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의 일기 (1)~(4) [번 호] 14992 / 21254 [등록일] 2001년 02월 21일 22:40 Page : 1 / 11 [등록자] INNOCENTELF [조 회] 1739 건 [제 목] 드래곤의 일기(1) ─────────────────────────────────────── 372년 6월 몇일인진 기억이 안난다. 날씨 : 우중충 오늘은 레어 밖으로 한번 나가 보았다. 지나가는 오크가 나에게 인사를 했고 나는 그때 마침 배가 고플때라서 그냥 그걸 꿀꺽 삼켜 버렸다. 쯧, 누가 내눈에 보이래? 오랜만에 옆집에 사는 카이오네스나 보러 (옆집이라고 해도 바로 앞산이다.) 나는 내 거대한 몸을 공중에 띄우며 열심 히 날갯짓을 하며 온갖 몬스터들에게 "나 외출한다~~"라는 메시지와(여기에는 집 잘지켜라~! 라는 메시지도 담겨 있 다,) 위풍당당함을 자랑하며 앞산으로 날아갔다. "크하하핫~! 카네스! 나왔다~~!!!! 엥?" 그런 내눈에 보인 것은 작은 쪽지 하나 달랑~! '옆집에 사는 그리고 심심할때마다 나를 찾아와 나를 괴롭 게 하는 망할 블루 드래곤 시크리오프스봐라. 나는 유희나 즐기려고 산 아래로 내려간다. 네 등살에 내려가는 거니 반성좀 해라. 몬스터들은 찝찝해서 집을 맡기기가 좀 그러니 네가 우리집 관리 좀 해놔라. 그럼 몇백년 뒤에 다시 보자.' 이 쉐리가 나를 놔두고 바람쐬러 갔다 이거지? 나를 두고 간 것도 용서가 안되는 일인데 감히 나에게 네 집 관리나 하라 닛! 광포해진 나는 그대로 이 집(당연히 레어다.)을 엎어버릴까 도 생각을 했지만 곧 그 생각을 고쳐 먹었다. 이놈이 인간세상으로 바람쐬러 나갔으면 나도 같이 가면 될 꺼 아냐? 그러고 보니 열낼일이 아니네? 쿠쿠쿠, 오랜만에 유희나 즐겨 볼까? 372년 6월 날짜 : 몇일인지 기억안난 다음날. 날씨 : 우라지게도 좋다. 역시 내 폴리모프한 모습은 아름답다 못해 경외스럽다. 나는 거울에 내 아름다운 모습을 한번 비추어 보았다. 푸른빛의 탐스럽다 못해 머릿결은 징하게 좋은 발목까지 내 려오는 머리카락들. 나는 긴 머리를 좋아하기 때문에 인간으로 폴리모프 했을때 는 꼭 머리를 적어도 발목까지 오게 만든다. 잠시 자아도취에 빠져 있던 내게 일족의 누군가가 내 레어 로 오고 있다는 감이 왔다. "제길 어떤 자식이 하필 이런날에 오는거야?" 투덜거리며 중얼거리는 내 눈앞에 곧이어 거대한 드래곤이 쿵쿵거리며 안그래도 짧은 발을 열심히 놀리며 레어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아, 시크리오프스님, 유희를 즐기시려고 나가시는 중입니 까?" 저 쉐리. 내가 제일 싫어 하는 골드 드래곤 프라니바투스! 망할~! 하고 많은 드래곤들 중에 왜 저 쉐리가 우리집에 온 거지? "용건만 말해라. 내 염장지르러 이곳에 온건 아닐테고?" 그렇다. 이놈과 나와의 사이는 4천년간 이어진 원수 사이였 던 것이다. "아, 로드님의 말씀을 전하러 왔습니다. 내일이 2천년에 한번 모이는 각 일족의 수장들의 모임이라 는 것은 당연히 지혜롭고 자비로우신 시크리오프스님은 잊 지 않고 계시죠? 그것 때문에 왔습니다. 유희는 잠시 뒤로 미뤄야 겠군요. 쿠쿡." 잊어먹었었다. 제길,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왜 하필 2천년에 한번뿐인 일족의 수장들의 모임이 내일인거야? 으.. 그것보다 저녀석은 왜 하필 우리집으로 온거지? 아냐, 왜 하필 내가 일족의 수장이 된거지? 그건 분명히 저녀석의 농간일거야! 으아아악!! 프라니바투 스! 이노옴~! "당.. 당연히 알고 있었지." 1 이런 내 마음과는 달리 비굴한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크윽, 이런 내가 싫다. 드래곤인 내가.. 허억.. "호오~ 그러십니까? 그러시는 분 치고는 왜 하필 오늘 유희 를 가신다는지 저의 짧은 생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군 요." 드래곤 염장 지르는데 타고난 놈. 내 살아 생전에 골드 드 래곤이 이정도로 얍삽한 줄은 처음 겪어 봤다. "다 전했으면 빨리 꺼져라!" "하하, 그렇게 열내시면 혈압에 좋지 않습니다. 저는 분명히 전했으니 내일 뵙죠." 꼴에 이놈은 골드 드래곤 일족의 수장이다. 으.. 오늘 본것도 재수가 없는데 내일 또 이놈의 면상을 봐 야 하다니.. 372년 6월 날짜 : 몇일인지도 모르는데 그냥 오늘부터 안쓰련다. 날씨 : 맑다. 결국 어제 나는 인간세상으로 유희를 나가지 못하고 오늘 이렇게 2천년에 한번 모이는 일족의 수장들의 모임에 나와 야 했다. 모임 장소는 드래곤 로드의 레어에서 하기로 했다. 레어가 아무리 크다고 해도 여덟이 넘는 드래곤들이 모두 들어가기에는 좁은 장소라서 드래곤들은 각기 자신의 마음 에 맞는 종족으로 폴리모프를 해서 레어 안에 웅성거리고 있었다. "아, 시크리오프스! 오랜만이네. 흠, 근 700년 만인가?" 레드 드래곤의 수장 라그네시크라는 내게 반갑다는 듯이 손 을 흔들었다. 그 누가 레드 드래곤의 성격이 개같다고 했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라그네시크는 진짜 골드 드래곤 못지 않는 지혜로움과 차분 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 레드 드래곤 답지 않는 온화한 성격 의 소유자이다. "오랜만이군." "자자~ 조용히 하세요! 지금부터 각 일족의 수장들의 회의 를 시작하겠습니다." 드래곤 로드인 실버 드래곤 마리오네라는 폴리모프한 드래 곤들에게 각기 자리를 배치 시켜 주며 회의의 시작을 알렸 다. 말이 회의지 이건 친목 도모나 마찬가지다. "저희 레드 일족은 근 2천년 동안 헤츨링이 한 마리 태어났 고 성년식을 마친 드래곤 두 마리가 유희를 떠난 것밖에 각 기 별다른 일은 없었습니다." 라그네시크의 보고가 끝나자 곧바로 드래곤 로드의 말씀이 이어졌다. "그렇군요. 레드 일족에 헤츨링이 태어났다는 말은 들었습 니다. 다시 말하지만 요즘 가출하는 헤츨링들이 늘고 있는 추세이니 각별히 헤츨링 단속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블루 드래곤의 수장이신 시크리오프스님, 보고해 주십시오." 드래곤들의 눈빛이 모두 나에게 쏠린 것을 확인한 나는 천 천히 말문을 열었다.(어쩌면 나는 무대 체질인지도?) "이번에 블루 드래곤 일족에서는 헤츨링도 태어나지 않았고 별다른 문제가 없었으나 이번에 성년이 된지 얼마 안된 골 드 드래곤 프가크리스와 저희 일족의 드래곤 즈리카리안이 충돌했으나 별다른 피해 없이 끝났습니다." 이 대목은 아까 그 재수 없는 골드 드래곤 프라니바우스가 말한 내용가 같았기에 드래곤 로드는 아까와 똑같은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렇군요. 별다른 피해가 없어 다행입니다. 이것으로 모든 일족의 보고는 마치겠습니다. 일족들은 편히 쉬시다 가십시 오." 물론 다행이라는 것은 인사치레고 본격적인 친목 도모가 시 작 되었다. 이 모임을 한번 가지면 길게는 3일, 짧게는 하루만에 끝나 기 때문에 나는 재빨리 유희를 나가기 위해 빠져 나오려 했 으나 드래곤 마음대로 안되는 일이 바로 세상일이라는 것이 다. (뭐, 마음만 먹으면 바꿀수 있지만..) 라그네시크가 오랜만에 만났으니 같이 회포나 풀자고 해서 나는 차마 그걸 거절하지 못하고는 와인과 안주(물론 산해 진미들이다.)를 거나하게 먹고는 알딸딸해 가지고는 레어로 돌아왔다.(묻지 마라. 술에 취한 드래곤도 있는 것이다.) 물 론 이 와중에 프라니바우스와 시비가 걸려 서로를 마구 씹 어 주다가 드래곤 로드와 라그네시크의 만류로 그만 두기는 했지만 그놈~! 반드시 버릇을 고쳐주고 말테닷! ------------------------------ 으.. 이거 어쩌다가 생각나서 끄적여 본건데.. 이러고 보니까 연재는 계속 하구 싶군요.. 그러고 보니.. 제가 연재하는게 3개인가요? 마법사 자서전하구 아울르하구.. (아울르... 지금 2주째 연재 안하는 건가..?) 아울르는.. 솔직히.. 제가 다시 고쳐서 찾아 뵈려고 합니다.. 쿠쿡.. 자신이 없다고나 할까요? 첫번째 소설이라서.아무것도 모르고 쓴거라.. 전개하다 보니.. 저조차도.. 내용이 어렵군요..(아닌가? 내가 미련한건가?) 아울르때를 극복(절대 아닙니다..)하려고 또다시 1인칭 설에 도전 해봤습니다.. 재미 있으셨나요? 소감이나.. 다른 비판 같은걸 보내주시면 참고해서.. 더 좋은 설을 써보겠습니다.. p.s 솔직히 이거 어떤 언니가 읽구 평을 해준다구 했는데.. 그냥 먼저 올려 봅니다..--;; 옆에서 친구가 잠와 죽겠는데.. 자꾸 놀자구 그래서.. --;; 그럼.. 안녕히 주무십시오.. [번 호] 15087 / 21254 [등록일] 2001년 02월 23일 20:51 Page : 1 / 6 [등록자] INNOCENTELF [조 회] 1313 건 [제 목] 드래곤의 일기(2) ─────────────────────────────────────── 372년 6월 날씨 : 비온다. 주룩주룩! 숙취에 약 일주일동안 헤롱거리던 나는 오우거로 만든 해장 국을 한솥 들이키고 나만의 보물창고에서 돈을 챙기기 시작 했다. 제기랄, 이 피같은 돈들. 내가 어떻게 모은 건데. 그냥 유희 를 가지 말아버려?(어떻게 모으긴? 공갈했지.) 설마 어떤 미친놈들이 내 레어를 털까 걱정이 된 나는 레어 전체에 알람 마법을 걸어놓고 누군가가 레어에 침입을 하게 되면 바로 나에게 연락이 오도록 마법을 걸어 놓았다. 쯧, 막상 가려니 귀찮군. 텔레포트 마법으로 산 아래까지 아주 편안히 내려온 나는 동, 서, 남, 북중 어느 쪽으로 갈것인가를 심각하게 논의 했 다. 결국은 남쪽으로 가기로 한 나는 별다른 계획 없이 쭈~욱 내려 가기로 내 마음과 합의를 봤다. 지나가는 새와 말벗을 하고 지나가는 오크와 오우거들로 배 를 채운 나는 2~3 일 정도 걸어왔을 때 가까운 숲에서 뛰어 난 내 청력에 병장기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호오~ 싸움 하는 건가? 쿠쿠쿠~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게 싸움 구경과 남의 집 불 구경이라고 했는데.. 오랜만에 재미있는 구경하게 생겼군. 나는 내 기척을 지우고 나무뒤에 있는 수풀에 바싹 엎드려 (드래곤 체면이 말이 아니네-_-;;)사태를 관찰(?)했다. "흠..;; 여검사 하나에 애송이 마법사 하나...그리고 우라질같 은 산적놈들이라..실력도 어느정도 엇비슷해야지..이거 원..일 방적인 살육이 되겠군." 물론 산적놈들을 이긴다는 말은 아니다. 그 반대가 된다면 모를까...;;; 그런데 내 중얼거림을 들은 꼬마 마법사가 나와 눈이 마주 쳤다. 헉..저 의미심장한 눈빛은 뭐지? 꼬마 마법사는 나를 보고는 씨~익 웃더니 여검사의 손목을 붙잡고 내 쪽으로 죽어라 뛰어오기 시작했다. 그 연놈들은 나를 방패막이로 삼고 내 뒤로 숨더니 산적들 을 향해 혓바닥을 내밀었다. 일명 =메롱= 이라고..아실려나???? "오호라~~~~~ 여기 아군이 한명 더 있었군. 하지만 비실이 놈인데 가서 엄마 찌찌나 더 먹고 와라." 나는 조용히 사라지려고 뒤를 돌아섰다. 드래곤은 자존심도 없냐고? 당연하다. 내 일도 아닌데 끼어들일이 뭐가 있냐? 쟤들이 보내준다고 할 때 그냥 가야지. "숙녀와 어린아이를 나몰라라 산적소굴에 두고 혼자만 살겠 다고 도망가냐?" 나는 한참을 그 뻔뻔한 연놈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까부터 묻고 싶었던 말을 물었다. "너..일부러 내쪽으로 뛰어온거지?" 이에 나와 눈을 마주치길 거부하는 여검사와 꼬마. ".... 하하, 그을쎄?" 여.. 영악한 넘들. "야! 비실이! 안가냐? 빨랑 꺼져라. 우리는 좀 볼일이 있어 서. 우리가 살려준다고 할 때 좋게 꺼져라." 그런가? 저 우라질 넘들. 아까부터 여검사를 보고 침흘리는 것을 보니 발정긴가 보군. 나는 은근슬쩍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눈에 비친 곧게 뻗은 길. 호오~ 저기로 도망가면 되겠군. 퇴로를 확보한 나는 죽어라 일직선으로 뛰었다. "헥헥, 드래곤인 내가 왜 이짓을 하는지 모르겠군." 크하하핫~! 난 친절한 블루 드래곤. 이런 곳에서 별 우라질 같은 넘들에게 내 본모습을 보여줄 순 없지. 어차피 나 아니어도 이길 여검사와 꼬마 마법사이기 때문에 나는 안심하고 달렸다. 왠지 뒷 머리카락이 땡기는군. 유난히 아픈 뒷 머리카락 때문에 열심히 발을 놀리던 중 슬 쩍 뒤를 돌아본 나는 경악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 애송이 꼬마 마법사가 한손으론 내 머리카락을 붙잡고 (아까도 말했듯이 나는 푸른빛 머리카락을 발목까지 기르고 있다. 그런데 그런 머리카락을 가지고 엄청난 속도로 달린 다고 생각해 봐라. 일직선으로 바람에 안날리나. 영악한 꼬 마 마법사는 그점을 교묘히 이용해 내 머리카락을 잡고 따 라오고 있었던 것이다.) 한손으론 여검사를 붙잡은 뒤에 나 와 같은 속도로 날 뒤따라 오기 시작했다. 이에 질새라 발정난 수캐들이 그 뒤를 엄청난 속도로 따라 오고 있었고.. 나를 선두로 해서 꼬마 마법사와 여검사, 그리고 스무명 가 량의 산적들의 이상한 달리기가 대낮에 내가 유희를 나온지 3일 되던 날에 이어지고 있었다. ------------------------------- 음.. 이거 재미 없나요? 아는 분이.. 마법사 자서전이 더 잼있다구.. TT쿠쿡.. 그래두 완결은.. 봐야 겠죠? 이거 어째.. 단편 비스무리 하게 끝날것.... 같은 느낌이.. 후후.. 그래두 봐주시구요.. 허억~ 지금 '모 이런 설이 다이써?' 함서.. 다시는 안보겠다구 다짐하지 마시궁.. 아직까지도 부족함이 많지만.. 열심히 써서.. 부족함이 없도록은 못하겠구..(제 실력에 너무 많은걸 바라시는 군요..) 그래두.. 볼만한 설이네.. 라는 생각이 들도록.. 써볼게요.. 그럼 안녕히 주무시구요.. 행복한 내일이 되시길.. [번 호] 15172 / 21254 [등록일] 2001년 02월 25일 21:25 Page : 1 / 6 [등록자] INNOCENTELF [조 회] 1219 건 [제 목] 드래곤의 일기(3) ─────────────────────────────────────── 372년 7월 (그 마법사 꼬마가 7월이란다..) 날씨 : 그저 그렇다. 자고로 옛 드래곤들이 말하기를 유희를 나가면 동료를 잘 만나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 하셨다. 하지만 나는 아무리 생 각해도 동료를 잘못 만났다는 생각이 든다. "앗~! 그거 양파 다 까버리면 뭘 먹으라구요~!" 옆에서 잔소리하는 꼬마 마법사. 난 왜 이놈들과 동료가 됐는지 지금도 이해하지 못한다. 내가 이렇게 잡소리를 늘어놓을 때마저 나는 양파를 까고 있었다. 설마 위대한 드래곤인 내가 유희를 나와서 이렇게 기가 막 힌 일행들을 만나 고작 저녁식사 하나를 해결하기 위해 양 파를 까리라고는 6천년 드래곤 삶에 생각도 아니 꿈에서 조 차 상상도 못해본 일이다. 하지만 세상이 자기 중심으로 돌아가지는 않는법. 때로는 역경이 있고 하고 싶지 않은 일도 해야하는 법. 이렇게 생각하는 드래곤도 나밖에 없을 거다. 드래곤은 모두 세상이 자기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굳게 믿고 있으니까.. 그 대표적인 예로 골드 드래곤 프라니바투스! 이 쉐리~! 너 없을 때 내가 이렇게 씹어주마! "내참, 요리도 못하는 주제에 왠 여행을 다닌다는지. 원.." 저.. 저 내 나이의 반이라도 살아서 저런말을 한다면 백번이 고 이해를 한다. 고작 내 나이의 발톱의 때만도 못하는 놈이! 드래곤이 요리하는거 봤냐? 봤어? 봤다면 그 드래곤은 드 래곤이길 포기한거다! "그만해, 다루스. 어차피 동료가 되기로 결정한거 음식은 우 리가 해도 되잖아." 이 꼬마 마법사의 이름은 다루스. 그리고 지금 말한 여검사 의 이름은 세틸이라고 한다. 나는 동료가 되겠다고 한적 없는데.. 이들은 김칫국부터 마 신다. 김칫국 마셔 봤냐구? 당연히 못먹어봤다. 그냥 말이 그렇다 는 거다. "세상에, 검술을 할줄도 모르지. 마법도 못하지. 대체 어떤 배짱으로 여행을 다니는 건지 너무 궁금햇~!" 쩝, 무슨 배짱이긴.. 여차하면 레어로 텔레포트 해버리면 그 만인데.. 나는 지금까지 유희를 다니며 사고치고 다닌적이 한번도 없 다. 수많은 내 유희들 중 공격 마법조차도 쓴적이 한손으로 꼽 을 정도이며 드래곤으로 현신? 놀고 있네.. 했으면 벌써 했 다. 나는 자비의 블루 드래곤~! 그깟 사소한 일로 현신하지 않 는다. 뭐, 울컥하면 현신하는 프라니바투스 같은 놈들은 드래곤을 대대로 망신시키는 놈들이다. "하하, 그게 말이죠.. 제가 여행은 처음이라서.." 어색한 나의 변명. 어쩌랴? 말빨은 딸리는데.. 아아, 난 너무 예의가 발라서 탈이라니까~! 요렇게 쪼그만 꼬맹이 한테도 높임말을 쓰는 이 자비로움.. "으.. 정말...." "다루스! 시오스, 저녁 먹어요." 세틸은 다루스의 말을 자르며 엄하게 나무랐고 나에게는 방 긋방긋 웃음을 지어주며 친절하게도 저녁을 먹으라는 말까 지 했다. 적어도 둘이서 쌍쌍으로 구박하는 일은 없겠군. 쩝, 내가 기껏 생각해낸 이름이 시크리오프스 라는 내 이름 에서 시오스만 따온 이름이다. 뭐, 이것도 좋구만. "괜히 짐하나 더 늘게 된건지 몰라. 