어지는 것은 묘한 일이다. 성의없는 대 답이란 것은 결국 상대를 질려버리게 하고자 만드는 것, 그런데도 불구하고 대답과 질문이 이어진 다는 것은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많은 것을 할애할 때나 가능하다. 뭐, 어느 쪽이 할애하는 지는 뻔히 보면 알 수 있지만. "어떤 존재였어?" [흐응, 듣고 싶은 모양이지?] 밀랍같이 굳어버린 하얀 손가락으로 창살을 움켜쥐면서, 하드라는 미묘하게 차갑지만 동시에 증오스러운, 어떻게 보면 원망스런 얼굴로 중얼거렸다. "...내...어머니...잖아?" [마족이라도 '부모'를 생각하면 적어도 일말이긴 해도 추억에 잠기는 표정 을 짓는데 후계자 께서는 영 아닌 모양이지.] "닥치고 말이나 해, 이 바보 고양아." 미야는 통렬한 독설로 갚아주는 대신 대답을 해주었다. [아름다운 인형이었지. 보통 에리는, 아 실례. 애칭으로 부르는 것을 너무 기분 나빠하지 말아 줘. 내 취미가 애칭을 붙이는 거라서. 어쨌든 에리는 거 기 쿠션더미에 앉아서 보통 멍한 눈으로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어.] 거칠거칠한 혀끝으로 삭삭, 하고 자신의 발을 핥으면서 미야는 말을 이었다. 아니 정신적 파동이라고 해야 할까? [그냥 멍한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면서 한껏 웅크리고 앉아서 마치 어린애 가 부모라도 기다리는 듯이 그러고 앉아 있었지. 새장 바깥으로 나갈 생각 도 하지 않고 말이야.] 쿠르릉. 갑자기 배경으로 있던 무미건조한 바깥이 조금 흔들렸다. 천둥이 일어나고 번개가 내리쳤다. 거꾸로 뒤집혀져 있었지만 둘 다 신경 쓰지는 않고 있었고 하드라는 조용히 고개만 숙여 미야를 뚫어져라 쳐다보 면서 그의 말을 들었다. [난 궁정의 어릿광대. 왕을 즐겁게 해줘야 할 책임이 있는 자. 그래서 이렇 게, 늘 왕의, 그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인형의 옆에 앉아 있었지.] 인형. 아무런 감흥이 담겨져 있지 않은 목소리. '인형', 태엽을 감으면 째깍째깍 잘도 돌아가는 태엽 인형. [어느 날 인형이 울었어. 너처럼 큰소리로, 목청이 터질 만큼 크게.] 그는 부르르 한차례 몸을 떨고는 일어났다. [그리고 인형은 울면서 말해지. '아파'하고. 인형은 새장에서 나와 날아가 버렸고 마계는 난리가 났어. 어찌됐건, 인형이 존재하기에 마계는 유지되었 고 '섬기는 존재'임과 동시에 '감시해야 할' 존재가 사라졌으니까.] "...그래서?" 처음으로 한 대꾸에 미야는 심드렁하니 대꾸했다. [다시 돌아왔어, 새장으로. 그리곤 너처럼 그렇게 새장을 부여잡고 날 향해 서 말했지. '모두 죽여버릴 거야'라고.] 섬뜩하게 낮고 허스키 한, 뭔가 감정 없는 목소리를 그대로 흉내내어 보이 면서 미야는 하드라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움찔, 하고는 그 목소리에 잠시 반응하는 듯 했고, 미야는 냥냥 거리면서 기분 좋게 다시 말을 이었다. [마족들은 좋다고 인간계를 파괴했지. 그리고 다시 사라졌어.] 미야는 희극배우처럼 끝을 과장해서 크게 읊었다. [그래, 영원히!] "...아프다고...나도 아파...나가고 싶어, 나가고 싶단 말이야...보고 싶어, 아인, 칸나...싫어...무서워, 여기는 싫어...무서워..." 주저앉아 다시 흐느끼기 시작하는 감정변화 심한 어린애를 놓고 미야는 여 유롭게 하품을 했다. 전번 왕보다 시끌시끌해서 좋지만 지나치게 이러니 저 러니 해서 별로 좋지는 않은 미야였다. [나갈 수 있어 곧.] "우흑...흑...언제..." [계승식을 하면.] "그건...윽...언제..." 미야는 순순히 시키는 대로 다 불었다. [제물이 준비가 되는 데로 곧 할거니까 걱정을...엥?] "흐응, 그렇단 거지. 계승식만 끝나면 이 지겨운 곳에서 나갈 수 있다 이거 군." 어느새 다시 돌변해서 고고하게 고개를 쳐들고 있는 하드라. ...정말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이었다. [...정말 시끄러운 바보군.] 마왕 이야기-81 엽기적인 그녀 -20 - 그때 왜 하필이면 바람은 동쪽으로 불었을까, 그때 왜 하필이면 태양은 그리 뜨거웠을까... 그때 왜 그는 거기, 한낮의 태양 아래 서서 있었을까? ... 그리고 왜 하필 그때 내 운명은 태양아래 서 있는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존 재를 찾아냈을까. 태양을 본 뒤 촛불을 보면 초라해 보임을 알 것을... 그리 고 그때 왜 나는 내 운명을 그리 보냈을까...? 그래, 운명이 미워. 그리고 다시 돌아온 일그러진 운명을 사랑해버린 내가 증오스러워. [아아, 건강하셨습니까?] "못해!" 하드라의 대꾸를 무시하며 미체르니아는 꾸벅, 고양이를 향해 고개를 숙여 보였다. [감사합니다 룬 마이스터 미야나 폰 소울스터커, 마계 제일의 수호자시여.] [아부는 그만하고 캣 푸드나 내놔 냐아옹...] 뒤굴뒤굴 굴러대는 미야를 보며 쓴웃음을 짓고는 미체르니아는 고개를 끄덕 끄덕 거렸다. 익숙한, 그렇지만 익숙하지 못한 얼굴들이 하드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드라는 최대한 살기등등한 눈으로 그들을 노려보았지만 아무도 살기따위는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너희들 전부 죽여 버릴 거야." [후계자치곤 너무 싱싱한 애를 데려온 것 같은걸 냥...하암, 어쨌든 잘들 해 봐.] 킥킥 웃는 사천왕들을 향해 한마디 해준 미야나는 그대로 잠들었다. 그리고 미체르니아는 딱, 하고 손을 퉁겨 녹색의 덩굴로 하드라를 뒤감곤, 중얼대면 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역시 누가 녹색변태 아니랄까봐 끝까지 녹색을 주창하는 그의 저... "제길, 정말로 죽일 거야!" 독기서려서 그렇게 말하는 하드라를 신경 쓰지 않는 사천왕들을 보면서 하 드라는 이를 우둑 갈았다. 정말로 이것들을 죽일 수 있다면 진작 죽여버렸 을 거야...하드라는 다짐했고, 계승식인가 뭔가만 끝나면 모조리 죽여버릴 테 다, 라고 결의했다. 차가운 바람이 휘감겨 들었다. 뺨을 스치는 옅은 눈가 특유의 냄새에 아주 가늘게 눈을 뜨고는 하드라는 두리번댔다. 녹색의 넝쿨들이 줄기차게 달라붙으면서 방해하긴 했지만. 바둥바둥 대다가 갑자기 하드라는 움찔했다. "...싫어! 이 넝쿨 변태 아니야! 어딜 파고드는 거야!" [파, 파고 들다뇨! 어디를!] 식은땀을 흘리며 미체르니아는 꺄악대는 하드라를 돌아보았고, 사천왕들도 각기 놀래서 그런 하드라 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농담이었는데?" 베에-하면서 혀를 내밀어 보이는 하드라. 동시 다발적으로 네 명의 존재는 화르륵하고 살기를 불태웠다. 원래 괜히 어린애 건드리면 위험하다고 하지 않는가. 하지만 이렇게 사천왕을 장난감 취급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넷은 참았다. 비릿하게 느껴지는 찬바람. 얼음과 같은 느낌이 휘감겨 있었다. 넓게 느껴지는 동굴의 가운데를 중심으로 마치 나선처럼 사방으로 꼬여있는 모습을 한, 절대 자연의 손길로 만들어질리 없는 곳. 길게 늘어선, 마치 나 선형 계단 같은 홈에는 빽빽한 촛불들이 가득히 차 있었다. 단 하나도 꺼진 것 없이 나란히 늘어선 기괴한 푸른빛 초불. 갈색의, 투명하게 얼어붙은 얼음의 동굴에는 어울리지 않는 갈색빛의 기괴 한 광택이 도는 마법진. 보통의 마법진, 축복을 위한 것은 보통 한겹의 원을 두른다. 보호의 마법진, 두겹의 원을 두른다. 소환의 마법진은 세겹의 원을 만들어 완전히 자신을 보호한다. 그리고 그 마법진은 360개의 원으로 둘러싸여져 있었다. ...언제 그걸 다 세아렸느냐고 묻지 마라, 긴장감 깨진다. 어쨌든 동굴 전체 를 가득 메우고도 남을 그 거대한 마법진의 가운데에는 얼어붙은, 약간은 불투명한 얼음덩이가 있었다. 마법진 자체의 크기가 어마어마해 뿌옇게 보일 정도지만, 멀리서 봐도 확연 히 알 수 있을 정도로 그리 아름답지 않은 그냥 얼음덩어리. [어서오시오, 후계자여....] 희뿌연 영상이 허공에서 떠올랐다. 거의 반투명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의 여인. 길게 흩날리는 머 리카락과 조금은 도도하고 고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상당히 쭉 빠진 대다 가 늘씬한 몸을 가지고 있는 그녀를 아래위로 쭉 훑어보는 눈빛을 한 후 하 드라는 딱 한마디를 했다. "아줌마네?" [.........] 웃음을 참으려 노력하느라 온몸이 거의 부들부들 떨릴 정도가 되었는데도 사천왕들은 감히 웃지를 못했다. 웃으면 죽일 듯한 형형한 기운을 내뿜으면 서 베나디아가 그런 하드라를 죽일 듯이, 아니 죽일 수 있다는 듯이 노려보 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곡이 찔려서 아픈거야?" 괜히 한마디 더 했다가 살기만 증폭시킨 하드라는 고개만 까닥였다. 베나디 아는 있는 힘껏 자신에게 가해지는 언어폭력을 참으며 애써서 입을 열었다. [...왕이 될 이여, 계승식의 자리에 온 것을...진심으로 환영하는 바입니다.] "넝쿨을 풀어주면 기꺼이 환영 받아줄 지도 모르는데." 비꼬는 하드라의 음색에 결국 베나디아가 그를 해치우느냐 해치우지 않느냐 를 두고 두근대는 마음으로 보고있던 사천왕은 그녀가 참아내자 에이, 하면 서 실망하고야 말았다. 그렇게 긴장감 없는 사천왕들을 노려봐 준 후, 베나디아는 다시 고혹적인 미소를 지었다. [이제 당신은 이름 받고 새로운 왕으로 거듭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희 와 다시 계약해 우리의 명을 영원히 늘려주소서...] 넝쿨들이 풀려났다. 베나디아는 연인이라도 대하는 듯이 팔목을 주무르고 있는 하드라의 뺨을 쓰다듬었다. 소름 돋도록 차가운 감각에 저도 모르게 물러서려고 움직인 하드라의 몸은 어느새 그 중앙의 얼음 덩어리 앞으로 이 동되었다. 그리고, 하드라는 기절할 듯이 놀라서 외쳤다. "어떻게 네가 여기 있는 거야 아인!?" "잡혀왔다고 하면 믿을래?" "안 믿어." "으음, 잡혀왔다고 말하기 싫어지는군." ...여전히 태평하기는 하지만, 팔다리는 얼음으로 만들어진 가시 줄기들이 박 혀 들어서 피로 젖어들어 있었고 머리카락은 헝클어질 대로 헝클어져서 사 방으로 물결치도록 내려와 있었다. 피로 물든 옷자락 위로 드러난 얼굴은 그럭저럭 멀쩡해 보였지만 길게 찢어진 뺨의 상처는 여전했다. "...왜 잡혀 온건데?" "납치된 공주의 용도가 어디 있겠어? 훗, 내 입으로 이런 말하려니 쑥쓰럽 잖아." 하드라는 뒤로 돌았다. 그 자리에 서 있어야 할 존재들은 보이지 않았다. 각기 자신의 사방위(四方 位)에 서서 마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단순한 빛 덩어리의 모습으로 화해 있었고 우웅, 하면서 마법진은 발동을 시작했다. 하드라는 짜증을 부리듯이 외쳤다. "대체 왜 여기 있는 거냐니까!" "제물." 아인은 간단히 대답하고는 하드라를 올려다보았다. 별 생각없어 보이는 탁 하게 느껴지는 회색빛의, 우울한 눈동자. "제물? 무슨...? 이 계승식을 위한?" "정확히는 계약을 이어가기 위한 제물. 계승식 자체야 어렵지 않지. 네 몸에 서 혼을 뽑아내서 도로 원래 몸에다 처박으면 끝나는 거니까." 하드라는 잔뜩 혼란한 표정으로, 뭔가를 해야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반사적 으로 질문했다. "원래...몸?" "그래, 에리나쟈드. 널 깨우기 위한 의식이야." "...난 에리나쟈드가 아니야." 아인은 후우, 하고 등을 편하게 얼음에 기대면서 고개를 지켜들었다. 불투명 하다고 생각했던 얼음덩어리에는 확실이 어릿하게 인간의 그림자가 드리워 져 있었다. 마족이라고 해도 전형적인 부활 장면 밖에는 만들지 못하는 모 양이었다. 이것은, 계승식이 아니라 단순한 부활의식인데 말만 무지하게 거창하게 했 을 뿐. "그래, 넌 에리나쟈드가 아니지. 그냥 에리나쟈드가 만들어 둔 표층의식일 뿐이니까." "아니야! 난 존재해!" 하드라의 절규에 이어서 공간이 울렸다. 우우우웅. 그리고 정확히 다섯 개째의 원이 빛을 발했다. 빛은 점차 바깥에서부터 안 으로, 조금씩 그 차가운 흰빛을 늘여가며 그들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시끄러, 넌 존재하지 않아. 혼돈이란 단수개체야. 에리나쟈드와 시오 사이 에서 애라는 게 태어날 리가 없다고. 깜찍한 시오 녀석, 에리나쟈드가 따라 죽는다고 난리 칠까봐 나름대로 배려해놨다고 해야하나." "...내가 존재하지 않으면...존재하지 않는 걸 사랑한, 넌 뭐야?" 아인은 씹듯이 내뱉았다. "멍청한 놈. 내 운명의 반신은 에리나쟈드야." 우우우우웅. 동굴의 파편이 떨어져 내릴 정도로 사방이 울려댔다. 여덟 개째의 원이 빛으로 화한다. 하드라는 화낼 기운도 없는지 그냥 멍청 하니 서 있었다. 아인은 그런 하드라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고개를 옆으로 패액 돌리고 큰소리로 외쳤다. "아아 그래! 좀 상처 입은 얼굴 좀 하지 말라고, 같은 얼굴이면서 성격은 정 말 왜 저런지...널 에리나쟈드 대신으로 보았다면 흠씬 패줬지 절대로 키스 한다거나 그 이상의 짓까진 하지 않았을 거라고! 잘못했다니까안!" 그렇게 꼭 노골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다들 알아들을텐데 굳이 저런 말투를 사용하는 것은 심술이 심하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가 없다. "...제물이되면...죽어...?" "아마 안 죽을걸. 디아는 원래 절대로 안 죽거든. 종족이 멸망하기 전까지 는. 디아가 죽음으로 종족이 멸망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일은 절대로 없어." 너무도 태평하기 짝이 없는 아인의 말에도 하드라는 뭔가 멍한 표정으로 그 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확실히 흘러내리는 피의 양이 많기는 하지만 본인이 전혀 고통스럽지 않은 표정을 하고 있으니 다른 사람 피로 도배라도 한 것 같다. "...내가...왕이 된다면, 강해질 수 있을까? 너처럼 그렇게 어떤 일이 있어도 아무렇지 않게 웃을 수...있는 걸까?" 아인은 휴우, 하고는 한숨을 내쉬고는 대꾸했다. "내 말은 듣지도 않았군. 넌 표층의식이야! 겉으로 드러난 의식!" 아인은 찌익, 하고 살이 뜯어져 얼음에 달라붙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짜 증스럽게까지 외쳤다. "저 몸으로 돌아가면 넌 없어져!" "...없어지면, 어떻게 되는데?" "넌 에리나쟈드라 불리는 존재가 되겠지. 어차피 넌 없는 거니까..." 하드라는 몸을 숙여서 아인의 뺨을 쓰다듬었다. 풀려버린 눈빛.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으리란걸 느끼고 아인도 체념하듯이 눈을 감았다. 그리고, 300개 째의 원이 빛을 발했다. 점차 가속화되며 다가오는 빛의 무리들. "나는 뭐지 그럼?" 흐느끼듯 중얼대지만, 아인은 대답해 주지 않았다. 인간이 살아온 세월의 시간만큼, 배려하는 마음은 죽어 버린지 오래, 어설픈 위로로 마음을 죽이는 것보다는, 그냥 말없이 서있는 편이 났다. 오해받던 오해받지 않던... "...난 그럼 뭐지...? 난 아무 것도 아니야? 난 필요 없는 거야?" "닥쳐! 빌어먹을 어린애 같은 자식." 아인은 고개를 거칠게 저어서 하드라의 손을 떼어냈다. 상처받은 표정. 여리 기 짝이 없는 존재의, 자아정체성을 찾기 위한 쓸모 없는 몸부림. 역겹고, 추해 보일뿐, 어디도 애처럽고 슬퍼보이지 않는다. 아인은 고개를 지켜들고 시니컬하게 외쳤다. "살고 싶으면 널 위해서 살아! 존재가치는 네놈이 찾아! 아무리 애원하고 매달려도 난 널 필요하다고 말해주지 않아! 스스로 입을 열고 외치란 말야! 이 나약하기 짝이 없는 어린애보다 못한 녀석아!" "...난...나는..." 쿠웅, 사방을 울리는 소음. 베나디아의 차가운 목소리가 사방을 울렸다. [의식을 시작합니다.] 마왕 이야기-82 엽기적인 그녀-21 [왕이여. 첨예한 혼돈의 아래에 존재하는 우리들의 왕이여. 혼돈을 지배하시되 지배하지 않는 존재여. 영원히 존재하시며 또한 불멸하시는 분이여. 그대는 어둠, 혼란, 파멸. 모든 심판의 저울 끝에 서 있는 자. 추를 지배하는 존재. 시간의 흐름 속에 고고히 존재하시는 분. 일곱 시간의 축을 지배하는 이. 왕이여. 그로 인해 그대 왕이라 불리는 존재.] 점차 얼음이 반투명하게 변하기 시작하고 그에 따라 아인의 몸도 크게 한번 들썩였다. 모든 마력이 중앙으로 몰려든다. 거친 바람결에 휘날리는 머리카 락을 내버려두고, 하드라는 멍하니...아주 멍하니 그 투명해져 가는 얼음덩어 리를 바라보았다. 살짝, 아주 살짝 지켜든 고개. 선홍색의 피 같은 붉은 입술. 반쯤 내려 깐 흑빛의 눈동자. 바닥에 닫을 것 만 같은, 휘날리는 진한 검은색의 머리카락... 같은 얼굴이지만, 그 존재는 미칠정도로 아름다웠다. 당장이라도 그 발 밑에 몸을 던지고 자해해 그 아름다운 이를 위해 죽을 수 있을 만큼. 하지만 하드라는 그녀를 바라보며 킥, 하고 웃었다. 그 허무하도록 처연한 아름다움. 모든 것을 빨아들여 소멸시킬 듯한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에서 하나가 빠져 있었기에. 웅웅대는 소리는 높아져만 간다. 피가 계곡을 이룰 정도로 뿜어져 나와, 하드라의 발치를 적셨다. "...나에게...증표를 준 건 그것 때문이었나...?" 허무하게까지 느껴지는 목소리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나에게...너를 준건 그것 때문이었나...? 내가, 너니까?" 천천히 사방을 매우는 차가운 한기에도 하드라는 움직이지 않았다. 알 수 없는 헛울음이 비져 나오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는다. 그 오싹한 죽음의 매 력을 내뿜고 있는 저 아름다운 존재에게 없는 것을 그는 가지고 있으므로. "나에게...삶은 준건...내가 너이기 때문이었나...?" [아아, 나의 왕이여....] 베나디아는 그 투명한 몸으로 뒤에서부터 하드라를 감싸안았다. 닫는 부분 에 느껴지는 싸늘한 한기에도 불구하고 하드라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아 인은 정신이 남아있었는지 그런 베나디아를 향해 한마디 해 주었다. "...정신나간...변태." [훗, 죽음을 바라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이지. 자아 나의 왕이여. 이제 다 시 돌아오소서. 그리고 왕의 증표 아래 다시 한번 계약을, 다시 한번...영원 한 삶을...] 그녀는 스윽, 하고 손을 들어서 멍한 눈길로 점차 녹아 내리는 얼음을 보고 있는 하드라의 눈을 가렸다. 차갑게 식은 손은 갈퀴모양이 되어서, 그의 눈 안으로 파고들었고 푸욱, 하는 기분 나쁜 소리와 피가 터져 나왔다. [...어차피 이것은 거짓 육신, 갈가리 찢어버리고...어서 당신의 몸으로 돌아 가소서...] "난 너에게 뭐지?" 하드라는 떨어지는 피를 인식하지 못하는지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대는 나의 왕, 나의 생명!] "넌 그럼 나에게 뭐지?" 순간 베나디아는 대답하지 못했다. 하드라는 비웃었다. "왕이 아니라 불로장생의 묘약이라고 지껄이지 그래...킥...킥킥킥..." [...돌아가! 그리고 다시 한번 영원의 계약을, 원래의 모습으로...!] 하드라는 그녀의 손길을 뿌리쳤다. 히미한 그녀의 몸이 하드라의 손으로 내 쳐지고, 하드라는 돌아서서 분한 표정을 짓고 있는 베나디아를 향해 건방지 게 외쳤다. "난 더 이상 에리나쟈드가 아니야! 왕의 증표를 가진 자는 에리나쟈드, 첨예 한 혼돈이 아니라 바로 나니까!" 그는 손을 들어 이마를 찢어 내렸다. 가늘게 자란 손톱이 이마의 살을 파고 들고, 뼈까지 긁어냈다. 찌익, 하는 기분 나쁜 소리. 그리고 손끝에는 피 대 신 축축한 물이 묻어나 있었다. 갈라진 이마의 사이로 존재하는 것은, 세 번째 눈. 시간이자 공간이며 절대이며 혼돈인 황금색 눈. 길게 갈라져있는 틈으로 보이는 것은, 모든 것을 휘감아 버릴 듯 형형히 빛 나는 금색의 눈동자였다. [...증표...왕의...의식이...겨우 표층 의식이...저걸...어떻게...?] "원하는 대로 왕이 돼주지! 하지만 너희가 원하는 대로는 되지 않겠어...!" 하드라는 몸을 돌려 녹아 내린 에리나쟈드의 육신으로 다가갔다. "...쳇...너...꽤나 멋진 녀석이잖아..." "새삼 반하진 말아 줘." 하드라는 농담처럼 말하곤 녹아내려 일부가 드러나 있는 에리나쟈드의 피부 에 손을 댔다. 그리고 베나디아는 멍하니 있던 것을 지우고 폭풍처럼 외치 기 시작했다. [시초라 함은 시초라 불릴 수 없는 혼돈! 그대 혼돈의 이름을 말하라!] "없다!" 하드라의 외침에 마법진은 더 큰 빛을 발했다. 우우웅, 하면서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빛은 거세게 폭주했고 아인은 한차례 더 피를 토했다. 흘러내린 피 가 더 이상 늘어날 수 없을 정도로 바닥은 흥건했지만, 누구도 상관하지 않 았다. 그녀 자신조차도. [혼돈의 아래에 존재하는 것은 질서! 질서의 이전에 존재하는 것은 운명! 그대 운명으로 부여받은 이름을 말하라!] "없다!" 베나디아는 밀려나갈 것 같은 풍압에도 지지않고 더 크고 높은 목소리로 외 쳤다. [그대가 지배하는 것은 시간! 시간이란 흐름! 흐름이란 변화! 변화란 곧 파멸! 파멸로 가는 흐름을 주관하는 이여! 그대의 지배하는 것에게 받은 이름을 말하라!] "없다!" 우웅! 동굴자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변함없을 것 같던 촛불들도 격렬하게 터지 듯이 꺼져가며 사방을 어둡게 만들어가고 있었지만, 정작 마법진은 형형히 빛나며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빛을 발하고 있었다. 하드라는 서서히 녹아 거의 그 모습이 모두 드러난 에리나쟈드의 손에 자신 의 손끝을 댄 자세 그대로 다가오는 마법의 바람에도 굴하지 않고 그대로 서 있었다. [그대를 저주하는 것은 운명! 그대를 축복하는 것은 혼돈! 말하라! 축복과 저주의 중간에 서서! 그대의 이름을!] "없다!" 더 크게 바람이 사방에서 몰아쳤다. 아인은 가쁜 숨을 들이쉬면서 온몸이 서서히 갈라져 가는 고통에서도 킥킥대며 잠시 웃음을 터트렸다. 살아있다. 그 순간 미치도록 살아있다는 느낌이 온몸을 타고 짜릿하게 흘렀다. 저 상황에서 웃을 수 있다니, 과연 엽기적인 여인이로다. [그대가 추구하는 것은 행! 영원히 계속될 그대의 추구점! 끝나지 않는 그 유랑을 걸고 부르노니! 그대의 이름을 알려라!] "없다!" 베나디아도 더 이상은 힘겨운지 거의 투명해 질 정도로 뒤로 물러났다. 하 지만 그녀는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외쳤다. [그렇다면 그대가 지키는 것을 걸고 말하노니...! 영원하지 않지만 불멸하는 그것! 다가오는 첨예한 혼돈 아래 존재하는 힘! 말하라 그대의 이름을!] "없다!" 콰아앙! 퉁기듯이 물러난 베나디아는 마법진의 중심부 바깥으로 튕겨나가, 보호를 담당하는 외벽 쪽으로 다가가 섰다. 그녀는 이미 더 이상 회복할 수 없는 충격을 받은 상태였고, 거의 원망하듯이, 아니 피맺힌 원망을 담은 목소리를 내뱉았다. [그럼 그대의 이름은 무엇인가! 일곱 개의 이름 중 단 하나의 이름도 없다 면! 그대는 정말 존재하는 자인가!?] 후두둑. 떨어져 내리는 얼음의 파편이 반짝대면서 하드라의 머리 위로 흐트러졌다. 마왕 이야기-83 엽기적인 그녀-22 아인은 미소지었고, 하드라도 짧게 미소했다. "묻겠어." 아인의 가늘고 힘이 없는 목소리를 들으면서 하드라는 킥, 하고 웃었다. 눈 은 보이지 않지만 보나마나 짓고 있을 그녀의 특유의 그 포커페이스가 떠오 른다. 천천히, 느리지만 정확하게 아인은 말했다. "네가 처음으로 네 의지로 받았던 이름을 말해 봐." 하드라는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심연." 베나디아의 목소리가 겹쳤다. [...말도 안돼! 그 이름은, 그 이름은...! 거부하는 자의 이름!] 하드라는 깔깔 웃으면서 대답했다. "상관없어! 절망의 끝에 서더라도! 나는 심연!" 베나디아는 찢기는 듯한 소멸의 고통에서도 절규하듯이 외쳤다. [그 이름을 받게되면 당신은 악마가 될 뿐이야...! 라우드의 반대자가 되어 서, 새로운 혼돈을 탄생시켜 세상을 파멸할 자! 모든 것을 혼돈으로 몰고 갈 존재의 이름...!] 하드라는 더없이 기쁜 듯이 웃었다. 그의 미소엔, 광기가 깃들어 있었다. ...어떻게 보면 예정된 것에 관한, 슬프도록 진실한 광기가. "아하하핫! 그래, 나는 심연이 되겠어! 하지만 초월하는 자가 된다! 내 이름 은...." 의식은 완성돼 가고 있었다. 베나디아는 절망하는 듯한 몸짓으로, 그러나 이미 사용한 일곱 번의 기회를 되돌릴 수 없기에 힘없이 중얼댔다. [그대의 이름, 그대가 불리어 질 절대적 의지, 명하노니, 검은 설빙의 마 왕...] "....히드레안." 하드라는 그렇게 입을 열었다. 폭풍치던 사방이 순식간에 고요해 진다. 천천히 흩어지면서, 손끝에서부터, 몸 전체로 흩어지며 모습이 사라져 가며 나풀대는 공기 속에 묻힌 바람처럼 사라져 가며...그는 미소 지었다. "그것이 내 이름이다." 그리고, 내리깐 눈이 뜨였다. 세 번째 눈은 본래의 육신으로 돌아갔고 마법진은 수도 없는 원의 보호에도 불구하고 터져나갔다. 겉잡을 수 없을 만큼 엄청난 마력이 폭사하듯 터져 나왔다. 베나디아는 공포로 주춤했고, 마법진은 그 순간 파괴되었다. 쩌저정, 하는 소리와 함께 갈라진 마법진은 다시는 빛을 띄지 못하고 소멸 되었고, 눈을 뜬 그 '존재'는 사방 모든 것을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고고히 굽어보았다. 아인은 혀로 피를 핥아낸 후 입을 열었다. "넌 누구지? 에리나쟈드? 하드라?" [나? 난...] 입이 열렸다. 베나디아도, 아인디아도 동시에 그의 입을 바라보았다. [난...히드레안이다.] 쿡, 하는 웃음을 띄는 그 오싹하리만치의 마력을 지닌 존재. 근접하고 싶지도 않은 죽음의 기운을 풍기는, 황금빛 눈동자를 가진 네 혼 돈의 가운데 서서 모든 것을 지켜보는 하나뿐인 자. ...시간의 혼돈체. "...실패했군 그래 베나디아." [아,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아인은 이제 풀려버린 얼음의 속박 덕분에 꼬구라지는 몸을 추스르지도 못 하고 그대로 붉게 물든 피로 다이빙했다. 철퍽, 하고 피가 몸에 젖어들지만 신경 쓸 여유도 없었다. 아인은 거칠게 중얼댔다. "빌어먹을, 제길, 제기랄, 왜 하필이면 거기서 널 만났을까? 그때, 그 자리에 서, 네 눈동자를 보지 않았더라면, 절대로, 그래 절대로! 절-대로 이 꼴은 안됐을 거야. 절대로. 몇 백년씩 널 기다리면서 헛고생도 하지 않았을 거야. 다시 만나려고 혼자 바보짓 하면서 널 잡아끌지도 않았을 거야!" 그 피를 흘리고서도, 아인은 손으로 바닥을 짚고, 몸을 반쯤 일으키고, 피가 뚝뚝 흘러 떨어지는 머리카락 사이로 형형한 눈빛을 한체 히드레안을 바라 보았다. 아무런 감정 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그 '존재'를. "넌 누구야!!" [...히드레안, 심연.] [아니야! 영원한 생명은 그럼 보장받을 수 없는 것인가!? 어째서! 어째서 에 리나쟈드는 깨어나지 않은 것이지? 왜!] 베나디아의 절규에 히드레안은 친절히 대꾸해 주었다. [죽었기 때문이지.] [혼돈은 죽을 수 없어! 그것이 법칙이야! 절대로, 절대로 그런 것 따윈 불가 능해!] [나는 에리나쟈드지만, 동시에 히드레안이다. 미개한 인간조차 기억을 잊는 데 내가 에리나쟈드라는 기억을 잊는 게 잘못 되었는가?] 베나디아는 그대로 스러지듯 주저앉았다. 주저앉은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아니라는 판결을 들었기에 힘이 빠져 버린 것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저벅. 검은 머리카락이 휘날리고, 싸늘한 그 눈동자는 아인을 향했다. 길게 늘어진 옷이라기 보다는 그저 몸을 휘감고 있는 검은 천자락도 그를 따라서 조금 움직임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그것은 움직임으로 보일 정도로 생기 있어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대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엇도 아닌 증오의 눈빛으 로. 다가와서 무릎을 꿇고 그 손으로, 살짝 피로 젖어든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 주며 그는 입을 열었다. [너의 소원을 말하라. 네 열망은 이중 무엇보다 강렬하니까...] "열망? 소원? 개수작하지마. 넌 에리나쟈드의 기억을 흉내내고 있을 뿐이야! 넌...!" [그래, 그리고 에리나쟈드는 받았던 인격을 흉내냈을 뿐이지. 말해라...너의 소원은 무엇이지...?] 할짝, 피로 젖은 뺨을 부드럽게 핥으면서 히드레안은 아인의 뺨을 쓰다듬었 다. 아인은 킥, 하고 웃고는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날 죽여줘." 마왕 이야기-84 엽기적인 그녀-23 후두둑. 계속해서 산산이 흩어지는 파편. 아인은 손을 내밀어 그 차가운 눈동자를 하고 있는 존재의 뺨에 손을 얹었 다. 그리고 손톱을 세워서, 긁어내렸다. 찌익, 하는 소리가 나며 손톱 끝이 갈라지고 벌어져 피가 흘러내린다. 그렇지만 그녀는 신음소리조차 내지 않 았다. "죽고싶어. 네 손으로, 날 죽여줘." 자신의 것이 아닌 피로 물든 뺨은 상관치 않고, 그 존재는 그녀를 내려다보 았다. 흐리지만 당당한 눈동자. 더없이 당당한...오싹하리만치 당당한 그녀. 히드레안은 매혹적인 미소를 지었다. [죽고싶다고? 나의 손에?] "그래. 죽여 줘." [내가 아니라...또 다른 나에게....?] "그래...죽여줘..." 후드득, 다시 한번 차가운 결정들이 떨어져 내렸다. 미묘한 미소를 지으며 그런 아인을 바라보던 히드레안은 입을 열었다. [너는 재미있는 여자야...고작해야 운명을 따를 수밖에 없는 존재지만...그럼 에도 불구하고 너는 아름다워 보여.] 아인은 피식 웃고는 그의 말을 통렬히 되갚아 주었을 뿐이었다. "착각하지마. 운명을 따르는 게 아니라 내가 만들어 놓은 길로 걸어가는 것 뿐이야. 나는 아름답지 않아. 이기적이고 독선적이고, 내가 원하는 것을 손 에 넣고 싶고 내가 하고 싶은데로 하고 싶고 다른 사람들보다 내가 더 중요 해. '선인' 따위가 되어서 눈물 흘리는 쪽 보단 '악인'이 되어서 울리는 쪽 이 더 좋아." 히드레안은 화사하게 미소 지었다. [그래도 넌 결국 널 희생해 타인을 구하려 하고 있어.] "착각하지 말라고 했지?" 그녀는 히드레안의 그 화사한 미소를 피로 물든 손으로 후려쳐 날려버리며 외쳤다. "내가 원하는 걸 하는건 내 마음이야! 희생이니 뭐니 하며 아는 척 지껄여 대지마! 내가 기쁘고 내가 즐거우면 난 뭐든 해버릴거야! 누구를 위해서도 아니야! 바로 날 위해서라고! 알았으면 날 죽여!" [쿡...쿡쿡쿡...아하하하하...] 공허하도록 메마른 웃음소리. 더럽혀진 허무한 아름다움의 결집체는 맞은 뺨따윈 상관없다는 듯이 자리에 서 일어났다. 후두둑. 다시 한번 소리가 들려오며 떨어져 내리는 파편. [존재가치에 관한 의문을 제기하는 존재들이여, 죽음이란 안식인가?] "닥쳐! 넌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어! 살아있지도 않은 존재!" 히드레안은 허무한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굴러 떨어지는 핏줄기들, 떨 어져 내리는 투명한 얼음의 파편과 피는 묘한 색채대비를 이루며 빛을 발했 다. 조금은 섬뜩하게, 어떻게보면 싸늘하게... [죽음이란 이름으로 가리워진 허무를 보고 싶은가?] "죽지 못하는 존재에게 들을 말은 아니야." [너의 열망을 대가로! 너의 소망을 이루어 주겠다!] 찌익... 무엇인가가 찢어지는 기묘한 소리. 손끝으로, 가느다랗고 핏빛을 띄고 있는 손톱으로 아인의 이마를 그대로 찢어내리는 그의 손길. 차갑고 비틀려진 그 눈동자. 흑백의 대비가 어이없을 정도로 잘 이루어져서, 동시에 빛과 어둠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스윽, 그리고 그의 몸도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 남은 것은 아인 자신, 그리고 떨어져 내리는 유리 같은 얼음의 파편들....멸 망할 종족의 디아. 소리 없는 눈물이 뺨을 적신다. 아인은 큭큭...하고 어이 없을 정도로 쓸쓸한 웃음을 지었다. "...왜...나는 그때 너를 사랑했을까?" 천천히, 그녀의 몸이 얼어붙듯이 하얗게 물들어 갔다. 죽음, 디아가 죽을 수 있는 방법이란 없다. 그 종족이 살아 있는 한 그 목숨은 영원할 것이고, 디 아가 죽는 한 그 종족의 미래란 없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 한 종족의 끝은 디아의 죽음과 함께 끝난다. 그것은 곧, 모든 종족에게는 '예정된 끝'이 존재한다는 것. 전쟁도 아니고 다른 종족간의 싸움도 아닌, 단지 '디아'라는 존재의 생사유 무로 살아가야 하는 생명들. 선택권도 없고 그 잔인한 기회가 주는 안온한 혜택에 뒤바꾸려고 들지도 않 는다. 디아란 곧 죽음, 멸망, 파괴자, 끝, 정해진 시간. 디아란 시작, 시초, 탄생하는 물보라, 흔들림.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끝이 있다. 디아가 존재하는 한, 그 종족은 멸. 망. 한. 다. 아인의 눈앞에, 그리고 그가 나타났다. 하얀 옷자락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허무하지 않은 따스한 피의 감촉을 가지고 있는 그 존재. 아인은 미소 지었 다. 그리고 그는 입을 열었다. "...싫어." 하드라? 아니 히드레안, 스스로 선택한 이름. 선택받은 이름을 세 번 영창하라! 그러면 그대에게 그 이름에 담겨진 운명이 다가올지니! ...이름이 운명을 조작하는가? ...인간의 감정이 운명을 조작하는가? 운명이란 수레바퀴처럼 돌고 도는 인간의 명줄, 명운, 삶의 지표. 인연, 가장자리가 맞닿아 시작되는 그 인연. 그럼 운명은 무엇인가? 그 인연에 부속된 것인가, 아니면 인연조차 뛰어넘 는 그 무엇인가. 아인은 미소 지으며 일어섰다. 서서히 투명하게 변해가고 있는 몸. 상처도 고통도 사라져 간다. 그 대신, 빛으로 화해간다. 후두둑, 하고 한번 더 기운 좋게 떨어져 내리는 얼음의 파편들. 숨결이 뿌옇게 흐려져 갔다. 환한 미소를, 더없이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아 인은 히드레안을 바라보았다. "바보같은 표정 짓지마 베이비. 어차피 이렇게 될 일이었으니까." "싫어! 돌아간다고 약속했잖아! 왜 기다려주지 않는 거야!? 이대로 사라지는 거야?" 긴 회색의 머리카락이 피에 젖어서 늘어졌다. 아인은 귀찮은지 고개를 한번 흔들었고, 머리카락의 끝도 점차 환한 빛으로 둘러싸여져 가고 있었다. 그는 울었다. 굵은 눈물방울이 아인의 옷자락을 적셨지만 별다른 감정 없이 아인은 그저 싱긋이 미소지을 뿐...별 생각이 없는 듯 했다. 아니면 너무 많은 생각이 한 꺼번에 공존하던가. 피로 물들고 있는 흰 옷자락이 아릿하게 눈 안에 들어왔다. 그리고 아인은 천천히 돌아섰다. 운명에, 인연에, 그리고 모든 집착하던 것들에게서. ...죽음이라 이름하는 것...그것이 안식이든 안식이 아니든, 분명 감미로울 만 큼 따스한 것은 분명했다. 마왕 이야기-85 엽기적인 그녀-24 "가지마, 제발 내게 등돌리지마." 아인은 여상스레 그런 히드레안을 바라보며 대꾸했다. "제발이라, 그런 건 아껴둬. 정말로 사랑하는 이를 잡을 때 쓰라고." "싫어! 왜 넌 떠나는 거야? 어째서, 내 운명이면서, 어째서 운명인 네가 떠 나가는 거야?" 아인은 약간의 한숨을 쉬며 뒤로 돌았다. 하얀 기운은 거의 상반신까지 올 라와 옷자락마저 소멸시켜가고 있었다. 점차 희게 빛나기 시작하는 손으로, 아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울고 있는 히드레안의 머리카락을 쓸어주었다. "...너는 운명 때문에 날 사랑하는 거냐?" "그래...그렇잖아...넌 분명 내 반신이고 운명이잖아..." 매달리는 듯한, 그래서 더 두고가기 싫을 정도로 애절한 목소리. 하지만 아인은 오히려 더 당당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나는 고작 운명 때문에 널 사랑하고 싶지 않다. 날 소유하고 싶으면 죽여라. 나는 자유로운 영혼, 아인디아." "싫어!!" 회색 머리카락이 춤추듯이 움직인다. 애달픈 손짓도 소용없이, 그녀는 당당 한 웃음을 짓고는 뒤로 돌아섰다. "죽이고, 나를 대신해 내 눈으로 미래를 봐라." "...싫어." "뒤를 바라보지 말고 앞을 봐라." "싫어..." 아인은 팔을 활짝 벌리면서 외쳤다. "그리고, 날 잊지 말고 기억해라!" "싫어어어!" 절망적으로 울부짖는 그의 몸에서 아인의 몸의 빛깔과 같은 새하얀 백색의 기운이 몰아쳤다. 터져 나오는 백열광, 아인은 그대로 빛의 입자처럼 천천히 휘날렸다. 사라진 옷자락 너머로 반짝대는 아름다운 물결, 그 물결이 넘쳐흘러 빛으로 변해 그녀의 육신을 소멸시켰다. 이승에 머물러 있으려 발버둥치는 혼조차 빛은 휩쓸어 날렸다. 거대한 의지가 그녀를 속박해 대지에 남게 하고자 했지만 다시 한번 빛을 그것마저 내쳤다. 빛, 빛, 그 새하얀 빛. 시간이라 이름하는 거대한 의지. 히드레안은 바닥에 주저앉아서 흐느꼈다. "왜...왜...왜! 나는 소멸해도 상관없는데! 난 죽어도 상관없잖아! 어차피 존재 하지도 않는 나는! 그런데 왜! 왜! 영원한 삶을 약속 받은 너란 존재는! 왜! 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거지!? 삶이란 존재의 가장 거대한 의지가 아니 란 거야!?" 주먹이 으깨어질 정도로 거세게 내리친다. 연약한 인간의 육신을 지니고 있는 지금의 그에게 육신을 망가뜨리는건 손 쉬운 일이었다. 진짜 육신, 지금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그밖엔 모를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는 한은, 그는 인간의 고통을 그대로 지닐 수 있으니까. [...왕이여.] "나는 존재하고 싶어..." [우리들의 왕이여.] "내 존재가치를 누군가 증명해 주길 원해..." [우리들의 첨예한 혼돈아래 존재하는 왕이여.] 히드레안은 그렇게 흐느꼈다. "...네가 그렇게 해주길 원했어..." 울다가 죽을 만큼 서럽게 흐느끼던 히드레안의 몸은 서서히 흐려지기 시작 했다. 본능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도망갈 수 있는 곳. 가장 안전하다고 여기는 곳으로... 아인디아 드 라렌. 히드레안 드 이크립스의 손에 인간의 디아로서 봉사하던 그 길면서도 짧은 생애를 마감하다. 그리고 인간은 그 삶을 유지하다... 똑같군, 똑같아. 미야는 지겨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새장을 응시했다. 저 쓸모라고는 전혀 없는 멍한 표정. 끝까지 진짜 육신의 행방은 말하지 않 은 체 입을 다물어 버린, 계승식을 완료한 왕. 마족의 시간은 구원받았지만, 우습지 않은 결말. 인간의 육신을, 그것도 연약하기 짝이 없는 육신을 지닌 왕이라니... 미야는 뒤굴뒤굴 구르면서 광대라는 자신의 임무를 망각한 체 자유로이 그 넓고 하얗기만 한 방을 뒹굴었다. "...미야..." [악! 부르지마! 또 이름 불러놓고 왜? 라고 물으면 아무 말도 안하고 있다 가 또 부르려고 그러지! 누구 경기 일으킬 일 있어?!] 히드레안은 생기 없는 표정으로 미야를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겨우 안심한 미야는 고개를 앞발에 파묻으면서 행복한 낮잠시간을 즐기려고 했다. "...미야..." [그래...불러라 불러, 나같이 힘도 없는 광대를 죽여라...어이구 망할 놈아...] 히드레안은 또 입을 다물었다. ...인간적으로, 아니 마족적으로 저렇게 생기 없는 녀석이라니, 빽빽 소리쳐 대고 시끄럽게 굴 때가 훨씬 귀여웠다. 물론, 뭐 그렇게 귀여운 녀석은 아니 지만... 그래도 꼭 저렇게 사람, 아니 마족 복장 터지게 할 필요는 없잖아! "...미야..." [아아아악! 제발 그만해!] 결국 삼천 육백 오십 세 번째로 자신의 이름이 불리는 것을 들은 미야는 발 작하고야 말았다. 히드레안은 그런 미야의 반응에도 별 감정 없이 무표정한 표정으로 멍하니 앉아 있었다. 저걸 죽여 살려, 어차피 몸은 인간인데 스리 슬쩍 해치우면 괜찮지 않을까, 따위의 생각을 하면서 미야는 발톱으로 바닥 을 박박 긁어댔다. "...배반당하는건 지겨워." 무미건조하다 못해, 싸늘할 정도로 냉기가 묻어나는 그 목소리에 미야는 저 도 모르게 움찔할 뻔 한 자신을 탓했다. 그 텅빈 눈동자는, 너무나 비어 있 어서 공허한 것이 아니라 잔인해 보였다. "영원히 내 것이었으면 좋겠어. 그 어떤 것이라도 상관없다. 영원히, 영원한 나의 시간에 함께 존재해 줄 존재라면." [...외로운 거냐? 너?] 미야의 말에 히드레안의 대꾸는 없었다. 마왕 이야기-86 에필로그epilogue 스캉, 차가운 유리의 검이 미야의 몸을 베어 내렸다. 불타고 있는 성을 배경으로 오렌지 빛의 눈동자를 가지고 있는, 묘하게 냉 소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남자의 모습은 어떻게 보면 아름다웠고 어떻게 보 면 쓸쓸해 보였다. [...크큭, 그게 과연 널 만족시켜 줄 수 있을까? 소용없을걸 히드레안?] "소용없을지 있을 지는 내가 알겠지." [검은설빙의 마왕이라. 그래, 너에게 딱 어울리는 이름이었군. 베나디아가 그렇게 결정한 것도 이해는 가...쿨럭!] 히드레안은 무표정한 얼굴로, 새카만 검은 상복 같은 옷차림을 한체 그런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차갑고 고혹적인 검은 눈동자. 흑과 백의 대비를 맞추려는 듯이 선홍색의 핏빛 같은 붉은 입술. 히드레안은 감정 없이 다시 한번 검을 휘둘러 미야의 몸을 베어 내렸다. 비명대신, 질릴 정도로 냉소적인 미소를 한번 띄워주는 그를 보면서 히드레 안은 중얼거렸다. "정말 맘에 안들어 너는." [닮은꼴이라서 말이지?] "...그래, 맘에 안 들어. 내 스승." 어린애가 투정이라도 하는 듯한 그의 말투에, 미야나는 흐려져 가는 자신의 몸따윈 상관하지 않고 킬킬대면서 웃었다. 히드레안에게 마이스터의 일을 가르쳐 준 것이 실수였다. 그는 혼돈의 객체, 창조의 이전에 존재하는 자. 창조를 습득하면 창조 이전의 것을 창조할 수 있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룬 마이스터, 최고의 마이스터라 불리며 칭송 받는 그가 그 사실을 몰랐을 리가 없다. 하지만 그는 히드레안에게 '창조'를 가리켰다. 그가, 이 세상을 망가 뜨려버리는 것을 보고 싶었기에. [...바보 같은 존재지만, 베나디아는 예언력이 있었지. 검은설빙...그 눈뿐인 아공간, 누구도 들어갈 수 없으리라 여겼던 시간의 잔존물, 거기에 네 육신 이 있었을 줄야...큭큭......기억해 히드레안.] 미야나 폰 소울스터커, 그의 입이 열렸다. [넌 평생토록 그 존재를 완전히 소유하지 못할 거야. 네 육신이 온전하지 않은 이상 네 힘이라 자부하는 것은 반쪽이고, 넌 영원히 성장하지 못하는 어린애일 뿐이야. 모든 피를 이은 자, 영원히 한 존재를 수호할 수 있는 존 재, '미노트 아신레이져'는 아무리 너라고 해도 완성시킬 수 없어...] "닥쳐." 히드레안은 검을 한번 더 횡으로 휘둘렀고 미야는 그런 그의 말을 무시하고 계속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미노트 아신레이져는 궁극적으로는 혼돈으로 통한다. 넌 알고 있잖아? 일 곱 시간의 축, 일곱 혼돈, 일곱 개의 유지체...그 존재를 일깨움으로 파멸로 다가간다는 것을...그래도 너는...] 퍽! 검이 곧바로 미야의 머리에 박히며 파고들었다. 수정처럼 아름답고 날카로운 검은, 그 주인을 대변이라도 하듯이 그 아름다 운 모습에 어울리지 않게 날카로운 이가 서서 미야의 머리를 으깨고 그 안 의 내용물조차 꺼냈다. "배반당하는 건 질렸어. 남겨지는 건 싫어. 그렇다면 내가 만드는 수밖에. 파멸? 죽음? 혼돈으로의 환원? 파몽(破夢)? 상관없어. 나는 내 곁에 있어줄 존재가 필요해." 소멸해 가는 미야의 몸에 몇 번씩, 신경질 적으로 검을 박아 넣으면서 히드 레안은 중얼거렸다. "네가 알아? 영원히 혼자 남겨지는 고통을? 그 긴긴 세월 동안 홀로 존재해 온 내 고통을? 또 다른 모습으로 또 다른 기억으로 살아가 봤자 결코 얻지 못하는 행복이란 것을? 혼돈, 시간, 에리나쟈드, 히드레안, 그리고 그 다음으 로 이어지는 이름은 무엇일지, 네가 생각해 봤어?" 마족의 시체는 정신체, 무기체지만 검은 특별한 힘이라도 지닌 듯 미야의 몸을 난도질하고 또 난도질 해댔다. "네게 감사해 내 스승...혼돈을 만드는 방법을 알려줬으니까..." 신경질 적이고 히스테릭한 미소가 한번 그의 입가에 스쳤다 사라졌다. 무너져 사라져버린 붉은 성, 그리고 피비라도 내릴 듯 우중충한 하늘. 히드레안은 다시 중얼거렸다. "...나...행복해 질 수 없는걸까...?" ============================================================= ======= 카아아아악! 끝났다! 와아~! 엽기적인 그녀 편이 끝났다! ㅠ_ㅠ!! 만쉐이!! 끝에 가서는 급박하게 사건을 휘둘려서 마구마구 정신없게 만들자는 작전이 었지만 천상 느긋느긋하고 시간 널널한 글체를 좋아하는 펜릴인지라 오히려 흐지부지하게 되버렸군요. 뭐 내 알바 아니라네~(요즘 들어 제정신이 아니 야...-_-III) 다음엔 여러분이 그렇게 열창하시던 18금 장면 대거등...쿨럭! 안돼!!! 아아 아악! 절대로! 라고 외치는 분은 누구? -_-?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십시오~! 환호성을~!! 100회의 그날~♡ 여러분은 어쩔 수 없이 저에게 축전과 패러디를 날리셔야 함다~! 음....이번 편에선 히드레안이 너무 불쌍해 졌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이봐요! 동정은 금물! 아무리 저렇다고 해도 결국 나쁜짓하고 파탄인격을 드러내고 다닌건 사실이잖아! 아무리 과거가 슬퍼도 나쁜 짓 한게 변하는 건 아니라구웃! >_ 헥헥....다음 편은, 음..; 정말 18금의 난무입니다. 아아, 카인님, 당신의 아름다운 자태는 사랑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쿨럭.....쿨럭쿨 럭..._ _;; 네, 바로 적도 많고 팬도 많고 거기다 속도 모른다는 뉴 캐릭터 등장입니 다!!!!!!!! P.S - 18금인 대신 엽기가 좀 떨어집니다. 그럼, 다음 화인 '굴레'편을 많이 봐주세요~@.< ============================================================= ======= 마왕 이야기-87 [5회 기념 종결 좌담회] 미노 : 잠깐! 좀 따지고 넘어가자고 펜릴! 펜릴 : 응? 나 왜? 왜 따지고 넘어가야 하는데? 미노 : 얼마전의 좌담회에서 '주인공 급으로 등장시켜 주겠어!'니 뭐니하는 말을 해놓고서 난 이번 화에 단 한 장면도 등장하지 못했다고오오오! 더군 다나 전번 화에도! 펜릴 : 어차피 넌 조역이잖아 조역. 쿠헤헤헤헤헤헤헷! 미노 : .....(빠득) 히드레안 : 이봐, 작가. 펜릴 : 앗, 오랜만이네요 이렇게 사석에서 뵙기도 히드레안 님, 이 양갱 맛 있는데 한입 드실래요? 녹차랑 홍차랑 그리고 크림커스타드도 준비했어요, 그죠, 맛있겠....사, 살려주세요! 꺄아아아아아아! 히드레안 : 감히 이 몸의 과거를 모두 폭로하다니! 너 따위 쓸모 없는 버러 지 작가는 죽어야 해! 미노 : 자, 잠깐! 참아 히드레안! 진짜 죽일 거야!? 펜릴 : 아악! 잠깐! 이 목숨까지 바치기로 약조하긴 했지만 히드레안 님! 당 신도 동의했잖아요! 괴롭혀도 된다고! 히드레안 : 이 몸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하지는 못할 망정 누굴 바보로 만 들어 놓다니! 절대 용납할 수 없다! 글 실력도 없으면서 감히 날 표현하려 고 한 네 녀석은 죽어 마땅하다! 펜릴 : 아악! 잠깐! 주...죽더라도 그럼 미노랑 히드레안 님의 18금 씬이라도 한번 써보고...! 수없는 독자들과 한 약속이나마 지키고서....! 히드레안 : 어디서 있지도 않은 독자를 대서 이 몸을 희롱하는 거냐!(빠각빠 각!) 미노 : 그대로 죽엿! 무슨 장면을 쓴다고!? 펜릴 : 커헉, 이...이대로 마왕 이야기 종결도 못 내보고 내가 죽는다는 건 가? 이 내가? 미노 : 그런 것 같은데 아무래도? 펜릴 : 아, 안돼 그것만은! 난 엽기제국을 성립해야 돼! 그리고 엽기바이러 스 소설 유포자로 활동할 테야! 아직 내 찬란한 인생이 남아있는 시점에서!! 미노 : ...히드레안...시체는 내가 묻을게. 히드레안 : (뚜둑)그럼 여기서 곱게 죽여주지, 쓸모 없는 작가. ?? : 잠깐만요. 미노 : 읏? 넌 누구냐? ?? : 이거이거, 이렇게 난입해서 작가님을 살려야 하다니, 저도 신세가 참 기구해 졌네요. 괜찮으세요 작가님? 펜릴 : 아아....이 따스한 광명은 누구의 것? ㅠ.ㅠ 우웃...이럴 수가, 날 작가 님이라고 불러주는 캐릭터가 세상에 존재한다니....크흐흐흐흑... 미노 : 그렇게 작가님 소리가 듣고 싶었음 이런 변태마왕은 창조하지 않아 야 할 거 아냐. 히드레안 : 미노, 너 복상사로 죽고싶어? 앙? 미노 : ......이건 청소년도 보는 거란 말이야! 만약 10세이상 아동이 보면 음 란물로 걸린다구우우우! 히드레안 : 오호호호호호! 이 나의 아름다움에 반한 그 무지한 인간들이 감 히 그런 짓을 할리 없지! ?? : 자자, 너무 그렇게 싸우지들 마시고, 작가님이 살아있어야 저도 등장하 지 않겠어요? 히드레안 : 결국 너도 등장을 위한 것이었군. ?? : 후훗, 실리와 이윤의 중간에서 당연한 행동인 것을... 펜릴 : .....................(위험한 놈만 하나 더 늘었잖아.) ?? :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리지요 작가님. 펜릴 : 아예, 뭐 잘 부탁..................;; ?? : 그럼 다음 좌담회에서는 이름을 가지고 등장하도록 하죠. 여기까지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좌담화 문닫지요. 펜릴 : 잠깐!!!! 왜 네가!? 히드레안 : 이 몸이 할 대사를 가로채다니 감히! 미노 : ............아아.....제길...모르겠다....; 마왕 이야기-88 굴레-1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존재의 이름을 들라면 서슴없이 나는 히드레안을 들겠다.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존재의 이름을 들라면 나는 서슴없이 제레 이나를 들겠다.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존재의 이름을 들라면, 나는 서슴없 이 라그나 칸트라이트나를 들겠다. 세상에서 가장 광폭한 자의 이름을 들라 면, 나는 서슴없이 펜릴의 이름을 들겠다.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자의 이름 을 들라면, 나는 서슴없이 룬의 이름을 들겠다. 세상에서 가장 자애로운 자 의 이름을 들라면, 나는 서슴없이 라우레안의 이름을 들겠다. 그리고 그 모든 존재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와, 카인을 만날 수 있는 기회 중 어떤 것을 택할 것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서슴없이 카인을 선택할 것이다. -Kain과의 대화, 세 번째 장 히드레안은 손을 뻗어서 미노의 옷자락을 쥐었다. "....배고파....자고싶어...허리 아파...차 마시고 싶어...애룡들이랑 놀고 싶어...놀 러가고 싶어...옷사러 가고 싶어..." 미노는 그리고 원한을 담아서 바락바락 외쳐주었다. "하나만 말해 좀!" "배고파아..." 미노는 한숨을 쉬면서 칭얼대는 히드레안을 안아들었다. 세상에 어떤 마왕 도 수면부족과 영양실조로 죽었다는 말은 못 들어보았지만 어쩌면 히드레안 이 그 최초의 마왕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는 이미 잠 의 신과 겨루어 져버린 그를 푹신한 쇼파 위에 눕혀 두었다. 넓게 열린 형태의 홀 안에는 중앙에 직사각형의 인공 연못이 있고 그것을 중심으로 사각형의 배치가 되어있는, 상당히 동방계 풍의 우아한 아름다움 을 지니고 있는 곳이었다. 넓직한 쇼파 위에 누워서 자고 있는 히드레안을 한번 힐끗 보고는, 미노는 한숨을 내쉬며 뭐라도 만들기 위해-인형을 시켜도 되지만 그랬다가는 '애정 이 식은 거야!' 어쩌니 하면서 분명히 또 이상한 짓을 할테니, 차라리 만들 어 주는 게 나았다. 과연, 미노가 보모가 된 이유가 다 있었던 것이다.... 며칠 굶은 사람처럼-아니 실제로 굶었다-아무렇게나 음식을 집어먹는 히드 레안의 머리를 쥐어박으면서 미노는 마구 구박해 댔다. "좀 흘리지 말고 먹어! 누가 너더러 왕이라고 생각하겠냐!?" "우물...웅...꿀꺽...차." 끓여놓은 녹차를 따라주면서 미노는 한숨을 쉬었다. 적당한 온도로 식어져 있는 홍차를 단숨에 원샷하고는 히드레안은 하아, 하면서 겨우 가슴을 콩콩 두드렸다. "...후우우, 죽는 줄 알았다. 깜박하고 식사를 하지 않았지 뭐냐." ...저게 말이 되는 건가. 미노는 뚱한 표정으로 히드레안의 뺨에 묻어있는 크림을 살짝 문질러 닦으 면서 대꾸했다. "이 성에선 육체의 시간이 흐르지 않을텐데 용케 그 상황에서도 넌 굶어죽 을 수 있구나. 감동할 지경인걸?" "...시끄럽다, 연구를 위해서 잠시 실험실의 시간을 원래대로 돌렸다는 것을 잊었을 뿐! 이 몸도 때로는 실수를 하는 완전하지 못한 존재라는 거지! 아 아...결점이 있는 나도 아름답군." 미노는 하마터면 그대로 히드레안을 바닥으로 패대기칠 뻔했지만, 꾹 참고 서는 살짝 웃어주었다. 상당히 일그러진 미소였다는 것은 어둠에 던져둔다. 히드레안은 마저 케 하나를 먹고는 털썩 쇼파에 다시 기대었다. "호오, 차 맛 괜찮군. 누가 끓인거지?" "그거? 내가." "뭐, 뭐라고!? 불과 '얼마전' 까지만 해도 차라곤 못 끓이는 녀석이 어떻게 이런 홍차를 끓여 올 수가 있는 거지!?" ...저 '얼마전'의 기준이 언제냐고 물어봤자 대답이 돌아올 리 없다. 미노는 빠직해서는 포트잔을 히드레안을 향해 던졌다. 우아한 손짓으로 그 포트잔을 허공에 떠오르게 한 히드레안은 허리에 한 손을 얻고는 호호홋, 하고 잘난 척 하며 웃었고 더 열받친 미노는 바락바락 악을 썼다. "네가 그런 식으로 자꾸 긁어대서 큰맘 먹고 연습했다 왜!" "호오, 시종의 의무를 깨달은 거냐?" "누가!" ...굶어 죽을 뻔한 마왕과 그 시종은 그렇게 기운을 되찾자 싸워대기 시작했 다. 이럴 때 우리는 한마디 해주고 싶음을 참을 필요가 뭐가 있겠는가? '논다'...으음, 간절한 한마디다. "대체 무슨 연구를 하길래 성에 틀어박히는 거야? 뭐, 나야 좋고 인간계도 좋고 하지만..." "연구라...이때껏 내가 가장 많이 실패한 실험이지." 호륵, 하고 미노가 타준 차를 홀짝대면서 히드레안은 말을 이었다. 맛이 맘 에 들었나보다, 저렇게 계속해서 조금씩 홀짝대는 걸 보면... "원래는 널 만들기 위해서 부속 연구쯤으로 생각했던 건데, 오히려 이게 실 패를 하지 뭐야. 그래서 메인 연구로 넣어버렸지." "......아무 생각이 없었던 거군. 갑자기 손대기 시작하는걸 보면 뭔가 생각이 있을 법도 있는 줄 알았더니..." 히드레안은 후음, 하면서 고개를 까닥까닥했다. 계속 서 있었더니 목이 뻐근 한 것이 저려왔기 때문이다. 과연...먹고 자고 운동이라곤 조금도 안 하는 히 드레안으로서는 당연히 몸이 안 좋을 수밖에. 저러다 허리디스크라도 걸리 면 그 길로 끝장인 것이다. "꼭 최종 완성단계에 가서 무너지고는 한단 말이야, 어째서 그런 거지?" 어느새 스르르 다가온 인형 하나가 히드레안의 목을 살짝 주무르고 있었고, 미노는 곰곰히 다시 연구 생각으로 떨어져 내리는 히드레안을 내버려두고 작은 안경을 걸치곤 책을 펼쳤다. 호륵, 하고 한 모금 마시고 한번 생각해 보고... 여유롭기 짝이 없는 풍경이다. "후음...역시 재료가 모자라서 일까?" "...넌 왜 꼭 연구가 제대로 안돼면 재료를 탓하는 거야? 아아마 전번에도 그런 식으로 재료 탓을 하면서 인간사냥을 하더니 결국엔 조율에 실수했다 는 사실이 밝혀졌잖아!" 히드레안은 오호호, 하면서 미노의 말을 무시해버렸다. 애초에 저 존재가 누 구 말을 들을까야만, 그래도 그렇지 매번 저렇게 무시당하는 미노도...아, 가 차없이 머리를 후려쳐 버렸군. "무시할 때냐! 무시를!" "그거야!" 히드레안은 한 대 맞아서 인지 갑자기 벌떡 일어나면서 외쳤다. 혹시 이러 다 배로 맞는게 아닌가 싶어서 찔끔한 미노는 조금 뒤로 물러섰고 인형도 스르르 물러섰다. 하늘을 향해 도도하게 손을 지켜 올리면서 히드레안은 소 리쳤다.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인간의 유기물질의 농도보다 더 높은 형태의 에테르 체이면서 순수한 혼돈계열의 파공성을 지니고 있는 물질! 그거라면 그거밖에 더 있겠어?! 아하하하핫! 난 역시 완벽해!" ...아까 전까지만 해도 완벽하지 않은 나 자신도 아름답지 않던가, 어쩌고 하 면서 고고한 척 하던 히드레안 맞는가? 관두자, 괜히 따져봤자 몸만 상한다. "......때로는 저 녀석은 멍청한 게 아니라 단순히 한쪽으로만 머리가 발달한 것 같다니까..." 한숨을 내쉬면서 미노는 혼자서 웃고, 좋아하고 있는 히드레안을 바라보았 다. ...참고로 말하자면, 평소 때의 히드레안은 혼자 고고한 척 하다고 우아한 척 하고 잘난 척 해대지만 연구실에 틀어박혀서 조금만-의 기준을 묻지 마라!- 보내면 사이코 틱한 매드 사이언티스 쯤으로 돌변해 버린다. 오죽하면 마왕들의 지침서 제 3장에는, '히드레안이 실험 중일때는 접근을 하지마랏!'이라고 명시되어 있겠는가? 결국 혼자서 웃다가 모자란 잠때문인지 풀썩, 하고 쇼파로 쓰러져 버리는 히드레안이었다. ...쯧쯧, 몸도 비리비리한 주제에 3일 밤낮을 안자고 뜬눈으로 버티고 먹을 것도 안 먹었으니 더 마른 것이 쉽게 티가 났다. 거기다 창백한 저 뺨과 길 게 드리운 속눈썹 아래로 약간 붉어진 눈이며 흐트러진 검푸른 머릿결... 늘어진 옷자락 사이로 보이는 저 뽀얗고 여린 피부...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서 범해 버릴 정도로 아름다운 그 모습을 바라보면 서, 심성이 메마르다 못해 바닥을 박박 긁는지 투덜대는 이가 있었다. "망할 놈의 자식, 쓰러질 거면 침대에서 쓰러질 것이지...왜 내가 업어서 혀 주기까지 해야하냐고..." ...심성이 메마른 모양이군 미노. 마왕 이야기-89 굴레-2 산을 메우는 전사자들의 시체더미. 인간계에 전쟁이란 흔했다. 종족이 많고, 땅은 좁고, 그리고 신들은 인간들 을 돌보지 않고, 인간들도 신을 경배하지 않는 곳. 죽음과 절망으로 가득 찬 곳에서 신을 찾는 자는 없다. 신 또한 그 더러움 에 몸을 숙이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지만, 상대가 그 누구라도 죽음 전에 찾는 신이 있다. [따라오지마 펜릴!] [...따라가는 게 아니라 네가 따라오는 거다 제레이나.] [넌 전사자들 중에서 운명자만 거둬가면 되는데...왜 그렇게 오-래 걸리 냐...?] 은근슬쩍 자신이 열 받았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목소리. 상대 쪽에선 대꾸가 없었다. 제레이나라고 불린 이는 흐응, 하고는 코웃음 치면서 뻔한 변명을 한 이를 내버려두고는 천천히 주문을 읊었다. [빛과 그림자를 지배하는 존재가 만들고 어둠과 숨겨진 빛을 수호하는 자가 일으킨 그 영원한 혼을 지닌 인간들이여...] 그 존재는 이내 후우, 하고는 큰 소리를 쳤다. [...이하 데이트가 있어서 생략! 죽음의 땅으로 들어가야 하는 존재들아! 죽 음의 바람이 불고 있으니 어서 가라!] 우우우우우우우... 원한처럼 뭉쳐진 인간들의 사념. 혼이 아닌 사념들의 덩어리가 모여들자 제레이나는 또 한바탕 시작될 일을 떠올리며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어깨에 닿을까 말까, 왠지 아슬아슬하게 유지하고 있는 연한 갈색의 머리카 락은 단단히 묶여져 있었고 세상의 모든 녹빛을 담아 만든 것만 같은 녹색 의 크고 맑은 눈동자. 약간 높다고 생각되는 콧대와 분홍색의 입술을 가진, 건강미가 넘쳐흐르는 소년 같은 외모를 가지고 있는 그는, 귀여운 외모와는 어울리지 않게 지나치게 신성스러운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또래치고도 좀 작아 보이는 키와 마른 몸. 걸친 것도 거의 없어 보이는, 진 한 녹색의 아마 천을 한차례 허리에 두르고 짧은 반바지와 양쪽 어깨에서 길게 늘어뜨려 허리끈으로 묶어둔 천 조각. 그리고 이런 전쟁터임에도 불구 하고 맨발. ...흐음, 노출이 취향인 모 변태대마왕이 본다면 친구하자고 할 지도 모르겠다. 조금 소년취향의 사람이라면 누구나도 비명을 지를만한 그 외모를 가지고서 도 제레이나는 싱긋, 하고 어른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한번 죽었으면 그걸로 끝이다. 새로운 인생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 다. 영혼이 안식으로 가는 것을 막으려 하는 어리석은 사념들아, 물러가라.] 카오오오오... 사념들의 속에서 느껴지는 것은 사납기 짝이 없는, 노도와 같은 죽음의 목 소리들이었다. 삶에 대한 애환이 깃든 목소리 대신, 돌아가고 싶다는 욕망과 살해자에 대한 원망, 소리 드높은 절망의 집착. 살고 싶었던 그 순간만을 반 복해서 계속 귀청이 찢어질 듯이 읊어대는 그 존재들. 제레이나는 귀찮다는 듯이 팔짱을 한번 끼고는 그들을 노려보았다. [펜릴, 네가 생각하기엔 나 같은 주신이 안그래도 일이 많아서 매일매일 등 골이 휠 지경인데 이런 하찮은 전쟁마다 일일이 불려 다니면서 놀지도 못하 고, 매번 이런 썩을 놈의 녀석들을 정화시켜서 저승까지 안내하는 일을 해 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 [...언제 일했는데?] 제레이나는 진지하게 고민하더니 대답했다. [몰라, 묻지마.] 그리고 펜릴의 비웃음을 듣기 전에 그는 훌쩍 허공으로 뛰어 올랐다. 마치 바람이라도 된 것처럼 가벼운 도약을 보이는 그의 몸놀림. 마치 인간이 아 니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그는 허공에 녹아드는 것이 너무도 자연스 럽다는 듯이 순식간에 그 사념 덩어리들의 위에 자리잡을 수 있었다. [정화!] 크오오오오오오! 소리 높혀 울부짖는 존재들. 너무나도 한맺힌 그 목소리에 한번쯤 관심을 가져줄 만 하건만 제레이나는 익숙하다는 듯이 고개를 살짝 저어 보였다. [인간의 살육은 도를 넘었어.] 펜릴은 그의 말을 받았다. [전쟁으로서 인간은 발전할 수 있는 운명이다.] [잘 나셨네요. 이걸로 한건 처리...남은 건?] 피피피핑! 하는 소란스러운 소리가 나면서 시체 더미에서 이리저리 엉켜서 튀어나오는 검은 존재들. 넘실대는 마기로 보아서 최소한 고위급 마왕 하나쯤은 주변어디에 있는 것 같았다. 가늘게 눈을 좁혀서 그걸 바라보던 제레이나는 자신의 뒤에 서 있 는 이를 바라보았고, 펜릴은 무뚝뚝한 목소리로 중얼댔다. [전쟁의 원인제공자를 죽여야 겠지.] 아 오른 검은 존재들의 뒤에서 일렁대고 있던 이들이 귀를 긁어대는 듯한 소음을 냈다. [신계의 천사 나부랭이들이 내 일을 방해하다니...아무리 신이라고 해도 인 간계에서, 사기로 넘치는 이 땅에서 뭘 하려는 거냐...!] 피잉, 피잉, 하면서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나고 모든 것이 전사자들 더미 위 에 서 있는 둘을 향해 돌진했다. 제레이나는 여상스레 중얼댔다. [야, 천사래.] [천사라는군.] 픽, 하고 웃더니 제레이나는 허공으로 다시 몸을 던졌다. 순식간에 휙, 하고 사라졌다가 다시 그 검게 일렁대는 기운 앞으로 다가선 그는 소년다운 활기 찬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꾸했다. [신의 사자는 아주 바빠서 이런 데 오지도 못한다구.]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신성력에 몸이 반쯤 날아간 마족은 뒤로 튕겨졌 다. 그런 튕겨진 몸을 받아드는 장신의 남성은 그 너덜너덜한 고깃조각 같 은 몸을 입가로 가더니 쭉, 하고 찢어발겼다. [크...크아아아아악!] [우엑...징그럽게 스리...] 제레이나는 속 버렸다는 표정을 지었고 펜릴은 상관없다는 듯이 산 체로 그 마족을 잘 찢어서 한입 한입 삼켜갔다. 피 대신 마력이 소용돌이치고 계속 해서 정신의 목소리가 메아리쳐댄다. 들썩거리며 사념이 다시 생성될 정도 였지만 상관없는지 배부르게 마족하나를 포식한 펜릴은 스윽 하고 전사자들 의 피로 물든 자신의 손을 털어냈다. 피로 물든 보라빛이어야 했을 머리카락은 너풀대면서 사방으로 헝클어져 있 었고 청보라 빛의 기괴한 눈동자도 피로 물들어 있는 것만 같은, 광기가 언 뜻 엿보이는 듯한 외모의 소지자. 온통 새카만 색의 옷을 입고 있어서 그 음침한 분위기는 더 했다. 제레이나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외모와 분위기를 지닌 그는 손톱 아래에 달라붙은 피 찌꺼기를 핥으면서 중얼댔다. [마족은 역시 맛없군, 천사가 아니면...] [이걸로 끝난 것 같군. 하암...이놈의 지겨운 근신은 언제 풀리려는지...훌 쩍...] 궁상맞게 구석에서 전사자의 팔을 하나 들고 이리저리 팔 끝에서 떨어지는 피로 바닥에 기하학 적인 도형을 그려대는 제레이나. 펜릴은 무뚝뚝하니 중 얼거렸다. [언젠가는 끝나겠지.] [그래그래, 언젠가는 끝나려나. 대체! 넌 왜 날 따라 다니는 거야! 근신 핑계 대고 인계에서 좀 놀아볼까 했더니만!] 펜릴은 여전히 속모를 그 무표정으로 제레이나를 바라보다 중얼거렸다. [...심심해서...] 마왕 이야기-90 굴레-3 푹 자고 일어난 히드레안은 간만에 즐기는 고즈넉한 취미생활에 꽤 기분이 좋았다. 따뜻한 물이 기분 좋게 찰랑대고 늘어진 열대의 나무들이 바람에 따라 이리 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거기에 늘씬한 미녀 하나까지 곁들여져 있으니 별 로 모자란 것이 없다고 볼 수 있으랴... 과연, 누가 뭐라고 해도 변태색골대마왕 히드레안은 건재했다. "...응...그래서 말이에요 히드레안 님..." 살짝 안겨드는, 품안에서 부드럽게 물결치는 여체 특유의 그 미묘한 부드러 운 느낌이란, 의례 모든 남성의 넋을 빼놓기 마련이다. 특히나 그 여인이 아름다우며 몸매 또한 뛰어나고 동시에 유혹하고 있다면! "위리안의 성을 제게 주실 수 없을까요...? 응? 네에?" 목에 매달려 애교를 부리는 농염한 육체를 지니고 있는 미녀의 말에 히드레 안은 흔쾌히 중얼거렸다. "가지고 싶다면 가져야겠지?" 출렁, 하고 물이 한차례 요동쳤다. 살랑대는 나뭇잎 사이로 깊은 입맞춤이 오고가고, 청소년은 귀가할 시간이 되었다. 쓸데없는 거 따지지 마라! 애들은 보면 안 다! 하아, 하면서 그 장면을 바라보다 언제 말을 걸까 생각하고 있던 이는 천천 히 때 따위는 그냥 무시하고 입을 열었다. "히드레안, 재미 보는 도중에 미안한데..." "꺄악!" 어울리지 않게 내숭떨면서 물 속으로 몸을 숨기는 여인, 별로 아쉽지 않은 지 히드레안은 물에 젖어서 몸에 달라붙은 긴 검은 머리카락을 사방으로 늘 어지게 내버려두고 천천히 길게 직사각형의 형태로 만들어진 연푸른 타올 로 둘러싸인 욕조에서 걸어나왔다. 욕조라기 보다는 분수나 인공 연못쯤이 맞는 말이겠지만, 별 상관은 말자. 머리카락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사방으로 이리저리 물에 젖어 몸에 달라 붙어 있자, 그 모습도 의외로 상당히 요염하기 짝이 없는 히드레안. ...범죄다. 제길. "...옷...부터 입지 그래?" "덮치고 싶다면야 침대가 좋다. 바닥에서 당하기는 싫으니까 말이다." "맞고 입을래 그냥 입을래!" 빠직, 하고 솟아 나오는 힘줄을 억누르면서 미노는 나뭇가지에 걸려있던 커 다란 타월을 휙 던졌다. '삐지긴' 하면서 입술을 삐죽하고 내밀고 가볍게 투덜댄 후 히드레안은 타월을 받아서 대충 둘렀다. 타월에 폭 빠진 꼴이지만 그 정도야 애교로 봐주자. "심심하면 또 놀러 오거라 리리스." "네에, 히드레안 님." 살짝 눈웃음치고는 여인은 새카만 안개가 달라붙듯이 만들어진 검은 드레스 를 입고 살짝 허공에 뜨더니, 예의바르게 인사해 보이곤 사라졌다. 마계 8 위의 공작인 리리스 드 팡 시안, 히드레안의 많고 많은 놀이상대 중 하나라 는 소문이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저 여자 아직도 미소년 취향 못 버렸나..." 중얼대는 미노의 말에 대꾸하는 히드레안. "취향이 어느 쪽이던 양쪽 다 즐거우면 된 거지 뭘 그러나." 씨익, 하고 얄밉게 웃는 히드레안을 어떻게 때리면 잘 때렸다고 소문 날 까, 하고 고심하던 미노는 이내 히드레안이 저만치 걸어가 버리자 그 기회 를 놓쳐버렸고 속으로 울분을 삭힌 체 따라 걸었다. "그래서, 찾은 거냐?" "쉽게 찾았어. 고위 마왕 중 하나가 재수 없게 걸렸던 모양이더군. 그 난 폭한 보호자에게 갈가리 찢겨서 반정신체만 겨우 돌아왔다고 하던데..." 히드레안은 고개를 끄덕대면서 인형들이 다가와 머리를 닦고 옷을 입혀주 는 동안 잠깐 자리에 서 있었다. "펜릴? 그 늑대녀석이 왜?" 살짝 인상을 찌푸리는 것이 아무래도 그에게 무슨 안 좋은 감정이 있는 모 양이었다. 뭐, 히드레안이 싫어하는 이유라고 해봤자 '생긴 게 맘에 안 든다'거 나 '내 취향이 아니다'라는 유치하기 짝이 없는 이유가 더 많으니까 심각하 게 신경 쓸 건 없겠지만. "내가 어떻게 아냐. 어쨌든 펜릴이 반죽음으로 만들어 놨다더군. 그리 고..." "그는?" 말을 끊고 히드레안은 자기가 듣고 싶은 것을 재촉했다. 약간의 꾸중 섞인 눈빛을 해 보인 미노는 한숨 섞인, 왠지 기운 빠지는 목 소리로 대답해 주었다. "당연하다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런 펜릴을 내버려두고 도망갔지." "풋!" 웃을 때냐? 히드레안은 인형들이 스르륵 물러가자, 오랜만에 입는 연한 분홍빛의 야외 드레스를 살짝 흔들어 보았다. 레이스나 장식은 없고, 가슴 부분이 살짝 파여 있고 허리는 조이도록 되어 있는 상태에서 길게 천이 사방으로 퍼지 는 단조로운 디자인이었지만, 붉은 빛의 루비 귀걸이와 화려한 루비 목걸이 로 장식하자 단연 돋보였다. 거기다 입고 있는 이가 누구였던가? 바로 히드레안 드 이크립스, 희대의 변태이자 악당이고 치사함의 근원이자 동시에 여자도 울고 간다는 전설적인 미인이 아니던가. 크윽, 원망스럽 다. 저런 상반됨을 한 육체에 부여한 그 어떤 존재가! "어때? 나 예뻐 미노?" 순진무구하게 눈망울을 반짝대면서 묻는 히드레안을 바라보던 미노는 욱, 하면서 손을 입가에 댔다. 창백하게 질린 얼굴과 메스껍다는 듯한 행동. 누가 보더라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제스처건만, 히드레안은 다른 의미 로 받아 들였다. "설마 미노 네 녀석, 임신 한 거냐!? 어째 요즘 신걸 찾더라니!" "헛소리하지마 바보 자식앗! 사내 녀석이 여자 옷 입고 이쁘니 뭐니 하는 헛소리하게 생겼냐?!" "...머리나 묶어라. 핑크 리본으로 장식해야 해." 까다롭기 짝이 없는 요구를 해대면서 히드레안은 찰랑대는 머리를 미노 쪽 으로 돌렸고 분홍색의 핑크 빛으로 반짝대는 리본을 받아 든 미노는 이걸 로 히드레안을 목졸라 죽인 다음에 쥐도 새도 모르게 시체 유기해 버릴까, 까지 생각해 보았다가 꿋꿋이 참아낸 후 그의 머리를 양 갈래로 나눠서 위 로 말아 올린 다음 커다란 리본으로 고정시키고, 남은 머리카락은 늘어뜨 린 모양에서 나눠 땋아 한 쪽당 일곱 개씩 늘어뜨리도록 만든 후 거기에도 작은 리본을 매달았다. 커다란 리본으로, 마치 동방의 무희들 풍으로 장식된 머리카락을 이리저리 빙글빙글 돌려보면서 히드레안은 만족한 미소를 띄웠다. "미노, 미노, 역시 핑크색이 어울리겠지? 립 글로즈로 할까 안 그러면..." "아무거나 해!" 히드레안은 뾰루퉁해져서 중얼거렸다. "미노는 여자의 마음을 너무 몰라." "니가 여자냐!? 여자야!" 신경질 부린다고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음을...쯧쯧... ============================================================= ========= 훗....-_-+ 이정도는 애교입니다... 그럼 과연 다음에는 얼마나~야시시~한 장면을....//// 아이~몰라~>. 마왕 이야기-91 굴레-4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아무래도 16살을 넘어 보이지 않는 소년. 사람들의 시선은 아무래도 그런 소년을 보며 '세상에 어찌되려누....쯧 쯧...'하는 표정이었고, 또는 '거참 귀엽군....'하는 듯한 눈빛도 있었으 며, 물론 약간의 음흉함을 담은 눈길도 적잖아 있었다. 독하기로 유명한 '카펫의 눈'을 아무렇지 않게 열잔 이상이나 비우고 있는 소년은 왠지 뭔가 재미가 없다는 표정으로 바에 앉아서 창가 쪽을 응시하 고 있었다. 기가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청녹색의 눈동자. 그 눈에는 왠지 '심심함'이 깃들어져 있었기에 더 귀여워 보이는 지도 모르겠다. 소년의 인상을 과연 '귀엽다'라는 한마디로 압축할 수 있을 만한 인상인지 에 관해서는 조금 생각해 보아야겠지만, 적어도 현재로서는 그에게선 귀엽 다는 느낌 외에는 아무 것도 나지 않았다. "아아, 이럴 줄 알았다면 펜릴이랑 같이 오는건데. 의외로 심심하잖아?" 홀짝, 한 모금 더 마시면서 태평스레 저런 말이나 할 수 있다니, 정말 놀랍 다. 그가 허공에 대고 고개를 조금 까닥하자 아무 것도 없는 술집 안에 바람이 불어왔다. 연하게 느껴지는 기분 좋은 바람이 순간 적으로 그를 한번 휘감 고 나간 후 제레이나는 술병을 집어들어서 병째로 들이켰다. 오오오...하는 감탄성이 들려오고 거침없이 카펫의 눈을 한병 다 비워버린 제레이나는 술값으로 동전 다섯 개를 올려두고 멀쩡한 얼굴로 저벅저벅 걸 어나가 버렸다. ...누가 그랬던가? 카펫이 한잔만 마셔도 뻗을 수 있는 술이라고... "흐음...역시 이런 모습이라서 여자가 안 꼬이는건가, 할 수 없지 뭐. 조 금 키만 키우면..." 갑자기 등뒤에서 그림자가 휙하고 지자 제레이나는 반사적으로 옆으로 살 짝 물러났다. 그리고 한쪽 발을 내밀어 여상스레 발 걸기를...콰당! 하는 소음이 일어나며 상대는 뒤에서 제레이나를 껴앉으려는 시도를 했다가 가차 없이 바닥으로 나가 떨어졌다. 제레이나는 바닥에 넘어진 존재를 어디선가 주워든 것으로 보이는 작대기 로 꾹꾹 찌르면서 중얼거렸다. "뒤에서 안으려고 하면 무조건 피하는 게 버릇이 돼서 말이야, 괜찮아?" "...안...괜찮아!" 아프겠군, 머리에 얹은 먼지를 탁탁 털어 내면서 어린애처럼 바닥에 주저앉 아서 쨍알쨍알 거리는 이. 생긴 건 왠만한 미인은 뺨치고 킥 한번 먹이고 가차없이 없앨 수 있을 정도의 외모지만 하는 행동은 영락없는 5세 어린애. 으음, 누군지 매우 짐작이 잘 갈 거라고 믿는다. "제레이나 바보 바보 바보! 어떻게 이렇게 연약한 이몸을 바닥에 내팽겨 칠 수 가 있어! 비겁해! 발 걸기는 없잖아!" 제레이나는 누가 보더라도 같이 따라 웃을 것 같은 상쾌한 미소를 지으며 그런 히드레안의 머리를 툭툭 두드려 주었다. ...대체 누가 애 모습이고 누 가 어른 모습이냐? "에이-, 좋은 게 좋은 거야." 반박할 말이 없는 저 무사태평한 말투. 히드레안은 흥! 하면서 삐진 여자처럼 고개를 돌렸다. 길거리에서 그러고 있으니 사람들이 한번쯤 다 돌아보는 게 이상하진 않으리라. 대체 대낮에 뭐하는 짓거리란 말인가? 생긴 건 멀쩡한 두 명이 길거리에 앉아서 뭐 하는 짓인지...쯧쯧. 미노는 그런 둘을 바라보면서 어떻게 말하면 둘다 상처받지 않고 저 꼴사나 운 모습에서 탈피해 정상적이 될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방법이 없었기에 미노는 그냥 한마디로 끝냈다. "그러고 있으니까 꼴사나워." "호오, 오랜만이네 미노? 여전히 살아있는 그늘이구나." 제레이나는 툭툭 옷자락을 털어 보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노는 말없 이 고개를 끄덕이곤 아직도 바닥에 앉아서 일어날 생각이 없는 히드레안을 안아서 일으켜 주었고, 히드레안은 그 분홍색 드레스 차림으로 여전히 칭얼 칭얼 거렸다. ...귀, 귀엽지만 엽기다 저건. 넌 남자란 말이다 히드레안! 너의 본성(?)을 제발 자각해라! "오랜만입니다 제레이나 님." 아니, 님? 미노가 존대를 다 한단 말인가? ...라고 놀랄 필요는 그리 없을 것이다. 제레이나는 그저 고개를 한번 까 닥인 후 싱긋이 웃어 보였다. 정말 사람 속 끓여도 차마 화를 못내게 만드 는 그런 미소에 히드레안도 결국 칭얼댐을 멈추었다. 으음, 역시 애한테 는 보모가 최고... "놀러왔어 히드?" 웃, 히드레안의 새로운 애칭이 밝혀지는 순간. "제레이나 널 만나러 온 거다." 다시 정상의 모습을 되찾은 히드레안은 아까의 행동은 전혀 없었던 것 처 럼 고고하고 도도한 표정을 지으며 팔짱을 꼈다. 이미 바닥에 넘어지는 추 태를 연출했으면서 뭘 그러나. "날? 흐음...별로 좋은 일은 아니구나?" "어떻게 알았어?" "네가 언제 나한테 좋은 부탁 한 적이 있어야지 원..." 히드레안은 애교성 미소를 지어 보이면서 살짝 교태롭게 몸을 꼬았다. "너무 그러지 마, 다 이것도 서로 좋자고 하는 일이잖아..." 그런 히드레안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뒤돌아 서서 걸어가 버리는 제레이나 였다. 발끈한 히드레안은 그의 등뒤에다 대고 외쳤다. "중요한 거란 말이다!" "그래그래, 무슨 일인데?" "그게..." 눈을 반짝반짝 대다가 히드레안은 총총히 걸어와 제레이나의 어깨를 탁, 하 고 집었다. 저도 모르게 뒤로 움찔하면서 물러난 제레이나는 히드레안이 뭘 말할지 긴장한 얼굴이 되었고 히드레안은 딱 잘라서 입을 열었다. "깃털 몇 개만 줘." ============================================================= ========= 그런거야? 그런거냐구? -_-;; 으음....어쨌든 뉴 캐릭터 환정. 이제 둘만 더 나오면 뉴 캐릭터 끝...휴우...__;;; 마왕 이야기-92 굴레-5 여기는 그 유명한 히드레안의 마왕성. 얼음과 눈만이 존재하는, 변태의 극강 취미로 만들어진 공간. 그리고 그 공간에서 들려오는 대화들... "안돼! 내 귀여운 마를린과 소피, 그리고 음...이쪽 녀석은..." 뭘까? 이 분위기에 맞지 않는 대사는... "그러지 말고 이걸로 줘! 이게 제일 크잖아!" "그러니까 안된 다니까!"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원. 히드레안은 신경질을 부리기 시작했다. "무슨 깃털에 이름까지 붙이는 거야! 그냥 이거 줘! 이거!" "너야 말로 실험체에다 이름 붙이는 취미를 가지고 있으면서 뭘 그래! 그보 단 내가 훨씬 낳잖아!" 제레이나의 등뒤에 솟아 있는 날개는, 언뜻 보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투명 했다. 길게 늘어져서 사방으로 넓게 퍼져있는, 차마 몇장인지 세어보기도 힘들 정 도로 많은 날개들. 최고위 천사의 경우 무려 30장의 날개를 달고 태어났다 는 기록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제레이나의 날개는 그것과는 좀 틀렸다. 투명한 체, 주변의 빛을 흡수해 빛나는 기묘한 날개. 휘감듯 날개라기 보다는 단순한 기운의 결집체처럼 사방으로 흐트러져서 퍼 져 있는 모습은 누가 보더라도 과연, 하는 소리를 내게 만들 법도 했다. 그렇다. 그가 바로 천계 최고의 말썽꾼, 신들의 사자, 천계의 바람둥이, 천계의 정보통, 바람과 자유의 신 제레이나! 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전번에 친 장난의 대가로 주신의 왕인 마이아에게 벌 을 받아 인계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처지인 상태인, 주신이자 신들 중 세 번째로 태어난, 가장 고귀하고 가장 아름답고 가장 지혜롭다는 그에게 별로 어울리지 않는 신세가 아닌가? "...헥...헥...이렇게 싸우다가는 끝도 안 나겠다. 그러니까! 그냥 이거 하나만 뽑으면 되는걸 가지고 그렇게 치사하게 굴 건 없잖아!" "세상엔 공짜라는 건 없다는 게 히드 네 지론인 걸로 알고 있는데." "웃." 제레이나는 손가락을 까닥까닥해 보이면서 탁자 위에 앉은 자세 그대로에 서 턱에 손을 괴었다. 그리곤 할말을 찾으려고 우물대는 히드레안을 향해 가차없는 일격으로 마무리했다. "좋은게 좋은거, 아니겠어?" 미노는 잘 놀고 있는 둘을 바라보다가 다시 한숨을 내쉬고는 책으로 파고들 었다. 히드레안과 제레이나, 한쪽은 마계 제일의 말썽꾼이고 한쪽은 천계 제일의 말썽꾼. 둘의 인연이 어떻게 시작 된 거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상당한 과거로 돌아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은 확실하다. "어이, 그런 쓰잘데기 없는데 시간 잡아먹을 필요는 없잖아?" 웃, 혹시 그건 절 두고 하신 말씀? 이라는 소리가 잠시 허공에서 들려오려 고 했으나 누군가의 초인적 인내로 그 말은 결국 들리지 않게 되었다. 그 래서 결국 그들의 과거는 알 수 없는 일쯤으로 남기도록 하자. 좀 따지지 마라! 그런 거다! "응...그럼, 침실에서 얘기해 볼까?" 은근슬쩍 목에 팔 감으면서 유혹하는 듯한 표정을 하지 말란 말이다. 이것 은 어디까지나 청소년 물...이라고 누가 그랬지? 제레이나는 살짝 히드레안의 귓가를 쓰다듬으면서 싱긋이 웃었다. 과연, 그가 어째서 생긴 것에 비해서 지나치게 성숙한 눈빛을 하고 있는 가 를 알만 했다. 그럼 그렇지, 역시 제레이나도 누구에 못지 않은 바람둥이 였던 것이다. 음, 누구에게 못지 않는지 괜히 광분하면서 물을 필요는 없다. "히드..." 살짝 조용하면서도 감미롭게 속삭이는 목소리. 히드레안은 걸렸구나~싶어 서 내심 쾌재를 부르는 표정으로 제레이나를 빤히 응시했다. 그리고, 우리 의 제레이나는 순식간에 장난스런 표정으로 돌아가 말을 이었다. "넌 아직 테크닉이 부족해." "뭐, 뭐얏!" 호오, 천하의 바람둥이 히드레안이 퇴짜를 맞을 때가 다 있는 모양이다. 상당히 고소하지만 괜히 티냈다가는 맞는다. 제레이나는 키들거렸고, 미노 도 슬쩍 책을 들어서 더 깊이 얼굴을 감추었다.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 른 히드레안은 분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눈물까지 글썽대고 있었다. "아아, 미안미안 히드. 장난이었어. 화났어? 응?" 쿡쿡 웃으면서도 토닥토닥 머리를 두드려 주는 것이, 왠지 '아빠'와 '아 들'을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일까? ...아니 사실은 '주 인'과 '애완동물'의 관계로 보이긴 하지만 그렇게 말했다가는 왠지 굉장히 무서운 일을 당할 것만 같아서... "제레이나는 역시 바보야!" "아하하하핫! 잘 알면서 그러게 왜 나한테 그런 말을 하고 그래? 큭큭..." 유쾌하게 웃어 버리는 제레이나. ...과연, 왜 히드레안이 제레이나에게 어린애처럼 구는지 알만했다. 편안 하고 안온한 공기. 사람을 이유도 없이 기분 좋게 만들어 주는, 모든 것에 서 자유로운 듯한 존재감. 유달리 그의 주변만 반짝대고 있다는 것 같은 느낌은 거기서 오는 것인 듯 했다. 바람은 여행자이고 방랑자이면서 동시에 관조자. 지켜봐 주는 모든 존재들 중 가장 가까이 있는 존재. ...그렇지만 역시 신치고는 너무 성격이 엉망인데. "신이라고 해서 꼭 신성스러울 필요까지는 없지." ......자꾸 그런 식으로 말을 걸면 안되는 건데요. 라고 누군가 대꾸할 뻔 하다가 다행히 참았다는 것은 극히 다행이다. 제레이나는 편안하게 머리 뒤로 깍지를 끼면서 작은 콧노래와 함께 대꾸했다. "그래서 깃털을 주면 뭐할건데?" "실험의 완성." "으흠? 실험이라...내 날개깃이 필요할 정도의 실험이라면 '미노트'와 관 련 있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당연히 내 날개깃이 가지는 특수한 반 물질성 이 필요한 것이겠고...어디보자 보자, 히드레안 네 실험 중에서 그만한 일 을 벌일 만한 스케일이 있는 건... '미노트'의 부속 실험이라고도 볼 수 있 는 '제이럴'에 관한 연구겠군? 흐응?" 맞지? 하는 너무나도 당당한 저 표정. ...그렇다. 저주스럽게도 그는 신들 중 가장 지혜롭다고 알려져 있다. 저 런 변태에다 바람둥이가 어디가 지혜롭냐고 물어본다면, 으음...히드레안 같은 존재도 최고의 마이스터이자 위대한 존재라 칭송 받기도 하는데 그게 뭐 대수냐, 라고 대답해 주겠다. "...맞아. 그거야." 고개를 끄덕이는 히드레안. 미노는 두 번째 책을 펼쳐들었고 제레이나의 대답도 그와 동시에 이루어졌 다. "줄 수 없어 그럼." ============================================================= ========= 하암...=_= 빨리 비축분을 써야 할텐데... 역시 100회까지 연참을 때리려니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군요..으흠.. 어쨌뜬 여기는 8회~^^ 드라 홈피도 곧 10회를 바라보는 군요~웃흥~>_ 마왕 이야기-93 우훗~백회가 목전이다~+_+ 굴레-6 -어떤 존재에게 접근하기 위해서 우리는 많은 방식을 시도해 보고는 한다. 아름다운 여인이 눈앞에 있다면, 아마도 그대는(남성이라고 가정했을 때) 그녀의 물건이 떨어졌다거나, 생긴 것이 아름답다거나, 또는 공통의 관심사 에 관해서 물어 보거나 해서 그녀와 자신의 '닮은점'을 찾으려 노력할 것이 다. 그러나 카인을 만난 순간에 그대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그는 모든 존재와 동화하는 이이기 때문에... -Kain과의 대화 제 1 장.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를 들은 히드레안은 그대로 가만히 서 있었다. 제레이나가 누구던가? 아무리 천하의 히드레안이라고 해도 감히 함부로 건 드릴 수 없는 상대, 설사 건드린다고 쳐도 얼마든지 쉽게 빠져나갈 수 있 는, 말 그대로 바람의 신. 그런데, 그가 거절을 했다고? "왜! 설마 깃털 하나가 아까워서 그러는 건 아니겠지?!" "아니, 설마 그렇기야 하겠냐. 윽, 잠깐 히드. 그렇게 갑자기 내리 누르면..." 탁자 위에 졸지에 찍어누른 듯한 기묘한 모습으로 누워버린 제레이나. 히 드레안은 안 들리는지 잔뜩 화가 나서 그대로 제레이나의 손목을 내리 누 른 체로-아아, 오해의 골이...-소리소리 질러댔다. "왜 안돼는 거냐고! '제이럴'은 결국 너의 속성에 속하는 존재잖아! 마족 이 아니라 순수정신체에 가깝단 말이야! 왜 그런데 만들면 안돼는데! 왜 못 주는 거냐구! 어디가 어떻게, 어째서 잘못된 건데!" ...웃...꼭 저렇게 큰 소리를 바락바락 내야 할 것인가... "히, 히드. 그러니까 내 말은..." "왜 안돼!" "...아니, 안돼는건 아닌데...아파 히드! 너 정말 '무거운 거라곤 찻잔밖 에 들어본 적이 없는' 녀석 맞아!?" "싫다 안 놔! 왜 안돼는지 말부터 해!" ...나왔다. 히드레안 특유의 필살 억지쓰기... 미노는 한참을 보고 있다가 결국 히드레안의 팔을 잡고 손쉽게 둘을 때어냈 다. 한참을 바둥바둥 댄 히드레안이지만, 아무래도 힘의 차와 신장 차를 이길 수는 없었는지 결국 바둥거림은 바둥거림으로 끝나고 말았다. "잘했어 미노. 하마터면 보는 앞에서 당할 뻔 했네..." 뭔가 의미불명의 말을 중얼거리면서 손목을 아래위로 휙휙 흔들어보는 제레 이나였다. "이거 놓지 못하느냐 미노!" "그러지 말고 진정하지 그래 히드레안? 제레이나가 언제 너한테 틀린 말 하 는 거 봤어?" "한다!" 너무도 당당한 저 말. 미노는 저도 모르게 그런 히드레안에게 짜증을 느끼 며 따라 소리를 질렀다. "또 무슨 얘긴데!" "이 몸이 어린애 같다는 말!" "...맞는 말이잖아..." 제레이나는 쯧쯧하고 혀를 차더니 미노에게 살짝 눈짓을 했다. 잡고 있던 양손을 미노가 놓자 히드레안은 상당히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미노를 노려보 더니-미노는 움찔해서 '차나 끓여오지'라고 말한 후 사라졌다-다시 제레이 나를 바라보았다. "왜 줄 수 없다는 거야? 원하면 어떤 존재에게 던지 주는 게 네 날개 깃이 잖아!?" "이봐, 억측하게 하지 말라고. 정확히는 '나를 만난 존재'에게야." "난 만났잖아! 왜 안 줘!" ...현재 정신연령 퇴화해서 3살쯤으로 봐도 괜찮을 지도... 제레이나는 가만히 그런 히드레안을 바라보다가 싱긋이 미소 지었다. "히드. 아무리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해도, '제이럴'에게 내 몸의 일부가 이용된다는 건 역시 기분 나쁜걸?" "우...왜...?" 입술을 오물대는 히드레안, 상당히 진정된 듯 했다. ...역시 정신연령 1세가 아닐까...저렇게 어린애 같이 굴고서도 전혀 위화 감이 없다니. 더군다나, 지금은 핑크 드레스를 입은 상태단 말이닷! 넌 남 자야! 왜 그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는 거냐 히드레안! "그리고, 아무래도 네가 제이럴을 다룰 수 있을 거라곤 생각이 안돼는걸?" 잠시 생각하는 표정이 되더니, 히드레안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창조물을 다루지 못하는 창조주도 있나?" "많지. 창조자는 결말까지 만들지 못하니까. 창조와 유지는 별개라고. 무엇보다 제이럴은 '절대자유'를 추구하는 존재야. 히드 넌 집착이 강한 편이라 제이럴의 미(美)에 빠져서 절대로 놔주지 못할걸?" 히드레안은 흥, 하면서 코웃음을 쳤다. 저렇게 도도하고 잘난 척 하면서도 알고 보면 어린애라는 사실이 안타깝 다. 조금만 더 사악하고 조금만 더 악랄했더라도 정말 완벽한 마왕이 되었 을 지도 모르는데... "나 이상으로 아름다운 존재란 없다! 당연한 말이지만, 제이럴도 결국은 굴 레에 속박된 창조물. 다루지 못할 리가 없지." "미래란 건 알 수 없는 것이잖아?" 제레이나의 말에 히드레안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미래란 건 없다. 운명이란 것은 있어도." ============================================================= ========= 제 세계관은 허무합니다. -_-; 그걸 염두에 둬주세요... 제레이나는 바람의 신이고 성격도 좋지만 동시에 약간의 허무성을 내포한 존재지요. +_+ 훗.....귀여운 녀석이에요. 마왕 이야기-94 굴레-7 미노는 슬슬 히드레안을 깨울 시간이 된 것 같자 몸을 일으켰다. 다행히 체내 시간을 잘 조정하면-규칙적인 생활을 하면-시간이 없는 데다 밤낮도 없는 곳이기는 해도 미노처럼 부지런한 성격의 소유자는 나름대로 잘 살아 갈 수 있는 것이다. 나풀... 따뜻함을 동반한 바람이 불어왔다. 춥지도 덮지도 않은, 정확히 평준화되 어 있는 공기 속을 떠도는 이질적인 바람. 짧은 반 로브를 허리에 걸치고 있는 제레이나의 모습이 그 가운데 서 있었다. 넓게 펼쳐진 밀림이 아닐까 사료될 수도 있는 사방이 울창한 나무들로 둘러 싸인 히드레안의 '침실'(대체 누가 저런 곳을 침실이라 이름할 수 있는지 한번 물어보고 싶다)의 수도 없이 늘어서 있는 한쪽 벽을 빽빽히 메우고 있 는 키보다 더 큰 창 중 하나를 열어 제끼고 있지만, 차가운 눈 섞인 바람대 신 따스한 바람이 안으로 흘러들고 있었다. 허공을 투명하게 수놓고 있는 날개가 사방으로 퍼져서, 하늘하늘 흩어지고 있는 눈의 공간에 녹아들 듯이 보였다. 미노는 저도 모르게 멍해져서 그런 그를 바라보고 있었고, 제레이나는 기척 을 눈치챘는지 뒤로 돌아서 상쾌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여, 여전히 일찍 일어나는구나 미노." "...예...뭘 하시고 계신 겁니까?" "아, 히드 녀석이 악몽을 꾸는 것 같길래. 기분 좋지? 아침바람이야." 맨발로 빙글 돌아서서는 그는 창문을 닫았다. 그리고 창문이 닫기자 따라 서 그의 날개도 접혀 들어갔다. 평범하고, 조금 귀여운 소년의 모습으로 돌아온 제레이나는 히드레안이 어젯저녁 걸어준 발목에 걸린 방울소리가 리 듬감 있게 짜랑대도록 걸어와서는 미노를 올려다 보았다. "후우, 목 아플 정도인걸? 그렇게 높이 있으면 즐거워?" "...글쎄요..." 장난끼가 가득한 녹색 눈동자. 소년의 모습을 취하고 있지만 그보다 훨씬 어른스러운, 어쩐지 조금은 부담 가는 존재. 제레이나는 손짓을 했다. 까닥까닥하고 아래로 내리는 듯한 그의 행동에 고개만 갸웃하는 미노를 혀를 차며 보던 그는 입을 열어서 말했다. "몸 좀 낮춰 보라구." 그제서야 알아들은 둔하기 짝이 없는 미노는 고개를 숙였다. 스윽스윽, 하 고 미노의 머리를 쓰다듬은 제레이나는 킥킥 웃으면서 다시 뒤로 돌았다. "......"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건지 도저히 종잡을 수가 없다니까, 하고 생각하면 서도 미노는 화를 내진 않았다. 누군가를 쓰다듬는건 제레이나의 단순한 취미고 버릇이고, 쓰다듬기는 건 죄없는 사람들일 뿐이라 생각하면 그만이 니까. "미노트 아신레이져와 제이럴은 상극이야." "무슨 말씀이십니까." "미노트 아신레이져는 대지의 속성, 뿌리내린 존재를 보호하는, 삶을 다스 리는 존재지만 제이럴은 반대로 바람, 거칠 것 없는 절대자유를 추구하는, 죽음을 다스리는 존재지. 보호자, 미노트 아신레이져와 파괴자, 미노프 프 레이져의 가운데 존재하는 죽음으로 이끄는 자. 제이럴." 제레이나는 침대에 처져 있는 투명하게 하늘대는 실크 커텐을 걷어내면서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절대자유란 죽음으로 향하는 의지를 말하는 거야." 그리고 제레이나는 몸을 숙여서 잘 자고 있는 히드레안에게 '무슨 짓'을 했 다. 잠깐의 고요. 아무런 반응도 없이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침대에서 비명이 튀어나왔다. 오오, 상당히 미묘한 느낌이 드는 비명인걸? "제...제레이나! 죽여버릴거야!" "크하하하핫! 뒷일을 부탁한다 미노!" ...도...도망갈 일인가... 히드레안은 부들부들 떨면서 겨우 침대에서 '굴러서' 빠져 나와서 기둥을 잡고 일어났다. "용서 없다! 감히 이 몸에게...! 거기 서지 못해 제레이나아!" 미노는 순간적으로 멍해져서 그런 히드레안을 바라보았다. 반쯤 벗겨진 상 의 사이로 드러난 어깨에 이빨자국이 나있었던 것이다. 거기다 에테르 체 를 불어넣어서 아마 2, 3일 간...시간이 없는 마왕성 내에선 절대로 없어지 지 않도록 조치까지 취해놓고 말이다. "...키스마크 보다 조금...과격하군..." 얼굴을 감싸쥐며 한숨을 내쉬는 미노였다. 어째서 소위 '위대한', 또 한 '고위한' 이라고 불리는 존재들은 하나같이 저 모양이고 비정상이고 제 멋대로에다 엉망일까? 그거야 물론 이 세계가 누구 맘대로 흘러가는 곳이 기 때문이다. "잡았다! 감히 이 몸에게...너도 세겨주랴아? 응!? 펜릴이 보면 어지간히 도 멀쩡하겠다 앙!" "으, 으악! 난 단지 잠을 깨우려고 했을 뿐이야! 이러지마 히드! 나같이 연 약한 미소년을!"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어보면 아주 잘 놀고 있는 것 같은 둘이었 다. 미노는 오늘은 특별히 깨우느라 고생을 할 일이 없자, 조용히 침대가 로 다가가 주변을 정리하고 창문의 잠금쇠도 다시 걸었다. "와악! 살려줘 미노!" "오호호호호홋! 누가 널 구해주겠어! 순순히 당하는 게 신상에 이로울 걸!?" 그러고 보니 베개가 이중으로 파인 걸 보면 둘이서 같이 잔 것 같기는 한 데, 둘 다 멀쩡한 걸 보면 일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았다. 확실히 우습다 면 우스운 일어다. 둘 다 남녀 관계없이 잘 건드리면서 막상 서로는 건드 리지 않는다니... "...저런걸 보고 소위 바람둥이끼리의 우정이라는 건가..." 하아, 하면서 한숨을 내쉬는 미노. 하지만 미노가 상상하는 것과 달리 냉엄하기 짝이 없는 사실은, 누가 밑에 깔릴 건지 결판이 안 나서 가위 바위 보와 묵찌빠, 그리고 제비뽑기 등등 을 거치다 결국 지쳐서 자버린 것뿐. 젠장, 세상은 더 이상 우정 따위의 낭만 적인 것은 없단 말인가. 오랜만에 성안에 따스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기분 좋은...그리고 그 따스한 바람이 남기고 간 날개깃이 차갑고, 조용히 다가오지만 싸늘히 터지는 광풍을 몰고 올 것이라는 것은, 아직 예측 불가 능. ============================================================= ========= 6편 남은건가요....홈피에선... 저쪽에선 아직 12편...거의 두배 가까이 차이가 나는 이유는..-_-;;; 왜....? 어째서....와이.....? ;; 마왕 이야기-95 굴레-8 - 처음도 없고 끝도 없다면 세상은 왜 존재하여야 하는걸까요? 세상이 한줄기 미명이고 흐릿한 안개 같은 꿈이라면 어째서 우리는 살려고 그 괴로운 몸부림을 계속해야 할까요? 단지 살아있기에....? 부여된 사명에 거스르는 의지, 그것을 인간들은 이렇게 말하더군요. '자살' -Kain과의 대화, 제 6장. 히드레안은 얼굴을 찌푸렸다. 반물질성을 이용해 육신에 제이럴을 결합하는 것까지는 성공 시켰지만 감 정 작용이 너무 강해서 정신파장이 어둠에 가까운 것이, 완벽주의 적인 마 이스터의 자존심에 괜히 걸렸던 것이다. 그 상태로도 충분한 완성이건만, 오히려 더 불쾌해 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 었다. "쓸모 없는 실패작 같으니라고..." 히드레안은 짜증 난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괜시리 실험 과정이 적혀져 있는 보고서를 휙휙 넘기면서 히드레안은 살짝 손톱 끝을 깨물었다. 손톱이 안 좋아지는 데다 괜히 입술만 다칠 염려가 있으므로 평소라면 '어디 미개인 같이!'라고 고고하게 굴면서 하지 않을 행 동이지만 짜증이 극에 바친 그로서는 안 그러고는 못 배기리라. 차라리 저게 훨씬 났다 암. 저기서 신경질을 극도로 부려대면서 '제길! 이 모든게 재료가 부족하기 때 문이야! 인간따위 멸망시켜 주겠어! 빌어먹을 신들!' 따위의 왠지 뭔가 말 이 굉장히 안돼는 억지를 늘어놓고서는 또 한차례 발광하면 괴로운건 원인 도 모르고 당하는 가엾은 기타 종족들뿐인 것을. 뭐 왠지 살림 못하는 신혼 주부의 투덜거림과 비슷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행 동은 둘 다 유치하지만 일을 벌리는 스케일의 규모가 틀리니 한쪽은 귀여 운 거고 한쪽은 엽기적인 것이다. "어째서 여기서 실패하는 거지? 반물질과 정신체가 결합하면서 이상적인 순 수 영혼의 집적 에너지가 나와야 되는데...실험환경도 제한되어 있고 시간 조절도 확실하고...무엇보다 이 내가 만드는 데 어째서 왜! 안돼는 거냐구!" 잘 나가다가 결국 다시 신경질을 부리면서 이때껏 소중하게 적어왔음이 분 명한-그러나 그가 적은 것은 아닌-기록을 바닥으로 내팽겨치고서 가차없이 밟아 버리는 히드레안. ...