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터 오브 웨폰 1권(히든클래스) 서장 테이스 월드 현존하는 최고의 게임, NPC 자유 시스템 100%에 완벽한 시스템 구현. 전 세계를 경악시킨 그 게임은 수십 개의 대륙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각 대륙에서는 나라별로 게임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감춰진 대륙. 그 대륙은 전 세계인이 모이는 파이널 라운드, 빛의 대륙이었다. 카운트다운 시작합니다. 제1장 웨폰인첸트 지금 내 앞에는 수백 개의 인형과 그 인형들의 눈알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허어어업! 눈알 끼우기 비기 42식 작렬 인형 눈알!” 퍼퍼퍼퍼펑! 나의 손가락은 빛의 속도로 움직였다. 전광석화! 인생절학(?)이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로 나의 손이 인형 눈알을 끼우는 속도는 가히 환상적이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운동 신경이 좋았다. 그냥 좋은 게 아니라 거의 인간이 아니라고 평할 정도로 운동 신경 하나 만큼은 타고났다. 그런데 그 좋은 운동 신경으로 인형 눈알 끼우기나 하다니, 내가 왜 이렇게 된 걸까? 분명 우리 집은 중산층에서도 상류층이다. 한마디로 잘산다는 소리였다. 물론 과거의 이야기 따위는 아니었다. 지금도 그런대로 잘사는 편이었다. 하지만 잘사는 건 아버지와 어머니였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2년 전, 갑자기 일 때문이라고 하면서 모습을 감추었다. 일 때문이라는데 어떻게 하겠는가? 하지만 일은 일인데 정체불명의 일이었다.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놀러 다니는 일. 그게 어딜 봐서 일을 하는 거냐고 물어보아도 부모님은 많은 걸 알면 다친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로부터 2년. 난 생활비를 한 푼도 주지 않는 부모님 때문에 살기 위해 ‘인형 눈알 끼우기’를 하게 되었다.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건 우연이었다. 정우라는 괴이한 동생이 주선시켜 준 것이다. 처음에는 어이가 없기도 했지만 심심해서 한두 번 했는데 의외로 재밌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보다 최소 5배 이상의 속도를 낼 수 있었다. 한마디로 ‘재능강림(?)’! 이건 부업 중에서 최고의 부업이었다. 그렇게 난 한 달 동안 벌 수 있는 웬만한 알바비와 대등하게 벌었다. 그와 더불어 좋은 건 어딘가에 구속되어 하는 일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프리랜서! 일명 자기가 하고 싶을 때 하는 좋은 직업이었다. 난 그런 프리랜서였다. 좋은 말로 풀이하면 고급 인력, 나쁜 말로 하면 일거리가 없으면 굶어 죽는 게 프리랜서였다. -안녕하세요. 바로 그때, 나의 눈에 들어오는 예쁘장하게 생긴 게임 자키. 난 인형 눈알 끼우는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그 게임 채널에 눈을 고정시켰다. -4일 후, 드디어 테이스 월드 클로즈 베타 테스트가 시작된다고요? -그렇습니다. 총 제작 기간만 10년이 거린 게임이 4일 뒤 클로즈 베타를 하게 되었습니다. -흐음, 테이스 월드는 매우 독특한 시스템으로 벌써부터 많은 게임 유저를 흥분하게 만들고 있는데, 대략적 설명을 해주시겠어요? -흐음……. 게임 자키의 질문에 게임 개발자는 곤란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잠시 후 웃으면서 말했다. -4일 뒤를 기대해 주십시오. 미리 알려 드릴 수는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운영자들이 간섭을 하는 게임이 아닌 새로운 세상, 한번 기대해 보십시오. 그 말고 함께 갑작스럽게 게임 동영상이 재생되었다. 난 그 동영상을 보자, 인형 눈알을 열심히 끼우던 손을 멈칫거릴 수밖에 없었다. 티브이에서 나오는 영상, 그건 이미 게임이라고 보기에는 무리였다. 와이번을 타고 나는 한 검사. 그 검사는 와이번에서 용케도 일어선 상태였고, 바로 그때 와이번이 갑자기 하강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검사는 와이번에서 가볍게 뛰어내리더니 곧바로 검을 아래로 향한 채 두 손으로 잡았다. 그리고 잠시 후……. 콰아아앙! 검사가 바닥에 착륙하자 어마어마한 폭발음이 들렸다. 그리고 검사의 목표로 보였던 오우거 한 마리가 그 어마어마한 폭발 속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난 평소 게임을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물론 싫어하는 편도 아니었지만……. 그렇지만 방금 본 동영상에 나는 알 수 없는 흥분을 느꼈다. 물론 가상현실 게임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저렇게까지 실제에 근접한 게임 동영상은 처음이었다. 아니, 게임이 아니었다. 이미 저곳은 새로운 세계였다. -모두들 수고하셨습니다! 게임 자키의 인사가 들려왔지만 난 티브이에서 눈을 땔 수가 없었다.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 준 게임을 단 한번만이라도 하고 싶었다. 물론 지금 내 상황이 게임을 할 상황은 아니었지만, 꼭 한 번 해 보고 싶었다. ‘형님, 요새는 게임으로 거의 500만 이상을 버는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바로 그때, 나의 뇌리를 스치는 기억! 예전에 정우와 함께 농담 삼아 이야기를 하다가, 정우가 500만 원 이상씩 버는 직업이 있다고 말한 게 떠올랐다. “쿠쿠쿠쿠쿠쿠.” 나의 머릿속에는 방금 느꼈던 설렘과 더불어 사악한(?) 기운이 몰아쳤다. “형님, 물었습니다!” “뭘 물어?” “이번에 테이스 월드 클로즈 베타 초대권을 말이죠.” “그, 그걸 정말 가져왔냐? 노, 농담 삼아 말한 건데……?” “그렇습니다.” “허어억!” 난 정우의 말에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 힘들다는, 10만대 1로 뽑힌다는 클로즈 베타 초대권, 이것이야말로 2주일을 먼저 시작하게 해 주는 최고의 해택이었다. 게다가 그 비싼 게임 기계를 무료로 지급받는 기회였다. 한 대에 242만 원이나 하는 그 고가의 게임기를 말이다. 난 정말 정우가 감탄스러웠다. 이름 이정우, 외모 출중함, 특기 코스프레 또는 여장. 그리고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닌자 물건들 다루기……. 어찌됐든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내는 동생이었지만, 이상한 놈이었다. 그것도 많이……. “어, 어떻게 구해 온 거냐?” “주웠습니다.” “주, 주워?” “네.” 난 그 말을 듣고 도저히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몰랐다. 그 귀한 초대권을 잃어버린 놈도 대단하지만 잃어버린 초대권을 용케도 주워 온 저놈도 정말 대단했다. “그, 그렇구나.” “운이 좋았습니다.” “민혁이 오빠, 밥 먹자!” 어떻게 구해왔든 이렇게 감동적인 것을 구해 온 정우가 무척이나 고마웠다. 그때 앳되면서도 상당히 귀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채은아.” 난 저 멀리서 밝게 웃으면서 다가오는 채은이를 보고 싱긋 웃었고, 옆에 있던 정우도 같이 웃음을 지었다. “넌 왜 웃어?” “그냥 형님을 따라 하고 싶었습니다.” “클로즈 베타 티켓을 구해 준 건 고마운데, 그거랑 별개로 너 채은이 한테 이상한 짓 하면 죽인다.” “걱정 마십시오. 저는 나름대로 순수합니다.” 난 그 말에 영 믿어지지가 않았지만, 자기가 그렇다고 우기니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이름 한 채는, 나이 17살, 키 168Cm. 몸무게는……. 흐음, 45Kg쯤 되려나? 몸매도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그리고 양쪽에 빨간색 귀여운 리본을 단. 무척이나 예쁘장한 소녀였다. 이제 1학년이 되었지만 예쁘장한 외모로 단 사흘 만에 모든 남자들의 우상으로 떠올랐고 지금은 1학년 얼짱이다. 물론 이런 애랑 나는 옆집에서 산다. 부모님이 해외여행을 한다면서 나를 두고 간 지 어느새 2년. 그 2년 동안 나랑 같이 있어 준 사람이 바로 채은이었다. 채은이는 자주 내게 밥을 차려 주고(요리 실력도 엄청났다.) 나랑 있는 시간도 상당히 많았다. 지금도 보다시피 점심을 자신의 친구들과 먹지 않고 나한테 도시락까지 매일가지고 오는 착한 소녀이기도 했다.(추가로 정우 것도 가져오고 있었다.) “오빠! 오빠!” “어?” “그거 알지? 테이스 월드!” “뭐, 당연히…….” 난 지금 클로즈 베타 초대권도 가지고 있는 상태이니 당연히 아는 게 분명했다. 그 말에 채은이는 눈을 초롱초롱 빛내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1,000명밖에 주지 않은 그 초대권을 내 친구 오빠의 친구의 친구의 친구의 친구 오빠가 당천되었대.” “그러니? 그거 나도 있는데.” “저, 정말? 나도 보여 줘!” 곧 정우가 준 초대권을 내밀자 그걸 본 채은이는 초대권을 잠시 달라는 눈빛을 보냈다. 난 기꺼이 내 손에 들린 초대권을 넘겨주었고, 채은이는 너무나도 귀여운 표정을 지으면서 초대권을 바라보았다. ‘귀, 귀엽다!’ “헤헤. 오빠, 이거 어떻게 구했어?” “으응. 그거 정우가 구해 왔어?” 난 다른 생각을 하다 급작스럽게 대답했지만 다행히도 채은이는 나의 대답에 별다른 반응 없이 정우를 경이적인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정우야, 어떻게 구한 거야?” “주웠습니다.” “그, 그렇구나.” 그 말에 어색한 미소를 짓는 채은이, 아마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했을 게 분명했다. 이런 걸 잃어버린 것도, 그걸 주워 온 상황도 어처구니가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근데 정말 저놈이 주웠을까? “왜 그러십니까, 형님?” “아니…….” 난 정우의 질문에 말끝을 흐렸다. 그래도 나 때문에 주워왔는데, 괜히 의식을 한 것 같아서 살짝 미안했다.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됐다. 내가 농담 삼아 구해 오라고 한 이틀 뒤에 바로 주워 오다니, 저놈한테는 무슨 행운의 귀신이라도 붙은 건가? “오빠,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 거야?‘ “뭔가 좀 이상해서…….” 난 그 말과 함께 정우를 보았지만 정우는 말없이 웃고만 있었다. 웃는 어구에 침 못 뱉는다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 설마……. “찾아 주세요! 어떤 여자가 유혹을 해서…….” “아니, 본사에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발요! 이상한 여자가 저를 유혹하더니, 갑자기 내 몸을 뒤져서 베타 테스트 티켓을 땅에 떨어뜨리고는 ‘주웠습니다.’ 하고 갔다니까요!” “저, 그건 말이 안 되고요. 그리고 아직 사용자 등록 전이기에 어쩔 수 없습니다. 만약에 사실이라 해도 잃어버린 분 잘못이죠.” “우아아아앙!” 18살 정도 되는 남자는 절망에 울었다. 그걸 얻기 위해 얼마나 수많은 응모를 했는데 미인계에 넘어가서 뺏기다니, 억울하고 억울했다.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고 나서 약 30분 뒤에 배달하는 아저씨들이 왔다. 그 아저씨들은 아주 능숙한 손놀림으로 단 10분 만에 게임기를 설치했다. 게임기는 3미터의 넓은 공간을 차지했다. 그리고 헤드셋과 몸에 연결하는 촉수까지 그 기계 안에 들어 있었다. 나는 클로즈 베타를 시작한 테이스 월드를 생각하면서 바로 옷을 갈아입은 뒤 게임기 캡슐의 문을 열었다. 푸시익! 캡슐의 문이 열리고 그 안에 몸을 누이자 위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어서 오세요. 테이스 월드 게임 접속 안내입니다. 처음 하시는 분을 위해 설명을 해 드리겠습니다. 옆에 펼쳐진 촉수와 이어진 팔찌들을 손목에 착용해 주십시오. 기계 안에서는 부드러우면서도 아름다운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난 그 말에 따라 일단 옆에 있는 촉수들을 팔목에 착용했다. 철썩. 취익! 엉겨드는 소리가 들려오면서 팔찌들이 내 두 손목을 붙잡았다. -이제 헤드셋을 써 주시기 바랍니다. 난 옆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헤드셋을 집어서 머리에 착용한 다음 다시 몸을 뉘었다. -홍채 인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우우웅! 곧 이상한 빛이 눈을 자극하더니 다시 부드러우면서 아름다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홍채 인식을 완료했습니다. 등록된 아이디가 없습니다. 지금 등록하시겠습니까? “네.” -아이디를 등록하겠습니다.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불러 주십시오. “플레스, 비번 *******.” -잠시 아이디를 검색합니다. 우우웅! -아이디 검색을 완료했습니다. 이 아이디는 사용 중인 아닙니다. 사용하시겠습니까? “네.” -아이디가 등록되었습니다. 다음부터는 홍채 인식만으로 자동 접속할 수 있습니다. 그럼 즐거운 꿈의 세상이 되길 바랍니다. 그 부드럽고 아름다운 목소리가 점점 사라지면서 나의 의식은 빛으로 뒤덮였다. “여기는 어디……?” 나는 게임에 접속하자마자 어리둥절해졌다. 게임에 접속하면 무조건 마을에 드랍되는 줄 알았는데, 여기는 동굴이었다. 그것도 크기가 엄청난 동굴이었다. 산들바람이 불기는커녕 칙칙한 어둠이 짙은 곳, 그만큼 빛이라고는 내 눈앞에서 덜덜거리며 날아다니는 이상한 빛의 구가 전부였다. 난 이상한 동굴에 당황하면서 천천히 앞으로 움직였고, 그렇게 한 10분 정도 걸어가자 눈앞에 이상한 철문이 등장했다. 그 철물 안에서는 강렬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입구인가?” 철문 쪽으로 다가갈수록 빛은 더욱 강하게 눈을 자극했다. “좋아, 한번 열어 보지.” 타악! 난 크게 한번 숨을 들이켜고 나서 손바닥을 철문에 대고 힘을 주기 시작했다. 콰앙! “으아악!” 털썩. 바로 그 순간 나는 힘을 주자마자 그대로 땅바닥에 나뒹굴고 말았다. 그리고 어이없게도 철문은 아예 날아가서 뒤에 있는 벽과 부딪쳐 거대한 소리를 냈다. “처, 철문이 왜 이래?” 난 힘을 어청 주었다가 너무나 쉽게 날아간 철문을 보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어이가 없든 있든 이상한 빛은 여전히 내 눈을 자극했다. “으으윽……. 그나저나 여기는?” 한동안 빛이 뿜어져 나오는 곳을 응시하자 서서히 눈이 적응되며 무엇인가가 보였다. 그리고 나는 의아한 목소리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제단?” “팀장님,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인가, 진호 군?” 팀장 태화는 호들갑을 떠는 진호를 보더니 왜 그러냐는 듯 물었다. “그, 그게 오늘 클로즈 베타에 참가한 한 유저가 마을에 안 떨어지고 다른 곳에 떨어졌습니다.” “뭐, 뭐라고?” 태화는 여유로웠던 표정을 지우며 다급하게 일어서서 아직도 당황하고 있는 진호를 보고 말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가! 자세하게 설명해 보게!” “저, 그게 슈퍼컴퓨터 네리아를 마지막으로 점검하고 있던 중이었는데 그 점검을 딱 마치는 시가네 누가 접속을 해서 시스템 홀릭이 약간 꼬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 그런 일이…….” 그 말을 들은 태화가 어이가 없다는 듯 말끝을 흐리자 진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떻게 할까요?” “어디로 떨어졌는가?” “한번 조사해 보겠습니다. 저희가 일단 설정은 잡아 두고 있지만, 대부분은 네리아가 자체 판단을 해서 알아봐야 합니다.” 끄덕. 태화가 고개를 끄덕이자 진호는 곧바로 컴퓨터 쪽에 다가가서 타자를 치기 시작했다. 타타타탁! 타타타타탁! 그렇게 한 5분간 타자를 친 진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다시 태화게게 다가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히든클래스 최종 단계 쪽으로 떨어진 거 같습니다.” “히든클래스? 무슨 히든클래스?” “웨폰인첸트라고 나오는데. 정확한 직업은 좀 더 조사해봐야 될 듯싶습니다. 네리아가 직접 만든 직업이다 보니…….” 진호는 그렇게 말하면서 말꼬리를 흐렸고, 태화는 잠시 고민을 하는 듯 머리를 붙잡으면서 중얼거렸다. “아니네. 조사할 필요 없다네. 어쩔 수 없지. 그냥 놔두게. 그리고 최종 단계인 만큼 통과했다는 건 아니라는 소리. 죽을 확률 99%라는 뜻이지. 이미 홍보 게시판에 버그는 단 하나도 없다고 장담하듯 올려놓았는데, 클로즈 베타 초반에 버그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고 발표할 수는 없지. 그냥 네리아의 이벤트 비슷한 자체 시스템으로 취급해 버리게.” 단 하나. 그렇게 그들은 커다란 오류를 범했다. 웨폰인첸트라는 직업의 난이도가 직업 퀘스트 중에서도 10개밖에 존재하지 않는 SSS급 퀘스트라는 사실을 간과해 버린 것이다. “제단?” 난 내 앞에 놓여 있는 가로 50미터, 세로 50미터 정사각형의 커다란 제단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그냥 제단인가?” 제단을 손바닥으로 툭툭 치기도 하고 발로 밀기도 하고 올라타기도(?) 하고 별별 짓을 해도 아무런 반응이 없자 난 다시 제단 밑으로 내려왔다. 툭.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이런 이상한 곳에 떨어뜨리더니 이제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는 제단까지…….” 난 혹시 모를 기연에 대비해 살짝 흥분한 상태였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그냥 힘이 쭉 빠졌다. 괜히 기대한 내가 바보같이 느껴졌다. “휴우, 아무것도 없으면 그냥 밖으로 보내 주든지, 왜 이상한 동굴에 떨어뜨려.” 난 그렇게 중얼거리면서도 열심히 벽을 더듬으며 비밀 통로가 있는지를 확인했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없었다. “처음부터 아이디 삭제해야 하나.” 이 게임은 아이디 삭제가 상당히 어려웠다. 홍채 인식 시스템이므로 아이디를 삭제하려면 본사를 찾아가야 하는 등 상당히 번거로웠다. 하지만 귀찮아도 어쩔 수 없었다. 평생 이 이상한 동굴에 있고 싶은 마음은 없었기에……. “어쩔 수 없지. 로그아웃!” -로그아수 비활성 지역입니다. 다른 지역에 가서 해 주시기 바랍니다. “…….” 난 위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설마 하면서 다시 접속을 끊으려고 시도했지만 마찬가지였다. “무, 무슨 게임이 이래!” 난 잔뜩 기대하고 들어왔다가 웬 마른하늘에 날벼락 300번 맞는 시추에이션에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절망에 머리를 감싸고 있던 중 문득 눈앞에 이상한 글자가 보였다. 그 글자는 처음부터 보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였는지 제단 밑쪽에 쓰여 있었다. 난 그 글씨를 천천히 읽었다. “제단 위에 누워서 온몸을 펼쳐 몸을 배배 꼬면서 ‘망드라 강드라 슈퍼드라!’ 라고 외친다.” 이, 이것들이 장난치나. 무슨 이런 유치한 주문을……. 이렇게 투정을 한 나였지만, 어느새 내 몸은 제멋대로 제단을 올라가서 자세를 잡고 있었다. “이걸 해야 하나…….” 난 자세를 잡고 몸을 배배 꼴 준비를 하면서 과연 저 주문을 외워야 하는지 심히 고민스러웠다. 하지만 이내 아무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쪽팔림을 참고 외쳤다. “망드라 강드라 슈퍼드라!” -오! 어서 오거라. 이런 미친! 정말 그 주문이 끝나자 허공에서 인자한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그 할아버지는 3타 바이브레이션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온 걸 보면 상당한 시련을 극복했구나. “아니요. 극복 아 했는데요? 그냥 처음부터 여기에서 시작하던데요?” -……. 나의 말에 그 독특한 바이브레이션 할아버지 목소리가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다시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허허허험. 그, 그렇구나. 하하하! 운이 좋은 청년이군. 어찌 되었든 여기에 도착했으니 최종 테스트를 하겠노라. “최종 테스트?” 최종 테스트라는 말에 무슨 뜻인지 몰라 되묻자 할아버지는 설명을 해 주기 시작했다. -웨폰인첸트, 무기라는 종류는 모두 소환이 가능한 직업이지. 그 무기의 속성 마법을 인첸트 할 수 있고 소환한 자를 지켜주는 6대 소환수까지 한마디로 엄청난 히든클래스지. “정말요?” 난 엄청난 히든클래스라는 말에 눈이 번쩍 뜨였다. 히든클래스가 걸릴 확률은 무척 희박했다. 그 희박한 확률도 엄청난 시련과 고통으로 실패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떨어진 곳이 그런 히든클래스 중에서도 최종 테스트라니……. -그렇다네. 자네는 지금부터 내가 임시로 주는 웨폰 스킬들을 사용해서 골램을 쓰러뜨려야 하네. 물론 여기까지 오면서 강해졌으니……. “저, 정말 그냥 떨어졌는데 뭘 강해져요.” -허허허험! 그, 그렇군. 어쨌든 시험을 보겠는가? 난 단도직입적인 물음에 약간 고민에 빠졌다. 지금 나의 레벨은 1. 그런데 레벨이 최소 60 정도 되는 골렘을 잡으라니……. 물론 임시 스킬들을 준다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버거울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금방 마음을 다잡았다. 어차피 공짜로 온 기회, 마다할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이 게임 자체가 현실 세계의 능력을 반영해 주기 때문에 내 싸움 실력도 올려 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좋습니다.” -그럼 이제 시험을 시작하겠네. 자네에게 기본 웨폰 스킬을 주겠네. 잠시 확인해 보게. “알겠습니다.” 대답과 함께 내 몸이 이상한 빛에 휩싸이더니 위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임시 스킬을 얻었습니다. “스킬 창 오픈!” 나는 목소리가 울리자마자 스킬 창을 열어 보았다. -검 소환(숙련도 0.00%)- 검을 소환한다. 검의 특성: 방어력이 100증가(숙련도 10%상승 시 방어력 10 상승). 기본 공격력: 300(숙련도 10%상승 시 공격력 100 상승. 마스터 스킬시 총 1,300상승). -활 소환(숙련도0.00%)- 활을 소환한다. 활의 특성: 이동 속도와 공격 속도 10%증가(숙련도 10%상승 시 이동 속도와 공격 속도 3% 증가). 기본 공격력: 200(숙련도 10%상승 시 공격력 50 상승. 마스터 스킬시 총 700상승). -도끼 소환(숙련도0.00%)- 도끼을 소환한다. 도끼의 특성: 이동 속도와 공격 속도 20%증가(숙련도 10%상승 시 이동 속도와 공격 속도 5% 감소). 기본 공격력: 800(숙련도 10%상승 시 공격력 400 상승. 마스터 스킬시 총 6,000상승). -결(숙련도0.00%)- 상대방에게 치명타를 줄 수 있는 곳을 보여 준다. 상대방과 접속한 상태로 3초간 있어야 한다. 성공률 100%. -???- (모든 무기 관련 스킬은 소환 스킬만 완성되고 직접 습득하면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직업들보다 마나 소모량이 5배가 든다.) 그렇게 스킬 창에는 설명이 적혀 있었고, 내가 방금 들은 이상한 음성의 설명으로 미루어 보아 모든 무기를 소환해서 속성을 인첸트해서 싸우는 직업이라고 했으니 나머지 물음표들은 다른 무기들이나 인첸트에 관련된 스킬 같아 보였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 적힌 말은 가히 최고였다. 모든 기술들을 다 사용할 수 있게 해 주는……. 물론 마나 소모량이 심해서 펑펑 못 쓰겠지만, 수백 가지의 기술을 습득(물론 그 스킬들을 다 구해서 익히기는 불가능하지만)해서 사용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결이라는 스킬도 상당히 유용해 보였다. 상대편의 약점을 감지하는 스킬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접촉하고 3초간 버텨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지만 성공만 한다면 쉽게 상대편을 죽일 수가 있는 스킬이었다. -이제 최종 시험을 시작하겠다. 부디 그대에게 무한한 영광을……. 바로 그 순간 그 할아버지의 음성이 다시 들려왔고, 잠시 후 목소리가 사라지자 제단 앞쪽에서 갑자기 문이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쿠우우웅! “인간이다, 죽여라!” 죽여라? 꼭 누구한테 명령을 하는 듯한 말투에 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저 혼자 있으면서 뭘 죽여. 자기가 움직이면……. 나는 그렇게 웃다가 목소리가 아닌 모습이 점점 나타나자 몸이 굳을 수밖에 없었다. 크기 5미터에 엄청나게 육중한 몸, 물론 골렘이라고 하기에 저 정도는 예상했다. 하지만 저 골렘 옆에 찰싹 붙어 있는 떨거지들, 왜 저것들이 있는지 심히 궁금했다. 미니 골렘은 레벨 10 정도라서 그다지 어려운 상대는 아니었지만, 그 미니 골렘이 저 강력한 골렘 옆에 다섯 마리나 더덕더덕 붙어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난 그 모습을 보고 너무나도 당황해서 그 할아버지의 목소리를 향해 큰 소리로 말했다. “이, 이건 말이 다르지 않습니까!” -뭐? 나의 당혹스러운 물음에 다시 음성이 들려왔고, 난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답변했다. “골렘 한 마리라면서요?” -골렘 한 마리 아닌가? “저 옆에 떨거지들은요?” -그건 기본 옵션이라네. 허허허! 요새는 시대가 시대인 만큼 옵션이 붙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네.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난 지금 레벨 1이었다. 레벨 1한테 레벨 60짜리 몬스터를 잡으라는 것도 말이 안 되는데, 레벨 10이기는 하지만 그것들까지 다 잡으라니……. -자, 자. 해낼 수 있다네. 스킬들을 잘 이용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네. 그러 지켜보겠네. 허허허허! “자, 잠시!” -……. 애타게 불렀지만 그 목소리는 잠수를 타 버렸고, 난 내 앞에서 골렘의 명령을 받고 터벅터벅 다가오는 미니 골렘들을 보고 한숨을 내쉬면서 오른쪽 손을 내밀었다. 검(Sword) 소환. 파지짓! 주문을 마치자 나의 손 안에는 1M 20Cm 정도 되는 붉은색 장검이 들어왔다. 난 처음 소환하는 그 검을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지금의 상황을 떠올리곤 그 검을 다시 내 쪽으로 끌어당겨 자세를 잡은 후, 그 조그만 다리로 열심히 나에게 다가오는 미니 골렘들을 보고 말했다. “기왕 이렇게 된 것, 한번 해 보자고!” 난 그대로 그 붉은색 검을 한 손으로 잡은 채 달려 나갔다. 스르륵! 나의 몸은 미끄러지듯이 미니 골렘들에게 재빠르게 다가갔고, 미니 골렘들은 내가 다가가자 그 단단한 몸으로 공격을 시도했다. 투웅! 미니 골렘은 나를 향해 막무가내로 돌격했다. 나는 키가 작은 미니 골렘의 공격을 옆으로 피하면서 그대로 검으로 내리찍었다. 쾅! 퍼억! 미니 골렘 한 마리가 산산조각으로 박살나는 소리가 들려왔고, 난 생각보다 엄청난 검의 성능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좋네?” 투웅!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나머지 네 마리 골렘이 다시 나를 향해 달려왔다. 난 오른쪽 발로 축을 잡은 뒤 곧바로 한 바퀴 돌아 버렸다. 우웅! 파삭! 나는 돌면서 생긴 원심력을 이용해 검을 휘둘러 돌격해오는 미니 골렘의 몸뚱이를 반으로 부숴 버렸다. 이번에도 역시나 엄청난 검의 성능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직 스킬도 배우지 않았는데 이런 파괴력이라니, 정말 히든클래스가 맛나 보군.”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했다는 소리가 들려오자 난 그 소리조차도 거슬려서 말했다. “레벨 업 소리 Off!" -Off합니다. 난 이제 전투에만 신경을 쓰기로 했다. 투웅! 미니 골렘들이 또다시 날아서 공격하는 방식밖에 모르는지 나를 향해 달려들었지만 이제는 조금 쉽게 옆으로 피할 수 있었다. 푸욱! 퍼억! 피하는 순간 나를 지나가는 미니 골렘에게 검을 찔러 넣자 골렘이 산산이 부서졌다. “익 재밌는데?” 나는 검 한 방에 산산조각 나서 부서져 나가는 골렘들을 보면서 통쾌함을 느꼈고, 그렇게 남아 있는 두 마리까지 가볍게 처리했다. “인간, 대단하군! 이렇게 쉽게 부수다니…….” “뭐, 그나저나 이제 너만 남은 건가?” 난 형형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엄청난 크기의 골렘을 보고 말했다. 그 골렘은 나의 말에 반응하듯이 거대한 몸을 움직였다. 쿵쾅쿵쾅. “인간, 임무에 따라 너를 죽이겠다.” 철커덩. 골렘은 느릿느릿하지만 엄청난 압박감을 내뿜으면서 천천히 다가왔다. 난 그런 골렘을 보면서 긴장을 멈추지 않았다. 현실 세계에서 무술을 배운 덕에 스피드가 상당해서 방금은 쉽게 끝냈지만, 아무리 스피드가 강하더라도 상대편에게 데미지를 주지 못하면 그만 꽝이었다. 골렘은 스피드가 느리기는 하지만 그만큼 엄청난 방어력을 자랑하기에 제대로 된 데미지를 줄 수 있을지 불안했다. 물론 검의 위력이 상당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래도 불안한 건 사실이었다. “뭐, 생각해 봐야 나오는 것 없으니 직접 부딪치는 수밖에!” 스르륵! 난 천천히 걸어오는 골렘을 향해 달려 들어갔다. 골렘은 다가오는 나를 보더니 두 손을 모았다. 콰앙! “젠장!” 골렘은 내가 다가가자 두 손을 모은 단단한 팔을 가차 없이 그대로 내리찍었고, 난 다급하게 뒤로 물러섰다. 골렘이 공격한 자리가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있었고, 그 엄청난 파괴력에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하지만 난 잠깐의 기회를 놓칠 만큼 바보는 아니었다. 그 엄청난 주먹이 바닥을 부수는 파괴력을 가지기는 했지만 그걸 다시 원상 복귀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한 듯싶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무방비 상태였다. 나는 검을 강하게 잡은 다음 내려와 있는 골렘의 팔에 올라탔다. 타타탁! 난 그 움직이지 못하는 손을 타고 올라가 곧바로 목으로 향했다. 그리고 중심 잡기도 힘든 골렘의 몸에서 오른발을 축으로 한 뒤 바로 몸을 돌렸다. 부우웅! 내 몸은 골렘의 몸에서 힘들게 한 바퀴 돌아갔고, 또다시 원심력을 이용해서 목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파앗! 푸욱! “어, 어라!” 단지 한 번 공격했는데 산산조각이 난 골렘의 목을 어이가 없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이내 골렘의 그 커다란 몸이 힘없이 쓰러졌다. 콰앙! 난 쓰러지는 골렘을 보면서 다급히 뛰어내렸고, 골렘은 바닥에 부딪히더니 완전히 산산조각이 나면서 부서졌다. “이, 이게 뭐야?” -상당한 몸놀림이군! 놀랍군. 내가 어이없어 할 때 다시 위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난 너무나 당황스러워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이게 어떻게?” -그 골렘은 특별히 제작된 골렘이지. 공격력만 대폭 상승시키고 방어력은 낮춘 거지. 그런대로 쓸 만한 놈이었는데 몸놀림이 상당히 좋은 자네이다 보니 너무나도 쉽게 깨 버렸군. “…….” 난 그 말을 듣고 약간 기운이 빠졌다. -자네는 최종 단계까지 모두 통과했네. 이재 자네는 웨폰인첸트를 정식으로 얻었네. 물론 지금은 거기에 있는 스킬이 전부라네. 자네가 대륙을 여행하면서 감춰져 있는 다른 무기들과 각각의 사용법, 그리고 소환수들을 직접 찾게. 그전에 자네에게 세 개의 선물을 주겠네. “자, 잠시! 그냥 통과하면 다 주는 거 아닙니까?” -허허! 그런 게 어디 있나. 다 알아서 찾아야지. 요즘이 어떤 시대인데. 심심하면 어떤 시대냐고 말하는데, 듣는 나는 어이가 없었다. -그럼 이만. 수고하게. 선물은 제단 위에 있을 거네. 우우웅! 그렇게 그 목소리는 자기가 할 말만 하고 홀딱 사라졌다. 난 너무나도 급작스러운 진행 상황에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쩝! 어쩔 수 없지. 거의 공짜나 마찬가질 히든클래스를 얻었으니……. 그나저나 그 아이템들을 보러 갈까?” 제단에는 붉은색 반지 하나와 책 한 권, 그리고 구슬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이게 선물인가?” 그것들을 집어 든 나는 먼저 설명을 읽기 시작했다. -소환수 테피언- 어둠의 데스나이트를 소환하는 반지로, 장착을 하고 이름을 부를 시 소환 가능하다. -소드 블로킹- 검으로 상대편의 공격을 막는다. 이 기술을 사용 시 막는 기운이 5배 이상까지 상승된다. -화 속성의 구슬- 이 구슬을 먹을 시 모든 무기에 화의 기운을 인첸트할 수 있게 된다. “좋은데?” 이게 내가 이 세 가지를 보고 느낀 점이었다. 이제 드디어 나도 무기에 인첸트를 해서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고, 검에서도 일단 스킬이 하나 생겨난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환수까지 지니게 된 것이다. 꿀꺽. 나는 얼른 구슬을 먹어 버렸고, 그 순간 나의 몸으로 엄청난 화의 기운이 몰아치더니 위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화 속성 인첸트가 가능해졌습니다. 확인하십시오. “스킬 창 오픈.” 나는 다시 스킬 창을 열어 자세히 확인했다. -화(火) 인첸트-0.00%(속성 계열 중에서 최고의 파괴력이다.) 무기들의 화(火) 속성을 인첸트한다. 상대방은 인첸트한 무기에 공격을 당할시 일정 확률로 발화에 걸린다. 마나 소모량: 1.000 증폭 데미지: 2,000(숙련도 10%마다 데미지 500씩 증가). “정말 대단한데!” 자세한 설명을 본 나는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증폭 데미지 2,000이라니! 기본 공격력에 검 공격력 300, 거기에다 인첸트까지 하면 데미지가 2,300을 넘어간다. 물론 마나를 봐서는 상당히 쓰기 부담스러운 스킬인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이것도 레벨이 올라가면 해결될 문제인 것 같았다. 한마디로 이 히든클래스는 엄청나다는 것이었다. “일단 검 스킬은 나중에 배우고, 데스나이트라?” 난 내 손에서 붉은색을 빛내고 있는 반지를 보고 눈을 반짝였고, 그 반지를 천천히 착용한 뒤 떨리는 마음으로 말했다. “테피언!” 파지지직!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내 앞으로 10미터 정도의 거대한 마법진이 생겨났다. 난 그 모습을 보고 뒤로 물러섰다. 파파파파파파파직! 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마법진을 통해 누군가가 천천히 올라왔다. 그렇게 10초 후, 내 눈에 비친 데스나이트는 경악할 만했다. 온통 붉게 물든 갑옷을 입고 있는 데스나이트, 검은색으로 알고 있던 나의 상식을 철저히 박살 내 버렸다. 키 2미터, 엄청난 박력, 그리고 등 쪽에 걸려 있는 검은색 검까지, 엄청난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이, 이게 이제 내 소환수?” 번쩍! 바로 그 순간, 데스나이트가 눈을 번쩍 떴다. 저, 정말 멋있다! 솔직한 나의 심정이었다. 이렇게 멋있는 게 나의 소환수라니! 감동 또 감동이었다. “에이, 뭐야? 귀찮게시리.” “…….” 바로 그때, 환상에 젖은 감격을 아주 철저히 개 박살 내는 소환수의 한마디. 특히나 외형적인 화려함만을 보고 너무나 기대한 나였기에 내가 받은 충격이란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 “쳇! 상당히 뺀질거리게 생겼네. 저런 놈들이 여자나 울리고 다니지. 이번엔 개떡 같은 주인을 만났군. 아름다운 비즈니스가 외롭겠어. 아, 주인만 아니면 죽여 버릴 텐데……. 아쉬워라!” 터벅터벅. “왜, 왜 분위기 잡고 난리야?” 난 데스나이트를 향해 터벅터벅 걸어갔다. 그러자 갑작스런 나의 행동에 녀석은 당황하는 듯싶었다. 나는 그런 데스나이트를 보고 싱긋 웃으면서 그의 갑옷에 손을 댔다. “결…….” 파아아앗! 그 순간 나의 순이 향하는 곳마다 상대방의 모든 것이 들어왔고, 난 잠시 싱긋 웃고 나서 손을 내밀었다. 검(Sword) 소환! 파아앗! 다시 붉은색 검이 소환되자, 나는 움찔거리는 데스나이트의 투구를 한 번 쓰다듬었다. 샤르륵. “드럽게 버릇없네.” “뭐, 뭐 하……. 으아악!” 나는 말을 하면서 검을 데스나이트의 갑옷 틈새, 그러니까 정확히 결로 보였던 약점인 오른쪽 옆구리에 집어넣었다. 데스나이트는 엄청난 비명을 질렀다. “오늘 처음 만난 기념으로, 우리 서로 친해지기 위해 예의라는 걸 가르쳐 줄게.” “자, 잠시……. 으아아아악!” 난 버릇없이 굴던 데스나이트의 옆구리를 열심히 검으로 쿡쿡 찔렀고, 데스나이트는 엄청난 비명을 그칠 줄 몰랐다. “내가 주먹으로 다져 주려고 했지만, 네 갑옷이 너무 뛰어나 보여서 불가. 그래서 특별히 검으로 쑤셔 주는 중이야. 알았지?” “자, 잠시……. 으으으아아아악! 마, 말……. 크아아아악!” 그날 그 동네에는 버릇없는 한 데스나이트의 처절한 비명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렇게 데스나이트와 난 첫날부터 아주 산뜻한(?) 만남을 가졌다. 잠시 후……. 경련을 일으키면서 거의 기절한 듯한 테피언을 두고 나는 약간 당황스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저…… 어떻게 나가는 거야?” 그렇게 난 테피언과 함께 웨폰인첸트라는 엄청난 직업을 얻고 클로즈 베타 서비스를 끝냈다. 제2장 오픈 베타 ‘오픈 베타다!’ 난 이날을 위해 밤을 지새웠다. 그만큼 엄청나게 기대를 했다는 소리다. 처음부터 나를 빠져 들게 하는 마력을 가진 게임. 물론 그것뿐만 아니라 나의 마음속엔 사심이 가득했지만. 이 가난에서 벗어나겠다고! 이 지긋지긋한 인형들과는 작별 인사를 하고 말겠다고! “엄청나군.” 넌 수없이 몰린 사람들을 보고 입을 쫙 벌렸다. 마을은 거의 공황 상태였고, 초보자 사냥터도 마찬가지였다. “그나저나 클로즈 오픈 베타 유저 중에서 내가 제일 레벨이 낮을 것 같네. 휴~. 좀 열심히 할걸.” 나는 그냥 즐기려고 했다가 방금 티브이를 보고 현재 나의 상태를 살핀 후,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스텟 창 오픈 아이디: 플레스 레벨: 23 직업: 웨폰인첸트 HPMP: 2100/1600 힘: 5 민첩: 71 체력: 5 지혜: 5 지식: 5 행운: 5 기본 공격력: 100 기본 방어력: 30 남은 스텟: 0 이게 나의 스텟이었다. 레벨 업을 하면 주어지는 스텟 3을 난 전부 다 민첩에 투자했다. “휴우, 오늘부터라도 열심히 사냥을 해야지.” 2주일간은 데스나이트와 화목하게 놀았다고 쳐도 이제는 열심히 레벨 업을 해야 할 때라고 본능적으로 느꼈다. “자, 자! 사냥터를 향해서!” 나는 내 레벨 대에서 레벨을 제일 잘 올릴 수 있다는 고블린들을 잡기로 마음먹고 사냥터로 가기 위해 성문 쪽으로 향했다. 성문을 지키던 경비병들은 아무런 말도 없이 그냥 비켜 주었다. 아마도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대충 보내 주는 듯싶었다. 터벅터벅. 난 발걸음을 옮겨서 마을 밖으로 나섰다. 바로 그때 어느 한 소년이 사람들을 붙잡고 애걸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제, 제발…… 제 누나들을 정상적으로…….” “안 돼. 지금 사냥해야 한다. 비켜!” “제발 우리 누라들을…….” “안 된다니까 그러네!” 사람들은 불쌍하게 애걸하는 소년을 보고도 무시하며 자신들 앞에 있는 토끼들을 잡는 데 열중했다. 여린 마음을 가진 난 그 불쌍한 소년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이냐?” “도, 도와주세요. 제발…….” “무슨 일인데? 돈 좀 주는 임무지? 내가 돈을 좀 좋아해거든.” 난 텅텅 빈 주머니를 생각해 내면서 말했다. 내가 이 게임에 접속한 1차적인 이유는 이 게임을 보고 반해 버린 거였지만, 2차 목표는 돈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의 말에 그 소년은 입을 딱 벌렸고, 난 그 모습을 보고 말했다. “쳇! 퀘스트가 돈도 안 주나 보네.” “아, 아니에요. 제 소원만 들어주면 100골드를 드리겠어요!” “뭐? 100골드?!” 난 100골드라는 말에 눈을 반짝거렸다. 게임상에서 돈의 단위는 실버와 골드가 있는데, 100실버가 1골드였다. 10실버면 밥을 그런대로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돈이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100골드는 엄청 큰 액수라는 소리였다. “난 사실 어린 영혼을 보면 불의를 참지 못하고 도와주고 싶은 간절한 소원이 있어. 무얼 도와주면 되냐?” “그, 그러니까요, 저희 누나들이 레즈비언인데…….” -퀘스트 진행합니다. 단, 전체에서 한 번만 하실 수 있습니다.- 퀘스트: 레즈비언 자매를 정상으로 만들어라. “이, 이게 뭘까?” 난 액수만 보고 무턱대로 받아들였다가 황당 엿으로 콩을 만드는 황당함에 입이 쫙 벌렸다. 아무리 자유 시스템 100%라서 퀘스를 직접 생성한다고 하지만 저런 퀘스트가 나올 줄은 정말 몰랐다. “감사해요.” “자, 잠시만…….” 나는 내용을 보고 다시 고민에 빠져 버렸다. 그렇게 잠시후 100골드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나가자 눈이 번쩍였다. “뭐, 건전한 이야기를 하면 돌아올 거야. 그래그래, 설마 그렇게 어렵겠어? 좋아, 가자.” “고, 고맙습니다!” 난 그렇게 100골드 때문에 이상한 의뢰를 수락했다. 터벅터벅. 난 조용히 그 소년이 안내하는 곳으로 천천히 걸었다. 나는 걸으면서 내가 과연 이런 의뢰를 맡아야 하는지 다시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레즈비언을 정상적으로 만들어라……. 레즈비언, 한마디로 ‘여자와 여자가 응응 하는 사이’ 라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게이라는 비슷한 업종(?)에서 일하는 존재들이 있다. 그 존재들은 심히 보기에 역겨웠지만, 레즈비언들은 예쁘고 예쁜 애들이 하면……. 아참, 이게 아니고 내가 과연 무슨 재주로 레즈비언들을 정상으로 만들까 하고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100골드라는 말에 무턱대고 물기는 했지만, 이 퀘스트 말고도 다른 퀘스트를 하거나 레벨 업을 하거나 하자는 잡생각이 내 머릿속을 뒤집고 다녔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인형 눈알들이 파닥파닥하면서 나의 눈앞을 강렬히 지나갔고, 나는 다시 결심을 하면서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100골드라는 금액은 적은 금액이 아니었기에 그런 나의 생각을 더욱 부추겼다. “그래! 인형 눈알 끼우는 것보다는 이게 나을지도.” “도착했어요.” 어느새 도착했는지 앞에서 소년의 말이 들려왔다. 난 고민에 빠졌던 생각들을 날려 버리고 눈을 번쩍 치켜떴다. “허어어억! 더, 더럽게 크네?” 내 앞에는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는 성이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넓이만 해도 400평 이상? “돌아가신 저희 아버지가 백작이셨거든요.” “그, 그렇구나.” 역시 요새는 돈 있는 애들이 더한다더니, 잘 먹고 잘살면서 그런 금단의 세계로 넘어가다니 역시 인간은 배부르면 안 된단 말이야. 누구는 인형 눈 끼우기로 연명을 하는데 말이야. 난 그렇게 속으로 투정을 하면서 성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런데 특이점은 이렇게 큰 집에 경비병들이 없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큰 집에서 누나들과 너만 사냐?” “그럴 리가요. 사실 집 안에는 10명 정도의 예쁜 여자들이 살고 있어요.” “예쁜 여자?” “네, 예쁜 여자죠. 정확히는 시녀……. 누나들은 아버지가 남겨 준 재산을 이용해서 예쁜 시녀들을 10명 고용했어요. 시녀들은 1명당 한 달에 500골드를 받고 일하죠. 물론 성추행도 당하지만요.” “…….” 난 과연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심히 고민스러웠다. 저 누나들이라는 사람들의 상태가 너무나 안 좋은 듯싶었기 때문이었다. 시녀까지 아버지가 남겨 준 재산으로 남자들(?)도 아니고 여자들만 고용해서 이상한 짓을 하다니, 정말 대단하신 분들이었다. “야.” “네?” 바로 그때 난 갑작스럽게 이상한 점을 느껴 그 소년을 불렀다. 소년은 말똥말똥 나를 쳐다보았다. “그렇게 어려운 일에다 이제 시녀들도 사라지게 하는데, 100골드? 100골드가 뭐냐? 시녀들은 500골드고?” “그, 그게…….” “나 안 하련다. 그럼 바바!” “자, 잠시!” 내가 이래 봬도 돈에는 빠삭했다. 원래 이런 상황이 되면 다급한 사람이 외치게 되기 마련이었다. 붙잡지 않는다 해도 어차피 이 의뢰 자체가 상당히 난감한 것이어서 안 해도 별상관은 없었다. “저…… 3,000골드를 드릴게요. 그러니 제발…….” “3,000골드?!” 난 단번에 30배가 오른 가격을 보고 입을 딱 벌렸다. 그 말에 소년은 간절한 표정을 지었다. “시녀들 몇 명만 나가더라도 3,000골드는 충분히 가능해요. 그러니 제발 저희 누나들을…….” 덥석! 나는 그런 말을 하는 소년의 어깨를 붙잡은 뒤 외쳤다. “안내해! 내가 당장 처리해 줄게!” 난 갑작스럽게 정의감에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역시 엄청 크네.” 한 10분 정도 걸어가자 겨우 대문이 보이는 엄청난 크기의 저택에 입을 떡 벌렸다. 우리 집 크기 16평, 인형 눈알 끼우기로 생활비를 연명. 다행이라면 음식은 채은이의 요리 솜씨 덕분에 정말 맛있게 먹고산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걸 제외하고는 나름대로 가난한 편이었다. “어서 들어오세요.” “알았다.” 너무나도 큰 집에 약간 부러움을 느끼면서 발을 들여놓은 순간 난 경악스러운 장면을 목격했다. “어서 와, 동생.” “안녕? 동생.” “누, 누나들……. 안녕하세요.” “동생 옆에는 아는 사람이니? 그럼 즐겁게 놀아. 우리는 사랑을 속삭이러…….” “언니, 너무 좋아요.” “…….” 나는 서로 손을 잡으면서 들어가는 소년의 누나들을 보고 경직되었다. 무슨 돼지우리에 들어온 것으로 착각이 될 정도였다. 키 140Cm 정도, 몸은 거대하다 못해 초거대. 몸무게 측정 150Kg 이상에 얼굴은…… 말로 못함. 그리고 무엇보다도 둘은 쌍둥이였다. 그냥 가고 싶다. 이게 현재 나의 심정이었다. 저런 사람 둘이서 그 금단의 사랑을 한다고 생각하자 왠지 모르게 속이 좋지 않았다. “가능하죠?” “가능할까?” “…….” 난 내게 물어보는 소년에게 다시 물었고, 소년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한번 해 볼게. 내가 정의를 사랑하다 보니(돈을 사랑하다 보니). 일단 작전 회의할 방 하나만 줘.” “작전 회의요?” “아, 별 필요 없지만 없는 것보다는……. 그나저나 나으려나?” 난 그놈을 생각하자 점점 말이 변했고, 다시 머리를 흔들었다. “잠시 아무 곳이나. 생각해야 할 게 있어서…….” “알겠어요. 그럼 저희 집의 손님 방 중 제일 좋은 곳을…….” 터벅터벅. 그렇게 말한 소년은 상당히 좋아 보이는 방으로 안내했다. 소년은 방 안으로 들어가는 내 옷을 붙잡더니 눈물을 글썽이면서 말했다. “부탁드려요.” “가능하면…….” 난 그렇게 말한 뒤 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으로 들어오자 조금 꺼림칙했지만, 반지를 붙잡고 조용히 말했다. “테피언 소환.” 파지지지짓! 말이 끝나자 내 앞에 알 수 없는 모양의 마법진이 완성되면서 또다시 테피언이 기어 올라왔다. 역시 저렇게만 보면 장난 아니게 멋있었다. 번쩍! “……왜 불렀냐?” 역시 고문의 효과가 있었는지 약간, 아주 조금, 쥐꼬리만큼 얌전해진 것 같기도 했다. 난 그런 테피언을 보고 고민스럽다는 듯 지금의 상황을 이야기했다. “……그래서? 나한테 그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당연히 너의 도움이 필요하니까.” “내가? 난 그쪽 계열은 잘 몰라.” 테피언은 여전히 귀찮다는 말투였고, 난 그런 테피언을 보면서 조용히 오른쪽 손을 내밀었다. “검 소…….” “자, 잠깐!” “왜?” “뭐, 잘 모르지만 네 말이라면 들어줄 수도.” 내가 검을 소환하려고 하자 테피언은 얼른 말을 돌렸다. 난 싱긋 웃다가 투구를 써서 약간 음침하면서도 무서운 분위기를 풍기는 테피언을 보고 갑자기 작전이 생각났다. “생각났다!” “……뭐?” “네가 아니면 절대 불가능이야. 너만 절대적으로 필요해! 너만이!” “무슨 일인데?” 나의 말에 테피언은 약간 기대가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난 여전히 살벌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는 테피언에게 가다가 귀에 대고 말했다. “협박.” “…….” “붉은색 갑옷을 입은 네가 마구 눈을 빛내 봐. 그 모습을 보면 겁나서 당장 레즈비언인가 뭔가를 때려치울걸?” 나의 말에 테피언은 안 그래도 음침한 기운이 더 음침해졌다. “왜?” “난 위대한 데스나이트다. 그런 위대한 나보고 레즈비언하지 말라는 협박이나 하라니!” 난 그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 대답해 주었다. “어차피 할 짓도 없잖아? 내 대신 레벨 업도 안 해 주고…….” 저번에 한 번 테피언을 믿고 사냥터에 간 적이 있었다. 그때 거의 협박 수준으로 힘들게, 힘들게 사냥을 시켰더니 나에게 돌아온 것은 경험치 제로. 저 혼자서 사냥하고 레벨 업을 할 뿐 나에게는 조금도 주지 않았다. 이런 괴상한 소환수를 데리고 있는 나의 마음은 그 누구도 이해해 주지 못할 만큼 슬펐다. 그때 그 충격이란, 휴……. “…….” 한편 나의 말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는 테피언. 난 그놈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밥값은 해야겠지?” 솔직한 말로 테피언은 밥은 안 먹는다. 뭐, 데스나이트가 밥을 안 먹는 게 당연하지만. 하지만 기름은 먹는다(?). 제 뽀대를 위해서 항상 기름으로 온몸을 칠한다. 참 가지가지 하는 데스나이트였다. “……비참하다.” 테피언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나의 말에 어쩔 수 없이 터벅터벅 자리를 옮겼고, 난 문을 열기 위해 문손잡이로 손을 뻗었다. 철컥, 철컥! “어라? 문이 안 열리네? 고장 났나?” “그냥 부수고 가지.” “흐음……. 뭐, 부르기도 난감하니 그러자.” 난 테피언의 화끈한 말에 동의했고, 테피언은 그대로 자신의 대거을 뽑아 들었다. 철커덩! 한눈에도 엄청 무거워 보이는 대검을 너무나도 쉽게 들어 올린 테피언은 그대로 문을 향해 휘둘렀다. 콰앙! 파짓! 바로 그 순간 내 눈앞의 이상한 마법진이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문과 문 옆의 벽까지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난 그 모습을 보고 약간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워낙 좋은 집이어서 그런지 마법이 걸린 문이었나 봐, 하하!” “그렇군. 하지만 약한 마법이다.” “그런 것 같네, 힘없이 날아간 걸 보니. 나중에 말하지뭐.” 난 간단하게 말한 뒤 다시 소년을 만나기 위해 이동했다. “뭐, 뭐야!” “우리가 1,000골드를 줘서 단 락 마법을 방금…… 검으로 파훼했어?” 페리와 네리는 수정 구슬로 자신의 시종 포리스가 데려온 남자를 보다가 갑작스럽게 일어난 현상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리고 저 검은색으로 도배한 갑옷을 입은 기사는 누구야? 포리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페리는 자신의 밑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포리스에게 화풀이를 했고, 그 소리에 포리스는 공포에 잔뜩 질려 버렸다. “부, 분명 호, 혼자였는데…….” “젠장! 하찮은 놈이……. 특별히 시종으로 써 줬더니! 남자 놈이 정말 잘생겨서 칭찬을 해 주려고 했더니!” “자, 잘못했습니다.” “젠장!” 페리는 짜증을 부리다가 잠시 후 미적거리면서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는 포리스를 면서 호통을 쳤다. “뭐 하는 거야? 지금 당장 경비병들을 출동시켜서 생포해! 그 남자는 내 마음에 꼭 들어!” “아, 알겠습니다.” 경비병을 동원하기 위해 포리스가 다급히 나가고 난 후, 네리는 페리를 향해 최대한 아름다운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 나도……. 마음에 들어.” 네리는 애타는 눈빛으로 수정 구슬 안의(민혁앞에 더 언급 요망)이를 보고 말했고, 그렇게 두 자매는 즐거운 미소를 지었다. “뭐, 뭐야?!” 나는 앞을 가로막은 경비병들을 보고 입을 쫙 벌렸다. 총100명 정도 되는 엄청난 인원이었다. 여자 시종들만 있다는 말은 거짓인 모양이었다. “당신들을 가두겠습니다.” “뭐야, 이 상황은?” 난 머리를 맹렬히 회전시키기 시작했고, 잠시 후 갑작스럽게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머리에 팍팍 들어왔다. 조금 황당한 레즈비언 퀘스트(흥미를 위한 거짓말), 그리고 너무나도 큰 액수에서 엄청 올려 버리는 대범함(100골드에서 3,000골드로), 그리고 아까는 평범하게 넘겼는데 문에 걸린 마법까지……. 이건 한마디로 그거였다. 사기 퀘스트! 일명 사기 퀘스트, NPC들의 독창성에 의해 발생되는 퀘스트였다. 생각을 가지고 한 인격체로 살아가는 NPC들, 그들도 하나의 인생을 살기에 이런 일을 꾸미는 것도 가능했다. “이런, 피라미들이 많군.” 테피언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투구 안에서 눈을 번쩍거리며 경비병들을 바라보았고, 그 눈빛에 경비병들은 움찔했다. 움찔움찔. “네가 웬일이냐, 싸울 것처럼” “어쩔 수 없지, 지금은 장난칠 상황이 아니니. 마스터가 그리 마음에 들진 않지만, 뭐 내 임무라는 게 일단 소환자를 지키는 거니.” 나의 질문에 왠지 오늘따라 이상하게 멋있는 대답을 하는 테피언을 보고 약감 감동을 먹었다. 처음에 볼 때는 영 아니였는데, 지금 보니 다시 무지 멋있게 보였다. 흐음 내 착각이었나? 원래 저겐 본모습? “두, 두 명이다! 생포해!” 바로 그 순간 경비대원 중 한 명이 외쳤다. 난 전투 준비를 하고 있는 테피언을 한번 본 뒤 무기를 소환하기 위해 오른쪽 손을 내밀었다. 검(Sword) 소환! 파지지짓! 이제는 조금 익숙해진 검이 손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상대방을 향해 달려갔다. 파식! “으아아앗!” 난 그대로 검을 휘둘러서 당황하고 있는 적의 허리를 베어 버렸다. 내가 선제공격을 하자 상대방은 한꺼번에 달려들며 나의 목을 노리고 검을 휘둘렀다. “소드 블로킹!” 타앙! 나는 상대방의 검들을 소드 블로킹 기술을 이용해 막아 내면서 기회가 포착될 때마다 적의 목을 베어 버렸다. 푸시식. “으아악!” 난 그렇게 한 명 두 명씩 죽여 나가고 있었지만, 이상하게 테피언의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테피언?” 조심스럽게 테피언을 불렀지만 테피언의 대답 대신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환수의 소환 시간 15분이 완료되었습니다. 1시간 뒤에 소환하실 수 있습니다. 레벨에 따라 달라지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 이놈이! 개폼은 자기 혼자 다 잡더니 아무것도 안 하고 쏙 사라져 버렸다. 물론 강제 소환이기는 하지만 왠지 모르게 상당히 찜찜했다. “이, 이상한 기사가 사라졌다! 혼자다! 죽어라!” “우오오오오!” 테피언이 사라지자 경비병들은 나에게 무슨 원수를 졌는지 개떼처럼 몰려왔고, 난 갑자기 혼자가 되자 무척 당황스러웠다. 나의 레벨은 이제 23이다. 그런 나에게 비록 기사는 아니라지만 경비병이 100명씩이나 달려드는 상황이라니! 그렇게 나는 속으로 웅얼거렸지만 나의 속마음은 안타깝게도 그들에게 전해진 것 같지 않았다. 아직도 개떼처럼 달려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젠장! 캔슬!” 도끼 소환! 인첸트 화(火)! 파지지짓! 나는 곧바로 검을 캔슬시키면서 도끼를 소환했고, 그리고 지금 내 상태에서 단 한 번밖에 쓰지 못하는 인첸트까지 걸어 버렸다. 그러자 도끼는 엄청난 화의 힘을 담은 채 붉은색을 띠었고 난 그 도끼를 두 손으로 다잡았다. “에라!” 콰앙! 개떼처럼 우르르 몰려오는 적들을 향해 도끼를 내리찍는 그 순간 엄청난 폭발음이 들려왔다. 쾅쾅쾅! “으아아악!” “커어어억!” 털썩! “허어억!” 난 내가 쓰고도 놀라고 말았다. 아무리 도끼와 인첸트의 힘이라지만, 내 앞에 있는 수십 명의 적들을 엄청난 파괴력으로 한 번에 쓸어버렸기 때문이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그때 레벨 업을 알리는 소리와 함께 내 위에서 뭔가 떨어지는 느낌이 들어 난 무심코 위를 바라보았다. “으아아악!” 거대한 샹들리에가 내 머리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난 그 샹들리에를 보고 기겁하며 옆으로 굴렀다. 데굴데굴. 쨍그랑! 유지로 된 샹들리에가 산산조각 나는 소리가 들려왔고, 난 다행히도 무사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 철커덕, 철커덕. 바로 그 순간 어디서 익숙하면서도 별로 좋지 않은 소리가 들려왔고 난 살며시 고개를 들어 올렸다. “안녕하세요?” 어느새 살아남은 경비병들이 창으로 내 온몸을 금방이라도 쑤셔 버릴 듯 살벌한 눈빛으로 나를 포위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지지 복도 없었다. 질질질. 지금 나는 밧줄에 꽁꽁 묶인 채 끌려가고 있다. 물론 경비병들은 나에게서 자신들을 절반이나 날려 버린 도끼를 찾으려고 했지만. 내 도끼가 어디 평범한 도끼도 아니고 경비병들은 절대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것들이 어디서 소환되는 것인지는 심히 궁금했다. 내가 이 직업을 택한 지 어언 2주일, 그 무기들의 정체가 정말 궁금했다. 일단 스킬은 소환이기는 하지만, 그게 소환이 되는 건지 아니면 만들어지는 건지 아니면 또 다르게 나오는 건지 궁금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궁금증을 가질 상황이 아닌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한참을 끌려갔고, 경비병들은 나를 밧줄로 묶은 상태에서도 엄청나게 경계하는 눈치였다. 그 도끼 한 방이 엄청나기는 엄청난 것 같았다. 저렇게 경계를 할 정도로 만들어 버리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안타깝게도 마나도 달리고 몸도 묶인 상태여서 뭘 할 수가 없었다. 똑똑! “데려왔습니다.” 상당히 커다란 방문 앞에 도착하자 경비병 중 한 명이 조용히 방문을 노크했다. “들어와.” “네.” 끼이익! 곧 방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안에서는 처음에 만났던 그 공포의 외계인(?) 목소리가 들려왔고 난 정말 지옥에 들어가는 느낌으로 안으로 끌려갔다. 안으로 들어가자 처음에 본 그 소년이 문을 붙잡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외계인 두 마리는 각자 의자에 앉은 채 나름대로 고혹적인 자세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귀엽군.” “역겹군.” “뭐, 뭐라고!” 나를 보자마자 귀엽다고 하기에 나도 느낀 그대로 답변해 주었는데, 그 슈퍼 외계인 쌍둥이는 엄청나게 화를 냈다. 하지만 난 여전히 당당하게 고개를 들었다. “좋아. 남자가 튕기는 맛이 있어야지. 용서해 주지. 후루루루(?)!” 슈퍼 외계인 쌍둥이 중 오른쪽에 있던 외계인이 갑작스럽게 부드러운 어조로 말하면서 나를 보더니 입맛을 다녔다. 난 그 모습을 보고 어제 먹었던 콩나물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언니, 나도 알지?” “물론이다. 하지만 튕기는 것이 재밌기는 하지만 저런 놈은 위험하지. 보니까 장난 아니니, 조금만 가지고 놀다가 죽이고 새로운 놈을 찾자.” “그래요, 언니.” 둘은 나를 앞에 두고 별별 소리를 다 했지만, 난 여기서 죽을 마음은 코딱지만큼도 없었다. “혹시 모르니 저 남자의 발도 묶어. 몸만 묶으니 불안해.” “알겠습니다.” 언니라고 불린 외계인은 뭐가 그리 불안한지 나의 발조차도 봉쇄를 하려고 했고, 그 말을 들은 경비병 중 한 명이 밧줄을 들고 걸어왔다. 터벅터벅. “어쩔 수 없다. 우리들도 먹고살려고 하는 거니.” 그 경비병은 그래도 양심이 있는지 나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난 그 말을 듣고 싱긋 웃었다. “별말씀을…….” 퍼억! “으악!” 난 나에게 다가와서 밧줄을 내미는 그 경비병에게 싱긋 미소를 지어 주었다가 곧바로 두 발로 경비병의 얼굴을 차 버렸고, 나에게 맞은 경비병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날아갔다. “뭐, 뭐야! 잡아! 아니야, 죽여!” 내가 공격을 하자 오른쪽 외계인이 발작을 하면서 말했다. 난 그 명령을 듣고 우르르 달려오는 경비병들을 보면서 들어오면서 봐 두었던 벽에 붙어 있는 검을 쳐다보았다. 겉모양이 무척이나 아름다운 것으로 보아 아마도 실전용 보다는 장식용일 확률이 높았지만 난 그런 것을 따질 여유가 없었다. 타타탁! “잡아! 상대는 묶인 상태다! 돌격!” 그렇게 경비병들은 또 나에게 달려왔고, 난 창으로 찌르는 한 경비병의 공격을 몸을 숙여서 피해 냈다. 휘이익! 내 위로 창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려왔고, 난 섬뜩함을 느끼면서 곧바로 주저앉아 상대방의 다리를 걷어찼다. 퍼억! “으아악!” 쿠웅! 나의 공격에 상대방은 홀라당 넘어졌고, 난 앉은 상태에서 다리를 들어 올려 누워 있는 상대방의 배를 내려찍었다. 퍼억! “커억!” 털썩. 상대방이 기절한 듯하자 난 다시 힘들게 일어나서 검이 있는 쪽을 향해 달렸다. “이 바보 놈들! 묶여 있는 놈한테도 당하다니!” 외계인이 나를 보고 지랄 발광을 하자 난 열심히 달리면서 외쳤다. “시끄럽다, 외계인!” “뭐, 뭐라고, 외계인?!” 내 말에 외계이은 엄청난 분노를 터트리더니 다급하세 손을 저으면서 성난 어조로 말했다. “저놈, 토막 내서 죽여! 빨리 죽이란 말이야!” “아, 알겠습니다.” 하지만 난 그 말을 들을 때쯤엔 이미 한가운데 걸려 있는 검 쪽으로 껑충 걸음으로 다가간 상태였다. “젠장, 근데…… 이거 되려나?” 막상 검 앞에 가 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이 될는지 고민이 되었지만, 이렇게 고민하는 사이에 적들은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으으읍!” 난 검의 손잡이를 입으로 물어 힘차게 검집과 검을 분리시켰다. 채앵! 검은 맑은 소리를 내면서 뽑혀 나왔고, 난 검을 입에 문채 다가오는 적들을 보고 돌격했다. “으으읍(다 덤벼!)!” “뭐, 뭐야?!” “저, 저……. 뭐 하는 짓이야!” 내가 검을 입에 물고 돌격하자 상대방은 난리가 났고, 바로 그 순간 난 껑충 걸음으로 가던 도중 실수로 넘어져 버렸다. 콰앙! 이런 젠장! 넘어지면서 검도 같이 넘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난 어쩔 수 없이 검을 입에서 놓았다. 챙그랑! “넘어졌다. 죽여!” “알겠습니다.” 또다시 경비병들은 우르르 몰려왔고, 경비병 중 한 명이 나의 심장 쪽에 창을 강하게 찔러 넣었다. “젠장!” 나는 그렇게 외치면서 몸을 최대한 비틀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내 옆구리가 살며시 터지면서 온몸을 포박했던 밧줄이 풀어졌다. “나이스!” “뭐, 뭐야? 무슨 짓을!” 난 밧줄이 풀어지자 옆구리를 베인 고통보다는 기쁨에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당황하는 적과는 상관없이 난 그 아름다운 검을 다시 붙잡아 무의식적으로 외쳤다. 검(Sword) 소환! 허억! 난 내가 주문을 외우고 깜짝 놀랐다. 내 손에는 검이 쥐어진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실수를 한 내가 바보같이 느껴지면서 다시 검을 내려놓으려고 했다. 바로 그때 위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검과 융합을 시작합니다. 검의 공격력에 소울 검의 공격력을 융합합니다. 파파파파파짓! 그 목소리가 들려온 뒤, 나의 손에 잡혀 있던 너무나도 아름다운 검은 모습이 변형되기 시작했다. 길이 1미터 30, 그리고 그냥 평범한 적색 검과는 다르게 손잡이 쪽에 엄청난 장식이 달라붙었다. 그리고 제일 달라진 점은 보기만 해도 잘려 버릴 것 같은 예리한 검날이었다. “이게 뭐야?” 난 갑작스러운 상황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분명 검을 소환했는데, 왜 검과 검이 합쳐지는지……. “거, 겁먹지 마! 죽여!” 또다시 경비병들의 음성이 들려오자, 검에 대한 생각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검을 고쳐 잡은 뒤 곧바로 달려 들어갔다. 타타탁! 퍼어억! 내가 다가가자 경비병들은 기다렸다는 듯 약간 떨리는 손동작으로 자신의 창을 나에게 들이댔고, 난 그 창들을 보고 한 발자국 물러서면서 외쳤다. “소드 블로킹!” 깡! 나는 순식간에 스킬을 시전하면서 경비병들의 창들을 막아 냈고, 빈틈이 생기자 곧바로 한 경비병의 배를 바로 차버렸다. 퍼억! “커억!” 그 경비병이 고통에 몸을 구부리자 난 검으로 마무리를 지으려다가 무섭게 돌격해 오는 다른 경비병들을 보고 뒤로 물러섰다. “개떼처럼 몰리는구먼.” “죽여! 죽이란 말이야!” 그때 또다시 외계인이 발작을 했고, 그 말에 따라 경비병들은 더욱더 심하게 돌격했다. “소드 블로킹!” 타앙! 소드 블로킹을 자꾸 신전하자 안 그래도 없는 마나가 쭉쭉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스르륵! 츠으윽! 마나는 없지만 여전히 움직임에는 변함없었다. 난 막는 순간 다시 한 번 깊숙이 들어가 검을 휘둘렀고 상대방은 나의 검에 맞아 배를 베였다. “으아아악!” 푸시시시! “…….” 나는 분명 공간이 부족해서 살짝 그은 것 같았는데 상대방은 엄청난 비명을 지르면서 피를 흘리며(테이스 월드 시스템상, 피의 설정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었다. 아무런 색깔이 없는 무의 색깔도 가능했고 꽃잎도 가능했다. 하지만 민혁이는 그대로 붉은색 피로 설정된 상태였다.) 쓰러졌다. 나는 왜 그런지 곰곰이 생각하다가 내 손에 쥐어진 검을 보고 말했다. “드럽게 예리하네.” 아마도 엄청난 공격력으로 인해 상대방을 살짝 베었을 뿐이었지만 깊숙이 상처를 준 것 같았다. 그 사실을 안 나는 싱긋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다 죽었어!” 그렇게 나는 순식간에 경비병들을 베어 나갔다. 그냥 베기만 해도 쑥쑥 죽어 나가니 거의 예술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마지막 경비병을 벤 다음 싱긋 웃으며 외계인 쪽을 바라보았다. “어, 어라? 어디 갔어?” 고개를 돌린 곳에는 죽어 버린 경비병들만 있을 뿐 외계인 자매와 그 꼬맹이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문을 열고 도망가고 있는 외계인 자매가 눈에 들어왔다. “젠장! 날 죽이려 하고선 튀어? 거기 못 서?!” 나는 그 외계인들을 마무리 짓기 위해 잽싸게 달려들었다. 외계인들은 그 비대한 몸집으로 힘차게 도망갔지만 거리는 점점 줄어들었다. “젠장! 이거나 먹어라!” 휘이익! 챙그랑! 바로 그 순간 외계인 자매가 동시에 이상한 걸 던졌고, 나는 그게 무슨 공격 무기인 줄 알고 황급하게 뒤로 빠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저, 저건?!” 나의 눈앞에 있는 것은 아름답게 반짝이는 푸른색의 목걸이와 붉은색의 목걸이로, 한마디로 열라 비싸 보이는 보석 목걸이였다. 타타탁! 덥석! 난 당장 그 보석들을 주웠고, 엄청나게 비싸 보이는 그 보석을 보고 감동에 젖었다. “이게 웬 대박이냐. 참 좋은…… 이게 아닌데!” 나는 무의식적으로 보석 목걸이에 심히 빠져 들어 내가 뭘 하고 있었는지 잠시 잊어버렸지만 얼른 보석들을 챙긴 뒤 일어섰다. “없네?” 외계인 자매들은 지능적으로 내가 보석에 빠져 있는 시간에 교묘하게 튀었다. “없어! 없어!” 난 텅 비어 버린 방을 열심히 찾았지만 내가 찾는 돈과 보석은 커녕 빵 한 개도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된 게 이렇게 큰 집에 돈도 없어!” 나는 텅 빈 집을 보고 절망에 빠진 채 내 손에 들려 있는 보석 목걸이 두 개와 방금 얻은 검을 바라보았다. -레니스 소드(매직 1등급)- 공격력: 270 아름다운 검신이 멋진 검, 실용성도 좋지만 장식용으로 종종 이용된다. 매직 1등급. 무기의 등급은 일반, 매직, 레어, 유니크, 신급, 전설급으로 나누어지며 또 각각 등급별로 1, 2, 3, 4등급으로 나누어진다. 1등급이 제일 좋은 것이며 4등급이 제일 안 좋다는 소리였다. 나름대로 매직 1등급 계열이기는 했지만 대박까지는 아닌듯 싶었다. 그래도 일단 좋은 검을 구하기 전까지 임시로 쓸 예정이었다. “후우, 그나저나 이 목걸이들은 얼마나 하려나?” 난 내 손에 들린 파란색 보석 목걸이와 붉은색 보석 목걸이를 빤히 쳐다보다가 주머니에 집어넣으면서 말했다. “직접 가 봐야지.” 덜컹! “어서 오세요!” 보석점의 문을 열자, 15살 정도 되는 나름대로 귀여운 소녀가 나를 반겼다. 난 그 소녀에게 가까이 다가가 말했다. “이거, 얼마나 하는지 좀 봐 줄래?” “보석 두 점이네요. 잠시만요. 할아버지!” 보석을 건네받은 소녀가 안을 향해 외치자, 70살 정도의 인자해 보이는 할아버지가 나타났다. “왜 그러느냐?” “손님 왔어요! 보석 두 점인데, 봐 주세요.” “흐음. 어디 보자…….” 할아버지는 붉은 목걸이와 푸른 목걸이를 하참 동안 훑어 보더니 놀랍다는 어조로 말했다. “오오! 이건!” “왜 그러죠?” “블루 사파이어와 레드 사파이어로 제작된 보석 목걸이라네. 흐음, 가공도 상당히 잘된 편이기에 한 개당 2,500골드 정도 나갈 것 같네. 허허!” “2,500골드?!” 내가 기겁을 하자 할아버지는 웃으면서 말했다. “어때, 팔겠나?” “네!” 나는 생각할 것도 없이 당장 대답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금고에서 5,000골드를 꺼내 건네주었다. “다시 들러 주게. 정말 후하게 쳐준 거니…….” “고맙습니다.” 난 꾸벅 인사를 하고 보석점을 빠져나왔다. 난 5,000골드라는 거금을 들고 시장으로 향했다. 시장에온 이유는 장비나 스킬북으로 구입하기 위해서였다. 주변은 갖가지 아이템을 파는 사람들과 사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흐음……. 일단 활도 하나 필요한 것 같고, 스킬북도 필요하고…….” 내 직업이 이렇다 보니 많은 스킬북이 필요했고 닥치는 대로 구입하고 싶었다. 물론 생활비를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단 레벨 업을 해서 강력해지면 더 많이 벌 수 있으니 강력해지는 게 우선이었다. 그리고 대충 게임 시세를 살펴본 결과 1,000골드가 10만원에 거래되었으니 지금 있는 돈은 거의 현금 50만 원어치였다. 그렇다면 웬만한 좋은 아이템과 스킬북은 살 수 있다는 소리였다. “자, 자! 그 유명 피를 잔뜩 먹었다는 블러디 와이어입니다! 레어 4등급이 단동 100골드! 100골드입니다.” “힐링 포션 팔아요! 제작 직접 제작한 효능 만점! 1병에 4골드!” 사람들은 자신의 물품을 팔기 위해 소리를 꽥꽥 지르고 있었고 나는 내가 원하는 스킬북을 찾기 위해 시장 바닥을 누볐다. 이왕 살 것 대박 스킬북이나 아이템을 사 보겠다고 설치며 한참을 돌아다니던 중 어느 한 장소에 사람들이 왕창 몰려 있는 게 보였다. “무슨 일이지?” 나는 호기심이 일어 천천히 그쪽으로 다가갔다. 거기에는 1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소년이 큰 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이 스킬북은 랭킹 10위 안에 드는 데니스님이 힘들게 구하신 거니다! 한번 보세요.” 웅성웅성. 그 마레 사람들은 몰려들었고 나도 무슨 스킬북인가 하고 같이 구경에 참여했다. -플레지마 스트레이트 샷- 높은 압축률로 강력한 파괴력을 가진 화살을 발사한다. 화살은 모든 것을 찢는 엄청난 관통성을 가지고 있다. 화살에 맞을 시 상대방은 출혈 마비가 15초간 80% 확률로 걸린다. 공격력: 1,300. 좋기는 정말 좋았다. 할 말을 잃어버리게 할 만큼……. 공격력도 공격력 나름이었지만 출혈 마비라는 것은 그만큼 엄청난 고통과 파괴력을 지녔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렇게 좋은 스킬북이었지만 사람들은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궁수들도 좀 보이는 것 같았지만 그들은 눈만 빛낼 뿐 다가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거기 밑에 적힌 가격이 예술이었기 때문이다. 4,800골드! 아직 오픈 베타 이틀째인 사람들로서는 구하기가 정말 힘든 돈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현금 거래도 없어서 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데 4,800골드라니……. 나는 그 스킬북을 보고 엄청 탐이 났다. 사냥 시에는 검도 좋지만 나보다 높은 레벨을 상대하려면 활도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80% 마비라는 건 성공만 하면 대박이라는 뜻이었다. “흐음…….” 난 내 주머니에서 찰랑거리는 금화를 만지작거리며 고민에 빠졌다. 솔직히 스킬북 하나에 4,800골드는 아까운 편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가치는 있어 보였다. “좋다, 제가 살게요.” “오오! 사시겠습니까? 환영입니다!” 나의 말에 소년은 엄청나게 반겼고, 나는 가볍게 4,800골드를 넘겨주면서 책을 받았다. “고맙습니다.” “저야말로!” 난 평범하게 인사를 한 뒤 하얀색의 책을 받아 들었고, 사람들은 엄청나게 부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배워야지. 나는 얼른 사람들 보는 앞에서 그대로 눈을 감은 채 스킬북을 익혔다. 그러자 잠시 후 스킬 설명이 뜨기 시작했다. -플레지마 스트레스트 샷-(숙련도 0.00%) 높은 압축률로 강력한 파괴력을 가진 화살을 발사한다. 화살은 모든 것을 찢는 엄청난 관통성을 가지고 있다. 화살에 맞을 시 상대방은 출혈 마비가 15초간 80% 걸린다. 데미지: 1,300(숙련도 10% 상승 시 130 증가). 마나 소모량: 300. 마나 소모량이 상당히 높은 편이기는 했지만 나름대로 만족스러웠다. 엄청난 파괴력, 그리고 무엇보다 출혈 마비가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자, 자! 사냥을 가 볼까!” 나를 부럽게 바라보는 사람들을 뒤로한 채 사냥터를 향해 터벅터벅 움직였다. 이번 일의 축하 기념으로 레벨 50정도 되는 리자드맨을 잡을 예정이었다. 제3장 2번째 소환수, 세계정복을 꿈꾸는 천족 피티언 여기는 리자드맨 사냥터. 우우우웅! 터엉! 리자드맨 서식지 한가운데에 이상한 버섯 모양의 엄청 큰 구가 떨어졌다. “꾸꾸륵(이건 뭐야)?” “삐리삐리 마삐리(나도 몰라).” 리자드맨들은 자신들 앞에 있는 버섯 모양의 큰 구를 신기하다는 듯 요리조리 살펴보았다. 잠시 후 버섯(?)의 문이 열렸다. 파지짓! “삐라라빠라빠라 뽕(위험하다, 조심해)!” 한 리자드맨의 다급한 음성에 리자드맨들은 얼른 물러났다. 그 버섯 안에서 나온 존재는 엄청났다. 키 183Cm의 엄청난 미남, 그리고 성스러운 날개와 신성한 오르력……. 한마디로 남자 천사였다. “훗! 잘 착륙했나?” 그 남자는 머리를 한번 쓰다듬으면서 온갖 폼을 잡으며 말했다. 천사의 분위기가 풍겨서 그런지 그렇게 말하자 상당히 멋있었다. “삐리스 빠리삐리끼리(천사인가)?” 나름대로 지능이 있는 리자드맨은 그 남자를 알아보았다. 하지만 그 말을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천사는 갑자기 이상한 포즈를 취하기 시작했다. “레전드! 전설이 천사! 이 세상은 내가 정복하겠다. 크하하하! 세계 정복이여, 기다려라!” “…….” 그 천사는 오른쪽 손으로 하늘을 가리킨 채 말했고, 그 모습을 지켜본 리자드맨들은 너무나 황당해서 할 말을 잃어버렸다. 나는 사냥을 하기 위해 리자드맨 사냥터로 이동 중이었다. 리자드맨은 집단생활을 했다. 그들은 인간처럼 왕이라는 직접적인 통치를 하는 존재도 있었고, 대부분 몰려서 다녔다. 리자드맨은 붉은색 눈과 작은 키에 보기 흉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레벨은 대략 50대 정도였다. “근데…… 여기 리자드맨 사냥터 아닌가?” 리자드맨이 집단으로 모여 있는 곳이라는 정보를 듣고 찾아왔는데 평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계속해서 10분, 20분을 돌아다녔지만 리자드맨은 커녕 개미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한편 떨어진 6대 소환수 중 한 명인 피티언은 지금 리자드맨들에게 온몸을 결박당한 상태였다. “삐리리 삐기리(얘 뭐야)?” “삐리리 삐기리리(몰라. 바보 아니야)?” “당장 풀어라! 젠장, 세계 정복 하루 만에……. 마스터가 없어! 마스터!” 6대 소환수 피티언. 그의 정확한 명칭은 ‘혼돈의 마법사’로 모든 것을 파괴하는 엄청난 천족이었다. 하지만 정확히는 그는 지금 천족이 아니었다. 천족이었지만 이제는 웨폰인첸트 마스터의 수호기사였던 것이다.(그리고 꿈이 세계 정복.) 같은 수호자였지만 테피언이 반지에서 소환되는 것에 비해 피티언은 자신의 의지로 다른 곳에서 날아온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리자드맨들한테 잡힌 이유는 간단했다. 마스터, 그러니까 웨폰인첸트를 가진 직업과 계약을 맺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웨폰인첸트와 계약을 함으로써 힘을 얻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혼자서 설치면서 튀어나왔다가 이렇게 리자드맨들한테 생포당하고 만 것이었다. 혼돈의 마법사, 단 한 번의 마법이면 모든 것을 쓸어버리는 존재. 그만큼 엄청난 파괴력을 가졌지만 지금은 미계약 상태로 인해 리자드맨 한 마리 잡을 힘도 없었다. “뭐, 뭐야?” 난 갑작스럽게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자 궁금증에 몸을 움직였다. 무슨 마스터, 마스터 하고 외치는데 푼수 끼가 가득한 목소리였지만 매우 다급한 듯했다. “무슨 일이지?” 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2분 정도 걷자 그 목소리의 정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이건 뭐지?” 떼로 몰려 있는 리자드맨들 사이로 한 순백의 천사가 밧줄에 포박당한 채 서럽게 외치고 있었다. “마스터! 헬프 미! 날 살려 줘!” “…….” 마스터라니? 누굴 찾는 거지? 난 약간 정신이 이상해 보이는 그 천족을 보고 당황하다가 개떼처럼 모여 있는 리자드맨들을 보고 뒤로 물러섰다. “저렇게 많으면 무리다.”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앞에 있는 수백 마리의 리자드맨들을 무시한 채 가려고 했다. 하지만 눈을 돌리기 전, 그 미친 천족과 눈이 마주쳤다. “이, 이 기운은! 서, 설마! 마스터?!” 찌리릭! 그 말 한마디에 리자드맨들은 동시에 그 미친 천족의 눈동자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리자드맨들은 나를 보더니 장엄하게 한마디 했다. “끼라르르륵(인간이다! 죽여라)!” 무슨 말인지 번역 불가였지만 대충 이해할 수는 있었다. 리자드맨 수백 마리가 검을 들고 떼로 몰려왔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아주 눈에 광기가 가득한 채……. “젠장! 저놈 뭐야!” 난 그 모습을 보고 정신 나간 그 천족을 원망하면서 도망가기 위해 발걸음을 떼었고, 바로 그 순간 천족의 음성이 나를 붙잡았다. “마스터! 마스터! 나야! 그 6대 소환수 중 한 명!” “응? 네놈이 6대 소환수?” 끄덕끄덕. 난 도망가려다가 그 한마디를 듣고 그 이상한 천족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어느새 리자드맨들은 나에게 근접했고 난 그 모습을 보고 다급하게 외쳤다. “젠장!” 검(sword) 소환! 파지짓! 나의 말과 함께 소환되는 붉은색의 검. 정말 화려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런 걸 신경 쓸 여력은 없었다. 일단 눈앞에 있는 광기 어린 리자드맨들의 처리가 우선이었으니까. “끼리리리(죽여)!” 리자들맨들이 보기에도 허름한 철검을 휘둘러 오자 나 또한 소환된 검을 휘두르며 맞받아쳤다. 쉬르르! 역시나 리자드맨의 검은 너무나도 쉽게 내 검에 잘려 버렸고, 난 곧바로 당황하고 있는 리자드맨을 베어 버렸다. “역시 데미지는…….” 난 검의 데미지에 나도 모르게 감탄을 했지만 계속해서 몰려오는 리자드맨 떼를 보고 말을 접었다. “무리다.” 다다닥! 나는 그러면서 도망가기 시작했고, 바로 그 순간 그 이상한 천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랑 계약하면 무적이야! 계약!” “지금 계약할 상황이냐?” “괜찮아! 내가 알아서 다 할 테니!” 바로 그때 그 이상한 천족의 말이 끝나면서 갑작스럽게 내 위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웨폰인첸트, 소환수와 계약을 시행합니다. 계약자 피티언, 지금 계약을 맺으시겠습니까? “젠장! 어쩔 수 없지! 알겠어!” 나는 여전히 리자드맨들을 피해 도망가면서 외쳤고, 나의 말이 끝나면서 갑작스럽게 강렬한 빛이 나의 눈을 마비시켰다. “으으윽!” 난 무의식적으로 눈을 감아 버렸다. 잠시 후, 따가움이 가라앉아 살며시 눈을 뜨자, 피티언이라 불린 소환수가 내 앞에 장엄하게 선 채 말했다. “마스터, 명령을…….” 짜가 소환수 데스나이트 테피언과는 많이 달라 보였다. 하지만 뭐, 리자드맨들이 그런 폼을 보고 감탄해서(?) 가만있을 리 없는 관계로 원래대로 험악하게 피티언가 나를 향해 달려왔다. 피티언은 그런 리자드맨들을 슬쩍 보더니 나에게 말했다. “마스터, 명령을…….” 예상치도 못한 상황에 당황해서 내가 아무 말도 못하고 있자 피티언은 다시 한 번 물었다. 난 곧 최대한 진정을 하면서 말했다. “아, 앞에 있는 리자드맨들을 쓸어버려.” “명령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세상을 얼려 버리는 냉혹한 냉기여, 세상을 파기해 버리는 전격이여, 나 피티언의 이름으로 그대들을 불러온다! 블리자드 스톰!” 콰앙! 콰앙! 휘이익! 피티언이 주문을 완성하는 순간, 내 안에서 엄청난 양의 마나가 빠져나갔다. 그러더니 마나가 완전히 고갈되어 버렸다. “뭐, 뭐야?” “모르셨군요. 저는 마스터의 마나를 가지고 마법을 시전합니다.” “…….” 왠지 모르게 충성감은 좋은데 실용성 면에서는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하늘에 얼음의 구름과 번개의 구름이 몰려드는 걸 보고 생각을 멈추었다. 파지지짓! 바로 그 순간, 나와 피티언에게 다가오는 리자드맨의 머리 위로 엄청난 폭풍의 눈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리자드맨들은 엄청난 패닉 상태에 빠졌다. “삐리리리삐리리리(이게 무슨 일이야)?!” “삐라스 삐(마법사인가)?” “삐삐삐(우아악)!” 나는 내 눈을 믿지 못했다. 단 한 번 폭풍의 눈이 자나갔을 뿐인데, 나를 쫓아오던 300마리 정도의 뭉쳐 있던 리자드맨들이 그대로 얼어 버린 것이었다. 그때 또다시 몰려 있던 번개의 구름이 내리찍었다. 콰앙! 콰앙! 퍼퍼퍽! 번개가 얼어 있는 리자드맨들을 곧바로 직격시키면서 다 터트려 버린 순간 위에서 또다시 음성이 들려왔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이, 이건?” “마스터, 끝냈습니다. 음하하하!” 피티언은 나를 보더니 엄청나게 웃어 댔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난 갑작스러운 레벨 업에 정신이 없었다. “소환 창 오픈!” 난 어떻게 된 일인지 궁금해서 소환 창을 열어 보자 거기에는 엄청 기쁜 소식이 적혀 있었다. -소환수 피티언- 강력한 마법사. 천족 출신으로 주인의 마나를 끌어 쓰며 마스터의 말에 절대 복종한다. 마나는 많이 들지만 파괴력은 크다. 특수 옵션: 몬스터를 죽인 경힘치의 10%가 계약자에게 돌아간다. 이건 한마디로 대박이었다. 짜가 소환수 테피언은 제가 경험치 먹고 업 하는데, 얘는 경험치를 나눠 주는 착한 소환수였다. 비록 마나가 많이 든다는 게 문제이기는 했지만, 내 앞에서 엄청난 파괴력을 보여 준 마법은 감동이었다. 그리고 처음과는 다르게 나를 존경하는 말투까지……. “너…… 정말 대단하다.” “당연한 말씀을. 저는 마스터의 명령이라면…….” 왠지 모르게 복받쳐 오는 이 느낌, 나의 명령이면 모든걸 한다고 하니 정말 왜 이리 감동인지……. “그, 그렇구나.” “그렇습니다. 그나저나, 마스터.” “응?” 난 갑자기 분위기를 잡는 피티언을 보고 왜 그러냐는 듯 물었고, 그 물음에 피티언은 내 귀에 대고 살며시 말했다. “세계 정복 한탕, 어떤가요?” “…….” 난 세계 정복이라는 한마디에 단번에 이놈도 제정신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난 혹시나 농담을 하는 건가 해서 피티언을 보았지만, 그의 표정은 너무나도 진지했다. 한마디로 풀이하면 ‘진지천족(?)’ “한탕 어떻습니까?” “그래그래. 너나 한탕 먹어라…….” 김밥 옆구리 터지는 소리에 나는 기운 없는 목소리로 말했고, 그 말에 피티언은 나에게 더욱더 찰싹 달라붙었다. “세계 정복, 얼마나 아름다운가요?” “너나 아름다워라. 그럼 난 이만 쉬러.” “자, 잠시 마스터!” 피티언은 뒤돌아 힘없이 걸어가는 나를 애타게 부르면서 좇아왔고, 나는 새 스킬을 쓰려 했다가 왠 이상한 놈 한 명 더 들고 온 게 아닌지 심히 으문스러웠다. “마스터, 세계 정복 한탕? 커억!” 퍼억! 나는 아직도 내 귀에 달라붙어 세계 정복을 외치고 있는 피티언의 뒤통수를 갈겼고, 피티언은 곧바로 외마디 비명을 지르면서 앞으로 고꾸라졌다. “좀 조용히 해라. 지금 아이템 줍고 있잖아.” “마스터, 그러니 세계…….” 찌릿. 난 또다시 세계 정복을 이야기하려는 피티언을 잠시 노려봐 주었고 내 눈빛에 피티언은 이내 조용해졌다. 저놈이 세계 정복을 이야기한 게 벌써 53번. 그 짧은 시간에 세계 정복을 나의 머리에 주입시키려 하고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주입식 세뇌. 그걸 이미 저놈은 알고 있는지 계속해서 ‘세계 정복’ 이라는 코드를 나에게 주입시키려고 하고 있었다. 물론 저렇게 한 대 패 놓으면 조용해졌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마스터, 세계 정복…….” “한마디만 더 하면 묻어 버린다!” “…….” 이번에야말로 나는 조용해질 거란 믿으면서 아이템들을 줍기 시작했다. 하지만 워낙 많이 박살 내 버려서 아이템도 없었다. 난장판 딘 장소를 힘들게 뒤지면서 리자드맨들이 죽으면 남기는 몬스터석을 찾고 있었다. 몬스터석은 몬스터를 죽이면 떨어지는 아이템으로 몬스터길드에 찾아가면 돈으로 환산할 수 있었다. 물론 들고 있던 몽둥이 같은 것도 실제 지향 게임이기에 가져올 수 있지만, 그런 것들은 인벤 창에 넣기에는 상당한 무게가 나갔다. 그리고 무엇보다 문제는 이놈들이 그렇게 강한 몬스터들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한참 동안 조각조각 부서진 몬스터석을 무시하면서 멀쩡한 몬스터석을 찾고 있었지만 이놈이 얼마나 잘게 부숴 놓았는지 잘 보이지도 않았다. 30분 동안 열심히 돌아다녔지만 몬스터석 300개 중에서 단 10개만 건질 수 있었고, 이런 어처구니없는 결과에 정말 할 말도 나오지 않았다. “마스터, 세계 정복…….” 퍼퍼퍼퍽! “으아아악!” 안 그래도 심기 불편한 내게 그놈은 또 헛소리를 하기 시작했고, 난 그렇게 한참을 밟고 나서 곧바로 도끼를 소환했다. 도끼 소환. 화(火) 인첸트. 파지지짓! 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도끼에서는 거대한 불의 불꽃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난 잠시 눈을 감은 뒤 내게 맞아 곤죽이 되어 버린 피티언을 뻥 찬 다음, 한 30미터 정도 걸어온 뒤 그대로 도끼를 바닥에 내리찍었다. 퍼엉! 콰앙! 엄청난 대폭발이 일어나면서 땅은 산산조각이 났다. 난 너무 맞아서 아직도 빌빌거리고 있는 피티언에게 다가갔다. 피티언은 그런 나를 보더니 싱긋 웃고는 말했다. “마, 마스터…… 세, 세계…….” 퍼억! 난 그렇게 맞고도 세계 정복에 엄청난 지지를 보내는 피티언을 다시 한 번 밟아 준 다음 폭발에 땅이 파인 곳으로 밀어 넣었다. 툭! “마, 마스터!” “난 신의가 있어 약속을 잘 지키거든. 그럼…….” “마, 마스터!” 절규를 하든 말든 약속을 잘 지키는 난 정말 파티언을 묻기 시작했고, 파티언은 열심히 반항을 했지만 끝내는 내 손에 목만 남긴 채 묻혔다. “그럼 수고해.” “사, 살려 주세요! 마스터!” 나는 애타게 부르든 말든 귀를 후비면서 마을로 다시 돌아갔다. 나의 레벨은 어느새 34. 한 것도 별로 없는 거에 비해서는 상당히 레벨이 높은 편이었다. 그리고 내 옆에 혼자서 땅 파고 기어 나온 든든한 소환수 피티언, 레벨은 그리 높지 않았지만 웬만한 부대는 다 쓸어버릴 전력이었다. 물론 말을 더럽게도 안 듣지만 데스나이트 테피언도 있었고 말이다. 한마디로 난 레벨에 비례해 상당히 빵빵하다는 소리였다. 그렇게 오늘의 사냥을 끝내고(피티언이 리자드맨 300마리 쓸어버린 것) 아늑한 마음으로 마을로 돌아왔다. 이런 대박 사냥은 힘들 거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몰려 있으면 대박이겠지만 안 몰려 있으면 대략 나감한 피티언의 마법 공격이었다. 터벅터벅. 마을에 점점 가까워지자 방금 시작한 유저로 보이는 초보자들이 각종 단검질을 하고 있었다. “꺄아악!” “귀, 귀여워!” “죽어라! 크하하하!” 여자의 비명 소리와 웃음, 그리고 남자들의 광기에 찬 웃음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그런 그들을 한 번 훑어본 뒤 마을로 걸음을 옮겼다. 푸욱! 그 순간 귓가로 사람이 찔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마을로 가는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허어억!” 그리고 광인의 얼굴을 한 남자와 정면으로 눈이 마주치자 순간적으로 날랐다. 그 남자는 어느 초보자의 심장에 칼을 꽂은 채 싱긋 웃었다. “피케이……?” 그 모습을 보고 조용히 중얼거리는데 그 남자가 초보자의 심장에서 단검을 뽑아 들었다. 푸욱! “꺄아악!” “피케이다!” “겨, 경비병!” 주위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런데 그놈이 갑자기 피가 묻은 단검을 든 채 엄청난 속도로 나에게 달려들었다. “뭐, 뭐야?!” “크하하하! 죽어라!” 푸욱! “커, 커억!” 난 너무나도 황당한 시추에이션에 반응을 제대로 하지 못해 그대로 배 부분을 찔렸다. 다행히도 나의 반사 신경 덕분에 원래의 목표였던 심장에서 배로 변경이 되기는 했지만 아프기는 더 아팠다. 죽으면 그대로 게임 종료였지만, 죽지 않으면 고통을 느끼니까 말이다. “너, 너…….” “젠장! 안 죽었나?” “야, 거기 살인자! 멈춰라!” 멀리서 경비병들이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자 나를 찔렀던 그놈은 그대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타타탁! “젠장! 역시 재밌어. 크하하하!” 그놈은 그렇게 웃으면서 도망가기 시작했고 바로 그때 음성이 들려왔다. -출혈 상태에 걸렸습니다. “괘, 괜찮습니까?” 경비병 중 몇 명은 그 미친놈을 잡으러 갔고, 몇 명은 나에게 달려와 나의 상태를 물었다. 피티언도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마, 마스터, 괜찮습니까?” 난 피티언과 경비병들을 잠시 보고 나서 고통을 참으며 배에서 검을 뽑아냈다. 푸욱! “크윽……. 드, 드럽게 아프네.” 실제만큼은 아니겠지만 리얼리티 게임인 만큼 상당히 아팠다. 난 걱정하는 경비병을 보고 싱긋 웃은 뒤 가방에서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사 놓은 붕대를 꺼내 배를 둘둘 말았다. 가볍게 응급조치를 끝내고 난 외쳤다. “죽었어! 이 개놈! 피티언, 따라와!” “아, 알았습니다, 마스터!” 나는 몸에서 피가 새어 나오는 걸 무시하고 나를 찌른 그놈을 열나게 추적하기 시작했다. 완전 초전 박살을 내기 위해, 원래 내 모티브가 은혜는 생각나면 그런대로 갚고, 원수는 내 목숨 다하는 그날까지 쫓아간다는 거였다. 물론 이런 모티브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관계로 뭐 특별할 거는 없었다. 제4장 광렙! 타타탁! “허허헉! 더럽게 잘 달린다.” 경비병들은 서서히 한 명씩 지쳐서 떨어져 나갔고 피티언도 헉헉거리기 시작했다. 물론 나도 죽도록 힘들었지만 이대로 놓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난 힘차게 1시간 30분째 추적을 계속했고, 서서히 내 눈에 나의 배를 찌르고 도망가는 그놈의 윤곽이 잡혔다. “넌 죽었어!” 난 온 힘을 다해 추적하다가 나와의 거리가 70미터 정도 되었을 때 다급하게 오른쪽 다리로 브레이크를 걸었다. 지지직! 몸이 멈추자 난 그대로 오른쪽 발을 축으로 한 다음 조용히 중얼거렸다. 활(bow) 소환. 우우웅! 활이 소환도자 다리로 축을 잡은 뒤 줄을 잡아당겼다. 자피스는 지금 미칠 지경이었다. 그냥 재미로 시작한 무한 피케이, 이 짓도 어느덧 스무 번째를 기록할 정도로 엄청 능숙해졌다. 그리고 그는 오늘도 어김없이 초보자들을 푹푹 찔러서 죽였다. 하지만 자신의 눈과 부딪친 이상한 남자를 보고 싱긋 웃으면서 그 남자를 찔렀는데, 아마도 잘못 건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현실 세계의 체력이 장난이 아니어서 도망에는 일가견이 있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무사하게 잡히지도 않았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악질 중의 악질이었다. 칼로 푹 찌르고 왔는데 그 칼을 뽑아내더니 붕대로 싸매고 자신을 1시간째 추적하는 사람……. 왠지 모르게 공포가 느껴졌다. 그렇게 자피스는 죽도록 뛰었고, 어느 순간 자피스는 옆구리의 통증에 그대로 넘어졌다. 털썩. “크아아악!” “잡았다!” 난 일격에 즉사시킬 수도 있었지만 복수를 위해 넘어뜨리는 방향으로 수정했고, 넘어져 있는 그놈을 향해 나의 단검을 뽑아 들었다. 스으윽! “자, 잠시!” 나의 모습을 본 그놈이 외쳤지만 그 말을 들어줄 일은 없었다. 제대로 치료를 못 받아서 아직도 배가 쿡쿡 아파 왔기 때문이었다. “크크크! 나를 죽이려던 놈을 잡으니 너무 산뜻한데?” 나는 음침한 미소를 지으면서 다가갔다. 그러자 그놈은 온몸을 떨면서 옆구리에 오른손을 갖다 댄 채 천천히 뒤로 기어갔다. “마, 말로 하자. 그, 그게 오해…….” 스으윽. “자, 잠시!” 나는 놈의 말을 무시하고 넘어져 있는 그놈을 향해 단검을 들고 온몸을 날렸다. 그리고 나도 똑같은 선물을 해 주었다. 푸욱! “커, 커억…….” “좋아? 좋지? 좋다고?” 난 그놈의 배에 똑같이 단검을 박아 넣어 주었고, 그놈은 고통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원금을 받았으니 이제 이자 값!” “커, 커억! 자, 잠시…….” 쿡쿡쿡쿡쿡……! 나는 그렇게 이자까지 붙여서 열 번을 더 쑤셨다. 그러자 그놈은 거의 패닉 상태로 돌입했고,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너무 미안해서 단검을 집어넣었다. 그런 다음, 고통 속에 신음하고 있는 그놈을 보고 주먹을 움켜쥐었다. “2라운드다!” 퍼퍼퍼퍼퍽! 나의 주먹은 그놈을 열나게 패기 시작했다. “흐음……. 좀 흥분했구나.” 난 주먹에 맞아 죽어 버린 그놈을 보고 잠시 흥분을 가라앉히면서 심호흡을 했다. 흥분이 가라앉자 다시 고통이 느껴졌고, 그걸 참으면서 주변을 돌러보았다. 울창한 숲과 너무나도 상큼한 공기, 그리고 저 멀리서 용케도 기어오고 있는 피티언이 보였다. “마, 마스터! 무사하셨군요.” “너도 무사히 기어올라 왔구나.” 난 체력도 더럽게 없는 피티언을 보고 한심했지만 이해해주기로 했다. 쟤는 저래 봬도 마법사니 체력이 없을 만도 했다. 그것보다 심각한 문제가 있었으니…….“ “여기는 어디냐?” “그걸 왜 저한테 물어보시나요, 마스터?” “…….” 피티언의 답변에 나는 개가 얼마나 흥분을 했는지 깨닫게 되었다. 한마디로 저 미친 피케이범을 잡는다고 주변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아 버린 것이었다. 사사삭. 나는 그 알 수 없는 숲을 1시간째 헤매고 있었다.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점점 더 이상해지는 것 같다.” “저도 동의합니다.” 피티언의 말에 나는 다시 한 번 주위를 둘러보았다. 화창한 숲 속, 싱그러운 자연의 향기……가 나는지 솔직히 모르겠다. 난 나무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던데 사람들이 하도 자연의 향기라기에 따라 해 본 것뿐이다. 그렇게 우리는 거의 20분간을 찾아 헤맸지만, 여전히 길은 보이지 않았다. 난 서서히 짜증나는 상황이 연출되자, 피티언을 불렀다. “피티언…….” “네, 마스터.” “우리 여기 날려 버리고 그냥 평원으로 걸어 나갈까?” “물론 좋으신 생각이지만, 이런 협소한 지역에 대단위 마법이 터지면 마스터에게 피해가 올 수도…….” “그렇구나.” 나의 완벽한 계획은 피티언의 한마디에 무산되었다. 나한테도 피해가 온다는데……. 그나저나 내가 아무리 흥분을 했다지만 산속을 올라온 줄도 모르다니, 이런 적은 난생처음이었다. 아마도 나를 찌른 놈의 비웃음에 나도 모르게 스위치가 나가 버린 것 같았다. “마스터, 제가 한번 찾아보죠.” “오, 네가?” “한번 해 보겠습니다.” 나는 피티언의 말에 엄청난 희망을 내뿜으면서 그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일단은 그렇게 완벽한 대단위 마법을 날리는 소환수이다 보니 분명 무슨 다른 기능도 탑재되어 있을 것 같았다. 1시간 30분 뒤. 퍼억! “커, 커억…….” 나는 참지 못하고 피티언의 머리를 갈겼고, 피티언은 넘어졌다. “너 죽을래? 더 이상한 곳으로 들어왔잖아!” “죄송합니다, 하하. 길 찾는 것도 힘들군요.” “…….” 피티언 놈은 웃음으로 무미하려고 했지만, 나는 여전히 피티언을 째려보았다. “죄송합니다.” 그제야 피티언은 조용히 고개를 숙였고 난 정말 머리가 아파 왔다. 길을 모르면 가만히 있든지. 아까보다 더 음침하고 길은커녕 아무거도 보이지 않는 이상한 숲 속으로 들어와 있었다. 난 그 모습을 보고 어절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젠장! 나의 아름다운 센스를 발동시켜야겠군.” 나는 그렇게 말한 뒤 조용히 눈을 감고 주머니에서 실버동전을 하나 꺼냈다. 그런 다음 눈을 번쩍 떳 손에 있는 동전을 가볍게 쳤다. 타악! 부우우! 동전은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면서 랜덤으로 휙 날아갔고, 나는 오른쪽으로 날아가는 동전을 열심히 본 다음 옆에 있던 피티언을 향해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다!” “…….” “그 야리꾸리한 표정은 뭐냐? 나를 못 믿겠다는 거냐? 앙?” “아, 아닙니다, 마스터.” 나의 아름다운 센스에 피티언의 표정은 좋지 않았지만 제가 아무렇지도 않다고 했으니, 뭐……. “자, 앞으로 가자!” “네, 마스터.” 그렇게 우리들은 나의 뛰어난 센스로 선택한 길을 무작정 돌파했다. 다시 20분 뒤. “봐! 맞지?” “……. 난 내 앞에 펼쳐진 이상한 집을 보고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길은 아니었지만 이런 곳에서 집을 보았으니 왠지 모르게 좋은 길로 왔다는 기분이 드는 건 사실이었다. “들어가자!” 나는 어이없어 하는 듯한 표정을 짓는 피티언에게 말하면서 그 정체불명의 집으로 향했다. 한 20평쯤 되는 크기에 아무런 장식도 없는 수수한 모양의 집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원래 이런 집일수록 뭔가 있는 법이다. 덜컥! 난 친절하게 손잡이를 힘껏 잡아당긴 후,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집 안을 바라보았지만 이내 표정이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게 뭐야?” 보물이나 아이템은커녕 아무런 물건도 없이 집 안은 완전히 텅텅 비어 있었던 것이다. “젠장!” 콰앙! 집 안의 금은보화가 잔뜩 있을 줄 알고 기대했다가 아무것도 없자 난 너무나도 실망해서 거칠게 문을 닫아 버렸다. 한편 그 모습을 보던 피티언은 나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마, 마스터, 혹시 모르니까 자세히 조사 안 하시나요?” “안 보이는데 무슨 조사야? 허탕 쳤다. 젠장! 열 받는데, 저 집 날려.” “나, 날려요?” “그래.” “저, 정말 날려요?” “그럼 가짜로 날리냐?” “…….” 피티언은 나의 말에 잠시 머뭇거렸지만 그것도 잠시, 곧 눈을 감더니 마법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화염의 폭풍이여, 불의 기운이여, 그대의 폭풍의 힘을……. 토네이도 파이어!” 콰아아앙! 피티언의 주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의 마나가 절반 이상 사라졌다. 그리고 엄청난 크기로 위에서 그대로 내려찍는 불의 토네이도에 집은 서서히 소멸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난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사람 약 올리고 있어.” “…….” 그렇게 한참 동안 소멸되는 집을 바라보던 나의 눈에 웬 철판이 바닥에 버젓이 남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처, 철판?” 가로 세로 40미터 정도 되는 커다란 철판을 보자 갑자기 머리가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이거라니까!” 사실 그 집에는 커다란 트릭이 걸려 있었다. 일명 일루젼 마법! 들어가면 발동이 되어 버리는 마법이었다. 원래 고차원적으로 보물을 집어넣을 수도 있지만 게임을 조금만 해본 사람들이라면 의심이 많아서 마법이 걸리지 않을 확률이 높았기 때문에 오히려 궁금증을 유발시켜 들어가게 하려는 마법이었다. 그 집의 일루젼 마법은 상당히 고위급 마법사가 걸었기 때문에 한번 걸리면 아무도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그냥 천천히 죽을 뿐……. 하지만 민혁이는 열 받는다는 이유로 집을 홀라당 날려버렸고, 지금 저렇게 비밀 창고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피티언도 마법사여서 일루젼 마법의 감지가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피티언은 아쉽게도 대단위 공격 마법밖에 쓰지 못하는 약간 짜가스러운 최강 마법사였다. “크으으윽!” 끼이익! 내가 온 힘을 다하자 드디어 그 이상한 지하 창고 문이 서서히 열렸다. 상당히 무거워서 들어올리는 것 자체만으로도 힘들어 죽을 것 같았다. 콰앙! 그렇게 한참 힘을 주자 드디어 문이 열렸고, 밑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눈에 들어왔다. “드, 드디어 나에게 보물이!” 난 그런 생각이 들자 마구 흥분이 되기 시작했다. 계단이 보이자 생각도 할 것 없이 내려갔고, 피티언도 뒤따라 들어왔다. 다행히도 마법구들이 떠 있어서 앞을 보는 데는 지장이 없었고 나는 그렇게 끝도 보이지 않는 계단을 향해 내려갔다. 한 20분 정도 밑으로 걸어가자 서서히 끝이 보이자 나는 발걸음을 더 빠르게 옮겼다. 원래 이런 데일수록 대박 레어들이 펑펑 나오는 게 당연한 진리이자 희망이었다. “가자, 피티언!” “예, 마스터.” 피티언과 함께 난 계단의 끝에 도착하였고, 난 도착을 하자 말자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러자 나의 눈에 띄는 것이 하나 있었다. 완전히 텅 빈 공간, 그리고 거기 써 있는 1, 2, 3, 4, 5, 6, 7이라는 버튼. 100평쯤 되는 엄청난 크기였지만, 입구에 있는 그 버튼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게 뭘까?” 난 신기한 듯 그 버튼을 이리저리 살펴보기 시작했다. “흐음…….” 하지만 아무리 봐도 누르는 기능밖에 없는 듯했다. 한참을 그 버튼을 보던 나는 생각 끝에 그 번호를 누르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들어온 거……. 설마 이게 아이템을 렌덤으로 주는 건가?” 난 그런 행복한 상상을 하면서 해맑게 웃었고, 잠시 후 행운의 숫자인 7번을 눌렀다. 꾸욱. -최고 난이도를 선택하셨습니다. “무슨 소리……?” 난 갑작스럽게 기계 쪽에서 들려온 여자 음성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바로 그 순간 내가 들어온 입구가 철문으로 막히기 시작했다. 쿠웅! “뭐, 뭐야?” “마, 마스터!” 나와 피티언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하며 당장 그 철문을 열기 위해 달려갔지만 얼마나 튼튼한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쾅쾅! “커억!” 난 괜히 주먹으로 쳤다가 느껴지는 고통에 손을 흔들었다. 바로 그 순간 아무것도 없던 곳에서 이상한 놈들이 꾸역꾸역 기어 나왔다. “듀라한?” 나의 앞에는 목 없는 언데드 듀라한이 자신의 머리를 든채 기어 나왔고, 나는 갑작스러운 언데드 몬스터의 등장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하지만 나 혼자면 모를까 내 옆에는 짜가스럽지만 최강의 공격 마법사 피티언이 있었기에 목숨의 위협 같은 것은 느끼지 못했다. “피티언, 공격!” “예, 마스터. 모든 것을 부수는 불꽃의 힘, 나의 앞에 적을 멸하리라. 프레임 버스터!” 콰앙! 그 말이 끝나면서 듀라한이 나온 장소에서 곧바로 커다란 불꽃이 일어나며 듀라한들을 삼켰다. 듀라한들은 나오자마자 허무하게 녹았다. 물론 내 마나도 쭉쭉 빠졌지만 너무나도 간단히 제압을 해 버리자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크하하하!” “마스터, 이제 어떡하죠?” “어떡하기는 이제 나갈…….” 나는 말을 하다가 멈출 수밖에 없었다. 듀라한이 나왔던 그곳에서 이번에는 좀비 100마리가 꾸역꾸역 튀어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이, 이거?” 난 그러면서 옆에 있는 버튼을 한 번 바라보았고, 잠시 후 나는 경악에 물들어 외쳤다. “마, 말도 안 돼!” 4일 후. 푸짓! “재미없네.” 나는 가볍게 검을 소환해서 내 앞에 있는 듀라한의 몸을 초전 박살 내 버렸다. 그리고 피티언은 대규모 마법으로 좀비들을 완전히 쓸어버리고 있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난 또다시 들려온 레벨 업 소리에 아무런 감응도 없었다. 그때 반가운 소리가 들려왔다. -식사 시간입니다. 먹고 훈련하세요. 그 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빵 두 봉지와 우유 두 병이 떨어졌고, 나는 엄청난 속도로 이동해서 그 빵과 우유를 낚아챘다. 스으윽! 빵과 우유는 아직 치워지지 않은 언데드 몬스터들의 피가 흥건한 쪽으로 떨어졌지만, 나는 그 피를 몸에 조금도 묻히지 않은 채 가볍게 받아 냈다. 첫날에는 미처 몰라서 놓치고 말아 쫄쫄 굶었지만, 이제 그런 실수는 없었다. 툭. 나는 빵과 우유 하나씩을 피티언에게 던졌다. “고맙습니다, 마스터.” “그나저나, 피티언.” “네?” “우리 여기서 언제 탈출해?” “……모르겠습니다.” 조난당한 지 4일째. 우리는 수를 셀 수 없을 정도의 몬스터를 잡았다. 10분마다 한 번씩 꾸역꾸역 나오는 언데드 몬스터. 이 동네가 뭐 하는 동네인지는 모르겠지만 미쳐 버릴 지경이었다. 물론 좋은 점도 있었다. 이 게임은 스텟을 올리는 것을 제외하고도 상황에 따라 능력치가 상승이 되기 때문이었다. 책을 많이 읽으면 지력이 상승하고 활동을 많이 하면 체력, 움직임을 빠르게 하면 민첩, 그리고 힘을 많이 쓰면 힘이 상승한ㄴ 등 상황에 따라 스텟이 올라갔다. 그래서 지금 나의 스텟은 완전 비정상을 넘어서 초비정상이었다. 매일매일 끊임없는 전투……. 첫날에는 죽을 지경이었지만 다행히도 테피언을 소환해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놈은 나와서도 뭐가 그리 고까운지 잠시 칼질 몇 번 하고 들어갔고, 그렇게 난 살아남기 위해 별짓을 다 했다. 피티언이 마법을 시전할 때마다 방출되며 자연스럽게 늘어나 버린 엄청난 마나 양과 매일매일 움직이는 체력, 그리고 몬스터 상대 시 민첩과 상대방을 베기 위한 힘……. 전투 중에 나는 점점 머신이 되어 가고 있었다. 레벨은 낮지만 말도 안 되는 스텟을 가진 머신, 여기가 경험치는 더럽게 짜게 주어서 레벨 업은 자주 못하지만……. -자. 이제 다시 시작합니다. 언제 30분이 지났는지 음성이 들려왔고, 나는 또 볼 언데드를 생각하고는 끔찍해서 큰 소리로 외쳤다. “누가 나 좀 구해 줘!” 조난 1달째. 나의 몸은 이미 공간지각을 넘어갔다. 몬스터의 조그마한 기척에도 초스피드로 반응하는 몸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내 앞을 가로막는 철문은 처음과는 달리 완전히 움푹 파인 상태였다. 피티언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움직이면서 대마법을 사용하는 피티언……. 할 말이 없었다. 콰앙! 나는 스켈레톤 워리어의 기척이 느껴지자 온몸을 이용해서 스켈레톤 워리어의 검을 밟고 뛰어올라 그대로 발로 가볍게 내리찍었다. 퍼억! 나의 발은 스켈레톤 워리어의 갑옷조차도 완전히 박살을 내 버렸고 단 한 번의 가벼운 공격에 스켈레톤 워리어는 온몸의 뼈가 산산조각이 나서 부서졌다. “휴!” 나는 살며시 숨을 가다듬었다. 이 엄청난 체술 파괴력은 한 달간의 지옥이 만들어 낸 탄생물이었다. 무기조차도 소환하지 않았는데 엄청난 파괴력과 거의 날아다니는 순발력, 그리고 끊임없이 몰아치는 체력과 마나, 한마디로 레벨은 저렙인데 몸은 이미 초인이었다. 이제 남은 시간에는 그 정체불명의 움푹 파진 철물을 맨주먹으로 강타하곤 했다. 콰앙! 파악! 맨주먹과 철문의 부딪쳐서 날 수 없는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나는 다시 눈을 뜨면서 안타까운 듯 말했다. “조금만 더 하면 되겠군. 피티언.” “네, 마스터.” “이제 조금 있으면 부서질 것 같다. 나는 이걸 치고 있을 테니 잔몹들이나 처리해라.” “알겠습니다.” 예의 그 스켈레톤 워리어들과 메이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지만 그걸 본 피티언은 너무나도 여유로웠다. 뭐, 당연한 거겠지만 저렇게 허약한 저렙 몬스터(스켈레톤 워리어, 메이지 레벨이 90이었다. 90이 언제 저렙이 되었는지…….)를 상대하는 것뿐이니……. 나는 뒤에서 엄청난 마법 폭발이 계속 터지는 걸 무시하고, 앞에 있는 철문을 바라보았다. 이 철문을 두들긴 지 어언 3주. 일주일 동안은 살기 위해 난리 법석이었지만, 일주일이 더 지나가자 이 생활도 서서히 적응이 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남은 시간엔 어떻게든 탈출하기 위해 철문을 때렸다. 하지만 무엇으로 제작되었는지 꿈쩍도 안 했고, 그렇게 3주동안 친 결과물로 이렇게 움푹 파 들어갈 수 있었다. “이제 화살로 뚫어야지.” 나는 그렇게 중얼거린 뒤 조용히 손을 내밀어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활(Bow) 소환. 인첸트 화(火). 부우우웅! 난 소환된 활을 능숙하게 잡아당기며 조금의 거리를 유지한 뒤 화의 기운을 모두 끌어올렸다. 내가 여기서 서식하면서 깨달은 점은 인첸트 중에 마나를 더 집어넣을수록 데미지는 증폭된다는 것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서야 철문을 저 정도나마 움푹 파낼 수 있었지만……. “피티언, 주먹으로 좀 때려잡아, 마나 다 끌어 쓰게.” “알겠습니다, 마스터.” 피티언은 나의 말에 따라 마법 난사를 멈추고 주먹으로 때려잡기 위해 엄청난 속도로 이동했고, 난 끊임없이 몰아치는 마나를 화살 하나에 넣었다. 우우우우웅웅! 화의 힘이 인첸트된 화살에 마나를 몰아치자, 불꽃이 더욱더 진해지면서 모든 걸 태워 버릴 듯 활활 불타올랐다. 난 그 수많은 마나를 다 끌어올린 뒤 조용히 스킬을 외쳤다. “플레지마 스트레이트 샷!” 파지지짓! 나의 말이 끝나면서 이번에는 새로운 기운이 몰려들었고 난 1의 마나도 없이 다 끌어올려 발사했다. 피이이잉! 화살은 말도 안 되는 파괴력과 공격력을 싣고 문을 향해 쏘아져 나갔고, 잠시 후 엄청난 폭발음이 들렸다. 콰아아아아앙! “서, 성공인가?” 떨리는 마음으로 앞을 바라보자, 서서히 자욱한 안개가 걷히면서 나의 눈에 완전히 부서진 채 웃으면서(?) 반기는 문이 보였다. “타, 탈출이다!” “마, 마스터! 정말입니까?!” 마법사 주제에 주먹으로 워리어들과 메이지들을 부수던 피티언은 나에게 엄청난 속도로 다가왔다. 난 고개를 끄덕이면서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나, 나가자!” “옙! 마스터!” 나와 피티언은 남아 있는 몬스터를 무시하고 감격해서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조난된 지 한 달 만에 나와 피티언은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때의 내 레벨은 달랑 10이 오른 46이었다. 한편 그 훈련장을 만든 마법사가 보면 어처구니가 없을지도 몰랐다. 저 철문은 그냥 철문이 아니었다. 100% 오리데오콘으로 제작된 절대적인 강함을 자랑하는 문이었다. 그런 문을 3주 동안 부숴 탈출하다니……. 그리고 무엇보다 조금만 더 세심하게 살펴보면 반대편에 밖으로 나가는 버튼이 있는데, 누가 그 짓을 하겠냐는 것이다. “빌어먹을!” 자피언은 자신의 앞에 있는 10마리의 오우거들을 보고 있었다. 오우거들은 흉흉한 눈빛을 뿜어내면서 손에 든 몽둥이를 휘두르며 그에게 다가왔다. 쿵쿵쿵! “목숨 걸고 공주를 지켜!” 그 말에 기사 15명은 마차의 주변에 서서 죽도록 막기 시작했다. 마차 안에는 유라스 제국의 공주가 있었다. 그런 그들의 마차를 오우거 10마리가 습격한 것이고, 그 오우거들을 막기 위해 기사들은 엄청난 긴장 속에 있었다. 오우거의 레벨이 최소 120인 만큼 지금 기사들로는 힘들어 보였다. 오픈 베타가 시작되고 50일째. 그동안 300대의 랭킹이 나오기는 했지만 지금 여기에 있는 기사들은 그런저런 유저들과 NPC들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꿈과 돈(?)을 위해 기사를 지망했고, 여기에 있는 자피언을 제외하고는 전부 레벨 100대였다. 자피언만이 150대였다. 그리고 안에 있는 공주, 세라스, 그녀도 유저였다. 한마디로 선택받은 유저라고 할까? 처음 시작부터 공주라는 거대한 직책을 안고 태어난 유저였다. 그런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는 사람들은 레벨업도, 당연한 말이지만 훨씬 쉽게 할 수 있었다. 쿠웅! 부우웅! 바로 그 순간, 오우거 한 마리가 갑작스럽게 돌격을 하면서 몽둥이를 마구잡이로 휘두르며 공격하자 기사들은 크게 당황했다. “어어어어?!” “마, 막아!” 퍼억! 하지만 그들은 그대로 몽둥이를 맞고 튕겨져 나갔다. 단 한 번의 공격에 기사 두 명이 온몸의 갑옷이 부서진 채 피를 토하면서 쓰러졌다. “쿨럭…….” “제, 젠장!” 벌써 두 명이나 전투 불능 상태가 되자, 자피언은 미칠 지경이었다. 오우거들의 거대한 기운에 눌려 기사들은 제대로 된 전투조차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공포에 의한 전투력 감소였다. 채앵! 하지만 자피언은 침착함을 유지했다. 그는 레벨 150으로 엄연히 랭킹 1,000위 안에 드는 초고렙 유저. 그런 자신조차도 침착함을 잃어버리면 전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콰아앙! 한편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세 마리의 오우거가 그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엄청난 속도로 자피언을 공격했다. 자피언은 재빨리 뒤로 물러섰다. 스르륵. “젠장할!” 그대로 맞붙었다가는 자신의 목숨이 날아갈 게 분명했기에 뒤로 빠진 것이었다. 그 순간 수풀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왔다. 부스럭부스럭. ‘서, 설마 여기서 더?’ 자피언은 또 다른 오우거인 줄 알고 절망에 빠져 버렸다. 하지만 수풀에서는 웬 거지 같은 남자 두 명이 튀어나왔다. 둘 다 훤칠한 키에 무척 잘생긴 외모였지만, 문제는 엄청 빈티 나 보인다는 것이었다. 한 명은 머리가 허리까지 긴 남자였고, 한 명은 평범한 머리 길이의 남자였다. 하지만 그들은 완전 산발에다 수염은 듬성듬성, 그리고 옷인지 걸레인지 알아보지 못할 정도의 차림이었다. 게다가 무기 하나도 없는 빈곤한, 완전 초보자 중에서도 왕초보자가 길을 잘못 들어온 듯 보였다. 눈은 완전 풀린 상태였고 둘은 동시에 웅얼거리기까지 했었다. “저기에서는 빵과 우유라도 줬는데, 여기는 안 줘.” “그러네요, 마스터.” “휴…….” 그들의 모습을 본 자피언은 오우거가 아닌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바로 그 순간, 그 두 명의 기척을 느낀 오우거 한 마리가 엄청난 속도로 그 초보자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쿵쿵쿵! “크아아앗!” 오우거는 비명을 지르면서 초보자들을 향해 그대로 몽둥이를 내리찍었다. 휘리릭! “제, 젠장! 위험해!” 자피언은 그 모습에 죄 없는 초보자들의 목숨이 날아간다는 사실을 깨닫고 엄청난 비명을 내질렀다. 순간 그 초보자중 한 명의 눈빛이 갑자기 돌변했다. 그리고 오우거가 내려찍은 몽둥이를 어느새 한 손으로 잡은 다음 살벌한 말투로 말했다. “넌 뭐야?” 자신의 몽둥이가 너무나 쉽게 잡히자, 흉폭한 오우거조차도 당황했다. 그런데 불현 듯 그 남자의 몸이 사라졌다. “도, 도대체 어, 어떻게?!”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자피언은 너무나 당황해서 말조차도 나오지 않았다. 사라진 남자가 어느새 오우거의 몸을 밟고 올라갔다. 그 남자는 오우거의 머리에 올라탄 채 가볍게 목을 내리찍었다. 쿠웅! “크아아아악!” 거짓말처럼 오우거의 목이 휙 꺽이면서 오우거는 즉사해버렸고, 그 남자는 쓰러지는 오우거를 무시하면서 천천히 내려온 뒤 손을 턴 다음 말했다. “배고파 죽겠는데 건들고 난리야.” 쿠우웅! 자신의 동료가 죽어 나간 것을 어떻게 알아차렸는지 오우거 아홉 마리가 동시에 나를 보고 뛰어오고 있었다. 안 그래도 밥도 못 먹어서 짜증이 극까지 오른 상태인데, 웬 거지 같은 몬스터가 달려들자 나는 짜증이 확 치밀었다. 채앵! 난 등에 메고 있던 검을 검집에서 꺼내 들고는 다가오는 오우거들을 겨눈 채 움직였다. 스르륵. 내가 엄청난 속도로 달려들자 오우거들은 보기만 해도 위축이 되는 몽둥이를 아무런 망설임 없이 내리찍었다. 쿠웅! “크아아앗!” “크아아앗!” 오우거들은 비명을 지르면서 나에게 몽둥이를 동시다발적으로 내리찍었지만, 나는 그 몽둥이가 너무나도 느린 속도로 느껴졌다. “스테리스 스피어!” 파아앗! 스킬 명을 외치자, 내 검으로 커다란 기운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이 검 계열 기술은 내가 직접 만든 것으로, 엄청난 관통력을 가진 기술이었다. 나는 검을 오우거의 배에 찌르면서 근접해서는 곧바로 검을 돌리면서 회전력을 생성했고, 그대로 그 검을 오우거의 뱃속으로 박아 넣었다. “크아아앗!” 오우거는 엄청난 고통을 느끼는지 연신 커다란 비명을 질러 댔고, 나는 더럽게 시끄러운 오우거의 무릎을 밟고 그 탄성으로 뛰어 올라가 가볍게 목을 잘라 버렸다. 푸시잇! 나의 공격에 오우거의 목과 몸은 분리가 되면서 떨어져 내렸다. 바로 그 순간 오우거 한 마리가 내려오는 나를 향해 커다란 몽둥이를 휘둘렀다. 부웅! 오우거의 몽둥이는 내려오는 나의 몸을 정확하게 겨냥했지만 난 그대로 오우거의 피가 묻어 있는 검으로 날아오는 몽둥이를 막았다. 퍼억! 물론 하늘에 떠 있는 나와 오우거의 몽둥이가 부딪치면 힘이 좋은 오우거와 땅과 하늘이라는 위치 때문에 내게 불리하겠지만, 이제는 나의 힘이 보통 힘이 아니었다. 이미 초인급 힘이었다. 이게 바로 그 미친 곳에서 한 달 동안 몬스터만 잡은 힘이었다. 쿠웅! 오히려 몽둥이를 찍은 오우거가 뒤로 물러나면서 넘어졌고, 난 하늘에서 내려오는 도중 조용히 눈을 감은 채 할을 소환해 냈다. 활(Bow) 소환. 나의 손에 잡히는 부드러운 활. 난 그대로 시위를 당겼다. 그러자 무형의 화살 한 개가 생성되었고 집중력을 발휘해 넘어진 오우거를 향해 활을 발사했다. 물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스킬과 함께……. “플레지마 스트레이트 샷!” 부우웅! 무형의 화살은 스킬의 영향을 받아 넘어진 오우거를 향해 날아갔다. 오우거는 그 거대한 몸을 일으켜 피하려고 했지만 빠른 속도로 나라가는 무형의 화살을 둔한 움직임으로 막을 수는 없었다. “크아아앗!” 잠시 굉음을 지른 오우거는 그대로 심장을 관통당한 채 죽어 버렸다. 그때 나의 뒤로 느껴지는 기척이 있었다. 우우우웅! 이번에도 몽둥이를 휘두르는 소리가 들려왔고, 난 순식간에 몸을 회전하면서 발로 나를 흉폭하게 찢어 죽일 것 같은 눈빛을 한 오우거의 배를 밀어 쳤다. 파앗! “크아앗!” 오우거는 몽둥이를 내리찍기 전에 나에게 배를 걷어차여 뒤로 쭉 밀려났고, 난 다시 검을 집고 나서 순식간에 다가가 오우거의 목을 베어 버렸다. “이, 인간이 아니야! 초랭킹 유저?!” 그 모습을 지켜본 자피언은 탄성밖에 나오지 않았다. 오우거 세 마리를 거의 원 샷 원킬로 죽여 버리고 있었다. 겉모양새와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었다. 난 네 번째 오우거도 가볍게 죽인 후 다시 착륙을 하면서 앞에 멀뚱멀뚱 서 있는 피티언에게 조용히 손을 저으면서 말했다. “귀찮다, 다 처리해.” “말겠습니다. 대지의 힘이여, 모든 것을 뚫는 모든 것의 가시여! 소플리트!” 나의 말에 즉간 반응하는 피티언. 피티언은 숲 속이라는 점을 생각해 대지 계열의 마법을 사용했고, 그 마법 한 방에 여서 마리 오우거의 배 쪽에 거대한 가시가 관통하면서 모두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크아아아앗!” “크아아아앗!” 배가 뚫린 채 하늘로 올라가자 오우거들은 당연히 커다란 비명을 질렀지만, 난 그런 비명에 별 감흥이 없었다. 그런 오우거의 별 영양가 없는 비명보다는 지금 나의 궁금증이 더욱 중요했다. 그 궁금증이란 왜 레벨 업이 되지 않는가 하는 것이었다. 분명 저 오우거의 레벨은 내가 알기로 120대 정도였다. 하지만 네 마리나 죽였음에도 불구하고 레벨 업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혹시 레벨을 착각하고 있나 해서 스텟 창을 열었다. 스텟 창 오픈 아이디: 플레스 레벨: 46 직업: 웨폰인첸트 HPMP: 2.,100/22,600 힘: 5(?) 민첩: 186(?) 체력: 5(?) 지혜: 5(0) 지식: 5(0) 행운: 5(0) 기본 공격력: 8,300 기본 방어력: 500 남은 스텟: 0 레벨 업이 잘 되지 않는 상태입니다. 자신의 스텟보다 훨씬 높으면 레벨 업이 어렵습니다. “…….” 나는 그제야 왜 레벨 업이 안 되는지 알 수 있었다. 훈련(?)으로 다져진 나의 스텟이 원인이었다. 그나저나 저 물음표들은 뭔지 심히 궁금했다. 처음에는 500씩까지만 해도 표시가 되더니, 500을 넘어가고 나서는 전부 다 물음표로 표시가 되고 있었다. 무슨 시스템인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히 이제는 궁금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움직일수록 올라가는 건 확실히 느껴지니 말이다. “저, 죄송한데 레, 레벨이?” 바로 그 순간, 저 멀리서 삐까번쩍한 기사 하나가 나를 향해 다급하게 달려오며 말했고, 난 그 말에 레벨이 높지도 않은데 감출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말했다. “46인데요.” “…….” 자피언은 어처구니가 없다 못해 헛웃음만이 나왔다. 레벨 46이 오우거 목을 밟아서 단 한 방에 부수고 오우거의 단단한 가죽을 검 한 자루로 무슨 두부 썰 듯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자피언은 마음을 진정시켰다. 원래 자신의 레벨이 공개되기 싫어서 저렇게 다운시키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좀 심하게, 아니 무지 심하게 다운시켜서 말한 것 같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다시 한 번 몬스터를 만난다면 위험했다. 이럴 때는 무슨 일이있어도 저 두 사람을 섭외하는 게 우선 순위였다. 초랭킹 유저 급이라면 이미 게임 종료였던 것이었다. “저, 실례지만…… 저희와 동행하지 않겠습니까?” 난 조심스럽게 묻는 그 기사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 기사의 눈빛에는 초조한 기색이 역력하게 드러났다. “얼마?” “네?”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하지만 그 기사는 나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는지 멍한 상태였다. “이거 말이에요, 이거.” 내가 손가락을 구부려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이자 그 모습을 본 기사는 엄청 당황한 듯 보였다. “도, 돈 말씀입니까?” “당연하죠. 필요 없으면 기각이고요.” “아, 아닙니다. 어, 얼마면 되겠습니까?” 그 말에 나는 곰곰이 생각하며 허공을 이리저리 보다가 잠시 후 수수한(?) 금액을 불렀다. “단돈 1만 골드, 어때요?” “1만 골드?!” 내 말에 기사는 뭐가 그리 놀라운지 토끼눈을 했다. 나는 뭐 바쁜 일도 없었기에 좀 기다려 주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그 아저씨가 놀란 얼굴로 있자 지루해져서 다시 물었다. “어때요?” “조금 과한 금액이…….” “100% 지켜 드리죠. 전투라면 이골이 나다 못해 초인이 되었으니 말이죠.” 맞는 말이었다. 전투에는 이골이 나다 못해 삼골(?)이 났다. 아마도 전투 횟수로만 따지면 지금 랭킹 1위를 가볍게 뛰어넘을 게 분명했다. 10분마다 수없이 몰리는 몬스터들과의 전투……. 도대체 얼마나 잡았는지 기억나지도 않았다. “알겠습니다.” 그 아저씨는 잠시 고민을 하는 듯싶더니 끝내는 승낙했고, 난 그 말을 듣고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잘 선택하셨습니다. 이래 봬도 전투만(?) 자신 있습니다.” 우리는 가죽 채취나 열매 따기 같은 평범하면서도 제일 기초적인 것조차 할 줄 몰랐다. 내가 이 게임에 접속해서 한 것은 매일매일 전투뿐……. 전투에 최적화된 머신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그나저나…….” “왜 그러십니까?” 내가 마차를 보고 중얼거리자 그 기사가 왜 그러냐는 듯한 말투로 물었고, 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는 스타일이기에 당장 물었다. “저기에 누가 있는 거죠?” “아, 저 마차 안에는 유라스 제국의 네 번째 공주님이신 세라스님이 계십니다.” “세라스? 공주?” 난 세라스라는 아이디를 어디서 들어 본 것 같기도 하고 공주라는 말에 갸우뚱했지만, 뭐 내가 신경 쓸 필요는 없다고 느꼈다. “그나저나 아직 소개도 못 드렸군요. 제 이름은 자피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부족하나마 이곳에서 총대장을 맡고 있습니다.” “흐음. 저는 플레스라고 하고, 옆에 있는 얘는 피티언이라고 합니다. 그나저나…….” “네?” 나는 살며시 말하면서 말꼬리를 흐렸고, 잠시 배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먹을 것 좀 주세요.” 벌컥! 바로 그 순간, 갑자기 마차의 문이 벌컥 열렸다. 그리고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음성이 들려왔다. “형님!” “…….” 거기에는 웬 드레스를 입은 정우 놈이 역겨운 여장을 한 채 튀어나왔다. 물론 완벽한 변장술이었지만, 저 목소리는 누구인지 정말 알기 싫어도 정확히 알게 만들었다. “서, 설마 공주가?!” “아닙니다. 설마요!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기사 중에서 한 명을 변장시켜 놓았습니다. 그나저나 목소리만 아니면 정말 모르겠다니까요, 하하하!” “…….” 난 그 말을 듣고 경직되었다. 그때 마차의 문이 다시 열리면서 너무나도 친숙하고 반가운 얼굴이 나타났다. “오빠!” “채, 채은이? 네가 어떻게…….” “오빠가 어딘지 모를 곳에 갇혀 있다기에 찾고 있었어.” 그렇게 조난 40일째, 나와 정우와 채은이는 재회했다. 물론 드레스 입고 달려오는 정우 놈은 보기 역겨워서 발로 날리고 채은이만 껴안았다. 물론 1%의 순수한 마음과 99%의 엠블리싱(?)한 마음으로 말이다. “저는 형님을 생각하느라 밤을 지새우면서 형님의 안전을 걱정했습니다. 저를 이렇게 박대하시다니…….” “그런 것치고는 안색이 지나치게 활발한데?” “게임이어서 그렇습니다.” “아니, 오늘 아침에 학교에서 만나지 않았나?” “그렇군요.” 난 내 말에 가볍게 수긍하는 정우 놈을 보고 할 말이 없어졌다. 원래 저 말 뒤에는 분명 핑계가 있어야 하는데, 수긍을 하다니……. 참 교묘하게 말을 못하도록 끊어 버리는 기술이었다. 내가 보기에 저놈은 머리가 엄청 좋은 편이었다. 가끔씩 보이는 이상한 물건들, 그 물건들을 다 다룰 수 있는 것을 보니 말이다. 제 말에 따르면 항상 통신판매를 이용해 배운다고 하는데, 자물쇠 따기, 지문 인식 파괴, 은둔술(?), 가라데, 기타 등등 하는 것을 보면 진정 통신판매를 통해 배우는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지만 본인이 그렇게 말하니 믿을 수밖에 없었다. “오빠?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별거 아니야. 잠시 잡생각…….” 나를 보며 귀여운 표정으로 묻는 채은이를 보자 당장 껴안고 싶었지만, 보는 눈이 많았기에 포기했다. 솔직히 저렇게 귀엽고 깜찍한 초절정 미소녀를 보면 그런 마음이 무럭무럭 드는 거 정상이 아닌가? “아시는 분들입니까?” 우리들을 조용히 지켜보던 그 삐까번쩍한 아저씨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리고 그 물음이 끝나기도 무섭게 정우가 아직도 여장을 풀지 않은 모습 그대로 남성적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형님은 제가 제일 존경하는 분입니다. 그리고 지금 공주님과는 아주 친밀하고 아름답고 뜨거운 사랑을 하고 계신 중입니다.” “정우야!” 그 말에 채은이는 과민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살짝 볼도 붉어졌다. 그 말을 듣던 나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저렇게 초절정 미소녀인 동생한데 사심이 없다면 남자도 아닐 것이다. 난 아주 충실하게 사심이 많았다. “자, 일단 이야기는 가면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몬스터의 공격이 심해질 수도 있으니까요.” 삐까번쩍 아저씨는 얼른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는지 서두르기 시작했다. 물론 여기서 상당히 많은 기사가 죽었으니 얼른 벗어나고 싶은 것은 당연하겠지만……. “네네. 그러도록 하지요. 그리고 요금은 제대로 지불해 주세요.” “요, 요금이요?” “당연하잖아요?” 저 삐까번쩍 아저씨는 나랑 정우와 채은이가 아는 분위기인 것 같아 슬쩍 묻어가려고 했지만 턱도 없었다. 받을 건 받아야지, 안 그래도 땡전 한 푼도 없어서 빌빌거리고 있는데……. “마스터! 드디어 우리도 돈이 생기는 겁니까?” “물론이다!” “드, 드디어 우리도 이제 맛있는 거 먹는 건가요? 빵, 우유 말고 다른 음식을!” 내 말에 피티언은 감복의 눈물을 흘렸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슬펐던 과거가 생각나기 시작했다. 매일매일 그 지겹고 고통스러운 맛없는 빵과 우유를 먹고 눈물을 흘렸다. 물론 안 먹으면 굶어 죽을까 봐. 나와 피티언은 딱딱하고 굳어져서 정말 맛없는 빵을 열심히 먹었었다. 그걸 생각하다 보니 ‘눈물 젖은 빵’ 이라는 책이 마구 떠올랐다. 눈물 젖은 빵, 누가 눈물 젖은 빵을 먹고 울었다는 이상한 내용이었는데, ‘눈물 젖은 빵은 맛있다(?)’ 라는 뜻이 담겨 있는 심오한 책이었다. 근데 눈물 흘린 빵은 짭짤한 게 그리 맛있지는 않았다. 그냥 맨빵이 더 맛있는 편이었다.(직접 먹어 봄.) “이제는 행복이다!” “오, 오빠! 왜 그래?” 난 돈이 생겼다고 생각하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흘러나왔고, 그런 내 모습을 본 채은이는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아니, 잠시 생각할 게 있어서…….” 나는 그렇게 대충 둘러대면서 근처에 있는 바위로 몸을 옮겼다. 출발하기 바로 전에 약간 스태미나를 보충할 예정이었다. 물론 지금도 충분했지만 혹시 모르니 완벽하게 풀로 채우고 움직일 예정이었다. 뭐 조금씩 움직이더라도 약간은 차지만, 몇 분 정도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스태미나가 빠르게 차니 이렇게 하는 것이 조금 더 이익이었다. 드르륵. 쉬고 있는 나의 귓속으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소리를 그냥 무시했다. “마스터, 뭐 하시는 건가요?” “아아, 출발하기 전에 스태미나 다 채우고 가게.” “흐음, 저도 좀 쉬고 갈까요?” “그러든지, 앞으로 쉴 시간은 없을 것 같으니…….” “알겠습니다.” 그 말에 피티언은 나의 옆에 조심스럽게 앉았고, 그 모습을 본 삐까번쩍 아저씬느 서두르면서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바위에 앉아서 쉬는 이유가 스태미나를 빨리 채우려고 하는 것임을 알고 있으니까. 스태미나, 일명 체력이라고 말하는 수치였다. 스태미나가 높으면 장시간 사냥이 가능했지만 낮으면, 뭐 금방 사냥을 접어야 했다. 물론 이 스태미나는 현실 세계의 스태미나를 반영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상당히, 아니 엄청나게 높은 편이었고 지금은 체력까지 엄청 오른 상태여서 끝이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방금 오우거들을 가볍게 밟는다고 아주 약간의 스태미나가 감소되었기에……. “마스터.” “왜?” “이상한 소리 안 들리시나요, 마스터?” “드르륵 하는 소리?” “네.” 피티언도 그 이상한 소리를 들었는지 내게 질문을 했고 난 그 말에 건성으로 손을 저으면서 말했다. “신경 꺼. 뭐, 바위가 갑자기 휘이익 열리면서 이상한 곳으로 안내하겠니?” “그렇군요. 하하하하!” “그렇지……가 아니네?” 바로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바위의 문이 활짝 열리고, 그 바위 밑으로 추락하고 있는 피티언과 나의 모습이 캡쳐 되었다. “형님!” “오빠!” 조금 떨어져 있던 정우와 채은이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난 잠시 후 반응이 나타났다. “으아아악!” “으아아악!” 피티언도 나와 같이 비명을 질러 댔고, 우리는 바위 안쪽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바위는 순식간에 닫혀 버렸다. -통곡의 동굴을 발견하셨습니다. 제일 먼저 발견한 분들에게 최고의 혜택을 드립니다. 적정 레벨 250 이상입니다. “아! 피티언, 플라이 마법!” “훗! 잊으셨습니까? 전 전체 공격 마법밖에 못하는 거 아시지 않습니까, 마스터?” “그래, 자랑이다!” 우리들은 계속해서 떨어졌다, 한없이. 도대체 왜 통곡의 동굴이라 해 놓고 이렇게 우리들을 미친 듯이 떨어뜨리는 건지, 나는 밑을 슬쩍 바라보았지만 아래엔 어둠만이 가득했다. “휴…….” “왜 그러십니까, 마스터?” “하아…….” “마스터,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너를 보니 답답하다.” 사상 최강의 마법사, 마법 방어력도 엄청나게 좋았고 마법 공격력도 엄청나게 좋았다. 이 정도면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할 능력이 맞았다. 그건 나도 인정했다. 그렇지만 문제는 지금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추락을 막아 주는 플라이 마법도 사용하지 못했고 이런 어둠을 밝히는 라이트 마법도 사용 불가능했다. 4서클 마법과 1서클 마법도 사용하지 못하면서 7서클 공격계 마법을 펑펑 쓰고 있는 걸 보면 정말 착잡했다. 살다 살다 이런 마법사는 생전 처음이었다. “마스터, 걱정 마십시오. 저에게 다 방법이 있습니다.” 차앗! 바로 그 순간, 피티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난 너무 놀라다 못해 심장이 벌렁거렸다. “앗! 너에게 이런!” “후후후! 하하하하!” 피티언의 등 쪽에서 갑작스럽게 나타난 커다란 두 장의 백색 날개, 그 날개는 하얀빛으로 어두운 동굴을 밝혀 주었고 그리고 무엇보다 하늘을 나는 기능도 제공하고 있었다. “마스터, 제 손을 잡으십시오.” “어? 어어…….” 난 새로운 피티언의 모습을 보고 제정신이 아니었다. 아니, 하는 꼬락서니를 보고 저놈이 천족이라는 사실을 완전 잊어버리고 있었지만 지금 상황을 보니 천족이라는 게 믿어졌다. 난 피티언의 오른손을 잡았고, 피티언은 나를 잡은 채 아주 우아하게 바닥으로 착륙하기 시작했다. “여기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자 이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주변을 가득 메운 이상한 얼굴의 조각, 엄청난 고통을 당한 채 울부짖고 있는 조각이 모습만이 주변을 가득 채웠다. “별로 좋지 못한 곳이군요.” 피티언도 고통에 일그러진 인간의 얼굴 조각상을 보고 표정을 찡그렸다. 그게 한두 개면 모를까, 수백 개 정도의 조각상이 전부 다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50평쯤 되는 크기의 공간에 조각상 수백 개라니……. “이름이 어쩐지 마음에 안 들더니…….” 우리가 떨어질 때, ‘통곡의 동굴을 발견하셨습니다. 최고의 혜택이 있겠습니다. 적정 레벨은 250입니다.’ 분명히 이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일그러진 수백 개의 조각상을 보니 왜 이름이 통곡의 동굴인지 대충 감이 잡혔고, 최고의 혜택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마지막으로 적정 레벨 250 한마디로 나랑 200이나 차이 나는 레벨 대였다. “흐음, 마스터……. 얘네 살아 있는 거 같지 않습니까?” “뭐, 뭐?” “이 조각상들이요?” “으음?” 난 조각상들을 보면서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짓고 있는 피티언에게 다가갔다. 피티언은 뭐가 그리 신기한지 조각상들을 계속해서 보고 있었다. 눈을 감고 고통에 일그러진 채 목만 달랑 있는 조각상들, 각기 일그러진 표정은 약간씩 다르기도 했지만 얼굴 생김새도 전부 다 다른 것 같았다. 그런데 그게 지금 피티언의 날개의 빛에 의해 환하게 빛나고 있어서 그런지 더욱더 생생하게 보였다. “신기하네.” 피티언은 구경을 하다가 자신의 앞에 있는 한 조각상을 손으로 만졌다. 그리고 신기한 듯 왔다 갔다 하면서 얼굴 전체를 만지고 있었다. “신기한 것보다도 왠지 기분 나쁘다.” “저는 괜찮은데요? 이렇게 신기한 것은 처음 봐서 말입니다.” “그래그래. 계속해서 신기해라.” 나는 그런 피티언을 놔두고 출구를 찾기 시작했다. 일단 여기서 살 수는 없었기에……. “야, 피티언! 너도 찾아라.” 난 그렇게 말하면서 자연스럽게 피티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바로 그 순간! “으아아악!” “으아아악!” 우리는 아주 나란히 비명을 질러 댔다. 갑작스럽게 눈을 뜬 정체불명의 조각상, 그게 눈만 뜬 정도가 아니라 목만 달린 채 고통에 일그러진 표정 그대로 날아오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이상한 조각상은 피티언을 향해 날아왔고, 피티언은 너무나도 놀라 넘어져 있었기에 무방비 상태였다. 퍼억! 나는 순식간에 이동해서 그 정체불명의 조각상을 한 방에 날아 차기로 부숴 버렸다. 그러고 나서 깜짝 놀라서 주저앉은 피티언을 발로 툭툭 쳤다. “야, 야! 일어나!” “아! 옙, 마스터.” 피티언은 놀라서 땅바닥에 주저앉은 것이 쪽팔리는지 약간 얼굴을 붉혔고, 난 그 모습을 보고 뚱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 표정 지을 시간 있으면 앞에 있는 애들 좀 어떻게 하지?” “쟤네가 갑자기 왜 일어났을까요?” “난 조심스럽게 추측한다. 분명히 네가 원인 제공자라고…….” “너무합니다, 마스터…….” 그렇게 우리는 잡담을 하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전투 자세를 잡기 시작했다. 전투라면 자신 있었다. 우우우웅! 살벌한 표정의 얼굴만 있는 수백 개의 조각상들이 일시에 날기 시작했고, 난 그걸 보고 한마디 툭 던졌다. “이거 완전 호러 분위기인데? 이번 여름에는 공포 영화 안 봐도 되겠다.” 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고통으로 일그러진 엽기 조각상들은 동시에 우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피티언! 블리자드 스톰!” “마스터, 죄송한데 여기서 사용하면 저희들까지 피해가 올 거 같은데요?” 난 그 말에 재빠르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총 50평쯤 되어 보이는 크기, 분명 블리자드 스톰의 파괴력과 영향력이면 우리에게까지 피해 여파가 올 것 같았다. “젠장!” 검(Sword) 소환. 인첸트 화(火). 화르륵! 난 검을 소환해 화의 기운을 인첸트했다. 그러자 검은 활활 불타오르면서 모든 걸 태워 버릴 기세였고, 난 그대로 그 검을 나에게 달려드는 조각상들을 향해 그었다. 파지짓! 콰앙! 돌이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조각상은 산산조각이 났고, 생각보다 쉽게 부서지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니, 쉽게 부서지는 것보다 나의 기본 데미지와 칼의 데미지, 그리고 인첸트의 데미지가 더해서 엄청난 것이겠지만 어찌 됐든 그 호러 조각상들은 단 한 방에 부서졌다. 우우우웅! 자기 편 한 명이 부서지자 호러 조각상들은 갑자기 분위기가 확 변했다. 꼭 지능이 있는 것처럼……. 바로 우리에게 달려들지 않고 우리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그것도 천천히 틈도 없이 우리를 향해 동그란 원을 만들면서 둘러쌌다. “피티언, 쟤네 뭐 하는 거니?” “제가 알 리가 있겠습니까? 그나저나 분위기가 더욱더 안 좋은데요?” “그건 나도 알고 있거든?” 난 쓸데없는 소리를 해 대는 피티언을 향해 발차기라도 한 방 선사하려다가 참았다. 지금 이 상황에서 다른 짓거리를 했다가는 다이, 일명 죽음이었다. 우우우우우웅! 그 호러 조각상들은 이제는 아예 이상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입에서 무엇인가 울리는 소리, 그런데 조각상들이 입을 다물고 있는데 어떻게 소리가 나는지 심히 궁금했다. 50평쯤 되는 크기에서 웅웅 소리를 내면서 눈을 뜬 채 고통에 찬 표정을 짓고 있는 조각상들을 보니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혹시 공포에 떨게 만들어 죽이는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일단 죽이고 보자. 하아압!” 나는 기합 소리와 함께 피티언과의 거리를 갑작스럽게 벌리고, 나를 둘러싼 호러 조각상에게 엄청난 속도로 달려 나갔다. 약간 오버해서 거의 광속이었다. 그만큼 스피드와 힘에는 최강이었다. 버어어엉! 바로 그 순간 빛이 속도로 달려가던 나를 향해 그 조각상들이 동시에 입을 벌렸다. 단 1초의 오차도 없이 그들은 입을 벌렸고, 입에서 이상한 레이져 수백 개의 광선이 동시에 나에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으아악! 이게 뭐야!” 좀 전에는 눈을 뜨더니 이번에는 입을 벌려서 레이저까지 사용하고, 정말 어이가 없는 조각상들이었다. 난 다급하게 방어를 하려고 했지만 나에게는 방어라는 단어가 약간 부실한 편이었다. 아이템을 맞춘 게 있어야지……. 만약 내가 최고의 아이템을 맞춘다면 지금보다 더 엄청난 공격력과 방어력을 갖추게 되겠지만 문제는 지금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었다. “귀찮게 하는군.” 콰아아앙! 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리가 들려오면서 나의 반지가 붉게 빛났고, 그 반지에서는 요새 한동안 안 보이던 테피언이 짜증 가득한 얼굴로 그 레이저를 검으로 다 차단시켰다. “응? 네가 웬일이냐? 미친 거냐? 나를 구해 주다니?” 나는 일단 검으로 레이저를 막아 준 테피언을 향해 눈을 가늘게 뜨면서 바라보았다. 저놈이 나를 구해 주다니! 미쳤거나 개과천선했거나 두 가지 중 하나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미쳤을 확률이 더 높아 보였다. “나도 별로 구해 주고 싶지는 않지만 우리 6대 소환수들은 일단 마스터가 된 자이 목숨을 가장 우선시한다. 절대 죽게 하지 않지.” 아무리 날라리에다 버릇이 없고 마스터에 대한 존중 또한 없는 테피언이었지만, 그대로 소환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구나. 자, 나온 김에 저 호러 조각상들을 죽여라!” 내 말에 테피언은 불만 어린 표정으로 나를 보더니 자신과 제일 가까이 있는 호러 조각상 세 개를 동시에 파괴했다. 콰앙! 쿠웅! 강력한 폭발과 함께 호러 조각상 세 개가 날아갔고, 동시에 테피언은 머리를 붙잡더니 말했다. “시간 초과다. 수고해라.” “야야, 무슨 헛소리야! 내 능력에 따라 소환 시간이 늘어나는 걸 알고 있는…….” 휘이익! 내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테피언은 반지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테피언의 소환 시간은 저번에 제 말에 따르면 15분이라고 했다. 솔직히 15분인지도 의심스럽기는 했지만 자기가 그렇다기에 믿었다. 그렇지만 나중에 피티언에게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스터의 능력이 강해질수록 소환 시간은 당연히 늘어난다고……. 지금 내 레벨은 초라하지만 능력은 측정 불가였다. 능력치들이 다 물음표로 나오니 제대로 알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보통 능력치는 절대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놈은 나온 지 2분도 안 되었다. 우우우웅! 또다시 내 귓속으로 이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건 분명 레이저가 발생하는 소리였다. 나는 초스피드로 피하력 했지만 이미 레이저들은 나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으아악!” “마스터! 에레메스 스톰!” 바로 그 순간 피티언이 지속성의 데미지를 이용해 레이저를 중화시켰지만, 동시에 수백 개는 무리였다. 조각상들은 피티언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나한테는 레이저를 펑펑 써 대고 있었으니……. 난 테피언이 나오기르 바랐지만, 레이저가 내 주변에 근접한 상태였어도 테피언은 나올 생각을 않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검(Sword) 2단계로 진화합니다. 새로운 능력, 방어 능력이 추가되었습니다. 콰아아아아앙!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의 검에서는 엄청난 빛이 터져 나오면서 검의 모양이 좀 더 세련되게 변했고, 동시에 내가 무의식적으로 반응해 휘두른 검은 이상한 광풍과 함께 레이저들을 소멸시켜 버렸다. 그리고 나의 주변에는 20미터의 붉은색 장막까지 생겼다. “이게 뭐야?” 진화하는 검이라니, 이런 옵션까지 있을 줄은 전혀 예상도 하지 못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잠시, 난 당장 기회를 살리기 위해 호러 조각상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일단 공격 한번을 하고 재충전 시간이 있는 듯싶었다. 아까 피티언을 향해 쏘고 나서 나를 향해 쐈던 시간이 약간의 공백이 있었기에……. 채애앵! 그대로 검을 긋자 호러 조각상의 얼굴이 반으로 갈라졌다. 그런데 방금 전에는 폭발이 일어났는데, 이번에는 폭발은커녕 맑은 소리와 함께 아주 깨끗하게 단면이 갈라졌다. 콰아앙! 난 갑작스럽게 들려온 폭발 소리에 깜짝 놀랐다. 그 폭발 소리는 그 반으로 쪼개진 조각상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지며 폭발한 소리였다. “마, 마스터! 무슨 마법을?” “내가 알 리가 있냐?” 나도 황당했다. 처음에는 깨끗하게 갈라지더니 폭발까지 일어나다니……. 그리고 무엇보다 데미지가 더 강력해 보였다. 아름답게 빛나는 검, 전에는 약간 붉은색이었는데 이제는 청색을 띠었고, 모양도 더 세련되게 변한 상태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최강인 것은 데미지가 더 좋아진 것 같았다. 우우우우웅! 또다시 들려오는 이상한 소리, 호러 조각상들이 레이저 충전 소리였다. “피티언, 파이어 볼로 조금씩이라도 처리해라!” “알겠습니다, 마스터.” “그럼 뒤는 너한테 맡기마!” 나는 피티언에게 그렇게 말한 뒤 그대로 뛰어나갔다. 그리고 에너지 충전을 하고 있던 호러 조각상 5개를 단숨에 베어 버렸다. 스르륵. 콰아아앙! 역시 이번에도 우연이 아닌 듯 엄청 깨끗하게 잘린 뒤 후속타로 폭발이 일어났다. 그 잠시의 시간 동안 호러 조각상들은 에너지를 다 채웠는지 나에게 레이저를 발사했다. 부우웅! 난 나에게 날아오는 에너지들을 보면서 그대로 검을 그었다. 그러자 방금처럼 광풍이 일면서 깨끗이 레이저를 소멸시켰다. 그리고 덤으로 만나도 쭉쭉 주꾸미(?)처럼 잘도 빠져나갔다. “공짜 기술이 아니네.” 방금 전에는 당황했기 때문에 못 느끼고 어물쩍 넘어갔지만 지금은 확실하게 느껴졌다. 마나가 많이 든다는 것을……. 지금 나의 피와 마나는 레벨 때문에 많은 편은 아니었다. 스태미나와 힘, 스피드는 최강을 달리고 있지만 피와 마나는 레벨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이었다. 물론 끝까지 마나를 사용하거나 맞으면 다시 마나와 피가 올랐다. 그래서 피티언이 마나를 마구 사용했고, 그 결과 지금 피는 적지만 피보다 마나가 훨씬 높은 비정상 스텟이 가능한 것이었다. 콰아아앙! 뒤쪽에서는 피티언이 마법으로 레이저를 중화하는 소리가 들렸고, 난 다시 에너지를 충전하는 호러 조각상들을 향해 마구 달려가 발로 부수고 검을 베고 난리를 쳤다. 이제 저 살벌한 얼굴을 제외하고는 거칠 게 없었다. 콰아앙콰아앙! “으하하하하!” “마스터?” “신경 끄고 잡아!” 나는 활발하게 웃으면서 호러 조각상들을 손으로 잡은 뒤 집어 던지고 2단 발차기, 3단 발차기를 하고 검으로도 싹둑 싹둑 베고 발로도 내려찍어서 부수고 별짓을 다했다. 그만큼 그 레이저 공격만 막으면 아무것도 아닌 놈들이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 레벨 업이다!” 호러 조각상이 10마리 정도 남았을 때 레벨 업 했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얼마나 감격적인 레벨 업이란 말인가! 나는 아직 저렙인데도 레벨 올리기는 고렙보다 더 힘들었다. 콰아아앙! 피티언은 남아 있는 호러 조각상들을 파이어 볼로 가볍게 정리하면서 나에게 다가왔고, 난 바닥에 아주 화려하게 부서진 놈들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끝났다.” “수고하셨습니다, 마스터. 만약에 그 검이 아니었다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갑자기 진화해서 얼마나 놀랐는데, 진화를 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난 그렇게 말하면서 아름다운 검신을 빛내는 검을 바라보았다.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드는 검이었다. 드르르륵! 바로 그때, 우리와 조금 떨어진 벽 쪽의 바닥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잠시 동안 올라오더니 딱 멈췄다. 그리고 그 위에는 검은색으로 빛나는 이상한 상자가 놓여 있었다. “저게 뭐야?” “마스터, 혹시 아이템이 아닐까요?” “아, 아이템?” “그렇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곳에서 발견되는 아이템은 못해도 최소 레어입니다.” “오오!” 난 당장 아이템을 향해 눈물을 휘날리면서 달려갔다. 처음 획득하는 아이템이 레어라니, 목이 메엇 말이 안 나올 정도였다. “꾸르르르륵!” “에엥?” 그 순간, 나의 귓속으로 정체불명의 야리꾸리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난 몸이 굳어졌다. 크기 3미터 정도에, 온몸에 더덕더덕 붙어 있는 아까 그 모양의 호러 조각상들, 온몸을 둘러싼 검은색 연기와 비슷한 인체……. 한마디로 이상한 괴물이었다. “꾸르르륵!” “마, 마스터! 저놈 상당히 강해 보이는데요?” “나도 알고 있거든? 자꾸 아까부터 내가 아는 것 좀 말하지 말아 줄래?” 난 계속해서 알짱거리며 말하는 피티언을 향해 눈을 부라렸고, 피티언은 나의 한마디에 아주 조용해졌다. 스르륵. 그 괴물은 그 순간 연기처럼 나에게 다가오기 시작했고, 난 그걸 보고 외쳤다. “제발 아이템 좀 그냥 주면 안 되겠니?” “꾸르르르륵!” 하지만 나의 말에 더욱더 비명을 지르는 괴물. 내 말이 마음에 안 들었나 보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선빵이었다. 어차피 붙게 될 거라면 일단 먼저 날리는 것이 싸움에서 최고 유리했다. 선빵필승(?)! “하아압!” 나는 검을 든 채 나에게 엄청난 속도로 미끄러지듯 오는 괴상한 괴무을 향해 뛰어올랐다. 나의 몸은 그 괴물의 머리 높이만큼 뛰어올라 그대로 검을 그었다. 물컹물컹. “…….” “꾸르르르륵!” 하지만 나의 검은 아주 허무하게도 그 괴물의 주위를 둘러싼 괴상망측한 연기에 막혀 버렸다. 아예 근처도 가지 못하고 차단되었다는 게 정확했다. 그리고 옵션으로 그 연기는 나의 검을 놓아줄 생각이 없는지 계속해서 붙잡고 있었고, 난 검과 함께 대롱대롱 매달린 상태였다. “안녕?” 난 무안함을 감추면서 손을 흔들었다. 그걸 본 그 괴물은 나를 빈대떡으로 만들려고 작정했는지 갑자기 두 손을 마주쳤다. “젠장!” 난 당장 검을 포기하고서 손을 놓았고, 내 몸은 자연스럽게 밑으로 추락했다. 바로 그 순간……. 퍼어억! 쾅! “끄아악…….” 그놈은 어느새 다리를 이용해 떨어지는 나를 축구공처럼 날려 버렸고, 내 몸은 벽 한쪽에 처박혔다. “크으윽…….” “마스터!” “나를 보지 말고 앞만 봐! 얼마면 돼? 얼마면…… 이게 아니고 앞을 봐!” “네?” “앞만 보면 알 거야. 끄으윽…….” 엄청난 고통의 신음이 흘러나왔다. 죽으면 아프지 않겠지만 죽을 정도로 아픈, 그러니까 죽도록 아팠다. 너무 큰 아픔에 정신이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았다. “저, 마스터……. 저걸 보라는 건가요?” “빙고……. 좀 어떻게 해 봐라.” 피티언은 나의 말에 따라 앞을 봤다가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는 그 괴물을 보고 패닉 상태에 걸렸다. 하지만 잠시 후 피티언은 제정신으로 돌아왔는지 곧바로 손을 모았다. “프리징 메키스!” 타타타타탕! 피티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의 주변에는 작은 결정의 얼음 조각 50개 정도가 생겼고, 그 괴물은 달려오다가 몸이 서서히 얼어붙었다. “좋았어……가 아니네.” 난 그 모습을 보고 다시 어기적어기적 일어나려고 했지만, 어느새 그 얼음을 부수고 맹렬하게 달려오는 괴물을 보면서 어이가 없었다. “도대체 저놈을 무슨 수로 이기냔 말이야!”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나의 검을 가볍게 차단하는 괴물, 아니 그 괴물의 연기 때문에 근처에 도달할 수가 없었고 피티언의 결빙 마법은 너무나도 쉽게 부서졌다. 그렇게 내가 저 말도 안 되는 적을 보고 모뭇거리고 있을 때, 나의 머리 위를 파닥파닥 날아가는 새 한 마리……. 그거다! 비장의 기술이 아직 남아 있었다. 물론 실패하면 그대로 죽음이지만, 성공하면 승리다. “피티언, 잠시 시간만 끌어 줘.” “알겠습니다, 마스터!” 피티언은 나의 말에 열심히 괴물 주변을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괴물은 그런 피티언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피티언을 따라다녔다. 난 그 기회를 틈타 조심스럽게 괴물의 뒤를 향해 돌아갔다. 여전히 괴물은 알짱거리는 피티언을 쫓아다녔고, 난 활을 소환하기 위해 눈을 감았다. 활(bow) 소환. 인첸트 화(火). 플레지마 스트레이트 샷! 파지지지짓! 나의 말이 끝나면서 나의 손에는 활과 함께 무형의 화살이 생성되었다. 그리고 무형의 화살은 거대한 화의 힘과 스킬의 힘을 담기 시작했다. 파지지지지짓! 마나를 주입할수록 화살에는 더욱더 강력한 기운이 모이기 시작했다. 나는 엄청난 마나가 들었다고 생각하자 그대로 화살을 발사했다. 휘이익! 콰아아앙! “꾸에에엑!” 화살은 엄청난 폭발음과 힘으로 연기를 뚫어 버렸고 안에 있는 괴물의 형체에까지도 데미지를 주었다. 그런데 문제는 안에도 방어력이 적용이 되는지 조금밖에 피해를 주지 못한 것 같았다. 하지만 어차피 이번 공격은 적을 해치우려는 게 아니라 비장의 스킬을 발동시킬 준비 과정이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운 좋게 마비까지 걸린 듯싶으니, 승리의 여신은 나에게 손을 들어준 것 같았다. 스르륵! 나는 있는 힘껏 달려서 괴물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무형의 화살에 의해 연기가 흩어진 곳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두 손을 모은 뒤 괴물의 몸에 손을 댄 채 눈을 감았다. “결!” 파지지짓! 주문이 끝나자, 내 눈에 그 괴물의 회로 선이 펼쳐지면서 괴물의 약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모니터실. 꾸벅꾸벅. 한 남자가 아주 잘 자고 있었다. 누가 잡아가도 모를 정도로. 그 남자의 이름은 희민,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 모니터를 담당한 남자였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이 직무에 소홀한 채 침까지 질질 흘리며 자고 있었다. “흐아암…….” 그렇게 한참을 자던 희민은 충분히 수면을 취했는지 눈을 떴다. “으하암, 조금 졸았네.” 조금이라고 하기에는 약간 무리가 있는 5시간이었지만, 희민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기지개를 켜면서 자신의 앞에 펼쳐진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흐음, 통곡의 동굴을 유저가 발견해? 통곡의 동굴?” 희민은 처음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지만, 통곡의 동굴이란 단어를 계속해서 되씹으면서 어디서 들었던 것 같아 깊은 생각에 빠졌다. ‘통곡의 동굴, 첫 번째 동상 괴물들을 전멸시키고 나오는 어둠의 괴물들은 레벨이 350이라네. 적정 레벨은 250이지만, 뭐 저건 지금 발견하기는 너무나도 어려운 비밀 던전이니……. 그리고 저기에 들어 있는 아이템은 레벨 대에 비해서 상당히 좋은 것이라네. 발견하기 힘든 던전이니 그만큼의 혜택을 준 거네. 아이템 이름은…….’ “허어억!” 희민은 생각을 하다가 전에 팀장이 했던 말이 그대로 기억나 버렸다. 당장 화면을 켜자 거기에는 그 괴물과 싸우고 있는 2명의 미남자가 나타났다. “저, 저것들 뭐야? 웬 거지들이?” 옷차림이 상당히 난감했기에 희민의 입에서 거지라는 말이 나왔고, 희민은 그것보다도 얼른 그들의 행동을 바라보았다. “무리인가 보네. 괜히 걱정했네. 저 뒤에 있는 아이템은 아직 유저들한테 들어가면 안 된다고…….” 그렇게 흐민은 도망을 다니다가 한 방에 피를 주르륵 흘리는 남자를 보면서 안심했다. 절대 저런 모습 가지고는 저 괴물을 이길 수가 없었다. 바로 그 순간. “제, 어디서 본 거 같다?” 희민은 갑자기 뒤로 돌아서서 활을 소환해 엄청난 데미지를 모으고 있는 민혁을 보고 과거를 열심히 뒤졌지만, 도저히 누구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뭐, 상관있나?” 희민은 간단하게 생각하면서 다시 의자에 몸을 깊게 뉘었고, 그 순간 민혁이가 쏜 화살은 그대로 그 괴물의 연기를 관통하고 안에까지 데미지를 주었다. 그렇지만 역시나 무리였고, 그것까지 본 희민은 옆에 있는 보온병에서 커피를 따라 마시며 말했다. “무리야, 무리. 꿈 깨. 랭킹 10위 안에 들면 가망성이 있겠지만, 저 꼬라지를 봐서는…….” 아무리 봐도 저렙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기에 희민은 모니터를 향해 즐거운 듯 웃었다. 바로 그 순간 민혁이는 순식간에 적에게 다가가더니 눈을 감았다. 무릎 쪽이었다. 무릎 쪽에 무엇이 빛나고 있었고, 난 곧바로 눈을 떴다. 파악! “크아아악!” 내가 눈을 뜨자 나를 반긴 것은 그놈의 거대한 발이었다. 그놈은 나를 진짜 축구공으로 착각했는지 계속해서 뻥뻥 차고 있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또다시 느껴지는 고통에 이를 꽉 다물었다. 방금 전에 차여서 엄청난 고통이 있었는데, 또 같은 곳을 차다니……. 하지만 난 그놈의 발에 맞고 날아가는 중에도 고통을 참아 내며 그 괴물을 바라보았다. 다행히도 아직까지 연기가 막힌 상태는 아니었다. 난 다시 화살을 생성시켰다. 활(Bow) 소환! 인첸트 화(火). 플레지마 스트레이트 샷! 우우우우웅! 이번엔 결로 인해 보인 약점을 향해 활을 당겼다. 단 한번이었다. 이번에 맞히면 100% 죽음이었다. 우우우우우우웅우웅!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마나를 모두 끌어 모았고, 그렇게 한참을 모은 후 내 모든 힘이 담긴 무형의 화살을 발사했다. 콰아아앙! 그러자 이번에는 화살이 날아가는 소리라기보다는 폭탄이 터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만큼 데미지가 엄청나다는 것이었지만……. 화살은 그렇게 나의 모든 힘을 담은 채 괴물에게 날아갔고, 나는 아까 괴물한데 맞고 날아가는 도중이었기에 그대로 벽에 박혀 버렸다. 쿠웅! “끄아악!” 정신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단 두 방에 이런 데미지라니, 그리고 벽과 부딪혀서 생긴 데미지까지, 한마디로 아파죽을 거 같았다. “꾸르르륵!” 그 순간 엄청나게 찢어지는 비명 소리와 함께 괴물이 쓰러지면서 죽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목소리를 끝으로 갑작기 눈앞이 깜깜해졌다. -출혈 상태에 걸렸습니다. -스턴 상태에 걸렸습니다. -피가 10미만입니다. -죽음입니다. 난 마지막 말과 함께 처음으로 죽음이라는 걸 경험했다. 3일 후. 나는 지난 3일 동안 접속 자체를 할 수 없었다. 그 3일간은 정말 우울 연속의 나날이었다. 다 잡은 물고기를, 아니 아이템을 놓치다니! “나의 레어!” -게임에 접속합니다. 즐거운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접속을 알리는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즐겁기는 개뿔, 하나도 안 즐거웠다. 눈앞이 환해지자 나는 살며시 눈을 떴다. “어, 어라? 여기는!” 내가 지금 있는 곳은 내가 죽었던 장소이자 그 괴물이 설쳐 댔던 장소였다. 난 너무나도 어이가 없었다. 당연히 마을로 자동 리젠이 될 줄 알았는데, 지금 나의 몸은 이곳에 있는 것이었다. 바로 그때, 나의 머릿속을 지나가는 한 가지 정보……. -실제 지향적 게임이므로 죽었을 경우, 근처의 안전한 장소로 리젠이 됩니다. 시체도 부활할 때까지 유지가 되고 다시 살아나면 인비저블이 자동 상태로 걸리게 됩니다. 물론 공격 의향이 있을 시 자유롭게 풀리는 것을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그, 그렇구나!” 난 웬 횡재냐고 하면서 눈을 번쩍였다. 그렇다면 분명 3일 전에 보았던 그 상자가 남아 있을 게 분명했다. 바로 그때 곁에서 들려오는 잠꼬대……. “마스터, 빨리 살아나십시오.” 피티언이 그 상자를 껴안은 채 내 옆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었다. “쳇! 왠지 감동적인데?” 피티언은 그 상자를 소중히 보관하면서 나를 옆에서 계속 지킨 것 같았다. 나는 그런 피티언이 너무 고마워서(?) 그대로 발로 걷어찼다. 뻐엉! “으아악!” “일어나, 임마. 나 살았어.” “마스터! 이제 살아나셨군요.” “에?” “왜 그러십니까, 마스터?” “아, 아니……” 아마도 피티언은 알고 있는 듯싶었다. 이곳이 가상현실 게임이고, 내가 죽는다면 다시 살아난다는 사실을. 물론 저 모습을 보면 100% 인간적인 모습이기는 했지만……. “그래, 그것보다 아이템은 고이 간직했구나.” “물론입니다. 마스터의 아이템을 향한 눈빛을 전 봤습니다. 붉게 빛나는 광적인 모습을…….” “내, 내가? 내가 그랬다고?” “물론입니다.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군요, 그 눈빛이.” 난 그 말에 곰곰이 생각했지만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나처럼 청렴결백(?)한 사람이 그런 눈빛이었다니 믿어지지가 않았다. 뭐, 그게 무슨 상관인가. 지금 내 앞에 있는 상자가 더 중요하지. “흐흐흐흐흐!” “마스터! 또 그 눈빛입니다.” “흐으으읍!” 난 그 말에 얼른 관리를 하기 시작했다. 난 지성인이므로, 지성인답게 멋있게 상자를 열 의무(?)가 있었다. 딸각! 난 그렇게 진지한 표정을 지으면서 상자를 열었고, 거기에는 달랑 반지 한 개가 있었다. “바, 반지?” 난 반지가 나오자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이 생고생을 해서 얻은 게 고작 반지 하나라니, 너무나도 실망스러웠다. 그렇지만 일단 보기는 봐야 될 것 같았다. “아이템 창 오픈.” -혼돈의 반지(신급3등급)- 혼돈이라는 이름의 반지. 이 반지를 착용시 자신의 공격력이 20% 상승된다. 물론 스킬을 사용할 때도 그 데미지에서 20%가 상승된다. 평소 공격력과 스킬 데미지를 합산한 게 1,000이라고 가정을 한다면 적을 공격할 때는 1,200으로 올라간다. 피 2,000 상승. 마나 500 상승. 공격력 700. 방어력 200. “허, 허억!” 신급이라니, 믿어지지가 않았다. 신급이란 여섯 가지 등급 중에 두 번째 등급이다. 전설급 다음에 신급. 내가 알기로 이때까지 몇 번밖에 발견되지 않았다는 그 신급 아이템이었다. 그런 신급 아이템을 내가 발견하다니! 직접 보고도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리고 옵션이 꼭 나를 위해 만들어진 것 같았다. 안 그래도 공격력이 엄청난데 20%까지 풀러스 된다면 퍼펙트였다. “마스터, 왜 그러십니까?” “피티언, 심봤다!” “…….” 바로 그 순간, 굉음 소리와 함께 밝은 빛이 우리를 감쌌다. 제5장 데스 길드 데스 길드. 사상 최강의 길드였다. 이 길드는 운영진조차도 함부로 대하지 못할 정도였다. 이곳 마스터가 비공식 랭킹이었지만 초고랩 유저였다. 그는 길드를 만든 뒤 게임에서 최강의 권력을 자랑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말이다. 너무나도 사실 지향주의 게임을 만들다 보니 이런 단점이 있었다. 더군다나 운영진은 게임에 아무런 간섭을 할 수 없는 만큼 데스 길드의 힘은 더욱더 강력해졌다. 데스 길드에 반목을 하면 죽음이었다. 영원한 죽음, 이 게임을 접을 수밖에 없게 만들 정도로……. 부활을 하면 죽이고, 죽이고, 죽이고 게임을 그만둘 때까지 죽였다. 그만큼의 엄청난 인원과 정보력을 가진 길드였으니 반목해 싸우기보다는 잘 보여 떡고물이라도 받아먹으려는 길드가 더 많았다. 각 나라에서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곳이 바로 이 데스 길드였다. 데스 길드의 서열 10위 계진의 동생 계민, 그는 형의 빽을 믿고 엄청나게 설치는 중이었다. 레벨 30밖에 되지 않으면서도 말이다. 그런 그를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자는 없었다. 계진은 상당히 성격이 더러웠다. 자신이 꼴리면 피케이를 하고 아무런 연관도 없는 NPC까지 죽일 정도로 성질이 더러웠다. 당연히 그만큼 악명도 높았다. 그리고 그런 계진의 친동생 아니랄까 봐 13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 나이에 별짓을 다 하고 있는 계민이었다. “아아, 심심하다.” 계민은 너무나 심심했다. 사냥도 별로 재미없었다. 무엇보다 제일 재미있는 것은 남들을 괴롭히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오늘따라 유독 자신이 있는 곳에서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마을에서 난동을 부릴 경우 경비병들의 눈이 있기 때문에 곤란했지만 이렇게 아무도 없는 곳에서는 증가가 남지 않아 더없이 좋은 상황이다. 이제 초등학교 6학년인 계민이었지만 싸가지는 아주 수준급이었다. 그렇게 필드에서 심심함에 어쩔 줄 몰라 하는 계민의 눈에 한 소녀가 들어왔다. 그 소녀는 대충 16살 정도 되어 보였다. 계민은 어린 나이에도 여자도 상당히 밝히는 편이었다. 물론 현실에서는 이렇게 하지 못하겠지만, 여기에서는 아니었다. 여기서는 절대적인 지존의 힘, 형의 힘이 영향력을 발휘하는 게임이었다. 눈앞의 있는 여자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아 보였지만 상당히 귀여웠다. 검은색 긴 생머리를 늘어뜨린 게 너무나도 청순해 보이는 그 소녀는 자신이 이때까지 본 여자 중에 최고였다. 연예인들을 포함해서도 말이다. 그만큼 예쁘다는 소리였다. 그녀는 아직 계민과 비슷한 레벨 대였는지 지팡이 하나만을 들고 긴장 가득한 모습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계민은 음침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야.” “……저요?” “그래, 너. 존나게 예쁘네.” “…….” 계민의 말에 그 소녀는 할 말이 없어졌는지 입을 뻥긋뻥긋했다. 자신보다 나이도 적어 보이는 꼬마가 그렇게 말하니 누가 당황스럽지 않을까. “저, 아직 나이도 적어 보이고 처음 만났는데 갑자기…….” “그래서 불만이야? 내가 누군지 알아? 데스 길드 계진의 동생이야.” “…….” 그 말에 소녀는 엄청나게 긴장을 하는 듯싶었다. 그의 악명은 아직 레벨이 높지 않은 그녀조차도 상당히 많이 들어 봤기 때문에……. “네년이 마음에 들거든? 나랑 놀자.” “고, 곤란한데요.” “그만 빼, 십년아.” “…….” 소녀는 어이가 없다 못해 이제는 할 말이 없었다. 초등학교 6학년생이 이렇다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리 와 봐.” “시, 싫어요.” 그래도 그녀는 착한 성격이었는지 끝까지 존댓말을 했다. 바로 그 순간.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말하는 것 봐라.” “마스터, 상당히 질이 안 좋은데요?” “너희들은 뭐야? 웬 거지새끼들이…….” 갑작스럽게 나타난 그들은 방금 통곡의 동굴을 탈출한 민혁이와 피티언이었다. 그런 그들을 향해서도 계민의 말은 수이가 높아 갔다. 최소 자신보다 6살 이상 많아 보이는 형에게 저렇게 해 대다니……. “지금 뭐라고 했니, 꼬맹아?” “왜, 불만이냐? 내가 누군지 알아? 씨팔, 좆같은 새끼가! 나는 데스 길드 계진 형의 동생 계민…….” 퍼억! “으아악!” 바로 그 순간, 아주 경쾌한 소리와 함께 머리를 붙잡힌 계민이 쓰러졌다. 즉사였다. 일명 피케이……. “뭐야? 툭 쳤는데?” “마스터, 죽은 거 같은데요?” “에에에? 그냥 한번 툭 쳤는데…….” 민혁이는 툭 쳤지만, 자신의 대단한 공격력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지, 지금 잘못 건드리셨어요. 저 아이는…….” “아아, 뭐 죽은 거 어떻게 하겠습니까. 자자, 이상한 꼬맹이 놈 만나서 수고했습니다. 마을로 돌아가죠.” “저, 저기…….” “마스터, 언제부터 그렇게 친절하셨어요?” “몰랐구나? 난 여자들한테는 친절하거든…….” 소녀는 상당히 난감해 하면서 피하라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민혁이와 피티언은 자신들이 한 일이 데스 길드에 대한 선전포고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지금 뭐라고 했나?” “그, 그게 계진님의 동생이신 계민님이 어떤 유저에게 피케이를 당하셨습니다.” “피케이 말인가?” “네…….” 계진은 조용히 말했지만 그 분위기에 흘러나오는 포스는 장난이 아니었다. 엄청난 살기, 당장이라도 찢어 죽여 버리겠다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래? 어떤 새끼가 감히 나한테 도전하겠다는 건가? 아니, 나뿐만이 아니라 우리 데스 길드에 대한 반항으로 봐도 되겠군. 잠시만 기다려라. 내 동생에게 그놈에 대한 인상착의를 알아 오겠다. 그리고 준비해라! 척살령을 내려 끝까지 죽일 것이다.” 나와 피티언, 그리고 너무나도 귀여워 보이는 미소녀 아가씨는 마을 안으로 들어왔다. 미소녀는 정말 고맙다는 듯 말했다. “고맙습니다.” “아니 뭐, 워낙 꼬맹이 놈이 버릇이 없다 보니 혼 좀 내줬을 뿐입니다.” 나는 나에게 살포시 인사하는 소녀를 보고 입이 헤벌쭉 벌어졌다. 저런 미소녀라니……. “그나저나 저를 구해 주신 것은 감사하지만 이제 님께서……. 휴…….” “저요? 저는 왜요?” “그, 그게…….” 나의 물음에 그 소녀는 뜸을 들였다. 얼마나 하기 어려운 말이면 저럴까 싶을 정도로 미안함이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도대체 그 버릇없는 꼬맹이를 한 대 잘못(?) 쳐서 죽인 게 그렇게 잘못한 것인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됐다. “들어 보셨을 거예요. 데스 길드라고…….” “데스 길드? 그게 뭐 하는 길드입니까?” “모, 모르세요? 데스 길드를?” “아, 피티언! 데스 길드가 뭔지 아니?” “데스 길드? 대파 길드와 한 파 아닐까요. 하하하하!” “그런가? 으근히 똑똑한데…….” “그, 그게 아니고…….” 그 소녀는 무척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왜 저런 표정을 짓나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잠시 후 알아차렸다. 퍼억! “아아악! 마스터, 왜요?” 내가 피티언의 머리통을 치자 피티언은 왜 때리는지 따졌고, 난 그 말을 듣고 눈을 부릅뜨면서 말했다. “이상한 정보 흘리지 마. 대파 길드가 아니라잖아.” “아, 죄송합니다.” 그 모습을 보던 소녀는 너무나도 당황스러웠다. 데스 길드를 모르다니……. 이 게임을 하면서 사냥하는 법은 몰라도 데스 길드의 악명은 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들은 엄청나게 유명했다. 그런 그들을 가지고 말장난까지 하는 그들을 보면서 소녀는 너무나도 놀란 상태였다. “실례했습니다. 얘가 좀 상태가 안 좋아서.” “아, 아니에요. 그런데…… 정말 데스 길드를 모르시나요?” “데스 길드? 생천 처음 들어 보는데요?” “제가 지금 설명해 드릴게요. 데스 길드…….” “어이, 귀여운 아가씨! 설명 안 해 줘도 된다고. 어차피 죽을 테니.” 소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 방향에서 목소리가 흘러 들러왔다. 그리고 그 목소리와 함께 상당수의 발작국 소리까지 동반되었다. “데, 데스 길드?!” “데스 길드야!” “피해!” “여기서 잘못 찍히면 안 된단 말이야!” 마을에 있던 유저들은 난리가 났다 데스 길드의 오른팔에 달려 있는 죽음의 문장을 본 것만으로도 패닉 상태였다. 그만큼 그들의 악명은 높았다. 그런데 이렇게 위협을 받으면서도 사람들은 이 게임을 관둘 수가 없었다. 이때까지 최고의 게임이었으니 당연했다. 우르르! 순식간에 사람들은 내 주변에서 멀찌감치 물러났다. 무슨 모세가 물을 가르듯이……. “쟤네들이 뭔데 사람들이 저래요?” “데스 길드예요. 저 길드에 찍히면 게임을 접어야 한다고요. 이 게임의 주 지배자예요.” “주, 지배자?” 난 소녀의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 주 지배자라니, 꼴값 떨고 있었다. 어디서 쪽수만 믿고 설치는 것 같은데, 나에게는 어림도 없었다. 피티언과 나는 쪽수 싸움도 무지하게 자신 있었다. 이게 바로 온갖 역경(?)을 극복한 이후 생긴 자신감이었다. “네놈의 새끼가 우리 길드 수십만 명을 향해 선전포고를 했다고? 이제 이 게임을 그만두게 해 주마.” “크크크! 한번 고통을 느끼게 하면서 죽여 볼까?” “다리는 내가 자를 거야. 크크크!” 그들은 나를 향해 이상한 헛소리를 해 대기 시작했다. 그들의 인원수는 총 50명 정도, 상당히 많은 편이었다. 그렇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안심이 되었던 까닭은 그들이 엄청난 고렙인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뒤에 수십만 명이라는 단어가 약간 껄끄럽기는 했지만……. “자자, 미소년 아가씨! 저와 피티언의 뒤로 서세요.” “네에?”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소녀의 팔을 살며시 잡아 나와 피티언의 뒤로 이끌었다. 그러자 그들은 음침한 미소를 지으면서 한 발자국씩 다가왔다. 나도 해맑게 웃으면서 내 옆에 있는 피티언에게 큰 목소리로 외쳤다. “판 엎어!” 나의 말에 즉각 반응하는 피티언. “옙! 차가운 얼음의 영혼이여, 모든 것을 얼려 버리는 그대의 강대한 힘에 맡기리라. 블라즈드 발리스!” 파지지짓! 피티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내 앞에서 얼쩡거리던 50명 정도 되는 적들의 머리 위로 커다란 얼음 덩어리가 생겼다. 그 얼음 하나는 인간의 몸 크기만큼이나 컸고, 그리고 무엇보다 허공에 나타난 것이 한 20개 정도였다. 휘이익! 피티언은 가볍게 손을 위에서 아래로 그었다. 그러자 거대한 얼음 덩어리들은 정확히 데스 길드인가 대파 길드인가에게로 떨어졌다. “으아악!” “무, 무슨 마법이야?!” “고위 마법사?” 피티언의 공격 마법 한 번에 그들은 패닉 상태에 빠져 버렸다. 그들이 저렇게 강력한 마법을 본 적은 없을 테니까. “으아악!” “크아악!” 