난 기척을 지우고 우리 앞에까지 왔길래 꽤 대단한 사람인줄 알았는데.." 그 발정난 수캐들은 뛰다못한 이들이 모두 처리해 버렸다. 뭐, 그렇다고 죽인건 아니구, 그냥 가볍게 손만 봐줬을 뿐이 다. 드래곤 수준에서 가볍게니까 어느 정돈지는 알겠지? 어느 정도 눈치는 챘겠지만 나는 지금 이들에게 영 순딩이 로 보이고 있다. 검술? 못한다고 잡아빼! 마법? 구경도 못했어! 라고 말이다. 캬캬캬, 이게 바로 6천년을 살면서 자연스레 터득한 일명 '아무것도 몰라요~' 작전이다. 쩝, 음식은 맛있군. 이들도 꽤 한 실력 한다. 내가 같이 다녀서 귀찮을건 없겠지. 지네들 몸 지키기도 남 은데 그 남은 여력으로 나하나 못지킬까? 이렇게 내가 태평한 생각을 하는 동안 또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 으.. 오늘따라 왜이리 피곤한지.. 두번이나.. 연.. 4시간을 낮잠자는데 소비했는데도.. 무슨 잠은.. 시도 때도 없이... 9시 30분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 눈이 감깁니다.. 여튼.. 이인간 잠이 많아서 탈이라니까..--;; 아아... 내일은 또 전학간 친구가 온다는 군요.. 쩝.. 돈도 없는데 나중에 올것이지..(<---나쁜 친구..) 휴.. 그럼 저는 자러 갈렵니다.. 안녕히 주무시구요.. 즐통되세요.. [번 호] 15187 / 21254 [등록일] 2001년 02월 26일 07:49 Page : 1 / 10 [등록자] INNOCENTELF [조 회] 1157 건 [제 목] 드래곤의 일기(4) ─────────────────────────────────────── 372년 7월 날짜 : 6일(쩝, 날짜를 알았으니 쓴다.) 날씨 : 구름만 잔뜩 끼고 가끔 바람이 분다. 나는 지금 엄청난 궁금증에 빠졌다. 이 일행의 정체는 뭘까? 보통 일행은 아닌가 부다. 여자는 이미 검기를 쓸 수 있는 경지까지 올라와 있었고 꼬 마 마법사는 그 나이에 천재적으로 6서클의 마스터였다. 도망 다니는 왕족인가? "으갸갸갹~" '콰당~' 왕족은 아니군. 왕족이라면 예법이 몸에 배어 있어야 하는데 나는 지금 처 음으로 돌뿌리 하나 안굴러 다니는 평평한 땅에서 걷다가 자신의 발에 자신의 발이 걸려 넘어지는 꼴을 구경했다. 쿠쿡, 이것도 꽤 재밌군. "괜찮습니까?" 일단 나는 그래도 예의상 물어보았다. "아, 네. 괜찮아요. 그쪽에서 그렇게 신경써줄 필요는 없는 것 같군요." 쩝, 무슨 말을 해도 꼭.. 저거 나한테 뭐라 하는거 맞지? 한마디로 '니 몸도 지키지 못하는 주제에 누굴 챙기냐?' 이 말이지? ...............맞는 말이다. 하하, 보통 드래곤 같으면 이말 듣고 폭발했겠지만 난 보통 드래곤이 아니다. 6천년간 말빨이나 좀 늘었으면 좋으련만 그건 제쳐 놓고라 도 쓸대없이 인내심 이라는 것만 늘어서뤼.. "조금만 더 걸으면 돼. 다루스! 곧 이쪽에 도시 하나가 나올 거야." "쳇, 세틸은 언제나 그 말만 해. 조금 걸어서 나온다는게 저 번엔 사흘이었지?" 뭘 꼭 걸고 넘어가는군. 꼬마가.. 사흘이면 짧구먼. "말대답 하지마. 다루스!" 역시 세틸은 꼬박꼬박 말대답을 하는 건방진 꼬마를 혼내 주었고 나는 마음속으로 스마일을 그릴수가 있었다. 잠시 조금더 가다보니 저기 앞에 상인 일행이 지나가고 있 었다. 역시 조금만 더 가면 도시가 나오나 보다. 우락부락 용병들이 상인의 마차와 짐들을 호위하고 있었고 아마도 이 상인은 여행 내내 안전에 안전을 거듭했을 것이 다. 도대체 돈을 얼마나 쏟아부어야 용병들이 저렇게 철통처럼 지키고 있지? "여어~ 여행자 분들이신가 보군요!" 갑자기 마차에 달려있는 조그만 창문이 열리더니 학자풍으 로 생긴 아저씨가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내가 아저씨라고 하니 좀 뭐하군.. "아, 네!" 세틸은 대답했고 곧이어 그 아저씨는 마부에게 마차를 멈추 라고 지시하고는 마차에서 내렸다. 상인 답지 않은 호리호리한 몸매. 나는 이태껏 상인은 돼지 비계 삶어 먹은 것 처럼 뚱뚱하다 못해 옆으로 쭈~ 욱 퍼졌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실제로 예전에 내가 유희중에 만난 상인의 얼굴이 그러했기 에.. 이 상인은 나의 환상을 깨기에 아주 적합하다. "오늘은 날씨가 좋지 않으니 여기서 하룻밤을 묵고 출발하 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저녁은 저희가 대접하겠습니다." 내가 이 일행과 며칠을 같이 다니며 깨닳은 바가 있었으니 무슨 공짜가 있으면 무조건 달려든다는 것이다. "하하, 그렇다면 신세좀 지겠습니다." 뻔뻔한 꼬마 녀석. 세틸이 말했다면 그래도 아~ 그렇습니까? 했겠지만 저 꼬마 녀석이 저렇게 말하니.. "아름다운 레이디께서는 아까부터 아무 말씀이 없군요." 그때 상인 옆으로 다가온 금빛으로 빛나는 금발머리에 황금 빛 눈동자를 가진 매우 뛰어나게 잘생긴 청년이 말했다. 이걸 보니 골드 드래곤 프라니바투스가 생각나는군. 여튼 나는 황금색은 모조리 싫다! 뭔가 이상한데? 왜 세틸과 다루스가 날 이상한 눈으로 쳐다 보는 거지? 그럼.. 저 말이 나에게로 향한 것이었단 말이냐! 난 분명히 미청년의 모습으로 폴리모프를 했다. 지금 밝히지만 난 여성체다. 어이~ 거기 놀라지 말라고. 하긴.. 내 말투를 보면 나조차도 남성체가 아닌지 의심이 간 다. 그렇기 때문에 폴리모프를 한다 해도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내 몸이 여성체인 것에 대단한 불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본판을 놔두고 미청년의 모습으로 절대 여자로 보이게 만들지 않는 미청년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 다. 목소리도 마법으로 굵게 남자답게 만들었기 때문에 절대 나 를 알아볼 인간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가 있다! 뭐, 몸이야 펑퍼짐한 로브로 가리면 굴곡이 없어지니까.. 그러나 이 것을 알아볼수 있는 종족이 딱~ 하나 있다. 드래곤. 그러고 보니 이놈의 몸에서도 꽤 많은 마나의 양이 느껴지 는군. 뭐? 왜 진작 만났을 때 드래곤인줄 몰랐냐구? 당연하지. 드래곤이 나 드래곤이요~ 라며 엄청난 마나를 개방하고 유 희 다니는줄 알았냐? 그저 보통 인간보다는 뛰어나게 마나 를 조정해 놓는다. 그렇기 때문에 유심히 살펴봐야 아는 것이지. "안녕하십니까? 시크리오프스님. 이곳에서 다시 만나게 되 는군요." 그.. 그.. 미청년은 나에게 이렇게 말을 걸었다. "아는 사이에요? 시오스?" 세틸은 나에게 이렇게 물어왔고 나는 그것을 나의 뛰어난 뇌에 입력시킬 수가 없었다. 사고 회로가 정지 되었기 때문에.. "저를 만나신게 그토록 반가울 줄은 몰랐군요." 내 본명을 알고 저렇게 천연덕 스럽고 가증(?)스럽게 말하 는 인간이란 없다. 예전에 내가 유희를 다닐 때 만난 인간들은 내가 드래곤이 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인간들 중에서 이런 인간은 없었다. 설사 있었다 해도 몇 천년이 지난일.. 살아 있을 수가 없다! 드래곤이 유희중에 다른 드래곤을 만나면 대게는 그냥 모른 척~ 하고 지나간다. 나는 이 청년을 보는 골드 일족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저 방금 성룡이 된 놈이 유희를 나왔나 보다~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를 이렇게 건방지게 부를수 있는 드래곤은 골드 일족중 그 놈밖에 없다. 그 이름도 유명한 프. 라. 니. 바. 투. 스!! 이.. 이놈도 유희 를 나왔단 말인가! '쿵~' 나는 머리에 둔탁한 타격음을 느끼고 기절했다. 너무도 놀란 나머지 그대로 뒤로 쓰러졌기 때문이다. 그러니 땅에 머리를 박을 수밖에. 흐려져가는 내 의식속으로 유난히 뚜렷하게 들리는 한마디 의 말이 들려왔다. "오호라~ 절 만나신게 이토록 반가울 줄은 몰랐군요." 그 반대다! 이눔아! --------------------------- 와앗~ 어떤 님이.. 제 설에 대한 감상을 보내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TT 하핫... 역시 늦잠은 못자나 보군요.. 후움.. --;; 그럼 오늘 하루도 행복한 하루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p.s 잡담이 많이 줄었죠? 제정신이 아니라서 그런답니다.. 비몽사몽이랄까? 에.. 저 민지홍임니다.. 앞으로 올릴 껀 많으니.. 하루에 3, 4개 정도 올리게씁니다...굼 즐독~ 372년 7월 날짜 : 8일 날씨 : 주룩주룩~ 쏴아~ 내가 깨어난 곳은 의외로 마차 안이었다. 제일먼저 내눈에 보인 것은 마차 위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 는 등불이었다. 그리고 내눈에 들어온 것은 프라니바투스.. 이녀석이다. 날 기절시키게한 장본인! "왜 네가 여기있는 거지?" "저는 유희를 즐기면 안되는 이유라도 있습니까?" 쩝, 할말 없다. 왠지 이녀석이 계획한 대로 맞아 떨어지는 느낌이 든다. 왜 하필 이 넓은 대륙에서 그 많고 많은 상인들 중 이 일행 과 마주치게 된거지? 으.. 생각하기 싫다. "다른 인간들은?" "아.. 가까운 곳에 동굴이 있어 모두 그곳으로 갔습니다. 제 가 시크리오프스님이 깨어나면 모시고 가기로 했습니다. 뭐, 둘만이 이렇게 나눌 이야기도 있었던 듯 하니.." 으.. 이곳에 있기가 싫다. 빨리 그 동굴인가 뭔가 하는 곳으로 가고 싶다. 이놈과 같이 있다는 것 자체가 나에겐 불쾌한 일이다. "내가 먼저 가지.." 그렇게 말하고는 나는 마차의 문을 열었다. 동굴이 어디 붙어먹었는 지도 모르는데.. 뭐, 가다 보면 나오겠지. 완전 장대비가 주룩주룩 오는군. 으.. 옷젖는거 싫은데.. 나는 옷 젖느것보다 이놈하고 같이 있는 것이 싫어 그냥 그 대로 걸어갔다. "시크리오프스님!" 그 말과 함께 나는 더 이상 앞으로 전진할 수가 없었다. 프라니바투스가 내 손목을 붙잡았기에.. "옷젖는 것 싫어하시지 않습니까!" "네가 그걸 어떻게 알지?" 난 이놈에게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물론 싫어하는 것까지도 알려준 기억이 없다. 이놈.. 스토커였나? 프라니바투스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내 손목을 붙잡고 마차 안으로 다시 들어왔다. 하지만 내 몸은 이미 비에 흠뻑 젖어 있었고 프라니바투스 는 나직하게 욕설을 내뱉으며 마법으로 내 옷을 말려주기 시작했다. 아~ 따뜻해~! 정성껏 내 옷을 말리던 프라니바투스는 문득 내 얼굴을 쳐 다보더니 꼴에 어울리지 않게 진지한 어투로 나에게 물었 다. "3천년전의 대답.. 지금 해주십시오." 3천년전의 대답이라니? "응? 무슨 소리야?" "드래곤.. 맞습니까?" 하하, 나도 가끔 그게 의심스러워. 아앗~! 이게 아니지. 나는 천천히 내 기억을 되살려 보았다. 죽을때가 되긴 됐나벼.. 기억력이 퇴화되는 것을 보니.. 쩝. "기억.. 나셨습니까?" 기억하기 싫은 기억이 떠올라 버렸다. 아마도 이놈은 그 대답을 원하고 있는 것일 테지.. 내가 이놈을 싫어하게 된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한 사건.. "그걸 꼭 지금 들어야 겠나?" 기분이 몹시 나빠진 내 목소리가 자연스레 아래로 깔렸다. "해주십시오." "꺼져라." 내 대답은 간단했다. 프라니바투스는 잠시 고개를 숙였다. 손을 하얗게 꽉 쥐고 있는 것을 보니 열받았나 보군. "제가 3천년간 기다린 대답이 겨우 이것이었습니까?" 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내가 대답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기에.. 오늘은 재수가 없는 날이군.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오른 나는 거칠게 마차 문을 열었다. 내 몸을 휘감는 바람과 빗줄기. 얼마나 걸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차가운 빗줄기가 내 얼굴을 세차게 때리고 있으니 정신이 들만도 하지만 내 의식 상태는 여전히 백지였다. 순간 온몸에 열이 오르는 것을 느낀 나는 그대로 쓰러져 버 렸다. ----------------------------------- 캬캬캬~ 눈치가 빠른 분들은 눈치 채셨으리라 믿습니다.. ^^;;나만 글케 생각하는 건가? 아아.. 또 한분이 저에게 감상멜을 보내주셨군요.. 왜그리 기쁜지.. 쩝..--;; 하핫.. 괜히 마음이 스마일이군요.. 얼굴에.. 열이 올라오는것을 보니..--;; 휴우.. 감기 걸리면..며칠은 고생할텐데.. 피씨방 다녀 왔습니다.. 공책도 좀 사려고.. 친구랑 나갔다가.. 피씨방과 오락실 다녀와서..--;; 쿠쿠쿠.. 피씨방에서도 20분 동안 여기 들어 왔었습니닷~ 집에 돌아오자 마자.. 이렇게 드래곤의 일기를.. 써서 올립니다.. 즉석에서 올리는 거라.. 아직 따끈따끈 합니다~~!! 오늘 밖에서 바나나팔더군요.. 웅.. 먹구 시퍼라..--;; 과연 프라니바투스와 시크리오프스의 사이는 뭘까요? 캬캬캬.. 궁금하시면 6편을 보십시오~! (은근슬쩍 6편 보라고 홍보하는 INNOCENTELF...) 움.... 그런데 6편이 언제 올라올지.. 그게 걱정이기 때문에.. 쿠쿠쿠.. 정 궁금하시면 멜 주세요~ 따끈따끈하게 무슨 사이인지 가르쳐 드리죠.. (메일 받고 싶어 별 수단을 다쓰는 INNOCENTELF.. 정말.. 철면피 입니다..) 우웅.. 얼굴이 뜨겁네요.. 뒤통수두 아프궁.. 제발 감기만 아니어랑..--;; 아마도.. 6편은 내일 아침이나.. 오후에 올라올듯.. 이 인간은.. 하루라도 컴터를 못하면.. 손가락에 가시가 돋는답니다...--;; 아아.. 오늘 하루도 허무하게 가버리는 군요.. 왜이렇게 잡담이 많은지.. 쩝... 이거 읽는분.. 지겨우시죠? 어? 지금 하품하셨습니다! --+ (INNOCENTELF가 미쳤나 봅니다..쯧, 어린나이에..) 휴우........... 왠지.. 나가기가 싫은 그런 마음.. 아시나요? 제 마음이 꼭 그 상태랍니다.. 나가면.. 할일이 없기 때문에..--;; 이젠 진짜 나가야 겠군요.. 더이상 잡담이 길어지면.. 돌 날아올거 같아서.. 제가 아는 분은.. 소설 아래에 있는 잡담은.. 꼭 읽는다구 하시더라구요.. 그 소설을 쓴 분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기 때문이라고 하더라구요? 여러분도 그러시나요? 그럼 행복한 하루 되세요~ P.S 머리...가... 아프네요.. 으.. 두통약이 어디 있을텐데.. [번 호] 15229 / 21333 [등록일] 2001년 02월 26일 21:36 Page : 1 / 7 [등록자] INNOCENTELF [조 회] 1131 건 [제 목] 드래곤의 일기(6) ─────────────────────────────────────── 372년 7월 날짜 : 며칠동안 의식을 잃었는지 모른다. 날씨 : 하늘은 푸르고 햇살이 따뜻하게 내리쬔다. 나는 내 얼굴위로 약간은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정신을 차 렸다. 아아, 며칠동안 여기 쓰러져 있었던 건가? 한심하군. 명색이 드래곤이라는 드래곤이.. 뭐, 나는 헤츨링때부터 희 귀하게도 몸이 약했으니까.. 인간쯤이야 대뜸 날려버릴 수는 있지만 사실 나는 화이트 드래곤보다도 약하다. 치유마법도 나는 쓰지 못한다. 다행히 드래곤의 자체 치유력이 높아서 그런 것은 별로 아 쉽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뭐, 치명상만 면하면 되는 거니까. 아아~ 하늘이 도는구나. 아직도 띠~잉한 내머리. "에구구, 이곳에서 대체 며칠을 보낸거야?" 나는 내가 어느 쪽으로 얼마만큼 걸어왔는지 알지 못한다. 후우, 나혼자 다시 여행을 다녀야 하는건가? 나야 좋지. 오랜만에 내 고귀한 입맛이 되살아 나길 기원하며 나는 이 대륙에 있는 명소와 음식점들을 둘러보기로 결정 지었다. 뭐, 그 세틸과 다루스는 원래가 나와 상관 없는 인간들 이 었으니.. 프라니바투스! 생각만 해도 이가 갈린다. 제길.. 3천년전 일이 생각나 버렸다. 사실 3천년전에 프라니바투스는 나에게 청혼을 했었다. 나보다 2천살이나 어린 주제에.. 그것이 내가 프라니바투스를 싫어하게 된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그 전에도 마음에 들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내가 유희를 다닐 때 그놈이 이번처럼 쫓아와서(나는 어느 새 프라니바투스를 만난 것을 우연이 아닌 조작된 것이라 단정지어 버렸다.) 깽판 놀때가 한두번이 아니었으니까.. 물론 나는 그때 콧웃음을 치며 무시해 버렸다. 하지만 프라니바투스! 끈질긴 놈! 그 대답을 3천년이나 기 다려? 어이가 없다 못해 기가 막히는군. 아아~ 더 이상 이 문제를 가지고 왈가왈부하기가 싫다. 이 기억을 지워버리고 싶은데.. 쩝, 방법을 알아야지. 기분 잡쳤다. 제길.. 왜이리 기분이 찜찜하지? 레어로 돌아가 잠이나 퍼잘까? 주위를 둘러보아도 온통 나무와 풀뿐이었다. 