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데스티니 12권 제1장 게르안 왕국으로 제2장 블레이노 국왕 제3장 칼로윈 공작 제4장 마이드 제국의 움직임 제5장 총공세 제6장 하기 싫어도 해야만 하는 일 제7장 잘못된 깨달음 제8장 그의 부상이 가져온 일들 제9장 머리보다 가슴이 시키는 것 제10장 칸 밀레이노 3세의 결단 제11장 마스터 대전에 지명을 당하다 제1장 게르안왕국으로 케라닌이 래닐에게 백색 마약올 복용시켰면 이유는 간 단하였다. 당시 레닐은 검술에 두각올 보이고 있던 시기였는데, 레닐은 자신의 성취를 숨기고 있었지만 그를 가르치던 덴 크와 핸리가 레닐의 성취를 일부분이나마 꿰뚫어 보고 있 었다. 그것이 루이단트 공작의 귀에 홀러듈어 갔고, 케타닌의 귀에 전해지게 되었다. 레닐이 검술에 재능올 보이고 있다는 말은 당시의 케라 닌에게 불안하고 이기적인 마음을 자극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랬기에 케라닌은 모종의 결심을 하게 된다. 대륙에서 오대 마약이라 지정하여 거래를 금지시킨 백 색 마약을 레닐에게 복용시킨 것이다. 백색 마약의 효력은 장복하게 되면 알게 모르게 복용자 의 정신을 망가뜨리는 데 있다. 이는 누가 확인을 해도 티가 나지 않기에 그저 자연스 럽게 정신이 망가진 것처럼 보인다. 시간을 두고 상대를 망가뜨리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최 고의 수라 아니 할 수 없는 악독한 수였다. 그랬으니 레닐의 말은 케라닌에게 엄청난 충격올 가져 다주었다. 그의 말을 듣는 순간 하얗게 질려버린 케라닌은 아무 말도 꺼낼 수 없었다. 케라닌은 머리가 텅 비어 버린 듯한 충격을 받아야만 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녀의 머릿속은 수많은 생각들이 뒤엉켜 이렇다 할 판 단올 내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도대체 어떻게 레닐이 그 사실을 알았단 말인가. 그 사실은 분명 아무도 몰랐올 텐데? 검사를 한다 해도 백색 마약은 티가 나지 않는다. 혹시 지레짐작한 것이 아닐까? 그런다고 해서 의문이 해소되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약들 중 어찌 백색 마약올 정확히 골라낼수 있 겠는가. 백색 마약을 골라냈다는 건. 필시 무언가를 알고 있다 는 이야기가 분명하니 그것 때문에 케라닌은 머리가 복잡 했다. 공작가 안으로 유입된 백색 마약은 케라닌이 철저하게 관리를 해 왔다. 결단코 외부로 유출될 경우가 절대 없었으니 혼란은 더 욱 커져 갔다. 도대체 어떻게……? 란 의문이 머리에서 수없이 맴돌 고 있었다. 잠시 후. 어느 정도 정신을 수습한 케라닌은 긍정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중거가 없는 사실이 아닌가. 레닐이 혹시나 하는 의심에 살짝 찔러 보는 것일 수도 있다. 부인하기에는 표정에서 모든 것이 드러났지만 그것은 충분히 말로 커버할수 있었다. 케라닌이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호, 호호‘…“ 그게 무슨 말인가요. 백색 마약이라니. 너무 놀라서 말이 나오지 않네요. 호호!” 레닐의 말에 너무 놀라서 굳었다는 걸로 반옹올 회피하 는 케라닌이었다. 레닐은 피식 웃음올 지었다. 케라닌이 부인할 것이리라는 점은 이미 충분히 예상하 던 점이다. 한데 정말로 그렇게 나오니 자신도 모르게 옷음이 나온 것이다. 아마 중거가 없으니 발뺌을 하자고 웃음을 먹은 것일 테지. 레닐은 케라닌의 눈올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입올 열 었다. "제가 어떻게 백색 마약을 복용하게 되었는지 알게 된 줄 알고 계십니까?" "저는 공작님에게 백색 마약올 복용시킨 적이 없습니 다. 근거 없는 말올 계속하시면 저도 더 이상 창올 수 없 어요.” 계속해서 자신에게 백색 마약을 언급하는 레닐읕 보며 정색하는 케라닌이었다. 증거가 없는 이상 레닐의 말은 허무맹랑한 것에 불과하 다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었다. 그에 레닐은 웃음올 지을 수밖에 없었다. 참 얼굴이 두껍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중거가 없다는 확신이 있어도 저렇게 되레 정색 을 하다니. 옛말에 방귀 뀐 놈이 도리어 성낸다는 말이 있더니 그 말이 사실이라는 것올 느끼는 레닐이었다. 그가 정색한 케라닌읕 보며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자세히 뜯어보면 근거가 없다고 할 수 있 지요.” "그러니 그 말올 계속하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저도 공 작님에게 화를 내기 싫으니까요.” 다행히도 레닐이 그냥 넘어가는 듯한 모습올 보이자 케 라닌은 놀란 가슴올 부여잡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 케라닌의 모습에 레닐이 물었다. "얼마 전 대회의에서 제가는 분이 회의에 참석을 하셨습니다. 8서클에 이른 대마법사시죠. 그분올 아십 니까?” "…“알고 있습니다만?" 알고 있다고 말하는 케라닌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레닐이 언급한 마법사는 페를린 공작에게 무례한 언사 를 가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자신의 아버지에게 폭언을 일삼은 사람을 어찌 좋게 생 각하겠는가. 제아무리 냉정한 페를린 공작이라지만 수많은 귀족들 이 모인 곳에서 그런 폭언올 듣고도 냉정을 유지하기란 힘들 것이다. 아마 이를 갈면서 마법사를 죽이기 위해 방법을 강구할 확률이 높았다. 당연히 케라닌도 그 마법사가 좋게 생각될 리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뭐라 할 수 없는 것은. 마법 실력이 대륙에서 최고라 손꼽히는 경지인 8서클에 다다랐을 뿐만 아니라, 왕국 최고의 권력자라 할 수 있는 레닐의 지인이기 때문 이었다. 모든 귀족들이 보는 가운데 헬 파이어를 시전했으니 능 력을 의심할 인물도 없는 상황이었다. 케라닌이 알고 있다고 하자 레닐이 거듭 물었다. 그럼 그분의 말씀은 진실이 담겨져 있다는 것도 아시 겠군요.” "그렇게 알고 있어요.” 자세히는 모르지만 마법사의 말 한마디는 상당한 신뢰 를 지니고 있다고 케라닌은 들었다. 그 대마법사의 한마디로 인하여 대회의 방향이 완전히 뒤바뀌었으니 말이다. 말 한마디에 마나의 간섭올 받는다나 뭐라나. 케라닌은 그렇게 알고 있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마법사의 말이 수많은 사람들의 신뢰를 살수 있다는 것이다. 수긍하는 케라닌의 모습에 레닐이 웃음올 지으며 말 한다. 제가 백색 마약릏 언급한 것이 왜인지 아십니까?" "왜 거기에서 또 그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죠?" 헤닐이 재차 백색 마약올 언급하자 다시 표정릏 굳히는 케라닌이었다. 끝난 이야기률 다시 언급하니 기분이 나쁨과 동시에 가 슴이 철렁했다. 자신올 향해 웃음올 짓는 레닐의 표정에서 무언가 확실 한 걸 잡아낸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든 것이다. 그런 케라닌에게 레닐이 결정적인 말릏 가한다. "제 몸에 백색 마약이 투여되었다고 말한 것이 바로 8 서클 대마법사이십니다.” 쿠구궁! 케라닌은 순간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올 받았다. 이게 무슨 말이란 말인가! 8서클 대마법사가 레닐이 백색 마약올 복용했는지 어 찌 알고 있단 말인가. 아찔해지는 충격올 애써 견디며 케라닌이 말한다. "노. 농담도 잘 하시는군요. 어떻게 대마법사님이 백색 마약올 알아볼 수 있단 말입니까. 장난은 그만 쳐 주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말했지만 케라닌의 안색은 편치 못했다. 8서클 대마법사라면 진신을 꿰뚤어 봤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얼토당토않은 말이라 생각했다. 레닐이 프리 나이트로 떠돌던 도중에 만났다고 하지 않 았던가? 그렇다면 대충 백색 마약을 복용하고 십 년 정도가 흘 렀다는 것인데, 그 기간까지 백색 마약의 잔재가 남올 리 는없다. 필사적으로 부정하는 케라닌의 모습에 레닐이 입을 열 었다. 아마 이렇게 생각하고 있겠지요. 그 마법사와 내가 만 난 건 근래일 텐데 어떻게 백색 마약을 알고 있는지.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 마법사 분은 프리 나이트로 떠돌 던 도중에 만난 것이 아니라 제가 어린 시절, 루이단트 공 작령에서 만난 분이니까요.” 케라닌에게 있어서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였다. 레닐이 백색 마약올 복용한 것이 바로 어린 시절이었으 니 말이다. 애써 표정올 수습하려는 케라닌을 보며 레닐이 씹어뱉 듯 말한다. "저는 그 마법사 분에게 수차례 확인올 했습니다. 제 몸에 백색 마약이 투여되었다는 사실을요. 그것도 전부 당신과의 식사 이후에 말입니다. 이래도 부인올 할 생각 입니까?" "......." 한 번도 아니고 수차례 확인을 했단다. 그렇다면 뭐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케라닌은 자신이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는 것올 깨달았다. 래닐의 말은 사실이니…… 만약 계속 부인한다면 또다시 그 마법사를 볼러 중언올 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거짓올 말하면 마나에 계약을 받을 터니. 마법사의 선 언은 당연히 진실로 여겨질 것이고…… 그 사실이 알려진 다면 자신이 누리던 모든 것들은 물거품으로 화해 사라지 게 될 것이다. 그러자 케라닌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갔다. 자신이 누리던 것들이 모두 사라진다는 의미가 그녀의 공포심올 자극한 것이다. 몇 년이나 기다려서 이재야 올라선 왕비인데! 앞으로 더 나은 부귀를 누릴 수 있는 이 자리에서 쫓겨 나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하얗게 질린 케라닌의 표정올 본 레닐이 자리에서 일어 섰다. 그러고는 초점이 풀려 가는 케라닌의 눈올 응시하면서 말한다. "두 번 다시 그런 가식 같은 말올 하지 않길 바랍니다. 구역질이 나오려고 하니까. 저는 당신과 엮이고 싶지 않 습니다. 건드리면 당신의 모든 것올 파괴해 버리고 싶으 니까, 모르는 사이로. 알겠습니까?" 마음 같아서는 모든 것올 밝혀 버리고 케라닌올 파멸시 켜 버리고 싶다. 하지만 그렇개 되면 왕국의 전력 삼분의 일이 깎여 나 갈 확률이 높다. 케라닌올 쳐내기 위해서는 페를린 공작가도 쳐내야 할 것이고, 자칫 잘못되면 페를린 공작을 중심으로 한 귀족 파 전체를 도려내야 할 상황까지 도래할지도 모를 일이 었다. 못할것은 없지만 그로 인해 깎여 나갈 카르미안왕국 의 국력은 어마어마했다. 그렇기에 레닐은 경고를 한 것이다. 약점을 알고 있다는 것올 언급함으로써 함부로 경거망 동하지 못하게. 언급하지 않으려 했지만 계속해서 자신과 친해지려 하 는 가식적인 모습에 참지 못하고 내지른 것이다. 성급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래닐은 후회하지 않 았다. 이로 인해 케라닌이 한동안 조용할 테니 말이다. 강력한 충격을 주었으니 힌동안 아무 움직임도 보이지 않으리라. 레닐의 시선과 눈이 마주친 케라닌이 몸올 부들부들 떨 었다. 강렬한 기세가 담긴 레닐의 두 눈에 압도된 것이다. "그럼 실례.” 케라닌을 완전히 제압한 례닐이 몸올 둘려 식당올 벗어 났다. 레닐의 뒷모습올 보면서 케라닌은 몸올 부들부들 떨고 만 있을뿐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올까. 죽은 듯이 침묵하던 케라닌의 눈에 점점 초점이 돌아오 기 시작했다. 그녀가 레닐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주, 죽여야 해. 내 비밀을 알고 있는 레닐을……" 케라닌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지금 그녀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레닐을 반드시 죽여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긴 시간 동안 기다려서 얻게 된 자신의 모든 것올 무너 뜨릴지도 모를 레닐의 존재를 제거해야만. 자신의 것을 지켜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레닐이 생각한 것보다 케라닌의 집념은 상상을 초월하 는 것이었다. 그는 케라닌의 집념이 브린의 왕위 계승이라 생각했겠 지만 그것은 틀렸다. 케타닌이 집착하고 있는 것은 자신이 누리고 있는 부와 권력이다. 그 모든 것올 없앨 수 있는 레닐의 둥장은 케라닌에게 참을 수 없는 경계심을 심어 주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정확하게 두 가지다. 하나는 죽은 듯이 침묵하는 것. 그리고 둘째는 자신의 비밀올 알고 있는 레닐올 죽이 는것. 그녀의 선택은 후자였다. 비밀올 알고 있는 레닐을 죽여서 그 비밀을 영원히 묻 어 뒤야한다. 레닐이 마스터라는 사실은 잊은 지 오래였다. 그녀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것은 레닐올 죽여야 한다는 사실뿐. 레닐 카르미언스. 반드시 죽일 거야.” 너무 강한 충격은 새로운 것을 자극하는 경우도 존재하 는 법이었다. 레닐이 가한 강력한 충격은 케라닌에게 이제껏 존재하 지 않던 강렬한 살의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케라닌과의 식사 이후 레닐은 본격적으로 게르안 왕국 을 향해 떠날 준비를 하기 시작하였다. 아이실라가 이해를 해 주기는 하였지만 그렇다고 하여 마냥 손올 놓고 있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레닐은 최대한 많은 사간을 아이실라와 함께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시간이 남을 때마다 세공품을 만들어 그녀에게 선물하였다. 자신이 수도를 비우게 되면 아이실라는 홀로 검술 수련 을 하기도 하고, 책도 읽기도 하였지만. 이따금 사람이 그 리우면 초대된 파티에 참석하기도 한다. 남녀가 붙어 진한 스킨십을 하는 그런 파티가 아닌, 귀 족 영에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소규모 파티 같은 것 이었다. 그런 파티에서도 서로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귀족 영에 들 간의 경쟁은 치열하였다. 자신이 남들보다 아름다워 보여야 미모에 대한 허영심 이 채워지기도 하기에 그렇다. 레닐은 그 사이에서 아이실라가 초라한 모습올 보이길 원하지 않았다. 어느 누가 자신의 여자가 촌스러운 것을 원한단 말 인가. 더욱더 예쁘고 아름다운 모습올 보여 주었으변 하는 것 이 모든 남자의 공통된 소망이리라. 그렇기에 레닐은 아름다운 세공품을 만들어 아이실라 에게 선물올 한 것이다. 그녀가 누구보다 아름다올 수 있도록, 누구보다 빛날 수 있도록 말이다. 선물을 받은 아이실라는 당연히 기뻐하였다. 그녀는 레닐이 선물해 준 세공품이 예쁘기에 기뻐한 것 도 있지만, 결정적으로 레닐이 자신을 이만큼 생각해 주 고 있다는 것올 느끼고 기뻐한 것이다. 어찌 그러지 아니 하겠는가. 대륙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자신의 남자가 자신에 게 선물하기 위해 몇 시간 동안 집중을 요하는 세공품을 만들어 선물을 주는데 누가 감동하지 않겠는가? 서로가 서로를 얼마나 생각해 주고 있는지 감추지 않 고. 겉으로 표현을 하기에 두 사람 사이에 불화는 존재할 수 없었다. 그렇게 아이실라와 시간올 보내는 동안 게르안 왕국으 로 갈 인원도 정해졌다. 레닐을 보좌하기로 한 사람은 팬트레이 자작이었다. 벤자이어 제국과의 전쟁에서 레닐읕 잘 보필한 경력이 있는 만큼 그가 레닐과 함께 게르안 왕국으로 향하는 것 으로 정해졌다. 적대적인 국가로 가는 것이 아닌 만큼 젊은 귀족들 몇 명도 함께 가기로 결정이 된 상태였다. 루이드 국왕은 레닐에게 모든 권한올 부여하였다. 게르안 왕국으로 가서 해야 할 일은 성공적으로 동맹을 맺어 오는 것. 그와 함께 덧불여 두 왕국 간의 무역을 공식화하는 것 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게르안 왕국이 부정적인 태도로 나올 경우 카르미안 왕국의 힘을 알리라는 식의 말도 건 냈다. 두 왕국이 필요에 의해 동맹을 하는 것이지만, 카르미 안 왕국이 굳이 더 많은 것을 내줄 이유가 없다는 뜻올 밝 히라는 것이다. 사실 그것은 레닐의 의견이 적극 반영되었다고 봐도 무 방했다. 게르안 왕국이 무례하게 나오는 데에는 카르딘 왕세자 의 농간이 있지만, 게르안 왕국의 블레이노 국왕과 칼로 윈 공작까지 삐딱하게 나오면 더 이상 할 이야기는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카르미안 왕국으로서는 동맹올 상징할 게르안 왕국의 이름만 필요했지만, 게르안 왕국은 카르미안 왕국의 힘이 필요했으니 말이다. 루이드 국왕의 당부를 듣고 구체적인 사항에 대해 이야 기를 나눈 레닐이 본격적으로 떠날 준비를 하기 위해 저 택으로 돌아왔을 때, 손님이 찾아와 있었다. "형님!” 카온이었다. 카온이 갑자기 무슨 일로 찾아온 것이란 말인가? 튀니르 왕국으로 향하는 사신 행렬에 포함된 카온은 삼 일 뒤 떠나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레닐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카은올 맞이하였다. "갑자기무슨 일로 온 것이냐?" "하하! 그게 그러니까…. 큼! 형수님도 그간 잘 지내 셨습니까?" 약간 머뭇거리던 카온은 레닐의 옆에 있던 아이실라에 게 먼저 인사를 하였다. "안녕하세요. 카온 경.” 카온의 인사에 아이실라가 생긋 웃음올 지으며 화답 한다. 레닐과 무척 친한 사이인 만큼 새로 하사 받은 이름. 프 로미스가 아닌, 이름으로 불러 주는 아이실라였다.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에게 인사를 해 주자 카온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형수님은 어째 날이 갈수록 아름다워지십니 다그려. 혹시 비법이라도 있습니까? 있으면 좀 알려 주십 시오. 안젤리나에게도 알려 주게 말입니다.” "호호! 칭찬 감사 드려요. 하지만 그런 비법이 있을까 요? 아, 비법이라면 있긴 있네요.” 카온의 칭찬이 기분 좋은 둣 입가에 미소를 띠던 아이 실라가 무언가 생각난 듯 말한다. "오! 비법이 있으신 것입니까? 그렇다면 좀 가르쳐 주 십시오.” 아이실라의 대답에 카온이 반색하며 묻는다. 그 물음에 아이실라가 생긋 웃음을 짓더니 대답한다. "비법이라면 비법일 수 있죠.제 비법은 바로……" 레닐을 힐끗 바라보는 아이실라. 그녀를 바라보던 카온의 시선도 레닐에게 향한다. 두 시선에 레닐이 고개를 가옷하자, 아이실라가 말한다. "바로 사랑을 받으면 된답니다. 여자는 사랑을 받으면 예뼈져요, 호호!” "커, 컥! 그런 겁니까? 전 몰랐는데 말입니다.” 아이실라의 말에 레닐은 침묵하였고, 카온은 몰랐다는 듯 눈을 크게 뜬다. 전혀 몰랐다는 제스처를 취하는 카온에게 아이실라가 말한다. “여자는 남자가 얼마나 사랑을 해 주느냐에 따라 달라 질 수 있어요. 그러니 카은 경도 잘 대해 주셔야 해요. 아 셨죠?" "하하! 알겠습니다. 그렇게 간단한 방법이 있었을 줄이 야. 잘해야겠군요.” 안젤리나에게 앞으로 잘해야겠다고 다짐하는 카온에게 레닐이 용건읕 물었다. "그래, 무슨 일로 찾아온 것이냐?" "아. 그게 말입니다.” 카온이 무언가 말을 하려다가 머뭇거리는 모습올 보 였다. 그런 카온의 모습에 레닐이 고개률 가옷했다. "말하기 어려운 건가?" "음. 그게 말입니다. 어려울 수도 있기도 하고, 조금 죄 송스러운 부탁이기도 해서……" 도대체 무슨 부탁을 하려는 것이기에 그러는 거란 말 인가. 레닐은 말을 하지 않는 카온의 태도가 답답하여 말 했다. "일단 말이라도 해 봐라. 들어 봐야 내가 결정을 내릴 수 있지 않겠나. 어차피 부탁을 하러 온 것이라면 일단 말 하는 것이 더 나올 텐데?" "그것도 그렇군요; 레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카온이 호흡올 들이쉬면서 입을 열었다. "형님, 부탁이 있습니다. 제게 반지 하나만 만들어 주 시면 안 되겠습니까?" "반지? 갑자기 무슨 반지?^ 갑자기 반지를 부탁하는 카온의 모습에 레닐이 고개를 갸읏했다. 반지라니? 이 무슨 뜬금없는 소리란 말인가. 이해하지 못하는 레닐과 달리 옆에 있던 아이실라는 이 해한 듯하다. 그녀는 박수를 짝! 치더니 입올 연다. “아! 카온 경, 설마 그 반지를 애인 분에게 선물하려는 건가요?" 그 말에 레닐이 눈을 크게 떴다. 아이실라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차릴 수 있었 던 것이다. 레닐이 카온을 보며 물었다. "선물? 그게 정말이냐?" "에…… 크흠! 그게, 그러니까…… 맞습니다. 안젤리나 에게 선물을 하려고 합니다. 장래를 약속했음에도 자주 보지도 못했고, 무엇보다…… 결혼하자고 말을 하려고 합 니다." “결혼이라니…….” 카온의 말에 레닐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설마 곰같이 둔한 카온이 그런 계획을 세우고 있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이제 곧 카온의 나이가 스물둘이 되고, 안젤리나가 스 물셋이 된다. 카온은 괜찮지만 안젤리나는 이미 귀족 영애로서 혼기 가 꽉 차다 못해 노처녀란 소리를 들어도 부족함이 없는 나이가 되었다. “ 아마 카온은 그 점 때문에 안절리나와의 결혼을 결심했 을 것이다. 언젠가는 하리라 생각되었지만 설마 사신으로 찾아가 는 자리에서 결혼하자는 말을 꺼내려 계획할 줄이야. 레닐은 놀랍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올 한 카온 이 기특하기도 하였다. 리프 산에서 처음 만난 카온은 그야말로 세상물정 모르 는 애송이에 불과했는데 벌써 결혼올 하겠다고 자신을 찾 아왔으니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왠지 모르게 웃음이 홀러나온다. 웃음기 어린 말투로 레닐이 카온에게 물었다. "그래, 그래서 나를 찾아온 것이냐? 반지를 만들어 달 라고 하기 위해?" "물론 평범한 반지라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습니다. 하 지만 제가 알고 있는 대륙 제일의 세공사는 바로 형님이 십니다. 형님이 만들어 주신다면 저에게도, 안젤리나에게 도 뜻깊은 반지가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너무 무리한 부 탁이면 거절하셔도 됩니다.” "흐음!” 레닐의 시선이 아이실라에게 향했다. 카온에게 반지률 만들어 주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원석올 가지고 세공을 하고 반지를 만들면 충분히 하루 이내에 만들 수 있으니 말이다. 다만 그렇게 되면 아이실라와 보낼 시간이 줄어들게 된다. 그것은 레닐도 원하지 않고, 아이실라도 원하지 않올 것이다. 게르안 왕국으로 떠나면, 최소 두 달에서 녁넉잡고 넉 달 동안은 보지 못하게 될 것임이 분명했기에 그렇다. 한시라도 떨어지기 싫은 것이 현재 두 사람의 입장이 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부탁도 아닌, 카온의 부탁이다. 게다가 평범한 용도로 사용하겠다는 것도 아닌, 청혼의 의미를 담은 반지라고 한다. 카온이 자신의 친동생과 같은 존재이고, 그의 인생에 중대사임올 감안하면 결코 쉽게 넘길 수 있는 상황이 아 니다. 더군다나 자신 보고 대륙 제일의 세공사라고 평가하지 않았는가? 입에 발린 말이기는 하지만 기분이 좋은 것은 분명했다. 대륙 제일이란 칭호는 누구나가 원하는 최고의 자리에 다다랐다는 평가이니 말이다. 레닐의 시선을 받은 아이실라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저는 해 주셨으면 해요. 카온 경의 중요한 일이잖아 요? 카온 경의 형이라 할 수 있는 공자님이 도와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녀가 그렇게 말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레닐은 피식 웃음올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실라가 그렇게 말하니 어쩔 수 없군. 카은, 네 마 음이 안젤리나 양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최고의 반지를 만들어 주겠다. 튀니르 왕국으로 떠나기 전날 찾아와라. 그때까지 완성해 놓고 기다릴 테니까.” "정말 감사합니다, 형님.” 그의 수락에 카온이 환한 표정을 지으며 감사의 인사를 하였다. 연방 감사의 인사를 하던 카온이 이틀 후에 찾아오겠 다는 말과 함께 나가고. 레닐이 아이실라에게 시선을 주 었다. 레닐의 시선을 느낀 아이실라가 그률 바라보자, 레닐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이실라는 섭섭하지 않아?" "뭐가요?" 섭섭하니는 레닐의 말에 아이실라가 눈올 동그랗게 뜨 며 묻는다. 도대체 뭐가 섭섭하냐는 이야기일까.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한 아이실라의 반옹에 레닐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카온이 결혼하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말이야. 아마 저 녀석이 결혼 신청올 하면 반드시 이뤄질 거야. 왜냐하면 저 녀석의 결혼 상대인 안젤리나 양은 혼기가 꽉 찼거든. 게다가 일등 신랑감인 카온을 놓치려고 할 리가 만무하 지. 무엇보다 두 사람이 좋아하고 있고. 그리고……" 아이실라는 레닐이 무슨 말올 하려는지 알아차릴 수 있 었다. 그는 지금 결혼올 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 섭섭 하지 않냐고 물은 것이다. 서로 좋아하고 있는 만큼 결혼은 그 종착점에 해당하는 것과 같았기에. 레닐의 말에 아이실라는 냉정하게 자신의 마음올 돌이 켜 보았다. 그리고 결론은 '하고 싶지만 아직은……'이라는 답이 었다. 결혼을 한다는 것은 연예와 달리 서로의 단점까지 완벽 하게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레닐과 아이실라는 결혼할 준비가 되어 있 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단점올 포용하기 위해서 결혼은 아직 이르다. 레닐의 단점은 너무나 뛰어나기에 그를 원하는 사람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는 점이다. 즉, 그를 독점하려고 하는 것은 지금 상황에서 과욕이 라는 점이다. 아이실라는 아직 어리지만 냉철한 사고를 지니고 있다. 어릴 적부터 오대 백작가의 압박에 대옹하며 살아왔기 에 그녀는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잘 알고 있었다. 열여덟 살이란 나이에 이제 곧 열아홉이란 나이가 된 다. 그리고 이 정도 나이면 귀족 영애로써 적절하게 혼기 가 찼다고 볼 수 있다. 마음 같아서는 어찌 지금이라도 레닐과 결혼하고 싶지 않을까. 하지만 그녀는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은 이렇게 바쁘지만 언젠가 상황이 진정될 것이라 믿기에. 그리고 그때가 되면 원 없이 레닐읕 독점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이실라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저는 괜찮아요. 지금 이렇게 공자님이 제 곁에 있는 걸요? 부러운 마음은 있지만 섭섭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요. 공자님도 마음 같아서는 저와 당장 결…… 혼 하고 싶 다고 생하고 계시잖아요. 아닌가요^ 결혼이란 단어를 막상 언급하려니 조금 쑥스러운 아이 실라였다. 그녀가 얼굴을 살짝 붉히며 묻자, 레닐은 미소를 지으 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지. 나도 마음 같아서는 아이실라와 당장 결혼하고 싶고말고. 하지만 아직 내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고…… 결혼을 할 수 있지만 결혼을 한 뒤에 아이실라 를 두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면 나나, 아이실라나 더 힘들 것 같다고 생각해. 내 말 이해하지?" "네, 물론이에요. 저는 기다릴 수 있어요. 그러니 공자 님은 너무 부담 갖지 마세요.” 자신올 배려해 주는 아이실라의 모습이 눈부시게 아름 답다고 생각하는 레닐이었다. 그런 아이실라의 모습에 레닐은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알았어, 항상 날 이해해 줘서 고마워, 아이실라. 사 랑해.” "저도요."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많을수록 둘의 사랑은 더욱더 깊어지고 있었다. 제2장 블레이노 국왕 레닐읕 중심으로 한 사절단이 게르안 왕국으로 떠났다. 떠나기 전 레닐은 위니르 왕국으로 향하는 카온에게 반 지를 건네주었다. 사랑을 뜻하는 레드 다이아몬드 원석으로 만든 반지 였다. 레닐의 손을 거친 반지답게 다채로우면서 그윽한 빛을 머금은 반지는 활달한 안젤리나에게 잘 어올리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카온은 그 반지를 받아 들고는 크게 기뻐하며 레닐에게 고맙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그야말로 최고라는 말이 아깝지 않올 정도로 완벽한 반 지였던 것이다. 받는 당사자가 기뻐하니 레닐도 기분 좋은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튀니르 왕국으로 사신 행렬이 떠나고. 그다음 게르안 왕국으로 향하는 일행이 떠났다. 게르안 왕국으로 가는 길은 무척 먼 길이었다. 쉬지 않고 꼬박 이십 일올 걸어야 게르안 왕국의 왕도 에 도달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게르만 왕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튀니르 왕국을 거쳐야 한다. 튀니르 왕국을 가로질러야만 게르안 왕국에 도달할 수 있다. 물론 바닷길로 가는 방법도 있다. 동쪽 끝으로 간 다음 해로를 이용하면 보름 만에 게르 안 왕국 영토 안으로 들어설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게르안 왕국의 왕도로 가는데 보름 의 시간이 더 걸린다. 그 이유는 게르만 왕국의 왕도 위치 때문이다. 게르안 왕국의 왕도는 영토 서북쪽에 위치한다. 왕도서 삼 일 정도를 진군하면 국경에 다다를 정도로 왕도가 국경에 가까웠던 것이다. 이는 마이드 제국에 맞서는 게르안 왕국의 필사적인 자 세에 있다. 해적 왕국이라 불리는 게르안 왕국은 마이드 제국과 국 경을 접하고 있기에 늘 전시 상태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게르안 왕국의 전력은 마이드 제국에게 있어 우 스울 정도로 적은 상태. 이 점을 게르안 왕국 또한 알고 있는 상태이기에 그들 은 왕도를 서북쪽으로 옮기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모든 전력을 서쪽 국경으로 집중시켜서 언제라도 마이 드 제국의 침공에 대비하는 자세를 취하는 게 그들의 대 비책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바로 왕도에 머물고 있는 칼로원 공작이 언제라도 전선에 출전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 는 것이었다. 마스터를 여러 명 보유한 마이드 제국에 비해. 한 명의 마스터밖에 없는 게르안 왕국이니 만큼 국경과 왕도의 거리를 최대한 가깝게 함으로써 마스터인 칼로윈 공작이 언제라도 전선에 합류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 놓은 것 이다. 이로 인해 게르안 왕국의 모든 전력은 서쪽에 집중되어 있었고, 소위 해적이라 불리는 해군들은 동쪽 부동항에 밀집되어 있었다. 작지만 무척 단단한 구조를 하고 있는 게르안 왕국이었 기에 여태까지 마이드 제국의 침공에 버터 낼 수 있었다. “추워지는군. 모두 옷을 두툼하게 껴입으라.” 튀니르 왕국올 거쳐 게르만 왕국으로 들어선 레닐은 날 씨가 추워지는 걸 느끼고는 명령을 내린다. 대륙에서 가장 북부에 위치한 국가가 게르안 왕국이기 에 날씨 또한무척 춥다. 마이드 제국에서는 느껴 보지 못했던 한기가 스며들 자, 레닐은 추위에 곤욕을 겪지 않도록 대비를 하게끔 하 였다. 그렇게 장장 이십여 일간의 행군 끝에 게르안 왕국의 왕도에 도착한 카르미안 왕국 사절단이었다. 왕도 앞으로 도착하자 레닐을 맞이하기 위해 나온 일단 의 무리가 있었다. 천여 명에 달하는 병사들과 백여 명이 넘어 보이는 기 사들 사이에 날카로운 눈매를 지닌 초로의 귀족이 서 있 었다. 그는 레닐을 알아보고는 다가와 인사를 하였다. "안녕하십니까, 게르안 왕국의 외무대신 메이스린 후 작입니다. 마스터인 카르미언스 공작님을 뵙게 되어 영광 입니다.” 외무대신이기에 그런 것일까? 메이스린 후작은 상당한 눈썰미를 지니고 있는 듯하 였다. 레닐을 처음 본 사람 치고 그가 대륙을 위진시키는 카 르미언스 공작이라는 것을 알아보는 사람은 드문데 말 이다. 다른 사람들은 평범하게 보이는 레닐의 모습에 이렇다 할 기세를 느끼지 못하였지만 메이스린 후작은 느낄 수 있었다. 존재감을 풍기는 다른 귀족들에 비해 너무나 평범해 보 이지만, 레닐의 외견에서 숨길 수 없이 느껴지는 위압감 을 말이다. 레닐은 자신을 알아보는 메이스린 후작의 모습에 미소 를 지으며 인사를 하였다. "반갑습니다, 메이스린 후작님. 카르미언스 공작입니 다.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남부에 비해 이곳은 상당히 춥습니다. 안으로 드시지 요. 카르미안 왕국의 사절이 온다는 이야기에 만반의 준 비를 해놓은 상태입니다广 메이스린 후작의 말이 귀족들은 그렇게 반갑게 느껴질 수 없었다. 춥다는 말에 제법 대비를 하고 왔지만, 상상했던 것보 다 훨씬 더 강한 추위에 상당한 곤욕을 겪고 있었으니 말 이다. 남들보다 편하게 온 귀족돌이 그렇게 느끼고 있는 만큼 병사들이 느끼는 추위는 훨씬 더 컸다. 레닐은 그런 메이스린 후작에게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병시들이 추위에 제법 고생을 했는데 배 려를 해 주시니 좋군요. 염치 불구하고 인사는 이쯤으로 하고 안으로 들어서겠습니다.” "그럴 겁니다. 다른 왕국보다 이곳들이 상당히 추우니 말입니다.” 메이스린 후작이 안으로 안내를 하였다. 그렇게 카르미안 왕국의 사절단이 왕도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왕도 안으로 들어선 레닐은 곧장 국왕을 만나길 원하 였다. 게르안 왕국의 볼레이노 국왕은 상당히 저평가되어 있 는 인물이었다. 아들인 카르딘 왕세자에게 정치를 총괄하게 하고 본인 은 뒤에서 지켜보기만 하고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레닐은 직감적으로 블레이노 국왕이란 인물을 결코 평범하다 생각지 않았다. 어리석은 국왕이 게르안 왕국의 국왕의 자리를 꿰차고 있었다면 결코 마이드 제국의 손에서 무사했을 리가 없다. 어떤 사람들은 칼로윈 공작이 있기에 게르안 왕국이 무 사하다고 말하지만 왕도를 서부로 옮긴 것과 오랜 앙숙이 던 튀니르 왕국과의 동맹 체결 등을 감안하면, 블레이노 국왕은 최소 중간은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레닐의 생각이 었다. 블레이노 국왕의 알현을 신청한 레닐온 속으로 계산하 고있었다. 현재 카르미안 왕국과 게르안 왕국의 관계는 수평적인 관계다. ’거기에 동맹 관계라고 하기 뭐한 것이, 카르딘 왕세자 가 장난질을 치다가 지금에 이르러서는 관계가 묘하게 틀 어져 있었다. 카르미안 왕국은 마이드 제국과 벤자이어 재국을 제외 하면 왕국들 중에서는 으뜸의 전력올 보유하고 있다. 마스터도 두 명에다가 가장 넓은 영토와 인구톨 보유하 고 있으니 말이다. 게르안 왕국으로서도 카르미안 왕국과의 관계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레닐이 블레이노 국왕을 실험한 것은 바 로 그가 국제 정세의 흐름을 어떻게 읽느냐였다. 카르딘 왕세자가 장난질을 쳤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무마가 가능한 수준이다. 알현을 불레이노 국왕에게 직접 신청한 것이기에 그가 카르딘 왕세자의 사적인 감정을 부각하며. 레닐의 알현 요청을 거절하거나 미룬다면 게르안 왕국에 미련을 두지 않을 생각이었다. 사적인 감정을 국가적 중대사에 개입하여 튕기는 미련 한 행동은 결국 두 국가 모두에게 피해를 끼칠 수 있는 사 안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레닐의 알현 요청을 받이들이면 이야기는 달라 진다. 사적인 감정을 배제하는 등. 예상보다 훨씬 뛰어난 역 량을 지녔을 것이란 레닐의 에측이 맞아떨어질 가능성도 높아지는 것이다. 두 왕국 간 외교 관계에 있어 첫 이미지를 결정할 수 있 는 사안이었기에 레닐은 왕궁에서 답이 오길 기다리고 있 었다. 카르미안 왕국 사절단은 소박하다 할 수 있는 대접을 받으며 안으로 들어선 상황이었다. 보통 왕국의 왕도라면 그 왕국의 문화와 화려함이 한데 웅집되어 있게 마련인데, 게르안 왕국의 수도는 그런 느 낌은 일체 배제된 채 군사 도시 같은 느낌을 주고 있었다. 분위기는 삭막하다 못해 저도 모르게 군기가 들 정도 였다. 왕궁으로 들어선 지 얼마나 지났을까. 모든 귀족들이 편안하게 여장을 풀고 휴식을 취할 무 렵. 레닐의 말을 전하기 위해 달려갔던 시종장이 레닐읕 찾았다. 그는 레닐에게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한다. "국왕 전하께서 공작님의 알현을 승낙하셨습니다.” 레닐의 입가에 슬쩍 미소가 걸린다. 역시 블레이노 국왕은 우둔한 인물이 아니었다. 쓸데없는 힘 소모는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기에 레닐 은 기분이 좋았다. ‘ "수고하셨소. 언제쯤 국왕 전하틀 알현하실 수 있겠소 이 까?" "공작님이 가능하시다면 지금 바로 뵙자고 하셨습니 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지금 바로 말이오?" 