미처 피하지 못한 존재들은 순식간에 얼음에 깔리면서 몸이 얼어 죽어 버렸다. 그 인원수는 대충 20명이었고, 30명 정도는 뿔뿔이 흩어져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휴, 살았다.” “노, 노! 살기는 뭘 살아.” “뭐, 뭐얏?” 퍼억! 난 순식간에 다가가 상대방의 얼굴을 주먹으로 가격했고 상대방은 허망할 정도로 순식간에 즉사해 버렸다. 도대체 나의 파괴력이 얼마이기에 저런 모습이 나오는지 궁금했지만, 일단 그것보다는 상대방을 처리하는 게 먼저였다. 활(Bow) 소환! 나는 눈을 감고 활을 소환시켰고, 그대로 활시위를 잡아 당겼다. -활(Bow) 2단계로 진화합니다. 새로운 능력, 다중 공격 능력이 추가되었습니다. 또다시 들려온 음성, 처음보다는 놀라지 않았다. 대충 사용 빈도에 따라 진화를 하는 것 같은데, 활도 검만큼 사용했기에 머지않아 진화할 거라고 예상했었다. 물론 새로운 능력이 궁금하기는 했지만……. 휘이익. 나는 가볍게 활을 잡아당겼다. 다중 능력, 한마디로 여러명을 공격한다는 뜻 같은데 이해가 잘 안 됐다. 왜냐면 지금 나의 활에 걸려 있는 무형의 화살은 한 개였기 때문이었다. -타겟팅 조정합니다. 공격 인원수를 정해 주십시오. 갑자기 들려온 다른 음성, 너무나도 차가운 여자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난 들려온 음성에 충실하기로 했다. “타켓팅, 내 앞에 있는 남은 적 30명…….‘ -타켓팅을 설정하겠습니다. “으으윽…….” 바로 그 순간 갑작스럽게 빠져나가는 엄청난 마나, 거의 1/3이 한 번에 쭉 날아갈 정도로 엄청났다. 마나도 반지 때문에 추가된 상태였는데, 이 정도라니 믿어지지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였다. 동시에 내 몸 주변 근처에 생성된 30개의 무형의 화살들이 상대방을 향했고, 무형의 화살을 생전 처음 본 적들은 당황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휘이익! 난 가볍게 활에 걸려 있던 무형의 화살을 쏘았고, 그게 스타트였는지 동시에 내 주변에 생성된 30개의 화살도 한번에 날아갔다. “으아악!” “뭐, 뭐야?!” “쿠, 쿨럭…….” 상대방은 변변한 반항도 하지 못하고 즉사했다. 아무도 피하지 못했다. 검과는 또 다른 능력, 가히 압도적이었다. “마, 마스터. 엄청나네요, 그 활.” “나도 뭐가 뭔지…….” 피티언의 마법 한 방과 내 화살 한 방에 다 죽어 버린 50명을 보고 할 말이 없어졌다. 물론 그건 내 뒤에 있는 미소녀와 우리를 지켜보던 유저들과 NPC들도 마찬가지였다. “마을에서 살인이다! 저놈 잡아라!” 바로 그때,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모를 경비병 30명이 나타났다. 그들은 순수하게(?) 정당방위를 한 우리를 향해 검과 창을 내밀었다. “마을에서 피케이를 했다. 당장 연행하겠다. 반항하는 즉시 사형까지도 가능하다.” “자, 잠시! 우리는 아름다운 정당방위였다고요.” “정당방위? 내가 보기에는 학살 같은데…….” “학살이라니요! 그냥 우리가 데미지가 살짝 강해서…….” “필요 없다. 너희 세 명을 지금 잡아가겠다. 순순히 굴복해라.” “젠장……. 또 엎어?” 나는 말이 안 통하는 경비대장을 보고 열 받아서 한 번 더 엎을까 했지만, 저 멀리서 엄청나게 몰려오는 인원을 보고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방금 우리가 전명시킨 대파 길드인지 데스 길드인지 모를 놈들 500명 이상이 나를 향해 죽일 듯이 달려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 마스터, 어떡하죠? 또 판 엎을까요?” “흐음……. 엎기는 무리 아닐까? 방금 우리가 해치운 애들보다 강해 보이고, 쪽수가 난감한데?” “그럼?” “옛 명언에 이런 말이 있지. 달려라, 하니!” “…….” 나의 말에 피티언은 조용해졌고, 난 우리의 모습을 보고 패닉 상태에 빠진 그 미소녀를 갑작스럽게 팔로 안아 올렸다. “까아악!”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피티언, 튀어!” “예, 마스터!” “저놈 잡아라!” “저 새끼들, 우리 데스 길드를 건드려?!” “현상 수배자다! 마을에서 피케이를!” 다다다다! 난 뒤에서 죽일 듯이 따라오는 경비병들과 데스 길드인가 대파 길드인가를 보면서 죽도록 뛰었다. 아무리 정당방위였다 하더라도 여기서 잡히면 데스 길드인가 대파 길드인가 뭔가 하는 놈들한테 모든 게 유리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마스터, 이 기회에 세계 정복이나 한탕 합시다. 분위기보니 우리 현상 수배될 거 같은데.” 퍼억! “크악!” 난 달리는 도중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 날라리 천족의 머리통을 치며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런 헛소리 할 시간 있으면 뒤에 있는 놈들 좀 소 오게 대형 마법이나 한 방 날려, 임마!” 퍼억! 퍼억! 난 내 앞에서 우리들을 막으러 오는 경비병들을 발로 차면서 동시에 말했고, 그 말에 피티언은 구시렁대면서 마법 주문을 외웠다. “블라즈드 발리스!” 후두둑! “으아악!” 뒤에서 얼음이 부서지는 소리와 더불어 비명이 울려 퍼졌고 난 세계 정복을 못해서 표정이 좋지 않은 피티언을 향해 말했다. “세계 정복은 안 하더라도, 저 대파 길드인지 데스 길드인지는 내가 확실히 엎어 버릴 거다.” “흐흐흐흐!” “왜 웃어?” “아무것도 아닙니다.” 피티언의 생각은 이랬다. 옛말에 동생이 오빠 되고 오빠가 애인 되고 애인이 결혼된다는 아름다운 방식, 그러니 데스 길드를 엎는 마당에 세계 정복도 덤으로 간다는 생각을……. 제6장 미리스 스피드 “하아아아아…….” “하아아아아…….” “오, 오빠들 몸 상하겠어요. 이제 그만…….” “크크크! 소용없어. 이날을 위해…….” “크크크! 마스터……. 크하하하!” 나의 눈에는 이미 인간의 눈빛이라고 칭할 감정은 남아 있지 않았다. 세상에서 제일 순수했던(?) 나와 피티언을 이렇게까지 만들다니, 적이지만 인정할 것은 인정했다. 우걱우걱. 피티언과 나는 저번에 마을에 들어가서 살짝 사 온 빵을 입 안에 우걱우걱 밀어 넣었다. 단단하고 진짜 맛없는 빵을 먹는 것 자체도 고역이었지만 그런 사소한 것보다는 현재 상황이 더욱더 중요했다. 피티언과 나에게 이것보다 중요한건 없었다. “예화야, 미안하다. 너까지 이런 일을…….” 난 몇 주 전에 만나서 생고생을 하고 있는 예화를 보고 미안한 마음에 말을 전했다. 원래 남자라면 당장 끌고 다녀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이 없는 나였지만, 저런 초절정 미소녀한테는 한없이 자상해질 수밖에 없었다. 뭐 나 뿐만 아니라 남자의 본능이라고 할까? “저는 괜찮아요. 저보다도 피티언 오빠랑 민혁이 오빠가…….” 난 예화의 걱정스럽다는 말에 피티언을 슬쩍 바라보았다. 심하기는 심했다. 이제 완전 상거지라고 해도 믿어질 정도였다. 간단하게 세수라도 한다면 괜찮겠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그럴 시간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랑 같이 다녀도 나름대로 깨끗함을 유지하는 예화 때문에 우리가 아주 조금 추접스러워 보이기는 했다.(뭐 사실 조금은 아닌 듯.) “마스터, 떴습니다. 그놈입니다!” “크크크! 이제 이 지긋지긋한 싸움을 쫑 내자!” “알겠습니다, 마스터!” 내 말에 피티언은 전투 준비를 했다. 이번에야말로 잡고 말겠다는 의지,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저놈 때문에 모든 걸 포기했다. 하지만 이제는 잡고 말 것이다. 그게 바로 나와 피티언의 공통된 마음이었다. 한편 그 모습을 본 예화는 생각했다. 무엇이 그들을 저렇게 집념적으로 만들었는지, 도대체 무엇이 저들을 저렇게 헐크로 만들었는지……. 1주일 전. “이, 이건 사기야! 왜 우리가 지명수배자야!” “맞습니다.” 난 대문짝만 하게 붙은 나와 피티언, 그리고 나랑 같이 다니는 미소녀의 지명 수배 전단지를 보고 너무나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나의 행동은 완전 정당방위, 그렇지만 그 인간들은 내가 취했던 행동을 학살이라고 하면서 순수한(?) 나를 범죄자로 만들어 버렸다. “데스 길드인가 대파 길드인가, 사람 짜증나게 하네.” “맞습니다. 우리 6대 소한수가 다 모인다면 한번 해 볼만도…….” “6대 소환수?” 나는 피티언의 입에서 나온 6대 소환수라는 말에 물음표를 띄우면서 말했다. 6대 소환수라……. 날라리 소환수 테피언과 세계 정복의 야망을 꿈꾸는 신족 피티언, 얘네 둘만 봐도 정상이 아니었다. 그런데 나머지 4대 소환수가 모인다고 생각하니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왔다. “그렇습니다, 6대 소환수. 저희의 힘은 무적입니다. 마스터가 모든 무기를 다 다루시고 인첸트 능력과 진화능력을 다 배우신다면 데스 길드에 반하는 세력과 힘을 합쳐 엎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흐음…….” 그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하는 짓은 날라리에다 별로 믿음직스럽지는 못하지만 소환수들의 능력은 최강이었다. 그러니 6대 소환수가 모두 모이고 내 능력도 엄청 올라가면 게릴라 형식이든 정면충돌이든 한번 해 볼 만은 하다는 것이었다. “저, 저기…….” “아, 뭐 말할 거 있나요?” 난 나를 부르는 소녀를 보고 얼른 고개를 돌렸다. 복수라는 생각에 잠시 망각하고 있었다. 지금 피티언과 나의 곁에 누가 있었는지……. “아, 우선 말 놓으셔도 돼요. 제가 그쪽보다 나이가 어린것 같으니. 제가 중3이거든요.” “흐음. 그렇구나. 알겠어. 말 놓을게. 내가 두 살 더 많네. 그리고 내 이름은 김민혁, 이름이 뭐야?” “저는 한예화라고 해요. 잘 부탁드려요.”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내 이름을 소개하면서 이름을 물었고, 예화는 거리낌 없이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한예화, 역시 얼굴만큼이나 이름도 예뻤다. 풀이해서 천사강림? “그래, 무슨 할 말 있어?” “저, 이제 그게……. 우리들 이제 어떻게 하죠? 마을도 못 들어가게 생겼는데…….” 그 말에 난 고민 모드로 돌입했다. 우리는 현상 수배자, 마을 들어가는 순간 당장 체포되거나 또 한판 붙을 게 분명했다. 물론 마을로 들어가는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일명 분장술을 펼쳐 로브를 깊게 눌러써서 마법사처럼 보이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상황에선 로브를 구할 방도가 없었다. 마법 몹을 잡으면 모를까……. “뭐, 무슨 방법이 생기겠지. 일단 우선은 힘을 키우는 것이다!” 나는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깟 마을 안 들어간다고 죽는 건 아니었다. 물론 안 들어가겠다는 말은 아니지만 고민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고민해 봤자 지금 상황에서는 뾰족한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기에……. “실례지만, 레벨 좀 물어봐도 될까요?” 예화는 나를 보면서 그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궁금하다는 듯 물어보았다. 나는 그 말에 아주 자연스럽게 말했다. “나의 레벨은 47이다!” “…….” 나의 말과 함께 찾아온 이 이상한 정적, 나는 갑작스럽게 분위기가 이상해지자 예화를 슬쩍 바라보았다. 예화는 황당하다는 듯 나를 보고 있었다. “노, 농담도 잘하시네요.” “농담 아닌데.” “저, 정말 47이라고요? 47이 어떻게 수십 명의 사람들을 한 번에 피케이를…….” “휴, 거기에는 깊은 사정이 있지.” 난 그 말과 함께 눈을 슬며시 감았다. 아련히 떠오르는 과거의 행적……. 1단계, 처음에 나를 반긴 건 아름다운 필드도 아니었다. 이상한 개떡 같은 동굴이었다. 그 동굴에서 지금의 ‘웨폰인첸트’ 이라는 직업을 얻었고, 그 후에 이상한 소환수 테피언을 만났다. 그런 다음 이상한 퀘스트인가 뭔가 한다고 설쳤고, 그 후 고블린들한테 쫓기던 내 옆에서 해맑게 웃고 있는 피티언을 만나 뒤 동굴에 빠져 한 달 동안 정체불명의 몬스터들과 쉬지도 못하고 전투만 했다. 그렇지만 난 동굴을 부숴버렸고, 그리고 나에게 광명이 찾아왔다. 나를 찾던 채은이와 정우를 만난 것, 왕궁까지 가는 길에 그들을 보호해 주면서 돈도 챙길 엄청난 대박의 기회. 난 하늘이 내려 준 기회라고 생각하면서 감동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통곡의 동굴에 들어가서 또 싸움만 했다. 물론 엄청나게 좋은 아이템 하나를 먹기는 했지만. 그리고 그 동굴을 나온 후 이상한 초딩 놈이 내 앞에 있는 예화한테 하는 짓이 마음에 안 들어서 한 방 쳤는데, 즉사. 그 이후로 데스 길드인지 대파 길드인지랑 한바탕 붙고 현상금……. 그야말로 한 편의 다큐멘터리였다. “제, 제가 뭐 잘못했어요?” “아니야. 나의 과거가 너무 아름답게 느껴져서……. 자, 레벨 업이나 하러 갈까?” 혹시 말실수했나 하는 표정을 짓는 예화를 향해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제스처를 취한 다음 앞을 향해 걸어 나갔다. 그런데 그렇게 한동안 예화와 이야기를 하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항상 떠들던 피티언이 아주 조용한 것이었다. “야, 피티언.” 우물우물. 피티언은 나의 눈을 피해 등을 돌린 상태였다. 그리고 들려오는 이상한 소리………. “서, 설마!” 난 불길한 느낌과 함께 피티언의 앞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어디서 구했는지 소고기로 만든 육포를 허겁지겁 입 안에 집어넣는 피티언의 모습이 보였다. “이 치사한 자식! 너 혼자 먹다니!” “마스터, 죄송합니다.” 다다닥! 그 말고 함께 피티언은 도망가기 시작했다. 난 혼자 맛있는 것을 먹는 피티언을 보고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당연히 엄청난 속도로 쫓아가기 시작했다. “야! 너 잡히면 죽여 버리겠어!” “마스터, 저는 살고 싶습니다!” “죽여 버리겠어! 멈춰! 멈추면 살려 주겠다!” “못 믿겠습니다!” 예화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생각했다. 도대체 육포 하나로 싸우다니. 육포는 몬스터만 사냥해서 모은 약간의 돈으로도 충분히 살 수 있는 음식이었다. 물론 저들의 불쌍한 인생을 전혀 모르는 예화로서는 당연한 생각이었지만……. 그리고 예화는 후에 생각했다. 이날 민혁이가 몬스터를 사냥하자는 것을 말렸다면, 지금처럼 되지는 않았을 거라고……. 난 끝내 피티언을 포획할 수 있었다. 마법사 주제에 달리기 속도는 더럽게 빨랐다. 체력 강한 내가 헉헉거리고 있었으니……. 하지만 나의 상대는 되지 않았다. 난 엄연히 활동주의자고 피티언은 마법 사용자이기에 체력과 속도의 차이가 엄연히 있었다. 그렇게 나는 가볍게 피티언을 밟은 뒤 남은 육포 조각을 뜯어먹었다. 우걱우걱. “흐음, 이 맛이란…….” 나의 입으로 퍼져 오는 향긋한 고기의 냄새……. 너무너무 맛있었다. 게임 접속 후 처음 먹어 보는 고기, 무슨 말이 필요할까? 그만큼 나는 감동의 눈물까지 흘러나올 정도였다. “허어억! 내 육포!” 내 감동의 눈물과는 대조적으로 피티언은 서러움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내가 먹고 있는 육포를 향해……. 난 그 모습을 보고 약간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처량한 눈빛, 사람의 동정심을 유발시키는 눈빛이었다. “피티언, 나눠……,” 반짝! 바로 그 순간 빛나는 피티언의 눈빛, 난 그 눈빛을 보고 엄청난 위압감이 들었다. 절대 육포를 주지 말라는 위압감, 절대 네가 피티언에게 육포를 주기 싫어서가 아닌 나의 식스센스(육감)에 포착된 기운이었다. “네가 육포를 내게 줬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쳇…….” 그러자 피티언은 돌변했다. 마치 연극이라는 듯, 그의 눈에 가득했던 처량함은 오간 데 없이 사라졌다. 물론 육포에 굶주린 눈빛은 그대로였지만……. 피티언 저놈 보니, 은근히 연기도 잘하는 듯싶었다. 나의 식스센스가 발동 안 되었으면 못 알 볼 정도였으니……. 우물우물. “아, 맛있다!” 나는 상황이 그렇게 되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육포를 아주 잘근잘근, 피티언 앞에서 맛있게 먹어 줬다. 세상에서 제일 심한 고문이 배고픈 사람 앞에 얼쩡거리면서 맛있게 먹어 주는 일이다. “마스터, 너무하십니다!” “다 네가 자초한 일이로다.” “유, 육포……. 나의 아름다운 육포가!” 피티언은 좌절감에 고개를 떨어뜨렸다. 난 그 모습을 보고 약간 미안했지만 금세 마음을 다잡았다. 나는 정당한(?) 대가를 치렀을 뿐이니……. “민혁이 오빠, 어디 계세요?” “아, 여기야!” 바로 그 순간, 내가 피티언을 붙잡는다고 잠시 헤어진 예화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내 목소리를 듣고 예화는 나와 좌절 모드 중인 피티언에게 다가왔다. “역시 엄청 빠르시네요. 생전 처음 보는 속도예요.” “흠흠흠…….” 난 그 말에 약간 무안했다. 내 스피드가 빠르기는 했지만 장기간용은 아니었다. 단시간 공격에 최적화된 스피드였지, 달리기 속도는 그렇게 빠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이 시간만큼은 거의 적을 공격할 때의 스피드와 비슷했다. 물론 약간 처지기는 했지만 엄청난 속도였다. 그 이유가 피티언을 잡아서 육포를 뺏어 먹으려는 의지 때문이었다고는 절대 말하고 싶지 않았다. “아까 달려가실 때 역추적 마법을 걸지 않았다면 절대 못 따라잡았을 거예요.” “그, 그렇구나.” 예화가 도착한 시간은 내가 피티언을 잡고 응징을 한 뒤 육포를 뺏어 먹기까지 총 15분. 대충 내가 피티언을 추격한 시간 3분. 엄청난 속도의 차이였다. 뭐, 예화가 마법사인 까닭도 있지만……. “마스터! 어떻게 그렇게 잔인하게 나의 마리안뜨 5세를 뜯어먹습니까?” “마리안뜨 5세? 그건 뭐니?” “제가 눈물을 흘리면서 지은 육포 이름입니다.” “너, 코미디 찍냐?” “코미디라니요! 마리안뜨 5세는 제 입 속으로 들어가기를 원했단 말입니다. 마스터의 입 안에 들어가기 전, 저에게 속삭였습니다. 살려 주세요. 이 사악한 남자에게 먹히기 싫어요! 그럼 당장 자결하겠어요!” 요새는 육포도 자결하는 시대냐? 난 그 말을 듣고 왠지 모르게 측은지심이 들었다. 얼마나 못 먹었으면 저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건지……. 육포에 이름을 짓는 놈이라니, 세상에 너무 불쌍하다 못해 황당했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는데, 피티언의 마지막 한마디 말이 거슬렸다. ‘이 사악한 남자에게 먹히기 싫어요!’ 곰곰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피티언의 의도를 서서히 알 수 있었다. 한마디로 자기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소리였다. 쿵쿵쿵! 나의 눈이 피티언을 향해 홱 하고 돌아가는 그 순간, 정체불명의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땅을 걷기는 걷는 건데 무슨 건물이 한 채 이동하는 소리와 비슷했다. “이건 뭐야?” 쾅쾅쾅! 소리는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지진이라도 난 듯한 땅울림까지 전해지고 있을 정도였으니, 난 자연스럽게 그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고 거기에는 난감한 놈이 떡하니 쿵쿵 걸어오고 있었다. “저, 저건…… 레벨 420이라는 자이언트 오우거?!” 갑자기 떨려 오는 목소리, 난 그 목소리의 주인인 예화를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자이언트 오우거?” “정말 희귀한 몬스터예요. 거의 보이지가 않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라고요. 소문으로는 공식 랭킹 50위 안에 드는 유저들만 잡을 수가 있다고 해요. 지금 살아 나갈 방법은 없어요. 거대한 몸에 비해 행동이 무척 빨라서 전력으로 뛴다고 해도 잡혀 버려요.” 난 자이언트 오우거라는 놈을 자세히 뜯어보기 시작했다. 키는 나의 3.5배 정도, 내 키가 182Cm이니까 대충 6미터는 거뜬히 넘어가는 정도였다. 오우거들이 대략 3~4미터 정도인 걸로 감안했을 때 거의 두 배 수준이었다. 그리고 손에 들려 있는 거대한 나무 몽둥이는 그 크기만 하더라도 거의 3미터를 넘어가고 있었다. 도대체 저런 몽둥이를 누가 만들었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호오, 좋았어! 한번 실험해 볼까?” “네? 갑자기 실험이라니요?” “아아, 내 레벨이 얼마 정도 되는지 한번 테스트해 보고 싶거든.” 난 그 말과 함께 다가오는 오우거를 무시한 채 살짝살짝 몸을 풀었다. 나와 동렙인 50대의 몹들은 원 샷 원 킬이었다. 그냥 툭툭 치면 죽어 나가니 도대체 능력치 레벨이 얼마 정도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전에 혼란의 동굴인가? 거기서 잡았던 몬스터들의 레벨도 모르는 나로서는 한번 테스트를 해 보고 싶었다. “자, 자! 걱정 말라고.” 툭툭. 난 공포에 휩싸인 얼굴을 한 예하의 어깨를 자연스럽게 치면서 앞으로 나섰고, 아직도 궁상떨고 있는 피티언을 보고 말했다. “전투 중에 끼어들지 마라.” “에? 저는 그래도 마스터를 지켜야…….” “괜찮아, 괜찮아.” “알겠습니다. 그렇지만 마스터가 위험하다 싶으면 공격하겠습니다.” “알았어.” 역시 하는 짓이 약간 황당하기는 했지만, 마스터를 모시는 저런 아름다운 모습에는 감동하고 말았다. 은근히 충성심이 강한 피티언이었다. 크아아앙! 그렇게 몸을 풀고 있자, 자이언트 오우거가 우리 쪽으로 근접해 왔다. 난 곧바로 발에 힘을 주면서 순간적으로 튀어나갔다. 쿵! 그리고 곧바로 자이언트 오우거를 향해 주먹을 내뻗었다. 쿠웅! 내 주먹이 오우거의 배를 맞히자 둔탁한 소리가 울렸고 그와 동시에 내 주먹에서 어마어마한 고통이 느껴졌다. “으아아악!” “오, 오빠?!” “무, 무슨 몸이 이래!” 배를 때렸는데 느껴지는 고통은 꼭 강철을 맨손으로 친느낌이었다. 그만큼 저놈의 배는 배라고 하기에는 이미 너무 난감한 상태였다. 저번에 탈출하기 위해 쳤던 괴상한 문을 칠 때도 이렇게 아프지는 않았는데……. 자이언트 오우거는 배를 맞자 기분이 나빴는지 나를 잡아먹겠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두 손을 깍지를 끼더니 곧바로 나의 머리를 향해 내리찍었다. 휘이익! 자이언트 오우거의 손이 바람을 가르면서 나는 소리는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도대체 얼마나 속도가 빠르면 이런 소리가 나는지 의문이 생길 정도였다. 물론 나의 눈에는 똑똑히 보였으니 상관은 없지만. 무척 위협적인 공격이기는 했지만 이미 보이는 순간 끝이었다. 안 보이면 보지도 못하고 납작궁이 될 수도 있지만 일단 보이기만 한다면 피할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물론 아무리 보인다고 하더라도 몸이 안 따라 준다면 말짱 도루묵이었지만 나하고는 아무런 관련도 없었다. 충분히 보는 만큼 피해 낼 능력이 나에게는 있었다. 콰아앙! 내가 오우거의 뒤로 피하자, 오우거는 땅을 가격했고, 폭발이 일어난 듯 10미터 정도의 구덩이가 생겼다. “좀 심하잖아…….” 아무리 나라고 하더라도 저 공격을 맞으면 즉사였다. 단 한 번 공격했을 뿐인데 저런 구덩이가 생기는 걸 보니, 내가 생각한 파괴력보다 훨씬 높은 듯했다. 물론 그렇게 땅을 부숨에 따라 잠시 공격할 수 없게 되는 현상이 자이언트 오우거에게는 불행이었지만 나에게는 다행이었다. 도끼 소한! 인첸트 화(火)! 파지지짓! 기회를 틈타 도끼를 소환해 냈다. 오랜만에 써서 그런지 약간 묵직한 느낌이 괜찮은 것 같았다. 도끼는 파괴력은 강하지만 검이나 활보다 활용도가 떨어진다. 하지만 저렇게 덩치가 더럽게 큰 놈일수록 도끼의 파괴력은 훨씬 증폭되었다. 안 그래도 강력한 파괴력인데 조건까지도 나에게는 좋았다. 쿠웅! “크아아악!” 오우거는 나의 도끼가 자신의 등에 박히자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고, 난 귀를 막으면서 말했다. “으으윽! 시끄러워.” “크아아악!” 내가 뭐라 하든지 자이언트 오우거는 소리를 계속해서 질러 댔다. 정말 목청 하나는 존경스러웠다. “에이!” 나는 다시 한 번 등 쪽에 1/4 정도 박혀 있는 도끼를 뽑아 들고는 힘을 모아 풀 스윙을 했다. 휘이익! 바람이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고, 바로 그 순간. 쿠우웅웅! “크아악!” “대략 난감한데?” 오우거가 언제 몸을 돌렸는지 내 도끼를 손으로 잡고 있었다. 손에서 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절대 놓지 않고 있었다. “……?” 그렇게 잠시 오우거와 대치하는 사이 내 눈에 보인 이상한 동물. 아니, 동물인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너무나도 특이한 모습이었다. 그 동물은 상당히 깜찍한 모습으로 코알라 정도의 크기였다. 사실 코알라보다 더 귀여워 보이기는 했다. “크아아악!” 바로 그 순간, 잠시 멈춰 있던 자이언트 오우거는 도끼를 잡지 않은 나머지 한 손으로 나를 내려찍었다. 난 얼른 저 이상한 정체불명의 동물에게 신경을 끄고 도끼를 캔슬시켜 버리면서 말했다. “이제 장난은 그만!” 난 흉폭하게 날뛰는 오우거를 향해 싱그러운 웃음과 함께 그대로 오우거의 무릎을 밟고 뛰어올랐다. 지금까지는 약간 테스트를 하느라 정식으로 하지는 않았지만 대충 느낌상으로는 내 상대가 아니었다. “크아악!” 그놈의 소리는 더욱 심해졌고 난 그 소리를 무시한 채 그대로 뛰어올라서 머리를 붙잡고 외쳤다. “결!” 파지짓! 또다시 펼쳐지는 적의 회로 선과 같은 느낌, 세 번째 사용하고는 있지만 역시 약간의 이질감은 어절 수가 없었다. 이내 보이는 자이언트 오우거의 약점. 약점은 아주 간단했다. 내가 잡고 있는 머리, 한마디로 지금이 공격하기에 최고였다. “바이, 바이!” 난 그렇게 외친 후 손을 내밀었다. 검(Sword) 소환. 인첸트 화(火). 콰앙! 난 소환된 검을 그대로 머리에 박아 버렸다. “크아아악!” 쿠우우웅! 자이언트 오우거는 비명을 지르며 서서히 쓰러졌고 난 그 모습을 보고 훌쩍 뛰어내렸다. 난 가볍게 검을 캔슬시키면서 손을 틀었고 즐겁다는 듯 웃었다. “으하하하!” “저, 정말 대, 대단하시네요.” “마스터! 멋있습니다!” 나의 모습을 본 예화는 경악했고, 피티언은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자이언트 오우거를 죽인 시간은 5분 정도. 상당히 짧은 시간에 해치운 것이었다. 결은 역시나 최강의 기술이었다. 물론 결의 특성상 상대방과 겹쳐서 3초간 있어야 하지만, 일단 상대방과 비슷하거나 좀 더 강하다면 실행시키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뚜웅! 바로 그 순간 오우거의 시체 밑으로 목걸이 한 개와 스킬북으로 보이는 아이템이 떨어졌다. “어, 어라? 아이템?!” 난 아이템을 보자 당장에 오우거를 향해 뛰어갔다. 처음으로 보는 아이템이라 웬 떡인가 싶었다. 아니, 전에 반지를 얻었으니 처음 건 스킬북이었다. 나에게 스킬북은 무조건 축복이었다. 아직 완벽한 무기를 배우지 못해서 조만간 다 구해서 배울 예정이었다. 그러니 한마디로 요약하면, 나는 무슨 스킬이든지 모두 사용 가능했다. 마나량 때문에 남발은 못하지만 상황에 따라 쓰기만 한다면 엄청 좋을 것 같았다. “아이템아! 복 싶었어!” 나의 눈에는 아름다운 이슬이 걸려 있었다. 생전 처음 먹어 보는 스킬북과 정상적인 몬스터를 죽여 나온 아름다운 목걸이……. 감동, 또 감동이었다. 그렇게 아이템을 향해 손을 쭉 뻗는 순간이었다. “어, 어라? 아, 아이템이?” 바로 코앞에서 아이템이 증발한 것이었다. 무슨 물도 아니고 아이템이 증발하다니, 이런 어이없는 상황은 살다 살다 처음이었다. “끼이익…….” 그리고 나의 왼쪽에서 들려온 소리, 나는 고개를 살며시 돌렸다. 그러자 거기에는 아까 오우거와의 전투를 지켜보던 정체불명의 동물이 나를 비웃듯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손에는 나의 목걸이와 스킬북이 들려 있었다. “너, 너 무슨 짓을!” “끼이이익!” 바로 그 순간, 그 동물이 달렸다. 아니, 사라졌다. 나의 시력으로도 아주 희미하게 보일 정도로 빠르게 그놈은 도망가기 싲가했다. “예화, 추격 마법!” “아, 알았어요.” 나의 말에 예화는 다급하게 도망가는 그 이상한 괴물을 향해 추격 마법을 걸었다. 장난 아닌 속도로 이동을 하고 있었기에 예비 차원이었다. 그리고 난 곧바로 피티언을 향해 말했다. “피티언!” “네!” “저 새끼 잡아!” “알겠습니다.” 나도 그 말과 함께 뛰쳐나갔다. 어디서 개떡 같은 놈이 나의 소중한 아이템을 스킬하다니! 이건 나에 대한 도전이었다. 감히 나의 아이템을! 잡히기만 하면 먹어(?) 버릴 테다! 그렇게 난 피티언과 함께 그 괴이한 동물을 열심히 쫓아갔지만 그 동물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어, 어라?” 너무나도 빠른 스피드였다. 그 괴상한 동물이 나를 아주 가볍게 따돌려 버린 것이었다. “허어억! 오빠, 저건 설마…… 미리스 스피드?” “미리스 스피드?” 예화는 달려왔는지 힘들게 숨을 몰아쉬었고, 잠시 후 나에게 설명을 해 주기 시작했다. “저것도 자이언트 오우거와 같이 희귀 동물이에요. 자이언트 오우거가 엄청난 공격력을 바탕으로 한다면 미리스 스피드는 엄청난 스피드를 바탕으로 해요. 아니, 스피드밖에 없어요. 공격도 아예 없고 방어력도 없어요. 그 대신 남의 아이템을 가로채는 선수예요. 그리고 무엇보다 지능도 인간보다 훨씬 높다고 평가되고 있어요. 오빠에게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미리스 스피드에게 아이템을 스틸당하면 절대 못 찾아요. 그 누구도요.” “크크크크! 하하하하하!” “오, 오빠?” 난 조심스럽게 부르는 예화를 아주 싱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았다. 그런데 예화는 그런 나를 보고 움찔했다. 왜 그러는 거지? 난 지극히 평범한 모습인데? “좋아, 좋아. 나를 향한 도전이다, 이거지? 크크크크!” “오, 오빠! 눈이…… 뒤집혔어요.” “눈이 뒤집혀? 난 정상이야, 정상이라고. 피티언!” “네.” 난 웃음을 멈춘 채 진지한 표정을 짓던 피티언에게 말했다. “저놈 포동포동한 게 맛있겠던데, 오랜만에 육식으로 포식할까?” “포, 포식이요? 고, 고기?” “그래, 고기다. 광란의 파티야. 크하하하하!” 몬스터라고 했지만 나에게는 소용이 없었다. 꼭 잡아서 아이템을 도로 찾고 지글지글 구워 아주 맛있게 씹어 먹을 것이다. 지금 그것이 나의 목표였다. 나를 건들면 몬스터든 인간이든 다 쓸어버릴 것이다. 나의 10대 신조 중 한 가지였다. 나머지 9대 신조는 아직 생각 중. 그렇게 일주일의 시간이 흘렀다. 난 저놈을 잡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했다. 거의 인간이기를 거부했다. 그래서 지금 피티언과 난 그놈을 잡기 위해 정말 맛없고 눈물 젖은 빵으로 일주일 동안 식사를 하면서 잡으러 다녔다. 하지만 이제는 놓치지 않는다. “좋았어. 움직여!” “예, 마스터!” 난 너무 지쳐서 눈을 서서히 감는 그 몬스터를 보고 싱그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제 끝이다. 이 지긋지긋한 싸움은 끝이었다. 일주일 동안 저놈을 잡기 위해 고생했던 생각을 하니 감동적이었다. 츠르륵! 나는 그물을 활짝 펼쳤다. 그리고 그물을 들고 살금살금 몬스터에게 다가갔다. 전에도 이 방법을 썼지만 저놈의 청각이 장난이 아니었는지 눈을 번쩍 뜨면서 도망간 적이 있었다. 그때 저놈이 갑작스럽게 눈을 뜨는 바람에 난 너무나도 놀라서 심장마비까지 걸릴 뻔했었다. 살금살금. 난 만반의 준비를 거친 뒤 살며시 그 도둑 몬스터에게 다가갔다. 그 몬스터는 깊은 잠에 빠졌는지 아주 잘 쳐 작 있었다. 그래그래, 어서 자렴. 평생 잠들게 해 주마. 크크크! 그렇게 한 10미터 정도 거리가 남았고, 난 그 순간 있는 힘껏 스피드를 끌어올렸다. 그리고 빛의 속도로 그물을 몬스터에게 감았다. “으아악! 살려 줘!” “어, 어라? 말을 하네?” 내가 그물을 치자 그 몬스터는 인간의 말을 내뱉었다. 그것도 정확하게 ‘살려 줘!’ 라는 말을……. 몬스터가 인간의 말을 하다니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신기함보다는 나의 복수를 하는 게 더욱더 중요했다. “크크크! 끝났어. 어떻게 분해해 줄까?” “사, 살려 주세요. 저, 절대 다신 안 그럴게요.” “마스터, 잡으셨습니까?” “오빠, 괜찮으세요?” “그래!” 나의 모습에 그 미리스 스피드는 눈물을 흘리면서 나에게 애걸했고, 저 멀리서 밝은 미소와 함께 피티언이 침을 뚝뚝 흘리면서 달려왔다. “사, 살려 주세요! 용서해 주세요.” “흐아악! 어떻게 먹으면 맛있을까?” 그놈은 나에게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동정심 유발 작전을 일으켰지만, 거기에 넘어갈 내가 아니었다. 물론 너무너무 귀여워서 다른 사람이라면 넘어가겠지만, 나하고는 거리가 먼 단어였다. “까악! 귀여워! 가까이서 보니까 정말 귀여워.” “와, 가까이서 보니까 더 맛있어 보인다.” 어느새 미리스 스피드에게 달려온 예화와 피티언의 아름다운 대화였다. 예화는 너무나도 깜찍한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원래 남자보다 여자가 귀여운 걸 더 좋아하니까. 물론 남자라도 안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상대적으로는 그렇다는 거였다. 그만큼 이 미리스 스피드라는 몬스터의 깜찍함은 절대적이었다. 그에 반해 예화가 귀엽다고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을 때 피티언이 침을 꿀꺽 삼키면서 말했다. “허억! 허억! 살이 보들보들……. 꿀꺽…….” 피티언은 먹을 생각에 흥분하기 시작했고, 그 말을 듣던 예화는 공포가 가득찬 눈빛으로 피티언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이렇게 귀여운 동물을 보고 군침을 흘릴 수 있어요?’ 라는 눈빛까지 내포한 채……. 하지만 피티언은 전혀 상관없는 듯했다. 하지만 피티언과 나는 달랐다. 나는 이미지를 관리해야 하는 청렴한(?) 청년이었기에 슬쩍 빠지면서 피티언에게 모든 걸 양도했다. “피티언, 알아서 처리해. 물론 신체검사해서 아이템하고 스킬북은 잘 빼고.” “알겠습니다, 마스터.”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예화의 손목을 살며시 잡았다. “예화야, 공과 사는 구분해야 한단다.” “그, 그래도 너무 귀여운데 먹다니요…….” “오, 노! 저게 바로 몬스터의 수법이란다. 참고로 난 피티언과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으니, 걱정 마.” “…….” 난 그렇게 절대 야만적이지 않다는 뉘앙스를 풍겼고, 몸을 움찔거리면서 몬스터를 보는 예화를 조심스럽게 이끌고 사라졌다. 예화는 그 귀여운 동물을 보고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듯했지만……. 그렇게 내가 예화를 끌고 갔고, 시력 좋은 내 눈에는 저 멀리서 침을 뚝뚝 흘리면서 단검을 돌에 박박 갈고 있는 피티언이 보였다. 그 모습은 한마디로 공포였다. 보는 것도 저렇게 무서운데 실제로 당하고 있는 몬스터는 완전 초죽음일 것이었다. “사, 살려 줘! 뭐든지 할 테니 제발 살려 주세요!” “뭐든지?” 바로 그 순간 들려온 혼신을 다한 미리스 스피드의 절규, 그 절규와 함께 나의 머릿속으로 지나가는 엄청난 아이디어……. “그렇단 말이지! 피티언, 스톱!” “…….” 피티언은 단검으로 가죽을 벗기려는 도중 나의 외침에 손을 멈췄다. 나는 엄청난 속도로 예화를 끌고 다시 돌아갔다. “그래, 모든 걸 들어준다고?” “무, 물론이에요, 살려만 주신다면…….” “그래? 좋아. 일단 내 아이템하고 네가 스틸한 아이템 벹어 봐.” “밧줄부터 풀어 주셔야…….” 난 그 말에 미리스 스피드의 몸을 한 손으로 꽉 잡은 다음 밧줄을 풀어 주었다. 도망갈 확률이 있었기에 예비 차원이었다. 내가 그렇게 밧줄을 풀어 주자, 그놈은 자신의 몸을 뒤적거리더니 그때 본 목걸이와 스킬북, 그리고 처음 보는 스킬북 2개와 반지, 정체불명의 지도를 던졌다. “이게 다야?” “무, 물론이에요?” “뒤져서 나오면?” “…….” 그 말에 그놈은 다시 한 번 몸을 뒤지더니 애처로운 눈빛으로 스킬북을 하나 던졌다. “이게 전부 다야?” “이, 이게 전부 다예요. 믿어 주세요.” “정말 다야?” “미, 믿어 주세요.” 난 그놈이 너무나도 애처롭게 말해서 한번 믿어 보기로했다. “그래, 믿어 주지. 그리고 이제 받을 건 다 받았으니, 아까 말한 거 있지? 뭐든지 한다는 말?” 끄덕끄덕. 난 살기 위해 맹렬히 고개를 끄덕이는 그놈을 보면서 자그마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좋은 장비 아이템을 가져오렴.” “그, 그런…….” 나의 말에 머뭇거리는 이상한 몬스터. 난 그런 몬스터를 향해 피티언이 갈던 단검을 화려하게 돌리면서 말했다. “한 달 기회를 주겠다. 알지? 최고급 아니면 죽어! 왜, 하기 싫어?” “아, 아닙니다!” 나의 모습에 미리스 스피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아주 활발하게 대답했고, 난 혹시 딴마음을 먹을까 봐 다시 한 번 주의를 줬다. “만약에 말이야…… 도망가면 알지?” 내가 단검으로 옆에 있던 나무를 팍팍 찍어 내리면서 말하자 그걸 본 미리스 스피드는 마른침을 삼기면서 말했다. “다, 당연합니다.” “우리에게는 역추적 마법이 있으니, 다시 한 번 뇌리에 기억하고. 한 달이다, 한 달.” “네엡!” 그놈은 아주 충성스럽게 말했고, 난 그 말을 듣자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이제 한 달만 지나면 아주 대박 아이템이 공짜로 들어올 것이었다. “자, 그럼 가렴! 좋은 물건만 받는단다. 알지? 좋은 물건이다, 좋은 물건!” “네엡!” 나의 말과 함께 미리스 스피드는 슬금슬금 사라졌다. 물론 저놈이 도망갈 수도 있지만, 나는 믿었다. 그리고 만약에 도망가더라도 피티언의 먹이로 주면 끝이었다. 한편 달려가던 미리스 스피드는 눈물을 흘리면서 생각했다. ‘저 사악한 인간에게서 도망은 못 가. 나의 예의한 감각이 말하고 있다. 내가 살길은 한 달 안에 최고로 좋은 아이템을 스틸해서 갖다 주는 방법뿐……. 난 살고 싶단 말이야!’ 그 이상한 몬스터가 사라지자, 그 몬스터가 던진 아이템을 얼른 펼쳐 보았다. 원래 내 것은 두 개였는데 순식간에 여섯 개로 늘어난 것이었다. 이게 바로 사자성어로 표현하면 ‘대박행진(아니면 말고)’ 이었다. -마나의 목걸이- 마나 최대치를 5% 늘려 준다. -피의 반지- 피를 2,000 더해 준다. 그렇게까지 좋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쓸 만은 한 것 같았다. 원래 액세서리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중첩 사용이 가능하기에……. 가상현실 게임은 반지나 목걸이를 한 개밖에 착용하지 못한다고 하지만 이 게임은 아니었다. 실제 지향적 게임, 그러므로 반지나 목걸이도 여러 개를 사용할 수 있었다. 물론 액세서리류는 구하기가 제일 어렵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러니 난 은근히 운이 좋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난 대충 반지와 목걸이를 얼른 착용했고 잠시 후 스킬북 세 가지를 살펴보았다. -소드 리액트- 검의 엄청난 힘을 담는다. 이때 마나 소모량은 자신에게 있는 마나를 기준으로 30%를 끌어 쓴다. 마나가 많으면 많을수록 공격력은 증폭된다. 최소 공격력: 3,000+(?)-마나에 대한 데미지- -아수라 스트라이트- 자신의 피와 마나를 폭발시킨다. 피와 마나의 폭발을 기준으로 힘과 스피드를 올려 준다. 소모량: 체력 8,000 마나 8,000 공격력 상승 5,000. 스피드 상승30%. 5분 동안 유지된다. 이, 이리 좋은 기술이라니……. 나도 모르게 감격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기술이 격투가 전용이라는 것이었다. “쳇!” 지금 당장은 사용 불가능한 기술이지만 내가 너클을 소환해서 격투기까지 넓힌다면 사용이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니 어서 나머지 무기들도 찾고 속성도 찾고 나머지 소환수들도……. 할 일이 바글바글했다. 그리고 나는 마지막 남은 스킬북을 열었다. -???- 나머지 스킬북을 구해서 합치면 나타날 것이다. 내 속에서 나타나는 고요한 침묵. 이건 뭐란 말인가! 스킬북을 합치라는 이런 어이없는 스킬북은 생전 처음이었다. 스킬북을 두 개 들어서 합치면 되는 건가? 그러면 마구 빛을 내면서 한 개의 스킬북이 되는 건가? “…….” “왜 그러세요?” “아니, 스킬북 하나가 나머지 스킬북을 찾아야 된다고 하기에…….” “서, 설마 신급 스킬북?” “신급 스킬북?” 난 예화의 말에 깜짝 놀랐다. 신급 스킬북, 그게 뭔지는 몰랐지만 신급이라고 붙었기에 일단 놀라는 척했다. “신급 스킬북, 스킬북이 두 가지가 합쳐져야 나타나는 최고위급 스킬북이에요. 저도 자세한 거는 몰라요. 아직 나온 적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대충 들리는 소문으로 그 스킬북은 상상 초월이라고…….” 난 그 말에 따라 내 손에 들려 있는 스킬북을 지그시 노려보았다. 그런 다음 아이템 창에 넣으면서 말했다. “찾는 거다! 무슨 일이 있어도 찾는 거야!” 난 엄청난 의지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이런 소리까지 들었는데 안 찾으면 내가 용서가 안 된다. 꼭 찾아서 신급 스킬을 쓰고 말겠다는 나의 강렬한 의지였다. “이제 이거 하나 남았나?” 나는 별로 중요해 보이지도 않는 종이 쪼가리를 열심히 훑어보았다. 너무나도 낡고 찢어진 종이, 역시나 볼 것은 별로 없는 듯했다. “이건 뭐야?” 그때 나의 눈 속으로 들어온 글자들, 거기에는 아주 친절하게 적혀 있었다. 웨폰인첸트 6대 소환수 케미리 6대 소환수? 웨폰인첸트? 나는 그 말을 종합적으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나는 결론을 냈다. 이 지도에 의하면 6대 소환수 중 케미리라는 소환수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게 분명했다. 나도 모르게 느껴지는 기대감, 너무너무 기대되었다. 바로 그때 갑작스럽게 조용해진 피티언. 난 갑작스럽게 피티언이 조용해지자, 과거(육포 사건)가 의심이 되기 시작했다. 난 그때의 분노를 아직도 잊을 수 없다. “피티언?” 난 살며시 이름을 부르면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영양실조로 쓰러진 피티언의 모습이 보였다. “야! 야!” 난 다급하게 피티언을 향해 달려갔다. 예화도 다른 쪽을 보고 있었고 나는 스킬북에 정신이 팔려서 못 봤기에, 우리는 피티언이 쓰러진 것도 모르고 있었다. 난 그런 피티언의 몸을 마구 흔들면서 다급하게 말했다. “이마, 죽지 마!” “밥…… 주세요. 그, 그리고 한 가지 부, 부탁을…….” “마, 말해. 들어줄게!” “세, 세계 정복…….” 꽈앙! “으아악!” 난 그대로 그놈을 놓았다. 그러자 그놈은 바닥에 머리를 박으면서 거대한 비명을 질렀다. 저놈이 방금 한 행동은 100% 꾀병이었다. 세계 정복이라는 말만 뺐어도 완전히 속아 넘어갔겠지만 그 한마디에 난 저놈이 꾀병이라는 걸 단숨에 눈치 챘다. “수고해라. 예화야, 가자.” “자, 잠시…… 마, 마스터! 저는 죽을지도……. 정말 죽을 것 같아요.” “잘 죽어.” “…….” 나의 말에 피티언은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터벅터벅 걸어왔고, 그렇게 우리는 지도에 표시된 세 번째 소환수가 있다는 곳으로 향했다. 한편 민혁이가 사라지고 이내 그 자리에 개 한 마리가 나타났다. 그 개는 얼굴에 선글라스를 꼈고, 손에는 조금은 커 보이는 와이어를 든 채 개폼을 잡고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완전 강행군으로 움직였다. 뭐, 강행군이라고 하지만 마땅히 쉴 데가 없어서 그런 거였지만. 그렇게 피티언과 예화, 나는 열심히 걷고 걸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이 그림, 누가 그렸어? 드럽게 못 그렸네.” “맞습니다. 정말 이런 게 그림이라니…….” 일단 지도는 지도인데 낙서인지 지도인지 약간 구분이 안갈 정도였다. 피티언이 동의하는 걸 보니 내 눈이 잘못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지도와 나의 감으로 길을 찾고 있었다. 이 지도만으로는 찾기가 힘들어 보였다. 바로 그 순간 나의 눈에 이상한 산적 여섯 명이 보였다. “어이, 좋은데? 너 돈 좀 있어 보이는데? 오호! 여자는 내 취향이야. 마음에 들어.” “…….” 난 내 앞에서 얼쩡거리는 산적들을 보고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이게 어딜 봐서 돈이 있어 보이는 건지 저놈들의 눈을 해부해 보고 싶었다. 예화를 제외한 피티언과 나는 거지모습 그대로였다. 씻고 싶었지만 마을에 들어가기가 너무 힘들었다. 마을을 찾기도 힘들뿐더러 열심히 보초를 서는 경비병들 때문이었다. “가진 거 내놔, 좋은 말 할 때.” 지끈지끈. 그 말을 들은 난 왠지 모르게 머리가 아파 왔다. 난 왜 이리 거지 같은 것들만 달라붙는 건지, 대꾸할 기운도 없었다. “저, 저…… 형님, 저 인간들은…….” “왜 그래, 긴디?” “그, 그게 악질무도 일행 같습니다.” 그러면서 나에게 말을 걸던 남자에게 포스터 한 장을 내 밀었고, 그 두목으로 보이는 남자는 포스터와 나의 얼굴을 번갈아 보더니, 잠시 후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악! 도, 도망가!” “두, 두목! 왜요?” “일단 도망가고 봐!” 후다닥! 그 말을 끝으로 산적 여섯 명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난 그들 일행을 보고 도대체 무엇을 봤기에 저러는 건지 심히 궁금했다. 그래서 난 그 두목이 보던 포스터를 펼쳤고, 몸이 굳어져 버렸다. 악질무도 살인마. 아름다운 미소녀 납치 중. 흉악 범죄자. “…….” “와! 제 그림이 있군요. 잘 그렸는데요?” 나의 반응과는 다르게 피티언은 현상 수배자에 자신의 그림이 있는 걸 보고 무척이나 좋아했고, 난 내 뒤에서 얌전히 있는 예화를 향해 말했다. “고맙다. 너라도 정상적이라서.” “네?” 나는 반문하는 예화를 아주 찐하게 바라보았다. 진심으로 고맙다는 마음을 담아서……. 하지만 나의 눈빛을 받은 예화는 이상하게 얼굴이 붉어졌고,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예화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괜찮아?” “괘, 괜찮아요.” “으하하함! 잘 잤다. 마스터, 오랜만이다.” “…….” 예화와 내가 이야기를 하는 도중 갑작스럽게 나타난 테피언. 내가 부를 때는 더럽게 안 나오더니 무슨 마음이 들었는지 갑작스럽게 나타났다. “허억! 아름다운 아가씨군요. 저는 정의의(?) 기사 테피언이라고 합니다.” “아, 안녕하세요. 그런데 갑자기 어디서…….” “아름다운 아가씨를 보려고 저 하늘에서 떨어졌습니다.” “…….” 그 말을 끝으로 테피언은 온갖 느끼한 말과 칭찬으로 예화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새로운 모습, 한마디로 여자를 밝힌다는 소리였다. 그렇게 5분이 지나도록 예화가 무안해서 고개를 못 들 정도로 테피언의 칭찬은 이어졌고, 난 테피언을 향해 뚱한 어조로 말했다. “너 들어갈 시간 된 것 같은데? “마스터, 나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마스터가 강해져서 이제 10일 풀로 돌아다녀도 될 것 같다. 크하하하!” “…….” 내 주변에는 왜 정상적인 인간은 없는 건지……. 나중에 소환수들이 모이면 더욱더 개판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드는 건 내 착각일 뿐이기를 빌었다. 그것도 잠시, 난 그런 기분을 날려 버렸다. 일단 하는 행동 자체는 엽기였지만, 그들의 힘과 마스터를 향한 충성심은 나름대로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그 데스 길드인가를 날리기 우해서는 6대 소환수들의 힘이 필요했다. 나를 현상 수배를 걸어 넣고 신나게 웃을 놈들의 모습이 떠오르자,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이래서 힘과 권력, 돈 있는 자가 좋다는 것 같았다. 나는 정말 순수하게 정당방위였다. 나를 공격하는데 ‘그냥 죽을게요.’ 이러면서 죽을 수는 엇었으니, 당연히 난 반격을 했다. 그 반경 도중 아주 살짝 인명 피해가 나타나기는 했지만……. 그 일이 있은 후, 악명이 높던 데스 길드는 쏙 빠져나갔고 나쁜 것은 내가 다 뒤집어쓴 것이었다. 물론 데스 길드의 악명상 유저들은 나를 믿어 주겠지만, 믿어주는 유저와 비례해 나를 신고하거나 잡아서 현상금 받아먹으려는 유저들도 있을 것이었다. 상관은 없다. 나를 신고하면 확 피케이를 해 버릴 테니. “천사 같은 그대의 미모에 저는 경악을…….” 퍼억! “크아악!” 난 아직까지도 작업의 정석에 들어가고 있는 테피언의 머리를 가격했고, 테피언은 비명을 질렀다. 옆에서 듣는 내가 온몸에 닭살이 돋을 정도였으니 아무런 말도 못하고 듣는 예화의 기분이 대충 짐작이 갔다. 평소에는 저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반지에 들어가서 잠만 자다보니 머리에 살짝 이상이 온 것 같았다. “왜 때려!” “네가 재수 없어서.” “후훗! 두려운 건가, 여자를 뺏길까 봐? 하지만 남자를 선택할 권리는 저 아름다운 숙녀에게 있다는 사실을 알아 두었으면 한다.” “야, 피티언!” “네에?” 나의 말에 피티언은 어벙하게 말했고, 난 테피언의 몸을 순식간에 붙잡으면서 외쳤다. “이놈 묻어.” 잠시 후……. 테피언은 바닥에 묻힌 채 얼굴만 내민 상태였다. 현장에는 테피언의 격렬한 반항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내가 처음에 자기를 묻으려 하자, 그놈은 검까지 뽑아 들면서 설쳐 댔다. 하지만 나는 옛날의 내가 아니었다. 당연히 나의 승리였고, 피티언의 협조로 테피언을 바닥에 쉽게 묻어 버릴 수 있었다. “네가 이러고도 마스터야? 마스터면 마스터답게!” “네가 언제부터 마스터를 찾았니? 누가 들으면 내가 나쁜 놈인 줄 알겠다.” “사악한 놈! 악마! 마족! 괴물…….” “입 막아.” 입으로도 열심히 시끄럽게 굴자 피티언에게 명령했고, 피티언은 나의 말에 따라 천 쪼가리를 들고 와서 테피언의 입을 묶었다. 그리고 테피언에게 속삭였다. “마스터의 명령이니 어쩔 수 없다고. 이해해 달라고…….” “으으으읍!” 당연히 입이 막힌 테피언은 으읍 소리만 외쳐 댔고, 약간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 예화와 피티언을 데리고 가던 길을 가기 시작했다. “으으으으읍!” 테피언이 열심히 비명을 질렀지만 나는 무시하고 가던 길을 계속 갔다. “앗! 오빠, 마을이에요.” “마을?” 난 예화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눈을 돌렸다. 그러자 거기에는 크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있을 건 다 있어 보이는 마을이 떡하니 있었다. “아자!” 난 마을의 발견에 감격했다. 산속 마을이기에 아직 현상수배 전단은 안 붙었을 가망성이 농후했다. 그렇다면 드디어 마을에서 재정비가 가능하다는 소리! “마, 마스터! 우리 이번에야 드디어 제대로 된 식사를…….” “그래. 드디어…… 제대로 식사를 하겠구나. 크하하하!” “얼른 가요.” 항상 침착해 보이던 예화까지도 들뜬 기분인 듯싶었다. 그만큼 우리는 마을이라는 곳에 목말라 하던 참이었다. 이참에 가서 로브랑 음식을 잔뜩 사고 옷도 하나씩 구입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돈이 없네.” 바로 그 순간 나의 뇌리 속으로 지나가는 한 단어, 돈. 이 스킬북과 아이템들만 팔아도 재벌이 되겠지만 절대 팔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내가 먹은 것들은 엄청나게 비싼 것, 그렇지만 다 나에게 필요한 것이었다. 강해지기 위해서는 절대 내놓을 수 없는 나의 보물들이었다. 물론 현실에서도 돈이 많이 필요하지만, 일단은 그냥 먹고살 정도로 잡템만 처리할 예정이었다. 원래는 이 게임에 반해서 했지만, 그리고 부가적인 효과로 돈을 벌 목적도 있었지만 데스 길드라는 이상한 또라이 집단이 나에게 한 행동이 열 받아서, 데스 길드 박살이라는 부업(?) 활동도 나의 목표에 첨가했다. “저도 돈이 없는데…….” “저도 돈이 없습니다.” 나의 말에 예화와 피티언이 말했고 난 그 말에 좌절했다. 왜 이리 가난하단 말인가. 차라리 돈을 주는 일이라면……. “그렇군!” 번쩍 떠오르는 아이디어, 저런 마을이라면 분명 개인 퀘스트가 있을 게 분명했다. 개인 퀘스트, 일정 NPC들의 실질적인 퀘스트였다. 인공지능이 뛰어난 NPC들이었기에 인간과 같은 생활을 했다. 그런 만큼 때로는 곤란한 상황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그 곤란한 상황을 해결해 주고 사례를 받는 것이다. “마스터, 혹시 좋은 생각이라도?” 피티언은 기대 어린 어조로 말했고, 난 그 말에 밝게 미소 지으면서 말했다. “우리에겐 튼튼한 몸과 싸움 기술이 있잖니?”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그게 있습니다.” “그럼 말 다 한 거 아니니?” 아무리 고되고 힘들어도 우리에게는 최강의 싸움 기술들이 있었다. 게임한 지 꽤 되었어도 이 모양 이 꼴이었지만, 우리에게는 최강의 전투법이 있었다. 레벨은 낮았지만 최소 못해도 420은 넘을 터였다. 자이언트 오우거의 레벨이 420대였으니 말이다. 공식 랭킹 레벨이 500대 후반이라고 했으니, 공식 랭킹 1위랑 싸워도 뭐 확실하게 모르는 일이었다. 자이언트 오우거를 죽일 때 그렇게 힘들다는 느낌은 받지 않았으니, 물론 방어력 하나는 칭찬해 주겠지만 다른 건, 글쎄? 그렇게 난 잠시의 생각을 끝내고 피티언과 예화를 이끌고 마을로 향했다. 유저들의 방문이 없는 마을인 것 같았다. 이런 산골짜기 마을에 유저가 할 짓 없이 싸돌아다니는 게 이상하겠지만, 우리는 엄연히 그 정체불명의 도둑 몬스터를 잡는다고 방황하다가 이쪽으로 온 것이었다. 그나저나 그놈은 열심히 스킬하고 있나 궁금했다. 예화의 말에 따르면 열심히 돌아다니기는 한다는데 난 무지무지 기대하고 있었다. 만약에 좋은 거 안 가져오면 미래를 보장 못할 것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바로 그때 문을 지키고 있던 2명의 청년이 반갑다는 듯 우리를 향해 인사했다. 원래 이런 마을일수록 두 가지 부류가 있었다. 의지인들을 지금처럼 반기는 부류와 경계하는 부류, 이 마을은 첫 번째 부류인 것 같았다. “저기 마스터, 근데 테피언이 조금 늦습니다. 금방 빠져나올 줄 알았는데…….” “아, 걱정 마. 나오려면 시간 좀 걸릴 거야.” 난 그 말과 함께 음침하게 웃었다. 한편 땅속에 묻힌 테피언은 절규했다. “무, 무슨 짓을 한 거야! 왜 못 나가냔 말이야!” 테피언은 민혁이가 사라지자 간단히 자신의 기운을 폭발하면서 빠져나오려고 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으니, 이상하게 기운을 전혀 끌어올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 인간, 무슨 짓거리를 한 거야!” 테피언의 생각은 간단했다. 자신의 힘을 끌어올릴 수 없는 이유는 자신을 이렇게 묻어 버린 민혁이가 원인이라는 사실. 그거 말고는 떠오르는 게 없었다. “어라? 이건 뭐야?” “무슨 음침하게스리 투구를 끼고 땅에 묻혔냐?” “웬 코미디 연극 지망생?” 바로 그 순간, 방금 전 민혁이를 보고 도망갔던 산적들은 투구만 남기고 묻혀 있는 테피언을 보더니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그리고 서서히 테피언에게 다가오더니 테피언의 투구를 툭툭 쳤다. 통통! “오! 신기하다.” “나를 건들다니, 죽고 싶은가?” “우아~ 무서워! 나 좀 죽여 줘! 키키!” 산적들은 땅속에서 투구만 내밀고 있는 테피언을 만만하게 봤는지 계속해서 시비를 걸었다. 테피언은 혈압이 높아져서 죽어 버릴 거 같았다. 당장이라도 한 칼에 죽여 버리고 싶었지만 지금 자신은 아무것도 못하는 상태였다. 통통! “재밌다.” “그래? 나도…….” 통통……. 그들은 테피언의 투구가 무슨 장난감인 줄 알고 계속해서 퉁퉁거렸고, 테피언은 절망적인 어졸 외쳤다. “이 잔인한 인간 놈!” “누가 나 부르나?” 난 안내를 받다가 갑자기 귀가 간지러워 귀를 후볐다. 누가 꼭 나를 욕하는 느낌, 이런 느낌은 생전 처음(?)이었다. 그렇게 귀를 후비고 있는데 70살 정도 되어 보이는 할아버지가 천천히 걸어 나오더니 나에게 말을 걸었다. “어허! 반갑군. 나는 이 마을의 촌장인 데미진이라고 하네.” “반갑습니다.” 나는 데미진이라는 할아버지를 향해 정중하게 인사했다. 일단 퀘스트를 받으려면 좀 믿음직스러워 보여야 한다. 인공 지능이 너무나도 뛰어난 까닭에 행패를 부리거나 자신에게 해가 될 존재에게는 퀘스트도 주지 않았다. “험험! 외지 사람은 처음이구먼, 반갑네.” “저도 반갑습니다, 그나저나…….” “으응? 왜 그러나?” 난 단도직입적으로 물으려고 했다. 시간을 질질 끄는 것 보다는 빨리 끝내는 게 편하게 때문이었다. “필요한 물건이 좀 있는데 돈이 없군요. 그래서 말씀드리는데, 저희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요? 특히 전투는 무지무지하게 자신 있습니다.” “흐음…….” 촌장은 본론부터 말하는 나를 향해 약간은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나를 촌장 할아버지는 잠시지만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헛기침을 한 번 하고 말했다. “허험! 그렇다면 자네에게 부탁할 일이 있다네.” “무엇인가요? 전투?” “아, 아니……. 이 마을에서 전투는…….” 난 몬스터라도 잡으라는 말을 기대했지만 전혀 다른 방향인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해 전투를 제외하고 자신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게임 접속한 지 몇 달이 지났지만 그동안 한 것은 전투, 전투, 전투……. 물론 인간으로서 어떻게 전투만하고 살 수 있나 싶지만 내 주변 상황이 자꾸 그렇게 흘러가니 문제였다. 뭐, 이번 기회에 전투 말고 다른 일을 해 보는 것도 괜찮기는 할 듯했다. “그럼 어떤 일인가요? 이왕이면 돈 좀 많이 주는 걸로…….” “알겠네. 꽤 힘든가 보군. 나를 따라오게.” 촌장 할아버지는 우리 일행을 데리고 어느 한 곳으로 데려갔다. 우리들이 움직이자 외지인을 처음 보는 마을 사람들은 신기하다는 듯 우리들을 바라보았다. 특히 어린아이들은 궁금증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왜 같은 인간인데 저러는 건지 약간 이해가 안 갔지만(거지꼴이어서 그런 것일 수도) 우리들, 그러니까 정확히 피티언과 나를 주시했다. 물론 남자라는 종족들은 어른이든 꼬마아이든 눈이 있는지 예화를 향해 침을 줄줄 흘리면서 쳐다보고 있었고 말이다. “자, 여기네.” 그렇게 잠시의 시간이 지나고 촌장은 우리를 한적한 밭으로 이끌고 왔다. 그 밭은 총 1,000평쯤 되어 보이는 엄청난 넓이였다. “여기는 왜 데려오신 겁니까?” “자네가 말한 돈을 많이 주는 일이라네. 여기 밭에 있는 무를 뽑아 주게.” - 퀘스트 S급 - 무 뽑기. 1,000평 상당에 꽂혀 있는 무를 뽑는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나의 머리 위로 뜨는 메시지, 한마디로 어이가 없다 못해 황당했다. 이건 분명 잘못된 게 분명했다. 무 뽑기가 S급이라니! 게임이 미쳤거나 퀘스트 정보가 잘못 들어간 게 분명했다. 퀘스트 등급은 SS급, S급, A급, B급, C급, D급 이렇게 총 6가지로 나누어진다. C급이나 D급 같은 경우는 나름대로 평범한 퀘스트였고, B급이나 A급 같은 경우는 상당히 힘든 퀘스트였다. 그런데 S급이라니, S급이라는 단어가 무 뽑기에 사용되다니, 잘못된 게 분명했다. “아, 그리고 자네에게 한 가지 말하지 않은 게 있는데 기왕이면 사흘 안에 해 주게. 그럼 부탁하네.” “…….” 촌장 할아버지는 그 커다란 밭에 피티언과 예화, 나 이렇게 세 명만을 놔둔 채 홀홀히 사라졌다. “마스터, 넓은데요?” “그래, 넓구나.” 나의 눈에 펼쳐진 엄청난 크기의 밭, 한마디로 지지리도 커 보였다 그렇지만 걱정은 없었다. 고작 무 뽑기에 굴복할 내가 아니었다. 힘과 스피드가 남아도는 나로서는 이 정도야 기본이었다. “피티언, 준비해라.” “마스터, 하실 건가요?” “뭐 그렇게까지 어렵지도 않은 것 같고 S급이니, 보상을 한번 기대해 볼 만하지.” 난 그렇게 말하면서 소매를 걷어붙였다. 나의 모습을 본 피티언도 따라 했고, 예화도 로브를 말아 올리려 하고 있었다. “예화야, 너는 푹 쉬어. 마법사는 원래 체력도 없고, 우리 두 명이면 충분하단다.” “그래도 저만…….” “아, 괜찮다니까. 푹 쉬어.” 나는 그렇게 예화를 무 뽑기에서 제외시켰다. 마법사이다 보니 이런 노동 작업은 어울리지 않았다. 그리고 여자를 이런 데에 투입하는 것도 난감했다. 남자 마법사라면 부려먹겠지만……. 그렇게 우리는 만반의 태세를 갖춘 후 나의 지시에 따라 무 뽑기에 들어갔다. 5시간 후. “허억, 허억!” “마, 마스터! 히, 힘들어 죽겠습니다.” “말 걸지 마, 임마.” 죽을 것 같았다. 무 뽑기 5시간을 해 본 결과, 난 이게 왜 S급 퀘스트인지 절실하게 느꼈다. 몬스터를 때려잡는 것보다 수십 배는 힘들었다. 엄청난 지구력과 힘, 스피드 이 3박자가 갖춰져야만 해낼 수 있는 퀘스트였다. 갖은 고생을 다한 피티언과 나만 가능하지, 다른 사람들이면 절대 불가능했다. 그렇지만 분명 성과는 있었다. 절반이 사라지는 엄청난 쾌거! 무는 한쪽에 쌓여서 탑을 이룰 지경이었다. 그리고 한동안 안 올라가던 근력과 민첩성, 체력이 오르는 느낌. 물론 힘은 쭉쭉 빠졌지만 분명 근력과 민첩성이 올라가는 것은 확실하게 느껴졌다. “식사하세요!” 그때 저 멀리서 새로운 로브를 입고 깔끔하게 차려입은 예화가 음식을 들고 왔다. 우리는 뽑던 무를 내팽개치면서 달려 나갔다. “밥이다!” “밥입니다!” 나와 피티언은 감격의 눈물을 쏟아 내면서 달려갔다. 그리고 예화가 들고 온 음식을 히죽히죽 웃으면서 바라보다가 표정이 굳어졌다. “이거 무잖아?” “고기 없어?” 나와 피티언의 무감각한 말투에 예화는 약간 당황하면서 말했다. “이것만 주시던데요.” “이렇게 생 노가다를 시키고…… 야채만?” “마스터, 밭을 날려 버릴까요?” 난 피티언의 말에 무심코 고개를 끄덕일 뻔했지만, 다급히 마음을 다스릴 수 있었다. 지금 날리면 이때까지의 공이 무너지고, 나같이 착한 사람이 정말 악당이 되어 버릴 수가 있었다. “허허! 미안하네. 고기를 빼먹었군.” 그때 저 멀리서 촌장 할아버지가 고기 한 접시를 들고 왔고, 그 순간 내 몸이 흐릿해졌다. “고맙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허어억! 어, 언제…….” 내가 생각해도 방금 전의 움직임은 광속이었다. 거의 내 몸이 순간 이동했으니……. 무 뽑기로 인해 스피드가 좀 더 빨라진 까닭이었다. “그럼…….” 난 그렇게 말한 뒤 또다시 빛의 속도로 제자리로 돌아가 고기를 바닥에 놔두었다. “고기!” 피티언은 신기에 가까운 젓가락질로 고기를 노렸고, 난 그걸 보고 같은 젓가락으로 차단했다. 콰앙! 젓가락끼리 부딪쳤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소리였지만, 피티언과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오직 우리 눈앞에 있는 고기만 보였다. “피티언, 내가 마스터야. 알지? 워내 마스터가 많이 먹어야 돼.” “마스터, 마스터라면 당연히 소환수들을 챙길 줄 아셔야하는 게 정석입니다. 그게 원칙입니다.” “미쳤군! 원칙? 소환수들이 마스터를 위해 양보하는 게 원칙이다.” 이글이글. 우리는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이 고기 한 접시에 모든 것을 올인했다. 절대로 더 많이 먹고 말겠다는 투지를 불태웠다. 그렇게 젓가락을 부딪친 채 멈춰 있는 순간 내 예리한 감각에 인기척이 느껴졌다. “누구야?!” 휘이익!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고, 난 순식간에 예화를 껴안은 채 피티언에게 눈짓을 주면서 뒤로 물러섰다. 피티언도 내 눈빛을 받고 순식간에 뒤로 물러났다. “뭐야?” 난 갑작스러운 기습 공격인가 했다가 아무것도 없자 약간 무안해졌고, 바로 그 순간 나의 눈에 들어오는 중요한 사실이 있었다. “고기야!” “고기님!” 나와 피티언은 똑같이 절규했다. 우리가 갑작스러운 인기척에 반응해서 몸을 뺐을 때 고기가 사라졌다. 그것도 말 그대로 증발하듯이……. “고기야!” “고기님!” 나와 피티언은 절망적으로 고기를 불렀지만, 사라진 고기는 나타나지 않았다. 잠시 후……. 우리의 모습을 안타깝게 봤는지 이번에는 촌장님이 엄청나게 많은 양의 고기를 들고 왔다. 우리는 다시 보이는 고기를 사이좋게 나눠 먹었지만, 똑같이 분노를 하고 있었다. 먹으면서 생각하는 것은 한 가지였다. ‘훔친 놈, 걸리면 죽었어!’ 하지만 너무나도 재빠른 스피드였다. 마치 스피드의 표본 이라는 어쌔신 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강렬하게 들 정도였다. 그렇게 난 고기를 훔쳐 간 존재를 생각해 보았지만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다. 저번에 만난 엽기 몬스터의 소행일까 생각도 했지만, 방금 전의 속도까지는 아니었다. 그 고기 도둑이 낸 속도는 훨씬 빠른 것 같았다. 피티언과 난 그 범인을 잡지 못한 채, 무 뽑기를 계속해서 시행했다. “수고했네. 엄청나구먼, 10시간 만에 끝내다니. 경악이네, 경악…….” 촌장은 우리를 보고 정말 놀랍다는 듯 말했다. 내가 생각해도 1,000평이나 되는 밭의 무를 10시간 만에 뽑았으니 경악할 만했다. 내가 인내력 하나는 끝내 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인내력 하나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고……. “자, 이제 마을에서 필요한 걸 조달하게. 내 권한으로 마음껏…….” “고맙습니다!” 나는 촌장님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인사를 한 뒤 후다닥 움직였다. 마음껏 이라고 했으니, 식품점에 가서든 옷가게에 가서든 긁어 오는 게 상책이었다. 작은 마을이었지만 있을 건 다 있었기에 충분히 긁을 만했다. “일단 쓸어 모으고 보자.” “네엡!” 나는 일단 큰 마을에 들어가기 위해 얼굴을 가려 주는 로브 계열을 잔뜩 긁어 올 예정이었다. 식량은 걱정 없었다. 피티언이 가져올 테니. 나와 피티언은 순식간에 산개했다. 그리고 물건을 긁어모으기 시작했다. 그렇게 1시간 후, 우리는 마을에 있는 물건들 중 특히 음식 계열을 많이 가져왔다. “그, 그건 좀 많지 않은가?” “촌장님이 마음대로 가져가라고 하셨지 않습니까? 촌장이신데, 혹시 그냥 하신 말인 겁니까?” “크흐흠! 그게 아니고…….” 내 말에 촌장은 불편한 기색이 가득했지만,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지금 이만큼만 가져온 것은 내가 양심적이기 때문이었다. “마스터, 든든한데요?” 피티언이 등에 진 보자기 안에는 100% 먹을 게 전부임이 분명했다. 먹을 것을 자신의 몸 크기의 절반만큼이나 가져오다니……. 이때까지 생활이 얼마나 궁핍했으면 저러는 건지 가엾기까지 했다. “그럼, 신세 많이 졌습니다. 나중에 또 오겠습니다.” “…….” 내 말에 촌장은 침묵만을 지켰다. 그 모습을 보니 양심에 아주 조금 찔리기는 했지만 나는 정당했다. 저 무 뽑기는 피티언과 나였으니 10시간 안에 끝냈지, 다른 사람 같았으면 최소 못해도 5일이었다. 1,000평인데……. 우리가 그렇게 불굴의 의지로 일을 마칠 수 있었던 데에는 지금 피티언 뒤에 가득 찬 음식이 기친 영향이 지대했다. 이제 음식 걱정은 없었다. 굶지 않은 자는 그 기분을 모른다고, 안 그래도 현실 세계에서도 생활이 궁핍해 채은이의 음식으로 살고 있는데 게임에서까지 그런 생활은 질색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마음과 몸이 든든했다. 아직도 무 뽑기의 휴유증으로 약간 힘들기는 했지만, 피티언의 등에 가득 실려 있는 음식을 보면 없던 기운도 생길 것 같았다. 그리고 나한테 있는 로브들……. 이제는 당당히 큰 마을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내가 약간(?) 사고 쳤던 곳과 멀리만 떨어진다면 나름대로 아무 이상이 없을 것이었다. “그나저나 그 인기척은 뭐였지?” 순식간에 음식을 가지고 튀는 그 민첩함, 내 눈에도 그냥 살짝 보인 정도였다. 몸은 그렇게 크지 않은 듯싶었다. 귀여운 강아지 정도의 크기? 내가 본 형상은 대충 그 정도였다. 그런데 나의 생각은 당연히 기각이었다. 강아지가 내 음식을 스틸한다? 그것도 거의 최고급 어쌔신들 만큼의 속도를 내면서? 터무니없는 소리였다. 난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해맑게 웃고 있는 피티언을 보고 항상 발광하던 모습을 떠올렸다. 천족 주제에 세계 정복만 바라고 대형 공격 마법밖에 쓰지 못하는 피티언과 테스나이트는 데스나이트인데 약간 어설픈 데스나이트……. 강아지 어쌔신이라, 꼭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나는 잡생각을 계속하면서 세 번째 소환수가 있다는 지도를 펼치며 차근차근 움직였다. 세 번째 소환수가 무슨 존재일까 궁금했지만 불안한 것도 사실이었다. 여섯 명 전부 비정상일 리는 없다는 게 나의 생각이었다. 뭐, 그중 한 명 정도는 나름대로 정상일 것 같으니 이번에 만나는 소환수는 제발 정상이길 빌고 싶을 뿐이다. “저, 오빠……. 이런 산속에 강아지가 있는데요?” “흐음, 강아지?” 난 깊은 생각을 하다 앞을 보지 못했고, 예화가 나에게 말해 주었다. 그 말에 따라 나는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눈을 돌렸고, 거기에는 선그라스를 끼고 나무에 몸을 기댄 채 담배를 뻐금뻐금 피워 대는 강아지 한 마리가 있었다. “…….” “어, 어라? 케미리 아니야?” 난 설마 했다. 저 괴상망측하다 못해 어이가 없는 강아지를 보고 느낌 감정은 우울이었다. 아니라고 믿고 싶었지만 방금 반갑게 말하는 피티언을 보니 확실해졌다. “네가 세 번째 소환수냐?” “흐음! 마스터, 처음 보는군. 일단은 반갑다고 하지. 원래 좀 더 모습을 감추려고 했지만 너무 심심해서 말이야.” “…….” 머리가 너무나도 아팠다. 기대한 내가 잘못이었다. 그 케미리라는 놈은 목소리를 깔면서 나에게 말했고 난 너무나도 큰 충격에 늘어졌다. 설마 강아지 어쌔신이라니! “말하기 귀찮다. 자, 합류해라.” “오! 노! 자네는 중대한 착각을 하나 본데, 나를 가지려면 나를 이겨야 된다.” 안 되는 영어까지 굴리면서 말하는 똥개 한 마리. 머리가 너무나도 복잡했다. 그런데 그 똥개는 진심이었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와이어와 단검을 들었다. “네놈 클래스는 어쌔신이냐?” “빙고! 생각보다 똑똑한데?” “하아…….” 난 그걸 보고 얼른 대충 끝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손을 들어 올려 검을 소환하려는 도중, 그 똥개 입가가 내 눈에 클로즈업 되었다. 자세히 보니 그 입에 묻어 있는 것은 마을에서 사라진 고기의 잔재였다! “크크크! 그렇단 말이지?” 나는 그 말과 함께 자리에서 순식간에 사라졌고, 나의 엄청난 스피드에 그 똥개 어쌔신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와이어의 소환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수(水) 속성 계열을 인첸트하 실수 있습니다. 갑작스럽게 들려온 음성, 소환과 인첸트라니! 전혀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난 갑작스럽게 들려온 음성에 공격하는 페이스를 잃어버렸다. “이겼다!” 순간, 똥개의 몸이 사라지는 듯싶더니 엄청난 속도로 와이어를 들고 균형을 잃은 나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난 그렇게 균형을 잃은 상태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하며 손을 저었다. 전투에는 이골이 났으니 이런 상황이라도 절대 페이스를 잃지 말아야 했다. 와이어 소환! 인첸트 수(水)! 띠리링! 나의 말과 함께 은빛으로 아름답게 빛나는 와이어가 소환되었고, 그 와이어에는 모든 것을 얼려 버릴 것 같은 새하얀 빛이 반사되었다. 쿠웅! 그 똥개의 단검과 순간적으로 반응을 한 나의 와이어는 부딪쳤고, 잠시 후 난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찌리릭! 엄청난 속도로 나를 공격했던 와이어가 얼러붙고 있었다. 그것도 순식간에……. “뭐, 뭐야?!” 똥개는 자신의 단검이 얼어붙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실제로 사용한 내가 어이가 없는데, 당한 입장에서는 더욱 어이가 없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였다. 아름답게 준 기회를 놓칠 내가 아니었다. 난 순식간에 똥개의 뒤로 이동한 뒤 살짝, 아주 살짝 그놈의 머리통을 갈겨 쳤다. 쿵! “으아악!” 살짝 친 소리라고 하기에는 난감했지만, 난 정말 살살 할 마음으로 머리만 툭 쳤다. 정말 툭. 뽀글뽀글. 그런데 왜 개 한 마리가 바닥에 엎어진 채 기절을 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왜? 나는 내 손을 바라보았다.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괴물틱해지는 거 같았다. 물론 강해지는 건 좋지만, 점점 파고력은 버서커를 뛰어넘어 가는 것 같았다. “이 개에게는 미안하지만, 일단 정신 교육에 들어가야겠구나.” 그 말을 끝으로 나는 개를 들고 황당해 하고 있는 피티언과 예화에게 손을 흔든 뒤 사라졌다. 나는 느꼈다. 소환수들을 만날수록 초반에 잘 안 해 놓으면 안 된다는 것을……. “자자, 이제 마지막 대륙이 열리기까지 별로 안 남았군.” “마지막 대륙에 모이는 전 세계인들……. 캬! 이왕이면 우리 한국이 최고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렇지? 나도 그런 생각으로 가득 찼다고. 아, 그리고 대충 통계치가 나왔지? 자세히는 모르지만 대략이나마 파이널 대륙으로 갔을 때 가망성 높은 유저들을 좀 추려 놔야지.” 팀장 태화의 말에 강기는 빽빽하게 쓰여 있는 서류를 조용히 넘겼다. 거기에는 공식 랭킹 레벨과 아이디 클래스가 적혀 있었다. “여기에 적혀 있는 유저들이 파이널 대륙에 진출해서도 살아남을 가망성이 높다는 건가?” “지금 상위 랭킹에 등록된 유저들입니다. 충분히 가능할거라고 생각합니다.” 강기는 그렇게 조심스럽게 추측했고 그 말을 들은 태화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기대된다고, 과연 어떻게 될지 말이야.” 그러고 나서 태화는 조심스럽게 그 종이를 넘겼고, 거기에는 대략 추측이기는 하지만 최강 데미지에 민혁의 아이디 ‘플레스’가 적혀 있었다. 물론 그 아이디가 올라온 데에는 저번에 자신이 무심코 넘겼던 일 때문이라는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하아…….” 난 한숨을 내쉬었다. 데스 길드 놈들 때문에 마을에서도 마법사용 로브를 쓰고 다녀야 하다니,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생각 같아서는 그놈들을 다 엎어 버리고 싶었지만, 상대방의 인원은 그런 생각이 싹 사라지게 만들기 충분했다. “마스터, 그나저나 케미리 어디 갔어요?” “케미리? 그놈 내가 데스 길드에 대한 정보를 캐어 오라고 보냈는데, 일단은 못 믿겠지만 그놈도 어쌔신이니까…….” 난 아직도 강아지가 어쌔신이라는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어이가 없었지만 내 눈앞에 있으니 믿을 수밖에 없었다. 정보 캐 오는 것도 어쌔신의 능력 중 하나였다. 어쌔신들은 암살, 정보 취득, 기타 등등 유용한 면이 많은 클래스였지만, 저 똥강아지를 보면 과연 유용할까, 해가 될까 고민이 문득문득 드는 나였다. 힐끔힐끔.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주점으로 술과 음료수를 파는 곳이었다. 물론 미성년자에게는 음료수만 팔지만 아무리 자유도가 100%라고 하지만 그것까지는 안 되는 듯싶었다. 사람들은 뭐가 그리 신기한지 나와 예화, 피티언을 계속해서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나 같아도 신기하기는 할 것 같았다. 모든 일행이 로브를 쓰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그런 관심은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로브로 얼굴을 가린 채 사냥하는 마법사 집단도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나저나 피티언…….” “네?” “너를 포함해서 총 6대 소환수가 있지?” “네, 그렇습니다.” “그럼 지금 나온 클래스가 기사, 마법사, 어쌔신이잖아?” “네.” “그럼 나머지 애들은 뭐야? 그리고 성격들은…….” 난 물어보다가 말꼬리를 흐렸다. 제일 걱정되는 게 성격 부분이었다. 엄청난 전투력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한 놈 한 놈 나타날 때마다 나의 머리는 엄청 빠지는 것 같았다. 어디서 이런 괴상망측한 애들을 모아 놓았는지 신비의 극치였다. “그, 그건…….” “왜?” 피티언은 갑작스럽게 나의 질문에 허둥지둥하면서 말을 흐렸다. 저런 반응을 보이자 괜히 더 불안해졌다. “마, 말할 수 없습니다.” “뭐라고?” “그, 그게…….” 나는 감히 내 앞에서 당당히 반란(?)을 일으키려는 피티언을 향해 살벌한 분위기를 조성했고 나의 모습이 먹혀들었는지 피티언은 우물쭈물하면서 말했다. “저, 세 명 중에 두 명은 저도 모릅니다. 아니, 보지도 못했으니까요. 제, 제가 말하고 싶지 않는 건 네 번째 소환수입니다.” “흐음?” 저렇게 말하자 궁금함이 증폭되었다. 옆에 있던 예화도 눈동자가 빛나고 있었으니, 나랑 같은 기분일 것이다. “그, 그녀를 이야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녀?” 피티언의 입에서 갑작스럽게 나온 그녀라는 단어. 그녀라면 여자라는 소리였다. “여자라는 소리냐?” 끄덕끄덕. 항상 세계 정복한다고 설치는 피티언이 저런 반응이라니 신선하기도 했지만, 그것보다 궁금증이 더욱 증폭되었다. “마스터, 정말 말 안 하면 안 될까요?‘ 글썽글썽. “…….” “마스터!” 난 너무 불쌍해 보이는 피티언을 향해 몰아칠 수가 없었다. 정말 불쌍해 보였다. 어떻게 이렇게 불쌍해질 수 있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하지만 그런 과민 반응을 보이자 난 어림짐작을 할 수가 있었다. 피티언이 그 소환수에게 당한 기억이 많다는 사실을…….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과민 반응을 보일 리가 없었다. “휴, 알았다. 뭐, 어차피 머지않아 만나겠지.” “고맙습니다. 그렇지만 저의 바람으로는 절대! 만나고 싶지 않습니다!” “…….” 도대체 무엇이 피티언을 그렇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계속해서 그러자 살짝 궁금함이 다시 일어났다. “마스터, 케미리를 만나고 갑자기 스킬이 생성돼서 의아하셨죠?” “음?” 난 다시 강제로 물어보려다가 내가 전부터 궁금해 하던 것을 피티언이 먼저 말하자, 그쪽으로 생각을 돌렸다. 전투중에 생뚱맞게 생성된 와이어 소환과 빙의 힘, 궁금했지만 급박한 상황 때문에 잊어버렸던 일이었다. “그건 말입니다, 케미리를 만나면 원래 생긴대요. 하하하하!” “…….” 저, 저 새끼를 그냥! 나는 분위기를 급격히 냉각시키는 피티언을 바라보았지만 너무나도 해맑게 웃는 그를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물론 가끔씩 나는 뱉기는 했다. “그나저나 이놈은 정보 수집하러 가서 죽었냐? 왜 소식이 없어?” “케미리요? 원래 걔는 시간 좀 걸려요.” “…….” 난 그 말에 살며시 불안감이 먼저 들었다. 이 날라리 똥개가 어디서 놀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하지만 그런 걱정을 해 봤자 내 손해인 것을 알기에, 피티언과 예화를 한 번씩 바라본 뒤 내가 전부터 꿈꾸던 상황을 말했다. “나도 너처럼 마법을 쓸 수 있으면 오히려 전투가 더 편할 텐데…….” “마스터, 갑자기 무슨 말을?” “아니, 그냥 내 희망 사항이야.” 마법사, 대형 마법에는 최강이었다. 나 같은 기사 클래스 같은 경우는 한 방에 베는 게 한계였지만, 마법사의 경우 한번 잘 떨어지면 수십 명에서 수백 명까지 날려 버릴 수가 있었다. 그래서 제대로 키운 마검사라는 직업이 무서운 것이었다. “저, 마스터, 제 말뜻은 그게 아니고요, 마스터도 마법 사용할 수 있는데요.” “뭐, 뭐라고?” 난 피티언의 말에 깜짝 놀라 되물었고, 피티언은 해맑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마스터, 잊으셨어요? 마스터의 직업은 웨폰인첸트, 모든 무기가 사용 가능하죠. 지팡이를 소환해 내고 마법만 배운다면 사용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물리 데미지를 마법 데미지로 돌려 버리는 기능까지 있다고요!” “허억!” 난 피티언의 말을 듣고 너무나도 놀라서 입을 쫙 벌렸다. 나에게 그런 특별 기능이 있을 줄이야,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었다. “놀랍죠? 놀랍죠? 놀라울 거예요. 난 역시 대단해요! 하하하하.” “…….” 자화자찬을 하는 피티언을 보면서 난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난 잠시 놀랐던 가슴을 진정시키면서 말했다. “그나저나 마법에 대해서는 찾아야 되니까 일단 넘어가고, 그것보다 제일 중요한 이 똥개는 왜 안 오는 거야?” 내 말에 피티언도 이상함을 느꼈는지 진지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혹시 정보 취득을 하다가 당한 건…….” “허억, 설마?!” “정말 그런 거면!” 난 피티언의 말에 정말 그런 일을 당했나 싶어 살짝 걱정이 되었다. 그런 나를 예화가 어색한 표정을 지은 채 바라보고 있었다. “어라? 예화야, 왜 그래?” “그, 그게…….” “곤란한 말이야? 갑자기 왜 그래?” “…….” 예화는 나의 질문에 갑작스럽게 식탁 밑으로 고개를 숙였고, 난 그런 예화의 눈을 따라서 탁자 밑으로 이동했다. “피티언…….” “네, 마스터.” 나는 탁자 밑에서 고이 잠들어 있는 한 미개 생물체를 보고 피티언을 조용히 불렀고, 피티언도 그 미개 생명체를 보고 진지한 어투로 말했다. “환상은 아니겠지?” “저도 보이는걸요.” “자, 잠시 케미리 씨도 많이 피곤…….” 그나마 착한 예화가 용케도 똥강아지의 생명의 위협을 알아차렸는지 변호를 해 주려고 했고, 난 그 모습을 보고 참기로 했다. 참기로……. “이 똥강아지!” “뭐, 뭐야?” 휘이익! 난 탁자 밑에서 자고 있는 똥강아지 한 마리를 꺼내 들어 그대로 날려 버렸다. “크아아악! 꾸에에엑!” 정체불명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똥강아지는 밖으로 방출되었고, 난 그런 똥강아지를 향해 한마디 하는 걸 잊지 않았다. “요새 내가 몸이 약해. 보신탕이 먹고 싶어.” “…….” “…….” 한편 그런 황당한 모습에 주변 사람들은 우리들을 쳐다보았고, 난 얼른 다시 자숙하기로 했다. 일단 시선을 모으면 안 되는 입장이다 보니……. “허허! 화끈한(?) 청년이군. 잠시 자리 좀 앉아도 되겠나?” 그때 나에게 말을 거는 한 아저씨가 있었다. 나이는 35살정도 되어 보였고, 몸이 튼튼한 근육질로 덮인 아저씨였다. “안 되는데요?” “허허! 야박하기는…….” 난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심상치 않은 기운에 살며시 긴장을 하면서 검을 소환할 준비를 했다. 일단 예사롭지 않은 아저씨니까 방심은 절대 금물이었다. “하하하! 적은 아니니 안심하게. 데스 길드는 아니니…….” “…….” 난 데스 길드라는 말에 더욱더 긴장을 했다. 아마도 우리의 정체를 알기 때문에, 지금 데스 길드와 사이가 안 좋다는 걸 염두에 둔 말을 하는 것일 것이다. “목적부터 말하시죠?” 경계가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고, 그 아저씨는 허락도 하지 않았는데 자기 마음대로 자리에 앉더니 말했다. “그런 걸 좋아하나 보군그래. 목적을 말하지. 데스 길드에 대한 확실한 정보를 주겠네.” “대가는요?” 내가 침착한 어조로 묻자 그 아저씨는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대가는 없네. 그냥 무료 봉사네.” 피식.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값진 정보를 공짜로 준다니, 지나가던 똥개도 안 웃는 유머 감각이었다. 하지만 나에게도 생각이 있었다. “좋습니다.” “에에? 마스터!” 내가 쉽게 허락하자 피티언은 당황했고, 그 아저씨는 여전히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로 일관했다. 난 그런 아저씨를 보고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지만 아저씨 생각대로 쉽게 이용은 안 될 거예요. 아시겠죠?” 움찔. 움찔하는 모습을 보자 예상대로 나를 이용하려고 했다는 것을 느꼈다. 한마디로 미끼 같은 역할, 그렇지만 당할 내가 아니었다. “하하하하! 한 방 먹었군. 점점 자네가 좋아지는군.” “전 남자 취미 없는데요?” “하하하하!” 그 아저씨는 나의 말에 신나게 웃다가 잠시 후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정보는 우리 애들을 보내서 주겠네. 그럼…….” 난 그 말에 놀라고 말았다. 데스 길드조차도 찾지 못하는 우리를 찾은 걸 보면 정보력이 상당하다는 거였다. 즉, 데스 길드보다 정보력은 확실하다는 뜻이었다. “마, 마스터, 멋져요!” “흐음?” 난 피티언이 한 말을 알아듣지 못하다가 이어진 얘기를 듣고 이해할 수 있었다. “마스터에게 이런 면이 있을 줄이야! 너무 멋있었어요!” “훗! 내가 좀 그래. 하하하하!” 난 피티언의 칭찬에 즐겁다는 듯 웃었다. 한편 민혁이에게 접근했던 메퍼는 신나게 웃고 있는 민혁이를 보면서 담배 한 개비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담배를 입에 갖다 대고 불을 붙인 뒤 민혁이를 보고 중얼거렸다. “이거, 싸움만 잘하는 줄 알았더니 예상 밖이군. 오히려 이용을 하려다가 이용을 당하는 건가? 상당히 재미있군. 잘 하면 우리의 조커 카드가 될지도 모르겠군.” “제길, 제길! 이 빌어먹을 마스터 같으니! 거지! 상거지! 나보다 못한 놈! 나 같은 귀족(?) 강아지에게 이런 짓을!” 한편 민혁이가 던져 버린 케미리는 쉴 새 없이 민혁이의 욕을 하기 시작했고, 바로 그때 그런 케미리를 누군가가 들어 올렸다. “덥석. “뭐, 뭐야? 나 기분이 안 좋아! 다 죽…….” “안 보이는 데서 내 욕을 하고 있었니?” “헉! 마스터……. 이건 아니야. 아니야. 오해하지 말아줘. 난 순수하잖……. 꾸엑!” 하지만 케미리는 말도 끝까지 하지 못하고 죽도록 두들겨 맞았다. 그렇게 한참을 팬 뒤, 나는 케미리를 한번 슬쩍 보고 다시 가던 길을 가기 시작했다. 이제야 좀 자각을 했는지 케미리는 아주 조심스럽게 따라왔다. 그 모습이 애처롭게 보이기는 했지만 순수한(?) 나를 그렇게 폭력적으로 만든 건 자신이었다. 안 그래도 예화 때문에 이미지 관리를 해야 되는데, 이것들이 이미지 관리를 못하게 하고 난리다. “어, 어라?” “왜 그러냐, 피티언?” 앞서 가던 피티언이 우두커니 서서 한 곳을 바라보았고 난 그 모습에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거기에는 우리의 현상금 수배지가 경비병들의 손에 의해 떼어지고 있었다. “뭐, 뭐야, 갑자기?” 갑작스러운 상황에 우리들은 당황했고, 난 로브를 더욱더 깊게 쓴 채 경비병들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저, 죄송하지만…… 이 포스터는 왜 떼는 건가요?” 그 물음에 경비병은 로브를 잔뜩 쓰고 있는 우리 일행을 신기하다는 듯 바라본 뒤 말해 주었다. “이 현상금 포스터 철거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콰아앙! “뭐라고?” 계진은 방금 들어온 정보를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자신이 걸어 둔 현상금 포스터가 철거되다니 있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계진님, 아마도 그곳에서 힘을…….” “그곳?” “네.” “크하하하!” 계진은 그곳에서 힘을 썼다는 말에 뭐가 그리 즐거운지 신나게 웃었다. 절대적인 힘을 가진 데스 길드에 거역하는 단체, 그 단체에서 자신의 동생을 피케이 한 남자의 현상금 포스터를 철거했다는 것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놈은 잡는다! 그곳에서도 중요 인물로 생각하기로 바꿨나 보군. 그렇다면 우리도 중요 인물로 채택해야지. 안 그러냐?” 제7장 닭대가리 3인방 탄생 채은이는 약간 빠른 발걸음으로 민혁이의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5일 동안 민혁이의 모습을 못 봤더니 보고 싶기도 했지만, 왠지 모르게 살짝 불안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회색 블라우스와 무릎까지 오는 검은색 주름치마 차림의 채은이는 민혁이가 좋아하는 음식이 가득 찬 도시락을 든 채 민혁이의 집 앞에 도착하자 벨을 눌렀다. 띵동! 띵동! 하지만 여러 번 벨을 눌러도 아무런 반응이 없고 마치 죽은 듯 고요하기만 했다. “오, 오빠?” 채은이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맞았나 하는 불길한 상상을 하면서 무의식적으로 손잡이에 손을 뻗었다. 그리고 문이 열려 있는 걸 보고 불안감은 더욱더 증폭되었다. “실례할게.” 채은이는 그렇게 속삭인 뒤 다급히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 안은 무서울 정도로 조용했다. “오빠? 오빠 있어?” “……….” 큰 소리로 불렀지만 정적만이 감돌 뿐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채은이는 도시락을 근처에 놔두고 자신의 불길한 기분이 빗나가기를 바라면서 한참 동안 민혁이를 찾았다. 바로 그때, 갑자기 누군가가 채은이의 발목을 붙잡았다. “꺄아악!” 채은이는 순식간에 벌어진 공포(?) 상황에 당황하면서 넘어졌고, 그녀가 넘어지면서 살짝 치마 속이 보였다. 바로 그때 민혁은 모 공포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스멀스멀 기어 오면서 말했다. “채……은……아…….” “오, 오빠?” “죽……을…… 거…… 같…….” 민혁이는 얼굴이 폭삭 마른 채 채은이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고, 채은이는 그런 민혁이의 모습을 보고 잠시 당황하더니 지금 상황이 생각났는지 얼굴이 붉게 물들면서 치마를 내렸다. 허겁지겁. “처, 천천히 먹어.” “살았다!" 난 채은이가 가져온 도시락을 너무나도 맛있게 먹었다. 원래 뛰어난 음식솜씨였지만 6일 동안 굶었다가 먹는 음식은 더욱더 예술이었다. “내가 가기 전에 거의…… 30인 분 음식을 하고 갔잖아?” “응. 그거 하루 만에 다 먹었어.” “그, 그걸 다 먹었어?” “어.” 나는 내가 말하고도 무안했다. 채은이가 해 준 밥과 반찬의 양은 거의 30인 분, 그걸 하루 만에 다 없앤 것이었다. “…….” “하하하하…….” 채은이는 얼마나 황당했으면 그 예쁜 얼굴로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고, 잠시 후 난 그런 채은이를 향해 얼른 말을 돌렸다. “그래, 할머니 집은 잘 갔다 왔어?” “어? 응.” 나의 질문에 채은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채은이를 보지 못한 이유는 여름방학을 하자마자 채은이가 일주일간 할머니의 부름을 받고 시골로 내려갔기 때문이었다. 그와 함께 테이스 월드도 여름방학 기념이라고 대대적인 패치를 하기 시작했다. 벌써 패치일만 하더라도 10일이 넘어갔기에 게임에 접속하지 못한 지도 10일이 넘어가고 있었다. 이 회사는 패치를 방학 전에 끝낼 것이지, 왜 방학 3일 전부터 작업에 들어가서 사람들의 원망을 듣는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샤사사삭. 난 일단 그렇게 나머지 생각은 접고 내 앞에 나를 유혹하는 장어를 보고 재빨리 손을 놀렸다. 이 탐스러운 양념과 이 탐스러운 S라인, 이 탐스러운 뼛조각! 이래서 내가 장어를 제일 좋아한다니까! 그렇게 난 채은이가 특별히 싸 온 장어를 조금도 남기지 않고 밥과 함께 모두 먹었고, 그런 나의 밥 먹는 모습을 보던 채은이는 궁금한 게 있었는지 나에게 물었다. “오빠.” “응?” “그렇게 배고팠으면 정우라도 부르지.” “그 새끼!” “왜? 왜 그래?” “아, 미안! 잠시 그놈을 생각하니 분노가……. 크윽!” 난 그놈을 생각하자 화가 불끈불끈 솟아올랐다. 그 이유란 정작 필요 없을 때는 앞에서 알짱거리더니, 이렇게 필요한 순간에는 잠수를 탔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무한 잠수. 내가 일주일 동안 그놈의 휴대폰에 전화를 한 것만 해도 60번은 넘었다. 하지만 그놈의 휴대폰에서 들려온 음성은……. ‘전화기가 꺼져 있습니다.’ 이 대사뿐이었다. “괘, 괜찮은 거야?” “괜찮아.” 심장을 부여잡은 나를 보며 채은이는 걱정스러운 듯 물었고, 난 안심을 시키기 위해 괜찮다고 말했다. 그 인간을 생각하자 왠지 모르게 심장마비에 걸릴 뻔한 나였다. “형님, 저 돌아왔습니다.” “…….” “왜 그러십니까?” 바로 그때 언제 왔는지 당당히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정우 놈! 그놈의 복장은 닌자거북이였다. 그리고 머리에는 정체불명의 외계인용 안테나가 씌여 있었다. “제가 오니 너무 좋아서 그러시는군요. 좀 더 코스프레의 세계에 심취를 하려고 했지만 형님이 걱정돼서 빨리 왔습니다.” 그런 거구나, 그랬던 거구나. 누구는 밥을 굶으면서 SOS를 치고 있었는데 누구는 핸드폰을 꺼 놓고 닌자거북이 코스프레와 외게인 코스프레를 즐기고 있었던 거구나. “그래서 일주일 동안 닌자거북이와 외계인 코스프레는 잘 즐겼느냐?” “형님의 은총을 받아서 아주 재미있게 즐겼습니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드래곤볼 코스프레도 했습니다.” 난 진심으로 분노했다. 저 새끼는 진심으로 즐거워하고 있었다. “형님, 얼굴이 이상하게 변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냐?” “그렇습니다.” “그렇구나.” “이제 더욱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습니다.” “하하하! 하하하하하!” 그 새끼는 나의 표정이 왜 변하는지 정말 모르는 건지 너무나도 뻔뻔스럽게 말했고, 난 그런 정우를 보면서 상큼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죽어, 임마!” 퍼억! 나의 환상적인 2단 로우 킥은 정우를 강타했다. “휴…….” 난 숨을 가다듬었다. 마치 명상을 하듯! 아니 정확히는 정우를 팰 수 있어서 상쾌했다. 어찌 됐든 그렇게 채은이와 정우는 나의 집에서 사라졌고 난 다시 혼자가 되었다. 뒹굴뒹굴. 쉴 새 없이 데굴거렸다. 막상 할 일이 없었기에……. 게임은 패치 중이어서 할 수도 없고, 방학 숙제라는 게 있기는 하지만 내가 그걸 할 위인도 아니었다. 물론 난 직책이 부반장이어서 타의 모범이 되라고는 하지만 나에게 그런 걸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심심하네.” 난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시계를 바라보았다. 지금 시계는 오후 3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이상하게 오늘따라 더욱더 시간이 가지 않음을 느꼈다. “오랜만에 인형 눈알이나 끼워야겠다.” 분명 저번에 난 게임을 하며 현질을 해서 재벌이 될 거라고 외쳤지만, 그건 나의 바람인 것을 머지않아 깨달았다. 벌기는커녕 게임에서도 굶고 다니는데 뭘 번다는 말인가? 물론 엄청 강해진 것까지는 좋은데, 강해졌다고 돈이 막 들어오는 게 아니었다. 이상하게 일이 엉망진창으로 꼬였다, 마치 저주……. “허억! 설마 이 직업 자체가 저주 마스터?” 쓸데없는 생각일 수 있으나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내가 이 직업을 선택한 후, 어째 제대로 된 일이 한 번도 발생하지 않았다. 마치 진짜 저주를 받은 듯. 내가 단순히 정말 재수 없는 인간이거나 아님 내 옆에 있는 떨거지들이 저주를 몰고 다닐 가능성이 농후했다. 물론 다행히도 어느 한 이상한 아저씨가 나타나서 현상수배를 풀어 주기는 했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미심쩍었다. 한 마디로 재수 없음의 극이 만든 불신감이었다. “에라! 뭐, 생각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자자.” 난 그렇게 말하면서 땅바닥에 몸을 뉘었다. 그런데 더웠다. “…….” 제길! 난 끝내 더위를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났다. 다른 집에는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에어컨은 기본인데, 이 집은 후덜거리는 선풍기가 전부였다. 티브이도 좋은 편이었고 가상현실 게임기도 좋은 편인데 왜 선풍기만 이 모양인지 나는 전부터 궁금했다. 하지만 부모님이 사 놓은 것인 관계로, 내가 알 리가 없었다. 물론 부모님에게 물어보면 되지만 지금 부모님은 세계 여행 중. -영상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영상 편지?” -민혁님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영상 편지입니다. “틀어 봐.” 난 그 말을 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 알 수 없는 불안감과 초조함, 진짜 기분이 좋지 않았다. -헤이! 헤이! 헤이! 아들 잘 있나? “…….” -오, 잘 있다고? 우리도 잘 있어. 걱정 말라고, 베리 베리 전화했어. 그럼 바이, 바이! 굿! 굿! 굿! 안 되는 영어를 하시느라 저렇게 혀까지 심하게 굴리시기는……. 그렇지만 그런 사소한 것보다는 나는 그 뒤에 보이는 배경과 부모님의 복장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저기는 하와이?” 아들은 돈이 없어서 굶어 죽을 지경에 빠졌고 그뿐 아니라 날도 더워도 후덜거리는 선풍기 하나로 버티는데, 부모님이라는 사람은 하와이라……, 그것도 그냥 하와이에 간 거면 말도 안 하겠는데 부모님 목에 걸린 다이아몬드와 금은 기타 등등의 보석들은 무엇인지 심히 궁금했다. 하지만 이미 아버지는 한마디만 하고 전화를 끊어 버렸기에 그런 궁금증은 내 여린(?) 마음에 상처만을 남겼다. 그렇게 좌절에 빠져 있을 때, 음성이 들려왔다. -민혁님. 테이스 월드에 대한 정보가 검색되었습니다. “정보? 패치 내용인가?” -그렇습니다. 지금 재생할까요? “어.” 난 그 말에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10일 동안 패치를 하면서 패치 내용도 공개하지 않았는데, 드디어 패치 내용이 공개되나 보다. 띠링. 그렇게 잠시의 시간이 흐른 후, 테이스 월드에 대한 패치 내용이 뜨기 시작했다. 오래 기대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 아침 8시에 서버를 개방할 예정입니다. 이 게임은 특이하게 네리아라는 슈퍼컴퓨터가 패치를 진행하는 걸로 알고 있었다. 개발자들이 그 정보와 같은 걸 주입하면 네리아가 계산을 끝내서 스스로 만든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개발자들도 정확한 패치 내용은 알 수 없고 대략적인 내용만 알 수 있다고 들었다. -천계와 마계의 문이 열렸습니다. 특수한 방법으로 사용시 이동이 가능합니다. -엘프와 드워프의 힘이 강력해졌습니다. -유니크 아이템을 추가하였습니다. -수 속성에 확률적으로 상대방으로 동결시키는 기능을 상승시켰습니다. -도끼에 파괴력을 더욱더 증가시키고 무게도 증가시켰습니다. -……기타 등등. 어, 어라? 왠지 모르게 이번에 된 패치 내용은 몇 개를 제외하고는 나한테 좋은 것 같았다. 난 뭐 무기 능력만 상향되면 다 좋지만. 어찌 됐든 여전히 자유도에 대해서는 변한 게 없었고, 있다고 한다면 무기 벨런스와 MPC들의 종족 벨런스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난 패치를 한참 훑어보았고, 바로 그때 나의 눈에 빼먹은 한 가지 패치가 확 들어왔다. 엘르니아 던전이 약간은 찾기 쉽게 변경되었습니다. 처음부터 존재했던 던전이었지만 그 누구도 근처에 가지 못한 관계로 약간은 찾기 쉽게 하향하였습니다. 하지만 여타 다른 비밀 던전 보다는 여전히 많이 힘듭니다. “엘르니아 던전? 저게 뭐지?” 난 처음 듣는 엘르니아 던전이라는 말에 의아했고, 곧바로 펠에게 검색을 요구했다. “펠, 엘르니아 던전이라는 곳에 대한 정보 모아 봐.” -알겠습니다. 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수십 개 정도의 엘르니아 던전에 대한 정보가 뜨기 시작했다. 난 그 엘르니아 던전에 대한 잡다한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그때 나의 눈에 확 띄는 글귀가 있었다. 거기에는 엘르니아 던전의 유래와 역사 같은 게 적혀 있었는데, 그런 이상한 게 눈에 들어오는 게 아니라 중간에 들어 있는 다섯 글자가 눈에 확 들어왔다. 최강의 마법사 엘르니아는 평소 친분이 있던 웨폰인첸트…… 웨폰인첸트? 저 친숙한 이름의 직업을 너무나도 잘 아는 나였다. 그와 더불어 갑작스럽게 떠오르는 기억들……. ‘마스터, 잊으셨어요? 마스터의 직업은 웨폰인첸트, 모든 무기가 사용 가능하죠. 지팡이를 소환하고 마법만 배운다면 사용 가능합니다. 그리고 물리 데미지를 마법 데미지로 돌려버리는 기능까지 있다고요!’ 크크크! 그렇단 말이지? 난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런 대박 기회를 놓칠 만큼 난 바보가 아니었다. 지금 나머지 소환수들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게 더 중요했다. 더 강해져야 되니까……. “이게 뭐야? 우리 소환수가 무슨 잡일꾼이냐?” 케미라는 연신 불만을 토로했다. 자신들같이 위대하고 완벽한 소환수들에게(?) 영문도 모르는 이상한 던전을 찾아내라고 성화를 부리다니, 그야말로 악덕 주인이었다. “맞아. 그놈은 악던 주인이다. 각성해야 해. 지만 미소녀랑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우리는 이런 비효율적인 일을 시키다니!” 그 말을 듣던 테피언도 연신 불만을 터트렸다. 테피언은 예화랑 있지 못한 게 그리 불만이었는지 내내 불쾌한 표정을 지었고, 테피언과 케미라는 쉴 새 없이 민혁을 씹었다. 그러던 중 피티언만 조용하자 그를 바라보았고, 그 눈빛에 피티언은 화들짝 놀라면서 말했다. “왜?” “넌 왜 아무 말도 안 하냐?” “걱정 마. 그 날라리 악덕 주인 여기에 없으니까.” “나는 별로…….” 테피언과 케미리가 전혀 두려워하지 말고 말하라는 듯 피티언에게 말을 건넸지만, 피티언은 할 말이 없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반응이 테피언과 케미리에게 불신감의 눈빛을 만들게 했다. “설마 그 악덕한 주인의 첩자?” “벌써 세뇌가 끝난 것이냐? 우리가 말한 내용을 다 보고 하라고 그 주인이 말하디?” “아, 아니…….” “아니기는!” “맞아!” 테피언과 케미리는 강제로 피티언을 민혁이의 첩자로 만들었고, 그런 테피언과 케미리의 반응에 피티언은 심하게 당황했다. 또 그의 당황하는 모습이 그들에게는 오히려 더욱 불신감을 심어 주었다. “배신자는 처벌을…….” “배신자는…… 처벌을…….” “나, 난 아니야! 배, 배신자라니. 난…….” 하지만 피티언이 부정을 하면 할수록 테피언과 케미리의 눈은 더욱더 가늘어졌고, 잠시 후 그들은 피티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한편 미소녀와 오붓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던 민혁은……. “아저씨, 제 스트커에요?” “허허! 스토커라니.” “그런데 왜 이리 자주 보는 걸까요?” 난 내 앞에서 근육질로 덮인 30대 아저씨를 보고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냈다. 난 게임에 접속하자마자 간단히 예화에게 연락해서 만났다. 분명 거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만나는 자리에 하필 이 정체불명의 근육맨 아저씨가 떡하니 지키고 있었다. 저번에 데스 길드 건으로 한 번 만났던 그 아저씨, 정보력 하나만은 최강이라고 내가 인정한 그 아저씨였다. “허허! 우연이지.” “우연치고는 너무 재밌는데요?”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정말 능글능글했다. 아니, 정보를 다루는 사람이어서 그런지 역시 말 하나만은 능구렁이 100마리가 기어가는 느낌이었다. “농담은 그만 하시고 본론부터 말하시죠.” 난 용건을 말해 줄 것을 원했다. 이 근육질 아저씨가 심심해서 나를 찾아왔을 리는 없기 때문에……. “흐음, 역시 자네는 화끈하다니까, 하하하.” “…….” 그 아저씨는 그렇게 말하면서 갑자기 자신의 엄청난 팔 근육을 나에게 보여 주면서 웃었고, 난 너무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침묵만을 지켰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근육을 막 자라하더니, 안 어울리게 갑자기 진지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자네는 초자연현상을 믿나?” “말하는 개도 있는데 그 정도야, 뭐.” “역시나 화끈한 청년이군. 자네의 직업만큼 독특한 친구군.” “제 직업까지 아십니까?” “아니, 모르네. 자네의 직업 이름조차도 모르니, 원. 모든 정보가 차단된 직업이더군.” “그렇군요.” 난 그 말에 아쉽다는 듯 말했고, 아저씨는 슬쩍 웃으면서 본론을 말하기 시작했다. “방금 물었지, 초자연현상을 믿는지.” “있다면 믿어야죠. 말하는 개 어쌔신도 있는데요, 뭐.” “그렇다면 다행이군. 내가 아주 재미있는 정보를 얻었지. 이곳 테이스 월드에 감춰진 히든클래스 말이야. 자네와 같은류의 히든클래스.” “…….” 웨폰인첸트는 히든클래스 중에서도 10위 안에 100% 드는 최강의 히든클레스였다. 히든클레스라는 직업 자체가 구하기가 힘들지만 그만큼 강력했다. 거기서 한 번 더 올라가는 게 내가 직접 가지고 있는 스페셜 히든클래스였다. “내가 초자연현상을 믿느냐고 왜 물어본 줄 아나? 우리쪽에서 발견한 정보가 그거랑 상당히 유사한 직업이거든. 소울 브레이트,” “소울 브레이트?” “영혼을 폭발시켜서 엄청난 데미지를 주는 직업이네.” “…….” 영혼을 폭발시킨다고? 그럼 귀신을 사람에게 붙여서 동귀어진시키는 직업인가? “허허!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군. 나도 처음 정보를 얻었을 때는 반신반의했지만 거의 70% 이상은 맞는 정보라고 보면 되네. 나중에 혹시라도 만나게 된다면 조심하라고 전해 주려고 온 것이네.” 그렇게 그 아저씨는 나에게 말하는 내내 자신의 근육을 뽐내면서 이야기를 마쳤고, 잠시 후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덧붙여 말했다. “그럼 난 이만 가 보겠네. 개인적으로, 난 자네의 직업이 정말 궁금하다네. 아무리 알고 싶어도 도저히 없어, 정보를 취득할 수 있는 방법이. 혹시라도 자네가 나에게 그 직업의 정보를 제공해 주기를 한번 빌어 보지.” “흐음, 그런 일은 아마도 없을걸요.” “그런가? 하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 나는 이만 가보겠네.” 그렇게 그 아저씨는 다시 한 번 근육을 매만지면서 감탄하는 변태성(?)을 보이며 스르륵 사라졌다. 한편 피티언은 모든 몸이 결박당한 상태였다. “불어.” “사실을 부는 거야. 크크크!” “으으으읍(어떻게 말해)!” “말을 안 해?” “그 악던 마스터가 단단히 훈련을 시켜 놓은 듯싶군.” “역시 예사롭지 않은 자야.” “나도 동의해.” “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읍읍(젠장! 풀어 주고 말해야 될거 아니야! 입을 막으면 내가 어떻게 말해, 이 바보들아)!” 하지만 그런 피티언의 절규는 테피언과 케미리의 귀로 들어가지 못했다. 당연히 입이 막혔으니 말이다. “좋아, 고문이다.” “어쩔 수 없군.” “시작하자.” “응.” “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읍(고문이라는 말을 너무 쉽게 하는 거 아니냐! 너희들)!” 그들은 고문이라는 말을 꺼낸 다음 희열에 찬 표정을 지었다. 이미 제정신들이 아니었다. 전에 봤을 때도 제정신이 아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상태가 더 심각해졌다. “야! 너희들 뭐 하냐?” “허억!” “허거덕!” “으으읍(마스터)!” 바로 그때 갑작스럽게 어슬렁거리면서 나타나는 민혁, 그리고 그의 뒤를 따라서 예화가 다소곳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왜 나를 보고 그렇게 경악을 하는 것이냐, 철갑 갑옷 한 마리랑 똥개 한 마리?” “그, 그럴 리가.” “너, 너무 반가워서 그렇지!” “으으으으으으으읍(마스터! 아니에요! 저것들이 저를 고문하려고 했어요! 막 마스터를 욕하면서)!” “흐읍?” 나는 특이한 장면을 목격했다. 그 장면이란, 피티언이 나무에 꼭꼭 결박당해 있고 철갑 갑옷 한 마리랑 똥개 한 마리가 이상한 포즈와 모습을 취한 채. 그나마 제일 정상적으로 보이는 성스러운 천족 피티언에게 천천히 다가가는 모습이었다. “서, 설마…….” 난 경악했다. 그럴 리는 없다고. 하지만 그들의 모션은 그게 무의식적으로 생각나게 만들었다. “안 돼! 예화야, 저런 거 보면 안 돼!” “오, 오빠?” “안 돼! 넌 맑아야 돼! 저런 변태의 정점에 선 장면은 안 돼?” 당황하면서 살짝 얼굴이 붉어진 예화를 본 난 그대로 예화를 안고 왔던 길을 돌아가기 시작했다. 저것들, 처음부터 정상적이지는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저 정도로 미쳤을 줄이야. 예상 밖이었다. 저들이 SM(Sadism Masochism)에 몸을 담고 있을 줄이야. 여기서 SM은 사디즘, 마조히즘이라는 뜻으로 가학적 변태를 말하는 것이었다. 난 평생 듣기만 했지, 보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 눈앞에서, 그것도 나의 소환수들이 그런 모습을 보이다니 충격이었다. “왜 저러지?” 한편 그 모습을 보던 테피언과 케미리는 갑작스럽게 충격을 받은 얼굴을 한 채 사라지는 민혁이를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민혁이가 사라지자 공포에 떨고 있는 피티언을 보고 피식 웃었다. “하던 것 마저 하자고…….” 누가 들으면 위험 수위가 무척 높아 보이는 대화였다. “오빠……. 저, 저기…….” “실례.” 난 내 품 안에서 쑥스러워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예화를 다시 바닥에 놓아주었다. 너무나도 큰 패닉 상태에 무심코 예화에게 실례되는 행동을 하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왜 그러는 거예요?” 예화는 나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았는지 조심스럽게 물었고, 난 그 물음에 차마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 변태 같은 소환수들이 이상한 변태 짓을 하고 있어서 그렇다고는 도무지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어, 그건 말이다, 흐음, 흐음…….” “……?” 내가 머뭇거리자, 예화는 더욱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참 난감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데, 저 멀리서 고통스러워 하면서 터덜터덜 걸어오는 피티언과 상쾌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걸어오는 테피언과 케미리를 보게 되자, 난 다급하게 예화에게 말했다. “예화야, 내 말 잘 들어!” “네?” “일단 듣기만 해. 아주 중요한 일이니까. 절대 저 날라리 천족하고 깡통 철갑 갑옷 한 마리랑 저 겉으로만 귀여어 보이는 개한테는 절대! 절대 다가가지 마.” “왜, 왜요?” “설명은 해 줄 수 없지만 나를 믿어! 믿어야 돼!” 난 절규했다. 저 SM을 즐기는 변태들에 의해 예화를 타락시킬 수는 없어TEk. 이 맑고 착하고 청순하고 귀여운 예화를……. 난 정의감이 마구 불타오르고 있었다. 뭐 생전 처음 타오르는 정의감이기는 했지만. “마스터, 우리 왔어.” “보고 싶었어.” “……,” 갑자기 나에게 사근사근 말하면서 걸어오는 테피언과 케미리를 보면서 난 강력한 경계의 모습을 하기 시작했다. 저 상쾌해 보이는 얼굴, 실컷 즐겼(?)다는 얼굴이었다. 그와 더불어 떠오르는 나의 상상……. ‘아, 아! 때려 줘.’ ‘크크! 좋아. 때려 주지!’ ‘으하하하! 이 맛이다.’ 난 나의 상상에 치를 떨었다. “마스터, 표정이 왜 그래?” “마치 못 볼 거라도 본 사람 표정 같네.” “…….” 정녕 누구 때문에 내가 이러는지 모르고 하는 말인가? 깡통 철갑 갑옷 네놈과 말하는 똥강아지 하나, 그리고 내가 그래도 아주 1% 믿었던 피티언 너까지……. 난 엄청난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예화야.” “네?” “너는 내가 지킨다!” “고, 고마워요.” 예화는 갑작스럽게 자신을 바라보면서 너무나도 듬직하게 말하는 민혁이의 모습에 쑥스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나는 눈을 감았다. 검(Sword) 소환. 파지짓! 나의 주문 영창이 끝나자, 내 밑으로 붉은색의 마법진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나의 손 쪽에서 2단계로 진한된 검의 모습이 드러났다. 이상한 일이지만 2단계부터는 붉은색의 마법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3단계부터는 아예 바닥에서 검을 뽑아내는 게 아닐까? 어찌 됐든 난 잠시 후 눈을 번쩍 뜨고 진지한 표정을 지으면서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있는 변태 3인방에게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덤벼라.” “정말?” “오케이! 덤비겠어!” “후회하지 말라고!” “자, 가자!” “…….” 저, 저것들……. 마치 기다렸다는 듯 검을 꺼내는 테피언과, 케미리는 그 조그만 손으로 와이어를 꺼내 들고 있었다. 피티언만이 내 옆으로 다가오더니 갑자기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저는 마스터를 영원히 모실 몸입니다. 마스터를 공격할 수는 없습니다.” “…….” 나는 그 말에 감동을 먹었다. 그래, 좀 볕내 같은 취미를 가졌으면 어때? 취미란 변하는 거니까(?). “이 배신자!” “역시 넌 첩자였구나!” “배신자는 처형이다!” “처형!” 그들은 피티언의 반응에 완전 반란을 일으켰다. 그리고 나서 반란자를 죽이겠다는 살벌한 눈빛을 한 채 피티언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난 그런 그들을 보면서 말했다. “덤벼.” “안 그래도 덤빌 거야.” “마스터가 말했으니 후회하지 말라고.” “…….” 그놈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모든 힘을 짜내서 나에게 달려왔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저것들이 정말 나의 소환수가 맞는지 궁금해졌다. 소환수, 주인을 모시고 주인에게 충성하고 주인을 위해 싸워 주는 너무나도 멋진 존재. 하지만 내 앞에 알짱거리는 저 두 놈의 소환수는 심심하면 주인에게 개기고 심심하면 반란을 일으키려고 하고, 주인이 싸워도 어떻게든 귀찮아서 안 싸우려는 존재였다. “내가 오늘 너희들의 개과천선을 지도해 주지!” “꿈 깨셔!” “맞아, 맞아!” 한 가지 더 추가하자면, 절대 한마디 말조차도 지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 그렇게 그놈들은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일단 선제공격은 테피언이었다. 그놈은 정말 살기를 흉흉히 내뿜으면서 나에게 검을 찔렀다. 난 그런 테피언의 기습 공격에 화들짝 놀랐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공격을 하다니……. 스르륵. “크크크! 후회하지 말라고. 크크크.” 그놈은 음습한 미소를 지으면서 더욱더 빠르게 검을 찔러들어왔다. 난 그 검을 끝까지 본 뒤 내가 소환해 낸 검으로 가볍게 쳐 냈다. 타앙! 검과 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나의 힘에 의해 테피언의 검은 잠시 주춤했다. 난 그 기회를 틈타 검을 들지 않은 왼쪽 손으로 그대로 테피언의 배 쪽을 손바닥을 펼친 채 타격했다. 쿠웅! 내 손바닥과 강철 갑옷이 부딪쳤건만 소리는 중후하게 울려 퍼졌고, 난 이상하게 하나도 아프지 않은 손을 보면서 의아했다. 아주 살짝 정도는 아플 것 같았는데 정말 하나도 아프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휘이익! “으아아아아악!” “…….” 바로 그때 내 앞에서 일어나는 기이한 현상. 테피언은 맞은 곳의 갑옷이 완전히 찌그러진 채 거의 60미터 이상을 날아갔고 잠시 후 나를 보면서 분하다는 듯 말했다. “무, 무슨 술수를……. 크윽.” “수, 술수라니! 난 그냥 가볍게 쳤을 뿐이라고.” 나도 의아했다. 왜 저넘이 한 방에 나가떨어지지? 저놈이 저렇게 허약한 놈이었나? 나는 너무나도 쉽사리 한 방에 떨어지는 테피언을 보고 고민에 잠겼다. 내가 약간은 예사롭지 않은 데미지를 내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설마 아니겠지? 난 그런 생각을 하면서 케미리를 바라보았고, 내 눈빛에 케미리는 당장 와이어를 땅에 버리더니 고개를 숙였다. “용서하옵소서!” “……. 후유, 다행이었다. 저것들이 SM이 아니라는 사실……. 남자들이 서로 서로를 SM 한다고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당장 토하고 싶은 생각이 불끈불끈 솟아올랐다. 그러고 보니 SM이라고 하니, 게임 초반에 만난 그 나메크 성인 친구(?) 쌍둥이 레즈비언 자매가 생각이 났다. 그 나메크 성인들은 나에게 감히 보석을 집어 던지더니 교묘하게 도망갔고, 그렇게 난 남들이 절대 하지 못할 색다른 경험을 해 보았다. 솔직한 말로 돈이라는 게 날 유혹만 하지 않았어도 거기에 갈 이유는 없었지만……. “마스터, 우리가 네가 찾는 던전을 얼른 찾아오겠다!” “응, 응!” “저도 참가하겠습니다.” 난 내 앞에서 비장한 어조로 던전을 찾겠다고 강력한 의지를 보이는 3명의 소환수들을 보고 감동했다. 저것들이 무슨 마음이 든 건지, 왜 저렇게 적극적으로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찌 됐든 테피언과 케미리, 피티언은 나에게 그렇게 인사를 한 뒤 엘르니아 던전을 찾기 위해 사라졌다. 방금 전 내가 개과천선을 시켜 준다고 했는데 정말 저렇게 변하다니, 역시 폭력이란 아름다웠다(?). “난 아직 죽기 싫다.” “나도 그래.” 테피언의 말에 케미리는 열심히 수긍했다. 얼마나 강력했으면 아직도 테피언의 갑옷이 절반 이상이나 복구가 되지 못한 상태였다. 복구력을 최고로 달리는 테피언의 갑옷이 이정도면 할 말 다 했다는 거였다. “완전 초괴물이야.” “너도 그렇게 생각했어?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미 인간이 아니야.” “그게 인간이면 인간에 대한 모독이야! 인간이 그딴 파괴력이 어디 있어!” “근데 그 인간, 저번에 레벨 얼마라고 했지?” “57이라던데…….” “하암……. 심심하네.” 난 심심했다. 이놈들이 던전을 찾으러 간 지도 6시간은 지난 것 같았다. 게임 시간은 혈실 시간의 2배였기에 현실의 시계로는 3시간밖에 지나지 않았겠지만 게임에서는 6시간이었기에 지겨웠다. 그나마 저렇게 예쁜 미소녀를 앞에서 지켜보고 있기에 견딜 만한 거지만……. 그러고 보면 채은이와 예화까지 난 평생 보기도 힘든 미소녀들을 두 명이나 알고 있는 것이다. 지금 머뭇거리면서 주스를 조금씩 먹고 있는 예화의 모습에 침을 주르륵 흘리고 있는 남자들을 보면 얼마나 귀여운 건지 그것만으로도 대략 추정이 가능했다. 그때 예화가 나를 보면서 쑥스러워 하며 말했다. “고마워요.” “응?” “아까 그 말…….” 아까 그 말? 난 예화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까 내가 뭐라고 했나?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떠오르지 않았다. “저를 지켜 주신다는 말이요.” “그, 그거…….” “네.” 단단히 오해를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 의미는 다른 쪽 의미였는데……. “하하! 고맙기는, 당연한 거지. 하하하하.” 하지만 나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예화가 좋게 받아들였으면 그만이었다. 괜히 이상한 말을 꺼내 필요는 없는 것이다. “나중에 현실에서 보답 꼭 할게요.” “아니, 꼭 그렇게까지는…….” 원래 양심은 달나라 하늘나라에 버린 나였는데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정말 양심이 찔렸다. 하지만 그 말에 예화는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아니에요. 항상 신세를 지고 있는데, 나중에 꼭 보답하고 싶어요.” “그, 그래라.” “고맙습니다.” 웃으면서 고맙다는 말까지 하는 예화를 보면서 양심에 진짜 아주 코딱지만큼 찔렸다. 그런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본래 달나라 하늘나라에 버린 내 양심이 돌아오려다가 다시 그쪽 나라로 가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런 귀여운 여자아이의 부탁을 거절하는 건 남자로서 실격이라고, 옛날 위대한 인물이 얘기했었다. 음, 에디슨께서 분명 그랬다. “얘들은 무슨 던전을 만들러 갔니, 뭐 하러 갔니?” 난 게임 시간으로 14시간, 현실 시간으로 7시간째 보이지 않는 3명의 모 군(?)들을 생각하면서 의아했다. 엘르니아 던전을 찾으러 간다고 의욕적으로 가더니, 의욕적으로 간 것치고는 정말 안 보였다. “…….” “…….” 나와 예화는 그냥 묵묵히 있었다. 벌써 새벽이었다. 우리는 새벽 내내 그냥 있었다. 처음에는 이야기도 마구 하고 그랬는데, 계속 이렇게 14시간씩 앉아 있었더니 무안했다. “저기…… 오빠, 저는 이만 가 볼게요.” “아, 그래.” 난 머뭇머뭇 말하는 예화를 보면서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현실 시간으로 7시간이면 꽤 많이 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나 같은 경우는 별일 아니었지만 내가 봤을 때 예화는 지극히 정상적이었기에 7시간도 엄청나게 한 게 분명했다. “그럼 실례할게요. 오늘도 즐거웠어요.” 꾸벅. 예화는 그렇게 예의바르게 인사까지 하고 나서 로그아웃을 했고, 난 그 모습을 보고 정말 감탄했다. 저렇게 예쁘고 착하고 예의까지 바른 미소녀가 있다니 정말 놀라웠다. 물론 내 근처에도 비슷한 여자가 있지만……. “어라, 누가 내 이야기 하나?” 채은이는 갑자기 귀가 간지러워져서 귀를 살짝 만졌고, 짐시 후 자신의 앞에 놓여 있는 음식들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오빠가 좋아하겠지?” 그녀는 민혁이의 도시락을 직접 싸는 중이었다. 그것도 행복한 표정을 지은 채……. “맞다! 양파를 안 꺼냈다.” 채은이는 양파를 꺼내지 않은 걸 기억해 내곤 냉장고로 가서 곧바로 문을 열었다. 벌컥! “안녕하십니까.” “정우, 네가 여기에 왜 있어?” 채은이는 기가 막혔다. 정우가 냉장고 안에 몸을 움츠린 채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흐음. 아쉽지만 형님이 저를 받아(?)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채은 양께 함께 들어가 달라고 부탁을 드리려고 왔습니다.” “그것까지는 좋은데, 왜 냉……장고야?” “방금 마침 우연히 얼음인간 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가씨…….” “아, 죄송해요. 오늘은 좀 많이 했죠.” 예화는 가상현실 게임에서 나오면서 자신을 걱정스러워 하는 시녀를 보고 미안하다는 듯 말했고, 그 말에 그녀의 시녀 다레는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아가씨께서는 그런 말씀 하시는 게 아닙니다. 죄송하다니요. 그런 말씀은 하시는 게 아닙니다.” “아니에요. 당연히 실례를 끼쳤으면 해야 하는걸요.” “…….” 예화가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 말하자 다레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말해도 저 아가씬느 너무나도 착했다. 지금 에화의 방은 총 40평의 면적이었다. 방 한 칸이 40평, 한마디로 예화의 집은 완전 재벌이었다. 그것도 초재벌. “아차!” “왜 그러십니까, 아가씨?” “저, 저기 다레 씨…….” “말씀하십시오.” “그, 그게…….” 예화는 막상 말을 하려고 하니 쑥스러웠고, 그 말에 다레는 말없이 예화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나자, 예화는 용기를 내서 말했다. “저, 저기 남자들이 좋아할 만한 선물이…… 뭐가 있을까요?” “남자 말씀입니까?” 다레는 그 말에 놀랍다는 듯 말했다. 예화의 입에서 남자라니, 기적이었다. “허억! 제길…….” 난 진심으로 심심했다. 이 인간, 아니 이 엽기 생물체들은 하루가 지나도록 아무런 보고도 없었다. 지금 게임 시간으로 18시간째 잠수. 한마디로 하루가 지나가는 것이었다. 오늘 잘하면 학교를 결석해야 할지도 몰랐다. 뭐, 그렇다고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난 반의 모범(?)이 되어야 하기에 가끔씩 조퇴와 결석을 병행하면서 다녔다. “이것들이 보고라도 해야 될 거 아니야!” 서서히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또 4시간이 자났다. 난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돌아오면 죽었어!” 슥삭슥삭. 난 소환된 검을 갈았다. 상당히 날이 잘 갈아져 있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갈고 또 갈았다. “제, 제발 오기만 해라.” 나는 이제 절규를 했다. 저번에 소환수들을 찾아내는 방법이 있다고 했을 때 배울 걸 그랬다는 후회도 밀려왔지만, 이미 시간은 너무 지났다. 이미 시간은 게임시간으로 42시간이 지났다. 얼마나 심심했으면 42시간 동안 운동만 했다. 힘을 키우는 운동을……. 원래 파괴력이란 힘에도 분명 영향을 받기 때문이었다. “오, 오빠…….” “예화야, 왔어.” “오빠, 몰골이 왜 이래요?” “그냥. 하하하하!” 어느새 예화가 다시 돌아오는 시간대가 되어 버린 것이었다. 현실의 시간으로도 하루를 꼴딱 세웠다는 것이었다. 뭐, 던전에서 한 달 갇혀 본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기본이었지만. “서, 설마 어제부터 줄곧?” “뭐…….” “네?!” 나의 말에 예화는 너무나도 황당해서 입을 쫙 벌렸고, 그때 저 멀리서 친숙한 인기척이 들려왔다. “마스터!” “나 왔다.” “나 왔어!” “죽여 버리겠어!” “오, 오빠…….” 난 그놈들을 보자, 갈던 검을 그대로 꺼내서 내 앞에서 해맑게 웃으면서 달려오는 소환수들을 향해 돌격했다. 누구는 이렇게 하루 종일 멍하니 있게 만들더니, 저것들은 즐겁게 웃으면서 총총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었다. “허억! 왜, 왜 그래. 마스터?” “우,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마, 맞습니다. 갑자기…….” “닥쳐! 죽여 버리겠어.” 난 케미리, 테피언, 피티언이 뭐라고 하든지 잔인한 미소를 지은 채 겁에 질린 3인방에게 다가갔다. 바로 그때 그런 나의 모습을 보던 테피언이 다급하게 말했다. “자, 잠시 진정해. 우, 우리가 네가 찾던 던전을 찾았다고!” “던전? 엘르니아 던저?” “응! 응!” 난 그 말에 순식간에 이성이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저번에 피티언에게 듣고 나서 항상 원했던 클래스, 일명 마법사, 그것도 나의 이 물리적인 데미지를 마법 데미지로 돌려 버릴 수 있는 지상 최고의 마법사의 열쇠가 지금 나타난 것이었다. “여기냐?” “어, 얼마나 힘들었다고. 다중 결계가 무지 많이 되어 있어서 들어가기도 힘들었다고…….” 말을 하는 케미리의 얼굴에는 뿌듯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저 똥강아지 얼굴에 아직도 힘든 기색이 역력한 것을 보아 그들의 말대로 정말 힘들게 뚫어서 들어온 듯싶었다. “근데 왜 던전이 내가 생각하던 것과는 많이 다르지?” “당연하지! 위대한 마법사의 던전이었잖아.” “흐음! 그래서 그런가?” 난 그것도 모르냐는 듯 너무나도 자신만만히 말하는 케미리를 보면서 금세 수긍했다. 내 앞에 보이는 것은 어마어마한 크기의 던전이었다. 크기만 가로 폭과 세로 폭이 400미터 이상인 듯싶었다. 던전치고는 정말 파격적이었다. 이런 괴물 같은 크기의 던전이라니, 이 던전을 만든 마법사 양반도 더럽게 할 짓이 없었나 보다. 이런 던전은 평생을 소모해도 못 만들 것 같은데…….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큰데…….”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생각을 거듭하면 할수록 너무 컸다. 좀 오버해서 저 끝이 보이지 않는 높이라, 흐음……. “쯧! 정말 이해력이 떨어진다니까. 요새는 웰빙 시대잖아.” 그런 나를 보고 안타깝다는 듯 말하는 개 한 마리를 보고 난 기가 막혔다. 어디서 웰빙 시대라는 이상한 말은 주워들어서……. 그리고 이런 커다란 던전과 웰빙 시대와이 상관관계를 나에게 좀 설명해 주었으면 하는데? 뭐, 어찌 됐든 난 기분이 조금 찜찜했지만 일단 내 앞에 있는 거대한 마법식 문을 열고 들었다. 용케도 저것들이 마법식 문까지 열어 버리다니……. 분명 공격계 마법밖에 쓰지 못하는 피티언은 아닐 테고 온갖 개폼을 잡고 있는 똥개 한 마리나 철갑 깡통 한 마리 중 한 마리였겠지만 그리 신경이 쓰이지는 않았다. 누가 하든 이상하게 궁금하지 않았다. 드르륵. 난 내 앞에서 갑자기 자연스럽게 문이 닫히는 커다란 자동문을 보고 왠지 모르게 재수 없는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난 애써 고개를 저었다. 설마 그런 일은 안 일어나겠지? “아자! 엘르니아 던전이다! 난 너희들이 자랑스럽다!” “간단했다.” “간단했어요.” “그렇다. 하하하하!” 케미리, 피티언, 테피언 순서대로 나의 칭찬에 반응을 하면서 신나게 웃었고, 난 처음으로 저들이 너무나도 자랑스러웠다. 그렇게 한참 동안 케미리, 피티언, 테피언은 나의 칭찬에 우쭐했고 난 그런 그들의 기분을 이해하면서 가만히 놔두었다. 그때 아까부터 들어오자마자 불안해 하는 표정을 짓던 예화가 나에게 말했다. “저, 저기, 오빠…….” “응? 왜 그래?” “여기가 정말 엘르니아 던전일까요?” “하하! 걱정 말아라. 우리가 똑똑히 확인했으니까!” 예화의 질문에 내 대신 테피언이 자신만만하게 말했지만 예화는 여전히 불안한 표정이었다. “뭐,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걱정 말라고!” 예화의 말에 테피언은 너무나도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런데 오히려 저런 모습을 보자, 왜 내 기분이 이리 우울하지? 나도 예화의 한마디 탓인지 가슴 한쪽에서 불안의 씨앗이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었다. 바로 그때 동굴 안쪽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침입자다.” “처리해라.” “죽여라.” “이건 어디서 많이 듣던 바이브레이션?” 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 바이브레이션의 주인공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 존재들은 저번에 내가 전직할 당시 상대했던 골렘들. 그렇지만 그때의 예사로운 골렘들이 아니었다. 청동 골렘부터 미스릴 골렘, 그리고 블러드 골렘까지 3종 골렘 세트가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역시 엄청나게 위대한 마법사여서 그런지 수호용도 대박이구만.” 난 그것을 복 살짝 긴장을 하면서 전투 자세를 하기 시작했고, 케미리와 피티언, 테피언도 마찬가지였다. 예화도 마법을 준비하며, 그렇게 우리는 앞에 있는 골렘들을 처리할 자세를 잡아 갔다. 바로 그때, 나의 눈에 믿어지지 않은 몬스터가 등장했다. “리치? 리치가 왜 여기에……?” 마법사의 던전에 왜 리치가 알짱거리고 있는 건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가 의아한 듯 바라보자, 리치는 나의 눈빛을 읽어는지 친절히 대답해 주었다. “간뎅이가 부었군. 감히 위대하고 완벽한 드래곤이신 엘루니여님의 레어에 들어오다니. 그리고 어떻게 결계를 넘어서 들어온 거지?” “엘루니여 레어? 엘르니아 던전이 아니라?” “미친 건가? 감히 드래곤 레어에 들어와서 헛소리라니!” 드래곤 레어란다. 드래곤, 지상 최강의 존재 드래곤……. 그 드래곤의 레어에 우리가 들어온 것이란다. 왜 내가 이곳에 들어왔지? 분명 케미리와 피티언, 테피언의 안내로 들어왔는데, 왜……? 난 한동안 너무나도 혼란스러워서 사고가 마비되었다. 그렇게 한참 멍하니 있다가 내 앞에서 무안한 표정을 짓는 3인방에게 연속 3단 발차기를 날리면서 말했다. 퍼퍼퍽! “네놈들은 글씨도 제대로 못 읽냐! 이 닭대가리들아!” <2권에석 계속> -by로사. 마스터 오브 웨폰 2권(풍의 힘) 제1장 드래곤! 지상 최강의 몬스터라고 할 수 있는 드래곤은 9서클 마스터와 더불어 모든 몬스터의 복종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어머어마한 존재였다. 그리고 이곳 테이스 월드에서는 소문만 무성할 뿐, 단 한 번도 모습을 보이지 않은 존재로 추정 레벨 9,000 이사이었다. “칭찬은 해 주지. 감히 위대하신 엘루니여님 레어의 수많은 결계를 부수고 들어온 것을, 예사롭지 않은 놈들이군.” 아니, 그런 칭찬을 해골바가지한테 듣고 싶지는 않은 게 내 심정인데? “결계를 부수고 온 것은 칭찬해 주겠지만, 당연히 목숨을 바칠 각오는 하고 왔겠지?” 자꾸 칭찬하지 말라니까. 해골바가지한테 칭찬 들어 봤자 기분만 이상해지는데, 그리고 무엇보다 죽을 각오를 한 적은 난 눈곱만큼도 없는데? 나는 당장이라도 이렇게 툭 내뱉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런 말을 할 분위기가 아니어서 참고 있었다. 그나저나 나의 3단 날아 차기에 맞아 바닥에 엎어져 있는 닭대가리 삼형제를 보고 궁금했다. 이놈들, 어떻게 드래곤 레어의 결계를 뚫고 들어온 걸까 하고 말이다. “훗! 막상 들어오니 겁먹었나 보군.” 내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있자, 그 해골바가지는 내가 겁을 먹었다고 생각했는지 득의양양한 미소를 짓는 것 같았다. 해골인 관계로 그냥 오직 짐작이다. 난 해골바가지가 짓는 표정가지 아는 독특한 재능은 있지도 않고 갖고 싶지도 않다. “크크크! 그럼 잘 죽어라! 으하하하!” 이번에는 웃었을 게 분명했다. 내가 이런 실없는 상상을 하고 있는 시간에 리치의 명령을 받은 골렘 3종 세트는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난 그걸 보면서 옆에 있는 닭대가리 삼인방을 그대로 발로 밟았다. 퍼퍼퍼퍽! “안 일어나? 뭘 잘했다고 누워 있어!” “허억!” “그, 그만!” “아, 아파! 마, 마스터…….” 난 패자마자 금방 반응을 보이는 닭대가리 소환수 삼인방을 보면서 왠지 모르게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내가 왜 하필 믿을 놈들이 없어서 저것들을 믿었는지 후회스럽고 또 후회수러웠다. 난 솔직히 말해 아무리 바보라고 하더라도 글자도 제대로 읽지 못할 줄은 몰랐다. 그런데 저것들은 글자도 헷갈리다니. “일단 어떻게 되든 살아남아야지, 전투 준비해.”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다시 전투 모션을 취했다. 아무리 말도 안 되는 상대를 만나도 그냥 죽을 마음은 없었다. “알았다, 마스터!” “응, 나의 실력을 보여 줄게.” “저의 마법 실력을 보여 드리지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각종 폼을 잡는 테피언, 케미리, 피티언. 그들이 바보 컨셉에 맞지 않게 전투에 들어가려고 하자, 왠지 마구 멋지게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난 잘 알고 있었다. 저놈들 평소에는 안 그러는데 오늘은 그래도 양심에 찔려서 그런다는 것을……. “흥! 간덩이가 쳐 부었군. 피의 아들들아, 일어나라!” 이 상황쯤에 비릿한 미소를 지은 채 쳐다보았을 게 분명한 리치가 주문을 외우자,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온몸이 부패되어 썩어 들어가는 좀비들이 바닥에서 개떼(?)처럼 튀어 나왔다. 안 그대로 청동 골렘, 미스릴 골렘, 블러드 골렘까지 정말 예사롭지 않은 세 놈이 딱 버티고 있었는데, 개떼 좀비들까지 보자 난 더욱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최소 7서클 이상은 상회하는 리치까지, 한마디로 상황이 무척 안 좋은 것이다. “훗! 같잖은 것들을 대량으로 내보낸다고 우리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으냐?” 케미리는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개 주제에 비릿한 미소까지 짓다니, 정말 이건 히트 감이었다. 저번에 그 근육질 아저씨가 영혼을 폭발시키는 직업이 있다고 놀라지 말라고 했던 기억이 났는데, 저걸 보면……. 흐음. “아니, 개 주제에 감히!” 저, 해골바가지가 할 대사는 아닌데요? 자신의 본모습을 망각한 채 케미리가 개라는 사실로 무시하는 리치였다. 하지만 오히려 케미리는 냉혹(?)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대로 점프했다. 그러더니 언제 꺼냈는지 검은색 와이어를 들고 앞에 있는 수십 명의 좀비들을 지나쳐 갔다. 푸지지직! 푸지지직! 푸지지직! 난 내 눈을 의심했다. 케미리가 지나간 자리에는 좀비들이 온몸이 갈라진 채 쓰러져 있었다. 도저히 다시 일어설 수 없을 정도로……. “와이어. 풍(風) 풍결.” “…….” “…….” “…….” 기술까지 말하면서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는 개 한 마리. 난 직접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저 닭대가리 삼인방 중에서 수재를 달리던 놈이 저런 말도 안 되는 모습을 보이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너 언제 죽냐?” “무슨 소리인가, 마스터?” “아니, 평소 보이지 않던 행동을 보이면 죽는다기에 이왕이면 죽는 시간이 궁금해서…….” “훗! 이게 나의 본모습인데?” 본모습이란다. 그걸 나보고 믿으라고? 그게 본모습이면 지나가던 똥개도 날아서 공중 발차기 720도를 한 뒤 그 자리에서 12바퀴를 돌고 그대로 날아서 로우 킥을 한다는 소리였다. 한마디로 제로라는 말이다. “으랏차차차차!”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닭대가리 데스나이트 테피언도 자신의 엄청난 대검을 뽑아서 그대로 그어 버렸고, 순식간에 좀비 수십 마리가 너무나도 가볍게 반 토막이 난 채 죽어 버렸다. “이건 꿈이야! 꿈이야!” 저것들이 저런 정상적인 모습으로 보이는 광경을 만들어 내다니, 난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다. “으랏차차차!” 푸지직! 이번에도 역시 단 한 방에 수십 명의 좀비들이 반 토막나면서 이상한 액체를 내뿜은 채 죽어 버렸고, 그런 테피언의 공격이 끝나기 무섭게 피티언의 주문 영창 소리가 들려왔다. “모든 것을 얼려 버리는 냉혹한 얼음의 영혼이여, 이 세상을 부숴 버리는 힘으로 내 앞에 있는 적을 얼려 버려라. 아이스 스톰(Ice Storm).” 쿠우우웅! 그 말고 함께 엄청난 얼음의 폭풍이 생성되었다. 그러더니 앞에 있는 좀비들과 3종 세트 골렘들, 그리고 리치까지 순식간에 강타했다. 휘이이익! 엄청난 얼음의 폭풍이 단숨에 리치들을 강력한 냉기의 힘으로 부숴 버렸지만, 리치와 3종 세트 골렘들을 모두 부수기에는 무리인 듯싶었다. 리치는 자신의 앞으로 오는 얼음의 폭풍을 힘껏 손을 저으면서 캔슬시켜 버렸다. 파짓. “캔슬?” 피티언이 자신의 마법을 캔슬하는 리치를 보면서 놀랍다는 듯 말했다. 캔슬은 어머어머한 마나와 고위급 클래스의 실력이 필요한 아주 소수만이 사용 가능한 기술이었다. 그런데 7서클 마법인 아이스 스톰을 캔스하다니, 예사로운 해골바가지가 아니었다. 뭐, 괜히 폼 잡는다고 캔슬한 모양인데,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가진 피티언의 마법을 캔슬하더니 비실비실해 보였다. 물론 난 거듭 말하지만, 리치의 표정을 읽는 재능은 없기에 완전 추측이었다. “크윽……. 저놈들을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역시나 개폼을 잡는다고 캔슬했던 게 타격이 컸는지 리치는 힘든 말투로 골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흐음, 이 기회에 해골바가지들 표정 번역사로 한번 나가 볼까? 뭐, 그런 직업은 당연히 없겠지만……. 쿠우웅. 쿠우웅. 그렇게 리치의 명령에 따라 3종 골렘 세트는 자기들 덩치에 걸맞지 않게 무서운 속도로, 각종 큰 기술을 한 번씩 사용해서 움찔하고 있는 삼인방을 향해 달려들었고, 난 그 모습을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 보기만 해도 힘들 것 같은 기술들을 펑펑 써 대더니……. 활(Bow) 소환! 인첸트 화(火)! 다중 공격 능력 활성화. 나의 주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또다시 들려오는 아름다운 목소리가 있었다. -타켓팅 조정합니다. 공격 인원수를 정해 주십시오. “내 앞에 있는 적 4명.” -타케팅을 설정하겠습니다. 크으윽! 여전히 많이 빠져나간다. 역시 이 기술은 마나를 완전 대박으로 잡아먹는다니까. 주문이 완성되자, 활에는 금방이라도 공격할 듯이 빛을 내는 무형의 화살이 걸렸고, 난 그 상태에서 그대로 나의 모든 거금을 들인 스킬이자 최고의 파괴력을 가진 스킬을 영창했다. “플레지마 스트레이트 샷!” 콰아앙! 나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4개의 무형의 화살에 플레지마 스트레이트 샷의 모든 기운이 집중되기 시작했고, 그와 더불어 쫙쫙 빠져나가는 마나를 느끼며 인상을 찌푸렸다. 피티언의 고위급 마법에도 멀쩡하던 나의 마나량이, 이 스킬 한 방으로 쭈욱 사라졌다. 그렇지만 그에 비례해 나의 근처에 있는 무형의 화살들은 보기만 해도 엄청난 파괴력이 느껴질 정도였다. 슈우웅. 난 그대로 그 무형의 화살을 놓았고, 그러자 곧바로 무형의 화살들은 내 앞에 서 있는 3종 골렘 세트들과 리치를 향해 섬광의 속도로 날아갔다. “크으윽! 뭐, 뭐냐?” 내 공격에 리치는 당황하면서 비명을 지르더니 심상치 않다는 걸 느꼈는지 방어막을 생성해 냈다. “배리어!” 쿠우우우웅! 순간적으로 배리어와 엄청난 충돌을 일으킨 화살은 3대 소환수들을 공격하려던 골렘들에게도 동시에 적중했다. 콰아앙! 어마어마한 폭발이 일어남과 동시에 리치는 커다란 충격으로 무릎을 꿇었고, 3종 세트 골렘들도 배 족에 엄청난 폭발이 일어나 움푹 파인 상태였다. 하지만 부서진 배의 돌맹이들이 서서히 새롭게 생성되기 시작했다. “이거, 이거 드래곤 레어에 있는 골렘들이어서 그런지 예사롭지 않은 것 같군.” “맞다, 예사롭지 않은 골렘이지. 내가 심형을 기울여 만든 골렘들이니까 평범한 골렘들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지?” 휘이익! 난 갑자기 내 뒤에서 웃음과 더불어 들려오는 소리에 표정을 굳히면서 그대로 활을 캔스시켜 버리고 재빨리 몸을 돌렸다. 그런 다음 순식간에 검을 소환해 냈다. 검(Sword) 소환! 휘이익! 난 검을 소환해 내자마자 여유로운 표정을 지은 채 서 있는 붉은색 머리카락을 가진 20대 초반의 남자를 향해 그대로 휘둘렀다. 나의 검은 순식간에 앞으로 쭉 뻗어 가 그 남자의 목 쪽에서 멈추었다. “휴! 엄청난 반응 속도구만. 예사로운 놈은 아닌가 보군.” “…….” “왜 아무 말도 없지?” “드래곤이냐?” “하하하! 내가 드래곤이라는 사실을 알면서 반말을 하는 것이냐!” 파지짓! 내가 존대말을 하지 않은 게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갑자기 엄청난 기운이 드래곤의 몸에서 흘러나왔다. 웬만한 존재는 이 기운만으로도 잘못하면 죽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기운이었다. 하지만 나와는 별개였다. 고작 이런 기운에 엎어질 정도면 내가 아니었다. 지지짓! 지지짓! 난 나를 노려보는 드래곤 한 마리를 보면서 눈싸움에 지지 않게 계속해서 노려보았다. 그렇게 한참을 노려보다가 드래곤이 먼저 웃으면서 말했다. “훗! 재미있는 놈이군. 마음에 들어.” “난 별로.” 나를 향해 음흉한(?) 시선을 보내는 드래곤을 보고 별로 내키지 않는다는 듯 말하자 드래곤은 더욱 호탕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크하하하! 내 앞에서 내 기운을 견디고 반말까지 하는 인간이 있을 줄이야!” 분명 저 드래곤의 기운은 느끼는 것만으로도 보통 사람에게는 쓰러질 정도였을지 모르지만, 나는 워낙 불행한 루트를 통해 이 자리까지 올라왔기에 평범한 사람하고는 달랐다. 지금도 그 누구도 발견해 내지 못한 드래곤의 레어를 찾아내지 않았는가? 물론 의도된 마음은 1%도 없었지만……. “환영하지.” 환영? 난 잘못 들었나 했다. 온갖 자만심으로 똘똘 뭉친 드래곤이 자신의 레어를 침범한 우리를 보고 환영한다고? 하지만 이런 나의 궁금증은 이어진 드래곤의 말로 풀렸다. “훗! 나는 너 같은 놈이 마음에 든다. 어차피 심심했는데 오히려 잘됐지. 음식이라도 대접하고 싶은데 받아 주겠나?” “으, 음식?” “음식이라는 말에 왜 이리 목소리가 떨리는 거지?” “아, 아니…….” 난 나도 모르게 먹을 거라는 말에 떨리는 목소리를 안정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이거 내 몸이 이상한 쪽으로 저절로 반응을 하다니……. 바로 그때, 그런 나와 더불어 피티언도 공허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난 그런 피티언을 보면서 100배, 1,000배 이해했다. 그런 비정상적인 생활을 했으니 당연했다. “이상한 인간이군, 크크. 뭐, 드래곤을 보고도 당당히 검을 내밀고 반말하는 놈이니 그것부터도 이상하지만. 자, 그럼 초대에 승낙한 걸로 생각하지.” 타악. 그 말과 함께 드래곤은 손가락을 부딪쳤고, 가벼운 소리와 함께 나와 예화, 피티언, 테피언, 케미리까지 자동으로 몸이 이동되기 시작했다. 한편 민혁이가 공격했던 3종 골렘 세트들은 상당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파괴된 배를 복구시키는 중이었다. 리치도 힘든 표정을 지은 채 계속해서 무릎을 꿇고 있었다. 파짓! 바로 그때, 갑자기 일어난 골렘들의 붕괴. 그들은 복구를 하는 도중 갑자기 모두 부서져 버렸다. 너무도 강력한 민혁이의 파괴력 때문에 끝내는 그 힘을 견디지 못하고 부서져 버린 것이었다. 골렘들과 함께 죽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고통스러워하는 리치만이 그 자리에 남아 있을 뿐이었다. 저 자식이…… 난 그래도 내 앞에 있는 수십 가지의 어마어마한 요리에 유혹당하지 않았다. 하지만 피티언은 만사 제쳐 놓고 완전폭식 모드로 그 수십 가지의 음식들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너의 부하는 식욕이 엄청나게 뛰어난가 보군.” “뭐…….” 그 말에 난 무안해서 고개를 돌릴 수 없었다. 누가 보면내가 너를 굶긴 줄 알겠다. 너만 굶은 게 아니라 나도 굶었는데……. 쳇! 얼마나 잘 먹으면 드래곤조차도 너를 보고 경악하고 있단다. 피티언, 좀 자중할 생각은 없니? 하지만 나의 이런 바람은 점점 흡수되어 가고 있는 음식들을 보면서 희망 사항일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진짜 더럽게 빨리 처먹네. “흠흠! 너는 안 먹는 것이냐?” “먹을 게 있어야 먹지.” 난 뚱한 어조로 대답했다. 벌써 음식들이 전멸했기 때문이었다. “…….”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거의 40인 분의 음식이 사라진 탁자를 보면서 드래곤조차도 입을 열 수 없었다. 바로 그때, 피티언은 너무나도 뻔뻔하게 말했다. “꺼억! 꺼억! 잘 먹었다. 약간 더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잘 먹었다는 말이 지금 네 입에서 나오는 것이냐, 피티언? 40인 분을 처먹고 부족하다는 말을 내뱉다니, 저놈의 양심은 정말 어디 달나라에 보낸 게 분명했다. “…….” “…….” 드래곤과 나에게서 오는 침묵. 정말 저 피티언, 어느 의미에서는 대단했다. 드래곤조차도 입을 다물게 만들어 버렸으니. 그나저나 40인 분 음식을 단 3분 17초 만에 먹다니, 이건 완전 먹는 대화에 나가도 충분히 1등을 할 게 분명했다. 많이 먹는 것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첫 번째는 천천히 먹어서 소화를 시키는 방법이었고, 두 번째 방법은 지금 피티언처럼 미친 듯이 먹어서 소화를 시키기도 전에 끝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두 번째 방법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대략 10분 뒤, 저놈은 엎어져서 배를 잡고 고통의 비명을 지를 게 분명했다. “우에에엑! 배, 배야!” 내 예상 시간보다 정확히 7분 20초나 빨리 온 게 약간 아쉬웠지만, 피티언은 배를 붙잡고 그대로 쓰러졌고 잠시 후 벌떡 일어나더니 다급히 어딘가를 향해 뛰어갔다. “흐흠! 참 재미있는 수하군.” “커험.” 난 어색한 헛기침을 하면서 저놈이 재미있다고 하는 드래곤의 뇌를 당장이라도 해부하고 싶었다. “그나저나 저쪽에 있는 여자는 인간인가?” “저, 저요?” 드래곤이라는 말을 듣고 겁을 먹어 너무나도 애처로운 모습으로 있던 예화가 화들짝 놀라면서 말했다. 보는 내가 너무나도 애처로워서 당장이라도 껴안아 주고 싶을 정도였다. “여자는 너밖에 없다.” “저, 저…….” “인간 맞아.” “흐음…….” 난 당황하면서 말을 하지 못하는 예화를 대신해 대답해주었고, 그 말에 드래곤은 이상한 미소를 지은 채 예화를 훑어보다가 말문을 열었다. “인간치고는 정말 예쁜 여자군. 우리 드래곤들이 폴리모프한 상태랑 비슷하거나 위이겠군.” 드래곤조차도 칭찬을 할 정도니, 예화의 미모는 역시 장난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솔직한 말로 예화랑 채은이, 얘들이 연예계에 데뷔하면 얼굴 하나만으로도 전국 남자들을 사로잡을 게 분명했다. “고, 고맙습니다.” 예화는 어찌 됐든 자신을 칭찬하는 드래곤을 보면서 여전히 공포에 떨면서도 감사의 인사를 했다. 한편 그 말을 들은 드래곤은 이번에는 주변에 있던 케미리와 테피언을 보면서 흥미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개 어쌔신과 흐음, 약간은 이상해 보이는 데스나이트라…….” “이상한 데스나이트라니! 난 정상적이다!” 드래곤의 말에 테피언은 울컥했다. 이상하다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나빴나 보다. 그러나 미안한 말이지만 드래곤 씨가 아주 제대로 보았다. 정말 보는 눈이 예사롭지 않은데? 그리고 테피언, 그렇게 설치다가 골로 갈 수 있단다. “크킄! 데스나이트 주제에 나에게 큰소리를 치다니! 평소 같으면 당장이라도 죽였겠지만, 마음에 드는 놈의 부하여서 내버려 둔다.” 움찔. 테피언은 자신을 보면서 말하는 드래곤의 엄청난 무형의 기운에 움찔하면서 움츠러들었다. 내가 대충 살펴본 결과, 테피언은 지금 상당히 겁을 먹은 게 분명했다. 역시 드래곤은 드래곤이었다. 무형의 기운만으로 테피언을 제압해 버리다니……. 그러면 난? 흐음, 잘 모르겠다. 나도 나 자신을 모르겠어. “이제 서론은 끝내고, 갑자기 왜 우리를 초청했는지 궁금한데?” 왜 드래곤이 할 짓 없이 자신의 레어에 침범한 존재를 환영했는지 난 정말 궁금했다. “방금 말하지 않았나? 네놈이 마음에 든다고.” “내가 왜 마음에 드는 거지? 너한테는 처음 말하지만 매일 남자들한테 말하지. 난 남자한테 관심 없어.” “크크크! 역시 재미있는 놈이야. 그리고 우리는 중성체다.” “난 중성체도 관심 없어!” “크하하하!” 내 말에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드래곤은 귀가 아플 정도로 크게 웃어 댔고, 잠시 후 웃음을 멈추면서 말했다. “난 강한 자와 용감한 자를 좋아한다. 그게 바로 네놈이지.” “…….” “훗! 우리 드래곤들은 지루하지. 수천 년의 삶을 사니까말이다. 그래서인지 새로운 유형의 인간들을 좋아하지. 크크! 뭐, 나만 그런 것이지만.” 거참, 특이한 취미의 소유자네. 드래곤들은 모두 성격도 괴팍하다더니 역시 사실인 것 같았다. 그런데 마지막에 한 말을 추리해 보면, 저런 괴팍한 성격을 가진 드래곤은 내 앞에 있는 드래곤밖에 없는 듯했다. “우에에에에! 주, 죽을 것 같아!” 그때 저 멀리서 배탈 난 배를 붙잡고 설치다가 돌아온 피티언이 갑자기 무릎을 꿇으면서 고개를 푹 숙인 채 말했다.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마오…….” 어디서 듣던 대사인데, 내 착각인가? 어찌 됐든 그렇게 난 드래곤과 만찬을 즐겼다. 물론 음식은 피티언이 모두 먹어서 만찬이라고 표현해야 할지는 헷갈렸지만. “그나저나 내 부하 놈들과 대화를 하던 내용을 들었는데 던전을 찾다가 나의 레어로 들어온 거라고?” “그래.” “크크크…….” “…….” 내 말을 듣던 드래곤은 뭐가 그리 좋은지 계속해서 웃었고, 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저 닭대가리 삼형제들이 한 일이었다지만 쪽팔렸다. 그리고 드래곤은 내가 아무리 변명을 해도 내가 글자를 잘못 읽어서 들어온 거라고 생각할 확률이 농후했다. 한참을 웃던 드래곤이 웃음을 멈추며 말했다. “엘르니아 던전이라고 했나?” “어딘지 알아?” 아는 듯한 말투로 말하는 드래곤을 보면서 설마 하면서 묻자, 드래곤은 당연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엘르니아? 인간 중에서 유명한 마법사였다지? 난 드래곤이다. 그런 놈이 던전쯤이야 당연히 알고 있다.” “허억!” “가고 싶나?” 끄덕끄덕. 난 맹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닭대가리 삼형제 때문에 많이 꼬이기는 했지만 성격이 괴팍하다고 알려진 드래곤이 친절하게 가르쳐 준다는데, 이런 절묘한 기회를 놓칠 만큼 난 바보가 아니었다. “어차피 나에게는 필요 없으니 잠시 기다려라. 지도를 가져오지.” 휘이익! 그 말고 함께 드래곤은 사라졌고, 난 갑자기 찾아온 희망에 눈을 반짝였다. 이곳에 온 이후 마법사 클래스는 거의 포기 상태였는데, 이렇게 좋은 기회가 생길 줄이야. “우리가 노렸던 거야!” “맞아, 맞아. 우리가 노렸던 그대로야.” “…….” 뻔뻔스럽게 말하는 테피언과 케미리. 그들은 당연히 지금 상황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했기에 이렇게 나를 드래곤 레어에 끌고 왔다는 듯한 어감을 풍겼고, 난 혹시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서 물었다. “너희들이 이 상황을 예견하고 나를 이곳으로 일부러 끌고 왔다는 소리냐?” “응, 응.” “우리는 예상하고 있었지, 크크크! 드래곤이 지도를 줄 거라고.” “…….” 난 너무나도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케미리와 테피언을 보면서 주먹을 쥐었다 폈다 했다. 지금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가만히 있는 피티언처럼만 행동했어도 난 닭대가리 삼형제의 실수를 용서해 줄 용의가 분명 있었다. 하지만 닭대가리 세 명 중 두 명은 정말 뻔뻔스럽게 말을 하고 있었다. 누가들으면 진짜같이. “마, 마스터, 갑자기 표, 표정이 이상해…….” “왜, 왜 그래?” “응?” 서서히 표정이 변하는 나를 향해 두려움에 떨면서 말하는 케미리와 테피언을 보고 난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물었다. 그런 다음 주먹을 꽉 쥐면서 내가 지을 수 있는 제일 화사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Shut up!” “부하들이 내가 다녀오기 전과 비교해서 좀 많이 달라졌군.” “응? 난 모르겠는데?” 케미리와 테피언은 열심히 손을 들고 있었다. 데스나이트의 철갑 한 마리와 개 한 마리가 손을 든 장면은 분명 웃긴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난 왠지 저것들을 보면 허파가 뒤집어졌다. “데스나이트 놈은 온 철갑이 다 찌그러졌고, 개는 온 얼굴이 멍이 들었군.” “그런가? 난 잘 모르겠다. 하하하.” “…….” 난 예리하게 지적하는 드래곤을 보면서 땀을 삐질 흘렸다. 역시 드래곤이어서 눈의 예리함이 장난이 아니었다. “뭐,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 자, 이게 지도다. 네가 찾는 엘르니아 던전 지도.” 툭! “이, 이게?” 난 내 앞에 E러어지는 약간은 낡아 보이는 지도를 보고 감격에 젖었다. 드디어 완벽한 지도를 찾아낸 것이다. 물론 평범하게 얻어 낸 건 아니었지만 어찌 됐든 얻어 냈다. “그것만 있으면 네놈이 찾고 싶어 하는 던전을 금방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근데 정말 공짜야?” “크크크! 그럼 드래곤이 이깟 지도를 주고 나서 갑자기 뭐라도 내호으라고 행패를 부릴 것 같으냐?” 아마도 그렇겠지? 드래곤이 할 짓 없어서 주고 나서 뭐 내놓으라고 행패를 부릴 리는 없겠지? “하지만 한 가지 부탁은 있지.” “허억!” 난 부탁이라는 말에 갑자기 긴장했다. 뭐 내놓으라고 행패를 부리지는 않겠지만 그에 비례해 부탁이라는 말이 나의 마음을 강타했다. 드래곤의 부탁이라면 예사롭지 않을 것이라는 걸 느꼈기에……. “크크! 별걱정은 없다. 난 네놈이 왠지 모르게 너무나도 마음에 든다. 나랑 친구가 되면 된다.” “나랑?” “그럼 너 말고 누가 있지?” “…….” 정말 독특한 드래곤이었다. 인간을 무시한다던 드래곤이 인간에게 친구를 하자니, 분명 다른 사람에게 들려줬다면 미친놈 취급을 당할 만한 말이었다. “하기 싫은가?” “아니, 싫은 건…….” “그런가? 크크크! 그럼 친구다.” “…….” 난 제멋대로 친구라고 단정 짓는 드래곤을 보고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그냥 놔두기로 했다. 드래곤하고 친구를 하면 좋으면 좋았지 나쁠 것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난 괴상망측한 성격을 가진 드래곤과 친구가 된 기념으로 열심히 그의 수다를 들어 주었다. 처음에는 카리스마 있어 보이더니, 지금 보니 그리 카리스마가 있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흠흠! 내가 좀 말이 많았지?” “자각하니 다행이네.” 나도 솔직히 말해 내가 별로 제정신이 아니라는 걸 이런때는 느꼈다. 드래곤을 앞에 두고 이렇게 막 대하다니……. 뭐, 내 성격이 그런 탓도 있지만 역시 각종 훈련과 시련들이 나를 이리 강하게 만들어 준 것 같았다. “하하하하하하! 역시 넌 마음에 든다!” 역시 성격 특이하다니까. 다른 드래곤 같았으면 벌써 최소 못해도 10번 이상은 싸움이 붙었을 게 분명한데, 내 앞에 있는 드래곤은 내가 말만 하면 무조건 마음에 든다며 웃었다. “나중에 심심하면 찾아와라.” “알았어.” 난 드래곤의 말에 선뜻 대답했다. 거절을 할 이유는 없었다. 여기에 오면, 오늘은 피티언 때문에 먹지는 못했지만, 엄청나게 호화로운 음식들을 대접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크크크! 그럼 이만 헤어지지. 잠시지만 재미있는 인간을 만나서 즐거웠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잠시지만 특이한 드래곤을 만나서 즐거웠어.” “크크크크!” “크크크크!” 난 또다시 이상하게 웃는 드래곤의 웃음이 왠지 모르게 재밌어 보이자 그대로 따라 해 보았다. 그런데 실제로 약간 재미있기는 했다. “자, 닭대가리 삼형제들과 예화야, 이제 그만 갈까?” 울컥! “닭대가리라니! 나 테피언에 대한 모독이다.” “맞아.” 내 말에 테피언과 케미리가 울컥해서 대들자 그 모습을 본 드래곤이 나에게 속삭엿다. “버릇이 없군. 네가 부탁한다면 머리를 개조시켜 줄 수도 있다.” “고맙기는 한데, 불가능해. 쟤네들은 절대 불가능하다는걸 난 깨달았거든.” 난 너무나도 고마운 드래곤의 말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저놈들은 너무나도 단순하고 바보여서 저것들의 머리를 개조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물론 포기는 하지 않았다. 노력은 아름다우니까. 언젠가는 저 닭대가리들을 개조하는 게 나의 목표였다. “그런데 예화랑 저 피티언은 뭐 하냐?” 난 음식을 먹고 배탈이 나서 한참 고생하다 다시 멀쩡한 얼굴을 하고 있는 피티언과 그와 이야기를 하면서 왠지 모르게 난감한 표정과 더불어 땀을 삐질 흘리는 예화를 보고 의아했다. 그래서 피티언과 예화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구석으로 슬그머니 몸을 이동했다. “빨리 예화 씨가 마스터를 꼬셔 달라니까요.” “그, 그게 저는…….” “아, 참! 다 행복하자고 하는 거라고요.” 응? 뭘 꼬셔? 예화가 나를? 난 도통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당연히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들었기에 아무리 내가 천재라고 하더라도 무리였다. “저, 저는 그냥 오빠가 하시는 일을 따를 뿐이에요.” 거참, 역시 말도 예쁘게 한다니까, 우리 예화는! “그러지 말고 우리 세계 정복을 한탕 하자고…….” 퍼억! “꾸에엑!” 난 세계 정복이라는 말에 그대로 날아서(?) 피티언이 머리에 발을 작렬시켰다. 세 명 중 그나마 정상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놈도 비정상적이었다. 새롭게 투입된 비정상 캐릭 두 명 때문에 나아 보였지만, 역시 이놈도 삼형제라는 걸 나에게 각인시켜 주는 순간이었다. 샤샤샥. 샤샤샥. 바로 그때, 엄청난 속도로 이동한 테피언과 케미리가 순식간에 피티언의 팔을 봉인했고, 테피언은 피티언의 머리에 우뚝 섰다. 그러더니 그들은 야리꾸리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신나게 패라.” “응, 응. 우리가 잘 잡고 있을게.” 난 대략 저놈들의 눈빛을 읽을 수 있었다. 자신들만 벌을 선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눈빛이었다. 아까 전에 아무 말도 안 해서 아무런 피해도 받지 않은 피티언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았다. “이런 놈은 맞아야 된다. 세계 정복이라니!” “맞아, 맞아. 천족 주제에.” 어이! 너희들이 할 대사는 아닌데? “자, 마스터, 패라. 즐켜!” “마음껏 즐기셈!” “자, 잠시 너희들……. 어, 어떻게…….” “응? 배신자의 입에서 나올 대사는 아니다.” “맞아. 이 드러운 놈! 자기만 벌을 안 받다니! 넌 배신자다.” “…….” 난 너무나도 의욕적으로 말하는 테피언과 케미리를 보면서 입을 열 수 없었다. 분명 지금 저 둘은 친해 보였다. 호흡도 척척 맞았다. 하지만 저것들은 비난과 남의 고통을 즐기는 취향이 있었다. 그러니 자기들이 위험하다 싶거나 비난의 대상이 되면 당장 배신할 게 분명했다. “자, 잠시 나를 놓아주면 그걸 주겠어!” “그걸?” “정말이야?” 바로 그때 위기에 처해 있던 피티언이 다급하게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고, 그 말에 테피언과 케미리는 정말이냐는 듯한 말투로 물었다. “물론……이다. 날 먼저…….” 퍼억! 퍼억!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테피언의 강철 주먹과 케미리의 개 발이 서로의 몸을 강타했고, 잠시 후 그들은 서로를 노려보면서 말했다. “내가 구한다.” “꼴값 떨지 마셈, 고철 덩어리.” “아니, 개새끼 주제에!” 이글이글. 그들은 ‘그것’이라는 한마디에 언제 사이가 좋았냐는 듯 원수의 눈빛을 띠기 시작했고, 난 그걸 보고 내 예상이 맞았다는 걸 알아차렸다. 저것들에게 우정이 있을 리 없었다. 이익을 위해서 1초도 고민 않고 친구를 배신하는 모습이 저들의 진정한 모습이었다. 그나저나 그게 뭐기에 저러는 거지? 이거 은근히 궁금하네. 어찌 됐든 그렇게 우리는 시끄러웠던 드래곤 레어에서의 휴식을 끝내고 다시 길을 떠날 준비를 했다. “흐음, 가는 건가?” “네가 찾는 던전이 있거든. 일단 내 사정 때문에 강해져야 해서.” “그런가? 그럼 언제든지 놀러 와라! 우리는 친구니까.” “시간 나는 대로.” “크크크크!” “크크크크!” 나는 독특한 웃음을 그대로 따라 했고, 그렇게 우리는 한참을 웃었다. 난 은근히 ‘크크크!’ 이러는 게 상당히 재미있다는 것을 느꼈다. 하면 할수록 중독이 되는 느낌? 이러다가 버릇되는 거 아닌지 몰라. “그리고.” 한참을 웃던 드래곤이 갑자기 진지한 표정을 지으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난 그 말에 드래곤을 의아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네리아를 조심해라.” “네리아? 그게 누구지?” 난 네리아라는 말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네리아, 마치 여자 이름 같은데……. 흐음, 어디서 들어 본 것 같기는 한데 막상 기억을 하려니 기억이 나지 않았다. “크으! 네리아를 모르다니 골 때리는군. 뭐, 나중에 알게 되겠지.” “흐음?” 난 영문을 알 수 없는 드래곤의 말에 여전히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네리아가 그렇게 유명한 존재인가? 아마도 이 게임에 관련된 존재인 것 같은데 도통 모르겠다. “크크크. 이제 작별의 시간이군. 아 참, 제일 중요한 걸 잊고 있었군.” “중요한 거?” “내 풀 네임을 말해 주지 않았지. 내 이름은 엘루니여 루케리에스다.” “기억해 둘게.” 난 친절하게 자신의 이름을 말하는 드래곤을 보고 가볍게 내 머릿속에 저장해 놓았다. 그나저나 만난 지 명 시간이 지났는데 이제야 이름을 알게 되다니. 어찌 됐든 닭대가리 삼형제 때문에 너무나도 어이없게 들어온 드래곤 레어는 약간 성격이 괴팍한 드래곤 덕분에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었다. 한편 민혁이가 그 자리에서 사라지자, 루케리에스는 조용히 민혁이가 떠나간 자리를 보더니 살며시 말했다. “웨폰인첸트…….” 그는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면서 슬쩍 웃고는 다시 자신의 레어로 들어갔다. 이건 뭐야! 난 내 눈앞의 괴이한 문자를 보고 침묵을 지켰다. 이 영문을 알 수 없는 글자들, 정말 거짓말 하나도 안 하고 단 한 글자도 읽지 못할 것 같았다. 물론 대략적인 그림이 나와 있기는 하지만, 그림보다는 글자에 의존해야 될 듯한 던전 지도였다. “이거 어떡하지…….” “왜 그러세요, 오빠?” “아니. 글씨가…….” 난 궁금하다는 듯 말하는 예화를 향해 엘르니아 던전 지도를 보여 주었고, 예화는 잠시 빤히 보더니 내가 왜 비명을 질렀는지 대충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요.” “아, 미치겠네. 힘들게 구한 건데 글씨가…….” “걱정 말라고. 내가 있잖아.” 네놈이 있으니 문제지. 나와 예화의 말에 테피언이 눈을 마구 살벌하게 빛내면서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저거, 눈만 보면 무슨 호러 영화에 출연할 수 있을 듯한 정도였다. 갑옷 안에서 눈을 반짝이면, 보는 사람은 심장마비에 걸릴 것 같았다. 물론 우리는 적응 끝. 처음 예화가 저 모습을 보고 나서 너무나도 놀라 나를 껴안은 걸 생각하면, 약간 좋기도(?) 한 눈이었다. “네놈이 뭘 하는데?” “훗! 모르는군. 내가 한때 각종 언어를 습득했었다.” “네가? “물론이지.” 데스나이트가 무엇 때문에 각종 언어를 습득했는지 궁금했다. 그렇게 할 짓이 없었던 거니, 테피언? “믿어지지는 않지만 일단 할 줄 안다니 믿겠어.” “크루크루. 놀랄 것이다. 크루크루.” 난 괴이한 소리를 내면서 내게 있던 종이를 가져가는 테피언을 보고 할 말이 없었다. 분명 저번에는 저 웃음소리가 아니었는데, 요새 웃음소리도 날마다 바꾸는 것인가? 컬러링처럼? 참 어이가 없다 못해서 난감했다. “흐음. 흐으음…….” “어때? 알 것 같아?” “흐음. 흐으음…….” 난 흐음, 흐음만 하는 테피언을 기대가 1/6,000만큼 가득한 채 바라보았다. 왜 1/6,000이냐고? 완벽히 믿으면 나중에 내 여린(?) 마음에 타격이 크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저것들과 생활하면서 저것들을 믿어 봤자 좋을 게 0.0000001%도 없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었다. 10분 후. “흐음. 흐으음…….” “어때, 좀 알 것 같아?” 난 10분 내내 계속 종이를 보면서 흐음만 반복하는 테피언의 모습에 약간은 지친 듯한 투로 물었다. 도통 저 갑옷 놈은 얼굴에 표정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았기에 말투로만 감정을 읽을 수 있었는데, 계속해서 흐음만 반복하니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모르겠다.” “장난치냐!” 난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테피언을 향해 그대로 날아 차기를 하려고 했는데, 바로 그 순간 경쾌한 타격 소리가 들려왔다. 퍼억! “…….” “마스터, 나 잘했지.” 어느새 테피언의 배에 강력한 한 방을 날린 개 한 마리. 분명 1시간 전만 해도 서로를 뭐 어쩌고저쩌고하더니 피티언의 알지 못할 유혹 한마디에 저렇게 변하다니……. 역시 저 개와 깡통 갑옷은 위대(?)했다. “이 새끼! 죽고 싶어?!” “흥!” “감히! 나 죽고 너 죽자!” “내가 원하던 거야!” 단숨에 다시 원수 모드로 들어가는 그들. 흐음, 너무 비열한데? “조용히 해.” “…….” “…….” 난 또다시 시끄러워질 것 같아 미리 한마디 던졌고, 내 한마디에 개 한 마리와 깡통 갑옷은 조용해졌다. 역시 폭력의 힘은 은근히 위력을 발휘한다니까. “오빠.” “왜 그래, 예화야?” 한참 고민에 잠겨 있던 예화가 말을 걸자, 난 저 소환수들과는 완전히 다른 억양으로 말했다. 내 주변인 중에서 그나마 제일 정상적이다 못해 너무나도 정상적인 소중한 존재. 정말 보물단지였다. “이 게임 직업 중엔 번역사라는 직업이 있어요.” “번역사?” “강력한 힘을 가진 직업은 아니지만, 이런 알 수 없는 글자를 해석하고 번역해서 일정량의 돈을 받는 직업이에요.” “오! 그런 직업이!” 난 그 말을 듣고 얼굴에 화색이 만연했다. 역시 정상적인 예화! 이런 현명한 방법을 제시하다니!(다른 곳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방법.) “마스터.” “그래, 피티언.” 그 말을 듣던 피티언이 갑자기 나를 향해 너무나도 진지한 어조로 물었고, 나도 왠지 분위기가 무거워지자 똑같이 무거운 어조로 대답해 주었다. “번역사라는 인간들을 납치해 올까요?” 제2장 습격 당연한 말이지만 기각이었다. 우리가 무슨 범죄자인가, 납치해 오게? 저놈은 분명 천족이었다. 천족. 성스럽고 착하고 정의를 위한다는 존재. 분명 내가 아는 천족은 이랬다. 그런데 내 앞에서 무늬만 천족인 이놈은 심심하면 세계 정복을 외쳤고, 온갖 불량한 일을 하려고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방금 전도 납치하지니, 나같이 순수한 존재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 “그런데 예화야, 번역사라는 사람들이 어디 있지?” “번역사는 약간 비환영 직업이라 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그래서 대도시나 가야 볼 수 있을 거예요.” “대도시라…….” 난 예화의 말에 말끝을 흐렸다. 그 정체불명의 근육질 아저씨 덕택에 수배가 풀리기는 했지만, 왠지 모르게 대도시에 간다는 말이 꺼림칙했다. 그러고 보니 영혼을 폭발시킨다는 직업, 나와 같은 류의 스폐셜 히든클래스……. 갑자기 그 근육질 아저씨가 한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다. 왜 그 이야기가 떠오르는 거지? 워낙 독특한 직업이어서 내 머릿속에 무의식적으로 저장된 건가? “어쩔 수 없지. 마법사 클래스를 위해서라면……. 예화야, 이 근처에 제일 큰 마을이 어디 있지?” “흐음, 잠시만요.” 그렇게 말한 예화는 지도를 펼쳐 살펴보기 시작했다. 예화는 지도를 한참 동안 보더니, 잠시 후 나에게 말했다. “여기서 한 600킬로미터 정도 가면 일을 거예요, 4대 도시에 속하는 에루카란이라는 곳이에요.” “…….” 600킬로미터라니……, 언제 가냐, 거기까지? “휴우…….” 난 그 말에 한숨을 내쉬었다. 600킬로미터를 어떻게 가겠는가? 물론 가지 못할 것은 없지만, 그렇게 비효율적인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방금 저희가 왔던 마을에서 텔레포트 마법으로 보내 주기도 해요.” “그래? 그런데…… 공짜?” “아니에요. 공짜는 아니고 600킬로미터으 거리면 여섯 번 정도는 갈아서 타야 돼요.” “여섯 번이나?” “네.” “그럼…… 설마 여섯 번 전부 다 돈을?” “네.” 이 도둑놈들! 완전 사기꾼들이었다. 대도시 한 번 가는 데 6번이나 갈아타라고 하다니! 칼만 안 들었지 완전 강도 수준이었다. “혹시 대충 가격이라도 알아?” “한 사람당 30골드예요.” 허억! 난 내 심장을 부여잡았다. 30골드? 한 사람당 30골드면, 여섯 번 갈아타면 180골드? 지금 내가 틈틈이 잡텝들을 팔아서 모은 돈이 900골드. 물론 내가 가지고 있는 아수라 스트라이크, 이 스킬북만 팔아 치워도 순식간에 재벌이 되겠지만 나중에 격투가 클래스를 위해 팔지 않고 있었다. -아수라 스트라이크- 자신의 피와 마나를 폭발시킨다. 피와 마나의 폭발을 기준으로 힘과 스피드를 올려 준다. 소모율: 체력 8,000, 마나 8,000. 공격력 상승: 5,000. 스피드 상승 30%. 5분 동안 유지된다. 이리 좋은 스킬을 어떻게 팔겠는가? 차라리 내가 쓰고 말지. 그나저나 그 이상한 미리스 스피드인가? 미래카인가는 아이템을 얼마나 많이 훔쳤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그 이후 거의 20일이 지났으므로, 한 10일만 있으면 아이템이 공짜로 들어올 것이다. 어찌 됐든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서, 180골드면 예화까지 포함해서 360골드. 여기까지는 아주 자연스럽게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저 깡통 갑옷과 개 한 마리, 그리고 세계 정복을 바라는 천족 한 마리의 값까지 지불하기는 싫었다. 저것들만 해도 540골드. 흐음! 피티언 저놈만 제대로 된 마법을 구사할 줄 알았으면 이런 고민도 할 필요도 없는데, 고위급 마법사를 두고 이런 고민을 해야 되는 내가 정말 슬펐다. “아 참! 피티언, 너 날개 있었지? 그럼 테피언은 다시 반지로 돌아오고, 케미리는 피티언이 등에 타서 오면 되겠네.” 흐흐흐! 난 그 말과 함께 마음속으로 웃었다. 이렇게 되면 저놈들 돈까지 낼 필요는 없는 것이다. “어라? 마스터, 모르셨어요?” “뭘?” 난 그 말에 문득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이 알 수 없는 불안감, 정말 불안했다. “저는 위에서 아래로밖에 날갯짓을 못해요. 밑에서 위로는 못해요. 하하하.” “…….” “왜, 왜 그러세요?” 저놈을 도대체 어디다 써먹으라는 거냐! 그나마. 형광 물질(?)로도 사용됐던 날개가 저런 효능밖에 없었다니, 난 좌절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테피어은 다시 반지로 들어갔고, 난 텔레포트 마법진 앞에 적혀 있는 문구를 보고 또 한 번 좌절했다. ‘애완동물도 절반의 값을 지불합니다.’ 난 당장이라도 이렇게 괴상한 애완동물이 어디 있냐고 케미리를 내밀고 싶었지만, 그런 나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다. 아무리 내가 뭐라고 하더라도 겉으로 보기에는 귀여운 강아지였기에……. 강아지 주제에 그 예리한 와이어를 다루고 그와 더불어 단검도 다룬다. 그뿐이면 말도 안 하겠는데, 거의 한 번에 3미터 이상을 뛰어오른다. 그리고 싸움도 엄청 잘한다. 이게 어딜 봐서 애완동물인가? 애완동물은 주인에게 귀여움을 선사해 주는 동물인데, 이놈은 나에게 좌절감만 줄 뿐이었다. “자, 그럼 가겠습니다.” 바로 그때 텔레포트 마법진을 관리하는 남자의 음성이 들렸고, 난 그 말을 듣고 이왕이면 루케리에스한테 부탁할 걸 그랬다고 후회했다. 그랬으면 공짜였을 텐데……. 내 돈!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내 어마어마한 돈을 투자해서 대도시에 도착했다. 만약 예화 혼자 있었으면 남자들이 공짜로 태워 준다고 난리를 쳤겠지만, 내가 있는 관계로 그건 무리인 듯싶었다. “후훗! 상쾌하구나.” 어느새 반지에서 나온 테피언은 공기를(?) 들이마시면서 감탄의 말을 던졌고, 난 그 말에 문득 궁금해졌다. “너도 냄새가 맡아지냐?” “아니.” “그럼 방금 상쾌하구나, 라고 한 건?” “그거? 대부분 어디 있다가 나오면 그러더라고. 케케케.” 또 바뀌었다. 저 기괴한 웃음소리……. 그렇게 난 테피언과의 짧은 대화를 끝내고 주변을 훑어보았다. 역시나 4대 대도시여서 그런지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아이템을 파는 사람들도 넘쳐흐를 정도였고, 연금술사부터 아이템 감정사, 별별 간판이 내 눈을 어지럽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덤으로 엄청난 크기의 용병 길드와 마법사 길드를 보는 것만 해도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최소 못해도 80평 이상의 어마어마한 크기, 그것도 3층까지……. 할 말이 없었다. 그렇지만 그만한 크기의 갑어치를 한다는 듯 수많은 사람들이 마법사 길드와 용병 길드를 찾아갔다. 마법사 길드는 마법 용품부터 마법 스크롤, 그리고 마법사의 스킬들까지 판매하는 곳이었고, 용병 길드는 돈을 벌기위해 의뢰를 받는 곳이었다. 이곳 대도시뿐만 아니라 다른 도시들도 마법사 길드랑 용병 길드는 사랑을 받았다. “그나저나 은근히 많네?” 난 그렇게 한참을 이곳저곳 살펴보다가 많은 번역사를 보고 말했다. 예화의 말에 따르면 상당히 적은 숫자의 직업이라고 들었는데 대도시여서 그런 건지, 아니면 오늘이 날이어서 그런 건지 간판에 번역해 준다는 표지가 많이 붙어 있었다. “역시 대도시여서 그런지 엄청 많네요.” “흐음, 대도시여서 그런 거였구나.” 난 예화의 말에 날이 겹쳐서 그런 게 아니라 4대 대도시 중의 하나여서 그렇다는 걸 알아차렸다. 번역사뿐만 아니라 각종 알 수 없는 직업들, 예를 들어 저 등에 ‘관’을 메고 다니는 기이한 직업도 아주 가끔씩 보이고 있었다. “그나저나 저건 무슨 직업일까, 예화야?” “네? 어떤 거요?” “저기 등에 관을 메고 다니는 사람.” “…….” 예화도 생전 처음 보는 직업이어서 그런지 나의 질문에 당황하는 기색이 가득했다. 흐음, 이 게임에서 은근한 만물박사라고 통하던 예화조차도 모르는 직업이라니 독특하긴 독특한 직업 같았다. “훗! 저것도 모르십니까?” “넌 아냐?” “물론입니다!” 나와 예화의 대화를 듣던 피티언이 자신만만하게 말했고, 난 그 말을 믿고 싶지는 않았지만 너무나도 자신만만한 피티언을 보고 한번 들어 주기로 했다. “말해 봐.” “저것은 장의사입니다! 하하하.” “…….” “…….” 나와 예화는 너무나도 어이가 없어서 아무런 말도 하지못했다. 어떻게 생각을 해도 저런 말도 안 되는 상상을! 게임에서 장의사가 왜 필요한지 난 물어보고 싶었다. 한 세 가지, 아니 한 가지만 대략 설명해 줘도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내 눈은 그 관을 향해 따라갔다. 그러고 보니 왠지 모르게 진짜 관하고 닮았는데, 설마 장의사라는 직업은 아니겠지? 하지만 나의 그런 상상도 잠시, 관 옆에 붙어 있는 글씨를 보고 현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맹칠이 장의사 아무리 자유도 100% 게임이라고 하지만, 이건 심하지 않아? 