나는 조용히 한숨을 쉬며 고개를 내젓고는 약간은 비틀거리 는 걸음 모양새를 하며 가까운 나무 하나 골라잡아 털썩 주 저 앉았다. "여기서 하루 더 쉬다 가야 하나? 몸이 말을 듣질 않는군." 또다시 얼굴에 열이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자체 치유력은 어딜 간거야? "하아, 하아.. 제길 유희 나오자 마자 이런일이 생기다니.." 뜨거운 입김이 목을 타고 입밖으로 뿜어져 나왔다. 이런 기분도 오랜만에 느끼는 건가? 문득 내 머릿속에 떠오른 좌표. 내가 예전에 유희를 즐길 때 꽤 기억에 남는 장소라서 암기 해놓은 좌표가 있었다. "아마 도시 안이었지?" 그쪽으로 텔레포트 해서 들어가 가까운 신전에서 치료를 받 으면 되겠군. "텔레포트!" 시동어가 떨어지자 내 몸은 흰 빛으로 둘러쌓여 곧이어 어 느 지점에 '쿵' 소리와 함께 떨어졌다. 으.. 아픈 몸에 무리하게 마법을 썼더니 머리가 깨질 것 같 군. 나는 인상을 파~악 찌푸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칼 들고 설치는 남자 하나에 도끼, 표창, 롱소드.. 엥? 무슨 무기들이 이리 많지? "누구냐!" 빠른 상황 판단으로 나는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조 금 나쁜 소굴에 떨어진 것 같았다. "우리 도둑길드 한복판으로 텔레포트를 하다니! 간이 배밖 으로 튀어나와 껑충껑충 뛰어 다니는 구나!" 도둑길드.......였군.. 아직 그대로네...? 올바르게 왔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나는 안그래도 아픈 머 리에 혹 하나를 더 붙여야 했다. 뒤에서 어떤 무식하게 생긴놈이 칼등으로 내 머리를 내리쳤 기 때문에.. 제길.. 일어나자 마자 다시 기절하다니.. 너..... 드래곤의 머리를 친 죄값은 크게 받을테니 각오해... ------------------------------------- 오옷~! 감상 써주신 분들.. 감사합니닷~! 노력한 보람이 있었던듯~! 캬캬캬... 드뎌.. 프라니바투스와 시크리오프스의 관계가 밝ㅇ혀지는 순간.. 이었습니다.. 약간 썰렁하죠? 저도 절실히 그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저는 설을 쓸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이유는 묻지 마세요~ 그냥 행복해요.. 앞으로두 감상멜 이나 메모마니 보내 주시구염~! 친절하게 답장 써드릴게요~! ^^ 우웅... 9시에 자기가 영 찜찜해서.. 일케 이곳에 들어와 놀고있습니다.. 뭐하구 널쥐.......? 아앗.............. 정말 심심하군요... 그럼.. 즐거운 통신 되시길.. 바랄게요... ^^ p.s 7편도 마니 사랑해 주세요~옷~! [번 호] 15264 / 21333 [등록일] 2001년 02월 27일 20:41 Page : 1 / 9 [등록자] INNOCENTELF [조 회] 1098 건 [제 목] 드래곤의 일기(7) ─────────────────────────────────────── 372년 7월 날씨 : 어두컴컴한 감방 같은 곳이어서 밖의 날씨가 어떤지 는 모르겠다. "으윽.. 머리에 혹하나 생겼겠군.." 나는 지끈 거리는 머리를 매만져 보았다. 역시다 돌덩이만한 혹 하나가 덩그러니 머리에 자리잡혀 있 었다. 이번 유희는 나의 수난시대인가? "일단 살려두긴 했지만 저놈이 그런 가치가 있을까요?" "마법사는 상당히 고가품이다. 뭐 정 안되면 얼굴이라도 반 반하니 귀족들의 노예로 줘버리면 그만이고.." 저게 뭔 소리다냐? 나는 나도 모르게 그 소리를 듣고 벌떡 일어났다. 내가 갑자기 일어나자 꽤나 놀란듯한 이들. "어.. 어쩌죠? 마법산데.. 손에 결박도 해두지 않았으니." "걱정마라. 우리 도둑 길드가 어떤 곳인줄 잊었느냐? 블루 드래곤이 창시한 시크리오프스의 도둑 길드! 드래곤님은 이 럴 때를 대비해 이렇게 마법이 봉쇄되는 이 방을 만들어 놓 았다. 마법사 놈들은 마법을 쓰는 것만 빼고는 허약한 나무 토막 같은 놈들이다." 이놈.. 상당히 마법사에 대해 쌓인 것이 많았군. 곁에 있는 몽둥이를 들고 가까이 오는 이들. 허억~! 저걸로 나 치려고? 안돼! "길.. 길드장을 불러라~!"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저 몽둥이 만은 막기 위해 내가 생각 해도 조금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큰소리로 외쳤다. 그녀라면.. 아직도 살아있을 테지.. 엘프의 수명은 인간의 수 명보다는 훨씬 기니까.. "길드장님을 왜 부르는 거죠? 아는 사이가 아닐까요?" "설.. 설마.. 이놈 맞기 싫어서 공갈치는 것 아냐?" "진짜면 어떡해요!" 두패로 나뉘어 졌군. 일단은 안심이다. 나는 지금 저 무식하게 생긴 몽둥이로 내 머리통을 박살내 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 왜 마법을 쓰지 않냐고? 나도 쓰고 싶다. 저놈들이 아까 말했던 것처럼 이 도둑 길드는 내가 6백여년 전에 마지막으로 유희를 나왔다가 내 동료들과 창시한 곳이 다. 이곳에는 마법을 무위로 돌리는 결계가 걸려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쪽팔리지만 나는 지금 내 실력으로는 이 결계를 깰수가 없 다. 사실 이 방이 마법 실험하다가 실패해서 자연스레 마법 무 위의 결계가 쳐졌다면 믿겠는가? 못믿겠다는 표정이군. 나조차도 못 믿겠으니.. 저놈들은 그 사실을 무슨 내가 일부러 이래 놨다는 것으로 알고 있군. "안나를 불러줘!" 나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고 있는 그녀의 이름을 말했 다. 안나 프리안스. 다크 엘프이며 성격은 지랄맞게도 좋은 엘 프. 지금도 나는 꽤나 놀라고 있다. 안나는 동정심이 꽤 강해서 이런저런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 주다가 이 길드를 말아 먹었을 줄 알았다. "길드장님의 성함을 알고 있는데요?" "빨리 가서 길드장님을 모셔와라!" 안나의 이름을 대니 내가 뻥친거라고 소리치는 놈은 금새 잠잠해져 안나를 데리러 갔다. 아아.. 6백년 만의 상봉인가? 빨리 보고 싶군. '쾅!' 허억~ 문짝 부셔졌다. 그리고 뒤이어 나타나는 검은 피부에 대비되는 화려한 붉은 머리를 가진 여인이 약간 야시시한 옷차림을 하며 나타났 다. 여인의 붉은 눈동자는 나를 매섭게 쏘아보고 있었다. 저게 진짜 안나야? "아.. 안나..?" "잘도.. 이제야 돌아 오셨군. 시. 크. 리. 오. 프. 스!!" 왜.. 왜저렇게 화가 난거지? 안나는 아까의 내가 두려워 했던 몽둥이를 보고는 그것을 양손에 잡았다. 그리고 나는 그날 복날에 개패듯 두들겨 맞았다. 왜.. 내가 맞아야 하는 거지? "안나~! 살려줘!" "이 무정한 년아! 왜 이제야 기어 나오는 거야? 그래 거기 서 잠이나 퍼자니까 내생각은 눈꼽만큼도 안나든? 엉? 어 쩌다가 생각 나니까 들려 봤냐? 아에 평생 오지 말질 그 래?" 이번.. 유희.. 잘못 나왔다. 사실 안나의 말이 맞긴 하다. 안나 생각을 거의 하지 않았으니까.. 이것도 어쩌다가 좌표가 기억나서 무리해서 텔레포트해 온 거고.. 고로, 난 맞아도 싸다. 안나는 잠시 나를 때리던 몽둥이를 멈추고 호흡을 가다 듬 었다. 이제 그만 때릴려나 보군. 으.. 온몸이 다 쑤시고 결리고 두 통까지 심해졌지만 나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안나를 바라 보았다. "야, 이놈 여기서 어차피 마법도 못써. 몽둥이 하나씩 들고 와서 패!" 안나야~~~~! 나는 너무나 기가 막혀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놈들은 몽둥이를 양손에 하나씩 들고 나를 아주 잘 다져 놓았다. 허억~! 왜 툭하면 기절하던 내 정신은 이때만큼은 말짱한거 야! 기절하면 안나가 불쌍해서 치료라도 해줄텐데~~~! 내 정신이 나의 기대에 부흥하기 위해 떠나가려고 준비 운 동을 했다. 천천히 멀어져 가는 의식속에 안나의 외침이 들려왔다. "물갖다 퍼부어서 정신들면 도로 패!" 무.. 무정한 년.. 이번 유희는 한참을 잘못 나왔다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한 동안 맴돌았다. ------------------------------ 아앗~! 드디어 추~~우~~~천 입니다.. 흐윽... 감사합니다..TT 기대에 열심히 부흥하겠습니다..TT 아.. 기분이 너무 좋군요.. 잠이 안올것 같은 기분.. 하하핫..^^ 드래곤의 일기.. 의외로 재밌다는 분들이 많이 계시더군요.. 감사 합니다.. 저도 이 소설을 쓸때.. 왠지 즐거운(?) 기분으로 씁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봐주시구요.. 아아... 연재 속도가 느리다는 말씀이 계셨는데.. TT하루에 3개 올릴때도 있고 하나 올리때도 있는데.. 넘 구박하지 마세요..TT 앞으로 분발해서.. 열심히.. 아주 많은 양으로~ 더욱.. 좋은 소설을 쓰겠습니다~! 이거.. 어째 제 소설은.. 왠지 잡담으로 다때우는 것 같군요.. 용서해 주세요~! 오늘은 너무 기분이 좋답니다..^^ 그럼 행복한 하루 되세요~! [번 호] 15265 / 21333 [등록일] 2001년 02월 27일 21:34 Page : 1 / 9 [등록자] INNOCENTELF [조 회] 1082 건 [제 목] 드래곤의 일기(8) ─────────────────────────────────────── 372년 7월 날씨 : 모른다. "이제 깨어 났냐?" 안나. 이년! 기절한 나를 무식하게도 세 번이나 깨워서 도 로 팬 년! 나쁜년. 내가 다신 여기 오나 봐라. 확 망해 버려라. 옛날의 그 동정심 많은 성격은 어디 쳐박아 두고 이런 개같 은 성격이 나왔다냐! 마음속으로 온갖 욕을 다 퍼붓고는 아직도 조그맣게 입술을 움직이며 욕을 하는 나를 안나는 꼭 끌어 안았다.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이제야 온거야?" 보고 싶었다구? 나를? 그런데 보고 싶었으면 좋아해야지 복날 개패듯이 패? "화났니?" 너같으면 화 안나겠냐? 나는 삐져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나도 삐순인가? "어제는 그냥 약간의 몸풀이로 패줬는데 오늘은 본론으로 들어가야 겠구나." 안나의 일어나며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고 나는 얼른 나가려 는 안나를 쪼르르 뒤따라 가서 꼬~ 옥 끌어안았다. "안나~! 많이 보고 싶었쪄~!" 아.. 이런 내가 정말 싫다. 몽둥이로 안맞을 려고 이런 고생을 하다니. 쩝, 내 얼굴에 아양이라니. 그러자 내 얼굴을 손으로 찰싹 때리며 안나는 붉은 눈동자 로 나를 노려보았다. "얼굴 도로 바꿔. 그렇게 말하니까 징그러워. 이거 생각할수 록 열받네?" 나는 안나가 화내지 않도록 조심하며 내 얼굴에 걸려 있는 마법을 지워 버렸다. 그러자 나타나는 본판. 정말 싫다. 이 가녀린 턱선과 푸른 빛의로 은은히 빛나는 커다란 눈동자. 병에 걸린 닭처럼 비실비실한 몸에 정말 아픈 것 같아 보이 는 너무도 하얀 피부. 이거 어째 선탠해도 안태워 지냐? 쥐잡아 먹은 것처럼 붉은 입술을 손으로 만지며 나는 안나 를 쳐다 보았다. 만족스래 고개를 끄덕이는 안나. 그러고 보니 몸은 치료가 되어있군. 내가 내 몸을 신기한 듯 쳐다 보자 안나는 손가락을 내보이 며 내 눈앞에 대고 흔들었다. "그렇게 고마워 할건 없어. 네가 가지고 있는 돈으로 힐링 을 몽땅 사서 뿌리니까 그렇게 흉터 하나 없이 낫더라?"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그랬던가!! 내돈! 힐링! 그게 얼마나 비싼 약인데. 그 많던 돈으로 다 사서 이 망할 몸에 뿌려? "그런데 난줄 어떻게 알았어?" "당연하지. 텔레포트해서 이런 곳에 들어올 드래곤은 너밖 에 없고 푸른 머리를 촌스럽게 그렇게 길고 다니는 드래곤 도 너밖에 없어. 그리고 더 결정적인건 이곳 좌표를 너밖에 모른다는 거야. 뭐, 부하들이 나몰래 너를 팔아먹을려 했지 만 다행히 내가 그전에 너를 이렇게 구할 수가 있었지." 그게 왜 네덕인데! 내가 만약 안나의 이름을 대지 않았다면 그대로 팔려 갔다는 거군. "나.. 배고파.. 며칠 굶었는지 모르겠어." "나가자. 맛있는거 사줄께." 아아.. 내가 며칠을 굶었던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뭐, 나야 몇 년을 굶어도 끄떡 없지만 그래도 뱃속에서 요 동치는걸 어쩌라고? 나는 안나의 손을 잡고 어린애 처럼 방방뛰며 방문을 나섰 다. 보통 도둑 길드가 그러듯이 이곳은 아직도 번듯한 술집인척 행세를 하고 있었다. 뭐, 손님까지 모두 길드원일 테니까. 내 눈에 탁자에 앉아서 술을 퍼마시며 안나를 향해 고개를 까딱이는 놈이 들어왔다. 아~~~~! 반가워라. 이렇게 다시 상봉하게 되다니. 오오~! 마침 저기 나의 머리에 혹을 솟아나게 한 롱소드가 있었군. 드래곤의 머리를 쳐서 기절시킨 대가는 내가 후하게 받는다 고 했지. 나는 손바닥에 침을 탁탁 뱉고는 롱소드를 두손으로 들어올 렸다. 음.. 꽤 무겁군. 길드원들은 자신의 길드장이 왠 아리따운 여인과 같이 내려 오자 이상한 표정을 지었고 갑자기 그 아리따운 여인이 자 신의 길드원들 중 힘이 세기로 유명한 길드원의 뒷덜미를 롱소드로 내리치자 하마터면 뛰쳐 나가 말릴뻔 했다. 하지만 여인의 옆에 있는 것이 누구인가? 그 성격 더러운 길드장이 아닌가? "너도 참 유치하게 노는구나?" "뭘! 저놈은 내 머리를 쳐서 이만한 혹을 만들었다구. 난 그 걸 배로 갚아준 것 뿐이야." 그러면서 쳐다본 길드원의 머리에는 혹 두 개가 쌍쌍으로 붙어 있었다. 약간의 양심의 가책이 드는 나였으나 이내 마음을 모질게 먹었다. 보통 드래곤 같았으면 살아 있기도 힘들었을거야. 술집 문을 열고 나온 바로 앞은 어이 없게도 시장이었다. "하하하, 그렇게 이상한 표정 짓지 말라구!" "이곳.. 참 많이 변했네. 내 기억이 맞다면 이곳엔 조금 큰 공터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그렇다. 나는 일부러 공터가 있는 조용하고 한적한 곳에 길 드를 세웠던 것이다! "6백년이란 시간은 인간에겐 짧은 시간이 아니었으니까.." 씁쓸한 듯이 중얼거리는 안나의 말에 약간의 미안한 마음과 안쓰러운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이제.. 안나의 생명도 얼마 남지 않았군. 엘프의 생명력이 천년인가..? 안나와 내가 처음 만났을 때 안나가 3백살이었으니.. 후후, 안나도 할머니군. "뭐, 그래도 시장이 있으니 먹을 것 걱정이 없으니 좋아." 안나는 내 손을 잡아 끌며 시장 곳곳을 구경시켜 주었다. 배부르도록 먹었는 데도 안나는 뭐가 부족한지 자꾸 나를 퍼먹이려 들었다. 시장 아주머니나 상인들과 친한 것을 보니 신뢰를 얻고 있 는 듯 했다. 역시, 안나의 성격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약간 포악성과 잔인성이 늘긴 했지만 그래도 한없이 착한 것은 여전한 것 같으니.. 왠지 안심이 되는 나였다. --------------------------- 아아~! 오늘은 두개입니다.. 캬캬캬..^^ 와앗.. 이제 여인천하 할시간이 다 되어 가는군요.. 행복행복~! 오늘은 그래두 많이 올렸죠? 그쵸? 하핫.. 제꺼 이야기가 좀 짧아서.. 서운하신 분들.. 오늘은.. 이정도로 참아주세요~! 그럼.. 진짜로 이만 물러갑니다~! 이거 보시는 분들과.. 판츠의 모든 분들.. 싸랑해욧~! (왜 갑자기 이런 말이..^^;;) 372년 7월 날짜 : 14일(내가 그렇게 오래 기절해 있었나 보군.) 날씨 : 하늘에서 고공낙하를 하면 딱 좋을 날씨. 지금 나는 안나의 도둑 길드에서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내 가 창시한 도둑 길드에서 말 그대로 놀고 먹는 중이었다. 빈둥빈둥 굴러다니다가 안나를 보면 쪼르르 달려가서 아양 떠는 그런 객이 되었다. 하아, 이러면 내가 레어에서 나온 의미가 없어지는데.. 나는 달콤한 초콜렛을 입안 가듯 집어 넣으며 행복한 표정 을 지었다. 내 주위에는 도둑 길드원 꼬맹이 녀석들이 훔쳐다준 과자와 사탕, 그리고 심지어는 통닭까지 있었다. 물론 지금은 남아 있지 않지만.. "그렇게 먹다가 살찐다." "드래곤이 뚱뚱한거 봤어? 그리고 나는 살좀 쪄야 된다구. 이렇게 비루먹은 닭새끼 마냥 비실비실한 몸.. 맘에 안들 어." 그렇다. 나는 이 몸이 무지 싫다. 안그래도 일족들 중 제일 약한데 몸마저 이렇게 약하게 보 이다니..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 것 같아서 나는 이 몸이 싫다. 나에게 자존심이란 것도 있었냐구? 나도 드래곤이다. 자존심만 디따 많고 몸집만 무식하게 크 고 사악(?)하고 포악(?)한 종족이란 말이다! "갑자기 말하다가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냐?" 노.. 놀랬다. 안나의 얼굴이 바로 내 코앞까지 와있었기에.. "뭐.. 뭐야?" "우리 한건 하러 가자." 한건? 도둑질을 하자고? 