레닐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설마 블레이노 국왕이 곧장 만나자고 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자신의 예상을 뛰어넘는 행동이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계산이 깔려 있을 확률이 높았다. ‘과연, 외부로 드러내지 않고 은연중 실력 발휘를 하는 인물이란 말인가. 응해 주지.’ 속으로 미소를 지은 레닐이 시종장을 바라보며 대답 한다. "바로 가도록 하겠소. 그대를 따라가면 되는 것이오?" "공작님이 괜찮다 하시면 저보고 안내를 하라고 하셨 습니다. 저를 따라오시지요.” 그 말과 함께 고개를 숙인 시종장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알겠소.” 레닐이 그 뒤를 따랐다. 레닐과 블레이노 국왕과의 만남은 비밀리에 이루어 졌다. 딱히 비공개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일체 주변에 알리지 않은 채 곧장 이루어졌기에 비밀리에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던 것이다. 시종장의 뒤를 따라 왕궁 안으로 들어선 레닐은 대전 문 앞에 도착하였다. 뭐랄까, 왕궁으로 삼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상당 히 소박한 규모였다. 시종장이 대전 안을 향해 고했다. "전하, 카르미언스 공작님을 모셔 왔습니다.” 그 외침에 안에서 블레이노 국왕으로 추측되는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셔 오라.” “드시지요.” 블레이노 국왕의 대답이 들리자 시종장이 레닐을 보며 말한다. 고개를 끄덕인 레닐은 대전 문이 열리기 시작하자 안으 로 들어갔다. 대전 안으로 들어간 레닐은 자신을 노려보는 시선을 느 낄 수 있었다. 그것을 향해 시선을 옮기니 카르딘 왕세자가 날카로운 눈으로 레닐읕 노려보고 있었다. 아직도 그때의 앙금이 풀리지 않은 탓이리라. 하기야 타국의 귀족들 사이에서 그렇게 망신올 당했으 니 쉽게 앙금을 푸는 것이 이상할 것이다. 망신을 준 것은 레닐이고 망신을 당한 것은 카르딘 왕 세자였지만 두 사람 모두 풀어낸 것이 아니었다. 아니, 레닐은 풀고 자시고도 없었다. 아이실라가 말리지 않았더라면 평생을 두고 간직할 망 신을 안겨다 주었을 테니 말이다. ‘훗!’ 자신올 노려보는 카르딘 왕세자가 너무나 우스워서 레 닐은 입 꼬리 한쪽을 말아 올렸다. 블레이노 국왕과 칼로윈 공작의 위세를 믿고 천둥벌거 숭이처럼 날뛰는 꼴이라니. 참 우스웠다. “…큭!” 자신을 보고 비웃는 레닐의 모습을 확인한 카르딘 왕세 자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홀러나왔다. 블레이노 국왕이 없었다면 당장이라도 뭐라 외칠 듯한 모습이었다. 레닐은 카르딘 왕세자에게서 신경을 껐다. 지금 그가 집중해야 할 상대는 블레이노 국왕이었다. 자연스럽게 그의 시선이 블레이노 국왕에게 향했다. 게르안 왕국의 지배자 블레이노 국왕의 모습이 레닐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레닐은 나직이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역시.’ 레닐은 자신의 예상이 맞았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 었다. 블레이노 국왕은 육십에 근접해 가는 나이임에도 불구 하고 건장한 체격을 자랑하는 인물이었다. 부리부리한 눈썹은 기가 약한 사람들을 억누르기에 부 족함이 없었다. 게다가 전신에서 은은하게 뿜어져 나오는 카리스마는 다른 사람에게 눌릴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 주고 있었다. 그에게 다가간 레닐이 살짝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 였다. "알현 요청을 받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카르미안 왕국 의 카르미언스 공작입니다.” 무심한 눈으로 레닐읕 바라보던 블레이노 국왕이 입을 열었다. "게르안 왕국을 다스리고 있는 블레이노 국왕이오. 만 나서 반갑소, 카르미언스 공작.” 블레이노 국왕의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적장은 마나가 내포된 음성이었다. 그 흐름은 레닐에게 그대로 전해져 왔다. 결코 만만치 않은 양의 마나였다. 레닐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블레이노 국왕은 놀랍게도 오러 나이트에 오른 검사였 던 것이다. 하지만 오러 나이트라 하여 결코 마스터에 대적할 수 있는 경지는 아니었다. 피식 웃음을 지은 레닐이 가볍게 손을 내젓자 블레이노 국왕의 기운과 충돌해 나간다. 파사사사! 가벼운 레닐의 손짓에 가루처럼 흩어지는 블레이노 국 왕의 기세였다. 그 모습올 보면서 블레이노 국왕이 눈을 빛냈다. "호오"….; 자신의 기세률 이렇게 쉽게 받아 내다니. 과연 마스터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태까지 자신의 기운을 받아 낸 인물은 칼로원 공작이 유일했다. 블레이노 국왕은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칼로 원 공작의 제자인 아드모카 후작과 대등한 실력을 지닌 실력자였다. 여태까지 국정을 카르딘 왕세자에게 일임했던 것은 본 인의 수련을 위해서였으니 말이다. 본인 스스로의 몸을 지켜낼 수 있는무력과 본질을 꿰 뚫어 보는 직관력을 지닌 블레이노 국왕은 게르안 왕국의 보이지 않는 진정한 실권자였다. "과연! 대륙에 그 명성을 떨칠 만한 실력자오. 공의 실 력이 워낙 대단하다기에 잠시 시험을 해 본 것이니 너무 기분 나빠하지 말아주시구려.” 레닐은 피식 웃음올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기분이 그리 나쁘지는 않습니다. 다만 국왕 전하의 실 력이 놀랍군요" “후후후! 그래 보았자 카르미언스 공작에 비하면 어린 아이 장난 수준 아니겠소? 그대의 칭찬은 늘 겸양을 가지 려는 짐올 오만하게 만들 수 있으니 자제해 주길 바라오" 블레이노 국왕의 실력에 대해 레닐이 놀리움을 표하자 웃음을 지으며 한 말이었다. 레닐은 블레이노 국왕이 대단한 인물이라는 것올 인정 할 수밖에 없었다. 바쁜 집무로 하루하루를 보내야 할 그가 검술로서 이 정 도의 경지에 이르렀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 었다. 블레이노 국왕도 레닐의 첫인상이 나보지 않은 듯하 였다. 카르딘 왕세자가 형편없이 깨지고 돌아왔다는 말에 기분이 무척 나쁘기는 하였지만 결국 잘못을 한 것은 그 였다. 그가 본 레닐이란 인물은 사궐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친분을 쌓으면 더없이 든든한 아군이 될 것이며, 악연 을 쌓으면 상상하기조차 두려운 적이 될 인물. 그것이 바로 레닐이란 인물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검을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친근감 이 들었다. 높은 경지에 올라갈수록 자신보다 높은 경지에 도달한 검사에 대한 존경심은 존재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당장 검술을 수련하고 있는 블레이노 국왕은 장인어른 이기도 한 칼로윈 공작을 존경하고 있었다. 그가 이록한 경지는 평생을 가도 이룰 수 있을지 요원 한 절대의 경지였기에 그렇다. 블레이노 국왕이 레닐을 보며 밀한다. "아드모카 후작을 기세만으로 제압했다고 하던데 언제 한번 그 실력을 견식하고 싶소. 기회가 되면 부탁을 해도 되겠소?’ 아드모카 후작이 들었으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블레이노 국왕이 근래 들어 가장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바로 레닐이 기세만으로 아드모카 후작을 제압했다는 소문이었다. 오러 나이트이면서 숙련된 경지에 도달한 블레이노 국 왕은 아드모카 후작과 대등한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만큼 아드모카 후작이 어느 정도의 무위를 지니고 있 는지 잘 알고 있는데, 그가 레닐에게 손조차 써 보지 못한 채 무너졌다 하니 불레이노 국왕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였다. 레닐은 호기심으로 일렁이는 블레이노 국왕의 눈을 바 라보다가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실력을 보이는 것이야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국왕 전하는 게르안 왕국의 지배자가 아니겠습니까? 아무래도 어려울 듯싶습니다만.” 제아무리 블레이노 국왕이 검사로서 승부욕이 왕성하 다 하나 통용되는 것이 있고, 되지 않는 것이 있는 법이다. 한 나라의 국왕인 그와 대결을 하다가 무슨 일이 벌어 질지 짐작하기 힘든 상황에서 그에게 자신의 실력을 선보 이는 것은 미친 짓이나 다름없다. "큼! 그것도 그렇군. 그렇다면 근위 기사들은 어떻소? 마스터와의 대련이라면 그들 또한 감사하게 응할 터. 짐 이 안 된다면 그들과의 대련이라도 주선하고 싶은데 말 이오." 레닐의 실력을 보고 싶어서 몸이 달아오른 블레이노 국 왕이었다. 상식상 레닐이 아무리 마스터라고 하나, 단지 기세만으 로 아드모카 후작을 제압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오러 나이트에 오르게 되면 마스터가 발산하는 특유의 기세를 능히 막아낼 수 있었다. 때문에 블레이노 국왕은 레닐에게 무언가 다른 특수한 비법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였고, 당연히 그게 무엇인지 궁금했다. 마스터인 칼로원 공작조차 기세만으로 아드모카 후작 을 제압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레닐이 어떠한 수법을 사용하는지 자신의 두 눈으로 직 접 보고 싶었다. "죄송하오나 제가 게르안 왕국올 방문한 이유가 그것 이 아니지 않겠습니까?" 거듭되는 제안에 레닐은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면서 자 신이 찾아온 목적을 꺼내 들었다. 현재 레닐은 게르안 왕국과 동맹을 체결하러 온 것이 지, 검술 실력을 보이기 위해 방문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 레닐의 말에 블레이노 국왕은 눈을 번뜩이며 말 한다. "그럼 이건 어떻소. 동맹 관계를 체결할 테니 공이 짐 이나 근위 기사들과 대련을 해 주는 것이오. 동맹 관계인 데 그 정도도 어렵소이까?" 레닐의 실력을 보기 위해 몸이 달아오를 만큼 오른 것 인가. 급기야 레닐의 실력을 보기 위해 동맹 관계 체결을 조 건으로 내세우려는 블레이노 국왕이었다. 어이가 없을 정도로 화끈하게도 순식간에 결정을 내려 버리자 카르딘 왕세자가 황급하게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 었다. "국왕 전하! 동맹은 국가의 중대사입니다. 어찌 그리 쉽게 정하시려 하십니까.” 그는 블레이노 국왕이 레닐과 친하게 지내는 것이 못마 땅하였다. 자신이 저 녀석에게 당한 사정올 알고도 어찌 이런 모 습을 보일 수 있단 말인가. 세상의 이치가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만큼. 레닐에게 친근한 모습올 보이는 블레이노 국왕의 모습이 거북한 카르딘 왕세자였다. 시종일관 레닐에게 머무르고 있던 붙레이노 국왕의 눈 동자가 카르딘 왕세자에게 향한다. 그와 시선올 마주치자 카르딘 왕세자는 순간 움찔했다. 블레이노 국왕에게 서린 기세가 범접하기 힘들 정도로 강렬했던 것이다. 그가 입을 열었다. “그럼 뭐 어쩌려고?" 갑자기 이게 무슨 말이란 말인가. 카르딘 왕세자가 의문올 표하며 물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동맹을 하지 않으면 어쩔 거냐는 말이다. 언제까지나 이 상태로 마이드 제국의 위협에서 버텨 낼 수 있을 것이 라 생각하느냐?" 장황한 설명 따위는 필요 없었다. 당장의 현실을 지적 하며 묻는 블레이노 국왕의 말에 카르딘 왕세자는 할 말 을 잃었다. ‘지금까지 잘 버텨 왔으니 괜찮다!’ 라고 말하기에는 게 르안 왕국의 사정이 너무나 좋지 않았다. 수도를 극서 지방으로 옮기면서 게르안 왕국은 언제 나 마이드 제국의 침공에 대응할 수 있도록 늘 준비를 해 왔다. 하지만 그것은 만만치 않은 부작용을 낳았다. 바로 늘 전시 태세를 갖춰야만 했던 것이다. 때문에 감당하기 힘든 높은 액수의 군자금을 매번 소모 해야 했고, 무엇보다 힘든 점은 그로 인해 군자금올 충당 하고자 해군을 노략질로 돌려서 해적 왕국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써야만 했다는 것이다. 그 이전에도 게르안 왕국의 해적은 유명했지만 왕국 자 체적으로 해적을 지원하는 경우는 없었다. 오히려 왕국의 암적인 존재로서 토벌 대상에 속해 있 었다. 그런데 군자금 충당을 위해서 게르안 왕국은 해군을 노 략질로 활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로 인해 토벌 대상이던 해적들올 회유하고 그들을 길 잡이로 하여 마이드 제국올 약탈하기 시작하였다. 게르안 왕국이 해적 왕국이라 불리게 된 이유였다. 마이드 제국뿐만 아니라 이따금 남쪽으로 내려가 벤자 이어 제국의 해적선을 약탈하기도 하는 게르안 왕국은 그 야말로 국운을 건 채 해적들을 운용하고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왕도를 서쪽으로 옮긴 탓에 동부 영지들에 대한 통제력 이 약화되어, 근래 들어서는 동부 귀족들이 하나의 파벌 을 형성하여 정계에 진입하려고 하고 있었다. 마이드 제국의 영토는 게르안 왕국의 열 배에 다다를 만큼 큰 제국이다. 그런 국가의 위협에서 언제나 버털 수 있으리란 보장이 없다. 아니. 되레 그들의 위협에서 벗어나려다가 자칫 게르안 왕국 내부에서부터 무너질지도 모르는 상황이 현재 그들 이 처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이니 카르미안 왕국의 제안은 게르안 왕국에 게 있어 마른하늘의 단비와도 같은 존재다. 단순하게 산술적인 계산으로만 따진다면 카르미안 왕 국은 게르안 왕국의 두 배 이상의 국력을 보유한 강대국 이다. 어디 그것뿐인가! 근래 들어 벤자이어 제을올 디반 왕국에서 몰아냄으로 써 국제 정세에서도 두 제국의 위협에서 구해 줄 국가로 떠오르고 있는 실정이었다. 두 명의 마스터와 십만에 달하는 정규군. 제국에 비하면 부족하지만, 십 년 후 마스터 중에서 최 강의 반열에 오를 것으로 평가되는 레닐과 제국의 마스터 와 비교해도 그 명성이 부족하지 않은 네이미언 대공의 존재감은 북부의 마이드 제국과 남부의 벤자이어 제국에 게 거슬리는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카르미안 왕국이 두 제국에 비해 부족한 것은 보유한 기사와 병사 들의 숫자뿐이다. 그걸 타 왕국에서 보조할 수만 있다면? 제국의 위협에 버려 낼 수 있는 거대 왕국 연합체가 완 성되는 셈이다. 블레이노 국왕이 부리부리한 눈으로 카르딘 왕세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 녀석이 카르미언스 공작에게 안 좋은 감정을 가지 고 있다는 것을 내가 모를 것 같으냐? 멍청한 녀석! 네 녀 석에게 왕국의 정권을 맡긴 것은 네 녀석이 비록 여성 편 력이 심하지만 능력 하나만큼은 인정하고 있었기에 그런 것이다. 그런데 카르미안 왕국의 제안을 거절해? 네 녀석 의 사적인 감정이 적용하여 왕국이 얻을 수 있는 이득을 놓쳐 놓고 지금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이더냐?" 신랄하게 카르딘 왕세자를 꾸짖는 블레이노 국왕이었다. 그가 말하는 카르미안 왕국의 제안은 디반 왕국의 일을 말하는 것이다. 당시 루이드 국왕은 게르만 왕국에게 해군을 이용하여 벤자이어 제국의 뒤를 끊어 달라고 한 적이 있다. 그 당시 카르딘 왕세자는 자신의 권한을 십분 발휘하여 그 제안을 거절하였다. 카르미안 왕국이 벤자이어 제국을 몰아낼 때 식량을 수 송하던 수송선을 약탈하기만 해도 엄청난 양의 식량을 확 보할 수 있는 기회였는데 말이다. 그걸 안 블레이노 국왕은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제안을 거절하여 막대한 이득을 놓쳤을 뿐만 아니라 카 르미안 왕국과의 관계도 이상하게 되어 버렸으니 속이 터 질 만하다. 블레이노 국왕은 냉정하면서 한편으로는 뜨겁게 타오 르는 열정을 지닌 인물이다. 젊은 시절올 오로지 마이드 제국의 위협에서 벗어날 궁 리를 하던 그는 카르미안 왕국의 제안이 기회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이드 제국에게 가로막혀 있는 상태이기에 더 이상 국 력을 강화시키거나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마이드 제국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바 다를 장악하고 있는 해군을 활용하여 막대한 무역 이익을 챙길 수 있다. 지금은 여유가 없어 불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카르미 안 왕국의 힘을 등에 업을 수만 있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 니었다. 그랬기에 블레이노 국왕은 처음부터 카르미안 왕국의 동맹 제안을 받아들일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그것은 그러니까……" 블레이노 국왕의 호통에 카르딘 왕세자의 얼굴이 붉어 졌다. 그는 눈앞에 레닐이 있는데 자신을 이렇게 깔아뭉개는 블레이노 국왕이 원망스러웠다. 자신 또한 사적인 감정이 작용하여 일을 망쳤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만큼 레닐이 싫다는 자신의 감정을 표 출한 것이기도 하다. 그걸 블레이노 국왕이 모를 리 없지 않은가. 그런데 자 신에게 호통올 치니. 그는 섭섭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짙은 모욕감을 느껴야만 했다. "남자는 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네 녀석이 게르안 왕국의 왕세자라고 하나 카르미언스 공 작은 카르미안 왕국의 영웅이자 왕국 연합을 주도할 인물 이다. 너는 네 약혼녀에게 다른 남자가 치근대는 모습을 그냥 지켜볼 수 있겠느냐? 너에게 남을 짓누를 수 있는 강력한 힘이 있는데?" 카르딘 왕세자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지금 블레이노 국왕은 자신이 했던 행동을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라고 하고 있던 것이다. 그 말을 들은 그는 입술을 질겅질겅 씹었다. 그러고는 이내 후! 하는 소리와 함께 고개를 숙이는 수 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경솔했습니다.” "알면 됐다. 그래서 내가 너에게 아직 국왕의 자리를 물려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자숙하도록 하여라.” 고개 숙여 사과하는 카르딘 왕세자를 보며 매몰차게 시 선을 옮기는 블레이노 국왕이었다. 그는 카르딘 왕세자가 머리로는 이해하나 가슴이 이해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젊은 혈기가 문제지. 쯧쯧, 늘 자신이 뛰어나다고 생 각해 왔기에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을 받아들이는 공간이 없어진 게야.’ 이는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인 걸 알지만 씁쓸한 건 어 쩔 수 없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블레이노 국왕이 레닐을 바라보 며 입을 열었다. “가볍게 말한 것 같지만 본 왕국은 카르미안 왕국의 동 맹 제안올 절대적으로 지지하는 바이오. 귀국에 카르미언 스 공작을 청한 것은 저 녀석의 무례함을 사과하고자 하 는 마음도 있었고, 평소 홈모하던 카르미언스 공작을 만 나 보기 위한 마음도 있어서 그런 것이오. 짐의 마음을 이 해해 주셨으면 좋겠소.” "국왕 전하의 마음을 이해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동맹 제안을 승낙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본국의 국왕 전하도 기뻐하실 겁니다.” 레닐은 블레이노 국왕의 수락이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자신 앞에서 사정없이 짓뭉개진 카르딘 왕세자가 걸렸 던 것이다. 이미 이런 상황을 수차례 겪어 본 레닐이었다. 이번 일이 결단코 쉬이 넘어갈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저렇게 일을 처리해서는 안 될 터인데. 조만간 일이 한번 터질 수도 있겠군.’ 고개를 숙인 카르딘 왕세자의 눈빛이 번뜩이는 것을 본 레닐은 내심 어느 정도 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블레이노 국왕이 있기에 걱정은 없었지만 저런 눈빛을 한 사람은 반드시 경계를 해야 한다. 아니나 다틀까. 고개를 숙이고 있는 카르딘 왕세자는 속으로 칼날을 갈고 있었다. 블레이노 국왕은 레닐을 좋게 본 듯하지만 아직 자신에 게는한수가 남아있다. '두고 보자, 아직 나에게는 믿는 수가 있다.’ 쉽게 물러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이를 갈고 있는 카르 딘 왕세자였다. 두 왕국간의 동맹 채결은 싱거울 정도로 쉽게 성사되 었다. 레닐과 블레이노 국왕 모두 만족스러운 만남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카르딘 왕세자로 인하여 아직 상황은 완전히 끝 을 맺었다고 보기 힘들었다. 제3장 칼로원공작 레닐과 블레이노 국왕이 비공식적으로 만나 구두로 동 맹을 성사시켰다고는 하나 아직 공식 절차가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첫만남 이후 블레이노 국왕은 카르미안 왕국의 사절단 을 성대하게 맞이하면서 호감을 보였고, 호의적인 모습으 로 카르미안 왕국의 귀족들을 대했다. 그런 가운데 블레이노 국왕은 레닐읕 가까이하며 그와 이야기 나누기틀 즐기고는 하였다. 높은 경지에 도달한 만큼 레닐과의 대화는 알게 모르게 상당한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레닐 또한 블레이노 국왕이 상당히 호탕한 인물이라는 것을 깨달았기에 그와 가까이하여 친근함 표하기를 꺼리 지 않았다. 블레이노 국왕 같은 인물은 가까이 하면 복이 되었으 면 되었지 결코 해가 될 인물은 아니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블레이노 국왕은 호시탐탐 레닐의 실력을 보고자 하였다. 하지만 레닐은 그런 블레이노 국왕의 꼬임에 넘어가지 않았다. 딱히 실력을 비밀로 하고 싶은 게 아니라. 굳이 자신의 실력을 드러내 보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그러던 가운데 레닐의 마음에 석연찮은 점이 하나 있 었다. 자신이 정중히 거절을 하며 다음 기회에 실력을 보이겠 다고 말할 때마다 블레이노 국왕이 묘한 표정을 짓는 것 이 아닌가? 레닐은 그가 왜 그런 표정을 짓는지 궁금하였지만 굳이 입을 열어 묻지 않았다. 하지만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다 문득 레닐은 자신이 무언가를 잊고 있었다는 사 실을 뒤늦게 깨닫고는 조심스럽게 블레이노 국왕에게 물 었다. "그러고 보니 칼로윈 공작님께서 모습을 보이지 않으 시는데,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게르안 왕국의 마스터인 칼로원 공작이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던 것이다. 그가 왕도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블레이노 국왕 이 주최한 파티에서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의문을 느낀 레닐이 물었다. 그 말에 블레이노 국왕이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하하! 장인어른께서는 한창 수련에 빠져 계시지. 카르 미언스 공작도 알고 있지 않은가. 게르안 왕국의 지리적 여건을.” 요 며칠 사이 제법 친해졌기에 레닐에게 살짝 말을 놓 고 있는 블레이노 국왕이었다. 그의 말에 레닐이 고개를 끄덕인다. 현재 마이드 제국과 국경읕 접하고 있는 국가는 튀니르 왕국과 게르안 왕국이다. 두 국가는 마이드 제국과 직접적으로 국경을 맞대고 있 기에 늘 긴장을 한 채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두 국가에 소속된 마스터는 항상 칼날을 벼려 놓아야 하는 상황에 있었다. 공식적으로 두 명의 마스터를 보유하고 있는 마이드 제 국의 마스터들은 대륙에서 최강 반열로 인정받고 있기에 그렇다. 마스터 간의 대결 향방은 그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것 과 같았기에 게르안 왕국의 칼로윈 공작은 모든 외부 활 동들 그만둔 채 수련에 몰두하고 있었다. 외부 활동을 하다가는 수련에 몰두할 시간이 부족해질 수 밖에 없을 것이고, 수련이 부족해지면 제국의 마스터에 게 패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알고는 있습니다만, 조금 의외군요. 저 같았으면 호 기심 때문에라도 한 번쯤은 모습을 드러냈을 텐데 말입 니다.” "후후! 중요한 고지에 임박해 있을 수도 있지. 너무 섭 섭해 하지 말게나.” “섭섭하지는 않습니다만.” 레닐이 칼로윈 공작을 찾은 것은 그가 카르딘 왕세자의 외할아버지이기에 그렇다. 외부 활동을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전시 상태인 게르안 왕국에 있어 칼로윈 공작의 위치는 실로 대단할 것이 틀 림없다. 그런 그에게 카르딘 왕세자가 충동질을 한다면? 자칫 오해를 안은 채 칼부림을 펼칠지도 모르는 일이 었다. 칼로원 공작에게 패배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대결 을 하게 되면 둘 중 하나는 패배 선언을 해야만 끝이 날 것이다. 마스터의 자존심상 칼로원 공작은 자신이 오해하고 있 다는 것올 인정하려 들지 않을 확틀이 높았고, 자신에게 검을 겨누는 자에게 손속에 인정을 베푸는 것은 레닐의 성미에 맞지 않았으니 말이다. "공작이 보고 싶다면 장인어른에게 말을 넣어 보도록 하지. 어떤가?" 블레이노 국왕이 은근한 어조로 레닐에게 묻는다. 두 사람이 만나는 장면을 보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 말에 레닐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저 궁금했올 뿐이지, 딱히 칼로윈 공작올 보고 싶다 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아닙니다. 그냥 이대로 있는 것이 좋을 것 같군요.” "그런가? 아쉽구만.” 웬일인지 블레이노 국왕은 더 말을 잇지 않은 채 순순 히 물러선다. 하지만 그의 눈은 빛나고 있었다. 입가에 맺힌 미소도 의미심장하여 무언가를 꾸미고 있 는 듯했다. 레닐은 그것이 거슬렸지만 개의치 않고 넘어갔다. 어차피 며칠 후면 카르미안 왕국으로 돌아갈 것이기에. 그러나 그 며칠 안에 일은 터지고 말았다. 블레이노 국왕에게 깨진 직후 카르딘 왕세자는 왕궁을 벗어나 마차에 탄 채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그가 향한 곳은 왕궁과 멀지 않으면서 왕도 외곽에 자 리한 거대한 저택이었다. 살고 있는 사람의 권력이 대단한 듯, 저택의 규모는 왕 궁을 방불케 할 정도로 크고 옹장하였다. 저택 안으로 들어선 카르딘 왕세자는 곧장 방문첩을 내 밀어 저택 주인에게 자신의 방문을 알렸다. 일국의 왕세자가 방문한 만큼 저택에서 나온 인물들은 정중한 태도로 카르딘 왕세자를 맞이하였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저택의 주인과 만날 수 있었다. 카르딘 왕세자가 안내된 곳은 집무실이 아닌 수련을 하 는 연무장이었다. 기사의 안내에 따라 연무장에 도착한 카르딘 왕세자는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연무장 전체를 뒤덮는 강렬한 존재감이 그의 발목을 붙 잡은 것이다. 발걸음을 멈춘 카르딘 왕세자의 시선 끝에는 한 사람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 미터에 근접한 거대한 덩치를 지닌 반백의 금발을 지닌 장년인이었다. 장년인은 가벼운 복장에 최소한의 갑옷만 입은 채 수련 을 하고 있었는데. 옷이 터질 듯이 꿈를거리는 근육 때문 인지 그 모습은 실로 역동적이었다. 파아아앗! 느릿하게 검올 휘두르던 장년인의 검이 거센 폭풍을 동 반하며 휘둘러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카르딘 왕세자는 자신도 모르게 압 도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강렬한 존재감과 강렬한기세. 이 세상 누구도 이 사람을 능가할 수 없으리란 강한 확 신이 들었다. '분명 할아버지라면 가능할 것이다. 오만하기 그지없 는 카르미언스 공작올 누룰 수 있는 인물은 할아버지밖에 없다.’ 일국의 왕세자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률 연무장에 세 워 놓은 채 묵묵히 자신만의 검을 수련하는 인물! 그의 정체는 다름 아닌 게르안 왕국의 마스터, 칼로윈 공작이었다. 나이가 팔십이 넘은 칼로윈 공작은 이제 갓 오십을 넘 긴 듯한 외모와 함께 얼마나 수련을 했는지 짐작하기조차 힘든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는 인물이었다. 약 삼십여 분을 기다리자, 검을 휘두르던 칼로윈 공작 이 움직이던 검을 멈춘다. 그러고는 검을 검집에 꽂아 넣으면서 감았던 눈을 뜬다. "후우, 이것이 누구냐. 카르딘이 아니더냐.” "할아버님을 뵙니다.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카르딘 왕세자의 공손한 인사에 칼로윈 공작이 미소를 지었다. "후후후! 나야 건강을 빼면 시체지 않느냐. 그래. 갑자 기 무슨 일이더냐.” 일국의 공작이자 기사들의 자존심인 칼로윈 공작이지 만 그는 허례허식 없는 모습으로 무척 유명하였다. 삶의 나날이 수련으로 점철된 만큼 그는 모든 대화를 용건만 간단히 하는데 집중되어 있었다. 그 모습이 익숙한 카르딘 왕세자는 칼로윈 공작의 물음 에 답했다. "꽤 오랫동안 할아버님을 뵙지 못한 것 같아 인사차 들 렀습니다.” “ "후후, 그렇구나. 우리 귀염둥이가 이 할아버지톨 생각 할 줄도 알고 좋구나. 하하하!” 기분이 좋은 듯 호탕한 옷음을 터뜨리는 칼로원 공작이 었다. 그런 칼로원 공작을 바라보며 웃음을 짓던 카르딘 왕세 자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꺼내야 했다. "할아버님. 혹시 카르미안 왕국의 마스터인 카르미언 스 공작이 방문하신 것을 알고 계십니까?" "카르미언스 공작? 아, 마이드 제국에게서 마스터 렌이 라는 칭호를 받은 녀석을 말하는 것이더냐?" 고개를 갸웃하던 칼로윈 공작이 카르딘 왕세자가 누구 를 말하는 것인지 알아차린 듯 대답한다. 마치 레닐을 애송이 취급하듯 대답하는 그의 모습에 카 르딘 왕세자는 나직이 감탄한다. 칼로윈 공작이 아니면 누구도 레닐을 저렇게 칭하지 못 하리라. "예, 맞습니다. 마스터 렌이라 불리는 카르미언스 공작 이 왕궁에 찾아왔습니다.” "그랬군. 나는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수련을 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말이지. 그래. 그 녀석이 왜 본국올 찾아온 것이지?" "동맹 건 때문에 찾아왔다고 하더군요.” "동맹이라? 카르미안 왕국과 본국은 멀리 떨어져 있는 데 굳이 동맹을 맺을 필요가 있던가?" 동맹의 필요성에 대해 칼로원 공작이 의문을 표하자 카 르딘 왕세자의 눈이 빛난다. 이런 반응올 기대하고 있던 것이다. “그렇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만…… 국왕 전하의 생각이 워낙 확고한지라…… 게다가 카르미언스 공작은 검술 못지않게 유명한 것이 잘 돌아가는 두뇌입 니다. 아무래도 국왕 전하는 카르미언스 공작의 화술에 휘말려 카르미안 왕국과 정식 동맹올 맺으려고 하고 있 습니다.” “국왕 전하를 화술로 현혹했다고? 대단하군. 어린 나 이에 마스터에 오른 것도 모자라 그런 말 재주까지 지니 고 있다니. 요즘 애들은 뭐 이리 뛰어난지 모르겠구나. 쯧쯧!” 혀를 차는 칼로원 공작이었다. 그만큼 레닐을 인정하고 있기도 하다는 뜻이었다. 그 모습에 카르딘 왕세자가 쐐기를 박아 넣었다. 레닐 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이 생겨날 순간에 그와의 좋지 않 은 이야기를 심어 주면 되는 것이다. “카르미안 왕국과의 동맹은 나쁘지 않지만 카르미언스 공작은 마땅히 경계해야 할 인물입니다. 어린 나이에 뛰 어난 실력을 지녔다고 하여 저를 사정없이 깔아뭉갠 인물 이기 때문입니다.” 카르딘 왕세자의 의도는 정확히 적중했다. 그를 끔찍이 아끼는 칼로윈 공작이었기에 손주를 깔아 뭉겠다는 이야기에 그가 눈을 부릅뜬 것이다. "레닐이란 녀석이 너를 깔아 뭉겠다고?이런 쳐 죽일 녀 석이 있나.” "할아버님께서 조금 도와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동맹 건이야 이미 승낙읕 해 놓았지만 카르미언스 공작은 기를 죽여 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할아버님이라면 충분히 가능 합니다.“ "나라면 가능하지. 실력에 비해 소문만 요란한 녀석들 과는 차원이 다르니까. 흐음. 어찌한다.” 고민에 잠기는 칼로윈 공작이었다. 레닐을 혼내 준다고 하여도 카르미안 왕국 녀석들이 가 만히 있올 리 없다. 그에 카르딘 왕세자가 넌지시 말한다. “비공식적으로 혼내 주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렇게 하 면 카르미안 왕국도 공식적인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 입니다.” 비공식적으로 하여도 일국의 왕세자인 자신은 충분히 참관이 가능하다. 그 말은 즉, 레닐에게 문제 삼을 여지를 주지 않으면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 말에 칼로윈 공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카르딘 네 말대로 해 주마. 당장 왕궁으로 가 야겠구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우리 손주에게 무례 를 범한 녀석의 얼굴을 직접 봐야겠다.” "살살해 주셔야 합니다, 할아버님.” 칼로원 공작을 만류하는 카르딘 왕세자의 얼굴에는 미 소가 떠올라 있었다. 계획대로 칼로윈 공작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제 래닐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지는 모습만 보면 된다. 카르딘 왕세자의 마음이 든든해졌다. 준비를 하겠다고 한 뒤 저택 안으로 들어선 칼로윈 공 작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혀를 찼다. “에잉, 쯧풋! 예쁜 손주이긴, 손주인데 어찌 저리도 보 는 시야가 좁을꼬.” 방금 전까지만 해도 카르딘 왕세자의 말에 화를 내며 격한 반응을 보이던 칼로윈 공작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말을 할 때 모른다고 했지만 어찌 그가 모를 수 있겠 는가. 왕도 곳곳에 그의 눈과 귀가 깔려 있는데 카르미안 왕 국의 사절단이 왔다는 걸 모를 리 있단 말인가. 저택 안으로 들어서는 칼로윈 공작의 입가에 살짝 미소 가 떠올랐다. “그래도 다행인가? 카르딘 녀석 때문에 왕궁으로 들어 갈 핑계가 생겼으니.후후후!” 칼로윈 공작은 카르딘 왕세자의 모든 속셈을 꿰뚫어 보 고 있었다. 연륜이라는 것은 단순히 나이가 많다는 걸 의미하는 것 이 아니었다. 특히나 칼로원 공작 같은 인물들은 검으로 보이는 모습 이 단순하게 보일지 모르나 그 의중에는 상대방의 속셈을 꿰뚤어 보는 직관력올 지니고 있었다. 대륙올 위진시키는 레닐이란 이름을 들어 본 칼로윈 공 작은 그를 만나 보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은 수련이란 명목 하에 대외적인 활동을 최 대한 자제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한 와중에 레닐을 만나겠다고 집중하던 수련올 그 만둔 채 왕궁 안으로 들어가기란 모양새가 상당히 이상 했다. 뭐랄까 자신의 말을 스스로 어기는 느낌? 게다가 자신이 선배인데 레닐올 보러 간다는 것 자체가 모양새도 별로 나지 않고 말이다. 물론 카르딘 왕세자의 부탁으로 입궁하는 것도 조금 밋밋한 구실이지만 자신의 말을 스스로 깨는 것보다 나 았다. 뭐라 하건 간에 자신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연기만 하 면 되니 말이다. “이참에 카르딘 녀석도 정신을 차려야겠지." 카르딘 왕세자가 여성 편력이 심하다는 사실을 이미 알 고 있었다. 칼로윈 공작은 이 기회를 빌려 카르딘 왕세자의 여성 편력을 고쳐 줄 생각이었다. 자고로 남자가 인생에 있어 가장 큰 오점으로 남는 것 이 여자 문제였으니 쓴 맛을 더 보기 전에 확실하게 고쳐 줄 생각이었다. 안 그러다가는 자칫 더 큰 파문에 휩싸일 수 있으니 말 이다. "그나저나 제국의 마스터와도 대등하게 겨루었다는 카 르미언스 공작의 실력은 어떠하려나. 무척 궁금하군, 후 후후!” 칼로윈 공작이 왕궁으로 향하는 진정한 이유. 그것은 레닐의 실력을 보기 위함이었다. 완벽하게 칼로윈 공작을 속였다고 생각하는 카르딘 왕 세자의 입장에서 보면 조금 애석하겠지만 말이다. 레닐은 매일같이 블레이노 국왕과 만남을 갖는다. 동맹 건이 정식으로 체결되었으니. 게르안 왕국과 카르 미안 왕국의 사이를 이어 주는 레닐과 친분을 쌓는다는 명목으로 만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검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에 바 빴다. 블레이노 국왕은 근래 들어 실력 중진에 있어 벽을 만 난 상태였다. 