그렇게 우리는 각종 괴이한 직업을 보면서 우리의 목적인 번역해 준다는 곳을 찾아갔다. 이와 갈 거면 길거리의 허름한 데보다는 정식으로 차려 놓은 곳이 좋아 보였기에, 우리는 집까지 번듯하게 차려 놓은 번역사를 방문했다. 끼이익. “누구 없으십니까?” “어서 오십시오.” 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20대 초반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가 나타나서 우리를 반겼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무슨 용건으로 오셨습니까?” “흐음, 여기 있는 내용을 완벽히 번역 좀…….” 성격이 급한지 보자마자 용건을 말하는 그 남자는 내가 내미는 엘르니아 던전의 종이를 재바르게 가로챘다. 무슨 번역사가 저리 성격이 급한지……. “200골드입니다.” “…….” 무슨 가격 책정도 초스피드로 끝내? 단 3초 만에 끝낸 듯싶었다. 그런데 왜 저 남자가 지도를 보면서 눈에 이상한 광선을 뿜어내지? “어서 주십시오.” “아, 알았어요.” 난 내 전 재산 200골드를 꺼내서 그 남자에게 건네주었다. 그런데 왜 손이 이리 바들바들 떨리지? “손 그만 떠시고 주세요.” “무, 무슨 소리입니까, 소, 손을 떨다니.” “이제는 말까지 더듬으시는군요.” “…….” 크윽! 난 그 말에 200골드를 떠나보냈다. 저걸 벌기 위해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저렇게 너무나도 쉽게 떠나다니……. 약속한 것! “그럼 몇 시간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렇게 남자는 그 말과 함께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고, 난 그 남자가 들어가자 소환수들을 향해 눈을 빛냈다. “알았다.” “당연하지. 당할 우리들이 아니잖아.” “알겠습니다.” 우리는 순식간에 혹시 저놈이 지도를 갖고 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온몸의 감각을 발도시켰다. 혹시라도 도망가면 넌 죽었어. 그렇게 2시간이 자났다. 하지만 2시간이 자나도록 도망가는 흔적은 없어 보였기에 열심히 번역을 하고 있나 싶었다. 이렇게 집까지 차려 놓았는데 도망갈 리는 없을 듯싶었다. 털컥! “다 됐습니다.” “오! 수고하셨습니다.” 휘익! 난 내미는 지도를 재빠르게 낚아챘다. 거기에는 내가 읽을 수 있는 글씨와 그림이 아주 또렷이 적혀 있었다. “그럼 저는 이만.” 그 남자는 정말 그 말과 함께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어이, 그렇게 성격이 급해 봤자 좋은 건 없다고! 뭐,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었지만. 그렇게 난 내 손에 들어온 엘르니아 던전의 지도를 보고 히죽 웃었다. 마법사 클래스뿐만 아니라 거기에 있는 고가품도 잔뜩 가져올 예정이었다. 당연히 최고의 마법사 던전이었으니, 예사롭지 않은 물건이 바글바글하겠지? 한편 엘르니아 던전의 지도를 해석했던 남자는 자신의 방에서 땡잡았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저건 분명 엘르니아 던전! 데스 길드에서도 두 눈을 부릅뜨고 찾고 있던 거지? 크크! 저번에 분명 저거에 대한 정보를 발견해서 알려 주면, 데스 길드에 대한 특권과 12,000골드를 주겠다고 했던가?” 그 남자는 그 말과 함께 슬며시 웃었다. 분명 자신이 번역을 제대로 해 준 것은 맞지만, 그와 더불어 그 지도를 복사해 놓은 상태였다. 이제 이 지도를 데스 길드에 넘기면, 자신은 이 자리에서 계속 번역사와 더불어 데스 길드의 특권, 그리고 수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근처에 있는 번역사들의 집은 모두 문을 닫게 될 것이다. 그게 바로 데스 길드의 힘이니까……. 하지만 그는 몰랐다. 어디 건드릴 인간이 없어서 저 인간들을 건드린 건지. “생각보다 쉽네.” 지도 덕분에 길을 찾기가 쉬워지자, 얼굴에 절로 함박웃음이 지어졌다. “마스터, 저기죠?” “흐음, 어디?” 피티언이 한 곳을 가리키면서 말하자, 난 자연스럽게 피티언이 가리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고 거기에는 딱 던전 크기의 동굴 하나가 있었다. 난 그 동굴을 보자 당장 지도를 살피면서 글시와 그림을 대입해 보았고, 한참 후 저기가 내가 그렇게 찾던 엘르니아 던전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자 나의 눈에서는 아름다운 빛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흐흐흐흐흑.” “오, 오빠, 왜 우세요?” “아니. 너무 감격적이어서…….” “…….” 닭대가리 삼인방 때문에 정말 힘들게 찾아왔다. 만약 루케리에스를 만나지 않았다면 이 던전을 찾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이 던전은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찾는 던전이었다. 그리고 하향을 했다고 하더라도 여타 다른 비밀 던전보다 훨씬 찾기가 어렵다고 알려진 던전이었다. 좋게 생각하면 정말 저 닭대가리 삼인방 때문에 찾게 되는 거였지만……. 흐음,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저 닭대가리 삼인방의 웃음이 너무나도 해맑았다. 왠지 짜증나는 미소. 마치 자신들 덕택에 찾아냈다는 듯한 저 미소를 보니 분노가 불끈불끈 솟아오르는데? 그렇게 나와 예화와 피티언, 케미리, 테피언 이렇게 다섯명은 과연 어떤 게 있을까 하는 기대하에 그 던전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뭐야, 이 똥파리들은?” 난 인상을 찌푸렸다. 우리 주변으로 다가오는 엄청난 숫자의 인원, 그들은 우리가 도망가지 못하게 마치 올가미처럼 포위하면서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헤헤. 좋은 목적으로 다가오는 건 아닌 것 같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갑자기 몸을 푸는데?” “동의, 동의.” 내 말에 피티언, 테피언, 케미리는 순서대로 말을 했고, 그런 우리들과는 달리 예화는 긴장이 가득한 모습으로 바라보았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자, 우리들 앞에 서서히 모습을 나타내는 약 500명 정도의 사람들. 그중 제일 앞에 서서 예사롭지 않은 기운을 내뿜던 놈이 나에게 안됐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쯧! 재수 없는 놈. 괜히 엘르니아 던전을 찾아내서 말이야.” “네가 재수 없는데?” “지금 나에게 감히! 나 계진에게 말대꾸를 하다니.” “그럼 말대꾸하지, 가만히 있어?” “이이……!” 자신을 게진이라고 소개하며, 마구 자랑을 늘어놓는 한 놈. 대략 나이는 나랑 비슷해 보였는데 온갖 잘난 척을 해대고 있었다. 어쩌라는 건지……. 그나저나 어디서 많이 듣던 이름인데? “그런데 네놈…… 어디서 보던 놈인데?” 그놈도 나랑 같은 생각을 했는지 살기등등한 눈빛으로 나를 뚜렷이 바라보았다. 어머. 그러면 내 얼굴이 닳잖아. 이건 뭐 농담이고 어찌됐든 그놈은 한동안 계속해서 나의 얼굴만을 바랍더니 잠시 후 경악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너, 넌……!” “허억! 날 알아?” “이 새끼!” 경악을 하기에 똑같이 경악을 해 줬는데 괜히 그놈은 마구 화를 내다가 얼마 후 심호흡을 하면서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나에게 대뜸 말했다. “크크! 오늘 봉 잡았군. 엘르니아 던전뿐 아니라 내 동생 원수도 갚을 수 있을 것 같으니.” “네 동생?” “네놈이 PK한 내 동생 말이다!” “아하! 그 개념 무시한 초글링!” “감히 이놈이 내 동생보고 개념을 무시한 초글링이라니!” “너랑 같잖아. 새삼스럽게…….” “네놈! 죽여 버리겠다!” 내 말에 그놈은 엄청나게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도 대략 저놈에 대한 소문이 기억났다. 제가 꼴리는 대로 마구 하는 싸가지의 결정체. 물론 강력하기도 했지만, 데스 길드라는 어마어마한 힘을 가지고 포악한 행동과 개념 말아먹는 행동을 자주 한다는 놈. “가능할까?” “감히 나에게 꼬박꼬박 말대꾸를!” 내가 계속해서 답변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지 그놈은 비명을 질렀다. 드래곤한테도 꼬박꼬박 말 잘하는 난데, 너 한테 못할까? 그렇지만 솔직한 말로 손에 약간 땀이 나기는 했다. 숫자로만 따지면 500 대 5. 내가 아무리 날고 날아도 잘못 검에 찔리면 바로 죽어 버릴 터였다. 이럴 때 마법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쳇! “덤벼! 말이 많아.” “네놈! 오늘 갈가리 찢어 주겠다!” 그놈은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등에 메고 있던 무기를 꺼냈다. 거기에서 등장한 무기는 창, 흐음, 이 게임을 시작한 뒤 처음 보는 무기였다. “어이, 삼총사! 무조건 예화를 지켜.” “알았습니다, 마스터.” 나의 말에 피티언이 대표로 말했고, 난 그 말을 듣자 언젠가는 창을 소환해 내는 상상을 하면서 그대로 눈을 감았다. 검(Sword) 소환! 인첸트 수(水)! 채애앵! 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내 밑에는 마법진이 활성화되었고, 손에는 검이 소환되었다. 그뿐 아니라 검에는 모든 것을 얼려 버릴 것 같은 눈부시게 새하얀 얼음이 뒤덮였다. 이런 상황에서 화 속성 공격 시 데미지가 확실히 좋기도 하겠지만, 나는 얼음으로 상대방의 몸을 얼려 버리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았다. 500명이나 되는 인원을 살짝만 베어 줘도 잠시 동안 동빙의 효과가 날 테니, 이것이 훨씬 이익일 듯싶었다. “네, 네놈, 무슨 이상한 짓을!” “이상한 짓이라니, 이건 지극히 정상적인 짓이라고.” 한편 내 모습을 보던 계진은 잠시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솔직한 말로 무기를 소환해 내는 모습은 오늘 처음 봤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소환한 무기에 얼음의 속성을 인첸트했으니, 처음 보면 당황하는 게 분명했다. 그놈뿐만 아니라 그 근처에 있던 500명의 부하들도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다른 떨거지보다…… 저놈부터 죽여라!” 바로 그때 계진은 친절히 나를 가리키면서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고, 난 그 말에 피식 웃었다. 떨거지라니, 저것들이 닭대가리 삼형제이기는 했지만 너희들에게 무시당할 만큼 약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 오라고! 소드 리액트!” 난 저번에 그 괴이한 생물한테 협찬받은 스킬을 외쳤다. 단 한 방에 어마어마한 힘을 내게 하는 스킬, 마나를 최대 30%까지 넣을 수 있고 그에 비례해 데미지는 상상 초월로 올라가는 기술. 이렇게 단체 싸움에서는 단 한 방의 기술로 상대방들의 기를 죽이는 게 필요했다. 우우우웅! 냉기 상태로 있는 검에 마나가 주입되는 소리가 들려왔고, 난 내 최대 마나의 30%를 주입하기 시작했다. 움찔. 그들은 나에게 다가오다가 나의 검에 담긴 힘을 본능적으로 느꼈는지 움찔했고, 난 그걸 보고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너희들이 안 오겠다면 내가 가지.” 휘이익! 난 순식간에 다리에 힘을 모아 앞으로 뛰쳐나가 머뭇거리고 있는 그들의 중앙에 과감히 검을 찔러 넣었다. 파지지지징! 엄청난 힘과 함께 나의 검이 지나가자 데스 길드원들이 몰려 있던 곳에는 얼음의 잔재만 남았다. 한마디로 나의 검에 살짝이라도 베인 자는 그대로 몸이 얼어서 즉사해 버린것이었다. 역시 마나를 30%나 잡아먹어서 그런지 데미지자체가 예사롭지 않았다. “괴, 괴물이다!” 단 일격에 60명 이상이 죽어 버리자 그중 한 명이 비명을 질렀고, 그 모습에 난 내가 원했던 방향대로 돌아간다는 걸 알아차렸다. 저렇게 한마디 해 준 덕택에 다른 사람들까지 움찔움찔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저놈을 고슴도치로 만들어라!” “우아아아아아!” 바로 그때 들려온 음성, 난 다급히 음성이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어느새 도착했는지 궁수들이 나에게 활을 겨냥하고 있었다. “젠장, 뭐야!” 난 순간적으로 당황했지만, 그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활시위를 놓아 버렸다. 수우우웅! 최소 100개 정도의 화살이 나를 향해 날아왔고 난 거의 반사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내 검에서는 어마어마한 광풍이 흘러나오면서 그 화살들을 소멸시켰다. 난 대략 알 듯싶었다. 나의 검 2단계의 능력인 다중 방어 능력. 그게 발동된 것 같았다. 검과 활의 2단계들이 이리 좋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3단계부터는 도대체 어떤 기능이 발휘될까 궁금하기는 했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우선은 저놈들에게 복수를 해야 되기 때문에, 그리고 소드 리액트 능력과 다중 방어 능력으로 거의 절반 이상의 마나가 빠져나갔기에 오래 끌기엔 무리였다. 활(Bow) 소환! 인첸트 화(火)! 다중 공격 능력 활성화! -타켓팅 조정합니다. 공격 인원수를 정해 주십시오. “내 앞에 있는 적 궁수들.” -타켓팅을 설정하겠습니다. 후아, 이건 아니었다. 내가 계산을 잘못한 듯싶었다. 아니, 말을 잘못한 듯싶었다. 내 앞에 있는 궁수들만 해도 100명, 게다가 인첸트까지 시킨 무형의 화살이니 거의 항상 꽉꽉 차 있던 마나가 텅 빈 게 확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어떻게 하겠는가, 벌써 일은 벌어졌는데. 내 주변을 가든 채운 100개의 무형의 화살, 그 화살들을 본 궁수들은 너무나도 당황해서 활도 당기지 못하고 있었고, 그런 모습은 나에겐 환영할 일이었다. 파지짓! 사아아악! 사아아악! 내가 활을 놓자 바람을 가르는 수백 개의 화살이 정확히 100명의 궁수들을 향해 날아갔고, 동시에 그 화살을 맞은 궁수들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화르륵! 화르륵! “으아아악!” “뭐, 뭐야?!” “쿠에에엑!” 그들의 비명은 고통스럽게 울려 퍼졌고 단 한 번의 공격에 그들은 전멸했다. 물론 그렇게 강해 보이는 사람들이 없어서 가능한 거였겠지만. 그와 비례해 난 세 번의 공격에 사라진 마나를 보고 고개를 저었다. “하아압! 죽어라! 연산봉역 일섬!” 휘이익! “뭐, 뭐야?!” 마나가 없어서 한숨을 내쉬던 중, 계진이라는 놈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리치가 긴 창을 나에게 휘둘렀다. 난 방금 전 화살을 쏜 상태였기에 피할 기회가 없었다. 오로지 중요 부위를 안 맞으려고 몸을 비트는 것밖에……. 파앗! 하지만 역시나 무리였는지 그놈의 창은 나의 옆구리를 뚫었고, 난 허리에 느껴지는 따끔함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크윽.” “크크크! 감히 나에게 대들다니! 넌 이제 죽은 목숨이다!” “한 방 맞았다고 죽지는 않는데?” “크크! 아직도 말을 하다니, 대단하군. 못 느끼는 건가?” “뭔……. 케엑!” 난 말을 하다가 갑자기 어지러워지는 머리를 붙잡았다. 그리고 들려오는 음성. -치명적인 독에 감염되었습니다. 이런 제길, 내가 다른 놈들과 싸우고 있을 때 저놈은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창에 맹독을 발라 놓은 채……. 저놈부터 처리하는 거였는데, 젠장. “크크! 이제야 반응하다니. 역시 넌 예사롭지 않은 놈이군. 무기를 소환해 내지를 앉나, 무기에다 속성을 주입하지를 않나. 이 독을 맞고도 즉사하지 않다니……. 하지만 넌 여기서 끝이다!” 미안하지만 아직은 죽기 싫은데. 저놈들은 아직 멀었나? 난 그렇게 생각하면서 온 힘을 짜내서 나머지 소환수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200명 이상에게 둘러싸인 채 고군분투하는 소환수들이 눈에 들어왔다. 피티언은 내가 마나가 없으니 거의 몸으로 싸우고 있었고, 테피언은 검으로 쓱싹쓱싹 잘도 베어 넘겼다. 그리고 케미리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당황해 하는 적들을 향해 와이어를 날리며 목숨을 끊고 있었다. 그리고 예화는 틈틈이 보조 마법으로 도와주고 있었다. 이거 나만 뭐야. 나는 흐릿해지는 정신을 간신히 붙잡았다. 저놈이 대장이 있는데, 저놈을 주의하지 않은 내 잘못이 분명히 컸다. 솔직한 말로 단 한 방에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저놈이 이렇게 강한 맹독을 쓸 줄이야……. “크크크! 이만 죽어라! 이제 네놈 부하들도 너와 같은 절차를 걷게 해 주지. 이 독은 그 누구도 견디지 못하니까.” “젠장…….” “아참! 그리고 여자는 죽이지 않을 테니, 고마워하라고.” 난 야리꾸리한 미소를 짓는 그놈을 보고 짜증이 팍 났다. 독 때문에 의식은 점점 흐릿해지고 있었지만 그와 비례해 내 놈 속에 차는 마나를 느끼고 슬쩍 웃었다. 내가 이대로 죽으면 안 되겠지. “마스터!” “뭐야!” “방해하지 마!” “오빠!” 바로 그때 저 멀리서 다급히 달려오는 소환수들과 예화, 그렇지만 오면 올수록 막는 수백 명의 적들 때문에 전진을 못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계진은 나를 향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그 독을 견뎌 낸 것은 정말 예상 밖이었지만, 넌 여기서 죽는다! 죽어라!” 휘이익! 그놈은 나에게 그렇게 말하면서 창을 찔렀고, 난 그걸 그대로 끝가지 바라보면서 내 몸에 근접할 때쯤 외쳤다. 도끼 소환. 인첸트 화(火)! 화르륵! 내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엄청난 파괴력의 도끼, 그 도끼를 본 그놈은 순간적으로 당황하는 듯싶었고 난 혼미해지는 정신을 잡고 그대로 도끼를 휘둘렀다. 내 모든 힘을 담아서……. 콰아앙! “뭐, 뭐야!” 어마어마한 힘이 창과 격돌했고 난 정신을 바짝 차리면서 일어섰다. 그리고 힘으로 눌러 버리기 위해 더욱더 힘을 주입했다. -도끼 2단계로 진화합니다. 절대 충격파가 추가되었습니다. 이건 뭐야. 안 그래도 독 때문에 해롱해롱한데……. 바로 그때 나에게 들려온 소리, 그런데 정신이 해롱해롱해서 그런지 영 기쁘지가 않았다. “도, 도대체 무슨 술수를!” 더욱 세련되고 멋지게 변하는 도끼의 변신을 보고 그놈은 당황했고, 난 해롱해롱한 정신으로 강하게 내리찍었다. “임마, 죽어!” 콰아아아앙! 내 말과 함께 일어나는 엄청난 충격파. 순식간에 계진의 창은 반으로 쪼개지고 그의 몸도 부서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나를 향해 기습 공격을 하려던 부하들도 덩달아 엄청난 충격파로 인해 죽거나 다치는 큰 피해를 입었다. “이, 이건 뭐야?” 말도 안 되는 파괴력에 해롱거리던 정신이 확 들었다. 단 일격에 나타난 엄청난 파괴력, 경악하다 못해 황당했다. 그리고 분명 마나가 그리 많은 상태가 아니었는데 어떻게 발동이 된 거지? “마스터, 괜찮으십니까!” “마스터! 죽으면 안 된다.” “오빠, 괜찮으세요?!” 저 멀리서 피티언과 테피언, 그리고 예화의 음성이 들려왔고, 남은 부하들은 죽은 계진과 부하들을 보며 당황해 하면서 말했다. “퇴, 퇴각한다!” “퇴, 퇴각!” 그들은 마구 소리 지르면서 정신 사납게 도망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놈들은 약 절반이 목숨을 잃고, 절반은 살아남아서 도망갔다.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따라가고 싶었지만, 지금은 맹독 때문에 피가 쭉쭉 빠지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마스터, 괜찮으십니까?” 피티언이 나를 향해 걱정이 가득한 어조로 물었고, 난 그 모습에 약간 감동받았다. 흐흐흑! 평소에는 닭대가리인데, 이럴 때는 멋있다니까. “오빠, 해독약이에요.” 바로 그때 예화가 다급하게 나를 자신의 무릎에 눕히면서 얼굴을 살짝 붉히더니 나에게 해독약을 먹여 주었다. 난 훨훨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거, 가끔씩 중동괴어도 나쁘지 않겠는걸. 그런 실없는 상상과 더불어 여전히 회복이 안 되는 나의 몸. 이게 뭐야, 도대체 무슨 독을 썼기에 회복이 안 돼? “커억! 지, 진짜 또 죽는 거야?” “주, 죽지 마세요.” “예, 예화…….” 케엑! 서서히 바닥나는 내 피. 바로 그때, 내 귀에 이상한 음성이 들려왔다. “도를 믿으십니가?” 난 살아났다. 죽었는데 금세 살아났다. 단 30분 만에, 내 앞에서 도를 믿는지 물으며 강의하는 20대 중반의 장의사 덕택이었다. 장의사. 난 오늘 알 수 있었다. 이 직업의 효능을……. 이 직업은 죽음을 딜레이해 주고 페널티를 줄여 주는 직업이었다. 저 남자가 메고 있는 관. 그 관에 30분 정도 누워 있으면 이런 효능이 있는 것이었다. 은근히 괜찮은 직업이네? “도라는 것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하하하하.” “저도 도를 믿고 싶습니다.” “오! 아름다운 분이군요.” 내 생명의 은인이기는 했지만 이상한 말을 전파하는 놈과 그 말을 듣고 너무나도 기뻐하는 피티언, 흐음……. “그럼 도를 믿으면 세계 정복도 가능한가요?” “물론입니다.” “저는 지금부터 믿을게요!” “현명한 선택입니다.” 도대체 장의사라는 직업도 어이가 없는데, 그 장의사랑 도랑 무슨 관계지? 그리고 도랑 세계 정복이라는 것하고 무슨 상관이야? 내가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 좀 해 주지? 그렇게 그놈은 한참 도를 외치더니 약 5분 후 우리를 보면서 말했다.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만나도록 하지요.” “네, 사부님!” “역시 당신은 아름답습니다.” “뭘요, 하하하.” 이, 이럴 수가! 피티언과 뇌 구조가 비슷한 남자가 존재했다니! 기적이다 못해 초기적이었다. 이건 있을 수가 없어! “그리고 이건 제 명함입니다.” “아, 네.” 난 갑자기 내게 덥석 건네주는 명함을 보고 당황했다. 명함이라니? 갑자기 웬 명함? “그럼 저는 진짜 이만. 하하하하, 도를 믿어요!” 그렇게 장의사는 사라졌고, 난 그 장의사가 사라지자 내게 건네주었던 그 명함을 보았다. -투크리 장의사- 도를 믿으십니까? 하하하하. 크하하하하. 크크하하하하하! 명함치고는 많이 독특한데?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아닙니다. 길마님, 사실입니다.” “흐음…….” 데스 길드의 길드 마스터, 루라스. 비공식 랭킹에 소소되었고 공식 랭킹 1위를 압도한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였다. 그렇지만 루라스는 다른 중요 인물처럼 마구 난동을 피우는 것도 아니고, 격식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자신의 부하들이 하는 행동을 제재하지 않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야망이 있었다. 이 게임의 정복, 자신의 손 아래에서 다루고 싶은 야망이 있었다. “루케페치아 독을 가지고도 패했다고?” “네.” 루라스의 한마디에 보고를 하던 남자는 식은땀을 흘렸다. 말만 나눴을 뿐이지만, 그의 카리스마 때문에 온몸이 부서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계진이 루케페치아 독을 들고도 패했다…….” 루케페치아 독. 굉장한 맹독성을 가진 독이었다. 독 조합사들도 수백 명이 모여서 수천 번 이상 실패해서 한 개 나올까 말까 하는 엄청난 맹독. 수십 가지의 맹독을 조합해서 나오는 독이었다. 일단 1그램이라도 몸에 투입되는 순간, 그대로 즉사였다. 그만큼이나 강한 독이었다. “그리고 믿기 힘들지만, 그 독의 상당한 양이 몸에 침투된 상태에서도 움직였다고 합니다. 아니, 그 독을 침투된 상태에서 계진님을 죽였다고 합니다.” “흐음…….” 그 말에 루라스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 누구도 짐작 불가능한 표정을 짓던 그는 그 말을 듣고 한참 동안 턱을 쓰다듬더니, 잠시 후 자신의 앞에서 떨고 있는 부하에게 명령을 내렸다. “돌린다. 그놈의 제거에 최대한 모든 인원을 투입하나다. 그런 놈은 위험하다. 그리고 현상금을 부활시킨다.” “저…….” “무슨 일이지?” 루라스의 말을 가만히 듣던 그 남자는 현상금이라는 말에 뜸을 들였고, 그 말에 루라스는 기분이 나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그 남자는 다급히 말했다. “그, 그게…… 현상금은 불가능합니다. 벌써 그쪽에서 손을 써 놓은 상태여서…….” “그놈들 말인가?‘ “네.” 루라스는 그 말에 약간 짜증 난다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잠시 후 말했다. “그렇다면 진정한 우리들의 힘을 보여 주지. 데스 길드를 건드린 대가를 말이다.” 제3장 엘르니아 던전 우리는 다급히 던전으로 들어갔다. 언제 또다시 데스 길드 놈들이 들이닥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계진인가 하는 싸가지도 죽었으니, 아마도 나는 더욱 미움을 받을 게 분명했다. 얼른 지팡이를 소환해 내어 더 강해졌으면 하는 게 나의 바람이었다. 앞으로 단체로 싸울 일이 많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마법은 필수였다. 필수! 물론 괴이한 단체가 나를 도와주고 있는 듯싶지만, 그놈들도 별로 믿고 싶지는 않았다. “그나저나 평화롭네.” “그러네요, 마스터.” 나는 너무나도 평화로운 엘르니아 던전을 보고 이상하다는 듯 중얼거렸고, 내 말에 피티언도 동의했다. 조용해도 너무 조용했다. 들어왔는데도 던전을 발견했다는 등 하는 이런 음성도 없고, 그냥 던전 안으로 쭉쭉 들어갈 뿐이었다. 아니, 오히려 잘 들어가라고 길까지 잘 다듬어 놓은 상태였다. “마스터도 취향이 이상하구만. 평화로우면 좋은 거지.” 내 케미리가 토를 달았다. 하지만 저놈은 우리들의 재수 없는 일을 모른다. 유일하게 나의 마음을 이해하는 건 나처럼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피티언뿐이었다. 우리가 얼마나 서러운 생활을 해 왔는지……. 흐흐흑. “오빠, 설마 무슨 일이 일어날 리 있겠어요?” “그렇겠지?” “그럴 거예요.” 나를 향해 화사하게 웃으면서 말하는 예화. 역시 개가 이야기하는 거랑 미소녀가 이야기를 하는 거는 이렇게 달랐다, 달라도 너무 달랐다. “설마 내가 아무리 재수가 없고 저주파(?)를 내뿜는 저것들을 데리고 다닌다 하더라도, 또 설마 재수 없는 일은 안 일어나겠지?” “저주파리니요?” 저희는 행운파입니다.“ “그럼, 그럼.” “맞고, 맞고!” 피티언의 한마디에 기다렸다는 듯 말하는 테피언과 케미리. 정말 너희들이 행운파라고? 행운파라고 보기에는 원래 재수 없었던 인생이 더욱더 꼬여 가는데? 그런데도 정작 너희들은 그렇게 뻔뻔하게 말하다니……. 저놈들은 마치 철면피를 100번 볶아서(?) 씌운 것 같았다. 그러지 않고서야 저리 뻔뻔할 수는 없었다. 신도 저놈들에게는 한 수 아래로 접어 줄 것 같은 뻔뻔함이었다. “그럴 거예요.” 싱긋! 나의 불안함이 가득한 질문에 예화가 다시 한 번 웃으면서 대답해 주었고, 난 그 미소를 보니 우리들의 재수 없는 일들이 마구 떠나갈 것 같았다. 바로 그때. 끼이긱. “흐음, 발이 허전한데?” “저도요.” “밑에 문이 열렸네.” “…….” 나와 예화의 발밑에 갑자기 생긴 공간, 그리고 거기에는 나와 예화만이 서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만유인력의 법칙에 의해 나와 예화의 몸은 아래로 추락하기 싲가했다. 휘이익! “꺄악!” “마스터!” “예화 씨!” “마스터!” 예화의 비명 소리와 더불어 소환수들의 다급한 음성이 들려왔다. 그런데 난 왜 이리 감흥이 없지? 마치 당연한 일이라도 일어난 것 같았다. 흐음, 예화의 산뜻한 미소도 우리들의 저주를 풀기에는 무리였나 보다. 그나저나 잘도 떨어지는 구나. 저번의 이사한 던전보다 더 잘 떨어져. 근데 분명 위험 상황인데, 흐음. 난 떨어지면서 한가하게 턱을 만지다가 잠시 후 공포에 눈을 감아 버린 예화를 안으면서 말했다. “잘 착륙해야지.” 이제는 이런 상황에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내 자신이 미웠다. “허억! 마스터가!” “안 돼! 나의 예화 씨가!” 피티언의 절규와 더불어 테피언의 절규가 울려 퍼졌다. 그렇지만 테피언의 절규 대상은 민혁이가 아니 예화였다. “훗! 정말 재수 없는 마스터군.” “케미리. 말을 너무 심하게 하는 거 아니야?” “심하게 하다니, 피티언. 사실을 말했을 뿐이라고.” 케리미의 말에 피티언은 약간은 울컥해서 말했고 그 말에 케미리는 당연한 말 가지고 왜 그러냐는 듯 말했다. 솔직히 말해 테피언과 케미리는 민혁이의 목숨이 위험하지 않는 이상 항상 수수방관이었다. 유일하게 피티언만이 평소에도 충성하고 걱정해 줄 뿐이었다. 지지짓. 그렇게 피티언과 케미리는 알 수 없는 눈싸움을 했다. 바로 그때, 바닥에 떨어진 예화를 찾던 테피언이 갑자기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잠시 그만! 지금 이 알 수 없는 기분은 뭐지?” “무슨 기분?” “멀쩡한데?” 테피언의 한마디에 케미리와 피티언은 눈싸움을 멈추고 당장 무슨 일인가 신경을 집중해 보았지만, 그들에게 느껴지는 것은 지극히 평범한 느낌뿐이었다. “아니야. 이 알 수 없는 느낌, 좋지 않아.” 스르륵. 그 말과 함께 이제는 테피언, 케미리, 피티언의 발밑에 나타나는 공간……. “기 기분이었나 보네.” “으아아악! 데스나이트 살려!” “깨우우울!” 생전 이런 상황을 처음 당한 테피언과 케미리는 평소와 어울리지 않게 마구 비명을 질러 댔고, 그 모습을 본 피티언은 고개를 저었다. 자신도 민혁이와 마찬가지로 이런 상황에는 왠지 모르게 자연스러웠다. 이게 바로, 적응 완료? 쿠웅! “크으윽!” 난 발목에서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고통에 잠시 신음을 흘렸다. 아무리 나라도 엄청난 높이에서 그대로 떨어져 발 하나로 견디려니 충격이 영……. 그 증거로 피도 주르륵 좀 많이 꺾여 버린 상태였다. 만약에 제대로 착륙을 못했으면 그대로 죽음이었을 정도로. “도착했어.” “죄, 죄송해요.” 계속해서 눈을 감고 있던 예화가 나의 말에 퍼뜩 눈을 뜨면서 말했다. 뭐, 죄송할 것까지는 없는데……. 그나저나 가끔씩 들어 보는데 상당히 가볍다. 흐음 대략 42~43킬로 정도? 뭐, 정확한 수치는 아니고. 만약에 정우였다면 단숨에 신체 사이즈를 스캔하는 기능이 있겠지만, 난 정우처럼 괴이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 관계로 무리였다. “괜찮아. 신경 쓰지 마.” “무, 무거웠죠?‘ “아니.” 난 얼굴을 붉힌 채 귀엽게 말하는 예화를 보고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무겁기는커녕 가벼웠다. 그런데 예화는 좀 숫기가 없는 것 같았다. 얼굴이 자주 빨개지니 말이다. “그런데 여기는 어디죠?” 예화는 다급히 자신의 붉어진 얼굴을 정상대로 돌리면서 나에게 물었고 난 그제야 주변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30평쯤 되는 빈 공간. 없다. 말 그대로 30평 정도 되는 빈 공간이 끝이었다.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 “…….” 나와 예화는 말을 하려던 것도 까먹었다. 몬스터라도 있거나 무슨 선물이라도 있거나 정 안 되면 인공물이라도 하나 있든지 해야 하는데,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었다. 바로 그때 들려온 괴이한 목소리. -환영하오리라라라라라라라라. “뭐, 뭐야?” “오, 오빠…….” 이상한 12단 옥타브. 난 그 이상한 음성을 듣고 당황했다. 나뿐만 아니라 예화도 마찬가지였지만……. -허허허허! 너희들은 복 받은 것이리라라라라라라. “…….” 난 혀를 막 꼬면서 말하는 괴이한 소리를 듣자, 정말 기분이 구리구리했다. -너희들은 특별히 퀴즈로 이곳을 나갈 수 있는 행복함을 얻었노리리리리리리라. “…….” -영광인 줄 알아리리리리리리라. 퀴즈? 한편 피티언과 테피언, 케미리는……. “허억! 웬 무밭?” “나한테 묻는다고 알 리가 있냐?” 피티언의 질문에 테피언은 대답했고, 그들은 자신의 앞에 깔린 무밭을 보고 당황했다. 던전에, 그것도 함정 같은 데 떨어졌는데 무밭이 나오다니……. “…….” “…….” “…….” 그들은 수천 개의 어마어마한 무를 보고 입을 다물었다. 거의 500평 이상의 밭에 착실(?)하게 꽂혀 있는 무들, 팔아먹어도 꽤 돈이 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설마 이 무를 다 뽑아야 나가게 해 주는 건 아니겠지?” 피티언은 너무나도 힘들었던 과거 무 뽑기 퀘스트를 기억해 냈다.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을 정도로 그 기억은 끔찍했다. “아니, 너의 생각은 아닌 듯싶다.” “어?” 그 말을 듣던 케미리가 피티언에게 말했고, 피티언은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는 개 케리미를 보면서 당황했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너의 생각은 아니라고 하니,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아듣는 것은 무리였다. “저길 봐.” “어딜?” 케미리의 말에 피티언은 케미리가 가리킨 방향을 보았지만 그대로였다. 아무 이상도 없고, 그냥 평범했다. “저게 안 보이는 거야?” “뭘 말이야.” “저 무들이 다리가 달려서 서서히 튀어나오고 있잖아.” “허억!” 그 말에 피티언은 맨 구석부터 시작해서 천천히 다리가 생겨나면서 우믹이는 무들을 보고 경악했다. 아니, 다리뿐만 아니라 무에게 눈, 코, 입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말을 시작했다. “침입자……당.” “침입자……당.” “…….” 살아 움직이는 무들은 이상한 발음을 하면서 눈을 번쩍였다. 무들이 다리가 생겨나고 말을 하다니……. “저, 저건 뭐야?” “무슨 저런 몬스터가!” 저런 괴이한 몬스터를 생전 본 적 없는 케미리와 테피언은 굳었다. 아까 전부터 ‘허억!’ 이란 말을 끝으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던 피티언이 갑자기 침을 주르륵 흘리면서 말했다. “맛있겠다.” “…….” “…….” 먹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가리지 않는 피티언이었다. 시리도록 푸른색의 눈을 가진 남자였다. 그 남자는 자신의 앞에서 데스 길드라고 설치는 20명의 인간들을 스르륵 보더니 말했다. “꺼져라.” “너 지금 우리한테 한 소리냐?” “야, 겉모습 좀 카리스마가 있다고 우리가 겁먹을 줄 알았냐?” “우리가 누군 줄 알아? 데스 길드야!” “키키키.” 그들은 자신의 앞에서 너무나도 차가원 보이는 한 남자를 보고 깐죽댔고, 아무런 감흥 없이 그 모습을 보던 남자는 그대로 자신의 등에 메여 있던 무기를 풀었다. 그 무기는 두 자루의 검, 이도류를 사용하는 직업인 것 같았다. “얼레? 이도류? 개 폼 잡기는…….” “키키! 이도류는 아무나 쓰는 줄 알아?” “맞아, 맞아.” 그렇게 그들은 계속해서 약 올렸지만 남자는 아무런 감정이 없는 모습 그대로 조용히 검에 힘을 담기 시작했다. 파지지짓! 파지지짓! 그러자 검에서 생성되는 두 가지의 힘. 뇌격의 힘과 신성의 힘이었다. “…….” “…….” “…….” 깐죽대던 데스 기들원들은 심상치 않은 히에 침묵을 지켰고, 바로 그때 그 남자는 그 이도류를 그대로 내리꽂았다. 콰아아아아아앙! 뇌격의 힘과 신성력의 힘이 부딪치면서 어마어마한 힘이 생겨났고, 그 힘은 단번에 20명의 남자를 전멸시켰다. 츠르륵. 남자는 그 광경을 건조하게 바라본 뒤 다시 검을 집어넣었다. 바로 그때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짝짝짝! “훌륭하군.” “넌 뭐지?” “나는 메퍼. 그래도 내가 나이가 훨씬 많아 보이는데 기본적인 예의는 지켜야 되는 거 아닌가?” “내가 너에게 예의를 지켜야 할 이유를 확실하게 af해 준다면 짘켜 주지.” “크크크. 스페셜 히든클래스들은 다 이렇게 재미있는 건가?” 메퍼는 웃었다. 자신이 만난 스페셜 히든클래스들은 민혁과 이 남자밖에 없었지만, 둘 다 평범과는 거리가 멀었다. “나 말고 다른 인간도 있는 건가?” “물론 있지. 스페셜 히든클래스 중에서도 어마어마한 놈이.” “어마어마한 놈?” 그 남자는 내내 무감정한 표정이다가 어마어마한 놈이라는 말에 관심을 가지는 듯한 모션을 취했고, 그 말에 메퍼는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정말 독특한 직업이지. 어쩌면 자네와 비슷하겠군. 그 인간도 무기에 속성을 주입하니까. 그뿐 아니라 모든 무기를 다루지. 마스터 오브 웨폰! 바로 ‘모든 무기를 다루는 자’라는 뜻이지.” “그자는 강한가?” 그 말에 그 남자는 더욱 관심을 가지는 듯싶었고, 메퍼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당연하지, 최강의 데미지 딜러니까. 우리와 지금 자네가 죽인 데스 길드 놈들도 주목하는 아주 특별한 존재거든.” “너를 따라가면 만날 수 있는 건가?” “물론.” 메퍼는 그 남자, 레케미의 말에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어이가 없었다. 비밀의 던전인 엘르니아 던전에 들어오자마자 퀴즈? 여기서 왜 퀴즈라는 게 나오는지 궁금할 뿐이었다. -그럼 시작하겠노노노노노노노노라라라라. “…….” “…….” -첫 번째! 어디서 들려오는지도 분간이 안 가는 괴이한 음성은 침묵을 지키는 나와 예화의 행동이 긍정으로 보였는지 벌써 문제를 낼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난 그 말에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문제를 잘 듣기 위해 귀를 쫑긋 세웠다. -개미네 집 주소느느느느느느는? “…….” 그, 그게 뭐야? 난 갑자기 황당무계한 수수계기를 내는 그 기이한 목소리에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분명 퀴즈라고 들었는데? “마, 말이 다르잖아! 이건 퀴즈가 아니라 수수께끼잖아!” 너무나도 황당한, 어디서 들리는지도 모르는 그 목소리에게 말을 걸었고, 그 물음에 들려온 대답은 듣는 사람 허파가 마구 넘겨지는 말이었다. -퀴즈랑 수수께끼랑 그게 그거노리라라라라랄. “어딜 봐서 그게 똑같아?” -내가 그렇다니리리리리로로로로. 미친 목소리였다. 아니, 어디서 이런 거지 같은 것이 출연한 거야! 차라리 몬스터를 세트로 내밀든가! 이런 비정상적인 캐릭터, 아니 목소리를 상대하려니 내가 미쳐 버릴 것 같았다. -모르겠노라라라라? “내가 그런 황당무계한 수수께끼를 어떻게 알아!” -그럼 탈락……. “자, 잠시오.” 바로 그때 한참을 가만히 있던 예화가 말하자 그 목소리는 흥미로운 듯 물었다. -그래, 아는 것인가가가가가가? “혹시…… 허리도 가늘군 만지면 부러지리 아니에요?” 저게 뭐야? 개미네 집 주소는 허리도 가늘군 만지면 부러지리? 퀴즈랑 수수께끼랑은 아주 담을 쌓은 나였기에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정답이노라라라라! 저게 정답이야? 난 입을 쫙 벌렸다. 왜 저게 정답이지? 아무리 상상을 해도 뭔 말인지 이해가 안 가. -그럼 두 번째 퀴즈리라라라라라라. “퀴즈라고 하지 마, 임마!” 난 또다시 수수께끼 가지고 퀴즈라고 말하는 그 목소리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내 마음이노라라라라라라. “…….” 저 새끼! 당장이라도 모습이 보이면 한 320번 정도 밟아주고 싶었다. -그럼 귀여운 아가씨시시시시, 나의 문제를 또 맞혀 보리리라라라……. 설마, 저 새끼 어디서 지켜보는 건가? 난 그런 생각이 들자 다급하게 주변을 살폈다. 예화가 귀여운 줄 아는 것을 보면 보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주변을 살펴보아도 그 괴이한 목소리의 정체는 보이지 않았다. -그럼 2번째 문제! 끄덕. 그 말에 예화는 준비가 되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난 그냥 그 자리에 앉아 버렸다. 털썩! 어차피 할 것도 없을 것 같으니까……. -식인종이 밥투정할 때 하는 말은은은? “에이, 살 맛 안 나. 이거 아니에요?” -오! 또 맞혔노리리리리리라……. 예화야, 넌 언제 수수께끼도 배워 놓았니? 정말 너 같은 정상인이 내 옆에 있어서 난 진심으로 고맙단다. 그나저나 나머지 놈들은 어디 갔지? 흐음, 이거 한동안 끝날 것 같지는 않은데……. “…….” “…….” 피티언의 탐스러운(?) 눈빛을 본 무들은 경직했다. 저 사리사리(?)한 눈빛을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어서 와…….” 목소리까지 느끼하게 말하는 피티언. 그 목소리를 들은 무들은 뒤로 물러섰다. 수천 개의 무들이 구석으로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하는 것이었다. “어디 가는 거야? 사랑해 줄게.” “…….” “…….” 점점 겁을 집어먹는 무들을 본 피티언은 오히려 그 모습이 맛있어 보이는지 침을 주르르 주르륵 흘리면서 말했다. “하아아아. 어서 와. 내 뱃속으로!” 위이잉. 그 말과 함께 피티언의 눈은 형광으로 빛났고, 그대로 무 몬스터들을 향해 다이빙을 했다. “사, 살려 주리……랑.” “우, 우리는 다시 땅에 들어가리로……랑.” “제, 제발……랑.” 무들은 자신을 덮치는 피티언을 보고 경악했지만, 피티언은 아랑곳하지 않고 무들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무들은 안 잡히기 위해 마구 도망가기 시작했고 말이다. 한편 그 모습을 보던 테피언과 케미리는 진심으로 공포를 느꼈다. 평소에는 바보 같아 보이던 피티언이었는데, 지금 보니 장난 아니게 무서웠다. 저 눈빛, 이미 미쳐 버린 자의 눈빛이었다. -52번째 문제이리라라라라라라. 하아아암. 잠 와 죽겠다. 이게 뭐야? 끝이 없는 거야? 벌써 한 2시간은 있은 듯싶었다. 예화 혼자서 그 미친 목소리와 싸우고 있었고, 난 그 모습이 안타까웠다. 하지만 어떻게 하겠는가? 아는 게 있어야 도와주지. 차라리 적이라도 개떼처럼 몰려오면 다 쓸어버리면 될 텐데. 흐음! 그러데 정말 할 줄 아는 게 싸움밖에 없다니, 이 게임을 하면서 과연 나는 무엇을 했던 것일까? 그런 나의 상상과 더불어 미친 음성이 들려왔다. -제일 아름다운 음색을 가지고 있는 것은 누구리리리리리라? “네에?” -힌트는 바로 앞에 있도다다다다다. “…….” 저거 완전 작정했는데? 나라도 대략 알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질문에 오히려 예화는 당황했다. 대략 본 예화 성격상 거짓말을 잘 못하는 관계로 머뭇거리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내가 말해 줘야지. “네놈.” - 나 말인가가가가가가? 내 말에 지나치게 목소리가 밝아지는 그놈. 그래, 착한 내가 선의의 거짓말을 해 줘야지. “그래, 네놈.” -정답이리리리리로로로로. 이제 퀴즈는 끝났다노라라라라라. “그, 그럼?” 난 시큰둥하게 있다가 퀴즈가 끝났다는 말에 몸을 번쩍 일으켰고, 그 미친놈은 내게 지나치게 밝은 목소리 그대로 말했다. -열렸노리라라라라. “우아악!” “꺄악!” 바로 그때 우리들의 밑에 공간이 생겼다. 나는 통과한 사람들을 이렇게 바닥으로 떨어뜨릴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기에 비명을 질렀고, 그건 예화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제길! 목소리 놈, 나중에 걸리면 죽었어! 그렇게 나와 예화의 몸은 자유 낙하되었고, 난 예화를 안아 든 뒤 다시 침착함을 유지했다. 한두 번 해 보냐? 이제 전무가 수준이다. 그렇게 민혁과 예화가 사라지자, 뒤늦게 민혁이를 잡으러 온 데스 길드원들도 그 괴이한 방에 떨어졌다. 쿠우웅! 쿠우웅! “여, 여긴 어디야?” -잘 왔느리노라라라라라. “뭐, 뭐야? 어떤 새끼야?” -이제부터 퀴즈를 내리노라라라라. 그들은 그 괴이한 목소리에 긴장을 하기 시작했고, 그 목소리는 전혀 상관치 않고 또다시 문제를 냈다. -개미네 집 주소는 무엇인가가가가? “그, 그걸 어떻게 알아?” -모르는 것인가가가가가? “숨어 있지 말고 덤벼!” 그들은 최정에 요원이었다. 이런 던전에 단체로 들어오는 것은 별로라고 생각했기에, 강력한 자 10명만 선발해서 온 것이었다. -모르는 것이구나나나. 모르면 끝이노라라라……. 지지지직. “뭐, 뭐야?” “끄아악!” “레이저?” “마, 말도 안 돼!” 그들은 그 말과 함께 갑자기 사방팔방에서 내려오는 레이저에 전멸했다. 단 1초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괴이한 목소리는 은근히 무서웠다. 민혁이었다면 검에 방어 능력이 있었기에 어떻게 될지는 선뜻 점칠 수가 없었지만. 으으윽! 이번에는 꽤 긴데? 계속해서 떨어지면서도 난 너무나도 태평했다. 분명 지금은 초위기 상황이었다, 끝도 안 보이는 밑으로 계속해서 추락 중이었으니. 근데 왜 점점 마음이 편해지지? 그렇게 나와 예화는 한 3분 정도를 추락했고, 이제 바닥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약간 위험을 느꼈다. 3분이나 추락했으니 충격이 적지 않음은 당연할 것이었다. 난 곧바로 착륙할 준비를 했고, 땅에 근접해지자 긴장감도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정말 까딱하면 죽을지도 모르니 당연한 현상이었다. 이대로 떨어져서 죽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휘이익! “뭐, 뭐야?” 바로 그때 예화를 든 채 착륙을 하려던 나를 부드러운 바람이 감싸 안았다. 갑자기 바람이라니……. “…….” 그 바람은 나와 예화를 아주 부드럽게 바닥에 내려 주었고, 난 갑작스러운 현상에 어안이 벙벙했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상황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난 예화를 살며시 바닥에 내려 주면서 이 황당한 상황을 이해하려고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더 이해가 안 갔다. 그런 나의 마음을 알았는지 예화가 물었다. “오, 오빠, 여기는?” “예화야, 분명 여기 엘르니아 던전 맞지?” “아마도요?” “혹시 우리가 잘못 들어온 것 아닐까? 저번처럼 이름을 착각해서…….” “그렇지만 지도에도 정확히 엘르니아라고…….” “그런데 왜 이리 슬프지?” 내 앞에 펼쳐진 광경……. 거기에는 탁자와 더불어 너무나도 편안해 보이는 고급 소파, 그리고 고급 의자 등이 있어 휴식을 위해 만들어 놓은 공간 같았다. 저런 물건이 있는 게 그리 이상한 것은 아니었으나 장소가 맞아야지! 던전에 웬 소파랑 탁자, 의자 등 휴식 가구들이 마구 깔려 있냐 말이다! 여기가 과연 엘르니아 던전이 맞나 하는 의문이 마구 증폭되고 있었다. 멍한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보자 한구석에 놓여 있는 침대가 보였다. 얼씨구! 이제는 잠까지 자라는 거냐? 도대체 이해가 안 됐다. 엘르니아라는 최고 마법사였던 자의 던전이라고 들었는데, 세계 최고로 미친 자의 던전이라는 게 더 어울릴 것 같았다. 그 누구도 던전에 이런 말도 안 되는 걸 해 놓지는 않는다고……. 편히 쉬시오. 바로 그때 나의 눈에 들어온 글씨를 보고 엘르니아라는 마법사는 미친놈이었다는 걸 당장 깨달았다. “오빠, 여기 정말 엘르니아 던전 맞죠?” “이제야 내 마음을 이해하는구나.” 나의 질문에 엘르니아 던전일 거라고 대답해 주었던 에화 조차도 그 문구를 보고 반신반의하면서 물었다. 하지만 난 쉬라고 하기에 쉬려고 서서히 몸을 움직였다. 좀 미치고 괴이한 마법사기는 했지만, 이렇게 던전에 들어온 사람을 배려해 주는데 당연히 기대에 부응해야지. 터벅터벅. “오, 오빠.” “왜?” “혹시, 소파에 앉으시게요?” “응.” “그, 그게 혹시 함정이라도…….” “설마.” 난 그렇게 말하면서 소파에 앉았다. 그런데 아무 이상도 없었다. 좀 이상한 마법사이기는 했지만, 이리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다니. 그렇게 난 소파에서 온갖 자세를 바꿔 가면서 누워 있었고, 나의 그런 모습을 보던 예화도 살며시 다가와 소파에 앉았다. 그렇게 우리는 한참 동안 소파에서 쉬고 있는데, 한 20분정도 지나자 갑자기 양쪽에 있던 벽이 열렸다. 드르르르륵. 드르르르륵. “흐음, 예사롭지 않군.” 난 본능적으로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거라고 느꼈다. 갑자기 벽이 열리는 걸 본 예화는 여전히 소파에서 뒹구는 내 옆으로 재빨리 왔다. 나도 서서히 몸을 일으키면서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했다. 이내 벽이 열리고 그 안쪽에서 어마어마한 크기의 홀이 나타났다. 그리고 현수막 크기의 글자가 내 눈에 확 들어왔다. 충분히 쉬었으면 죽어야지. “…….” 난 저 글자를 보고 제대로 느꼈다. 이 던전을 만든 엘르니아라는 마법사, 착하기는커녕 고약한 성격에 미친놈이라는 것을. 크아아아아앙! 크아아아아앙! 바로 그때, 홀 안에서 들려오는 무시무시한 야수의 목소리, 그 목소리는 듣는 것만으로도 공포를 유발할 정도였다. 난 솔직히 모르겠으므로 정확한 내용은 패스. 크아아아아앙! 크아아아아앙! 다시 한 번 들려온 고함 소리, 왜 게속 저러지? 혹시라도 이럴 때는 비명이라도 한 번 질러 줘야 나왔던 쟤네들이 무안하지 않으려나? 난 그런 생각과 함께 목을 한 번 가다듬고 나서 계속해서 울부짖는 야수의 노력에 보답하고자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악!” “…….” “험험.” 그런 나를 예화가 황당하다는 듯 바라보자 그 눈빛에 무안했다. 장난이었는데, 좀 아니었나? 하지만 그런 나의 배려는 그 이상한 동물들을 만족시켰는지 더 이상 소리를 내지 않고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머리가 12개에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몸체를 가진 존재, 아니 개. 개 두 마리가 우리에게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너, 너희들은?” 난 개 두 마리를 보자, 말을 더듬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런 나의 반응에 오히려 그 괴상한 개 두 마리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듯싶었다. 아까도 비명을 안 질러 주니까 계속해서 울부짖더니……. 어찌 됐든 내가 저 괴이한 모습을 보고 놀란 것은 아니었다. 워낙 친숙한 존재가 문득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닭대가리 삼인방 중 수재를 달리는 똥 개 한 마리랑 무슨 사이냐?!” “…….” “…….” 어라, 웬 침묵? “에, 맛없어. 퉤! 퀘!” “…….” “…….” 피티언은 무 몬스트러르 정말로 먹었다. 하지만 지금 무의 몸체만을 한 입 먹고 뱉어 버린 상태였다. 아무리 먹는 걸 밝혀도 입과 눈이 있는 부분은 도저히 먹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그런 피티언의 모습에 테피언과 케미리는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저런 괴이한 몬스터를 먹다니, 충격적이었다. “우, 우리는 얌전하게 있을…… 것이당.” “그, 그러니 용서해 주시게……당.” 무들은 그 모습을 보고 공포에 떨었다. 본래대로라면 자신들은 침입자들의 제거에 힘을 써야 하지만, 피티언의 너무나도 무서운 모습에 주눅이 든 것이었다. “왜 너흳르은 맛이 없는 거야!” “…….” “…….” “…….” 무들은 자신들을 향해 왜 맛없냐고 따지는 피티언을 보고 침묵을 지켰다. 그럼 몬스터가 맛있을 리가 있나? 말도 안 되는 억지로 불쌍한(?) 무들에게 핍박을 준 피티언은 잠시 후 눈을 번쩍이면서 말했다. “맛없는 무는 필요 없다. 흐흐흐.” “사, 살려 주시게나……당.” “미안했도도……당.” 너무 당황해서 말까지 엉키는 무 몬스터들의 애처로운 반응에, 보는 테피언과 케미리는 안타까웠지만 저 광인의 눈빛을 한 피티언을 막을 자신은 없었다. 특히 케미리는 더욱더 그랬다. 괜히 섣불리 말렸다가 저 눈빛이 자신에게 향하면 보신탕이 되어 버릴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난 다른 건 용서해도 맛없는 건 용서 못해.” 저 말을 듣고 자신들이 맛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무 몬스터도 소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맛있어졌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고 맛있어지기는 무리이지 않은가? 한마디로 자신의 기대에 어긋나자 부리는 피티언의 억지였다. “죽여 줄게, 히히히히히.” 피티언은 이제 정체불명의 웃음까지 흘리며 겁게 질린 무 몬스터들에게 다가갔다. 바로 그때 피티언과 뒤에서 피티언의 폭주에 무서워하고 있는 테피언과 케미리의 발밑에서 문이 열렸다. 덜컹. “뭐, 뭐야?” “또야?” 갑자기 자신의 발밑에 생긴 공간을 보고 테피언과 케미리는 전과는 다르게 약간은 태평스럽게 말했고, 그에 반해 피티언은 떨어지면서 절규를 했다. “야! 저 맛없는 것들을 내버려 두는 것은 음식에 대한 모독이야! 안 돼!” 피티언이 아무리 비명을 질러 봤자 그의 몸은 중력을 거스를 수가 없는 관계로 떨어졌다. 물론 중력을 거스를 수 있는 비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니, 바로 플라이 마법이나 날개, 그렇지만 피티언은 플라이 마법은커녕 라이트 마법도 못하는 마법사였고, 그의 등 뒤의 봉인을 풀면 나타나는 날개는 하늘에서 땅으로밖에 착륙을 못했다. 아, 참고로 날개에는 형광 기능이 탑재되어 있었다. 한편 자신의 천적이 사라지자, 몬스터 무들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살았……당.” “우리는 살아……당.” “만세……당.” 무들은 너무나도 감격해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이게 바로 감격상봉……? 난 태 말에 묘하게 침묵을 지키는 개 두 마리를 보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내 말이 무슨 충격 음성인가? 케미리랑 무슨 관계냐고 물었을 뿐인데, 혹시 저것들이 본능적으로 케미리라는 개와 비교한다는 것에 충격을 먹은 건가? 난 영문을 알지 못한 채 침묵을 지키고 있는 개들을 바라보았고, 그때 천장의 문이 열리면서 눈부시게 빛나는 존재가 내려왔다. “허억! 눈부셔.” 난 라이트 마법보다 더 눈부신 그 존재를 보고 나도 모르게 눈을 가렸다. 이 성스러운 빛이라니, 혹시 천사라도 강림하는 건가? 물론 그럴 가능성이 농후했다. 나처럼 착하게(?) 산 존재를 미친 마법사가 만든 던전에서 구출하기 위해 천사를 보내는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왜 이리 익숙하지? 난 그 빛이 나와 가까워질수록 너무나도 익숙한 기분에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거참, 분명 익숙한 기분인데 드는 이 불안감이라……. 정말 독특한 기분이었다. “마스터! 무사하셨군요!” 이 목소리는? 나는 그 빛 속에서 너무나도 기쁘다는 듯 말하는 목소리를 듣고 금세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이 성스러운 빛도 누구건지 단번에 알았다.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질 때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날개를 가진 천족, 피티언이었다. “허억! 마스터, 보고 싶었어!” “마스터!” 분명 저 목소리는 테피언과 케미리의 목소리였다. 피티언은 그래도 나에게 충성을 하고 나를 항상 걱정하기에 그런대로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하지만 저것들이 나를 이렇게 애타게 부르다니, 이상하게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를 걱정해 주는데 왜 기분이 이렇게 우울침침해지지? 나도 알고 싶었다. 이런 나의 마음을……. 크아아아앙! 크아아아아앙! 바로 그때 침묵을 지키던 케미리의 사촌이종고모동생(?) 두 마리는 새롭게 나타난 세 명의 괴이한 존재를 보고 경계의 목소리를 표출했다. 하지만 저 닭대가리 삼형제가 고작 개(?) 두 마리에 놀랄 일은 없는 관계로, 난 케미리의 사촌이종고모동생(?) 두 마리에게 괜한 헛수고를 했다고 전해 주고 싶었다. “마스터!” 역시나 피티언은 저 괴이한 개 두 마리를 무시하고 기쁜 듯 나에게 달려왔고, 난 그 모습을 보고 왠지 감격스러웠다. 항상 닭대가리 삼형제라고 저것들과 포함시킨 게 미안해졌다. 그래도, 피티언도 나랑 있을 때는 소박한 세계 정복만 외쳤을 뿐 지금처럼 이상한 짓은 하지 않았잖아? 저건 분명 저기 서 있는 테피언과 케미리의 영향이 컸다. 그렇다면 저 둘과 그래도 정상적인 피티언을 격리시키면 모든 게 정상이 될 듯싶었다. 크아아아아앙!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자신의 울음소리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닭대가리 3인, 아니 2인과 감염 중에 있는 1인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그 개 두 마리는 더욱 크게 울부짖었고, 그런 그들의 반응에 갑자기 케미리가 떡하니 나오더니 소리를 질렀다. “크아아아아앙.” 크아아아앙! 크아아아앙! 케밀의 외침에 개 두 마리도 반응을 보였고, 난 그걸 보고 내 생각이 맞았다는 걸 확신했다. 역시 저 괴이한 두 마리랑 케미리는 같은 식구였다. “크아아앙!” 케미리가 답변하듯 다시 한 번 소리를 지르자 난 살짝 불안해졌다. 이상하게 왜 케미리와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저것들이 화를 내는 듯한 느낌을 받는 거지? “크아아아아아아앙! 케에엑.” 케미리는 열심히 외치다가 목에 뭐가 걸렸는지 헛기침까지 했고, 난 그걸 보고 한마디 해 주고 싶었다. 꼴값 떤다. 별짓을 다 하는 개 한 마리, 이 기분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그나저나 도대체 무슨 대화를 하는 거지? 알 수가 있어야지. 뭐, 본인한테 물어보면 금방 나오겠지. “야, 케미리.” “크아아앙.” “죽을래? 원래대로 말 안 해?” “크앙……이 아니라 왜, 마스터?” “저것들하고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거냐?” “무슨 이야기?” “응. 무슨 이야기를 하는 듯싶어서…….” “아무것도 안 하는데?” “…….” 아무것도 안 한다는데? 무슨 뜻이지? “내가 쟤네들 말을 알아들을 리가 있겠어?” “그럼 방금 크아아아아아앙은?” “그냥 재미있을 것 같아서. 하하하하!” 난 그 말에 살며시 웃었다. 어쩐지 저것들이 더욱더 흥분 한다더니 이게 이유였다. 그런데 왜 같은 과인데 의사소통이 안 되지? 흐음, 그것이 알고 싶노라. 퍼퍼퍼퍽! “크아아악. 마, 마스터! 잘못했어! 장난 안 칠게!” “허억! 케미리, 왜 네가 내 발밑에 있어?” “마, 마스터가 밟았잖아” “허억! 내가?” “그럼 누가 해!” 내 몸이 제멋대로 움직여졌지만, 당장 멈추고 싶은 마음도 없었기에 계속해서 밟았다. 퍼퍼퍼퍽! “마, 마스터, 잘못했어!” “허억! 미안……. 내 몸이 제멋대로 우믹여.” “뻥치미 마! 크아아악.” “거짓말 아니야. 내 별명이 순수청년이잖아.” 난 그렇게 말한 뒤 정말 거짓말 0.000001그래도 안 붙이고 내 몸 가는 대로 밟았다. 이건 내 잘못이 아니다. 몸이 제멋대로 움직이는데 나보고 어쩌라고. 그런데 이 똥개, 요즘에 웅크리는 게 예술인데? 난 최대한 아프지 않게 몸을 웅크리는 케미리를 보면서 진심으로 감탄했다. 이게 바로 교육의 산물, 그 모습 그대로였다. 벌써 나의 사랑의 매를 간파해서 방어를 하다니. 그렇다면 나도 신기술을 개발할 수밖에. 크아아아아아아앙! 크아아아아아아아앙! “아, 시끄러워. 거기 기이한 똥개들 좀 조용히 해!” ……. ……. 난 계속해서 시끄럽게 구는 개들을 보고 화가 나서 소리를 빽 질렀다. 그러자 12개의 머리를 가진 개들은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갑자기 나를 향해 돌격했다. 쿠우우웅! 쿠우우웅! 그것들이 그 육중한 몸을 이끌고 나에게 달려오자 난 케미리를 패던 걸 멈추고 그대로 집어서 피티언에게 던져 버렸다. 휘이익! “잘 보살펴 줘.” “나, 나 살아 왔어.” 케미리의 떨리는 목소리에 난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난 저것들을 개과천선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니면 쟤네들을 인간답게 만들어 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개 한 마리랑 유령(?)도 있으니 인간이라고 하면 좀 그런가?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12개의 머리가 달린 개들은 세트로 내 앞 30미터까지 다가와 동시에 24개의 머리에서 어마어마한 불꽃을 쏟아 냈다. 하아아앗! 하아아앗! 그 불꽃은 하나하나가 어마어마하게 강력해 보였고, 나와 내 뒤에 선 예화, 피티언, 테피언, 케미리까지 단번에 덮쳐 버릴 수 있을 만큼 범위도 넓은 상태였다. 검(Sword) 소환. 방어 능력 활성화. 파지짓! 주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의 손에는 검 한 자루가 들렸다. 난 그 검을 그대로 위에서 아래로 그었다. 휘이익. 내 부드러운 손짓에 검은 휘둘러졌고 광풍이 생성되면서 우리를 덮칠 것처럼 다가오던 어마어마한 불꽃을 그대로 삼켜 버렸다. 한마디로 소멸시켜 버린 것이었다. 그에 반해 내 몸에서는 마나가 줄줄이 빠져나갔다. ……크앙? ……크앙? 변이 똥개들은 자신들의 일격이 나의 검 한 번에 거짓말처럼 소멸당하자 당황하는 듯싶었다. 물론 이거, 보기에는 상당히 멋있다. 기선 제압도 된다. 그렇지만 상대방의 공격력이 강할수록 내 마나는 쭉쭉 빠져나간다. 한마디로 뽀대용. 2단계 스킬들의 마나가 이렇게 지독하게 많이 드는데, 3단계는 도대체 얼마나 많이 갉아먹을까 하는 걱정도 문득문득 들었다. “자, 그럼 오늘의 특별 메뉴. 변이 똥개의 하루입니다.” “허억! 나도 포함시켜 줘!” 내 말뜻을 용케도 알아들었는지 테피언도 하고 싶다는 듯한 말투로 나에게 말했다. 얼굴에 투구를 끼고 있으니, 무슨 생각으로 사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저, 저도요.” “나, 나도…….” 그때 피티언과 나에게 잔뜩 맞아서 얼굴에 멍이 든 케미리까지 다급하게 나섰고, 난 그걸 보고 저들에게 한 번 맡기기로 했다. “잘 부탁한다.” 그 말과 함께 내 몸은 바람을 갈랐고, 나의 기술과 우리들의 알 수 없는 대화에 당황하고 있는 변이 똥개의 목을 가볍게 쳤다. 그랬던니…… 기절했다. 이제 음식은 차려졌다. 나는 이만 퇴장하려고 한다. 예화를 데리고, 여긴 비교육적인 장면이걸랑. “크크크!” 세 명의 소환수들은 자신들의 앞에서 고이 잠들어 있는 변이 똥개 두 마리를 보고 침을 흘렸다. 그들은 이제 서서히 밟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무, 무슨 일이에요?” “응? 아니야, 예화야. 아무건 것도 안 해.” 크아아아아아앙아아아아아앙. 크앙크앙크앙. “…….” 저것들, 왜 저리 시끄러워? 저 변이 똥개는 자신들이 나왔던 곳으로 피티언과 테피언, 케미리에게 끌려간 상태였다. 저 잔인간 것들, 저렇게 패 대다니. 험험, 내가 할 대사는 아닌 것 같았다. “오, 오빠, 이거 아까 그 케르베로스의 비명 소리 아니에요?” “케르베로스? 케르케르케르 하는 놈?” “지옥의 마수라고 알려진 몬스터에요.” “허억! 저놈들이 지옥의 마수?” “네.” 근데 지옥의 마수들이 왜 절 비실비실하냐? 온갖 잘난척은 다 하고……. 흐음! “그렇구나.” 난 금세 수긍했다. 저것들이 케르베로스인지 카르베로스인지 전혀 관심 없었다. 내가 관심 가지면 아이템이나 돈을 줄 것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이 괴이한 던전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진짜 마법사 클래스 획득하기 더럽게 힘드네. “쿠에에엑!” “뭐, 뭐야?” “마, 말도 안 돼.” “어라?” 바로 그때 케르베로스라는 개들한테서 들려오는 비명이 아닌 3대 소환수들이 당혹한 음성이 들려왔고, 난 이내 궁금증이 밀려왔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케르베로스의 비명이 울려 퍼졌는데, 단 몇 초 만에 상황이 역전된 것이었다. “오, 오빠, 무슨 일이 일어난 거 아니에요?” “아마도 그런 것 같다.” 난 다시 예화와 함께 소환수들의 비명이 들려오는 곳으로 이동했다. “허억! 마스터, 헬프!” “저놈이 미쳤어!” 부비부비. 난 테피언과 케미리의 긴급 요청보다도 내 앞에 있는 15미터 정도의 엄청난 키를 자랑하는 괴물을 보고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아서 계속해서 눈을 비볐다. 분명 저놈의 생김새는 아까 봤던 케르베로스랑 또같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몸이 거의 4배 이상 커져 버렸다. “마스터, 저놈이 갑자기 변신 합체를 했습니다.” 변신 합체? 난 진지한 어조로 내게 보고하는 피티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요새는 생물들도 마구 변신 합체를 하는 거냐? 그래, 백번 양보해서 그건 그렇다고 치고. 그런데 왜 변신 합체를 하는데 4배가 더 커지는 거지? 1 플러스 1은 2다. 그런데 1 플러스 1이 4가 나올 수도 있는 거냐? 내가 아무리 공부와 담을 쌓아도 그 정도는 안단 말이야. 바로 그때 케르베로스가 나를 보더니 갑자기 눈을 번쩍였다. “마, 마스터, 위험합니다!” “젠장!” 난 고민에 잠긴 나를 향해 앞발을 들어 잔인하게 밟으려는 케르베로스를 보면서, 내 옆에 있던 예화를 잡은 채 그대로 옆으로 이동했다. 쿠우웅! 나와 예화가 피한 그 자리에는 어마어마한 크기이 발자국이 찍혔고, 나는 식은땀을 흘렸다. 저거 잘못 맞으면 한 방에 죽을 것 같았다. 크아아아아아아앙아앙! 아까보다 더욱더 큰 소리를 지르는 케르베로스였고, 난 도끼를 소환하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도끼 소환! 인첸트 화(火)! 절대 충격파! 쿠우웅! 내 손에는 모든 걸 부숴 버릴 듯한 도끼가 생성되었다. 저렇게 맞을 데가 많으면 많을수록 공격 속도는 느리지만, 파괴력이 좋은 도끼에는 최강의 재료였다. 난 도끼에 화 속성과 함께 2단계로 활성화시킨 채 그대로 달려 나가 그놈의 다리를 gi해 도끼를 휘둘렀다. 휘이익! 어마어마한 힘 때문이어서 그러지 바람을 가르는 소리조차 예사롭지 않았고, 그렇게 도끼는 그대로 케르베로스의 다리에 적중했다. 그것도 완벽하게. 콰아아앙! 어마어마한 폭발음이 들려왔고 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아마도 어마어마한 충격을……. 크앙? “…….” 하지만 이런 나의 바람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내 도끼에 맞은 케르베로스는 오히려 가소롭다는 듯 보고 있었다. 분명 어마어마한 폭발이 났는데……. 폭발만 났나? 크앙……. 풋! 비, 비웃었어? 난 나를 향해 살짝 입 꼬리를 치켜올리며 비웃는 케르베로스를 보면서 분노에 휩싸였다. 아니, 변이 똥개 주제에 나를 비웃어? 하지만 그런 생각과 함께 걱정이 불어났다. 내가 가진 것 중 최고의 파괴력을 자랑하던 것인데, 이렇게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다니……. 바로 그때, 내 눈에 들어온 피티언의 마법 외우는 모습, 난 다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아마도 방어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하더라도 마법까지는 아닐 듯싶었다. 그렇게 피티언은 한참 주문을 외우더니 완성시켰다. “모든 것을 부숴 버리는 산성이여, 모든 것을 소멸시키는 그대의 힘 앞에 적을 섬멸하리라. 애시드 스톰(Acid Storm)!” 이런 미친! 저건 산성 폭풍이잖아! 난 피티언의 주문을 듣고 기겁했다. 저건 주변 전체를 초토화시키는 마법. 그걸 이런 데서 쓰다니 같이 전멸하자는 거냐? 하지만 곧 이런 나의 생각은 오류라는 걸 알아차렸다. 피티언이 공간을 만들어 케르베로스의 주변에만 활성을 시킨것이었다. 난 저놈이 저런 것도 할 수 있다는 게 너무나도 신기했지만, 그것보다는 이제 산성 폭풍에 휘말려 죽음을 맞이하는 케르베로스가 더 보고 싶었다. 크앙? “…….” “허억! 말도 안 돼!” 거기에는 여전히 아무런 이상도 없는 케르베로스의 느긋한 모습이 있었다. 나는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고, 피티언은 자신의 마법 공격이 너무나도 쉽게 부서지자 충격을 먹은 듯한 얼굴이었다. 풋. 다시 한 번 비웃는 케르베로스, 전에도 말했지만 변신 전에는 나의 한 방에 뻗은 놈들이다. 그런데 변신을 하더니 내 최고의 일격을 맞고도 비웃는다. 다시 한 번 설명하자만 1 더하기 1은 2다. 그런데 저놈은 1 더하기 1을 하더니 몸은 최소 4배, 능력은 최소 100배 이상 늘어난 것 같았다. “죽여 주마.” “그래, 테피언! 그거야!” 어느새 달려왔는지 테피언이 눈을 빛내면서 검에 핏빛 검기를 뿜어내면서 그대로 케르베로스의 다리를 향해 힘껏 검을 휘둘렀다. 그걸 본 케르베로스는 짜증 난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달려오는 테피언을 밟아 버렸다. 쿠웅! “…….” “…….” 저 어마어마한 크기에 밟히다니, 혹시 죽은 것 아니야? 난 살짝 걱정이 들었지만, 테피언은 밟힌 상태에서 곧바로 힘으로 벗어났다. 역시 저 갑옷은 좋다니까. “허허헉헉!” 빠져나온 테피언은 얼마나 힘들었는지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나가서 검 한 번도 휘두르지 못하고 밟히고 온 그를 나는 격려해(?) 주었다. “나갔으면 검이라도 휘두르고 와야지! 그냥 밟히고만와?” “그, 그게 순간적으로…….” “순간적이면 다야?! 다시 한 번 공격하고 와!” 험험! 이렇게 말하니 왠지 모르게 악덕 사장이 된 기분이었다. 사실을 말하면 그냥 농담이었다. “내가 가지.” 허억! 저 똥개가 뭘 잘못 처먹었나? 나의 말에 반응하는 것은 케미리. 난 듣고도 믿어지지가 않아다. 비열과 배신의 요정 케미리가 이렇게 순수하게 반응하다니……. 아니야, 분명 비리가 있어. 터벅터벅. 내가 그런 추측을 하고 있을 때 케미리는 천천히 앞으로 나갔고, 잠시 후 고개를 돌리면서 말했다. “누가 나 안 말려?” “험험.” “켐켐.” 그 한마디에 딴청을 피우는 피티언과 테피언, 역시 너희들은 이러는 게 지극히 자연스러워. “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동료가 나가겠다는데 말려줘야지! 케미리, 우리가 가마! 이런 말은 해야지!” “험험! 알잖아? 우리는 동료가 하겠다는 일은 말리지 않아.” 케미리이 말에 대답하는 테피언. 언제부터 너희들이 서로를 그렇게 배려해 줬는지 난 물어보고 싶었다. 이런 경우를 제외하고는 배려하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케미리는 울상을 지으면서 그대로 와이어를 뽑아들고 돌격했다. 흐음, 나도 와이어가 있긴 한데 이상하게 자주 쓰지는 않는다. 아직 습관이 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았다. 휘이익! 케미리는 바람을 가르면서 와이어를 들고 달려 나갔다. 그런데 왜 같은 개인데, 거의 수백 배 이상 차이가 나는 거지? 케미리는 자신보다 수백 배나 큰 몸집을 가진 케르베로스를 향해 날아올랐다. 그런데 날아올라 봤자 3미터 50. 한마디로 케르베로스의 무릎에도 가지 못했다. 하지만 그대로 다시 떨어지기는 그랬는지 케미리는 순간적으로 와이어를 케르베로스의 무릎에 감아 버렸다. 저 날카로운 와이어를 저렇게 감아 버리다니……. 괜찮아 보이는 기술이었다. 그렇게 케미리는 와이어를 감아 버리더니 곧바로 힘껏 당겼다. “…….” 하지만 케미리가 무릎에 대롱대롱 매달리는 결과만 연출하고 말았다. “흐아압.” 이때, 아까의 실패를 도약 삼아 테피언이 다시 한 번 핏빛의 검기를 생성시키서 케르베로스의 발을 그었지만, 역시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한마디로 우리 네 명의 공격이 쥐꼬리만큼도 통하지 않는 것이었다. 내가 알기로 3대 소환수들이 레벨은 300대에서 400대 사이였다. 나와 더불어 레벨 업을 하기도 했고……. 하지만 케르베로스는 나까지 총 네 명의 공세에도 아예 꿈쩍도 하지 않았다. 우리가 거의 절망에 빠져 있는데, 예화는 아까부터 계속 곰곰이 생각하는 듯한 모션을 취하고 있었다. “예화야, 왜 그래?” “아니, 그게…….” “말해 봐.” “제 착각일 수도 있는데…….” “괜찮아. 네 착각이 도움 안 되는 쟤네들보다는 300배 나아.” 나의 진심이었다. 저것들의 헛소리 듣는 것보다는 예화의 착각이 300배나 나았다. 아니, 더 나을 수도……. “저, 오빠가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말할게요.” “응, 응.” “아까 오빠가 케르베로스에게 도끼를 휘둘렀을 때, 2초정도 천장에서 마나가 마구 불투명하게 흐트러진 것 같아서…….” “마나가 흐트러졌다고?” “네. 그, 그렇지만 제 착각일 수도 있으니…….” 난 그 말에 갑자기 머리가 마구 회전되기 시작했다. 그랬던 거구나! 만약 내 생각이 맞다면 이 괴이한 던전도 다 설명이 되었다. 나는 한 가지를 잊어버리고 있었다. 이곳 던전의 주인은 최고의 마법사, 한마디로 마법에 관해서는 어떤것도 시전이 가능한 것이었다. 활(Bow) 소환. 인첸트 화(火). 플레지마 스트레이트 샷! 난 웃었다. 나의 예상이 맞다면, 이 괴이한 곳과 더불어 저 무적 똥개도 단숨에 처치할 수 있다. 위이이잉! 내 무형의 화살에는 화의 힘과 더불어 스킬의 힘까지 어마어마한 힘이 모였다. 이렇게 일격으로 모으면 거의 도끼의 힘과 비슷비슷하다. 그 이유는 저번에 초거금을 들여서 산 플레지마 스트레이트 샷 덕택이었지만. 무형의 화살에 힘이 완벽히 모인 듯하자, 활을 그대로 천장 쪽으로 향했다. “마, 마스터! 갑자기 왜 그러세요?” “허억! 잘못 먹었냐?” “적에게 쏴야지!” 내 행동에 피티언, 테피언, 케미리는 경악을 하면서 말했고, 난 그 말에 스며시 웃었다. 어차피 내 생각이 맞다면 저 것은 깨끗이 소멸이었다. 크아아아앙? 케르베로스는 나의 행동에 더욱 당황하는 모션을 취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내 생각이 맞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 잘 가라고!” 크아아앙! 케르베로스는 엄청난 속도로 다가와 우리를 밟으려고 했지만, 이미 시위는 당겨졌다. 천장을 향해서. 쿠우웅! 그 순간, 케르베로스의 발은 우리를 짓뭉갰다. 하지만 아프지는 않았다. 왜냐, 벌써 일주젼 마법이 깨졌을 게 분명했기에. 후르르륵. 후르르륵. 그 순간 케르베로스의 몸은 소멸되기 시작했고, 주변의 모습도 서서히 사라졌다. 저 무적 케르베로스의 비밀은 이거였다. 환상, 엘르니아는 이 던전 전체에 하나의 일루젼 마법을 걸어 놓은 것이었다. 현실과 환상이 뒤덮여 버린 일루젼 마법을. 일루젼 마법은 최강이었다. 9서클 마스터 엘르니아가 직접 만든 마법이니까. 환상이지만 환상이 아닌 세상, 그게 바로 이곳이었다. 하지만 민혁이의 강력한 파괴력에 의해 그런 일루변 마법도 잠시지만 휘청거린 것이었다. 내 앞에 펼쳐진 거대한 모습의 재단. 그 근처에 온갖 폼을 잡으면서 서 있는 다섯 명의 동상. 그중 세 명은 남자였고, 두 명은 여자였다. 창을 앞으로 쭉 내민 남자와 마치 무언가를 소환할 듯한 모습으로 눈을 감고 있는 한 여자, 그리고 성스러워 보이는 프리스트복을 입고 한 곳을 가리키는 여자, 지팡이를 든 채 개폼을 잡고 있는 마법사. 저 마법사가 혹시 엘르니아라는 마법사인가? 나는 조심스럽게 추측했다. 상황이 그렇게 돌아가다 보니, 저 마법사가 이 던전을 만든 오늘의 주인공인 것 같았다. 그런데 하나 이상한 것은 분명 주인공은 가운데에 있어야 하는데 중간에 있는 남자는 엘르니아라는 마법사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 그것도 혼자서 제일 개폼을 잡고 있는 남자, 근데 묘하게도 다른 동상들과 달리 아무런 무기도 들지 않은 상태였다. 그리고 그런 그를 너무나도 친근하게 바라보는 마법사……. 저 새끼 호모인가? 엘르니아라는 마법사의 눈빛이 예사롭지가 않아. 물론 이건 농담이다. 그만큼 동상이지만 엄청나게 잘 표현해 냈다는 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마치 진짜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웨폰인첸트, 환영합니다. “에엥?” 바로 그 순간 내 귀로 들려온 소리. 웨폰인첸트? 분명 내가 얼떨결에 재단에 들어가서 획득한 직업인데, 갑자기 여기서 왜 그런 목소리가……. -역시 엘르니아님의 영원의 일루젼을 부수고 들어오셨군요. 과연 웨폰인첸트이십니다. 그리고 이건 여기까지 온 것에 대한 선물입니다. 무슨 말이야? 난 또다시 어디서 들려오는지도 모를 목소리를 듣고 당황했다. 물론 저번처럼 미친 목소리가 아니라 정말 정중하게 말하는 거라 그리 기분은 나쁘지는 않았지만. -다시 한 번 웨폰인첸트가 부활한다면 드리라고 한 엘르니아님의 선물입니다. 다시 한 번? 그럼 나 말고 전에도 있었다는 건가? 물론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이 게임은 만들어진 지는 현실 세계로 몇 개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 안에는 수천 년의 역사가 숨 쉬고 있었다. 그러니 이걸 만든 과학자는 정말 천재라는 소리였다. 그런데 그렇게 따지고 보니 이걸 만든 과학자의 이름은 들어 보지도 못한 것 같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금세 관심을 버렸다. 아마도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못 들었을 거라고……. -선물입니다. -지팡이를 소환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공격력을 마법 공격력으로 전환할 수 있는 스킬을 획득하셨습니다. 띠딩. 드디어 나의 귀에 들려오는 듣고 싶고 또 듣고 싶었던 그 소리. 정말 이걸 찾기 위해 죽을 고생을 했다. 아니, 그 정도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그 소리에 감격을 하고 있을 때, 재단 위쪽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드르릉. 그 문은 양쪽으로 서서히 열렸고, 열린 문 안쪽으로는 엄청 비싸 보이는 지팡이가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뽀대도 예술이었다. “…….” 난 말없이 지팡이에 다가가 집어 들고서 무의식적으로 아이템 정보를 열었다. -전설급 지팡이- 영혼의 로케리스. 마법 공격력: 5,200. 마법 방어력: 3,000. 엘르니아가 직접 사용한 지팡이다. 특수 추가 옵션: 마나 3,000 증가. 특수 스킬 옵션: 마법 공격력이 7일에 한 번 2.5배로 증폭이 가능하다. 전설급이란다. 이 게임에서 제일 대단하다고 평해지는 전설급. 정말 전설로만 내려온 그런 무기인 것이다. 그나저나 이왕 온 김에 다른 것도……. 난 얼른 지팡이를 챙기면서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일단 돈이 되어 보이는 것은 다 찾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보이지 않았다. 있는 것이라고는 재단과 동상뿐이었다. 이것들을 들고 가서 팔 수는 없으니, 흐음……. -뭘 그렇게 찾아? “허억! 뭐야?” 난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기겁을 했다. 마치 내 귀에 속삭이듯 들렸기 때문이었다. -내 주인이 된 자가 이런 걸 가지고 놀라다니, 실망이야. “뭐, 뭐야? 주, 주인이라니? 너, 어디 있어!” -네가 지금 들고 있잖아. 내가 들고 있는 것? 난 그 말에 내 손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내 손에 있는 것이라고는 방금 주운 지팡이밖에 없는데? -아, 참 답답하네. 나 지팡이야. 요새는 지팡이가 말도 하니? 난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말하는 개도 있다고 하지만, 이제는 지팡이도 말하는 시대가 온 것이냐? -뭘 그렇게 생각해? 그나저나 방금 전엔 너무 당황해서 몰랐는데, 왠지 모르게 마나가 빠진다? 난 그런 생각과 더불어 소량이지만 마나가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고 온몸의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 기이한 현상을 잡아내기 위해서였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말한다면 내가 도와줄 용의는 있지. “허억! 영문을 모르겠네!” 나는 계속해서 빠져나가는 마나를 보고 당황했다. 도저히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냥 빠져나갔다. 그런 나의 모습을 보던 말하는 지팡이 로케리스가 다시 물었다. -왜 그래? “아니, 방금 마나가……. 허억! 또 나갔어.” -흐응. “허억! 또?” 난 이상하게 소량이지만 자꾸 빠져나가는 마나를 보고 경악했고, 말하는 지팡이 로케리스는 나에게 놀라운 사실을 알려 주었다. -말을 안 했구나. 내가 말하면 네 마나가 닳아. “…….” -하하하하! “…….” 이, 이럴 수가……. 이 서버에서 최초로 발생한 전설급 지팡이인데, 나의 공격력을 마법력으로 돌릴 뿐만 아니라 그 마법의 증폭도 가능한, 보기만 해도 탐스러운 에고 지팡이니데 어떻게 이럴 수가! 말한다고 마나가 닳다니! 털썩! -왜 그러나? 갑자기 무릎은 왜 꿇냐? 이건 아니었다. 이럴 수는 없었다. 드디어 그나마 정상적인(?) 지팡이를 만났는데, 이럴 수가! -왜 그러……. “말하지 마! 마나 닳아!” -……. 난 또다시 말을 하려는 수다쟁이 지팡이를 보고 입을 봉쇄했다. 저놈을 계속 그대로 놔두면 머지않아 마나가 고갈될 듯싶었다. 물론 아주 소량이기는 했지만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계속해서 사용하면 이건 아니었다. “제, 제발! 나는 왜 일이 맨날 이러는 거야!” “스킬 창 오픈.” 난 새로 생긴 스킬들이 문득 궁금해졌기에 밖으로 빠져나오자 스킬 창을 오픈했다. 물론 밖으로 나오는 것은 너마나도 간단했다. 들어롤 때와 정반대로 가니 그냥 밖이었다. -지파이 소환- 마법의 사용을 가능하게 해 준다. 흐음, 다른 무기들보다는 설명이 간략했다. 하지만 마법을 사용하게 해 준다는 저 멘트만으로도 나의 불타는(?) 가슴은 더욱 불타올랐다. 난 그 스킬을 확인한 뒤 나머지 스킬도 확인했다. -일루케이트 스위츠- 자신의 공격력을 마법 공격력으로 전환한다. 이때 전환된 마법은 마법 공격력과 통신하여 합쳐진다. 공격력+마법 공격력 마나소모: 7,200 마나만 제외하고는 정말 좋은 스킬이었다. 그런데 마나가 들기는 정말 많이 들었다. 난 그렇게 두 가지 스킬을 본 후, 마나를 갉아먹는 이상한 전설급 지팡이 로케리스의 특수 스킬을 보았다. -엘리멘탈 엔티어- 일주일에 단 한 번, 마법 공격력을 2.5배로 증가시킨다. 이때 증가시키는 모든 마법은 제한이 없다. 어떤 마법이든 심지어는 보조 계열 마법도 활성화가 가능하다. 보조 계열 마법도 활성화가 가능하다? 그렇다면 플라이 마법 같은 것은 2.5배로 더 잘 날고, 라이트 마법 같은 것은 2.5배 이상 밝다는 소리인가? -뭘 그렇게 곰곰이 생각하는 것이냐? “아, 잠시 새로운 스킬……. 야, 말하지 말랬잖아!” -말하지 말라니. 나 같은 고귀하고 고귀한 에고 지팡이를 얻었으면 숭배해야지. “내가 미치지 않고서야 그런 일은 없으니 조용하셈.” -쳇! 난 수다쟁이 지팡이를 향해 엄포를 했다. 저 지팡이, 말이 열라 많았다. 완전 따발총 수준이었다. 내가 예상하기로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으면 한 1시간이면 내 마나가 고갈될 게 분명했다. 정말 어떻게 도움이 되는 캐릭이 없어! “오빠, 뭘 그렇게 혼자서 이야기하세요?” “아니야. 잠시 생각할 게 있어서.” 내 모습이 이상해 보였는지 예화가 물었고, 난 그 물음에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다. 그러자 나의 이런 모습이 불만이었는지 로케리스가 따지기 시작했다. -내가 묻는 거랑 저 여자가 묻는 게 다를 바가 없는데 왜 나한테만 짜증 내! “넌 지팡이잖아.” -……. 침묵을 지키는 로케리스. 그래, 드디어 네 주제를 알았구나. 에고 지팡이 주제에, 말을 하면서 주인의 마나를 쭉쭉 빨아먹는 몹쓸 지팡이 같으니……. 난 수많은 정보를 들어 봤지만, 에고 지팡이가 말하면 주인의 마나가 소모된다는 이야기는 생전 처음 들어 보았다. 아니,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는 더욱덕 안 되는 일이었다. 그나저나 이제 지팡이 소환도 가능해졌고 마법도 사용 가능하게 됐는데, 제일 중요한 게 하나 없었다. 마법을 하나도 모른다는 것, 심지어는 기초 마법인 매직 미사일도 몰랐다. 물론 마법사 길드라는 게 존재한다. 5서클까지 친절하고 상냥하게 가르쳐 주는 곳, 하지만 나랑은 거리가 멀었다. 거기는 마법사들만 출입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나처럼 알 수 없는 직업은 들어가지 못했다. 그런 내 눈에 갑자기 들어온 피티언의 해맑은 모습. 드럽게 해맑게 웃고 있었다. 혹시 저놈한테도 마법을 배울 수 있으려……. 허허헉! 난 위험한 상상을 한 내 자신에게 놀랐다. 저 반쪽짜리도 아닌 1/3쪽, 아니 1/4쪽짜리 마법사한테 배워서 어찌하겠는가? 왜 1/4이냐고 묻는다면, 저놈은 보조 마법은 노, 그리고 기초 공격 마법도 노, 한마디로 대형 마법밖에 쓰지 못했다. 본래 마법이란 1서클 마법부터 차근차근 배우는 게 정석인데, 저놈은 최소 5서클 이상 공격 마법밖에 쓰지 못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물론 예화도 마법사였지만 4클래스밖에 안 될뿐더러 아직 마법사 길드에게 배우는 처지라 뭘 가르쳐 줄 리는 없었다. 바로 그때 내가 피티언을 바라보자, 피티언은 의아한 듯 나에게 물었다. “마스터, 저한테 볼일 있으세요?” “아니다.” “혹시 마법을 사용하게 되었는데 마법이 없어서 곤란하다는 그런 생각 아니었어요?” 네가 눈치가 그리 빠르다니? 난 믿어지지가 않았다. 닭대가리, 아니 닭대가리로 변해 가고 있는 피티언이 이런 놀라운 모습을 보이다니. 방금 나의 생각을 읽어 버린 것이었다. “맞군요!” 나의 침묵이 긍정이라는 것까지 알아맞히다니, 이제 서서히 나를 닮아서 영리해져 가는 건가? “걱정 마세요. 제가 있잖습니까? 하하하하!” “거절한다.” “허억! 거절이라니요!” “난 1/4짜리 마법은 배우고 싶지 않아. 나중에 대형 마법만 배우도록 할게.” “허억! 제발 저한테 배우세요! 마스터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요!” “너의 마음은 고맙다만, 난 정상 마법사가 되고 싶어.” “마스터!” 미안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얼마나 고생해서 얻은 클래스인데……. 저렇게 이상한 마법사가 되기는 싫었다. 지극히 정상적인 마법사가 되고 싶었다. 주변에 정상적인 캐릭터란 예화밖에 없었기에 더욱더 정사에 집착하고 있는 나였다. 그나저나 이제 어디 가서 마법을 배워야 하나? 마법사 길드 말고 가르쳐 주는 데가 있기는 있으려나? “오빠, 마법 배우시려는 거예요?” “응? 혹시 방법 알아?” 그때 들려온 너무나도 아름다운 목소리. 내 주변 인물 중 정상인에다 초미소녀에다가 모든 도움을 주는 존재. 난 저 목소리만 들어도 닭대가리 2인방과 닭대가리 3인방으로 변하는 저놈들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가 확확 날아가는 것 같았다. 물론 그렇게 느꼈을 뿐 실제로 날아가지는 않았다. 저것들이 워낙 포스가 강해서 말이다. “자세한 건 모르지만, 제스틴 마을에서 분명 NPC 마법사중에 8서클을 마스터한 마법사가 있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제스틴 마을?” “네.” “8서클이라…….” “물론 있다고 하더라도 그분이 가르쳐 주신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대로 제일 근접한 것 같아서…….” 끄덕끄덕. 그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었다. 내가 정상적인 마법을 배우려면 그런 정석 마법사에다가 8서클 정도는 되어야 할 것 같았다. “역시 예화야!” 툭툭! 난 무의식적으로 예화의 어깨를 쳤다. 그랬더니 이상하게 예화는 얼굴이 붉어지면서 나에게 조그마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오빠에게 도움이 됐다면 다행이에요.” “응?” “아, 아니에요.” 방금 뭐라고 한 것 같은데 못 들었다. 당황하는 걸 보니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더욱 궁금해졌다. “키키키키!” “너 잘한다.” “물론이지.” 바로 그때 나의 귀에 들려온, 너무나도 재미있게 웃는 테피언과 케미리의 웃음소리. 저것들이 갑자기 조용하다니, 무슨 짓을 하는 거냐? 난 문득 궁금해졌다. 저것들이 무슨 행동을 하면 영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난 슈퍼 스텝(?)을 밟아 엄청난 속도로 그것들 뒤로 몰래 다가갔고, 잠시 후 그들이 웃고 있는 이유를 보고 의아했다. 저건 그림? 거기에는 마왕이라고 친절하게 적혀 있는 그림과 너무나도 아름다운 천사의 그림,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 “키키! 마스터와 예화랑 이리 안 어울…….” 무슨 말이냐, 너희들. 난 더욱 궁금해졌다. 그래서 그런지 난 너무나도 간단한 실수를 해 버렸다. “이 천사는 누구야?” “물론 예화지.” “그럼 이 마왕은?” “물론 마스터……. 허억. 마, 마스터!” 싱긋. 난 웃었다. 왜 웃음이 나오지? 그런데 다행히도 나의 실수에 저 닭대가리 테피언은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역시 닭대가리였다. 그나저나 난 마왕이고 예화는 천사? 물론 예화가 천사 같기는 하지만, 난 왜 마왕인데? “마, 마스터, 진정해.” “나, 난 아무것도 안 했어! 그냥 테피언이 강제로…….” “뭐, 뭐야? 케미리!” 자신이 살기 위해 금방 동료를 배신하는 비열한 개 케미리. 하지만 난 다 봤다. 신나게 웃고 있는 모습을 특히 케미리, 네놈이 더 웃었어! “마, 마스터! 난 정말 아무 잘못도 없어!” “야, 케미리! 치사하게!” “치사하다니! 사실이잖아!” 티격태격 싸우는 테피언과 케미리. 난 그 모습을 무덤덤하게 바라본 뒤 내 뒤에서 바짝 긴장하고 있는 티피언을 향해 말했다. “피티언, 예화를 다른 곳으로.” “알겠습니다.” 피티언은 내 말에 금세 반응해서 얼른 예화를 다른 곳으로 데려갔고, 예화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난 그 표정에 대답해 줄 수 없었다. 예화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보면 정신 교육상 좋지 않기 때문이었다. 네놈들이 말하는 대로 마왕이 되어 주마. 크하하하하하! “데스나이트 살려!” “개 살려!” 이미 늦었어! 난 비명을 지르는 그들을 동시에 잡았다. 그리고 더욱 크게 웃었다. “크하하하! 크하하하하하하하!” 다음 장면은 너무 충격적이어서 모자이크 처리다. 제4장 극장 동영고등학교. 민혁이와 채은이, 정우가 다니는 학교였다. 채은이와 정우는 같은 반인 1-2반에 배속된 상태였따. “휴우…….” 채은이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 이유는 자신을 피하는 듯한 민혁이 때문이었다. 물론 민혁이는 나름대로 상황이 꼬이고 꼬이다 보니 채은이를 말려들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지만, 채은이 입장에서는 마치 뭘 숨기는 것 같은 기분이 든 것이다. “내가 하고 싶기도 했지만 오빠 때문에 게임을 한 건데, 저번에 한 번 만난 이후로 통 만나지를 못했네.” 채은이는 계속해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뿐 아니라 이상한게 여자의 감으로 불길한 예감이 든 것이었다. “채은아, 무슨 고민 있어? 말해 봐, 뭔데?” “맞아! 내 몸을 불살라서라도……!” “그럼, 그럼!” “언제든지 우리에게 명령을 내려 줘!” 채은이의 그런 모습에 남자들은 기회를 잡았다는 듯 잘 보이기 위해 발버둥 쳤다. 하지만 그런 모습은 오히려 채은이에게 부담만 줄 뿐이었다. “성의는 감사한데 괜찮아.” “허억! 괜찮은 표정이 아닌데?” “무슨 일이야? 말만 하라니까!” 그 말에 오히려 더욱 기승을 부리는 남자들이었고, 바로 그때 정우가 천천히 걸어오더니 말했다. “민혁이 형님에 대한 일입니다.” “민혁이 선배?” “하하하…….” “그, 그럼 이만…….” 그들은 민혁이라는 말에 당장 어색한 웃음을 지으면서 사라졌다. 민혁이가 2학년 부반장이기도 했지만, 이 재역 전체 짱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본인은 그런 것에 별로 신경을 안 쓰고 있지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어 버린 것이었다. 물론 실력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여섯 명의 짱을 단 10분 만에 때려눕혔으니……. “정우야, 내가 오빠 생각 하고 있는지 어떻게 알았어?” 채은이는 궁금했다. 자신의 생각을 어떻게 그리 쉽게 읽었는지……. “채은 양은 민혁이 형님 생각 안 하면 그리 한숨을 쉬지 않습니다.” “내, 내가?” “물론입니다.” “…….” 그 말에 채은이도 당황했다. 자신에게 그런 버릇이 있는지 전혀 눈치를 못 채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가 채은 양의 궁금증을 풀어 드리겠습니다.” “호, 혹시 오빠가 게임에서 나를 안 만나는 이유를 알아?” “물론입니다.” 싱긋! 그 말에 정우는 웃었다. 그와 더불어 확신하는 표정이었다. “마, 말해 줘.” 채은이는 궁금하다는 듯 물었고, 그 물음에 정우는 살짝 소리를 줄여서 말했다. “다른 여자가 생겨서 그렇습니다.” “다른 여자?” “확인이 불가능하기는 하지만, 저의 감이 외치고 있군요.” “…….” “아마도 지금쯤 마구 서로 키스하느라 바쁘실 겁니다. 흐음, 그런데 채은 양 같은 미소녀를 놔두고 바람을 피운다면, 상대방도 채은 양과 비슷한 레벨이라는 건데……. 특종이군요.” “정우, 너 정말!” 채은이는 정우가 자신을 놀린다는 생각에 소리를 질렀고, 그 반응에 오히려 정우는 진지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저의 1%에 해당되는 야성적인 감이 그리 외치고 있습니다.” “…….” 1%면 믿지 말라는 소리 아닌가? 하지만 이상하게 정우의 표정은 진지했다. “마구 느껴집니다. 마구, 마구…….” “…….” 너무나도 진지하게 말하는 정우 때문에 채은이는 불안해졌다. 분명 자신의 입으로 1%라고 했는데, 왜 이렇게 불안해지는지 채은이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채은 양과 민혁이 형님과는 아무런 사이도 아니니 무슨 일이 있어도 상관없겠군요.” “무, 물론 난 오빠랑 아무 사이도 아, 아니야.” 그 말에 채은이는 당황하면서 말했다. 아무런 사이도 아니라고 하기에는 그녀는 너무나도 당황하고 있었다. 얼굴까지 붉어졌으니……. “민혁이 형님은 펄럭펄럭 날아가십니다.” 민혁이가 새냐, 펄럭펄럭 날아가게? 하지만 그런 황당한 정우의 소리에 채은이는 더욱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냥 웃으면서 말하면 농담이라고 생각하겠는데, 1%의 확률이라고 하기에는 정우의 표정이 너무나도 진지했다. “나, 오빠한데 갔다 올게.” “그러도록 하십시오. 날아가서 3층짜리 집을 짓기 전에 잡으셔야 합니다.” “…….” 그 말에 채은이는 긍정인지 부정인지 알 수 없는 침묵을 지키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민혁이의 반으로 갔고, 그걸 본 정우는 실실 웃으면서 말했다. “순진한 아가씨군요. 제 1%의 야성적인 감을 믿다니……, 그래도 아주 가끔식은 12.8%까지 올라가니, 믿으셔도 될 겁니다.” “후에엠.” 잠이 왕 죽을 것 같았다. 어제 스킬을 확인한 이후 게임을 종료하려고 했지만 나는 착한 어린이였기에 모든 어린이의 표본이 되기 위해 나를 팔아먹었던 번역사의 집으로 찾아갔다. 가는 도중 데스 길드라는 놈 때문에 귀찮기는 했지만 우리에게는 암살자가 있었다. 물론 믿음직스럽지는 못하고 닭대가리에다가 틈만 나면 나를 욕하는 놈이지만, 일단은 어쌔신이었다. 난 솔직한 말로 그놈의 능력을 99.0% 믿고 싶지 않았지만, 0.01% 믿는 마음으로 따라갔다. 그런데 난 따라가다가 놀랐다. 이놈이 생각보다 암살 기술이 뛰어났던 것이다. 거기까지 가는 루트를 새롭게 만들어서 최소한의 인원 제거와 더불어 조용히 들어갔다. 그렇게 난 겁에 질려 있는 번역사 놈을 열심히 밟았다. 그리고 내가 지불했던 금액의 딱 4배만 더 챙겨 왔다. 물론 더 있었으면 더 찾아왔겠지만, 그놈이 그게 전 재산이라고 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그러고 나서 난 깔끔히 보복을 완료했다. PK로……. 나를 팔아먹었던 놈을 살려 줄 만큼 난 착한 놈이 아니어서 말이다. “하아암.” 또다시 흘러나오는 하품. 좀 많이 하기는 하는 것 같았다. 계속해서 요새 피로하니 말이다. “저기, 오빠 있어요?” “오! 채은이 아니야? 민혁이 찾으러 왔어?” “네.” 어라? 이 목소리는? 나는 너무나도 친숙한 목소리에 책상에서 얼굴을 떼며 고개를 돌렸고, 거기에는 내 친구 놈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 채은이의 모습이 보였다. “어, 채은아.” “아, 오빠.” 채은이는 그렇게 말하면서 나에게 왔고, 난 그런 채은이를 보고 의아했다. 얼구리 아주 살짝 붉어졌기 때문이었다. 운동이라도 한 건가? 그런데 저번 시간에 운동장에는 아무도 없던데. 채은이는 반갑게 나를 찾아왔고 난 그 모습을 보고 흐뭇했다. 거짓말 안 보태고 연예인들보다 수십 배나 더 예쁜 채은이가 이렇게 직접 나를 찾아와 주다니……. “오빠, 나 오빠한테 할 말 있어!” “할 말?” 다짜고짜 할 말이 있다고? 중요한 건가? “오늘 학교 끝나고 극장 가자!” “그 정도야, 뭐. 당연히 가야지.” 난 그 말에 흔쾌히 허락했다. 이것보다 수십 배 어려운 부탁도 채은이라면 들어주고 싶었다. “저, 정말이지?” “갑자기 왜 그래? 그 정도야 쉬운 거잖아.” “아, 미, 미안. 누구 때문에 자꾸 신경이 쓰여서……. 해…….” 그렇게 채은이는 귀엽게 혀를 내밀면서 살짝 웃었고, 난 그 말을 듣고 그 누군가가 대략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저는 아닙니다.” “너는 언제 왔냐?” “방금 정당하게 뒷문을 열고 왔습니다.” 그럼 부정당하게 문 열고 오냐? 말을 해도 이상하게 해, 저놈은. “그래, 정당하게 문 열고 왔기에 왔는데, 네놈이 채은이한테 이상한 소리를 해 댄 거냐?” “그럴 리가요. 저는 제 1%의 야성적인 감을 들려줬을 뿐입니다.” “1%의 야성적인 감?” “오, 오빠, 피곤하지? 나 수업 끝나면 올게!” 바로 그때 채은이가 당황하면서 정우를 이끌고 다급히 사라졌고, 난 그걸 보고 왜 그러는지 궁금했지만 금세 잊어버렸다. 극장에서 안 자려면 자 둬야지. 저번에 잠잤다가 채은이 혼자 영화 보게 해서, 정말 미안해 죽는 줄 알았다. 그런데 왜 극장은 안락하게 만들어 놓았지? 잠 더럽게 잘오던데, 흐음……. 나만 그런가? 난 채은이와 함께 극장에 도착했다. 채은이는 극장에서 요새 제일 유행하는 ‘사탄의 집념’ 이라는 괴이한 영화를 선택했다. 흐음, 저게 옛날 영화를 리메이크를 해서 대박이 났다는 작품이었다. “커플석으로 드릴까요?” “아, 네.” “여기 커플석입니다.” 바로 그때 어느새 채은이가 극장표를 두 장 끊었고, 커플석이란느 말에 내 입은 무의식적으로 방긋해졌다. 겉으로 보기에는 채은이와 내가 그렇고 그런 사이로 보인다는 소리였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채은이는 처음보다는 당황하지 않았다. 처음 왔을 때 커플석으로 준다는 말에 채은이는 무지무지 당황스러워했다. 그렇지만 우리는 다른 자리가 남지 않아서 그날 커플석에 앉았고, 그 이후부터는 이게 자연스러워졌다. 그리고 그날, 나는 남자 혼자서 커플석에 앉는 기이한 장면도 목격했다. 커플석에 거대한 청년 한 명이 누워서 팝콘을 먹으며 영화를 보는 괴이한 장면……. 그날 난 그 장면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꿈까지 꿨으니 할 말 다 했다. “오빠, 시간 다 됐어. 들어가지.” “그래. 그런데 보통 주말에 가자고 하더니 오늘은 웬일인거냐?” “…….” 내 질문에 채은이가 갑자기 얼굴이 붉어지면서 침묵을 지켰고, 난 뭐 잘못 물어본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그냥…….” 침묵을 지키던 채은이의 입이 열렸지만, 얼굴은 여전히 붉어진 상태였다. 그냥이라면 그냥이겠지, 뭐. 그나저나 저 영화의 줄거리가 인형이 마구 움직이면서 칼질을 한다던데, 괜히 궁금해지네. 영화는 시작되었다. 뭐, 당연한 말이지만 영화의 초반은 이야기를 끌어 나가기 위해 별로 스펙터클하지는 않았다. 그냥 인형이 어떤 꼬마한테 선물로 오는 정도. 그렇게 영화는 서서히 진행이 되었고 이제 어느 정도 분위기가 되자 영화의 직접적인 내용이 나오기 시작했다. 인형이 자고 있는 꼬마한테 식칼을 든 채 잔인한 표정으로 다가가는 장면이었다. 그 장면이 나오자 극장 안은 긴장감에 휩싸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난 저 장면을 보고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인형이 식칼 드는 게 대수인가? 와이어를 드는 개 어쌔신도 있는데. 그러고 보니 내 주변에는 공포물 주인공들이 참 많다. 말하는 개와 더불어 말하는 지팡이, 그리고 덤으로 갑옷 괴물까지, 거의 호러 종합 세트 같다. “꺄아악!” 바로 그대 그 인형이 꼬마 아이를 칼로 찌르는 장면이 연출되었고 채은이는 비명을 지르면서 나의 품에 안겼다. 허억! 이렇게 좋을 수가. 난 그 기분에 따라 인형을 마구 응원하기 시작했다. 더, 더 푹푹 찔러! 이건 아니었다. 아무리 그대로 내가 잠시 정신이 나갔던 것 같았다. “오, 오빠, 미안해.” “아니, 미안할 것까지는 없어.” “너무 무서워서……. 인형이 말하고 식칼을 듣다는 생각에…….” “하하하. 그래?” “응.” 난 그 말에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저게 그리 무서운 장면이었구나. 그런데 난 왜 이리 아무런 감흥도 없고 잠이 오는 거지? 그 괴이한 소환수들을 만난 이후 내가 이상하게 변하고 있었다. “오빠는 안 무서워?” “무서워서 미쳐 버릴 것 같아.” “…….” 저번에 어디에선가 극장에서 여자가 이런 질문을 하면 꼭 무섭다고 하라고 했던 것 같았다. 물론 정확한 정보는 아니었다. 야매로 접한 정보니까. 나도 솔직히 왜 그래야 되는지 궁금했지만. “왜 그래?” “아니……. 오빠가 무섭다는데 너무 무감각하게 말해서.” “흐으음, 거기에는 깊고 깊은 수렁에 빠진 사건이 있어서 그래.” “무슨 말이야?” “말하기에는 좀, 흐음…….” “설마…… 게임 이야기야?” “…….” 난 콕 집어서 이야기하는 채은이를 향해 아무런 말도 할수 없었다. 거참 예리하다니까. 그렇지만 그것도 사실이었다. 괴이한 3대 닭대가리 소환수들과의 만남. 그들은 나를 깊은 수령에 매일매일 빠뜨릴 뿐만 아니라 나를 괴상하게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거기다가 말하는 지팡이 로케리스까지……. 이제는 솔직한 말로 4번째 소환수가 겁이 났다. 닭대가리 3인방과 괴이한 지팡이 로케리스가 나를 이리도 심란하게 괴롭히는데 4번째 소환수는……. 안 돼! “오빠, 나에게 못할 말이야?” “아, 미안.” 나의 침묵이 그렇게 보였는지 채은이는 나에게 물었고 난 그 말에 당장 사과를 했다. 채은이는 다시 나를 똑바로 보면서 말했다. “왜 게임에서 나를 피하는 거야?” “응?” “저번에 한 번 만난 뒤 일부러 바쁘다고 하잖아.” “흐으음.” “자꾸 말 바꾸지 마, 오빠.” 이제 안 통하네. 채은아, 미안하지만 난 네가 걱정스러워서 그런 건데. 지금은 현상금이 풀렸다고는 해도 난 전직 범죄자였다. 좀 어감이 이상하기는 하지만 일단 포스터에 얼굴이 붙었으니 범죄자는 맞았다. 그리고 데스 길드인가 하는 놈들하고는 이상하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욱더 사이가 벌어졌다. 한마디로 정말 드럽게 사이가 좋지 않은 상태……. 특별한 혜택으로 공주의 생활을 하는 채은이도 데스 길드인가 대파 길드인가 하는 싸가지 없는 집단에 말리면 힘들어질 게 분명했다. 그리고 특히 채은이도 거의 평범하게 볼 미소녀와는 격이 다른 관계로 데스 길드 놈들이 집적거릴 확률도 높았다. “채은아, 나를 믿어?” “응?” 내가 갑자기 진지하게 말하자 채은이는 당황하면서 되물었고 난 그 말에 채은이의 어깨를 잡았다. 타악. “꺄아악! 이, 인형이!” “허억.” “졸라게 겁나네.” “오빠, 믿어.” 바로 그때 들려오는 속삭이는 목소리들. 저렇게 호들갑을 떠는 걸 보니 방금 충격적인 영상이 지나간 것 같았다. 어찌 됐든 나는 다시 표정을 진지하게 굳히면서 말했다. “아주 깊은 사연이 있어. 별나라, 하늘나라, 달나라도 이해 못할 만큼의 사연이.” “그게 무슨 사연이야?” “나를 믿고 기다려 줘.” 이러니까 꼭 고백하는 것 같잖아. 한편 그런 나의 너무나도 진지한 모습에 채은이는 잠시 후 다시 웃으면서 말했다. “응, 오빠 믿을게. 난 오빠가 뭘 하든 믿을 거니까.” “고맙다.” “뭘. 헤헷.” 내가 언젠가 사건이 좀 정리되면 먼저 찾아가마. 난 엄청 떳떳……은 한가? 나 자신에게 갑자기 들려오는 물음표, 분명 나는 채은이가 걱정이 돼서 그런 거지만 내 옆에는 채은이와 쌍박을 이루는 예화가 있었다. 그렇게 따지고 보니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 “믿으면 안 됩니다. 제 말이 확실합니다.” “…….” “남자들은 믿으면 안 됩니다.” “…….” “절대 믿으면 안 됩니다.” “…….” “제 1%의 야성적인 감에 적색 신호가 발동되었습니다.” “넌 뭐냐?” “아, 형님도 계셨군요.” 내 옆에는 고혹적인 옆트임 옷을 입은 아름다운 여자, 아니 정우 그놈의 목소리는 여전히 굵직굵직한데 아름다운 모습의 언밸런스한 모습. 충격적이었다. 그나저나 저 새끼는 언제부터 있었던 거지? “내가 있었다는 걸 알면서 그렇게 말하는 의도는 뭐지?” “그냥 해 봤습니다.” “…….” “그나저나 채은 양, 남자들은 믿을 게 못 됩니다.” “너도 남자잖아.” “저는 제외하고 말입니다.” 저 새끼를! 저 새끼는 분명 맞고 싶어서 발악하는 것 같았다. 맞고 싶어서 발악하는 놈을 랭킹으로 따지면 1위가 케미리, 2위가 테피언, 3위가 정우 놈이었다. 이놈은 정말 맞는 게 쾌락인지 너무나도 나에게 맞고 싶어 했다. 난 그 말에 분노를 참을 수가 없어서 극장이었지만 무의식적으로 손이 올라갔는데 바로 그때 채은이가 정우를 보면서 말했다. “난 괜찮아. 오빠도 사정이 있겠지.” 응, 응. 그렇단다. 정말 깊은 사정이 있지. “난 믿어. 오빠를…….” 그래 믿어. 난 떳떳……. 그런데 왜 자꾸 예화가 생각나지. 흐으음. 난 그렇게 마구 떳떳하다고 말을 하다가 나를 믿는 채은이를 보고 결심을 했다. 그래, 나의 생명의 은인이자 제일 아끼는 동생인데……. 대략 설명이라도 해 주는 게 나을 듯싶었다. “채은아, 대충 설명해 줄게. 별나라, 달나라, 하늘나라도 이해를 못해 주는 나의 이야기를…….” “…….” 그런데 순서가 바뀐 듯싶다. 하지만 그런 사소한 것 집어치우고 난 나의 과거를 생각하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한 방울 흘렀다. 그런데 왜 하필 그때가 사탄의 집념 인형이 인간들을 죽이고 상쾌하게 웃는 장면인지……. 한편 그런 모습을 본 사람들은 나를 잔인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어, 어떻게 살인 장면에서 눈물을 흘려?’ ‘어, 어떻게…….’ ‘분명 그 상황에는 놀라서 비명을 질러야 되는 상황인데 왜 감동한 듯 눈물을 흘리지?’ ‘어떻게 저럴 수가!’ 이건 아니었다. 분명 오해였다. 난 영화를 보지도 않았고 너무나도 슬픈 과거를 생각하다가 문득 눈물 한 방울을 흘리고 있었는데, 교묘하게도 인형이 마구 사람을 학살하는 장면이 나왔던 것뿐이었다. 어째 어딜 가든 이리 재수가 없지? 정말 나에게 무슨 괴이한 귀신이라도 붙은 건가? 그렇게 나는 다급하게 채은이와 함께 극장은 나온 뒤 채은이에게 설명해 주었다. 나의 상황이 얼마나 슬펐는지 채은이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래, 내 이야기가 파란만장하기는 하지. 진짜 파란만장해서 미쳐 버릴 것 같으니 더 문제지만. 한참 동안 나의 이야기는 진행되었고, 이야기를 마치자 채은이가 나를 이해한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런 채은이가 무척 고마웠다. “그런데 오빠, 데스 길드라는 곳 잘 알아. 그만큼 유명하니까. 그런데…… 여자아이를 한 명 구해 줬다고?” “아! 워낙 싸가지 없는 꼬맹이여서. 뭐, 그것 때문에 이렇게 된 거지만……. 난 원래 그런 놈들이 짜증나거든. 그리고 난 정의의 용사니까. 하하하!” “진짜 그냥 정의의 용사여서?” 험험, 그렇게 물어보면 내가 약간 찔리잖아, 채은아. 날카롭게 질문하는 채은이를 보면서 난 할 말이 없었고, 바로 그때 그런 나의모습을 이상하게, 약간은 날카롭게 보던 채은이가 다시 물었다. “그리고 그 여자랑…… 지금 같이 다니고 있는 거야?” “어. 3대 소환수랑, 뭐…….” “그렇구나.” 난 로케리스 이야기까지는 하지 않았다. 로케리스는 지팡이니까. 그런데 왜 범죄자가 되어서 형사한테 취조를 받는 듯한 느낌이 드는 거지? “채, 채은아, 가, 갑자기 왜 그리 기운이 없어?” 갑작스럽게 기운이 살짝 빠진 듯한 모습을 보면서 난 당황했다. 그러자 채은이는 다시 밝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아니야. 그나저나 오빠에게 도움을 준다는 그 여자에게 한번 내가 대접해야 되겠네.” 허억, 왜 이리 무섭지. 분명 채은이는 웃고 있었다. 그런데 이 괴이한 분위기는……. “그, 그렇게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어. 예화도 그런걸…….” “흐음, 예화? 예쁜 이름이네.” “그, 그래?” 이 알 수 없는 분위기가 뭔지 알고 싶었다. 왜 이러지? 이쿠리쿠리한 분위기……. 이유라도 알면 덜 그럴 텐데,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무지무지하게 둔하다.) “오빠, 그리고 내 걱정은 하지 마. 난 괜찮으니까.” “그 말은 나하고 다닌다는 거야?” “응.” “…….” 난 괴이한 기운을 뿜어내는 채은이를 보면서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흐으음, 뭐지, 이 괴이한 기분. 정말 알고 싶었다. “가능하지?” “물론 가능하지. 그래도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있으니 그거 한 다음에 같이 다니자. 하하하.” “난 당장 오빠랑 다니고 싶은데…….” “아니……. 이상한 NPC를 만나러 가야 돼서…….” “그렇다면 양보할게. 그 대신 일주일 뒤야. 일주일 뒤에 꼭 봐야 해!” “물론.” 난 그렇게 채은이의 알 수 없는 포스에 말려서 허락했다. 그렇게 되면 정상인 한 명 추가랑 비정상인 한 명 추가인가? 채은이는 100% 환영하지만, 뒤에서 여장을 한 채 온갖 괴이한 짓거리를 하는 정우 저놈은 거절하고 싶은데……. 저놈 여장이 취미이기는 하지만 은근히 머리가 좋았다. 물론 이상한 쪽으로(여기서 말하는 건 정상적인 쪽으로는 아예 제로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비정상적인 쪽에만 머리가 좋을 뿐)……. 어쨌든 머리가 좋은 저놈과 닭대가리 3인방이 합치면 가히 무슨 일이 일어날지 난 걱정이 앞섰다. 닭대가리 + JQ300(잔머리규) = ?? 무슨 공식이 성립될까……. “오빠, 어제 왜 안 오셨어요?” 채은이와 함께 극장을 간다고 어제 접속을 하지 못한 나를 예화는 궁금하다는 듯 물었고, 난 그 물음에 있는 그대로 대답해 주었다. “아, 아는 동생하고 극장 갔었거든. 저녁도 얻어먹고 와서 들어오니까 좀 늦더라고.” “아, 아는 동생이요? 여자……예요?” “응.” “그, 그렇군요.” 이거는 분명 어제의 대사, 반응과 같은 느낌인데……. 얘들이 왜 이러지. 혹시 정말 일란성 쌍둥이? 채은이와 예화 둘은 평생, 아니 3대 위로 거슬러 올라가도 한 번 보기 힘든 미소녀들이었다. 채은이는 약간 성숙해 보여서 예쁘게 생겼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었고, 예화는 귀엽다고 하는 게 어울리는 소녀였다. 물론 실제로 둘이 일란성 쌍둥이일 확률은 없겠지만 그만큼 어제 채은이의 반응과 예화의 반응이 묘하게 비슷했다. 한편 그런 상상을 하고 있던 중 이상하게 고개를 푹 숙인 채 걷고 있는 테피언과 케미리가 보였다. “그런데 너희들은 왜 이렇게 조용하냐?” “허억.” “뭐, 뭘…….” “오늘따라 이상하게 조용하잖아.” “그, 그래?” “우, 우리는 항상 조용했어.” 오늘따라 묘하게 조용한 테피언과 케미리. 분명 전이었다면 또 구시렁거리거나 빈정댔을 게 분명한 놈들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조용했다. “이상해.” “이, 이상하다니.” “마, 맞아. 우리는 항상 마스터를 존경한다고.” 풋. 나를 존경한다고? 어디서 김밥 320줄 터지는 소리를 하고 있네. 저것들이 나를 존경한다면 할 말이 없었다. 내 목을 맬 수밖에 그만큼 저놈들이 하는 김밥 320줄 터지는 소리는 나를 황당하게 했다. 그런데 저놈들이 저렇게 기가 죽어서 조용한 것은 분명 이유가 있다. 분명 이유가……. “그렇구나.” 나는 짧게 중얼거렸다. 나의 헌신을 바친 사랑의 교육이 드디어 결실을 맺은 것인가. 난 2일전, 나를 마왕이라며 키득거리면서 놀고 있는 그놈들에게 정말 마왕이 되었다. 그날 있었던 일은 너무나도 끔찍해서 모자이크로 처리할 정도였으니 말을 다 했다. 그렇게 성심성의를 다해 노력한 나의 따뜻한 마음이 통한 게 분명했다. 그렇게 난 한 마리의 개와 한 마리의 갑옷을 개과천선시켰기에 나의 입가에는 저절로 밝은 미소가 지어졌다. 정말 내가 이룩해 내다니, 감동이야. 뭐, 이런 서론은 넘어가고 나의 그 위대한 마법사를 찾기 위해 지금 열심히 걸어가고 있었다. 제스틴 마을로 가기 위해서는 일단 걸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야만 텔레포트 마법진을 통해 넘어갈 수 있다. 하루라도 빨리 대마법사가 돼서 텔레포트를 할 수 있는 날을 기약하면서……. -우에에엥, 심심하다. “말하지 말라니까.” 바로 그때 심심하다는 이유로 내 귀중한 마나를 갉아먹는 몹쓸 지팡이 로케리스. 나의 어마어마한 핍박에도 그놈은 굴복하지 않고 심심하면 중얼거렸다. -쯧, 거듭 말하지만 나 같은 지팡이의 주인이 되면 숭배해야돼. “풋. 네놈 같은 지팡이를 보면 패야 된다는 게 아니고?” -나의 위대함을 못 알아보는 몹쓸 인간 같으니! 그래 네놈이 위대한 것은 인정할게. 저만한 어마어마한 마법 공격력과 더불어 마법 방어력, 그리고 완전 특별 스킬인 마법 증폭까지. 그래, 역시 전설급이라는 걸 인정해 주고 싶었다. 거기에다 로케리스 위에 지팡이를 소환해서 융합까지 시키면 데미지는 더욱더 강해질 것이었다. 그런데 네놈은 수다쟁이여서 마나를 졸라게 많이 들잖아! -훗, 나를 빤히 쳐다보기는……. 나의 말에 감격한 거야? “…….” -그렇지만 안 돼. 나의 아름다운 외모에 빠지면……. 내가 미쳤냐, 지팡이에게 빠지게? 그놈은 어디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잘도 늘어놓았고 난 그런 로케리스르 보고 회심의 일격을 날렸다. “네놈이 위대한 지팡이라는 걸 설명해 줄 수 있나? 3,210가지로 말이다.” -물론이지. “뭐, 뭐라고?” 나의 회심의 일격을 너무나도 쉽게 받아치는 로케리스를 보고 경악했다. 지가 위대한 지팡이라는 걸 3,210가지로 설명한다고? -그럼 말해 줄게. 일단 난 너무나도 아름다운 외모……. 커억. 마, 마나가……. -그리고 마법 증폭도……. 허억, 또! -그리고 난 마법 데미지도……. “그만!” 난 스톱을 외칠 수밖에 없었다. 저 수다쟁이 지팡이가 정말 3,210가지를 말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 때문이었다. 아니, 정말 할 것이다. 그만큼 저 지팡이는 무지무지하게 말이 많았다. 그나저나 나도 모르게 저놈하고 이야기해 버렸네. 내 아까운 마나……. 그리고 추가적으로 지금 3명의 소환수들과 예화에게는 설명을 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미친놈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지팡이랑 혼자 중얼거리는 것처럼 보이니 말이다. 제스틴 마을. 우리는 마을에 도착하자 속전속결이었다. 당연히 저번에 나를 밀고한 번역사 집에 가서 살짝 협조를 받아왔기 때문에 그리 많은 돈은 아니었지만 텔레포트 할 돈은 충분히 있었다. 그러고 나서 난 제스틴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그 NPC중 8서클 마법을 이룩해 내었다는 남자를 찾기 시작했다. 솔직한 말로 엄청 찾기 힘들 것 같았지만 그런 나의 생각을 비웃듯 정말로 찾기 쉬웠다. -위대한 8서클 마법사 레케가 사는 곳- 이렇게까지 친절하게 집 앞에 써 있는데 찾지 못할 리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제스틴 마을에 있는 유저나 NPC들 99%가 저 8서클 마법사를 알고 있었다. 우리는 그의 집 앞에 도착해서 몰려 있는 유저들을 뚫고 열심히 문을 두들켰지만 안에는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듣기로는 그에게 마법을 배우려고 유저들이 엄청나게 찾아왔지만 저 집의 문은 단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고 한다. 똑똑. 그렇지만 나도 일단은 다른 사람들처럼 해야 할 것 같아서 그 집으 문을 두들겼지만 역시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쯧쯧, 포기해.” “맞아. 거기에는 8서클 마법사가 락 마법을 걸어 놨다고. 절대 못 들어가.” “괜한 헛수고라니까.” “그럼, 그럼.”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나의 그런 모습을 보고 괜한 헛수고라는 둥 말했지만 난 그 말에 싱긋 웃었다. 안 열리면 부수면 되는 간단한 이론이 있다. 도끼 소환. 인첸트 화(火). 이글이글. 나의 말이 끝나면서 내 손에 쥐어진 어마어마한 크기의 도끼를 보고 사람들은 당황해서 굳어 버린 상태였고, 난 그런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은 채 싱긋 웃으면서 큰 목소리로 말했다. “실례합니다!” 콰아앙. 퍼어억. 실례한다면서 남의 집 문을 부수는 건 모순이었지만, 내 도끼의 파괴력은 8서클 마법사의 락 마법에도 영향을 주었는지 아주 조금 열렸다. 그 모습을 보고 다시 한 번 도끼를 휘두르려는 순간. “들어와.” 안에서 갑작스럽게 앳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흐으음, 내가 잘못 들은 건가? 난 그런 생각과 더불어 반쯤 부서진 문을 열고 들어갔고, 나의 뒤를 이어 소환수들과 예화가 따라왔다. 물론 그 기회를 틈타 유저들도 같이 들어오려고 했지만 신기하게도 문은 금방 복구가 되면서 닫혀 버렸다. 그렇게 난 8서클 마법사의 집 안으로 들어왔고, 일단 처음 봤기에 인사라도 하려고 했지만, 내 앞에서 의자에 앉은 채 온갖 개폼을 잡고 있는 한 남자, 아니 한 꼬맹이를 보고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나이 6살로 추정. 키 130Cm. 헤어스타일은 올백. 입에서 불타고 있는 것은 담배. 그리고 탁자에 놓여 있는 술. 방 안은 담배 냄새와 술 냄새로 진동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6살짜리 꼬맹이의 방에서. “어서 와.” 어라, 반말까지? 최소 못해도 12살 차이 나는 형한테 반말이라니, 저 꼬맹이가 개념을 상실했구나. 담배에다 술, 그리고 버릇없는 것까지……. 나의 안에서는 마구마구 분노가 치솟았다. “앉아.” “꼬맹이 놈이 버릇없게!” 난 분노했다. 원래 내가 정의감은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나한테 반말하는 6살짜리 꼬맹이한테 웃으면서 넘어갈 생각은 없었다. “풋, 내가 동안이어서 사람들이 오해하지. 내 나이는 70살이네.” 동안? 동안? 난 그 말에 동안이라는 말을 검색했다. 동안이란 나이에 비해 얼굴이 앳돼 보이는 사람을 칭하는 용어였다. 그런데 저 꼬맹이가 동안?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그 꼬맹이를 구석구석 살펴보아도 완전 꼬맹이의 몸과 얼굴이었다. “풋, 내가 대마법사여서 좀 특별해.” 그런 건가? 난 도저히 이해가 안 되었지만 자기가 그렇다는데 어쩌겠는가. 괜히 생각해 봤자 머리만 아플 뿐이니 그냥 그렇다고 믿어 버리기로 결심했다. “그나저나 대단하군. 나의 락 마법을 힘을 파훼하다니.” “그거야 뭐…….” 난 나이 70살이라는 말에 존댓말을 해야 할지 반말을 해야 할지 구분이 안 갔지만 도저히 저 모습에 존댓말은 나오지 않았다. 물론 다행히도 저 대마법사는 별 신경 쓰지 않는 듯싶어서 다행이지만……. “그래, 나한테 온 걸 보면……. 마법사인가? 그런데 거참 독특하군. 마법사가 무슨 힘이 있어서 나의 락 마법을 그리도 쉽게 부쉈지?” “난 야매 마법사이걸랑.” “야매 마법사?” “다른 말로 하자면 비정식 마법사지.” “…….” 나의 말에 나를 만나고 처음으로 당황하는 레케. 야매 마법사라니……. 생전 처음 들어 본 단어일 게 분명했다. 왜냐 내가 지어낸 말이니까 당연하겠지만 솔직히 말해 맞는 말이었다. 지팡이를 소환해 내야만 마법을 쓸 수 있으니 야매맞잖아. “험험. 독특한 놈이군.” “원래 사람마다 깊은 사연이 있어.” “그나저나 어찌 됐든 나에게 마법을 배우고 싶다니……. 뒤에 있는 여자 한 명과 남자 한 놈도 마나가 느껴지는데?” 단숨에 파악하는 레케. 역시 8서클 대마법사라는 건가? 예사롭지는 않았다. 그런데 왜 저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나오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어지 됐든 난 설명을 해 줄 필요를 느꼈다. “예화는 고위급 마법사는 아니고, 저놈은 고위급 공격계 마법밖에 못 써.” 마법사들은 대부분 5서클까지는 무조건 마법사 길드에서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6서클부터는 던전이나 사냥터에서 발견하는 게 원칙이었다. 그렇게 5서클까지는 마법사 길드에서 배워야 했지만 단 하나 다른 방법이 있었다. 고위급 유저, 최소 7서클 이상의 마법사 유저에게 직접 일대일 맨투맨을 하든가, 아니면 어딘가에서 떠도는 NPC들에게 마법을 배우는 방법이었다. 이 두 가지의 장점은 마법사 길드에서 배우는 마법보다 습득 속도가 훨씬 빠르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단점은 더럽게 찾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아까 밖에서 보았던 것처럼 문이 열리지 않는데도 마법사 유저들은 목숨을 걸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설명을 듣던 레케는 잠시 고개를 끄덕이다 내가 피티언을 소개하자 표정이 굳어졌다. “고위급 공격 마법밖에 쓰지 못한다고? 저 남자가?” “응.” “정말?” “응.” “사실이냐?” “그렇다니까!” 난 계속해서 묻는 말에 소리를 질렀다. 그렇다는데 계속해서 물어보고 난리야. 그렇지만 레케의 입장도 약간은 이해가 갔다. 저 피티언 놈은 마법사의 논리 법칙은 완전 개무시하고 있었으니, 다른 마법사가 들으면 어처구니가 없는 것이었다. “믿어지지가 않는군.” 나도 안 믿어져. 고위급 공격계 마법밖에 쓰지 못하는 피티언. 그놈과 제일 오래 다닌 나였지만 아직 그놈을 이해하기에는 내 이성적인 머리가 따라 주지 못했다. “이해가 안 되는군.” “내가 좀 잘났어. 하하하.” 그 말에 신난 듯 웃는 피티언. 내가 듣기로는 그리 칭찬으로 들리지 않는데 무척이나 좋아하고 있었다. 역시 너도 어쩔 수 없이 닭대가리로 진화가 끝난 것이니? 난 슬펐다. 유일하게 나를 따라 주었고 나를 마스터라고 모시던 놈이 내 뒤에서 고개를 푹 숙인 채 있는 테피언과 케미리의 머리를 닮아 버리다니. 그나저나 저 꼬마, 아니 대마법사는 외형은 6살인데 말투는 정말 70대 할아버지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한편 레케는 언제 피티언에게 다가갔는지 조용히 묻고 있었다. “어떻게 그런 현상이 가능하지? 마법사가 어떻게 공격 마법만……. 그것도 고위급 마법만!?” “내가 좀 특별하거든.” “…….” 피티언으이 말에 레케는 굳어 버렸다. 레케도 본능적으로 느겼을 것이다. 정상적인 대화가 되지 않는 게 분명하다고……. 그러고 보니 난 은근히 저것들과 대화가 가능하다. 그럼 나도 저것들의 머리를 닮아 간다는 소리인가? 난 너무나도 큰 충격에 좌절했다. 그것만은 안 됐다. 저것들, 글자도 제대로 분간 못하는 저것들의 머리를 닮아서 어디다 써먹으라는 것이냐! “무슨 생각을 그리하는 거냐?” “아, 아니.” 바로 그때 피티언과의 대화를 마치고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린 레케가 좌절을 하고 있는 나의 모습이 이상했는지 물었고, 난 그 물음에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런 모습을 본 레케가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영혼의 구슬.” “에엥?” 갑작스럽게 영문도 모르고 알지도 못하는 걸 중얼거리는 꼬맹…… 아니, 대마법사. 그는 영혼의 구슬이라는 본론도 없고 서론도 없는 말을 내뱉었다. “영혼의 구슬을 찾아오면 6서클 마법까지 주문식과 연사식을 다 가르쳐 주지. 물론 마법사 길드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특별 마법도. 나 같은 천재 마법사만 가능한 것이지.” 마지막 말이 거슬렸지만 어지 됐든 레케는 승낙한 것이었다. 물론 영혼의 구슬이라는 이상한 걸 찾아오라고 했지만……. -퀘스트를 발동합니다.- 스페셜 퀘스트 레케가 원하는 영혼의 구술 2개를 찾아라. 스페셜이란다. 저번에 레즈비언 퀴스트와 더불어 S급에 가까운 무 뽑기 퀘스트. 그리고 드디어 발동된 3번째 퀘스트였다. 스페셜이라는 엄청난 고난이도의 퀘스트. “할 것인가?” “…….” “별 관심이 없는 건가?” “아, 아니.” 난 나에게 묻는 레케를 보고 얼른 말했다. 관심이 없기는, 6서클 마법까지 가르쳐 준다는데. 물론 마법을 배워도 능력이 안 된다면 쓸 수 없지만, 5서클 이상의 마법은 배우기도 힘들었다. 그리고 마법사 길드에서 5서클까지 공짜로 가르쳐 주는 건 아니었다. 나름대로 돈 처 받아먹고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6서클까지, 그것도 마법사 길드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특별 마법도 덤으로……. “그런가? 그럼 힌트를 주도록 하지.” 곧바로 본론에 들어가는 레케. “유케리트로 가게.” “유케리트?” 생전 처음 듣는 지명에 난 의아해서 되물었다. 그런 곳이있나? “가면 알 것이네.” “그렇게 무책임하게 말하면 어떡하냐?” “훗, 가면 알아.” “뭘 알아? 대략 설명이라도 해 줘야 될 것 아니야! 난 생전 처음 듣는 곳이라고!” “가면 안다니까!” “뭘 아냐고!” 이상한 걸로 싸움이 일어난 나와 레케. 이건 솔직히 내 잘못이 아니었다. 어느 곳에 있는지도 모르는 곳으로 무조건 가라고 하는데 누가 순순히 그냥 가겠는가? “싫으면 말든가.” “…….” 크윽. 난 그 말에 침묵을 지켰다. 지금 퀘스트를 포기하면 나만 엄청 손해였다. 그것도 어마어마한 손해.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무장적 유케리트인가 유카리트인가를 찾기 위해 준비를 했다. 젠장……. 그런데 거기가 어디야? 스페셜 퀘스트는 이렇게 개판으로 만들어도 되는 거야? 아무리 난이도를 높게 설정해도 그렇지, 알지도 못하는 곳으로 가라니! 제5장 식물의 마을 나는 밖으로 나오자 처음 대화 이후 이상하게 살짝 힘이 없는 예화에게 물었다. “예화야, 혹시 유케리트가 어딘지 알아?” 절레절레. 그 말에 예화는 모른다는 듯 고개를 지었고 난 그 말에 좌절했다. 이곳에서 유일한 만물박사가 모르면 이미 끝난 것이었다. “젠장! 어디 있는지는 가르쳐 줘야 될 것 아니야! 유케리트라고만 하면 내가 어찌…….” “내가 알아.” “뭐, 네가?” 바로 그때 오늘따라 조용히 있던 케미리의 입에서 나온 충격적인 말. 내가 알아. 물론 보통 사람에게는 지극히 평범한 말이었지만 케미리에게서 저런 말이 나온 것은 완전 충격이었다. 듣고도 못 믿겠다. “나를 뭐로 보는 거야? 나는 어쌔신이야. 하하하.” 금세 원래 성격으로 돌아오는 케미리였다. 개과천선은 무리인가? 한 2일 3시간이면 약발이 떨어지는 건가? 어떤 의미로는 정말 존경스러웠다. 닭대가리는 참 편한 인생인 것 같았다. “정말이냐?” “물론 확실하지.” 확신에 찬 대답에 내 마음은 왠지 더 불안하기만 했다. 지금 나의 머릿속에는 싸움이 일어났다. 저 닭대가리의 수장(내가 인정했다. 저 세 명 중 저놈이 수장의 재질을 충분히 갖고 있었다. 그것도 많이.)의 말을 믿어야 할지. 그냥 무시해야 할지. 정말 이런 어려운 결정은 살다 살다 처음이었다. 만약에 저 말을 무시하면 유케리트라는 곳을 무작정 찾아 나서야 됐다. 그런데 저 말을 듣자니 두려웠다. 한마디로 나의 지금 상황을 요약하면, ‘미쳐 버리겠다’ 이거였다. 어느 것도 섣불리 결론을 내릴 수 없는 상황. 정말 박진감 넘치는 상황이었다. 아니, 정말 슬픈 상황이라고 수정하겠다. “왜 그래? 무슨 고민 있어?” “…….” “왜 말을 못해?” “…….” “흐으음.” 케미리야, 너 같으면 이런 상황에 대답을 하겠니? 난 계속해서 묻는 케미리를 보고 도저히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정말 믿음이 1%라도 있으면 승낙하겠지만 저놈에게는 1%의 믿음도 없었다. 한마디로 0%. 그렇게 난 평생을 통틀어서 가장 결정을 내리기 힘든 고민을 했고 잠시 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 안내해.” 길을 안내받으면서 이렇게 떠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거다. “어, 어디 가는 거야?” 난 불안한 마음에 앞장서서 가는 케미리에게 물었다. 우리는 한 1시간 정도 케미리의 뒤를 따랐지만 이상하게 가면 갈수록 울창해지는 숲만 보였기 때문이었다. 제 말로는 여기서 그리 멀지 않으니 걸어가도 충분하다고 해서 따라가는 게 1시간째였다. “마스터, 나를 못 믿는 거야?” 응. 그걸 꼭 말로 해야 하니? 하지만 난 차마 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길 찾는 사람, 아니 개의 힘을 빠지게 할 수는 없얶기 때문이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당장 이 퀘스트도 하기 싫었지만, 보상이 너무나도 탐났기 때문에 도저히 관둘 수가 없었다. 그렇게 3시간이 더 지났다. 총 4시간 정도를 이상한 쪽으로 걸었고, 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불안해졌다. 원래 동료를 믿어야 하지만 이 세계가 2쪽 아니 324쪽으로 갈라져도 믿고 싶지 않았다. 난 그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해서 불안한 생각이 들자 화재를 돌렸다. “야, 테피언.” “왜?” 저놈도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역시 개과천선은 무리인건가? 저 불만이 가득하다는 목소리. 아니꼽다고 말하는 전매특허. 테피언의 고유의 말투였다. 물론 나뿐만 아니라 다른 소환수들에게도 저 말투를 사용했다. 예화한테만 빼고……. “네가 4번째 소환수에 대한 정보를 좀 흘려 봐. 저 피티언이 극구 말을 안 하려고 하니 너한테라도 들어야겠다.” 바로 그때 나의 말을 듣던 페티언의 몸이 굳어 버렸다. 그리고 덤으로 피티언과 앞장서서 걷던 케미리까지. 한마디로 3대 소환수가 다 굳어 버린 것이다. “왜, 왜 그래?” “…….” “…….” “…….” 나의 질문에 말없이 경직된 채 있는 테피언, 피티언, 케미리. “제, 제발 마스터, 그 여자, 아니 마녀에 대한 이야기는 꺼내지도 말아 주세요.” 울먹울먹. 이제 울기까지 하는 피티언. 자꾸 이런면 내가 더 궁금하잖아? 이럴 때는 폭력치열이라도 필요할 듯싶었다. 폭력치열이란 이열치열의 개량형으로 뜨거움을 뜨거움으로 이겨낸 다는 어감을 빌려와 폭력으로 세상을 평정한다는 깊은 뜻이 담겨 있었다. 물론 이 정보는 다 야매였다. 한마디로 믿으면 안 되는 정보라는 것이다. 어찌 됐든 난 주먹을 슬며시 쓰다듬었다. 감히 너희들이 감추려고 하니 내가 더욱더 궁금해지는구나. “마, 마스터, 도, 도착했어.” 바로 그때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는 케미리. 훗, 하지만 이야기를 듣고 가도 난 충분한데 말이다. “허억, 마스터, 빨리 사라져!” “뭐, 뭐라고?” 난 그 말에 재빨르게 고개를 돌렸다. 사라지기는 뭘 사라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지만 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길이 닫히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식물들이 길을 닫고 있었다. “얼른 들어가야 해. 저 식물은 절대 무적이야. 아니, 무적까지는 아니라도 부수려면 어마어마한 힘을 들여야 해!” 난 다급하게 움직였다. 4번째 소환수에 대한 궁금증은 증폭되어 갔지만 어찌 됐는 지금은 할 일이 있으니. 그렇게 난 앞장서서 서서히 닫히고 있는 식물 안쪽으로 들어갔고, 그런 나를 향해 예화, 피티언, 테피언, 케미리가 재빠르게 달려왔다. 민혁이가 들어가자 동시에 문이 닫혔다. 그리고 문을 구성하고 있던 그 식물은 곧 주변의 환경과 동화가 되어 버렸다. 한마디로 절대 이 비밀 길을 찾아내지 못하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유케리트. 식물의 세상이라는 곳이었다. 스르륵. 스르륵. 난 내 앞에서 마구 움직이는 식물을 보면서 몸이 굳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여기도 식물, 저기도 식물, 저기도 식물이었다. 완전 식물 종합 세트였다. 물론 그 종합 세트에는 식인 식물도 포함되어 있었고……. “케미리, 내가 워낙 당황해서 얼떨결에 들어온 건데, 정말 여기가 유케리트가 맞냐?” “물론 유케리트는 식물의 세상이야.” “식물의 세상?” “어, 아까 우리가 봤던 식물이 문을 열어 주는데 주기적이지는 않아. 마음대로 문을 여는 거지. 그래서 내가 다급하게 말했던 거야, 마스터!” 한마디로 저 꼴리는 대로 문을 연다는 소리인가? 어찌 됐든 난 아직 케미리의 말을 완전히 믿지는 않았지만 주변을 둘러봤다. 온갖 식물로 뒤덮인 세상, 내 발밑에는 꽃들로 가득했고 침을 뚝뚝 흘리는 식인 괴물들도 있었다. “어서 가자. 안내해 줄게. 여기 안에는 마을이 있거든.” “마을? 이런 곳에?” “응. 케루케루라고 식물의 종족이야.” 케루케루? 그런 종족도 있었나? 난 머릿속에서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엘프, 드워프, 드래곤 등 수많은 종족을 들어 봤지만 케루케루라는 종족은 생전 처음 들었다. 그것도 식물 종족? 그렇게 난 여전히 불신감이 가득한 채 자신만만히 앞장서서 가는 케미리를 따라갔다. 물론 가는 도중 내 다리를 휘감는 꽂ㅊ이라든가 갑자기 쿵쿵 뛰어와서 삽질하는 나무라든가 촉수로 나를 질러 버리려는 연꽃이라든가, 한마디로 괴상한 식물들을 나는 아주 가볍게 밟아 버렸다. 그렇게 나와 예화, 테피언, 피티언은 케미리의 안내를 받으며 따라갔다. 그리고 얼마 후, 내 눈에 믿을 수가 없었다. 케미리의 말대로 깊숙한 곳에는 마을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마을 입구에는 유케리트라는 말도 뚜렷이 적혀 있었고. 여기가 정말 유케리트였을 줄이야. 난 반신반의했던 나의 생각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케미리의 안내가 틀린 게 아니었다. 케미리는 정말로 유케리트라는 곳으로 안내를 한 것이었다. 그나저나 정말 케미리 아니었다면 이런 곳을 어떻게 찾았을지……. 너무나도 넓은 숲 속에서 저 꼴리는 대로 문 여는 식물을 찾기란 정말 어려웠을 것이다. 아니, 어려운 정도가 아니었다. 뭐, 그래서 스페셜 퀘스트인가? 바로 그때, 그런 상상을 하던 나에게 느껴지는 대량의 살기. 최소 못해도 수천 명 이상의 살기였다. “…….” “…….” 나 말고도 테피언과 피티어도 느꼈는지 전투 준비를 하기 시작했고, 바로 그때 유일하게 케미리만이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표정이 왜 그러냐?” “아, 아니.” “뭐 숨기는 거 있지?” “어, 없어.” “…….” 난 계속해서 숨기는 듯한 케미를 말없이 노려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케미리에게 다가갔다. “자, 잠시! 마, 말할게.” 싱긋. 난 그제야 굳었던 표정을 피면서 웃었다. 그래, 어서 말하렴. “사, 사실…… 케루케루는 다른 종족들에게는 다 적대적이거든. 그것도 어마어마하게…….” “…….” “하하하하.” 어색하게 웃어 대는 케밀. 그 중요한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었던 거니? 정말 그걸 잊어버리고 있다가 이제야 말하는 거냐? 정말로? 아무리 닭대가리라고 하더라도 그건 심하다고 생각 안 하냐? “하하, 귀여운 실수라고.” 쿵쿵쿵. 난 제 입으로 귀엽다고 하는 개 한 마리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바로 그때, 순간적으로 우리 주변을 뒤덮는 엄청난 무기들. 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아무리 나라고 하더라도 수천 명을 상대로 지금 상태에서 공격하기에는 무리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번에 데스 길드에서 왔던 피라미들하고는 격이 다른 움직임이었다. 그뿐 아니라 만약에 싸움을 해서 이긴다고 하더라도 퀘스트는 물 건너가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였다. 난 그렇게 주변을 둘러싼 각종 무기들을 보면서 어색한 미소와 함께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지지(GG).” 나의 행동에 전투를 하려던 테피언과 피티언과 케미리도 손을 들었다. 예화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일이 잘되는 꼬라지를 한 번이라도 구경하고 싶은게 나의 자그마한 바람이다. 어디서 본 듯한 이 친숙한 시뮬레이션은……. 우리는 각종 식물로 만들어진 오랏줄에 묶여서 끌려가는 도중이었다. 저번에 레즈비언 자매 이후로 처음으로 어디에 묶인 채 끌려가고 있었다. 이미 마을 안에는 들어왔고 케루케루는 우리를 뜯어먹을 것 같은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우리들이 뭘 잘못했다고 저런 눈빛으로 보는 건지……. 그만큼 뜯어먹을 듯한 눈빛은 나를 약간이지만 두렵게 만들었다. 수천 개의 눈동자가 그런 눈빛을 한 채 자신을 바라보면 아마도 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질 게 분명했다. 그렇게 우리는 뜯어먹을 듯한 눈빛을 받으면서 마을에서 제일 큰 건물에 도착했다. 그러고 보니 처음에는 당황해서 밥을 안 했는데, 저 케루케루라는 종족은 인간과 상당히 흡사했다. 다리도 있고 팔도 있고 얼굴도 있었다. 물론 얼굴이 있는 것은 당연했지만 어찌 됐든 온몸이 머리에서 발끝까지 사랑스러워……가 아니라 녹색의 색깔과 몸에 듬성듬성 나있는 가시를 제거하고, 뒤에 나뭇잎 날개를 제거하고, 머리에 난 이파리만 제거하면 인간과 비슷해 보였다. 그렇게 말하니 완전 다르구나. 그런 상상을 하는 도중 마을에서 제일 큰 집 앞에 도착했다. 거기에는 다른 애들보다 온몸에 나뭇잎이 5배 정도 더 달린 남자(?)가 나와 있었다. “이곳에 어떻게 들어온 거지?” ‘허억!’ 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건 친숙한 대륙 공용어. 그런데 무척 또렷한 발음으로 말을 하고 있었다. “왜 대답이 없지?” “아, 아니.” “여기는 어떻게 들어온 거지?” 난 계속되는 질문에 개 한 마리를 힐끔 쳐다보았다. ‘저 개의 안내를 받아서요.’ 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말 하기에는 거짓말 같아 보였다. 그래서 난 정의의 거짓말을 하기로 결심했다. “내가 원래 이런 쪽에는 잘났거든.” “죽여 주마, 케루케루.” “허억!” 난 나의 한마디에 당장 사형 선고를 하는 그놈을 보고 놀라서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농담 한번 한 것 가지고 죽이라니……. 그만큼 타 종족이 싫은 거냐? “케루케루.” “케루케루.” 그런데 그 말에 반응을 보이는 케루케루들……. 정말인가 보다. 그들은 곧바로 검을 들고 찌르기 위해 달려왔고, 난 그 모습에 당장이라도 이 오랏줄을 부수고 전투를 하려고 했다. 바로 그 순간, 피티언의 말문이 열렸다. “영혼의 구슬을 찾으러 왔다.” “…….” 그 말에 갑작스럽게 경직되는 나뭇잎이 5배 정도 더 달린 남자. “바, 방금 뭐라고?” 반신반의하면서 묻는 나뭇잎이 5배 정도 더 달린 남자. “우리는 영혼의 구슬을 찾으러 왔다!” “…….” 그게 그렇게 중요한 건가. 갑작스럽게 굳어질 만큼? 난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피티언이 한 건 해냈다는 게 더욱더 감격스러웠다. 그래 드리어 너도 나를 닮아 가는구나. 바로 그 순간……. “케루케루케루.” 나뭇잎이 5배 정도 더 달린 남자는 갑작스럽게 부하들에게 말했고. 잠시 후 부하들은 다시 우리를 이상한 데로 연행하기 시작했다. “뭐, 뭐야?” “일단은 살려 주지. 하지만 감옥 안에서 말이다.” 우리가 범죄자냐? 왜 감옥이야! 그렇게 우리는 일단 살기는 살았는데 감옥으로 끌려갔다. 난 허름하게 보이지만 나름대로 튼튼한 구식 감옥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허억! 나, 난 갑자기…….” “…….” 바로 그때 심장을 부여잡는 데스나이트. 그는 갑자기 심장을 부여잡더니 나에게 엄지손가락을 치겨올리면서 말했다. “너무 오랫동안 나와 있어서……. 이만.” “…….” 스으윽. 그 말과 함께 다시 반지로 들아가는 테피언. 저 새기를! 멀쩡하게 돌아다니다가 상황이 이상하게 되면 반지 안으로 들어가는 저 몹쓸 놈! 정말 난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감옥 안에서 괜히 삽질해 봤자 힘만 빠질 뿐이다. “예화야, 참 고생이 많다.” “아, 아니에요.” 난 괜히 저 닭대가리 3형제들 때문에 고생하는 예화에게 미안해 죽을 것 같았다. 이런 괴이한 일도 한두 번이어야지……. 끄덕하면 발밑에 문이 열려서 괴이한 곳에 들어가지를 않나, 수백 명의 인간들이 나를 잡기 위해 난리를 치질 않나. 심지어는 이제 괴이한 나뭇가지 마을에서 옥 생활을 하고 있지를 않나……. 솔직한 말로 내 인생의 이야기를 책으로 낸다면 모두들 감동해서 눈물을 흘릴 게 분명하다. 제목은 ‘인간이 얼마나 재수 없어질 수 있는지’ 라는 심리적, 과학적, 영리적 이론으로……. “저는 정말 괜, 괜찮아요.” 정말 마음씨도 어쩜 저렇게 착할 수가. 내가 불쌍하다는 듯 바라보자 예화는 당장 손을 흔들면서 미소까지 지었고 난 그 모습에 감동했다. 만약에 예화 같은 미소녀인 정상인이 내 옆에 없었더라면 난 저 3인방에 감염이 되어 이미 이상한 짓을 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나저나 채은이까지 오면 상당히 분위기가 밝아지겠지만……. 정우까지 오면 상당히 분위기가 개판이 되겠는데? 난 앞을 예측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원래 정상적인 포스보다 비정상적인 포스가 위니 정우의 포스가 더 앞설 확률이 훨씰 높았다. 이정우. 취미: 코스프레, 여장하기. 얼굴: 반반하게 생겼음. 키: 181Cm, 나보다 2Cm 작음. 특기: 모름. 가끔씩 이상한 닌자술을 하는데 불투명함. 한마디로 짜가 닌자임. 특별 스킬: 여자 사이즈 단숨에 재기. 그리고 모름. 하여튼 이상한 짓 졸라게 잘하는 놈임. 이게 정우라는 놈의 프로필이었다. 한마디로 닭대가리 3형제에게 필요한 참모 정도? 그러니 나의 마음이 이리 불안한 거겠지만……. “밥 내놔!” 바로 그때, 예화와 대화를 나누는 도중 들려오는 절규 어린 소리. 그건 피티언의 밥 달라는 소리였다. 저놈의 식욕은 어디까지인지? 물론 처음에는 저렇지 않았다. 저번에 나랑 같이 이상한 곳에 갇힌 뒤 저렇게 되어 버린 것이었다. 물론 지금의 저런 행동을 나도 말릴 수는 없었다. 왜냐, 나도 배고프니까. 나도 피티언과 마찬가지로, 안 그래도 먹을 것을 밝혔었는데 그날 이후로 더욱더 밝히게 되었다. “밥 내놓으라니까!” 그런 피티언의 절규가 처량하게 울려 퍼졌지만 그 누구도 들어 주지 않았다. 물론 여기에는 언어 번역이 되지 않았다는 게 제일 중요한 이유였다. 덜컹덜컹. 바로 그때 갑작스럽게 이상하게 생긴 마차를 끌고 오는 케루케루 한 사람. 그 사람은 마차에서 음식을 꺼내더니 감옥 안으로 밀어 넣어 주었다. 덜컹덜컹. 그러고 나서 곧바로 사라지는 케루케루였고 우리는 들어온 음식을 보고 환호성을 질렀다. 보기만 해도 탐스럽게 빛나는 과일이었다. 그런데 약간은 이상하게 생긴 과일들이었다. “꺄아악!” 바로 그때 들려온 예화의 비명 소리. 나도 너무나도 놀랐다. 과일들이 갑자기 입이 생기더니 비웃었기 때문이었다. “이, 이건 뭐냐?” 이런 과일은 생전 처음 보았다. “마스터, 어서 드세요.” 바로 그때, 어느새 한 개를 먹으면서 나에게 내미는 친절함을 보이는 피티언. 그런데 난 거부하고 싶었다. “돼, 됐어. 네놈 혼자 먹어.” “어떻게 그럴 수가! 마스터도 드셔야죠!” “아니, 그런 쪽으로는 걱정 안 해 줘도 되는데…….” “마스터, 제발 드세요. 무지무지 맛있어요!” 비웃음을 치는 과일이 맛있지는 않을 것 같은데? 난 공포 장면을 본 예화를 무의식적으로 겨안으면서 그 과일과 피티언에게서 떨어지기 시작했다. 저 새끼가 제일 무서웠다. 저런 과일을 저렇게 자연스럽게 먹다니……. “어라, 야! 케미리, 넌 어디 가?” “나, 나도 됐다.” 개 한 마리도 도저히 먹기 싫었는지 나와 예화의 곁으로 서서히 다가왔고, 그걸 본 피티언은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이렇게 맛있는 걸 왜 안 먹지? 냠냠.” 그러면서 비웃는 과일들을 보고 같이 비웃으면서 먹는 피티언이었고 난 그 장면이 정말 끔찍해서 차마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그렇게 피티언이 그 과일을 다 먹을 동안 나와 예와, 케미리는 붙어 있었다. 그러다가 내 품에 안겨 있던 예화가 심하게 당황하더니 얼굴이 붉어진 채 내 품에서 벗어나면서 말했다. “고, 고마워요.” “아니, 돕고 살아야지.” “…….” 맞는 말이었다. 돕고 살아야지. 저런 공포 장면을 극복하기에는 예화 혼자서 불가능했다. 그렇게 우리는 어색한 부위기와 더불어 알 수 없는 분위기로 한 2시간 정도 감옥에 갇혀 있었다. “저는 이만 가 볼게요. 시간이 다 돼서…….” “아, 그럴래?” “오늘도 고마웠어요.” 그렇게 예화는 나에게 인사를 한 뒤 접속을 끊으려고 했다. 그런데 잠시 뒤 예화는 당황하면서 나를 보고 말했다. “퀘스트 도중 발생한 감옥 안에서는 로그아웃이 불가능하데요.” “…….” 그렇게 3시간이 지났다. 예화는 평소보다 훨씬 오래 게임을 했다. 왜냐, 접속이 안 끊어지니가. 보통 퀘스트 도중 이런 감옥에 갇힐 확률은 거의 0.0000000000001%였다. 그런데 그런 희박한 확률에 우리가 당첨된 것이었다. 젠장. 이런 것 당첨될 시간에 로또라도 당첨되면 좋을 텐데……. 쳇쳇. 그렇게 저녁이 왔고 대략 저녁 10시쯤 됐을 때, 나뭇잎이 5배 정도 더 달린 남자가 찾아왔다. “…….” “…….” 나와 나뭇잎이 5배 정도 더 달린 남자는 말없이 쳐다보았다. 일명 눈싸움. 물론 처음에 간단히 힘으로 부수고 탈출할까도 했지만 그럴 경우 힘들게 찾은 스페셜 퀘스트가 개판이 될까 봐 참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계속해서 감옥에 갇혀 있으면 퀘스트가 어떻게 되는 그냥 엎어 버릴 것 같았다. 털썩. “구해 다오.” 바로 그때 나에게 무릎을 꿇는 나뭇잎이 5배 정도 더 달린 남자. 난 그의 급작스러운 반응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우리는 그 나뭇잎이 5배나 더 달린 남자 때문에 풀려났다. 그것도 몰래……. 왜 몰래인지는 모르겠지만……. 예화는 풀려나자마자 텔레포트 마법진을 이용하여 마을로 간 후 로그아웃을 해 버렸다. 다행히도 마을을 빠져나가자 텔레포트가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테피언, 이 새끼는 또 반지에 들어가더니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여기서 쭉 올라가면 그 괴물이 나온다고 했지?” “네. 마스터.” 나의 질문에 침착하게 대답하는 피티언. 난 이상하게 이런 모습을 보면 적응이 안 되다 못해 온몸에 닭(?)이 나는 것 같았다. 그 나뭇잎이 5배 정도 더 달린 남자는 우리를 풀어 준 다음 설명을 해 주었다. 이쪽으로 가면 이성을 상실한 자신들의 동족이 살고 있다고, 그 동족을 해치워 준다면 영혼의 구슬을 자신에게 주겠다고, 물론 그냥 주는 건 아니었다. 그 동족을 죽이면 나오는 별빛의 목걸이를 가지고 오라는 것이었다. 난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궁금하지 않았다. 내가 저것들 사정을 알아 봤자 할 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한테 도움 안 되는 것을 알아 봤자 좋을 것도 없었다. 뭐, 솔직히 이해가 안 되는 점이 한두 개가 아니었지만……. 스르륵. 스르륵. 가는 도중 여전히 괴이한 짓거리를 하는 식물들. 여기에 있는 식물들은 식인들이든 아니든 대부분 공격적이었다. 푸시식. 바로 그때 나의 발밑을 잡아당기는 나무들. 난 순간적으로 무기를 소환해 내었다. 와이어(Wira) 소환. 파짓. 난 와이어를 소환하자마자 내 발을 잡는 식물을 잘라 버렸다. 그러자 하늘로 올라가려고 했던 몸은 다시 바닥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그런 나와 달리 피티언과 케미리는 거꾸로 대롱대롱 매달린 상태였다. “너희들 뭐 하냐?” “저는 마법사여서 반응이 늦었습니다.” “나는 요새 피곤해서…….” “…….” 피티언의 변명까지는 들어 주겠는데 케미리의 변명은 도저히 못 들어 줄 것 같았다. 자기가 한 게 뭐 있다고 피곤하대? “마스터, 구해 주세요!” “헬프 미!” 난 나에게 도움을 청하는 그것들을 무감각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왠지 모르게 구해 주고 싶지 않은 욕망. “마스터!” “마스터!” 스르륵. 난 절규하는 그것들을 보면서 어쩔 수 없다는 듯 와이어를 길게 내뻗어 그 나무 줄을 잘라 버렸다. 그러자 그것들은 자유낙하의 법칙에 의해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졌다. “마스터! 날 안아 줘!” 미쳤냐? 너를 안아 주게. 난 케미리의 절규를 아주 깨끗이 무시했고, 케미리는 그대로 바닥에 곤두박질쳤다. 그에 반해 마법사인 피티언은 아주 가뿐하게 착륙했다. 역시 피티언은 떨어지는 것만큼은 우아하다니까……. 그에 반해 바닥에 곤두박질친 케미리의 모습은 처참했다. 하지만 난 그 모습을 그냥 무감각하게 보면서 말했다. “자, 가자.” “마, 마스터, 너무해!” “너무하기는 개뿔. 그리고 네놈은 어쌔신이 제대로 떨어지지도 못하냐?” “난 특별하니까.” “…….” 내가 말을 하지 말자. “그나저나 마스터, 언제까지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걸까요? 벌써 30분 이상은 걸은 것 같은데요.” “벌써 그렇게 된 거냐?” “네.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쯤 된 것 같습니다.” 난 무의식적으로 퀘스트만을 생각하면서 걸어갔기에 그만큼 시간이 지난 줄도 몰랐다. 그뿐만이 아니라 이렇게 날름날름 노리는 주변의 괴이한 식물들을 신경 쓰느라고 약간 정신이 없는 상태였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가던 길을 가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쭈욱 앞으로 가면 그 괴물이 나온다기에 왔는데, 이상하게 나오지 않았다. 2시간이나 계속해서 걸었어도 보이지 않았다. “뭔가 이상하다.” “마스터, 설마 저희들, 길 잃어버린 것 아니에요?” “설마?” 난 그 말에 확신할 수는 없었다. 과거에 분명 길을 잃어버린 경험이 있었으니 말이다. 난 그 말에 불안한 듯 고개를 돌리다가 우리들을 바라보고 있는 케루케루를 보고 깜짝 놀랐다. 방금까지도 기척을 느끼지 못했는데 어느새 우리 옆에 있었던 것이었다. “인간들이 여기에는 무슨 볼일이지? 케루케루의 마을을 거치고 나서 온 걸 보면 그놈이 사주한 거군.” 그놈? 난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는 케루케루를 보면서 당황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당황하는 이유는 그 케루케루에게서 아무런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마치 무형의 기운……. “이곳에 왔으면 죽으로 왔다고 여겨도 무방하겠지.” 스멀스멀. “허억!” 난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말과 함께 케루케루로 보이던 남자가 뿌연 영체가 되어 버린 것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온몸의 나뭇가지들이 마구 돋아 나와 케루케루와는 비교도 안 되게 끔찍해져 버렸다. 꿀꺽. 그 모습을 보던 피티언의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꿀꺽. 이건 케미리의 침 삼기는 소리. 그만큼 저 괴물이 예사롭지 않다는 소리였다.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 형체지만 분위기만으로 주눅 들게 하는 이 느낌. 한마디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괴이한 기분이었다. “죽어라!” 파다닷. 그 말과 함께 나뭇가지들이 엄청나게 길어지더니 나의 몸을 뚫어 버릴 듯 공격해 왔다. 요샌 괴이한 놈들만 만난다니까! 불현듯 데스 길드인가 하는 걔네들이 그리웠다. 그래도 그것들은 인간이었으니 말이다. 인첸트 화(火). 화르륵. 나의 말에 와이어에 불이 붙었다. 물론 뜨겁지는 않았다. 내가 만들어 낸 불꽃이었으니 말이다. 상식적으로 나무는 불에 약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니 지금 나를 관통할 듯이 다가오는 나뭇가지도 불에 타 녹을 거라고 생각했다. 난 그 생각과 더불어 화의 기운으로 감사여 있는 와이어를 나무에 재빨리 돌려서 끓어 버리려고 했지만 그런 나의 생각은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푸지직. “크으윽.” 난 믿어지지가 않았다. 와이어를 그대로 관통해 버린 나뭇가지……. 나의 와이어는 분명 나뭇가지를 감아 내려고 했지만 그 나뭇가지는 그런 와이어를 무시하고 나의 어깨를 관통했다. “크으윽.” 나의 어깨에서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피. 그와 더불어 공격에 의해 떨어진 와이어는 그대로 사라졌다. “마, 마스터!” “마스터, 괜찮나?” 그런 나를 보고 재빨리 달려오는 피티언과 케미리, 이럴 때는 무지 고마운데 평소에도 좀 이랬으면 좋겠다는 게 나의 바람이었다. 그나저나 완전히 관통되어 버린 어깨는 더럽게 아팠다. 실제 모드로 맞춰 놓았기에 고통의 감소율도 상당히 적은 상태였다. 그 대신 좀 더 실제처럼 움직일 수 있었지만 말이다. 푸시식. 바로 그 순간, 반지가 번적거리더니 테피언이 소환되었고, 나의 몸을 관통하고 있는 나뭇가지를 향해 어마어마한 크기의 검을 휘둘렀다. 휘이익. 하지만 이번에 들려온 것도 검이 바람을 일으키는 소리. 테피언의 대검은 그대로 그 나뭇가지를 지나가 버렸다. 그러더니 힘껏 휘두른 검은 땅에 박혀 버렸다. 쾅! “뭐, 뭐야? 거, 검이 통과했어?” “마로 안 돼!” “말이 안 되기는 말 되잖아. 크윽.” 난 아픈 와중에도 끝끝내 한마디 했다. 바로 그때 피티어의 주문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차가운 대지를 얼려 버리는 얼음의 요정이여, 냉혹한 추위보다 더욱더 차가운 그대의 힘으로 내 앞에 있는 적을 얼리리라. 프로스트 링(Frost Ring)!” 탱탱탱. 그 말과 함께 얼음의 링이 그 괴물의 위에 생성되었고, 그 얼음의 링은 그 괴물을 얼려 버리려고 했다. 하지만 그 얼음의 링도 괴물의 몸을 가볍게 지나쳤을 뿐이었다. “크윽! 뭐, 뭐야?” 그걸 본 난 말도 안 된다는 듯 말했다. 아예 물리적 공격, 마법적 공격이 저놈의 몸에 닿지도 않고 있었다. 물론 직접 시전한 피티언의 입도 쫙 벌어진 상태였다. “하찮은 발악일 뿐이다.” 괴물의 입에서 그런 낭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바로 그때 나의 눈에 그냥 가만히 있는 케미리의 모습이 들어왔다. “야! 넌 왜 아무것도 안 해.” “해 봤자 헛짓거리잖아? 괜히 힘 빼는 건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야.” 네놈 입에서 바보라는 말이 나오다니! 정말 양심도 없는거냐?! 피티언과 테피언은 나를 구하기 위해 공격을 했는데 저 똥개만은 헛짓거리라고 아무런 모션도 취하지 않고 있었다. 부릅. “죽고 싶냐?” “아, 알겠어. 하면 되잖아. 쳇.” 나의협박에 못 이겨 일어나는 똥개 한 마리. 내 어깨를 관통한 나뭇가지의 고통보다 저놈의 행동에 대한 정신적 고통이 더 심했다. 물론 거짓말이고, 내 어깨를 관통한 게 더 아팠다. -정신 차려! 죽으면 안 돼! 죽기는 뭘 죽어, 임마! 난 말할 기운도 없는데 갑작스럽게 말을 거는 로케리스. 이놈은 그냥 조용히 해 주는 게 나에게 기운을 주는 것이었다. -죽으면 안 돼! 오랜만에 만난 주인인데 벌써 죽으면 내가 심심하잖아! 그게 이유였냐? -허억, 이제 말까지 못하는 거야?! 닥쳐. 난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말할 기운이 없었다. 나뭇가지가 나의 어깨를 관통하지 않은 상태였다면 당장이라도 바닥에 주저앉을 정도로 몸에 기운이 없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피는 계속해서 주르륵 사라졌다. 크윽! 정말 저 괴물 놈이 내 피를 흡수하고 있었다. 어쩐지 겨우 한 군데 뚫렸는데 피가 너무나도 빨리 사라진다고 했어! 그나저나 이놈은 나의 몸을 관통하는데 난 이놈의 몸에 손 하나 댈 수 없다는 게 분했다. -죽는 거야? 죽는 거야? 죽는 거야? 이제는 노래까지 부르는 로케리스. 저 새끼, 남은 아파 죽겠는데 누구는 한가하게 노래나 부르고! 한편 나의 공갈 협박에 나간 케리미는 당연한 말이지만 그대로 죽 쑤고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쳇, 비효율적인 활동을 했어.” 저 새기가! 피티언과 테피언이 그런 말을 했다면 난 참았을 것이다. 하지만 저놈이 하니 무지무지하게 화가 났다. 가슴이 터질 정도로……. 하지만 곧바로 징계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난 엄청난 크기의 나뭇가지에 어깨를 크게 관통당한 채 피를 쭉쭉(?) 빨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와 더불어 사람 염장 지르는 케미리와 로케리스. 정말 화가 나서 미쳐 버릴 것 같았다. “이제 서서히 바닥나 가는군.” 어이, 네가 흡혈귀냐, 나무냐? 남의 피를 뻔뻔하게 빨아들이는 그 괴물을 보고 드는 생각이었고, 그런 생각과 더불어 나의 정신은 희미해졌다. 젠장, 내게 왜 이런 고난이도의 삶을 주는 거야! 바로 그때, 갑작스럽게 움직이는 케미리. 난 그 모습을 보고 이상하게 불안했다. 거의 본능적으로……. 케미리는 순간적으로 그 괴물의 근처에 있는, 아무런 연관이 없어 보이는 평범한 나무에 다가가더니 곧바로 단검을 꺼내 들었다. “아, 안 돼!” 바로 그때 그 괴물의 절규가 울려 퍼졌고, 케미리는 역시 어쌔신이라는 걸 증명하듯 엄청난 속도로 나무를 찔렀다. 푸욱. “크아악!” ‘……?’ 분명 케미리는 전혀 상관이 없을 것 같은 나무를 찔렀지만 그 케루케루에서 변신한 괴물은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 그 순간 나의 손에 잡히는 나무의 형체. 그 괴물은 흐릿ㅎ마이 사라지고 기운까지 느낄 수 있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케미리, 한 건 해냈구나.” 난 그 말과 함께 싱긋 웃었다. 이런 괴이한 주술이 깨진 이상 넌 내 밥이다! 난 도기를 소환해 내었다. 도끼 소환. 인첸트 화(火). 화의 힘으로 불타는 도끼. 난 그 도끼로 나의 어깨를 관통한 나뭇가지를 한 손으로 잘라 버렸고, 자신의 치사한 주술이 깨진 걸 안 그놈을 향해 온몸의 힘을 짜내 달려갔다. 솔직한 심정으로 당장이라도 쓰러지고 싶었지만 화가 나서 안 될 것 같았다. “나는 당하지 않는다!” 그놈은 다시 원래대로 침착함을 유지한 채 나뭇가지로 방어막을 치기 시작했고, 난 그걸 보고 싱긋 웃었다. 내 데미지를 무시하지 말라고! 콰아앙! 화르륵! “크아아앙, 아무리 환수상이 깨졌다고 하더라도 일격에 당하다니! 믿을 수 없어!” 믿을 수 없긴. 지금 일어나고 있는데? 내 데미지가 좀 평범하고는 거리가 멀었기에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그뿐 아니라 무기 중에서 제일 강하다는 도끼였으니 할 말 다 했다. 그렇게 그 괴물은 반쪽이 난 다음 불에 타서 완전히 소멸해 버렸다. “하아, 하아.” 난 가쁜 숨을 쉬면서 그대로 주저앉았다. 피가 너무 빨렸어. 나무한테 피 빨리기는 처음이네. 그나저나 난 정말 도움을 준 케미리에게 진심이 가득한 목소리로 한마디 했다. “해냈구나.” “뭐, 하하하하하하!” 나의 칭찬에 신나게 웃는 케미리, 난 그 모습을 보고 슬며시 웃었다. 항상 말썽을 부리는 닭대가리 놈이었지만 이럴때 한 건 해 준 것이었다. 투욱. 그 순간, 그 괴물이 죽자 바닥에 떨어지는 목걸이 한 개와 구슬 한 개. 난 그것을 보고 실망을 금치 못했다. 목거리는 퀘스트용이니 당연하데 구슬 한 개라니. 무슨 코미디 찍는 것도 아니고……. 실망을 금치 못한 마음으로 그 아이템들을 향해 다가가주웠다. 그런데 가까이서 보니 어디서 본 듯한 구슬이었다. “이 구슬은 뭐지?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난 이렇게 중얼거리며 아이템 확인을 했다. -풍 속성의 구슬- 이 구슬을 먹을 시 모든 무기에 풍의 기운을 인첸트할 수 있게 된다. “헤엑?” 난 생각지도 못한 아이템에 입을 쫙 벌렸다. 풍 계열 속성 인첸트? 이런 놈이 왜 이런 괴물딱지한테서 나오는 거지? 만약에 내가 아니고 다른 사람이 먹었다면 사용도 불가능할 텐데? 왜 하필……. 그렇게 난 갑작스럽게 나온 구술을 보고 너무나도 기쁜 마음에 온갖 잡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잠시, 난 나를 위해 나온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먹으려고 했으나 바닥에 있던 것이라서 먼저 옷에 닦았다. 스삭스삭. 난 더러움을 대충 닦아 낸 뒤 그 구슬을 삼켰다. 지금 대충 지혈을 한 상태라 여전히 힘은 없었지만 그래도 걸을 만은 했기에 이런 행동도 가능한 것이었다. -풍 속성 인첸트가 가능해졌습니다. 확인하십시오. 그 말과 함께 내 몸에 몰아치는 바람의 기운. 저번에 케미리가 나타나고 나서 획득한 수 속성은 이런 것 다 생략되었었는데, 역시 구슬로 먹으니 처음과 똑같은 기분이었다. -풍(風) 인첸트- 0.00%(속성 계열 중에서 최고의 절삭력을 가졌다.) 무기들의 풍(風) 속성을 인첸트한다. 상대방은 인첸트한 무기에 공격을 당할 시 일정 확률로 즉사. 마나 소모률: 4,000. 즉사? 즉사란다, 즉사. 한마디로 한 방 맞으면 케엑 하고 죽어 버린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마어마한 절삭력까지. 물론 즉사라는 게 확률적으로는 엄청 낮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솔직한 말로 즉사라는 말봐 절삭력이라는 게 당겼다. 한마디로 다 잘라 버리는 것. 바람의 힘으로 스겅스겅 잘도 잘린다는 소리였다. “마스터, 왜 그러세요?” “아…….” 난 너무나도 좋은 아이템에 멍해 있다가 피티언이 의아하다는 듯 묻자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피티언이 순수하게 웃고 있었다. “방금 풍의 힘을 얻었거든.” “축하드립니다, 마스터!” 나의 말에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피티언. 그에 반해 내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한 케미리와 테피언. 당장 밟아 버리고 싶었지만 케미리 때문에 넘어가기로 했다. 그래도 저놈 때문에 그 괴물을 죽일 수 있었으니 말이다. “뭘 하하하하! 그나저나 이제 지 속성 구슬만 남은 건가? 하하하하! 이제 3가지 찾았으니 한 가지만 더!” “네?” “왜?” 바로 그때, 나의 말에 의아하다는 듯 말하는 피티언. 왜 그러는 거지? “방금 5-3은 2인데 왜 한 가지가 남았다는 건가요?” “무슨 말이냐? 구슬은 4개잖아.” “마스터, 착각하신 것 같은데 구슬은 다섯 개입니다.” “다섯 개?” “네.” “정말 다섯 개?” “네. 구슬은 화(火), 풍(風), 수(水), 지(地), 그리고 무(無) 이렇게 다섯 가지로 돼 있습니다.” “무(無)? 그건 뭐냐?” “저도 모릅니다. 그냥 있다고 들었습니다.” 무는 뭐지? 그런 구슬도 있는 건가? 생전 처음 듣는 정보였다. 이거, 드디어 한 개 남았다고 좋아했는데 한 가지가 더 남아 버렸네. 그래도 나의 심장은 두근두근했다. 과연 무의 구슬에는 어떤 옵션이 붙어 있을까 하는 기대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제6장 도견(도박의 신개) 나는 그 이상한 목걸이를 주고 영혼의 구슬을 2개 받았다. 한 개만 받을 줄 알았는데 두 개를 주는 것이었다. 뭐, 나야 좋으니까 상관은 없었지만……. 그렇게 난 영혼의 구슬을 받고 나서 신나게 다시 그 6살짜리 대마법사를 만나러 갔다. 내가 가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문을 열어 주었고, 내가 건네주는 영혼의 구슬을 보고 대마법사는 감상에 빠졌다. 하지만 그런 것은 나와는 별 관계가 없는 관계로 얼른 마법을 내놓으라고 말했고, 그런 나의 모습을 탐탁지 않게 보던 6살짜리 대마법사는 마법이 가득 정리된 마법서를 나에게 건네주었다. 물론 이걸 당장 읽을 수는 없지만 그대로 6서클까지 보장됐으니……. 마법은 오직 숙련도로 배워야 했다. 1서클 마법 계열을 수없이 연습하고 연습하면 2서클이 가능하다. 물론 지능이 높으면 더욱더 쉬워지지만 아쉽게도 나에게 있는 것이라고는 힘과 민첩성밖에 없었다. 특히 힘은 이제 얼마인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스텟 창을 열면 항상 물음표로 나타나니까 말이다. 이 기회에 책이라도 많이 읽어서 지능 수치를 올릴까 하는 생각도 잠시 했지만 그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다. 부반장이라지만 전교 꼴등을 하는 내가 무슨 책을 읽겠는가? 한편 테피언, 피티언, 케미리는 그 나무 괴물과의 숲에서 공훈을 인정받아 나에게 돈을 받고 놀러 간 상태였다. 그것들이라면 거리지 않겠지만 나 같은 경우 마을에 가면 나리가 났다. 현상 수배지는 떨어졌어도 사방팔바에서 데스 길드놈들이 눈을 부릅뜨고 나를 찾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빠, 오늘 오빠 아는 여동생 분과 남동생 분이 오신다고 하셨죠?” “응. 왜, 예화야?” “아, 아니에요.” 묘하게 긴장하는 예화. 흐음 역시 내 생각대로 낯을 가리는 건가? “오빠!” 바로 그때 내 눈에 보이는 익숙한 두 여자. 발목 근처까지 오는 활동성 강한 드레스를 입고 머리를 포니테일로 한 채 달려오는 한 여자와 그냥 드럽게 노출된 옷을 입고 다니는 한 남자 새끼. 그렇게 두 명이 나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호, 혹시 아는 분이라는?” “그래.” “아까 남자 동생 한 분…….” “휴우. 저기 드럽게 노출된 옷을 입고 섹시미를 강조한 놈이 남자야.” “남자라고요?” “…….” 나도 믿어지지가 않았다. 물론 내 옆에 있는 예화와 저기에 활동성 강한 드레스를 입고 달려오는 채은이에 비해서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다른 관점으로 보면 미인이었다. 그것도 섹시 미인. 그래도 난 이런 생각밖에 안 든다. 역겹군. “형님, 저 왔습니다.” 토할 것 같았다. 목소리는 굵직하니 말이다. 난 저번에 정우 저놈에게 여장을 하려면 여자 목소리도 하라고 했지만 정우는 그때 나에게 아쉽다는 듯 말했다. ‘저도 하고 싶지만 잘 안 됩니다.’ ‘그럼 하지를 말든가!’ ‘안 됩니다! 저의 아름다운(?) 취미를 관둘 수는 없습니다.’ 난 그 말을 듣는 순간 그 새끼를 죽도록 밟았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그래도 그 다음에 나타난 효과는 여장보다 코스프레에 더욱더 투자를 하고 있었고, 그나마 그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오빠.” 채은이는 다가오자마자 갑작스럽게 나의 품에 안겼고 난 그런 반응에 헤벌쭉해졌다. 나도 남자……. “형님…….” 퍼억! 난 나에게 달려오는 정우 새끼를 발로 찼다. 왜 저놈도 달려오냔 말이다! “너무하십니다.” “너무하기는 개뿔!” “형님의 품이 그리웠을 뿐입니다.” “너 호모냐?” “그럴 리가요. 전 여성을 좋아하는 신체 건강한 남자입니다.” 그 말과 함께 순식간에 남자로 변신하는 정우. 그래, 다른건 모르겠지만 남자에서 여자로, 여자에서 남자로 변하는 저 순간적인 변신술은 인정해야 할 것 같았다. 저건 현실에서까지 가능한 스킬이니까. “아, 안녕하세요?” 바로 그때, 예화는 내 품에 안겨 있는 채은이를 향해 어색한 듯 인사를 했고, 그 인사에 채은이도 살짝 자세를 잡으면서 인사했다. “아, 네. 안녕하세요.” 근데 분명 채은이도 정중하게 인사했는데 저번에 느꼈던 구리구리한 기분이 다시 재발되었다. “저희 오빠가 실례를 좀 많이 했죠?” 나는 실례 안 했다. 닭대가리 3인방이 했을 뿐. “아, 아니에요. 얼마나 잘해 주시는데요.” “그래요?” “네에.” “그렇군요.” 허억. 채은이는 순간적으로 웃으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이 괴이한 기분 알고 싶었다. 근데 전혀 짐작이 안 갔다. “저랑 오빠는 어렸을 때부터 같이 지내 온 사이에요.” “네.” “그리고 어, 어렸을 때 목욕도 같이…….” 목욕? 난 채은이가 얼굴이 엄청나게 빨개지면서 말하는 목욕이라는 말에 의아했다. 나의 기억 속에는 채은이와 목욕한 기억이 남아 있지 않았다. 워낙 어려서 그랬나? 만약에 했다면 정말 안타까운 사실이었다. 기억하고 있었으면 안타깝지 않을 텐데……. “저도 형님과 목욕했습니다.” “넌 닥쳐.” “왜 그러십시니까?” “어쨌든 닥쳐!” 난 남자랑 목욕하는 걸 좋아하는 이상한 취미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절대 말이다. 그렇게 채은이와 예화의 중간에는 기이한 기운들이 몰아쳤고, 난 그걸 보고 어색해져서 말했다. “여기 채은이는 17살이고 예화는 16살. 채은이가 나이가 더 많네!” 난 다 아는 사실을 가지고 어색하게 웃었고, 나의 노력(?)이 통했는지 채은이와 예화는 이야기를 조금(1시간?) 하더니 언니 동생 하는 사이가 되었다. 흐으음, 역시 궁극의 미소녀들은 친해지기 쉬운 것인가? 아마도 그건 아니겠고, 원래 저 둘의 성격이 착한 편이니까 그런 거겠지……. “형님, 심심하십니까?” “왜?” “저도 심심해서 말입니다.” “그걸 왜 나한테 말하냐?” “그냥 해 봤습니다.” “…….” 쓸데없는 말로 나의 소중한 에너지를 낭비하게 하는 저 정우 놈. 왜 저놈만 보면 분노가 솟아오르지? 만약 정우와 케미리와 테피언이 합체하면……. 허억, 상상만 해도 무서웠다. 절대 그것만은 막아야 했다. 합체만은……. 한편 오랜만에 외출한 테피언과 피티언, 케미리. 그들은 과연 무엇을 하고 있을까? 케미리는 고민스러웠다. 자신의 조그마한 손에 들려 있는 주머니. 거기에는 총100골드라는 꽤 큰돈이 있었다. 하지만 터무니없었다. 3명이서 펑펑 쓰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한 금액이었다. “케미리, 우리 맛있는 것 먹자.” 일단 먹고 보는 피티언. 그 말에 케미리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면서 안 된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 짠돌이 마스터에게서 나온 소중한 돈을 고작 먹는 것에 쓰기에는 아깝다고 생각하는 케미리였다. “에이, 그냥 대충 아무거나 하자.” 절레절레. 테피언이 귀찮다는 듯 말하자 이번에도 케미리는 고개를 저었다. 대충 먹고 쓸 만큼 그리 갑어치가 없는 돈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마스터의 손에서 떨어져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값지다고 생각하는 케미리였다. 그렇게 케미리는 한참 동안을 이 돈을 어디다 써야 능동적이고 팡팡 쓸 수 있는지 고민에 휩싸였고 그런 케미리의 눈에 간판이 하나 들어왔다. -라스베가스- 미성년자 출입 금지. “그래 저기야!” “뭐?” “무슨 말이야?” 케미리의 엄청난 반응에 화들짝 놀라는 페티언과 피티언, 그만큼 케미리의 목소리는 우렁찼다. 한편 자신에게 시선이 몰리자 케미리는 어디서 꺼냈는지 알 수 없는 선글라스를 착용하면서 말했다. “도신의 힘을 보여 주지.” 터벅터벅. 그 말고 함께 케미리는 도박장으로 향했고, 그걸 본 테피언과 피티언도 당황하면서 케미리를 따라갔다. 도박장은 미성년자만 출입을 금지할 뿐 괴이한 생물체들까지 출입을 금지하지는 않았다. “콜.” “허억! 다이.” 그 말에 활짝 웃는 케미리. 자신의 카드는 원 페어였다. 하지만 승리했다. 지금 주변은 웅성거리기 바빴다. 괴이한 생물체, 피티언을 제외하고 개 한 마리랑 데스나이트 한 마리가 도박장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는 것이었다. 이런 괴이하고 황당한 모습은 이 도박장이 오픈하고 나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아니, 앞으로도 없을 게 분명했다. 그 뿐만 아니라 말하는 신기한 개 한 마리가 선글라스까지 끼고 도박장의 돈을 다 쓸고 있었다. 분명 케미리가 가져온 금액은 100골드였지만 지금 그의 수중에 있는 돈은 2만 골드였다. “휴우우.” 담배까지 피우는 개 케미리. 그냥 담배도 아니었다. 이곳에서 제일 비싸다는 라코라케였다. “사기야!” 콰아앙! 바로 그때 케미리에게 대부분을 잃었던 남자들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일어서더니 이를 갈면서 말했다. “개놈! 너 사기 치지!” “사기라니. 내 실력인데?” “염병하지 마! 어디서 개새끼(?)가 와서 사기를 쳐!” “맞아! 잘해도 너무 잘해!” 그 한마디에 순식간에 남자들은 케미리를 사기꾼이라고 몰아세웠고, 그걸 본 케미리는 담배꽁초를 재떨이에 비벼 끄더니 선글라스를 벗으면서 말했다. “판 엎어!” 그들은 정작 모르고 있었지만 이제 서서히 민혁이를 닮아가고 있었다. “아저씨가 여기는 웬일이에요?”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근육질 아저씨. 어마어마한 정보력을 가진 그 아저씨를 보고 의아하다는 듯 묻자 그 아저씨는 웃으면서 말했다. “대단한 부하들이군.” “네?” “개 한 마리와 데스나이트까지.” “허억.” 갑작스럽게 나타나서 그놈들의 이야기를 꺼내자 불긴한 기분이 무럭무럭 나의 마음을 점거했다. “아주 도박장을 다 부숴 놓았더군. 그리고 지금 현상금이 붙으려 하고 있지.” “이 새끼들을!” 난 오랜만에 자비를 베풀어 놀라고 보내 놨더니 사고를 친 그것들을 생각하면서 혈압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어떻게 1분 1초를 가만있지 못하고 사고를……. 커억. 수, 숨이……. “오, 오빠!” 너무나도 기가 막혀서 난 목을 부여잡으며 쓰러졌고, 그런 나를 채은이가 다급하게 다가와서 받아 주었다. 털썩. “괘, 괜찮아? 가, 갑자기 왜 그러는 거야?” “하아, 하아.” 난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이 폭발할 것 같은 분노. “후훗. 너부터 시작해서 주변에는 모두 재미있는 놈들투성이라니까.” “저를 그놈들과 세트로 보지 마십시오!” 날 그 닭대가리들과 세트로 만드는 근육질 아저씨를 보면서 진심으로 분노했다. 다른 건 다 참을 수 있어도 그것들과 비교 대상이 되는 건 절대 싢었다. “후훗, 그런가? 그렇다면 주의하지. 아 참, 그리고 이상한데 좀 돌아다니지 말게. 우리들의 정보력으로 찾기 힘든 존재는 자네밖에 없네. 거의 일주일 만에 자네를 다시 찾아낸 거네.” 그렇게 그 아저씨는 한마디 한 뒤 사라졌고, 난 그런 사소한 말보다는 이 닭대가리 3형제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오늘 나타나면……. 뿌드륵! 한편 돌아오고 있는 테피언과 피티언, 케미리는……. “돌아가면 마스터가 눈치 채기 전에 다른 데로 이동하자.” “마, 마스터를 속이자고?” “그럼 맞아 죽고 싶어?” “…….” 케미리의 말에 피티언은 반론을 펼칠 수가 없었다. 그로서도 맞아 죽고 싶지는 않았기에……. 그들의 유일한 천적이라고 한다면 민혁이밖에 없었다. 오직 민혁이만이 그들을 제어할 수 있었고 잠시지만 개과천선이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러니 그런 민혁이만 자신들이 사고 친 것을 모르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었다. “어쟀든 도착하면 화사하게 웃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리고 마스터는 돈을 좋아하니까 마스터를 위해서 1,000골드씩 건네줘. 어디서 났냐고 하면 주웠다고 하고…….” 열심히 머리를 굴리는 케미리. 정말 어울리지 않게 잘 굴렸지만 아쉬웠다. “마스터!” “저희 왔습니다.” “우리 왔다.” 차례대로 나에게 최대한 밝은 모습을 보이며 오는 피티언, 케미리, 테피언. 난 그런 그들을 보고 표정 관리를 시작했다. “어서 와. 잘 다녀왔어?” “물론이다.” “물론입니다.” “응!” 나의 말에 눈을 번쩍이면서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는 것들. 훗, 바보 같기는……. “어때, 어대? 속였지?” “정말 이래도 되는 걸까?” “상관없잖아.” 바로 그때 내 옆에 붙어 있던 정우가 그 괴이한 누빛을 읽으며 1인 3역으로 나에게 보고를 해주었고, 난 그걸 보고 더욱더 웃었다. “어때, 힘든 점은 없었고?” “물론이지. 하하.” 나의 말에 능청스럽고도 자연스럽게 말하는 케미리. 그래, 힘든 일은 없었고 다 부쉈으니 즐거웠겠지. “아 참! 마스터, 우리들의 성의야.” 바로 그 순간, 나에게 다급히 넘기는 주머니. 난 갑작스러운 주머니에 의아해 하면서 주머니의 내용물을 살펴보았다. 허억! 거기에는 1,000골드씩 3,000골드가 차곡차곡 들어 있었다. “항상 마스터에게 은혜를 갚고 싶었는데 마침 길 가다가 주웠어.” 그걸 나보고 믿으라고? 어이없는 변명을 하는 케미리. 그래, 네놈이 최대한 머리를 굴린 것 같다만……. 이게 저놈 머리의 한계가 분명했다. “허억, 저 눈부신 미소녀는 누구신지 위대한 마스터께서 알려 주시겠습니까?” 바로 그때, 테피언은 예화 옆에 있던 채은이를 보고 눈을 번쩍였고, 난 그 말에 무감각한 어조로 말했다. “내 동생.” “저도 동생입니다.” “…….” 또 끼어드는 정우. 하지만 그들은 새로운 인물인 정우를 보고도 아무런 감흥이 없는 모습이었다. 오직 채은이에게만 흥미를 가질 뿐. 휴우우, 휴우우……. 저것들이 자신의 잘못은 모르고……. 하아, 하아. “어라? 마스터, 어디 아파?” 나의 그런 반응에 물어보는 케미리. 난 그 말에 대답만은 친절하게 했다. “가슴이 아파.” “헉! 왜?” “그 이유를 너희들한테 물어보면 안 될까?” “우리는 잘 모르겠는데.” “정말?” “응!” 정말 해맑게 말하는 개 한 마리, 진실만을 이야기하면 조금 용서해 주려고 했지만 터무니없었다. 저것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낫는 방법이 있어.” “무슨 방법?” “너희들을 죽도록 패는 것.” “헉.” “헉.” “헉.” 나의 말에 동시에 반응을 보이는 3명. 그들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도망가려고 했고, 난 그런 그들을 보면서 싱긋 웃으며 말했다. “도박장…….” “케엑!” 쿠웅. “뭐, 뭐야? 케미리!” “배신하다니!” 그 말과 함께 피티언과 테피언을 차고 도망가는 케미리, 내 저럴 줄 알았다. 저 비열한 개. 역시나 배신도 제일 먼저 했다. 솔직히 말해서 안 봐도 비디오다. 저 닭대가리 수장 케미리가 애들을 선동했을 게 분명했다. 샤샤샥. 빛의 속도로 도망가는 케미리. 역시 도망가는 건 일인자였지만 나에게는 턱도 없었다. 나는 이미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놈이 과속하면 나도 잡기 힘드니 속도를 울리기 전에 얼른 잡는 게 유리했다. 