저렇게 성격이 나쁜데 어떻게 저 정도의 우아함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미스테리다. 넓은 방안 가득히 냉기가 휘감아 돌고 있었다. 길게 늘어진, 금속인지 아 니면 비금속인지 모호한, 하지만 진한 금속성을 지니고 있는 파이프들이 길 게 늘어서 있었고 이리저리 엉켜 있었다. 붉은 색과 은색이 뒤섞여서 마 치 인간의 혈관 같이 늘어져 있는 파이프는 정 가운데 위치한 투명한 유리 관 속에 존재하는 것에게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공급해대고 있었다. 유리관은 둥글고 커다란 원형 같은 모습으로 일절의 장식이 배제된, 사방에 서 뻗어 들어온 파이프 줄기들이 연결된 조금 그로테스크까지 하기 한 것이 었다. 약간 연한 녹빛을 띄고 있는 안쪽의, 꽉 차여있는 물과 같은 액체 속에 떠 있는 하나의 존재. 그것은 인간의 태아 같은 작고 조그마한 인육 덩어리 였다. 동그랗게 말려 있는 몸은 붉그스름 한 몸체와 달리 눈 부분의 검은 색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서 어떻게보면 조금 섬뜩하기까지 한... "할 수 없지, 이번 것은 폐기하고 처음부터 다시 해보는 수밖에..." 히드레안은 이럴 때는 거추장스러운 자신의 머리카락을 슥슥 끌어 모아서- 여기서 상당한 고난도의 기술이 요구된다- 휘익하고 뒤로 넘긴 후 바닥에 떨어져 걸레가 다 된 보고서를 발로 걷어차 버렸다. -...이지...죽...이지... 히드레안은 가늘고 고운 눈썹을 찌푸렸다. -...죽고...싶지...않아... "신기한 실패작이군, 스스로 입을 열다니...성공에 근접했다는건가?" 히드레안은 나가려던 발걸음을 멈추고 유리관에 손을 집었다. 서늘한 한기 가 손끝으로 전해져 오고, 안쪽에서 조금씩 올라오고 있던 기포가 조금 많 아졌다. -...죽이지...말...아... "거기다 언어의 사용법 역시 정확해..." 히드레안은 조금은 만족의 미소를 지었다. 실험은 실패하고 있는 것이 아 니라 조금씩 진화하고 있었으니까. 처음처럼 인간의 육체에 영혼을 지닌 체, 반 강제로 순수영혼을 받아들이는 식의 실험을 할 때는, 괴물처럼 일그 러진 모습이 되어서 흉하게 움직이는 뼈대가 조금 남아있는 슬라임이 되곤 했을 뿐. 그에 비하면 이건 엄청난 발전이었다. 살아있는 인간의 자궁에서 적출한, 아직 세계를 접하지 못한 존재의 육신이란 최적의 조건... "하지만 그래도 버러지 같은 실패작 주제에..." 까득, 유리벽이 긁히자 기포의 수가 갑자기 늘어났다. 순간 안쪽의 공간 이 출렁대며 작디 작은 그 몸으로 무형의 압박이 가해졌다. 투둑, 하고 혈 관이 갈라져 피가 터져 나오고 히드레안은 가만히 그 모습을 응시하고 있었 다. "감히 이 나에게 명을 하다니, 존재가치도 없는 것이 분수를 모르는군." 부그르... 끓어오르는 듯한 요동에도 불구하고 히드레안은 안온하고, 방안을 흐르는 냉기보다 싸늘한 미소를 지은 체 그 과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죽어버려라..." 까드득...투둑! 히드레안은 손톱이 자신의 손바닥으로 파고들자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그 가 손끝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손톱을 약간 길게 기르고 있는 사실은 누구 나 다 알고 있는 일이고, 그 끝이 상당히 날카로운 이상 찔리면 피가 나기 마련이었다. "...욱...아야! 제길, 왜 저딴 실패작 때문에 피까지! 짜증나!" 거의 걸레가 될 정도로, 연녹색의 액체 가득히 퍼져있는 피를 보면서 히드 레안은 손바닥을 할짝였다. 속으로 이 고귀한 몸이 피가 바닥에 떨어지다 니 말도 안돼,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열심히 투덜투덜 대고 있는 그였다. - 삶...기...회... "닥쳐, 버러지 같은 것에게 줄 기회 따위는 없어. 실패작 따위가 어딜 세 상에 나오겠다는 거야? 쓸모 없는 것 주제에..." 마법을 걸어 천천히 빠르게 치유되는 손바닥을 보면서 히드레안은 상처가 조금이라도 남으면 저 실험체를 키워서 인간형으로 만든 다음 죽고 싶다고 할 때까지 괴롭혀 줄거라 다짐하며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후우...다행히 상처는 안 진 것 같군.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잖아." 무, 무섭다... 손바닥의 상처가 무엇보다 큰일이 될 수 있다니... "기회를 달라고? 무엇으로 네가 기회를 잡을 수 있지? 넌 실패작이야. 잘 못된 피조물에서 완전한 육신이 나오지 않아." 히드레안은 차가운 표정으로 이제 잔뜩 일그러진 그 실험체를 바라보았다. 뭔가 어떤 파장을 만들어 내려고 끊임없이 발악하는 그 물체의 모습은 징그 럽다기 보다는 애처로왔다. 삶에 대한 격렬한 집착...살고자 하는 그 의 지. 그것이야말로 궁극적인 모든 생명체가 가진 힘. 그러다 그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살짝 미소 지었다. "...살고 싶으냐?" 점차 피로 물들어 가는 그 물체에게선 대답이 없었다. "가능하겠군, 충분히." ============================================================= ========= ....그, 그 이름하여 히드레안, 잔혹한 악마의 테제...;;; (무슨 헛소리냐....-_-;;) 마왕 이야기-96 웃~흥~4편~♡ ============================================================= ========= 굴레-9 - 그와 나의 관계? 묘한 것을 질문하는군요. 하지만 당신은 나에게 100가지 의문을 던질 수 있고, 나는 그 100가지 질문에 대답해야 하니 어쩔 수 없지요. (그때 그는 거기서 짧고도 안타까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내 창조주고, 나의 아버지이며 동시에 어머니인, 또한 나의 구속자이 며 해방자인, 양면을 지닌 나의 위에 존재하던 나를 '창조'한 자. 개인적 인 것을 말하라면 유달리 변화에 약한 귀여운 어린애 였다고 해드리죠. -카인과의 대화 99장 꿈이라면, 이것이 꿈이라면... 이 공간이 모두 꿈이라면, 이 세계가 꿈이라면, 어째서 왜 나는 이런 고통 을 겪는 거지...? 왜 너는 그런 가엾다는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는 거야? 꺼져 에리나쟈드...! 나를 버렸던 자, 내가 증오하는 존재, 나의 어머니, 나의 모든 것을 파멸시 키고 내가 원치 않는 수렁으로 나를 밀어내던 이! 내 안에서 죽었다면 이제 나타나지마! 꺼져버려! 나는 살아있고 너는 죽어있다. 이 나에게 너의 죽음을 강요하지마... 쓰레기 같이 인간을 사랑해 모든걸 버린 존재라면 나타나지 마! 사라져! 그런 표정 따위로 날 농락하지마! [하지만 시르스...] 꺼져! 나타나지마... [...내가 현실이고...꿈은...너잖아...?] 이것이 꿈이라면... "아아아아악!" 히드레안은 몸서리치면서 눈을 떴다. 사방은 빛으로 둘러싸여 있다. 눈 에 반사된 빛, 계속되는 밤뿐이지만 달빛과 은은히 어우러진 눈의 빛이 그 를 감싸고 있었다. "...꿈...꿈...? 하아...하...꿈...이라고...?" 팔로 자신을 감싸 안아서라도 존재를 느끼려고 발버둥치면서 히드레안은 애 써서 숨을 골랐다. 부들부들 떨리는 팔의 감각. 그 한기가 못내 두려웠다. 꿈...영원한 생을 사는 자에게 부여된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매개체. 추억이라고 이름할 수도 없는,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하아...하아...학..." 거칠어진 숨소리가 귓전을 아릿하게 맴돌았다. 제이럴, 꿈의 파괴자. 악몽이 아니라 행복한 꿈도 파괴하는 존재지만, 어차피 행복한 꿈따윈 없 다. 히드레안은 무릎에 고개를 파묻으며 킥...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큭...아하하하핫...그럼 나도 파멸되겠지...안 그래 에리나쟈드...나의 어 머니...내 또 다른 이름..." 두려운, 꿈이라고 불리는 시간이 지나간다. "성장속도가 상당히 빠르군. 좋아..." - .... 골격이 잡혀가고 충분히 몸을 형성하고 있는 여인이 유리관의 안쪽에서 히 드레안을 바라보았다. 길게 늘어진 검은 머리카락은 가만히 그녀의 몸을 휘감고 있었고 동공 없는 푸른 눈은 어떻게 보면 싸늘한, 어떻게 보면 증오 와 같은 감정을 내뿜으며 히드레안을 응시하고 있었다. "날 바라보는 거냐?" 히드레안은 쿡, 하고 웃으며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물론 대답은 있을리 없다. "걱정할 거 없어...삶이란 걸 누리게 해주고 있잖아? 비록 유리관 속의 공 주님이긴 하지만 말이야. 이차 자궁추출이 있을 거다. 그런 눈을 할 시간 이 있으면 고통을 줄일 생각이나 하지 그래?" 정신파장이 요동쳤다. - ...그대를 증오하는 동안...고통을 잊을 수 있어... "쿡... 살려달라고 애원했던건 너야. 난 살려줬고. 쓰레기 같은 버러지 주제에 더 많은걸 바라지 마라." - 이런 게 삶이라고!? 나는 쓰레기가 아니야! 난 내 발로 서서 걸을 수 있 고 행할 수 있고 그럴 힘도 있어! 이런 건 삶이 아니야! 히드레안은 어깨를 으쓱하면서 허공에 둥근 무중력의 공간을 만들어 내었 다. 핑글핑글하고 작은 빛들이 엉켜서 돌아 구분할 수 있는 조그마한, 작 은아이가 하나 들어갈 정도의 공간. "그런건 상관없어. 넌 실패작이고, 난 실패작 따위에게 기울여줄 애정도 삶을 부여할 시간도 없는 이다." - 나는...그럼 왜 존재하는 거지!? "네가 삶을 원했기에." 메아리쳐지는 비명 아래에, 천천히 여인의 몸 안에 존재해야할 자궁의 모습 이 드러났다. 말려서 바람이 빠진 자루처럼, 연한 분홍빛을 띄고 있는 피 로 살짝 젖어 떨리고 있는 공간. 히드레안은 무표정한 얼굴로 살짝 눈을 감을 뿐이었다. 어지러웠다. 계속해서, 계속... 미노는 말없이 히드레안의 이마를 짚어보고, 다시 입을 벌리게 해서 체온계 라고 불리는 것을 물려넣었다. 체온계를 흔들어서 열을 확인해 본 미노는 짧은 진단을 내렸다. "쉬어라 히드레안." "싫어." 이걸 한 대 쥐어박아서 멀쩡한 놈도 쓰러지게 해버릴까 하고 고민하고 부들 부들 떠는 미노였지만 그는 꾹 참은 후 입을 열었다. "...열이 40도야. 아무리 네가 대단하다고 하고 큐어 디지즈가 있다고 하 지만 네 몸의 마방력이 비정상적도로 높으니까 집중력이 안 그래도 없는 네 가 아픈 몸으로 걸어봤자 소용없겠지? 더군다나 네 몸은 세계 제일이라고 할 정도로 운동부족에 골반 뒤틀림 등등을 수용하고 있는 약체란 말이다. 알았으면 쉬어!" "싫어 싫어 싫어!" "이게... 애도 아니면서 왜 자꾸 칭얼거려! 이리와! 약 먹고 자!" "싫어!" 아둥바둥 거리면서 도망가려는 히드레안을 붙들고, 억지로 침실 쪽으로 끌 고 가는-또 오해의 요지가...에라, 이제 달관할란다-미노. 있는 대로 바둥 대면서 히드레안은 소리 높혀서 아무 말이나 해댔다. "싫어어! 하나도 안 아파!" "너 약 먹기 싫어서 그러는 거 누가 모를 줄 알아! 딸기맛 시럽 있잖아!" "그것도 약 맛 난단 말이야!" "그럼 네가 만든 약 먹어!" 끝까지 도망가려고 하는 히드레안의 양손을 붙들고, 마법을 못쓰게 하기 위 해서 끊임없이 말을 걸어서 약올리면서, 혹시라도 있을 함정발동 등을 피 해 미노는 그 힘겨운 사투를 승리로 이끌어서 결국 히드레안을 침대로 내팽 겨 쳤다. "윽..." "자, 이제 순순히 옷 갈아입고 약 먹고 자!" "아직 밀린 연구가 있어! 하고 약 먹고 잘래!" "...어차피 여긴 시간도 없잖아...흘러가는 거라곤 인체 시간뿐인 곳에서 무슨 그런 헛소리를...잔말 말고 자!" 히드레안은 찍소리도 못하고 억지로 평소 입던 하늘하늘한 옷이 벗겨지고 대신 따뜻하고 푹신한, 그리고 두꺼운 로브로 갈아입었다. 감촉이 이상한 지 아직도 칭얼대고 있는 그를 향해 미노는 빽하고 소리를 한번 질렀다. "좀 그만 칭얼댈 수 없어! 그러게 누가 무리하게 실험 같은 거 하래?!" "...미노...내가 미운 거야...그렇지? 응? 우흑..." 갑자기 울기 시작하는 히드레안, 어안벙벙해진 미노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 에 서럽게 울면서 혼자서 흐느끼기 시작하는 그를 보다가, 미노는 문득 생 각나는 게 있었다. '죽을 때가 되면 안 하는 짓을 한다' "...약 먹고 자라...응?" "싫어어, 약 안 먹어, 잠 안자, 안 해 안 해 안 해...우흑..." 니가 애냐! 하면서 한 대 때리려고 해도 저리 어린애처럼 우는 사람을 때리 면, 으레 양심의 가책을 받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환자이지 않은가? 평소 에도 변태색골밝힘증과 말기 왕자암 나가서 결벽증과 인간무시라는 심각한 병을 앓고 있었지만 그래도 육체적으로 아픈 것이니까 이번엔 착실하게... "혼자 자기 무서운 거면 옆에 있어 줄테니까 자..." 아직까지도 눈물이 그렁그렁해져 있던 히드레안은 귀엽게 손을 입가에 대 고 사방에 꽃으로 도배한 배경을 쓴 체 살짝 순진한 소녀처럼 볼을 상기시 키고 물었다. "...그럼 순순히 안길 거야?" "그, 그런 뜻으로 말고! 손대면 죽엇!" 히드레안은 다시 울먹대더니 사방을 공진 시킬 정도로 다시 울어대기 시작 했다. "아아아아앙! 미노 미워!" "으아아아악! 울지마!" ...기초 상식. 때로 인간은 아프면 저도 모르게 정신기관이 뇌의 과부화를 막기 위해 퇴화 한다... 결국 울다 지쳐서 씩씩대는 히드레안에게 분홍빛으로 찰랑대는 감기약을 먹 이고, 재우는데까지 성공한 미노는 자신의 인내심과 도전정신에 무한한 칭 찬을 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동화책 읽어줘에서부터 손 잡아줘, 어디 안갈 거지? 등등의 어린애 퇴화용 대사를 해대며 귀찮게 칭얼대던 녀석이 드디어! 잠들었다는 거다! 미노는 기쁜 마음으로 책을 펼쳐들었다. 침대에 푹 파묻혀서 새근새근, 기 분 좋게 잘도 잔다. 무사태평함이 정도를 지나쳐 아에 만사태평에 가까운 녀석. "...그렇지만...정말로 그 말들이 다 맞은걸 보면..." 미노는 살짝 책에서 눈을 떼서 히드레안을 바라보았다. 좀 뺨이 발그스레 하기는 하지만 잘 자고 있었고 입고 있는 옷이 좀 더운지 땀에 좀 젖어있다 는 것 빼고는... 제레이나는 평소처럼 훌쩍 찾아왔다가 훌쩍 떠나면서, 히드레안에게는 깃 털 세 개를, 미노에게는 몇마디의 충고를 선물했다. 바람이란 어떻게 보 면 자유롭지만 동시에 기묘하게 짖궂기도 하다... '그러니까 말이야 미노. 제이럴이란 게 그렇게 쉽게 탄생되지 않거든? 너 만 해도 굉장히 힘들었잖아? 아마 히드라면 너로선 이해할 수 없는 일들 을 꽤 저지를 거야. 몸도 약한 녀석이 시간상에서 무리를 해댈 테니 헤이 해진 정신을 틈타 악몽이나 꾸다가 결국 시름시름 앓겠지. 그러니까 히드 가 아프고 나서 깨어나거든 한마디 해주라구. '바보' 하고.' ...어쩌면 제레이나는 굉장히 똑똑한 신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는 미노 였지만 이내 히드레안 못지않는 그 바람둥이 같은 성격과 비열함, 보호자 골탕먹이는 성격, 주신인 마이아에게 매번 징벌 받을 정도의 장난끼를 생각 하고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아무리 못난 사람이라고 해도 재주 하나쯤은 있는 법이야! ============================================================= ========= 아싸~+_+;; 마왕 이야기-97 훗...3편이네요...+_+ 음....100이 곧이군... 굴레-10 흠뻑 땀으로 젖어서 자고 있는 히드레안의 이마를 물수건으로 닦아주고는, 미노는 슬쩍 바깥을 바라보았다. 눈은 여전히 내리고, 밤의 은은한 달빛 이 아름답다. 하지만 창문을 여는 순간 뼛속 마저 어는 한기는 계속될테지... 제레이나가 남기고 간 온기가 이럴 때 있었다면 좀 도움이 될텐데, 야속하 고 변덕스러운 봄바람은 제 주인을 따라 돌아가 버렸다. "...그러고 보니...네 명의 왕은 사계에 비유되기도 한다지..." 더워를 연발하는 히드레안의 잠꼬대 때문에 미노는 이불을 걷어주고 옷을 한겹 벗기면서 투덜거렸다. 이런건 인형을 시키면 될텐데, 무슨 일이 있더 라도 꼭 미노를 시키는 것이 완전히 심술이었다. "봄의 라우레안, 여름의 룬, 가을의 칸나, 겨울의 히드레안..." 봄은 창조. 변덕스러운 찬바람이 휘몰아쳐도 가장 찬란하게 피어나는 아름 다움. 여름은 유지. 생명들에게 기운을 불어넣고 알 수 없는 우연을 통해 미래를 결정해준다. 가을은 변혁. 화려한 결실과 함께 죽음의 낫을 지켜드는 이. 화려하고, 우아하고, 안전하지만 가장 냉혹한 이. 겨울은 침묵. 모든 것을 휘감고 비밀과 어둠, 침전하는 어둠 속에 감추어 둔다. 새하얀 눈 속에 담긴 것은 절망이라 이름하는 감미로운 비의. "적어도 내가 만나본 녀석들을 토대로 작성하자면 그 말은 좀 수정됐으면 하는데..." 미노는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사람 온정이 그리운 철부지 어린애랑, 그 철부지 어린애를 통해서 삶 의 위안을 얻고 있는 다 늙은 능구렁이 드래곤이랑, 그 가운데서 중재하는 뭘 생각하는지 알 수 없는 폭력적인 기생목하고, 수다쟁이 아줌마... "제기랄, 내가 책을 쓰면 차라리 진실을 쓰겠다." ...괜한 걸로 시비 걸지 말아 줘 미노군. 어차피 세상에 알려져 있는 진실이라는 것은 가시적이고 일시적인, 절대적 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이니까. "더워어..." "얼음물로 찜질해 주고 있잖아!" 괜히 환자한테 짜증내는 미노였다. 약의 효과가 좋았는지 간병이 좋았는지, 아니면 끈질긴 실험정신 때문인지 히드레안은 푹 자고 일어나서 곧바로 회복했다. 미노는 기다린 보답을 받 을 순간이 오자 기쁜 마음으로 한마디하는 즐거움을 포기하지 않았다. "바보..." "누가 바보라는 거냐! 차도 못 끓이는...읏..." "크하하하핫! 이제 그런 말은 못하겠지?! 차라면 확실히 끓일 줄 아니까 말 이야!" 히드레안, 미노의 말에 반박조차 못하고 져버린 터였다. 그는 아직 감기기 운이 남아서 그럴 거라고 애써서 다른 생각을 하면서 이를 갈았을 뿐... 둘다 참 여전히 유치하게 놀고 있다. 실컷 자고 와서인지 실험실 안의 시간은 상당히 흘러가 있었다. 새로운 실 험체는 유리관 안에서 잠든 듯이 동그랗게 몸을 말고 있었고, 히드레안은 평소와 다름없이 같은 충격과 쇼크를 반복해서 주면서 실험을 반복했다. "마력반응도 충분하고...신력 생성도 확실해...어디로 보나 모자란 것 없고..." ...완전하잖아? 저도 모르게 흠칫한 히드레안은 그동안 기록되고 있었던 기록들을 뒤져 보 았다. 확실했다. 이때껏 이 실험체는 완전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히드레안은 섣불리 판단을 내리지 않고 천천히 모든 것을 확인해 보 았다. 이때껏 수도 없이 실패를 거쳐서 그런지 어지간히도 이골이 난 모양 이었다. 마지막까지 체크해 본 후, 히드레안은 그제서야 아주 얇은 미소 를 띄었다. "...쿡...결국은..." 차가운 유리관에 입을 맞추면서 히드레안은 속삭였다. "나의 창조물...완전한 것, 제이럴..." 쿡, 하던 작은 미소는 이내 커다랗게 그 공간을 울려 퍼졌다. 제이럴, 파멸을 부른다는 창조물. 꿈의 파괴자. 히드레안은 손을 뻗었다. 은빛의 크리스털 잔에 담긴 것은 붉은 피. 유치한 옛시대 마왕도 아니고 무슨 잔에 사람의 피를 담아서 마시냐고 생각하겠지만, 히드레안은 마시는 대신 손끝에 피를 적셔 아직 눈을 뜨지 않은 아이의 이마에 선을 그어 내렸 다. 피 얼룩이 번지면서 비릿한 냄새와 함께 이마에 그어지는 혈흔. 히드레안은 조용한 목소리로 주문을 읊었다. [영원의 생을 사는 존재들이여, 기나긴 삶을 사는 영혼들이여, 깊은 꿈을 꾸는 이들이여, 나 지금 여기서 말하노니 나의 종속된 자를 표하노라. 지 금 여기에 그 언약과 맹약의 이름으로 고하나니, 나의 이름은 히드레안 드 이크립스. 명하노니, 지금 이 자리에서 깊은 꿈의 의미를 부여하라.] 피가 바닥을 적셔 내린다. 비릿한 피비린내, 주변을 휘감고 있는 것은 피로 물들어진 강... 무너져 버린 신전의 아래에서, 깊이 잠든 듯한 어린아이의 이마에 그는 세 례를 부여해 주었다. [제이럴...너에게 이름을 부여하노니, 카인제이럴, 영원한 꿈이 파괴자의 이름을 주노라.] 투둑, 하고 무너져 내리는 성직자들의 시체 위로 진 싸늘한 그늘 가에서 미 노는 고개를 저었다. 마족들의 세례라는 것은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아 무리 신에게 버림받고 멸망했어야 하는 종족이지만 세례만은 신전에서 받 는 것이 관례라니. 인간이야 몇 명이 죽던 별로 그렇게 신경 쓰이는 건 아니지만, 괴멸된 신전 에 대해선 약간의 동정을 베풀어야 하지 않을까. 아이는 감기었던 눈을 뜨고 어른이 되었다. 사방으로 흘러내린 플라티나 화이트의, 새하얀 순백색, 주변의 빛마저 빨아 드리는 은은한 청색기운이 도는 흰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늘어지고, 커다랗 고 맑은 보랏빛 눈동자가 흐릿한 초점을 맞추기 위해서 잠시 먼 곳을 응시 하더니 이내 히드레안을 응시했다. 피로 물든 제단 위에 피로 물들어 버린 아이, 아니 어른은 히드레안을 바라 보고 미소 지었다. 하얀 얼굴 위에 떠오른 미소가 못내 사방을 고요하게 만들었다. "...나는...무엇인가요?" 히드레안은 그의 뺨에 손을 얹고 그를 바라보았다. 약간 차갑운 히드레안의 손의 감촉에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그 감 촉을 즐기면서 만지작댔다. 히드레안은 살짝 미소지었고 카인제이럴이라 이름 받은 존재는 그의 손에 가볍게 키스하며 중얼거렸다. "카인제이럴...나의 이름을 받았습니다..." ============================================================= ========= 드디어 카인의 등장이군요. -_-; 음...프로필이나 한번 쎄려 볼까요? 카인제이럴 나이 : 막태어났음. -_-(퍽!!!) -_-# 플라티나 화이트의 머리결(거의 투명하죠. -_-;), 굉장히 크게 느껴지는 보 랏빛의 눈동자.(아쿠아 퍼플이라고 생각합니다. -_-;) 키는 대략 168~9정도 될거고 몸무게는 모릅니다. -_-;; 외모는 19살쯤으로 보이지만 얼굴 표정에 따라서 17살에서 20대까지 자유자 재로 넘나드는 기이한 모습을...-_-;;(말 돼냐? 돼?) 성격은...음....차츰 드러나겠죠? -_-; 전체적으로 상당히 귀여운 얼굴입니다. 큰 눈에 오똑한 코(왜 다 오똑한 코야 왜? -_-?) 조금 푸르스름한 입술, 그리고 주변을 휘감고 있는 이상하 리 만치 위험하면서도 끌리는 매력. -0-; 팜므 메탈(요부...;;)인가...-_-; 어쨌든 사담이 본담보다 길군요. 뱀발-카인의 얼굴을 확인하고 싶으신 분들은 갤러리 란으로. -_-;; 마왕 이야기-98 굴레-11 So the season of the fall begins Down the crossroads in a sleepy little inn By the fire when the sun goes down But, the night becomes you And the secrets of the rain Forever autumn... 몰락의 계절이 다가와 저 십자로 아래 잠자는 듯한 작은 여관에서도 난롯가에서 해가 기울어 가네 하지만, 너에게는 밤 그리고 비의 신비스러움이 어울려 영원토록 가을이었으면... And the season of the fall begins Out the nightlands when the thunderstorm sets in The secrets clear in the cloudy night But the night becomes you And the secrets of the rain and the storm again 저 밤의 나라에도 몰락의 계절이 다가와 폭풍이 몰려 와서 밤하늘에 먹구름으로 흐려져도 비밀은 숨길 수 없어 하지만 너에게는 밤 그리고 비의 신비스러움과 폭풍이 잘 어울려... Coming closer every day, forever autumn 매일 조금씩 다가와 영원히 가을이었으면... And the season of the fall begins Past the passing bell, past willow's weeping A ripple forms on the brinks of time 영락(零落)의 계절이 다가와 종말을 알리는 종소리, 흐느껴 우는 버드나무 시간의 가장자리에 물든 파문을 지나... But the night becomes you And the secrets of the rain, and the storm again 하지만 너에게는 밤 그리고 비의 신비스러움과 폭풍이 잘 어울려... Coming closer every day forever autumn... 매일 조금씩 다가와 영원히 가을이었으면... -Forever Autumn 중 카인(Kain. ps-성서에 나오는 카인과 아벨 중 카인의 철자는 cain이다, 유 념바람...). 히드레안이 대체 무슨 의도로 준 이름인지 알 수 없는 이름. 어쨌든 카인제이럴은 자신의 이름에 별로 불만이 없는지, 아니면 원래 불만 이란 것을 가지지 않고 사는 존재인지 고분고분 시키는 대로 받아들였다. 히드레안은 한동안 실험도 끝났으니 늘어지게 자겠다는 야심 찬 욕망을 가 지고 침실에 기어들어가 버렸고, 미노에게 한마디 남겨주었다. '잘 키워' ...뭘 잘 키우란 걸까? 하여튼 만들면 그걸로 끝인 그다운 행동이었지만. 미노는 솔직히 카인제이럴이 상당히 거북했다. 제레이나의 말처럼 자신의 속성이 대지에 기거하고 카인제이럴의 속성이 바람에 기거해서 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를 대해야 한다는 사실이 어느 정도 뭔가 모자란 것이 있는 것은 확실하다고 느꼈다. "...카인제이럴...그냥 카인이라고 불러도 되겠지? 어차피 제이럴은 명사어 니까..." "네에." 귀엽게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히드레안 못지 않게 치렁치렁하니 끌리는, 거의 투명함에 가까운 새하얀 머리카락을 늘어뜨리고 커다랗고 동그란 보랏 빛 눈동자를 뜨고 있는 소년인지 청년인지 구분이 애매모호한 얼굴의 소유 자. 그와 다른 것은 커다래서 왠지 얼굴을 거의 차지하고 있어 보이는 듯한 느 낌의 눈동자와, 귀엽다는 인상이 강한 외모, 그리고 묘하게 푸르스름한 빛 이 도는 입술쯤이지 싶다. 전체적으로 유약해 보이는 얼굴선은 '혹시 자식 이 아닌가'하는 착각을 불러 일으킬 정도다. "그러니까...널 만든 녀석은 지금 피곤해서 아주아주 오랫동안 잘 생각인 모양이거든? 일단 왠만한건 나한테 묻도록 하고 필요한게 있으면 말해도 돼. 에 뭐 그야, 제이럴은 날 때부터 모든걸 알고 있는 자니까 특별히 필 요한 게 있을 리는 없겠지만..." 미노는 말이 횡설수설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지만 카인이 또랑또랑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고 있으니까 왠지 긴장돼 버렸다. 역시 미인을 앞둔 상황에서는 누구라도 횡설수설하게 되어 버리는건가? "제이럴은 모든 걸 알고 있나요?" 카인은 의문을 던졌다. 커다란 쇼파 쿠션 위에 앉아서 할 말은 아니지만, 주인인 히드레안도 그 모양인데 창조물이라고 뭐 별다른 게 있으랴. 미노 는 고민하다가 대답해 주었다. "잘 모르겠지만, 히드레안이 말한 거니 아마도 틀리겠지." "히드레안이 말하면 아마도 틀리나요?" "...사실 다 틀리거든." 카인은 그 말을 듣다가 생긋이 웃었다. 아마 미노가 심각하게 인상을 쓰 고 있는 게 재밌게 보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역시 미노의 눈에는 카인은 어딘가가...부자연스러워 보였다. "미노라고 불러. 굳이 존대할 필요도 없어. 아 그렇군...넌 파장을 말로 바꾸는 거지 지금?" "네..." 끄덕끄덕. 카인이 아래 위로 고개를 흔들자 미노는 할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쉬면서 천천히 가르쳐 주었다. "파장을 조금 평이하게, 지금 네가 쓰고 있는 고파장 보다 조금 낮추어 봐. 낮춘다...라는 의미를 이해한 거야? 좋아. 그럼 거기서 조금 더. 이 제 해봐." 카인은 몇번 뭔가를 웅얼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응." "좋아, 잘 했어." 카인은 칭찬에 살짝 웃어 보였다. 애보는 데에는 역시 미노다. 세상에서 제일 힘세고 무식하고 성격 더럽고 밝히고 치사하고 잔인하고 잔머리만 굴리는 어린애를 돌보고 있으니 뭐 저 정도야 당연히 한다고 볼 수 있겠지만 말이다. "그래...특별히 뭐 하고 싶은 거라도 있어? 여긴 굉장히 심심한 곳이니까 뭔가를 하지 않으면 오래 못 버텨." 물론 '그래서 나도 요리를 배웠지'같은 조금 부끄러운 말은 빼버린 미노였 다. "...알고 싶어." "뭘...알고 싶은데?" 카인은 손으로 흰색의 엄청나게 거대한 하나의 대리석을 그대로 깎아서 만 든 바닥을 톡톡 건드렸다. 일반 궁성이라면 중간중간 대리석의 홈이 있었 겠지만 절대 미를 추구한다는 자칭 탐미론자, 타칭 밝히는 변태 히드레안 은 거대한 대리석 하나를 완전히 깎아서 일체형으로 방안을 장식하는 무식 한 짓을 했다는 말이 전해져 온다. 물론 어디까지나 전해져 오는 말이다. (그게 사실이라도 괜히 따지면 죽는다.) "바닥?" "여기, 이 곳, 이 곳을 이루는 법칙." 다르다는 것을 거의 본능적으로 느낀걸까? 미노는 히트 오브젝션으로 삐- 하 는 소리를 내면서 끓는 티 포트를 들어서 조금 식혔다. 그리고 찻잔에 따 뜻하게 뎁혀진 설탕을 탄 우유를 한잔 따른 후 카인에게 내밀었다. 카인은 조심스레 그것을 받아 들었고, 익숙하게 그것을 호, 호 불었다. "이곳의 법칙이라. 그건 만든 녀석밖엔 모르겠지." 쇼파에 살짝 앉으면서 미노는 티 포트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바닥에서 쇼파 쿠션 위에 정좌하고 앉아서 다도라도 하듯이 데운 우유를 호호거리던 카인은 그런 미노를 올려다보았다. 히드레안이 입혀 놓은 그냥 헐렁대는 흰색의 로브가 위험한 매력을 내뿜는 바라고 증언한다. "몰라?" "거의 모른다고 해야할까? 어차피 여긴 도피처니까...일단 세상이란 틀 자 체에 존재하지 않는 곳이라고 봐야겠지. 잘은 모르겠지만 시간과 공간은 동일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리 근접해 있어도 그 틈이 벌어진다나 봐. 아주 조그맣게." 호륵. 우유를 '마시는' 일을 행하면서 카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틈이 벌어지고, 벌어지는 것은 시간과 공간이 오래되면 오래될수록, 변 화가 일어나면 일어날수록 늘어나겠지. 그러다 시간과 공간의 틈이 벌어 질 데로 벌어지게 되면 그 가운데에, 커다란 틈이 생기고 모든 틈들이 연결 이 되는 거지. 마치, 균열이 간 벽이 갈라지는 것 처럼." "벌어져? 벽?" 그럼 애초에 기초부터 알고 나서 그런걸 물어야 될 거 아니야! 하고 소리치 고 싶어지는 미노였지만 친절한 답변이란 모든 보모의 기본! "음...그러니까 바닥이 서 있는 거라고 보면 돼. 벌어진다는 건...그러니 까 같이 있던 것이 멀어지는 것과 같은 거지. 원래 하나였던게 떨어지는 거야." "응, 그렇구나..." 미노는 다시 설명을 이어나갔다. 카인은 꽤나 성실한, 누구와는 달리 남 의 말을 함부로 씹어 버리고 무시하는 성격이 아니었기에 아주 귀여웠던 것 이다. 그 아주 나쁜 성격을 닮지 않은 창조물이 나왔다는 것에 내심 감사 하는 미노였다. "그렇게 커다란 틈이 생기면 그건 텅 비어있지. 그리고 그 틈이, 바로 지 금 우리가 있는 곳이야." "틈...지금 여기...?" "맞아. 그러니까 여기는 공간과 시간이 이상하게 엉켜 있지. 어차피 맞 지 않는 부분이 떨어진 것이니까. 여기선 시간이 제대로 흐르지 않아. 기 물들은 언제나 처음과 똑같고 결실은 맺히지 않지. 하지만 변화의 시간은 분명히 흘러." 그래, 비록 육신의 시간도 흐르지 않아 배고픔도 아픔도 고통도 없는, 살아 있음을 제대로 자각할 수 없는 경우가 더 많은 끔찍하리 만큼 두려운 시간 이기는 하지만... "여기가 이모양인건 히드레안이 강한 상념으로 이곳의 모습을 잡고 있기 때 문이야. 생각으로 만들어지는 허상...뭐 그 비슷한 거랄까?" "그럼...나는?" 미노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카인은 다 마신 컵을 이제 내려놓고 묘하게 환해 보이는, 그렇지만 섬뜩하게 느껴지는 미소 를 지으면서 미노를 향해 물었다. "나는 존재하는 허상이야?" 그의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 ========= 어쩌면 오늘안에 100편 완료할지 모르겠군요...+_+(훗...) 아이~♡ 좋습니다 뭐~으음....+_+ 카인...드디어 등장하는구나아아아~아이 저아~ 마왕 이야기-99 굴레-12 미노의 꺼림칙한 기분과 카인의 기묘한 행동들에 대해서 히드레안은 단 한 마디로 일축했다. "당연하지." 퍼억! 날아간 주먹을 피하면서 히드레안은 특유의 잘난 척 하는 포즈를 취하며 외 쳤다. "시종 주제에 감히 누구를! 훗...역시 잠은 좋은 거로군. 덕분에 아주 상 쾌해 졌어! 이제 그따위 주먹에 맞지 않는다! 아하하하핫!" ...부서져서 후두둑, 하고 파편이 떨어져 내리는 벽을 흘낏 쳐다본 히드레 안은 뭐가 찔린 것인지 아니면 이왕 하는거 말하는 게 역시 나을 거라고 생 각했는지 다시 말을 이었다. "아마 이상한 거부감이 들 거다. 아니, 거북함이라고 하는 게 옳을까? 도 저히 제대로 볼 수 없는 느낌..." "그래, 그거. 거기다 질문을 던질 때마다 하는 이상하게 기묘한 행동 같 은 것..." "별건 아니다. 너뿐이 아니라 영원한 생을 부여받은 이들은 모두 그런 느 낌을 받을테지. 그리고...모든 말은 언령을 성립시킨다는 것을 알고 있겠 지? 참고로 그 아이의 언령은 질문으로서 성립된다." "...위험한 녀석이로군. 여러모로." 히드레안은 히죽, 하고 웃어 보였다. 으레 그럴 때, 미노는 불안해 지곤 했고 어김없이 이번 불안도 맞아 떨어졌다. "그만한 가치가 있으니까." 정말로 기묘한 건 사실이었다. 시간의 흐름을 알 수 없기에, 카인이 어떻 게 나이를 먹어 가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는 점차 발전해 나갔다. 책을 보지도 훌륭한 스승에게 배움을 받는 것도 아니지만, 지식을 어디선가 흡수 라도 하듯이 배워 나갔다. 신기할 정도로 빠른, 그래서 조금은 섬 한 배움. 히드레안은 알고 있으면서도 말하지 않고 누군가가 곤란해하는 걸 즐기는 못된 버릇이 있기에 미노의 곤란 따위는 알아주지도 않았다. 오히려 카인 을 부추기는 짓만 골라서 하느라 재미가 붙어 버린 듯 했다. "카인, 히드레안 좀 깨워 줘." "응." 그리고, 미노는 기회를 이용할 줄 알아야 참다운 승자라는 말을 되세긴 후, 히드레안이 카인에게 약하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반대로 히드레안을 괴 롭히는 수단을 만들어 내고야 말았던 것이다! 장하다 미노! 너야말로 세계를 구원할 용사가 될 자격이...있나? 뭐 어쨌든 간에. 총총히 히드레안의 거대한 침실이라고 말했다가는 여러 사람에게 말할 그 문제의 침실로 들어가는 카인의 뒷모습을 보면서 미노는 피식 웃었다. 자면 절대로 죽어도 안 깨는, 갖은 수단을 동원해서도 절대로 깨지 않는, 제레이나 같은 약간의 비정상적인 방법을 동원하지 않으면 못 깨우는 고약 한 잠버릇을 가진 히드레안이니 만큼 한번 깨우는 존재는 화를 입지 않는다 는 보장이 없었다. 미노, 그렇게 안 봤는데 사실 따질 거 다 따지면서 치사한 구석이 적잖아 있었던 거다. 카인은 방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울창한 밀림은 여전히 제멋대로 그 모습 을 갖추고 있었고 침실은 여전히 악취미 하게 크고 창 밖으로 내리는 눈도 여전했다. 카인으로서는 어째서 방안이 이렇게 넓은 가에 관해서 특별히 따질 필요는 없었기에 침대의 하늘하늘한 커튼을 걷고는 커다란 베개를 껴안고 뒹굴뒹 굴 구르면서 자고 있는 히드레안을 바라보았다. "히드레안 님, 미노가 일어나래요." 일어날 리가 없지! 카인은 고개를 갸웃갸웃하다가 히드레안을 슬쩍 흔들어 보았다. 조금 움찔 하더니 이내 상관없다는 듯이 한바퀴 데구르르 굴러서 구석으로 가버리는 히드레안. 카인은 어쩔까 잠시 고민하다 침대 속으로 들어가서(얼마나 크 면 이런 표현이 사용되겠는가) 히드레안을 다시금 흔들었다. "히드레안 님, 미노가 일어나라는데요?" 나름대로 목소리도 높혀 보았지만 히드레안은 일어나지 않았다. 누가 그랬는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히드레안이 곤히 자는데 깨웠다가 괜 히 100년간 마왕성 지하감옥에 갖혀 있지 말라고 했던가? "히드레안 님?" 흔들흔들...기분 좋게 리듬을 타고 몸을 흔들자 히드레안은 그제서야 실눈 을 뜨고 조그맣게 입을 열었다. "음...키스해주면 일어나지..." ...미, 미노로 착각한 모양이었다. 카인은 눈만 동그랗게 뜨고 그런 히드레안을 내려다보았고 히드레안은 늘 상 있어야 돼는 '무슨 헛소리야 바보자식!'하는 고함이 들려오지 않자 잠결 에서도 조금 이상하게 생각하다가 그냥 다시 베개를 더 끌어안으면서 길고 긴 검은 머리카락을 사방으로 풀어헤친 체 기분 좋은 잠을 계속해서 즐겼 다. 그, 그런데....뭘 저렇게 열심히 고민하고 있는 걸까 카인은? 에이, 설마하니 태어 난지 얼마나 됐다고 그런 것까지 배웠을까봐... 이내 고민이 끝났는지 카인은 이리저리 나풀대는 히드레안의 검은 머리카락 을 넘기고 반쯤 벌어진 히드레안의 입술 사이로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그 리고 살짝 벌어진 입술에, 고개를 숙여서 입을 맞추는 카인... 새카만 흑발과 투명한 백발이 뒤엉켜서 기묘한 색체배치를 이뤘다. 치열을 훑고 가볍게 입안을 헤집으면서 카인은 좀더 깊히 키스해갔다. 뭔 가 이상한 걸 느꼈는지 히드레안도 움찔하면서 눈을 떴고 단 1초도 돼지 않 아서 상황을 판단했다. 카인은 키스할 때에는 눈을 감아야 한다는 기본적인 법칙따위도 무시한 체 눈을 뜨고 있었기에 히드레안이 눈을 뜨자 금새 입을 떼었다. 마지막으로 선홍빛의 혀가 장난스레 히드레안의 입술을 핥고는 떨어졌다. "...하...아하하하..." "안녕히 주무셨어요 히드레안 님?" 카인은 영문도 모른 체 방실방실 웃으면서 히드레안을 바라보았고 히드레안 은 정신적인 충격에 움직이지도 못하고 계속해서 시니컬한 웃음만을 반복했 다. 절대로, 죽어도, 누가 뭐라고 해도, 카인이 자신보다 훨씬 키스를 잘 한다 거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카인...너..." "예?" 히드레안은 말없이 카인의 어깨를 끌어당겨서 품에 안았다. 체구가 조금 작은 카인은 영문도 모른 체 히드레안의 품에 끌어안긴 꼴이 되었고 히드레 안은 품안에서 반항도 없이 가만히 있는 카인의 등을 토닥여 주면서 허공 을 응시한 체 중얼중얼 거렸다. "절대로 너 내가 키스하라고 하기 전까진 하지 마라...내가 아무리 굶주렸 다지만...태어난지 얼마 되지도 않은 녀석한테...아하하하...느끼다니...말 도 안돼...절대로..." "저기요 히드레안 님." 카인은 생긋이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미노가 일어나시래요." ...그리고 미노가 그날 히드레안에게 죽지 않을 만큼 마법에 구워졌다는 것 은 말할 필요가 없음이라고 사료된다. ============================================================= ========= 마왕 이야기가 100회까지 연재되고 나면 조금 느긋하게 하루 한편씩이라는 연재속도를 부활시킬까 합니다...=_= 후우.....그리고 대신 펜릴즈 스토리 3부가 좀더 많이 쓰여지겠지요. 다른 소설도 손대 놓은게 많고 홈페이지 부탁 받은 것도 꽤 있는 지라.. 죄송하다는 말 밖엔 못할거라고 생각은 절대 안하지렁...-ㅠ= 감상좀 줘요 감상좀!!! 감상 고파요오오오오오오오오오~!!!!!! 마왕 이야기-100 "축! 100화!" 굴레-13 카인이 10클래스의 마법을 획득했을 때, 히드레안은 '그러려니'라는 말 한 마디만을 했다. 비록 그것이 잠을 잔 시간으로 계산했을 때 3일이 지난 시 점이었다고 해도. 마법뿐 아니라 히드레안의 성에 있는 대부분의 책과 기록수정의 내용을 완 전히 습득해 버렸다는 걸 생각한다면, 카인이 배우는 속도는 도저히 이해 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아무리 뛰어난 두뇌를 가졌다고 하더라도 보지 않은 것을 알 수는 없는 법 이다. 언어를 배우려면 그 언어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야 하고, '붉은 색'이란 것이 무엇인지 알려면 그것을 직접 보지 못하면 알 수 없는 것과 유사한 일이다. 그런데 아무리 '간접체험'이라고는 하지만 책에 있는 내용을 그대로 흡수하 기에는 좀 무리가 아닐까? 기록수정이 전하는 영상에도 한계가 있다. 그런 데도 이 정도의 학습률을 보인다는 것은, '학습'이나 '배움'이라는 말로 표 현하기엔 문제가 있다. 카인이 성장했다는 걸 느끼게 하는 것은, 그의 '말'에 있었다. 능숙하고 교묘하게 말을 숨기는 방법을 어떻게 배웠는지 갈수록 미노의 불 안감과 거북한 느낌을 부채질하고 있는 그. 카인이 영리하다는 것은 굳이 판단을 내리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리 고 그가 위험하다는 것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 눈동자, 무슨 일 을 생각하는지 알 수 없는 장난스러운 듯 하지만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 한 기묘한 눈동자... "미노, 내가 부담스러워?" 그렇게 카인을 질문하면서 그 기묘하게 보랏빛으로 빛나는 눈동자로 미노 를 똑바로 올려다보았다. 미노는 별로 망설임도 없이 대꾸했다. "응." "...있잖아 미노, 내가 부담스러운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글세, 부담스럽다는 느낌이 들어서라고 할까? 네가 가진 분위기가 그렇다 는 거야. 그냥 단순한 거라고 생각해... 부담스러운 거지 싫다는건 아니니 까." "그래...그런가..." 뭔가 곰곰히 생각하며 카인은 다시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히드레안은 때 마침이라고 할만큼 정확한 타이밍으로 등장해서는 요란스레 짜랑짜랑 소리를 내는 팔지 장식을 흔들면서 입을 열었다. "미노! 인간계에 좀 나가봐야겠다!" "뭐, 뭐야!? 잠잠하다가 무슨 말도 안돼는!" "시끄러 시끄러! 심심해 죽겠단 말이다! 오랜만에 나의 즐거운 취미생활을 즐기겠다는 데에 무슨 불만이냐!" 카인은 눈을 반짝이면서 히드레안의 옷자락을 잡았다. "저기, 바깥에 나가고 싶어요. 저도 데려가면 안돼요?" "안돼 넌." 히드레안은 딱 잘라서 말하면서 매정할 정도로 카인이 잡은 소맷자락을 뿌 리쳤다. 구박이라도 당한 어린아이처럼 카인은 의기소침해 져서 고개를 숙 였고 미노는 좀 측은해 졌는지 누그러진 목소리로 히드레안을 향해 입을 열 었다. "그러지 말고 데려나가지 그래? 여기만 있으면 별반 늘어나는 게 없을걸? 다른 곳도 좀 봐야 할텐데..." "그럴 필요 없다. 카인 넌 여기 있어. 미노 넌 따라오고." 카인은 시무룩해 졌어도 결국 고개를 조그맣게 끄덕였다. 미노는 살짝 인 상을 찌푸렸다. 시종일관 저런 태도. 아끼고 귀여워하는 것은 분명한데 일정이상 거리감을 두고 있다. 그게 확연히 눈에 보일 정도였다. 처음부 터 미노에게 맡겨 버린 것도 단순히 졸리다는 이유만은 아닌 것 같았다. 영원을 사는 존재들에게 거부감을 느끼게 하는 존재...하지만 히드레안이 그런걸 신경 쓸 정도로 예민한 녀석도 아닌데...카인은 결국 자신의 방으 로 돌아가 버렸고 미노는 한숨을 쉬면서 외출을 준비했다. "미노...너 성안의 지리에 대해 제대로 말해줬겠지?" "응? 아...당연하지." "그래? 그럼 됐다. 나가자." 히드레안은 미노를 불안하게 하는 그 예의 미소를 지으면서 천천히 외각부 로 걸어나갔다. "골든데스! 실버블러드! 다크니언, 산책 시간이다!" 화려하게 날개를 펼치는 세 마리의 용들의 모습이 눈으로 가득 찬 설원에서 도 화려하게 드러났다. 윙윙대는 바람소리와 함께, 거대한 게이트 홀이 열 렸다 그 모습들을 삼키고 다시 침묵으로 빠져 들어갔다. "히드레안, 질문이 있는데!" "물론 카인에 관한 것이라고 사료하고 그에 대한 대답을 준비하고 있지." '만약 그 외의 것을 물으면 국물도 없어'라는 말을 돌려서 하면서 히드레안 은 바람에 한껏 나풀대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내버려두었다. 오랜만의 외출 에 들뜬 이 미친 광룡들은 하늘을 날아다니면서 종종 즐겁게 브레스를 내쏘 고 있었기 때문에 잘못하면 질문이 묻힐 지도 몰랐다. "제발 좀 그놈의 입들 좀 닥치고 있어!" 미노는 아래를 내려다보며 소리를 질렀고 골든데스는 육중한 몸을 흔들어 볼까 하다가 이내 관두었는지 날카롭게 되쏘아 주었다. [너나 닥치고 있어!] "둘다 닥쳐라." 히드레안이 가볍게(?) 중재한 덕에 두 사람, 아니 두 존재의 말싸움은 다행 히 유혈사태로까지 번지지 않았고 미노는 가볍게 한숨을 내쉰 후 입을 열었 다. "그래, 카인에 관해서...아니 카인제이럴에 관해서 묻고 싶어." "물어라. 하고 싶은 대답만 해주지." 때릴까 말까 고민하다 대답 듣고 때리자는 쪽으로 생각을 바꾼 미노는 간결 하게 준비한 질문을 히드레안에게 전달했다. "첫째, 카인을 이용해서 뭘 꾸미고 있지? 둘째, 왜 그를 일부러 떨어뜨려 놓는 거지? 셋째, 그건 나와도 관련이 있는 건가?" 히드레안은 살짝 웃더니 대답했다. "첫째, 세상을 뒤엎으려는 음모라고 해두지. 둘째, 그 음모의 첫 발단이라 고 할까. 셋째, 맞다." 퍽! 결국 미노는 수천미터 상공에서 히드레안을 후려쳤고 히드레안은 휘청했 다. 과연 떨어질 것인가 말 것인가 따위를 생각하며 괜한 시간 낭비하진 말자. 어쨌든 한 대 더 때릴까 말까 고민하며 히드레안을 바라보았고 히드 레안도 불끈해서 미노를 노려보았다. "뭐 잘못된 대답 있으냐!? 감히 이 나에게, 이 고운 피부 위에 폭력을 휘두 르다니잇!" "잘못되진 않았지만 정확한 대답도 아니지! 너따위 녀석이니까 얼마든지 폭 력을 휘두르는 거다 어쩔래! 이 변태색골밝힘증대마왕 녀석아!" ...싸우던 말던 날씨는 쨍쨍하니 말고도 아름다웠다. 그리고 다가오는 가속화된 운명도 가까워져 왔다. ============================================================= ========= 꺄아아아아아아~♡ 축 100화!! >_ 여러분! 약속한 축전 주세욧!!!! 어랏? -_-+ 거기 도망가시는 분들 누굽니까아아아아~? 먼저 저글링님, 패러디욧! ㅡ.ㅡ++ 에리사나님도 패러디 예약하셨죠? +_+ 음음, 다음으로 축전... 스노우님! 축전요 축전! +_+ 검은악마님은 요새 모하시나요..ㅡ.ㅡ+ 음음음... 100회 완결인뎁...-.-++ 마왕 이야기-101 굴레-14 카인은 넓게 펼쳐진 방안의 융단 위에서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특별히 지식을 쌓으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었다. 그냥, 이렇게 멍하니...인 지하고 있으면 모든 것들을 알 수 있으니까. 책을 보고 수정을 들여다보 고, 대화를 하는 등 일부러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배운다'는 걸 나타낸 것 은 일종의 퍼포먼스? 그렇다고 쳐도, 어차피 거짓은 아니니까. 카인은 허공으로 손을 내밀었다. 누군가의 희고 가는 손이 자신의 손을 맞 잡는 환영을 꿈꾸며 그는 중얼거렸다. "언제가 되어야 너를 만날 수 있지...?" 사방으로 물결쳐 있는 투명한 머릿결이 바닥을 쓸었다. 하지만 머리카락 따위에 관심이 없는 카인으로서는 허공으로 내민 자신의 손을 바라보다 주 먹을 쥐고, 다시 펴 보았다. "아직도 나를 증오해?" 카인은 허공을 바라보다 살짝 미소 지었다. 따스하면서도, 부드럽고, 동시에 그래서 더없이 차갑게 느껴지는 미소를... 냉랭하게 느껴지지만 동시에 부드러움을 느끼게 하는 얼굴로 카인은 그렇 게 입을 열었다. "...그래...증오로 네가 성립된다면 난 네 증오가 영원하게 할거야." 스윽...그는 비스듬히 몸을 일으켰다. 머리카락이 출렁대면서 그의 발치 에 흐트러져 방해했지만 카인은 상관없이 방문을 열고 나서면서 중얼댔다. "이제야 나를 만날 결심이 섰구나. 그건 '그'가 없어서 겠지?" 차랑차랑... 카인의 발목에 차여진 유리로 된 발찌가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카인이 밖으로 나오자 인형들 중 하나가 천천히 그에게로 다가와 차가운 금 속성의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주인께서 허락하지 않으셨으니 방안에..." 카인은 천천히 눈을 돌려서 인형을 바라보았다가 살짝 미소 짓고는 입을 열 었다. "내가 보이나요?" "..." 잠시 카인을 바라보던 인형은 눈동자를 두어번 굴리더니 이내 천천히 그를 스쳐서 걸어나갔다. 카인은 킥, 하고 한번 웃고는 차랑차랑하는 소리를 내 며 복도를 경쾌한 발걸음으로 걸어나갔다. 길게 늘어진 하얀 색의 복도. 얼음과 수정, 그리고 차갑게 얼어붙은 마음 들이 뭉쳐서 만들어진 시간과 어긋난 공간. 비명을 지르는 혼들의 원망도 듣지 않는, 광폭한 눈보라가 만들어낸 곳... 카인은 문 앞에서 서서 손을 펼쳤다. 하얗고, 거대하고, 그리고 절대로 비켜서지 않을 것 같은 완고한 문을 향 해 그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카인제이럴, 이 문을 파괴할 자...올 것을 알고 있었나요?" [이 문을 열 수 있는 자의 이름은...] "알아요, 히드레안 드 이크립스...그뿐이라는 거죠?" 카인은 살짝 문에 손을 짚었다. 문은 즉시 격렬한 반응을 보이며 강한 전 격을 내뿜었지만 카인은 상관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문을 미는 듯한 동작을 취했다. 문은 밀리는 대신 카각대면서 더욱더 강한 전격을 내 뿜었고 사방에서 인형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카인은 천천히, 아주 느릿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존재하지 않는다면...사라져 줄거죠...?" 절대적 언령의 성립. 의문은 실체화 되고, 그 의문을 이해하는 순간 의문은 성립된다. 파삭. 마치 겉을 이루고 있던 껍질이 갈라지듯이 깨어지는 공간, 인형들도 그리 고 문도, 벽과 사방을 자리잡고 있던 공간도 서서히 껍질처럼 무너져 내려 갔다. 그리고 남은 것은, 가장 커다란 알. 투명한 알속은 물로 출렁대고 있었다. 동공 없는 푸른 눈을 뜨고서, 사방으로 물결치는 머리카락을 지닌 이제 성 체라고 봐도 무방한 여인의 모습을 지니고 있는 존재. 실오라기 하나 걸친 것 없는 모습 그대로, 그녀는 그를 바라보았다. 세상은 백색이었다. 그리고 그 곳에 존재하는 것은 알과, 그 알 안에 존재하는 이와, 그 알의 바깥에 존재하는 이뿐. "...드디어 너를 만나게 되었군." 카인은 살짝 미소 지으며 알 쪽으로 다가왔다. 가느다란 손가락이 알의 표 면을 쓸어 내리고, 이내 그는 차갑게 느껴지는 알의 표면에 입을 맞추었 다. 여인은 천천히 새빨갛게 붉은 입술을 움직였다. - 이름 받지 못한 나를 찾는건가? 이름 받은 존재...? 카인은 조금 서글픈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너는 그렇다면 왜 나를 불렀던 거지?" 조금 쓸쓸하게 여인의 목소리가 그 세계에 울려 퍼졌다. - ...네 존재가...내게 느껴졌기에... 카인은 부드럽게, 마치 연인을 쓰다듬듯이 알의 표면을 훑어 내렸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감각, 차갑고...매끄럽고, 그리고 두려움으로 가득차 있다. "너의 이 작고 고요한 세계가 깨어진다면, 그리고 네 세계가 나와 이어진다 면...현실에서도 손을 맞댈 수 있겠지?" 여인은 슬픈 미소를 지었다. - 원해...하지만 그건 불가능하지... 카인은 순간 얼어붙을 듯한 한기를 지닌 미소 지으며 천천히 손에 힘을 주 었다. 투둑, 하면서 알의 끝 부분에서부터 금이 가기 시작하고 점차적으 로 확산되기 시작한다. 쩍, 쩌억 하면서 무너져 내려가는 작은 '알'의 세계. 세계가 무너져 내린다. 보호하던, 그리고 구속하던, 도망갈 수 없는 족쇄의 사슬이 무너져 내린다. 두려운 듯이 그리고 기대되는 듯이 그것을 바라보고 있던 여인의 눈가에 작 은 기포들이 소용돌이 쳤다. 그리고 카인은 미소를 지우고 그녀를 그 보랏 빛의 눈동자로 응시하며 확고하게 말했다. "원하는 것이 불가능 할리 없잖아? 너와 나는 '제이럴' 꿈의 파괴자니까..." 쨍그랑! 부서져 내리는 세계. '알'이라 불리는 세계가 산산이 부수어 지고, 그 안에 가득히 담겨져 있던 물이 터져 내렸다. 빛의 입자라도 되는 양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그 자리 에서 산화해 소멸하는 물, 밖으로 빠져나오자 가장 먼저 받는 영향력에 따 라 여인의 몸은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순식간에 밀어닥친 산소의 부재에 그녀는 고통스러운 듯이 목을 부여잡았고 카인은 떨어져 내리는 여 인의 몸을 받아들며 빠르게 말했다. "입을 벌리고, 크게 벌려! 들이마셔, 생각하는 게 아니야! 마셔! 숨쉬지 못 하면 죽어! 어서!" 컥컥대다가 여인은 고통스러운 듯이 몸을 비틀었다. 카인은 냉정하게 그녀 의 등을 크게 한번 두드리고는 다시 말했다. "멍청하게 있지마! 들이마셔! 생각하지 말고 배에 힘을 주고, 몸 안으로, 허공에 떠도는 공기를 삽입시키란 말이야! 이렇게 죽을건가?!" 욱, 하면서 여인은 스스로의 가슴을 후려쳤다. 고통과 함께, 느낌이 전해 져 온다. 그리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벌어진 입안으로 공기가 흘러들어 갔다. 한번 배운 호흡은 이내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을 듯 하며 천천히 반복되었 고 실수로 내뱉은 잘못된 호흡에 그녀는 고통스러운 듯이 잠시 더 쿨럭댔 다. 모든 것이 공급되던 양분 속에서 갑자기 내팽겨 쳐진 세상은 춥고, 어 둡고, 두렵고...고통스러웠다. - 난...벗어난 건가...? 카인은 자신도 떨렸던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그녀를 꽉 껴안았다. 처음으 로 느껴본, 탄생하기 전부터 느껴왔던 '또하나의 나 자신'의 몸은 따스했 다. 따스하고, 부드럽고...무엇보다 소중한 그녀는 당장이라도 부서질 듯 하지만 이렇게 분명 함께 하고 있었다. "말해봐...네 목소리로." 천천히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끌어당겨 자신의 어깨에 기대게 하면서, 카인 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여인의 나풀대는 긴 머리카락을 넘겨서 동공없는 온통 새파란 빛으로 차있는 눈동자를 쓸어주면서, 카인은 살짝...미소지어 주었다. 축축이 젖어 들어서 기묘한 광택이 도는 뺨에, 여인의 뺨에 눈물이 굴러 떨 어졌다. 더듬대면서, 조금은 어눌한 발음으로, 그녀는 처음으로 말을 했다. "...난...살아있는가...?" 그리고 카인은 대답했다. "그래... 나의 반신. 너는 살아있다. 그리고 그로 인해 나도 살아있다." 그리고 세계는 결합했다. ============================================================= ========= 이걸로 '제이럴'이 모두 등장했군요. 이제 굴레에 등장하는 총 등장인물은 모두 등장. 아아~아디오~ㅠ.ㅠ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 '펜릴 죽어라!'따위의 지탄을 하지 마옵서서. 왜냐? 어차피 이 이야기는 엽기적이니까~♡ 중독되서 엽기가 되고 있다는 그대! 웃흥~♡ 중독자 주제에 반항하지 말아요~♡ -붉게 물든 달의 정원에서 피로 물든 잔을 높히 들어 혈주를 담고서.... 오늘도 글발은 휘날린다..... 마왕 이야기-102 굴레-15 미노는 기가 막힌 상황에 입을 벌렸다. 한바탕 히드레안의 역성을 들어주고 왔더니, 이번엔 성이 엉망진창이 되어 있다. 인형들은 거의다 부서지고-그렇지만 육체가 인간이다 보니 좀 괴기 스런 모습이 되어서-실험실은 파탄이 나버렸다. 거기다 성의 반 이상이 구축해 놓았던 '의지'가 무너지고 새로운 의지가 차 지하는 터에 무너져 내렸고, 눈의 기세조차 한풀 꺽여 공간으로서의 의미마 저 상실해가고 있는 상황. 미노는 얼이 빠져서 부르르 떨다가 카인을 바라보았다. 카인은 마치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어요'하는 순진한 얼굴로 미노를 바라보았고 미노는 차마 그 귀여운 얼굴을 때리지도 못하고 그저 부르르 떨 뿐 어떤 행동을 취하지 못했다. 역시 사람은 일단 잘나고 봐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히드레안! 제일 광분해서 카인을 다시 잘 갈아버린 배추로 만든 다음에 샐러드 화 시 켜서 야채죽 끓여먹어 버릴 거라고 생각했던 예상과는 달리 히드레안은 그 저 실소를 머금었을 뿐이었다. 그는 설마 야채죽을 싫어했던 걸까? ...실 없는 농담이었다. 히드레안의 얼굴을 말로 표현한다면, 꼭 '설마 이정도일 줄이야'하는 듯한 얼굴. 미노는 이걸 내가 보수해야 한다는 것인가? 하면서 아아주 오랜만에 느껴보 는 뒤치닥거리 전문가로서의 자신의 입장을 생각해 보았다. 결론은, 아무 나 걸리면 다 죽이고 싶다는 무시무시한 살심 뿐... 카인은 미노가 구석에서 음침한 자기장을 형성하며 무너진 파편 더미들을 주워 모으는 일을 하고 있을 때 그때까지 그저 가만히 서 있는 히드레안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이걸로 원하는 데로 되었나요? 나의 주인님, 아버지, 그리고 나의 창조자." "...제이럴로서의 자각이 생각보다 빨랐군...뭐 상관없지만. 결과적으로 말한다면...너는..." 스으으으...히드레안의 주변에 하얀색의 마기들이 몰려들었다. 카인도 미 소짓고 있었지만 그의 주변엔 격렬한 마력과 신력이 들끓어 올라 당장이라 도 히드레안을 칠 듯이 보였다. 우웅, 하면서 공간이 슬쩍 떨려오자 미노도 흠칫해서 고개를 돌렸다. 둘은 서로를 마주보며 여상스레 대화를 나누었다. "...제이럴로서 나를 벗어나려 들겠군." "애초에 아시고 시작한 일 아니셨습니까? 자각의 시한 동안의 놀이는 끝난 셈이군요." 콰아아아아! 폭팔 하는 듯한 기운이 사방을 메웠다. 미노는 거대한 날개를 펼쳐 자신 을 감싸며 뒤로 훌쩍 뛰어올라 피했고, 둘이 서 있는 곳을 중심으로 거대 한 기운과 기운의 소용돌이가 만들어 낸 무력화의 공간이 이 시공의 틈에 존재하고 있는 '의지'로 만들어진 것들을 무너뜨려 나갔다. 빛과 어둠의 소용돌이. 히드레안이 내뿜는 백색의 기운과 카인의 주변을 휘감아 도는 자색의 기운 이 서로를 밀어내 듯이 충돌했다. 그 바람에 바닥에 널려있던 것은 물론, 바닥재마저 파이면서 사방으로 튕겨져 나갔고, 애꿎은 건물들의 벽은 가해 지는 부당한 폭력을 감수해야 했다. "뭐하는 거야! 그 상태로 기운을 확산했다간 반대편의 현실세계까지도...!" 둘의 가운데에 위치하는 소용돌이에 마력을 불어넣어 싸움을 멈춰보려고, 미노는 가슴 쪽으로 마력을 뭉쳤다. 그런 미노의 앞을 한 여인이 마치 유령처럼 스르르 나타나 그를 가로막았 다. 검은색의 달라붙는 일체형의 원피스를 입고 있는 긴 검은 머리카락을 휘날리고 있는 존재. 놀랍도록 카인과 닮았지만 동공 없는 푸른 눈동자는 섬뜩할 정도로 빛나며 그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가는 팔로 미 노를 가로막으며 그녀는 입을 열었다. "참견하지마, 미노트 아신레이져." "빌어먹을, 넌 또 뭐지? 카인에, 이번엔 쌍둥이냐? 닥치고 당장 비키지 않 으면 찢어 버리겠어! 공간균열이 일어나면 엄청난 일이 일어난단 말이다!" "그런 건 알 바 아니야..." 그녀는 붉은 입술에 조소를 띄면서 순간적으로 멍해진 미노를 바라보다 입 을 열어서 말했다. "느끼고 있었잖아?" "뭘!" 미노는 알 수 없이 밀려드는 격렬한 분노와, 공포와, 그리고 느껴지는 혼란 에 커다랗게 소리를 지르며 두 번째 날개를 펼쳐 들었다. 한겹 드리워진 새카만 밤하늘 빛을 띄고 있는 가죽 날개의 위에, 순수한 새벽빛을 띈 새 의 날개가 겹쳐지고 미노는 밀려드는 통증에 이를 악 물었다. 아무리 몸 안에 모든 존재들이 융합돼 있다지만, 이런 식으로 여러 개의 존재를 한꺼 번에 불러냈다간 몸이 견뎌내질 못했다. "제이럴이 창조자에게 대적할 거라는 거." 그리고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히드레안은 기운 만으로는 대등하게 자신과 맞서는 카인을 바라보다 허공으 로 손을 뻗었다. 은빛의 잔류가 그의 팔을 휘감고 타오르며, 천천히 하나 의 모습을 갖추었다. 길고 쭉 뻗은 일체형의 검신, 그리고 한쪽을 가득히 메우고 있는 조금 섬뜩 한, 날이 잔뜩 서 있는 표면. 유리처럼 맑은 검날에는 알 수 없는 문자들 이 가득한 날카로운 검. 히드레안은 천천히 손잡이를 쥐고, 검 끝을 들어 서 카인의 목 바로 앞까지 밀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게 대적할 거라고 생각했지 제이럴. 꿈의 파괴자." "대적이 아닙니다. 정해진 순리를 따르는 것뿐이지요." "꿈의 파괴자. 하지만 넌 꿈꾸는 자를 파멸시키는 게 궁극적 목적은 아닐 텐데?" 우우웅... 카인은 손을 뻗어서 검 끝을 잡았다. 날카로운 검의 이빨들이 카인의 손으 로 파고들었고, 검은 금새 피로 물들어 붉은 빛으로 만연하게 되었다. 아 무런 고통도 없다는 듯이, 카인은 검을 밀어냈다. "추구하는 것은 절대자유. 그뿐입니다. 나의 아버지시여..." 히드레안은 싸늘한 비웃음을 짓더니 검에 묻은 피를 허공에 휘둘러 털어내 버리곤, 수직으로 비껴들고서 소리 높여 외쳤다. "그렇다면 별 수 없군, 힘으로 할 수 밖에." 콰앙! 마력이 응축됐다 터져나가고 두 사람의 거리가 촤악하고 벌어졌다. 히드레 안은 검을 지켜든 체로 빠르게 입을, 아니 정신의 파동을 생성시켰다. [나의 이름을 걸고 말하노니 내가 창조한 모든 존재는 나를 향해 무릎꿇을 지어다...! 히드레안 드 이크립스! 내 이름에 걸린 맹약! 내게 받았던 세 례! 무릎꿇어라! 카인제이럴...!] 히드레안의 외침에 반응이라도 하듯이, 카인의 이마가 순간적으로 화락하 고 불타오르면서 인장의 문양을 만들어냈다. 당황한 듯 카인의 얼굴이 순 간적으로 일그러졌지만 그는 손안에 빛을 끌어 모아 히드레안을 향해 날렸 다. 콰아아아아,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공간을 찢고 날아가기 시작했고 카인 은 힘겹게 인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길을 가리며 마주 외쳤다. [영원한 맹약은 존재하는가? 창조한 존재와 유지하는 존재의 뜻은 다르다 면, 무릎꿇을 것을 내게 명할 수 있는 것인가?!] 히드레안은 빛의 에너지체를 검으로 쳐냈다. 퍽! 하는 무엇인가가 터지는 소리가 나며 기운은 바깥으로 튕겨져 나가 버리고선 싸늘하게 미소 지었 다. 카인도 이제 피가 굴러 떨어지기 시작한 이마의 인장을 손으로 가리면 서 살짝 차게 미소지었다. "과연, 나를 창조한 존재시여. 이 모든 것을 예상했나이까?" 카인의 비꼬는 말에 히드레안은 대답했다. "아니, 예상하지 않았지." 그리고 히드레안은 검을 높히 지켜들어 그대로 그어 내렸다. 우둑, 하면 서 뼈로 검이 파고드는 소리가 들리고 피부가 찢어진다. 붉은 피가 사방으 로 퍼져서 기운에 녹아들어 순식간에 바깥으로 튕겼다. 카인은 히드레안의 앞에 무릎꿇었고, 피로 물든 기사 식이 시작되는 순간이 었다. "되도록 만들었을 뿐." ============================================================= ========= 요즘들어 독자의 힘이 어떤 것인가를 느끼고 있습니다. ㅜ.ㅜ(훌쩍..;) 무서워요 여러분...흑흑흑.... 하지만 누가 뭐라고 해도 저는 꾸준히, 아주 꾸준히 원래 스토리대로 나갈 겁니다...+_+;;; 따져도 결국 가는 길은 하나~! ;; 마왕 이야기-103 난 이제 죽을지도 모른다...-_-; 하지만 생존욕구를 위해 발버둥 치겠다....;;; 뭐 어떠랴~에헤헤헤헤헷! ;; P.S - 작가를 죽일 지도 모를 과격한 성품의 그대라면, 지금 아래 글을 절. 대.로. 보지 말것...-_-; ============================================================= ========= 굴레-16 - 목숨을 건다는 건 어떻게 보면 한심스러울 정도로 바보 같은 짓이죠. 모 든 일에 목숨을 건다는 말과 신념을 건다는 말을 붙이면 멋지게 보이는 건 아니에요. 모든 일에는 예외가 있고 예외란 것은 모든 일의 법칙에서 제외 된 것입니다. 그래요...잘 알고 있군요. 한 여인을 두고 목숨을 걸고 싸우는 기사들과 암캐를 두고 싸우는 수컷들 의 싸움이나, 둘다 똑같은 거죠. 어떻게 받아 들이냐가 가장 중요할 뿐. -Kain과의 대화, 17장 "큭...아하하하핫! 그리해서, 위대한 자. 경배 받지만 동시에 타락한 자, 그 끝없는 이기의 끝에서, 그 잔혹함으로 이 나를 지배할 것입니까?!" 히스테릭하도록 커다랗게 울려 퍼지는 목소리. 하지만 히드레안은 여전한 무표정으로 검을 쥔 손잡이에 가하는 힘만을 배가시켰을 뿐이었다. 무미건 조하게 그는 대꾸했다. "그래, 나는 모든 것을 지배하는 존재니까." 카인은 비웃음을 가득히 담은 그 커다란 보랏빛 눈으로 히드레안을 올려다 보았다. 그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유한한 육신에 담긴 영원의 혼은 결합할 수 있는가?] 퍼석. 순간적으로 검을 잡고 있던 손끝이 먼지처럼 사라지자 히드레안은 저도 모 르게 순간적으로 검을 놓치고 뒤로 물러났다. 순식간에 몸의 성장이 시작 되고, 노쇠해 간다. 의지가 사라진 틈으로 멈추었던 시간이 날뛰고 있었 다. 갈라진 손끝은 이제 손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팔을 타고 기어올라오기 시작했다. 히드레안은 역주문을 자신의 몸에 걸며 간신히 힘을 모아 외쳤다. "카인제이럴...! 감히 네 놈!" "인간의 육신에서 꿈꾸는 영원의 혼, 그렇다면 내게도 승산은 있겠죠...? 비록 인장과 반신의 존재가 나를 구속한다고 쳐도 말입니다." 카인은 어깨에 꽂힌 검을 뽑아들었다. 우둑, 하면서 뽑아져 나온 검은 살 점과 피로 물들어 있었지만, 개의치 않고 카인은 멀쩡한 왼손으로 검을 들 어서, 천천히 히드레안에게로 다가갔다. 어차피 이 공간은 의지의 공간. 가장 강한, 치명적인 언령을 내뱉은 이가 이기게 되어 있는 법. 애초에 육 신과 육신의 싸움이 아니라 정신적인 싸움이었다. 검은 날카로왔지만 이 가 서 있어서 쉽게 찌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한번 찔리게 되면 회복할 수 없는 치명상을 만든 다. 카인은 검을 히드레안의 복부에 대었다. 하지만 시간역류의 주문만으 로도 벅찬 히드레안은 바라볼 뿐,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카인은 살짝 미 소 지으며 그대로 검을 밀어넣었다. "...헉..." 저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비명을 억누르며 히드레안은 이를 악물었다. 날 카롭게 이가 선 검날이 옷자락을 찢고, 피부를 찢고, 이내 뚝, 하는 소리 를 내며 척추의 끝까지 다았다. 신경의 모든 세포가 그리로 몰려가 자극 해 댄다. 한번 박혀 들어가고, 깊이 다시 들어간 후, 겨우 안으로 파고 들어가서 쑤 셔 넣어진 검. 히드레안은 하얗게 질려서 그런 카인을 노려보았다. 이글 대는 살기에도 불구하고, 카인은 생긋이 미소지으며 그런 그에게 속삭댔다. "이제 그 육체는 더 쓸 수 없으시겠네요? 그렇지 않나요...히드레안 님...?" "닥...쳐." 히드레안은 검의 소환을 풀어냈다. 제 주인을 찌른 것을 알았는지, 검도 소리도 없이 처음처럼 은빛으로 변해 사라져 간다.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여전히 폭사되고, 히드레안과 카인은 조용히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당장 비키지 않으면 죽여버리겠어...! 이대로 두면 둘다 죽어!" "상관없어." 여인은 음울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며 펼친 팔을 접지 않았다. 기운과 기 운의 물결, 그리고 터져 나오는 광폭한 바람, 의지가 형성했던 공간이 덧없 이 무너져 가고 대신 원래의 허무한 곳으로 돌아온다. 미노는 결국 눈을 한번 감았다 뜨고는 외쳤다. "원망하지 마라!" "아이스 스톰, 크리티컬 파워 아이스 섀도우..." 여인의 입에서 빠른 스펠이 흘러나오고, 스펠은 정형화 되어서 그녀의 주변 에 눈의 가루를 뿌려댔다. 눈의 가루는 이어서 나온 주문과 연개되어 얼음 의 그림자가 되어 그대로 미노의 몸으로 쏟아져 내렸다. 날개를 높히 펼쳐들면서 미노는 강한 기합성을 내질렀고, 그의 기합이 통했 는지 잠시간 주춤하며 팽팽히 두 개의 기운은 맞섰다. "...너, 이 공간에서 호흡할 수 없군?" "...상...관없어..." "의지가 무너지면 이 세계가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호흡할 수 없다 면...죽을 수 밖에!" 미노는 섀도우 아이스들을 간단히 손톱으로 찢어 버리곤 허공으로 날아올랐 다. '허공'마저 이제 사라졌지만 미노 스스로 의식한 세계의 모습에 따 라, 그는 허공에 떠서 서로 맞부딪쳤다 다시 떨어졌다, 또 다시 맞부딪치 고 있는 두 개의 기운을 바라보았다. "...도대체...히드레안 저녀석이 만든 건 왜 다 저모양이야!" 그러는 자신도 히드레안이 만들었다는 걸 까먹고 있는 새대가리 미노군이었 다. "윽...커억..." 바닥에 주저앉은 히드레안은 고통 때문에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피로 주 변이 물들어 있다, 그 피마저 증발한다. 거의 반쯤 흐려지고 있는 몸은 결 코 오래가지 못할 것처럼 보였다. 카인은 다친 어깨를 감싸쥐고 그런 히드레안을 내려다보았다. 천천히, 머 리카락의 아랫부분도 먼지처럼 흩어져 가고 있는 히드레안의 몸은 어떻게 보면 덧없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기도 했다. "잘못된 법칙으로 유지하고 있던 육체니 만큼...흘러가는 시간 앞에 형편없 이 무력하군요. 그래도 그 육신에서 떠나지 않으려는 겁니까? 영원한 혼, 시간이라 이름 붙여진 자. 나의 주인님이시여." 명백한 비꼬는 기색을 가진 그의 말에 대꾸할 기력이 있을리 없는 히드레안 은 물론, 듣고 있지 않았다. "...이왕 죽을 몸..." 카인은 어깨에서 손을 땠다. 그가 손을 땐 어깨는, 언제 상처가 났냐는 듯 이 깨끗이 아물어 있었고 카인은 허공에 손을 내밀었다. 아까와 같은 은빛 이 이번에는 카인의 손에 휘감기더니, 천천히 피로 물든 투명한 날의 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기억하시나요? 당신이 처음으로 이 검으로 베었던 존재를...나를 만들게 했던 존재, 그리고 당신이 이어서 나를 창조해야 했던 이유를 제공했던 자..." "...미...야나...를 네가 어떻게...?" 푸욱! 등으로 박혀 들어간 검이 다시 피로 물들었다. 카인은 생긋이 웃으며, 여 상스럽게 중얼거렸다. "꿈을 파괴하려면, 그 꿈의 바깥에 있는 존재라야 가능하죠. 꿈속에선 꿈 을 파괴할 수 없으니까." 격렬한 마력이 들끓더니 퍽, 하고 히드레안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가루 로 변해 흩날리는 그의 몸을 보다가 카인은 검을 슬쩍 들어서 한번 돌려보 았다. "...난, 모든 꿈을 보는 파괴자니까." 격렬하게 소용돌이치던 마력은, 그 말을 기점으로 모두 소멸해갔다. 미노는 허탈하게 날개를 접고는 떨어지는 것처럼 아래로 내려왔고, 카인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반신을 바라보았다. 여인도 미소 지으며 그를 바라 보았다. ============================================================= ========= 아하하하하하핫...ㅜ.ㅜ; 저 죽이실분?;;; 마왕 이야기-104 앗싸~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내 맘대로 쓸거라네~+_+ 작가는 신! 누가 날 어쩔거샤...크하하하하핫....-_-; P.S - 그래도 결국 어쩔 수 없는건 없대두요 키아님...; ============================================================= ========= 굴레-17 미노는 비틀대면서 걸어와선, 여인의 품에 안겨서 반쯤 쓰러진 카인을 바라 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된 거지?" "히드레안이라고 불리던 존재의 육신을 소멸시켰어." 카인은 모든 힘을 소비한 듯 완전히 늘어져 버렸다. 눈빛도 풀려있는 것 이, 극도의 긴장 상태에서 풀려나 온 몸의 감각기관들이 말을 제대로 듣고 있지 않을 것이다. "...죽였다...라...혼을 봉하지 않았다면 그게 죽인 건가...? 어차피 불멸 의 혼이라 죽을 수 없다지만...혼을 봉하지 않으면 어디로 어떻게 날아갔을 지..." "뭔가를 착각한 모양인걸 미노?" 카인은 여인의 부축을 받아서 겨우 몸의 균형을 잡았다. 그리고 그는 살 짝 미소 지었다. "난 육신만 소멸시켰을 뿐이라니까...?" "그러니까 대체 무슨 생각으로!" 카인은 피식, 하고 웃더니 그대로 무너졌다. 여인은 당황한 듯 그런 카인 을 받아들고 어쩔줄을 몰라하고 있었고, 미노는 그런 모습을 보다 할 수 없 이 자신이 카인을 안아 들었다. 경계하는 기미가 가득한 여인을 보면서 미 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경계할 거 없어. 메말라서 화낼 감정도 없다고. 알아들었어?" 여인은 애써 생각을 가다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미노는 살짝 맥을 짚어 보고, 호흡을 확인한 후 한숨을 쉬고는 카인을 살짝 바닥에 눕혔다. 다행 히 무너지는 성은 그대로 먼지처럼 화해서 사라지고 있었기 때문에 다칠 염 려는 없었지만, 카인을 눕히자 눈에 띄게 더 당황하고 있는 그녀를 향해 미 노는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다. "기절한 거야. 탈진한 것 같군..." 뭐가 뭔지는 몰라도, 일단 히드레안은 죽은 것 같다. 히드레안이 죽었다면 당연하지만 더 이상 '마왕'이 주제가 아니기 때문에 이 글도 이렇게 마감하게 되는 엽기적인 사태가...커헉. 미노는 허공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한 숨을 쉬고는, 누구의 주 대사였던 것 을 한마디 읊었다. "...하아아...좋은 게 좋은 거라지..." 명언이다. 잠언에 세겨두자! 여인은 미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제 당신은 어쩔 거지...?" "어쩌긴? 녀석은 죽지도 않았는데. 어쩔 수 없잖아...기다리는 수밖에." 격렬하게 몰아치는 바람, 무너져 내리는 공간. 하지만 무너져 내리는 공간 은 일정 이상은 확장되지 않고 어떤 부분에선 계속 '의지'에 부딪쳐 파괴 를 확산하지 못하고 있었다. 성은 완전히 소멸해서 자취도 없어졌지만 눈 으로 둘러싸인 공간은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고 미노는 히드레안이 살아 있다는 것에 좀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는 너희야말로 어떻게 할거냐? 히드레안 녀석 성격에 가만 둘 거라는 낙천적인 생각 따위를 하는 것도 아닐테고." "상관없어...어차피 그는 내게 존재가치를 부여하지 않았으니까. 죽지 않 은 존재에게서 떠날 순 없는 노릇이고..." 점점더 알 수 없는 말이나 해대는 여자를 향해서 미노는 저도 모르게 짜증 을 부렸다. "도대체 그럼, 왜 히드레안을 죽인 거야!?" 안 죽었는데 죽었다고 말하는 건 뭔가 좀 이상하지만, 어쨌든 히드레안은 죽지 않았는가. 대충 그런 의미로 받아들이고, 여인은 미노를 흘낏 바라보 더니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가...그러길 원했으니까..." "그? 카인 말이야?" "아니, 그가." 미노는 기가 막히다는 듯이 하! 하고 한숨을 내뱉은 후 여인의 어깨를 잡았 다. 아무런 감정도 깃들지 않은 듯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얼굴에 도저 히 폭력을 가할 기분도 들지 않는다. 여자니까 뭐니까 하면서 어줍잖은 여 성존중 의식 따위는 물론 없었지만, 이런 상황에서 싸워봤자 득 돼는 건 없 다. "히드레안이 죽고 싶어했다고? 그 녀석이!? 누가 죽던 일단 자기는 살고 보 자는 제멋대로에 이기적이고 괴팍하고 치사하고 성격 나쁜 그 녀석이 왜 죽 고 싶어하는데!? 설사 그렇다 치더라도 혼을 죽이지 않으면 죽는 것도 아니 잖아!" "...그가 원한 거야. 히드레안이 원한 게 아니고." 드디어 미노도 히드레안이 만든 것들 중 반수 이상은 '미쳤다'라는 것을 깨 달았다. 여인은 천천히 미노가 자신의 어깨에 얹고 있는 손을 잡더니 때어 내고, 자리에 앉아서 카인을 살펴보았다. 그제서야 그 얼굴에 조금 근심 이 스쳐지나간다. "대체 그가 누군데, 히드레안이 죽기를 원하는 거지? 아니 아니, 그녀석이 죽었으면 하는 존재가 한둘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가 뭐길래 히드 레안을 죽이라 마라 할 수 있는거야! 녀석은 법칙이야! 혼돈 그 자체라고!" "아니야, 없앤 것은 육신, 혼돈이 아니라 혼돈이라는 존재를 껍질로 감싸 고 있던 알. 하나의 유리벽 같은 세계. 죽기를 원한 게 아니라, 세계를 깨주기를 그는 원했을 뿐이야. 그리고 카인은 그걸 들어줬어. 그 뿐이 야..." 기절해 버린 카인은 미동도 없었다. 가끔 얄팍하게 숨을 내쉬고 있었지만 안 그래도 병자같은 푸르스름한 얼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생기가 도는지 안 도는지도 알 수 없었고, 무너진 공간으로 천천히 눈의 벌판, 그 눈의 벌 판을 만든 의식이 잠식해 들어오면서 주변에 천천히 눈가루가 흩날리고 있 었다. 약간의 추위가 알싸하게 미노의 몸을 타고 돌았지만 개의치 않고 미노는 외 쳤다. "그가 누군데!" "...그? 그는 이름 없는 자..." 여인은 무표정한 얼굴로 입술만 달싹여서 중얼거렸다. 그러다 아예 입마 저 다물어 버렸다. 그러자 곧 허공에서 정신의 파동이 울려 퍼져왔다. [그는 이름 받을 수 없는 자. 세상, 그 바깥에 존재하는 혼돈, 그 혼돈을 감싸 안고 있는 자. 창조를 보지만 혼돈을 만드는, 존재도 없고 존재하지 도 않지만 존재할 수 있는 자...] "무슨 엉뚱한 소리야! 설사 그런 존재가 있더라고 해도 왜 히드레안의 육신 을 멸하려 하지? 그렇게 대단한 존재가!" 공허한 파동이 계속해서 울렸다. [그것은, 그가 그이기 때문에. 그가 꿈을 깨려고 하기 때문에...] "누구냐니까! 그 존재가!" 미노가 손을 지켜 들어서 여인의 몸을 두토막 내려고 하려고 한 순간, 아슬 아슬하게 그제서야 여인은 입을 열었다. [그, 존재하는 이들에게는 절대자라 불리는 이. 최초로 꿈꾼 자...] 투명한, 동공 없이 온통 푸르른 눈빛 안에는 여전한 허무만이 깃들어 있었 다. ============================================================= ========= 감상은 감사하게 받고 있어요 란쨩~꺄아~^-^; 행복하군요....-_-;; 훗....아무리 협박하고 괴롭히고 작가를 테러하려고 해도!!! 글은 예정대로 나갑니다. -_-; 마왕 이야기-105 야호~♡ 여러분~절 죽이려고 하신다고 해도 수는 없어요...-_-; 카..카인이 미우시다고 왜 절....?;; ============================================================= ========= 굴레-18 - ...그건...꿈을 사랑해 버려서 그런거에요. 넌....누구지? 아득한 의식 너머로 목소리들이 속살댄다. - 죽음을 선택한 것이 옳지 않다고 말하지 마시길...사랑을 깨달았다 타박 하지 마시길...나의 아버지, 나의 어머니, 나의 창조자, 그리고 내가 사랑 해야하는 존재시여. 몸 안에 떠도는 마나가 형체를 갖추면서 몸을 움직이려 든다. 하지만 의식은 눈뜨려 하지 않고, 몸은 눈 뜨려하자, 미묘한 줄다리기가 시 작되고 있었다. 격렬한 마나의 움직임이 몸을 방해했다. - 꿈에서 깨고 싶지 않겠죠? 깨고 싶지 않아... - 꿈에서 깨고 싶지 않겠죠? 하지만 이제 깨어나야 할 시간입니다. '그'가 꿈에서 깨어나고 싶어하니까요. 창조물이 창조주를 거역하려고 드는 것이 잘못인가...? 절대적 의지, 거스르려는 의지란 곧 삶이란 것에 관한 의지. 스스로 살고 자 함이 잘못되어 있다면 어째서 그러한 것을 느껴야 할 것인가... 절대적인 그 존재라면, 그것을 허락하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텐데. 결과는 정해져 있다. 의지의 부여란, 곧 시험. 시험이란, 곧 실험. 실 험...한정된 상황을 두고 얼마나 그것을 견디는가 해보는... 사육되고 있는 실험체. 실험체가 반복해서 늘어나고 늘어나서, 땅을 채우 고, 지겨워지면 모두 없애버린다. - 아니...그렇게까지 낭만 없이 말하진 마세요. 자유의지의 부여란, 얼마 나 존재가치에 가까워 질 수 있는 가에 관해서 알고자 함이니... 몸은 눈을 뜨려한다. 아무런 감각도 없는 몸 안에 충만하게 차오른 마나는 바깥으로 뛰쳐나가고 싶어했다. 하지만 꿈에서 깨고 싶지 않다. 자각하고 싶지 않다...이성과 육체가 싸워대고 있지만, 결국 육체는 이성을 누르고 잠을 깨려고 했다. 서서히 눈이 떠진다. 사방을 가득히 채우고 있는 시체의 묘지. 얼어붙어서 이곳 저곳, 아무렇게나 늘어놓은 장식장 같은 얼음의 홀. 달려 나가다, 눈을 뜨다, 미소 짓다, 몸을 숙이다 얼어붙은 인간, 엘프, 드워 프, 드래곤...기타 모든 생명체들. 하나하나 모두 자신의 의지를 가진 동 상마냥 얼어붙은 체 그렇게 서 있다. 그리고 그 하나가, 모두 족쇄가 되 어 온 몸을 휘감고 있었다. 혼의 감옥... 차갑게 얼어붙어 결빙되어 있는 육신. 히드레안은 쓴웃음을 지었다. "...카인...이 몸 안으로 돌려놓은 건가." 가장 완벽한 육체... 가장 완전한 몸... 그리고 가장 위험한 혼의 굴레. 파작...천천히 얽매고 있던 얼음 들이 부서져 나갔다. 부서져 가루가 되어 서 흩날린다. 이곳에 마저 시간이 침범해 들어오고, 기껏 모아두었던 결계 석들마저 부서져 내릴 형편이었다. 생각할 필요도 없이 히드레안은 손을 내뻗었다. "멈춰..." 카인은 스르르 눈을 뜨고는 시야에 흐릿하게 잡혔다 점차 확연히 바뀌어 가 는 두 개의 그림자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는 생긋, 하고 누가 보아도 반 할 만큼 귀여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어라, 둘 다 왜 그러고 있어?" "...너도 죽어!" "죽이지마!" 미노는 카인을 한 대라도 치려고 발광했고 여인은 그런 발광하는(...)미노 를 말리려 팔을 잡고 말리려고 애썼다. 그리고 카인은 머리를 한차례 긁더 니 그저 싱글싱글 웃으며 손가락을 한번 까닥해 보였을 뿐.... "다 잘됐어." "뭐가 다 잘됐다는 거야!? 너 죽어볼래! 기껏 깨어나서 한다는 소리가 그거 냐! 어떻게 해놓을 거야! 공간이 무너지고 있단 말이야 이 망할 자식아아아 아!" 결국 미노는 여인을 때놓는 데에 성공해서 카인의 멱살을 잡고 흔들어댔 다. 켁켁 대면서 바둥댔고 미노는 카인을 죽일 수 있는 영광(?)을 누릴 뻔 했으나 갑자기 바닥에서부터 기둥이 솟아오르는 바람에 결국 손을 놓치고 야 말았다. "뭐, 뭐야 이건 또!?" "켁켁...그러니까...다 잘됐다고 했잖아..." 미노는 발 밑에서 또 솟아오르는 기둥을 피해서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카 인은 슬쩍 여인의 몸을 잡았고 여인은 조용히 미노와 같은 위치로 워프 해 와 몸을 드러냈다. 바닥에서 솟아오른 기둥들은 이리저리 엉켜가면서 모양 을 만들어가기 시작했고, 이내 그것은 엄청나게 빠르게 완성되어가고 있는 하나의 '성'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히드레안한테는 부활할 육체가 없을텐데? 그 녀석 자기 클론은 절대로 안 만드는 주의란 말이야." "당연히 없지. 왜냐면 아까 내가 없앴던 육체가 클론이니까. 클론에서 또 클론을 찍어내면 세포가 제대로 되지 않거든." 미노는 머리가 엉키는 것을 느끼곤 '대체 카인 니 녀석이 모르는 건 뭐냔 말이야, 왜 나만 소외 시키냐고, 젠장할...'따위를 중얼대면서 허공에서 궁 시렁 대며 쪼그리고 앉는 엄청난 일을 해 보였다. 카인은 그저 웃고 있을 뿐이었고 여인은 무표정했다. 결국 성은 그들이 궁시렁대는 사이 만들어지고야 말았다. 전과 똑같이, 사실은 몇 곳이 더 화려하게 보수된 것을 보아선 히드레안이 란 작자가 정말 미워진다. 죽고 나서 살아났어도 저 모양인 성격이라니... "자, 미노. 각오하라구." "뭘 각오해?" "진짜 히드레안 드 이크립스라는 존재를 보게 될 거니까." 동시에 그들의 몸은 의지와 상관없이 저절로 강제송환됐다. 미노의 비명과 카인의 유쾌한 웃음소리가 어우러져 상당히 기괴한 소리만 을 허공에 남겨둔 체 말이다... ============================================================= ========= 네? 그 존재가 누구냐구요..? -_-; 물어도 대답 안해주지렁~;; 마왕 이야기-106 ....여러분....엽기로 회복입니다....-_-; 진지버젼 온리 끝! P.S - .....죽이면 글 못씁니다..비굴비굴...;;; ============================================================= ========= 굴레-19 "거짓말..." "아하하하핫..." 미노는 충격으로 물들어서 무표정하게 서 있는 히드레안을 바라보았다. 그 리고 다시 비명을 울렸다. "거짓말이야아아아!" 카인은 여전히 웃음을 거두지 않았고, 히드레안의 얼굴도 그대로 무표정했 다. 검은 머리의 미인 두명이 다 무표정하게 서 있으니 그거 무섭긴 하다. 어쨌든 미노는 떨리는 손으로 히드레안의 어깨를 잡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 다. "...아...아니지? 히드레안....아니지?" "현실을 인정해라." 히드레안은 짧게 말했을 뿐, 그 이상의 언급은 하지 않았다. 카인은 여인 의 품에 안겨서 여전히 허무하게까지 느껴지는 메마른 웃음만을 반복하고 있었을 뿐. 본래 히드레안의 육체는 얼굴엔 전혀 변화가 없지만, 조금 선이 강건하게 느껴졌다. 좀더 강한 인상이 느껴진다고 할까...몸 자체의 능력도 '인 간'의 몸하고 다른 것은 분명해고, 또한 가장 중요한 것. 그의 이마엔 본 래 왕의 표식인 눈동자가 자리잡고 있었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절대로 감 기지 않는 세 번째 눈. 하지만 미노를 미치게 하는 것은 그런 게 아니었다. 히드레안이... 그 히드레안이... "이런 게 현실이라고!? 말도 안돼! 있을 수 없단 말이다!" "..." 퍽! 미노의 몸이 허공을 날고 히드레안은 '엄청나게 강해진' 육체가 이럴 때 고 맙다고 생각하면서 악을 바락바락 썼다. "시끄러! 내 원래 몸이 여자건 말건 무슨 상관이야!" ...힐링 포션을 바란다면 얼마든지 주겠다. 단, 힐링 포션으론 정신계 타격은 치유하지 못한다. 미리 알아둬라. 한기의 바람이 사방으로 몰려들고, 젠장...그렇다! 히드레안의 몸! 선이 약간 강건해 졌지만 그것은 분명 여인의 육체! 거기 다 쭉 빠지고 늘씬하기까지 한! 훌륭한 몸인 것이다. ...그것이 비록 여 성의 육신이라곤 하지만 말이다. 임시로 걸친 살짝 달라붙는 젖은 듯한 검은 원피스는 가슴 부분이 파여 있 어서 그런 정도를 약간 심하게 만들었다. 여.자.라. "큭...아하하하핫...잘 어울리시는데요...히드레안 님?" "...죽인다 카인..." "아니란 말이야아아아아! 으아아아악! 차라리 눈을 뽑아 줘!" 발작하는 미노를 보면서 히드레안은 저놈 죽이고 가차없이 즈려밟아 버릴 까 고민했지만, 이내 인내해 냈다. 히드레안은 상당히 일그러진 얼굴로 팔 짱을 끼고는 웃고 있는 카인과, 여인을 바라보았다. "...아이크." 여인은 움찔하며 히드레안을 바라보았다. 히드레안은 고개만 까닥하면서 중얼거렸다. "그렇게 부르도록 하지. 창조자가 아니면 이름 받기도 싫었던 모양이군?" "...닥쳐!" 으르렁대면서 히드레안을 노려보는 여인...아니 아이크. 히드레안은 그런 그녀를 무시하면서 카인을 바라보았다. 카인은 상쾌한 미소를 짓고 있었 고, 히드레안은 상당히 신경질 나는 얼굴로 그런 카인을 바라보았다. "...이 몸으로 돌아오면 내 인격이 서서히 사라진다는 것은 알고 있겠지?" "여부가 있겠습니까?" "내 인격이 사라지고 절대적 시간의 의지가 나를 잠식하면, 너 역시 내게 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는 것도 모르는가?" 카인은 싱글, 하고 기분 좋게 웃은 후 대꾸했다. "그래봤자 그 시한은 천년 뿐일테니까요." 의미심장한 그의 말. 히드레안은 대꾸하지 않았고 아이크는 카인의 소매 를 잡고는 불안하게 눈을 굴렸다. 미노가 구석에서 음울한 자기장을 띄우 며 벽을 긁고 있을 때, 이쪽에선 진지한 분위기를 내고 있다라. 흐음, 여전히 이 성은 왜 이렇게 엽기적으로 흘러가나 모르겠다. "...열...받는구나...어쩐지 네 녀석..." "아하하하핫, 그렇게 창조하셨잖아요." 능글능글하게 대꾸하는 카인. 호오, 의외로 카인이 히드레안에게 개기는 것이 상당한 실력수준에 이르러 보인다. 히드레안은 잔인한 미소를 지으 며 대답했다. "그럼 그만큼 괴롭혀 줄까?" "사양할께요." ...힘, 힘내라 카인. 어쨌든 이렇게 해서 한차례 거한 소동이 마왕성에 일어났다. 아무 일 없이 평안하던(?) 날, 즐거운 소동이 일어났으니 이 아니 즐겁지 않으랴. 왠지 앞으로 더한 일이 있을 거라는 무시무시한 예감이 드는 것은...왜일까? ============================================================= ========= 실제로도 일어난다네요~♡ 기대해 주세요~>_ 음...어디보자, 굴레편이 끝나면...곧바로 희망이라 이름하는 함정. 챕터 로 들어가게 되는군요. 저 챕터는 짧은 편이니까 금방 끝나고... 다음 챕터인 피는 물보다 진하다, 편 들어가기 전에 엄청난 '진지물'이 하나 끼이는데 그 제목은 일단 추억과 기억이라고 임시 제목만 적어놨습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 편이 끝나게 되면 이 마왕이야기는 종료되는군요. 대략해서 그리 많은 양은 아닐듯...? -.-? 그 후엔 곧바로 펜릴즈 스토리 3부 작업에 들어갈 테니 음...-_-; 일단 마왕이야기를 얼른 끝내야죠. 타로트 관련 소설도 쓸게 밀렸구만....헤요요요요...; 마왕 이야기-107 흐음...오늘은 연참! 에잇! 연참 타격파아~! >0< ============================================================= ========= 굴레-20 카인은 자신의 길디긴 머리카락을 단숨에 단검으로 베어냈다. 가운데 불타 오르는 접시에 담긴 성화에 머리카락을 던져 넣고, 상당히 풍성한 양을 가 지고 있던 머리카락은 화르륵, 하고 금새 타올랐다. 아이크가 단검을 받아 자신의 머리카락을 자르고, 성화로 던져 넣자 이번 엔 머리카락이 타고 난 후 불길이 꺼졌다. 열기로 붉게 달아오른 은접시 는 세 개의 발이 달린 제기 위에 놓여져 있었고 카인은 천천히 입을 열었 다. [운명의 사슬로 그대와 나를 엮어 영원의 시한이 함께 하도록, 그리 함으 로 우리가 서로 하나가 되도록, 그대가 상처 입으면 나도 상처입고 그대가 치유되면 나 역시 치유되도록, 하나의 생명이 끝나지 않는 한 하나의 생명 도 끝나지 않도록, 그렇게 영원한 삶을 함께 할 것을 맹약합니까?] 아이크는 대답했다. [운명의 사슬로 그대와 나를 엮어 영원의 시한이 함께 하기를, 그리 함으 로 우리가 서로 하나가 됨이 축복 받기를, 그대가 상처 입으면 나도 상처입 고 그대가 치유되면 나 역시 치유되니, 하나의 생명이 끝나지 않는 한 하나 의 생명도 끝나지 않음이라. 그렇게 영원한 삶을 함께할 것을 지금 맹약하 노니...] 조용한 음의 하프 현이 튕기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맞추서 화답하는 듯한 노랫소리가 들린다. - 원한의 강물은 세월의 사막에서도 마르지 않고 죽음의 지배자는 천칭을 비켜들지 않는다. 인연과 인연이 겹쳐 만들어진 악연은. 하나가 소멸할 때까지 끝나지 않을지니, 인연의 굴레란 억겁의 전생보다 깊은 것이니, 하나의 인연이 끝나면 하나의 인연이 시작되고, 하나의 인연이 시작되면 하나의 인연이 끝나니, 그 연이 사라지기 전까지 영원한 굴레, 그것은 영혼의 사슬 세월이 흘러 원한과 증오와 질시와 한이 그대들을 지배하더라도, 절대로 영혼을 가운데 둔 사슬은 끊기지 않고 이어질 것임이니. 후회도 원망도 그때는 통하지 않을 것이라... 그리함에도 영혼이 묶여야 한다면, 지금 말한다. 그대들의 이름은...? "카인제이럴 드 이크립스...." "아이크제이럴 드 이크립스." 히드레안은 조금은 기운 빠진 목소리로 선언했다. "둘의 영혼의 사슬이 이어짐을 허락한다." 제법 영리하다고 생각했던-아니 생각 이상으로 영리한-카인이 무슨 헛생 각이 들어서 갑자기 히드레안에게 쪼르르 달려와서는, '영혼의 사슬' 계약 을 맺겠어요. 라고 한 건지 모르겠지만...아이크도 내심 바라는 눈치여서 히드레안은 얼떨결에 그 둘의 계약을 성립시켜 줬다. 미노는 카인이라면 이제 지긋지긋한, 아니 아예 못 죽이는 게 한 맺혀서 이 를 갈 정도라 의식장에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히드레안은 워낙 계약 을 맺는 당사자도 그렇고, 주체자도 그렇고 능력이 강하기 때문에 보통은 목숨을 걸고 하지 않으면 안돼는 영혼의 사슬 계약을 싱겁게 끝내 버리고 말았다. "하핫, 감사합니다 주인님." "...통일해서 불러." "음...주인님, 아버지, 어머니, 히드레안 님, 하드라 님, 또 다른 이름으로 는 히드 님, 그것도 싫으시다면야 위대한 흑암, 도도한 시간의 지배자, 일 곱 혼돈의 축의 중심, 혼돈의 중심에서 바라보는 이, 기타등등...전부 합치 면 통일인가요?" 되받아치는 솜씨가 갈수록 는다. 아이크는 저도 모르게 킥, 하고 웃었고 궁지에 몰린 히드레안은 곰곰히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그 중 하나만 아무거나 불러." 결국 져버렸군 히드레안. 아, 그동안의 상황을 좀 정리해 보자. 본래 몸으로 돌아간 후 히드레안은 '한동안' 여성의 몸으로 있었다. 거듭 말하는데, 제발 그 '한동안'의 기준이 뭐냐고 부르짖지 마라. 내 알게 뭐냐. 그 동안 미노가 발작하면서 한번은 자신의 눈을 도려냈던 소동까지 있었고 (결국 히드레안은 그런 미노의 눈을 도려내 주었다), 세 광룡들은 자살하겠 다느니 죽겠다느니 난리를 치면서 거대한 동아줄을 구하겠다고 인간계로 뛰 쳐나가는 소동이 벌어졌다. 참고로 그런 거대한 동아줄은 없었다고 한다. 마왕들은 히드레안이 여자가 됐다는 말에 '그럼 생리 때마다 생리통으로 인 한 히스테리까지 느는 겁니까! 신을 저주한다! 어째서 이런 시련을 주시는 겁니까!'...라고 했다가 히드레안에게 걸려서 단체 기합으로 마력 봉인 당 하고 지옥식인 꽃의 먹이감으로 던져졌다. 아, 물론 그의 여성화 소식은 당연히 각 계에 다 알려졌다. 왜냐면 히드레 안의 마력을 끌어다 쓰는 마법사는 물론이요 각 계에 그가 미치는 영향은 모든 어둠을 지배하는 존재이니 만큼, 그의 힘에 관련된 변화는 쉽게 발견 되기 마련이다. 그런 그의 기운의 파동이 '엄청나게' 뒤바뀌었으니, 그것도 여성적인 파동 으로 바뀌었으니 어떻게 된 일인지야 뻔히 아는 일. 수많은 여인들이 눈물과 탄식으로 지새우고-그러나 여인들은 다시금, 여자 라도 그분은 우리를 사랑해 주실 수 있을 거야!-하면서 희망으로 바꾸었고 많은 남성들은 환희의 환호성을 질렀다가 금새 침묵했다. -그래도 당하는 건 변함없겠지?-라는 별로 상관없는 문제 하나. 그 외에 마법사들이 그럼 앞으론 계약할 때 '마녀'라고 해야 하는가 아니 면 '마왕'이라고 해야 하는가에 대한 우자가 보았더라면 별 시시껄렁한 일 도 다 있다고 생각할 격렬한 토의를 벌였다가 그 자리가 마왕들에 의해서 초토화 된 사건 하나. 제레이나가 '히드 너 결국 여자 됐구나, 후회할 거라고 했잖아.' 라고 했 다가 분노한 히드레안에게 침실로 끌려갔다는 거, 또는 칸나가 참으로 기뻐 하면서 명계로 며칠간 히드레안을 납치했었다는 거.... 겨우...이 정도일까? 사실 알고 보면 별일 없었던 것이다. 앗, 분노한 히드레안의 정신파 공격이 가해지기 전에 그만두도록 하자. 그 외의 아주 작고 사소한 문제는 그냥 넘어가고, 히드레안은 결국 자신의 육체란 무기물질이고 자유 의지로 바꿀 수 있다는걸 아주 어렵사리 깨달은 후 칸나의 만류와 일부 쓸모 없는 존재들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남성체로 다 시 변환을 시도했고, 시도는 다행히 성공했다. ...다, 다행 아닌가? 어쨌든 그 후 미노의 발작은 멎었고 광룡들은 폭주를 멈추었으며 마왕들도 기합을 받지 않았고 그렇게 모든 문제는 좋게 좋게 해결되었다고 한다. 뭐가 좋은게 좋은 건지 알지는 못하겠지만. ...새삼 느끼는건데. 카인제이럴, 대단한 작자다. ============================================================= ========= 이제 굴레, 후반부에 들어갑니다. ^.^ 굴레편에선 희망이라 이름하는 함정(이게 맞는지..-.-; 제목 바꾸까...;)의 후 반편으로 돌입합니다. 음....여기서 좀 달라지는 게 있겠지요? ^.^; 기대해 주세요~>_< 마왕 이야기-108 굴레-21 미노는 과자와 차를 나르면서 뒹굴대고 있는 가족들(?)을 바라보았다. 어 쩌면 저렇게 닮았을까, 하고 저도 모르게 감탄할 정도로 쇼파 위에서 구르 고 있는 녀석 하나와 바닥에서 구르는 녀석, 그리고 아에 자고 있는 녀석들 을 바라보았다. 뒹굴뒹굴 대던 녀석 1인 히드레안은 불만으로 가득찬 미노의 얼굴을 바라보 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뭐냐 미노, 뭐가 불만인 거냐?" "아니. 그 소동과 난리를 부리고도 아아주 여유만만한 것 같아서 부러워 서 그런다 왜?" "아하하하하, 사실 할 일이 없어서 그런 것뿐인데 뭘." ...칭찬이 아닌 것 같은데 카인. 짧게 자른 머리는 미노가 다듬어 주어서 제법 예쁘장한 모양이 났다. 조 금 치렁대는 앞머리는 은으로 만든 헤어밴드로 고정시켜 놓고, 미노가 가져 온 찻잔에 손을 뻗고 있는 그의 모습은 귀엽기 짝이 없었다. 히드레안도 동감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대면서 과자를 짚어들었고 미노는 저도 모르게 '니들이 무슨 부자냐!'하고 외칠 뻔했지만 다행히 참아내었 다. 그렇다, 장하다 미노! 그런 식으로 인내하는 법을 배우면 반드시 해 탈하리!