나야 심심했으니까 만사 OK구먼.. "그런데 길드장인 네가 가야할 정도로 큰건이야??" "쿠쿠쿠, 당연하지." 왠지 불안해 진다. "어딘데..?" "왕궁." 저 년이.. 날 패고 나서 드디어 미쳤나 보군. 거기가 어디라고 털어? 들어가자 마자 바로 잡혀 목잘릴 텐 데. 내가 아무리 미친 드래곤이라도 이것만은 동조 못한다. "잘있어. 널 만나서 그래도 행복했다." 나는 미련 없이 방문을 나섰다. "저년 붙잡아서 꽁꽁 묶어두고 멍석말이 해서 죽지 않을 정 도로만 패. 뭐, 저번에 사논 힐링이 있으니까.." 방문 앞에 있는 놈들이 나에게 다가온다. 저.. 저게 과연 친구란 말인가? "나~~~~~! 왕궁 털러 가고 싶었어. 네가 그렇게 말하지 않았 으면 내가 말했을 거양~!" 내.. 내가 싫다. "후후후, 그렇게 말할줄 알았어. 그럼 준비를 해야지?" 안나는 그말을 남기고 방밖으로 나가 버렸다. 왕궁을 털자고..? 으.. 죽을거 뻔한데 거길 왜 털어! 돈에 환장한 년. 대체 얼마나 준다고 했길래 왕궁을 털어? 약간의 양심의 찔림을 받는 나. 그래.. 돈 많이 준다고 하면 털 수도 있겠다. ----------------- 아아.. 삭제하고 다시 올리는 겁니다.. 100라인이 못넘더군요.. 쩝.. 오늘은.. 두개 입니닷.. 쿠쿡.. 드뎌 10부를 올리게 되는군요.. 봐주실 거죠? 그렇죠? 쿠쿠쿠.. 감사합니다.. 그럼 10부에서 뵙죠,......... [번 호] 15281 / 21333 [등록일] 2001년 02월 28일 09:17 Page : 1 / 8 [등록자] INNOCENTELF [조 회] 1019 건 [제 목] 드래곤의 일기(10) ─────────────────────────────────────── 372년 7월 날짜 : 20일 날씨 : 아아.. 구름이 조금 끼었지만 비가 올 것 같지는 않 다. 우리는 연 6일간의 엄청난 침투 작전을 세운 뒤에 왕궁을 털로 가기로 했다. 그 작전이란게.. 1. 그곳과 가까운 정보 길드에서 엄청난 돈을 들여 왕궁의 내부 지도를 산다. 2. 왕궁 주위를 배회하며 넘어(담넘어) 들어갈 곳을 찾는다. 3. 들어가면 찾는 물건만 찾고 만약 잡히면 각자 튄다. 참으로 무식하고도 확실한 방법이다. 각자 튀라는 말이지..? 각자 튀라는 말이지...? 아아~! 네 번째 일기에서도 보여 줬는데 이번에 나의 달리 기 실력을 다시 보여 줘야 하다니.. 나는 어느새 우리가 잡힐 것이란 것을 확정하고 있었다. 왕궁이 그렇게 만만한 곳인가? 아니다. 왕궁! 이 이름만 들어도 누가 사는 집인지 알수 있 을 것이다. 그리고 한가지 잊은 점이 있다. 이 왕궁이라는 집에는 그 누구 말고도 다른 누구들이 산다 는 것이다. 바로 기사들. 공부와 예법은 기본이고 싸움도 디따시 잘하는데 칼질까지 디따 잘하는 놈들을 모아 놓은 것이 바로 기사단이다. "캬캬캬~! 완벽한 작전이야!" 자신이 세운 작전을 대단히 흡족한 듯이 바라보고 있던 안 나의 흡족함을 나는 단번에 깨버렸다. "그 정보 길드 녀석이 왕한테 불면 어쩌려고? 왕궁을 그렇 게 샅샅이 알고 있는 인간은 정보 길드 밖에 없으니 왕궁이 털리면 제일 먼저 추궁 당하는 것은 왕궁 사람이 아니라 정 보 길드일텐데? 길드장이 무서워서 다 불면 어쩌려고?" "판깨는 소리 그만 해라." 음산하게 목소리를 깔며 안나는 답했다. 쩝, 기껏 말해 주니까. "그런데 도대체 무슨 물건을 털려고 이짓을 하는 거지?" "후후후, 바로 왕자야! 왕자!" 왕자..? 내가 알고 있는 왕자는 한명 뿐이다. 왕의 아들. "미.. 미쳤어! 미쳤어! 물건도 아니고 사람을 훔쳐? 으악~! 세상에.. 이럴순 없는거야!" 그렇다. 왕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왕의 아들.. 왕의 아들.. 왕족의 몸에 천민이 손끝하나만 대도 바로 목숨이 달랑달랑 한 판에 납치를 하자고? 걸리면 사지가 갈기갈기 찢기는 것은 물론이고 사돈의 팔촌 까지 살아남기 힘들 판이군. 그럼.. 내 일족들을 멸한다는 말? 드래곤을? 음.. 이건 아니 군. "그.. 왕자가 몇살인데?" "스물 둘." "다.. 다큰 놈을 납치 하자고? 어떻게 들고 뛰어?" "크크큭, 니가 마법사잖아. 뭐 납치하면 곧바로 텔레포트로 여기로 날라오면 될 것 가지고." 스물 둘이란다. 세명을 나한테 텔레포트 시키라고? 나보고 남 좋은 일을 하 라고? 아.. 세상에서 제일 재수 없는 마법사가 뭔줄 아나? 텔레포트 마법은 6서클 마법이다. 고로 인간들에게 함부로 그렇게 펑펑 써댈 마법이 아니라 이거지. 하지만 마법사 중에 6서클을 마스터 했다고는 하지만 마나 가 부족해 텔레포트를 할수 없는 마법사가 종종 가다가 있 다. 저번에 내가 만났던 꼬마도 천재라는 명칭이 붙은 것만은 확실하나 마나가 많이 부족해 텔레포트를 시도 할 수는 없 었다. 보통 인간의 마법사가 텔레포트를 한번 하면 일주일은 앓아 누워야 되니까. 하지만 세상에서 제일 재수 없는 마법사는 바로 지 분수도 모르고 텔레포트를 시도했다가 마나가 부족해 공간의 틈에 끼여 빠져나오지 못하는 마법사이다. 내가 아무리 드래곤 이라지만 인간의 몸으로 텔레포트를 나 까지 합해 세명을 시키라고? 난 약한 드래곤이란 말이다~!! 뭐, 내 실력으로 시킬 수는 있다. 말 그대로 나는 마나가 부족하지도(아에 넘쳐 흐르지.) 체력 이 딸리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그러냐고? 그냥. (퍼억~! 그렇다고 돌로 치면 어떡해! 아프잖아!) "흐음.. 내가 깜박 잊고 있었다. 의뢰를 한 사람이 왕궁의 지도를 구해다 줬거든." 어떻게 저걸 잊을 수가 있지? 크크크, 이번 일이 끝나면 왕 궁 지도를 팔아먹어도 돈 꽤나 되겠군. "오늘은 푹 자둬. 내일 왕궁으로 떠날 테니까." "며칠 걸리는데?" "9일." "잘자라." 어떻게 잘 잘수가 있단 말인가? 그런 무식하고도 엄청난 작전 하나만 달랑 세워놓고 털러 가자고? 그래, 네 맘대로 해라. 어차피 일 틀어지면 바로 텔레포트 할테니.. 쓴 웃음을 지으며 방문을 여는 안나의 뒷모습을 한참을 바 라보았다. 그런데 옛날부터 안나가 이렇게 무모했나? 쩝, 세월이 참 사람 여럿 버려 놓는군. ------------------- 정말.. 잡담.. 무지 길게 써놨는데.. 쩝.. 다 날라가다니.. 이번판은.. 정말.. 말도 많고 탈도 많이 나면서 올렸습니다.. 9편은.. 라인수가 100이못넘어 삭제 하고 다시 올려꾸.. 이건... 쩝.... 저장을 안해버려서.. 쿠쿡.. 그래도..10편입니다.. 아아.. 감격~! 그럼 앞으로도 드래곤의 일기 많이 사랑해 주시구요.. 감상이나 비평.. 많이 부탁드립니다.. ^^ 저는 감상이나 비평 맛있게 잘먹어요~! (무슨.. 소리지..???) 그럼.. 오늘 하루도 행복한 하루가 되세요~! [번 호] 15305 / 21333 [등록일] 2001년 02월 28일 17:55 Page : 1 / 8 [등록자] INNOCENTELF [조 회] 1001 건 [제 목] 드래곤의 일기(11) ─────────────────────────────────────── 372년 7월 날짜 : 26일 날씨 : 비온 뒤 갬. 화가 난다. 엄청나게 짜증이 솟구쳤다.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시는지요, 아름다우신 레이디들?" "........." "잠깐 얘기좀.." 나는 옆에 있는 안나를 힐끗 쳐다 보았다. 안나 역시 짜증난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 마침 저쪽에 괜찮은 찻집이.." 이.. 느끼한 놈. 이름을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지만 별로 주 위깊게 듣지 않아서 모르겠다. 왜 이렇게 달라붙는 거지? 벌써 3일째다. 중간에 잠깐 들린 도시에서부터 이 느끼한 인간은 우리를 뒤따라 왔다. 우리는 되도록 이 인간을 무시하려 무진 애를 썼다. 첫날에는 그저 우리 뒤만 따라오더니 그 다음부터 지금까지 연 이틀동안 계속 짜증나게 옆에서 이러고 있다. 처음에는 몇마디 받아줬지만 1초라도 말을 하지 않으면 가 시가 돋히는 녀석. 어느샌가 안나와 나는 이놈을 처참히 무시하고 있었다. "안나.. 짜증나." "날려버려." 간단한 안나의 대답에 나는 진짜 저놈을 날려버릴까도 생각 을 했지만 내가 누구냐? 자비로운 블루 드래곤 시크리오프스가 아닌가? 3일 후면 수도에 도착하기에 나는 그냥 참고 지내기로 했 다. "이곳에 있는 도둑 길드로 갈래? 아니면 여관으로 갈까?" 안나는 나에게 물어왔고 나는 이놈이 혹시 이 소리를 들었 을까봐 슬쩍 느끼한 놈을 쳐다 보았다. "도둑 길드...?" 역시나 이놈은 이 소리를 들었다. 안나는 무지하게 띠껍다는 듯이 그놈을 한번 쓱 쳐다보고는 한마디만을 남기고 먼저 가버렸다. "기억 지우고 아무데로나 날려버려. 특히 드래곤 레어가 있 는 곳이면 더욱 좋고." 쩝, 어쩔수 없군. 후한을 남겨두지 않기 위해서라도.. 하아, 나는 내 뒤에서 아직 안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놈을 잠시 쳐다보았다. 내가 자신을 쳐다보자 이놈은 다시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도둑 길드.. 도둑 길드원들?" 너무 많이 알면 다친다구. "인간들이 살아갈 때 듣고도 못들은 척 할 때가 있는 법이 에요." "??" 그놈은 이상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 보았다. 아아, 이건 명대사야. 명대사. "텔레포트." 곧이어 흰 빛이 느끼한 인간의 온몸을 뒤덮었다. 흰 빛이 사라진 곳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고 나는 마음편 히 저기 멀리 가고 있는 안나를 뒤쫓아 갔다. 드래곤 로드의 앞마당으로 텔레포트 시켜 놨으니 뭐, 로드 님이 알아서 처리 하겠지. 그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나를 괴기스럽게 쳐다 보았지만 나는 딱 한마디를 해줬을 뿐이다. "텔레포트 마법 처음 보나요?" 아, 이 인간들은 처음 보겠군. "날려버렸어?" "응." "어디로?" "로드님의 레어로." "캬캬캬~! 그놈 얼굴색이 어떻게 변했을까? 쿠쿡.. 크하하 핫~!" 이게 과연 여자가 웃는 목소리란 말인가? 드래곤 로드 마리오네라는 지금 갑자기 자신의 앞마당에서 준비 체조를 하다가 자신의 머리 위로 떨어진 물건을 자세 히 살펴보았다. 그 인간은 자신을 빤히 쳐다보더니 얼굴색이 하얗게 되다 못해 시퍼리멍덩 해졌다. 자신의 앞 발톱으로 그 인간을 톡톡 건들어 보니 움찔움찔 반응이 오는게 재미있어서 아에 앞마당에 멍석을 깔고 그 인간을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으.. 으.." 드래곤을 보더니 입도 안떨어 지는 것 같은 인간은 입에 거 품을 물고 기절 직적이었고 마리오네라는 오랜만에 재밌는 장난감을 발견 했다는 기쁨으로 발톱으로 그 인간을 들어올 려 레어 안으로 쿵쿵 거리며 달려 들어갔다. 하지만 곧이어 무슨 생각이 들어서인지 멈춰서서 자신의 레 어로 누가 간크게 이놈을 떨어뜨렸을까 라는 의문이 들어서 아직도 희미하게 남아있는 마력의 냄새를 맡았다. 곧이어 그 마력의 주인이 얼마 전에 유희를 나갔다고 전해 진 시크리오프스의 마력 냄새라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나중 모임에 만나면 좋은 선물을 보내 주어 고맙다고 전하리라 마음먹고는 다시금 짧은 발을 놀려 레어 안으로 깊숙이 들 어가 버렸다. -------------------------------- 아아.. 11편입니다.. 쿠쿠쿡..^^ 피곤.. 이번회.. 별로 잼 없져? 그런거 같아요..TT 우움............. ^^ 그래두.. 다음은.. 왕궁 털러 갑니다.. 쿠쿠쿡~! 왕궁 터는 이야기.. 꼭 봐주세요`! 그럼 내일 아침에 뵙죠.. [번 호] 15342 / 21333 [등록일] 2001년 03월 01일 10:22 Page : 1 / 10 [등록자] INNOCENTELF [조 회] 982 건 [제 목] 드래곤의 일기(12) ─────────────────────────────────────── 372년 7월 날짜 : 29일 날씨 : 구름 한점 안보이고 푸르기만 하다. 프네스 왕국의 수도. 가이네스. 역시 수도라 그런가? 성문에서의 검색은 약간 엄격했지만 그런대로 우리는 통과 할 수가 있었다. "있잖아, 우리 언제 털어?" 나는 아주 조용히 안나에게 물어보았다. 사전 조사를 하고 털겠지? "오늘 저녁." 미, 미친.. "너, 생각이 있는거야? 오늘 저녁이라닛?" "생각은 충분히 있어. 담넘어 가서 왕자 찾아다가 의뢰인에 게 가져다 주면 될 것 아냐?" "어떤 인간이 이따위 의뢰를 했는지 심히 궁금하다." 진짜 궁금하다. 어떻게 한나라의 왕자를? 정신 상태가 대체 어떻게 생겨먹었길래 이리도 간이 크단 말인가? "빨리와. 왕궁 쪽으로 한번 가보자." 그래, 간다. 가. 네 맘대로 해라. 어차피 틀어지면 튀면 되는 거고. 역시 왕궁이라 그런가? 담이 디따 높다. 이걸 넘을 수 있을까? 마법으로 넘는다고 해도 설마 왕궁에 침입자를 대비한 알람 마법 하나 걸려있지 않을까? "이걸.. 넘자고?" "크크크, 네가 설마 왕궁 마법사의 알람 마법하나에 나가 떨어질 인물이냐?" 이년, 아주 날 봉황으로 믿고 있군. 쩝, 사실인데 어쩌리? "그래, 넘자. 넘어." 나는 더 이상 안나의 말에 거역하길 포기했다. 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주지. 끝이 어떻게 되나 보자! 그날 밤.... "플라이!" 별이 초롱초롱하게 빛나는 까만 밤하늘 아래에서 내 목소리 만이 유난히 크게 들려왔다. 이러다가 기사단 쫓아 오는거 아냐? 뭐, 내 마력은 9서클은 간단히 뛰어넘는 10서클의 마스터 이기에 왕궁 마법사가 나보다 높은 서클이 아니면 내가 마 법을 썼다는 것 자체를 알지 못한다. 지금까지 내가 알기로는 인간들의 마법사 중에는 8서클 마 법사가 인간 최대의 마법사로 알고 있다. 설마 이 왕궁의 마법사가 8서클 마법사라 해도 나를 막지는 못한다. 쩝, 이거 너무 쉽구먼.. 허공에 띄워진 안나와 나는 그대로 담벼락을 넘었다. 으흑.. 왕궁 디따 크다. 이곳에서 사람 하나를 찾는다는 거 야? 아무리 지도가 있기로서니.. 우리는 왕자 얼굴도 모른다! 난 왕궁을 처음 가봤다. 이거.. 원 드래곤의 레어보다도 크다니.. 쩝, 할말없다. "뭐해? 안내려가?" "그래, 내려 간다." '콰당~!' 재촉하는 안나에게 열받은 나는 아니, 사실 나를 개패듯 팬 안나에게 약간의 감정이 있던 나는 안나에게서 바로 플라이 마법을 해제 시키자 안나는 콰당~! 나는 우아하게 내려올수 있었다. 미안한걸? 저 높이에서 떨어졌으니.. "에구구, 삭신이야. 너, 두고 보자." 그렇게 말해봤자 하.. 하나도 안무섭다. 그런데.. 떨리는 내 목소리는 뭔가? 역시 다크 엘프 답게 어둠에는 익숙한 안나는 가까이에서 순찰 도는 경비병의 뒤로 돌아가서 그대로 목을 꺾어 버렸 다. 이거 인간까지 죽이는 거야? "안나야, 안나야. 왜 인간을 죽이는 거야." 안나는 그 죽은 인간을 나무 밑에 아주 교묘하게 숨겨 놓고 는 내 물음에 대한 대답을 회피했다. 안나는 예전에 인간을 아주 사랑했었는데.. 자꾸만 안나를 믿는 나의 마음이 깨져만 간다. "따라와." 약간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하는 안나. 나도 아무말없이 안나를 따라가기만 했다. 텅빈 복도. 왕궁이 이렇게 허술해도 되는 건가? 적어도 기사 한둘쯤은 있어야 정상 아닌가? 나는 왕궁에 들어와서 아까 죽은 인간을 빼고는 인간의 그 림자 조차 보지 못했다. 왠지 불길한 기운이 나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안나는 거침없이 복도를 걸어나게 이에 거대한 문을 아무 거리낌 없이 열어 제쳤다. 갑자기 쏟아져 오는 불빛. 약간의 어지럼증을 느낀 나는 얼른 눈을 감아버렸다. 잠시 빛에 익숙해진 나는 눈을 떠 앞을 바라보았다. 수많은 기사들. 그리고 마법사. 그들의 경호속에 있는 인물들. 아마도 왕이나 왕자겠지. 함정....? "넌 너무 친구를 쉽게 믿는게 탈이야. 이렇게 배신할 때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지." 그런가..? 안나가 나를..? 나는 어느새 내 주위를 둘러싼 기사들을 바라보았다. 이정도 쯤이야 처리 못할 내가 아니다. 여유롭게 마력을 개방하려던 나는 문득 마력이 개방되지 않 는다는 것을 느꼈다. "미안, 시크리오프스." 그렇게 말한 안나의 단검이 내 어깨를 꿰뚫었다. "크윽.." 기사들은 아무도 나를 공격하지 않았고 그 방에 있는 모든 인간이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도대체 이 일들이 어떻게 된 일이지? 피가 빠져 나가며 감기는 눈을 억지로 뜨며 나는 수많은 기 사들과 병사들에게 호위되어 있는 쪽에 아주 익숙한 인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프라니바투스. 그렇군. 쿠쿡, 그랬던 거야. 나는 쓰러지기 직적에 안나의 얼굴을 쳐다 보았다. 여전히 감정을 내비치지 않는 안나의 얼굴. 역시 6백년이란 시간은 많은 것을 바꾸어 놓는 구나. ------------------------------- 으음.. 배신당한.. 시오스.. 쩝.... --;; 잼 없나요? 으음,, 11편은...... 개인저으로.. 정말 맘에 안듭니다.. 우움........ 이거 가벼운 마음으로 시자했던게.. 