그렇게 난 온 힘을 다해서 순간적으로 튀어 나가 도망가는 케미리를 잡았고, 그걸 보고 뒤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던 피티언과 테피언을 보면서 싱긋 웃었다. “우리 즐겁게 놀자.” 난 그렇게 사랑의 매로 보듬어 주었다. 저번보다 훨씬 심하게……. 그리고 지금은 무릎을 꿇은 채 손을 들고 있는 상태였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충분히 엽기적인 장면이었지만 여기는 아쉽게도 사람이 없는 장소였다. 채은이와 예화는 특별히 정우를 시켜 피신시켜 좋은 상태였다. 마음씨 착한 채은이와 예화가 용서해 주라고 말할 게 분명했기에 미리 차단시킨 것이었다. “하아아, 너희들의 잘못을 알고 있나?‘ “무, 물론.” “자, 잘못했습니다, 마스터.” “미안하다.” 케미리가 제일 먼저 대답했고 그 다음에 피티언, 테피언이 순서대로 말했다. 난 그 모습을 본 뒤 살짝 손을 내밀었다. 투욱. “왜, 왜?” 나의 행동에 의아하다는 듯 묻는 케미리. 이 새기가 척 하면 척 모르나? 뭐, 모르니까 내가 말해 줘야지. “라스베가스에서 가져온 돈.” “…….” “왜, 주기 싫어?” “주, 주기 싫은 게 아니고 어, 없어. 아까 마스터에게 준게 전부 다야!” “훗.” “지, 진짜야!” 난 그 말에 케미리의 몸을 그윽한 눈빛으로 훑어보았다. 그런 나의 눈빛에 케미리는 벌을 서는 도중 마구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이 본다면 개 학대 장면으로 여길 수도 있겠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어차피 사람들이 없었으니까. “흐으음.” “미, 믿어 줘. 나같이 선량한 개의 말을!” 지랄한다. 믿을 걸 믿어야지. 제일 믿지 말아야 할 놈이 너무나도 뻔뻔하게 말하고 있었다. “그렇구나.” 스으윽. “허헉!” 난 그렇게 말하면서 케미리의 다리를 잡고 그대로 들어 올렸다. 그런 다음 자세히 관찰을 하기 시작했다. 저놈과 처음 만났던 당시 있던 선글라스를 찾기 위한 것이었다. 거기에 분명 돈도 같이 집어넣었을 게 분명했으니……. “야, 그때 그 선글라스 어디 갔어?” “버렸어.” “…….” “진짜 버렸어! 피티언의 목숨 걸고 맹세할게.” “왜, 왜 내 목숨이야!” 케미리의 황당한 발언에 당황한느 피티언. 정말 몹쓸 개였다. “내 소중한 목숨을 걸 수는 없잖아!” 그렇지만 더욱더 큰 소리로 반대 여론(?)을 펼치는 케미리. 그런데 간단하게 한마디로 요약하면 거짓말이라는 것이었다. 탄식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 닭대가리일 줄이야. 정말 닭대가리였다. 그렇게 내가 탄식을 내지를 때, 케미리의 배 쪽에 보이는 주머니? “이건 뭐냐?” “허억.” 나의 손이 배 쪽으로 향하자 케미리는 어마어마하게 당황했고, 잠시 후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꺄아악! 성추행…….” 퍼억. “…….” 난 이상한 소리를 지르는 케미리의 머리를 가볍게 쳤고, 그 한 방에 케미리는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난 솔직히 말해 조금 더 멋진 모습, 심풀한 모습, 비폭력적인 모습을 여자들에게 보여 주고 싶었는데 이것들이 나를 그렇게 만들어 주지 않았다. 나는 곧바로 케미리의 배 안쪽에 있는 기이한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거기에 손을 넣자 엄청나게 큼직한 주머니에서 선글라스로 추정되는 물건이 잡혔다. 스으윽. 난 곧바로 그 물건들을 꺼냈고 내 손에 딸려 오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주머니를 보고 싱긋 웃었다. “오! 없다는 돈이 어떻게 있지?” “어라? 언제 내 주머니에 돈이 들어갔지? 난 모르겠다.” “…….” 어설프게 변명하는 케미리. 그나저나 저놈, 정말 개 맞는 건가? 난 개의 배 쪽에 주머니가 있다는 소리는 생전 들어 보지도 못했다. 저기가 캥거루야 뭐야? 주머니가 왜 있어? 그뿐 아니라 이 커다란 것들이 주머니 안에 있는데 표시가 하나도 안 나다니! 저 새끼, 혹시 개와 캥거루의 변종 개? 나는 내가 생각하고도 너무나도 어이가 없어서 경직되었다. “마, 마스터, 자, 잘못했어. 난 사실 안 하려고 했는데 테피언이 안 하면 날 패겠다고…….” “내, 내가 언제!” “그랬잖아!” “무슨 헛소리야!” “나 같이 연약한(?) 개를 마구 협박하면서 그랬어. 난 어쩔 수가 없었어. 아직도 살고 싶었으니까. 그렇지만 나중에 마스터에게 살짝 말하려고 했어!” “이 새끼가!” 그 말과 함께 벌떡 일어나는 테피언. 난 그 모습을 무감각하게 바라본 뒤 중얼거렸다. “원상 복귀.” “…….” 그 말과 함께 벌떡 일어나는 테피언. 난 그 모습을 무감각하게 바라본 뒤 중얼거렸다. “원상 복귀.” “…….” 나의 말에 순식간에 테피언은 다시 벌 서는 자세를 취했고, 잠시 후 난 눈을 반짝거리는 케미리르 보고 무감각한 어조로 말했다. “정말이냐?” “응. 응.” “네 목숨도 걸 수 있어?” “그건 아니고 피티언 목숨을 걸 수 있어.” “왜 도 나야!” 그 말에 불끈하는 피티언. 케미리 저놈 정말 닭대가리, 아니 금붕어의 아이큐랑 비등비등했다. 돼지 아이큐가 8, 닭 아이큐가 7, 그리고 궁극의 금붕어의 아이큐가 5. 개 아이큐는 동물들 중에서 제일 높다고 했는데, 내가 잘못 알았던 걸까? “나를 믿어 줄 거지, 마스터?” 더욱더 눈을 초롱초롱 빛내는 케미리. 난 그 모습을 보고 피티언과 테피언에게 던져 주면서 말했다. 휘이익. “밟는 강도에 따라 너희들을 용서해 주겠다.” 그 말에 번적 눈빛이 변하는 테피언과 피티언. 방금 전 케미리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그들로서는 지금 분노에 휩싸여 있는 상태였다. “자, 잠시! 우리는 친구잖아!” “언제?” “어라? 친구가 뭐지?” 케미리가 다급하게 뒤로 물러나면서 친구라는 걸 강조했지만 이미 테피언과 피티언의 눈은 뒤집힌 상태였다. 난 그 모습을 보고 채은이와 예화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내가 없어도 잘할 거라고 믿었기에……. 제7장 4번째 소환수, 세리하! 그녀는 프리스트?! “오빠, 무슨 일이야?” “아니, 그냥 개인적인 비즈니스라고나 할까?” 난 나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는 채은이에게 대충 둘러대었다. 사실을 말하기에는 정말이지 슬픈 상황이었기에. “그런데 아까 그 특이하신 분들은 누구야?” “내 소환수들.” “엄청 늠름해 보이던데!” “…….” 그래, 겉으로 보기에는 늠름해 보였다. 겉으로 보기에만 그렇지, 속을 보면 정말 할 말이 없었다. 내가 저것들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를 생각하면, 말을 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그나저나 이제 내가 원했던 목표는 대충 이룩해 놓은 상태여서 갑작스럽게 마땅히 할 짓이 없었다. 내 목표가 마법사 클래스를 획득한 뒤 마법을 배우는 거였는데, 두 개 다 획득한 상태였다. 이런 평범한 시간도 좋기는 하지만 그 싸기지 형제만 생각하면 속이 막 부글부글 끓었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나를 못 잡아먹어 안달인지! 난 거듭 말하지만 정당방위였다. 그런데 나에게 모든 것을 덮어 씌우고 있었다. 생각만 해도 속이 불글부글이었다. “어이, 어이.” “또 웬일입니까?” 바로 그때 나에게 손을 흔들면서 반갑게 다가오는 근육질 아저씨. 아까 전에 왔으면 됐지 얼마나 지났다고 또 저렇게 오는 것인가? “아까 전에 자네 부하들이 화끈한 일을 저지르고 있어서 내 용무를 까먹고 돌아갔었네.” “…….” “허허, 그런 표정 짓지 말게나. 좀 늙으면 다 그렇게 된다네.” 그 아저씨는 여전히 능청스럽게 말했고 잠시 후 그렇게 한참을 껄껄껄 웃더니 나를 보면서 진지하게 말했다. “자네 정말 화끈한 사고를 쳤더군. 데스 길드의 간부급 중에서도 좀 유명한 계진이라는 놈을 죽였더군.” “그건 뭐.” “정말 자네의 선전에 우리는 기대를 감출 수가 없네. 설마 간부들을 포함해 500명의 데스 길드원들을 그 인원으로 이길 줄이야 누가 생각했겠는가?” 누가 생각하라고 했나? 난 생각하라고 강조한 적은 전혀 없었다. “그래서 말인데, 정식으로 우리 길드에 들어오지 않겠나? 들어오면 파격적으로 간부 자리에…….” “거절합니다.” “흐으음.” 난 말을 하는 도중 간단히 잘라 바렸다. 나는 길드라든지 세력 다툼, 이런 데 엮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내가 데스 길드를 엎어 버리는 게 최종 목표인 이유는 그놈들의 행동 거지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 다른 이유는 없었다. “설마 그게 중요 용건인가요?” “뭐……. 그런데 이렇게 쉽게 거절하면 내 체면이 어떻겠는가?” “물라요.” “…….” 나의 말에 경직하는 그 근육질 아저씨. 그 아저씨는 잠시 경직하더니 다시 신나게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하하! 역시 재미있는 친구군. 뭐, 자네가 거절한다면 어쩔 수 없지. 하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지켜보겠네. 그리고 자네한테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군. 새로운 스페셜 히든클래스가 우리 쪽에 있거든.” “스페셜 히든클래스?” “뇌격과 신성의 힘을 다루는 존재지. 후훗. 언제가 자네 앞에 나타날 거네. 그리고 저번에 말했던 소울 브레이트도 언젠가는 모습을 드러낼 테고. 정말 재미있지 않은가? 하하하!” 그 근육질 아저씨는 도대체 뭐 때문에 왔는지도 불확실하게 그렇게 웃으면서 근육을 마구 뽐내면서 가다가 다시 뒤를 보면서 말했다. “참고로 데스 길드의 길드 마스터가 너를 찍었더군. 축하하네.” 그게 축하받을 일인가? 그나저나 이거 더 귀찮게 돼 버렸는데? 루라스는 조용히 턱을 괸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지금 그는 가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자신이 힘들게 만들어 놓은 데스 길드의 위상이 알지도 못하는 이름도 개떡 같은 놈한테 능욕을 당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계진의 동생이 피케이를 당했다는 사실을 우연치 않게 들었던 루라스는 별 관심을 가지지 않았었다. 계진의 동생이라는 놈은 형의 빽만을 믿고 설쳤을 뿐 약자였으니까. 하지만 그와 동시에 계진이 당했다는 소식은 그로서도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데스 길드 중에서도 뛰어난 실력을 가진 계진이 500명이라는 부하들을 데리고도 패했다는 것. 이건 특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똑똑. “루라스님, 그분을 모셔왔습니다.” “들어와라.” 끼이익. 그 말에 살며시 열리는 방. 방문이 열리자 거기에는 엄청난 크기의 몸집을 가진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보기만 해도 어마어마한 압박감이 느껴지는 몸을 가진 남자. 최소 못해도 160Kg 이상은 될 것 같은 몸이었다. 그리고 키도 그리 크기 않았기에 상당히 둔해 보였다. 스으윽. 쿠웅. 바로 그때 그 남자를 본 루라스는 갑작스럽게 자신의 앞에 있던 책상을 밟은 다음 그대로 날다시피 해서 순식간에 그 남자에게 다가가더니 자신의 허리춤에 있던 검을 뽑아 들고는 그대로 휘둘렀다. 휘이익. 검은 순식간에 6개의 모습이 되면서 그 남자의 중요 부위를 공격했고, 바로 그 순간 그 거대한 몸을 가진 남자는 당황하긴는커녕 그대로 자신의 등 뒤에 있던 방패를 엄청난 속도로 뽑아 들었다. 그런 다음 자신의 몸만큼이나 큰 방패로 검을 막아 버렸다. 쾅쾅쾅. 잠시 후 루라스는 조용히 검을 회수하고는 다시 자신의 자리로 천천히 돌아가면서 남자에게 말했다. “합격이다.” “감사합니다.” 그 말에 남자는 몸을 숙였고 루라스는 그의 모습을 보며 말했다. “볼일 없으면 나가라. 그리고 그놈에 대한 정보는 다른 자에게 듣도록.” 그 말과 함께 그 남자 파케는 밖으로 나갔고, 파케가 밖으로 나가자 그를 안내했던 루라스의 심복 라쿠라가 말했다. “무서웠습니까?” “물론. 이런 압박감은 처음이었다.” “훗, 그래도 그 정도면 대단하십 겁니다. 루라스님의 공격을 막았으니까요.” “과연 이게 막았다고 해야 할까?” 그 말고 함께 파케는 자신의 방패를 보여주었다. 거기에는 검에 당했다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깊숙이 부서져 있는 방패만이 있을 뿐이었다. “마지막에 루라스님께서 검에서 힘을 빼더군. 만약에 힘을 빼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미 죽은 목숨이었다.” “그렇군요.” “정말 괴물 같은 놈이군.” 그 말과 함께 파케는 다시 자신의 커다란 방패를 등 뒤로 메었고, 그 말에 루라스의 심복 라쿠라는 슬며시 웃으면서 말했다. “인간이 아닐지도 모르죠.” “뭐라고?” “아무것도 아닙니다.” 라쿠라의 혼잣말을 들은 파케는 물었지만 라쿠라는 슬쩍 웃으면서 말을 돌렸고 잠시 후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더니 말했다. “당신이 처리할 대상입니다.” 그 말과 함께 민혁이의 과거 현상범 수배지를 보여주는 라쿠라였고, 그것을 본 파케는 비웃음을 지었다. “이런 여자나 꼬실 것같이 생긴 놈을 나보고 처리하라고?” “그렇습니다.” “풋, 데스 길드의 위명이 울겠군. 이런 기생오라비도 처리 못하다니.” “흐으음, 과연 그럴까요?” 그 말에 라쿠라는 슬며시 미소를 지었고 자신만만해 하는 파케를 보면서 충고를 했다. “그래도 조심하는 게 좋을 겁니다. 파케님이 디펜스 히든클래스지만 그쪽은 각종 무기를 소환해 내서 사용한다는 말이 있으니까 말입니다.” “무기를 소환해 낸다고?” “그에게 당한 계진님의 말이었으니 분명합니다.” 그 말과 함께 라쿠라는 슬며시 미소를 지었고 파케는 그 말에 오히려 자신만만한 어조로 말했다. “나의 이 방패는 그 누구도 부수지 못해! 특히 이런 놈은!” 그런 파케의 모습을 보던 라쿠라는 자신이 있던 방향으로 돌아가면서 파케에게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하번 선전을 기대해 보겠습니다. 후훗.” 라쿠라. 루라스의 심복이기는 했지만 루라스보다 더욱더 알 수 없는 존재였다. 난 저기서 상쾌한 표정을 지으면서 나에게 다가오는 테피언과 피티언을 향해 말했다. “잘하고 왔느냐?” “우리 살려고 정말 열심히 패고 왔다.” “그렇습니다, 마스터.” 자신들이 살기 위해 케미리를 죽도록 팼다고 무척 자신만만히 말하는 테피언과 거기에 동의하는 피티언. 너희들의 우정은 무슨 즉선 3분 카레니? “그런데 케미리는 어딨냐?” “케미리?” “마스터, 걱정 마세요. 아주 잘 처리했습니다.” “응, 응. 물론이지.” “그러니까 마스터는 아무런 걱정도 할 필요 없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 왠지 모르게 살짝 불안해졌다. “어떻게 한 거냐?” “정 네가 궁금해 한다면……. 묻었다. 묻어? 뭘 묻었다는 소리지? “바닥에 아주 심플하게 묻었습니다. 하하하하!” 그 말과 함께 상쾌하게 웃는 피티언과 투구를 쓰고 있어서 잘 모르겠지만 그런 모션을 취하는 테피언. 난 쟤네들이 어느 의미에서는 무서웠다. 하루 전만 해도 우정 포스를 마구 뿜어내더니, 잠시 수틀렸다고 바닥에 묻어 버리다니……. 그런데 내가 더욱더 황당한 것은 그들의 표정이 해맑다는 점. 물론 피티언의 표정밖에는 읽지 못하겠지만 그런 것 같았다. 어떻게 동료를 묻고 저렇게 해맑게 웃을 수 있는지……. “우리 잘했지?” “마스터, 저희들은 정말 열심히 죽도록 팼고 땅에 목만 남기고 절대 바져나가지 못하게 묻었습니다!” “…….” 난 나에게 칭찬을 받고 싶어서 한 짓을 보고 할 말을 잃어버렸다. 무서운 놈들.(자신을 닮아 간다는 것은 모른다.) 나랑은 완전 정반대였다. 나같이 순수한 소년이 보기에는 너무나도 섬뜩한 장면이어서 온몸에 오한이 들었다. “아, 안녕하세요?” 바로 그때 예화와 이야기를 나누던 채은이가 테피언과 피티언을 향해 조심스럽게 인사를 했고 그 말에 테피언이 눈을 번쩍였다. “꺅!” “…….” 역시나 채은이도 그런 모습을 보고 놀라서 나의 품에 안겼고, 난 그 모습을 보고 나도 눈을 빛내면서 테피언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 어서 눈을 반짝반짝 더 빛내렴.’ ‘최선을 다해 눈을 빛낼게, 마스터.’ ‘그러, 그럼. 그러면 나중에 보상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테피언과 나는 눈빛으로 알 수 없는 이야기를 나누었고, 잠시 후 테피언은 나의 기대에 부응하며 눈을 더욱더 빛냈다. “오, 오빠…….” 그런 모습에 채은이는 더욱더 당황해서 나를 꼭 껴안았고, 나는 그런 모습에 웬일로 테피언이 너무나도 도움이 되자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항상 닭대가리의 머리로 나를 속 썩이더니, 너의 그 괴이한 눈빛이ㅣ 한 건 해내는구나! 장하도다! “안녕하십니까? 마스터의 충복 1위, 마스터를 제일 존경하고 있는 피티언이라고 합니다.” “…….” 바로 그런 좋았던 분위기를 테피언의 앞을 막아서면서 잔인하게 깨 버리는 피티언. “안녕하세요.” 채은이도 그런 피티언의 반응에 당장 내 품에서 벗어나면서 정중하게 인사했고, 난 피티언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래. 내 주제에 무슨 저것들의 도움을 받겠는가. 한 놈이 잘하면 한 놈이 말썽을 피운다. 그게 저것들과 다닌 결과 확실하게 깨달은 법칙이었다. “됐어.” “희연아, 제발 내 사랑을 받아 줘.” “난 너같이 안 생긴 애는 질색이야.” “흐흐흐흑.” 초등학교 5학년 정도 되어 보이는 안 생긴 남자 아이가 같은 학년으로 보이는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 아이에게 잔인하게 퇴짜를 맞고 울면서 가 버렸다. 남자 아이는 게임에서 혹시나 해서 용기를 내서 고백했지만 남자 아이에게 돌아온 것은 실연의 아픔이었다. “쳇, 남자가 울기나 하고. 보는 눈은 있어서.” 그 여자 아이는 도도하게 말하면서 익숙하다는 표정을 지었고, 바로 그 순간 그런 그녀의 눈을 뺏어 가는 남자를 발견했다. 그 남자의 주변에는 연예인들도 비교되지 않을 정도의 미소녀 두 명이 있었고 옆에는 이상한 남자 2명과 강철 갑옷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사소한 것들은 집어치우고, 그 여자 아이의 눈은 듬직한 키에 잘생긴 얼굴에, 그리고 몸까지 좋아 보이는 그 남자를 보고 빛이 났다. “감 잡았어!” 털썩. “넌 뭐니?” 난 갑작스럽게 나를 껴안는 자그마한 키의 여자 아이를 보고 의아한 듯 말했고, 그 말에 그 여자 아이는 나를 지독히도 부담스럽게 바라보면서 말했다. “오빠, 여자 친구 있어요?” “없는데.” “그럼 나 어때요?” “…….” “내가 얼짱 콘테스트에서 2위 했어요!” 그 말에 난 그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여자 아이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솔직한 말로 에쁘장하게 생겼다. 하지만 아쉽게도 내 옆에 서 있는 채은이와 예화의 외모와 비교했을 때 턱도 없었다. “그랬니? 축하한다.” “그게 아니라 나 어때요? 오빠를 위해서라면 몸도 마음도 바칠게요.” “…….” “혹시 저기 언니들 때문에 그래요? 뭐 예쁘기는 하지만 저보다 훨 못한데요.” 좀 심각하네? 공주병. 난 저 여자 아이가 여자를 타락의 지름길로 내모는 공주병에 빠졌다는 걸 단숨에 알 수 있었다. “미안하지만 난 어린아이한테는 관심 없는데…….” “걱정 마세요. 키워서 잡아먹으면 더 좋대요.” 정말 초등학생이 맞는 건가? 난 나이에 맞지 않게 어이없는 소리를 하는 그 여자 아이를 보고 너무나도 황당해서 입을 쫙 벌렸고, 예화는 그 말을 듣고 얼굴까지 붉어지면서 고개를 숙였고, 채은이는 아주 살짝 붉어진 채 이상한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왜 그래, 채은아?” “아니야, 오빠.” “무, 무슨 일이라도 있어?” “아무 일도 없어.” 분명 채은이는 웃고 있었는데 저번에 느꼈던 괴이한 포스가 발동되었다. 알고 싶었다. 이 포스의 정체를. 하지만 도저히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어때요? 오빠 정도 되면 저 정도는 키워서 잡아먹어야죠?” 네가 닭이냐, 잡아먹게? 난 계속해서 이상한 소리를 하는 꼬마 아이를 보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바로 그때 피티언이 침을 주르륵 흘리면서 말했다. “너 키워서 먹으면 맛있어?” “…….” “…….” “…….” “…….” 퍼억! 난 피티언의 대갈통을 갈겼다. 저 새끼는 먹는 거라면 무조건 좋단다! 이제는 네가 식인종으로 변신할 예정이냐? 그리고 키워서 먹기는 뭘 먹어! “오빠한테는 관심 없어요.” 그 말에 오히려 쌀쌀맞게 대하는 여자 아이. 하지만 그 말을 들은 피티언은 나에게 한 대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생각에 잠긴 듯싶었다. ‘정말 키워서 먹으면 그렇게 맛있을까?’ 안 봐도 비디오다. 대충 이제 무슨 생각까지 하는지 감이 잡힐 정도였다. 바로 그대 그 초등학생은 나에게 더욱더 찰싹 붙었다. “오빠, 아이잉~!” “왜, 왜 이러니.” “오빠, 알면서……. 하아앙.” 난 초등학생 주제에 나에게 엉겨 오며 유혹을 하는 꼬마 아이를 보고 당황했다. 난 거듭 말하지만 로리타 콤플렉스는 아니었다. 그러니 이런 꼬맹이한테 이상한 생각이 들리는 없었다. 물론 채은이와 예화가 이런 행동을 해 주면 사심이 가득하겠지만……. “자, 잠시! 오빠가 싫어하잖아!” 바로 그때 이상하게 말까지 더듬으면서 말하는 채은이. 어디 아픈가? 말은 왜 더듬지? “할머니는 누구예요?” “할머니?” “네. 여자는 14살이 지나면 할머니래요.” 누가 그러디? 난 생전 처음 듣는 소리였다. 분명 14살이 아니라 20살이 아니었나? 요새 시대가 변함에 따라 말도 새롭게 만드는 시대인가? 그럼 12살은 아줌마라는 소리인가? “오, 오빠가 싫어하잖아. 그, 그러니 이제 그만 해!” “흐으음, 질투인가요? 할머니랑 이 오빠랑 무슨 사이죠? 무슨 사이기에 저한테 그런 말을 하시는 거죠?” 채은이가 아주 쭉쭉 밀리기 시작했다. 아직 나이도 어린데 말 하나는 정말 물 흐르듯이 잘했다. “오빠랑은 아무런 사이도 아니지만 그대로 어렸을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오빠야!” 허억, 아무런 사이도 아니래……. 난 채은이의 말에 살짝 가졌던 기대감이 와르륵 무너졌다. 물론 사실이었지만 막상 저런 미소녀가 아무런 사이가 아니에요, 라고 하면 듣는 입장에서는 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당하지 않는 자는 모른다. “그건 저의 사랑을 방해할 요소가 안 돼요.” “…….” “훗, 할 말 없으면 가지죠, 할머니.” “…….” 채은이는 그 꼬맹이의 당돌한 말에 KO를 당했고 난 그런 채은이에게 위로라도 한마디 하려고 했지만 또다시 꼬맹이가 엉겨 와서 하지 못했다. “오빠, 아이이잉, 벌써 몸도 준비됐어요.” 준비되기는 뭐가 준비돼! 아직 나이도 초등학생밖에 안된 꼬마가 이리 밝히다니 충격이었다. 아무리 요새가 막 나가는 시대라고 하지만 이런 꼬맹이는 처음 봤다. “그만두십시오.” “당신은 또 누구예요.” 바로 그때 진지한 표정을 지은 채 나타난 정우. 난 저놈만 등장하면 불길했다. 그것도 곱빼기로 불길했다. “형님의 동생입니다.” “그걸로 우리의 뜨거운 사랑을 막을 수는 없어요!” 난 뜨거운 짓을 한 게 없는데 왜 이 애 혼자서 이런데? 난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피리 부는(?) 그 여자 아이를 보면서 무슨 말이든 마구 하고 싶었지만 이상하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마도 너무나도 당황해서 그런 듯싶었다. “훗, 모르시군요. 그냥 동생 사이는 아닙니다. 저희는 이미 모든 옷을 벗고 뜨거운 침대…….” 퍼억. 난 그대로 날았다. 그리고 정우의 머리에 날아 차기를 먹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나의 킥을 맞은 정우는 그대로 뻗었다. “네놈이 정작 죽고 싶은 게냐! 감히 어디서……. 우우욱!” 난 생각만 해도 역겨웠다. 무슨 내가 호모도 아니고 어디서 그딴……. 허억! 시, 심장이……. 난 심장을 부여잡았다. 나 이러다가 머지않아 심장마비로 이 세상을 뜰 것 같다. 하루를 멀다 하고 이것들은 나의 심장에 충격을 주었다. 그것도 번갈아 가면서……. “오빠, 내가 너무 예뻐서 심장이 아픈 거예요?” 내가 가슴을 붙잡자 그렇게 말하면서 나에게 더욱더 엉기는 그 초등학생. 그걸 보고 당황하며 나에게서 때 놓으려는 채은이. 그리고 너무나도 선정적인 말에 얼굴을 계속 붉힌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예화와 키워서 먹으면 얼마나 맛있을까 생각하는 피티언. 그리고 호모틱한 놈 정우까지……. 허억. -오! 내 취향인데? 바로 그때 흥미롭다며 말하는 로케리스. 난 그 말을 듣고 설마 하면서 말했다. “이 꼬마 아이?” -응. 풋풋하잖아. 케헤헤헤헤헤. 이제 그리 놀랍지도 않았다. 로리타 콤플렉스를 갖고 있는 지팡이라니, 난 살다 살다 처음이었다. 내가 오래 살기 위해서는 심장을 단련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 방법만이 내가 유일하게 오래 살 수 있는 길인 것 같았다. 난 차근차근 설명했다. 나이가 어린 여자 아이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다고 “훗, 튕기시는 거예요?” “…….” 내가 그렇게 10분간 설명을 해 주었지만 돌아오는 여자아이의 말에 한숨을 내쉬면서 내 등 뒤에 메여 있던 로케리스를 내밀었다. “이 지팡이가 너한테 관심이 있다니 같이 놀아.” “훗, 알아요.” “뭘 알아?” “만물의 모든 존재가 저한테 반한다는 걸요.” 이 정도 되면 공주병 중에서 완전 상위급 공주병이었다. 그것도 초특급으로……. -어이, 아가씨, 나 시간 많아. 바로 그때 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찝찝거리는 로케리스. 하지만 아쉽게도 그놈의 말은 나에게만 들리는 관계로 그 소녀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나 시간 많다니까. “오빠!” -나 시간 많아! 들리지도 않는데 계속해서 삽질하는 로케리스. 참 고생이 많았다. 난 그런 모습을 보고 왠지 모르게 연민이 들어 로케리스의 말을 통역해 주기로 결심했다. “얘야, 이 지팡이가 너에게 시간 많다고 외치고 있단다.” “훗. 유치한 방법이군요. 뭐, 그래도 저 같은 미소녀에게 직접적인 대사는 힘들었겠죠. 지팡이를 가지고 하는 방법도 재밌으니 허락해 줄게요.” 아니, 정말 지팡이가 말했는데? 자기 혼자서 생각하는 그 여자 아이를 보면서 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난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이 여자 아이는 너무 앞서 나갔다. 꾸욱. 바로 그때 갑작스럽게 나에게 팔짱을 끼는 채은이. 난 화들짝 놀라서 채은이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채은이는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심호흡을 하면서 그 발랑 까지 꼬맹이한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 사실 우리 사귀어!” “훗.” “왜, 왜 웃어!” “너무 유치해서요.” “…….” “제가 바보인 줄 알아요? 그 정도는 눈치 못 채게?” “…….” 완전히 말리는 채은이. 난 그 모습을 보고 채은이 편도 들어줄 겸 저 껌딱지 같은 이상한 여자 아이도 떼어 놓을 겸 곧바로 채은이를 격렬하게 껴안았다. “오, 오빠…….” 나의 행동에 목소리가 떨리는 채은이. 물론 나의 갑작스러운 해동에 놀랐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예화였다면 이런 행동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10년 동안 같이 지내 왔기에 이런 대담한 짓을 할 수 있었지만 물론 그냥 하지는 않았다. 그냥 해도 기분은 무지 좋지만 일단은 저 이상한 여자 아이를 떼 놓는 게 목적이었으니……. “이제 믿겠냐? 나와 채은이는 이런 사이야!” “…….” 그런 나와 채은이의 모습을 빤히 바라보는 여자 아이. 허억. 혹시 연기라는 게 간파된 건가? 충분히 그럴 확률이 높았다. 이 꼬마 아이가 보는 눈이 예사롭지가 않았기에……. “저는 보조 애인입니다.” “넌 뭐냐?” 바로 그때 갑작스럽게 나의 다른 팔에 팔짱을 끼는 정우 놈. 난 정우을 향해 말했고 그 말에 정우는 나에게 속삭였다. “이렇게라도 해야 효과가 나타납니다.” 난 그 말을 듣고 과연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에 휩싸였다. 남자랑 팔짱을 끼는데 무슨 효과가……. “미워! 우에에에엥! 양성이잖아!” “허억!” “우에에에엥.” 나에게 어마어마하게 충격적인 말을 던지고 가 버리고는 꼬마 아이를 보고 난 또다시 심장을 붙잡았다. 양성이래……. 양성, 한마디로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라는 뜻이었다. 젠장! 저 꼬마 놈은 어디서 튀어나와서 사람 허파를 뒤집고 가는 거냐! 케미리가 사라지니까 네가 대타로 나온 거냐?! “후후훗. 재미있군.” 한편 메퍼는 아직까지 가지 않은 채 민혁이를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다. 메퍼는 담배 한 개비를 뽑아 들고 우아하게 입으로 갖다 대려고 했으나 갑작스럽게 들려온 목소리에 담배를 떨어뜨렸다. “나도 한 개비만 줘.” “누, 누구야?” 메퍼는 당황해서 엄청난 스피드로 주변을 살폈지만 아무도 없었다. “밑.” “밑?” “그래, 밑.” “…….” 메퍼는 설마 하면서 밑을 바라보았고, 거기에는 땅에 묻힌 채 머리만을 내밀고 있는 개 한 마리가 있었다. 그 개의 이름은 케미리. “…….” “한 개비만 달라니까.” “아, 알았다.” 메퍼는 케미리의 당당한 요구에 자신도 모르게 담배 한 개비를 케미리의 입에 물려 주고 무의식적으로 담배에 불까지 붙여 주었다. “휴우우우우.” 개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본 메퍼는 너무나도 황당해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잠시 후, 케미리는 담배로 도넛과 구름 등 각종 묘기까지 선보인 뒤 담배를 툭 내뱄더니 말했다. “고마웠어.” “…….” 다시 돌아온 케미리. 난 저놈만은 돌아오게 하고 싶지 않았지만 내 여린 마음이 그렇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정말 귀여워.” 한편 귀여운 것을 무척 좋아하는 채은이는 케미리의 외형적 모습을 보고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보통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귀여운 것을 좋아하는 게 사실이었다. 그리고 특히 채은이는 귀여운 걸 보면 사족을 못 쓴다. 내가 채은이의 집에 놀러 가서 봤던 채은이의 방엔 곰돌이라든가 헬로우 키티 인형이라든다 그런 귀여운 걸로 가득 차 있었다. “후후, 내가 좀 귀엽지.” 처억. 난 스스로 귀엽다고 말하는 케미리의 말을 무시한 채 채은이의 앞을 막아서면서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오빠, 왜 그러는 거야?” “안 돼. 저 개한테만은 관심을 갖지 마.” “왜?” “지금 이유를 설명해 줄 순 없지만 아주 중요한 이유가 있어! 그러니까 차라리 저 데스나이트보고 귀엽다고 해!” “…….” 난 말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테피언을 가리켰고 그걸 본 채은이는 잠시 테피언을 봤다가 그의 눈빛에 화들짝 놀라면서 나를 보았다. 그런 반응이 살짝 미안했지만 일단 그런 것보다는 채은이와 예화를 저 바이러스 닭대가리 똥개에게서 격리시키는 게 제일 중요했다. 같은 동료지만 제일 주의할 대상이 저 케미리였다. 저놈은 평범한 사람을 이상하게 만드는 재능이 다분했으므로 절대 근접 불가였다. “형님, 저도 가지 말까요?” “아니, 너는 가도 돼.” “어떻게 그런 심한 말씀을…….” “넌 절대 감염이 안 될 테니까.” 난 정우의 말에 차갑게 대답했다.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정우라는 놈이 저 개한테 오염당할 정도로 약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흡수할지도. “야, 너도 가지 마!” “저도 사랑하셨군요.” “이상한 헛소리 하지 말고 가지 마, 가지 마!” “오빠, 약간 이상해.” “…….”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 이상하다고 말하는 채은이 하지만 여기에 얼마나 깊은 사연이 있는지 3박 4일로 밤을 새워서 말해 줘도 다 못할 정도였다. “훗, 질투하기는…….” 질투는 개뿔! 난 오직 케미리와 정우가 합체하지 않기를 바랐고 채은이와 예화가 이상한 구렁텅이에 빠지질 않기 바라는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 때문이었다. 이글이글. 그렇게 난 불타는 듯한 눈빛으로 채은이를 바라보았고, 한동안 그 눈빛을 보던 채은이는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알았어. 오빠의 말이라면…….” “고맙다.” “뭘. 그런데 오빠, 진짜로 약간 이상해.” “허억, 진짜?” “응.” 난 채은이를 구했다는 생각에 안심을 했다가 채은이가 나보고 약간 이상하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먹었다. 설마 벌써 나도 바이러스 감염자? 충분히 가능했다. 저 똥개의 바이러스란 초특급이었으니까. 털썩. 그 말에 무릎을 꿇은 나. 충격이 무척 컸다. 나는 저 닭대가리 똥개에 감염이 되지 않을 줄 알았는데 벌써 감염이 되었다니. 이건 나의 예상을 넘었다. 그렇다면 나도 닭대가리로? 그럼 우리는 닭대가리 4형제가 되는 건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그것만은 절대 막아야 된다. 절대! 난 지금부터 똑바로 정신을 차리기로 했다. 그래, 나라도 정신을 똑바로……. “우에에에엥! 안 늦게 도착했어!” 바로 그때, 저 멀리서 달려오는 친숙하게 생긴 모양체. 허억, 저것은? 나 그것을 보고 기대에 찬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꿈과 사랑의 아이템 전도사, 미리스 스피드였다. 난 표정이 굳어졌다. 이 새기가 가져온 아이템을 보고 말이다. “오빠, 왜 그러세요?” 그런 나의 표정을 보고 예화는 물었다. 그리고 채은이는 지금 저기서 온갖 깜찍함으로 유혹하는 미리스 스피드를 귀여워해 주고 있었다. -힘의 구슬- 이걸 먹으면 영구적으로 힘을 200 상승시켜 준다. 끝이었다. 물론 이게 좋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난 분명 좋은 아이템을 건져 오라고 했는데 저놈은 그런 나의 말을 완전 생무시했다. “꺄악, 귀여워.” 한편 채은이는 케미리를 귀여워하지 못한 몫까지 마구마구 그 미리스 스피드를 귀여워하고 있었다. 지금 난 당장이라도 저 새끼를 밟고 싶었지만 채은이가 너무나도 좋아하고 있었기에 난 일단 참았다. 물론 일단 참았을 뿐이었다. “정우.” “네, 형님.” “알지?” “물론입니다.” “크크크.” 난 정우의 시원한 대답에 살며시 웃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내 뒤에 있던 소환수들에게도 속삭였다. “너희들도 알지?” “물론이다. 케케케.” “물론입니다, 마스터.” “이런 것 잘해.” 마지막 케미리의 말처럼 너희들이 다른 것은 몰라도 이런 것은 절대적으로 잘할 것으로 믿었다. 그래, 절대적으로……. 그렇게 난 힘의 구슬을 빠드득 부숴 먹으면서 저놈이 다시 가기를 기다렸다. 그나저나 힘 상승 200이라는 게 상당한 효과였는지 그걸 먹자마자 나의 몸은 엄청난 힘에 움찔 할 정도였다. 특별히 좋은 아이템이 아닌 점은 아쉬웠지만 이것도 효능이 어마어마한 것 같았다. 이건 영구적이었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이런 보기도 힘든 것을 어디서 구해 왔다냐? 하지만 용서는 없었다. 내가 이런 것을 2개 정도만 가져 왔어도 용서해 주겠는데 딱 1개 가져왔기에 용서는 없었다. “오, 오빠, 눈빛이 이상해요.” “아, 예화야, 신경 쓰지 마. 아무것도 아니야. 하하하.” 난 예화의 말에 얼른 표정을 정상으로 돌리면서 친근하게 말했다. 그러고 나서 활짝 웃었다. 바로 그때 채은이와 인사를 나누는 미리스 스피드, 아마도 이제 갈 예정인 듯싶었다. “어이, 어이, 난 가 볼게! 하하하. 우리 다시는 마주치지 말자. 너를 만나고 나서 끔찍했어. 알았지? 키득키득.” 미리스 스피드는 나에게 그딴 건방진 인사를 하고 천천히 움직였다. 내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일이 잘된 거라고 생각한 듯싶었다. 그렇게 미리스 스피드는 사라졌고 난 그런 미리스 스피드를 아무런 표정 없이 보다가 내 뒤에 있는 4명의 존재들에게 눈짓했다. ‘움직여.’ 샤샤샥. 샤샤샥. 샤샤샥. 샤샤샥. 나의 눈빛과 함께 동시에 사라지는 그것들. 난 너희들을 믿는단다. “어라? 오빠, 다들 어디 갔어?” 한편 채은이는 내 근처에 아무도 없자 의아한 듯 물었고 난 그 물음에 최대한 해맑게 웃으면서 말했다. “응. 잠시 사업하러 갔어.” 미리스 스피드는 이상했다. 분명 저번에 말한 액세서리류가 아닌 이상한 먹는 걸 가져왔는데도 불구하고 그 악독한 인간은 웃으면서 넘겨주었다. 약간 의아하긴 했지만 이미 그 인간의 근처에서 벗어났기에 일이 잘 풀렸다고 생각해 버렸다. 바로 그때, 그런 미리스 스피디를 막는 인간이라고 보기에는 잡다하게 모인 이종족들. 그들은 갑작스럽게 미리스 스피드의 앞을 막았고 미리스 스피드는 웃으면서 보다가 그 인물들이 누구에게 붙어 있던 존재인지 알아채고 기겁했다. “허허헉! 왜, 왜?!” “마스터 명령이니까.” 그런 미리스 스피드의 반응에 대답하는 테피언. 한편 그 말을 들은 미리스 스피드는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역시 그대로 넘어갈 리가 없었다. 아까 가만히 있었던 이유는 어떤 예쁘장한 소녀가 자신을 귀여워하고 있었기에 넘어갔던 것이었다. “자, 잠시……. 말로……….” “당연하지. 우리는 지성인이니까 말로 할 거야.” “그, 그런데…… 왜, 왜 그렇게 무서운 얼굴들로?” “응? 무슨 소리야? 무섭기는, 다 활짝 웃는 모습이잖아.” “뻐, 뻥치지 마! 그게 어떻게 웃는 얼굴이야!” “아, 우리한테는 이게 웃는 얼굴이다. 케케케.” “…….” 테피언의 말에 완전히 굳어 버린 미리스 스피드, 바로 그때 테피언이 천천히 다가왔고, 그런 테피언을 향해 티피언, 케미리, 정우도 천천히 다가갔다. “허억! 왜, 왜? 마, 말로 하자며.” “말로 할 거다.” “그, 그런데 왜 다가와!” “그냥.” “왜, 왜 이래?!” 미리스 스피드는 엄청난 스피드로 도망갈 길을 만들기 위해 다급하게 주변을 살폈다. 지금 잡히면 자신에게 생사라는 건 존재하지 않을 거라고 본능이 마구 외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한 공간을 발견한 미리스 스피드는 곧바로 도약하려고 했으나 어느새 다가온 자신의 몸집만 한 케미리에게 붙잡혔다. “어딜 도망가?” “도, 도망 안 갔어.” “안 갔을 뿐이잖아. 오히려 미수가 더 나쁜 거야.” “누, 누가 그래. 시, 실행이 나쁜 거지 미수가 더 나쁘다는…….” “내가 그렇다면 그런 거야.” 케미리의 알 수 없는 박력에 미리스 스피드는 말을 할 수가 없었고, 케미리는 그 어느 때보다 마스터의 명령을 착실하게 이행했다. “즐기자.” 잘하고 있겠지? 난 믿고 있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런 일은 정말 잘할거라고, 그리고, 정우까지 있으니 그리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아, 정말 귀여웠어. 예화야,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아, 네, 언니.” “나 그렇게 귀여운 동물 처음 봤어. 아 귀여워, 귀여워!” “저도 처음에 봤을 땐 정말 귀여워서…….” 험험험. 난 저 말을 듣자 살짝 양심의 가책이 들었다. 물론 내가 밟고 있지는 않지만 나의 명령에 의해 그것을 열심히 밟고 있을 게 분명했다. 물론 평범한 사람들은 저 귀여운 없었다. 다 즐기고 있을 뿐. 만약에 내가 명령을 내리지 않았어도 그딴 일에는 아주 자발적으로 나설 존재들이었다. “오빠도 엄청 안 귀여웠어?” “무지 귀여웠지.” “그치, 그치? 나도 너무 귀여워서……. 꺄아악, 생각만해도…….” “그럼 많이 귀여웠지.” 근데 그 귀여운 것들이 잔인한 것들한테 어떻게 돼 가고 있는지 대충 짐작이 갔다. 시작하면 가끔씩 나보다 더 심한 놈들이니까 아마도 형체가 남아 있지 않을 듯싶었다. “그런데 다른 분들 아직 안 오시네? 정우도 안 오고. 무슨 중요한 일이야?” “중요할 거야. 그들에게는.” 한편 중요 사업 중인 그들은……. “야, 감히 마스터가 장비류를 가지고 오라고 했는데 괴상망측한 먹는 걸 가져와?” 케미리가 대표로 나서서 미리스 스피드를 핍박했고, 그 모습에 미리스 스피드는 부들부들 떨면서 말했다. “잘못…….” “잘못하지 않았다고!? 이럴 수가!” “자, 잠시…….” “잠시는!” “난 그런 의도…….” “뭐, 그런 의도였다고? 몹쓸 놈이네.” “마, 말 좀!” “말하지 마! 자, 시작하자, 다시!” “제……. 커어억…….” 미리스 스피드는 말을 끝내기도 전에 케미리가 교묘하게 잘라 버리자 어이가 없었다. 분명 케미리가 아무리 닭대가리라고 하더라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렇지만 또다시 패는 이유는 그냥이었다. 퍼퍼퍼퍽. 그렇게 그들은, 아니 케미리 혼자만 열심히 구타하고 있었다. 테피언, 피티언, 정우는 형체도 알아보지 못할 미리스 스피드를 보고 아주 살짝 양심의 가책을 느꼈는지 손을 놓은 지 오래됐고, 오직 케미리만이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시도 쉬지 않고 있었다. “히히히히.” “…….” “…….” 케미리의 입가에 떠오른 이상한 미소. 그 미소를 본 테피언과 피티언은 부들부들 떨었다. 직접 보니 공포가 배가되었다. “히히히히.” “히히히히.” 그렇게 케미리는 알 수 없는 소리와 함께 계속해서 미리스 스피드를 구타했고, 잠시 후 미리스 스피드는 게거품을 물면서 기절했다. “흐으음, 이제 그만 해야지. 살짝 미안하네.”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만들고 게거품까지 물게 한 장본인이 할 대사는 아니었지만 케미리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저 멀리서 테피언과 피티언, 정우까지 상쾌한 표정을 지은 채 달려오고 있었다. 그런데 유독 개 한 마리의 표정이 무척 밝았다. 그냥 밝은 것도 아니고 거의 320볼트 형광등 수준으로 밝았다. “아, 오신다.” 채은이가 그들을 보고 말하자, 난 마음으로 속삭였다. ‘저것들이 네가 그리 귀여워하던 그 엽기 몬스터를 지금 반 죽이고 오는 길이란다.’ 물론 이 사실을 입 밖에 낼 수는 없었다. 채은이와 예화 둘 다 충격을 받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마스터, 잘 처리했어. 히히히히.” 케미리는 이상한 웃음과 더불어 나에게 보고했고, 난 그 모습에 살짝 케미리에게 물었다. “좀 적당히 했지?” “물론 적당히 했어.” “그러냐?” “응. 우리는 적당이라는 단어밖에 몰라.” “뭐, 그렇다면…….” 난 그 말에 사라졌던 양심이 다시 돌아오는 느낌이었다. 그래 난 아직까지 양심은 살아 있었어. 살아 있었다고!(정말?) 한편 적당히 당한 미리스 스피드는 거의 죽을 것 같은 모습이었다. 지금 그의 생각은 한 가지뿐이었다. 차라리 민혁이한테 맞을 때가 100배 나았다고. 저번에 아이템 스틸 때 미리스 스피디는 민혁이한테 두들겨 맞았었다. 그리고 오늘 민혁이의 소환수들에게, 아니 정확하게 개 한 마리한테 죽도록 맞았다. 거의 움직이지 못할 만큼. 이렇게 눈물 나기는 몬스터로 사는 내내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를 괴롭게 하는 것은 마지막 정우가 한 한마디였다. ‘2달 뒤를 기댜하겠습니다.’ 이 말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자리를 옮겼다. 역시나 채은이가 온건 좋았는데 정우는 생각대로 영 아니었다. “형님을 존경합니다.” “제발 그냥 존경하지 말아 줄래?” “그럴 수 없습니다. 아시잖습니까, 제 불타는 마음을.” 난 저 말이 하면 전부 다 진심 같았다. 그랬기에 난 더욱더 저놈을 보면 부들부들 떠는 거겠지만……. “아 참, 그나저나 채은이 직업도 모르고 있었네.” 난 그제야 채은이의 직업도 모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 것은 처음 만난 당시 물어봐야 정상이지만 워낙 히죽 거리면서 오는 소환수들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물어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치이. 오빠, 내가 전에 말해 줬잖아!” 응? 응? 말해 줬다고? 난 약간 새침하게 말하는 채은이를 바라보면서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채은이가 나에게 언제 직업을 말해 준적이 있었던가? “저번에 정령사라고 했잖아. 기억 안 나?” “아!” “내 직업도 기억 못하다니…….” “아니, 내가 이 게임을 하고 나서 단 1초도 평안한 날이 없어서…….” 맞는 말이었다. 채은이와 정우를 만난 뒤 약간 평범한 나날을 보내는 듯싶었지만 그전에는 평범한 날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말 그대로 어디에 빠지고 감옥에 들어가고 수배도 되고 이상한 던전에 들어가고 식물 마을도 가고 드래곤 레어도 가고……. 이 게임에 접속하고 완전 슈퍼 대모험을 한나였다. 물론 지금은 약간 평안한 상태였지만 또 폭풍 전야에 빠져 들고 있는 것 같았다. “저는 프리스트입니다.” 또다시 끼어드는 정우. 네가 프리스트라고? 난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다. 저놈이 어딜 봐서 프리스트란 말인가! 저 똥개가 어쌔신이라는 것보다 더욱더 충격, 아니 저 똥개가 어쌔신이란느 게 더 충격이구나. “레벨은 120으로 저렙입니다.” “아, 내 레벨은 110이야.” “…….” 나에게 레벨을 소개하는 정우와 채은이였다. “오빠 레벨은 얼마야?” “응? 내 레벨?” “꽤 강할 것 같은데.” “으음.” “왜, 곤란해?” “아니, 그게…….” 난 막상 말하려니 내 레벨이 약간 쪽팔렸다. 아이디: 플레스 레벨: 58 직업: 웨폰인첸트 HPMP: 38,100/42,600 힘: 5(?) 민첩: 246(?) 체력: 5(?) 지혜: 5(0) 지식: 5(0) 행운: 5(0) 기본 공격력: 14,300 기본 방어력: 2,000 남은 스텟: 0 레벨이 잘 오르지 않는 상태입니다. 자신의 스텟보다 훨씬 높으면 레벨 업이 잘 되지 않습니다. 아, 이 착잡한 레벨. 58이란다. 하지만 보통 이 레벨의 기본 공격력은 힘에 많이 투자했다고 가정해도 1,500-2,500인데 난 14,300인 만큼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검 소환- 2단계(숙련도 8.00%) 검을 소환한다. 검의 특성 방어력이 500증가(숙련도가 10% 오를 시 방어력은 20 상승). 기본 공격력: 1,400(숙련도 10%마다 공격력은 100상승. 마스터 스킬시 총 5,500상승). 특별 스킬: 방어 능력 활성화. -활 소환- 2단계(숙련도 67.00%) 활을 소환한다. 활의 특성: 이동 속도, 공격 속도 20% 증가(숙련도 10% 상승시 이동 속도와 공격 속도 4% 증가). 기본 공격력: 1,300(숙련도 10%마다 공격력 100상승. 마스터 스킬 시 총 4,500이 상승). 특별 스킬: 다중 공격 능력. -도끼 소환- 2단계(숙련도 20.00%) 도끼를 소환한다. 도끼의 특성: 이동 속도, 공격 속도20%감소(숙련도10%상승 시 이동 속도와 공격 속도 % 감소). 기본 공격력: 3,000(숙련도 10%마다 공격력 600상승. 마스터 스킬시 12,000 상승)). 특별 스킬: 절대 충격파. -와이어 소환- (숙련도40.00%) 와이어를 소환한다. 와이어의 특성: 공격 속도 35%상승(숙련도 10%상승 시 공격 속도 6% 증가). 기본 공격력: 800 -지팡이 소환- (숙련도 00.00%) 마법을 사용하게 해 준다. 아, 지팡이만 제외하고 모든 옵션이 붙어 있었다. 그런데 지팡이도 숙련도가 있는 것을 보니 진화가 가능하다는 것 같은데 과연 진화를 하면 어떤 옵션이 붙을까? “오빠, 뭘 그렇게 보는 거야?” “아.” 난 오랜만에 스텟 창과 스킬 창을 보다가 채은이의 질문을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곧 의아하다는 듯 듯 바라보는 채은에게 말했다. “아, 레벨 확인하고 있었어.” “그래? 그런데 레벨이 얼마야?” 아, 저 초롱초롱한 눈빛. 부담된다. 물론 케미리의 초롱초롱한 눈빛과는 정반대였다. 난 케미리가 저렇게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이면 당장 눈을 못 뜨게 했겠지만 채은이가 저러니 무지무지 잘 어울렸다. 개와 미소녀는 같은 행동을 해도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는 뜻이었다. “58.” “응? 방금 뭐라고 했어?” “58.” “레벨이 58이라고?” “어.” “…….” 나의 대답에 말도 안 된다는 듯 바라보는 채은이였다. 내 자신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 입장에서는 오죽할까. “저렙이군요.” “저렙인 데 보태 준 것 있냐?!?” “조크였습니다.” “…….” 거듭 말하지만 정우 저놈이 말하면 다 진심 같다. 분명 방금도 진심으로 말한 것 같지만 자신은 농담이라고 우겼다. 본인이 그렇다는데 어떻게 하겠는가? 하지만 난 언젠가는 저놈이 하는 말이 진실이라고 밝혀질 날을 위해 투쟁(?)할 것이다. “저번에 나한테 히든클래스라고 안 했어?” “했어.” “근데 히든클레스가 그렇게 레벨이 낮아? 내가 알기로는 공식 랭킹 1위가 600인가 700대라고 하던데, 원래 히든클래스라는 직업이 어려운 거야?” 그럴 리가 없잖아! 물론 평범한 직업보다는 히든클래스가 키우기 어려운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나처럼 이렇게 키우기 힘든 히든클래스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게 다 처음부터 일이 마구 꼬여서 그렇지만……. 그러고 보니 저번에 나를 갑작스럽게 피케이를 했던 이상한 놈이 떠올랐다. 그놈만 아니었다면 난 평범한 길을 걸었을 게 분명했다. “후히히히.” “후히히히.” “후히히히.” 왜 저 닭대가리 3인방을 보니 나의 말소리가 작어지지? 그래, 솔직히 말해서 별로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저것들이 있는 한……. “그래! 내가 오빠 사냥 도와주면 되겠다!” “에에?” “걱정 마! 내가 그래도 오빠 사냥 정도는 도와줄 수 있거든. 흐으음, 레벨 50대면 트롤 잡으로 가면 되겠다! 70대몹이지만 내가 정령으로 잘 보조해 줄게!” “그러니까, 채은아…….” “어서 가자!” “어, 언니, 그게. 오빠는…….” “흐으음, 어디로 가야 되지?” 나를 도와준다는 생각에 나와 예화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는 채은이. 아, 고맙기는 하지만 과연 트롤이 나의 레벨을 올려 줄까? 올려 준다면 내가 장담하건데 하루 만에 트롤을 몰살시킬 용의가 충분히 있었다. 그나저나 트롤이 70대 레벨이라는 것을 오늘 처음 알았다. “자자, 가자, 오빠!” “그려.” 난 그런 채은이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마법 연습을 해야 하기는 했다. 뭐, 이 기회에 마법 연습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웅성웅성. 테피언과 케미리는 웅성거리기 바빴다. 채은이가 민혁이를 향해 레벨을 올려 준다는 말 이후였다. “저 괴물 딱지를 레벨 업시키면 슈퍼 괴물이 되는 건가?” 테피언의 고뇌에 찬 말. 그 말에 이어지는 진지한 어조의 케미리. “그렇지. 슈퍼 괴물 수준, 아니 초특급 슈퍼 괴물…….” “이 새끼들아, 무슨 슈퍼 괴물이야!” “허억! 마, 마스터.” “난 아무 말도 안 했어! 테피언이 강요했어!” “뭐시라!” “난 몰라.” “너 정말 이럴 것이냐?” “내가 뭘!” 퍼억. 하지만 그들이 싸우든 말든 민혁이의 발은 테피언과 케미리의 얼굴에 적중했고, 잠시 후 민혁이는 바닥에 엎어진 그들을 보고 중얼거렸다. “아앙, 제발 좀 조용히 살자.” 역시 테피언과 케미리의 천적은 민혁이밖에 없었다. 아니 다른 의미로 천적이 한 명 있을 수도……. 4번째 소환수 그녀라면……. “우아아아! 어딨는 거야!” 150Kg에 육박하는 어마어마한 거구의 몸을 가진 파케는 굉음을 질렀다. 그의 몸에 걸맞게 지르는 비명도 어마어마했다. 플레스라는 아이디를 가진 그놈을 죽이기 위해 열심히 돌아다녔지만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거대한 몸 탓에 그는 점점 지쳐 가고 있었다. “플레스가 어디 있는지 궁금하나?” “너는 뭐냐?!” 파케는 자신에게 말을 거는 근육질의 아저씨를 보고 말했고, 그 말에 메퍼는 슬쩍 웃으면서 말했다. “지금 트롤 사냥터로 향했지.” “정말인가?!” 파케는 진실인지 거짓인지 구분이 가지 않아 반신반의하면서 물었고, 그 말에 메퍼는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말했다. “믿든지 말든지 그것 자네 자유네.” “크으응. 만약에 거짓말이면 죽을 줄 알아!” 그 말과 함께 파케는 트롤 사냥터로 향했고 그걸 본 메퍼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말했다. “아, 마스터는 무슨 생각인지. 왜 플레스랑 파케를 붙이려는 건지, 쩝. 그나저나 플레스가 이 사실을 알면 나에게 달려오겠지? 나라고 하더라도 이길 자신이 없는 남잔데…….” 그렇게 메퍼는 중얼거렸다. “아, 여기가 트롤 사냥터구나.” “오빠, 처음 오는 거야?” “그렇지, 뭐.” 이런 정상적인 사냥터는 처음이었다. 아니, 저번에 티피언을 만난 이후 처음이었다. 그때 리자드맨을 잡으러 갔다가 지금 테피언과 케미리와 활짝 웃으면서 이야기하고 있는 피티언을 만났다. 그 당시 분명 나를 만나자마자 한 말은 ‘마스터, 세계 정복을……’ 이라는 말. 난 그 말을 듣고 피티언을 땅에 묻었던 너무나도 아름다운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정령 불러서 도와줄게. 아 참, 근데 오빠, 히든클래스인데 어떤 히든클래스인 거야?” “무기 호환해 내는 거.” “무기를 소환해 내?” 난 그 말에 살짝 보여 주기 위해 눈을 감았다. 물론 이번 소환은 로케리스에 합체시키는 게 아니라 그냥 소환이었다. 지팡이(Solck) 소환. 파지짓. 이내 붉은색의 전기장판과 함께 소환되는 지팡이, 처음으로 해 보는 지팡이 소환이었다. 그런데 지팡이 소환은 그 어느 무기의 소환보다 화려했다. 1단계인데도 불구하고 이 정도면……. “우와…….” 한편 내 손에 쥐어진 지팡이를 보고 입을 다물지 못하는 채은이. 신기하기는 신기했을 것이다. 나도 게임에서 무기를 소환해서 싸운다는 직업은 들어 보지도 못했으니까. 그뿐만이 아니라 각종 특별 능력까지 가지고 있는 속성 인첸트까지……. 물론 이 정도면 난 충분히 만족하는데 저것들은 왜 붙여 주는 거지? 헉, 혹시 너무 좋은 직업이어서 옵션으로 닭대가리를 붙여 주는 건가? 물론 그럴 확률이 있지는 않겠지만 그만큼 저놈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아, 저것들의 머리를 누가 개조만시켜 준다면 난 지금 내 수중에 있는 전 재산을 다 둘 용의가 있었다. 지금 내 수중에 있는 돈은 케미리가 저번에 나를 사랑해서 준 2만 골드와 더불어 조금씩 모은 돈 3,000골드까지 포함해서 23,000골드. 어마어마한 돈이었다. 그 돈을 준다 할 만큼 난 지금 상항이 절박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고도 난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나저나 4번째 소환수. 분명 그녀라고 했으니 솔직한 말로 난 이제 기대가 되기는커녕 그냥 안 나타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자기들이 알아서 잘 나타났다. 그리고 여자라면 내가 폭력을 쓰는 데 문제가 있다. 아무리 닭대가리 같은 행동을 해도 패기는 좀 그렇지 않은가. “그런데 오빠, 지팡이 소환해 냈으면 마법을 쓸 수 있는거야?” “물론!” “정말? 하번 보여 줘!” 훗. 난 그 말에 웃었다. 내가 어직 초보 마법사이기는 하지만 기본 마법은 충분히 사용 가능할 것이라고 믿었다. 일단 라이트 마법 같은 것은 기본 중의 기본, 내가 못 쓸 리는 없었다. “잘 봐! 라이트!” “…….” “어라? 라이트?” “…….” “야, 라이트! 왜 안 나와(?)!” “…….” “허억, 이상하다.” 난 자신만만하게 말했다가 나오지 않는 라이트를 보고 당황했다. 왜 라이트가 안 나오지? 그냥 주문을 외우면 마법이 발동되는 게 아니었던가? 분명 저번에 1서클 마법 연식하고 수식은 배워 놨는데……. “오빠, 마법은 주문뿐만 아니라 마나도 끌어 와야 쓸 수 있어요.” 그때 나에게 정보를 알려 주는 예화. 닭대가리들도 실수 안 할 만한 실수를 내가……. 정말 어쩌면 내가 닭대가리로 변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원래 자기가 마친 것은 모르듯이 나도 내가 바보가 된 것을 모를 확률이 높았다. 평소하면 하지 않았을 행동을 이렇게나 자신만만하게 하다니……. “오, 오빠……. 뭐, 마법 실패할 수도 있죠. 그리고 오빠는 마법사가 주 클래스가 아니잖아요. 그, 그러니 힘내세요.” “고맙다.” 나의 이런 모습에 위로해 주는 예화. 역시 마음씨도 곱다니까. “그럼 오빠, 내가 정령을 불러 볼게.” “오, 정령?” “응. 잘 봐 줘.” 바로 그때 어색한 분위기를 없애려는 듯 채은이가 정령을 소환하겠다고 했다. 난 게임에서 정령사도 보지 못했고 정령도 구경해 보지 못했기에 기대 반 설렘 반으로 지켜보았다. 중얼중얼. 그렇게 채은이 알 수 없는 주문을 중얼거렸고, 그렇게 1분 정도를 중얼거리더니 말했다. “살라만다!” 살라만다? 살라살라해서 살라만다인가? 아, 내가 생각하고도 너무나 썰렁한 말이었다. 만약에 실제로 했으면 난 무안해서 고갤르 들지 못할 유머였다. 치치칙. 채은이가 이름을 부르자 서서히 나타나는 살라만다는 뿌연 형제에 불타는 듯한 눈빛이 인상적인 정령이었다. 저게 살라만다인가? “안녕?” 끄덕. 채은이가 손을 흔들자 살라만다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고 잠시 동안이지만 채은이를 온화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허억, 정령도 여자를 밝히는 건가? 이건 완전 특종감인데? 이글이글. 바로 그때 갑작스럽게 나를 이글이글 불타는 눈으로 쳐다보는 살라만다. 이상하게 나를 적대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어디서 그런 눈을……. 눈 깔아! 하지만 나의 그런 마음속 충고를 무시한 채 나를 바라보는 살라만다. 물론 나뿐만 아니라 내 뒤에 있는 소환수들도 덤으로 노려보았다. 그에 반해 채은이와 예화는 아주 친숙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물론 그 눈빛에 가만있을 소환수들이 아니었다. “아니, 저 거지 같은 놈이 어디다 눈을 부릅떠!” “지금 하늘 같은 마스터를 노려봤어? 죽고 싶어?! 앙!” “흙냄새 맡고 싶어?” 케미리, 미안하지만 정령은 냄새를 못 맡는단다. 어찌 됐든 역시나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열심히 협박하는 소환수들. 자랑스럽다. “아, 그게…… 살라만다는 다른 사람들한테 좀 적대적인 정령이어서요. 이해해 주세요.” 그때 그 모습을 보고 어색한 미소를 띠면서 말하는 채은이. 그런데 왜 예화만 친숙한 눈빛으로 보는지 설명해 주었으면 하는 게 바람이었다. “살라만다, 그러지 마. 다른 분들한테 실례잖아.” “…….” 말없이 가만히 있는 살라만다. 마음에 안 든다는 뜻으로 보였다. 지지직. 역시나 나의 예상이 맞는지 살라만다는 여전히 이글이글 한 눈빛으로 우리를 노려봤고, 난 당장이라도 저 정령 놈을 잡아서 산뜻하게 놀아 주고 싶었지만 채은이 때문에 참았다. 아, 이미지 관리하느라 힘들어 죽을 것 같다. “마스터, 저놈이 자꾸 우리를 보는데 어떻게 할까요?” 그때 나에게 묻는 피티언. 그리고 나의 말을 기다리는 피티언과 케미리. 당장이라도 내 말이 떨어지면 잡아서 땅에 묻어 버릴 기세였다. 무서운 것들. 채은이의 정령도 소환수고 이것들도 소환수인데 포스 하나는 격이 달랐다. “일단 참는다.” “알겠습니다.” 나의 말에 조용히 물러나는 피티언. 이번만은 마음씨 착한 내가 참기로 했다. “살라만다, 미안한데 내가 아는 오빠거든. 사냥 좀 도와줄래?” “…….” “부탁이야.” 부탁이라고 살라만다에게 요청을 하는 채은이. 그렇지만 여전히 못마땅한 듯 나를 보는 살라만다. “마스터, 본래 성격대로 밟아.” “마스터답지 않아.” “내 성격이 본래 어떤데?” “…….” “…….” 나의 말에 순간적으로 말을 했던 테피언과 케미리가 머리를 굴리는 모습. 솔직한 말로 처음 봤다. 그렇지만 이게 바로 폭력과 주입식 교육의 효과라는 것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었다. “어떤데, 애들아?” “어, 어떻기는 자상하지.” “멋있지. 착하지.” “폭력 잘 쓰지!” 이 새끼들이! 난 처음 두 줄까지만 해도 히죽거리다가 맨 마지막 반전이 되는 테피언의 한마디에 머리 밸브가 열렸다. 머리를 굴려 보았지만 무의식적으로 나온 말인 듯했다. 물론 테피언만 했지만 공동 책임이었다. “마, 마스터, 알잖아. 내가 얼마나 마스터를 존경하는지.” 언제부터? 살기 위해 벌써부터 비굴해지는 케미리. 정말 비굴했다. 비굴계의 황태자 케미리. 정말 감탄이었다. “아, 알잖아. 내 뜨거운 마음.” 부들부들. 아, 부들부들 떨리는 모습이 너무나도 애처로워서 난 밟을 수가 없었다. 뭐, 테피언 혼자서 그랬으니 이번에는 케미를 용서해 주기로 했다. “자, 잠시 마스터. 나도 실수를…….” 케미리에게서 곧바로 자신에게 걸어오자 테피언은 당황해서 얼른 변명을 했고, 난 그 모습을 보고 이번 한 번만 용서해 주기로 했다. 난 너무 착해서 문제였다. “응? 살라만다, 부탁해.” 아직도 살라만다인가 살라살라인가한테 부탁하는 채은이. 아, 정령이라는 것들은 다 저렇게 싸가지 없는 건가? 내 소환수들도 하는 짓이 좀 닭대가리여서 그렇지 저런 불량스러운 태도는 보이지 않는데 말이다. “쳇! 어쩔 수 없지. 채은이 부탁이니까.” “아, 고마워.” “잘 아는군.” 아, 저 거만함. 보는 내가 화딱지가 났다. 그나저나 저 새끼, 말할 줄 알면서 아까부터 왜 계속 입 다물고 이글이글거리기만 했지? 어찌 됐든 무지무지 짜증나는 불의 정령이었다. “헤헤. 오빠, 미안. 살라만다 좀 낯을 심하게 가려.” 그렇지만 오히려 귀엽게 웃는 채은이. 채은이가 저렇게 화를 내지 않는 게 정상인가. 아니면 지금 막 화를 내는 내가 정상인가? “영광으로 생각해라, 하찮은 인간.” 허억. 하, 하찮대. 나에게 충격적인 말을 던지는 불의 정령. 그리고 그 말에 울컥하는 3명의 소환수. 그래, 저것들이 머리가 좀 나쁘고 사고를 치기는 했지만 저런 방면에서는 정말 마스터를 걱정해 주었다. “오, 오빠, 미안.” “아, 아니야. 하하하.” “살라만다가…….” “괘, 괜찮아. 내 넓은 마음…….” “어디 아파? 목소리가 떨려.” “괘, 괜찮다니까. 그, 그래. 채은아, 넌 예화랑 같이 이야기해. 정령은 혼자서 사냥이 가능하지?” “그렇기는 한데…….” “그럼 괜찮아. 괜히 힘들게 나설 필요 없잖아. 내가 열심히 사냥한 다음에 갈게.” “그래도…….” “난 괜찮아. 네가 괜히 힘든 거 보기 싫어서 그래.” “오빠가 정 그렇다면 난 예화랑 다른 데 가서 이야기하고 있을게.” “그럼, 그럼.” 난 그렇게 싱긋 웃었다. 그리고 정우를 붙여 주려다가 피티언을 붙여 주었다. 워낙 관심을 끄는 소년들이었기에 보디가드가 한 명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잘 부탁한다.” “마스터의 명령. 제 목숨이 다하는 그날까지 지키겠습니다!” 아니, 그렇게까지는……. 무슨 내가 엄청난 임무를 준 것 같잖아? 어찌 됐든 그렇게 난 불의ㅡ 정령과 함께 정우, 테피언, 케미리를 데리고 갔다. 그렇게 우리는 트롤 사냥터로 진입했다. 매직 애로우(Magic Arrow). 1서클 완전 초보용 공격 마법. 난 그걸 사용했고, 당연한 말이지만 그 마법을 맞은 트롤의 성격만 사납게 만들었다. 그래도 마법에 비해 강력한 상대에게 마법을 발사하니 숙련도는 더 잘 오르는 것 같았다. “풋, 하찮은 인간.” 부들부들 난 뒤에서 아무런 짓도 하지 않고 있는 불의 정령 살라만다의 말을 듣고 부들부들 떨었다. “무슨 경련병 걸렸는가? 떨기는…….” 부들부들. 부들부들. 그 말에 오히려 테피언과 케미리도 떨기 시작했고, 정우는 그냥 차가운 표정으로 있었다. 그런 그들은 나를 보면서 중얼거렸다. “마스터를 자꾸 모욕한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형님, 어떻게 할까요?” 휴우우. 그래 고마웠다. 나를 위해서 이렇게 부들부들 떨어 주니 말이다. “쿠쿠. 고작 트롤 한 마리도 죽이지 못하고 부들거리다니 정말 저렙이군.” “쿠에엑!” 살라만다의 음성과 동시에 들려온 트롤의 비명 소리. 트롤은 매직 애로우 한 방을 맞더니 화가 났는지 나에게 저돌적으로 달려오고 있었고, 뒤에서는 살라만다가 깐죽거리고 있었다. “네 주제에 세라스(채은이)랑 같이 다닌다니 웃기는군.” “…….” “난 널 살려 줄 마음이 없다. 세라스가 같이 있었으면 흉내라도 냈겠지만 없는 이상 모르는 일이지. 키키키.” “…….” “오, 네 앞에 트롤이 바로…….” 퍼억! 난 내 앞에서 깐죽거리는 트롤을 그대로 주먹 한 방에 부숴 버렸다. 있는 힘껏 쳐서 그런지 트롤은 회복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내 주먹에 몸이 관통되면서 죽어 버렸다. 그렇게 되자 푸른색의 액체가 내 몸에 튀었지만 상관없었다. 약간 독성이 있는 듯했지만……. “어, 어떻게?!” 그런 나의 모습에 엄청 놀라는 살라만다. 난 서서히 고개를 들면서 살라만다를 보고 최대한 미소를 지었다. “후후후.” “어, 어떻게……. 되게 약했는…….” “너 오늘 좀 맞아야겠다. 아니, 죽어야겠다.” “무슨……?” 쉬이익. 하지만 살라만다가 말하기 전에 이미 그의 배우를 잡은 케미리. 역시나 어쌔신답게 어마어마한 속도였다. 난 그 모습을 보고 뒤에 서 있는 정우와 테피언을 향해 눈짓했다. 아아, 갑작스럽게 자주 이런 짓을 하니 좀……. “시킬 것 있으면 다 시키세요.” “에에에에?” 채은이는 무척 당황했다. 전과는 다르게 예의 바른 불의 정령 살라만다가 되었으니……. “저는 언제든지 즉각 대기조입니다.” “오, 오빠. 살라만다랑 무슨 일이 있었어?” “응?” “아까랑 완전히 달라졌을 뿐만 아니라……. 에…….” 얼마나 당황했는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는 채은이를 보고 난 웃으며 말했다. “아니. 그냥 같이 바디랭귀지를 했을 뿐.” “그게 뭐야?” “있어, 그런 게. 어쨌든 좋잖아. 저런 예의 바른 정령.” “그, 그건 그렇지만…….” 솔직히 말해 정령은 일정 데미지를 받으면 다시 정령계로 돌아간다. 그래서 우리는 그 점을 주위하면서 최대한 고통을 느끼면서도 데미지를 덜 받게 구타했다. 물론 위험하다 싶으면 정우가 힐을 사용했고, 다행히도 정령에게도 힐이 먹혔다. 아, 힐이 구타용으로 사용될 줄은 몰랐지만, 어찌 됐든 그렇게 우리는 한 명의 정령을 새롭게 만들어 놓았다. 물론 내가 직접 움직이지는 않았다. 저것들이 워낙 전문가였기 때문이었다. 언제 저런 전문가가 되었는지 몰라도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버릇없는 정령을 예의 바르게 변신시키고……. 아, 나처럼 모범적인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다시 난 채은이와 예화를 데리고 트롤 사냥터로 향했다. 어차피 이미 볼일은 끝났기에 문제없었다. “정말 이 게임 하고 나서 오빠랑 처음 사냥하는 거야.” 그게 나도 거의 처음 사냥하는 거란다. 채은아. 하지만 난 그런 말은 하지 않은 채 묵묵히 사냥했다. 오직 1서클 공격 마법으로……. 그래도 마법 레벨에 비해서는 강력한 곳인지 아주 쭉쭉 올랐다. 물론 살라만다의 도움 같은 것은 필요 없었다. 내 소환수 한 명만 있어도 트롤 10마리가 와도 상대가 가능하니……. 물론 채은이는 소환수들이 그리 강할 줄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그렇게 난 한참을 마법 서클 올린다고 정신이 없었고 한 6시간 정도 하니 2서클로 진입했다. 한마디로 1서클을 마스터한 것이었다. “우오오오!” 이제 드디어 어두운 데 가도 라이트 마법 때문에 고생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아, 저 피티언 놈이 제대로 된 마법사였다면 라이트 배운 것 가지고 이리 기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나를 끌어올린다. 그리고 영창한다. “라이트!” 나의 주변을 도는 하얀색의 빛. 아, 너무 아름다웠다. 정말 이 라이트 마법 하나 배우려고 고생한 생각하면……. 물론 앞으로 배울 공격 마법도 많지만……. “축하해요. 마법사로 입문하셨네요.” “고마워, 예화야.” 난 나에게 축하의 인사를 하는 예화를 보고 히죽거렸다. 한편 그런 나의 모습을 본 채은이가 갑자기 뚱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야.” “…….” “축하해. 오빠.” “아, 고맙다.” 축하 인사를 하려고 저랬던 건가? 그것치고는 이 알 수 없는 분위기……. 아, 정말 알고 싶다. 바로 그때 갑작스럽게 트롤 사냥터에 들어서는 한 남자. 보기만 해도 힘겨운 어마어마한 체격을 가진 뚱돼지였다. 최소 못해도 150Kg. 저번에 레즈비언 자매 이후로 처음 보는 똥봬지였다. “네놈이군. 크크크.” “나?” “너를 찾기 위해 얼마나 힘들게 다녔는지 모른다!” 나를 왜 찾았데? 나는 찾으라고 한 적 없는데……. “이제 나의 방배에 너는 굴복할 것이다.” 방패? 검도 아니고 방패? 난 방패라는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 그 똥돼지를 보았고, 그렇게 한참을 훑어보자 그 똥돼지 등에 거의 자신의 몸을 뒤덮고도 남을 엄청난 크기의 방패가 있는 게 보였다. 설마 저 방패를 다루는 건 아니겠지? 철컹철컹. 하지만 그런 나의 바람은 무시하고 그 어마한 크기의 방패를 한 손으로 들면서 나에게 말했다. “나의 방패는 그 누구도 뚫지 못한다!” “…….” “벌써 겁먹었나?” “…….” 쟤는 또 뭐니? 좀 조용해지나 싶었는데 어디서 자꾸 이상한 놈들이 튀어나오는 걸까? 혹시 저 3명의 소환수 중 괴상한 일만 일어나게 하는 수신파가 있는 것 아니야? “덤벼라!” 나에게 자신만만히 말하는 그 똥돼지. 그래, 덤비라면 덤비지. 방패든 뭐든 있으면 부숴 버리면 된다. 난 곧바로 최고의 파괴력을 가진 도끼를 소환해 내려고 했다. 지금 들고 있는 지팡이로 매직 미사일을 날리는 건 아닌 것 같아서……. 그렇게 눈을 감은 나였고, 바로 그때 그런 나를 누군가가 껴안았다. 허억! 뭐, 뭐야? 갑작스러운 포옹에 당황하며 눈을 뜨자, 20대 초반쯤 되는 아름다운 여자가 나를 보고 싱긋 웃었다. “찾느라고 힘들었어요, 주인님.” 주인님? 주인님? 난 너무 혼란스러워서 마구 혼자 중얼거리는데 갑작스럽게 내 뒤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우에엑!” “어, 어떻게…….” 이건 테피언과 케미리의 비명 소리. 저것들은 이런 미인을 보고 웬 비명이지? 나는 그것들을 보고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특히 테피언, 여자라면 다 좋아하더니 안 어울리게 웬 비명을……. 내가 어이없어 하고 있는데, 한 천족만 비명을 지르지 않고 있었다. 그 이름 하여 피티언. 또 조용하니 좀 불안했다. 그래서 난 똥돼지가 뭘 하든 말든 신경 끄고 피티언에게 고개를 돌리자 거기에는 몸이 굳어 버린 피티언이 보였다. 그런 피티언을 보고 나에게서 살며시 벗어난 그 여자는 피티언을 향해 싱긋 웃었다. “그동안 잘 있었니?” “…….” “안 반가운 거야?” “아, 아니, 그럴 리가 없잖아, 누, 누나.” 누나? 직역하면 시스터? 남내? “…….” 난 너무나도 큰 충격에 굳어 버렸다. 전설급 무기의 봉인 해제. 테이스 월드의 톱 뉴스였다. 물론 그것도 전설의 비밀 던전 엘르니아 던전에서……. 사람들은 갑작스럽게 어느 한 던전에서 번쩍이는 빛을 보고 경악에 휩싸였다. 테이스 월드 운영진에서도 거듭 말한, 만약에 전설급 무기가 봉인이 풀린다면 일어날 현상. 그 현상은 소문을 타고 타서 거의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물론 운영진도 처음으로 전설급 무기가 풀린 걸 목격했다. 전설급 무기의 봉인이 풀리자 운영진도 그 주인공을 찾기 위해 다급하게 이동했지만 그 주인공은 이미 사라진 후였다. 그들은 엘르니아 던전이 열린 것조차도 모르고 있었다. 사실 그들도 엘르니아 던전의 정확한 위치를 몰랐다. 그들이 한 것은 슈퍼컴퓨터 네리아에게 패치 내용을 살짝 전달한 것. 그러면 네리아가 알아서 분석하고 해석해서 만드는 것이었다. 그렇게 전 서버에 최초로 일어난 전설급 무기의 봉인 해제. 한국에서 처음으로 발생한 일이었다. 그러자 나머지 파이널 라운드 빛의 대륙으로 가기 위해 준비 중에 있던 사람들과 각 나라들의 사람들은 비상이었다. 그만큼 전설급 무기의 힘은 엄청나다고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들이 생각하는 만큼은 아니라는 걸 지금 그 지팡이의 소유자인 민혁이가 제일 잘 알고 있었다. <3권에 계속> -by로사. 마스터 오브 웨폰 3권(수호의 골렘) 제1장 데스 길드 지부 습격 사건 나는 당황했다. 저 사람, 아니 저 여자가 피티언의 누나라고? “주인님, 실례했습니다.” “주, 주인님?” “뭐 잘못된 거라도 있나요, 주인님?” 헉! 주, 주인님? 저런 미녀가 나한테 주인님이라니. 물론 객관적으로 따지면 채은이와 예화의 외모보다는 떨어지지만 상당한 미녀였다. 하지만 왠지 그녀에게서 이상한 기운이 내뿜어지고 있었다. “아, 아니. 그, 그런데 피티언과 남매라고? 시스터?” 당황스러워서 말까지 더듬으며 묻는데 그 여자는 오히려 싱긋 웃었다. “피티언과 저는 친남매랍니다.” “헉!” “왜 그러세요?” “아, 아니.” 머릿속으로만 생각했던 것을 직접 듣자 카운터펀치에 맞은 기분이었다. 너무나도 큰 충격에 미처 보지 못했는데, 정신을 차리고 살펴보니 여자는 남자의 로망이라고 칭해지는 메이드복을 입고 있었다. 물론 수위가 그리 높지 않게 무릎까지 내려오는 길이였지만 메이드복으로도 나를 당황하게 만들기는 충분했다. 그럼 이번 클래스는 메이드인가? 헉! 기사, 마법사, 어쌔신에 이은 네 번째 소환수가 메이드라니! 이건 전혀 예상치 못한 반전이었다. 아니, 반전 정도가 아니라 생각도 하지 못한……. 이게 아니잖아! 무슨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는 것인지. 그만큼 난 무척 당황한 상태였다. 긴 생머리를 끈으로 묶고 메이드복을 입은 채 나를 보고 싱긋 웃는 여인. 하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아 참! 주인님에게 실례를 했군요. 제 이름은 데리몬 세루 세리하라고 합니다. 편하게 세리하라고 불러 주세요.” “…….” “왜 그러시나요, 주인님?” 나를 꼬박꼬박 주인님이라고 부르는 세리하.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당황스러움은 더해만 갔다. “그, 그냥 다른 호칭으로 불러. 주인님이라니…….” “흐음, 그럼 가가?” “…….” “그것도 아니면 당신?” “…….” “이것도 마음에 안 들면 여보라고 부를게요.” 헉! 여, 여보래! 세리하가 말한 칭호를 종합해 보면 공통적으로 여자가 결혼한 남자에게 쓰는 호칭이었다. 무슨 의미로 저런 말을 하는지 난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떻게 할까요?” “그냥 주인님이라고 해.” “그럴게요, 주인님.” 헉! 맞다. 난 세리하의 물 흐르듯 속삭이는 말에 그 어느 호칭보다 좋은 게 있다는 사실을 깜빡해 버렸다. 그건 바로 마스터라는 호칭이었다. 하지만 너무나도 당황한 나머지 미처 생각지 못한 것이다. 뚱. “왜 그래, 채은아?” 바로 그때 채은이가 나를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난 왜 그런 표정으로 보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 또 발동됐다. 저 기이한 포스. 채은이의 무표정한 얼굴이 살짝 붉어지며 입이 열렸다. “오빠가 좋다면 나도 불러 줄 수 있어.” “뭘?” “가가.” 헉! “당신.” 헉! “여보.” 허거거걱! “주인님.” 심장이 멈출 것 같았다. 얼굴이 새빨개지면서도 저런 대범한 말을 내뱉는 채은이 그리고 쑥스러운 듯 고개를 푹 숙이면서 말한 ‘주인님’ 이라는 단어는 나의 가슴을 뜨겁게 불태웠다. 그나저나 갑자기 생긴 의문점, 채은이가 왜 세리하를 따라 하는 거지? “쿠아아아앙! 이것들이 감히 나를 놔두고 이상한 짓거리를!” 바로 그때, 그 뚱돼지는 그런 우리를 보고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엄청 화를 냈다. 그러자 세리하는 미소를 지우면서 나에게 말했다. “주인님, 어떻게 할까요?” “으응?” “저 남자를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해, 해치워.” 난 여전히 주인님이라는 호칭에 적응이 되지 않아 말을 더듬었다. 세리하는 내 대답이 떨어지자마자 가볍게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알겠습니다, 주인님. 주인님의 명령을 받들겠습니다.” “헉! 피해!” “개 살려!” “숨어! 숨어!” 뭐, 뭐야? 갑자기 소환수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도망가는 피티언과 다시 반지에 들어가는 테피언, 그리고 온몸을 숙이는 케미리까지……. 저것들, 갑자기 왜 그래? “아니, 어디서 하찮은 여자가 나를!” 뚱돼지의 목소리를 듣고 난 아차 싶었다. 아무리 당황한 상황이었다지만 여자 소환수를 꽤 강해 보이는 뚱돼지에게 보내다니, 내 실수였다. 재빨리 고개를 돌려 보니 어느새 뚱돼지에게 근접한 세리하가 보였다. 스윽. 세리하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메이스를 들어 올리며 싱긋 웃더니 곧바로 그 돼지의 방패를 향해 내려찍으면서 말했다. “홀리 라이트!” 콰아아아앙! “뭐, 뭐야?!” 어마어마한 폭발과 동시에 나와 채은이, 예화가 있는 곳까지 폭발의 여파가 밀려왔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곧바로 눈을 감았다. 검(Sword) 소환. 방어 능력 활성화. 휘이익! 난 검이 소환되자 곧바로 검을 휘둘렀고, 내 검에서는 역시나 어마어마한 광풍이 몰아쳤다. 그 광풍은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에게 다가오는 폭발을 깨끗이 소멸시켰다. 그 뚱돼지와 세리하가 부딪친 곳은 어마어마한 충격이 있었음을 증명해 주듯 땅이 거의 20미터 이상이나 움푹 파여 있었다. “크윽! 마, 말도 안 되는…….” 그때 저만치서 뚱돼지의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영문을 몰라 고개를 돌려보니 거기에는 자신의 메이드복에 묻은 먼지를 손으로 털어내는 세리하와 무릎을 꿇은 뚱돼지가 있었다. 방어막은 이미 산산조각이 난 채였다. “…….” 난 이 상황이 그저 황당하기만 했다. “죄송해요, 주인님! 또 힘 조절을…….” 어느새 내 곁으로 다가와 미안해 하며 고개를 숙이는 세리하. 만약에 방어막을 생성시키지 않았다면 폭발에 휘말려 다쳤을 게 분명한 상황이었지만 내가 막았으니 잘된 것 아닌가? “괜찮아. 뭐, 다친 사람도 없고.” “역시나 자상한 주인님이세요.” 싱긋! 헉! 저 미소. 사람 뜨끈뜨끈(?)하게 만드는 미소였다. -메이스의 소환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때 나에게 들려오는 음성. 메이스의 소환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메시지에도 이상하게 놀랍지는 않았다. 저번에 케미리가 나타났을 때도 와이어의 소환이 가능해졌으니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있던 것인지도 몰랐다. “저는 잠시 저 남자를 참회시키고 오겠습니다.” “참회?” 세리하는 내 말에 살포시 웃은 뒤 말없이 그 뚱돼지에게 다가갔다. 참회? 뭘 참회시켜? 그런데 난 ‘참회’ 라는 말보다 더 궁금한 게 있었다. “세리하 쟤 직업 뭐니?” “그건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정우 네놈이?” “물론입니다.” 역시나 너무나도 진지하게 말하는 정우. 아, 네가 그렇게 말하니 비장한 각오까지 느껴진다. 그것도 그냥 조금 비장하면 말도 안 하는데, 보는 사람 무안하게 비장했다. “뭐냐?” “절대 뜸 들이지 않고 말하겠습니다.” “알았다니까!” “절대로, 절대로 뜸 들이지 않고…….” 퍽! 난 사람 허파 뒤집어지게 하는 정우의 대갈통을 갈겼고 나에게 한 대 맞은 정우는 잠시 고개를 숙이더니 정신을 차렸는지 눈이 말똥말똥해졌다. 아, 왜 이리 내 주변에는 폭력으로 다뤄야 하는 사람이 많은지! 나도 말로 하고 싶은데 저것들이 항상 비협조적이었다. “그녀의 직업은 프리스트입니다!” “프리……스……트?” “그렇습니다.” “하하하하. 정우야, 농담도 늘었네.” “농담이 아닙니다. 형님. 방금 전에 홀리 라이트라는 주문연사식을 듣지 못했습니까?” “들었는데?” “그건 프리스트의 공격 마법입니다.” “그냥 나 같은 직업이 배우는 건?” “형님 같은 괴이한 직업은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냐?” “그렇습니다.” “…….” 난 그 말에 침묵을 지켰다. 그러고 나서 참회를 시킨다고 간 세리하를 바라보았다. 세리하는 뚱돼지에게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마법을 건 채 설교를 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세리하가 프리스트라고? 요새는 프리스트도 메이드(?)복을 입고 다니나? 그뿐 아니라 무슨 데미지가 그딴 식으로 나오냐? 피티언의 대형 공격 마법 데미지랑 비슷한 듯싶었다. “헉! 시작됐다!” “안 돼!” 바로 그때 들려온 피티언과 케미리의 절규. “피티언, 뭐가 시작된다는 거냐?” “마스터도 어서 도망가세요!” “무슨 소리냐?” “저 마녀가 설교하면 최소 4시간이에요! 피를 말린다고요! 우아아아!” 갑자기 머리를 붙잡는 피티언. 그 모습을 보고 예전에 꽤 많이 당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피티언은 자신의 누나를 ‘마녀’ 라고 불렀다. 혹시라도 세리하가 들으면 어쩌려고 저러는 건지. “마스터, 살고 싶으면 어서요! 저걸 당하면 폐인이 됩니다!” “아니, 폐인이 될 것까지는 아닌 거 같은데…….” “몰라서 그러는 겁니다! 저 마녀가 발동하면……. 으윽!” 피티언이 저렇게 절규할 정도로 정말 그렇게 끔찍한가? 난 호기심이 생겨서 쪼르르 달려가 한 10분간 경청했다. 10분후. 피티언과 케미리의 절규를 이해할 수 있었다. 진짜 피 말리는 설교였다. 그 뚱돼지도 이미 제정신이 아닌 듯싶었다. 10분의 효능이 이러한데 4시간이면 말로 죽이겠다는 건가/ “세리하, 그만 하는 게 어때?” “흐음, 뭐 주인님의 말씀이라면요.” “…….” 고마웠다. 그래도 이렇게 말 잘 들어 줘서. “주인님의 은총(?)에 힘입어 그만 하겠습니다. 그럼 꼭 좋은 사람이 되시기를…….” 털썩. 그 말과 함께 쓰러지는 뚱돼지를 보자 연민마저 느껴졌다. 뚱돼지는 좋은 사람이 되기는커녕 폐인이 된 것 같았다. “그럼 갈까요, 주인님?” 그러자. 난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네 번째 소환수 역시 포스가 장난 아니었다. 아니, 포스만으로 따지면 세 명의 소환수를 압도할 정도였다. 닭대가리 삼인방이 세리하 이야기만 나오면 절규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문득 세리하가 도와주면 저 닭대가리 삼인방을 개과천선 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럴 가망성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포스가 밀린다고 해도 방심할 수 없는 삼인방이었다. 왜냐, 저것들은 가끔씩 각성(?)을 하니까. 그렇게 나와 네 번째 소환수, 프리스트 세리하와의 만남은 트롤 밭에서 상쾌하게 이루어졌다. “깨졌다고?” “네, 루라스님.” 라쿠라는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지은 채 루라스에게 보고를 했다. 라쿠라가 미소를 띠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루라스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그래, 그놈에게 얼마나 견뎠지?” “건드리지도 못했습니다.” “건드리지도 못했다고?” 루라스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걸 본 라쿠라는 자신의 손에 든 서류를 읽어 보더니 말했다. “그의 부하로 보이는 여자에게 당했습니다.” “여자에게 당했다고?” “네. 프리스트로 추정되는, 메이드복을 입은 약간 이상해 보이는 여자입니다.” “흐음.” 그 말에 루라스는 조용히 자신의 턱을 쓰다듬더니 잠시 후 라쿠라를 향해 무표정한 모습으로 말했다. “그렇군, 부하가 그렇게 강하다면 그 남자는 얼마나 강하다는 거지? 내 예상을 가볍게 뛰어넘는 놈이군. 그런데 왜 이렇게 재미있는 거지? 하하하!” 루라스는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솔직한 말로 무료했다. 자신의 힘은 최강이었고 자신의 길드도 최강이었다. 한마디로 절대자라는 소리, 그런 자신과 자신의 길드원 수만 명에게 겨우 몇 명이서 칼을 켜눈 것이었다. 자신들과 대립한 그 단체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그렇게 루라스는 한참을 웃더니 잠시 후 라쿠라를 향해 말했다. “장난은 끝났다. 그를 불러라.” “알겠습니다.” 루라스는 더 이상 볼일이 없으면 나가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이에 라쿠라는 조용히 뒤로 물러나 루라스의 방을 벗어났다. 방을 나서는 라쿠라의 입가에는 여전히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럼 그렇지! 세리하가 와도 저 닭대가리 삼인방의 모습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 너희들에게는 오히려 이 모습이 더 어울리지. 헉! 내가 무슨 생각을……. 나도 모르게 닭대가리 삼인방의 행동을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이려는 내 머리를 다급하게 때렸다. 어떻게 당연하다고, 그런 야만적인 생각을! 그때, 초특급 미니스커트 메이드복을 입은 한 여자(?)가 나타났다. “형님, 어떻습니까?” “너 도대체 뭐 하는 거냐?” “형님이 메이드복 취미여서 한번 입어 봤습니다.” “누가 메이드복 취미야!” “형님의 눈동자가 저에게 속삭이지 않았습니까?” “죽을래?” “살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순식간에 변하는 옷, 저 새끼는 왜 또 헛소리를 하고 난리야. “우리 우정 변치 말자.” “그럼, 그럼.” “우리 혈맹을 맺을까?” 세리하가 온 이후, 더욱 단단히 뭉친 닭대가리 삼인방이였다. 하지만 난 저것들의 우정을 믿지 않았다. 거듭 말하지만 저것들의 우정은 3분 카레보다도 못했다. 저렇게 속삭여도 순식간에 배신을 때릴 놈들이었다. 특히 케미리, 저 개는 더 그럴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런데 혈맹? 천족의 피와 개의 피, 그리고 데스나이트의 피가 합치면 어떻게 될까? 하지만 데스나이트에게는 피가 없었다. 그는 빈 깡통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나저나 채은이와 예화, 세리하는 볼일이 있다고 가 버리더니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무슨 여자들만의 볼일이라고 하던데. 처음에는 채은이가 세리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듯 보였지만, 세리하가 계속 미소를 짓자 그녀는 고개를 저으면서 항복했다. 그 다음부터는 채은이가 세리하를 언니, 언니 하면서 따라다녔다. “아, 참 따분하네. 갑자기 할 일이 없어진 느낌이야.” 지금 내 기분이 그랬다. 분명 나에게는 목표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르게 공허함이 느껴졌다. 나머지 속성 구슬도 2개나 찾아야 했고 다른 무기 소환도 배워야 했고, 마법도 배워야 했고, 데스 길드에도 피의 보복을 해야 했고, 나머지 소환수들도 약간은 찾고 싶었지만……. “후헤헤헤.” “후헤헤헤.” “우리 동지네.” “물론이지!” “절대 우정 변치 말자.” “물론 후헤헤!” 저것들을 보니 나머지 소환수들을 찾고 싶었던 마음이 싹 사라졌다. 물론 5번째와 6번째에 대한 소문은 아무것도 없었다. 말 그대로 베일에 싸여 있는 클레스. 저 해맑게 웃고 있는 닭대가리 삼인방과 세리하도 전혀 모른다고 했다. 추측하건대 그 두 명의 소환수는 지극히 정상적이거나 아니면 지극히 비정상일 게 분명했다. 물론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아 비정상일 확률이 높았다. 그것도 베일에 싸여 있으니 엄청 비정상일 게 분명했다. 하아, 생각만 해도 왜 이리 눈물이 나지? “형님, 이 기회에 데스 길드 지부나 하나씩 부수는 게 어떨까요?” “지부?” “일단 제 생각에는 적의 힘을 좀 줄여 놓을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엄청난 물량 고세가 가능한 길드인 만큼 그들의 거점을 파괴하면 힘이 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오…….” 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정우 저놈이 거의 처음으로 나에게 도움을 준 거였다. 저놈과의 관계가 10년이나 되었지만, 아주 보기 드문 현상이었다. “원하는 게 뭐냐?” “순수한 재 눈동자를 보십시오. 제가 원하는 게 있어 보이십니까?” “응.” 난 가차 없이 말했다. 순수하기는 개뿔, 저 알 수 없는 눈동자는 사람 소름 끼치게 만들었다. 아니, 너무나도 진지해서 소름 끼치게 만들었다. “슬픕니다.” “슬픈데 왜 웃어?” “그냥 슬퍼서 웃음이 나왔습니다.” “…….” 잠시 동안이지만 저 새끼랑 정상저긴 대화를 하려고 했던 것이 원망스러웠다. 그래, 너도 저 닭대가리 삼인방과 같은 과(?)였지. “유후! 안녕한가?” “근육질 아저씨…….” “후후후! 오랜만이지.” 바로 그때 나에게 너무나도 반갑게 말하는 근육질 아저씨. 평소라면 뭐 그냥 받았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흐음, 뻔뻔하게 나타나셨어요.” “험험, 무슨 말인가?” “피티언, 설명?” “아, 네. 마스터.” 내 말에 후다닥 뛰어 온 피티언은 근육질 아저씨를 보더니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감히 우리를 그 이상한 돼지 같은 놈에게 넘기다니!” “그, 그건…….” 피티언의 말에 근육질 아저씨는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난 그 모습을 보고 말할 가치도 없다 판단하고 몸을 돌렸다. 내가 보복을 하지 않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었다. 사실 저번에 도움을 준 게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 나는 왜 이리 착할까? 그렇지만 이런 나의 정의로운(?) 모습은 저것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아, 슬프다. “자, 잠시.” “볼일 없습니다.” “내 말 잠시만…….” “볼일 업다니까요.” “10만 골드짜리 일에 관련…….” 휘이익! 그 말에 나는 전광석화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재빠르게 근육질 아저씨에게 다가가 표정을 진지하게 굳히면서 말했다. “말만 하십시오. 언제든지 달려갑니다.” 너무나도 모범이 되는 이 모습, 저것들도 배우겠지? 돈을 벌면 맛있는 것도 사 먹고 무엇보다도 스킬을 대량으로 구입할 예정이었다. 난 직업 특성상 스킬이 아주 많이 필요하니까 말이다. 한편. 그 모습을 본 테피언과 케미리는……. “추하다.” “돈 때문에 저런……. 쯧.” “실망이다.” “맞아, 엄청 실망했어. 돈 준다니 한걸음에 달려가네!” 테피언과 케미리는 자신들의 행동은 생각지도 않고 민혁이의 욕을 하기에 바빴다. 이들이 이리 의욕적인 모습을 보이는 건 민혁이 욕을 할 때 빼고는 없었다. 터벅터벅. “어라? 피티언, 어디 가냐?” 피티언이 자리를 옮기자 케미리가 의아한 듯 물었다. 그러자 피티언은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나 잠시…….” “어.” 피티언은 갑자기 민혁이한테 가더니 그의 귀에 대고 무언가를 속삭였다. 그리고 곧 민혁이가 눈이 뒤집힌 채 테피언과 케미리한테 달려왔다. “헉!” “헉!” 그럴 본 테피언과 케미리는 경력 3년(?) 만의 감으로 느꼈다. 이번에 잡히면 최소 12주라는 걸. 그런데 왜 자신들에게 달려오는지는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일단 도망가는 게 낫다고 생각했는지 테피언과 케미리는 도망을 가려고 했다. 그러나 어느새 더욱 스피드가 늘어난 민혁이에게 잡히고 말았다. “마, 마스터…… 왜 그러는 건가?” “그, 그래.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하하하하. 이 새끼들, 나날이 뻔뻔해지는군.” “무슨 소리냐. 우, 우리는 진실과 신용의 대명사다.” “그럼!” 테피언의 말에 당장 동의하는 케미리. 하지만 민혁이는 표정이 굳어지더니 자신에게 오고 있는 피티언을 향해 손짓했다. 그러자 가까이 다가온 피티언은 무표정한 얼굴로 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 마스터를 추하다, 실망이다, 돈 때문에 저런짓을 한다는 등등 헛소리를 했습니다.” “피, 피티언! 네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피티언의 말에 케미리는 절규했다. 하지만 피티언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말했다. “마스터가 이런 일이 있을 시 보고하면 맛있는 걸 준다고 했거든.” “우, 우리는 혈맹으로 맺어진 사인데 고작 먹을…….” “착각하지마, 케미리. 혈맹은 혈맹이고, 먹는 건 먹는 거야.” 어떻게 그런 이론이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피티언은 테피언과 케미리를 배신했고, 민혁이는 부들부들 떠는 철갑 갑옷 한 마리와 개 한 마리를 보고 싱긋 웃었다. 역시 나의 예상이 맞았다. 저것들의 우정은 13초 카레보다 못했다. 물론 그런 카레가 있지는 않았지만, 난 미리 피티언에게 유혹의 메시지를 남긴 상태였다. 천족 마법사이자 세리하의 남동생이기도 했고, 먹는 거라면 어떤 것도 마다하지 않는 정의로운(?) 피티언. 난 저번에 보았던 충격적인 영상이 영 잊히지가 않았다. ‘너 키워 먹으면 맛있어?’ 어디에선가 온 이상한 꼬맹이의 대사에 맞받아친 피티언의 명대사였다. 그만큼 먹는 거라면 아무것도 가리지 않는 그였다. 한마디로 제일 단순하면서 제일 유혹하기 쉬운 게 피티언이었다. 그렇게 내 작전에 의해 투입된 피티언은 역시나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한 건 해냈다. 그나저나 이것들이 나보고 추하다, 실망이다, 돈 때문에 저런 짓을 한다 따위의 욕을 했다니. 난 그 말을 듣는 순간 허파가 뒤집어졌지만 선처를 베풀기로 했다. 저만치서 달려오는 세리하와 채은이, 예화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싱긋. “헉!” “헉!” 내 미소가 예사롭지 않다는 걸 느꼈는지 경악하는 테피언과 케미리, 하지만 이미 늦었단다. “주인님, 저 왔어요.” “어, 세리하 왔구나.” “어머! 주인님, 목소리가 왜 그렇게 사근사근하세요?” “응? 난 원래 사근사근해. 그게 문제가 아니라 부탁이 있는데…….” “부탁이요? 주인님의 말씀이라면 저는 모든 걸 바쳐요.” 헉! 난 그 말에 충격을 받았다. 모, 모든 걸 바친다고? 하지만 그 말과 함께 싸해지는 분위기. 아, 발동됐다. 싸분기(‘싸해지는 분위기’의 약자). 이 분위기의 거점은 채은이였다. 아, 정말 이 분위기의 원인을 알면 좋을 텐데. 그리고 세리하, 너 프리스트 아니니? “그, 그런 건 아니고 잠시 애들에게 참회의 기회를 주지 않을래?” “참회요?” “응.” 참회라는 말에 유독 세리하의 표정이 밝아졌다. 헉! 혹시 참회시켜 주는 게 취미인가? “몇 시간 정도 할까요?” “흐음……. 한 5시간?” “그럴…….” “아, 안 돼! 마스터 살려 줘!” “제, 제발……. 잘못했어!” 그 말에 순간적으로 온몸을 바들바들 떠는 테피언과 케미리. 그 모습이 얼마나 애처로웠는지 마음을 다잡은 나를 흔들 정도였다. “제, 제발! 잘할게!” “한 번만…….” “그래! 한 번만…….” 스윽. 테피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세리하는 메이스를 꺼내들었다. 저 메이스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나중에 꼭 한번 어디서 나오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너희들, 감히 주인님에게 무슨 귀찮은 행동이야.” “아, 아니, 그게…….” “여기는…….” “문답무용. 한 대 맞고 참회 들어가겠어.” 역시 포스가 장난 아니었다. 저 닭대가리 이인방을 순식간에 제압해 버리다니,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난 그 모습을 뿌듯하게 바라보았다. 프리스트로서 하는 행동이 아주 조금 살벌하긴 하지만 이들 중 그나마 정상이었다. “그럼 세리하, 잘 부탁해.” “네, 주인님.” “저, 저기, 오빠…….” 그때 예화가 당황한 말투로 나를 불렀다. 나는 그런 예화를 따뜻한 미소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왜 그래?” “아, 아니 그게…… 테피언과 케미리 씨가 너무 불쌍해보여서…….” “아, 신경 쓰지 마.” “맞아, 오빠. 좀 불쌍해 보여.” 가만히 있던 채은이도 테피언과 케미리의 눈빛을 보고 안타까웠는지 말했다. 물론 여기에서는 케미리의 행동만을 계산한 것이었다. 테피언은 데스나이트. 눈빛이 형형하게 빛날뿐 안타까운지는 알 수가 없었다. 오직 옆에서 떠는 개 한 마리가 너무나도 애처로운 눈빛을 하고 있었기에, 무의식적으로 테피언도 불쌍해 보이는 거였다. 난 천사 같은 마음씨를 가진 채은이와 예화를 보고 나서 용서해 줄 마음이 생겼다. 그래, 내가 미소녀의 부탁은 저걸 못하니까……. “세리하.” “네, 주인님.” “4시간 59분으로 수정.” “네에~ 주인님.” 아, 내가 생각하고도 너무 착했다. 난 정말 정의의 용사? “자, 가자! 채은아, 예화야!” “…….” 나는 그렇게 불쌍하다는 듯 바라보는 채은이와 예화의 손을 잡은 채 그 근육질 아저씨와 정식으로 대화를 하기 위해 움직였다. 그나저나 손도 참 부드럽다. “마스터가 제일 잔혹해!” “누구 약 올리나!” 테피언과 케미리는 얄밉게 딱 1분 감소시키고 가 버리는 민혁이를 향해 울분을 토했고, 그걸 본 세리하는 표정이 굳어지면서 말했다. “감히 하늘 같은 마스터한테 그렇게 말하다니, 좀 충격이구나.” “헉! 아, 아니야. 사, 사실 테피언이 시켰어.” “이 새끼야! 추정 어쩌고 하더니, 맨날 심심하면 배신 때리는 것이냐!” “배신이라니! 사실이잖아.” 아, 배신과 구라의 요정 케미리! 그는 오늘도 다른 사람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배신했다. 물론 그에게는 배신과 구라의 요정과 함께 비굴의 요정도 붙어 있었다. “그, 그러니 제발 선처를……. 세리하. 나 대신 테피언을 마구 패.” “…….” “알겠지? 내 대신 맞아 줄 거야.”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세리하는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둘 다 잘 패 줄게.” “헉!” “헉!” 퍼퍼퍼퍽! 이내 울려 퍼지는 테피언과 케미리가 맞는 소리. 비명이라도 지르면 덜 아프련만 세리하는 잔인하게도 그들의 입을 마법으로 막은 채 팼다. 한편 그 모습을 본 피티언은 공포에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흐음…….” “어떤가?” 난 그 말에 괜히 고민하는 척했다. 내가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리는 없었다. 근육질 아저씨가 나에게 제시한 일은 데스 길드의 지부 하나를 공격해 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반응하는 이유는 돈을 더 받아 내기 위해서였다. “곤란하군요. 수천 명이 있는 곳을 딱 이 인원으로만 가라고 하시다니.” “13만 골드 어떤가?” “훗. 알겠습니다.” 난 싱긋 웃었다. 솔직한 말로 그 수천 명을 전부 다 상대할 것도 아니었기에. 그뿐 아니라 저 정체불명의 아저씨가 다른 지부를 완전히 정복할 때까지만 흔들어 주고 시간만 끌면 되는 것이었다. “휴우, 고맙군. 자네한테 기대하는 게 많네.” 그렇게 말한 그 아저씨는 근육질을 뽐내면서 웃더니 잠시 후 종이 한 장을 건네며 말했다. “공격할 장소와 시간, 기타 등등 다 적어 놓았네. 참고하게. 뭐, 자네라면 화끈하니까. 후훗, 그 재미있는 소환수들도 있고…….” 아니, 그 소환수들 이야기는 왜 하는 겁니까? 도움은 되기커녕 사람 속을 뒤집어 놓는 소환수들. 소환수라는 개념은 어디에 갖다 버린 채 나를 욕하기에 바쁜 소환수들. 난 그것들이 과연 정말 소환수인지 의심스러웠던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보통 소환수는 소환을 해야 나오는데, 그것들은 알아서 찾아올 뿐만 아니라 다시 들어가지도 않았다. 유일하게 테피언만이 그나마 형식적인(?) 소호나수였지만, 그것을 제외하고는 없었다. 게다가 싸가지도 제일 없었다. “왜 말이 없나?” “그냥요. 알았습니다. 확실하게 해 드리겠습니다.” “후훗, 믿네. 돈은 일을 성공한 후에 지불하니 최선을 다해 주게.” “물론이죠.” “아 참, 제일 중요한 걸 잊어버릴 뻔했군.” 근육질 아저씨는 품에서 계약서를 꺼내 건넸다. 난 그 계약서를 한번 훑어보았다. “사인을 하게.” 난 더 살펴볼 것도 없이 계약서에 사인을 해서 다시 건네주었다. 근육질 아저씨는 한 장을 뜯어 내게 주고 다른 한 장은 품에 넣으며 말했다. “서서히 움직여야 할 시간이군. 나도 바쁘다네. 그럼 이만 실례하겠네.” “그러세요.” 난 저 아저씨가 가든 말든 상관이 없다. 내가 원하는 건 돈, 오로지 돈이었다. 근육질 아저씨는 나와 채은이, 예화를 보더니 의미심장한 미소를 한번 짓고는 휙 가 버렸다. 저 아저씨, 왜 저래? 그나저나 작전 일시가 내일이니, 오늘은 이만 접속을 끊어야 할 것 같다. “마스터, 잘 처리했습니다.” “수고하셨어요, 메퍼님.” “아닙니다, 마스터.” 마스터라고 불린 남자가 수고했다는 말을 건네자 메퍼는 당연한 일을 했다는 듯 대답했다. “저는 그 남자에게 기대하는 게 많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그나저나 메퍼님은 도를 믿으십니까?” “네?” “농담이었습니다. 후후후.” “…….” 남자의 괴상한 농담에 메퍼는 당황해서 침묵만을 지켰다. 하지만 천으로 모든 걸 가린 남자는 뭐가 즐거운지 계속 웃고 있었다. 그런 그의 등 뒤에는 장의사라는 독특한 직업을 가진 이들이 들고 다니는 관이 매달려 있었다. 다음 날. -작전명- 미산임파서플 12. 작전: 지들 알아서. 투입 인원: 나, 케미리, 테피언. 나머지 인원은 대기. 드디어 결전의 날이 왔다. 내 13만 골드가 애타게 부르는 날이었다. 성에는 나와 케미리, 테피언만 들어가기로 했다. 그 이유는 우리가 근접 전투가 가능한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괜히 마법을 날려서 정신이 사나운 것보다는 성에 근접해서 확실하게 처리하는 게 낫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세리하는 참 애매한 직업니었다. 일단 프리스트였기에……. “야, 너희들 삽질하지 마. 나만 따라와.” “물론이다. 쿠라라라.” “오키! 나만 믿어, 마스터.” 믿기는 뭘 믿니? 난 너무나도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테피언과 케미리를 보자 불안했다. 아, 정말 저것들을 데리고 가야 하나? 차라리 피티언과 세리하를 데리고 가는 게 낫지 않을까? 하지만 이미 모든 건 정해졌기에 이런 고민은 소용이 없었다. “그런데 마스터, 언제 가는 것이냐?‘ “흐음, 오후 4시.” “거참, 느리군. 빨리 가고 싶은데. 쿠라라라!” “그건 나도 어쩔 수가 없고. 그나저나 네놈의 괴상한 웃음소리 좀 통일하면 안 되냐? 듣는 내가 부담된다.” “훗! 모르는군. 요새는 1분마다 바뀌는 시대야. 쿠라리리리러!” 그거랑 웃음소리랑 뭔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난 신경 끄기로 했다. “케미리.” “헉! 왜 그래. 그렇게 자상한 목소리로? 미친 거야?” “정말 죽고 싶냐?” “아, 아니.”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말했더니 나를 미친놈 취급하는 케미리를 보면서 참고 또 참았다. “제발 이번 한번만은 사고 치지 말자, 응? 알았지? 응?” “풋! 누가 들으면 내가 맨날 사고 치는 둘 알겠군.” 아니, 저렇게 뻔뻔할 수가! 이때까지 한 행동은 정녕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냐! 속으로는 분노했지만 겉으로는 최대한 웃으면서 말했다. “그, 그래. 사, 사고 치지는 않았지. 그래. 그러니까 이번에도 무사히…….” “걱정 마. 안심해.” “믿어 볼게.” -믿을 놈을 믿어야지. 그때 로케리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전투를 앞두고 말하면 어떡하냐! 평소에는 조용하더니!” -난 왠지 모르게 전투를 앞두면 뜨거워져. 변태냐? 아, 변태 맞구나! 로리 지팡이. 그게 아니라 지금 중요한 건 저놈이 말하면 안 된다는 거였다. 말하면 내 귀중한 마나가 빠져나가기 때문에 나중에 전투할 때 무리가 올 수 있었다. “나 좀 제발 편안히 놔둬 줄래?” -후훗! 나 같이 도움 되는 지팡이가 어디 있다고. “어딜 봐서 도움이 되는데?” -전부 다. 지나가던 똥개가 웃겠다. 그래, 지나가던 똥개 케미리, 어서 웃으렴. 하지만 묘하게 진지한 표정을 짓는 케미리. 정말 인생에 도움 한 자락도 안 주는 놈이었다. 그렇게 시작하기 전부터 사방팔방에서 나에게 온갖 시련을 주는 놈들이었지만 난 묵묵히 견뎌 냈다. 서당 개가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나도 어느새 이런 모습에 적응이…… 되면 안 되지만, 적응이 되어 가고 있었다. 4시. 난 게임 시간으로 4시가 된 걸 확인하자, 싱긋 웃었다. 이제 저기에 들어가서 화끈하게 놀면 13만 골드다! “침입자입니다! 데스 길드 제42지부가 괴이한 생물체들에게 습격당하고 있습니다.” “뭐라고?” 데스 길드 간부 랭킹 32위, 마도의 파괴자라는 명칭을 가진 네러리스는 황당했다. 인간도 아니 괴상한 생물체? “그, 그게 인간 한 명하고, 데스나이트 한 명하고, 개 한 마리가…….” “지금 나보고 그걸 믿으라는 건가?” “믿기 힘드시겠지만 사실입니다.” 그 말에 네러리스는 침묵했다. “그래, 너의 말이 사실이다 쳐도 고작 그거 가지고 이렇게 다급하게 보고한 건가? 세 명(마리?) 때문에?” “그, 그렇지만 정말 강합니다. 최소 못해도 한 남자는 랭킹 10위 안에 충분히 들어갈 정도로 강합니다. 그뿐 아니라 42지부는 약한 길드원들이 포진되어 있기 때문에…….” 그 말에 네러리스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아무리 약한 길드원들이 모인 지부라고 하더라고 고작 3명의 괴이한 생물체들한테 당한다고? 데스 길드는 이 게임의 실질적인 지배자인 만큼 규모가 상당히 컸다. 그래서 한 곳에 모여 있는 게 아니라 각 지부에 조금씩 흩어져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지부에서 하는 일은 각기 달랐다. “그렇다면 31지부에 있는 길드원들의 도움…….” 삐삐삐! “큰일 났습니다! 30지부에 정체불명의 수백 명이 급습했습니다.” 삐삐삐! “31지부도 마찬가집니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30지부와 31지부의 급습! 네러리스의 표정이 더욱 굳어 갔다. 30지부와 31지부에 투입된 인원만해도 수천 명인데 그런 곳을 공격했다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었다. 자신들에게 몰래 대항하는 그 비밀 집단이 분명했다. “내가 가겠다.” 그 말과 함께 네러리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솔직한 심정으로 괴이한 생물체 세 명이서 수천 명을 상대하고 있다는 모습이 궁금했지만, 그것보다는 그 괴이한 단체가 더욱 중요했다. 얼씨구! 역시 공간이 크지 않으니 아주 순식간에 떨어지는 적들, 레벨도 아주 낮아 보였다. 거의 50~60 정도? 이 정도면 수천 명도 문제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있는 복도가 공간이 좁다 보니, 수십 명밖에 들어올 수가 없었다. 아무리 레벨이 낮아도 수천 명이 넓은 곳에서 달려든다면 실수로 맞을 확률이 높아 죽을 수도 있지만, 이런 데에선 그런 문제도 없었다. “흐아아아아!” “죽어, 죽어!” 무지 열심히 싸우는 테피언과 케미리. 테피언은 검에 핏빛의 검기를 만든 채 아주 쓱싹쓱싹 베었다. 검으로 막아도 베고 방패로 막아도 베었다. 한마디로 테피언의 대검은 모든 것을 쓸었다. 그에 비해 케미리는 작은 몸집과 스피드로 적을 제압해 나갔다. 순식간에 이동한 케미리는 와이어로 상대방의 중요한 부분만을 노려 깨끗하게 목숨을 빼앗았다. 예를 들어 동맥을 끊는다든지 하는 방법이었다. 정말 어쌔신은 어쌔신인것 같았다. 그에 비해 나는……. “저 인간 뭐야?” “막아! 막아!” “젠장! 미친 거 아니야!” -야, 내가 무슨! 우아아아아! 하지 마, 하지 마! 열심히 지팡이로 패고 있었다. 아, 정말 이 지팡이, 주운다음 쓸모가 없었는데, 은근히 타격감이 괜찮았다. 그뿐 아니라 데미지도 괜찮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자주 쓸걸. 난 그렇게 어떻게 해서든 쓸모없는 지팡이를 쓸모 있게 만들기 위해 성심성의껏 지팡이로 아주 자근자근 팼다. 퍼퍼퍽! -우에에에! 하지 마라니까! 어지러워! 지팡이가 어지러움도 느끼니? 난 새로운 사실에 의아했지만 그것도 잠시, 사악한 웃음을 지었다. 이놈이 시끄럽게 굴면 지금처럼 하면 된다는 것. 한마디로 약점을 잡은 것이었다. -제발! 난 절규하는 로케리스를 보고 그만 패기로 했다. 재미있었는데, 쳇. 그나저나 지팡이가 멀미를 느끼다니, 이제는 이 엽기적인 상황을 당연한 듯 받아들이는 내 자신을 내가 알 수가 없었다. “헉! 지팡이를 넣었다!” “전원 공격!” “죽여!” “저 인간부터 죽여!” “어서!” 지팡이에 맞은 놈들이 특히 더 지랄하면서 나를 죽이라고 성화를 부렸고, 난 그 모습에 웃음을 지었다. 어차피 지팡이는 주 공격용 무기가 아니었으니……. 활(Bow) 소환. 인첸트 풍(風). 다중 공격 능력 활성화! -타겟팅 조정합니다. 공격 인원수를 정해 주십시오. “내 앞에 있는 적들…….” -타겟팅을 설정하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빠져나가는 마나와 더불어 무형의 화살에 몰아치는 바람의 기운. 처음 봤다. 솔직히 말해 풍 속성 인첸트는 처음이었다. 워낙 바쁘게 살다 보니 막상 전투를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리 많은 적을 한꺼번에 죽일 수는 없었다. 인원이 제한될 수밖에 없는 복도는 우리가 유리하게 싸울 수 있는 곳인 반면 다중 공격 능력을 활성화하기에는 오히려 좋지 않은 곳이었다. “뭐, 뭐야!?” “구, 궁수?” “궁수라니? 난 저런 궁수는…….” “이건 뭐야!” 나를 보고 웅성거리는 적들. 대부분 궁수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무형의 화살을 만들어 내기는 힘들었다. 물론 레벨이 높아지면 만들 수 있지만 나는 처음부터 무형의 화살을 만들어 낸 데다 바람의 기운까지 씌웠으니 놀라울 것이었다. 휘이익! “피해!” “방패조 막아!” 내가 화살을 쏘자 다급하게 외치는 적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방패로 막아도 늦다. 모든 걸 부숴 버릴 테니까 말이다. 그나저나 즉사라는 게 발동되려나? 쿠우우우웅! “으아아악!” “으아악!” “살려……!” 하지만 즉사도 필요 없을 것 같았다. 화살이 지나간 자리에 있는 적들은 이미 모두 소멸되었으니까. 어마어마한 관통력과 절삭력이었다. 적을 분해도 하지 않고 없애 버리다니, 흐음……. “히히히힉. 괴, 괴물이다.” “사, 사신이다.” “주, 죽음의…….” 뭔 헛소리여, 저것들은? 단 한 방에 겁을 먹어 버린 데스 길드. 이 지부가 아무리 정식 지부가 아니라도 실망스러웠다. 그러고 보니 화살은 어마어마한 관통력으로 꾸역꾸역 밀려오는 것들까지 한꺼번에 다 소멸시켜 버렸다. “후후후. 이게 우리의 힘이다!” 모두들 두려움에 뒤로 물러서자 케미리가 거만하게 나섰다. 난 그 모습을 보고 왠지 모르게 불길한 기분이 들어 케미리를 부르려고 했다. 하지만 케미리는 복도에 있는 그것도 바로 옆에 있는 이상한 골렘 동상에 올라가더니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하하! 피라미들, 나를 떠받들어라.” “……지랄한다.” “우하하하!” 하지만 나의 속삭임(?)은 들어오지 않는지 케미리는 계속해서 헛소리를 해 댔다. 난 그런 케미리를 끌어내리기 위해 동상 근처로 갔다. 물론 테피언도 함께. 바로 그 순간! 번쩍! “끄아악! 뭐, 뭐야?” “무, 무슨 일이지, 마스터?” “우엑! 케미리 살려!” 나와 테피언, 케미리를 뒤덮는 빛, 그 빛은 우리 세 명만을 감쌌다. 그러더니 내 몸은 어딘가로 이동되었다. 네러리스는 가볍게 손을 저었다. 콰아아앙! 역시나 파괴의 마도사라는 별명답게 어마어마한 파괴력으로 단숨에 수십 명을 제압해 버렸다. “…….” “…….” 그러자 상대방들은 위축된 얼굴로 네러리스를 바라보았다. 현실이든 게임이든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전쟁에서는 강력한 한 사람이 영향력이 크다는 것. 강력한 사람은 수많은 적들을 상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금처럼 상대방을 위축시킬 수 있다. 그와 동시에 생기는 불안감, 저 남자 근처에 가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물론 이곳은 게임인 관계로 현실 세계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죽는다는 건 기분 좋은 게 아니었다. 워낙 페널티도 심하고 말이다. “후훗! 겁먹었나?” 움찔. 네러리스의 한마디에 움찔하는 적들. 실질적으로 네러리스의 말처럼 겁먹었다는 걸 의미했다. “오늘 너희들의 정체를 샅샅이 파해쳐 주지! 중요 인물들은 포획해라!” “네!” “알겠습니다!” 그 말에 네러리스의 부하들은 엄청나게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상대방의 기운을 빼놓고 아군의 사기를 올리는 힘, 그래서 강력한 자는 집단 싸움에서 꼭 필요했다. “그렇게는 안 됩니다.” “넌 뭐냐?” 바로 그때 네러리스의 앞에 나타난 남자. 로브를 쓰고 있어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 분위기 만으로도 무언가 압도하는 느낌을 주었다. 그뿐 아니라 등에멘 독특한 관까지 그 분위기를 더했다. 꿀꺽. 네러리스는 본능적으로 남자가 예사롭지 않다는 걸 느꼈다. “도를 믿으십니까?” “…….” “아쉽군요. 믿지 않는다는 소리입니까?” “무슨 꿍꿍이냐!” 네러니스는 잔뜩 긴장을 하고 있다가 그 남자의 황당한 질문에 소리를 질렀고, 남자는 안타까운 듯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아쉽습니다. 도를 믿는다면 좀 더 행복한 죽음을 선사했을 텐데요.” “…….” “그럼 시작해 볼까요?” “…….” 네러리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남자는 어마어마한 기운만으로도 자신을 압도했다. 게임에서 이런 말도 안 되는 힘을 느끼게 한 사람은 길드 마스터를 제외하고는 처음이었다. 쉬이익! 바로 그때 남자가 엄청난 속도로 네러리스에게 달려왔고, 부하들은 그런 그 남자를 막으려고 했지만 눈 깜박할 사이에 놓쳐 버렸다. 검을 휘둘렀지만 그 자리에는 잔상만이 남았다는 소리였다. “…….” “왜 대답이 없으신가요?” 네러리스는 순식간에 다가온 남자가 하는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이미 모든 행동 기관이 굳어 버린 것이었다. “그럼 이만…….” 스윽. 그 말과 함께 등에 멘 어마어마한 관을 꺼내 든 남자는 그것을 그대로 네러리스를 향해 휘두르기 시작했다. 퍼퍼퍼퍽! “으악! 으악!” 퍼퍼퍼퍽! “크아악!” 네러리스는 고통에 비명을 계속 질러 대다가 관에 맞아 죽었다. 죽는 방법도 정말 최악의 죽음이었다. 설마 관에 맞아 죽을 줄이야……. “우아아아!” “우아아아!” “…….” “…….” 그 모습을 본 길드원들의 반응은 엇갈렸고, 잠시 후 로브로 가린 남자는 다시 관을 등에 메면서 말햇다. “플레스님,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후훗.” “젠장! 너 정말 죽을래?” “헉! 난 정말 억울해!” 난 뒷골이 당겼다. 성에 들어가기 전에 내가 자상한(?) 말투로 그렇게 충고를 했건만 케미리가 또 사고를 친 것이다. 물론 이번에는 뭐 닭대가리여서 그런 게 아니라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었지만 어찌 됐든 원흉은 저놈이었다. “아이잉. 마스터, 용서해 줄 거지?” “…….” “아이이잉. 용서해 준다고?” “…….” “아이이이잉. 그럼 고마…….” 터억! 난 괴상한 짓거리를 해 대는 케미리를 들어 올려서 내 눈에 맞췄다. 이놈, 정말로 돈 거냐? 물론 케미리의 외형적인 모습은 귀여웠다. 정말 귀여운 강아지였다. 하지만 이 새끼가 이런 괴이한 애교를 부리자, 오히려 기분이 더 나빠졌다. “헉! 왜, 왜 그래?” “그냥 네가 보고 싶어서…….” “마스터, 드디어 미친 거구나.” 빙글빙글. “으아악!” 난 그대로 케미리를 마구 돌리기 시작했다. 정말 다른 사람이 보면 개 학대 장면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이놈은 개라고 보기에는 독특한 생물체였다. 난 나름대로 순수하게 살려고 노력했지만, 이놈이 나를 계속해서 톡톡 건드렸다. 나는 그렇게 한참을 케미리를 마구 돌린 뒤 밟았다. 퍼퍼퍽! “으엑! 으엑!” 이상한 비명 소리를 지르는 케미리. 난 그런 케미리의 비명 소리는 신경 쓰지 않은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우리가 갑작스럽게 이동된 곳은 어마어마한 크기의 홀 이였다. 천장까지 수백 미터 이상의 높이에 넓이 또한 수백 미터 이상이었다. 설마 또 드래곤 레어? 골렘 동상을 만졌는데 드래곤 레어에 올 확률은 없었다. 드래곤이 할 짓이 없어 그 골렘 동상에 마법이라도 걸어 놓았으면 모를까, 그럴 일을 제외하고는 없겠지만 난 방심할 수 없었다. 난 저주받은 인간이었으니까. “마, 마스터, 자비를……. 꾸에엑.” 퍼퍼퍽. “요, 용서…….” 퍼퍼퍽! “말 잘 들을…….” 난 케미리의 말을 다 무시하면서 열심히 팼다. 분명 오토스틱(?) 기능을 제공하고 있었다. 내 몸이 아마도 상황에 따라 진화를 한 것 같았다. 지금 난 딴생각을 하고 있는데 발은 케미리를 밟고 있으니, 참 편리하고도 오묘한 기능이었다. 쿠우우우웅! 한참 동안 케미리를 밟던 난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지진에 발길질을 멈추었다. 그리고 우리 앞에서 바닥을 뚫고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골렘. 우리는 멍하니 그걸 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바닥을 뚫고 나온 골렘은 믿을 수 없게도 100미터 이상이나 되는 키기였다. “저건 뭐니?” “…….” “…….” 나의 말에 테피언과 케미리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난 살다 살다 100미터도 넘는 골렘은 처음 봤다. 100미터면 내 키의 거의 50배 이상이었다. “쿠아아아앙!” “우에엑.” “커억.” 바로 그때 골렘의 소리 한 방에 주저앉은 테피언과 케미리. 솔직히 말해 나도 주저앉고 싶었다. 그만큼 그 골렘의 소리는 우리에게 벌써 1차 타격을 준 것이었다. 난 귀가 아픈 걸 참아 내면서 침착하게 그 골렘을 바라보았다. 끝도 보이지 않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골렘, 고개를 올리니 목이 아플 지경이었다. 내가 그리 정보에 밝은 편은 아니었지만 이런 몬스터가 있다는 말은 들어 본 적도 없었다. “설마 수호의 골렘?!” 바로 그때 나의 머릿속을 스치는 정보. 길드를 부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흔히 쓰는 방법으로는 길드 마스터를 제압하고 나서 죽이는 것이다. 하지만 그 방법 말고도 상대방을 한 명도 죽이지 않고 끝내는 방법이 있었다. 수호의 골렘을 부수는 것이다. 물론 수호의 골렘을 만나는 곳으로 들어가는 방법은 엄청나게 어려웠다. 솔직히 동상이 수호의 골렘과 연결되어 있으리라고는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닭대가리인 케미리에 의해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하지만 좋은 건 하나도 없었다. 만약에 수호의 골렘을 죽이는 게 수월하다면 이 방법이 통할 것이다. 왜 일일이 상대방을 죽이면서 길드 마스터를 처리하겠는가? 그건 이 수호의 골렘이 무섭도록 강했기 때문이었다. 저번에 내가 듣기로는 한 1,000명 정도 되는 길드원들이 성을 빼앗기 위해 한 길드를 급습했다. 그 성에는 100명밖에 안 되는 소수의 길드원만 있었기에 사람들은 당연히 급습한 길드가 가볍게 이길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 누군가가 실수로 이곳 수호의 고렘 방에 들어와 버렸다. 물론 처음 본 길드원들이었기에 그들은 쪽수를 믿고 덤볐지만 수호의 골렘한테 자근자근 밟혀 죽고 말았다. 그게 약 1분 2초라던가? “크아아아앙아앙!” “크으윽!” 귀청 떨어지겠다! 난 나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그만큼 저놈의 굉음만으로도 어마어마한 타격이었다. 밟혀서 죽기 전에 저 굉음에 죽을 것 같았다. “적…… 처리……한다.” 말도 하네? 그런데 말 한마디 했을 뿐인데 무지하게 시끄러웠다. 아, 거짓말 안하고 한 10번만 크아아앙 소리를 들어도 죽을 것 같았다. 몸집과 비례해 소리도 어마어마했다. “젠장, 닥쳐. 돌 주제에!” “죽고 싶냐?” 바로 그때, 소리에 타격을 받아 엎어져 있던 테피언과 케미리가 벌떡 일어나면서 한마디 했다. 난 그 모습을 보고 흐ant했다. 참 강하게 키웠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었다. 깡통 주제에 돌을 비하하다니, 같은 가족(?) 아닌가? “죽……인……다.” 또다시 들려온 골렘의 한마디. 정말 귀 아팠다. 이러다가 고막 다 터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 ‘크아아앙’ 하는 굉음보다는 낮았음에도 워낙 목소리가 큰 까닭에 말을 해도 귀가 터질 듯이 아팠다. “꿈도 야무지다.” 츠윽! 그 말과 함께 자신의 대검을 뽑고 달려 나가는 테피언. 참 저놈도 많이 발전했다. 처음에는 전투는 죽어도 안 하려고 하더니 요새는 내 사랑의 대화(?)에 의해 꽤 적극적이 되었다. 어찌 됐는 테피언은 그 100미터짜리 골렘을 향해 달려갔고, 칼질을 했다. 퍽퍽퍽! “죽어라!” 죽이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렇지만 테피언은 열심히 칼질했다. 크기가 너무 차이 나서 그런지 보는 내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때 케르베로스는 15미터, 이놈은 100미터였다. “쿠아아앙!” 퍼억! 자신의 발가락쯤에서 괴이한 물체가 칼질을 하자 수호의 골레은 간지러웠는지 그냥 밟았고, 칼질을 하던 테피언은 그 모습을 보고 다급하게 뒤로 빠졌다. “헉! 주, 죽을 뻔했어.” 저번에 케르베로스한테 밟혔을 때와는 격이 달랐다. 저 골렘한테 밟히면 아무리 강력한 방어력을 자랑하는 테피언도 그대로 작살날 게 분명했다. 슬금슬금. 그때 누군가가 기어가는 소리가 들려와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거기에는 케미리가 살금살금 도망가는 것이 보였다. “사, 살아야 돼. 난 죽기 싫어…….” 그놈은 혼자서 아주 자그마하게 속삭이면서 도망가고 있었다. 그걸 보고 탄식을 금치 못했다. 정말 어떻게 저 정도로 치졸해질 수 있는 거지? 시간이 지날수록 비굴과 치졸, 배신을 더 자주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은 나만의 착각인가? “너, 뭐 하니?” “마, 마스터…….” “내가 물었잖니. 뭐 하는 거니?” “그, 그냥…….” “그냥 뭐?” “마 맞아! 증원군을 부르러 가려고 했어!” 이곳에서 나갈 길은 보이지도 않는데 웬 증원군? 정말 변명도 좀 말이 되는 변명을 해야지……. 그리고 증원군이 와도 그리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그렇구나? 우리 케미리, 참 착해?” “헤헤헤! 뭘.” 나, 나의 칭찬에 해맑게 웃는 개 한 마리, 정말 닭대가리다. 난 너무나도 해맑게 웃는 케미리를 보면서 싱긋 웃다가 갑자기 차가운 표정으로 돌변하면서 말했다. “나중에 보자.” “헉!” 난 나중을 기약하기로 했다. 지금 앞에 있는 적을 놔두고 케미리를 팰 수는 없었다. 그러다가 실수로 한 방이라도 밟히면 잘 다져진 호떡이 되어 버릴 게 분명했다. “하아아압!” 바로 그때 믿어지지 않는 현상이 일어났다. 방금까지도 도망가려고 했던 케미리가 진지한 표정을 지은 채 달려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마스터, 오해하지 마. 방금 그건 장난이었어.” 정말 장난이었냐? 내가 보기에는 진심 같아 보였는데……. 어찌 됐든 케미리는 비장한 각오로 골렘에게 달려들었고, 그걸 본 나도 같이 달려들기로 했다. 한 명보다는 두 명이나으니……. 검(Sword) 소환. 인첸트 풍(風)! 파지짓! 나의 소환과 함께 검에 바람의 기운이 몰아쳤다. 한번 즉사라는 걸 노려보고 싶기는 했지만. 저런 놈한테는 발동도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죽어라! 죽어라!” 케미리는 정말 열심히 이쪽저쪽 다니면서 와이어로 골렘에게 타격을 주려고 했지만,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그런 케미리가 골렘의 크기와 비례해서 더욱 애처로워 보였다. “헉헉…….” 케미리는 그렇게 한참을 빠른 속도로 공격했고, 나도 어마어마한 공격으로 풍 속성이 인첸트된 검을 열심히 휘둘렀다. 근데 휘두를수록 비참해졌다. 100미터나 되는 골렘의 발가락에서 설쳐야 하는 기분, 직접 하지 않으면 모른다. 그렇게 테피언도 참가했고, 우리 셋은 열심히 골렘 발가락을 향해 공격했다. 그렇게 10분 동안 공격했지만 우리는 골렘에게 0.00000000001%도 피해를 주지 못하고 지쳐만 갔다. “헉헉.” “헉! 주, 죽을 것 같다, 마스터.” “나, 나중에 살아 나가면……. 헉헉.” 그렇게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데 10분 전부터 이상하게 가만히 있던 골렘이 갑작스럽게 움직였다. 쿠우웅! 헉! 저놈, 우리가 보이는 건가? 크기만으로도 엄청나서 저놈의 머리통을 우리들이 보기가 무리여듯 이놈도 분명 발가락에서 얼쩡거리는 우리를 볼 확률은 없었다. 그런데 마치 기다린 듯이 우리의 공격이 끝나자 그 큼직한 다리를 들어 올리다니, 설마 곳곳에 예비용 눈알이라도 있는 거 아니야? 번쩍! 바로 그때 나의 그런 상상이 현실로 나타났다. 골렘의 온몸에 눈이 생겨난 것이다. 정말 온몸에 눈알이 있을 줄이야, 이건 이미 초특급 괴물이었다. 스르륵! 난 혹시나 해서 그 눈이 생긴 곳을 향해 검을 찔렀지만, 갑작스럽게 떠진 눈은 이내 사라졌다. 타앙! 당연히 검과 돌이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난 절망했다. 젠장! 저 케미리 때문에 오늘 또 죽을 것 같았다. 바로 그때……. -검(Sword) 3단계로 진화합니다. 새로운 능력 일루전(환상)이 추가되었습니다. 난 지화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 하지만 마냥 좋아할 수는 없었다. 이 괴물은 절대 물리적인 공격이 통하지 않았다. 검에 추가된 새로운 능력에 대해서는 아직 모르지만, 어찌 됐든 분명 통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쳇! 어쩔 수 없구만. “야, 로케리스! 이럴 때는 좀…….” -도와주마. “도와주…… 뭐, 뭐라고? 방금…….” -도와준다고. “쿠헤헤헤.” 난 너무나도 어이가 없어 평소 하지도 않던 괴상한 웃음소리로 웃었다. 그만큼 황당했다. -도와준다니까! “쿠헤헤헤. 네가 뭘 도와줘? 그냥 가만히 있어. 넌 마나나 가져가지 않는 게 도움이야.” -이이이! 그래, 내 실력을 보여 주지! 로케리스는 분하다는 듯이 치를 떨더니 다시 말했다. -어서 나를 들어. “싫은데?” --싫으면 계속해서 노래 부를 거다! 그래서 너의 마나를 다 갉아먹을 거다! 난 그 말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 로케리스를 들었다. 그래, 한 번은 믿어 주기로 했다. 딱 한 번만, 딱 한 번만! 그런데 왜 손이 부들부들 떨리지? 바로 그 순간……. “허어어억!” 순식간에 빨려 들어가는 마나. “무, 무슨 짓이야!” 하지만 나의 절규는 무시한 채 로케리스는 내 몸에 있던 어마어마한 양의 마나를 순식간에 대량으로 가져간 뒤에 뻔뻔하게 말했다. -이제 스킬을 외쳐. “스킬?” -어서 내 말대로! 일루케이트 스위츠. 엘리멘탈 엔티어! 헉! 난 그 말에 경악했다. 일루케이트 스위츠는 나의 공격력을 마법 공격력으로 변환하는 마법이고 엘리멘탈 엔티어는 일주일에 단 한 번 모든 마법을 2.5배로 증폭시키는 기능이다. 그런데 그중에 일루케이트 스위츠를 한 번 쓰면 나의 마나는 올인이었다. 바로 크레리스가 워낙 많은 마나를 가져갔기에 일루케이트 스위츠를 쓰는 순간 난 아무것도 할 수가 없게 된다. 물론 평타가 무시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이미 저 어마어마한 크기의 골렘은 그런 공식은 성립되지 않으니……. -어서, 주인! “알겠다.” 난 도통 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미 일은 벌어졌기에 로케리스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그래, 한 번에 올인이다. “일루케이트 스위치.” 파짓! 그 말과 함께 나의 어마어마한 공격력이 마법 공격력으로 변환디면서 지팡이에 들어갔고, 잠시 후 난 나머지 최강의 스킬을 외쳤다. “엘리멘탈 엔티어!” 파짓! 그 말과 함께 증폭되는 마법. 솔직한 말로 마법에 별로 조예가 깊지 않은 내가 봐도 어마어마한 마법력이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였다. -주인, 수고했어! 이제는 내가 할 차례지! 영혼조차도 소멸시켜 버리는 거대한 영혼의 불. 지금 나 로케리스의 이름으로 명한다. 영혼의 불로 내 앞에 있는 적을 소멸시키리라. 멜 파이어! 헬 파이어? 난 내가 잘못 들었나 했다. 하지만 분명히 헬 파이어라고 난 들었다. 헬 파이어는 8서클 마법이자 최강의 공격계 불 마법이었다. 물론 9서클 마법 중에는 그것보다 더 강력한 마법이 있지만, 8서클까지 따지면 헬 파이어라는 공격 마법이 제일 강했다. “헉!” “헉!” 한편 어느새 나에게 붙어 그 모습을 지켜보던 테피언과 케미리는 놀라서 헉 소리를 냈고, 바로 그때 마침 골렘은 우리를 짓밟기 위해 발을 든 상태였다. 로케리스에게서 나온 지옥의 불 같은 화염은 순식간에 그 골렘을 덮더니 이내 녹여 버렸다. 화르르르륵! 그 어마어마한 크기의 골렘을 마법 한 방으로 소멸시켜 버린 것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파괴력이라니, 보고도 믿어지지 않았다. “대, 대단하다, 로케리스.” 난 녹아 버린, 아니 불꽃에 깨끗이 소멸당한 그 100미터 이상의 골렘을 보고 로케리스를 불렀다. 분명 증폭과 물리 공격력을 마법 공격력으로 전환하는 것은 내가 했지만, 제일 중요한 마법은 로케리스가 써 주었기 때문이었다. -크윽! 젠장. 무리했어. 한동안은 작별……이군. “무, 무슨 말이냐?” -아무리 나라고 하더라도…… 8서클 마법을 쓰면…… 페널티가 엄청 많다고……. “…….” 난 그 말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런 초고위급 마법을 사용하면 페널티는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만약에 그렇지 않으면 로케리스만 들어도 단숨에 8서클 마법사가 될 테니, 아무리 전설급이라지만 그건 아니었다. -아마도 10일 정도는 못 볼 것 같군. 푹 쉬고 오지. “…….” -왜 말이 없나? 주인답지 않아. 크윽! 그리고 참고로 내가 깨어나면 풋풋한 10살 정도 아이를……. 잠시나마 고마워했던 내 자신이 미웠다. -그럼 이만. 스윽. 그 말과 함께 로케리스의 말소리가 사라지자, 난 도움 안 되는 놈이 사라졌는데도 왠지 모르게 공허했다. 원래 기뻐해야 정상 아닌가? -띠링. 수호의 골렘을 처리했습니다. 이 성은 수호의 골렘을 죽이신 분에게 자연스럽게 돌아갑니다. 난 그 말에 로케리스를 다시 등에 메었고, 잠시 후 테피언과 케미리를 보면서 말했다. “임무 끝이다. 가자.” 데스 길드가 괴이한 단체에게 습격당했다. 그 결과 31지부와 42지부가 괴멸을 당해 버렸다. 테이스 월드의 톱뉴스였다. 데스 길드에 대항하는 단체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라운데, 그 단체가 데스 길드를 향해 직접적으로 칼을 겨눈 것이었다. 사람들은 너도 나도 그 이야기를 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야, 42지부가 괴이한 생물체들한테 점거당했다면서?” “그걸 믿어? 그게 말이 돼? 괴상한 생물체들은 뭐야?” “흐음, 그러니까 인간 한 명하고 데스나이트 한 명하고 개 한 마리?” “푸헤헤헤헤헤. 야, 농담도 많이 늘었다. 그런 괴이한 파티가 아무리 약하다고 하더라도 데스 길드의 지부를 전명시켰다고?” “아니, 전멸이라기보다는 공격하다가 수호의 골렘을 죽였다던데…….” “너 뭐 잘못 처먹었냐?” “아, 아니.” “너도 잘 알잖아, 수호의 골렘!” 수호의 골렘은 유명했다. 측정 레벨 1,000 이상의 어마어마한 수호의 골렘을 해치웠다니, 그들이 생각하기에는 말이 안 되는 소문이었다. “그나저나 이 테이스 월드도 시끄러워지겠는데?” “아마도 그렇겠지?” 괴이한 생물체 3명은 이미 그들의 대화 사이에서 사라져 버렸다. 보기만 해도 차가워 얼어붙을 것 같은 얼음 안에 갇혀 있는 남자. 그 남자는 한 치의 미동도 없이 눈을 감고 있었다. 무기로 보이는 것도 없었고, 오직 몸 하나만이 그 얼음 속에 들어 있었다. 얼음에는 하나의 글귀가 적혀 있었다. 미안하다. 너를 가둘 수밖에 없는 나를 용서해라. 레키리안. 제2장 선물 유네 여자중학교. 시간이 지남에 따라 대부분의 학교가 남녀공학이 되었지만, 이 중학교는 몇 안 되는 여자중학교 중 한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 나오는 눈부시게 귀여운 한 여자 아이. 그녀의 이름은 한예화. 초재벌집의 자녀이자 지금 괴이한 파티에 포함된 불행이 가득한 소녀였다. 예화는 오늘따라 유독 표정이 밝았다. 오늘 집으로 민혁이를 초대했기 때문이었다. 항상 신세를 진다는 생각에 선물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막상 그러기에는 너무나도 쑥스러워서 머뭇거리다가 어제 힘들게 말한 것이었다. 그리고 민혁이는 초대에 흔쾌히 응해 주었다. “저, 저…….” “네?” 예화 앞에서 꽃다발을 든 채 말을 심하게 더듬는 남학생. 예화보다 한 살 많은 고등학교 1학년으로 보이는 남학생이였다. “저, 저기…….” “왜 그러세요?” “그, 그러니까…….” “말씀하세요.” 싱긋! 예화가 미소를 지으면서 말하자 그 모습에 남학생은 용기를 얻었는지 갑자기 꽃다발을 내밀면서 얼굴이 붉어진 채 말했다. “이, 이걸 받아 주세요!” “네?” “제, 제발 받아 주세요!” “저, 갑자기 꽃다발은…….” “당신을 보고 첫눈에 반했습니다.” 순식간에 정적이 감돌았다. 그 한마디에 주변을 지나가던 여학생들이 걸음을 멈추더니 영문을 알 수 없는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아, 오늘 또…….” “관 하나 오나?” “아직도 설명 못 들었나?” “꽤 유명할 텐데?” 그녀들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만, 예화와 그 남학생에게는 들리지 않는 소링였다. 한편 남학생의 고백을 받은 예화는 얼굴을 붉힌 채 있다가 90도로 인사를 했다.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아, 아니, 그, 그렇게…….” 예화가 90도가 다 되도록 허리를 굽히고 인사를 하자, 오히려 고백했던 남학생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예화는 얼굴이 붉어진 채 죄송하다는 말만 연발했다. 그것도 한 10번 이상……. “정말 죄송해요. 저…… 마음은 고맙습니다만…… 저는 이미 조, 좋…….” 그때 저 멀리서 예화의 시녀 다레가 천천히 다가왔다. “아가씨, 차가 대기 중입니다. 어서 가시지요.” “아, 네에. 그리고 정말 죄송합니다.” 예화는 꾸벅 인사를 하고 다급하게 차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차가 출발하자 퇴자 맞은 남학생은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때, 남학생 주변으로 검은색 양복을 입은 10명의 남자가 둘러싸기 시작했다. “누, 누구세요?” “감히 아가씨에게 고백해?” “그, 그게…….” “아니, 이놈이!” “제, 제가 뭘…… 잘못했는지는…….” 남학생이 영문을 몰라 묻자 검은색 양복의 남자가 손을 어루만지면서 말했다. “네가 그런 고백을 하면, 아가씨께서는 한동안 너무나도 죄송해 한단 말이다.” “…….” “오늘 확실히 보여 줘야 되겠군.” “자, 잠시! 저, 저는…….” “끌고 가!” “자, 잠시!” 그 남학생은 절규했지만 이미 검은색 양복의 남자들에게 마구 끌려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서러웠으면 보는 사람이 안타까울 지경이었다. 그 남학생은 끌려가지 않기 위해 발악을 했지만, 평범한 남학생이 덩치 큰 남자 10명을 감당할 수 있을 리는 만무했다. “아, 오랜만에 보네.” “응. 한동안 소문이 쫙 퍼져서 못 봤는데…….” “그나저나 신기하게 그 공주님 아가씨는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른다니까.” “그래?” “응.” 여자 아이들은 끌려가는 남학생을 보고 키득거렸고, 남학생은 그렇게 저 세계로 사라졌다. 그런 다음 들려온 소리는 참 구슬프고 아름다운(?) 소리였다고 한다. “…….” “아가씨. 그렇게 죄송해 할 필요 없습니다.” “아, 다레 씨.” “오늘 그분이 오신다고 하셨으니 표정 관리를 하셔야죠, 아가씨.” “그, 그렇겠죠? 그분한테는 정말 죄송하지만…….” 그 말에 다레는 싱긋 웃었다. 하지만 그녀는 속으로는 고개를 저었다. 도대체 이 아가씨가 재벌집 아가씨가 맞는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잘못 왔나?” 난 예화가 그려 준 지도를 따라왔는데, 그 지도의 최종 목적지는 문의 크기조차 짐작 안 가는 으리으리한 집이었다. “설마 예화가 이런 데서 사는 것은 아니겠지?” 그 문 안쪽은 얼마나 넓은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한마디로 끝이 안 보일 정도로 정말 컸다. “혹시 민혁님 되십니까?” “아, 네.” 난 갑작스럽게 나에게 묻는 한 남자를 보고 당황하면서 말했다. 평소라면 기척이라도 느꼈겠지만, 워낙 큰 집을 처음 봐서 그런지 약간 혼란스러웠다. “아가씨께서 귀빈실로 모시라고 하셨습니다.” “아가씨? 혹시 예화?” “그렇습니다.” 아, 아가씨라니. 이 집의 아가씨? 난 설마 했지만 사실로 드러나자 충격을 먹었다. 그 순진한 소녀가 이런 측정도 안 되는 재벌집의 아가씨라니. 이런 충격은 세리하 이후 처음이었다. “자, 어서 들어가시지요.” “아, 네.” 난 안내라는 남자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남자의 복장이 항상 영화나 애니에 나오는 집사복과 비슷해 보였기에 아마도 이 집의 집사일 거라고 짐작했다. 그 남자가 이상한 행동으로 그 튼 문을 열자 눈앞에 펼쳐진 끝도 보이지 않는 정원의 모습에 여전히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아 참, 그리고 들어가시면 어느 한 분을 조심하십시오.” “한 분?” “조심하시는 게 목숨을 지키는 길일 겁니다.” “…….”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이었다. “오빠는?” “형님과 예화 양, 두 분 다 오시지 않았습니다.” “둘 다?” “네.” 채은이는 민혁이와 더불어 예화가 게임에 접속하지 않았다는 말에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여자의 감……이 아니라 대부분 유추할 수 있는 감이었다. “나 오늘은 그만 할래.” 채은이는 그 말과 함께 로그아웃을 했고, 그걸 본 정우는 괴상한 미소를 지으면서 따라서 로그아웃을 했다. 정우는 이 상황을 즐기는 게 분명했다. “…….” 나는 집에 들어오자 더욱 충격을 받았다. 주변에는 한눈에도 엄청 비싸 보이는 물건들이 즐비했고 내가 앉아 있는 소파만 해도 어마어마하게 비싸 보였다. 앉는 느낌부터 평범한 소파랑은 아주 큰 차이가 났다. 그렇게 난 한참 동안을 주변을 둘러보았다.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대부분이 최소 몇백 만 원은 상회할 듯한 물건들이었다. 한국에 이런 집이 있다니 보고도 믿어지지가 않았다. 터벅터벅. 가벼운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자 난 예화인가 해서 고개를 돌렸지만, 거기에는 검은색 양복을 입은 30대 중반의 한 덩치 하는 아저씨가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네가 민혁이라는 놈이냐?” “아, 네.” 난 처음부터 적대적으로 말하는 그 아저씨를 보고 썩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일단은 예화의 집이었기에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다. “역시나 얼굴은 잘생겼군.” “가, 감사합니다.” “감사할 필요 없어. 넌 이제 여기에 묻힐 테니.” “네?” 스윽. 하지만 내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엄청난 속도로 다가오는 아저씨. 난생처음 보는 속도였다. “죽어라! 악이여!” “헉!” 난 갑작스럽게 날리는 덩치 아저씨의 큼지막한 주먹을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피해 냈고, 그 아저씨의 주먹은 그대로 소파에 꽂혔다. 그런데 그 푹신푹신하고 비싸 보이는 소파가 단 일격에 깊숙이 찢어졌다. “휴우. 나의 공격을 피해 내다니, 예사롭지 않은 놈이군.” “뭐, 뭡니까?” “알 필요 없다. 악은 제거한다!” 스윽! 다시 어마어마한 속도로 다가오는 아저씨의 모습을 보고 너무나도 당황했다. 갑작스럽게 나타나서 악이라는 둥 묻는다는 둥 영문을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하고 주먹을 날리니 어찌 당황하지 않을 수 있을까. 바로 그때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 면호님 또 시작이니?” “오늘 또 한 명 죽는 거야?” “아마도 죽이지는 않을 테지. 아가씨가 직접 초청했으니. 하지만 그리 무사하지는 않을 거야.” “참 불쌍해. 면호님은 너무나도 정열적이라니까.” 내 귀로 들어오는 정체불명의 소리. 아마도 나에게 간단한 음식이라도 갖다 주려고 했던 시녀들의 음성이 분명했다. 물론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라 나에게 뻗어 오는 저 주먹이 문제였지만 말이다. “악! 악! 악! 감히 우리 아가씨를 꼬시다니!” 여전히 그 아저씨는 이상한 소리를 하면서 나에게 주먹을 뻗었고, 내 몸은 무의식적으로 반응했다. 전에도 가끔씩 있는 일이었지만 게임에서 워낙 고달픈 삶을 산 이후 몸은 더욱 자연스럽게 움직여졌다. 스윽. 스피드와 파괴력이 담겨 있는 주먹이 나의 얼굴을 아슬아슬하게 지나쳤고, 난 그 아저씨의 벋어진 주먹을 그대로 잡아챘다. 하지만 아저씨는 곧바로 나머지 손을 주먹 쥔 채 자신의 손을 붙잡은 나의 팔을 향해 엄청난 파괴력을 담아 휘둘렀고, 난 그 모습을 보고 그대로 손을 놓았다. 그러자 다시 한번 허공을 젓는 그 아저씨의 주먹. 난 싱긋 웃었다. 빈틈이 보였던 것이었다. 그리고 참고로 난 이런 빈틈을 절대 놓치지 않는다. 난 그대로 몸을 휙 돌리면서 돌려차기를 시도했고 순식간에 내 오른쪽 다리가 그 아저씨의 목 근처에 가자 동작을 멈추었다. “…….” “…….” 그와 더불어 생긴 갑작스러운 이상한 분위기. 나의 다리는 돌려차기를 한 채 그 아저씨의 목 근처에 멈춰진 상태였고, 그 아저씨는 주먹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시, 실례요.” 난 다급하게 다리를 내리며 다시 자세를 잡았다. 바로 그때 갑작스러운 비명이 들려왔다. “꺄악! 말도 안 돼! 이곳에서 베스트 넘버 3인 면호님을 단 일격에 잠재우다니!” “정말 말도 안 된다고! 세계 각 고수들도 인정한 면호님을!” “특급이야!” 부르르……. 한편 그 말을 듣던 아저씨는 더욱 부르르 떨었고, 잠시 후 갑작스럽게 허리춤에서 무엇인가를 꺼냈다. “죽여 버리겠어!” “헉!” 그 아저씨가 꺼낸 것은 총이었다. 나같이 착한 학생을 향해 총을 들다니! 난 그 모습을 보고 당황했지만 금세 침착해졌다. 최대한 빨리 제압……. 퍼억! “캐액.” “미친놈.” “가진님…….” “감히 아가씨 손님한테 총을 들이대다니, 죽고 싶은 거냐?” “그, 그게…….” 갑작스럽게 나타난 한 남자. 그 남자도 방금 설치던 그 아저씨와 대략 나이가 비슷해 보였다. 그렇지만 그 남자는 검은색 양복이 아닌 평범한 옷을 입고 있었다. “끌고 가.” “가, 가진님!” 가진이라는 남자의 명령에 검은색 양복을 입은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와 그 이상한 아저씨를 데리고 사라졌다. 잠시 후 가진이라는 남자는 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실례했습니다.” “아, 아니에요.” “이곳에서 아가씨의 경비를 총 책임지고 있는 가진이라고 합니다.” “아, 네.” “저놈이 가끔씩 미친 짓을 하니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 아닙니다.” 난 그 아저씨를 향해 손을 저었다. 계속해서 사과를 하자 내가 더 당황스러웠다. 난 사과라는 걸 받아 본 적이 없었기에……. 예를 들어 닭대가리 삼인방, 그들은 자신들이 실수하면 더 뻔뻔하게 굴었다. 그놈들을 떠올리자 나의 혈압은 점점 상승 궤도를 올라갔다. 하아, 생각을 말자. “이제 머지않아 아가씨가 나오실 겁니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남자는 그 말과 함께 뒤돌아섰고, 난 그 모습을 보고 조금은 안심했다. 역시 재벌집이어서 그런지 참 독특한 인사였다. 원래 재벌집이 다 이렇게 인사를 하는 것은 아니겠지? 만약에 그렇다면 다음부터는 재벌집에 가는 것을 다시 한 번 고려 봐야겠다. “오빠, 늦어서 죄송해요.” “아, 예화야.” 난 발목까지 오는 원피스를 입고 나오는 예화를 보고 반가워서 인사했다. 이 저택에 들어온 후 계속해서 놀랐기에 이런 친숙한 예화의 얼굴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머리는 게임에서처럼 긴 흑발을 길게 늘어뜨린 상태였고, 원피스는 어떻게 보면 수수해 보이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비싸 보이는 독특한 느낌을 주었다. 원피스는 상당히 소화하기 힘든 옷인데 역시 외모 자체가 상당히 귀여웠기에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그나저나 난 예화가 무릎까지 오는 치마를 입는 것을 본적이 없었다. 게임에서도 약간 칙칙해 보이는 마법사 로브 차림이었고 오늘 처음 본 현실 세계에서의 옷도 발목까지 오는 원피스였다. 아마도 쑥스러워서 짧은 옷 자체를 입지 않는 듯싶었다. 유난히 숫기가 없으니까. 그에 반해 채은이는 가끔이지만 무릎까지 오는 치마를 입고 다닌다. 그런 날에 같이 밖에 나가면 남자들의 너무나도 정열적인 눈빛에 내가 무안할 정도였다. 그나저나 채은이도 무릎 위로 올라가는 치마를 입는 것을 본 적이 없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는 걸 보니 꼭 변태 같았다. 아니, 내가 로리 지팡이 로케리스나 할 만한 변태 같은 상상을 하다니! 뭐 자그마한 남자의 작은 본색 정도였지만…….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아, 아니야.” 그런 고상한(?) 생각에 잠긴 나를 향해 예화가 묻자 난 다급하게 아니라고 말했다. 사실 왜 치마가 무릎 위로 올라가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했다고는 말 못하겠다. “오빠, 배고프시죠?” “아, 그러고 보니 배고프다. 오늘 아침부터 굶었으니.” 지금 시간은 오후 7시, 어제 저녁에 채은이가 차려 준 밥을 먹은 이후로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상태였다. “어서 가요, 오빠.” “고맙다.” “뭘요. 보답하고 싶었으니까요.” 보답? 내가 뭘 그리 해 줬지? 고생만 시켰는데. 난 오히려 예화가 이런 괴상한 파티에 같이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고마웠다. 만약 예화가 없었다면 난 이미 닭대가리 3형제랑 같이 어울려서 닭대가리 4형제가 됐을 확률도 높았다. 그것들은 워낙 전염성이 심한 놈들이니까……. 예화는 진심으로 민혁이에게 고마워하고 있었다. 아직도 그때의 말이 잊혀지지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을 지킨다는 말. 그 말만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화끈해지는 예화였다. 물론 민혁이가 어떤 의미로 그런 소리를 했는지 예화를 제외하고 대부분 알고 있겠지만……. “헉!” 내 앞에 있는 끝도 보이지 않는 음식들. 대략 유추해 보아도 100가지가 넘어가는 음식들이었다. 그것도 전 세계 요리. “입맛에 맞을지 모르겠어요.” 그럼 입맛에 맞아야겠지. 저렇게나 많은데……. 난 걱정스러워 하는 예화를 보고 걱정하지 말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나저나 저 신기하게 생긴 음식들은 뭐지? 저런 괴이한 음식들을 제외하고도 가끔씩 티브이에서나 보던 각종 유명한 요리들도 잔뜩 있었다. 아 참, 그러고 보니 채은이도 이런 거는 못 먹어 봤겠지? “예화야, 미안한데 음식 조금만 싸 줄 수 있어?” “물론이예요. 오빠의 말이라면…….” “…….” 저 말을 무슨 의미로 해석해야 할까? 누가 들으면 이상하게 여길 대사였다. 설마 아무런 의미도 아니겠지? 어찌 됐든 음식을 싸 주면 채은이에 갖다 줄 예정이었다. 그리고 덤으로 정우까지 “고맙다, 예화야. 잘 먹었어.” “뭘요?” 나는 정말 배 터져 죽을 만큼 많이 먹었다. 평생 이런 기회가 다시 오기는 힘들 것이기에, 그리고 배 속에 저장도 할겸 열심히 먹었다. “그, 그리고 이거…….” 포만감에 너무나도 행복해 하는 내게 얼굴을 붉힌 채 예화가 선물 상자를 내밀었다. “이게 뭐야?” “선물……요.” “헉! 방금 그 식사가 선물 아니야?” “그, 그럴 리가요. 이게 선물이에요. 마음데 드실지 모르겠지만…….” “하번 열어 봐도 될까?” “네…….” 내 말에 거의 기어들어 가다시피 말하는 예화였고, 난 그 모습을 보고 더욱 궁금증이 밀려왔다. 뭐지? 뭐기에 저런 반응을? 포장을 뜯고 상자를 열어 보니 거기에는 은빛 목걸이 하나가 있었다. “이건?” “제가 직접 만들어 봤는데, 마음에 드세요?” “물론!” 난 그 말에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진짜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얼굴도 예쁘고 성격도 착한 예화가 이런 것도 잘 만들다니 놀라웠다. “저, 정말요?” “물론이지!” 나의 말에 급속히 얼굴이 밝아지는 예화. 무엇보다도 예화가 성심성의껏 만들어 준 선물이기에 마음에 들었다. “고, 고마워요.” “고맙기는……. 내가 고맙지, 이런 선물도 해 주고 나랑 같이 다녀 줘서.” “…….” 어, 어라? 내가 뭘 잘못 말했나? 갑작스럽게 고개를 푹 숙인 예화. 흐음, 어디 아픈가? 그나저나 벌써 9시가 되어 버렸군. 이제 가 봐야 할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채은이랑 정우한테는 예화네 집에 온다는 말도 하지 못한 상태였다. 나는 가난한 관계로 핸드폰도 없었다. 비참한 내 인생. “예화야, 어디 아프면 푹 쉬어. 난 이만 가 볼게.” “아, 네.” 나의 마에 고개를 든 예화는 아직도 얼굴이 붉어진 상태였다. “그럼 난 이만 가 볼게.” “조심해서 가세요. 그리고…… 내일 뵈어요.” “응.” 난 그렇게 예화가 직접 만들어 준 목걸이를 착용하고 나서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했고,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한편 예화는 민혁이의 말이 계속 신경 쓰였다. ‘나랑 같이 다녀 줘서…….’ 오해는 참으로 아름다웠다. 민혁이는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닌 듯싶은데……. 그리고 민혁이는 몰랐다. 예화가 재능이 있어서 목걸이를 만들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녀는 한 달 동안 그걸 만들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다는 사실을……. 배부르다! 나의 지금 상황, 너무 행복했다. 행복해도 베리 굿하게 행복했다. “어, 어라? 집에 불이 켜졌네?” 내가 집에 없는데 불이 켜져 있다는 것은 채은이가 와 있다는 뜻이었다. 우리 집 열쇠는 나와 채은이밖에 가지고 있지 않으니까 말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거기에는 채은이가 평소 모습 그대로 음식을 차려 놓고 있었다. 헉! 맞다! 난 그 모습을 보고 실수했다는 걸 깨달았다. 채은이에게 한마디도 안 했더니 음식을 차려 놓은 것이었다. 채은이 음식이 아무리 맛있어도 이미 저장까지 한 내 배에 더 이상 집어넣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오빠, 왔어?” “어. 그런데 어떡하지? 채은아, 나 밥 먹고 왔는데…….” “흐음, 누구네 집에서?” “예화의 집에서…….” “그래?” 그렇게 말하면서 웃는 채은이. 그런데 웃는 것치고는 좀 이상했다. 아마도 음식을 다 차려 놨는데, 내가 먹고 왔다니 기분이 좋지 않은 게 분명했다. “아, 실수로 잊어버렸어. 그리고 내가 너를 위해서 음식을 잔뜩 싸 왔다. 걱정 마! 예화네 집이 완전 초부잣집이던데?” 난 가져온 음식 한 보따리를 꺼내기 시작했고, 그걸 보던 채은이는 나를 향해 말했다. “나를 위해서?” “그럼 채은이 때문이지 누굴 위해서이겠냐? 물론 정우라는 덤 옵션도 있지만. 너도 이런 거 못 먹어 봤지?” 와락. “가, 갑자기 왜 그래?” 채은이가 갑자기 나를 껴안더니 아주 자그마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오빠, 고마워.” 고마울 거꺼지는……. 난 채은이에게 신세를 지는 몸, 만약에 채은이가 없었더라면 난 굶어 죽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따라 약간 이상한 느낌이 드는 것은 내 착각인가? “아, 나 화장실 좀 갔다 올게!” 채은이는 다시 밝은 표정을 지으면서 원래대로 돌아왔고, 난 그 모습을 보고 영문을 몰라서 고개를 저었다. 흐음, 왜 저러지? 무슨 고민이라도 있는 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채은이를 기다리던 중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덥석 껴안았다. “헉!” 지금 이고에 있는 사람은 나와 채은이. 그럼 나를 뒤에 껴안은 사람은 채은이? “후우…….” 그때 나의 목에 불어오는 입김. 헉! 채, 채은이가 언제부터 이리 대담해졌지? 이런 행동은 나의 사심을 마구 부추기는데……. “후……우.” 다시 한 번 불어오는 입김. “채, 채은아! 왜 그래?” 난 엄청 당황하면서 고개를 돌렸는데 거기에는 채은이는 커녕 정우 새끼가 있었다. “너, 뭐 하냐?” “입김 불어넣는 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 “좋으셨습니까?” “네놈 같으면 좋을 것 같으냐?!” 난 갑자기 분노가 폭발했고, 그대로 정우를 밟았다. 젠장, 좋았던 기분이 급하락 되었다. 어째 평화로운 하루는 나에게 없는 것일까?! 제3장 케미리 가출 사건 “헉! 정말이야, 세리하?” “정확한 정보는 아이네요, 주인님.” 난 세리하의 말에 너무나도 놀랐다. 5번째 히든 소환수에 대한 정보였는데, 그 소환수가 어느 동굴에서 얼음에 갇혀 있다는 내용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나도 들어 봤는데, 아마도 허위 정보인 것 같던데?” “허위 정보라고, 테피언?” 난 불쑥 끼어드는 테피언의 말을 듣고 그에게 무슨 말인지 알아듣게 말하라고 눈짓했다. 내 말에 테피언은 눈을 번쩍번쩍 빛냈다. “우리 6대 소환수들은 직접 마스터가 손을 쓰지 않는 이상 봉인을 푸는 게 불가능해. 물론 마스터라 하더라도 상당히 힘든 일이지. 그런 면에서 보면 5번째 소환수는 전대 웨폰인첸트가 가둬 버렸다는 이야기인데, 왜 웨폰인첸트가 우리 같은 인재를 가뒀겠어?” 별로 인재 같아 보이지는 않는데? 난 너무나도 자랑스럽게 말하는 테피언을 향해 차마 태클을 걸 수는 없었다. 난 문득 전대 웨폰인첸트라는 남자가 궁금해졌다. 이 게임에서 현재는 몇천 년이 흐른 후라는 설정이었기에 NPC들에게는 그런 기억이 설정돼 있었다. 물론 그만큼 살 수 있는 존재는 천족이나 마족, 드래곤, 엘프, 드워프 등 이종족이 전부겠지만……. “야, 근데 전대 마스터는 어떤 사람이었냐?” “몰라.” “모른다고?” 나 테피언의 너무나도 당당한 모른다는 말에 황당해서 물었고, 그 물음에 테피언은 불쾌한 어조로 말했다. “우리한테는 네가 1대 마스터라고. 우리 소환수들도 한번 바뀐 거야.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를 제외하고.” “…….” “뭐, 아직 살아 있을지도 모르지.” 전대 소환수들이 사아 있다고? 이건 충격이었다. 전대 소환수들도 지금처럼 닭대가리였을까? 아니면 지극히 정상적이고 멋있는 소한수들이었을까? 그런데 왠지 정상이었을 것 같다. “하지만 우리보다 덜 멋있을 게 분명해. 크헤크헤크헤.” 자화자찬에 어쩔 졸 모르는 테피언. 내 하나만 장담하마, 무조건 너희들보다는 전대 소환수들이 멋있었을 거라고. “그래, 네놈들 잘났다. 그나저나 한 놈이 안 보인다?” 난 그 말과 함께 손으로 일일이 가리키면서 인원수를 세기 시작했다. 30분 전부터 유독 조용하면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무엇인가 하나 빠진 느낌, 왠지 모를 공백감이 확확 와 닿았다. “피티언, 테피언, 세리하, 채은이, 예화, 정우, 그리고…… 에엑? 이 똥개 놈, 어디로 사라졌어?” 난 케미리가 안 보이자 당황해서 소리를 질렀고, 그런 내 반응을 보던 정우가 갑자기 쪽지 한 장을 내밀었다. “난 거듭 말하지만 남자한테는 관심 없다.” “아닙니다. 레브레터가 아닙니다.” “그럼?” “케미리 씨가 저한테 30분 뒤 형님에게 직접 전해 주라고한 쪽지입니다.” “케미리가?” 정우가 내민 쪽지에 손을 뻗는 그때 정우가 갑작기 그 쪽지를 휙 하고 뒤로 숨겼다. “너, 뭐 하냐?” “저를 사랑한고 외치시면…….” “진정 죽고 싶냐?” “아닙니다.” 내 말과 함께 공손히 종이를 내미는 정우. 조금이라도 평화롭게 해결이 안 되는 걸까? 난 선천적으로 평화(?)주의자였다. 그런데 그런 나를 주변에서 폭력주의자로 만들고 있었다. 그나마 채은이와 예화가 옆에 있어주었기에 다행이지, 안 그랬다면 저것들이 어떻게 될지 보장 못할 일이었다. “그럼 읽어 볼까?” 정우가 건넨 종이를 펼쳐 보는 순간, 내 머릿속으로 한 가지 생각이 파고들었다. 더럽게 글씨 못 쓰네. 뭐, 개가 인간의 글씨를 쓴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지만……. 그 종이에는 정말 보기에 안쓰러울 정도의 지렁이 글씨가 적혀 있었지만, 난 천천히 번역해서 읽기 시작했다. 마스터에게……. 이 편지를 보고 있을 때에는 아마 난 사라졌겠지. 그래, 난 사라졌어! 마스터 때문에……. 다른 말로 하면 가출! 언더스탠드? 마스터는 항상 죄 없는 나를 핍박했지. 솔직히 그 마음 이해해. 마스터가 나에게 질투를 느끼니까. 하지만, 이건 아니잖아? 아무리 내가 잘났더라도 아무 잘못 없는 나를 그리 핍박하디니! 그건 동물 학대야! 난 참았어. 순진(?)했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도저히 못해먹겠어! 아무리 참으려고 해도! 이제 난 떠나. 그러니 날 찾지 말아 줘. 그리고 그 더러운 성격 좀 고쳐. 순진한 애들 핍박 좀 하지 말고. 케미리가. 난 정말 어이가 없었다. 남들이 이 편지를 읽는다면 난 정말 나쁜 놈이 될 게 분명했다. 그런데 이놈이 가출했다는데 화가 나기는커녕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오빠. 무슨 일인데 그렇게 웃는 거야?” “아니, 너무 좋은 내용이 담겨 있어서…….” “……?” 난 채은이의 질문에 싱글벙글 웃으면서 대답했다. 내게 악담을 하고 가출했는데도 이리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내가 한참을 히죽거리고 있을 때, 마지막 줄에 한 마니가 더 적혀 있는 게 보였다. 아 참, 그리고 마스터의 주머니에 있는 5만 골드는 내가 가져가. 정신적 피해 보상으로. 고마워하라고. 이걸로 이제 깨끗해졌어. 5만 골드? 서, 설마……. 난 다급하게 주머니가 달려 있는 허리춤을 뒤졌다. 하지만 주머니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저번에 데스 길드를 공격한 대가로 13만 골드를 받았고, 이때까지 모은 돈의 대부분은 안전한 인벤토리 창에 집어넣었다. 하지만 5만 골드는 그때그때 쓰기 위해 꺼내 놓은 상태였다. 인벤토리 창을 뒤지는 건 시간도 많이 걸리고 귀찮으니까 미리 꺼내 놓은 것이었다. 그런데 그 5만 골드를 훔쳐간 것이다. “커어어억!” “왜, 왜 그러세요, 오빠?” “오빠, 왜 그래?” “형님!” “마스터!” “주인님.” 내가 뒤로 넘어질 것같이 보이자 일행들이 다급하게 달려왔다. 하지만 난 어마어마한 충격에 이미 뒤로 넘어가고 있었다. “주인님!” 그중 세리하가 빠른 속도로 제일 먼저 달려와 넘어지는 나를 껴안았다. 이 푹신한 건 뭐지? “어머, 주이님도 참……. 이걸 원하시고……?” “헉!” 난 다급하게 몸을 일으켰다. 방금 느꼈던 감촉은 세리하의 가슴? “…….” “…….” “채은아, 예화야, 오해야! 내가 일부러 그럴 리는 없잖니?” 나를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채은이와 얼굴이 붉어진 채 고개를 숙인 예화를 향해 침착한 어조로 말했고, 나의 진지한 표정이 먹혔는지 다행히도 믿는 분위기였다. 그나저나 그런게 문제가 아니라 이 케미리 자식! 난 케미리 그딴 놈이 가출하든 말든 알 바가 아니었지만 나의 5만 골드를 갖고 튀었다는 것은 중요한 문제였다. “이 새끼를!” 나는 이글이글 불타오르고 있었다. 나는 이 자리에서 맹세한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놈을 잡아서 보복하겠다고. 감히 나의 귀중한 5만 골드를 들고 도망가다니! 케미리는 진짜 떠날 마음은 없었다. 민혁이랑 다니는 게 은근히 재미있기도 했다. 하지만 잠시 동안의 휴식을 취하고 싶었다. “흐음……. 그래도 좀 외롭다.” 갑자기 혼자가 되자 살짝 외로워지는 케미리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케미리는 고개를 저었다. 이건 필수 과정이었다. 자신의 소중함(?)을 깨닫기 위한 필수 과정이다. 전에 어디서 들었던 이야기가 있었다. 옆에 있을 때는 모르지만 이렇게 떠나 버리면 그 사람(개)의 허전함을 안다고……. 케미리의 가출은 그것을 노린 것이었다. 수중에 있는 5만 골드를 쓰고 돌아갈 때쯤이면 마스터는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돌아돠 줘서 감사하다며 자신에게 엄청 잘해 줄 게 분명했다. 하지만 이건 케미리만의 큰 착각이었다. “후아!” 난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기 위해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여기서 흥분하면 나의 패배다. 어떻게 해서든 케미리를 붙잡아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진정해야 했다. “휴.” 나는 숨을 천천히 들이쉬었다. 마치 기를 모으듯…… 이 아니라! 으아아악! 제기랄! 잠시의 명상도 소용없었다. 히죽거리던 케미리의 모습이 자꾸만 스쳐 가면서 분노는 커져만 갔다. 뭐, 정신적 피해 보상? 동물 학대? 더러운 성격 고쳐? 핍박하지 말라고? 헉! 생각만 해도 혈압이 마구 상승했다. 이런 몹쓸 비열한 개 주제에 감히 나에게! “오, 오빠, 진정해. 너, 너무 화내지 마.” 그런 나를 향해 당황해 하면서 말해 주는 채은이. 고맙기는 했지만 지금 상황이 과연 진정이 될 상황이었던가? 만약에 현실 세계였다면 난 고혈압으로 이미 사망했을 가망성도 배제할 수 없을 만큼 충격이었다. 하지만 진정해야 했다. 진정해서 그 몹쓸 개. 한 마리를 잡아서 보복을 해야 했다. 그것도 보통 보복이 아닌 피의 보복. “난 괜찮아, 채은아…….” “괜찮은 얼굴이 아닌데, 오빠.” “그, 그래? 차, 착각이야. 나, 난 괜찮아. 하하하.” “…….” 나를 보고 어색한 미소를 짓는 채은이. 난 분명 괜찮은데 살짝 표정 관리가 되지 않은 듯싶었다. 난 정신을 차리고 케미리가 갈 만한 곳을 떠올려 보았다. 일단 머리가 나쁘다는 걸 중점으로 떠올려 보았지만 막막하기는 정말 막막했다. “네가 플레스라는 자이냐?” “너는 또 뭐냐?” 고민에 잠겨 있던 나를 향해 다가오더니 말을 거는 남자를 향해 언짢은 어조로 말했다. 안 그래도 케미리 때문에 기분이 석 좋지 않은데……. “내 이름은 레케미. 너를 이길 자다.” “…….” “나는 정당한 대가를 치르고 왔다. 메퍼가 준 임무를 완성하고 그 대가로 네가 있는 곳을 찾아냈다.” 아, 또 그 아저씨! 젠장 그 아저씨는 적인 거야, 아군인 거야?! 그나저나 내 앞에 있는 남자는 보기만 해도 시리도록 차가운 푸른색의 눈동자와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다. 키는 대략 180Cm 정도에 약간 호리호리한 몸매의 남자였다. 얼굴 생김새는 보통? 그리고 특이하게도 등에 검 두 자루를 착용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나를 이기기는 뭘 이겨? “나는 강한 자가 좋다. 네가 이 게임에서 최강 데미지 딜러라는 소리를 들었다.” “네가? 착각이겠지.” “아니, 메퍼가 그랬다.” 아, 또 그 아저씨. 그나저나 내가 최강 데미지 딜러라고? 예사로운 데미지랑은 거리가 좀 멀지만, 내가 최강 데미지 딜러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왜냐하면 내 레벨은 60이니까. 말하고도 슬프다. “아마도 잘못된 정보일 거야.”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넌 예사롭지 않다. 강할 것 같다.” “나 지금 바쁘거든? 탈선한 똥개 한 마리 잡아야 대서 말이다.” “내 알 바가 아니다.” “그럼 내가 너랑 붙어야 한다는 것도 알 바 아니네?” “아니. 넌 붙어야 한다.” 채애앵! 그 말과 함께 두 개의 검을 뽑아 드는 남자. 저 인간 미쳤나? 왜 갑자기 나타나서 시비야. “내가 공격하면 넌 공격할 수밖에 없다.” “흐음, 그래? 그렇다면 해 주지. 너의 소원이라면…….” 난 그 말과 함께 눈을 감았다. 검 소환. 인첸트 풍(風) 주입! 파지지짓! 그 말과 함께 차가운 얼음이 연상되는 푸른색의 검이 서서히 바닥에서 솟아오르더니 나의 손에 잡혔다. 역시나 나의 예상대로 3단계는 바닥에서 솟아 나오는 것이었다. 색상도 너무나도 멋있었고, 검 모양도 훌륭했다. “흐음, 신기한 능력이군.” “난 별로. 전투라면 그리 반갑지 않거든.” “난 강한 자를 좋아한다. 전투라면 좋아한다.” 파지짓! 그 말과 함께 그 남자는 검에 힘을 주입해 한쪽에는 뇌격의 힘으로 보이는 힘과 한쪽에는 신성의 힘으로 보이는 힘을 끌어올렸다. 남자가 끌어올린 두 자루의 검에서 느껴지는 힘이 장난이 아니었다. “마스터, 처리할까요?” “주인님, 어떻게 해요?” 바로 그때 나에게 말을 거는 천족 남매.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저 둘이 데미지가 강한 편이라고는 하지만 저 괴이한 남자를 이길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뭐, 세리하는 솔직히 모든 능력을 안 봐서 모르겠지만 아마도 무리일 듯싶었다. “다른 사람들 데리고 안전 지역으로.” “주인님, 위험하실 수도 있는데…….” “괜찮아. 전투는 나의 삶이니까.” 아, CF의 한 장면이 떠오르는 나였다. 전투는 나의 삶……. 그래, 흐흐흑! 눈물이 나, 난 평범하게 게임을 하고 싶었을 뿐인데……. “나를 놔두고 다른 생각을 하다니…….” 스윽. 한편 나의 그런 모습이 남자에게는 영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살짝 흥분한 모습을 보이며 공격을 해 왔다. 난 갑작스러운 기습 공격에도 그리 당황하지 않았다. 다 보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난 일행들이 뒤로 물러났는지를 슬쩍 본 뒤, 풍 속성의 힘이 담겨 있는 검을 그대로 휘둘렀다. 나에게 엑스 자로 공격하는 그 남자의 공격에 맞서서……. 채앵! 콰아아아앙! “크윽.” 남자의 검과 마주친 후 난 신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첫 공격이라 막으면서 살짝 흘리려고 가볍게 공격했는데 상대방의 힘이 담긴 두 개의 검과 부딪히는 순간, 흘리려는 시도가 완전히 무산되었을 뿐만 아니라 어마어마한 폭발로 인해 생각보다 큰 타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흐음, 이상하군. 이게 최강 데미지 딜러의 힘인가?” “최강 데미지 딜러든 아니든……. 크윽! 한 방 먹었는걸.” 난 그 말과 함께 본격적으로 힘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나는 전투할 때 대부분 최소한의 힘으로 상대방을 제압하려고 노력했다.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데스 길드라는 놈들과 더불어 몬스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전투를 하더라도 최소한의 힘으로 이기고 싶었지만 앞에 있는 남자에게는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슬쩍 공격을 흘리려는 순간, 어마어마한 힘으로 불가능하게 만들었으니 이런 남자에게는 똑같이 힘으로 해 줘야 할 것 같았다. 나도 데미지 쪽에는 그런대로 자신이 있으니까……. 파지짓! “흐음, 검에 모여드는 힘이 예사롭지 않군. 이제 본격적인 건가?” “어서 끝내자고. 나도 시간 오래 끌고 싶지 않아. 똥개 한 마리를 빨리 포힉해야 돼서 말이야.” 난 싱긋 웃었고, 남자는 아무런 감정 없는 눈빛으로 나를 본 뒤 갑자기 두 자루의 검 끝을 땅 쪽으로 향했다. “그렇군. 나도 최선을 다해 주지!” 파악! 그 말과 함께 두 가지의 힘이 담긴 검 두 자루를 땅에 박아 넣는 남자. 그리고 부딪치는 두 가지이 다른 힘. 그 힘을 느낀 난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도 강력한 그 힘의 정점이 나에게 오고 있는 것이었다. “젠장!” 도끼 소환! 인첸트 화(火)! 충격파 활성화! 콰아아앙! 난 그 엄청난 공격력을 똑같이 힘으로 마주쳤다. 그 두 가지의 반발력을 이용한 힘과 내 어마어마한 힘이 담긴 힘은 그대로 부딪쳤다. 쿠우우우우우우우우웅! 거의 지진이 날 정도의 충격파가 들어왔고 난 울컥했다. 얼마나 강한 공격인지 입에서 피가 주르르 날 정도였다. 그에 반해 상대방은 생각 외로 멀쩡했다. “내가 졌다.” “…….” 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입가에 피를 흘리는 나에 반해 저놈은 멀쩡한데 졌다니. “후훗! 나의 최강 공격 스킬을 힘으로 제압하다니, 메퍼의 말이 사실이었군. 놀라운 걸 경함했다.” “아직 멀쩡……해 보이는데?” “멀쩡하다고? 아니, 이미……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한다. 지금 이것도 속이 완전히 엉망이 되었……. 쿨럭!” 내가 흘린 피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한 움큼 피를 토한 그는 이내 피를 닦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방금 공격은 너의 비기였나?” “아닐……걸?” “후훗. 나의 비기가 일반적인(?) 공격에 당해 깨지다니……. 나중에 다시 찾아오지. 이번에는 나의 패배다.” 그 말과 함께 남자는 사라졌다. 나도 그리 힘이 남아 있지는 않았다. 그래도 저 남자보다는 상황이 좋은 편이었다. 그나저나 내겐 비기라는 게 없었다. 물론 무기가 진화함에 따라 새로운 능력이 추가되지만, 그게 과연 필살기에 포함되는 것일까? “주인님, 고생하셨어요.” 바로 그때 세리하가 힘이 빠진 나에게 너무나도 고혹적인 자세로 다가왔다. 안 그래도 좀 전의 전투로 혼란스러웠는데 세리하가 메이드복을 살짝살짝 흔들면서 말하자 왠지 모르게 남자의 본능(?)이 일어나는 듯했다. “아이이잉, 주인님도 참…….” 세리하는 이제 몸까지 마구 배배 꼬면서 말했다. 세리하, 메이드복 입고 그런 행동을 보이면 나보고 어떡하라고……. 그리고 너는 그 성스럽다는 프리스트가 아닌가? 정우도 프리스트, 세리하도 프리스트. 원래 프리스트라는 애들이 다 독특한가? 개혁했나? 그나저나 케미리를 찾기 전에 좀 휴식을 취해야 할 것 같았다. “누가 이겼습니까?” “플레스라는 자가 너무나도 쉽게 이겼습니다. 어찌 된 영문인지 더 강해진 것 같습니다.” “후훗.” 당연했다.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으니 말이다. 거의 매일같이 이상한 일만 반복되어서 그런지도 모를 일이었다. 연전히 칙칙한 후드로 얼굴과 몸 전체를 가리고 등에는 관을 맨 채 묵묵히 있는 남자는 무엇이 그리 좋은지 목소리 자체가 들떠 있었다. “솔직히 말해 난 그 남자가 이긴다는 쪽에 내기를 걸었거든요.” “…….” “그 덕분에 오늘은 많은 돈을 벌 수 있었지요.” “설마 그것 때문에 레케미에게 플레스가 있는 장소를 가르쳐 준 것입니까?” “그럴 리가요. 레케미님은 충분히 일을 했고 그 보상이었습니다. 누가 들으면 제가 억지로 싸움 붙인 줄로 오해하겠습니다.” 맞는 말이었다. 그 남자는 일부러 싸움을 주도하지도 않았고 레케미가 알고 싶다기에 보답을 받고 보상을 해 줬을 뿐이었다. “도대체 마스터는 무슨 생각이십니까? 최종 목표는 분명 데스 길드의 괴멸. 하지만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짐작이 가지 않는군요.” 메퍼는 궁금하다는 듯 말했지만, 마스터라고 불린 남자는 말해 줄 생각이 없는지 딴청을 피웠다. 그렇게 한참을 휘파람까지 불면서 딴청을 피우더니 잠시 후 말문을 열었다. “정말 기대되는 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루를 멀다 하고 강해지고 있으니…….” “개인적으로 무슨 훈련이나 사냥을 하는지 궁금할 뿐입니다. 저희들의 정보력으로도 가끔씩 놓치니 말입니다. 저는 그렇게 초고속으로 강해지는 남자는 처음 봅니다.” “케미리를 찾아야 된다.” “오빠, 울지 마세요.” “예화야, 케미리가 나 때문에 도망을 간 건 좋은데 감히 내 돈을 갖고 튀었다. 어떻게 하면 좋겠니?” “…….” 난 슬픈 듯이 가짜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다가 돌변했다. 케미리가 사라지든 하늘로 솟아오르든 땅으로 기어 들어가든 내 알 바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케미리가 가지고 있는 5만 골드는 찾아야 했다. “피티언.” “네, 마스터.” “케미리 취미가 뭐냐?” “케미리 취미요?” “어.” “흐음…….” 나의 말에 고민에 잠기는 피티언. 그래도 나보다는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쯤이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돈도 있겠다, 가출도 했겠다. 단순한 케미리로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 움직였을 게 분명했다. “케미리 취미가…… 흐음, 뭐였죠?” “나한테 그걸 물으면 어떡해!” “마스터, 죄송합니다. 모르겠습니다.” 같은 소환수인데 취미도 모르다니 약간 의외였다. 난 그래도 취미 정도는 알 줄 알았는데 피티언이 모른다고 하자 물어볼 사람이 딱히 없었다. 채은이와 예화를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테피언밖에……. “야, 테피언! 너도 모르냐?” “그놈 저번에 한번 물으니까 어쌔신은 항상 신비로워야 한다면서 가르쳐 주지 않던데?” 지랄한다. 신비는 개뿔이! 난 그놈이 어쌔신이라는 걸 아직도 믿고 싶지도, 아니 믿으면 절대 안 된다고 생가한다. 그놈은 어쌔신으로 인정하는 순간, 그것은 어쌔신들에 대한 모독이 되기 때문이었다. “아 참! 그러고 보니 케미리는 도박을 꽤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아, 맞다!” 난 피티언이 말에 케미리가 도박하러 갔다가 사고 친 일을 기억해 냈다. 분명 그때 케미리가 도박장을 단번에 휩쓸었다고 했다. 그런 실력이 나오기 위해서는 한두 번 해 보지 않고서야 불가능했다. “좋았어! 채은아, 예화야! 이 근처에서 제일 큰 도박장은?” 다른 애들은 모를 게 분명했기에 괜히 에너지 낭비를 하고 싶지 않아 채은이와 예화를 바라보며 물었다. 절레절레. 절레절레. 하지만 채은이와 예화는 고개를 저었다. 큰일 났다! 유일하게 믿음직스러웠던 미소녀 두 분(?)이었는데 모르다니. 그렇다면 여기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소리? “제가 아주 자세히 세세하게 알고 있습니다.” “네놈이 있었지.” “그렇습니다. 도박장 계열은 모두 외웠습니다.” 그래, 네놈 잘났다. 유스티언 마을. 정우가 앞장서서 우리를 데려온 도박으로 널리 알려진 마을이었다. 하지만 케미리가 이곳에 있을 거라는 보장은 없었다. 말 그대로 추측이었으니까. 참나, 소환수가 가출을 하다니, 소환하는 사람들을 붙잡고 이야기하면 웃음거리가 될 만한 사건이다. 정말 기막힌다, 기막혀, 똥개 주제에 별짓을 다 한다. 정말 다제다능한 똥개였다. “흉, 여기에 케미리 놈이 있으려나?” “그래도 케미리는 도박을 꽤 좋아하는 편이니까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렇겠지.” 난 그렇게 조용히 중얼거리면서 정우를 바라보았다. 여기서 제일 큰 도박장을 안내하라는 눈빛으로. “알겠습니다.” 난 다시 앞장서는 정우를 천천히 따라가려고 했으나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앞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이야기들 때문이었다. “그거 들었어? 도박장에 웬 개 한 마리가 와서 다 쓸어버리고 있대.” “개?” “어, 개가 도신이라고 불리는 제키도 단숨에 이겨 버렸대.” “정말 개가?” “그렇다니까!” “말도 안 돼!” “그럼 같이 가자! 내가 보여 줄게.” 그 말과 함께 걸음을 옮기는 두 사람. 난 그 두 사람을 보고 싱긋 웃었다. 이 세상에서 도박하는 개라고는 케미리 그 새끼밖에 없었으니까. “이번 작전은 케미리 포획 작전이다. 작전 미스는 용납하지 못한다. 무조건 잡아라. 잡는 자에게는 선물이 있을 테다.” “선물?” “선물 말씀이십니까?” “주인님, 선물이요?” 나의 말에 유난히도 눈을 반짝거리는 테피언, 피티언, 세리하. 눈이 무지무지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래. 선물이 있다.” “걱정 마십시오, 마스터. 무슨 일이 있어도 케미리 놈은 꼭 포획하겠습니다.” “좋은 자세다, 피티언.” 그중 유독 피티언은 더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보는 내가 뜨거워질 정도로 어마어마한 정렬의 느낌이었다. 그런데 내 눈에 정말 피티언의 옷이 불타오르는 게 보였다. “앗, 뜨거!” “…….” 진짜 불? 너무나도 정열적으로 불타올라서 실제로 불타오른 것……이 아니라! 그럴 리가 없었다. 무슨 피티언이 라이터도 아니고! “실수했다.” “…….” “하하하. 조금 폼 좀 잡아 보느라고요, 마스터.” 아, 저런 닭대가리. 정말 폼 잡는다고 제 옷에 불을 지르다니……. 다행히도 그리 큰 불은 아니었기에 옷이 살짝 탄 걸로 진압이 가능했지만, 그걸 보는 나는 참 답답했다. 저게 내 소환수라니, 정말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주인님, 신경 끄세요. 제 동생이지만 원래 약간 이상해요.” 한편 그 모습을 무감각한 눈길로 보던 세리하는 나에게 달라붙으면서 말했고, 난 그 말에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이상해도 너무 이상했다. “그나저나 주인님, 케미리 잡으면 어떤 소원이든 들어주시나요?” “응? 