(...) "어차피 이 근처의 300년 동안은 인간계에서 노닐 수 없는 시한이니 수가 없잖느냐." 아삭아삭하고 과자를 먹으면서 턱을 괴는 히드레안, 카인은 차를 한모금 홀 짝 대더니 맞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댔다. 또 나만 모르는 건가, 하면서 미노가 자괴감에 빠져서 또 음침한 장벽을 만 들기 전에, 카인은 그런 그의 소맷자락을 잡아당겨서 바닥에 앉게 했다. 그런 카인의 무릎을 배고 자고 있는 아이크는 정말 세상모르고 있는 듯이 보인다. 이제 이걸로 '아빠' 미노와 '엄마' 히드레안, 그리고 '아들' 카인, '딸' 아 이크까지 그림같은 네 가족의 모습이 완성된 것인가? 쿨럭, 지옥견의 교미모습을 봐도 이보다 더 엽기적이진 않으리... 카인은 호륵, 하고 차를 한모금 더 마시더니 한번 히드레안의 얼굴을 바라 보고,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서야 말을 시작했다. "300년의 시한이 온 것 같거든. 슬슬 황혼기가 끝나갈 시기니까." "아...벌써 제 7주기의 6번째인가...?" 미노는 고개를 끄덕였고 카인은 활짝 웃었다. 둘이서 사이좋게 노닥거리 는 꼴이 왠지 못마땅한 히드레안은 그저 무표정하니 과자나 오독대고 있을 뿐. 주기라는 것은 쉽게 말해서 하나의 해와 같다. 묵은해가 가고 새해가 오 고, 그렇게 날짜가 바뀌고 기념식도 좀 거하게 비싼 돈 들여서 하고. 조 금 다르게 주기라는 것은 스케일이 좀 다르다 고나 할까. 주기가 바뀌면 그 동안 유지해왔던 문명체계가 뒤바뀌고 언어가 바뀌고 심지어 주도하는 종족도 바뀌고 나아가서는 신들의 위치조차 바뀐다. 그래봤자 신들의 위치가 거기가 거기기 때문에 알바는 아니지만, 어쨌든 그 렇게 바뀌게 되는 주기는 보통 7의 주기로 나뉘어서 7의 배수가 곱해지고 거기에 7의 제곱이 더해진다. 그렇게 7의 제곱이 7의 곱이 되어 7의 배수 가 다시 또 7의 제곱이 되어서, 어쨌든 약 70번의 제곱이 7회씩 있으면 하 나의 주기가 성립되는데. 한마디로...하나의 주기란 엄청나게 길다는 거다! 고작 그 얘기를 위해서 7 의 제곱이니 배수니 하는 소리를 했냐고 따지지마라! 어쨌든 그래서 제 7주 기, 황혼기의 끝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 당연히 신들은 물론 이 세계를 유 지하는 지표들은 엄청나게 바쁘게 된다는 것이다. 누구도 믿지 않지만 혼돈의 힘을 계승한 히드레안은 당연히 거기에 속한다. 그래봤자 시간이 무슨 일을 하겠는가. 평소처럼 흘러가면 그만이지... "300년의 시한은 처음 들어보는데...? 주기가 끝나기 전에 왜 300년의 시한 이 주어지는 거지?" "보통은 300년이라고 하지만 1년도 안되서 끝나기도 하지. 그죠 히드레안 님?" 히드레안은 둘이서 잘 놀다가 지켜보던 자신을 부르자 잠시 멍하게 있다가 느릿느릿하게 고개를 끄덕대면서 입을 열었다. 갈수록 게을러지는, 겨울 이 다가오고 있는 굼벵이 뱀 같다. "일종의 신들이 하는 유치한 자선사업에 가까운 것이지...의로운 자, 내 앞 에 일곱이 나타나면 죄를 사하여 주리라...빛의 신 마이아가 최종점검에 들 어가서는, 확인작업을 하는 거라고나 할까. 엉뚱한 종족을 멸족시키지 않 기 위한 처사라고 하지만, 그냥 재미 삼아 하는 것 뿐이야...웃긴 일이지 뭐." "그런가...뭐 특별히 우리하곤 상관없는 일이군. 신 계 쪽이니까." 미노는 그렇게 단정 짓고는 한동안 또 할 일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뭣부 터 읽어볼까 고민을 시작했다. 카인은 살짝 웃더니, 아이크를 토닥대면서 미노를 향해 찻잔을 내밀었다. 비어 있는 찻잔, '더 주세요'하는 티가 확연히 나는 그의 얼굴을 보면서 미 노는 허공에서 티 포트를 꺼내들어 한잔 따라 주었다. 호륵, 하고 받아서 얌전히 한모금 마시는 모습이 왜 꼬리 아홉 개 달린 여 우과지만 여우과가 아닌, 기괴한 생명체를 떠올리게 하는 것일까? "있잖아요, 있잖아요, 있잖아요 히드레안 님?" "...왜." 카인은 사심없어 보이는 그 환하고 해맑은 얼굴로 생긋이 웃으면서-왠지 그 래서 더 위협적이고 무시무시한-차를 내밀었다. "한모금 드세요." "..." 눈빛이 반짝대는 카인의 얼굴을 보고는, 차마 거절할 수 없었는지 히드레안 은 찻잔을 받아서 한 모금 홀짝였다. 미노는 저 녀석이 왜 저러나, 하는 눈으로 카인을 미덥잖게 쳐다보았고 히드레안은 한모금 마신 후 찻잔을 건 네주면서 작게 중얼거렸었다. "...달군..." 카인은 생긋이 웃었고 히드레안은 여전히 속모를 무표정으로 그런 카인에 게 '불만있느냐'하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여 주었다. 카인은 그저 어깨만 한번 으쓱하더니 미노에게 찻잔을 넘겼다. 미노는 찻잔을 받아들기는 했지만, 점점 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눈 앞에 서 작은 망치를 든 검은 악마가 튀어나와 '죽여버려, 그냥 이 기회에 저 알 수 없는 녀석은 없어지는 게 인생에도 좋아!'라고 속삭이고 갑자기 반대 쪽에서 작은 책을 하나 들고 있는 흰 천사가 튀어나와서 '안돼! 죽이는건 너무하잖아! 그냥 다리만 하나 부러뜨려'하더니 이내 둘이서 싸우는 듯한 환상마저 보게 될 정도였다. ...심각한 수준이군. 정신치료 마법을 의뢰해 보는 것이... 히드레안은 천천히 중얼거렸다. "...300년 동안 그럼 늘어지게 자볼까." ============================================================= ========= 전....한다고 말씀 드렸던 것은 합니다...+_+ '에이 설마~'라고 하거나...'그러면 안돼!'라고 해도... 한.다.면. 합.니.다. +_+(우헤헤헤헤헷....) 굴레 편은 좀 씁쓰레 합니다. 최강무적이던 히드레안이 가차없이 깨지는 터.... 빨리 쓰고 희망이라 이름하는 함정(확정!)쓰고 뒷 챕터..대충 날리고..(제목을 아직도 못 정했다...-_-; 가칭 기억과 추억..;) 빨리 피는 물보다 진하다, 부 전자전 편을 써야 하건만.... 귀찮아귀찮아아아아아~! 마왕 이야기는 그럼 대략..해서 한 200회 쯤 되면 끝나게 될지도..? 아무래도 외전이니까 길게 끌고 싶지가 않군요. (본편도 안쓰고 외전이라뉘이이이이! ;;) 어쨌든 연참~연참입니다~ 다음에 내리실 역은~;; 마왕 이야기-109 굴레-21 "300년이나 자겠다고? 무슨 말도 안돼는 소리야?" "이 몸을 유지하는 데에는 마력이 필요 이상으로 많이 든단 말이다...300년 동안 마력을 축적하면 움직이기도 편할 거고 뭣보다 할 일 없이 심심한 것 보단 자는 게 낫잖아." 천천히 침실로 통하는 그 밀림(소형 정원이라고는 죽어도 말못하겠다!) 가 운데 난 길을 따라 걷는 히드레안과 그런 히드레안을 성큼성큼 쫓으면서 걸 어가고 있는 미노의 대화는 이런 아름답고 신비한 분위기 마저 띄고 있는 숲(?)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도, 아무리 오래 자도 10년 이상을 넘긴 적은 없었잖아!" "훗, 가끔씩은 틀을 깨는 것도 즐거운 경험이라는 거다." 미노는 히드레안의 어깨를 잡아챘다. 평소라면 힘이 없어서 휙 하고 딸려 왔을 몸이지만 그가 살짝 몸을 흔들자 미노의 손은 가볍게 떨어져 나갔 다. 히드레안은 길게 출렁대는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면서 다시 발길을 옮겼 다. "히드레안, 대체 뭘 숨기는 거야?!" "아무 것도. 사실 충실한 종에게 주인이 뭔가를 숨긴다는 것은 심한 처사 지." 히드레안은 침실 가까이 도착해서 벽의 한면을 가득히, 끊임없이 채우고 있 는 유리창들을 바라보았다. 끝도 없이 펼쳐진 창문들. 문을 열고 발코니 로 나갈 수 있는, 현재의 기술로는 만들 수 없는 커다란 크기의 유리. 사납게 몰아치는 눈보라는 유리창을 두드려대고 있었다. 히드레안이 걸음을 멈추자 미노도 걸음을 멈춘다. 고요함이 사방을 메웠 고, 히드레안은 무료하게 까지 들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죽고 싶지 않아." 미노는 영문모를 소리에 뭐라고 대꾸하려고 했지만, 히드레안은 그가 말할 틈도 주지않고 말을 이었다. "내가 내가 아니게 되는, 내가 나였던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 죽음이라면..." 덜컹하고 창문이 열어지면서 요란한 눈보라가 안으로 몰아쳤다. 마법으로 막아져야 했지만 히드레안이 저절로 열어두었을 것이다. 그는 씁쓰레하게 중얼대고 있었다. "죽고 싶지 않아. 누구보다도 더." "히드레안?" 히드레안은 고개를 돌렸다. 그의 검었던 눈동자가, 찬란하게까지 느껴지 는 황금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이마 사이에 갈라진 틈으로 자리잡고 있는 금색의 눈동자와 똑같은, 진한 황금빛으로 물든 눈동자가... "...사라지고 싶지 않아." "히드...레안?" 반복해서 그의 이름을 부르면서 미노는 섬칫함에 몸을 떨었다. 길게 늘어 져 사방으로 흩날리는 검은색의 머리카락. 어떻게 보면 섬뜩하기까지 한 금색의 눈동자로, 그렇게 미노를 바라보던 히드레안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300년 동안 잘테니 깨우지 말고 알아서 해라. 옆에 있을 필요도 없다." 유리창은 계속해서 덜컹대면서 벽에 부딪치고 있었지만 눈은 더 이상 들어 오지 않았고, 히드레안은 침실로 들어가 버렸다. 나풀하고 투명한 실크 커 튼이 흔들댄 후, 그의 모습은 침대 속으로 파묻혀 버렸다. 기분 나쁜 예감에 몸서리치면서, 미노는 창문가로 다가가 창문을 잡고, 밀 어냈다. 약간의 요동이 있은 후 문은 닫히고 고요가 찾아왔지만, 그 섬뜩 함... 그 진한 황금빛 눈동자. 도대체 그건...뭐였던 걸까? 미노는 문을 닫고 침실이라고 이름하는 정글에서 빠져 나왔다. 복도를 지 나다니는 그림자 같은 인형들. 새삼 생각하는 것이지만, 혼자 있다는 것 은 외로운 것은 분명했다. 때로 외로움이라고 불리는 것은, 광기를 부르기도 해서...그것을 위해서라 면 뭐든지 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히드레안이 자신을 만들기 위해서 그 기나긴 시간을 기다렸던 것처럼? 복도를 걸어서 중앙 쪽으로 저도 모르게 걸어가면서 미노는 계속해서 생각 했다. 황금빛 눈, 300년의 시한, 주기의 끝, 본래의 육체, 사라지고 싶지 않다는 말. 콰당! 문이 열리자 비스듬히 쇼파에 기대서 바닥에 앉은 아이크와 뭔가를 하고 있 던 카인은 고개를 들어서 그런 미노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이내 손에 감 고 있는 실을 두 세 번 나눠서 휙휙 감더니 여상스레 입을 열었다. "미노, 실뜨기라는 걸 배웠는데 이거 재밋는 것 같은걸? 해보지 않을래? 아 이크는 실뜨기를 잘 못하거든." 아이크는 카인이 펴놓은 실의 모양을 바꿔보려고 이리저리 애를 쓰기는 했 지만 좀체 되지 않는지 조금 찌푸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미노는 숨을 가 다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가르쳐 줘." 카인은 살짝, 누구의 눈에도 비치지 않을 만큼 작지만 무엇보다도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 미노는 저도 모르게 커다랗게 소리쳤다. "가르쳐 줘! 넌 알고 있겠지? 내가 모르는 것들, 도대체 그게 뭔데 이렇게 까지 번지는 건지 좀 알려달란 말이야!" "가르쳐 줄 수는 있는데 미노..." 싱긋. 카인은 웃으면서 결국 아이크가 실을 모두 풀어 내리고 실망하는 것 을 달래주면서 입을 열었다. "그전에 그만 우는게 좋지 않을까?" "...아?" 미노는 저도 모르게 손을 눈가에 가져다 댔다. 약간 미지근하면서도 투명 한 액체가, 천천히 고였다가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단 한번, 그의 백성들 을 위해서 울어 준 후로는 한번도 흘러내린 적이 없던 것. 사라진 줄 알고 있었던... 축축하게 뺨을 적시고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눈물... 미노는 눈가를 손등으로 가리며 어색하게 중얼거렸다. "이럴 리가 없는데...몸의 감각이라도 마비됐나보지...윽..." 아이크는 천천히 일어나서 미노에게 다가갔다. 카인은 피식, 웃더니 실을 잘 말아서 탁자 위로 던져 놓았고, 천천히 아이크는 그런 미노의 팔을 잡더 니 고개를 기댔다. "...욱...모르겠어...왜...눈물이 나는 거지...?" 카인은 쇼파 등받이에 팔을 괴고 거기에 턱을 얹으면서 말했다. "가르쳐줄께...네가 울어야 하는 이유." 아이크는 조금은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미노의 팔에 기댄 체 카인을 바라보 았다. ============================================================= ========= 다음 챕터에서는 또 뉴 캐릭터가 등장하는군요. 아아~어쨌든 이건 외전이라니까요~ 이야기가 연결되지 않고 툭툭 끊기는 부 분은 본편이라구요~이거 끝나고 시오&에리나쟈드 이야기나 한편 올려볼 까....-_-; 에잉~몰라몰라~>_ 흐음.....어쨌든 오늘의 연참은 끝~♡ 마왕 이야기-110 굴레-22 - 인간이 그 인간으로 남기 위한 절대조건이라는 것은 과연 있는 것인가? 그 사람의 추억, 그 사람의 기억, 그 사람의 생전의 모습, 그리고 그 사람 이 하던 행동. 그 모든 것이 갖추어진 존재라면 그것이 바로 '그 존재'라 고 부를 수 있는 것일까? 많은 존재들은 그것을 부정한다. '존재'란 그때의 그 존재, 다른 누구와 도 비교될 수 없고 추억과 기억, 그리고 행동, 생전의 모습 만으론 재현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고. 그렇다면, 영혼이 동일하면 그것은 한 인간 그대로 일 수 있는 것인가? 그 것도 역시 아니라고 대답한다. 왜냐면 한 인간으로 있었던 그 존재와 자신 의 상관관계가 더 이상 사라지고, 오직 영혼뿐이라면 더 이상 동일 할 수 없다고... 그렇다면, 정말로 그 '한 존재'로의 존재가치, 인간이 '그 인간'으로 남기 위한 절대조건은 무엇인가? 나의 질문에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대 답했다. [한 인간이 그 존재 그대로 남기 위해선, 자신이 '그 존재'라고 인정해주 는 사람 하나만 있으면 돼.] -Kain과의 대화, 네 번째 이야기 미노는 처음으로 울면서 웃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울면서, 자신의 처지에 한탄하면서도 동시에 그러는 자신이 우스워서 웃을 수가 있다니. 어떻게 보면 한심하고, 어떻게 보면 자신의 존재가치를 느 낄 수 없어서 이번엔 웃어버리게 된다. 카인은 한동안 감정이 폭팔할 듯 이 커져서 당황하고 있는 미노를 내버려 두고서 가만히 앉아서 그런 미노 를 기다려 주었다. 뭐, 기다리는 동안 아이크와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정말 친형제가 아닌 가?'하는 의문을 갖게 만들었지만. "좀 괜찮아 졌어?" "아주 괜찮아. 그러니까 이야기 해줘야 겠어! 처음부터 끝까지.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내가 모르는 부분에서부터. 그리고 어째서 네가 그 모든 걸 알고 있는지!" "하나씩만 질문하면 안돼?" "농담 들을 기분 아니야!" 미노가 일어나려는 것을 아이크가 제지했다. 카인은 비스듬히 쇼파에 기대 었고, 미노는 융단이 푹신하게 깔린 바닥 위에 앉아 있기는 있었지만 당장 이라도 일어날 듯 진한 자줏빛 눈동자를 빛내며 카인을 노려보았다. 카인은 어깨를 한번 으쓱해 보인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하나 하나 차근차근, 순서대로 듣고 싶다는 거지? 물론 네가 질문하지 않 았던, 그렇지만 중요한 내용을 포함해서...?" "그래." 카인은 고개를 끄덕였고, 아이크는 미노를 바라보면서 고개를 한번 살짝 저 었다. 알아서 좋을 게 없다는 듯한 뜻이었지만, 미노는 별로 그런 말을 듣 고 싶지 않은 모양인 듯 거칠게 딱 잘랐다. "상관없어, 전부 말해 줘. 아무 것도 모른 체 그냥 넘어가는 것따윈 싫 어." "훌륭한 태도야, 모른 다는 것은 그 사실을 자각하기 전까지 알 수 없는 사 실 중의 하나지." 카인은 엉뚱한 대꾸에서부터 말을 풀어나갔다. 조금은 가늘고, 어떻게 보면 미성이라고 생각할 만큼 고요한, 그래서 더욱 더 안정된 목소리가 넓은 공간을 울리기 시작했다. "아주 옛날 옛날, 정말로 동화 속 이야기처럼 때를 알 수 없는 과거. 그 옛날, 첫닭이 아직 울지 않고 동도 트지 않았던 그래서 고요하기 그지없던 세계가 있었지. 제일 먼저 그들 중 의지를 자각한 것은 파멸이었지. 파멸은 이내 창조를 일깨웠고, 창조는 세상의 모든 것을 만들어 나가기 시 작했어. 창조와 파멸이 불러낸 것은 유지, 또는 우연이라 불리는 것, 그것 은 스스로를 자각해서 창조가 이뤄낸 것을 계속해서 이뤄지도록 만들어가 고 지켜가는 힘의 소유자. 창조와 파멸, 그리고 유지가 네 번째 존재가 이미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 은 이미 엄청나게 오랜 '시간'이 지난 후였지. 그들은 그 모든 것, 창조 가 가능케 하고 유지를 움직이는 거대한 법칙이 '시간'이라는 것을 깨달았 던 거야. 하지만 '시간'은 그들처럼 자각하지 않았어. 시간이 자각하면, 시간의 힘 은 더 이상 일정하지 않을 것이고, 그 순간 세상을 이루는 법칙이 무너질 테니까. 하지만 이때껏 창조와 유지를 가능케 했던, 처음으로 의지를 자각 했던 파멸은 시간을 이끌어냈지. 그리고, 그때 자신이 창조한 것들을 보호 하기 위해 창조가 파멸에게 대항했다. 유지는 그 둘의 사이에서 멀리 떨어 져 세상 모든 것의 관장을 멈추었고, 창조와 파멸은 결국 서로 맞서기 시작 했지." 미노는 조용히 그런 카인의 말을 듣고 있다가, 카인이 한소절을 끊자 질문 했다. "그게...무슨 상관이지? 지금의 이 문제와?" 카인은 아이크를 바라보았고 아이크는 카인의 말을 받아 이야기를 계속해 서 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원래 서로 대항하는 것이 불가능한 존재다. 왜냐면, 그들 은 법칙. 존재하지 않는, 그러나 존재하는 것들이기 때문이지. 서로 맞서 려면 동일한 선상에서 맞부딪칠 수 있어야 하지만, 그들은 평행을 이루는 수평선.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직선들이었기 때문에 그것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그들은 각기 자신의 육신이 될만한 것들을 찾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그들은 '동일한 선상'에서 싸우기 위해 이 세상에 깃들만 한 것 을 찾아내기 시작했지. 결국 '창조'는 세계라는 거대한 '구' 자체에 그 몸 을 동화시켰고, 자신에게 대항할 수 있는 생명체는 그의 대리자인 '신'들 을 시켜서 모조리 없애 버렸고, 그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파멸은 그 '구'를 위협할 수 있는, 하늘의 반을 덮을 수 있는 12비천의 용왕의 몸을 '죽음'에 서 건져내어 결국 차지해 버렸다. '창조'는 결국 최후의 수단으로 시간과 유지를 그들의 싸움에 끌어들였 지..." 아릿한 과거를 회상하는 듯한 그녀의 말. 미노는 정신없이 이어지는, 지리 하기 짝이 없는 고대의 이야기를 듣다가 침착하게 되물었다. "...좋아. 그래서?" 이번에는 카인이 말을 받아서 이었다. 마치 번갈아 가면서, 그때의 기억 을 되살리 듯. 조금 피로한 듯 아이크가 카인의 무릎에 몸을 기대자 카인 은 천천히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주면서 옛이야기를 계속 했다. "하지만 유지와 시간은 창조와 파멸의 중간 선상에서만 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존재들. 결국 그들마저 힘이 되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달은 창조는 파 멸을 없애기 위해 마지막 수단을 사용했어. 세상을 이루는 법칙은 일곱, 그리고 세상을 파멸시키는 힘도 모두 일곱... 기억해? 혼돈이라 이름하는 법칙 중 다섯 번째의 힘을 불러낸 거야. 그것의 이 름, '보답'이라 이름하는 것." 카인은 조금 길게 말을 이으려다가 피곤한지 한숨을 후우, 하고 내쉬었다. 미노는 조심스레 그 말들을 곱씹다가 다시 질문했다. "...보답이라...이름하는 것?" ============================================================= ========= 휴우...나머지는 12시 넘어서...-_-;; 마왕 이야기-111 굴레-23 카인은 싱긋이 웃으며 대답했다. "또다른 이름으로 그것은 '운명'이라 칭하지." "...그게...무슨 상관이지?" "끝까지 들어봐야 알수 있다니까. 어쨌든 운명의 탄생함으로서 세상에 는 '앞'이 있고 '뒤'가 있게 어. 행한 것에는 결과가 돌아가고, '과 거'가 생기고 '미래'가 생기고, 그 가운데 존재하지 않는 '현재'가 생성됐 지. 창조는 결국 승리했어. 왜냐면 '앞'이 생기고 '뒤'가 생겼다면, 파멸 은 가장 뒤에 존재하는 것. 힘을 쓸 수 없게된 파멸은 그 육체와 함께 지 옥보다 깊은 곳, 명계로 추락해 버리지. '창조'는 자신의 승리를 기뻐했지 만 그것은 어리석은 일. 운명은 잔인하고 가차없으며, 행한 것에 결과를 이뤄내지만 동시에 '공 정'했다는 것을. 창조는 가장 '앞' 이미 사라져야 했던 것. '창조'는 자신이 일깨운 운명 의 법칙에 따라 역시 그 모든 힘을 박탈당한 체 깊은 잠에 빠져들었지. 우연은 세상의 모든 것에 시발점을 부여하고는 중립자의 입장으로 돌아서 버렸고, 운며으로 인해 시간은 모든 것에게 시간을 배분하게 되었던 거 야. 누구의 시간은 늦게 흘러가고, 누군가의 시간은 빠르게, 어떤 때는 빠 른 속도로, 어떤 때는 느리게, 세상 모든 시간이 한꺼번에 뒤바뀐 거야. 그 때문에 '지루함'과 '권태로움' '빠름' '느림'이 만들어 졌지. 결국 급히 시간을 조정해서, 가장 커다란 시간 추의 하나인 태양과 달을 시 간의 지표로 삼았지만, 본래 자신이 받은 시간과 다르니 그것은 완전하진 못한 지표이지....결국 시간은 강렬한 염원을 가진 존재에게 사로잡혀서 힘 을 쓸 수 없는 존재가 되버렸어." 카인은 긴긴 이야기를 모두 풀어놓고는 후우, 하고 커다랗게 한숨을 내쉬었 다. 지겹기 짝이 없는, 그래서 누구라도 꾸벅꾸벅 졸아버려야 당연한 그 이야기 에도 미노는 가만히 듣고 있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걸 왜 들려주는 거지?" "그런데 문제는...지금 히드레안이라 이름하는 존재, 표층의식에 자리잡은 존재, 나를 만들어 낸 의식의 주인이 그 시간을 결박하고 있다는 것이지." 카인은 손을 휘익 그어 내렸다. 모래시계라도 그리는 지, 동그랗게 홈이 파여진 모습까지 재치 있게 묘사한 후, 그는 말을 이었다. "생각해 봐 미노. 흘러야 할 시간을 어떤 존재가 잡아 버렸어. 세상의 시 간은 조금도 흐르지 않지. 그 시간이 어떠한 것인지 모르지만 세계는 멈 춰 버렸어. 생명은 반드시 낮의 태양을 보고, 지는 해를 본 후, 어두운 밤 속으로 빠져들었다 다시 찬란히 뜨는 태양을 보아야 해. 그게 운명이 존재하는 이 공간의 법칙이고, 시간의 힘이야." 살짝, 냉정하게까지 느껴지는 미소를 지으며 카인은 손가락으로 허공에 그 렸던 모래시계를 지워버리는 듯한 동작을 취했다. "언제까지 지고 있는 찬란한 붉은 황혼을 보고 있을 수만은 없잖아?" "히드레안이...시간을 잡아 뒀다는 건가?" 카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미노는 차분하게까지 가라앉은 눈빛을 하고는 그 런 카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시간을 잡아두는 것은 잘못된 것이고, 히드레안이 그 잘못을 저지른 것. 그래서 이 세상의 시간이 멈추었다고 치자. 그것과 그의 잠이 무슨 상관 이 있지?" "시간을 잡아둘 수 있었던 도구. 유기물질이 아닌 무기 물질로 이루어진, 물질이 아닌 육체. 파멸이 시간을 끌어내기 위해 사용했던, 혼돈 그대로 의, 제약 없는 힘을 지니고 있는 이 세계와 혼돈의 연결체. 그것이 지금 히드레안이라고 이름하는 존재가 입고 있는 육신의 힘이고, 능력이야." "...그게...그를 잠들게 할 정도로 강한 건가?" "아니, 그분이 잠드는 이유는 다른 데 있어." 카인은 아직까지 '그분'이라는 존칭을 쓰고 있었지만 미노에겐 확연하게, 히드레안을 비웃고 있는 카인의 태도가 느껴졌다. 점차 손끝에 힘이 들어 가고 있었지만 카인은 짐짓 모른체 친절하게 설명을 이었다. "히드레안, 지금의 네가 알고 있는 그렇게 이름하는 존재는 '표층의식'이 야. 그리고 '시간'이라 이름하는 진짜 존재가 '본의식'이라고 불리지. 표 층에 존재하는 것은 겨울을 맞아 두껍게 얼어붙은 호수의 얼음 같은 것. 때가 되고, 시간이 흐르면 녹아 사라지고 본래의 것으로 환원하기 마련이 지." 미노는 어이없을 정도로 간단한 결과를 창출해 내는 카인의 말에 대해서 감 탄할 수밖에 없었다. 완벽한 상황, 완벽한 결론! 그리고 내려지는 완벽한 행동! "...그럼...그는 사라지지 않기 위해서 잠든 거란 말이야? 시간을 흐르지 않게 하기 위해, 그 자신을 봉한 거냐고...?" "물론. 300년의 시한, 한 주기가 바뀌는 시기동안 깊히 잠들어 있다면 다 음 세기로 넘어가는 순간 '시간'은 완전히 뒤바뀌는 거니까. 인간이 생각 하는 해나 년, 달의 개념이 아니라 말 그대로 시간의 흐름 자체가 뒤바뀌 는 거야. 당연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그의 존재는 분명 사라지지 않겠지."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미노는 자신의 얼굴을 감싸쥐었다. 아 이크는 카인의 무릎에 기대고 감고 있던 눈을 가만히 떴다. 그녀의 눈에 는, 알 수 없는 슬픔이 깃들어 있었고 카인도 천천히 그녀의 기분을 대변하 듯이 대꾸했다. "하지만 그는 결국 300년의 잠을 채우지 못하고 깨어나겠지." ============================================================= ========= 그래~요~하.지.만!!! 누가 죽인답니까? ^-^? 안죽이고도 괴롭히는 방법은 많지렁...ㅡㅡ+ 크하하하하핫!!! 마왕 이야기-112 굴레-23 "...왜...네가 그 모든 걸 알고 있는 거지? 카인 네가..." 카인은 싱긋이 미소지으며 아이크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아이크는 카 인을 대신해 미노의 말에 대답해 주었다. "그건 우리가 제이럴이니까..." "제이럴이라고 해봤자! 결국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다른 존재들과 다를 게 뭐야!" 카인은 쿡, 하고 웃었고 아이크는 다시 동공 없이 푸른, 그 눈을 닫으며 연 한 미소를 지었다. 카인은 천천히 미노를 바라보았다. 보라색으로 빛나 고 있는 커다랗고 맑은 눈동자. 사심하나 깃들임 없이 깨끗하기 그지없다. 이런 눈으로,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을 만든 존재를 찔러 버릴 수 있 을까. "미노트 아신레이져. 너는 왕의 수호자지. 정확히는 미노트, 꿈의 수호 자. 미노트 프레이져. 꿈의 소멸자. 그는 왕을 죽음으로 이끌어 가지. 그리고 제이럴. 미노트 제이럴이라 이름할 수도 있는 우리들은 꿈의 파괴자 지..." "아신레이져 대지, 모든 것을 감싸고 묵묵히 보호하는 존재라면, 프레이져 는 불태우는 존재. 모든 것을 환원시키는 자. 도도히 흐르며 생명을 제공 하는 물, 그것이 아렐이라면, 그렇다면 우리는 바람. 깊은 잠을 일깨워 꿈 을 파괴시키는 자들..." 카인이 말하면 아이크도 말한다. 이어지듯이 미노의 의문에 대답하는 것 은 마치 둘이 아니라 하나의 존재처럼 보였다. 카인은 살짝 고개를 숙여 아이크의 머리카락에 입을 맞추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우리도 수없이 많은 다른 생명체들과 다름없는, 태어나고 죽는 존재 지. 하지만 우리는, 그리고 너는, 또한 아직 태어나지 않은 프레이져와 아 렐,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죽은 자들." "우리들의 또 다른 이름은 우연이라고 하는 운명에서 비켜난 자들. 행해 도 결과를 얹지 못하는 자들. 혼돈의 시대에 태어났어야 한, 그러나 운명 의 시대에 태어난 생명체." 카인은 슬픈 듯한 미소를 지었다. 대답할 수 없을 정도로, 아득하게 슬픈 미소를. "우리가 무엇이냐고?" 미노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리고 다시 물을 수도 없었다. 뼛속 깊이 세 겨진, 자신도 알고 있는 본성. 행해도 결과를 얹지 못하는 혼돈으로서의 힘. 태어나면서부터 죽은, 수도 없는 생명들의 죽음을 등지고 태어난 존재. 그 네 존재, '미노트'들이 태어난 이유는 오직 하나. 왕을 위하여... "태어난 존재들이지. 필요를 위해, 왕을 위해 만들어지고 태어난..." "그래서 그런 거야, 그래서." 둘의 목소리는 거의 동일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닮아 있었다. 아니, 정말 로 같은 것이었다. 카인은 조용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우린 나비일 뿐, 날개짓하기 위해 태어난." "날개짓하고, 우리가 행한 것이 거대한 노도의 파도를 이뤄 다가오는 것을 알지 못하는." "...무슨...그럼 어째서, 나도 똑같은 '미노트'인데 그 사실을 몰랐다는 거 지!?" 카인은 어깨를 으쓱해 보인 후 충고하듯이 고개를 살짝 좌우로 젖고는 말했 다. "너는 꿈속의 미노트, 꿈을 수호하는 자. 하지만 나는 꿈의 바깥에 존재하 는 미노트. 꿈을 파괴하는 자. 꿈과 꿈의 바깥은 엄연히 틀리니까." "...그럼...넌 히드레안이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그런 짓을 한 거냐?" 카인은 잠시 표정을 지우고 미노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그는 다시 가식 적인 미소를 얼굴에 살짝 띄우며, 평안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래, 그게 내가 행해야 하는 일이니까." 콰아앙! 미노가 내리친 바닥이 갈라지면서 넓게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내 투두 둑, 하면서 갈라진 틈이 넓어지고, 방 전체로 퍼져나가 마치 거대한 그물처 럼 퍼져나갔다. 미노는 자리에서 일어나, 약간 멍한 표정이 되어서 자신 을 바라보고 있는 카인의 뺨을 후려쳤다. 짝, 하는 시원한 소리가 나고 아이크는 눈을 지켜뜨면서 카인의 몸을 감싸 곤 미노를 노려보았다. 카인은 얼떨떨한 얼굴이었지만, 미노는 딱딱한 목 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넌 네가 태어난 이유 그대로, 네 의지 따위는 없이 살아가겠다는 거냐? 그딴 이유로 히드레안을 소멸시키는 거라고!? 결국 넌 네가 한 일을 정당화시키고 있을 뿐이잖아!" "그럼 어쩌란 거지? 내 생존의 이유와 내 의지가 끌리는 상황이 동일하다 면, 그럼 그것이 옳지 못한 건가?" 카인은 미소를 지우고 미노를 노려보았다. "나 역시 내가 원하는 것이 있어. 절대자유를 추구하는 나를 방해하는 존 재가 싫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이유가 내 본능을 지배하고 있다면, 그것도 잘못된 건가?" 아이크는 카인을 끌어안으면서 눈을 감았다. 조금 겁먹은 듯한 그녀의 행 동에 조금 멈칫히가는 했지만 카인은 거기서 말을 끝내지 않았다. "히드레안 드 이크립스! 수많은 생명의 절망과 원망, 질시와 눈물, 원한을 지고 있는 존재! 그에게 운명이란 것이 있다면, 그가 죽였던 수많은 존재 들의 원한이 해결되는 방법은 그것뿐이지 않나? 그가 행했던 수많은 죄악, 그 대가로 그가 사라지는 게 뭐가 나쁘지? 네 말대로 하자면 위대한 히드레 안님이 더 크나큰 죄악을 저지른 게 아닌가?" 미노는 싸늘하게 대꾸했다. "누가 죽었던 내가 알 바가 아니야. 중요한 건, 난 히드레안이 사라지는 게 그깟 수만 목숨 사라지는 것보다 더 싫다는 거야." 미노트. 꿈이라 불리는 단어. 또는, 나비라고 불리는 언어. ============================================================= ========= 가장 정상적으로 그려지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본다면 미노도 '이기적'인 캐릭터지요. 흠..어차피 모든 존재는 자기 좋을 데로 행하는 이라고 하는가? 이기적, 자기만 행하는 존재...-_- 음음. 뭐 나쁘다곤 생각 안해요.... 어쨌든 그게 틀린 것은 아니니까. 결국 사람은 자기가 제일 중요하니까. 정도가 심한 이기를 가진 사람을 우리는 비난하지만, 결국 우리도 적지 않 은 이기를 가지고 살아가는 거 아닐까요? -.-? 아......마왕 이야기, 왜 엽기적이고 생각없이 쓰는 글인지 아시겠지요? 제가 생각하는, 검증되지 않은 논리로 제멋대로 휘갈기는 글이거든요...+_+ 마왕 이야기-113 굴레-24 - 수백 수만의 목숨보다 오직 한 존재의 목숨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들을 향해 비난과 질시를 퍼붓겠지만, 말해봐요. 당신은? 이름 모를 위대한 왕 과 당신의 부모나 사랑스런 연인, 그리고 자식을 선택하라 한다면, 대답해 보세요. 당신은 누구를 선택할 거죠? 어차피 모든 존재는 자신만의 세계 속에 사는 이.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것들로 둘러싸인 세계가 더 중요한 거 아닌가요? 이기적이라고요? 글세요...어차피 세상은 불공평 한 곳이잖아요? 모든 것 에 많고 적음이 있는 법이라면, 소중한 것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옳겠죠. 그게 이기라고 불린다면, 그냥 '이기'라고 칭해두죠. 그렇지만, 부정하지는 말아요. 선택의 순간, 당신은 자신에게 저주를 퍼부 었다는 것을 알게 될테니까. -Kain과의 대화...그 19번째 장 누군가가 사라지는 것이 싫다고 말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그 존재에게 마 음을 기울이냐가 관건일 수도 있겠지. '사라진다'의 정의라는 것이 확실하 지 않을 수도 있는 법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말한다면, '사라진다'는 것이 싫다는 것은 그 존재가치 가 이미 자신에게 있다는 뜻이고 그렇다면 사라짐이 싫다는 것은 그것을 필 요로 한다는 말도 된다. 누구나가 그렇지만, 필요치 않은 것이 '사라지는 것'이 싫은 이유는 없다. 조각이나 그림이 '필요'하지 않지만 사라지는 것은 싫다고 말할 수 있다 고? 그 순간에 이미 그 조각이나 그림을 통해 무엇인가가 그대에게 전해졌 으니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동시에 사라지는 것이 싫다는 것은, 극히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자 신만의 생각일 수도 있는 것이다. 사라지는 것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 는 법이고, 그 이유를 충족시키기 위해 수도 없이 많은 존재들이 그렇게 행 해왔기에 이뤄지는 것이다. 그때에, '사라지는 것이 싫다'라고 말하는 것은 결국 누구도 아닌 자신을 위한 것이 된다. "...훗...아하하핫...과연, 시간이란 것은 그 무엇보다 위대한 힘을 지니 고 있군 그래. 잊었어? 네 백성들, 네 사랑하는 왕, 그리고 네 모든 것이 었던 것을 빼앗았던 존재를. 기나긴 시간이 세월에서 네 기억을 뺐어 간건 가? 그런 건가 미노트 아신레이져?" 카인의 어투는 신랄해져 가고 있었다. 하지만 미노는 눈썹하나 까닥하지 않고 대답했다. "맞아. 난 히드레안이 증오스러워. 영원을 살기에 잊을 수 없는, 그렇지 만 이미 빛 바랜 기억이 되어버린 내 모든 것을 앗아갔던 그라는 존재가. 이 세상의 누구보다 가장 증오스럽지." 아이크는 카인을 끌어안으면서 그런 카인이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게 하려 고 했지만, 카인은 아이크를 안아주면서도 끝까지 마노를 바라보며 대꾸했 다. "그렇다면 왜, 나를 비난하는 거지? 미노트 아신레이져..." 미노는 잠시간 침묵했다. 그가 내려친 바닥의 실금 들이 벽까지 파고들어 서 작은 돌조각이 툭, 하고 바닥으로 떨어져 내린다. 미노는 무심하게 까 지 느껴지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달싹대는 입술마저 메말라 보일 지경인 그의 모습은, 어떻게 보면 시체와 같았다. "너라면 견딜 수 있어? 영원히 혼자 남는 걸." 아이크는 더 꽉, 카인을 끌어안았고 카인도 그 말엔 대답이 없이 허망한 표 정이었다. "그래, 난 그가 증오스러워. 그를 내 손으로 죽이고 싶어. 그렇게 하고, 죽음으로 사죄하고 내 백성들에게로 가고 싶어. 하지만... 나도 결국은 죽 음이 두려워. 내 목숨이 이어지는 한은 살고 싶다고. 하지만 그 기나긴 세월을 누구와 함께 있지? 평생토록 고독하게? 아니면 잠시 스치는 인연에 만족하면서?" 아이크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작게 아롱졌던, 그렇지만 천 천히 굴러 떨어지는...카인은 그런 그녀의 눈가를 쓸어주면서 살짝 입을 맞 춰 주고는 다시 미노를 바라보았다. 정신적 파장에 심한 영향을 받는 그녀 로서는, 지금 미노가 내뿜는 살기와 카인이 지니고 있는 '언령의 파동'이 고통스러울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카인의 몸을 감싸고 있는 것은 거의 본능적으로 그를 지키 려고 하는 행동이란 것을, 카인은 잘 알고 있었다. '영원'을 누구와 함께 있는가. "히드레안을 난 증오해. 하지만, 난 그 외에는 누구에게도 감정을 느낄 수 없어. 이미 수도 없는 세월을 살아 왔기에, 그가 존재하고 내가 존재 해 왔기에, 그래서 그가 없다면 더 이상 내게도 감정이란 없어. 그를 통해 서 분노하고, 그를 통해서 즐거워하고, 그를 통해서 누군가를 자각하는 나 에겐..." 미노는 천천히 한발짝을 카인에게서 물러섰다. 아이크는 사라진 살기에 피 가 몰릴 정도로 하얗게 된 손의 힘을 겨우 풀었다. 깍지끼고 있던 팔목엔 피멍이 들어있었지만, 지금의 그녀에겐 별로 개의치 않아도 되는 일이었다. 살기는 사라지고, 미노는 안정한 것 같았다. "...그가 없다면, 세상도 없다." "히드레안이란 존재가 있기에, 세상이 성립하고. 그래서 히드레안이 없다 면 세상도 없다는 건가? 그럼 히드레안이 없다면...미노 넌 지금이라면 누 가 죽던, 아니...네가 인간 수만을 살해하는 것도 상관없다, 이건가? 무고 한 생명들을 죽이는 히드레안의 모습에 진저리 치던건 바로 너였잖아?" 미노는 대답했다. "상관없어. 이유 없이 죽이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할 뿐, 살인 자체를 거 부하는 것은 아니니까. 나에겐 상관없는 존재들이야. 그들에겐 나란 상관 없는 존재고. 사랑하는 연인이 슬퍼 눈물을 흘리건, 남겨진 가족들이 애타 하던...내가 그를 말렸던건, 단지 그가 그러는 것이 내 맘에 안 들어서 였 을 뿐이니까." "거꾸로 말하면, 히드레안이 없는 지금에선 누가 죽어도 상관 없다...?" 미노는 입을 다물었다. 생각하는 것도, 뭔가 망설이는 것도 아니라...그 냥 숨을 잠시 고르기 위한 행동. 그리고 미노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가 죽이는 것도 아니니까..." 카인인 진저리쳐질 정도로 냉혹한 표정을 지으면서 몸을 일으켰다. 아이크 도 그를 따라 몸을 일으켰고, 카인은 차갑게 내쏘았다. "그렇다면 날 비난하지마. 넌 너를 위해서 히드레안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고, 난 나를 위해서 내가 해야 하는 것을 행하는 거잖아?" "아니, 난 널 비난할 자격이 있는 것 같은데?" 미노는 그제서야 메마른 얼굴에 살짝 미소 지었다. 카인은 차가운 표정으 로 그런 그를 바라보았고, 미노는 대답했다. "넌 정해진 대로 움직이는 태엽인형일 뿐이잖아." 짜악 하는 한번도 시원한 소리가 울려퍼지고, 미노는 카인을 지나쳐서 걸어 가 버렸다. 멋지다 미노, 화려한 그 일격. 하지만 미소년의 얼굴에 손찌검하고도 오래 살 수 있을까? 이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그것은? 뭐 봐야 알겠지. ============================================================= ========= 아, 글발 자알~나간다~딸꾹! 역시 혈주란 좋은 거라니까아아아아~♡ 야아~피랴님, 매번 좋은 감상 주시네요?(아 얼큰하군....ㅡ_ㅡ) 흠....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나를 위해서 누가 죽어도 상관없어'라고 말하는 건 분명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기죠. 하지만 전 솔직히, 아프리카의 난민 일만명을 살릴 수 있 는 돈 만원이 내 손에 있고, 지금 내 친구가 그 돈 만원을 빌려달라고 하 면 친구에게 건내줄 것 같은걸요? 난 '그들을 모르고' 그들도 '나를 모르니까' 난 예수가 아니라서 오른 손이 한일을 왼손이 모르게 할 순 없다구요오~♡ 난 평범한 인간이고, 그래서 누군가에게 내가 한일에 대해 감사 받고 싶 고, 자랑도 하고 싶고, 나 하고 싶은 걸 하면서, 비난 받으면 주춤하는 그 런 인간이니까. 나를 모르는 존재에게, 아무리 내겐 소소한 것이라도 되받을 수도 없는 것 을 줄수는 없겠죠. 어차피 세상은 인과응보. 내가 배푼 선도 내게 돌아오고, 내가 배푼 악도 내게 돌아온다면...? 난 선한 행동을 하겠죠. 보답받을 거라는 것을 알고서. 어떤 형식으로 돌아오는 지 모르는 보답이지만. -0-; 눈 앞에 당장 보이는 보답을 원하는 것은 아니에요. 눈 앞에서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그 뒤가 '언제 돌아올지 모르 는 보답'을 위한 선행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난, 수도 없이 많은, 결국 평생토록 내가 모를 수만의 사람보다는, 내 눈앞 의 소중한 누군가가 더 좋아요~♡ 딸꾹! 취했나? ㅡㅡ;; 마왕 이야기-114 굴레-25 "결국 300년의 시한을 채우지 못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으시다면 왜 부질없 는 잠을 청하려 하시는지, 나의 왕이여." "그것도 모르나?" 그의 표정은, 무료하도록 조용하고 깊히 잠들 듯히 절망에 겨워있으면서도 생기가 돌았다. 그리고 그는 대답했다. "살고 싶으니까." 월광. 푸른빛이 도는 아름다운 셀레나가 고고하게 그 모습을 드리우고 있었다. 푸른 달은 소원을 이뤄주지만, 동시에 푸른 달은 차가운 광기. 카인은 발코니 가에, 아슬아슬하니 앉아서 거칠게 몰아치던 눈이 바로 자신 의 앞에서 튕겨 나가는 광경을 무척 심심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늘 그림자처럼 따라붙던 아이크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가 않았다. 하기야, 어차피 그녀는 '불완전'한 실험체. 카인처럼 외계의 공기에 오래 견딜 수가 없는 몸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일부러 카인이 이곳을 선택했는 지도 모르고. 이 세상엔 어차피 모든 존재는 '혼자'다. 누구도 '혼자'의 공간으로 들어올 수 없다. 받아들였다고 믿는 누군가, 존 재하는 환상들, 결국엔 자신이 만들어낸 것들일 뿐. 혼자만의 세계에서 사는 것, 그것이 모든 태어난 자들의 운명일 뿐. '운명'이 존재하는 한은. "계속 그러고 있으니까 아이크가 초조해 하던데. 카인." "흐음, 미노는 걱정해 줄 생각은 없는 것 같은걸?" 장난스레 대꾸하며, 말투도 장난스럽지만, 미노의 존재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이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미동도 하지 않는다. 도대체 저 '존재'에게 정 해진 길을 걷는 것 외에 남아 있는 것은 뭐가 있을까. 스스로 행하려 하 는 것을 행하는 자. 그 단어가 이렇게 무시무시한 것일 줄은 몰랐다. "그런 거야, 제이럴이란 건. 어차피 너와 난 대립하는 미노트...라고 칭해 지는 것들...왜 제이럴과 아렐에게는 '미노트'라는 단어가 제대로 붙지 않 는지 알아?" 카인은 살짝 다리를 감고 있던 팔을 풀었다. 발코니 밖으로 발을 쭉 뻗으 며, 시원하게 떨어져 내리는 눈에 온 몸을 맡긴다. 짧게 잘려져 있는 하 얀 머리카락, 희고 얇은 상의만을 덮을 수 있는 흰 로브자락이 그를 더 하 얗게 만들어 보인다. "...글세." "그건 우리가 꿈의 바깥에 있기 때문이지..." "알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말이니까, 이해하려고 하는 바보짓은 하 지 않도록 하지." "현명해. 아하하하핫" 필요할 때에, 적당히 터져 나오는 웃음. 보통 저런 웃음은 말을 잊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는, 약간의 공백 효과를 만 들어 낸다. 길게 끌리는 웃음을 한번 지어보시길. 순간 적으로 공백이 생겨버릴 테니까. 그리고 그 웃음의 뒷편에 숨어서 다른 이야기를 꺼내고 싶다면 그때가 바 로 적기, '말을 돌리려고 하는' 행동을 내보이면서 카인은 살짝 다리를 흔 들었다. "어쩔 거지? 너는?" "뭐 말이야?" "...네가 원하는 대로 히드레안이 깨어났잖아." 카인은 싱긋이 미소 지으면서 자신의 등뒤까지 다가온 미노의 목을 끌어당 겼다. 차가운 기온 때문인지 카인의 피부는 차가웠다. 끌어당겨, 그런 미 노의 귓가에 대고 카인은 살짝 속삭였다. "깨운게 아니야, 깨어나신 거지." "똑같은 거 아닌가...?" "나는 그저 알고 있었을 뿐인데?" 카인은 킥킥대면서 미노의 옷깃에 목을 묻었다. 반쯤 벌어진 소매사이로 살짝 닿는 혀끝의 감촉이 미묘하다. 미노는 움찔하면서 몸을 빼내려고 했 지만 의외로 카인의 손 힘은 상당했다. "뭘 하는 거야!" "헤에, 설마 처음?" "..." 왠지 할말이 없어지는 미노였다. 이 잔인한, 동시에 장난스러운, 그리고 더없이 냉혹한, 그리해서 순수한 이 존재를 이해하려면 아무래도 미노는 백 만년쯤 이 녀석을 따라다니며 일일이 연구해야 할지도... "상관없어 상관없어, 나도 처음이거든?" "무슨 짓이야 이 자식아!" 퍼억! 오랜만에 누군가의 뒤통수를 거세게 가격해 본 미노였다. 하지만 역시 실 력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법, 카인은 아픈 얼굴로 머리를 부여잡고 끼잉, 하고 투덜거렸다. "...헉...헉..." "아아, 매정하군 미노. 역시 히드레안 님이 아니면 안되는 모양이지? 한번 의 동침으로도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앗아갈 수 있는 존재, 아아, 그 이름 히드레안이라 함이니..." "죽어 볼 거냐....?" 살벌하게 가해지는 죽음의 공포 앞에서 카인은 무력한 자신을 발견하곤 해 맑게 웃으며 사양했다. 미노는 애써서 호흡을 가다듬었고 카인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이마에 둘러진 은색의 띠, '세례' 자국을 가린 거라는 것을 확연히 알 수 있는... "미노, 이거 알아?" "...뭘...?" "결국 세상엔 영원이란 없다는 거..." ============================================================= ========= ....음...-_-; 미노와의 '썸씽'같은거 만들지 말까 했는데....(불안불안..;) 죽음의 위기가 느껴지는군요...하....하핫....;;;; 마왕 이야기-115 굴레-26 "깨어나서...어쩌려는 건데...?" "깨어난 이상 살아야겠지." "네가 소멸하잖아!" 미노는 짜증 어린 목소리로 말했지만, 히드레안은 상관없다는 표정이었 다. 그는 그저 턱을 살짝 괴고, 무료한 표정으로 창 밖을 내다 봤을 뿐. "죽음도 삶의 일부라니까. 뭐, 어찌되던 별 상관이야 있겠느냐?" "내가 싫다고!" "...호라, 지금 고백이냐?" 퍽! 역시 말보다 주먹이 더 빠르고 간단한 의사표현이 될 수 있다. 맞아도 싸 다 히드레안. 미노는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쉬곤 말했다. "그래, 어차피 네 녀석은 내 왕이니까. 원하는 대로 해주면 되잖아. 따라 가 준다고!" "아아, 매력적인 한마디로군." 히드레안은 피식하고 웃었다. 미노는 빠직하고, 힘줄을 생성시키면서 한마 디 했을 뿐이었다. "...내 바보스러움이 원망스럽다..." 카인은 비웃었다. "잃을 거야. 많은 것을." "글세." 미노는 그렇게 대답하면서 얼어붙고 '있는' 얼음덩이에게로 손을 내밀었 다. 얼음의 포자들은 미노의 손끝을 타고 서서히 퍼져들어오고 있었고 카 인은 한숨을 가볍게 내쉬었다. "육신이 없다는 건, 세상을 느낄 수 없다는 거야. 기억을 잃는다는건, 그 런 거야...이내 널 잃고 소멸하겠지. 숨쉬는 법을 잃어버리면? 네 이름, 네가 행했던 것들을 잊게 되면? 그게 정말 너라고 할 수 있을까?" 미노는 대답했다. "상관없어, 그런 건..." 미노는 얼어 붙어가고 있는, 얼음이 천천히 번져오는 자신의 팔을 물끄러 미 내려다 보면서 대답했다. "일일이 따지면 정작 필요한 것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내 감정에 내가 충실하고 싶으니까." "그게...감정에만 호소하는 어리석은 짓이라곤 생각하지 않아?" "감정이란 가장 어리석은 것들이니까." "너 역시 어리석어..." 미노는 눈을 감았다. 목 끝까지 파고든 얼음은, 이내 그를 완전히 얼음 속 으로 휘감아 버렸다. 그리고, 그는 투명한 얼음으로 된, 히드레안의 육신 을 봉하는 또 하나의 결계석이 되었다. "카인..." 아이크는 카인의 목을 휘감으면서 그에게 매달렸다. 카인은 토닥대듯이 그 런 그녀를 안아 주었고, 카인은 천천히 중얼거렸다. "아이크, 여기서 나갈까?" "...그 여자...따라 갈 거야?" 카인은 싱긋이 웃으며 그런 그녀의 뺨에 살짝 키스해 주었다. 아이크는 불 안한 눈이었고, 카인은 상당히 즐거운 미소를 지었다. "너도 재밋을 거야. 충분히...허락해 주실 거죠 히드레안님?" 히드레안은 그 긴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면서, 멍하니 있던 눈길을 돌렸 다. 카인의 눈에는 그런 히드레안의 얼굴에 스치고 있는 미묘한 권태감이 확연히 보였지만, 정작 히드레안은 그걸 느끼지 못했는지 선선히 대답했다. "그래...오랜만에 즐기는 유희...네가 날 더 즐겁게 할 수 있을 지도 모르 겠지..." "감사합니다, 나의 고귀하신 왕이여." 히드레안은 살짝 인상을 찌푸리면서 그런 카인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카인은 미소를 지우지 않고 그런 히드레안에게 마주 웃어줘 보였 고, 히드레안은 한숨을 내쉬며 조용히 말을 이었다. "단, 지나친 장난은 금물이다." "네에, 물론이죠..." 미묘한 웃음. 그리고 나른하게 늘어지고 있는, 멈춘 시간의 온기. ============================================================= ========= 시간의 온기. 좋아하는 말입니다. ^^ 시간은 가장 거대한 힘이죠. 미노가 '좋은게 좋은거야....'라고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결국 시간이란 거대한 힘 앞에서 빛바랜 것이 되어버린 증오때문이 아닐까 요? 마왕 이야기-116 에필로그epilogue "그래서 결국 말하고 싶은 게 뭔데?" 삐딱하게 대답하는 소년을 향해서 히드레안은 짧게 말했다. "가르쳐줘야 알아듣는 바보로 화이트가 키운거냐?" "이, 이게!" 벌떡 일어나는 검은머리의 소년을 흘낏 보면서 히드레안은 픽, 하고 한번 웃어줬을 뿐이다. ....어린애 놀리는 게 그렇게 재미있냐 히드레안? "결국 그런 거다. 존재와 존재란 결국 서로가 본 모습만이 진실인 것이 지. 이중 삼중의 다른 모습 모두가, 자신이 만든 '타인에게 보여지는', 그 리고 '보여주고 싶은' 모습인 것일뿐...." "그래봤자 자신을 얽매는 것이잖아." 소년은 투덜대면서 다시 자리에 앉았다. 히드레안은 조용히 말을 이었다. "그렇지만, 그 달콤한 굴레의 속박을 거부할 수 있는 존재또한 몇 없지..." 그리고 히드레안은 소년을 끌어당겨서 품에 안았다. "만지지마 이 변태야아!" 바둥대는 소년을 끌어안고는 부비적 대며 온기를 느끼는 히드레안의 얼굴 엔 굉장히 뭐라 이루 말할 수 없는 잔인하게까지 느껴지는 냉혹무비한 '장 난끼'를 가득히 남고서 슬금슬금 소년의 허리께로 손을 뻗혔다. "아악! 건드리지 마! 놔! 살려줘 미노!" - 아아...제발 싸우지 마세요 두분... 한숨섞인 목소리와 함께 미노는 쪼르르 달려와 찻잔을 영차, 하고 탁자 위 에 올려놓았다. 커다란 탁자보다 조금 작은, 동그란 자주빛 눈과 살짝 살랑살랑 거리는 검 은색의 앞머리를 늘어드린 귀여운 소년. 어울리게 목에는 흰 리본이 약간 처졌다 싶게 매여져 있었다. 어린애 취향이라면, 얼마든지 슬쩍 납치해 보고 싶어지게 만드는.... "이건 싸우는게 아니야 미노." "맞아아아아! 괴롭히는 거라고!" - 그래도 감정에 충실한 게 옳은 거겠죠? 미노는 살짝 웃으며 발돋움해서 찻잔에 차를 따랐다. 히드레안은 조금은 서글픈, 그렇지만 고요한 눈을 한 체로 대답했다. "...그래...그게, 옳은 것이겠지." 명랑한 목소리가 그런 그 둘을 방해했다. "아아, 차 시간이야? 나도 한잔 줘 미노" 퍼캉! 날아가는 찻잔을 여유롭게 피하며 받아들기 까지 한 카인. 그런 그의 뒤에 는 불쾌한 얼굴의 아이크가 뒤따르고 있었다. 미노는 냉정하게도 외쳤다. - 너 줄건 없엇! "흑...아이크으! 제가 나 쓸모없고 무능한 월급만 때어먹는 하급 샐러리 맨 이라고 무시해애!" 가차없이 그런 카인을 밀쳐버리며 더 냉정하게 대꾸하는 아이크였다. "무시 당해버려." ...결국 누가 뭐라고 해도 즐거운 한때였다... 물론 아니라고 반항하듯이 외친다고 해봤자...내 맘이다. 후훗. ============================================================= ======= 끝났나....? 아...끝났겠지 뭐.....=_=; 지금 시각 12시 15분.....훗....완결....; 이제 다음 편인 희망이라 이름하는 함정만 쓰면.... 이름 길다....-"-; 읏...치기 힘들겠어... 곧 이어질 뒤의 두 챕터들은 금새 끝납니다. 왜냐면 마지막 편이 될 피는 물보다 진하다(확정!)가 꽤 길어지거든요. 으 음... 위의 글이 이해가 안가실 수 밖에요. -_-; 이건 본편을 보신 분들만 이해 가....+_+(비겁한 다음 작품 조회수 늘리기 술책...ㅡㅡ;;) 기뻐해 주세 요! 제 작품이 드디어 4개 통신망에서 연재가 되고 있어요! ㅠ_ㅠ 에. 에. 감사합니다. __;; 앞으로도 인터넷 쪽의 퍼감 의뢰는 시그널양에게, 통신망의 의뢰는 사양이 에요. -_-;;; 다음의 파트는 히드레안의 '두번째 빛'이 나옵니다. 첫 번째 빛인 아인 의 '어이없는 죽음' 이후로 많은 돌맹이를 맞았던 그 불운함을 딪고...-_- ; 이 '두번째 빛'은....훗....큭큭큭.... (뭐, 뭐냐구 펜릴!!!!!) 마왕 이야기-117 [6편 기념 좌담회] 펜릴 : 하아....드디어 6편까지 끝났으니... 카인 : 수고하셨습니다~ 펜릴 : 아앗, 수고했어 카인! 사랑스러운 것...고생 많았지? 미노 : 왜 카인만 특별 취급이얏!? 거기다 날 망가뜨렸겠다 작가!! 펜릴 : ...미안, 지나친 음주는 역시 몸을 망치는 거였군. 미노 : 그러게 작작 그 혈주인가 뭔가 얻어 마시라고 했잖아! 혈주반 월주 반 얼큰하게 취해서 글발을 휘날려? 뻥치지마 이 작가얏!! 그것도 글이라 고 쓴거야!? 펜릴 : .............................. 히드레안 : 호오, 긴장감을 조성하는군. 펜릴 : 히드레안 님, 혹시 미노한테 이렇고 저렇고 이런저런 일들을 시켜보 고 싶지 않으세요? +_+ 괴.롭.혀.주.고. 싶.은.데. 미노 : ......(오싹) 히드레안 : 후훗, 이 몸이 그런걸 할 것 같은가. 거기에 $^%&한 일을 추가 시킨다면야 생각해 보도록 해주지. 펜릴 : 오호호호호호홋! 추가 해 드립니다. +_+ 미노 : 그만둬 이 빌어먹을 것들아아아앗!! 카인 : 작가님, 이 양갱 맛있는데요? 펜릴 : 오오, 너야말로 최고의 캐릭터구나 카인! 카인 : 훗, 별말씀을. +_+ 다 이것도 살기 위한 방편이죠. 펜릴 : .....(역시 위험해) 히드레안 : 그보다 다음편에선...역시 '삐이이'가 나오는 건가? 펜릴 : 네에! 당연하죠! +_+ '삐이이'가 나오시고, 음...또 굴레에서 미뤄 져 버린 18금씬을 당당히 등장시킬 겁니다! 나에게 부끄러움이란 이제 없 다!!!!! 카인 : 하하하핫, 사실 매번 18금 씬을 강조해서 조회수를 늘리려는 술책 은 아니시구요? 펜릴 : (흠칫).................너....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어....-_- 카인 : 진실은 결국 밝혀지기 마련이라죠. 후훗. 펜릴 : 할 수 없군요. __; 히드레안님, 다음 편에선 본격적으로 부탁드립니 다. 히드레안 : 맞겨만 두라니까. 마왕 이야기-118 희망이라 이름하는 함정-1 "...흑...으흑..." "시끄러, 그쳐 꼬마." 새빨간 붉은 눈을 가지고,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자신을 올려다보는 금발의 소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히드레안은 한숨을 내쉬었다. 고작해야 쬐끄 만게 8살이나 될까 말까한 주제에 묘하게 선정적이다. '나도 어렸을 때 저랬나'라는 무척이나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끼치는 발언 을 함부로 하면서 히드레안은 가볍게 혀를 찼다. 소녀는 고개를 들면서 중 얼거렸다. "도와줘요...아파요...." "어디가 아픈데." 히드레안은 결국 쪼그리고 앉아서 주저앉아 우는 소녀를 살펴보았다. 구, 궁상맞아졌군 히드레안. 쪼그리다니... 소녀는 천천히 손을 자신의 가슴으로 가져가더니 옷에 매여져 있는 끈을 풀 어냈다. 흰 옷자락을 걷어서 보여준 하얀 가슴은, 뚫려 있어서 가는 갈빗 대와, 그 안에서 뛰고 있는 심장을 보여주고 있었다. 핏줄이 움직이고, 파 란 혈관으로 피가 움직이는 것이 보인다. 신경들이 끊어져 끊임없이 떨어 져 내리는 검은 피 속에서 심장은 움직여 대고 있었다. "...도와줘요..." 순식간에 피투성이로 변해버린 소녀는 바닥으로 쓰러져 버렸다. 히드레안 은 가볍게 턱을 괴고 있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이런 유치한 악몽 이 언제적 꿈이었더라? 이런걸 보고 울면서 누구한테 매달리거나 '찝찝 해'따위를 중얼대면서 일어날 정도로 신경이 예민하거나 깜찍하거나(?) 귀 엽지 못한 히드레안이었다. 악몽이라면 누가 뭐라고 해도, 그 망할 에리나쟈드 정도는 나와야지. ...악몽을 무슨 심심풀이 장난감으로 여기고 있는 히드레안, 그러다 정말 큰코다쳤음 좋겠다. "세상은 어차피 다 이기적인 거야. 난 내가 원하는 것만 하고 싶고, 그렇 게 평생 살거야." 회색의 긴 머리카락이 나풀댄다. 무너져 버린 소녀의 몸에서 솟아난 아인 의 긴, 그래서 출렁대는 조금 까칠한 회색 머리카락이 히드레안의 뺨을 스 쳤다. 당당한 미소, 당당한 몸짓. 하지만 눈동자가 있어야 할 곳엔 아무 것도 없다. "...미안해, 하지만 이게 내가 한 최선의 선택이야." 히드레안은 아인의 눈을 들고서 뒤에서 나타난 자신과 똑같은 모습의 존재 를 바라보았다. 서글픈 표정으로, 슬픈 눈으로, 양손에 든 피투성이 눈을 히드레안에게 내밀며 그녀는 눈물을 흘렸다. 소름 돋도록 오싹한 기분, 정 말로 오싹해 질 정도다. [우리아기, 언제까지 꿈을 꿈이라 여기지 않을 거니?] 미소지으며 목을 감는 칸나. 보랏빛의 머리카락이 조금 움직인다. 뺨에 닫는 따뜻한 감촉. 이내 등에서 새카만 날개가 뻗어나와 칸나의 몸을 갈라 버리고, 거기엔 미노가 서 있었다. 피로 물든 체, 세상 모든 것보다 증오 스럽다는 듯이 히드레안을 바라보면서. "너 때문이야! 모든 게 다! 어째서 왜 네가...내 모든 것을 빼았는 거지?" 히드레안은 무심하게 대꾸했다. "뺏고 싶었거든." 미혹처럼 걷히며, 밝은 빛이 가득히 들어찬다. 카인은 미소 지으면서 그런 히드레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꿈의 파괴자, 꿈 을 건너는 자, 꿈을 사라지게 만드는 존재. "이건 꿈이 아니에요." "그럼 뭔데." "이건 과거, 그리고 미래. 현재가 아닌 것들." 히드레안은 핏, 하고 한숨과도 같은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귀찮다는 듯 이 손짓했다. "어차피 난 어느 곳에나 존재하는 자. 상관없잖아?" 슬픈 듯하지만 동시에 상쾌한 미소를 지으며 카인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리고 히드레안은 살짝 감았던 눈을 떴다. 허공에서부터 빛이 비춰져 내 린다. 턱을 괴고 있던 팔을 내리고, 고개를 든다. 돔 형식으로 만들어진 넓은 천장은 텅 비어있었다. 눈과, 달빛이 새어들고 있을 뿐. 넓디넓은 그 방엔 아무 것도 없었다. 그냥 하얀 대리석 의자 하나. 다른 방처럼 예술적 요소나 화려함, 장식 같은 요소는 조금도 존재하지 않 은 체 그저 반짝이는 달빛만이 부서져 내리는 방안. 달빛은 넓은 방안을 다 비추지 못하고, 히드레안이 있는 곳에서 겨우 움직 이고 있을 뿐... 온통 새카만 어둠으로 들어찬 곳은, 끈적끈적한 암흑의 진흙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허공에서부터 눈가루가 떨어져 내린다. 하지만 그것은 히드레안의 몸에 닫 기도 전에, 그냥 허무하게 사륵하며 사라지는 빛으로 된 듯한 눈들이었다. 길게 늘어진 검은 머리카락 가득히 빛이 출렁대서 밤바다를 보는 듯한 광경 을 만들어 냈다. 길게 뻗어난 속눈썹 아래의 눈은 무심하게 그저 뜨여져 있을 뿐이었다. 이마에 빛나고 있는 금색 빛 도는 저 황금색 눈동자는, 그 가 잠든 동안에도 단 한번도 감기지 않은체 계속해서 뜨여져 있었을 것이 다. "...오랜만이군, 룬." 룬의 모습은 허공에 투명하게 투영되고 있었다. 하지만 한순간 넋을 잃게 할 정도로 아름다운, 손대기도 감히 뭣할 정도로 아름다운 그의 모습은 조 금의 변화도 없었다. 아무리 천하의 히드레안이라도, 그의 앞에선 그저 평범한 존재에 불과한 것 일 정도로. 추한 것이라곤 일말도 담겨져 있지 않은, 오직 아름다움으로 이루어진 혼돈 의 대행자이자 혼돈. 우연이라 불리는 유지, 황금빛 전령 룬. "잠에서 깨어났나?" 룬은 서늘함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그렇게 물었다. 미혹이란 그의 목소리 에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면 추한 것이므로. 히드레안은 무료하다는 듯 이 대답했다. "...반쯤." "그런가?" 룬의 발치는 피투성이로 물들어 있었다. 허공에 투영되고 있는 이유는, 그 피투성이 존재에 아마 그가 '기생'하고 있어서 일 것이다. 세상에서 가 장 추악한 존재를 선택해서 그 안에 깃드는 가장 아름답고 고결한 존재. 그래서 '기생목'또는 '변태기생나무'따위로 불리는 룬. 음음...뭐 상관하 지 말자. 원래 이 이야기에서 정상적인 존재가 나오면 그게 이상한 것이 다. 다시 상기하자. 이 이야기의 제목은 마왕 이야기이다. "무슨 일인지 물어보지 않아도 될 것 같군." 룬은 그저 히드레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피투성이로 물들어 있는 존재. 그의 발치에 있는, 하얀 옷자락이 모두 붉게 물들어 있는 작은 소녀. 피 로 물들어 버린 금발, 그리고 감겨져 있지만 분명히 '붉.은.색'일 눈동 자... "부탁하지." "...대가는...?" 룬은 간단히 대답하면서 천천히 사라졌다. "먼저 깨어난 존재에게 물어봐라." 히드레안은 한심하게도 바닥이 피로 물들고 괴로움으로 몸부림치고 있는 소 녀를 바라보다 짧게 중얼거렸다. 그것은, 상당히 귀찮음과 무료함으로 물 들어 있었다. "...더러워지잖아..." ============================================================= ========= 여기서부터 히드레안님의 '시점'이 변화한 상태입니다. 음....원래 저 가운데 이야기가 더 있지만, 그건 '외전'이 아니라 본편인 관계 로..+_+;; 드디어 앞으로 모든 이야기에 나올, 히드레안님의 '절라 싸가지없는'성격의 기초토대가 나오는군요. 어린애 같은 히드레안님은 곧 후반부에 복귀하실 테지만...이번 편에선 저 싸가지 없는 모습을 질리도록 보시길. 오호호호호호호호홋...-_-;; 마왕 이야기-119 희망이라 이름하는 함정-2 미노는 쪼르르, 하고 걸어와서는 차를 나르려다가 바닥에 쓰러져 있는 소녀 를 보고 깜짝 놀라서 뒤로 물러섰다. 하얗게 질려버린 저 오동통하고 귀여 운 얼굴. 으음... 왠지 괴롭혀 주고 싶다는 욕망을 샘솟게 하는 저 표정을 봐라, 어떻게 해주 고 싶지 않은가? - 주...주인님...사람이 쓰...쓰... "쓰러져 있군." - 으윽! 바닥이 더러워지잖아요! 누가 청소하는데! 히드레안은 빽빽거리는 미노의 목소리를 들으며 귀를 막고는 고개를 조금 돌렸다. 파닥파닥 거리면서 날개를 펼쳐서 겨우 영차, 하고 날아오더니 찻 잔을 달캉달캉 거리면서 히드레안의 손위에 올려놓는 모습은 정말 영락없 는 귀여운 10살 소년이었다. 혹시 이름만 미노고 사실은 동명이인이라서 서로 다른...쿨럭! - 치워야 하지 않아요 주인님? "깨어날 때까지 기다려야지..." 히드레안은 찻잔을 기울이면서 귀찮다는 듯이 한번 미노를 노려보았다. 그 눈빛에 찔끔한 미노는 군말 없이 찻쟁반만 들고 눈을 데굴데굴 굴리고 있었고, 히드레안은 '가슴이 뚫려서 심장이 바닥으로 떨어질 지경인데도 안 죽고 살아있는' 무척 괴상한 존재를 내려다보며 차를 계속 홀짝댔다. 미노는 옆에서 보고 있기 뭐한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 저기요오...주인님... "왜." - 저러다 죽으면 못 깨어나니까 치료해 줘야 되는거 아니에요? 히드레안은 약간의 침묵을 하며 찻잔을 살짝 기울였다. 그러다 이내 힘없 이 중얼거렸다. "...그래야 되는 것 같군." - 주인니이이이임! ...히드레안, 결국 건망증마저 걸려버린 거냐? 어쨌든 히드레안은 찻잔을 미노에게 도로 건내주고, 걸음을 옮겨서 바닥에 서 몸부림치고 있는 소녀를 향해 다가갔다. 폐 쪽이 망가졌는지, 호흡이 곤란해 곧 죽을 듯 하지만 뭔가가 그녀의 죽음을 지체하고 있었다. 히드레안은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천천히 그녀의 가슴께를 밟았다. 우 직, 하면서 드러나 있는 가슴뼈가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부러져 위로 튀어 오른다. 거세게 소녀는 비명을 울리면서 손을 위로 뻗었지만, 개의치 않 고 히드레안은 중얼거렸다. "이제 정신이 좀 드나...?" 컥, 컥하고 고통스런 신음을 내뱉으면서 뜨여진 소녀의 눈은, 피처럼 붉은 블러디 레드의 빛을 지니고 있었다. 히드레안은 묵묵히 다시 그녀를 내리 밟았다. "아아아아아악!!" "깨어나, 위대한 존재. 신들 중 가장 순수하면서 타락한 존재." 꿈틀, 하고 소녀의 몸이 축 처졌다. 히드레안은 발을 떼어내고 툭툭, 하 고 무성의한 발놀림으로 소녀의 몸을 쳐 본후, 자신이 약간 힘을 너무 과하 게 줘서 소녀의 심장이 터져버렸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는 그 결과 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중얼거렸다. "...미노, 치워라." - 너무해요오오 히드레안 님! 우엥...! 청소하기가 얼마나 힘든데! 히드레안은 애써서 자신의 실수를 무시했다. 그리고, 그때 소녀의 몸이 순간적으로 꿈틀, 하면서 움직였다. 사후경직이 라고 생각한 히드레안은 힐끗 그녀를 내려다보았다가 서서히 연한 금빛이 그 몸을 휘감아서 서서히 황금색을 띄는 고치를 만들어가자 눈살을 찌푸렸 다. "귀찮게스리...진작 나올 것이지..." 연한 금빛을 띄면서 박동이라도 하는 듯한 그 금색빛을 띈 알은, 천천히 제 모습을 갖춰가면서 모양새를 만들었다. 투둑, 하면서 갈라진 고치 속에서 팔이 뻗어져 나오고, 금빛의 반짝대는 머 리카락을 피로 물들인 존재가 히드레안을 노려보았다. 그 눈동자는...'황금빛'이었다. 매혹적이면서도 달콤한 황금색 빛을 띈 눈동자. 피로 물들어서 더 아름다워 보이는, 순결한 이. 16살쯤으로 보이는 그 존 재는, '남성'이었다. 히드레안은 숨쉬기가 괴로운 듯 파랗게 질린 얼굴로 겨우 호흡하고 있는 그 존재에게 손을 뻗었다. 그냥 아무런 생각 없이, 만져보고 싶다는 그런 느낌이 들어서 그랬을 뿐... 손에 다왔는 감촉은 따스했다. 피의 비릿한 내음은 그리 맘에 들지 않았지만, 연한 금빛이 떠도는 그는, 히드레안의 마음에 쏙 들었다. 살짝 어리는 황금빛의 기운이 탁! 하고 히드레안의 손길을 쳐낸다. 히드레 안은 눈살을 찌푸렸다. 고약한 성격의 기생나무 주제에...하고 중얼대면 서 히드레안은 그를 감싸고돌고 있는 금빛 기운을 못마땅한 듯이 노려보았 고 금빛 기운은 그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이 살짝 위협적으로 히드레안을 향 해 일렁여 보였다. 쳇, 하면서 결국 입을 다물어 버린 히드레안은 뒤를 돌아보면서 미노에게 말했다. "치워 미노." ============================================================= ========= 갤러리 란에 가셔서 'SD미노'를 찾아 보시길...-_-; 여기나오는 미노 군의 모습이 딱 그거랑 비슷...쿨럭!! ;; 어서 쓰자...어서...드디어 18금....+_+ 마왕 이야기-120 희망이라 이름하는 함정-3 한번 뜨여졌던 금색의 눈동자는 쉽사리 다시 떠지지 않았다. 히드레안은 자신의 하얀 옷자락이 피로 물드는 것은 별로 개의치 않고 그를 안아든 체 욕실로 들어섰다. 언제라도 모든 것이 가능하게, 라는 히드레안의 말에 충 실히 따른 그의 인형들은 따뜻하게 데운 물을 준비하고 공손하게 그의 앞 에 무릎을 꿇어 있었다. 인형은 말 잘 듣고 시키는 데로 구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괜히 실이 엉켜서 이상하게 움직이는 것은 문제가 있겠지. 히드레안은 엉 뚱한 생각을 하면서 그를 인형의 도움을 받지 않고 피로 물든 옷을 벗긴 뒤, 욕탕 안에 뉘였다. 살짝 물이 출렁댔다가 다시 탐욕스럽게 그 몸을 삼 킨다. 피로 잠시 물이 붉게 물들었다, 이내 흐려진다. 히드레안은 손짓해서 인형을 쫓아 버리곤 그를 내려다보았다. 어두운 검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욕조, 히드레안의 취향에 따라서 '절대 로 욕조라고 할 수 없는' 크기를 지닌 욕조는 주변을 장식하고 있는 늘어뜨 려진 포도 넝쿨들에 의해서 왠지 모르게 은은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손을 뻗어서 톡, 하고 뺨을 건드려보지만 미동이 없다. 물끄러미 계속 쳐다보고 있어 주건만 도대체가 무심하게 반응이 전혀 없는 그를 내려다보며, 히드레안은 아까 보았던 그 금색의 눈동자가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에 그냥 눈동자를 뽑아낼까 생각해 보았다. ...그러면 노려보지 않잖아. 그렇게 생각한 히드레안은 살짝 고개를 젖고는 천천히 손을 뻗어서 인형들 이 두고 나간 천을 끌어당겨서 액체로 된 비누에 적셨다. 참고로, 히드레 안은 목욕용품에 약간의 관심이 있어서 미용을 위한 허브 비누, 또는 허브 방향제 등등을 제조해 의외로 인간계에서 짭짤한 수익을 거두었다는 여담 이...음음, 상관없나? 하얀 거품이 일어나고, 히드레안은 거추장스럽게 팔랑대는 흰 로브를 벗어 서 바닥에 대충 던져 놓았다. 알아서 인형들이 깨끗이 치우겠지 하면서, 그는 희게 드러난 목을 덮고 있는 소매 없는 티와 화려한 장식이 되어있는 허리를 감싸는 천이 둘러진 검은색의 조금 긴 바지뿐인, 정말이지 거짓말 하나 안보태고 침실에 들어가서도 좀체 보기 힘든 간단한 옷차림을 한 체 로 욕조에 담가져 있던 그를 천천히 안아 올려서 몸을 닦았다. 아, 아마도... 히드레안의 'H'자라도 알고 있는 자가 이 모습을 보았더라 면, 당장 절벽으로 달려가서 '난 죽어 버릴거야!'라던가 '못 볼 걸 봤군... 아하하하...'하면서 눈을 뽑으리라. 하지만 히드레안은 무표정하니, 그 길고 치렁치렁한 머리카락을 바닥에 흩 날리도록 내버려 두곤-미노가 보았다면 거품 물고 기절할-욕조의 가장자리 에 기대앉아서 난생 처음 해보는 일을 제법, 그럭저럭 잘 해내고 있었다. "...음..." 옅은 신음소리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가슴 쪽은 아직 덜 아물었는지 약간 피부가 붉은 빛을 띄고 있어서 조심스 레 칠하거나 비누를 사용하지 말았어야 하는데...역시 환자 간호의 기본도 모르는 히드레안이었다. 어째 좀 기특하다 했더니 믿을게 못된다. 히드레안은 다시 그를 욕조 안에 기대게 하면서 비누가 칠해지지 않은 천 을 하나 더 짚어서 천천히 닦아주었다. 거품이 보글, 하면서 사방으로 퍼 졌다가 피와 함께 스러진다. "...아...읏..." ...거기거기! 왠지 신음소리가 기묘하다고 생각하면서 이상한 상상하지 마라! 아니라고 변명하면서 눈 돌리고 있지만, 자신의 마음을 속일 수 있을 것 같 은가? 어쨌든 청소년은 즉각 눈 돌리도록! 약간 붉게 달아오른 뺨으로, 그는 손을 들어서 무의식중에 히드레안의 손 을 쳐냈다. 별로 힘도 없는 동작이었지만 히드레안은 순순히 손을 거두곤 천을 다시 바닥으로 던져놓았다. 하여튼...저렇게 정리하는 버릇을 어려서 부터 안 들여놓으면 나중에 고생하는 건 옆에서 시중들어야 하는 사람이다! 애들 버릇은 제때에 들여놓도록 하고, 어쨌든 히드레안은 그의 턱을 끌어당 기면서 살짝 뺨을 톡톡 쳤다. "정신 들었다는 거 알고 있다. 눈 떠." "아윽..." 히미한 신음소리를 내면서 겨우 눈을 든 그의 눈동자, 여전한 아름다운 황 금빛이다. 히드레안은 그 은은하면서도 부드러운 황금색 눈동자를 쳐다보 다가, 입을 열었다. "네가 어째서 그 인간의 몸에 깃들어 있는거지?" "...이거...놔...주십시오..." 떨리는 목소리로, 애써서 한마디 씩 꺼내는 그는 히드레안의 손에 잡혀 있 다는 자체가 굴욕이기라도 하다는 듯이 눈가를 가늘게 떨고 있었다. 욕조 의 가장자리에 반쯤 비스듬히 기대서 물에 젖어든 아름다운 소년의 턱을 끌 어당기고 있는 잔인한 마왕이라... 훗, 아마 소녀용의 약간 '므흐흐한' 소설에서라면 아주 잘 팔릴 상투적인 이 장면, 정말 지겹게도 많이 우려먹어서 더 이상 아무도 쓰지 않을 것이 라 사료되지만 우려먹는 누군가를 원망하겠지만 별로 상투적이지 않다고 우 기도록 하겠다. 히드레안은 물에 젖어서 눈가를 가리는 머리카락들을 쓸어 넘기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왜, 네가, 그 인간의 몸에 깃들어 있는 거냐고 물었다." "...욱...제발 놔...주..." 첨벙! 히드레안은 거칠게 손을 뿌리쳤고 그는 욕조 안에서 몸을 가누지 못하고 등 을 부딪쳤다. 다행히 그리 뾰족하게 깎인 부분이 없어서 다치지는 않았지 만, 지금의 몸으로서는 심한 충격인지 그는 콜록, 하고 기침을 내뱉았다. "네가 왜 지금 여기 있는 거고, 왜 그 인간의 몸 안에 있는 거냐?" 히드레안은 다시 손을 뻗어서 그를 안아 올렸다. 어깨를 치면서 반항하긴 하지만, 히드레안은 개의치 않고 그를 안아 올려서 물에 빼낸 후, 바닥에 늘어져 있는 로브 자락 위에 얹고는 대충이나마 로브로 그를 감싸주었다.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억울하다는 듯이 히드레안을 올려다보는 그 황금빛 눈 동자. 히드레안은 비웃으면서 말했다. "소용없을걸. 이건 인간의 육체가 아니라서...고통도 없거든." 히드레안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오자 쳐내려고 팔을 다시 내밀었지만, 히드 레안은 간단히 나꿔채서 한쪽 팔을 꽉 쥐었다. 있는 대로 바둥거려 보지 만, 힘의 절대적 차 때문인지 이내 그의 팔은 하얗게 피가 빠져나가 질려버 렸을 뿐이었다. "윽...윽..." 잡힌 팔을 빼내 보려고 계속 바둥 대는 모습이 꽤나 재밋는 지, 킥...하고 히드레안은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그는 천천히 그를 로브에 감싼 체로 어 깨에 둘러맸다. 바둥대면서 거의 비명처럼 그는 소리쳤다. "놔줘요...제발...!" "시끄러워. 룬이 먼저 깨어나는 쪽에게 대가를 받으라 했으니 난 받아야 겠다. 설마...이 나에게 아무런 대가도 없이 무엇인가를 요구할 생각이었 나?" 순식간에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는 것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은 듯 했 다. 그래, 변태색골대마왕한테 잡힌 돈 없고 힘없고 덧붙여 든든한 백 그라운드 도 없는 아름다운 미소년의 운명이야 뻔하지 않는가? ...헉, 이게 아니다. 어쨌든 히드레안은 그렇게 욕실을 나섰고, 인형들은 질서정연하게 그의 앞 에 나타났다가, 욕실을 정리하러 사라졌다. "깨끗하게 방 하나 정리해 두도록. 마력으로 절대 결계를 쳐서. 창도 없 고 나갈 길이 없는 곳으로, 워프하는 방식으로 들어가는 곳을 비워둬. 제 일 넓고 깨끗한 걸로." "날 놔줘요! 제발!" "닥치지 않으면 혀부터 뽑아 버린다. 제법 달짝지근할 것 같은데." 또 파랗게 질리면서 우물우물 거리는 얼굴을 흘낏 보면서, 히드레안은 그 냥 피식 웃었을 뿐이었다. 겨우 다시 꿈에서 깬 후에 느껴보는 즐거움이었 다. 바깥에선 아마도 300년의 시한이 지난 후 일테니 새로운 세기의 즐거움이라 고 할까? ============================================================= ========= 히드레안의 두번째 빛, 등장이군요. 얼~이번엔 남자네요. -_-;(설마 세번째 빛은 또 남자?! 아님 중성!? 양성!) 훗...눈치 까신 분이라면 깔린 복선을 토대로 저사람의 '이름'까지 아실 수 있을지도...? +_+? 눈에 너무 보이는 복선이라 오히려 '죽을래! 것도 모를까봐!'소리 듣겠군요. 아자~18금18그음~♡ 랄라라랄라라~18금~18금~ 오늘 혈주와 식인꽃 안주를 얻어먹었는데... 딸꾹. -_-; 이거 꽤 맛있네요..냥냥...? P.S - 그보다 란쨩!! 감상 주우~감상 주우~ㅠ_ㅠ 왜 안주우우우우우우~~~~~~~~~~~(외로운 외침....-_-;) 마왕 이야기-121 제목 변경입니다...-_-; '함정'보다는 덫이 더 잘어울리는 것 같아서요. ^^; 이러게 말은 세번 고쳐야 된다고 하더니...ㅡㅡ ============================================================= ========= 희망이라 이름하는 덫-4 히드레안에게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는 일이 막 생겨남과 동시에, 그의 말 을 전해들은 미노에겐 일거리가 하나 늘어났다. 히드레안이 늘 이 성안에 손님만을 들이는 것이 아니라, 죄 없고 가엾고 불 쌍한 인간들을 납치하거나(꼭 인간인 경우만 있는 것도 아니지만) 감금하 기 때문에 감옥과 같은 용도로 사용되는 방들도 꽤 있었다. 그리고 그 방안에 또 한 사람이 갇히게 된 것이다. 사실 이건 별로 큰 관 심거리는 돼지 못하긴 했지만...그래도 일단은 가엾다는 생각은 해두는 미 노였다. 히드레안의 명령대로 '절대 마력의 결계와 창문도 없는, 그리고 넓고 깨끗 하고 들어가는 방식도 워프인' 곳을 깨끗하게 치우긴 했지만, 이 방이 또 더러워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으랴? 한숨처럼 막 시트를 정리해 두는데, 공간이 열리고 히드레안의 모습이 나타 났다. 어깨에 매고 있던 짧은 금발과 같은 금빛의 눈동자를 가지고 있는 소년을 아직 정리도 체 못해놓은 시트 위로 내팽겨 치면서 히드레안은 가볍게 머리 카락을 쓸어 넘겼다. 미노는 경악하면서 외쳤다. - 주, 주인님! 아직 시트 정리도 다 못했는데! ...별걸 가지고 다 경악한다. 히드레안도 같은 생각이 들었는지 어쩔 줄 모르고 그 조그마한 날개를 파득 파득 대면서 이리저리 왔다갔다 난리를 치고 있는 미노를 '뭐 씹은' 표정으 로 보다가 짧게 한마디 했다. "나가." - 그치만 아직 시트 정리도 안 끝났고 커튼도 조금 손 봐야 하고 하다못해 장식용 꽃이라도 한송이 더 꽂... 히드레안은 더 인상을 굳히면서, 싸늘하기 짝이 없는 표정으로, 차갑게 눈 을 흘겼다. 그리고 그 얼굴은 미노를 그 자리에서 굳게 만들기 충분했다. "나.가." 결국 불쌍하고 귀여운 미노를 울려버린 히드레안. 미노가 우엥, 하면서 워프 해 사라지자 히드레안은 흐트러진 시트 위에서 흰색의 로브로 반쯤 몸을 감싼 나신의 미소년을 바라보았다. ...어째 좀 위험하게 흘러가는 것 같지만, 왜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좋은 게 좋은 거' 후훗, 절규하지 마라. 어차피 인생은 아름다운 거다.(의미불명) 수치심으로 붉어질 대로 붉어진 얼굴을 하고 있는 그는 입술을 꾹 깨물고 있었다. 히드레안은 여전한 무표정으로 뚫어져라 금빛이 돌고 있는 그의 눈동자를 응시하다 입을 열었다. "내가 어떤 존재란 것은 잘 알텐데. 어째서 네가 여기에 있는 거지?" "...나도...그런 것을 알 리가 없잖습니까..." 애써서 내뱉는 말은, 난생 처음 해보는 거짓말 때문인지 조금 떨리고 있었 다. 히드레안은 하, 하고 조금은 기가 막히다는 듯한 한숨을 내쉬더니 손을 뻗 어서 그대로 그를 후려쳤다. 퍽! 하는 조금 둔한 타격음이 울려 퍼지고, 다시 털썩하고 침대 위에 쓰러 지는 그의 입에선, 신음소리 한마디 흘러나오지 않았다. 히드레안은 들려 와야 할 당연한 '비명'을 생각하며 잠시 그를 내려다보았으나 역시 숨소리 외엔 들려오는 것이 없다. '꽤나 지독하군'이라고 생각하면서 히드레안은 입을 열었다. "인간의 육신에 깃들더니 이제 거짓말까지 배웠나?" "...알고 있다면...왜...묻는 겁니까...?" 히드레안은 그가 고개를 시트에 파묻고 있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금빛의 눈 에 안타까워하면서 무신경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글세, 가장 순수하면서 가장 타락한 존재. 빛이자 그림자인 신들의 왕. 네 입에서 그 말이 듣고 싶기 때문이라고 해둘까..." 히드레안은 손을 뻗어서 그의 머리칼을 움켜쥐었다. 당겨져 올라오는 금빛의 머리카락, 약간의 반항이 있었지만 결국 그 치뜨여 진 금빛의 눈동자를 바라보면서 히드레안은 만족했다. 모멸감으로 가득 차 있는, 그 순수하게 느껴지지만 동시에 음란한 표정을 한 체, 그는 히드 레안을 쏘아보았다. "말해봐. 왜 그 인간의 몸 안에 네가 깃들어 있고, 여기에 있는 거지?" 심하게 깨물어서 인지 약간의 피멍이 맺혀 있는 입술이 반쯤 열리다 다시 닫혔다. 히드레안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려고 발버둥치는 모습이 오히려 불쌍해 보일 정도였지만, 냉정하기 짝이 없는 얼굴로 히드레안은 그의 입에 서 대답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내가..." 겨우 그제서야 히드레안이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그는 모멸감을 견디고 입 을 열었다. "...내가...스스로 타락했기에..." 그를 잡고 있던 손을 놓으며, 히드레안은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마이아 마이안, 스스로 타락하다니... 고귀하던 빛의 주신의 이름도 갈 데 까지 다 간 모양이군 그래..." 그의 비웃음에 마이아는 싸늘하게 대답했다. "선택에 후회는 없습니다." 그런 그의 냉정함 섞인 당돌함은 히드레안의 마음에 썩 들지는 않았지만, 그 금빛의 눈동자가 새침하게 내리 깔리는 것은 꽤 맘에 와 닫았다. 히드 레안은 다시 한번 손을 뻗어서 그의 뺨을 매만졌다. 반응은 참으로 빠르게 도 와서, 다시 잔뜩 붉어지면서 그런 손을 쳐내 버리곤 조금 물러나서 로브 로 몸을 감싸버린다. 어지간히도 미움받는 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행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히드 레안은 '귀엽군'이라는 말도 안돼는 생각 따위나 하면서 안 그래도 안하무 인에다 남의 말 안 듣기로 유명한 자신의 성격을 온 천하에 공개하고 있었 다. "내가 싫은 모양이지?" 빤히 보이는데 괜히 묻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겠지만, 왜 인간 심리가 그렇 다고 확답을 받아야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확답을 받아 도 전혀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미친놈'이라는 부류도 있기는 하지만 히드레안은 '미친놈'이 아니라 '미치신 분'이니까 다행히 거기에 속하지는 않을 것이다. ...'미친놈'과 '미치신 분'의 차이가 뭐냐고? 미친 상태에서 얼마나 힘과 돈과 든든한 백 그라운드를 가지고 활동할 수 있느냐의 차이이지 뭐. 그 냥 넘어가자, 굳이 안 들어도 다. 마이아는 그를 바라보고 있을 뿐, 일체의 말을 하지 않았다. 신의 몸에서 인간의 육신으로 쫓겨난 대다가 갑자기 이런 싸가지 없고 성깔 은 더럽고 힘만 무식하게 센 대다 잔인하고 치사하고 퇴폐적이기까지 한 놈 의 손에 떨어졌으니 어찌 막막하고 암담하지 않을까? 그렇다, 차라리 대답하지 않는 게 옳다고 사료되는 바이다. "대답하지 않을 건가?" "...어떻게 대답하면 됩니까? 그러면 당신의 맘에 들 거고 날 놔주겠습니 까?" 싸늘하게 들리는 대답, 확실히 이제서야 겨우 조금 이성이 돌아오는 모양일 지도. 히드레안은 미소 지었다. 그가, 마음에 들었다. ============================================================= ========= 하아....잠수 깼군요...ㅜ.ㅜ 내일 시험... .....뭐.....좋은게 좋은거라지~아하하하하핫...... 아하하하하...ㅜ.ㅜ;; 마왕 이야기-122 참고로 홈페이지 연재에는 비축분이 없습니다.....^^ 고로 매일매일 두세편씩이 아닌 여러편이 올라오는 날은 펜릴의 컨디션이 무지무지 좋은날..+_+; ============================================================= ========= 희망이라 이름하는 덫-5 미노는 놀랍게도 히드레안의 머리카락이 상당부분 잘려 있는 것을 보고 다 시 한번 뒤로 넘어갈 뻔했지만 다행이 그런 일은 없었다. 곧 그의 머리카 락이 원래대로 됐기 때문에. - 주, 주인니이이임...이 길고 고운 머리카락이, 머리카락이이... 울면서 절망에 빠지려고 하는 귀찮게 달라붙는 시끄러운 괴생명체를 떨구면 서 히드레안은 짧게 말했다. "시끄러워. 그 녀석이 하도 시끄럽게 놔달라고 소리치는 통에 좀 묶어 놨 을 뿐이야." - 영력봉인의 결계를 치시면 될 걸 가지고 어째서, 어째서요...이 긴 머리 카락으로... "....시끄러워." 결국 퍼억, 하고 차여서 구석으로 굴러간 불쌍하고 가엾은 미노군. 정말 동명이인 아니야? 진짜 불쌍하기 짝이 없다. 차라리 전의 미노라면 꼬시다고 통쾌하게 맞다가 벼락에 굽히는 한이 있더라도 불쌍하진 않았는 데. 히드레안은 차마, 그 모멸감으로 떨리는 눈동자가 마음에 들어서 그런 짓 을 해버렸다고 말하지는 못했다. 마왕이라는 자신의 존재가, 그를 구속한 다는 것이 지독히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그 눈동자. 순수하면서도 타락 한, 신들 중 가장 빛나는 이. ...그런 말을 했다가 미노한테 또 '변태라고 그러잖아요 그러니까아!'라는 등의 소리를 들을까봐 입을 다문 히드레안의 정신연령은 이제 진화해서 거 의 7세에 육박하고 있다. 성장기 아동이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 거짓말하기 시작하는 나이는 대략 7세 에서 8세 중반. 아아, 이 어찌 대단한 변화가 아닐 수 있으랴? 미노는 결국 우엥, 하고 다시 도도도 뛰어가 버렸고 히드레안은 자신이 입 고 있는 무척 헐벗은 듯한 옷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근처를 둘러보았다. 이내 걸어나온 인형들의 손에 들린 옷을 보고, 그는 한순간이나마 '귀찮 다'는 생각을 할 수 없는 자신이 행복한 건지에 관해 생각해 보았고. 이내 그것마저 귀찮다는 것을 느끼곤 그냥 인형들이 하는데로 몸을 맞겨 두 었다. - 엉엉엉...주인님은 맨날 나만 구박해... 훌쩍훌쩍 대고 있는 미노를 안쓰럽다는 듯이 한번 봐준 후, 마이아는 그가 가져온 옷을 어떻게 이리저리 돌려보다 한참 고민한 후 주섬주섬 주워 입 기 시작했다. 아마도 한번도 '옷'이란 것을 입어본 적이 없는 그로서는 도대체 그것이 무 엇인지 궁금하겠지만, 그렇다고 인간의 몸으로 나신을 한 체 다닐 수도 없 잖은가. 조금 헐렁하기는 했지만 그럭저럭 단정한 검은색의 정장은 마이아에게 잘 어울렸다. 목까지 올라오는 상의와 조금 타이트하다고 생각되는 바지, 허리에 감도록 되어있는 검은 천을 어떻게 하는지 몰라 조금 쩔쩔매고 있자 미노는 울면서 도 다가와서 묶어 주었고, 어떻게 보면 치마로 오인할 만큼 치렁대는 천을 허리에 감고 어색해 하고 있는 마이아를 내버려 두고선 다시 구석에서 훌 쩍댔다. "..." 생소한 감각에 잠시 그 옷의 감촉을 느끼면서 자신의 몸을 둘러보고 있는 마이아의 모습이 자칫 덜떨어져 보일 수 있으나, 큼큼! 신이다. 그런 불경 한 생각하지 말자. 마이아가 옷을 다 입고 얌전하게(?) 앉아 있자 미노는 훌쩍대면서도 머리카 락을 복잡하게 꼬아서 만든 듯한 팔찌를 다시 마이아의 손에 채워주려고 했 다. "...아...그건 차지 않아도 돼요." - 하지만 주인님이 건걸 제가 함부로 빼낼 수도 없잖아요. "전 여기서 도망 갈 수 없잖아요? 그걸 걸면 숨조차 쉴 수 없어요...제발, 걸지 말아주세요." 부드럽고 다정한 미소를 띄우면서 살짝 부탁하는 그 태도를 바라보다 순간 넋이 나가버린 미노였으니...아, 그가 왜 자애의 대명사라 불리는 지 알 수 있는 대목이 아닌가? 미노는 잠시 망설이다가 한참 더 생각해 보다가 말을 이었다. - 에...그럼 주인님이 볼 때에는 끼고 계셔야 해요? "예, 그렇게 할께요...고마워요." 미노는 팔찌는 그냥 방의 구석에 던져두었다. 커튼으로 사방을 둘러놓고 가운데의 침대와 침대 옆이면 으레 두는 작은 탁자, 탁자의 위에 놓여진 금 실의 자수가 놓여 있는 천 위에 올려져 있는 화려한 장식을 하고 뽐내는 화 병 속의 꽃들. 어쩐지 넓지만 쓸데없이 공허한 방안, 미노는 조금 둘러 보다가 친절하게 말했다. - 뭐라도 좀 더 들고 올까요? 너무 빈 것 같은데... "...책...책을 들고 와 주실 수 있나요?" - 책? 아아 물론... 미노는 고개를 끄덕이고 사라졌고, 마이아는 피곤을 처음으로 느껴보면서 침대 위에 엎드렸다. 방안의 모습이 가물가물하게 보인다. 그러다 바닥 에 놓인 머리카락으로 꼬은, 히드레안이 걸었던 팔찌를 바라보다 피식, 하 고 헛웃음을 터트렸다. "룬, 나의 몸에 깃든 의지여." 일렁, 하면서 순간 마이아의 몸에 옅은 금빛이 떠돌더니 룬의 모습이 떠올 랐다. "나를 불렀나, 타락 신." 그의 목소리는 차갑게 느껴졌지만 따스했다. 찬란한 금빛으로 뒤덮힌 모습 을 하고 자신의 눈앞에 서 있는 존재를 보면서 마이아는 눈을 감았다. 그 는 조금은 씁쓸한 듯이 미소 짓고 다시 입을 열었다. "날...이곳으로 데려온 이유...뭔지 좀 알려주겠어요?" "네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그런가...그런가요..." 마이아는 다시 눈을 떴다가, 감았다. 연하게 반짝이는 금색의 눈동자가 사라지자, 룬은 물끄러미 응시하던 눈길 을 거두었고 마이아는 느릿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내 죄가 깊이 타락하매... 그 죄, 더 없이 깊어 그 모든 존재보다 높고, 더럽고, 추악함일지어...그의 분노를 사 순결하던 모습은 잃고 타락한 전신 으로 대지에 조롱 받으며 떨어지노니, 감히 누가 나를 경배할 것이요? 오 롯하게 높이 올려졌던 찬양의 잔은 내려지고 내 신전은 피로 물드는 것 을..." 후훗, 하면서 허망한 웃음을 짓는 그를 내려다보던 룬은 입을 열었다. "너는 세상에서 가장 타락한 존재. 그렇기에 나를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일 한 혼. 묻겠다. 나는 네가 원하는 것을 이룰 존재에게 데려다 주었으나 네가 원치 않으면 다시 돌아가게 할 수도 있음이니, 말하라. 어떤 것을 원 하나." 마이아는 눈을 감은 체로 조용히 대답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신이 아니니, 누구의 힘을 빌리던 상관없겠지요." "올바른 선택이다." 천천히 고개를 묻고 있던 마이아의 입에서 약한 신음소리가 들려왔고 이내 그는 흐느끼면서, 애처롭게 중얼거렸다. "...하지만...왜 하필 그입니까...? 왜?" 룬은 천천히 그 모습을 감추며 대답했다. "말했잖느냐. 네가 원하는 것을 이룰 유일한 존재라고." ============================================================= ========= 누군가 그렇게 물으시더군요..ㅡㅡ; 히드레안은 '끝까지' 사악한 거냐고.... 음...말씀드리자면... 그럼 누가 끝까지 사악합니까? -_-; 마왕 이야기-123 의미깊은 숫자, 123. -_-;;;; 란쨩~!!!! 감상이 10도 넘개 밀렸쪄요~!! >. ============================================================= ========= 희망이라 이름하는 덫-6 히드레안은 공간을 이동해 들어가자 마자 철썩, 하고 뺨에 다왔고 바닥으 로 떨어져 내리는 것을 보았다. 검은색의 윤기 도는 팔지. 미노가 때줬을 게 분명한 그 팔찌가 바닥을 구 르고 있자 영문모를 분노가 살짝 그에게 깃들었다. 마이아는 정작 던져 놓 고도 자신이 던지지 않았다는 듯이 냉정한 표정으로 그런 그를 바라보고 있 었고, 히드레안은 입을 열었다. "양쪽에 묶이고 싶은 모양이지?" "날 놔줘요." "아직도 헛소리 중인가? 넌 내 성에 들어왔어. 어떻게 하던지 내맘이라 고, 비록 룬이 모셔왔건 말건." 마이아는 짧게 말했다. "날 놔줘요. 동일한 선상에서 대화하길 바랍니다." 어이없을 정도로 당당한 황금빛의 눈동자. 신들의 왕, 모든 빛의 중심, 그러나 타락한 자의 눈. 거침없이 히드레안에 게 대드는 그 성격은 별로 좋다고...보기엔 좀 그렇지만, 어쨌든 충분히 아 름다웠다. 히드레안은 당돌한 요구를 하면서 자신을 바라보는 그를 살짝 고개를 꼬면 서 바라보았다. 일부러 입혀놓은 검은색 옷이 상당히 타락한 분위기에 일 조하면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빛이면서 그림자인, 모든 것을 포용하 는 존재다운 분위기는 별로 아니지만. 그에게선 일말의 신성력도 느껴지지 않았다. 말 그대로 '타락한' 존재. "...웃기는군..." 히드레안은 가볍게 손을 위로 들었다 아래로 내렸다. 그리고 마이아의 몸도 위로 떠올랐다가 아래로 곤두박질 쳤고, 콰당, 하고 바닥에 부딪쳤다가 그 반동으로 구석까지 주르륵, 하고 밀려가 버렸다. 약간이라도 신음소리가 나오길 기대했던 히드레안이었지만, 지독하게도 끝 까지 그런 소리는 내지도 않는 그였다. 인간에 육신이란 것은 본디 고통 을 통해서, 몸 안의 감각이라는 기관을 통해서 모든 것을 인지하도록 만들 어져 있다. 즉, 고통을 느끼면 그 반작용으로 고통을 느끼느라 다른 곳에 감각을 돌리 지 못함이니, 생각과 논리적 중추를 담당하는 뇌가 제 기능을 순간적으로 할 수 없음으로 '정신이 없는'이라고 표현하는 순간이 생기게 되고, 당연하 지만 육체가 먼저 반응해서 고통에 따라 그 고통을 표현하는 방법, 비명이 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 어떤 존재도 나와는 동일 할 수 없다." "...놔...주십시오." 헐떡대면서 겨우 그가 내뱉은 한마디는, 히드레안의 안 그래도 안 좋다고 알려질 대로 알려진 그의 성미를 건드렸다. 그러게 사서 말조심하자. 괜 히 건드리면 피 볼 정도로 성깔 더러운 사람은 주변에 널리고 널렸음이다. "착각하지 마라. 네가 원하는 것의 열쇠는 내가 쥐고 있어. 내가 원하는 데로...라는 거다." 천천히 걸음을 옮겨서 히드레안은 쓰러져 있는 마이아의 앞에 섰다. 가쁜 호흡소리가 귓가에 스칠 정도로 들려온다. 비명소리를 억누르려고 해서인 지 숨소리가 약간 억눌려 있었다. "...당신이야말로...착각하지 말아주십시오..." 쿨럭, 하고 메마른 기침을 한번 내뱉은 후 마이아는 고개를 지켜들고 히드 레안을 바라보았다. '신'이면서 '타락'한 존재인데, 어째서 그는 이렇게 당당할 수 있을까? 모든 능력을 박탈당하고 경배 받고 오롯하던 그 천상에 서 대지로 곤두박질 쳤건만. "난... 당신에게 구걸하려고 온 게 아닙니다." 퍽! 한번 더 발길질이 가해졌다. 차가운 대리석의 감각이 등에 와 닿고, 이번 엔 진득한 피가 입가에서 배여 나온다. 마이아는 입을 손으로 가리면서 바 닥을 짚었다. 핏줄기가 새어나오는 느낌, 속이 뒤집혀서 내장이라도 튀어 나올 것 같았다. "맘에 안 들어." 히드레안은 중얼거렸다. 상당히 지루한 감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말의 뜻을 전달하기에는 전 혀 모자람없는 말이었음은 확실하다. "마음에, 안 들어. 내게 그따위로 말하지마." ...결국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10세 이하의 존재는 모두 아동이라는 것이 극명하게 밝혀지는 순간인가. 누가 그랬나, 히드레안이 그래도 조금 발전 했다고......음, 누가 그랬는지 말해줄 필요는 없다. 어찌됐던 중요한건 마이아가 다쳤다는 것.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지 마라. "....쿨럭...쿡...세상 모든 게 당신을 위해서 존재하나 보군요...히드레 안 드 이크립스..." 히드레안은 손을 내밀어서 그의 머리카락을 잡아챘다. 금빛의 눈동자. 선 명한, 그래서 아름다운...짜증나도록 아름다운 눈동자. 히드레안은 천천 히 한쪽 무릎을 굽히고, 피로 물들어 있는 그의 입술을 핥았다. 인간의 피, 따뜻하지만 그 비릿한 감촉. 도대체 어떤 마족이 자서전에 '달콤하고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을 지니고 있 는 것! 그 이름은 피!'라고 적었는지는 몰라도, 피는 어디까지나 비릿하 고, 구토증을 유발하는 물질을 포함하고 있으며, 높은 영양소를 지니고 있 지만 동시에 높은 감염율을 지닌 물체일 뿐이란 말이다! 왜 마족이 피를 마시며 광분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인지... 