더 이상 검술 수련으로는 실력이 발전될 수 없는 지경 에 이른 것이다. 그 벽을 만난 지 제법 시간이 홀렀기에 블레이노 국왕 은 몸이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상태였다. 칼로원 공작을 불러 대화를 나눠 보기도 했지만 결국 해답은 찾지 못했다. 뭐랄까, 방향이 약간 틀린 감이 없지 않아 있어서 자신 과는 맞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기에 그렇다. 그러나 레닐과의 대화는 달랐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블레이노 국왕은 막연하게 느 껴졌던 자신의 벽이 서서히 엷어지는 것을 느꼈다. 칼로윈 공작의 깨달음은 한마디로 줄이면 무지막지하 다고 할 수 있읕 정도로 자신을 몰아붙이는 연속의 수련 이었다. 레닐은 그와 달리 깨달음을 추구하되 몸으로 익히는 검 술을 조화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자신이 추구하는 방향을 블레이노 국왕에게 설명해 주고는 하였는데, 그 설명이 고차원적인 전문 용 어의 남발이 아닌, 쉬운 단어로 풀어서 이야기를 하였기 에 이해하기가 무척 쉬웠다. 그러자 블레이노 국왕은 자신의 해답이 레닐에게 있음 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매일같이 레닐을 청하여 함께 대화를 나누는 것 이었다. 오늘도 함께 점심 식사를 한 뒤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 고 있을 무렵이었다. 대전 밖이 소란스러운 듯하더니, 이내 시종장의 목소리 가 들려온다. "전하. 칼로윈 공작님이 오셨나이다.” "칼로윈 공작이?" 칼로원 공작이 찾아왔다는 말에 블레이노 국왕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레닐을 힐끗 바라보았다. 하지만 레닐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내심 그의 표정이 어떻게 변할지 기대하고 있던 블레이 노 국왕에게는 다소 실망스러운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블레이노 국왕은 레닐을 보며 물었다. "칼로윈 공작과는 본 적이 없으니 한번 만나 보는 건 어떤가?" "저야 상관없습니다만.” 레닐은 정말 아무 상관없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러자 블레이노 국왕은 정말 그의 속에 무엇이 들었는 지 궁금해졌다. 카르딘 왕세자 일로 인해 분명 속으로 캥기는 것이 있 을 텐데 저렇듯 태연한 모습을 보이니 말이다.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허, 알겠네. 안으로 들라 하라!” 레닐의 승낙이 떨어지자 칼로윈 공작은 밖을 향해 외 쳤다. 블레이노 국왕의 승낙이 떨어지자 대전 문이 열리면서 두 명의 사람이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칼로원 공작과 카 르딘 왕세자였다. 이 미터에 가까운 거대한 덩치를 지니고 있는 칼로윈 공작은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걸어와 블레이노 국왕에게 고개를 살짝 숙였다. 카르딘 왕세자는 고개를 살짝 숙인 뒤 자신의 자리로 향한다. "전하, 그동안 평안하셨습니까.” 마나를 사용한 것도 아닌데 우렁우렁하게 울려 퍼지는 목소리였다. 그에 블레이노 국왕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짐에게 무슨 일이 있겠소. 어서 오시구려, 칼로 원 공작. 무슨 일로 오신 것이오?" 그가 무슨 용건으로 왔는지 이미 짐작하고 있지만 시치 미를 떼고 물어보는 블레이노 국왕이었다. 아마 카르딘 왕세자가 포르르 달려가서 자신에게 유리 하게 말을 늘어놓았으리라. 그 물음에 칼로윈 공작이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띠더니 말한다. "카르딘 왕세자에게 무례를 범한 녀석이 있다고 하여 입궁하게 되었습니다. 겸사겸사 카르미안 왕국에서 대단 한 실력자가 왔다고 소문이 자자하기에 오랜만에 외출을 할 겸하여 왔나이다." “호오, 그렇구려. 그럼 인사들 하시오. 공작의 옆에 있 는 분이 바로 카르미안 왕국에서 오신 카르미언스 공작 이오.” 블레이노 국왕의 말에 칼로윈 공작의 시선이 레닐에게 향한다. 레닐도 칼로원 공작올 바라보고 있었다. 두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부리부리한 칼로원 공작의 시선에 비해 레닐의 시선은 담담하였다. ‘수련광이라고 하더니 만만치 않은 실력을 지니고 있 군.’ '이 녀석의 나이가 이십 대라고? 요즘 녀석들은 나이랑 실력이랑 따로 노는군.’ 시선을 마주친 순간 두 사람은 서로가 만만치 않은 상 대라는 것을 느꼈다. 칼로원 공작이 웃음을 지으며 자기소개를 하였다. “게르안 왕국의 칼로윈 공작이오. 만나서 반갑소이다, 카르미언스 공작.” "저도 게르안 왕국의 마스터이신 칼로원 공작님을 뵙 게 되어 반갑군요. 카르미안 왕국의 카르미언스 공작입니 다. 반갑습니다.” "허허. 그대가 카르딘 왕세자률 핍박하였다고 들었소. 그게 사실이오?" 칼로윈 공작의 말과 함께 그의 안광이 날카롭게 짓쳐 들어왔다. 갑작스러운 그의 실력 행사에 레닐의 눈썹이 꿈틀한다. 어째 게르안 왕국 사람들은 먼저 질러 놓고 보는 사람 이 무척 많은 듯했다. 카르딘 왕세자는 자세한 사정을 알아보지도 않은 채 아 이실라에게 작업을 걸려고 하질 않나. 블레이노 국왕은 첫 만남 때부터 기세를 뿜어내질 않나, 칼로윈 공작도 도 전적인 자세를 보이니 말이다. "핍박이라? 당사자 입장에서는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군 요. 하지만 제 입장에서는 정당한 행동을 했다고 생각합 니다만.” 약혼녀에게 치근거린 사람을 누가 가만히 놔들 수 있단 말인가. 더군다나 자신에게 힘이 있는데 말이다. 레닐의 말에 카르딘 왕세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는 칼로원 공작이 레닐의 기를 죽여 놓았으면 싶었다. ‘제아무리 실력이 있다고 하나 할아버님에게는 되지 않을 것이다.’ 카르딘 왕세자는 칼로윈 공작이 레닐을 뭉개 버리길 원 했다. 그러나 대화의 양상은 그의 예상과는 전혀 딴판으로 흘 러갔다. 칼로원 공작이 레닐의 말을 인정하고 나선 것이다. “그것은 그렇지. 사실 저 녀석이 다 괜찮긴 한데 여자 문제에 있어서는 조금 말이 많소이다. 자세한 정황을 알 기에 카르미언스 공작의 입장을 이해하는 바이오.” ‘이, 이게 아닌데? 당장호통을 치며 레닐을 혼내 줄 줄 알았던 카르딘 왕 세자에게 있어서 청천벽력과도 같은 칼로윈 공작의 반응 이 아닐 수 없었다. 그 말에 레닐이 슬쩍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해해 주시니 고맙군요. 저는 칼로원 공작님과 말이 통하지 않는 건 아닌지 싶어서 상당히 고민을 했는데 말 입니다.” "하하하! 자신의 여자를 지키는 것은 당연한 행동이오. 레이디의 명예는 곧 기사의 명예이기도 하니..공의 입장 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소이다.” "다름 아닌 칼로원 공작님에게 인정을 받으니 기분이 좋군요.”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는 카르딘 왕세자의 표정은 가 관이었다. 칼로원 공작이 자신의 편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그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카르딘 왕세자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듯한 충격을 맛보 고 있었다. 레닐의 입가에 막 미소가 생기려고 할 때, 이어진 칼로 원 공작의 말이 미소를 지우게끔 만들었다. "하지만 말이오. 좋든 싫든 간에 카르딘 왕세자는 내 외손주란 말이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외손주 말이 오. 그런 외손주가 당했다고 나에게 와서 잉잉대는데 가 만히 있을 수 없는 노룻이 아니겠소?" "......" 레닐이 말을 하지 않은 채 칼로윈 공작을 바라보았다. 그 말을 하는 저의가 무슨 뜻이냐고 암묵적으로 묻고 있 는 것이다. 그에 칼로윈 공작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한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간단하지. 나와 대결을 합시다. 아무리 명분이 부족하다고 하나 나에게는 외손주 의 명예를 회복시켜 줄 의무가 있지. 내 제안을 받아들일 수 있겠소이까.” 사실 칼로윈 공작에게 카르딘 왕세자의 명예 따위는 그 리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레닐과 대결을 하고 싶었다. 자신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시험해 보고 싶었던 것 이다. 현재 대륙에서는 레닐의 실력을 평가하길, 제국의 마 스터와 자웅을 겨룰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라 말하고 있 었다. 즉, 레닐을 마이드 제국의 마스터라 가정하고 대결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거기에 카르딘 왕세자의 핑계는 아주 적절한 핑계거리 였다. 말을 하면서 칼로윈 공작은 스스로에 대해 흐뭇함을 감 추지 못했다. ‘후후! 이렇게 하면 이유를 감출 수 있으니 좋군.' "좋습니다. 그리하도록 하지요.” 칼로윈 공작의 말에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던 레닐이 입을 열었다. 그의 생각이 어떻건 간에 레닐에겐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대로 물러선다는 건, 자신에 국한 되는 것이 아닌 아니라 카르미안 왕국의 자존심과도 직결 되는 문제였다. 결정적으로 레닐은 신청해 온 대결을 피하지 않는다. 레닐의 승낙에 칼로윈 공작이 미소를 지었다. "후후! 승낙하니 좋구려. 그럼 연무장으로 갑시다. 전 하, 실례하겠습니다.” 다소 무례하다 할 수 있지만 블레이노 국왕과 칼로윈 공작의 사이가 워낙 각별한 만큼 예의 문제에 있어서는 특별히 얽매이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는 한다. 칼로윈 공작이 앞장서자, 블레이노 국왕에게 살짝 고개 를 숙인 레닐이 그 뒤를 따랐다. 블레이노 국왕은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자리에서 일어 섰다. “이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지.” 그렇게 말하며 블레이노 국왕이 카르딘 왕세자를 바라 본다. 여전히 충격을 받은 듯한 그를 보며 블레이노 국왕이 혀를찼다. "쯧쯧! 어리석은 것. 장인어른이 네 녀석의 속셈을 모 를 것이라 생각했더냐? 수련광에 늘 저택에만 계시지만 장인어른을 흠모하는 기사들로 인하여 왕도의 사정은 훤 하게 꿰고 계시는데 침 발린 혀로 충동질을 하려고 들다 니. 네 녀석이 그럴 줄 알고 놔두기는 했지만 막상 상황이 닥치고 보니 한심한 마음이 줄어들지를 않는구나, 쯧쯧!” 카르딘 왕세자를 혼내던 블레이노 국왕이 이런 상황이 닥치리라는 것을 예측하지 못할 리가 없다. 평소 어려운 일이 생기면 자신이나 칼로윈 공작에게 의 지하는 그였기에 당연히 레닐을 상대하기 위해 칼로윈 공 작을 데려오리라는 동선을 예측하고 있었다. 블레이노 국왕은 칼로윈 공작과 레닐의 대결을 보고 싶 었기에 침묵하였지만 막상 자신의 예상대로 상황이 진행 되자 한심한 마음을 금치 못했다. 결국 카르딘 왕세자는 자신이 주체적으로 일을 해결하 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의지하여 일을 해결하려고 했으니 말이다. 카르딘 왕세자는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블레이노 국왕의 말에 자괴감이 들었다. 결국 자신은 블레이노 국왕의 예상 범주 안에서 행동하 고 움직였단 이야기가 아닌가? 그런 카르딘 왕세자를 보며 블레이노 국왕은 혀를 찼지 만 어쩔 수 있는가? 자신의 아들이고 다음 대 국왕의 자리를 이을 인물인데 말이다. "나를 따라오너라. 가서 봐야 한다. 왜 장인어른이 기 사들의 무한한 존경을 받는지, 그리고 네 녀석이 그토록 깔아뭉개고 싶어 하던 카르미언스 공작이 어찌하여 대륙 에 그 이름을 널리 떨치고 있는지. 가서 네 눈으로 직접 보라.” 이를 악 물며 일어서는 카르딘 왕세자였다. 그의 눈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도대체 얼마나 뛰어나기에 그러는 것인지! 직접 두 눈으로 봐주리라 생각하는 카르딘 왕세자였다. 연무장에 도착한 칼로원 공작은 가볍게 몸을 폴기 시작 했다. 그러고는 레닐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체질적으로 허례허식은 싫어하니 곧장 시작하도록 하 는게어떻소.” "저도 쓸데없는 예의 차리는 것을 싫어합니다.” 레닐의 말이 마음에 들었기에 칼로윈 공작은 입가에 미 소를 지었다. "후후, 그거 좋구려. 그럼 시작하도록 하지.” 그 말과 함께 칼로윈 공작이 검을 뽑아 들었다. 날이 서 있지 않은 투박한 검이었지만 검 자체에서 느껴지는 기세 는 범상치 않았다. 그걸 보면서 레닐 또한 화이트 글로리를 뽑아 들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치는 순간, 칼로원 공 작의 신형이 레닐에게 쇄도하고 있었다. 쑤에엑! 압도적인 힘으로 대기마저 갈라 버리는 듯한 칼로윈 공 작의 검술에 레닐은 순간 누군가의 검과 겹치는 느낌을 받았다. 레닐의 검이 살짝 기울어지는 듯하더니 칼로윈 공작의 검을 그대로 받아 튕겨 내려 하였다. 카가가강! 하지만 레닐의 그런 대응이 익숙한 듯 칼로윈 공작의 검이 묘하게 틀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그것은 막강한 힘이 담긴 자신의 일격을 흩어 버리려는 레닐의 외도를 차단하기 위함이었다. 칼로원 공작의 검이 틀어지자 레닐의 검도 비숫하게 틀 어졌고, 두 검이 허공에서 얽혔다. 파과과광! 결국 오러의 연쇄적인 폭발이 일어남으로써 짧은 순간 눈부신 공방전을 펼친 두 사람이 각각 한 걸음씩 뒤로 물 러난다. '호오......" 자신과 동수를 이루자 칼로윈 공작의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온다. 힘과 오러의 결합으로 누구보다 강한 일격을 지니게 된 자신과 동수를 이루다니.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본격적으로 해 보지.” "기대하겠습니다.” 칼로윈 공작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구체적으로 알아 둘 필요가 있다. 마스터 간의 실력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다고 하지만 슈카르트 공작과 빌라드 후작의 예가 있듯이 일방적인 실 력 차이가 있으면 나중에 상당히 곤란한 처지에 놓이게 될 수도 있다. 제국의 마스터틀 겪어 본 레닐인 만큼 구체적인 실력 비교가 가능하다. 물론 그 전제는 자신이 패배하지 않는다는 것에 있었지 만 말이다. ‘실력을 볼까.’ 오늘 칼로윈 공작을 만난 것이 기회라 여기는 레닐이 었다. 그의 검에 아른거리는 푸른색 오러가 점점 질게 뿜어지 고 있었다. 두 마스터의 신형이 어지럽게 얽히고 있었다. 신형이 순간 희끗하게 보이는가 싶더니. 이내 수십 번 의 충돌음이 터지고 푸른색 오러가 사방으로 튕겨 나간다. 주변 일대는 이미 폐허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초토화 된 상태였다. 뒤늦게 나와 두 마스터의 대결을 지켜보고 있던 블레이 노 국왕이 옷음을 터뜨렸다. "하, 하하하! 저것이 마스터의 힘이었군. 정말 대단해. 후후후!” 종종 칼로윈 공작에게 마스터의 진정한 힘은 마스터를 만났을 때 발휘된다는 말을 들어왔다. 하지만 블레이노 국왕은 그것이 칼로윈 공작의 허풍이 라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 보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한데 도대체 전력 을 발휘하면 대체 얼마나 대단하단 말인가? 그래서 블레이노 국왕은 그 이야기를 웃어넘기기 일쑤 였다. 그러나 칼로윈 공작의 이야기는 사실이었다. 마스터는 마스터를 만나야만 진실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이야기. 그 이야기는 진실된 이야기였던 것이다. 두 신형이 부딪치려는 순간 희끗하게 오고 가는 수많 은 공방전은 블레이노 국왕에게 크디큰 희열을 가져다주 었다. 그는 과연 자신이 저 속에 뛰어들게 되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계산을 해 보았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젓고 만다. 검술의 응용부터 시작하여 오러의 위력과 전체적인 실 력까지. 감히 자신이 범접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었던 것 이다. 블레이노 국왕은 옆에 있던 카르딘 왕세자를 보며 말 했다. “저걸 보아라, 저것이 네가 어찌 하려고 하던 사람의 실력이다.” ".........." 카르딘 왕세자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그는 두 마스터의 대결을 보면서 온몸의 솜털이 주뼛 서는 걸 느끼고 있었다. 저렇게 대단한 무위라니. 애써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오른다. 바로 기세의 발산만으로 자신을 제압하던 레닐의 모습 을 말이다. 당시 저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의문을 가질 정도로 레닐이 뿜어내는 기세는 대단하였다. 그런데 눈앞에서 그 실력을 보게 되자…… 그에 대한 악감정이 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저런 무위를 지니고 있는 자를 자신이 어찌할 수 있단 말인가. 기본 소양으로 검술을 익힌 카르딘 왕세자였기에. 레닐 의 실력을 보면 볼수록 한없이 작아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저런 사람을 자신이 어찌할 수 없지 않은가. 아군으로 삼을 수 없다면 적으로도 삼지 않는 것이 최 선의 방법이리라. 레닐의 압도적인 무위에 카르딘 왕세자가 큰 깨달음을 얻고 있을 무렵, 레닐은 칼로원 공작에 대한 실력 평가를 끝내는 중이었다. 칼로원 공작은 제국의 마스터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 해 열심히 수련을 해온 만큼 대단한 실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공방을 나누면서 레닐은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얼핏 보기에는 단순한 일격에 불과하지만 그 속에는 압 도적인 힘으로 적을 밀어붙이기 위한 보이지 않는 노림수 가 존재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제국의 마스터와 접전을 벌일 만하다.’ 정확하게 속단은 내릴 수 없다. 하지만 칼로원 공작과 검을 나누면서 레닐이 느낀 바는 그러하다. 아직 칼로원 공작이 전력을 발휘하지 않았지만 그의 속 성은 아무래도 강화계일 확률이 높았다. 만약 그가 강화계의 힘을 발휘한 채 자신올 밀어붙였더 라면 한층 더 곤란해졌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전력을 발휘하면 자신 또한 힘을 발휘하였을 테지 만 말이다. 어쨌든 대결은 대결이되, 서로가 서로의 실력을 알아보 는 자리인 만큼 어느 정도 선은 지켜 주고 있는 상태였다. 푸카앙! 두검이 얽히다가 이내 떨어진다. 다시 검올 치켜드는 칼로원 공작을 보며 래닐이 검을 내리며 말한다. “이 정도면 실력은 어느 정도 파악된 게 아닙니까? 대 결을 지속해 봤자 더 얻읕 건 없을 것 같군요.” “크흠! 그건 그런 것 같소.” 레닐의 말에 객쩍은 표정을 지으며 검을 내리는 칼로윈 공작이었다. 그와 검을 나누면서 칼로윈 공작은 기묘한 느낌을 감출 수 없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공방을 나누는 내내 자신이 무슨 공격을 펼쳐 내든 다 막아낼 것 같은 느낌이랄까. 칼로윈 공작은 레닐이 마치 거대한 벽처럼 느껴졌다. '견고한 벽이라도 결국 두드리면 무너지는 법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기에 칼로원 공작은 본격적으로 전력을 다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런 자신의 생각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레닐 이 대결 중지를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그런 레닐의 행동에 칼로윈 공작은 멈칫하면서 한편으 로는 맥을 끊어 놓은 레닐의 적절한 타이밍에 감탄을 금 치 못했다. ‘보통이 아니야. 두려울 정도야.’ 우연인지 아닌지 모른다. 하지만 칼로윈 공작은 차분하 게 가라앉은 레닐의 모습올 보면서 가슴 속 한구석이 싸 해져 옴올 느꼈다. 이 녀석은 진짜배기였다. 결단코 적으로 삼으면 안 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 었다. "정말 대단한 대결이었소. 카르미언스 공작. 하하하!” 레닐과 칼로윈 공작이 대결을 끝낸 듯하자 블레이노 국 왕이 웃음을 터뜨리며 끼어든다. 블레이노 국왕이 중간에 말을 걸음으로써 분위기는 한 층 완화되는 느낌을 주었다. 검을 갈무리하며 레닐이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국왕 전하.” "아니, 경의 실력을 보니 저평가되어 있는 소문들이 모 두 헛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소.”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하지만 칼로원 공작님의 실력 은 대단하시군요. 제국의 마스터와 일전을 불사해도 밀리 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자신에게 집중되는 블레이노 국왕의 찬사가 부담스러 워서일까. 이야기의 화살을 칼로윈 공작에게 돌리는 레닐이었다. 그리고 그 말은 효과가 있었다. 레닐의 말을 들은 블레이노 국왕이 눈을 크게 뜨며 물 어 온 것이다. "그게 정말인가? 사실이라면 정말 기쁘군. 어떻소, 칼 로윈공작?" 블레이노 국왕이 칼로윈 공작올 보며 묻자. 칼로윈 공 작이 입가에 미소를 짓는다. "하하하!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전하.” 제국의 마스터 중 두 명과 대결르 해 본 경험이 있기에 레닐의 말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었고. 그걸 알고 있기에 블레이노 국왕은 기뻐하는 것이다. 적어도 레닐은 입에 발린 말을 하지 않기에. 레닐의 말 때문일까. 분위기는 상당히 화기애애하게 변했다. 블레이노 국왕은 칼로원 공작에게 말했다. "칼로원 공작도 이렇게 왔으니 그냥 보내기는 아깝군. 같이 술 한잔 하면서 친목올 도모하는 게 어떻소?" "저는 물론 좋습니다,전하. 저보다야 카르미언스 공작 에게 묻는 게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두 사람의 말을 듣고 있던 레닐은 피식 옷으면서 고개 를 끄덕였다. "저도 초대만 해 주시면 참가하겠습니다.” "하하하! 좋군. 그럼 가세나.” 그렇게 세 사람은 함께 왕궁 안으로 들어섰다. 연무장 한쪽에는 카르딘 왕세자도 있었지만 그에게 신경을 쓰는 사람은 아무도없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리라. 이 기회를 잘 살리느냐 못 살리느냐에 따라 껍질을 한 단계 벗어던질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지 모르니 말 이다. 레닐과 칼로원 공작의 대결은 짧게 막을 내렸다. 하지만 그것은 두 정상의 사이를 더욱 돈독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제4장 마이드 제국의 움직임 성공적으로 게르안 왕국과 동맹을 체결한 카르미안 왕 국 사절단은 임무를 마치고 카르미안 왕국으로 복귀하기 시작하였다. 뒤늦게 칼로윈 공작과 알게 되었지만 레닐은 상당한 친 분을 쌓을 수 있었다. 뭐라고 해야 될까. 다른 곳으로 정신을 돌릴 여유가 없 다 보니 게르안 왕국의 사람들은 쓸데없는 일에 머리를 굴리지 않고 그 자체만으로 상당히 시원시원한 모습을 보 였다. 칼로윈 공작은 블레이노 국왕보다 더 호탕한 인물이 었다. 만날 때 복잡한 계산을 하고 만나지 않아도 되는 인물 이랄까? 오로지 검에 모든 것을 바치는 그는 전형적인 검사일 뿐만 아니라 인간 자체로도 호감이 가는 인물이었다. 카르딘 왕세자도 칼로윈 공작과 벌인 대결을 보고 무언 가 깨달은 것이 있었는지 그날 이후로 더 이상 덤벼들지 않았다. 그랬기에 게르안 왕국을 떠나는 레닐의 발걸음은 상당 히 가벼웠다. 직접적인 도움을 주고받을 수는 없지만 자신들이 줄 수 있는 도움이라면 전심전력을 다하여 돕겠다고 의견을 표 명한 만큼 든든한 우군을 얻었다고 볼 수 있었다. "이제 문제는 마이드 제국이군.” 아마 지금쯤이면 카르미안 왕국에서 파견한 정찰병들 이 보햄 지방을 탐색하고 있올 것이다. 그리고 다르만의 말이 사실로 판명나면 본격적인 준비 를 하고 있을테지. 게르안 왕국과의 동맹 체결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 이었다. 백 년 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던 세계 최강의 제국 마이 드 제국이 본격적인 행보를 보이는 것이기에. “서둘러서 카르미안 왕국으로 돌아간다.” 카르미안 왕국에 있는 지인들을 생각하며 레닐이 귀환 을 서둘렀다. 마이드 제국의 움직임을 견제하기 위해 레닐이 분주하 게 움직이고 있을 때, 보햄 지방에서의 일도 모두 끝나 가 고 있었다. "공작님, 모든 부족들을 정리하였습니다.” 마이드 제국의 오러 나이트 서열 57위 홀리프 자작은 눈 앞의 인물을 감히 바라보지 못한 채 고개를 깊게 숙인다. 그의 눈앞에 있는 인물은 마이드 제국의 기시들에게 있 어 전설이나 다름없는 인물이다. 위대한 전사를 숭배하는 홀리프 자작은 당연히 눈앞의 인물에게 절대적인 존경심을 지닐 수밖에 없었다. 그의 앞에 있는 인물은 전대 마이드 제국의 정점에 군 림하던 존재였기에 그렇다. "그게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을 텐데, 홀리프 자 작.” 사막 부족들을 정벌하는 것은 케이피드에게 있어서 어 려운 일이 아니었다. 여태까지 마이드 제국과 카르미안 왕국, 튀니르 왕국이 보햄 지방을 정벌하지 못했던 것은 그들의 힘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바로 사막의 지리를 잘 몰랐기에 그런 것이다. 정확한 길로 향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부턴가 방향 감각 을 잃기 일쑤였고, 자칫 잘못하다가는 미아가 되어 목숨 을 잃는 경우가 빈번하였다. 사막 민족의 무력은 그리 강하지 않았다. 그들의 전사 중에 해당하는 자들은 기사 급에 해당하는 무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 숫자가 두텁지 않았다. 게다가 사막 민족들끼리 오아시스률 차지하기 위해 종 종 다름을 벌이고는 했으므로 전사 층이 두텁지는 않다. 마이드 제국은 지난 백여 년간 침묵하면서 보헴 지방의 지리를 파악해 나갔다. 그동안의 노력 끝에 보햄 지방의 지도가 완성되었고, 마이드 제국은 카르미안 왕국의 통제력이 약화된 사이 보 햄 지방을 장악해 나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케이피드가 지적한 것은 사막 부족의 정벌 보고가 아니 었다. 보햄 지방은 마이드 제국 외에도 튀니르 왕국을 접하고 있는 지형이다. 마이드 제국이 카르미안 왕국을 침공하기 위해서는 보 햄 지방을 지나쳐야 하는데. 튀니르 왕국이 이 길을 끊게 되면 침공한 마이드 제국군은 순식간에 고립된다. 그랬기에 마이드 제국은 에디오드 국왕이 보햄 지방 의 권리를 포기했을 때부터 본격적인 준비를 하기 시작 하였다, 제스테리언이 일차로 멸망시킨 곳에 들어선 마이드 제 국은 기존의 사막 부족들이 자리하고 있던 오아시스에 보 급소를 설치하였다. 그리고 뒤이어 사막 부족들올 정리하는 케이피드의 뒤 를 따라 보급소틀 건설하기 시작했다. 뒤통수를 맞아 보급이 끊기는 것은 사절이었기에 마이 드 제국은 사막 부족을 철저하게 멸망시켰다. 그리고 어린아이들과 여자들은 노예로 강등하여 마이 드 제국으로 보냈다. 그리하여 현재 보햄 지방의 사막 부족은 씨가 말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극소수의 사막 민족들이 남았지만 그들은 마이드 제국 의 압도적인 힘에 벌벌 떨며 충성을 맹세하기만 할 따름 이었다. 홀리프 자작은 뒤늦게 케이피드가 무엇을 묻는지 알아 차렸다. 그는 흠칫하고는 고개를 더욱 깊게 숙이며 말한다. “보급소 설치는 순조로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군대를 움직일수 있읕정도입니다.” "본국에서는 어느 정도의 군대를 파견한 상태지?” ’ 튀니르 왕국을 공격하지 않고 가르미안 왕국을 공격하 려는 이유는 마이드 제국이 막강한 힘에 자신이 있어서이 기도 하지만, 제국의 자존심이라 할 수 있는 제스테리언이 신흥 마스터에 불과한 레닐에게 검이 꺾였기에 그렇다. 이는 마이드 제국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는 행위였다. 기사의 종주국이라는 자존심이 존재하였기에 칸 밀레 이노 3세는 물론이고, 제스테리언의 절친한 친우였던 케 이피드도 그것을 참지 못했다. 그랬기에 지원을 하고 나선 것이다. 상식상 레닐이 제스테리언을 이겼다는 것이 불가능하 였기에. 승부에 있어 패한 이상 더 말은 필요 없지만 절친한 친 우였던 만큼 케이피드는 자신의 손으로 직접 레닐을 베어 친구의 넋을 기려 주고 싶었다. "황제 폐하께서는 구만의 정예병을 파견하셨습니다. 그 가운데 천오백 명의 기사와 열 명의 오러 나이트가 있 습니다.” 기사의 제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엄청난 전력이 아 닐 수 없었다. 당장 마이드 제국이 모든 정예병을 끌어 모은다면 물 경 이십만에 달하고, 정규군올 모으면 칠십만의 군대가 모인다. 각기 정규군이 십만을 넘지 못하는 튀니르 왕국이나, 게르안 왕국에 비교하면 엄청난 전력이 아닐 수 없는 머 릿수였다. 그보다 더욱 강한 국력을 지녔다 하더라도 카르미안 왕 국의 정규군은 이십만에 불과하다. 그것도 국경을 지키는 군대들이 사방에 흩어져 있으니, 정예병 구만으로도 충분히 진격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압도적인 기사 전력이 존재하고. 케이피드가 있지 않은가? 그의 오러 컨트롤 능력과 검술 실력은 대륙 최강이라 일컬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검술은 공성전에서 적에게 재앙과도 같은 능 력을 발휘한다. 케이피드가 피식 웃음을 지었다. "황제 폐하께서 무척 많은 군대를 보내 주셨군.” 그는 칸 밀레이노 3세가 오만 정도의 군대만 보낼 줄 알았다. 케이피드가 생각하길, 그 정도 군대만 있어도 충분히 카르미안 왕국의 절반은 점령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전략 전술이 뛰어나서? 아니다. 그의 전략 전술은 웬만한 참모보다는 나은 수준이지만 머리로 전황을 주도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그가 믿는 것은 오직 힘이다. 압도적인 힘을 앞세운 행보. 그것 하나만으로 충분히 카르미안 왕국을 무너뜨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군대는 많을수록 좋다고 했으니 상관없는 일이겠지. 홀리프 자작.” "예, 공작님.” "그대가 지금 진군하고 있는 군대를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이곳에 도착할 수 있게 하라. 더불어 보급소 설치를 더욱 빠르게 하고. 카르미안 왕국을 공격할 준비를 갖추 게 하라.” 끈질기게 저항하는 사막 민족들 때문에 상당히 시일이 지체되었다. 거기에 카르미안 왕국이 냄새를 맡았는지 정보원들을 파견하여 상황을 알아보려고 하는 실정이었다. 카르미안 왕국이 알아차리고 대비를 한다 하여도 상관 없지만 자신의 성격상 오래 기다리기가 싫었다. 케이피드의 말에 홀리프 자직이 고개를 숙이며 힘차게 대답한다. "알겠습니다." 보햄 지방으로부터 거센 전운이 카르미안 왕국을 향해 휘몰아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누구도 쉽게 넘을 수 없을 둣한 거대한 악몽올 담고서. "수도도 오랜만에 오는 것 같군" 이십여 일 행군 끝에 카르미안 왕국 왕도로 들어선 레 닐이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왕도 안으로 들어서자 이미 자신들보다 한발 앞서 튀니 르 왕국으로 갔던 사절단이 도착한 상태였다. 루이드 국왕에게 찾아가 게르안 왕국과 동맹을 맺은 사 실을 설명한 뒤 레닐은 저택으로 돌아가 아이실라와 오붓 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찾아온 카온을 맞 이하였다. "형님!” 레닐은 환한 카온의 얼굴올 보고선 그가 튀니르 왕국으 로 간 일이 잘되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얼굴이 환해졌구나, 일이 잘된 것이냐?" "형님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일입니다. 정말 감사 합니다.” 그렇게 말을 하며 카온은 튀니르 왕국에서 있던 일을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튀니르 왕국으로 간 카르미안 왕국 사절단은 성대한 환 영을 받으며 융숭한 대접올 받았다고 한다. 튀니르 왕국의 국왕인 아스카델 7세는 카르미안 왕국 사절단을 대대적으로 환영하여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동맹을 체결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동맹을 축하하는 파티를 주최하였는데, 거기에 안젤리나도 참여했다고 한다. 레닐이 제작한 반지를 들고 간 카온은 그 자리에서 안 젤리나에게 결혼을 신청했다. 거대한 명치에 파티장을 울리는 카온의 큰 목소리는 모 두의 이목올 집중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고, 갑자기 카온 의 청혼을 받은 안젤리나는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짓다가 이내 감격한 표정으로 그의 청혼을 받아둘인다. 최고의 세공사로 널리 이름이 알려진 레닐이 제작한 반 지는 모든 귀부인들과 귀족 영애들의 부러움을 사기에 부 족함이 없었고, 그렇게 모두의 축복 속에서 카온과 안젤 리나는 결혼할 사이로 공식 인중을 받게 되었다. 부랴부랴 준비한 튀니르 왕국에서 약소하다고 할 수 있 는 약혼식올 올린 카온은 싱글벙글한 얼굴로 카르미안 왕 국에 돌이왔다고 한다. "안젤리나도 같이 데려왔습니다. 조만간 결혼식을 올 릴 생각입니다.” "축하한다. 설마 네 녀석이 나보다 먼저 결혼할 줄이야." 레닐은 묘한 표정으로 카온올 바라보며 말한다. 설마 카온이 자신보다 먼저 결혼하는 상황이 발생할 줄 몰랐다. 그런 레닐의 말에 카온이 웃음을 지었다. "흐흐흐! 이것이 바로 능력 있는 남자와 없는 남자의 차이 아니겠습니까?" 카온의 말에 레닐은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음을 지 었다. “그 말은 내가 능력이 없다는 거냐?" “그렇게 되는군요? 크흐흐! 어쨌든 저부터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평생 형님을 이기는 것 하나 없는가 했는데 결혼으로 형님을 이기게 되었군요. 매우 기쁩니다그려.” 그는 자신의 우상인 레닐읕 뛰어넘고 싶어 하였다. 그 랬기에 그를 뛰어넘고자 검을 수련하면서 모종의 승부욕 을 불태우고 있었다. 그런데 레닐보다 먼저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 카온의 말은 사실이기도 하였다. 먼저 결혼하는 것은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레닐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렇지만 나와 아이실라가 더 사랑하고 있으니 괜찮아.”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러면 저와 안젤리나는 사 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까?" 인상을 찌푸리며 레닐에게 따지는 카온이었다. 레닐의 말이 마치 자신들은 사랑하는데 자신과 안젤리나는 멀 사 랑한다는 말처럼 들려 울컥한 것이다. "그렇게 들렸으면 어쩔 수 없지. 하지만 내 말이 틀린 게 있나? 버럭 하는 카온의 모습이 재미있었는지 레닐은 입가에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자 카온이 씨익 웃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다. "저와 안젤리나의 사랑을 무시하다니! 대결입니다. 형 님.” "대결이라고? 거절하지 않지. 카온. 하지만 각오해야 할 거야" 평소라면 대결에 응하지 않았읕 테지만 카온의 대결 제 안에 냉큼 응하는 레닐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응접실에서 이야기를 하다 말고 연무 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연무장에서 카온은 성난 황소처럼 무지막지하 게 달려들었지만 결과는 돼지 멱따는 소리만 울려 퍼질 뿐이었다. 카온이 발군의 성장을 하였지만 아직 레닐의 상대는 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레닐이 카온과 대결을 한 것. 그것은 바로…… 카온이 부러워서가 절대 아니었다. 자신보다 먼저 결혼하는 카온이 부러워서 그런 것도 아 니고 말이다. 그렇게 왕도로 돌아온 레닐의 하루가 흘러갔다. 첫날은 그렇게 보낸 레닐은 다음 날이 되자 다르만을 찾아갔다. 다르만은 카르미안 왕국에서 그야말로 국빈 대접을 받 으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하기야, 8서클 마법사는 제국에서조차 보유하려고 기 를 쓰는대단한 존재였다. 그런 존재가 제 발로 카르미안 왕국올 찾았으니 극진한 대접을 할 수밖에 없다. 