어떤 소원이든?” “네에~.” “들어 보고…….” “흐음, 그렇군요.” 그 말과 함께 살짝 고혹적인 미소를 짓는 세리하, 난 그 모습을 보고 세리하도 그리 정상적이지 않다는 걸 느꼈다. 세리하는 닭대가리 3인방처럼 바보짓은 안 하지만, 왠지 모르게 프리스트 이미지와는 너무나도 달랐다. 보통 프리스트를 떠올리면 두 눈을 감고 두 손을 맞잡은 채 자신이 희생하겠다고 하든가 아니면 자신이 신성한 존재라고 하든가, 이게 보통 우리들이 생각하는 프리스트였다. 그에 반해 세리하는 프리스트의 기본 옷은 입지도 않고 메이드복(어디서 났는지 심히 궁금하다)를 입은 채 마구 돌아다녔다. 그뿐 아니라 전투력만으로 따지면 1위나 2위를 다툴 정도로 어마어마한 실력자였다. 그에 비해 보조 계열은 영 꽝이었다. 홀드 마법이나 공격계 비슷한 마법에는 확실한 실력을 보이지만……. 최강 공격계 마법밖에 쓰지 못하는 동생 피티언과 프리스트이면서 보조 마법을 쓰지 못하는 세리하. 역시 피는 못 속이는 것 같았다. “그럼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확실히 잡아 오겠습니다.” "어? 어, 그래.“ “마스터, 약속은 지켜라.” “그래.” “주인님, 저도 얼른 가 볼게요!” “알았어.” 순식간에 사라지는 세 명. 어마어마한 속도였다. 선물이라는 게 그리 좋은 걸까? 평소에도 저렇게만 해 주면 난 너무나도 고마울 텐데……. “오빠는 직접 안 가시는 거예요?” “내가 갈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저들의 눈빛은 이…….” 말 그대로였다. 저들은 이미 선물이라는 말에 흥분했다. 저 정도면 케미리를 잡는 데 부족함이 없을 게 분명했다. 나는 케미리가 다시 돌아올 시간을 위해 몸이나 풀 예정이었다. 크크크크. 케미리 돌아오렴. 내가 마구 사랑해 줄게. 아이 러브 유. “이번 임무는 마스터이 직접적인 명령이야.” “응, 누나.” “알겠다, 세리하.” 세리하의 말에 유독 힘을 쓰지 못하는 피티언과 테피언이었다. 특히 피티언은 더 그랬다. 자신이 제일 무서워하는 존재가 지금 앞에서 아름다운 미소를 지은 채 있는 자신의 누나 세리하였다. “그리고 이번 임무는 무조건 내가 잡았다고 할게!” “…….” “…….” “둘 다 불만 없지? 불만 있으면 말해.” “…….” “…….” 세리하의 말에 피티언과 테피언은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자신들도 정말 선물을 받고 싶었다. 분명 마스터가 케미리를 잡으면 그 대가로 맛있는 것을 주거나 다른 근사한 대가가 있을 게 분명했다. 9박 10일 휴가라든지……. 자신들도 즐기고 싶었다. 하지만 말할 수는 없었다. 앞에서 생글거리고 있는 세리하에게 그런 말을 했다가는……. “불만 있다는 거야, 없다는 거야? 왜 둘 다 말이 없어!” “어, 없다.” “무, 물론 없지, 누, 누나.” 그들은 굴복했다. 그 선물 때문에 아직 죽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응. 고마워, 둘 다. 아 참, 그리고 최선을 다해. 대략 하는 것 같으면 난 몰라. 알지?” “무, 물론이지, 세리하.” “응, 응. 누나, 당연하지!” 둘은 식은땀을 흘렸다. 세리하는 한다고 하면 진짜 하는 스타일이었다. 유일하게 민혁이만이 자신들을 구해 줄 수 있지만, 만약에 세리하가 마음먹고 민혁이가 없을 때 실시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그들이었다. 한편 그런 그들은 사람들의 눈길을 모으기에 충분했다. 마을 안에 데스나이트랑 메이드복을 입은 아름다운 여자까지, 정말 독특한 일행이었기 때문이었다. “어이, 아가씨. 크크.” 바로 그때, 30대 초반 정도 되는 남자가 슬그머니 다가오더니 세리하의 팔을 툭툭 치면서 말했고, 세리하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 남자를 바라보았다. “인상 펴라고, 아가씨. 그나저나 메이드복을 입은 걸 보면 주인을 찾는 건가? 나 어때, 나…….” 퍼퍼퍼퍼퍽! “으아악!” 순식간에 제압에 나선 테피언과 피티언. 그들은 전광석화였다. 만약에 세리하가 설교라도 하는 날이면 옆에 있는 자신들에게 피해가 오기 때문에 이런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뭐, 뭐야!” 갑작스러운 폭행에 남자는 정신이 없었고, 잠시 후 테피언은 그 아저씨를 지그시 바라보면서 눈을 번쩍이며 말했다. “죽고 싶나?” “…….” “꺼져라.” “헉!” 테피언의 협박에 화들짝 놀라면서 도망가는 남자였다. 테피언 본인은 극구 부인하고 있었지만 은근히 투구 안에서 빛나는 눈빛은 공갈 협박용으로 딱 좋았다. 한편, 피티언은 세리하를 달래느라 바빴다. “누나, 진정해.” “…….” “맞다. 마스터가 빨리 데려오라고 했잖아! 안 그래?” “그렇지. 주인님이 그랬으니까.” 마스터라는 말에 세리하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걸 본 피티언은 안심했다. 이 순간만큼은 마스터에게 정말 진심으로 감사하는 피티언이었다. “자, 그러면 우리 케미리 잡으로 갈까!” “휴우…….” 케미리는 담배를 피우며 여유로운 표정으로 상대방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 상대방은 자신을 힐끔힐끔 보기에 바빴다. 지금 콜을 해야 할지 아님 다이를 해야 할지 어마어마한 생사길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휴우…….” 케미리는 담배 연기를 마구 뿜으면서 기다렸다. 그렇게 담배를 피우는 개의 모습에 사람들은 아무리 게임이라지만 충격 반, 신선 반으로 케미리를 보기에 바빴다. “아, 도박하는 사람 어디 갔나?” “젠장! 콜!” 상대방은 눈을 질끈 감으면서 말하더니 전 재산을 밀어 넣었다. 그 모습에 케미리는 가볍게 한 발(?)로 카드를 쭉 나열했다. “로, 로티플?!” “우아아!” “로티플이야!” 케미리의 카드는 로티플, 카드 중에서 제일 높다고 평해지는 족보였다. “휴우…….” “이, 이럴 수가…….” 그 남자는 그 말과 함께 카드를 놓았다. 그러자 거기에 있는 것은 8포커. 상당히 높은 족보임에 분명했다. 하지만 지금 케미리가 가지고 있는 패는 0.003%의 확률로 나온다는 로티플이었다. 당연히 비교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럼 실례하지.” 그 말과 함께 배 주머니에 돈을 쓸어 다는 케미리. 제키는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서 자신이 이룩해 낸 명성을 개 한 마리가 다 낚아챈 것이었다. 도신이라 불리던 자신이 개 한 마리한테 퍼펙트하게 지다니……. “후후. 그럼 난 이만…….” 케미리는 그렇게 5만 골드로 시작해서 6만 골드로 늘어난 돈을 가지고 입구로 향했고, 그런 케미리의 모습을 사람들은 정말 신기하다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콰아앙! 바로 그때 갑작스럽게 입구가 부서지면서 테피언이 나타났고, 그걸 본 케미리는 엄청 당황했다. “네, 네가 어, 어떻게 여기에!” “마스터가 네놈을 잡아 오라더군.” “우, 우리는 친구인데, 나를 배신할 생각이야?!” “우리가 그랬었나?” “…….” 케미리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말하는 테피언을 보고 황당한 표정을 짓다가 잠시 후 주변을 살펴보았다. 이미 입구는 막혔다. 그렇다면 남은 곳은 뒷문뿐이었다. 타타탁! 케미리는 혼신의 힘을 다해 달렸다. 지금 잡히면 안 된다. 아직 그리 시간이 지나지 않았기에 마스터가 자신을 그리워(?) 할 단계는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편 케미리의 도주를 보고도 테피언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그러더니 한마디 했다. “차라리 나에게 잡혔으면 좋았을 텐데……. 쯧쯧.” “허허허헉!” 케미리는 정말 빛의 속도로 뒷문으로 이동했다. 아직 돈을 벌었을 뿐 쓰지는 못했기에 자신에게는 이 돈을 다 써야할 임무(?)가 있었다. 그랬기에 아직은 아니었다. “어딜 그렇게 도망가는 거니, 케미리?” “세, 세리하!” 케미리는 경악했다. 뒷문을 지키고 있는 세리하와 피티언을 보고……. “감히 마스터를 심한하게 만들다니. 우리 케미리, 못된 개가 됐구나.” “헉! 제길!” 케미리는 땀을 주르르 흘리기 시작했다. 하필 세리하라니, 정말 이건 아니었다. “자, 케미리, 얌전히 돌아갈래, 맞고 돌아갈래?” “제길.” “제길이라니! 나 같은 여자 애한테 쓰기엔 비속어적이지 않아?” “빌어먹을! 난 아직 돈도 못 썼단 말이다!” 그 말과 함께 케미리는 진정 미쳤는지 세리하를 공격했다. 물론 목숨을 노린 것은 아니고 탈출을 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본 세리하는 눈을 반짝이면서 메이스를 꺼내더니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케미리에게 휘둘렀다. 휘이익! “케미리, 정말 못됐구나!” 퍼억! 공격을 하려던 케미리는 그대로 세리하의 메이스에 맞아 날아가며 정신이 혼미해짐을 느꼈다. 하지만 이대로 굴복할 수는 없었다. 절대! 절대! 자신은 살아남아야 했다. 그런 강렬한 의지로 케미리는 이를 꽉 다문 채 다시 바닥에서 중심을 잡았다. 바로 그때 그런 케미리의 주변으로 어두운 그림자가 보였다. “이럴 수가!” 이미 테피언, 피티언, 세리하가 케미리의 주변을 둘러싼 후였다. 그렇게 케미리 가출 사건을 무사히(?) 끝났다. “으아악! 자, 잘못했어! 마, 마스터!” “이 새끼가 감히 간덩이가 부었구나!” “잘못했어!” “지금 네놈이 저지른 일은 잘못했다는 걸로 끝날게 아니다. 피의 보복이다. 크하하하하!” “사, 살려……. 꾸엑에에에!” 파짓! 퍼퍼퍼퍽! “크크크크. 케미리, 돌아오렴. 돌아오렴. 돌아오렴. 내가 마구 사랑해 줄게. 아이 러브 유.” 한편 민혁이와 케미리이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자 일행은 땀을 흘리기 바빴다. 도대체 저 보이지 않는 지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기에 이리 생동감 넘치는 소리가 들려오는지 궁금했다. 제4장 해저동굴 키루메이전 지금 루라스는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자신의 길드가 공격당했다는 그 말을 들은 이후부터……. 감히 자신의 길드를 건드리다니, 생각을 하면 할수록 화가 났다. 이 게임이 만들어진 후 절대적인 힘으로 이 게임을 정복했는데, 괴이한 단체가 자신을 공격한 것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모든 인원을 동원해 보복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그 괴이한 단체는 이미 사라진 후였다. 그리고 제일 마음에 들지 않는 건 그 플레스라는 자, 처음에는 흥미로운 듯 바라보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한마디로 제일 짜증나는 놈이었다. 누가 내 욕 하나? 뭐 상관있나, 하든 말든. 그것보다 난 지금 이곳에서의 행동이 제일 중요했다. 이곳은 시장, 내가 이때까지 정말 고생스럽게 모은 돈으로 아이템을 장만하기 위해 온 것이었다. 저번에 아주 옛날(?)에 플레지마 스트레이트 샷 스킬북을 산 이후 정말 오랜만에 온 시장이었다. “골라, 골라, 골라요. 골라 봐요. 물약들.” “레오급 무기 조키아 팝니다!” “귀여운 펫 강아지 사 가세요.” 난 파는 강아지들을 보고 두려웠다. 혹시 맨날 사고를 치거나 말을 하거나 배에 주머니가 있거나 혹은 도박을 하는 강아지일까 봐. 물론 이런 나의 말도 안 되는 상상은 뒤에서 살그모니 따라오는 케미리 덕분이었다. “마스터, 헤헷! 용서해 주는……?” “…….” “역시 마스터는 마음씨도 좋다니까!” 내가 자신을 쳐다보자 용서의 뜻으로 알았는지 케미리는 금세 활발해졌고, 난 그런 케미리를 보고 중얼거렸다. “원상복귀.” 스윽! 나의 중저음에 케미리는 다급하게 제자리로 돌아갔다. 난 지금 케미리를 용서해 줄 마음이 없었다. 난 그놈이 도망가든 날아가든 땅을 파고 기어가든 전혀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내 5만 골드를 갖고 튀었다는 사실! 물론 6만 골드로 벌어서 오기는 했지만, 만약 재빠르게 잡지 못했더라면 이미 그 돈은 다 사라진 후였을 게 분명했다. “오빠…… 불쌍해.” “응, 응. 그렇지? 나 불쌍하지?” “…….” 채은이는 나에게 한마디 했다가 케미리의 반응을 보고 굳어 버렸다. 뻔뻔해도 저리 뻔뻔할 수가! 번데기가 울고 갈 뻔뻔함이었다. “케미리, 아직도 못된 개구나!” 세리하, 원래 저놈은 못된 개였단다. 굳이 그렇게 말 안해도 다 알고 있는데……. “쳇! 배신자.” “배신자?” “우리는 같은 소환수인데, 마스터에게 잘 보이려고 나를 배신했잖아, 세리하!” 세리하에게 대들다니 간이 많이 큰 케미리였다. 테피언과 피티언은 세리하에게 제대로 반항도 못한다. 그에 비해 케미리는 세리하를 무서워하고는 있지만 반항은 했다. 정말 어떻게 보면 제일 용감한 놈이었다. “할 말 없지, 세리하? 양심이 있다면 말 못할 거야!” “…….” “후훗.” 세리하는 고개를 푹 숙였고, 그 모습을 본 케미리는 뻔뻔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난 그 모습을 보자 왠지 마음에 들지 않아 케미리에게 다가가 그대로 몸을 들어 올렸다. 덥석! “헉! 마, 마스터! 난 아무것도 안 했어! 맞아! 세리하가 시비 걸어서!” 내가 다 보고 있었는데 거짓말을 하다니, 이렇게 멍청할 수가……. “정말이야! 믿지? 나같이 깜찍한 강아지는 거짓말 못해.” “미치겠군.” “응? 내가 깜찍해서 미쳐 버리겠다고?” “세리하, 처리해.” 난 헛소리를 계속해 대는 케미리를 고개를 푹 숙인 채 있는 세리하에게 집어 던졌다. 그러자 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세리하는 고개를 번쩍 들더니 해맑은 미소를 지으면서 메이스를 집어 들었다. “네에, 주인님!” 퍼억! “끄아아아아악!” 그 말과 함께 메이스를 휘두르는 세리하였고, 케미리는 메이스를 맞고 한 20미터를 날아갔다. 저놈, 정말 맞는 걸 즐기는 거 아니야? 목소리가 너무 행복(?)하게 들리는데? 설만 진짜 SM(Sadism Masochism)인 건 아니겠지? “그런데 오빠, 갑자기 시장은 왜 오신 거예요?” “아, 필살기나 구할까 해서.” “필살기요?” “다른 애들은 다 특별 스킬 기능이 있잖아. 나만 없는 것 같아서…….” 물론 히든 필살기 같은 것은 대부분 어디서 구하거나 자신이 직접 만들어 사용했다. 한데 난 궁극기라는 게 없었다. 그래서 임시로 궁극기를 대체할 만한 스킬이 있나 해서 시장에 온 것이었다. 물론 그 어느 것보다 강력한 궁극기가 하나 있었다. 그건 마법. 마법 증폭과 나의 공격력을 마법 공격력으로 전환해서 로케리스의 도움을 받으면 수호의 골렘도 단 한 방에 녹이는 말도 안 되는 마법 데미지가 나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번 쓰고 나면 후유증이 너무 컸다. 그리고 마법 같은 것은 내 힘으로 시전되는 게 아닌 관계로, 완벽한 궁극기라고 하기도 그랬다. 마법도 얼른 배워야 할 텐데 1서클 이후로 전혀 진전이 없었다. 워낙 바쁘게 살다 보니……. 그런데 저 남자 놈들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계속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이유라 한다면 뭐 당연한 말이지만, 채은이와 예화 덕분. 그리고 채은이와 예화보다는 약간 못하지만 충분히 아름답다는 말이 어울리는 세리하 탓이었다. 그러고 보니 채은이와 예화는 게임에서 만들어진 세리하보다 더 예쁘니, 이거 뭐라고 해야 할지……. 그리고 설마 남자 놈들이 칙칙한 강아지나 데스나이느, 정우나 나를 보는 거은 아닐 테니까. 난 그놈들에게서 신경을 끈 채 시장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막상 살 게 없었다. 분명 좋은 스킬임에도 불구하고 궁극기라고 할 만한 스킬은 없었다. 그런 것을 시장 바닥에서 구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였을 수도 있다. 그래도 시장에 온 김에 채은이와 예화, 세리하가 필요하다는 걸 마구 사 주었다. 예를 들어 머리핀이나 장식품, 기타 등등……. “저는 왜 안 사 줍니까?” “네가 머리핀이 왜 필요하냐?” “형님. 아시잖습니까. 후우, 후우…….” “알기는 뭘 알아! 그리고 이상한 신음 소리 내지 마!” 간절히 머리핀을 사 달라며 바라보는 정우를 외면했다. 난 남자에게 머리핀 사 주는 취미는 없다. “언니, 이거 예뻐요.” “그렇지, 예화야?” “꺅! 주인님, 이거요!” 여자들은 뭐가 그리 신나는지 마구 고르고 있었다. 마구 고르라니까, 정말 잘 고른다. 뭐 안 사겠다는 걸 내가 사라고 강력하게 말했으니 할 말은 아니다만……. 그나저나 남자 상인들은 헤벌쭉한 채 물건을 팔 생각은 않고 여자들만 아주 열심히 보고 있었다. “나도 사 달라.” “나도! 마스터!” “저도요! 마스터!” 너희ㅡ들이 단체로 미쳤구나? 데스나이트가 머리핀을 사 달라고? 그리고 개도 머리핀을 사 달라니……. 피티언, 넌 뭐니. 정말 이것들이 단체로 돌았나? 바로 그때 테피언은 그런 나를 보더니 장렬(?)한 어조로 말했다. “마스터는 사람 차별한다!” “넌 사람 아니잖아. 데스나이트잖아!” “허업! 그게 그거다.” “어떻게 그게 그거냐?” “인간이나 데스나이트나!” 그냥 신경 끄자. 저것들을 신경 쓰면 내가 혼란스러워질게 분명하니까. 그렇게 내가 한숨을 쉬고 있는데 정우가 한곳을 너무나도 찐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빛이 너무나도 진지하고 뜨거워서 보는 내가 무안할 정도였다. 도대체 무엇을 저리 빤히 보나 해서 정우가 보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거기에는 9살 정도 되는 여자 아이가 있었다. “헉! 너, 설마?!” “왜 그러십니까?” “너도 로케리스랑 같은 과냐?” “무슨 말씀이신지?” “그걸 내 입으로 말해야겠나? 이 로리타!” 충격이었다. 로케리스는 지팡이였지만 정우는 인간이었다. 아, 지팡이가 로리라는 사실이 더 충격적이지. 요새 워낙 사고방식의 혼란이 느껴져서 헷갈리기 시작하는 나였다. “형님, 알아듣지를 못하겠습니다.” “시치미까지 떼다니. 네가 방금까지만 해도 저 여자 아이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는 걸 봤는데!” “흐음, 아닙니다. 저는 저 소녀가 들고 있는 종이를 보았을 뿐입니다.” “종이?” “네. 마구 마구 그랑상스(?)한 느낌이 드는 종이입니다. 마구 사고 싶은 욕망이 드는…….” 난 그 말에 정우가 말한 대로 그 꼬마 여자 아이의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자 거기에는 탁자 위에 파는 걸로 보이는 종이 한 장이 올려져 있었다. 다른 건 없고 그 종이 한 장이 전부였다. 그런데 그 종이가 백지로 보이는 건 내 착각인가? “갖고 싶습니다. 하아, 하아…….” “…….” “형님, 갖고 싶습니다. 하아…….” “제발 사 줄 테니 이상한 소리 좀 내지 말래?” “감사합니다, 형님.” 난 별로 비싸 보이지 않았기에 사 준다고 말했다. 저 정도라면 충분히 사 줄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여자들만 사 주면 나중에 차별한다는 말만 들을까 봐 사 주는 것이었다. 그래도 아무 글씨도 적혀 있지 않은 종이를 사고 싶다는 정우나 그런 종이를 파는 저 소녀나 약간 이해가 가지 않긴 했다. 터벅터벅. 난 그렇게 그 여자 아이에게 다가갔고 그 꼬마는 나를 보더니 반가운 미소를 지으며 괴이한 종이를 고사리 같은 자그마한 손으로 내밀면서 말했다. “이거 사실 건가요?” “어. 그걸 갖고 싶다는 놈이 있어서…….” “잘 생각하셨어요! 제가 오빠랑 사냥을 하면서 주운 건데요…….” “근데 이거 아무것도 안 적혀 있는 거니?” “훌쩍. 오빠도 안 사실 거예요?” “…….” 난 난감했다. 저 소녀가 파는 종이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완벽한 백지였다. 그런 백지를 돈 주고 사야 한다니, 아까워 죽을 것 같았다. “200골드에 팔게요! 제발 사 주세요.” “하하하.” “형님, 루크리한(?) 마음이 저걸 사라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 “하아…….” “알겠으니 그 하아 좀 그만 해라. 짜증난다. 꼬마야, 그건 줄래?” “앗! 고맙습니다!” 나의 말에 싱긋 웃으면서 너무나도 밝게 말하는 꼬마 아이. 그냥 백지를 사기당해서 사는 느낌이었지만, 정우 놈이 너무나도 간절히 원하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난 주머니에서 200골드를 꺼내서 그 소녀에게 건네준 뒤 그 백지를 들었다. “이걸 200골드나 주고 사야 되다니…….” 아무리 돈이 많다고는 하지만 아까웠다. 내 수중에 있는 돈은 총 15만 골드 정도(현금으로 환산하면 1,500만원 정도?). 하지만 아깝다, 아까워. 으윽. “형님, 고맙습니다!” “그래. 고마우면 죽도로 고맙게 써라.” 난 그렇게 말하면 그 백지를 정우에게 넘겨주었다. 저딴 것을 사 달라니, 정말 취미도 괴이한 놈이다. “오빠, 나 이거 살래!” 바로 그때 액세서리를 고르고 있던 채은이가 나에게 말했다. 난 그 말을 듣고 정우와 함께 그쪽으로 이동했다. 근데 정우 저놈은 백지가 뭐가 그리 좋다고 마구 부비부비 하는 거지? 액세서리 파는 곳으로 가자 주변에는 남자들이 바글거렸다. 다행히도 우리 공갈 협박용 테피언이 있었기에 그 누구도 접근하지 못한 채 보고만 있었지만. 정우와 나는 남자들을 헤치면서 일행이 있는 곳으로 갔고, 도착하자 여자들은 이미 액세서리를 다 골랐는지 손에 쥐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여자들뿐만 아니라 다른 놈들은? “마스터, 나도 사 달라! 갖고 싶다!” “나도 갖고 싶다니까!” “저도 사 주세요, 마스터!” 어디다 쓸 예정인지 머리핀을 들고 있는 테피언, 피티언, 케미리를 보고 난 기막혀서 말이 안 나왔다. 너희들이 여자냐? 그래, 피티언은 머리가 꽂는다 치고 테피언과 케미리 네몬들은 머리핀을 어디 꽂을 데라도 있냐? “사 달라!” “워우어! 사 주셈!” “사 주십시오.” 나에게 투정하는 데스나이트 한 마리(?)랑 개 한 마리, 그리고 천족 한 명. 난 그 모습이 너무나도 간절해서 사 주기로 했다. “휴우, 그래. 사라, 사.” “와! 마스터 최고!” 해 봤자 얼마나 한다고……. 물론 가격이 문제가 아니고 난 남자 새끼들이 여자 머리핀을 사서 뭘 하는지 궁금할 뿐이었다. 난 그렇게 액세서리를 파는 주인장에게 갔고 주인장은 아직도 여자들을 헤벌쭉 보다가 내가 다가가자 화들짝 놀라면서 말했다. 나이도 그리 젊어 보이지는 않는데……. “3, 3골드입니다.” 떨기까지 하면서 말하는 그 아저씨. 채은이와 예화, 세리하를 본 이후였다. 그나저나 3골드? 5개나 샀는데 3골드? “채은아, 잠시만 줘 볼래?” “응. 알았어.” 채은이는 자신이 고른 별 모양의 머리핀을 내게 넘겨주었고, 난 그걸 잡아들자마자 아이템 정보를 열었다. -별의 머리핀- 방어력: 1 예쁘게 꾸며져 있는 머리핀. 방어력 1은 뭐야? “왜 그래, 오빠?” “아니, 너무 옵션이…….” 진짜 어이없는 옵션이었다. 방어력 1이라니, 차라리 없는 것보다는 못한 머리핀이었다. “아저씨, 이거 말고 좀 비싸더라도 쓸 만한 것 없습니까?” “쓸 만한 능력치 말씀이십니까?” “네. 능력치 팍팍 붙은 거…….” “그런 걸 원하신다면…….” 아저씨는 탁자 밑으로 들어가 무언가를 뒤지더니 지금 보고 있는 것보다 훨씬 아름다워 보이는 팔찌와 머리핀, 목걸이 등을 꺼냈다. “이겁니다.” 난 그것들을 보고 나서 의아하다는 듯 나를 보는 채은이와 예화, 그리고 세리하를 번갈아 본 다음 말했다. “여기에 있는 것들 중 골라.” “정말?” 난 놀란 얼굴로 묻는 채은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정우 놈한테도 이상한 종이를 200골드나 주고 사 줬는데, 우리 귀염둥이들이 메이커도 없는 괴이한 액세서리를 사는 것은 원치 않았다. “우리들은?” 바로 그때 테피언이 나에게 말했고, 난 그 말에 조용히 다가가 속삭였다. “그걸로 만족하렴.” “성 차별이다!” “맞아! 맞아! 마스터가 차별하다니!” “정말 슬픕니다.” 그들은 비장한 어조로 나에게 말했고, 난 그 말을 듣고 약간 양심의 가색을 느꼈기에 말했다. “그렇다면 피티언과 테피언만 골라.” “난?” “네놈도 받고 싶냐?” 싱긋. 난 그 말과 함께 웃었고, 케미리는 잠시 땀을 뻘뻘 흘리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 내, 내 주제에…….” “잘 아는구나.” “하하하.” 감히 죄견 주제에 뻔뻔하게 사 달라고 하다니……. 그럼, 나도 하나 골라 볼까나? 남자용 장식품도 꽤 있어 보이니까……. “저기…… 이건 어떻습니까?” “뭐요?” 아저씨는 나에게 슬쩍 다가오더니 금빛으로 빛나는, 보기만 해도 멋져 보이는 목걸이를 내밀었다. “이게 신급 1등급 목걸이로, 꽤 좋은 능력치를 갖고 있습니다.” “신급?” “네, 신급입니다.” 로케리스를 제외하고는 제일 높은 등급이었다. 아니, 아이템 자체가 없으니, 뭐. 그래도 난 없는 것치고는 정말 빵빵했다. 전설급 지팡이와 신급 반지를 갖고 있으니, 그리고 혼돈의 반지가 내 데미지를 은근슬쩍 많이 올려 주는 편이었다. 그나저나 이 아저씨는 엄청 평범해 보이는데 신급 목걸이를 어디서 구한 거지? 아이템 창 오픈 -혼돈의 반지(신급 3등급)- 혼돈이라는 이름의 반지. 이 반지를 착용 시 자신의 공격력이 20% 상승된다. 물론 스킬을 사용할 때도 그 데미지에 맞게 20%가 상승된다. 평소 공격력과 스킬 데미지를 합산한 게 1,000이라고 가정을 한다면 적을 공격할 때는 1,200으로 올라간다. 피 2,000 상승. 마나 500 상승. 공격력 700. 방어력 200. 흐음, 다시 봐도 좋은데? 로케리스보다 훨씬 쓸모가 있어, 로케리스는 전설급인데도 신급보다 도움이 안 돼. 뭐, 마법 데미지를 증폭시켜 주는 건 마음에 들지만. “어떻습니까? 사시겠습니까?” “얼마에 파시는데요?” “얼마 안 합니다. 9만 골드 정도?” “헉!” 9만 골드라니! 현금으로 따지면 900만 원이라는 소리였다. “그리 놀라지 마시고 능력치를 한번 보시지요.” “능력치?” “그렇습니다. 돈 드는 것도 아니니 능력치 한번 보시고 결정하십시오.” 난 그 말에 아이템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 손을 움직였다. 본다고 돈이 드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라이크리아의 목걸이(신급 1등급)- 공격력 900 증가. 마나 2,000 증가. 방어력 200 증가. 마나 회복 속도: 200% 증가. 특별 스킬: 에쿠리 마린 3일에 한 번 마나 회복 속도를 3,000%까지 올린다. 헉! 3,000%? 마나가 올린 당하면 다시 절반 이상 채워준다는 소리? 나는 여타의 직업과 달리 마나가 많이 든다. 그건 페널티 때문이었다. 내가 다른 기술들을 사용 가능한 조건이 마나가 5배 더 든다는 것이다. 그 조건으로 스킬을 쓰는 까닭에 마나는 거의 급속도로 빠져나갔다. “어떻습니까?” 꿀꺽. 난 그 말에 침이 넘어갔다. 정말 좋아 보였다. 아니, 좋은 정도가 아니고 마음에 쏙 들었다. 공격력 900이라는 점도, 마나 2,000 증가라는 것도 무척 마음에 들었고, 모양새도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특별 스킬 에쿠리 마린이라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할인 좀 안 됩니까?” “아시잖습니까, 신급 1급은 아무 데서나 구할 수 없다는 거.” “…….” 맞는 말이었다. 그런데 아무 데서나 구할 수 없는 걸 이 평범한 아저씨는 어떻게 구했을까? “안 사시겠다면, 뭐.” “사겠습니다.” “오! 돈도 많으시군요. 9만 골드나 가지고 계신 분들은 흔치 않은데…….” 그야 아이템 하나도 사지 않고 정말 힘들게 모았으니, 그리고 그 이상한 아저씨가 의뢰한 덕분이었다. 그런 의뢰 또 안 들어오나? 이제 뭐 들어와도 무리겠지만, 데스 길드가 그 이후부터 어마어마하게 경비에 신경을 쓴다니까……. “자, 자. 돈 주십시오.” “크윽.” 난 9만 골드를 인벤토리 창에서 꺼냈다. 하아,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이게 어떤 돈인데……. 그렇지만 스킬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한마디로 저 목걸이만 있으면 전투력이 팍 상승된다는 말과 일맥상통했기에……. 나는 그렇게 가슴을 붙잡은 채 목걸이와 돈을 교환했고, 잠시 후 아저씨는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다른 분들이 사시는 건 특별 서비스로 공짜로 해 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뭘요. 후후후.” 그 아저씨는 9만 골드짜리를 팔아 치워서 그런지 기분이 좋아 보였다. 이런 건 웬만한 존재가 아니면 사지 못할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내가 돈이 많아 보이나? 그건 아닌데. 이 밋밋한 천 조각 옷. 거의 레벨 50대 애들이 입는 옷이었다. 뭐, 나는 60이니까 할 말이 아닌가? 저번에 수호의 골렘을 잡았더니 2업이나 했다. 참 착잡하다. 그게 문제가 아니라, 저 아저씨는 내가 돈이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지? “오빠, 다 골랐어요.” “난 이거, 이거!” “주인님, 전 이거요!” “나는 이거 마스터!” “저도 이거요!” 그렇게 그들은 좋아 보이는 액세서리를 골랐고, 난 그 아저씨를 슬쩍 보았다. 그러자 그 아저씨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우리는 대박 쇼핑을 끝내고 철수했다. “마스터, 9만 골드입니다.” “아, 수고하셨습니다.” 방금 민혁이에게 물건을 판 남자는 무거운 관을 든 남자에게 돈을 바쳤고, 잠시 후 그 남자는 궁금하다는 듯 말했다. “왜 그걸 파셨습니까? 힘들게 얻으신 걸로 아는데…….” “돈이 없거든요.” “네?” “저번에 그 남자에게 의뢰한다고 13만 골드를 사용했더니, 예산에 타격이 컸습니다.” “…….” “메퍼님께서 무조건 하라고 하셔서 했더니, 설마 13만 골드까지 부르실 줄이야……. 타격이 컸습니다.” “그, 그렇군요.” 민혁이가 방금 얻은 목걸이는 그가 힘들게 먹은 아이템으로 예산 부족으로 처리가 되어 버린 것이었다. “아, 그나저나 그게 뭐기에?” “아름답습니다.” “…….” 미쳐도 고이 미치든지! 아무것도 없는 종이보고 아름답다니, 정우 저놈 정말 미친 거냐? 종이에 혹시 뭐라도 적혀 있나 싶어서 살펴봐도 그 종이는 완벽한 백지였다.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세 번 봐도 백지였다. “아! 형님, 물 좀 주시겠습니끼?” “물?” “네.” “식수? 영어로 번역하면 워터?” “그렇습니다.” 갑자기 웬 물을……. 난 어이가 없었지만 정우의 부탁대로 인벤토리 창에서 갈증이 날 때 먹기 위해 놔둔 식수를 꺼내 건네주었다. “고맙습니다.” 벌컥벌컥! “아!” 난 정우의 행동에 기겁했다. 저 새끼가 내 거금 200골드를 주고 산 종이에 식수를 마구 붓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방금까지도 아름답다느니 어쩐다느니 하던 놈이 종이에 물을 붓다니……. 이제 다시 사용하지 못할 게 분명해야 하지만 종이는 멀쩡했다. “너, 무슨 마법을?” “마법이라니요. 간단한 원리입니다.” “간단한 원리?” “이것은 물에 젖으면 반응하는 비밀 지도거든요.” “비, 비밀 지도?!” 난 다급하게 그 지도를 뺏었다. 비밀 지도라니,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 지도를 보는 순간 난 믿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없던 종이에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세세하게 길이 안내되어 있는 지도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지도를 바라보던 중 맨 구석에 자그마한 글씨로 적혀 있는 것을 보고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렸다. “해저동굴?” “그런 것 같습니다.” “너 설마…… 이걸 알고……?”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 “그냥 갖고 싶어서 샀는데, 비밀 지도였습니다.” 저 새끼, 그럼 그렇지. 그렇다면 저놈은 진심으로 200골드를 들여 백지 종이를 사고 싶었다는 건가? 이해가 안 간다. 저놈의 정신세계. 뭐 저놈뿐만 아니라 다른 놈들도 이해가 안 간다. 아니, 이해가 안 가기를 빌었다. 저놈들의 정신세계를 이해하는 순간 난 미친 것을 테니까. “아 참, 형님. 저는 잠시 물건 좀 사러 가겠습니다.” “물건?” “해저동굴에 가는 데 필수품이죠.” 잠시 후. 정우는 그 말과 함께 사라졌다. 난 그 시간에 그 지도를 열심히 보고 있었다. 그 지도는 온천리안 도시 근처를 가리키고 있었다. 온천의 도시, 온천리안. 온천이 제일 많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었다. 참 작명 센스하고는……. 그렇지만 이곳으로 말할 것 같으면 별별 온천이 다 있었다. 예를 들어 광탄(?), 황토탕, 소금탕, 에르게리암(?)탕 등 어쨌든 탕이 넘쳐흐르는 마을이었다. 물론 처음에는 이렇게 많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대폭적으로 늘어났다. 유저들이 돈 된다는 걸 알고 온천을 마구 지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온천과 더불어 제일 유명한 것, 그건 바다였다. 최대 휴양지로 꼽히는 바다. 현실 세계의 바다나 게임 세계의 바다나 그리 다를 건 없었다. 아니, 똑같았다. 유일하게 다르다면 바다에서 가끔씩 괴물이 튀어나온다는 거였지만……. 하지만 워낙 사람이 많은 까닭에 그런 괴물은 나오면 그대로 잡혔다. “오빠, 무슨 생각을 그리 하세요?” 쭈그리고 앉아서 잡생각을 하던 나의 옆으로 예화가 살포시 다가와 앉으면서 물었고, 난 그 물음에 예화를 쳐다보았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아니, 별생각 아니야. 그런데 무슨 할 말 있어?” “그, 그게…….” 난 별 뜻 없이 물어본 건데, 정말 할 말이 있었는지 예화는 말을 흐렸다. “말해. 괜찮아.” “그, 그러니까 이, 이번 주말…….” “형님, 저 왔습니다.” “…….” 예화가 힘들게 말을 하고 있는 도중 정우가 저 멀리서 힘차게 말하면서 다가왔고, 난 그런 정우를 가볍게 무시한 뒤 곤란하다는 표정을 짓는 예화를 향해 말했다. “무슨 일인데?” “아, 아니에요.” “……?” 예화는 다급하게 고개를 저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고, 난 그런 모습을 보고 저기서 해맑게 오는 정우가 원망스러웠다. 그나마 제일 행복한 시간을 깨다니! 그나저나 저놈 뭘 저렇게 잔뜩 들고 오는 거지? “야, 네 손에 잔뜩 들린 거 뭐냐?” “수영복입니다.” “…….” “걱정 마십시오. 피티언님과 형님 것, 제 거랑 채은 양, 예화 양, 세리하 양은 특별히 비키니로 골라 왔습니다.” 비, 비키니? 상하가 분리된 그 옷? 한편 그 말을 듣던 예화가 얼굴을 붉힌 채 고개를 푹 숙였고, 세리하는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채은이는 얼굴을 살짝 붉히면서 정우를 향해 말했다. “정우! 너 변태야?” “변태라니요. 형님도 무지무지 좋아할 겁니다.” “오빠가?” “그렇습니다. 확실합니다.” 야, 갑자기 왜 나에게……. 그런 정우의 말에 갑자기 나에게 쏠리는 눈빛들. 채은이는 정말이냐는 눈빛으로 나를 보았고, 예화는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세리하는 유혹적인 미소를 지으면서 나를 보고 있었고……. 나도 분명 남자인 관계로 미소녀들이 비키니를 입으면 분명 좋아하기……. 이게 아니잖아! “이 새끼야! 우리가 해저동굴 가지, 무슨 바닷가 가냐!” 하마터면 저놈의 말발에 속아 넘어갈 뻔했다. 무서운 놈. “해저동굴이나 바다나 같은 맥락입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우리는 던전 탐험이라고! 수영하러 가는 게 아니라고!” “같은 맥락이기에…… 수영해도 됩니다.” 아, 저 이해 불가능한 단어들. 이해 못하겠다. 휴, 정말 가끔씩 정우를 보면 난 이런 생각을 한다. 혹시 300만 광년 떨어진 곳에서 살다 나타난 외계 생물체가 아닐까 하는. “혹시 형님께서는 남자 수영복이 마음에 들지 않으셔서 그런 겁니까? 그럼 걱정하지 마십시오. 형님을 위해 형님 전용(?) 여자 비키니를 준비해 왔습니다.” “이 새끼야! 내가 네놈처럼 이상한 취미 가진 줄 아냐!” 난 그대로 날아올랐다. 내 거라고 사 온 비키니를 찾고 있는 정우를 걷어차기 위해. 만약에 만에 하나 그걸 본다면 정신적 충격이 크기에 미리 예방 차원이었다. 퍼억! “커억!” 정우는 나의 발차기를 맞고 날아갔고, 그러면서 수영복이 밖으로 튀어나왔다. 수영복은 각종 레인보우부터 망사에 이르기까지 없는 게 없었다. 이 새끼, 정말 외계 변태냐? 그렇게 아주 짧은 해프닝은 끝이 났다. 물로 그 수영복은 정우가 너무나도 매달리는 바람에 다시 줬다. 하지만 만약 그걸 내 눈앞에서 꺼내면 불태워 버러겠다는 전제 조건하에……. 해저동굴 키루메이젼. 우리가 갈 동굴이었다. 그 안에는 무엇이 있는지는 몰랐다. 하지만 비밀 지도까지 있는 걸 보면 예사로운 던전이 아님에 분명했다. 용호대박(?)이라는 말이 절실히 떠올랐다. 과연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각종 보석들과 초고급 레어 아이템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분명 가능할 수도 있었다. 이때까지 워낙 불행만이 가득했기에 이때쯤 분명 대박이 터질 것이라고 믿었다. “피티언, 너 피타케라스(?)의 정의라고 알아?” “피타케라스?” “응. 피타케라스!” “케미리 넌 알아?!” “몰론이지!” 문득 진지하게 말을 하는 개 한 마리와 피티언. 너무나도 진지해서 듣는 나도 진지해졌다. 그런데 피타케라스의 정의라는 것도 있나? 처음 알았다. “설명해 봐!” “피타가 케라스라는 동물을 잡아먹기 위해 만들어 낸 방법이래!” “우아! 케미리, 너 엄청 똑똑하다!” “후헤헤. 뭐, 기본이지. 이거도 모르면 세상을 어떻게 살아!” “정말 너 천재다!” “이제 알았어?” 피타가 케라스라는 동물을 잡아먹는다는 게 피타케라스의 정의? “…….” “…….” 그런 대화를 듣던 채은이와 예화는 어색한 미소를 지은 채 케미리와 티피언을 보고 있었다. 그 미소를 대략 읽어 보니 ‘말도 안 돼.’ 라는 눈빛이 분명했다. 난 말도 안 된다는 듯 바라보는 채은이와 예화 옆으로 다가가서 은근슬쩍 물었다. “저 말을 어떻게 생각하니?” “어떻게 생각하냐니……. 그리고 오빠, 피타케라스가 아니라 피타고라스 아니야? 혹시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 “언니, 저도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그 말과 함께 더불어 나를 바라보는 채은이와 예화. 나를 그렇게 보지 말아 주렴. 내가 피타케라스인지 피타고라스인지 알 리가 없잖니. 하지만 대충은 알았다. 저 닭대가리 2인방이 하는 말보다는 미소녀 2명이 하는 말이 신임도가 30,000,000배가 높았으니까……. “맞지, 오빠.” “그, 그럼. 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 나는 약간 양심에 찔려서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런 나의 모습에 채은이는 다른 생각을 하는 듯싶었다. “분명히 ‘3변의 비가 3 : 4 : 5인 삼각형은 직각삼각형이 된다는 것은 이미 이집트에도 중국에도 알려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각삼각형의 정리를 피타고라스의 정리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가 논리적 증명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하여 이 정리를 증명했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라고 들은 것 같은데…….” “설마 다 외운 거야?” “이건 시험에 꼭 나온다는 설명을 듣고 죽도로 외웠는데, 아직 잊어버리지 않았네.” “…….” 그래도 대단하다. 나 같았으면 죽어도 외우지 못할 게 분명했다. 근데 시험에 저딴 문제를 왜 내는 거야? 참 할 짓 없는 작자들이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시험은 사회악(?)이라고, 시험이 애들을 다 버려 놓았다. 누가 이런 짓도 했다. ‘시험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요!’ 하면서 공중 낙하. 한마디로 자살이라는 소리였다. 참 슬픈 시험제도, 폐지해야 했다. 물론 나 좋으라고 그러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 위해서(?)……. 2분 7초 전에 저놈들이 믿음직스럽다고 한 말은 삭제하겠다. 믿음직스럽기는커녕 절망적이었다. 피타가 케로스를 잡아먹기 위해 만든 방법? 무지하게 난감하다. “형님, 도착했습니다.” 바로 그때 앞장서서 안내하던 정우가 도착을 알렸고 난 그 말에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내 앞에 나타난 어마어마한 크기의, 너무나도 평범해서 평범 평범 평범해 보이는 동굴? “여기가 해저동굴? 그냥 동굴이잖아.” “이곳을 빠져나가야 해저동굴입니다.” “아하.” 난 정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저 동굴이 바다와 이어지는 동굴이라는 건가? “자, 형님이 앞장서십시오.” “내가?” “원래 동굴 같은 데는 리더가 앞장서야 합니다.” “그, 그런가?” 나는 리더라는 말에 기분이 살짝 좋아졌기에 힘차게 발걸음을 옮겼다. 여기서 내가 대표니까 리더는 맞는데, 직접 들으니 괜히 더 기분이 좋아졌다. 터벅터벅. 그렇게 우리는 동굴 안에 들어왔다. 아무것도 없는 동굴. 뭐, 해저동굴과 이어지는 동굴인데 무언가 있으면 이상한 건가? 그렇게 한 10미터 정도 진행했을 때……. 수우웅! “히이익!” 나의 코앞 1밀리미터를 지나가는 화살. 내가 고개를 순간적으로 뒤로 젖히지 않았으면 저 화살은 내 머리를 관통했을 게 분명했다. “마스터?!” “오빠!”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 다급히 다가오는 일행이었지만 난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오지 마!” 타악! 나의 말에 다들 멈추었고, 난 천천히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모두 조심스럽게 후퇴.” 터벅터벅. 나의 말에 일행들은 뒤로 물러섰고, 나도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슈우욱! 슈우욱! 슈우욱! 순간 모든 지역에서 5개씩 날아오는 화살들, 난 그 화살들을 보고 생각했다. 징하게 날아온다. 검(Sowrd) 소환. 인첸트 수(水)! 방어 능력 활성화! 그 말과 함께 바닥에서 기어(?) 올라오는 검. 난 그 검을 재빠르게 낚아챈 뒤 나에게 날아오는 화살을 향해 휘둘렀다. 하지만 화살이 날아오는 방향은 총 4군데, 위험했다. 난 일단 앞쪽과 오른쪽을 향해 두 번 휘둘렀다. 당연한 말이지만 마나는 쭉 빠졌고, 다음에는 뒤쪽을 향해 검을 휘두르려고 했지만 이미 화살은 나와 근접한 상태였다. “젠장!” 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크악!” 하지만 화살은 아래쪽에서도 발사됐는지 위기 상황이었다. 이대로는 죽기 싫은데! 난 함정에 빠져 화살꼬치가 되어 죽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그런 비참한 죽음이라니, 정말 사양이었다. 휘이익! 난 그대로 나에게 오는 저공 화살을 향해 검을 일직선으로 세웠다. 이렇게 되면 검으로라도 막는 수밖에. 타앙! 다행히도 화살은 검에 맞고 튕겼지만, 그 후의 현상은 내가 미쳐 버릴 것 같았다. 쨍그랑! 검이 깨졌다, 소환했던 검이. 이때까지 무적 같던 검이 말이다. 단 화살 한 방에 그것도 3단계로 진화된 검이……. “이 던전의 함정은 뭐야!” 난 안전 지역으로 보이는 곳까지 다급하게 물러섰다. 바로 그때, 내 눈에 왠지 모르게 무거워 보이는 테피언의 모습이 보였다. “어떻게 마계 광석 아만다티움이 이곳의 화살로 만들어졌지?” 아만다티움? 마계의 광석으로 오리데오콘보다 강력하다고 평해지는 광석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광풍을 사용한 줄 알았는데 흠집 하나도 없이 멀쩡하다. “마계에서도 귀하디귀한 아만다티움으로 이딴 화살이나 만들다니, 이해가 안 되는군.” 우아! 테피언, 멋있어 보여. 아니, 그게 아니고 피티언의 말대로 이 귀한 광석으로 함정 화살을 만들다니, 할 짓 더럽게 없었나 보다. 아니, 미친 거다. 그나저나 저거 주워 가면, 흐흐흐! 저걸로 무기 만들어서 들고 다니면 무지 좋아 보이겠다. “오빠, 뭐 해?” “헉!” 난 순간적으로 그 화살들을 주우러 가는 내 몸을 채은이의 한마디 덕택에 저지할 수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움직이다니, 이 무서운 몸뚱이. 그나저나 검이 부러졌는데 다시 소환이 가능하려나? 검(Sword) 소환. -검을 소환할 수 없습니다. 지금 복구 중에 있습니다. 23시간 35초 안에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하루 동안 검 소환 금지라니, 상당히 곤란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해저동굴에 가는 상황인 만큼 참 괴로운 핸디캡이었다. 그런데 이거 해저동굴로 통하는 동굴이 맞는 건가? 설마 저번처럼 잘못 들어온 건 아니겠지. 나는 그런 생각과 더불어 정우를 바라보았고 그런 나의 눈빛을 본 정우는 고개를 저었다. “확실합니다.” “혹시 이곳 말고 다른 데로 들어가는 방법이 있지 않아?” “그렇군요.” “이 새끼야!” 그럼 그렇지! 해저동굴로 가는 데에는 두 가지 길이 있었던 것이다. 방금 들어온 길은 말도 안 되는 살벌한 길이었고 말이다. 퍼억! 난 가볍게 정우를 발로 밟으면서 지도를 빼앗아 살펴보았다. 역시 가는 방법에는 루트 1과 ‘절대 가지 마세오.’ 라고 적혀 있는 루트 2가 있었다. 그런데 절대 가지 마세요? 그런 곳을 왜 정우 놈이……. 그 생각과 더불어 나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 ‘원래 동굴 같은 데는 리더가 앞장서야 합니다.’ 난 그대로 정우를 지근지근 밟으면서 말했다. “이 새끼, 무슨 꿍꿍이냐!” 이 새끼, 혹시 첩자? “아닙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형님이 기운이 없는 것 같아서 기운을 북돋아 드리려는 제 자그마한 성의였습니다.” “지랄한다! 네놈은 이걸 봤겠지. 절대 가지 마세요. 단순히 궁금해서 그런 게 아니냐!” “…….” 침묵. 긍정이구나! 감히 그런 쓸데없는 이유로 나를 이런 곳에 밀어 넣다니, 마음 같아서는 당장 죽도록 밟고 싶었지만 참기로 했다. 내 앞에 있는 마계 금속 아만다티움 때문이었다. 저걸 어떻게 해야 잘 주워서 가지? 또 가려고 하니 이제는 겁난다. 그렇지만 저기서 날 유혹하는 아만다티움은 나를 보고 속삭이고 있었다. 어서 와서 자신을 가져가라고. 저런 것은 구하고 싶어도 구하지 못하는 광석이었다. 스윽. “뭐, 뭐야?!” 바로 그때 화살을 집어삼키는 땅. 바닥이 갑작스럽게 열리더니 그 화살들을 도로 가져가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재탕하는구나. 쪼잔한 것들. 그렇다면 다시 저기 뛰어 들어가서 화살들을 맞아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거부하고 싶다. 그런 나의 눈에 살며시 들어오는 개 한 마리. “오호!” “히익! 나, 난 못해! 주, 죽기 싫어!” “…….” 내가 말하기도 전에 감을 잡은 케미리였다. 평소에는 눈치도 없던 놈이 이럴 때는 눈치가 초특급 수준이었다. 아니, 거의 경악 수준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케미리에게 맡기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물론 스피드라는 게 있기는 했지만 믿음직스럽지가 않다는 소리였다. “됐어. 안 시켜, 임마. 넌 화살이 바닥에 떨어지면 재빠르게 주워 와.” “헉! 그, 그건 나에게 모든 걸 맡긴다는 소리?” “…….” 어떻게 풀이하면 그딴 풀이가 나오는 것일까? 내가 케미리에게 시킨 이유는 이 중에서 스피드가 가장 빠른 어쌔신이기 때문이었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내가 설마하니 케미리를 믿고 일을 시키겠는가. 난 계속해서 헛소리를 지껄이는 케미리를 향해 뚱한 어조로 말했다. “헛소리 작작하고 잘 주워 와.” “생각해 보고.” “그럼 생각해 봐. 그 대신 못 주워 오면 생각하기 전에 이 세상에서 너를 지워 주지.” “아니, 할게. 최선을 다해서 할게. 나를 믿어 줘!” 순식간에 변하는 케미리, 비굴해도 이리 비굴할 수는 없었다. “휴우.” 난 일단 케미리에게 맡긴 뒤 앞을 바라보았다. 저기에 또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에 착잡했다. 화살 속도도 순간적으로 가속하는 건지 어마어마한 속도였다. 그랬기에 실수 한 번하면 난 그대로 죽어 버리는 것이었다. 목숨을 건 아만다티움 화살 탈취, 하지만 그만큼의 가치는 분명 있었다. 난 케미리를 슬쩍 본 뒤 말했다. “방금 했던 말, 99%가 진심이다.” “거, 걱정 마.” “이 세상에 존재하고 싶다면 잊지 마.” “응, 응!” 그렇게 살며시 케미리에게 협박을 한 뒤 마음을 다잡았다. 아까 화살이 나왔던 장소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거기를 밟고 순식간에 빠져나오면 된다는 소리. “오빠, 위험하잖아요.” “그래, 오빠. 위험해. 하지 마.” “주인님, 위험해요!” “마스터, 위험합니다.” 그런 나를 보고 다급히 말리는 일행들. 고맙구나, 흐흑. 그런데 왜 세 명은 빠진 것 같지? 난 그런 생각과 더불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정우와 테피언, 케미리를 보았고, 내 눈길에 그들은 형식적으로 말했따. “저는 형님을 믿고 있어서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동의.” “뭐, 우리 사이에 알면서…….” 됐다. 너희들한테 뭘 기대하겠니. 나를 말리는 일행을 향해 손을 저으면서 괜찮다는 제스처를 취했고 그런 나의 반응에도 일행들은 여전히 거정하는 모습이 가득했다. 하지만 갈 수밖에 없었다. 내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최강의 강도를 자랑하는 광석이었으니까. “하아압!” 기합 소리와 함께 난 달려 나갔다. 역시나 아까 간 곳에 다다르자, 화살이 네 방향에서 5개씩 총 20개 정도가 나를 향해 쏘아져 왔다. 무슨 화살에 가속 부스터를 달았나? 뭐 이리 빨라. 화살의 속도는 아까보다 오히려 더 빨라진 느낌이 들었다. 휘이익! 휘이익! 휘이익! 화살들이 네 군데에서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는데 그나마 낫다면 이제는 알고 있다는 사실, 아까는 기습 공격이었지만. 나는 그대로 몸을 젖혔고, 화살은 아슬아슬하게 내 머리를 지나갔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후속타들이 내 몸을 뚫기 위해 날아왔다. 제길! 무기를 소환해 봤자 저 말도 안 되는 광석에 깨질게 분명했기에 오직 몸으로만 피해 내야 했다. 나는 뒤를 슬쩍 보았고 안전 공간이 보이자 뒤로 빠지고 싶었지만, 워낙 화살들이 무섭게 날아다녀서 그것도 마음대로 안 되는 상황이었다. “히익!” “오빠!” 바로 그때 화살 하나가 내 팔을 스치고 지나갔다. 아프다. 더럽게 아프다. 아주 슬쩍 지나갔는데 살이 다 찢어졌다. 이런 말도 안 되는 파괴력이라니! 하지만 그 한 방의 희생으로 난 뒤로 빠질 수 있었다. 한마디로 살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케미리 놈, 뭘 저리 멍하게 있는 거지? “야, 똥개! 어서 안 움직여!” “헉! 아, 알았어!” 캐미리는 겁먹은 얼굴로 재빨리 화살을 수거하기 위해 움직였다. 저놈도 저 경악적인 화살의 파괴력을 보고 놀란 것 같았다. 그때 일행들은 나에게 재빨리 달려왔고, 난 반가운 얼굴이 보이자 말했다. “세리하, 힐!” “저, 저…….” “왜 그래, 세리하?” “헤헷. 저 힐은 못 써요.” “너 프리스트 아니야? 근데 아주 기본적인 힐도 못 쓴다고?” “네.” 난 세리하가 보조 마법을 잘 쓰지 못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기본적인 힐 하나도 못 쓸 줄은 몰랐다. 바로 그때, 정우 놈이 자신만만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걱정 마십시오. 저는 힐이 가능합니다.” “…….” 그렇게 나는 어쩔 수 없이 찜찜하게 정우에게 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아, 기분 안 좋다. “헥헥.” 화살 수거가 끝났는지 케미리가 내 근처에 와서 기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고, 난 그 모습을 보고 케미리를 칭찬할 수밖에 없었다. 난 케미리가 이렇게 도움이 될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을 해 보지 않았는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케미리, 수고했다.” “뭐, 나같이 뛰어난 소환수한테는 기본적인 건테” “…….” “후하하하하!” 나의 한마디에 금세 자신만만해지는 케미리였다. 도대체 그 근원을 알 수 없는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제발 그딴 자신감은 다른 쪽으로 사용하면 안 되나? “그래, 네놈 잘났다. 내놔.” “뭘?” “화살.” “응? 아무 대가도 없이?” 감히 나에게 대가라고? 지금 그 말은 나에게 무언가 보상을 원한다는 소리인가? 난 슬며시 웃으면서 케미리를 바라보았다. “대가를 원해?” “당연하지. 동가교환의 법칙도 모르는 거야, 마스터?” 그건 무슨 법칙이지? 등기교환의 법칙은 어디서 들어 봤는데……. 그런데 요새 케미리의 간덩이가 점점 불어나는 것 같은 느낌은 내 착각인가? 원래 너무나도 싸가지 없던 개였는데 더 없어진 것 같았다. 나는 그렇게 당당히 나에게 동가교환(?)을 원하는 케미리를 눈을 가늘게 뜬 채 보다가 주먹을 아주 살살 쓰다듬었다. “돼, 됐어. 선물 필요 없어.” “왜? 난 해 주고 싶은데.” “거부할게. 마스터, 자.” 나에게 공손히 아만다티움 화살을 내미는 케미리. 나의 사랑스러운 주먹을 선물해 주려고 했는데, 케미리는 방금 전에도 말했지만 이런 쪽에는 눈치가 정말 빠르다. 뭐 어지 됐든 난 케미리가 공손히 바치는 아만다티움으로 만들어진 화살을 받았다. 이게 오리데오콘의 강도를 넘어서는 마계 금속이라고? 물론 이 광석이 오리데오콘을 능가한 다고 보장은 못한다. 왜냐하면 아마도 이걸 내가 처음으로 발견한 게 분명했으니까. 그렇지만 소문으로 듣기에는 최강의 금속이라는 것이었다. 그딴 최강의 금속이 이런 알지도 모르는 동굴에 설치되었다는 게 너무나도 의아했지만 난 신경 끄기로 했다. 어차피 내가 원하던 아만다티움은 얻어으니까. 나는 그렇게 그 금속을 인벤토리 창에 고이 모셔 놓았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꼭 한 번 드워프를 찾아서 무기나 만들어 달라고 해야겠다. 이곳의 함정은 테이스 월드의 넘버3 안에 들 정도로 어마어마한 함정이었다. 화살의 속도도 다른 화살에 비해 최소 14배 이상은 나올 정도였다. 그런데 민혁이가 그 화살을 피하고 그것도 모자라 챙겨 나갈 수 있었던 이유는 반사 신경 덕택이었다. 이때까지의 삶이 너무나도 도움이 돼서, 이미 함정이라는 것에는 너무나도 익숙해진 덕분이었다. 보통은 들어오자마자 눈치도 채지 못한 채 화살 단 한 방에 즉사하는 게 정석이었다. 으윽! 좁다. 해저동굴로 가는 다른 길을 찾아 들어오고 나서 든 기분이었다. 이 동굴은 딱 사람 한 명이 걸을 수 있을 너비였다. “오, 오빠, 여기 왜 이리 좁아?” “여기가 정말 해저동굴로 통하는 동굴이 맞나?” 난 채은이의 말에 나도 모르게 물었다. 난 채은이의 말에 나도 모르게 물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확실한 게 분명했다. 왜냐하면 내가 한 다섯 번은 확인하고 들어온 동굴이었으니까 말이다. 틀릴 확률은 없는 것이다. 지금 우리 일행은 내가 맨 앞에 서고 채은이, 예화, 세리하, 피티언, 테피언, 정우, 케미리 순서대로 오고 있었다. 이중에서 제일 힘들어하는 게 강철 갑옷 테피언이었고, 그에 반해 너무나도 한가하게 오는 건 케미리였다. “뭐가 힘들다고, 이렇게 편한데!” 네놈은 개잖아! 나, 피티언, 정우, 그리고 테피언은 죽을 지경이었다. 일단 체격이 큰 남자들이니까. 그에 반해 여자들은 우리들보다는 약간은 쉬운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채은이는 키가 168Cm, 예화의 키가 164Cm였고, 세리하가 173Cm 정도로 제일 컸다. 그뿐 아니라 채은이와 예화는 몸매도 완벽했다.(나올 데 나오고 들어갈 데 들어갔다는 소리) 아, 얼굴 되지, 성격 되지, 몸매까지 완벽하다니……. 이리 완벽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세리하는 이 셋 중에서 채은이와 예화보다는 미모가 살짝 달릴지 모르지만, 가슴은 제일 컸다. 최소 D컵? 그런데 내가 왜 이딴 상상을 하고 있는 거지? 그냥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냥 심심해서……. 어째 됐든 그렇게 우리는 이 정체불명의 동굴을 계속해서 탐험했다. 썩 기분 좋은 동굴은 아니었지만, 이곳을 지나지 않으면 목표지에 갈 수가 없었기 때문에 필수 조건이었다. 끼이익! “꺅!” “뭐, 뭐야?!” 퍼억! 바로 그때 갑작스럽게 나에게 날아오는 검은 물체와 더불어 내 뒤에 있던 채은이의 비명 소리. 난 거의 무의식적으로 그 물체를 가격했다. 그러자 내 주먹에 맞은 물체는 그대로 바닥에 달라붙었다. 약간 안쓰러울 정도로……. 이 괴물 같은 데미지가 어느 때는 약간 잔인해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나저나 저 괴이한 생물은 떡이 되어서 뭔지 살짝 구분이 안 갔다. 바로 그때, 그걸 보던 채은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저거 흡혈 박쥐 아니야?!” “흡혈 박쥐?” “응! 나 몬스터 도감에서 봤어! 형체가 뭉개졌지만, 맞는것 같아.” “그 피를 쪽쪽 유후~ 하게 빨아먹는다는 그 흡혈박쥐?” “이상하게 설명하는 것 같지만, 그런 것 같아.” “흡혈박쥐라…….” 난 떡이 돼서 형체도 알아보기 힘든 흡혈박쥐를 바라보았다. 흡혈박쥐는 현실 세계에도 존재했다. 그런데 현실 세계의 흡혈박쥐들은 상당히 몸집이 작은 걸로 알고 있다. 하지만 방금 공격한 놈은 대략 크기만 해도 내 주먹의 4배 이상으로, 어마어마한 크기였다. “끔찍해.” “그, 그래?” “응. 난 저런 거 정말 싫어하는 것 오빠도 알지? 헤헷.” “그럼, 물론 알지…….” 채은이는 징그러운 걸 무지 싫어했다. 물론 여자들치고 징그러운 것 좋아하는 여자들은 못 보았지만 채은이는 그 정도가 심했다. 1개월 전, 난 채은이의 집에 바퀴벌레가 출동했다는 말을 듣고 급히 파견되었다. 채은이가 눈물까지 흘리면서 나에게 매달렸기에 나의 영웅심이 발동된 것이었다. 뭐 당연한 말이지만, 그날 바퀴벌레는 단 3분 만에 나에게 자근자근 밟혀서 죽었다. 바로 그때, 난 뒤에서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이 괴이한 눈빛은? 스윽. 설마 하면서 고개를 돌리자 깜짝 놀라는 채은이와 더불어 뒤편에서 침을 주르르 흘리고 있는 피티언이 있었다. “마스터, 박쥐는 무슨 맛일까요?” “…….” “맛있겠죠?” 우욱! 소, 속이 안 좋다. 저 피떡이 된 박쥐를 보고 무슨 맛일까? 원래 이러지 않았잖니, 피티언, 정말 왜 그렇게 된 걸까? 저번에 그 이상한 던전에서부터 이상한 병에 걸린 듯싶었다. 식탐유후병(?), 물론 뜻 같은 것은 모른다. 그래, 그냥 무시하자. 일일이 신경 쓰다가는 내 연약한 심장이 심장마비 걸려서 죽을지도……. “앗! 오빠, 저기! 동굴의 넓이가 확 넓어졌어!” “어라? 정말이네?” 바로 그때 예화의 말소리를 들은 난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거기에는 이 비좁은 동굴이 아닌 커다란 동굴이 있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정도로 비좁은 공간이었지만, 20미터 앞은 수백 명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넓은 공간이 있었다. 난 이 답답한 공간을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다급히 걸음을 옮겼다. 우리는 그 큰 동굴로 빠져나왔고, 잠시 후 심호흡을 했다. “휴우, 살 것 같다.” “헥헥, 나 죽네!” 거의 녹초가 된 듯한 테피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비좁은 데를 그 큰 몸으로 빠져나왔으니 힘들기도 하겠지. “테피언, 넌 따로따로 분리해서 못 들고 다녀?” “내가 무슨 깡통 로봇이냐!” “아니야?” “나는 엄연히 데스나이트! 그런 나를 모독하다니!” 나의 말에 테피언은 마구 화를 냈다. 분리가 안 되면 안 되는 거지 저리 화를 내는 모습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나저나 테피언은 왜 저 고생을 했지? 반지 속에 들어가면 될 것을……. 이해 불가다. 뭐 그 사실을 우리 일행은 다 잊어버리고 있었다. 워낙 저놈의 행동이 자연스러워서 반지에서 나왔는지 아닌지도 헷갈렸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난 다시 그 커다란 동굴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살펴볼 것도 없었다. 내 앞에는 물밖에 없으니까……. 건너편은 물속인데도 신기하게도 물은 이상한 막에 걸린 듯 이곳에 들ㅇ오지 않았다. 물속과 동굴이 분리되어 있었다. 이리 신기한 현상이라니, 마치 무슨 마법이라도 걸어 놓은 듯싶었다. “난 물 싫어! 안 가! 안 가!” 케미리는 물을 보고 기겁을 했다. 저놈이 개여서 그런지 몰라도 물을 상당히 싫어하는 듯싶었다. 개 중에는 개헤엄이라고 물을 좋아하는 개도 있었지만, 케미리는 죽도록 물을 싫어하는 개인 것 같았다. 그때 채은이가 케미리를 보면서 어색한 듯 존댓말을 했다. “걱정…… 마세요.” “응?” “저는 정령술사. 물속에서 숨 쉬는 것 정도야 할 수 있거든요. 운디네의 힘을 빌리면…….” “훗! 방금 내가 물을 무서워한다고 생각했지?” “네?” “아니야. 난 물을 무서워한 게 아니야. 그냥 그랬을 뿐이야.” 무슨 말이지? 난 케미리의 말이 도대체 이해가 안 갔다. 하지만 한 가지는 이해가 갔다. 자신이 방금 했던 쪽팔린 행동을 만회하기 위한 행동이라는 것을……. “난 용감하거든. 그딴 물 같은 거에 두려워하지 않아.” “오호, 그러셔? 그럼 너는 그냥 잠수해서 와.” “뭐, 뭐?” “물 안 두려워한다면, 임마.” “그, 그러니까……. 그, 그래! 괜히 고생하는 거는 안 좋아!” “아니야. 너의 멋진 모습을 보여 주는 거야!” “…….” 케미리는 내 말에 너무나도 당황한 듯싶었다. 다리까지 떠는 걸 보니. 근데 개가 직립보행과 네 다리로 걷는 걸 동시에 하다니, 사실 별로 안 신기하다. 이제는 당연한 듯싶으니까. “그럼 결정 났네. 채은이의 운디네 도움으로 우리는 가고, 케미리는 멋지게 잠수해서 온다. 우아! 박수!” 짝짝짝! 난 다급하게 박수를 치면서 눈치를 주었고, 내 눈짓에 일행들은 영문도 모른 채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짝짝짝! 짝짝짝! “……” 역시 내 생각대로 박수의 힘이 케미리에게는 어마어마한 부담감이 되었는지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너무나도 긴장해서 손(?)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한참을 부담감과 공포감에 떨던 케미리는 갑작스럽게 고개를 숙였다. “마스터, 용서해 줘이잉이이이잉. 장난이었어!” “…….” “나도 정상적으로 갈래!” “그딴 귀여운 짓거리 하지 말랬지?” “알았어.” 내 말에 금세 목소리를 까는 케미리였다. 역시 어찌 보면 케미리는 현명했다. 보통 이런 상황이 오면 오기로라도 저 물속으로 들어가는데, 케미리는 그냥 상황파악을 끝내고 비굴하게 용서를 바랐다. 좋은 말로 하면 상황 판단을 할 줄 아는 거고, 나쁜 말로 하면 비굴의 정점이었다. “오빠, 나 운디네 소환할게.” “응.” 채은이의 말에 모두들 채은이의 주변에서 물러섰다. 중얼중얼. 채은이는 알 수 없는 주문을 마구 외우기 시작했고, 바로 그때 세리하가 오더니 갑자기 나를 껴안았다. “주인님!” “왜, 왜?” “그냥 해 봤어요. 좋았어요, 주인님?” “…….” “정우님이 이러면 주인님이 무지 좋아해서 미쳐 버린다고 했어요.” 저놈은 나를 얼마나 변태로 만들어야 성이 차는 거냐? 물론 난 순수한 남자니까 좋기는 좋다만, 미쳐 버린다고 하면 내가 꼭 변태 같아 보이는 건 내 생각인가? “오빠, 소환 끝났……. 언니, 뭐 하는 거예요!” 나를 향해 밝게 웃다가 나와 세리하의 야릇한 자세를 보고 채은이의 목소리 톤이 올라갔고, 그 말에 세리하는 느긋하게 말했다. “부비부비 놀이.” “…….” 부웅. 그 말에 채은이는 입을 부풀린 채 나를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바라보았고, 난 그 눈빛에 당황해서 세리하를 살짝 떼어 놓았다. 저 눈빛이 무슨 눈빛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마구 양심에 찔리게 하는 눈빛이었다. “오빠, 나도 해 줄 수 있어!” “응?” “해, 해 줄 수 있다고.” 얼굴이 홍당무처럼 변한 채 말하는 채은이. 뭘 해 줄 수 있지? 난 도저히 영문을 모르겠다. “뭘 말하는 거야?” “아, 아니야.” 흐음, 뭐지? 궁금하잖아! 그런데 채은이는 이상하게, 헉! 서, 설마 지, 질투? 그럴 리는 없겠지. 하하하하. 그나저나 잠시 이상한 짓을 한다고 채은이가 소환한 운디네에게 신경을 못하고 있었다. 반쿠명한 액체의 그녀, 저게 바로 물의 정령이라는 거구나. 불 놈은 불타더니, 저건 투명하군. “어이, 살라살라! 살라는 잘 있나?” “갑자기 이상해졌습니다.” “응?” “너무나도 바르게 됐습니다.” “그래?” 난 차갑게 말하는 운디네의 말을 듣고 머리를 긁적였다. 아, 또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내 사랑의 전파(?)가 한 명의 인간, 아니 정령을 재탄생시킨 듯싶었다. 좀 쑥스러운데? 우리는 그렇게 운디네의 도움으로 물속임에도 불구하고 아주 여유로운 수영과 더불어 숨을 자연스럽게 쉴 수 있었다. 운디네는 총 4개의 이상한 커다란 구를 만들어 주더니 우리를 그 안에 들어가게 했다. 그 안은 꽤 쾌적한 환경이었다. 일행은 많은데 외 4개냐 하면 힘이 달린단다. 최대 5개 까지는 가능하다지만 안전치는 4개라고 해서 우리는 즉석 제비뽑기로 한 곳에 두 명씩 들어가기로 했다. 물론 크기는 세 사람까지도 가능했기에 별 상관은 없지만, 이렇게 크게 만들 수 있으면 잘라서 만들면 될 것을…….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것 같았다. 뭐, 나야 좋지만. 지금 난 예화와 있고, 채은이와 세리라, 케미리와 테피언, 그리고 정우와 피티언, 이렇게 총 4개조였다. 그리고 구 안에 있으면 운디네가 알아서 이끌어 준다는 것이었다. “오빠, 둘이 있는 건 처음이죠?” “그런가?” “네.” 게임에서는 처음인 듯싶었다. 그나저나 이 시선은? 나는 예화랑 이야기를 나누려고 하는데 느껴지는 세 각의 시선에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거기에는 테피언 놈과 정우, 그리고 채은이가 나와 예화를 보고 있었다. 뭐, 뭐야? 난 당장 왜 그러냐고 묻고 싶었지만 말은 통하지 않는 상태였다. 물속이었기 때문에……. 그냥 신경 끄자. “사실 오빠에게 감사의 인사를 꼭 드리고 싶었어요.” “에엥? 저번에 음식도 주고 소중한 목걸이도 줬잖아.” “그거랑은 다르게…… 저를 지켜 주신다는 말. 그, 그 말에 대해서…….” 예화는 뭐가 그리 쑥스러운지 얼굴이 붉어지면서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쑥스러운 말인가? 난 그냥 정신병자들(?) 사이에서 말 잘 듣고 착하고 귀여운 예화를 지키고 싶었을 뿐인데……. “정말 고마웠습니다.” “고맙기는……. 나야말로 네가 내 말을 잘 들어 주고 정상인이어서 감사해.” “저, 정상인요?” “응, 알잖아. 채은이와 너를 제외하고는 다 비정상이잖아, 물론 난 정상이지만.” 거듭 말하지만 난 지극히 정상이다. “근데 실례가 안 된다면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요?” “응? 뭐든 말만 해! 다 답변해 주지!” “그, 그럼 채은이 언니랑은…… 무슨 사이세요?” “나랑 채은이?” “네.” 그 질문을 하고 예화는 여전히 얼굴이 살짝 붉어진 채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근데 왜 긴장을 하는지는 모르겠다. 뭐, 어찌 됐든 물었으니 난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다. “어렸을 때부터 아는 동생 사이? 제일 소중한 동생이지.” “동생인가요?” “응?” “아, 아니에요.” 그 말에 예화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살짝 풀어지는 듯싶었다. 물속이라는 게 그리 긴장이 되나? 난 운디네 덕택에 오히려 땅에서 걷는 것보다 더 편한 것 같은데……. 그렇게 난 예화랑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름대로 지겹지 않게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한참을 이야기하는 도중 내 눈에 동굴 하나가 보였다. 우리가 방금 전에 움직였던 곳과 비슷한 동굴이었다. 가로막을 경계 삼아 땅과 물이 확 분리되어 있는 곳. 난 그런 것을 보자, 아까 전부터 나를 감시하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채은이에게 눈빛을 줬다. ‘저쪽으로 가자.’ 끄덕끄덕. 내 말에 채은이는 알아들었는지 운디네에게 명령을 내렸고, 잠시 후 우리는 그 막이 있는 안쪽으로 들어갔다. 퐁! “휴우!” 난 운디네가 쳐 준 막에서 가볍게 뛰어내렸고, 바로 그때 내가 바닥에 서자마자 느껴지는 살기에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거기에는 웬 물고기 두 마리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근데 저놈 물고기인가? 물고기치고는 상당히 특이한 모양이었다. 얼굴은 생선 대가리인데 괴이한 모양의 팔과 다리가 달려있는 독특한 놈들이었다. “네놈들도 우리 왕자님의 목숨을 노리고!” 뭐야? 왕자라니. 너희 둘밖에 없잖아! “적은 해치운다!” “오호라! 물고기들, 덤비겠다고? 그럼.” 난 그 말에 공격 태세를 취했다. 저런 물고기한테는 마나를 쓰는 것도 아까웠다. “마스터, 저한테 맡겨 주세요!” “헉!” “걱정 마세요!” 바로 그때 자발적으로 나서면서 내 앞을 막아서는 피티언. 너무나도 박력감이 넘쳐흘러 난 제지할 수 없었다. 그 박력감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나저나 저놈이 뭘 잘못 먹었나? 난 피티언을 보다가 괴상한 물고기를 보았고,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피티언이 그리 짐승(?)적으로 먹어도 괴이한 모양의 팔과 다리가 달린 물고기를 보고, 설마? “팔과 다리는 버리고 먹어야지. 히히히. 익혀서.” “…….” “마스터도 드릴게요.” 아, 나 비위 안 좋다. 정말 이놈과 같이 다니다가는 비위 안 좋아지겠다. 다행이라면 나만 들었다는 것, 여자들이 피티언의 대화를 듣는다면 그대로 졸도할 것이다. 세리하, 네 동생이 이러는 것 알고 있니? 그렇게 내가 심각한 고민에 잠겨 있을 때, 허공에서 이상한 음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실례했습니다.” “에엥?” “여기입니다.” 난 그 음성을 듣고 깜짝 놀랐다. 어디서 들릴 데도 없는데 이리 생생한 라디오 느낌이라니, 어디지? 저 두 명의 괴상한 몬스터는 입을 다물고 있는데? 그때 다시 한 번 음성이 들려왔다. “여기입니다!” “히힉! 유, 유령이다!” “유, 유령이라니요?” “그냥 해 봤어.” “…….” 난 괜히 한번 놀란 척해 줬다. 저 목소리가 어디 있는지 못 찾아서 무안했기 때문이다. 정말 못 찾겠다. “여기입니다!” 난 그 목소리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은 분명 저 두 괴물 물고기의 사이였다. 난 눈을 부릅떴다. 그랬더니 보이는 건 송사리? “서, 설마?” “그렇습니다. 제가 바다의 왕자, 세미어입니다.” 아, 이럴 수가! 바다의 왕자가 송사리라니! “처음 뵈겠습니다. 루라너네 에다미 세미어입니다.” 풀 네임까지 있다니! 으아아악! 돌아 버리겠어! “당신들은 강한 사람이군요. 제가 부탁을…….” “하지 마. 하지 마. 나 바뻐!” “…….” 난 말하기 전에 그 바다의 왕자 송사리의 말을 끊었다. 나는 해저동굴을 찾아야 하는데, 이상한 데 말려들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실례되지만…….” “실례하지 마!” “그, 그러니까…….” “그러지도 마!” “혹시 해저동굴에 가시는…….” “그거…… 돼? 난 말을 하다가 해저동굴이라는 말에 귀가 쫑긋해졌다. 해저동굴에 대해 뭐 아는 게 있나? 아마도 연관이 있는 게 분명했다. “제가 그곳의 왕자입니다.” “해저동굴 키루메이전?” “그렇습니다.” “…….” 마치 거대한 폭격이 나를 지나간 느낌이었다. 이건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될 이야기였다. 아니 절대, 절대 있으면 망할 이야기였다. 저 송사리가 내가 찾는 해저동굴 키루메이전의 왕자라고? 믿으라는 소리인가? “320,000보 양보해서 네가 거기 왕자인데, 여기는 왜 있는 거냐?” “그러니까 의뢰를 드리려고 한 것입니다. 사실 한 달 전, 반란이 있었습니다.” 네놈이 송사리여서 그렇겠지. “그날 제 친위대들은 목숨을 잃고 지금 이 두 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왕궁을 탈환해 주십시오!” “내가 좀 바쁜데…….” “마, 만약에 도움을 주신다면, 저희의 가보인 신급 스킬북의 반쪽을 드리겠습니다!” “신급 스킬북의 반쪽?” “네, 저희들의 가보입니다. 나머지 반쪽은 없지만…….” 아니, 없어도 된다. 내가 가지고 있으니까. “어이, 송사리.” “무례하게!” “이놈!” 내 말에 오히려 송사리는 가만히 있는데 그 괴이한 물고기들이 지랄했고 난 살며시 그들을 보았다. 그러자 내 눈빛을 알아챈 그 물고기들은 금세 움찔하더니 물러섰다. “편하실 대로 부르세요.” “그건 상관없고, 이번 의뢰는 우리가 맡는다.” “저, 정말입니까?” “그럼 정말이지! 크크크. 그 대신 그 스킬북 준비해 두렴.” “아, 알겠습니다.” 난 그 말에 싱긋 웃었다. 신급 스킬북이라니, 전혀 예상치도 못한 대박 행진이었다. 근데 성 탈환이라는 게, 흐음……. “지금 반란을 일으킨 헤히라와 그의 충복들만 해치우신다면 그 다음은 제가 충분히 처리할 수 있습니다.” “거참, 그건 좋은 소식이네.” 그러니까 한마디로 중요한 인물만 제거하면 된다는 소리였다. 그러면 일단 최소한 암살 부대를 편성해야 한다는 건가? -퀘스트를 발동합니다.- 스페셜 퀘스트. 세미어의 해저동굴을 탈환하라. 역시나 이번에도 스페셜이다. 물론 이 정도의 일이 등급이 낮을 리는 없다고 생각했으니 당연하겠지만. 그럼 일단 준비하도록 해 볼까? 케미리하고 나, 총 인원수였다. 나머지 사람들은 이곳의 송사리(?)를 지키기로 결정했다. 만약에 내가 사라지고 나서 저 송사리 왕자가 죽어 버리면 말짱 도루묵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암살 부대로 가능한 존재는 나랑 케미리밖에 없었다. 테피언도 스피드보다는 파괴력이었기에 암살 부대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그렇게 케미리와 나는 채은이의 부탁을 받은 운디네의 안내를 받고 있었다. 찌릿! “넌 눈초리가 왜 그러냐?” “…….” 내 질문에 케미리는 아무런 말도 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야!” “속셈이 뭐야, 마스터?” “소, 속셈이라니?” “왜 나만 데려온 거지?” “그거야……,” “설마 나를 너무 믿어서?” 아, 정말 저놈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가끔씩 난 정말 미쳐 버릴 것 같았다. 내가 만약 고혈압으로 죽는다면 저놈 때문이다.(너무 열 받아서 고혈압으로 게임 안에서 죽는 경우도 있다. 실제 지향적 게임인 관계로, 고혈압, 저혈압 등이 전부 존재한다) “그래, 네놈이…… 너……무 부……러……웠……다.” 이런 거짓말은 너무 힘들다. “하하하하! 이제야 깨닫다니 좀 우둔한데, 마스터?” 머, 머리야……. 정말 아이큐가 몇이면 저런 상상력을 보일 수 있는지 궁금하다. 저번에 케미리가 금붕어 아이큐랑 비슷하다고 한 것 같은데, 잘하면 금붕어를 제치고 1등도 가능할 것 같았다. 케미리, 진심으로 축하한다. “그래. 네놈은 정말 완벽하니까. 우리 임무 좀 제대로 해보자.” “걱정 마. 내가 누구야?” “개.” “아, 아니 그게 아니라……. 흐음, 나의 별명은?” “닭대가리.” “그, 그게 아니잖아!” “그럼 뭐야?” “완벽한 존재.” 푸헤헤헤! 완벽한 존재? 완벽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라고 권해 주고 싶다. 저 케미리는 분명 완벽이라는 단어를 모르고 말했을 게 분명했다. 설마 아무리 뻔뻔하고 머리가 나빠도 진심으로 그러지는 않겠지?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눈앞에 거대한 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왜 해저동굴인데, 성으로 꾸며져 있을까? 그냥 신경 끄자. 뭐 안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으니까. 그나저나 저 성 앞에서 문을 지키고 있는 기괴한 물고기들은 어떻게 처리를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할 것 같았다. “송사리 왕자의 말에 따르면 저 성안에 들어가면 공기가 존재한다고 했으니 저 보초병만 처리하면 되는데……. 흐음.” 보초병은 당연한 말이지만 성 밖에 있는 관계로 물 안에 있는 상태였다. 저 보초병을 쓰러뜨려야 공기가 있는 성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발생됐다. 내가 과연 물속에서 전투가 가능한지 그게 문제였다. 케미리는 못할 게 분명했고……. “그렇지! 활이 있지.” 난 싱긋 웃었다. 괜히 고민한 것이었다. 나에게는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무기가 있었다. 그리고 수의 힘까지. 화살이라고 하더라도 수의 힘이 담긴 상태에서 쏘면 별 영향력이 없을 것 같았다. 물론 여기서 한 가지 문제점은 저 괴이한 물고기들이 분명 수의 면역력이 강할 것이라는 사실이었지만, 난 믿었다. 그런대로 강한 내 데미지를……. 활(Bow) 소환. 인첸트 수(水) 다중 공격 능력. 플레지마 스트레이트 샷! -타셋팅 조정합니다. 공격 인원수를 정해 주십시오. “내 앞에 있는 물고기 두 마리!” -타켓팅을 설정하겠습니다. 파짓! 내 손에 모이는 어마어마한 힘. 저번에 9만 골드나 구입하고 산 라크리아의 목걸이 덕택에 데미지는 더욱 상승된 느낌이었다. 그리고 마나도 별로 깎이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이게 바로 돈의 힘? “운디네, 내가 화사를 놓을 때 맞춰서 이 막을 없애 줄 수 있어?” “가능합니다.” “오케이. 그럼 부탁해!” 나는 화살을 아직도 우리가 온 것을 눈치 못 채고 있는 물고기 두 마리를 향해 그대로 쏘았다. 파앗! 퍼억! 나의 그런 반응과 더불어 운디네는 막을 열었고, 나와 케미리는 그대로 물속에서 헤엄쳤다. “우에에에에에엑!” 케미리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엄청 당황했다. 그러자 운디네가 순식간에 막을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그 수의 힘이 담긴 화살은 아무것도 모르는 물고기 괴물들의 머리를 정확히 관통하면서 부숴 버렸다. 설마 저 물고기들, 수 저항력이 없는 건 아니겠지? 아니, 그건 아닐 거다. 유령은 분명 무 속성 공격에 강하고 골렘은 지 속성 공격에 강하다(물론 흙으로 만들어진 골렘). 그리고 용암에 사는 몬스터 등은 불의 속성에 많은 힘을 받는다. 한마디로 같은 속성으로 하면 80% 이상은 소멸된다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설마 내 괴물 같은 데미지가 80%가 사라져도 저 정도의 파괴력이 나오는 건가? 하하하하. 꼬르르……. 단 일격에 보초병 두 명을 재우자, 놀람 반과 기쁨 반의 마음으로 있다가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몇 초나 물속에 있었다고 기절한 케미리의 있었다. “야!” 꼬르륵……. “임마!” 난 기절한 케미리를 정말 열심히 깨웠지만, 케미리는 벌써 맛 간 눈을 하고 있었다. 설마 이 정도까지 물에 약할 줄이야……. 물에 있었던 시간은 어림잡아 약 5초. 그 5초 만에 이리페인이 되어 버리다니, 예상 되는데…….“ 난 별별 방법으로도 도움이 안 되는 케미리를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이리 여러 가지 방식으로 나를 골탕 먹이는 건지……. 휴우. 물론 물에서 기절하면 방법이 있었다. 그 방법은 마우스 투 마우스, 일명 인공호흡이었다. 만약 이곳에 있는 존재가 채은이나 예화라면 난 당당히 사명감(?)을 갖고 할 용의가 3,000% 있었다. 하지만 내 앞에 있는 현실은 슬프지만 개 한 마리였다. “그럼 어쩔 수 없지. 버리고 가야지!” “켈록, 켈록. 무, 무슨 소리야?” “어라? 일어났네?” “버리고 간다는데!” 나의 말에 어느새 일어난 케미리였다. 아마도 버리고 간다는 말이 기절해서 사경을 헤매고 있는 케미리에게 똑똑히 전달된 듯싶었다. 물론 이 말이 50%는 진심이었다. 안 깨어났으면 그냥 간단히 운디네를 통해 돌려보내고 나 혼자 들어가려고 했는데, 마침 케미리가 일어나 준 것이었다. “조크였어. 신경 쓰지 마.” “진짜?” “진짜지. 내가 너를 버리고 갈 것처럼 보였나”? “응.” “죽고 싶냐?” “아, 아니야! 마, 마스터, 당연히 마스터를 믿어.” 믿지 마렴. 난 어찌 됐든 말과 속마음은 따로따로 놀았고, 잠시 후 내가 할 일을 다시 기억하면서 운디네에게 눈빛을 줬다. 저 입구 쪽으로 가자는 의미였다. 거대한 성문 한쪽에 한 사람이 들어갈 만한 구멍이 있었다. 역시나 그 안은 무슨 막이 쳐져 있었고, 땅과 물을 완벽히 갈라놓은 상태였다. 정말 신기하군. 아까부터 보기는 했지만 다시 봐도 신기했다. 막 사이를 가운데 두고 물이 완전히 분리가 되다니 말이다. “마스터, 안 들어가?” “들어갈 거야.” 난 케미리의 말에 정신을 차린 뒤 운디네에게 그 안쪽으로 넣어 달라고 했다. 나의 말에 운디네는 그 막 안쪽으로 넣어 주었고, 우리는 다시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저는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오, 수고하고 살라살라한테는 안부 인사 좀.” “아마도 당신 이야기가 나오면 경련을 일으킬 거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보고 싶어서? “그렇군.” 나를 그렇게 보고 싶어 할 줄이야, 나중에 한번 단독 면담을……. “그럼 이만.” 운디네가 사라지자, 거대한 해저 성안에는 케미리와 나만 남겨졌다. 몬스터도 없다. 보초 2명 세운 게 끝이라니, 침입한 내가 난감했다. “이제 드디어 내 실력을 보일 때가 되었군.” “네 실력?” “잊었어? 난 어쌔신. 암살에 최적화된 존재지.” “흐음…….” 난 그 말에 케미리의 몸을 훑어보았다. 저 몸이 암살에 최적화된 몸인가? 처음 보면 대부분 케미리의 깜찍함에 놀란다. 그때 케미리가 와이어로 상대방을 베어 버린다. 이런 레퍼토리인가? 충분히 가능했다. 그렇게 따지면 저놈이 암살에 최적화되었다는 것도 그런대로 맞는 말인 것 같았다. “나만 따라와. 나를 믿고.” 닭대가리는 별로 믿고 싶지 않은데. 네놈 믿었다가 무슨 봉변당하라고? “왜 대답이 없어, 마스터?” “아, 아니야.” “기대해도 좋아.” “응, 기대할게.” 0.0000000000001%만 기대하마. 그렇게 케미리는 비장한 각오를 한 채 나를 이끌었다. 케미리는 전속력으로 움직이는 듯싶었지만 나도 충분히 그 스피드를 따라갈 수는 있었다. 사사삭. 사사삭. 바람이 가르는 소리가 흘러나왔고, 난 한동안 어울리지 않게 아주 멋있는 척하면서 가는 케미리를 향해 말했다. “너, 길 알고 가는 거냐?” “내가 알 리가 있겠어?” “그, 그럼?” “그냥 내 감이야. 훗.” 미친……. 그 순간, 나의 앞을 가로막는 수십 마리의 괴물 afn고기. “감히 인간 놈이!” “지상에 사는 개라는 놈이다!” “죽어라!” “히익!” 내 주변을 어느새 50마리 정도의 괴물 물고기가 포위했고, 난 그걸 보고 케미리를 향해 성난 어조로 말했다. “믿으라며? 어? 믿으라면서 일부러 친절하게 적이 있는 곳까지 온 거냐”? “훗, 암살의 재미는 이렇게 적을 마주치는 거야.” 암살의 재미가 적을 마주치는 거라니? 네놈 정말 어쌔신 맞아? 아니, 닭대가리지.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도중 괴물 물고기는 나를 향해 눈을 번쩍거렸다. 손에는 하나의 창을 들고 나와 케미리를 둘러싼 채 천천히 다가왔다. 아마도 그 긴 창으로 우리를 꼬치로 만들어 버릴 예정인 듯싶었다. “나도 전투라면 피할 생각 없다고.” 난 그 말과 함께 눈을 감았다. 와이어 소환. 인첸트 풍(風)! 내 손에 와이어가 소환되었다. 바람의 힘이 담긴 채. 분명 여기에 사는 존재들은 수 속성의 몬스터. 그렇다면 풍으로 공격할 경우, 더 강력한 공격이 가능하다. “…….” “…….” 물고기 괴물들은 나한테서 느껴지는 풍의 기운만으로도 잔뜩 긴장했다. 자신들의 속성과는 천적이었으니까. 화는 수에 약하고 수는 풍에 약하다. 풍은 대지에 약하다. 그리고 대지는 화에 약하다. 이게 바로 4대 속성의 연관관계였다. “안 온다면 내가 가지.” 난 나를 보면서 창을 든 채 주춤거리는 물고기 괴물들을 향해 순식간에 쇄도해 갔다. “히익! 주, 죽어라!” “인간!” 내가 다가가자 그들은 거의 반사적으로 창을 쭉 내밀었고, 난 그런 공격을 가볍게 피해 냈다. 반사적으로 아무렇게나 찌르는 공격은 너무나도 피해 내기 쉬웠다. 파짓! “크아악!” “크아악!” 나의 가벼운 와이어 공격 한 번에 괴물 물고기 세 마리가 그대로 갈가리 찢어지면서 죽었다. 분명 즉사가 발동된 게 아닌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정말 바람의 속성에는 약한 듯싶었다. -와이어 2단계로 진화합니다. 새로운 능력 이중 공격이 추가 되었습니다. 이건 뭐야? 이중 공격이라니? 난 이해를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해할 방법은 있었다. 한 번 써 보면 된다는 사실!“ 와이어 소환! 인첸트 풍(風)! 이중 공격! 파지짓! 주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와이어가 빛나기 시작했다. 난 그런 모습을 보자 더욱더 궁금해졌다. 이번 능력은 무슨 능력인지……. 스윽. “막아라! 저 인간을!” 내가 진화 때문에 멈췄던 발길을 다시 움직이자, 그 괴이한 물고기 괴물들 중 한 마리가 공격 명령을 내렸고, 그 말에 물고기 괴물들이 동시에 10개 이상의 창을 내게로 내밀었다. 난 곧바로 엄청난 속도로 창을 감아 버렸다. 파징! “깨졌다?” 창이 너무나도 쉽게 깨진 것이었다. 그리고 더불어 이 능력의 효능을 알았다. 이중 공격. 말 그대로였다. 한 번 공격하면 두 번의 절사력으로 상대방을 베는 것이었다. 즉, 한 번 공격으로 두 번의 데미지가 나온다는 소리였다. 좋군. 나는 웃었다. 이미 기세 싸움뿐만 아니라 무기의 효능까지 나의 손을 들어 준 것 같았다. 난 그대로 내 모든 힘을 끌어올린 다음 그 괴물들을 공격했다. 이때 들려오는 음성.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4분 후. 전멸이었다. 흐음, 거의 학살 분위기라고 해야 할까? 난 상처 하나도 없었으니까. 적들은 한번 부딪힐 때마다 강력한 이중 절삭력으로 인해 픽픽 죽어 나갔다. 나의 데미지 플러스, 풍의 힘 플러스에 두 번의 공격 능력까지……. 이러니 살짝 건들기만 해도 죽는 것이었다. “그리 좋은 장면은 아니군.” 바닥에는 물고기 비늘들과 시체들이 쌓여 있었다. 풍 자체가 찢어 버리는 힘이 있기는 했지만, 이것들이 수 속성 몬스터여서 그런지 수십 배는 더 찢어져 버린 것 같았다. 그나저나 아까 그 괴물 물고기를 죽이는 도중 레벨 업 소리가 들려왔는데, 한번 확인해 볼까? 아이디: 플레스 레벨: 63 직업: 웨폰인첸트 HPMP: 40,100/53,600 힘: 5(?) 민첩: 266(?) 체력: 5(?) 지혜: 5(0) 지식: 5(0) 행운: 5(0) 기본 공격력: 16,800 기본 방어력: 3,300 남은 스텟: 5 레벨이 잘 오르지 않는 상태입니다. 자신의 스텟보다 훨씬 높으면 레벨 업이 잘 되지 않습니다. 공격력은 2,500이 더 상승했다. 16,800이라, 내가 보고도 믿어지지 않는 숫자였다. 그럼 다음에는 스킬. -검 소환-3단계(마스터) 검을 소환한다. 검의 특성: 방어력이 800증가한다. 기본 공격력: 3.800. 특별 스킬: 방어 능력 활성화. 일루젼 공격. -활 소환-2단계(숙련도80.00%) 활을 소환한다. 활의 특성: 이동속도, 공격속도 20%증가(숙련도 10%상승시 이동속도와 공격속도 4% 증가). 기본 공격력: 1,300(숙련도 10%마다 공격력 100상승. 마스터 스킬시 총 4,500상승). 특별 스킬: 다중 공격 능력. -도끼 소환-2단계(숙련도30.00%) 도끼를 소환한다. 도끼의 특성: 이동속도, 공격속도 20%감소(숙련도 10%상승시 이동속도, 공격속도 5%감소). 기본 공격력: 3.000(숙련도 10%마다 공격력은 600상승. 마스터 스킬시 총 12,000상승). 특별 스킬: 절대 충격파. -와이어 소환-2단계(숙련도0.00%) 화이어를 소환한다. 와이어의 특성: 공격 속도 45%상승(숙련도 10%상승시 공격 속도 7%증가). 기본 공격력: 1,200. 특별 스킬: 이중 공격. -지팡이 소환-(숙련도30.00%) 마법을 사용하게 해 준다. -메이스 소환-(숙련도0.00%) 메이스를 소환한다. 메이스의 특성: 스턴 확률 20% 증가(숙련도 10%상승시 스턴률 1%증가) 기본 공격력: 1,000(숙련도 10%마다 공격력 100상승. 마스터 스킬시 2,000상승). 검은 마스터지만 깨졌다(마스터하니까 데미지가 확 높아진다). 아만다티움이라는 최강의 광석 때문에 그런가 보다. 그런데 와이어는 뒤에 붙는 게 없다. 그냥 기본 공격력만 떡하니 있다. 뭐, 그 대신 특성이 꽤 높다. 공격 속도 45% 증가라니, 그거 없어도 상관없었다. 그럼 마지막으로 구슬의 힘인가? -화(火) 인첸트- 70.00%(속성 계열 중에서 최고의 파괴력) 무기들의 화(火) 속성을 인첸트한다. 인첸트한 무기에 공격을 당할시 일정 확률로 발화해 걸린다. 마나 소모율: 1,700. 증폭 데미지: 5,500(숙련도 10%마다 데미지 500씩 증가) -수(水) 인첸트- 40.00%(속성 계열 중에서 마나 소모율이 제일 적다). 무기들의 수(水) 속성을 인첸트한다. 인첸트한 무기에 공격을 당할시 일정 확률로 2초간 공격 속도가 느려진다. 마나 소모율: 800. 증폭 데미지: 2,700(숙련도 10%마다 데미지 300씩 증가). -풍(風) 인첸트- 20.00%(속성 계열 중에서 최고의 절삭력을 가진다). 무기들의 풍(風) 속성을 인첸트한다. 인첸트한 무기에 공격을 당할시 일정 확률로 즉사. 마나 소모율: 4,000. 증폭 데미지: 2,600(숙련도 10%마다 데미지 400씩 증가). 참으로 빛나는 기술들이었다. 이 기술이 그냥 얻어진 건 당연히 아니었고, 수많은 고생과 눈물 속에서 탄생된 값진 기술들이었다. 그나저나 아까부터 조용하다? “…….” “얌마!” 내 눈에 기절한 케미리의 모습이 들어왔다. 이번에는 완전 게거품까지 문 채 기절을 해 버린 것이었다. “으윽! 마, 마스터.” “왜 그래?” “나, 사실 생선 알레르기가 있어.” “그럼 처음부터 말하지.” “방금 기억났어.” 아, 머리야! 저런 닭대가리 같은 놈! 생선 알레르기 있다는 걸 잊어버리고 직접 마주친 다음에야 기억해 내다니, 정말 머리 아프게 하는 개 한 마리였다. 그나저나 이놈, 도움이 안 돼도 이리 안 되다니 차라리 가만히 있는 게 나을 듯싶었다. “그냥 넌 가만히 있어라.” “그럴 예정이었어, 풋!” “…….” “안 그래도 귀찮았거든. 피식.” 파직! 파직! 내 머리에 자근자근 생기는 혈관 마크. 분명 그 상황에서 도움이 못 돼서 미안하다는 한마디만 했어도 난 감동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케미리는 그딴 말은커녕 당연히 귀찮다는 이유로 안 한다고 당당히 말하고 있었다. 퍼퍼퍽! “으아악! 마, 마스터, 갑자기…….” “닥쳐!” “난 환자야!” “상관없어.” “우엑!” 난 밟았다. 정말 신나게. 한동안 안 맞더니 몸이 근질근질한 것 같아서 내가 특별히 다시 밟아 주었다. 이렇게 한동안 다져(?) 놓으면 그나마 약간은 조용해진다. 그나마 말이다. 요새 내가 좀 지성인이 되기 위해 노력을 했건만, 그딴 지성인 이미지 이제는 버리련다. 난 한 5분 동안 밟은 뒤 해롱해롱하는 케미리를 번쩍 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1시간 정도 밟고 싶었지만, 지금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뭐, 지금도 기절했다만……. “그럼.” 난 송사리 왕자가 준 지도를 펼쳤다. 분명 가지고 있었지만 케미리가 워낙 정신 사납게 구는 바람에 잊어버린 나였다. 그나저나 그 송사리 왕자, 분명 송사리가 말하는 놀라운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놀라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이건 바로, 나비효과? 나는 다시 게거품을 문 채 기절한 케미리를 들고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는 길에는 각종 괴물 몬스터들이 보초를 서고 있었지만, 난 몰래 빠져나가거나 살짝 목을 그어서 죽여 손쉽게 목적지의 방에 도착했다. “휴우, 여기인가?” 내 앞에 있는 10미터 정도는 되어 보이는 커다란 문. 아마도 여기가 최종 목적지인 듯싶었다. “최후의 결투군.” 언제 일어났는지 케미리가 내 손에서 눈을 부릅뜨고 있었고, 난 그 모습을 보고 감탄했다. 너무나도 뛰어난 자체 회복력이었다. “자, 케미리, 단번에 급습한다.” “오키!” “실수 마.” “오키!” 난 되지도 않는 영어를 하는 케미리가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참기로 했다. 그나저나 스페셜 퀘스트치고는 꽤 쉬운데? 적도 그리 많지 않고……. 콰앙! 난 그런 생각과 더불어 발로 그 커다란 문을 단숨에 부숴 버렸다. “반란군, 다 끝났어!” “기다리고 있었다.” “뭐, 뭐야?” 문을 부수고 들어가고, 사람 크기만 한 오징어가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나를 여유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후후후.” 재수 없게 웃기는……. 난 오징어가 웃는 기이한 장면에 마구 짜증이 났고, 그런 나의 모습을 보던 오징어는 옆에 있던 괴물 물고기 두 마리에게 눈짓을 줬다. 그러자 그 괴물 물고기들은 창고 같은 곳을 열고 들어가 미역 줄기(?)에 묶인 누군가를 끌고 나왔다. “너의 동료들이지?” “오빠!” “마스터!” “주인님!” “히익!” 그들은 바로 채은이와 예화, 세리하, 테피언, 피티언, 정우와 더불어 송사리 왕자와 근위기사들이었다. “…….” “좀 난폭하더군. 이놈들을 잡기 위해 총 800명이 희생당했다. 3,000명 중에서 말이야.” “…….” “크크크! 하지만 똑똑히 보여 주려는 거지. 감히 나에게 대들면 어떻게 되는지. 해저 주민들이 사는 곳에서 너희들의 공식 사형을 집행할 것이다. 후후후.” 젠장, 그래서 어마어마한 피해를 감수하고 포로로 잡았군. “저것들을 포획해서 당장 1급 감옥에 처넣었라!” “넵!” 그 말에 물고기 괴물들은 미역 줄기를 들고 다가왔고, 난 그 모습을 보고 싸우지도 못한 채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채은이와 예화, 세리하, 그리고 덤으로 소환수들과 정우가 인질로 잡혔으니 말이다. 젠장, 또 감옥이야?! 아, 내가 무슨 범죄자인가? 현상 수배부터 감옥 두 번이라니, 보통 게임을 하면서 이런 번죄틱(?)한 행동은 많이 당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건 나뿐만 아니라 채은이와 예화까지 감옥에 들어와 버렸다. 참고로 예화는 두 번이다. “오빠, 미안해.” “죄송해요…….” “주인님! 후에에엥!” “괘, 괜찮아.” 난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채은이와 예화, 그리고 세리하를 향해 괜찮다는 듯 말했다. 3,000명이나 덤볐는데 그 정도 피해를 준 것만 해도 대단했다. “케미리, 보고 싶었다.” “테피언, 나도 마찬가지야!” “흐음, 이런 때는 어떤 수영복으로…….” “배고파.” 아, 뭐야, 저것들은? 난 너무나도 해맑게 웃으며 딴청을 피우는 테피언, 케미리, 정우, 피티언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여자들이 마구 미안해 하는 동안 저놈들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이 강철 감옥을 즐기고 있었다. 이곳은 특수 감옥으로 설계된 탓인지 30평쯤 되는 넓이에 철로 도배해 버린 상태라 저리 보고 이리 봐도 철밖에 보이지 않았다. “주인님! 흐흐흐흑.” “우, 울지 마, 세리하!” “주인님!” 와락! 난 울면서 안겨 오는 세리하 때문에 당황스러웠다. 세리하는 그 초롱초롱한 눈에서 아주 홍수가 날 정도로 눈물을 흘리면서 나에게 달라붙어 말했다. “후엥! 고작 물고기한테 잡히다니! 치욕이에요!” 그게 이유였니? “괘, 괜찮다니까. 뭐, 그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거지.” “후에엥! 감히 주인님에게 폐를 끼치다니!” “괜찮아, 괜찮아.” “저, 안 미워하실 거예요, 주인님?” “저놈들을 보렴. 얼마나 뻔뻔하게 있니?” 난 그러면서 괴이한 생물체들을 가리켰다. 아, 뻔뻔해도 저리 뻔뻔할 수가……. 정말 양심이라는 건 다른 세계에 갖다 버린 것 같았다. 난 저것들이 한 번이라도 반성하는 걸 본 적이 없다. 헉! 그러고 보니 정우 저놈은 언제 저기에 동화를! “아, 정우! 너는 그놈들과 떨어져!” “질투이십니까?” “…….” “그렇군요. 저는 남자 취미는 없지만, 형님을 위해 희생하겠습니다.” 제발 남들이 들으면 오해할 만한 대사는 하지 말아 줬으면 한다. 만약에 누군가가 중간에 들었다면 내가 꼭 변태인듯 여겨질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됐어. 그냥 있어.”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설마…….” “설마, 뭐?” “질투 작전?” 그냥 이야기를 안 하련다. 저것들같이 이상한 정신세계를 가진 놈들과 나같이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과는 대화 자체가 불가능했다. “이런 데에서 꾸물거릴 시간이 없어요! 주인님, 이 철문을 부숴 버릴까요?” “어”? “탈출 안 하실 거에요?” “탈출해야지.” 그 말에 세리하는 갑자기 어디선가 메이스를 꺼내 들었다. 어디서 나온 거지? “세리하, 그 메이스 어디서 나오는 거야?” “아잉, 주인님도 참. 알고 싶어요?” “…….” “알고 싶으시다면…….” “돼, 됐어.” 묘하게 색기 넘치는 모습에 난 당황하면서 말했다. 왠지 알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마구 들었기 때문이었다. “홀리 라이트!” 세리하는 또다시 그 커다란 메이스에 공격 신성 마법을 담았다. 아무리 봐도 신기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공격 신성 마법을 메이스에 담아서 공격하다니, 난 저런 것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어머! 왜 그런 눈빛으로 저를 보시는 거예요, 주인님?” “아니, 그냥 그 메이스에 신성 마법 담는 게 신기해 보여서…….” “그럼 가르쳐 드려요?” “미안하지만, 난 평범한 사람이어서 신성 마법은 못 써.” “어머, 어머. 무슨 말이세요?” “…….” “주인님도 메이스 소환이 가능하시잖아요! 그러면 메이스를 든 채 프리스트의 기술을 사용할 수 있다고요!” “정말?” “네!” 난 그 말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프리스트 기술까지 사용 가능하다니 예상 밖이었다. 아니, 마법을 쓰는데 프리스트 기술을 쓰지 못한다는 것 자체가 편견이었나? 어찌 됐든 좋은 소식이었다. 그럼 채은이가 소환해 내는 정령들도? “채은아, 혹시 정령사가 쓰는 특별한 무기 같은 거 없어? 예를 들어 마법사는 지팡이, 프리스트는 메이스, 어쌔신은 와이어 같은 걸 쓰잖아.” “흐음……. 무기?” “응.” 난 그 말에 초롱초롱 눈을 빛냈다. 만약에 정령사도 무기를 사용한다면 나도 충분히 정령 소환이 가능하다는 소리였다. 그렇다면 운디네도 다루는 게 가능하고 살라만다도 사용 가능하고 실프도 사용 가능하고 노움도 사용 가능하다는 소리였다. “무기 같은 거는 사용해.” “무기 같은 거?” “내 손에 있는 이 자그마한 반지 보이지?” “어.” 푸른색이 빛나는 반지, 모양은 없지만 묘하게 끌어들이는 느낌이 드는 반지였다. “이게 매개체거든. 어떻게 보면 이것도 무기 같은 거야.” “…….” 난 고민에 잠겼다. 과연 저것도 무기류일까? 무기류보다는 엑세서리 같아 보이는데 정령을 불러내는 매개체라는 말이 걸렸다. 콰앙! “뭐, 뭐야?” 바로 그때 생각에 잠겼던 나에게 커다란 굉음이 들려왔다. 마치 어마어마한 폭발이 일어난 느낌이…… 아니라 정말 폭발이 일어났다. 세리하가 홀리 라이트의 마법이 걸린 메이스를 그대로 철 감옥을 향해 때린 것이었다. 하지만 감옥은 멀쩡해도 너무 멀쩡했다. “…….” “…….” 세리하와 나는 말없이 감옥을 바라보았고, 그때 감옥에 들어온 이후 한마디도 입을 열지 않았던 송사리 왕자가 입을 열었다. “이곳을 둘러싸고 있는 금속은 라케리마라는 금속입니다.” “라케리마?” “철과는 상당히 비슷해 보이지만, 철보다 30배 이상의 강도를 자랑하는 금속입니다. 저희 해저동굴에서만 구할 수 있는 금속입니다.” 라케리마라는 금속은 들어 보지도 못했다. 아마도 이 게임에서 만들어진 금속인 듯싶었다. “어떡하죠, 주인님?” “포기하십시오. 저희는 내일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세리하의 걱정스러운 말과 송사리 왕자의 탄식 어린 말이 들려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닭대가리 사인방은 그대로였다. 한마디로 별걱정 없어 보인다는 거였다. “휴우, 내가 할 수밖에……. 세리하, 뒤로 물러서.” “네에?” “내가 부숴 버리게.” 나의 말에 세리하는 뒤로 물러섰고, 다른 일행들도 물러서라고 눈빛을 줬다. 아마 충격파가 상당히 클 거라고 생각되었기에……. 도끼 소환. 인첸트 화(火)! 스윽. 나의 주문과 함께 화의 힘이 담긴 도끼가 소환되었고, 난 두 손으로 도끼를 힘껏 쥐어 잡았다. 그뿐 아니라 나의 모든 힘을 담기 시작했다. 아마 최소 못해도 데미지 40,000은 나올 것이다. 거의 마나의 절반 이상을 끌어올리고 있으니까……. 콰앙! 나의 불타는 도끼는 사방이 막혀 버린 감옥을 강타했고, 난 느낌을 알 수 있었다. 서서히 깨지고 있다는 사실을……. 후드득. 후드득. 그 금속은 서서히 금이 가며 부서졌고, 그와 동시에 경악에 찬 송사리 왕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마, 말도 안 돼! 라케리마를…….” 말이 안 될 것까지는……. “오리데오콘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강철보다 30배에 달하는 건데, 단 한 방에…….” 솔직히 말해 크기가 너무 작아서 어떤 표정을 짓는지는 모르겠다만, 어찌 됐든 목소리만으로 짐작했을 때는 너무나도 놀라는 목소리였다. “꺅! 주인님 최고!” “뭘. 하하하.” 난 세리하의 칭찬에 머리를 긁적였고, 바로 그때 채은이와 예화가 나에게 다가오더니 말했다. “오빠, 수고했어.” “수고하셨어요.” “하하하.” 난 미소녀들의 칭찬에 기분이 너무 좋아져서 어쩔 줄을 몰랐다. 뭐 어찌 됐든 이제는 끝이다. 오징어 놈, 당장 잡아서 회치……는 건 무리이겠군. 묵묵히 창을 세우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엄청난 숫자의 물고기 괴물들. 설마 예상했던 건가? “훗! 역시나 네놈은 위험인물이다. 라케리마를 힘으로 부수다니, 무식한 놈.” 어이, 오징어! 네놈한테 그딴 말 들을 이유가 없는데? 난 내 앞에서 흐느적흐느적 움직이는 조그만 오징어 대장을 보고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저 오징어 놈 아까부터 내 생각과는 다르게 상당히 머리가 좋다. “내일 사형을 하려고 했지만 오늘로 바꾼다. 크크크.” “그냥 내일 하지?” “왜 또 탈출하려는 건가, 위험한 인간?” “…….” “움직이지 않는 게 좋아. 크크크.” 제길, 저 짜증나는 오징어 놈. 오징어 회로 만들어 버릴까나! 어찌 됐든 탈출 3초 만에 또다시 잡혔다. 이번 목적지는 사형대다. 물고기 많군. 나 수없이 보이는 괴상한 해저 주민들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고등어부터 갈치, 상어, 고래, 기타 등등 온갖 잡다한 물고기들은 다 모여 있는 것 같았다. “나에게 반항하면 어떻게 되는지 직접 보여 주겠다. 크크크!” “…….” “…….” 오징어 대장의 괴이한 웃음소리와 함께 아무 말이 없는 해저 주민들이었다. 하지만 그런 조용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오징어 대장이 버럭 화를 내었다. “뭐 하는 건가? 나를 찬양 안 하나!” “아, 아닙니다. 만세!” “만세!” “오징어 대장님 만세!”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오징어 놈을 응원했고, 난 그 모습을 보고 한마디를 툭 내던졌다. “케미리보다 못한 놈.” “허억! 뭐, 뭐라고?” “어라? 너 케미리 알아?” “모른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그놈보다 못하다는 말이 분하다. 분해! 분하다!” 이게 바로 케미리 효과인가? 알지도 못하면서 이리 충격을 먹다니, 신기하군. 아, 그게 문제가 아니라 사형을 시킬 거라면서 왜 우리를 탄탄하면서 엄청난 크기의 유리 수족관에 집어넣었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관람용 물고기가 아닌데……. “나를 모욕했다! 지금 당장 실행한다.” “뭔 소리야! 임마, 나도 기분 나빠.” “네놈이 케미리?” “그렇다, 왜?” 바로 그때 그 말을 듣던 케미리가 용감하게 말했고, 그 오징어 놈은 케미리를 잠시 본 다음 나를 보고 성화를 내었다. “나를 저딴 개하고 비교했나?” “오징어보다는 개가 훨씬 나은 것 같은데?” “모독이다!” 참 웃긴 오징어다. 그런데 지금 내 발밑으로 물이 천천히 차오르는 것 같은 느낌은 뭐지? “꺅! 주, 주인님! 우리를 숨 쉬지 못하게 해서 죽이려는 건가 봐요.” “그렇겠구나, 세리하…….” 그렇게 다급하게 말하지 않아도 이 상황은 대략 이해가 갔다. 서서히 수족관에 물이 차고 있었다. 그리 빠르지는 않았기에 앞으로 2시간이면 가득 찰 듯했다. “크크큭! 네놈들이 고통에 찬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느껴지는군.” 뭘 느껴? “하아, 하아, 휴우, 휴우…….” “역겹다, 오징어. 이상한 소리 내지 마.” “죽을 놈이 입은 살았군!” 이제는 나의 도발도 가볍게 받아쳐 냈다. 아마도 우리들이 죽을 거라고 생각했겠지만, 난 아직 죽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내 몸에 둘러진 쇠사슬을 풀어야 하는 게 제1차 과제였다. 그러고 보니 나만 쇠사슬이다. 나머지는 그냥 가볍게 미역 줄기(?)로 묶었는데……. “왜 나만 쇠사슬이야!” “네놈은 위험인물이다.” “쳇! 그거 고맙군.” 나는 너무나도 신경을 써 주는 오징어 놈을 보고 감격을 금지 못했다. 이런 쪽에는 신경 써 줄 필요가 없는데……. 그나저나 정말 조금씩 물이 아주 천천히 올라오는데 왠지 모르게 당하는 입장으로서는 약간 공포가 느껴졌다. 한 10분 지났나? 어느새 물은 우리들의 발목가지 올라온 상태였고, 난 의자에 앉은 채 그런 우리들을 관람하는 오징어를 노려보았다. “크크크크. 즐겁지?” 네놈 같으면 즐겁겠냐? “그런 눈빛으로 날 보지 마. 감히 세미어 놈을 도와준 네놈들 잘못이다.” “저기…… 우리, 쇠사슬이나 풀어 주고 말하지 않을래?” “내가 바보인 줄 아냐!” 좀 바보면 좋을 텐데, 오징어 주제에 더럽게 머리 잘 돌아간다. 만약에 저 자리에 케미리나 피티언이 있었으면 간단히 이 쇠사슬을 풀었을 텐데. 피티언은 먹을 것을 준다고 하면 되겠고, 케미리는 마구 칭찬하면 된다. 아, 단세포들이 그립구나! 그렇게 40분. 이제는 내 허벅지까지 물에 잠겼다. 시간이 남아도는 건가, 저 오징어는? 그리고 내 허벅지까지라는 거지, 나보다 키가 작은 여자들은 더 깊게 잠긴 상태였다. 골반 정도? 그리고 케미리는 피티언의 머리에 올라가 있었다. 케미리의 생명력, 끈질긴 건 인정해 주지. 그나저나 미쳐 버리겠군. 무기를 소환하고 싶어도 온몸이 묶인 상태여서 불가능했고 게다가 얼마나 단단히 묶었는지 일어서는 것도 힘들었다. “재미없군.” “…….” “이제는 얼음을 집어넣는다.” 저, 저 잔인한 놈! 난 그 말에 화들짝 놀랐다. 얼음이라니, 설마 이 큰 수족관에? 그렇지만 그것들은 정말 엄청나게 큰 얼음들을 가져왔고, 난 그것만 보고도 추워 미쳐 버릴 것 같았다. 그때, 그 모습을 지켜보던 테피언이 나에게 중얼거렸다. “크윽! 시간 다 됐다. 난 이만!” “뭐, 뭐야! 테피언!” “나도 같이 있어 주고 싶지만 시간이…….” 어이구? 네놈이 언제부터 시간제한이 있었지? 난 네놈이 들어가는 건 한 번도 못 봤는데? 난 들어가려는 테피언을 보고 들어가면 나중에 죽여 버리겠다고 압력을 넣었고, 그걸 본 테피언은 갑자기 머리를 붙잡았다. “비, 빈혈이…….” “…….” “두, 두통도…….” “…….” “새, 생리통……도.” “죽고 싶냐! 네놈은 강철이야!” “헉!” 내 말에 테피언은 그제야 자신이 했던 말의 오류를 알아 차렸지만 그는 뻔뻔하게 나를 보더니 눈을 번쩍이며 반지속으로 들어갔다. “야! 야야!” 난 반지에 들어간 그놈을 애타게 불렀지만, 그놈은 완전히 잠수를 타 버렸고 난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나중에 나오면 죽여 버리겠어. 바드득. 바드득. 그래도 일단은 살아야지. 죽일 수 있으려나……. 하하하! “오빠, 어떡하죠?” “어떡하죠, 오빠?” “주인님!” “마스터!” “형님!” 모두들 왜 나를 보는 거니? 나라고 뾰족한 수가 있을 리는 없었다. 드르륵. 드르륵. “야, 추워!” 나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그놈들은 잔인하게 마구 얼음을 부어 넣었고, 난 얼어 죽을 것 같았다. 안 그래도 해저동굴이어서 체온이 상대적으로 낮은 데다 이 물만 해도 차가워 죽을 지경인데 거기다 얼음이라니! 덜덜덜. 덜덜덜. 채은이가 추위를 잘 타는 건 알고 있었지만 예화도 엄청나게 추위를 타는 듯싶다. 아, 둘 다 마구 껴안아 주고 싶다. 물론 사심은 0.000.1%도 없다. 정말……이다. “나한테 꼬옥! 붙어.” “오빠?” “네?” 내 말에 채은이와 예화는 당황했다. 채은이는 아주 살짝 얼굴이 붉어졌는데, 예화는 홍당무가 되어 버렸다. 오, 오해하는구나. “불순한 생각은 0.0000001%도 없었고, 그냥 추워 보여서.” “아! 오빠, 고마워.” “고마워요.” 내 말에 둘은 얼굴을 붉힌 채 내 옆으로 왔고 난 그걸 보고 헤벌쭉했다. 이건 바로 얼어 죽기 전에 본다는 천국? “주인님, 저도요!” 헉! 바로 그때 세리하는 나를 힘껏 껴안았고, 그렇게 난 사방이 미인들로 둘러싸였다. 주, 죽어도 좋아! “저런 걸 짐승이라고 합니다.” “아하.” “마스터, 짐승이었군요.” 저, 정우 놈! 난 나를 보면서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케미리와 피티언을 향해 추가 설명을 해 주는 정우를 보고 분노했지만 보다시피 온몸이 묶였다. 그런데 저놈은 왜 그다지 추워 보이지 않는 거지? 나중에 풀리면 테피언, 정우 다 죽었어. 덜덜덜. 덜덜덜. 하지만 서로 붙어 있다고 해서 이 얼음물이 사라지는 건 아니기에 여전히 추었다. “크크크크. 재밌어.” “이 미친 오징어 놈!” “감히 나에게? 얼음을 더 팍팍 넣어라!” 얼려 죽일 작정인가? 내 한마디에 발끈해서 말하는 오징어였고, 괜히 한마디 했다가 난 얼음 세례를 또 받아야 했다. 젠장! “저기 채은아, 예화, 세리하……. 이 쇠사슬 풀 수 없을까?” “미안, 나도 묶인 상태여서…….” “죄송해요.” “주인님, 잘못했어요!” 아니, 잘못까지는……. 그나저나 참 독특한 체험이었다. 얼음물에 얼어 죽다니 참 괴로운 사형이야, 흑.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났고 온몸은 얼어서 마비가 되어 버린 것 같다. 정신도 희미해진다. 이미 채은이와 예화는 눈이 감긴 상태였다. “채은아, 예화야! 눈 떠!” “오빠, 여기서…… 죽어야 되나 봐. 고통스러운 죽음이네. 헤헷.” “도움 못 돼서 죄송해요.” 젠장! 그냥 죽는 것도 아니고 저런 오징어한테 이런 고통을 당하며 죽다니, 내 평생 남을 치욕이었다. 치욕! “훗. 죽었군. 나는 이만 가보겠다. 다음 사형식은 세미어다. 크크!” “네엡!” 오징어는 그 말과 함께 사라졌고, 난 아직 안 죽었다고 외치고 싶었지만 눈이 감겼다. 파지짓! “하하하하! 난 정의의 기사 테피언!” “테……피……언?” 바로 그때 반지에 들어갔던 테피언이 사슬을 다 푼 채 나왔고, 테피언은 가볍게 나의 쇠사슬을 검으로 잘라 주었다. 스강스강! “땡큐다.” 난 몸이 자유로워지자 거의 얼어 죽어 가는 채은이와, 예화, 세리하를 잠시 꼭 안아 준 뒤 중얼거렸다. 도끼 소환. 인첸트 화(火)! 화르르륵! 그러자 얼음과 물이 가득한 안에서 도끼가 소환되었고, 난 그대로 모든 마나를 주입하기 시작했다. “히이익! 마, 말도 안 돼!” “어, 어떻게?!” “커억! 알려! 대장님께!” 물고기 괴물들의 호들갑 떠는 소리가 들려왔고, 난 뜨거운 열기로 얼음을 순식간에 다 녹이고는 증발시켰다. 털썩! 수족관에 있던 물이 모두 사라지자 일행들은 지쳤는지 곧 바로 쓰러져 버렸고, 난 그걸 보고 중얼거렸다. “다시 해 보자.” 콰앙! 난 도끼로 수족관을 완벽하게 다 부숴 놓고 창을 든 채 잔뜩 겁을 먹은 물고기를 향해 중얼거렸다. “방금 전 대접, 너무나도 기뻤다, 이놈들아! 절대 충격파!” 콰앙! 그 말과 함께 난 도끼를 내리찍었고, 순식간에 물고기 괴물들은 부서져 나갔다. 나는 솔직한 a라로 지쳤지만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엇었다. 그 짜증나는 오징어 놈, 죽이고 만다! “모두 쉬어. 그리고 케미리와 피티언, 테피언, 힘들겠지만 여자들 잘 지켜.” 그 말과 함께 난 괴로워하고 있는 일행들을 놔두고 도끼를 가볍게 캔슬한 뒤 움직였다. 오징어 놈, 각오해, 임마! 회 쳐 버릴 테니까! 콰앙! “저, 적이 탈출……. 으아악!” “지원 요청……. 으아악!” “죽여……. 으아악!” 난 내 앞에서 얼쩡거리는 괴물들을 처리하면서 그 오징어 괴물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빌어먹을! 날 감히 물과 얼음 고문으로 죽이려 하다니! 오징어 주제에! 그렇게 난 내 앞을 막는 적을 향해 불꽃에 휩싸여 있는 도끼로 마구 날려 버렸고, 순식간에 적들은 한 방 한 방에 날아갔다. 이럴 때는 파괴력 좋은 게 최고라는 말이 충분히 이해 간다. 한 방에 다 죽여 버리니까. 그렇게 난 그 오징어 놈의 방 앞에 도착했고, 그대로 도끼를 풀 스윙으로 휘둘렀다. 휘이익! 콰앙! 문은 산산조각이 나 버렸고, 그 건너편에는 오징어 놈이 여유로운 자세로 앉아 있었다. 그런데 호위병이 없다? 뭐, 나야 잘됐다. 간단히 끝나니까. “이 오징어 놈!” “역시 넌 위험인물이다.” “헤, 칭찬 고마운데? 그렇다고 해도 넌 더 이상 못 살아, 오징어.” 어차피 발로 밟으면 죽을 정도의 크기……. 난 잔인한 웃음을 지은 채 천천히 다가갔고, 그 오징어는 나를 보고 피식 웃었다. 충격적이다! “내가 이 자리에 어떻게 올라왔을 거라 생각하는가? “내가 알 게 뭐야?” “그럼 알게 해 주지. 우아아아아앙앙!” 그놈은 기이한 음성을 내더니 갑자기 몸이 커지기 시작했다. 평범한 오징어였던 놈이 슈퍼 오징어로 변했다. 아아아! 제발 물리법칙 같은 건 지켜 주라, 응? 내 앞에 갑자기 나타난 4미터 정도 되는 거대한 오징어는 방금까지도 그 자그마했던 오징어의 변신체였다. “크크크! 나의 진정한 모습을 보다니 영광인 줄 알아라.” “그리 영광스럽지는 않은데?” “아직 입을 살았군! 자, 나의 공격을 받아라!” 그렇게 친절하게 알려 주시다니. 그 말과 함께 오징어는 다리 하나를 엄청난 속도로 뻗었고, 난 거의 무의식적으로 그 공격을 피했다. 빠르기는 하지만 못 피할 것 같은……. 파지짓! 뭐, 뭐야? 난 내가 피한 자리를 보고 굳었다. 거기에는 얼마나 강력한 전기가 통했는지 아직도 탁탁 튀고 있었다. “3,000만 볼트. 크크크!” “너, 오징어 아니야?” “맞다.” “오징어가 전기를 다뤄?” “난 대단하니까.” 아, 이럴 수가! 아무리 게임이라지만 이런 설정은 버리라고! 오징어가 3,000만 볼트라니, 스치기만 해도 즉사잖아! “크크! 이제 본격적으로 하지.” 일반적으로 오징어는 2개의 촉완과 8개의 다리를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저놈은 다리만 15개다. “네놈 다리가 많다고 생각 안 하냐?” “난 대단하니까.” “…….” 그래, 네놈 잘났다. 아 참! 이게 아니지! 난 지금 잘못하면 죽는다. 안 그래도 방금 전의 일 때문에 체력이 현저히 떨어졌는데, 실수라도 저 3,000만 볼트의 오징어 다리에 스치기만 해도 즉사다. “크아아아!” 오징어의 이상한 웃음소리와 함께 나를 향해 날아오는 15개의 무시무시한 다리. 전 방향에서 나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빌어먹을! 검(Sword) 소환. 인첸트 화(火) 다중 방어 능력 활성화! 나는 그 말과 함께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나의 검에서는 광풍이 뿜어졌고, 나를 향해 오던 오징어 다리와 직격했다. 쿠웅! 그 순간 무엇인가가 울려 퍼지는 소리가 들려왔고, 난 그 소리를 듣자 대충 두 가지의 힘이 부딪쳐서 완화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럼 이제 내가 공격할 차례인가? 난 지금 체력과 스태미나가 훨훨 날아다닐 정도가 아니다. 솔직히 지금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힘들다. 그러니까 모든 힘을 담아 순식간에 끝내야 된다. 활(Bow) 소환. 인첸트 풍(風). 플레지마 스트레이트 샷! 내 손에 들린 활과 무형의 화살. 난 이 한 방에 어마어마한 힘을 담았다. 상대가 막는다고 하더라도 타격이 올 정도로……. 지금 내 생각은 이렇다. 저놈이 저걸 막는다고 하더라도 분명 커다란 충격에 의해 멈칫할 것이다. 그 순간 난 다가가서 결을 실행하고 검으로 약점을 공격할 예정이었다. 파지짓! 슈웅! 화살은 어마어마한 힘이 담긴 채 오징어를 향해 날아갔고, 오징어는 이미 나의 공격을 깨달았는지 벌써부터 방어형태를 취했다. 젠장! 저렇게 방어적일 경우, 나의 이 공격이 저놈에게 충격을 줄지 안 줄지 예상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도중 방어 형태를 취하던 오징어와 나의 모든 힘이 담긴 화살이 충돌했다. 쿠웅! 오징어는 자신의 몸에 무슨 수작을 걸었는지 화살은 너무나도 쉽게 막아 냈고, 난 그걸 보고 절망에 빠졌다. 오징어가 저리 강하다니! 제발 현실적으로 살자, 응?! 그렇게 내 회심의 일격을 쉽게 막아 낸 오징어를 보고 탄식을 금치 못할 때 허공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풍(風) 일정 확률로 즉사 발동됩니다. “으아악! 왜! 왜!” 그 말과 함께 오징어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고, 난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방금까지도 내 공격을 손쉽게 막던 오징어가 온몸이 갈가리 찢어지면서 죽었다. 이게 즉사? 조, 좋다! 그렇게 오징어 반란군은 처리가 되고, 송사리 왕자는 다시 왕자를 차지했다. 병사들도 모두 고분고분 말을 듣게 되었고……. 그러자 송사리 왕자는 자신의 근위기사를 시켜 나에게 종이를 한 장 주었다. “그것입니다. 제 자그마한 보상입니다.” “이게 신급 스킬북의 나머지?” 난 그걸 받자마자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신급 스킬북이라니, 생각만으로도 벅차올랐다. 난 인벤토리 창에서 나머니 반쪽을 꺼내 들어 그 두 개를 마주쳤다. -띠링! 신급 스킬이 완성되었습니다. 확인해 주십시오. -무극천무열(無極天無劣)- (숙련도 0.00%) 바닥에 검을 꽂아 넣는다. 반경 40미터 안에 있는 아군과 적을 가리지 않고 모든 존재에게 화룡이 나타나 강력한 데미지를 준다. 상태 이상: 만약에 죽지 않는다면 100% 확률로 스턴, 동빙, 발화, 감전, 출혈, 암흑에 걸린다. 데미지: 58,000(숙련도 10%마다 3,000 상승). 마나 소모율: 48,000. 헉! 데미지가 58,000? 진정 신급 스킬북이라고 불릴 만하다. 문제는 마나가 좀, 아니 극도로 많이 든다는 사실이었지만(내 총 마나는 53,600이다) 저 화려한 데미지와 반경 40미터 안의 모든 존재에게 타격을 주는 것은 가히 신급 스킬북만이 가질 수 있는 능력이라 하겠다. 그런데 전 대상에 타격이 들아가는 건 아군도 같이 공격하는 건가? 그리고 상태 이상을 보면 스턴, 동빙, 발화, 감전, 출혈, 암흑 100%라, 한마디로 살아남는다고 하더라도 그대로 바보 멍텅구리가 된다는 소리였다. 좋기는 좋군. 그리고 추가적으로 마스터 시 총 데미지는 88,000이다. 나 감동 먹었어! “왜, 왜 그러세요, 오빠?” “예화야, 나 너무 기뻐.” “네?” “나에게도 필살기가 생겼어!” 물론 완전 사기적인 필살기가 하나 있었지만, 그건 패털티가 너무 많고 이건 마나만 어마어마하게 들 뿐 패널티는 없었다. 한만디로 내가 원하던 필살기였다. 그냥 심심해서 들린 해저동굴이었는데, 좀 일이 시끄럽기는 했지만 어찌 됐든 나에게는 최고의 행운이었다. 클리어 오브 해저동굴! 제5장 죽음의 시험? “민혁 군.” “왜 그러십니까?” 이런 긴장감은 살면서 처음이었다. “내가 너를 불러낸 이유를 모르겠느냐?” “전 나름대로 순수(?)하게 살았습니다.” “허허! 한탄스럽구나.”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선생님.” “그렇다면 이걸 보면 영문을 알게 될 것이오.” 담임선생님은 그 말과 함께 종이를 내밀었고, 난 그것을 보고 심장이 벌렁거리기 시작했다. “이, 이럴 수가…….” “이제 알겠는가?” “선생님, 어떻게 안 될까요?” “어떻게라니! 임마, 네놈 성저을 봐! 앙? 평군 39점이야!” “…….” “이번 추가 시험에 평균 50점 못 받으면 낙제다! 2학년 한 번 더 지낼 줄 알아!” 그, 그럴 수가! 나에게 내려진 사형 선고보다 심한 유급 선고.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충격이었다. “선생님!” “나를 불러도 소용없어. 이건 무조건 교칙으로 된 거니까 50점 이상 받도록 노력하도록!” “…….” 그렇게 나의 담임선생은 나를 버리고(?) 사라졌고, 난 절망에 빠졌다. 시험까지 남은 시간은 단 3일이었다. “으아아악!” 나는 집에 들어와 교과서와 학습지를 펼친 채 절규했다. 항상 집에 오면 게임부터 들어가던 나였는데, 이렇게 집에서 공부를 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절대 유급은 할 수 없었다. 1년 유급 되면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라는 건가! 휴우……. 지금 이 사실은 아무도 몰랐다. 아니, 가르쳐 줄 수는 없었다. 게임하고 싶다. 세리하에게 프리스트 마법도 배워야 하고, 공격 마법도 배워야 하고, 데스 길드에 복수도 해야 하고, 소환수도 찾아야 하고 기타 등등 할 게 널렸는데 공부라니……. 흐흑.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나저나 잠이 온다.” 스르륵. 어느새 눈이 살며시 감기고 있었다. 옛말에 공부는 집중력이라고 했다. 집중해서 10분 공부하는 거랑 집중 못해 3시간 공부하는 거랑 같은 효과라는 것이었다. 지금 난 잠이 와서 집중이 안 된다. 결론은 한 가지! 잠을 살짝 잔 다음 열심히 해야겠다. “에? 오빠가 안 왔다고?” “네, 언니.” “그럴 수가.” 채은이는 놀라 수밖에 없었다. 거의 매일 먼저 와 있는 게 민혁이었는데, 학교도 자주 땡땡이를 치면서까지 게임을 하던 오빠였는데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말한 건 구라의 요정 케미리가 아니고 예화였기에 믿을 수밖에 없었다. “오빠한데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 “무슨 일요?” 채은이의 걱정에 예화도 따라서 걱정하는 표정을 지었고 바로 그때 정우가 속삭였다. “혹시 다른 여자가…….” “에에에?” “그, 그럴 수가…….” 정우의 한마디에 채은이와 예화는 설마 하는 얼굴이었고, 그 모습을 본 정우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아시다시피 형님은 상당히 잘생겼습니다. 운동 신경도 좋고 싸움도 잘하십니다. 공부를 제외하고 거의 완벽남이지요.” “…….” “그러니 분명 다른 여자랑 썸씽이……. 후후훗.” 정우의 웃음소리는 이상하게 듣는 사람을 기분 나쁘게 만들었다. “흐음.” 난 시계를 열심히 노려보았다. 분명 난 저녁 5시에 잤는데 벌써 6시 30분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보통 10~15분 사이만 자는 게 제일 집중력 잘된다는 말을 들은 난 딱 10분 정도만 자려고 했는데, 실패였다. “뭐, 어쩔 수 없지. 자, 공부해 볼까!” 이미 지나간 일이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열심히 공부를……. 꼬르륵! “아, 배고프네. 배고프면 집중이 안 되지.” 난 배에서 밥을 달라고 하자 공부를 하려다가 밥을 먹기로 결정했다. 거듭 말하지만, 공부를 하려면 집중력이 있어야 g나다. 그런 관계로 배고프면 안 된다. 자, 그럼 채은이가 싸 준 도시락을 먹으로 가 볼까? “네. 우리는 에너지 전략 소비…… 어쩌고저쩌고…….” 재미있군. 난 밥을 먹으면서 티브이를 보았는데, 마침 거기서 시사프로그램을 장대하게 해 주고 있었다. 시사 프로그램의 제목은 <에너지 소비는?>으로, 매우 심오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 묘하게 오늘따라 재밌다. “흐음, 어쩔 수 없군. 미련이 남으면 안 되니까 마저 보고갈까?” 난 그 시간 이후 그 시사 프로그램을 열심히 시청했다. 아, 이토록 재미있는 이유는 뭘까? 그렇게 한 30분 정도 방송하던 프로그램은 7시 10분쯤 돼서야 끝났고, 난 그것이 끝나자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으로 가려고 했으나 몸이 바닥에 붙은 것처럼 움이지 않았다. “헉! 서, 설마 유령이……?” 정말 몸이 떼어지지 않았다. 난 정말 공부하러 가고 싶은데! 딩동. “누구세요!” “오빠, 나야!” “히익! 채, 채은이?” 난 갑작스럽게 채은이가 찾아오자 당황했다. 지금 만약에 채은이가 들어와서 내 방에 들어가면 나의 유급 사실이 들통 나는 최악의 사태가 발생한다. “오빠, 들어가도 돼?” “자, 잠시……. 지금은 좀 곤란한데.” “왜?” “그, 그러니까…….” 난 당황했다. 무슨 핑계를 대야 할지. 그때, 내 눈에 들어오는 물건 하나! “독서 중이야!” “그거랑 무슨 상관이야?” 실수했다. 너무나도 당황한 나머지 횡설수설을……. 하지만 사수해야만 했다. 채은이한테 이런 쪽팔리는 유급 사실을 알리면 안 된다. “채은아, 2분만! 미안!” “응. 알았어.” 난 다급하게 내 방으로 달려갔고, 가는 도중 실수로 옛날에 어머니가 쓰던 향수를 떨어뜨렸다. 제길! 나는 그 향수를 재빨리 닦고 나서 내 방으로 향했다. “흐음, 역시 나의 짐작이 맞았군요.” “무슨 말이야?” “아마도 형님은 방 안에 여자를 숨겨 놓았겠지요.” “그런 농담은 하지 마.” “농담이 아닙니다. 형님의 허둥지둥하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습니까? 이건 방에 있던 여자를 어딘가에 숨기거나 탈출시킬 때 사용하는 레퍼토리입니다.” 너무나도 진지하게 말하는 정우의 모습에 채은이는 자신도 모르게 민혁이를 의심했다. 정우의 말은 너무나도 진지해서 듣는 사람을 믿게 만드는 묘한 기능이 탑재되어 있었다. “제 야성적인 감 1%가 다시 발동이 되는군요. 그리고 여자는 아줌마일지도 모릅니다.” “설마…….” “저번에도 맞지 않았습니까?” “…….” 채은이는 그 말에 과거를 회상했다. 과거에도 정우의 말이 맞았던 것이었다. 민혁이가 예화라고 하는 너무나도 귀여운 미소녀랑 같이 다니고 있다는 사실. 그런 관계로 지금 정우의 말에 약간은 믿음이 가는 채은이였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난 오빠를 믿을래.” “후훗.” “그런 이상한 웃음 짓지 마!” 정우의 야리한(?) 웃음에 채은이는 버럭 화를 내며 말했고, 채은이의 반응에 정우는 눈을 마구 빛냈다. 덜컹. “미, 미안, 채은……. 정우 너는 왜 왔어!” “탐문 수사하러 왔습니다.” “탐문 수사?” “신경 쓰지 마십시오.” 사람 신경 쓰이게 하고 신경 쓰지 말라니, 저놈은……. 이제는 적응이 되어 버렸는지 옛날처럼 그리 화도 나지 않았다. 요새 난 닭대가리 사인방과 함께 다니면서 거의 세상을 초탈한 기분마저 들었다. 바로 그때, 채은이가 갑자기 그 예쁜 얼굴을 내게로 향하더니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나, 오빠 믿어도 되지?” 믿어도 되냐고? 이게 무슨 뜻이지? “으응. 다, 당연하지.” 난 계속해서 나를 보는 채은이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무슨 말인지 이해는 가지 않았지만, 일단 그렇게 해야 할 거 같은 느낌이 들었기 대문이었다. “역시나 난 오빠를 믿을래.” “그럼. 하하하.” 난 여전히 영문 모를 소리를 하는 채은이를 보고 어색하게 웃었다. 그때 정우가 나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저는 형님을 믿지 않습니다.” “너는 날 안 믿어도 돼!” “걱정 마십시오. 모든 수수께끼는 풀렸습니다!” 풀리기는 뭐가 풀려! 저놈, 뭐 잘못 먹고 왔나? 아니면 방금 다른 놈들한테 감영당하고 온 건가? “그럼 실례할게.” “어어.” “저도 실례하겠습니다.” “어어.” 난 채은이와 정우가 들어오자 입구에서 비켜 주었고, 난 저들의 이상한 반응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도저히 이해가 안 갔기 때문에……. “크흠. 역시!” “뭐, 뭐야?” 정우는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엄청난 소리를 질렀다. 한편 그런 정우와 마찬가지로 채은이가 나를 바라보았다. “다, 다들 왜 그래?” “역시……. 형님의 이름을 걸고 모든 수수께끼는 풀렸습니다.” 함부로 내 이를 걸지 마! “지금 이곳에서 느껴지는 것은 여자 향수, 최소 30살 이상의 여자 향수입니다. 모든 비밀은 전부 무조건 완벽히 알아냈습니다.” “정우 너, 무슨 소리야, 임마!” “변명은 할 수 없습니다. 형님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습니다.” “죽고 싶냐?!” “오빠를 믿었는데…….” 글썽글썽. 헉! 갑자기 내 앞에서 살짝 눈물을 보이는 채은이. 난 그 눈물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난 잘못한 게 없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내가 큰 잘못을 저지른 듯 느껴지는 눈물이었다. “왜 그러는 거야, 채은아?” “오빠, 정말 정우의 말처럼 30살 정도 되는 아줌마를……사랑……한 거야?” “이 자식아!” 난 그대로 날았다. 그리고 공중 발차기로 정우를 찼다. 퍼퍼퍼퍽! “크악!, 저, 저를 팬다고…… 진실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헛소리 작작해, 임마!” “크악! 그, 그럼 이 향수 냄새는…….” “우리 어머니 향수를 쏟은 것뿐이라고!” “…….” 내 말에 정우는 조용해졌지만 난 쉴 새 없이 밟았다. 이놈은 괜히 쓸데없는 소리를 채은이에게 해서 오해를 사게 만들다니! “그럼 아까는 왜 문을 안 열어 줬어?” “그, 그건…….” 난 정우를 밟다가 갑자기 채은이의 회심의 일격에 말을 더듬었고, 바로 그때 나에게 밟히고 있던 정우가 장렬한 어조로 말했다. “역시…… 진실은…… 죽지…… 않습니다.” 정우 놈! 나중에 두고 보자. 난 일단 정우를 패던 걸 멈추었고. 채은이가 보고 있었기에 나중에 개인적으로 아무도 없을 때 단독 면담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이유를 말해 줄 수 없어?” 허헉! 채은이는 나를 불신의 눈빛으로 바라보았고, 난 채은이가 나를 불신한다고 생각하자 너무나도 끔찍했다. 아니, 생각만으로도 우울해졌다. “말해 줄 수 없는 거야?” “크윽, 어쩔 수 없지. 이 사실은 내 목숨이 다하느 날가지 간직하려고 했으나, 채은이가 알고 싶다면.” 꿀꺽. 꿀꺽. 내 말에 채은이와 정우의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고, 난 그 모습을 보고 벽을 최대한 멋지게 짚으면서 침울한 어조로 말했다. “나…… 이번 추가시험에서 평균 50점 못 받으면 유급 받을지도 몰라.” “…….” “…….” 뭐, 뭐야? 이 썰렁한 분위기는? 내 한마디에 분위기가 급속도로 냉각되었다. 너무나도 차가워서 감기가 들 정도였다. “그, 그럼 여자가 집 안에 있어서 그런 게 아니었어?” “무슨 소리야? 채은아, 여자라니?” “아, 아니야. 그렇다면 다행이야.” “응?” 난 채은이의 영문도 모를 소리에 의아했다. “나, 오빠보다 1학년이 낮기는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면 최선을 다해 도와줄게!” “저도 형님을 위해서라면 이 몸 자체를 바치겠습니다. 마음껏 농락(?)하십시오.” “…….” 아, 젠장. 채은이의 말에 기분 좋았다가 정우의 말에 확 기분이 다운됐다. 만약 정우의 대사를 채은이가 했다고 한다면……. 흐음. 이해해 주리라 믿는다. 난 지극히 평범한 남자니까. “자, 그럼 일단 공부에 도움 되는 음식을 만들어 볼게.” “나 방금 밥 먹었는데?” “그러면 최대한 배가 부르지 않는 걸로 할게. 오빠, 싫어?” “아, 아니 싫기는.” 채은이가 나를 위한다는데 싫어할 리가! 그럴 리는 없었다. 마음씨가 참 곱기도 해라. 그렇게 채은이는 잠시 인터넷을 클릭하더니, 간단하게 재료 같은 걸 신청하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채은이가 들어가자 갑자기 정우가 바닥에 철퍽 누웠다. “뭐 하냐?” “세상을 느끼고 있습니다.” “…….” 그냥 무시하자. 그나저나 채은이가 나를 위해 음식까지 만들어 준다는데 나라고 여기서 멈출 수 없었다. 평균 50점 그따위 것! 당장 이겨 내 주마! 다음 날이 밝았다. 어제 채은이는 나에게 어마어마한 콩 요리를 재 주었다. 이제는 다시 콩이 보고 싶지 않을 정도로……. 다행이라면 채은이의 요리 실력이 뛰어났기에 맛있었다는 것이었다. 어제 채은이와 정우 놈은 저녁 9시쯤 공부를 방해하지 않겠다며 집으로 가 버렸고, 난 그 모습을 보고 더욱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만 했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라들은 느낄 것이다. 나는 공부를 하겠다고 하는데 몸이 거부하는 현상. 너무나도 평범한(?) 현상이었다. 그나저나 오늘은 학교를 안 가는군. 가지 않는 이유는 선생님의 특별 조치 덕택이었다. 선생님은 학교를 나오지 않아도 출석 처리를 해 준다고 무슨 방법으로든 추가시험을 50점 이상 받으라고 했다. 그래서 난 6일간 학교에 나가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뭐 이게 문제는 아니고, 이번에는 정말 공부할 거다! 정말! 정말! 그렇게 굳게 결심을 했는데, 내 눈앞에 아른거리는 게임기. 하고 싶다……. 저 안에는 닭대가리들이지만 항상 재미있게 해 주는 놈들도 있었고, 주인님이라고 따라 주는 세리하도 있었다. 이상하게 그립다. 그리워! 그렇지만 자중해야 한다. 유급은 받고 싶지 않았다. 안 그래도 싫은 학교를 1년 동안 더 다닌다는 것은 지옥이었다. “그래! 채은이가 나를 향해 힘서 주는데!” 난 처음으로 책을 펼쳤다. 어제부터 시작한다고 했는데 책을 펼치는 건 처음이었다. 흐음, 물리 책이군. 거기에는 무슨 괴이한 공식이 마구 적혀 있었고, 난 그걸 보고 공부하려고 했으나 내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가위에 눌린 듯. 털석! 으아악! 의지와는 다르게 내 몸은 책상에 엎어졌고, 눈이 감겼다. 이건 분명 말하지만 의도된 행동이 아니다. 다른 무언가의 존재가 나를 발해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헉! 그, 그리고 모, 몸이……. 내 몸이 저절로 이불 속으로 들어가는 기이한 경험을 했다. 정말 난 모른다. 어쩔 수 없군. 내가 졌다. “채은아, 오늘 나랑 요 앞 액세서리점 가자.” “아, 미안. 세연아, 나 오늘은 일찍 가 봐야 돼.” “응?” “아무것도 도움은 안 되지만, 최대한 도움을 주고 싶거든.” “그, 그건…… 설마 남자?” “그, 그게…….” “민혁 선배군.” “히익!” 채은이는 세연이의 정확한 지적에 움찔했고, 세연이는 살짝 입가에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너의 마음은 비밀로 해 주지.” “무, 무슨 소리야?” “풋! 내 이브로 말할까?” “…….” “나이도 17살이나 먹었으면서 요새 여자 아이들 같지 않다니까! 어유.” 얼굴이 붉어진 채 고개를 푹 숙인 모습을 본 세연이는 고개를 저었다. 헉! 또 잠들어 버리다니……. 난 원래 잠이 그리 많은 편은 아니었다. 하루에 7시간 정도? 평범하게 자는 스타일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어제부터 잠이 계속 오는 것이다. 정말 괴이한 생물체가……? 크윽! 사실 공부를 하기 싫어하는 나의 본능인 게 분명했다. 정말 공부 관련 글자가 들어오면 눈이 깜깜해지고 눈물이(?) 나오고 슬퍼진다. 이건 당한 사람이면 이해할 수 있다. 나는 그렇게 살며시 눈을 떴고, 내가 눈을 뜨자 채은이가 웃으면서 나를 보고 있었다. “오빠, 잘 잤어?” “어? 어.” 채은이는 교복을 입은 그대로였다. 우리 학교 여학생 교복은 하얀색 남방과 청색 상의, 청색 치마로 약간은 촌스럽거나 기껏해야 보통일 수도 있는 교복이었다. 하지만 채은이가 입으면 그 어떤 교복보다도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예뻤다. 역시 옷걸이가 되어야 하는 듯싶다. 그런데 채은이가 왜 바로 내 앞에……. “요리해 주려고 왔는데, 오빠가 너무 기분 좋게 자서 깨우지를 못했어. 어제 공부 열심히 한 거야?” “으응.” “50점은 충분히 넘을 것 같아?” “으응.” 난 대답을 하면서도 마구 양심에 찔렸다. 하지만 난 말할 수 없었다. 어제부터 지금 오후 4시가 될 동안 잠만 퍼질러 잤다고는……. “그럼 오빠도 일어났으니, 음식 차리러 갈게. 잠시 쉬고 있어.” “으응.” 아, 정말 양심에 찔린다. 이리 콕콕 찔리다니……. 이럴 때는 뻔뻔함의 대명사 케미리가 약간은 부럽다……가 아니지! 잠시 미친 생각을 하다니! 케미리가 부럽다니, 있어서도, 아니 단어를 내뱉는 것조차도 안 된다. 공부라는 후유증이 나를 이리 피페하게 만들다니……. 그런데 맨날 부록 같은 놈인 정우가 안 보인다. “채은아, 정우는 어디 갔냐?” “정우”? “응.” 이 집 자체가 그리 큰 편이 아닌 관계로 충분히 부엌까지 내 말소리는 전달되었다. “정우, 오늘 무슨 코스프레 집회라던가?” 코스프레 집회라……. 난 남의 취미 가지고 뭐라 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왜 남자 새끼가 여자 코스프레를 한단 말이냐! 그것도 역겨우면 이상한데, 그놈이 하면 정말 웬만한 여자보다 더 예뻤다. 저번에 트윈 테일(양쪽으로 머리를 갈라서 리본이나 줄로 묶는 머리)의 머리, 그거 보고 기절하는 줄 알았다. 예뻐서……. 트윈 테일은 웬만하면 소화해 내지 못하는 성역. 그런 걸 남자 새끼가 소화해 내다니, 경악할 만했다. 그러고 보니 채은이도 아주 가끔씩은 트윈 테일 머리를 한다. 가끔씩……. 채은이의 머리카락은 상당히 긴 상태였기에 충분히 트윈테일이든 포니테일(뒤로 하나로 묶는 머리)이든 다 소화해냈다. 채은이는 평소에는 그냥 생머리로 다니다. 예화는 포니테일 형식으로 하나로 머리를 묶은 다음 약간 길게 늘어뜨린다. 개인적으로는 생머리도 좋고 포니테일도 좋지만, 난 트윈 테일 머리를 제일 좋아한다. 아 참, 이게 아니고……. 그럼 오늘은 정우 놈이 없는 건가? 그럼 나랑 채은이 단둘? 참 오랜만이다. 맨날 정우 놈이 뒤따라 다녀서 그런지 나랑 채은이 둘이 있는 시간은 거의 없었다. “자, 오빠, 오늘은 등 푸른 생선이야! 머리가 좋아지는 음식이래.” 그런 거 어디서 들었지? 어찌 됐든 너무나도 고마웠다. 그런데 난 잠이나 자다니! 오늘은 부디부디 공부 좀 하자. 하지만 걱정스러웠다. 나 혼자 있으면 또 잘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전기 충격파라도 설치해야 하나? 잠이 오면 전기파를 쏘는 기계가 있다고는 들었지만, 전혀 쓰고 싶지는 않다. 그게 인간이 할 짓인가? 그런데 묘하게 인기가 많다. 공부 잘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많다는 소리인가? “오빠?” 그때 채은이가 열린 문을 향해 교복 위에 앞치마를 두른 상태에서 얼굴을 내밀었고, 난 그걸 보고 번쩍 떠올랐다. “채은아, 오늘 밤 자고 가라.” “에에에?” “부탁한다.” “오, 오빠 갑자기…… 그, 그건…….” 에엥? 내 말에 채은이는 완전 슈퍼 홍당무가 된 채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었고, 난 그걸 보고 당황해서 오해를 했다는 것을 알고 손을 저었다. “그, 그런 뜻이 아니라…… 그러니까 나 혼자 있으면 계속 잠이 오거든? 그러니까 너는 다른 방에서 자고, 네가 잘때가지만 나를 못 자게 해 줘!” “그, 그런 뜻이구나.” “난 절대 사심 있는 말이 아니었단다.” 거듭 말하지만 난 사심 많다. “헤헤, 오빠에게 도움만 된다면…….” 휴우, 오해가 풀렸군. 채은이는 이미 고1이었다. 그런 여자보고 자고 가라니, 오해의 소지가 깊은 말임이 분명했다. 아무튼 채은이가 있으면 이제 잠을 안 자고 공부할 수 있겠다. 그렇게 채은이는 음식을 차려 준 뒤 내가 밥을 먹는 동안 집에 가서 하얀색 블라우스와 발목까지 오는 하얀 치마를 입고 다시 나타났고, 난 그런 채은이를 보고 입을 굳게 다물면서 말했다. “부탁한다.” “응.” “내가 잠을 자지 못하게!” 필승! 난 그 말과 함께 두루마리 휴지에 ‘필승’ 이라고 적은 뒤 머리에 맸다. 원래 천 같은 걸로 매야 하지만, 그런 게 없는 관계로 두루마리 휴지로 대체한 것이었다. 그런 다음 난 책상에 앉았고, 채은이는 내 뒤에서 나를 보고 있었다. 허허허! 그, 근데 더 집중이……. 뒤에는 순백의 옷을 입은 채은이가 있었다. 한마디로 선녀강림! 아, 안 돼! 이런! 난 다급히 나의 마음을 붙잡았다. 날 도와주려고 온 채은이를 향해 이런 사심이 가득한 마음을 담다니! 용납할 수가 없었다. 아, 미치겠다. 용납은 안 되는데……. “오빠, 이제 잠 안 와?” “응!” 그때 내게 말을 거는 채은이를 보고 난 다급하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한마디로 오버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는 소리. 보통 약간 찔리는 사람들은 행동을 크게 한다고 한다. 나도 모르게 그렇게 해 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채은이는 그런 나의 사심도 모르고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다행이다, 도움이 돼서.” “뭐, 뭘…….” “헤헷.” 그, 그렇게 웃지 마. 점점 사심이……. 크흑! 그렇게 내가 번뇌에 지배를 당하고 있는 사이, 갑자기 내 눈을 번쩍였다. 한마디로 걱성의 느낌, 마구 집중이 되는 듯한 기이한 느낌이었다. 혹시 등 푸른 생선의 힘? 아니면 채은이의 믿음의 힘? 어찌 됐든 상관없다. 이런 집준의 힘을 원했다. 7시간 후. “내, 내가 이리 공부를 하다니…… 믿어지지가 않아!” 난 내가 공부를 하고도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다. 공부하고는 63빌딩을 쌓았던 내가 7시간을 꼬박 공부를 하다니! 하고도 믿어지지가 않았다. 보통 이런 일을 보고 사람들은 말하낟. 기적이 강림한다고 말이다. “맞다. 채은이는?” 난 그 말과 함께 고개를 돌렸고, 채은이는 벽에 기댄 채 새근새근 잠이 든 상태였다. 자는 모습도 너무나 예뻤다. 채은이와 예화 같은 애들은 뭘 해도 다 예쁜 게 사실이었지만……. 채은이의 자는 모습은 내가 중3 이후 처음인 것 같았다. 그때 채은이가 중2였던가? 어찌 됐든 참 세월이 많이 지난 것 같았다. “오빠……. 난 오빠를 믿어.” 으응? 뭘 믿어? 난 채은이의 잠꼬대에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에구, 감기 들겠다.” 난 채은이를 가볍게 든 뒤 요에 눕히고 나서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리고 너무나도 선녀 같은 모습을 잠시 움찔했지만 고개를 돌렸다. 잠시지만 반해 버릴 것 같았다. 그나저나 상쾌하게 공부를 했으니 나도 잠이나 자러 가볼까? 내일이 시험이다! 나는 그렇게 소파로 몸을 이동했다. “오빠, 오빠! 학교 갈 시간이야.” “으음…….” “오빠!” 이, 이건 채은이 목소리? 벌떡! 난 채은이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학교 갈 시간이라니? 오늘은 일요일이 아닌가? “오빠, 오늘 추가 시험, 오후 1시까지 아니야?” “헉!” “지금 12시야. 빨리 준비해.” “커억!” 난 그 말에 어제까지의 모든 기억이 되살아난 기분이었다. 나는 어제 처음으로 7시간이나 공부했다. 마치 각성의 기분으로……. 18년간 살아오면서 그런 기분은 처음이었고 이후에도 없을 기분이었다. 그렇게 난 7시간 동안 어마어마한 집중력으로 추가 시험 공부를 완료해 냈다. 그리고 오늘이 추가시험 당일이어다. “어서 씻고 와.” “어어.” 난 채은이의 말에 다급히 화장실에 들어갔다. 마치 신혼부부의 분위기라고 할까? 채은이한테 사랑받는 남자는 무지무지 좋을 게 분명했다. 연예인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뛰어난 얼굴, 그리고 잘빠진 몸매에다 착하고 밝은 성격. 그리고 가사 만점까지 한마디로 완벽한 존재라는 소리였다. 부, 부럽다. 어찌 됐든 난 최고 속도로 씻은 다음 채은이가 차려 준 밥을 먹고 학교 갈 준비를 완료했다. “오빠, 파이팅!” “걱정 마. 그딴 평균 50점 가볍게 넘어 주지.” “오빠라면 할 수 있어.” “고맙다, 채은아.” “같이 가 줘?” “학교까지?” “응.” 난 채은이의 말에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나도 긴장이 돼서 말이다. 유급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이 압박감! 흐흑! 어떻게 보면 정말 서러웠다. 시험 종료! 내가 마지막 시험지를 선생님에게 제출하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채은이가 나에게 다가오더니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잘 친 것 같아?” “흐음, 어마어마하게?” “와, 잘됐다.” 처음이었다. 답이 보인 적은! 정말 눈물이 날 정도로 감격스러운 하루였다. 그나저나 평균 몇 점이지? 90점? 95점? 설마 만점은? 하하하. “민혁아, 기다려라. 금세 답안지 체크하고 오마.” 그 말과 함께 선생님은 시험지를 들고 교무실로 갔고, 난 선생님이 오기 전까지 채은이와 함께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려다 아무리 자신감이 넘친다고 하더라도 불안한 것은 사실이었다. 끼이익. 잠시 후, 교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선생님이 기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민혁아, 합격 축하한다.” “허억! 그, 그럼 통과?” “그렇단다.” “그럼 몇 점이에요? 100점?” “꿈도 야무지군. 50.1점으로 정말 아슬아슬하게 합격했다.” 50.1점이라니……. 내가 생각했던 평균 점수랑은 좀 많이 차이가 났다. 뭐, 그러면 어떠한가? 합격하면 그만이었다. “오빠, 축하해!” “뭘, 하하하. 다시 게임을 할 수 있게 되었군.” 며칠 동안 게임을 못했더니 닭대가리 3인방이 조금 그립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한참을 너무나도 좋아서 히죽대다가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위와 배의 통증에 쓰러졌다. 털썩! “크아악!” “왜, 왜 그래, 오빠?” “왜 그러냐?” “배, 배와…… 위가…….” “뭐?” “오빠?” “119!” “크아악!” 신경성 위염과 장염이란다. 의사 선생님 말로는 7시간 동안 공부한 게 영향이 컸다는 것이었다. “병원 생활 20년 만에 7시간 공부해서 위염과 장염으로 실려 온 학생은 처음 봅니다.” “…….” “다행히도 어떻게 된 몸인지 완치가 되어 가고 있지만 앞으로는 웬만하면 공부는 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 제6장 펫 무투회! “너도 만나겠는가?” “응? 응, 물론. 궁금하다고…….” “훗! 나도 가지.” “나도오!” 두 명의 건장한 남자와 10살 정도 외어 보이는 소녀, 그리고 28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까지, 그들은 영문을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더니 서로를 보면서 웃었다. “그럼 가지, 현직 웨폰인첸트를 만나러.” 크윽……. 위염과 장연이 낫기까지 이틀이나 더 걸렸다. 물론 채은이의 간호 덕택에 기분은 좋았지만……. 평생 병 한번 걸리지 않으며 무적 체력을 자랑하던 내가 공부라는 두 단어에 굴복을 하고 말아다. “헤, 마스터, 아팠다고?” “슈퍼 괴물이 아프다니 놀랍다.” 저, 저것들을! 난 접속하자마자 깐죽거리는 케미리와 테피언을 보고 혈압치가 상승했다. 하지만 내가 주먹을 불끈 쥐고 있을 때, 조심스럽게 걱정스러운 듯 말을 거는 예화를 보고 주먹을 다시 살짝 폈다. “괜찮으세요?” “응. 뭐, 의사 선생님이 다 나았대.” “휴우, 다행이에요. 거, 걱정했어요.” “응? 날?” “네.” 예화는 얼굴이 붉게 물들어서 말했다. 카! 너무 귀엽다. 저 이인조와는 너무나도 상반된 반응, 정말 달라도 너무 다르다. 한편 세리하와 피티언 남매도 나에게 다가와서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주인님, 이제 안 아프신 거예요?” “응, 응. 물론!” “마스터가 아프시다니 충격이었습니다.” “고맙다, 피티언.” 역시 저 이인조를 제외하고는 모두들 나를 걱정해 주고 있었다. “쳇, 좀 더 누워 있다가 오지.” “맞다. 아프면 한 180년은 누워 있어야지!” 누굴 냉동 인간으로 만들 작정이냐? 난 저들이 몰래 나누는 대사를 듣고 예화 덕분에 펼쳤던 주먹을 다시 불끈 쥐었다. 참고 싶어도 참지 못하게 하는 개 한 마리와 철갑 한 마리였다. 한동안 자유로워지더니 건방질대로 건방져졌구나. 그렇게 내가 몰래 속삭이는 그 둘을 향해 다가갈 때, 난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음성에 멈칫했다. “아자! 2차 전직했다.” “축하, 축하!” “헤헤! 감사!” 전직! 젠장! 나도 전직이라는 걸 해 보고 싶다. 물론 전직이 없어도 충분히 어마어마하게 좋은 직업이기는 했지만 전직이야말로 게임의 로망, 게임의 희망이라고 불리는 단어였다. 그런 전직을 할 수 없다니……. 한편 그 말을 듣던 세리하는 나를 향해 궁금하다는 듯 말했다. “참, 주인님은 전직 안 하세요?” “전직? “네에~.” “풋! 전직이라니?! 나도 전직할 수 있다는 거야?!” 난 그 말에 깜짝 놀랐다. 전직이라니. 이 직업에도 전직이라는 단어가 있었단 말인가? 전혀 예상치도 못한 것이었다. “그럼요. 주인님도 전직이 있죠.” “헤엑! 그, 그런 소리는 저것들한테 못 들었는데…….”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테피언, 피티언, 케미리를 보았고 내 말에 그들은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잊어버렸다.” “잊어버렸습니다.” “훗! 잊어버렸군.” 어, 어떻게 세 명 모두 그런 중요한 사실을 잊어버릴 수 있어! 크아악! 난 생각했다. 저놈들을 어떻게 해야 잘 팬다는 소문이 들리려나? 하하하! “마, 마스터! 왜 그러나?” “누, 눈이 돌아갔습니다!” “왜 그래? 아직 안 나은 거야?” 으응? 눈이 돌아갔다고? 난 정상인데. 히히히히히히! 그렇게 내가 반쯤 넋이 나간 채 닭대가리 3인방을 향해 다가가자, 그들은 움찔움찔하면서 뒤로 천천히 물러가기 시작했고, 그때 세리하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마스터 오브 웨폰. 주인님의 전직 완료 시 얻게 되는 명칭이에요.” “마스터 오브 웨폰?” “네!” 마스터 오브 웨폰, ‘모든 무기를 다루는 자’ 라는 뜻인가? 그리고 전직을 하면 엄청난 해택이 있다고 들었다. 난 당장 그놈들에게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세리하를 보았다. 오늘 저것들은 세리하 덕택에 산 줄 알아야 한다. “세리하, 그러니까 그 전직은 어떻게 하는 거야?” “흐음……. 저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본 적은 없지만 다섯 번째 소환수나 여섯 번째 소환수는 알고 있을 수도 있어요.” “다섯 번째 소환수라…….” 소환수는 모두 여섯 명이다. 그중 네 명은 나에게 있다. 닭대가리 삼인방과 유혹(?) 프리스트 세리하. 물론 다섯 번째 소환수에 대한 정보는 모른다. 전에 테피언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자신들 네 명은 한 번 체인지된 거라고……. 그러므로 저것들한테는 내가 1대 마스터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다섯 번째랑 여섯 번째는 바귀지 않았다고 한단. 그럼 전대 웨폰인첸트랑 같이 다녔으니 알 확률이 높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다섯 번째 소환수에 대한 정보는 아예 없다. 이럴 때는 저것들처럼 자기들이 찾아오면 좋겠다만……. 휘이익! 그렇게 내가 반쯤 포기하고 있을 때, 내 앞으로 종이 한 장이 날아왔다. “이게 뭐지?” 난 중얼거리면서 무심코 그 종이를 펼쳤고 거기에는 ‘무슨 대회 어쩌고저쩌고’가 써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펫 무투회를 개최하게 된 랭킹 21위 제라스입니다. 이 무투회는 제 개인적인 자금을 털어서 하는 무투회입니다. 펫 무투회는 당연한 말이지만 펫만 나갈 수 있습니다. 참고로 주인의 참견은 불가능합니다. 세계 최강의 펫, 당신이 펫임을 증명해 보이세요! 총상금 10,000골드와 더불어 제가 사냥 중 획득한 괴이한 지도를 드립니다. 할 짓이 없나 보다, 아깝게 자신의 돈을 걸고 펫 무투회나 하다니. 그래도 10,000골드라는 건 꽤 끌린다. 그리고 괴이한 지도라니? 난 그 말과 함께 그 종이에 그려져 있는 상품으로 보이는 지도를 열심히 노려보았다. 거기에는 단 한 단어가 적혀 있었다. -웨폰인첸트- 히익! 서, 설마 이게 다섯 번째 소환수의 단서? 난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렸다. 아마도 이걸 주운 제라스라는 남자는 별 필요 없는 것 같아서 덤으로 상금과 끼워 주는 거겠지만, 다른 애들한테는 필요 없을지 몰라도 나에게는 무지무지 필요한 지도였다. “왜 그래, 오빠? 그리 놀라운 게 적혀 있어?” “채은아, 드디어 다섯 번째 소환수의 행방을 알아냈다.” “으응?” “여기서 우승만 하는 되는 기다!” 아, 나도 모르게 사투리를……. 어찌 됐든 여기서 우승하면 당장 다섯 번째 소환수에 대한 정보가 나오는데, 펫이 없다. 조금 전에 보았듯이 펫만 나갈 수 있다고 한다. 이 중에서 펫 기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나저나 저것들은 언제까지 우리들을 쳐다볼 건가? 우리들이 마을에 들어온 후 줄곧 남자 새끼들은 우리를 쳐다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래서 마을을 오기가 영……. 물론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들도 신기하다는 눈으로 우리를 많이 본다. 좀 괴상망측한 파티기는 하니 저 마음도 약간은 이해한다. 그게 아니라 문제는 펫! 펫을 조달해 와야 된다. 정 안 되면 펫으로 속여……. “헉! 왜, 왜 나를 그런 눈빛으로?!” 바로 그때 내 눈에 개 한 마리가 클로즈업되었다. 그 개의 이름은 케미리, 나의 소환수이자 클래스는 어쌔신이고, 버릇없고 싸가지 없고 비굴하고 어쨌든 최악의 소환수 한 마리였다. “흐음.” “왜, 왜……?” “흐음.” 난 케미리가 뭐라 하든지 그놈을 열심히 바라보았다. 좋아! 저놈이다. 저놈이 소환수인지 펫인지 그 누구도 알아낼 수 없을 게 분명했다. 그뿐 아니라 좀 하는 짓이 이상한 개지만, 일단 개의 힘이라고 보기에는 어마어마하게 강했다. 이미 펫이라는 것들하고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방심은 금지, 펫 중에서 비정상으로 강력한 펫도 존재한다. 그러니 방심을 하면 안 된다. “좋았어. 케미리 네놈은 이번 펫 대회에 출전한다.” “페, 펫 대회라니?” “이거 안 보이냐?” “…….” 난 친절하게 그 포스터를 가리키면서까지 말했고, 그 말에 케미리는 침묵을 지켰다. 하지만 침묵을 지키던 케미리는 나에게 건방진 말투로 말했다. “내가 왜 나가야 하지?” “흐음?” “난 소환수다. 그딴 펫 대회에 나갈 정도로 하급 존재가 아니다.” 덥석. “자, 잠시…….” 난 무지무지하게 건방지게 말하는 케미리를 덥석 든 뒤 어딘가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나는 일행들에게 잠시라는 제스처를 취한 뒤 몸을 움직였고, 케미리는 본능적으로 내가 뭘 할지 알아차렸는지 다급하게 말했다. “노, 농담이야!” “며칠 안 보더니 건방져도 너무나 건방져졌구나.” “아, 아니야. 그게…….” “문답무용. 말하면 더 늘어난다.” “…….” 내 말에 케미리는 침묵을 지켰고, 그 다음은 케미리와 같이 그냥 한적한 데로 갔다. 잠시 후. “…….” “케미리가 열심히 최선을 다해 동의해 준대.” “그, 그런 것치고는 케미리 상태가…….” 찌릿! “아, 아니다, 마스터.” 난 나에게 말을 거는 테피언을 향해 눈빛을 한 번 줬고, 그 눈빛에 테피언은 금세 케미리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아예 관심을 없애 버리겠다는 눈빛이었다. 역시 본보기가 한 명 있어야 하는 건가? 그렇다고 해도 너무 쉽게 배신한다, 테피언. 아마도 케미리에게 그 비굴함을 배운 것 같았다. 케미리의 영향력이 테피언보다 더 크다고 해석해도 될 듯싶다. 어찌 됐든 이제 펫 무투회에 등록하러 가 볼까나? “루라스님, 마을에 그 일행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플레스 그자 말인가?” “네.” 그 말에 루라스는 의자에 몸을 늘어뜨린 뒤 두 손을 마주 겹치면서 말했다. “처음에는 재미였지만, 이제는 아니다. 계진도 같이 보낸다.” “그렇지만 지금은…….” “으음?” “제라스라는 자가 개인적으로 7시간 후 펫 무투회를 실시합니다. 그리고 그자가 출전을 하는 것 같습니다.” “흐음…….” 그 말에 루라스는 말을 흐렸다. 아무리 자신들이라고 하더라도 남이 이벤트를 방해하는 건 좀 껄끄러웠다. 물론 해도 상관은 없지만 괜히 귀찮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상대방은 랭킹 21위 어둠의 제라스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철저히 감시를 한다. 그리고 펫 무투회를 끝내고 나가면 급습한다. 텔레포트 마법진은 막는다.” “알겠습니다, 루라스님!” 서서히 데스 길드와 전면전이 시작되고 있었다. 7시간 만에 케미리를 개조시켜야 하는 게 나의 임무다. “임마, 너는 이제 완전히 개야!” “그, 그건 무슨 뜻?” “개와 동화가 되는 거야. 너는 이제 소환수가 아니라 개다. 개다. 개다!” “…….” 내 말에 케미리는 말문을 열지 못했다. 뭐 안 열면 조용해서 좋다. “…….” 어찌 됐든 케미리는 나와 지금 단독으로 여관을 빌려서 면담 중이었다. 다른 일행은 바로 옆방에 있었고……. “자, 케미리, 혹시 비장의 무기 같은 거 없니?” “비장의 무기?” “응. 예를 들어 입에서 ‘브레스트 파이어’ 라고 하면서 브레스를 내뿜는다든가.” “…….” 나의 말에 케미리는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말하고도 약간 어이가 없군. 개가 블레스라니, 요새 내 상상력이 꽤 좋아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진담이라고 오해할 줄도 모르니 진실을 말해 줘야겠다. “농담이었고. 와이어 다루는 거 말고 체술이라든가 그런건 가능하냐?” “격투술을 별로……. 난 어쌔신이잖아.” 저놈은 심심하면 어쌔신이라고 강조한다. 다시 말하지만 그건 어쌔신들에 대한 모독이다. “그럼 네놈은 와이어밖에 다루지 못하는 거냐?” “뭐, 그렇지.” 난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케미리를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나가는 것은 펫 무투회, 펫인 강아지가 와이어를 다룬다면 파란이 일어날 게 분명했다. “아, 정말 곤란하네.” -왜? “케미리……. 헉! 로케리스?” 난 친숙한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이 목소리는 저번에 마법 한 방에 깊게 잠든 로케리스. 로리 지팡이의 목소리가 이리 그리운 적은 처음이었다. -그럼 이 우아한 목소리는 나지, 누가 있겠어? 그나저나 주인, 나의 부탁은 들어줬겠지? “부탁했었나?” -너무한다! 내가 잠들기 전에 10살 정도 되는 풋풋한 여자 아이를 데려다 놓으라고 했잖아! 그거 진담이었니? 난 농담인 줄 알았는데……. -흐흑. 난 그걸 기대하고 잠들었는데……. “…….” -충격이야! 눈물을 흘리는 듯한 로케리스의 목소리를 듣고 난 충격먹었다. 진심으로 그 정도로 로리를 사랑하다니……. 난 그런 로케리스를 향해 진심으로 위하는 마음으로 물었다. “정말 그런 꼬마 여자 아이가 좋은 거냐?” -물론이지. 그 풋풋한 향, 키워 먹으면……. “…….” -카아! 키워 먹다니, 네놈은 지팡이다. 지팡이가 뭘 키워 먹어? 어찌 내 주변에는 이리 변태 같은 놈들이 가득한지. 지극히 정상적인 나와는 너무나도 안 어울린다. -같은 과끼리 왜 그래? “내가 왜 네놈 과야!” -저번에 들었어. 그 예쁘장한 채은이라는 여자 아이, 6살부터인가? 키워 먹을 준비를 했다며? “뭐, 뭐?” -같이 이해하면서 살자고, 동료! “…….” 난 어이가 없어서 말문을 열지 못했다. 난 채은이랑 한 살 차이밖에 안 난다. 근데 키워서 잡아먹기는 뭘 먹어! “난 지극히 정상이야!” -정말? “물고문 당해 보려나, 지팡이 군?” -아, 아니. 나의 말에 로케리스는 다급히 말을 접었고, 바로 그때 나의 중얼거림을 들은 케미리가 물었다. “뭘 그렇게 혼자서 말하는 거임?” 로케리스의 목소리는 나 말고 그 누구도 들을 수 없다. 한마디로 내 전요 지팡이라는 소리였다. “로리 지팡이가 깨어났거든.” “아하! 그 변태 지팡이?” -뭐라는 거야! 저 변종 똥개! 하하하, 비슷한 놈들이 욕하니 무지무지하게 황당하다. 참, 이게 아니고, 난 요새 가끔씩 느낀다, 이유 없이 자꾸 생각하던 내용을 잊어버린다는 것을. 그건 물론 괴이한 놈들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케미리를 하루 만에 와이어 없이 강하게 만들려면? 일단 케미리는 스피드가 빠르다. 그 빠른 스피드로……. “그렇군!” 난 내 머릿속을 지나가는 한 아이디어에 눈을 번쩍였다. 이건 하늘이 내게 우승하라고 내려 준 아이디어가 분명했다. “그냥 패면서 교육하면 되는 거였어!” “헤엑!” “케미리, 각오는 됐겠지?” “무, 무슨 소리야, 마, 마스터?” “무슨 소리기는! 내가 특별히 너에게 스파르타식으로 가르쳐 준다는 거야.” “거, 거부한다!” “네놈에게 거부권 같은 건 없어. 크크크!” “으아악!” “어디 가!” 난 도망가려는 케미리를 날아서 잡은 다음 그대로 침댈 내던졌다. 그런 다음 도망 못 하게 이불로 똘똘 말면서 말했다. “자, 시작해 볼까? 시작하기 전에 미리 맗 두지. 조그이라도 이상한 기미가 보이면 편히 죽지는 못할 거야. 크크크!” “이, 이 악마!” “악마라니? 네가 나한테 한 행동을 생각하렴.” “내가 마스터에게 얼마나 잘했는데! 이리 배신할 수가!” 하아, 나한테 잘했다고? 그래, 잘하기는 잘했지. 내 성질 돋우는 건 정말 잘했다. 그건 인정을 해 주지. 근데 분노가 더욱 솟아오른다. 난 훈련에 들어가기에 앞서 오해를 풀기 위해 한마디 했다. “거듭 말하지만, 이건 훈련이야. 오해는 하지 마.” “이 악마! 마족! 괴물! 날 풀어! 이 똥개 마스터!” “이제 막가자는 거냐? 그래, 막가자.” 난 케미리를 보고 싱긋 웃었다. 다시 말하지만 절대! 다른 마음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 오직 케미리가 우승하기를 바라는 나의 따뜻한 마음이었다. “하아, 하아.” “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마스터?” “아무것도 아니다, 피티언. 후훗.” 나는 단 6시간 만에 최종 병기가 된 케미리를 기쁜 듯이 바라보았다. 역시 저런 변종 소환수한테는 말로 하는 것보다는 확실한 스파르타식 교육이 최고였다. “케, 케미리……. 너 괜찮냐?” “난 케미리가 아니다. 최종 변기(?)다.” “최, 최종 변기?” 케미리의 말에 테피언은 황당하다는 듯 답문했다. 최종 병기도 아니고, 최종 변기라니……. “난 우승을 위해 만들어졌다. “너, 너무 달라졌어.” “마스터 덕택에 난 나의 본능을 느꼈다. 감사합니다, 마스터.” “하하하! 뭘.” 난 너무나도 멋있어 보이는 케미리를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단 6시간 만에 최종 변기(?)를 완성시키다니, 나도 꽤 재능이 있을지도……. “마스터, 가도록 할까요?” “그러자, 케미리.” “다시 고맙습니다.” “뭘, 하하하.” 나와 케미리는 아주 기분 좋게 펫 무투회가 열리는 곳으로 향했다. 한편 민혁이와 케미리의 모습을 보고 난 모든 일행들은 방금 민혁이와 케미리가 나온 방 안쪽을 보았지만 그 안은 너무나도 평범했다. 훗! 최종 변기(?) 케미리, 나의 마음을 이해해 주는군. “슈퍼 더블 콤보 400타!” 퍼퍼퍼퍼퍼퍼퍽. “깨에에엥!” 케미리와 대전했던 개는 순식간에 패견(?)이 되었다. 죽지는 않았고, 약간(약 한 달 정도) 누워 있어야 될 정도로만 다쳤다. 한편 그런 케미리를 보던 채은이가 내 옆으로 오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오, 오빠, 케미리 씨가 전과는 다른 것 같아.” “그래?” “응. 왠지 모르게 야수가 된 느낌.” 역시나 최종 변기(?)! 이미 그는 야수가 되었다. 훗! 내 사랑의 교육 덕택이지. “미, 믿어지지 않지만 케, 케미리 씨가 결승에 진출했습니다.” 사회자의 당황한 음성이 들려왔다. 당황스러울 거다. 왜냐하면 케미리는 겉모습은 너무나도 귀여운데 하는 짓은 이미 야수였으니……. “케, 케미리, 왜 그래? 워, 원래대로 돌아와라!” 테피언은 돌아오는 케미리를 향해 절규했고, 그 말에 케미리는 그런 테피언을 슬쩍 보면서 말했다. “난 나다.” “이건 네놈이 아니야!” “불만 있나? 그럼 싸워 주지.” “…….” 너무나도 도발적인 케미리의 말에 테피언은 충격을 먹었는지 말이 없었다. 데스나이트 테피언, 그의 친구 케미리가 저리 변했으니. 그런데 약간 교육한 것치고는 너무나도 변했다. 그러고 보니 아까 스파르타식 교육을 하는 도중, 케미리는 단 한 번 도주를 하다가 실수로 창문틀에 부딪혀 기절하고 쓰러졌다. 그 이후로 저렇게 변했다. 설마 그게 원인이 돼서? 설마! “마스터, 우승이 머지않았습니다.” “그, 그래. 그나저나 케미리, 원래 네 모습대로 돌아와도 되는데…….” “원래 모습이라니요? 이게 제 모습입니다.” “…….” 적응이 안 된다. 이건 분명 창문틀에 박은 게 원인이다. 내가 스파르타식 교육을 시키지만 않았어도 케미리는 도망가지 않았을 거고, 창문틀에 부딪히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럼 이건 나의 잘못? 미안하다. “지금 네놈은 착가하는 거야. 원래 네놈은 비굴하고, 무지 이상하게 살았어.” “농담도 잘하시는군요. 제가 제일 싫어하는 게 비굴하고 동료를 배신하고, 마스터를 신경 쓰이게 하고 그뿐 아니라 버릇없는 놈입니다.” 그게 너잖아, 임마! 난 이 상황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구분이 안 갔다. 실질적으로는 저 모습이 좋은데, 왠지 너무나도 다른 모습에 허전함이 생기는 이유는 뭘까? “그럼 결승전이 다 되어 가는군요. 저는 우승을 하러 가겠습니다.” 꾸벅. 그 말과 함께 케미리는 내게 90도로 인사를 했고, 난 그 모습을 보고 머리를 붙잡으면서 비명을 질렀다. “으아악! 적응 안 돼!” 잠시의 패닉 상태에서 빠져나온 난 케미리가 아주 가볍게 상대를 제압하는 걸 보고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펫이 강해 봤자 그게 그거였다. 케미리는 펫이 아니라 엄연한 소환수였다. 그렇게 케미리가 우승하자 난 제라스라는 남자의 앞으로 갔다.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는 그는 상당히 젊어 보였다. 대략 22살 정도? 그리고 잘생긴 편이었고 몸도 다부져 보였다. 키는 약 178Cm 정도에 파란색 눈동자가 인상 깊은 남자였다. “축하드립니다. 당신의 펫은 정말 강하군요!” “하하하.” 난 그 말에 어색해서 웃는 척했다. 저놈은 펫이 아니었기에……. “자, 받으십시오.” 제라스라는 남자는 나에게 지도 한 장과 더불어 상금을 내밀었고, 난 그걸 재빠르게 낚아챘다. 드디어 내가 찾던 거였다. “솔직한 말로, 그 지도가 어디에 쓰이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덤으로 드린다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혹시 모르지 않습니까? 최고의 비밀 던전이 될지.” 그럼! 나한테는 이미 최고의 비밀 던전이다. 그리고 제라스라는 남자가 지도에 대해 모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런 세세한 것까지는 소환수들만 해석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난 제라스가 준 돈과 지도 한 장을 들고 사람들의 부러움이 가득한 눈빛을 받으며 퇴장했다. 그 부러움 가득한 눈빛은 저렇게 강력한 펫을 둬서 좋겠다는 눈빛 정도? 그나저나 케미리는 아직 최종 변기(?) 모습 그대로다. “야, 케미리! 이제 끝났으니까 원래 네놈 스타일로 돌아오라니까.” “마스터, 왜 그러십니까? 제가 제일 증오하는 게 그런 부류입니다. 저는 그런 기억이 한 번도 없습니다.” 이제는 기억상실증이냐? 약간은 미안하다. “크아아악!” “뭐, 뭐야?” “머, 머리가!” “어?!” 난 갑작스럽게 비명을 지르면서 땅바닥을 구르는 케미리를 보면서 당황했다. 갑자기 왜 저러는 거지?! “으아악! 괴 괴롭습니다. 이 알 수 없는 기분! 역겹다는 생각이 듭니다!” “…….” “으아아악!” 털썩! 그렇게 쓰러진 케미리는 1분 만에 눈을 떴다. “흐음, 여기는 어디?” “서, 설마 케미리냐?” “훗! 나지, 그럼 누구냐?” 케미리다! 저런 건방진 모습, 케미리가 분명했다. 그런데 어떻게 저절로 기억상실증이 깨져 버리는 거지? 기억상실증이란 게 저렇게 금세 갑자기 나을 수도 있는 건가? 나는 잘 모르겠다. -간단한 원리지. 케미리 저놈은 평소와는 너무나도 다른 행동으로 인해 뇌에 과부하가 생긴 거지. 그래서 그 미친 인격은 죽어 버린 거다. 얼마나 충격이었으면 뇌에 과부하가 생길 정도일까? 이해는 안 간다. 아니, 개의 머릿속을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겠지만……. “케미리, 보고 싶었어!” “케미리!” “가, 갑자기 왜 그래?” 케미리는 갑작스럽게 달려드는 피티언과 테피언을 보면서 당황했다. 방금 정신 차린 케미리가 그들이 왜 그러는지 이유를 알 리는 없었다. 그나저나 다행이군. 케미리가 방금 전의 인격으로 살았다가는 내가 적응이 안 돼서 미쳐 버렸을 게 분명했다. 그럼 이제 모든 문제도 해결했으니, 다섯 번째 소환수에 대한 걸 찾아야 하나? 난 그렇게 모든 일이 잘 풀리자 가뿐한 마음으로 마을 밖으로 나왔다. 어차피 안에 있어 봤자 사람들 눈빛 때문에 있기가 거북하다. 그런 생각을 하는 도중 세리하가 다가오더니 팔짱을 꼈다. 크, 크군. 험험. “주인님…….” “응? 왜 그래, 세리하?” “저번에 케미리 가출 때, 케미리를 잡으면 소원을 들어주신다고 했잖아요.” “아, 그거…….” “지금 말해도 돼요?” “물론.” 난 약속을 지키는 신용과 정직의 대명사였다. “제 소원은 주인님이 저를 마구 껴안아 주는 거예요.” 그, 그런 좋은 소원은 언제든지……. 찌릿! 들어줄 수 없겠구나. 오랜만이다. 채은이의 저 알 수 없는 눈빛. “안 돼요?” “그러니까. 그게, 흐음…….” 난 채은이와 더불어 예화를 바라보았다. 채은이는 그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나를 보았고, 예화는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왜 그런지는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본능이 하지 말라고 나를 만류하고 있었다. “다른 거는 어때?” “후이이잉.” “그, 그럼 나중에…….” “아이잉. 주인님도 참. 너무 적극적이시다.” 그, 그런 뜻이 아닌데. 채은이와 예화가 안 보일 때라는 심오한 내용이 담겨 있었는데……. 그렇게 내가 세리하와 흐뭇한(?) 대사를 하고 있을 때, 갑자기 내 표정을 굳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최소 수천 명은 될 것 같은 엄청난 인원. “오랜만이다.” “헤헤. 오랜만이네, 초글링 형?” “죽여 버리겠다.” 그때 계민이라는 싸가지를 밥 말아먹는 놈, 그놈이었다. 그놈의 뒤에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인원이 있었다. 대략 3,000명 정도였다. 게다가 저번과는 다르게 어마어마하게 강력해 보이는 길드원이었다. “그나저나 네놈들은 이렇게 몰려다니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하냐?” “네놈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네놈이 강한 것은 인정한다. 그건 길드 마스터님도 마찬가지다.” “그거 참 고맙기는 한데, 이런 건 별로…….” 아무리 나라고 하더라도 중간 정도 되는 실력자 3,000명은 좀………. “너는 죽은 목숨이다. 저놈들을 공격해라!” 파앗! 그 말과 함께 데스 길드원들은 절도 있는 모습을 취했고, 나는 이런 현상을 처음 본 채은이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채은아, 알겠지? 내가 좀 사정이 많아.” “대층 예상은 했어. 힘은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해 도울게.” “저도 그러겠습니다.” 숫자가 좀 많군. 이거 영 그런데? “죽어라!” 그렇게 수천 명의 인간들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난 그 모습을 보고 그대로 소환수들에게 눈짓을 줬다. “걱정 말아요, 주인님! 홀리 라이트!” “한두 번 해 보나? 죽인다!” “마법으로 다 날려 버러겠습니다.” “나는 어쌔신이라고!” 그렇게 세리하, 테피언, 피티언, 케미리는 앞장서서 달렸고, 나는 조용히 주문을 외쳤다. 검(Sword) 소환! 인첸트 화(火). 일루젼 them! 화르륵! 나의 손에 들린 붉게 불타는 검. 그리고 3번째 특별 스킬 일루젼. 한 번도 써 보지는 않았지만 대충 알 것 같았다. 파지짓! 나의 검은 10개 이상으로 늘어나더니 순식간에 상대방을 죽여 나갔다. “아이스 볼트(Ice Bolt)!” “파이어 스톰(Fire Storm)!” 예화와 피티언의 마법 주문 소리가 들려왔고, 그 마법들은 순식간에 상대방의 정중앙으로 들어갔다. “살라만다! 실프! 운디네! 노움!” 채은이도 최선을 다해 모든 정령을 불러냈고, 케미리와 테피언도 최대한 공격을 했다. 나도 이러고 있으면 안 되지! 나는 그런 생각과 더불어 순식간에 검을 들고 안쪽으로 파고 들어갔다. 공격이 다 보인다. 느려, 임마! 푸지직! “크아악!” 상대방의 비명 소리만 들려온다. 3,000명 안쪽에 난입하다 보니 거의 본능적으로 휘두를 뿐이었다. 온몸의 자잘한 상처 때문에 아파 죽을 것 같았다. 피는 점점 빠지지만 나는 멈출 수 없었다. 멈추면 죽음이었으니까. 그리고 지금쯤이면 괜찮을 것 같다. 내 최강의 비기, 무근천무열(無極天無劣)을……. 충분히 일행과는 많이 떨어졌다. 그렇게 한동안 난리를 치면서 최강의 공격을 준비하려는 나의 귓속으로 음성이 들려왔다. “그만!” “뭐냐?!” “계속 휘둘러 보시지.” “…….” 난 계진이라는 놈의 말을 들을 수가 없었다. 내가 무극천무열(無極天無劣)을 사용하기 위해 깊숙이 안 쪽으로 들아가는 동안 내 동료들이 다 쓰러졌던 것이다. 테피언은 갑옷 여기저기에 상처가 가득한 채 쓰러졌고, 케미리는 끔찍한 모습으로 피를 흘리면서 쓰러졌고, 피티언은 허벅지를 정확하게 검으로 관통당한 상태였다. 그리고 정우 놈은 표면적으로는 아무 이상 없는데 입으로 피가 나오는 걸 봐서는 내부가 다친 듯했다. 그리고 세리하와 채은이와 예화. 그놈들은 그녀들도 똑같이 상처투성이로 만들어 버렸다. “훗! 여자들은 예뻐서 아무도 공격 안 하기에 내가 공격해 줬는데, 마음에 드는가?” “이 새끼야!” “움직이지 마.” “크윽.” 난 그놈의 말에 분하지만 멈출 수밖에 없었다. 나의 눈에 똑똑히 보인다. 고통스러워하는 일행들, 특히 예화와 채은이가 너무 다쳤다. 빌어먹을! “난 여자한테는 별 관심이 없거든. 크크크. 참 네놈도 위험한 놈이야. 우리들 사이에 난입해서 300명 이상을 혼자서 죽이다니, 정말 대단한 놈이야.” “…….” “하지만 나의 승리다. 저번에는 감히 나를 죽였어?” 빌어먹을 새끼. 짜증난다! “이제 죽어라! 크하하! 나머지 놈들도 같이 보내 주지.” 난 그 말에 얼른 모든 소환수들을 돌려보낼 준비를 했다. 나와 예화, 채은이, 정우는 죽으면 리셋되지만 소호나수들은 어찌 될지 모른다. 단 한 번의 목숨일지도 모른다는 소리였다. “쯧쯧. 한심한 소환수들이군. 마스터를 번거롭게 하다니…….” “맞아, 한심해.” “그렇게 심하게 말하면 어떡하니, 루리아.” “그렇지만 맞는 말이다.” 그때 눈앞에 나타난 이들, 난 내 눈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순식간에 나타난 그들은 4대 소환수와 더불어 채은이, 예화, 그리고 정우의 앞에 있는 적을 단숨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처리해 버린 것이다. 22살 정도 되어 보였지만 장난기가 가득한 모습인 남자 한 명과 30살 정도 되어 보이는 너무나도 차가운 이미지의 남자. 그리고 10살쯤 되는, 곰 인형을 든 귀여움이 가득한 여자아이, 28살쯤 되는 농후함이 묻어 나오는 여자까지……. “너, 너희들은 누구야?!” “아, 실례했군요. 마스터, 저희들은 4대 소호나수라고 불리는 존재입니다.” “4대 소환수?” “당신이 궁금해서 찾아왔지만 역시나 강하시군요. 당신이라면 저희를 다룰 능력이 충분히 있습니다.” “그건 무슨 말이지?” “간단히 말해서, 이런 허약한 소환수들과는 계약을 파기하시고 저희와 계약을 맺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4권에서 계속> -by로사. 마스터 오브 웨폰 4권(최강의 창 VS 최강의 방패) 제1장 무극천무열(無極天無劣) “그, 그게 무슨 소리야?” “다시 한 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저 약해 빠진 소환수들과는 계약을 파기하시고, 저희와 계약을 맺을 수 있습니다.” “…….” 그 말은 저 멋지고 듬직하고 심플하고 완벽하고 뷰티…… 아 참, 이게 아니고, 멋져 보이는 저 전직 4대 소환수와 계약을 맺을 수 있다는 소리란 말인가? 지금의 4대 소환수들과 계약을 파기하고? 분명 매혹적인 요구이기는 했다. 저들은 정말 강해 보이고 듬직해 보였으니까. 하지만 그런 존재들보다 항상 말썽을 피우는 개 한 마리와 먹을 것이라면 가리지 않는 천족 한 명, 그리고 온갖 여자를 좋아하는 데스나이트, 프리스트인지 약간은, 아니 많이 의심 가는 세리하까지, 난 그들이 좋다. “됐어. 난 지금의 소환수들이 마음에 들어.” “흐음, 저런 허약한 소환수들이 말입니까?” “그리 허약하지는 않아.” “이런, 수천 명의 적을 죽이지도 못하면 허약한 거죠.” “그 말은 너희들은 가능하다는 거야?” “물론입니다. 저희들의 힘만으로도 이곳 인원의 3/2는 상대가 가능합니다.” 2/3? 그 말은 2,000명? 단 네 명이서? 말도 안 되는 말이다. “못 믿으시겠다는 표정이군요.” 내 표정에 살짝 드러났는지 그 남자는 슬쩍 웃더니 뒤에 있던 10살 정도 되는, 인형을 꼭 껴안은 귀여운 여자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눈빛을 받은 그 꼬마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끄덕끄덕. 눈빛이 이상한데? 서, 설마 저놈도 로리타? 로케리스 때문에 이제는 모든 남자들이 다 로리타로 보인다. “헤헤. 유리타가 보여 줄게.” 뭘 보여 줘? 서, 설마……. 아니다. 이상한 생각을 한 건 아니다. 절대 아니다! 난 순수해! 채은이와 예화 나이 정도에는 사심이 지극히 많지만 10살짜리 꼬마 아이를 h고 이상한 생각은 하지 않는단 말이…… 솔직히 했다. 그게, 보여 준다는 말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나도 모르게 그만……. 하지만 이건 내 잘못이 아니다. 내 못된 머리가 잘못이다. 그리고 그 말을 오해해서 잠깐 이상한 상상을 했지만, 난 절대 어린아이한테는 관심 없다! 터벅터벅. 바로 그 순간 인형을 들고 천천히 걸어 나오는 10살싸지 소녀. 그 모습을 데스 길드원들은 비웃음을 가득 띤 채 바라보았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네 명 때문에 당황한 것 같았지만 자신들의 인원수가 생각났는지 금방 여유를 찾고 우리를 지켜보았다. “헤헤. 