큼큼, 히드레안의 행동은 단순히 '핥는다'라는 의미 외에는 없다는 것을 위 의 예시를 들어서 강조하는 바이다. 마이아는 흠칫하면서 손을 들어서 히드레안을 밀치려고 했지만, 나머지 한 손으로 내민 손을 잡아채고는 히드레안은 개의치 않고 마이아의 입술을 핥 았다. 떨어져 내리는 붉은 핏방울의 비릿함과 속을 뒤틀어 버리는 고통에도 불구 하고, 자신의 입술에 와 닫아 있는 약간 차가우면서도 부드러운 감촉을 지 닌 혀끝의 감각만이 머리 속을 지배해 가고 있었다. 아아, 결국 금단의 영 역에 마저 빠지는 것인가 마이아? "...무...슨...!" 철썩.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 기분 좋은 소리. 마이아는 피묻은 입술을 옷소매로 문지르면서 아프지도 않으면서 뺨을 만지 작대고 있는 히드레안을 바라보았다. 양손이 잡히지 않은 것을 천우신조 (天佑神助)라 여기면서 그는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의 열을 최대한 식히려 고 노력했다. 쳇, 결국 금단의 영역은 아직 멀고도 멀었다. 안타까움에 한숨은 그만 쉬도록 하고, 히드레안은 헐떡대고 있는 마이아를 노려보더니 중얼거렸다. "...꽤나 부드러운 몸이군..." "뭐...뭐...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겁니까!" 그렇게 소리치면 폐에 안 좋을 텐데, 역시나 쿨럭 대면서 몸을 숙이는 마이 아의 모습을 봐서라도, 괜한 흥분은 몸에 나쁘다는 것을 확실히 기억하고 있자. 특히 배를 맞았을 때에는. 그것도 무지막지하게 거칠게 맞았을 때 에는 더더욱더. "내가 무슨 생각을 하건 그건 너와는 관계없는 일이지." "윽...쿨럭쿨럭..." 한웅큼의 피를 더 쏟아내면서 마이아는 몸을 숙였다. 아무래도 복부가 상 당히 아플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역시 비명은 입 밖에도 내고 있지 않았 다. 놀라운 의지력이라고 할까, 사실은 아픔을 못 느끼는 걸까? "나와 거래하겠다라...." 히드레안은 매서운 미소를 지었다. 조금만 더 다가가면 날카로운 가시덩쿨에 찔려서 목숨을 잃을 지도 모를 정 도로 냉정하고 차가운 미소. ...왜 7세 아동이 성인보다 더 잔악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당당하게 그 것은 '선악판별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조건을 들어봐 줄 수는 있지." 하지만 그 실체는, 선악판별력이 있는 7세 이하 및 이상의 아동은 오히려 어른들이 자신들이 무지함으로 인해 그들의 보호를 받는 존재라 아동을 굳 게 정의해 버림으로 그 안에서는 얼마든지 '잔인해' 져도 된다는 것을 지각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정확한 관념이다. 고로, 제발 평소에 애들 교육 잘 시키자! 히드레안 같은 존재가 두 번 다시 좀 안나오게! ============================================================= ========= 히드레안님은....ㅡㅡ; 보는 것은 즐겁지만... 내 주변에 있다면 절대적으로 피하는 대상 1위의 인물일 겁니다.. 절.대.적. 으로!!!!! >.<;; 마왕 이야기-124 희망이라 이름하는 덫-7 아프다라는 것. 즉, 고통이라 불리는 것... 그 감각이라는 것이 인간의 육신을 움직이게 한다. 고통도 없고 감각도 없는 신의 몸에 비해서 인간의 몸은 너무나 많은 것들 에 자극받고 움직인다. 고통, 피의 움직임, 소리, 촉각, 피부에 다가오는 모든 대기의 움직임들... 그래서 그들은 신을 찬양할 수 있는, 그 자각하는 것들을 표현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으리...불완전하기에 완전을 꿈꾸는, 필멸하기에 불멸을 소망 하는 아름다우면서도 어리석은 존재들... 그 육신에 깃들어서야, 그들을 이해할 수 있다면, 신은 전능한 것일까...아 니면 인간과 마찬가지로 불완전함을 지닌 완전체를 지향하는 존재일까... 마이아는 흐릿한 정신으로 눈을 떴다. 느껴지던 고통은 이제 거의 사라져 있었고, 몸의 감각이라는 것도 '불쾌 감' 없이 제대로 움직이고 있는 듯 했다. 다만 조금 멍한 기분이 들었는 데 아마 잠에서 덜 깨서 일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는 자신의 눈 위에 하늘하 늘 늘어져 있는 검푸른 물체를 치워냈다. 결이 곱고 기분 좋은, 은은한 시트러스 계열의 향이 떠도는 검푸른 빛의 머 리카락. 검은 색이지만 아주 자세히 보면 푸른 빛이 떠도는 것이 보이는 그 아름다 운 머리카락의 주인을 마이아는 기억하고 있었다. 따뜻하고 부비대자 기분 좋은 감촉이 드는 것의 근원지를 찾아서 그는 손 을 조금 더듬대 보았다. 손에 잡히는 것은 부드러운 느낌이 드는 입술. "...유리..." 저도 모르게 그녀의 이름을 중얼대면서, 마이아는 살짝 그녀의 입술에 입 을 맞추었다. 조금 움찔하는 것 같더니, 이내 혀가 입안으로 들어와 잠식 해 버리고선 마이아의 머리를 끌어당기는 손이... ...뭔가 조금 이상하다는 느낌이 마이아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잠이 덜 깨긴 했지만 그래도 유리가 언제 이런... "읍...뭡니까 히드레안! 이런 파렴치한!" 철썩, 하는 소리가 다시 한번 울려 퍼지고 히드레안은 통산 두 번째로 맞 은 자리를 또 맞은 후 마이아를 바라보았다. 길게 늘어진 검푸른 머리카락 은 사방으로 제멋대로 물결치면서 늘어져 있었고 심연처럼 검은 눈동자 는 '내가 뭘 잘못한 거야'라는 불만을 가득 담은 체 마이아를 노려보고 있 었다. 이마의 세 번째 눈동자는 늘 어딜 응시하는지 모르니 알바는 아니지 만, 어쨌든 간에 마이아는 경악해서 다시금 외쳤다. "어째서 당신이 여기 있는 겁니까? 거기다 이건...!" 기절했다 깨어났다. 일어나 보니 낯선 방안에 낯선 남자(또는 여자)와 누워있다. 그리고 둘다 알몸이다. 뭐 이런 간단한 공식에 들어맞는 경우는 당연히 이것뿐이지 않는가. 술 취해서 지나가던 남자(또는 여자)를 꼬셔버렸...이, 이게 아닌가? 마이아는 이제 불타는 토마토가 되어서 히드레안을 한 대 더 후려칠 기세였 고, 히드레안은 아주아주 불만으로 가득 찬 체 입을 열었다. "...다친 거 치료해 주고...내 침실에서 자게 해줬더니...먼저 이상한 이 름 부르면서 키스하더니...왜 이 몸을 때리는 거냐?" "그, 그딴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째서 지금 둘 다..." "...벗고 있느냐고?" "그겁니다!" 마이아는 차마 자신의 입으로는 할 수 없었던 말을 히드레안이 해주자 냉 큼 대꾸했고, 히드레안은 맞은 자리를 만지작대다가 천천히 상체를 일으켜 침대 가에 기대면서 중얼거렸다. "그냥 감촉이 좋길래." 철썩! ...맞아도 싸다고 사료되는 바이다. 미노는 아침식사를 마이아 앞에 차려놓으면서 구석에서 궁시렁대고 있는 히 드레안을 바라보았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새침하게, 꼭 여자처럼 고개 를 내리깔고 있는 마이아와 덮쳐놓고 '처음엔 다 그런거야'라고 느끼한 대 사를 지껄이는 골빈 사내녀석 처럼 침대 구석에서 투덜대는 히드레안의 가 운데에 끼인 미노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 저기...홍차 드실래요? "예, 잘 마시겠습니다." 예의바르게 한마디하고는 토스트와 홍차로 아침식사를 하는(도대체 어디가 아침이라는 기준이냐고 묻지 말지어다. 잤다 깨면 무조건 아침이다) 마이 아의 소맷자락을 살그머니 잡아당기면서 미노는 의문을 던졌다. - ...무슨 일 있으셨어요? 탕! 탁자 위에 홍차 잔이 '깨지기 직전'에 떨어지는 소리를 내면서 추락했고, 미노는 찔끔 하면서 마이아의 미소짓고 있는, 그러나 일그러진 얼굴을 바라 보면서 살기보다 더 무서운 무언의 압력의 공포를 맛보았다. - 제가...뭘 물었나 보죠...? 오...호호호호.... 어울리지 않게 어설픈 웃음까지 흉내내면서 구석으로 찌그러 드는 미노. 그러게 누가 그런 바보 같은 행동하라나, 연인들끼리 싸웠을 때에는 괜히 건드리지 않는 것이 속 편한 법이다. 마이아는 토스트를 마저 우물대고는, 딱 잘라서 입을 열었다. "잘 먹었습니다." "잘 먹었으면 이리 와서 다시 나좀 봤으면 하는데." 싱긋, 하고 꽤나 부드러우면서도 동시에 가시 돋친 미소를 지으면서(어떻 게 미소에 가시가 돋칠 수 있는지 생각하지 마라) 딱 잘라서 마이아는 대꾸 했다. "싫은데요. 변태마왕님의 얼굴을 제가 봐서 무엇할까요?" "...그 마왕이 곤히 잘 때 입술을 덮쳤던 쪽은 누구더라?" "......덜 깬 상태에서 한 행동마저 그런 식으로 자기 합리화시키다니 역 시 지독한 과대망상증 환자 분 답. 군. 요!" 순간적으로 허공에 거대한 금빛의 호랑이와 능글맞게 생긴 시커먼 뱀이 엉 켜서 싸우는 모습이 투영되었던 것은 결코 환상이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히드레안은 순간적으로 발끈했지만, 원래 이런 싸움에서는 '먼저 화내는' 쪽이 지는 법. 미노는 커다란 식은땀을 흘리면서 주춤대고 있었고, 히드레안도 시비조로 전향해 날카로운 말을 날렸다. ".........덜 깬 상태라고 우긴다고 해서 키스했다는 사실이 없어지는 것 도 아니라지 아마. 잘난 결벽증 주. 신. 같으니라고." "............아하, 그러신가요? 그럼 억지로 옷을 벗기고 침실에 끌어들였 던 것은 뭐라고 변명하실 겁니까? 변태 색. 골. 마왕 님?" "...............이상한 짓도 당하지 않았으면서 과민반응 하는걸 보면 당 하고 싶었던 모양이지 결벽증에 억. 지. 심. 한. 주신?" 머, 멋지다. 등뒤로 지나가는 한줄기의 싸늘한 번개가 느껴지는 순간이 아닌가 하고 홀 로 감탄하는 가운데 미노는 우엥, 하면서 어째서 이렇게 무서운 공기가 떠 돌아야 되는지 알지 못한체 구석에 쪼그려서 달달 떨고 있었다. 둘 사이에 흐르는 공기는 이제 험악의 정도를 넘어서 극악으로 치닫고 있었 고 처음엔 안개정도였던 것이 지금은 냉혹무비 한 천둥번개를 일으키는 폭 풍지대로 화해 있었다. 사내녀석들이 쪼짠하게 좀 같이 벗고 잔 걸 가지고 그렇게 까지 과민 반응 할 필요는 없을텐데, 라고 말한다면 그대의 심성은 참으로 곱다고 볼 수 있 다. 그러나 절대로 심성이 곱다고는 입이 찢어져도 말할 수 없는 성깔 더럽기로 는 신중에서 그 대적자가 없다고 하는 마이아와 역시 세상에서 누가 감히 그와 성격 나쁜 걸로 대결하랴, 하고 불리는 히드레안이었으니 만큼 절대 로 한발자국도 못 물러날 정도로 팽팽한 접전을 보이고 있었다. ...문득 생각해 보는 건데. 도대체 핵심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 ========= +_+ 쿡...이것은 18금의 전조일뿐.... 기대하시라아아아아아~!!! (ㅡㅡ;) 마왕 이야기-125 지금 이거 5연참인가...? 과연 내가 전설의 13연참을 할 그날은 언제인지.....ㅡㅡ;; ============================================================= ========= 희망이라 이름하는 덫-8 "이상한 짓이라는 것을 정의한다면 자는 동안 도대체 무슨 짓을 당했는지 저로선 모르니 전혀 할 수 없는 노릇이지요, 변태 색골 바. 람. 둥. 이. 마 왕 씨." 아아, 이제 '님'에서 '씨'로 강등 당하는 순간이군 히드레안. 불끈하고 이마에 푸른색의 힘줄이 불거져 나오는 것을 느끼면서 히드레안 은 도끼눈을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말...다했나?" "덜 했으면 어쩌실 겁니까?" - 저기요? 저기요? 저기요오....? 미노는 다시금 히드레안의 발에 차여서 데굴데굴 굴러가 버렸으니 이쯤에 서 신경 쓰지 말자. 다시금 생각하는건데, 역시 동명이인이 확실하다. "아에 그럼 건드려 줄까?" 팔목을 낚아채면서 얼굴 가까이 고개를 들이미는 히드레안을 응시하다가, 마이아는 눈살을 찌푸렸다. 약간 모욕 받은 듯한 느낌의, 그런 표정을 띄 고 있을 때에 자리잡고 있는 금색의 눈동자는 확실히 사람을 끌어당기게 만 드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사양하지요." 하지만, 매번 말하고 입이 닳도록 말하고, 말하고 말하고 또 말하고 말해 도 결코 모자람이 없을 정도로 말했지만. 히드레안은 남의 말을 '절대로' 듣지 않는다. "맘에 안 들어 너는." "그런가요?" 나머지 한 손을 들어서 히드레안을 후려치려고 했지만, 반복학습이 효과가 있었는지 이번엔 히드레안은 그쪽 손도 반대편의 손으로 붙들었다. 이렇 게 양손이 모두 잡힌 상태로, 마이아는 히드레안이 말하는 것을 그대로 들 을 수 밖에 없었다. "너란 존재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내 앞에서 그런 당당한 눈빛을 하는 거 지? 일찍이 가장 칭송 받고 아름다운 존재였으며 더없이 고귀한 존재라 이 름했지만, 넌 이미 타락한 전신(前神)이 아닌가?" 천천히 고개를 숙여서 약간 가는, 소년 티가 나는 목덜미에 입을 맞추면서- 마이아는 약간 움찔했을 뿐이었다- 히드레안은 다시 말을 이었다. "...아무리 룬이라고 해도 그는 우연, 지금의 법칙에서 나에 비등할 수는 없는 존재. 마음만 먹으면 난 널 살리고 죽일 수도 있는데, 어째서 감히 내게 대항하는 거냐?" 마이아는 천천히, 아주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 모든 것이 없기에 그럴 수 있는 겁니다." 마이아는 손목을 비틀다가, 아무래도 힘으로는 돼지 않는 다는 것을 알았는 지 기묘한 방법으로 손을 틀어서 히드레안의 손아귀에서 빠져 나온 후 그 의 뺨을 후려쳤다. 짜악! ...아, 왠지 모르게 통쾌하면서 행복한 기분을 함께 만끽해 보도록 하자. 마이아는 은근히 붉어진 얼굴을 하고선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남의 몸에, 그리고, 함...부로 손대지 마십시오." 그것도 키스 축에나 든다고 까탈이야, 하고 속으로 투덜투덜 대면서도 입 밖으로는 내지 않는 히드레안. 아무래도 절제를 제대로 하는 것을 보니 정 말로 정신연령 7세로 높아진 것이 사실이 아닐까? 뭐 상관없지만. 히드레안은 다시 손을 내밀어서 마이아의 머리카락을 쓸었다. 금빛을 띄고 있는 블론드 빛의 머리카락. 금색의 눈동자와 매우 잘 어울리 는, 독특하면서도 아름다운 빛깔이 못내 맘에 드는 색감의 조화. "모든 것이 없기에 나에게 대항할 수 있다라...시간이라 불리는 이 나에게?" "글세요. 단지 당신이 원하는 데로, 변화라는 이름에 맞추어 흘러가고 싶 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당돌한 말투에 히드레안은 조금 신경질이 났지만 이내 참았다. 그가, 마음에 든다. 타락했지만 아직도 스스로에게 빛을 뿜고 있는 이 빛이며 그림자인, 기묘 한 빛을 내재하고 있는 신이... "좋아...어디 말해봐. 네가 원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위해 네가 지불할 것을." 마이아는 조금 떨리는지 한쪽 손으로 다른 한쪽 팔을 꾹 하고 눌렀다. 한 번 호흡하고, 다시 내뱉은 후, 그는 히드레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 금색 의 눈동자의 색감과 빛의 변화가 자신을 정면으로 응시하자, 히드레안은 정 말로 그의 소망을 '들어주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명을 없애주십시오." 히드레안은 우습지도 않다는 듯이 피식, 하고 한번 웃었다가 그래도 진지 한 표정인 마이아를 바라보았다가 한참을 그런 그를 응시했다가 어이없다 는 듯이 다시 질문했다. "뭘 없애달라고?" "운명을." "운명을 어떻게 해달라고?" "없애주십시오." 히드레안은 톡, 하고 마이아의 뺨을 살짝 두드린 후 어린애를 달래는 듯한 어조로, 작은 한숨을 내쉬면서 그의 말에 대답했다. "한번 나타난 혼돈은 두 번 다시 사라지지 않는다. '없다'는 정의는 성립 할 수가 없어." 마이아는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그런 히드레안의 말에 조금의 어색함이나 당황함도 없이 반박했다.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없애달라는 것은, 운명. '대가'입니다. 행한 일 의 대가를 받지 않는 것, 대가는 있으나 행함은 없는 것, 행하나 결과를 예 측할 수 없는 것. 그것이 혼돈의 이름이면서 동시에 그 힘. 당신이라면 정해진 대가를 없앨 수 있지 않습니까...?" 히드레안은 더 어처구니없는 그의 말에, 이번엔 그로서도 놀라지 않을 수 가 없었다. 이 예쁘장한 얼굴로 무슨 말도 안돼는 소리인가... 그가 지금 바라는 것. 그것은 신들에겐 절대 허용되지 않는 일, 그를 타락하게 했던 원인. 행하나 대가 없고, 행하지 않으나 대가 있는, 행하나 결과를 예측할 수 없 는.... 그것의 이름은 혼돈. 그가 지금 바라고 있는 것은 행함에 따르는 '대가'를 없애려는 일. 히드레안은 결국 자신의 입으로 되묻고 말았다. "운명을 바꾸려는 거냐?" ============================================================= ========= 여러분은 잘 모르시겠지만, 펜릴스 스토리 시리즈는 운명이라는 것이 주요 테마중의 하나입니다. 고로 마왕 이야기도 운명이란 주 테마를 가지고 있지요. 히드레안이 운명이란 뜻은 아닙니다만...-_-; 이후 한편은, 만약 당신이 무척 정상적이고 별 시시껄렁한 것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면 안보는 것이 옳다고...쿨럭..ㅡㅡ; 마왕 이야기-126 이거 지금 6연참 째인가....? -_-; 과연 나는 오늘 몇편이나 올릴 수...쿨럭!!!! 어디어디...ㅡㅡ; 3일 안 올렸으니 하루 두편씩 치면 딱 맞을지도... ============================================================= ========= 희망이라 이름하는 덫-9 마이아는 잠시간 고개를 떨구고서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히드레안이 생각해도 어처구니없는 짓인데, 그가 그런 결심을 했다는 것 자 체가 대단한 것이었다. 운명을 바꾸려는 것. 다른 말로는 대가를 받지 않으려는 행위. 운명은 여섯 가지의 요소로 성립한다. 첫째는 우연, 둘째는 행위, 셋째는 과거, 넷째는 현재, 다섯째는 미래, 그 리고 여섯 번째로 희망. 이렇게 여섯 개의 요소가 존재함으로서 운명이라는 것은 성립할 수가 있다. 우연에 맞부딪친 인간이 행위를 하고, 그 행위가 '과거'로 고정되고, 존재 하지 않지만 존재할 수 있는 '현재'를 인식할 뿐 미래를 인식하지 못하고, 그리해서 이미 '과거'로 고정된, 그래서 '미래'로 가 고정되어 있는 대가 로 향하게 하는 것. 그것의 이름이 운명이라고 불리는 존재. 앞이 있고 뒤가 있고 고로 중간도 있는 그 법칙의 인과성에 따라서 부여되 는 대가. 그러므로, 이미 '행한 것'의 정해진 '미래'를 피하겠다는 것은, 운명을 파 괴하는 행위가 되고 운명의 파괴란 곳 창조와 파멸의 싸움의 재래일 뿐이었 다. "...너...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아는 거냐?"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운명의 힘을 어쩔 수 있는 건 아니란 말이다. 무엇보 다 너는 이미 '과거'를 성립시켰어. 성립된 과거야, 대가는 이미 너에게 다가오고 있을 거다. 그런데 그걸 도대체 어떻게 바꾸란 거냐..." 마이아는 침착한 어조로 설명했다. "아직 그렇지만 '대가'는 오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현재니까요. 지금 새 로운 행위를 함으로서 다가올 대가를 뒤틀 수 있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것이 결정된 대가에 아무런 변화를 줄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 건 아니겠 지." 움찔, 하고 마이아의 몸이 눈에 뜨이게 흔들렸다. 히드레안은 냉정하게 말 을 이었다. "모르는 모양이군. 시간은 과거로 간다. 미래로 가지 않아. 나는 미래 를 알고 있을 뿐이지 미래를 바꾸는 존재가 아니야. 일곱 축의 마지막 존 재인 운명은, 단순한 것이 아니다. 하나의 행위로 미래가 성립되어 있는 줄 아나? 이미 과거에 고정된 것들이 미래를 성립시켰고 성립된 미래는 현 재를 이끈다. 성립된 미래는 바뀌지 않는 것이야." 마이아는 지긋이 눈을 뜨고는 내뱉듯이 말했다. "하지만 바꿔야 합니다." "어째서?" 마이아는 대번에 히드레안이 '어째서'라고 질문할 것을 예상하지 못했는지 어색할 정도로 잠시 입을 다물고 서 있었다. 그것은 뭐라고 할까, 마치 조 각상이 말을 해보려다가 실패하는 듯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제가 바꾸고 싶으니까요." 그의 더없이 어처구니없는 이 대답에, 히드레안은 적잖은 당황을 느꼈 다. '바꾸고 싶다'라는 것과 '바꿀 수 있다'라는 간단한 언어의 구분조차 이 존재는 할 수 없는 것인가? 마이아는 히드레안의 '당황'을 눈치챘는지 여전히 담담하게 말을 하고 있었 다. "바꿀 겁니다. 제가. 왜냐고 물어봐 주시겠습니까?" "...왜." 마이아는 싱긋이, 이때까지 미미하게 느껴졌던 불안 전부를 지워버리는 듯 한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바꿔야 하니까." 히드레안은 털썩, 하고 어디서 나타났을 지 모를 의자 위에 앉았다. 논리의 유희라고 하는 것은, 무척 할 일 없고 하기 싫고 귀찮은 것임에 분 명하지만 할 일 없고 귀찮은 것을 좋아하는 시간이 남아돌아서 썩는 작자들 에게는 아직까지 유효한 놀이 중 하나였다. 히드레안은 의자를 권하는 대신 의자를 허공에서 불러내었고, 마이아의 뒤 에 놓아두었다. 마이아는 그의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았기에 의 자에 앉았다. 그리고 둘은 본격적으로 '지루한 논쟁'에 들어가게 되겠지. ...울고 싶어지는군. 의자에 앉자마자 마이아는 시간도 아깝다는 듯이,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이 공간에서 입을 열었다. 처음부터 논리에서 이상이 생기는군, 아아 웃 자. 울어. "신은 시간의 하위 존재입니다. 운명은 시간의 종속 존재입니다. 그러므 로 당신은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하면서도 유일하지 않는 존재지요." "그래, 시간은 스스로 무엇인가를 변화할 수 없으니까." 히드레안은 무심할 정도로 차가운 목소리로 대꾸했다. 하지만 마이아는 그 런 그의 목소리와 말투는 개의치 않고서, 자신이 하고픈 말을 이어나갔 다. 음...신은 괜히 신이 아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운명을 바꾸는 것입니다. 아니, 바꾼다기 보다는 없애 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도 영향주지 않겠다?" "그렇지요." 히드레안은 눈을 가늘게 떴다가, 다시 팔을 들어 턱을 괴고는, 잠시 생각 을 해보았다. 어떻게 하면 그의 소원을 이뤄줄 수 있을까...하는, 어처구 니없을 정도로 이 황당한 소원을. 자신의 힘이 미치는 영역 내에서. 어디 까지나 법칙이 적용되는 범위 안에서. "시간을 만드는 것은 생명입니다. 당신이 존재를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은, 모든 것이 변화해 가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물론, 시간의 상대성의 이전 에 절대성이 성립하기에 시간 자체는 변화할 수 없지만, 변화는 당신이 성 립시킬 수 있습니다. 안 그런가요?" 원론적이면서도 재미없는 이야기. 그리고 성립하는 논리. 논리가 성립하게 되면, 시간과 운명의 상관관계가 나타나게 된다. 기본적 인 그 지표 앞에서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가? "운명은 변화할 수 없어." "알고 있습니다." "미래는 고정돼 있어." "...알고 있습니다." "왜 바꾸고 싶어하는거지?" 마이아는 천천히 자신의 가슴에 손을 가져갔다. 그는 그 손을 가슴에 얹고 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를 타락하게 한 존재를 위해서입니다." ============================================================= ========= 그대들의 반응을 나는 알고 있소....-_-; 그러나 알아주시오.... 글치는 녀석도 죽겠단 말이옷!!!!!!!!!!! 마왕 이야기-127 와~7연참이다...+_+;; ============================================================= ========= 희망이라 이름하는 덫-10 히드레안은 조금 열 받을 수밖에 없었다. 뜬금 없는 소리를 지껄여 대는 이 녀석의 정신상태에 의심이 갈 수밖에 없 었고,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동시에 모르는 자신이니 만큼 그의 모든 것 을 알 수도 없었다. 전적으로 이 녀석의 말에만 의지해야 하는데, 어째서 이렇게 헛소리만 해대 는 걸까. "...다시 한번 말하지." "말씀하십시오." "시간은 과거로 흘러간다. 그리고 미래는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라는 유동적 시간이 존재함으로. 그리고 넌 고정된 시간에서 이미 '행 (行)'했고 그것은 고정되었어. 미래로부터, 고정된 것이 이제 다가올 거 다. 그런데 넌 그것을 바꾸려고 하고 있고, 나는 그것을 도와줘야 한다 이 건가?" "잘 이해하셨군요, 변태 마왕이라도 역시 마왕은 마왕인 모양이네요?" 히드레안은 칭찬을 하면서도 은근히 약올리는 그의 말투는 별로 마음에 들 지 않았다. 결국 히드레안은 딱 잘라서 말했다. "싫다." "해주세요." "우연의 씨를 주워들어서 변화시킨 건, 너야. 그리고 변화는 고정되었 어. 운명은 변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은 네가 더 잘 알텐데." 마이아는 반복되는 이 지루한 논리대결에 끝을 맺겠다는 듯이 단호하게 말 했다. "하지만 아직 운명은 불완전하지요." 히드레안은 그의 말에 더 이상 반박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고, 마이아는 승리를 거머쥐었다. 좋은 일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렇게 됐 다는 거다. "혼돈은 일곱. 그리고 최후의 혼돈의 이름이 대가, 또는 운명. 그렇지만 현재의 혼돈은 모두 다섯...시간과 창조와 파멸과 우연. 이 네 개만으로 는 운명은 완전히 성립할 수 없기에 변수가 존재할 수 있을 텐데요." "넌 우연의 씨를 주워들었어." 히드레안은 한숨을 내쉬면서 대답했다. 하지만 마이아는 물러설 기미가 없 는지, 히드레안에게 계속해서 요구했다. "하지만 미래는 다가오지 않았어요." "넌 이미 행을 고정시켰어..." "미래는 다가오지 않았잖아요." "넌 현재를 살고 있어." 히드레안은 턱을 괴면서 삐딱하게 말을 이었다. 마이아는 고개를 저으면 서 말했다. "미래는 현재가 되지 않았어요." "넌 지금 희망이란 운명의 성립 요소 위에 있어." 이번엔 마이아가 입을 다물 차례였다. 약간의 원인 모를 통쾌함을 느끼면 서 히드레안은 슬쩍 미소 지었고 마이아는 다른 말을 찾기 위해서 잠시 말 을 주저했다. 덕분에 히드레안은 별스러운 수고 없이, 자신의 말을 피력 할 수 있었다. "운명은 어째서 성립하지?" "...존재가 그 길을 걸어가기에." "운명을 왜 성립시키지?" 마이아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가, 대답했다. "...그것을 원하기에." "네 말대로 운명은 불완전하다. 우연의 씨가 있고, 시작이 있고 결말이 있 고 변화가 있지만 정작 그것의 가운데에 있는 것들은 전혀 알 수 없으니 까. 운명이 정한 절벽을 향해 그들은 어떤 방향으로 끌려갈지 몰라. 거부 하다 그 거부마저 거부당한 체 끌려갈지, 아니면 순응하여 끌려갈지." 똑딱, 하고 시계추가 움직이는 것처럼 히드레안은 손가락을 허공의 임의의 점에 찍었다가 들어올려서 대칭을 이루는 허공에 다시 점을 찍었다. 작은 빛의 궤선이 그의 손가락 움직임에 따라서 반원을 그렸고, 히드레안은 입 을 열었다. "하지만 그것은 성립된다. 운명이 일곱 번째에 존재하고, 너희들 신들이 여섯 번째의 존재를 부여함으로서." 그의 미소는 싸늘했다. 마이아는 손끝을 떨다가, 파리하게 질린 얼굴로 입 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그에겐 대답할 만한 명분도 명맥도 없었다. 심술 궂은 미소를 지으면서 히드레안은 마이아가 스스로 말하기를 기다렸다. 그가, 모멸감에 젖어들 때...결국 고백하게 되지만, 히드레안은 그의 그런 얼굴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수치스러워 하면서도 자신이 해야 하는 것이 라는 것을 느끼고 스스로 입을 여는, 그 얼굴과 눈동자, 떨리는 목소리가 마음에 들었다. "...그것은...그것은 희망이라 불리는 것.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두려워 하지만 , 그것을 두려워 함에도 전진할 수 있는 원동력, 생명을 이어가는 이유를 만들어 주는 존재, 삶을 삶으로 남게 할 수 있는 변화라는 가능성, 바꿀 수 있는 상황, 이루길 염원하는 것에 도달 할 수 있는 길...그러나... 그러나...그렇지만..." 마이아의 눈동자에서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굴러 떨어질 것처럼 변했다. 히 드레안은 그가 끝내 마지막 말을 못하고 손끝을 떨면서 고개를 숙여 버리 자, 쾌감어린 목소리로 대신 그의 말을 이어주었다. "희망은 없다." "...그래요...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카오스(혼돈)에서 코스모스(질서) 를 끌어내기 위해...운명을 부과하면서 우리가 쳐놓았던 덫...생명이 결국 운명의 문 앞에 도달하도록, 그들이 삶을 이어가도록, 정하여진 길에 도달 해 희망의 진짜 이름을 알도록...우리가 만들어 놓은..." "지금의 넌, 인간이니까." 마이아는 허망하다는 듯이 자신의 머리를 감싸 쥐면서 중얼거렸다. "...희망의 진짜 이름은......그것의 이름은..." 믿고 있던 것, 이루고자 염원했던 것, 존재하리라 믿는, 먼 곳을 바라보며 그곳에 있는 것을 그리는 꿈. 그렇지만 희망은 '존재'했을 때 가치 있는 것. 희망은 없다. 왜냐면 운명은 고정돼 있으므로, 절대 변화하지 않으므로. 희망의 진짜 이름은, 운명의 앞에 선 희망의 이름은... 그것은, 절망. ============================================================= ========= 큭큭큭.... 작자가 비정상이냐고요....? 댁도 한번 시험기간에 글써보구려... 저렇게 안돼나... '과거'를 성립시킨 작가는 '현재'에 피말리는 시험의 더미위에서 이렇게 중 얼거린다오... '진작에 잘할껄....ㅜ.ㅜ' 크하하하하핫!! ; 마왕 이야기-128 희망이라 이름하는 덫-11 달칵달칵하고 찻잔이 흔들리는 소리가 나면서 미노는 조심스레 방안으로 들 어섰다. 어둡게 맞추어진, 안정을 위한 적당한 조명의 아래에 달빛과 어우 러진 눈의 빛이 쏟아져 들어서 약간의 불빛을 만들고 있는 방안. 히드레안과 그런 그의 침대를 차지하고 누워있는 마이아의 모습을 보다가 미노는 한숨을 쉬었다. - 주인님은 심술쟁이... "누가 심술쟁이라는 거냐?" 쭈욱, 하고 오동통하고 귀여운 미노의 볼을 잡아당겨서 늘리면서 히드레안 은 무섭게 대꾸했다. 고통으로 아둥바둥 몸부림치면서도 찻잔을 놓치려고 들지 않는 저 가상함이란... 집사란 역시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 아우야야야야! 아파요 주인님! "한번만 더 그러면 양쪽이다." ...유치하게 노는 건 변화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미노는 볼을 문지르며 씨근덕대다가 투덜댔다. - 그치만, 그치만 그렇잖아요. 주인님이라면 바꿀 수 있잖아요? 운명이란 결국 주인님이 성립시키는 법칙이니까. "흐음, 그렇지만 가르쳐 주는 건 재미없잖느냐." 히드레안은 찻잔을 들어서 한모금 호륵, 하고 마시곤 한꺼번에 밀려온 피로 에 삼켜진 마이아가 잠들어 있는 것을 흘낏 보았다. 역시 인간의 몸이란 이 곳의 격렬하게 밀려들어오는 일시적인 시간의 압력을 견디기 힘든 거라 고 생각하면서. "거기다 운명이라는 것은 하나의 행위만으로 성립되는 게 아니란 말씀, 그 만한 대가가 있어야 나도 고생을 할 거 아니냐? 자칫 잘못하다간 내 의지조 차 소멸되는데." - 시...심술쟁이! 결국엔 괴롭히는 게 좋은 거잖아요! 주인님은 새디스트! 변태! 악마! "...미노트 아신레이져?" - 네? ...네? "넌 말이야..." 히드레안은 불안하게 날개를 파닥파닥 대는 미노를 향해 찻잔을 던졌다. 정확한 포물선을 그리면서 파창, 하는 소리를 내며 깨지는 컵. 와, 단단하다. 미노는 '우에에에에'하면서 뒤로 넘어갔고 히드레안은 머리에 떠오른 힘줄 을 꾹꾹 누르면서 중얼거렸다. "크나 작으나 열 받게 하는 건 똑같아." - 우아아아앙, 주인님 나빠요! "시끄러. 거기다 운명의 법칙이란 시간상에서 존재한단 말이다. 시간의 바깥에 있는 존재가 아니고서야 운명을 바꿀 수 없어. 나는 시간, 시간의 안과 바깥의 경계기 때문에 단순히 안내자 역할의 그 이상이 불가능하다는 걸 네가 모를 리가 없을텐데? 응?" 다시 뺨을 꼬집고 흔드는 히드레안. ...왠지 저 물면 한입에 들어갈 듯한 귀여운 뺨을 잡아 늘리는 것도 매우 해볼만한 가치가 높은 일이 아닐까 사료되는데... 한번만 해보면 안될까, 하고 물어봤다가 죽을까봐 차마 묻지는 못하고 구경 만 하도록 하자. - 그래도오오오오 불쌍하게 울리는 건...아야야야! 히드레안은 쭈욱쭈욱, 하고 양손으로 미노의 뺨이 얼마나 늘어날 수 있는 가, 또 늘어나면 늘어난 길이는 어떻게 될까, 하는 등의 상당히 미묘한 고 찰을 앞에 두고서 여기서 조금 더 늘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가졌다. ...죽지만 마라 미노. 기운이 완전히 떨어져 버렸는지 잠든 마이아 앞에서 찝쩍대기도 귀찮아진 히드레안은 물끄러미 빈 찻잔을 바라보았다. 차는 아까 마셨고, 미노는 울 면서 도망갔고(울면서...), 인형들은 장난감 꺼리가 될 수 없고... 결과적으로 그는 심심하다는 절대조건에 충당되는 자신의 현재 모습을 느꼈 다. 불쌍한 히드레안...평소 같으면 심심한 거 풀어줄 자잘한 스트레스 해소거 리들이 주변을 굴러다녔을 텐데, 요즘엔 게을러 져서인지, 아니면 거리들 이 다 도망가서인지 좀체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는 그의 뒷모습. 아아, 쓸쓸해 보인다. 남자의 로망, 그것은 싸늘한 가을에 떨어지는 낙엽, 그리고 낙엽의 아래에 서 외로운 등을 보이는 그대......그냥 썰렁한 농담이라고 생각하라. 운명. 복잡하게 생각할 건 없고 바꾸기 어쨌든 무지하게 어려운 것들의 집합체. 아주 복잡하게 얽히는 실타래, 풀려고 들면 한꺼번에 엉켜버리는... 도대체 그 실타래를 잘라서까지 운명을 바꾸려고 드는, 어리석은 존재들은 왜 그렇게 많을까? 순응하면 간단한 일을, 따라가면 되는 일을, 쓸데없이 바꾸려고 하지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 하면 되는 것을... 인생에 지나친 미련을 가지고 있는 존재들의 행동은 이해가 좀처럼 가지 않 으면서도, 그들의 그 필사적인 모습에는 끌리는 히드레안이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끌리는 것과는 별도로, 도와줄 생각은 전혀 없는 히드 레안이었다. ...도대체 애초에 끌린다는 표현을 사용한게 죄악이려니. 히드레안은 톡하고 마이아의 뺨을 건드려 보았다. 자는 사람을 옆에서 괴 롭히면 나중에 벌받고, 자고 있는 존재한테 악한 짓을 하면 지옥에 떨어진 다는...아참, 지옥보다 더 밑에 있는 명계에 살았던 히드레안이었다. 상관 없겠지. 뺨 맞는 게 별로 무섭지 않은 모양이다. 이제 침대 가에 아에 엎드려서 톡 톡 계속 건드려 대는 것을 봐서는... 윙, 하고 마이아의 몸에서 약간의 금빛이 솟아올랐다. 경고라도 하듯이 히 드레안의 손길을 탁, 하고 쳐낸다. 하지만 히드레안은 그 기운의 움직임 자체를 무시한 체 뺨에서 턱선 아래로 살짝 내리그었다. 그리고 룬은 실체화해서는 퍽! 하고 가볍게 히드레안을 후려쳐 주었다. 맞은 자리를 문지르면서 히드레안은 절대 자신은 맞을 짓을 안했다는 듯이 그를 올려다 보았고, 룬은 일말의 의심도 없이 그가 무조건 잘못했다는 눈 빛으로 화려하게 되받아쳐 주었다. "...대가로 몸은 안돼나?" "자고 있는 자와 성교하면 지옥에 떨어지리니." "탐욕의 서 제 8장 5구절인가?" 룬은 대답을 해주진 않았다. 여전히 약간 투명한 감을 내면서 히드레안이 엎드려 있는 옆의 침대에 '걸터앉듯이' 살짝 몸을 내린 그는 히드레안은 내 려다보면서 입을 열었다. "도와줄 거냐." "...이것 봐 우연." 히드레안은 불퉁하게까지 느껴지는, 어린애가 하는 모자란 투정처럼 느껴지 는 말투로 룬에게 말을 걸었다. 룬은 가만히 눈을 내리깔고, 아름다움의 극치를 달리는 그 모습 그대로 고고히 앉아 있을 뿐 히드레안의 투정엔 대 꾸 한마디 없었다. "네가 뿌린 씨를 저 녀석이 주워들었어. 그리고 싹을 내고 키우고, 이제 꽃이 피려고 해. 그런데 그걸 저 녀석은 잘라내서, 원래 없던 것으로 하자 는군. 가능하다고 생각해?" 룬은 고요한 어조로 대답했다. "불가능하지." ============================================================= ========= 축전란에~! 키아님이 보내주신, 카인의 진실♡(하트 중요. -_-;)이 업됐습니다. ㅡㅡ; 자자....같이 보고 웃읍시다... 동인지 풍이군요, 과연 동인녀....-_-;; 아아....언제한번 손잡고 반드시 마왕 이야기 동인지를 만들어 보리니... 꺄악꺄악~-_-;; 흠흠...-_-; 오늘은 2연참만 합니다. 마왕 이야기-129 희망이라 이름하는 덫-12 히드레안은 그런 딱 부러지는 룬의 대답에 더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슬쩍 지어 보이고, 어깨를 한번 크게 들었다 내려 보이는 과장된 제스처를 취해 보였다. 그런 그의 행동에도 미동조차 없는, 도대체가 왜 저렇게 혼 돈, 사계의 왕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하나같이 성격이 저렇게 색다를까? 거의 대화가 불가능 할 정도로 서로 말하는 영역이 다르니... "아주 잘 아는군. 토양을 제공해주고, 씨를 주고, 키우게 해주고, 이제 수 확물을 받을 시기가 됐는데 대뜸 달아나겠다고 하는 추수절의 화려함에 눈 이 먼 바보 같은 농부에게 그럼 내가 무엇을 해줘야 할까? 다음에 겨울이 온다는 것도 모르는 저 어리석은 신에게." "그는 타락했다. 더 이상 신이 아니지." 히드레안은 삐죽하고 입술을 한번 내밀곤 차갑게 중얼거렸다. "그는 타락했지. 하지만 신성은 그대로야. 그건 왜일까?" 룬은 내리깐 눈을 들어서 마이아를 응시했다. 룬의 모습은 마이아와 상당 히 닮아 보이는데, 아마도 그것은 그가 마이아에게 기생하기 때문일지도 모 른다. 어찌됐건 간에 자신과 닮은 이를 내려다보던 룬은 천천히, 그 아름 다운 목소리로 말을 시작했다. "그는 타락했지만, 신으로서의 신성은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은. 그가 옳다 는 뜻이 된다." "옳다? 그 말도 안돼는 기준은 대체 누가 정하는 건지, 잘나디 잘난 우리들 의 자식, 운명의 펜릴?" 룬은 비꼬고 있는 히드레안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마주 비꼬아주기 시작했 다. 아아, 드디어 룬마저...망가지는구나... "네가 이미 운명에 한번 손을 댔다는 것을 모를 거라 여기지 마라. 그의 신성이 남아 있는 것은 네가 미친 여파라는 것을 모르는 건가." "그래서, 내가 잘못했으니 나도 도와야 한다는 억지 논리는 어디서 나오 지?" 삐딱한 히드레안의 대답에 룬은 역시 통렬히 되 갚아주었다. "어린애처럼 굴지 마라. 네가 행해야 할 것을 행하라." "내가 행해야 할 것이라..." 히드레안은 비릿한 비웃음을 띄면서 엎드리고 있던 자세를 풀면서 깍지를 풀었다가 폈다. 몸을 푸는 듯한 의미 없는 행동을 한 후, 히드레안은 살 짝 고개를 옆으로 떨구었다. "말해두지만...난 내가 행해야 할 것들을 행할 이유가 없어. 너희들, 그리 고 모든 존재들이 그리 강조하는 대로, 나는 표층이 아닌가?" "꿈에서 깨어나면 너의 존재도 모두 하나라는 것을 알았을 텐데." "그래, 처절하게 느꼈지. 결국 난 에리나쟈드도, 히드레안도 아닌, 그 중 간의 쓸모 없는 찌꺼기라는 것을." 쿡하고 장난스레 한번 웃고는 히드레안은 손을 뻗어 투명하게 반대편을 투 과시키는 룬의 몸을 쓸어 내렸다. 그의 몸은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고, 감 촉만이 아련하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살아있다는 느낌조차 들지 않는... "말해봐 룬. 제발 부탁이니까 내가 아니면 안된다고, 내가 도와야 한다고." "왜 내가 너에게 그런 말을 해야하는가." 히드레안은 그의 머리카락을 쓸어 내리다가 뺨에서 손을 멈추면서 아무런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아니, 망설임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그것을 절실 히 자각하고 있다는 의미... "내 존재가치가 점차 흐려지는 것 같아서. 누구도 날 필요로 하지 않는 것 같아서." 룬은 차갑게, 그렇지만 동시에 뜨거운 기운이 느껴지는 어조로 대답했다. "너의 존재가치는 네가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혼돈이 아니야.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하길 바래." 룬은 절실하지도 않은, 오히려 지루해 죽겠다는 듯한 눈을 하고서 그런 말 을 하고 있는 그의 행동에서 어색함 이상의 것은 느끼지 못했다. 서툰 연 극 배우가 무대 위에서 처음으로 연극할 때 굳어버린 듯한 느낌이랄까? "그러나 그것마저 지겹다는 건가." "그래, 지겨워. 내 존재가치를 증명하는 것도, 대화하는 것도. 이렇게 그 를 내려다보며 고민하고 있는 것도. 내가 꿈에서 깨어난 순간, 전부다." "지겨운가?" 처음으로 룬의 말에서 '의문'이 나왔다. 히드레안은 그 때문에 약간 놀랐지만, 그의 말에서 의문이라는 것이 성립한 다는 것이, 그래서 그 의문이 구체화되었다는 점에서 잠시 더 놀라야 했다. 의문은, 추한 것이 아니던가? "...지겨워. 아니, 지겨운 것 같아." "그럼 지겨워해라." 룬은 그렇게 대답하며 자신의 뺨에 머물러 있는 히드레안의 손을 밖으로 밀 어냈다. 그의 눈동자는, 다시금 마이아에게로 가서 맴돌았다가 히드레안에 게 향했다. "그것은 살아있다는 증거물이 아닌가." "살아있나? 내가?" 비웃는 히드레안을 향해 룬은 다정함이 느껴지지만 냉정하게 말해주었다. "너는 시간이면서 시간을 느낀다. 그 육신이 있기에. 그렇기에 너는 살아 있겠지만, 그래서 너는 그 삶에 지루해 지는 것이겠지. 육신 없는 나로서 는 느낄 수 없는 감각. 히드레안." "말해." "뿌린 씨앗을 가꾸고 수확을 거두기 직전에 축제의 화려함에 눈이 팔린 농 부는 그럼 그 후 겨울엔 어떻게 되는가." "굶어 죽지." 느릿한 그의 대꾸에 룬은 언뜻 듣기에는 엉뚱한 소리를 대답으로 내놓았다. "아니, 보다 높은 자에게 구원받는다." ============================================================= ========= 훗.....^.^ 스을~스을 열받는 군요.... 글 씹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닐거라 사료됩니다만... 당당하게 씹지 못할 망정 왜 뒤에서 씹는지.... 비평은 감수하고, 잘못 다는 지적역시 감수합니다만. 작가의 사생활을 가지고 트집 잡는건 곤란합니다만? 네? 하기야 작.가.도 아 니겠지요? 제가 글을 하루에 몇편 올리던, 그것은 제 자유입니다. 글을 많이 올리는 것도 잘못입니까? 신성한 게시판 더럽히는 거라면 제 홈페이지에서만 연재할까요? 통신망 연재와 각종 인터넷 연재 오늘 부로 한번 쫑내볼까요? 하루 세편씩 두편씩 쓰는건, 이미 이 글이 완료되 있고, 구상이 끝난 상태에 서 써가는 글이라서 그렇습니다만. 아무리 생각 없이 쓰고 막쓰는 글이고 제멋대로 쓰는 글이라고 해도, 최소 한의 기초 플롯이 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어린애 장난으로 글을 올리는 것도 아니고, 완.결.을 짓는 것이 당연하다는 마음으로 글을 올리건만... 도저히 저도 못참겠군요. 저에게 불만 있으면 저한테 토로해 주십시오. 뒤에서 들리는 욕을 다른 사람의 입으로 듣는 것은 지겹습니다. ...마왕 이야기는 퍼감이지만, 앞으로 펜릴즈 스토리, 본편도 퍼감이 될지 그 건 모.르.겠.군.요!! 마왕 이야기-130 희망이라 이름하는 덫-13 쏟아지는 햇빛. 정말로 오랜만에 느끼는 감각. 그것은 기묘하리만치 이상한 감각이었다. 단 한번도 눈이 그친 적이 없는 이곳에 내리비취는 햇빛이라... 히드레안은 그 기묘한 정취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난 들어줄 수 없어. 너의 소망을." 마이아는 그를 향해 소리쳤다. 소리라는 것을 빌린 호소. 호소란 소리로 만 전달 될 수 있는가? 감정적인 격렬함. "애원할까요? 소리 지를까요!? 아니면 당신의 발에 입맞추고 노예라도 되겠 다고 할까요! 나를 도와줘요! 제발 히드레안! 바꾸지 않으면, 모든게 사라 져요! 이 세상이, 하나의 꿈이, 사라진다구요! 제발!!" 히드레안은 무표정하게 중얼거렸다. 그의 얼굴엔, 약간이나마 기대가 깃들어 있었지만 마이아는 그것을 보지 못 했다. "...왜 너희들은 내가 도움을 구하는 것일까? 왜 내게 손을 내밀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거지? 언제까지 그 잘난 각자의 사연들을 들고와서 나 에게 손을 벌리는 거냐? 잘난 주신이시여. 난 필요할 때만 찾는 창녀가 아 니야." 뚝, 하고 마이아의 눈에서 눈물이 굴러 떨어졌다. 투명하게 금빛의 눈동자 가 부풀어오른다. 그 광경을 보고서도 히드레안은 눈하나 깜짝 안했다. 하기야, 그가 저렇게 울며 매달리는 인간을 도대체 몇이나 봐왔겠는가? 의외로 세상에는 간크고 시간 많은, 남한테 매달리기 좋아하는 작자들이 많 다. "...그 기나긴 세월이...고작 10년도 되지 않는 시간보다 중요하지 않다 면....당신은 날 비웃을 겁니까?"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바라보면서, 히드레안은 싸늘한 비웃음을 지었다. "그래서, 너의 임무조차 망각했나? 아름다운 타락 신이여..." "...훗...그래요...이기적이라고 해도 좋아요. 난 이미 신이 아닐 수 밖에 요! 그래도 난 후회하지 않아요! 행복했으니까! 내 모든 것을 박탈당하고, 나의 존재조차 히미하지만, 그딴 건 내가 알바 아니란 말입니다! 난...그 이상의 것을 바라지 않아요!" 흐느끼는 모습이, 아름답다. 햇빛을 받아서 부서지는 듯이 반짝이는 금빛의 머리카락이, 금색의 눈동자 가, 흔들리는 그림자에 가리워져 있는 가는 몸이. 그리고 소리 죽이고 있 는 울음소리가. "그럼 나는 무엇을 바래야 하나? 너희의 소망을 들어주며, 별 것 아닌 대가 에 떨면서 나를 원망하고 저주하는 너희들을 보며. 단 한번이라도 너희가 나의 소망을 들어 준 적이 있었나? 나를 구원해 주었나? 나에게 계약자 이 상의 무엇을 부여한 적이 있었나?" 히드레안은 거의 본능적으로 그의 뺨에 손을 가져다 댔다. 아름다운 것은, 만지고 싶다는 욕구. 그냥 그런 욕구뿐이었지만, 그래서 마이아가 중얼거리는 히미한 목소리를 히드레안은 들을 수 있었다. "그때...그때 그녀를 만나지 않았더라면...아무렇지 않게 '안녕'을 고하면 서 멸망되는 세계를 바라볼 수 있었을 거늘...모든 것은 그대로 있을테 고...나조차 변하지 않았을 텐데..." "울지마. 눈동자가 흐려진다." 숨죽여 흐느끼다 마이아는 고개를 들었다. "도와주세요 히드레안." "무엇을?" 무심한 그의 대답에 마이아도 대답했다. "내 소망을 이루도록..." "어떻게?" "당신의 힘을 빌려주세요...." 히드레안은 부서져 내리는 투명한 물방울들을 쓸어 내리면서 중얼거렸다. "...왜...?" 마이아는 눈을 감았다. 눈물이 크게 부풀었다가, 가라앉고 아래로 굴러 떨어진다. 다시 뜬 그의 눈동자는, 물에 씻겨 나가 맑은 금빛을 그대로 반사시키고 있 었다. 마이아는 조용한 어조로, 그리고 느리게 입을 열었다. "...친구...가 될지도 모르니까..." 히드레안은 피식 웃었다. "그런 유치한 말로 내 맘을 돌리겠다는거냐?" 마이아는 떨리는 어조로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당신이 원하는 것...뒤바뀌는 운명을 틈타....실을 바꿀 수 있어요...당신 에게...주면 되나요...행복을...?" 히드레안은 고개를 저었다. 그의 얼굴에는 쓸쓸함이 깃들어 있었다. "행복을 원해. 하지만 그것은 내가 영원히 손에 넣을 수 없기에 원하는 것 이지 손에 들어올 것이라면 원하지 않아..." "그럼...대체 뭘 줘야...날 도울 건가요? 제발! 제발이요!" 히드레안은 슬쩍 창 밖을 바라보았다. 온통 사방을 채우고 있던 눈들은 간 곳이 없었고, 환한 황금빛 햇살이 사방을 메꾸고 있었다... 눈부시고, 아름다운 햇살들이. "무엇을 줘도 널 돕지 않아. 난 모든 것을 가졌거든." "...욱..." "네가 줄 수 있는 것이라...그래, 하나 있기는 해..." 히드레안은 슬그머니 미소지었다. 굴러 떨어지는 눈물은 어느새 말라가고 있었고, 그의 뺨을 쓸어 내리면서 히드레안은 살짝 젖어든 그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 약간의 소금기 때문이지 혀끝에 와닿는 감촉이 알싸하다. "난 용사놀이란 걸 꽤 좋아하거든. 괜찮은 동료를 모아 온다면 다시 생각 해 볼 수도 있지. 운명을 뒤바꾸려면, 세 개의 '샤'가 필요해. 나의 친구 가 될지도 모르는 네 소망, 확실히 들었다." "...히드레안..." "한마디 없나? 이럴 때 인간이라면 늘 해야 하는 말이 있잖은가? 난 별로 못 들어봤지만서도." 마이아는 다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 "...고마워요..." 햇살이, 그의 뺨에 다가와 부서졌다. "...고마워요...히드레안..." ============================================================= ========= 왠 신파극? -_-;;;; 몰라요 몰라~! 신파극이면 어때.....어차피 이것은 엽기! 그대에게 공포를 줄 수 있다면야...훗훗훗..... 마왕 이야기-131 에필로그epilogue 소리 없이 쏟아지는 햇빛. 햇빛은 싫다. 언제나 이렇게 따스하게 내리비치는 햇빛은, 단 한번도 그 를 도운 적이 없었다. 히드레안은 손을 뻗어서 허공을 맴도는 먼지를 잡으 려 했지만 그것들은 그냥 뿌옇게 부서져 내리면서 사방으로 날렸다. "당신이 지셨습니다, 나의 아버지." "아니야." "당신이 틀린 겁니다. 나의 아버지." "아니야..." 카인은 붉게 물든 손으로 길게 늘어진 은발의 여인을 안아들고 있는 히드레 안을 향해 측은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측은함이 깃들여진 '비웃음'이 었다. "벗어나려고 하는 것이 오히려 구속이라는 것을 모르십니까? 희망이 왜 존 재하는데..." 히드레안은 힘없이 중얼거렸다. "아니야." "시한은 다가오고 있습니다. 정해진 길을, 걸어가야지요. 나의, 아버지시 여." "아니야!" 카인은 우아하게 한번 궁중식으로 망토를 넓게 펼쳐 인사해 보이면서 그의 말에 대답했다. "아아, 아름다운 나의 왕. 언제까지 그 굴레를 끊지 못하시렵니까? 나의 아버지. 삶이란 굴레가 그토록 달콤하더이까? 나의 어머니. 그 기나긴 세월이라 이름하는 것이 시간인 당신에겐 아무 것도 던지지 못하더이까? 그렇게 영원히-" 카인의 표정이 싸늘한 비웃음을 띄웠다. 그의 얼굴엔, 잔인하리만치의 다정함이 담겨져 있었다. 필요 없는, 지독하 리만치 잔인한 다정함이. "영원히...어른이 되지 않을 건가요? 나의 창조주." 히드레안은 손을 놓았다. 은발이 사방으로 흩날리며, 덧없이 그 육신이 무너져 내린다. 히드레안은 투명한 수정처럼 반짝이는 검을 쥐었다. 날카롭게 선 톱니가 빛을 발하 고, 흘러내리는 피는 마치 눈물처럼 검신을 타고 굴러 떨어졌다. "...너는 꿈을 깨는 존재였지...카인제이럴..." "그렇습니다. 그렇게, 당신이 창조했지요." "그렇다면 꿈이 아닌 꿈의 바깥에 서 있는 너는 뭐냐? 왜! 이 지겨운 꿈을 이렇게 통렬하게 겪게 하고선 나의 꿈을 일깨우는 거냐!" 카인은 미소지었다. "정말 꿈에서 깨고 싶으십니까?" "깨고 싶어! 고통스럽다고, 아프고, 힘들뿐이야!" 격렬하게 들끓어 오르는 마력 앞에서 카인은 조소를 날렸을 뿐이었다. "그래서요?" 히드레안은 침묵했다. 그리고 카인은 천천히 걸어와, 그의 목에 팔을 휘감았다. 피로 물들어 있 어 그의 흰 옷자락마저 피로 물들었지만 카인은 천천히 그런 히드레안의 입 술을 핥고는 부드럽게 그에게 속삭였다. "...그 고통이 끝나지 않았기에...꿈에서 깰 수 없지요...아직은, 아직은 말입니다..." ============================================================= ======= 앗싸~! 드디어 6편, 6편인가 7편인가 헷갈린다앗..-_-; 끝났습니다~;; 7편입니다!! 음....이번 편은 본편과 너무 많이 겹치기에 중간중간 억지로 눈물을 머금고 삭제를...커흑.... 괜찮겠지요...ㅜ.ㅜ 아아, 요즘 열 받는 소식을...ㅡㅡ+ 늘 말씀드리는데...제.발!! 불펌 좀 하지 마십시오! 한동안 퍼감 신청 안 받도록 하겠습니다. 그널양과도 의논한 내용이니 특별히 따지지 마시길. -_- 흥...흥.....흥..... 전 모릅니다. -_-( 글 올리지 않으려고 했던 것도 만류에서 올리는 거니 까.... 얼른 끝내고 전편 삭제해 버릴랍니다. 핏. 마왕 이야기-132 [7회 기념 좌담회] 펜 : 앗싸~! 이제 두화! +_+;; 히드레안 : .....이봐...작가.....? 펜 : 앗, 왜 그러시는지 히드레안님?@.@? 히드레안 : 어떻게 죽여줄까? 감히 이 몸을 저따위로 망쳐버리다니!!! 미노 : 하핫...-_-; 내가 어린애가....어린애 버전이.... 펜 : 그보다 히드레안님. -_- 히드레안 : 뭐냐. 펜 : 당신이....'새디스트'라는 것을 들켜버린 것 같군요. 음음. 히드레안 : .....그게 자랑이냐!!! 거기다 남의 취향이 어떻든 미개한 것들 이 어찌 이해할 거란 거냐! 미노 : ...변태를 이해하는게 이상한 거 아냐? 펜 : 무슨, 난 변태를 이해해 미노. +-+ 카인 : 하핫, 작가님도 변태잖아요. ^^ 펜 : ...........카인아 카인아...? 카인 : 네? ^.^? 펜 : 작가는 신이다. -_- 죽고 싶으면? 카인 : 작가에게 어찌 개기겠습니까? 너무 그렇게 상념하시진 마세요..후훗... 히드레안 : 말돌리지 마라. 결과적으로 이몸을 망쳤겠다...펜.릴? 펜 : 아아...-_-; 에....그게 그럴 수 밖에요..오호호호호호호홋.... 히드레안 : 거기다 다음편엔 이몸이 나오지조차 않는다니이이!!! 펜 : (삐질삐질...)에....에.....좌담회 문닫습니다!!!! 히드레안 : 도피하지마랏! 죽여주지! 펜 : 꺄악꺄악! 좀 넘어가요!!!! ;; ....살고 싶오....ㅜ_ㅜ 마왕 이야기-133 추억, 기억-1 - 그때 왜 하필이면 바람은 동쪽으로 불었을까, 그때 왜 하필이면 태양은 그리 뜨거웠을까... 그때 왜 그는 거기, 한낮의 태양 아래 서서 있었을 까? ...그리고 왜 하필 그때 내 운명은 태양아래 서 있는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존재를 찾아냈을까. 태양을 본 뒤 촛불을 보면 초라해 보임을 알 것을... 그리고 그때 왜 나는 내 운명을 그리 보냈을까...? 그래, 운명이 미워. 그리고 다시 돌아온 일그러진 운명을 사랑해버린 내 가 증오스러워. 넓은 방안, 방안은 온통 하얀 색의 색조가 드리워져 있었고 그 방안에서 유 일하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은빛의 화려한 세공이 되어 있는 새장 속에 는 길고 검은 머리카락을 늘어뜨리고 있는 여인이 무릎에 고개를 파묻은 체 눈을 감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그녀의 이마에 있는 황금빛 눈은 감겨져 있지 않았지만... 늘어진 검은 머리카락은 새장 밖으로 흘러내려 기괴한 음영을 드리우고 있 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창 밖의 풍경과, 새하얀 쿠션들 속에 파묻히듯 이 무릎으로 자신을 둥글게 감싸 앉은 체 죽은 듯이 있는 여인. 모든 것이 메마르고, 퍼석퍼석하니 부서질 것 같아 보였다. 방안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은 하얀색의 귀엽고 작은 고양이 한 마리뿐이었 다. 오렌지 빛의, 상당히 기괴한 눈동자를 가지고 있는 고양이는 여인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장난을 치며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창백하다 못해 푸르스름한 피부. 검은색의 긴 옷자락으로 감겨져 있는 몸은 정말로 인형이기라도 한지 호흡 으로 인한 미동조차 없었다. 그런 창백함과는 대조적으로 붉은, 탁한 피 를 머금은 듯한 입술은 그녀에게 순결함과 동시에 음탕함을 내비치게 해주 었다. 여인인지 여인이 아닌지도 알 수 없지만, 그 아름다움이 여성의 것이 아니 라면 세상은 정말로 불공평 한 것이다. 냐옹, 냐옹하는 소리가 가끔 적막처럼 들려올 뿐... 그녀는 꿈을 꾸고 있었다. 영원히 끝나지 않는 꿈을, 계속되는 기나긴 꿈을. 절대로 깨어나지 않는 꿈을. 그녀의 이름은 에리나쟈드 드 이크립스. 태초의 마왕이며 첨예한 혼돈, 그리고 영원히 꿈꾸는 자. 명계의 검은 레 이디... 하지만 그녀가 이 곳, 이 방안에서 눈을 뜬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 하지만 지금 그녀는 눈을 떴다. 왜 눈을 떴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글세. 아마도 그것은, '우연'이라고 치부되어야 할 것이다. "...아파..." 미묘하게 서늘한, 그래서 낮고 음률적인 말이 그녀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냐아, 하면서 길게 끌리는 울음소리를 내며 흰 고양이는 그녀의 머리카락 에 매달렸고 에리나쟈드의 눈가에서는 투명한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아파아..." 이내 그녀는 흐느끼기 시작했고, 처음엔 단순한 흐느낌이었던 것이 점차 커 지면서 커다란 울음소리가 되어갔다. 텅 빈 방안. 당연하지만 엄청나게 울려 퍼지는 그 소리에 고양이는 바닥을 한번 뒹굴더니 큰 소리를 질렀다. [시끄러워! 갑자기 왜 우는거야! 악! 귀청 떨어지겠네!] 어, 어라. 고양이가 말을 한다? 에리나쟈드는 상관하지 않고 더 큰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목청 참 좋다. 저정도로 잘 울수 있다면 성가대에 합류해도 그만이겠는데. 아참, 그녀는 마왕이니까 성가대에는 못 들어간다. "아프단 말이야...아아아아아악!" 여운이 늘어지는 비명소리에 고양이는 바닥으로 한바퀴 데구르르 굴렀다. 귀가 멍멍해 질 정도로 울려 퍼지는 소리에, 고요했던 성안도 시끄러워 지 기 시작했다. 흐느끼면서 새장 안에 엎드려 울던 그녀는 손으로 창살을 잡 았다. 그리고 그녀는 중얼거렸다. "...아파...제발...도와줘..." [대체 뭘 도와줄까?! 갑자기 울기만 하면 어쩌라고오!] 고양이가 조잘조잘 거리건 말건, 그녀의 몸은 점차 흐려지고 있었다. 마력의 흐름마저 봉인된 이곳에서, 그녀는 스스로 그 몸을 이동시키고 있 는 것이었다. 놀라서 고양이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그녀는 새장 안에서 사라졌다. 새가, 날아간 것이다. 워프, 또는 공간전이, 또는 공간 이동. 보통 공간상관법칙제어이동(空間相觀法則制御移動)의 줄임으로 사용하는 이 마법은 공간과 공간간의 절대적인 전의를 할 수 있는 능력이며 그 사용 이 까다롭고 복잡하여 실수할 경우 그 길로 영영 이 세상에서 손 흔들고 사 라질 수 있는 마법에 속한다. 이 마법을 시전하기 위해서는 3개의 점이 필요한데, 자신의 좌표, 이동하려 는 좌표, 그리고 그 위치를 지정해 줄 수 있는 절대 좌표. 이렇게 세 개. 그리고 만약 그 중에서 이동 좌표를 모른 체 무작정 워프를 하게 되 면 다른 공간과 겹쳐져서 몸이 벽에 박히는 멋진 연출작품을 만들어 낼 수 도 있게 되는 것이다. 왜 이런 설명을 길게 늘여서 하냐면, 지금 에리나쟈드가 워프를 한 공간이 지상에서 약 2500피트 이상의 허공이기 때문이며, 떨어지면 죽는다는 절대 법칙이 통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허공에 나타나자마자 그녀의 몸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아래로 떨어져 내리 기 시작했다. 멍청한 건지 아니면 뭔가 수가 있기 때문인지 그녀는 뭐라고 끊임없이 중얼 거리면서 흐느끼고 있었다. 검은 옷자락이 펄럭대면서 머리카락과 어우러 지는 모습은, 마치 검은 새의 추락같이 아름다웠지만... ...아름다운 것과 별개로 지금 떨어지고 있단 말이다! 에리나쟈드의 주변에 바람들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그 바람은 모여들고 또 모여들어서, 그녀를 휘감았고 이내 허공에 뜰 수 있도록 해주었다. 바 람의 정령들은 그녀가 에리나쟈드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녀의 존재는 모 든 정령들에게도 고마운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일단 적으로 그녀를 도왔다. 충만한 에리나쟈드의 마력 덕분일 수도 있고. [아름다운 혼돈, 첨예한 혼돈이며 일곱 축의 주인이신 분이여. 왜 울고 계 시나요?] "아파...흑...윽..." 정령들은 당황해서 자기들끼리 공감을 하면서 그녀의 말의 의미를 파악해 보려고 했다. 하지만 정령의 정신수준이란 고작 10살 어린애에 불과한 것. 그중 인간에게 소환되어 본 적이 있는 정령이 입을 열었다. [그럼 치료하면 되잖아요?] "아파..." 정령들은 결론을 내렸다. [인간계에서 가장 뛰어난 치유술사를 찾아가요!] ...그리고 멋대로 정해서 울고 있는 에리나쟈드를 바람의 힘으로 움직여가 기 시작했다. 왜 자기들 멋대로 결론 내리고 자기들 멋대로 지식을 나누 고 자기들끼리 움직이는 건지. 이래서 공기의 정령이 고깝고 머리 나쁜 사 람은 무시한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이겠지만... 모르겠다. 어떻게든 되려나, 하고 지켜볼 수밖에. 어찌됐건 정령들은 빠른 속도로 이 동해 나갔고 가장 뛰어난 치유술사가 있는 곳을 발견했다. 삭삭... 너른 뜰에 빗질을 하고 있던 견습수련사의 옷을 입고 있던 소년은 허공을 바라보다 고개를 갸웃갸웃했다. "...이상하네...오늘따라 바람이 왜 이렇게 많이 불까나...?" 뜨거운 한여름의 햇살에도 불구하고 이른 아침부터 빗질을 해야 한다는 것 은 상당히 힘겨울 테도 불구하고 뛰어난 신심을 지닌 체 소년은 다시 열심 히 팔다리를 놀리면서 정원에 쌓인 나뭇잎과 쓰레기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가 막 그것들을 전부 치우고 만족한 미소를 짓고 있을 때. 허공에서 불어온 돌풍은 그것들을 모조리 휘날려 허공으로 날려버렸다. 빗 자루를 들고, 허망한 표정으로, 날려간 쓰레기들을 바라보며 울상 짓는 그 의 얼굴이 상당히 귀엽다. 그는 어디부터 쓸까나...하면서 축 처진 어깨를 하고 천천히 비를 들고 걸 어가려다 갑자기 들려온 흐느낌 소리에 고개를 갸웃, 하면서 돌렸다. 흐느낌, 굉장히 애처로운 느낌이 흐느낌이 들려오고 있었다. 비를 뒤로 늘어뜨리고 질질 끌면서 그는 정원의 나무 사이에 서서 흐느끼 고 있는 사람을 향해 말을 건냈다. "빛에 따르는 그림자에 영광을. 왜 우시나요?" "흑...윽...아파..." 흐느낌과 들려온 소리. 소년은 다가가서 그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자신의 손이 미치는 곳을 더듬어 보고, 울고 있는 사람이 상당히 키가 크다 는 것을 발견하고는 발돋움해서 그 사람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 주었다. 뚝뚝 눈물을 흘리고 있는 얼굴을 살짝 매만져 보다가, 소년은 자신의 헐렁 한 수련복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찾던 것을 발견했는 지 활짝 웃으며 그것을 꺼내들었고 울고 있는 이의 뺨을 살짝 두드렸다. "...우...흑..?" 섬세한 눈동자에 눈물을 가득 담고서 에리나쟈드는 자신을 올려다보며 생긋 이 웃고 있는 소년을 바라보았다. 금발에, 같은 금빛으로 착각할 뻔한 약 간 연한 노란빛을 띄고 있는 눈동자. 얼핏보면 초록색에 가깝기도 했다. 소년은 자신의 입술을 톡톡 건드리면서 '아'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멍청하게도 에리나쟈드는 그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아'하고 자신의 입을 벌리는 바보짓을 해버렸고, 소년은 그때 자신의 손에 쥐어있던 무엇인 가를 그녀의 입속에 넣어주었다. "우? 우...?" 자신의 입안에 들어온 동글동글 하면서도 달짝지근한, 그러니까 '맛있는' 물체에 그녀는 뚝뚝 굴러 떨어지고 있던 눈물을 멈추면서 우물우물 거렸다. 소년은 다시 발돋움을 해서 그녀의 머리를 토닥토닥 해주며, 입을 열었다. "사탕은 안에 가면 더 있는데 줄까요?" ...다, 다큰 사람을 사탕으로 유혹하다니... 에리나쟈드는 입안에 있는 물체를 사탕이라고 부른 다는 것을 배웠고, 소년 은 그녀의 손에 자신의 손을 포개며 잡아끌었다. 그의 손은 뜨거운 태양 빛 때문인지, 상당히 뜨겁게 달아올라서 온기를 간 직하고 있었다. "나는 시오에요. 시오 마이안. 길 잃은 꼬마 아가씨 이름은요?" 소년의 손에 이끌려 가는 에리나쟈드의 모습이 어째서 '아아주 커다란 바 보 강아지'로 보이는 것인가에 관해서 괜히 고찰하지 말자. 그녀는 멀뚱멀 뚱이 눈을 뜨고 그의 손에 딸려 가며 입안의 사탕을 굴리다 우물댔다. "...에리...에리나쟈드..." 태양은, 못내 뜨거웠다. 그리고 그 태양아래 머무는 바람도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 ========= 아아....결국 쓰고 말았다....-_-; 금단의 커플....바보 세트.....-_ㅜ 이 이야기가 올라가면 결국 마왕 이야기는 망가지고 말것인데...쿨럭... 몰라몰라...-_-;; 어떻게든 되겠지....훗....훗....훗.....;;;; 마왕 이야기-134 추억, 기억-2 "시오 니이이이이임!" "에예 마리." 시오는 생글생글 웃으면서 에리나쟈드의 손을 이끌었다. 갑자기 들려온 무 시무시하게 커다란 목소리와, 그리고 살기등등한 갈색 머리의 사제여인의 모습에 그녀는 깜짝 놀라며-그녀의 아름다움이 이럴 때 저주스러워진다-시 오의 등뒤로 숨었다. ...수, 숨어도 다 보이는데... "제발 예배 시간엔 좀 참가하라고 말씀드렸잖아요! 뒤뜰은 수련사들이 쓸 면 된다니까요! 거기다 그 수련사 복은 뭐에요! 뒤의 저 아가씨는...시오니 임!!" 시오는 헤실헤실 웃으면서 그런 마리가 하는 말을 모두 차근차근 들었다. 깐깐하게 생긴 이 신전의 수석사제인 마리는 수도 없는 잔소리를 늘어놓으 면서 에리나쟈드를 겁먹게 하고 있었고, 이내 그녀가 씩씩대면서 말을 모 두 끝마치자, 그제서야 시오는 입을 열었다. "마리, 차랑 과자요." "...시...시오니이이임...어흐흑..." 아방하기 그지없는 미소로 그렇게 자신의 '잔소리'가 아무런 효과도 발하 지 못했다는 것을 느낀 마리는 주저앉아서 절망의 바다에 허우적거렸고 울 먹거리면서도 다시 울기 직전인 에리나쟈드의 손을 꼭 잡아주면서 시오는 다시 아방한 미소를 날렸다. "곧 맛있는 거 준대요 마리가." 괜히 또 그의 미소를 따라서 웃는 에리나쟈드. 젠장, 바보 세트를 보는 느낌이다. 마리는 10살 때 전쟁으로 인해서 고아가 됐었다. 평범하고 재주도 없고, 특별한 능력도 없는 평민이었던 자신을 구해주었던 것은 다름아닌 마이아 신의 사제인 시오. 어린 마리가 울고 있자 주워서-아무래도 그가 유아납치 상습범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신전으로 데려왔던 것이다. 그 후로 신전의 수석 사제가 되기까 지 할 정도로 신의 영광을 입었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그녀는 신보다는 시 오와 더 인연이 깊었다. 하지만...그 시오 마이안. 신의 성인 '마이안'을 하사 받을 정도로 위대한 신관인 그가... 세상에서 둘도 없을 멍청하고 아방하고 약간 모자란 자라는 것을 대체 어떻 게 그녀가 스스로 말해야 한단 말인가! 예배 시간에 조는 것은 기본! 축사를 잊어 먹어서 중간에 그냥 말로 때운 경우가 몇번이었고 사제복을 입을 줄도 몰라서 매번 입혀주지 않으면 안되 고 수련사 복으로 돌아다니며 빗질을 하다가 손님들에게 무슨 무안을 당했 단 말인가! 그런데 이제는 왠 늘씬하고 아름다운 미녀를-가슴은 별로 없어 보이지만 알 바 아니고-데려와서는 차와 과자를 달라니! 그렇게 한참을 씩씩대면서 혼자 티 포트를 깨먹을 듯이 들고 있는 여인, 마 리... 그래도 결국 차를 끓이고 과자를 내놓는 것을 보면, 그녀도 시오의 그 아방 하고 백치 적인 미소에 홀린 수도 없이 많은 희생자이며 피해자 중의 한사 람인 것이다. 아아, 통탄할 지라. 왜 저렇게 능력 있고 훌륭한 사제인 그녀가 시오같은 바보에게 홀려서 고생 하고 있는 것일까? "시오 님, 여기 차하고 과자..." 쉿, 하고 입가에 손을 가져가 보이는 그. 햇빛이 쏟아져 들어져 오고 있는 둥근 아치 기둥들 사이에 푹신한 배게 하 나를 자기 무릎 위에 가져다 두고, 시오는 울다 지쳐 잠든 건지 사탕 하나 에 배불러서 잠든건지 모를 에리나쟈드를 기대게 해놓고 토닥여 주고 있었 다. 뿌옇게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과, 길게 늘어져 햇살을 반사하는 푸른 광택 이 돌고 있는 아름다운 검은 머리카락의 폭포수를 만들어 내고 있는 여인, 금빛의 반짝대는 머리카락과 순수하게 느껴지는 눈동자를 지닌 시오... 마리는 순간적으로 살아있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 아름다운 장면 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그랬다. 그녀는 사실 약간의 탐미주의자 적 인 끼가 있었던 것이다. 하기야 신은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신다고 하지 않았던가. 사제라고 아름다 운 것을 사랑하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하..하...하... "많이 피곤한가봐요, 길을 잃고 헤매서." 시오는 출렁이고 있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주면서 마리가 조심스 레 탁자 위에 차를 내려놓는 쪽으로 살짝 고개를 돌렸다. 마리는 찻잔에 차를 따르고, 조심스레 시오에게로 내밀었다. "고마워요 마리." 시오는 허공으로 손을 내밀어 그것을 받아들었다. 살짝 향을 음미하면서 그는 햇빛이 쏟아지는 쪽을 바라보았다. "오늘은 날씨가 참 좋네요. 좀 덥기는 하지만." "시오 님, 그쪽은 해의 정방향이라구요! 눈에 나쁩니다!" "괜찮아요 괜찮아. 어차피 안 보이는데요 뭘." 다시 아방한 미소를 날려서 마리의 말을 제압해 버리는 시오. 시오 마이안. 빛과 빛에 따르는 그림자를 다스리는 자, 그의 첫 번째 삼각지. 가장 강력한 정치적 권력을 행사하며, 그 무력에 있어서 국가 따위는 발 밑 에 깔아 본다는 '문무겸비'를 주창하는 마이아 교단의 최고사제. 인간과, 그 인간 및 유사 종족 중 최강이라고 불릴 정도의 신의 기적을 끌 어다 쓰며, 신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자. 그러나, 그의 눈은 보이지 않았다. 신에게 가장 사랑 받는 자의 육신은, 그 신의 사랑과 다르게 불구였다. 또 한 그 무한한 신력을 받은 대가이기라도 하듯이, 그는 26살이라는 자신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직 소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신은 그를 사랑하지만, 동시에 신은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 "...시오 님, 언젠가 눈이 꼭 보이실 겁니다. 그렇게 되면..." "으응? 괜찮아요.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세상 모든 게 그 자리에 없다는 것은 아니잖아요? 조금 느리긴 해도, 저도 발견할 수 있답니다. 신의 사랑 은 제 안에 충만하니, 저에겐 더 이상 모자라는 것이 없지요." "...예...그렇죠..." 그가 있기에, 신은 세상에 사랑을 베푸는 것이 아닐까. 마리는 그렇게 생각해보았다. 날 때부터 눈이 보이지 않고, 사생아였으며 동시에 자신의 어미까지 죽이고 태어난 존재. 그렇지만 시오는 누구도 원 망하지 않는다. 연약하고 자기 비하 적인, 제 잘못은 생각하지 않고 남의 탓을 해서라도 자 신의 현재 상황을 합리화시키려고 드는 자들의 논리처럼. 모든 것을 결정하는 거라 하며, 제 죄는 생각도 안하고 보다 높은, 원망해 도 아무런 지탄 받지 않는 '추상적' 존재를 원망하는 그 머저리들처럼, 시 오는 누군가를 원망하지 않았다. 좋게 말하면 죄악에 물들지 않은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멍청한 것. 바로 그것이 시오의 장점이었다. ============================================================= ========= ....아아.....바보세트...-_-;;;;; 쓰면서 제일 괴로운 커플... 바보1과 바보1-1의 만남에 남는 것은...ㅜ_ㅜ 바보1-2.... 그럼 히드레안님은 바보인것인가....? -.-;;;;; 마왕 이야기-135 추억, 기억-3 새하얀 성벽. 이 세상에서 가장 성스러운, 세계의 중심이라고 불리는 곳. 그것은 신성령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신이 정한 최초의 인간인 아인디아를 모시는 신성령은 각 나라를 움직이는 힘이며, 동시에 그 강력한 네트워크로 인해 모든 정보를 지배하고 있는 곳 이기도 했다. 특히 아인디아 산하 수호기사단 소울템플러, 또는 소울 나이트라고 불리는 자들은 마족일개부대와 맞서도 한사람의 희생을 내지 않는다는 인간족 최강 이기로도 유명했다. 그 고귀하고 고결한, 인간들의 정신적인 지주의 상징인 신성령의 흰 성벽 위에서 회색빛의 연기가 한줄기 피어올랐다. 거칠게 사방으로 휘날리고 있는 회색 머리를 머리 위로 높이 올려서 묶어 사방으로 늘어뜨리고, 방만한 회색의 사제복 같지 않은 사제복을 입은 이 는 다리를 내밀고 거기 걸터앉아 있었다. 짙은 허무감이 베여있는 회색의 쿨 그레이 빛의 눈동자와 중성적인, 어떻 게 보면 조금 거친 외모. 그는 담배를 비스듬이 꼬나물면서 성벽의 아래 쪽을 흘낏 바라보았다. "날씨 참 좋지?" "아인니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임!!" 어라라, 왠 비명이 성벽 아래에서? 아인은 턱을 괴고서 성벽의 중간쯤에, 밧줄로 한쪽 다리가 묶여서 대롱대 롱 매달려 있는 흰 사제복의 남자를 내려다보면서 무심하게 중얼거렸다. "아아, 햇빛이 참 뜨겁구만. 벌써 세시간 째인데 포기하지 그래? 맥스웰." "아인 님! 어떻게 이런 짓을 하실 수가 있습니까! 당신은 모든 인간들의 어 머니이면서 지주로서...으아아아악!" 아인은 자신의 옆에 잘 묶여져 있는 밧줄에 약간의 반동을 줌으로서 불쌍 한 50대 중반의 맥스웰을 '허공을 유영하는 화려한 기분' 속으로 날려주었 다. 잔인하리만치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면서 아인은 말했다. "그러니까 신성령 1년치 예산이 들어있는 금고 열쇠가 어딨냐니까?" "절대로 그것만은 말못합니다!" 맥스웰은 강건하게 버티었다. 50이 넘어가는 그의 그 굳건한 회색빛 수염 이 왠지 멋진 댄디상으로 보일 지경이다. 그러자 아인은 턱을 괴고 는 '아, 그래?'하면서 무심하게 대꾸하더니 품을 뒤적뒤적 거려서 조그만 수정을 꺼내들었다. "멕스웰...네가 어렸을 때는 귀엽더니 참 컸다고 많이 대드는구나. 네가 마지막으로 지도를 그렸던 게 아마 8살이었던가? 그때의 이 화려한 기억이 담겨있는 영상을 내 오늘에서야 신성령 전반에 공개를..." "으아아아아아악! 말합니다! 말한다니까요!" ...댄디상은 개뿔. 단순히 멍청한 50대 중년이었을 뿐이었다. 아인은 싱글싱글 웃으면서 그 수정을 다시 품안에 잘 갈무리해 두었고 대롱 대롱 성벽에 매달린 체 맥스웰은 슬픈 외침을 토했다. "우에에에엥! 아인님 미워!" ...왠지 이해할 것도 같지만, 그래도 굉장히 추해 보인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아인은 징징거리면서 아래에 매달려 있는 맥스웰을 내버려두고 허공을 바라 보았다. 강한 햇살 때문에 저절로 눈을 살짝 찌푸리며 그녀는 한팔을 들어 서 햇빛을 가렸다. "오늘따라 꽤 덥군..." 펫, 하고 그녀는 입에 문 담배를 뱉았다. 차마 그 담배가 아래로 추락해서 맥스웰의 콧수염 위에 떨어졌고 불이 붙어 서 그의 입 주위가 데이는 바람에 약 2개월의 치료를 받아야 했다는 것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도록 하겠다. 어찌됐건 하늘은 높고, 맑고 날씨는 혀를 내두를 정도로 뜨겁다. 그리고 세상은 아름답지만 잔인하게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인디아 드 라렌. 그녀는 모든 인간의 시초. 모든 인간의 어머니. 그리고 신성령의 주인. 동시에 세상에서 제일 악명 높은 마법사이며 모든 사제의 적이자 모든 미소 년의 겁탈자이며 법을 무시하고 온 세상을 자신의 발아래 무릎 꿇려 놓는다 는, 마왕도 더러워서 피하고 신마저 이미 그녀에게는 손을 들게 만들었다 는, 살아있는 지옥재래였다. 그리하여 세계 인명사전에는 유치하게도 이렇게 기록되었다고 한다. '오오...두려운 그 이름, 아인디아...!' 무, 물론 기록자가 목숨을 오래 보전하지 못하고 신성령의 자체 규율단 및 정보 감식반과의 접촉 후 세상에서 소리소문도 없이 사라졌다는 것은 누구 나 다 알고 있는 일이었다. 그러게 세상엔 권력 있는 자의 맘대로 움직이는 것이라고 했는가? 결국 힘없고 무지한 존재들은 그런 자들에게 짓밟히고 지배당할 수밖에 없 는 운명이라는 것을 지니고 있는 것이겠지...훗...후후후후.... ...뭔가 말이 샌 것을 느껴도 넘어가도록 하자. 마리는 차를 따라주다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자 손으로 케 을 집으려던 에리나쟈드는 찔끔해서는 시오 쪽으로 슬 슬 옮겨 붙었다. 아니나다를까, 마리의 잔소리가 결국 떨어지고야 말았다. "그러니까 도대체 에리나쟈드 양! 손으로 음식을 집지 말라고 했잖아요! 포 크! 아니면 접시에 덜어서! 다 큰 어른이 도대체 행동이 그게 뭐에요!" ...순간적으로 에리나쟈드가 커다란 강아지로 돌변해서 낑낑거리는 것으로 보이는 것은 눈의 착각이었을까 아니면 실제로 에리나쟈드가 인간으로 플리 모프 한 멍청한 아아주 큰 강아지 여서 일까. 시오는 아방하기 그지없는 미소를 지으면서 조그맣게 잘라놓은 케 을 '손 으로' 짚어서 에리나쟈드의 입에 넣어주었다. 그리고 그 상황을 보면서 결 국 부르르 떨며 마리는 외쳤다. "시오 님도 그래요! 손으로 케 집어드시지 말라니까요! 웃는다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에요! 도대체가 모범이 되실 분이 그러시면 어쩌자는 거에요!" 하지만 시오는 입가의 그 미소를 지우지 않은 체 여전히 헤실거리면서 마리 의 복장을 뒤집고 있었다. 아아, 정녕 경탄할 만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하지만 포크를 쓰면 케 이 작아서 잡기가 힘들어요." "...그...그거야..." "눈이 안보여서 실수하는 것보다는 낳지요? 그리고 손도 깨끗이 었구요." 고개를 끄덕끄덕 하면서 케 을 우물거리는 에리나쟈드까지 합세하자, 바보 광선의 위력이 왠지 더욱더 강해지고 있다. 아아....젠장, 바보세트가 같 이 있으면 그 기운증폭도 더 심해지는 것인가? 마리는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냥 고개만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시오는 아마도 승리에 가깝다고 생각되는 미소를 지으면서 에리나쟈드의 입 가에 묻어있는 조각들을 손끝으로 능숙하게 더듬어 보고는 떼주었다. "에리냥, 에리냥. 흘리면 안돼요." "....저기 시오 님...?" "네? 왜요 마리?" 마리는 약간의 분노를 담은 눈길과 약간의 질책, 그리고 상당한 당황을 담 은 아주 복잡하기 짝이 없는 얼굴표정을 한체 시오를 노려보았다. "에리냥이 뭡니까?" "...에리나쟈드는 너무 기니까 줄여서 에리냥. 귀엽지 않아요?" 아, 미리 설명하고 넘어가는데. 시오에게 한가지, 모든 사람들이 치를 떠는 아주 나쁜 버릇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도대체 그게 어디가 귀엽다는 겁니까! 그걸 애칭이라고 지으신 거에요!?" 형편없는 작명실력, 엽기적이기까지 한 네이밍센스가 바로 그것이다. "왜요, 에리냥. 귀엾잖아요? 그죠 에리냥?" ....바, 바보처럼 고개를 끄덕이지 말란 말이다 에리나쟈드! 넌 첨예한 혼돈. 위대한 일곱 혼돈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존재인데 도대체 에리냥이라는 말도 안돼는 애칭을 가질 수가 있단 말인가!? 라고 절규해도 똑같은 수준의 바보들에게 그런게 이해가 갈 리가 전혀 없다. "하나도 안 귀여워욧!" 결국 괴로운 것은 옆에 있는 마리뿐. 아아, 세상에 왜 이렇게 바보가 많은 거냐? 그것도 세트로? ============================================================= ========= 제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커플들 중 엽기커플의 상위권에 들어가고도 남을 바보세트 커플이지요...-_-;;; 에리나쟈드&시오....;;; 1위를 노려라! -_-;;; 하기야 내가 쓰는 글에서 엽기 아닌 커플이 어딨겠냐만...-_-;;; 왠지 정상적인 커플이 가장 엽기권 상위에 들어갈지도...; 아아...정상이란 절대다수를 지칭하는 또다른 이름이려니~ 뱀발. 광현님, 드디어 두사람이 등장했습니다. +_+;; 마왕 이야기-136 마왕 이야기가 현재 각 홈피에서 연중을 선언했습니다. 훗....-_- 불.펌. 어디까지 가는지 한번 해봅시다....+_+ 잡히면 죽~~~었어. (이것이 그대는 농담으로 들리십니까? 히죽...) ============================================================= ========= 추억, 기억-4 마리의 처절한 절규에도 불구하고 시오는 그 이름을 쉽게 포기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마리는 절대로 그것만은 용납할 수 없다는 듯이 강경 하게 말했다. "절대로 에리냥은 안돼요. 에리냥은! 그냥 에리. 라고 하세요!" "아아, 마리는 정말 작명센스가 없어요." 궁시렁 대면서 곱게 이마를 찌푸리는 시오와 같이 이마를 찌푸리면서 따라 궁시렁 대는 에리나쟈드였다. ...그 한심하도록 멍청한 바보세트를 바라보 며 마리는 다시 한번 자신이 수석 사제이며 이 신전을 실질적으로 이끌어나 가는 대 사제라는 것도 망각하고 고함을 지를 수 밖에 없었다. "시오 님의 작명센스가 이상한 거라구요오옷!" ...누구 센스가 어떻든 무슨 상관이리... 아아, 인생은 아름다운 것.(의미모호) 에리나쟈드가 왜 신전에 눌러 붙게 되었는가를 알고 싶은가? 알고 싶다면 말해주겠다. 그것은... 이렇게 이루어졌다. "집이 어디에요?" 도리도리...에리나쟈드가 고개를 젖자 머리카락이 살짝 뺨에 와서 부딪쳤 기 때문에 시오는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럼 부모님이나 아는 사람은요?" 도리도리...두 번째 고개 짓에 시오는 갸웃하면서 다시 물었다. "그럼 갈 곳 은요?" 도리도리...계속해서 반복되는 그녀의 무언에 시오는 다시 질문했다. "그럼 여기 있을 래요?" 에리나쟈드는 눈만 멀뚱하게 뜨고 시오를 바라다보았다. 이제 특기라고 의 심 가기까지 하는, 사람을 혹하는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면서 시오는 말했다. "여기 있으면 사탕이랑 과자가 많아요." 끄덕끄덕! ...사탕과 과자로 유혹하는 덜떨어진 바보나 그 사탕과 과자라는 3살 짜리 어린애한테도 잘 안 통하는 유혹에 넘어가는 더 덜떨어진 바보나 둘 다 결 국 바보라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 그리고 마리는 그런 두 바보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다가 자신이 돌봐야 할 존재가 하나 더 늘었다는 사실에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른 체 하 염없이 바보광선을 내뿜고 있는 둘을 바라봐야 했다. 그렇게 오전의 간단한 티타임이 끝나고 시오는 수련사 복장을 한 체 빗자루 를 집어들었다. 마리는 그런 시오를 향해 다시 잔소리를 하려고 했지만, 시오는 어떻게 하면 원천봉쇄를 할 수 있는지 잘 알았다. "오늘 의례엔 나갈게요. 에리냥...아니 에리도 같이 나갈래요?" 마리가 등뒤에 서서 찌릿 대는 눈빛을 느낀 시오는 결국 괴상한 애칭을 포 기하고야 말았다. 에리나쟈드는 쪼르르 그런 시오에게 따라붙었다. 점점 그녀가 가지고 있는 냉혹하고 차가우며 신과도 맞서는 차가운 피를 지닌 태 초의 마왕 에리나쟈드라는 이미지가 무너져 내리는 것은 왜일까. 머리 하나는 더 큰 에리나쟈드가 시오와 서 있는 모습은, 언뜻 보기엔 누나 와 동생 같아 보였지만 마리의 눈에는 바보 같은 개 주인과 주인 닮아서 바 보 같은 개 한 마리로 보일 뿐... 검은색의 빌로드 같은 옷을 벗고 흰색의 긴 사제복을 입고 있는 에리나쟈드 의 모습은, 그리고 시오와 함께 서있는 모습은 정말로 한없이 순진하게 보 였다. ...참고로 에리나쟈드의 이마에 있는 금색의 눈동자며 그녀가 가지고 있는 마력의 어디가 순진하며 의심스럽지 않느냐고 의심을 토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라 사료되나... 마이아 신의 총본당인 이곳에는 그것보다 더 의심스럽고 기괴한 일들이 많 았다. 그 대표가 바로 도저히 신의 첫째 삼각지 같지 않은 아방하기 짝이 없는 바 보사제가 아닌가? 그에 비하면 에리나쟈드는 충분히 정상인 것이다. 충분 히... 그래도 만약이라는 것을 생각해서 이마에 흰 끈을 둘러놔 주는 세심한 배려 는 잊지 않는 마리였다. ...도대체 왜 마이아 신의 대본당 소속 사제들은 하나같이 약간 비정상 적일까? 하지만 시오가 말하길, 그녀는 티끌도 악한 느낌을 주지 않았으니 악한 존 재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마리는 작은 한숨과 함께 뒷정리를 시작했 다. 시오의 손놀림은 익숙했다. 약간의 노래와 함께, 하늘하늘하게 움직이는 수련사 복을 입은 체로 그렇 게 시오는 신전의 입구에 해당하는 계단을 쓸고 있었다. 신전 자체가 상당히 높기 때문에 계단은 높고 많았고, 그 계단을 모두 쓸려 면 하루 종일이 걸려도 모자랐다. 의례 수련사들은 '대사제 님에게 어찌 그런 일을 시키리!'라고 소리치면서 열심히 청소를 하기 때문에 사실상 시 오가 하는 것은 뒷마무리 정도였지만, 그래도 할 일 없을 때 육체노동으로 는 딱 알맞은 일이었다. "3월이 오면 꽃이 피고요..." 흥얼대는 콧노래와 함께 삭삭 하는 율동 있는 빗자루 질. 에리나쟈드는 그런 시오를 따라 나와서는, 길게 뻗어있는 신을 수호한다는 수호 짐승을 조각해 놓은 받침대 위에 걸터앉아서 그렇게 청소를 하고 있 는 시오를 바라보았다. 받침대 위에 앉는 것 자체는 뒤에 계단이 있기에 힘들지 않았지만, 받침대 의 정면은 가파르고 사람 키 정도가 되었기 때문에 언뜻 보기엔 위험할 수 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위험 자체가 그녀에게는 통용되지 않는지 에리나쟈드는 언뜻 싸늘하게까지 느껴지는 무표정을 한체 시오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쏴아. 시원한 바람이 한줄기 불어온다. 에리나쟈드는 머리카락이 흩날리는 것을 느끼면서 고개를 돌렸다. 바람에 사납게 나부끼는 회색 빛의 머리카락을 지닌, 쿨 그레이 빛의 허무 감이 짙게 베여있는 눈동자를 하고서 그녀를 마주보는 존재가 거기 있었다. 아니, 단지 그것은 '우연'으로 눈이 마주친 것뿐이었다. 하지만 회색의 사제복 같으면서도 어딘가 조금 자유분방한 옷을 입고 있는 이는 그런 에리나쟈드의 모습에 잠시 입을 다물고 바라만 보고 있었다. 바람, 그리고 태양. 에리나쟈드는 그 존재 자체를 보고서도 무심할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그녀는 무감각한 존재였기에. 또한 그녀의 등장이 별로 대수롭지 않았기에. 고요할 것 같던 침묵이 회색 머리의 사람에게서 깨어졌다. "...이름이?" 에리나쟈드는 방만한 자세로 반쯤 눈을 내리깐 체 느리고 차가운, 저 지옥 밑바닥에 가라앉을 것 같은 저음으로 입을 열었다. "에리나쟈드." 그리고 그녀의 이름을 듣자마자 그 회색 머리카락을 지닌 이의 입에서 나 온 말은, 상상과는 상당히 판이 깨졌다. "남자? 여자? 휘유, 미인인데?" ...아아, 누군지 짐작하라고 강조하지 않겠다. 아인은 그렇게 말하면서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하나 입에 물었고, 조그마 한 화염을 일으켜서 그 끝에 불을 붙였다. 서슴없는 걸음으로 그녀의 아래 에까지 다가온 아인은 위를 흘낏 올려다보는 파렴치한 짓도 서슴치 않았음 이니...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보이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딱 내 취향인데 말 야 당신." 아인은 킬킬 웃었다. 약간 허스키 하면서도 듣기 나쁘지 않은 여인의 음색. 시오는 빗자루 질을 계속 하면서 노래에 가락을 붙이듯이 말했다. "꼬마 아가씨한테 나쁜 짓하면 안돼요 아인님." "에게, 여자였나? 뭐 할 수 없지. 오랜만에 보는데도 더 이뻐졌구나 우리 시오- 자, 나의 이 품으로 달려오련?" 시시껄렁한 농담을 던지는 아인을 향해 시오는 그저 아방하기 짝이 없는 미 소만을 지어보여 줬을 뿐이었다. 거칠 것 없는 시축이 돌아간다. 시간이 흘러가고 흘러가, 결정된 운명으로 지금 굴러간다. 지금, '행'이 결정되었다. ....근데...이왕이면 좀더 분위기 있는 말과 대화 후에 그런 일이 일어나 면 안 단 말인가...? ============================================================= ========= 자자 아인도 나왔고.... 이게 엽기물로 보이시지만 노 노노~ 이번 편은 마왕 이야기 사상 제 3편인 플리즈 폴 겟 미보다 조금 더 잔인하 고 조금더 피튀기고 조금더 진지한..+_+;; 훗.훗.훗. 자아~! 피를 튀길 때까지 돌진이닷!!!!! (.....아아, 스트레스인가? -_-;) 마왕 이야기-137 추억, 기억-5 해실해실 웃고 있는 시오의 옆에 바짝 붙어 긴장한 체 앉아 있는 에리나쟈 드. 그리고 떨떠름한 표정을 지울 수 없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는 마리. 아인은 그런 환대에 만족하면서 방만한 자세로 쇼파에 팔을 걸치고는 마리 가 내온 허브 차에 담배를 털어 껐다. ...문화인은 절대로 흉내내지 말자. 마리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아인은 능글맞게 웃으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하다못해 와인이라도 가져다 놓으란 말이야 와인. 위대한 신들의 대리자 이자 최초의 인간이신 이 아인 님이 직접 납셔주는데 환대가 원 이래서야." 누가 신들의 대리자이고 최초의 인간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꼭 하는 행태 는 지나가던 깡패같다는 것을 누가 알까. 마리는 차마 그런 그녀의 능글거 림에 화를 낼 수도 없고 해서 담배가 둥둥 떠 있는 그로테스크한 찻잔을 들 고 나가버렸다. "옆의 그 미녀는, 오 사랑스런 시오. 드디어 너도 저 재수 없고 이중인격 의 음침한 늙탱이 신에게서 벗어나 사랑스런 연인의 품으로 다이빙하는 것 이냐? 아아, 축복해 주고 싶지만 차마 너의 순결을 여염집 여인에게 넘겨준 다는 것은 아쉽구나." 시오는 깔깔거리면서 웃었고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는 못하지만 시오가 웃으니까 자신도 따라 살짝 웃는 에리나쟈드의 모습은, 이제 누구도 부정 할 수 없는 확고한 바보세트였다. 시오는 실컷 웃다가 눈가에 고인 눈물을 훔쳐내며 말을 이었다. "하핫, 전 아직 결혼할 생각이 없답니다. 그리고 마이아 신께서 들으면 슬 퍼하세요 아인 님. 아인 님은 그분의 적자가 아니던가요? 더군다나 이 어 린 아가씨는 어제 울고 있길래 모셔온 거에요." "적자라니. 그 무슨 얼어죽을 헛소리를. 그 음침한 늙탱이 변태 신 녀 석. 네 지금 얼굴을 봐라. 보나마나 로리 취향의 지독한 변태가 확실하다 니까! 그런데도 너는 그 무지로 인해 속고 있다니...불쌍한 시오. 흑." 시오는 쿡쿡 거리면서 다시 웃었고 에리나쟈드는 영문도 모른 체 눈만 굴리 고 있을 뿐이었다. 마주 앉아 있는 곳에서 일어나 여유자작하게 털썩하고 에리나쟈드의 옆에 걸터앉은 아인은 너무나도 능숙하게 에리나쟈드의 몸을 쓰다듬었다. "오호, 의외로 부드러운 이 감촉. 가슴 근육이 좀 덜 발달한 것 같은데. 허리 아래도 매끈한 것이..." "...아, 아인 님?" 시오는 중년변태도 아니면서 에리나쟈드를 이리저리 더듬으면서(...) 감평 을 늘어놓고 있는 아인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바라보며 황당하다는 표 정을 지어보였다. 에리나쟈드는 어쩔 줄 모르고 허둥거리다 이제 울먹거리기 직전까지 몰려있 었다. 하지만 아인이 누구던가? 그 정도의 양심의 가책에 그만둘 거라면 애초에 수많은 미소년들을 건드리지 않았을...쿨럭. 아인은 한참을 그렇게 더듬 고 주물러 대다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에리나쟈드가 입고 있는 사제복의 상 의를 휙 들어올렸다. "아인님?!" 시오는 찌익, 하는 옷 갈라지는 소리와 바스락거림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 지 파악이 갔는지 얼굴이 발갛게 되서는 허둥지둥 손을 휘두르면서 그녀를 말렸다. 그리고 아인은 폭탄선언을 했다. "어이 야 시오. 이 아가씨 가슴 없는데?" "...네?" "가슴이 없다구. 밋밋해. 이런! 그렇다면 이것은 내 취향의 미소년이란 말 인가!" 얼떨떨하게 말하다가 갑자기 너무나도 즐거워하는 아인의 머리에 차가운 물 이 쏟아진 것도 바로 그때였다. 시오는 아인이 고개를 팩 돌려서 상대를 쏘아보는 동안 재빨리 에리나쟈드의 옷자락을 내렸고 에리나쟈드는 거의 번 개에 가깝다고 추정되는 속력으로 시오의 뒤로 휙 숨었다. 마리는 반쯤 구겨진 은제 쟁반을 들고 애써서 미소를 지었다. 살벌하기 짝이 없는 그녀의 미소에 아인도 일순간 움찔했을 정도였으니 그 공포와 살기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고도 남으리라. "신성한 이 빛의 신전에서 그 노망난 변태 중년의 기질 좀 드러내시지 않 을 수 없습니까 아인디아 드 라렌님?" "너야말로 그 다 늙은 할머니 같은 잔소리 근성 좀 줄이면 안돼겠냐? 절구 통 마리." "오호호호호, 남장변태인 아인디아 님께 제가 어찌 미칠까요?" "너무 그렇게 굴 거 없어. 네가 안 그런 척 하면서도 미소년 미소녀를 상 당히 밝히는 소년취향이라는 것은 충분히 알고 있다고. 컬렉션을 뺐기는 느낌인가 보네?" "그러는 아인디아 님이야말로 대놓고 수도 없는 미소년들의 창창한 인생을 빼앗기로 유명하신 분이 아니던가요, 뭘 그런 과찬을 다..." 둘 사이에 오가는 통렬한 독설은 무시무시한 양상을 띄면서 전개되고 있었 고 오랜만에 보는 이 즐거운 구경거리를 앞에 두고서 시오는 호륵, 하고 차 를 한 모금 마셨고 에리나쟈드는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시오는 그런 에리나쟈드를 토닥토닥 대더니 입을 열었다. "우리 다른데 가서 놀까요 에리?" "응..." 끄덕거리면서 시오를 제 손으로 잡아 이끄는 에리나쟈드의 모습에서 보듯 이, 그녀는 어지간히 마리가 무서웠고 아인의 느끼한 태도가 두려운 모양이 었다. ...그보다 한가지 의문이 남는데. 남자일까 여자일까 우리의 에리나쟈드는...? 두 사람(?)이 밖으로 나오자 밖에서 초조하게 지켜보던 수련 사제들과 일 반 사제들은 시오를 둘러싸고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된 겁니까 시오님?" "제 3차 마이아 교단 대 신성령의 전쟁인 겁니까?" "이번에야말로 분명히 아인 님도 지실 거야! 그동안 시오님을 상대로 얼마 나 많이 인내심의 연습을 해오셨는데!" 멋대로 말하면서 나불나불대고 있는 이들을 보면서 어이없는 표정을 한번 지어 보이더니 시오는 아방하기 짝이 없는 미소를 띄워 보였다. 그리고 모 여있는 사제들을 향해 한마디했다. "오늘은 일이 없나요?" 시오의 갑작스런 환기에 다들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 '아차 요리!' '헉, 빨 래가 덜 됐는데!' '오늘 예배 담당이 누구였지!?' '오 이런, 신상 닦는 것 을 잊어먹었어!' 따위의 말을 남겨두고 사람들을 우르르 흩어졌다. 에리나쟈드는 인간들의 정신없는 이동이 얼떨떨한지 고개만 휘휘 젖고 있었 고 시오는 살짝 미소 지으면서 에리나쟈드의 손을 이끌었다. "저기 뒤뜰로 나가면 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있어요. 시장에 놀러가 볼래 요?" "시...장...?" 에리나쟈드는 처음 해본느 발음에 우물거렸고 시오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 시 그녀의 손을 꼭 잡고 끌어 주었다. "사람들이 아주 많아요. 