전쟁에서 8서클 마법사의 위력은 마스터 몇 명과 맞먹 을 정도였고, 나라의 기여도에 있어서도 마스터를 뛰어넘 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물론 다르만이 카르미안 왕국을 위해 일한다고 이야기 를 한 적은 없다. 그랬기에 더더욱 루이드 국왕이 다르만을 불잡기 위해 기를 쓰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레닐이냐?" 다르만은 의자에 몸올 묻다시피 하여 그윽한 향이 감도 는와인한 잔을 마시며 레닐을 맞이하였다. 제국의 황제보다도 더 편안하게 보이는 다르만의 모습 에 레닐이 쓴 웃음을 지었다. "아주 팔자를 피셨군요.” "클클! 내가 왕국올 위해 귀중한 정보를 가져다주지 않 았느냐? 이 정도 대접은 당연한 것이지.” 8서클에이르렀기에 거기에서오는자신감일까 아니면 성격이 원래 그런 것일까. 루이드 국왕이 무엇을 해 주려고 하면 다르만은 결코 거절하는 법 없이 꼬박꼬박 잘 받아넘기고 있었다. 와인을 마치 동네 주점에서 파는 술처럼 벌컥벌컥 들이 켠 다르만이 레닐에게 잔을 내밀며 말한다. "너도 한잔 할 테냐?" 레닐이 고개를 저으며 정중하게 거절한다. "아닙니다. 그런 일로 온 것도 아니고요. 게르안 왕국 에서 돌아와서 인사를 하려고 온 것입니다.” "네 녀석이 아리따운 미인도 아닌데 뭐하러 인사하러 와? 너 말고 차라리 네 예쁜 약혼녀가 온다면 모르겠다만" 게르안 왕국으로 떠나기 전 레닐은 다르만에게 아이실 라를 소개시켜 준 적이 있다. 말투는 저렇게 괴팍하지만 다르만은 레닐에게 있어서 할아버지와도 같은 존재였으니 말이다. "하하! 할아버지지가 그렇게 여자를 밝힐 줄은 몰랐습니 다. 국왕 전하에게 일러 아리따운 여자들도 좀 넣어 달라 고 할까요?" 레닐의 말에 다르만의 표정이 급격히 밝아진다. "험! 그게 정말이냐? 그럼 나야 좋지. 험험!” 아무래도 진즉에 말을 하고 싶었는데 말을 하지 못한 듯하다. 그런 다르만을 바라보는 레닐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그러자 다르만이 변명하듯 외친다. “농담이다, 이 녀석아! 농담 하나 가지고 이 늙은 나를 변태 할아버지로 만들어?" "여자 이야기만 나오면 표정이 이미 변하는데 뭘 그러 십니까. 방금 전도 좋아한 건 진짜쟎아요.” "그럼 남자가 여자를 싫어할 리가 있겠느냐? 왜, 늙은 나는 젊은 여자 좋아하면 안 되냐? 이런 말아먹을 자식이 있나.” 다르만이 폭발하려고 하자 레닐은 양손을 저었다. 어째 말을 하다 보니 다르만이 나이 먹고 젊은 여자 밝 히는 모양새가 된 듯하다. 그런데 그 세월이 지났음에도 걸걸한 입담은 여전하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남자라면 여자는 밝혀 줘야죠. 그러니 진정 좀 하십쇼." "뭘 알긴 는구나, 네 녀석도 이젠 다 컸어.” 레닐의 만류에 다르만도 진정하는 분위기였다. 그도 필 요 이상으로 흥분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진정하는 모습을 보이며 다르만은 레닐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날 찾아온 목적이 뭐냐? 네 녀석은 예전부터 목적이 없으면 날 찾지도 않았잖느냐. 이번에는 또 무슨 일로 찾아온 것이야?" "그렇게 말하면 저는 또 뭐가 됩니까.” 이번에는 자신을 몰아가는 다르만의 행동에 레닐은 가 볍게 한숨을 내쉰다. 그러자 다르만이 턱짓을 하며 말한다. "내 말이 사실이지 않느냐? 아니면 말고.” "후! 사실이 아니라고 하기에는 제 행동도 좀 그렇군요. 어쨌든 제가 찾아온 이유는 다름 아닌 이것 때문입니다.” 한숨을 내쉰 레닐이 천에 휩싸인 검 한 자루를 내민다. 다르만은 그걸 보고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검을 받아 든다. "이 검이 뭐? 음? 마법 검이냐?" 검을 잡으면서 마나의 흐름올 느낀 걸까. 다르만이 묻 는다. 그 물음에 레닐이 고개를 끄덕인다. "예, 저번 전쟁에서 획득한 마법검입니다. 심상치 않은 위력올 지니고 있는 것 같아서 어떤 능력을 지녔는지 물 어보고자 가지고 온 것입니다.” “흐음! 마나의 흐름으로 보아서는 7서클 마법사가 만든 건데? 제법 실력이 좋군." 나직한 감탄사와 함께 다르만이 검에 감긴 천을 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서히 드러나는 검집. 기이한 마법진이 잔뜩 그려져 있었다. 그걸 본 다르만이 놀란 표정올 짓는다. "이건……" "알고 계신 겁니까?" 다르만의 반응에 레닐은 그가 검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 레닐의 물음에 다르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다. 내가 어쩌 이 검의 정체를 모르겠느냐. 이 검의 이름은 엘라인. 마법검으로 내가 벤자이어 제국에 머물 때 만든 마법검이다.” "할아버지가 직접 만드셨다고요?" 레닐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납득이 갔다. 저 검은 순간적으로 자신조차 버거을 정도로 강력한 일 격을 퍼붓던 검이었으니 말이다. 다르만 정도 되는 마법사가 아니면 누가 이런 마법검을 만들 수 있단 말인가. 다르만이 엘라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내가 민들었지. 당시 마법으로 마스터의 힘을 어느 정 도 구현할 수 있나 실험을 하고 있었으니까. 빌라드 후작 에게 찾아가서 그의 힘을 본 뒤 만든 기억이 나는구나. 꼬박 이 년 동안 매달린 끝에 만든 검이지. 하루에 한 번 사용할 수 있지만 그 위력은 마스터의 일격에 버금갈 것 이다.” "실제로 겪어 보니 버겁게 느껴질 정도더군요.” 그때의 기억을 떠올린 레닐이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갑작스러운 일격이었기에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순간 이었다. 자칫 잘못하다가 큰 내상을 입을 뻔하였으니 말이다. 그 일격 때문에 자신이 빌라드 후작의 대역을 하고 있 던 라켄 자작을 진짜로 착각했다. 마스터인 레닐조차 착각할 정도로 엘라인에 담긴 일격 은 대단하였다. "그렇긴 하지. 무려 여덟 개의 중첩 마법진에 마나 블 레이드란 마법을 걸어 놓았으니 말이다. 이 검을 제작하 는데 든 비용만 성 한 채 값은 될 것이다.후후!” "성 한 채 값이란 말입니까?" 레닐이 놀란표정을 지었다.성한채 값이라면 도대체 어느 정도의 비용이 들었단 말인가. 감히 상상도 하기 힘든 금액이었다. 그러면서 그 정도 비용이 들었으니 그 정도로 고강한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 레닐의 놀라움에도 불구하고 다르만은 대답하지 않은 채 엘라인올 살피보고 있었다. 오랜만에 본 자신의 작품이니 만큼 옛날의 기억을 떠올 리게 해 줌과 동시에 자신이 그때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 었는지, 어느 정도 실력을 지니고 있었는지 느낄 수 있 었다. 엘라인을 살피던 다르만은 어느새 연구하는 분위기로 엘라인의 이곳저곳올 뜯어보고 있었다. "여기는이렇게 했었군.이렇게 하는게 더 나을 텐데 말이야.” 그러면서 한동안 혼자서 중얼거리던 다르만은 자신 앞 에 레닐이 있다는 것을 상기하고는 그를 바라본다. 그러 고는 손을 휘휘 저으며 말한다. "이거 연구해 봐야겠으니 가봐라“ "예전에 만든 것을 연구한다고요?" 다르만의 말이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레닐이었다. 아무래도 마법사가 아니다 보니 예전에 만든 것을 다 시 연구하려는 다르만의 모습이 이해가 되지 않은 모양 이었다. 그에 다르만이 표정을 찡그리며 말한다. "연구하는 게 뭐가 어때서 그러느냐! 지금하고 예전의 실력에 차이가 있는데! 더 낫게 수정을 해 보려고 하니 내 가 소식을 전할 때까지 찾아오지 마라. 어차피 네놈의 검 이니 더 좋아지면 네 녀석에게 좋은 것이 아니겠느냐?" "제게 준단 말씀이십니까?" 그 말에 레닐의 표정이 밝아졌다. 레드 티어즈가 있고, 화이트 글로리가 있지만 한순간 마스터에 버금가는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엘라인은 다른 검들과는 다른 매력적인 검이었다. 라캔 자작을 베고 검을 수중에 넣었을 때부터 자신의 것이란 생각이 있었지만 다르만이 제작했다는 이야기에 소유권올 포기하고 있었는데. 자신에게 주겠다니 검사로 서 좋은 검을 손에 넣었다는 기쁨이 든 것이다. 엘라인을 소지하고 다닌다면 위급한 순간 자신의 목숨 을 구해줄 구명줄이 될 테니 말이다. 딱히 바란 것은 아니지만 다르만이 엘라인을 더 좋게 업그레이드 시켜 준다니 레닐로서는 환영하는 바였다. 어차피 이곳에 찾아온 목적도 엘라인에 대한 궁금중 때 문이었으니 그것도 푼 셈이고. 레닐에게는 손해날 것이 없었다. "그럼 다음에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이미 엘라인에 정신이 팔린 다르만은 레닐에게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그에 레닐은 조용히 다르만의 거처를 벗어났다. 한 번 다른 것에 몰두하기 시작하면 뭐라 말을 해도 알아 듣지 못하는 것이 마법사라는 족속이라 생각하며 말이다. 다르만은 그런 마법사 중에서 가장 괴팍하고 가장 다른 일에 신경 쓰지 않은 채 자신의 일만 보는 사람이리라. 살짝 사심이 들어간 레닐의 개인적인 생각이었다. 튀니르 왕국, 게르안 왕국과 성공적인 동맹 체결로 인 하여 살짝 들떠 있던 카르미안 왕국을 차갑게 식혀 버리 는 소식이 있었다. 바로 보햄 지방으로 파견된 정찰병들이 잇달아 보고해 오는 소식 때문이다. 다르만의 증언 이후 카르미안 왕국에서는 보햄 지방에 대거 정찰병올 파견하여 보햄 지방의 모든 움직임을 감시 하게 하였다. 그리고 보햄 지방에 병사들이 파견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앞을 다투어 결과를 보고해 왔다. 그 내용은 놀라웠다. 보햄 지방 사막 부족 대부분 멸망. 보햄 지방 오아시스 전역 마이드 제국의 보급소화. 십만에 가까운 마이드 제국군의 진격. 마이드 제국이 보행 지방의 사막 민족들올 멸망시키고 카르미안 왕국올 노리고 있다는 말이 사실로 판명되는 순 간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보고에 진격해 오고 있는 마이드 제국 군의 규모가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하자 왕도의 움직 임이 바빠지기 시작하였다. 루이드 국왕은 보고가 올라오는 순간 곧장 회의를 열고 귀족들을 소집하였다. 세계 최강의 제국인 이드 제국이 카르미안 왕국을 향 해 진격을 시작했다는 것은 카르미안 왕국의 운명이 달린 중대사였던 것이다. 회의를 열자 연락을 받은 귀족들이 몰려들었다. 특히나 귀족파 귀족들은 소식을 전해 받고는 하얗게 질 린 얼굴올 하고 있었다. 레닐 측에서 주장하기에 반대 의견을 펼쳤는데 그 의견 이 사실이었던 것이다. 만약 자신들의 의견에 무게가 실렸더라면? 국경이 맥없이 밀리고 마이드 제국의 군대가 삽시간에 왕도까지 밀려오는 광경을 눈앞에서 목도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리 되면 페를린 후작은 몰라도 자신들은 무사할 리가 없다. 어찌 보면 자신들 때문에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하게 되 었으니 말이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미리 알고 대비하자고 한 레닐이 고마운 귀족들이었다. 루이드 국왕은 귀족들올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마이드 제국이 진군을 시작하였다. 그 규모는 십만에 가깝다고 하며 기사 천오백여 명 정도가 함께 오고 있다 고 한다.” 정찰병들이 지속적으로 보고를 해 오고 있기에 마이드 제국의 규모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루이드 국왕의 말을 들은 귀족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 했다, 마이드 제국군의 규모도 규모지만 기사만 천오백 명이 온다는 말에 기가 질린 것이다. 튀니르 왕국과 게르안 왕국, 두 왕국의 국경을 맞대고 있는 마이드 제국이 카르미안 왕국을 침공하는데 전력을 기울였읕 리가 없다. 그 말은 즉, 저 정도 규모의 군대를 몇 번이고 조직하여 파견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카르미안 왕국도 전력을 긁어모으면 저 정도의 전력은 충분히 만들어 낼 수 있다. 하지만 규모도 규모지만 질적인 면에서도 결코 부족하 지 않았기에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보다 적은 피해로 마이드 제국의 공격을 막아 내는 것. 그것이 최우선 과제였다. 귀족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루이드 국왕이 짤막하게 상황을 설명한다. "다르만 대마법사께서 증언을 한 뒤 삼만의 군대를 국 경에 파견한 상태이기에 현재 오만의 군대가 마이드 제국 의 군대를 막아설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마이드 제 국의 군대를 막을 수 있다는 확신은 하기 어렵지. 때문에 지원군을 조직할 것이다. 카르미언스 공작.” "예. 국왕 전하.” 레닐은 루이드 국왕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대답하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루이드 국왕은 레닐을 바라보면서 말한다.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공작이 수고를 해 주었 으면 한다.” "알겠습니다.” 대다수의 귀족들은 모르지만 레닐이나 루이드 국왕은 알고있다. 지금 쳐들어오고 있는 마이드 제국의 군대에는 다름 아 닌 전대 마스터인 로셀린 공작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말이다. 전대 마스터인 제스테리언 대공과 로셀린 공작, 카빌리 어 공작은 각기 대륙 최강에 가장 근접했다는 수식어를 받은 인물들이었다. 하지만 같은 제국 출신이었던 탓에 그 실력의 고하는 가려지지 않았고, 사람들은 셋을 통틀어 대륙 최강의 반 열에 가장 근접한 인물들이라 하였다. 즉, 로셀린 공작도 제스테리언과 맞먹는 실력자란 이야 기였다. 카르미안 왕국의 마스터는 레닐과 네이미언 대공 두 명 이 존재한다. 공국을 지키고 있는 네이미언 대공은 루이드 국왕의 통 제밖에 있는 인물이다. 그렇기에 믿을 것은 레닐밖에 없 었다. "내가 로셀린 공작을 이길 수 있을 것인가.’ 레닐은 자신이 로셀린 공작을 이길 수 있을지 회의감이 들었다. 제스테리언과 비슷한 실력을 지니고 있다면 자신이 없 었다. 그때 이후로 일 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면서 스스로가 느낄 정도로 장족의 발전을 이루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지금 다시 제스테리언과 검을 맞댄다고 하면 이길 자신이 없는 레닐이었다. 그만큼 실력의 차이가 아직도 확연하였던 것이다. 모든 면에서 뒤떨어지던 레닐이 제스테리언을 기적과 도 같이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끝까지 승부를 포기하지 않 았던 마음과 제스테리언의 한줄기 방심이 절묘하게 합쳐 졌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실력이 부족하여도 기백으로, 열정으로 부딪치면 된다 고 생각하던 레닐이 유일하게 거대한 벽으로 느낀 존재가 바로 제스테리언이었다. 지금 마음 같아서도 당장의 대결보다는 시간을 끄는 지 구전으로 하여 마이드 제국의 군대가 지치게 하는 방향으 로 전황 설정을 하였으면 하는 것이 레닐의 바람이었다. 하지만 그런 자신의 얕은 생각이 먹힐 리가 없다. 벤자이어 제국이 빌라드 후작을 앞세워 해르시온을 착 용한 기사들을 이끌고 디반 왕국올 무너뜨렸다면 마이드 제국에도 분명 다른 방법이 존재할 것이다. 가슴이 답답해지는 걸 느끼는 레닐이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자신의 실력에는 엄연한 한계가 존 재하는데 맡아야 하는 일은 능력의 범주를 뛰어넘는 일이 었다. 그걸 과연 루이드 국왕이 알고 있을까? 고개를 들어 루이드 국왕올 바라보던 레닐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다, 이 사람은 자신의 영광을 이루기 위해 아들마 저 정략혼으로 보내 버린 인물이다. 자식에 대한 정이 있다 하여도 지금 이 문제는 예전과 는 차원이 다른 큰 문제다. 이뤄야 할 영광에서 국가의 중대사로 변했을 뿐,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국가의 중대사가 결코 자신의 존재보다 무거워질 수 없 으리라. 그걸 깨닫는 순간 레닐의 눈이 깊게 침잠되어 간다. 레닐의 눈과 마주한 순간 루이드 국왕은 체온이 싸늘하 게 가라앉는 듯한 느낌을 받아야만 했다. 그는 레닐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알아차릴 수 있 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그런 상황 이다. 레닐도 그걸 알고 있으리라. 거미줄처럼 옭아매는 듯한 느낌에 루이드 국왕이 눈을 감는다. 그리고 레닐에게 말한다. "오만의 군대를 지원하겠다. 공작이 마이드 제국의 군 대를 무찔러 주었으면 한다.” 그 말과 함께 루이드 국왕의 눈이 뜨인다. 레닐의 시선 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음에도 흔들리지 않는 눈. 그의 굳건한 의지가 레닐에게 그대로 전해진다. "막을 수 있겠는가.” "........" 레닐은 고민에 잠긴다. 루이드 국왕의 의지가 눈빛에서 전해져 오고 있었다. 대륙의 북부는 물론 중부 지방까지 공포로 물들인 마이 드 제국의 군대를 막을 수 있느냐고 묻고 있다. 최강의 기사들과 최강의 병사들. 그리고 그들을 이끄는 자는 대륙 제일의 기사다. 막을 수 있을까? 확신은 못한다. 하지만 막아야 한다. 레닐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막겠습니다. 반드시 막아야 하지요" 자신이 무너지면 카르미안 왕국이 무너진다. 그러면? 왕국은 아비규환이 될 것이다.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결의가 생겨난다. 레닐의 눈에 푸른 안광이 일렁이기 시작한다. 그런 래닐의 모습을 본 루이드 국왕이 고개를 끄덕인다. "카르미언스 공작을 믿는다. 그대라면 그 어떠한 불가 능한 일도 가능한 일로 바꿀 것이라 믿기에.”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나의 조국인 카르미안 왕국을 지켜 내기 위하여.” "왕국을 위하여.” 엄숙한 레닐의 선언에 뒤따라 외치는 귀족들이었다. 본격적인 마이드 제국과의 전쟁이 결정되었다. 카르미안 왕국의 군대를 이끄는 사령관은 다름 아닌 카 르미안왕국의 별, 카르미언스공작인 레닐이었다. 제5장 총공세 국경을 지원하기 위한 지원군의 편성은 빠르게 이루어 지고 있었다. 이미 마이드 제국과의 일전을 위해 루이드 국왕은 정규 군을 소집해 놓은 상황이었던 것이다. 오만의 정규군과 오백 명의 기사들로 이루어진 지원군 은 디반 왕국 전쟁 때 활약했던 카이드와 팬트레이 자작 같은 젊은 인물들은 물론이고, 바르가스 공작 같은 노련 한 인물도 함께하였다. 카르미안 왕국에서 가장 화려한 인물들로 갖춰진 것 이다. 바르가스 공작은 부사령관의 지위로 레닐을 보조하기 로 하였다. 정찰병의 보고에 따르면 마이드 제국의 군대는 일주일 도 걸리지 않아 국경에 다다를 것이라 하였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보통 사람들이 보햄 지방을 횡단하려면 한 달이란 기간 이 걸린다. 보햄 지방이 제법 넓은 탓도 있지만 식수가 존재하는 오아시스가 위치한 곳을 경유해야 했기에 지그재그 형식 으로 움직여야 했다. 게다가 충분한 식수 공급이 반드시 필요했고, 혹시나 길을 잃을 경우도 존재하였기에 수분 섭취를 조절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괜히 보햄 지방이 죽음의 사막이라 불리는 것이 아니 었다. 오아시스를 발견한다 한들 그곳을 차지하고 있는 사막 부족에게 밉보이면 그대로 사막으로 쫓겨나 말라 죽을 수 밖에 없던 것이 여태까지의 상황이었다. 하지만 마이드 제국은 그런 염려 없이 사막을 횡단하고 있었다. 보햄 지방의 모든 사막 부족을 멸망시키고 그곳에 보급 소를 설치한 까닭이다. 때문에 마이드 제국의 군대는 식수 걱정 없이 한달 넘 게 걸려서 와야 할 거리를 절반에 해당하는 보름 만에 주 파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지원군이 국경까지 열흘간 행군해야 하는 걸 감안하면 삼 일 동안 국경 수비대가 마이드 제국의 군대를 막아 내 야한다는이야기가 된다. 견고한 성벽과 오만에 달하는 병력이라면 삼 일 정도는 너끈히 버털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레닐은 불안하였다. 마이드 제국의 군대 안에 케이피드 로셀린 공작이 있기 에 그렇다. 마스터인 그를 앞세우고 돌파하려고 든다면 오래 버티 지 못할터. 병사들의 밤잠을 줄여서라도 강행군을 펼치고 싶은 것 이 레닐의 마음이었지만 제아무리 총사령관이라 하여도 그것은 명백한 월권행위. 강행군을 하려면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단 순히 자신의 예감이 불길하다 하여 오만의 군대를 혹사시 킬수없는 노릇이었다. "국경 수비대를 믿는 수밖에.” 그것이 가장 편안한 일이라 생각하는 레닐이었다. 지원군이 본격적으로 국경을 향해 출발하였다. 마이드 제국의 군대는 빠른 속도로 진군에 진군을 거듭 하여 마침내 카르미안 왕국의 국경에 도달할 수 있었다. 빠른 속도로 접근하여 국경을 점령함 심산이었던 것 이다. 하지만 카르미안 왕국은 그런 마이드 제국의 침공을 알 고 있었다는 듯이 성문을 굳게 걸어 잠근 채 마이드 제국 군의 접근을 차단하고 있었다. 케이피드는 하늘을 찌를 듯 높게 쌓여 있는 성을 보고 는 웃음을 지었다. “역시 알고 있던 것인가?" 보햄 지방을 완벽하게 장악한 그들이 사막 근처를 기웃 거리는 정찰병의 정체를 모를 리가 없다. 그들이 카르미안 왕국 혹은 튀니르 왕국 소속이었을 테 지만, 케이피드는 직감적으로 그들이 카르미안 왕국에서 파견된 정찰병들이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라 부족올 멸망시키기 직전에 자신들의 이야기를 엿 들은 마법사의 정체가 떠올랐기에 그렇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었다면 그 장소를 벗어난 마법사 는 분명 카르미안 왕국으로 향했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형식으로든 사람을 만나 자신들의 움직임 을 알렸을 것이다. 텔레포트를 시전했다는 것은 최소 7서클 마법사라는 뜻이었기에 신빙성이 있었다. 그 정도 실력자라면 원할 때 고위 귀족을 만나는 것은 가능했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그 짐작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카 르미안 왕국은 단단히 준비를 해 놓고 있었다. 성을 지키고 있는 군대의 규모는 한눈에 보아도 보통 숫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공성전을 임함에 있어 공격 측의 병력 규모가 최소 세 배 이상은 많아야 한다고 감안할 때 철벽과도 같은 저 성 을 함락시키는 것은 웬만한 방법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해 보였다. 한동안 성을 바라보던 케이피드가 입을 열었다. “홀리프 자작.” "하명하십시오, 공작님.” 그가 호명한 것은 보햄 지방에서부터 자신의 명을 착실 히 따라온 홀리프 자작이었다. 케이피드는 성을 가리키며 말했다. "사자를 보내 항복올 요구해 보라. 이제는 야만인의 틀 을 벗어던지고 기사의 제국이리는 타이를을 얻었으니 어 느 정도 예의는 갖추어야겠지.” 한마디로 저들이 항복할 리는 없겠지만 예의상 한 번 해 보라는 이야기였다. 그 말에 홀리프 자작이 고개를 숙이며 말한다. "제가 직접 저들에게 항복을 요구해 보겠습니다.” 저 정도 규모의 대군올 거느리고 있는 인물이라면 작위 가 낮지 않을 것임이 분명했다. 게다가 지금같이 충분히 막을 수 있읕 것 같은 상황에 서 항복을 요구하면 저들이 모욕감을 느끼고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자신이 직접 나서겠다고 말한 홀리프 자작이 말을 몰아 성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가 말을 전달하러 온 사자인 것을 알았기에 화살 범 위 안에 들어섰음에도 그를 쏘지 않았다. 홀리프 자작은 마나를 실어 성에 있는 병사들에게 외 쳤다. "나는 위대한 기사의 제국인 마이드 제국의 오러 나이 트서열 57위 홀리프 자작이다. 군대를 이끄는 사령관을 만나고 싶다.” 마나가 실린 홀리프 자작의 외침은 성을 향해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그러자 성에서도 큰 목소리가 우렁우렁 울려 퍼지며 성 위에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카르미안 왕국의 아이언 실드 테르크스 후작이다. 나 를 무슨일로찾았는가.” 자신을 테르크스 후작이라 밝힌 인물은 오십 대 초반의 건장한 체구를 지닌 장년인이었다. 부리부리한 눈매와 굳건한 입매는 한눈에 보아도 사령 관이라는 것을 알아볼 만큼 사령관 같은 외모를 하고 있 었다. 홀리프 자작은 자신의 외침에 응답하는 테르크스 후작 을 보며 외쳤다. "총사령관님께서 그대들에게 항복할 기회를 주셨다. 이를 영광으로 알고 순순히 성문을 열어 총사령관님을 맞 이하여라. 그렇게 하면 마이드 제국의 일원으로써 영광을 함께할 기회를 줄 것이다.” "마이드 제국이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다른 사람들 이 세계 최강의 제국이라 띄워 주니 그 오만함이 도를 넘 어섰구나.” 테르크스 후작의 입장에선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마이드 제국이 아무리 대군을 이끌고 오고. 기사 층이 두텁다 하나 지금 상황에서 카르미안 왕국이 결코 마이드 제국에게 밀릴 이유가 없었다. 경고한 성벽과 잘 훈련된 군대만 있다면 마이드 제국이 건 마이드 제국의 할아버지건 간에 자신들이 밀릴 이유가 없기에 그렇다. 국경을 지키는 테르크스 후작은 국왕파 측에 속했던 인 물이다. 북부 지방에, 그것도 국경을 맞대고 있어 많은 숫자의 군대를 거느리고 있던 태르크스 후작은 북부 귀족들이 모 두 국왕파에 섬에 따라 그 또한 국왕파 측에 설 수밖에 없 었다. 하지만 전대 국왕인 에디오드 국왕을 끝까지 안 따랐기 때문일까. 에디오드 국왕이 강제 폐위되고 그 뒤를 이어 국왕의 자리에 올라선 루이드 국왕은 테르크스 후작의 힘을 약화 시키지 않았다. 오히려 마이드 제국의 침공이 염려된다면서 정규군을 파견하는 면모를 보였다. 국왕파에 섰지만 본래 에디앙스 국왕의 후손인 루이드 국왕을 따르고 있었기에 테르크스 후작은 그런 루이드 국 왕의 배려에 감사하면서 마이드드 제국의 침공에 준비를 해 왔다. 한편으로는 마이드 제국의 침공이 거짓 사실이 아닐까 생각을 했는데 그것은 아닌 듯하였다. 지금 이렇게 모습을 드러내어 망언을 하는 걸 보면 말 이다. 왕도에서 지원군이 파견되었다고 하니 테르크스 후작 은 모든 힘을 다해 버려 볼 생각이었다. 테르크스 후작의 외침에 홀리프 자작은 한차례 숨을 들 이쉬었다가 묻는다. "그것은 지금 본 제국의 총사령관님의 제안올 거절한 다는 뜻인가?" "야만인들이 건국한 마이드 제국에게 항복할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다. 정녕 세계 최강의 제국이라 생각한다면 힘으로 이곳을 넘어 보라. 크하하하!” 마이드 제국의 군대가 정확히 구만이라는 보고를 받 았다. 그에 반해 이곳에 주둔해 있는 군대는 오만에 달한다. 게다가 높은 성벽으로 철저하게 방어를 하고 있기에 마이 드 제국이 이곳올 함락시키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결국 거절이군.” 홀리프 자작은 웃음을 터뜨리는 테르크스 후작의 모습 을 바라보다가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마이드 제국의 진영으로 돌아와 케이피드에 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공작님. 카르미안 왕국의 사령관을 설득 하는데 실패했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어서 홀리프 자작이 마나를 실어 외쳤음 에도 불구하고 이곳까지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케이피드는 이미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오감을 지니고 있었기에 그들의 대화틀 전부 다 귀담아 들을 수 가 있었다. 피식 웃음올 지은 케이피드가 말한다. "애초에 저들이 항복할 것이라 생각하고 보낸 것이 아 니다.말그대로 예의상 보낸 것이지. 언제부터 본 제국이 순순히 항복하는 자들을 예우해 주었다고 그러나? 걸리 적거리면 짓밟아버리면 되는 것읕.”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대답을 하면서 홀리프 자작은 몸이 오싹해지는 걸 느 꼈다. 평소에는 점잖은 행동과 어조률 보이는 케이피드였지 만 그의 속에 내제된 흉악함은 몸이 떨릴 정도로 두렵고 강렬하였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내면에서 무언가가 부글부글 끌 어 오르는 것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것은 마이드 제국이 지난 백 년 동안 봉인해 온 흉포 함이었다. 케이피드가 홀리프 자작에게 명령을 내린다. "기사들과 병사들을 모두 폭 쉬게 하라. 정확히 내일. 저 성을 함락시킬 것이다. 그때까지 모두 힘을 충전시키 게 하여라.” "알겠습니다.” 고개를 깊게 숙이며 외친 홀리프 자작이 이리저리 뛰어 다니며 명령을 전달하기 시작하였다. "지원군이 오기 전에 골치 아픈 저 성을 넘는 것이 낫 겠지' 평온한 얼굴로 케이피드가 중얼거렸다. 그의 얼굴은 결코 전쟁을 앞둔 인물의 표정이 아니었다. 그에게 있어 이런 전쟁은 일상 생활의 한 부분이 되었 기에…… 보초를 서는 병사들도 없이 케이피드는 모든 병사들이 하루 푹 쉬게 하였다. 공성전이 시작되면 하루 종일 이어질 확률이 높았기에 아침부터 고기 반찬으로 이루어진 식사가 시작되었고, 아 침 식사 후 기사들은 군대를 정비하기 시작하였다. 케이피드는 기사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선봉에 서겠다." "위험합니다, 공작님.” 그의 말에 기사들이 염려 섞인 눈으로 케이피드에게 외 쳤다. 이미 마이드 제국에 있어 전설이 된 그를 본 기사들은 존경의 빛을 띤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케이피드가 상징적인 존재로 남아 있길 원하 였다. 그의 나이가 이미 백이십이 넘어가는 만큼 기력이 상당 히 쇠했을 것은 분명하다. 그리되면 제아무리 마스터라도 쏟아지는 화살과 마법 을 견더 내기란 힘들 것이다. 그러니 그저 이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될 것이라는 게 그들의 생각이었다. 케이피드는 기사들의 염려 섞인 목소리에 피식 웃음을 지으며 그들올 바라본다. "지금 그대들이 나의 걱정을 한단 말인가? 하하하!” 웃음을 터뜨리는 케이피드롤 보며 그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의 말도 틀린 것이 아니다. 이미 반백 년도 더 전에 마스터의 자리에 올라 최강의 자리에 군림하던 인물이다. 그런 그를 기사들이 걱정한다는 것은 정말 말도 안 되 는 상황이었다. 대륙 최강의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는 마스 터들은 이미 인간이되 인간이 아닌 존재였다. "세월은 참 빠르단 말이지. 예전에는 이 검 한 자루에 의지하여 모든 것을 휩쓸고 다닐 때가 있었는데. 후후후!” 케이피드가 자신의 실력을 들먹이며 말을 했지만. 그럼 에도 기사들온 염려스러운 표정을 거두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실력을 보여야겠군.” 그 모습이 계속해서 이어지자 심기가 불편했는지 케이 피드가 표정올 찡그리며 왼손을 뻗었다. 그와 함께 그의 손에 기세가 실려 기사들에게 쏘아졌다. 콰콰과콰! "크윽!” "커어억!” 케이피드가 발산한 기세로 인해 순식간에 수십 명의 기 사들이 비를거려야만 했다. 그는 단순히 손을 뻗었을 뿐인데 기사들이 맥을 추지 못했다. 그의 손에서 뿜어진 기세는’기사들의 마나를 옥죄는 듯 한 충격을 주었다. 정말 대단한 신위라 할 수있었다. 그와 함께 그의 실력에 대한 두려움이 물밀듯이 몰려 왔다. 가벼운 손짓만으로 기사들을 제압할 정도라면 도대체 전력을 다할 경우 어느 정도로 강해진단 이야기란 말인가. 간신히 신형을 수습하고 있는 기사들올 보면서 케이피 드가 피식 웃음을 짓고는 물었다. “이래도 반대를 할 생각인가?" "아, 아닙니다.” 눈앞에서 실력을 확인했는데 반대를 할 바보들은 없다. 나이가 많다고 하여도 마스터는 마스터였다. 오히려 참 전하면 큰 도움이 되었으면 되었지 누가 되지는 않을 것 이다. 사실 그들이 반대하고 나선 것도 다 케이피드를 걱정해 서 그랬던 것이었다. 그걸 알고 있었기에 케이피드도 딱히 화를 내지 않은 것이고 말이다. 그저 기세를 발산하여 자신의 건재함을 알려 준 것 일 뿐. 케이피드가 주변을 둘러보다가 말한다. "오늘 내로 성을 함락시킨다.” 그의 말에 모두가 놀란 시선으로 그를 바라본다. 오만의 군대가 지키고 있는 저 성을 단 하루 만에 함락 시킨다고? 말도 안 되는 말이었다. 하지만 케이피드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왜냐고? 바로 자신의 존재가 있으니까, 가능한 일인 것이다. "저녁은 저 성에서 먹는 것이 괜찮겠군.” 그의 말은 현실이 될 것이리라. 마이드 제국의 선발군은 삼만이었다. 각종 공성병기률 준비한 마이드 제국은 본격적으로 공 성전 준비를 갖추었다. 그리고 준비를 모두 갖추자. 사방에서 공격 신호가 터 져 나오기 시작한다. "공격하라! 성을 함락시켜라.” 뿌우우우우! 기사의 외침과 함께 공격 개시를 알리는 소리가 사방을 뒤흔들었다. 그와 함께 명령을 받은 마이드 제국의 병사들이 성을 향해 접근하기 시작했다. 성을 지키는 카르미안 왕국의 군대 규모는 오만에 육박 했지만 그들은 마이드 제국의 군대에게 압도되는 듯한 느 낌을 받아야만 했다. 공격을 하는 와중에도 질서 정연한 모습으로 발소리를 맞추어 쿵쿵! 하고 접근하는 마이드 제국의 병사들에게서 전해지는 압박감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 진격해 오는 마이드 제국의 병사들을 보며 카르미안 왕 국의 병사들은 긴장한 얼굴로 병장기를 굳게 움켜쥐었다. 다름 아닌 마이드 제국의 군대였다. 세계 최강의 제국 이라는 이름부터 시작하여 야만인의 제국. 기사의 제국 등등 감히 범접하기 힘든 어마어마한 이름들이 항상 그들 의 뒤에 따라불고 있었다. 서로가 죽고 죽이는 전쟁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그 리고 세계 최강의 군대를 맞이하여 싸워야 한다는 불안함 이 그들의 전신을 뒤덮고 있었다. 하지만 성을 지키고 있는 테르크스 후작은 유능한 인물 이었다. 최전선에 선 그는 진격해 오는 마이드 제국군을 보고는 외쳤다. "겁먹지 마라. 병사들아! 저들 또한 피와 살로 이루어 진 사람에 불과하다. 지금 이곳에서 너희들이 흘리는 피 는 너희들의 가족에게 안정을 가져다줄 것이다. 목숨을 아끼지 마라. 가족을 지키고자 모든 힘을 다하는 자는 살 아남을 것이오, 자신만 살아남겠다고 도망치는 자는 반드 시 죽으리라. 모든 힘을 다해 싸우라!” 와아아이이아! 테르크스 후작의 외침에 용기를 얻은 카르미안 왕국의 병사들이 함성을 질렀다. 그의 말이 병사들의 가슴을 거세게 흔들어 놓은 것이다. 이곳이 함락된다면 자신들의 가족이 마이드 제국 병사 둘에게 짓밟힐 것이다. 사랑하는 자신의 아내가, 자신의 딸이 겁탈당하고 아들 과 형제가 노예가 되어 끌려간다고 생각해 보라. 무기를 쥔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가는 병사들이었다. "발사하라!” 마이드 제국의 병사들이 다가오자 테르크스 후작이 외 친다. 쑤에엑! 명령이 나옴과 동시에 성에 배치되어 있던 투석기들이 일제히 바위를 발사한다. 디반 왕국에서 벤자이어 제국에게 단단히 재미를 본 투 석기를 국경에 대거 배치해 둔 것이다. 그리하여 국경에 배치된 투석기의 숫자는 무려 서른 대. 게다가 투척할 만한 바위를 많이 찾아 놓은 상태였기에 부족함이 없는 숫자라 할 수 있었다. 거대한 바위는 한 점의 인정을 담지 않은 채 마이드 제 국군에게 투척되었다. 콰아이앙! 콰앙! 으아아악! 바위가 지면에 작렬하는 광음과 함께 마이드 제국군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거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테르크스 후작은 바위를 피해 진격하는 마이드 제국군 을 보며 다시 한 번 외쳤다. "화살을 쏴라! 마법사들은 마법을 시전하라!" 그 외침에 궁수들이 활을 겨누고는 화살을 쏘았다. 피비비비비빙! 화살비가 퍼부어지기 시작하면서 다시 한 번 마이드 제 국군의 비명이 터져 나온다. 나무 방패를 들어 화살을 막아내려 했지만 하늘을 새까 맣게 수 놓는 화살을 모두 막아 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화살이 마이드 제국군의 발걸음을 붙잡는 동 안, 캐스팅을 완료한 마법사들이 마법을 시전하기 시작 하였다. “체인 라이트닝!" "번 플레어!” "아쿠이 스트라이크!” 수많은 속성의 마법들이 시전되었다. 그리고 그 마법들 은 어김없이 마이드 제국군을 적중시키며 전세를 카르미 안 왕국으로 기울게끔 하였다. 아비규환이 따로 없는 그곳을 바라보는 인물이 있었다. 바로 공격을 명령한 케이피드였다. "정말 철저하게 준비해 뒀는데? 대단하군.” 그는 미리 투석기까지 준비하여 제국군의 공격을 막 아 내고 있는 카르미안 왕국을 보며 나직이 감탄사를 흘 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너무나 큰 피해를 입을 것이 분명했다. 증원군올 부르는 방법도 있지만 그것은 그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는다. 앞으로 걸어 나가면서 케이피드가 검을 뽑아 들었다. "더 이상 피해를 입으면 안 되겠지.” 케이피드률 중심으로 십여 명의 기사들이 포진되어 있 었다. 그를 호위하는 기사들이었다. 전장으로 다가간 케이피드가 검을 서서히 손에 놓으면 서 명령을 내린다. "가라!” 