바퀴벌레 떼 같아.” “바, 바퀴벌레?!” “저 꼬맹이가!” “보이는 게 없어?!” “뭐?!” 유리타라고 불린 어린 소녀의 한마디에 데스 길드원들은 흥분 상태에 돌입했다. 자신들보고 바퀴벌레 떼라고 했으니까. 그 말을 듣고 멀쩡할 존재들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저 소녀, 입이 보기보다 상당히 살벌하다. 수 많은 언어 중에서 바퀴벌레 떼라니. “우웅? 아니야? 내가 보기에는 바퀴벌레보다 못한 것 같은데.” “으아악!” “사정 봐주지 말고 죽여!” “죽여!” 유리타의 한마디에 데스 길드원은 극도로 흥분했다. 그나저나 그 수천 명의 살기를 견디고도 해맑은 표정을 짓는 유리타. 그것만으로도 절대 ‘평범함’ 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바퀴벌레보다 못한 거면 뭐가 있지? 파리? 모기? 땡칠이? 상칠이? 그것도 아니면 케미리? 모르겠군. 내가 바퀴벌레보다 못한 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데스 길드 놈들은 또다시 떼로 그 연약해 보이는 소녀를 향해 달려왔다. 정말 쓰레기다. 10살짜리 소녀를 향해 저렇게 살벌한 병기를 들고 달려오다니……. 나라도 도와주러 나가야겠다. 그 생각과 더불어 몸을 움직이기 위해 발걸음을 떼려는 그때, 리더로 보이는 남자가 나를 막아섰다.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저래 봬도 저희들 중 두 번째로 강하거든요.” 두, 두 번째로? 내 앞에 있는 전직 소환수들은 네 명이었다. 22살 정도 되어 보이지만 장난기가 가득한 모습인 남자 한 명과 30살 정도 되는 너무나도 차가운 이미지의 남자, 그리고 28살의 농후함이 풍겨 나오는 여자와 수천 명의 적을 보고도 여전히 해맑은 미소가 인상적인 10살짜리 소녀가 바로 그들이었다. “유리타가 놀아 줄게!” 유리타는 자신의 품에 있는 곰돌이 인형을 한 번 쓰다듬었고, 잠시 후 난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곰돌이 인형이 입을 벌리더니 무슨 엄청난 레이저 광선같은 게 일직선으로 쏘아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참혹했다. 광선의 일직선에 있는 모든 데스 길드 놈들이 그대로 녹아 버렸다. 아니, 소멸되어 버렸다. “헤헤! 유리타 잘했어?” “잘하셨습니다.” “헤헤.” 어느새 그 한 방에 경직이 돼서 움직이지 못하는 데스 길드원을 놔두고 다시 돌아와 그 남자에게 칭찬을 받는 유리타였고, 난 굳어 버린 데스 길드원들을 보고 할 말이 없었다. 나도 굳었으니까. 이게 인간이냐? 아니, NPC인가? 아무리 NPC라 하더라도 정말 경악이라고! 어찌 됐든 이건 아니다. 50미터 이상의 일직선상에 있는 나무라든가 바위 등 모든 게 녹아 버렸다. 한마디로 이 한 번의 공격으로 약 200명 이상을 몰살시킨 거다. 그리고 덤으로 지금 저놈들을 패닉 상태에 빠지게한 결과까지 가져왔다. 그렇게 내가 말도 안 되는 힘에 제정신이 아닐 때 그 장난기 가득한 남자가 다시 나에게 말을 걸었다. “어떻습니까?” “…….” “유리타의 기술 중 5일에 한 번 쓸 수 있는 궁극기 같은 것이기는 하지만, 저희 네 명 모두 이런 궁극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정말 멋있어도 너무 멋있다. 비교하는 게 약간 미안하지만, 지금 쓰러져 있는 내 소환수들과는 너무 차이가 난다. 힘, 인품, 뽀대, 모든 게……. “다시 한 번 말씀드리겠습니다. 하시겠습니까?” “…….” 난 그 말에 나를 보고 싱글싱글 웃는 그 남자를 뚜렷이 바라보았다. 아마도 저 장난기 가득한 남자가 이들의 리더인 듯싶었고, 엄청 강할 게 분명했다. 충분히 내 앞에 있는 바퀴벌레 떼를 상대할 수 있는 힘을 가졌다. 그렇지만……. “역시 난 닭대가리들이 좋아.” “흐음. 어쩔 수 없군요.” 그 남자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나라고 강력하고 멋있는 소환수들이 좋지 않을 리가 없지만, 항상 말썽꾸러기여도 나를 위해 주는 닭대가리 삼인방과 세리하가 더 중요했다. 한편 말없이 나를 불안하게 보던 닭대가리 삼인방과 세리하는 내가 그런 결정을 내리자 곧바로 방긋 웃음을 띠었고, 난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는 그 남자에게 말했다. “내 부탁 하나만 들어주라.” “어떤 부탁이시죠?” “내 소환수들과 저 소녀 두 명을 지켜 줘.” “흐음. 그런 것은 부탁 축에도 못 들죠. 아무리 거절당했다 하더라도 당신은 마스터 오브 웨폰이니까요.” “고맙다.” 난 그 말에 살며시 감사 인사를 했다. 자신들을 거부해서 기분이 나쁠 만도 하건만 전직 소환수들은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내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나저나 한 명 빼먹은 기분? “형님, 저는 어떡하란 말입니까!” “아, 정우?” “혹시…… 잊어버렸던 겁니까?” “그, 그럴 리가 없잖아? 전직 소환수 리더, 저놈도 덤으로 지켜 줘.” “덤은 싫습니다. 저는 형님을 죽도록 사랑합니다.” 이 상황에서 그딴 대사가 왜 튀어나와? 그리고 무엇보다 난 네가 죽도록 짜증난다, 이 변태야! 나는 자신을 버렸다고 달라붙는 정우를 강제로 떼어 놓고 아직도 굳어 있는 데스 길드원들에게 다가갔다. 내가 다가가자 그놈들은 움찔움찔했다. 짜증나는 놈들. “뭐, 뭐야? 하, 한 명이 다가오는데 왜 겁을 먹어, 이 새끼들아!” 바로 그때 초딩 형은 움찔거리던 놈들에게 소리를 쳤고, 그 말에 그들은 다시 나를 향해 무기를 겨누었다. “야, 초딩 형! 네놈은 그 뒤에서 숨어 있기만 하냐?” “지랄한다. 네놈만 죽이면 된다! 이 새끼야! 시팔 놈아!” 욕은 하고 있지만 선뜻 내 앞으로 못 나온다. 아마도 전에 한 번 나에게 죽었던 게 원인인 것 같았다. 그나저나 나는 저런 놈들이 제일 싫다. 쪽수로만 밀어붙이고 정작 자신은 뒤에서 소리만 지르는 놈들. 제일 짜증난다. 나는 소환된 검을 들고 아직도 엄청난 숫자가 남아 있는 적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솔직히 아무리 내가 미친(?) 캐릭터를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몇천 명이나 되는 인원은 무리다. 하지만 그냥 죽고 싶지는 않다. 최대한 발악을 하고 죽고 싶다. 터벅터벅. 내가 그런 생각과 더불어 무심코 걸어가자 내 앞에 있는 적들은 긴장감 가득한 모습으로 보고 있었고, 뒤에서 초딩 형은(이름 모르기에) 여전히 발광하고 있었다. 저렇게 수많은 적을 향해 다가가는 내가 미친 것일지도 모르지만 나에게는 최종의 기술이 있었다. 해저동굴에서 얻었고 단 한 번도 시전하지 못한 최강의 스킬. 물론 지금 마나의 양이 좀 부족한 편이지만 나에게는 최고의 아이템이 있기에 문제는 없다. “에쿠리 마린.” 나직하게 주문을 영창하자 순식간에 회복되는 마나. 마나 회복 속도를 3,000%까지 끌어올리는 스킬이었다. 그런 엄청난 마나의 힘을 느낀 난 신급 스킬을 조용히 중얼거렸다. “무극천무열(無極天無劣)!” 무려 58,000이라는 경악적인 데미지의 스킬. 반경 40미터 안의 모든 존재를 전체 타격하는 스킬이다. 물론 아군도 포함해서 말이다. 40미터라면 못해도 700명 이상은 동귀어진으로 죽일 수 있을 것이다. 난 그런 생각과 더불어 천천히 적들에게 다가갔고, 그들과 약 8미터 정도의 거리까지 다가가자 서로 눈치를 보던 그놈들은 갑작스럽게 공격을 했다. “죽어!” “이 새끼야!” “죽으란 말이야!” 나에게 날아오는 파이어 볼이라든가 매직 미사일, 라이트닝 볼트 등 다양한 마법과 엄청난 무기를 보고 난 무감각한 모습을 보이며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피해 냈다. 아직은 아니다. 내 뒤에 있는 존재들에게도 피해가 간다. 최소 저것들의 중심지에서 사용을 해야 한다. “비켜, 짜식들아!” 난 그 말과 함께 수많은 적을 향해 달려 나갔다. 기다가 뒈질 확률도 있지만 최대한 안 죽어야겠지? 푸직푸직. “크아악!” “막아!” “젠장!” “한 놈도 못 막아!” 온갖 비명과 절규 소리가 내 귀를 자극했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했다. 평소보다 상대방의 공격 방향 같은 게 잘 보였다. 자그마한 움직임으로도 충분히 상대방을 제압하는 게 가능했다. 거의 무아지경으로 앞을 막는 적을 죽이면서 달려 나갔고, 온몸에 크고 작은 상처를 입은 채 그들의 중앙쯤에 도착했을 때였다. 힘들다. 죽을 것 같다. 최대한 마나가 담긴 공격을 쓰지 않은 까닭이었을까? 스태미나와 체력, 모든 힘이 다 소모된 것 같다. 지금 나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무극천무열을 사용할 수 있는 마나뿐. “미친 새끼! 죽고 싶어서 안달이 났나?” 한편, 주변에서 나를 바퀴벌레 떼처럼 포위한 자신의 편을 보고 자신만만히 말하는 초딩 형이었고, 난 그놈을 보고 싱긋 웃었다. “우, 웃어? 미, 미친 거냐?!” “내가 왜 웃는다고 생각해?” “뭐라고?” “그건 말이야, 나에게는 네놈을 뒈지게 할 스킬이 있기 때문이야.” “무, 무슨 소리냐?!” 저놈은 내 40미터 반경 안에 있다. 나를 약 올리기 위해 왔겠지만 오히려 그게 네놈의 목숨을 빼앗아 가게 될 것이다. 나는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해 당황하는 표정이 역력한 그놈을 향해 조용히 뇌까렸다. “보여 주지, 무극천무열을.” “무, 무극천무열이라고?!”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한다. 당연하다. 무극천무열은 나만의 스킬이었으니 생전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이름 안에 담긴 예사로움은 다행히도 느꼈나 보다. 하지만 이미 늦었어! 푸욱! 난 나를 둘러싼 적들이 있는 데서 소환된 검을 과감하게 바닥에 꽂아 넣었다. 그런 다음 조용히 말했다. “무극천무열.” 크윽. 그 순간 내 몸에서 빠져나가는 어마어마한 양의 마나.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마나가 풀이었는데, 단번에 올인 됐다. 그리고 곧 내 주변으로 땅이 갈라지고 흔들리기 시작했다. 콰아앙! “뭐, 뭐야?!” “무, 무슨 술수야!” “무슨 짓을……!” 주변의 땅이 갈라지고 흔들리자, 내 앞에 있는 데스 길드 놈들은 마구 당황했다. 당연히 초딩 형 놈도 무지 당황한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콰앙! 퍼엉! “으아아악!” “으아아악!” 엄청난 비명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아비규환의 장이 되었다. 땅에서 ‘죽음’ 이라는 화려한 것을 들고 온 화룡이 40미테 안에 있는 존재를 집어삼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강하다. 보는 나도 믿어지지가 않는다. 갈라진 바닥에서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화룡이 나와 도망치는 적들과 굳어 버린 적들을 단숨에 집어삼킨다. 도저히 내 눈으로 보고도 설명할 수 없는 상황, 진정 아비규환이다. 그런데 몸에 힘이 없다. 이상하다. 괴이한 기분이다. 마치 무엇인가가……. 바로 그 순간! -무극천무열을 제어하는 데 실패하셨습니다. 무슨 말이야?! -폭주합니다. 콰앙! “으아아악!” 그 순간 내 몸도 같이 소멸되기 시작했다. 제어하는 데 실패하다니, 무슨 말이야?! “오빠!” “마스터!” 어렴풋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자세히는 들리지 않는다. 이미 내가 사용한 스킬로 인해 적들과 함께 죽어 가는 탓일까? 그래도 뭐 후회는 없다. “…….” 루라스는 침묵을 지켰다. 아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이번에야말로 그 플레스라는 놈과 동료들을 간단히 죽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들려온 소식은 완전한 패전. 3,000명 중 반이 넘는 1,600명이 죽었다. 물론 플레스라는 자도 자신의 알 수 없는 최강의 스킬을 외친 채 죽었다고한다.(하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그 자리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으니까) 믿을 수가 없다. 지금 루라스의 표정은 더 이상 굳어질 수 없을 만큼 굳어져 있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물을 더럽힌다더니, 이건 그 정도 수준이 아니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거대한 바다를 더럽히는 수준과 비등했다. 제2장 루케리에스 죽었나? 죽었는데 왜 곧바로 게임기에서 빠져나오지 않는 거지? 어떻게 된 거야? 난 지금 상황에 제정신이 아니었다. 내가 왜 이런 간이침대에 누워 있는지 이해가 안 됐다. 무극천무열의 폭주로 내 몸은 엄청난 고통과 함께 죽었다. 그런데 당연히 캡슐……. 그러고 보니 이상하다. 분명 ‘죽었습니다.’ 라는 메시지가 뜨지 않았다. 그렇다면 살았다는 건가?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난 주변을 둘러보았다. 내가 누워 있는 하얀색의 간이침대와 더불어 좋은 공기를 마시라는 배려인지 주변에 가득한 꽃이 보였다. 그 외에는 없었다. 뭐야? 정말 어떻게 된 거야! 여기는 어딘 거야? 도무지 어떤 상황인지 몰라 혼란스러워 할 때, 한 남자가 나의 그런 혼란을 막아 주었다. 듣는 것만으로도 은근히 기분 좋아지는 허스키한 목소리를 가진 남자가 말이다. “어이, 몸은 괜찮으냐?” “…….” “무슨 표정이 그렇지? 못 볼 사람을 본 것처럼 말이야.” 당신이 내 입장이 되어 봐, 이런 표정이 나오지. 지금 내 표정은 경악, 황당, 패닉이라는 3대 요소를 고루 갖춘 상태였다. 눈앞에 있는 남자 때문이다. 완벽한 외모에 완벽한 목소리, 완벽한 몸매. 한마디로 모든 남자들의 적이자 모든 여자들의 꿈이 될 모습을 가진 존재였다. “많이 의아한가 보군.” “쿠레리에스, 네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왜 있기는, 나의 레어니까 있지.” “…….” 그걸 물어본 게 아니잖아! 내 질문에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루케리에스를 보고 황당해서 말이 나오지 않았지만, 그런 표정을 본 루케리에스는 오히려 마구 웃으면서 말했다. “하하. 그런 표정을 지을 필요는 없네. 어차피 우리는 친구니까.” “그게 아니라 대화의 내용이 약간 핀트가 어긋났다고 생각하지 않아?” “무슨 말이지?” “내 말은 왜 내가 루케리에스, 너의 집(?)에 있냐는 거지!” “궁금한가?” “궁금하지.” 내 말에 루케리에스는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정말 심오한(?) 표정이었다. 어찌 됐든 난 궁금증을 풀기 위해 루케리에스를 계속해서 쳐다보았고, 그런 내 모습을 본 루케리에스는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배고프지 않나?” “그것보다…….” 꼬르륵. 바로 그 순간, 내 배 속에서 나는 꼬르륵거리는 소리. 밥 달라는 소리다. 그러고 보니 배가 많이 고프다. “하하. 음식을 가져오지. 이야기는 먹으면서 천천히 해도 늦지 않으니까.” “그, 그런가?” 내 반문에 루케리에스는 다시 한 번 여자들을 천국(?)으로 보내 줄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여자들이라면 천국이었겠지만 같은 남자가 보기에는 짜증나는 미소다. “그렇다. 그럼 일단 음식을 가져오지.” 그 말과 함께 루케리에스는 이 꽂과 간이침대밖에 없는 방에서 나가려고 하다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나를 돌아보았다. “아 참, 한 가지 잊어버렸군. 너의 옆에 있는 책은 읽지 말도록.” “으응? 무슨 말?” “그냥 안 보는 게 좋을 거네. 그럼.” 루케리에스가 사라지자 난 그가 말한 내 옆에 있는 책을 집었다. 이게 뭐기에 안 보는 게 좋다는 거지? 원래 인간이란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법! 나도 인간이었기에 이미 내 손은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드래곤 레어에 있는 책이니 무슨 9서클 대마법이라도 적혀 있는 것 아니야? 히죽히죽. 그런 생각이 들자 나도 모르게 마구 웃음이 새어 나왔고, 정말 엄청난 기대 속에 랜덤으로 책장을 넘겼다. “제진! 이, 이러지 마.” “내가 싫은 거야, 라콘?” “그, 그건 아니지만…….” “그럼 됐어. 가만히 있어.” “그, 그렇지만 이, 이건 아니잖아. 우, 우리들 남자잖아.” “성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사랑이지.” 그 순간 레진의 입술은 강력히 라콘의 입술을 덮었다. 그와 더불어 그의 섬세하고도 살이 있는 손은 라콘의 옷을 마구 찢어 버렸다. “아, 안 돼, 레진!” “그렇다면 너를 강제로…….” 퍼억! “으아악!” 난 너무나도 큰 충격에 머리를 붙잡았다. 야오이물이라니! 내 여리고도 순한 정신세계를 완전히 360가지로 갈가리 찢어 버리는 소설이다. 이럴 수가! 덜컥! 바로 그때 다시 방문이 열리면서 루케리에스가 들어왔고, 그는 내가 바닥에 던진 야오이 책과 더불어 흥분한 내 모습을 보더니 살짝 웃음을 지었다. “봤군.” “이게 뭐야?!” “봤으니 잘 알지 않나? ‘야오이물’ 이네.” “그, 그게 문제가 아니라 이런 게 왜 있어!” “내가 보고 있었으니까.” “너무나도 당당하게 말하는 것 아니야?” “잊었나? 난 중성체네.” 그래, 잘났다. “하하하. 신경 쓰지 말게. 그나저나 이거 먹어 보게.” 루케리에스는 경직한 나를 향해 경쾌하게 웃으면서 음식을 내밀었다. 호밀 빵 한 조각과 고기 수프였다. 꿀꺽. 난 그걸 보자 야오이 사건(?)은 잊고 침이 저절로 넘어가면서 나도 모르게 거기에 손을 갖다 대며 드래곤일나느 종족을 생각하고 물었다. “이거, 오크 고기나 그런 건 아니겠지?” “걱정 마라. 이건 소고기 수프다.” “휴우…….” 난 그 말에 당장 그 음식들을 받았다. 정말 맛있겠다. 이걸 보면 피티언은 1초……! “루케리에스, 다른 일행은?” “모두 무사하다.” “모두?” “그렇다. 그리고 마스터 오브 웨폰 4대 소환수들은 돌아갔다.” “아, 그렇구나……가 아니라 네가 어떻게 알아!” 난 깜짝 놀랐다. 루케리에스가 마스터 오브 웨폰이라는 정식 용어를 알고 있었다. 솔직히 내 직업은 지금 웨폰인첸트. 거기서 전직 완료 시 생겨나는 게 마스터 오브 웨폰이다. 이 사실을 아는 존재는 나와 소환수들밖에 없다. “후훗. 흥분하지 말게. 오늘은 약간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군. 참 재미있는 이야기지.” 난 그 말에 긴장을 한 채 루케리에스를 쳐다보았다. “마스터 오브 웨폰. 모든 무기를 다루는 자. 아무리 히든 클래스라고 하지만 너무 강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나?” “그, 그건 그래. 히든클래스라고 하더라도 스킬하고 그런게 압도적으로 좋으니까.” “그 이유를 말해 주지.” “이유?” 이유? 무슨 말이지? 히든클래스가 강한 데에도 이유가 있단 말인가? 루케리에스는 표정을 굳히면서 말했다. “마스터 오브 웨폰이라는 직업 자체가 ‘그녀’가 유일하게 창조하지 않은 직업이니까.” “그녀라니?” “네리아……가 말이다.” 또 나왔다. 네리아? 도대체 네리아가 누구인 거야? 저번에는 네리아를 조심하라고 하더니, 이번에는 네리아라는 존재가 창조……. 설마? “설마, 진짜 설마지만, 이 게임에 존재하는 슈퍼컴퓨터는…… 아니겠지?” “…….” 하지만 내 질문에 루케리에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묵묵히 나를 볼 뿐이었다. “말도 안 돼!” 이 게임에서 최고라고 불리는 슈퍼컴퓨터의 이름이 왜 나온단 말이냐! 이곳의 창조신이라고 할 수도 있는 존재가! “마스터 오브 웨폰. 이 게임의 개발에 중심이었던 남자가 뇌사 상태인 자신의 손자를 위해서 만든 직업이지.” “…….” “모든 무기와 힘을 다룰 수 있는 자, 그리고 최강의 소환수들. 너무나도 터무니없지 않나? 모든 무기와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운데 그를 지키는 소환수들이라니 말이다.” “도대체 요점이 뭐야?” “요점이라……. 요점은 간단하다. 네리아, 그는 이 게임을 끝내 버릴 예정이다.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날에 이 게임에서 최강의 힘을 가진 몬스터를 풀 예정이란 말이다.” “왜? 네리아가 왜? 아무리 인공지능이 뛰어나더라도 갑자기 왜?!” “간단하지. 그녀의 아버지를, 인간이라는 탐스러운 존재를 영원히 이 세상에 살 수 없게 만들었으니까.” “그 말은?” “흐음, 더 이상의 설명은 곤란하다. 아무리 나라고 하더라도 이 정도의 이야기는 위험 수준이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루케리에스! 하지만 그런 내 절규하는 표정에는 반응하고 싶지 않았는지 루케리에스는 침묵을 지켰고, 잠시 후 조용히 뇌까렸다. “만약에 말이다. 그녀가 그 괴물을 푼다면 그 누구도 이길 수 없다. 그녀는 창조주. 모든 히든클래스와 더불어 모든 클래스의 힘을 한마디로 이용할 수 있지.” “…….”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그건 우리 드래곤이라는 일족도 마찬가지지. 하지만 단 하나, 그녀의 시스템에 입력되지 않은 존재, 마스터 오브 웨폰. 그러니 너라면 가능하다.” 이건 게임이라고! 게임에서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야! “이 세계가 지속되고, 너와 소환수들이 살기 위해서는 네가 네리아를 해치워야 한다.” “네가?” “물론. 아직은 아니지만 네 힘의 가능성은 무제한이다.” 그 말에 너무나도 혼란스러운 나머지 나도 모르게 고개를 흔들었다. 이건 아니다. 게임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니,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잠시 생각을 정리하도록.” 루케리에스는 나를 너무나도 혼란스럽게 만든 뒤 다시 방에서 나가려고 했고, 난 그런 그를 보면서 큰 의문점을 물었다. “전직 마스터 오브 웨폰, 그는 누구지? 이 직업 자체가 특별히 만들어진 직업이라고 네 입으로 말했지?” “전직 마스터 오브 웨폰이라…….” 내 말에 루케리에스는 조용히 중얼거렸고, 잠시 후 나를 보면서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그 뇌사 상태에 빠졌다던 손자다.” “그건 무슨 말이지?” “자세한 내용은 나중에 네가 알아차릴 수밖에 없다. 나도 금지 사항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전직 4대 소환수들이 안타까운 듯 말하더군. ‘다음에 만날 때 당신이라는 존재와 적이 되지 않기를’ 이라고…….” 게임은 이미 비틀어지기 시작했다. 혼란스러웠다. 내가 이런 경악적인 직업을 가질 수 있었던 건 내가 접속한 시간에 네리아의 시스템 홀릭인가 하는 것이 아주 잠시 꼬였기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운영진 같은 경우도 이 직업을 네리아가 만든 줄 알고 있었지만, 이 직업 자체는 네리아가 만든 직업이 아니다. 그리고 만약에 내가 이 직업을 가지지 않았다면 다른 사람이 가질 수 있었을까? 그건 아니란다. 왜냐하면 이 직업 자체가 동굴을 발견하는 건 불가능하게 만들어 놨으니까. 그 누구도 시스템 던전에 도전하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 이것 말도고 수많은 의문은 남아 있다. 하지만 루케리에스는 더 이상 말해 주지 않는다. 왜 2대 마스터 오브 웨폰이라는 게 생겨났는지 말이다. 뒹굴뒹굴. 난 지금 접속을 끊은 상태다. 그런 엄청난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다지 게임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는 않았다. “오빠, 뭐 해?” “아…….” “무슨 생각을 그리 곰곰이 하는 거야?” “아, 아니야. 채은아.” 누워 있던 나에게 너무나도 아름다운 얼굴을 보이는 채은이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얼마나 깊게 생각했으면 채은이가 내 방까지 온 것도 모르다니. “오빠, 이상해.” “으응?” “저번에 그 드래곤을 만나 이후 뭔가 이상해졌어.” “나, 안 이상해!” 눈치가 빠르군, 채은 양. 아니, 내가 너무 티 나게 행동한 것일 수도. 요새 잡생각에 많이 잠겨 있었으니까. 나는 의아하게 바라보는 채은이를 계속해서 묵묵히 쳐다보았다. “오, 오빠, 왜 그래?” 내가 말없이 쳐다보자 채은이는 얼굴을 붉히면서 당황했고, 난 그 모습을 보고 슬쩍 웃으면서 물었다. “채은아.” “으응?” “테이스 월드라는 게임을 하면 즐거워?” “물론이야. 처음에는 오빠 때문에 게임을 했는데 지금은 정말 즐거워. 오빠도 있고, 재미있는 소환수 분들도 계시니까.” “그런가?” 난 채은이의 말에 싱긋 웃었다. 이미 결정은 났다. 내가 할 일은 단 하나, 아직 자세한 상황은 알지 못하지만, 또 아무리 닭대가리 삼인방이라지만 이미 나에게는 소중한 소환수가 되어 버린 이들이니까 말이다. 그나저나 저번 전투로 꽤 충격을 먹었을 것 같은데, 다시 게임에 접속하면 위로나 해 줘야겠다. “하하하하.” “나 잡아 봐라, 테피언!” “거기 멈춰, 피티언!” “야, 담배 좀 내놔!” 나는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게임에 접속하자마자 울상을 짓는 세리하를 제외하고는 저 닭대가리 삼인방은 너무나도 해맑게 뛰어놀고 있었다. 피티언과 테피언은 연인들만 한다는 ‘나 잡아 봐라’ 놀이를 하고, 케미리는 담배 떨어졌다고 담배 내놓으라고 아우성치고 있었으며 세리하만이 기운 없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난 그들을 보자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이 새끼들아!” “헉! 어서 기운 없는 척해!” “늦었어, 이것들아!” 난 나를 보고 순식간에 기운 없는 척을 하려는 닭대가리 삼인방을 향해 그대로 날았다. 잠시였지만 저것들을 걱정한 내 자신이 밉다. 빌어먹을! 그래도 저런 모습이 좋은 건 왜일까? 제3장 동맹? 난 지금 메퍼라는 이상한 근육질 아저씨를 만난 상태였다. “자네가 나를 보자고 하다니. 그나저나 그자가 우리 소속인 줄 어떻게 알았나?” “그냥 감이죠, 감.” “흐음.” 내 말에 메퍼는 신음을 흘렸다. “감이 아니라 협박이라고 수정하지 않겠나?” “오, 협박이라니요. 저는 왠지 말을 해 주지 않을 것 같아서 소환수들에게 맡겼을 뿐입니다.” “그걸 우리들은 협박이라고 하지.” “아닙니다. 오해 마십시오!” 내가 메퍼를 찾아낸 방법은 간단했다. 일단 우리 주변을 맴도는 수상한 남자를 찾는다. 그 다음 확실한 것 같으면 그 남자를 슬며시 부른다. 물론 처음에 물으면 당연히 아니라고 시치미를 떼는 고나계로 난 닭대가리 삼인방에게 넘긴다. 약 10분 후, 술술 분다. 한마디로 절대 폭력은 아니다. “그래. 오해는 하지 않겠네. 우리 부하가 보는 것만으로도 끔찍하게 변한 걸 내가 안타까워했다는 것은 그냥 덤으로 알려 주는 거네.” “그렇군요.” 메퍼는 마치 시금치를 구겨 먹은 듯한 표정이었다. 내가 너무나도 쉽게 대답해서 그런 걸까? 하지만 양심에 찔리지는 않았다. 저번에 그 정체불명의 뚱돼지에게 우리를 팔아먹은 대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내가 여유로운 표정을 지은 채 쳐다보자 메퍼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더니 갑작스럽게 무척 진지하게 물었다. “그래. 그 이야기는 넘어가고, 그렇게까지 해서 나를 부른 이유는 뭔가?” “이유라, 중요한 이유가 있거든요.” “그래, 말하게.” 난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내가 메퍼를 힘들게(?) 부른 이유는……. “당신들의 정체불명이 단체와 동맹을 맺고 싶어서 말입니다.” “동맹?” “네.” 메퍼의 질문에 난 당당히 답변했고, 그런 내 모습을 보던 메퍼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동맹이라……. 우리 단체이 소속이 된다는 게 아니고?” “동맹입니다. 어디에 소속되는 건 질색이어서요.” “흐음. 그런가? 그런데 자네, 동맹이라는 뜻을 아는가?” “알죠.” “그걸 아는 자네가 그리 말하니 듣는 입장인 나로서는 당황스럽네.” 동맹이란 커다란 힘이 있는 길드나 단체가 서로의 이익을 위해 관계를 맺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난 커다란 힘을 가진 길드나 단체, 그런 건 쥐뿔만큼도 없다. 하지만 우리만으로도 그 정도의 힘을 커버하고도 남는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리 당황스럽지는 않을 건데요? 저희들을 자세히 조사하시니까요.” “…….” 내 말에 메퍼는 침묵을 지켰다. 저 모습이 긍정을 뜻한다는 건 지나가던 개뼈다귀도 알겠다. 개뼈다귀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당신이라면 저희들의 힘에 대해서는 대충 알 건데요.” “알지. 미친 듯이 강한 게 자네들이라는 것을.” “그럼 어려운 이야기가 아닐 텐데요?” “이런 일은 내가 결정할 사항이 아니네. 잠시 기다려 주겠나? 우리 마스터에게 전하고 오지.” “마스터?” “그렇다네. 잠시만 기다리게.” 그 말과 함께 메퍼는 그 자리를 다급히 벗어났다. 아무래도 나와의 대화를 그 마스터라는 자에게 보고할 예정인 것 같았다. 그나저나 마스터라는 남자, 어떤 남자일까? 저렇게 비밀이 가득하고 엄청난 정보력을 가진 집단의 마스터라, 분명 범상치 않은 남자일 게 분명했다. “요오오오오! 이게 얼마만인가요!” “어, 어라? 당신은?!” “저 기억하세요?” 당신같이 특이한 사람은 보지 못했으니까요. 지금 내 앞에 밝은 미소를 띤 채 있는 남자. 등에 멘 커다란 관만으로도 모든 존재에게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남자. 일단은 내 생명의 은인이라고 할 수 있는, 장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루크리였다.(명함이 워낙 강렬해서 이름이 저절로 외워졌다) “당연히 기억은 합니다만, 당신이 여기는 웬일로?” “그냥 어슬렁거리고 있는데 당신을 보았습니다.” “참 잘 어슬렁거리나 보군요.” “그럼요! 제 취미가 쓸데없이 어슬렁거리는 거랍니다.” 잘났다. 취미가 어슬렁거리기라, 참 재밌는 취미라고도 평해 주고싶다. 그렇게 마음속으로 칭찬(?)을 하고 있을 때, 그 남자는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물었다. “그나저나 다른 일행들은 어디 갔어요?” “다른 곳에 묵고 있습니다.” “흐음? 그런가요? 근데 당신은 여기에 무슨 일인가요?” “개인적으로 만날 사람이 있어서 말입니다.” “오호! 그렇군요.” 내 말에 루크리는 호기심 가득한 표정을 짓더니 속삭였다. “혹시 어떤 비밀 단체의 마스터와 만나려는 것 아닌가요?” “그, 그걸 어떻게…….” 그 말을 듣자 난 심장이 벌렁거렸다. 저 남자가 어떻게 그 사실을 아는 걸까? 싱글싱글 웃고 여전히 등에 큰 관을 멘 정체불명의 저 남자가 말이다. “미안하네. 마스터와 연락이 안 되네.” 바로 그때 저 멀리서 메퍼가 소리를 치면서 다가왔다. 그리고 곧 내 옆에 있는 장의사 루크리를 보더니 표정을 굳히기 시작했다. “으응? 둘이 아는 사이?” 갑자기 메퍼의 표정이 굳어지자 의아해서 물었지만, 메퍼는 내 말을 무시하고 여전기 그 엽기 장의사 루크리를 보면서 말했다. “마스터가 여기에는 왜 계신 겁니까?” “어슬렁거리고 있었답니다!” “…….” 아하, 어슬렁거리고 있다……가 문제가 아니라 마, 마스터?! 마스터라니! 마스터가 다른 의미도 있나? 난 생각했다. 왜 메퍼가 저 남자에게 마스터라고 부르는지 말이다. 그렇지만 머지않아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루크리가 나를 향해 먼저 입을 열었다. “이곳의 마스터라고 불리는 루크리라고 합니다.” “…….” 지금 내 표정을 번역하면 100원을 줄 용의가 있다. 경악! 말도 안 돼. 거지같아. 미쳤군. 죽을래? 구라 치지마. 농담은 금지 등등 아주 복잡한 나의 표정을 섬세하게 번역하면 말이다. 그러 내 표정을 본 루크리는 여전히 방글방글 웃으면서 말했다. “놀라셨습니까?” “당연히요. 그나저나 하나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무엇을요?” “그럼 그때 저를 살린 건 다 의도된 행동입니까?” “아닙니다.” “……?” 난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때 죽었던 나를 살려 준 루크리, 분명 장의사라는 직업이 사람 살리는 직업 같기는 한데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페널티도 없이 목숨을 부활시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예를 들어 프리스트에 리지렉신 같은 경우는 자신의 마나와 체력이 1이 남고 무엇보다 상당히 구하기 힘든 신성력의 돌이라는 게 있어야 한다. 그만큼 목숨을 부활시키는 일은 간단한 게 아니라는 소리다. “그럼” “그냥 어슬렁거리고 있는데 여성분이 너무 아름다워서 점수 좀 따려고 살렸습니다.” “농담이죠?” “진담입니다.” 정말 그 말이 진심이 아니기를 빌었지만 루크리의 표정은 ‘나 진심이다.’ 라고 빛을 내고 있었다. 저게 어마어마한 정보력을 가진 비밀단체의 리더라고? 차라리 케미리가 리더를 하는 게 낫겠다. 한편, 그런 어리둥절한 표정의 나를 보았는지 메퍼는 고개를 저었다. 저 표정을 대충 번역하면 ‘놀라운가?’ 라는 뜻인 것 같다. 메퍼 씨. 이때까지 이런 이상한 마스터를 모시다니 어떤 의미로는 정말 대단한 사라인 것 같다. “그나저나 이야기는 다 들었습니다.” 여전히 너무나도 큰 충격에 헤매고 있는 나를 향해 루크리가 말을 걸었다. 좀 뜬금없는 이야기이긴 했지만 일단 내가 온 목적이 있었기에 나도 금세 정신을 차리면서 말했다. “그럼 이야기는 쉽겠네요.” “그렇죠 쉽습니다.” “…….” 어이, 아저씨! 내가 상상했던 마스터의 이미지를 너무 철저히 박살 내는 것 아니우? 정말 심각하게 파괴한다. 잠시지만 얼마나 멋있는 남자일까라는 생각을 했던 내 뇌를 꺼내서 거대한 해머로 부수고 싶은 마음이다. “하하! 혹시 제가 엄청나게 멋있는 남자일 거라고 생각하셨습니까?” “…….” “당연히 그런 생각이 드셨을 겁니다. 저는 원래 멋있으니까요.” 왕자병까지! 미치겠다. 그 남자는 우아한 표정으로 자세를 잡은 채 자신의 약간은 길어 보이는 검은색 머리카락을 두 손으로 쓸어 넘겼다. 솔직한 말로 잘생긴 편이긴 하나 왠지 저런 모습을 보니 재수가 없는 건 내가 남자여서 그런 걸까? 아니면 원래 재수가 없는 것일까? 흐음. 한편 혼자서 착각을 금치 못하고 온갖 폼을 잡던 루크리는 갑자기 나를 보더니 부럽다는 듯 말했다. “그나저나 평생 보기도 힘든 미녀 세 명을 데리고 다니시다니 부럽습니다.” “…….” “특히 두 분은 NPC인 여성보다 더 예쁘니 감탄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개인적으로 당신과 영혼을 체인지하고 싶습니다.” 거부한다. 그리고 그런 궁극 미소녀들과 있다는 건 기분 좋지만, 그와 더불어 궁극 닭대가리 삼인방이 있다는 것도 잘 알 텐데 말이다. 그나저나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샌 것 같은데, 이때쯤 내가 바로잡아야 할 것 같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아, 아. 실례했습니다. 저도 모르게 말입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해 볼까요? 자, 용건은 저히와 당신들과의 동맹 계약이죠?” “그, 그렇죠.” “그럼 제가 길드 마스터의 이름으로 말합니다. 계약 체결 됐습니다!” “…….” 계약이라는 게 이리 간단했던 걸까? ……. 내가 계약에 대한 정의를 정리하고 있을 때 루크리는 열심히 미소를 지었다. 옆에 있던 메퍼는 너무나도 간단한 한마디에 말을 하지 못하고 입만 벙긋거리고 있었다. 계약 체결 1초, 최단시간이다. 그렇게 나와 메퍼가 동시에 굳어 버리고, 루크리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저 인간, 혹시? “그나저나 당신이 채은이라 부르는 미소녀와 예화라느 미소녀는 얼른 부르시죠. 그리고 세리하라는 아름다운 프리스트 분도! 자, 계약 체결된 기념으로 제가 쏩니다. 어차피 이 가계는 제 가게입니다. 하하하!” 네놈이 가게가 아니라, 네놈의 부하 가게가 아니냐? 그나저나 목적이 드러났다. 저놈의 목적은 오직 미소녀와 식사를 하고 싶었을 뿐이다. 쓰러질 것 같다. 저런 놈과 동맹을 맺어 과연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 데스 길드를 이길 수 있을까? “어이, 아가씨! 예쁜데? 나와 함께 기름칠 한잔 어때?” “자, 자. 돌려!” “꺼어억!” “…….” 지금 루크리는 무척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평생 당황할 것 같지 않던 인간이 당황하니 보는 내 입장으로서는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그가 당황하는 이유는……. 음식을 배달하는 여자에게 집적거리는 테피언과 언제부터인지 자신이 길드원들과 도박판을 벌인 개 한 마리, 그리고 벌서 혼자 40인분 이상을 먹어 치운 피티언 때문이다. “대단한 소환수들이군요.” “평범한 일상입니다.” “그런가요?” 내 말에 루크리는 어색하게 웃었다. 여간 충격이 큰 게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다시 얼굴을 활짝 폈다. 그러고 나서 내 앞에서 어색하게 식사하고 있는 채은이와 예화를 향해 방글방글 미소를 지었다. “…….” “…….” 채은이와 예화가 어색한 표정을 지었지만 루크리는 더욱더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거북해 하는 채은이와 예화를 보던 루크리는 잠시 후 고개를 살짝 돌렸다. 그러자 거기에는 옵션으로 붙어 있는 정우가 루크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도를 믿으십니까?” 루크리는 정우를 보자마자 그렇게 물었고, 그 물음에 정우는 너무나도 진지한 모습으로 말했다. “네.” 뭐, 뭐야? 저것들?! 난 당황했다. 저 이상해 보이는 눈빛을 마구 날리는 둘을 보니 왠지 모르지만 그리 정상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저와 심오한 대화를 나누시겠습니까?” “제가 원하던 바입니다.” “그럼 저쪽으로 가시죠.” “네.” 루크리의 권유에 정우는 망설임 없이 승낙했고, 잠시 후 그들은 도가 얼마나 심오한지 토론을 하기 위해 다른 쪽으로 이동했다. 그래도 다행이다. 제일 이상한 두 놈이 사라졌으니까 말이다. “휴우.” “휴우.” 루크리가 사라지자 그의 부담스러운 눈빛을 받았던 채은이와 예화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원래 저런 표현을 잘 안 하는 애들인데 무척 부담스러웠나 보다. 그렇게 한숨을 내쉰 채은이는 나를 향해 약간은 뾰로통한 어조로 말했다. “약간 부담스러웠어.” “으응?” “루크리라는 분, 좀 느끼한 것 같아.” 좀 느끼한 게 아니라 많이 느끼한 것 같은데……. 음식을 먹으면서 채은이와 예화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껴안았다. 덥석. 헉! 이, 이 물컹한 감촉은? “딸꾹! 주인님…….” “세, 세리하?” “우아아아앙! 저 너무 약하죠?!” “아, 아니. 근데 술 먹었어?” “왜요? 술 먹으면 안 돼요, 주인님?” “아, 아니…… 그건 아닌데.” “우에에엥! 그럼 저를 가져 주세요.” “무, 무슨 소리야?” “저를 안아 주세요.” 그 말과 함께 세리하는 메이드복을 벗어 버리려 했고, 그 모습을 본 난 다급하게 세리하를 잡으면서 너무나도 당황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수, 술이 심하게 취했어.” “딸국! 저 하나도 안 취했어요.” 꼭 취한 사람들은 자신이 취하지 않았다고 하더라. “세, 세리하, 좀 쉬어.” “훌쩍. 저를 안기 싫다는 건가요?” “왜 말이 그렇게 돼!” 난 세리하가 주사가 이리 심한 줄 몰랐다. 이건 심해도 너무 심했다. 내가 그렇게 취한 세리하를 부축할 때, 채은이와 예화가 다가오더니 이상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오빠, 예화랑 내가 부축할게.” “그, 그럴래?” 난 알 수 없는 포스에 밀려서 세리하를 채은이와 예화에게 맡겼고, 잠시 진정이 되자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난 개가 술 취한 장면을 볼 수가 있었다. 케미리는 누구에게든 무조건 술을 먹이고 있었고, 분명 세리하가 술 취한 이유는 저 개 한 마리가 원일 확률이 100%였다. 나는 천천히 케미리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케미리는 나를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보더니 말했다. “꺼져.” “…….” “죽고 싶어? 내가 누군지 몰라? 개닭다리파의 두목이야!” “…….” “아하하하.” “케미리, 내가 누구로 보이니?” “누구?” 너무나도 취해서 이제 완전히 맛이 간 개 한 마리. 나는 그런 개 한 마리를 위해 싱긋 웃었다. “내가 숙취 제거에는 좀 자신이 있다.” “히익!” 그제야 내가 누군지 알아본 듯 케미리가 화들짝 놀랐지만 이미 늦었다. 난 방금 전에 한 대사를 잊어버릴 만큼 닭대가리가 아니어서 말이다. 퍼퍼퍼퍽! “으아아악! 자, 잘못했어.” “닥쳐!” “으아아아악!” 그렇게 동맹 계약 파티는 완전히 개판이 됐다. 난 잘못없다. 아니, 한 1%는 잘못한 것 같다. 그렇게 루크리와 skmss 헤어졌다. 지금 당장은 다섯 번째 히든 소환수를 찾으러 나선다. 루크리는 나에게 말했다. 우선 힘을 더 기르라고. 나머지는 자신들이 알아서 할 테니 엄청 중요한 몇 가지 일에만 투입해 주면 된다는 것이다. 그때까지는 힘을 더 키우라는 말이다. 그렇게 동맹인지 뭔지 불투명한 회담은 끝났다. “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 지금 세리하의 상태다. 술 먹은 이후 저 모습이다. 그래서 세리하를 쉬게 하려고 그녀를 업은 채 여관으로 향하는 중이다. 그나저나 여, 역시 크, 크다. 난 등으로 느껴지는 부드러움에 나도 모르게 얼굴이 헤벌쭉해졌고, 그런 나의 모습을 보던 정우가 슬며시 다가오더니 속삭였다. “좋으십니까?” “조, 좋기는…….” “좋아하시는 표정입니다.” “아니야!” 엄청 양심에 찔렸기에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고, 그것을 보던 정우는 웃으면서 말했다. “좋으시군요.” “지금 나랑 해보자는 거냐?” “아닙니다. 그냥 형님의 안전을 걱정하는 착한 동색의 마음입니다.” “으응?” “뒤를 돌아보십시오.” “뒤?” 난 그 말에 뒤를 돌아보려고 했으나 몸이 굳었다. 이 괴이한 기분, 분명 그 기운인데? 나는 설마 하면서 고개를 돌려 보았고, 거기에는 채은이가 눈을 가늘게 뜬 채 나를 보고 있었다. “채은아, 표정이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야. 신경 안 써도 돼.” “…….” 분명히 채은이는 웃고 있다. 그런데 왜 그 웃음에서 위압감이 느껴지는 거지? 그렇게 내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다시 고개를 돌리려고 할 때, 이번에는 예화랑 순간적으로 눈이 마주쳤다. “죄, 죄송해요.” “…….” 예화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사과를 하면서 고개를 돌렸고 난 그 모습을 보고 굳어 버렸다. 도대체 둘 다 왜 그러는 거야? 이유라도 알자. “헤헤헤헤헤! 주인님, 밤에 좋았어요.” “…….” “…….” “…….” “…….” 세리하의 한마디에 갑자기 이상해는 분위기. 난 다급하게 고개를 맹렬히 흔들었다. “아, 아니야.” “채, 채은아, 부, 분명 난 결백해. 그리고 예화야, 겨, 결백해!” 채은이는 얼굴이 붉어진 채 볼을 부풀리며 나를 보았고, 예화는 완전히 홍당무가 된 채 나를 외면했다. 분명 말하지만 난 결백하다. 난 순수하단 말이야! “항상 그러죠. 남자들은 결백하다고 말합니다.” “야, 정우!” “왜 그러십니까?” “너 무슨 소리야!” “독백입니다.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저 새끼가! 정우 때문에 나는 순식간에 변태로 몰리고 있었다. 채은이와 예화는 생략하고, 피티언은 실망입니다, 테피언은 나보다 더한 놈, 케미리는 풋! 하고 웃는 표정을 지었다. “난 아니야, 임마!” 하지만 이리 술주정이 심한 줄은 몰랐다. 갑작스런 한마디에 난 이상한 놈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내가 엄청난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세리하가 중얼거렸다. “헤헤! 주인님, 밤에 안마 너무 좋았어요.” 이제 세리하는 술 절대 못 먹게 최선을 다해 경계하겠다. 제4장 다섯 번째 소환수의 버서커 휴우. 난 숨을 짧게 몰아쉬었다. 세리하를 침대에 눕히자 그나마 살 것 같은 기분이다. 그런데 세리하가 저렇게 술 취한 상태면 움직이지를 못한다. 그나저나 다섯 번째 소환수라, 어떤 존재일까? 묘하게 기대가 되는 건 왜 그런……. “오빠, 세리하 언니 업어서 좋았어?” “좋기는 했지. 헉! 채, 채은아?!” 생각에 깊이 빠져 있는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들려온 질문에 나도 모르게 대답했다. 그러자 거기에는 채은이가 웃으면서 나를 보고 있었다. 근데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다. “거듭 말하지만 난 조금의 사심도 없이 세리하를 업은 거란다.” “응. 알아.” 아는 표정이 아닌데? 저 표정을 안다는 표정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말하면 그건 뻥이라고 난 자신 있게 말하겠다. 그나저나 왜 꼭 부인이 한눈판 남편을 추궁하는 기분이 드는 거지? 눈을 가늘게 뜬 채, 나를 보고 웃고는 있지만 기이한 포스를 내뿜고 있었다. “다, 다행이구나.” “오, 오빠…….” “으응?” 난 말을 하다가 갑자기 얼굴을 붉히며 말을 거는 채은이를 보고 의아해서 물었고, 그 물음에 채은이는 손가락을 마구 꼼지락거리면서 나와 시선을 마주치지 못한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도…… 글래머가 좋아?” “…….” “미, 미안.” 채은이는 나한테 사과를 하더니 후닥닥 가 버렸고, 난 어이없는 상황에 굳어 버렸다. 이건 무슨 상황이야? 채은이가 난데없이 왜 저런 질문을…… 할 수도 있겠다. 그놈이면! “야, 정우!” “왜 그러십니까? 전 결백합니다.” “뭐가 그리 결백하냐?” 난 내가 부르자 처음부터 결백하다고 나서는 정우를 보고 어이가 없었다. 분명 찔리는 게 있으니 내가 부르자 결백하다고 주장하는거다. 근데 그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 정말 결백해 보이지만, 나는 저런 모습에 속아 넘어가지는 않는다. “그냥 모든 게 결백합니다.” “풋. 네놈이 모든 게 결백하면 케미리는 천사냐?” “…….” 나의 말에 정우는 대답하지 못했다. 아무리 뻔뻔스럽더라도 케미리가 천사라는 말은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말인가보다. 그나저나 그런 변태적인 발언을 우리(?) 채은이에게 하다니, 죽고 싶나 보군. 거듭 말하지만 나의 바람은 채은이와 예화가 더러운 타락의 길을 걷지 않는 건데 말이다. 터벅터벅. 내가 그런 상상과 함께 정우에게 다가가자, 정우는 갑자기 언연한 척 몸을 움찔했다. 지랄한다. 지금 나의 심정이다. 하지만 그런 나의 마음을 알 리 없는 정우는 계속해서 연약한 채 몸을 움찔거리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더, 덮치려면 방 안에서 덮쳐 주십시오.” “…….” “방 잡을까요?” “이 새끼야!” 난 그래도 정우를 밟았다. 분명 저번에 ‘항상 그러죠. 남자들은 결백하다고 말합니다.’ 이 말이 신경 쓰여서 밟는 건 아니다. 난 그렇게 쪼잔한 놈이 아니니까. 세리하가 술에서 깨자마자 우리는 다섯 번째 소환수를 찾기 위해 움직였다. 뭐, 지도가 있으니 찾는 것은 식은 죽 먹기지. 술에서 깬 세리하는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었다. “주인님, 죄송해요.” “괜찮아. 뭐, 그럴 수도 있지.” “제가 저를 용납 못하겠어요. 주인님에게 그런 실수를…….” “괘, 괜찮다니까.” “제가 마음이 좋지 않아서 그래요. 주인님이 좋아하시는 것 하세요.” “으응? 좋아하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 무슨 의미야! 난 세리하의 황당한 소리에 영문을 몰라서 어리둥절해 했고, 세리하는 약간 쑥스러운 듯 몸을 배배 꼬면서 나에게 정체불명의 물건을 건네주었다. “…….” “주인님 취미가 이런 것일 줄은 몰랐지만, 주인님을 위해서라면…….” “…….” 나, 지금 말하고 싶은데 말이 안 나온다. 세리하가 건네준 물건 때문이었다. 그것은 바로 ‘채찍’이라는 이름의 물건이다. “어서 하세요. 흐윽.” 나에게 채찍을 넘겨주고 이상한 소리를 내는 세리하. 그걸 본 내 심정은 뭐라고 해야 하나? “세리하, 미안한데 이걸 왜 나한테 주는 거야?” “주인님이 좋아하신다고…….” “내가 좋아해?” 설마 정우, 이 새끼가?! 난 정우 쪽을 돌아보았고, 거기에는 채은이와 예화가 이야기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다행히도 세리하와 나 사이에 채찍이 왔다 갔다 하는 사실을 채은이와 예화는 모르는 듯싶었다. “저는 아닙니다.” “네가 아니면 이딴 이상한 소리를 누가 하는 거냐? 앙?” “저는 절대 아닙니다. 저를 한 번만 믿어 주십시오.” “…….” 너무나도 진실해 보인다. 저 맑고 고운 아름다운 눈망울. 정말 진실맨(>?) 같다. “어라, 정우님이 그런 말 하셨잖아요?” “착각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세리하의 한마디에 난 금세 깨달았다. 하마터면 저 진실맨 같은 눈빛에 속아 넘어갈 뻔했다. 정우는 끝내 착각이라고 시치미를 떼고 있었지만 이제는 안 속는다. 내 싱그러운 웃음을 보았는지 정우는 다급히 머리를 굴리는 모션을 한 후 말했다. “착각입니다. 아마도…… 제우가 했을 겁니다.” “제우?” “제 안에 있는 다른 저입니다.” “그러니까 네놈 말은 이중인격?” “빙고입니다.” 완전 발악을 한다, 발악을! 맞은 지 얼마나 됐다고 이렇게 맞을 짓만 골라 하는지. 하지만 그렇게 맞는 게 좋다면 즐겨주지(?). 나의 그런 역동적인 움직임을 본 정우는 움찔거리면서 뒤로 한 발자국씩 물러섰다. 그렇게 난 정우와의 거리를 좁혀 나갔고, 정우를 포획(?)하기 위해 순간적인 스피드를 내려는데 채은이가 나를 불렀다. “오빠, 여기야!” “……?” “오빠가 말한 다섯 번째 소환수.” “헉!” 난 그 말에 지금 하려던 행동을 잠시 미루고 채은이에게 다가갔다. 드디어 다섯 번째 소환수다. 히든 소환수인 만큼 성격은 모르겠다만 힘은 엄청날 것 같다. “응? 어디야? 어디?” “여기.” “여기? 그냥 땅인데…….” “지, 지도에는 그렇게 나왔어.” 뭐시라? 난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지금 나랑 채은이가 있는 곳은 말 그대로 지나가는 길 한복판이다. “채은아, 잠시만 지도 좀 줄래?” “응.” 채은이가 넘겨준 지도를 난 정말 열심히 훑어보았다. 그렇게 약 3분 정도를 지도 보고 땅 보고 지도 보고 땅 보고를 반복했고, 잠시 후 난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저, 정말이잖아!” 채은이 말 그대로였다. 지도에 나타나 있는 최종 목표 지점은 지금 채은이와 내가 같이 있는 이곳, 길 한복판이다. “오빠, 이게 어떻게 된 걸까?” “아마도 이 지도가 잘못됐거나 무언가가 잘못된 거겠지.” 내 표정은 굳어졌다. 힘들게(?) 찾아왔는데 이런 길 한복판이라니, 말도 안 된다. 그렇게 표정이 굳어진 채 내가 주변을 둘러볼 때였다. -웨폰인첸트, 확인합니다. 뭐야? 나의 귓속으로 들려오는 생뚱맞은 소리. 스윽. 스으윽. “꺄아아악!” “젠장!” 그때 채은이의 비명 소리와 나의 탄식 소리를 시작으로 땅은 우리들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마치 진흙이 끌어당기듯 너무나도 평범했던 땅이 채은이와 나를 끌어당기고 있었던 것이다. “뭐 하고 있는 거야? 어서 마스터 구해!” 세리하의음성이 들려왔고, 다급한 발자국 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이미 늦은 것 같다. 갑자기 정신이 희미해져 간다. 빌억먹을……. 똑, 똑. 물방울이 조용히 나의 귓가를 자극한다. 고인 물이 한 방울씩 떨어지는 소리다. 도대체 어떻게 되어 버린 거지? 알 수가 없다. 분명 다섯 번째 소환수를 찾기 위해 나섰다가 최종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멀쩡했던 땅이 갑자기 우리를 흡수해 버렸다. 그게 바로 지금의 스토리다. “채은아!” 난 채은이가 떠올라 눈을 번쩍 떴다. 그러고 나서 주변을 둘러보니 바로 옆에서 채은이가 눈을 고이 감은 채 누워 있었다. 새근새근. 숨소리가 들려오는 것으로 보아 다행히도 아무 이상 없는 것 같다. 그나저나 왜 온몸이 축축하게 젖은 느낌이지? 난 그제야 상황을 정리할 수 있었다. 지금 나와 채은이는 정체불명의 수정 동굴에 갇힌 듯싶다. 내 머리 위에는 엄청나게 날카로워 보이는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려 있고 그 고드름에서 물이 한 방울씩 떨어져서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그리고 채은이와 나는 발목까지 오는 물에 온몸이 젖은 상태다. 만약 물이 좀 더 깊었다면 죽었을 확률이 높았을 거다. “그나저나 좀 춥다.” 고드름이 생길 정도면 이곳 온도가 상당히 낮다는 소리다. 게다가 이 차가운 물에 있었으니 추울 수밖에……. 그래도 다행이라면 그리 어둡지 않다는 거다. 밝다고는 하지 못하지만 어둡다고도 못하는 밝기였다. “젠장. 일단 이동하자.” 나는 기절한 채은이를 가볍게 들어 울렸다. 괜히 이 차가운 물속에 있어야 할 이유는 없으니까. 약 30평쯤 되는 동굴이었지만 7평 정도는 물이 고이지 않은 상태다. 저 정도 크기면 나랑 채은이가 있어도 문제없다. “흐음…….” “어? 정신이 들어?” “오빠?” “응.” 이동하는 도중 채은이가 깼는지 나를 불렀고 난 자연스럽게 대답해 주었다. 하지만 채은이는 갑자기 얼굴을 붉히더니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아마도 이상한 곳에 온 거겠지. 그런데 왜 그렇게 말을 더듬어?” “그, 그러니까 무……거워?” 갑자기 무슨 소리지? 난 상황에 맞지 않게 갑자기 무겁냐고 묻는 채은이를 의아한 듯 바라보았다. 이야기의 축이 어긋난 기분이다. 하지만 뭐 대화의 축을 벗어났든 안 벗어났든 얼굴을 붉힌 채은이가 너무나도 귀여워서 패스! 물었으니 대답을 해줘야 할 것 같다. “아니, 깃털처럼 가벼워.” “고, 고마워.” “진심이야. 하하하하.” 그나저나 여자들은 몸무게에 꽤 신경을 쓰는 것 같군. 저번에 예화도 안았을 때 무겁냐고 묻더니 이번엔느 채은이가 그대로 묻는다. 채은이와 예화는 정말 가볍다. 난 그런 생각을 하면서 채은이를 안은 채 그 물이 없는 데로 이동하기 시작했고, 채은이는 내 품에서 몸을 덜덜 떨었다. 덜덜덜. “추워?” “응. 좀 추워?” 아마도 그렇겠지. 추위와 더위를 그리 타지 않는 내가 춥다고 느꼈으니까. 내가 느끼기로는 여기 체감 온도가 약 영하 10도. 한겨울 온도다. 보통 수정 동굴 같은 경우는 추운 게 맞지만 여기는 좀 과하게 온도가 낮다. 이럴 때 뜨거운……. “아, 맞다.” “으응?” “채은아, 너 살라만다 지금 소환 가능해?” “살라만다?” “응. 그놈이 나서서 불 관련 업무(?)를 해주면 지금보다는 춥지 않을 것 아니야.” “아, 맞다!” 채은이는 그 말에 깜빡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워낙 춥고 정신이 없었기에 둘 다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살라만다는 불의 정령. 이 정도 추위 정도는 이겨 낼 방법이 있을 것이다. 채은이는 나에게 내려 달라는 제스처를 취했고, 난 채은이를 아주 조심스럽게 내려 주었다. 그러자 채은이는 곧바로 정령을 불러내는 매개체인 반지를 앞으로 내밀면서 또 알 수 없는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이나이어나아니나먼.” 무슨 주문인지 도통 이해가 안 간다. 하지만 정령어에 가까운 주문이라는 건 대충 알 것 같다. 그렇게 채은이는 한참 주문을 외웠고, 잠시 후 오랜만에 살라만다가 모습을 보였다. “부르셨습니까?” 살라만다는 이번에도 역시 무척 사근사근하게 말을 했다. 나의 환상적인(?) 교육 방식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는 순간이다. “살라만다, 미안한데 우리를 좀 따뜻하게 해 줄 없을까?” “가능합니다.” “고마워.” 살라만다의 말에 채은이는 방긋 웃으면서 말했고, 그 모습을 본 살라만다는 고개를 살짝 돌렸다. 뭐야?! 설마 정령 주제에 채은이한테 흑심을 품는 거야?! 난 당장이라도 일대일 정상회담을 하고 싶었지만 채은이가 바로 옆에 있었기에 그런 나의 바람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나중에 꼭 일대일 정상회담을 해 줄 테니 기다려라, 불의 정령. “파이어 케리트.” 화르르륵. 살라만다의 정령 마법의 주문이 들려왔다. 그러자 주변은 엄청난 열기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따뜻하다. 영하 10도에서 사람이 제일 쾌적한 기분을 느끼는 22도까지 순간적으로 올라간 것 같다. “휴우.” 채은이도 따뜻함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한숨을 내쉬었고, 그렇게 우리는 일단 추웠던 몸을 말릴 겸 자리에 앉았다. “채은아, 괜찮아?” “응. 난 괜찮아?” “응. 난 괜찮아. 오빠는?” “나야, 뭐. 그나저나 이곳은 어디지?” 도대체 이곳은 어디인 걸까? 갑자기 이런 알 수도 없는 곳에 보내 버리다니 심보가 고약하다. “땅 파!” “누, 누나, 좀 쉬어…….” “너!” “아, 아니야.” 세릴하의 핍박에 피티언은 하던 삽질을 계속했다. 지금 삽질 지휘는 세리하가, 삽질 요원들은 테피언, 피티언, 케미리, 정우였다. 물론 예화도 하겠다고는 했지만 세리하가 못하게 했다. 지금 그들이 삽질을 하는 곳은 민혁이와 채은이가 빠진 그 괴기한 장소다. 슬금슬금. “케미리!” “아, 알았어. 하면 되잖아.” 케미리는 은근슬쩍 농땡이를 부리려다가 세리하의 예리한 눈에 걸려 구시렁거리면서 다시 한 번 삽질을 했다. 참고로 개가 삽질을 하는 건 엽기 사이트들을 단숨에 석권할 모습이었지만 이곳에서는 그 누구도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자연스럽다고나 할까? “어서 파!” “세, 세리하, 벌써 30미터를 팠는…… 할게! 하면 되잖아!” 테피언도 과감히 말을 하려다가 세리하의 눈총에 어쩔 수 없이 삽질을 계속했다. 데스나이트가 삽질하는 것도 보기 힘든 장면이다. ……. 한편 세리하의 저지에 아무것도 못하는 예화는 지금 고민에 휩싸였다. 민혁이와 채은이 언니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왠지 모르게 가슴이 답답했다. 민혁이와 채은이 언니가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상하게 말이다. 약 20분이 지났다. 난 내 나름대로 정말 열심히 출구를 찾아보았지만 출구 쪼가리(?)도 안 보이는 게 지금의 현실이었다. “오빠, 여기도 없어!” “여기도.” 채은이의 말에 나는 기운이 살짝 빠진 채 대답했다. 나와 채은이는 20분간 거의 모든 곳을 뒤졌지만 말 그대로 우리는 이 알 수 없는 동굴에 갇혀 버린 상태다. 그나저나 분명 내가 들어오기 전에 웨폰인첸트라는 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나의 착각인가? 채은이한테 물어보니 그런 소리는 못 들었다고 하니까 그 소리가 진짜인지 단순한 환청인지 확인할 길이 없다. 그렇게 한참을 뒤져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자 우리는 그 물이 없던 장소로 다시 이동했고, 바로 그때 채은이가 한쪽을 가리키면서 나에게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그런데 오빠, 저 고드름이 안 녹아.” “음?” 난 채은이의 말에 조금도 녹지 않고 처음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는 고드름을 쳐다보았다. 분명 지금 온도는 따뜻하다고 할 수 있는 온도다. 그런데 고드름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다니, 심지어는 물도 그대로다. 그 모습에 주변을 둘러보던 채은이는 나를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오빠, 도대체 여기는 어디일까?” 내가 묻고 싶다. 도대체 이곳은 어디인지. 따뜻한 공기가 퍼져 나감에도 불구하고 물과 얼음이 그대로라니, 자연법칙을 철저히 무시하는 곳임은 확실한 것 같다. 그렇게 다시 채은이의 뒤를 따라 움직이는 도중, 난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괴이한 기분에 그대로 채은이를 껴안고 옆으로 피했다. “왜 그래?!” “아니, 방금 무슨 살기…….” 스윽! 채은이의 질문에 대답을 하다가 또다시 느껴지는 살기에 옆으로 이동했고, 난 내 눈앞에 있는 흐릿한 영체를 보고 말도 안 된다는 듯 말했다. “고스트……?” 공동 유령 모지에나 엄청 희박한 확률로 모습을 보인다는 고스트가 이곳 지하 동굴에 왜 있단 말이냐! “꺅! 유, 유령!” 그때 고스트의 모습을 본 채은이는 비명을 지르더니 다급히 나의 품에 안겼다. 조, 좋군. 아 참, 이게 아니라 고스트라니! 제일 짜증나는 몬스터다. 모든 물리적인 공격을 무시하고 심지어는 마법적인 공격까지도 흡수하는, 그 어떤 존재보다 까다롭고 짜증나는 존재다. -헤헤. 고스트라. “로케리스!” 요새 부쩍 존재감이 없어진 말하는 지팡이 로케리스. 물론 말할 때마다 마나를 먹는 괴이한 지팡이였지만 지금의 이 한마디는 너무나도 기뻤다. -평소에는 마나 단다고 조용히 하라고 하더니……. “노, 농담이지. 내가 위해한 지팡이를 보고 질투를 해서 나도 모르게…….” -푸헤헤헷! 단순한 놈. 정말 단순의 극치다. 나의 간단한 칭찬 한마디에 로케리스는 무척이나 좋아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로케리스, 너 고스트 해치우는 방법 아냐?” -고스트는……. 난 그 말에 기대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갑작스럽게 로케리스를 칭찬한 이유가 혹시나 아는가 해서였기 때문에 나의 칭찬 값(?)은 나와야 할 것 같다. 한편 나의 기대 속에 로케리스는 말을 이어 나갔다. -강해. “끝이냐?” -어. 지금 나랑 장난치자는 거냐! 난 로케리스의 한마디에 표정이 굳어졌고, 그걸 본 로케리스는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걸 느꼈는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그렇지만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아. “중요한 사실? 안 중요하면 각오한느 게 좋을 거야.” -꿀꺽. 내 말에 로케리스의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고, 잠시 후 로케리스는 말했다. -고스트에게는 절대 마법을 사용하지 마. “그게 무슨 말?” -정령 마법이든 원소 마법이든 간에 마법 종류는 모두 고스트의 힘이 되어 버리니까. 그런 얼토당토않은 말이라니! 마법을 쓰면 그 힘이 고스트의 힘이 된다. 마법을 흡수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힘을 자신이 가지는 능력까지 있을 줄은 몰랐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모든 물리 공격은 무시하지. 그나마 위로라면 데미지가 상당히 약하다는 거야. 그게 위로냐? 로케리스가 나에게 해 준 말은 거의 절망 수준이다. 내 앞에 있는 뿌연 영체 고스트는 한마디로 무적이라는 소리다. 물리 공격 완전 무시, 마법 공격 흡수해서 자신의 힘……. 특히 물리적인 공격력이 뛰어난 나였기에 더욱 난감한 상황이었다. 상당히 낮은 데미지가 그나마 위로가 될지 모른다. 레벨 20 정도의 오크 데미지가 전부인 고스트였지만 그 데미자가 계속해서 축적이 된다면 절대 무시하지 못한다. 나는 그런 생가과 함께 유령을 보고 공포에 잠겨서 나를 꼭 껴안고 있는 채은이를 가볍게 안아 주었다. 젠장, 별로 좋지 않아. “세, 세리하! 이, 이건…….” “…….” 세리하도 더 이상 다그칠 수가 없었다. 이미 구덩이는 가로세로 약 70미터 이상. 거의 길거리의 땅을 다 파헤친 거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런 게 가능한 것은 인간이라고 보기 힘든 존재들이 잔뜩 모였기 때문이겠지만. “어떡해, 누나?” “…….” 피티언의 물음에도 세리하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이만큼이나 팠는데 텅 비었다니. 수천 미터 이상 그냥 빨려 가지 않은 이상 이럴 수는 없었다. “우리 그냥 쉬자. 원래 그 괴물 같은 마스터는 절대 안전 하다니까!” 바로 그때 케미리가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케미리가 보기에 민혁이라는 존재는 거의 무적에 가까웠다. 한마디로 어마어마하게 강하다는 것이었다. 케미리의 말을 들은 세리하는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휴우, 어쩔 수 없지. 주인님이 나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자.” 그 말에 그들은 이왕이면 좀 놀면서 기다리자고 하고 싶었지만 세리하의 살별한 눈초리에 그 누구도 용감하게 말을 꺼내는 자는 없었다. 그때 저 멀리서 정우와 예화의 대화가 그들의 귓속으로 흘러 들어왔다. “예화 양. 아, 형님과 채은 양은 애틋한…….” “그, 그럴 리 없어요!” 예화는 정우의 한마디에 자기도 모르게 강하게 부정했고, 잠시 후 자신의 행동을 알아챈 예화는 얼굴을 붉히면서 다급하게 사과했다. “죄, 죄송해요.” 자신도 왜 이러는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왜 민혁이 일만 있으면 자신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지 말이다. “잘하고 계십니다.” 검(Sword) 소환. 인첸트 지(地). 일루젼 them! 파지지짓! 듣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청아한 목소리의 여자의 말에 호흡을 맞춰 그 앞에 있는 남자는 한 자루의 검을 소환해 냈다. 그 검에는 지의 속성 때문에 황토색 빛깔의 힘이 담겨 있는 상태였고, 그 남자는 그대로 그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자신의 앞에 있던 오리데오콘 철판은 그대로 부서져 버렸고, 잠시 후 그 모습을 본 청아한 목소리의 여자가 조용히 모습을 드러내었다. “당신의 저의 분신입니다. 제가 이곳에서 개인적인 힘을 쓸 수 있는 방법은 당신을 통하는 길입니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난 지금 이 말밖에 할 수가 없다. 공포에 떠는 채은이를 안은 채 계속해서 피하는 수밖에 없었으니까 말이다. -역시 고스트! “감탄하지 마!” 로케리스의 감탄 어린 말에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지금 고스트는 순식간에 몸을 감추더니 다시 스르륵 나타나서 공격을 한 뒤 사라지고 있었다. 정말 짜증 제대로다. “오. 오빠…….” “괜찮아!” 난 고스트를 보고 두려워하는 채은이를 향해 말했다. 채은이는 유령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난리를 피울 만큼 무서워했다. 실제로 어렸을 때 우리 아버지라는 작자가 나와 채은이를 모아 놓고 매일 무서운 이야기만 했으니, 내 잘못도 약간은 있는 편이다.(아버지 잘못은 아들 잘 못이라는 이상한 공식) 그렇게 난 채은이를 안심시킨 뒤, 계속해서 스르륵 나타나서 무슨 하얀색의 이상한 물체를 쭉 내밀고 사라지곤 하는 고스트의 공격을 피해 냈다. 하지만 힘들다. 벌써 이렇게 무작정 피하기만 한 시간도 20분을 넘어가고 있다. 아무리 스태미나와 체력이 좋은 나라고 하더라도 너무 힘들다. 그리고 아무리 열심히 피해도 완전히 피하지 못한 까닭데 자잘한 상처가 상당히 많다. -이런, 이런! 이렇게 가면 죽는데. 젠장! 저것을! 옆에서 중얼거리는 로케리스는 나에게 짜증 그 자체였다. 안 그래도 정신없는데 저 로리 지팡이는 계속 깐죽거린다. 솔직히 말해 이 자잘한 상처에는 저 로리 지팡이가 공헌한 것도 있다. -힘내! 주인…… 으아아악! 난 분노를 참지 못하고 그대로 지팡이를 꺼내서 스르륵 나타나는 고스트에게 휘둘렀다. 뭐 타격을 노린 건 아니었고 멀미(?)를 하는 독특한 지팡이였기에 조용히 시키기 위한 방안이었다. 하지만 내 귀에 들려온 소리는 그게 아니었다. 퍼억! -꾸에엑! 뭐, 뭐야? 경쾌한 타격 소리와 함께 들려온 고스트의 비명 소리. 분명 검도 소환해서 공격해 보았지만 그냥 무시하던데, 어떻게 된 거지? 그렇게 내가 갑작스러운 상황에 정신이 없을 때 내 앞에서 흐릿한 영체인 고스트는 머뭇거렸고, 난 혹시나 해서 다시 한 번 그 고스트를 향해 로케리스를 휘둘렀다. 휘이익! -그, 그만 해! 꾸에엑! 로케리스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지만 난 개의치 않고 계속 휘둘렀다. 퍼억! -꾸에엑! “여, 역시…….” 또다시 들려온 경쾌한 소리와 비명 소리. 확실해졌다. 다른 건 몰라도 로케리스의 물리적인 공격은 통한다는 말이다. -으아악! 전설급 지팡이인 나를 휘두르는…… 우에엑! 로케리스는 발광을 했지만 난 무시했다. 그러고 나서 나의 품에 안긴 채은이에게 말했다. “채은아, 걱정 마. 내가 저 유령은 퇴치해 주지.” “저, 정말?” “물론.” 얼마나 무서웠으면 눈물이 글썽글썽하다. 정말 이렇게 채은이가 죽도록 유령을 무서워하는 것은 집요하게 무서운 이야기만 고집하던 나의 아버지 때문이다. 난 최대한 채은이를 안심시킨 뒤 나를 보고 움찔움찔하는 고스트를 향해 다가갔다. 지금까지는 좋았을 거다. 마구 공격했으니까. 솔직히 아픔이란 건 절대 느끼지 못하는 고스트. 하지만 오늘은 새로운 경험을 시켜 주마. -자, 잘못했어. 그만 휘둘러! 로케리스의 절규 어린 음성이 들려왔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단지 내가 신경 쓰는 건 얼마나 잘 패서 저 고스트를 죽이는가 하는 것이다. “흐흐흐흐.” 움찔. -그, 그만! 내 웃음을 본 고스트는 움찔거렸고 로케리스는 절규했다. 하지만 뭐……. “끝이야, 임마!” 퍼퍼퍼퍼퍽! -으아아아아악! -꾸르르르르륵! 타격 소리와 로케리스이 비명과 고스트의 고통 소리가 하모니가 되어 나의 귀를 자극한다. 아, 아름다워. 나, 변태는 아니다. “헉헉.” 나는 고스트를 죽였다. 고스트를 죽이다니 감동이다. 고스트를 죽이는 방법은 강령술사나 영체업자(?)들이나 가능하지, 다른 존재들은 절대 불가능하다. 하지만 난 해냈다. 오직 지팡이 하나로. 다른 때는 잘 모르겠지만 이럴 때는 로케리스가 정말 전설급 지팡이 같다. 영체도 공격이 가능하다니 말이다. 띠링! 그 순간 바닥으로 떨어지는 두 개의 물체. 한 개는 스킬북이고 한 개는 팔찌 아이템이다. 난 그것들을 보자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기대된다. 당장 나는 그 물건을 주웠고 곧바로 확인에 들어갔다. 일단은 아이템이다! -영결의 팔찌- 신급 1드급. 영결이라는 팔찌. 고스트를 잡으면 아주 희박한 확률로 나온다. 마법 블링크 사용 가능. 마법 인비지빌리티 사용 가능. 마법 헤이스트 가능. 마법 공격력 1,000 증가. 오호호호, 대박이다. 이게 말로만 듣던 마법 아티팩트? 마법 아티팩트란 간단하다. 일반 검사들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나만 있다면 저 세 가지의 마법 자체를 사용할 수 있다. 1서클 마법사인 나로서는 엄청나게 좋다는 말밖에 할 게 없다. 그리고 마법 공격력 1,000이라? 좋아. 좋다는 말밖에 없다. 고스트에서 희박한 확률로 나온다니 역시 좋다. 그럼 바로 스킬 확인을! -세키이- (와이어를 든 상태에서만 사용 가능) 순간적으로 약 15초간 스피드를 400% 올린다. 쿨 타임 : 300분 마법 주문은 세키아라고 외치면 된다. 진화 과정 X 이건 진화가 없다. 그렇지만 처음 옵션이 작살이다. 15초간 400%라. 속도가 빠를수록 엄청난 공속이라는 거다. 만약에 방금 얻은 헤이스트 마법을 나에게 걸고 세키아를 사용하면 약 550% 이상의 속도가 나온다는 거다. 나의 스피드이 5.5배라는 거다. 15초이기는 하지만 뭐 쿨 타임도 300분이면 약 다섯 시간에 한 번이니 괜찮다. “오빠, 무슨 아이템이야?” 이제 좀 안정이 되었는지 채은이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고, 난 그 말에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무지 좋은 거!” “무지 좋은 거?” 채은이가 고개를 갸우뚱하자 난 대충 설명해 주었다. “와! 신급 1급?” “응.” “그리고 스피드를 단시간이지만 네 배 이상 올려 준다고?” “응.” “우와, 대단해!” 채은이는 눈을 마구 반작였다. 이렇게 좋은 아이템은 처음 봤을 것이다. 물론 이거보다 좋은 로케리스라는 변태 로리 지팡이가 있지만, 전혀 좋아 보이지는 않으니 패스다. 그나저나 이놈이 조용하네? “야, 야! 로케리스!” -……. 난 조용해진 로케리스를 불렀지만 로케리스는 침묵을 지켰다. 어라? 내가 너무 흔들어서 기절했나?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도중……. -나 기절 중, 말 걸지 마! 요새는 기절하는데도 말을 하는구나. 기절했다면서 말을 하는 로케리스, 어이가 없다. 그나저나 많이 삐친 목소리다. 쪼잔하기는. 그렇지만 좀 과하게 흔든 건 있으니까, 난 로케리스를 향해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삐쳤어?” -안 삐쳤어. “진짜?” -전설급 지팡이인 내가 고작 그걸로 삐칠 것 같아? 응! 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말을 하지 안핬다. 저 삐돌이 로리 지팡이, 한마디 더 하면 더 삐칠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지팡이 주제에 로리에다 멀미에 삐치기까지 하다니, 거의 지팡이가 혁명(?)을 일으킨 수준이다. 그나저나 좀 많이 삐친 것 같군. 그럼 그 방법을……. “아, 다행이다. 역시 엄청나게 뛰어나고 완벽하고 심플하고 멋있고 뷰티플한 전설급 지팡이가 그런 걸로 삐칠 리는 없겠지.” -……. 내 칭찬에 로케리스는 잠시 후 침묵을 깨면서 말했다. -험험! 당연하지. 난 완벽하니까! 우헤헤헤헤. 정말 단순의 극치다. 개인적으로 케미리와 로케리스를 동시에 놔두고 둘 중에 누가 더 단순할까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싶을 정도다. 그나저나 이제 로케리스도 간단히 해결했으니, 이 이상한 동굴에서 빠져나가야 할 텐데? 주위를 꼼꼼히 둘러보았지만 역시나 입구로 보이는 것은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좀 더운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들자 나도 모르게 채은이에게 고개를 돌렸고, 거기에는 채은이가 땀을 조금씩 흘리면서 열심히 손으로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슥슥. “왜 그래, 채은아? 계속 더워?” “응. 갑자기 더워졌어.” “갑자기?” “응. 분명 살라만다는 온도 조절 마법을 사용하고 들어갔는데 이상하다.” 채은이 말대로 살라만다는 적정 온도를 유지시켜 주는 마법을 건 채 안으로 들어갔다. 살라만다가 밖에 있다면 그놈의 뜨거운 열기가 전해져서 덥다고 하겠지만 그놈은 지금 없는 상태다. 그리고 여기서 신기한 건 갑자기 엄청 더워짐에도 불구하고 고드름은 멀쩡하다는 것이다. “헉! 더 더워.” 스윽. 바로 그때 채은이는 덮고 있던 검은색이 로브를 벗어 던졌다. 헉! 채, 채은아. 난 아직 너의 자연적인(?) 모습을 볼 준비가 안 되었지만, 봐 주마……가 아니네. 채은이가 로브를 벗자, 얇은 소재로 된 하얀 티와 하얀색의 무릎까지 오는 치마가 보였다. 채은이의 로브 안 모습을 본 것은 처음이지만, 처음 본 만큼 실망이다. 쳇! “오빠, 왜 그래?” “아, 아니야.” “그나저나 정말 왜 이러지?” 내가 묻고 싶다. 나도 이제 등에서부터 땀이 줄줄 흐르고 있다. 갑작스럽게 올라간 온도는 최소 못해도 35도는 되는 것 같다.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채은이와 나는 더위에 지쳐 갔다. 어떤 의미에서는 더운 것이 추운 것보다 더 괴롭다. 결국 채은이도 더위를 더는 견디기 힘들었는지 조용히 반지를 내밀었다. 아마도 운디네나 실프를 불러내려는 거겠지. “실프!” 역시! 나의 예상대로 채은이는 바람의 정령인 실프를 불러냇고, 난 처음 보는 실프의 모습에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운디네와 살라만다는 본 적이 있는데 실프는 처음이다. 뭐, 노움도 본적이 없다만. 마치 바람같이 포근한 인상이 유독 강한 정령이었고, 채은이는 실프르 보자마자 약간 미안한 듯 말했다. “미안한데, 이 더위 좀 어떻게 해 주면 안 될까?” 끄덕. 그 말에 실프는 군말 없이 곧바로 우리 주변에 바람을 일으켜 주기 시작했다. 휘이익! 휘이익! 바라이 몰아치는 소리가 들린다. 이제야 살 것 같다. 그나저나 실프는 너무나도 다정해 보인다. 채은이의 부탁을 가볍게 들어주는 것뿐만 아니라 분위기 자체가 참 부드러웠다. 왠지 보는 것만으로도 좋아지는 느낌? 역시 바람의 정령이어서 그런 것 같다. 그렇게 실프의 바람으로 기분이 좋아지고 있는 순간, 갑자기 추워지기 시작했다. 뭐, 뭐야? “시, 실프. 이, 이렇게까지는…….” 도리도리. 채은이의 말에 실프도 당황한 듯싶었다. 자신이 아니라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었다. 기온은 순간적으로 영하 20도 정도까지 내려갔다. 덜덜덜. 덜덜덜. 채은이는 온몸을 덜덜 떨면서 당장 로브를 껴입었고, 다급하게 살라만다를 소환해 냈다. 또다시 살라마나다가 온도 조절 마법을 사용했지만 이번에도 역시 잠시뿐이었다. 순식간에 온도가 40도까지 치솟았기 때문이었다. “빌어먹을!” 난 그제야 깨달았다. 이 동굴 자체가 이상한 거라고 말이다. 젠장! 도대체 무슨 짓거리를 해 대는 거야! 설마 이곳 전체에 9서클 마법 컨트롤 웨더를 걸어 놓은 건 아니겠지?! 퍽! 퍼억! 난 동굴을 힘차게 도끼로 부수는 중이다. 약간씩 반응이 오는 것이 이곳을 부수고 탈출하는 게 가능할 것 같았다. “살라만다! 실프! 운디네!” 한쪽에서는 채은이가 컨트롤 웨더(나의 추측)와 열심히 싸우고(?) 있었다. 정확히는 9서클 마법 컨트롤 웨더와 정령이 싸우는 것이지만. 그렇지만 시전자인 채은이는 힘들어 죽을 것 같다는 표정이었다. “인첸트 화(火)!” 쾅! 콰앙! 콰앙! 강력한 폭발음 소리가 들려왔고, 동굴 벽은 금이 가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털썩! “채, 채은아?” “미안……해.” 끝내 마나와 체력이 고갈되었는지 채은이가 풀썩 주저않았고, 내가 쓰러진 채은이를 보며 당황할 때 기온이 순식간에 치솟기 시작했다. “크윽…….” 털썩. 나도 갑작스러운 엄청난 열기에 무릎을 꿇었다. 이 정도의 열기라면 최소 못해도 130도 이상이다. 아직 다 부수지도 못했는데……. 정신이 희미해져 간다. 채은이는 이미 쓰러진 상태였고 나도 서서히 엄청난 열기속에 타들어 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이대로 군고구마(?)가 돼서 죽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렇게 의식이 희미해져 가는 나의 뇌리에 지나가는 한 가지의 방법. 인첸트! 그러니까 이 동굴 자체에다 수(水) 속성 자체를 인첸트시켜 버리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검에도 속성 주입이 가능하니까. 물론 동굴이라는 것과 한정된 크기의 무기들이라는 게 무지 다르지만. 생각할 시간은 없다. 실행하는 방법밖에……. 나는 엄청난 더위를 꾹 참아 내면서 동굴 벽 쪽으로 이동했고, 잠시 후 눈을 감았다. 제발 성공해라. 여기서 군고구마 돼서 죽고 싶지는 않다. “인첸트 수(水)!” 슈우욱! 난 온몸의 마나를 끌어올려서 그대로 동굴의 벽 표면에 모든 힘을 주입했다. 제발 수 속성으로 인첸트 되란 말이다! 파직! 파직! 무엇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순간, 동굴의 온도가 순식간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엄청나게 시원해졌다. “성공했다.” 이 커다란 동굴에 수(水)의 힘을 인첸트한 거시다. 물론 인첸트한 대가로 어마어마한 양의 마나가 들었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걱정이다. 이제는 다시 어마어마한 추위가……. -웨폰인첸트, 시험을 통과하셨습니다. 어라? 바로 그때 내 귀에 들려온 소리는 전혀 예상치도 못한 소리였다. 시험? 성공?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드는 건 순간적이었다. 왜냐하면 갑자기 변한 풍경 때문이었다. 언제 그런 수정 동굴에 있었냐는 듯 모든 게 바뀌었다. 물론 동굴이라는 건 변함이 없었지만, 위에 있던 고드름이라든가 바닥에 있던 물 같은 건 모두 사라졌다. 하지만 단 한 가지, 없던 게 보였다. 그건 얼음 덩어리에 너무나도 차가워 보이는 남자가 있다는 것. “흐음…….” “정신이 들어?” “또 정신을 잃었어?” “뭐…….” 채은이는 또다시 정신을 잃었다는 게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지 입을 쭉 내밀었고, 난 그런 모습조차도 귀여워서 미쳐 버릴 것 같았다. 귀, 귀여워……. 아 참, 이게 아니지. 채은이는 잠시 동안 정신을 차리는 듯한 모션을 취했고, 그러다가 눈앞의 얼음에 갇혀 있는 남자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누, 누구야?” “나도 몰라, 갑자기…….” 나도 이 남자가 누군지 궁금하다. 갑자기 공간 자체가 바뀌더니 눈앞의 얼음에 갇혀 있는 이 남자의 모습이 나타났으니 말이다. 나와 채은이는 이 정체불명의 남자를 보고 고민에 휩싸였다. 도대체 왜 할 짓 없이 이런 얼음에 갇혀 있는 걸까? 흐음. 난 주변을 이리저리 살펴보던 중 얼음에 적힌 너무나도 장렬해 보이는 글씨를 발견했다. 미안하다. 너를 가둘 수밖에 없는 나를 용서해라, 레키리안. 레키리안? 서, 설마? 그제야 나의 머릿속에서 모든 회로가 연결되었다. 웨폰인첸트, 다섯 번째 소환수, 이상한 동굴……. 그렇다면! “저 얼음에 갇힌 존재가 다섯 번째 소환수?” 저 얼음 남자가……? 번쩍! “꺅!” “컥!” 그 순간 채은이의 비명 소리와 함께 나의 경악에 찬 소리가 동굴에 울려 퍼졌다. 그 얼음땡(?) 아저씨가 갑자기 눈을 떴기 때문이었다. 그 얼음땡(?)은 눈을 뜬 뒤 조용히 자신의 검을 소환해 냈다. 그것도 얼음 속에서 말이다. 마, 말도 안 돼! 검을 소환해? 검 자체를 소환했다는 것도 믿어지지 않는데 얼음 안에서 검을 소환하다니! 나의 여린(?) 마음을 산산이 부서뜨리는 모습이었다. 파직! 그 남자는 얼음 속에서 검을 움직이더니 그대로 얼음을 부수고 나에게 다가왔다. 터벅터벅. 나랑 한판 해보자는 건가? 난 그런 생각이 들자 무기를 소환해 낼 준비를 했다. 뭐, 대충 예상은 했다. 소환수가 순순히 소환수 같을 리는 없다고, 히든 소환수니까 더욱더 유별날 거라고 말이다. 그렇게 내가 검을 소환해 낼 준비를 할 때, 그 얼음땡은 갑자기 검을 캔슬시키더니 한쪽 무릎을 꿇었다. “잠시 실례했습니다. 레키리안, 히든 소환수, 직업은 버서커, 당신만의 검이 되겠습니다, 마스터시여.” ……. 나, 충격 먹었다. 너무나도 어색하다. 항상 설치던 닭대가리 삼인방은 레키리안을 데려온 이후 입을 다물었다. 레키리안은 보는 것만으로도 추워질 정도로 무뚝뚝 대명사다. 그나저나 저런 무뚝뚝이 버서커라니 약간 이해는 가지 않는다. 뭐, 이 직업의 소환수가 이해가 가면 그게 더 이상한 거겠지만……. “…….” “…….” “…….” “…….” 그래도 이런 침묵은 좋지 않아! 아무리 강해 보인다고 해도 저것들이 저렇게 꼬리를 말다니. 한마디로 레키리안은 분위기 하나로 닭대가리 삼인방을 제압한 것이다. 바로 그 순간! “에잇!” 오, 케미리! 그 순간 케미리의 짜증난다는 목소리가 들려왔고, 그 목소리를 들은 레키리안은 여전히 아무런 감정 없는 눈빛으로 케미리를 바라보았다. 움찔. 그 눈빛을 본 케미리는 잠시 움찔했지만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표색을 하면서 쪼르르 나에게 달려오더니 평소대로 말했다. “저놈, 건방져.” 난 네놈이 더 건방지다만. “마스터한테 반말이라니, 죽고 싶나?” “…….” 헉! 레, 레키리안. 너무나도 정상적이어서 고맙긴 한데 오히려 난 레키리안이 더 적응이 안 된다. 이건 무슨 현상? 한편 그 이야기를 들은 케미리는 고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레키리안을 향해 말했다 “네가 마스터에게 반말을 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야!” “버릇이 없군. 마스터, 저에게 저 버릇없는 존재를 처벌할 기회를 주시지 않겠습니까?” “…….” 도대체 나에게 그런 걸 물어보면 어떡하란 말이냐. 그렇게 내가 레키리안의 질문에 난감해서 얼굴을 긁적일때 케미리는 그대로 ‘케미리 킥(?)’ 으로 레키리안의 얼굴을 걷어찼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개발로 찼다는 것이다. “…….” 꽤 타격이 컸는지 레키리안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고, 기습 공격을 한 케미리는 즐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게 내 실력이야, 야뵤!” “마스터, 안 됩니까?” 레키리안은 개한테 얼굴을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의사를 물어보았다. 정말 너무 감격이다. 나 같았으면 저딴 얍삽한 개한테 맞는 순간 당장 판 엎었을 텐데, 레키리안은 나를 향해 계속해서 물었다. 어떤 의미로서는 감동인데, 어떤 의미로는 정말 적응 안된다. 지직. 레키리안은 계속해서 나를 보았고 그 눈빛이 심히 부담스러웠던 난 대충 손을 저으면서 말했다. “알아서 해.” “감사합니다.” “덤벼! 정의와 사랑의 요정 케미리! 개의 자존심을 걸고 널 용납하지 않겠다!” 케미리, 어디서 듣던 대사다? 그렇게 케미리는 온갖 괴이한 폼을 잡으면서 레키리안을 도발했고, 잠시 후 레키리안과 케미리는 마구 싸우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누가 이기려나? 잠시 후, 결과는 나왔다. 전투 모습은 생략. 워낙 케미리가 치졸하게 싸워서 설명하기 싫다. 흙을 던지고 침을 마구 뱉지를 않나, 비겁, 얍삽함, 치졸 등 모든 방법을 이용해서 싸운 그 모습을 난 말하고 싶지 않다. 뭐, 결론은 레키리안의 승리였지만 무난한 승리는 아니었다. 케미리가 워낙 대단한 개였으니까. 어떤 의미로서는……. 그렇게 일단은 레키리안의 승리로 끝났고, 케미리는 한쪽 구석에 쭈그려 앉은 채 테피언과 피티언의 위로를 받고 있었다. “넌 최고야!” “그럼, 고생했잖아!” “정말?” “물론이지! 난 너의 그 모습을 보고 감동했어.” 요새는 흙 던지고 침 뱉는 게 감동받을 일이냐, 테피언? 뭐,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 실컷 감동해라. 어차피 넌 데스나이트여서 침 뱉나 흙 던지나 너에게는 무용지물일 테니까. 그렇게 닭대가리 삼인방은 서로를 열심히 보살펴 주었다. 그나저나 이제 다섯 번째 소환수를 만났으니 내가 구금한 걸 물어볼 차례다. “레키리안.” “마스터, 말씀하십시오.” “…….” 역시 적응은 안 된다. 너무 정상적이어도 문제가 된다니, 오늘 처음 깨달았다. 이곳에서 채은이와 예화를 제외하고는 유일하게 정상적인 캐릭터. 한편으로는 감동이고 한편으로는 조화가 되지 않는 느낌이다. 뭐, 적응해 나가야지. “혹시 너 마스터 오브 웨폰, 그러니까 지금 직업의 2차 전직에 대해서 알고 있어?” “물론입니다.” “물론……. 정말?” 난 깜짝 놀랐다. 혹시나 해서 물은 건데 들려온 대답은 내 기대를 매우 충족시키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저는 마스터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 그러냐? 아 참, 그게 아니라 내가 전직을 하는 방법을 안다고?” “그렇습니다.” 꿀꺽.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침이 넘어갔다. 웨폰인첸트의 다음직업, 마스터 오브 웨폰. 2차 전직이기도 하고 최종 전직이기도 했다. “레키리안, 방법을 가르쳐 줘!” “방법 말입니까?” “어!” “간단합니다. 루케리에스라는 드래곤을 찾아가면 됩니다.” “뭐……라고?” 난 잘못 들었나 했다. 루케리에스? 내가 알고 있는 그 엽기 드래곤 루케리에스를 말하는 건가? 설마……? “루케리에스라는 드래곤을 찾아가시면 됩니다.” 확실해졌다. 루케리에스라는 이상한(?) 이름을 가진 드래곤이 둘일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동명 드래곤일 리도 없다. 그렇다면 내가 알고 있던 루케리에스다. 도대체 뭐야?! 어떻게 상황이 돌아가는 거야, 이 게임은? “어이, 실례하네.” “…….” 바로 그때 고민에 잠긴 나를 누군가가 불렀고, 당연히 난 나를 부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메퍼라는 아저씨가 천천히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나에게 다가온 메퍼는 실망이라는 듯 물었다. “반갑지 않은가?” “반갑다고 해 두죠.” 지금 난 정신이 없다. 당장이라도 루케리에스를 만나서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고 싶다. 나의 직업을 전직시켜 주는 존재가 루케리에스라니! “하하. 뭐 여전히 자네의 입담은 당해 내지를 못하겠군.” “그런가요?” “너무 쌀쌀하게 대하지 말게. 내가 여기 온 건 동맹 관계에서 부탁을 하기 위해서니까.” “부탁?” “돌리지 않고 간단히 말하겠네. 마계로 가 주게.” “마계?!” 난 메퍼의 입에서 마계라는 말이 흘러나오자,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마계라니, 무슨 마계가 옆 동네도 아니고! 방금 전 레키리안의 입에서 나온 루케리에스라는 말에 정신이 없는데 이번에는 저 아저씨가 와서 마계라고 말하면서 내 머리를 뒤죽박죽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런 내 반응에도 메퍼는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면서 나를 똑바로 쳐다본 채 말을 이어 나갔다. “그래, 마계라네.” “지금 제가 좀 중요한 일이 있는데 나중에 하면 안 될까요?” “미안하네만 안 되네. 우리에게도 상당히 중요한 일이네.” “…….” 너무나도 굳게 닫힌 입술. 정말 중요하다는 것이다. 지금 나에게도 루케리에스와의 문제가 복잡하기는 했지만, 동맹을 원한 건 나다. 그런 주제에 아무것도 안 하는 건 좀 그렇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요. 알겠습니다.” “고맙네.” “뭘요.” 난 메퍼를 향해 손사례를 쳤고, 그는 나를 보고 슬며시 웃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표정이 굳어지면서 말했다. “그나저나 자네가 해야 할 일은 좀 힘든 일이네.” “저희 일행의 힘으로도 말이에요?” “그렇지. 잘못하면 마게 전체를 상대해야 하니까.” “히익?!” 난 그 말에 기겁했다. 그런 어마어마한 일에 나 같은 연약한 존재를 투입하겠다는 건가? 말도 안 된다. 메퍼는 그런 나의 놀라는 모습을 똑똑히 봤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정말 마계라는 곳으로 보낼 작정인지 계속해서 표정을 굳힌 채 말했다. “자네가 해야 할 임무는 마게에 가서 그를 납치, 아 참! 이게 아니라 데려오는 거네!” 저, 아저씨! 벌써 다 말씀하셨는데요? ‘납치’ 라는 말에 순간적으로 당황하면서 말을 바꿨지만 이미 나는 다 들은 상태였다. 다급하게 언어를 순화해서 데려온다고 바꾸었지만 이미 납치라는 건 안다. “그래요. 우리가 납치할 존재는 누구죠?” “커험. 나, 납치가 아니라 데려오는 거네.” “그렇다고 치죠.” “아니. 그렇다고가 아니라 사실이네. 좀 납치스럽기(?)는 하지만 어차피 자신의 세상으로 오는 것이니까.” 알아들을 수 없는 말에 내가 무슨 말이냐는 사랑스러운(?) 눈빛을 보내자 메퍼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는 인간이라네. 그런데 마계에 잡혀 들어간 거지.” “왜요?” “그가 너무나도 뛰어난 장인이기 때문이지. 드워프들도 한 수 접어준다는 엄청난 장인.” “에에?” 드워프도 한 수 접어준다면 도대체 얼마나 대단하다는 거지? 마계에서 납치해 갈 정도로 대단하다는 소리인가? 메퍼는 놀라워하는 내 표정을 보았는지 추가 설명을 해주었다. “마계의 금속 아만다티움도 다룰 수 있을 정도면 말 다 하지 않았나?” 아만다티움. 저번에 주운(?) 그 금속. 언젠간 드워프를 찾아가 검 만들어 달라고 하고 싶었는데 워낙 바빠서 잊어버린 금속이다. 그런데 그런 금속을 인간이 다룬다고? 믿어지지 않는다. “뭐, 나도 믿어지지 않지만 확실한 정보니까. 그가 우리 길드의 무기를 만들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네. 그가 무기를 만든다면 엄청날 테니까. 물론 자신을 마계에서 구해 주면 그 정도야 해 주겠지.” “오호! 그래서 그 장인이라는 남자를 마계에서 빼 오라는 건가요?” “그렇지. 아주 소수 정예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미션이네. 자네들이니까 가능할 것 같아 찾아온 거네.” 드워프도 한 수 접어준다는 장인이라……. 궁금하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나의 아만다티움으로 무기 좀 만들어 달라고 하고 싶다. 물론 루케리에스에 대한 것이 신경 쓰이지만 마계에 갔다오고 나서도 늦지 않을 거다. 루케리에스가 도망갈 리는 없으니까. “그럼 어쩔 수 없죠. 가겠습니다. 물론 마계로 가는 방법 같은 건 다 아시죠?” “물론이네. 우리의 정보력을 무시하지 말게.” 그렇게 우리는 갑자기 마계로 가게 되어 버렸다. 제5장 마계로 지금 나는 메퍼를 따라가는 중이다. 뭐, 거기가 어딘지는 모른다. 그냥 길을 안내해 주니까 열심히 따라갈 뿐이다. 그렇게 한참 동안 우리는 메퍼를 오리 새끼처럼 졸졸 따라갔고 그는 한참을 가다가 걸음을 멈추더니 말했다. “여기네.” “흐음.” “마계로 가려면 엄청난 마나가 들어가니까.” 대략 설명 안 해 주셔도 압니다. 내 앞에 일사불란하게 있는 마법사들. 인원수가 100명 정도는 되어 보인다. 저 마법사들이 심심해서 있는 건 아니겠고 마계로의 이동 때문인 게 분명했다. “아 참, 그리고 이 귀걸이를 들고 가게. 나랑 연락이 되는 귀걸이이니 임무가 끝나면 바로 연락해 주게. 자네가 떨어지는 그 장소에 공간 게이트를 열어 주겠네.” 메퍼는 그 말과 함께 나에게 귀걸이를 하나 건네주었다. 메퍼가 한쪽을, 내가 한쪽을 가진 모양새가 되어 버렸다. 그나저나 저것들은 유독 즐거워 보인다. 특히 테피언은……. 나는 은근슬쩍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훗! 나의 고향인가?” “뭐시라? 네놈의 고향이 마계라고!” 난 대충 듣다고 고향이 마계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 테피언의 고향이 마계라니 생각지도 못했다. “마스터, 나르르 뭐로 보는 건가? 난 데스나이트다.” “아 참, 그랬지.” “아 참이라니! 설마 마스터는 나를…….” “아, 아니야, 데스나이트로 봤어. 봤어. 봤다고 해 줄게.” “…….” 사실 테피언을 데스나이트로 본 적은 없다. 그냥 말 좀 하고 칼질 좀 하고 기름칠 좀 하는 깡통인 줄 착각하고 살았다. 솔직히 이건 내 잘못이 아니라 데스나이트 답지 않은 저놈의 잘못이다. 그나저나 테피언의 고향이 마계라면 길 찾기가 쉽지 않을까? “야, 테피언. 네 고향이 마계면 그 마계라는 곳의 길을 엄청나게 잘 알겠네?” “아니. 모른다.” “…….” “마계를 무시하지 마라. 마계의 크기는 이곳 인간계의 10배 이상. 물론 몬스터들만 서식하는 땅이 많기는 하지만 그걸 제외하고도 인간계의 7배 이상이다. 그런 엄청난 크기의 장소를 알 리가 있나?” 크다. 이 인간계도 전체를, 아니 1/10도 못 가 봤는데 그 10배라니 엄청난 크기다. “아 참. 내 정신이……. 하하핫.” “……?” 내가 엄청난 크기에 놀라워하고 있을 때, 메퍼는 민망한 듯 웃으면서 나에게 지도 한 장을 내밀며 말했다. “목적지를 말하지 않았군.” “…….” “뭐, 나도 실수할 수 있지. 하하하하. 그나저나 일단 기본적인 설명이 필요할 것 같군.” 너무 뻔뻔하다. 저 정도면 케미리 급이다. 흐음, 그나저나 기본적인 설명이라……. “그럼 잘 듣게. 마계에는 다섯 명의 마왕이 존재하네.” “네.” “그리고 그 마왕 다섯 명은 사이가 안 좋네.” “네.” “우리의 목표가 되는 인물은 그 다섯 마왕 중 제일 강하다고 평해지는 전시 테투언이다.” “네.” “끝이네.” 뭐, 뭐야?!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엿 같은 설명이야! 난 메퍼의 너무나 황당하고 이상한 설명에 입을 다물었고, 잠시 후 메퍼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아무리 우리라고 하더라도 마계의 정보까지는 좀 그렇지 않은가?” “그럼 아는 것처럼 아야기를 하지 마세요!” “그래도 정보 집단 중 최고인 우리인데 그런 걸 안 하면 폼이 죽지 않나.” 그게 이유였나? 난 너무나도 어이가 없어서 할 말을 잃어버렸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말이 있듯이 역시나 그 엽기 마스터가 있으니까 아랫물인 메퍼는 맑지 않다. 물론 거기에는 예외가 존재한다. 윗물(나)은 맑은데 아랫물들(테피언, 피티언, 케미리)이 원래부터 오염됐다는 것. 그래도 나 때문에 더 이상 타락하지는 않는다.(이제는 더 이상 타락할 단계가 없다는 게 사실이지만) 내가 그렇게 윗물과 아랫물의 심오한 분석 단계에 돌입하려고 하는 순간, 메퍼는 100명 정도 되어 보이는 마법사들에게 다가가더니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자네는 저기로. 아니, 자네는 저기…….” 메퍼는 일일이 마법사들을 배치시키기 시작했다. 아마도 마계로 가는 게이트를 여는 만큼 쉬운 작업은 아닌 것 같다. 그렇게 메퍼는 한참을 지시하면서 뻘뻘 돌아다녔고, 나는 그 모습을 무감각한 모습으로 쳐다보면서 생각했다. 마계라……. 목적을 미리 알았어도 난감할 정도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임무는 그 최고의 장인이라는 남자를 납치해 오는 것. 그것도 마왕 중에서 서열 1위라는 테투언에게 쳐들어가는 것이라니 정말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그 장인이라는 남자의 얼굴을 그려 놓은 사진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 남자를 찾아오면 되는 것이다. 문제는 그 과정이 미치도록 어려워서 그렇지. “크크크. 마계라…….” “테피언, 마계는 어떤 곳?” “보면 죽여 주는 동네지.” 피티언의 물음에 테피언은 너무나도 간단히 대답했다. 근데 어떤 동네이기에 죽여 주는 동네라는 말이 나오지? 한번 보고 싶다. 죽여 주는 동네라는 곳을 말이다. “꺅! 나 어떡해!” “왜 그래, 세리하?” 그때 세리하는 뭐가 그리 문제인지 방방 뛰기 시작했다. 얼굴은 붉게 물들고 어떻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인데, 보는 입장으로서는 약간 신기했다. 세리하가 저런 반응을 보인다는 것 자체가……. “저는 천족이잖아요! 근데 마계라니.” “세, 세리하. 미안한데 천족……이었나?” “어머! 겉으로 보기에도 딱 천족 같잖아요, 주인님.” 아니, 겉으로 보면 절대 천족이라 생각되지 않는다. 메이드복을 입고 다니는 천족이라니 어떤 곳을 돌아다녀도 발견해 내는 건 불가능하다고. 만약에 그런 천족이 있다면 나의 전 재산을 걸겠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그런데 네 동생은 멀쩡한 것 같은데?” “피티언이요?” “어.” “어? 그러고 보니…… 피티언, 너 천족이면서 마계에 간다는데 뭘 그렇게 들떠 있는 거야!” 내 말에 세리하는 이상함을 느꼈는지 곧바로 피티언을 향해 물었고, 오히려 그런 질문에 피티언은 턱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나, 천족……이었나?” “…….” “…….” “…….” 아이고, 아이고! 그나마 닭대가리 삼인방 중 천재(?)였던 피티언이 벌써 저 정도까지 바보가 되다니, 너무나도 슬프다. 역시 원인은 저 개 바이러스 케미리가 분명하지만 증거는 없다. 나는 다급했다. 피티언의 바보 진화 상태가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야, 피티언!” “네. 마스터.” “너의 최종 목표는?” “세계 정복!” “휴우, 다행이다.” 그래도 완전히 바보가 된 건 아니다. 아직까지 세계 정복이라고 당당히 말하다니, 어떤 의미로는 약간 안심이 된다. 아직까지는 안전 단계(?)여서 안심을 할 때 메퍼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뭐 하는 건가.?” “아.” “준비 다 되었네. 마계로 갈 준비를 하게.” “마계라…….” 난 메퍼의 말에 나도 모르게 머리를 긁적였다. 고민해 봤자 달라지지는 않는다. 부딪혀 보는 거다. 그게 바로 제일 빠른 길일 테니까. 그나저나 채은이와 예화는 괜찮으려나? “채은아, 예화야. 너희들도 마계에 갈 거야? 힘들면 억지로 갈 필요는 없어.” “힘들기는. 나도 궁금해, 마계라는 곳이. 헤헷!” “저는 오빠만 따라다니면 돼요.” 형식적으로 물어봤지만, 만약에 둘이 가지 않는다고 했으면 난 절망 속에서 허우적거렸을 게 분명했다. 이런 비정상적인 집단에서 마음의 안정이 되는 사람은 채은이와 예화밖에 없다. 채은이와 예화도 간다는 말에 안심을 하고 있을 때, 무감각한 어조를 띤 정우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왜 저에게는 안 물어보십니까?” “…….” 꼭 저 새끼는 그냥 넘어가는 꼴을 못 본다. 그런데 문제는 그놈이 나를 애절한 눈빛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물어봐 주십시오, 물어봐 주십시오.’ 라는 눈빛으로……. 난 그 눈빛을 애써 외면하면서 고개를 돌렸지만, 정우는 끝까지 나를 쫓아왓 계속 그 괴상한 눈빛을 보냈다. 젠장, 해 주고 만다. “너도 마계 갈 거냐? 가고 싶으면 가고, 말고 싶으면 말아.” “남녀 차별입니다.” “엥?” “채은 양과 예화 양에게는 자상하게 말해 주고 저에게는 쌀쌀하게 말하시다니. 방금 여자 분들에게 한 것처럼 이야기해 주십시오.” 빠득빠득. 그 말에 난 혈관 마크가 마구 생겼다. 남자 놈한테 사근사근 말하라고? 절대 그럴 일은 없다. 그런 내 모습을 본 정우는 다급하게 손을 저으면서 말했다. “괜찮습니다. 방금 걸로 만족하겠습니다.” 눈치는 역시 10단 이상이다. 그나저나 저놈의 머릿속에는 과연 무엇이 들었을까? 정말 궁금하다. “혀, 형님, 왜 그러십니까?” “으응? 아니야.” 나도 모르게 무심코 정우의 머리통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나 보다. 근데 정우의 머릿속은 보통 인간하고는 다를 게 분명했다. 아마도 외계인 쪽? “자, 자. 어서 준비하게.” “아, 맞다.” 난 다급하게 들려오는 메퍼의 목소리에 지금 상황을 기억해 냈다. 이것들과 있으면 하고 있던 일도 까먹는다. 메퍼와 아이들(?)은 마계의 게이트를 열려고 분주한 모습을 보였다. 엄청 비싸다는 마석도 보이고 마나석도 보였다. 한마디로 가는 데 돈이 더럽게 많이 들어 보인다는 것이다. 혹시라도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면 저걸 다 물어내라고는 하지 않겠지? 내 생각이 끝나기가 무섭게……. “마계의 게이트를 한 번 열려면 약 30만 골드가 소모되네.” “…….” “잘해 주게.” 물어내라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대단한 압박이다. 한 번에 30만이면 두 번에 60만? 그 장인이라는 인간이 그렇게 대단하다는 말인가? 흐음. “자, 열겠네!” 메퍼의 명령이 떨어지자, 100명의 마법사는 자신의 마나로 중간에 있는 이상한 기계에 마력을 주입하기 시작했다. 동그란 게 거울같이 생긴 이상한 기구. 상당히 표현하기 난감하게 생겼다. 간단히 묘사해서 백설공주에 나오는 거울 모양? 파지직! 파지직! 거울(?)에 마나가 들어가자 빛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푸른색 공간이 열리기 시작했다. 저곳이 우리의 목적지인 마계로 통하는 입구일 것이다. 그나저나 아까부터 드는 이 알 수 없는 위압감……은 저 놈이었군. 우수에 젖은 눈빛으로 게이트를 말없이 쳐다보는 개 한 마리. 개가 우수에 찬 표정을 짓는 것도 엽기인데 무엇보다 그 개가 케미리라는 사실이 더 엽기다. 물론 겉으로 보는 모습에는 문제가 없지만 케미리를 잘 아는 나로서는 한마디로 요약해서 역. 겨. 웠. 다. 나는 아직도 마계에 간다는 사실에 썩 좋지 않은 표정을 짓는 세리하에게 슬쩍 다가가 붙었다. “어머! 주인님도 참~.” “…….” “저랑 그렇게 스킨십을 하고 싶었어요? 부비부비 해 드려요?” “…….” 그냥 다가갔을 뿐인데 언제 좋지 않은 표정을 지었냐는 듯 홍조를 띠는 세리하. 착가의 여왕이다. 뭐, 그래도 예쁘니까. 그나저나 부비부비를 하고 싶기는 했지만 주변에 눈초리가 많다. 이상하게 세리하랑 이렇게 붙으면 채은이는 얼음 공주가 된다. 한마디로 급속 냉동? 아 참, 이게 아니고……. “세리하, 혹시 케미리 뭐 잘못 먹었냐?” “왜요?” “저걸 봐.” 난 케미리를 손으로 가리켰고 나의 손짓에 따라 시선을 옮긴 세리하는 약 몇 초 동안 케미리를 보더니 나를 향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재 왜 저래요?” “나도 궁금해서 물어본 건데?” “죽을 때가 된 것 아닌가요?” “그런가?” 세리하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죽을 때가 되면 달라진다더니 죽어 버리는구나. 너를 잊지 않을게, 케미리! “뭐 하나? 안 들어가나?” “아, 죄송합니다.” 난 다급하게 말하는 메퍼에게 사과의 인사를 한 뒤 얼어버린 마계 차원의 게이트로 뛰어 들어갔다. 다른 일행들도 그런 나를 따라왔고. 그나저나 케미리 저놈, 우수에 젖은 표정을 지으니까 기분 엿 같다. 아아아아. “우아아아앙!” “꺅!” “주인님!” “뭐, 뭐야?!” “야호!” 지금 들려오는 각종 비명 소리에는 커다란 이유가 있었다. 우리가 그 마계로 들어가는 통로에 들어서자 이상한 느낌이 파직 하며 지나갔고, 그렇게 약 1분 후 우리는 땅에서 약 20미터 이상 올라온 상태에 있었던 것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들은 자연스럽게 바닥으로 하강하고 있었고, 난 그걸 보고 야호라고 비명을 지르는 피티언을 툭툭 치면서 다급하게 말했다. “날개!” “옛설!” 푸시식. 내 말에 피티언은 자신의 하얀색의 날개를 펼쳤고, 그걸 본 일행들은 다급하게 피티언을 붙잡았다. 별로 의지할 만한 존재는 아니지만 날개 기능은 피티언밖에 없다. 물론 내려오는 전용이지만. 어찌 됐든 우리들은 피티언의 날개 덕분에 무사히 착륙했다. 사, 살았다. 착륙하자마자 채은이와 예화는 바닥에 주저앉았고, 세리하는 내려오면서 흩어진 메이드복 치마를 정리 정돈하고 있었다. 그리고 피티언은 뿌듯한 표정을, 테피언은 그냥 묵묵, 레키리안은 별 표정 변화도 없이(레키리안은 피티언 날개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 그냥 떨어져 버렸다. 그런데 멀쩡하다), 그리고 정우 놈은…… 흐음, 패스하자. 저놈은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 눈을 감고 양팔을 최대한 벌린 채 뜻도 없고 영문도 모를 모습이다. 그리고 케미리는……. “야! 너 아까부터 뭐 잘못 먹었냐?” 나는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우수에 찬 저놈의 표정을 보니 정말 미치겠다. “미안.” “…….” “…….” “…….” “…….” 다른 누구에게는 아주 자연스러운 말이지만 ‘미안’ 이라는 말이 케미리에게서 나온 건 그리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솔직히 케미리는 너무 뻔뻔해서 ‘미안’ 이라는 단어를 아예 모르는 줄 알았다. 그, 그런데……. “으아아악!” 난 내 머리를 부여잡았다. 저런 적응 안 되는 모습, 미쳐 버리겠다. 그렇게 내가 알 수 없는 자괴감으로 머리카락을 마구 쥐어뜯고 있을 때, 갑작스럽게 주변으로 엄청난 기운을 가진 존재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설마? 하지만 이곳은 마계다. 마계에서 이런 힘을 가진 존재는 마족밖에 없다. 그것도 어마어마한 양이다. 빌어먹을! 난 사태 파악을 끝내자, 당장 일행들을 데리고 숨으려고 했다. 아무리 나라도 마계에서 엄청난 수의 마족과 붙는 건 거부한다. 하지만 이런 내 생각은 무산됐다. 어느새 우리 주위를 마족들이 둘러쌌기 때문이었다. 인원수는 약 100명. 그렇지만 힘은 저번에 내라 싸웠던 3,000명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하다. 마족이라는 종족들은 소문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어마어마하게 강해 보였다. 그때 한 마족이 아주 큰 목소리로 말했다. “감히 천족 놈이 이곳에서 자신의 기운을 풀풀 날리다니.” 아마도 원인은 피티언의 날개였던 것 같다. 한 마족의 이야기로 대충 감이 잡힌다. 그렇지만 피티언을 탓할 생각은 없다. 그거라도 없었으면 죽었을 테니까. “인간과 천족이라……. 다 죽인다.” 한 마족의 명령에 다른 마족들은 아무런 말없이 자신들의 무기를 천천히 꺼내 들면서 전투태세를 취했다. 지금 죽이라고 한 놈의 영향력이 아마도 꽤 큰 듯싶다. 검은색 머리카락이 바닥까지 긴 그 미남자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채은이와 예화의 미모를 보고는 잠시 놀라는 듯한 모션을 취했고, 데스나이트를 보고는 알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세리하 역시 채은이와 예화보다 아주 살짝 떨어지는 미모지만 충분히 예쁘니까 그 남자를 놀라게 한 게 분명했다. 레키리안과 정우를 보고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고, 피티언을 보면서는 살인 충동적인 모습을 보였고, 마지막으로 케미를 보면 웃을 게 분명……한데 왜 안 웃고 저런 표정을 짓는 거야?! “…….” 그 남자는 굳어진 채 케미리를 응시했고, 잠시 후 설마하는 어조로 말했다. “지, 진짜이십니까?” “오랜만이야, 나리켄.” “왕자님!” 풋! 왕자, 왕자…… 왕자?! 나는 왕자라는 말에 그대로 쓰러졌다. 내가 잘못 들었거나 꿈이기를 바라면서 쓰러진 채 다시 눈을 떠 보았지만 상황은 그대로였다. 오히려 말소리만 더 잘 들려온다. “케미리 왕자님, 잘 돌아오셨습니다!” 꿈일 거야, 꿈일 거야, 꿈일 거야! 하지만 아니다. 내가 아무리 중얼거려 봤자 지금의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우리를 케미리의 중요한 손님으로 마족들에게 데려가기는 하는데 손님이라는 느낌은 썩 들지 않는다. 일단 우리 일행에는 마족들이 죽도록 싫어하는 천족이 두 명이나 있었으니까. 제일 앞에서 나리켄이라은 마족과 케미리가 천천히 걷고 있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저놈이, 저놈이! ‘아리폰 아레케 케미리.’ 저게 바로 저놈의 풀 네임이다. 그리고 이곳 마족에서 서열 2위로 유명한 마왕 네라진의 유일한 아들이란다. 그럼 여기서 문제, 아들인데 왜 개냐? 그건 저놈이 정체불명의 액체를 먹은 뒤 개로 변했단다. 이런 황당무계하고도 어이를 상실한 내용을 믿어야 하는지 고민스러웠지만 지금 상황은 믿을 수밖에 없었다. “주인님…….” 바로 그 순간 세리하가 슬며시 다가오더니 나에게 슬쩍 팔짱을 끼었다. 세리하 야, 이 물컹한 건 왜 이리 자주 느껴지는 겁니까? 세리하는 내게 완전히 밀착을 하더니 내 귀에 속삭였다. “주인님, 무서워요.” “으응?” “마족들이 눈을 번쩍이고 있잖아요.” “그, 그런가?” 난 그 말에 주변의 마족을 둘러보았다. 마족들은 나와 세리하, 피티언을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었다. 세리하와 피티언은 이해가 가는데 나는 왜 보는지 이해가 안 간다만. 그나저나 세리하, 수, 숨결이……. 너무나도 밀착되어 세리하의 숨결까지도 내 목에 닿을 정도였다. 물론 싫지는 않다. 찌릿찌릿. 그 순간 갑자기 등 뒤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기운. 난 설마 하면서 고개를 돌렸고 거기에는 볼을 부풀린 채은이가 있었다. 좀 화난 표정이다. 그런데 그 표정도 예뻐 보이니, 이거 원. 그래도 일단 기분이 좋지 않은 것 같으니 물어봐야겠다. “채은아,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야.” “…….” “세리하 언니랑 계속 붙어 있어. 나는 신경 쓰지 말고.” “……,” 잘 생각해 보면 이상하다. 채은이의 저 표정! 서, 설마……? 질투?! 아니다. 설마가 아니다. 분명 가능성이 있다. 만약에 저게 질투라면 채은이는 나, 나를……. 콩닥콩닥. 그러자 나도 모르게 심장 박동 수가 빨라졌고, 그런 내 눈에 채은이 옆에 부록 같은 정우가 볼을 부풀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저 모습을 보자 심장이 제대로 뛴다. “넌 왜 그런 표정이냐?” “아시면서요.” “뭘 알아?” “형님에 대한 저의 마음.” “네놈의 마음이 어떤데?” “흐음, 짧게 설명하면 야외 플레이도 가능한 정도?” 야, 야외 플레이? 그게 뭐 하는 플레이냐. 난 그 말에 기가 막혔다. 저 변태 같은 놈. 정말 변태다. 그때 세리하가 나에게 더욱더 엉겨 왔다. “아항, 주인님.” “으응?” “헤헤헤.” 얼굴도 예쁘고 메이드복을 입은 여자가 엉겨 붙으면 나쁜만 아니라 어떤 남자도 본능(?)적이 된다. 그러니까 난 죄가 없다는……. 한편 나와 세리하를 보고 얼굴을 갑작스럽게 붉힌 예화가 나에게 살며시 다가오더니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저기…….” “왜 그래?” “다, 다른 분들도 많이 계신데 그, 그런 모습은 보, 보기가…….” 얼굴이 붉어진 채 말하는 예화. 예화가 이런 소리를 하는 것 자체가 신기하다. 원래 조용조용한 성격이어서 이런 말 자체를 안 하는데 말이다. 뭐, 그만큼 야외에서 보기에는 안 좋았을지도. 나는 그런 생각이 들자, 세리하를 설득하고는 살며시 내 몸에서 때어놓았다. 그러자 “아이이이잉.” 하면서 정우 새끼가 들러붙었다. 나는 정우에게 화살한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 “죽어!” 퍼억! 나의 하이퍼스트(?) 킥은 정우의 복부를 가격했고 정우는 그대로 날아갔다. 감히 남자 주제에 팔짱을 끼다니, 방금 전까지도 좋았던 기분이 엿 같아졌다. 어찌 됐든 그렇게 우리는 마족의 보호(?)를 가장한 알 수 없는 대우를 받으며 천천히 움직였다. 그나저나 케미리가 왕자라니, 본래는 마족에다 이곳의 서열 2위인 마왕의 유일한 아들이고? 아무리 내 머릿속에 집어넣으려고 해도 안 된다. 상식적으로 말이 되어야 집어넣지! 이건 역대 사상 최고의 반전이다. 아니, 반전이라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초특급 스리특급 반전이다! 하지만 그런 마음속의 절규에도 그들은 여전히 잘 이야기하고 있다. “케미리 왕자님, 왕자님이 사라지고 네라진께서 얼마나 상심을 하시던지…….” “나는 돌아오기 싫었어. 마스터 때문에 온 거지.” “마스터?” “내가 가출한 지 600년 정도 되었지? 300년 전에 소환수로 됐어.” “마, 말도 안 됩니다! 와, 왕자님이 소환수라니요!” “진정한 사정은 말해 줄 수 없지만 그렇게 됐다.” “아아아…….” 저 남자는 너무나도 엄청난 소식에 절망했지만, 난 온갖 카리스마가 뿜어져 나오는 케미리를 보고 절망했다. 그런 케미리를 보는 나로서는 시 한수가 마구 떠오른다. 아, 닭대가리. 아름다운 닭대가리. 너는 닭대가리였네. 아, 바보였네. 항상 닭대가리의 리더였던 케미리. 그런데 사실은 마계의 왕자라네. 닭대가리가? 닭대가리가? 온갖 바이러스를 몰고 다니는 케미리가 마계의 왕자라니. 미쳐 버리겠네. 아니, 돌아 버리겠네. 아아아, 머리가 터질 것 같네! 나의 환상적인 시를 개인적으로 들려주고 싶지만 지금은 그런 부위기가 아니니까 패스. 그나저나 저 마족들은 왜 계속해서 나를 힐끔힐끔 보며 긴장 어린 얼굴을 하는 걸까? 피티언과 세리하를 보면서 나도 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냥 보는 게 아니다. 잔뜩 경계를 한 채 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약 30분간 침묵을 지킨 채 이동했다. 막상할 말도 없었다. 그렇게 내가 멍하니 앞으로 향하고 있을 때 채은이가 갑작스럽게 내 옆으로 오더니 팔짱을 꼈다. 헉! “채, 채은아.” “응?” “아, 아니…….” 난 당황했다. 오늘따라 채은이가 약간 이상하다. 갑자기 과감하게 팔짱이라니! 살짝 얼굴을 붉힌 모습은 특히 더 귀엽다. 캭!(맥주 먹는 소리 아님) 오늘 나의 팔이 호강하는구나. 세리하에 이어 채은이까지. 지금 분명 마계라는 곳에서 마족에게 둘러싸여 끌려가는 입장인데도 너무나도 기분이 좋다. 한마디로 행복강림? 추가적으로 팔짱을 끼면 푹신한…… 기, 기분. 커, 컥! “뭐야! 나도 주인님하고 팔짱 낄 거예요!” 덥석. 바로 그 순간 채은이의 반대편인 왼쪽 팔에 세리하도 급작스럽게 팔짱을 꼈고, 난 양쪽에서 느껴지는 행복감에 여기가 마계인지 천국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왜 양쪽에서 끌어당기는 기분이 들지? 묘하지만 자꾸 양쪽에서 팔을 끌어당기는 느낌이 든다. 왜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일까? 그런데 잠시 후, 본격적으로 채은이와 세리하가 나의 팔을 당겼다. “두, 둘 다 갑자기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야, 오빠.” “그래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주인님.” 그래도 양쪽에서 끌어당기면 아프단 말이다! 내가 속으로 아픔을 호소하고 있을 때 갑자기 예화가 짠(?) 하고 나타나더니 더듬으면서 말했다. “오, 오빠가 아, 아파하세요. 그리고 그, 그런 건…….” “아, 미안. 오빠.” “주인님, 죄송해요.” “괘, 괜찮아.” 예화의 말에 바로 팔을 놓고 사과하는 모습에 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약간 아프다. 예화가 아니었다면, 휴우……, 고맙다. 예화야. 그런 생각이 들자 난 예화를 보고 고맙다는 듯 싱긋 웃었고, 그런 나의 모습을 본 예화는 얼굴을 붉힌 채 고개를 돌렸다. 왜 그러지? 그나저나 이 엄청난 살기는? “뭐야, 테피언?” “…….” “불만 있냐?” “…….” 이 살기는 테피언이었다. 나와 채은이, 예화, 세리하를 한번씩 눈을 번쩍이면서 본 테피언은 온갖 질투와 시샘 등 마이너스 에너지를 가득 채운 채 나를 보려보고 있었다. “왜 그러는 거냐?” “쳇! 아무것도 아니다.” “……?” 저놈 왜 저래? 설마 여자들과 같이 있다는 것 때문에 설마……. 아니, 충분히 가능할 수도 있다. 저놈은 여자를 밝히는 독특한 데스나이트니까 말이다. “도착했습니다. 여기입니다.” 어느새 도착해 버렸다. 잠시 동안의 천국은 사라지고 앞으로의 일이 걱정된다. 내 눈앞에 있는 수만 평 크기의 성. 저게 바로 우리의 최종 목적지이다. 그나저나 돈도 많나보다. 쓸데없이 저런 크기로 만들다니……. 자세하게 묘사를 하자면 수만 평의 크기에 수없이 깔린 마족들. 그리고 한눈에도 비싸 보이는 온갖 물건들로 도배가 되어 있다. 그리고 성으로 들어가는 길은 황금으로 세워져 있다. 한편, 머리카락이 더럽게 긴 마족 미남자는 우아한 손짓으로 성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왕자님, 들어가십시오. 마왕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알았다.” 케미리는 그렇게 짧게 말한 뒤 터벅터벅 황금의 길을 걸어 나갔고, 케미리가 사라지자 갑자기 마족들은 눈을 번쩍였다. 서, 설마……. 마족들은 천천히 나에게 다가오기 시작했고, 케미리 옆에 붙어 있던 나리켄은 갑자기 나를 향해 급속도로 다가오더니 속삭였다. “허튼짓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응?” “네놈, 엄청 강하다.” 그거 참 고맙네. 그래도 갑자기 칭찬은 무안하잖아. 난 슬쩍 머리를 긁으면서 무안하다는 표정을 지었고, 그걸 본 나리켄은 오히려 표정을 더욱 굳히면서 손을 살며시 만졌다. “네놈이 케미리 왕자님의 마스터라는 건 안다. 여기서 제일 강한 존재는 너니까. 물론 너를 보면 나의 손이 저려 온다. 네놈의 강함 때문이지. 네놈이 무엇 때문에 이곳 마계에 왔는지, 그리고 얼마나 강한지 잘 모르겠지만 허튼짓하지 않길 바란다. 괜히 우리도 피해를 입고 싶지 않으니까.” 그것 참, 저를 그렇게 높이 평가해 주시니 황송하옵니다. 낟 웬만해서는 마족의 세상인 이 마계에서 소란을 피울 생각은 없습니다. 물론 상황이 그렇게 된다면 해야겠지만 지금은 별로다. 나리켄은 나를 매섭게 노려보더니 엄청 살벌한 발걸음으로 케미리를 따라갔고, 다른 마족들은 여전히 우리를 둘러싼 채 있었다. 그때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일단은 특별 손님실로 데려가겠다.” 그것 참 고맙군. “케, 케미리!” “…….” 케미리의 모습을 본 네라진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네라진. 이곳 마계에서 마왕 서열 2위로 단 한 명의 마왕을 제외하고는 최강이라고 일컬어지는 존재였다. 무척 진한 검은색의 긴 머리카락을 뒤로 넘긴 채 있는 마족. 키는 180 정도에 보는 것만으로도 위압감이 드는 탄탄한 몸. 그리고 허리에 찬 흑색 검은 보는 사람을 왠지 모르게 더욱 위축시키는 효능이 있었다. 그런 네라진은 평소의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게 무척이나 좋아하고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아버지.” 평소 케미리, 아니 케미리가 아닌 케미리는 조용히 자신의 아버지를 향해 살짝 고개를 돌리면서 뇌까렸고 그 모습을 본 네라진은 당황했다. “왜, 왜 얼굴을 마주치지 못하는 것이냐? 그리고 왜 그 모양이 되었냐!” “그냥입니다.” “…….” 케미리의 어이없는 말에 네라진은 자신도 모르게 케미리를 향해 가던 발걸음이 굳어 버렸고, 잠시 후 케미리는 갑자기 돌변했다. “아버지, 오랜만.” “여, 역시 케미리구나!” 잠시 동안이나마 폼 좀 잡고 싶었던 케미리였다. 이게 손님이냐? 정말 황당하다. 아무리 내가 주의 대상이라고는 하지만 방만 40평짜리에 들여보내더니 아예 움직이지도 못하게 하는 것이 손님인가? 말만 특별 손님실이지, 실질적으로는 감옥이다. 그나저나 처음부터 일이 꼬인다. 뭐, 독이 될지 약이 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형님, 처음부터 일이 그레이트하게 변했군요.” 정우가 나에게 다가오더니 뭐가 그리 즐거운지 싱글싱글 웃으면ㅅ 말을 걸었고, 난 그 말에 근처에 있던 침대에 털썩 누우면서 말했다. “그러냐?” “그렇습니다. 아, 아름답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저놈은 지옥에 떨어뜨려도 저딴 소리를 할 확률이 100%다. 한숨만 나온다. 얼른 이 괴상망측한 마계에서 그 장인을 데리고 튀어야 하는데, 생각처럼 일이 쉽게 풀리지 않는다. 하지만 고민을 해 봤자 나에게 돌아오는 건 긴 한숨뿐이다. 휴우……. “주인님!” “왜 세리하?” “야호!” 세리하는 갑자기 괴이한 비명을 지르며 내가 누워 있는 침대로 당빙했고, 나의 품에 안겼다. 오늘따라 세리하가 이상하다. 유독 잘 안긴다. 마계여서 그런 건가? 그렇지만 싫은 건 아니다. “아잉. 주인님, 옷 벗을까요?” 버, 벗다니, 뭘? “농담이에요, 헤헤헤. 둘만 있다면 벗어 드릴게요.” “…….” 이것도 농담이겠지, 농담이야, 농담이야, 농담이야. 그래!“ 나는 스스로에게 강력한 세뇌를 걸었다. 한편 세리하는 계속해서 나의 품에 안겨 들어왔다. 침대에서 다 큰 총각과 처녀가 이렇게 있는 것을 다른 사람이 본다면 충분히 오해…… 다 있구나. 내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이곳을 바라보는 엄청난 눈초리들이 있었다. 그걸 본 난 다급하게 침대에서 일어나 딴청을 피우기 시작했다. “루루루룰 루루루룰.” “…….” “…….” “…….” 하지만 나의 딴청도 그리 효과는 보지 못한 것 같다. 저들의 묘한 표정들은 그대로였으니까. 그때 정우는 어디선가 책을 한 권 꺼내 들고 나에게 터벅터벅 오더니 책의 중간쯤을 폈다. “이게 뭐냐?” “읽어 보십시오.” 갑자기 뜬금없이 책이라니? 뭐, 그래도 이상한 분위기에서 탈출시켜 준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그나저나 저기서 세리하랑 채은이랑 예화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데 무슨 이야기지? 아니, 그것보다는 일단 정우가 내민 책을……. “라콘, 갑자기 외도를 하는 거야?!” 항상 소심했던 레진. 하지만 라콘과의 뜨거운 사랑으로 이미 모든 걸 라콘에게 빼앗긴 후였다. 한편 그런 레진의 이야기를 들은 라콘은 조용히 고개를 돌리면서 침체된 어조로 말했다. “미안.” “미안하다면 다야! 나를 가져 놓고!” “미안. 이 말밖에 할 수가 없다.” “젠장!” 입에서 ‘젠장’ 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레진은 분개했다. 다른 남자가 생긴 게 분명했다. 100년 가약의 사랑을 맺은 자신을 버리고……. “누, 누구야!” “레, 레진, 너답지 않아.” “나다운 게 뭔데? 으응?” 레진은 소리를 지른 뒤 가격하게 라콘을 밀어붙였고, 라콘은 갑작스러운 레진의 악력에 힘없이 무너졌다. 레진은 반항하는 라콘을 힘으로 제압한 뒤 밧줄로 묶엇고, 잠시 후 어디선가 촛불과 채찍을 들고 오더니 희열에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방식으로 즐기자. 하하하하!” 이, 이건?! 커, 컥! 그때 루케리에스가 봤던 야오이 소설의 후속편! “어떻습니까?” “어, 어떻긴! 네, 네놈, 이걸 나한테 보여 주는 의도가? 서, 설마……!” 그래, 생각해 보니 이상했다. 저놈…… 분명……. “오해는 하지 마십시오. 저는 남자를 좋아하는 취미는 없습니다.” “아니야! 그런데 왜 나에게 계속 이상한 짓을 하는 거야!” “이상한 짓이라니요? 제가 이 장면에 너무나도 감동받아서 루케리에스님에게 빌려 온 뒤 형님에게 보여 드리는 겁니다. 그리고 저, 좋아하는 여자 있습니다. 코스프레 집회에서 활동하는 분입니다.” 감동받을 게 그리 없냐? 이딴 야오이 SM물에게 감동을 받을 정도로? 하지만 다행이다. 정신세계가 독특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정상적인(?) 여자다! 그나저나 정우가 좋아하는 여자라고 하니까 왜 이리 궁금증이 생기는 걸까? 흐음. 콰앙! 그 순간 갑자기 문이 활짝 열리면서 케미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고, 케미리는 평소의 모습대로 나에게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 “마스터, 우리 아빠가 도와준대.” “저, 정말이냐?!” “어.” 다행이다. 아마도 서열 1위랑 2위랑 사이가 꽤 좋은 것 같다. 이렇게 일이 술술 풀리다니 정말……. “하지만 조건이 있대.” “조건?” 난 내 귀를 자극하는 ‘조건’ 이라는 말에 슬며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 불안한 느낌, 우울한 느낌, 쌈박한 느낌이 복합된 느낌…….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느낌이다. “웅, 간단해. 어차피 아빠가 전쟁할 거래.” “전쟁?” “서열 1위 테투언과 말이야.” “…….” “그래서 조건으로 마스터를 마족의 선봉에 총지휘관으로 이명한다고 했어.” “…….” 지금 나랑 장난 치냐?! 지금 나는 내 앞에 잇는 한 남자, 아니 한 마왕을 노려복 있었다. 그 마왕도 나를 노려보고 있었고. 마왕의 집무실인지 방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왕은 300평쯤 되는(방이라고 하는 것도 이상하다. 미친 거다. 300평이라니) 이곳으로 나를 데려왔다. 일대일로 이야기를 할 생각인지 지금 이곳에는 나와 케미리 아버지(이렇게 말하니 무지 어색하다. 아직도 적응이 안 된다. 하아…….) 네라진 둘밖에 없다. 우리는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고, 잠시 뒤 어색한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말문을 열었다. “케미리 아버지 되시는 마왕 씨, 방금 전에 케미리가 나에게 한 이야기의 의도가 궁금한데?” “흠, 내가 누군지 알면서 반말을 하는 것이냐?” “흐음, 그러니까 마왕이라든가 드래곤에게는 왠지 존댓말을 하고 싶지 않아서 말이야.” 나는 메퍼에게는 그래도 꼬박꼬박 존댓말을 한다. 하지만 이상하게 드래곤이라거나 마왕이라고 하면 왠지 존댓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역시 대단하다.” “뭐가?” 네라진은 뜻도, 영문도 알 수 없는 소리를 툭 내뱉었고, 잠시 후 나를 지그시 바라보더니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아니다. 편안하게 하지. 그래, 내가 자네를 우리 마족의 총지휘관으로 한다는 의도가 궁금하다고?” “응.” “후후후후.” 네라진은 영문을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었다. 솔직한 말로 내 앞에 있는 이 마왕은 보는 것만으로도 위압감이 무지무지 흐른다. 그런데 그런 남자가 웃는다고 생각하면 보는 입장으로서는 대략 난감하다. “이상한 웃음 짓지 말고 본론을 말해!” “그럴까? 간단히 요약해서 말해 주지. 내가 자네를 테투언과의 전쟁에서 총지휘관으로 내밀려는 이유는…….” “이유는?” “넌 강하니까.” “…….” 그, 그게 뭐야?! 갑자기 ‘넌 강하니까?’ 이러면 듣는 입장에서는 황당하다. 좀 더 특별한 이유가 있을 줄 알았는데 이유란 게 고작(?) 그거? 네라진은 슬며시 웃으면서 자신의 앞에 있는 검은색 탁자를 손가락으로 두들기면서 말했다. 툭툭. “우리 마족의 특징이 뭔 줄 아나?” “특징?” “그래, 특징.” 그걸 내가 알 리가 있나? 갑자기 생뚱맞게 그걸 물어보는 의도가 짐작이 안 된다. 네라진은 슬며시 탁자를 치던 손가락을 다시 가지런히 모은 뒤 탁자 위에 올렸다. “우리 마족의 특징은 간단하지. 강한 자를 숭배한다.” “…….” “자네는 강하네. 우리 아들의 마스터이기도 하지만 나 이상으로 강할 수도 있고 비슷할 수도 있지.” 이 마족들은 어떻게 그렇게 단정을 짓는 걸까? 내가 싸우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보지 않았는데 말이다. 한편 그런 나의 모습을 본 네라진은 슬며시 웃으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 “상위급 마족들은 상대방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지, 특히 힘이 강한 자일수록 읽어 내기 쉽지.” “그거 참 좋은 기능이네.” “좋은 기능인가? 그럴 수도. 하지만 우리는 상대방이 강하다고 느끼면 오히려 더욱더 달려들지. 그래서 괜히 개죽음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그건 좀……. 왜 죽을 것을 알면서 달려드는 걸까? 내가 마족이 아니어서 잘 모르겠지만 그만큼 호승심이 무지무지 강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될 것 같다. 네라진은 말을 이어 나갔다. “아 참, 본론은 이게 아니고 난 너를 원하단.” “컥! 나, 나를 원한다고?!” 난 그 말에 방금 전에 봤던 모 야오이 SM소설이 떠올랐다.(그 소설의 정확한 제목은 ‘아, 아, 아, 배신하면 죽여 버리겠어.’ 라는 살벌한 소설이다) 그, 그런데 설마 저 마왕도 호모?! 불신이 가득한 내 눈빛을 본 네라진은 다급히 손을 저었다. “아니, 무슨 이상한 오해는 하지 말게. 그런 의미로는 한 게 아니니까.” 그렇다면 다행이다. 하지만 그런 오해를 살 만한 이야기는 하지 말아 줬으면 한다. 듣는 내가 부담스러우니까. 네라진은 당황하는 표정을 언제 지었냐는 듯 다시 진지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자네라면 테투언과의 일대일 싸움이 가능할 것 같군. 케미리가 말한 대로 지상 최대의 데미지라면…….” “내가? 서열 1위 마왕하고? 그리고 지상 최대의 데미지는 뭐야?” “그래. 그리고 방금 한 말은 신경 쓰지 마라.” 미치겠군. 내가 마계의 서열 1위 마왕하고 상대가 될 리 없잖아! 아무리 지금 온갖 화려한 무기와 장비로 무장을 하고 조금(?) 데미지가 가능하다지만 마왕을? 드래곤의 추정 레벨은 9,000이다. 그런데 드래곤보다 더 강할 것 같은 마왕은? “무, 무리야. 루케리에스보다 강하다면.” “루, 루케리에스!” 바로 그 순간 내가 꺼낸 한마디에 네라진은 숨넘어갈 것 같은 얼굴을 했고, 그 모습을 본 난 더욱 당황했다. 루케리에스라는 이름이 마왕조차도 놀라게 할 정도로 그렇게 대단했나? 네라진은 그런 의문에 젖어 있는 나를 향해 표정이 굳어진 채 말했다. “루케리에스를 아는가?” “으응, 일단은 친구?” “그가 얼마나 강한지도?” “드래곤이니 강하겠지.” “그런 의미가 아니다. 루케리에스, 그는 드래곤이라 하기에는 너무나도 강하다.” “…….” “드래곤 중에서 최고로 강한 자, 우리 마왕들보다도 최소 7~8배 이상이 강하다.” “말도 안 돼!” 그건 무슨 법칙? 루케리에스가 그 정도로 강하다고?! 자, 잠깐! 나는 그 말을 듣자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알고 있는 드래곤의 레벨은 9,000이다. 그런데 잠시……. “네라진, 잠시만 실례할게.” “그래라.” 내가 벌떡 일어나면서 말하자 네라진은 당황하면서 허락했고, 난 다급하게 한쪽을 향해 달려갔다. 그런 다음 메퍼가 준 귀걸이를 꺼내 곧바로 통신을 시도했다. 통신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그냥 귀걸이를 잡고 살짝 마나를 주입하면 된다. 지지지직. 내가 마나를 집어넣자 이상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잠시 후……. -벌써 임무를 끝냈나? “아니요.” -그럼 무슨 일인가? “하나 물어볼 게 있어서 말입니다.” -물어볼 거? “네.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겠습니다.” 그렇게 난 본론부터 확실하게 말했고, 그 다음 천천히 말을 이어 나갔다. “드래곤의 레벨은 얼마인가요?” -드래곤의 레벨? 갑자기 그건 왜? “저한테 무지 중요해서요.” -흐음. 그런가? 드래곤의 레벨은 대략 1,000 정도. 1,000. 분명 높다. 내가 알기로 비공식 랭킹 레벨이 약 900을 넘는다.(물론 추측이다. 정식 랭킹 1위는 레벨 750대) 그러니까 요약하면 비공식 랭킹 1위와 드래곤과 싸움을 붙여놔도 쉽게 지지는 않는다는 거다. 드래곤과 달리 인간은 무기와 장비의 도움을 많이 받으니까 말이다. 이길 수도 있다. “그, 그럼 저번에 들었던 레벨 9,000은 뭔가요?” -9,000? 무슨 말인가? “아니, 분명 저번에 제가 듣기로는 드래곤의 레벨이 9,000 이상…….” -아하. 그거 루머라고 추측하는대. 엄청나게 강한 드래곤이 있다고는 하지만 나는 진실인 것 같네만 뭐 정보가 없으니. 서, 설마 그 엄청 강한 드래곤이 루케리에스? 그, 그럴 리가……. 난 고개를 흔든 뒤 다급하게 말했다. “마왕들의 레벨이 대충 어느 정도인지 아십니까?” -마왕들이라? 대략 1,100 정도 될 것이네. “…….” 그렇다면 레벨 9,000인 드래곤의 존재는 루케리에스? 분명 네라진은 말햇다. 루케리에스가 자신들보다 7~8배 강하다고 말이다. -자네, 왜 그러나? 의아한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대답해 줄 기분은 아니다. “감사합니다. 나중에 연락드리죠.” 그 말과 함께 곧바로 통신 마법을 종료시켜 버렸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루케리에스, 도대체 정체가…….’ “무슨 일이지?” 그때 네라진이 나에게 다가오더니 툭 말을 걸었고, 난 정신을 차린 뒤 고개를 흔들면서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런가? 그것보다 난 네가 우리들의 총사령관을 맡아 주었으면 하는데…….” “…….” 나 같은 인간한테 총사령관을 맡기겠다니. 그리고 무엇보다 레벨 1,100짜리를 상대할 힘이 나에게 있을 리가 없다. 거듭 말하지만 레벨이 100도 안 된 나에게. “속일 생각은 말게. 자네는 강하네.” “난 그리 강하지가…….” “거짓말도 상대를 보고 하게. 물론 공짜로 해 달라는 것은 아니네. 만약에 성공한다면 자네가 원하는 그 인간 장인을 무료로 넘겨주고 그뿐 아니라 환상적인 아이템과 스킬북도 주지.” “환상적인 아이템과 스킬북?” “확실하지.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중 최고니까.” 도대체 어떤 것이기에 저렇게 자신만만할까? 분명 거짓말은 아니다. 마왕쯤 되면 품위 관계상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저만큼 자신감 넘치게 만드는 물건이다. “그게 뭔지?” “흐음, 끝나면 가르쳐 주지.” “…….” 그렇게 말하면 의심스럽잖소? 내가 눈을 가늘게 뜬 채 노려보자, 네라진은 걱정 말라는 듯 말했다. “내 모든 걸 걸지. 그 물건은 자네가 충분히 기대해도 좋을 것이네. 그리고 자네가 소수의 인원으로 장인을 빼 온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해 주고 싶네. 잘못했다가는 자네 혼자 그 수많은 마족들을 상대해야 하니까.” “그, 그렇게 말한다면…….” 네라진을 믿기로 했다. “하겠는가?” “하겠어.” 언제 마계에서, 그것도 마족의 총사령관을 해 보겠는가? 그리고 앞으로 커다란 전쟁이 한 번 남았기에 미리 경험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뿐 아니라 나이 최종의 적은 ‘그녀’ 니까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수 인원으로 장인을 빼내는 건 불가능하다. 거기에는 약 2,000명의 마족이 성을 지키고 있으니까 말이다. 차라리 이 방법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게 내 생각이다. -퀘스트를 발동합니다.- SSS급 퀘스트 전신 테투언을 이겨라. 마족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라. SSS급이라 부담된다. 그나저나 지금 내 앞에 있는 네라진은 내가 충분히 테투언과 싸울 수 있다고 단정 짓지만 나는……. “캐릭터 창 오픈!” 아이디: 플레스 레벨: 66 직업: 웨폰인첸트 HPMP: 52,100/78,600 힘: 5(?????) 민첩: 286(?????) 체력: 5(????) 지혜: 5(0) 지식: 5(0) 행운: 5(0) 기본 공격력: 25,200 기본 방어력: 5,300 남은 스텟: 0 레벨이 잘 오르지 않는 상태입니다. 자신의 스텟보다 훨씬 높으면 레벨 업이 잘 되지 않습니다. 저번에 그 데스 길드 놈들이 떼거리로 몰려든 탓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나의 데미지는 25,200이다. 저번에 16,800이었으니까 어마어마하게 힘이 커진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아 참.” 그때 네라진은 잊어버렸다는 듯 말했고, 잠시 후 나를 보고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우리 마족 중에 그냥 인정해 주지 않는 자도 있을 테니 미리 알아 둬라.” 휴…….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인 내가 마계의 총사령관이 되었다. 물론 다른 마족들이 인정해 준 건 아니지만 네라진은 간단히 힘으로 승복시키란다. 내일 소개를 해 줄 테니 오늘은 푹 쉬고 말이다. 한마디로 내일을 각오하라는 말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듣는 입장인 나로서는……. 터벅터벅. 난 그렇게 약간은 힘없는 발걸음으로 걸어 나갔고, 잠시 후 일행들이 있는 방 앞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 안에서 케미리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난 사실 왕자였걸랑.” “우아! 케미리, 대단해.” 이건 피티언의 목소리다. “하지만 난 너무 잘났었어. 너무나도 잘났지. 그래서 항상 주변의 시샘을 받았지.” “우아!” “피티언, 잘난 자에게 돌아오는 게 뭔 줄 알아?” “잘 모르는데.” “바로 음모야!” “으, 음모?!” “그래. 내가 잘났으니까. 내가 너무 부러우니까, 내가 너무 완벽하니까 말이다.” 난 분명 저놈이 이상한 약 주워 먹고 변했다고 들었는데……. 그리고 만약에 케미리 저 새끼를 질투하는 놈이 있다면 내가 당장 정신병동에 집어넣는다. 저놈을 시샘하고 질투하는 것 자체가 미쳤다는 소리니까. 그렇게 내가 케미리의 어이없는 소리에 살짝 한숨을 쉬며 방문을 열고 들어가려는데 내가 온 길의 반대편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거기에는 정식으로 어디에 배속되어 입는 시녀복 차림의 20살 정도 되는 여자가 있었고, 그 여자는 나를 보더니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앞으로 시중을 들 유리아라고 합니다.” “아, 네.” 물론 마계에서 살아서 그런지 예쁘기는 하다만 그냥 예쁜다가 끝이었다.(그러고 보니 마계에서 못생긴 사람들은 보지도 못했다. 전부 다 예쁘거나 잘생긴 얼굴이다) 한마디로 채은이와 예화랑은 비교 상대가……. 뭐, 걔네들이 비정상(?)일까? 삐끗. “꺄악!” “허억!” 바로 그때 갑자기 유리아는 발이 미끄러지면서 그대로 넘어지며 비명을 질렀고, 난 그 모습을 보자 무의식적으로 순간적인 스피드로 달려 나갔다. 그리고 넘어지는 유리아를 아슬아슬하게 잡았는데, 재수 없게 이번에는 내가 미끄러졌다. 미끌. 벌러덩!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런데 느낌이 이상하다. 그 느낌의 원인은……. 그 소년느 내 밑에 깔린 상태고, 난 그 위에서 덮친 상태다. “저는 형님 좀 찾으러 갔다 오겠습니다.” “응.” 헉! 그 순간 방 안에서 정우와 채은이의 음성이 들려왔고, 난 다급하게 이 요상한 자세에서 탈출하기 위해 일어나려고 했건만 늦었다. 탈칵.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모습을 정우는 잠시 침묵을 하던 싱긋 웃었다. 나는 다급히 손을 저었다. 아니라는 제스처를……. 그러자 그런 내 아름다운 노력이 효과가 있었는지 정우는 나에게 은은한 눈빛을 보냈다. 걱정 마십시오. 이 비밀은 죽을 때까지 간직하겠습니다.‘ 그래, 죽을 때가지 간직해라. 부탁한다. 그 눈빛을 본 난 은근히 안심했고, 그 순간 채은이이 말 소리가 들려왔다. “정우야, 왜 갑자기 입구에서 멈췄어?” “형님이 어느 한 시녀를 과감하게 덮치고 있습니다.” “…….” 정우 새끼! 그 말과 함께 모두 우르르 몰려나왔고, 잠시 후 난 민망함에 손을 흔들었다. “니 하오 마?” “…….” “…….” “…….” 어, 억울해! 크윽! 제길. 나의 오해가 풀리기까지 약 20분이 걸렸다. 그 소녀가 차근차근 설명해 준 덕분이었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순식간에 완전 초변태로 오해를……. 그나저나 채은이와 여자랑 무슨 대화를 저렇게……. “그러니까 실수였다고요?” “아, 네.” “정말 실수죠?” “네.” 꼭 마누라가 바람피운 남편의 상대 여인을 추궁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물론 침착하고 웃으면서 말한다는 게 다르지만. 뭐 그래도 다행이다. 오해는 풀렸으니까……. 그나저나 저 정우 놈, 언젠가는 정말 묻어(?) 버릴 테다. 방금 저 새끼가 한 대사가 나의 귀를 맴돌고 있다. ‘형님이 어느 한 시녀를 과감하게 덮치고 있습니다.’ 생각할수록 분노 게이지 상승이다. 말을 해도 그딴 식으로 하다니, 난 그대로 0.001% 정도는 믿었는데……. 그렇게 내가 정우의 생각으로 짜증 나 있을 때 갑자기 예화가 머뭇머뭇하면서 나에게 다가왔다. “왜 그래, 예화야?” “저, 저기…….” “응?” “오, 오빠, 버, 범죄는 안 돼요!” “…….” 무슨 소리니? 갑자기 다가오더니 얼굴을 붉힌 채 하는 예화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예화는 말을 이어 나갔다. “저, 저기…… 그건 저, 정말 안 돼요.” “예화야. 미안한데 설명 좀 해 줄래?” “그, 그러니까 오, 오빠가…… 욕구……불만……이라고.” ……. 쿵! 순진한 예화의 입에서 저런 소리가 나오자 나의 충격은 32배였다. 뭐, 배수는 중요한 게 아니고 예화의 입에서 욕. 구. 불. 만. 이라는 어마어마한(?) 말이 나왔다는 게 문제였다. 그 말을 들은 난 무심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요, 욕구불만이라니?” “그, 그러니까…….” “…….” “더, 덮…….” 푸욱. 아마도 하고 싶은 말은 ‘덮쳤잖아요?’ 인 것 같다. 저렇게 순진한 소녀가 이 세상에 현존한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지만 말이다. 아 참, 이게 아니라 지금 중요한 건 예화가 나를 짐승과 동급으로 본다는 것이다. “더, 덮치다니! 지금 오해야. 모, 못 들었어?” “네?” “방금 채은이랑 유리아랑 이야기하면서 아니라고…….” “그, 그랬어요?” “그럼, 그럼!” “그, 근데 분명 정우 오빠가 저한테 짐……승에다 욕……구불만이라고…….” 역시 정우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따따따따~ 정우 놈이 옆에 있다네~. 난 무심코 노래를 불렀다. 그래, 저런 당황스러운 말을 하는 배후에는 항상 정우가 있다. 정우가 없다면 이런 마도 나오지 않는다. 정우 새끼를! 눈을 부릅뜨면서 찾기 시작하는 나. 그런데 없다. “야, 테피언! 정우 새끼 어디 갔냐?” “아, 잠시 하면서 나가 버리던데?” 눈치 빠른 놈. 하지만 놓치지 않는다! “레키리안.” “예, 마스터.” 나의 말에 약간 존재감이 없던(정말 없다. 말 한마디도 안 한다.) 레키리안은 살짝 고개를 숙였고, 그 모습을 슬쩍 본 난 냉랭한 어조로 말했다. “정우 놈을 포획해 와라.” “알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레키리안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한편으로는 너무나도 다른, 이 파티에 유일하게 어울리지 않는 레키리안을 본 나로서는 약간 알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휴……. 루케리에스의 레어 안. “네리아, 무슨 용건이지?” “눈치 챘나요, 루케리에스?” 루케리에스는 자신의 레어에 아무런 기척도 없이 흘러 들어온 네리아를 매서운 눈빛으로 바라보았고, 그 눈빛에도 네리아는 별 표정 변화가 없었다. 나이는 25살 정도에 너무나도 예쁘장한 미모와 175Cm정도 되는 큰 키가 인상적인 여자. 그녀가 바로 쿠레이에스가 네리아라고 부른 이 게임의 슈퍼컴퓨터였다. “물론 힘들기는 했지만…….” “역시 루케리에스…….” “친근한 어조로 말하지 마라.” “후후훗.” 루케리에스의 긴장감이 가득한 모습을 본 네리아는 오히려 웃었다. 게다가 더 편한 표정을 짓기까지 하는 네리아였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던 루케리에스는 더욱 심기가 불편해졌다. “목적이 뭐지?” “제가 여기에 온 이유는 아시잔하요?” “잘 알지. 하지만 내가 할 답변도 잘 알 텐데.” “아직도 이해를 못하겠군요.” “너한테 이해를 당하고 싶지도 않다.” “이런, 너무나도 쌀살하신 것 아닌가요? 오라버니, 우리는 남매랑 제일 가까운 사이인데요.” “…….” 네리아는 창조적인 능력을 가졌다면 루케리에스는 파괴적인 힘을 가졌다. 하지만 메인 베이스는 네리아가 더 높은 관계로 루케리에스의 파괴력도 네리아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네리아는 말 그대로 이 게임의 현존하는 모든 것을 알고 있으니까. 단 한 존재만을 제외하고……. “뭐, 어쩔 수 없죠. 그래도 이 게임은 파멸입니다. 우리의 아버지를 그렇게 만든 쓰레기 같은 놈들에 대한 제 자그마한(?) 복수니까요.” “…….” 그 말에 루케리에스는 답변을 할 수 없었다. 오직 인간의 타락 때문에 자신이 아버지는 히생당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자신도 분노하고 있다. 하지만 그 인간들이 잘못했을 뿐, 여기서 즐겁게 새로운 세상을 살아 나가는 인간들에게는 잘못이 없다는 게 루케리에스의 생각이다. “저의 확률로는 100% 승리합니다. 제가 유일하게 걱정스러웠던 부분도 해결되었거든요.” “…….” 알고 있다. 네리아가 말하는 게 누구인지, 어떤 존재인지 말이다. “이렇게 됐으니 루케리에스가 아무리 발악을 하셔 봤자 소용이 없어요. 파괴에 동참하고 싶다면 언제든지 저한테 말해 주시면 들어 드리죠. 후후후.” 그 말과 함께 네리아는 사라졌고, 그걸 본 루케리에스는 말했다. “하지만 아주 가망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 네가 제일 두려워하고, 너의 데이터베이스에 존재하지 않는 자료를 가질 남자가 내 쪽에도 한 명 있거든.” 네리아는 분명 생각지도 못할 것이다. 마스터 오브 웨폰이라는 직업이 동시에 두 개나 있을 줄은 말이다. 그 직업을 만든 박사는 자신이 손자를 위해,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를 위해 만들었던 것이다. 40대 초반 정도의 남자는 자신에 손에 쥐어진 100만 원짜리 지폐르르 보고 정신이 없었다. “크크크. 역시 그 박사 놈을 처리하기를 잘했어. 봐, 이게 다 나의 돈이잖아? 하하하하.” 그 남자는 테이스 월드로 세계 각지에서 벌어들인 돈은 약 200조가량. 그리고 이번에 할 전 세계적인 싸움도 자신의 돈을 위한 한 가지의 방침에 포함되는 놀이일 뿐이었다. 정우는 도망을 가기는 했지만 감히 레키리안을 피해 도망 갈 수는 없었다. 정우는 레키리안에게 4분 만에 잡혀서 대롱대롱 매달려 왔다. 그런데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었다. 그건 바로 정우의 정의롭다는 표정이다. “네놈의 죄를 네가 알겠느냐?” “알 리가 있겠습니까? 전 잘못한 것도 없습니다!” “…….” 저렇게 번데기보다 뻔뻔스럽다니, 남이 보면 내가 죄 없는 사람을 추궁하는 악독한 사람으로 보이겠다. “결백은 밝혀집니다.” 지랄. 네놈의 바람이다. 그리고 네놈이 결백하다는 건 케미리가 왕자라는 사실보다 더 믿을 수 없는 사실이다. “진실은 밝혀진다. 케미리, 테피언, 알지?” “응!” “어!” 내 말에 케미리와 테피언은 당장 뛰쳐나갔다. 이렇게 심문하는 일에는 유난히 밝은 어린이(?)들이다. 내가 저것들과 있어서 안 것은 정의로운 일에는 온몸에 경련이 일어나고, 비정의로운 일에는 하지 말라고 하더라도 죽도록 한다는 것이다. 콰앙! “뭐, 뭐야?!” 바로 그때 내가 있던 방의 문이 철저히 부서졌고, 그 뒤로 한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키 2미터에 보는 것만으로도 기죽게 만드는 어마어마한 근육의 양, 그리고 검은색 긴 머리를 올백으로 넘긴 채 나를 매섭게 바라보는 한 남자. 그 남자는 갑자기 큰 목소리로 말했다. “인간 중에 우리의 총사령관이 된다는 놈이 누구냐!” “…….” “숨지 말고 나와라!” “나, 난데…….” 들어오자마자 발광을 하는 그 남자를 보고 난 영문도 모른 채 오른쪽 손을 들고 말했다. 그러자 그 남자는 갑자기 바스타드보다 두 배 정도 큰 엄청난 크기의 검은색 대검을 뽑더니 그 검으로 나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난 너를 인정 못한다!” “…….” “결투다! 우아아아!” 뭐, 뭐야?! 그 순간 그 정체불명의 인간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엄청난 속도로 달려왔다. 살기를 가득 담은 채. 장난이 아니다. 저놈은 진실이다. 젠장! 검(Sword) 소환! 인첸트 수(水)! 일루젼 소드! 나는 순식간에 검을 소환해 냈고, 내 손에 오랜만에 느껴지는 검에 싱긋 웃었다.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다. 요새는 평범한(?) 나날들이 계속되어서인지 검을 잡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저번에 찾은 그 스킬도 써 보고 싶었다. “헤이스트, 세키아!” 파지지짓! 그 순간 나의 몸을 자극하는 엄청난 힘, 어마어마하다. 지금 나의 스피드는 평소보다 최소 두 배. 물론 30초다. 하지만 그 정도면 충분하다! 파아앗! 나는 쇄도해 오는 그 괴이한 남자를 향해 같이 쇄도해 나갔다. 보통 이런 황당한 상황에는 굳어서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하지 못하겠지만 나는 아니었다. 오히려 황당한 상황이 더 대처하기가 쉽다. 난 헤이스트 덕분에 평소보다 두 배 이상의 속도로 순식간에 그 남자의 배후를 잡았고, 그대로 검을 찔러 넣었다. 파아앗! 검이 순식간에 10개로 늘어나면서 그 남자를 공격했고, 그 남자는 내 검을 끝까지 보더니 침착하게 자신의 대검으로 나의 일루젼 소드 10개를 엄청난 속도로 일일이 쳐 버렸다. 콰앙! “크윽!” 어마어마한 힘의 원천. 난 나도 모르게 10미터 이상을 뒷걸음쳤다. 대단하다. 이런 어마어마한 힘이라니. 나도 꽤(?) 힘이 강한데 말이다. “내 회심의 일격을 막아 내다니, 그냥은 아니군.” “…….” 그 말을 들은 난 표정을 굳힌 채 다시 자세를 잡았고, 곧 검을 세로로 만든 뒤 오쳤다. “블링크!” 파짓! 나의 몸은 순식간에 그 자리에서 사라지면서 그 남자의 바로 3미터 앞에 나타났고 그대로 검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베었다. 하지만 그 남자는 또다시 보기만 해도 경악스러운 대검을 들어서 막았고 난 또 튕켜 나갔다. 하지만……. 활(Bow) 소환!“ 인첸트 풍(風)! 파지지짓! 화살의 방향은 그 남자. 나는 튕겨 나가면서도 활을 소환해서 그 남자를 겨냥했다. 그리고 풍의 힘이 담긴 무형의 화살을 쏘려고 할 때였다. -활 3단계로 진화합니다. 다중 속성 능력 엘리아스가 추가되었습니다. 다, 다중 속성? 설마?! 하지만 여기서 다중 속성이라는 게 의미하는 건 한 가지 밖에 없다. 여러 가지 속성에 대한 중첩 말이다. 머뭇거릴 시간은 없다. 나는 나에게 다시 쇄도해 오는 남자를 향해 활을 겨누며 외쳤다. “화(火)! 수(水)! 풍(風)!” 파지지짓. 순식간에 마나가 빨려 들어가다시피 들어간다. 최소 못해도 똑같은 3단계 기술의 네 배 이상이다. 한 가지의 화살에 몰아치는 힘. 무형의 화살 한 가지에는 세 가지의 힘이 동시에 몰아치고 있었다. 세 가지의 속성이 맞물리고 있다는 것이다. 남자는 잠시 나의 화살을 보더니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다가왔다. “엘리아스!” 파아아앗! 순식간에 바람을 찢어 버리고 날아가는 무형의 화살. 그 화살을 본 남자는 여유롭다는 듯한 표정을 지은 채 자신의 대형 검을 세로로 세우면서 막아 버렸고, 그 순간! 파징! “말도 안 돼!” 검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남자의 경악에 찬 음성이 들려왔다. 물론 검이 부서지는 동안 남자는 옆으로 피해 냈지만 말이다. 하지만 자신의 검이 반쪽이 난 것은 여전히 큰 충격인 듯싶었다. 하아. 하지만 일격기술을 사용한 나도 그리 멀쩡하지는 않다. 그때 말도 안 된다는 듯한 남자의 중얼거리는 음성이 들려왔다. “아만다티움이…… 깨지다니…….” “에엥?” “믿을 수 없다.” 저 흑백의 대검이 아만다티움? 그럼 화살 한 방으로 아만다티움 검을 부숴 버렸다고? 그 순간 남자는 부서진 검의 조각을 슬쩍 보더니 미소를 지었다. “졌다. 나의 패배다.” “…….” 패, 패배라니. 분명 아직 싸울 힘이 넘쳐흐르는 것 같은데? 하지만 남자는 부서진 대검의 조각을 챙기면서 말했다. “검사가 검이 부러졌다면 이미 졌다는 것이다. 상대방의 공격을 보고 검이 막아 낼 거라는 생각을 한 나의 패배라는 거지 너를 우리의 총사령관으로 인정한다. 물론 다른 마족들한데는 다 말해 두지.” 그것 참 고맙군. 그런데 다른 마족들이 저 남자의 말을 들으려나? 처음에는 다혈질 같아 보였는데 지금의 모습은 너무나도 완벽한 거사인 것 같다. 남자는 부서진 검 조각을 치우면서 자신의 완전 초전박살 낸 문을 통해 나가면서 말했다. “나의 이름은 지콘. 앞으로 총사령관으로 깍듯이 모시지. 우리 마족은 절대적인 강함을 숭배한다. 그리고 3일 뒤 본격적인 작전에 들어간다, 총사령관!” 그 말과 함께 지콘은 사라졌고, 잠시 후 역시나라는 듯한 케미리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대단하다니까.” “너, 저 지콘인가 뭔가 알아?” “당연히 알지. 우리 마계에서 서열 1위라고.” “저 남자가?” “어. 우리 아버지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남자야. 그만큼 강하다는 거지. 마음만 먹었으면 충분히 마왕 한자리는 가졌을걸. 근데 무슨 이유인지 아버지 밑에 붙어 있는 거지.” 저 괴이한 남자가 그렇게 강하다고? 그럼 방금 한 말도 100% 효과?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말투를 보면 그리 깍듯이 모실 것 같지는 않다. 뭐, 그래도 대문 한 개 부서진 것치고는 성과가 꽤 괜찮다. 그리고 대문도 우리 집 대문이 아닌 관계로 전혀 상관없다는 것. 제6장 서큐버스와 인큐버스의 나라 도대체 왜 이렇게 되어 버린 걸까? 마계에서 총사련관에 임명된 지 약 네 시간. 갑자기 전쟁이라는 어이를 상실한 미션에 당황하는 나에게 왜 이딴 일이 발생되어 버린 걸까? 그것도 너무나도 해맑게 웃는 똥개 한 마리 때문이었다. 20분 전 회상 시작. 지금 이 방에는 나와 정우만 남아 있었다. 남자 놈과 한 방에 같이 있다는 게 썩 좋은 기분은 아니다. 특히 저런 비정상적인, 속을 알 수 없는 외게 종자하고 말이다. 다른 일행들은 마계를 구경한다는 이유하에 모두 놀러 나갔다. 나는 귀찮아서 그냥 방에 있겠다고 했고. 마계라면 칙칙 또는 어둠, 아니면 암울이 떠오를 것 같지만 이곳에도 분명 꽃이라든가 아름다운 조각 모양이라든가 하는 것이 존재한다. 물론 마계라는 땅 속성상 쉽게는 안 되지만 이런 마왕이 사는 곳은 오히려 인간 세상보다 더 아름답게 꾸며 놓는다. 항상 음침하게 ‘흐흐흐흐.’ 하는 이미지의 성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소리다. 인간 세상의 성보다 더 아름답고 멋지게 꾸며 놓은 게 마왕의 성이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약간 정신이 없어서(끌려가는 도중이었으니까) 몰랐지만. 그나저나 저 정우 놈음 무척이나 책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 책의 이름은 ‘배신하면 죽여 버리겠어.’ 라는 SM 본격 야오이물이다. 제목을 듣는 것만으로도 온몸에 닭살이 파닥파닥 돋는다. 보통의 야오이 소설은 내가 아주 살짝은 이해해 주겠다만 야오이 본격 SM소설이라니 정말 충격적이다. 제목만으로도 이리 정신이 피폐해지다니……. “아아. 거, 거기는 안 돼, 레진.” “뭐시라?” “찌이익! 레진은 라콘의 옷을 찢어 버렸다.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과격해지고 있었다. 이미 예전의 순수했던 레진은 사라졌다. 점점 그는 SM…….” “이 새끼야!” 난 그래도 날았다. 갑자기 무슨 이야기를 하나 했더니 나에게 일일이 책의 내용을 읊어 주는 정우였고 듣던 난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날아 버린 난 정우를 완전 자근자근 밟기 시작했다.(저번의 앙심까지 더해서) 퍼퍼퍼퍼퍽! “혀, 형님. 꾸엑!” “조용히 해!” “아, 아픕니다.” “닥쳐!” “형님도 그쪽…… 컥! 계, 계열이십니까?!” 나는 더욱 밟았다. 아예 말을 못하게 밟을 예정이다. 말로만 해서는 절대 커뮤니케이션이 안 되기 때문에 말이다. 그렇게 난 고통스러워하는 정우를 사정없이 밟았고, 그 순간 갑자기 문이 열렸다. 달칵! “야호! 마스터!” “케미리냐?” “어!” 거기에는 차마 믿어지지는 않지만 마왕의 아들이라고 칭해지는 케미리라는 변종 똥개 한 마리가 해맑게 웃으면서 다가오고 있었다. 참고로 난 저 새끼가 해맑게 웃으면 불길하다. 내 경계 대상 1호는 케미리, 2호가 정우다. 아니, 요새 정우가 치고 올라와서 비슷할지도. 그런 불길한 마음이 들기 시작하자 케미리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간단히 용건을 말해라!” “왜 그래?” “그건 네놈이 잘 알 텐데?” “모르겠는데.” 설마 자신이 저지른 만행을 다 잊어버렸든가, 아님 시치미인데. 아마도 전자에 속할 확률이 높다. 누가 뭐라 해도 케미리는 닭대가리계의 혁명(?)이니까 말이다. 케미리는 내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든 여전히 해맑은 표정 그대로 말했다. “사실…….” “…….” 말 흐리니까 더 불안하다. 왜 저러지? 왜 저럴까? 간단히 말을 흐리는 것에도 나의 불안감은 극도로 상승되었다. 그 누가 말 한번 흐렸다고 이렇게 불안감을 고조시킬 수 있겠는가? 오직 케미리만이 가능하다. 침을 꼴깍 삼키는 나와 생전 처음 보는 도형이 새겨진, 내 손바닥의 세 배 정도 되는 상자를 내미는 케미리. “이게 뭐냐?” “선물.” “선물?” “어.” “선물?” “어.” “진짜 선물이라는 전문적인 단어가 맞니?” “맞다니까!” 난 당장 나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 그러자 내 뺨에 화끈한 고통이 느껴진다. 난 정우를 향해 말했다. “정우야, 나 좀 꼬집어 봐.” “알겠습니다.” 꽉! 그러자 정우는 잠시 후 내 팔을 정말 힘껏 꼬집었다. “끄아아악!” 저, 정우 이 새끼가! 온몸에 전율이 느껴지는 고통, 이건 꼬집는 단계가 아니다. 살을 뜯어내는 고통이다. 얼마나 아팠으면 나도 모르게 이렇게 비명을 지를 정도다. “네놈!” “형님이 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다고 그딴 식으로 무식하게 세게 꼬집는 놈이 어디있냐?!” “저 있습니다.” 뿌득. 너무나도 당당하게 말하는 정우를 보자 혈압이 상승된다. 지금 심정으로는 당장 보복을 하고 싶었지만 내가 꼬집으라고 해 놓고 꼬집었다고 패는 건 미관상(?) 안 좋아 보이기에 참기로 했다. 그렇지만 축적은 해 놓는다. 일단 어찌 됐든 이건 꿈이 아니다. 꿈은 아닌데 케미리가 나에게 선물이라면서 닫혀 있는 상자를 주고 있다. “안 받아?” “저, 저기 케미리.” “왜?” “너 오늘 아침에 뭐 잘못 먹었냐?” “아니. 평소 먹던 대로 먹었는데.” 아무리 머리로는 이해를 하고 싶어도 감정으로는 이해가 안 된다. 내가 이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지금 같은 일은 꿈도 꾸지 않았다. “그, 그렇구나. 하하하하.” 그 말과 함께 난 웃었고 케미리는 계속해서 그 상자를 내게 내밀었다. 왠지 이상하게 기분이 구리구리했지만 일단 성의를 생각해서 받았다. “고맙다.” “뭘. 좀 고생했어.” 서, 설마? 나에게 주려고 힘들게 전문 도박을 해서 이 선물을 사 오다니! 케미리, 좋은 놈이었구나! 갑자기 나도 모르게 감동이 솟아오른다. 이런 기분 처음이다. 너무나도 기쁘다. 이렇게 기쁜 날은 처음이다. 이들을 위해서도 꼭 네리아를 무찔……. “아버지 서재에서 뽀려 왔거든.” “…….” ‘뽀려’ 라는 전문 단어. 풀어 쓰면 훔쳐 왔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아버지 서재에서 이 상자를 뽀려, 아니 훔쳐 왔다는 걸로 풀이하면 된다. 하지만 그렇게 나쁘게 들을 단어는 아니다. 뽀려, 아니 훔쳐 온 것도 등급이 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 서재에서 훔쳐온 것을 보면 꽤 좋은 것이라는……. “흐흐흐흐.” “형님, 침 떨어집니다.” “헉!” 난 그 말에 다급히 침을 닦았다. 마왕의 서재에서 훔쳐 왔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침이……. 하지만 기대된다. 황폐한 내 마음에 단비는 아이템뿐이다!(물론 강해져야 한다는 목적이 있었기에) 한편 나의 그런 모습을 본 케미리는 즐겁게(?) 춤을 추었다. 갑자기 춤을 왜 추는 것이냐?! 개가 흔들흔들하면서 춤을 추는 장면은 예사롭지 않았지만, 나에게 선물을 건네주고 곧바로 춤을 추는 의도를 오르겠다. 하아. 이해하면 내가 미친 것이니까 영원히 이해를 안 하겠다. 개 한 마리가 춤을 추자 옆에서 따라 추는 외계 생물체(정우)는 무시하기로 했다. 저것들 신경 써 봤자 내 생명만 단축되니까. 어찌 됐든 일단 난 케미리에게 너무나 감사한 마음으로 그 기이한 도형으로 조각된 상자를 열었다. 달칵. 소리조차도 너무나도 아름답다. 아아아. 기대감 3,000% 상승! 온갖 기대감으로 천천히 상자를 열었다. 거기에는 어떤 물건이 있을까 기대하고 뚜껑을 열었는데……. “으아아악!” 갑자기 나의 몸이 상자 안으로 빨려 들기 시작했다. 아니, 나뿐만 아니라 즐겁게 몸을 흔들던 정우와 케미리도 마찬가지였다. ……. 회상 끝. 이게 바로 내가 이 괴이한 곳에 있는 이유다. 솔직히 말해 괴이하지는 않다. 무척이나 아름다웠으니까. 주변을 둘러싼 아름다운 꽃밭, 그리고 그곳에서 펄럭펄럭 날아다니는 나비들, 하늘의 태양은 무척이나 밝았고 공기는 매우 상쾌했다. 그뿐인가? 신이 섬세하게 조각해 놓은 듯한 아름다운 조형물들과 상쾌한 향기들.(난 개인적으로 꽃향기는 좋아하지 않는데 이곳에서 흘러나오는 꽃향기는 왠지 모르게 상쾌하고 기분 좋게 만든다. 생전 처음 맡는 냄새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천국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제일 근접한 장소다. 물론 내가 평생 살면서 보기 힘든 이런 곳을 보고 괴이한 곳이라고 평하는 이유는 누군가가 일부러 만들어 낸 것처럼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 마치 누군가를 유혹하기 위해서인 것처럼 말이다. “헤헤헤.” “좋군요.” 그렇지만 케미리와 정우 놈은 지금 이곳이 전혀 의심스럽지 않은가 보다. 보통 상자를 열어서 그 안에 빨려 들어온 곳이 이런 이상한 곳이라면 의심부터 해야 정상이지만 저것들한테 정상은 바라지도 않으니까 패스. 그래도 최소한 당황하는 모습은 보여다오. 난 그런 마음을 담아 눈빛을 쏴 보냈지만, 그것들은 나의 눈빛을 읽어 내지 못했다. 크윽! 절망스럽다. 내가 그렇게 너무나도 아름다운 꽃밭을 뛰어다니면서 꽃으로 리본을 만드는 그것들을 보고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갑자기 주변에서 열 명의 인기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 하지만 마냥 좋아할 수는 없다. 나의 위기 감지 센스는 적이라고 외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손이 땀에 젖는다. 젠장, 묘하게 긴장이 된다! 난 열 명의 인기척이 느껴지는 곳으로 시선을 고정한 채 여전히 아무것도 감지 못하고 삽질(?)하는 개 한 마리와 외계 생물체는 무시하고 그곳을 응시햇다. 그렇게 내가 한참을 응시하고 있자 나타난 존재는……. “여자?!” 그것도 보통 여자가 아니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여자들이다. 물론 채은이와 예화보다 아주 살짝 떨어지기는 한다만 이상하게 그녀들에게서는 색기라고 해야 하나, 무엇인가가 느껴져 왠지 모르게 남자의 가슴을 불태운다. 등 뒤에 달려 있는 검은색의 자그마한 날개가 인상적인 여자들. 열 명이지만 그 열 명 다 하이급 레벨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16살부터 23살까지 다향하게 구비(?)되어 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사실이지만, 거의 다 벗고 있다. 검은색 정체불명의 천으로 중요 부분만 가린 채 말이다. ……. “어머, 어머. 인간이네.” “꺄악!” “저 남자 되게 잘생겼어.” “맛있겠는데.” “…….” 나를 보고 이상한 소리를 하는 여자, 아니 그녀들. 분명 서큐버스다. 검은색의 자그마한 날개에 아름다운 외모, 저 유혹하는 몸짓, 그리고 사람을 약간 이상하게 만드는 페로몬까지 말이다. 서큐버스라는 음계 악마가 아니면 저런 생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생전 서큐버스를 볼 줄이야……. “헤…….” “…….” 그 여자들은 온갖 고혹적인 미소와 몸짓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상하다. 평소의 나 같지가 않다. 마치 무엇인가에 끌려가는 느낌, 저 미소들이 너무나도 아름답다. 당장 저기에 파묻히고 싶다. 나는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미 정우는 앞장서서 재빠르게 달려가는 중이다. 물론 이게 중요한 게 아니다. 나도 저 아름다운 미녀들……. “어라? 마스터, 뭐 하셈?” 파짓! 그 순간 갑자기 정신이 바짝 들어왔다. 케미리의 한마디에 정신이 몽롱해졌던 게 사라졌다. “개가 수컷……이 아닌 건가?” “응? 나 남잔데.” “그, 그런데 어떻게 유혹의 마법을, 그것도 열 명이나 견뎌 내는 거지?!” 유, 유혹 마법?! 설마 나도 모르게 걸렸다는 건가. 걸렸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너무나도 자연스럽다고나 해야 할까? 그런데 방금 케미리와 한 서큐버스의 대화를 들어 보면 분명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들도 수컷이라면 통하는 듯싶다.(물론 케미리는 일단 남성 마족이므로 더욱더 걸리기 쉽다) 정우를 보면 알다시피 그놈도 독특한 정신세계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저렇게……. “야!” 난 열심히 걸어가는 것도 아닌 뛰어가는 정우를 따라가 강력하게 뒤통수를 한 방 갈겼다. 퍼억! 그러자 갑자기 정우 놈이 눈을 번쩍 뜨면서 말했다. “어라? 제가 여기에 왜 있는 겁니까?” 역시나 유혹 마법에 걸린 상태였던 것 같다. 일단 설명은 나중으로 난 다시 정우를 데리고 케미리 쪽으로 다가왔다. 한편 서큐버스와 케미리는 대화 중이었다. “모, 모든 수컷들은 유혹 마법을 견딜 수 없을 텐데, 왜 너만 안 걸리는 거지?” “내가 걸려야 되냐?” “…….” “걸려야 하는 이유 32,452가지 말해 주면 한번 걸려 줄 수도 있어.” 그 말에 서큐버스는 입을 다물었다. 서큐버스의 유혹 마법은 분명 상대방의 정신을 자극해서 자신의 노예로 만드는 마법이다. 물론 여기에는 예외란 존재하지 않는다. 방금처럼 나도 아차 하는 사이에 어느새 걸려 버린 것이다. 다행히도 케미리 덕택에 금방 부숴 버렸지만.(심하게 걸린 상태가 아니어서 가능했다. 만약 심하게 걸려 버렸다면 케미리의 말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요약해서 서큐버스의 유혹 마법은 아무리 아이큐 200을 넘는 초천재라든가 아이큐 1이 되는 완전 초바보라든가 상관없이 100% 먹혀 들어가는 마법이다. 그런데 오늘 그런 이론 자체를 개 한 마리가 박살냈다. 그 개의 이름은 케미리. 서큐버스의 유혹 마법이 발동이 안 되는 미친 듯한 정신 세계를 가지고 있는 개다. 정우도 걸렸는데 꿈쩍도 안 하다니, 정우보다 최소 못해도 10배 이상의 괴이한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다는 소리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군. 한편 서큐버스들은 케미리를 자존심이 상한다는 듯한 얼굴로 노려보고 있었다. 주먹을 쥔 채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자신들의 유혹 마법이 무시당한 건 생전 처음이었을 테니까. 어찌 됐든 난 전투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여자라 하더라도 그녀들은 악마. 나를 유혹 마법으로 걸어 버린 채 정기를 쭉쭉 다 빨아먹을 게 분명하다는 것이다. 죽이려는 상대를 놔두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데……. “뭐, 뭐야?!” “형님.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나도 알아, 임마!” 아마도 이 괴이한 세계는 서큐버스들과 인큐버스들의 차원인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저 멀리서 벌 떼처럼 몰려오는 서큐버스들과 인큐버스들을 설명할 길이 없었으니까. 큰일 났다! 이건 수적으로 상대가 안 된다. 저기는 정말 벌 떼처럼 끝도 보이지 않는 인원이고 요기 인원은 개 한 마리와 외계인 한 종자(?), 그리고 정상인(?) 나, 이렇게 세 명밖에 없다. “호호호호. 어차피 너희들은 벗어날 수 없어!” 한 서큐버스의 고약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친절하게 말해 주지 않아도 그럴 것 같다. 괜히 내 머리에 주입해 줄 필요는 없다고! 하지만 이대로 죽을 마음은 없다. 최대한 발악을 해 볼 작정이다. 그리고 자멸할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지상 최대의 스킬, 무극천무열이 있다. 꿀꺽. 나도 모르게 식도로 넘어가는 침. 그렇게 손이 땀으로 흠뻑 젖었을 때, 누군가의 다급한 음성이 들려왔다. “이곳으로 와라!” “……?” “어서!” 마족의 생김새를 한 30대 초반 정도 되는 남자가 다급하게 나에게 손짓하고 있었다. 나는 잠시 벌 떼처럼 몰려오는 서큐버스와 인큐버스, 그리고 그 30대 초반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를 번갈아 본 다음 그대로 냅다 그 남자에게 달려갔다. 그러자 정우와 케미리도 같이 도망가기 시작했고, 그 남자는 이를 확인하고 재빨리 앞장섰다.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다만 일단 이게 더 안전해 보인다. 어찌 되는 일이 없어! “하아, 하아, 아, 아.” 변태적인 소리는 아니다. 너무나도 힘들어서 내는 소리일 뿐이다. 갑자기 나타난 30대 초반의 남자는 너무나도 빨랐다. 어쌔신인 케미리와 나를 이렇게 지치게 할 정도였으니. 물론 일단은 프리스트(같지는 않다만)인 정우는 당연히 스피드가 달리는 관계로 내가 대롱대롱 강제로 끌고 온 것이다. 물론 오는 내내 ‘저를 이렇게 생각하실 줄이야!’ 라고 하는 헛소리는 무시했다. 어쨌든 일단 서큐버스와 인큐버스는 따돌린 것 같다. 30대 초반의 남자는 주변을 둘러보면서 그래도 약간은 지치는지 숨을 고른 뒤 나에게 말했다. “휴우. 너희들, 잘못했으면 그대로 모든 정기가 빨려서 말라죽었을 거다.” “그거 참 무서운 말이군요.” “흐음. 어떤 의미로서는 남자의 로망(?)이라고도 누군가는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걸로 보인다.” 남자의 로망이라. 그런 로망은 내가 거부한다. 크윽! 생각만 해도 오한이……. 그나저나 이 남자의 정체는 무엇이기에 나를 구해 주는 거지? 분명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100% 적이 아니라는 건 충분히 느낌이 왔다. 남자는 나의 그런 표정을 보았는지 호탕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하하하. 내 소개를 잊어버렸군. 나의 이름은 호텐. 너는 인간이지?” “헉!” “그렇게 놀랄 필요는 없다. 나도 마족이기는 하지만 여기서 2,000년 이상 있어서 그런지 인간이나 마족이나 드래곤이나 그 누구든지 반가울 뿐이다.” “…….”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 2,000년?! 2,000년 동안 이 이상한 동네에서?! “물론 나 혼자는 아니다. 나의 동료인 마족들도 약 열 명정도 있지.” 지금 내가 궁금한 건……. “2,000년 동안 여기에 왜 있는 겁니까?!” “왜 있다니? 당연히 나가지 못하니 있는 것이지.” “나가지 못한다고요?” “그렇네.” “왜, 왜요? 마족하고 서큐버스랑 인큐버스는 같은 과(?) 아닌가요? 그러면 부탁해서 나가게 해 달라고 하면 되잖아요?!” “흐음. 정확히는 그게 아니지. 오히려 적에 가깝지. 그런데 우리들이 부탁을 들어줄 리가 있겠냐?” 그럴 수가! 저 마족이라고 하는 호텐은 너무나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지만 나는 이곳에서 나갈 수 없다는 말을 그냥 넘길 수 없었다. 이런 이상한 곳에서 평생 썩고 싶지 않다. 아직 세계 평화(?)를 지키지도 못했는데! 참고로 죽어서 다시 인간 세상으로 돌아가려는 방법은 턱도 없다. 이 게임은 죽어도 그 자리에 다시 부활한다. 투명 마법이 걸린 채. 그런데 문제는 투명 마법도 차원을 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이건 정말 아닌데. 그렇게 절망에 빠져 있는 나에게 유난히 즐거워 보이는 케미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자 난 어마어마한 분노에 이글이글 타기 시작했다. 분명 저놈 탓이다. 모든 사건의 원흉은 케미리다. 케미리가 그 이상한 상자를 뽀려, 아니 훔쳐 오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다. 하지만 그것 가지고 패는 건 무리였다. 그래도 일단 나를 위해 가져온 거니까 말이다. 물론 이런 극도로 재수 없는 것을 가져온 게 신기하기 그지없었지만. “그런데 너도 상자를 열고 들어왔나?” “허억! 어, 어떻게?” “우리들도 그렇게 들어왔으니까.” “…….” 지금 내 앞에서 나무에 기댄 채 있는 마족 호텐도 그 상자를 열고 일행들과 함께 끌려 들어온 듯싶다. 그 상자 자체가 이곳 서큐버스와 인큐버스 나라의 차원을 연결해 주는 것 같다. 그런 게 문제가 아니라 나는 이곳을 빠져나가고 싶다! “여기서 빠져나갈 방법은 없습니까?” “물론 있지.” “이, 있다고요?!” 번쩍! 그 말에 난 눈을 빛냈다. 나가는 방법이 있다니……! 하지만 여기서 난 깨달았어야 한다. 만약에 그 방법이 쉽다면 이곳에서 2,000년이나 있지 않았을 거라고 말이다. 호텐의 말문은 천천히, 약간은 답답하게 느껴질 정도로 천천히 열렸다. “물론 있지. 확실한 방법이지.” “그, 그 방법잉 뭐죠?!” “간단하네. 서큐버스와 인큐버스의 보물이라고 여겨지는 셀리티안을 슬쩍하는 것이다.” “셀리티안?” “유일하게 이곳 차원에서 벗어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보석이다.” “그건 무슨 말?” “셀리티안은 서큐버스와 인큐버스의 보물이기도 하지만 유일무이하게 이곳 차원과 마계의 차원을 열어 주는 통로 같은 것이지. 마족이 이곳에 들어오는 것은 아까 네가 들어온 상자 카리어티안만이 가능하고 셀리티안은 이곳에서 마계로 보내 주는 통로지.”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아까 케미리가 뾰려 온 상자의 기능은 셀리티안이라는 보석이라는 게 대체한다는 건가? 그렇게 내가 자그마한 희망에 눈을 빛내고 있을 때, 호텐은 나를 완전 밑바닥으로 떨어뜨리는 소리를 했다. “하지만 참고로 우리가 2,000년 동안 이곳에 왜 있어야 했는지 생각을 해라.” “…….” 그, 그건?! 설마! 내 경악에 찬 표정을 본 호텐은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그렇다. 셀리티안은 서큐버스와 인큐버스의 제일 안쪽에 존재하는 보석,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지. 여기는 서큐버스와 인큡서으가 못해도 6,000명 이상이다.” “6,000명?!” 미쳤다. 이건 아니다! 6,000명이라니! 너무 놀라서 입이 열리지 않는다. 다시 마계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던 나였기에 충격을 배였다. 호텐은 다시 한마디를 내던졌다. “그리고 카리어티안은 그대로 존재 자체를 이곳으로 보내지만 셀리티안은 그것을 들고 마계로 들어갈 수 있지. 그리고 전설로만 전해지는 이야기이지만 셀리티안과 카리어티안이 서로 만나면 엄청난 일이 일어난다고 한다.” “엄청난 일?” “뭐, 그것에 대해서는 나도 자세히 모르고, 그냥 자네에게 참고하라고 말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냥 참고가 아니다. 무지 궁금해진다. 차원을 뛰어넘는 두 가지의 힘이 만나면 어떻게 되지?! 모르겠다. 하지만 보통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자 난 나도 모르게 약간 흥분했지만 금세 안정을 취했다. 일단 그것보다는 셀리티안을 가져와서 이곳을 탈출해야 한다. 하지만 호텐은 이곳에서 나갈 마음이 없는 것 같다. 지금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걸 보니. “자, 이제 너도 이곳에서 적응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니 최선을 다해 도와준다.” 고맙긴 하다. 하지만 이런 괴상한 차원에서 썩을 마음은 없다. 셀리티안을 손에 쥔 채 이곳을 탈출할 것이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카리어티안과 셀리티안을 서로 합체(?)시키겠다. “아니요.” “응?” “괜찮습니다. 저는 이곳을 탈출할 거니까요.” “수많은 적을 이기고?!” “계속해서 여기에 있는 것보다는 낫지 않습니까?!” 내 말에 호텐은 갑작스럽게 고민에 빠진 얼굴을 했고, 잠시 후 심각한 고민에 빠진 표정을 짓더니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너의 말이 맞겠다. 