색색깔의 천들이 길에 늘어서 있고, 물건들이 많 고, 서로 이야기하고 물건을 사고 파는 곳이죠. 가끔 다른 종족도 볼 수 있어요." "갈래!" 눈을 반짝거리면서-비록 시오는 보지 못하지만-에리나쟈드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오는 약간의 공기의 흔들림과 붕붕 소리가 날 정도로 나풀거 리는 머리카락의 움직임 덕에 에리나쟈드의 강한 긍정을 알아듣고는 살짝 미소 지었다. "그럼 가요." ============================================================= ========= 폭탄선언.. 에리나쟈드는 여자인가 남자인가? -_-; 글세요.....글세요...글세요...-_-;;;;(삐질삐질....) 저도 모릅니다...(-_-; ) 이번편은 히드레안 및 그 여타 떨거지들이 나오지 않는 대신 최강의 엽기녀 아인씨가 나오는군요. 쿨럭... 왠지 그녀가 나오면 손끝이 부들부들 떨리는 펜릴입니다. 아아, 난 저런 여자가 너무 좋앗! +_+;; 당당한 변태녀가 되주세요 아인니이이이임! 콜록....-_-;;; 마왕 이야기-138 추억, 기억-6 시오가 평소 열심히 길을 닦아 놓았는지, 안그러면 불경스런 사제가 생각 외로 많았는지 마을과 연결되 있는 길은 상당히 넓고 잘 닦여 있었다. 아마도 마을 사람들이 예배를 위해 만들어 놓은 샛길이 아닌가 추정되는 데, 그런 것과 상관 없이 시오는 생글생글 웃으며 시장의 외각 부분에 늘어 져 있는 숲으로 연결되는 곳에서 슬쩍 모습을 드러냈다. 에리나쟈드는 동그래진 눈으로 감탄성을 내뱉았다. "신기해! 빛나!" ...그녀의 눈에는 마법 등불이 상당히 놀라워 보인 모양이었다. 누구나 필수 아이템 격으로 사용하는 마법 등불이니 만큼 새삼 놀라울 것 은 없지만 그녀에겐 그 모든 게 신기했던 것이다. "마법 등불인 모양이네요. 야시장까지 열려나 보나요?" 시오는 생글생글 웃으면서 에리나쟈드에게 설명해 주었고 에리나쟈드는 기 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둘이서 손을 잡고 시장을 따라 걷는 모습은 많 은 사람들에게 눈요깃거리가 되기 충분했다. 길게 바닥까지 끌릴 듯한 검은 머리카락을 사방으로 흩날리게 해놓고 사제 복을 입고 있는 여인-으로 추정되는-밀랍처럼 새하얀 얼굴에 약간 날카롭 고 가는 검은 눈동자. 흰 머리띠로 이마를 고정해서 머리카락을 단정히 해 놓고 있는 얼굴에 떠도는 순수하게 느껴지는 미소는 그녀를 순결하게, 또 는 음탕하게 바꾸어 놓았다. 손을 잡아 끌어주고 있는 조금 키가 작은 소년은 살짝 상기된 붉은 뺨을 가 지고 있는 전형적인 미소년이었다. 귀엽게 커다란 금색기가 도는 녹색 눈 망울에, 살짝 늘어진 금빛의 머리카락. 그리고 견습사제복. 신전에 순례라도 온 남매 사제로 오인 받기 딱이었다. 누구의 눈에 신경 안 쓰고 둔하기로 유명한 시오가 그런걸 신경 쓸 리가 있 을 리가 없지. 에리나쟈드는 시오가 가끔 멈춰서서 설명하는 것을 들으면 서 고개를 끄덕끄덕 거리며 마냥 어린애처럼 좋아했다. "에리는 시장이 처음이에요?" "응. 응."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훤히 느껴질 정도로 커다란 동작. 시오는 생긋이 웃었다. "시장은 그 마을이 얼마나 발달되어 있는지 그 척도를 잴 수 있는 곳이랍니 다. 사람은 다른 유사종족들 처럼 혼자서 완전한 자급자족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시장에서 서로 돈이란 화폐 수단에 따라서 교환을 하는데, 그게 얼 마나 자주, 그리고 활성화 되있느냐에 따라서 마을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활발하게 사는 것인지를 알 수 있는 거죠." "여긴 활발해?" 시오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네, 아무래도 마이아 교단의 총본부가 이곳에 있고 신의 성역 주변이니 가 호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과 신실한 독신자들이 많이 모여드니까 요." "신실한 독신자들 좋아하시네! 신이 해준 게 뭐가 있다고!" 갑자기 시오의 말에 반박하듯이 튀어나온 말에 에리나쟈드는 고개를 그쪽으 로 들었다. 얼핏 새하얀 밀랍 같은 그녀의 얼굴은 무표정 할 시에는 상당히 차갑게 느 껴질 정도였기 때문에 싸늘한 얼굴에 살기마저 도는 착각이 느껴질 정도였 다. 말을 꺼냈던 남자는 그런 그녀의 눈빛에 조금 찔끔한 모양이지만 이내 지지 않고 눈을 부라렸다. 취한 듯 붉어진 얼굴과 남루한 옷차림. 마을에 가 면 꼭 하나 둘쯤은 있는 부랑자. 사람들은 당연히 '예쁜 쪽'인 시오 들을 도와주려 하나 둘 씩 그 남자에게 면박을 주며 앞으로 나서주었다. 아무래도 마이아 신의 본 교단이 있으니만큼 사제들이란 마을사람들에게 있 어서-말이 마을이지 도시다 도시-굉장히 중요한 수입원이었다. "내가 틀린 말했어! 젠장, 신이 해준 게 뭐가 있냐고! 꼬박꼬박 예배드리 고 기부금을 바쳐왔건만, 그 잘난 사제들이 해준 게 뭐가 있냔 말이야! 말 만 번드르르 해서 마이아 신의 사제니 뭐니...밥 버러지들!" "이봐 짐! 말이 심하잖아!" "심하긴 뭐가 심해! 마누라가 죽고 애새끼가 가출할 때 신이 내게 무슨 도 움을 줬냔 말이야! 그 잘난 사제들도 치료 못하는 병! 빌어먹을, 신실한 신 자를 돕는 삼각지 좋아하고 자빠졌네. 신이 뭐길래 날 이렇게까지 괴롭히 는 거냐-이 말이야! 말 좀 해보시지, 거기 잘난 사제나부랭이들!" 사람들은 가엾다는 듯이 혀를 쯧쯧 차면서도 그가 혀가 꼬여 지껄여대는 말 에 대해 시오에게 사과했다. 시오는 살짝 웃더니 입을 열었다. "신이 왜 그대를 위해 무엇을 해주어야 합니까?" "뭐...뭐야?" 다른 사람들마저 놀라게 할 정도로 시오의 말은 황당했다. 보통의 사제라 면은 눈살을 찌푸리면서 가버리거나, 아니면 그를 설득하려고 드는 것이 대 부분일 텐데 시오는 오히려 그런 짐에게 기름을 끼얹어 버렸다. "신이 그대를 위해 무엇을 해주어야 합니까? 그대가 바친 것에 대한 대가 로?" 시오는 다시 말했다. 여전히 그의 말투는 온화했고, 미소는 부드러웠지만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이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여 전히 그것은 바보광선 업그레이드 판일 뿐. "인간의 삶은 인간의 것입니다. 신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신을 섬기 는 것은 그들이 우리의 창조주, 오롯이 경배 받아야 할 자여서 이지 신이 우리에게 어떠한 혜택을 베풀어서가 아닙니다. 당신의 삶은 당신의 것이었 지 신의 것이 아닌데 어찌해서 신을 원망하십니까?" 시오는 손을 내밀어서 정확하게 짐의 손을 잡았다. 따스하기 그지없는 미 소를 지으며, 시오는 그의 눈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때로 수도 없는 고통이 당신의 인생을 지배하겠지만, 당신의 것인 삶을 포 기하지 마십시오. 신은 우리를 지켜보시고, 그리고 우리를 향해 미소지어 주십니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삶을 사는 인간에게 주어지는 것이지 신 의 삶을 사는 인간에게 주어질리 없잖습니까?" 따뜻한 금빛의 기운이 시오의 몸에서 솟아올랐다. 여기저기 긁히고 멍든, 그의 몸에 쏟아진 그 금색의 기운은 천천히 빛을 뿌 리며 상처를 치유해 나갔다. "신이 아니라 인간의 삶을 사십시오. 빛에 따르는 그림자의 가호가." "...사...사제 님..." 손을 떨고 있는 짐과 그 주변의 사람들도 하나같이 굳어 버린 표정을 하고 있었다. 마치 신의 재래라도 보는 듯이 떠도는 안온한 공기와 편안하게 느껴지는 저 미소... "시, 시오 마이안 님이다." "뭐? 마이안! 신의 재래이신 그분!" 누군가 내뱉은 말이 기폭제라도 되듯이 순식간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 다. 시오는 헤실헤실 웃으면서 그런 시오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에리나 쟈드의 손을 더 꼭 쥐었다. 한 손으로는 에리나쟈드를, 그리고 한 손으로 는 짐의 손을 잡고 있던 시오는 짐의 손을 놓으면서 양손을 에리나쟈드를 꼭 잡았다. "에리, 우리 오늘 혼나게 생겼어요." 하핫 하면서 멍청하게 웃는 시오를 따라서 더 멍청하게 웃으며 에리나쟈드 도 대꾸했다. "혼나?" "네에, 정체가 들통나 버렸네요." 이것으로 시오의 바보광선은 에리나쟈드의 힘에 의해 업그레이드되고 그 바 보광선으로 인해 대량 세뇌가 가능하게 된 것인가? 이제 세계 정복을 노려 라 시오! 커헉...저 바보세트는 어디까지 뻗어나가려는지... ============================================================= ========= 음....계획을 말하자면 시오의 아방한 미소로 세뇌된 사람들을 점차 늘려가 고 에리나쟈드의 도움으로 업그레이드된 바보광선을 쏘아서 사람들을 모두 우리편으로 만든 다음 국가 수복을 꽤해서 바보군단을 만들고 바보광선 팽 창이론을 이용해 전 세곌르 다지는 기초 발판을 만들어 내서 그 대로 세계 정복으로 나서는.......쿨럭... 그럴리가 없겠지요..-_-III 아아..빨리 쓰고 싶다...빨리 쓰고 싶다... 요즘들어 이상하게 전투씬이 좋아지고 있는, 스트레스 게이지 up의 펜릴입 니다.. 이상태로라면 분노 게이지와 스트레스 게이지, +@해서 노여움 게이지가 높 아져 초필살기를 쓸 수 있을텐데.... .....무슨 말을 한걸까 나는...-_-;; 나머지는 이제 새벽쯤에 올라옵니다. 청소년은 밤이 깊었으니까 잠듭시다(나는? -_-;;;;;) 그러나 엽기적인 우리의 독자님들은 새벽에 다시 오실 것을 믿어 마지 않습 니다만...+_+;;;; 마왕 이야기-139 추억, 기억-7 "시오 님." "네, 네에...." "시오 님. 이번에는 도망가지 않으시겠지요." "네에...물론이죠..." 마리는 침중한 얼굴을 한 체 절대로 도망 못 가게 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 면서 시오를 질질 끌고 나가버렸다. 상당히 고위 사제들이 나서는 것으로 보아서 굉장한 문제가 생긴 것 같은 느낌이 든 에리나쟈드는 텅 빈 접견실 에 홀로-아니 아인과 함께지?- 앉아 있다고 믿고 싶어하며 힐끗힐끗 아인 을 쳐다보았다. "자꾸 그렇게 쳐다보면 잡아먹고 싶어진다고 베이비." 앗, 깜짝 놀래서 구석으로 기어 들어간다. 덜덜 떨면서 눈만 동그라니 뜨고 아인을 올려다보는 모습은 어미 잃은 강아 지, 주인이 사라지자 겁먹고 떠는 멍청한 덩치 큰 바보 개와 착각이 갈 정 도였다. 아인은 놀리는 재미가 너무도 쏠쏠한지 킬킬 웃었고 에리나쟈드의 눈가에 눈물이 어리기 시작했다. ...새삼 얘기하는 건데. 이미지 무지하게 깨지 고 있는 것 같다. 첨예한 혼돈이자 위대한 일곱 혼돈의 여왕, 모든 마족 의 지배자이며 차가운 피의 여신이라던가 하는 등등의 묘사는 모두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질문이 있는데..." 아인은 담배를 살짝 손끝에 걸치더니 에리나쟈드를 바라보았다. 더 겁먹 고 있는 그녀, 아인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맺혔다. "왜 시오에게 접근한 거냐. 첨예한 혼돈, 에리나쟈드 드 이크립스." 에리나쟈드가 입을 열 틈도 없이 아인은 길게 담배연기 자국을 남기면서 둥 근 원을 그렸다. 연기가 만들어낸 원을 빠르게 스치는 담배연기로 인해 오 망성이 그려지고 아인은 낮게 주문을 외었다. "대적하는 자, 어두운자, 파멸에 근원 하는 자, 이 신성한 땅에 머물지 못 하는 악령을 이 자리에 봉하노니! 실링!" 눈부신 흰빛이 방안을 꽉 채우더니 곧 결계를 형성해서 이곳저곳 빛나기 시 작했다. 아인은 급속하게 타들어 가서 완전히 꽁초만 남은 담배를 바닥에 던지고 비벼 끄고선 천천히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면서 에리나쟈드를 바라보 았다. "자, 조용하니까 어디 대화를 다시 나눠볼까? 대답에 따라서 넌 죽을 수도 있어. 여기는 빛의 신 마이아의 대신전이란 걸 잊지 말았으면 좋겠군." 에리나쟈드는 아까까지의 표정을 지우고 약간 멍한, 그렇기에 밀랍처럼 무 표정한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품에다 다시 담배를 꺼내 질겅하고 물면서 아인은 날카롭게 말했다. "엉뚱한 수작은 꿈에도 부릴 생각하지 말아. 시오는 너희들 쓰레기 마족에 게 넘겨주기엔 너무 아까워."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가?" 낮은 저음이 방안을 울렸다. 흠칫하면서 아인은 저도 모르게 한걸음 뒤로 물러났고 에리나쟈드는 그 자 리에 서서 아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일말의 감정도 깃들지 않은 공허한 검 은 눈동자. 차라리 시체라도 그보다 더 아름다울 거라고 생각 될 정도로 오싹한 한기 가 그녀에게 감돌고 있었다. "...하...본성을 드러내시는군. 마왕 님."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가? 나는 아무런 짓도 하지 않았다." "그럼 왜 시오에게 접근했지? 그럼 마왕이 빛의 신의 대사제에게 접근하는 걸 나더러 아주 아주 좋은 의도니까 잘 했다고 박수나 치면서 구경하라 이 거냐!?" 파악하고 아인이 손을 뿌리자 날카로운 빛의 기운이 쏟아져 나갔고 에리나 쟈드는 차갑게 굳은 표정으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펄럭하고 이마를 가려 주던 천이 떨어져 나가고, 황금빛으로 형형이 빛나는 금색의 눈동자가 그대 로 드러났다. 에리나쟈드는 붉은 입술을 천천히 움직였다. "그만두지 않으면 넌 죽는다." "내가 죽을 수도 있나 보네? 디아도 죽는가? 닥쳐! 아무 것도 모르는 시오 한테 순진한 척 접근해서 뭘 어쩔 셈이야! 너따위 쓰레기 마족들에게 들어 가기에 그 아이는 너무 고귀해! 더럽히지 말란 말이다!" 아인의 격렬한 말에도 불구하고 에리나쟈드는 미동도 없었다. 살아있는 인형이 걸어서 다니는 느낌이랄까, 에리나쟈드는 여전히 낮고 고 요한 저음으로 입을 열었다. "나는 너를 죽일 수 있다." 서늘한 한기. 정말로 밀려드는 죽음의 공포에 아인은 꾹 입을 다물었다. 에리나쟈드는 그런 아인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말을 이어나갔다. "네 말대로 나를 지칭하는 이름은 에리나쟈드 드 이크립스. 첨예한 혼돈이 자 나에게 의지를 부여한 명왕의 의지로 마계를 유지하는 일곱 혼돈의 축이 다. 하지만 그것 뿐, 내가 그 이상으로 너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에리나쟈드는 한발짝 걸어나왔다. 아인은 저도 모르게 주춤하고 뒤로 물러 섰고, 그녀의 입가에 비웃음과 같은 연한 웃음이 살짝 걸렸다. 지독할 정 도로 오싹한 냉기를 지닌 미소. 소름이 다 돋을 지경이었다. "두려운가? 신의 이름을 빌어 나를 제압할 수 있으리라 믿는 우매한 자는 아니지만 너는 어리석군. 설사 내가 에리나쟈드 드 이크립스라고 하더라 도 변하는 것이 무엇이지? 너는 그것을 알았다고 해도 아무 것도 바꾸지 못 한다. 안 그런가?" 팔 끝이 떨려온다. 압도적인 마기, 넘쳐흐르는 그녀의 몸 안에 잠재돼 있는 힘 때문에 걸어둔 봉인이 삐걱대면서 비명을 질러댈 정도였다. 설마, 설마 최고위 마왕이라 고 하지만 이정도 일 줄이야. 베나디아 따위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엄청난 마력. 그리고 저 싸늘한 허 무. 죽고 싶다고 생각했었지만, 막상 근접한 절대적인 죽음의 사신을 본 순간 아인은 공포에 질려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넌 나를 죽일 생각이 없으신 것 같은데? 에리나쟈드." "너는 죽기를 원하지 않으니까." 냉혹한 대답. 아아, 미소짓고 울려고 글썽대는 눈물은 다 뭐였던 걸까. 이 지독한 냉기, 냉기. 오싹한 저 얼굴. 진정한 마왕이라 불리는 존재의 잔혹함. 시오의 천진스러움이 이럴 때는 못내 원망스러운 아인이었다. "...하아...그건 부정을 못하겠군 그래. 하지만 확실하게 하고 넘어갈 것 이 있다는 것은 너도 잘 알겠지? 무슨 생각으로 시오 옆에서 시치미 때고 있는 거냐 에리나쟈드?" 약간 끝이 올라갔던 입술이 다시 내려갔다. 그리고 에리나쟈드는 천천히 한 발짝 더 아인에게로 걸어오며 말을 이었다. "세상의 모든 것에 뜻이 있고 그 하나하나가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해도 그 걸 모두 알 수 있는가?" "무슨 헛소리야?" 에리나쟈드는 살짝, 어설프지만 따스하게 느껴지는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 다. "나는 그 모든 것에 깃든 의미를 알지 못한다. 내가 아는 한 내가 그의 곁 에 있는 이유. 그것은 우연이라 이름하는 것. 나는 단지 우연의 부름 아 래 그의 곁에 있는 것." "...우연...? 우연이라고? 네가 아무 것도 모른 체 신성력으로 흘러 넘치 는 시오 옆에 있단 말이냐? 그게 말이 돼!" "나는 너에게 말을 하고 있다. 한치의 거짓도 없는." 아인은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감싸쥐었다. "시오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다는 조건하에서다. 우연이니 나발이니 하는 시덥잖은 소리를 믿을 정도로 내 정신이 피폐해 진 것도 아니고. 너 따위 얼굴 반반하면서 능구렁이 같은 녀석은 못 믿어." 아인은 그래도 아직 못마땅한지 물끄러미 에리나쟈드를 바라보다가 질문했 다. "...그런데 여자야 남자야?" "인간의 기준법은 내게 유효하지 못하다." 딱 부러지는 대답에 아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아 시오. 네 연인은 이중인격에 사실은 나쁜 마왕에다가 잘못하면 남자 일 수도 있단 말이다. 물론 남자라면 보는 나야 두 배로 즐겁겠지만 그래 도 괜찮을까? 정말 너 이대로 시집가면 돼는 거냔 말이다?"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바닥에 주저앉아 고민하는 아인. 방안의 결계는 어느새 풀려 있었고 둘은 그렇게 일상으로 복귀했다. ============================================================= ========= 훗...-_- 바보세트는 영원하리.... 에리나쟈드의 성격이 왜 갑자기 변했냐고 묻지 마시길. 마지막까지 가야지 모든 것을 알수 있으리.... 그것이 이 작가의 모토....-_-; 쿨럭... 결국 사람들 괴롭히기 심리잖아... 곧 140편이군요. 200회까지는 그럼 60회....훗.... 슬슬 피치를 올려볼까, 따위의 말은 하지 않습니다...-_-;; 지금 이정도의 속도의 연재를 하는 사람이 흔한 줄 아십니까? ;; (변명은....ㅡㅡ+) 이 추억, 기억편이 끝나게 되면 다음 편은 피는 물보다 진하다.편이 됩니다. 그럼 그걸로 네버 엔딩! 마지막 화, 비챕터인 밤과 어둠과 낮과 새벽은 과연 쓸까 안쓸까 아직 예상 경로를 알 수 없으니...쩝....-_-; 아마도 쓰게 된다면 정말 최악의 글이 될거라고 예상합니다. 왜냐면 히드레안님이 망가질 데로 망가져 버릴테니...아악! 안돼! 그럼...-_-; 추억, 기억은 대략 30회 안으로 마무리 지으려고 생각 중입니다만... 의외로 피는 물보다 진하다 편이 양이 많은 것 같아서리. -_-;; 아듀~ 마왕 이야기-140 추억, 기억-8 시오는 축 처질 정도로 잔소리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방한 미소 한번 과 '다음부턴 주의할게요' 한마디로 사제들을 혹하게 만들어 놓고는 생긋 이 웃으면서 복도를 따라 걷고 있었다. 그를 위해서 대부분의 사제들은 솔 선해서 주변에 잡다한 기물을 내놓지 않았고 덕분에 자주 자빠지고 넘어지 고 하는 시오라도 신전 안에서 사고가 나는 경우는 드물었다. 시원한 바람과 함께 느껴지는 시트러스 향기. 시오는 살짝 고개를 들면서 미소 지었다. "에리. 무슨 일이에요?" "시오...시오...우앙~!" 울면서 안겨드는 자신보다 조금 큰 에리나쟈드를 얼떨결에 안고 있으니 사 제들이 웅성웅성 대면서 몰려들기 시작했다. 시오는 에리나쟈드를 더듬어 보았다. 무, 물론 아인 같은 변태적인 이유로 인해 그런 것이 아니었고, 시오는 더듬어 본 결과 옷자락이 상당히 찢어진 대다 그녀의 호흡이 상당 히 상기돼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얼굴이 발갛게 되서는 시오는 소리쳤다. "아인 님! 세상에 여자 분을!" 그 자리에 당연한 것처럼 서있는 아인은 대꾸했다. "시끄러 녀석아! 어딜 누굴 동성 취향 변태로 모는 거야! 저녀석은 어디까 지나 중성이란 말이야! 건드려도 덥쳐도 전혀 하등 이상이 없다고!" 시오는 어리벙벙해 져서 대꾸했다. "...저어...건드리거나 덮치는 게 왜 하등 이상이 없는 일이에요...?" 아인은 입을 다물고 그런 그의 말을 생각해 보다가 괜히 신경질을 냈다. 꿀리니까 괜히... "시꺼. 너 지금 감히 위대한 아인디아한테 따지는 거냐? 이 자식이 대사제 라고 이제 날 괄시하려고 드네? 엉?" 시오는 어설픈 웃음을 지으면서 울고 있는 에리나쟈드를 달래며 고개를 휘 휘 저었다. 그리고 마리는 고요한 살기를 사방으로 퍼트리며, 실질적으로 그녀가 사실은 고위사제가 아닌 펠러딘이나 몽크가 됐어야 정확했다는 전투 사제들의 안타까운 눈빛을 받으면서 등장했다. "아인디아 님...신성한 신전의 내에서 이 무슨 변. 태. 적. 인. 행각이십니 까?" "뭘 그렇게 치사하게 굴고 그래 절. 구. 통. 마리." "아니 그 무슨 말씀을. 남장변태이신 분께 들을 말은 아니라고 사료됩니다 만..." 그렇게 신성한 신의 복도에서 둘은 감히 입에 담아서는 안돼는 말들을 서슴 없이 내뱉으며 어떻게하면 조금이라도 상대를 깔아뭉갤 수 있을지 처절하면 서도 무시무시한 대결을 벌이고 있을 때, 시오는 토닥토닥 에리나쟈드의 머 리를 두드려 주면서 말했다. "방에 가면 사탕 있어요 에리." 결국 바보세트란 바보세트일 뿐. 둘은 세트로 헤실헤실, 아방하기 짝이 없는 미소를 띄면서 손을 잡고 사라 져 버렸고, 남은 것은 독설로 인해 오염된 공기와 누가 이길 것인가에 대 해 진지한 사제들의 고찰뿐이었다. 누가 말했던가? 신전이란 가장 신성한 장소라고. 만약 그런 말 한 사람 있으면 지금 와서 이 흉흉한 살기로 뒤덮혀 가고 있 는 제 3차 마이아 교단 대 신성령의 발발 첫째 지점을 보고 온 몸으로 한 번 느껴보도록. 그딴 말이 나오는가. 시오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병 안에 들어있는 사탕을 꺼내서 에리의 입에 넣 어주었다. 에리나쟈드는 사탕을 우물거리다가 금새 눈물자국을 지우고 밝 게 웃었다. 물론 시오는 그 미소를 볼 수 없었지만 변화한 주변의 공기의 느낌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가 웃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인 님이 좀 짓궂기는 해도 좋은 분이에요. 하지만 에리는 앞으로 아인 님이랑 절대로 혼자 있으면 안돼요. 아셨죠?" "...?" "그럼 나쁜 일이 일어난대요." 마리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최대한 진지하게 하면서 시오는 에리나쟈드에게 설교를 해주었다. ...결국 자신도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잘은 모른다는 이 야기인데, 역시 둘다 바보다. "으응." 착하게 고개를 다시 끄덕이는 에리나쟈드를 그냥 침대 가에 앉혀두고-뭔가 말이 이상하다-시오는 탁자가에 다가갔다. 검소하게 만들어진 방안은 벽 쪽에 있는 침대와 바닥에 깔린 카펫, 그리고 둥근 탁자 하나와 옷장 하나, 그렇게 간소하게 만들어져 있었으며 창문으 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만이 유달리 풍부한 곳이었다. 탁자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던 자수틀과 실패를 들고는 시오는 창가 아래 에 늘어져 있는 쿠션들 더미에 앉았다. 그런 그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 다가 에리나쟈드도 털썩 바닥에 앉더니 시오 쪽으로 슬금슬금 무릎걸음으 로 다가와 그가 뜨고 있는 수예를 내려다 보았다. 눈도 안보이는 봉사가 어떻게 수예를 하느냐고 물으면 할말이 없기는 하지 만, 시오는 손끝의 감각으로 색을 구분할 줄 아는 어떻게 보면 기이한 능력 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충분히 그런 일을 할 수 있었다. "...이거...웅?" 갸웃하고 고개를 젖는 바람에 출렁하고 물결친 검은 머리카락이 수예틀로 흘러내렸다. 시오는 자칫하면 머리카락을 두고서 꿰맬 뻔한 바늘을 멈추고 서는 살짝 미소지었다. "수예라는 거에요. 이렇게 틀 위에 그림들을 실로 수놓는 거지요." "예쁘다...이거." "그래요?" 정말로 에리나쟈드의 말대로 시오의 수예 솜씨는 수준급인지(도대체 대사제 가 왜 이런 취미를 가져야 하는지 누가 말 좀 해줬으면 좋겠다) 이리저리 화려한 문양으로 수놓아져 있는 나비와 꽃들이 상당히 정교했다. 헤실헤실 웃으면서 시오는 살짝 에리나쟈드의 머리카락을 치우고 수예를 뜨 기 시작했고, 털썩하는 소리가 나도록 에리나쟈드는 시오의 옆의 쿠션을 하 나 차지하고 드러누웠다. "바닥에서 자면 추워요 에리." "으응, 으응." 끄덕끄덕 대답은 하면서도 옆에서 움직이지 않는 에리나쟈드를 한번 토닥토 닥하고 쓰다듬어 주면서 시오는 노래를 흥얼대기 시작했다. 기분 좋은 강아지 한 마리와, 바보 주인의 평범하고도 행복한 일상생활 같 은 느낌이 듬뿍 드는 장면. 시오는 손을 더듬어 실을 찾아 꿰면서 흥얼거림과 더불어 노랫가락을 흥얼 거렸다. "옛날 옛날에 새장 속에서 사는, 나쁜 마음을 가진 마왕님이 있었대요..." 시오는 실을 능숙하게 놀리면서 자수틀 위에 나비 한 마리를 더 수놓았 다. 금빛으로 반짝이는 나비는 금방이라도 날아 갈 듯이 모습을 갖추었고 시오는 눈꺼풀이 무거운지 눈을 가물가물 거리면서도 애써서 눈을 부비는 에리나쟈드를 위해 한번 더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렇지만 사실은 마왕 님은..." 시오는 검은 실을 찾아서 나비의 날개에 점을 박아주면서 중얼거렸다. "...외롭기 때문에 가슴이 아픈 것 뿐이었어요..." 시오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지고, 에리나쟈드는 따스한 햇빛 아래서 눈을 감 았다. 그녀는 잠에 빠져들었고, 시오는 말없이 이야기만을 속삭여 줄 뿐이었 다. ============================================================= ========= 이제 3편 정도만 이 바보세트 이야기를 쓰고 본격적으로 심각한 이야기로 들어가겠습니다. 이번 편이 심각한 이야기라고 미리 말했지요? 초 진지, 초박력, 초 피튀김 물이리...-_-; 아아...이번편만 쓰면 마지막 챕터... 어서 끝내자.... 추억, 기억...오래 끌다간 히드레안님의 인기가 대폭 추락하는 불상사가 생겨 버릴지도..쿨럭... 마왕 이야기-141 추억, 기억-9 아인은 거칠게 시오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목에 팔을 감고는 거친 스킨 쉽을 과시했다. 싫지만은 않은지-원래 싫은 게 어디 있겠냐만-시오는 쿡쿡 웃으면서 그런 그녀의 행동을 받아 들였다. "다음에 한번 더 놀러올테니 그때까지 건강해라 시오 너!" "네에, 아인 님도 그때까지 건강하세요." 그리고 아인은 에리나쟈드 쪽을 살짝 바라보더니 손가락으로 시오를 가르 켜 보이고, 한 손으로는 자신을 가르키더니, 목을 죽 내리긋는 포즈를 지었 다. 에리나쟈드는 그게 무슨 뜻인지 혼자 한참 고민하고 있기 시작했고 아 인은 한숨을 내쉬면서 마리 쪽을 바라보았다. "이봐 절구통 마리." "무슨 일로 그렇게 부르시는 거죠 남장변태 아인니임?" 파직, 하고 순간 방전이 일어났지만 둘다 상관하지 않고 가운데 죄 없는 시 오를 끼운 체 서로 노려보고 있는 두 사람. 아인은 입을 열었다. "신전이 마기로 물들지 않게 조-심 하라구. 수석 사제 양반." "그렇게 말씀 안 하셔도 충분히 그렇게 할겁니다!" ...갈 때까지 싸워대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이번에야말로 승부가 날거라 믿 으며 진지하게 토론을 하고 있는 사제들, 에리나쟈드는 아방하게 웃고 있 는 시오가 참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으르렁대면서도 정작 두 사람은 가운데 끼인 시오 때문에 제대로 싸 우지 못하고 있었고, 그래서 다음을 기약하면서 싱겁게 헤어질 수밖에 없었 다. 시오는 아인의 발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그렇게 서서 배웅해 주었고, 사제들 도 각기 아인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서 신에게 감사 인사를 올리며 올해는 다행히 한 명도 안 당했다는 등의, 매우 안도감 높은 소리들을 두런두런 주 고받으며 즐거워했다. 시오는 그런 사제들을 향해 한마디 던졌다. "오늘 아침 예배는 어떻게 됐나요?" 잠시 침묵에 쌓였던 사제들은 이내 자신이 할 일을 또다시 잊어버리고 있었 다는 것을 자각하고는 서둘러 움직였고 느긋한 동작으로 빗자루를 찾아낸 시오는 천천히 에리나쟈드가 서 있는 쪽을 보고 웃어 주었다. "에리, 아침 청소하고 우리도 같이 식사하죠?" 에리나쟈드는 시오가 눈이 보이지 않는 다는 사실을 아는 건지, 아니면 알 면서도 그가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크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 다. 여전히 멍청하고 아방하게 느껴지는 미소를 지으며 시오는 슥슥 빗자루를 들고서 계단을 쓸어내리기 시작했다. 잠깐의 괴팍하고 잔인무도하며 무시무시한 손님이 지나가고, 다시 일상으 로 복귀된 신전이었다. 에리나쟈드는 언제나 처럼 신성동물의 모습을 조각 한 상 아래에 걸터앉아서, 시오가 계단을 쓸고 있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그런 그를 바라보다 중얼거렸다. "...우연, 모든 것들의 시발점. 그대는 나에게 무엇을 바라는가?" 돌아오지 않는 대답을 기대하며 그녀는 그렇게 뜨거운 태양의 아래 불어오 는 바람결을 따라 흩날리는 검은 머리카락을 내버려 둔체, 시오에게 눈길 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우연이라 이름하는 인연에 따라 만나게 된 존재. 하지만, 본질적으로 결국 바보일 뿐인 에리나쟈드는 그저 멍청하니 앉아서 뜨거운 태양빛에 달구어지고 있는 머리카락의 온도나 즐기고 있을 뿐이었 다. 그렇게 아침 예배 시간은 가까워지고, 청소를 끝낸 시오는 탁탁 손을 털고 빗자루를 구석진 곳에 놓아두고는 에리나쟈드에게 다가와서 손을 내밀었다. "에리, 식사하러 안가요?" "으응." 펄럭, 옷자락이 조금 흩날리고 에리나쟈드는 사람 한 명이 서 있을 정도의 높이를 가볍게 떨어지듯이 내려왔다. 바람이 잠시 그녀를 휘감고, 소리 없 이 발이 부드럽게 착지한다. 말을 하지 않고도 자연을 움직이는 엄청난 이적을 일으켜 놓고도 에리나쟈 드는 그저 시오의 손을 잡았다는 것에 만족할 뿐이었다. "오늘은 야채스프래요." "...야채..." 어제 저녁에 먹었던 당근을 떠올리고는 인상을 찌푸리는 에리나쟈드. 그녀 는 볼이 불퉁해서는 시오의 목을 아인이 했던 것처럼 꽉 감싸안고는 부벼댔 다. "싫어. 야채 안 먹어!" "에? 편식은 나빠요 에리." 아무래도 머리 하나가 크다 보니, 그녀가 부비대자 힘이 딸리는 시오는 딸 려갈 수밖에 없었다. 파닥파닥 거리면서 손을 저어 보이더니 에리나쟈드 는 더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 "안 먹어." "안 먹으면 간식 안주는데요?" 단호하게까지 들리는 그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에 에리나쟈드는 잠시 충격 을 받은 듯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섰다. "..." 시오는 헤실헤실, 아방하기 짝이 없는 미소를 짓고 있었고 그런 시오를 바 라보며 에리나쟈드는 간식과 야채의 사이를 오가며 진지한 고민을 하기 시 작했다. 야채냐 간식이냐. 결국 그녀는 시오의 목을 감았던 팔을 풀고 그의 손을 잡았다. "먹을래..." "간식은 그럼 오랜만에 제가 할께요 에리." "시오 요리해?" 나풀나풀대면서 머리카락이 흔들리며 따라오고, 시오는 생긋이 한번 웃어 보이더니 대답해 주었다. "물론이죠, 마이아 신의 사제는 시인이면서 예술가이고 전사이고 지도자이 며 치료자이며 방랑자이기도 해야 하기 때문에 요리는 필수과목이거든요." "시오 그럼 싸움도 해?" 시오는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땀방울을 하나 흘리면서 힘없이 대답했다. "...못해요..." 아픈 곳을 찔렀다는 사실을 모른체, 에리나쟈드는 그저 멀뚱멀뚱한 눈으로 그런 침울해 지는 시오를 바라보았을 뿐이었다. 인간족 최고의 신성력, 뛰어난 지혜, 무한한 자애심, 기타등등의 각종 화려 한 타이틀의 그늘 뒤에는 형편없는 전투 기피증이라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을 뿐... 아아, 통탄할 지라. 어찌 대사제가 저 모양인데도 불구하고 마이아 신의 위세는 드높은 것인가! 그에 관해서 굳이 따져본다고 쳐도 대답해 줄 사람이 나온다면 그게 이상 한 것이다. 그렇게 시오와 에리나쟈드는 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들어섰다. ============================================================= ========= 이제 한편.... 어서 들어가자....어서...진지물로....+_+; 진지물로...진지물.....피 튀기자...피....피....피..... P.S - 청소년의 스트레스는 때로 위험한 것. -_-; 마왕 이야기-142 추억, 기억-10 토닥토닥... 어깨를 두드리면서 시오는 수놓아져 있는 천을 바라보았다. 오랜만에 만든 만족할 만한 작품. 그는 잘 접어서 그것을 품에 넣고는 발걸음도 가볍게 방을 나섰다. 오늘은 에리나쟈드가 온지 정확히 1년이 되는 날. 시오는 도대체 알 수 없는 정신연령을 지녔는지, 안 그러면 천성이 그런 것 인지 예쁘게 뜬 나비 자수를 그녀에게 선물할 생각인 모양이었다. 신관의 본당에서 조금 떨어진 응접실의 안으로 들어서자-신전은 대부분 문 이라는 것이 없는 구조-아치형의 기둥에서 빛을 등지고 있는 듯한 느낌의 존재가 있는 것이 느껴졌다. 시오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에리, 오늘은 일찍 왔네요?" "시오 님이 지각이신 거에요. 왠일로 늦잠이세요? 오늘은 오렌지 설탕 조 림인데." 시오는 타다닥 뛰어와서 푹신하게 늘어져 있는 흰 쇼파 위에 걸터앉았다. 작은 접시를 시오와 에리에게 내밀면서 마리는 짧은 잔소리와 함께 설탕에 조려져 있는 오렌지를 올려놔 주었다. "많이 드시면 안돼요, 다니까." "네네, 잘먹을께요." 시오는 입에 오렌지를 물었고, 시큼하면서도 단맛이 도는 감각을 즐기려고 한 순간 섭섭하다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나 먹을 건 없나?" "드실게 어디 있다고 그러시나요? 아인 님 드릴 건 없어요!" "안 주려고?" 익숙한 목소리에 시오는 고개를 그쪽으로 돌렸고, 마리가 뭔가 비명을 지르 려고 한다는 느낌은 알았지만 그냥 멀뚱히 있다가 갑자기 다가온 손이 자신 의 뺨을 잡고, 따스한 것이 다가온 후 부드럽게 다가온 무엇인가가 입안으 로 들어오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낼름, 하고 시오의 입안에 있던 오렌지 조각을 물어낸 아인은 우물우물 씹 으면서 승자의 미소를 지은체 마리를 바라보았고 어안이 벙벙해진 시오는 눈만 뜨고 멍청하니 앉아 있었다. "아, 아, 아, 아인 님! 감히 신의 사제에게 그 무슨 파...파렴치한!" 마리는 말까지 더듬으면서 삿대질을 했고 아인은 들리지 않는다는 표정으 로 아치형의 기둥 사이에 나있는 공간으로 보이는 정원을 그윽하게 내려다 보았을 뿐이었다. 에리나쟈드는 그런 그들을 물끄러미 보고 있다가 넋이 반쯤 사라져 가고 있 는 시오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시오는 반사적으로 그쪽으로 돌아보았고, 이내 두 번째로 다가온 그 부드러 운 감각에 이은 입안으로 들어오는 무엇인가에 이번엔 더 기겁하고야 말았 다. 아인도 눈이 커져서 그 과정을 바라보고 있었고 마리는 거의 뒤로 넘 어가기 직전이 되고야 말았다. 입안으로 들어온 오렌지 조각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른 표정으로 시 오는 헤실헤실 웃고 있을 에리나쟈드를 꼭 끌어안았다. "에리...기특하긴 한데요오..." 시오는 거의 울먹이기까지 하고 있었다. 아아, 도대체 뭐가 모자라서 울먹 인단 말인가? 희대의 미녀 두명에게 입술을 빼앗긴 죄많은 남자! 그의 이름 하여 시오 마이안! ...조금만 더했다간 신벌로 언제 어느 때 천둥이 내리칠지 모른다. 관두 자. "아인 님 흉내는 내면 안돼요..." "왜 내 흉내는 안 된다는 거야!" "시오, 맛없어?" "두분 다 당장 시오 님한테서 떨어지지 못해요오오오옷!" 결국 아침의 티타임은 시끄럽기 그지없게, 시오는 애초에 생각한 대로 에리 에게 자수를 선물로 준다는 계획을 완수하지 못하고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 었고 아인은 왠지모를 황당함에 오늘 온 계획의 전반을 조금 수정할 수밖 에 없었으며 마리는 그저 울분을 토해내기 바빴을 뿐이었다. 아침 예배에 참가할 수 없는 사람은 신전에 단 둘. 신의 적자이며 동시에 인간의 대표자인 아인디아와, 신의 세례를 받지 않 은 존재인 에리나쟈드. 아인은 담배를 하나 꺼내서 입에 물면서 손끝을 튀 겨 불을 붙였다. "찾아올 것이라 생각했다." "...말할 필요도 없이 이미 다 알고 있다는 건가?" "나는 그대보다 어둠에 더 근접한 존재이니." 에리나쟈드는 부드러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전의 시체 같은 느낌보다 낫 지만, 아인에겐 결국 역겹게 느껴지는 표정일 뿐이었다. "그래...마족들이 정식으로 통보했다. 빛의 멸망이냐. 어둠과의 공존이 냐. 너를 필사적으로 찾던걸. 섬기는 마왕에게 하는 예는 분명 아닌 데...?" 비꼬는 기색이 명백한 아인의 말투에도 에리나쟈드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 지 않고 대답했다. "그대는 어찌 여기나. 나를 돌려보내고 싶은가?" "돌려보내고 싶어. 네 그 피투성이 손으로, 시오가 더 이상 더럽혀지지 않 도록. 너 따위가 건드려도 될 존재가 아니야 그 애는! 유일한 빛이라고!" 에리나쟈드는 입가에 떠있던 미소를 지웠다. 창백한 밀랍인형처럼 되어버 린 그녀는 냉정한 목소리로 아인의 말에 답했다. "누가 피투성이인지 모르겠군. 너 역시 세월의 흐름에 따라 이름 모를 자 들의 피로 너의 몸을 적셨던 자가 아니었던가...?" "적어도 너처럼 이유 없는 살인은 행하지 않았지. 네가 멸망시킨 무계, 네 가 파괴시킨 7개의 계층의 전설은 지긋지긋하게 자주 들었거든. 자아, 에 리나쟈드 드 이크립스. 첨예한 혼돈의 마왕 나으리 씨. 이제 네가 시오에 게 해를 끼친다는 것이 명백해 졌으니 썩 꺼져주실까?" 에리나쟈드는 텅빈 눈동자로 아인을 바라보다가 회색 빛의 탁한 연기 속에 서 조용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가고 싶지 않다면?" "끝까지 시오가 파멸하는 꼴을 보고 싶은 거냐! 쓰레기 같은 자식!" 벌떡 일어나는 아인을 바라보다가 에리나쟈드는 힘없이, 정말로 힘없이 중 얼거렸다. "아니, 그가 파멸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가고 싶지 않다. 나 는 이곳에 머물고 싶을 뿐, 그 이상의 의미에 관해서 생각하고 싶지 않은 데." "...갑자기 머리라도 돌았나 에리나쟈드? ...말이 되는 소리를 해! 네 입으 로 말했잖아, 우연이라고, 단지 그 이유 때문에 시오의 곁에 있는 거라고 했잖아!" 에리나쟈드는 텅빈 눈동자로 잠시 아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느리다고 밖 에 생각할 수 없는 목소리로 천천히 한마디를 내뱉았다. "바뀌었다." ============================================================= ========= 참고로 에리나쟈드의 '쟈드'는 거울이라는 의미입니다. 에리는 파멸이라는 의미구요. '나'는 연결동사지요. 그리고 절대 명사기도 하구요. 파멸의 거울, '쟈드'는 동시에 비춰진 모습을 뜻합니다. 고로 파멸의 거울의 절대명사는 '처음 비친'것이겠지요. 고로 그래서 에리나쟈드는 최초의 혼돈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것입 니다. 최초엔 파멸이란 없으니까요. 말그대로 이율배반이잖아요? ㅎㅎ 효효효효효효.... 이제 다음으로 도전할 것은... 크하하하하하핫!(광분한다...-_-;;) 피다 피! 피란 말이다~! 꺄아아아아아~! 마왕 이야기-143 추억, 기억-11 아인은 외쳤다. "무엇이!" "...모른다." 에리나쟈드는 그렇게 대답하면서 공허한 눈으로 아인을 응시했다. 허무감 으로 짙게 물든 아인에게도, 그녀의 텅 비어서 아무 것도 담겨져 있지 않 는 눈동자는 마주보기가 괴로웠다. 에리나쟈드는 천천히 고개를 아래로 숙이고 완전히 입을 다물어 버렸고 미 치겠다는 듯한 어조로 아인은 소리를 질렀다. "도대체 너희들 마족은 왜 그렇게 빌어먹게 제멋대로냐고! 너 때문에 시오 가 다치는 건 눈뜨고는 절대로 못 봐! 아니, 눈감아도 못 봐! 최소한 자신 이 한 말에 관해서 책임은 져야 할 거 아니야?! 말해봐 에리나쟈드 드 이크 립스! 왜 너는 떠나지 못 하는건데?" 에리나쟈드는 말하지 않았다. 세계와 단절이라도 한 듯이 입을 꾹 다물고 있을 뿐... 아인은 살짝 입술을 끌어올리고 비웃는 듯한 입매를 만들어 내더니 내쏘았 다. "설마, 시오에게 반하기라도 한 거냐?" 잠시 방안이 조용해 졌다. 신에게 바치는 송가 소리가 드높다. 그 강대한 신성력의 기운에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 듯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있던 에리나쟈드는 서늘한 음성 으로 입을 열었다. "그럴지도 모르겠군." 허망해 지는 순간이었다. 아인은 기가 막힌 얼굴로 멍청하니 넋 나간 표정을 짓다가 천천히 부스럭대 면서 담배를 꺼내들었다. 입에 물고, 불을 붙이고, 한 모금 빨아들인 후 내뱉은 후 그녀는 하아 하고는 한숨을 쉬었다. "충고하지. 절대로 불가능 해." "그런가." 에리나쟈드의 대답은 '아, 그래'나 '그런 모양이네' 따위의 현실성 결여 그 자체의 완전한 무시에 가까운 대답으로 들렸다. 인상이 확 일그러지기 직전으로 돌변했으나 아인은 꾹 참아냈다. 그녀가 누군가? 베테랑 경험의 미소년 킬러...아아, 말 새고 있다. "시오가...네 정체를 알고도 예전처럼 그렇게 에리, 에리하고 불러주면서 대해 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기대하지 않는다." 에리나쟈드의 이번 대답은 그나마 듣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인은 툭하고 내뱉듯이 입을 열었다. "너에겐 너의 길이 있고, 그 아이에겐 그 아이 나름의 길이 있는 거다. 아 무리 발버둥친다고 해도 운명이라는 것은 벗어날 수 없는 것이듯." "그런가." 에리나쟈드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에 담긴 허무, 그리고 어두운 기운 은 순식간에 사방을 잠식해 들어갔다. "그렇다면 왜 그대는 운명을 거스르려 드는가." "...들켰군, 젠장." 아인은 혀를 차면서 뒤로 물러났다. 새하얀 사제복은 천천히 스러지면서 그 모습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소멸했다. 대신 그녀의 몸에는 음습한 어 둠이 천천히 피어오르기 시작했고, 그녀의 몸을 휘감았다. 새카만 검은 옷 깃이 사방으로 펄럭댄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옳은 것이나..." 에리나쟈드의 얼굴엔 여전한 허무감이 베여져 있었다. 그녀의 눈엔 뭔가 비롯할 수가 없는 이상하리만치의 고요가 깃들어서 아인을 바라보고 있었 다. "운명을 거스르려 하며 운명을 따르라 역설하는 것은 어째서 인가. 그대 는 완전한 자가 아니건만." 쩌적, 하고 바닥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아인은 시원스레 미소 지으며 입 에 물고 있던 담배를 바닥으로 던졌다. 천천히 퍼져 나가는 에리나쟈드의 기운 때문인지 방안은 어둡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결계와 같은 절대영역 으로 들어서 가고 있는 방안은 기분 나쁜 끈끈함으로 물들고 있었다. "미쳤다고 내 운명을 따르란 말이야? 위대한 흑암의 신부가 되리라는, 그래 서 너 같은 계집애 뺨치게 예쁜 녀석한테 시집가라는 건 말이 안돼! 절대 로!" "나도 그렇게 말할 수 있었다면 좋겠군." 에리나쟈드는 천천히 입술을 달싹였다. 메마르고, 퍼석한 느낌이 사방을 휘어 감고 있는 이 공간. 그녀만이 가지고 있는 절대적 공간의 영역이 완 성되었다. 온통 둘러싸인 어둠을 소름끼치도록 느끼면서 아인은 그런 에리 나쟈드를 향해 당당히 미소 지었다. "'우연'이 나를 이곳으로 인도했다. 그 우연을 우연으로 남게 할 것인지, 아니면 연으로 싹띄울 것인지는 내가 선택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그래서 넌 어쩔 거라는 거지? 그로 인해 모두를 불행하게 하는 연을 싹 틔울 생각따윈...부디 하지 않았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고 있는데 말이야..." 에리나쟈드는 허무한 눈동자를 살짝 가늘게 떴다. 애써서 입 끝을 끌어올 리면서, 그녀는 애처로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그런 아인에게 말을 건냈다. "그렇군. 나로 인해 모든 것이 불행해 지는가?" "...안타깝지만...그래." 아인의 단정에 에리나쟈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체 그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흩날리는 검은 머리카락과 붉은 입술. 이마에 자리잡은 황금빛 의 눈동자는 기묘한 색감을 번뜩이면서 유일하게 빛을 뿌려대고 있었다. "나는 모든 것을 불행하게 만드는 존재인가. 대답해 보라, 나의 운명의 반 신이여." "구역질나는 소리 지껄이지 마. 누가 운명의 반신이래? 그래, 솔직히 말하 지. 너는 혼돈체. 시간이라 불리는 자. 우리들 디아에게 있어 너희는 저 주고 지옥이고 죽음이다. 살아있는 모든 존재는 너희들 혼돈을 꺼리지. 그러나 그것으로 인해 불행한 게 아니야. 너! 에리나쟈드 드 이크립스가 불행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네가 아무 것도 하지 않기 때문이지." 아인은 한숨처럼 내쉬면서 자신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아인은 어디까 지나 에리나쟈드, 그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운명의 반신으로 그-어쩔 수 없는 명칭인용이다-를 지칭 받았을 때. 아인은 끝도 없이 그에 관해서 알고 또 알려고 했다. 수도 없이 많은 그에 관한 것들은 결국 그녀에게 그 에 관한 일말의 진실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최악이자 최고의 한 존재의 투영. 그랬기에 처음 에리나쟈드를 보았을 때 마음 속 어딘 가에서 경종이 울리 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떤 존재인지, 무엇을 하는 자인지, 왜 그 자리 에 있는지 까지도. 그렇기에, 더 소름끼치도록 '그'가 싫었다. 그녀는 디아 중 가장 완전한 자, 그러나 동시에 가장 불완전한 자. 아름답고 사랑 받지만 그 사랑의 값어치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 자... "넌 누군가의 소망을 위해 움직여 주고, 그것에 얽매여 정작 너는 아무 것 도 깨닫지 못하지. 머무르려 하는 것은 시오의 바램이었기 때문에? 역겹 게 굴지마!" 에리나쟈드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고 아인도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서로를 마주본 체 그렇게 서로 어긋나 있는 시축 위에서 어긋나 있었다. "너는 그렇게 아무런 감정도 없이, 행동도 없이,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체 모든 것을 고고한 척 굽어보며 쓰레기 같은 생을 이어가고 있겠지! 넌 뭘했 지? '너'는 무엇을 했냔 말이야! 누군가의 도구, 더러운 검. 쓰레기보다 못한 삶을 사는 주제에..." 그렇게 아인은 그녀를 조소했다. "너는 불행하게 하는 존재. 하지만 불행하게는 할 수 있지만 스스로 불행 을 만들 순 없지. 우연이란 힘에 너는 끌리지만, 우연이 부여한 것을 너 는 싹틔우지 못한다." 아인은 손끝을 들어, 그녀를 가르켰다. 허무한, 그렇지만 애처로운 그녀의 눈동자에 아인은 싸늘한 한기를 불어넣 어 주었다. "너는 그저 쓰이는 도구니까. 잘난 에리나쟈드 님." ============================================================= ========= 어째서 에리나쟈드가 사람에 따라 다른 모습을 취하는지, 슬슬 밝혀지고 있 군요. 원하는 것을 이뤄주는 존재. 그것이 그녀의 또다른 이름...호에? 마왕 이야기-144 추억, 기억-12 에리나쟈드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도구. 불행을 부르는. 그런가. 그런 것인가. 운명의 반신인 그대에게서도 나는 그것을 자각 받는가..." 그리고 아이는 섬뜩한 공포를 맛봐야 했다. 그녀에게서 치솟은 그 살기, 노골적인 한기, 죽음을 띄우고 있는 그 냉혹한 어둠의 힘 앞에서. 아인은 터져 나올 비명을 삼켜야 했다. 에리나쟈드는 그런 '원망'이 가득 담긴 눈동자로 아인을 바라본 후, 서서 히 사라져 갔다. 세상은 빛으로 돌아왔다. 조용한 응접실의 풍경은 그대로, 하얀 아치 기둥도. 바깥의 녹빛 정원 도. 그리고 뜨거운 햇빛도...원망어린 눈빛으로 아인을 바라보았던, 그 존 재를 빼면 모든 것은 돌아왔다. "...설마...아니야, 설마 그럴 리가..." 아인은 하지만 그 '설마'라는 것이 지금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는 것을 느껴 야 했다. 그 원망, 그것은 그녀 스스로 느낀 것. 아인은 그녀가 원망이라는 감정 대 신 분노를 느끼리라 생각했었지만, 그녀는 그때 분노 대신 원망을 스스 로 '택했다' 거꾸로 말하면 그녀는 의지를 '자각'했다는 말이 된다. 아인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붙들었다. "아니야...아니야..." 의지를 자각한 존재. 그것은 운명에 포함되는 사슬. 아인은 각인되는 그 눈동자를 지우려고 다시 고개를 저었다. 에리나쟈드가 의지를 자각했다는 말은, 아인이 그에게 종속되는 것을 의미 한다. "아니야! 빌어먹을!" "에? 왜 그러세요 아인 님...?" 시오는 예배를 끝낸 모양인지 거추장스럽게 느껴지는, 금실의 장식이 가해 진 길게 끌리는 대 사제의 사제복을 입고서 응접실로 들어섰다. 환한 빛 이 주변을 휘감는 느낌. 아인의 의심마저도 정화시켜주는 성스러움. 하지만 아인은 의심했다. 정말로 잘한 짓일까, 이 순수함. 이 순결함. 보호받아야 할 이 아이를 구 원하는 대신 내 운명을 지옥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 짓이. 그리고, 에리 나쟈드라는 자각한 존재에게 상처주는 것이. "아인 님?" "...아무 것도 아니야 시오." "에리는요? 어디 있지요? 느낌이 잡히지 않는데..." "시오...에리는..." 아인은 투명하게 느껴지는 시오의 녹빛 이면서도 진한 금색을 내포하고 있 는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얼핏보면 금색으로 빛난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운 눈동자. 아인은 결국 입을 다물고 뒤에 서 있는 마리를 향해 가벼운 눈짓을 보냈 다. 시오는 천천히 거추장스러운 옷을 벗어서 마리에게 넘겨주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아인 님, 에리는 어디 있나요?" "...나도 모르겠는데." 시오는 살짝, 밝으면서도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거짓말." 멈칫하고 마리의 손길도 멈추었다. 아인은 눈을 크게 뜨고, 시오가 아무렇 지도 않게 내뱉은 그 한마디를 수습하려고 뭔가 말을 찾아내려 했다. 하지 만 시오는 개의치 않는 지 벗어낸 옷을 마리에게 모두 넘겨주고 가뿐한 옷 차림이 되자 천천히 그 둘을 응접실에 남겨두고 걸어 나갔다. "...말하길, 빛에는 반드시 그림자가 진다 하심이었으니. 진실이란 반드 시 밝은 것도 아니매 반드시 어두운 것도 아님이니. 진실이 한면만을 포함 한다 생각하며 어리석은 생각으로 가득 차 있으면 봐야 할 빛도, 그 안에 내포된 그림자도 볼 수 없다 하셨음을..." 시오의 발걸음 소리는 밝고 경쾌하고, 기묘하게 울렸다. "진실의 한 면을 고집함이란 더 없는 어리석음, 그러나 그 진실을 알았음에 도 한면을 계속해서 믿으려 하는 것은 거짓." 발소리는 순간 딱 멈추었다. 아인은 문 밖에서 보이는 꺽어진 복도의 음영 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착각되는 성스러움이 담겨져 있으면서도 단호한 시오 의 음성에 이를 악 물어야 했다. "그래서 마이아 신께서 말하시길, 거짓은 가장 큰 죄라 했지요 아인디아 님." "...너...시오 너...너!" 한숨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시오는 다시 걸어가며 중얼거렸다. "죄에는 심판이." 그리고 시오의 목소리는 다시 들려오지 않았다. 허무감, 놀람, 배반감, 쓰 디쓴 후회감으로 뒤덮여서 입을 반쯤 벌리고 있는 아인을 바라보며 마리는 더 황당하다는 어조로 입을 열었다. "...아인...디아 님? 도대체 무슨 짓을 하신 겁니까? 무슨 짓을요!" 아인은 대답하지 않았고 마리는 거의 악을 쓰듯이 외쳤다. "도대체 에리는 어떻게 된거죠? 뭘 어떻게 한겁니까 대체!" "...죄에는 심판이라...죄에는...마이아 전 교단이 일어났어야 할 정도 의...대규모 전쟁이 발발했었을 때 들었던 기억이 나는데...이런 젠장. 그 런데, 시오 화났나?" 아인은 갑자기 뜬금 없이 그렇게 말했고, 마리는 바락 소리를 질렀다. "저 분이 화 같은 것을 내실 리 없잖아요!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오 신이 여, 내 인생을 망가뜨린 전쟁이 다시 일어난다는 것따윈 생각하고 싶지 않 아요...도대체 에리가 어떻게 됐길래..." 아인은 허탈하게, 그리고 동시에 한심하리 만치 단순한 대답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거? 어른이 됐지." 마리는 황당하다는 듯이 입을 벌렸다. 시오는 천천히 계단가로 걸어가, 아직 예배자가 없어 사람들의 소리 대신 사락대는 부드러운 자연의 속삭임만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바람이여, 자유로운 정 엘 카인이여..." [왜 날 부른 거지? 위대한 존재.] 시오는 아방하기 짝이 없는 미소를 지으면서 고깝다는 듯한 얼굴로 시오의 눈앞에 나타난 상반신을 벗고 있는 여인에게 윙크를 날렸다. 불만으로 일 그러져 있었지만 여인 모습의 정령은 시오에게 반항할 수 없는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화내지 마세요. 알고 싶은게 있어요." [뭔가?] "마계와 가장 가까운 인계의 문." [...그딴 거 알아서 뭐하게?] 시오는 싱긋이, 이제 속을 알 수 없게까지 느껴지는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 다. "전쟁이 일어날 거 거든요." ============================================================= ========= 슬슬 시오의 아방함이 바닥치로 떨어지는군요... ㅡ_ㅡa 그래봤자 궁극적으로 '바보세트'란 것에는 변함 없지만.... 그래도 시오는 마이아 신의 대사제, 나름의 힘이란 것이 있찌요. 뭣보다 마이아 신은 빛을 다스리며 그 빛에 따르는 그림자를 다스리니까.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다..... 훗.훗.훗....+_+ 이제 고대하던 피투성이 씬(?)들이 대거로 등장하는 바... +_+ 축제라 귀찮은 일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연재는 계속되야 합니다.(절대로 아디X스 선전 패러디 아님!) 새벽녁에 한두편 더 올라옵니다...ㅡ_ㅡa 웅냐리냐....새벽에 잘 쓰여지는게 역시 문제인가....끙.... 참, 연재가 끝나면 지우냐는 질문이 꽤 많은데..... 안지웁니다...ㅡ_ㅡ; 이 소설이 출판될 가능성이 있습니까 안그러면 어디서 돈 주고 가져가겠다 고 나서는 사람이 있습니까? 지워서 뭐하게요....ㅡ_ㅡ;;;; 그저 불펌이나 단속해야지요. ㅡㅡ+ 압축본은 빠른 시일 내에 공개하겠습니다. ^^; 마왕 이야기-145 추억, 기억-13 스스스스... 차가운 한기가 방안을 가득히 메웠다. 새하얀 방안, 넓게 보이는 방안의 풍경에 차가운 흰 그림자가 드리우며 사 방을 질식할 듯한 한기로 밀어 넣었다. 미야나는 길게 늘어진 검은 머리카 락을 사방으로 흩날리며 새장의 창살을 잡는 그 존재를 보고는 기가 막혀 서 중얼거렸다. [...집나간 새가 새장에 다시 들어왔으니, 얼씨구. 이거 기뻐서 기절해야 하나?] 한기가 방안을 지나 문으로 밀려들고, 모든 것을 얼려버릴 듯이 몰아쳤다. 그리고, 깊은 원망으로 가득 차 있는 그녀는 눈을 들고, 미야나가 아닌 다 른 누군가를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버릴 거야..." 너무나도 낮고 섬뜩한 그 목소리... "모두 죽여 버릴 거야..." 천천히 눈을 든 그녀의 눈동자에는 차가운 광기만이 맺혀서 맴돌고 있었 다. 미야나는 짧게 조소하고는 이죽댔다. [수만년간 아무도 하지 못했던 일을 누군가 해낸 모양이군. 감축하나이 다, 드디어 자신의존재를 자각하셨나이까?] 에리나쟈드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단지 싸늘하기 그지없는 살기와 죽음 같은 공포가 그녀의 주변을 떠돌고 있 을 뿐... 섬뜩하기 짝이 없는 눈동자로 미야나를 내려다보면서 에리나쟈드는 그런 그 를 향해 중얼거렸다. "너는 알고 있겠지. 어릿광대. 마족을 만든 실험자. 나의 의지가 옳은 지 옳지 않은지. 모든 존재들 중 가장 기괴한 자." [칭찬에 몸둘 바를 모르겠지만, 위대하고 첨예한 혼돈이시여. 대답을 원하 지도 않으면서 왜 묻고 지랄이야?] 미야나는 마지막 말을 앞의 말고 매우 똑같은 공손하고 예절바르고 정확한 말투, 아니 파장으로 발음했기 때문에 에리나쟈드조차도 그가 무슨 말을 했 는지 한순간 이해할 수가 없을 뻔했다. 그녀는 힘없이 중얼거렸다. "그래, 그렇겠지. 나는 대답을 원하지 않는다. 자각한 내 의지는 한없이 추할 뿐...내 의지가 행하는 대로 행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아닌지도 모르 는..." [......진짜 의지를 자각한 모양이네...] 미야나는 가늘게 눈을 뜨고 뒹굴뒹굴 굴러다니다가 고양이 모습의 장점을 잘려 웅크리고 그냥 퍼자기 시작했다. 아아, 긴장감이라곤 전혀 없는 그 의 저 행동이란 이해할 수가 없게 된다. 사천왕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이었다. 에리나쟈드는 그들에게 있어서 하나의 상징, 그러니까 장식품에 불과한 존 재였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의지'라는 것을 자각했다고 해서 자신들에 게 일방적인 통보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죽여버리라고, 모든 것을. [어째서 그래야 하지?] 도전적인 어투로 입을 연 것은 그가 가지고 있는 불꽃의 속성만큼이나 나서 기 좋아하는 플레르니아였다. 에리나쟈드는 새장에서 나와 대지에 발디디 고 있었다. 그래봤자 마계의 대지란, 그녀가 파괴를 통해 창조한 암흑과 죽음과 절망의 공간. 아름답지 못한 곳이었지만... "내가 원하기에." [...글세요...그대는 이때껏 우리들의 왕이며 추호도 의심할 바 없는 주인 인 것은 확실했지만...갑자기 대규모의 피바람을 일으킨 다는 것은 마족에 게도 힘든 일입니다.] 미체르니아는 생긋이 웃으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고, 시하르니 아도 냉정하게 대꾸했다. [인계의 물의 상당수는 마계에 존재하는 자에게 치명적인 능력을 발합니 다. 물의 종족들에겐 위험할 수도 있지요.] 위카르니아는 별 생각이 없는지 그냥 팔짱을 끼고는 그 사태를 관망했다. 그리고 에리나쟈드는 짧고 명확하게 대답했다. "간단하게 하도록 하지." 오싹한 살기가 주변을 메웠다. 일시적으로 멈추고 있던 한기와 마력이 사 방으로 퍼져나가고 순식간에 그들이 있는 공간은 암흑과 죽음과 절망으로 뒤덮혀 버렸다. 공포를 딛고, 죽음을 왕홀 삼아 도도하기 짝이 없는 가식 적 미소를 지으며 에리나쟈드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죽음이냐, 삶이냐?" [그야 물론 왕의 명에 따라 모든 것을 멸하지요.] [왕에게 영광 있으리.] [모든 것을 피로 물들여 그대의 앞에!] [영광 있으리...] 사천왕은 아무런 말도 없이 그녀에게 굴복했다. 마계의 법칙은 인간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약육강식, 강대한 힘 그 자 체. 강자가 승리하고, 약자는 잡아먹힌다. 그것이 당연한 법칙이고 누구 도 거역할 수 없는 진리였다. 미야나는 오랜만에 인간의 모습으로 화해서 그런 그들의 모습을 비웃듯이 바라보았다. 오렌지 빛의 선명한 눈동자에는 알 수 없는 장난기만을 담고서. [바보 같은 짓이야.]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은, 그냥 말이었다. 이유 없고 해야할 원인도 없이 그저 해버린 말... 그리고 그는 천천히 인간의 몸을 취한 체로 뒤로 돌아서 걸어가 버렸다. 발자국 소리도 없이, 사박사박하고... [에리나쟈드, 역시 인형으로 있는 게 좋았을 지도. 태엽이 아직 감기지 않 은 깨끗하기 그지없는. 순수함에 물들어 가는 죄악이란 보기 좋은 게 아니 라니까...] 킥킥거리면서 미야나는 팔을 활짝 벌렸다. 흰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휘휘 나부끼고 목에 걸린 작은 방울이 딸랑하는 소리를 내면서 기분 좋게 흔들렸 다. 그는 싸늘하지만 다정한, 비웃고 있지만 진지한 파장을 띈 목소리를 만들 어 냈다. [나의 계약자. 이 세상 모든 존재 중 유일하게 나와 계약을 맺었던 나의 주인이며 나의 생명. 이제 넌 어쩔 거냐?] 그의 모습은 서서히 흐려지고 있었고, 마계에는 기괴한 피바람이 불기 시작 했다. ============================================================= ========= 음...개인적으로 미야나는 꽤 좋아하는 캐릭터입니다. 광대이미지의 캐릭터는 흔한 것이 아니며 만들고도 잘 못쓰는...T.T 추억, 기억편은 금단의 영역이라는 전쟁씬과 배신, 음모...뭐 이딴 추악한 내 용이 상당 수를 차지하게 될겁니다. 아...마도? -_-; (추악하긴, 히드레안님에 비하면 깨끗해!) 미야나는 하나의 독립된 스토리의 주인공이고, 히드레안의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존재 중 하나이기도 하지요. 적어도 칸나가 히드레안에게 새로운 삶을 부여했다면, 아인은 그런 그에게 삶의 고통을 자각시켰고 마무리 피니쉬로 미야나가 삶을 잇도록 했다고 할 까요? 어쨌든, 히드레안이 하는 대부분의 마이스터 일은 미야나가 남기고 간 것들 을 기초로 하는 거니까. 어디까지나 부업부업. ^.^;; (그럼 히드레안의 본업은 백..쿨럭쿨럭....) 미야나 폰 소울스터커. 상당히 개그에 푼수끼가 강하지만..-_-; 과연 미야나의 계약자는 누구인가? 멋지지 않을까요? -_-; 아마 미야나 못 지 않은 변태틱 캐릭터일지도..... 에리나쟈드와 시오는 어차피 바보세트. 아무리 뭔가 있어보여도 결국 귀착점은 바보입니다. -_-; 그 점에선 걱정 마시고 계십시오...(걱정은 누가! 퍽!!!) ....그럼...__;;; 왠지 밤에 써서 그런지 잡담이 산..쿨럭쿨럭.... 마왕 이야기-146 추억, 기억-14 넓은 회의장. 모여 있는 것은 각국의 국왕이라고 불리는, 아인디아에게서 전권을 위임받은 이들이었다. 신성령을 중심으로 모이는 모든 국가의 연합 이라는 대외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실제로 이 '12전당'이 제대로 쓰인 적은 단 한번도 없었지만, 이번만은 조금 틀렸다. "...그게...정말로 사실입니까?" "거짓일 리가 없지요. 이 12전당에 모두 모였다는 것은 다른 여러분들도 이미 '그것'에 관해서 느끼고 계셨기 때문이 아닙니까?" "그렇지만 설마 마족들이 아무리 그래도 조약을 깨고 그런 짓을...." "시끄러, 이 밥만 축내는 늙탱이들아." 아인은 콰앙, 하고 탁자 위에 발을 걸치면서 큰 소리를 냈다. 장내는 일순 간 조용해 졌고 담배 하나를 입에 비스듬히 물고는 삐딱한 자세로 앉아 그 런 그들을 둘러보았다. 개중에는 그녀를 처음 보는 이도, 그리고 여러번 본 이도, 이번이 두 번째인 이들도 있었지만 하나같이 '어떻게 저럴수 가...'하는 낭패한 얼굴이었다. 12전당의 문을 열고 모든 국왕들을 소집할 수 있는 자는 최초의 인간, 모 든 존재들의 근원이라는 아인디아 그녀 뿐. 신성령의 대리자, 국왕들은 아인의 행동을 하나하나 눈여겨보면서 나름대 로 머리를 굴리느라 바빴다. "조약 조약 난리칠 것도 없어. 중요한 것은, 마계와 인계를 연결하는 문들 이 대부분 열리기 시작했다는 거지." "하지만 문의 팽창은 일정한 주기를 두고 일어나는 것일 수도 있지 않습니 까?" "더군다나 마족들이 인간계로 넘어온다는 것은 자살행위입니다. 마계와 인 간계의 입구는 우리들이 관할하는 바, 치명적인 타격을 무시할 수 없을 텐 데요. 마계의 세력들 또한 한꺼번에 모두 규합할 수 있을 리 없고..." "맞습니다. 마계의 세력자들은 서로를 견제하기 때문에 쉽게 힘을 뭉치려 들지 않을 겁니다. 대규모의 전투는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지요. 한 존재라도 힘을 약화시키면 곧장 공격받을 것은 당연지사지 않습니까?" 수군수군 서로 떠들어대는 왕들을 앞에 두고 아인은 골치가 아파졌다. 솔직히 그녀는 마법사, 사제, 전사, 어쨌든 인간이 받을 수 있는 모든 능력 과 축복을 고루고루 받았지만 단 하나 없는 게 있다면 전쟁을 치루는 데 필 수적으로 필요한 단합과 규합을 이뤄내는 카리스마였다. 어디까지나 그녀는 상징이었고, 지배는 12전당에 부름 받은 대리자들이 하 는 것이었으니 그들이 자신의 피해를 내가며 전쟁을 주도하게 한다는 것 은, 어찌보면 어불성설이고 헛된 망상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정말로 마계의 문이 열리고 대량의 침입이 발생한다면 그 피해 역 시 막강합니다." "있지도 않을 일을 가지고 굳이 우리들이 머리를 싸맬 필요야 있겠소? 세상 에서 제일 위험한 종족중 하나라는 마족과 싸우려면 아무래도 마법적인 힘 이 좀..." 아인은 부글부글 끓고 있지만 꾹 내리눌렀다. 여기서 깽판을 놓았다가는 아마도 신성령의 대승지들에게 두고두고 잔소리 를 얻어먹을 테니, 이 능구렁이들이 요리조리 어떻게든 피해 나가려는 것 을 막아야 했다. "9신의 신성자들이여,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하오?" 이야기의 초점이 12전당에서도 상석에 앉아 있는 9명의 사람들에게 돌아갔 다. 아인디아-세계의 명이기도 하다-전역에서 섬겨지고 있는 9명의 주신 을 모시는 대사제들 역시 이번 12전당의 대화에 참석했기에 각기 자리를 차 지하고 굳건히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대지모신 라우레안의 사제는 붙임성 있고 사려 깊은 미소를 지었다. "태초에 시작된 자애의 축복을. 샤나임, 저희 어머니 대지께서는 아직 확 답을 내리시지 않았습니다. 인간인 이상 저희도 인간의 편에 서겠지만 과 연 정말로 전쟁이란 일어날 지 모르겠군요." "종결의 검은 쇠사슬의 안식을. 이변이 연속적으로 저희 신전에서는 일어 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카르마 여신께서 직접 말을 전하실 정도로 이번 일은 급박한 듯 합니다. 지옥에서도 대량의 사상자를 삼킬 준비를 서두르 는 감을 보이는 것으로 보아, 엄청난 살상이 일어나는 것은 확실하겠지요." 웅성하고 장내가 조금 흔들렸다. 아인은 역시 사제들은 예지능력이라는 조금 사기의 농도가 짙기는 하지만 쓸만한 무기를 지니고 있었고, 신전이라는 신의 축복을 무기로 삼고 있는 실질적으로 권력과 밀접한 이 신전의 말들을 왕들도 무시할 수는 없다는 점 을 간파하고 히죽 미소 지었다. "...흠...카르마 신께서 직접 그리 언질을 내리셨다면..." 국교가 카르마 교인 튜엘바느엔의 국왕은 마지못해서 미적미적 입을 열었 다. 사제들의 말은 상당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국왕들도 갑자기 더 의견이 분분해 졌다. "그렇다면 마족들이 쳐들어온다고 치고, 군사력을 지금부터 모은 다고 해 도 그것이 장난은 아닙니다. 군수물자가 풍부한 것도 아니고, 지금은 겨울 이 다가오는 시기가 아닙니까? 업친데 덥친 격이라고 해도 아니될 말이 아 니지요." "그리고 타격을 입으면 그것은 누가 보상해 준단 말입니까? 물론 이 안건 이 매우 시급한 것은 알고 있으나...저희 같은 약소국에겐 약간의 징병도 치명타가 될 수 있는지라..." 그의 말에 동조하는 듯한 말이 일어났다. "특히 마족들의 힘은 예측을 할 수 없지 않습니까? 아무리 마법이 있고 힘 이 있다지만...군사라는 것이 꼭 마법에만 의존하는 것도 아니라..." "불꽃에 서린 모루의 정수를 입에 걸고! 그 무슨 삿된 말씀이요! 마족에게 마력이 있다면 우리에겐 무구의 힘이! 우리들 아멘 카의 망치들이 다듬은 무구를 들고서도 싸우지 못하는 한심한 전사들 밖에는 그대의 나라에 없단 말이오?" 아멘 카의 대승정이 대뜸 면박을 주며 왕을 나무라자 약간의 머뭇댐과 함 께 답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그건...하지만 아무래도 마족의 마법이 월등히 뛰어난 것은 사실 이니..." "지혜를 담은 수경의 흔들림을. 마법이라고 하지만, 그들이 사용하는 것 은 어둠에 기초하는 힘입니다. 만약 신성결계를 친 상태에서 그들과 맞붙 을 수만 있다면 절대적인 우리들의 우위라고 볼 수 있지요. 특히 인간계 에 있는 장벽에는 대부분이 이 신성결계가 걸려있지 않습니까? 인간계는 우 리의 이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곳이라 사료됩니다만." 냉철하기 짝이 없는 아모레의 대사제의 말이 떨어지자 곧곧에서 찬성의 의 견이 들려왔다. 특히 반 마족파가 많은 국가와, 이번 전쟁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이윤이 많은 쪽에선 그 말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 었다. "그 수경에 흔들림에 경배하며. 아모레 신의 대사제님의 말씀이 옳습니 다. 인계는 우리의 이점을 최대로 살릴 수 있는 공간이 아닙니까? 마족들 이라고 해도 우리들만큼 이 인간계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합니다. 얼마든지 그 힘을 쓸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만..." "그렇지요! 마법병기를 이용하면 그 마족의 능력들 또한 봉할 수 있을 거 아닙니까? 천공성과 부유요새 등을 이용해서 마족들의 공중전을 막는 다 면 그 양질의 피해 또한 높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소란스레 돌아가는 상황에 짝짝, 하고 두 번 박수를 친 후 아인은 제일 먼 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휴식! 그때까지 알아서 자신의 입지를 정해라. 하지만 명심할 것은, 결정 한 것에 대해서 그대들은 피할 수 없다는 것!" "신성령의 주인에게 경배를!" 12전당에 모인 모든 왕들은 배웠던 대로 익숙하게 고개를 가볍게 숙이면서 한목소리로 외쳤고, 사제들은 각기 자신의 신들을 위시해 가벼운 목례만을 던졌을 뿐이었다. ============================================================= ========= 크윽... 내가 제일 싫어하는 전쟁편이다앗.....ㅜ.ㅜ;; 하지만 전쟁론은 좋아하니까....흑....흑.....흑....ㅠ_ㅠ 이 이야기는 계~속 됩니다. 아마도. ;; 그리고 한차례의 화려한 전쟁 이후 드디어 본격적인 스토리가 본 괴도에... 어서 빨리 끝내자는 마음만 드는 하루하루..ㅠ0ㅠ 멤버란은 언제 개장한다지... 11월 안에 마왕이야기 마무리 됩니다. 퍼가셔서 저장하실 분들은 11월 중반쯤을 기대하세요. 압축본으로 만듭니다......^.^+ 마왕 이야기-147 추억, 기억-15 아인은 머리에 얼음주머니를 얹고는 아이스크림 컵을 입에 들이붓다 시피 하면서 웅얼거리고 있었다. 시오는 킥킥 웃으면서 그런 그녀와 마주앉아 있었고 아인은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도대체가 그 잡것들은 목숨이 걸렸는대도 그렇게 이윤을 따져야 되냔 말이 야! 썩을 것들!" "어쩔 수 없잖아요." 아방하고 한치의 오차도 없는 멍청함을 담고 있는 미소를 헤실헤실 지으면 서 시오는 아인의 분노에 약간의 불길을 덮어씌워 주었다. 아인은 결국 참 지 못하고 시오의 목을 휘어 감고는 주먹을 꼭 쥔체 그의 머리에 대고 빙 빙 돌렸다. 아, 저것이 바로 궁극적인 고문 필살기. 헤드뱅잉...이 아닌가? "아파요 아인 님!" "시끄럿! 도대체 너란 녀석은 왜 그렇게 긴장감이 없어?! 솔직히 너만큼 발 언권이 강한 녀석이 있는 줄 알아? 마이아 교를 등에 업고 너도 한마디하 지 그래?" 아인의 툭 쏘는 말에 아픈 머리를 부여 쥐고는 시오는 잠시 웅얼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모두들 납득하지 않으면, 누구도 싸우지 않을 거잖아요? 사람은 자 기하고 싶은 것만 하는 거라잖아요." "하긴 그건 그렇지만." 팔짱을 끼고는 아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담배라도 찾아서 입에 물고 싶었 지만 아까 12전당에서 담배 피웠다고 깐깐하게 스리 멕스웰이 뺏어가 버렸 기 때문에 입에 물 거리도 없었다. 아인은 한번 더 크게 한숨을 쉬고는 다시 자리에 털썩 앉았다. "그래서, 마족들이 전쟁을 일으킨다고 치면 우리 쪽에 승률이 얼마나 될 까?" "아무리 많다고 해도...만약 이길 확률이 이렇게 10이면, 우리 쪽이 1정도 요?" 아인은 '그 정도면 싸워볼 만하겠네...'라고 실없이 중얼거리려다가 입을 딱 다물었다. 시오는 헤실헤실 웃으면서 열 손가락을 활짝 펴고는 왼손의 엄지손가락 하나만 접고 있었고 아인은 뚫어져라 그걸 보다가 한마디했다. "...우리가 9가 아니라, 마족이 9라고?" "예." 고개를 끄덕대는 시오를 바라보면서 아인은 침을 꿀꺽 삼켰다. 아무리 대 범하고 간이 크기로 유명한 그녀라지만, '사실상 승률 없음'을 돌려서 말하 고 있는 시오에게 할 말이 뭐가 있겠는가? "...헤이, 시오?" "네?" "어째서 그런지 나한테 자세하고 차근차근하게 설명할 수 있나? 진지하게." 시오는 폈던 손을 접고는 여전히 헤실헤실한 미소를 띄고는 말을 이었다. "첫째, 마족은 인간보다 더 인간계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그들이 인간계 를 완전히 모른다고 볼 수는 없어요. 무엇보다 마족들 중, 인간과 계약을 맺고 있는 자들도 종종 있으니까요. 그리고 하나 더. 어둠의 속성에 근원 하는 혼돈과 파멸의 마법의 대부분은 마왕들이 만들었지요. 고로 그들은 자신의 만든 마법에는 타격을 받지 않습니다. 마법력을 보완하기 위한 천 공성, 부유대륙, 마법기동구들이 있지만 본질적으로 마족들은 그정도 힘의 보충을 메꿀만 한 능력을 지니고 있지요." 시오는 그렇게 손가락 하나를 다시 펴들었고 설명을 이었다. "둘째, 마족은 이미 유리한 고지를 점한 상태입니다. 인간들이 알고 있는 마계의 문의 수는 사실 극히 적지요. 그것들마저 팽창하고 있다는 것은, 진짜 문들도 열리고 있다는 소리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최고의 카드이면 서 비장의 카드인 숨겨진 진짜 문. 그들이 차원이동을 가장 많이 하는 완 전한 통로를 개방할 겁니다. 바보가 아닌 이상 대대적인 포화를 계획하고 있는 곳으로 올 리는 없지요?" 척, 하고 두 번째 손가락도 들렸다. 아인은 머리를 쥐뜯고 싶은 기분이었 지만 시오는 술술 말만 잘 풀어놓고 있었으니...과연, 아방하기는 해도 그 에게 머리라는 것은 돌아가는 것이다. "셋째. 마족들은 비장의 카드를 꺼낼 정도로 이 일에 필사적입니다. 그들 이 본질적으로 어둠을 추구하고 피를 추구하기도 하지만, 그들에게 가장 중 요한 것은 어디까지나 힘. 강대한 힘이 그들을 묶고 있기 때문에 그들로서 는 아무런 일말의 꺼리김도 없지요." 세 번째 손가락을 펴고는 시오는 한번 숨을 고르곤 다시 입을 열었다. "넷째. 그들은 전쟁이 아닌 학살을 하는 것입니다. 교섭, 포화, 인간적 인 의미의 모든 행동들은 통하지 않을 것이며 사실상의 전술은 없습니다. 그들은 전면학살을 원하고 있고 절대 타협은 없을테니까요." 시오는 싱긋이 웃으면서 마지막 손가락을 펴들었다. "다섯째. 그들에게는 '혼돈'이라는 어떤 것도 막을 수 없는 절대적인 힘 이 있습니다." 다섯 개의 손가락을 모두 펴 보이자 아인은 결국 절망의 구렁텅이로 굴러 떨어졌다. 시오는 아방한 얼굴로 한마디를 더 던졌다. "대책도 있어요." "...듣고 싶지 않아...보나마나 황당한 거겠지...그지...?" 헤실헤실, 마냥 멍청하게 웃으며 시오는 한마디 던졌다. "라우레안. 그분 역시 위대한 혼돈이지요." "그래그래, 그 성깔 되게 더럽고 입만 열었다 하면 자애로운 척 하려고 드 는 그 아줌마도 혼돈이지...?" "하나의 힘은 꺽을 수 있겠네요?" 여전히 우울한 아인을 달래기에는 그 정도론 부족했다. 시오는 한가지 더 제안했다. "응, 그리고 마계의 문이라면 어딘지 쉽게 알아낼 수 있을 거에요. 엄청 난 마력이 몰려들고 있을테니까." 아인은 고개를 조금 들고는 그런 시오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러다 그 녀는 살벌한 눈을 한체로 시오에게 투덜댔다. "...나머지 세 개는 어쩔 수 없는 영역이잖아." "그러니까 승률은 1이라고 했잖아요." "그 1은 뭔데?" 시오는 손가락 하나를 펴들더니, 천천히 자신의 앙증맞은 입술로 가져갔 다. 그리곤 아방한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비밀." 깡! 아앗, 왠 양철통 치는 소리가...? 아인은 결국 아픈 머리를 감싸 쥐고 웅얼대는 시오를 내버려두고 아까운 휴 식시간 동안 전혀 쓸모 없는 강론 따위나 듣고 있었다고 생각하면서 투덜투 덜 입으로는 중얼거리고 몸으로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아까운 휴식시간은, 시오 때문에 벌써 끝나가고 있었으니... 12전당의 문이 다시 열리고, 왕들은 속속 들어 다시 자리에 앉아가기 시작 했다. 음성증폭 마법으로 곳곳에 걸어놓은 반사기에서 목소리가 울려 퍼지 고 있었다. [알려드립니다, 알려드립니다. 다시 12전당이 열렸습니다...회의에 참석하 시는 분들께서는...] ============================================================= ========= 전쟁 이야기는 앞으로 대략 2편 정도 더 이어질 듯 싶습니다. 다음 편에선 드디어 피가 튀기고...+_+; 다음 편에선 전쟁이 끝... (뭐야, 너무 간단하자나? -_-;)하고 말하지 말아주세요.... 왜냐면 저 이야기는 penlil's story의 1부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펜릴즈 스토리 1부에서 저 전쟁에 관한 장이 상당히 많이 할애되기 때문 에...쩌비냥....ㅡㅡ; 이건 외전입니다. 히드레안의 '영원성과 무한성'이라는 특성 때문에 그의 이야기는 펜릴즈 전반에 걸쳐서 펼 쳐져 있으니....음...-_-;;; 에구에구, 어서 끝내야지...쿨럭. 이딴 설명 하지 말고...... 마왕 이야기가 끝나면 다음은 펜릴즈 스토리 3부입니다. __;;;; 이건 압축본이 많으니 꽤 오래 버틸거라고 자위하고 있습니다만....;; 나머지 한편은 새벽, 새벽입니다~ 내리실 분은~ ....이게 아닌가? -_-;; 마왕 이야기-148 추억, 기억-16 - 콰라라라라라! 거센소리와 함께 아래로 내리 떨어지는 것은 불꽃의 브레스. 비명이 울릴 새도 없이 커다란 화염이 주변을 모두 날려버렸다. 땅이 녹아내리고, 주변 이 불꽃으로 물들어 갔다. "너 따위가 뭘 알아! 반신이라고? 네가!?" 챙강. 검이 맞부딪쳤다가 떨어졌다. 아인은 투핸디 소드를 한 손으로 휘두르면 서 다른 한 손에는 극한으로 끌어올린 신성마법을 펼쳤다. 격렬한 호흡이 당장이라도 끊어질 듯이 휘청거렸지만, 그녀는 검을 내질렀다. "네가 이해하는 게 도대체 뭐가 있다는 거지!?" 에리나쟈드는 가볍게 망토를 나부꼈다. 온통 검은 바람이 주변으로 흘러가 듯이 모였다가 휘몰아쳐서 멀어져 간다. 암흑, 아름답고 부드럽게 휘어지 는. 상처받은 듯한 검은 눈동자로 아인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는, 아름답다. "...운명을 따라야 한다면서 왜 너는 정작 따르지 않는 것인가." "수긍할 수 없기에! 넌 존재하지도 않는 존재인데 나와 연결될 수 있을 리 없잖아!" 검의 날이 곧다. 시리도록 곧아서, 부러질 듯이 휘청인다. 에리나쟈드는 천천히 중얼거렸 다. 메마른 붉은 입술이 조용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누구에게 이해 받아야 하는가." 아인은 절망적으로 외쳤다. "널 절대로 이해하지 않아! 너라는 존재! 너라는 생명체! 살려고 하는 것조 차! 난 무엇도 보지 않겠어! 왜냐면..." 아인은 순간 허공으로 튕겨졌다. 역 중력이 서늘하게 밀려들어온다. 복부 가 뒤집어 지는 것 같은 고통과 함께 그녀가 들고 있던 검이 부러졌다. 에 리나쟈드는 천천히 다시 입을 열었다. "이해했다. 너의 그 이기." "크윽...쿨럭쿨럭!" "너의 이기. 너로 남아있고 싶다는 자각. 이해했다..." 에리나쟈드의 눈에서 눈물이 굴러 떨어졌다. 투명하고 맑은, 처음으로 자 신의 의지로 우연을 쫓았을 때처럼 흘렀던 투명한 눈물이... "결국 네가 나를 이해하지 않을 것을, 나 또한 이해하고 동시에 슬퍼하겠 다. 운명으로 이어진 반신이라 하여도 결국 나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는 것을 나는 지금 자각하였다. 우연의 추가 조금 더 그대에게 빨리 드리 웠더라면, 그대는 나를 이해했을텐데." "닥쳐! 절대로 이해하지 않아! 절대로! 너를 이해함으로, 너를 받아들임으 로, 내 모든 걸 파괴시키지 않아! 난 잃고 싶지 않은 게 많단 말이다! 비겁 하다고 추악하다고 조롱하던 말건, 난 내가 원하는 대로 살 거란 말이다!" 아인은 바닥을 집고 일어서면서 악을 썼다. 그런 그녀의 비명소리, 부딪쳐 내리는 뜨거운 브레스 때문에 올라간 엄청 난 열이 하늘에 부닥쳐 내리는 비가 떨어져 내렸다. 거칠게, 강하게, 처음 에 내리던 그 비처럼... "너를 원망하지 않는다. 너는 나의 운명이었지만, 나는 네가 나를 이해해 주기를 바랬지만, 그러나 너는 나를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그것이 다일 뿐. 나는 너에게 더 이상의 이해를 구하지 않는다." 에리나쟈드는 천천히 그 새카만 검은 망토를 흩날리며 뒤로 돌아섰다. 불타고 있는 곳, 그리고 부딪치는 창칼. 떨어지는 마법의 포화들. 젖어 든 비도 그것을 방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에리나쟈드는 그곳으로 걸어 들 어갔다. 그녀는 입을 열어서 흐느끼듯이, 아인의 귓가에 흐느끼듯이 중얼거렸다. "더럽히지 말라고 했던가? 순결하게 내버려두라고 했던가? 그렇게, 그렇게 순수한 체로." 거대한 어둠이 천천히 그녀의 몸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공기가 흔들려 대고, 바람소리가 거칠게 울려 퍼졌다. 아인, 아니 아인디아는 분명히 그 녀가 또렷하게 말하는 소리를 그 소음 속에서도 들을 수 있었다. "그를 범해서라도 나는 구원받고 싶다." "...쳐..." 흘러내리는 검은색의 공간이 열려나가고, 아인은 입을 열어서 뭐라고 말하 려 했다. 하지만 속절없이 돌아오는 것은 텅 비어 버린 공간의 울림 뿐... 버렸다. 아인디아, 자신이 바로 그녀를 버렸다. 자각한 존재를. 이어져 야만 하는 운명을. "다들 도망쳐어어엇!" 운명에서마저 거부당하고, 자신의 존재를 거부당했다. 알 수 없는 혼란한 감정 속에 남겨져 있다가, 겨우 발견한 빛이 닫혀버렸 다. 아인디아는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었다. 일찍이 겪어 보았 기에, 그래서 더욱 더 미칠 정도로 아주 잘 알고 있는 그것... 절망. 지금 에리나쟈드가 겪고 있는 절망이, 그녀의 시간을 멈춰가고 있었다. 그리고 멈춰진 시간은... 마족들도 그리고 인간들도 모두 일순간 그들이 하던 것을 멈추었다. 새카 맣게 주변이 모두 물들어 가고 있었다. 빛이 나는 것은, 오직 금색으로 빛 나고 있는 그 황금빛의 눈동자. 물들어 가는 어둠. 허공에서 그런 어둠을 지켜보던 화룡은 다급히 원거리 워프를 외우려 했지만 그것은 소용없는 몸부림이었다. 어둠이 모든 것을 잠식해 들어가고, 사방을 뒤덮었다. 단 한번의 의문. 왜, 나는, 존재하는가. 아인은 그녀의 그 작은 의문에 대답해 주지 못했다. 아니, 대답할 수 없었다. 존재가치를 찾아 헤메는 어리디 어린 존재를 내 쳤다. 작은 어린아이를...잡아 달라고 내밀었던 손을 검으로 잘라서 내쳤다. "안돼..." 아인은 모든 것이 잠식해 버린 어둠 속에서 그렇게 입을 열었다. "안돼...그만두라고! 그만해! 널 인정하겠어, 그러니까 그만 둬! 제발!" 에리나쟈드는 돌아보았다. 그녀의 목소리를 인지하고, 그녀를. 그리고 붉은색 입술이 움직였다. 느릿느릿하게, 정확히 하나하나 모양을 만들어 내면서. "늦었어." 그리고 모든 것은 어둠으로 뒤덮혔다. ============================================================= ========= 에리나쟈드, 두번째 자각이군요. 훗훗....나중에 설명이 나오겠지만, 이거야 원 입이 간지러워서.... 보통 마족은 세번의 자각을 거칩니다. 일단 에리나쟈드의 육체도 마족, 정신체에 가까운 것이므로.... 그 세번의 자각을 거치겠지요? 첫번째 자각을 거쳐-파괴에 대한 의지-대규모 전쟁을 일으켰고, 지금 막 두번째 자각을 거쳤군요.-자신에 대한 의문-남은건... 크흐흐흐흐흣......뭘까요~? 마왕 이야기-149 보시오...-_-; 드디어 자각..... 마왕 이야기 사상 최고의 라스트 씬이오~;; ============================================================= ========= 추억, 기억-17 미야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는 싸늘하기 짝이 없는 표정을 짓고 있는 그 녀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멋졌어, 아주 멋졌어. 인간이고 마족이고 할 거 없이, 풀 한포기 나무 한 조각 남기지 않고 모두 그대로 삼켜버렸지. 너는 한순간 그 대지 위에 파 멸을 불러냈어. 아주 멋지다구 위대하신 혼돈.] "그래, 불러냈지. 죽었나? 모두...?" [바라던 대로...바라던 대로...] 혀를 차며 미야나는 천천히 그녀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새카만 검은색 갑옷과 검은색의 길게 늘어져있는 망토. 화려한 금제 장식 이 가미된 갑옷의 아래로 늘어뜨려진 술들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다. 그녀, 아름답지만 허망한 존재. [바라던 대로...하지만 진짜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히죽이 웃으면서 미야나는 자신의 목에 걸린 방울을 한차례 짜랑, 하고 흔 들었다. [아름다운 마왕 님. 자. 이제 끝났어.] "무엇이?" [그대가 취하려 하는 것을 얻는데 방해할 귀찮은 존재들이 모두 싹쓸이되었 단 말씀이야.] "...내가...무엇을 원하는데?" 미야나는 한번 웃고, 짜랑하고 방울은 흔든 후 뒤로 돌았다. 걸어가는 그의 걸음이 경쾌하고 밝았지만, 에리나쟈드는 그에게서 들려와 야 할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기에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내가...원하는 건..." 에리나쟈드는 띄엄띄엄 중얼거렸다. "내가...원하는 것...?" 그리고 그녀는 앗, 하면서 마치 잠깐 잊어버렸던 것을 알아낸 사람처럼 멍 하니 한 곳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나...는...그에게..." 에리나쟈드는 천천히 흐려지면서 중얼거렸다. "나는...아아...나는..." 그녀의 몸이 완전히 사라지고, 미야나는 다시 흰 고양이의 모습이 된체 덩 그러니 걸려있는 새장을 바라보았다. 텅 빈 새장 안은 주인을 잃어서 그런 지 왠지 쓸쓸해 보였다. 하지만 개의치 않고 다시 바닥을 구르며 미야나 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일을 즐기기 시작했다. 삭, 사악... 빗자루 질을 하면서 시오는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마리는 아침 예배시간 이 되었다고 알리려 밖으로 걸어나왔고, 예배를 위해서 몇몇의 고위 사제들 도 각자의 성소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막 시오가 뜨거운 햇살이 잠시 가려지는 것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 을 때, 서늘하면서 낮은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색한 존대를 하고 있는 목소리였지만, 그 목소리는 그때처럼 조금 불안 해 있고 당장이라도 안아주지 않으면 울 것 처럼 떨리고 있었다. "...아주 오랫동안...생각해 보았습니다. 저에겐 기나긴 시간이었지만, 당 신에게는 짧은 시간이었겠지요. 수십 번, 아니 수백 번도 더 생각해 보았 습니다." 시오는 눈을 커다랗게 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자리에 멈춰서서 에리나쟈드를 바라보고 있었고, 그 래서 그녀의 얼굴에 떠올라 있는 '수줍은 홍조'를 볼 수가 있었다. "저따위 미천한 존재가 과연 당신에게 다가갈 수 있는지... 단지 당신의 미소를 보고, 당신의 호흡을 느끼고, 먼발치에 그저 가만히 서있는 것이 맞을 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태양이라면, 전 초라한 태양아래 셀레나(세 번째 달)이고. 당신이 세상이라면, 저 그 세상 구석의 어둠이겠지요. 조금이라도 다가 갔다간, 저의 추악함이 순결한 당신을 해할지도 모르지요. 당신을 잊으려 더 깊은 어둠, 죄악에 빠져보았지만, 하지만, 스치는 바람소리마저 당신의 목소리로 들리고, 물가에 비친 그림자마저 당신의 미소로 보이며. 달무리만 보아도 당신의 금빛 머릿결이 어른거려 한숨지었습니다. 벗어나려 하는 것은 차라리 부질없는 짓이었던 것일까요. ...이리 말하면, 당신은 반드시 거절 할 수 없으시겠지요?" 그녀는 서글픈 미소를 지었다. 만약 시오가 그녀가 그렇게 아름다운 미소를 지을 줄 알았더라면, 처음으 로 자신의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원망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 그러함에도 더욱더 두렵습니다. 처음으로, 두려움이란 감정을 느끼고 있지만... 당신이라면 어떻든 상관없습니다." 에리나쟈드는 천천히 손을 들어서 시오의 뺨 가까이에 댔다가, 다시 서글 픈 눈을 한 체로 손을 멀리 떨어뜨렸다. 그녀의 입술은 이제 미미하게 떨 리기까지하고 있었다. "이제, 떠나라 한다고 해도 떠나지 않을 겁니다. 더럽고 추한 존재라 경멸한다해도, 결코 당신 앞에서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당신의 발 아래라도 입 맞추고, 노예가 되라면 되렵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당신의 곁에 존재할 겁니다." 그리고 시오는, 난생처음으로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원망해야 했다. "저 에리나쟈드 드 이크립스. 당신을 사랑합니다." ============================================================= ========= 랄라라~몰라요 몰라. 이것이 세번째 자각. 배우자와의......크흣...-_-;;;; 이제 에리나쟈드의 막나가는 짓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것이 히드레안이 기억하고 있는 에리나쟈드라는 존재의 모습이기 도 합니다.....후... 후후후후후.....;;;; 그래! 내가 나쁘다고 해줘! 쿨럭쿨럭...ㅜ.ㅜ;; 마왕 이야기-150 추억, 기억-18 시오는 잠시 멍청하니 서 있었다. 어느새 그의 손에선 빗자루가 투욱, 하고 떨어져 있었고 바보 같다는 표현 만으로도 부족한, 뭐라 할 수 없는 한심하리만치의 멍청함이 깃들어 있었다. "...에리?" 시오는 겨우 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마리는 기절할 듯이 저게 에리? 하면서 놀라고 있었고, 시오는 얼빵한 대답 을 하고야 말았다. 그렇다, 결국 하고야 만 것이다. "다시 한번만 말해 줄래요?" ...주변이 모두 침묵을 고하고, 새 한 마리도 날아가지 않는 무시무시한 고 요가 주변을 압박했다. 아아...이 어찌 두렵지 않을지라. 하지만 시오는 완전히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닌 듯이 멍한 표정으로 에리나쟈드를 바라보고 있었고 에리나쟈드는 천천히 다시 입을 열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 천천히 조금 시오가 현실로 돌아온 듯, 그는 양손을 들어서 천천히 살짝 앞 으로 밀어내는 듯한 행동을 취했다. 그리곤 이해했다는 듯이, 아래로 한 번 내렸다 위로 들어올리곤 아방하기 짝이 없는 미소를 지었다. "알았어요. 당신은 에리가 아니죠?" ...만난지 6년만에 하는 소리치고는 꽤 설득력이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주변의 그 누구도 시오의 말이 틀리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니, 그도 그럴 것이. 검은 갑옷과 검은색의 망토, 그리고 화려하게 물결쳐 있는 귀 걸이 등으로 치장한 체 살기 이상의 거대한 위엄과 힘을 내뿜어 내고 있는 존재가 그 '바보세트' 중의 증폭기 역할의 에리나쟈드라는 것이 도무지 믿 길 리가 없는 것이다. 에리나쟈드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에리나쟈드 드 이크립스. 첨예한 혼돈이라 불리는 이. 그대에 게선 에리라 불리었고, 다른 모든 존재들에게서 그렇듯 어떠한 지칭의 명사 로 불렸던 이. 자각하지 못했던 나에게서 이제 자각이 일어났고, 나는 그 자각을 일으킨 존재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서슴없이 사랑사랑을 입에 담는 그녀는 상당히 뻔뻔스럽고 철면피 적이었 다. 시오는 조금 비틀하더니, 뒤로 한발자국 물러서서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한번 더 한숨을 내쉰 후 입을 열었다. "...누구신지 모르겠지만 사실 절 사모하고 계셨다는 거 알겠어요. 하지 만 전 이미 신에게 바쳐진 몸이라 결혼 같은 것도 못하고, 음. 저 말이 죠. 거기다 전 아직 누군가를 받아들이기에는 좀..."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가?" "저기, 당신과 무척 닮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이를 기억하고 있기는 한데 요...저는요..." 뭔가 한마디하고 싶은 게 있다면 얼마든지 속 시원하게 하라. ...말했군, 그대가 옳다. 바로 그거다. '바보자식!' 에리나쟈드는 천천히 미소 지었다. 밝고 환한, 그래서 부드러운...마리는 시오에게 지금 에리가 미소 지었어요, 라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면 그가 얼 마나 안타까워 할까에 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고 시오는 과부화 된 머 리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나는, 나의 존재의지를 자각한 것은. 단순히 나의 이 혼란스러움을 파괴 하기 위해서라 느꼈다." 한발짝 에리나쟈드가 시오에게 다가서자 갑옷의 울림소리가 들렸고, 시오 는 한발 더 물러섰다. "그렇기에 나에게 그 혼돈을 안겨줬던 존재들, 인간을 멸망시키려 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하지만 그것은 아니었다. 나는, 나의 의지가 파멸로 향하는 그 무엇일 거라 믿었다. 그것이 나의 자각이라 고." 에리나쟈드는 한발 더 다가섰다. "하지만 그건 틀렸다. 나는 단지, 너를 사랑했기에 나를 자각한 것뿐이었 다." "저...전 그런 거 몰라요..." 저질러 놓고서 발뺌한다고 말이 되겠는가. 