그의 외침과 함께 검이 마치 의지라도 있는 것처럼 허 공에 두둥실 떠올랐다. 그와 함께 카르미안 왕국의 진영에 다시 한 번 바위가 투척되었다. 거대한 바위가 맹렬한 기세로 마이드 제국군에게 향하 고 있었다. 케이피드가 바위들을 향해 손을 가리켰다. 그러자 허공 에 떠오른 그의 검이 푸른 광채에 휩싸이더니 열 갈래의 오러를 뿜어낸다. 그것은 정확히 투척된 바위를 향하고 있었다. 파아아앗! 콰광! 콰콰콰쾅! 검에서 뿜어진 오러는 하나하나가 오러 블레이드에 맞 먹는 위력을 지니고있었다. 두 조각으로 갈라진 바위는 제국군이 없는 곳을 향해 떨어졌다. 케이피드가 앞으로 전진하면서 외친다. “공격하라. 성을 무너뜨린다.” 와아아아아! 두려움의 대상이던 바위를 단숨에 갈라 버리는 신위 를 선보이자 마이드 제국군은 용기를 얻고 전진하기 시 작했다. 케이피드 또한 앞으로 전진하면서 허공에 띄워 놓은 검 을 컨트를하였다. 그의 통제하에 움직이는 검은 곧장 성벽 위를 향해 쇄 도했다. 검술과 오러 컨트롤에 있어서는 대륙 제일이라 불려도 무방한 케이피드의 검은 거침없이 성벽 위를 누비기 시작 하였다. 그의 검이 노리는 일차 대상은 마법사였다. 다수의 적에게 마법을 퍼붓는 마법사는 전쟁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마법사들은 기사들의 철통같은 호위를 받고 있었다. 그들은 허공에 검이 날아오자 검을 치켜들며 소리쳤다. "마법검이다! 마법사들을 보호하라!” "쿡! 마법검이라니, 재미있군.” 자신의 검을 보는 사람들이 늘 외치는 말이었다. 하기야 누가 의지로 검을 움직일 수 있으리라 생각하겠 는가. 차라리 마법검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편하리라. 그와 함께 검에서 푸른빛이 생성되더니, 수십 갈래의 오러가 폭사되었다. 그 오러는 그대로 기사들과 마법사들올 향해 덮쳐 나 갔다. 콰콰콰콰콰! “크아악!” "커헉!” 오러 하나하나가 오러 블레이드에 버금가는 위력을 지 니고 있다. 무분별하게 폭사되는 오러의 난사로 인하여 기사들과 마법사들은 비명을 지르며 쓰러져 나갔다. 힘들게 버티는 기사와 마법사도 있었지만 뒤이어 뿜어 진 오러의 먹잇감에 불과하였다. 결국 오러에 꿰뚫려 생 을 마감한 것이다. 순식간에 수십여 명의 기사와 마법사가 죽음을 당하 였다. 전쟁에서 고급 인력에 속하는 그들은 케이피드의 검 앞 에 너무나 무력하였다. 기사들과 마법사들을 제거한 케이피드의 검은 종횡무 진 움직였다. 허공에서 오러를 뿜어내는 그의 검에 궁수들은 물론 이고, 성벽 위를 방어하고 있던 병사들도 맥없이 죽어 나갔다. 그야말로 재앙 그 자체였다. 당장 돌격하는 마이드 제국의 군대를 막아도 모자랄 판 에 허공에서 오러를 뿜어내고 있는 검의 존재는 너무나도 두려운 대상이었다. 그 모습올 지켜보며 케이피드는 억눌린 웃음을 지었다. “큭! 마스터의 힘은 전쟁에 있어서 재앙과도 다름이 없지" 그의 의지에 따라 허공에 떠 있던 검이 움직이기 시작 하였다. 혼란을 심어 주는데 성공했으니 이제 그가 하려는 일은 적의 수장을 제거히는 일이었다. "요망한 검이로다!” 허공에서 아군을 학살하던 검이 자신에게 쇄도하자 테 르크스 후작이 노호성을 터뜨리며 검에 푸른색 오러 블레 이드를 생성하였다. 국경을 수비하는 인물이니 만큼 오러 나이트에 오른 검 사였던 것이다. 타오르는 것처럼 이글거리는 그의 오러 블레이드가 케 이피드의 검을 막아 나갔다. 테르크스 후작의 검과 충돌하려는 순간 검에 푸른색 오 러가 휩싸이기 시작하였다. 오러와 오러가 충돌하는 순간, 콰아아앙! 하는 소리와 함께 테르크스 후작의 오러 블레이드가 수십 수백 조각으 로 쪼개져 나갔다. 그리고 케이피드의 검이 그대로 테르크스 후작의 복부 에 박혀 들어갔다. 푸욱! 테르크스 후작은 자신의 복부를 꿰뚫은 검을 바라보 았다. 아직도 믿을 수가 없었다. 한낱 마법검이 오러 블레이 드를 부숴 버리고 자신의 목숨마저 거두어 갈줄이야. "이.이런믿을 수없는일이…" "믿을 수없는 일이 아니지.” "........!"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테르크스 후작의 시선이 위로 향했다. 그곳에는 백발이 휘날리고 있는 노기사가 서 있었다. 무척 점잖아 보이는 이미지를 하고 있는 노기사의 정체 는 다름 아닌 케이피드였다. 그는 테르크스 후작을 바라 보며 입을 열었다. "마스터의 검을 받아 내려고 하는 것 자체가 무모한 짓 이지." "마, 마스터?" 테르크스 후작의 얼굴에 경악이 서린다. 갑자기 마스터 라니. 그 말을 믿으란 말인가. 하지만 믿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의 말처럼 마스터의 일격이 아니라면 자신을 이렇게 만드는 것은 불가능했으니 말이다. 케이피드는 그런 테르크스 후작을 향해 말했다. "너를 죽인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고 죽는 건 억울한 일 이겠지. 내 이름은 마이드 제국의 케이피드 로셀린이다. 삼십오 년 전에 마스터에서 은퇴하기도 하였지." 기사치고 마이드 제국 출신의 마스터를 모르는 인물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테르크스 후작도 마찬가지여서 케이피드의 말 을 듣는 순간 그의 눈이 경악으로 부릅뜨였다. 그를 보며 케이피드가 웃음을 지었다. “그럼 죽어라." 푸하학! 간단한 케이피드의 손짓에 테르크스 후작이 피를 분수 처럼 뿜어내며 그대로 쓰러졌다. 죽은 것이다. 테르크스 후작을 죽인 케이피드가 주변을 둘러본다. 그 러자 그를 포위하고 있던 인물들이 흠칫하며 뒤로 한걸음 물러선다. 카르미안 왕국의 국경 수비대 사령관이자 오러 나이트 인 테르크스 후작을 마치 어린에 다루듯이 죽여 버린 인 물이다. 그에 격분하는 사람들도 당연히 있었다. "감히 후작님을…… 죽…… 커헉!" 케이피드에게 달려들려던 기사는 그대로 목을 잃고 쓰 러졌다. 허공에 떠 있는 검에서 오러가 발출된 것이다. 그야말로 전쟁을 지배하는 신과도 같은 인물이었다. 이렇게 압도적인 신위라니. 포위망을 구축하고 있던 이들의 눈에 두려움 서렸다. 케이피드가 그들을 향해 선포하였다.. "너희들은 모두 죽을 것이다." 그것은 전쟁을 지배하는 자의 절대적인 사형 선고였다. 오만의 군대가 주둔하고 있던 카르미안 왕국의 국경은 이틀 만에 무너지고 말았다. 제6장 하기 싫어도 해야만 하는 일 마이드 제국군에 의해 국경이 무너진 소식은 곧장 지원 군을 향해 전해졌다. 소식을 전해 들은 레닐의 표정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국경이 무너졌다고?" 내일이면 아니, 한나절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그런데 그 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국경이 무너지다니. 국경을 지키고 있던 오만 대군에서 지원군에 합류한 것 은 채 일만도 되지 않았다. 지속적으로 합류하고 있지만 마이드 제국군의 끈질긴 추격에 사방으로 흩어져서 다시 규합하는데 큰 어려움이 따랐다. "........." 국경이 무너졌다는 소식에 레닐이 입술을 잘근잘근 씹 으며 생각에 잠겼다. 지금 상황은 레닐에게 있어 선택의 기로라고 할 수 있다. 국경이 무너졌다고 하나 그곳은 엄연히 말하면 사람들 이 살고 있는 지역이 아니다. 하지만 자신들이 주둔하고 있는 이곳은 카르미안 왕국의 백성들이 살고 있는 지역 이다. 이대로 국경으로 진군하는 방법이 있고 마이드 제국군 이 나오길 기다리는 방법이 있다. 튀니르 왕국에게 보햄 지방을 공격해 달라는 요청을 해 놓은 상태지만 그걸 대비하기 위해 마이드 제국의 군대 삼만이 튀니르 왕국과의 접경지대에 군대를 배치한 상태 였다. 즉. 이대로 국경의 군대를 몰아내지 못하면 가장 중점 인 마이드 제국군의 보급을 끊어버릴 수 없다는이야기 가 된다. 그렇다고 국경으로 진군한다 한들 공성전을 치러야 하 는 입장이기에 적은 숫자의 군대로 함락하기도 힘들다. "허공에서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마법검이라고?" 허공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마법사와 기사들을 학살 하고 다닌 검의 정체에 대해 듣는 순간 레닐은 그것이 케 이피드의 소행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직접 눈으로 보지는 못했지만 다르만의 조언이 있던 것 이다. 로셀린 공작은 검을 자유롭게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그는 자신의 의지대로 검을 움직일 수 있 다고 하였다. 정말 가공할 능력이 아닐 수 없었다. 의지로 검을 자유로이 다룬다는 것은 케이피드의 속성 이 변환계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것도 극의 경지에 이른 실력으로 말이다. 과연 자신이 그와 대결을 벌여 이길 수 있을까. 마음이 무거워지는 레닐이었다. 레닐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국경에서 하루 정도 떨어진 거리에 주둔하여 흩어진 병 사들을 수습하다 보니 어느새 정비를 마친 마이드 제국의 군대가 성에서 나와 카르미안 왕국군과 정면으로 대치하 기 시작한 것이다. 마이드 제국의 군대 규모는 물경 칠만에 이르렀다. 카 르미안 왕국으로 침공한 그들의 규모는 구만 정도인데, 그중에서 성을 함락하는 과정에 오천여 명의 사상자가 발 생한 상태였다. 즉, 성을 지키는 만오천의 병력을 제외한 모든 병력을 이끌고 나온 상태라 볼 수 있다. 마이드 제국군이 성문을 열고 나오자 카르미안 왕국 측 에서 회의가 열렸다. 칠만에 달하는 마이드 제국군이었지만 카르미안 왕국 군의 규모는 칠만오천에 달했다. 부상을 입은 병사들까지 모두 합치면 팔만에 가까운 규 모였다. 규모 면에서는 엇비슷하였지만 상황은 압도적으로 카 르미안 왕국이 불리하였다. 그에 대한 대책 회의가 열린 것이다. "마이드 제국이 진격을 해 오고 있다니 대안을 이야기 해 보았으면 합니다.” 어차피 이야기를 해 본다 한들 뚜렷한 대책이 나올 리 가 없다. 오만의 군대로 국경만 지킨다면 충분히 마이드 제국을 막아낼 수 있다고 하던 귀족들이 대다수였던 것 이다. 그렇다고 '국경을 수비하던 테르크스 후작이 바보였 나?' 라고 하면 그건 아니었다. 테르크스 후작은 지난 수십 년 동안 국경을 지켜 온 노 련한 인물이었으니 말이다. 보고에 따르면 테르크스 후작은 지극히 정석적인 방법 으로 수성에 임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하루도 버티지 못했다는 것은 마이드 제국의 힘이 그만큼 가공할 정도라는 뜻이 된다. 레닐의 말에 입을 연 것은 펜트래이 자작이었다. 손을 들어 발언권을 얻은 팬트레이 자작은 자리에서 일 어나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 시작하였다. "마이드 제국의 군대는 우선 세계 최강이라는 타이틀 이 있을 만큼 대단한 전력을 지닌 군대입니다. 하지만 그 들 또한 엄연히 피와 살로 이루어진 인간인 만큼 심리적 인 측면에서 지고 들어가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펜트레이 자작의 말은 마이드 제국이라는 이름에 지레 기가 죽어 있는 귀족들의 모습을 꼬집는 말이었다. 그렇게 말문을 연 펜트레이 자작이 레닐읕 보며 말을 하였다. "마이드 제국은 병사들뿐만 아니라 기사 전력 또한 대 단합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성을 하루 만에 함락시키 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공작님께서 알고 계신 것이 있습 니까?" 왕국에서 손에 꼽힐 만큼 뛰어난 두뇌를 지닌 펜트레이 자작은 무언가 보이지 않는 강력한 힘이 작용하였다고 생 각하고 있었다. 병사들이 말하는 마법검의 정체가 바로 그러했다. 허공에 떠 있는 마법검이 기사와 마법사를 학살하고 테 르크스 후작을 베었다고 한다. 그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그렇게 말을 하였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무언가 강력한 힘이 작용 하였다는 이야기였다. 처음부터 정곡을 찔러 버리는 펜트레이 자작의 물음에 레닐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는 바가 있다.” "우선 그것이 무엇인지 알려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펜트레이 자작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레닐에게 집중 된다. 그러자 레닐이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사실대로 말 한다. "마이드 제국 측에 마스터가 존재한다.” “……마스터! 으음! 데칸 공작 혹은 셀리든 공작을 말 씀하시는 겁니까?" 어느 정도 예상 범주에 있었지만 확신에 찬 레닐의 말 을 들은 귀족들은 침음을 흘렸다. 마이드 제국 출신 마스터의 이름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그 이름은 곧 대륙 최강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니 말이 다. 데칸 공작이나 셀리든 공작은 수십 년 전부터 마스터의 자리에 올라 그 위명이 대륙 전역에 올려 퍼지고 있는 인 물들이었다. 모든 마스터들보다 한 수 높은 실력을 지녔다 하여 대 륙 제일의 경지가 가깝다고 알려진 만큼 부담스러운 상대 가 아닐 수 없었다. 특히 점잖고 신사적인 데칸 공작의 검술이나, 괴팍하 면서 사이한 셀리든 공작의 검술은 전혀 다른 성격을 지 니고 있으면서 대륙에서 제일 상대하기 까다로운 측에 속한다. 거기에는 라페리온 후작도 끼어 있었지만 웨이던 후작 에게 패하고 레닐의 검에 죽는 순간, 그의 가치는 한없이 추락해야만 했다. 라페리온 후작의 죽음으로 인하여 데칸 공작이나 셀리 든 공작의 이름이 깎여 나가야 함이 옳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만큼 마이드 제국 출신 마스터라는 것은 확실한 보증 수표였던 것이다. "둘 다 아니다.” 펜트레이 자작의 말에 고개를 젓는 레닐이었다. 차라 리 두 사람 중 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그 들은 극복할 수 있는 범주 내에 속하는 인물이었으니 말 이다. “둘 다 아니라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공작님?" 머리가 좋은 펜트레이 자작이라도 레닐의 대답이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듯 하였다. 마이드 제국에 데칸 공작과 셀리든 공작을 제외하면 다 른 마스터가 있단 말인가? 그 물음에 레닐은 표정을 굳히면서 말했다. "마이드 제국군에 있는 마스터는 로셀린 공작이다. 아 는가?" "로셀린 공작? 그게 누구‘…“ 선뜻 기억나지 않는지 고개를 갸웃하는 펜트레이 자작 이었다. 그때,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던 바르가스 공작이 대 경하며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젊은 층인 펜트레이 자작은 모르지만 바르가스 공작 시 대 사람들이라면 그 이름은 절대 잊을 수 없는 이름이었 던 것이다. "로셀린 공작! 카르미언스 공작, 내가 생각하는 인물이 맞습니까?" 레닐읕 보며 묻는 바르가스 공작이었다. 그만큼 레닐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맞습니다. 그 로셀린 공작입니다.” "맙소사一" 레닐의 수긍에 침음을 홀리는 바르가스 공작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펜트레이 자작이 의문 섞인 물음을 던졌다. “도대체 로셀린 공작이 누구입니까?" 그 의문올 해소시켜 준 것은 바르가스 공작이 아닌, 조 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카이드였다. "마이드 제국의 전대 마스터 중 한 사람인 로셀린 공작 을 말하시는 것일 겁니다. 삼십오 년 전에 은퇴한 최강의 기사 중 한 사람. 맞습니까, 공작님?" 마이드 제국 황립 아카데미에 다닌 카이드는 검을 수련 하지 않았지만 마이드 제국 출신의 마스터에 대해서는 잘 알고있다. 그랬기에 로셀린 공작의 정체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 이다. 카이드의 물음에 레닐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바로 그 로셀린 공작이지.” ““…그가 아직 살아 있다니 놀랍기만 하군요.” 레닐의 수긍에 카이드도 허탈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그만큼 로셀린 공작이란 이름이 주는 파급력은 대단하 였다. 삼십오 년 전에 은퇴한 마스터가 등장하다니. 마이드 제국의 전대 마스터들은 최소 삼십 년 이상 마 스터 자리에 군림하다가 은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말은 즉 마스터 자리에 오른 지 육십 년이 넘는 세월 이 지났다는 이야기였다. 도대체 그 기간 동안 얼마나 강해졌을 것이란 말인가. 감히 상상도 하기 힘든 수준임이 틀림없었다. 그때,이야기를 듣고 있던 카온이 끼어들었다. 그는 한 가지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대단한 것은 알겠는데…… 그 정도 세월이 지났다면 전부 늙을 만큼 늙어서 검조차 제대로 들지 못할 것 아닙 니까?" “오! 그것도 그렇군요. 그럴 수도 있지 않습니까?" 카온의 말에 귀족들이 동조하며 고개를 힘차게 끄덕 였다. 마스터에 오른 지 육십 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다는 것 은 나이가 최소한 백이 넘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현존하는 마스터 중 최고령인 요맨 공작의 나이가 백이 됨에 따라 노환이 생겼다는 소문이 돌지 않았던가? 제아무리 마스터라도 세월의 힘을 이겨 내기란 불가능 에 가깝다. 그것은 신이 정해 놓은 자연의 섭리였으니 말이다. 그 말에 희망에 찬 목소리를 내는 귀족들올 보며 레닐 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입을 열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평범한 수준일 경우 그런 것이고. 마이드 제국의 마스터 같은 경우…… 이미 극에 다다른 경지이기에 더 이상 노화가 진행되지 않는다고 보면 되 오. 즉, 전성기 때의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겠지만 더욱더 웅혼해진 마나와 노련해진 검술로 인하여 상대하기가 벅 차졌다고 볼 수 있지. 만약 내가 로셀린 공작과 겨루게 된 다면……" 레닐에게 귀족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한창 떠오르는 그와 로셀린 공작이 맞붙는다면? 어떻게 될지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하였다. 하지만 돌아온 말은 잔혹한 현실이었다. “십중팔구 나의 패배일 것이오. 로셀린 공작의 실력은 마스터 중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기 때문이지.” 로셀린 공작이 유리할 것이라 생각하긴 했지만 막상 레닐의 이야기를 들으니 귀족들은 맥이 탁 풀리는 기분 이었다. 마나가 웅혼하고 검술의 깊이가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깊어진다 하여도 레닐에게는 그들에게 없는 젊음이란 것 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것이라면 능히 그들과 맞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 데 그것은 그들의 착각이었나 보다. 마스터의 자존심은 그야말로 하늘과도 같다고 알려져 있는데 레닐이 스스로 자신의 부족함올 인정할 정도라면 그 차이는 꽤나 심한 수준이라 볼 수 있다. 레닐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한다. "이번 전쟁은 좋으나 싫으나 나와 로셀린 공작의 대결 결과에 따라 승패의 향방이 갈릴 터. 하지만 나의 패배가 될 확률이 높은 만큼…… 경들은 미리 준비를 해 둬야 할 것이오" 말을 하는 레닐의 모습은 마치 자신의 죽을 자리를 알 고 찾아가는 둣한 사람의 모습이었다. 어쩌 그러하지 아니할까. 자신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있고, 로셀린 공작 의 실력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짐작이 가능한 시점에서 도저히 답이 나오질 않는데 말이다. 지금 레닐이 실날같은 가능성을 걸고 있는 것이 바로 레드티어즈 사단계의 힘이었다. 그 힘을 전력으로 발휘한다면 아주 조금은 승산이 생기 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분위기가 엄숙하게 변했다. 승리를 장담하기는커녕 자신이 패배했을 경우를 미리 대비해 놓으라는 레닐의 말 때문이었다. 여태까지 레닐의 약한 모습을 본 적이 없던 카온은 경 악한 모습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고. 카이드는 자신의 머리로도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 문제 때문에 입술을 질끈 깨물고 있었다. 묵직하게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마이드 제국군에 맞 서기 위한 회의가 끝이 났다. 그 어떤 결과도 내지 못하고 귀족들 머릿속에 절망이라 는 단어만 새긴 채 말이다. 어느덧 마이드 제국군은 코앞에 도착해 있었다. "마스터 렌이라. 제법 머리가 돌아가는 녀석이로군.” 거북이처럼 단단하게 응집되어 있는 카르미안 왕국의 군대를 보면서 케이피드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는 카르미안 왕국의 군대가 곧장 국경을 향해 진격해 올 줄 알았다. 마이드 제국의 보급로를 활짝 열어 둔 상황이니 만큼 카르미안 왕국의 입장에서 그것을 끊어 놓을 필요가 있 었다. 케이피드는 그 점을 노려 카르미안 왕국군이 진격하면 큰 피해를 입히도록 메복을 준비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것을 알고 있는 건지. 아니면 신중을 기하기 위한 것인지 카르미안 왕국군은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와해되었던 국경 수비군을 받아들임으로써 규 모를 키워 나갔다. 그에 케이피드는 카르미안 왕국을 이끌고 있는 레닐이 제법 머리가 돌아가는 녀석이라 생각하였다. 뜻하지 않은 위기 상황이 닥쳤음에도 신중하게 대처하 는 모습을 보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상황이 어떤지는 알고 있겠지.” 보햄 지방에서 도망친 마법사가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 다면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있을 터. 명백한 실력 차이는 결코 극복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마이드 제국과 카르미안 왕국의 군대 규모는 엇비숫 하다. 전체적인 전력에서는 마이드 제국이 우위를 점하고 있 지만 그 차이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결국 그런 상황에서 전쟁의 향방을 판가름하는 것은 마 스터 간의 대결이다. 레닐 또한 이 점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자신과의 대결은 반드시 성사될 수밖에 없고, 그 결말 에 따라 전쟁의 흐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것 을 말이다. "십 년. 아니. 오 년만 지났어도 결과는 어떻게 되었 을지 모르지만 지금 당장 대결해야 한다는 사실이 중요 하지.” 이제 백이십이 넘은 자신은 하루가 다르게 기력이 쇠하 고 있지만 레닐은 다르다. 아직 젊은 만큼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것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마나 보유량이 더욱 많아지고 검술 의 깨달음도 깊어지지만 그 힘을 펼칠 그릇은 점점 약해 져 가고 있었다.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레닐과 대결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절호 의 기회였다. 앞으로 위험한 싹으로 자라날 그인 만큼 사전에 짓밟아 놓는 것이 중요했다. “거절하지 못할 것이다. 너는 카르미안 왕국의 자존심 이기에.” 케이피드가 웃음을 지었다. 이제 자신의 검으로 레닐의 목을 베기만 하면 된다. "........." 마이드 제국군이 카르미안 왕국 맞은편에 진을 쳤다는 보고를 받은 레닐은 전용 막사에 틀어박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다른 귀족들도 레닐의 마음이 어떠할지 짐작하고 있었 기에 뭐라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전대 마스터이자 대륙 최강의 자리에 군림하고 있던 로 셀린 공작과의 대결을 앞둔 레닐의 마음이 어떨지 상상도 하기 힘들었기에 그렇다. 사람이 태어나면 그 결과가 비참할 것이라는 것을 알면 서도 반드시 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 레닐의 상황이 바로 그러하였다. 그가 제스테리언을 꺾었다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우연 의산물. 마이드 제국에서 제스테리언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 만큼 그다음 마스터들은 방심을 하고 있을 리가 없다. 상대가 방심올 한다면 레닐이 승리할 확률은 희박하다. "레드 티어즈률 믿어야 한다." 한 가지 가능성이 있다면 레드 티어즈의 힘을 전력으로 발휘하여 맞서는 것이다. 제스테리언읕 꺾었다고 하나 그 방법이 무엇인지 알지 못할터. 레닐은 제스테리언을 꺾을 수 있었던 레드 티어즈의 힘 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자신에게 승리할 가능성 여 부가 정해진다고 생각하였다. "현재 나의 실력은 마스터 중에서 중간 정도일 것이 다.’ 지극히 객관적으로 자신의 실력을 평가하는 레닐이 었다. 마스터 간의 실력 차이가 어느 정도 있다고 하지만 그 것은 그야말로 종이 한장차이. 자신의 실력이 마스터 중에서 중간권에 속한다고 하 나 상위권들과도 능히 일전을 불사할 수 있으리라 생각 하였다. 하지만 최상위권으로 넘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들의 실력은 그야말로 인간의 범주를 넘어선 것. 그것을 극복해야 만이 자신에게 일말의 승산이 존재 한다. "반드시 꺾는다. 거창한 이유 따위는 필요 없어. 나를 위해 살아남을 것이다.’ ‘ 그렇게 다짐하는 레닐의 막사에 기사들이 쏘아온다. 침중한 안색을 하고 있는 그들이 레닐에게 말한다. “공작님! 마이드 제국의 진영에서 총사령관이라는 자 가 공작님에게 대결 신청을 하였습니다.” ‘왔는가.' 레닐의 눈이 번똑였다. 적의 총사령관이라는 부분에 서 그가 직감적으로 로셀린 공작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자리에서 일어선 레닐이 기사들에게 말했다. "직접 나갈 것이다.” "예. 공작님.” 본격적으로 케이피드와 대결을 앞두게 된 레닐. 그의 안색은 빠르게 굳어 가고 있었다. 마이드 제국과 카르미안 왕국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거 리를 두고 대치하고 있었다. 양국 군대 사이에는 널찍한 공간이 자리하고 있었다. 상대방의 옴직임을 확인할 수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언제 든지 공격을 가할 수 있는 가까운 거리였다. 케이피드는 양국의 군대 중간 지점이라 할 수 있는 곳 에 서 있었다. 그가 카르미안 왕국군에게 말한 것은 다름 아닌 대결 신청. 마이드 제국의 총사령관이라 밝힌 뒤 카르미안 왕국의 총사령관과 검을 나누고 싶다고 자신의 의중을 전달한 것 이다. 마스터의 자존심이 있는 만큼 레닐은 자신의 제안을 거 절하지 못하리라. 중앙에서 기다리고 있던 케이피드의 눈이 번뜩였다. 카르미안 왕국의 진영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오는 것을 본 것이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오는가.” 실제로 본 적이 없어도 케이피드는 한눈에 그가 레닐이 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래닐의 상징과도 같은 붉은색 갑옷과 붉은색 머리, 그 리고 손에 쥐어진 검까지 붉은색이었다. 그리고 이십 대초반의 외모는 그가 레닐이라는 것을 알 아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케이피드는 자신과 약 이십여 미터 떨어진 곳에 멈춰 선 레닐읕 보고 입을 열었다. "네가 레닐인가?" "당신이 로셀린 공작입니까?" 대답을 하지 않고 되레 묻는 레닐이었다. 하지만 그의 물음은 그가 레닐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이 야기가 되었다. 레닐의 물음에 케이피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지금은 은퇴했기에 공작이라는 말이 맞을지 는 모르지만 현역으로 활동할 당시 로셀린 공작으로 활동 을 하였지. 나를 알고 있는가?" “검을 잡은 검사로서 어찌 당신의 이름을 모를 수 있겠 습니까. 마이드 제국의 전대 마스터이자 카르미안 왕국 침공의 총사령관을 맡으신 로셀린 공작님의 이름을.” 케이피드의 입가에 웃음이 서렸다. 레닐의 말에 가시가 숨어 있던 것이다. “상당히 비꼬는 의미가 들어갔군. 하기야, 적으로 만난 입장이니 그걸 따질 수도 없겠어. 안 그런가?" "이미 은퇴를 해 놓고 이렇게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것 은 좋지 않습니다.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지요?" 은퇴를 했다는 것은 말 그대로 모든 일에 손을 놓았다 는 이야기다. 레닐의 말은 대륙에 모습을 드러낸 케이피드를 강하게 꼬집고 있었다. 하지만 케이피드는 담담한 얼굴로 대답한다. "그럴 수도 있지. 은퇴를 했다는 것은 모든 일에 손을 떼었다는 이야기가 되니까. 하지만 말이야…… 제국의 영 광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쉬운 일 아니겠는가? 후후!” "마이드 제국의 목적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만.” 여유로운 얼굴로 대답하는 케이피드의 모습에 레닐이 표정을 살짝 찡그리며 물었다. 케이피드의 심기를 거슬리게 만들려고 했는데 능구렁 이처럼 능숙하게 잘 빠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 물음에 케이피드가 간단하게 대답한다. "목적? 눈에 보이고 있지 않나“ "마이드 제국의 목적이 대륙 통일이란 말입니까?" 인상이 일그러지는 레닐이었다. 그는 예전부터 마이 드 제국의 목적이 대륙 통일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던 것 이다. 그에 케이피드가 피식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하! 대륙 통일이라니. 정말 거창하군. 설마 본 제국 이 정말 대륙 통일을 하려고 한다 생각하는 건가?" “그렇게 보입니다만……" 카르미안 왕국올 멸망시키면 튀니르 왕국과 게르만 왕 국은 마이드 제국에게 갇힌 형태를 취하게 된다. 그 말은 즉, 두 왕국도 결국 마이드 제국에게 멸망을 당 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니 어찌 대륙 통일이라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 는가. 세 왕국올 모두 집어삼키게 되면 벤자이어 제국과 사 이에 두게 된 카포인 도시국가, 데이안 왕국, 디반 왕국 은 모두 두 제국의 먹잇감으로 전락하게 되는 꼴이니 말 이다. "그런 거창한 목표률 가지고 있는 인물도 있겠지만 본 제국의 목적은 진정한 대륙의 패자가 되는 것이지. 간단 하게 대륙의 북부와 중부를 일통할 생각이라고 보면 된 다 네.” "중부 지방까지……" 레닐이 침음을 홀린다. 대륙 통일이라는 것은 허황되게 느껴지지만 중부 지방 일통은 결코 허황되지 않게 느껴졌다. 카르미안 왕국만 멸망시키면 그 수순을 밟아 나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침음을 흘리는 레닐을 보며 케이피드가 말했다. “북부의 방대한 영토를 지니고 있지만 본 제국은 아직 까지 식량을 자급자족하기가 힘들지. 카르미안 왕국과 튀 니르 왕국을 멸망시키기만 하여도 그 부분은 해결될 터. 우리라고 전쟁을 좋아하는 것만은 아니지.” "결국 자기 합리화에 불과한 말이군요.” 자신들의 행동이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케이피드의 말 에 차갑게 대답하는 레닐이었다. 결국 저 말의 의미는 자신들의 행동이 정당하다는 것이 었다. 전쟁으로 인해 죽어 가는 모든 생명들을 모욕하는 말이 기도 하였고 말이다. "그렇게 들릴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상황 에 처하지 않았기에 나오는 말일 터. 이해하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하지만 마스터 렌, 너는 본 제국의 계획에 방 해가 되는 인물이다. 유감이지만 이 자리에서 죽어 줘야 겠다.” 레닐이 레드 티어즈를 높이 치켜들며 케이피드에게 말 했다. "쉽게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스테리언 대공도 결국 제 손에 생을 마감하였으니 말입니다.” 제스테리언이 언급되자 잠시 말을 잃은 케이피드였다. 그는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후후후! 그렇지. 잊고 있었어. 그 친구에게 미안해지 는군. 너는 내 친우인 제스테리언을 죽이기도 하였지. 결 코 살려 두지 않을것이다" 그 말과 함께 케이피드가 검을 뽑아 들기 시작한다. 레닐과 케이피드 사이에 살기가 충만해지기 시작하 였다. 제7장 잘못된 깨달음 "............" 케이피드가 검을 뽑아 드는 모습올 보며 레닐이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검술이 얼마나 강력한지 이미 이야기로 듣고 있던 것이다. 마이드 제국 전대 마스터들은 각 분야에서 대륙 제일의 경지를 달성했다고 한다. 제스테리언 대공은 압도적인 오러의 위력으로 대륙 제 일을 달성하였으며, 로셀린 공작은 오러 컨트롤으로 대륙 제일의 경지에 이름을 올려놓았다. 그리고 카빌리어 공작은 가장 실리적인 힘의 활용으로 대륙 제일에 오르게 되었다. 그만큼 로셀린 공작의 오러 컨트롤은 정교하면서 상대 방의 빈틈을 절묘하게 파고드는 위력을 지니고 있다. 방심하다가는 순식간에 당할 수도 있다. 경계심올 끌어 올리는 순간, 손에 쥐어진 케이피드의 검이 허공에 두둥실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그와 함께 그의 손이 레닐을 가리켰다. "가라!” 그와 함께 레닐을 향해 검날을 세운 검이 맹렬한 속도 로 쇄도하기 시작하였다. 쑤에엑! "헉!” 둘 사이에 이십여 미터의 거리가 있었지만 그 거리가 무색할 정도로 케이피드의 검은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오 며 레닐에게 짓쳐들고 있었다.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레닐이 재빨리 검을 휘둘렀다. 그의 검에는 푸른색 오러가 넘실거리고 있었고. 케이피 드의 검에도 푸른색 오러가 뿜어지고 있었다. 어떻게 신체에 닿지 않았는데 검에 오러를 불어넣을 수 있단 말인가. 레닐은 의문이 생기는 것을 느끼면서 케이피드의 검을 쳐 냈다. 콰아아앙! "큭! 역시……" 케이피드의 검과 충돌한 레닐이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오러의 위력이 어떨까 싶었는데 자신보다 케이피드가 우위를 차지하고 있던 것이다. 역시 세월의 힘은 쉽사리 극복할 만한 성질이 아닌 둣 하였다. 그 생각이 더 이어질 틈도 없이 케이피드의 검과 레닐 의 검이 복잡하게 얽혀 나가기 시작하였다. 채애앵! 오러를 힘껏 불어 넣어 케이피드의 검을 튕겨 낸 레닐 의 검에 푸른색 기운이 응집되더니, 케이피드에게 쏘아 진다. 짧은 순간 오러 서클을 시전하여 케이피드에게 투척한 것이다. 작은 크기였지만 그 위력은 오러 블레이드에 비해 떨어 지지 않았다. 허공에 떠오른 케이피드의 검은 오러 서클을 막아 내기 에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었다. 검을 상대하기가 까다롭다면 당사자를 공격하면 된다! 그것이 레닐이 파악한 케이피드의 단점이었다. 하지만 그런 단점은 누구나 쉽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었다. 오러 서클이 자신에게 쇄도하는 것을 보는 순간. 케이 피드는 허리춤에서 한 자루의 검을 더 꺼내 들었다. 그는 두 자루의 검을 차고 다니고 있던 것이다. 콰앙! 푸른색 오러가 뿜어진 그의 검이 레닐의 오러 서클을 쳐 냈다. "제법이군. 나를 직접 공격할 생각을 하다니. 하지만 너무 쉬운 방법이야.” 케이피드가 왼손을 뻗어 레닐을 가리키자 허공에 떠 있 던 그의 검이 다시금 레닐에게 달려들기 시작하였다. 허공에 떠 있는 케이피드의 검은 상대하기가 너무나 까 다로웠다. 자신이 도달할 수 없는 허공에서 오러를 뿜어내기도 하 였으며,직접 검을 휘두르는 것처럼 상대하기 어려운 검 술을 펼쳐 내기도 하였다. 만약 사람이 검올 쥐고 직접 검술을 펼쳤다면 이토록 고전할 이유가 없다. 아무리 뛰어난 검술이라 하여도 인간의 움직임에는 한 계가 있기에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허공에 떠 있는 검은 인간의 움직임을 뛰어넘는 면모를 보였기에 상대하기가 무척이나 난감하였다. "큭! 제기랄.” 케이피드의 검을 튕겨 내면서 레닐의 입에서 욕설이 터 져나왔다. 그의 스타일은 정말 무적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당장 허공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그의 검을 막아 내기 급급할 뿐만 아니라, 어찌어찌 기회를 만들어 내어 직접 케이피드를 공략하려고 해도 그의 검이 모든 공격을 차단 한다. 그사이 허공에 떠 있던 검이 자신을 공략해 오고 있다. 