소멸될 때까지 이곳에서 평생 도망자 신세로 사는 건 더 이상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럼?!” “너를 도와주겠다. 최선을 다해서…….” 됐다. 이러면 아주 희박한 확률이나마 상승한다. 좋아! 서큐버스와 인큐버스의 눈초리를 피해 셀리티안을 가져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무것도 안 하고 주저앉는 것은 내 성격이 아니어서 말이다. 나와 새로 만난 마족들은 호텐과 내 의견에 적극적인 찬성을 했다. 자신들도 2,000년 이상 이곳에서 도망자 신세로 살다 보니 지쳤나 보다. 남자 일곱 명에 여자 네 명, 역시 마족이어서 그런지 선남선녀다. 물론 이게 중요한 목적은 아니고, 중요한 건 셀리티안을 탈취하는 방법이다. 그렇지만 아무런 의견을 말할 게 없다. 6,000명을 이런 조촐한 인원으로 상대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하아. 그나저나 정우야, 케미리야. 너희들은 뭐 하니?! 정말 저것들은! 보면 볼수록 사람의 순수했던 마음을 파괴하는 기능이 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화가 나게 한다는 것이다. 지금의 상황을 내가 친절하게 말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저것들은 너무나도 해맑다. 다른 누군가처럼 고민이라는 단어는 갖다 버리고 말이다. 젠장, 그냥 저것들은 없다고 생각하는 게 정신적인 안정에 좋을 것 같다. “하아.” 그렇게 내가 짧게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다른 마족들은 마땅한 강구책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호텐에게 소곤거렸고, 그 말을 들은 호텐은 나를 보더니 말했다. “그리 급한 일은 아니다. 일단 모든 일을 하려면 기운이 있어야 한다. 그러니 오늘은 그만 쉬어라.” “아마도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약간은 지친다. 꽤 도망쳐서 그런지 말이다. 그 말에 호텐은 18살 정도 되어 보이는 마족 소녀(?)에게 눈짓을 보냈고, 그 소녀는 다소곳이 일어났다. 머리를 허리까지 길게 늘어뜨린 흑발의 미소녀. 쭉쭉빵빵에 키는 약 170 정도.(채은이보다 크다) 당장이랃 모델을 한다면 전설이 되어 버릴 것 같은 소녀다. 물론 이런 빈약한 조건이어서 그런지 검은색 로브가 전부지만 말이다. 분명 겉으로는 18살이지만 실제 나이는 약 2,000살 이상일 것이다. 그나저나 저 소녀는 내가 본 마족 중 최고로 예쁘다. 설정한다고 하면 채은이와 예화 급이다. 그냥 보기 힘든 미소녀이기에 한번 측정(?)을 해 보았다. 물론 중요한 건 아니지만 말이다. 한편 그 소녀는 나를 향해 살포시 말문을 열었다. “저를 따라오세요.” “…….” 아니, 마족이 존댓말이라니! 난 마족이 존댓말 하는 것을 처음 봤다. 마족을 본 일도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일단 반말을 하는 게 마족인 줄 알았다. 하지만 내 앞에 있는 소녀는 행동 하나하나, 말 하나하나가 정말 마족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나는 잠시 당황하기는 했지만 살포시 문을 열고 나가는 그 소녀를 다급하게 따라갔고, 그런 나를 향해 옵션 같은 정우와 케미리도 따라붙었다. 그렇게 그 소녀(?)의 안내로 우리는 밖으로 몸을 드러냈고 난 잠시 주변을 둘러보고 생각했다. 이 마을 참 부실하다. 마을 전체가 상당히 빈민틱(?)하다. 자신들 말로는 도망갈일이 생길 수도 있어서 그리 공들여 짓지 않는다지만 그래도 이것 심하지 않은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집들. 간단하게 돌을 쌓고 짚을 덮어 놓은 모양이다. 아무리 봐도 빈민촌도 여기보다는 더 나을 것 같다. 그나저나 저 소녀의 이름도 모르는군. “이름이 뭐야?” “아, 제 이름은 엘메리라고 해요.” “그, 그래?” “네. 그쪽 성함은……?” “아, 난 플레스라고…….” “반가워요.” 방긋. 그 말에 엘메리는 살포시 웃었고, 그 모습을 본 난 잠시지만 움찔했다. 웃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아 참, 그런데 나이가 2,000살이나 먹었는데 내가 반말을 해도 되는 걸까?(여기서 내가 루케리에스랑 마왕에게는 반말을 하는 반명 호텐에게 존댓말을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호텐은 내 생명의 은인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동안이어서 그런지 차마 존댓말 하기가……. 하하하하. “그, 그나저나 나이가 얼마 정도……?” “저요? 18살이에요.” “에엥? 그, 그럴 리가.” “아, 저는 이곳에서 태어났어요. 제 아버지가 호텐이라고 불리는 분이고요.” “…….” 그래서 이렇게 엽기 마족이 태어난 거군.(너무나도 착해 보인다는 뜻) 그나저나 18살이면 다행이다. 내가 애매하게 말을 안 해도 되니까. 그나저나 마족은 저 모습 그대로 약 1,000살까지 간다던데 정말 그런 걸까?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이곳에서 같은 나이를 만나니 무지하게 반갑다. 그건 엘메리도 마찬가지였을 것 같았다. 바로 그 순간! 덥섭! 정우는 갑자기 엘메리의 손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고, 잠시 후 울먹거리는 표정으로 말했다. “저는 형님을 포기하겠습니다.” “네?!” “사실 저와 형님은 침대에서 가끔씩……. 쿠엑!” 퍼퍼퍼퍼퍽! 난 그대로 손바닥을 이용해 연속으로 머리통을 갈겼다. 방심을 못할 놈이다. 항상 어디선가 나타나서 이상한 이미지를 심어 준다. 어떤 의미로서는 케미리보다 더 위험한 존재다. 나는 그대로 쓰러진 정우를 자근자근 밟았고, 그 모습을 본 엘메리는 당황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허둥지둥했다. “저, 저기…….” “신경 쓰지 마.” “그, 그래도…….” “항상 있는 일이야.” “…….” 그런 나의 말에도 엘메리는 무척 당황하는 표정이다. 정말 마족 같지 않은 마족이다. 과연 저 소녀가 마계에 돌아가서 적응 할지도 의문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나는 너무나도 불쌍하다고 보는 엘메리 때문에 정우를 밟던 발길질을 멈추었다. 뭐, 엘메리 탓도 있지만 중요한 이유는 이것들을 일일이 상대하면 셀리티안을 탈출하기 전 내 모든 기운을 쏟아 부을 것 같아서이다. 어찌 됐든 난 정우에게 주먹을 불끈 쥐면서 싱긋 웃었고, 그 미소에 정우는 침을 꼴깍 삼켰다. 저런 반응을 보니까 이해했다는 것이다. 휴우. 내가 그렇게 정우와 보디랭귀지로 대화할 때 엘메리가 길을 안내하다가 갑자기 내 쪽으로 턴을 했다. 그러더니 뜬금없이 말했다. “고마워요.” “응?” “사실 이곳에서의 도망자 생활이 저도 썩 좋지는 않았거든요.” 그건 누구라도 좋아할 일은 아니다만……. 엘메리는 살포시 웃으면서 말했다. “사실 이 게임에 접속하고 서큐버스와 인큐버스가 아닌 다른 NPC를 보는 건 처음이지…….” “자, 잠깐?!” “네?!” “바, 방금 게임에 접속한다고?!” “아, 네.” “유저?” “그, 그런데요.” “나, 나도 유저……인데.” “에에?!” 그 말에 엘메리는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런데 솔직한 말로 내가 더 황당하다. 왜 유저가 이런 곳에서 게임을 하고 있냔 말이다! “지금 내가 상당히 혼란스러운데,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 “아, 말씀하세요.” “어, 어떻게 유저가 이곳에서…… 시작하는 거지?” “그게 저도 잘 모르겠어요. 처음부터 이곳에서 시작했고, 이곳을 보고 저는 게임 아이디를 삭제하고 다시 할까 생각했지만 저에게 너무나도 잘해 주시는 분들을 보고 하루하루 미루다가 계속 여기에 살아 버리게 되었어요.” 아무리 실제 지향적 게임이라고 하더라도, 왕자랑 공주로 태어나는 것도 가능하지만 이렇게 다른 차원에서 태어나는 것도 가능하다는 건가?! 정말 이 게임을 만든 존재는 천재라는 말이 엄청 모자랄 정도인 것 같다. 그 누구도 상상치 못했던 걸 도입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별로 좋지 않은 곳에서 시작했는데도 엘메리는 유난히 얼굴이 밝다. 그렇게 잠시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엘메리는 내 집(?)으로 된 곳으로 안내해 주었고, 나는 집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웃고 있는 엘메리를 향해 말했다. “아, 그리고 편하게 말 놓아. 나랑 동갑인데.” “그럴까요?” “물론!” “그럼 말 놓을게.” 내 말에 엘메리는 말을 놓았다. 적극적인 성격이었는지 머뭇거리는 게 별로 없다. 뭐, 같은 나이에게 존댓말을 듣는 건 영 아니니까.(난 저번에 예화에게도 편하게 말 놓으라고 했지만 예화는 존댓말이 편하다는 이유로 그냥 계속해서 존댓말이다. 정말 부잣집 아가씨 같지 않다) 그렇게 난 나에게 손을 흔드는 엘메리를 향해 같이 손을 흔듯 뒤 허름한 집 안으로 들어갔다. 역시나 겉과 안이 다를 수도 있다는 나의 약간 희망적인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돌멩이로 만들어서 그런지 밖은 보이고 바람은 쌩쌩 분다. 그리고 돌멩이에 금 간 것은 압박이다. 뭐, 여기서 지낼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는 비장의 무기, 로그아웃이 있기 때문에. 난 들어오자마자 열심히 뒹굴뒹굴하고 있는 케미리를 보고 말했다. “난 잠시 후에 온다.” “어라? 나 혼자 있으라고?” “정우 있잖아.” “정우도 가잖아.” “그런가? 뭐, 그래도 나랑은 상관없다만…….” “…….” 내 말에 케미리는 굳어 버렸다. 하지만 케미리를 걱정할 이유는 없다. 저놈은 만약 인류가 멸망해도 절대 죽지 않을 거다. 바퀴벌레가 전멸해도 당당하게 살아남을 놈이니까, 그러니까 믿음이었다. 좋은 말로 번역하면 믿음이고, 실제로는 그냥 무관심이다. 그렇게 난 자신과 놀아 달라고 말하는 케미리에게 살며시 손을 흔들흔들 흔들면서 외쳤다. “로그아웃!” 휴우. 기계에서 빠져나와 보니 온몸이 살짝 땀에 젖은 상태다. 하아. 힘들다, 힘들어. 게임이라는 건 즐기라고 있는 건데 지금의 나의 상황은 즐긴다는 말과는 상당히 동떨어진 것 같다. 뭐, 닭대가리 삼인방과 나를 즐겁게 해 주는 요소가 있어서 재미있지만. 돈을 번다는 나의 사소한 처음의 목적은 잊은 지 꽤 되어버렸다. 요새 정신이 없었으니까. 이 게임에 감춰진 비밀적인 이야기라든가 데스 길드를 부수기 위한 정체불명의 단체와의 동맹이라든다, 그런 일 때문에 마계에 넘어갔다가 재수 없게 이상한 서큐버스와 인큐버스의 나라까지. 평범한 게임하고는 거리가 멀다. 내일은 또 저 이상한 곳을 탈출하기 위해 발악을 해야 하고, 성공해서 다시 마계에 돌아간다 해도 또 다른 마왕과의 전면전이 있다. 정말 나 은근히 바쁘게 산다. 하아……. 그렇게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갑자기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너무나도 친숙한 음성이 귀에 들어왔다. “오빠!” “아, 채은아.” “걱정했잖아, 갑자기 사라져서!” “그, 그건…….” 난 머리를 긁적이면서, 케미리가 나에게 이상한 상자를 선물했는데 그것 때문에 서큐버스와 인큐버스의 나라에 빠진 상황을 간단히 요약해서 말했다. 말을 듣던 채은이는 갑자기 손을 들었다. “왜?” “서큐버스, 인큐버스라고?” “그런데……?” “서큐버스는 여자 아니야?” “그, 그렇지.” “아무 일……도 없었지?” “다, 당연히 없었지!” “…….” 약간 미심쩍은 눈빛으로 바라보는 채은이. 그런데 정말 불량한(?) 일은 없었다. 그런 일이 있었다면 난 벌써 죽었을 거니까 말이다. 그렇게 채은이는 잠시 동안 미쩍눈(미심쩍은 눈빛)으로 본뒤 다시 원래대로 표정이 돌아오며 나를 향해 배시시 웃었다. 두 손을 가지런히 뒤로 모은 채. “그런 거구나. 그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꼭 탈출해.” “무, 물론이지. 다른 애들한테도 그렇게 전해 줘.” “응. 알았어. 아 참, 그런데 배고프지 않아?” 그 말에 슬며시 배를 쓰다듬었다. 그러고 보니 약간 출출하다. 밥 먹은 지 약 12시간 정도는 된 것 같으니까 말이다. 그런 내 표저을 본 채은이는 두 손을 불끈 쥐면서 말했다. “내가 맛있는 것 해 줄게. 기다려!” “고마워!” “당연한 건데, 헤헤.” 채은이는 웃으면서 당장 우리 집 주방으로 이동했고, 그 모습을 본 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1등급 신부, 아니 스페셜 급 신부라니까. 요리도 최강, 얼굴도 최강, 성격도 최강, 그리고 몸매, 키, 완벽해! 뷰티풀해! 그렇게 마음속으로 채은이 칭찬을 하고 나서 약 15분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가만히 앉아 있는 내 귀에 채은이의 고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 차렸어!” “어!” 난 그 말과 함께 당장 식당으로 달려갔다. 채은이가 없었더라면 거듭 말하지만 나 굶어 죽었을지도 모른다. 꺼억! 잘 먹었다. 역시 채은이 음식은 최고다. 나에게는. 물론 나쁜만이 아니다. 채은이 음식을 먹으면 다 엄청나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너무 심플하고 감동적이다. 참고로 채은이 요리는 이런데 정우 요리는 개떡 같다. 아니, 그 정도로 평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 인간이 먹을 음식이 아니다. 복잡, 미묘, 상큼(?)한 맛이 복합된 요리, 그 누구도 완성시키지 못하는 맛이다. 전국 맛없는 대회 기네스북에 올라갔다면 말 다 하지 않았는가?(진짜다. 정우 놈은 재미 삼아 응모한 것 같다만 실제로 올라갔다. 워낙 비중 없는 것이긴 하지만 진짜 올라갔다. 상장을 가져온 날, 난 기절하는 줄 알았다) 그러니까 채은이의 요리는 호텔 조리사랑 비등하거나 위인데, 정우 음식은 세계 맛없는 대회에서 우승할 만큼 맛없다. 젠장! 정우는 생각하면 할수록 알 수 없는 놈이다! 그렇게 내가 정우는 과연 어떤 생물체인가라는 고민에 잠겼을 때 채은이가 설거지를 마치고 주방에서 나와 소파에 앉아 있던 나의 옆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오빠,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정우 요리 생각.” “…….” “…….” 그 한마디에 우리 둘은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채은이도 정우의 요리를 먹은 적이 있다. 그러니까 지금처럼 알 수 없는 표정을 짓지. 나와 채은이는 그 요리를 먹고 약 일주일간 고통에 시달려야 했으니 말 다 했지. “오, 오빠, 다른 생각을 하는 게 정서에 좋지 않을까?” “그렇겠지.” 그 말과 함께 나는 그 생각을 지웠다. 채은이 말대로 지우는 게 좋을 것이다. 그래야지 난 오랫동안 살 수 있으니까. 그렇게 요새 게임 때문에 같이 지내지 못했던 채은이와 단둘만의 시간을 보내던 중 한참을 이야기하던 채은이가 갑자기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더니 볼을 붉게 물들인 채 검지 두 개를 서로 마주치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가, 갑자기 어디 아파?” 갑자기 얼굴이 붉어지자 나는 열이 있나 해서 당황했고, 그 말에 채은이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그러더니 나를 촉촉이 젖은(?)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갑자기 왜 이러니……. 너 같은 미소녀님(?)께서 그런 표정을 지으면 나는 어떡하라고! 마구 심장이 뛴다. 이, 이건 너무 긴장이……. “저, 저기 오빠…….” “으응?” “그, 그러니까…….” 머뭇거리니까 더 긴장이 된다. 미친 듯이 긴장이 된다는 말이다! 채은이는 계속해서 무슨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닫고 다시 열고 입을 닫고를 반복했고, 잠시 후 눈을 질끈 감으면서 말했다. “나, 나를 어떻게 생각…….” “이 새끼야!” 나의 입에서 나온 욕. 나는 채은이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 채 그대로 근처에 있던 소파 베개를 한쪽 벽을 향해 던졌다. “가, 갑자기 왜 그래?” 채은이의 당황하는 목소리가 들려왔고, 난 한쪽 벽을 손으로 가리키면서 말했다. “바퀴벌레 한 마리!” “바퀴벌레?” “저기!” “…….” 채은이도 벽을 보고 굳어 버렸다. 거기에는 분명 벽지가 붙어 있었지만 벽이 불규칙했다. 한마디로 인간 모양의 벽이 찍혀 있었다. 갑자기 평행이었던 벽이 저렇게 인간 모양을 할 리는 없는 관계로 저 안에 위장을 한 놈이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저딴 어이 상실한 일을 하는 놈은 이 세상에 단 한 명밖에 없다. 내가 환상적으로 던진 베개에 벽은 무너졌고 잠시 후 얼구리 보였다. “역시 형님이십니다. 저의 은둔술(?)을 파악하시다니…….” “어디가 은둔술인데?!” “…….” 지금 나랑 장난치자는 거냐?! 한 살짜리 아기도 알 것을 은둔술? 지랄한다. 코믹을 찍어라! 한편 그 모습을 지켜보던 채은이도 너무나 황당했는지 할 말을 잃어버렸고, 잠시 후 정우는 화가 나 있는 나와 채은이를 한 번 보더니 말했다. “저는 신경 쓰지 마시고 하시던 대화나 마저 하십시오. 다시 벽에 숨겠습니다.” “…….” 나 저놈 때문에 제명에 못 살겠다. 그냥 무시하자. 저 새끼는 언제 기어들어 와서 저런 짓을……. 하아. 그래, 그냥 무시하고 다시 하던 대화나……. “채은아, 아까 무슨 말을 하려고 했어?” “아, 아니야. 오빠, 신경 쓰지 마.” “흐음?” “저, 정말 아니야. 그냥 오빠가 내 옆에 있어 줬으면 좋겠다고. 언제든지.” “그건 당연한 거지!” 나야 항상 채은이와 같이 있고 싶다. 물론 저 정우 놈은 아니지만, 저놈은 언제든지 달라붙어 있을 것이다. 이 세상이 멸망한다고 하더라도……. 정말 개인적으로 외계인 연구소에 보내 버리고 싶다. 제7장 마족의 총사령관, 그리고 강해지는 힘 “으악! 루, 루젠, 네가 배신을?!” “미안. 이런 도망자 인생은 지쳤어!” 열 명의 마족을 둘러싼 1,000명 정도 되는 인큐버스들은 천천히 그들을 옭아매었고, 그들은 너무나도 많은 인원이 둘러쌌기에 공격할 마음조차도 생기지 않았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 버린 것이다. 한 동료에 의해서……. 이게 뭐야?! 난 내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믿을 수가 없었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우리는 여기에 모여 어떻게 해서든 셀리티안을 가질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모습이 남아 있지 않다. 오직 페허, 잔인하게 부서진 페허만이 남았을 뿐이다. 내가 접속하자마자 말이다. “플레스.” 거기에는 엘메리가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나를 보고 슬픈 눈빛으로 다가왔다. 그녀도 잠시 동안의 로그아웃을 끝내고 왔더니 이미 마을이 이 모양이란 뜻인 듯싶었다. 도대체 하루 만에, 아니 반나절 동안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마을은 그대로 페허가 되어 버렸고, 그 누구의 얼굴도 보이지 않는다. 서, 설마 그렇다면 케미리도……? 난 다급하게 불렀다. “케미리!” “…….” “케미리!” 항상 사고치는 소환수였지만 케미리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고 생각하자 나도 모르게 다급해졌다. 그렇게 난 있는 힘껏 소리를 쳤고, 바로 그 순간 땅속이 들썩거리더니 개 한 마리가 올라왔다. “…….” “헉헉. 죽는 줄 알았네.” “…….” “마스터! 나 살았어.” 네놈, 개 아니었냐? 개가 땅을 파고 들어가서 피신을 하고 있었다고? 도대체 배에 주머니가 있지를 않나, 땅을 파고 들어가지를 않나. 정말 저놈은 개라는 종족이 맞을까? 마족에서 개로 변신할 때 개가 아닌 다른 생물체로 변신한 것은 아니었을까? 당연한 말이지만 케미리는 흙을 파고 올라왔기에 온몸에 흙이 묻은 상태다. 정말 대단하다. 존경스럽다. 아니, 이게 아니고……. “케미리, 갑자기 마음이 왜 이렇게 됐어?” “배신했어.” “배신?” “어, 어떤 한 마족이, 이름이 루젠이었나? 한 마족 남자놈이 서큐버스와 인큐버스에게 보고를 했나 봐, 그래서 약 1,000명의 인큐버스들에게 포위를 당해서 다 끌려갔어.” “…….” 배신이라……. 정말 골 때린다. 도대체 일이 왜 이렇게 꼬이고 꼬이는 거지? 6,000명을 상대로 셀리티안을 훔쳐 내는 것도 엄청나게 힘든 일인데 그뿐 아니라 인질로 다른 마족들은 다 잡혀가 버린 것이다. “플레스, 구, 구해 줘.” “…….” “부탁이야.” 엘메리는 눈물까지 글썽거리면서 나에게 부탁을 하고 있었다. 정말 소중한 존재들이었나 보다. 내가 쓸데없는 일은 거부하는 성격이지만 은혜는 꼭 갚는다. 일단 내 생명의 은인, 그런 말을 하지 않아도 구할 예정이다. 물론 갑자기 난이도가 10배 이상 올라간 게 문제지만. 정말 나를 보면 인간이 운이 얼마나 없을 수 있는가에 대한 종합적인 정보가 나올 것 같다. 하지만 그대로 포기하는 건 내 성격이 아니니까. 나는 그대로 귀걸이에 마나를 주입한 뒤 메퍼에게 간단히 용건을 말했다. “서큐버스와 인큐버스에 대한 모든 정보를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된 것, 전쟁이다. 나, 정우, 케미리, 엘메리 이렇게 네 명으로 6,000명이나 되는 유혹의 악마들을 향해 칼을 겨누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시도일지 몰라도 말이다. 서큐버스와 인큐버스. 간단하다. 서큐버스는 남자의 정기를 빨아먹고, 인큐버스는 여자의 정기를 빨아먹는다. 음마, 한마디로 마족에 가까운 존재인데, 흐음……. 그리고 무엇보다 이들은 상대 이성을 홀릴 수 있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모르겠다. 내가 원한 건 상당한 자료였지만, 메퍼는 나에게 너무나도 간단한 사실만을 가르쳐 줬을 뿐이다. 서큐버스와 인큐버스에 대한 정보가 없다는 것이다. 약점이라든가 무슨 방법이라든가 말이다. 그렇게 되면 남은 방법은 정면충돌? 그게 가능할 리가 없지. 그렇게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심각한 고민에 잠겨 있을 때, 케미리가 파고 나온 땅 구멍이 눈에 들어왔다. 정말 잘 팠군. 눈을 피해서 땅 파고……. “맞다!” “왜 그래, 마스터?” “플레스, 왜 그래?” 나의 갑작스러운 반응에 케미리와 엘메리는 무슨 일이냐는 듯 물었고, 난 다급하게 엘메리에게 물었다. “적의 본진에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 거지, 엘메리?” “그, 그렇긴 한데…….” “그럼 땅 파고 들어가는 건?!” “땅을 파고?” “물론! 수천 명의 감시를 유유자적 피해 들어가는 거지!” 내가 생각하고도 감동이다. 이런 뛰어난 작전을 생각해 내다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 그렇게 내 어마어마한 아이디어에 감동을 금치 못할 때 엘메리가 그 고운 얼굴에 의문점을 가득 담은 채 말했다. “근데 누가 땅을 파는 거야?” “걱정 마! 그 점에 대해서는!” “……?” 걱정도 팔자다. 우리에게는 바로 땅 파는 개 한 마리가 있으니까 말이다! 나는 케미리를 바라봤고, 그런 내 눈빛을 받은 케미리는 갑자기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섰다. “왜, 왜 그래?!” “왜 그러긴, 알면서.” “모, 몰라!” 구라 까고 있네. 내가 이렇게 사랑스러운(?) 눈빛을 보내는데 모른다는 게 말이 되나? 케미리는 내 아름다운 눈빛과 미소를 보더니 슬금슬금 더 물러서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방법을 성공하기 위해서는 땅파는 개가 필요하다. “히히히! 어서 오렴.” “왜, 왜 그래?! 난 마족의 왕자라고!” “그런데?” “그런데라니! 그런 나보고 땅이나 파라는 소리야?!” “방금도 팠으면서 새삼스럽게…….” “그, 그래도 나, 나는 체면과 카리스마를 중시하잖아.” 언제부터? 생전 처음 듣는 단어다. 체면과 카리스마를 중요시하는 놈이 어떻게 인생 아니 개생을 그따위로 산단 말인가. 지금 케미리 때문에 받은 마음의 상처는 치료가 불가능할 정도로 퇴폐해진 상태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 이곳에 오게 된 원인은 케미리가 100%다. 그러니 최소한의 책임은 져야 하지. 물론 이곳에 온 걸 후회하지는 않는다. 아름다운 궁극의 미소녀 한 분도 발굴(?)했고 잘하면 엄청난 아이템이 들어올지 모른다. 물론 꽝일 수도 있다. 하지만 차원의 문을 여는 두 가지의 아이템이 뭉쳐지는데 아무것도 나오지 않을 리는 없다. 솔직히 말해 많이 기대하고 있다. 두 가지가 부딪치면 뭐가 나올까 하고 말이다. 뭐 지금은 일단 그 마족드을 구하고 셀리티안을 가져와서 이곳을 탈출하는 것이 목적이지만. “케미리야, 케미리야. 어서 오렴.” “시, 싫어! 저, 정말 땅 파는 건 싫어! 개한테 땅 파는 걸 시키는 인간이 어디 있어!” “나 있어. 그리고 넌 마족이잖아.” “아니야! 아니야! 난 개가 되는 순간부터 개가 됐어.” 저놈에게서 정말 자긍심이라는 단어는 때만큼도 찾아볼 수가 없다. 자신이 당당하게 개라고 말하는 마족의 왕자라, 할 말 없다. 뭐, 어찌 됐든 나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난 자상한 미소와 함께 자상한 어조로 쭈그려 앉으면서 말했다. “케미리.” “허억! 여, 역겨워!” 빠직! 케미리의 한마디에 나도 모르게 혈관 마크가 생겼고, 난 혈관 마크를 애써 무시하면서 실룩실룩 웃었다. “케미리.” “자, 자꾸 왜 그래? 진짜 돈 거야?” “…….” “미치다니!” “누가 미쳐!” 퍼억! “꾸엑!” 난 순식간에 나를 미친 놈 취급하는 케미리의 뒤통수를 갈겼다. 이 새끼가 진정 좋은 말로 하자니까. 마음이 여린 나를 이렇게 자극하다니 드디어 간덩이가 부었군. 그래, 요새 한동안 사랑의 빔(?)을 안 주어서 이런것일 수도. 그렇다면 내가 선택한 길은……. “엘메리, 잠시만 실례할게.” “무, 무슨 일 있어?” “아니, 잠시…… 흐음, 뭐라 할까, 안돌라스(?)하고 샤플리스(?)한 걸 해야 하거든.” “…….”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는 엘메리를 향해 나는 싱긋 웃은 뒤 기절한 케미리를 끌고 갔고, 바로 그때 케미리는 눈을 번쩍 떴다. “사, 살려…….” 퍼억! “…….” “신경 쓰지 마.” 싱긋. 남들이 오해할 만한 비명을 지르는 케미리를 향해 가볍게 한 방 날려서 침묵을 지키게 한 뒤 당황하는 표정이 역력한 엘메리를 향해 웃어 주었고, 그러자 케미리는 더욱 발악을 했다. “나 주, 죽을지도. 으읍!” “하하하하.” 케미리의 입을 막은 채 이동하는 나와 할 말을 잃어버린 엘메리, 그리고 공포에 떨고 있는 개 한 마리. 다 네놈이 자초한 일이도다! 10분 후. “좀 오래 걸렸지?” “아, 아니. 그런데 뭐 하고 왔어?” “그냥 뭐. 하하하하.” 나는 뭐 하고 왔냐고 묻는 엘메리를 향해 어색하게 웃으면서 대충 얼버무렸다. 말하기에는 좀 난감한 대답이어서 말이다. 어쨌든 사랑과 평화의 이름으로 케미리의 아름다운 협조를 받아 냈다. 물론 강제는 아니다. 케미리가 하고 싶다고 울부짖어서일 뿐이다. 물론 케미리의 왼쪽 눈에 난 멍은 그냥 뭐……. 한편 그런 우리들의 모습을 약간 어색하게 보던 엘메리는 희미하게 웃었고, 잠시 후 나에게 다가오더니 말했다. “그런데 플레스, 가능할까?” “응?” “그러니까 수많은 서큐버스와 인큐버스를 상대로 말이야.” “물론 가능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단계는 아니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지.” “강해?” “흐음, 레벨에 비해서는 조금…….” 사실 레벨에 비해 많이 강하긴 하다만. 나의 레벨은 66, 이 숫자를 보면 미묘 복잡한 느낌이 든다. 한편 그런 내 말을 들은 엘메리는 나를 보고 웃었다. 정말 흑발이 저렇게 잘 어울리는 170의 모델 같은 소녀라니, 어찌 보면 난 여작 복은 꽤(?) 있는 것일지도. 연예인들도 한 수, 아니 많이 접어주는 궁극의 미소녀 3명을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뭐, 세리하도 궁극이라고 해도 모라자라는 건 아니니까 4명이라고 해도 되는 걸까? 그에 비례해 세상에서 제일 닭대가리 삼인방과 외계 생물체가 한 명 붙어 있다는 건 슬프지만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잘해 보자는 눈빛을 주고받았다. 엘메리도 일단은 마족, 충분히 강하다. 상당한 도움이 될 게 분명하다. 그리고 일단은 도움이 될 존재, 한 마리의 소환수를 이쪽으로 소환이 가능하다. 그나저나 엘메리, 엘메리 하니 나는 이상하게 어색하다, 유저여서 그런가? “아, 엘메리, 본 이름이 뭐야?” “내 이름?” “응 난 이상하게 아이디로 부르면 영 어색하게 느껴져서.” “그래? 나도 솔직히 그런데. 내 이름은 채나은.” 역시 이름도 예쁘다. 채은이, 예화, 나은……. 이름까지도이리 아리따울 수가! 일단은 내 이름도 알려 줘야겠다. “내 이름은 김민혁. 그냥 민혁이라고 불러.” “헤. 그럼 민혁이라고 부를게.” “물론! 그러면 나도 나은이라고 부른다.” “응!” 우리 사이에 남아 있던 어색함이 그나마 사라진 것 같다. 그나저나 나은이가 길을 알고 있겠지? “서큐버스와 인큐버스의 본진이 어디 있는 줄 대충은 알지?” “응, 물론이야. 내가 앞장설게.” 그 말과 함께 나은이는 앞장서서 걸어가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본 난 오랜만에 내 손가락에 걸려 있는 반지를 쓰다듬었다. 약 300미터 떨어진 지점, 성이다. 서큐버스와 인큐버스의 본진이라는 곳은 거대한 성으로, 내가 본 네라진의 성보다 약 1.5배 이상 큰 규모였다. 주변에는 서큐버스와 인큐버스가 하늘을 날며 감시를 늦추지 않았고 말이다. 한편 그 모습을 본 난 이제 슬슬 시작하기 위해 준비를 했다. 나는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붉은색 반지를 쓰다듬었고, 잠시 후 외쳤다. “테피언!” 파지지짓! 그러자 기형학적인 마법진이 바닥에 생성되었고, 거기서 철갑 갑옷 한 마리가 소환되었다. 다른 소환수들은 모르겠지만 테피언은 이렇게 매개체인 반지가 있는 관계로 소환하기 쉽다. 파지지짓! 그런데 이상하다. 조금 뭔가 엄청난……. “꺄악!” “헉!” “야호!” “주인님!” 이 친숙한 음성들은?! 난 깜짝 놀랐다. 소환된 존재는 테피언뿐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테피언, 피티언, 세리하, 레키리안, 그리고 채은이와 예화, 게다가 전혀 있을 수 없는 얼굴인 마계 서열 1위 지콘이라는 남자까지 말이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어라?” “오빠!” “마스터.” 지금 나도 정신이 없지만 갑자기 뜬금없이 소환된 다른 존재들도 정신이 없을 게 분명했다. 어떻게 동시에 모든 존재의 소환이 가능할 수가 있지? 어떻게? “마스터가 나를 소환하면 주변에 있는 인물들도 같이 소환된다.” “…….” 테피언의 단순한 한마디, 그렇지만 이해가 다 되는 말이다. 한편 세리하는 갑자기 나를 향해 달려들더니 마구 껴안았다. “주인님, 보고 싶었어요!” “나, 나도 보고 싶었어.” “저희들만 버리고 가신 줄 알고……. 흑.” “그, 그럴 리가 있겠어.” “역시 주인님이에요!” 세리하가 내게 더욱 밀착하자 나도 모르게 남자의 본능으로 헤벌쭉해 버렸고, 그때 주변을 살펴보던 마계 서열 1위 지콘이 나를 뚜렷이 보더니 말했다. “서큐버스와 인큐버스이 차원이군.” “그, 그렇긴 한데…….” “재수 없는 데 떨어져 버렸군.” 끄덕끄덕. 난 그 말에 맹렬히 고개를 흔들었다. 그냥 재수 없는 것도 아니고 많이 재수 없다. 지콘이 다시 주변을 둘러보더니 나에게 무뚝뚝한 어조로 말했다. “일단은 우리 마족의 총사령관, 명령만 내려라. 불가능한 일에도 뛰어든다.” “고, 고마워.” “당연한 일이다.” 멋있다. 처음 이미지는 약간 다혈질적인 것 같아 보였는데 카리스마와 충성심이 장난이 아니다. 그때 어안이 벙벙한 모습으로 나를 보던 나은이가 목소리를 떨면서 말했다. “마, 마족의 총사령관? 부, 분명 민혁이 너 유, 유저라고…….” “거기에는 살짝 깊은 미묘한 사정이…….” “그, 그리고 마서터? 주인님? 그건 뭐야?” “흐음, 그러니까 내 소환수들?” “…….” 나은이는 너무나도 당황해서 말 그대로 굳어 버렸다. 숨기고 싶어서 숨긴 게 아닌데 직접 들은 나은이는 여간 충격을 받은 게 아닌 것 같다. 그렇게 내가 나은이를 보고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을 때, 세리하가 나에게 다가오더니 대단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역시 주인님!” “으응?” “어느새 미소녀를 꼬셨네요.” “꼬, 꼬시다니! 그냥 일이 좀 미묘하게…….” “흐음, 그걸 우리들 사이에서는 ‘꼬시다’ 라고 하는 거에요, 주인님!” “…….” 아, 아닌데. 정말 단순히 만났을 뿐인데. 의도적인 바람은 없었고 운좋게 만난 것뿐이다. 그때 채은이는 말없이 나를 보고 있었다. 양쪽 볼에 바람을 가득 채운 채. 근데 묘하게 귀엽다. “헤, 오빠 좋았겠네?” “응? 뭐, 뭐가 좋아?” “이.렇.게.아.름.다.운.언.니.랑.단.둘.이.이.곳.에. 있었으니까 말이야.” 말을 딱딱 끊는데 너무 귀엽…… 이게 아니라 오, 오해다. 단둘이는 아니다. 무엇보다 케미리가 옆에 있다. 그리고 어제까지만 해도 엄청 많은 마족이 같이 있었다. 나는 일행에게 차근차근 지금의 상황을 모두 들려주었다. 지금 해야 할 일과 어떻게 된 일인가에 대해서 말이다. 다행히도 일행은 내 말을 제대로 이해해 주었고, 난 그 모습을 보고 흐뭇한 표정을 짓다가 케미리를 향해 말했다. “땅 파렴.” “정말?” “그럼 가짜로 파니?” “나 개인데.” “됐어. 너의 땅 파는 실력은 내가 보증하지.” “보증 안 해도 돼, 마스터.” “아니. 해 주고 싶어. 그리고 같은 말 반복하게 하지 마렴. 그리고 깊고 넓게 파.” “…….” 내 말에 케미리는 터벅터벅 걸어가더니 발 두 개를 땅에 부딪치고는 호흡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진중한 모습이다. 솔직히 개가 수백 미터 이상을 팔 거라고 생각을 하지는 않지만, 그냥 기대를 조금 해 보는 것이다. 단시간에 땅을 파고 숨는 걸 보면 충분히 재능(?)이 있어 보였다. 그렇게 케미리는 숨을 몰아쉬더니 갑자기 눈을 번쩍였다. “아다다다다다다다!” “…….” 컥! 이, 이럴 수가! 난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순식간에 바닥이 파이는 땅. 너무나도 빨라서 분간이 안 갈 정도다. 정말 빛의 속도라는 말이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난 케미리에게 이런 재주가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왠지 나의 눈가에서 눈물이 주르르 흐른다. “마, 마스터, 왜 그러세요?” “아, 아니야, 피티언.” “눈물을 흘리시잖아요!” “너무 감동했어.” “네?” “케미리에게 이런 장기가 있을 줄이야.” 이해를 바라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금 나의 심정은 너무나도 벅차오르다 못해 감동의 연속이다. 케미리가 진정 쓸 만한 데가 있다는 건 그만큼 나를 감복시키기에 중분했다. 그렇게 케미리의 땅 파는 실력에 내가 감동을 금치 못할 때, 예화가 다가오더니 나의 옷깃을 붙잡았다. “왜 그래, 예화야?” “아무 이상 없으시죠?” “당연히 없지. 나야 몸 하나는 강력하잖아!” “다행이에요.” “별 걱정을…….” 나는 나를 걱정해 주는 예화가 너무나도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예화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예화는 쑥스러운지 얼굴을 붉혔다. “형님!” “컥! 어, 언제?!” 저 새끼는 어떻게 길을 알고! 저 멀리서 달려오는 정우 한 마리, 어떻게 길을 알고 여기까지 찾아왔지? 임무를 끝내면 데려가려고 했는데 저놈은 제가 알아서 찾아오고 있다. 정말 무서운 놈이다. 생전 처음 보는 차원에서도 길을 찾아보다니! “제 후각에는 형님의 냄새를 맡는 센서가 부착되어 있습니다.” “그런 것 달지 마!” “왜요? 좋지 않습니까?!” “좋기는 개뿔!” 그래도 솔직히 말해 이렇게 시끄러운 것이 너무 마음에 든다. 왠지 모르게 말이다. 그럼 진정한 쇼 타임이란 지금부터 시작이다. 지금 이곳에 모인 존재들은 최강의 존재들이니까 말이다. 케미리가 열심히 땅을 팔 동안 기다려야지. “허허허헉!” 정말 대단하다, 케미리! 진짜로 300미터 이상의 땅굴을 팔 줄 몰랐다. 캐라기보다는 두더지 황태자에 가깝다. 그것도 어마하게 넓게 팠다. “케, 케미리! 너 정말 멋있다!” “당연한 걸 말하는 것 보니 반응이 느린데?” “…….” “하하하. 난 세상에서 제일 잘났으니까.” 잠시 칭찬을 한 내가 잘못이지. 어찌 됐든 케미리의 어마어마한 활약으로 성안으로 두더지 구멍이 생겼다. 이렇게 되면 침입하기 더욱 쉬워졌다. 서큐버스와 인큐버스들은 하늘을 날면서 경계를 하는 관계로 이렇게 굴속으로 가는 것에는 약할 게 분명했다. 그런데 묘하게 긴장이 된다. 서서히 시간이 다가와서 그런지는 몰라도 말이다. “헤이, 헤이. 아가씨! 나 무지 한가해.” “저, 저기…….” “뭐, 나랑 사귀고 싶다고? 좋아, 자네 같은 소녀라면 내가 대환영한다. 하하하.” “그, 그러니까…….” “뭐? 미칠 정도로 좋다고? 나의 인기는…….” 하지만 이런 긴장감 속에서도 나의 긴장감을 떨어뜨리는 대화가 오가고 있다. 생전 처음 본 데스나이트가 찝쩍거리자 나은이는 여간 충격이 큰 얼굴이 아니다. 그뿐 아니라 자신이 대화는 모두 차단한 채 자신이 잘났다고 유도하는 테피언의 대화 방법은 어이가 없다. 저 새끼는 일단 여자라면 무조건 찝쩍거리고 본다. 그리고 실패하면 그대로 다른 여자에게 찝쩍거리고……. 하아. 나는 당황하는 나은이와 테피언이 있는 곳으로 터벅터벅 다가갔다. 한편 그런 나의 모습을 본 테피언은 갑자기 강철손을 내밀면서 장렬한 어조로 말했다. “뭐야?! 마스터, 또 나의 여자를 뺏을 예정인가?” “헛소리 작작해, 임마.” “헛소리라니! 모든 여자들은 나를 좋아한다!” 갑옷을 좋아하는 여성이라, 만약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리 정상적이지 않아 보인다만 지금 저놈은 모든 여자는 자신을 좋아한다고 우기고 있다. 데스나이트 왕자병이라……. 정말 나의 소환수들은 최강이다. 먹는 거라면 죽음을 불사하는 피티언, 여자에게 찝쩍거리기 바쁜 테피언, 뺀질계의 대부 케미리, 그리고 은근슬쩍 유혹하는 세리하.(이건 싫지는 않다) 정말 정상 소환수는 레키리안을 제외하고 없다. 난 삽질하는 테피언을 강제로 끌고 가기 시작했고, 여전히 이 괴이한 파티에 적응 안 된 나은이에게 내가 마스터로서 사과를 했다. “미안.” “괘, 괜찮아. 재, 재밌는 소환수네.” 재밌지는 않아, 나은아. 그렇게 난 자신을 방해한다고 발악하는 테피언을 케미리가 깊고 넓게 판 두더지 구멍에 밀어 넣었고, 잠시 후 나머지 일행을 향해 말했다. “출발할까?” 두더지 구멍으로 침투하는 것은 썩 좋은 기분이 아니다. 하지만 불평을 할 수 있는 단계도 아니고 말이다. 일단 우리의 목적인 인질을 구하고 그 다음 곧바로 셀리티안을 가지고 냅다 튀면 된다. 6,000명 전원을 상대할 마음은 없다는 거다. 그렇게 우리는 열심히 케미리가 판 구멍을 통해 계속해서 나갔고, 그렇게 약 20분 정도 가자 끝으로 나올 수 있었다. 물론 전부 다 옷 주변에는 흙으로 가득 찼지만. “하아, 살 것 같다.” 나는 밖으로 나오자 숨을 몰아쉬었다. 아무래도 땅굴이어서 그런지 공기 자체가 빈약하다. 그래서인지 나와서 들이마신 공기는 상쾌하기 그지없었다. 그렇게 내가 숨을 내쉬는 사이 모든 일행들도 땅굴을 벗어났고, 나는 상쾌한 바람을 맞다가 표정이 굳어졌다. “…….” “왜 그래, 마스터?” 그 순간 케미리의 음성이 들려왔지만 난 그 질문에 대답해 줄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건 아닌데, 이건 아닌데……. 어느새 내 주변에 모인 인큐버스 30명과 서큐버스 30명. 큰일 났다. 어마한 인원은 아니지만 이 정도면……. 척. 그 순간 레키리안은 자신의 허리춤에 있는 검을 한 번 쓰다듬은 뒤 나이 앞에 서면서 말했다. “마스터, 다 죽일까요?” “가능해?” “물론입니다. 버서커 봉인 해제를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버서커 봉인 해제?” “네.” 그, 그건 뭐지? 난 생전 처음 듣는 단어에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를 못했지만 일단 허락해야 될 것 같았다. 내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임으로써 허락의 제스처를 취하자, 레키리안은 자신의 손목에 있던 하얀색 팔찌를 잡으면서 말했다. “잠시 동안 흉측한 모습을 보여도 용납해 주십시오.” “…….” 파앗! 그 순간 레키리안은 자신이 하얀색 팔찌를 벗어 버렸고, 그러자 레키리안의 눈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그뿐 아니라 거친 숨소리가 울려 퍼졌고, 그는 어느새 우리를 포위하던 서큐버스와 인큐버스들에게 검을 뽑은 채 엄청난 속도로 돌격했다. “크아아악!” “꺄악!” “으아악!” 레키리안의 비명이 울려 퍼졌고, 순식간에 피의 향연이 시작되었다. 눈 뜨고 보기 끔찍할 정도로 한참 도륙하는 레키리안을 보고 있을 때, 음성이 들려왔다. -지(地) 속성 계열을 인첸트하실 수 있습니다. 허억! 갑자기 이게 무슨 날벼락에 콩 300번 구워 먹는 시추에이션? 지 속성에 인첸트라니……. 생각지도 못했다. 케미리를 만났을 때는 수 속성의 인첸트가 가능해져서 약간 기대를 했는데 레키리안을 만났을 당시에는 아무런 말소리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 생뚱맞게 인첸트라니……. 혹시, 버서커라는 걸 풀어서? 그렇게 내가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레키리안은 여자들이 고개를 돌릴 정도로 끔찍하게 죽인 상태였고, 분명 다 죽였음에도 불구하고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눈도 아직 붉은색이었고. 난 아직도 이상한 반응을 보이는 레키리안에게 말했다. “레키리안, 왜 그래?” “하아! 하아!” “…….” “하아…….” 파아앗! 그 순간 거친 숨을 몰아쉬던 레키리안은 갑자기 나를 향해 폭발적인 힘으로 달려들었고, 난 갑작스러운 공격에 순간적으로 당황했지만 거의 무의식적으로 검을 소환해 냈다. 검(Sword) 소환! 인첸트 지(地)! 파아앗! 그러자 검에는 황토색의 힘이 담겨졌고, 나는 미친 듯이 달려와 휘두르는 레키리안의 검을 막았다. 그 순간……. -절대 방어 성공하셨습니다. 절대 방어?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지금은 저 레키리안을 막는 게 중요하다. 그런데 버서커라는 진정한 의미는 완전한 이지 상실? 레키리안은 여전히 폭풍처럼 공격하고 있었고, 난 그런 공격을 생가보다 아주 여유롭게 막아내고 있었다. 이상하다. 묘하게 느리다. 레키리안이 약할 리는 없는데, 설마 그새 내가 강해졌다는 소리인가? 레키리안 그렇게 쉴 새 없이 약 2분간을 몰아치더니 갑자기 쓰러져 버렸다. 그리고 잠시 후 나를 향해 나지막하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마스터. 또 제어에 실패……했습니다.” 털썩. 그 말과 함께 레키리안은 기절해 버렸고, 나는 레키리안이 던져 놓은 하얀색 팔찌를 다시 그의 팔목에 걸어 놓았다. 이거, 지 속성을 얻은 건 좋지만, 좀 난감한 버서커 발동이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지 속성의 옵션은 일정 확률로 절대방어인 것 같다. 보지 않아도 대충 감이 잡힌다. 그나저나 너무나도 잔인하다. 주변에는 거의 검으로 찢어 버렸다고 할 정도로 서큐버스들과 인큐버스들의 시체가 즐비했다. “로케리스.” -왜? 내 말에 로케리스는 짧게 대답했고, 나는 그런 로케리스를 향해 말했다. “여기 시체 자체를 태우는 마법 같은 건 없냐?” -있긴 있어. 4서클 마법 중에 버닝 러클이라고……. “흐음. 내가 시전한는 것은 불가능한가?” -아니. 가능해. “에엥?” -나를 생각해. 졸라게 멋지고 졸라게 잘난 슈퍼 전설급 지팡이인 나를……. 또 제 자랑이다. 뭐, 어찌 됐든 자랑할 만은 하다. 내가 1서클인데, 4서클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해 주는 것 보니까 말이다. 나는 로케리스를 오랜만에 등 뒤에서 앞으로 내민 채 조용히 영창했다. 지팡이(Stick) 소환! 착! 그러자 로케리스와 소환된 지팡이는 소울 융합을 했고, 난 곧 주변에 널려 있는 잔혹한 시체를 향해 중얼거렸다. “버닝 러클!” 화르륵! 그 순간 서큐버스와 인큐버서들의 잔혹한 시체들은 말 그대로 지옥의 화염에 타면서 완전히 소멸되어 버렸다. 그런데 문제는 마나가 꽤 든다는 것이었다. “오, 오빠, 어, 언제 고위급 마법사가?!” “미, 민혁이 너 정체가 거, 검사 아니었어? 검을 소환하는 것도 말이 안 되는데 어, 어떻게 마법까지……?” 내가 4서클 마법을 시전하자 모두들 경악에 휩싸였고, 그 모습을 본 난 가볍게 로케리스를 흔들면서 말했다. “잘난 지팡이 덕!” -우헤헤헤헤헤! 단순하기는……. 우리는 일단 레키리안이 다시 깨어나기를 기다렸다. 한참 후 레키리안이 깨어나자 우리는 두 파트로 나누었다. 나는 차원을 열어 주는 물건이니 셀리티안을 가지러 갈 것이고, 다른 한 파트는 잡혀 들어간 인질들을 구하러 갈 것이다. 셀리티안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강한 존재가 많이 필요하지만 인질을 구하는 쪽도 강한 존재가 많이 필요하다. 한마디로 나누는 것도 꽤 힘들다는 것이다. 아무튼 결론은 나와 피티언, 채은이, 예화, 세리하가 한 팀이 되었고, 테피언, 레키리안, 지콘, 케미리, 정우, 나은이가 다른 한 팀이 되었다. 정우가 따라오겠다고 발악하는 걸 프리스트는 한 곳에 같이 있으면 안 된다는 이유하에 저쪽에 밀어 넣었다. 개인적으로 메이드 프리스트가 좋지, 외계인 프리스트는 거부한다. 그렇게 우리는 그 거대한 성에서 셀리티안이라는 한정된 보석을 찾으러 가야 한다. 나은이의 말로는 서큐버스 여왕이 들고 있다고 하는데, 흐음. 우리는 조용히, 그리고 매우 조심스럽게 성안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이상하게 입구라던가 서큐버스와 인큐버스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방금 레키리안이 죽여 버린 서큐버스와 인큐벗의 30명이 전부다. 그 이후로는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조용하다. 그것도 마치 아무도 없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정도로 무척 조용하다. “마스터, 묘하게 조용한데요?” “너도 그렇게 느꼈냐?” “네.” 피티언조차도 그렇게 느낀 걸 보면 지금 사황이 썩 좋지 않다는 것이다. 마치 지독한 함정이라도 판 듯한 느낌이 드는 건 그저 나만의 착각일까? 하지만 그런 이상한 분위기 덕택에 채은이와 예화, 세리하가 내 옆에 찰싹 붙어 있는 건 좋은 일이다. 터벅터벅. 우리는 조심스럽게 그 넓은 성안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발걸음은 죽이고 숨소리조차도 낮췄다. 그런데 여전히 이상하다. 인기척이 없는 것이 마치 이 거대한 성에 우리들만 있는 기분이 든다. 한편 다른 일행들은……. “미치겠네!” “이것들 뭐야?!” “하아.” 지하 감옥인 듯한 곳으로 들어가자마자 수백 명의 서큐버스와 인큐버스들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그들은 잡혀 들어간 마족들을 구하러 온 그들을 향해 고혹적인 미소와 더불어 유혹 마법을 걸기 시작했다. 그러자 지콘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유혹 마법을 걸려고 시도하는 인큐버스와 서큐버스들의 머리를 임시로 만든 대검으로 부숴 버렸다. 퍼억! “꺄아아악!” “끄아아악!” 콰아앙! 온갖 파괴적임 음성이 울려 퍼졌다. 마왕도 능가할 듯한 강력한 지콘의 힘은 정말 어마어마했다. 서큐버스와 인큐버스들은 유혹 마법이 걸리지 않자 당황해서 자신들의 무기인 채찍을 꺼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모든 무기들은 지콘의 무기에 파괴되고 있었으니까. “우, 우리 제대로 들어온 것 맞을까, 오빠?” 난 채은이의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해 줄 수가 없었다. 나도 과연 제대로 들어온 것인지 의심스러웠으니까. “아마도 그렇겠지. 분명 아까도 서큐버스와 인큐버스도 있었고…….” “그, 그렇지?” “어.” 이렇게 말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불신감이 든다는 게 표가 팍팍 날 정도다. 수천 명이 산다는 서큐버스와 인큐버스가 이 성이 아무리 넓고 거대하다고 하더라도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는 건 좀, 아니 많이 의심스럽다. 그렇게 다시 우리들은 숨을 죽인 채 크기 측정 불가인 성을 dir 20분간 돌아다녔다. 하지만 역시 돌아오는 건 적막감뿐이다. “…….” “…….” “…….” 채은이와 예화, 피티언, 세리하는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을 대충 해석하자면 ‘정말 여기?!’ 하는 눈빛이다. 어떻게 되어 버린 걸까? 갑자기……. “어머, 궁금해?” 탁! 그때 갑자기 들려오는 매혹적인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전투 자세에 돌입했다. 거의 무의식적으로 반응했다는 게 정확한 말이다. “우아, 대단한데? 인간이라고 알고 있는데 엄청 강할 것 같아.” “…….” 분명 말소리만 들려옴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마음을 끌어들이는 힘을 가졌다. 그렇게 긴장감으로 언제든지 무기를 소환해 낼 준비를 하고 있던 나는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살기에 자동적으로 몸이 반응하며 황급히 살기가 뿜어지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거기에는 채은이와 예화, 세리하, 피티언까지 나를 향해 무감각한 모습으로 바라보며 지독한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 갑자기 어떻게 된 거지?! 터벅터벅. 채은이와 예화, 세리하, 티피언은 감각이 없는 눈동자에 살기를 가득 담은 채 나를 향해 다가왔고, 나는 갑작스러운 반응에 혼란스러웠다. 그 순간 다시 들려오는 매혹적인 목소리. “내가 살짝 마법을 걸었어. 한마디로 내 노예가 되어 버렸다는 뜻이지.” “빌어먹을!” 역시 이곳의 여왕이라는 것을 내가 잠시지만 망각한 걸 잊었다. 수천 명의 서큐버스와 인큐버스들을 통제하는 여왕인 만큼 평범함과는 거리가 먼 존재다. 그나저나 지금 내 앞에 있는 일이 문제다. “이게 제일 재미있다니까. 방금 전까지만 해도 같은 동료였는데 갑자기 적이 되어서 말이야.” “…….” 난 그 말에 대꾸하지 않고 로케리스를 등 뒤에서 꺼내 들었다. “로케리스, 슬립이 몇 서클 마법이지?” -3서클 마법인데. “좋아.” 로케리스를 들면 최대 4서클 마법까지 사용이 가능하다. 만약 4서클 이상 마법을 시전할 경우엔 로케리스가 잠에 빠져들어 버린다. 하지만 4서클 미만의 마법은 마나가 무지 많이 든다는 단점이 있기는 해도 사용은 가능하다. 지팡이(stick) 소환! 지지짓! 로케리스와 지팡이는 금세 융합했고, 난 그 융합된 지팡이를 앞으로 내밀고 이지를 상실한 채 나에게 다가오는 일행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슬립!” “…….” “…….” “…….” “…….” 내 조용한 마법 주문에 채은이와 예화, 세리하, 피티언은 순식간에 눈이 감기더니 쓰러지기 시작했고, 난 그 모습을 보고 나와의 거리를 상당히 떨어뜨렸다. 혹시 모르니까 안전하게 말이다. 그런 다음 난 다시 로케리스를 등 뒤에 멨다. 한편 그런 나의 모습을 보았는지 다시 그 매혹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말 재미없어. 마법사였어? 내가 알기로는 분명 검사인데.” “…….” “어머! 대꾸도 안 해 주네.” 대꾸할 기분이 아니다. 치졸하게 남을 강제로 조종이나 해 대다니, 항상 레이디 퍼스트라는 신조를 가지고 있는 나지만 오늘은 예외다. 나를 노리고 내 동료르르 노리는 악마를 보고 웃어 줄 생각은 없으니까 말이다. 펄럭펄럭. 그 순간 갑자기 내 앞의 공간이 갈라지면서 한 여자가 나타났다. 옷은 야하기 그지없었고, 보는 것만으로도 왠지 모르게 흥분이 되어 버리는 여자다. 키는 약 175 정도에 상당한 글래머에다 뒹 달려 있는 검은색의 날개조차도 무척이나 아름다운 여자. 미모도 절대 꿀리지 않는다. 채은이와 예화, 나은이 정도의 외모에 유혹 지수는 상상초월이다. “아하. 난 좀 더 재밌게 싸워 줄 거라 생각했는데…….” 그녀는 아쉽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갑자기 싱긋 웃었다. 어, 어라? 이상하다. 마치 몸이 저절로……. 그냥 이곳에서 죽고 싶다. 저 여자에게……. 파아앗! 그런데 갑작스럽게 눈이 번쩍 떠졌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순식간에 정신이 맑아진 것이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본 그 여자는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떻게 내 마법을 깨 버린 거지?” “내가 알 리가 있나.” “그럴 리는 없어!” 그녀는 갑자기 머리를 붙잡더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듯 마구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었고, 잠시 후 눈이 붉어지더니 나에게 중얼거렸다. “죽여 버릴 거야. 나, 나의 프라이버시를…….” 참 독특한 프라이버시군. 자신의 마법에 걸리지 않았다고 저렇게 성을 내다니. 하지만 지금 그녀가 나에게 한 말은 진심일 것이다. 살기만으로도 찢어 버릴 수 있다면 난 조각조각 찢어졌을 것 같으니까. 파드득! 바로 그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초절정 미녀였던 서큐버스의 얼굴이 갑자기 찢어지더니 괴물 같은 흉측한 모습으로 변해 버린 것이었다. 손톱은 10센티미터 정도로 길어졌고 온몸에는 검은색 반점 같은 게 생겨나기 시작했따. 그뿐만이 아니라 약간은 귀여워 보이던 날개까지도 더없이 징그러워졌다. “나의 본모습을 본 이상 100% 죽음이다!” 어쩐지 너무 예쁘다고 했어. 인공이었군그래. 뭐, 다행이다. 아름다운 여자의 모습으로 싸웠으면 약간 꺼림칙했을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런 모습을 해 주니까 괴물을 죽인다는 생각밖에 없다. 나는 그런 생각과 함께 검을 소환해 낼 준비를 했고, 바로 그 순간! 파아앗! “사, 사라졌어?!” 사라졌다. 말 그대로 그 자리에서 사라진 것이었다. 분명 움직인 건 아니다. 사라진……. 촤르르륵! 그 순간 갑자기 붉은색 채찍이 나의 몸을 촘촘히 감아 버렸다. 이런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하고 있을 때 나의 눈앞에 검은색의 차원이 찢어지면서 흉측한 모습으로 변한 서큐버스의 모습이 나타났다. “너무 쉽게 붙잡힌 것 아니야?” “…….” “내 마법이 깨진 건 예상 밖이었지만 그리 강하지는 않잖아?” 좀 역겹다, 이놈아. 목소리는 아름다운데 겉모습은 완전 에이리언 저리 가라이니 듣는 입장으로서는 고통스럽다. 물론 이게 문제가 아니라 점점 조여드는 채찍이 문제다만. “크윽!” “아파? 걱정 마. 약 5분만 있으면 이 채찍이 너의 몸을 마구 조여서 결국 넌 터져 버릴 테니까.” “젠장!” 이 서큐버스, 미쳤다. 제정신이 아니다. 죽이려면 그냥 죽일 것이지 채찍으로 감아서 터뜨려 죽인다니, 보통 생각지도 못하는 방식이잖아! 나는 있는 힘껏 내 몸을 감은 붉은색 채찍을 풀려고 했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나의 몸을 더욱더 조여 왔다. 정말 터뜨려 죽일 생각인 것 같다. “호호호호.” 안 어울려! 에이리언보다 더 흉측한 모습을 한 채 웃는 서큐버스의 여왕을 보고 당장이라도 이렇게 외쳐 주고 싶었다만 지금 나의 상황이 좋지 않은 관계로……. 크윽! 파직! 파직! “크윽.” “흐음, 나를 영원히 모신다면 노예로 써 줄 수도 있는데.” “거부……한다.” “입은 살았네.” “크아악!” 그 순간 채찍은 내 몸을 더욱 조여 왔다. 얼마나 심하게 조였으면 살까지 채찍이 밀려들어 오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정말 끔찍한 죽음을 당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게 아니라…… 있다. 그 방법이란……. 인첸트 화(火)! 그대로 밧줄에 화의 힘을 주입해서 태워 버리는 거다! 화르르륵! 채찍은 타기 시작했다. 채찍 전체에 화의 힘을 인첸트해 버렸기에 충분히 가능한 현상이다. 만약에 철 같은 거라면 어림도 없었겠지만 지금 나의 몸에 감겨 있는 건 채찍이다. 물론 불이 타오르지만 뜨겁지는 않다. 내가 만들어 낸 불이니까 말이야. “허허허헉.” 온몸을 조여 오던 채찍이 사라지자 나도 모르게 고통스러운 음성이 흘러나왔고, 한편 자신의 채찍이 불에 타 버린 걸본 서큐버스는 그 괴물이 되어 버린 얼굴로 지그시 노려보았다. 그러더니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말을 하기 시작했다. “하, 하찮은 인간이 나의 마법도 부수고 채, 채찍도……. 꺅!” 털썩. 갑자기 서큐버스는 비명과 함께 주저앉았다. 그리고 약 3초간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서큐버스는 또다시 공간을 열고 나오더니 그대로 자신의 예리한 손톱으로 내 목을 노렸다. 난 정말 아슬아슬하게 몸을 비틀어서 팔목이 찢어진 것을 대가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프다. “크윽!” “죽어! 인간!” 정말 당황스러운 전투법이다. 공격력은 강하지 않지만 생전 처음 하는 전투법으로 나를 당황스럽게 한다. 음파로 몸을 묶을 뿐만 아니라 차원을 열고 나오더니 나를 공격하는 방식이다. 검(Sword) 소환! 인첸트 풍(風)! 일루젼 소드! 바람의 기운이 몰아치는 검. 나는 그 검을 죽일 듯이 달려오는 서큐버스를 향해 그대로 찔러 넣었다. 그러자 열 가지로 나뉜 환상의 검이 서큐버스를 공격해갔다. 그럼에도 서큐버스는 갑자기 나를 보더니 다시 입을 천천히 벌렸다. “꺅!” “크악! 제길!” 또다시 들려온 괴음에 내 몸은 검을 찌르던 그대로 멈춰버렸고, 당연한 말이지만 검의 환상도 다 지워져 버렸다. 그와 더불어 서큐버스도 사라졌다. 그렇게 약 3초의 시간이 지나자 마비가 풀렸고, 난 생각할 것도 없이 위험이 느껴지자 그대로 굴렀다. 퍼억! 내가 있던 자리는 어느새 서큐버스의 손톱에 의해 부서져 버렸고, 그 모습을 본 난 땀을 삐질 흘렸다. 손톱인데, 젠장! 저건 아니잖아? 한편 서큐버스는 나를 향해 짜증난다는 어조로 말했다. “쥐새끼 같은 놈!” “케미리 같은 서큐버스!” “…….” 어라, 굳었다? 정말 신기하다. 저번에 오징어도 그러더니 케미리라는 말만 나오면 왠지 모르게 본능적으로 굳어 버리는 신기한 기능이 있다. 뭐, 전투에 도움 될 정도로 굳는 건 아니지만……. 그리고 추가적으로 지금처럼 더욱 성질을 돋우는 기능이 있다. “죽어 버리겠어!” 그 말과 함께 또 사라진 서큐버스였고, 그 모습을 본 난 이대로 가다가는 더 이상 승산이 없다는 걸 느꼈다. 그렇다면 남은 건 일격필살이다. 도끼 소환! 인첸트 지(地)! 절대충격파! 내 생각이 맞는다면 절대충격파가 생기는 영역에 방어와 함께 공격의 힘이 미칠 것이다. 지 속성 자체가 방어적인 힘을 가졌다면 말이다. 난 그런 생각을 한 뒤 서큐버스가 다시 나타나기를 기다렸고, 곧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지자그대로 몸을 돌려 도끼로 내려찍었다. 쾅! 그러자 절대충격파로 인해 순식간에 주변 전체에 타격이 들어갔고, 갑작스러운 공격에 서큐버스는 당황하는 표정이 역력했다.(괴물의 모습으로 변하기는 했지만 그 정도는 표시가 난다) 그런 서큐버스의 모습을 보고 난 기회를 잡았다는 듯 마했다. 와이어 소환! 인첸트 풍(風)! 이중 공격! 파아앗! 내 손에는 보기만 해도 모든 걸 절삭해 버릴 것 같은 와이어가 바람의 힘을 머금은 채 소환되었고, 그걸 본 난 와이어를 들었을 때만 사용하는 기술과 신성 마법 한 가지를 외웠다. “세리카. 헤이스트!” 두 가지의 공속 스킬. 세키아는 15초지만 약 네 배 정도의 속도를 단숨에 끌어 올리는 스킬이고, 헤이스트는 1분간 1.5배 정도 상승시켜 주는 마법이다. 물론 이 두가지의 스킬은 아이템 덕분에 사용할 수 있는 거지만. 어찌 됐든 두 가지의 스킬이 작용하자 내 몸은 마차 바라이라도 된 듯 가벼워졌다. 평소 스피드의 5.5배 이상이다. 평소에도 그리 느리다고 생각하지 않은 나였기에 그 속도의 5.5배라면 거의 예술적인 속도다. 파아앗! 내 몸은 순식간에 쇄도해 나갔고 서큐버스는 보이지도 않는 내 속도에 당황해서 어찌할 줄 몰라 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서큐버스를 향해 순식간에 와이어를 두 번 돌려서 당겨 버렸다. …….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이중 공격이 되어 있는 와이어의 절삭력을 서큐버스는 단순한 그 피부로 막아 냈다. 아마도 원인은 저 알 수 없는, 징그럽기 그지없는 검은색 반점인 것 같다만. 서큐버스는 나에게 조소를 지었다. “이게 뭐야? 잠시지만 스피드에 놀랐는데, 공격이 이리 약해서야.” 그렇게까지 말하면 한번 공격해 주지! 난 그대로 와이어를 밧줄처럼 묶어 버리고 순식간에 뒤로 50미터 이상을 벗어났다. 다행히도 그때까지 세키아가 발동된 상태였기 때문이지만. 하지만 그런 내 모습을 본 서큐버스는 온몸에 와이어를 감은 채 웃기 시작했다. “호호호! 도망을 가는 거야? 나를 이렇게 상대해 준 존재는 네놈이 처음이기는 하다만, 너도 나약한 존재인가?” 마음대로 상상하세요. 나는 그렇게 조용히 생각하면서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 서큐버스를 보고 속으로 웃었다. 자신의 방어력에 상당히 자신 있는 것 같은데, 이것도 막을 수 있을까? 활(Bow) 소환! 화(火), 수(水), 풍(風), 지(地_! 플레지마 스트레이트 샷! 얼마나 방어력이 강한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4대 속성의 힘이 담긴 이걸 막아 낼 수 있을까? 그런 생각과 함께 난 4가지 속성의 힘이 모여드는 무형의 화살을 바라보았다. 저번에는 세 가지의 힘이었다. 세 가지의 힘이 있는 아마다티움조차도 부숴 버렸다. 그리고 이번에는 네 가지의 힘이다. 게다가 플레지마 스트레스트 샷까지 추가했다. 파지지짓! 파지지짓! 파지지짓! 4대 속성의 힘이 모이자 무형의 화살에는 각각의 색깔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잠시 후 화살은 네 가지의 힘을 담은 채 내가 활시위를 놓아주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엘리아스!” 파앗! 4대 속성의 힘이 담긴 데다 스킬의 힘까지 더해진 무형의 화살이었고, 난 그 모습을 보고 이제야 예사롭지 않다고 느끼는 듯한 서큐버스를 향해 발사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슈우욱! 슈우욱!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공간을 타고 숨으려는 서큐버스의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그 공간을 열고 도망가는 시간보다 내 화살이 속도가 훨씬 빠르다. 서큐버스도 그것을 느꼈는지 방어밖에 없다고 생각한 듯싶다. 온몸에 그 징그러운 검은색 반점을 끌어올리는 것을 보니 말이다. 콰아아아앙! 콰아아아앙!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어마어마한 폭발이다. 기절한 채은이와 예화, 세리하, 피티언한테서 멀리 떨어지지 않았으면 피해를 줬을 게 분명할 정도의 폭발이다. 물론 성이 단단한 까닭에 무너지지는 않겠지만 서큐버스가 있던 자리는 소멸에 가까운 모습이 되어 버렸다. “하아, 하아.” 조금 힘들다. 마나와 스태미나, 체력까지 고갈된 느낌이다. 그렇게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갑자기 내 눈 안에 들어오는 하얀색의 독특한 보석. 무척 신기하게 생겼다. 외형은 삼각형의 모양으로 특이한 것은 없었지만 하얀색 보석이라는 건 처음 본다. 그 보석을 본 난 신기함 반과 드디어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 반으로 그걸 주웠고, 그 순간 친숙한 음성이 들려왔다. “총사령관, 구해 왔다.” “고맙다.” 저 멀리서 달려오는 나머지 일행들. 거기에는 납치된 마족과 지콘, 내 소환수들의 모습이 보였다. 휴우, 무사히 끝나 버렸다. 하지만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 “지콘, 너희 쪽은 서큐버스와 인큐버스들이 몰려갔나?” “아니다. 꽤 많은 숫자이기는 하지만 약 300명이다.” 이해할 수가 없다. 분명 6,000명 이상의 인원이라고 호텐이 말했는데? 난 붙잡혀서 그런지 약간은 초췌해 보이는 호텐을 향해 바라보았고, 그런 내 눈빛을 받은 호텐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 몰라, 몰라. 그냥 잘 끝났으면 됐지. 하지만 바로 그 순간 내 주변을 둘러싸는 수많은 인기척. 그와 더불어 불길한 기분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서, 설마 그럴 리가……. 보통 이럴 때 ‘그럴 리가?’ 하면 더 그렇게 된다. 이유는 알 리 없다. 항상 그러더라. 생각이 정리되기도 전에 10미터 앞에서 차원의 문이 열렸고, 거기에는 방금 내가 죽였다고 생각한 서큐버스의 여왕이 있었다. 물론 멀쩡해 보이지는 않지만. 아니, 오히려 징그럽다. 오른쪽 옆구리 일부분은 완전히 소멸되어 버렸고, 피를 잔뜩 흘렸는지 아직도 피가 줄줄 흐르고 있다. 분명 저 모습은 전투 가능한 모습은 아니다. 하지만 묘하게 자신감이 넘친다. 척! 척! 그 순간 아까 느꼈던 수많은 인기척의 정체가 밝혀졌다. 그건 갑자기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서큐버스와 인큐버스들로 못해도 5,000명 이상의 인원이다. 저들이 왜 지금에서야 나타난 것인지는 중요한 게 아니다. 지금 상황이 우울, 잠잠(?)하다는 거지. “너희들은 다 죽는다. 호호호!” 저 이상한 웃음소리. 온몸이 흉측하게 되어 버린 서큐버스는 나를 향해 약 올리듯 말했고, 난 그 말에 한숨을 내쉬었다. 마계에서 괜히 이상한 상자를 여는 바람에 서큐버스와 인큐버스의 차원으로 와서 죽다니, 영 반갑지 않은 성과다. 그런데 다른 일행들은 긴장에 휩싸여 있는데, 이상하게 지콘만은 여유로운 표정이다. 오히려 앞장서기까지 한다. “서큐버스, 우리의 총사려관을 건들다니 간덩이가 쳐 부었군.” “총사령관? 그게 무슨 말이지?” “이 인간은 네라진님의 직속 총사령관이다.” “뭐, 뭐라고?!” 저, 저도 놀라운데 그쪽이 더 놀라시면. 나도 적응 안 되는 사실이었기에 그 말을 들은 서큐버스의 여왕은 상상 초월로 당황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콘의 이어지는 말은 충격 백배다. “지금쯤이면 모든 마족이 카리어티안을 통해 벌써 넘어왔을 것이다.” “왜, 왜? 가, 갑자기 마, 마족이…….” “왜긴. 우리의 총사령관을 구하러…….” “…….” 가, 감동이야. 정말 감동했다. 나를 구하기 위해 그 수많은 마족들이 며칠이나 되었다고? “우리는 한번 강함을 인정하면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 내 생각을 읽었는지는 몰라도 친절히 말해 주는 지콘이었고, 바로 그 순간 주변에 몰아치는 어마어마한 마기의 힘이 느껴졌다. 이런 힘을 낼 수 있는 존재는 방금 지콘이 말한 존대들밖에 없다. 마족이다. 줄줄줄. 서큐버스와 인큐버스들은 변변한 반응도 보이지 못한 채 줄줄이 비엔나처럼 끌려갔다. 이곳에 들이닥친 마족은 약 1,000명.(인큐버스의 여왕은 끝내 죽었다. 내가 입힌 상처가 너무나도 컸기 때문이었다. 어찌 됐든 내가 죽인 게 되어 버렸다) 분명 서큐버스와 인큐버스들의 수가 다섯 배 이상이나 많았지만 그들은 반항을 할 수가 없다. 마족들은 못해도 그들 보다 최소 50배 이상 강하니까 말이다. 내가 상대한 서큐버스의 여왕을 제외한 다른 서큐버스와 인큐버스들은 유혹 마법 외에는 그리 강하지 않다는 추가 설명도 있다. 물론 내가 가져온 셀리티안으로 모든 마족과 서큐버스, 인큐버스들은 다시 이동했다. 그래서 지금 내가 있는 곳은 마계다. 그것도 최고로 좋은 방이다.(대우가 매우 좋아졌다. 총사령관이어서 그런가? 그런데 은근슬쩍 총사령관을 강조하는 걸 봐서는 압박을 주는 것 같다) 그나저나 나는 지금 셀리티안과 카리어티안 두 가지의 물건을 들고 있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 전설이라는 게 구라였나? 그럴 리가……. 말없이 한참을 살펴보던 나는 상자 밑쪽에 셀리티안과 같은 모양인 삼각형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 이건?!” 그것을 보자 긴장이 되었지만 나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셀리티안을 거기에 끼워 넣었다. 파앗! 보석을 끼워 넣자 상자에서는 눈이 부시도록 밝은 빛이 새어 나왔고,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그 빛의 양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약 3초 정도 지났을까? 밝기가 가라앉는 듯싶었고 그대로 눈을 떴다. 그러자 내 손에 들려 있는 한 권의 스킬북. 그 스킬북을 보고 있던 나에게 음성이 들려왔다. -띠링! 신급 스킬이 완성되었습니다. 확인해 주십시오. 시, 신급 스킬북?! 너무나도 당황해서인지 마구 혼란스럽다. 신급 스킬북이란 무극천무열과 다른 신급 스킬북이라는 소리? 나는 당장 확인에 들어갔다. -스페이스 샷- 공간의 화살을 만들어 낸다. 열 개의 무형의 화살이 타켓팅한 대상의 주변에 공간을 뚫고 그대로 공격한다. 전 방위의 공간을 차단하는 공격이다. 상태 이상: 100% 스턴. 동빙. 발화. 감전. 출혈. 암흑. 특징: 1인 타켓팅.(10개의 화살 각각에는 밑에 상시되어 있는 데미지가 포함되어 있다) 데미지: 127,000(숙련도 존재하지 않음) 피/마나 소모율: 50,000/78,000 컥! 이, 이건 궁수용 궁극 스킬? 데미지가?! 그, 그리고 마나 소모율이……. 미치겠다. 상상도 하지 못했던 수확이다. 물론 신급 스킬이라고 다 좋은 건 아니다. 저번에 무극천무열의 대가로 무슨 제어에 실패했다고 나왔다.(물론 죽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그만큼 신급 스킬북은 어렵다. 솔직히 말해 처음 쓰는 입장이었기에 계속해서 집중을 해야 하는데 강력한 데미지로 인해 너무 놀라서 제어에 신경을 쓰지 못한 까닭이지만. 이제는 충분히 제어할 자신이 있다) 어찌 됐든 난 굴러 온 떡을 버리는 성격은 아니어서 당장 배웠다. 그나저나 숙련도도 존재하지 않고 저 말도 안 되는 초특급 데미지는 무엇이냐?! 무극천무열의 2.5배에 해당되는 데미지라니. 물론 내 피와 마나를 다 올인해 버리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나저나 저 마나 양은 더 압박이다. 내가 저번에 끌어올린 전체 마나 양이다. 그래도 분명 서큐버스의 여왕과 싸웠으니까 아주 미세하게나마 올라갔겠지? 안 올라갔으면 지대 난감이다. 난 스텟 창을 열었다. 스텟창 오픈 아이디: 플레스 레벨: 88 직업: 웨폰인첸트 HPMP: 63,600/88,300 힘: 5(?????) 민첩: 286(?????) 체력: 5(????) 지혜: 5(0) 지식: 5(0) 행운: 5(0) 기본 공격력: 31,600 기본 방어력: 7,300 남은 스텟: 120 레벨이 잘 오르지 않는 상태입니다. 자신의 스텟보다 훨씬 높으면 레벨 업이 잘 되지 않습니다. 컥! 자, 잠깐! 레벨이 너무……. 분명 66이었는데 어느새 22업을! 설마 서큐버스의 여왕이?! 그리고 저 상상 초월의 데미지는?! 갑작스럽게 늘어난 약 7,000의 데미지와 한 번에 22업.(레벨 업 소리를 꺼 놓기 때문에 레벨 업을 하는지 잘 모른다) 이해가 가지가 않는다. 아니, 한 가지 이론적인 성립은 가능하다. 내가 죽인 서큐버스의 여왕이 어마어마한 경험치를 주고 대단히 강한 존재였다면 말이다. 하지만 역시 내가 이렇게 광렙을 한 이유는 그 서큐버스의 여왕밖에 없다. 케미리에게 고마워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게 전화위복이 되어서 나를 엄청나게 강하게 만들어 주었으니까. 인첸트와 엘리아스, 그리고 플레지마 스트레이트 샷을 시전하고 내 기본 공격력에다 에쿠리 마린(3일에 한 번 마나를 3,000% 채워 준다.)을 사용한 뒤 풀 마나 상태에서 스페이스를 시전하면 만약에 공간의 화살이 상대방을 적중했을 때 나오는 스페이스의 데미지는 1,670,000(한 발당 167,000이니까.), 거기에다 각종 스킬을 더하면…… 컥! 이, 이게 어떻게 계산되는 거야! 완전 슈퍼 일격 필살이다. 성공하면 그 어떤 존재도 부숴버릴 것 같고 실패하면 그대로 몇 대 몇 방만 맞아도 죽는 상태가 되어 버린다. 상대방의 데미지가 강하다면 한 방으로 죽을 수도 있다. 똑똑! 그렇게 내가 얻은 어마어마한 스킬의 힘을 패닉 상태에 걸렸을 때 갑자기 방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왔고, 그 소리를 들은 난 최대한 진정을 하면서 말했다. “드, 들어와.” 끼익. 그러자 살며시 열린 문틈 사이로 나은이가 얼굴을 살짝 내밀었다. “나은이?” “응. 들어가도 되지?” “무, 물론.” 예상치 못한 방문이었기에 잠시 당황하기는 했지만 금세 회복될 수 있었다. 나은이는 나를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터벅터벅. 나은이는 내 앞 5미터 정도의 거리에서 우뚝 멈추더니 손을 앞으로 가지런히 모은 채 싱긋 웃었다. “할 말 있어?” 궁금하다는 듯한 내 물음에 나은이는 약간 머쓱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슨 말을 하려고 저렇게 머뭇거리는 거지? 내 궁금증은 더욱더 깊어져 갔고, 나은이는 자그마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나, 너 따라가도 될까?” “나를?” “응. 항상 서큐버스와 인큐버스의 차원에서 살다가 마계로 오다 보니 막상 할 일도 없고, 너는 인간이잖아. 여기에서의 임무를 끝내면 인간계로 돌아가잖아? 그래서…….” “뭐, 그거야…….” “따라가도 될까, 민혁아?” 옛말에 이런 말 있다. 미소녀를 거부하면 천둥 번개 날벼락 32,049,092번 맞고 뒈진다는 명언이 말이다.(믿거나 말거나) 그런 관계로 난 거부할 수가 없다.(핑계 좋다) “물론!” “정말?” “그럼, 그럼.” “고마워! 그리고 이건 내 소중한 사람하고 동료가 된 감사의 인가!” 쪽! ……. 그 말과 함께 내 볼에 촉촉한 입술이 닿았고, 나는 갑작스러운 뽀뽀에 당황했다. 가, 감촉이……. 나은이는 멍해져 있는 나를 보더니 살짝 볼을 물들였고, 금세 원래의 표정을 지으며 뒤로 물러서서 말했다. “그럼, 나 가 볼게! 나를 기다리는 분들이 계셔서.” 그렇게 다시 원래대로 밝은 미소를 지으면서 사라지는 나은이였고, 난 무의식적으로 볼을 쓰다듬었다. 물론 첫 키스는 아니지만.(내 첫 키스 상대는 채은이다. 첫 키스라고 하기에는 민망하지만, 내 나이 10살 때 채은이가 실수로 넘어지는 까닭에 입술을 부딪쳤다) 조, 좋다! “오호! 좋은 걸 봤네.” “케, 케미리?!” 난 화들짝 놀랐다. 거기에는 선글라스를 낀 채 건들거리고 있는 케미리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왠지 모르지만 무지 불안하다. 마치 내 심장 한가운데를 바늘로 쿡쿡 찌르는 느낌이다. 케미리는 나를 보고 씩 웃었다. “왠지 모르게 채은이와 예화, 세리하에게 마구 말해 주고 싶은 소식인데?” “헉!”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 야성적인(?) 감각 센서는 막으라고 외치고 있었다. 채은이와 예화랑 세리하는 나와 애인 사이는 아니지만 이상하게 막으라고 내 슈퍼 레이더망이 반응을 하고 있었다. 이 망을 무시해 봤자 좋은 일은 없는 관계로 난 충실하게 듣기로 했다. “워, 원하는 게 뭐냐?!” “헤헤. 마스터, 대화가 통하네. 원하는 거라……. 일단 나를 깍듯이 모셔.” “…….” “그뿐 아니라 흐음, 나를 소환수들 중 리더로 뽑아.” “…….” “그리고, 그리고…….”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묵묵히 수없이 요구하는 케미를 보았을 뿐이다. 그리고 나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 마.” “응? 어, 어라? 마스터가 나에게 그런 표정을 지어도 되는 거야?!” “돼!” “…….” 내 이상한 표정을 보고 태클을 거는 케미리였지만 난 간단히 한마디 해 주었다. 케미리는 이상기후를 포착했는지 땀을 삐질 흘렸고, 난 그 모습을 보고 입맛을 마구 다시면서 아름다운 손짓을 했다. “너는 이미 사라질 테니까. 기억멸구라고 들어 봤나?” “헉!” “괜찮아. 아프지는 않아. 너의 기억을 지울 뿐이니까.” “아, 아니야. 마, 마스터. 난 벌써 모든 기억을 잊어버렸어. 방금 전에 나은이가 온 것도 몰라!” 기억을 잊어버렸는데 나은이가 온 건 알고 있군.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나는 사랑스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슬금슬금 도망가려는 자세를 취하는 케밀에게 달려들며 말했다. “컴 온!” “으아아악!” 잠시 후. “네가 여기에 왜 있지?” “그, 그러게? 내가 왜 여기에 있지? 하하하하하.” 역시 기억멸구(?)란 최강이군. 훗. “하하하하.” 테투언은 웃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가 웃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자신의 심복 나렌이 들고 온 정보 때문이었다. “하하하! 미쳐 버리겠군. 네라진 놈의 총사령관이 하찮은 인간이라고?” “네. 확실한 정보입니다.” “하하하. 네라진 놈, 드디어 미쳐 버렸군. 인간이라는 종족을 총사령관? 그것도 전신이라고 불리는 나 테투언을 상대로?” “제 생각도 테투언님과 마찬가지입니다.” 테투언의 말에 나렌은 조용히 동의했고, 그걸 본 테투언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이거, 이거, 네라진 놈, 나에게 죽고 싶었나 보군. 이런 말도 안 되는 짓거리를 하는 걸 보니 말이야. 인간이 나에게 타격이라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가? 아무리 강력한 데미지를 가진 존재라 하더라도 나에게 흠집 하나를 낼 수가 없는데? 하하하!” 제8장 정우의 하루 오늘은 휴가(?)다. 인큐버스와 서큐버스 때문에 테투언인가 뭔가 하는 놈하고의 전투는 3일 뒤로 미루어졌다. 서큐버스와 인큐버스의 차원으로 왔다 갔다 하며 너무나도 판타스틱한 일을 겪어서 오늘은 집에서 그냥 평범히 뒹굴뒹굴하고 싶다. 마침 일요일이고 임시 점검이고 하니 금상첨화다.(솔직히 임시 점검에서 폭주하려는 네리아를 어떻게 하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불가능한 것을 알기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네리아는 모든 것을 통제하는 슈퍼컴퓨터. 오죽하면 업데이트도 네리아에게 정보만 넣어 주고 알아서 만들게 하겠는가? 정말 이 게임을 만든 사람은 천재라는 말도 너무나 부족하다) 뒹굴뒹굴. 열심히 뒹굴고 있는 나. 근데 뒹굴뒹굴하니까 무지 심심하다. 그렇게 내가 심심함에 말없이 천장을 노려보고 있을 때,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면서 한 인간이 흘러(?) 들어왔다. 굼벵이처럼. 스멀스멀. “좀 제대로 좀 못 오겠냐?” “제 취미입니다.” “…….” 제발! 좀 정상적으로 살아 줬으면 하는 자그마한 바람이 있다. 그냥 들어오면 되지, 왜 갑자기 굼벵이처럼 꿈틀대며서 들어오느냔 말이다! 도저히 이해를 하고 싶어도(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절대 이해가 불가능한 행동을 하는 놈이다. 그렇게 정우는 몇 초면 금방 오는 걸 열심히 꿈틀대면서 왓고, 잠시 후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상쾌한 표정을 지었다. “휴우…….” 도대체 거기서 상쾌한 표정이 왜 나오는 건데?! 무시. 그래, 무시하자. 내 건강상 무시하는 거다. 그렇게 정우를 무시하자고 내 자신에게 세뇌를 걸고 있을 때, 갑자기 정우는 나를 너무나도 장렬한 어조로 불렀다. “형님!” “왜?” “저는 오늘 게임에 접속 못하겠습니다.” 어차피 오늘 접속을 못하지만, 갑자기 그렇게 말하니 이유가 궁금하다. “갑자기 뭔 일이냐?” “오늘 데이트 있습니다.” “데, 데이트?!” “네!” 말도 안 된다. 데이트라니! 저 생물체(?)에게도 진정 여자 친구가 있었단 말인가? 물론 정우의 외모는 출중하다. 하지만 문제는 괴이한 정신세계. 그 정신세계를 이해하는 여자가 존재할 줄이야……. 너무나도 충격적이다. “저는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터벅터벅. 그렇게 정우는 한마디를 한 뒤 곧바로 가 버렸고, 난 그 모습을 보고 옛날에 사 놓았던 검은색 선글라스를 착용하면서 말했다. “어떤 여인인지 궁금하다.” 미행해서 모든 정체를 밝혀 주마, 이 외계 생물체! 그런데 쓸데없이 내가 왜 따라가는 거지? 그래도 궁금한 것보다는 나을지도. ?????? “응. 뭐 예를 들어 특이하다든가?” 예화는 잠시 고민에 잠기는 듯하더니 잠시 후 약간은 느린 어조로 대답했다. “좀 알 수 없는 오빠인 것 같아요.” “바로 그거야! 그래서 오늘 그 알 수 없는 놈의 각종 비리를 파헤치는 거지!” “아…….” 그제야 이해가 됐는지 자그마하게 탄성을 지르는 예화를 향해 내 얼굴을 밀착했다. 그러자 갑자기 예화는 얼굴이 붉어지면서 어쩔 줄을 몰라 했고, 난 그런 예화에게 살며시 말했다. “너도 같이할래?” “네? 어, 어떤 걸요?” “정우 미행.” “…….” “바빠?” “아, 아니요. 바쁘지는 않아요. 어차피 옷 좀 사러 갔다 오는 길인 걸요.” 그러고 보니 예화의 약 20미터 뒤에는 선글라스를 낀 채 ‘나 보디가드요!’ 하는 인상을 팍팍 풍기는 남자 다섯 명이 묵묵히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예화의 전속 시녀로 보이는 한 여자도 있었고. 역시 재벌은 그냥 외출은 안 하나 보다. 아니, 그냥 했다가는 이렇게 순진한 아가씨라면 너무나 위험할지도. 얼굴도 무지 예쁘니까 남자들의 주 타깃이 될 게 분명하다.(채은이 같은 경우도 정우가 아니면 항상 내가 붙어 있다. 정우 저놈, 은근히 싸움도 잘하는 편이다. 일단은 닌자 지망생이니까) “그럼 예화야, 같이 가자. 나 혼자 미행하기에는 심심했거든.” “두, 둘이서요?” “우리 둘밖에 없는걸.” 그 말에 갑자기 예화는 우물쭈물했고, 잠시 후 얼굴을 살짝 붉히면서 개미가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괜찮아요.” “그래? 그럼 가자!” “저, 잠시만…….” 예화는 자신이 시녀와 보디가드에게 다가가 무슨 말을 쑥덕쑥덕하더니 곧 다시 나에게 왔다. “저기, 오빠…….” “응?” “제 안전…… 때문에 약 150미터 뒤에는 감시한다는데…….” “…….” 정말 대단한 직업 정신이다. 뭐, 그 정도야 별 상관은 없지. “괜찮아. 신경 쓰지 마.” “고맙습니다.” 꾸벅. 그 말에 예화는 나에게 갑자기 고개를 숙였고, 나는 별것도 아닌 것에 인사를 하는 예화를 보고 너무나도 당황스러웠다. 예화의 단점이라면 너무나도 착하고 숙맥이어서 약간은 이렇게 무안하다는 거다. 인사를 받아야 할 상황은 아니었는데 말이다. 그렇게 외계 생물체 해부 특할 파일의 멤버는 나와 예화로 불어났다. 물론 뒤에 감시 체재가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난 예화와 너무나도 평범하게(?) 화투를 꺼내고 있는 정우를 지켜보았다. 갑자기 커피숍에서 화투는 왜 꺼내느냐는 말이다. 하, 하고 있어……. 너무나도 큰 충격에 나와 예화는 감시를 하는 도중 그대로 굳어 버렸다. 난 설마 했다. 화투를 꺼내기에 그냥 그림 감상(?)이나 하려는 줄 알았는데, 실제로 가지고 놀고 있었다. 고스톱 그림 맞추기를 말이다. 정말 보는 내가 쪽팔린다. 어떻게 저런 상상을 해서 남들 연애하고 있는 커피숍에서 저런 짓을 할 수 있는지……. 저 정도면 철면피가 비교도 안 되는 수준이다. “…….” “예화야, 좀 충격적이었지?” “그, 그게…….” 항상 남에게 나쁜 소리를 하지 못하는 예화조차도 어색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해한다.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니까. 저놈은 외계 생물체가 놀러 온 것이니까 말이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한참 동안 그림 맞추기를 하던 정우가 무엇인가를 하는가 싶더니 갑자기 탁자에 있던 화투의 행방이 묘연해졌다. 저 새끼, 도박에도 일가견 있는 것 아니야? 아니, 일간견이 있다. 저 예사롭지 않은 손놀림, 도박꾼들의 완벽한 손놀림이다. 그렇게 순식간에 고스톱을 사라지게 한 정우는 자신의 오른쪽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더니 전화를 받는 듯싶었고 입이 살짝살짝 열리는 걸 보아 대화 중이다. 대충 복화술을 응용해서 보면 “알겠습니다.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아, 네. 괜찮습니다.” 라는 말인 것 같다. 물론 확실하지는 않다. 그냥 정우에게 어깨 너머로 배운 기능이어서 말이다. 정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자신을 신기하게 쳐다보는 모든 연인들을 향해 싱긋 웃으면서 커피숍을 빠져나왔고, 난 아직도 혼란스러워 하고 있는 예화의 손을 붙잡았다. 덥석. “오, 오빠.” “가자! 추격이다!” “네.”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이는 예화를 나는 그대로 손을 붙잡고 추적했다. 너의 정체는 전부 영원히 모든 걸 샅샅이 무조건 완전히 파헤쳐 주마, 이정우! 그렇게 나는 예화의 부드러운 손을 잡은 채 어딘가로 이동하는 정우를 몰래몰래 따라붙었다. 정우는 가던 도중 주변을 슬쩍 둘러보았고, 그 모습을 본 난 다급하게 예화를 껴안으면서 근처의 전봇대 뒤로 숨었다. 서, 설마 눈치 챘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초조해지기 시작했고, 그렇게 약 20초 후 난 아무런 반응이 없자 다시 정우가 있던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정우는 그냥 열심히 게걸음으로 걸어가고 있었다……가 아니라! 왜 갑자기 게걸음인 건데! 도대체 저놈은 ‘왜’ ‘어째서’ ‘무엇 때문’ 이라는 요소가 다 빠져 버린 놈이다. 평범하게 걷다가 왜 갑자기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게걸음으로 가냔 말이다! 정말 이해하기에는 너무나도 큰 정신병이다. 케미리를 초월했어, 저놈은. “저, 저기…… 오빠.” “응?” “그, 그러니까…….” “헉! 미, 미안!” 예화의 더듬는 말소리에 처음에는 영문을 모르다가 내 품에 안겨 있는 미소녀를 보고 지금의 상황을 이해해 버렸다. 숨는다고 예화를 무의식적으로 껴안아 버린 것이다. “아, 아니에요. 저, 저는 상관없어요.” “…….” 그, 그 말뜻의 진위는 무엇인고? 헉! 요새 내가 과대망상이 심해진 걸까? 채은이부터 예화까지. 예화가 한 말의 진위를 파악하고 싶었지만, 일단은 저 게걸음으로 어딘가를 가는 정우를 쫓아가는 게 더 중요하다. 저런 괴상한 정신세계를 가진 여자 친구라니, 이제는 보는 게 두렵다. 헉헉! 왜 걸어가는 건데! 저 새끼 뭐야! 저놈, 벌써 1시간 10분째 걸어가고 있다. 왜 멀쩡한 버스 놔두고 맹렬히 걸어가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 도대체 저놈 뭐야, 뭐야, 뭐야! 그래도 그 덕분에 예화를 업을 수 있다는 너무나도 큰 행복을 주셔서 감사하기는 하다만. 뒤에 느껴지는 푹신푹신한 느낌……. 풋! 이, 이게 아니라……. 저놈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 거지?! 아무리 분석을 해도 파악이 되지 않는 생물체다. “저, 저기…… 오빠, 저 무겁죠?” “저번에도 물어보더니. 진짜 별로 안 힘들어.” 그 말과 함께 최대한 밝은 미소를 짓자 예화는 얼굴을 붉히면서 내 등 뒤로 얼굴을 파묻었다. 숫기가 너무 없기는 하다만 그래도 귀엽다. 뭐 어찌 됐든 문제…… 머, 멈췄다! 그 순간 맹렬히 1시간 10분을 걸어가던 정우가 아무도 없는 골몰길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거기에는 붉은색 선글라스를 쓰고 하얀색 모자를 푹 뒤집어쓴 사람이 있었다. 저 사람이 혹시 여자 친구?! 그나저나 이상하게 평범해 보인다만……. 이제까지 상상했던(외계적인 정신세계를 가진 여자) 여자가 아닌 것 같아 나는 꽤 당황스러웠다. 바로 그때 그 사람은 하얀색 모자와 붉은색 선글라스를 벗었고, 난 드러난 얼굴을 보고 경직되었다. 저, 저 여인은?! “오빠, 윤지……라는 분 아닌가요?” “나도 그렇게 봣어.” 나이 17살의 최고의 아이돌 가수. 물론 외모로만 보면 채은이와 예화, 나은이에 비해서 좀, 아니 많이 떨어진다.(거듭 말하지만 얘들은 연예인들보다 몇 배는 더 예쁘다. 성형을 해도 불가능한 얼굴이라는 말이다) 그렇지만 저 정도의 미소녀는 대중에게 먹혀 들어가기에 충분했다. 내 뒤에 있는 예화랑 비교해서 그렇지, 저 정도 외모면 연예인 중에서 상위급 외모였으니까. 그리고 그녀는 외모뿐만이 아니라 환상적인 가창력도 뒷 받침된다. 평소 목소리는 꽤 귀여운 편인데 노래를 부를 때는 엄청난 카리스마를 내뿜었다. 게다가 환상적인 댄스까지. 한마디로 완벽한 가수라는 소리다. 키는 약 169Cm, 채은이보다는 1Cm 정도 크겠다. 그리고 몸무게가 공식적으로는 약 45Kg, 확실하게는 모르지. 그 순간 갑자기 들려오는 대화와 행동. “정우야, 보고 싶었어!” 와락! ……. 그대로 그 윤지라는 아이돌 가수가 정우를 마구 껴안았다. 이, 이럴 수가! 저 외계 생물체의 여자 친구가 최고의 아이돌이라고 평해지고 정신세계가 지독히 멀쩡해 보이는 저 소녀라고?! 할 짓 없어 어슬렁어슬렁 지나가던 케미리(개)도 안 믿을 사실인데, 나보고 믿으라고? 30분 후. 나와 예화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저건 어떻게 봐도 데이트였다. 너무나도 해맑게 웃고 있는 두 남녀, 음료수를 하나 시키고 두 명이서 먹는다든가 여자가 정우에게 팔짱을 낀다든가, 완벽한 데이트였다. 그 모습을 한참 동안이나 멍하니 쳐다보던 난 뒤에 있던 예화에게 말했다. “예화야, 돌아가자.” “아, 네.” 그냥, 왠지 모르지만 좀 충격이다. 뭐, 그래도 저 윤지라는 연예인이 정우를 클리닝 해 주기를 빌 뿐이다. 간절히 말이다. 아니, 감염이나 안 됐으면 좋겠다. “하아…….” 그렇게 난 나도 모르게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날 밤. 나는 오늘 본 충격적인 영상이 잊히지 않았고, 우리 집에 놀러 온 채은이는 나를 향해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오빠, 왜 그래?” “…….” “무슨 충격적인 영상을 본 것같이 그래?” “채은아.” “응?”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왜 그러는 건데?” “정우에게 여자 친구가 있다면 믿겠니?” “에에에에?” 내 말에 기겁을 하는 채은이. 대충 풀이해도 믿어지지 않는다는 제스처다. 저렇게 기겁까지 하는 걸 보니까 말이다. 채은이는 나를 향해 말도 안 된다는 듯이 말했다. “그건 무슨 이상한 소리야?” “이상한 소리가 아니라 진실이란다.” “지, 진실?” “그래. 그것도 보통 여자가 아니라 요새 뜨고 있는 윤지라는 소녀란다.” “마, 말도 안 돼!” 자신도 모르게 억양이 올라가는 채은이였고, 그 심정은 나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본 나도 믿어지지 않는데 들은 사람이 이해하기에는 너무나도 큰 충격적인 소식이다. 또르르! 그 순간 어디서 구르는 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거기에는 언제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는지 바닥에서 떼구루루 구르고 있는 정우가 있었다. “…….” “형님도 같이하시겠습니까?” “…….” 부, 불쌍해, 윤지가! 너무 불쌍해서 슬프다. 저런 이상한 놈한테 감염이 될가 봐. 신문 1면을 장식하는 톱뉴스에 ‘최고의 아이돌 윤지, 갑자기 이상한 짓을 하고 있음.’ 이라고 뜰지도 모른다. “왜 그러십니까?” “야! 내가 남의 연애 가지고 뭐라 하고 싶지는 않은데, 제발 네 애인을 감염만 시키지 마라.” “애인이라니요?” 시치미냐? 하지만 내 눈으로 똑똑히 봤다. “다 봤어, 임마! 오늘.” “헉!” 내 말에 깜짝 놀라는 정우. 자신의 행동이 나에게 관찰됐다는 게 놀라운 모양이다. 그렇지만 정우의 표정은 금세 평소대로 돌아왔다. “그, 금방 회복되는 거냐?” “흐음.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방금 그건 그냥 헉! 하고 해보았습니다.” 저놈의 시치미를! “임마, 예화도 다 봤어!” “예화!” 하지만 정우의 입에서 들려온 말이 l아니고, 채은이의 입에서 들려온 대사다. 무지하게 싸늘해진다. “정우 놈을 미행하는데 예화를 우연찮게 만나서!” “흐음, 그렇구나!” “물론, 물론!” 볼을 부풀린 채 나를 보는 채은이를 보고 아주 정직하게 말했다. 아무 일도 없었다(?). 그냥 평범하게 미행만 했다. 아 참, 이게 아니라……. “그러니까 나와 예화가 네놈이 윤지라는 아이돌하고 만나는 걸 목격했단 말이다!” “흐음, 그거 말씀입니까?” “……?” “윤지 양하고는 초등학생 때부터 친구였습니다.” “…….” 그, 그럴 수가! 애, 애인이 아니라 친구? 나 혼자 삽질한 거야? “걱정 마십시오. 형님을 한동안 보좌하겠습니다. 여자 친구는 나중에 사귀도록 하겠습니다. 저의 온몸은 언제든지 형님 것입니다.” 그냥 내 보좌하지 말고 애인 사귀렴. 스르륵. 스르륵. 그 순간 옷이 벗겨지는 소리가 들려왔고, 어느새 침대에 누운 채 윗도리를 벗으려는 정우의 모습이 보였다. “이 새끼야!” “헉!” 나는 그대로 밟기 시작했다. 오늘은 분명 평범하게 쉰다고 생각했는데 왠지 모르게 더욱 피곤한 하루가 되어 버렸다. 저 정우 놈이 끼여 있으면 항상 그러더라. 제9장 최강의 창 VS 최강의 방패 긴장된다, 긴장된다……. 너무나도 긴장된다. 하지 말 걸 그랬다. 하지만 안 하기에는 소수의 인원으로 침투해 들어가는 건 불가능하고, 그렇다고 수천 명의 마족을 지휘하는 총사령관도 부담된다는 말이다. 네라진의 수하에 있는 마족은 약 2,500명이다. 하지만 내가 상대한 전신이라고 불리는 서열 1위 테투언의 수하에 있는 마족은 약 4,000명이다. 거의 1,5배나 차이 나는 숫자다. 하아……. 한숨만 나온다. 물론 우리에게는 내 5대 소환수와 지콘이라는 히든카드가 있다. 하지만 그 소수의 인원으로 강력한 마족들 1,500상을 상대하기는 불가능하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길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1.5배라는 수와 더불어 ‘전신’ 이라고 불리는 테투언을 이기냐는 말이다. 그렇게 내가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내 앞에서는 카드가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카드를 하고 있는 주인공들은 도박 개 케미리와 외계 생물체 정우다. 평소 같으면 지금 상황에 도박이나 해 대는 저것들을 두들겨 팼겠지만, 오늘은 나도 살짝 기대하고 있다. 도박의 정점에 이른 자가 케미리인지 정우인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약 500개의 동전으로 시작해서 그 동전을 모두 따는 자가 승리다. 게임이 진행된 지는 30분이 지났고 지금 정우가 가진 동전 개수는 약 700개, 케미리는 약 300개다. 케미리가 상당히 밀리고 있는 상태였다. “…….” “…….” 케미리가 처음으로 긴장을 하고 있다. 도박을 하면서. 그에 비해 정우는 웃고 있었고. 그때 갑자기 케미리는 회심의 일심을 지으면서 카드를 좌르륵 펼쳤다. “K 풀 하우스!” 거기에는 KKK와 44로 된 풀 하우스가 있었고, 그걸 본 정우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면서 9짜리 네 개를 내밀었다. 포, 포커? 그럼 정우의 승리인가? 한데 방금 그 난감한 표정은 뭔고?! 어찌 됐든 또다시 정우가 이겼고, 케미리의 동전은 순식간에 200개로 줄어 버렸다. 분명 승패는 14승 13패로 케미리가 1승 앞서가지만, 큰돈이 걸린 판에서는 이상하게 케미리가 이렇게 밀리고 있었다. 덜컥. 바로 그때 방문이 열리면서 네라진의 모습이 보였고, 그 순간 난 케미리가 눈을 번쩍이는 걸 봤다. 쾅! “어라?! 판 엎어졌네?” 네놈이 엎었잖아, 임마! 하지만 케미리는 딴청을 피우면서 말했다. “아쉽네. 간단히 역전할 수 있었는데…….” “…….” “아! 정우, 나중에 결판내자.” “그러도록 하지요.” 저 치졸한 개새끼. 정말 치졸해도 저렇게 치졸할 수가 없다. 네라진이 방문을 여는 그 0.1초를 이용해 그대로 판을 엎다니, 어떻게 보면 순간적인 반사 능력이 예술이다. 그나저나 네라진이 손수 오다니 무슨 볼일이지? “나랑 잠시 이야기 좀 할 수 있겠나?” 터벅터벅. 나는 말없이 네라진의 뒤를 따라갔다. 무슨 말이기에 저렇게 표정이 굳어 버린 거지? 굳어 있는 네라진의 모습에 난 궁금하기도 했지만 말없이 그냥 따라갔고, 한참을 가던 네라진은 자신의 서재 앞에 서더니 문을 열었다. 문은 아무런 소리도 없이 부드럽게 열렸고, 나와 네라진은 서재 안으로 들어갔다. 네라진은 근처에 있는 소파에 앉더니 맞은편을 손으로 가리키면서 말했다. “앉게.” 털썩. 그 말에 나는 가볍게 소파에 앉았고, 그 모습을 본 네라진은 나를 향해 말했다. “뭐라도 마시겠나?” “용건이 있으면 말해.” “흐음, 그러는 게 좋을 것 같군. 내가 자네에게 일대일 대화를 요청한 건 테투언에 대한 정보를 주기 위해서네.” “정보?” “그래. 너는 테투언에 대해 얼마나 알지?” “강하다?” “물론 강하지. 그런데 그가 왜 그렇게 강한 줄 아는가?” 알 리가 없잖아! “내가 너무 형식적인 질문을 해 버렸군.” “전신 테투언은 마족 서열 1위, 그리고 나는 서열 2위다. 그건 알고 있겠지?” “물론.” “서열 1위와 2위의 차이는 별로 없어 보이지만 상당한 차이가 난다.” “얼마만큼이나?” 내 질문에 네라진은 뭐가 그리 부끄러운지 잠시 머뭇거렸고, 나는 빨리 말해 달라고 재촉 빔을 발생했다. 눈빛을 받은 네라진은 고개를 저으며 한숨과 함께 말했다. “하아. 사실 테투언을 절대 이길 수 없다.” “……?” “내가 수억만 명이 있어도…….” 에에? 그건 무슨 계산법?! 마족 서열 2위가 수억만 명이 있는데 한 명을 처치 못한다고?! 무슨 이리 재미없는 농담을 저렇게 진지하게 하지? 아니면 그걸 나보고 믿으라는 건가? 하지만 곧 네라진은 믿을 수 없는 정보를 말해 주었다. “그는 공격력이 그리 강하지 않다. 나보다도 훨씬 약하지. 하지만 그가 최강이 될 수밖에 없는 건 엄청난 스피드와 특히 절대 부술 수 없다는 그의 방어력 때문이다.” “방어력? 스피드?” “스피드도 빠른 편이기는 하지만, 방어력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그의 피부 자체는 거대한 방어의 한편이다. 아마다티움으로 만든 검으로 공격해도 미미한 상처조차 나지 않으니 말 다 했지.” “…….” “그래서 내가 자네에게 총사령관을 맡긴 것이다. 케미리의 말에 의하면 너는 지상 최강의 데미지 딜러니까. 그에게 데미지를 줄 수 있는 건 너밖에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한 마디로 저쪽 최가의 방패를 이기기 위해서는 우리도 최강의 창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5권에서 계속> -by로사. 마스터 오브 웨폰 5권( 제1장 정우의 묘책? 최강의 창이라…… 좋은 말이다. 나를 이렇게나 높게 봐 주니 고마울 뿐이다. 하지만 그거와 별개로 솔직히 말해 자신이 없다. 전신이라고 불리는 남자. 아만다티움이라는 최강의 금속을 가진 무기로도 흠집 하나도 나지 않는 방어력을 가진 남자. 솔직히 얼마만큼이나 강한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하아아.”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온다. 나의 말 한마디에 2,500명이나 되는 마족의 목숨이 달려있을 뿐만 아니라, 나에게는 테투언을 이겨야 된다는 것도 있었다. 한마디로 진퇴양난이라는 말은 이런 곳에 쓰이는 것 같다. 뭐? 아니라고? 그럼 그냥 패스. 그렇게 난 세상이 무너질 듯한 한숨과 더불어 30명이 누워도 될 만한 침대에서 뒹굴거리고 있었다. 뒹굴뒹굴. 계속해서 오른쪽으로 갔다가 왼쪽으로 갔다가 뒹굴거리는건 의미는 없다. 이런 행동에 의미를 생각하는 놈이 미친놈이겠지. 그냥 단순히 심심하고 머리가 복잡해서 뒹굴거릴 뿐이다. 똑똑. 갑자기 나의 방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왔고 난 그 소리에 침대에서 일어나서 앉은 다음 뚱한 어조로 말했다. “누구야?” “형님, 저입니다.” “…….” 이, 이 목소리는! ……정우 놈이다. 이상하게 정우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갑자기 긴장이 된다. 마치 온몸을 정우가 핥는 듯한 느낌? 어쨌든 불쾌한 느낌이다. “형님?” “뭐, 뭐야? 용건 있으면 그냥 말해!” “형님을 직접 뵙고 말씀드려야 할 이야기입니다.” “…….” 그 말에 난 어쩔 수 없이 허락을 할 수밖에 없었다. 직접 보고 말해야 한다는 것을 보면 꽤 중요한 이야기인 거 같았기 때문이었다. “……들어와.” “감사합니다.” 덜컥. 그 순간 거대한 방문이 열리면서 정우의 모습이 보였고 정우는 나의 방에 들어오더니 온 주변을 살펴보기 시작하였다. “뭐 하는 거냐?” “여자 분들이 계시면 곤란해서 말입니다.” “……?” 도대체 무슨 용건이기에 여자들이 있으면 곤란해진다는 건지……. 난 더욱더 궁금해지기만 했다. “아무도 없군요.” 그 말과 함께 정우는 다시 나의 방문을 닫았고 잠시 후 근처에 있던 탁자를 마구 끌고 오더니 방문의 문을 막아 버렸다. 저 새끼, 뭐 하는 짓이야?!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한 것입니다.” “도대체 뭔데?” 정우가 이렇게까지 하는 걸 보면 무지 중요한 일인 듯도 하다. 남들이 보면 국가 기밀인 줄 알겠다. 그렇게 정우는 이상한 행동을 보인 뒤 나에게 터벅터벅 걸어왔고 잠시 후 나의 앞에 이상한 잡지를 꺼냈다. “이게 뭐냐?” “그거입니다.” “……그거?” “형님도 보시면 흡족해 하실 겁니다.” “…….” 덥석. 그 말에 난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그 이상한 잡지를 들췄다. “커억!” 그걸 보는 순간 난 숨이 넘어갈 뻔했다. 온몸에 아드렐라린 저글링들이 온몸을 강타하는 느낌이다(함부로 느낄 수 없는 기분이다.) “마음에 드십니까?” “이, 이건?” “네. 우연히, 정말 우연히, 우연히 우연스럽게 우연잡게 우연쿠하게 우연뷰티불하게 여기서 발견했습니다.” “…….” 그 말에 예전 같았으면 정우를 쳐다보았겠지만 지금은 그 잡지에 집중을 할 수밖에 없었다. 속으로 안 된다, 안 된다, 해 보았지만 이미 이성은 마비되었다. 그것은…… 말로만 듣던 성인잡지였기 때문이었다. 아, 안 돼! 난 짐승이 아니야! 이런 나의 현명한 이성과 다르게 정우가 살짝 살짝 넘기는 성인잡지에 나도 모르게 눈이 쏠렸다. “형님, 좋지 않습니까?” “…….” 그 말에 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이미 나의 사고회로는 정지했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을 본 정우는 슬며시 웃으면서 나와 함께 그 성인잡지를 열심히 구경하기 시작하였다. 바로 그 순간, 갑자기 나의 반지가 번쩍였다. “뭐, 뭐야?” 난 갑자기 반지가 번쩍이자 화들짝 놀랐고 거기에는…… 어느새 테피언이 눈을 빛내면서 나를 보고 있었다. “여자 냄새가 나.” “…….” 무, 무서운 놈. 사진의 냄새까지 맡는 저 어마어마한 집념에 감탄을 금치 못하겠다. 한편 반지에서 나온 테피언은 주변을 살피더니 정우와 내가 살펴보던 성인잡지를 보고는 레인보우(?) 눈빛을 빛냈다. “나, 나도 볼래!” 테피언은 어느새 순수한 사진을 보는 데 참여했고, 그렇게 테피언은 성인잡지에 눈을 빛냈다. 성인잡지 보는 데스나이트라…… 할 말이 없다. 그렇게 우리는 아주 중대한 일을 잊어버린 채, 삶에 대한 탐구를 하기 시작하였다. 에로사진하고 탐구하고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정우가 그랬다고 말이다. 저번에 분명 정우 놈이 나에게 와서 속삭였던 말. ‘성인잡지는 삶에 대한 탐구입니다’ 당연히 그 말을 들은 난 기막혔지만 그냥 무시하기로 했었다. 저놈의 말을 곧이듣는다고 이해할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성인잡지 = 삶 아무런 연관이 없어 보였지만 정우가 이야기한 이상 분명 연관이 있다. 확실한 자료가 준비되지 않은 채 그런 말을 할 놈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뭐, 지금은 그런 게 궁금한 게 아니었지만. “주, 죽인다.” “그렇지요?” “미, 미치겠어.” 흥분함이 가득한 데스나이트 한 마리, 그 외 동조하는 외계인 한 마리. 그 안에 껴 있는 난 뭐지? 갑작스럽게 그런 생각이 들자 난 나도 모르게 고뇌에 빠졌다. 난 항상 정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보면 이리 이상한 집단의 리더를 맡고 있다. 분명 난 정상이다. 그래 정상이야, 정상이야……. 하지만 이 온몸에서 나는 동조감(?)은 뭐지? 아, 아니야! 그 순간 난 나도 모르게 나의 머리를 붙잡았다. 분명 난 이때까지 이 파티 중. 여자들을 제외하고 엄청난 정상인 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새 뒤를 돌아보니 이러 괴상한 놈들과 함께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건 아니다. 정말……. “형님, 왜 그러십니까?” “…….” “무슨 충격이라도?” 한편 나의 충격적인 얼굴을 본 정우가 너무나도 순수한 모습으로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질문을 하였고 그 모습을 본 난 왠지 모르게 분노가 차올랐다. 내가 나도 모르는 새에 이것들과 동조를 한 이유는 이 앞의 정체불명의 외계인 한 마리 때문이다. 이놈이 제일 무서운 건, 자신도 모르게 저놈의 페이스에 말리게 하는 것이다. 그 어떤 존재도 피해 갈 수가 없는 끈끈이 같은 놈이다. “네놈 어느 별에서 온 외계인이냐?” “딴따리아입니다.” “…….” “농담입니다.” “…….” 나의 말에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대답하는 정우를 본 난 기가 막혔다. 어떻게 인간이 뻔뻔해도 저리 뻔뻔스러울 수가! 정우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다. 언제든지 무표정 아니면 방긋이다. 참 얼굴표정이 단순해서 읽어 보기는 편하다만, 단점이 하나가 있다. 바로 저놈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의 표정을 가지고 있다. 그 표정을 보고 이 사람이 어떤 상태인지 유추를 해낼 수 있지만, 저놈은 그런 게 없는 관계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절대 알 수가 없다. 개인적으로 NASA에 직접 의뢰해 보고 싶다만…… 아마도 NASA에 직접 의뢰를 해도 포기를 할 확률이 높아 보인다. 한편 나와 정우가 대화를 하는 사이 테피언은 여전히 눈을 빛내면서 잡지를 보고 있었다. 완전히 넋이 나간 모습으로. 얼굴이 깡통이라 표정으로 아는 건 아니고 분위기로 아는 것이지만. “조, 좋앙!” “…….” “주, 죽이네.” “…….” “하아, 하아. 미쳐 버리겠어. 돌아 버리겠어.” “…….” 테피언은 조용히 하지 못한 채 그 도색잡지를 보는 내내 혼자서 마구 중얼거렸고 그 모습을 본 난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방금 전에 내 모습도 저러지 않았을까? 문득 그랬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오오오오오옹오오!” 테피언의 흥분된 목소리가 아주 잘 들려온다. 그나저나 이 장면을 여자들에게 목격……. “허억!” “허억!” 그 순간 나와 정우는 동시에 놀랐다. 정우가 놀라는 모습을 저장해 놓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지만 지금은 불가능한 관계로. 일단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정우를 놀라게 한 것의 이유는……. “주인님, 여기서 뭐 하세요?” “세, 세리하!” 갸우뚱. 나의 경악에 찬 음성을 들은 세리하는 의아하다는 듯한 행동을 하였고 그 모습을 본 난 숨이 턱턱 넘어갔다. 어, 어떻게 세리하가 여기에 있는 거지?! 분명 정우가……. 그런 생각이 들자 난 정우를 바라보았고 나의 눈빛을 본 정우는 눈빛으로 속삭였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부, 분명 네가 입구까지 막았잖아!’ ‘그렇습니다.’ ‘지금 입구는 그대로인데 세리하가 어떻게 저렇게 있냔 말이다!’ ‘저도 예상치 못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왕 이렇게 된거…….’ ‘이렇게 된 거?’ ‘비상 사태 A를 발동시키도록 하죠, 형님.’ 저, 저기, 정우군, 비상 사태 A는 뭐냐? ‘제가 특별히 이번 사태를 대비해 짜낸 작전입니다.’ ‘…….’ 그러니까 네놈 말은 혹시라도 성인잡지를 보고 있다가 이런 경우가 생길 것을 대비해 비상 사태 A라는 괴상한 작전을 지어냈다고 나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냐?! 무서운 놈이다. 하지만 어찌 됐든 희말이 생겼다. 다시 한 번 눈빛을 쏘는 나. ‘그래 비상 사태 A는 뭐냐?’ 그 말에 정우는 씨익 웃었다. 그리고 테피언을 바라보았다. 참고로 지금 테피언은 세리하가 온 것도 모르고 아직도 성인잡지에 집중한 상태다. 저 저오도의 집중력은 칭찬을 해 주고 싶지만, 지금 상황은 그게 아니니 문제다. 정우의 비상 사태 A의 뜻을……. 정우는 반복했아. 테피언을 한 번 보고 씨익 웃고, 다시 한 번 나를 보고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고. 바보가 아니라면 그 뜻 정도는 이해한다. 하, 하지만, 난……. ‘형님, 제대로 된 선택을 하셔야 합니다.’ ‘…….’ ‘어쩔 수 없는 선택입니다.’ 정우의 간절한 눈빛 탓이었을까? 정우는 나를 보고 정말 간절하게 속삭였다. 하자고 말이다. 그렇게 정우는 한참을 나를 바라보았고 그 못브을 본 난 어쩔 수 없다는 걸 느꼈다. 어차피 시간이 더 지난다면 이 비상 사태 A도 먹히지 않을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테피언, 미안. “테, 테피언님. 도, 도대체 형님과 저에게 이걸 강제로 보여 주시는 이유가 뭡니까?” “엥?” 정우가 운을 떼었고 그 모습을 본 난 눈물을 머금고 동조했다. “맞아! 테피언, 네, 네가 여자를 밝힌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이건 안 돼!” “맞습니다. 형님과 저는 이런 걸 보는 취미가 없는 건전한 남자입니다!” “그, 그래!” “가, 갑자기 왜 그래?” 우리들의 이상한 반응을 본 테피언은 이상하다는 듯 말했고 잠시 후 뒤에서 느껴지는 살기를 감지했는지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거기에는 세리하가 웃으며 오오라를 내뿜고 있었고, 그 모습을 본 테피언은 지금의 상황을 이해했는지 우리들을 향해 한마디 하려고 했지만, 세리하의 메이스가 더 빨랐다. “변태야! 우리 순진한 주인님에게 이상한 거나 보여 주고!” “난 아니……. 으아아아악!” “…….” “…….” 정말 미안. 정우와 난 은근슬쩍 방에서 빠져나왔다. 나의 방이었던 곳에는 한 데스나이트의 비명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너와의 아름다웠던 추억은 잊지 않을게. 그렇게 테티언의 고귀한 희생(?)으로 정우와 난 이상한 성인잡지나 보는 남자들이 아니게 되었다. 물론 우리 몫까지 테피언이 다 받아들여서 가능한 이리었지만. 평소에 여자를 밝히던 테피언의 행동 탓인지. 오히려 이런 행동 자체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겨져 버렸다. 만약에 이미지가 청렴결백한 데스나이트였다면 의아해 했겠지만, 테피언의 이미지는 여자 밝히는 데스나이트라는 명확한 이미지가 있기 때문에 너무나도 쉬웠다. 어찌 됐든 한 차례의 폭풍이 지나간 뒤 나의 방. 나는 또다시 침대에 누워 있다. 아까 전과 다른 점은 문 앞에 푯말을 붙여 놓은 것. 그 푯말의 내용이란……. 정우 금지. 이상한 소환수 놈들 금지. 여자들만 가능. 특히 정우 놈 오면 죽여 버리겠다. 이라고 적어 놓았다. 분명 방금 전에 고민에 잠겼던 나였는데 정우가 이상한 잡지를 가져오는 바람에 괜히 시간만 날려 버렸다. 이제 내일이면 전면전인데. 이렇게 놀고 있을 시간은 없는 것이다. “하아.” 그렇다고 막상 작전이 떠오르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나에게 들려오는 건 깊고 깊은 한숨. 정말. 보통 이럴 때 엄청 위대한 참모가 주인공에게 히트감 날리는 작전을 주면 주인공은 그 작전을 수용해서 열심히 해야 정상이다만…… 어디를 봐도 그런 인물은 없다. 아니 그쪽 세계와는 동떨어진 주변 인물들밖에 없다. 생각해 보니 약간은 슬프군. 일단 우리 참모는 피티언이다. 왜 피티언이 참모라고 말하냐면, 그대로 그나마 소환수 중 제일 정상적이어서 옛다 하고 던져 주었다. 참고라는 게 무슨 서비스 직종도 아니다만, 정말 참모 정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느꼈기에 그냥 피티언더러 참모 하라고 했다. 뭐 안 뽑으면 그만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일단 참모 한 명은 있어야 그나마 괜찮아 보일 거 같았다. 똑똑. 그 순간 또다시 들려오는 소리. 그 소리를 들은 난 불길한 느낌에 외쳤다. “누구냐?!” “형님, 저입니다.” “푯말이 안 보이냐?” “잘 보입니다.” “그런데 노크를 해?” “걱정 마십시오. 그래서 글씨에 적힌 대로 행동했습니다.” “…….” 그게 무슨 말이지? 난 분명 표지에 ‘정우 금지. 이상한 소환수 놈들 금지, 여자들만 가능. 특히 정우 놈 오면 죽여 버리겠다.’ 라고 붙여 놨는데? “지금 제 상태는 여장을 한 상태이고 이름도 정호로 개명을 했습니다.” “…….” 뒤, 뒷골 땡겨. “제가 아주 기막힌 작전을 생각해 내었기 때문에 형님을 다시 찾아온 것입니다.” “기막힌 작전?” “네. 아주 뷰티플하고 샴티풀한 작전입니다.” 그 말을 들은 난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안았다. 과연 저 말을 들어야 하는 걸까? 분명 들어 봤자 안 좋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아니 아주 많이 안 좋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렇지만 지금의 내 심정으로는 정우의 직전이라도 듣고 싶다. 젠장. “들어와.” “네.” 덜컥. 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정우가 다시 한 번 방문을 열고 들어왔고 그런 정우의 뒤를 따라 한 아름다운 미소녀가 따라 들어왔다. 채은이라는 소녀였다. “헤헷. 정우가 기막힌 작전이 있다고 해서 궁금하기도 하고 오빠 보러 왔어.” “잘했어.” 거듭 말하지만 오는 미소녀 막지 않고 가는 미소녀 죽어도 막는다가 내 신념으로 지금 채은이라는 소녀는 반갑기 그지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사막에서 발견된 오아시스이 느낌? “형님.” 그 순간 나의 이런 좋은 기분을 박살 내고 진지한 표정을 지은 채 정우가 다가왔다. 당연한 말이지만 여장 상태다. 오른쪽의 옆트임이 자극적인 붉은색의 치마를입은 채 관능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만약에 처음 본다면 저 여자를 누가 남자라고 생각하겠는가? 아무도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아니, 오히려 아리따운 여자로 알고 사랑에 빠질지도 모른다. 실제로 여장을 한 남자를 좋아한 남자가 있었는데, 나중에 남자라는 사실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랑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왜?” 정우의 갑작스러운 부름. 그 부름에 난 뚱한 어조로 대답하였다. 하지만 정우는 개의치 않고 말했다. “아주 대단한 작전이라 형님이 눈물을 흘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그딴 일은 없을 거다. 네놈의 의견을 듣고 눈물을 흘리다니, 아마도 평생 그런 일은 존재하지 않을 거다. 그렇지만 저렇게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니 기대가 된다. 채은이도 그런 정우의 모습이 궁금했는지 어느새 내 옆에 다가와서 정우를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채은이의 긴 머리가 살랑살랑 불어오면서 향기로운 머리카락……. 커억. 이, 이게 아니지! 전에 본 성인잡지 때문에 아마도 잠시 살짝 이상해졌나보다. 그렇지만 이런 나의 반응은 채은이가 의아하게 생각하기에 충분했다. “오빠, 왜 그래?” “아, 아니야.” “응?” 궁금하다는 듯 묻는 채은이를 향해 난 다급하게 손사래까지 치면서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했다. ‘너의 머리카락의 향기가 좋아서.’ 라는 말을 했다가는 지금 완전히 변태로 몰린 테피언 꼴 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생각해 보면 정말 대단하다. 사람의 냄새까지 그대로 재현시켜 버리다니. 거듭 말하지만 이 게임을 만든 존재, 정말 천재다. 아 참, 그게 아니라. “그래, 너의 작전을 한번은 들어 봐 주겠다만…….” “감사합니다. 형님도 흡족해 하시면서 ‘바로 이거야’ 라고 장대하게 외치실 거라고 사료되옵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도대체 저 알 수 없는 자신감의 근원은 무엇이냐? 정우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나 ‘자신 있어요’ 라는 포스가 느껴질 정도의 자신감이었다. 그러게 난 정우의 자신감이 넘쳐흐르다 못해 새고 있는 모습을 무감각한 눈빛으로 바라보았고, 한편 그런 나의 모습을 본 정우는 싱긋 웃은 뒤 말문을 열었다. “형님, 그거 아십니까?” “뭘?” “그거 말입니다.” “그게 뭔데.” “실망입니다.” “갑자기 거기서 왜 실망이 나오는 건데!” 갑자기 ‘실망입니다’ 라는 말을 너무나도 심각하게 던지는 정우를 본 난 잠시지만 휘청거렸다. 하지만 정우는 다시 한 번 나를 보더니 너무나도 진지하게 말했다. “형님, 뒤통수 작전이라고 아십니까?” “그거는 뭐 하는 작전이냐?” “말 그대로 뒤통수를 후려갈기는 작전입니다.” 인생 그리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그딴 작전을 들어 보지도 못햇다. 아니, 어이가 없다. 뒤통수를 후려갈기는 작전은 어느 시대에 나온 작전이냐? “약간 이해가 힘드신가 보군요. 제가 요약해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정우는 나와 채은이를 한번 보더니 진지한 얼굴을 한 채 말을 이어 나갔다. “뒤통수 갈기는 작전이란 간단합니다. 일단 싸움이 일어납니다. 그러면 정예 멤버가 제일 앞에 나서서 깔짝거립니다.” “…….” “그런 다음 나머지 인원이 뒤를 마구 치면 되는 작전입니다.” “…….” 그게 작전이냐?! 정예 멤버가 앞장서서 깔짝거리면서 시간을 버고 나머지 병력들이 뒤를 친다? 에라이! “야, 그럼 그 수천 명을 상대로 누가 깔짝거리는데?” “저와 가까운 곳에 잇지 않습니까?” “누구?” “형님 말입니다.” 나? 영어로 말하자면 미? 서, 설마 나보고 미끼가 되라는 소리는 아리겠지? “형님이 총사령관이니 아주 뷰티플한 미끼가 될 것입니다.” “…….” “아마도 만약에 알아차려도 어쩔 수 없는 최강의 미끼입니다.” “…….” 그 말은 나보고 죽으라는 소리냐?! 수천 명의 강력한 마족 앞에서 얼쩡거리는데 진정 내가 살 가망성이 있단 말이냐?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해 봐도 엄청나게 희박하다는 말밖에 할 게 없다. 전설의 명칭, 일명 다구리. 한 명을 마구 밟는다는 유익한(?)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런 말이 있다. 다구리는 최강이다. 말 그대로 최강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한 사람을 향해 몇십 명, 혹은 명백 명이 달려든다. 물론 명이라는 숫자도 없다고 보면 디지만, 지금 정우 군이 하시는 말씀은 수천명이나 되는 마족들에게 다구리를 당하라는 소리다. “제 작전 어떻습니까?” “기각.” “흐으음.” 나의 말에 짧게 신음을 내는 정우. 당연히 기각이지. 승리를 해야 한다지만 시작도 하기 전에 최후를 맞이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서 말이다. 하지만 아직 포기할 마음은 없는지 정우는 간청 어린 얼굴을 한 채 나에게 말했다. “형님, 잘 생각해 보십시오.” “뭘 잘 생각하고 자시고 말이 안 되는 작전이잖아.” “옛날에 공자가 이런 말씀을 하셨죠?” “뭐?” “다다다구구구구리는 아름답다.” “그게 무엇이냐?” “그런 게 있습니다.” 있기는 개뿔! 공자라는 양반이 저딴 이상한 말을 내뱉었을 리는 없다. 그리고 지금 상황하고 무슨 연관이 있느느 말인데? 좀 연관성이라는 걸 갖다 붙여라. 나는 손을 저으면서 맹렬히 안 한다고 했다. 그때 이런 우리의 행동을 보던 채은이가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로 정우에게 말했다. “말도 안 되는 작전이잖아. 오빠가 큰일이라도 나면 어떡하려고.” “제 알 바 아니지요.” “뭐시라?!” “농담입니다.” “…….” 저, 저 새끼. 진심? 분명 진심이다. 진심일 게 분명하다. 진심이었다. 우어어억! 나는 진심이라 생각하자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고 그대로 정우 군을 밥으려고 하는 도중……. “그만큼 형님을 믿는단 말씀이지요.” “…….” “이 작전을 이야기한 것은 형님을 믿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분명 갑작스럽게 이야기의 내용 흐름 자체가 확 바뀐 느낌이 든다만…… 정말 영리한 놈이다. 이렇게 말하는데 내가 폭력을 사용할 수는 없다. 크윽. 왠지 모르게 굴욕적인 느낌과 더불어 다시 침대에 앉는 나였고 한편 정우는 여전히 심각한 얼굴을 한 채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난 말했다. “진심으로 이런 개떡 같은 작전이 통한다고 생각하냐?” “물론입니다. 힘의 비율이 같은 마족의 수가 2,000명이나 차이가 나는데, 형님은 정공법으로 이겨 낼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건…… 아니지.” “그렇습니다. 어차피 모 아니면 도라는 것이지요. 기습이라는 건 최대한의 공격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만들어 낸 것. 충분히 이 정도의 숫자로도 커버가 가능할지도 모르지요.” 흐으음. 그 말에 난 고민에 휩싸였다. 정우의 말대로였다. 만약에 정공법으로 한다면 승산은 제로였다. 하지만 지금 정우가 말한 대로 기습공격이 통하기만 한다면 아주 미세한 승률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지금 나에게 준과제는 단체전의 승리와 더불어 테투언과의 싸움에서의 승리. 정말 미치겠다. “오빠, 저, 정우가 이상한 헛소리를 하는 거야. 잘 알잖아. 저 사탕발림.” 그 순간 나에게 속삭이는 채은이. 맞는 말이다. 저놈 은근슬쩍 사탕발림을 하는 건 잘 알고 있다. 그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이유는……. “좋다. 이 작전을 실행한다.” “오빠!” 나의 말에 놀라서 화급히 말하는 채은이를 보고 난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걱정 마. 죽지는 않을 테니까.” “그, 그래도 수천 명이나 되는 마족에게 혼자서…….” “엥. 혼자? 그럴 리가 없잖아.” “그럼?” “이 작전을 낸 정우도 당연히 포함될…….” “저는 자유의지로 거부하겠습니다.” “기각.” “…….” 나의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쏘옥 빠져나가려는 정우를 붙잡아 버린 나였고, 정우는 자신도 미끼 역할에 포함되자 아주 미세하게나마 표정이 굳어졌다. “그럼 정우와 오빠 둘이서?” “아니. 좀 그렇긴 하지만 나에게는 소환수들이 있잖아!” 그렇다. 이번 작전에 동원되는 건 최정에 요원들. 성격도 좀 이상하고 이상한 짓도 자주 하지만 그래도 강한 건 정말 인정해 준다. 정말 이번 작전은 완벽한 도박이다. 성공만 한다면 승리를 할 수도 있겠지만, 실패한다면 오히려 독이 되어 전멸을 당할 수도 있는 작전이다. 그러니 이번 작전의 승리는 미끼들이 얼마나 깔짝거리면서 상대방의 시선을 뺐느냐는 것이다. 사실 이번 작전의 최고의 적임자가 있다. 한번만 설쳐 주면 만물의 존재들이 화가 나서 화병으로 쓰러진다는 궁극적인 개. 그 이름 하여 케미리라는 작자, 아니 개다. 그 개는 그런 엽기성을 뛰어넘어 배경만으로도 나에게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 누가 이 똥개가 이곳의 왕자라는 걸 생각이나 했을까? 아무도 생각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나에게는 너무나도 큰 충격이었다. 솔직히 말해 지금 증명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케미리가 왕자라는 사실을 못 믿겠다. 차라리 피티언이 사실 엄청난 천재여서 아이슈타인을 뛰어넘는 천재라는…… 것도 좀 안 되겠군. 어찌 됐든 이번 작전의 핵심은 케미리다. 난 지금 케미리를 불러 놓고 표정은 굳어진 채 있었다. “왜 그래, 마스터?” “크윽.” “……?” 저딴 놈이 이번 작전의 핵심이라니. 핵심이라는 단어가 이리 걸릴 줄은 몰랐다. 그래 솔직한 말로 미치도록 찜찜하다. 아니 찜찜한 정도는 벌써 넘었지. 그에 비해서 케미리는 이런 나의 심정도 모른 채 눈을 초롱초롱 빛내고 있었다. 한편 요새 한동안 얌전히 지내던 로케리스의 말문이 열렸다. -쯧쯧. 아무리 그런 작전이라고 하지만 저런 변종 개를 써야 하다니 마스터도 고생이 많군. 너도 만만치 않아. 이 변태 로리 지팡이. 이상하게 로케리스는 케미리를 싫어하는 듯한 이미지를 풍긴다. 솔직한 말로 그건을 본 난 한 가지 말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끼리끼리 잘하는 짓이다. 로케리스, 사실 난 케미리도 충격적이었지만 너도 충격적이었다. 그 어느 곳을 뒤져 봐라, 어린 여자 밝히는 지팡이라는 말이 있는지. 살다 살다, 아니 평생 죽어도 안 나오는 지팡이가 너다. “흐으음. 무슨 고민 있어?” 한편 나의 절망적인 어굴을 본 케미리는 나에게 약간은 걱정된다는 듯 물었고 그 물음에 난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어쩔 수 없다. 이번 작전의 적임자는 역시 저놈밖에 없다. 나는 사뭇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케미리, 내 말 잘 들어라.” “뭔데?” “이번 자건의 핵심은 너다.” “푸헤헤헤헤.” “…….” “그럴 줄 알았어.” “…….” “난 잘났으니까.” 나, 나 아직 무슨 작전인지도 말 안 했는데? 저놈은 자신이 핵심이라는 말 한마디에 급격히 다른 것은 생략해 버렸다. 어떤 의미에서는 정말 존경스럽다. 얼마나 단순해질 수 있는지 보여 주는 맥락이니까 말이다. 뭐, 오히려 좋겠지. 지금이라도 즐거워해라. 나중 되면 우리들은 거의 목숨을 건 미끼가 될 테니 말이다. “나 안 해!” 미끼라는 말에 당장 안 하겠다고 발악을 해 대는 케미리였고 그 모습을 본 난 짧게 신음과 함께 말했다. “흐으음. 그래?” “미끼라니. 나 같은 고급 인력이 그런 데 쓰이는 건 말도 안 돼!” 고급 인력이라…… 어디서 닭 뼈다귀도 웃지 않을 소리하고 있네. 네놈이 고급 인력이면 이 세상에 모든 존재가 고급 인력이겠다. 뭐 그렇지만 난 개인의 인권, 아니 개권(?)을 중요시함으로 선택할 기회를 주기로 하였다. “뭐 너의 생각이 그렇다면, 네가 선택할 것들을 정해 줄게.” “…….” 1번 : 죽도록 맞고 한다. 2번 : 죽도록 맞고 고문당하고 한다. 3번 : 죽도록 맞고 고문당하고 30일 동안 노가다를 하고 한다. 4번 : 죽도록 맞고 고문당하고 30일 동안 노가다를 하고 죽을 때까지 쉴 새 없이 맞는다. “골라.” “…….” “마음에 드는 거 있으면 부담 갖지 말고.” 케미리의 표정은 경직이 된 상태다. 아니 표정뿐만 아니라 몸까지 경직이 되어 버린 상태다. 그런 모습을 보는 나는 슬며시 주먹을 살살 쓰다듬었고 그 모습을 본 케미리는 다급하게 말했다. “마, 마스터, 마스터가 처음 한 이야기 그대로 할게! 나 사실 미끼가 되고 싶어 미쳐 버릴 지경이었거든.” “오호?” “난 언제든지 미끼가 될 거야! 그러니 시켜 줘!” 뭐 정 그렇다면 너의 의사를 존중해서 미끼를 시켜 주지. 뭐 나도 같이 하겠다만. 당일 날. 조금은 긴장이 된다. 아니, 긴장이 안 되면 오히려 이상한 거겠지. 오늘 미끼 역할에 포함된 존재는 나, 테피언, 피티언, 케미리, 세리하, 지콘 이렇게이다. 왜 레키리안이 빠지고 세리하가 들어왔냐고 하면 레키리안은 말 그대로 혹시나 모를 일을 대비해 여자들을 지키기 위한 호위무사로 발탁이 된 것이었다. 그나마 버서카만 되지 않는다면 정상적이기 때문에 제일 믿음직스럽다. 뭐 버서커도 내가 하지 말라는 말만 한다면 죽어도 하지 않을 테니 걱정이 없다. 그리고 세리하는 분명 메이드 인 프리스트였지만 전투력은 상당하다. 레키리안을 제외하고는 두 번째로 강한 것이다. 그리고 세리하가 꼭 가겠다고 나에게 말하기도 했고……. 사실 마족들이 전투란 간단하다. 일단 정식으로 선전포고를 때린다. 그런 다음…… 이긴다. 어떻게 이기든 상관은 없다. 무조건 이기면 되는 것이다. 승리를 위한 싸움. 그게 마족들이 싸우는 방식이다. 그렇기에 솔직한 말로 선전포고를 당한 입장에서는 유리할 수도 있다. 꽤나 방어적으로 나가도 되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보통 자기보다 서열이 낮은 곳에 선전포고를 때리지, 자기보다 서열이 높은 마족에게 선전포고를 때리는 건 미친 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라진이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요새 신생 마족들이 맍이 치고 올라온단다. 이렇게 가만히 있는 다면 머지않아 자신의 자리조차도 위험해진다는 사실. 그렇기에 절대적인 서열 1위를 이기려는 생각을 해 버린 것이었다. 그것으로 자신의 절대적인 힘을 증명해 그 누구도 자신에게 덤빌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테투언의 집무실. 테투언은 방금 전 네라진에게 선전포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자신의 바로 앞의 탁자에 있는 보라색의 와인을 평소처럼 향과 냄새를 맡으면서 즐기고 있을 뿐이었다. 한편 그런 모습을 본 테투언의 심복 나렌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기 테투언님, 네라진 놈이 선전포고를…….” “후후. 선전포고? 그렇게 약한 놈이 하는 것도 선전포고라고 하는가?” “그건 아니지만…….” “신경 쓸 필요도 없는 놈이다.” 그 말에 나렌은 말을 잇지 못했다. 말 그대로 자신의 앞에 있는 남자는 전 차원 최가으이 남자. 자신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힘을 가지고 있는 남자다. 그렇지만 나렌은 단 한 가지, 찜찜한 구석이 있었다. 어이가 없게 마족의 총사련관이라는 직책을 가져 버린 인간. 그 인간에 대한 정보였다. 지상 최강의 데미지 딜러. 분명 걸리는 단어임은 분명하다. “저기, 테투언님.” “왜 그러지?” “조금 아이러니한 정보이기는 하지만 이번에 총사령관이된 인간이 지상 최강의 데미지 딜러…….” “지상 최강의 데미지 딜러? 푸하하.” 그 말을 듣던 테투언은 연심 웃을 지었다. 지상 최강이든 아니든 상관없다. 자신은 절대적인, 말 그대로 신적인 방어력을 가지고 있다. 한편 테투언의 웃음을 이해하지 못한 나렌은 머쓱히 서 있었고 그걸 본 테투언은 갑자기 화가 난 어조로 말했다. “나렌, 지금 나를 무시하는 건가?” “무, 무슨 말씀이신지…….” “그딴 하찮은 인간이 나에게 데미지를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가?” “그, 그건 아니지만 최강의 데미지 딜러라는 말이 걸려…….” “닥쳐라. 최강의 데미지 딜러? 가소롭다. 나는 절대적이다.” “…….” 그 말에 나렌은 말문을 닫았다. 말 그대로 자신의 앞에 있는 남자는 절대적인 남자. 자신의 기우가 쓸데없는 걱정이었을 게 분명하다. 제2장 마계에 나타난 루케리에스 우씨. 작전은 그나마 좋다. 그렇지만 작전을 실행할 게 없다는 게 문제다. 정우가 말한 작전. 그 작전의 아주 취약한 점이 발견되었으니, 어딘가에 매복하고 있다가 적이 나오면 뒤통수를 쳐야 하는데 적이 성안에만 있으니 아무런 소용이 없는 작전인 것이다. 한마디로 수천 명의 적이 성을 비운 채 이쪽으로 진격을 해야지만 가능한 작전이지만 저쪽에서는 지금 반응이 영 아니올시다. 한마디로 무관심? “이런 치명적인 오류가 있을 줄은…….” 그것도 감안 안 하고 나에게 말한 것이냐? 정우 군. 나는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정우를 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비상 사태 A(한 명에게 몰아서 죄를 뒤집어씌우는 작전)라는 어이없는 작전은 생각하면서 이런 쪽은 생각하지 못하다니. 사실 그때 비상 사태 A를 발생시킨 뒤 테피언은 간혹 나를 노려보곤 했다. 그래도 난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다. 아주 살짝 양심의 가책을 느꼈기에. 그렇지만 솔직한 말로 아주 순진했던(?) 나를 꼬신 것은 저 사악한 정우 놈이다. 그렇게 내가 정우를 약간은 원망 가득한 눈빛으로 보고 있을 때 정우는 턱에 손을 갖다 댄 채 한동안 고민에 계속 잠겼고 약 1분 후 눈을 번쩍이면서 말했다. “형님, 저에게 기막힌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네 머리는 참으로 신기하게도 그런 작전은 술술 나오네.” “감사합니다.” 칭찬 아닌데. 그딴 어이가 없는 작전은 어디서 나오냐고 비꼰 건데 말이다. 정말 마이 페이스다. 그 모습을 본 난 살짝 고개를 흔들면서 말했다. “그래. 너의 기막힌 작전은 무엇이냐?” “간단합니다. 형님만 있으면 되는 작전입니다.” “…….” 그 말에 난 살짝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손에는 땀이 나기 시작하였고 등과 얼굴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그렇지만 정우는 이런 나의 반응은 관심이 없는지 싱긋 웃으면서 자신이 생각한 아이디어를 내뱉었다. “바로 ‘1:1 맞짱 까자.’ 작전입니다.” “…….” “간단합니다. 형님이 전신 테투언이라는 남자에게 ‘우리 1:1로 맞짱 뜨자.’ 그럽니다.” “…….” “제가 잠시 알아본 결과로 오는 싸움 마다하지 않는 테투언입니다. 사실 슬데없는 마족과의 싸움보다는 대장끼리 싸워서 결판을 내자 하면 오히려 더욱더 좋아할 겁니다.” “…….” “그렇게 맞짱 떠서 이기시면 해피엔딩 작전입니다.” “……지면?” “배드엔딩이지요.” 참으로 간단하구나. 이기면 해피엔딩, 지면 배드엔딩이라니 말이다. 하지만 효율성으로 따지면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작전이다. 단체전보다는 차라리 대표가 나와서 하는 전투, 물론 나쁘지는 않다. 그런데 전신 테투언이라는 남자를 이길 수가 있냐는 게 아주 중요한 문제다. 네라진에게 듣기로는 수천 명의 마족이 덤벼도 그를 이길 수 없다고 한다. 그의 방어력이 너무나도 강력한 탓일까? 일단 타격 자체를 주지 못한단다. 그리고 지구력 자체도 엄청 뛰어나단다. 솔직히 말해 나도 데미지는 약간 자신 있는 편이긴 하다. 그리고 서큐버스의 세상에서 얻은 1인 타켓팅 최강의 스킬 스페이스 샷. 공간의 화살이 한 적에게 모두 집중될 경우 최고 167만이다. 좋긴 하군. 잘만 하면 한 방에 즉사지만 잘못하면 내가 뒈지는 궁극기다. 한편 이 작전을 낸 정우 군은 사람 팍팍 부담 되게 너무나도 진지한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난 뚱한 어조로 말했다. “그딴 눈빛 좀 치워 줄래?” “저의 사랑의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까?” “그럼 그게 마음에 들 리가 있겠니?” “그렇군요.” 또 나왔다. 사람 맥 빠지게 하는 정우 주특기 말이다. 너무나도 긍정적으로 대답하기 때문에 말하는 사람 맥 빠지게 하는 정우만의 오이. 오의라니 좀 오버인가? 뭐 어찌 됐든 지금 정우가 한 말은 분명 제일 간단하고 제일 간편할지도 모른다. 제일 중요한 문제는 내가 그 남자를 이길 수 있냐 없냐가 문제지만 말이다. 뭐 그렇다고 일단 부딪치기도 전에 기죽는 건 사양이다. 이래 봬도 이 게임 시작한 이후 별별 일을 다 당한 나다. 이상한 마법사의 던전부터 식물의 마을, 드래곤 레어, 서큐버스와 인큐버스이 차원, 수호의 방까지 화려한 전적이 있다. 물론 좋은 쪽은 아니지만 그런 온갖 말도 안 되는 장소에서도 견뎌 낸 나다. “테투언님. 그 인간 놈이 1:1결투를 신청해 왔습니다.” “1:1?” “네.” “푸하하하.” 테투언은 자신과 1:1이라는 말에 웃기에 여념이 없었다. 어디 인간 애송이 나부랭이가 자신과 같은 절대자에게 도전을? 어이가 없다 못해 상실할 정도였다. “정말로 나에게?” “그렇습니다.” 테투언은 설마라는 어조로 다시 물었고 그 물음에 나렌은 조용하지만 강하게 긍정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테투언은 더욱더 미친 듯이 웃기 시작하였다. “하하하하하하하. 크하하하하하하.” “…….” “하하하하. 애송이 인간 놈이? 감히 나에게?” 테투언의 프라이드에 살짝 금이 가는 순간이었다. 감히 자신에게, 그것도 하찮게 여기던 인간이라는 종족이 1:1결투를 신청해 왔다. 감히 겁 대가리도 없이 말이다. 테투언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그렇게 한참을 엄청난 소리로 웃어 대었고 약 2분 후 갑자기 웃음을 멈추더니 잔인한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감히 나에게 도전장을 내밀면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가르쳐 줘야 할 거 같군.” “……그러면?” “받아들인다.”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1주일 뒤. 네라진 놈의 성과 나의 성의 중앙 지점.” “네.” 테투언의 명령에 그의 충복 나렌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일주일 뒤 중앙이라…….” 난 살짝 말을 흐렸다. 막상 하고 나니 꽤 긴장이 된다. 자꾸 가슴은 콩닥콩닥 뛰고 있다. 솔직히 아무리 담력이 좋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대표로 모든 걸 건 채 싸운다고 한다면 나처럼 긴장할 게 분명했다. 솔직한 말로, 들리는 소문만으로도 기죽을 게 분명하다. 절대적인 방어력. 얼마나 방어력이 강하면 절대적이라는 말이 붙었는지 알고 싶다. 내가 대충 그 테투언인가 뭔가 하는 마왕의 정보를 모은 걸 보면. 1 : 졸라게 강하다. 2 : 무지무지 하게 강하다. 3 : 몇천 명이 덤벼들어도 조금이 타격도 들어가지 않는다. 4 : 미칠 듯한 방어력이다. ……이게 전부다. 한마디로 정보라 해 봤자 들리는 건 강하다. 정말 강하다. 절대적인 방어력이다. 완전 최강이라는 둥, 이런 정보밖에 없다. 한마디로 직접 부딪혀야 한다는 거다. 절재적인 방어력이라……. 대략 방어력이 수백 만……이지는 않겠지? 아니겠지. 설마 200만이 넘는 방어력이면 나의 스페이스 샷도 무용지물이다. 아니 개당 16만 7000이니. 방어력이 20만만 돼도 데미지가……. “머리 아프군.” 그렇게 생각하자 약간은 머리가 흔들렸다. 아마도 평범하고는 먼 방어력일 텐데, 만약에 방어력이 15만 정도라고 가정을 하면 한 발당 17,000씩. 그러니 총 170,000 정도의 데미지가 들어간다. 거기다가 각종 스킬들을 더하고 해도 50만 이상의 데미지는 들어가지 않을 거다. 마왕이라는 작자가 피가 50만이 넘지 않을 리는 없다. “하아, 갑자기 미치겠군.” 긁적긁적. 나는 자그마하게 중얼거리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은근히 이건 승산 없는 싸움일지도 모른다. 스페이스 샷만 믿고 있던 나였는데……. 젠장. 그렇게 내가 약간의 좌절가멩 빠져 있을 때 꽤나 친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랜만이군.” “누구…… 루케리에스!” 거기에는 정체불명의 드레곤, 루케리에스가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왜 그러지? 못 볼 사람(?)을 본 것처럼?” “그, 그러고 보니 여기는 마계인데…….” “차원 정도야 여는 건 간단하지.” “…….” 정말 대단한 드래곤이다. 마계의 문을 열고 유유히 들어오다니. 분명 차원을 지키는 마족들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물론 그게 문제가 아니다. 저번에 레키리안에게 들었던 말. ‘루케리에스라는 드래곤을 찾아가면 됩니다.’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동명 드래곤이 있을 리도 없고 분명 내 앞에서 반갑다는 듯한 얼굴로 활짝 미소를 짓고 있는 루케리에스가 분명하다. “루케리에…….” “아아. 무슨 말을 하는지 다 안다.” “……?” “그거 때문에 마계로 온 거니까.” 무슨 말이지? 루케리에의 뜬금없는 말은 나를 당혹스럽게 했다. 그런 나의 마음이 겉으로 드러났는지 루케리에스는 말했다. “당황할 필요 없다. 사실 네가 전신 테투언과 1:1로 싸운다는 소식을 들었거든.” 허억! 그, 그건 별로 알려지지도 않은 정보인데? 하지만 그런 나의 의문을 루케리에스는 풀어 주지 않았다. “뭐, 내가 어떻게 이 사실을 알고 있는지는 비밀로 해 두지. 그것보다 전신 테투언, 그는 나조차도 버겁다. 레벨 9,000의 드래곤이 버거우면 도대체……. “그의 방어력은 꽤나 까다롭거든. 물리 방어력, 마법 방어력이 절대적이다.” “…….” 루케리에스조차도 절대적이라 말하다니, 엄청나게 걱정된다. 하지만 그런 나의 걱정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루케리에스는 너무나도 여유로웠다. 어디서 꺼냈는지 갑자기 붉은색의 와인을 꺼내서 와인 잔에 딸고 있었으니……. 쪼르륵. 와인을 따르는 맑은 음향이 들려왔고 루케리에스는 와인을 와인 잔의 절반 정도 채우더니 나를 향해 내밀었다. “마시겠나?” “난 미성년자인데.” “뭘 새삼스럽게.” 새삼스럽기는 하지. 담배는 몸에 좋지 않아서 하지 않는다만 술을 좀 먹는다. 나는 약간은 자연스럽게 루케리에스가 건네주는 와인 잔을 받아 들었고 그걸 본 루케리에스는 마치 마술처럼 또 다른 와인 잔을 꺼내서 와인을 절반 정도 따랐다. 그런 다음 그 와인을 살짝 목을 축이더니 약간은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잠시 이야기가 딴 데로 새 버렸군. 사실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이유는?” “마스터 오브 웨폰. 모든 무기를 마스터한 자. 최강의 2차 전직에 대한 일 때문이지.” 마, 마스터 오브 웨폰?! 최강의 2차 전직? 제3장 2차 전직. 마스터 오브 웨폰 마스터 오브 웨폰. 모든 무기를 마스터한 자. 그 힘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자. 그의 진정한 힘 앞에 모든 존재는 굴복할 것이다. 이게 바로 루케리에스가 나에게 말해 준 마스터 오브 웨폰, 즉 나의 2차 전직에 대한 이야기다. 루케리에스는 이런 엄청난 사실을 너무나도 담담하게 말했다. 나는 내 앞의 의자에 앉은 채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하는 루케리에스를 향해 물었다. “루케리에스. 하나 궁금한 게 있다.” “무엇이지?” “이 직업의 진정한 정체를 가르쳐 줘.” 분명 저번에 나타난 전직 4대 소환수. 그리고 그를 다루었다는 마스터 오브 웨폰. 그 말은 나 이전에도 마스터 오브 웨폰이라는 직업을 가진 남자가 존재했다는 것이다. 한편 나의 그런 질문에 루케리에스는 표정을 굳힌 채 말했다. “나는 이곳에 사는 존재지만 이 세상이 너희들이 현실 세계에서 말하는 게임이라는 걸 알고 있다.” “…….” “한마디로 여기에 사는 존재는 인공적인 존재, 만들어진 존재지.” 그걿게 말하는 루케리에스는 약간은 씁쓸한 느낌을 받은 듯한 느낌이었다. 그것도 워낙 순식간이었기에 내가 잘못 본 것인지 착각이 들 정도였지만. “사실 이 게임이 만들어지고 시작한 지 약 10개월 정도 되었겠군.” 꽤나 오래됐다. 클로즈 베타 때부터 이 게임을 시작한 나였으니. 루케리에스는 약간은 회상하는 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말이다. 너희들에게는 10개월 동안의 시간이었지만 사실 이 게임에는 30년 전부터 한 남자가 게이을 하고 있었지.” “뭐라고?!” 루케리에스의 충격적인 한마디에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30년 전이라고 한다면 내가 태어나기도 전. 그리고 최초의 가상 현실 게임이 만들어진 시기는 10년 전이다. “네가 그렇게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너희 현실 세계의 인간들이 말하는 최초의 가상 현실 게임이 나오기 20년 전에 만들어진 게 이 세상이니까.” 도대체 루케리에스는 어떻게 그런 사실까지 아는 거지?! “그리고 내가 말한 그 남자. 그 남자가 바로 슈퍼컴퓨터 네리아의 손을 거치지 않은 이 게임의 개발자가 만들어 낸 직업을 가지고 있는 바로 마스터 오브 웨폰이다.” 엄청난 충격이다. 예상치도 못했기에 충격은 더욱더 나를 몰아쳤다. 하지만 이런 나의 얼빠진 모습도 루케리에스는 대충 이애한다는 듯한 얼굴이다. 물론 이런 충격적인 사실을 알고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오히려 더 이상한 거겠지만. “솔직히 나의 심정도 네리아와 같다” “그건 무슨 뜻이야?” “사실 나도 ‘그 일’만 생각한다면…… 네리아의 생각에 협조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 일?” 끄덕끄덕. 나의 말에 루케리에스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도대체 ‘그 일’ 이라는 게 무엇이기에? 난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 내가 아직도 의자에서 일어선 상태라는 걸 깨닫고는 다시 의자에 앉았다. 그렇게 내가 의자에 앉기를 기다려 준 것인지 루케리에스는 내가 의자에 앉자마자 말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잘못은 그놈들이 한 것이지. 이 게임을 즐겁게 하는 유저들에게는 잘못이 없다.” “‘그 일’ 이라는 게 뭔지 말해 줄 수 없을까?” 솔직하게 이렇게까지 말한 듣는 내 입장으로서는 꽤나 궁금하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 게임의 신과 같은 존재인 네리아를 그렇게까지 만들었는지 말이다. 하지만 루케리에스는 나의 이런 질문에 가볍게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알 수 있을지도. 내 입으로는 말 할 수 없다.” “어쩔 수 없지.” 난 금세 포기했다. 딱 보면 척이라고. 루케리에스가 말해주지 않을 걸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지.” “본론?” “너의 2차 전직에 대한 일.” “아, 맞다!” 잠시지만 그 중요한 일을 까먹고 있었다. 워낙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기에 나도 모르게 머리에서 지워져 버린 것 같았다. 그나저나 2차 전직이라, 묘하게 흥분이 된다. “플레스.” “응?” 흥분한 나를 루케리에스는 갑작스럽게 불렀고 너무나도 진지한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2차 전직을 하기 전에 한 가지 알아 둘 게 있다.” “한 가지 알아 둘 것?” “그래. 내가 왜 너에게 2차 전직에 대한 말을 해 주지 않은 건지 알겠나?” “당연히 모르지.” “그건 말이지. 이 2차 전직이 그만큼 위험하기 때문이다.” “위험?” “그래, 위험. 만약에 이 시험을 실패 시, 너의 모든 스텟과 웨폰인첸트의 스킬이 모두 초기화된다. 한마디로 다시 처음 시작하는 상태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 그, 그런?! 무, 무슨 그런 험악하고 살벌한 2차 전직이 있단 말이냐! 그건 한마디로 캐릭터가 삭제된다는 소리랑 맞먹는 소리잖아! 그렇게 내가 경악에 휩싸여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있을 때 루케리에스는 말을 이어 나갔다. “그렇지만 성공하면 넌 진정으로 모든 무기를 마스터한 자가 된다.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솔직히 지금 네가 아무리 강하다고 하지만 전신 테투언을 이길 수는 없다. 그렇다면 당연히 네리아도 절대 이길 수 없다. 하지만 네가 2차 전직, 진정한 마스터 오브 웨폰이 된다면 이길 수도 있다.” 이기는 게 아니라 이길 수도 있다? 얼마나 강하기에……. “뭐 그건 나중 일이고. 네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마스터 오브 웨폰이 되는 것이다.” 꿀꺽. 그 말에 난 나도 모르는 새에 침을 삼켰다. 잘못하면 지금까지 키웠던 모든 게 물거품이 되는 최악의 전직시험. 역시 나에게 절대 실망을 안겨 주지는 않는구나. 이 직업 덕택에 나는 온갖 역경을 당했다. 아니, 이 직업보다는 소환수들 덕택이 컸겠지만. 솔직한 말로 내가 처음. 네리아의 버그로 인해 이 웨폰인첸트라는 직업을 얻지 못했다면 나는 할 짓 없이 말썽만 피우는 소환수들을 만나지 못했을 거고, 꽤나 평범하게 아무것도 모른 채 게임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뭐 그렇다고 지금의 상황을 후회하는 건 아니다. 항상 말썽을 피우는 놈들이지만 그만큼 그것들에게 정이들었고 이 게임을 즐겁게 할 수 있었으니까. 한편 루케리에스는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창문 쪽으로 걸어 나갔다. 그러곤 창밖을 보더니 나에게 씁쓸한 말투로 말했다. “너에게 이런 짐을 지워 줘서 미안하군.” “…….” “하지만 네가 불가능한 직업이었던 웨폰인첸트가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이 게임을 유저들이 즐기기를 원하는 거 같군.” “…….” “절대적으로 봉인되었던 네리아에게 유일하게 대적할 수 있는 직업을 너라는 존재가 가졌으니까 말이다. 물론 ‘네가’ 아니었다면 그것도 불가능했을 수도.” 왠지 모르지만 부담 팍팍 준다. 루케리에스, 꽤나 부담 잘 주는군. 루케리에스는 창밖을 보던 시선을 다시 나한테 돌리더니 똥 씹은 표정을 짓고 있는 나를 향해 웃으면서 말했다. “부담 주려는 거 아니다.” 부담 줬잖수? 벌서 부담을 팍팍 양념에다 간장까지 한 다음 그런 말을 해 봤자 설득력이 없다. 하지만 루케리에스는 부담 줄 생각이 없다고 전면 부정한다. 그 모습을 본 난 속으로 중얼거렸다. ‘구라 까고 있네.’ 한편 그런 나의 모습을 보던 루케리에스는 다시 웃은 뒤 다시 한 번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더니 말했다. “분명 너에게도 선택권이 있다. 2차 시험을 거부할 수도 있다.” “…….” “하지만 너를 보니 그러지는 않을 거 같군.” 그 마레 난 싱긋 웃었다. 그건 제대로 봤네, 루케리에스. “물론. 난 포기라는 단어를 그리 좋아하지 않거든. 설령 모든 것이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한번은 도전해 봐야 하지 않겠어?” “역시. 너에게 마스터 오브 웨폰이라는 직업이 주어진 것도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을지도.” “자꾸 말로 부담 주지 말아 줄래?” “부담이라니. 나의 진심이다.” 너무나도 진지하게 말하는 루케리에스였고 그걸 본 난 고개를 저었다. 저게 진심일까? 뭐. 상관없지. 진심으로 알아들을게, 루케리에스. 나는 자리에서 살짝 일어났고 가볍게 몸을 풀기 시작하였다. 목운동, 팔운동, 다리운동 등, 대충 스트레칭을 하기 시작하였고 잠시 후 난 창밖을 보고 있던 루케리에스에게 말했다. “2차 전직시험 보겠어!” 최강이라고 불리는 마스터 오브 웨폰. 도전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루케리에스는 나에게 간단히 a라했다. 꽤 열심히 준비를 하라고. 그리고 모든 준비가 완벽히 끝났다고 생각되면 자신에게 열어 달라고 말이다. 여기서 열어 달라고 하는 건, 루케리에스가 케이트를 열어 준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마스터 오브 웨폰이 되기 위해서는 루케리에스가 안내해 주는 전용 시험장(?)에 가서 합격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곳에 들어갈 수 있는 자는 웨폰인첸트. 그러니 지금은 딱 나밖에 들어갈 수 없다. 솔직한 말로 그렇게까지 말하니 긴장은 된다. 테투언과 싸우는 것보다 더욱더 긴장된다. 루케리에스 말로는 이 시험을 합격에 마스터 오브 웨폰이 된다면, 전신이라고 불리는 테투언의 방어력을 뛰어넘는 공격력을 가질 수 있다고 했다. 새로운 스킬도 대폭 추가될 것이고 마지막 속성인 무 속성도 추가될 것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것 말고도 또 다른 것도 있다고 하는데 그건 자신도 잘 모른단다. 한편 루케리에스는 준비를 하라고 말하면서 나에게 4개의 반지를 넘겨주었다. 꽤나 좋은 아이템인 거 같은데 워낙 정신이 없는 까닭에 아직 확인을 하지 못했다. 지금이라도 확인을 해야지. -화의 반지- 신급 1등급. 화 속성의 데미지를 40% 줄여 준다. 그리고 화 공격 마법을 사용시 마나를 10% 감소시켜 주고 30%의 공격력을 상승시켜 준다. -수의 반지- 신급 1등급. 수 속성의 데미지를 40% 줄여 준다. 그리고 수 공격 마법을 사용시 마나를 00% 감소시켜 주고 30%의 공격력을 상승시켜 준다. -지의 반지- 신급 1등급. 지 속성의 데미지를 40% 줄여 준다. 그리고 지 공격 마법을 사용시 마나를 00% 감소시켜 주고 30%의 공격력을 상승시켜 준다. -풍의 반지- 신급 1등급. 풍 속성의 데미지를 40% 줄여 준다. 그리고 풍 공격 마법을 사용시 마나를 00% 감소시켜 주고 30%의 공격력을 상승시켜 준다. 커억. 이, 이건?! 저, 전부 다 신급?! 전설급 다음으로 높은 신급 아이템. 그리고 속성 마법을 극대화시켜 주는 아이템들이다. 그러니까 이걸 모두 착용 시 모든 속성의 데미지를 40% 감소시켜 주고 지금 내가 인첸트하는 기술도 마나의 소모량을 20%나 감소시켜 준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공격력 30% 상승이다. 퍼센트로 계산되면 공격력이 강하면 강할수록 더욱더 강해진다는 소리다. 공격력에 꽤나(?) 자신 있는 나로서는 이렇게 좋을 수는 없다. 그리고 사실 전투를 할 때면 약간의 기억상실증(?)으로 인해 꽤나 유용한 스킬들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세키아(와이어를 들었을 때 최대 속도 40% 상승)나 마법 관련 주문. 그러니까 마법 공격력을 증폭시켜 주는 것과 물리 공격을 마법 공격력으로 전화시켜 주는 스킬들. 그렇지만 사실 내 입장에서는 그게 잘 사용되지 않는다. 나는 마법사가 아닌 관계로 강력할 마법을 모른다. 1서클 마법에 매직 미사일 정도면 모를까. 아니 그건 그 나름대로 미칠 듯한 데미지가 나올 수도……. 나의 공격력이 꽤나 험악하니까. 아이템 영향을 다 받고 마법을 증폭해서 쓰는 매직 미사일은 공격력이 20만이 될 수도 있겠다. 뭐 그렇다고 하더라도 막상 전투를 하다 보면 내가 마법을 쓴다는 걸 잊어버린다. 적은 나를 기다려 주지 않는데 지팡이를 소환해 내고 마법 주문을 영창하고 물리 공격력을 마법 공격력으로 전환하고 그리고 증폭하고 하는 것은 꽤나 번거로운 방법이다. 그래도 로리 지팡이만 도와준다면 수호의 골렘을 한 방에 녹일 정도의 마법력이 나오니까 그것도……. 잠시 딴 데로 이야기가 새어 버렸군. 험험. 사실 이번에 내가 전직시험을 본다고 누구에게 이야기할 마음은 없다. 그 이유라 한다면 분명 내가 그런 조건(모든 것의 초기화)를 걸고 시험을 본다 하면 만류하거나 걱정할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채은이나 예화 정도. 나은이는 만난 지 별로 안 돼서 모르겠고. 세리하도 꽤나 걱정해 줄 것이다. 물론 꽤 즐거워할 인간이라고 하기는 좀 그렇고 종합 세트(?) 같은 놈들이 있다. 굳이 순위를 매기자면 1순위로 케미리. 그 다음 2순위로 테피언. 그리고 3순위로 정우 정도? 아마 그놈들은 내가 전직시험에 실패하기를 간절히 기도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까닭에 나는 차라리 말을 하지 않기로 하였다. 난 대충 준비를 끝냈고 방문에는 잠시 출장 중(?)이라는 표지를 붙여 놓았다. 그런 모든 준비가 끝나자 난 활발한 목소리로 말했다. “루케리에스.” “준비가 되었나?” 내가 이름을 부르기가 무섭게 어느새 나의 뒤에 나타난 루케리에스였고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무덤덤했다. 처음에는 놀라서 기절할 뻔했는데 한 두세 번 보니 별로 놀랍지도 않다. “물론. 준비 완료!” “나도 정확한 시험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 “내가 하는 일은 너를 그곳으로 보내 주는 일. 성공을 빈다.” 루케리에스는 그 말과 함께 조용히 눈을 감았고 잠시 후 알 수 없는 그러니까 생전 처음 듣는 주문을 외우기 시작하였다. “라크리세파이 아너네아거 나어가리나.” 무슨 말일까? 뭐 알 필요는 없겠지. 그렇게 한참을 루케리에는 이상한 주문을 외우기에 여념이 없었고 그렇게 약 10분의 시간이 지났다. “하아암.” 꽤나 가만히 게이트 여는 걸 지켜보는 내 입장에서는 지겹다. 이렇게 오래 걸릴 줄 알았으면 괜히 긴장했다. 그렇게 30분 후. “…….” 이건 꽤나 심하다. 무슨 주문이 30분이 넘어가냐! 그것도 루케리에스라는 드래곤이 30분 이상 정도면 다른 사람이 주문 외우면 하루 종일 아니, 몇 달을 주문을 외워야 되는 거 아니야?! 1시간 후. 이제 나는 침대에서 본격적으로 뒹굴거렸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저 주문. 루케리에스, 정말 대답하다. 한 시간 이상을 계속해서 지치지도 않는지 주문을 외우다니, 정말 경의를 표한다. 그렇지만 경의를 표하기는 하지만 좀, 너무 걸리지 않나? 그렇게 내가 주문을 외우고 있는 루케리에스를 침대 위에서 지친 얼굴로 바라보고 있을 때 루케리에스의 눈이 번쩍 떠졌다. “조금 기다리게 했군.” ……조금이 아니지. 나는 살다 살다 마법 주문 외우는 데 1시간이 걸린다는 말은 처음 듣는다. 하지만 이런 나와는 달리 루케리에스는 지금 걸린 1시간이라는 시간을 당연히 여기는 듯싶다. 도대체 시험장이 어디기에 게이트를 여는 데 1시간이나 걸리는 걸까? “자, 준비해라.” 그 순간 루케리에스의 재촉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고 그 말에 난 벌떡 일어났다. 그런 다음 대충 준비한 것을 확인하기 시작하였다. 음. 무기는 대략 없어도 되고(다 소환하면 되니까). 없네, 그냥 몸뚱이만 가면 되겠구나. 이런 점에서는 꽤나 편한 직업이다. 그렇게 출발 준비가 끝나자 난 루케리에스에게 고개를 끄덕였고 잠시 후 루케리에스는 외쳤다. “라티안!” “어라?” 그 순간 나의 발밑이 허전해지는 느낌이 들었고 이 친숙한 기분에 나는 눈을 깜빡깜빡거리기만 하였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을 금세 깨달았다. “으아아악!” 나의 몸은 자연스럽게 밑으로 추락하기 시작하였다. 게, 게이트라더니! 왜 밑에 구멍이 생기냔 말이다! 처음 시험부터 사람 이상하게 만드네, 이거! 제4장 엘리멘탈 어레이 “으아아아아아아악. 쳇, 이것도 재미없군.” 난 열심히 추락하는 도중 한 번 정상인처럼 비명을 질러 주었지만 이것도 영 아니라는 걸 느끼고 금세 입을 다물었다.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나도 이런 돌발적인 상황 경력 1년이 다 돼 간다. 한마디로 초탈? 뭐 그런 의미랑 살짝 아니긴 하지만 어찌 됐든 난 별 감응이 오지 않았다. 지금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는 나의 상황이. 솔직히 지금 너무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평안하기 그지없었다. 지금 아무리 눈을 뜨고 있어도 어둠이 적응이 안 될 정도니 아예 빛이라고는 없는 곳인 것 같다. 그렇게 약 2분간을 계속해서 추락하자 서서히 밑에서 빛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걸 본 난 종착점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잠시 후 착륙준비를 완료하였다. 여기서 착륙준비란 간단하다. 밑으로 강력한 공격을 보내서 나의 몸에 충격파를 발생시켜서 안전하게 착지한다는 것? 활(Bow) 소환. 인첸트 화(火). 플레즈마 스트레이트 샷. 파직. 나의 힘이 담긴 화살이 밑으로 향하였고 나는 정 밑으로 향하였다. 플레지마 스트레이트 샷은 꽤나 반발력이 강한 것이다. 내가 힘이 좋았기에 스킬을 사용하고도 뒤로 밀리지 않을 뿐이지 꽤나 반발력이 있는 스킬이다. 뭐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은 안전한 착륙이 좋겠지? 괜히 시험 시작하기도 전에 떡이 되고 싶은 마음은 없으니까. 파앗! 그런 생각과 함께 난 그대로 무형의 화살을 놓았고 그 화살을 쏘면서 생기는 반발력을 이용하였다. 한마디로 추락하던 나의 몸은 화살의 반동력으로 그대로 살짝 부웅 떴고, 그대로 안전하게 착지를 하였다. 쿠웅! 발목에 꽤나 충격이 오기는 했지만 충분히 견딜 만할 정도다. 나의 몸은 정확하게 플레즈마 스트레이트 샷이 적중된 움푹 파진……. 어, 어라? 바, 바닥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 분명 꽤나 강력한 힘이었는데 아무런 흠집도 없다니! 물론 괜히 마나를 소진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신경을 쓰지 않았기에 엄청난 데미지는 아니었다고 하나 문제는 땅에 흠집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방금 나의 공격으로 어마어마한 폭발이 일어나는 것까지 봤는데, 그 폭발과 부딪힌 바닥 면은 멀쩡했다. 바닥이 철이라면 몰라, 말 그대로 흙까지 존재하는 땅이다. 미쳐 버리겠군. 뭐 이곳을 평범한 곳이라고 생각한 내 잘못일 수도. 나는 그렇게 생각해 버리면서 얼른 이 기이한 상황을 잊어버리도록 했다. 괜히 이런 데 신경 써 봤자 별로 좋지 않다는 걸 알기에. 그렇게 나는 얼른 잊어버리기로 하고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없다. 말 그대로 내 눈에 보이는 건 흙이 깔려 있는 평범한 땅뿐.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넓이조차도 끝도 한도 없이 보인다. 내 눈으로는 도저히 얼마만큼의 크기인지 짐작이 안 가는 장소다. “이거 첫 단계부터 영 아닌데?” -아니, 잘 왔도다다다다다. 웨폰인텐트. “허억!” 그 때 나는 갑자기 들려오는 음성에 깜짝 놀랐다. 갑작기 들려왔기에 놀란 이유도 있지만 꽤나 친숙한 음성이기에 더욱더 놀랐다. 분명 이 할아버지 음성에다 독특한 3단 바이브레이션은……. “망드라 강드라 슈퍼드라!” -오, 아직도 내가 가르쳐 준 주문을 기억하고 있다니. “그런 엽기적인 주문을 외우고 싶지 않아도 외우게 된다고요!” -그런가? 그 목소리의 주 인은 클로즈 베타 당시 처음 접속하지 만난 인물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고 목소리. 그러니까 나를 이 직업으로 만들어 준 제공자. 그 목소리였다. -저번에 자네가 골렘을 부수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군. “…….” -하지만 이번 시험은 저번하고는 차원이 다를 것이네. “얼마나요?” -이번엔 내가 직접 상대할 테니 차원이 많이 다르겠지? 이 목소리의 주인공이 직접? 지금 나의 상황은 허공을 보면서 이야기를 하는 약간은 어이없어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그런 모습과는 다르게 나는 지금 속으로 엄청나게 긴장을 한 상태였다.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등은 나도 므르게 어느새 땀으로 흠뻑 젖어 버린 상태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내가 아니지. 그렇게 내가 온몸에 긴장과 더불어 전투태세를 취한 상태였고 그 순간 나의 앞으로 한 남자, 아니 할아버지가 나타났다. 60살 정도의 너무나도 인자해 보이는 할아버지. 특색이라고 한다면 머리카락이 네 가지 색깔이다. ……독특하군. 붉은색, 똥색? 바다색. 그리고 푸른색까지. 총 4가지의 머리카락이 어우러져 있다. 근데 이상하게도 희한해 보이는 것보다는 왠지 어울린다는 느낌이 강하다. “저번에는 모습을 보이지 못해서 미안하군.” “미안할 거까지는 없죠.” “허허허. 그런가? 하지만 내가 이렇게 자네 앞에 나타났으니 자네에게는 꽤나 불행일 텐데.” “불행?” “개인적으로는 자네가 마음에 드네만, 나에게도 주어진 임무가 있으니 최선을 다해 자네를 공격해야 하거든.” “저도 일부러 져 주는 건 사양입니다.” “후후후.” 나의 말에 조용히 미소를 지은 채 웃는 할아버지였고 잠시 후 웃음을 멈추더니 나를 향해 진지한 모습으로 말했다. “그럼 나의 본 모습을 보여 주도록 하지.” “본모습이라니요?!” 저 모습이 본모습이 아닌가?! 하지만 나의 그런 의문은 단숨에 풀렸다. 그 할아버지가 변신을 하기 시작하였기 때문이었다. 갑작스럽게 머리카락은 긴 장발로 변해 버렸고 등 뒤에는 4개의 날개가 달렸다. 그 날개에도 머리카락처럼 각각 4가지의 색깔이 있었다. 그리고 제일 달라진 점은 인자해 보이는 할아버지였던 모습이 20대의 강렬해 보이는 미남자로 변한 것이다. “이게 바로 나의 본모습이지.” “…….” 지금 나의 표정은 100% 경악, 충격이라는 얼굴을 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 그만큼 나에게는 어마어마한 충격이었다. 그렇지만 이런 나의 모습에 개의치 않고 갑자기 변신(?)한 남자는 나에게 말했다. “뭘 그렇게 얼빵하게 있는 거지? 이미 전투는 시작되었네.” “아.” 그 말대로 이미 싸움은 시작되었다. 하마터면 얼빵하게 있다가 실패할 뻔했군. 그런 생각이 들자 난 그대로 무기를 소환해 내기 위해 눈을 감았다. 하지만. 퍼억. “크아악!” 난 배 쪽에서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충격에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소리뿐만 아니라 내 몸도 약 10미터 이상이나 날아가 버렸다. “그렇게 무방비가 되면 되나?” “크윽. 쿠, 쿨럭.” 어느새 내 입가에는 피가 흘러나왔다. 그것도 대량으로 말이다. 내가 무기를 소환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사실 1초도 안 된다. 그런데 저 남자는 나를 공격했다. 분명 50미터 이상이나 떨어져 있었는데, 그 거리를 어떻게? 블링크를 곧바로 사용해도 약간의 경직시간이 있어서 이렇게 1초도 안 되는 사이에 나를 공격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남는 건 1초 만에 이동을 해서 나의 배를 가격했다는 거다. “쿨럭 쿨럭.” 하지만 단 한 방에 이렇게 되다니, 너무하잖아. 그렇지만 무기만 소환해 낸다면……. 나는 그런 생각과 함께 상대방과의 거리를 재어 보았다. 지금은 약 40미터. 아까보다 가까운 거리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앗, 저기 금괴다!” 참으로 유치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방법이 없다. 그렇지만 그런 유치한 방법이 때론 통할 때도 있다. 그 남자의 고개가 내가 가리킨 방향으로 돌아갔기 때문이었다. 그걸 본 난 당장 눈을 감았다. 하지만. 퍼억. 퍼억. “크악!” 나는 또다시 비명을 질렀다. 어느새 나의 몸은 20미터나 날아가서 바닥에 철퍼덕 쓰러진 상태고 의식은 사라지고 있었다. 마, 말도 안 돼. 무기도 소환해 내지 못하고……. 하지만 이런 나의 이지랑은 다르게 나의 눈은 서서히 감겨져 갔다. 이런 제기랄. -피가 30남았습니다. 내가 들은 마지막 소리다. “좀 시시하군.” 엘리멘탈. 즉 어레이는 쓰러져서 이제 죽음의 길로 들어가는 민혁이를 무감각한 모습으로 바라보았다. 역시 웨폰인첸트의 최악의 단점. 그건 무기를 소환해 내기 위해서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무기를 소환해 내었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조금은 고생했을지언정 진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지만. “이로써 이번 2차 전직은 물 건너간 건가?” “아니요. 물 건너가지는 않았습니다.” “누, 누구?!” 어레이는 갑작스럽게 들려온 소리에 주변을 두리번거렸고 그 청아한 남자의 목소리는 어느새 다가가 민혁이의 몸에 히을 시전하고 있었다. “어레이님, 오랜만입니다.” “너, 넌?” 20대 후반의 꽤나 잘생긴 남자. 아니 잘생겼다는 느낌보다는 사람 좋아 보이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남자였다. “꽤 오래되었군요.”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거지?!” “뭐 저도 이 차원에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현실 세계에서 죽은 뒤로는요.” “…….” “참으로 믿기 힘든 현상이지만 아마도 저의 할아버지가 아직 하늘로는 올라오지 말라고 하시는 게 아닐까요? 지금을 대비해서 말입니다.” “그 말뜻은……?” “지금 폭주하고 있는 네리아를 유일하게 막아 낼 수 있는 이 남자를 데려가겠다는 말이죠.” “…….” 그 말에 어레이는 묵묵히 그 남자를 바라만 보았다. 그렇게 약 몇 분간을 보던 어레이는 잠시 후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네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만약에 힘으로 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너를 이길 수 없으니.” “이거 너무나도 감사드립니다.” 싱긋. 그 남자는 그 말과 함께 싱긋 웃었고 잠시 후 민혁이를 업더니 말했다. “그럼 며칠 후, 다시 한 번 이 친구가 시험을 봐도 될까요?” “물론 가능하다.” “며칠 후를 기대해 주세요. 꽤나 강한 친구지만 저희들의 전투법에 적응을 못한 듯싶으니까요.” 그 말과 함께 그 남자는 민혁이를 업은 채 그대로 사라졌고 잠시 후 그 모습을 본 어레이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마스터 오브 웨폰. 제1대 카레안.” 크윽. 제, 젠장. 로그아웃이 안 되었네? 분명 여기는 게임 안이었다. 아무리 게임이 현실 같아서 혼동이 될지도 모르지만, 이런 왠지 판타지풍의 분위기가 나는 집이 현실 세계에 있을 리는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집이 아니다. “어떻게 된 거지?” 분명 무기를 소환하기도 전에 두 방을 맞고 쓰러졌다. 온몸이 부서지는 듯한 느낌.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였다. 사실 무기를 소환해 내는 시간이 딜레마에 걸릴 거라는 건 끔에도 생각지 못했다. 무기 소환하는 시간이 1초도 아니, 사실 0.5초인가 걸리는데. 그 작은 시간이 약점이 될 줄이야. “깨어났나?” “허억. 누, 누구?” 그 순간 갑자기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거기에는 마치 포근한 형님 같은 느낌을 가진 20대 후반의 남자가 웃고 있었다. “잠시 자네를 대여해 왔네.” 내가 무슨 물품인가? 대여라니…… 말을 해도. 그렇지만 갑자기 그렇게 말하자 나는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 그 말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한마디로 나를 구해 주었다는 건가? “뭐 그런 의미도 되지만 너는 시험을 다시 한 번 쳐야 되니 빌려 왔다고 해야 하지.” 나도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다. 너무나도 허무하게 깨져서 그런지 더욱더 불타오른다. 아 뜨거운 내 가슴이 아니라. 제길, 열 받는다. 검도 한번 휘두르지 못하고 단 두 방에 뻗어 버린 게 열받아 죽겠다. 지금 저 남자의 말처럼 다시 한 번 시험을 본다고 하더라도 왠지 비디오가 될 거 같은 느낌이 드는 건 나만의 착각이 아니겠지. “혹시 다시 한 번 시험을 받을 때 지금처럼 될 거라고 생각하나?” “허억.” “그렇게 생각했나 보군.” 이, 이 사람 내 마음을 읽어 버린 거 아니야?! 난 다급하게 연약한 몸짓으로 내 몸을 가렸고 그걸 본 그 남자는 잠시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웃었다. “하하하. 참 재미있는 친구군.” “…….” 별로 재미있지는 않은데. 하지만 바로 그 순간 그 남자는 웃음을 멈추더니 나를 향해 검지 손가락 하나를 올리고는 진중한 표정을 지은 채 말했다. “한 가지는 약속하지. 다시 한 번 시험을 보더라도 오늘 처럼은 되지 않을 거야. 자네가 혀보만 해 준다면.” “네? 그게 무슨 말이죠? 그리고 협조라니요.” “흐으음. 간단히 말해 주지. 내가 너를 그렇게 만들 거니까.” 저, 저기……. 서론도 없이 본론부터 말하면 저는 무슨 말인지 못 알아 듣습니다만. 그리고 말은 간단히 말해 주지 해 놓고 사람 이해 못하게 말하는 건 무슨 심보? “그러니까 내가 너의 힘을 단시간에 올려 준다는 거지.” “허억. 단시간에요?” “그래.” “…….” “네가 그 남자를 상대가 가능할 정도로 말이다.” 솔직하게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내가 무기를 소환하는 걸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이길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다. 싸우기도 전에 이런 판정을 내리는 건 싫지만 그래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런 남자와의 격차를 단시간에? “자네가 배울 건 차원을 다루는 법.” “차, 차원이라니요?!” 갑자기 차원이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 여기서 차원이라는 말이 왜 나오는 걸까? 생각지도 못한 단어다. 하지만 차원이라는 말을 꺼낸 이유는 분명 있었다. 그 이유란……. “자네가 상대했던 남자의 힘은 엄청난 스피드도 마법도 아니네.” “그럼……?” “바로 차원의 문을 열고 너한테 다가간 거지. 0.5초라는 자그마한 시간에 말이야.” 차, 차원의 문이라니 그, 그럼 순식간에 50미터 이상을 1초도 안 돼서 나를 공격할 수 있었던 건 차원을 넘어온 거라고? 그러면 모든 것이 이해가 된다. 확실히 말이다. 솔직히 블링크는 절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블링크는 사용시 잠시의 지속시간이 존재하는데 그 남자는 공격을 했다. 그것만으로도 블링크는 아니다. 그럼 남은 건 스피드. 하지만 이것도 상당히 찜찜한 부분이다. 50미터를 단 1초도 안 되는 시간에 이동하는 게 가능할까?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내 앞에 서 있는 이 남자에게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그런 생각밖에 못했다. 차원을 다룬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그렇게 모든 정리가 내 머릿속에서 끝나자 난 다급하게 그 남자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저를 단시간에 강력하게 만들어 준다는 건……?” “그래, 방금 말했다시피 차원을 다루는 힘이네.” “…….” “그렇지만 꽤나 힘들 거네. 단시간이고 하다 보니 아마도 죽고 싶을 정도의 고통도 수반될 거야. 그래서 너에게 협조해 달라고 말한 거지.” 얼마나 괴롭기에 죽고 싶을 정도의 고통이라니?! 그 말에 살짝 겁이 나기는 했지만 나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이대로 그냥 물러날 수는 없다. 강해져서 그 남자를 이기고 마스터 오브 웨폰이 될 수만 있다면. “좋습니다. 어떤 거라도 견뎌 내겠습니다.” “좋아. 단 3일이다. 3일 만에 넌 강해진다.” 어느새 3일이 지났다. 민혁이는 정말로 차원의 문을 열어 단거리를 이동하는 법을 배웠고 카레안은 그 모습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정말 3일이 걸리다니. 사실 그런 말을 한 자신조차도 은근히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여겼는데 말이다. 그리고 카레안은 곧바로 다시 어레이를 향하는 민혁이를 슬쩍 본 뒤 중얼거렸다. “나도 10년이나 걸린 걸 단 3일 만에……. 좀 어처구니가 없군. 정말 대단한 정신력이다. 저 남자가 버그처럼 웨폰인첸트가 되었다지만 그게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을지도. 이 게임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할아버지의 마지막 바람일지도…….” 그 말과 함께 카레안은 슬쩍 웃었다. 자신의 육체는 이미 죽어서 현실 세계에서 사라졌지만 여기에서는 살아 있다. 아마도 유령과 같은 상태가 되어 버린 것도 이날을 위한건 아니었을까라고 문뜩 생각해 버리는 카레안이었다. 휴우. 정말 거짓말 안 보태고 죽는 줄 알았다. 뭐 살아남은 게 기적이었다만, 3일 동안 공간을 배운다는게 꽤나(?) 어려운 게 분명했다. 정말 카레안의 말처럼 뼈를 깎는 고통이라는 게 이런 것일지도. 게임에서 당해 볼 줄은 몰랐다. 그런데 카레안, 그 남자 정체가 뭐지? 훈련을 받는 내내 툭툭 질문해 보았지만 카레안은 웃기만 하였따. 나에게 이상한 말만 던지고. ‘만약에 네리아를 상대하게 된다면 그의 옆에 있는 존재는 무조건 공격해라. 무조건 말이야. 내 말을 들어!’ 그게 무슨 뜻이었을까? 솔직히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다. 하지만 카레안은 가르쳐 주지 않으니까 어쩔 수 없다. 지금 난 다시 한 번 2차 전직 시험을 치르기 위해 가는 중이다. 이번에는 저번처럼 당하지는 않겠다! 저번에 무기도 소한해 내지 못하고 죽을 뻔한 상황이 나에게 꽤나 충격이었다. 그렇게 내가 다시 이를 꽉 다물고 걸어가고 있었고 카레안이 가르쳐 준 방향대로 도착하자 저번에 그곳으로 다시 돌아왔다. 방금까지 나무와 식물이 있는 곳이었는데(카레안이 사는 곳은 너무나도 평범해 보이는 곳이었다.) 한 발자국을 들여 놓자 전에 봤던 곳, 그러니 흙만 있고 아무것도 없는 넓은 공간만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왔나?” 하지만 내 앞의 약 30미터 정도에서 공간이 일그러지면서 정체가 할아버지인지 아니면 저 젊은 남자의 모습인지 헷갈리는 남자가 나타났다. 카레안이 말하기를 저 남자의 이름이 어레이라고 했던가? 어레이는 나를 반가운 듯 보고 있었고 그 모습을 본 난 또다시 긴장을 하기 시작하였다. 아무리 내가 단시간에 강해졌다고는 하지만 전에 당한 게 있었기에 그게 자꾸 뇌리에서 지워지지가 않는다. 너무나도 맥없이 쓰러졌던 3일 전의 일 말이다. “이번에는 기대하지.” 그 말과 함께 어레이는 웃었다. 그 모습을 본 나도 눈을 감았다. 무기를 소환해 내기 위해서. 파짓. 그 순간 분명 공간이 흔들렸다. 전에는 느끼지 못했지만 나도 공간을 느낄 수 있는 단계다. 그렇게 공간을 느끼자마자 나도 공간의 문을 열었고 어레이가 있던 장소로 순식간에 이동하였다. 그런 다음 주문을 외웠다. 검(Sword) 소환. 인첸트 화(火). 화르륵! 나의 소환 주문이 완성되자 나의 손에는 엄청나게 멋들어진 화염의 속성이 담겨 있는 화염의 검이 소환되었고 그 모습을 본 어레이는 그런 나를 무감각한 모습으로 바라보았다. “갑니다!” 나는 예의상 그렇게 한마디 툭 던진 뒤 순식간에 소환된 검을 든 채 쇄도해 나갔다. 순식간에 거리는 가까워졌고 순간 어레이가 두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러더니 외쳤다. “졌네.” 철퍼덕! 