심각한 이야기가 될줄은.. 쩌뷔.. 감상 많이 부탁하구요~! 이왕이면 비판도..TT 쿠쿡.. 그럼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오늘은 이게 마지막입니다.. ^^ 그럼 내일 뵙죠.. 372년 7월 날짜 : 30일 날씨 : 캄캄한 밤이다. 어깨의 통증이 너무 아려와 살짝 눈을 떠보았다. 익숙하지 않은 화려한 불빛. 방안에 아무도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나는 살짝 일어나 보았다. 아아~! 치유 마법도 쓰지 못하는데 부상이라니.. 쩝, 내가 너무 안일했나? 레어로 돌아가~! 말어? 약간은 큰방. 침대는 대 여섯명이 굴러다녀도 남아돌 정도로 크고 천장에 는 화려한 무늬에 마법으로 띄운 빛들이 허공을 떠다니고 있었다. 바닥에 조심스레 발을 딛자 푹신한 카펫 때문에 발목이 잠 겼고 테이블에는 아직 뜨거운 스프와 따뜻한 물잔이 올려져 있었다. 아직 사람이 나간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군. 갑자기 움직인 탓인지 어깨를 감고 있는 붕대에 피가 베어 나왔다. 으.. 6천년 삶에 이런 큰 부상을 입다니. 도대체가 인간들이 말야! 내가 지네들한테 잘못한게 뭐가 있어? 아아, 이번 유희는 정말 최악이다. 유희를 나온지 한달 남짓 됐는데 이런 꼴을 당하다니.. 나는 레어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몇 백년만 자고 나면 마음이 좀 가라앉을 테지. 프라니바투스! 전생에 나하고 무슨 원수를 졌기에 이리도 건방지게 구는 것일까? 나는 붕대에 베인 피를 찍어 입술에 가져다 대었다. 아, 피 비린내.. 하지만 너무나도 익숙한 냄새. (배고플 때 오크들 씹어 먹어 봐라. 피 안나나?) 혀를 내밀어 살짝 맛을 보자 짭짤하고도 비릿한 맛이 혀의 감각을 마비 시켰다. 그런대로 내 피도 먹을만 하군. 내가 이런 엽기적인 짓을 하고 있을 때 등 뒤에 있던 방문 이 열렸다. 내가 자신의 피를 찍어 먹는 것을 본 프라니바투스는 눈살 을 찌푸리며 내 앞으로 다가왔다. "상처가 벌어졌지 않습니까? 좀더 누워계시지 않고.." 쩝, 고양이 쥐생각 하냐? "내가 이런 상처를 입게 된게 누구 탓인지는 알아 줬으면 좋겠군." 나는 내 상처에 손을 가져다 대는 프라니바투스를 발로 걷 어차 버리고는 침대로 돌아와 주저 앉았다. 으.. 상처가 더 벌어졌잖아? 운동을 너무 무리했나? 생각 같아서는 더 밟아 주고 싶은데 몸이 안따라 줘서 참는 다. 참어! 아아~! 발이 우는구나! 이런 심각한 상황에서도 농담이 나오는 내가 무섭다. "너 나한테 원수 진거 있냐?" "아니요." "그럼 나한테 이렇게 대하는 태도가 뭐야?" 아무말 못하는군. 나도 말빨이 조금 세지기는 세졌나봐. 하하핫~! 쑥스럽구먼. "레어로 돌아가겠다." "아직은 안됩니다." 엥? 드래곤이 레어로 돌아간다는데 지가 왜말려? 내 유희 는 여기서 끝이야! 끝! "그래? 너 니가 더 나이 많이 먹었어? 내가 성룡이 됐을 때 태어나지도 않았던 것이 말이야! 다 컷다고 재는 거냐? 암 튼 내가 간다면 가는 거야!" 이놈이 아무말도 하지 않았을 때 나는 창문으로 가서 뛰어 내릴려고 했다. 내 머리카락을 붙잡는 손길. 으으, 뒷골땅겨. 잡아당기지 마! "이씨! 대체 왜그러는 거냐?" "이곳 왕께서 당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십니다." 오호~! 그래? 그럼 니가 가서 도와주지 그러냐? 인간의 왕이란 아무리 대단해도 드래곤이 고개를 숙일 정도 는 되지 않는다. 쿠쿡, 그런데 저놈이 지금 인간의 왕을 위해 일하고 있다 그말이지? 유희 한번 진짜 실감나게 하는군. 그렇다고 동족을 이꼴로 만들어? "쿠쿡, 나처럼 허약해 빠진 드래곤에게 뭘 기대한다고?" "시크리오프스님!" "입 닥쳐!" 열 받는다. 겨우 그것 때문에 내가 이리도 큰 부상을 당하고 배신까지 당했다.. 이말이지? "이곳 왕? 그래? 도대체 나에게 바라는 것이 뭐길래? 오호 라, 하나 있겠구나. 드래곤 하트? 좋아. 어차피 이런 삶에 미련 없는 내 인생이다. 배째! 배째라구!" 설마 진짜 배째지는 않겠지? '쫙' 타격음이 들리며 곧이어 나는 볼이 따끔따끔한 느낌을 받으 며 내가 맞았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참 골고루 한다. 그런데..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 거지? "죄송합니다.." 고개를 숙이고 사과하는 프라니바투스를 바라보며 나는 뒤 돌아서서 침대 위로 누워 버렸다. 저놈 한테만은 내 눈물 흘리는 꼴을 보여주지 않으리라! "꺼져." 이렇게 말했는데도 놈은 꺼지기는 커녕 도리어 내곁으로 다 가왔다. 그래, 이제 내 말까지 씹는다 그거지? "꺼져버려! 미친 드래곤 같으니라구! 너같은 놈은 그냥 브 래스 뿜다가 기도가 막혀서 죽어야 해!" 쿠션을 던지며 나는 소리쳤다. 진짜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시크리오프스님! 우셨습니까?" 결국 프라니바투스는 내 눈물을 보고야 말았다. 으윽, 저놈에게 약점을 잡히다니! "우셨다니!! 울고 있는거다. 이 언어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 하는 바보같은 드래곤아!" 끝까지 자존심을 구기지 않는 나였다. 잠시 그런 나를 바라보더니 프라니바투스는 그대로 나가버 렸다. 나는 이제 피가 철철 쏟아지는 상처를 바라보았다. 이대로 놔두면 아무리 드래곤이라 해도 죽겠군. 그래도 유희중에 출혈과다로 죽은 드래곤이라고 소문나고 싶지는 않았기에 옆에 있는 구급상자로 나름대로 응급처치 를 시작했다. 아아, 아프기는 더럽게 아프군. 이거 낫던지 해야 어딜 도망가든 하지. 저놈 꼴을 봐서는 나를 곱게 놓아줄 것 같지는 않다. 크크크, 안나가 나를 배신한 것도 그리고 이곳까지 오게 만 든것도 모두 프라니바투스의 계략이다. 겉으로는 왕의 명이라는 거창한 명칭을 달고 있겠지만 어차 피 우리 둘다 그런것에 속을 드래곤이 아니라는 것은 안다. 드래곤이 인간의 왕을 위해 일한다는 것은 전례에도 없었고 후에도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프라니바투스. 네놈이 도대체 나에게 바라는 것이 뭐지? 내가 생각해도 한심한 짓이다. 아마도 나는 안나가 나를 배신했다는 것을 믿고 싶지 않았 는 지도.. ---------------------------------------- 아아.. 오늘은.. 12만 올리고.. 그냥 놀려고 했는데.. 13을 올리고 싶어 올립니다.. 으음.. 다음회부터는 다시 가벼운 마음으로 갈거구요.. 어째뜬.. 왕궁에서 탈출합니다.. 것도 대단히 호화스럽게... 프라니바투스는 도대체 정말 왜 그러는 걸까요? 으음..................... ^^ 그럼 내일 뵙죠.. 이만..^^ [번 호] 15180 / 21182 [등록일] 2001년 03월 02일 22:05 Page : 1 / 14 [등록자] INNOCENTELF [조 회] 1008 건 [제 목] 드래곤의 일기(14) ─────────────────────────────────────── 372년 8월 날짜 : 4일 날씨 : 왕궁 안인데도 땀만 디따 많이 나는 날씨. 지난 4일동안 프라니바투스는 한번도 나를 찾아오지 않았 다. 내 팔의 상처도 자체 치유력 때문인지 약간 아려오기만 할 뿐 별다른 통증을 느낄수는 없었다. 그런데 왜 치유마법으로 치유를 해주지 않았을까? 내가 그만큼 밉다는 거겠지? 쩝, 누구에게 미움을 받는 다는 것은 그리 썩 좋은 일은 아 니다. 기분이 찝찝하니까. 난 지금 왕궁 복도를 지나가고 있었다. 누가 나가게 해줬냐고? 왕이 부른단다. 그러니 가야지. 힘없는 나야 뭐 별수 있나? 내 곁에는 왕궁의 기사들이 둘러싸고 한시라도 눈을 때놓지 않고 감시하고 있었다. 어차피 이 왕궁 전체에 마력을 흩어지게 해놨기 때문에 마 법을 쓰지도 못할몸. 왜이리 감시하는지 몰라? 이런걸 바로 쓸데없이 힘만 뺀다라고 하겠지? 약간은 소박한 방 안으로 나는 불려갔다. 집무실인 듯한 방에는 프라니바투스, 안나, 그리고 엄청나게 젊게 생긴 왕이 하나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는 것을 피하는 안나였으나 나는 별다른 감정을 받지는 않았다. 한마디로 너무 큰 충격을 경험해서 정신이 돌아버렸다고나 할까? 왕은 손짓 한번으로 내 주위에 있던 기사들을 물렸다. 그래도 명색이 드래곤 앞인데 이렇게까지 여유로울 수가 있 다는 것은 자신감에서 오는 것일까? 아니면 천부적으로 멍청한 걸까? "단도 직입적으로 말하겠소. 우리는 그대의 힘이 아닌 지혜 가 필요하오." 내 지혜? 놀고 있네.. 아무리 6천년간 살았다 해도 머리에 든게 있어야지! 머리에 든게! "프라니바투스가 나보다 더 낳을 줄 아는데?" "프라니바투스가 추천했기 때문이오." 저놈! 내가 6천년간 빈둥빈둥 할 일 없이 지냈다는 것을 뻔 히 안놈이 나를 추천해? 차마 드래곤이 지혜와 지식이 부족하다는 말을 할 수가 없 어 나는 꾸욱 참고 뭐든 다 알고 있다는 투로 말했다. "내 지혜? 왜? 머리통이라도 잘라 줄까? 좋아, 그건 그렇다 치고 왜 인간 따위가 드래곤의 지혜를 원하는 거지?" 나는 내가 그토록 자랑하던 높임말은 온데간데 없고 아까부 터 반말이 틱틱 나오고 있었다. 이미지 관리좀 해야 겠군. 험험. "당연하지 않소? 전쟁이지." 왜 지네들 치고박고 싸우는데 드래곤이 끼어들어야 하는 거 지? 약간 대담하게 나는 책상에 앉아 있는 왕을 향해 아주 자연 스레 걸어갔다. 책상 모서리에 걸터 앉아 왕의 얼굴을(이걸 아마 용안이라 고 하지?) 빤히 쳐다 보던 나는 의외로 이 왕이라는 인간이 잘생기고 어리다는 사실을 깨닳았다. 어린 아이들은 어리석은 만큼 용감하다고들 하지. 잠시 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책상위에 얹어 있는 것을 바라본 나는 나의 창백하리 만큼 흰 손을 들어 그 인간의 목에 가져다 대었다.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는 인간. 보통 드래곤 같았으면 이곳에 손 한번만 까딱 했어도 목이 날아갔겠지? 어느새 내 손가락이 그의 목을 파고들어 한방울씩 피가 떨 어지기 시작했다. 안나는 나의 행동을 저지하려 했으나 역시나 이 인간이 그 것을 막았다. 잠시 내 손가락에 묻어 있는 피를 바라보던 나는 충동적으 로 그것을 낼름거리며 혀로 맛을 봤다. 으음, 노린내가 조금 심하군. 역시 내 피가 제일 깨끗하단 말야. 뭐, 이정도면 2등급 정도는 되겠군. 1등급은 물론 나밖에 없지만! 이런 쓸데 없는 생각을 하며 내가 히죽히죽 웃고 있자 프라 니바투스의 감정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답해 주십시오." 저녀석, 꼭 내가 감상에 젖어 있을 때 깽판 놓는단 말야? 갑자기 기분 좋던 내 기분이 한마디로 조졌다. "나 갈꺼야. 너 땜에 더 이상 이곳에 있기가 싫어졌어." "가지 못하시리란 것은 알고 계실텐데요?" 그렇게 말할줄 알았지. 하지만 내가 누구냐! 어젯밤 한숨 자지 못하고 생각해낸 비장의 무기. 쩝, 좀 화려하긴 하지만 뭐, 내가 나갈수 있는데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잠시 프라니바투스를 노려보며 나는 왕의 옆에 놓아져 있는 물잔을 들어올렸다. 프라니바투스. 네놈이 간과한게 한가지가 있었다. 내가 물을 다스리는 블루 드래곤이라는 것을. 아주 소량이라도 물만 있으면 만사 오케이지. "설마..?" "그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고들 옛 드래곤들이 말씀하셨지." 그대로 물을 나는 책상위에 쏟았다. 흩어져야 할 물들이 일정한 양으로 변해 각자 책상으로 스 며 들었다. 처음 해보는 건데 이것도 되네? 하긴, 이렇게까지 폼 잡았는데 실패하면 뭔 쪽이냐? 나의 의지를 담은 물방울이 제발 제대로 찾아갔기를.. 프라니바투스는 약간의 마력을 담은 손으로 내 손을 황급히 쳐내었다. 제.. 제기랄.. 뼈 부러졌다. 으... 으윽, 참으로 6천년간 한번도 해보지 못한 일을 요 며 칠새에 가지가지 해보는 구나. 축 늘어진 내 손을 보며 고통에 인상을 찌푸린 나는 그대로 발을 뻗어 프라니바투스의 정강이를 걷어차 버렸다. "뼈 부러졌어. 너 일부러 그런거지?" 지딴에는 막아보려 그랬을 지도 모르지만 이미 때는 늦었 다. 벌써 하늘 저편으로 보이는 상공에 푸른 점들이 늘어나고 있었기에.. 제대로 찾아가긴 찾아갔나 보군. 이 술법은 한마디로 '나 위험하니 너네가 알아서 찾아와서 구해가라.' 이말이다. 이말 듣고 안오는 드래곤은 이미 죽은 놈이거나 죽고 싶어 환장한 드래곤이다. 감히 나이순으로 수장이 되긴 됐지만 그래도 명색이 수장인 내 명을 안듣고 개겨? 내가 약하다는 것은 일족들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니까. 이렇게 불러도 별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블루 일족의 수는 대략 50여마리 정도 된다. 물론 나는 그중에 아주 소량만 불렀을 뿐이다. 푸른 점의 수를 세어보니 대략 스무마리 정도 왔군. 왕궁의 바로 중앙에 떠있던 드래곤들은 곧이어 인간으로 폴 리모프를 시도해 창문으로 뛰어 들어왔다. 행동력 하나는 끝내 주는군. 이런 훈련 한번도 안해봤는데 지네들끼리 심심하면 모여서 훈련하나 보지? "블루 드래곤의 수장 시크리오프스님을 뵙습니다." 그들의 대표격이며 자칭 내 비서라는 드래곤인 카라드시크 는 내 앞에 부복하며 외쳤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내 앞에 무릎을 꿇는 드래곤들. "수장님을 뵙습니다." 드래곤들의 규칙은 그리 엄격하지 않지만 연장자나 자신의 일족의 수장에게는 정말 깍듯이 예의를 차린다. 하하, 이것도 한폼 나는군. 자주 애용해야 겠어. "이것좀 치료해줘." 나는 카라드시크에게 부러진 팔목을 내보이며 말했다. 바로 날카롭게 상황을 이해한 카라드시크. 곧이어 프라니바투스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저희 블루 일족과 전면전이라도 펼치고 싶으십니까? 저희 의 수장을 이렇게 감금하고 상처입게 하다니요! 로드님께 이번일을 건의 드리겠습니다." 약간은 내 잘못도 있다. 함정인지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뚤래뚤래 따라온 죄. 카라드시크의 말에 지금 있는 내 일족들 모두가 프라니바투 스를 노려 보았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나를 대하는 일족들의 태도가 엄청나게 우대하다는 것을 깨닳았었다. 아주 블루 드래곤 일족은 내가 태어나자 마자 허약해 빠진 내 몸을 걱정해 헤츨링이 보호받는 것처럼 블루 일족 전체 에게 나를 보호하도록 명했다. 그 약속은 내 수명이 다할때 까지 이루어 질테고 만일 내가 타인에 의해 죽는다면 블루 드래곤 전체가 들고 일어날 판이었다. 가끔 이런 대우가 너무 부담스럽게 느껴 질때가 있지만 누 구보다도 나를 아껴주는 동족들이기에 지금은 너무나 고마 운 생각마저 든다. 내가 보통 에인션트 드래곤이었다면? 하긴 보통 저정도 되면 이따위 마법은 아무것도 아니지. 쩝. 조금은 내 몸이 싫군. "저희들의 수장을 데려가겠습니다. 이번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기억해 두십시오. 아무리 자비의 블루 드래 곤이지만 맹약으로 맺어진 저희들의 수장을 다치게 한 죄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역시.. 말빨 하나는 끝내준다. 멋있어! 카라드시크! 카라드시크의 말이 백번 옳은 말이기에 프라니바투스는 더 이상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순순히 나를 보내주었다. 유희.. 앞으로 몇천년간 나갈일도 없을 것이다! 충분히 이번 유희때 쓰디쓴 배신의 참맛을 느꼈기에.. 나는 마지막으로 안나를 한번 쳐다 보고는 그대로 일족들과 돌아와 버렸다. 안녕.. 이 세상에 남아있는 하나뿐인 내 친구여.. ------------------------------- 아아.. 자칭 엄청난 양이라고 생각하며 올렸습니다..^^ 쿠쿠쿠.. 오늘.. 올만에 학원을 갔더니.. 쩝.. 그런대로 정신 없다는 것만 빼면.. 배울만 하더군요..... 후우...... 앞으로.. 주간 연재할 계획이었는데.. 매일 이 시간대에만 온다면.. 매일 연재 할수도 있겠군요..^^ 으음.............. 으으.. 설.. 이상하나요? 후움..--;; 이상한데 있음 지적좀 해주세요~! 고치게..^^ 오늘은 기분이 매우 해퓌~! 쿠쿠쿡.. 좋아하던 친구들이랑 모조리 한반이 됐기 때문.. 선생님도 좋아하는 샘이 되셔서.. ^^ 아아.. 오늘 옛날에 올리던 양보다는 많죠? 많다고 해줘요~! 으으.. 어쩌다가 메모를 봤더니.. 쩝... 무슨 메모가 그리 많이 와있는지.. 아.. 저를 남자로 착각하시던 분들이 계시는데.. 저 여잡니다....TT 어엿한 소녀.. 캬캬캬..^^ 미경이 언닛! 차라리 편지를 보내..TT 메모로 도배하지 말구.. (남말한다..) 도도만땅아.. 너두 미투다.. 쩝... 그럼.. 이만 잡담을 끝내겠습니다.. 해퓌한 하루가 되시길..^^ 내일은 토욜~! 신입생 들오는 날.. 