에리나쟈드는 너무나도 확고하 게 말했다. "책임져라." "어, 어째서요?" "네가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시오는 울듯한 얼굴로 마리가 있을 거라고 생각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곤 힘없이, 굉장히 의심이 가는 어조로 물었다. "마, 마리...나 책임져야 돼요?" 마리는 멍청하니 에리나쟈드가 서 있는 것을 보고, 울상인 체 서 있는 시오 를 바라보다 결국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잘못했으면 책임을 지시는 것이..." 시오는 한기가 도는 것을 느끼면서 자신을 낚아채는 상당히 익숙한 느낌이 드는 몸을 느꼈다. 그리고 그는 갑옷도 의외로 부드럽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을 감싸는 검은 망토, 그리고 그는 그의 귓가에 들려온 목소 리에 담긴 한기에 그만 부르르 떨 수밖에 없었다. "절대로, 이제는 잃지 않겠다." ...인간은 천천히 오랜 시간을 들여서 커간다. 걸음마도 하고, 말도 배우고, 그리고 사랑하는 법도 싸우는 법도 살아가는 방법도. 하지만, 모든 존재가 인간처럼 그렇게 모든 것을 느리고 순서대로 자각한다 고 만은 볼 수 없다. 마족이 그런 존재들로, 그들은 처음엔 의지를 자각하지 못하는 인형 같은 존재이며 집단무의식에 의거해 움직여대는 꼭두각시일 뿐이지만, 그들은 어 느 순간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자각한다. 살아있음을 자각하면 그들은 보통 생존욕구를 느낀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자신이 자각했던 이유를 알게 되고, 그 이유를 알고, 그 이유에 맹렬한 집 착을 보인다. 그리고 다음 순간. 마족들은 완전히 자신을 깨닫고 본래의 모습으로 환원한다. 보통 그 기간이 인간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빠르거나 느린 경우가 있어 서, 인형에서 자각하기까지 짧게는 십여년에서 길게는 수백 년, 그리고 보 통 이유를 깨닫고 성체가 되는 것은 짧게는 1초에서 길게는 다시 또 엄청 난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 마족들이 성체, 완전하게 자신을 깨달았다는 것은 이때껏과는 비교도 안돼 게 위험하다는 것이다... ============================================================= ========= 다음 장에선 에리나쟈드가 왜 여러분들이 이해하지 못할(?) 너무나도 빠른 변화를 일으켰냐 에 관해서 나오게 되는군요.... 훗...-_-;; 마이 러브리 칸나님도 등장하시게 될 한편입니다..음하하하하핫....ㅜ.ㅜ;; 왜 나만 가지고 그려~!! 새벽에 올렸잖아요! (퍽! 이렇게 많이 올리면 언제 자란 거야!!) 내....내일 보면... (닥 !!! 그렇다면 왜 넌 이 글을 맨 아래에 쓴거얏!!!) ....;;;;; 청소년 여러분, 밤이 깊었습니다. 이제 그만 잠자리로 듭시다...-_-;; 그리고 마왕 이야기는 그래도 여전히 새벽에 올라옵니다. -_-;;; ....어린이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된댑니다. 네. ;;; 마왕 이야기-151 추억, 기억-19 에리나쟈드는 미소 지으면서 손을 뻗었다. 그녀의 손에서 하늘하늘 떨어지 는 것은 하얀 색을 띄고 있는, 사실상으로는 무채색을 띄는 고체화 된 액체. 하늘에서, 회색 빛으로 우울하게 찌푸린 하늘에서는 순결하기 그지없는 새 하얀 눈꽃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녀는 그 눈에 온 몸을 맡겨 버리듯이 팔을 활짝 벌리면서 그에게 말했다. "아름다워." [그렇구나, 그것이 생명 있는 것들이 찬양하는 아름다움이라는 것이겠지. 우리 아기.] 느릿느릿하면서도 어쩐지 비웃는 듯한 어조로 말하는 칸나를 돌아보면서 에 리나쟈드는 새하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미는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었던가...?" [적어도, 이 나에겐 아니란다.] "아름답고, 처연하고, 증오스럽고, 동시에 배덕하기에 사랑스러운, 이 정경 을 칸나는 이해해 주지 않을 거야?" 에리나쟈드는 과장되게 넓게 팔을 펼쳐 보임으로서 칸나의 대답을 재촉했 다. 매력만점의 행동이었지만 칸나에게는 그리 재밋지 않은 모양이다. [네 말이 맞단다 그래 우리 아기. 아름답고, 처연하고, 증오스럽고, 배덕 스럽지만 사랑스러운...그런데 그래서 말이다 아가.] 칸나는 그녀를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사방으로 출렁대는 검은 머리카락 이 새하얀 눈 밭 위에 늘어지고, 칸나는 보랏빛의 잔상을 남기는 늘어진 앞 머리카락을 살짝 쓸어 넘기고는 그녀의 검은 머리카락에 입을 맞추었다. [어쩌랴, 나는 그래서 그것들을 파멸시키고 싶은 것을.] "배덕한 것은 죄가 아니야...사랑스러운 것도 죄가 아니겠지...그럼 왜 그 들을 파멸시켜야 하는 걸까." 칸나는 부드러운 곡선을 가진 그녀의 등을 쓸어 내렸다. 다시 한번 머리카 락에 키스하며, 칸나는 대답해 주었다. [그것이 완성이고 귀결이니까.] "그래, 그것이 완성이고 귀결이라는 것은, 나도 알고 있어. 그렇지만, 그 렇지만 말해봐 칸나." [무엇을...?] "그 아름다움에 빠져드는 것이 잘못되는 건가?" 고개를 든 그녀의 눈에는 허무한 혼돈이 자리잡고 있었다. [아니, 세상 무엇도 잘못된 것은 아니지. 그냥 그것일 뿐. 우리 아기...] 그녀의 눈꺼풀에 살짝 입을 맞춰주면서 칸나는 대답해 주었다. 꼭하고 칸 나를 끌어안으면서 에리나쟈드는 입을 열었다. "말해봐, 칸나는 내게 무엇을 원하지?" [없어. 아니, 있는 게 하나 있구나.] 칸나는 밀리듯이 눈밭위로 쓰러졌다. 아니, 에리나쟈드가 그를 넘어뜨렸 다. 검은색에 황금 실로 화려한 자수가 놓여져 있는 옷자락이 하얀 눈에 젖어든다. 에리나쟈드는 장난스런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은 체 있는 칸나 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그게 뭐지?" [네가, 마지막의 파멸의 날까지 존재하는 것.] 에리나쟈드는 김이 샜다는 듯이 투덜거렸다. "그거, 너무 쉬워." [그런지 그렇지 않은지 내기해 보련 우리 아기?] 칸나는 손을 뻗어서 에리나쟈드의 뺨을 매만졌다. 따스한 감촉이 느껴지 고 있다. [그래, 내기해 보도록 하자꾸나. 네가 정말로 죽음 앞에서도 나에게 그 맹 세를 지킬 수 있을 지 없을 지를 말이다.] 에리나쟈드는 당당하게 미소 지었다. 그 미소가, 하얗게 떨어지는 눈과 어울려 더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좋아." 칸나는 살짝 미소 지었다. 왠지 모르게 조금 무섭다고 느껴지는 느낌이 들 었지만, 에리나쟈드는 그냥 넘겨버렸다. 애초에 그는, 모든 것의 공포니 까. [...하지만 네가 지금 그대로라면 내기는 너무 불공평 해. 넌 모든 걸 알 고 있고, 난 모든 걸 모르니까 말이야.] "엉터리." 칸나는 상관없다는 듯이 샐쭉해 하는 그녀의 뺨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해볼까 우리 아기? 너에게 하나의 금제를 걸겠다. 죽음으로 이르는 절망 을 줄 수 있는 것을 만났을 때 깨어지는 금제를. 그 동안은 넌 아무 것도 아닌 존재로서만 너를 알고 있게 되겠지.] "그럼, 영원히 깨어날 수 없잖아?" 칸나는 미소 지었다. 여전히 부드럽고 사려 깊은, 부드러운 미소를. [아니, 너는 깨어날 수 있을 거다. 모든 일에는 우연, 그 예외가 적용되니 까 말이다. 더없이 강력하고, 더 없이 위대한 금제를 너에게 걸어주마. 네가 깨어날 수 없도록.] "그 내기, 내가 이길 거야..." 에리나쟈드는 간단히 말하면서 칸나의 몸 위에 밀착했다. 심장소리는 들려 오지 않지만, 그의 몸에 온기라고는 없지만...그래도 그는 누구보다 그녀 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존재였다. [하나는 광기, 하나는 의문, 하나는 완성...너는 피를 부를 것이고 위험한 의구를 키울 것이며, 마지막으로 죽음을 완성하게 될 것이다. 나의 아이, 에리나쟈드.] 아득하게 밀려들어오는 졸음. 에리나쟈드는 확신을 가지며 눈을 감았다. 칸나는 계속해서 끝도 없이 그녀에게 중얼거렸다. [아득한 광기가 피를, 그 피의 원한이 너에게 의문을, 그리고 네가 행한 것 으로 너는 찾아낸 죽음의 앞에서 결국 지고 말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강한 금제를 너에게 부여한다. 나의 아이, 에리나쟈드.] 그녀는 눈꺼풀을 닫고, 모든 것을 봉하고, 그렇게 잠이 들었다. [...네가 그 잠을 깨고 그 존재를 찾지 못하도록, 더없이 깊이 잠들었으 면...나의 아이야...] 잠들었다. 그리고 기나긴 시간 동안. ============================================================= ========= 아아....1부의 내용을 그냥 그대로 복사해서 미리 올려버릴까... 왠지 말이 맞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흠....그리고 에리나쟈드의 고백장면이 정말 멋졌다고 말씀해 주신 민트 님...^^;; 감사합니다. -.-; 그렇지만 쓰는 동안 닭살에 몸부림치며 '어째서 그렇게 말 하는거야 에리나 쟈드!'라고 외치며 존댓말하는 에리나쟈드 님에게 참으로 감격에 떨었습니 다만..... 개인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입니다. ^_^; 정작 본인은 듣고 싶어하지 않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닭살이지만...;;; 마왕 이야기-152 추억, 기억-20 에리나쟈드는 그렇게 긴긴 이야기를 토로해 놓고 마지막으로 한숨을 내쉬고 는, 입을 열었다. "그랬던 것이지..." "...고, 고작 내기 때문에 그럼 그런 일들을 했다구요?" 시오는 울상을 지었다. 무려 5년을 지속됐던 인간과 마족들의 전쟁. 그리 고 마지막 전투의 그 처절한 파멸이 있은 후, 그 자리의 모든 것들이 무로 화해서 이 세상에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인간은 물론 마족도 지리멸렬한 고통을 겪었다. 살아남았던 것은 아인디아 한 사람뿐이었지만, 그녀도 입을 열지 않았기에 진상은 알 수 없었지만 시오는 대략은 짐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대 전쟁이 일어난 이유가, 내기로 인해서 걸어 두었던 금제 가 깨어졌기 때문이라고? "응." 에리나쟈드는 너무나도 뻔뻔스레 대꾸했다. ...에...그러니까 금제가 완전히 풀린 그녀는 원래 가지고 있던 멍청한 바 보와, 냉정한 마녀의 분위기에서 일신의 대 변혁을 거쳐서 약간이나마 장난 기를 가지고 있는 여인의 모습으로 화해 있었다. 시오는 결국 울먹이고야 말았다. "...그...그럼...지금은 그 금제가 다 풀렸다는 겁니까? 전부 다?" "그렇지." 묻고 싶지 않았지만 물을 사람이라고는 시오 단 한사람 뿐. 그는 바들바 들 떨면서 고양이 앞의 쥐처럼-정말로 고양이 앞의 쥐일 지도 몰랐다-입을 열었다. "왜...요?" 에리나쟈드는 히죽, 하고 장난스레 웃었고 시오는 그 낌새를 느끼고는 또 흠칫 떨었다. 그리고 에리나쟈드는 당당히 수도 없는 사제들이 있는 그 예 배소 안에서 말을 이었다. "널 사랑해 버렸기 때문에." 고요라는 것은 좋은 것이지만, 지금의 상황으로 보아할 때 그것은 별로 좋 은 것이 아니었다. 사제들은 하나같이 입을 굳게 다물고 마냥 즐겁다는 듯 이 웃고 있는 에리나쟈드에게 어떠한 자각이 있을까 싶어서 마음속으로만 한숨을 내쉬고 있었고, 마리는 입을 뻐금대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 한 시오는.... 휘청. 뒤로 힘없이 넘어가는 시오를 받아든 마리는 기절할 듯이 놀라서 외쳤다. "시, 심장이 멈췄어요오옷!" "무, 무어라!" "소, 소생술! 아니 기적을 일으켜!" "악! 5분 지나면 맛사지도 소용이!!" 다들 난리를 피우며 소란스레 움직였고, 결국 시오는 시름시름 앓다가 3일 만에 겨우 일어난 환자처럼 푸르죽죽한 얼굴을 하고는 겨우 자신의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그의 얼굴은 반쯤 정신나간 듯이 멍청해져 있어서 평소 의 구김살 없이 자라던 고아소년의 진정한 묘미를 보여줬던 그 미소마저 사 라져 있었으니... 그런 일련의 상황에서도 흐트러짐이라곤 전혀 없는 그녀를 칭찬해 주어야 할까, 아니면 때려줘야 할까. "그런데, 예배 같은 거 안 해?" "이 상황에서 어떻게 예배를 합니까! 거, 거기다가! 당신은 마왕이지 않습 니까!? 어떻게 마왕이 신에게 예배를...!" 에리나쟈드는 눈을 멀뚱멀뚱하니 뜨고서는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는 마리를 바라보다 그냥 피식하고 또 웃어 버렸다. "시오가 하면 나도 하는 거야." ...누가 말려다오. 바보세트가 한차례 업그레이드를 거쳐서 이제 엽기세트로 진화하려는 찰나 였다. 마리는 부르르 떨다 결국 뒤로 휘익하고 넘어가 버렸고 차기 수석사 제는 그런 마리를 허둥지둥 안아들었다. "마리 님의 심정도!" "으아아아아아아악!" 여러모로 민폐를 끼치고 있으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하암, 하고 하품을 해 버리는 에리나쟈드였다. 시오는 극히 피로한 목소리로 애써서 미소를 지으며 띄엄띄엄 힘들게 말을 이어나갔다. "...오늘은 예배를 그만하도록...하겠습니다..." 그렇게, 역사상 최초로 기록되는 아침예배가 없었던 날의 마이아 신의 전당 에는 위대한 혼돈이자 첨예한 혼돈의 마왕인 에리나쟈드만이 그런 시오의 의견에 작게 항의했을 뿐이었다. 이것이 역사적으로 공표되고 기록돼 있는, '아침예배 미수 사건'이었다. 시오는 홍차 잔에 티스푼을 넣고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날 정도로 휘젖고 있 었다. 에리나쟈드는 멍청히 상념에 젖어 들어 있는 그런 시오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시오, 먹여줄까?" "네에..." 아무 생각 없이 멍청하게 대답할 정도로 시오의 정신은 저 멀리 적도 부근 으로 휘익 날아간 모양이었다. 에리나쟈드는 말없이 홍차 잔을 자신이 들 고 입안에 홍차를 가득히 머금었다. 그리고 멍청히 허공에 스푼을 휘젖는 행동을 하고 있는 시오의 턱을 잡고, 그런 그의 입안에 적당히 따뜻한 홍차 를 넣어주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하는데 필요한 소요시간은 10초미만. 입안으로 흘러 들어온 홍차는 시오의 목을 타고 꿀꺽, 하고 정확히 넘어갔 고 입안을 맴도는 매끄러운 그 무엇의 감촉에 그는 그대로 돌이 되어 버렸 다. 아아, 이제 저 상태에서 풍화작용이 일어나 그를 휩쓸어가기만을 기다리어 야 하는 것일까? 에리나쟈드는 입을 떼고, 살짝 웃으면서 말했다. "맛있어?" "우...우에에에에!" ...결국 인간의 언어라는 영역을 이용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논 리적인 두뇌의 요소가 만들어지지 않자, 시오는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팔을 바둥거렸다. 너무나도 필사적인 행동이었지만 에리나쟈 드는 전.혀. 상관이 없는지 그런 그를 꼬옥 끌어안았다. "시오, 너무너무 사랑스러워." 그들이 날리는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무서운 바보광선의 위력은 극강 해 지고 있음이니...이제 정말 세계정복까지 그리 멀지 않았다. 힘내라 에리나쟈드! 힘내라 시오! 너희들의 앞날에는 세계 정복의 그날이 펼쳐져 있다! ============================================================= ========= 아침의 홍차도 좋아하지만, 저녁의 컴퓨터 앞에서 마시는 레몬 홍차는 정 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삶의 여유로움입니다. 차라는 것은 인간이 발명한 가장 위대하다고 볼 수 있는 창작물이라고 생각 합니다. ^^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이 그윽한 향..... 물, 물론 홍차는 많이 마시면 안좋지만....-_-;; 아아, 역시 봄과 가을엔 홍차입니다. 어서 겨울이 와야 할텐데... 말린 녹차 잎이 나를 기다리고 있어....+_+ 다음 편은 새벽쯤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 마왕 이야기-153 추억, 기억-21 아인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시오가, 신전을 버리고 짐을 싸서 대뜸 가출(?)을 해서 온 곳이 바로 이 신성령이라니. 그것도 더 우스운 것은, 그가 상당히 당찬 결심을 하고 찾아왔다는 것이었다. "무슨 결심으로 찾아왔냐? 요즘 나 방문자 절대 금지 명패 걸고 있는데." "...정조의 위기 때문에요." 너무나도 야무지고 당돌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말하는 바람에 아인은 큭, 하고 공기를 잘못 마셔서 공기에 체하는(?) 무척 기괴한 경험을 하게 되었 다. 그녀는 고통으로 옆에 서 있는 기둥을 붙잡고 쿨럭대다가 다시 물었다. "무슨 위기? 정조 위기?" "그게..." 시오가 막 글썽이면서 뭐라고 입을 열려고 할 때, 콰앙하는 화려한 소리가 나면서 신성령의 가장 안쪽인 이 접견실의 문짝이 화려하게 허공을 날아갔 다. 아인이 심심하면 발로 차고 부수뜨리긴 했지만 그래도 이 신성령을 대 표하는 문을 날려버리다니, 누군지 몰라도 무척 간이 큰 자임은 분명했다. "우어어어억! 내 목숨을 걸고서라도 이 이상은...!" "그럼 죽어!" 퍼억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맥스웰은 맞아서 바닥을 주르륵 밀려나가 버렸 고, 가차없이 맥스웰에게 안 그래도 늙은 몸, 뼈도 잘 안 아무는데 뼈가 하 나 부러져서 바닥을 뒹구는 즐거움을 맛봐야만 했다. 그것도 자율이 아닌 타율로. "...하...하하하..." 아인은 헛웃음을 울렸고 시오의 얼굴은 새파랗게 굳어 버렸다. "시오! 왜 갑자기 종이 한 장만 남기고 순례 따위 떠난 거야? 갈 거면 같 이 가면 되잖아!" 당당하게 외치는 에리나쟈드를 보면서 아인은 머리를 감싸 쥐고 옆에 있는 원기둥에 박을 까 했다가 꾹 참고는 그저 성큼성큼 걸어와 곰인형이라도 안 듯이 시오를 꼬옥 끌어안는 에리나쟈드를 바라보았다. 진정...저 둘은 바보세트라고 불릴 만한 저력이 있는 존재들이다. 시오는 새파래지다 못해 허옇게 변해 버렸고, 에리나쟈드는 마냥 행복한 미 소를 지었다. "...정조의 위기가 설마 저 아가씨 때문...?" "윽...그, 그게..." "정조의 위기? 무슨 소리야 시오?" 또랑또랑하게 눈을 뜨고 시오를 추궁하는 에리나쟈드. 아인은 냉큼 시오 대신 가차없이 대답해 주었다. 사실, 그녀는 남의 일에 훼방놓는 것도 상 당히 좋아했지만 싫다는 사람 괴롭히는 것도 엄청 좋아했던 것이다. "그게 말야, 잘못 하면 너랑 그냥 배드 인 할 것 같아서 그랬다지 뭐야? 신 성령에 빈방도 많고 아름다운 연인을 위한 밀실도 충분히 있고 포도주도 있 으니 오늘밤은 여기서 둘 다 묶고 가아." 시오는 덜덜 떨면서 입을 뻐금 거렸다. 하지만 아인은 에리나쟈드가 한번 손쓰면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매우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라는 자기변명을 핑계로 그런 에리나쟈드가 시오를 어떻게 할 것이라는 것을 너 무나도 잘 알면서 그냥 넘겨버렸다. "헤에...?" "나...나...아니 저, 그냥 신전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왜, 묶고 가지? 방 많다니까?" 울먹울먹해서 금방이라도 그 반짝거리는 금색빛 도는 녹색 눈동자에 눈물 을 떨굴 것 같으면서도, 시오는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오! 절대로 지금 갈 거에요!" "난 여기 있다 갔으면 좋겠는데..." 에리나쟈드는 조그맣게 불만을 표시했지만 시오가 워낙 강경하게 무작정 가 겠다고 나서자 결국 '시오 맘대로 해'라고 해버렸다. 그렇다고 시오 맘대 로 하라니...역시 저 둘은 끝내 바보세트라는 위명을 버릴 수 없을 것인가. 결국 침울하게 시오가 신전에 돌아오자, 사제들은 그러면 그렇지 하는 표정 으로 그 둘을 맞아 주었다. 마리는 이제 신께서 결혼을 금하신 것도 아니 니 괜찮겠지, 아암...하고 중얼거리면서 자신에게 열심히 세뇌를 걸고 있었 다. 마리는 풀이 잔뜩 죽어서 내놓은 홍차 앞에서도 입을 꼭 다물고 있는 시오 를 달래듯이 물었다. "에리는요? 그리고 왜 이렇게 우울하세요 시오 님?" "에리는...아인 님하고 할 얘기가 있다고, 잠깐 늦게 온다고 했어요." 커다랗게 한숨을 내쉬고는, 시오는 고개를 들고 마리를 애처로운 눈으로 바 라보았다. 그 순진함에 마리는 저도 모르게 한번 쓰다듬어 주고 싶었지 만, 꾹 참아내곤 시오의 말을 들었다. "나...당하는 건 싫어요..." 결국 훌쩍훌쩍 울기 시작하는 시오를 바라보면서, 마리는 이럴 때 어떻게 위로해야 할까 생각해 보았지만 사제가 어떻게 오묘한 남녀 관계의 진리를 알고 있겠는가? 그녀는 결국 아무런 위로도 하지 못한 체 한숨만을 내쉴 뿐이었다. 결과적으로, 시오는 오늘도 계단청소를 하지 못했다. ============================================================= ========= -_-; 뭐 어뗘... 여자한테 당하는 것도 나름대로....쿨럭쿨럭...;; 앞으로....흠....대략 5편 정도면 이번 편도 끝나려나요? 에필로그에선 히드레안님도 등장하실거고... 이러다간 히드레안님이 에리나쟈드님을 제치지 못하고 묻혀버릴지도.(웃음) 개인적으로도 에리나쟈드님은 무척 좋아해요~*^^* 귀엽잖아요? 그리고 애교스럽고, 예쁘고! >. 아인스타일의 거친 타입도 좋지만 에리나쟈드 같은 타입도 좋아요~♡ 여자는 강해야 한다! ....왠지 그게 제가 말하고 있는 여성 지상주의 같다는 느낌이...? -_-; 자자, 기대해 주세요. 다음 편부터는 이야기가 조금 진지하게 흘러갈 수도 있으니까요~♡ 마왕 이야기-154 추억, 기억-22 에리나쟈드는 아인과 마주보고 앉아서 뚱한 표정을 지었다. 왜 여기에 있 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아인은 마주 앉아서 자각한 마 족이란 이런 거란 말이군, 따위를 중얼거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너...혹시 나랑 닮았단 소리 안 들어?" "안 들어." "들을 지도 모르는데?" 아인은 에에, 하면서 의심 간다는 표정을 지었고 흥, 하면서 에리나쟈드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정말 두 사람, 아니 한 사람과 한 혼돈은 상 당히 닮아 있었다. 어디라고 딱 잘라서 말할 수는 없지만 분위기라고 불리 는 것이. "...왜...다시 나타났지?" "시오 마이안. 내 관심사는 그뿐이다." 에리나쟈드는 짧게 자르듯이 말했다. 그리고 아인은 한숨을 내쉬며 입에 담배를 하나 물었고 에리나쟈드는 예의 상이나마 가져다 놓은 찻잔을 툭하 고 건드리면서 입을 열었다. "네게는 감사하고 있어. 내기에 이기게 해줬으니까." "내기...라고?" 어리둥절해 있는 아인에게 에리나쟈드는 또다시 이야기를 풀어놓았고, 아인 은 모두 듣더니 반쯤은 웃고 반쯤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한 체 그녀를 바라 보았다. "어째서 내가 이기게 해줬다는 거지?" "그때. 너에게서 나를 부정당했을 때. 나는 정말로 죽음이 무엇이라는 것 인지 알 수 있었다. 한순간, 내 자신이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감 각. 스스로 그것을 선택해 사라질 수도 있었다..." 에리나쟈드는 가볍게 눈을 내리 깔았다. 찻잔 속에서 출렁대는 홍색의 액 체는 이리저리 움직이며 유동성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자아를 부정 당하는 그때의 혼란감. 죽음에 이르게 하는, 고통. 하지만 그것을 통해 나는 자각했고, 그것을 이겨냈다. 이제 죽음이란 더 이상 내 게 관련 없는 단어이지. 그렇기에 내기는 내가 이긴 거다." 아인은 그녀의 말을 듣다가 담배를 질겅, 하고 물었다. 진한 담배 향이 떠 돌고, 회색빛 연기가 우중충하니 감싸여진다. 아인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잘못 생각할 수도 있는걸." "무엇을?" 담배를 찻잔에 넣어서 비벼 끄며, 그것이 누가 마실 차이던지 신경 쓰지 않 고서, 삐딱하게 입을 열었다. "분명히, 죽음에 이르게 하는 존재를 통해 자각한다고 했지? 하지만 이겨냈 다고 볼 수 만은 없어...." "없다고? 왜?" 에리나쟈드는 의아한 얼굴을 했다. 아인은 곰곰히 생각하면서 입을 다물 고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에는 아릿한 허무와, 추억과, 기억이 깃들어 있었다. "죽음에 이를 수 있는, 그런 존재란...반드시 자기 부정을 하는 존재란 법 은...없어. 그러니까, 죽음이란 것은...한시적인 한 면으로만 받아들여지 는 것이 아니니까. 다른 방향으로, 다른 방법으로. 다른 고통으로...얼마 든지 나타날 수 있어." 아인은 턱을 살짝 쓰다듬은 후,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내가 생각하기엔...죽음이란 것을 이겨낸다는 건, 아직 나와는 관계가 있는 건 아닌 것 같아." "그럼...무엇과 관계 있다고 볼 수 있지?" 에리나쟈드의 직설적인 질문에 아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각한 존재, 강 력한 존재, 무한한 존재. 하지만 겪어보지 못한 것은 알지 못하는, 그렇기 에 여린 존재. 아인은 다시 담배를 하나 꺼내들었다. 속이 답답할 지경이 었다. 담배 속에 포함되 있는 마약에 녹아들어서 정신이 피폐해져 버렸다면 간단 할 것을. "모든 것이." "모든 것이?" "그래, 모든 것이.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그리고 아주 약간, 네가 가지 고 있는 것들이 일어나면, 너도 그 의미를 알게 되겠지. 모든 것이 너를 죽음으로 몰고 갈 정도로 미치게 할거야. 네가, 인간과 같은 감정을 느끼 고 있다는 가정이 맞는다면." 모든 것이. 시간의 흐름 앞에서 스러지고... 모든 것이. 사랑하던 모든 것들이 나를 두고 앞으로 나아가고. 모든 것이. 과거란 이름으로 나에게 각인되어 퇴색되어 갈 때. 모든 것이. 나와 동떨어져 흘러간다는 것을 느낄 때... 기억은 현재를 살아가는 자들의 전유물. 추억은 과거를 살아가는 자들의 잔존물... "너도 언젠가 알게 될 거야." "언젠가라...그게 언제가 되지?" 에리나쟈드는 당당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아인은 그런 그녀를 물끄러 미 바라보았다. 존재가치를 부정했을 때, 왜 그녀가 다시 자신의 존재에 확신을 가졌는지, 아인은 알고 있었다. 누군가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 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기에. 그녀는 그때 무너지지 않았고, 죽음이란 것을 슬쩍 스쳐갈 수 있었다. 하지만... "...아주...가까운 시일 내겠지." "그래? 기대하고 있지. 이번에야 말로 내가 이기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 을 것 같군." 하지만, 시간 앞에서 승자란 없다. 죽음이야말로 가장 공평한 세상에서 유 일무이한 대 법칙. 사라지는 것들이 있다면, 사라지지 않는 것들도 있 다. 사라지지 않는 것은, 그래서 죽음을 꿈꾸는가? "기대하지. 네가 죽지 않기를..." 왜 그녀는 시오를 먼저 만났을까. 무방비로 먼저 그 슬픈 눈망울을 내게 보여 줬더라면...아인은 깊숙이 폐 안으로 밀어 넣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떨쳐 내야할, 비겁하기 짝이 없는 이기심. 그랬더라면. 그랬더라면, 지금의 그 당당한 미소를 짓고 있는 영원한 너는 나를 바라보 며 사랑한다고 할까. 아인은 메아리쳐지는 자신의 목소리에 자신이 질식하 면서, 그렇게 눈을 감았다. 그리고 에리나쟈드 역시 그런 아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이내 모습을 감추 었다. ============================================================= ========= 기억은 현재를 살아가는 자들의 전유물, 추억은 과거를 살아가는 자들의 잔존물. .....그럴까요? 정말로... -_-; 헤에...그런가..중얼.... 추억으로 있는 것들은 과거.....기억으로 있는 것들은 현재? 흐음흐음, 결국 이래저래. 말장난. 말장난~ 마왕 이야기-155 추억, 기억-23 우르릉. 천둥소리와 함께 한바탕의 빛이 신전을 두드렸다. 사제들은 분주히 빨래 를 걷고, 마당에 널어놓았던 말리는 식량들을 거두고, 활짝 열려있는 창문 하나 없는 기괴한 신전의 구조를 저주하며 하나씩 신에게 기도를 올려 '오 신이시여! 신의 아이들인 우리가 비 맞게 생겼습니까? 순순히 그대의 신전 을 보호하소서! (작게) 안 그럼...죽-어.' ...정확히는 협박을 해서 보호 의 프로텍트도 생성하고, 부산을 떨어댔다. 장마철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시오는 멍청한 표정으로 신전의 입구에 해당하는 계단 위에 서서 허공을 바 라보았다. 정령들이 이리저리 쓸려 다니는 것이 느껴진다. 신의 역사가 곧 일어날 것이다. 대기와 춤추는 정령의 힘이 강대해 질 대로 강대해지 고, 강력한 전자기장이 일어났다. 쏴아아아... 그리고 검게 몰려있던 구름에서부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맹렬한 바람 이 사방을 휩쓸고, 바람에 따라 빗소리도 더욱더 거칠게 들려오며 사방으 로 떨어져 내렸다. 펄럭, 하고 바람이 움직인다. 시오는 조그마한 입술 을 움직였다. "나의 정, 광폭한 바람의 존재. 위대한 엘 카인이시여..." [오늘은 또 무슨 일이신가? 맹약자.] 신경질 적인 소리를 내면서 바람으로 자신의 몸을 휘감고 있는 여인은 시오 의 눈앞에 나타났다. 벗고 있는 상반신에서 은은한 풀 내음이 풍기는 그녀 는 사방으로 몰아치는 바람의 중심에 서있듯이 당당해 보였다. "폭풍이 오네요. 펜릴께서 직접 역사하시고 계십니까?" [물론. 이번 폭풍은 더없이 강렬하고 강력할 것이다. 그러나, 신전은 그 분께서 비호하신다. 걱정할 건 없을텐데?] "아...저, 혹시 펜릴께서 역사하고 있으시다면, 이 인계에 강림해 계신 것 입니까?" [그렇지. 설마 마이아 신의 사제인 네가 그분께 의문을 던지려는 거냐? 그 런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을텐데...] 시오는 생긋이 웃으며 입을 열려고 했다. 그러나 갑자기 등뒤에서 다가온 물컹하고 부드럽기 짝이 없는 감촉과 목을 휘감는 가느다랗고 부드럽지만 그 숨겨진 힘은 무시 못할 팔의 감각이 느껴지고, 출렁이는 느낌의 머리카 락이 시오의 뺨에 와 닿았다. 어질어질하게 풍기고 있는 시트러스 향기까지... 시오는 이 지상천국의 기쁨에도 전혀 즐겁지 않은지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 오르면서 우물쭈물 거렸고, 에리나쟈드는 딱 잘라서 입을 열었다. "네가 왜 여기 있지? 바람의 왕 엘 카인." [아아, 위대한 혼돈. 시간의 첨예한 지배자시여. 저는 맹약에 따라 이 자 리에 있습니다.] 에리나쟈드는 꽤 놀랐다는 얼굴로 시오를 바라보았다. 바둥바둥 거리면서 어떻게든 빠져나가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그가, 정령왕과 계약을 맺었다 라...? "시오가 너랑 계약을 했다고? 시오는 사제인데?" [계약에 관해서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 것이 법칙.] 에리나쟈드는 고깝게 말하는 엘 카인을 바라보다가 시오를 흘낏 바라보았 다. 그리곤 슬금슬금 허리께로 손을 움직이며 그의 귓가에 살짝 숨을 불어 넣었다. 백주 대낮에, 그것도 정령왕 앞에서 성희롱(?)을 당하며 시오는 울상을 지었고, 에리나쟈드는 아무런 꺼리김 없이 그런 그에게 물었다. "시오오오. 무슨 계약 했는데에? 왜 했는데? 응? 응?" 죄 없는 시오를 괴롭히면서 일말의 희열을 느끼고 있는 듯이 보이는 에리나 쟈드를 보면서, 엘 카인은 좋아하지 않는 계약자이긴 하지만 시오가 가엾다 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혼돈이 아닌가? 괜히 나서서 까불다가 는 위험하니 그냥 가만히 있을 수밖에. "그...그건요...에리! 만지지마요오!" "사랑하는 사이잖아. 시오 너무 귀여워어~" 이봐, 이봐. 아무리 그래도 그 자리에서 덮치는 건 너무하지 않을까...꼭 끌어안고 부비대고 있는 에리나쟈드를 보며, 엘 카인은 이때껏 들려오던 지 고전쟁에서의 냉혹무비하던 그녀의 모습이 다 어디로 간 걸까 하고 심각한 고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정령들마저 확실히 각인할 정도로 사악하던 그 녀가... "으아앙! 에리 너무해요!" "가만 있어봐. 시오, 시오. 그러지 말구-" ...어째서 저 모양 저 꼴이 난 건지 아무래도 의심이 무럭무럭 솟구치고 있 는 엘 카인이었다. "윽, 윽. 엘 카인. 나중에 다시 부를께요..." 결국 눈물이 그렁그렁해서는 엘 카인에게 양해를 구하는 시오의 모습은, 엘 카인이 보기에도 상당히 귀여웠다. 하지만 이내 에리나쟈드가 상당히 살벌하기 짝이 없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재빨리 모습을 감추 는 수밖에는 도리가 없었다. "에리이...이거 놔주세요..." 시오는 울상을 지으며 팔에서 벗어나려고 바둥거렸고, 에리나쟈드는 더 꼬 옥 안으면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싫어. 시오는 내가 싫어? 응?" "...싫은 건 아니지만...그, 그렇지만..." 그런 시오의 뺨에 소리나게 키스하면서 마냥 좋아하는 에리나쟈드. ...정 말 바보가 따로 없다. 시오는 여전히 울상을 짓고 있었고, 에리나쟈드는 더 그런 시오를 끌어안았다. 정말 잘못하면 지나가던 사람이 흘낏 보기라 도 하면 상당히 뭔가 미묘한 장면인 것은 분명했다. 에리나쟈드는 길게 늘어지는 자신의 머리카락이 시오의 뺨에서 살랑대는 것 을 바라보며 조금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알고 있었어. 내가 누구란 것을...그렇지?" "에리...?" 조금도 크지 않은, 아니 이제는 늙지 않는, 이라고 말해야 할 시오의 몸을 등뒤에서부터 꽉 끌어안으면서 에리나쟈드는 영문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 시오를 내려다보았다. "내가 어떤 존재란 것도 너는 알고 있었어. 내가 왜 그곳에, 하필 네 앞 에 나타났는지도 너는 알고 있었어. 왜...네가 왜 그런 것을 알고 있었는 지, 왜냐고는 묻지 않겠어. 어째서 우연이 나를 너에게로 이끌었는지, 그 것도 묻지 않겠어...하지만 시오..." 에리나쟈드는 뚝, 하고 굴러 떨어지는 눈물이 자신의 것인지, 아니면 단순 히 시오의 마음에 동조한 자신의 몸이 흘리는 것인지 구별할 수는 없었 다. 에리나쟈드는 처음, 시오에게 그렇게 말하던 것처럼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거부하지마.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을, 거부하지마...응?" "에리..." "한마디의 거짓말도 그대에게는 하지 않았습니다...나는...진심으로, 나의 의지로 그대를 사랑함을 말했지만..." 혼란스러운지 에리나쟈드는 경어를 썼다가 다시 반말을 쓰는 등 약간의 혼 동을 일으켰지만 이내 시오를 포옥 끌어안으며 말했다. "나...싫어해?" 쏴아아. 바람과 함께 요란한 천둥이 울려 퍼졌다. 폭풍이 본격적으로 다 가오고, 우울한 빗줄기가 떨어져 내린다. 그 회색 빛의 세상이 전해져 오 는 파동에 한껏 젖어 있던 시오는 천천히 부드러운, 예전처럼 따스한 미소 를 지으면서 입을 열었다. 초조함, 불안감이라는 것들이 사라지는 느낌... "아니오. 많이 좋아해요..." "...시오 사랑해애!" 숨막힐 정도로 돌려서 정면으로 끌어안는 바람에, 시오는 버둥거릴 수 밖 에 없었다. 아무리 그라고 해도, 성인여인의 가슴에 파묻이는 일은 그리 괴롭지만은 않 은 일이니...훗. "앗! 그, 그렇지만! 이러지 말아요 에리! ...아까 그건 뭐에요 그럼!" "그것도 이것도 다 애정표현이란 말야!" 여기서 결론을 내자. 결국, 둘은 바보세트일 뿐이다. ============================================================= ========= 그래...시간이 있을때 많이 행복해 해라...클클클...-_- 너희들을 기다리는 것은.... 훗....훗훗훗.....음하하하하하하핫!!! (-_-;;;;;) 난 남 잘되는 꼴은 죽어도 못봐! +_+ 절대로!! 내가 등장인물을 행복하게 해주느니 차라리 그냥 성을 간다!! 마왕 이야기-156 추억, 기억-24 "나는 아직 피지 않은 꽃. 나를 피워주세요. 오직 당신을 위하여 향기로워 질테니까." 짜여진 나무틀 위에 놓여져 있는 천 위에, 정성스럽게 수를 놓으면서 시오 는 흥얼거렸다. 장마는 지나가는지 그렇게 기승을 부리던 비바람도 지금 은 부슬부슬 내리는 이슬비로 변해 있었다. 사제들도 우비를 입고 이때껏 의 피해를 조사하러 다닐 정도로 상황은 많이 나아져 있었다. "나는 아직 눈 먼 나비. 나에게 날갯짓을 가르쳐 주세요. 당신의 어깨로 날아오를 거예요." 푹신한 쿠션이 덧대어진 바닥에 앉아 수예를 하는 시오의 무릎에 반쯤 기대 어서 바닥에 누워 있는 에리나쟈드는 눈을 감고 자고 있는 듯 했지만 까닥 까닥 움직이는 고갯짓으로 볼 때는 잠들어 있는 것은 아닌 듯 했다. 폭포수처럼 내려진 검은 머리카락은 사방으로 출렁대 있고, 감겨진 그녀의 눈가를 따라 가볍게 떨어지고 있는 은은한 빛이 그녀를 순결하게, 하얀 피 부 위에 자리잡은 피 같은 붉은 입술이 그녀를 음탕하게 만들고 있었지만 본질적으로 그녀가 아름답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나는 아직 벙어리 카나리아. 나에게 노래를 가르쳐 주세요. 세상 가장 고운 목소리로 당신만을 위해 노래할테니." 흰나비를 수놓고 나니, 텅 빈 공간이 너무 많이 손에 잡혀서 시오는 실패 로 손을 뻗었다. 손끝에 닿는 감촉을 즐기다 시오는 보라색의 실을 집어들 었고, 그것을 바늘에 꿰고는-그가 장님인지 이럴 때는 기묘한 의심이 간다- 천천히 나비의 아래에 바이올렛을 수놓기 시작했다. "나는 아직 메마른 샘. 나를 채워주세요. 당신의 입술을 촉촉히 적셔줄테니까." 기분 좋게 살짝 스치는 바람에 습기는 거의 사라져 있었다. 곧 해가 뜰 정 도로 날씨가 맑아지리라. 시오는 절로 콧노래를 흥얼대면서 능숙한 손놀림 으로 바이올렛 꽃을 마무리 짓고 실을 이로 끊어낸 다음, 녹색으로 잎을 수 놓기 시작했다. 방안 가득히 차있는 책들 속에 말려져 있을 허브들의 향기 가 방안을 훈훈히 맴돌고, 부드러운 기운이 시오를 감싸고 돌았다. "메마른 나에게 온기를. 황폐한 내 가슴에 정원을. 내 눈에 기쁨을 불어넣어 주세요." 수놓아지는 보랏빛의 바이올렛은 화려함을 뽐내며 자신의 아름다움을 나비 에게 과시하고 있었다. 시오는 푸른색의 실을 찾아 하늘을 수놓으려다가 푸른색의 촉감을 가진 실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자 잠시 고민했다. 그가 흥 얼대는 노랫소리에 맞춰 까닥대는 에리나쟈드의 머리카락을 쓸어 보다가, 시오는 싱긋이 웃고는 검은색을 집어들었다. 검은 밤하늘과 나비, 그리고 바이올렛이 함께 있는 정경을 수놓으면서 시오 는 흥얼대던 목소리를 조금 높여서 노래를 불렀다. "그렇다면 난 행복해지겠지요. 그렇다면 그대는 행복해지겠지요. 그리해서 우리는 행복해질 거예요." 그리고 뚝하고 노래가 그치고, 시오는 빠른 손놀림으로 수예를 마무리 짓 기 시작했다. 귀퉁이의 검은 밤을 마저 수놓으면서 시오는 에리나쟈드가 그의 노래가 멈춘 것에 항의라도 하듯이 손가락을 들어올려 톡톡하고 자신 의 무릎을 치는 것도 무시하는 척 했다. 에리나쟈드는 신경질이 났는지 빠른 리듬으로 시오의 무릎을 톡톡, 하고 쳤 고 시오는 여전히 입을 꾹 다문 체, 웃음을 참으며 수예의 틀을 마저 잡고 완전히 마무리했다. 실과 실패를 정리하고, 그는 수예가 떠진 천을 나무 로 된 수예 틀에서 뽑아들었다. 눈을 감은 체 인상을 살짝 찌푸리던 에리나쟈드는 결국 눈을 뜨고는 시오에 게 뭐라고 항의하려고 했다. 눈을 뜬 그녀의 눈앞에, 검은 밤하늘에 수놓 아진 나비와 바이올렛이 드러났고, 시오의 등뒤에 있는 높은 창에서, 때를 맞추기라도 하듯이 연한 햇살이 비춰들고 있었다. 살짝 부서져서, 떠돌고 있는 먼지들을 하나하나 반짝반짝한 보석으로 만들 어 주고 있는 아름다운 햇빛과, 빛에 반사되 반짝대는 시오의 머리카락 사 이에서 그의 눈동자가 미소짓고 있었다. "행복하게 해주세요. 행복하게 해줄 수 있어요." 에리나쟈드는 그런 시오를 바라보며 약가 눈이 부신지 눈을 찌푸렸다가, 햇 빛에 눈이 익숙해지자 미소 지으면서 말했다. "시오, 노래 더 해줘." "아는 노래가 더는 없어요. 그 외에는 모두 찬송가인 걸요?" 작품에 만족한 듯한 미소를 지으면서 잘 개어서 옆에 두고는, 시오는 찌뿌 둥 한지 기지개를 켰다. 뼈가 약간 뚜둑 거리고, 그는 어깨를 주무르면서 개운한 표정을 지었다. "비가 그친 것 같네요. 더 이상 소리가 들리지 않는 걸 보니까." "노래 해 줘. 노래 가르쳐 줘. 응, 응?" 이젠 익숙하게 끌어안고는 부비적대고 있는 에리나쟈드의 몸에서 느껴지는 기분 좋은 향기에 시오는 쓴웃음을 지었다. 어떨 때는 뻔뻔스럽게 느껴져 도, 결국은 그녀가 순수하기 짝이 없는 면을 지니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시오는 미소 지었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평화로운 이 한 때가 그대로 이어지고, 그녀와 계속 해서 즐거운 것들을 더 많이 기억해서, 그 기억들을 추억으로 만든 체 행복 해 지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녀가 행했던 대가, 수도 없는 피를 흘렸던 업은, 서서히... 등 뒤에서 아주 서서히, 조금씩 그 피투성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 은, 시오도 알고 있지 못했다. ============================================================= ========= 맨날 펜릴이 지탄받는 이유는 주인공 괴롭히기라는 이 몹쓸 습성을 절대로 버리지 못해서지요...-_-; 반드시 주인공을 불행하게 만들어야지 직성이 풀리는 사악한 자까정신...; 이것을 가르켜 우리는 악랄, 잔인이라고 부릅니다만...험...험...; 뭐어때요! +_+; 캐릭터 고롭히기는 삶의 즐거운 한때를 위한 활력소! 음하하하하하하핫! 이제 피다~피다~! 확실한 피다! +_+; 그리고 이제 너희들에게 남은 것은....훗.... 아하하하하핫!!! (-_-; 던질거면 던지쇼...짱돌까지는 수용하겠소이다...;) 마왕 이야기-157 추억, 기억-25 행복이란 얼마나 아슬아슬한 경계 위에 서 있는가. 언제 무너질 지 모르는, 하찮은 얼음 위에. 영원히 유지 될 것이라 믿으 며 그 얼음 위를 불안하게 걷고 있는 것과 같은 이치. 시오는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되물었다. "그게...도대체 무슨 말입니까?" "그러니까, 시오 님에게 경고를 보내셨습니다. 그대로 마왕의 정부 노릇이 나 할거냐고...신의 수치이니..." 떠듬떠듬 거리면서 말을 잊는 마리를 바라보다가 시오는 드물게 화를 내면 서 쾅, 하고 책장을 후려쳤다. 저도 모르게 놀라서 마리는 주춤하고 물러 났고, 시오는 고개를 숙인 체 한번 크게 숨을 들이쉬더니 입을 열었다. "...누구입니까. 어떤 종단이지요?" 미미하게 떨리고 있는 그의 목소리는, 어느새 '대사제'로서의 그로 돌아가 있었다. 마리가 가장 싫어하는 시오의 모습. 하지만 그녀는 유능한 수석 사제답게 재빨리 입을 열었다. "동부의 에티모르 지역이 처음으로 주창했으며, 직접적 피해가 많았던 신전 에서는 대부분 동의한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신들의 사제 들도 그렇고...국왕들로부터...도 약간의 제지가 들어와 있습니다." "갑자기, 왜? 어째서 갑자기?" 시오는 근본적인 의문을 던졌고, 마리는 눈을 질끈 감으면서 올 것이 왔다 고 생각하고는 애써서 침착을 가장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것이...에리의 모습을 본적이 있었던 사제가...최근 에리를 다시 본 모양입니다. 그가 동부 에티모르 지역의 고위 사제였고...그래서..." "그딴 일로 종단 자체에 대항하게 내버려뒀던 겁니까 마리 에슈마인!" "죄, 죄송합니다!" 마리는 고개를 숙이면서 재빨리 말했고 시오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그라고 해도, 신전이 분열하고 있는 상황에서 마냥 좋게 될 거라고 생각할 리가 없었다. 더군다나, 시오는 신의 아들. 곧 절대적인 구심점이다. 그 런 그에게 공공연히 그런 말을 하고 나섰다는 것은, 뭔가 그 외에도 다른 것이 있다는 말. 확증이 없고서 움직일 리 없는 국왕들도 그렇고... 시오는 생각해 보다가 피식, 하고 헛웃음을 흘렸다. 모든 상황이 그제서 야 들어맞는다. 그렇게 치면, 그렇게 치면 맞다. "희생양이 필요하군요." "...네?" "6년입니다. 마족과 싸우면서 대량으로 피폐된 상태에서 국가 재정은 바 닥. 그것도 모자라 장마기까지 겹쳤으니, 민심이 소란스럽게 일어나겠지 요. 특히 에티모르 지역에서는, 신관들이 꽤나 많은 물품들은 구비하고 있 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그런 거로군요." 시오의 웃음이 점점 더 날카로와져 같다. 바보 같은, 바보 같은 일. "희생양입니다. 민심을 진정시켜줄, 빠른 복구가 일어나는 동안, 필요한 희생양. 아무리 신성령에서 짜여진 체계적인 망이 짜여져 구성되고 있으 며 신성령이 최종적인 결론을 도출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각 나라 안의 일 의 책임은 본질적으로 국왕의 것. 그것을 회피하려는 것이지요." "...그...그게...무슨?" 시오는, 웃음을 멈추었다. 약간은 차가운 그의 눈동자에 날카로움이 서리 고 그는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약간 갈라져 있어서 조금 탁하기까 지 했다. "희생양을 선택한 겁니다. 모두의 눈을 돌리기 위해 필요한, 전세계를 연 결하는 모든 이들에게 충격을 던져줘서 잠시나마 곤란을 잊기 위하게 만 들, 희생양이. 그리고 그건..." 시오는 우울하게 중얼거렸다. "나인가요." "말도 안돼는! 그 무슨...!" 마리는 창백하게 질려서는 소리쳤다. 하지만 시오는 눈도 깜짝하지 않은 체 그런 마리가 외치는 곳을 바라보고 있다가 피곤한지 고개를 설레설레 저 었다. "관두지요. 아직 단순한 추측이니까요 마리." 살짝, 다시 미소 지으면서 시오는 마리를 안심시켜 주었다. 마리는 그래 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한번더 외쳤다. "하지만! 하지만 시오 님!" 시오는 미소를 지으며, 그런 마리의 어깨에 발돋움해서 살짝 치고는 아방 한 미소를 지으면서 그런 그녀의 불타오르던 걱정을 단숨에 재로 만들어 버 렸다. "됐어요 됐어. 그만 끝내고, 잠시 신에게 답을 구해보도록 하지요 뭐." 시오가 너무나 당연한 듯이 그렇게 말하고 성소로 걸어가 버리자, 마리도 그만 그게 별 것 아닌 일로 생각될 뻔했다. 하지만, 희생양이라니! 장난 이 아니다 이것은. 마이아 교단의 강력한 힘은, 중앙에 집결되 있는 절대 적인 신앙심에 의거한 것이었다. 그런 대사제인 시오를 희생양으로 선택 해 친다는 것은, 하필 국가들이 약해진 상태에서 계속해서 강력한 마이아 교단의 권력을 약화시키는 것과 함께, 백성들의 이목도 돌릴 수 있는 수단 과 방편으로 생각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마리는 힘이 쭉 빠질 지경이었다. 수정으로 보내온 사제들의 전달문이 이 정도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건가? 그럼 그들은 교단이 무너질 위기보다 는 자신들의 생존이 더 급급할 지경이란 말인가? 도대체가... 마리는 그런 그들을 원망하는 건지, 아니면 원망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시오 를 생각했다. 그리고 장난기 많지만, 사실 선하기 짝이 없는 에리나쟈드 를 떠올렸다. ...진실은, 진실 따위는 필요 없다 이 세상엔. 그들은 그 냥 드러난 사실을 원했고, 그리고 사실 외에는 보려 하지 않았다. 마리는 쓰디쓰게 웃으면서 중얼거렸다. "...신이여...그대는 참으로 훌륭한 존재들을 창조하셨습니다." 시오는 허리에 감긴 천을 풀고, 천천히 텅 비어있는, 빛만이 살짝 허공에 서 떨어져 내리는 아래에 무릎을 꿇었다. 그는 넓게 팔을 벌리고 허공을 향해 입을 열었다. "나의 아버지시여. 나에게 그대의 무한한 권능을 부여하셨던 분. 빛이면 서 그림자를 지배하시는, 모든 것을 포용하시는 위대한 분이시여. 신들의 왕이자, 빛의 수호자이며. 진리와 진실, 정의를 지배하는 왕. 왕중왕이 며 나와 함께 하는 한줄기 빛이시여. 말해주십시오. 제가 어찌 해야 당신 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까? 저에게 죽음을 내리시면 달게 받겠으나, 신이 여. 저에게 죄를 내리셨다면 그 죄의 굴레에 당당히 들어가겠으나, 그대 여. 저에게 정말 그대가 그것을 부여하셨습니까?" 시오는 쉴새 없이 마이아의 또다른 이름을 부르며 그에게 답을 구했다. 그 가 열번 쯤 그에게 답을 구했을 때, 신의 목소리가 천천히 그에게로 흘러 들어왔다. 정말로 그것이 목소리인지, 아니면 단순한 흔들림인지, 그것은 알 수 없었지만 시오에게는 또렷하게 각인되어 가고 있었다. - 나의 첫 번째 삼각지여. "나의 왕중왕. 내 영혼을 이끄는 빛이시여. 나의 의문에 답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 묻나니, 저는 어찌해야 하는지요?" - 그대가 무엇을 원해야 하는가? 시오는 막힘 없이 대답했다. "그대의 뜻을 따르는 것을 행해야 합니다." 부드럽게 물결치는 파동이 시오를 감싸안았다. 그것은 따뜻하며, 모든 것 들중 가장 눈부시도 온화했다. - 나의 첫 번째 삼각지, 그대가 했던 말대로, 그대는 인간의 삶을 살라. "...네...?" 시오는 저도 모르게 되물었다가 웃음 같은 파장이 느껴지자 얼굴을 확 붉혔 다. 신과 대화하는데 엄청난 집중력이 필요한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그 에게 있어 이 다정한 목소리는 친구처럼 충고했다. - 그대가 추구하는 바. 그대가 행하는 바. 그것이 진리. 나는 지켜보는 존재. 그대는 행하는 존재. 그대가 원하는 것은 빛이든 그림자이든, 그것 은 나와 함께 하는 것... 시오는 중얼거렸다. "...피를 부르는 일이라도...그대는 저와 함께 해 주시렵니까...?" - 그대는 나의 첫 번째 삼각지리니. 시오는 굴러 떨어지는 눈물을 무시하면서, 허공에 퍼져있는 따뜻하고 안온 한 빛에 안겨 있었다. 진실을 알려고 하는 이는 없고, 진실을 밝히려 하 는 이의 몸부림 따위는 헛된 것이지만. 그래도 진실은 이 자리에 당당히 서 있다. 시오는 신이 아닌 그에게 중얼거렸다. "그대에게 창조된 것을...감사합니다..." ============================================================= ========= 앗싸~오늘 안에 다 마무리 지어 버릴까...-_-; 시간 많으이...히죽히죽... 한참 스피드 올랐을때 사바사바....+_+ 피 튀기는 장면은 언제 해도 좋은 것을....훗훗훗.... 오늘 안에 추억, 기억 완결을 위하여!(위하여~!) 마왕 이야기-158 추억, 기억-26 어두웠다. 밤하늘은...빛조차 새어 들어오지 않는, 검은 흑야가 사방을 지배하고 있었 다. 시오는 천천히 에리나쟈드를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에리나쟈드." "...왜 그 이름으로 나를 부르지?" 에리나쟈드는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기둥에 기대있던 몸을 바로 세웠다. 어 둡게 드리워진 그림자들이, 신전의 복도를 따라 길게 늘어선 아치형 기둥들 을 삼키고 있었다. 검은 그림자와 그 그림자를 두고서, 시오와 에리나쟈드 는 마주서 있었다. "단 한번, 에리나쟈드라는 그대의 이름에 부탁하겠습니다." 시오의 눈에, 가득히 담겨 있는 것은 불안과 동시에 결심으로 가득 차 있 는 어떠한 것에 대한 갈망. 에리나쟈드는 그의 눈을 바라보면서 잠시 몸 을 떨었다. 차가운 한기와, 비릿한 피내음이 느껴지는 달이 없는 흑야. "...저를, 살려주십시오." 언뜻 듣기에는 목숨을 구걸하는 말로 들렸지만 시오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 은 그런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에리나쟈드는 의아함이 아닌 측은함이 담겨져 있는 눈으로 그런 그를 바라보았고, 천천히 중얼거렸 다. "시오 마이안. 그대는 내가 그것을 거부하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겠군. 아무리 피로 물들고 타락한 나라 해도, 결국에 그대에 빛에 이끌리게 되는 것을..." 에리나쟈드는 천천히 그런 시오의 뺨에 손을 가져다 데려다, 손을 치웠다. "난 더럽혀져 있고, 추한 존재. 너에게 감히 손대선 안될 존재겠지. 에리 가 아닌 에리나쟈드인 나는, 피투성이 손을 가지고 있으니까..." 흐느낄 듯한 목소리. 처음 만나던 때처럼, 사랑을 고백하던 때처럼. 울면 서 당장이라도 주저앉을 것 같지만 이겨내고 있는 힘겨운 목소리...시오는 지금 당장이라도 됐다고 말하려고 하다가, 입술을 꾹 깨물고 다시 말했다. "저 시오 마이안. 에리나쟈드 드 이크립스에게 바랍니다. 달 없는 이 밤. 신전으로 다가오고 있는 자들을..." 시오는 순간적으로 목이 메이는 지 입을 열지 못하고 있다가 천천히 다시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따. "....그들을...말살시켜 주십시오." "누구도...남기지 않고...?" "남기지 않고." "모두...?" 시오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울지 않기 위해서, 그는 최 선을 다 했고 에리나쟈드는 지쳐버린 얼굴로 시오를 물끄러미 응시하다가 천천히 메마른 듯이 입술을 한번 핥고는 중얼거렸다. "네가 원하는 것, 들어주겠다." 에리나쟈드는 그래도 천천히 되물었다. 그것은, 마지막 의문이었다. "...그것이, 너의 타락을 부르는 것이라도, 너는 행할 것인가...?" 시오는 어두컴컴한 그림자가 자신을 삼키는 듯한 환영을 꿈꾸었다. 모든 것이 어둠이지만, 그보다 더한 어둠이 지금 자신을 삼켜버리는... 에리나쟈드는 스스로 빛나고 있는 검은 머리카락을 바람결에 흩날리게 내버 려두고 멍한 표정으로 그런 시오를 바라보고 있었고, 시오는 입을 열었다. "...네." 칠흑 같은 어둠. 그것이 그녀를 감싸주고 있었다. 말발굽 소리, 어둠 속에서 숨죽이며 다가오는 존재들. 에리나쟈드는 자신 의 긴 망토와 갑옷을 내려다보았다. 어둠에서 소환한, 그녀만을 위한 무 구. 이번만, 이번 한번만. 이번 한번만 끝나면. 그럼 모든 것이 끝나버린다. 에리나쟈드는 끊임없 이 자신에게 그렇게 되뇌면서 깊은 곳에 자리잡은 마력을 끌어 올렸다. 애써서 그녀는 부정했다. 이것은, 이것은 그가 원하는 일. 피로 물들어도 그녀를 원망하는 자가 아 무리 많아도. 그만은 그녀를 이해해 주리라는 얄팍한 기대와 함께. 하지 만, 동시에 그가 피로 물들어 버린, 타락할 대로 타락한 자신을 버릴 것이 라는...나약한 불안. "오라! 나약한 인간들이여!" 그러나 나약한 것은 누구. 그것은 자신. 마음 깊은 곳에서, 부정당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득 히 담고 있는, 그런 자신. 말들이 요동친다. 울려 퍼지는 공포와 번쩍하고 움직이는 마법의 코팅이 되어있는 무구들. 에리나쟈드는 소리도 없이 자신을 비웃으며 허공으로 몸 을 일으켰다. 인간들, 인간들. 저것들은 인간들일 뿐. 더러워지게 만드 는, 손을 적시는 피를 가지고 있는 추한 것들. "오라! 내가 에리나쟈드! 그대들이 말하는 첨예한 혼돈일지니!" 그러나, 자각한 의지. 흘러가는 시간이라는 도도한 흐름에 비껴난, 도대체 왜 존재하는 지 모를 이 의지. 그 의지는 소리치면서 아우성을 부린다. 죽이고 싶지 않다고. '죽음'을 부정하려고 하고 있었다. 이것이 인간들이 말하는 의지. "오라! 너희들에게 죽음을 내릴 자의 곁으로!!" ...이것은, 가슴 속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절망. 그가 사라진다면, 존재할 수 없는 에리나쟈드라는 쓸모없는 존재에 대한 불 안. 부탁이니...단 한번의 부탁이니.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 메아리쳐지고, 에리나쟈드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시오는 바라보았다. 소리가 들려오는, 비릿한 것들이 느껴지는 그곳을. 실제로 들릴 리도 없고 느껴질리도 없는 것들이지만 시오는 느끼고 있었 다. 마리는 불안한 눈으로 그런 시오를 바라보았지만, 시오는 그런 마리 를 향해 말했다. "주저 앉지 않을 겁니다." 그렇지만 그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힘없이, 두려움으로, 한없이...더럽 혀 버린, 그녀를 더럽혀 버린 자신을 혹여라도 용서하지 않을까 하는 이기 적이고 나약한 자신의 감정에. "절대로...그러지 않을 겁니다." 시오는 입술을 다시 꾹 깨물었다. 피가 날지도 모르지만, 그럴 지언정 절 대로 눈물은 흘리지 않을 거라고 그는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언제까지나 연약한 모습만으로 그녀의 앞에 서 있을 수는 없으니까. 그래도, 그는 그녀를 지켜줬으면 했기에. 그는 입술을 꾹 깨물면서 다시 스스로에게 맹세라도 하듯이 중얼거렸다. "나는, 반드시 살아날 것입니다." "시오 님..." 마리는 자신의 뺨을 적시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하지도 않고 그저 바 라보고 있었다. 해가 뜨기 전. 시오도 마리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해가 뜨기 전. 그리고 신전 안의 모든 이들은 숨을 죽이며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 분 명했다. 해가 뜨기 전... 그 전에 모든 것이 끝나길. ============================================================= ========= 쿨럭, 오늘 도대체 몇연참을 하고 있는거지? -_-;;; 어쨌든 오늘 안에 추억, 기억편을 다 올리죠.... 이제 대략 남은 것은...지금 친것까지 치면...음.... 2편정도만 더 쓰면 되네요...=_= 우웃...눈 붓는다...쿨럭쿨럭...... 마왕 이야기-159 2편, 마왕의 취미생활 중 12편과 함께 보시면 것도 색다른 재미입니다. -_-; ============================================================= ========= 추억, 기억-27 피로 물들어 버린 계곡과 들판이 보인다. 피에 굶주려 허공을 떠돌고 있는 까마귀 떼들, 새카만 그림자, 새카만 인 영, 핏빛으로 물든 둔덕 가득히 쌓여있는 시체들. 그 둔덕의 끝자락에, 새카만 검은 옷과 검은 갑옷을 걸친, 무척이나 고요 한 표정의 여인이 앉아 있었다. 새카만 검은 머리카락은 사방으로 흐트러 져 있었고, 냉혹하게 느껴지는 그 무표정은 다가오는 모든 것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녀가 느끼고 있는 것은, 그 죽음보다 더한 절망... "이것이 네가 원한 결과였던 것인가...이 덧없는 풍경이 네가 원한 것이었 나?" 그녀의 목소리는 흐느끼는 듯 했지만, 그녀의 얼굴엔 일말의 감정도 깃들 어 있지 않았다. 창백하게 굳어버린 밀랍인형처럼...그냥 그렇게 서 있었 다. "예. 저는 살고 싶습니다." 금발머리에, 진한 녹색의, 그래서 거의 금색으로까지 보이는 눈동자의 소년 은 천천히 걸어서 그녀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멍한 눈으로 다른 곳 을 응시하고 있는 듯 했는데, 순간적으로 바닥의 무엇인가에 걸려 휘청했 다. 여인은 순식간에 무표정을 지우며 벌떡 일어나 그를 부축했다. 그녀의 몸 에서 흘러내리는 피는 소년의 하얀 피부를 적셨고, 여인의 얼굴은 새파랗 게 질렸다. 압박적으로 존재하고 있던 불안감. 가중되는 그 불안. 더럽히고 싶지 않다는, 그대로 순결하기만을 바라고 있던 그것을 배반하는 붉은 피. 그를... "...시오, 피가...어떻게 네게 피가..." 그녀는 변명이라도 하듯이, 울음을 터트리지는 않았지만 울 듯이 말했다. 피로 물든 계곡 아래에, 피로 물든 들판의 아래에, 그녀는 그의 순결함에 처음으로 손을 댔다. "...이제야 겨우 손을 내미시는 겁니까, 연약하신 마신왕이시여." 시오는 미소를 지었고, 여인은 금방이라도 울 듯한 얼굴로 그에게 묻은 핏 자국에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차피 그는 그런 것은 상관없었 다. 오히려 상처받았을 그녀가, 그에겐 더 중요했으니까. 순결하니 깨끗하니 하는 것들은, 어차피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상태따위나 가르키는 것. 공허한 것은 청결하고 청결한 것은 성스럽고, 성스런 것은 신이며, 그리해서 신은 공허한 것. 그는 인간. 인간은 공허할 수 없었다. "말해주십시오. 저를 사랑한다고." 시오는 그렇게 자신을 당혹스럽게 했던 그 말을 생각하며 그녀의 뺨을 천천 히 감싸쥐면서, 따스한 미소를 지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울지 않는 일. 조금이라도 그녀의 죄를 덜어주는 일. "...저는 당신을 위해 살고 싶습니다. 말해주십시오. 저를 사랑합니까 에 리나쟈드...?" 그녀는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어린애 같은, 목놓아서 엉엉대며 우는 그녀 를 작은 몸으로 안아주며, 소년은 입을 열었다. 처음부터 이렇게 했더라 면. 그렇게 했더라면 그녀를 이렇게 힘들게 하진 않았을 텐데. 성배도 예배자 도, 그리고 신을 모실 곳이 없어도 신은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을...때늦은 후회를 하면서 시오는 쓰디쓴 웃음을 지었다. "저 시오 마이안. 위대한 빛의 신 마이아의 대사제, 그러나 지금. 그대에 게 종속하는 바입니다. 나의 에리나쟈드." 목놓아서 울고 있는 에리나쟈드의 울음소리. 그녀의 목소리는 처연하고, 그리고 구원받았다는 기쁨으로 차 있었다. 어느 것이 진짜 그녀의 감정인지는 알 수 없다. 어차피, 세상에 빛이 있으 면 그림자도 있는 법이니... 시간이란 노도와 같은 것. 떠나 버린 자를 기억하는 이는 없고, 남아 있는 자가 기억하는 것은 없다. 추억 속에 기억이 묻혀 버리면, 남는 것은 회한과 한숨. 시오는 연약한 미소를 지으며 아이를 안아 들었다. "...이름은...그렇게 할까요?" "...아아, 응." 에리나쟈드는 미소 지었고, 시오는 옹알거리고 있는 아이를 안아 들면서 속 으론 자신의 잔혹함과 잔인함을 슬피 탄식하면서 겉으로는 미소 지었다. "시르스...선한 존재...그렇게 크기를..." 시르스라는 이름과 함께, 시오는 아이의 이마에 성흔을 긋고 신에게 깃들었 다는 세례를 내렸다. 에리나쟈드는 시오의 미소를 바라보며 그냥 한없이 편안한 미소를 지었을 뿐... 행복이란 것을 바라진 않았지만. 이런 것도 행복이라면 그렇게 칠 수 있을 것을. 한적한 어느 시골 마을의, 작은 집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 그 아이의 이름은 시르스 마이안. 하지만 그의 탄생에 관해서 신경쓸 사람 은 누구도 없었다. 그래, '시르스 마이안'이라는 아이 자체의 탄생에 관해서는 신경 쓸 이가 없으나, 그가 혼돈이며 동시에 인간일 수도 있다는 것에 관해선 그 누구라 도 넘기지 못할 일이겠지만. ============================================================= ========= 랄라라~망가져라~망가져~+_+; 망가져라~!!!(우오오오옷! 파워업~! 망가져라!) 훗...드디어 나왔군요. 이제 한 3편이면 끝...? 에필로그까지 포함해서....=_=; 우잇우잇...언제 올리나.... 어쨌든 오늘 안에는 끝내야지요.....쿨럭..... 마왕 이야기-160 앗싸~-_-; 40회만 더하면 200회라네~ 그런데 그전에 소설이 끝나버릴지도.........;;;; ============================================================= ========= 추억, 기억-28 "난 커서 아빠랑 결혼할 거야!" "아빠는 엄마 거야!" 티격태격 싸우고 있는 모녀. 똑같이 생긴 얼굴, 똑같은 눈동자. 둘다 비 슷한 외모와 거의 비슷한 흰색의 원피스를 입고 있으니 상당히 스산하다. 시오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둘을 말렸다. "그만하고 식사들 안 해요? 자자, 시르스도 어서 앉아야지." "아빠아! 아빠 내가 크면 결혼해 줄거야?" "...에...그건..." 애매한 얼굴로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시오를 바라보다, 에리나쟈드는 못 참 겠는지 바락 소리를 질렀다. "아무리 네가 내 자식이라도 시오를 넘보는 건 절대 용서 못해!" "넘보면 어쩔 거야! 그때 되면 엄마도 늙을 건데 뭐어!" ...당돌하기 짝이 없게 혀까지 낼름 해 보이는 것이, 뉘집 자식인지 정말 잘 컸다는 생각 밖에는 안 드는 상황이었다. 에리나쟈드와 시르스가 시끄 럽게 쿵쾅쿵쾅 집안을 뛰어 다니는 동안, 시오는 눈물을 머금고 식어버린 스프와 빵을 탁자 위에 올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혼자 먹을 거에요..." "에? 내거는!" 동시에 그렇게 외치는 모녀를 내버려두고, 잔뜩 삐져서 빵을 우물우물 씹어 먹고 있는 시오였다. 결국 두 사람(?)은 갖은 애교를 떨며 시오의 마음을 풀고 나서야 겨우 식어버린 스프와 굳어가기 시작한 빵을 먹을 수밖에 없었 다. ...바보세트에 이제 또 하나의 바보가 추가되었으니 이것을 기뻐하며 경탄 해야 할 것인가, 안 그러면 슬퍼하면서 이 세상이 온통 바보로 차게 될 것 에 두려워해야 할 것인가. 장작을 벽난로에 넣으면서 시오는 바깥을 흘낏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귀 를 기울인 것뿐이지만...그는 살짝 미소 지었다. "에리, 시르스. 눈이 오는 것 같아요." "와아! 눈이다!" 도도도 밖으로 걸친 것 없이 뛰어나가는 시르스를 보며 혀를 차면서도 말리 지는 않는 시오와, 그런 시르스를 바라보며 언제 싸웠냐는 듯이 살풋이 미 소 짓는 에리나쟈드였다. "...정말...이렇게 가만히 있으면 지금도 꿈을 꾸는 것 같아요. 사실 여기 는 대본당의 정원이고, 벤치에 머리를 기대고 자고 있는 것이 아닐까...하 고." "꿈이 아니야." "그렇죠? 에리도 나가서 시르스랑 놀고 있어요. 전 좀 껴입고 나가야 될 것 같네요..." 집안 최고의 약골의 투덜거림을 내뱉고는, 시오는 옷을 챙겨 입으로 방안으 로 들어섰고 에리나쟈드는 꾹 참고 있다가 그제서야 밖으로 달려나갔 다. ...7살 어린애하고 정신연령이 똑같은 저 행동에 일침을 가해줘야 할 지, 아니면 순수하다고 그냥 넘어가 줘야할지 참으로 고민되는 상황이지 만, 이내 눈밭에서 뒹굴고 있는-고상하게 표현하자면 팔을 벌리고 춤추듯 움직이고 있는 모녀의 모습은 눈의 정령처럼 아름다웠다. "...큭....커억..." 시오는 벽을 부여잡고 비명이 세어나가지 않도록 입을 꽉 다물었다. 행여 라도, 행여 라도 그녀의 귀에 작은 소리라도 들어가면 모든 게 끝이니까. 방울져서 떨어져 내리는 붉은 핏방울이 맺혔다 떨어져 내리더니, 이내 속절 없이 속을 뒤집고 올라오는 붉은 핏물이 울컥, 하고 그의 목을 타고 올라 와 바닥으로 쏟아졌다. "욱...크윽..." 피. 피 내음이 비릿하게 속을 뒤집어 버릴 것만 같았다. 약속된 인과. 신이 부여한, 죄악에 따라 돌아오는 인과...수도 없는 인간 의 죽음을 원했던 자에게 돌아오는 인과. "하지만...하지만..." 시오는 속절없는 자신, 이미 신에게서 벗어나고 있는, 너무나도 이기적이 되어버리고 있는 자신에게 흐느꼈다. "...하지만...아주 조금만 더..." 거친 기침소리가 막고 있는 입에서 다시 터져 나오고 있었다. 시오는 자신 의 입을 틀어막으면서, 애써서 내리 눌렀다. 사제로서 있는 자, 그들은 인 과의 법칙에서 수도 없는 행운과 보호를 부여받은 대가로 인과율을 어기면 그에 합당한 대가를 받는 법... 신의 이름을 거론하고, 신의 역사를 하는 그들에게 모자라는 것이 무엇이 란 말인가? 시오는 뚝뚝 떨어져 내리는 핏방울의 감촉이 손목을 타고 내리는 것을 느끼 면서 이를 악 물었다. 제발,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적어도 이 겨울이 끝날 때까지 만이라도... 속절없는 그의 기원도, 매달림도, 애원도...운명이란 냉정한 폭풍에게 들 릴 리가 없었다. 정해진 것을 따라서 조금씩 조여들고 있는 운명이라는 사슬... 시오는 힘겹게 피로 물든 옷을 벗고 피투성이가 된 바닥을 옷자락으로 닦 기 시작했다. 어차피, 이 옷도 버리게 될테니까... 불태워 버릴테니까...? 시오는 피식, 하고 헛웃음을 짓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바보같은 짓이라 는 것은 알고 있지만, 본능이 이렇게 시키고 있었다. 그녀가 설사 알고 있 다고 하더라도 감추고 싶다는, 치졸하기 짝이 없는 본능. 그리고 시오는, 조용히 불타고 있는 옷자락을 발로 비벼 꺼서 버리곤, 물 로 자신의 입을 헹구었다. 그리고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검은색의 옷으 로 갈아입고 밖으로 나갔다. 차가운 공기가 밀려들어오고, 밖의 공기와 안의 공기가 잠시 교차한다. 두 근대는 가슴으로 그는 살그머니 서서 뭔가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뺨으로 와닿는 눈의 감촉...흐릿하지만 살짝 닫았다 금새 사라지는 눈이 가 지고 있는 특유의 부드러운 소멸감. 부드럽고, 무너지는 듯한, 차갑지만 달콤한 그 눈의 감촉을 느끼면서 그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의 귓가에 자신이 사랑하는, 그리고 사랑하고 있는 존재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시오! 빨리 안 오면 눈사람 우리끼리 만든다!" "아빠! 이거 아빠 닮았죠!?" 당장이라도 눈이 붉어질 것만 같다. 코끝이 아릿해 지지만 시오는 끝끝내 그들이 손을 흔들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쪽으로 눈을 돌리곤 환하게, 지을 수 있는한 최고의 미소 지었다. "네에, 지금 갈게요." 그날. 눈은, 그렇게 계속해서 끝도 없이...그렇게 끝도 없이 내리고 또 내 렸다. ============================================================= ========= 음...이것을 현대판으로 바꾸면... 실직가장(?)은 암에 걸렸지만 가족들에겐 말하지 않고 가족들은 아무것도 모른체 행복한 한때와 퇴직금을 가지고 무엇을 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덜컥 가장이 죽어서 망하기 직전의 순간적인 행복....큭큭큭.... 순간의 행복은 단지 순간의 행복일뿐.... 결국엔 그것 뿐이야....+_+ 망가져! 망가져라아아앗!! 망가지거라 시오! 그리고 모두다 디 엔드다앗!! 마왕 이야기-161 추억, 기억-29 스산하게 몰아치는 바람. 에리나쟈드는 힘없이 손을 뻗었다. 자신의 이마에 박혀있던 금색의 눈동자 는, 그녀의 그런 행동에 힘없이, 정말로 아무런 반항도 없이 뽑혀져 나왔 다. 붉은 피가 그녀를 적시고 있지만 아무런 상관도 없는 듯, 그녀는 그 뽑혀져 나온 눈을 시르스에게로 내밀었다. "아...으...아악!" "...기억해." 에리나쟈드는 웃음기 없는 얼굴로, 시르스의 이마를 파고든 자신의 손톱이 그 아이의 이마 속으로 눈을 집어넣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는지 그렇 게 중얼거렸다. "기억해. 너는 영원한 절망 속에 살아가야 돼." 비명을 지르고 있는 시르스를 응시하면서, 에리나쟈드는 텅 빈듯한 눈동자 로 중얼거렸다. "너는, 누구도 사랑하지 못해야 해. 계속되는 이 겨울, 차가운 눈만을 바 라보고 살아야 해. 넌, 누구의 사랑도 받지마. 넌, 누구도 사랑하지 마. 외로움과 괴로움, 혹독한 절망 속에서 넌 그렇게 살아야 해." 뚝, 하고 피와 섞인 눈물이 그녀의 눈가에서 흘러 내렸다. 서서히 주변의 모든 것들이 사라져 가고 있었다. 그녀가 빠르게 모든 것을 휘감고 돌려버 리자, 남는 것은 그녀와 시르스, 그녀의 아이 뿐. "왜? 왜냐고?" 혼자 말하고 혼자 답한다. 에리나쟈드는 멍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건, 네가 나니까. 내가 너니까. 넌, 내 인형이니까. 그, 날 죽지 말 라고 했지. 하지만...말해봐. 존재가치 없는 나는 살아야 하는건지. 왜 난 존재해야 하는건지. 하지만, 하지만 내기는 계속 되어야 겠지." 끝도 없이 중얼거리면서도 에리나쟈드의 몸은 점차 얼어붙고 있었다. 냉정 한 찬바람이 그녀를 휘감고 천천히 하나하나, 신경마저 봉인하고 있었다. 스스로 그 몸에 거는 봉인은, 죽음과도 같은 것. 존재가치, 기억과 추억, 이루고 있던 요소들을 파괴하면 그것은 죽음 이상 가는 죽음. "그러니까, 네가 살아. 너는, 나니까. 네가 사는 거야. 사랑따위 모르 고, 믿음도 없이, 그렇게 영원히, 홀로 존재하며 아득히 먼 곳에 고고히 존 재해. 제발." 에리나쟈드는 자신에게 되뇌듯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내리깐 그녀 의 눈에는 일말의 생기도 깃들어 있지 않고 메말라 있었다. 에리나쟈드는 다시 한번 중얼거렸다. "제발, 넌...내가 되지마..." 그녀는 달아났다. 죽음이라는 것으로. 멀리, 아주 멀리...절대로 따라와 죽일 수 없는 곳으로. 머리 속을 메우고 있는 것은 혼란뿐이었다. 웅웅대면서, 피로 젖어서 멍해져 버린 머리 속으로 들어오는 것은 아무 것 도 없었다. 정신이 들지 않은 체, 그녀가 정신을 차린 것은 육체에 가해지 는 '고통'때문이었다. 인간의 몸에는 온점과 냉점 압점과 통점, 이렇게 감각을 담당하는 점이 있 고, 그 점들 중 가장 많이 몸 안에 분포되 있는 것은 역시 고통을 담당하 는 통점. 인간이 육체를 통해 삶을 자각할 수 있는 가장 쉬운 것은 고통 을 가하는 것이란 소리가 될 수도 있는 이야기. 끝없이 웅웅대며 머리 속으로 들어오는 이야기들과 함께, 다시한번 무엇인 가가 가해졌다. "꺼져버려! 저거 괴물 아니야!?" "뭐...뭐야 저거! 이마에 저건!" "죽여버려! 아니 경비병한테, 마법사한테 연락하라고!" 시끄러워. 시르스는 열리지 않는 입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려고 했다. 하지만 다시 한번 다가온 던져진 투박한 돌덩이는, 어린 그녀의 몸에 다시 한번 고통을 주었다. 여자는 싫어, 그 여자는. 그 빌어먹을 여자...모든 것을 배반해 버린 그 여잔 싫어. 시르스는 흐느끼듯이 그렇게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도피해 버린...나만 남겨두고, 그렇게 제멋대로인 여자따위 싫어...증오 해. 죽일 수 있다면, 죽여버릴거야. "저건 괴물이잖아!" "악마라고!" 시끄러워. 시르스는 웅웅대는 소음들을 향해서 고함을 질렀다. "시끄러워! 너따윈 죽어버려! 에리나쟈드!!" 그리고 눈의 폭풍이 주변을 휘어 감았다. 그녀의 격렬한 감정에 반응해서, 더없이 강력한 눈길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 다.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이, 모든 것을 얼려 버리고 부숴 버리고 다시 얼려서 산산조각내면서 그녀의 분노는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우울하게 피 투성이가 되 버린 시체들 틈에서 시르스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더 이상, 그녀는 인간도 여자도 아니었다. 그냥...그냥...아무 것도. 아무 것도 아니었다. 허망하니, 모두 피로 물들어 눈밭 위에 핏자국을 남기고 있는 그 곳에서. 시르스는 멍청한 표정을 지은 체 그렇게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도, 용서해 주지 않는다. 누구도, 나의 죄를 사하지 않는다. 우울하게 찌푸린 하늘은 그런 시르스를 보기조차 싫다는 듯이 더 어두워 졌다. 눈물 따위가 흐를 리 없는, 냉혹한 지금의 상황. 시르스의 위로 순간 차가운 것이 살짝 닫았다가 조용히 사라졌다. 차갑지 만, 동시에 부드러운...기묘한 소멸감을 가지고 있는 눈송이. 눈이 천천 히 다시 내리고 있었다. 하늘에서 부터...계속해서. 피로 물든 백색의 대 지를 모두 물들여 버리듯이. 핏자국 위에도 천천히, 눈은 내리고 있었다. 죄를 사해 주는 것은 아니지만...부드럽게 덮어주는 온기를 지니고. "...아...아아..." 그때서야 겨우, 눈물이 아주 조금이지만...흘러내릴 수 있었다. ============================================================= ========= 그 죄는, 스스로 값으리... 죄 지은자. 스스로. 과연 진짜로 히드레안이 죄 지은 자인지 모르겠지만.....피식...-_- 마왕 이야기-162 커억...-_-; 오늘 그러고보니 전설의 10연참을.... 쿨럭쿨럭....;; ============================================================= ========= 에필로그epilogue 히드레안은 눈을 떴다. 흐트러진 자신의 모습이, 거울들 속에서 비춰지고 있었다. 검은 눈동자와 검은 머리카락, 붉은 입술과 희디흰 피부. 그녀 와 같은, 그녀의 모습. 같은 육체 안에 깃들어 있는... 히드레안은 중얼거렸다. "나는 에리나쟈드였고...나는 그녀의 연인이었으며...나는...그녀의 딸이었 고...이제 나는, 그녀를 대신하는 자..." 히드레안은 다시 눈을 감았다. "하지만 나는, 허무하게 소멸하진 않겠다 에리나쟈드." 길게 스치는 사락 대는 소리. 눈은 창 밖에서 계속해서 내리고 있었다. 아무런 소음도 없고, 아무런 부름도 없는, 기괴하도록 조용한 방안. 히드 레안은 그런 침묵을 즐기기라도 하듯이 눈을 감고 미동도 없이 그렇게 누 워 있었다. 방안에 길게 져있는 눈 그림자는 빛을 반사해서 푸르스름하게 보였다. 방안으로 슬그머니 침범해 와서 침대가에까지 드리워져 있는 눈의 그늘은, 그늘이나마 히드레안을 감싸고 그를 덮어주고 있었다. 언제나 밤인 그곳엔, 차가운 셀레나가 푸른빛을 내면서 떠 있고, 언제나 눈 이 고요히, 때로는 격렬하게 내리고 있다. 변하지 않는 영원한 곳. 이 곳에서 영원히 얼어붙은 마음을 가진체 살아가는 존재. 그것이...히드레안이라는 이름을 가진 자가 살아가는 삶. 에리나쟈드, 시르스, 혼돈, 시간, 그 모든 것이 그의 이름. 하지만 그가 가장 사랑하는 것은, 현재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이름. "나는 너를 기억한다. 나는 현재를 살아가고 또 살아갈 것이므로." 히드레안은 눈을 감은 체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너는 나를 추억하라. 과거의 잔존물을 끌어안고 슬픔에 젖어 영원 히." ============================================================= ======= 허어~하는 사이에 8화, 추억, 기억편도 끝났습니다. 와하하하하핫! 이제 1챕터 남았군요! +_+;;; 피는 물보다 진하다 편만 끝내면 이제...아아....물론 챕터 밖 챕터가 하나 들 어가지만... 하지만 그래도 1나가 남았다는 것은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습니다....^^; 결국 오늘 끝내고야 만 펜릴에게 진심이 담긴 박수를....여러분...저를 국회 로!(우우우우우~!) ...; 네, 제 주제에 무슨 국회입니까. 청문회나 안당하면 다행이지. 하지만 나 도 할말은 있단 말이야! 하아....; 이번 편을 쓰면서 역시 바보세트는 힘들다 니까, 하는 생각과 함께 역시 저한테 눈물이 나올 정도로 슬픈 이야기는 맞 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여러분, 다시 생각해 보아도 저는....ㅠ_ㅠ 엽 기가 어울리는군요. 슬픈 이야기 따위를 쓰다니....내가 바보지....; 보다 웃지 나 마시길. ㅜ.ㅜ;; 마왕 이야기-163 8편 종결 기념 좌담회 펜릴 : 축하! 8편 종결 기념 좌담회!! 히드레안 : 지금 이게 축.하. 할 일이란 말인가...? 응? 펜릴 : ....추...축하하면 안돼요? 히드레안 : 축하를 한다고? 축하를 해!? 감히 이 나를 빼놓고 이야기를 진 행하다니! 오늘 죽고 싶은 모양이군!! 펜릴 : 에...저...그치만..; 어쨌든 다들 하나같이 보고 싶어할 것 같은 이 야기라서...ㅜ.ㅜ;; 히드레안 : 죽여줄까!? 펜릴 : 꺄악!! ㅠ_ㅠ 잘못했시유...다시는 안 그럴께유..(왠 사투리? ㅡㅡ;) 미노 : 뭐, 어쩔 수 없는 거라는 것도 있.는. 법이지...거기다 너보다 에리 나쟈드와 시오가 인기가 쪼.끔. 많았다고 그러게 쪼잔하게 굴건 없잖아? 히드레안 : ....넌 지금 어린애 모습이란걸 잊은거냐 미노? 어떻게 없애면 잘 없앴다는 소리를 들을까? 응? 미노 : ...;;; 농담이다 뭘 그런걸 가지고..; 히드레안 : 크으...너 작가!! 펜릴 : 넵!! ;; 히드레안 : ...이번 한번만 봐주도록 하지. 하지만! 펜릴 : ....; 하지만? ㅜ.ㅜ;;;; 히드레안 : 다음에도 이몸이 등장해서 화려하고 아름답지 않을 시에는 네 목숨따위는 국물도 없을 줄 알아!!! 펜릴 : 어....어머니이이이이!!!!! 미노 : 그러게 진작 알아서 굴어야지....저녀석 성격 나쁜거 뻔히 알면서 그러냐? 펜릴 : ㅜ.ㅜ;; 나라고 그러고 싶어서 그런줄 아냐.....하지만....하지 만.... 히드레안 : 변명은 죄악이다! 필요없어! 펜릴 : 네...넵....ㅠ_ㅠ 미노 : 결국, 남은건 네 목숨 보전을 위한 길 뿐인가? 펜릴 : 수 있어! +_+ 다음 편은 더없는 엽기로 치장해 줄테다!!! 카오오옷~! 미노 : .....좌, 좌담회 문이나 닫지...; 펜릴 : 이봐 미노! 왜 니가 닫는거야~! >. -.....난 아직 살아있는겨....? ㅜ.ㅜ;;; 마왕 이야기-164 피는 물보다 진하다-1 -밤과 어둠과 낮과 새벽 그 어디에 있던 너를 아름답게 비춰줄 곳. 천만방울의 처음으로 대지에 발 딛는 이슬을 모아서. 오직 그 누구도 아닌 너만을 위해. 나는 이곳에 비의 궁전을, 너를 위하여. 나로 인해 아름다운 너를 보기 위해. 나는 빛으로 둘러싸인 이곳을 만들리라... - 화이트 세인 아르테미스 3세 전기 중, '그의 말' 히드레안은 오랜만에 한적한 기분을 느끼면서 느긋하게 찻잔을 들었다. 따스하게 김이 오르고 있는 홍차, 기분 좋은 레몬 향. 덧붙여 오늘따라 그 의 기분을 대변하듯 조용히 그쳐서 작은 눈송이들이 떨어져 내리고 있는 바 깥의 풍경. 셀레나의 푸른빛이 연하게 대지를 비추고 있고, 어둠은 조금 빛으로 화해 어스름한 새벽빛을 띄우고 있었다. 모든 것이 만족스럽고, 오랜만의 휴식 을 위해서 만들어 진 듯한 풍경. 히드레안은 진정으로 만족하면서 정말로 오랜만에 즐거운 미소를 띄었다. 미노도 그런 주인의 심기가 편한 것을 알았는지 눈치를 힐끔힐끔 보다가 입 을 열었다. - 정말 날씨 좋죠 주인 님? "흐음, 오늘따라 더 그렇군." 싱글싱글 웃는 히드레안. ...왠, 왠지 너무 편안한 이 분위기. 뭔가가 일어나도 반드시 일어날 것 같다는 강박관념 같은 것이 자꾸 일어난다. 아니나 다를까, 미노가 활짝 웃으며 뭐라고 더 말하기도 전에 인형 하나가 급히-인형이 급히 움직인다 는 느낌을 주는 것은 정말로 급박하다는 의미이다- 뛰어들어와 히드레안 앞 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주인이시여, 위대하신 분. 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무슨 문제, 지금 내 즐거운 여가 시간을 네가 방해했다는 사소한 문제라 면 오늘 기분이 좋으니 충분히 용서해 줄 수 있는데." 히드레안은 여상스럽게 말했고, 파랗게 질린 얼굴로 인형은 떠듬떠듬-히드 레안도 이 부분에서 꽤나 놀랐다-입을 열었다. [...그것이...성안에...] 이제 고요해지기까지 한 홀에 인형의 목소리가 메아리쳐졌다. [침입자가 들어왔습니다.] 쿠궁! 갑자기 성이 떨리는 듯한 진동이 일어났고 히드레안은 찻잔을 '으깨' 버리 며 살기어린 눈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평화로운 풍경, 아름답던 그 시절은 언제 사라졌는지 바깥은 미친 듯이 날뛰는 눈보라가 몰아쳤고, 밤 은 더욱 깊어진 체 섬뜩한 셀레나의 푸른 달빛이 괴기스런 빛을 발했다. 인형은 벌벌 떨면서 그런 히드레안이 무슨 짓을 할지 가만히 있었고, 미노 는 입을 쩌억 벌리고 있다가 조심스레 말했다. - ...혹, 혹시 그 침입자라는 게...카인이나 아이크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절대로.] "그럼 감히 누가! 나의 이 성에 침입했다는 거냐!" 히드레안의 노성이 터져 나오자, 인형은 엄청난 마력의 압력에 뒤로 주르 륵 밀려가 벽에 처박혔다. 당장이라도 그 침입자를 짓씹어 버릴 정도로 분 노한 히드레안을 보면서, 미노는 오늘도(대체 그 문제의 '오늘'의 개념이 이 성 어디에 있다고) 무사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에 속으로 눈물만 떨구었 다. [...커억...자, 자비를 왕이여...] "닥쳐! 에슈드 기엔 셀, 완벽한 나의 성에! 감히 침입자라니! 시간의 왜곡 을 통해 나의 성을 보는 것만 해도 무엄할 진대...감히 내 성에! 더러운 것 이 발을 디뎠단 말이냐!?" 이제 거의 눈이 뒤집혀서 오늘 안에 인간계를 멸망시킬 정도로 날뛰고 있 는 히드레안을 말리기 위해서 미노는 애써서 굳어버린 얼굴에 미소를 띄며 그를 달래보려고 입을 열었다. - 에...저, 아직 말을 덜 들어보시지 않았으니...뭐, 뭔가 있지 않을까요?" 히드레안은 바락 소리를 질렀다. "말하라! 감히 어떤 자가 나의 성에 침입했느냐!" ...오늘 세계 멸망의 날이다. 미노는 저기 구석에 처박혀서 어두운 자기장을 띄면서 바닥에 기하학 적인 도형을 그려대기 시작했다. 인형은 급히 입을 열었다. [인간 남자 하나입니다.] 그리고 그 인형은 그 길로 영영 이 세상에 발 디딜 세도 없이 소멸되고야 말았다. 하여튼 저 개도 받기를 꺼려하는 '뭐' 같은 성격은 도대체 아직 도 나아짐이 없는 히드레안, 그는 당장이라도 자신이 뛰쳐나갈 것처럼 했다 가 갑자기 뚝 멈춰섰다. "미노." - 네, 네? 훌쩍거리면서 궁상을 떨고 있다가 미노는 발딱 일어나서 히드레안의 앞으 로 쪼르르 달려왔다. 히드레안은 이상하리만치 사악하고 음험하고 음침한 미소를 지으면서 미노를 바라보았고 미노는 저도 모르게 '히익! 가진 거 없 어요!'라고 소리칠 뻔했다가 가까스로 그 충동을 참을 수 있었다. 소리 질 렀으면 그 길로 인형과 같은 길을 걸으리라는 것은 뻔한 이치. "그 인간, 죽이지만 말고 데려와." - ...죽이지만 말구요...? 미노는 궁시렁 대면서 물었고 히드레안은 눈을 살짝 지켜 들었다. '너 지 금 개기냐?'라는 듯한 표시가 너무나도 확연히 풍기는 그의 잔악한 눈초리 에 미노는 화급히 워프해서 사라졌다. 히드레안은 다시 의자에 털썩하고 앉았고, 곰곰이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도대체 누구지? 내 성에 '침입'이라니...설마 그때 그 녀석들인가? 아니 야, 그 녀석들은 지금쯤 어디 처박혀서 잘만 살고 있을텐데. 그럼, 신들인 가? 설마...제레이나 녀석은 그냥 나타나는 스타일이고. 칸나가 이 성까 지 올 정도로 심심해 미칠 지경일 리는 없으니." 히드레안은 자신이 아는 한도 내에서 성에 '침입'을 감행할 어리석거나 멍 청한 존재를 생각해 보았지만 좀체 가물가물한 것이 잡히는 게 없었다. 자 기가 나쁜 짓 한 것은 그 자리에서 까먹지만 남이 한 일은 지독히도 잘 기 억하는 기괴한 성미를 가지고 있는 그이니 만큼, 잡히는 것이 드물었다. 솔직히 말해서, 마신왕이라는 그를 괴롭힐 간 큰 존재가 세상에 얼마나 된 다고 말이다. 어찌됐건 히드레안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다시 생각해 보다 가, 귀찮은지 그냥 생각은 그만두었다. "귀찮군, 보면 되겠지." 그는 딱, 하고 손을 퉁겼고 허공에 정사각형의 얇은 마법장이 생성됐다. 한 개가 아니라 수십 개가 순식간에 허공에 떠오르고, 그것은 한쪽 면만이 어딘가를 비추고 있는 모습이었다. 고위급 마법사가 보았더라면 입에 거 품 물고 기절하고도 남을 '전체영상저장확장매체'를 수십 개나 불러내는 그 의 모습은 장관이었다...고 보기엔 별로 멋진 모습은 아니었다. 히드레안은 이리저리 그 정사각형의 마법장을 허공에서 위치를 바꾸며 돌려 대다가, 무엇인가를 발견했는지 한 마법장을 고정시켰다. "이 녀석인가." 그가 눈앞에 펼친 마법장에는, 열 일곱 여덟으로 보이는 젊고 활기에 차있 는 인간의 모습이 비춰지고 있었다. 검과 가볍다고 볼 수 있는 무장. 그 리고 흰 옷. 사제의 호부를 늘어뜨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성기사였다. 검은 머리카락과 푸른 눈동자를 지닌 그의 모습은, 누가 보더라도 감탄할 만큼의 미소년이었다. "...그런데..." 히드레안은 가볍게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이 녀석, 왠지 기분 나쁜데?" ============================================================= ========= -_-; 난 몰러유. ;;;; 큼큼...오늘은 좀 늦게 올라왔지요? ^^; 일요일은 동생이 컴을 하루 종일 붙잡는 날이라서...ㅠ.ㅜ 졸려라...내일 학교는....흑... 마왕 이야기-165 피는 물보다 진하다-2 미노는 궁시렁 대기는 했지만 즉시 워프해서 그 기사의 앞에 내려섰다. 미 노는 조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위대한 분의 거처를 더럽힌 인간이여, 순순히 말을 듣는다면 죽이지는 않 겠다. 그는 갑자기 허공에서 스르르 나타난 어린아이를 보고는 잠시 움찔한 모양 이었으나 이내 검을 살짝 고쳐 쥐었을 뿐이었다. 빛으로 코팅이 되어있는 검은, 확실히 그가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다다랐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 고 신념에 찬 푸른 눈동자는 기묘한 아름다움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대가 미노트 아신레이져, 마신왕의 수호자인가?" - 그렇다면? 미약한 인간인 그대가 나를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는 않 는 데... 비웃듯이 말하면서 미노는 바닥에 내려섰다. 그는 약간 탐색하는 눈빛으 로 미노를 바라보았고, 미노는 투덜투덜 거리면서도 슬쩍 날개를 털었다. 순식간에 미노의 키를 넘어서서, 이내 그 인간의 키도 넘어선 날개는 사방 을 꽉 채울 만큼 커졌다. 투둑, 하고 팔다리가 거치적거리는 듯이 뼈가 불 거져 나왔다 늘어나고, 고무공이 수축을 일으키는 것처럼 미노의 몸도 위 로 솟아올랐다. 깊은 자주색의 눈동자, 190은 가볍게 넘는 키. 펄럭대는 밤하늘을 녹여 만 든 듯한 날개와 어깨를 살짝 스치는 검은 앞머리...검은색의 안개 같은 옷 자락이 미노의 몸을 감싸고 이내 검은 제복을 만들어 냈다. - 인간이여, 해보겠는가? 뚝, 뚜둑 하고 자신의 목을 잠깐 돌리며 미노는 관절을 푸는 시늉을 해 보 였고, 대략 165, 6쯤 되 보이는 또래치고도 좀 작은 키의 소년은 피식하고 우습다는 미소를 지었다. - ...뭐냐, 그 미소는. "본체가 아닌 에테르 체로 그 모습을 유지하는 건 한계라는 것이 있겠지? 아마?" 어떻게 그런걸...이라고 미노가 말하기도 전에 그가 스슥, 하고 움직였 다. 인간치고는 지나치게 빠른 움직임에 미노도 날개를 펼치며 살짝 허공 으로 날아올랐지만 그는 검을 들어올리고선 외쳤다. "파이어 볼!" - 뭐, 뭐야!? 마법 기사? 미노는 그가 마법까지 쓸 줄은 몰랐기 때문에 약간 당황했지만 이 곳에서 마법을 제대로 쓸 수 있는 인간이 없다는 것을 믿고는 그대로 날개를 활짝 펼치고 공격을 준비했다. 처음엔 조그맣던 불꽃은 갑자기 길쭉하게 늘어나 면서 창의 모양으로 되었고, 미노는 새파랗게 질렸다. - ...그, 그게 어떻게 파이어 볼이야! 그건 헬 파이어 스피어잖아! 그는 피식, 하고 어이없다는 듯이 웃더니 한마디했다. "병신. 이기면 장땡이지." ...미노는 순간 엄청나게 몰려들어오는 한기를 느꼈다. 그의 저 비뚤어진 미소, 그리고 치사하고 비겁하기 짝이 없는 행동, 그리고 저 싸가지 없는 말투와 행동거지. 덧붙여 너무나도 당당한 자기 합리화... 콰앙하고 날아온 헬 파이어 스피어, 화염계 공격마법중 개인 마법으로는 최 상위급을 웃도는 마법이 미노에게 직격했고, 미노도 상당한 타격을 받고 뒤 로 주춤하고 물러섰다. 하지만, 미노는 아직도 공격을 망설이면서 그를 바 라보았다. 그도 미노가 공격을 하지 않고 망설이는 기미를 보이자 조금 이상한지 고개 를 갸웃했다. "뭐야, 넌 그 마신왕인가 뭔가 한테서 날 죽이란 명령을 받고 온 거 아니 야?" - ...너...너...인간. 이름이...뭐지? 그는 씨익 웃더니 짧게 말했다. "악당에게 가르쳐 줄 이름 없음. 정의의 용사 대사 1장인가?" 검기가 춤추듯 움직이면서 미노를 압박해 들어왔다. 하지만 미노는 이번에 는 충분히 방비를 하고 있었기에 가볍게 피하면서 손끝에 손톱을 뻗어 내렸 다. 팔 끝에 가득히 들어가는 충만한 힘. 하지만 미노는 그의 뒷목을 그 어 버리는 대신 손끝으로 가볍게 그의 뺨을 할퀴었을 뿐이었다. 순간적으로 핀치에 몰렸다가 다시 벗어나자 그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미노 를 바라보다가 잔뜩 약오른 표정을 지었다. 단발에 가까운, 목뒤로 모여 져 늘어져 있는 연한 푸른빛을 내포하고 있는 검은 머리카락. 그리고 투명 하고 한없이 맑은 푸른 눈동자. 매끄럽고 조각 같은 외모. "봐주는 거냐 뭐냐!" 낮은 저음에 가까운, 변성기를 거치지 않은 소년의 목소리. 미노는 거의 울고 싶은 것을 느끼면서 다시 한 발짝 뒤로 물러서며 그를 경 계했다. - ...봐주는 게 아니라 건드릴 수가 없는 거란 말이다앗! "닥쳐! 누굴 얏보는 거야!" 격렬하게 분노로 일그러진 검격을 날리는 그를 이리저리 피하면서 미노는 결국 날개를 접어 내리며 다시 어린 모습으로 변할 수밖에 없었다. 더 이 상 성체의 모습을 유지하는 것도 무리였고, 자신은 단순히 에테르 체가 응 집되어 있는 일종의 '유령'에 가까운 것이니 물질화 하는 것은 힘들었다. 거기다 그는... 쇄도하는 검격은 약간의 망설임도 없이 그대로 미노의 몸을 그어 내리려고 돌진했다. 가볍고 빠른 롱 소드. 마법이 기운이 넘쳐 내리는 이 물건은 단숨에 미노의 몸을 가를 수 있었지만, 미노는 가볍게 피해서 허공으로 날 아오르며 안절부절했다. - 내 말을 들어봐라 인간! "누가 너 따위의 말을! 헬 파이어 프레싱!" 그가 주문을 외치자 마자 바닥에서 화염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격렬한 파 도 같은 움직임이 일어나고 바닥은 용암으로 변해서 허공으로 솟아올랐 다. 이글이글대는 열기로 얼룩져있는 그의 주변에 그는 삼켜질 듯이 보였 지만. 묘한 한기가 그를 감싸안고 있었다. - ...으으윽...이러니 인형들이 못 막지! 묘한 한기. 저 얼굴, 저 행동. 그리고 낮지만 미성의 목소리... 미노는 울상을 한체 발을 동동 굴렀다. 허공에서 굴러봤자 허우적대는 걸 로 보이는 데 꼭 저러고 싶은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지만 뭐 별 상관없으 니까. "가라!" 결국, 미노는 잘 구워진 박쥐 구이가 되어서 바닥에 추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는 구워져서 바닥에 뒹굴뒹굴 거리다 그의 발에 채여 버렸어도, 자신의 행동에 티끌의 의심도 가지지 않았다. 그는 꽤 신경질이 난 표정으로 다시 거실의 문을 걷어차고 복도를 달려가 기 시작했다. ============================================================= ========= 마왕 이야기-166 피는 물보다 진하다-3 "헤에, 히드레안 님." "......" 히드레안은 이제 침묵을 지키면서 그 상황을 바라보았다. 카인은 별일이라 는 듯이 자신의 별궁에 있다가 소환돼 와서 약간 투덜거렸지만, 지금의 상 황을 보더니 180도 달라져서 흥미로 눈을 반짝거리고 있었다. '재밌는 거겠지, 이 녀석은 세계 멸망도 즐거운 유희거리니까.' 히드레안은 마치 자기는 안 그런 것처럼 그런 괘씸한 생각을 하면서 카인 을 바라보았다. 카인은 마법장의 앞에서 떨어질 줄을 모르고 눈을 빛내면 서 바라보고 있었고, 아이크도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마법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카인은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리면서 싱긋이 웃었다. "잡아다 드릴까요?" "...너..." 카인은 눈을 반짝반짝 거리면서 냉큼 대꾸했다. "재밋어요!" 히드레안은 '너 지금 재미있는 거냐!'라고 소리를 지르려고 했으나 카인이 먼저 선수를 치자 결국 신경질을 낼 수 없었고 그는 고개를 팩 돌려서 가만 히 잘만 서 있는 아이크를 향해 성질을 부렸다. "저 녀석이 저러는 동안 넌 뭘 하고 있었어!" "...옆에서 주인님 신경질 받아드리고 있었죠." 