도저히 승산을 잡을 수 없는 악마 같은 검술이 아닐 수 없었다. 대결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케이피드 검술에 승기를 빼앗기고 있다는 것을 느낀 레닐은 마스터의 힘을 끌어 올리기 시작하였다. 단 일격에 수십 개의 변화를 담아 내는 레닐의 세공검 술이 발현된 것이다. 이것은 상대방의 힘을 차례대로 분쇄하는 레닐만의 검 술이었다. 파사사사! 레닐의 일격과 충돌한 케이피드의 검이 주춤한다. 검에 서린 오러가 얼음에 균열이 일어나는 것처럼 실금 이 생기더니 깨져 나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음!” 그걸 본 케이피드가 침음을 흘리며 가법게 손짓을 하 니. 검이 허공으로 치솟는다. 레닐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오러 서클을 시전하여 케이피드에게 날린다. 방어 자세를 취하는 케이피드률 보면서 검을 움켜쥔 레 닐이 곧장 그에게 달려들었다. 쉴 틈 없이 물아쳐야 한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쾅! 오러 서클을 무리 없이 막아 낸 케이피드는 곧장 자신 을 향해 검을 휘두르는 레닐과 검을 나눠야만 했다. 전력을 발휘하며 달려드는 레닐과 순식간에 십여 번의 공방을 펼쳤다. 뒤로 세 걸음 물러선 케이피드가 레닐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제법이군.” "큭! 과연 최강의 마스터라는 소리를 들을 만하군요.” 레닐의 표정이 보기 좋게 일그러져 있었다. 방금 전 충돌로 케이피드는 세 걸음 뒤로 물러섰을 뿐 이지만 레닐은 무려 다섯 걸음이나 뒤로 물러야만 했다. 기본적인 오러의 파괴력에서 차이가 날 뿐만 아니라 오 러 컨트롤에서도 차이가 났다. 보통 자신보다 강한 힘을 지닌 상대를 만나면 그 위력 을 흘려 버리는데. 케이피드는 오러를 절묘하게 컨트롤하 여 레닐로 하여금 힘의 여파를 흘려 버리지 못하게 만드 는 것이다. 그로 인해 레닐은 케이피드의 힘을 그대로 감당해야만 했다. 이대로 대결이 지속되면 큰 내상을 입게 될 것임이 분 명하였다. "그럼 이제 슬슬 본격적으로 해야겠군. 방금 전 그것이 전력을 다한 것인가?" 마스터답게 케이피드는 방금 전 레닐의 일격이 그가 지 닌 전력의 일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의지로서 검을 자유롭게 다룰 수 있다면 레닐은 그만의 경지를 개척한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적에게 자신의 전력을 노출시키는 바보는 없을 것이다. 검올 치켜들며 레닐이 입을 열었다. "보시면 알 겁니다.” "보면 알겠지. 그리고 실력 차이도 느끼게 될 것이고. 이제 봐주는 것은 없을 것이다.” 파아앗! 그의 손짓에 떠오른 검이 레닐에게 쇄도하기 시작하 였다. 동시에 케이피드의 신형이 흐릿해지더니 레닐에게 달 려들고 있었다. 뒤에서 허공을 격하고 검이, 앞에는 케이피드가 달려들 고 있었다. 설마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수 있을 줄은 몰랐기에 레닐 은 얼굴을 굳히며 검을 휘둘렀다. 푸른색 오러가 뿜어지며 그의 전력이 발휘되었다. 상대방의 오러를 분쇄하는 그의 힘이 시전된 것이다. 파아앙! 레닐의 검이 케이피드의 검과 충돌하면서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아니, 케이피드의 오러가 부서지면서 오히려 레닐이 우 위를 점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그 우위도 찰나에 불과하였다. 본격적으로 케이피드를 밀어붙이려던 레닐은 뒤에서 자신을 갈라 오는 검을 막아야 했던 것이다. 그검을 막아 낸 레닐은 곧바로 앞에서 휘둘러지는 케 이피드의 검을 막아야 했다. "큭! 크윽!” 마치 두 명에게 합공을 당하는 것처럼 레닐은 순식간에 수세에 돌리기 시작하였다. 가뜩이나 허공에서 자유로이 움직이는 검을 상대하기 까다로운 판에 케이피드가 정면으로 달려드니 어찌하기 가 힘들었던 것이다. '마스터 두 명에게 합공을 당하면 이런 느낌일까?'라 는 생각이 들 정도로 케이피드의 공세는 버겁게 느껴질 정도로 강력하였다. 두 자루의 검이 마치 각각 사고를 지니고 있는 것처럼 레닐의 빈틈을 노리고, 압박해 오니, 레닐로서는 이렇다 할 반격조차 할 수 없었다. , 채 다섯 합이 지나기도 전에 케이피드의 공격을 막아 내기 급급했으니 말이다. ‘이런 식으로도 검의 운용이 가능하다니.’ 검을 막아 내기 급급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케이피드가 운용하는 검을 보면서 많은 것올 느끼고 있는 레닐이었다. 그것은 케이피드가 자신과 같은 변환계의 속성을 지니 고 있기에 그렇다. 어찌 보면 선구자라고 해도 무방한 케이피드의 검 운용 은 레닐에게 있어 많은 깨달음을 주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공격이 거세지자. 레닐은 한계에 임박하고 있는 것을 느꼈다. '승부를 걸어야 한다.’ 노련한 케이피드는 한 번에 끝장내려는 것이 아닌, 서 서히 몰아불여 레닐을 무너뜨리려 하고 있었다. 레닐은 그걸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아마 여기에서 자신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인다고 하여 도 제스테리언과 같은 방심을 기대할 수도 없는 상황이 었다. 기회를 보며 그의 방심을 수차례 유도하려고 하였지만 별다른 음직임을 보이지 않은 채 오로지 자신의 페이스만 유지하고 있던 것이다. 레드 티어즈를 굳게 움켜쥔 레닐이 본격적으로 사 단계 의 힘을 해방하기 시작한다. 그러자 폭풍과도 같은 붉은 기운이 레드 티어즈를 중심 으로 뿜어지기 시작하였다. 파파파콰과! 붉은 기류는 강렬한 소용돌이를 일으키면서 레닐의 전 신을 휘감기 시작하였다. 그와 함께 레닐의 뒤에 붉은색 기운의 응집체가 생겨 났다. 동시에 레닐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꽈아아앙! "큭?!” 레닐의 검과 충돌하는 순간 케이피드는 방금 전과 비교 도 할수 없을 정도로 강한 힘에 손아귀가 시큰거리는 것 을 느꼈다. 오러 위력이 조금 전까지만 하여도 자신이 우위를 점하 고 있었는데 지금은 레닐의 일격이 더 강한 위력을 담고 있던 것이다. 그사이 레닐의 공격이 연이어 펼쳐졌다. 한순간 케이피드가 머뭇거리는 지금이야말로 자신에게 승기를 되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여긴 것이다. 붉은 기류와 푸른색 오러가 섞이면서 대기를 가르는 레 닐의 일격은 받아낼 엄두가 서지 않을 만큼 무시무시하 였다. "크으......“ 이어진 레닐의 일격에 뒤로 다섯 걸음이나 물러선 케이 피드가 표정올 일그러뜨린다. 세공검술로 변화를 가미하여 힘의 응집력을 높이고, 강 화계의 힘올 끌어다 쓰는 레닐의 힘은 가히 두려울 정도 로 강력하였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케이피드가 적용하지 못하고 속절 없이 밀릴 정도였으니 말이다. 레닐이 재차 공격올 감행하려고 할 때, 그는 멈첫할 수 밖에 없었다. 뒤로 밀리던 케이피드의 손을 떠난 검이 레닐읕 향해 쇄도했던 것이다. 그 일격을 래닐은 그대로 받아 내며 충돌하였다. 콰앙! 과지직! 강력한 레닐의 힘을 이겨 내지 못한 검이 그대로 부서 져 나간다. 검을 부숴 버린 레닐이 케이피드에게 달려들 때, 이미 또 다른 검을 잡은 그가 레닐의 일격을 받아 낸다. 파바바바밧! 방금 전과 위력 차이가 차원을 달리한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기에 검을 둥글게 휘두르며 레닐의 검에 서린 힘을 해소시켜 나갔다. 그리고 힘의 여파는 뒤로 한 걸음 물러나면서 자연스럽 게 흘려 버린다. 너무나 익숙한 움직임이었다. 뒤로 세 걸음 물러난 케이피드가 레닐을 바라본다. 그의 얼굴에는 놀라움이 서려 있었다. "강화계의 힘이라니. 벌써 그 단계에 이르렀단 말인 가.” 그렇게 말을 하는 케이피드가 고개를 젓는다. 아무리 레닐이 천재라 하여도 그 경지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리라 여긴 것이다. 마스터에 오르고 그 경지가 극에 이르면 새로운 경지로 진입할 수있는 경로가 열린다. 자신을 비롯하여 제스테리언과 카빌리어 공작이 그 경 지에 진입한 상태였다. 새로운 경지는 각기 자신들이 얻은 깨달음을 바탕으로 개척해 나가는 일종의 미지의 길이랄까, 그런 느낌이 드 는 경지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이 어떠한 경지로 들어섰는지는 케이피드도 모른 다 자신을 비롯하여 제스테리언, 카빌리어 공작은 마이드 제국을 받쳐 온 기둥들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언젠가 꺾어야 할 경쟁자였기에 그렇다. 그가 레닐의 검을 보고 그 단계에 이르렀다고 말을 한 것은 동시에 두 가지 속성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깨달음을 얻어 새로운 단계로 나아갔을 때만 가능한 일이 었기에 그렇다.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게 되면서 케이피드는 자신의 속 성인 변환계 말고도 강화계와 범위계의 힘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케이피드는 그 방법을 택하지 않았다. 그는 다른 속성의 힘을 사용할 수 있는 기회를 저버린 채, 자신의 속성인 변환계를 더욱 발전시키는 방법얼 택 한 것이다. 다른 속성들올 함께 사용할 수 있게 되면 분명 더욱 강 해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완벽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다.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케이피드는 단점을 보 완해 나가는 방법을 포기한 채 장점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선택하였다. 그것이 지금의 경지에 도달하게 만들어 준 것이다. "변환계 속성에서 강화계의 힘을 사용하다니.” 케이피드의 중얼거림에 붉은 기류에 휩싸인 래닐이 레 드 티어즈를 고쳐 쥐며 말한다. "이것이 제가 준비한 한 수입니다. 이제부터 쉽지 않을 것입니다.” “쉽지 않을 것이란 말은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지. 어 떤 방법으로 두 가지 속성을 동시에 발휘하는 것인지 모 르나 그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겠다" 케이피드의 말에 대꾸하지 않은 채 레닐이 곧장 그에게 달려들었다. 두 자루의 검을 다루던 그는 상대하기가 너무나 까다로 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검 한 자루를 파괴한 이상 케이피드의 수중에 있는 검 은 한 자루뿐인 것이다. 더 이상 신경이 분산되어 수세에 몰릴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레닐의 착각에 불과하였다. 그가 케이피드에게 달려들어 검을 휘두르려는 순간에, 케이피드의 검에서 세 줄기 오러가 뿜어져 나오더니, 각 기 기묘한 움직임을 보이며 레닐의 머리와 가슴. 허벅지 부분을 향하고 있던 것이다. 세 줄기 의 오러를 컨트롤 할 수 있다니 ! 레닐은 놀란 얼굴올 하면서 케이피드의 검을 막아 내고 자 검로를 바꾸었다. 그러고는 오러를 끌어 올려 케이피드의 오러를 튕겨 내 려고 하였다. 파바방! 레드 티어즈에서 뿜어진 오러가 폭발을 일으키면서 케 이피드의 오러를 막아 냈다. 폭발의 여파 때문에 레닐이 뒤로 주춤 물러나야 했다. 레닐이 막아 내는 모습을 보면서 케이피드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범위계의 힘까지?" 방금 전 레닐이 끌어 올린 힘은 일종의 범위계 힘이 었다. 그렇다는 건 세 가지 힘을 동시에 사용하고 있다는 이 야기가 아닌가? 케이피드가 자신의 힘을 알아보자, 레닐이 굳은 안색으 로 대답한다. "제스테리언 대공이 제게 말했습니다. 세 가지 속성 을 모두 취하는 자, 그랜드 마스터에 오를 것이라고 말 입니다.” "뭐? 제스테리언이 그랬다고?" 황당한 표정을 지은 케이피드가 중얼거린다. 그것도 잠시, 이내 케이피드는 크게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크하하하하! 그 친구, 가장 앞서 나가는 듯하더니 결 국 그랬구만. 그랬어.” 갑자기 광소를 터뜨리는 케이피드는 곧장 레닐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다른 수식어가 필요 없는, 그야말로 공간을 가르는 듯 한 일격이었다. 경계심을 극도로 끌어 올리고 있었기에 레닐은 케이피 드의 일격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레닐이 피하는 순간 케이피드의 검에서오러가 뿜어져 나오더니, 뒤로 물러나는 그에게 쇄도하고 있던 것이다. 쩌어엉! 검올 휘돌러 오러를 막아 내자. 그사이 레닐에게 접근 한 케이피드가 가슴을 노리며 검을 휘둘렀다. “큭!” 빈틈을 파고드는 케이피드의 일격에 레닐이 비틀거리 며 검을 받아 낸다. 그리고 삽시간에 궁지에 물리기 시작한다. 레닐은 전력 을 발휘하고 있지만 케이피드의 일격 하나하나를 받아 내 기에 벅찼다. ‘어째서?" 레닐은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째서 자신이 이렇게 밀리고 있단 말인가. 자신의 속성인 변환계의 힘과 레드 티어즈의 강화계 힘, 그리고 근래 들어 사용할수 있게 된 범위계의 힘까지 적절하게 조화를 이뤄 맞서고 있었다. 그렇다면 더욱 강해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왜 이렇게 속절없이 밀리고 있단 말인가. 변환계의 컨트틀 능력과 강화계의 파괴력, 범위계의 밸 런스적인 면, 이 세 가지를 조화시키면 최강의 힘을 손에 넣을 수 있읕 것이라 생각하였다. 제스테리언도 그러지 않았던가. 세 가지 속성을 정복하는 자가 그랜드 마스터에 오를 수 있을 것이라고. 그것은 레닐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각각의 속성을 잘 조화시키기만 한다면 능히 최강의 힘 을 얻읕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잠깐.’ 조화라는 단어에서 레닐은 순간 멈칫하였다. 순간 무언가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세 가지 힘을 적절하게 조화시킨다는 것. 전에 누군가가 이 방법을 사용했다는 게 기억났던 것 이다. ‘라페리온후작!’ 그렇다. 레닐의 손에 생올 마감했던 인물. 라패리은 후 작이 지금 레닐과 같은 방법을 사용했던 것이다. 변환계의 속성으로 대륙 제일의 쾌검을 자랑하던 그는 자신의 깨달음이 집약된 일격을 펼치다가 레닐의 세공검 술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레닐은 능히 최강의 힘을 발휘해야 하는 지금 이 시점 에서 형편없이 밀리는 자신의 모습에 그 상황을 떠올릴 수 있었다. 세 가지 속성을 모두 사용하려고 하던 라폐리은 후작은 결국 변환계 밖에 사용하지 못하던 자신의 검에 목숨을 잃 고 말았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겠는가. 바로 자신의 깨달음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아니,자신뿐만이 아니다. 세 가지 속성을 마스터해야 한다는 제스테리언의 깨달 음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자신의 행동은 결국 라페리온 후작의 전철을 밟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 레닐의 안색이 하얗게 변해 갔다. 자신의 실수가 보통 이 아니었던 것이다. "내가 이런 실수를 하다니.’ 제스테리언의 압도적인 무위에 현혹된 것이 잘못이 었다. 그의 깨달음이 잘못되었으리라고는 생각을 하지 않았 으니 말이다. 다른 사람의 깨달음은 결국 다른 사람의 것이었다. 자신이 주체적으로 얻어 낸 것이 아닌, 공짜로 얻은 깨 달음은 결국 자신에게 득이 아니라 실을 가지고 오는 것 이다. 레닐은 그것을 지금에야 깨달을 수 있었다. 제스테리언 에게 깨달음을 얻었지만 그것을 발휘해 볼 기회가 없었기 에 이제야 깨달을 수 있던 것이다. 마스터의 힘은 그 개성이 워낙 강하기에 각각의 힘을 발휘하면 서로의 개성을 더옥 돋보이게 하는 것이 아닌. 서로의 개성을 죽이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걸 이제야 깨닫게 되다니. '제기랄.’ 표정을 일그러뜨린 레닐이 범위계의 힘을 거두어 들 인다. 그러고는 레드 티어즈의 힘을 더욱 끌어 올린다. 검의 힘을 끌어다 쓰는 것인 만큼 레드 티어즈의 힘을 사용한 채 오래 버털 수 없다. 전보다 발전된 탓에 몇 분의 시간을 더 버릴 수 있지만 엄연히 한계가 존재한다. 레닐은 이를 악 물었다. 두 자루의 검을 다루던 케이피드보다 지금 검 한 자루 로 검술올 펼치는 케이피드가 더 상대하기 까다로웠다. 검과 검을 맞대는 것이 아니라, 오러를 뿜어내어 자유 자재로 다루고 있던 것이다. ‘접근해서 오러를 발출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세 가닥의 오러를 허공에서 자유로이 컨트롤하는 케이 피드의 신위는 제스테리언과 다른 차원의 무서움이었다. 제스테리언은 압도적인 검술과 힘으로 밀어불였지만 케이피드는 예측하기 힘든 오러의 움직임으로 레닐을 밀 어 불였다. 세밀한 오러 컨트롤과 검술의 운용은 레닐의 장점 중 하나라 불 수 있는데 자신의 장점이 그대로 케이피드에게 밀리고 있던 것이다. 압도적인 힘으로 자신을 압도하던 제스테리언과의 대 결과 비교하면 어느 정도 버털 법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 렇다고 하여 결코 상황이 괜찮은 것이 아니었다. 케이피드가 한 치의 방심도 하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 라 레닐의 장점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을 모두 그가 압도하 고 있기에 그렇다. 전체적인 상황은 오히려 제스테리언과의 대결보다 더 암울하다고 할 수 있다. 이번 대결에는 잘못된 깨달음을 추구했다는 충격도 함 께 하고 있기에 그렇다. 입술을 질끈 깨문 레닐은 레드 티어즈의 힘을 끌어 올 려 케이피드의 검을 힘껏 튕겨 낸다. 강화계의 힘으로 강화시킨 레닐의 힘은 케이피드보다 강한 힘올 발휘할 수 있다. 콰이상! 강렬한 힘이 케이피드를 휩쓸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고작 한 걸음밖에 물러서질 않는다. 레닐의 검에 실린 힘을 말끔히 해소시킨 것이다. 정면대결로 강렬한 충격을 받았던 제스테리언과는 전 혀다른 모습이었다. "강한 힘은 홀리고 분산시키면 되지.” 처음 레닐의 공격을 제대로 받아 내지 못했던 것은 갑 자기 강해진 그의 힘에 적응을 못했기에 그렇다. 그러나 레닐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한 이상 더 이 상의 고전은 없다. 자신을 향해 맹공을 퍼붓는 레닐이었지만 이미 그의 숨 겨진 한수를 본 케이피드는 레닐에게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힘을 적절히 흘려버리며 날카로운 반격을 감행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레닐이 한 번 공격을 하면 꼼짝없이 대여섯 번의 공격 을 허용해야만 했다. 피슛! 케이피드의 검이 레닐의 팔을 스치고 지나갔다. 해르시온이라고 하여도 오러 블레이드가 서린 검을 막 아 낼 수 없었다. 검에 실린여파까지 막아낼수는 있지만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한두 차례 공격을 허용하게 되자 레닐의 전신이 붉은 피로 물들어 가기 시작했다. 전부 치명적인 상처는 아니었지만 대결이 지속될 경우 과다출혈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검을 교환하던 케이피드는 레닐을 보며 눈을 빛냈다. 흐름이 급격하게 자신에게 기울었음에도 레닐의 눈이 빛나고 있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무언가를 노리고 있군' 그는 제스테리언이 왜 레닐에게 패했는지 어렴풋이 알 아차릴 수 있었다. 상황이 아무리 불리해진다 하더라도 레닐은 결코 포기 하지 않는다. 그런데 반해 제스테리언은 압도적인 신위로 레닐을 압 도해 놓고 마지막 순간에 긴장의 끈을 느슨하게 해 놓았 을 확률이 높았다. 그것은 곧 그의 파탄을 불러일으켰으리라. "하지만 제스테리언과 나는 다르지.’ 케이피드는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풀지 않는다. 상대 방의 숨이 확실하게 끊어질 때까지 그에게 결코 방심은 허락된 것이 아니다. 제스테리언과 케이피드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면 제스테리언은 스스로 상대방의 빈틈을 파고들어 마지 막 일격을 가하지만 케이피드는 상대방을 철저하게 자신 의 의도 하에 놓아둔뒤 빈틈을 만들수 밖에 없게 만든다. 쩌엉! 검과 검이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레닐의 몸이 크게 흔 들린다. ‘끝이군.’ 그걸 본 케이피드의 눈이 빛났다. 레닐의 상체가 완전 히 열린 것이다. 완벽한 기회였기에 그는 망설임 없이 레닐의 복부에 검 을 꽂아 갔다. 케이피드의 검이 자신을 향해 오는 것을 본 레닐이었기 에 최대한 몸을 틀어 피하려고 했지만 완벽하게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푹! 하는 소리와 함께 케이피드의 검이 레닐의 왼쪽 복 부를 관통하였다. 검을 피하지 못한 레닐의 몸이 직각으로 꺾였다. "끄윽……: "어린 싹을 밟는 듯하여 기분이 좋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 추후 전설의 경지라 불리는 그랜드 마스터에 오를지 도 모르는 인물올 자신의 손으로 제거한다는 느낌 때문 일까? 케이피드는 마음 한구석이 찜찜해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제국의 위대한 대계를 위해서는 레닐이란 인물을 반드 시 제거해야 했으니 말이다. "사라져라, 젊은 마스터여.” 그 말과 함께 케이피드가 레닐의 복부에 박힌 검을 뽑 아내려던 찰나였다. ".........." 검을 뽑아내려던 케이피드의 표정이 순간 기괴하게 변했다. 복부에서 뽑아내려던 검이 꿈쩍도 하지 않던 것 이다. 시선을 아래로 옮기니 레닐의 왼손이 검을 불잡고 있 었다. 검은색 장갑을 끼고 있었지만 검날에 베였기에 레닐의 손에서 피가 주르륵 홀러나오고 있었다. 불길한 느낌이 든 케이피드는 검에서 손을 놓은 채 뒤 로 물러났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레닐의 복부에 검을 박아 넣은 케이피드가 검이 뽑히지 않자, 순간 든 위기감 때문에 뒤로 물러나려는 것이었으 니 말이다. 그의 불길한 예감은 그대로 적중하였다. 그가 뒤로 물러서는 순간, 레닐의 검에서 붉은색 기류 가 아른거리더니, 세 갈래 기운이 케이피드를 향해 쇄도 한 것이다. 그걸 피하기 위해 케이피드는 맨손이었지만 마나를 한 껏 끌어 올려 막아 내고자 하였다. 맨손에 마나를 주입하면 검만큼은 못해도 바위를 때려 부술 정도의 파괴력이 생겨난다. 콰앙! 광! “크으으......” 마나가 서린 손으로 케이피드가 붉은 기운을 튕겨 냈지 만, 모두 튕겨 내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결국 한 줄기 붉은 기운이 케이피드의 복부를 관통하는 데 성공하였다. 복부가 꿰뚫린 케이피드의 입에서 비명이 흘러나왔다 "큭!” 뒤이어 뿜어진 붉은 기운이 두 번이나 케이피드를 더 꿰뚫었다. 뒤로 주춤주춤 물러나면서 신음을 흘리던 케이피드가 손짓을 한다. 그러자 레닐의 복부에 박혀 있던 그의 검이 주르륵 뽑 혀 나온다. "크윽!” 케이피드에게 일격을 가했던 레닐의 입에서 신음이 흘 러나온다. 검을 쥔 케이피드가 검에 의지하여 어렵게 일어선다. 그의 복부에서 피가 괄괄 흘러나오고 있었다. “……처음부터 이걸 노리고 있었나?" 레닐 또한 꿰뚫린 복부를 움켜쥔 채 어렵사리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한다. "도저히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였기에 이런 방법을 사 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양패구상. 케이피드를 도저히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한 레닐이 생각 한 방법은 간단했다. 그를 한순간 무력화시키는 방법은 검을 빼앗는 것뿐이 었다. 그렇기에 레닐은 자신의 몸올 희생하며 케이피드의 검 을 빼앗으며 레드 티어즈의 일 단계 힘인 붉은 실을 이용 하여 케이피드를 공격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성공하여 케이피드와 양패구상올 이룰 수 있었다. 레닐의 노림수가 적중한 것이다. 애초에 자신은 온전한 채 상대방을 해하려고 한 것이 아닌, 자신이 받은 만큼 상대방에게 되돌려 주겠다는 각 오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큭! 이것도 하나의 방법이군. 큭큭! 기사의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방법이라 그런 건가……" 케이피드는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결코 방심하지 않겠다고 해 놓고 결국 레닐에게 당한 자신의 모습이 우스웠던 것이다. 아니, 방심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애초에 만약의 상황에 대비하지 않고 있었다. 바로 레닐 또한 기사이기에 같이 죽자는 식의 행동을 할 줄 몰랐던 것이다. 케이피드는 시종일관 레닐이 자신을 죽이려 든다는 걸 알고 있었고, 그것은 즉, 자신은 부상을 입지 않되 상대방 을 쓰러뜨리려 한다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자신의 범주 내에서 방심하지 않는다고 해 놓고 결국 이런 어처구니없는 방법에 당해 버리다니. "내가 졌군. 폐하를 될 면목이 없겠어." 케이피드의 입가에 씁쓸함이 맺혔다. 서로 치명적인 부상을 입혔지만 자신의 나이는 백이십 이 훌쩍 넘긴 상태다. 이제 이십 대 초반인 레닐과 부상 회복 속도가 틀릴 것이다. 전체적인 결과는 양패구상이지만 실질적인 결과는 자 신의 패배였다. "정말 대단하군. 이렇게 할 줄이야.”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케이피드가 서서히 무너져 내렸 다. 과도한 출혈을 이겨 내지 못하고 무너진 것이다. "크흡!” 케이피드가 무너지는 모습을 본 레닐도 피를 울컥 토 했다. 먼저 부상을 당한 것이 그인 만큼 초인적인 인내로 버 려 내다가 케이피드가 쓰러지는 모습에 긴장감이 풀려 버 린 것이다. 과도한 출혈로 인하여 정신이 멍했다. 과연 이대로 살수 있을까 의구심이 둘 정도. 케이피드가 쓰러지자 레닐의 몸 또한 서서히 무너져 내 린다. 그렇게 두 국가의 자존심을 건 대결은 무승부하는 뜻밖 의 결과를 내고 끝을 내렸다. 제8 장 그의 부상이 가져온 일들 카르미안 왕국의 카르미언스 공작이 마이드 제국군을 이끄는 총사령관과 대결을 하여 무승부를 기록하였다! 이 소문은 카르미안 왕국을 중심으로 대륙에 퍼져 나가 기 시작하였다. 소문을 들은 카르미안 백성들은 경악을 하였다. 레닐이 어떤 존재인가. 이십 대초반의 나이에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대륙을 통 틀어 최고의 천재라 불리는 인물이 아닌가? 설사 제국의 마스터라 하여도 그를 제압할 인물은 세 손가락 안에 꼽을 것이다. 그만큼 고강한 무위를 지닌 인물이 레닐이었다. 설사 그를 제압할 인물이 마이드 제국의 마스터라 하면 그럴듯하겠지만 마이드 제국군을 이끌고 있는 인물은 셀 리든 공작이라든가, 데칸 공작도 아니었다. 말 그대로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런 그를 제압한 인물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에 따라 레닐의 평판이 급속도로 떨어지기 시작하였 다. 이름도 없는 마이드 제국의 기사와 대결하여 양패구상 을 하자 그의 실력이 과장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난무 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들은 영웅을 원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들보다 뛰 어난 인물이 나오기를 원하지 않는다. 이제 이십 대 초반의 레닐은 사람들에게 있어 너무나 화려한 길을 걸어온 인물이었다.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배경에 이은 뛰어난 실력, 그리 고 아름다운 약혼녀까지. 사람들의 부러움을 살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는 만큼 그를 깎아내릴 수 있는 건수가 생기자 수많은 사람들이 달려들어 그를 깎아 내리려 하였다. 그것이 사람들의 인심이고. 본성이었다. 몇몇 사람들은 마스터 대전에서 그가 마스터 자격을 획 득한 것이 운이고, 웨이던 후작이나 요멘 공작에게 재물 을 바쳐 거짓 승부 조작을 하였다고까지 말했다. 심지어 디반 왕국으로 쳐돌어온 벤자이어 제국군을 이 끌던 빌라드 후작의 돌연 실종은 레닐의 자작극이라는 말 이있다. 마스터가 재물에 의해 자존심을 팔 인물이 아니라는 것 을 알면서도 그들이 그렇게 말을 하는 것은 다 레닐을 깎 아내리기 위함이었다. 대결이 끝난 지 불과 삼 일이 흘렸는데 소문은 입을 타 고 흘러 흘러 대륙 전역에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소문은 레닐에게 일방적으로 흘러갈 조짐을 보 이고 있었다. 이에 카르미안 왕국이 즉각 대응에 나섰다. 그들이 한 것은 바로 레닐과 대결을 벌인 기사의 정체 를 폭로하는 것이었다. 카르미언스 공작과 대결을 벌인 인물은 마이드 제국의 전대 마스터 로셀린 공작이다! 이 소문은 삽시간에 대륙 전역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하 였다. 그도 그럴 것이 레닐의 상대가 다름 아닌 은퇴한 마이 드 제국의 전대 마스터 로셀린 공작이란 사실은 그만큼 놀라운 사실이었던 것이다. 마이드 전대 마스터인 로셀린 공작은 은퇴한 지 삼십오 년이 된 검사들의 전설이다. 그런 그가 레닐과 검을 맞댔다는 것 자체가 어마어마한 사실을 의미한다. 은퇴를 했다는 건 말 그대로 국가의 중대사에서 한 발 자국 물러섰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런 만큼 일선에 나서는 것은 암묵적으로 금기가 된 것 이 대륙의 정설이다. 그런데 로셀린 공작이 레닐과 대결을 벌였다니? 가뜩이나 마이드 제국과 카르미안 왕국과의 대결은 수 많은 시선을 모으고 있는 실정이었다. 마이드 제국이 카르미안 왕국을 상대로 우세를 점하게 되면 추후 대륙 중북부 전체가 마이드 제국에게 귀속될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지기에 그렇다. 벤자이어 제국이 디반 왕국을 침공한 것괴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시선을 받고 있었으니 말이다. 은퇴했던 로셀린 공작의 등장은 대륙에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그리고 급전직하 하던 레닐의 평가도 전면 재수정되기 시작하였다. 로셀린 공작과 대등한 대결을 벌였다는 것 자체가 엄청 난 성과로 평가받기 시작한 것이다. 마스터 간의 대결에서 그 대결의 진면목을 알아볼 사람 들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광속이라 불릴 정도의 공방과 보이지 않는 수 많은 노림수들올 제대로 간파해 낼 사람들은 동급의 경지 인 마스터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때문에 사람들이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대결의 결과뿐이다. 대결의 결과가 어떤지에 따라 마스터 간의 우열이 확연 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레닐의 실력은 실제 실력에 비해 과장된 면이 없지 않아 있다. 전체적인 실력 면에서는 확연히 부족했지만 라페리온 자작을 꺾고 웨이던 후작과 막상막하의 대결을 벌였으니 말이다. 그런 와중에 로셀린 공작과 무승부를 기록한 사건이 널 리 퍼지게 되었다. 이는 레닐의 실력을 단숨에 재평가 받게 만드는 분수령 이 되었다. 로셀린 공작은 전대 마이드 제국의 마스터로서 현존하 는 마스터 중에서 최강일 거란 평가를 받고 있다. 나이가 너무 많아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그 나이를 뒤덮을 만큼의 신위를 보유하고 있을 것이란 게 사람들의 판단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논란 속에서 레닐과 로셀린 공작의 대 결 결과가 퍼져 나갔다. "최소 일 년은 쉬어야 합니다.” 케이피드와의 대결에서 쓰러진 레닐을 구조해 온 카르 미안 왕국 측은 곧장 레닐을 구조하기 위해 신관과 마법 사들을 초빙하여 레닐올 치료하게끔 하였다. 레닐의 상처는 그야말로 끔찍하였다. 왼쪽 복부는 뻥 뚫려 피가 왈칵 쏟아지고 있는 상태였 고, 온몸에는 자잘한 자상이 전신을 뒤덮고 있었다. 피가 부족하여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까지 갔었다. 다만 저번 제스테리언과 같은 경우가 있었기에 카온이 빠르게 레닐올 데려와 응급처치를 하였기에 망정이지, 그 렇지 않았으면 레닐은 진즉에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카온은 레닐의 상태를 살피던 마법사의 말에 놀라 외 쳤다. “일 년이나 말이오?" 그에 마법사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일 년도 빠르게 잡은 겁니다. 외상은 저희들이 치료를 할 수 있지만 내상은 심각합니다. 내부가 완전히 헝클어 져서 완치가 가능할지도 미지수일 정도입니다.한 달 정 도가 지나면 거동은 가능할 것이나 내상 여부는…… 공작 님의 노력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마법사의 말에 카온을 비롯하여 귀족들이 할 말 을 잃 었다. 그의 말은 그야말로 절망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 던 것이다. 외상은 자신들이 처리할 수 있지만 내상은 불가능하다 는 뜻이다. 그리고 내상이 너무 심각하여 자칫하다가는 회복이 불 가능하다는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다. 참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마법사의 말이 사실이라면 카르미안 왕국은 마스 터 하나를 잃은 셈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추후 대륙에서 제일 강한 무위를 보유한 마스터 로 우뚝서게 될 인물을 잃은것이다. 참혹한 현실이 아닐 수 없었다. "회복할 가능성은?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 것이오?" 카온이 급한 안색으로 물었다. 그는 아직까지 현실을 인정하기가 힘들었다. 그토록 강한 무위를 지닌 레닐이 이런 지경에 놓이게 되다니. 다그치듯 묻는 카온의 모습에 마법사가 움찔하면서 대 답한다. "가능성은 반반입니다. 애초에 해답의 열쇠를 공작님 이 가지고 있기에 그렇습니다. 본인의 상태는 본인이 가 장 잘 알고 계실 터. 공작님의 상황에 따라 달라질 것입 니다.” "모든 것은 형님이 깨어나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로군. 맞나?" 카온의 말에 마법사가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맞습니다.” "그럼 됐수. 형님은 반드시 일어나서 예전의 무위를 보 유할수 있을 테니까.” 자신 있게 말하는 카온이었다. 그는 레닐을 믿었고, 지 금의 위기를 말끔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카온의 바람일 뿐이었다. 그의 말에도 불구하고 귀족들의 안색은 전혀 밝아지지 않고 있었다. 레닐의 회복 여부 불투명. 그것은 거대한 폭풍을 일으키려 하고 있었다. 레닐의 부상 소식은 곧장 네이미언 공국에 전해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조용히 와인올 즐기며 하루의 업무를 처리하고 있던 네이미언 대공은 보고를 받자 놀란 나머지 와인잔올 놓쳤다. 챙그랑. 마스터의 경지에 도달한지 수십 년이 다 돼가 는 그가 보이는 반응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정도로 그가 충격을 받았다는 이야기기도 하 였다. 네이미언 대공은 믿기지 않는 얼굴로 보고를 가져온 기 사에게 다시 물었다. "지금 뭐라고 했지? 레닐이 뭐 어떻게 되었다고?" 잔뜩 굳은 네이미언 대공에게서 숨이 막힐 둣 엄청난 기세가 발산되고 있었다. 그에 보고를 가지고 온 기사는 크게 숨올 돌이쉬며 마 나를 잔뜩 끌어 올렸다. 그러지 않고서는 도저히 네이미언 대공의 기세를 받아 낼 수 없던 것이다. 그 모습을 본 네이미언 대공은 자신이 조금 심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기세를 거두어 들였다. 그리고 다시 기사에게 물었다. "말해 보라, 지금 어떻게 되었다고 했지?" “카르미언스 공작님께서 지금 생사가 불투명하다고 하 였습니다.” "도대체 레닐이 상대한 녀석이 누구인데 그 녀석을 생 사불명으로 만든 것이더냐?" 네이미언 대공의 안색이 다급해지며 재촉하듯 물었다. 그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현존하는 마스터 중에서 레닐올 상대로 생사불명으로 만들만한 존재는 없었다. 아니, 존재한다고 하여도 서로의 목숨을 맞바꿀 존재는 없었다. 레닐의 실력은 정확히 말해서 마스터 중 중간권에 속하 는 정도였지만 그의 기백과 순간적인 임기웅변이 더해지 면 능히 상위권 마스터와도 자웅을 겨뤄 볼 만큼 대단한 신위를 발휘한다. 그런데 생사불명이라니? 이런 네이미언 대공의 모습은 처음이었기에 기사는 재 빨리 자신이 아는 바를 털어놓았다. "카르미언스 공작님이 상대한 기사는 다름 아닌 마이 드 제국의 로셀린 공작이라고 하였습니다.” “……로셀린 공작? 설마 마이드 제국의 전대 마스터인 로셀린 공작을 말하는 것이냐?" 