캬캬캬.. ^^ 그럼 /.. Page : 14 / 14 진짜 줄입니다.. 아.. 글 읽으실때.. 오타가 있어도 그냥 그러려니.. 해주세요.. TT 죄송.. [번 호] 15208 / 21182 [등록일] 2001년 03월 03일 14:54 Page : 1 / 11 [등록자] INNOCENTELF [조 회] 963 건 [제 목] 드래곤의 일기(15) ─────────────────────────────────────── 372년 8월 날짜 : 5일 날씨 : 기분 드러븐데 날씨는 왜이리 좋은지.. 쩝. 황당하다. 할말을 잃었다. 나는 잠시 내 옆에서 버벅대고 있는 카라드시크를 바라보았 다. 다른 드래곤들은 일찌감치 고개를 푸욱 내리깔고 땅만 바라 보고 있었다. 이게 대체 뭐단 말인가? 나는 예전에 내 레어가 있던 곳을 바라보았다. 말 그대로 예전이다. 지금은 폐허가 되어 있었기에.. 비죽비죽 솟아나온 돌무더기와 금화들. 예전에 내 레어가 이곳에 있었던 것을 짐작해 주는 물건들. 곳곳에는 물웅덩이가 고여 있었고 나는 그것을 발로 첨벙첨 벙 밟으며 잠시 회상에 잠겼다. 내가 처음 성룡이 되었을 때 받은 선물이 바로 이 레어다. 연, 6천여년을 함께한 집이 이리도 처참하게 부서져 있을때 의 심정.. 아느냐? 아아!! 이게 설마 부실공사였단 말인가! 지금까지 모아놓은 온갖 보물들과 서적들! 으갸갸갹~! 머리 빡 돌아 버린다. "설명.. 해 줘...." 내 말에 자신이 죄를 지은 것처럼 차마 내 얼굴을 쳐다보고 설명을 하지 못하겠는지 카라드시크는 고개를 푹 숙이고 말 문을 열었다. "저기.. 그게, 저번에 그 비가 엄청나게 왔던날 있잖습니 까..?" 기억 하지. 내가 그때 비맞고 정신 잃었던 날. 생각하니 씁쓸하다. 그때 도둑 길드로 가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저 늙으면 주책이라니까! 고이 레어로 돌아가지 않고! 갑자기 화가 무럭무럭 나는 나였다. "본론만 말해! 본론만! 이게 왜 이렇게 된거냐고! 너 우리말 못알아 먹어? 그래~ 나 지금 반 미쳐있는 상태니까 어디 완 전히 미쳐보자!" 나의 가녀린 발에 사뿐히, 말 그대로 사뿐히 즈려밟히고 한 마디로 내 밥이 된 카라드시크는 본론을 얘기했다. 씹, 한마디로 그 망할 골드 드래곤 프가크리스와 우리 블루 일족의 즈리카리안이 내 레어 앞에서 충돌했다가 프가크리 스가 그 거대한 몸을 내 레어로 부딪혀 들어왔다. 안그래도 비가 많이 와 약간 질퍽했던 산인데 그 거대한 몸 이 내 레어 지붕을 치고 들어오니까 레어가 그 무게를 견디 지 못했다.. 그거지? 아아~! 내가 미쳐미쳐! 그놈들 저번에 치고 박을 때부터 알아봤어! 드래곤 싸움에 레어가 무너진다더니.. 내 레어가 꼭 그꼴이잖아? 다행히 부실공사는 아니었군. 하긴 울 마미가 어떤 사람인데 부실공사를 해? 드워프들이 하직하고 싶어 단체로 환장하지 않았으면 그럴 일은 없겠지. "두놈다.. 불러와.. 반항하면 반 죽여놓고 데려와." 침착하도록 낮게 깔린 내 목소리에 아니 정확히 말해서는 음산한 내 목소리에 이 자리에서 벗어나자는 욕망이 강했던 블루 드래곤들은 서둘러 두패로 나뉘어 그 망할놈들을 끌고 오기 위해 제각각 사라져 버렸다. 눈치 챘겠지. 내가 그놈들을 고이 데려오면 가만 두지 않을 것이란 것을.. 십여분의 시간이 지난 후에 내 앞에 두 드래곤의 거구가 떨 구어졌다. 드래곤인 상태로 죽도록 맞았나 보군. 그래도 비늘이 보호해주니 에잉~! 이건 안때린만 못하구먼! "이 쉑~! 감히.. 감히~~!!" 마.. 말도 나오지 않는다. 하아, 하아, 심호흡을 하고.. 험험, 목청 가다듬고.. "이 쉑들~! 빨랑 폴리모프 하지 못해? 나보고 올려다 보라 고? 아직 정신을 못차렸구나!! 그냥 죽여버려!!" 고래고래 소리치는 나를 카라드시크가 목숨을 걸고 간신히 뜯어 말려 나는 이성을 되찾을 수가 있었다. 흥분했나 보군. 내가 이성을 되찾을 때 대략 14~15세 정도로 추정되는 인간 소녀, 소년들로 폴리모프한 이놈들은 나의 광포한 눈에 움 찔 거리면서도 서로를 야리는 것은 잊지 않았다. "눈 안깔어! 이것들이 반성은 못할망정 눈 치켜뜨고 야려? 앙?" 나에게 야린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기분이 나빴다. 어쩌면 지금까지 모아 두었던 스트레스를 이놈들에게 퍼부 어 대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내 레어가 이렇게 됐다는 것에 대해 네놈들의 공이 아주 컷다고 들었다." 삐죽삐죽 올라오는 이마의 힘줄을 손으로 지긋이 눌러주며 나는 이를 앙다물고 한 마디씩 내뱉었다. 혈압은 노인 건강에 좋지 않은데.. "그게 아닙니다. 수장님! 프가크리스가 먼저 수장님을 욕보 이길래.." 새침한 표정으로 푸른 머리를 가진 여자아이가 한 말이었 다. 나를 욕보여? "그말 다시한번 해보련?" 내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즈리카리안에게 말하자 프가크 리스를 향해 혀를 쏙 내밀어 보이던 즈리카리안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 그대로 미주알 고주알 나에게 퍼붓어 대 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뭐야뭐야? 프가크리스가 내가 약해 일족들에게 쓸모없는 드래곤이라고 말하는 것을 즈리카리안이 울컥해서 둘이 붙었다는 것 아 냐? "저런 괘씸한 놈." "수장님! 골드 드래곤과의 전면전을 펼치는 한이 있어도 이 번엔 그냥 넘어가지 못하겠습니다!" "제 손으로 그런 망발을 지껄인 저놈을 죽여놓겠습니다!" 겨우 그런 이유로 싸웠다 그말이지..? 왠지 내 레어가 불쌍해 지는군. 왜 하필 내집 앞마당에서 싸웠다냐? 프가크리스란 소년의 모습을 하고 있는 드래곤은 블루 드래 곤들의 이러한 반응에 얼굴이 하얗게 변했으나 냉정한 모습 을 유지하고 있는 것만은 변하지 않았다.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는 즈리카리안. 나는 왠지 이놈보다 저년이 더 나쁘게 보였다. 쩝. "애 쫄잖냐. 그만 해둬라. 아깝지만 레어는 다시 지을수밖 에.." 예상외의 나의 반응에 거칠게 항의하는 내 일족들이었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 말빨이 조금 세진 나는 한마디만 내뱉 고는 프가크리스에게로 다가갔다. "얘가 한말 다 맞는 말이잖냐?" 잠시 내 처분에 어리벙벙해 있던 프가크리스. 내가 다가가자 흠칫 하는 모습이 꽤 귀엽다. "걱정 말아라. 골드 일족의 성룡이여.." 내가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약간은 얼굴이 붉어진 이 꼬마는 곧이어 조그맣게 웅얼거렸다. "죄.. 죄송해요.." 그런 프가크리스를 노려보던 카라드시크는 나에게 물어왔 다. "수장님의 명에 따르겠습니다. 하지만 레어는 어떻게..? 당 분간 제 레어에서 같이 생활하시는 편이 어떻겠습니까? 빠 른 시일내로 드워프들을 닦달해 레어를 복귀시켜 놓겠습니 다." "난 신혼 드래곤을 방해할만큼 생각이 없진 않아." 그렇다. 카라드시크는 약 6백여년전에 결혼을 했던 것이다. 그것도 성격 더러운 레드 일족과.. 한참 깨가 쏟아질때에 내가 찾아간다면 얼마나 거북해 할것 인가? 그정도 눈치는 아무리 둔치인 나도 챈다. 어느새 아까 죽 일것처럼 날뛰던 내 성질도 많이 가라앉았다. 쩝, 그러고 보니 나도 다혈질인가? 쿠쿡, 그러고 보니 앞집의 집이 비어 있었지? 블랙 드래곤 카이오네스. 당분간 네집 신세좀 져야 겠다. 어차피 유희 나가서 몇백년 뒤에나 돌아올 놈이니 빈집좀 쓴다고 해서 설마 죽이기야 하겠어? 왠지 내 주위에서 말썽이 아주 많이 일어난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 나였다. 그럼 앞집으로 날아가 볼까? 카이오네스가 돌아오기까지 몇백년 동안은 수면을 취해야 겠다. 잊고 싶은 기억이 아주 많기에.. -------------------------------------------- 아아.. 으음.. 이걸 어째야.. 쩝.... 몇백년은 잠들듯한 시크리오프스.. 캬캬.. 2부에서 잠시 언급만 되었던.. 프가크리스와 즈리카리안(기억 나시나여?) 캬캬캬.. 여기서 조연으로 출연.. ^^ 그럼.. 오늘 저녁에 뵙죠.. ^^ [번 호] 15211 / 21182 [등록일] 2001년 03월 03일 15:52 Page : 1 / 6 [등록자] INNOCENTELF [조 회] 944 건 [제 목] 드래곤의 일기(16) ─────────────────────────────────────── 몇 년째 잠들었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니 당근 날짜도 모른다. 레어안이라서 날씨도 모른다. (도대체 아는게 뭐야?) 깊은 잠에 빠져들어 있었다. 꿈속에서도 나는 유희 나갔던 그때의 악몽을 꾸었고 고로 무지 심각해 눈물까지 흘렸던 것 같다. 누군가가 내 몸을 툭툭 치고 있다. 누구지? 누가 내 잠을 방해하는 거지? 툭툭치던 놈은 이제는 아에 퍽퍽치기 시작했다. 감기는 눈을 억지로 떠본 나의 눈앞에 아주 익숙한 인물이 보였다. 카이오네스! 반갑군. 아주 반가워.. 내가 유희를 나가게 한 근본적인 이유가 되는 놈! 모두 이놈이 유희를 나가지 않았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 다! "친구.. 내 레어가 왜 이모양 인지 말해보실려나?" 블랙 드래곤 특유의 새까만 비늘을 자랑하며 카이오네스는 나에게 으르렁 거리며 물어왔다. 잠시 주위를 두리번 거리는 나. 헉스~! 이게 왠일? 레어 안은 도둑이라도 든 듯 난장판이었 다. 한쪽 책장에 쌓아 놓았던 서재들은 모두 밖으로 굴러다니고 있었고 보물 창고의 문은 뜯겨져 나가 레어 바닥에 보물들 이 깔려 있고 온갖 잡동사니들이 난리를 쳐놓은 레어 안을 보며 나는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쩝, 내 잠꼬대가 너무 심했나 보다. "집.. 관리를 해놓으라고 했더니 아주 잘하는 지경일세.." 하핫, 그렇게 노려보지 말라구. 시꺼먼 눈깔로 노려보면 어쩌라구? 나도 충분히 쫄았다네. 친구. "오오~! 친구! 유희는 잘 다녀오셨나?" 일부러 카이오네스의 말투를 따라하며 말을 돌리려던 나였 지만 돌부처같은 카이오네스. 절대 그런 싸구려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는다. "지금 그렇게 말할 처지가 아닐텐데, 친구?" 나는 이놈이 폭주했을 때 어땠었는 지를 충분히 기억하고 있다. 아주 깔끔을 떠는 이놈. 다른건 다 용서가 되도 자신의 물 건을 잃어버렸거나 집안이 더러운 것은 못참는 이놈. 지금 이놈의 성격은 틀림없이 폭주 모드 일것이다. 그러니 화를 당하기 전에 피하는게 상책이지. 나는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하다가 레어의 입구를 향해 달렸 다. 헥헥, 짧은 발로 달리려니 힘들군 그래. 레어의 입구에 도착한 나는 상공을 향해 날아갔다. 설마 쫓아오지는 않겠지? 그런 내 옆으로 애시드 브레스가 공기를 쫘~악 가르며 지나 갔다. 쪼.. 쫄았다. 이거.. 정통으로 맞을뻔 했잖아? 뒤를 돌아보니 나를 바싹 쫓아오고 있는 카이오네스. 제기랄.. 도망가기에 바쁜 내 귓속에 사형 선고와 같은 처절한 절망 의 한마디가 울려퍼졌다. "이런? 빗나갔네. 친구. 너무 서운해 하지 말게나. 아직 브 레스를 뿜을 여력은 많이 남아있으니.." 죽일놈. ----------------------------------- 아아.. 저는 분명히.. 1편 더 올렸습니다.. TT 상하로 나뉘어 질지.. 상중하로 나뉘어 질지는.......... 모르겠네염.. 짧지만.. 그래도.. 카이오네스의 등장입니다.. 하핫..^^;; 시크리오프스가 보통 쫀게 아니네여.. 저녁에 올리려 했는데.. 어쩌다 보니까.. 하핫.. 저녁에.. 한편 더 올라갑니다.. 지금.. 배가 고파서..TT 더이상 쓸 기운이 없기에.. 쩝.. 저녁에 올라와서.. 제목이 하면은.. 상하로 나뉘어 진거고. 중이면.. 하가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시크리오프스의 하루의 일기가 다 끝나지 않았기에 이럽니다..^^; 아마.. 이번 하루의 일기는.. 좀.. 분량이 많을 듯한.,. 쩝.. 그럼.. 이만 물러갑니다.. ^^ p.s 밥먹으러 가야짓~! 랄라~! 끝내 나는 이 망할 미친 드래곤의 손에 끌려 레어로 질질 끌려 와야만 했다. "친구, 아무리 레어가 박살 났다고는 하지만 내 레어에서 지내는 것은 너무하지 않은가?" 이 미친 드래곤. 넌 친구도 아니야. 친구가 집이 없어져 같이 지내는게 그렇게 불만이냐? "누가 오는군." 카이오네스의 말에 무심코 뒤를 돌아본 나. "시.. 시크리오프스님! 안녕하세요! 이번에 수면에서 깨셨다 고 해서.." 프가크리스. 이놈이 어째서 내가 수면에서 깬 것을 알았냐고 묻고 싶겠 지. 쩝, 미친 드래곤한테 쫓길 때 로드님의 레어까지 갔었다. 로드님께서는 나를 붙잡고 선물을 아주 잘 받았다는 말을 연거푸 하셨다. 선물? 언제? 내가? 난 절대 선물 같은걸 주지 않는 한마디로 쫌생이 이다. 그런 내가 선물? 택도 없는 소리. 하지만 내 생각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미친 드래곤이 내 뒤에 서서 살기 등등한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기에.. 마침 그때 로드의 레어로 찾아온 입싸기로 소문난 화이트 드래곤 하이카나이스가 이 모습을 보고는 다른 드래곤들에 게 찾아가 엄청나게 재잘거렸다. 물론 내가 카이오네스에게 두들겨 맞는 장면도 아마 생중계 로 연재 됐을 것이라 나는 믿는다. 한마디로 개쪽 당했다는 거다. 것도 대대적으로! "무슨 일인가? 골드 일족의 성룡이여.." 나는 어느새 지배자의 모드. 즉 있는 폼 없는 폼 다 잡으며 위엄있는 목소리로 물었다. 뒤에서 몽둥이로 내 머리를 죽어라 치는 카이오네스. 망할. 이미지 다 버리네. 난 여성이라구! 여성! 남성인 주제에 감히 결혼도 안한 여인에게 이리도 폭력을 가해? (내가 여자라는 자각이 있었는지 생각해보라. 그 말투하며 폭력성. 절대 그렇게 생각되지 않으리라 믿는다. 한마디로 나 아쉬울 때만 여자를 찾는다 이거다.) "저기.. 프라니바투스님께서 이번에 근신에서 풀려 나셨습니 다." "근신? 왠 근신?" 재수 없는 이름.. 그 망할 드래곤. 근신을 받았단 말이냐? 음하하핫, 잘됐다. 잘됐어. 6천년 묵은 체중이 내려가는 구나. "저기.. 기억 안나세요? 블루 일족들이 프라니바투스님의 처 벌을 로드님께 부탁드렸던거.." 설마 기억나지 않을까? 내 일생 일대의 최악의 생애였던 그 유희를.. 그일 때문에 근신을 받았다 이거지? 캬캬캬~! 잘됐다. 잘됐어! "그런데 그게 왜?" "그게.. 저기.. 그게.." "빨리 말햇!" "이곳으로 오시고 계시거든요?" 허억~! 복수하려 온단 말이냐! 그렇다면 진짜 나쁜 드래곤이며 쪼잔한 드래곤이다. 말이 끝나자 마자 지축이 울리는 발걸음 소리.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건가?) 황금빛의 거대한 몸체. 이쁘긴 이쁘다. 하아~! 쓸데없는 생각을 좀 줄여야 겠군. "너! 꺼져! 여기가 어디라고 기어들어와? 나너 싫어." 나는 뒤에 든든한 아군이 있기에(카이오네스이다. 설마 쟤 도 나를 배신 때리진 않겠지?) 맘놓고 개길수 있었다. 내 팔을 부러뜨린 전적을 가지고 있는 이 녀석. 내가 언젠간 기필코 니 두다리와 두팔과 그리고 저 모가지 를 비틀어 주마. 음하하핫~!(이거 미쳤나 보군.) "죄송합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내 앞에 부복한 자세로 고개를 숙이는 이놈. 내가 뭘들었지? 잘못들었나? 잘못들었구나. 그렇게 콧대가 망치로 쳐도 낮아지지 않는 놈이 나한테 사 과를 해? 잠시 벙쪄 있는 나를 뒤에서 쿡쿡 쑤시는 우리의 웬수 카이 오네스. "쟤 발저리겠다." 쿠쿡, 드래곤이 그 거대한 몸체로 무릎 꿇는 거 보셨나? 잘 꿇리지도 않는 무릎을 억지로 비틀어서 꿇고 있는 모습. 약간의 안쓰러운 마음이 뒤따른다. "일어서! 이 바보 새끼! 그런다고 내가 너를 용서하겠다는 것은 아니야!" 아아~! 정말 좁아 터지겠군. 성룡이 된 드래곤이 4마리나 그 좁은 레어안에 있으려니.. 쩝.. ------------------------------- 이거 올릴까 말까..? 무지 고민.. 쩝..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누가 글에서 말씀하셨져.. 제가 딱 그꼴입니다...... 으으음.. 다음회.. 예고.. 시크리오프스가 어쩌다가.. 인간 아기를 키우게 됩니다.. 그러면서 벌어지는 헤프닝들.. 쩝.. 이거이거.. 어째.. 중편으로 끝날것 같은 예감이.. 문득문득 드는군요.. 으음.. 이거 후딱 해치우고.. 마법사 자서전도 완결 봐야 되는뎃~! 아움...--;; 미경언닛.. 조금만 참아주..TT 아.. 그리고 소감 보내주신 님~! 감사합니다~! 하핫........ 그럼... 내일.. 뵐수 있으면 뵙죠..^^;; [번 호] 15243 / 21119 [등록일] 2001년 03월 04일 10:53 Page : 1 / 11 [등록자] INNOCENTELF [조 회] 980 건 [제 목] 드래곤의 일기(18) ─────────────────────────────────────── 681년 3월 (3백년을 잠만 퍼잤단 말이냐!) 