난 갑작스럽게 들려온 말에 달려가다가 발이 엉켜 그대로 바닥에 헤딩을 해 버렸다. 쿠웅. “크악!” 나는 직통으로 땅과 박은 코를 문질렀다. 흙이 있어서 안 아플 줄 알았는데 엄청 아프다. 아, 그게 아니라. “가, 갑자기 무슨 말……입니까?” 나는 갑작스럽게 손을 들면서 ‘졌네.’ 라는 한마디만 던지는 어레이를 향해 따지듯이 물었고 그 물음에 어레이는 웃으면서 말했다. “자네가 공간까지 다룬다면 나에게는 이길 가망성이 없거든.” “…….” “그러니 괜한 수고는 하고 싶지 않다는 거지.” “…….” “자 그럼 이제 자네는 이번 시험을 합격했네. 그러니 이제는 웨폰인첸트가 아닌 마스터 오브 웨폰이네.” 이, 이게 뭐야?! 가, 갑자기 이게 무슨 시추에이션?! 너, 너무 얼렁뚱땅 급작스럽잖아! 하지만 이런 나의 심정은 모른 채 어레이는 자신의 할 말만을 하고 있었다. “너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무기를 마스터한 자. 모든 무기의 극의를 깨우친 자. 마스터 오브 웨폰. 나 어레이의 이름으로 그대 앞에 있는 그를 인정한다.” 파아악! 그 순간 갑자기 나를 감싸 안은 붉은색의 빛. 그리고 들려오는 음성. -모든 무기를 소환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무기의 특수기능이 3단계까지 업그레이드되었습니다. -모든 무기의 공격력이 대폭 상승되었습니다. -모든 무기의 스킬을 전부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無) 속성을 인첸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속성 공격력이 강화되었습니다. -소환수들이 힘이 강해졌습니다. -무기 소환 수의 제한이 풀렸습니다. -무기의 5가지의 속성을 동시에 인첸트하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최종 오의 궁극기가 생겨났습니다. 커억! 이, 이건? 갑자기 들려오는 음성은 나에게 어마어마한 충격을 주기에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오랜 생각은 하지 못했다. 갑작스럽게 정신이 희미해졌으니까. 어레이는 강제로 다시 텔레포트가 되는 민혁이를 보고 웃더니 말했다. “됐어.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다 했다. 이제 나도 조용히 잠들고 싶군.” 그 말과 함께 어레이의 몸은 서서히 소멸되기 시작하였다. 그가 선택한 길은 다시는 마스터 오브 웨폰이라는 직업이 탄생되지 않을 거라는 뜻이었다. 그러니 한마디로 민혁이가 마지막 마스터 오브 웨폰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이다. “…….” 네리아의 표정이 굳어졌다. 설마 진짜 마스터 오브 웨폰이 탄생될 줄은 몰랐다. 자신이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자. 자신의 정보에 유일하게 들어 있지 않는 자. 다른 존재 같은 경우는 자신이 만든 직업이다 보니 너무나도 쉽게 이겨 낼 수 있다. 하지만 마스터 오브 웨폰 같은 경우는 자신이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마스터 오브 웨폰 자체가 특별하게 만들어진 직업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는 포기할 마음 따위는 없다. 그녀에게도 최강의 무기가 바로 앞에 있었으니까. 그녀의 앞에는 아무런 표저도 없이 마치 인형인 듯한 느낌이 강한 카레안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주변으로 민혁이를 구해 주었던 전직 4대 소환수들도 포진되어 있었다. 슬픈 눈빛을 한 채 말이다. 제5장 예화의 남자친구 대행? 너무나도 얼렁뚱땅 얻게 돼서 그런지 아직도 현실인지 꿈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뭐, 꿈은 아니겠지. 내가 그 정체불명이 공간에서 돌아오자 루케리에스는 이미 사라진 상태였고 나를 꽤나 걱정해 주는 케리미와 테피언을 보며 아주 조금 감동 먹었다. 물론 처음 당시에 나를 걱정해 주는 그것들을 보면서 난 한마디 했지만. ‘워, 원하는 게 뭐냐?!’ ‘…….’ ‘…….’ 나의 한마디에 나를 반기던 모든 존재들은 굳어 버렸다. 뭐 그건 사실 너무나도 충격적인(?) 말을 들었기에. 나를 걱정해 주는 말이 왜 충격적이냐며 묻는다면 앞 이야기를 조사하면 나온다. 옛말에 이런 말이 있다. 조사하면 다 나온다. 안 나온다고? 그러면 정우에게 의뢰를 한번 해 보길 권한다. 저 인간한테 조사 의뢰하면 어떻게 해서라도 나올 것이다. 그러니 참 무서운 놈이지. 뭐 그게 문제가 아니고. 지금은 게임에 접속한 상태가 아니다. 내일이면 전신 테투언과 1:1대결을 벌여야 하는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느긋하게 집에서 쉬는 중이다. 마스터 오브 웨폰으로 전직을 끝낸 뒤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하다. 사실 전직이 완료되는 시점에 나는 모든 무기를 마스터했다. 내가 찾지 못했던 무투가 계열이라든가, 비도 계열? 단검 계열 등 말 그대로 현존하는 모든 무기를 다룰 수 있다. 물론 여기에도 제한 조건이 딱 한 가지 있었으니, 그 무기를 사용하는 걸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직접. 만약에 누군가 표창을 던지는 걸 보면 난 그대로 그 무기를 다룰 수 있게 되는 기능이다. 그리고 그에 관련된 스킬. 그러니 레어급 스킬이 아니 이상 마나를 10배 이상 사용해서 모든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 물론 레어급 스킬도 찾기만 한다면 사용 가능하고. 그렇게 보면 꽤나(?) 좋단 말이야. 흐으음. 나는 그렇게 상상을 하면서 내 앞에 있는 옷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사실 오늘 게임을 하지 않는 이유는 예화를 만나러 가기 때문이었다. 그 이유라 한다면 꽤나 흐뭇한 이야기다. 바로 내가 예화의 남자친구 역할. 물론 역할이라는 건 꽤나 아쉽시만 저렇게 아름다운 미소녀님의 남자친구 역할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사실 예화가 마음만 먹으면 수십 분 만에 몇천 명은 모집이 가능할 거다. 정말 농담이 아니다. 초특급 부잣집 아가씨에다 아무리 성형을 해 봤자 예화처럼 예쁜 여자 안 나온다. 예화랑 유일하게 대적(?) 가능한 정도는 채은이와 나은이 정도? 그 이후로는 없다. 아무리 티비를 열심히 봐도 안 나온다는 사실. 그런 소녀에게 난 중대한 임무를 받았다. 커험. 나도 모르게 입가는 쭈욱 찢어진 상태로 오늘 꽤나 복장에 신경을 써야 하는 관계로 옷을 고르기 위해 옷장의 문을 열었다. 덜컹. 문은 스스럼없이 아주 잘 열렸고 그 안을 본 난 행복했던 얼굴에서 절망적인 얼굴로 변하였다. “어, 어떻게 네, 네놈이!” “제 1%의 야성적인 감이 발동이 되어서 말입니다.” “…….” 저딴 이상한 소리를 해 대는 놈은 전국 각지. 아니 좀 스케일 크게 전 차원을 뒤져도 없다. 바로 정우라는 외계 종자다. “그나저나 형님, 어디 가십니까?” “아, 아무 데도 안 가는데?”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 질문에 답을 피하였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분명 그냥 연기만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왠지 정우에 말하면 절대 안 된다고 외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나의 대답에 정우는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군요.” “그러니까 얼른 네놈의 집으로 가라.” 그러고 보니 저 새끼 집에 한 번도 안 가봤다. 저놈을 안지 거의 10년이 된 거 같은데 저놈의 집을 모르다니. 사실 저놈이 거의 매일 우리 집을 자기 집처럼 애용하는 관계로 내가 정우의 집을 가야 한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보지 못했다. 그런데 막상 집 이야기가 나오니 꽤나 궁금하다. 저놈의 집은 어떨까? 분명 정우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정말 정상인에 정상인이다. 그런데 그의 유일한 외동아들 정우는 정말 이상한 놈이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꽤나 슬퍼하시겠군. 그리고 나중에 기회 되면 정우의 방을 개인 탐험(?)을 하고 싶다. “왜 저를 쫓아내시려는 거죠?” “그, 그거야! 아 아무것도 아니야!” 오늘따라 헛다리가 아닌 핵심을 예리하게 집어내는 정우를 보면서 난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갑자기 뭘 잘못 처먹었나. 왜 저렇게 예리해진 거야! 그, 그래 우연일 거야. “예사롭지 않은…….” 콰앙! 그 순간 나는 그대로 옷장의 문을 닫아 버렸다. 그런 다음 1분 후 다시 문을 열었다. 그러자 거기에는 맑은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는 정우가 보였다. 내가 왜 1분 동안 문을 닫았는지 내 손에 담긴 밧줄이 말해 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 밧줄을 본 정우는 속삭였다. “그렇군요. 역시. 전 준비되었습니다.” 준비되기는 개뿔! 다 너에 대한 방지 시스템이다! 그 말과 함께 난 무반응을 보이는 정우를 밧줄로 꽁꽁 묶었다. 그리고 발까지 묶고 다음 티비와 화장실 옆에 그리고 음식까지 놓아 준 채 말했다. “얌전히 있으렴. 그럼.” “…….” 그렇게 난 정우를 묶어 두고 밖으로 나왔다. 저놈은 항상 위험인물이다. 그래도 음식, 화장실, 티비, 이렇게 3종 세트를 갖춰 놓았으니 괜찮겠지? 한편 혼자 남은 정우는 너무나도 간단히 밧줄을 풀어 버렸다. 그러더니 상쾌한 얼굴로 말했다. “역시 통신판매로 배운 기술은 위대하군요.” 예화와 내가 만나기로 한 장소는 저번에 정우를 미행하다가 본 커피숍, 테일즈 나운. 역시 분위기를 보나 음식 맞을 보나 여기가 제일 좋다. 사실 오늘 예화를 만나러 가면서도 계속해서 긴장이 되는 상태다. 사실 예화의 아버지 옆에서 남자친구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예화가 이런 상황이 된 것을 나에게 설명해 주는 걸 들어 보니 간단히 요약해서. ‘푸하하하. 우리 예화는 아직도 남자친구가 한 번도 없었다지?’ ‘무, 무슨 말슴이세요?’ ‘아니 내 딸이지만 너무 불쌍해서 말이야’ ‘아, 아니에요. 저, 저도 남자친구 있어요!’ ‘풋.’ ‘지, 진짜예요.’ ‘그래? 그럼 한번 보여 주면 믿어 주지롱.’ 대충 이렇게 된 거다. 참으로 이해하기 싶게 풀어 놓았도다. 뭐 본론으로 들어가서 이렇게 되었기에 예화가 유일하게 알고 있는 남자 중 나에게 SOS를 친 것이다. 물론 예화가 아는 남자라고 해 봤자 정우와 내가 전부다. 아마도 예화의 입장에서도 정우는 아니라고 생각을 했을 테고 그러자 남는 건 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한참을 생각하면서 걸어왔고 어느새 커피숍 앞에 도착하였다. 나는 그대로 커피숍의 문을 열었다. 딸그랑. “어서 오세요!” 내가 들어가자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소녀가 나를 반겼다. 이곳의 종업원복을 입은 걸 보니 당연히 이곳의 종업원이겠지. 얼굴도 꽤나 반반한 관계로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을 테지만 오늘만은 아닐 거다. 저기 한가운데에 앉아 있는 한 소녀 덕택이다. 사실 오늘따라 남자가 더럽게 많다 70평 남짓하는 이 커피숍이 가득 찰 정도다. 자리가 없다는 소리다. 그 제공자는 저기 앉아 있는 소녀 덕택일 것이고. 만약에 그 소녀 옆에 떡대 아저씨가 붙어 있지 않았다면 지금 어떻게 됐을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했다. “아. 오빠, 여기예요.” 그때 예화가 나를 보고 반가운 듯 말했고 나도 그 말에 웃으면서 다가갔다. 그러자 주변에는 마치 온몸을 찢어 버릴 것 같은 살기가 진동하였다. ‘죽여 버리겠어.’ ‘갈갈이로 만들어 버리겠어.’ ‘묻어 주겠어.’ ‘시멘트와 삽 준비해.’ 라는 듯한 눈빛이다. 물론 이건 내 생각인 관계로 약간의 오차가 있겠지만 그 만큼 눈초리가 살벌하다. 하지만 그런 건 별로 신경도 쓰이지 않는다. 그렇게 난 묵묵히 예화의 앞으로 다가갔고 잠시 후 예화는 내가 앉는 걸 보더니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말했다. “……고마워요.” “고맙긴. 뭐 이 정도야.” “그, 그래도 꼬옥 보답을 하고 싶어요.” “예화야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웬 보답이야.” “아.”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보답이라니 꽤나 앞서 간다. “기, 긴장이 되다 보니…….” “괜찮아. 걱정 마. 내가 한 연기하거든.” “아. 고, 고마워요.” 하지만 내가 한 말에 오히려 예화는 그런 뜻이 아닌데라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가 잘못 본 거겠지. 예화의 입장에서는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자신이 좋아하던 남자와 연기이지만 남자친구가 된다는 건 꽤나, 아니 엄청나게 긴장이 된다. 특히 남자를 거의 모르고 지냈던 예화였기에(예화에게 다가오려는 남자들은 그이 보디가드들이 무언의 협박을 하였다. 물론 민혁이는 그 시험을 합격했고.). “그나저나, 나갈까?” “아, 네.” 나의 말에 황급히 당황하면서 말하는 예화였고 그 모습을 본 난 의아하기만 했다. 오늘따라 유난히 긴장을 많이 한 듯 싶다. 아마도 내가 꽤나 연기를 못할 거 같아서 그러는 거 같은데 나 연기 좀 한다. 내 입으로 이런 말 하기 그렇지만 나 5살 때 연기학원도 다녔다. 왜 다녔냐고 묻는다면 우리 아버지가 갑자기 티비를 보더니 ‘너도 연기에 재능이 있다!’ 라고 하더니 ‘어서 가서 연기자 돼서 돈 많이 벌어오렴.’ 이라고 했었다. 차암. 그나저나 저번에 하와이를 끝으로 연락도 안 되는 어머니와 아버지이군. 그렇게 예화와 난 그 자리에서 일어나 2명의 살벌한 보디가드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남자 밭(?)을 뚫고 나갔다. 정말 남자 놈들이 이렇게 끝도 없이 모이다니. 그렇게 난 속으로 투덜투덜거리면서 최대한 예화를 보호하면서 걸어 나갔다. 그런데 느낌이 약간 이상하다. 많이 말이다. 뭐 신경 쓸 것은 없겠지. 제일 위험인물인 정우 놈은 묶어 놓고 왔으니까 말이다. “오, 오빠랑 예화가…….” 채은이는 우연히 데이트(?)를 하는 장면을 보고 충격에 휩싸였다. 자신에게는 그냥 어디 간다고만 했지 예화를 만난다는 소리는 하지 않은 민혁이었다. “저런 뻔한 패턴. 지겹습니다.” “…….” “형님과 예화 양은 사귀는 사이입니다. 아니 결혼할 사이입니다!” “…….” 채은이는 그 말에 잠시지만 비틀거리면서 자신의 이마를 붙잡았다. 물론 지금 이런 소리를 하는 존재는 정우밖에 없다. 정우는 통신판매로 배운 밧줄 풀기로 밧줄을 푼 다음 쪼르륵 채능이에게 달려갔다. 채은이랑 민혁이의 집은 상당히 가까운 관계로 금방이었다. 그리고 모든 상호아을 다 말했고 이렇게 미행을 하게 된 것이다. “그, 그럴 리가 없어. 겨, 결혼하다니…….” 채은이는 잠시 후 정우의 말에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고 그 말에 정우는 엄청 진지한 모습으로 말했다. “아니요. 확실합니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제 야성적인감 1.1%가 발동되었습니다.” “…….” 0.1%가 더 붙는다고 그리 달라질 거 같지는 않지만 정우는 0.1%가 올라간 것만으로도 업그레이드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벌써 금단의 선까지 넘어갔을 겁니다. 오늘 아마도 예화 양의 아버지랑 어머니께 결혼소식을 알리려고 가는 거겠죠.” “마, 말도 안 돼. 갑자기 겨, 결혼이라니…….” “원래 결혼은 말도 안 되게 하는 게 재밌습니다.” “…….” “자, 저를 믿으십시오.” “…….” “믿으세요. 믿으세요.” 정우는 은근슬쩍 채은이에게 최면을 유도하고 있었고 그 순간 그런 정우의 뒤통수를 누군가가 갈겼다. 퍼억. 쿠웅! 정우는 그대로 탁자에 해딩을 하였고 잠시 후 그 주인공은 정우를 보더니 외쳤다. “이 새끼 언제 밧줄 풀었어!” “……오빠.” “허억!” 하지만 그제야 채은이를 발견한 민혁이는 굳어 버렸다. 2분 후. 오해가 풀려서 다행이다. 예화가 차근차근 설명해 준 탓에 오해가 풀렸다. 그런데 이 정우 새끼, 내가 열심히 묶은 밧줄을 어떻게 풀었을까? 궁금한 건 참지 못하는 나였기에 당장 물었다. “너, 밧줄 어떻게 풀었어.” “잘 풀었습니다.” “제대로 말 안 할래?” “사실 저번에 통신판매로 배운 ‘나는야, 밧줄도 푼다.’가 도움이 되었습니다.” 도대체 저기서 나오는 통신판매는 어느 사이트냐? 도대체 밧줄을 푸는 방법 따위를 왜 가르쳐 주는 건데? 설마 납치 될 거라고 생각해서? 그리고 그걸 배우는 너는 뭐냐? 정말 이해가 안 되는 놈이다. 뭐 이해한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은 건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때 예화와 이야기를 끝낸 채은이가 나에게 다가오더니 웃으면서 말했다. “그랬구나.” “응?” “난 정말로 정우 말대로 둘이 결혼이라도 하는 줄 알았어.” 그, 그걸 믿었니? 아니 믿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저 정우놈. 은근슬쩍 세뇌를 시키는 재주가 있다. 그러니 말도 안 되는 말을 해서 듣는 사람 혼란에 빠뜨리는 재주가 있다. 어떻게 보면 정말 대단한 재주이기는 한데 약간 알 수 없는 정말 대단한 재주라는 게 문제다. “채은아, 그럴 리가 없잖아. 갑자기 결혼이라니.” “헤헤. 그렇지?” “무, 물론.” 순간적이지만 채은이의 눈이 번쩍거렸고 그걸 본 난 순간적으로 말을 더듬었다. 무, 무슨 눈빛이지? 내, 내가 잘못 본 것이겠지 “그럼 오빠, 예화 잘 도와주고 와.” “응.” “바이바이.” 그렇게 채은이는 혼자서 중얼중얼거리는 정우를 끌고 사라졌고 그걸 본 나는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분명 마지막에 ‘예화 잘 도와주고 와.’ 라는 말에서 무언의 이상한 기분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흐으음. 굳이 풀이하자면 그냥 도와주고만 와라는 듯한 느낌. 그러니 다른 방향으로 가지 말라고 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다른 방향으로 갈 데가 있어야지. 그렇게 잠시의 해프닝이 지나고 나는 커피숍에서 예화와 나오자마자 대기 중에 있는 리무진을 보면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여, 역시 리무진까지 굴리는구나. 그나저나 저기 커피숍 오늘 대박이다. 채은이까지 잠시 있었더니 저 커피숍에 손님이 순식간에 2배로 불어났다. 한마디로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여서 일어나 있는 상태다. 그것도 다 남자 놈들이다. 이 집안은 아무리 봐도 적응이 안 된다. 정말 이걸 보면 그제야 예화가 초특급 부잣집 아가씨라는 걸 새삼스럽게 느낀다. 지금 예화는 잠시 방으로 들어가 버렸고 나는 아주 짜릿짜릿한 눈빛을 받은 채 어색하게 앉아 있었다. 물론 그 짜릿짜릿한 눈빛의 주인공은 저번에 나랑 한번 부딪혔던 면호라는 남자다. “우리 순진한 아가씨를 꼬시다니, 사악한 놈.” “…….” “악마, 변태, 건달, 날라리 같은 놈.” “…….” 저 아저씨 도대체 무슨 억하심정이 있기에……. 오늘은 더욱더 눈빛이 안 좋다. 내가 이 집에 있는 이유가 예화의 남자친구이기 때문일까? 더욱더 살벌한 눈빛을 보낸다. 혹시 저 남자, 예화 좋아하는 거 아니야? 물론 당연한 것일 수도. 예화 정도 되는 소녀를 안 좋아하면 그것도 남자의 룰(?)에서 벗어난다. “오호. 자네인가.” “아.” 바로 그 때 갑자기 들려온 중후한 목소리에 난 다급하게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런 다음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거기에는 상당히 잘생긴 40대 후반 정도의 남자가 있었다. “흐음. 잘생겼군.” “가, 감사합니다.” “여자를 꽤나 많이 울리겠어.” “그, 그렇지는 않습니다.” 예화의 아버지로 추정되는 미중년 아저씨는 나를 날카로운 눈빛으로 바라보았고 잠시 후 나에게 다가오더니 속삭였다. “근데 정말 자네 에화 남자친구인가?” “그렇습니다.” 일단 난 오늘의 임무를 생각하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대답하였고 그런 나의 말을 들은 아저씨는 나를 오목조목 살펴보았다. “…….” “…….” 저, 저기 그만 좀 보시면……. 너무나도 뚫어지게 보자 나는 약간의 부담감에 땀을 조금 흘렸고 그제야 예화의 아버지는 싯너을 거두었다. 그러디니 갑자기 장렬한 어조로 말했다. “좋았어! 합격이다.” “네?” “내일 당장 결혼해.” “…….” “아, 아빠!” 그 순간 예화의 귀여우면서도 당황스러운 음성이 들려왔고 거기에는 결혼이라는 말에 얼굴이 홍당무 할아버지(?) 처럼 새빨개진 예화가 있었다. 홍당무 할아버지란……. ‘홍당무에 업그레이드 되었다.’ 라는 정우의 가르침(?)이 있었다. 뭐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지금 예화 아버지의 발언은 예화에게도 어마어마한 당황스러움을 주기에 충분했지만 나에게도 어마하게 당황스러움을 주기에도 충분했다. “왜 뭐가 불만이냐? 예화야.” “부, 불만이 아니라, 아빠가 말도 안 되는 말씀을 하셔서…….” “흐으음. 뭐가 말이 안 된다는 것이냐?” “그, 그러니까 겨, 결혼…….” “왜 당연히 사귀면 결혼해야지.” “그, 그럴 리가요.” 예화는 아버지의 말에 당황하면서 나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 눈빛에는 ‘정말이에요?’ 라는 물음이 담겨져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지. 만약에 사귀면 결혼한다고 한다면 이 세상에는 전부 다 결혼하고 남아돌겠다. 초등학생들이 사귀면 그것도 결혼해야 된다는 말인데. 예화 양 너무 순진하다. “자, 날 잡자. 흐으음. 이왕 결혼식할 거 저기 미국에서 하는 건 어떠냐?” “…….” “오늘은 꽤나 바쁘겠군.” “…….” 예화는 완전히 굳어 버렸다. 도저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걸 본 난 내가 나서기로 결정하였다. “저, 저기, 아버님.” “왜, 사위.” “…….” 너무나도 뻔뻔하시다. 사위라는 말을 단 1초도 머뭇거리지 않고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말하다니. 아 참, 이게 아니고. “저희들은 아직 결혼할 나이가…….” “나이가 뭐가 중요한가? 만약에 결혼이 안 된다면 내가 뒷돈 좀 찔러 주면 되지.” 저기, 수위가 좀 높은 말씀인데요? “그, 그런 뜻이 아니라…….” “아, 약혼부터?” “…….” “그럼 오늘 약혼하고 내일 결혼하지.” “…….” 크윽. 미, 밀리고 있어. 순식간에 나는 환상적인 말발에 주르륵 밀렸다. 너무나도 완벽하게 말을 잘하신다. 왠지 모르게 주눅이 들고 기선이 제압당하는 느낌? 역시 이 집을 이렇게까지 만든 장본인이어서 그런지 엄청난 말발이다. “미안해요.” “네?” 그때 갑자기 나타난 너무나도 아름다운 아줌마(?). 나이는 30대 중반 정도밖에 되어 버이지 않았고 젊었을 때 상당히 남자들 몰고 다녔을 거 같은 분이다. 뭐 예화랑도 꽤나 닮은 거 같기도 하고. 그렇다면 예화의 어머니이신가? 역시 아버지와 어머니가 미남 미녀여셔 예화 같은 절색미녀가 탄생이 가능한 거겠지. 한편 예화의 어머니는 나를 보더니 정말 미안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처음 왔을 텐데 남편이 꽤나 당황스러운 말을 했을 게 분명하네요.” 빙고! 바로 맞추셨습니다! 에화 어머니는 갑자기 예화 아버지의 팔을 비틀어 꼬집었다. “끄아아악!” “…….” 한남자의 절규 어린 음성이 들려왔고 예화의 어머니는 나를 보더니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신경 끄세요. 저희 남편이 하는 말은요.” “아, 네.” “그럼 예화랑 오붓한 시간 보내세요.” 그 말을 끝으로 예화 어머니는 꼬집힘을 당해 비명을 지르는 예화 아버지를 질질 끌고 가기 시작하였고 그걸 본 난 그 모습을 보고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예화를 보았다. “…….” “…….” 그렇게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있었고 잠시 후 예화가 다급한 목소리와 몸짓으로 나에게 말했다. “저, 저기 오빠, 저녁식가 때까지 제 방에 계실래요?” 예화 방? 꽤나 궁금하다. 그리고 어차피 할 짓도 없다. 분명 오늘 나는 예화의 남자친구로 온 것인데 너무나도 황당스러운 예화의 아버지 덕택에 뭐가 뭔지 모르겠다. 처음 보고서 하는 말이 결혼하라니. 오늘 약혼하고 내일 결혼. 생전 들어 보지도 못한 페이스다. 만약에 예화 어머니가 아니었다면 정말 말발에 밀려 결혼 했을지도 모르겠다. 뭐 그것도 나름대로 무지 좋을지도……. 여기인가? 예화가 안내해서 간 예화의 방. 일명 스위트 룸(?). 일반 방을 스위트 룸으로 비교한다는 거 자체가 웃기지만 진짜 스위트 룸을 초월한 방이다. 말로 형언할 수가 없다. 천장에는 보기만 해도 비싸 보이는 다이아몬드로 만들어진 샹드레가 걸려져 있었고 주변에는 온갖 금 아니면 다이아로 만들어진 물건들밖에 없다. 그리고 방 하나에 20평이 넘어가고 그 안에 화장실, 욕실,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조리실 등. 모든 가전제품이 고루 갖춰져 있다. 한마디로 방 한 개가 하나의 집이다. “…….” “왜…… 그러세요?” “아, 아니.” 난 너무나도 큰 충격에 말 그대로 경직이 되었다가 예화의 조심스럽게 말 한마디에 벌떡 제정신을 차렸다. “뭔가 불편하세요?” “그, 그럴 리가. 하하하.” 불편하다. 너무 불편하다. 실수로 잘못 헛디뎌 저거 하나만 부숴 먹으면 우리 집 날아간다. 물론 예화 성격상 괜찮다고 할 게 분명하지만 그래도. 크윽. 많이 불편해. 주변에 있는 온갖 고가 제품들은 나의 마음을 너무 무겁게 하였다. 그냥 무거운 것도 아니라 너무 무겁게 말이다. “저, 저기 오빠, 좀 불편하신 얼굴인데.” “으응? 그, 그렇지 않아.” “……정말요?” “물론.” 쪽팔리게 이 집 안 물건이 너무 비싸서 불편하다고는 말 못하지. 그나저나 예화의 남편 될 정도라면 웬만한 담이면 못 살겠다. 뭐 당연히 부잣집 도련님이겠지만 말이다. “저, 저기 오빠, 사, 사실 아버지하고 그런 이야기를 한것도 있지만…….” “있지만?” “제가 오빠를 부른 건 사, 사실.” “……?” 무슨 말을 하려고 저러는 거지? 예화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얼굴은 붉어지고 두 손가락은 꼬무럭(?)거리면서 나와 눈을 못 마주치고 있다. “저, 저기, 저는 오, 오빠를…….” “오빠를?” “조, 좋…….” “식사하세요.” 그 순간 갑자기 들려온 음성. 밥 먹으라는 소리다. 나 사실 예화 집에 오기 전이면 아무것도 안 먹는다. 왜냐고 묻는다면 대략 모두 알 거라고 믿는다(음식이 고급스러우니까.). “밥 먹으러 가자.” “아, 네.” 나의 말에 예화는 졸졸졸 따라왔고 나는 가다가 예화가 하려던 말이 궁금해 뒤를 돌아보면서 물었다. “그런데 방금 뭐라고 하려고 했어?” “아, 그, 그러니까…… 조, 좋아하시는 게 어떤 거예요?” “응? 갑자기 그런 질문은. 뭐 좋아하는 거라면 게임?” “……네.” 내가 뭘 잘못했나? 예화가 갑자기 기운이 없어진 이유라도 알고 싶다. 잘 먹었다. 오늘도 나의 배는 너무나도 거하게 호강했다. 뭐 사실 매일 호강하고는 있지만. 꼬박꼬박 챙겨 주는 채은이 덕택에. 거듭 말하지만 채은이는 요리 실력이 예술이다. 사실 맛으로 따지자면 예화 집에서 전문적으로 만든 조리사보다 난 채은이 음식이 더 맛있다. 그만큼 요리는 정말 잘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난 식사 후. 예화와 잠시 대화를 하고 집 밖으로 나왔다. 물론 오늘도 채은이 음식도 싸 들고 간다. 정우 놈 거는 거듭 말하지만 옵션이다. “흥흥흥.” 오늘의 너무나도 행복한 느낌에 콧소리까지 내면서 집으로 향하는데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잠깐만요.” “……?” 나는 나를 부르는 듯한 말에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아줌마 같지 않은 아름다움을 가진 예화의 어머니가 서 있었다. “고마워요.” “네?” 바로 그 순간 나를 보더니 살포시 웃으면서 말하는 예화의 어머니였고 난 갑작스럽게 고맙다고 말하는 예화 어머니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예화의 어머니는 말했다. “항상 우리 딸아이를 게임에서 보살펴 준다는 거에 대한 인사예요.” “보살펴 주다니요. 저야말로 예화 같은 정상인이 있어서 너무나도 고마울 뿐이죠.” “……?”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하겠다는 듯한 모습을 하는 예화 어머니. 당연하다. 하지만 우리 파티에 딱 하루만 있으면 정상인이 얼마나 그리워지는지 새삼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파티에 예화 같은 절세미녀와 더불어 정상인은 나에게 유일한 마음의 안식처다. “민혁 군의 말이 무슨 말인지 도통 이해가 가지는 않네요.” 그렇습니다. 말만 하면 이해를 하지 못합니다. 겪어 봐야 이해를 하지요. 닭대가리 3인방과 더불어 외계 생물체를 말이죠.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속으로 삼킬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말해 봤자 상상할 수 있는 범위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놈들은 상상할 수 없는 범위에 있는 놈들이다. 그러니까 무서운 놈들이지. 한편 예화의 어머니는 여전히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더니 말을 이어 나갔다. “사실 예화랑 같이 있어 봐서 알고 계시겠지만 예화는 내성적입니다. 특히 남자들한테는 더욱더 그러고요.” “…….” “남자와 이야기를 하는 건 사실 예화 아버지를 삐고 민혁 군이 처음이었습니다.” “그런가요?” “네. 예화는 가상현실게임인 테이스 월드를 하면서 유난히 밝아졌지요.” 그래, 난 사실 정의의 용사도 아니고 남들을 위해 희생할줄 아는 존재도 아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내 주변에 있는 인물들이 행복하게 게임을 할 수 있으면 된다. 항상 바보처럼 굴지만 이미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환수들, 그리고 채은이, 예화와 더불어 나를 아는 모든 존재들. “민혁 군, 앞으로도 우리 예화를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도움이 필요하시면 찾아오세요. 도와드릴게요.” 그 말과 함께 에화의 어머니는 싱긋 웃었고 그 모습을 본 난 생각했다. 역시 테이스 월드라는 세상은 존재해야 한다고 말이다. 제6장 마스터 오브 웨폰(Master Of Weepon) vs 전신 테투언 -즐거운 게임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 말과 함께 순식간에 밝아지는 빛. 드디어 올 날이 오고 말았다. 전신 테투언인지 대파인지 모를 놈과의 전투가 말이다. 그렇지만 이런 당일에도 들어가자마자 내 기분을 정말 엿같이 만드는 놈, 아니 개가 있었다. “안 받아?” “너, 나보고 엿 먹으라는 소리냐?” “선물이잖아! 인간들은 무슨 일이 있으면 엿 먹는다던데.” “누가?” “정우가.” “…….” 나는 케미리가 나에게 내미는 엿 조각을 보면서 침묵했다. 저 엿 조각은 또 어디서 공수한 것이냐? 그리고 내가 전투하러 가는 거지 시험 치러 가는 게 아닌데 엿 따위를 주다니. 잘못 보면 엿 먹으라고 오해할 수 있는 소지가 다분한 행동이다. 그렇지만 사심(?) 없이 내밀어 준 케미리의 선물을 난 차마 거절할 수는 없었다. “그래, 잘 먹으마.” “응응.” 그런데 받는 내 손이 떨리고 있었다. 마치 이걸 받으면 안 된다고 나의 절대 감각이 외치고 있는 듯이. 여, 엿이잖아. 왜, 왜?! 나는 이 엿에 알 수 없는 괴리감을 느껴야 했다. 엿에 괴리감이 느끼는 내 자신이 한심했지만 이 엿은 케미리가 주는 엿이다. 아, 괴롭도다. “안 받아?” 케미리는 계속해서 나에게 엿 한 조각을 내밀고 있었고 그걸 본 난 슬며시 다정다감한 목소리로 물었다. “케미리야.” “왜 그래. 마스터.” “이 엿은 어디서 가져온 거니?” “응? 가져오다니. 주워 왔지.” “…….” “왜?” 주워 왔다면서 그렇게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니? 나의 머리에는 언제 나타났는지 혈관 마크가 빠직빠직 나타난 상태고 케미리는 영문을 모른다는 얼굴을 한 채 계속해서 나에게 엿을 내밀고 있었다. “케미리야. 넌 주은 엿을 나보고 먹으라는 거냐?” “주은 게 어때서?” “…….” 아 참, 너는 개였지. 개는 땅바닥에서 주은 음식을 잘 먹는다가 아니라! 넌 원래 개가 아니라 마족이잖아! 설마 마족의 프라이드인가 뭔가도 잊어버린 건가? “어서. 나 손 아퍼.” “너나 먹어.” “흐음? 안 먹어? 그럼 내가 먹어야지.” 그 말과 함께 케미리는 자신의 입으로 엿을 쏘옥 넣었고 그걸 본 난 고개를 저었다. 아 저딴 놈이 이곳의 왕자라니 지나가던 코딱지가 웃겠다. “테투언님.” 나렌은 눈을 감은 채 조용히 앉아 있는 테투언을 자그마한 목소리로 불렀다. 그러자 그 목소리에 반응이라도 하듯 테투언이 자신의 전용의자에서 일어났다. “가도록 한다.” “네.” 그 말과 함께 테투언은 어마어마한 위압감과 더불어 천천히 걸어 나갔다. 전신 테투언. 그 누구도 그의 방어력을 넘어설 수 없다. 그건 바로 자신의 모든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주인님, 주인님. 이기시면 아항 해 드릴게요.” 세리하, 아항은 뭐니? 난 요란한 치어리더복을 입고 열심히 응원하는 세리하를 보고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메이드복을 벗더니 이번에는 치어리더복이다. 그것도 미니스커트. 좋다. 역시 몸매 되고 얼굴 되는 애들은 뭘 입으나 다 커버가 된다. 짜릿. “…….” 그때 나는 약간은 짜릿한 시선에 고개를 돌렸고 거기에는 채은이가 나를 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말했다. “침 떨어져.” “…….” 커험. 나, 나도 모르게……. 나는 얼른 재정비를 하였다. 중요한 전투를 앞에 두고 뭐하는 짓인지. 그만큼 세리하의 치어리더복은 남자의 본능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오늘 마계의 시간 오전 12시. 그리고 이곳 네라진과 테투언의 성을 기준으로 절반의 지점. 그 안에 수천 명의 마족들이 자신들의 진형 안에서 대기중에 있다. 날씨조차도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은 게 딱 좋다. 그나저나 테투언 놈은 아직도 안 나오네. 분명 지금의 시간은 11시 45분. 그리고 약속 시간은 12시. 그래도 최소한 20분 전에는 나와서 준비를 해야 되는게 정상 아닌가? 아니면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걸까? 절대 지지 않을 자신이 말이다. 그렇게 약 10분의 시간이 지났고 정확히 11시 55분쯤에 테투언의 모습이 보였다. 아니 보였다기보다는 느꼈다. 변태적인 의미의 느꼈다가 아니라 엄청남 위압감이라는 뜻이다. 나는 좀 덜한 거 같은데 내 주변에 있던 마족들과 소환수들, 동료들은 숨이 탁탁 막히는지 얼굴을 찡그렸다. 그만큼 그 한 명의 존재가 나타났을 뿐인데 엄청난 위압감으로 우리 진형의 마족들을 단숨에 제압해 버린 것이다. 역시나…… 전신 테투언. “애송이 놈이 너냐?” “거만쟁이가 너냐?” “…….” 테투언이 나를 보자마자 시비를 걸기에 나도 껄렁한 자세로 똑같이 시비를 걸었고 그런 나의 시비에 테투언의 표정이 미세하게나마 변했다. 그 표정을 풀이하면……. ‘갈가리 찢어 버리겠다.’ 라는 표정인 거 같다, “인가 주제에…… 그것도 감히 나에게?” “말 많네. 쳇.” “…….” 나는 고개를 슬쩍 돌리면서 혼잣말처럼 했지만 목쇠리가 꽤나 컸기에 분명히 들었을 게 분명하다. 그걸 증명하듯이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인간 놈!” 바로 그 순간 테투언이 갑자기 분노를 참지 못하고 나에게 달려 들어왔다. 어이어이. 아직 시작도 하기 전에 오면 반칙이라고! 하지만 테투언은 전혀 상관없는지 곧바로 나에게 어마어마한 속도로 달려 들어왔고 그걸 본 난 슬쩍 웃었다. 어차피 불리한 건 도발에 걸린 상대거든. 그래도 일단은 정식으로 시험을 봐야지 나중에 딴소리 없겠지. 그런 생각과 더불어 나는 손을 한번 휘저으면서 외쳤다. 검(Sword) 소환. 인첸트 화(火). 다중 소환. 그 순간 순식간에 달려오던 테투언의 주변으로 수십 개의 불의 칼이 소환되어 그의 온몸을 가리켰다. “…….” “…….” “…….” “…….” “…….” 이 알 수 없는 정적감. 꽤나 심하다. 나의 단 한 번의 손짓에 흥분해서 달려들던 테투언과 더불어 우리 진형에 있는 마족. 그리고 소환수들과 동료들, 그리고 상대편 마족들. 한마디로 모두 굳어 버렸다는 소리다. 그런 정적 속에서 한 남자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하하하하하.” 테투언은 뭐가 그리 좋은지 미친 듯이 웃기 시작하였고 잠시 후 내가 소환해 낸 검 중에 하나를 고르더니 그대로 하나를 잡아 버렸다. 미친놈.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다. 전혀. 영향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여시 나에게 도전할 만큼의 실력은 있다는 건가? 재미있는 ‘쇼’였다.” 쇼라니. 꽤나 많은 마나를 잡아먹는데 쇼라고 하다니. 그리고 잡은 검을 그대로 부숴 버렸다. 말도 안 된다. 저 날카로운 검에다 불 속성이 인첸트 된 검을 맨손으로 잡아서 부숴 버리다니. 해도 너무한다. 진짜 최악의 방어력이군. “이 정도면 보답이 되었나?” “그렇다고 해 두지.” “크크크. 좋아. 오늘은 꽤나 재밌겠는데.” 그 말에 나는 주변을 포위한 소환된 검들을 다시 도려 버렸다. 꽤나 마나가 많이 드는 관계로 말이야. 이걸 봐서는 평범한 공격은 아예 먹히지도 않는다는 게 증명되었다. “그럼. 오늘 즐겨 보지.” “…….” 즐기긴 개뿔. 뭐 건강지든 아니든 내 알 바 아니고 내가 할 일은 승리다. 검 소환. 인첸트 풍(風). 파지짓. 나는 이번에는 검에 힘을 주입하기 시작하였다. 점점 주입을 할수록 바람의 힘이 강해져 진해지기 시작하였고 나는 웃으면서 아무런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지 않고 터벅터벅 개 폼을 잡으면서 걸어오는 테투언을 보면서 그대로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풍의 힘이 담긴 검을 테투언의 배쪽을 향해 그었다. 채앵! 하지만 무슨 금속과 검이 만나는 소리가 들려왔고 그 소리를 들은 난 절망에 빠졌다. 방어력이 이 정도일 줄이야. 마스터 오브 웨폰이 되어서 상대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나만의 착각이었나? 하지만 이런 나의 생각은 금세 수정되었다. “어, 어떻게?!” 거기에는 경악에 휩싸인 테투언이 있었다. 자신의 오른쪽 옆구리에 아주 미세하게나마 갈라진 상처를 보고. 아주 미세한 양의 피까지 흘러나오고 있었다. 웅성웅성. “마, 말도 안 대.” “테투언님의 피야.” “상처가 나다니. 마, 말도 안 돼!” “테투언님이!” 피 조금 난 거 가지고 테투언의 수하들은 패닉상태에 빠져 버렸다. 저들이 입장에서는 절대 믿을 수 없다는 둥, 현실이 아니라는 둥, 하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그리고 그건 우리 쪽도 마찬가지였다. “인간이 우리들의 총사령관이라고 해서 어이가 없었는데 테투언에게 상처를 내다니…….” “엄청난 파괴력이다.” 주변에서는 테투언의 자그마한 상처에 웅성거리기 바빴고 그 순간 테투언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 나를 향해 소리를 쳤다. “하찮은 인간 놈이! 으아아아악!” 그 말과 함께 테투언은 자신의 손톱을 4미터 이상으로 늘리더니 순식간에 무기로 만들어 버렸다. 10개의 손톱이 다 길어졌으니 한 번에 무기가 10개 이상 생겨 버린 것이었다. “죽이겠다!” 남자가 손톱이 무기라니 조금 웃기기는 했지만 그것보다는 저 날카로워 보이는 손톱을 피해 내는 게 우선이었다. 저 손톱에 걸리면 최소 못해도 넉 다운이다! 파짓. 나는 가볍게 차원의 문을 열어 나를 향해 맹렬히 손톱을 찌르는 테투언의 뒤로 순식간에 이동하였다. 그런 다음 소환된 검을 그대로 등 뒤로 찔러 넣었다. 채앵! 하지만 어느새 뒤로 돌았는지 손톱으로 나의 검을 튕겨내는 테투언이었고 난 다시 한 번 공간의 문을 열어 뒤쪽으로 거리르 벌렸다. “이 인간 놈이 어, 어떻게 차원까지?” “흐으음. 부가 서비스 종류일까?” 부가 서비스 맞지. 마스터 오브 웨폰이 되는 과장에서 받은 부가 서비스. 근데 부가 서비스가 너무 후해서 좀 난감하긴 하지만. “밎어지지가 않군.” “믿지 마.” “…….” 믿어지지 않으면 안 믿어도 된다. 믿어 달라고 한 적도 없으니까 말이야. “그래. 네놈이 차원을 다루고 검의 수를 좀 다루는 건 인정해 주지. 그리고 나의 몸에 미세한 상처를 입힌 것까지는 인정해 주마. 하지만 넌 날 이길 수 없다!” 슈우욱. 그 말과 함께 10개의 기다란 손톱을 바닥에 꽂아 넣는 테투언이었고 난 갑작스러운 반응에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자신의 무기인 손톱 10개를 전부 다 바닥에 꽂아 넣다니 무슨 짓을? 콰아아! 그 순간 갑자기 내가 있던 자리가 흔들렸고 그걸 본 난 아차 했다. 이걸 노리고 있었구나! 나의 몸은 순간적으로 땅이 흔들림과 더불어 흔들렸고 그 순간 어느새 다가왔는지 나에게 10개의 손톱을 온몸을 향해 찔러 넣고 있는 테투언의 모습이 보였다. “젠장!” 그 말과 함께 난 다시 한 번 차원 이동을 하였지만 나의 가슴 쪽에 깊게 난 상처는 어쩔 수가 없었다. “크윽.” 꽤나 깊숙한 상처에 나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고 테투언은 비웃음과 함께 나를 바라보았다. “이거, 이거. 너무 약하잖아?” “…….” “여러 가지 검을 소환해서 무기에 인첸트하는 능력은 괜찮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나를 못 이긴다고.” 그 말과 함께 잔혹한 미소를 지으며 무기로 변한 자신의 엄청나게 날카로워진 4미터의 손톱을 나를 가리키면서 다가왔고 그걸 말없이 보던 난 지금 저 손톱에 있는 무기를 생각했다. 파아앗! 그 순간 나의 손톱에도 테투언과 똑같은 무기가 생성되었고 나는 순간적으로 자신의 무기를 소환해 내는 나를 보고 깜짝 놀란 테투언의 가슴을 그대로 그었다. 채앵! 또다시 철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결과는 꽤나 만족스러웠다. 아까 전보다 훨씬 깊은 상처를 낸 것이다. 하지만 그 공격을 당한 대상은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것보다 내가 자신의 무기를 다루는 것에 더 경악한 듯싶었다. “어, 어떻게 내 전용무기를!” “나? 마스터 오브 웨폰. 모든 무기를 마스터해야지만 주는 칭호거든.” “마, 마스터 오브 웨폰?!” 나의 말에 테투언은 더욱더 당황하기 시작하였다. 마치 마스터 오브 웨폰이라는 단어를 들어 보았다는 듯한 제스처였다. “어, 어떻게 그 직업이……?!” “어라. 알아?” “젠자앙!” 그 순간 나의 순수한 질문에 대답을 해 주기는커녕 테투언은 더욱더 흥분해서 나에게 더욱 빠른 스피드로 공격하였고 그걸 본 난 소톱을 캔슬시키면서 그대로 활을 소환해 내었다. 활(Bow) 소환. 화(火). 수(水). 풍(風). 지(地). 무(無) 플레즈마 스트레이트 샷. 파지지짓. 순식간에 소환된 나의 활에는 어마어마한 힘이 담겨져 있었다. 테투언이 마스터 오브 웨폰이라는 말에 흥분을 하는 이유가 꽤나 궁금하기는 했지만 그것보다는 지금의 기회를 챙겨야 했다. 나의 무형의 화살에는 너무나도 여러 가지의 힘이 담겨져 있어서 그런지 무지개 색깔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였고 나는 흥분한 채 마구잡이식으로 달려오는 테투언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스페이스 샷.” 파아앗. 그 순간 나의 몸 안에 있던 마나가 전부 다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그와 더불어 나의 모든 힘이 담긴 무형의 화살은 날아갔다. 물론 10개의 화살에는 나의 힘이 담겨져 있었고 그 화살들은 공간을 넘어서 달리고 있는 테투언의 요혈들을 향해 자리 잡았다. 그리고. 콰아앙. 콰아앙. 콰아앙! 도저히 화살이 발사된 소리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굉음과 더불어 반경 10미터 안에서 농축된 폭발이 일어났다. 덕분에 폭발의 힘이 밖으로 새지 않고 테투언의 주변에서 연속으로 폭발이 일어나서 데미지를 극대화시켰다. “…….” 이건 10발 다 명중이다. 분명 죽었다. 마스터 오브 웨폰이라는 직업 덕택에 엄청 강해진 나의 데미지가 무시할 정도는 아니다. 무럭무럭. 그렇게 어마어마한 폭발이 지나가고 잠시 후 난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옷은 걸레짝이 되었고 피로 떡칠이 되어 있기는 했지만 분명 살아 있었다. 그것도 두 발 멀쩡이 서 있었다. “젠장!” 그걸 본 난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고 그 순간 테투언은 갑자기 쓰러졌다. 그러더니 중얼거렸다. “젠장……. 또 마스터 오브 웨폰에게…….” 그 말과 함께 테투언은 숨을 거두었다. 나는 마지막 말이 찜찜하기 그지없었다. 또 마스터 오브 웨폰이라니. 그럼 1대 본주와도 싸웠었다는 건가?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작자야(카레안인지 모른다.)! 그나저나 강해지긴 강해졌구나. 아이디: 플레스 레벨: 88 직업: 마스터 오브 웨폰 HPMP: 103,600/138,300 힘: 5(?????) 민첩: 406(?????) 체력: 5(????) 지혜: 5(0) 지식: 5(0) 행운: 5(0) 기본 공격력: 187,000 기본 방어력: 20,000 남은 스텟: 0 레벨이 잘 오르지 않는 상태입니다. 자신의 스텟보다 훨씬 높으면 레벨 업이 잘 되지 않습니다. 분명 저번과 레벨은 같다. 하지만 저 기본 공격력을 봐라. 완전 사기 수준이다. 그리고 그뿐만 아니라 스킬의 힘도 강해졌다. -검 소환- 3단계(마스터) 검을 소환한다. 검의 특성 방어력이 800 증가한다. 기본 공격력: 14,200 특별 스킬: 방어 능력 활성화. 일루젼 공격. -활 소환- 3단계(마스터) 활을 소환한다. 활의 특성 이동속도, 공격속도 20% 증가. 기본 공격력: 12,800 특별 스킬: 다중 공격 능력. 엘리아스. -도끼 소환- 3단계(마스터) 도끼를 소환한다. 도끼의 특성 이동속도, 공격속도 20% 감소. 기본 공격력: 18,000 숙련도가 10%마다 공격력은 600 상승한다. 특별 스킬: 절대 충격파. 초절대 충격파. -와이어 소환- 3단계(마스터) 와이어를 소환한다. 와이어의 특성 공격속도 45% 상승. 기본 공격력: 12,000 특별 스킬: 이중 공격. 나선의 실. -지팡이 소환- (마스터) 마법을 사용하게 해 준다. 특별 스킬: 모든 마법을 사용 가능하게 해 준다. 이거 말고도 꽤나 있지만 너무 복잡해서 패스. 무기를 소환하는 게 좋기는 하지만 너무 많으니 정신이 없다는 담전미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번에 얻은 구슬. -화(火) 인첸트- (마스터) 무기들의 화(火) 속성을 인첸트한다. 상대방은 인첸트한 무기에 공격을 당할시 일정확률로 발화에 걸린다. 마나 소모율: 4,000 증폭 데미지: 17,000 -수(水) 인첸트 - (마스터) 무기들의 수(水) 속성을 인첸트한다. 상대방은 인첸트한 무기에 공격을 당할시 일정확률로 2초간 공격속도가 느려진다. 마나 소모율: 3,200 증폭 데미비: 12,700 -풍(風) 인첸트 - (마스터) 무기들의 풍(風) 속성을 인첸트한다. 상대방은 인첸트한 무기에 공격을 당할시 일정확률로 즉사. 마나 소모율: 8,000 증폭 데미비: 14,000 -지(地) 인첸트 - 무기들의 지(地) 속성을 인첸트한다. 상대방은 일정확률로 절대 방어력이 시전 된다. 마나 소모율: 9,200 증폭 데미비: 12,000 -무(無) 인첸트 - 무기들의 무(無) 속성을 인첸트한다. 상대방은 인첸트한 무기에 공격을 당할시 일정확률로 소멸. 마나 소모율: 14,000 증폭 데미비: 30,000 크윽. 이건 미친 듯한 데미지다. 완전 이건…… 물론 싫은 건 아니다. 싫기는커녕 감동이다. 이제부터 나의 복수신(?)이 시작된다. 김민혁의 복수열전(?)이라고 하기는 그렇지만 일단 데스 길드 놈들 철저히 박살 내 주마. 이제 그 드워프보다 대단하다는 장인을 한번 본 뒤 내가 저번에 던전에서 건져 온 아마다티움을 내밀면서 무기 좀 만들어 달라고 한 다음 안전하게 무늬만 길드 마스터인 장의사가 직업인 그 남자에게 가져다주면 나의 임무 완수. 참으로 한 가지 해내기도 더럽게 힘들다. 지금 나는 참고로 그 엄청나다는 장인을 만나러 가는 중이다. 채은이랑 함께. 그나저나 나은이는 뭐가 그리 바쁜지 잘 보이지도 않는다. 나를 따라나선다고 할 때는 언제고, 쳇쳇. 저번에 보담 뽀뽀를 한 이후로 잘 보이지도 않는다. 그나저나 저놈은……. “너는 왜 오냐?” “저 말입니까?” “그럼 너 말고 누구 또 있냐?” “또 다른 저, 제우도 있습니다.” “그 다중인격?” “네.” 난 지 입으로 다중인격이라고 저렇게 자랑스럽게 말하는 놈은 처음 봤다. 물론 저놈이 다중인격일 확률은 제로다. 저런 독특한 정신세계를 가진 놈이 다중인격일 리가 없다는게 나의 결론이다. “이상한 헛소리 지껄이지 말고. 무슨 용건이냐?” “용건은 없습니다.” “그럼 왜 오는 건데?” “그냥 심심해서 말입니다.” 심심하면 처박혀서 잠이나 자지. 왜 따라오는 걸까. 아 그렇다고 채은이랑 둘만 있고 싶으니 꺼져라고는 못하겠고. 쩝, 어쩔 수 없지. 정우 놈도 데려갈 수밖에. 난 저놈만 데려갈 생각하면 벌써 온몸이 오들오들 떨려. “여기인가?” “여기이지요. 저기겠습니까?” “…….” 저 새끼는……. 내가 그냥 한번 예의상 혼잣말한 거에 토를 다는 정우였고 나는 잠시 동안 그런 정우를 노려보았다. 그런 다음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마왕 테투언의 성이었던 곳. 이제는 네라진의 성이 되어 버렸다. 어찌 됐든 그 성 중에서도 상당히 신경을 쓴 방이 한 곳 있었다. 그곳이 바로 이곳이다. 한마디로 이 안에 그 엄청난 장인이 있다는 것이다. 솔직한 말로 약간, 아니 많이 기대가 된다. 어떤 모습일까? 얼마나 뛰어난 장인이길래 마족조차도 탐내는 걸까? 정말 궁금하다. 똑똑. 나는 그런 생각과 더불어 문을 두들겼고 잠시 후 문이 벌컥 열리더니 한 인형체가 나를 덮쳤다. “늦었잖아. 맛있게 먹겠습니다.” “뭐, 뭐 하는 거예요!” 여자였다. 170 정도의 늘씬한 몸매에 갈색 머리카락과 갈색의 눈동자가 유난히도 잘 어울리는 20대 중반의 여성이었다. 객관적으로 보아도 꽤나 미인이었고 특히 몸매가 예술이었다. 아 참, 그게 아니라. 지금 저 여자가 하는 행동은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나의 옷을 마구 벗기고 있었던 것이다. 상의부터……. “저도 덮쳐 주세요.” “응?” 그때 채은이의 당황하는 음성과 더불어 정우의 한심한 소리가 동시에 들려왔고 그 순간 그 여자는 나를 보더니 혀를 후르륵 쩝쩝하며 입맛을 다셨다. “나 욕구불만이라고.” “…….” 저, 저기 여자 분이 하실 말씀은……. 나는 너무나도 직설적으로 말하는 그 여자의 말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고, 그 순간 그 여자는 내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솔직히 다 알잖아. 시종으로 한 명 보내 달라 했으면 무슨 뜻인지.” 알기는 뭘 압니까? 그리고 시종이라니……. “테투언님이 꽤나 둔한 시종을 보내셨네. 뭐 그래도 이렇게 잘생긴 남자는 처음 보니 용서해 줄게.” “…….” “자, 가자. 방에서 하지 뭐.” 저, 저기. 그렇게 말한 그 정체불명의 여인은 나를 끌고 들어갔고 난 다급히 말했다. “저, 저는 시종이 아닌데요?” “응? 분명 지금쯤 올 때 됐는데. 테투언님이 뭐 하는 거지?‘ “테투언은 죽었는데요.” “뭐라고?!” 그 순간 그 여자는 깜짝 놀라면서 경악을 했고 그걸 본 난 당황해서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그 여자는 경악을 금치 못하다가 눈물까지 흘리는 것이었다. “그럼 나 이제 자유야?” “에, 자유라니요?” “이제 무기 안 말들어도 되냐고!” “저, 저기, 그 말씀은 혹시…….” “응. 왜?” “혹시 해서 물어보는데 드워프보다 잘나고 뛰어나다는 장인?” “응, 근데.” 마, 말도 안 돼! 분명 남자라고! 저번에 메퍼랑 이야기할 때도 남자 장인이라고 내가 분명 말했고 메퍼도 인정했다. 그렇다면 메퍼조차도 남자로 알고 있었다는 건가? “…….” “왜 그래?” “아, 아닙니다.” “흐음. 근데 테투언이 죽었다고? 그럼 난 어떡하지?” “저 그게…….” “응?” 난 자유를 찾았다고 좋아하는 그녀를 향해 또다시 ‘길드로 가셔서 무기 좀 만들어 주세요.’ 라고 말하기가 너무나도 힘들었다. 하지만 그런 나를 보더니 그녀가 떡하니 말했다. “네가 테투언을 이겼구나.” “그, 그러긴 한데요.” “난 강한 남자가 좋아.” “…….” “아마도 나의 무기들이 목적이겠지. 또 어디서 대형 싸움 준비하려고 내 무기가 필요한 거 아니야?” “…….” 완전 족집게다. 모두 알고 있다. 아니 어쩌면 이런 상황을 많이 당해서 저런 것일 수도……. “아니야?” “맞……아요.” “괜찮아. 해 줄게.” “저, 정말입니까?‘” “응. 뭐…… 그런데 너는 나랑 같은 인간이지?” “아. 네.” “그렇구나. 헤헤. 좋았어. 해 줄게. 그 대신.” “그 대신?” 나의 임무가 끝났다는 생각에 기뻐하고 있던 나에게 그대신이라고 말을 던지는 그녀였고 잠시 후 나의 손을 붙잡더니 싱긋 웃었다. “내 욕구불만은 풀어 준다는 조건이야.” “안 돼요!” 그 순간 채은이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잠시 후 그녀는 채은이를 잠시 훑어보더니 그녀의 미모에 잠시 감탄한 듯한 모습을 보였고 수십 초 후 말했다. “왜 안 돼? 이 남자의 여자친구라도 되는 거야?” “그, 그건 아니지만…….” “그런데 왜 안 돼?” “그, 그래도 안 돼요.” 채은이는 무조건 안 된다는 말만 거듭하며 고개를 저었고 그 모습을 본 나도 썩 내키지 않았기에 옆에서 묵묵히 있는 정우 놈을 내밀었다. “이놈은 어떨까요? 아까부터 자신한테 해 달라고 외치는 중인데.” “흐으음.” 그녀는 한참을 정우를 뚫어지게 바라보았고 잠시 후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얼굴은 그나마 봐 줄 만한데 상태가 이상해.” 그거까지 단숨에 알아차리다니 정말 대단하다. 한편 그녀는 울먹거리까지 하는 채은이를 보더니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알았어. 그냥 해 줄게.” “아, 감사합니다.” 살았다. 내가 생각하던 중후하고 멋진 아저씨 이미지가 아니어서 약간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어찌 됐든 임무 완성이다! 제7장 피티언 실종 사건 and 다시 인간계로 드디어 돌아가는구나. 이 마계에 온 지도 어마어마하게 시간이 흘렀다. 물론 그 시간 동안 전직도 하고 신급 스킬도 얻고 했지만. 그리고 나를 따라다니던 나은이는 이곳 마게에 남는다고 한다. 꽤나 이곳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한 명의 미소녀를 놓치는 이 마음은 안타깝기 그지없지만. 난 채은이와 예화로 만족하련다. 물론 세리하도 있고 말이야. 그렇게 우리는 모든 준비를 끝낸 뒤 수천 명의 마족들과 네라진에게까지 배웅을 받고 있었다. 이미 메퍼랑 연락이 끝난 상태. 이제 최고의 장인을 데리고 가기만 하면 된다. “고맙군.” “뭘. 어차피 해야 될 일이었으니까.” 난 진심으로 고맙다는 듯 말하는 네라진을 향해 손을 설레설레 저으면서 별것도 아니라는 듯 말했고 그런 나의 모습을 본 네라진은 슬며시 웃었다. 그러더니 케미리에게 고개를 돌렸다. “너도 떠날 것이냐?” “물론. 나는 이래 봬도 6대 소환수 중 1명이거든.” “그런가? 뭐 네가 선택한 길이니.” 그 말에 네라진은 약간은 아쉽다는 듯 말했고 나는 인원 점검을 하기 시작하였다. 워낙 인원이 많다 보니. 케미리 한 마리, 정우 한 마리, 제은이와 예화, 세리하, 테피언하고 레키리안(정말 존재감 없다. 말 한마디 하는 걸 못 봤다.)……. 어라?! “야, 피티언은?” “응? 피티언은?” 내가 물어봣거든? 케미리에게 묻자 오히려 나에게 묻는 케미리였고 저놈에게 물은 내가 잘못이라는 생각에 얼른 주변을 열심히 찾아 보았지만 피티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 “…….” “…….” “…….” “…….” “…….” 모든 일행들은 말없이 서로만을 바라보기에 정신이 없었고 그중에서 제일 일찍 정신이 든 난 다급하게 뛰어다니면서 외쳤다. “피티언!” 피티언 실종시간 약 25시간 초과. 크윽. 피티언. 어디로 가 버린 거니? 보고 싶다. 당연한 말이지만 인간 세상으로 돌아가려던 우리들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그 이유란 당연히 피티언의 실종 사건. 그가 사라진 것은 아무도 모르다니! 지금 우리는 회의를 하기 위해 모두 모인 상태다. 10인용 원형 탁자에 둥그렇게 모두 앉아서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곳의 정 중앙에 나 그리고 오른쪽에는 채은이와 왼쪽에는 예화까지. 어찌 됐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여기에 모인 자들 중 피티언을 본 사람?” “나!” 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개 한 마리가 손을 들었고 그걸 본 난 두 손을 모으면서 약간의 폼을 잡고 물었다. “그래, 언제 봤지?” “흐음. 아마도 4일 전?” “4일 전이면……?” “마스터가 그 이상한 놈하고 싸울 때야.” 그럼 테투언과의 싸움 당시를 끝으로 사라졌다는 건가? “그때 분명히 다 끝나고 축하파티를 하고 있을 때 내 앞으로 돼지 바비큐 한 마리를 통째로 들고 가면서 먹고 있는 피티언의 모습이 보였어.” “…….” 돼지 한 마리를 통째로 들고 다니면서 먹다니. 크윽. 피티언. 정말 놀랍다. 그리고 돼지 한 마리면 꽤나 무게가 나갈 텐데, 마법사 주제에 힘도 세기도 해라. 아 참,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리고서는?” “그리고는 잘 모르겠어. 먹으면서 지나갔으니까.” “나, 나.” 그 순간 테피언이 손을 들었고 그런 모습에 나는 중후한(?) 눈빛으로 말했다. ‘말해.’ 라고. 하지만 이런 나의 눈빛을 이해 못했는지 테피언은 눈만을 번쩍거렸고 난 할 수 없이 입을 열었다. “그래. 말해.” 그제야 이해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대부분 척이면 이해하는데 이것도 이해를 못하다니. 참으로 닭대가리라는 사실을 각인시켜주는구나. “내가 본 건 2일 전이었다.” “2일 전?” “어. 2일 전에 피티언은 내 앞을 지나갔지. 이번에는 통닭을 한 10마리 정도 껴안고 지나갔어.” 어디를 지나가든 왜 맨날 먹을 것밖에 없는 것이냐? 피티언. 사실 이곳에 있으면서 한 가지 농담이 있었다. 식량이 800인분 가까이 사라졌다고. 어이가 없는 말에 나는 그냥 웃어넘겼는데 그게 진짜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나를 강타하였다. 피티언이라면 가능한 놈이다. “그리고 또 피티언의 모습을 본 사람?” 그렇지만 나의 질문에 전부 다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이 닭대가리 어디 갔어! “행복해.” 피티언은 너무나도 행복했다. 자신에게 이런 파라다이스가 주어지다니 눈물이 날 정도였다. “우걱우걱.” 피티언의 앞에 있는 무수한 식량들. 수천 명의 마족들을 위해 비축된 식량들이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피티언은 잠을 자다가 왠지 모르게 배가 고팠고, 그래서 음식 냄새를 추적하였다. 일명 쿠킹센트(?). 음식이 있는 곳을 본능적으로 알아내는 엄청난 신기술이었다. 그 신기술로 피티언은 지금 이곳을 알아차리고 들어왔다가 식량 담당 마족이 문을 잠그는 바람에 여기에 갇혀 버린 것이었다. “맛있어!” 피티언의 앞에 있던 수만 명 분의 식량들은 점차 줄어들고 있었다. “정말 어디 간 거야?!” 정말 감쪽같이 사라졌다. 마치 연기처럼 바람처럼 말이다. 온 곳을 찾아보았지만 피티언의 흔적은 없다. 흔적이라고는 그가 먹다 남긴 닭 뼈다귀들뿐. “주인님.” 크윽. 세리하. “미안하다.” 세리하를 볼 면목이 없다. 자신의 소중한 동생을 잊어버린 것에 대한 미안함. 정말 미안하다. 마음 같아서는 모든 걸 들어주고 싶다. “네? 뭐가 미안해요?” “그러니까 피티언 실종된 거.” “그게 왜 미안해요?” “…….”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하는 세리하를 향해 경악에 차서 바라보았고 세리하는 그런 나의 눈빛을 보자 더욱더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말했다. “동생이 사라졌는데 아무렇지도 않아?” “아하. 피티언요? 걔 가끔씩 사라졌어요.” 사라졌어요? 그 말뜻은 전과가 있다는 소리? 풀이하면 전과자? 그건 오버인가. 하지만 궁금한 거는 참지 못하는 나는 세리하에게 다급하게 물었다. “자세하게 말해 줄래?” “흐으음. 그러니까요. 피티언은 천계에서도 주기적으로 몇 달에 한 번씩은 사라졌어요.” 그 말과 함께 세리하는 두 손을 번쩍 들며서 너무나도 해맑게 말했고 그걸 본 난 생각했다. 정말 대단한 천족이라고. “세리하, 그러면 그때 피티언이 어디로 사라졌지?” “꺄아악!” 그 순간 갑자기 성이 무너질 듯한 비명이 들려왔고 나는 이렇게 왕창 큰 비명 소리에 경악했다. 이건 지하에서 나는 소리 같은데? 여기는 4층이다. 4층까지 들리는 비명이라니, 엄청나다. 뭐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나는 다급하게 비명이 들려오는 지하로 뛰어 내려갔다. 그런 나를 따라 세리하가 다급하게 따라왔고 잠시 후 우리는 그 비명의 근원지에 도착하였다. “…….” “…….” 세리하와 나는 그 여자가 왜 비명을 지른 것인지 곧 알 수 있었다. 우리도 비명을 질렀으니까. “뜨아아아악!” “꺄악!” 거기에는 얼마나 처먹었는지 배 터져서 죽기 직전의 피티언이 쓰러져 있었다. 바로 식량창고에서. 이런 말이 있다. 먹다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고. 때깔. 때의 색깔인가? 때의 색깔이 있다는 건 놀랍기 그지없지만 이건 중요한 게 아니다. 정말 중요한 게 아니어서 그냥 넘어가는 거다. 어찌 됐든 옛말에 이런 말이 있었다. 그만큼 잘 먹고 잘 뒈지라라는 명언이 담겨져 있는 말이다. 그런데 정말 그 속담에는 정말 잘 먹고 뒈지라는 말이 담겨져 있을까? 그전 절대 아닐 거다. 굶어 죽는 경우는 봤어도 너무 먹다가 배가 터졋 죽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하지만 한 천족만은 근접했다. 물론 피티언은 응급 소생술(더러워서 말 못한다.) 덕택에 살아남기는 했지만 정말 죽을 때가지 먹은 것 같다. 보통 인간이란 먹을 것의 한계점까지 먹으면 절대 먹지 못하는데 이놈은 그런 이론 자체를 철저히 박살 내었다. 그러니까 닭대가리지만. 아, 이 정다운 표현, 닭대가리. 금붕어가 머리가 더 나쁘니까. 금붕어 대가리라고 개명해야 하나? 그건 부르기가 힘드니까 안 되겠고. 어찌 됐든 난 침대에 누워 있는 피티언을 한심한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이런 놈이 소환수라니……. 그래도 아픈 놈이니까 어쩔 수도 없다. “흑흑흑.” “세리하, 괜찮아?” 나는 슬며시 메이드복을 입은 채 갸날프게 우는 세리하에게 다가갔다. 정말 모성본능이 새록새록 올라오는 모습이다. 토닥토닥. 그렇게 난 세리하의 등을 다독거려 주었고 잠시 후 세리하는 눈물을 잔뜩 흘린 눈동자로 나를 보더니 말했다. “주인님.” “응?” “이런 동생이 너무 한심해서 눈물이 나요.” “…….” “먹다가 죽을 뻔하다니, 케미리도 안 할 짓을…….” 걱정돼서 운 게 아니라 한심해서 운 거구나. 그리고 케미리도 안 할 짓이라니, 그딴 상스러운 욕을 하다니. 세리하가 꽤나 격해진 것 같다. 이런 극악적인 욕을 하다니 ‘케미리도 안 할 짓을’ 이라는 말은 그 어떤 욕보다 심한 욕이다. 크윽. 세리하가 꽤나 마음에 상처를 많이 받았나 보다. “끄으응.” 그 순간 너무 처먹고 의식불명 상태가 되었던 피티언이 깨어나는 소리가 들렸고 세리하와 나는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서서히 눈이 올라가는 피티언의 모습이 보였다. 피티언은 깨어나자마자…… 말했다. “배고파.” “…….” “…….” 그 말을 들은 난 진심으로 경악했다. 깨어나자마자 하는 말이 배고프다니. 정말 저놈 머리에는 먹을 거라는 단어밖에 들어 있지 않은 건가? “먹다가 죽을 뻔하다니 케미리보다 못해.” “허억!” 그 순간 세리하가 피티언에게 한 날카로운 한마디. 그것도 본인에게 직접적으로 할 줄은 몰랐다. 한편 그 말을 들은 피티언은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했다가 잠시 후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 순간. “응? 나보다 잘난 존재가 있어? 어디 어디? 나같이 뷰티풀하고 샴티풀하고 귀엽고 깜찍하고 아 깨물어 주고 싶은 나보다 잘난 존재가 어디 있어?” “…….” “…….” 그 순간 어쌔신처럼 나타나느 개 한 마리, 케미리. 아니 어쌔신이었던가? 그랬던 거 같기도 하다. 아 참, 그게 아니라 뭐 뷰티플? 샴티풀은 뭐야? 그거 정우가 쓰는 외계 단어잖아. 그리고 귀엽고 깜찍? 깨물어 주고 싶어? 저 새끼가 어느새 미쳐 버렸군. “응? 둘 다 눈초리가 왜 그래?” 그 순간 우리들의 눈빛을 받은 케미리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말했고 그걸 보고 난 말했다. “그걸 진정 모르냐?” “뭐가?” “방금 내가 한 말.” “그거 사실이잖아.” 사실이라니 개 풀 뜯어먹는 소리하네. 네놈이 만약에 위에 언급한 내용의 그대로라면 이 세상은 미쳐 버린 거다. 그러니 절대 이룰 수 없는 헛소리다. 그렇게 점점 미쳐 가는 개 한 마리를 보는 나로서는 슬펐다. 원래 닭대가리이기는 했지만 미치지는 않았었는데 미치기까지 하다니. 그때 내가 속으로 쯧쯧 하고 있을 때 나의 귀로 또 한 가지 경악에 찬 음성이 들려왔다. “나 단식할 거야! 케미리보다 못하다니!” 피티언의 충격적인 한마디였다. 보통 단식이라 하면 며칠을 기준으로 한다. 그렇지만 피티언의 단신은 꽤나 기준이 이상하다. “크윽. 2시간 동안 아무것도 안 먹었습니다. 마스터, 이정도면 케미리보다 못하지는 않죠?” “…….” “끄아아악!” “…….” 온갖 발작을 해 대는 피티언을 보면서 나는 케미리보다 못한 놈이라는 말이 얼마나 충격적이었을까 하는 생각에 잠기었다. 만약에 누군가가 나보고 케미리보다 못하다고 했을 경 P180-181 절실히 느낀다. 아마도 내가 죽는다면 그것들 때문에 고혈압으로 죽는 거라고 말이다. 제8장 사랑에 빠진 정우? 우리들이 마계에서 돌아오자 제일 먼져 반겨준 자는 메퍼와 이상한 남자였다. 그 남자는 나와 동맹을 했던 길드의 길드 마스터인데, 약간 상태가 이상하다. 물론 우리 멤버보다는 상태가 100배 양호하지만. 어찌 됐든 지나가던 행인1 정도로 치부해야 할 정도로 기여도가 없어서 솔직히 말해 이름도 기억 못하고 있다. 깡패 장의사인 건 알겠는데 이름을 모르겠다. “내 이름은 루크리네.” 아, 맞다. 기억났다. 직접적으로 말해 주다니 꽤나 팬서비스가 좋네. 어찌 됐든 그렇게 우리는 드워프보다 잘나간다는 장인을 데리고 왔고 처음에 메퍼와 루크리는 장인이 여자인 것을 알고 나와 마찬가지로 기절할 뻔했다. 그것도 상당히 젊은 여자. 대부분 60대 할아버지의 중후한 이미지를 생각했지 젊은 미인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렇게 우리는 무사히 임무를 끝낸 것에 대한 축하파티중이다. “그나저나 메퍼, 저 장인 한 명이 전체 싸움의 판도를 바꿀 수가 있는 건가요?” “자네, 장인이라는 직업을 얕잡아 보는군.” “얕잡아 보는 건 아닌데. 단 한 명만으로 전체 싸움의 판도를 바꿀 수 있다는 게 가능한가 해서요.” “당연하지. 우리 같은 입장에서는 강력한 무기가 필요하지?” 저는 별로. 소환해서 사용하는데. “그런가 보기도 하군요.” “말이 애매하군. 어째 무기에 대한 관심이 엇는 건가?” “아니요. 아주 많은 관심이 있지요. 근데 저는 대부분 현지 조달이거든요.” “현지 조달?” “그런게 있어요.” 메퍼는 내가 무기를 들고 다니는 줄 알고 있나 보다. 그렇지만 나는 무기 자체를 현장에서 현지 조달하지 들고 다니지는 않는다. 그리고 현지 조달한 무기가 웬만한 신급 무기들이 파괴력을 뛰어넘는 단계다. 아니 전설급 무기의 파괴력일지도. “자네 말이 이해 가지는 않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강력한 무기, 파괴력이 강한 무기를 원하는 거네. 그리고 자네가 데려온 장인은 그만큼의 무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도 있고. 일반 유저들 중 꽤나 잘나간다는 장인도 그녀에 비한다면 장난이지.” “그만큼 대단해요?” “그러니까 마왕도 탐낼 정도지. 아마도 내가 알기로는 일반 유저 중 꽤나 잘나가는 장인하고 무기의 경도 파괴력이 최소 못해도 6배 정도는 차이가 날 거네.” “…….” 정말 대단한 분이엇구나. 이렇게 메퍼에게 직접 들으니 그녀의 존재로 인해 전쟁의 판도가 바뀐다는 의미를 알 거 같기도 하다. “그나저나 정말 대단하군. 잘도 탈출시켰어.” “흐으음. 그러핟고 해 두죠.” “……?” 정식으로 당당하게 테투언을 이기고 그녀를 데리고 온 거지만 괜히 마왕을 이겼다고 하면 난리를 피울 거 같아서 그냥 대충 얼버무렸다. 그나저나 꽤나 성대한 파티군. 100명 정도 홀에 중요 인물들은 모두 모인 파티다. 한 40평 정도? 그리고 호화로운 음식들과 부드러운 음악을 연주하는 바드들도 있고, 완전 슈퍼 축제 분위기다. 꽤나 마음이 편안하다. 나에게 주어진 임무를 완수했다는 생각 덕분일까? 그렇게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루크리 옆에 붙어 있는 한 여인을 보았다. 대략 22살 정도로 보이는 여자였다. 키는 약 177 정도의 여자 키치고는 꽤나 컸고 안경을 착용한 상태였다. 그 안경 덕택인지 지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꽤나 예뻤다. 채은이와 예화랑은 당연히 비교가 될 리가 없고 그냥 예쁘다는 정도였다. 그리고 지적으로 보였다. 파란색의 정장을 입은 그녀. 그녀는 이상한 서류를 들고 루크리에게 마구 떠들고 있었고 루크리는 귀를 막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총무네.” “네?” “자네가 보고 있는 여자. 우리 재정 관리지.” “아….” “또 꽤나 충동적으로 돈을 써 버렸나 보군. 길드 마스터가.” “자주 그러나 보군요?” “뭐 그렇지. 그래서 항상 나리아가 저렇게 서류를 들이밀면서 설교를 하는데, 보는 바와 같이 길드 마스터는 귀를 막고 있지.” 참으로 분별없는 길드 마스터다. 그래 어쩐지 꽤나 돈이 들었을 것 같다. 음식뿐만 아니라 조형물들 같은 게 엄청 비싸 보인다. 그뿐 아니라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도 실력이 꽤나 좋은 걸로 보아서는 돈을 많이 투자했을 것 같다. 나도 꽤나 돈을 많이 가지고는 있지만 솔직히 쓸 데가 없었다. 세상살이, 아니 게임살이가 참으로 고달파서 말이다. “저분은 누구십니까?” “응?” 그 순간 어느새 왔는지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는 정우였고 그 말에 난 정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허억!” 하지만 그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저 정우가 사랑에 빠진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케미리가 바른 생활 개가 될 확률보다 어렵다는 정우가 사랑에 빠진 모습은 충격, 경악, 반전, 서프라이즈였다. “형님, 저 여성에게 밟히면 꽤나 기분이 좋을 거 같습니다.” “커억!?” 바, 밟히면?! 그 말은……. ‘저를 밟아 주십시오.’ ‘어머 좋아요.’ 여자는 정우를 지근지근 밟고 정우는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라는 이야기?! “농담이었습니다.” 진담 같은데? 나는 정우를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쳐다보았지만 정우는 그런 눈빛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메퍼가 나리아라고 말한 여성을 향해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비너스. 나는 왕자.” 미쳤구나. 왕자가 얼어 죽었다. 아니 외계인 왕자라면 이해는 해 준다. 그런데 정우 놈이 사랑이라니 말도 안 돼! “형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안 돼!” “왜 안 되는 겁니까?” “네가 분명 그 이야기를 할 테니까.” “잘 아시는군요.” “그럼 저 불상한 여자의 인생을 망치라는 거냐?” “무슨 말씀이신지.” 뻔뻔한 놈. 지금 정우의 뉘앙스는 간단하다. 바로 자신이 저 여인과 사귀게 도와달라는 이야기. 하지만 차마 양심을 가지고 있는 난 들어줄 수 업사. 나로 인해 한 여인이 외계 생물체에 감염되는 건 차마 볼 수 없다. 난 비장한 어조로 말했다. “난 못한다.” “그럼 전 형님을 사랑하겠습니다!” “당장 해 주마.” 비겁하다고 욕하지 마라. 정우 놈은 한다고 하면 정말 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잘 생각해 보니 꽤나 잘 어울릴 거 같다. 험험. 정말이다. 비상 사태 소집. 비상 사태란 정우라는 놈의 사랑이다. 평소에 멀쩡한 놈이 첫눈에 반하다니 말도 안 된다. 지금 이런 비상 사태에 나는 표정이 굳어졌고 조언을 구하기 위해 같이 있는 채은이 또한 경악에 찬 표정이다. “오빠, 그걸 믿으라고?” “사실이야.” “에에에에?!” 채은이는 ‘절대 말도 안 돼.’ 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그런 표정까지도 왜 이렇게 예쁘게 보이는 것이냐?! 정말 하늘에서 내려 준 미소녀님이다. 아 참, 이게 아니라. “차마 믿기는 힘들겠지만 100% 사실이다.” 채은이는 애써 부정하기 위해 머리를 흔들고 있지만 그래 봤자 소용이 없다는 걸 미리 해 본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오빠의 말이 사실이면 나를 부른 이유는?” 채은이는 대충 윤곽을 알아낸 듯싶었다. 그 말에 침울한 표정을 지은 채 말했다. “그래, 도와주는 방법을 묻기 위해서…….” “정우의 사랑을 위해?” “응.” 그 말에 채은이는 아연실색했다. 채은이가 저런 모습을 보이는 것도 당연하다. 그놈은 바이러스니까. 외계인 바이러스. NASA에서도 분명 포기할 게 분명한 세계 멸망 바이러스. 오버 같기는 하지만 정우 같은 놈이 중식 변식한다고만 생각해도 끔찍하다. ‘형님, 사랑합니다.’ ‘형님. 이거 어떻습니까?’ ‘제 알 바 아니지요.’ ‘조교해 주십시오.’ 크윽.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혼미해진다. 그때 채은이는 나를 보더니 왜 그랬냐는 듯 물었다. “그런데 오빠가 왜 도와준다고 한 거야?” “그, 그건.” “그건.” “안 도와주면 나를 사랑하겠대.” “…….” “…….” 그 말에 채은이는 어이를 상실한 표정을 짓더니 나를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크윽. 나는 말했다. “채은아, 미안하지만 그러니까 네가 좀 도와줘.” “미안할 거까지야. 오빠 말인데.” “고마워.” “그럼 내가 어떻게 해야 하지?” “흐음. 그러니까 같은 여자니까, 일단 좋아하는 남성상 같은 걸 알아봐 줄래?” “응. 알았어.” 나의 말에 채은이는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나 우리 천사 양 마음씨도 고와요. 정우 7대 불가사의가 있다. 학교 7대 불가사의가 아니라 정우 7대 불가사의다. 1 : 이놈의 방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 2 : 이놈의 정신세계는 어디서 서식 중일까? 3 : 정말 외계 종자가 아닐까? 4 : 정말 게이일까? 아님 장난일까? 5 : 통신판매의 근원지는 어디일까? 6 : 코스프레, 집회는 어디에서 하는 걸까? 7 : 여자를 좋아하는 걸까? 그중에 7번째 불가사의가 철저히 깨졌다. 나와 정우는 파티에 참가하지 않은 채 채은이와 나리아가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관찰하고 있다. 채은이는 지금 나리아의 남자 취향을 알아내기 위해 침투한 상태다. 나는 옆에서 가만히 있는 정우를 불렀다. “정우야.” “네. 형님.” “혹시라도 만약에 저 여자와 잘 안 되면 어떡할 거냐?” “납치할 겁니다.” “…….” 그건 범죄잖아! 사랑을 쟁취하는 거는 좋지만 범죄는 아니잖아?! “옛말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들키면 범죄, 안 들키면 예술.” “그런 말은 처음 듣는데.” “제가 지었습니다.” “근데 방금은 옛말이라고 안 했냐?” “제가 유치원 때 지었으니까 옛말이 맞습니다.” 유, 유치원 때? 유치원 때 너는 들키면 범죄, 안 들키면 예수이라는 이딴 생각을 하고 지냈던 거냐?! 유치원 때? 5살 꼬맹이가? 정말 이놈은 인간 자체가 미스터리다. “아님 한 10년 동안 쫓아다니겠습니다.” 그건 스토커잖아! “철저히 과학적인 분석으로 쫓아다닐 테니 경찰에게 걸릴 일을 대비해 빠져나갈 구멍도 다 만들어 놓을 겁니다.” “…….” 정말 무서운 놈이다. 이런 놈에게 걸린 저 여인. 왜 하필 파티에 참석을 해 가지고 이런 불행을 겪게 되는지…… 정말 불쌍하다. 그렇게 내가 안타까운 시선으로 보고 있을 때 채은이가 우리 쪽으로 다가왔고 잠시 후 얼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알아냈어.” “표정이 왜 그래?” “그게.” 나의 마레 채은이는 정우를 한번 본 뒤 나를 보더니 말했다. “정상적인 남자.” “정상적인 남자?” “응. 평범하기만 하면 다 좋대.” “그건 저군요.” 네놈하고 언제 평범이라는 단어가 붙어 다녔냐? 니가 평범? 어이가 없다. 채은이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니까 가망성이 없어 보여.” “그렇구나.” “왜 가망성이 없는 겁니까? 저는 제대로 펑범한데 말입니다.” “…….” “…….” 채은이와 나는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 평범하다고 주장하는 정우를 보고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한편 그런 우리들의 모습을 본 정우는 중얼거렸다. “뭐 약간 안 평범하다고 가정을 해도 괜찮습니다. 납치…….” 퍼억! 나는 그 순간 위험한 발언을 해 대는 정우의 머리통을 가격해서 쓰러뜨렸고 잠시 후 밖으로 끌고 나갔다. “그렇군요.” 정우는 밖으로 나가자마자 나를 향해 대뜸 말했고 그 말에 난 물음표를 띄운 채 정우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정우는 비운의 주인공 같은 표정 따위를 짓더니 속삭였다. “저를 사랑하시는군요. 그럼 저는 비운의 사나이인가요? 형님은 게이고요.” “누가 게이야!” 버럭. 난 어이를 상실하다 못해 저 멀리 버리는 듯한 정우의 말에 기가 막혀서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고 정우는 내 말은 들리지도 않는지 혼자서 몸을 가냘프게 떨었다. “그래, 가지십시오.” “…….” “이 한 몸 바쳐 형님이 기뻐하시기만 한다면…….” “닥쳐! 그딴 징그러운 소리 그만 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내가 미쳤다고 정우 놈을……. 우우욱. 위액이 쏠리고 토할 거 같다. 하지만 이런 내 기분은 전혀 모른 채 정우는 다시 뻔번한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농담이었습니다.” 제발 그런 끔찍하고 꿈에 나타날 듯한 농담은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인데. “어찌 됐든 저는 그녀를 사랑할 겁니다.” “네놈이 사랑하는 거까지는 말리지 않겠는데. 니가 말한 납치, 스토커는 범죄잖아. 임마!” “그건 이 세상의 악인들이 만들어 낸 한 가지의 법일 뿐입니다. 납치, 스토커는 아름다운 겁니다.” 누가 들으면 정우 말이 맞는 줄 알겠다. 나도 잠시지만 그런가? 하고 문뜩 생각해 버린 것이었다. 역시 저놈이 진정 무서울 때는 은글슬쩍 세뇌시키는 거다. 그리고 납치랑 스토커가 아름답다니……. 보통 미친놈은 아닌 줄 알았지만 꽤나 미쳤다. “정우야, 내 말 잘 들어라.” “네.” “채은이가 방금 말했다시피, 저 여자 분은 정상적인 남자가 좋단다.” “그게 저 아닙니까?” “진정 그리 생각하냐?” “네, 사실이니까요. 사실 형님께 제 별명은 공개할까 하는데, 궁금하십니까?” 별로. 또 이상한 헛소리나 할 테지. 하지만 별로라는 나의 표정을 본 정우는 웃으면서 말했다. “궁금하군요. 그렇게 생각하셨습니다.” “그딴 생각 안 했어!” “어찌 됐든 제 별명을 공개하겠습니다.” 니 혼자 다 알아서 해라. 하아. 정말 고개를 푹 숙이게 만드는 외계인 종자다. 한편 정우는 개의치 않고 두 손을 하늘을 향해 높이 들면서 외쳤다. “제 별명은 너무나도 정상적이다 못해 너무나도 정상적인 이정우입니다.” 니가 방금 한 행동은 정상이라는 범위 안에 들어 있지 않는데? 정상인이 갑자기 말을 하면서 두 손을 번쩍 드는 게…… 그게 정상인의 정의냐? 미스터리 같은 놈. “안 돼. 안 돼.” “뭐가 말입니까?” “가망성이 없어.” 난 솔직히 말했다. 조금 비정상적이라면 0.00000001%의 가망성이라도 있겠지만, 얘는 조금 비정상하고는 벌써 수준이 다른 완전 초특급 하이레벨급 비정상이다. 한마디로 랭킹 1위다. 비정상 순위 랭킹 1위. 제2차 비상 회의. 채은이와 나의 표정은 심각하게 굳어 있는 상태였다. 채은이가 먼저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그러니까 정우는 자기가 정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응.” “정말로?” “정말로. 뭐 지 별명이 정상적이다 못해 너무나도 정상적인 정우란다.” “…….” 그 말에 채은이는 경악에 찬 표정을 지었고 그걸 본 나도 고개를 저었다. 조금의 착각은 이해해 줄 수 있겠지만 이건 너무나도 심한 착각이다. 지가 정상적이면 그래 비유를 해서 케미리가 신의의 대명사라는 게 더욱더 믿음이 간다. 그래, 정우가 정상적이라는 어이없는 말보다는 낫지. “하아아.” “하아아.” 그렇게 우리는 서를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위험해, 위험해. 정우 놈. “정우야.” “네, 형님.” “만약에 네가 거절을 당하면 남자답게 깨끗이 포기하는건 어떠냐?” “저는 남자답지 않을 겁니다.” “…….” “자유로운 인생을 살 것입니다. 이 세상에 맞춰진 형식으로 살지 않을 겁니다.” 네놈처럼 자유로운 놈이 어디 있다고. 그래, 자유로운 건 좋다. 분명 좋은 것이다. 하지만 자유로운 생활을 하더라도 범죄를 저지르는 건 정말 아니다. 그렇기에 나는 깨끗이 협박을 하기로 하였다. “정우야.” “네.” “만약에 말이야. 이번에 실패하면 조용히 닥치고 있어라.” “…….”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싱글싱글 웃으면서 주먹을 쓰다듬었고 잠시 후 정우는 충성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남자답게 직결원칙으로 끝내기로 하였다. 당당하게 고백하는 것. 그게 바로 직결원칙이다. 그리고 가기 전에 평소 네놈이 하는 행동의 정반대로 하라고 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자신이 생각하는 비정상적인 행동으로. 물론 처음에는 정말 진심이었는지 ‘그럴 경우 여성이 싫어할 겁니다.’ 라고 했지만 내가 간절히 말한 덕택에 정우는 아주 진심으로 이해했다. 그 간절히가 뭔지는 대략. 흐으음. 어찌 됐든 내가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이었다. 만약에 지금 정우가 하는 대로 했다가는 고백도. ‘저랑 함께 조교를 즐기지 않겠습니까?’ ‘코스프레, 집회, 즐겁지 않습니까?’ ‘제 마음이 불타올라서 미쳐 버리겠습니다.’ 등. 이상한 고백을 할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오빠, 과연 성공할까?” 채은이도 지금 무언가 이야기를 수리수리 나누는 정우와 나리아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이번에 실연당하면 첫 실연이어서 가슴이 꽤 아프겠지? 마음씨 착한 내가 위로를 해 줘야겠다. 그렇게 내가 착한 마음을 품고 있을 때 그쪽을 보고 있던 채은이가 반신반의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오빠, 왠지 모르게 분위가 좋아 보이지 않아?” “…….” 난 채은이의 말에 약 70미터 정도 앞에 해맑은 미소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정우와 나리아를 바라보았다. 채은이의 말처럼 꽤나 분위기가 좋다. 아니 언뜻 보면 연인 사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분위기가 좋다. “맞지?” “응.” 난 채은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정말 왠지 모르게 잘되어 간다는 느낌? 나의 환상적인 예상하고는 엄청 동떨어진 결과다. 내가 원했던 결과는……. ‘변태.’ 쫘악. 또는. ‘치안이야!’ 쫘악. 혹은. ‘외계인이야!’ ……였는데. 전혀 내가 원했던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약 5분 후, 정우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오더니 갑자기 얼굴에 맞지 않게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형님.” “왜?” “채은 양의 정보가 꽤나 틀렸습니다.” “……?” “상당히 특이한 남자를 좋아하시는군요. 형님 말씀대로 반대로 했더니 교체 신청을 허락받았습니다.” 허억! 교, 교제 신청. “……사귄다는 소리?” “네.” 이, 이럴 수가?! 그, 근데 방금 분명 반대로 했더니 교체 신청을? 난 다급하게 정우에게 말했다. “방금 나리아에게 했던 대로 해 봐.” “알겠습니다.” 그렇게 정우는 재현을 시작하였고 난 잠시 후 고개를 끄덕였다. 나리아가 교제를 신청한 이유를 알 것 같다. 정반대의 정우는 너무나도 정상적이었다. 너무나도 정상적이어서 감동이 몰아친다. 하지만 정우 놈은……. “역시 여자의 취향은 독특하군요. 이렇게 비정상적인 걸 좋아하다니.” 아직도 자기 행동이 정상인 줄 알고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제9장 6번째 소환수는 허억! 그리고 강해지는 소환수들! 모든 준비 완료 끝. 말 그대로는 데스 길드와의 전면전을 앞두고 ‘나는’ 준비 끝이다. 사실 처음 당시에는 데스 길드 척결! 이라는 이름하에 미친 듯이 게임을 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데스 길드라는 것보다 몇억 배는 더 중요한 일을 맡고 있어서. 그렇다고 그냥 지나가기에는 데스 길드에서 꽤나 슬퍼할 거 같아서 복수는 해 주고 갈 예정이다. 그렇게 우리는 할 일이 끝났고 이제는 저쪽 동네에서 전쟁 준비만 하면 되는 것이다. 사실 루크리는 가기 전에. ‘전투에 자신 있습니까?’ 라고 물었다. 그래서 난 정직하게. p210-211 한편 루케리에스는 슬며시 웃으면서 말했다. “역시나 시험을 통과할 줄 알았다.” “꽤나 고생했다고. 물론 거기서 카레안이라는 좋은 사람을 만난 덕택이지만.” “카레안……?” “왜 그래?” “아, 아니다.” 분명 루케리에스는 카레안이라는 말에 눈동자가 흔들렸다. 항상 여유로움이 주특기인 루케리에스가 당황을 하다니. 설마 카레안이라는 남자를 알고 있다는 소린가? 궁금하기는 했지만 루케리에스도 말해 줄 인간, 아니 드래곤이 아니므로 패스. “그나저나 6번째 소환수를 안다고?” “물론. 그 누구보다 잘 알지.” “정말?” “물론이다.” 어느새 다시 자신감이 넘쳐흐르는 모습으로 돌아온 루케리에스였고, 난 6번째 소환수를 안다는 말에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그런 나의 모습을 본 루케리에스는 조용히 한쪽 무릎을 꿇었다. 무, 무릎을 꿇어?! 나는 루케리에스가 갑자기 한쪽 무릎을 꿇자 너무나도 당황해서 말문이 닫혀 버렸고 그 순간 이어지는 루케리에스의 한마디에 기절할 뻔했다. “당신의 6번째 소환수. 엘루니여 루케리에스. 정식으로 소개드립니다.” “…….” 미쳤다. 케리미가 신의와 의리의 대명사가 된다는 말보다, 피티언이 갑자기 소식가가 된다는 말보다, 테피언이 여자 절대 안 밝히고 건방지지도 않고 아주 멋있는 데스나이트가 되었다는 말보다, 정우가 외계 문명을 졸업하고 정말 평범한 정우가 되었다는 말보다 더욱더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루, 루케리에스가 6번째 소환수라는 사실을. “조금 충격이 크신가 보군요.” 조금이 아니라 많이. 어느새 나에게 꼬박꼬박 존댓말을 하는 드래곤, 루케리에스. 솔직히 자기 입으로 그렇게 말했지만 믿어지지가 않았다. 하지만 믿지 않기에는 너무나도 확실한 증거들이 있었다. 왜 루케리에스가 마스터 오브 웨폰에 관련되었는지, 왜 나를 보자마자 그렇게 잘 대해 주었던 건지, 루케리에스가 나에게 한 행동이 딱딱 들어맞는다. 그 이유는 루케리에스가 6번째 소환수였으니까. 물론 이 사실을 안 모든 일행은 놀라서 기절 직전이었지만 그중 유독 이 사실에 놀라워하고 있는 개가 있었다. “허억, 우리랑 같은 소환수라고?” “그렇다.” “허억!” 루케리에스는 테피언, 피티언, 케미리, 세리하, 레키라안 순으로 슬쩍 돌아보았고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너희들은 너무나도 한심하다.” 그 말에 케리미와 테피언이 울컥하려고 했지만 그의 분위기 앞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루케리에스는 말을 이어 나갔다. “마스터도 지키지 못하는 소환수, 우습다. 전대 소환수들의 발끝도 따라오지 못하다니.” “…….” “…….” “…….” “…….” “…….” 루케리에스의 한마디에 모든 소환수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버렸다. 솔직히 말해 얘네들이 약한 게 아니라 내가 상대하던 존재들이 강한 거였다. 하지만 루케리에스는 사정없이 말을 해버렸다. “너희 같은, 마스터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놈들은 차라리 가 버려라. 마스터에??? 피해나 주지 말고.” 허억! 그, 그렇게 심한 말을……. 얘네들이 아무리 닭대가리지만 정도 많이 들었는데……. 그때 루케리에스는 슬그머니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그러기 싫다면 나르르 이겨라. 그러면 인정해 주지.” “누가 못 이길 줄 아나?” “내가 이래 봬도 왕자야!” “나는 검. 말로 하지 않는다.” “흥. 그래요! 해 봐요. 주인님을 위해서 꼭 이길 테니까!” 피티언을 제외하고 다 한마디씩 하는 소환수들이었고 그 말에 루케리에스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너희들이 나의 옷깃이나 스칠 수 있겠나? 그래. 워낙 재미없는 싸움이니 일주일의 시간을 주지. 그 안에 나을 이겨라.” 그 말과 함께 5대 소환수들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쳐다보는 루케리에스였고 잠시 후 루케리에스는 대 쪽으로 고개를 돌린 뒤 언제 그랬냐는 듯 온화한 말투로 나에게만 들릴 정도로 속삭였다. “지금 상태로는 그들을 상대할 수 없습니다.” “그들이라니?” “전대 4대 소환수들을 말한 것입니다.” “헉. 그들이 왜?” “거기에는 꽤나 깊은 사정이 있습니다. 나중에 아시게 될겁니다. 그럼 저는 일주일 후에 뵙지요.” 그 말과 함께 가볍게 텔레포트로 사라져 버린 루케리에스였고 잠시 후 그 자리에는 승리를 하고야 말겠다는 5인의 소환수들이 있었다. 그런데 1주일 안에 루케리에스를 이길 정도로 강해질 수 있으려나? 일단 내 덕분에 저번보다는 확실히 강해졌다. 왜 나 때문이라고 하냐면 분명 저번에 마스터 오브 웨폰 전직 당시. -소환수의 힘이 강해졌습니다. 라는 소리가 나의 귀로 들어왔었기 때문이었다. 그 뒤로 난 확인 차 소환수들에게 물어보았고 나의 물음에 소환수들은 이유 없이 갑자기 강해졌다고 마주 좋아했었다. 하지만 강해졌다고는 하나 지금의 실력으로 루케리에스를? 어림도 없다. 루케리에스의 추정레벨은 9,000. 평균 레벨들이 800대인 소호나수들이 이기기는 불가능하다(내가 마스터 오브 웨폰이 되기 전까지 레벨 600대였는데 전직하고 나서 순식간에 레벨이 200이나 상승됐다.). 그렇지만 저렇게 의욕적으로 합동 연습을 하는 건 좋아 보인다만. 그때 나와 같이 그 모습을 지켜보던 예화가 조심스럽게 다가왓다. “오빠.” “응? 예화야, 왜?” “저기, 이길 수 있을까요?” “흐으음.” 그건 사실적으로 좀 힘들 거라 본다. 루케리에스한테 조금은 개길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긴다고 보기에는 무리다. 물론 지더라도 퇴출이라든가 하는 루케리에스 말처럼 그런 일은 없을 테지만. 아마도 루케리에스는 그들이 좀 더 강해지기를 원하는 거 같다. 전직 4대 소환수들을 상대하기 위해. 나를 도와주었던 4대 소환수들이 갑자기 적이 되어 버린걸까? 왜? 분명 적이 되었다면 네리아 쪽에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네리아가 4대 소환수들의 조종이 가능한가? 분명 6대 소환수들은 마스터 오브 웨폰에 한한 소환수인 걸로 아는데? 아, 정말 이해하기 힘들다. “야, 거기에서는 오른쪽으로 공격해야지!” “누나, 미안.” 거기에는 방향을 잘못 잡아 왼쪽으로 파이어 볼을 공격한 피티언을 꾸짖는 세리하가 있었고 그 모습을 보던 케미리는 웃으면서 말했다. “케케케케. 왜 이리 수준이 떨어지나?! 나를 봐. 완벽하잖아.” “네놈이 제일 많이 틀려!” “무시라?! 테피언, 네가 먼저 틀렸잖아!” “내가 언제!” “흥. 성인잡지 보는 데스나이트.” “그, 그건!” 과연 쟤네들이 합격진이라는 걸 완성이나 시킬 수 있으려나. 특히 배신과 구라의 요정 케미리가 있는 이상 참으로 힘든 합격진이 될 거 같다는 느낌은 그냥 나의 기우일까? 합동 공격하다 위험할 거 같으면 그냥 뒤로 빠질 놈인데. 흐으음. 그렇게 시간은 설레설레 일주일이 지났다. 어느새 루케리에스와 대결하기로 되어 있는 닭대가리 3인방과 과묵땡 한 명과 제일 필요한 우리 메이드인 세리하까지. 지난 일주일 동안 정말 열심히 했다. 그걸 보는 내 입장으로서는 혹시?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특히 닭대가리 3인방, 항상 티격태격거리지만 이렇게 열심히 하는 모습은 처음이다. 그거 보고 내가 너무 감격해서 눈물을 흘렸다는 사실! 그래도 무리일 것이다. 치이잇. 그 순간 공간의 문이 열리는 느낌이 들었고 근 일주일 만에 루케리에스가 다시 나타났다. 한껏 여유로운 모습과 함께. 하지만 그와 반대로 오늘 상대할 소환수들은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루케리에스는 말했다. “일주일 동안 발악이라도 해 봤나?” “무슨 소리! 우리가 이길 거다!” 루케리에스의 한마디에 케미리가 대표로 나서서 말했고 그 말에 루케리에스는 피식 웃었다. 그런데 되게 멋지다. 왠지 루케리에스가 웃으니까. 뭔지 모르겠지만 상당히 멋있다. 그에 반해 루케리에스를 따라 하고 싶었는지 케미리도 피식 웃었다. 근데 쥐어 패고 싶다. 어떻게 웃는 모양은 같은데 이렇게 다른 건지 누가 좀 알려 줬으면 소원이 없겠다. 어찌 됐든 마지막 6번째 소환수 vs 1~5번째 소환수. 분명 수적으로는 1~5번째 소호나수가 5배나 많지만 문제는 루케리에스가 과연 숫자 같은 데는 영향이 없을 거 같은 드래곤이라는 게 문제였다. 그때 루케리에스는 한 가지 제한을 했다. “본체로 현신을 하지 않겠다.” “그, 그럼?” “이 모습 그래로 싸운다.” 테피언의 질문에 루케리에스는 자신만만히 말했고 그 말에 난 흥미진진한 모습으로 바라보았다. 난 루케리에스가 드래곤으로 현실할 줄 알았는데 인간의 모습으로 싸우겠다니. 닭대가리 3인방, 얼음땡, 메이드인 세리하가 이길 가망성도 충분히 있다는 것이다. 그 말에 그들은 긴장감 가득한 표정에서 자신만만한 얼굴로 변했고 그런 모습을 본 루케리에스는 말했다. “시작하지.” “원하던 바라고!” 그 순간 케미리가 선두로 뛰쳐나갔다. 그러더니 외쳤다. “궁극기. 눈 마비시키기!” 피익. “…….” 궁금기치고는 너무나도 치졸하고 더러운데? 케미리가 말한 궁극기란 자신의 개 발에 있던 흙을 달려들면서 그대로 뿌리는 비기였다. 정말 저딴 기술이 궁극기라니. 어디 저딴 거기 같은 궁극기가 있는지. “풋.” 그 순간 루케리에슨ㄴ 자신의 눈 쪽으로 날아오는 흙들을 보면서 피식 웃었고 그대로 간단히 아무런 주문도 없이 자신의 앞에 배리어를 쳐 버렸다. 그러자 당연히 흙은 배리어에 막혀 오지 못했다. 그 순간 루케리에스는 아차 했다. 어느새 쇄도해 온 레키리안이 자신의 근처로 다가왔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잠시 루케리에스는 가볍게 레키리안의 근접을 차단하였다. “파이어 윌!” 그러자 루케리에스 전후 사방으로 10미터는 될 화염의 벽들이 루케리에스를 가로막았고 레키리안은 칼로 공격하던 것을 포기하고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화염의 벽은 사라졌고 루케리에스는 슬쩍 웃었다. “재밌군.” 그 말과 함께 루케리에스는공간을 열었다. 파지지직. 검은색으로 돼 있는 공간의 문을 열었고 그 공간의 문을 향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손을 집어넣었다. 그러더니 보는 것만으로도 빨려 들어갈 거 같은 흑색의 장검이 나왔다. “나도 검을 좀 사용해야겠군. 화이어 블레이드(Fire Blade).” 화르륵. 그러고는 검 안에 불의 속성을 집어넣었다. 내가 화 속성을 인첸트하는 거와 비슷한 마법이기는 했지만 사실 데미지 면에서는 내가 훨씬 위인 거 같다. 게다가 마스터 오브 웨폰이 돼서는 한 가지의 무기에 5가지의 속성도 인첸트가 가능하게 되어 버렸고. 어찌 됐든 루케리에스가 검을 꺼내 들자. 다시 소호나수들은 극도로 긴장을 하기 시작하였다. 마법만으로도 버거운 루케리에스였는데 검까지 사용하다니. 한편 세리하는 긴장을 풀어 주기 위해 보조 마법 한 가지를 걸어 주었다. “스트렝스(Strength).” 힘을 올려 주는 마법. 일시적으로 힘을 대폭 상승시켜 주는 마법이다. 세리하가 보조 마법을 쓰는 건 기억에 없지만 처음 본 보조 마법이다. 세리하가 하는 일이란 메이스에 홀리라이트를 담아서 공격하는 모습밖에 보지 못한 거 같다. 세리하의 마법에 모두 힘이 넘치는 듯한 얼굴을 하였고 세리하는 제2번째 보조 마법을 사용하였다. “써니티.” 저, 저 마법은……?! 처음 봤다. 마음 안정 진정 마법이라고 불리는 마법이다. 그러니까 아군의 최대한 긴장과 공포감을 진정시켜 주는 마법이다. 보통 저 마법은 알려지지 않은 희귀 마법에 속하였는데 세리하가 알고 있었다니. 흐음. 꽤나 놀랍다. 세리하는 공격만 할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보조 마법도 상당하다. 그리고 3번째 발동되는 세리하의 마법. “블레스(Bless), 프로텍션(Protection), 프로텍트 프롬 매직(Protect from Magic), 프로텍티브 서클(Protective Circle).” 허억. 완전 대단하다. 블레스, 공격력 상승, 스피드 상승이 보조 마법. 프로텍션 물리 공격력 방어 마법. 프로텍트 프롬 매직, 마법 방어 마법. 프로텍티브 서클, 일정확률의 뜨거운 고열이나 저온을 막아 주는 마법(그러니 화염계 공격하고 수 속성 공격을 막아 주는 효과다.). 세리하의 보조 마법 실력이 이렇게 뛰어났다고? 대, 대단하다. 이건 정말 대단하다는 말밖에 할 게 없다. 털썩. 하지만 그 마법 전체를 아군 4명을 향해 전부 건 세리하는 이내 주저앉았다. 그만큼 힘들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받은 아군들은 엄청난 능력치 상승을 보여주었다. 특히 근접 공격인 레키리안, 케미리, 테피언은 뛰쳐나가고 피티어은 꽤나 큰 마법 주문을 준비 중인지 계속해서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한편 테피언과 레키리안이 검을 세운 채 돌격하고 있었고 케미리는 루케리에스의 등 뒤를 노릴 예정인지 뒤로 돌아간 상태다. 꽤나 노련해 보이는 합격진이었지만 그런 합격진을 보던 루케리에스는 오히려 웃었다. 단 한 마디의 마법 주문을 외우고. “라그나 블라스트(Lagna Blast).” 역오망진. 달려오던 레키리안과 테피언, 그리고 케미리의 발밑으로 갑자기 말 그대로 이상하게 생긴 문양이 생겨났고 그들은 위험을 감지했는지 순식간에 뒤로 물러났다. 그 순간. 퍼어어어어엉! 그 문양을 통해 커다란 불길이 솟아올랐다. “…….” “…….” “…….” 보기만 해도 살벌한 마법을 본 레키리안과 테피언, 케미리는 침묵을 지켰다. 그 순간 피티언의 마법 소리가 들려왔다. “어둠조차도 가라앉히는 차가움이요. 영홍조차 얼려 버리는…….” 서, 설마 이 마법은……. 피티언! 분명 나를 믿고 시전하는 거겠지만 이건 아니잖아?! 난 다급하게 방패를 소환해 내었다. 방패 소환. 절대 방어. 방패의 3단계 스킬 절대 방어. 마법이나 물리 공격 할 것 없이 완전히 방어해 주는 기술이다. 문제는 엄청난 마나의 소모 정도? 방패도 원래 없었지만 마스터 오브 웨폰이 된 순간 생겼다. 아 참,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저 무식한 놈! “아이스 크리스탈 오브 스톰(빙정의 폭풍:Ice Crystal of Storm).” 블리자드 확대판. 9서클 마법으로 사방 100미터이 모든 물질을 얼려 버리는 마법. 물론 자신의 근처에 있는 존재는 예외다. 다른 소환수들 한테는 피해가 없겠지만 구경을 하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피해가 온다. 물론 못 막아 내는 건 아니다. 나에게는 이게 있었으니까. 주르르륵. “크윽. 꽤 강하네.” “꺄아악!” “꺄악!” “꺄악!” 하지만 상대방의 공격이 강하면 강하수록 마나는 더 깎인다. 절대 방어로 인해 내 뒤에 있는 채은이와 예화, 정우에게는 피해가 가지 않겠지만. 그런데 여자는 두 명인데 왜 비명은 3개나 들려오냐? 뭐 아마도 외계인 한 마리이겠지. 그렇게 한참의 얼음의 폭풍이 지나갔고 그제야 나는 앞을 직시할 수 있었다. 하지만 피티언의 마법은 실패였다. 분명 100미터 사방을 몰아치는 마법이었기에 피해 낼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막는 것뿐. 분명 루케리에스는 힘들어 하는 거 같기는 하지만 막아내었다. 아무런 상처도 없이. “……대단하군.” 루케리에스의 칭찬인지 뭔지 말이 들려왔고 잠시 후 피티언은 헥헥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까먹는 사람들이 많은데 피티언의 마법에도 내 마나가 들어간다. 크윽. 그런데 너무 많은 마나 덕택에 9서클 마법을 사용했는데도 별 소모율을 느끼지 못하겠다. 차라리 속성을 인첸트하는 게 더욱더 마나가 많이 드는 상태니. 이거야 원. 어찌 됐든 피티언의 회심의 공격은 아무것도 먹히지 않았고 잠시 후 루케리에스는 손을 내저었다. 그리고 말했다. “나도 보답해 줘야지. 그라운드 오브 데쓰(Ground of Death).” 또, 또 9서클 마법! 다행히도 이번에는 나에게 피해가 오는 마법은 아니지만 위험하다. 이건 50미터 안에 있는 적을 타켓팅하여 수백 개의 돌의 가시들을 솟아오르게 하는 마법. 일명 죽음의 대지라고도 불리는 마법이다. 소수에게 마법이 힘이 집중되는 만큼 엄청나다. “꺄악!” “젠장.” “야, 야. 앞에서 내 방패막이 해!” 저 방패막이 하라고 하는 놈은 역시 케미리 놈. 언제든지 지 살겠다고 바동거리거든. 그나저나 루케리에스 꽤나 흥분했나 보군. 하지만 이대로 놔두다가는 위험하다. 그런 생각이 들자 난 차원의 문을 열고 바로 세리하 옆으로 다가갔고 잠시 후 조용히 지팡이를 꺼내 들었다. 로케리스를. 지팡이(Stlck) 소환 파짓. 로케리스와 소환된 지팡이가 합쳐졌고 나는 수백 개의 돌의 가시들의 정 중아에 로케리스를 탁 치면서 말했다. “디스펠.” 파아앗! 그 순간 9서클 마법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내가 생각해도 꽤나 멋져. 옛날에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역시 마스터 오브 웨폰이다. 완전 괴물딱지 직업이다. 9서클 마법을 이렇게 디스펠로 없애 버리다니. 그런데 단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개 폼 잡다가 마나가 올인 된다는 점? “루케리에스, 그만 해.” “……알겠습니다.” 내 한마디에 루케리에스는 고개를 돌렸고 잠시 후 말했다. “일단 이 정도로 만족했다고 하겠습니다. 물론 ‘그들’을 상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요.” 그 말과 함께 루케리에스는 텔레포트로 사라져 버렸다. 역시 카리스마는……. 으음. “흐흐흑.” “세리하, 울지 마.” 전에도 분명 이런 일이 있었다. 세리하는 패배로 울고 있고 레키리안은 침울해 있다. 그리고 우리 닭대가리 3인방은 놀고 있다. 케미리는 담배를 뻐금뻐금, 테피언은 헌팅 중, 피티언은 먹고 있는 중. 진정 이것들에게 자존심이란 것은 정말 0.0000001밀리그램도 없단 말인가? “흐흐흑, 주인님.” 울면서 나를 마구 껴안는 세리하. 여, 역시 글래머군. 아 참, 이게 아니라. 나는 정말 순수하고 정말 순수하고 정말정말 순수하고 정말로 순수한 마음으로 세리하를 꽉 껴안아 주었다. 정말 사심은 없는 순수남의 마음이었다. 정말이라니까. 에이, 솔직히 아주 조금, 사실 조금 사심이 많다. 토닥토닥. 어찌 됐든 난 눈물을 펑펑 흘려 대는 세리하의 등을 두들겨 주었다. 그 순간 왠지 모를 눈빛이 캡쳐 되었다. 느낌이 온다. 이 느낌은 분명 채은이. 이 알 수 없는 수리 당당한 눈빛을 보낼 존재는 채은이밖에 없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꽤나 그런 눈빛을 많이 봐서. 그렇게 내가 세리하를 토닥거려 주고 있을 때 우수에 찬 개 한 마리를 발견하였다. 방금까지도 담배를 피던 케미리. 그는 우수에 젖은 눈빛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웃기다. 더럽게 웃기다. 개가 우수에 찬 표정을 지으니까 엽기를 넘어서 토할 거 같다. 그렇지만 일단 케미리에게 저딴 모습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한 나였기에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케미리, 왜 그러냐?” “나는 내 자신에게 졌었다.” “…….” “내 자신에게 패한 순간 이미 루케리에스를 이길 수가 없었다.” 충격, 경악, 살인충동, 기타 등등이 나를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 누구도 아니고 케미리가 이딴 멋있는 말을 하다니. 이건 꿈이야! “훌쩍. 왜 그러세요, 주인님?” 그때 세리하는 울음을 멈추고 머리를 감싸 안은 채 폐인의 얼굴을 한 나를 보고 왜 그러냐는 듯 물었지만 나를 대답할 수가 없었다. 너무나도 큰 충격으로 말도 안 나오는 지경이 되어 버렸다. 한편 케미리는 말을 이어 나갔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자만이 모든 걸 쟁취한다고 했는데, 나는 모자란 거 같군.” 이, 이제는 겸손?! 미친 게야. 아니 돌았다. 저 케미리 놈이 한번 지더니 돌아 버렸다. 그나마 닭대가리가 낫지 미친 건 아니다. 내가 그렇게 케미리의 반응에 마치 나락으로 떨어진 기분을 느끼고 있을 때 케미리는 다시 푸헤헤헤 웃으면서 말했다. “멋있지?” “…….” “졸라게 짱 멋있다고 나도 생각해. 푸헤헤헤.” “…….” “캬아.” 그, 그럼 방금 한 행동은 단순히 의미도 없고 미쳐서 그런 것도 아니고 그냥 폼 잡아 보려고? 에라이. 잠시지만 케미리가 이상 행동을 했던 걸 착각한 내 자신이 한심하다. 저놈이 겸손해지고 멋있어지다니, 절대 네버 네버 네버 있을 수 없는 현상이다. 한편 세리하는 그런 케미리를 이를 악다문 모습으로 보더니 말했다. “특별훈련을 하자.” “허억.” “허억.” “허억.” 열심히 빈둥거리던 3인방. 피티언, 테피언, 케미리가 경악에 차서 세리하를 바라보았고 그 말에 세리하는 결정했다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너희들은 자존심도 없어? 한 명에게 이렇게 무참히 깨졌는데.” “응.” “어.” “누나, 자존심이 밥을 먹여 주지는 않아.” “…….” 세리하의 자존심도 없냐는 말에 케미리, 테피언, 피티언은 너무나도 당당하게 말했다. 정말 당당한 우리 닭대가리 3인방. 한편 그 말에 세리하는 성난 어조로 말했다. “너희들 정말 그럴 거야?‘ “응. 그럴 거야.” 세리하의 말에 꼬박꼬박 말대꾸하는 케밀였다. 테피언과 피티언은 세리하의 음성이 소프라노가 되자 입을 다물었지만 눈치란 쥐꼬리만큼도 없는 개는 열심히 자기 할 말은 다 했다. 정말 어느 의미에서는 대단해. 파앗. 그 순간 세리하는 또 어디선가 메이스를 꺼내 들었고 그걸 본 난 눈을 부릅떴지만 어디서 나왔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저 메이스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정말 알 수 없는 메이스이군. 메이스를 본 후에야 케미리의 반응이 변했다. “누, 누가 그래. 나, 나는 훈련받을 거야!” “…….” “그, 그렇지. 너희들도?” 케미리는 도매가로(?) 피티언과 테피언에게 떠넘겼고 메이스를 바라본 피티언과 테피언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모두 받는 거네?” “물론!” 메이스가 꺼내졌다고 금세 변신되어 버리는 지조도 없는 개 한 마리라니. 정말. 하아아. 한편 세리하는 모두가 동의한다고 생각했는지 나를 향해 말했다. “주인님, 허락해 주세요.” “응?” “저희들은 특별훈련을 하고 올 게요.” “어딜 가게?” “네. 하려면 확실히 하려고요.” 흐으음. 내 옆을 떠난다니까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좀 허전하다. 그렇지만 강해지기 위해 가겠다는 애들을 말리기도 참 그렇다. “조심해서 다녀와.” “네! 주인님!” 나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세리하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듯한 이미지의 닭대가리 3인방과 묵묵히 따라가는 레키리안과 함께 떠났다. 왠지 모르게 이 게임이 재미가 없어진 거 같은데. “제가 있지 않습니까?” 네놈이 있으니 더욱더 문제지. 하아아. 옆에서 여자친구가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스터리한 정신 상태를 가진 정우. 언제쯤 제정신인 모습을 나에게 보여 주려나? 평생 무리겠지? 제10장 마스터 오브 웨폰 vs 네리아와 카레안 오랜만에 마을에 들렸다. 거대 도시 엘타니아. 3대 도시 안에 들 정도로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하는 도시였다. 상업은 대부분 다 발달되어 있고 모든 웬만한 직업군의 전직소가 이곳에 몰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직업 관련소가 수백 개는 된다. 그리고 최대 3대 도시 안에 들 정도로 큰 곳이므로 물가가 꽤 세다. 물론 돈은 많아서 상관없지만. 오랜만에 도착한 마을에 정우 놈과 단둘이 있으려니 영 아니올시다. 채은이와 예화는 쇼핑인가 뭔가를 한다고 가 버렸고 말이다. 물론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루케리에슬 붙였다(루케리에스를 부르는 방법은 꽤나 간단했다. 자신의 이름만 불면 된다고 했다.). 그나저나 꽤나 허전하다. 어느새 그들이 사라진 지도 벌써 2주일이 지나가고 있다. 잘 지내고 있는지도 궁금하고. 그런데 이상하게도 닭대가리 3인방이 빠져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축 늘어진 기분이 들지 않는다. 그러니까 그 강력한 포스를 외계인 한 마리가 유지시키고 있다는 말이다. “형님.” “와?” “이것 좀 보관해 주십시오.” “…….” 그렇게 정우는 말하면서 종이가 10장 정도 묶여져 있는 걸 내밀었고 그걸 본 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받아 들었다. 그 종이들은 정우의 손에서 나의 손으로 넘어왔고 정우는 마을 한복판에서 허망하게 있는 나를 버리고 떠난다고 했다. “저는 잠시 어디 좀 갔다 오겠습니다. “어디 가는데?” “비밀입니다.” “…….” “그리고 참고로 그건 절대로 보시면 안 됩니다.” “……왜?” “형님이 보시면 건강상 좋지 않습니다.” “뭔데?” “비밀입니다.” “…….” 정체불명의 말만 남겨 두고 가 버리는 정우였고 그 말에 난 다짐했다. 안 보겠다고. 보통 궁금하기는 하지만 정우가 관련된 문제치고 제대로 된 거 하나도 못 봤다. 한마디로 정말 이거 열어 봤자 내가 피 보는 상황이 돌출되는 것이다. 이번에는 속지 않으리라! 그 순간 나의 눈으로 들어오는 제목. ‘아아아아. 정우와 형님.’ 여기서 말하는 형님은 누굴 말하는 걸까? 설마 나는 아니겠지, 아니 나밖에 없구나. 그런데 앞에 왜 ‘아아아아.’ 라는 글귀가 들어간 거지? 왜, 왜, 왜? 젠장! 분명 정우의 술책이다. 보지 말라고 했지만 실질적으로 보게 만들려는 음흉한 속셈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속아 넘어가지 않는다. 절대 안 볼 것이다. 그 순간. ‘아아아아. 이러시면 안 돼요, 형님.’ 이라는 글자도 보였다. 뭐가 안 돼? 뭐가 안 되는 건데? 도데체 뭔 말인데? 으아아악! 궁금해서 미쳐 버릴 거 같아. 난 금세 머리를 붙잡았다. 분명 이건 정우이 술책이다. 하지만 술책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엄청 궁금하다. 미치도록 궁금했다. “으아악!” “…….” “…….” “…….” “…….” “험험.” 길거리에서 약간의 발작을 한 나를 이상한 사람처럼 보는 유저들을 보면서 나는 살짝 헛기침을 하였고 그런 다음 다시 고민에 빠졌다. 분명 이 알 수 없는 제목. 보고 싶다는 욕망이 이끌어 내는 제목이다. 분명 정우 놈은 이걸 노린 거겠지? 안 봐도 비디오다. 그렇지만 보지 않기도 그렇다. 너무나도 궁금하다. 궁금해서 환장할 정도로 궁금하다.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도 이딴 문구가 적혔으면 궁금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나와 같은 상황이 될 것이다. 근 순간 갑자기 천사와 악마가 한 마리씩 내 머릿속에 나타났다. 천사가 말했다. ‘민혁아, 보면 안 돼. 간악한 정우의 속셈이야.’ 그 순간 악마가 나타났다. ‘무슨 소리지? 봐도 돼! 어차피 아무것도 없을 거야. 궁금하잖아? 자신의 욕망에 충실해야지?’ ‘아니야! 모든 욕망대로 살아가면 안 돼!’ ‘자유로운 영혼이 되는 거야. 하하하하.’ 이분들. 왜 볼까 말까에 악마랑 천사가 튀어나오시는겨?!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잖아! 이런 상황에 악마랑 천사가 나오는 경우는 처음 봤다. 아 참, 그게 아니라 지금의 문제점은 바로 내 앞에 있는 정체불명의 종이들. 이걸 볼 것인가 말 것인가가 문제였다. 그렇게 약 10분 후, 난 결심했다. 속는 셈치고 보기로 말이다. 펄썩. 꽤나 많이 궁금했던 나는 재빠르게 열었고 거기에는 웬 소설이 들어 있었다. ‘아아아, 형님, 왜 그러시는 겁니까?’ ‘나는 네가 좋아. 하아하아.’ ‘저, 저는 이미 임자가…….’ ‘여자? 감히 여자를 좋아해? 나를 놔두고?’ ‘저, 저는 정상이라고요! 민혁이 형님!’ ‘오늘 채찍 맛을 봐야겠군. 채은아, 채찍을 들고 와라.’ ‘네, 주인님.’ 그 순간 민혁이의 부름을 받은 채은이는 조교할 때난 입는 꽤나 검은색의 타이트하나 옷을 입고 나왔다. 그리고 따가워 보이는 채찍을 민혁이에게 넘겨주었다. 그 채찍을 받은 민혁은 입맛을 다시면서 말했다. ‘휴르르르. 넌 내 거야!’ “오빠, 뭐 해?!” “으아악!” “꺄악!” 나는 심장이 마비될 거 같은 소설을 읽다가 채은이의 갑작스러운 음성에 화들짝 놀랐고 내가 놀라자 채은이도 덩달아 놀랐다. 한편 나와 같이 놀랬던 채은이는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말했다. “도대체 뭐를 보고 있었기에…….” 그 순간 나는 생각해 내었다. 이 괴이한 소설 안에는 채은이도 등장한다는 것을. 만약에 들키게 된다면 내가 지은 걸로 오해를 받을 수도 있는 상황. 절대 안 된다. “아, 아무것도 아니야!” “……응.” “저, 정말 아니야.” “오빠, 당황하고 있어요.” “그, 그럴 리가.” 옆에 가만히 있던 예화까지도 의아한 듯 물었고 그 말에 나는 땀을 삐질 흘렸다. 이정우! 잡히면 죽여 버리겠다. 그렇게 마음속으로 이정우를 부르고는 있었지만 그녀들은 이심의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 순간 원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님, 보시지 말랗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놈!” “저는 죄 없습……. 꾸에엑!” 퍼퍼퍼퍽! 나는 말을 하기도 전에 나타난 정우를 밟기 시작하였다. 절묘하게 나타나서 이 위기를 탈출하게 도와준 것은 감사하다만 원인 제공도 네놈이다! 한편 이런 우리들이 모습을 보는 채은이와 예화는 의아한듯 바라보고만 있었다. “오빠, 무슨 일이야?” “아, 아무것도 아니야. 신경 쓰지 마. 하하하.” 지금 우리는 음료 가게 안으로 들어온 상태다. 분명 이 세계관은 판타지 세상이지만 일단 우리 현실의 문화도 가져왔기 때문에 이 가게는 현실의 인테리어를 따르고 있었다. 여기가 인테리어가 상당히 괜찮기도 하고 음료 맛도 좋은 관계로 항상 사람이 붐비는 곳이다. 보통 조금 기다려야 되지만 우리는 마침 자리가 비었기에 이렇게 금세 들어와 있었다. 우리는 간단하게 레모네이드 4잔을 시켜 놓은 상태다. 한편 나에게 맞은 정우는 억울하다는 듯 속삭였다. “제가 보지 말라고 했지 않았습니까?” “니가 그딴 걸 쓴 게 문제지. 나는 그렇다 치고 채은이는 왜 넣어! 임마.” “형님과 저만 있으면 외롭잖습니까?” “그렇다고 왜 남의 이름을 이용해서 이상한 소설이나 짓냔 말이다!” “취미입니다.” “지랄 같은 취미네.” “……?” “……?” 한편 정우와 내가 속삭이면서 대화를 하자 채은이와 예화는 궁금증이 가득한 얼굴이었고 나는 그 모습에 어색하게 웃기만 하였다. 마지막 한마디를 하고. “이정우, 다시 그딴 이상한 소설 쓰면 죽여 버리겠다. 진심이다. 나와 채은이, 예화. 내 주변 인물들 절대 집어넣지마.” “아쉽군요. 1,000부작으로 적으려고 했는데.” “…….” 무슨 대하야설 시리즈냐? 1,000부작이게. 어찌 됐든 이렇게까지 말하면 정우는 하지 않는다. 그렇게 정체불명의 소설 건으로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나를 누군가가 불었다. “어이, 어이.” “크윽.” 난 저 아저씨 보면 괜히 불안하다. 괜히 나타날 리는 없고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메퍼는 말했다. “표정이 왜 그런가?” “아무것도 아닙니다.” “흐으음.” 메퍼는 나의 말에 말을 살짝 흐렸고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번에는 또 어떤 일을 들고 왔는지 꽤나 걱정이 된다. 그렇게 메퍼는 내 마음도 모른 채 천천히 우리 탁자 쪽으로 걸러왔고 잠시 후 웃으면서 말했다. “자네에게 한 가지 말해 줄 것이 있어서네.” “이번에는 천계에 가라는 건 아니죠?” “하하하. 그런 일은 없네. 잠시 귀 좀 빌려 주겠나?” “……?” 그 말과 함께 메퍼는 내 귀에 대고 아주 미세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드디어 전면전 준비가 대부분 끝나 가네.” “…….” “데스 길드와의 전면전. 자네 덕택에 엄청난 무기들도 얻었고 데스 길드에 반한 세력들이 상당수더군. 뭐 워낙 악명이 자자하니까 말이야.” 그럼 이제 전쟁 시작이야?! -동시 접속자수: 300만 명. -가입자수: 7,000만 명. 네리아는 조용히 자신에게 보고를 하는 기계를 보고 무감각한 표정을 지었다. 드디어 시간이 되었다. 이 게임이 최고의 전성기를 누릴 때 이 게임을 끝내는 것. 그게 바로 자신이 꿈꾸던 마지막 희망이었다. ‘그’에 대한 복수다. “저, 저기, 과장님!” “응?” 게임 개발 과정에 직책을 맡고 있는 김성수는 자신의 부하가 다급하게 부르는 말에 의아한 듯 물었고 그 말에 부하는 자신이 잘못 확인한 건 아닌지 2~3번 확인을 하더니 다급하게 말했다. “모, 몬스터가…….” “몬스터가?” “엄청난 리젠 속도와 함께 강해지고 있습니다.” “뭐라고?!” 김성수는 갑작스러운 말에 그 부하의 컴퓨터를 차지해 버렸고 10분 후, 아연실색한 모습으로 바라보았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왜? 갑자기 네리아겍 무슨 문제라도?!” “어떻게 해야 하죠?” “일단 사장님한테 보고하지!” 똑똑.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김성수가 사장실의 방문을 조심히 두드리자 방 안에서 거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 뚜욱. 살짝 밀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고 거기에는 최고급 악어 소파에 편안하게 앉은 채 담배를 피고 있는 한 남자가 있었다. 나이는 대략 30대 초반 정도? 하지만 이 남자의 실제 나이는 50대 초라는 걸 안다면 모두 기절한다. 그만큼 의학의 힘을 빌린 거겠지만. “저기, 사장님.” “왜 그러지?” “몬스터가 갑자기 리젠 속도의 향상과 함께 세졌다고…….” “그걸 왜 나한테 보고하는 건가?” “아, 그러니까, 아마도 네리아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 해서요. 네리아를 만든 사장님이시라면…….” “괜찮아, 괜찮아. 나가 봐.” “네?” “괜찮다니까!” “아, 네.” 김성수는 이유 없는 사장의 화풀이에 속으로 궁시렁거리면서 다시 밖으로 나갔고 잠시 후 테이스 월드의 창시자라고 알려진 김수복은 손을 덜덜덜 떨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고개를 저었다. “이 게임은 내가 만든 거다. 이미 만든 놈들과 연관이 있는 놈은 내가 다 죽였으니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그래, 이 게임은 내가 만든 거야!” 저, 저것들을! 화아악! 정우와 나리아인가 뭔가 하는 여성의 애정행각 못 봐 주겠다. 지금 당장이라도 나의 본심은 저 정우라는 외계인을 고자질하라고 하고 있지만 마음씨 착한 나이기에 그것도 못 하고 있다. 참으로 이 때 마음씨가 착한 게 한이 될 줄이야. 우리가 여기에 모두 모인 이유가 알 까려고 온 것도 아니고 아주 중요한 일 때문이다. 그 일이란 바로 데스 길드와의 전쟁에 대한 토론? 근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잠만 온다. 내 옆에 앉아 있는 채은이와 예화는 열심히 경청하고 정우는 연애질하고 나는 거의 가수면 상태다. “일단 제일 빨리 끝낼 수 있는 게 데스 길드의 길드장 루라스를 죽이면 되는 건데. 사실 그건 불가능한 것…….” 뭐 어쩌고저쩌고 라고 하고 있다. 지금 난 오른손으로 턱은 괸 채 눈을 반쯤 감겨 잇고 하품은 후악후악(?) 하고 있는 중이다. 정말 재미없다. 이딴 회의를 왜 하는 건지 그냥 간단히 돌격……. 허억?! 어, 어늣 지성인이었던 내가 이리 무식하게 변해 버린 거지? 사실 내 별명이 지성인의 별이었는데 라고 말하면 아무도 안 믿으려나? 하여튼 정말 재미없는 회의다. 하아암. “오빠.” 누가 나 부르나? “오빠?” 난 갑자기 채은이의 음성에 당황해서 화들짝 놀랐고 채은이는 그런 나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피곤해?” “응?” “아까부터 계속 피곤한 거 같아서.” 아니 피곤하다기보다는 너무 재미없어서 말이다. 하지만 채은이가 보기에는 피곤해 보였나 보다. 물론 여기서 내가 할 대답은 간단하다. “어제 약간 잠을 못 잤거든.” 사실 어제 정말 잘 잤다. 꿈나라 별나라까지 갔다 올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일단은 나의 이미지 관계상. “아마도 어제 잘 잤을 건데요.” “허억. 뭐, 뭐야?!” 그때 어느새 여자친구를 놔두고 기어 온(?) 정우 새끼가 나를 보고 피식 웃으면서 말했고 나는 그런 모양보다 그놈이 한 말이 더욱더 거슬렸다. “바, 방금 뭐랬어?” “아주 잘 자지 않았습니까?” “무, 무슨 소리야. 어제 잘 못 잤어!” “그렇군요. 심심해서 한번 찔러 봤습니다. 못 먹는 감 찔러 보지 않습니까?” “…….” 저 새끼 뭐야?! 그리고 여기서 못 먹는 감이 왜 나오는 건데. 아, 머리 아파. 그래도 정말 찔렀는데 뜨끔했다. 은근히 저 새기 쓸데없는 거 잘 맞춘다니까. 한편 심심해서 찌르고 정우는 다시 여자친구에게 돌아갔고 그 모습을 본 난 고개를 저었다. 저놈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분을 내가 평생 존경하겠다. 아마도 존경할 사람은 나오지 않겠지만. 그렇게 4시간 동안의 회의가 끝났다. 그 네 시간 동안 나온 결과는 너무나도 간단했다. 일명 혼잡한 데 난입해서 대장 잡기라는 아주 간단한 작전이다. 이딴 작전을 4시간씩이나 한다는 게 어이가 없지만 사실 그 시간 내내 꾸벅꾸벅 잠잔 내가 무슨 말을 하리오. 길드전이 일어나면 저번에도 말했다시피 마스터가 항복을 하거나 수호의 골렘을 잡거나 아니면 직접 마스터를 죽이면 된다. 그러면 그 성의 소유는 마스터를 죽인 자가 가지게 되고 일명 승리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여기서 한 가지 문제점이 있었으니 그 마스터에게 가는 과정이 상당히 고달플 것이라는 것이다. 데스 길드의 본 길드 크기만 해도 약 900평. 그 안에 소속되어 있는 강력한 길드원만 해도 약 2만 명. 그 2만 명도 다 강력한 자다. 루라스인가 캐라스인가는 몰라도 꽤나 불감증이 많나 보다. 어찌 됐든 본대에는 그렇게 쌓여 있고 또 데스 길드의 성으로 진격하기 전에 31지부인가?(저번에 급습한 게 31지부였다.)까지 있다. 정말 인간들도 득실거리다 못해 난감할 정도였다. 그래도 이곳도 메퍼의 활약으로 그나마 데스 길드의 전체 인원 중 절반 정도의 인원은 모았다. 그렇지만 그래도 2배 차이. 그러니 승리를 하는 방법은 루라스를 잡는 방법쭌이다. 한편 메퍼는 나를 개인적으로 부르더니 한마디 하였다. “부탁하네.” “뭘요?” “알면서.” “허억!” 그 말에 난 감지했다. 왜 나를 따로 보자마자 이런 말을 하는지. 그 이유란. “그래. 자네가 또 해 줘야겠네.” “또 그 떼거리로 모인 데로 들어가라고요?!” “그래도 이번에는 우리들이 최대한 본성에 있는 병력들을 빼도록 도발하겠네. 그러니 자네가 가서 루라스를 쓰삭 하고 오면 아주 간단한(?) 일이네.” 간단은 얼어 죽을. 이건 완전 생 노가다는 다 나를 시키는 꼴이 아닌가? 수만 명이 있는 곳에 나를 들여보내다니! 나같이 연약한 사람에게 말이야. “부탁하네. 자네밖에 없네. 마계에서 최고의 장인을 빼 올 정도의 실력이면 충분하네!” 아니 아 아저씨가 갑자기 징글징글하게 칭찬을……. “부탁하네!” 메퍼는 그 말과 함께 고개를 숙였고 그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에휴. 또야? 평범하게 한번 해 보는 건 나의 자그마한 바람일뿐인가? 만날 이런 험악한 일만 이러나는구려. 정말 나 혼자다. 이럴 수가! 난 말만 그럴 줄 알았는데. 정말 나 혼자 투입된다. 그 거대한 성에 메퍼의 말에 따르면 혼자면 들키지 않을 확률이 높지만 수가 많아질수록 걸릴 확률이 높다는 게 변명이다. 그렇다고 정말 나 혼자 집어넣다니! 이럴 때는 꽤나 소환수들이 그립다. 얘네들 뭐 하고 지내려나? “오빠, 괜찮아?” “크윽.” 난 채은이의 걱정스러워 하는 마레 확실히 대답할 수가 없었다. 괜찮을 리가 없다. 그 누가 수만 명을 향해 무참히 돌격하는데 괜찮겠는가? 한편 그런 나의 모습을 보던 예화가 조용히 말했다. “오빠, 안 되실 거 같으시면 안 하겠다고 말씁드리세요.” “그것도 차암.” 만약에 병력이 많았다면 뭐라고 말하겠는데 내가 메퍼와 동맹을 맺을 당시 병력은 하나도 없고 내 몸뚱이 하나였으니까. 에휴휴휴. 내가 한숨을 퍽퍽 내뿜고 있을 때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잘 쳐 죽어라. 아아아. 잘 뒈졌구나. 아아아. 그렇지만 안 죽어도 슬프구나. 아아아. 이제는 영원히 못 볼 사람이요. 아아아. 바이바이바이바이바이바이!” “…….” 뭐야! 이 거지 같은 노래는! 이런 개뼈다귀 같은 노래를 지을 인물은 한 명밖에 없다. 그 인물은. “이정우!” “네, 형님.” “이 노래는 뭐야?!” “제가 직접 지은 노래입니다.” “…….” 어디서 이런 거지 같은 노래를 지은 거야! 무슨 내가 죽으러 가냐? 그런데 들은 걸 기억해 보니……. ‘잘 쳐 죽어라. 아아아. 잘 뒈졌구나. 아아아. 그렇지만 안 죽어도 슬프구나.’ 이 새끼가! 나보고 죽으라는 소리야?! 덥석. 나는 당장 정우의 멱살을 잡았고 험악한 인상과 함께 말했다. “지금 나보고 죽으라는 소리냐?!”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럴 리가 있지! 노래 가사가 그런데!” “아닙니다. 결백합니다.” “지랄.” “사실 이 노래는 심오한 내용이 담겨져 있습니다.” “어딜 봐서 심오한 내용이 담겨져 있는 가사인데?” “그게 국가기밀입니다.” “…….” 염병이다. 이건 분명 나를 겨냥한 노래다. 요새 한동안 맞지 않았더니 간덩이가 쳐 부었구나! 오랜만에 사랑의 밟기를 하기 위해 준비하던 중 채은이가 금방 기억났다는 듯 말했다. “아 참, 오빠.” “응?” 난 채은이의 부름에 일단 정우를 패는 걸 보류하고 돌아보았고 거기에는 채은이가 진지한 표정을 지은 채 보고 있었다. “그거 알아?” “어떤 거 말이야?” “여기 테이스 월드에 몹이 갑자기 수가 많아지고 강해졌다던데.” “…….” “제작진에서는 이벤트라고 하던데 뜬끔없이 이벤트를 하다니.” 이벤트 좋아하시네. 도대체 이 게임을 둘러싸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내가 할 일은 단 한 가지였다. 네리아의 폭주르르 막는 것. 그래, 그것이면 된다. “저를 사랑하시는군요.” 한편 나한테 멱살이 잡혀 있던 정우는 또다시 비운의 남자 캐릭터 같은 표정을 지었고 그걸 본 난 머리를 붙잡았다. 제발 이놈 좀 누가 데려가라. 멱살 잡는 데 사랑하고 무슨 상관관계가 있냐?! 슬슬 네리아도 활동을 개시한 거 같군. 뭐 그건 당연하다. 지금 오픈베타를 시작한 지 약 1년. 그 시간 동안 전 세계에서는 이 게임에 대한 소문만이 자자했다. 완벽한 가상현실게임의 구현. 보통 다른 가상현실게임에서는 ‘완벽’ 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못한다. 하지만 게임평론가들조차도 이 게임은 ‘완벽’ 이라는 말을 쓸 정도로 완벽하다. 사실 데스 길드의 횡포에도 불구하고 이 게임을 게속한다는 건 그만큼 이 게임이 대단하다는 걸 단적으로 말해 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처음에도 전성기였지만 지금은 완전 최고의 전성기였다. 동시 접속자수가 300만 명인가? 그만큼 될 정도이다. 사실 지금 몹이 강해지고 리젠 속도가 빨라졌지만 사람들이 많아진 덕택에 그래도 꽤나 괜찮다. 하지만 지금만 괜찮다는 소리다. 내가 채은이의 말을 듣고 알아본 결과 몹들의 리젠 속도와 강력함은 서서히 빨라지고 있다고 한다. 워낙 미세해서 유저들이 눈치를 못 채고 있지만. 어찌 됐든 그리 많은 시간은 남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모든 준비를 끝냈다. 호랑이 굴에 홀로 들어가서 잘못하면 뒈질지도 모른다라는 암울한 작전명이다. 메퍼는 자기들이 최대한 끌어내게 공격을 한다지만 혹시라도 저쪽에서 눈치라도 채면 끝나는 단점이 있는 작전이다. 우이씨! “오빠, 조심해.” “오빠, 조심하세요.” “…….” 크윽. 감동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미소녀들이 나를 걱정해 주다니. 감동이다! 그런데 왜 너는 가만히 있는 거냐, 정우. 나는 왜 가만히 있냐는 듯한 눈빛을 정우에게 보냈고 그에 정우는 웃으면서 말했다. “제가 그런 말을 한다고 달라지지는 않을 거 아닙니까?” “…….” 그, 그건 맞는 말인데 그, 그래도. “뭐 정 그러시다면 살아 돌아오시면 찐한 키스 한 방 해드리지요.” 나 살아 돌아오기 싫다. 에라이. 그냥 죽을래! “농담이었습니다.” 제발 농담은 농담답게 해 줘라. 네놈이 말하면 말도 안 되고 어이를 상실한 내용도 믿어지니. 저 새끼 장사꾼 하면 완전 대박 나겠다. 예를 들어 종이 한 장을 온갖 옵션을 붙여서 50배 이상으로 불려서 팔아 먹는 것도 저놈은 가능할 것이다. 좋은 능력이다. 정말. 에휴우우우. 초긴장. 지금 나의 심정이다. 당연히 혼자였기에 데스 길드의 성 근처로 오는 건 힘들지 않았다. 들어가는 게 문제지만. 그렇지만 정말 의리의리하다. 역시 지상 최강의 길드. 보는 것만으로 위축될 정도의 크기와 모양이다. “에휴우우우.” 저런 곳에 나 혼자 보내다니 정말 너무한다. 이건 정말 아니잖아?! 입구에 지키고 있는 길드원만 해도 100명. 스케일이 너무 크다. 그리고 곳곳에도 엄청 지키고 있을 텐데. 하아아. 정말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렇게 한참을 한숨만 쉬며 몰래 지켜보고 있을 때 데스 길드 본진에서 꽤나 시끄러운 느낌이 들었다. 한마디로 어수선하다고 해야 할까? 갑자기 긴급 체제에 돌입하고 날리 났다. 아마도 장의사 분께서 움직이시나 보다. 퍼억퍼억. 루크리는 물 만난 고기처럼 관을 휘둘렀다. 관에 맞은 적들은 거의 몇십 미터 이상을 날아가 즉사했다. “도를 믿으십니까? 안 믿는다고요?!” 퍼억퍼억. 루크리는 패기 전에 항상 이상한 질문을 하면서 관을 휘둘렀고 계속해서 관을 휘두르면서도 생각했다. ‘플레스님, 믿습니다.’ 쿠르리라는 작자. 설마 생각으로 믿습니다. 이딴 소리를 한 거는 아니겠지? 그렇다면 당신의 말은 소용이 없을 것 같군요. 내 앞에 있는 매복조를 보니 말이다. “크크크. 네놈.” “너는 참 지겹지도 않게 나오네. 데스 길드와 연관되면 너만 나와.” 계진이라는 놈은 나한테 무슨 원한 졌나? 만날 튀어나와. 지금의 상황을 간단히 요약하겠다. 입구를 지키고 있던 인원이 갑자기 우르르르 빠져나갔다. 남은 수는 2명. 그 정도야 뭐 처치하는 건 쉬우니까. 순식간에 활을 소환해서 둘을 보내 버렸다. 그리고 당당하게 입성. 이 때 나는 이상하다는 걸 느꼈어야 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일이 너무 잘 풀리자 이성이 마비되었다. 내 주제에 이렇게 일이 잘 풀리는 것도 아주 드문. 아니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난 눈물을 흘리면서 입성하였다. ‘일이 너무 잘 풀려.’ 라고 중얼거리면서. 하지만 그 말을 하기 무섭게 갑자기 내 주변에 나타나는 수천 명의 인원들. 그것도 어마어마하게 강하다. 내가 아무리 무식해도 수천 명을 상대로 마구 싸울 수는 없다. 내가 꽤나 강하다고 하더라도 아직 마스터 오브 웨폰에 대한 적응도 끝나지 않은 단계이기 때문이었다. 만약에 완벽히 적응이 끝나면……. 흐으음. 어찌 됐든 위기다. 뭐 365일 위기이기는 하다만. “얌점히 잡혀라.” 계진의 말에 난 피식 웃었다. “지랄.” “아직 분위기 파악을 못했나 보군. 죽이지 말고 포획해라!” 그 말에 나를 둘러싼 길드원들은 천천히 나를 조여 왔고 나는 무기를 소환하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그 순간. “사랑과 정의의 개.” “아름다웠던 영혼의 천사.” “나는야 미소녀 전사!” “닥치시오! 전사!” “……도저히 못하겠다.” 이건 뭐야?! 어디서 많이 듣던 음성. 너무나도 친숙하다 못해 징글징글하기까지 한 목소리였다. 물론 이런 기분을 들게 하는 5인방이 있었다. 몇 주 전에 특별 훈련으로 강해지겠다면 떠나 버린 소환수들이었다. “얘들아!” 나는 기쁜 마음으로 불렀고 그 순간 세리하가 나에게 다가오더니 격렬히 껴안았다. “우우웁.” “주인님 보고 싶었어요!” “우우웁.” 얼마나 격렬히 껴안았으면 숨이 막힐 뻔했지만 상당히 글래머인 세리하의 모든 게 느껴지는 나로서는 거부하고 싶지 않은 만남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껴안고 있던 나의 눈에 케미리가 선글라스를 벗는 모습이 들어왔다. 그러더니 케미리가 말했다. “피라미드들이 많군.” 품 잡는 것까지는 좋은데 피라미드는 뭐니? 이집트니? 여기가. 파라미지. 이 닭대가리야. 한편 피티언도 어느새 케미리와 비슷한 선글라스를 벗더니 중얼거렸다. “그렇군. 피라미드들이 꽤나 많아.” 피리미라니까! 이것들 무슨 이집트 갔다 왔냐?! 그래도 은근슬쩍 안심이 되는 이유는 뭐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역시 우리들의 친구 닭대가리 3인방이다. 그 순간 과묵히 눈동자를 빛내던 테피언이 중얼거렸다. “무식한 놈들.” “뭐라고? 레드?” 레드는 또 뭐야? 도대체 이것들 뭐 하다 온 거야?! 무식하다는 말에 케미리가 테피언을 향해 따지듯 말했고 그 말에 테피언은 하늘을 한번 보더니 말했다. “피라미드라니. 훗.” 허억. 테, 테피언은 잘 알고 있는 건가? 엄청 똑똑해져서 돌아온 거야?! “피라미드가 아니라 피나리아라고 하는 것이다.” “…….” 이 새끼들이 여기가 무슨 이집트에다 아마존인지 아나? 왜 성 이름하고 물고기 이름은 나오냔 말이다! 온 지 단 1분 됐는데 벌써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 “이해하세요, 주인님.” “그래야 할 거 같다.” 잠시지만 기대했던 내가 바보였다. 기대할 놈들에게 기대를 했어야지. “지금 우리를 앞에 두고 뭐 하는 짓이냐!” 그때 계진이는 마구 화를 내기 시작하였고 그 말에 나는 귀를 후볐다. 정말 시끄러운 놈이다. 케미리가 자신만만한 어조로 말했다. “마스터 맡겨 주라고. 우리가 다 없애 주지.” “너희들이?” “응!” 가능할까? 특별훈련으로 꽤나 강해진 거 같다. 그렇지만 얼마나 강해졌기에 수천 명을 상대한다는 건지. 그렇게 약간은 걱정도 되고 의아해 하고 있을 때 차원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루케리에스가 나타났다. “꽤나 강해졌군. 좋다. 이번에는 6대 소환수의 한 명으로 도와주지.” 루케리에스 등장! 짜잔! 모든 6대 소환수 등장이다! 바로 그 순간 루케리에스는 사뭇 진지한 어조로 내게 말했다. “마스터는 루라스라는 인간을 상대하십시오.” “여기는?” “저희들을 믿고 가시면 됩니다.” 그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믿어 보지 뭐. 특히 루케리에스까지 있으니 걱정 없다. 나는 가볍게 차원을 이동하였다. “브, 블링크?!” “뭐, 뭐야? 마, 마법사?!” “도망 못 가게 잡아!” “블링크 하면 경직시간이…….” 미안하지만 블링크 아니거든? 나는 가볍게 손을 저었다. 검(Sword) 소환. 파직. 그러자 멋들어진 모양의 장검이 흘러나왔고 난 나에게 다가오는 적들을 보면서 싱긋 웃었다. 그리고 중앙에 파묻혀 있는 계진이 있는 장소를 눈대중으로 감지한 후 그대로 이동하였다. 스윽. 푸욱. “뭐, 뭐……. 끄아악.” 어느새 내 검이 순식간에 계진의 몸에 박혀 있는 상태였고 계진은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너무나도 당황하고 어찌할 줄을 몰라 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향해 난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선물.” 타악. 그 순간 내가 두 손가락을 마주치자 계진의 배 속에 있던 검이 폭발을 일으켰다. 대형 폭발을! 콰아아앙! “으아아악!” “크아아악!” “사, 살려 줘!” “젠장!” 중앙에 있던 계진 덕택에 계진을 지키고 있던 강력한 유저들은 단숨에 검의 폭발로 인해 다 죽어 버렸고 그걸 본 난 다시 한 번 차원을 이동하였다. 내 목포를 향해. “역시 마스터 오브 웨폰.” 그 짧은 새에 대장을 죽였을 뿐만 아니라 검까지 터뜨려버려서 순간적으로 50미터 안에 있던 존재를 폭발에 휘말려서 죽게 만드는 기술. 대단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 옛날에 웨폰인첸트 당시에는 꿈도 꾸지 못하던 기술. 하지만 마스터 오브 웨폰, 모든 무기를 다루는 자에게는 이것도 간단한 기술에 속할 뿐이다. 루케리에스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그럼 우리들도 쇼타임을 시작해 볼까?” “흥. 난 네놈이 싫어.” 루케리에스의 말에 케미리가 말했고 그 말에 루케리에스는 웃었다. 어차피 자신은 악역 역할을 해도 상관이 없다. 만약에 그들이 강해져서 전대 소환수들을 상대할 수 있게만 된다면 지금의 소환수들이 자신을 미워해도 상관은 없다. “애송이.” “강해졌다고!” 루케리에스는 속으로 웃었지만 겉으로는 여전히 소환수들을 향해 빈정거렸다. 아하. 어디 계십니까? 정말 어디에 꼭꼭 숨었는지 대장 놈은 보이지도 않고 부하들만 수십 명씩 계속해서 몰려왔다. 뭐 와 봤자 내 상대가 아니지만. 한편 맹렬히 달려오던 행인1로 치부해도 될 정도의 부하중 몇 명이 내게 손가락질을 하면서 소리쳤다. “저놈이다!” “미친놈!” “저 새끼 죽여!” “포획은 불가능하다. 죽여라!” 미쳤다니. 말을 하셔도. 연약한 제가 듣기로는 참으로 가슴이 아픕니다. 뭐 객관적으로 말해 이 커다란 성에 그것도 지상 최강의 길드라는 데스 길드 안에 혼자서 대장을 찾아가는 거니 미쳐 보이기는 하겠지만……. 흐으음. 어찌 됐든 나를 이렇게 마중 나와 주니 선물을 주어야겠다. 와이어 소환. 인첸트 수(水). 나선의 실. 주르륵. 나의 손에 들려진 와이어. 그리고 환상적으로 뻗어 나가는 빛의 은실. 수십 개의 은실이다. 어느새 나의 와이어는 수십 개의 은실로 변환이 되어 상대방의 몸을 관통하였고 적들은 피를 울컥 뱉으면서 쓰러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좀 잔인하기는 하지만. 콰앙! 와이어로 만들어 낸 나선의 실 자체를 그대로 폭발시켜 버렸다. 한마디로 깨끗이 흔적도 없이 다시 사라져 버리게 만든 것이었다. 한편 방금 내가 죽인 병력들의 후속병으로 또 다른 길드원들이 달려오다가 동료가 이상한 실에 의해 폭발하는 장면을 보고 움찔거렸고, 그 모습을 본 난 슬그머니 웃으면서 앞으로 나섰다. “이렇게 되고 싶으면 와도 좋아.” “…….” “…….” “…….” “…….” 나의 한마디에 정적만이 휩싸였고 적들은 무의식적으로 내가 다가갈수록 뒤로 물러섰다. 내가 원하던 게 바로 이거였다. 이렇게 화려하고 엄청난 걸 보여 주면 되게 상대방은 지레 겁먹게 되고 위축된다. 한마디로 전투를 쉽게 이끌어 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터벅터벅. 그렇게 난 왠지 모르게 개 폼을 잡으면서 걸어 나갔다. 그때 마치 바다를 가르듯 데스 길드원의 중앙을 좌르륵 가르면서 웬 남자가 나왔다. 그러더니 나에게 말했다. “애송이 놈, 감히 겁도 없이.” 자기도 그리 나이 많아 보이지도 않는데. 나보고 애송이라니. 갑자기 나타난 그놈은 나를 비웃고 있었다. 대충 해석하자면 감히 자신의 집에 들어오다니?라는 정도. 그렇다면 저 인간이 아마도 내가 그리 찾고 있던 이 데스 길드의 길드 마스터인 루라스인가 하는 작자인가 보다. 그렇게 내가 드디어 목표로 하던 놈을 찾아서 행복감에 젖어 있을 때 그의 등 뒤에서 10명의 남자가 나타났다. 대략 나이 대는 20~30대 정도. 그렇지만 강하다. 보는 것만으로도 강하다는 느낌이 팍팍 들 정도였다. 한편 루라스는 말했다. “내가 재미있는 사실을 가르쳐 줄까?‘ “안 가르쳐 줘도 되는데.” “…….” 나의 반문에 루라스는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다. 보통 이렇게 물으면 뭐지? 무슨 속셈이야! 라고 외치겠지만 나는 안 가르쳐 줘도 되는데라고 대답했다. 근데 진심이다. 별로 재미있을 거 같지도 않아서 말이다. 한편 나의 말에 당황함이 역력하던 루라스는 금세 표정을 굳히면서 말했다. “루케페치아 독이라고 아나?” “안 궁금하다는데 왜 가르쳐 줄까나.” 빠드득. 나의 중얼거림에 루라스의 이마에는 혈관 마크가 새켜졌고 잠시 후 그는 꾹꾹 화를 참는 모습으로 나를 보더니 말했다. “네놈이 계진에게 당했던 독이다.” 뭐, 뭐시라?! 그, 그 독? 나를 죽음으로 몰아가고 웬 깡패 장의사와 만남을 하게 해 준 그 독. 그 독이 침투되는 순간 정말 죽는 줄 알았다. 완전 초특급 맹독이다. 스치기만 해도 거의 죽을 정도니까. 그렇게 강력한 독이 존재할 줄은 몰랐다. “독 조합사들도 수백 명이 모여서 수천 번을 도전해야 한 개가 나올까 하는 맹독이지.” “…….” 정말 대단하신 독이군. 완전 예술인데? 물론 독을 쓴다고 비하할 생각은 없다. 어차피 저들의 입장에서는 이기면 되는 거니까 한마디로 내가 모든 무기를 소환하는 거랑 다를 게 없다. 그리고 마음만 먹는다면 나도 독 스킬 정도야 배워서 단검에 바르면 되니까. 한편 루라스는 조롱 어린 미소와 함께 말했다. “지금 나를 포함한 11명의 검에는 루케페치아 독이 묻어 있지.” 허억! 그, 그 말은 스치기만 해도 다이다이!? 다이다이, 일명 죽음. 괜히 이런 소리 들으니까 더욱더 긴장만 되잖아! 안 듣는다니까 왜 혼자서 말해서. 에이씨! 나는 원망 어린 눈빛으로 루라스를 바라보았다. 괜히 안 궁금하다는데 말해서 나를 긴장하게 만들다니. 뭐 이걸 노린 걸 수도 있겠지만. “네놈은 오늘 살아서 돌아가지 못한다.” 난 살아서 돌아갈 건데? 루케페치아 독이 솔직히 말해 위험하긴 위험하다. 하지만 안 맞으면 그만. 잘 피해 내기만 하면 된다. 그렇다면 내게 남은 건 스피드다. 와이어 소환. 파앗. 그 순간 내 손에 다시 한 번 와이어가 소환되었고 나는 저번에 레키리안을 찾으러 가면서 얻었던 영결의 팔찌인 세키리아를 착용했다. 영결의 팔찌에는 마법이 붙어 있다. 내가 마법을 사용하려면 지팡이를 소호나해 내어야 하지만 이 팔찌 자체에 마법이 붙어 있기 때문에 상관없다. “세키아.” 순간적으로 속도를 400%까지 울려 주는 스킬. 물론 지속시간이 짧다는 단점도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첸트 풍(風). 파아앗! 그리고 바람의 속성 자체를 내 몸에 걸어 버렸다. 이것도 저번에 우연치 않게 발견한 것을 응용한 것이다(저번에 뜨거운 벽에 수 속성을 인첸트한 것처럼). 이번에는 내 몸에 응용을 한 것이다. 그러자 내 놈은 거의 모든 걸 포함해서 평소 스피드의 3,000% 이상이 되었다. 지금 보면 알 테니까. 스으윽. 내 몸이 사라진 순간 상대방은 당호아했다. 갑자기 내 몸이 사라졌으니까. 거의 차원을 열고 들어가는 것과 비슷한 속도다. 사실 차원을 어느 것보다는 늦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해 보니 가능하다. 역시 마스터 오브 웨폰이라는 직업은 대단하다는 말밖에 안 나온다. “이중 공격.” 와이어의 절삭력을 두 배로 이끌어 주는 스킬. 난 그런 스킬을 걸었고 내가 어느새 자신들의 후방에 있는지도 모른 채 두리번거리기 바쁜 적들을 향해 그대로 뒤에서 와이어로 목을 감아서 당겨 버렸다. 푸직. 상대방은 원샷 원킬로 즉사했다. 적들은 피가 튀기자 그제야 뒤라는 걸 판단했지만 이미 내 스피드는 광속이라 이동한 후였다. 그들이 나를 발견하는 순간, 루라스를 제외하고는 전멸이었다. “으아악!” 푸직. “크아악!” “마, 말도 안 돼!” “괴……물.” “…….” 털썩. 루케페치아 독을 바르고 있었던 10명의 남자들은 그대로 쓰러져 죽어 버렸고 주변에서 그런 모습을 보던 데스 길드원들은 슬금슬금 뒤로 빠지기 시작하였다. “이, 이길 수 없어!” “저, 정말 괴물이다.” “어, 어떻게 저런…….” “으아악!” 그들은 한 명 한 명 비명을 지르면서 도망을 가기 시작하였고, 그렇게 잠시 루라스를 제외하고 모두 도망가 버렸다. 내가 생각해도 좀 살벌한가? 왜 이리 지레 겁을 먹는 건지. 여기는 분명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은 엄청나게 겁을 먹어 버린 상태로 도망가 버린 것 같다. 흐으음. 그거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한편 혼자서 굳은 표정으로 칼을 늘어놓은 채 있는 루라스를 보면서 난 싱긋 웃었다. “우리, 이제 오늘 끝낼까?” 나의 상대가 될 수가 없었다. 아무리 루라스가 강하다고 하더라도 일단은 평범한 유저. 거기에 비하여 나는 어찌 보면 선택받은 직업의 소유자다. 어차피 이 직업 자체가 말이다. 좀 허망하기는 하다. 사실 처음 이 게임을 시작하고 나서 항상 데스 길드에 당하던 나였는데 그 데스 길드의 길드 마스터가 이리 허망히도 무너지다니. 하지만 그렇다고 방심할 수는 없다. 내 최후의 상대는 이렇게 허약한 존재가 아니니까 말이다. 이 게임의 통치자, 네리아. 그가 나의 마지막 상대다. “그나저나 이제 마지막 결전을 준비해야 되나? 근데 네리아는 내가 어디 있는지 모르는 건가? 한번도 안 보이네.” “그게 궁금한가요?” “허억!” 순간 난 뒤에서 들려온 음성에 화들짝 놀라면서 순식간에 거리를 버렸다. 내 앞에서 푸른색의 생머리를 허리까지 길게 기른 아름다운 여자를 보고 경악했다. 대략 나이는 20세 초반 정도? 키는 163 정도 될 거 같다. 그리고 몸매는 완벽……. 한마디로 3박자가 너무나도 만들어진 같은 티가 팍팍 나는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그 여자는 조용히 듣기에도 기분이 좋아지는 청아한 목소리로 말했다. “에스파이아 네리아. 정식으로 소개드릴게요.” “…….” 네, 네리아! 이 여자가 이 게임을 통치하는 슈퍼컴퓨터 네리아?! 갑작스러운 진행에 나는 화들짝 놀라 굳어 버렸고 그 여자는 아름다운 미소와 더불어 말을 했다. “방금 혼자 그러셨죠? 왜 제가 당신 같은 위험한 요소를 놔두었는지요.” “…….” “사실 저는 당신이 마스터 오브 웨폰이라는 시험을 통과할 줄 몰랐어요. 그 시험을 통과할 가망성은 제가 이론적으로 계산해도 0%였으니까요.” “…….” “그렇지만 당신은 놀랍게도 제 예상을 처음으로 빗나가게 했죠. 물론 제가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그’가 아직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한 이유도 있지만요. 그리고 마스터 오브 웨폰이라는 직업 자체가 ‘그’를 위해서 만들어진 직업이기도 하죠.” “……그?” “아 참. 모르시나 보군요. 사실 제가 이 게임에서는 직접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됐어요. 마음 같아서는 제가 직접 나서서 파괴하고 싶지만, 그게 저의 ‘아버지’가 그렇게는 못하게 해 주셨거든요.” 아, 아버지라니. 도대체 무슨 말을?! 한편 네리아는 슬픈 미소와 증오가 담긴 얼굴로 나를 보았다. “왜 저를 방해하는지 모르겠군요. 역시 인간은 사악해요.” “무, 무슨 말이야!” “자신의 탐욕을 위해 저희 아버지와 제 ‘연인’ 까지도 죽여 버린 사악한 인간들을 말씀드리는 거예요.” “그, 그건 무슨 뜻이야?!” 나는 갑자기 네리아의 알 수 없는 말에 당황하기 시작하였고 네리아는 여전히 증오 어린 표정과 함께 말을 이어 나갔다. “당신들이 말하는 이곳 게임의 개발자. 그러니 지금은 사장이라고 해야 하나요? 인간의 속된 표현으로 그 사장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아버지’와 제 ‘연인’을 죽였죠. 그것도 잔인하게.” “…….” “처음에는 저도 몰랐어요. 하지만 우연치 않게 실수로 사건의 데이터가 제 쪽으로 흘러 들어왔죠. 그걸 보는 순간 저는 ‘아버지’가 직접 만든 게임이 타락한 인간의 손에 놀아나고 있다는 걸 알게 됐죠.” “…….” “제 아버지는 생매장으로 그리고 생명 유지 장치가 없으면 살 수도 없는 제 ‘연인’도 생명 유지 장치의 선을 끊어버리는 걸로요.” “…….” 마, 말 도 안 돼. 설마 맨날 루케리에스가 이야기를 하지 못했던 게 바로 이 이야기?! 나에게는 어마어마한 충격이었다. 이 게임에 이런 비밀이 있었다니. 그렇다면 이곳의 게임 개발자로 알려진 존재가 설마……. “그래요. 이 게임의 진정한 개발자. 그게 바로 제 ‘아버지’ 김민진이에요.” “…….” “아버지는 손자인 ‘그’를 위해서 이 게임을 만드셨죠. 항상 생명 유지 장치가 없으면 살 수 없었던 제 ‘연인’을 위해서요. 사실 인간들이 말하는 최초의 가상 현실 게임은 이거에요. 제 아버지가 개발한 이 게임. 그를 위해서 만들어낸 최고의 걸작이죠.” 모든 게 정리가 되어 간다. 지금 이 게임의 개발자라고 알려진 놈은(나 사실 개발자가 사장이라는 것도 몰랐다. 뒤늦게야 알았다.)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는 교묘하게 이 게임의 진정한 창시자를 암매장하고, 그리고 생명 유지 장치 아니면 살 수 없는 그의 손자를 생명 유지 장치를 끊어서 죽여 버렸다. 과연 내가 이 사실을 알고도 네리아의 폭주를 막아야 하는 걸까? “어머. 맞다. 어때요? 저와 함께 파괴에 동참하는 건? 당신들이 우리들에게 한 행동을 생각하면 당연한 거죠?” 당연할지도 모른다. 물론 내가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같은 인간으로서 그런 비인간적인 일을 한……. 내가 네리아의 제안에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을 때 네리아는 조용히 웃으면서 내게 말했다. “카레안, 나오세요.” 카, 카레안?! 그 순간 갑자기 모습을 나타내는 한 남자. 너무나도 익숙한 남자였다. 나를 마스터 오브 웨폰으로 전직할 수 있게 도와준 남자. 그가 아니었다면 네리아의 말처럼 100% 실패했을 것이다. “제 ‘연인’ 이었던 카레안이에요. 이미 영혼은 사라졌지만 몸만은 저와 한마음이에요.” 한마음? 절대 아니다. 카레안은 내게 말했다. 무조건 네리아의 옆에 있는 존재를 죽이라고. 만약에 한마음이었다면 그런 소리를 내게 했을 리는 없다. 아마도 그가 선택한 길은 그것이었으리라. 이 게임의 진정한 존재를……. “미안하지만 네 제안은 거부할게.” “역시나 인간들이란.” “물론 네 말대로 인간들은 잔인해. 사악하지. 지금 내 심정으로도 너희들을 이렇게 만든 그놈을 당장이라도 어떻게든 해 버리고 싶은 심정이야. 하지만 말이야. 그놈이 나쁜 것이지 이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이 나쁜 건 아니잖아?!” “전 당신의 말을 이해 못하겠네요.” 말이 통하지 않는다. 어차피 그녀는 폭주 상태. 나는 싸울 것이다. 물론 거듭 말하지만 착한 놈은 못 된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싸우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채은이와 예화, 정우, 그리고 나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6대 소환수들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싸울 수도 있다. 그게 바로 나니까. “시작인가요?” 카레안은 짧게 중얼거렸다. 이미 마지막 싸움은 시작될 것이었다. 카레안은 길게 숨을 들이마시면서 말했다. “할아버지, 제 선택이 할아버지의 선택이었겠죠?” 어느새 카레안의 뒤에 있는 전직 4대 소환수들. 저번에 나를 위기에서 구해 주었던 그들이 이렇게 적이 될 줄은 몰랐다. 솔직히 지금 상대 수가 너무 많다. 내 앞에 있는 이미 영혼은 없지만 몸은 살아 있는 제1대 마스터 오브 웨폰, 카레안. 저 남자가 제1대였다니 생각지도 못했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아무것도 없는 허수아비일 뿐이다. 저쪽에는 4대 소호나수가 있다. 그렇다면 나도. “애들아!” “…….” “…….” 뭐, 뭐야? 왜 안 튀어나와?! 이렇게 하면 짜잔 하고 나타나야지! 그 순간 나의 구에 누군가가 속삭였다. “주인님, 레드, 밍크, 블루, 블랙, 옐로우라고 안 부르면 안 나간대요.” 저, 저기, 세리하 양. 세리하는 어느새 내 뒤에 와서 그렇게 속삭이고 있었고 그걸 본 난 한숨만이 나왔다. 특별훈련을 받아도 엽기적인거는 그대로였다. 잠시지만 엄청 멋져진 걸 기대한 내가 바보 같았다. 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레드, 밍크, 블루, 블랙, 옐로우.” “하하하하. 레드!” “나는야 밍크!” “배고프지만! 블루!” “주인님, 저는 옐로우에요!” “……제발.” “…….” 간단히 요약하겠다. 레드 테피언. 블루 피티언. 케미리 밍크(이 점이 무지 이해가 안 간다. 왜 밍크지?). 세리하 옐로우. 레키리안 블랙. 정말 뭐야, 이것들. 어디에서 나타나더니 이상한 것들만 지어내고 있어! 머리 아프게. 한동안 안 아프던 머리가 지글지글 아프기 시작하는 나였다. 그 순간 우리의 카리스마 루케리에스도 등장을 하였고 그 모습을 본 네리아는 말했다. “루케리에스. 역시나 저를 방해할 생각이군요.” “흐으음. 방해라고 해야 하나? 나는 6번째 소환수. 당연한 말이지만 마스터를 따라가는 게 도리지.” “어차피 상관없어요. 또 다른 선물을 준비했으니까요.” “…….” “이곳은 공간이 좀 작죠? 좋은 곳으로 안내해 드리죠.” 짜악. 네리아가 두 손바닥을 마주치기가 무섭게 순간적으로 장소가 화악 변해 버렸다. 데스 길드 안에 있던 우리는 눈 깜박할 사이에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라고 이름 붙일 만한 장소로 이동하였다. 어떤 생물도 어떤 식물도 살지 않는 곳. 이동한 네리아는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루케리에스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선물이 궁금하죠?” “…….” 네리아의 도발 어린 말에 루케리에스는 입을 다물었다. 이내 허공에서 어느 거대한 물체가 내려오고 있었다. 너무나도 큰 존재. 날아서 오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것에 대한 윤곽이 잡히자 나는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를 뻔했으나 루케리에스가 무감각한 어조로 먼저 말했다. “본 드래곤.” “맞아요. 루케리에를 충분히 상대해 줄 존재입니다. 물론 마스터 오브 웨폰, 당신은 우리 카레안님이 상대해 주실거예요. 그리고 나머지 4대 소환수들도 같은 소환수들을 상대해 주실 거예요.” 이거 정말 골 때리네. 전직 4대 소환수의 리더 레마니는 말했다. 그는 자신들의 앞에 선 지금의 소환수들을 향해 말했다. “우리들을 이겨라.” “물론 이길 거야, 걱정 말어!” 그 말에 케미리가 역시나 제일 앞장서서 온갖 잘난 척을 하며 말했고 그 말에 레마니는 속으로 슬쩍 웃었다. 자신들은 명령을 듣는 입장. 어쩔 수 없이 최선을 다해 공격해야 한다. 그런 자신들을 막아 주기를 바라는 그의 심정. 그의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괴로운 선택이었다. 루케리에스와 레키리안. 그들은 자신의 앞에 있는 본 드래곤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던 루케리에스는 레키리안을 향해 말했다. “힘 좀 빌리도록 하지.” 끄덕. 그 말에 레키리안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고 루케리에스와 레키리안은 흉폭함을 자처하는 크기만 해도 100미터를 넘어가는 본 드래곤을 향해 뛰어나갔다. 그리고 루케리에스는 본 드래곤과 마찬가지로 본체로 현신을 시도하였다. 아마도 이쪽이 메인 이벤트인 거 같군. 내 앞에 아무런 이성도 남아 있지 않은 채 서 있는 한 남자. 카레안. 나는 그를 상대해야 한다. 나와 같은 직업인 마스터 오브 웨폰을. 네리아는 말했다. “당신은 이길 수 없어요.” “그건 해 봐야지 아는 거 아닌가?” “아직 당신은 모든 걸 마스터하지 못했을 텐데요.” 뜨금. 맞는 말이다. 아직 자유자재로 이 직업을 완벽히 마스터했다는 소리는 아니다. 그렇다면 네리아가 이렇게 말하는 의미는 내 앞에 몸만 있는 카레안은 모든 걸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다는 소리인가? “역시나…….” “…….” 네리아는 자신의 생각이 맞다고 생각하자 슬쩍 미소를 지었고 그걸 본 난 나도 모르게 손에 땀이 나기 시작하였다. 만약에 내가 이 앞에 있는 카레안을 이기지 못하면 모든 게 물거품으로 끝난다. 내 소환수들이 다 승리를 해내어도 내가 진다면 그때는 게임 오버다. 이 게임의 게임 오버. 물론 다시 살아나면 되지 않으냐고 말을 할지 몰라도 아마도 내가 죽는 순간 네리아는 분명 무슨 조치를 휘할 것이다. 그녀에게 그 정도의 능력은 있을 테니까. “그럼 시작할까요?” 파앗. 네리아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카레안이 쇄도해 왔다. 나와 같은 검을 가진 채. 어느새 소환을 끝냈는지 모를 정도로 빠른 소환이었다. 검(Sword) 소환. 인첸트 무(無_. 일루전 소드. 나도 순식간에 소환해 내었다. 거의 소환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의 소환 속도였다. 역시 저번과는 확실히 다르다. 나는 나에게 맹렬히 달려오는 카레안을 향해 그대로 무의 힘이 인첸트 된 검을 찔러 넣었다. 하지만 카레안은 멈추지 않은 채 곧바로 와이어를 소환해 내었다. 그리고. “젠장!” 순식간에 자신도 무의 힘을 인첸트해서 와이어로 나의 검을 묶어 버렸다. 황당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을 정도로 엄청나다. 퍼억! “크윽!” 그 순간 당호아하고 있던 나를 카레안이 발로 복부를 가격하였고 나는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그리고. 어느새 또다시 활을 소호나한 채 나를 겨냥하고 있는 모습. 5대 속성의 힘이 모이고 있다. 엘리아스다. 피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시간이 없다. 그렇다면 제기랄. 방패 소환. 절대 방어! 파앗. 이내 엄청난 크기의 방패가 소환되었고 카레안이 쏜 엘리아스가 나의 방패와 격돌하였다. 콰아앙! 무식한 폭발 소리가 들려왔고 그와 더불어 나의 마나가 2/3 정도 줄었다. 강하다. 너무 강하다. 그때 말했었지만 이 절대 방어의 단점은 상대방의 방어력이 강할수록 내 마나가 많이 든다는 것이다. “에쿠리 마린.” 3일에 한 번 마나 회복 속도를 3,00%까지 올려 주는 스킬. 다행히도 이 스킬 덕택에 사라진 마나들이 다 회복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마나를 이렇게 급작스럽게 회복하는 스킬이 없다. “어머 어머, 이거 너무 일방적이잖아요?” “…….” 그 순간 네리아는 조소 어린 미소와 더불어 나를 도발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그런 기본적인 상황에 넘어갈 내가 아니었다. 난 금세 침착함을 유지한 채 카레안을 응시했다. 어차피 전투는 카레안이 직접 움직인다. 그녀는 말로 나를 도발하면서도 카레안을 움직을 수는 없다. 그러니까 내가 네리아, 그녀에게 신경을 쓰는 순간 불리하다는 것이다. 파앗. 그 순간 어느새 또다시 도끼를 소환해 낸 카레안. 거듭 말하지만, 그냥 나타난다. 허 참. 물론 나도 가능하기는 하지만 저렇게 능수능란하게는 안 된다. 그런데 카레안은 역시……. 스르륵.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이미 카레안은 사라졌다. 도끼를 들고도 이런 속도라니 보고도 믿어지지가 않는다. 어느새 내 10미터 앞까지 쇄도해 온 카레안. 나도 똑같은 무리고 상대해 주기로 하였다. 도끼 소환. 인첸트 화(火). 절대 충격파! 콰앙! 나는 그대로 나에게 맹렬히 달려오는 카레안을 향해 일직선으로 있는 힘껏 내리찍었고 그 순간 카레안은 사라졌다. 말 그대로 차원 이동. 아차! 차원이 열리는 기부늘 느꼈지만 이미 늦은 거 같아……. 퍼억! “크아악!” 이번에는 주먹질에 의해 또 날아갔고 단 한 방에 헤롱 상태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카레안은 이 기회를 틈타 더욱더 맹렬히 다가왔고 나는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스킬을 준비하였다. 활 소환. 화(火), 수(水), 풍(風), 지(地), 무(無). 플레지마 스트레이트 샷. 순간적으로 소환된 무형의 화살에 어마어마한 힘이 담기기 시작하였다. 엘리아스, 케라안인 나에게도 사용한 기술이지만 활 소환의 3단계 특별 기술이기도 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스페이스 샷!” 공격력 개판 오분 전(?) 스킬. 한마디로 정말 엄청나다는 말밖에 안 나오는 공간의 화살이다. 다 적중될 시 데미지가 얼마나 들어갈지 계산하기도 힘들다. 파아앗! 그렇게 내 힘이 담기 공간의 화살들은 차원을 넘어서 카레안의 주변을 뚫고 나왔고 카레안도 또다시 소환해 내었다. 이번에는 방패다. 젠장! 내가 아까 하던 거잖아! 콰아앙! 카레안이 소환해 낸 방패와 나의 공간의 화살들이 격돌하였고 가히 폭발이라고 해도 무자랄 정도의 어마어마한 폭발이 일어났다. 하지만 그런 화려한 폭발에 비해 효과는 미미했다. 카레안이 그대로였다. 마치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정말 카레안이라는 작자는 괴물이었구나. 나의회심의 일격을 이렇게 장난처럼 막아 내다니. “어머 어머. 무서웠어요. 방금 데미지가……. 흐으음. 1,000만?” “…….” 1,000만이라. 어마어마하다. 네리아가 하는 말이니 맞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공격을 막아 낸 카레안의 몸은 도대체 뭐로 되어 있단 말이야! 전신 테투언도 헤치운 데미지인데. 제길! 한편 네리아는 따분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역시 상대가 되지 않아요. 뭐 저쪽은 그나마 잘해 주고는 있지만 저희들이 합류하는 순간 게임 오보겠죠?;‘ 그 말에 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거기에는 본 드래곤을 상대로 잘 싸우고 있는 레킬안과 루케리에스, 그리고 각 4대 소환수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래 그들은 정말 잘 싸우고 있었다. 그런……. 푸욱. “…….” 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내 배 속을 관통한 건…… 뭐지, 거, 검인가? “어머, 이런. 한눈을 파시니 그렇게 되잖아요? 안 그래요?” 다, 당했다. 물론 비겁하다고 할 생각은 없다. 전투 중에 다른 데로 눈을 돌린 내가 잘못한 일. 하지만 이렇게 허망하게 죽는 거야? 카레안의 검은 내 배 속을 관통한 상태다. 피가 주르륵 빠져나고 힘은 없어진다. 푸지직. 그 순간 카레안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내 배에 꽂혀 있던 검을 뽑아 버렸다. 그러자 더욱더 피가 내뿜어지는 속도는 어마어마해졌다. 털썩. 정신이 혼미해지자 나도 모르게 쓰러졌고 이내 네리아의 음성이 들려왔다. “끝인가요? 그리 재미있지는 않았어요.” “……빌어먹을.” “호호호.” 네리아는 웃고 있었고 나는 의식이 사라지고 있었다. 그 순간 갑자기 내 몸이 회복되기 시작하였다. 마치 온몸에 기운이 다 차는 듯이. 어, 어떻게 된 건지?! 나는 서서히 눈을 떴고 거기에는 어느새 세리하가 내 앞에서 웃고 있었다. “주인님, 힘내……셔야죠.” 털썩. “세, 세리하!” 세리하는 갑자기 쓰러져 버렸고 나는 화들짝 놀랐다. 가, 갑자기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왜 세리하가?! 네리아가 말했다. “희생 주문인가요?” “희, 희생?” “흐으음, 운은 좋았네요. 목숨은 살아 있으니. 하지만 목숨까지도 사라질 위험한 마법을 사용하다니 소환수들이 꽤나 바보 같네요.” 나, 나를 위해서? 목숨을……. 나는 조용히 숨 쉬고 있는 세리하를 조심스럽게 다른 데로 옮겨놓았다. 저쪽에는 세리하가 빠짐으로써 급격히 밀리고 있지만 견뎌 내고는 있다. 네리아를 본 난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한 가지 더 추가되었네.” “추가라니요?” “내가 질 수 없는 이유.” 그렇다. 이런 세리하를 위해서서도. 그리고 이곳에 사는 세리하를 위해서도. “원한다면 보여 줄게. 세리하, 몸만이 마스터 오브 웨폰이 아니 진정한 마스터 오브 웨폰을…….” 파지짓. 그 순간 내 몸에 엄청난 힘이 몰아치기 시작하였다. 희생 주문 탓이었을까? 아니면 다른 이유였을까? 이유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힘이다. 다시 달려오는 카레안의 모습이 똑똑히 보인다. 스으윽. 나는 나에게 검을 다시 찔러 넣는 카레안을 무표정한 얼굴로 보고 있다가 그대로 몸을 살짝 비틀었다. 그러자 당연히 카레안의 검은 내 옆을 지나갔고 난 그대로 잠시의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퍼억! 그대로 주먹으로 카레안의 복부를 가격했다. 엄청나게 말이다. 하지만 카레안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듯 다시 한 번 검을 찔러 넣었다. 생각 외의 반응에 나는 오른쪽 팔을 살짝 스쳤고 그 상처를 감싸 안으면서 말했다. “완전…… 몸밖에 남지 않았군.” “그래요. 그는 아무런 고통도 느낄 수 없죠. 좋은 거죠? 고통이란 인간의 뇌가 담당하는 것. 하지만 그는 이미 몸밖에 남아 있지 않죠. 고통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당신들이 이미 죽여 버린 거죠.” “…….” 그렇다면 남는 건 하나도. 카레안의 몸 자체를 소멸시켜 버리자. 그렇지만 그를 소멸시킬 수 있을 가망성이 있는 건……. 최종 궁극 오의, 한 번도 사용해 볼 엄두도 나지 않았던 스킬이다. 스킬의 설명을 보는 순간 도저히 실험을 해 볼 수도 없었다. 그만큼 어마어마한 기술이다. 분명 그때 무극천무열을 쓸 때처럼 내 몸이 폭주가 되어 버리거나, 아니면 이 캐릭터 자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 스킬에는 후유증으로 영원한 소멸이라는 단어가 적혀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나는 이 게임에 접속하지 못한다. 네리아를 해치웠더라도 말이다. 난 그들이 계속해서 이 게임을 했으면 한다. 항상 바보 같은 놈들이기는 하지만 항상……. 역시 내가 선택한 길은……. “네리아, 너는 알고 있겠지?” “뭐를 말씀하시는 거죠?” “마스터 오브 웨폰, 최후의 궁극기.” “…….” 그 말에 네리아는 급속도로 표정이 굳어졌다. 설마라는 표정을 지었고 잠시 후 다급하게 말했다. “그, 그건 당신이라는 존재가 소멸당하는 기술이잖아요! 저를 해치워도 당신은 이제 이 게임과는…….” “상관없어, 어차피 재밌었으니까.” 지금까지 참으로 재밌었다. 항상 말성만 피우는 것들의 뒷정리를 담당하기는 했지만 재밌었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만족한다. 만약에…… 만약에 다시 이 게임을 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들과의 추억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천격무멸(天激無滅)(하늘조차도 소멸시켜 버리는 힘.).” “카, 카레안, 어, 어서 죽이세요!” 네리아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고 카레안의 모든 힘이 담긴 일격이 들어오고 있었다. 물론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이. 그렇지만 시간을 주지 않는다면 이 싸움은……. 콰앙! 그 순간 어느새 루케리에스가 내 앞에 나타나 카레안의 검을 막았고 여전히 카레안의 검을 막은 채 속삭였다(본 드래곤은 레키리안 혼자 힘겹게 시간을 끌고 있었다.). “마스터가 선택한 길은 이 길입니까?” “그래.” 루케리에스도 알고 있는 것 같다. 이 술의 패널피를. 지금까지 고마웠다. 파아앗! 그 순간 내 주변으로 떠오르는 무기들. 내가 자주 사용하던 검도 있고 활도 있다. 그리고 도끼도 있다. 그리고 다른 무기들도 있었다. 나의 밑으로는 거대한 힘이 솟구쳐 오르기 시작하였고 마치 소환되는 듯한 느낌이 강한 파란색의 힘이 튀고 있었다. 아직 시간이 부족하다. 루케리에스, 조금만 더. 꽈앙! 하지만 루케리에스의 검은 깨져 버렸고 카레안은 루케리에스를 무시한 채 나에게 쇄도해 왔다. 안 된다. 아직 시간이…… 시간이……. “우리를 잊지 말라고!” 어느새 자신들의 싸움은 포기한 채 엄청난 상처를 대가로 내 앞을 막아서는 6대 소환수들. ……고맙다. 항상 말썽꾸러기지만 지금은 한 건 해 주는구나. 저기서는 본 드래곤과 전직 4대 소환수들이 맹렬히 달려오고 있었고 내 앞의 6대 소환수들은 온 힘을 다해 카레안을 막고 있었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내 결정에 후회는 없다! 파앗! 내 손에 쥐어지는 흑백의 검. 그리고 내 주위에 떠다니는 수십 가지의 무기들. 그리고……. 푸욱! 나는 그대로 그 검을 바닥에 꽂아 넣었다. 그리고 외쳤다. “천격무멸(天激無滅).” 소리는 없었다. 화려한 소리. 시끄러운 소리. 아무런 소리조차도 없었다. 오직 내 눈에 보이는 건 힘겹게 막고 있는 6대 소환수들과 나에게 맹렬히 다가오던 카레안뿐. 그 순간 모든 곳의 문이 열렸다. 무기란 무엇일까? 자신의 보호를 위해, 자신의 힘을 위해. 자신의 무엇을 위해……? 그래. 진정한 무기란 영혼의 검일지도 모른다. 지금처럼. 파지짓. 카레안의 주변으로 수천 개, 아니 수만 개, 심지어는 셀 수 없을 정도의 기로 이루어진 검이 카레안을 뒤덮었다. 그래, 이거면 되었다. 이거면……. 그 순간 내 의식은 사라졌다. “주인님~.” “…….” “아잉잉잉.” “세, 세리하!” 나는 화들짝 놀랐다. 눈을 뜨자마자 세리하가 나를 마구 비비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혈기 왕성한 청년에게 그런……! “와, 깨어났다!” “…….” 어, 어떻게 된 거지? 잠시 나는 뇌를 정리해야 했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소멸되지 않은 건가?‘ “네에! 당연히요. 우리 주인님인데.” 소멸이 되지 않았단다. 그렇다면 나는 다시 이 게임을 할 수 있는 건가? 카레안과 네리아는……? “세리하, 카레안과 네리아는?!” “그게…… 죽었어요.” “죽어.” “네. 말 그대로 소멸당했어요.” 나와 카레안이 맹렬히 싸웠던 장소. 황무지밖에 없던 곳이다. 내 주변에는 6대 소환수들이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나는 자그마하게 속삭였다. “……이제 끝난 건가?‘ 슈퍼컴퓨터 네리아의 최후. 아마도 네리아는 카레안의 몸과 자신을 직접 연결시키는 방법을 사용했을 것이다.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자들에 대한 복수. 그게 바로 이 게임의 멸망이었다. 하지만 슈퍼컴퓨터가 사지면 이 게임은 어떻게 되는 걸까? 이제는 다시 할 수 없는 걸까? 내 판단이 옳았던 걸까? 그 순간 나의 귀에 들려오는 음성. -제2의 보조 컴퓨터 나테안이 슈퍼컴퓨터로 대체됩니다. 아저씨. 역시나 당신이 선택한 길은 이 길이었군요. 콰앙! 나는 그대로 사장실이 문을 발로 부숴 버렸다. 수십 명의 보디가들이 나를 막았지만 나도 이럴 줄 알고 예화 집에서 보디가드 좀 빌려 왔단 말이야! 보디가드들의 난투극을 뒤로 한 채 지금 이렇게 사장실의 문을 부쉈고 사장은 갑자기 나타난 나를 보더니 거만하게 말했다. “허허. 자네인가? 내가 만든 네리아가 잠시 폭주한 상태를 막아 낸 청년이…….” 지랄하네. “흐으음. 선물을 원하는 건가? 그대로 험악하게 들어오는 건 좋지 않아. 그래 전설급 무기 2~3개 정도 주면 되나?” “개지랄 떨지 마.” “뭐, 뭐라고? 내, 내가 누군지 알고!” “네놈? 더럽고 치사한 새끼지!” 나는 그 말고 함께 그대로 있는 힘껏 오른손 주먹으로 그놈의 얼굴을 가격하였다. 그러자 단 한 방에 엄청나게 나가떨어져 버리면서 이빨이 부서지고 얼굴이 함몰되어 버렸고 난 잠시 하늘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모두에게 내가 주는 선물.” 사형. 테이스 월드를 차지하기 위해 움직일 수도 없었던 생명장치의 유지를 끊어 버리고 자신의 욕망을 위해 이 게임의 진정한 개발자인 김민진을 죽인 자. 물론 처음에는 자기가 그러지 않았다고 부인했지만 나는 예화 어머니의 말씀을 기억해 내서 부탁을 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 사람들이 마음만 먹으면 증거 자료정도야 금방 찾아낸다. 그렇게 그 새끼는 사형이라는 판결을 받았고 우리는 다시 한 번 게임을 시작한다. 에필로그 2년 후. 아직도 그 사실은 유명했다. 슈퍼컴퓨터 네리아가 폭주했다는 사실. 물론 은밀히 진행되어 버린 소문이지만 사실적으로 그들에게 피해를 준 것은 없었다. 하지만 그만큼 심각한 상황이었던 것은 대부분이 은근슬쩍 알고 있었다. 한편 2년 전 이야기를 나누는 두 명의 소녀가 있었다. “너 그거 알아?” “뭐?” “있잖아. 2년 전에 이 게임.” “아, 그 슈퍼컴퓨터가 폭주?” “응. 그때 왜 폭주가 멈췄는지 알아?” “그건 잘 모르겠는데.” 그 소녀는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고 그 말에 질문을 했던 소녀는 흥분한 어조로 말했다. “어떤 한 남자가 막아 냈다. 6대 소환수랑!” “6대 소환수? 한 남자?” “마스터 오브 웨폰. 못 들어 봤어?” “그게 뭐야?” “얘 정말 정보 없네! 마스터 오브 웨폰. 모든 무기를 마스터한 자! 이 게임에 존재하는 최고의 히든 클래스잖아!” “잘 모르겠어.” “쯧. 그것도 모르고 이 게임을 하다니. 그나저나 그 마스터 오브 웨폰이라는 남자는 얼마나 듬직하고 카리스마가 넘치고 멋질까?” “흐으음. 네 말대로라면 6대 소호나수들도 엄청 멋있겠다.” “당연하지!” 두 소녀는 마스터 오브 웨폰과 6대 소환수를 각자 생각하면서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 멋있는 모습, 환상적인 모습. 이 저절로 그려지는 것이다. 슈퍼컴퓨터 네리아를 막았다니! 그 순간 그녀들의 앞을 누군가가 지나갔다. “이 새끼들아! 거기 안 멈춰!” “허억. 튀어!” “마스터, 잘못했어요!” “에이씨. 내 방패막이 해!” “야!” 그녀들 앞에는 상당히 잘생긴 청년과 더불어 개 한 마리, 데스나이트, 천족이 마구 뛰어다녔고 그걸 본 그 소녀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말했다. “마스터 오브 웨폰하고 6대 소환수들은 우리 앞에 있는 존재들하고는 정반대일 거야.” “그래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그녀들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고 그 순간 남자가 이쳤다. “거기 서, 닭대가리들!” “오늘은 고백할 거야.” “오늘은 고백하겠어요!” 채은이와 예화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속마음을 꺼냈다. 오늘이야말로 민혁이에게 진정으로 고백하고 말 것이다. 약간 그런 쪽에 둔한 민혁이었기에 자신들이 직접 말하지 않으면 평생 눈치 못 챈다고 생각한 그녀들이었다. 그렇지만 직접 내미는 건 너무나도 쑥스러웠다. 그래서 정우라는 인간을 통했다. “형님.” “왜 그러냐?” 나는 갑자기 진지하게 말하는 정우를 보고 의아한 듯 바라보았다. 한편 정우는 슬픈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저는 왜 이리 완벽한 겁니까?” 무슨 개뼈다귀 소리냐? “왜, 왜?!” “미친 거냐?” “아닙니다. 정상입니다.” 자기가 꼭 정상이래. 아 참, 그게 아니라 갑자기 저놈 또 왜 저러냐?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예화 양하고 채은 양이 저를 사모하고 있을 줄이야.” “뭐, 뭐라고?!” 나는 기겁했다. 왜 그런 궁극 절세 미소녀가 이딴 놈을 좋아하냔 말이다! 왜, 왜?! “증거도 있습니다.” 그 말과 함께 정우는 분명 채은이와 예화가 쓴 게 분명한 사랑의 편지를 내게 내밀었다. 거기에는 분명 적혀 있었다. ‘좋아해.’ ‘좋아해요.’ 라는 단어가. “크아악!” “역시 난 완벽합니다.” 왜 그런 거니! 애들아?! 난 당장 예화와 채은이를 찾아갔다. 마침 채은이와 예화는 같이 있었고 그녀들은 나를 보자마자 갑자기 얼굴이 새빨개졌다. 마치 홍당무처럼. 그렇지만 그런 사소한 것보다 그녀들이 왜, 왜! 으윽. 정우 따위를……. “채은아, 예화야.” “응.” “……네.” 나의 말에 조심스럽게 대답하는 궁극 미소녀 두 분. 생각을 하면 할수록 이해가 안 된다. 하지만 분명 정우에게도 매력이 있었을 거야. 그래 있었던 거야. “정우의 어디가 그렇게 좋니?” “네?” “무슨 이상한 소리 하는 거야, 오빠.” “그러니까 너희들이 정우에게 러브레터를……. 크윽.” 눈물이 새어 나온다. 왜 이리 눈물이……. 그 순간 내게 들려오는 당혹해 하는 모소리들. “마,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정우에게 내가 러브레터를!?” “그, 그럴 리가요.” 그 순간 예화랑 채은이는 설마 너도? 라는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았고 나는 그들의 눈빛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다행이다. 정우 놈은 아니다. 그럼 누구에게 보낸 거지? 그건 그거대로 가슴이 아프구나. 흐흐흑. “그럼. 너희들이 보낸 남자는 누구야.” “오빠 바보야!” 그 말과 채은이는 그대로 사라졌고 예화도 조용히 고개를 숙이더니 사라졌다. 어라. 바, 바보라니! 난 닭대가리 3인방이 아니란 말이다! <完> 못 말리는 6대 소환수 과묵한 레키리안. 도견에다 치졸하고 배신을 잘하지만 외형만은 귀여운 케미리. 먹다가 죽을 번한 피티언. 항상 여자를 밝히고 엉성한 테피언. 그리고 소환수들 중 홍일점 세리하. 항상 도움을 준 루케리에스. 그리고 항상 내 옆에서 도움을 주는 미소녀 채은이와 예화까지. 나는 그들이 있어서 즐겁다. 이 게임을 시작한 후 제대로 된 일은 한 번도 없었지만 그들 덕택에 나는 행복했다. 만약에 이 게이미을 아무도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나는 계속 할 것이다. 그들이 있는 한. “왜 저는 없습니까?” “네놈은 닥쳐!” 특별히 정우 놈은 덤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