제국의 마스터에 비해 결코 명성이 떨어지지 않는 네이 미언 대공답게 그는 로셀린 공작이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 차렸다. 네이미언 대공의 물음에 기사는 고개률 끄덕이기 바 쁘다. 그에 네이미언 대공의 머릿속이 복잡해져 갔다. 그러면 서 한편으로는 오랫동안 의문이던 것이 풀려나가기 시작 하였다. 자신이 마이드 제국에서 느꼈던 존재감은 다름 아닌 전 대 마스터들의 존재감이었던 것이다. 그가 마스터에 오를 당시 마이드 제국의 전대 마스터라 불리던 인물들은 모두 은퇴를 한 상태였다. 즉, 그들은 은퇴를 한 것이 아니라 조용히 모습을 감추 고 마이드 제국의 음지에서 힘을 보태고 있던 것이다. 설마 로셀린 공작이 레닐읕 상대하다니. 마이드 제국이 이토록 노골적으로 나올 줄은 미처 몰 랐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깨달을 수 있었다. 본래 마이드 제국의 출신이 야만족에서 시작했다는 것 을 말이다. 그 본성은 어디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즉. 여태까지 마이드 제국이 신사적으로 니왔던 것은 자신들의 착각이 라는 뜻이었다. "............" 기사에게 나가 보라고 손짓을 한 네이미언 대공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레닐의 부상은 네이미언 공국에게 있어, 그리고 네이미 언 대공 본인에게 있어 많은 것을 의미한다. 이미 레닐을 겪어 본 네이미언 대공에게 있어 그는 손 자와도 같았다. 손자가 아프다는데 가만히 있을 인물이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그가 걱정하는 것은 또한 가지가 존재한다. "아이실라가 상심하지 않아야 할 터인데.” 네이미언 대공이 걱정하는 부분은 바로 아이실라였다. 레닐도 걱정이 되지만 그로 인해 아이실라에게도 큰 영 향이 끼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하나밖에 없는 아이실라는 은퇴를 앞둔 네이미언 대공 에게 있어 삶의 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쁜 예감은 반드시 들어맞는다는 말이 있지 않 은가? 그가 이런 걱정에 휩싸여 있을 때, 네이미언 공작이 방 문을 하였다. “아버님.” 집무실 안으로 들어선 네이미언 공작이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안으로 들어선다. 그런 네이미언 공작의 모습에 네이미언 대공이 입을 열 었다. "무슨 일이더냐.” "아이실라가 쓰러졌다고 합니다.” "뭐라고?" 네이미언 공작의 말에 경악한 네이미언 대공이 자리에 서 벌떡 일어섰다. 설마 하던 일이 정말로 일어난 것이다. 네이미언 대공이 물었다. "무슨 일 때문이더냐? 설마?" "맞습니다. 레닐이 생사불명이란 말에 놀라 쓰러졌다 고 합니다. 충격을 받아서 기절했다고 하지만 상태가 심 각한 건 분명합니다.” "........." 네이미언 공작의 말에 네이미언 대공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채 침묵을 지켰다. 그 침묵이 얼마나 이어졌을까. 지루하다고 할 정도로 길게 이어지던 침묵을 깨며 네이 미언 대공이 입을 열었다. "최소한의 방어 병력올 제외하고 모든 군대를 일으킨 다. 마이드 제국에게 복수톨 하러 간다.” “……알겠습니다.” 그 말에 거절하지 않는 네이미언 공작이었다. 타오르는 불꽃처럼 뜨겁게 일렁이는 네이미언 대공의 분노를 그 또한 느낄 수 있던 것이다. 아니, 그 분노를 느끼지 않더라도 네이미언 공작 또한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네이미언 대공이 먼저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가 나서 서 말을 했으리라. 레닐과 로셀린 공작의 대결은 네이미언 공국의 본격적 인 참전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레닐이 생사불명이 되었다는 소식은 네이미언 공국에 만 변화를 일으킨 것이 아니었다. 동맹국인 튀니르 왕국과 게르안 왕국이 본격적인 참전 을 알리면서 마이드 제국에게 선전포고를 하였다. 그리고 각각 왕국이 보유한 마스터인 요멘 공작과 칼로 윈 공작이 총사령관이 되어 전쟁에 참여하려는 조짐을 보 인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남부의 디반 왕국은 모자라지만 레닐을 응원하는 입장 에서 소정의 군자금을 지원해 왔고, 카포인 도시국가에서 도 레닐의 이름을 앞세워 막대한 군자금을 보내 왔다. 레닐이라는 존재가 대륙에 얼마나 막대한 영향올 끼치 는지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특히 네이미언 공국의 참전은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공국의 모든 전력올 이끌어 낸 네이미언 공국의 전력은 삼만의 군대와 천 명이 넘는 기사들이 참전하고 있던 것 이다. 거기에 오랫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던 네이미언 대공이 직접 움직임으로써 카르미안 왕국 전체의 참전을 이끌어 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네이미언 공국의 참전 소식이 알려지자 카르미안 왕국에서도 대대적으로 지원군을 모집하기 시 작하였다. 그러자 오만의 병사들과 오백의 기사가 모여들었다. 그리고 총사령관은 이번에 왕세자로 즉위하게 될 브린 이 맡았다. 형의 복수를 하겠다는 일념 하에 이를 악 물고 지원군 을 이끌기 위해 루이드 국왕에게 시위를 하다시피 하여 얻어 낸 기회였다. 그 소식은 벤자이어 제국에서 빌라드 후작을 죽이고, 레이폴드 대제에게서 신검을 빼앗아 온 카빌리어 공작에 게도 전해졌다. 그는 그 소문을 듣고 눈을 빛냈다. "제법이군. 로셀린 공작과 무승부를 기록했다고?" 로셀린 공작이라면 자신과 같은 시대의 인물이 아니 던가. 은연중에 자신이 더 강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로셀 린 공작은 결코 만만히 볼 인물이 아니었다. 자신만의 깨달음을 이룩한 그는 적어도 대륙에 대외적, 숨겨져 있는 마스터들올 통틀어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의 실력자였으니 말이다. "제법이군. 어린 나이에 그 정도 신위라니. 강한 자들 이 많단 말이야" 동료인 로셀린 공작이 생사불명에 빠졌음에도 카빌리 어 공작은 개의치 않는 분위기였다. "본인들이 늘 최고인 줄 아는 인물들이니 결국 그렇게 당하는 것이지. 그래도 안타깝군. 마이드 제국의 영광을 구현할 인물들이니 만큼 제법 중하게 쓰일 것들이었는데 말이야" 혀를 쯧쯧 하고 차는 카빌리어 공작의 모습은 누가 봐 도 광오하였다. 마스터 중에서도 순위권에 드는 옛 동료들을 사정없이 깎가내리는 모습이 었으니 말이다. "음?" 저벅저벅 발걸음을 옮기던 카빌리어 공작이 돌연 발걸 음을 멈추었다. 다른 사람돌은 절대 느끼지 못할 은밀한 움직임을 그는 느꼈던 것이다. 그러고는 입가에 미소를 지은 카빌리어 공작이 허공을 바라보며 말했다. "모습을 드러내지?" 카빌리어 공작의 말이 홀러나음과 동시였다. 그의 시선이 향해 있던 곳이 일렁이더니 이내 한 사람 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검은색 일색의 복장을 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 사람올 보며 카빌리어 공작이 입가에 미소를 지어보 였다. "오랜만이군. 레프네.” 카빌리어 공작 앞에 모습을 드러낸 인물은 다름 아닌 암살왕 레프네였던 것이다. 레프네가 도대체 왜 이곳에 모습을 드러냈단 말인가. "........" 모습을 드러낸 레프네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카빌리어 공작을 바라보았다 카빌리어 공작은 피식 웃음올 지으며 말했다. "그렇게 침묵을 지키고 있으니 무섭군. 왜, 황제 폐하 께서 그간 너무 부려 먹기라도 했나?" "레드 티어즈를 발견했다.” 레프네가 카빌리어 공작에게 꺼낸 말이었다. “뭐라고? 레드 티어즈률? 어디서 발견했지?" 그 말을 들은 카빌리어 공작이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 었다. 마도시대의 삼대 보검인 블루 스카이를 소지하고 있 는 만큼 그 또한 레드 티어즈에 대해 제법 자세히 알고 있었다. 붉은 눈물이라 불리는 레드 티어즈는 마도시대 흑마법 의 정화로 만들어진 검으로, 달리 연금의 보고라 불리는 최강의 검이다. 소지자의 능력만큼 철저히그 힘을 빌려주는 검이기도 하며, 그 힘은 마도시대 보검들 중 으뜸이라고 해도 과언 이 아니다. 마법의 특성상 흑마법올 바탕으로 만들어진 레드 티어 즈의 힘은 가장 파괴적이라 알려졌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레드 티어즈를 찾아냈다니! 그간 레프네가 레드 티어즈를 찾기 위해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알고 있는 카빌리어 공작으로서는 놀라운 일이 아 닐 수 없었다. 그가 레프네를 보며 물었다. "정말 레드 티어즈인가? 그게 확실하고?" "확실하다.” “그렇군. 레드 티어즈가 모습을 드러냈어.” 레프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카빌리어 공작이었다. 이어진 그의 말은 놀라운 사실을 알려 주고 있었다. "하기야, 마도시대의 보검 중 블루 스카이와 그린 랜드 도 모습을 드러냈으니 레드 티어즈도 존재하고 있겠지. 그래도 놀라운 건 놀라운 것이로군. 설마 레드 티어즈도 존재하고 있을 줄이야.” 그 말은 마도시대 삼대 보검 중 하나인 광검 그린 랜드 도 모습을 드러냈다는 이야기였다. 카빌리어 공작의 시선이 레프네에게 향한다. 그가 레프 네에게 물었다. "내가 알지 못할 정도라면 레드 티어즈의 주인은 그리 뛰어난 인물이 아닌가 보군?" 그의 말에 레프네가 고개를 저었다. 마스터 대전이 시 작하기 전에 레닐과 겨뤄 본 적이 있는 레프네는 레닐의 실력을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 나이는 어리지만 래닐은 실력 고하를 떠나 상대하기가 무척 까다로운 인물이었다. 그러니 뛰어났으면 뛰어났지 별 볼일 없는 인물은 아 니다. 레프네가 고개률 가로젓자 카빌리어 공작이 놀란 표정 을 짓는다. “호오? 그렇게 말할 정도면 제법 대단한 실력을 지니고 있다는 이야기인데? 누구인지 알 수 있나?" “레닐 카르미언스.” 카빌리어 공작의 물음에 망설임 없이 대답하는 레프네 였다. 그 대답을 들은 카빌리어 공작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레닐? 설마 그 녀석이 레드 티어즈의 주인이었다는 이 야기인가??" "녀석이 레드 티어즈률 가지고 있다. 로셀린 공작과의 대결에서 레드 티어즈만이 발산할 수 있는 힘을 발휘했 다. 일전의 제스테리언과의 대결에서도 레드 티어즈의 힘 을 사용했더군.” 대륙 삼왕이라 불리는 암살왕답게 레프네는 암혹세계 의 방대한 정보망을 구축하고 있다. 그녀는 마도시대의 검을 찾아내기 위해 모든 정보망을 가동하고 있었다. 현재 그녀가 발견한 검은 광검 그린 랜드와 보검 블루 스카이였다. 마지막으로 명검 래드 티어즈 하나를 발견하면 마도시 대 삼대 보검을 모두 발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호오! 그렇다면 그 녀석이 로셀린 공작올 꺾은 것도 이해가 되는군. 레드 티어즈의 힘을 사용했다면 능히 강 화계의 힘을 끌어낼 수 있을 테니 말이지.” ".........." 카빌리어 공작의 말에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레프네 였다. 그것이 무언의 긍정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카빌리어 공 작이 피식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하지만 그런 레닐에게서 레드 티어즈를 빼앗아 올 수 있겠나. 네가 그린 랜드를 보유하고 있다고 하나 마 스터에다가 레드 티어즈의 힘을 빌린 레닐을 꺾기는 힘 들 텐데?" 카빌리어 공작의 입에서 마침내 광검 그린 랜드의 주인 이 밝혀졌다. 그린 랜드의 주인은 다름 아닌 암살왕, 레프네가 지니 고 있는 검이었던 것이다. 레프네의 모든 암살기교는 그린 랜드에서 비롯된 것이 라고 볼 수 있다. 명검 레드 티어즈는 강화계의 힘을, 보검 블루 스카이 는 변환계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그리고 광검 그린 랜드는 범위계의 힘을 사용할 수 있 는것이다. 백마법으로 만들어진 그린 랜드는 검의 힘을 발휘하는 자체에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다. 하지만그 위력이 레드 티어즈에 비해 떨어진다. 위력이 떨어진다고 하나 마도시대의 보검인 만큼 제 위 력을 발휘할 경우 놀라울 정도로 대단한 무위를 발휘할 수 있다. 레프네의 경우가 바로 그러하였다. 그린 랜드의 힘을 받아들여 암살자들의 은신술과 접목 시킨 암살왕만의 은신술과 기습 방식은 대륙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최고의 암살기교였다. 그러나 상대는 다름 아닌 레닐이다. 칸 밀레이노 3세에게 극찬을 받올 만큼 뛰어난 인물이 바로 레닐인 것이다. 부상을 입었다고 하나 그의 손에서 레드 티어즈를 빼앗 아 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리라. "레닐 카르미언스는 로셀린 공작에게 당하여 거동이 불가능할 정도다.” "호오‘…" 비교적 사정을 자세히 알고 있는 레프네의 말에 카빌리 어 공작이 눈을 빛냈다. 그가 레프네를 보며 물었다. "그렇다면 그를 죽이려고 하겠군, 맞나?" "내 제자를 죽인 자다. 죽일 수 있으면 죽일 것이다.” 첫 암살은 실패로 그쳤지만 부상을 입은 지금은 거칠 것이 없는 레프네였다. 자신의 제자를 죽인 만큼 레닐에게도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할 생각이었다. 그 말을 들은 카빌리어 공작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군.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어. 레닐을 제거하면 제 국에게도 큰 도움이 될 터이니.” 카빌리어 공작의 말에 대답하지 않는 레프네였다. 조용히 그를 바라보던 레프네가 카빌리어 공작의 품에 있는 블루 스카이를 가리키며 말한다. "내가 레드 티어즈를 가지고 오면 블루 스카이를 넘길 것. 잊지 마.” 예전에 했던 둘만의 약속이었다. 블루 스카이를 지니고 있던 카빌리어 공작을 레프네가 찾아왔고, 둘 사이에 대결이 있었지만 승리는 카빌리어 공작이었다. 카빌리어 공작은 레프네에게 제안을 하였다. 레드 티어즈를 찾게끔 그녀를 도와주는 대신 마이드 제 국을 위하여 아니, 자신을 위하여 일을 하라고 하였다. 그리고 레드 티어즈를 찾아오면 블루 스카이를 넘겨주 겠다고 하였다. 그 이야기가 성립된 지 벌써 이십오 년 전이다. 그리고 마침내 레드 티어즈를 레프네가 찾게 된 것 이다. "하하하! 그때가 떠오르는군. 그랬었지. 블루 스카이를 내주기로.” 카빌리어 공작은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는지 웃음을 지 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 모습올 본 레프네가 몸을 돌린다. 그리고 저벅저벅 걸음을 옮기다가 카빌리어 공작에게 시선을 주며 다시 말 한다. "그 약속 잊지 마.” 스스스숫! 말을 끝으로 레프네의 신형이 어둠에 녹아들며 사라 졌다. 레프네가 사라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카빌 리어 공작이 큭! 하면서 웃음을 지었다. "레드 티어즈라. 마도시대의 명검인 만큼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겠지. 탐이 나는 힘이야……" 그러면서 레프네가 사라진 방향을 한동안 바라본다. 그러다가 무언가 생각을 굳힌 둣 카빌리어 공작이 중얼 거린다. "블루 스카이는 줄 거야. 주고말고. 숨을 쉬는 마지막 순간의 선물로 말이지" 절대 거부할 수 없는 보검의 힘. 그걸 생각하며 카빌리어 공작은 하얗게 웃음을 짓고 있 었다. 제9장 머리보다 가슴이 시키는 것 레닐과 로셀린 공작의 대결로 대륙이 들끓고 있을 무 렵, 정신을 잃고 잇던 레닐이 마침내 정신을 차렸다. "크윽!” "형님! 괜찮으십니까?" 죽은 듯이 누워 있는 레닐의 결을 지키고 있던 카온이 반가운 기색을 띠며 레닐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자 신음을 홀리며 누워 있던 레닐이 살며시 눈을 뜨더니 고개를 돌려 키온을 바라보았다. “카온이냐?" "접니다, 형님. 어서 일어나십시오.” 일주일 동안 정신을 잃고 있던 레닐이 정신을 차리자 카온은 평소 보이지 않았던 웃는 얼굴로 레닐에게 말했다. 그러자 레닐이 카온에게 말한다. "나를 일으켜다오.“ "알겠습니다.” 그렇게 대답한 카온이 레닐의 등을 받치고는 일으켜 세 우려고 하였다. 그러나 카온의 행동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레닐을 일으켜 세우려는 순간 그가 극심한 고통을 호소 한 것이다. "크윽!” "형님! 괜찮으십니까?" 신음을 흘리는 레닐을 보면서 카온이 황급히 레닐의 몸 을 눕혔다. 그러고는 레닐의 복부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볼 수 있 었다. 케이피드의 검이 관통했던 복부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던 것이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마법사를 불러 오겠습니다.” 대경한 카온은 막사를 벗어나 대기하고 있던 마법사를 불러왔다. 카온이 데리고 온 마법사는 레닐에게 힐링 마법을 시전 하였고, 그에 따라 레닐은 간신히 피가 멎을 수 있었다. "가뜩이나 피가 부족한 상황입니다. 더 이상 피를 홀리 시면 목숨이 위태롭습니다. 각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알겠소, 알려 주어서 고맙소이다.” 마법사의 당부를 들은 카온이 고개를 끄덕이며 고마움 을 표했다. 그렇게 마법사가 막사를 나서고. 레닐은 꼼짝없이 자리 에 누운 채 카온과 이야기를 나눠야만 했다. 레닐이 카온을 보며 물었다. "내가 얼마나 누워있었지?” "정확히 일주일이 되었습니다. 형님.” 자신이 일주일이나 누워 있었다는 이야기에 레닐은 잠 시 할 말을 잃었다. 그렇게 긴 시간 동안 정신을 잃고 있었다니. 그만큼 부상이 컸다는 이야기가 된다. “일주일이나?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지?" 그가 묻는 것은 전쟁의 전체적인 상황이리라. 카온은 레닐이 무엇을 묻는 지 알아차리고는 그가 원하 는 답을 해 주었다.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저쪽도 총사령관이라는 로셀 린 뭐시기의 부상이 워낙 심해서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 는 실정입니다. 때문에 일주일 동안 이렇다 할 교전이 없 는상황입니다.” "다행이군.” 아무래도. 자신이 총사령관이다 보니 전쟁의 향방에 대 해 심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자신의 의도처럼 로셀린 공작도 극심한 부상을 입어서 마이드 제국이 아무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니 레닐은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전선에서의 상황이 괜찮다는 것을 느낀 레닐이 내심 안 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카온에게 다른 것들을 물었다. "내가 쓰러진 것이 외부에도 알려졌나?" 아무래도 자신이 부상 입은 사실을 아이실라가 알지 않 았으면 하는 레닐이었다. 그러나 그의 바람은 무참히도 저버려졌다. 그의 바람과 달리 카온은 고개를 끄덕인 것이다. "알려진 것뿐이겠습니까. 대륙 전역에 소문이 퍼진 상 태입니다. 형님이 로셀린 뭐시기와 동수를 이루었다고 말 입니다." 내심 소문이 퍼지지 않기를 기대했던 레닐로서는 허탈 한 순간이었다. “그럼 왕도에도 소문이 퍼졌겠군.” "왕도에 제일 먼저 퍼졌을 것입니다. 혹시…… 형수님 때문에 그러시는 겁니까?" 여자를 사귀더니 눈치가 늘었는가. 카온은 레닐이 무엇올 염려하는지 단번에 눈치채는 모 습을 보였다. 그에 레닐이 고개률 끄덕이자, 카온은 아차 하는 표정 을 지었다. 당장 레닐의 목숨이 위태로운지라 거기까지 생각을 못 하고 있던 것이다. 왕도에 소문이 퍼졌다면 아이실라 또한 그 소문을 접했 을 가능성이 높다. 그 소문올 접했다면 아이실라가 어떤 반응을 보이겠 는가. 카온도 그제야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아이실라가 네이미언 대공가의 하나뿐인 손녀인 만큼 그 파급력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네이미언 대공가가 왜 대대적으로 군대를 일으 켰는지 알 것 같았다. 카온의 물음에 레닐이 고개률 끄덕이자 그는 잠시 고민 에 잠겼다. 레닐에게 네이미언 대공가의 출전 소식을 알릴지 말지 고민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곧 알려질 소식인 만큼 미리 말해 두는게 좋다 고 생각한 카온이 레닐에게 말했다. "형님, 아무래도 그 소식이 전해진 것 때문인 듯합니 다. 네이미언 대공가에서 대대적으로 군대를 일으켰거 든요.” "네이미언 대공가가?" "예.” 레닐이 놀란 듯 묻자 카온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자 레닐은 맥이 탁 풀린 표정을 짓는다. 대충 상황 이 어떤지 그려졌던 것이다. "하아! 상황이 골치 아파지겠군. 그래. 내가 쓰러진 뒤 자세한 상황을 말해 봐.” "알겠습니다.” 고개를 젓던 레닐이 카온을 향해 묻자 그가 고개를 끄 덕이며 그간 있던 일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이야기를 듣는 레닐의 표정이 점점 굳어 가기 시작한 다 레닐이 쓰러진 일주일이란 시간 동안 네이미언 공국은 모든 전력올 총동원하여 군대를 일으켰다. 남쪽으로 데이안 왕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네이미언 공국이기에 군대를 소집하자 순식간에 삼만의 군대가 모 였다. 그리고 출전 준비를 끝낸 즉시 천 명이 넘는 기사들을 이끌고 카르미안 왕국의 왕도로 향하였다. 본래는 곧장 마이드 제국군이 위치한 곳으로 향하려 하 였지만 루이드 국왕이 지원군과 같이 전쟁터로 향하길 원 하였기에 그렇다. 네이미언 대공은 그 요청을 받아들였다. 루이드 국왕이 즉위한뒤 한번도 왕도에 들른적이 없 는 네이미언 대공이었기에 이참에 루이드 국왕과 한 번 만나 보려 생각하고 있던 것이다. 물론 그것은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하다. 네이미언 대공이 왕도로 향하는 진짜 이유는 바로 왕도 에 있을 아이실라 때문이었다. 레닐이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로 큰 부상을 입었다는 말 에 큰 충격을 입고 쓰러진 아이실라의 상태를 보고자 왕 도로 갈 것을 결정한 것이다. 일주일 만에 출전 준비를 마친 네이미언 공국군은 보름 여에 걸쳐 왕도로 진군하였다. 그리고 왕도 밖에 진을 친 뒤 네이미언 대공을 비롯한 천여 명의 기사들이 왕도 안으로 들어섰다. 왕궁 안으로 들어선 것은 네이미언 대공과 다섯 명의 기사뿐이었다. 그리고 루이드 국왕이 머무는 대전 안으로 들어선 것은 네이미언 대공뿐이다. 대전 안으로 들어선 네이미언 대공은 뚜벅뚜벅 발걸 음을 옮겨 대전 중앙에 선 뒤 루이드 국왕에게 인사를 하였다. “국왕 전하를 뵙습니다.” "먼 길 오셨습니다. 대공의 방문을 반기는 바입니다.” 한 나라의 국왕이 되었지만 루이드 국왕은 네이미언 대 공에게 반말읕 할 수 없었다. 네이미언 대공은 루이드 국왕의 아버지인 에디앙스 국 왕과 친우였을 뿐만 아니라 여태까지 암묵적으로 카르미 안 왕국올 지탱해 온 기둥과도 같은 존재였다. 거기에 왕국과 분리된 공국의 주인인 만큼 어느 정도의 예의는 필요했다. 루이드 국왕과 네이미언 대공 사이에 오간 말은 군대를 움직이는 것에 관련된 것이었다. 두 정상의 대화는 약 한 시간여 동안 이어졌고, 루이드 국왕의 저녁 만찬 제안을 거절한 네이미언 대공은 이야기 가 끝나자마자 곧장 왕궁을 나섰다. 네이미언 대공이 향하는 곳은 다름 아닌 레닐의 저택이 었다. "아이실라.” “ 레닐의 저택에 들어선 네이미언 대공이 향한 곳은 아이 실라의 침실이었다. 한 왕국의 공작가 저택이지만 네이미언 대공의 행보를 막아서는 사람은 없었다. 네이미언 대공은 카르미안 왕국 기사들의 정신적 지주 이자 영웅이었던 것이다. 그것뿐만 아니라 사적으로는 그의 손녀사위가 레닐이 었고, 공작부인이 될 아이실라의 할아버지였다. 누구도 네이미언 대공을 막지 않았다. 아이실라의 침실로 들어선 네이미언 대공을 맞이한 것 은 어둡게 가라앉은 방 분위기와 침대에서 몸을 옹크리고 있는 아이실라의 모습이었다. 네이미언 대공은 침대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아이실라 를 보면서 조용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아무 말이 없는,그녀를 향해 입을 열었다. "이렇게 있는다 하여도 레닐이 알아줄 것 같으냐? 네 가 건강한 모습으로 있어야 레닐이 좋아하지 않겠느냐?" 그의 말에 아이실라의 몸이 움찔하였다. 네이미언 대공 의 말에 반응한 것이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네이미언 대공이 조금 더 아이실라에게 다가가면서 말한다. “래닐이 일어났다고 하지 않더냐, 그러니 너도 자리에 서 어서 일어나야 한다.” 무려 일주일 동안 정신을 잃고 있던 레닐이 정신을 차 렸다는 소식은 왕도에 널리 퍼진 상태였다. 그러나 부상이 매우 심각하다는 사실이 알려졌기에 아 이실라의 수심은 떠나갈 줄올 몰랐다. 네이미언 대공은 그런 아이실라의 모습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때, 아이실라의 입에서 한줄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할아버지……" 다 죽어 가는 목소리였다. 방에 들어서기 전에 넌지시 전해 듣길, 레닐이 쓰러진 뒤로 거의 식음을 전폐하다시 피 했다고 하니 음성에 힘이 실려 있질 않았다. 그런 아이실라의 목소리라도 네이미언 대공은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래, 말해 보아라. 아이실라.” "할아버지도…… 전쟁터로 나가시죠?" 여전히 힘이 실리지 않은 작은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 목소리를 듣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상대가 누군가. 다름 아닌 네이미언 대공이다. 네이미언 대공은 그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레닐이 쓰러지고. 너까지 쓰러졌다는 말에 공국 에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전력을 일으켰다. 그리고 곧 있 으면 전쟁터로 가겠지.” 말을 하는 네이미언 대공의 표정이 살짝 굳어 있었다. 전쟁이라는 것은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오고 가는 것인 데 너무 즉흥적으로 결단을 내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이 들었기에 그렇다. 하지만 이 전쟁은 엄연히 마이드 제국의 침공에서 왕국 을 지켜 내기 위한 전쟁이었다. 단순히 지원군을 파견할지 고민을 하다가 그 소식들을 접한 뒤 곧장 군대를 일으킨 것이다. 네이미언 대공의 말을 들은 아이실라의 눈이 빛나기 시 작한다. 무언가 한 줄기 구명줄을 발견한 느낌이랄까. 아이실라가 몸올 덮고 있던 이불을 걷어 내고는 네이미 언 대공과 시선을 마주하면서 그에게 말했다. “저도데려가주세요,할아버지.” 순간 네이미언 대공은 자신의 귀를 의심해야만 했다. 지금 아이실라가 무슨 말을 한 것이란 말인가. "뭐라고?" 어이없다는 듯 말하는 네이미언 대공의 모습에 아이실 라가 말한다. “저도 따라가고 싶어요.” 아이실라의 표정은 그야말로 당찼다. 반드시 따라가고 말겠다는 의지가 보인다랄까. 하지만 그런 아이실라의 말은 네이미언 대공에게 황당 함을 심어 주기에 충분하였다. 지금 아이실라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이란 말인가. 전쟁터에 따라가겠다고? 수많은 목숨이 오고 가는 그 장소에? 아무리 예쁘다 예쁘다 하여도 되는 것이 있고 안 되는 것이 있는 법이다. 전쟁터에 따라가겠다니. 네이미언 대공의 표정이 굳으며 말했다. "안 된다.” “저도 가고 싶어요.” 안 된다고 했음에도 아이실리는 가고 싶다는 말을 바로 하였다. 절대 쉽게 물러날 기색이 아니었다. 네이미언 대공은 이런 아이실라의 모습이 처음이었기 에 순간 말을 잃어야만 했다. 여태까지 무슨 말을 하건 간에 아이실라는 네이미언 대 공의 말올 고분고분 따르는 귀여운 손녀였다. 한 번도 이렇게 반발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말을 잘 듣던 손녀가 한순간 이렇게 변할 수가 있다니. 레닐을 생각하는 마음이 그렇게 크단 말인가? 아니,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으니 새삼 다시 느낄 필요는 없다. 하지만 말을 잘 듣던 손녀의 반항은 네이미언 대공에게 큰 충격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표정을 굳힌 네이미언 대공이 아이실라에게 물었다. “전쟁터가 어떠한 곳인 줄 알고도 그러는 것이더냐? 안 된다면 안 되는 것이다. 내 말을 들어라, 아이실라.” “꼭 가고 싶어요. 철없는 말이지만 꼭 가서 공자님을 보고 싶단 말이에요.” 양손을 꼬옥 모은 아이실라가 네이미언 대공에게 말 한다. 들리는 소문으로 레닐이 정신을 차렸다는 것을 전해 들 었지만 그녀는 반드시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처음에 레닐에 대한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얼마나 놀 랐던가. 마이드 제국의 기사와 일전을 벌이고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까지 갔다는 말을 전해 듣자 아이실라는 머리가 텅 비는 듯한 충격을 받아야만 했다. 레닐의 목숨이 위태롭다니?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몸 건강히 돌아오겠다고 말을 하 던 레닐이 아니던가. 상대가 누구인지도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 상대에게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 처하게 된 레닐 의 이름값은 하루가 다르게 떨어져 내렸고, 그것은 아이 실라를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절대 이름 없는 검사에게 패할 레닐이 아닌데 말이다. 그리고 여태까지 레닐이 왕국에 한 기여도가 얼마나 높 은가. 그런데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 처하자 매정하게 몸올 돌리는 사람들이 원망스러웠다. 뒤이어 레닐이 상대했던 기사의 정체가 다름 아닌 마이 드 제국의 전대 마스터인 로셀린 공작이란 말에 아이실라 의 안색이 하얗게 질리게 만들었다. 마이드 제국의 전대 마스터라면 무엇을 뜻하겠는가. 다름 아닌 자신의 할아버지인 네이미언 대공보다도 까 마득한 선배를 뜻하는 말이었다. 중조할아버지인 전대 네이미언 대공과 연배가 비슷하 다고 할까. 그 정도로 대단한 존재가 레닐과 겨루었다니. 일주일 후 래닐이 정신올 차렸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아 이실라는 안심할 수 없었다. 자신의 눈으로 레닐이 온전한 모습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랬기에 네이미언 대공에게 떼를 쓰다시피 하는 것이 었다. 반드시 가고 싶은 마음이었기에 그렇다. "허허!” 네이미언 대공은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은 채 떼를 쓰는 아이실라를 보며 웃음을 지었다. 이렇게까지 하여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려고 할 줄 이야. 처음에는 괘씸한 마음이 들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 았다. 저것도 다 레닐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기에 그러는 것일 테지. 아이실라의 마음이 이해가 가는 네이미언 대공이었다. 저렇게 어릴 때는 앞뒤 가리지 않은 채 오로지 눈에 보 이는 것에만 열중하고는 하지 않는가. 그렇게 생각하니 아이실라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네 이미언 대공이었다. 그는 아이실라의 눈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반드시 가야겠느냐?" "네, 가고 싶어요. 꼭 가고 싶어요, 할아버지.” 네이미언 대공의 말에서 갈 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했기 때문일까. 아이실라가 고개를 맹렬히 끄덕인다. 그러자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네이미언 대공이 말한다. "좋다. 데려가도록 하마. 하지만 철저히 내 지시에만 따라야 한다. 그리고 네가 가는 것은 대외적으로 알리지 않을 것이다. 조용히 따라가서 네 속을 썩여 놓은 그 녀석 만 만나 보는 거다. 알겠느냐?" 지금 상황에서 아이실라가 전쟁터로 향하게 되는 것이 알려지면 하등 좋을 것이 없다. 그랬기에 네이미언 대공은 아이실라에게 확답을 받아 놓으려는 것이었다. "네. 물론이에요.” 그 말에 아이실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입장에서 는 따라가는 것만 성사되면 되는 것이기에 그것이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좋다.” 아이실라가 고개를 끄덕이자 네이미언 대공도 고개를 끄덕인다. 어차피 전쟁터에 도착하게 되면 총사령관은 네이미언 대공 본인이 직접 인수인계를 받을 생각이었다. 비공식이지만 레닐의 부상이 제법 심각하여 일 년 동안 은 제 무위를 발휘할 수 없다고 들었다. 무위를 발휘할 수 없게 된 이상 요양에 힘을 쓰는 것이 왕국 입장에서는 이득이었다. 게다가 때마침 네이미언 대공이 참전하기로 하였으니 나쁘지 않은 상황이었다. 네이미언 대공이라면 카르미안 왕국에 있어 영웅적인 존재였고, 연배나 카리스마 면에서 레닐보다 월등했으면 월등했지 떨어지지 않으니 말이다. 레닐이 돌아올 때 아이실라와 함께할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네이미언 대공이었다. 칸 밀레0|노 3세의 결단 수, 레닐과 로셀린 공작의 대결 결과 소식은 마이드 제국에 게도 큰 충격을 안겨다 주었다.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현역 마스터도 아닌 다름 아닌 마이드 제국의 전대 마스터다. 기사의 제국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한 마이드 제국에게 있어 그 의미가 남다르다. 다른 왕국에서도 마스터의 존재는 자존심이나 마찬가 지지만 마이드 제국은 그 정도가 더욱 심각하였다. 그랬기에 라페리온 후작이 웨이던 후작에게 패배하였 을 때 마이드 제국이 받은 충격은 대단하였다. 마이드 제국의 자존심이 남부 야만인 제국에게 꺾일 줄 은 몰랐던 것이다. 하물며 그냥 마스터도 아닌 전대 마스터였으니 그 충격 은 더욱 컸다. ‘ 게다가 상대는 다름 아닌 마스터 중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레닐이었기에 그렇다. 로셀린 공작과의 양패구상 소식은 결국 패배 소식이나 다름이 없었기에 그렇다. 이미 나이가 백이십이 넘은 로셀린 공작과 이십 대인 레닐의 부상 회복 속도는 차원을 달리할 것이다. 레닐이 완치되어도 로셀린 공작은 여전히 병석에 있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젊은 만큼 로셀린 공작과의 대결은 그에게 뼈가 되고 살이 되어 실력이 한층 진일보 되었을 확률이 높다. 그 소식은 마이드 제국의 최상부에 가장 먼저 전달이 되었고. 그것은 결국 원탁회의가 열리게끔 만들었다. 원탁회의가 소집되었지만 모인 이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말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예전에는 칸 밀레이노 3세를 제외한 일곱 명의 마스 터가 원탁에 자리하였지만 지금은 불과 네 명에 불과하 였다. 라페리온 후작을 시작으로 제스테리언이 레닐의 검에 목숨을 잃었고, 이번에 로셀린 공작이 레닐의 검에 의해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것이다. 때문에 자리에 남은 것은 전대 마스터인 카빌리어 공작 과 데칸 공작. 셀리든 공작,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노 인뿐이었다. 칸 밀레이노 3세는 모인 이들의 면면을 보면서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마이드 제국의 전력 절반 정도가 깎여 나간 것이다. 그가 주변을 둘러보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레닐이…… 어린 이십 대 녀석이 그렇게 강하단 말인 가. 제국의 자존심이라 불리는 마스터 세 명이 그 검에 꺾 여 나가다니 말이야. 하하!” 허탈한 나머지 웃음을 짓는 칸 밀레이노 3세였다. 로셀린 공작이 패한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패배와도 다 름없었기에 패배로 간주하고 있었다. 레닐은 금방 회복올 하겠지만 로셀린 공작은 어떻겠 는가? 물론 비공식 루트로 전해 들은 레닐의 회복 기간은 일 년이었지만 로셀린 공작에 비하면 짧은 기간이다. 로셀린 공작의 부상도 중하여 자칫 잘못하다가는 영원 히 마나를 다룰 수 없는 지경에 처할지도 모른다는 진단 이 내려진 것이다. ".........." 칸 밀레이노 3세의 말에 회의장은 침묵에 잠겼다. 그들로서는 침목을 지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분명 처음 레닐이 거론될 때만 하여도 그는 마스터 자 리에도 오르지 못한 신예에 불과하였다. 