날짜 : 2일 날씨 : 눈이 와서 그런지 쌀쌀하다. 카이오네스는 로드님을 뵈러 간다고 하고 나가버리고 나는 서적을 조금 읽다가 곧 질려버려 뒹굴거리고 있었다. '뒹굴, 뒹굴, 뒹구르르르르~ 쾅~! 우르르~' 이게 무슨 소리단 말인가? 레어에서 신나게 뒹굴거리던 놀이를 하고 있던 나는 방금 내가 부딪힌 벽을 바라보았다. 돌가루가 사방에 날리고 인간의 어지간한 집한채를 처넣을 수 있을만한 크기의 구멍. 이.. 이거 보면 그 새끼 또 발광하겠네. 나는 어제의 그 사건을 되풀이 하고 싶지 않았다. 치워야지. 치워야지.. 모를꺼야... 안다고 해도 잡아때면 그만이지 뭐. 낑낑 거리며 거대한 빗자루로 돌가루를 쓸고 조금 큰 돌들 은 프라니바투스의 레어 안으로 텔레포트 시켰다. 케케~! 머리에서 운석소환 한번 받아봐라. 일단 모두 치운 나는 뭔가가 찔리고 걸렸다. 이거 레어가 더 넓어 졌는걸? 쩝.. 그놈이 와서 발광하기 전에 내가 먼저 피하기로 마음 먹은 나는 인간으로 폴리모프를 해서 산 아래로 내려갔다. 눈이 와서 그런지 내려가기가 불편하군. 쿠쿠쿠, 여기서 조금만 꼼지락 대다가 올라가야지. 내가 한일 아니라고 해야지. 캬캬캬, 한마디로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는 거지. 크크크.. 그.. 그런데 조금 춥다. 당연하다. 나는 말 그대로 소매없는 나시에 약간은 짧은 치마를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추울만도 하군. 저번에 내가 유희를 끝낼때가 여름이라서 그런지 옷이 모두 여름옷이다. 쩝.. 뭐, 설마 감기에 걸리랴.(여름에도 비맞고 감기 걸렸으 면서 겨울에 이러고 다니는데 감기 안걸리길 바래? 바랄걸 바래라.) 조금 천천히 걷다가 나는 곧이어 트롤 세 마리를 발견했다. 먹어버려? 어제 깨어나서 암것도 못먹었는데.. 트롤 옆으로 다가가니 트롤들은 무슨 흰 보따리 하나를 두 고 세상에서 제일 공정한 게임! 가위, 바위, 보로 주인을 정 하려고 했다. 하지만 곧이어 나타난 나를 보고는 겁에 질려 다들 도망가 기에 바쁘고 나도 뭐 귀찮아서 잡지는 않았다. 그런데 뭘 가지고 그렇게 처절한(?) 게임을 했지? 보따리를 조심스레 들춰본 나는 곧이어 그것이 태어난지 얼 마 되지 않은 인간 아기라는 사실을 깨닳았다. 와~ 살이 보들보들 연하게 생긴게 맛있겠다. 나중에 본격적인 식사를 하기 전에 위장을 풀어주기 위해 먹는 것도 괜찮겠군. 그 트롤들이 싸울만 했군. 그래. 이렇게 연하게 생겼으면 먹을 때 씹히는 맛도 죽이지. 나는 아기를 들고 요리를 하기 위해 레어에서 저지른 일은 까맣게 잊고 다시 레어로 돌아갔다. 간식거리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뭐, 어쨌든 맛은 죽여줄게 틀림없다. 헤헤~ 첨 먹어보는 거지만 그냥 씹어먹다 넘기면 되겠지? 내가 그런 생각을 하며 행복에 겨워 있을 때 잠자고 있던 아기가 깨어났다. 잠시 나와 눈이 마주친 아기는 나를 보며 방실방실 웃어대 는게 아닌가? 허억~ 귀.. 귀엽다. "아우, 부부부." 침을 흘리며 입을 오무락 거리는 모습이 너무 귀여운 나머 지 나는 빤히 아기가 하는 꼴을 지켜보았다. 너무 이쁘다. 나를 보며 방긋방긋 웃는 모습이.. 어떤 파렴치하고 인정머리없고 싹수 노란 새끼가 아니고서 야 위장 운동을 위해 이런 귀여운 아기를 먹을 수가 있겠 는가?(내가 방금 그런 놈이 될뻔 했다.) 키우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는 내 위로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비춰졌다. 잠시 올려다 보니 더럽게 괴팍한 얼굴을 안그래도 있는 그 대로 찡그리며 나를 바라보고 있는 카이오네스. 그러고 보니 찔리는게 있다. "그거 뭐냐?" 내가 품에 안고 있는 아기를 바라보며 카이오네스는 발톱으 로 아기를 가리켰다. "아기." "먹을려구? 맛있겠다." "미련한놈. 내 아들이다." 잠시 아기의 몸을 감싸고 있던 천을 들춰내며 딸인지 아들 인지 확인한 나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자 띠껍다는 듯이 자신의 잠자리로 쿵쿵거리며 가는 카 이오네스의 한마디. "너 그거 먹으려다 맘바껴서 키우려고 하는 거지?" 눈치.. 디따 빠르다. "레어가 왠지 넓어진 것 같군." 눈도 좋은 놈. 나는 그 말을 듣고 딴짓 했다. 아기를 안고 괴상한 표정을 보여준다던지 아니면 레어를 한 바퀴 돈다는지. 그런 짓을 하며 나는 카이오네스에게 내가 그랬어~! 라는 암묵적인 행동을 팍팍 하고 있었다. "뭐, 넓어져서 좋기는 하군." 이미 모든 것을 눈치채고 말하는 카이오네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모르고 혼자서 기쁨에 잠겨 있었다. '넘어갔다. 그냥 넘어갔어. 캬캬캬, 역시 나의 뛰어난 오리발 솜씨는 아무도 따라올수가 없다!' "앙.. 앙.. 응애~!" 갑자기 우는 아기. 당황한 나. 자연히 카이오네스를 돌아보았다. "시끄러워. 먹어버려 그냥." 한마디만을 던지고 고개를 돌려버리는 매정한 놈.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어르고 달래도 도저히 그치지 않는 아기의 울음소리. 카이오네스의 머리에 힘줄 하나가 솟아나는게 보인다. 곧이어 폴리모프를 한 카이오네스. 짧은 스포츠 머리형의 검은 머리에 날카로운 눈동자. 그리고 가는 턱선. 머리만 길어라. 그러면 여자 되겠다. 카이오네스는 아기를 받아들더니 나에게 무엇을 건네며 나 직이 말했다. "똥쌌어. 이거 버리고 와." 아기가 힘들여 만들어 놓은 작품을 가지고 나는 레어밖으로 나가 지나가는 오우거에게 그것을 주고는 다시 들어왔다. 냄새가 밴 것 같아~! 레어 안으로 다시 들어가자 능숙하게 기저귀를 갈고 있는 카이오네스. 대체 유희에서 뭘하다 온거지? 나에게 아기를 턱~! 하니 넘겨주며 본체로 돌아가 눈을 감 고 있는 카이오네스. 어째 검은 얼굴이 안그래도 더 검게 보이는 것은 나만의 착 각일까? 잠자는 아기의 얼굴을 보니 나까지도 졸리다.(깨어난지 얼 마나 됐다고..) 그렇게 인간 아기의 엄마가 된 나의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 다. ----------------------------------------------- ^^ 인간 아기.. 아들이래네요.. 쩝.. 어색하죠? ^^;; 으음..... 응원해주세요~! 시크리오프스가 아기를 잘 키울수 있도록~! 그럼 진짜.. 엽기적으로 키우지 않고.. 정상적으로 키울게요~! ^^ 아아.. 제 글을 그렇게 많은 분이 봐주신다는 것에 대해서.. 솔직히.. 조금 당황했습니다.. (좋아서 당황했겠죠? 쿠쿡..^^) 비판 많이 부탁드립니다..^^ 그럼... 행복한 하루가 되시길 기원하면서.. ^^ p.s 아마도.. 제가 잡담이 제일 긴듯한.. 쩝.. 줄이겠습니다.. TT 이거 말한게 한두번이 아닌듯 한데.. 후움.......... 헤헷..^^ 그래두 잡담 안지겹져? 그렇다구 말해주세요오~!(미. 미쳤나 봅니다.. 쩝..^^;;) 하핫...... 쓰는 제가 어색합니다..^^; [번 호] 15271 / 21119 [등록일] 2001년 03월 05일 03:38 Page : 1 / 11 [등록자] INNOCENTELF [조 회] 977 건 [제 목] 드래곤의 일기(19) ─────────────────────────────────────── 681년 3월 날짜 : 10일. 날씨 : 우리 시오스와 산책하기 좋은 날씨. 나는 내 아기의 이름을 저번 유희때 나가서 사용했던 가명 시오스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요즘 아기에게 푸~욱 빠져 산다는 나를 보러 참 별별 드래 곤들이 다 다녀갔다. 협박성 어린 나의 말에 선물 하나씩을 띵겨놓고 간 드래곤 들. 하핫~! 역시 공갈 하나는 잘한단 말야. 아아,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암만 뚫어지게 봐도 질리지 않는 나의 아기. "그만좀 봐라. 애 얼굴 뚫리겠다." "그래?" 이 말을 하면서 나는 카이오네스의 얼굴을 진짜 무안하도록 뚫어지게 쳐다 보았다. 카이오네스의 옆 이마에 솟아나는 거대한 땀방울. "내.. 내가 뭘!" "니 얼굴 뚫어지나 볼려구. 내가 우리 아기 얼굴 보다가 뚫 어지면 안되자너. 너한테 시험 해보는 거야. 안뚫어 지네. 뭘." 어이가 없어서 할말을 잃은 카이오네스를 보며 나는 장난스 런 미소를 지었다. 쿠쿡, 가끔씩 놀려먹는 것도 꽤 재미있단 말야. 카이오네스는 기가 막히다며 레어 밖으로 날아가 버렸다. 평생~ 오지 마앗~! 아직도 인간의 상태로 폴리모프 해 있는 나. 생각해 봐라. 드래곤 같은 거구가 발톱의 때보다도 조그마 한 아기를 보고 있는 모습을.. 엽기적이 모습이 상상되지 않느냐? "시오스~! 넌 엄마가 제일 좋지? 그렇지?" 아기를 들어올리며 별의별 말을 다 던지는 나. 헤헤~! 시오스 웃는 모습이 너무 귀엽다. 커서 여자 꽤나 울리겠군. "시오스~!" 저 목청 좋은 소리. 누구냐 하면 블루 일족의 성룡 즈리카리안이다. 거구의 드래곤의 모습이 아닌 푸른빛이 나는 머리를 어깨까 지 기른 붉은 눈동자의 소녀. 즈리카리안은 레드 드래곤과 블루 드래곤의 혼혈이다. 하지만 블루 드래곤의 파워와 성격을 가지고 있어 일족으로 치부되는 것이다. 달려 오자 마자 내게 인사는 하는둥 마는둥 아기부터 받아 안는 즈리카리안. 이러서 또다시 저 멀리서 달려오는 소년. 프가크리스. "시오스~!!" 오늘은 즈리카리안이 이겼군 그래. 이 둘은 3일 전부터 내 레어로(정확히는 카이오네스의 레 어.) 쳐들어 와서는 기껏 한다는 일이 내 아기를 봐주는 일 이다. 이곳에서도 묘하게 경쟁심이 이는 둘. 아기를 먼저 안으려고 별짓을 다한다. 쩝. 프가크리스를 향해 혀바닥을 내보이는 즈리카리안. 아아, 내눈엔 가증스럽게 보이누나. "시크리오프스님을 뵙습니다." 곧이어 나를 보고는 인사를 하는 프가크리스. 골드 드래곤이지만 그래도 인사도 안하고 애부터 챙기는 즈 리카리안 보다는 네가 백배 더 낫다. "수장님을 뵙습니다." 그제서야 내게 인사를 하는 즈리카리안. 넌 이미 나에게 점수 깎였어. "저기요오~! 수장니임~! 울 인간들의 시장에 가요~!" "거긴 왜?" "시오스 옷하구 기저귀 사러요~!" 하긴.. 그것도 사야 되지. "그래, 가자. 심심한데 잘됐다." 그렇게 우리는 가까운 도시 안으로 텔레포트를 시전했다. 울 시오스한테 무엇을 사줄까? 우글우글, 시끌 벅적. 인간들의 시장이란 참으로 시끄럽다. 즈리카리안은 이곳에 심심하면 자주 놀러 왔었는지 곧이어 나를 아기 용품점으로 데리고 갔다. 용케도 시끄러운 소음에 굴하지 않고 내 품에서 자고 있는 시오스. 아아, 천상의 얼굴이로다. (지눈에 안경이다.) "이것 어때요? 넘 이쁘죠?" 분홍색 여자 아기가 입는 옷을 가지고 오는 즈리카리안. 울 애기는 남자라구! 근데.. 이쁘기는 하다. "응. 그것두 사자." "이거 어떠세요?" 정중히 내 의사를 물어오는 프가크리스. 프가크리스의 손에는 아기용 수건과 장난감이 들려 있었다. "헤헤, 그냥 여기 있는거 다 사갈까?" "꺄악~! 그것두 좋겠네요~!" 결국.. 고르긴 뭘골라? 그 가게를 통째로 다 사버렸는데.. 그곳에 있던 모든 것을 텔레포트로 레어 안으로 옮겨 놓고 우리는 오랜만에 시내에 나온 김에 맛있는 음식을 먹자고 합의를 봤다. "우리 뭐먹을까?" 고급스런 레스토랑 보다 선술집이 더 좋은 우리들. "맥주 큰걸루 3잔하구 아기용 이유식, 그리고 스프와 빵 조 금요." 내가 주문을 하자 우리는 그것을 기다리며 마냥 행복한 표 정만을 지었다. "와우~ 가서 인형놀이 하면 딱이겠네요." "인형놀이라닛! 울 시오스는 인형이 아니야." 즈리카리안과 내가 이러고 있을 때 프가크리스는 물만을 홀 짝이고 있었다. "그런데요.. 이곳.. 조금 살기가 느껴지는 데요?" 그건 아까부터 느꼈다. 정확히는 프가크리스에게 살기가 느껴진다. 선술집에 있는 주정뱅이들이 아까부터 프가크리스를 노려보 고 있었다. 왜 노려보는 지는 충분히 알 것 같군 그래. 아마도 즈리카리안과 나때문일 것이다. 왜냐구? 미모가 왠만해야지. 캬캬캬~! "상관하지마. 음식이나 먹자구." 어느새 나온 스프에 빵을 찍어먹으며 맥주를 홀짝인 나는 이유식을 조금 떠서 우리 시오스에게 먹여 주었다. 입맛을 다시며 먹는 이쁜 우리 아기. 앙~! 행복해~! 이런게 엄마의 기분이라는 거구나. 볼에 쪼~옥 소리가 나며 아기에게 키스를 해준 나. 이제는 이 미친놈들이 우리 아기까지 노려본다. "씹, 눈깔 안깔어? 어디서 야리고 지랄이야?" 아아, 성질 죽여야 되는데.. "참으세요. 시크리오프스님." "저런것들까지 신경쓰다니요. 그만 가시죠." 기분이 매우 더러워진 나는 그 놈들을 향해 소환 주문을 외 웠다. 그리고는 그대로 그 가게를 나와버렸다. 내가 소환한게 뭐냐고? 골렘. 쿠쿠, 던젼에서 잠자고 있던걸 깨워서 소환했으니 고생좀 할꺼다. ------------------------------------------- 어설픕니다.. 어설픕니다... 주겨주세요.... 꺄앗!~~~~~~~~~~ 어제.. 일욜날.. 6시에 자서.. 지금..제가 일어난 시각은 새벽 3시 30분 정도 되써여.. 쩝.. 무..무슨 잠을 그때부터 잤냐고 묻고 싶으시겠져.. (아닌가?) 그냥... 침대에 누워이따 보니까.. 이거는 어제 올리려 해떤건데..... 흐윽.. 근데. 제꺼 잡담이.. 길다구 하더군요.. 글구... 다른 설.. 안올린다구.. 혼나씀니닷.. (미경언니.. 미안해.. 여즘 그 설.. 슬럼푸 라뉘까..) 쩝..... 어째뜬.. 많이 봐주셔서.. 진짜 감사합니다.. 그런데요. 여기서 젤 인기있는캐릭이 뭔가염? 헤헤~! 전 개인적으로 프라니바투스가 머시떠여..TT 잡담.. 줄여야 되는데...돌 날아오는데.. 이만 쓸께염.. 흑흑.. 심심한데. 더쓰구 싶은데.. 흑...... 님들.. 지금 꿈나라에 가있겠져? 저두 조금더 자야겠네요.. 행복한 하루가 되시길 기원할께요.. [번 호] 15315 / 21119 [등록일] 2001년 03월 06일 22:38 Page : 1 / 11 [등록자] INNOCENTELF [조 회] 937 건 [제 목] 드래곤의 일기(20) ─────────────────────────────────────── 685년 6월 날짜 : 16일 날씨 : 비가 와서 그런지 산책할 날씨는 되지 않는다. 어느새 내가 우리 시오스를 키운지 4년이 조금 넘었다. 시오스를 보고 있노라면 왠지 내 자신이 자랑스러웠고 대견 했다. 음하하.. 잠시 잠들어 있는 시오스의 금빛 머리에 입을 맞춘 나는 조 심히 레어 밖으로 나왔다. 이곳은 지금 완벽한 내 집이다. 얼마전에 완공된 내 집으로 다시 옮겼기 때문이다. 카이오네스는 손뼉을 치며 노래를 불렀고 나는 그런 카이오 네스를 드래곤인 모습으로 지긋이 밟아주었다. 예전의 레어보다 꽤 깨끗해진 내 레어는 내가 봐도 흡족해 할만큼 잘 만들어 졌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맘에 쏘옥 든 것은 내가 인간으로 있 을 때 시오스와 지낼 방이 레어 한쪽에 만들어 졌다는 것이 다. 레어 한쪽에 있는 넓다란 바위에 걸터 앉아 비온뒤의 모습 을 바라보고 있자니 내 기분이 시원해졌다. 아아, 우리 시오스가 크면 나와 같이 여행을 다니면 참 좋 겠다. 유희라면 질렸지만 시오스와 함께 다닌다면 그것도 꽤 괜찮 을 것 같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몸 하나는 지킬수 있게 마법을 가르쳐야지. 이왕 이면 카이오네스에게 검술도 가르쳐 달라고 해야지. "엄마.." 조그마한 소리에 유난히 청각이 좋은 나는 얼른 뒤를 돌아 보았다. 눈을 조그만 손으로 비비며 내 아들이 레어 밖으로 걸어 나 오고 있었다. 아직 잠이 덜 깼는지 비틀거리며 불안정하게 걸어 나오는 모습에 그만 나는 피식 웃음을 머금고야 말았다. "시오스, 일어났니?" 곧이어 나를 발견하고는 쪼르르 달려와 내 품에 쏘옥 안기 는 이녀석. 참 귀엽단 말야? 안먹길 잘한 것 같지? 비록 로드님과 동족들이 충고를 하고 있지만 나는 이 아이 를 버리거나 간식으로 먹는 상상은 해본적이 없다. 그.. 그렇게 노려보지 말라구! 그래! 가끔 해봤다! "시크리오프스님!" 프라니바투스. 왠일이지? 꼴에 같잖게 당황한 얼굴로? "실버 드래곤 하라이스나스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실버 드래곤 하라이스나스.. 정확히 말해서 내 어머니이다. 그래.. 돌아가셨다고? "시크리오프스님.." 저 새끼.. 왜 저리 슬픈 얼굴을 하고 나를 보는 거지? 그 양반 죽을 때가 넘어도 한참 넘은 것 같던데? 당연한 일을 왜 저렇게 걸고 넘어지는 거지? 기분 더럽군. "왜 그런 눈으로 쳐다 보는 거냐?" 아무렇지도 않은 내 모습을 보고는 의아한 표정이 얼굴에 떠오르는 프라니바투스. 쩝, 그 양반 죽을 때 되서 죽은게 나와 무슨 상관이라고? 내가 죽었나? 왜 저리 죽을 상이야? "시크리오프스님~!" "수장님~!" "시크리오프스!~" 앞의 두 개는 프가크리스와 즈리카리안이 말한 것이고 뒤의 하나는 카이오네스의 목소리 이다. 쩝, 짧은 날개로 참 고생 하는군. "어? 수장님을 뵙습니다." 제일 먼저 도착한 프가크리스는 프라니바투스가 이곳에 있 다는 사실을 깨닫고 고개를 숙였으며 즈리카리안은 간단한 목례만을 했을 뿐이었다. "아아, 왜 이렇게 몰려오는 거지? 어디 초상났냐? 왜 그렇 게 죽을 상들이야?" 아.. 초상 난건 맞구나. "가보셔야 하지 않습니까?" 가보긴 가봐야 겠지. 