버릇없게 스리 눈을 지켜 뜨고서 아이크는 동공 없는 푸른 눈으로 그런 히 드레안을 마주 노려봐 주었고, 히드레안은 의자의 손잡이 끝을 으스러뜨리 면서 바락 소리를 질렀다. "하여튼 쓸모 있는 것들이 없어!" "아 이런, 테피리스가 망가지네요." 카인은 여상스레 그렇게 말했고 히드레안은 결국 머리끝까지 열이 뻗혀서 소리질렀다. "가서 저 녀석 잡아와! 되도록 처참하게! 짓밟아서 데려오라고!" 아이크는 순간 오싹해 져서 카인을 바라보았다. 재미있다 못해 즐거워하기 까지 하고 있는 그의 눈동자에 담겨져 있는 무시무시한 살기가 보였기 때문 이다. 동화되고 있는 마음의 느낌은 '위험'의 정도를 넘어서서 공포의 수 준으로 그녀를 끌고 갈 정도였다. "...라고 말하면 이 내 체면이 구겨지겠지. 후우, 후우...참자. 참아! 되 도록 상처는 내지말고, 기운은 빼서 데려와!" 카인은 순식간에 열기가 식어버린 커다랗고 맑은 보라색 눈동자로 히드레안 을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히드레안은 그가 원하는 대로 '반 죽여 놓은 상태'로 무례한 침입자가 끌려 왔다간 이성이나 기타의 인간성의 여지 가 전혀 남아있지 못하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차갑게 말했 을 뿐이었다. "까불면 사지를 찢어 버릴테다 카인제이럴." "네에, 네에. 알아모시죠 뭐." 살짝 볼을 부풀리는 귀여운 행동을 한번 해보인 후, 그는 망토를 잡고 우아 한 인사를 해보인 후 스르르 사라졌다. 아이크는 그 자리에 서서 마법장 을 계속 응시했고 다시 의자에 앉은 히드레안은 끊임없이 자신에게 참아야 한다고 중얼중얼 거리고 있었다. "...넌 왜 안 간거냐?" "가봤자 방해만 될 거 아닌가요. 고문은 카인의 특기지 제 특기는 아니니 까." "거짓말. 너 전에 사람 혀 자르면서 내 앞에서 쇼도 했잖아." 아이크는 히드레안의 정확한 지적에 잠시 입을 다물고 있다가 휙, 하고 고 개를 돌려서 반대편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 얼거렸다. "...그런 일이 있었던 가요?" "있었지. 아에 그때 그 영상을 다시 돌려서..." "카인보다 덜 하잖아요 그래도." 아이크는 최후의 몸부림을 쳤고 히드레안은 딱 잘라서 그녀의 변명을 묵살 했다. "넌 분명히 그 잘랐던 혀를 꿀꺽 했던 것 같은데." 히드레안은 도저히 좋아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어서 한시라도 빨리 카인 이 돌아와 히드레안의 성미를 긁어주길 바라는 아이크였다. 적어도, 이 세 상에서 히드레안과 같은 수준에서 놀면서 그의 성격을 건드리고도 무사한 녀석은 카인뿐이니까. 사라진 미노트 아신레이져와 '그녀'를 뺀다면. 카인은 복도에 멈춰 서서는 그가 오기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갑자기 나타나는 것보다는, 그냥 서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 경계할 시간을 더 줄 수 있는 방법이니까. 역시나, 그는 멈춰섰다. 검을 살짝 비켜 들고서 경계하면서 바라보고 있는 푸르디푸른 아쿠아 블루 빛의 눈동자. 카인은 그런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던 누군가를 기억하고 있 었다. 그는 살짝 미소지으면서 그런 그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서기 라도 하듯 이, 팔을 살짝 벌려 보였다. 무기가 없다는 뜻. 하지만 조금의 경계도 풀 지 않는 것이, 제법이다. "처음 뵙겠습니다...? 아니면 오랜만이구나?" 카인은 그렇게 말하면서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이 특기인 매혹적인 미소를 띄워 보였다. 저도 모르게 움찔하는 것이, 아무래도 그는 아직은 '순진 한' 모양인가보다. 나쁜 장난 치는게 취미인 카인이 이럴 때는 못내 원망 스러운 이유가 무엇일까. 카인은 손가락 하나를 입가에 가볍게 가져다 대면서 입을 열었다. "...이 성이, 누구의 것인지는 알고 계시겠지요...?" "그딴 거 몰라!" 어깨를 한번 으쓱해 보이고, 카인은 슬쩍 손을 늘어뜨렸다. 무방비 상태 로 보이는 행동이지만, 어디까지나 모든 마족은 마법사. 약간의 경계를 띄 면서 그도 마법을 준비하고 있었고, 카인은 입을 열었다. "황자전하. 아니, 황제폐하. 아무리 그대라 하여도 이 성에 침입한 이상 살아서 나가기 힘들다는 것을 모르는 건 아닐텐데요." "...넌...어떻게!"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고, 카인은 살짝 웃었다. 기억하고 있던 눈동자, 기 억하고 있는 저 곤란할 때에는 한 옥타브 높아지는 목소리. 투명한 아쿠 아 블루 빛의 눈동자를 지니고 있던, 어떤 이와 그는 닮아있었다. "카인제이럴. 들어보신 적 있습니까?" 춤추듯이, 살짝 한발자국을 카인이 그에게로 내딛자, 그는 주춤하고 물러섰 다. 그의 기억에도 확연하게 남아 있는 '카인제이럴'이라는 이름. "들어보신 모양이군요? 황제폐하. 축복 받은 신성국가 아르미안의 지배자 이시며, 저의 주인이신 위대한 흑암의 유일한 연인이셨던 분의 자손이신 분 이여." 그의 얼굴이 붉어졌다. 카인이 찌른 정곡이, 가슴아프게 들렸는지 그는 크 게 소리 질렀다. "닥쳐! 누가 마왕 따위의 연인이셨다는 거냐! 어머님을 모욕하지 마라!" "오호 이런, 히드레안 님의 연인이 된다는 것은 꽤나 영광이라구요. 성격 이 포악하기 그지 없는 데다 치사하고 이기적이고 제멋대로 라서 왠만해선 일회용, 이거든요? 그에 비하면 어머님의 대우는 굉장히 좋았던 거라구요." 활짝 웃으면서 카인은 두 번째 발을 딛었다. 살짝 몸이 허공에서 움직인 다 싶더니, 그는 순식간에 그의 앞에 나타났다. 놀라서 뒤로 물러나기도 전에, 카인의 주먹이 복부에 가격됐다. 마법으로 강화된 갑옷이 둘러져 있 었지만, 아무래도 약했는지 쩌억하는 소리와 함께 갈라지고 정통으로 주먹 이 꽂혔다. "크윽!" "그렇지 않나요? 하라 폰 아르미디아 세인 루트라 1세 전하." "너...이..." 카인은 마지막 마무리로 뒷목까지 정확하게 후려쳤다. ...일말의 망설임이 나 거슬림도 없이 가볍게 가격하는 그의 행동에서 볼 때, 그는 만약 그 상 대가 히드레안이라고 했더라도 별 거리낌없었을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 새 삼 확인되었다. 카인은 싱긋이 웃으면서 싱겁기 그지없게 기절한 그를 안아들었다. "한동안 재밋을 것 같은데요...?" ============================================================= ========= 위험해, 위험해...-_-;;;; 뭐 어찌 건. ^-^; 이렇게 여러분이 예상하고 계시던(?) 그의 정체가 밝혀졌군요. 흐음, 참고로 말하자면....-_-; 저 '화이트 뭐뭐뭐'라는 이름, 잠깐 틀리게 썼었던 것 같은....;; 어쨌든 저 이름, 만약 기억하고 계시다면 당신은 펜의 소설의 진정한 애독 자 시겠죠. -_-; 마왕 이야기-167 피는 물보다 진하다-4 히드레안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려고 했지만, 그것이 가능할 리가 없었다. 어차피 '억지로'라는 것을 해본 적이 좀체 없는 그이니 만큼, 이런 감정표 현엔 역시 서툴었다. 그가 괜히 정신연령 7세라는 말을 듣는 것이 아니다. 그는, 정말로 황당하기 그지없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뭐라고?" "그러니까, 화이트 아르테미스 세인 루트라. 그 이름도 드높고 고귀한, 신 성왕국의 여주인이며 가장 존귀하고 고귀하고 이름 높으신 여왕의 하나뿐 인 아들이며 적자이자 신성왕국 아르미안의 계승자. 하라 폰 아르미디아 세인 루트라. 가 지금 기절해 계시는 분의 존함이라구요." 카인은 짧게 말해도 될 것은 일부로 길게길게 늘려서 말하면서 히드레안의 속을 뒤집고 있었다. 아이크는 그의 눈동자에 맺혀 있는 '즐거움'으로 가 득 차 있는 저 사악하고 잔인하고 극악무도한 빛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고 싶을 정도였다. 히드레안도 떨떠름한 표정으로 매우 즐거워하고 있는 카인을 바라보았고, 카인은 자신의 즐거움을 별로 숨길 생각이 없는지 싱긋이 웃으면서 손가락 하나를 지켜 올렸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카인의 입가에 맺혀 있는 미소가 왠지 심술궂게 느껴지는 것은 착각일까. 그는 히드레안의 얼굴에 상당한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게 하면서 씨익, 하 고 한번 웃고는 말을 이었다. "히드레안 님의, 하나뿐인 아. 드. 님. 이란 거지요." 딱, 딱하고 끊어지는 카인의 말에 이어서 아이크는 '과연'이라고 중얼거렸 고 미노는 구석에서 아직도 구워진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했는지 얼음주머니 를 머리에 얹고는 궁시렁 대고 있었고 히드레안은 발뺌했다. "...기억에 없는 것 같은데?" 저런, 천하의 히드레안이라고 하더라도 역시 '사생아'문제는 까다로운 것 인 모양이었다. 카인은 이제 행복하게까지 느껴지는 미소를 지으면서 양손 을 마주잡고는 꼭 물건 파는 상인 같은 포즈로 히드레안을 '놀리기' 시작했 다. 그렇다, 그는 지금 히드레안을 감히 '놀리고' 있었고, 히드레안은 그 사실 에 불쾌해 할 수 있었으나 그 사실보다 그의 '놀림' 자체가 더 신경 쓰였 다. "아니 그 무슨 히드레안 님 답지 않은 말씀을. 이때껏 수많은 여인, 물론 남성을 약간 포함해서지만 어찌됐건 여인을 울려왔었지만 단 한번도 그 자 식이 없어서 혹시 아이를 못 낳는 몸이 아닌가 의심을 구가해왔던 것이 이 제 당당히 풀리지 않았습니까?" 히드레안은 빠직, 하고 이마에 조그맣게 솟아나려고 하고 있는 힘줄을 애써 서 꾹꾹 누르면서 입을 열었다. "카인." "네에, 뭔가 하실 말씀이라도?" 히드레안은 싸늘한 눈빛으로 카인을 노려보면서 음산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거기서 한마디만 더 지껄이면 당장 개구리로 만들어서 눈을 파내고 내장 을 뽑아낸 다음 팔다리를 비틀어서 산 체로 튀긴 뒤 햇빛에 잘 말려서 비틀 어 밟아 버리겠다." ...어쩌면 히드레안에게는 그 문제가 아픈 과거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음, 이게 아니고. 어찌됐던 카인은 그 말을 듣고 살짝 혀를 내밀어 보이면 서 귀여운 표정을 지어 보이더니 다시 조잘대기 시작했다. "어찌됐건 아무리 히드레안 님의 적자이고, 어쩌면 이 마계를 계승할 후계 자가 될 지도 모르지만 말이죠, 어쨌든 어디까지나 무단 침. 입. 을 한 거 고 또 인형들은 부순 대다 미노까지 저 모양으로 만들었는데 설마하니 위대 하고 첨예한 마왕이신 히드레안 님께서 그들을 전혀 벌주거나 할 생각이 없 으시다거나 뭐 그러시지는, 않겠죠?" 히드레안은 흠칫했고 카인은 정곡을 잡았다는 듯이 눈을 가늘게 고양이 처 럼 뜨면서 히드레안을 몰아부쳤다. "아아, 그러시면 안돼죠. 안 그래요 히드레안 님? 아까 전까지만 해도 분 명히 무단으로 들어온 무례한 녀석을 팔다리를 찢어 버릴 정도로 괴롭게 해 주신다고 직접 말씀하셨잖아요? 그런데, 설마 그 말씀을 철회하실 건가요? 아아, 과연 혈육 앞에선 철혈의 히드레안 님이라도 무너지고 마는 걸까 요..." 아이크는 카인의 마음속에서 계속해서 고개를 쳐들고 있는 가득한 장난기 를 느끼며 진심으로 히드레안이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한번 저 카인의 '은 근히 자존심을 건드리는'말을 듣기 시작한 이상, 결국 발끈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 모든 이들의 인지상정. 그러나 히드레안은 과연 뭐가 달라도 달랐다. 그는 가볍게 손을 뻗어서 카인을 개구리로 만들어 버린 후 손으로 쥐고는, 벽에 처박아 버리고서 조용히 중얼거렸다. "...또 따질 녀석?" "당연히 없습니다." 아이크는 재빨리 대답했고 바닥에 떨어져 있는 카인을 주워들었다. 꽤나 귀여운, 하얀 개구리가 되어있는 카인은 그 상황에서도 반짝반짝 눈을 빛내 면서 히드레안이 곤란해하는 것을 즐기고 있었으니...아이크는 정말 그의 못 말리는 비정상적인 정신 행태에는 두 손 들 수밖에 없었다. - 주인님, 그럼 어쩔까요? 방이라도 치우는 것이.... "시끄러. 너도 찌그러져 있어. 꼬마하나 못이긴 주제에. 미노는 울상이 되어서 '너무 똑같아서 어쩔 수 없었단 말이에요' 따위의 말 을 중얼거렸고 히드레안은 잔뜩 인상을 쓰고는 '그럼 내가 그딴 꼬마를 닮 았단 거야!'라고 외치곤 미노도 개구리로 만들어 처박아 버렸다. ...아무래도, 그는 상당히 지금 기분이 안 좋아진 것 같았다. 히드레안은 개구리 두 마리와 한 마족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너희들은 각기 할 일이나 해라." 결국 히드레안은, 카인이 갈비뼈를 하나 부러뜨리고 목뼈를 살짝 어긋나게 해서 엄청난 중상을 입은 하라 폰 아르미디아 세인 루트라....헥헥, 그냥 하라를 보러 방을 걸어나갔다. 사뿐사뿐 내딛는 그의 걸음마다 발목에 걸 린 사기 발찌가 차랑대고 있었고, 카인은 개구리에서 다시 인간으로 화해 서 바닥에 내려서서는 심술궂게 미소지었다. "즐거워 어쩔 줄 모르는 것 같은걸?" "어디가 즐거워 보인다는 거지." 아이크는 카인의 말에 대꾸했고 미노도 개구리 모습으로 웅얼웅얼 거렸 다. 카인은 살짝 웃으면서 자신의 말이 당연히 맞다는 확신에 가득 찬 표 정을 짓고선 말했다. "그거야, 말하는 도중에도 계속해서 문을 흘낏거리고 계셨으니까." 아이크는 기가 막힐 정도로 남을 관찰하는데 굉장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 카 인을 바라보다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고 말았다. "...그러면서 왜 본인의 일엔 정착 눈치가 없는 걸까..." 하지만 카인은 더 이상 듣지 않고서 재빨리 어떻게 하면 아무도 모르게 상 황을 볼 수 있을까, 하고 눈을 반짝반짝-저 하늘의 태양보다 아름답게 뜨고 선 부산하게 서두르고 있었고, 그래서 아이크는 그냥 아무말도 없이 입을 다물었다. ============================================================= ========= 네에, 카인의 성격을 말하자면. 수다스럽고 남이 곤란해 하는 걸 보고 즐 기며 장난기 가득하고 그러면서 정작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지 않고 미소짓 고 불행의 그늘에 서서 잔인한 미소를 짓는 자.....-_-; 라고 누가 친절히 주석을 달아주셧기도...훗....-_-;;; 뭐 어찌됐건. 카인이 이번화에 흰개구리가(풋)됐군요. 마왕 이야기-168 피는 물보다 진하다-5 히드레안은 하얀 침대 위에 누워있는 그를 보면서 역시 '기분 나쁘다'라고 생각했다. 살짝 뺨을 스치는, 어중간한 단발 정도의 검지만 푸른빛을 내포 하고 있는 밤하늘 빛의 머리카락. 길게 늘어진 속눈썹과 연한 붉은빛을 띄 고 있는 입술. 흰 피부며 나긋나긋한 몸의 곡선까지, 소름끼치도록 자신 과 '분위기'가 비슷한 그의 모습을 내려다보는 히드레안의 마음엔 약간의 착찹함이 서려 있었다. 카인이 '눈치 못채게' 구석구석 즈려 밟았던 덕에 그, 아니 하라는 상당히 중상을 입고 잘못하면 식물인간이 될 뻔했으나 다행히 인형이 냉철하게 그 상황을 분석해 냄으로서 다행히 목숨을 건질 수는 있었다. 카인은 '외상 은 없었는데요'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함으로서 히드레안에게 왜 카인을 창조 했을까 하는 회의감을 들게 하는 위업을 결국 달성해 내게 됐다. 어쨌든 이런저런 문제를 다 넘기고. 내궁의, 일종의 여인이 사용하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는 별실인 방안은 구석 구석 정신을 맑게 해주는 향이 피워지고 있었고 동양풍으로 이국적으로 둥 글게 만들어져 있는 침실이며, 약간 동양틱한 커튼 등이 자수와 함께 늘어 져 있었다. 전체적으로 안온한 바닷빛을 띄고 있는 방안. 히드레안은 한숨을 내쉬면서 그를 내려다보다 입을 열었다. "깨어났으면 눈이나 떠라. 네가 원하는 이상한 말 따위는 해주기 싫으니 까." 하라는 욱, 한 듯 눈을 뜨고는 몸을 일으켰다. 과연 마왕성은 최고의 의학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동시에 고문 시설도 갖추고 있다는 말이 사실...인 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하라의 몸은 아까 언제 뼈가 부러졌었냐는 듯이 멀쩡 했다. 아쿠아 블루의 아름다우면서도 투명하기 짝이 없는 눈동자. 진하지 않은, 청아한 남국의 에메랄드 빛 바다에서 벗어 나있는 용기 있는 모험자만이 볼 수 있는 머나먼 중앙의 바다 빛을 띄고 있는 아름다운 눈동 자. 히드레안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닮았군..." 하라는 적대감으로 가득 찬 눈으로 히드레안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가 상 상하고 있었던 사악하고 잔인하고 악랄한 마왕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을 히 드레안은 어디로 가고, 아슬아슬하게 발목에 닿지 않을 정도로 긴 검은 머 리카락을 흰색의 천과 이리저리 교차해서 복잡하게 사슬모양으로 꼬아 늘어 뜨리고, 하얀 로브만을 정갈하게 입은 체 있는 그의 모습은 상당히 뭐랄 까, 신비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이마에 자리잡고 있는 세 번째 금색의 눈동자라던가, 탁하고 어두운 검은 눈동자. 피 같은 붉은 입술과 신에 속한 자라면 결코 하지 않을, 넓게 벌 어진 로브 사이로 매끈한 흰 다리와 맨발을 드러내고 있는 것은 확실히 그 가 '타락한' 듯한 면모를 보이게 했지만... 그는, 소름끼치도록 아름다웠다. 하라가 생각하던 것 이상으로 그는 아름답고 매혹적이고, 그리고 허무했 다. 그래서 더욱더 하라의 기분을 거슬리게 했고, 그는 차갑게 입을 열었다. "그래도, 기억은 해주시는군?" "..." 그 눈동자로 괘씸하게 그런 눈빛으로 쳐다보다니. 히드레안은 마치 그런 말을 하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하라는 그의 표정 을 읽자마자 더욱더 재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하고는 말을 이었다. "...네 녀석을...만나고 싶어서 미칠 뻔했지. 널 죽이기 위해서 이때껏 내 가 얼마나 검을 갈아왔는지 보여주겠어!" 히드레안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서 바닥으로 내려가, 침대를 가운데 두고 서로 마주보고 있는 자세를 취하게 만든 하라를 멍청하다는 눈으로 바라보 다 중얼거렸다. "그렇게 말한 녀석들이 이때껏 몇 명이나 됐을 거라고 생각 하냐? 하여튼 질리지도 않는군. 비슷한 대사에 비슷한 말투라니." "시, 시끄럿! 농담이 아니란 말이야!" 얼굴이 발갛게 되서 소리치는 모습은 꽤 귀여웠다. 16살쯤으로 보이고, 또 래보다 조금 어려 보인다고 착각했지만 카인이 주절주절 떠든 것에 의거하 면-그래도 카인이 떠들면서 그나마 그 정도의 정보를 알려 주는 건 드물었 다-그는 28살, 적법한 황위 계승권을 이미 이어낸 훌륭한 청년이었다. "이때껏 그렇게 말한 녀석들도 대부분 농담이 아니었어." 여상스레 말하곤 히드레안은 다시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비슷한 분위 기를 지닌 얼굴이 자신을 뚫어져라 진지하게 쳐다보고 있자 하라는 저도 모 르게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빽하고 소리를 질렀다. "뭐, 뭘 그렇게 보는 거야!" "네 눈동자." 직설적인 말에 별로 할말이 없어진 하라는 일단 거리를 좀더 벌리기로 하 고 약간씩 뒤로 물러섰다. 침대가 가운데 있으니만큼 히드레안이 움직이 는 것을 견제할 수 있을 거라는 속셈이었지만, 하라가 일정이상 물러나자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났을 지 모를 하얀 물체가 스르르 다가와 하라의 팔 을 잡더니 엄청나기 짝이 없는 힘으로 그를 침대로 질질 끌고가 눕혔다. 아름답고 풍만한 몸을 지닌 여인이었지만 얼굴은 얼음처럼 냉혹하기 짝이 없는 그 여인은, 이불까지 덮어주면서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머 리 속으로 파장을 전해왔다. [아직 쉬어야 합니다. 누워 계십시오.] "난 다 나았어! 이봐앗! 뭐하는 거냐고!" 이내 다시 유령처럼 스르르 사라진 인형을 보고서 하라는 멍한 표정을 지었 고, 히드레안은 히죽 웃으면서 침대 위로 걸터앉았다. 하라는 움찔하면서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지만 히드레안이 이 기회를 놓칠 소냐. 가볍게 그 의 위로 올라타고는 팔목을 무릎으로 꽉 내리 눌러버리곤 꽤나 상쾌한 미소 를 띄었다. 아마, 아까의 불쾌감이 순식간에 날아간 듯한 표정이라고 생각하면 맞을까. "...뭐...뭐야! 설마 아무리 변태색골에 음흉한 마왕이라고 하지만 남자도 건드릴 건가!?" 히드레안은 잠시 생각을 하는 듯 하더니 생긋이 제법 다정하다고 생각되는 미소를 지었다. 물론...하라의 눈에는 악마가 계약자 걱정해 주는 듯한 표정으로 보였을 뿐 이지만... "아아, 근친상간은 아직 못해봤는데 이 기회에 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군." 어느새 하라를 자신의 아들로 인정해 버린 히드레안. 뭐 원래 제멋대로니까 굳이 신경 쓸 필요는 없지만, 하라는 새빨갛게 얼굴 을 붉히면서 바락 소리를 지르면서 대들었다. "웃기지마! 너 따위에게 당할 거라면 차라리 혀를 깨물어 버릴 거다!" 이게 무슨 시대극인줄 아는가. 혀를 깨문다고 곧바로 죽는 것도 아니고 쇼 크사 할 확률은 그럭저럭 높지만 혀를 깨물게 놔 둘 정도로 멍청한 수준인 히드레안이 아니었다. 하기야 혀를 깨물어서 사망했다고 쳐도 시체도 강간 할 수 있을...말이 왜 이렇게 됐을까. "..." 히드레안은 순간 미소를 지우고 물끄러미 하라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빛 이 너무 진지해서 한순간 하라마저도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고 굳어 있었 고, 히드레안은 잠시 그렇게 바라보더니 천천히 몸을 일으켜서 다시 침대에 서 내려섰다. "...빌어먹을...역시 너 기분 나빠." 히드레안은 반쯤 얼굴을 가리고선 고개를 휘휘 저었고 영문모르는 하라는 그저 약간의 안도와 많은 의문, 그리고 엄청난 불쾌감으로 반쯤 몸을 일으 켰다. "그렇게 말할 자격이 네 녀석에게 있어!?" "없을 이유는 또 뭔가." 히드레안은 완전히 미소를 버리고 하라를 노려보았고, 그 살기에는 조금도 주춤하지 않으면서 하라는 이를 악 물고는 외쳤다. "넌...! 넌 어머님이 돌아가실 때에도...! 아니, 수도 없이 많은 장난감이 고 별 생각 없이 건드렸다고 해도... 그분은 내 어머니셨어! 난 널 절대로 용서 못해! 어머닌 널 만나지만 않았더라도 행복하셨을 거라고! 빌어먹을 마왕!" 정말로 하라의 눈에는 이글대는 원망이 가득히 담겨져 있었다. 그것은, 흔 히 말하는 한-한이라고 부르는 것과도 닮아 있었다. "얼씨구, 아에 소설을 쓰는군." 히드레안은 가당치도 않다는 듯이 눈을 가늘게 뜨고는 짧게 비웃음을 날렸 다. 다시 발갛게 얼굴이 상기된 하라는 침대에서 상체를 완전히 벌떡 일으 켜서 외쳤다. "넌 모르겠지! 하지만 인간에게 애정이란, 사랑이란 게 그렇게 간단한 거라 고 생각해!? 애초에 잠깐의 장난이었지만...어머니는...어머니는 끝까지..." 이를 악물고 있었지만, 그리고 있는 대로 인상을 찌푸려서 막고 있었지만 언뜻 그의 눈에서 눈물이 비쳤다. 하지만 히드레안은 더없이 차가운 표정 으로 한번 비꼬아 주었을 뿐. "시끄러운 녀석...고작 그딴 것 때문에 이런 바보짓을 한 거냐?" "개자식...! 바보짓이라고 하지마! 널 죽이지 못하는 게 지금의 한이다!" 청아한 바다가 흔들대며 물기로 젖어서 희뿌옇게 흐려진다. 아릿하게, 아 릿하게. 더없이 깊이 가라앉는 폭풍전야의 바다처럼. 히드레안은 투명하 게 굴러 떨어지는 물방울들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더이상 입을 열면 네 몸을 나도 책임 못 진다." 그리고 히드레안은 거친 소음을 내고는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 ========= 음, 개인적으로 ^^; 이 챕터를 쓰면서 가장 고민한 것은.... 히드레안님이 '정신나간' 장면을 어떻게 쓰느냐...하는것...ㅜ.ㅜ;; 되도록이면 즐거운 마음으로~레리즈! 하고 있지만...쿨럭.... 힘들군요. --;;; 나머진 내일 올리지요. 학원재수강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왠지 피곤합니다...ㅠ_ㅠ 마왕 이야기-169 피는 물보다 진하다-6 따뜻함. 푸르게 바다 같은 미소가 물결친다. 그것은 기억하고 있는 따스함이었다. - 뭐든지, 네가 원한다면...내 목숨마저도, 모두 주겠어... 누구의 목소리? 아까 들었던...그 녀석의...낮은 저음. 매달리는 듯한 소 리 같다. 하라는 메스꺼운 속을 잡고는 그 들려오는 낮게 속삭이는 목소리 에 몸부림치려 했다. 하지만 압박하는 힘이 너무 강해서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 아아 그래...나를 가져라.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목소리와 함께, 강하게 끌어당기는 힘이 느껴진다. 숨막힐 정도로 압박하는 공기. 모든 것을 다 흡수해 버리는 듯한 느낌의, 무저갱. - ...세인트의 핏줄! 망할 루트라의 가문! 그 똑같은 푸른빛으로 날 유혹하지 마! 화가 난 목소리. 그는 그렇게 소리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당황한 듯한 느낌을 더 강하게 풍기고 있었다. - 누구인가. 나의 안식을 깨우는 자. 절대적인 어둠을 내포하고 있는 음울한 목소리. 나른한 듯한 그 목소리가 들려오고, 세상은 부드럽게 물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빙글빙글 도는 의식의 나락 속에서, 하라는 다시 깊이 잠으로 빠져들었다. "사랑은 길들여지지 않은 새. 날아와 있다고 안심하긴 이르지. 손을 내미는 순간, 휘익 날아가 버릴걸." 흥겨운 느낌의 곡조, 흔히 음유시인들이 부르곤 하는 싸구려 사랑노래였 다. 하지만 그 목소리가 너무도 곱고 청아했기에, 또 그 음색이 멋졌기에 누구라도 한번 듣게 되면 고개를 절로 돌릴 수밖에 없을 정도로 만들었다. 하지만 피곤하고 졸린 하라에게는 몸을 일으킬만한 기력이 남아있지 않았 고 그냥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 갔을 뿐이었다. "새장 안에 사랑을 잡아두었다고, 단단한 새장이라도 안심하긴 이르지. 기쁨에 젖어 행복하기엔, 너무 일러." 흥겨운 곡조에 딱, 딱하는 어딘가를 두드리는 소리가 리드미컬하게 박자를 맞추고 있었다. 경쾌하고 기분 좋은 곡조. 아름다운 여인이 정열적으로 춤을 추기에 어울리는 듯한 빠른 박자를 지닌 곡. 싸구려 노래라고 보기에 는 정말로 잘 만들어져 있었다. "먹이를 주려 문을 연 순간, 언제 그 푸른 날개로 살며시. 저 바닷빛 하늘로 날아가 버릴지 모르니까. 사랑, 사랑...하지만 사랑은. 잡을 수 없는 변덕스런 바람의 따님. 손에 쥘 수 없어. 품에 안을 수조차 없지. 포기하고 고개를 돌려도, 눈 돌리면 곁으로 날아오는, 눈앞에서 감미롭게 지저귀는 작은 새!" 음색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다. 밝고 경쾌하던 음색이 약간 음이 낮아지 는 것만으로도 슬픈 멜로디로 변해갔고, 하라는 누구인지는 몰라도 정말 굉 장한 실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기분 좋고 나른하게 만드는 이불 의 촉감만큼이나 감미로운 목소리. "아, 하지만 사랑이란 것은. 그렇지만 사랑은 길들여지지 않은 새. 어느 날 높이 울곤 창공을 날아가 버릴걸. 아무리 아름다운 새장도, 녹을 듯 달콤한 손길과 치장한 나뭇가지도. 말해두지만, 눈 앞에도 나타나지 않을 거야. 사랑, 사랑...사랑은 자유로운 새. 바람의 따님인 그녀를 길들일 수 있는건 아무 것도 없지. 언제나 화급히, 화급히. 뒤를 따라야 할뿐. 하지만 날개를 꺾을까? 꺾여진 날개를 가진 사랑은, 더 이상 사랑이 아니지. 사랑, 날개를 가진 작은 새. 길들일 수는 없어, 길들여지지도 않지. 유혹도 통하지 않아, 그 어떤 감미로운 구애도. 그렇다면, 할 수 없지 귀여운 작은 새." 음색은 절정으로 이르러갔다. 저런 고음을 소화할 수 있는 음유시인이 과 연 몇이나 될까, 하라는 점차 그 목소리의 간절함에 눈을 비비고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업무시간 때문에 새벽 6시면 기상하는 게 버릇이 돼서일지도 몰랐다. "하염없이 너의 날개짓을 바라보며, 혹시라도 네가 그 작은 날개를 쉴 때. 잡히지 않은 걸 알면서도 손을 내밀 수밖에. 미류뉴 민 라엔, 피르넨 트라비에네... (작은 내 연인, 푸른 새 아가씨...)" 눈을 뜨고 그가 노래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거기엔 향로를 통통 치면서 장단을 맞추면서 노래를 막 끝내고 있는 카인의 모습이 있었다. 하늘하늘한 푸른 실크 커튼 아래에 앉아서 향로를 가지고 장단을 맞추고 있 는 그의 모습은 의외로 상당히 귀여웠다. 짧게 잘려서 앞머리만 살짝 늘어진 흰 머리카락. 이마를 가리는 은제의 링, 그리고 커다랗고 맑은 보라빛의 눈동자. 묘하게 핏기 없이 파리한 입 술이, 어디가 아픈 것처럼 보이지만 그는 아마 다른 사람보다는 배는 건강 하고 튼튼할 것이다. 카인은 해사하기 그지없는, 접대미소로 치자면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 울 정도로 완벽하고 매력이 넘치는 미소를 지으면서 하라를 바라보았다. 남자인 하라라도 솔직히 말해서, 그 미소에는 약간 얼굴이 붉어지는 게 어 쩔 수 없었다. "안녕히 주무셨는지? 하라 님. 아, 하라라고 불러도 되죠?" 말해놓고 허락을 구하는 폼이 사뭇 진지해서 하라는 멍청하니 고개를 끄덕 였다가 어제(그는 아직 이 성에 시간관념이 없다는 것을 모르는 모양이다) 그에게 사망 직전까지 몰릴 정도로 아슬아슬한 타격을 받았던 것을 떠올리 고는 '앗!'하고 소리를 냈다. "어제 일을 가지고 뭔가 따질 거라면, 음...외상은 없었잖아요?" 누가 생각해도 어설픈 변명을 내놓으면서 카인은 결코 밉지 않게 생긋이 웃 었고, 하라는 그의 미소에 도대체 대놓고 뭐라고 할 수 없어서 그냥 한숨 을 내쉬면서 침대에서 기어 나왔다. 방안은 딱 좋을 만큼 안온한 공기가 흘렀고 밤새 피우기라도 했는지 아직도 약간 은은하게 향이 떠돌고 있었다. 무슨 향인지는 몰랐지만, 머리가 맑아지는 것을 보니 나쁜 물건은 아닌 듯 싶다. 그렇지만 그래도 미심쩍어하면서 하라는 몸을 일으킨 후 잠시 주변을 바라 보았다. 어제의 그 여자가(인형이) 또 끌어다 놓지 않을까 해서였지만, 카 인은 그런 하라의 걱정을 덜어주기라도 하듯이 싱긋이 웃으면서 대답해 주 었다. "어제 그 인형이라면, 저기 구석에 있어요." 카인이 손가락으로 한쪽 구석을 가르키자 그쪽으로 하라는 반사적으로 고개 를 돌렸고 카인은 싱긋싱긋, 매우 즐거운 미소를 띄우면서 중얼거렸다. "앗, 보면 안돼는 데." ...그리고 잘게잘게 얼마나 정성을 들여서 해체했는지 뼈와 살이 가지런하 고, 내장이 정확히 양분돼 있으며 눈이 원형을 지닌 체 빠져 나와 있는, 그 야말로 해체와 해부에 관심이 많은 마법사가 보았더라면 눈물을 흘리면서 이 '작품'에 감격해 할만한 시체가 거기에 놓여져 있었다. 다행히 피 냄새라던가 그런 것은 없었지만, 얼굴이 허옇게 질리면서 하라 는 재빨리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원망이 가득 담긴 하라의 눈을 보 면서 카인은 누가 생각하더라도 '능글맞게' 느껴지는 목소리로 변명했다. "보면 안 다고 말해드렸는걸요? 앗, 그렇게 노려보지 마세요." 하라는 카인의 미소에 저걸 그냥 죽여 말아, 하는 수준까지 다다라 있었고 카인은 키들키들 웃다가 입을 열었다. "궁금한 거, 있으시죠?" ============================================================= ========= 카인이 능글맞다는 지적을 받았는데....-_-; 사실입니다. 카인은 약간 '능글맞고' 사람 '속뒤집는' 고약한 취미의 소유자 입니다. ;; 그냥 그러려니 해주십시오. ^^; 별로 좋은 성격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음음, 그리고 이번 편에서 히드레안이 약간 좀 정신 이상적인(?) 짓을 하더 라고 꾸욱 참아주십시오. 돌은 뒷편으로, 작가 대리 인형에게....(쿨럭...) 마왕 이야기-170 앗, 벌써 170회. -_-; 200회의 고지가 이상하게 가물가물, 멀리 보이는군요. 쿨럭, 왜 그러지? ;; ============================================================= ========= 피는 물보다 진하다-7 하라는 침대에 일어나서 이불을 대충 펴고 걸터앉은 후, 입을 열었다. "물론. 세상에서 궁금한 게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 "아 실망!" 카인은 아쉽다는 듯한 표정을 과장되게 지으면서 어깨를 한번 으쓱해 보였 다. 그리곤 그는 하라마저도 질리게 할 정도로 즐거움으로 가득 찬 눈동자 를 반짝이면서 살살 꼬시는 듯한 느낌이 듬뿍 묻어나는 어조로-도대체 어 떻 게 그런 어조가 가능한지-입을 열었다. "하라 님이라면 말이죠, 제 말뜻이 뭔지 금새 알아차리실 거라고 생각했는 데...전 화이트 아르테미스 세인 루트라 3세 여황제께서, 당시 아직 황녀시 던 때에 사랑 이야기를 들려 드리려고 했는데..." 이번엔 하라가 눈을 반짝일 차례였다. 카인은 됐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 서 고개를 옆으로 토라진 듯이 팩하고 돌렸다. "듣고 싶지 않으신 것 같으니까, 그냥 관두지요 뭐." "아니야! 듣고 싶어!" 카인의 눈이 음흉하게 반짝였다는 사실을 굳이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사료된다. 카인은 금새 웃는 낯으로 바뀌어서 생긋생긋 웃으며 하라의 옆 으로 다가왔다. 그는 바닥에 편한 자세로 앉아서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말이지요...아직 화이트 황녀 님께서 철모르던 시절, 동료들과 세계를 구하기 위해 여행을 했던 적이 있었다는 것은 하라 님께서도 잘 알 고 계시지요?" 카인은 원래 수다가 심한 편이라 이런저런 잡다한 이야기며, 화이트가 여 행 다닐 때 있었던 이야기, 일행들의 모험담과 장난 어린 행동들, 그리고 여행의 대미까지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중간중간 재치 있게 말을 풀어나가 는 터라, 하라는 지루하지 않게 들을 수 있었고. 솔직히 말해서, 그도 잘 모르는 이야기들이 이것저것 들려지니까 귀가 솔깃 할 수밖에 없었다. ...단순한 바보녀석 같으니라고. "그래서 그때 화이트 님께서 거의 울듯한 얼굴로 사람들에게 사과했는데도 일행들은 하나같이 그만 도망가 버렸죠." "맙소사...! 어머니만?" "네에, 거기다 결국 화이트 님이 울음을 터트렸는데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 았다니까요?" ...너무나도 즐거운 것 같아 보이는 두 사람...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두 명의 사이에 끼어 들면 천벌 받을 것 같은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정작 중요한 사랑 이야기는 슬쩍 옆에 두고 조잘조잘 떠들면서 이 것저것 다 털어놓는 지라 하라는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시간이 없다지 만, 표현 상.) "...그래서 그렇게 됐던 거에요." "헤에..." 카인은 싱긋싱긋 웃으면서 거기서 이야기를 마쳤고, 하라는 정말 즐겁다는 표정이 되어 있었다. 이봐이봐, 한쪽은 지금 감금당한 거 맞고, 한쪽은 그 런 녀석을 감시해야하는 입장인 것을 망각한 것은 아니겠지? "그리고-마지막으로 어머니가 사랑했던..." 카인이 막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풀어놓으려고 했을 때, 방안이 싸늘한 냉 기로 가득찼다. 차마 웃음을 참지 못하고 카인은 그러나 소리 죽여서 큭 큭 웃으며 재빨리 자리에서 한바퀴 데굴 구른 후 일어났다. 아까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카인이 앉아있던 자리가 순식간에 거대 얼음기둥 으로 변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카인은 킥킥 웃으면서 재빨리 모습을 감추 었고, 히드레안은 부들부들 떨면서 카인이 아까까지 앉아있던 자리를 바라 보았다. "카인 네 녀석...! 당장 나타나라!" [싫어요-나타나 봤자 별로 좋은 일이라곤 전혀, 없을 것 같은데요? 나중에 뵈요 하라 님, 그때는 더 즐거운 이야기 거리나 가득 안고 나타나지요-] 카인은 다정한 배려와 함께 사라졌고, 화기애애하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가 라앉았다. 하라는 어쩡쩡하니 침대에 앉아서 히드레안을 바라보고 있었고 히드레안도 이 무척이나 딱딱한 분위기 속에서 냉막한 표정만 지은 체 하라 를 바라보았다. 정말이지, 둘다 지지리도 대화에는 취미가 없는지 서로 먼저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고, 결국에는 하라가 먼저 떨떠름하니 입을 열었다. "왜 온 거지? 다시는 안 올 줄 알았는데." 시종일관 반말, 히드레안은 전혀 부드러움이라곤 찾을 래야 찾을 수 없는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인간계로 돌아가야 할 것 아닌가?" "...할...말...그것 뿐?" 히드레안은 여전히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 외에 뭘 바라는 거지? 쿡...설마, 이 내가 인간처럼 '아들아' 하면서 감격에 겨운 얼굴로 널 안아주기라도 해야 하는 거냐? 아니면, 가지고 놀다 가 질린 여자의 생각도 안 나는 이름이나마 떠올리면서 애도해줘야 하는 거 냐?" 필요이상으로 비꼬는 히드레안의 말에 하라는 불끈한 표정을 지었다. 그 는 아까까지의 기분 좋던 표정은 어디 가고 싸늘하게 한기가 묻어나는 얼굴 로 매섭게 히드레안을 노려보았다. 이를 악 물고 있는 것이, 정말로 원한 이 가득 담겨져 있는 듯이 보인다. "많은 걸 바라진 않았어." 하라는 악 다문 입술 사이로 겨우 말을 시작했다. 그는, 혀를 깨물지 않 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만 했지만 히드레안은 별로 관심 있는 듯 하지 않았 다. "...정말로 나는, 많은 걸 바라지 않았어. 아버지가 마왕이든, 아니면 난 봉꾼이던, 도박에 찌들거나 인간이하라도 좋았단 말이다. 하지만...하지 만! 적어도 아버지라면, 아버지라면...어머니가 죽던 그 때, 그 때 한번쯤 은 와 주었어도 좋았잖아!" 하라는 어느새 일어나 있었다. 히드레안은 귀찮지만, 어쩔 수 없는 듯한 얼굴로 하라의 얼굴에 힐끗이 시선을 던지고 있었고 하라는 악을 쓰다시피 하고 있었다. "내 피를 저주해 본 적도 없어! 내 머리카락이 검은머리인 것도, 신력대신 마력으로 끓어 넘치는 이 몸도 원망하지 않아! 하지만, 넌 저주해! 애초에 그렇게 처참하게 버릴 거라면 뭐하러 끝까지 널 기다리게 만든 거지!?" 하라의 눈이 다시 맑게 흔들렸다. 투명하면서도 깊은, 아쿠아 블루 빛의 바다와 같은 눈동자가 흔들리는 만큼, 히드레안의 표정은 더 굳어만 갔다. "...네가...네가 알아...?" 결국, 하라는 주륵하고 투명한 눈물을 흘리면서 힘없이 중얼거렸다. 무력 한 자신이, 지금 이 순간 검을 들어 히드레안의 저 가늘고 흰 목을 칠 수 없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네가...아냐고...마지막까지 어머니가 부른 이름은...너...였단 말이 야...! 내 손을 잡고서...그렇게 처연한 미소로...날 보고..." 흐느끼고 있는 그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이 점차 늘어나고, 눈앞이 뿌옇 게 되서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것인데도 불구하고 하라는 계속해서 말 을 이었다. "날 보고...만약에라도 그가 늦거든 전해달라고...혹시라도 늦거든 전해달 라고...사랑하고 있다고...그렇게 전해 달라고..." 히드레안은 신경질 난다는 듯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그래서, 그게 무슨 상관인가." 너무 차가워서 순식간에 주변을 얼려버릴 듯한 냉기가 그에게서 흘러나왔 다. 히드레안은 싸늘한 표정으로 하라를 바라보면서 짧게 말했다. "사랑한다는 말을 내가 들어줬으면 된건가? 뭐 가지도 않았으니 상관없겠지 만?" "개자식..." 빠득, 하고 이를 갈면서 하라는 듣기에도 소름끼치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 렸다. 숙인 고개에서는 아직도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히드레안은 상 관없다는 듯이 말을 이었을 뿐, 일말의 여운도 없었다. "인간계로 돌아가는 문을 알고 있다면 직접 나가라. 모르고 있다면 내가 보내주지." 여전히 차가운, 그의 말이었다. ============================================================= ========= 히드레안=끝까지 사악한 녀석 이 공식이 끝내 마왕이야기에서 통용되서 기쁘기 그지 없습니다. 하지만...-_-; 뭐, 히드레안님이 약간 정신 이상적(?)면을 보이는 그 장면까지. 자까는 한발한발 다가가고 있습니다아아앗~! 마왕 이야기-171 피는 물보다 진하다-8 하라는 그리고 처음으로 그녀를 원망했다. 강했던 그녀, 누구보다 강했던 그녀. 누구보다 강한 신성력과 다정함과 위 엄, 그리고 빠른 상황판단력과 자애심.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던 아르미안 의 성녀. 신을 그 몸에 강림시켰던 여인. 이제 전설이 되어가고 있는 세계를 멸망의 위기에서 구했던 네 명의 용자 중 한 명. 신에게 선택받은 운명을 지녔던, 아름답고 고귀한-그 말이 누구보다 어울렸 던 그녀. 당당하고 기품 있는 그녀의 미소, 행동, 말투. 엄격하지만 자애로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한 그녀의 눈빛. 한번도 원망한 적이 없었던 어머니를 처음으로 하라는 원망했다. 왜 그녀는 그런 사랑을 했을까. 보답 받을 수 없는 사랑, 알아주지도 않는 사랑.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바보처럼...그렇게 와주지도 않고 기억조차 해주지 않는 이를 기다렸던 여자. 신의 것이면서 어둠의 것을 사랑해 버린, 그래 서 나 같은 쓰레기 사생아를 만들어 냈던... 그렇지만, 누구보다 순결했던 여자. 하라는 울었다. 울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을 잊으려고 울었다. 하지만 잊혀지기는커녕 너무나도 선명하게 각인 할 수밖에 없었다. 32, 결코 많 지 않은 나이. 그녀는 신을 강림시켰고 인간의 몸으로 마왕의 아이를 낳았 다. 하얗고 가는, 말라서 생기 없는 손이지만 그래도 빛나고 있는 손으로 하라 의 손을 쥐고, 그녀는 웃고 있었다. 푸르게 흩어진 머리카락과 창백하게 드리워진 죽음의 그림자... 하지만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살짝 웃으면서 말했다. '혹시라도...너무 늦게 오거든...네가 대신 말해주련? 화이트는 끝까지 사 랑했다고...당신만을...' 화사했던 미소. 처음 보는 어머니의 친구라고 불렸던 사람들. 하나같이 슬픈 얼굴로, 어떤 이는 무표정하게, 어떤 이는 눈이 녹아버릴 듯이 울면 서, 어떤 이는 신을 원망하며...그렇게 그들은 화이트를 보냈다. 하지만, 아직도 기억한다. 해가 질 때까지, 해가 지고 또 질 때까지. 혹시나 하며 마음 졸이면서 가 장 높은 성루 위에 서서 그렇게 새벽이 밝아올 때까지. 그는 오지 않았다. 사랑한다는 말을 받았어야 했던 이는, 오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그는 영원히 그녀의 곁에 오지 않을 것을 하라는 깨달을 수 있었다. 영원이라는 말이 과연 성립될 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하라는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를 죽 일 수 없는 나약한 자신에게 비난을 퍼부으면서 그렇게 울 수밖에 없었다. 미노는 심각한 얼굴을 한 체로 히드레안을 노려보았다. 물론 히드레안은 가당치도 않다는 표정으로 그런 미노를 무시하고 찻잔을 기울이고 있었고 미노는 심각한 표정과 심각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 주인님은, 심술쟁이. "...그래?" 히드레안은 약간의 귀찮음을 담고서 대꾸해 주었고 미노는 너무나도 진지 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 그렇게 거짓말하는 이유가 뭔지 모르진 않지만, 그래도 역시 심술쟁이! 라구요. "무슨 거짓말?" 히드레안은 딴청을 피우면서 찻잔을 기울였고 미노는 다아-안다는 듯한 표 정을 지으면서 설레설레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귀엽기 짝이 없는 행동 이지만 히드레안은 슬슬 이쯤에서 두드려 패서 조용히 입을 다물게 해줄 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 거짓말이잖아요. 히드레안 님이 화이트 님을 기억 못 한다구요? 거짓말- 무엇도 잊지 못하는 위대한 시간이신 주인님이요? 솔직해 지라구요 주인 님! "뭘?" 눈만 살짝 비켜 뜨고서 모르겠다는 듯이 말하자, 미노는 애가 타는지 가슴 을 한번 콩, 하고 두드리고는 말했다. - 그러니까요! 솔직히 말해주면 되잖아요! "왜?" 미노는 생각할 것도 자시고 없다는 듯이 손가락 하나를 처억! 하고 허공에 세우더니 당당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아들이니까요! 히드레안은 무성의하게 대답했다. "아니야." 호륵, 하고 차를 한 모금 마시고 히드레안은 잔을 슬쩍 흔들었다. 미노는 뭔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눈을 깜빡깜빡 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 ...아, 아니라뇨? 카인이 그랬잖아요! 히드레안은 여전히 알 수 없는 지루하면서도 귀찮다는 표정을 지은 체 잔 을 손목의 반동만을 이용해 빙글빙글 돌게 만들어 놓고 그것을 내려다보면 서 중얼거렸다. "아니야. 녀석은 단지, 인간이고. 인간으로 살아가다, 인간으로 죽을 한 심한 존재다." 히드레안은 이번엔 잔을 반대로 돌렸고, 회전력이 가해진 차가 갑자기 거꾸 로 회전하자 출렁하면서 찻물이 요동치더니 잠시 허공으로 몇 방울이 튀겨 져 나왔다. 히드레안은 그렇게 허공을 유영하는 차의 안에 담겨져 있던 물 방울들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말했다. "난...저 녀석도, 저 녀석의 어머니라는 것도 몰라." - 주인님... 미노는 한숨을 내쉬면서 입을 열었다. - ...카인이 가만 놔둘 것 같아요? 움찔하면서 순간 히드레안의 표정도 굳었다. 미노는 어림도 없다는 듯한 얼굴로, 한쪽 눈을 살짝 찌푸리면서 꽤나 귀엽지만 악동같이 입을 열었다. - 녀석이 지금 얼마나 신났는데요. 아마도 히드레안 님이 손쓸 새도 없이 온갖 짓을 다 계획해 놓고 지금쯤 모의 실험에 들어갔을지도 모르죠? 히드 레안 님, 말이죠. 미노는 못을 박듯이 딱 떨어지는 어조로 말을 이었다. - 피는 물보다 진한거래요. ============================================================= ========= 흐음....뭔가 약간 좀 이상한 것 같지 않습니까? 눈치 빠른 분들이라면 눈치 채셨겠지만. ^-^+ 이때껏 히드레안의 '빛'들 중 마지막인 그녀.... 가장 강렬했던 빛....흐음흐음....+_+ 어떻게 이야기가 진행~될까나요~~? 뭐, 뒷통수 치기는 여전히 준비해 두고 있습니다만. 히죽... 약간의 힌트꺼리를 드린다면. 제 1편에 나왔던 '비의 궁전'에 관한 노래 기억하십니까? 후훗. -_-+ 힌트, 힌트입니다! 마왕 이야기-172 오늘은 이게 마지막이에요...-_-; 더쓰라고 해도 못쓰겠군요...쿨럭.... 피곤해애애애애애......ㅠㅠ ============================================================= ========= 피는 물보다 진하다-9 히드레안은 두 개 째의 찻잔을 깨어 먹으면서 이마에 삐져 나와 이제 터져 나올 정도로 압력이 가해지고 있는 자신의 힘줄을 꾸욱하고 눌렀다. 하지만 카인의 수다 아닌 수다는 계속되서 지칠 줄을 몰랐다. "그래서 말이죠 히드레안 님, 그때 제가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하라 님 이..." 조잘조잘조잘조잘. 아이크가 말 덜하는 것을 자기가 대신 말해 주는 의무라도 있는지, 카인은 남의 두배 가까운 말을 하고도 떠들 기운이 많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대부 분 이 '떠든다'라는 것이 다 그렇듯이, 전혀 실속이 없기는 하지만. 히드레안은 애써서 말을 이었다. "그만 떠들고 가서 할 일이나 해." "아이크가 대신해 준대요. 그래서..." 조잘조잘조잘조잘... 히드레안은 미칠 지경이 되어갔지만, 카인은 아는지 모르는지 히드레안에 게 계속 고문을 가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히드레안이 정신이 나간다 고 해도, 카인은 얼마든지 그 옆에서도 떠들 수 있는 성격의 소유자였기 에, 아무리 쫓아 버려도 소용없다는 것은 히드레안이 더 잘 알았다. 그가 이런 식으로 할말 안 할말 별 생각도 안 하고 떠들어 댈 때는, 분명 뭔가 '중요한' 이야기가 있는 거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문제는 그 망 할 중요한 이야기가, 쓸모 없는 이야기들의 중간중간 아무 것도 아닌 말에 섞여서 나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의 이 지겨운 수다를 끝까지 듣고 듣 고 또 들어야 하는 것이다. 카인은 계속 조잘조잘 떠들어 대고 있었고, 히드레안의 인내심도 이제 슬 슬 바닥을 드러낼 무렵 카인은 후우, 하고 크게 한숨을 쉬더니 말을 끝냈 다. 아, 물론 히드레안의 얼굴을 창백하게 질릴 정도로 무서운 한마디를 한 체. "그런데, 그만 실수로 하라 님이 지금 묶고 있는 방의 향로에 잘못해서 사 령(死靈)의 향을..." 카인은 생긋이 웃으면서 히드레안을 돌아보며 한마디 더 하려고 했을 때, 히드레안의 모습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카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도 행복하기 짝이 없는 미소를 지으면서 중얼거렸다. "...넣은 적 없는데." 하지만, 들어야 할 본인이 없는데 말해서 무엇하리. 키득키득 웃으면서 카인은 바닥을 데구르르 구르면서 웃기 시작했다. ... 저 고약한 성미, 장담하건데. 개도 분명히 받느니 자결할 거다. 콰앙! 문짝이 완전히 날아가 버리고 하라는 눈물이 가득히 고여서 어리둥절한 얼 굴로 문을 바라보았다. 히드레안은 들어오자마자 방안에 있는 향로는 모 두 손짓 한번으로 바닥에 구르게 하더니 약간 당황감이 담겨져 있는 얼굴 로 하라를 바라보았다. "...너...괜찮은 거냐?" 하라는 입을 열어서 뭐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잘 생각해 보라. 원래 남자 는 여자보다 눈물이 더 없고, 그래서 한번 울면 쉽게 멈출 수가 없는 편이 다. 그것도 울다 지쳐도 또 울고, 울고 또 울던 하라로서는 당연히 목이 부어서 제대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뜨거운 것이 맺혀서 목안에 답답하게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그냥 멍청하니 히드레안을 바라보다 너무 지나치게 진지한 얼굴이라서 뭔가 대답 을 해야할 것 같은 의무감에 입을 열려고 했지만, 목이 턱하고 막혀서 그 냥 목을 부여 쥘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히드레안은 무슨 오해를 단단히 했는지는 몰라도- 아 마도 카인은 이것까지 염두에 두었을 지도-이를 으득 갈면서 살벌하게 외 쳤 다. "빌어먹을! 카인 이 녀석...!!" 카인이 뭘 잘못한 거지? 하라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정작 호흡을 가다듬기에 바빴다. 속절없이 눈 물은 흘러내리고, 아무리 '남자는 울면 안돼!'라는 말이 미덕이라지만, 계 속 흘러나오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하라는 계속 울기 시작했다. "어떻게 한다...어떻게..." 히드레안이 이렇게 당황하는 이유도 다 있었다. 사령의 향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죽은 자의 향기였다. 예전에 히드레안이 별 생각 없이 향에 관한 연구를 하다가, 카인이 덜컥 만들어 달라고 해서 만들어 준 적이 있었던 것인데, 그 효과가 상당히 섬 했다. 가장 사랑하는 이가 자신을 죽이는 환상을 보여주는 향, 몽환향이 기분 좋 은 꿈을 꾸게 해주는 것을 조금 바꾸어 만든 이 기괴한 향은 천천히 흡수되 면서 몸의 감각을 마비시키고 호흡을 방해해 가면서 질식사시키는 효과도 겸하고 있었다. 호흡이 멈추는 고통에서 동시에 쾌락을 느끼며, 사랑하는 이에게 천천히 죽 어 가는 환상을 보면서... 한때는 자기도 정말 완벽한 걸작품이라고 잘난 척 했으면서 이럴 때 괜히 카인만 탓하는 그도 약간의 잘못이 있다...라고 했다가는 여러 사람에게 맞 을 것 같으니까 관두고. 어쨌든 간에 히드레안은 그래서 하라가 호흡곤란을 느끼는 거라고 생각하 고 초조하게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자신이 만든 걸작품답게 한번 걸리면 인간 및 유사종족은 결코 이 환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미리 해약을 먹 는다면 상관없지만, 하라가 그런걸 먹었을 리도 없고, 그 외의 해독법은 모 두 통하지 않도록 자기가 만들었던 것을 더없이 잘 아는 히드레안은 이제 초조에서 분노로 슬슬 넘어가고 있었다. "카인 이 녀석...절대로 가만두지 않겠어, 사지만 찢어 버리는 게 아니 라...해독제가 통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저러는지 영문을 모르는 하라만 답답한 심정이었지만, 그가 뭔 가 당황한 것이 눈에 확연히 띄였고, 그것은 아마도-인정하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은근히 싫지만, 자신 때문인 것 같았다. "큭...후후후훗..." 하라는 씁쓰레하게 웃음을 지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그렇게 냉정한 얼굴 로, 얼음 같은 얼굴로, 한 사람의 일생을 전부 아무 것도 소용없는 것으로 만들어 놓더니, 지금은 저렇게 당황한 모습이나 보여주고... 뭐가 뭔지 모를 상황에서 자포자기하고 웃으면서 하라는 이제 감각은 없지 만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았다. 꼴사나운 모습은 더 이상 보이기 싫어서 이 기도 하지만, 더 이상 울었다간 눈이 녹아버릴 정도로 진득하게 아파 오기 도 했기 때문이다. "뭐냐? 괜찮은 거냐?" "...그래...나 같은 게 뭐하러 태어난 거야..." 쉬어버려서 이제 퉁퉁 부은 듯한 목소리가 하라에게서 흘러나왔다. 아, 히 드레안의 오해는 깊어져만 가고 하라는 정말로 영문도 모른 체 중얼거렸다. "...나 같은 게...왜..." 억누른 체 흐느끼고 있다가, 하라는 결국 탈수증과 과도한 스트레스, 위염 과 뼈의 탈골과 접골이후 지나친 활동으로 인해 여러 가지 요인과 누군가 의 약간의 농간이 덧씌워져서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히드레안은 정말로 하얗게 질려서 침대에 쓰러져 있는 그에게로 성큼 다가 가 살펴보았고, 그나마 호흡이 남아있는 것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안도하면서 힘이라도 빠졌는지 약간 비틀하다가, 결국 바닥에 주저 앉고야 말았다. 천하의 히드레안이 다리에 힘이 빠져서 주저앉을 정도라... 카인은 웃음을 애써 참는 듯한 표정이 그대로 들어 나는 얼굴로 나타나서 는, 히드레안이 빤히 보는 앞에서 향로를 주섬주섬 정리했다. 얼빠진 히드레안을 앞에 두고 카인은 콧노래까지 하면서 한번 윙크해 보이 곤, 짧게 말했다. "향을...이라고 했지 '넣었다'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고요. 그러게, 말은 끝까지. 상대를 위해서라도 말이지요." 카인의 말에 히드레안은 상황이 조금씩, 아주 조금씩 정리가 되는지 얼빠진 (!) 얼굴을 하고 있다가 기가 막힌 얼굴로, 그리고 약간 미심쩍게, 그리고 나서 엄청나게 분노한 얼굴이 되서 바락 소리를 질렀다. "카인제이럴! 너 이 자식!! 찢어 죽여 버릴테다!" 하지만 벌써 향로를 다 치워놓고는 감쪽같이 도망가 버린 카인을 찾아도 있 을 리가 없지. [아아, 너무 그러지 마세요? 전 나름대로 히드레안 님을 배려-한 거라구 요. 솔직한 히드레안 님이 훨씬, 훨씬 귀. 여. 워. 요.] 물론, 훗날 카인이 어느 정도로 히드레안이 쌓인 분노를 받았던가...에 관 해 논의하는 것은 아주 훗날이 될 것이다. ...아주 멀고 먼 훗날 말이다. ============================================================= ========= 네에네에, -_-; 카인이 대활약을 하는군요.(재미있겠군...카인...; 후환만 없다면 나도..) 어찌됐건, 이야기의 실마리가 슬금슬금 풀려갈 것입니다. 후훗...^-^;; 그럼....__ 마왕 이야기-173 피는 물보다 진하다-10 인간의 일생이란, 당신이 보기엔 불꽃이고 티끌이고 순간이지만. 그대에게는 찰나의 찰나이고 잠시 스치는 것이겠지만, 나에겐 영원보다 더 긴 시간. 운명의 앞에서 뒤돌아 달아나느니, 운명을 딛고서 내가 원하는 것을 찾을 거예요. 시간은 영원하지만, 인간보다 영원하지 못하고. 세월은 거대하지만, 인간보다 크지 못하죠. 당신이 시간이고 세월이라면, 나는 당신을 뛰어넘는 존재. 순간이라도 찰나라도, 그것은 영원보다 더 긴 시간. 누구에게나 시간은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마법. 나의 시간은 이 세상의 누구보다 넘치고 아름다운 것. 이 자리에 남아서 영원한 세월을 살아가느니, 지금 돌아서서 걸어가 나의 시간 속에 더 깊이 파고들겠어요. 아름다운 당신. 손을 내밀어 주세요. 영원한 세월을 함께 할 수는 없지만, 찰나의 시간에 초대해 드리겠어요. 벽에 기대어 흘러가는 파티를 바라보지만 말고, 나의 손을 잡고 나를 중앙으로 이끌어 주세요. 짧은 곡이 끝나는 동안, 마법에 걸려 함께 춤을 춰주세요. 시간이 나를 유혹하지만 그래도 나는 인간. 인간일 뿐이랍니다. 연약하고 힘없고, 찰나 밖에는 존재하지 못하는 화려한 불꽃이라도. 나는 아름답답니다. 순간이라고 할지라도 타오르는 나의 불꽃은 무엇보다 아름답고, 그렇기에 시간도 나보다 아름다울 수 없지요. 그것은 내가 인간, 이 세상 무엇보다 강렬한 존재라서 이랍니다. 아름다운 그대여. 나와 함께 걸어가 주세요. 같은 시간을 살아갈 수는 없겠지만, 그대의 시간을 내 시간으로 감싸안겠어 요. 사랑해요. -화이트 아르테미스 세인 전기. <그의 말> "솔직해 지라고?" 히드레안은 반문했다. 허공에다 대고 인간처럼 혼잣말을 한다는 것은, 왠 지 바보스러운 일이었지만 히드레안은 자아마저 혼란한 상황이었다. 자신 에게 대한 물음을 입 밖으로 내지 않으면 상황을 정리할 수 없을 정도로. "뭐라고 말하라는 거야?" 히드레안은 주저앉아서 침대에 기댄 자세로 중얼중얼 거리고 있었다. 천하 의 마왕이라는 그가 저렇게 있으니 상당히 궁상맞아 보이지만, 그래도 나름 대로 제법 멋지니까 그냥 내버려두도록 하고, 어찌됐건 히드레안은 긴 머리 카락을 쓸어 넘기면서 중얼거렸다. "바보 같은...차라리 아무 것도 알려주지 않았던 것이 나았을 것을..." 히드레안은 살짝 고개를 침대 쪽으로 돌렸다. 카인의 농간이 약간(?) 들어 가기는 했지만 그래도 자신을 그렇게 생고생을 시켜놓더니 속 편하게 퍼자 고 있는 녀석의 얼굴이 들어온다. 은근히 신경질 나는 저 뻔뻔할 정도의 무신경-그것이 자신을 닮은 것이라 할지라도-히드레안은 불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누가 이딴 녀석, 보고 싶어할 줄 알았어? 웃기지 말라구 화이트!" 괜히 신경질을 내면서 자신에게 큰소리치고 있는 히드레안이었다. 그리고 거짓말 한 것이 몽땅 들통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이름도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는 여인이라고 해놓고서 흐음, '화이트'라. 무척 다정하고 부드러운 어조가 드는 이름이 아닌가? 역시 히드레안은 솔직하지 못한 어린애일 뿐...더 뭔가 말했다가는 위험할 수도 있으니 넘어가도록 하자. 히드레안은 혼자서 그렇게 말해놓고 또 혼 자서 입을 다물고는 하라를 내려다 보았다. 울어서 발갛게 된 눈가며 아 직 16정도 밖에는 안되어 보이는 앳되다 못해 어려 보이는 얼굴. 28살이라 는 인간의 나이가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그의 모습은 어렸다. 핏줄 탓, 마력 탓, 그리고 뒤섞인 유전의 잔재. 신성국가라는 울타리 안에서 계속해서 유전되고 섞이고 근친상간과 '교 배'라는 것을 통해 태어났던 계약자들의 핏줄에 섞여 들어간 자신의 피가 아닌 피. "...하지만..." 히드레안은 물끄러미 하라를 내려다보면서 중얼거렸다. "네 눈동자는...왜 바닷빛이지...?" 그제서야, 히드레안은 겨우 손을 내밀어서 하라를 쓰다듬어 보았다. 처음 엔 아주 조심스럽게 손끝만 살짝 대었다가, 이내 살금살금 소리나지 않게- 손 얹는다고 무슨 소리가 나겠는가만-머리를 쓸어 내렸다. 결이 좋은 부드러운 감촉, 희미하게 남아있는 온기. 방안의 향이 배어들 어 좋은 향기가 나고 있었다. 물끄러미 그런 하라를 내려보고 있는 히드레 안의 얼굴에는 왠지 모를 씁쓸함과 애달픔이 조그맣게 교차하고 있었다. 물론, 아주 자세하게 쳐다보아야 겨우 조금 보일까 할 정도의 표정이었지만. 언제 이렇게 컸을까, 하는 생각이 불쑥 히드레안의 머리 속에서 솟아 올랐 다. '...거짓말. 이게 내 아이라고?' 빨갛고 조그맣고 쪼글쪼글하고, 실험실에서 자주 보던 발육과정의 중간쯤으 로 보이는 괴 생물체를 바라보면서 히드레안은 있는 대로 눈살을 찌푸렸 다. 징그럽다 못해 괴상하게 생겼다. '아직 태어 난지 얼마 안돼서 그래요...눈도 못 뜬 아기한테 벌써부터 그러 기에요?' (P.S - 현대에서는 인큐베이터에 넣어 키우지만, 옛 시절에는 갓난아기를 그대로 공기 중에 노출했습니다. 그래서 유달리 아이들의 사망률이 높았지 요. 생후 일주일도 안된 아이는 징그러운 원숭이 같습니다.) '...못생겼어...' 히드레안은 불만스레 투덜투덜 거리자, 그녀는 조용히 미소 지었다. '아이는 금방 크는 걸요. 우리 아가 눈동자도 아빠랑 같은 검은색이겠지?' '...놀리는 거지?' '머리카락도 같은 색일 거야, 코도 눈도 입도 전부 아빠를 닮아야 된다-지 금도 닮았지만' '감히 날 놀리는 거냐!?' 바락 소리를 질러봐도 끄덕도 없는 그녀, 그저 아이를 품에 안고 환히 웃 고 있을 뿐이었다. 아이는 아버지에게 처음으로 질투를 느낀다고 했던가, 솔직히 말해서 아버지가 소외감이 더 드는 게 현실이다. 히드레안은 소외 받은 듯한 느낌이 들어서 잔뜩 인상을 찌푸렸다. 생각 같아선 저 괴생명체를 조용히 바닥에 내팽겨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자아, 만져봐야죠.' '싫어, 누가 그런 못생긴 걸...' '우리 아기는 아빠랑 꼭 닮아서-' '만진다니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히드레안은 혹시라도 아이가 깰까 조심스레 손을 내 밀었다. 조심스레...살짝. 그때 다았던 느낌, 부드럽고 따스하던...따스 한 온기와 함께 살아있다는 강한 응집력... "...못생겼었는데." 히드레안은 하라가 확실히 잠들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멋대로 중얼 중얼 거리면서 그의 머리카락을 이제 거의 헤집고 있었다. 자신의 머리가 아니면 만지기도 싫어하는 그지만, 하라의 머리카락의 감촉은 히드레안의 것과 거의 비슷했으니까. "...정말 작았었는데." 히드레안은 이제 침대 가에 턱을 기대고 앉아서는 빤히 하라를 바라보았 다. 자신과 닮았지만, 동시에 그녀와 닮았다. 눈동자뿐만 아니라, 말하 는 것도 행동하는 것도 잘 울고 잘 흥분하는 것도... "그렇게...크지 않을 줄 알았는데..." ============================================================= ========= 쿠쿡. 난 몰라요. -_-+ 어느정도 다들 짐작하셨다면, 아아~그렇구나. 하시길. 뒷통수 맞는건 저도 몰라요. 랄라~ 마왕 이야기-174 피는 물보다 진하다-11 카인의 농간이 어쩌면 잘 먹혀 들었는 지도 몰랐다. 히드레안은 반쯤 포기한 체 하라의 옆에 앉아서 혼자 심심함에 겨워 혼잣말 을 하는 것을 즐기고 있었다. 그가 일어날 때까지만 있다가 갈 생각으로 말이다. "이상한 일이지. 인간으로 크도록 에테르 체를 응집해서, 조심스레 넣어두 었는데...태어날 때도 인간으로 태어나더니, 정작 육신의 성장은 왜 이렇 게 느릴까. 잘못 만들어 진 걸까...왜 너는, 나와 같으면서도 다른 거지?" 완전히 똑같았다면. 히드레안은 가차없이 죽여버릴 생각이었다. 언젠가 찾아 올 것을 알았 다. 언젠가, 나누어진 자신이기에 공명하리라는 것도 알았다. 에리나쟈드가 나를 만들어 시오를 속였던 것처럼, 같은 방법으로 만들어 냈 었는데, 인간의 육체에 잠시 넣어두었다는 것만을 빼고는 모든 것이 똑같 은 상황이었는데. 결과는 판이하다. 모습도, 행동도, 모든 것이 점점더 멀어져 가는 듯한 느낌. 같지만 이질적인, 예측할 수 없는 행동. 은연중에 묻어나는 '그녀'의 잔 재... "이상해..." 분신, 클론, 또는 만들어진 인형. 많은 단어들이 사용될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 어찌됐건 그는 다른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그것은 확연히 드러나는 상황이다. 에리나쟈드처럼 감상 에 젖을 생각은 조금도 없었기에, 죽여버릴 생각이었다. 잊었다고 애써서, 나타나지 않으면 부여한 '수명'이라고 볼 수 있는 시간 을 제 멋대로 살도록 내버려 둘 생각이었던 관심이 없었던 아바타. 기분 나쁘다고도 느끼면서도, 왜 죽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 히드레안은 자문해 보았고, 대답을 구해 보았다. 하지만 대답은 나지 않았고...히드레안은 뒤척이며 그가 일어날 기미를 보 이자 조용히 몸을 일으켜 스러졌다. 천천히 옅어지던 그의 몸은 나풀대는 커튼의 흩날림 이후 완전히 사라졌고, 하라는 잠시 뒤척였다 흩날리는 검 은 그림자를 보곤, 다시 깊히 잠으로 빠져 들었다. - 카인...죽으려고 그랬지? "전혀, 전-혀!" "죽어도 싸지만, 난 끌어들이지 말아줘." "우린 영혼이 공유된 사이잖아 아이크! 그렇게 매정하게 말하지마! 내가 아 프면 너도 아픈 거라고!" 아이크는 찻잔을 휘익하고 집어 던졌고 카인은 사삭 피하면서 받아내는 묘 기까지 부리면서 밉살스럽기 짝이 없는 '받아냈다'는 과장스런 표정을 취 해 보였다. "이 자식! 그래서 싫다는 거야!" "...아아, 애정이 식었어. 예전엔 그래도 날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 다고 말해주던 너였잖아..." - 누구라도 네 녀석의 본성을 알면 남아있던 '정'이란 단어는 모두 사라질 걸. 미노는 카인의 페이스에 말려들어서 결국 히드레안이 무슨 짓을 저지를 지 모른 체 그저 한숨을 쉬고는 찻잔에 차를 부었다. 그리고 그의 앞에 히드 레안이 나타났고 미노는 잔을 내밀었다. 히드레안은 홍차 잔을 잡고는, 길 고 원형으로 만들어진 쇼파 위에 걸터앉았다. '차를 부었다' 와 '그가 찻잔을 잡았다'라는 것은 연결될 수 없는 것이지 만, 사실 이 공간상에선 드문 일도 아니었기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 았지만 평범한 상황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마법사들의 토론거리 되기 딱 십상인 일이었다. "...카인." "네, 히드레안 님." 카인은 싱긋이 웃으면서 기대로 가득 차 초롱초롱 빛나는 눈동자로 히드레 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겁이 없는 건지, 단순한 건지, 도통 종잡을 수 없 는 성격이지만 정확한 것은 그가 무척 즐거워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 ....정말이지 위험하고 두렵기 짝이 없는 성격이다. 히드레안은 무시무시 한 살기를 내뿜으면서 카인을 향해 입을 열었다. "감히 날 가지고 장난을 치다니...각오는 되었겠지?" "제가 어디 그런 게 한두 번인가요? 아하하하하핫..." 상쾌한 저 웃음, 정말이지 사람의 기가 질릴 정도로 태평한 성격. 카인은 살짝 윙크해 보이면서 아이크의 뒤로 숨어들었다. 파작, 결국 컵은 소리 도 없이 깨어지고 히드레안은 이마에 튀어 오른 핏줄을 억지로 억누르느라 손끝이 떨릴 지경이었다. "카...인...제이럴..." "거기다 전 어디까지나 히드레안 님을 위해서 그런 거라구요." "말 돌리려고 하지 마라!" 히드레안은 바락 소리를 질렀지만 카인은 애교성이 듬뿍 담긴 화사한 영업 용 미소를 한번 지어 보였고, 그 반짝임과 투명함에 다들 잠깐씩 다른 생각 을 하게 만드는 것. 정말이지 궁극의 필살기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다른 거에요. 하라 님은 히드레안 님의 아드님인 동시에, 그녀의 '아 이'이기도 하니까요." "...무슨..." 은근히 속마음을 찌르는 그의 말. 정말이지 말로 카인을 당할 수 있는 존 재란 없을 것인가. "인간을 너무 얕보시면 안돼지요 히드레안 님. 그들은 명색이, 신들이 창 조한 가장 불완전한 존재이고 찰나의 아이들, 인간들에겐 이런 속담이 있다 죠?" 손가락 하나를 까닥이면서, 카인은 히드레안의 주의를 돌리는 데에 성공해 버렸다. 오오...과연. 최강은 결국 카인이란 말인가?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 그리고 카인은 날아온 두 번째 컵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히드레안은 신경 질이 잔뜩 날대로 난 얼굴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결국 넌 날 속였고 널 내가 가만두지 않을 거라는 거 다!" "아앗, 그런 사소한 문제는 넘어가요-" "중요한 거야!" ...행복한 하루, 행복한 인생. 아아...정녕 마왕성에 행복은 오지 않을 것인가? ============================================================= ========= 달려라 달려....-_-; 연재 완결의 그 날까지... 렛츠고! 렛츠고 고고고! 오늘은 2편만 올리겠습니다. __; 연재율 저조에 느는 것은 한숨뿐.... 마왕 이야기-175 피는 물보다 진하다-12 "짜안, 식사랍니다-!" 경쾌한 카인의 목소리, 미노는 바락 소리를 질렀다. - 넌 왜 따라오는 거야! 이 문제덩어리얏! "아앗, 너무해 미노. 사실을 그렇게 적나라하게 드러내다니." - 이놈이! 하라는 멍청하니 앉아서 그런 둘이서 신나게 말을 주고받으며 약간의 마법 과 격렬한 폭력이 뒤섞인 장난을 치는 것을 바라보았다. 카인은 주로 말 을 하는 쪽이었고, 미노가 주로 마법난사를 하고 있는 쪽이었으나 둘 다 진 짜로 할 생각은 없는지 말은 장난스러웠고 미노의 마법은 약간씩 비켜나가 고 있었다. 하라는 멍청하니 그런 장면을 바라보다 심드렁하니 대꾸했다. "됐어, 배 안 고파. 며칠이나 지났지?" 감금...비슷한 거 당한 주제에 굉장히 고자세로 나오는 하라를 보면서 미노 는 어쩌면 저렇게 닮았을까, 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재빨리 허공에서 탁 자를 꺼내와 하라가 걸터앉은 침대 옆에 놓고, 그 위에 가져온 음식들을 놓 았다. 카인이 마지막으로 흰 꽃병과 장미꽃 한 송이로 마무리를 하자 멋진 식탁 이...물론 미노가 카인을 향해 약간의 마법을 화려하게 난사했다는 것은 변 함없을 진실이지만. - 여기에 날짜라는 개념은 없어요. 이곳은 시간의 길을 벗어나 있는 공간 의 틈이니까요... "영원한 밤뿐이지요. 그래서 언제나 식사는 저녁 식사, 밤참이 된답니 다. 유일하게 밤참을 먹어도 살이 안찌는 곳이라고나 할까요." - 카인 네 이 녀석! 성의 품위 떨어뜨리는 짓 하지맛! 바락 화를 내는 미노를 향해 카인은 여상스레 윙크해 보이면서 회피했 다. ...뭔가 굉장히 강하다 카인...하라는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다가 피 식, 하고 웃었고 미노는 싸움을 그만 두고는 재빨리 하라의 안색을 살폈다. - 저어, 어디 불편하신 거 있으시면... "없어. 그리고 불편한거 있다고 해결해 줄거야?" - 물론 이 성안에서라면 뭐든지...! "그럼 히드레안 죽여줄래?" 미노는 창백하게 굳었고 하라는 코웃음을 쳤다. 정말이지, 부자가 똑같이 성격파탄이고 죄없는 미노를 괴롭히는 것을 저리 좋아할까. 핏줄의 힘이 란 정말이지 무서운 것일지도 모른다. "...죽여드릴까요?" 카인이 갑자기 엉뚱한 소리를 하자 미노는 빼액하고 소리를 질렀다. - 그전에 너부터 죽엇! "아이, 미노는 참..." 부끄러워하면서 어깨를 탁 치려고 하는 척 하며 카인은 가차없이 미노를 허 차원으로 밀어 넣었다. 공간이 갑자기 쭉 찢어지고 그 구석으로 빨려 들어 가며 '저주할 거야아아아아 카이이인!'이라고 외치며 사라지는 미노를 바라 보던 하라는 저도 모르게 식은땀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하라 님 식사 안 하실 건가요? 이 성에서 생활하려면 완전히 규칙적이던 가 완전히 나태하던가 둘 중 하나밖에 없는데." "...카인...?" "네?" 생긋이 웃으면서 그야말로 애교 넘치게 영업용 미소를 지으면서 대꾸하는 카인. 모든 비즈니스맨들의 모범이고 기본이며, 동시에 상인들에게 영업이 란 무엇인가를 몸으로 가르쳐 주는 산증인이었다. 하라는 그의 미소에 잠 시 움찔하며 얼굴을 붉혔다가 입을 열었다. "네가 어떤 존재란 것은 잘 알아..." "이런, 책이란 믿을 만한 것이 못되는 경우도 있는데요." "...산증인들에게 들었지. 성격은 지독하게 나쁘면서 얼굴로 모든 걸 때우 고, 비즈니스란 무엇인가를 보여주며 알려고 들었다가는 없던 것도 잃게 되 고 싸가지 없고 그것도 모자라 바람둥이에 언제 등뒤에서 칼을 내려칠지 모 른다는..." 이번엔 카인이 조금 당황할 차례였다. 하지만 애교 넘치게 웃으면서 카인 은 그저 눈을 한번 찡긋 했을 뿐. 아마도 장담하건데, 그의 전직은 백이 면 백 서비스직. "아레스다워요." "...변명 안 하는 거 보면 진짜야?" "그녀의 입장에서 보면, 진짜잖아요?" 의미심장한 뜻을 내포하고 있는 그의 말에 하라는 물끄러미 카인의 얼굴을 응시했다. 티없이 맑고 맑아서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내보일 듯한 보랏빛 의 눈동자. 하지만 얼핏보기에 맑아 보여도 실상은 빛을 반사에 두껍기 짝 이 없는 반사광으로 그 속을 철저히 가리고 있는 음울한 눈동자와 창백하 게 질린 듯한 피부색. 적당히 귀엽다는 느낌과, 동시에 아름다움이 잘 조화된 편인 얼굴. 거짓을 말하진 않지만, 진실도 말하지 않는다는 이. "...내 어머니...단순한 놀이상대...였겠지만..." 이제 체념한 듯 그의 목소리엔 특별한 감정이 실려있지 않았다. 하라는 고 요를 조금 바꾸려고 팅, 하고 탁자 위의 꽃병을 살짝 건드렸고 장미는 바람 을 만난 것처럼 흔들렸다. "별거 아닌 것이었지만...그래도...그에게 있어서...정말 아무런 의미도 아 니었어? 의미 없는, 기억할 가치도 없는...그런 거야?" "네." 딱 잘라서 말하는 카인의 어조에 오히려 하라가 어안벙벙해 질 지경이었 다. 싱긋이 웃으면서 카인은 말을 이었다. "하라 님은 이미 의심을 그쪽으로 하고 있으니 이렇게 말하는 게 차라리 속 편하시겠지요? 사실은 하나지만, 으레 그렇듯이 진실은 수십 개의 얼굴 을 가지고 있답니다. 그래서 사실을 보는 건 간편하지만 진실을 보는 건 힘들지요." 하라는 입을 꾹 다물었다. 카인은 뭔가 더 놀려줄 생각인지 눈을 반짝이면 서 말을 꺼내려다가 갑자기 하라의 손을 잡았다. 얼떨결에 조금 놀랐지 만, 그가 누구의 아들이던가? 금새 회복하고는 멀뚱하니 카인을 바라보고 있었고 카인은 씨익 웃었을 뿐이었다. "말보다는 직접 보는 게 훨씬 낳겠죠?" "...뭐?" "비의 궁전-, 어머님께서 입버릇처럼 말하던 그곳을 보고 싶지 않으신가 요?" 하라는 카인이 끌어당겨지는 대로 결국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도 미심쩍은지 재차 확인하는 것이, 역시 부자간임이 확실하게 하고 있었다. "그건...존재하지 않는 곳이라고 하셨는데?" "물론 그것은 존재하지 않지요. 현실에서는 말이지요. 하지만..." ============================================================= ========= 사실은 하나지만 진실은 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제가 자주 즐겨쓰는 말입니다. ^^a 모든 것은 결국 자귀 본위로 판단하는 법. 자신이 옳다면 그것은 옳은 것이 겠지요. 누가 뭐라겠습니까. 후후. 꿈을 믿으십니까? 동화를 좋아하세요? 다음 편은 조금 황당한 이야기로 들어가기 시작한답니다. ^^ (이 편을 쓰면서 고심을 많이 했...을리가 없겠죠? ;;) 마왕 이야기-176 피는 물보다 진하다-13 카인은 매력만점의 미소를 남발했다. 하라는 잘 모르지만, 카인이 저렇게 까지 접대용 미소를 열심히 보여주면서 유혹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뒤 에 파놓은 함정의 깊이가 깊다는 것... 도대체 몇번의 미소를 보여줬는지 생각하면 등골이 순간 오싹해 질 지경이었다. 그는 강하게 하라의 손을 이끌면서 말했다. "...이 곳은 현실이 아니거든요." "무슨 소리야!" "현실에서 시간이 멈춘 성이 있을 수 있나요?" 카인이 손을 휘익 하고 다시 잡아끌고 하라는 한 발짝 발을 내딛었다. 그 리고 그 순간, 갑자기 주변의 모든 것은 뒤바뀌어 푸른 바다와 뜨거운 태양 을 가진 해변으로 돌변해 있었고, 카인은 여전히 손을 잡아끌었다. "현실 속에 수도 없는 또 다른 세계가 그저 문으로 연결돼 있나요?" 바다 위를 걸으면서 하라는 숨이 턱 막힐 지경이었다. 물위로 갑자기 거대 한 고래가 치솟고, 그 입이 벌어진다. 뼈가 보일 정도로 넓은 입안으로 카 인은 거침없이 하라를 끌고 들어갔다. "이...이것 봐...!" 순식간에 매끄러운 봄의 들판이 되어서 푸른 하늘아래 햇살이 쏟아져 내리 고 신록이 반짝이고 있었다. 하라는 울고 싶은 기분 마저 되었지만, 카인 은 여전히 여상스러웠다. "현실 속에 봄으로 연결되는 고래의 입이 있던가요?" 툭하고 열매가 떨어져 내리고, 열매는 쑥쑥 자라 가장 크고 커다란 나무가 되더니 작은 문을 열었다. 카인은 고개를 숙이고 쏙 들어갔고, 하라도 질 질 끌려 들어가야 했다. 바닥은 시커먼 어둠. 하지만 둥실둥실 떠서는 위로 올라가면서 카인은 싱긋이 웃었다. 하라는 멋모르고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지만, 카인에겐 별 상관이 없는 모 양이다. "현실에 떡갈나무 놀이터가 있나요?"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 카인은 싱긋이 웃었다. 퍼엉하고 나무 위로 튀겨나간 두 사람은(비슷한 것) 털썩, 하고 무지개의 위로 떨어져 내렸고 무지개는 빙글빙글 춤을 추 기 시작했다. "여기는 동화라구요." "뭐야 그게 도대체! 이건 또 뭐고!" "여기는 어린아이들만의 세계라구요. 영원히 크지 않는, 영원히 그 모습 그대로, 뒤죽박죽, 원하는 것들로 가득 차 있는 세계. 꿈의 파편들로 높 게 높게 쌓아올린 탑인걸요" 카인은 쿡쿡 웃었고, 하라는 얼빠진 얼굴이 되었다. "모르시겠어요? 여기는 모든 동화 속 나라들이 다 있는 곳이란 말입니다." "...나 간다?" 하라는 최후의 카드를 내밀었고, 카인은 못 이기겠다는 듯이 살짝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크게 웃으면서 손을 활짝 펼쳤다. "현실에 이곳이 없다면, 현실에 없는 것이 이곳에 있어야 겠지요?" 퍼엉. 갑자기 축포가 터져 나왔다. 색색깔의 동물들이 옷을 입고 우스꽝스럽게 춤을 추면서 행진하고 있었고, 하라는 어느새 그들과 함께 걸어가고 있었 다. 노래, 춤, 허공을 떠다니던 날개 달린 원숭이들은 트럼펫을 불고 날리 는 꽃 종이들은 사실은 사탕조각. 기괴한 채색이 되어있는 울긋불긋한 집들, 추상적으로 쌓여져 있거나 뒤집 혀지기도 한 집들의 가운데서 그들은 춤추고 있었다. "이, 이봐...! 카인!" "보고 싶으신 가요?" "뭐가!" "보고 싶으신 가요?" 카인은 앞서서 동물들이 들고 있는 가마 위에서 하라를 내려다보면서 장난 스레 말을 걸었다. 하라는 이리저리 괴상한 동물들에게 떠밀려 가면서도 어쩔 수 없이 소리쳤다. "그러니까 뭐가 말이야!" "보고 싶으신 가요?" 앵무새처럼 말을 반복하면서도 옥타브를 높이거나 조금 말을 빨리 하는 등 의 변화로 전혀 다른 말로 바꾸는 재주를 가진 카인이었다. 하라는 결국 참지 못하고 외쳤다. "그래! 보고 싶다고오옷!" 사락대는 겨울의 앙상한 나무의 나뭇잎의 소리. 축제가 끝나고 파장하기 전에 길게 울리는 나팔 소리. 꿈꾸던 소녀의 눈썹에 부서져 내리는 햇빛의 소리. 부러진 검이 부딪치며 내는 소리. 아무런 소리도 없이 모든 것이 텅 비어졌다. 무채색, 그리고 채색. 마치 캔버스에 화가가 그림을 그려가듯이, 안개처럼 가리워져 있던 것들이 빛과 색을 찾고 노래해 가고 있었다. 그것은, 살짝 펼쳐져 있는 은빛의 안 개를 낮게 드리우고 있는 것이었다. 하늘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다. 일곱 가지 색깔의, 누가 보더라도 반짝이고 따스한 때로는 달콤한 향기가 나는 색의 비가. 새가 나무에 기대어져 있었다. 물 그림자처럼 투명하게 일렁이는 보석처 럼 화사하게 빛나는 유리같은 나무는, 투명하게 안개를 통과시켰다. 아무 것도 없는 바닥은 유리처럼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마주보고 있었다. 미끄러지듯, 오직 하늘에서 내리고 있는 비만을 비추는 매끄러운 바닥. 그 매끄러운 바닥 위에는 황금으로 만들어진 양털이 깔려있고, 때로는 은 의 모래가 사락사락, 하고 소리를 내고 있었다. 비는 내려서 모래들을 지나고 양털 위에 올라서서, 어떤 것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원처럼 올라서고, 때로는 사각처럼 되어 있고, 어떨때는 구부러진...원형 의 미가 가득히 살아 있는, 둥글고 길게 늘어선 산과 같은 성. 무지개 빛의 비로 이루어지고 은빛 안개로 치장한, 황금양털로 짜여진 땅 위에 놓여진 성. 그것은 성이라기 보다는, 성안의 작은 궁전 같았다. 티리릭 대며 보석이 궁전의 뜰에 놓인 불꽃의 분수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었고, 꽃잎들이 비와 함께 성안에서는 발 디딜 틈도 없이 수북히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도 썩지 않은 그 꽃은 온통 푸른 빛. 고개를 들자 투명한 오렌지 빛의 하늘이 그대로 보이는 일곱색의 스펙트럼 을 만들어내는 물의 천장... "밤과 어둠과 낮과 새벽..." 카인의 매끄러운 목소리가 그런 하라를 제정신으로 돌아오게 했다. ============================================================= ========= 네, 사실 '비의 궁전'이라는 시가 있답니다. 약간의 패러디(?)라고 볼 수 있지요. 아직도 그 시를 기억하고 있지요. '나로 인해 아름다워지는 그대를 보기 위해....나는 비의 궁전을 세우겠다' 대충 이런 의미의 시였는데, 정말 그 시를 읽고서 짜르르 하더군요. 그게 거의 반년전이었으니....^^a 그때 이 챕터의 기반이 잡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써야지 써야지 하면서 누가 비의 궁전을 세울만한 재력이 있을지 고민하다 가 선택된 것이 히드레안이라나 뭐라나 하는 뒷소문이...^^a 마왕 이야기-177 피는 물보다 진하다-14 "...그 어디에 있던 너를 아름답게 비춰줄 곳. 천만방울의 처음으로 대지에 발 딛는 이슬을 모아서, 오직 그 누구도 아닌 너만을 위해..." 하라는 이어지지 않는 카인의 말에, 저도 모르 게 더듬더듬 중얼거렸다. 읽고 또 읽어서 진절머리 날 정도로 계속 읽었던 구절. 귓가에 아릿하게 맴도는 한마디... "나는 이곳에 비의 궁전을, 너를 위하여... 나로 인해... 아름다운 너를 보기 위해. 나는...빛으로 둘러싸인 이곳을 만들리라..." 그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아름다움을 가진 이곳을 찬양하 는 시. 이곳... 비의 궁전. 일곱 빛깔의 비가 내리고, 황금 양털 위에 궁전이 세워지고, 불꽃의 분수에서 보석의 물이 흘러내리는...처음으로 내린 빗방울로 만들어 진... "...뭣 때문에 내게 이런걸 보여주는 거지?" 하라는 손끝을 떨었다. 아름답다. 그 외에는 그 어떤 표현도 할 수 없는 젖어들지 않는 비가 내리는 세상. 오렌지 빛의 하늘이 눈부시도록 반짝대 면서 빛을 만들어 내지만, 눈을 아프게 하진 않는... "...이게...도대체 무슨 뜻이야?" "그러니까, 그냥 하나의 진실을 보여줄 뿐이라고 했잖아요." 카인은 미소지었다. 아마도,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분명 그럴 것이다. 하 라도 이젠 느낄 수 있었다. "사실은 하나지만, 진실은 수십 개의 얼굴을 지니고 있다는 말을 명심해 주 세요. 당신이 보는 진실과 내가 보는 진실이 다르듯, 이곳이 존재한다는 진실도 역시 사실과는 다르겠지요." "뭘 말하고 싶은 거냐니까!" 카인은 키득, 하고 작은 웃음소리를 내더니 짧게 말을 이었다. "어리석은 분. 도대체 무엇을 말로 해야 한다는 겁니까?" 카인의 목소리는 장난기로 가득했지만, 동시에 정확하고 냉정했다. 그에겐 즐겁지만 하라에겐 알 수 없는 일 투성이었다. "사실은, 그들이 사랑을 했고 지금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진실도 그 렇게 말해볼까요? 하나 제가 알고 있는 것은, 진실이 말로 표현된 것을 사 실이라고 한다는 것이지요...지금 그대가 보고 있는 것이 바로 진실이 아니 고 무엇이겠습니까?" "헛소리!" 높게 하라가 외치자 출렁하고 물의 궁전의 색도 붉은 색으로 변했다. 은은 한 붉은 빛의 물길들이 흔들리면서 아름다운 색을 발했고, 하라는 외쳤다. "진실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결국 사실은 하나잖아! 행복했다 행복하지 않 았다는 기준 따위, 개인적이니 뭐니 하는 말로 가려봤자 사실은 아니라는 것쯤은 어린애도 알고 있어! 거지가 3일간 굶고 나서 사실은 배가 부르다 고 하면, 진실이 몇백 개라고 하더라도 결국 사실은 하나일 뿐인데!" "그래요, 사실은 하나지요." 궁전은 어느새 주황빛의 홍조를 띄었다. 하늘과 같은 색은 아름답게 빛을 내면서 소담스레 눈처럼 무너져 내렸고, 황금빛으로 찬연하게 빛나면서 쌓 아올려졌다. 감히 누구도 일평생 보려해도 볼 수 없는 찬란한 금빛의 성 이 하늘로 치솟아 올라가는 아름다움. 하라는 외쳤다. "이게, 진실이라고? 그래도 그 자식은 버렸어! 어머니를! 인간의 일생을 잘 알면서 멋대로 유린했다고! 왜 그렇게, 그렇게 매정할 거라면...기나긴 세월을 살아가는 존재였다면 그러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진실 좋아하 네! 그딴 건 결국 알량한 자기 위안일 뿐이잖아!" 흐느끼듯이 하라는 외쳤고, 비는 계속해서 내렸다. 솟아오른 황금빛의 아 름다운 궁전은 이제 들판과 같은 아름다운 초록빛으로 변해서 부드럽게 신 록의 향을 내었고, 새들은 아름다운 합창을 하며 지저귀었다. 은의 모래 는 사락사락, 조심스런 발걸음으로 걸어가고 있을 뿐. "말해봐! 빌어먹을! 결국 그런거 잖아? 결과가 있지 않으면 과정따위 아무 런 소용없잖아!" 카인은 대답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하라는 계속해서 외칠 수밖에 없었 다. 어느새 녹색의 신록의 성은 푸른 하늘빛의, 그리고 푸른 바닷 빛의 성 으로 뒤바뀌었고 투명한 바닥은 바다가, 오렌지 빛의 하늘은 푸른 하늘의 위에 있는 태양이 되어 주었다. "도대체 내 어머니라는 존재는 어떤 의미였냐고!" 가장 본질적인 의문. 푸른 바다성은 이제 어두운 밤의 성이 되어있었다. 부드러운 남빛은 이내 어스름한 제비꽃이 가득한 새벽으로 빛나는 성이 되 어서, 찬란하게 일곱 개의 색으로 빛났다. 비는 하염없이 내리고, 또 내리 고, 이 세상의 것이 아닌 향기를 뿜으며 불꽃의 분수는 보석들을 뿜어 올렸 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만들어진 아름다운 세계. 하지만 거기서 하라가 느끼는 것은 혼란뿐이었다. "가장 사랑하는 존재."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낮고, 맑은...그렇지만 조용하고 명확한 어조. 길게 늘어진 흰 옷자락. 로브인지, 아니면 그냥 얇은 가운인지 흰 피부를 그대로 드러내고, 푸른 팔찌와 발찌를 여러개 차고 있는 모습 그대로... 하지만 어딘가 조금 달라 보이는 그가 그 자리에서 검고 텅빈 눈동자로 하 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숨이 막힐 정도로 빨려 들어가는 그 탁한 눈동자 에, 하라의 모습은 비춰지고 있지 않았다. "네? 무슨 소리에요 그게?" 그의 눈동자에 비춰지는 것은, 어깨를 하늘하늘하니 스쳐가고 있는 한쪽으 로 묶어서 늘어뜨린 푸른 머리카락과 아쿠아 블루의 투명하고 시원한 푸른 눈동자를 지닌 16살쯤 되어보이는 호부를 늘어뜨린 사제복을 입고 있는 소 녀였다. "가장 사랑하는 존재. 그를 위해서 만든 곳이라고 했다." 무뚝뚝하게까지 들리는 어조로 히드레안은 건조하게 입을 열었고, 그녀는- 하라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그녀는 분명히 자신 을 '통과'해서 히드레안에게로 걸어갔고, 그래서 하라는 입을 열려고 하다 가 서 있는 것만으로도 힘들다는 것을 알았다. "소리내기 없기에요." "...나 지금...꿈을 꾸는...아니 마법...이건 마법인건가...?" "말했잖아요. 이 곳은 영원한 밤. 이곳은 시간과 공간도 없는 곳. 인간 들이 곧잘 그러지 않나요?" 카인은 장난스레 말하면서 하라를 뒤에서부터 끌어안고 그가 쓰러지지 않도 록 토닥여 주었다. 온기와 함께 하라는 억눌렸던 숨을 겨우 내뱉았고 카인 은 그저 싱긋이 웃으며 한마디 했을 뿐이었다. "밤은 꿈을 꾸는 시간. 이라고..." ============================================================= ========= 밤은 꿈을 꾸는 시간. 어린아이는 착하게 일찍 잠자리에....-_-; 라고 말했다간 돌 던질 분이 여럿 보이네요.... 왜 그렇게 쳐다봐유!! 나도 그래도 잔단 말이유! -_-;; 마왕 이야기-178 피는 물보다 진하다-15 피잇, 히고 잠시 볼을 부풀렸다가 소녀는 토라진 어조로 중얼거렸다. "그게 뭐에요. 이렇게 멋진데 그 사람한테만 보여준다니. 마이스터들은 다 그런건가요?" 히드레안은 여전히 별 생각이 없는 듯한, 왠지 잠에서 덜 깬 듯한 눈을 하 고서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조용히 한숨을 내쉬더니 차갑게 중얼거 렸다. 아니 낙담한 듯이라고 해야 맞을까? "...둔하군, 네 녀석." "누, 누가 둔하다는 거에요! 이래뵈도 난 눈치가 빠른 편이란 말이에요!" 하라는 자기가 생각해도 말이 안 다고 느꼈다. 히드레안이 '그녀'를 이곳 에 데려온 이유를 그냥 중간 과정 건너뛰고 대충 보는 자신도 이해할 수 있 는데, 정작 본인은 이해를 못하다니... 아니나 다를까, 히드레안은 싸늘한 비웃음을 짓더니 짧게 말했다. "...네가 눈치가 빠르면 난 사랑과 정열의 대천사장이다." "이잇!" 때릴 듯이 주먹을 휙 들어올려 보였다가 히드레안을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 보던 그녀는 확, 하고 순식간에 얼굴이 달아올라선 힘없이 손을 떨구었 다. 하라는 기가 막히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거짓말이라고 해줘. 그럴 리가 없어. 저럴 리가 없다고..." "원래 젊을 때야 사람이 좀 푼수끼가 있기 마련이잖아요?" "...으윽, 눈 버렸어. 저렇게 망가진 모습을 계속 보란 말이야?" 하라는 버둥버둥 거리면서 눈을 감으려고 했고 카인은 끝까지 봐야 한다고 강력한 행동으로 하라의 그런 '눈감고 안본 척 하기'라는 가증스러운 어빌 리티를 봉쇄했다. 히드레안은 천천히 자신의 긴 머리카락을 쓸어 넘긴 후 입을 열었다. "그럼 둔하지 않다는 증거를 보여봐라." "그거야 뭐 간단하죠! ...그런데 어떻게 보여요?" 싱긋. 왠지 걸렸다는 듯한 낚시꾼의 미소와 닮아 있다고 착각되는 미소를 지으면서 히드레안은 그녀를 움찔하게 만들었다. 이내 그 짧은 미소를 지 우고 그는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비는 한없이 내리고, 궁전은 부드러 운 소리를 내며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나의 시간으로 와라. 화이트 아르테미스 세인 루트라." 확인사살. 하라는 결국 신음 소리를 내면서 '저 바보가 어머니 일리 없 어! 이건 거짓말이야! 이건 환상이라고!'라고 외치면서 발작했고, 소녀는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듯이 눈을 멀뚱하니 뜨고 있다가 시덥잖게 대꾸했다. "시간은 다 똑같잖아요?" "...맞고 장난 집어치울 테냐 그냥 치울테냐." 결국 열 받은 히드레안은 그녀를 한 대 때려서라도 자신의 화를 풀고 싶다 는 의사를 타개했고, 당연히 그녀는 찔끔하면서 움츠러들더니 기죽은 목소 리로 종알종알 거렸다. "내, 내가 뭘요..." "얼마나 더 쉽게 말하면 알아들은 척 할 생각이지." 심각한 얼굴로 한참을 굳어서 있던 그녀는 떨떠름한 목소리로 겨우 중얼거 렸다. "...그 그치만 말이죠...음, 저기...하드라는 여자구...저도 여자잖아요? 에 그러니까 여자끼리는..." 히드레안은 기가 막히다는 얼굴이 되어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고, 새빨갛 게 달아오른 얼굴로 손끝을 만지작거리면서 우물우물 거리며 본인으로서는 아주 심각하게 뭔가 더듬더듬 작아지는 목소리로 횡설수설하고 있었다. 그리고 히드레안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그 어떤 배포 좋고 성격 좋고 이해 심 많은 남자라도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에게 같은 '여자'쯤으로 취급받는다 면 그게 좋을 리가 있겠는가. 그렇다고 히드레안이 성격이 좋나 뭐가 좋나... 하라는 중얼거렸다. "바보로군." "바보죠." 그리고 히드레안은 음울하도록 낮은 목소리로 씹듯이 중얼거렸다. "...이 내가 어디가 여자란 말이냐. 눈 똑바로 뜨고 봐라, 내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눈이 동그래져서 히드레안을 바라보다가 그녀는 너무나도 놀랐는지 말도 못 하고 입을 뻐금뻐금거리다가 겨우 정신이 든 듯, 바보처럼 큰소리로 외쳤다. "그치만 카인이 여자랬는데!" 하라는 미심쩍은 얼굴로 하핫, 하고 웃고 있는 카인의 얼굴을 흘낏 바라보 았고 이내 한숨을 쉬고는 다시 그녀를 바라본 후, 다시 카인을 바라보곤 한 마디했다. "네 탓이었잖아?" "지나간 과거는 너무 알려고 들면 안돼는 거랍니다." 얼렁뚱땅 한마디로 넘어가면서 애교 섞인 농담을 하곤 아무렇지도 않게 넘 어가 버리는 카인. 하라는 그렇지만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해 혼자 서 궁시렁 거렸다. '그치만 잘못했으면 난 태어나지도 못했을 거잖아...' 히드레안은 이제 한마디만 저 비슷한 소리하면 죽여버리겠다는 의지를 가득 히 담은 눈길로 그녀를 노려보더니 가차없이 그녀의 변명을 뭉갰다. "...결국 넌 믿었단 거잖아." "그치만... 그치만! 하드라는 나보다 팔다리도 가늘고 피부도 훨씬 하얗고 얼굴에 잡티도 없고, 또 허리도 훨씬 가는 데다가 나보다 몸무게두 적게 나 가고 키도 크고 샤프하고 목소리도 가늘고..." ...누가 듣더라도 이내 소리 지를 만한 내용을 줄줄이 늘어놓고 있는 화이 트를 향해, 아니나 다를까, 성격 더러운 히드레안은 빽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만해라! 그래 계집애 같다고 하면 되잖느냐!" 겁에 질린 소녀는 울먹, 하고 그 푸른 눈동자에 눈물을 글썽거렸다. 히드 레안은 더 혼내려고 해도 그녀가 울까봐 걸리는지 이를 으득, 하고 물고는- 진정으로 사랑은 많은 것을 변화시킨다- 애써서 한숨을 내쉬고는 천천히 다 가서서 머리를 토닥여 주었다. "나의 시간에 들어와라. 영원이라 불리는 시간동안 너에게 시간을 부여할 지니, 나와 함께 같은 시간을 존재하게 될 것이다. 운명조차 너와 같은 거 리에 서서 바라볼 뿐, 감히 너에게 손대지 못하게 할 것이다. 그러니... 나의 것이 되라." 글썽대는 눈가에 부드럽게 입을 맞춰주면서, 히드레안은 그녀의 허리를 부 드럽게 끌어안았다. 