라페리온 후작에게 적절히 부상 입혀 생포해 오라는 명 령을 내렸을 정도니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레닐 단 한 사람으로 인하여 마스터 셋이 대계를 참여 하지 못하게 되었다. 둘은 죽음을 당하였고, 하나는 최소 반년은 지나야 거 동을 할 수 있는 중상을 입었으니 말이다. 얼마나 침목이 이어졌올까. 침체되어 있던 분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나선 것은 데칸 공작이었다. 그는 침착한 어조로 칸 밀레이노 3세에게 말했다. "패하, 잔인한 현실이지만 이미 지난 과거가 되었습니 다. 지금에 와서 할 일은 그런 과거가 반복되지 않게 하는 것 뿐입니다" 그 말에 칸 일례이노 3세가 한숨올 짧게 쉬며 고개틀 끄덕인다. "그렇지. 이미 지난 과거니까. 그나마 카빌리어 공작이 일을 잘해 냈으니 다행이군.” 칸 밀레이노 3세가 카빌리어 공작올 바라보며 말하자 그가 고개를 숙인다. "과찬이십니다. 신은 해야 할 일을 했올 뿐입니다.” "벤자이어 제국은 경이 보기에 어떻게 될 것 같나.” 대륙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보유한 마이드 제국이지만 식량이 자급되지 않는 실정이었다. 영토 중 상당 부분이 사시사철 얼음이 녹지 않는 동토 였던 것이다. 그로 인해 수십 년 전에 카빌리어 공작을 벤자이어 제 국으로 파견하여 남부 대륙의 식량을 마이드 제국으로 유 출하게끔 하였다. 그리고 강력한 잠재력을 지닌 남부 대륙이 하나로 뭉치 지 못하게끔 하게 만들고자 하였다. 그런데 그때 둥장한 것이 레이폴드 대제였다. 제왕의 품위를 지닌 그는 카빌리어 공작조차도 탄복하 게 만들 만한 인물이었고, 결국 카빌리어 공작은 계획을 바꾸어 지금의 벤자이어 제국을 이룩하게 한 뒤 안정적인 선에서 식량 반출을 하였다. 그러다가 레이폴드 대제에게 발각이 된 것이다. 자신이 이룩한 것을 자신이 거두는 것이라. 카빌리어 공작은 자신을 제거하려는 래이폴드 대제의 함정에서 몸만 뺄 수 있었지만, 조국을 위해, 추후 단단하 게 굳어져 마이드 제국의 아성을 넘볼 가능성이 존재하는 벤자이어 제국을 철저하게 망가뜨리고 왔다. 그의 손에 빌라드 후작이 죽음을 당하고, 레이폴드 대제의 생명의 끈을 이어 주던 신검을 빼앗아 왔으니 말 이다. 물론 자신이 신검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 에게 비밀이다. 카빌리어 공작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레이폴드가 없는 벤자이어 제국은 부서질 수밖에 없 는 모래성입니다. 웨이던 후작이 있다고 하나, 조만간 생 을 마감할 레이폴드를 대신할 인물이 없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웨이던 후작이 있지 않나.” 마스터의 위엄은 대단하다. 웨이던 후작은 남부의 악마라 불릴 정도로 남부 대륙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그 이름이 통하는 인물이다. 레이폴드 대제가 죽기 전에 한 사람을 차기 황제로 지 목하면 웨이던 후작은 따를 것이 아닌가? 그리되면 벤자이어 제국은 지금의 영광을 그대로 유지 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일전에 레이폴드 대제가 웨이던 후작에게 명령 을 내려 모든 반동의 씨앗을 짓밟지 않았던가. 덕분에 웨이던 후작 혼자서도 충분히 벤자이어 제국을 지탱할 여력이 존재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 의미를 알아차린 카빌리어 공작이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젓는다. "아님니다, 폐하. 그리될 수도 있지만 남부 대륙은 수 많은 분란의 씨앗이 존재합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 니다.” "분란의 씨앗이 있다고 하나 웨이던 후작의 눈을 피할 만한 것들은 아닐 텐데?" 칸 밀레이노 3세의 눈은 날카로웠다. 마이드 제국의 정보망이 중부 대륙에 걸쳐 구축되었다 고 하지만 남부 대륙에 정보통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정보원들이 취합하여 보낸 정보에는 벤자이어 제국의 정세에 대해서도 설명되어 있었다. 벤자이어 제국에는 여전히 강대한 세력을 지닌 대영주 들이 존재하지만 기존의 왕가 출신 대귀족들은 대부분이 몰락했다는 것. 그 상황에서 마스터의 검을 피해 용감하게 봉기할 귀족 들은 존재하지않으리라. 그것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있는 것이다. 카빌리어 공작이 몸을 움찔 떨었다. 그리고 그는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칸 밀레이노 3세가 대단한 인물이라는 것을 말이다. 벤자이어 제국에 있던 탓에 원탁회의에 자주 참여하지 못하여 칸 밀레이노 3세가 그렇게 대단한 인물인 줄 실감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겪어 보니 정말 보통 인물이 아니었다. 이제 사십으로 접어드는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말 이다. 그러다가 카빌리어 공작은 속으로 피식 웃음을 짓고 만다. '내가 저 나이 때도 그랬었지. 나는 어리지 않다고 말 이야.’ 마이드 제국의 전대 마스터이긴 하지만 카빌리어 공작 의 나이는 그렇게 많지 않다. 마스타 중에서 최고령인 요멘 공작보다 다섯 살 정도 많을 뿐이었으니 말이다. 사십대 초반의 나이에 마스터라는 명예로운 자리에 오 른 카빌리어 공작은 은퇴한 지 삼십 년이 되었지만 많은 사람들은 아직까지 그가 살아 있을 것이라 추측하고 있 었다. 어쨌든 요지는 칸밀레이노 3세가 얕볼 수 없는인물이 란 이야기였다. 카빌리어 공작은 웃음올 짓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세한 상황을 말씀드리지 않았군요. 죄송합니다, 폐 하. 실은……" 카빌리어 공작이 자세한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칸 밀레이노 3세는 그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었다. ‘역시 얄볼 수 없군. 카빌리어 공작.’ 자세한 사정을 숨기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능청스럽 게 넘어가는 모습을 칸 밀레이노 3세가 눈치채지 못할 리 가 없었다. 칸 밀레이노 3세의 아버지이자 전대 황제였던 칸 밀레 이노 2세는 벤자이어 제국으로 파견되어 있는 카빌리어 공작을 가리키며 각별한 주의를 주었다. 그 내용은 간단했다. 바로 카빌리어 공작을 만만하게 보지 말란 이야기였다. 사십 대의 나이로 마스터에 오른 카빌리어 공작은 황제 였던 칸 밀레이노 2세가 통제하기 버거워 할 만큼 뛰어난 인물이었다. 당시 황태자였던 칸 밀레이노 3세에게는 어림없는 이 야기처럼 들렸지만 말이다. 그에게 있어서 어려운 인물은 시종일관 분위기를 잡고 있는 제스테리언 대공이나 조용히 있는 듯 없는 듯 존재 하던 로셀린 공작이었지,웃음도 잘 짓고, 인상이 좋아 보 이는 카빌리어 공작은 무섭게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고 점점 사람 보는 눈이 늘어남에 따라 아버지의 말이 무엇인지 칸 밀레이노 3세는 깨달아 갈 수 있었다. 늘 웃음을 지으며 뒤에서 상황을 조용히 지켜보는 카빌 리어 공작이야말로 경계해야 할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에게 딱히 다른 야심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 듯하 였다. 그러나 너무나 뛰어난 능력을 지닌 카빌리어 공작은 그 를 거느리는 군주에게 있어서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마이드 제국의 백 년 대계를 완성해 나가려는 칸 밀레 이노 3세는 물론이고, 남부 대륙의 불세출 영옹 레이폴 드 대제도 버거워 했던 인물이 카빌리어 공작이었으니 말이다. 그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방심하고 있으면 카빌리어 공작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마이드 제국이 어찌하여 암살왕 레프네와 인연이 닿았 는가, 이것도 다 카빌리어 공작이 연결시켜 주었기에 가 능한 일이었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카빌리어 공작을 신하로 두지 못 했을 것이다. 그러기에는 그의 능력이 너무나 뛰어나기 때문이지.’ 아직도 카빌리어 공작을 다 파악했다고 확신하기 어 렵다. 하지만 칸 밀레이노 3세는 카빌리어 공작의 성격을 어 렴풋 파악하고 있었다. 바로 지나칠 정도로 자유로운 모습. 그는 남에게 구속 받는 것을 극히 싫어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무언가를 이룩하겠다는 욕심보다는, 하는 과정 을 즐기는 인물이었다. 마이드 제국의 가장 큰 적으로 떠오르던 벤자이어 제국 도 어쩌 보면 카빌리어 공작의 작품 아니던가. 카빌리어 공작. 그는 도전하는 것에서 자신이 살아 있 음을 느끼는 인물임이 분명하였다. 그의 이야기가 끝나자 칸 밀레이노 3세가 고개를 끄덕 인다. "공작의 계획은 잘 들었다. 훌륭하군. 그리 하면 벤자 이어 제국은 확실히 분열을 일으킬 수밖에 없겠어.” 객관적인 시각으로 들어도 카빌리어 공작의 계획은 완 벽하였다. 제아무리 벤자이어 제국이 견고한 틀을 유지하고 있어 도 결국 분열올 가져올 수밖에 없는 계획이었으니 말이다. 가장 염려되던 부분 중 하나였기에 벤자이어 제국을 망 가뜨려 버린 카빌리어 공작을 치하히는 칸 밀레이노 3세 였다. "벤자이어 제국은 그쯤으로 하고…… 문제는 카르미안 왕국인데.” 마이드 제국에게 있어 가장 큰 적은 벤자이어 제국이었 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눈앞의 카르미안 왕국이 더욱 거슬리는 상황이 닥친 것 이다. 카르미안 왕국 이야기가 나오자 다시 침목이 찾아든다. 그들에게 있어서 카르미안 왕국은 벤자이어 제국보다 더욱 껄끄러운 상대가 된것이다. 도저히 무위를 측정할 수 없는 레닐과 이대에 걸쳐 마 스터를 배출한 네이미언 대공가. 얼마 전 튀니르 왕국과 게르만 왕국, 두 왕국과 동맹을 체결함으로써 사실상 중부 왕국의 맹주로써 부상하게 되 었다. 로셀린 공작과의 대결로 레닐이 극심한 부상을 입었다 고 하지만 그것은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다. 언젠가 반드시 회복하여 또다시 마이드 제국에게 칼을 겨눌 인물이 바로 레닐이었다. “레닐은 부상 중이니 굳이 저희들 중 한 명이 나서서 처리할 필요가 없습니다. 간단하게 계략을 사용하면 어떻 습니까. 폐하.” 침묵이 이어지는 가운데 입을 연 것은 데칸 공작이었다. 그가 입을 열자 모두의 시선이 데칸 공작에게 향했다. 도대체 무슨 계략을 말하는 것인가. 그들도 알고 있어서 침묵한 것이 아니다. 자신에게 시선이 집중되자 데칸 공작이 입을 열었다. "네이미언 대공이 진격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에 따라 지원군올 조직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칸 밀레이노 3세를 바라보는 데칸 공작. 칸 밀레이노 3세가 고개를 끄덕인다. "맞다, 공작. 지원군 오만을 파견하려고 준비 중이지.” "네이미언 대공이 온다면 부상을 입은 레닐은 왕도로 향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겠지. 부상을 치료해야 할 테니.‘ 모두가 그렇게 예상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당장 부상당한 로셀린 공작도 그렇게 조치를 취할 예정 이었으니. 게다가 이번 원탁회의는 대책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것 도 있지만 전쟁의 신임 사령관을 선발하는 것도 겸하고 있었다. "카르미안 왕국의 정계는 어수선합니다. 그 틈을 파고 들자는 이야기지요." "그렇군.” 다른 사람들은 아직 눈치채지 못한 듯하지만 칸 밀레이 노 3세는 데칸 공작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데칸 공작이 말하고자 하는 것. 그것은 다름 아닌 반대파를 이용하자는 것이었다. 칸 밀레이노 3세가 데칸 공작을 바라보며 물었다. "네이미언 대공가에서 온 도망자를 이용하자는 것인가?" 데칸 공작이 언급올 해서야 기억이 났다. 네이미언 대공가를 뒤흔들기 위해 오베른 백작가를 이 끌고 있는 헤럴즈라는 귀족 청년을 지원하지 않았던가. 그률 지원하기 위해 칸 밀레이노 3세는 마나의 양을 폭 발적으로 늘릴 수 있는 마나 포션을 지원했었다. 하지만 어처구니없게도 그는 후계자 대결에서 패하고 모든 것을 잃었다. 이대로 폐기하기에는 마나 포션을 투자한 것이 아까워 방치해 두고 있었는데 데칸 공작이 그를 활용하자는 제안 을 한 것이다. 칸 밀레이노 3세가 헤럴즈를 기억해 내자 데칸 공작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예, 폐하. 네이미언 대공가의 산하에 있던 오베론 백 작가의 헤럴즈라는 자입니다.” "나이에 비해 제법 뛰어난 실력을 지니고 있었지.” 너무나 뛰어난 레닐의 등장에 철저히 가려졌지만 객관 적인 기준에서 확실히 천재라 불려도 부족함이 없는 존재 였다. 게다가 머리가 잘 돌아가기까지 한다. 자국의 인물이었다면 포용하였을 테지만 독사 같은 마 음을 지니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의 용도는 정해 진 상태였다. 무척 중요하면서 일회용으로 시용할 수 있는 그런 역할. 데칸 공작이 말한 걸로 적합했다. 칸 밀레이노3세가 데칸 공작을 바라보며 말했다. "말을 꺼냈다는 것은 복안이 있다는 것올 뜻하는 것일 터. 구체적인 계획을 말해 보라. 데칸 공작.” "예. 폐하.” 고개를 끄덕인 데칸 공작은 주변을 둘러보더니 혀로 가 볍게 입술을 축이고는 입을 열기 시작한다. "현재 카르미안 왕국의 정계는 양분되어 있습니다. 현 카르미안 왕국의 국왕인 루이드 국왕을 처음부터 보좌했 던 바르가스 공작을 중심으로 하는 국왕파와 뒤늦게 합류 한 페를린 공작을 중심으로 한 귀족파가 그것입니다. 모 두 아시리라 믿습니다." 데칸 공작의 말에 장내에 모인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 인다. 마이드 제국의 적으로 떠오른 카르미안 왕국인 만큼 기 본적인 사항들은 훤히 꿰뚫고 있다. 고개를 끄덕이며 호옹하자 데칸 공작이 말을 이어 나 간다. "본래대로라면 페를린 공작을 중심으로 한 귀족파의 위세가 더 강해야 하겠지만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국왕파 에 레닐이 끼어든 것입니다.” 그 말에 사람들의 머릿속에 카르미안 왕국의 상황이 단 번에 그려졌다. 사람들이 대충 반옹을 보이자 데칸 공작이 고개를 끄덕 이며 말한다. "그런 상황에서 레닐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이는 페를 린 공작에게 엄청난 기회일 터. 제 의견은 해럴즈를 파견 하여 페를린 공작에게 제안을 하는 것입니다.” 거기까지 말한 데칸 공작이 말을 끊었다. 그러자 사람들의 머릿속에 여러 생각이 스치고 지나 갔다. 도대체 무슨 제안올 하려는 것일까. 칸 밀레이노 3세가 데칸 공작에게 물었다. "어떤 제안을 말하는 것인가.” "바로 붉은 마약을 래닐에게 섭취시키는 것입니다广 데칸 공작의 입가에 질은 옷음이 맺힌다. 그 웃음에는 진한 살기가 맴돌고 있었다. “........!" 그의 말에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설마하니 그가 말하는 것이 붉은 마약을 뜻하는 것인지 몰랐던 것이다. 붉은 마약은 대륙에서 금지된 오대 마약 중 하나로서 섭취하게 되면 서서히 내부의 모든 것을 태워 버리는 악 독한 독약이었다. 하지만 구하는 것이 워낙 까다로웠다. 붉은 마약은 식 지 않은 현무암에서 자생하는 것으로, 용암의 뜨거움올 받아들여 엄청난 폭발력을 지니게 된다. 구하기 힘든 만큼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이 붉은 마약이다. 특히 섭취할 경우 맛이 좋아서 암살을 하는데 최고에 속하는 것이 바로 붉은 마약이다. 하늘의 별따기 만큼 구하는 것이 어렵다지만 세계 최 강의 제국답게 마이드 제국에도 당연히 붉은 마약이 존 재한다. 데칸 공작은 지금 붉은 마약을 레닐에게 사용하자고 제 안하는 것이었다. 놀라움에서 가장 먼저 벗어난 칸 밀레이노 3세가 고개 를 끄덕였다. "확실히 확률이 높기는 하군. 성공 확률은 어떻게 생각 하고 있지?" "섭취할 수만 있게 한다면 레닐은 반드시 죽을 것입니 다. 폐하.” 딱히 데칸 공작의 확답을 바라고서 한 말이 아니었다. 붉은 마약을 섭취하면 마스터라 하여도 죽음을 면하기 힘들었으니 말이다. 생각에 잠겨 있던 칸 밀레이노 3세가 결정을 내렸다. "붉은 마약을 섭취하면 살아남기가 힘들겠지. 흐 음…… 좋다. 데칸 공작의 계획을 윤허하겠다.” "황공하옵니다, 폐하." 고개를 숙이는 데칸 공작을 보면서 칸 밀레이노 3세가 말한다.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지. 또 다른 의견이 있나." 칸 밀레이노 3세의 말에 셀리든 공작이 손을 든다. "말해보라,셀리든공작.” 그 말과 함께 칸 밀레이노 3세가 셀리든 공작에게 말을 해 보라는 듯 눈짓올 하자 셀리든 공작이 자리에서 일어 나면서 자신의 의견올 말한다. "예, 폐하. 제가 생각하기에는 레닐의 부상이 오래갈 듯 싶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에게 주어진 명예도 회수하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신은 이번 마스터 대전에서 레닐 을 지명하였으면 합니다.” 셀리든 공작의 말은 간악한 심보를 담고 있었다. 마이드 제국 출신의 기사가 우승을 하게 되면 레닐을 지명하여 그의 마스터 자리를 빼앗자는 것이었으니 말 이다. 실력이 마스터 급에 이르렀다고 하나 마스터 자리를 유 지하는 것과 빼앗기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존재한다. 칸 밀레이노 3세가 다소 놀란 표정올 짓는다. "마스터 대전에서? 호오……"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여기는 간 밀레이노 3세였다. 레닐의 실력이 대단하다고 여겼기에 존중하는 마음도 있지만 적인 이상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은 당연 한 일이다. 일각에서는 부상을 입은 레닐의 마스터 자리를 빼앗아 간다는 소리를 할 수 있지만 그것은 어차피 각오할 수 있 는 말이었다. 레닐의 마스터 자리를 빼앗으면 좋고, 도전읕 받아들이 러 온다면 부상을 더욱 악화시키면 되니 말이다. "나쁘지 않은 제안이야. 괜찮군.” "반드시 실행했으면 합니다. 래닐을 공략하는 방법이 아니겠습니까.” 칸 밀레이노 3세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입가에 미 소르 짓는 셀리든 공작이었다. 당장 마음 같아서는 레닐읕 찾아가 목을 베어 주고 싶 은 심정이었다. 그렇게 어린 녀석이 이렇게 유명해지다니? "너무 안이해서 그렇다.’ 라페리은 후작이나 제스테리언, 로셀린 공작 모두 방심 을 했기에 그런 결과를 초래했다고 생각하는 쉘리든 공작 이었다. 자신이 상대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텐데. 레닐을 얕보는 마음은 있지만 방심은 절대 하지 않는다. 그것이 검사에게 있어 반드시 필요한 기본 소양이 아니 겠는가. 그랬기에 당장 레닐읕 장가가겠다는 말을 억누르는 체 한 것이 바로 그를 난관에 처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레닐이 응하지 않아 마스터 자리를 잃는 것도 좋고, 온 다면 내상을 더욱 악화시키는 방법도 있으니 말이다. 내상이 낫지 않은 상황에서 더 악화되기 시작하면 부상 은 끝도 없이 심각해진다. "좋다. 실행하도록 하지. 이번 마스터 대전에 본 제국 의 기사들에게 일러 두도록 하라.” "알겠습니다, 폐하.” 자신의 의견이 통과되자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숙이는 셀리든 공작이었다. 마스터 대전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자 칸 밀레이노 3세 의 시선이 데칸 공작에게 향한다. 그리고 데칸 공작에게 명령을 내린다. "데칸 공작은 지원군을 이끌고 네이미언 대공과 맞서 싸우라. 그대라면 가능하겠지.” 셀리든 공작도 부족함이 없지만 그에게는 데칸 공작이 갖춘 신중함이라는 것이 결여되어 있다. 네이미언 대공과의 대결에서 승리할 수도 있겠지만 군 대를 통솔하는 능력은 데칸 공작이 훨씬 낫다. 칸 밀레이노 3세의 시선과 데칸 공작의 시선이 허공에 서 부딪쳤다. 그러자 데칸 공작이 고개를 숙이며 힘차게 외친다. "폐하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네이미언 대공의 목을 베 어 마이드 제국의 이름을 드높이겠나이다.” 신중한 성격을 지녔지만 그만큼 마이드 제국 출신이란 자존심이 드높은 데칸 공작이었다. 제11장 마스터 대전에 지명을 당하다 카르미안 왕국 지원군에 아이실라가 함께 간다는 것은 극비리에 진행되었다. 네이미언 공국 측의 인물 몇몇들만 알고 있는 사실이었 던 것이다. 거기에 사실올 알고 있는 사람 한 사람이 더 있었다. 바로 브린이었다. 루이드 국왕은 어린 브린이 전쟁터에 나서는 것이 달갑 지가 않았다. 아니, 이제는 어리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성장했지만 국왕의 자리를 이을 인물인 만큼 전쟁터에 나서길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브린의 각오는 남달랐다. 국왕의 자리를 이을 것이라면 반드시 전쟁터에 나가서 경험을 해 보고 싶다는 것이 그의 의견이었다. 물론 내전에서도 전쟁에 참여한 바가 있지만 직접적으 로 겪어 본 것은 아니었다. 그랬기에 루이드 국왕은 어쩔 수 없이 브린을 전쟁터로 파견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불안한 마음이 있었기에 네이미언 대공과 함께 하도록 한 것이다. 브린은 처음부터 아이실라가 전쟁터에 간다는 것을 알 아 차렸다. 동생인 자신도 가슴이 철렁했는데 아이실라는 오죽하 겠는가. 그랬기에 네이미언 공국 측 진영에서 이상한 낌새가 느 껴지는 것을 단번에 파악하였고. 아이실라가 함께한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브린은 아이실라가 타고 있는 마차로 가서 그녀를 위로 하였다. "형수님. 형님은 괜찮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 오" 이미 레닐이 정신을 차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졌지만 아 이실라의 얼굴에 드리워진 수심은 사라질 줄올 몰랐다. 그런 그녀를 보고 있노라면 브린은 자신의 걱정이 별것 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레닐이 부러웠다. 이렇게 이름다운 여인에게서 맹목적인 걱정을 받고 있 다는 점에서 말이다. "저는 괜찮아요. 그러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요.” 브린의 위로에 미소률 지으며 대답하는 아이실라였다. 그가 보기에는 힘이 없어 보였지만 저택 내에서 보여 주던 모습보다는 확실히 나아진 모습이었다. 그래도 음이 놓이지 않았기에 브린은 종종 아이실라 에게 찾아가 위로를 해 주었고, 그때마다 아이실라는 서 서히 밝아지는 모습올 보였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웃음을 되찾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점점 전선에 가까워지기 시작하였다. 브린은 아이실라를 완전히 풀어 주는데 실패를 했지만 그녀가 적적하지 않게 말동무를 해 주었다는 것에 만족을 했다.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형님이 무사했으면 좋겠군.’ 그것이 브린의 바람이었다. 마이드 제국에서 결정이 내려지고, 카르미안 왕국에서 아이실라의 합류가 결정되었읕 무렵, 마이드 제국과 카르 미안 왕국이 대치하고 있는 곳에서는 연방 팽팽한 신경전 과 함께 소규모 교전이 오가고 있었다. 카르미안 왕국의 총사령관 막사. 그곳에서는 연방 한숨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아……" 숨을 내쉬는 주인공은 다름 아닌 레닐이었다. 로셀린 공작과의 대결에서 양패구상이라는 결과를 이 룩한 뒤 일주일 동안 정신을 잃고 있던 레닐은 기적같이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하지만 정신을 차린 레닐에게 다가온 것은 절망뿐이 었다. 내부가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초토화되어 있던 것이다. 대결 당시에는 신경 쓸 겨를도 없었지만 막상 현실을 깨닫게 되니 레닐은 절로 흘러나오는 한숨을 참아 내기가 힘들었다. 그만큼 내상은 심각했던 것이다. "힘들겠군. 힘들겠어.” 레닐읕 치료한 마법사들이나 신관들은 최소일 년 동안 치료에 전념을 해야 한다고 말을 했지만 당사자인 레닐은 달랐다. 일 년은커녕 언제 완치가 될지 장담하기가 힘든 실정이 었던 것이다. 부상의 정도를 깨닫자 레닐은 자신이 얼마나 큰 위기에 서 빠져나왔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로셀린 공작과의 혈투. 양패구상을 이록한 것도 기적에 가까운 성과였다. 레닐은 씁쓸한 웃음을 지은 채 자신의 왼손에 있는 붉 은색 반지률 바라보았다. 바로 레드 티어즈였다. “레드 티어즈가 아니었으면 내가 그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을는지.” 레드 티어즈가 아니었으면 목숨을 잃어도 진즉에 잃었 을 것이라 생각하는 레닐이었다. 그 힘이 아니었으면 자신이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을지 의심이 될 정도였고, 결정적일 때 힘을 발휘할 수 있었기 에 위기를 벗어날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얻은 것은 있군.” 그 말처럼 레닐이 얻은 것도 존재한다. 바로 예전에는 겪어 보지 못했던 경험이라는 귀중한 재 산이 말이다. 내상은 차근차근 치료해 나가면 언젠가 해결책이 보이 겠지만 그렇다고 내상이 치료되는 시간을 헛되이 보낼 수 없는 법이다. 레닐은 그 시간에 자신이 얻어 낸 값진 경험을 되새겨 볼 생각이었다. 압도적인 신위를 발휘하던 로셀린 공작과의 대결은 무 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재산이었다. "후우! 과연 치유될지 모르겠군. 할아버지를 만나 봐야 하는가.” 자신의 내면을 살펴보던 레닐은 홀러나오는 한숨을 억 제하기가 힘들었다. 이미 신관들과 마법사들은 고개를 저은 상태였다. 레닐 본인도 힘겨우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부가 완전이 엉켰는데 이것을 언제 풀어 낸단 말 인가. 물론 차근차근 하나씩 풀어 낸다면 언젠가는 모든 것이 다 풀릴 것이다. 하지만 그 시간을 누가 기다려 줄까. 당장 자신의 존재가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그 시간까 지 도저히 기다릴 수 없었다. 그랬기에 레닐은 다르만에게 기대를 걸기로 하였다. 다르만은 8서클 마법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뛰어난 치료사이기도 하였으니 말이다. 그마저도 방법이 없다면 차근차근 풀어 나가는 수밖에 없다. "그나저나 대공님이 이곳에 오실 줄은 몰랐는데.” 레닐은 지원군이 근처에 거의 다 왔다는 말을 듣고 몸 을 일으켰다. 외상은 거의 다 나았기에 움직이는 데는 불편함이 없 었다. 다만 내부가 워낙 엉망이어서 마나를 끌어 올릴 수가 없었다. 망가진 회로로 어찌 마나를 끌어 올릴 수 있단 말인가. 자칫 잘못하다가는 마나 폭주로 이어져 두 번 다시는 마나를 사용할 수 없는 지경에 처할지도 모른다. 그걸 알았기에 레닐은 육체적인 능력으로만 생활을 해 야했다. 다행이라면 평소에 감각을 단련해둔 덕분에 크게 불편 함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대게 마나를 다루는 자들은 마나틀 다루지 못하게 되면 그 허탈감 때문에 상당히 고생을 한다고 하는데 레닐은 약간 달랐다. 물론 내색을 하지 않았기에 그러는 것이지만. 지원군이 다 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레닐이 복장을 갖춰 입고 막사률 나섰다. 마나를 다루지 못하지만 여전히 변함없는 모습을 보여 야 만했다. 자신은 이 군대의 정신적인 지주가 아닌가. 그런 자신이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는 노롯이었다. 레닐이 모습을 드러내자 귀족들도 하나둘씩 모습을 드 러내기 시작한다. 귀족들이 레닐에게 다가와 괜찮냐는 안부를 전한다. 그에 레닐은 괜찮다고 답을 해 주면서 한편으로는 그들 의 바뀐 기색을 은연중에 느낄 수 있었다. 마법사와 신관의 말 때문이리라. 그들은 레닐이 영영 마나를 다틀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이야기를 하고 다녔으니 말이다. 마나를 다루지 못하게 되면 레닐은 평범한 귀족 그 이 상 그 이하도 아니게 된다. 더 이상 굽실굽실할 이유가 없게 되는 것이다. 그 기색을 느끼지 못할 레닐이 아니었기에 귀족들의 바 뀐 반응이 조금 씁쓸하게 느껴졌다. 한순간 사람이 바뀌는 건 일도 아니라더니. 그걸 몸소 겪으니 조금 씁쓸했다. ‘어차피 이런 이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자신을 다스리는 레닐이었다. 애초에 귀족들이 이익을 쫓는 무리라는 것을 알고 있지 않았던가. 그걸 확인한 거 가지고 실망할 이유가 없다. 그렇게 판단을 내린 레닐은 태연한 안색으로 전방을 바 라본다. 지원군이 도착하고 있던 것이다. 왕도에서 조직된 지원군과 네이미언 공국에서 온 지원 군의 규모는 총 팔만에 이른다. 병사들이 질서정연하게 정돈하였고, 기사들이 앞으로 나선다. 레닐은 그 시이에 서 있는 네이미언 대공을 발견하였다. 그러고는 네이미언 대공이 앞으로 나서자 먼저 인사를 하였다. "어서 오십시오. 대공님.” “……무사하니 다행이구나.” 외관은 멀쩡했기에 레닐올 보며 네이미언 대공이 말 했다. 그 모습에 레닐은 힘없이 웃음을 지어 보일 뿐이었다. 몸은 나았지만 속은 엉망이었기에. "안으로 드시지요.” "그러도록 하지" 레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네이미언 대공이 안으로 들 어선다. 카르미안 왕국의 지원군이 합류하는 순간이었다. “몸은 괜찮나?" 막사 안으로 들어서자 네이미언 대공이 레닐에게 꺼낸 말이었다. 그에 레닐이 고개를 저었다. "괜찮지 않습니다. 부상의 정도가 무척 심해서 한동안 죽은 듯 요양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얼마나 요양을 할 것같지?" "방법을 찾지 못하면 최소 일 년에서 최대 삼 년까지는 죽은 듯이지내야 할 것같습니다" "삼 년이나?" 레닐의 말에 표정이 어두워지는 네이미언대공이었다. 그도 그렇지 않겠는가. 마이드 제국과 전쟁이 터진 시점에서 삼 년이란 시간 동안 부상 치료에 전념해야 한다니. 마이드 제국이 보유한 마스터의 숫자가 몇일지 짐작이 쉽게 되지 않는 실정이었다. 레닐이 로셀린 공작과 겨룬 이상, 죽은 제스테리언올 제외하더라도 카빌리어 공작이 남는다. 거기에 데칸 공작, 셀리든 공작까지. 세 명이나 되는 마스터를 보유한 마이드 제국의 총 공 세에 어떻게 버틴단 말인가. 튀니르 왕국과 rp르안 왕국이 있다고 하나 마이드 제국 이 일시불란하게 움직이는 것과 세 왕국이 보조를 맞추는 것에는 상당한 차이가 존재한다. "힘들겠군. 힘들겠어." 중얼거리는 네이미언 공작을 보며 레닐이 고개를 숙 인다. "힘이 되어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니, 그건 네 탓이 아니지. 로셀린 공작과 무승부를 이룩한 것만으로도 대단한데. 아닌가?" 대결을 직접 지켜보지는 않았지만 네이미언 대공은 대 결이 어떻게 진행되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레닐의 실력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하나 로셀린 공작을 상대로 무승부를 기록한 것은 기적에 가까웠다. "맞습니다. 로셀린 공작이 너무 강해서 하마터면 죽을 뻔했습니다. 솔직히 무승부를 만든 것만으로도 기적에 가 깝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음! 그래도 살아 있으니 다행이지. 이곳의 전선은 내 가 맡도록 할 테니 왕도로 돌아가 편히 쉬도록 하고. 이참 에 공작령으로 내려가 보는 것도 괜찮을 둣하고.” "죄송할 따름입니다.” 면목이 없는지 고개를 숙이는 레닐이었다. 자신의 부족함으로 인하여 네이미언 대공을 움직이게 한 죄송스러움이 전신을 휘감았다. 그에 네이미언 대공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게 어찌 네 탓이더냐. 너는 능력 그 이상의 것올 발 휘하였다. 자책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도……" 죄송스러워 하는 레닐의 모습이 보기 싫었기 때문일까. 네이미언 대공이 손을 들어 그런 레닐읕 제지하였다. "그만! 그 말은 더 이상 듣지 않기로 하지. 어쨌든 너 는 훌륭히 제 몫을 해냈다. 그런 의미에서 상을 주도록 하지.” "상이라니......."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서 총사령관직에서 물러나게 된 자신에게 상을 준다는 말에 황당한 표정을 지은 레닐 이 입을 열려던 찰나. 그런 래닐읕 제지한 네이미언 대공 이밖을 향해 말한다. "들어오너라.” 그 말과 함께 막사 안으로 들어서는 한 인영이 있었다. 무엇인가 하고 시선을 입구로 주던 레닐은 순간 얼음이 되고 말았다. 안으로 들어서는 것은 다름 아닌 아이실라였던 것이다. 왕도에 있어야 할 아이실라가 왜 이곳에 있단 말인가. 레닐이 경악한 표정을 한 채 중얼거렸다. "아이실라. 어째서 이곳에…… “ "할 이야기가 많을 터.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고 오너 라.” 그 말과 함께 네이미언 대공이 자리에서 일어선 뒤 막 사를 나섰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배려를 한 첫이다. 네이미언 대공이 밖으로 나가자 막사에는 두 사람만 남 게 되었다. "........." 둘 사이에 자리한 것은 어색한 침묵이었다. 레닐은 갑작스럽게 등장한 아이실라로 인하여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혼란스러운 기색이었다. 왜 아이실라가 이곳에 있단 말인가. 그에 반해 아이실라는 차분한 얼굴로 침묵을 지키고 있 었다. 그러다가 입을 연 것은 아이실라였다. "괜찮으신거죠?" "몸이 괜찮은 거냐고 묻는 거면 괜찮은 것이고. 예전 같은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몸 상태를 묻는 것이라면 괜찮 지 않다라고 할 수있어.” 말을 하는 것이 무척이나 힘든 레닐이었다. 자신의 몸 상태를 묻는 아이실라의 모습에서 그녀가 그 간 느꼈던 걱정의 감정을 느낄 수 있던 것이다. 레닐의 말에 아이실라가 입을 꾹 다문다. 그러다가 다 시 입을 열었다. "제가 묻는 건 공자님의 몸 상태뿐이에요. 힘을 발휘하 건 못하건 제게 있어 공자님의 가치가 변하는 건 아니니 까요. 몸이 정상이라니 다행이에요. 정말……: 하던 말을 끝맺지 못하는 아이실라였다. 말올 하던 도중 어깨가 들썩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레닐은 그런 아이실라틀 보며 말없이 어깨를 감싸 주 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아이실라를 품에 안았다. "미안해. 앞으로는 걱정 끼치지 않을게. 왕도로 돌아가 자" “무사하셔서 다행이에요.” 아이실라의 걱정이 너무나 고마운 레닐이었다. “걱정해 줘서 고마워.” 그 말과 함께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본다. 할 이야기가 많았지만 두 사람은 눈으로 수많은 이야기 를 나누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다 보면 때로는 말을 하지 않고 눈만 보아도 말하고자 하는 것을 알아차린다. 두 사람도 그런 단계에 이르러 있었다. 네이미언 대공에게 총사령관직을 넘긴 레닐은 아이이실 라와 함께 조용히 왕도로 복귀를 하였다. 그리고 잠자는 시간을 제외한 하루의 절반을 부상 회복 과 수련을,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아이실라와 함께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부상으로 인하여 예전의 신위를 발휘하지 못하게 된 레 닐은 귀족들의 많은 구설수에 오르게 되었다. 마스터의 신위를 발휘하지 못하는 그는 젊은 공작에 불 과하였으니 말이다. 그런 말에 신경 쓰지 않은 채 레닐은 저택에 틀어박혀 묵묵히 자신의 할 일만을 하고 있었다. 그사이 한 해가 지나고 레닐의 나이가 스물셋이 되었 고, 아이실라의 나이가 열아홉이 되었다. 전쟁터를 떠나고 왕도에 들어선 지 두 달이 되었다. 고작 두 달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레닐에게 있어서는 무 척 짧은 나날이기도 하였고. 무척 긴 나날이기도 하였다. 부상을 회복하고자 차근차근 실타래를 풀어 나가고 있 었지만 진척이 여의치가 않았다. 다르만을 만나고 싶었지만 누구도 만나지 않은 채 연구 에 빠져들어 만나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런 한편 아이실라와 마치 신혼과도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하루가 길게 느껴지는 한편 무척 짧게 느껴 지기도 하였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흐르면서 마이드 제국에서는 어김 없이 마스터 대전이 개최되었다. 올해도 수많은 검사들이 마스터의 자리를 얻기 위해 퀘 이데룬에 몰려들었지만 레닐에게 있어서 신경 쓸 일이 없 는 먼나라이야기였다. 하지만 먼 나라 이야기를 신경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닥치고야 말았다. 마이드 제국에서 날아온 공문. 그것은 다름 아닌 마스터 대전 우승자가 상대로 레닐을 지목했다는 이야기였다. 공문을 받은 레닐의 표정이 빠르게 굳어 갔다. (레드 데스티니 13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