그녀가 조잘대던 것 보다 히드레안은 꽤나 소녀보다 는 단단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리 예쁘고 멋지고 이것저것 들어도 결 국은 남성체. 여자보다 강건한 것은 당연지사. "...저기, 저기 아직 나요..." "너희들의 시간은 덧없다. 짧은 불티같은 인생. 당장 대답을 구해도 늦 어. 너는 나의 것으로 예정되었고 예정이 이루어 졌으니 내 것이 되라. 처음으로 말하겠다." ====================================================================== <뭔가 이상하다고 느낄때-1> =사실 "괭아~나 있잖아~오늘 먼저 집에 갈께~" "안돼! 가면 죽어!" "그치만 학원 갈 시간 늦었단 말이야~" "시끄러! 가지마!" "미안~나 간다~학원에서 보자~" "야아아아아~!" =진실. "(척, 말없이 교문을 가르킨다. 팔을 좌우로 흔들고, 어깨를 탁탁 친다. 그리고 나서 집 방향을 가르킨다. -_-;)" "(척! 손을 들어올려서 좌우로 주먹을 쥔체 흔들어 보인다.)" "(타자치는 손놀림을 해보인다, 그리고 시계를 보여준 후 손을 아래로 탁 탁 내리는 시늉을 한다. 그리고 어깨를 으쓱해 보인 후 자리를 바꾸어 야 단 치는 포즈를, 다시 좌우대칭으로 이동해 야단 맞는 포즈를 취해 보인다)" "(과격한 온몸 엑스. 그리고 이어서 목에 칼을 긋는 시늉을 한다.)" "(손가락 하나를 뺨에 가져다 대고 이쁜 척 한다. 그리고 타자치는 시늉을 한후 손을 흔들고 사라진다.)" "야아아아아아아~!" ......100M 밖에서 친구와 대화를 나눌때. 마왕 이야기-179 피는 물보다 진하다-16 은은하게 떨어져 내리는 것은 황금의 비. 향기롭게 흩어지는 것은 초원의 비. 살포시 어깨에 기대는 것은 석양의 비. 눈부시게 반짝대는 것은 푸른 바다의 비. 발치에 떨어져 부서지는 것은 주황색 라임나무의 비. 안개처럼 사방을 감싸는 것은 밤의 비. 그리고, 순결한 소녀의 입술에 떨어지는 것은 새벽빛 바이올렛의 비. "나의 신부가 되어다오." "..." 진지한 히드레안의 얼굴에 화악, 하고 그녀의 얼굴은 다시 달아올랐다. 아 무래도 히드레안의 저 얼굴에 상당히 약한 듯 그녀는 결정을 못 내리고 우 물쭈물 하고 있었고 히드레안은 살짝 그녀의 턱을 잡아 올려서 아직 대답 을 하지 않는 입술에 부드럽게 키스했다. 하라의 짧은 감평. "여럿 후렸겠군." "셀 수도 없죠. 세려다가 분통 터져서 죽을지도 몰라요." "...그래도 그렇지 저런 바보를 꼬실 마음이 들었을까?" "저라면 안 그랬을지도." 둘은 시덥잖은 소리를 하면서 좋은 분위기를 자기들 멋대로 깨고 있었고, 히드레안은 부드러운 그녀의 뺨에 자신의 볼을 살짝 부볐다. 온기와 온기 가 나누어지고, 발갛게 되어 버린 소녀는 여전히 우물쭈물 거리는 어조로 중얼중얼 거리기 시작했다. "...아...그렇지만 나요. 음 그러니까..." "뭐지?" "...나...그러니까, 하드라라면 괜찮기는 하지만. 에...난 처음인데...하 드라는 솔직히 말해서 나 말고도 다른 사람이랑 많이 그..." "성교, 너희들 성직자 말로 하자면 생식행위를 했냐고?" 불타고 있는 토마토란 이런 것이다, 하는 것을 보여주면서 그녀는 히드레안 에게 안겨서 뻣뻣하니 끄덕끄덕 거렸다. 잠시 생각해 보는 듯 하더니 하 는 대답이 가관이다. "...몸에는 별로 이상이 없는데." "그, 그런 게 문제가 아니라구요! 어디까지나 결혼은 순결을 우선으로 하 는..." "...혼전에 순결하고 싶지 않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겠다." 히드레안은 간단하게 '시끄럽게 그런걸 가지고 따지지마'라는 말을 사려 깊 게 돌려서 해주었고 그녀는 너무나도 잘 알아듣고는 아우아우, 하면서 붉어 진 얼굴로 이러 지도 못하고 저러 지도 못하고 중얼중얼 거렸다. "...나 말고도 다른 사람도 또 사랑할 거죠?" "안 해." "핏, 거짓말." "...네가 날 못 믿으면 어쩔거냐? 몇번 씩 강조하지만 지금 단. 둘. 이. 라. 고." 무척이나 심술궂은 미소. 잠에서 덜 깬 듯 해서 그런지 약간 멍해 보이면 서도 장난기 가득 어린 그의 행동에 파닥파닥 날갯짓이라도 하듯이 바둥대 는 그녀...하라는 못 보겠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 게 진짜지?" "하나가 진실이라고 다른 하나가 거짓이라는 것은, 동화에서나 나오는 이야 기죠." "여긴 동화라며." "앗, 좋은 지적이에요." 카인과 말하느니 그냥 보겠다는 생각이 든 하라는 그냥 입을 다물었다. 화 이트는 잔뜩 골이난, 그렇지만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투덜거렸다. "...그런 식으로 놀리기만 하구, 심술쟁이." "난 마왕이다. 세상에 마왕 이상으로 심술궂은 존재가 어디 있단 말이냐?" 그러면서 슬쩍 손을 허리 아래로 내리는 저의가 뭘까. 중년변태아저씨다 운 어린 소녀의 허리 곡선에서부터 허벅지 아래까지 슬쩍 쓰다듬기는 확실 히 청소년에겐 피해야 할 위험한...화이트는 꼭, 하고 히드레안의 옷자락 을 잡으면서 중얼거렸다. "난,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요." "네가 나의 것이 된다면, 나는 행복해 질 수 있다." 아직 우윳빛의 투명한 목덜미를 부드럽게 쓸어 내리면서 히드레안은 단정적 으로 말했다. 하지만 고개 숙이고 있는 그녀의 입에선, 엉뚱한 말이 튀어 나왔다. "아니오, 그럼 당신은 결코 행복해 질 수 없어요 하드라." 히드레안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거절 당해본 적이 없는 그의 자존심에 상처가 간 것이라고 보기엔, 표정의 정도가 별로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화이트는 여전한 목소리로 이제 확신에 차서 말을 잊고 있었다. "분명히, 내가 하드라의 것이 되면, 난 행복하겠지만...당신은 불행할 거에요." "어째서지?" "난, 당신의 시간으로 들어가지 않을 테니까." 그녀의 표정은 당당했다. 조금의 미혹도 없는 우아한 미소. 푸른 바다빛 의 눈동자는 히드레안을 응시하며 맑게 빛나고 있었고, 하라는 아...하는 작은 감탄성을 냈다. 뭐라고 말할 수 없는 다정함이 서린 저 미소는... "...인간의 티끌 같은 삶을 살겠다는 거냐?" "음, 그러니까 난 케일 같은 현자도 아니고, 아레스처럼 무엇에도 흔들리 지 않는 주관이라던가, 셀린처럼 훌륭한 조언자가 옆에 있는 건 아니에 요. 아마, 음...아마도 그래요. 하지만 영원히 살기는 싫어요." "어째서." 히드레안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화이트는 조금 움찔했다. 히드레안 의 눈빛이 상당히 '살기'라고 불리는 것을 내포한 대다가 허리를 감싸고 있 는 손이 조금이긴 하지만 힘이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난 행복해지고 싶다고 생각해요." "...거짓말, 절대로 행복하지..." 하라는 저도 모르게 목이 메이는지 그렇게 중얼거렸고 카인은 싱긋이 웃으 면서 그런 그의 입을 막았다. 손에 막혀서 더 이상 목소리는 세어 나오지 않았지만, 하라는 얌전히 그냥 그대로 화이트가 하는 말을 듣고 있기로 했다. "하지만 영원히 살면 행복을 쥘 수 없어요." ====================================================================== <뭔가 이상한....-2> 케찹과 마요네즈와 후추를 버무린 소스에 수박을 박아 넣는다. 펜 : 먹을 것 가지고 장난치지마! 친구2 : 그래!(그러면서 집어 먹는다.) 친구3 : ......-_-;; 친구2 : .....(괴로워 하며 식탁을 부여잡는다.) 펜 : 그러게 누가 먹으래? 바보 아냐? -_-;(그러면서 자신도 모르게 궁금증 과 호기심에 그 수박을 집어든다.) 친구3 : ........-_-;; 친구2 : -.- 자기두 마찬가지면서... 펜 : .....괴...괴로워....물........ㅠ.ㅠ 그리고 우리는 한참동안 커피에 후추를 뿌리고 케찹을 섞거나 돈가스 소스 를 가지고 인형을 만들면서 놀았다. -_-; 그리고...대부분을 우리들은 직 접 시식해 보고 서로 바버같더고 하면서도 또 먹어댐으로서 자신들이 멍청 하다는 것을 만방에 과시했다. -_-;; 마왕 이야기-180 월레, 20회 남았네. -_-; ====================================================================== 피는 물보다 진하다-17 히드레안의 눈이 조금 커졌다. 그리고 불꽃의 분수도 화려하게 타올랐 다. 불꽃에서 튀어나오는 보석들이 은의 모래 위로 흐트러진다. 그리고 황금 양털 위에 세워진 궁전은 소리 없이 그런 둘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무슨 뜻이냐." "응, 그러니까. 설명을 잘 못해도 이해해 줘요, 그럴 거죠?" 화이트는 눈이 조금이라도 커 보이게 하기 위해서 크게 뜨고서 깜빡여 보였 고, 히드레안은 그냥 노려봐 주었을 뿐이었다. 나름대로 부린 애교가 무산 되자 그녀는 얼굴을 살짝 붉혔고, 여전히 자신을 안고 있는 히드레안의 품 에서 그를 올려다보며 이야기를 시작하는 수밖엔 없었다. "행복은 누구나가 다, 살아있는 이들이라면 전부다 바라는 거니까...행복 이 만약에 컵 안의 물처럼 이만큼 밖에 없다면, 아마도 먼저 집어간 사람들 이 가득, 그리고 뒤에 집어 가는 사람들은 조금씩 집어갈 수밖에 없을 거에 요. 행복은, 음....쓰고 나서는 돌려줘야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컵이 아주 조그마한 사람이라면, 그 작은 컵 가득히 행복을 담아 갈 수 있 겠지만, 응...같은 컵이라도 굉장히 컵이 크다면 같은 양이라도 적다...그 런 거 있잖아요? 음...음...맞아요, 상대성!" 하라는 약간 울고 싶어졌다. 16살, 소녀는 가장 순진할 나이. 그리고 달을 보며 몰래 얼굴을 붉히는 아름다운 시절. 저렇게 푼수같고 멍 청하고 단순한 어머니라니, 절대로 상상하고 싶지 않다고 울부짖고픈 하라 였음은 두말 할 것도 없다. "그래서?" "인간은 행복할 수 있어요. 바닥이 있는 컵을 가지고 있으니까. 가득히 채워질, 하지만 아슬아슬하게 채울 수 없는 컵을. 언젠가 가득 찬 컵 안 의 행복을 기대하면서, 우리는 살아가요. 그걸, 어떤 이들은 희망이라고 하잖아요?" 히드레안의 얼굴을 찌푸려졌다. 화이트는 더없이 기분 좋다는 것을 보여주 는 해맑은, 순진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면서 히드레안의 허리에 자신의 팔 을 감았다.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화이트는 말했다. "하지만 당신의 컵은 아름답고 고귀한 성배지만, 바닥은 없지요. 채워도채 워도, 그것은 비어져 나갈 뿐인 텅 빈 고요. ...영원한 삶, 끝도 없이 계 속해서 이어지기만 해야 한다면 행복을 찾아내도 잡아둘 수 없잖아요." "...잡을 수 있어." 히드레안의 말이, 왠지 그녀의 앞에서는 어리광을 부리려고 하는 어린아이 의 말처럼 들렸다. 화이트는 그의 어깨에 고개를 파묻으며 말했다. "...행복은 유한한 것인데요? 우리는 죽음으로 행복을 잡을 수 있지만, 당 신은 무엇으로 그걸 잡을 수 있지요?" 히드레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화이트는 미소 지었고, 히드레안은 고개를 떨구었다. 그리고 화이트는 조용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당신의 시간으로 들어갈 수는 없어요. 하지만 손을 잡을 수는 있어요." "이기적이군, 모든 인간들처럼, 모든 필멸자들 처럼, 이기적이고, 냉정해." 화이트는 팔을 풀어버리는 히드레안을 자신이 더 꼭 끌어안았다. 그녀는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난 평범한 소녀가 되고 싶었어요. 아주 처음엔. 그리고 신에게 귀의해 서, 마이아 신과 함께하며, 그렇게 하고 싶었어요. 그러다 나이가 들면, 평범한 신전 근처에 살던 신심이 깊던 농부와 결혼해서, 작은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커서 내가 죽을 때에도 살아 있는, 그런걸 꿈꿨어요." 하라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런 것 치곤 벌린 일이 너무 화려하지 않 나? 세제 개편, 왕도 천거, 귀족약화, 운하건설...' 그는 자신이 아는 한 도 내에서 화이트가 왕국을 개편하기 위해서 저지른 일들을 하나하나 꼬집 어보았다. 전쟁도 불사하는 과격한 성미의 '철의 여왕'의 이미지는 어디 로? "...아이를 낳게 해줘요." 흠칫, 하고 이번엔 하라가 놀랄 차례였다. "행복하게 해 줄게요. 내가 죽어도, 그 아이가 남아 있을 거고, 그 아이 는 또 다른 아이를 남겨줄 거에요. 당신의 주변에, 나로 인해서 생긴 그들 의 삶이 이어질 거에요. 그들은 어떤 의미론 영원할 거고...그럼 당신도 영원한 삶 동안 행복해 질지 몰라요." "...너 외에 아무 것도 사랑하지 않아." 히드레안은 차갑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의 어조는 어느 정도 누그러져 있 었고, 냉정함은 더 이상 묻어 나오고 있지 않았다. "말해두지만, 네 뱃속에서 나온 아이는 결국엔 나다. 나는 하나로 오롯한 존재, 나 외에 '다른 것'은 없다. 결국 나로 융화할 떨어져 나간 조각을 보면서 무슨 행복을 느끼란 것이냐? ...사라져 가는 널 보며, 그리고 커가 는 내 거울 속의 모습을 보며 행복을 느끼라고..." 화이트는 미소 지었다. 눈시울이 붉어질 정도로 따스한 미소를. "아니오, 행복해 질 수 있어요." "...거짓말." "그 아이를, 인간으로 살게 해준다면, 영원히 행복해 질 수 있을 지도 몰라 요. 아니...어쩌면 영원이 끝날 지도 몰라요." 화이트는 대담하게도 손을 뻗어서 히드레안의 목을 감아쥐었고, 그의 숙인 고개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하라는 힘없이 중얼거렸다. "...진실..." "네, 진실." 카인은 하라를 잡고 있던 손을 풀어주었고, 하라는 그런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내 사라지는 모습, 남은 것은 텅 비어버린 비의 궁전...카 인은 그런 그를 향해 살짝이 미소 지어 주면서 말했다. "진실이지요, 이것이." "...하지만...그는 어머니를 버렸어." 카인은 한발자국 뒤로 통통 뛰듯이 물러났다. 그리고 우아하게 하라에게 궁중식으로 인사해 보이며 나긋나긋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진실은 수십, 수백, 수천. 사실은 하나지만 진실은 천. 아직 진실은 끝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결국, 결국엔 사실은 하나잖아!" "그런가요?" 카인은 살짝 고개를 들고는 미소 지었다. 그리고 그는 손가락 하나를 들어 서 허공에 커다랗게 빙그르르 돌려 보였고, 그가 돌린 원은 빛의 궤적을 남 기면서 하얗게 빛났다. "하지만 진실이 천이 모일 때." 카인의 모습은 그리고 마치 안개처럼 순식간에 증발해 버렸다. 하라는 놀 라서 눈을 크게 떴고, 남는 것은 여운 서린 카인의 목소리 뿐. "사실은 둘이 되는 법이지요." "카인!?" "...아-이런, 하라님?" 카인은 키득, 하는 웃음소리를 내면서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어디선가 그 를 바라보고 있는 듯 했다. 그는 장난기 가득 서렸지만 동시에 섬뜩하리만 치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저는, 보여드린다고 했지 돌려드린 다는 말은 드리지 않았답니다. ...아 그렇군요. 이거 아세요?" "...너...이게! 무슨 짓이야!" 하라가 버럭 화를 냄에도 불구하고 카인은 별로 동요도 하지 않는 것 같았 다. 하기야, 그가 저런 성격이라는 것은 누구라도 이미 다 아는 사실이겠 지만. "시간도 공간도 없다는 것은, 끝없는 미로와 같다는 것을. 나머지 삶의 시 간을 이 미로 속에서 즐기라구요, 죽을 때까지." "카인!" 깔깔대는 차갑고 오싹한, 그래서 서늘한 여운이 남는 짧은 조소를 끝으로, 카인의 자취는 완전히 사라졌다. ====================================================================== .....카인아 카인아? -_-; 내 인형이 헤지면 너 대신 인형쓰면 되겠다....;; 왜저렇게 성격이 나쁠까....ㅠㅠ;;; 커서 머가 되려는지.....(샐러리 맨인데...-.-;;) 마왕 이야기-181 -_-a 곧 200횐데.... .......축전 없나.......? 패러디라도.....-_-a ====================================================================== 피는 물보다 진하다-18 카인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손끝을 빙글빙글 돌렸다. 빈 허공은 빛의 원을 그리면서 춤을 추었고 아이크는 약간 불편한 듯한 눈초리로 그런 카인 을 바라보았다. 그가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의 이면에, 저 즐거워 보이는 얼굴 뒷면에 드리워 진 저 최악의 마이너스 파장을 내뿜는 살의는 도대체 뭘까... [...무슨...일을 한 거야?] "글세?" 아이크는 카인이 정신파장으로 말을 거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다는 것 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카인한테 지금 말을 걸었다가는 전혀 듣지 않을 것 을 알고 있었기에 별 수 없는 차선책일 수밖에. 아니나 다를까, 카인은 대 답은 했어도, 허공에다 장난치는 것을 멈추고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그 모습조차 상당히 귀여워서 저도 모르게 미소 짓게 만드는 인상이었지 만, 아이크에겐 조금도 좋은 느낌을 풍기고 있지 못했다. 아닌 말로, 그 는 신뢰라는 것을 잃은지 오래 됐으니까. "아이크-아이크. 말로 해, 말로. 그렇게 자꾸 말을 안 하니까 발음도 나 쁘고 목소리가 탁하다는 소리를 듣는 거라구." [...지금 네가 말을 들을 상황이라면 그랬겠지.] "아아 너무해. 사랑하는 어머니이자 누나이자 연인인 그대의 말을 듣지 않 으면 누구의 말을 듣겠어?" 아이크는 냉정하게 은 파장을 냈다. [놀고 있네.] "맞아, 노는 거야." ...이해할 수 없다. 아이크는 자신에게 그렇게 되 다. 카인은 눈을 동그 랗게 뜨고서 아이크가 좀 더 말을 걸어주기를 바라고 있는 눈치였고, 아이 크는 말을 걸까 말까 망설였다. 그가 아이크 쪽으로 즐거움의 대상을 이동 시켰다면 솔직히 달갑지만은 않은 상황이었기도 하니까. [...무엇을, 원하는 거지?] "언제나 같은 것." [...시험...? 아니면...확인?] 카인은 미소 지었다. 아, 옮겨왔다. 아이크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생긋생긋 웃으면서 슬그머니 아이크 쪽으로 자리를 옮겨 서 카인은 양손을 맞잡고는 눈을 반짝였다. "알고 싶어? 알고 싶어? 응? 알고 싶은 거야 아이크?" 차라리 알려주고 싶다고 발작을 하지 그래. 아이크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 지만, 차라리 말하지 않는 것이 훨씬 낫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냥 입 을 다문 체 파장을 퍼트렸다. [...알기 싫어.] "냉정해!" 아이크는 우앙, 하면서 혼자서 울기 시작한 카인을 내버려두고 멀리 보이 는 어두운 밤 아래 있는 눈밭을 내려다보았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하루종 일보고 있다가 결국 눈이 멀어버릴 것임에도 불구하고, 아이크는 이곳에 있 는 동안은 그것을 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눈은 멀지 않았다. 다른 것은 꽤나 많이 흐릿하게 멀어 버렸지만. [이곳은 언제나 차갑고 냉정해. 얼어붙어 있는 잔혹한 동화 속의 악몽이 지.] 아이크의 붉은 입술이 삐뚤게 곡선을 그렸다. 서늘한 눈을 녹여버릴 정도 로 은은한 화기를 지닌, 그런 느낌의 미소. 아이크는 중얼거렸다. [운명이 우리를 비껴나갈 것 같아? 천만에. 결국 너도, 나도 정해진 것에 서 벗어날 수 없는 쳇바퀴를 도는 다람쥐일 뿐이야.] "그래, 비켜나가지 않지. 오히려 발버둥이 그것을 성립시킬 지도 몰라." 하지만 카인은 편안한 웃음을 띄고 있었다. 아이크의 손을 자신의 뺨에 가 져가 부비면서, 카인은 조용한 목소리로 안온하게 속삭였다. "...그러니까 확인해 보겠다는 거야." [무엇을...?] "정해진 운명이라면." 카인은 아이크를 끌어당겼다. 탁탁하고 자신의 옆자리를 두드리는 카인을 바라보다 아이크는 한숨을 내쉬며 그의 옆에 앉았고, 카인은 그녀의 무릎 위에 머리를 기대곤 편한 자세로 드러누웠다. "정해진 대로 걸어가야 한다면, 정해진 대로 걸어가야지." [이해할 수가 없어, 도대체 너는.] "원래 서로 이해가 불가능한 거라구, 나만 그런 게 아니란 말이야 뭐. 저 기 목적지로 도달할 수 있는 조금의 이상도 없는 잘 뻗어있는 대로가 있는 데 굳이 험한 길을 헤치고 들어가는 것 따위, 찬성할 이유가 없는걸?" 아이크는 투정을 부리듯이 손을 뻗어서 그녀의 짧은 머리카락을 톡톡 잡아 당기는 카인을 내려다보며 조금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별로 아프다거 나 한 것도 아니었기에, 이 정도는 참고 넘어가 주기로 결정한 그녀였다. [...하지만 목적지가 원치 않는 곳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 원하는 곳 을 향해서 가기 위해서라도, 대로를 벗어 날 수밖에 없어.] 카인은 이번엔 손을 뻗어서 그녀의 목을 감아쥐었다. 싱긋이 웃는 얼굴이 얄밉기만 하지만, 투명하게 빛을 반사시키는 보랏빛의 눈동자에 가득히 담 겨져 있는 장난기는 그런 그녀의 기분을 무색하게 할 정도였다. "어디로 걷던 도착하는 곳은 그곳이야. ...왜냐면 모든 길은 결국 그곳으 로 도달하게 되어 있거든. 길던, 짧던, 복잡하던, 아니면 무너져 있던..." [억지야. 모든 길은 각기 다른 목적지를 향하는 것이기에 수도 없이 많이 만들어 진 것 뿐이야. 같은 곳을 추구한다면, 모든 존재들이 같은 길을 걸 어가야 하지 않겠어?] "그래, 본질을 보자면 모두들 같은 길을 걷고 있지." [...길은 수도 없이 많잖아? 정말로 모두 같은 길을 걷고 있다는 건...] 풋, 하고 카인은 한번 웃더니 슬쩍 감아 올린 손을 들어서 아이크의 가슴 에 고개를 파묻었다. 아이크는 그를 안아 주면서 중얼거렸다. "...어리광쟁이." 카인은 조금 발끈한 듯이 고갯짓을 했지만 아이크는 개의치 않았다. 그리 곤 아무런 말도 해주지 않았고, 카인은 할 수 없다는 듯이 입을 열고 띄엄 띄엄 말하기 시작했다. "그 수도 없이 많다고 생각하는 길들, 결국엔 그 모든 것이 하나의 길이라 는 사실. 그것을 알게 되면 어떨까. 이렇게 걷던 저렇게 걷던 결국 도달 할 수밖에 없는 목적지라는 것에 대해서. 사실 길이라고 생각했던 것들 이, 거대한 원 위에 놓여져 있는 작은 바퀴대의 하나였다는 걸 알려주면, 어떻게 될까?" 쿡쿡하고 카인은 웃었고 아이크는 냉정하게 대답했다. [꿈은 꿈이어야만 해.] "너는 이미 꿈에 속해버렸어 아이크." [그게 나에겐 옳은 일이야. 너와 나는 다른 존재. 같은 존재이고 영혼을 공유했지만, 공유한다 하더라도 받아들이는 것은 서로 다르니까. 그러니 까 다른 '길'을 걷고, 길을 걷게 된다면 과정이 달라질 수밖에.] "...길이란 건 말이야." 카인은 고개를 떼어내고선 뒤로 돌았다. 거기에 서 있는 것은, 눈부시도 록 빛을 빨아들이고 있는 검은 머리카락과 허무한 검은 눈동자를 가진 이. 홀로 빛나는 금빛의 눈동자, 그리고 아름다운 얼굴. 모자람이라곤 없는 그의 얼굴에, 서늘한 한기가 맴돌고 있었다. 카인은 익 숙한 가면과도 같은 미소를 띄우며 중얼거렸다. "도달하기 위해서 만들어 진 거지. 그 무엇인지 모를, '끝'에." 그리고 히드레안의 입이 열렸다. "어디 있나." ====================================================================== 길은 옛부터 복을 불러오고 새로운 것들을 들여오지만, 악한 것과 재앙을 들여올 수도 있는 것. '죽음'으로 도달하기 위해 만들어 졌던 것. 그리고 '만남'을 위해 개설되었던 것. 요즘도 길을 새로 개통하면 알게 모르게 제를 지내더군요. ^^ 그냥, 이런저런 이야기들이었습니다. P.S - 제가 말하지 않았던가요...-_-a 카인은 이해할 수 없는 캐릭터 1순위라고...... ......자까도 이해못하는 캐릭을 누가 이해하리오...-_-a 어쩌면 이해해 주는 사람이 있을지도? ;; 마왕 이야기-182 곧 200횐데...-_-a 누가 뭐 주는 거 없을까.... 아.........의욕 안나라.....-_-a ====================================================================== 피는 물보다 진하다-19 카인은 정중함을 듬뿍 담은 자세로, 예의바르게 되물었다. "무엇을 찾으시는지 말해주어야죠. 모름지기 말이란 주어, 목적어, 그리 고 동사가 있어야 하는 거라구요 히드레안 님. 그러니까 다시 한번, '무엇 이 어디 있나' 라고 물어봐 주세요." 히드레안은 발끈했고 카인은 '그렇게 물어본다면 말해 줄게요!'라는 것이 너무나도 명확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눈을 반짝대고 있었다. 히드레안 은 그대로 그를 이 세상에서 영영 발붙일 수 없도록 처참하게 만들고픈 생 각에 잠시 몸을 떨었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고는 싱긋이 미소지었 다. ...그의 미소가 왠지 원숭이 거죽을 둘러쓰고 애써서 짓는 듯한 느낌 이 드는 것은 왜일까. "하라...말이다." 애써서 우물거리며 하라라는 이름을 발음한 히드레안은 잠시 고개를 젓더 니 다시 차가운 눈초리로 카인을 바라보았다. 그런 히드레안의 옆에는 미 노가 살기를 불태우며 카인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고 있었고, 카인은 머리 를 긁적이다가 대답했다. "성 안에 있지요." "...어디 있느냐." "성 안에요." 히드레안은 결국 딱, 하고 카인을 때리고 말았다. 아얏, 하면서 아이크의 뒤로 도망간 카인은 뭐라고 조잘조잘 거리면서 히드레안에게 대들고 있었 고 히드레안은 이제 조금만 더 분노 게이지 목표량을 달성하면 카인을 가차 없이 없애버리겠다는 눈빛을 그대로 만들어 보인 체 입을 열었다. "...성 안...어디." "글세요, 말씀 드려야 돼나요?" 카인의 눈이 장난스럽게 반짝였고, 히드레안의 얼굴도 이제 완전히 싸늘하 게 굳었다. 카인이 시도 때도 없이 일거리를 만드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실제로 히드레안을 완전히 돌게 만들 정도로 열 받게 하는 경우는 거의 없 었다. 나름대로의 정확한 눈치가 있는 녀석이기도 하고, 그래서 히드레안을 거스 르는 짓은 잘 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지금 히드레안은 이상하게 불쾌했 다. 그가 지금 한 행동. 그러니까 '어떤 존재를 어딘 가에다 둔' 별 것 아닌, 사실상 히드레안에게 귀찮았던 것을 없애준 어찌 보면 기특해해야 할 행동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히드레안은 지금 불쾌했다. 하라를 처음 보았을 때보다 더, 그리 고 그가 눈앞에 있었던 그 때보다 훨씬 더. "네 잘난 머리만 놔둔 체 산 체로 얼려 줄 수도 있다. 시간의 흐름 속에 넣어줄까?" 카인은 창백하게 질린 아이크-카인이 그렇게 된다는 것은 아이크도 마찬가 지 신세라는 것과 동일한 일-를 한번 힐끗 보고는 뒤에서 꼬옥 끌어안아 준 다음, 장난스레 싱긋싱긋 웃었다. "이 성, 히드레안 님의 의지로 이루어 진 것. 그런데 나의 주인이시여..." 카인의 눈 안의 진한 보랏빛이 음울할 정도로 잔인한 색감을 드리웠다. 히 드레안은 여전히 싸늘하게 굳은 무표정이었고 미노도 일순간 움찔했다. 차 가운 푸른빛을 띈 카인의 입술이 냉소적으로 비웃는다. "당신의 의지 안에 있는 존재, 그것도 자기 자신을 찾지 못할 정도로 당신 께서 그리 연약한 분이셨습니까?" "...확인해 볼테냐?" 우우웅, 하고 공기가 흔들린다. 결국 일이 터졌군...하는 표정으로 아이크와 미노는 서로를 마주 보았고 약 속이나 한 듯이 한쪽은 카인을, 그리고 한쪽은 히드레안을 붙들었다. 카인 은 피식피식 웃으면서 여전히 기분에 왠지 거슬리게 하는 듯한 어조로 말 을 이었다. "확인은 필요없겠지요, 자신의 의지라는 것은 때로는 자신을 배반할 정도 로 이율 배반 적일 수 있으니까. 눈을 닫고, 세계의 흐름에 관여하지 않으 시는 위대한 시간의 지배자께서 그런 소소로운 일에 어디 신경이나 쓰시겠 습니까?" ...의도적으로 히드레안의 신경은 파직, 하고 튀어 올랐고 카인은 승기를 잡고 쿡쿡쿡 웃었다. 정말이지, 누가 뭐라고 해도, 성격 나쁜 건 어쩔 수 없다. 거기다 둘다 막상막하로 성격이 나쁠 경우엔 보통은 저렇게 '말 잘 하는' 쪽이 이기는 것 역시... "잘한 일이 아닌가요? 칭찬해 주세요 칭찬. 히드레안 님의 조각이면서도 무례하게 본체에게 대든 어리석은 존재를 조용히 치워 드리지 않았습니까?" "치우라고 한 적 없어." 카인은 아아, 하면서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미노는 울상이 되어서 아이크 더러 카인의 입을 막으라는 눈짓을 해 보였지만 아이크도 파랗게 질려있을 정도였다. 카인이 내뿜고 있는 정신파장의 정도가, 아이크가 수용할 수 있 는 용량을 넘어서고 있었다. 지독하게 섬 한 느낌을 가지고 타오르는 듯한, 그러면서도 조용히 가라앉 은...절제된 제련사의 끝에서 번뜩이는 얼음 같은 불꽃처럼...카인은 아이 크가 끌어안고 있건 말건 그녀의 팔을 뿌리치고 손을 내밀어서 하나 까닥였다. "언제부터 히드레안 님께서 소소로운 쓰레기에까지 신경을 쓰셨습니까? 미 천한 인형들에게 부여한 조그마한 자아마저도 필요없으신가요?" "닥쳐. 너의 주인으로서 명한다. 내가 묻는 것에 대답할 지어다." 카인은 풋, 하고 웃고는 까닥이던 손을 접었다. 그리고 미소마저 지우고 는 짧게 대꾸했다. "닥치시지요. 당신의 창조물로서 대답하건데, 나는 당신의 꿈을 파괴할 뿐, 꿈을 유지하게 하진 않습니다." - 으아아아악! 너 죽을 려고 환장했어 카인! "카인! 무슨...!" 카인은 이제 마력이 넘쳐흐르다 못해서 주변을 모두 날려버릴 듯이 싸늘한 냉기를 뿜어내고 있는 히드레안을 바라보면서 매정하게 계속해서 말을 이었 다. 아아, 이 성안에 있는 모든 '생명체로 보이는 것과 그 유사물체'들에 게 조의를... "꿈에서 깨어나고 싶으면서도, 당신은 꿈에서 깨어나려 하지 않고 있지 요. 자, 대답해 보십시오. 나는 당신의 꿈을 깨어야 합니까, 아니면 깨 지 말아야 합니까?" "...깨어라." "그렇다면 나의 행동에 그대는 제어를 가할 수 없습니다." 아이크는 결국 자신의 혀끝을 깨물었다. 비릿한 향과 함께 짧은 고통. 카 인이 느끼고 있는 감정. 아니 감정이란 티끌도 없다. 이것은 본능, 본능 이라고 하는 것. 아이크는 이를 악물고서는 눈을 감았다. 지금 손을 놓으 면, 둘다 당장 못 죽여서 안달이 날 테니까. "아니, 제어를 가하겠다." "왜입니까?" "너는 나의 것, 나의 소유물이기에." "아니, 그것은 틀렸습니다. 나의 주인이시여. 그대는 분명히 꿈을 깨고 자 하나, 동시에 그 꿈을 유지하고자 하는 존재. 내가 깨뜨려 가는 꿈의 파편을 바라보며 그대가 느끼는 것은, 안타까움과 유지하고픈 소유감. 대 답해 주십시오. 그것은 무엇입니까?" "...어째서 내가 너의 의문에 대답해야 하지? 최초의 의문은 내가 던졌다!" 카인은 미소지었다. 차갑게 굳었던 공기가 풀릴 정도로 달콤한, 녹아서 흘 러내릴 듯한 어둠과 근접한 어둡고 타락한, 음탕하면서도 동시에 매혹적인 그런 미소를. ====================================================================== 5번째 혼돈의 이름....-_- .....흠흠.....드디어 나오는 건가...... ....그런데....-_- 아직도 나는 6번째 혼돈의 이름을 결정할 수가 없다......-_- 마왕 이야기-183 아....정말 누가 뭐 안주나...-_-a 하나 못해 끝내주는 감상 한편이라면 더 좋을지도.... -_-a 뭐 없을까......아.....아.......? 란쨩은 감상 언제줄까....-_-a ====================================================================== 피는 물보다 진하다-20 그의 목소리가 그 어두운 혼돈 속에서 흘러나왔다. "나의 최초의 말을 기억하십니까? 나의 창조주." "..." 카인은 아이크가 잡고 있던 팔을 풀었다. 힘없이 나가떨어지며 바닥에 휘 청하고 주저앉아 버린 아이크는 귀를 막으면서 절규했다. "그만해 카인! 제발!" "나는 무엇인가?" 우웅, 공기가 순식간에 카인의 쪽으로 기울었다. 그가 내뱉은 것은 최초 의 언령. 고로 아무리 히드레안이 언령의 정점에 다다라 있다고 해도, 그 것은 틀렸다. 카인은 천천히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당신은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언령을 거부했으니 나 또한 그대가 한 모든 언령을 번복할 권한을 가졌겠지요. 그때부터, 시작부터 당신은 나 에게 아무 것도 대답해주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확인하고 싶은 거냐, 카인제이럴." 카인은 손을 내밀었다. 공기가 주춤하며 울리고, 히드레안과 카인의 주변 에서 급속히 마력이 부딪쳤다가 떨어져 나가기를 반복하며 난폭한 마력의 폭동을 일으켰다. "꿈에서 깨고자 하나, 꿈에서 깨려 하지 않는 존재. 당신이 행하는 모든 것, 그것은 잘못되 있습니다. 원하지만, 원하지 않는...그것은 무엇입니까?" 히드레안은 카인을 바라보았다. 그의 언령에 대답하지 않으면, 그에게서 대답을 들을 수 없다. 그가 들고 나온 최초의 언령의 힘을 빌어서 카인은 히드레안을 '놀리고' 있는 것을 즐기고 있으니... 카인은 미소 짓고 있었고, 히드레안은 조용히 대답했다. "모순." "그거였군요." 카인은 피식, 하고 웃더니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카인은 조용히 힘 을 거두더니 살짝, 옷자락을 들어올린 후 바닥에 한쪽 무릎을 세우곤 꿇어 앉았다. 그리곤 극히 공손하고 감정이 배제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위대하신 나의 주인이시여, 종이며, 그대의 꿈을 깨는 자. 제이럴으로서 그대에게 복종하는 카인이 말하기를, 주인이시며 동시에 주인 아닌 자는..." 카인은 잠시 입을 다물고 있다가, 힐끗 히드레안을 올려다보았다. 약간의 초조감이 배인 얼굴로 카인을 내려다보던 히드레안은 영문도 모르고 그를 바라보았고, 카인은 베시시 귀엽게 웃더니 살짝 윙크해 보였다. "...성안에 안에, 있답니다." "......이...이...카인제이럴 네 녀석!!!" 콰아아아앙! 결국, 얼음의 마력이 폭발하면서 카인이 있던 자리 및 주변을 초토화시키 고 말았음을... 애초에 그렇게 장난 칠 거라면 저렇게 분위기 잡을 것도 없었을 텐데, 단 지 재미있을 것 같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저 정도의 일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해치우는 그, 어쩌면 그야말로 최강일지도 모른다. 힘내라 카인, 히드레안을 밀어내고 세계정복을 대신 노릴 그날까지! ...그러나 히드레안이 세계 정복을 획책했었는가 하는 것을 물으면 대답할 말이 없다는 것을 알아두기 바란다. "...오늘...영혼이 짓밟힌다는 게 어떤 건지 알게 해주지, 카. 인. 제. 이. 럴." "에...그..." 결국 구석에 몰린 카인은 히드레안이 한 손에는 얼음의 차가운 마력과, 한 손에는 영혼의 자각을 위한 속박 인이 있는 것을 보고 장난이 아닌 것을 느 꼈는지 살짝 웃으면서도 등뒤로는 식은땀을 흘렸다. 실제로 한번 당해본 적이 있는 고통이니 만큼, 아무리 카인이라도 다시 당 하고 싶지는 않을 터. 하지만 이미 구석까지 몰린 카인은 워프로 도망갈 수도 없는 이 상황에서 그저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나고 있을 뿐이었다. "...남길 말은 있나? 마지막 소원이라면야 들어주지." 카인은 꺄아아아아, 하면서 비명을 지르곤 울음을 터트렸다. 그러나, 이미 다 파악했을 것으로 사료되지만 그래도 한마디 해둔다면. 절 대로 진짜 우는 것이 아니다. "살려주세요! 잘못했어요오!" "닥쳐! 이제와서 빌어먹을 용서따위 구할 생각하지마! 감히 이 나를 가지 고 놀다니, 간이 부었군 카인!" 발로 밟으면서 소리소리 지르는 것을 보니, 평소에 히드레안이 얼마나 카인 에게 당했는지 알만했다. 그간 받았던 분노를 저번에 강조했던 대로(어디 서 강조했는지 알아서 찾아라) 가차없이 받고 있는 카인은 그 와중에서도 살짝 웃었다. "...히, 히드레안 님. 이런 말도 못 들어보셨어요?" "무슨 말!" 얼음의 마력이 더 커지고, 속박의 인이 풀려나고 있었다. 카인은 궁지에 몰린 자의 전형적인 해맑은 미소를 지으면서 손을 휘휘 저어서 일단 히드레 안의 무차별 적인 폭력을 봉했다. 그리고, 그들이 궁지에 몰렸을 때 늘어놓는 전형적인 변명을 입에 담았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잠시간 마왕성을 흐르는 히드레안의 마기보다 더 서늘한 한기. 그것은 마 력보다 더한, 일시적인 정신의 공황에서 오는 공포로...흠흠, 말이 왜 샜 지? "......죽어! 이 망할 자식!" "꺄아아아아악!" ...여자같이 비명을 지르면서 그렇게 몸을 웅크리면, 누가 잘못 보기엔 히 드레안이 카인을 덮치는 걸로 오인할 만한 장면이었다. 미노는 새 손수건 을 꺼내서 주르르르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으면서 말했다. - 죽이면 어떻게 물어보실 건데요? 훌쩍... "...그도 그렇군." 그리고 원래 멍청하고 무식하고 앞 뒤 대책 없는 이라면 다 그렇다는 것을 증명하듯이, 히드레안은 막 카인을 봉인하고 지옥 어귀에다 처박으려던 것 을 멈추었다. 미노는 주르르르, 계속해서 잘못 열린 수로문에서 흘러나오 는 물처럼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면서 궁시렁 거렸다. - ...네, 정작 중요한 건 다 잊으시겠지요. 주인님은 그런 분이세요, 그렇 다구요. 성이 얼마나 부서졌든, 이거 복구하는 데 시간이 얼마 걸리든, 인 형들을 어떻게 복구시킨다거나, 또는 성의 유지 및 보수가 얼마나 힘든 건 지 아시면 절대로 그런 짓따윈 못하시겠죠... 못하실지 아닐 지는 물론 당 해봐야 알겠지요? 후후후후....주인님은 무심해... 미노의 에테르 체가 그 모습을 나누어 시퍼런 혼불을 만들어 내더니, 그의 주변에 떠다니면서 공포감을 한층 더 높게 조정하고 있었다. 어두운 마기 가 그의 주변으로 몰려들어서 이상한 검은 아지랑이 까지 만들어 내는 그 무시무시한 광경을 바라보면서 히드레안 저도 모르게 움찔 하더니, 이내 카 인을 바라보았고 조용히 손을 자신의 목으로 가져가 그어 내리는 시늉을 해 보였다. ...그리고 카인이 미노를 다시 허차원으로 처다 박았다는 것은 굳이 들지 않겠다. ====================================================================== -_-; 결국 아무리 심각해도 이 소설은 끝까지 온리 엽기 페이스인가. ;; 하.하.하. 세상은 아름다워....-_-; 마사루상~! 컴온 마이 하트! 나에게 엽기의 파워를! 오오오오오오! -ㅅ-;;; 마왕 이야기-184 아아.....-_-a 200회가 고지인데....누가 뭐 주는거 없을까..... 을까...... 을까아아아아아......? ====================================================================== 피는 물보다 진하다-21 "동화요." 카인은 결국 그 난리 끝에서 겨우 입을 열었다. 히드레안은 그런 카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중얼거렸다. "미로에?" "네." 한쪽은 동화라고 부르고 한쪽은 미로라고 부르니 자칫 잘못하면 종교 전쟁 이 날 수도 있겠지만 알다시피 히드레안은 종교가 없고 카인도 무교다. 서 로 이념의 차이가 없는 종교가 없는 이들이야말로 세상을 위하는 것이 아닐 까, 하는 도대체가 전혀 쓸모 없는 생각과 함께 히드레안은 몸을 일으켰다. "가실 건가요? 당신의 한 조각을 위해서?" 카인은 조금 그를 비웃었다. 생긋이 웃는 미소가 맺힌 입가는 더없이 매력 적인 곡선을 그리고 있었지만, 히드레안의 눈에는 그런 것이 별로 들어오 지 않았다. "모순. 그것이 내가 알고 있는 5번째의 혼돈. 나 역시 시간이기 이전에 의지체, 의지를 가진 것들은 반드시 모순을 내포한다." "그는 조각이지만 조각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으신 가요." 미소, 소리 없는 우아함을 가지고 있는, 그리고 다정하지만 차갑게 느껴지 는 미소. 히드레안은 카인의 그런 미소를 바라보다가 자신도 그를 따라 웃고 말았 다. 그, 결론을 내려주는 존재.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꿈의 본질을 보 는 존재. 그를 원한 것은 이 지루한 삶을 살아가면서 조금이라도 살아있다는 것을 느 끼기 위한 마지막 바램. 그러나 동시에 그 삶을 끝내기 위한 발로. 모 순, 내포할 수 없다는 것이 내포된 것. 절대자-완전자라 불리는 이가 아닌 이상, 그 모든 것을 의지는 모두 수용 할 수 없다. 완전은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지만, 의지는 모든 것을 느낄 수 있으나 통합 할 수는 없기에. "가십시오. 그대가 바라는 것을 위해서." 그리고 카인은 멍한 얼굴을 하고 있는 아이크를 안아 들었고, 아이크는 카 인에게 속절없이 매달렸다. 히드레안은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바닥으로 나풀거리게 늘어뜨리며 대꾸했다. "바라지 않아. 원할 뿐." 아이크는 카인을 꽉 안았다. 그런 아이크의 검은 머리카락을 쓸어주면서 카인은 싱긋이 웃어 보였다. "왜 그래 아이크, 어디 아파?" "...미쳤어. 미쳤어!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야? 왜! 저 저주받을 존재를 위해서!" 카인은 빙긋이 웃었다. 아이크는 이제 울고 있었고, 그녀의 눈에서는 끊임 없이 눈물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지만, 별로 그녀의 얼굴은 가냘프다거나 가 슴에 안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카인은 꼭, 그녀를 안아주면서 말했다. "난 부조리 한 이 세상이 즐겁거든. 삶을 추구하면서도 죽음을 원하는 창 조주와, 의지를 자각했기에 한없이 연약한 혼돈이나. 그리고 다가올 수도 없이 많은 시련과, 그 시련을 이겨내는 존재들이나. 내겐 더없이 즐겁거 든." "그딴 게 왜 즐거워!? 결국 우린 바깥에 있을 뿐이야! 그 안으론 들어갈 수 조차 없는 존재란 말이야!" 매달려 있으면서도 화를 내면 안고 있는 사람이 부지불식간에 그냥 그대로 놔 버리고 싶어진다는 것을 모른 체, 아이크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카인은 여전한 미소를 띄우며 그녀의 등을 손끝으로 쓸어 주었다. "바깥에 있던 안에 있던 결국 그들을 움직이는 건 꿈이라는 것은 변함없 지. 안 그래?" "몰라 그딴 거... 이젠 그만하라고, 그만해...넌 비겁해! 난 네 감정을 느 끼는데 넌 내 감정은 전혀 모르잖아!" "애초에 그렇게 만들어 진 거잖아, 투정해 봤자 소용 없다구. 정해진 대 로, 있는 만큼, 그렇게 흘러가는 게 당연한 거지." 아이크는 화를 내듯이 몸을 이리저리 틀었지만, 카인은 더 꽉 안아주면서 허공을 바라보았다. 히드레안이 무너뜨린 성의 위로, 어두운 밤하늘과 하 늘하늘 떨어져 내리는 눈꽃들이 소리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모두 정해진 대로 흘러가는데, 사실 흘러가고 있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이 나. 정해진 대로 따르는 것이나. 결국 도달하는 지점은 같은 거야. '죽 음'은 공평한 판결자이기에..." "...그에겐 죽음 따위는 없어. 영원한 존재에게 죽음이 올 거라고 생각 해? 히드레안이라는 존재따위! 우리를 창조하고 이용할 뿐인 자잖아!" 카인은 으 , 하고 아이크를 어깨에 맺다. 아이크는 바둥대면서 계속 소리 쳤고, 카인은 가벼운 콧노래를 흥얼대면서 그런 아이크를 향해 눈을 찡긋 해 보였다. "아이크 아이크. 세상 모든 게 아무런 이유 없이 태어났다면 그건 너무 가 슴 아프잖아. 모든 것이 이 세상에 어떤 곳에선 필요로 했기에 태어났다 면, 그래도 살아갈 이유나마 생기는 거 아니겠어? 필요가 없다면 왜 만들 어 져야 하지?" "그 필요가 운명을 결정할 뿐이잖아! 필요 있어서 태어났다가 필요 없어지 면 죽는, 그따위 빌어먹을 일들! 난 필요 없는데도 그럼 왜 이렇게 살아있 는 거야? 네 말들은 전부 다 거짓말이야!" 카인은 앗, 하면서 상처받은 얼굴을 해보였지만 누누이 강조해도 모자람 없 이, 진짜로 하는 거 아니다. "너무해 아이크, 난 아이크를 많이 필요로 하는데..." "장난치지마 바보야!" "아하하하핫, 따질 필요 없어. 필요니 운명이니 삶이니 죽음이니. 세상 모든 것은 어차피 그 개체적으로 완전히 다른 것. 모두가 예외고 모두가 다른 데 일일이 모든 의미를 다 알아낼 수는 없잖아. 때되면 적당히 다 알 아낼 수 있는 거, 그리 발악할 것 없다고." "...바보..." 아이크는 바둥댈 기력도 이제 없는지 축 늘어졌고 카인은 아이크의 허리에 남은 한손을 가져다 대더니 다시금 장난스레 입을 열었다. "있잖아 아이크-허리가 좀 늘어난 것 같은데?" "아, 안 늘었어!" "아이 뭐야, 난 살찐 자기는 싫어." 퍽! 결국 아이크는 주먹을 휘두를 수밖에 없었고, 카인은 재빨리 아이크를 내려 놓고 도도도 뛰어서 도망가 버렸다. 아이크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붉어진 얼굴로 외쳤다. "너 이리 오지 못해! 그러는 네 허리는! 카인 야! 너 이리 오라니까안!" ...카인제이럴. 세상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괴의한 존재의 이름이다. ====================================================================== 이주님과 키아님, 그리고 카에님과 정이님(헉...내이름...-_-;;)이 착! 이렇게 예약해 주셨습니 다. +_+ 민트님~광현님~축전 없슈!? +_+ (이놈 자식....-_-;;) 참고로 말하자면 자까도 카인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_-; 저한테 카인이 왜 저러는지 묻지 마시길. ;; 때되면 다~아 알게 될테니... 마왕 이야기-185 죄송합니다....__; 새벽에 올릴 생각은 아니었지만, 일요일은 동생이 한종일 컴을 잡는지라..... 대신 학교 다녀와서 연참을 좀 많이 올리도록 하지요. 으으....__; 사죄사죄...;; 근데 뭐 주는 거 없나요..? -_-a ====================================================================== 피는 물보다 진하다-22 길을 잃었을 때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다. 그래야 찾으 러 온 이들이 가장 쉽게 발견할 수 있으므로... 하지만 그건 길을 잃은 이를 누군가가 찾는 다는 가정 하에서만 가능한 일 로, 하라에겐 해당사항이 없었다. 거기다 그건...어디까지나 '아이'일 경 우에 해당하는 것일 뿐. "...제기랄...충고해 줬을 때 들을걸..." 히드레안보다 카인이 더 위험하다. 라는 충고를 왜 무시했을까, 하고 스스 로에게 아무리 되뇌어 봐도 대답이 나올 리가 없었다. 여기에 있는 것은 오직 자신뿐. 비는 계속해서 내리고 있고, 바닥의 파문도 커져가고 있었다. 파문을 만질 수는 없지만, 비로 인해서 넓게 퍼져가고 있는 파문은 정말로 아름답기 그지 없었다. 단, 지금 이 상황에서는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열이 뻗쳐서 돌아가실 지경이기는 하지만. 하라는 허공으로 주먹을 내지르면서 결국 고래고래 고함을 내질렀다. "야! 이 빌어먹을 변태마왕 자식앗! 너 따위 때문에 내가 이런 곳에서 죽으 면 원귀가 되서라도 쫓아다닐 테다! 네 녀석이 날 낳게 했다는 것 따위가 원망스러워! 여자만 후리고 다니는 색골에 바람둥이야아!" 야아, 야아, 야아... 울려 퍼지는 메아리를 들으면서 하라는 켁켁, 하고는 쉰 목을 부여잡고 주 저앉았다. 배도 고프지 않고 졸리지도 않다. 정말로 이렇게 할 일 없이 지겨워 하다가 늙어서 죽어버리면 그게 더 웃긴다고 생각하면서 하라는 머 리를 쥐어뜯었고, 그런 하라의 앞에 거짓말처럼 흰 옷자락을 나풀대며 허공 에 약간 떠 있는 그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런 식으로 이 몸을 생각했었군 그래?" "으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면서 뒤로 물러난 하라를 쳐다보는 히드레안의 표정은 결코 심 상치 않았다. 그가 성격이 나쁘단 소리를 괜히 듣는 것인가? 이때껏 그가 저지른 온갖 잔악 무도한 행동의 대부분의 근간은, '기분 나쁘다' '맘에 안 든다' 등등의 아주 유치한 발상에서 일어난 일이 대부분...이 아니라 전 부일 정도였으니 저런 말을 듣고 지금 그가 이렇게 참아 주는 것은 소위 말 하는 '기적' 이었다. "...하...하...하...다...들었어...요?" 아무리 강심장인 하라라고 해도 이 정도로 대놓고 욕해놓고서 저 성깔 더러 운 마왕에게 괜히 더 개겼다가는 정말로 목숨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위 기 의식이 발동했기에 안 쓰려던 존대까지 하면서 슬쩍 미소지었다. 히드레안은 살짝, 살기 어린 미소를 띄워주면서 대꾸했다. "처음부터 끝. 까. 지. 잘 들었다." "...제길, 여기서 결판을 낼 거라고 생각은 안 했지만 검이 없어도 해보 자!" 딱, 히드레안은 하라의 머리를 한 대 때리면서 그의 헛소리를 미연에 방지 했다. 용사 시리즈로 막 나가려고 했던 하라는 머리를 부여 쥐면서 신경질 을 내려고 했고 히드레안은 입을 열었다. "카인 녀석이, 보여줬나보군." "...아...그, 그거..." 잘 생각해 보면 하라는 히드레안의 프라이버시 침해를 한 셈이 된다. 남 이 고백하는 장면을 빤히 눈뜨고 본 게 아니겠는가. 슬쩍 눈치를 보니, 그 래도 죽일 생각은 없는 것 같았고 하라는 조금은 안심하고 한숨을 내쉬었 다. 히드레안은 말을 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내가 이해할 수 없다는 것." 탁, 하고 히드레안이 바닥에 발을 딛었고, 하라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듣던 것, 내가 생각해 왔던 게, 사실 그걸 직접 겪었던 이에겐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의견이란 걸 알았어. 네가 어떤 기분이었는지, 어떤 느낌이 었을까 라던가, 또는 말하지 않은 것들 중에서 진실이라는 게 있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 하라는 그 푸른 눈을 당당히 히드레안에게 고정시켰다. 그녀도 저런 버릇이 있었지, 정말로 중요한 이야기를 할 때에는 미혹을 모 두 감출 듯한 저 바다빛 눈동자를 당당하게 고정시키는... "...미안해." 히드레안은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의 어깨를 잡아서, 품으로 끌어당겼 다. 하라는 얼떨결에 그에게 끌어 안겼고, 히드레안은 그런 하라를 꽉 끌 어안으면서 말을 이었다. "...네가...너라는 존재가...인간으로 자라서...인간으로 죽기를 바랬다. 내...아들인 네가." 카인은 아이크를 끌어안으면서 조용히 속삭였다. "왜 살아있는 것들이 자손을 낳는 줄 알아?" "...응?" 카인은 그녀의 뺨에 키스하면서 대답했다. "그건 그들이 죽기 때문이지." 아이크는 나른한지 눈을 감으면서 고개를 다시 배게 속으로 파묻었다. 느 릿하니 손가락이 카인의 목선을 톡톡 두드렸고, 카인은 미소지으면서 이불 을 끌어당겨 그녀의 나신을 덮어주었다. "그러니까 말이야 아이크..." 잠든 그녀가 말을 들을 리가 없을텐데도 불구하고 카인은 바닥에 떨어져 있 던 옷을 하나씩 들어올려 입으면서 느긋하고 조용한 음색으로 말을 이었다. "...하라가 있기에, 히드레안 님의 잔에도 드디어 바닥이 생긴 것 같다고 생각하지 않아?" 고른 숨을 내쉬며 잠든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어주면서, 카인은 장난기 가 득 어린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까 말이야, 말했잖아. 모든 것은 결국 같은 곳에 도달한다고..." 생각해 보면 저 심술궂은 카인만큼 이 일의 전모에 관해 제대로 아는 이는 없으리라.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숨김으로 일을 더 크게 벌리는 그만큼 이 일을 비틀어 버린 존재도 없으리라. 크으, 저주받아라 카인. "아무리 생이 길어도, 그 끝엔 죽음이 있기 마련이지..." 나른한 그의 말처럼, 오랜만에 이 얼음의 성에도 나른하고 부드러운, '오 후'가 찾아왔다. ====================================================================== 아....오늘 악몽을 꾸었습니다. -_-;(2시간밖에 안잤건만...ㅠ_ㅠ) 깨도 깨도 또 깨도 '완결'지을 때까지 꿈에서 깰 수 없는 꿈.... 저는 이런 꿈을 보통 '스토리 꿈'이라고 부릅니다만.... 덕분에 새 소설 한편 쓰여질 듯 합니다. 하.하.하. 상당히 유치한 내용의 꿈이었지만 말입니다...-_-; (마지막의 '더 앤드' 자막은 멋졌는데...) 마왕 이야기-186 200의 고지가 저기다....-_-a ====================================================================== 피는 물보다 진하다-23 "아득한 먼 옛날을 꿈꾸었지 어두운 남빛 하늘에 계명성이 떠오를 때, 아직 첫 닭도 울지 않았던 그 때..." 흥얼거리면서 카인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살짝 만지작거렸다. 신경질 적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하라의 눈빛은 상관없다는 듯한 그의 행동에 발끈한 하라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미노가 그런 하라를 말렸다. - 참으세요, 저 놈은 원래 저래요... 원래 저러면 다 참아야 되나? 하는 눈으로 하라는 무시무시하게 미노를 내 려다보았고 찔끔한 미노는 살짝 웃으면서 그런 하라를 올려다보았다. 애써 서 꾹 참는 듯이 주먹을 한번 부르르 떨어 보고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히드레안이 아까 그 '미친 짓'을 하고서 그대로 하라를 여기에 이동시켜 버 렸기 때문에, 하라로서는 다른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남는 것은 알 수 없는 마지막 퍼즐을 안고 있는 듯한 기분. 미노는 슬쩍 눈치를 보면서 하 라의 잔에 홍차를 채워 넣었다. 그는 자신을 '아들'이라고 불렀다. 미쳤거나, 안 그러면 갑자기 심경에 무슨 엄청난 변화를 받았거나 둘 중 하 나일 거고, 그렇다면 왠만하면 전자이길 바라는 하라였다. 미안하다고 말 하지 말고 그냥 냅다 후려쳐 버릴 걸, 하고 다시 한번 고민하며 받아든 차 를 그대로 원샷하기까지 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카인은 풋, 하고 웃었다. "앗 뜨거!" 미노는 깜짝 놀라서 부들부들 떨었고 하라는 차를 원샷한 대가로 혀를 데이 고야 말았다. 아아, 불쌍하기도 해라...새빨갛게 달아오른 혀를 살짝 내밀 고 식히면서 하라는 눈물까지 글썽여야 했다. 28살의 나이가 아깝기만 한, 16세 모습의 소년이여. "...으...이게 다 그 자식 때문이야! 사람 헷갈리게 스리 왜 그딴 말을 하 고 그래!" "어머, 부자간의 애정을 확인한 역사적인 때에 그런 말씀을 하시면 안돼죠." 하라는 찻잔을 집어던졌고 카인은 찻잔을 받아들면서 나이스 투구였다는 듯 한 포즈를 해 보였다. 결국 열만 더 받은 것은 따로 할말이 없을 듯...아 이크는 한숨을 내쉬면서 바보짓을 하고 있는 셋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너한텐 값아줄 빚이 있지이...카인...?" "전 빚쟁이가 된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요?" 카인은 호호호, 하고 여성스럽게 웃어 보이면서 손등으로 입을 가리는 짓까 지 해 보였고 아이크는 조금 눈을 내리깔면서 찻잔을 으스러져라 잡았으며 미노는 역겹다는 표정으로 티 포트를 집어던지려고 했다. 물론 하라는 두 가지를 동시에 하면서-언제 찻잔이 그의 손에 들어갔는지 라던가 포트가 있었냐는 소리는 물어선 안돼리라-싸늘하게 내뱉았다. "죽고 싶냐?" "그럴지도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놈이었다. 하라는 기운이 모두 빠지는 것을 느끼며 그냥 자리에 앉았다. 카인은 여상 스레 한번 더 웃어 보이곤 입을 열었다. "돌아가실 때가 다 되었네요." "무슨 소리야?" "오늘이 며칠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라는 그야...하면서 숫자를 세어보려다가 흠칫했다. 그러고 보니, 지금 이 낮인지 밤인지...아니면 며칠이 지났는지,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낮이고 밤이고 언제나 어 둡기만 한 하늘이며 시계라곤 전혀 없는 곳. 카인은 미소지었다. "시간의 성에서 시간을 잃어버리면 방랑자는 돌아가야 하지요." "...무, 물론 돌아가야지!" 남아있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히드레안에게 물어볼 것, 대답은 들었고...마지막 퍼즐은 맞춰지지 않았지 만 오히려 누군가의 일을 완전히 아는 것의 꺼림칙함, 그리고 지금쯤 가출 한 자신을 찾기 위해 일어났을 소동 등을 생각하면 어서 돌아가야 옳았다. "...돌아가야...지." 돌아가야 한다. 자신은 왕, 일 국을 다스리는 자. 누가 뭐라고 해도 의무와 함께 책임을 가지고 있는 존재였다. 그런데 조금 망설이게 되는 것은, 그가 내뱉은 그 한마디 때문일까? 하라는 스스로에게 물어보려다가 그만 두었다. 그런 것, 알려고 싶지도 않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카인은 그런 하라의 다체로운 표정변화라는 즐거운 재미거리를 앞에 두고 서 무척 흥미진진해 하고 있었고, 하라의 표정이 조금씩 변할 때마다 약간 의 설명도 곁들였다. '지금 고민하고 있어, 앗, 또 변했다' ...위험한 녀석.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어." "히드레안 님은 부끄러움이 많아서 아들 배웅을 위해 나타나지 않으실지도 몰라요~" 퍽. 가벼운 가격음을 내면서 히드레안이 뒤에서 나타나자 카인은 '히드레안 님 너무해요! 사실을 말한 것도 죄인가요!'라고 말하면서 약간의 소동을 피웠 고 일절 무시하면서 히드레안은 걸음을 옮겼다. 그새 옷을 갈아입었는지, 잘 입지 않는 검은색의 화려한 자수가 수놓인 옷 자락을 팔락이며 히드레안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그리고 그 는 입을 열었다. "나가면서 듣겠다." "아앗! 설마 그러면서 끌고 나가서 덮치는 건..." 퍽! 두 번째는 조금 강력한 가격음을 만들어 놓고는, 히드레안은 하라의 손을 잡았다. 의외로 미약한 온기가 있는 그의 체온에 조금 어색해 하면서 하라 는 끌어당겨졌고, 둘의 모습은 사라졌다. ...여기선 워프도 개나 소나 다 쓰는 건가보다. 카인은 맞은 자리를 잡고는 궁시렁 거렸고 미노는 한숨을 내쉬면서 티 포트 와 찻잔을 허공으로 밀어 넣으며 중얼거렸다. - 결국 저럴 거면서 괜히 야박하게는 왜 구셨담. "몰라 미노?" 카인은 쿡쿡 웃으면서 맞은 자리를 문지르고 있었다. 아이크는 상관없다 는 듯이 무표정하니 바깥을 쳐다보고 있었고 미심쩍게 미노는 물었다. - 뭘 말이야? "아버지는 어머니 보다 아이를 다루는데 서투르다는 거." ...명답이다. ====================================================================== 룰루랄라~약속한 연참이 예상됩니다. 현재 시험 중, 또는 수능 준비 중, 그리고 기타등등의 중요한 일이 있으신 분들은 각오하고 보시던가 지금 당장 전원을 내리십시오. 연참~연참이 있겠습니다~♡ 마왕 이야기-187 피는 물보다 진하다-24 사박사박. 눈가루가 부서져 내리면서 흩날렸다. 눈 위를 걷는 대도 조금도 춥지 않 는 것은, 아마도 히드레안이 부린 수작 때문일 거라고 생각하며 하라는 묵 묵히 그가 이끄는 대로 따라 걸었다. 성의 귀부인들 보다 더 희디흰 피부며 여자들 못지 않게 고운 살결. 아니, 솔직히 여자보다 더 곱고 예쁜 건 사실이었다. 보통 마족은 다 예쁘 고 아름답다지만, 히드레안은 조금 특이했다. 온통 검은색으로 치장하니 유달리 차갑게 보인다. 계속해서 지루할 정도로 걷자, 마왕성만한 크기의 문이 나타났다. 그 끝 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넓고 높은 그 문의 가장 큰 문제는, 그게 문뿐이라 는 것과 문을 어떻게 열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무시무시한 크기를 자랑한다 는 것. 흰 대리석과 검은 대리석이 조화를 이룬 문은 나선형으로 휘감겨 오르는 불 길을 표현하면서 멋지게 솟아올라 있었다. 섬세하게 조각돼 있는 지옥도 와 천궁도가 사람의 실제적인 크기로 빛나면서 우아하게 양각되어서 사람 의 위에 그대로 대리석을 녹여 부은 것이 아닌가 의심이 갈 정도였다. 고 개를 열심히 꺾으면 보이는 높은 문 끝에 매달린 청명한 색으로 빛나는 거 대한 다이아몬드는 눈의 빛을 반사해 눈부시게 빛으로 다듬어 영롱히 빛나 고 있었다. "여기가 문이다." "...할 말이 있어." "여기를 통과하면 원하는 계로 이동이 된다." 드드드드드, 하면서 문은 눈을 떨리게 하면서 혹시라도 모를 산사태의 위험 을 일으키며 서서히 열려가고 있었다. 문의 사이로 햇빛이 비춰든다. 온 통 밤뿐인 이 세계에 빛이 비춰들고 있었다. 뜨겁게 눈을 가리울 정도로 강렬한 빛이. 눈은 맹렬한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바깥에서 불어오는 바람 에 저항하듯이 뒤로 물러났고, 문의 틈은 점차 넓어지고 있었다. "할 말이 있다니까!" "다시는 네 의지로 찾아올 수 없을 거다." 적당히 문이 열리자 그 바깥에 펼쳐져 있는 풍경이 보인다. 색색으로 휘날 리는 꽃잎들, 그리고 물결치는 하늘의 구름들. 눈부시게 반짝이는 끝도 없 는 꽃들의 유희. 이상하게도 계절에 따라 달라야 할 꽃들이 모두 한자리 에 있었지만, 별로 그것은 이상한 광경은 아니었다. 히드레안은 문 밖으로 걸어나갔고 하라는 뒤를 쫓으면서 바락 소리를 질렀다. "할 말이 있다고 했잖아 바보얏!" 꽃들은 사방으로, 끝도 없이 넓디넓게 펼쳐져 있었다. 아무리 솜씨 좋은 정원사라도 어디에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알 수 없는, 자연의 손에 의해 가 꾸어진 엉키고 제각각의 위치를 잡아서 이루어진 아름다운 공간. 히드레안은 검은 머리카락을 흩날리면서 걸어갔다. "듣고 있다. 소리 지르지 않아도 충분히 들어." "멍청아! 대화는 서로 마주보면서 해야 할 거 아니야!" 히드레안은 멈춰 섰고, 하라도 기진맥진해서 숨을 몰아쉬며 멈춰 섰다. 무 슨 걸음이 저렇게 빠른지, 거리가 스무 발작국 정도 차이가 날 지경이었다. 히드레안은 자꾸 휘날리려는 머리카락을 가라앉히며 그런 하라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창백하다고 느껴야 할, 기괴한 음영이 드리운 얼굴. "...헥...헥...그러니까..." "숨이나 고르지 그래?" "고르고 있잖아!" 하여튼 조금도 맘에 안 드는 저 성격. 기분 나쁠 정도로 매끈하고 아름다 운 얼굴이며, 제멋대로 구는 말투와 좋게 말하려고 해도 좋게 말할 기미가 조금도 없는 행동들. 하나도 마음에 드는 구석이라곤 없었다. 더군다나, 가장 중요한 것은 어머니를 버려 두었다는 것. "...언제까지 숨이나 고를 거냐?" "방금 다 골랐어!" '그으래?'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것이 아까까지만 해도 말 걸기 뭐했던 기 분을 저 바닥으로 추락 시켜서 검 없이 맨손으로라도 붙고 싶은 충동을 하 라의 머리 속으로 꾸역꾸역 밀어 넣고 있었지만 하라는 꾹 참았다. 어디 마음만 그렇지 실제로 마왕중의 마왕이라는 그에게 그런 무모한 짓은 할 수 야 있겠는가. "...음...큼, 묻고 싶었던 게...원래는 엄청나게 많았지만..." 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하라는 무안함을 억지로나마 달랬고, 이내 눈을 히드 레안에게 정확히 고정시키고는 말을 시작했다. 아무래도 차리라 당당히 쳐 다보는 게 훨씬 말하는 건 났다고 생각하면서. "...절대로 네가 걱정되거나, 어 뭐 그런 것 때문에 묻는 건 아니야. 그러 니까 듣고 나서 웃거나 할 생각하지마, 알았어?" "서론이 꽤 길군." 히드레안은 무료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고 하라는 자신의 말이 충분히 받 아들여졌다는 것을 알았지만 조금 불끈하는 것을 느꼈다. '같은 말도 좀 곱게 쓰면 어디가 덧나냐!'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하던 말마저 안 듣고 휘익 가버릴 요지가 넘치고도 남는 녀석이었다. "...그...그러니까! 어머니는 행복했어. 내가 보기엔 정말 바보 같고, 멍 청한 짓이었지만...그래도 행복하셨어. 누구보다, 정말로...마지막 순간까 지 행복하게 눈을 감으셨단 말이야! 비록 네 녀석이 오진 않았지만, 그래 도 정말로! 그러니까..." 미치겠군, 호흡이 말을 안 들어. 하라는 그것을 느끼면서 다시 거칠게 숨을 들이쉬었다. 히드레안의 얼굴 은 이제 약간 웃고있기까지 했고, 자신이 점차 광대라도 되는 기분으로 하 라는 한템포 빠르게 호흡을 했다. 호흡이 거칠어 져서인지 모르지만, 목끝 이 조금 따갑다. 약간 쉬었다고 생각되는 목소리로 하라는 천천히 입을 열 었다. ".......행복...해?" 이건 자신이 할 말이 아니라고 느끼면서도 하라는 결국 그렇게 말하고야 만 자신을 저주했다. 어울리지 않아도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는 이 풍경에 서 이런 말이나 해야 하다니. 이렇게 온갖 꽃이 난무하고 있는 이 화려하고 아름답고 무슨 말을 해도 모 자람이 없는 그런 곳에서,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서, 아버지-라고 인정하고 싶지는 않아도 맞는-에게, 그것도 여자 뺨치고 밟고 절망에 빠트릴 정도로 요염하고 아름다운 아버지를 앞에 두고 할 말 따위가 아니라는 사실은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그를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했었다. 하지만 하라는 확신할 수 없었다. 정말로 히드레안이 행복한 지, 어머니가 말했던 그 이상한 논 리가 과연 그에게 만족이란 것을 주었는지. "호라, 그런 게 알고 싶었나?" 피식, 하고 히드레안이 짓는 미소는 상당히 '건방짐'을 내포하고 있었다. 역시 묻는 게 아니었다고 생각하면서 하라는 주먹과 함께 고개를 떨구었고 히드레안의 입이 다시 열렸다. "...글세..." ====================================================================== 과연 내가 200이란 것을 달성할 것인가, 안그러면 여기서 무너져 내릴 것인가, 혼자서 이딴 고민하면서 글을 계속 올리고 있습니다. -_-; 음....다음 이야기 쓸때는 숫자 안 써야지, 하고 굳게 다짐하는 바입니다. 숫자는 헷갈려요. -_-;;; 마왕 이야기-188 -_-a 200회 되기 전에 완결될지도..... 후훗....(이것이 바로 엽기적인 짓이라는 건가....-_-;) ====================================================================== 피는 물보다 진하다-25 꽃잎 하나가 살짝 하라의 어깨에 앉았다. 흰 색의 이름 모를 꽃의 한 조각 이었지만, 하라는 그걸 눈치채지 못하고 힐끔, 히드레안의 얼굴을 다시 올 려다봤다. "...행복의 정의라는 것이 누구에게나 다른 것이고, 정확한 의미가 미묘한 단어인 만큼 내가 행복한 지 아닌지는, 내가 판단할 수밖에 없는 거겠지. 네 말처럼, 그녀는 마지막까지 행복했다. 죽음이란 완성의 귀결로 인해." 역시 묻는 게 아니었는데, 미소가 이제 조금 쓸쓸하게 변해있었다. 히드레 안은 슬쩍 손으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매만진 후, 나풀대도록 나둔 후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지만 아직 나에겐 끝이 오지 않았다. 행복이란 것은 끝을 통해 확인 할 수 있는 것 일 테니까. 나에겐 영원이 있고, 그 영원은 채워지지 않는 잔과 같은 것이지. 바닥이 없는 잔에 물이 찰리가 있나...?" 쏴아. 누군가의 농간이 확실한 듯 때를 맞추어 바람이 불어왔고, 바람은 허공으 로 꽃잎들을 마구 휘날렸다. 하늘 끝까지 솟아오르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격렬하게 휘어 올라간 꽃잎들, 색색깔의 꽃들이 햇빛을 받아 보석이라도 된 듯이 반짝인다. "하지만, 어쩌면 끝이란 것이 있을 지도 모르지. 네가 태어났기에. 나의 조각이지만 조각이 아닌, 나와 다른 너라는 존재가 있기에." "...무슨...소리지?" "넌 내 에테르 체, 단순히 내 마력의 일부였을 뿐. 그대로 내버려뒀다면 나와 똑같은 존재자체로 태어났어야 했지. 하지만 지금, 넌 나와 같은 가...?" 틀리다. 그야, 히드레안을 어느 정도 닮아있지만 하라의 외모는 히드레안 과는 달랐다. 눈동자의 색도, 미묘하게 차이가 나는 피부색도, 그리고 목 소리라던가 하는 미세하고 작은 것에서부터 크게는 감정 상태에서 행동들이 나 삶의 지표, 방식들이. "네 푸른 눈동자. 나는 보지 못했지만, 네가 처음으로 눈을 떴을 때 그녀 는 그것을 보았겠지...? 태어났던 순간부터 너는 나와 달랐다. 너의 눈동 자는 그녀와 닮아 있으니까. 인간으로서의 세월이 너와 나의 삶을 다르게 했고, 너는 새로운 길을 찾아내 목적지로 걷고 있다." 행복하냐고 물으니까 왠 헛소리야, 라고 생각하면서도 하라는 그의 말을 들 을 수밖에 없었다. 미소, 다시금 짓는 그의 미소는 '미소(媚笑)'라는 단 어 외의 그 무엇으로는 표현할 수가 없었다. "내가 행복하냐고?" 되묻는다. 그리고 바람이 일어난다. 그가 웃을 때, 그가 감정적으로 무엇 인가 변할 때, 이곳에 바람이 일어나고 있었다. 하라는 그것을 느끼고 다 시금 휘날리는 꽃잎들을 손으로 살짝 쳐내줘야 했다. 눈이 보이지 않을 정 도로 솟구치면서 이리저리 흩날리는 이 꽃잎들이 거추장 스러웠다. 그의 어깨에 앉은 흰 꽃잎은 그 바람에서도 미동하지 않았지만 하라는 여전히 느 끼지 못했다. "글세, 너는 태어났다. 다른 존재로. 내가 완전한, 끝도 없이 영원 한, '자손'을 남겨도 되지 않는 완전한 존재인데 네가 태어났다는 것은 모 순. 너의 탄생을 기뻐하나 동시에 두려워했던 것도 모순. 그리고, 지금 네가 그 자리에서 서서 나에게 의문을 던지는 것 역시 모순." 히드레안은 하라에게로 걸어왔다. 두근대는 심장소리가 커져서, 이제 터 져 버릴 지경이 되어 간다. 귀가 멍멍할 정도로 들려오는 것은 기막힐 정 도로 커다란 심장소리였다. 하지만 그는, 히드레안은 하라를 스쳐서 문으 로 걸어갔다. 하라는 순간 흐트러지는 그의 머리카락을 바라보다 놀라서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잠깐만! 말 해줘! 행복하냐니까!?" 히드레안은 돌아보지 않았다. 그의 검은 옷자락 위에 수놓인 아름다운 꽃 잎들도 바람에 따라 흔들린다. 거친 바람이 하라를 앞으로 밀고 있었고, 하라는 뛰어가 그를 잡을 생각은 할 수 없었기에-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저 그의 등에다 대고 외칠 수밖에 없었다. "히드레안! 행복하냐니까!" "행복에 의미가 있다면!" 히드레안의 목소리가 들려 온다. 마치 노래라도 하듯이, 높은 음정을 가진 바람과 어울려 화음을 만들어내 는 목소리가 하라의 귀를 때렸다. 걸어가고 있는 그의 모습은 점점 작아지 고 있었고 바람결에 꽃들이 송두리채 뽑혀져 나오기라도 하려는 듯, 화려 한 꽃잎들이 하라의 눈앞을 가렸다. "그 의미를 깨는 것이 나의 의무!" 바람소리, 들려오는 소리가 아름답지만 동시에 귀 안을 메꾸는 멍멍함을 만 들어 낸다. 심장소리 때문에 들려오는 목소리는 아득히 먼 곳에서 조그맣게 중얼거리 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인간의 삶이 유한하다면, 나의 삶은 무한!" "...대답해!" 하라는 대답을 들을 수 없을 것 같은 초조함에 손을 꼭 쥐었다. 히드레안 은 거의 문에 다가가고 있었고, 조금만 있으면 문을 스쳐 다시 그의 세계 로 돌아가 버릴 것이다. 하라는 하지만 손을 뻗지 못하고 그 자리에 서 있 었다. 그가 대답할 것이라는 묘한 기대와, 대답하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 을 동시에 안고서. 히드레안은 돌아보았다. 그의 검은 머리카락이 흔들린다. 흔들리다 다시 그의 미소 띈 얼굴을 살 짝 감싸고돌며 가리운다. "그러나 나에게도 끝이 있기에...!" "대답해!!" 문은 서서히 닫혀가고 있었다. 바람소리와 함께 커지는 진동음이 합하자, 히드레안의 목소리가 더욱더 작 아져 제대로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히드레안은 끝내 대답하지 않 고서 잠시 입을 다물고 하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라는 입술을 한번 꾹 깨물곤 소리를 질렀다. "대답하란 말이야! 이 바보 같은, 아니 바보 아버지!!" 유쾌한 그의 웃음소리. 히드레안은 손을 내밀었다. 문은 서서히 닫혀가고 있었고, 이제 문은 닫히 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그는 손을 내밀었고, 그 손은 하라를 향해 내밀어 져 있었다. 잡을까? 말까? 순간적으로 스쳐 나가는 고민, 하지만 히드레안은 내민 손을 흔들었다. 가 버리라는 표시. 그리고 그의 얼굴에 맺힌 심술궂은 미소. "...너...!" "그 대답은...네가 구해라!" 드드드드드... 닫히는 문으로 히드레안은 빠르게 몸을 돌려 사라졌다. 그의 긴 머리카락 이 남기는 물결 같은 어두운 잔상이 사라지고, 바람은 조심스레 가라앉았 다. 얼빠진 얼굴로 서 있다가, 하라는 기가 막히다는 듯이 고래고래 허공 을 향해 소리쳤다. "...으아아아아앗! 누가 마왕 아니랄까봐!" ====================================================================== 자까가 엽기적이라서 그랴....-_-a 나한테 너무 그럴 것 없다구. 마왕 이야기-189 -▽- 훗~ 우리 자갸가 전화를 해주었군요.(꺄악~너무 좋아~>.<;;) ....그런데 수석입학을 바라는 우리 자갸...-_-;; ........까짓 해줘야지. 내가 힘이있나. 아자! 목표는 세종대! 에서 진로 바꿔서 세종대 수석합격! -_-;; ====================================================================== 피는 물보다 진하다-26 하라는 당장 달려가서 저 문을 박살내고 히드레안의 얼굴에 한방 먹이고 싶 은 것을 참았다. 어차피 그런 녀석이야, 라고 생각하면서 애써서 자신을 위로하고 있는 그 가 어쩐지 처량해 보일 지경이었다. 마지막까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그는 아무 것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아들'이라고 불러 놓고서. 그렇게 다정하게 어머니에게 대해 줘 놓고서. 그따위 거짓말이나 계속해서 사람 속을 다 버려놓고서. 그런, 심술궂은 미소를 보여줘 놓고... 뚝, 고여있는 눈물이 떨어져 내린다. 어머니는 눈물이 흐르면 참지 말라 고 했다. 남자면 어떻고 여자면 어떻고, 감정에 가장 충실한 것이 인간이 기에, 인간이라면 자신의 감정을 속이지 말아야 한다고. 그 감정을 속이기에 모든 죄악의 근원이 일어난다고... 하지만 하라는 정말 이 순간에는 울고 싶지 않았다. 빌어먹을 마왕, 망할 마왕녀석... 애써 고인 눈물을 훔쳐내면서 하라는 걸음을 옮겼다. "빌어먹을 녀석..." 꽃들이 이리저리 흐트러지며, 조금 키가 큰 꽃들은 하라의 허리를 넘어올 지경이 될 정도까지 되었기에 그는 꽃무더기를 해치고 나가면서 걸음을 옮 겼다. 거의 본능적으로, 그는 앞으로 나가면 길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 기에 그냥 무작정 걸음을 옮겼다. "빌어먹을 놈의..." 하라는 다시 악을 썼다. "이 망할 아버지야! 두고봐! 내가 두 번 다시 아버지라고 불러주나! 젠장! 재수 없는 마왕에다가 색골에 변태에 바람둥이 주제에! 절대로 두 번 다시 내가 그 이름으로 부르면 성을 간다 갈아!" 어디 소리가 부딪치는 곳도 없는지 그의 소리는 메아리가 되지 않았다. 헉 헉대면서 실컷 악을 쓴 하라의 눈에선 아직도 눈물이 약간 흘렀다. 끝까 지 아무 말도 해주지 않은 그 망할 녀석, 두 번 다시 아버지라고 불러주나 봐라. 하라는 고개를 휘휘 젖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돌아가고 싶었다, 이제 자신이 있었던 곳으로. "결론을 내는 건 시간이 하는 일이 아니죠." 푸웃. 하라는 앞으로 넘어졌다, 아니 꼬구라 졌다.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당황한 것도 있지만, 자신의 어깨에 있었던 것으 로 생각됐던 흰 꽃잎이 나풀, 하고 앞으로 날았다 바람에 뒤로 날려가며 갑 자기 사람으로 변했기 때문에. 그리고 그 사람이 하필이면 '카인'이었기 때문에! 쿠당하는 소리 대신 푹신한 꽃무더기 속으로 추락한 하라는 온갖 꽃들의 향 이 범벅되어서 지독하게 강한 향수를 맞은 기분으로 버둥버둥 대다가 힘겹 게 뒤로 돌아누웠다. 카인의 싱긋이 미소 짓고 있는 찢어버리고 싶을 정도 로 장난기 어린 얼굴이, 그 보랏빛의 두터운 광택을 가진 눈동자가 들어왔다. 희게 나풀대는 머리카락이 빛에 반사돼서 투명하게 보일 정도였다. 하라는 호흡을 고르곤 눈가에 있는 눈물을 마저 닦아낸 후 입을 열었다. "...어떻게...네가 여기...?" "그건 사업이자 기업을 위한 비밀."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얄미운 말을 하며 카인은 손가락 끝을 입가에 가 져다 대었다. 하라는 헛웃음이 나는 것을 느끼면서 눈가를 가렸다. 대답을 듣지 못했 다. 결론을 내는 것은 시간이 아니기에. 시간은 네 번째, 처음으로 완성 됐지만 답을 내리는 마지막이 아닌 존재니까. 그는 대답해 주지 않는다. 결론도 내리지 않는다. 끝을 내지도 않는다. 그냥 중간의 과정에 그렇게 서 있을 뿐.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햇빛이 기괴했다. 계속해서 떨어져 내리는 그 빛들, 그리고 온갖 향이 섞여 머리 를 아프게 할 정도로 지독한 향기들. "...대답해 주지 않았어..." "시간은 결론을 낼 수 없어요." "하지만...난 대답을 듣고 싶었어." 카인은 손을 내밀었다. 가라는 뜻이 아닌, 잡으라는 의미로. 눈을 가리 고 있던 손을 떼면서 하라는 입을 삐죽였다. "두번은 안 속아." "속아도 후회 없을 특급여행일 텐데요?" 하라는 카인의 손을 꽉 쥐었다. 그의 손에는 온기라곤 없이, 싸늘한 한기 가 맴돌고 있었지만 어쩐지 부드럽고 '감미롭다'고 느껴지는 감촉이 있었 다. 어쩌면 자신의 손이 너무 뜨겁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걸지도 몰랐지 만... 카인은 미소 지었다. 이제 그가 정말로 미소 짓는지, 아니면 그냥 습관적 으로 미소를 짓는 지 하라로서는 알 수 없었다. 그냥 슬쩍 짓는 미소, 카 인은 하라의 손을 꽉 쥐고는 그를 꽃무더기에서 끌어올렸다. 꽃잎이 또 한 차례 나풀댄다. 미적지근한 온기를 간직하고. "아직까지 내가 한 말을 기억하고 있습니까?" 출렁, 마치 물이 움직이듯이 끌려간다. 일그러진 공간의 너머로 카인은 그 를 안내하고 있었다. 물 속에 투과되어서 어지러이 흔들리는 잔상들이 하 라를 휘어 감고 이끌어 나갔다. 카인은 미소 지으며 그를 다시 물 속에서 끌어내어 현실로 인도했다. "...무슨 말?" 카인이 손을 잡아끈다. 흰색이 주지만, 회색 빛의 적당한 부조와 검고 흰 돌로 장식된 복도. 햇빛이 비춰들고, 난간 너머로 아래가 보이는 2층 복 도 같은 곳. 익숙한 녹색의 물결과 익숙한 그곳을 바라보며 하라는 비명 을 울렸다. "여긴 아르미디아잖아!" "네에, 바로 아르미안의 중심지이자 왕의 처소이지요." 카인은 장난스레 대꾸하면서 하라의 손을 끌었다. 그가 이끌고 있는 곳, 수도 없이 걷고 걸어서 이젠 익숙해진...하지만 도대체 왜 이리로 인도하 는 거지? 멀리서 아릿한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성지 칼란디카에 높이 솟 아있는 은빛 종의 울림. 죽은 이도 없을텐데 왜 지금 종이 울리는 걸까. 하라는 의아함을 가지면서 도 카인의 손에 이끌려 걸어갔다. 부산스럽지 않게 조용조용히 움직이는 사람들이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모두 하라를 보지 못한 듯 그냥 스쳐 지 나갈 뿐이었다. "카인, 마법이라도 걸었어?" "아뇨-마법 같은 건 전혀 쓰지 않았지요." "그런데 왜 우릴 못보는 거지?" 카인은 쿡쿡 웃으면서 한 손으로 살짝 입을 가려 보이더니 조금 걸음을 빨 리 해 걸어갔다. 그의 입가에 장난스런 미소가 또 맺힌다. "선물은 미리 알면 아무 것도 재미 없는 법이죠." ====================================================================== 연참~연참~ 과연 연참은 어디까지 계속될 것인가? -_-;; 마왕 이야기-190 누가 보고 있스....-_-; 보고 있는 이가 있다면 감상을 쓰시오. 안쓰면 재미 없소. -_-+(맞는 일도 있을 것이오.) ====================================================================== 피는 물보다 진하다-27 그래, 너 성격 고약하다. 고 속으로만 생각하면서 하라는 입을 다물었 다. 그가 느긋하게 걸음을 옮기고 있는 곳, 그것은 왕성의 깊숙한 내실에 있는 침실이었다. 하라의 방이면서 동시에 한 때는 어머니의 것이었던... 짙은 갈색의 망토를 두른 이가 그 침실의 문을 열고 있었다. 늘어진 갈색 머리카락과 독특한 은제 지팡이. 그의 옆에는 짧게 자른 금발의 소녀가 검 은색의 짧은 조복을 입고 서 있었다. 둘 모두 뒷모습 뿐 이었지만 하라는 그들을 알고 있었다. "...어떻게...왜 두 분이 지금 여기에?" 하라는 카인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손을 살짝 놓아주자 그들에게 다가가 말을 걸려고 했지만, 하라가 내민 손은 그들을 통과해서 흐려졌다. 깜짝 놀라서 화닥닥 손을 때어낸 하라는 화급히 카인을 바라보았다. "카...카, 카인!?" "이런이런, 아직도 모르시겠어요?" "...뭐, 뭘 몰라? 이게 어떻게 된..." 딱 한번 본 그들. 저 둘이 이 자리에 저런 옷차림으로 있었던 것은 단 한 번. 단...한번? 하라는 열린 문으로 뛰어들어갔다. 그 방, 그때 그대로, 모든 것이 조금 도 변함없는 기억 속의 모습 그대로... 하얗게 늘어진 실크로 된 천이 반쯤 가려져 있는 침대 위에 창백하게 질려 있는, 입고 있는 하얀 옷자락보다 흰 얼굴로 누워있는 여인이 있었다. 완 숙한 아름다움을 지녔을 테지만 많이 말라 있어서 초췌한 느낌이 드는 그녀 의 얼굴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하...하하...이건, 이건 말도 안돼..." 그런 그녀의 손을 잡고 금새라도 울 듯이 보이는 작은 아이. 아닐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하라는 입을 벌리고 그 자리에 굳은 듯이 서 있을 수밖에 없 었다. 짙은 검은 망토를 두르고 구석에 서 있는 이나, 아까 보았던 두 명, 그리고 뾰족한 귀를 가지고 있는 검은머리를 늘어뜨리고 있는 녹색 옷 차림의 엘프, 흰옷을 입은 고위 성직자와 궁중마법사로 보이는 푸른 머리카 락의 남성. 많으면서도 적은 사람들이 그 방안에 서 있었고, 조금 떨어져 서, 그런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흐트러진 푸른 머리카락 사이에 빛나는 아쿠아 블루의 눈동자를 가진 그녀. "...어...머니?" 하라는 비틀대면서 뒤로 물러섰고, 카인은 그런 하라의 어깨를 잡고 부축 해 주었다. 하라는 숨이 막히는 것을 느끼면서 그 장면을 바라보고 또 바 라보았다. 지금 이게 꿈이 아니라면, 단언하건데 이건... "이곳은 시간도 공간도 없는 곳. 누누히 말씀 드렸을 텐데, 섭섭하군요 하 라 님?" "...나...나 왜 이런 걸...이런 장면을!" 하라는 몸부림치려고 했고 카인은 조용히 그런 그의 어깨를 누르면서 소근 소근, 낮고도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자, 조용히...죽어 가는 이의 마지막을 보는 자 답게 조용히." 하라는 그 말에 입을 다물었다. 소근대는 소리들, 그저 조용히 입을 다물 고만 있는 이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가 쁜 숨을 내쉬면서도 그녀는 미소 지었다. 그리고 작은아이를 바라보면서 조용히 말을 이었다. "...혹시라도 늦거든...말해주련...? 화이트는 사랑했다고...끝까지 당신만을..." 또...콧날이 시큰해진다. 그렇게 다정하게 말했으면서, 왜 그렇게 사랑스럽다는 눈길로 봐 주었으면 서, 사랑한다고 속삭였으면서...어째서 이 순간에는, 왜 그냥 버려둔 거였 는데... 하라는 이를 악 물었다. 비참하기 짝이 없던, 최초로 자신의 피에 관해 의 문을 가졌던 순간. 왜, 마지막 순간까지, 그토록 어머니가 사랑했던 그 존 재는 나타나지 않았는가. "속단이란 것은 인간이 저지르는 바보 같은 실수들 중의 하나지요. 제발 부탁이니 제가 했던 말들 좀 기억해 주시지 않으렵니까? ......진실이 천 이 모일 때..." 하라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보았다. 자신의 뒤에 서 있는 그림자를, 검다고 볼 수 있는, 온통 검은 색의...자주 빛의 수가 놓여져 있는 상복을 입은 체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는-누구보다 안타까운 얼굴로 그렇게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사실은 둘이 되는 법이지요." 화이트는 미소 지었다. 그를 바라보면서, 울고 있는 어린아이를 품에 끌어 안으며 그녀는 '그'를 분명히 바라보았다. 소리조차 낼 수 없이, 하라는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아야 했다. 이건, 꿈이다. 분명 이런 일은 없었는 데...분명히... "...화이트는...끝까지 행복했다고...그러니까..." 그녀는 행복감으로 가득 찬 미소를 지었다. 소리 없이 흩어지는 너무나도 행복하게 느껴지는 미소를...눈물이 날 정도로 따스하고 부드러운, 그래서 미칠 듯한 그 미소를. 그를 바라보면서, 화이트는 그렇게 미소 지었다. 거짓이야, 이런 일은 없었어. 분명히...그 때 그는 그 자리에 없었잖아? 하라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서, 히드레안은 그 붉은 핏빛 같은 입술을 움직 여 조용히 소리를 만들어 냈다. "...그래..." 카인은 조용히 쓰러지려는 하라의 허리를 잡아 고정시켜 주었다. 이건... 거짓인데. 이런 일은 없었어, 그냥 카인이 보여주는 그런 환상일 뿐인 데...그런데...너무나도 생생해서 손을 뻗으면 금새라도 현실이 될 것처럼 생생해서, 하라는 깨어버릴 수가 없었다. 히드레안은 무척이나 슬픈, 그렇지만 동시에 묘한 따스함이 깃든...무척이 나 바보 같고, 무척이나 그답지 않은 미소를 지으면서 그는 화이트를 내려 다보았다. 소름끼칠 정도로 현실적이다. 부서지는 햇빛도, 사락이는 옷자 락의 소음도, 그리고 미소 짓고 있는, 서로 마주보고 있는 그들의 눈동자 도. "...나도 행복하다." 무너져 내린다. 그 혼란스러운 상황이 모두 무너져 내렸다. 하얗게 빛나는 깃털들이 쏴아 아, 하고 사방으로 휘날렸다. 카인의 악취미라고 볼 수 있는 그 백색의 원 무와 뜨거운 햇빛. 몸에 와닿는 그 눈부심에 현실의 감각과 현실이 아닌 것의 감각이 구분된다. 하라는 겨우 목 끝에 걸려있던 소리를 내뱉았다. "...이게...진실이야? 이게...이게...사실이었어!?" "모를 일이죠. 하지만 아까 그것은 거짓이 아니었다는 것 뿐." 울지 않고 싶은데, 그따위 녀석을 위해서 울어주거나 감동하고 싶은 건 아 닌데... 하라의 눈에선 속절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런 그를 등뒤에서 감싸안 아 주고 있는 카인의 미소도 부드럽기만 할뿐, 더 이상 장난기는 엿보이지 않았다. ====================================================================== 후훗....-_- 마지막 엽기는 아직도 기다리고 있습니다......큭.큭.큭. 마왕 이야기-191 피는 물보다 진하다-28 "시간은...시간은 결론을 내리지 않잖아!" 카인은 대답했다. "히드레안은 대답할 수 있지요." 하라는 허공을 향해 외쳤다. "...그럼 왜 거짓을 말한 거지 그는!?" 카인은 다시 대답했다. "히드레안은 거짓을 말할 수 있죠." 하라는 발악하듯이 비명을 질렀다. "왜 너따위 자식이 행복한 거냔 말이야! 왜!" 카인은 울부짖는 그를 감싸안아 주었다. 속절없이 떨어지는 그의 눈물, 인 간의 나이로 28이라면 많은 나이. 하지만 육신의 나이만큼 순수한 그의 영 혼이 소리 높혀 울부짖는다. 그 비명이 천천히 이 불안정한 혼돈도 아니면 서 질서도 아닌 공간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카인은 대답했다. "그에게 마지막이 있기 때문이겠죠." "그는...그 때 그 자리에 없었는데...어떻게 그는...그 자리에 서 있었던 거지? 왜...그리고 대답했던 거지? 왜 난..." 카인은 잠시 생각하는 표정이더니 장난스럽게 미소 지으면서 할짝, 하고 고 개를 숙여 등을 가슴에 대고 안겨있는 하라의 눈가를 핥아 주었다. 하라 가 새빨갛게 얼굴을 붉히면서 뭐라고 하기도 전에 카인은 말했다. "글세, 몇 번씩 강조하는 지 모르겠지만. 여긴 시간도 공간도 없다니까요." 그의 손이 슬쩍 풀려난다. 그리고 하라의 몸도 이 텅빈 공간의 영향을 받 아 휘청하고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의 미소, 장난스러우면서도 모든 것을 반사하는 투명한 광택으로 둘러싸인 그를 바라보며 하라는 외쳤다. "너 가만 안 둘 거야!" "시간도 공간도 없다면, 언제라도 원하는 공간과 시간으로 갈 수 있다는 말 도 될 수 있죠. 모두 없다는 것은 모두 있다는 것과 동일한 것. 공간과 공간이 겹치는 지점에서 본 눈으론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겠지요?" 카인은 손가락 하나를 까닥해 보이면서 우아한 궁중식의 인사를 해 보였다. "그렇기에 모든 것은 한바탕의 꿈, 본 것을 기억해도 잃어도 그것은 당신 의 권한." "이...카인제이럴!" 그의 목소리만이 이제 하라의 귓가를 맴돌면서 장난스럽게 메아리쳐졌다. "네에, 카인제이럴. 그것이 나의 이름, K-A-I-N- 죽음이라고 불리는 끝. 언젠가 당신에게도 다가갈 가장 가까운 존재-가 바로 저입니다." 그의 유쾌할 정도로 밝은 목소리가 하라의 귀를 커다랗게 울렸다. "서비스가 필요 하시다면 언제라도 저를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즐거운 꿈 을 꾸셨길!" 하라는 결국 이렇게 외치고야 말았다. "이 자식아! 누가 그딴 거 해달라고 했어어어어어!" ...뭐 굳이 그렇게 따지게 된다면 또 카인이 할말은 없지만, 결과적으로 좋 은 거 봤으니 된거 아닌가? 하라는 끝까지 고래고래 악을 쓰면서 카인을 향 해 약간(?)의 저주를 뿜어냈지만 그 정도에 끄덕했으면 이때껏 오래 살지 못할 카인이었다. 히드레안은 찻잔을 기울였다. 뜨거운 홍차의 김, 그리고 따스한 온기. 미노는 쟁반을 바쳐 들고 싱글싱 글 웃었다. - 기분 좋아 보이시네요 주인님? "뭐, 그럭저럭." 삐딱하게 말하면서 턱을 괴고는 히드레안은 홍차잔을 기울였다. 아이크는 여전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고, 미노는 그런 눈이 내리는 길게 늘어서 있 는 테라스 바깥의 풍경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려 히드레안을 바라보면서 미 소 지었다. "금방 돌아갈테니 기다려." 히드레안은 물끄러미 당당하게 미소짓는 미노를 바라보다 실없이 웃으며 대 답했다. "시체주제에." "...안 돌아가고 싶어지는군..." 투덜대며 미노는 고개를 돌렸고 히드레안은 히미한 미소를 지었다. 지루하 고, 지겹고, 망할 인생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긴 세월동안 용사라고 설치는 것들도 충분히 있고, 또 지겹게 달라붙는 사랑이라고 불리는 것도, 또 계속되는 빛이라던가, 귀찮은 일을 잔뜩 벌리는 골칫거리도 있다. 하지만... 언젠가 그 모든 것이 끝나는 그때가, 분명히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히드레안은 홍차를 한 모금 홀짝대면서 중얼거렸다. "...행복한 건지도." 검은 하늘, 차가운 셀레나의 아래서 끝없이 내리고 또 내리고 있는 눈. 희 면서도 푸른빛을 가지고 있는 눈은 끝도 없이 내릴 것처럼 그렇게 계속해 서 떨어져 내리고 떠 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없는 이 성에서도 밤은 깊어간다. ====================================================================== (이런, 정말 200회 완결 짓기도 전에 끝냈다. -_-;).....훗, 알게 뭐냐~; 마왕 이야기-END- 밤과 어둠과 낮과 새벽 어스름이 책을 밝히는 것은 이제 촛불이 아니라 햇빛, 밤이 끝나고 낮이 밝 아오고 있네요. 이야기는 끝났고, 이제 책을 덮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것 같은데... 착한 어린이는 잠자리로 갈 시간-나쁜 어린이는 불량한 일을 계획할 시 간...흠흠, 뭐 그런건가요? - ...잠깐, 그럼 여기서 정말 전부 끝? 뭘 더 바라고 계시나요? 책은 여기서 끝났고, 이제 남은 것은 덮는 일 뿐. 물론 남아있는 여백이 있지만 이 빈자리에 무엇을 더 채워 넣어야 할 까요? 모든 것이 행복해 진 이 시점에서 무엇인가를 더 추가하는 건 오히 려 바보 같은 짓이지요. - 하지만, 그럼 미노는 어떻게 되는 거야? 안 깨어나는 건가? 글세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아 이런, 해가 뜨기 시작하네요. 참 좋은 풍경이지요? 밤늦게까지 책을 읽는건 별로 좋지 않지만 이럴 땐 정말 딱이라니까요. 뭐, 어디보자...책에는 더 이상 아무 것도 쓰여져 있지 않 아요. 그냥 비어있는 페이지 뿐이라구요. - ...하다못해서 하라가 뒤에 어떻게 된건지 정도는 알려줘야 해! 그럼 빈 페이지를 읽어야 하나요? 책은 적당한 끝이란 게 필요한 법이죠. 지나치게 끌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남는 것은 지루함뿐입니다. 필요한 이야 기를 전했으면, 잡다한 말은 넘겨도 되는 게 아닐까요? - ...그 후 그럼 히드레안은 어떻게 되었을까? 행복하게 살다가, 행복하게 죽었겠죠. 어쩌면 불행해 졌을 수도 있고, 음...모르겠는데요? 하핫, 솔직히 말해서 책에 쓰여지지도 않은 것을 저보 고 알아내라고 한다면 저로서는 도저히 그런 건 불가능해요. 아무래도 읽 어주는 것뿐이니까. - 그런 게 어딨어! 확실히 끝을 봐야 할 거 아니야! 끝을 볼 필요는 없어요. 언제나 결과만을 중시할 뿐, 아무도 과정을 중요 하게 여기려 하지 않지만, 생각해 보면 가장 중요한 것은 과정이 아니던가 요? 뭐, 이렇게 끝내다니 과연 작자가 엽기적이긴 하다는 생각이 좀 들기 는 하지만 상관은 없죠. 이야기는 끝났으니까. - 이렇게? 이건 너무해 정말로. 속은 것 같단 말이야... 끝이 있어야 이야기가 즐거운 것만은 아니지요.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사는 세계가 현실일 수도, 아니면 이들의 세계가 현실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하는 대화도 사실은 누군가의 꿈일 수 있겠죠. 결론 은, 모든 것은 거짓 같으면서도 사실 같다는 것이 아닐까요? - ...말은 잘해. 치이... 말만 잘하는 건 아니죠. 글도 잘 읽잖아요. 자자, 해가 뜨고 있어요. 낡 은 책은 책장에, 숄은 벽장으로, 그리고 지친 몸은 봄처럼 따스하고 포근 한 침실로...어서요, 푹 자야지 좋은 꿈을 꾸고 다시 일어날 수 있답니다. - 가기 싫어어- ...이야기 끝났다니까요, 어서 가서 자지 않으면 혼나요. 오늘은 이 책만 읽고 자기로 약속했잖아요? 물론 산더미처럼 다른 책들이 많기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이야기들은 일일이 모두 다 해줄 순 없 는 거라구요. - 칫... 아, 잠깐만요. 기다려 보세요...여기 책이 하나 더 있어요. 그와 관련된 거죠. 읽어보시겠어요? 해가 뜨고 있기야 하지만, 아직 초는 남아있으니 까...초가 다 탈 때까지만, 이야기를 시작해 보도록 하지요. 자아, 여기요. 먼지가 조금 요란스럽기는 하지만 낡은 책더미 속에 또다른 이야기가 있는 법, 자 거기 앉아서 아까전처럼 다시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요 릴? - 오늘도 밤 세는 거 아니야 펜? ...흠흠, 그런 건 신경 쓰지 말고. 옛날 옛날에 아직 첫닭이 울지 않았던 때...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