안가면 불효자식이라고 소문 나겠지? "준비하고 나올테니 기다려." 나는 시오스의 손을 붙잡고 레어 안으로 들어갔다. 방문을 열고 시오스의 옷을 갈아입히던 중 문득 시오스의 작은 손이 내 눈가에 가져가 있다는 것을 깨닳았다. "울지마.. 엄마.. 시오스.. 슬퍼.. 엄마가 울면.. 흑.." 소리죽여 우는 시오스를 보며 나는 그제서야 내 눈가에 흐 르고 있는 액체를 감지했다. "미안.. 엄마가 미안.." 시오스를 부둥켜 않으며 한참을 울어버린 나는 시오스를 안 고 텔레포트를 시전 했다. 약간의 냉기가 풍겨 나오는 레어. 익숙하다. 내가 태어나서 성룡이 될 때까지 자란 장소이기에.. 어머니.. 생각해보면 어머니는 그다지 내게 애정이 있었던 것은 아니 었던 것 같았다. 뭐, 그렇다고 냉담한 모녀 관계라고 생각하지는 말라. 그저 지나치게 평범 했을뿐.. 벌써 여러명의 폴리모프한 드래곤들이 어머니의 레어에 웅 성거리고 있었다. 잠시 마리오네라는 나를 쳐다보다니 드래곤들을 향해 자리 를 비키라는 말을 남겼다. 내 뒤로 서서히 빠져 나가는 드래곤들을 보며 마리오네라는 조심스럽게 내게 말을 걸었다. "시크리오프스님.. 둘만의 작별의 인사를 가지십시오." 그 말만을 남겨두고 내곁에서 떠나버린 마리오네라. 이 냉기가 도는 레어 안에는 나와 시오스만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거대한 은빛 드래곤. 잠자는 듯이 부드럽게 감겨 있는 두 눈을 보니 나는 설마 진짜로 자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이 갔다. "시오스, 네 할머니란다." "할머니..?" 나는 시오스에게 부유 마법을 걸어 몸을 띄운 다음 어머니 의 얼굴 가까이로 날아갔다. "엄마, 엄마.." 자꾸만 울음 소리를 내며 내 옷자락을 부여잡는 시오스의 손길이 다소 불편했다. "그만 갈까? 우리 시오스 할머니한테 인사해야지. 안녕히 주무시라구.." 내가 웃으며 시오스에게 말하지 시오스는 곧이어 실버 드래 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할머니.. 안녕히 주무세요.. 엄마는 이제 제가 지킬께요.." 쿡, 어린 녀석이 못하는 말이 없어. 이거 4살 먹은 꼬마애 맞아? 죽어서까지 호강 하시겠수! 우리 이쁜 아들 인사 받으니 기 분 좋수? 시오스와 바닥에 착지한 나는 가볍게 시오스를 안아들며 다 시 텔레포트를 시전했다. 사랑해요... 어머니.. ----------------------------------- 드래곤의 일기.........TT 그냥.. 연재 하기가.. 조금 힘들것 같네요..TT 이.. 이것도 겨우 올린거라서..쩝.. 밤에 돌아오면 너무 피곤해서.. 으음...... 2~3일에 한번씩 올리기로.. 그렇게.. 제 마음과 합의를 봤습니다.. TT 그런데.. 제가 누굽니까? 변덕이 죽 끓듯이 하는 인간 아닙니까? 하핫^^;; 이번판은... 진짜 어설프고.. 재미 없습니다.. 솔직히.. 오늘 올리지 않으려 햇지만.. 부탁한 언니가 있어서.. 이렇게 어설프고 부족하지만 올립니다.. 다음 회부터는 진짜로 가벼운 마음으로.. 1회때처럼.. 조금.... 엽기적으로 나갈 예정이구요.. 아마도.. 마지막회 빼고는 심각한 내용이 나오지 않을듯한.. --;; 아.. 제가.. 외전을 하나 구상중입니다.. 프라니바투스편인데.. 꽤..잼있게 써지더군요,.. 뭐, 올리지 말라고 하시면 올리지 않겠습니다.. 그럼.. 즐거운 하루 되시길. 696년 5월 날짜 : 14일. 날씨 : 구름한점 보이지 않는 청명한 하늘. "어머니.." 잠든 나를 깨우는 익숙한 손길. 하암.. 잠와 죽겠는데 나는 우리 아들이 부르는 소리를 듣고 는 벌떡 일어났다. 보통 딴 놈들이 나를 깨웠으면 자근자근 밟아주겠지만 이녀 석은 내 아들이 아닌가! "마법 가르쳐 주실 시간이에요." 아직은 소년티를 벗지 못한 어깨까지 찰랑 거리는 금발 머 리에 푸른 눈동자를 가진 대체적으로 귀여운 소년. 자라면 여자 꽤나 울린다니까! 암암, 누구 아들인데? "하아~ 벌써 그렇게 됐나? 나 언제부터 잤냐?" "하아.. 3시간 전부터요.." 나와 똑같이 한숨을 쉬며 말하는 시오스. 어린놈이 벌써부터 한숨을 쉬다니.. 쩝.. 버릇 잘못들여 놨다. 이런건 패면서 가르쳐 줘야 되는 건데.. "어머니, 빨리요. 어제도 그냥 넘어갔잖아요." 이 녀석은 철이 들기 시작할 때부터, 아니 정확히 말해서는 내 어머니의 죽음이 있었던 날부터(4살이 철들 나이냐?) 닭 살 돋게 나를 어머니라 부르고 있었다. 아무리 때르고 얼르고 협박과 뇌물까지 다 동원을 했지만 똥고집쟁이 같이 꿈쩍도 하지 않는다. 독한놈.. "오늘만 카네스한테 가서 배워라. 엄마 피곤하다." "칫.. 맨날 어머니는 현실을 회피하시는 군요." "욘석이! 어미한테 못하는 소리가 없어!" 혀를 낼름 거리며 레어 밖으로 뛰어 나가는 시오스. 아마도 옆집의 카네스에게 가는 것이리라. 왜 혼자 보내냐구? 몬스터한테 먹히면 어쩌냐구? 저놈은 이미 7서클의 마스터다. 드래곤이 가르쳤으니 당연한거 아냐? 인간으로선 최상의 단계인 8서클 마스터에 도전하고 있는 내 아들녀석. 뭐, 몬스터들은 내가 내아들 건드리면 밟아 버리겠다고 했 기에 미친 몬스터가 아니라면 시오스에게 덤비지 못하리라. 아니면 새로 들어온 신참이거나.. "으갸갸갸갹~~~!" 늘어지게 기지게를 켜는 나. '우드드득' 잠을 잘못잤나 보군. 에구.. 삭신이야.. 나두 늙었나 보우.. 오랜만에 산책이나 해볼까? 나는 드래곤으로 폴리모프를 해서 나의 장대한 위엄을 자랑 한채 레어 주위를 한바퀴 삥~ 돌았다. 상쾌해.. 내 얼굴과 몸을 타고 흐르는 바람이 너무도 기분이 좋게 느 껴졌다. "캬캬캬~" 괴상한 내 웃음소리가 바람을 가르고 산 전체에 울려퍼졌 다. 카네스네 집..(시오스네 앞집..--;;) "우리 어머니 또 왜 저럴까요? 조금.. 민망하네요.." 마법을 수련하다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에 올려다본 하늘에 는 참으로 시크리오프스의 추한 모습이 적나라하게 나타나 고 있었다. 소년 답지 않게 귀엽게 한숨을 포옥 내쉰 시오스의 말에 인 간으로 폴리모프해 있던 카이오네스는 머리를 갸우뚱 거리 며 답했다. "내가 어떻게 알겠냐..? 그건 그렇고 저게 조금 민망한거냐? 아주 드래곤 쪽팔리는 짓은 혼자 다해요." "하하.. 카네스. 내가 어머니께 이르면 어쩌려구요?" "미안.. 시크한테 말하지마.. 나 죽어.." 아마도 시크리오프스가 이런 대화를 들었다면 카네스의 레 어를 다 엎어버리고 시오스는 볼기짝을 열댓번은 더 맞았을 것이다. 아래의 상황을 전혀 예측하지 못하고 여전히 하늘을 비행하 며 천상천하 유아독족의 상태로 웃고 있는 시크.. ----------------------------------------- 아아.. 아무래도 저는.. 3일 이상 잠수하지 못하는 체질인가 봅니다.. --;; 좀 힘들긴 하지만.. 협박..도 받아봤고..쩝.. 죽기 싫으면 써야죠..머.. 후움... 이거 언제 끝날지.. 중편으로 써보는 거라서.. 머.. 제가 끝내고 싶을때 끝내겠죠 머.. 으음.. 제가 기분이 좋으면 한편 더 올라오고.. 기분이 꿀꿀하면.. 오늘은 이만 올릴게요.. 언제 또 올라올지는.. 모르겠네요.. 헤헤.. 낼은 개교기념일.. 그러니까 이런 야심한 밤에 맘놓고 쓰고 있죠.. 내일 늦잠~ 캬캬캬~ 그럼 행복한 하루 되시구요.. 용기 주신 분들 너무 감사해요.. 드래곤의 일기가.. 조금 어둡게 나가고 있었는데.. 님들 덕분에 다시 활기차게 됐어요~ 감상멜이나.. 비평.. 많이 들려 주시구요.. 그럼..^^ 행복한 하루 되시길.. [번 호] 15538 / 21160 [등록일] 2001년 03월 16일 10:37 Page : 1 / 6 [등록자] INNOCENTELF [조 회] 884 건 [제 목] 드래곤의 일기(22) ─────────────────────────────────────── 696년 5월 날짜 : 15일. 날씨 : 내가 싫어하는 비가 주룩주룩.. 어째 또 감기가 걸릴 듯한 예감..? 습기 차고 축축하다. 드래곤의 모습으로 폴리모프해 있을때는 이런 것도 잘 느끼 지 못하는데 역시 인간의 몸이라 불편하기 짝이없다. 하지만 어쩌리? 드래곤의 모습으로 있으면 잘못하다가 내 아들 밟아버릴지 도 모르는데.. 하긴.. 나는 그렇게 미련한 드래곤이 아니다. 하지만 프라니바투스 같은 멍청한 놈들은 밟아 버리고 이렇 게 말할 것이다. "어라? 모르고 밟아버렸네? 하하.." 난 저꼴은 되기 싫다. "어머니." "왜?" 아들이 부르는 소리에 읽고 있던 책을 덮으며 내딴에는 인 자한 눈으로 아들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띠껍게 쳐다보지 마세요." 누가 띠껍게 쳐다봤다 그래! "하하.. 시오스. 네 에미는 비가 오는 날이면 신경이 날카로 워 진단다. 빨리 본론만 말해라." "우리 놀러가요~!" 팔자 좋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어디로?" 예의상 나는 물어보았다. "책에서 읽었는데 저와 같은 인간들이 사는 도시에 가면 정 말 볼게 많데요~!" '삐죽' 힘줄이 솟아 오른다. 나보고.. 또 거길 가라고? 하긴 저번에 손 부러지고 칼맞고 감기 걸리고 배신과 감금 까지.. 보통 드래곤 같으면 평생 가도 못해볼 일을 한달정도의 기 간에 다 당해본 나였으니.. 이번에 가면 이번에는 목 잘리려나? "그만 이야기 하자." "칫. 정말 구경하고 싶었는데.. 어머니는 맨날 어머니 하고 싶은 대로만 하구.. 시오스 부탁은 안들어주구.." 철이 들었다고 생각 했건만 여전히 투정 부리는 성격은 안 고쳐 졌구먼.. "궁시렁.. 궁시렁.. 떠벌떠벌.." 나는 이런 시오스의 부탁을 싸~악 무시한채 들고 있던 책에 정신을 집중했다. "쳇, 정말 어머니 나빠요.. 궁시렁, 쳇. 궁시렁. 떠벌떠벌." 1시간여 동안을 내 옆에서 그렇게 보채는 시오스. '툭.' 남은 이성이 끊기는 소리. 나는 히스테리적으로 시오스를 향해 소리쳤다. "간다! 가! 가면 될 것 아냐!" "헤헤~ 엄마 고마워요~!"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곧이어 시오스의 엄마란 말에 입이 헤벌쭉 벌어졌다. "계속 그렇게 엄마라고 부르면 내가 뭔들 못해주겠니?" "칫. 좋아요. 이번에 어머니랑 같이 놀러 갈때만 엄마라고 불러줄게요." 노.. 노련한 놈. 어째 요즘에 프라니바투스와 어울린다 싶었더니 그놈 성격 닮아가는군. 완전 얘하나 버려놓는다니까.. 나중에 보자. 프.라.니.바.투.스. --------------------------- 5섯번의 삭제와 편집 끝에 올렸습니다... 하아.. 심심해 죽을 맛입니다.. --;;개교기념일도 다 좋은게 아니군요.. 감상좀 주세요.. 요즘엔 감상이 없어서.. 쓸쓸(?)해요... 오늘 잡담은 여기까지 입니다.. 짧죠? 이제 천랸에서 머하구 놀아야 될지 걱정입니다.. 친구 만나기로 한 시간도 멀었는데.. [번 호] 15552 / 21160 [등록일] 2001년 03월 16일 21:59 Page : 1 / 8 [등록자] INNOCENTELF [조 회] 892 건 [제 목] 드래곤의 일기(23) ─────────────────────────────────────── 696년 5월 날짜 : 18일. 날씨 : 비가 온다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기분나쁘도록 맑다. 우욱... 가기 싫다. 가기 싫어. "엄마~! 오늘은 꼭 가야 된다니까요? 비도 그쳤잖아요! 약 속 안지키실 참이에요?" 이녀석은 지금 비가 그치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3일전 내가 한 약속때문에.. "알았어.. 누가 약속 안지킨다고 하든?" "카네스 아저씨도 같이 가요오~ 프라니바투스 아저씨두 요~!" "앞에껀 허락하는데 뒤에껀 안돼." 그놈이랑 같이 가자구? 차라리 날 갈아 마셔라. "헤헤~ 곧 오실꺼에요. 제가 불렀거든요~" 이 말이 끝나자 마자 워프해서 들어온 프라니바투스와 카네 스. 아... 시오스는 누굴 닮았기에 저리도 멍청(?)한 걸까? 아직 도 지 엄마와 저 드래곤과의 불화를 모른다고는 못할텐데.. 프라니바투스가 환하게 웃으며 시오스를 향해 손을 뻗자 달 려가 품에 포~옥 안기는 내 아들. 아무래도.. 시오스는 프라니바투스가 유희에서 난 자식이 아 닐까? 그러고 보니 닮았네? "시크리오프스님. 감사합니다." 왜 나한테 감사하다는 거지? 재수없어.. "뭐가?" "이번에 같이 동행을 허락해 주셔서.." 말끝을 흐리는 프라니바투스를 바라보며 나는 아주아주 카 리스마 적으로 차갑게 웃어주었다. "그래? 그럼 이러면 되겠네. 난 이번 여행 솔직히 맘에 안 들거든? 그러니 너네 셋이서 쟤 데리고 다녀와." 좋은 방법이야~ 아암~! 좋은 방법이고야 말구. 뭐, 시오스는 인간들의 도시를 구경하고 싶다고 했으니 꼭 내가 가야할 필요는 없겠지. 이것은 유희를 나가는 것이 아니기에 나는 그냥 여행이란 단어를 붙였다. 곧이어 인상을 찌푸리는 프라니바투스. 이쁜 얼굴에 주름잡히니 인상 참 더럽군. "좋아. 그러지 뭐." 카네스는 시원스레 답했지만 시오스를 잡은 손에 힘을 주며 프라니바투스는 약간은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왜입니까? 제가 부담스러우십니까?" 그래그래. 맞다고 쳐라. 대답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나는 귀를 후비며 책장으로 다가갔다. "우리 아들 몸에 상처하나라도 생기면 죽음인줄 알어." 내 마지막 말을 듣고는 카네스는 시오스의 손을 잡고 레어 를 나가 버렸다. 아직도 나를 바라보고 있는 프라니바투스의 시선이 느껴진 다. 등 따가워.. "같이.. 가시죠.." "내가 한번 한말 물리는거 봤냐? 어쨌거나 시오스나 잘보고 와라. 어차피 길어야 1년 정도일 테니.." "......." 뒤도 안돌아보고 말하는 내가 상당히 거슬렸는지 내 손목을 잡고 자신쪽으로 돌아세운 프라니바투스. 이거 뭐야뭐야? 지 힘쎄다고 자랑하는 거야? "뭐야? ...읍.." 내 입술 위로 아주 달콤한 향기가 느껴졌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한참을 벙쪄 있는 나에게서 입술을 떼고 물러난 프라니바투 스. 그러고는 아주아주 사악하게 씨익~ 웃는다. "이건 그 대가라고 해두죠." 내가 폭주하기 전에 얼른 레어밖으로 나가버린다. 화낼 기운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비틀거리며 주저앉은 나는 프라니바투스가 나간 쪽을 한참 을 쳐다보았다. 알고있어. 지독히도 잘 알고 있다고! 저녀석이 날 죽도록 좋아한다는 것쯤은! 바보같은 놈. 쿠쿡.. 정말 아이러니야.. 이건 근친상간감이라구.. "내가 너와 결혼했다면 행복했을까..?" 약간은 떨리는 내 음성이 조용한 나의 레어안에 울려퍼졌 다. ------------------------------------- 아아.. 역시 게으름을 고칠수가 없는 저는.. 시크가 가지 않는 여행을 만들었습니다.. 머.. 제가 쓰고싶다면 나중에라도 합류 하겠죠.. --;;;;; 이번꺼.. 이상쵸..? 그냥..욕하지 마시구 돌 던지세요..TT 그럼.. 잡담은 여기까지~! 짧죠? 저번보다 많이 주었죠? 칭찬해 주세요~ - 꼬마엘프 - [번 호] 15573 / 21160 [등록일] 2001년 03월 17일 20:59 Page : 1 / 6 [등록자] INNOCENTELF [조 회] 877 건 [제 목] 드래곤의 일기(24) ─────────────────────────────────────── 696년 6월 날짜 : 24일. 날씨 : 약간 구름이 낀 정도다. 곧 비가 올 것 같다. '탁' 침대에 누워 열심히 독서를 하고 있던 나는 기분이 싱숭생 숭해서 도저히 더 이상 책을 읽을 맘이 안들어 책을 덮어버 렸다. "이럴꺼면 따라갈걸 그랬나?" 아니지.. 내가 무슨 생각하고 있는거야? 그놈들 간지 1달 조금 넘었는데.. 그런데 진짜 심심하군. 그놈들이 놀러 가고 나서 바로 다음날 즈리카리안과 프가크 리스가 놀러 왔었는데 시오스가 없다는 소리를 듣자 금방 시무룩 해져서는 지금까지 이곳에 오지 않는다. 어째 나보다 시오스에게 관심을 가지는 군. 아아.. 정말 할 일 없군. 오랜만에 나도 바깥에 외출이나 나가볼까? 그럴까? 으음... 귀찮다. 시간도 많은데 나중에 가야지. 결국은 가장 많은 시간을 때울수 있는 일명 '낮잠자기' 놀이 를 고른 나는 그대로 엎어져 잠을 퍼잤다. 역시.. 개나 소나 잠잘때가 젤루 행복한거야. "시크야앙~♡ 아빠 와써~!" 이 목소리에 어울리지 않게 나를 그 커다란 손으로 무지막 지하게 흔드는 미친..X. 짜증난다.. 대체 왜 심심할땐 안오고 제일 행복한 잠자는 순 간에만 누가 와서 깨우는 거지? "띱.. 꺼져." 발로 그 누군지는 모르지만 여튼 그 드래곤을 밟아준 뒤에 나는 다시 수면을 취했다. "흑.. 시크는.. 시크는.. 아빨 벌써 잊었나봐.. 미워.. 시크한테 상처받았어~!" 이.. 이.. 엽기 + 닭살 + 애교 만땅의 목소리는...? "아버지..?" "이제야 알아보다니.. 시크가 아빠를 발로 밟았어.. 아빠가 그 버릇 고치라고 했어? 안했어?" 미치겠다. 이 병 또 도졌어. 또.. 요 몇천년간 내집에 안오길래 잠잠하다 했더니.. 어째 잊혀 질만 하면 나오냐? "오셨어요.. 아버지.." "응~♡ 티아시라스는(아시죠? 시크의 동생.. 프라니바투스의 엄마..--;;) 나를 매정하게 쫓아 버리고 이제 의지할건 너밖 에 없어.. 흑.. 자식들 다 키워나봐야 소용 없다더니.." 제.. 제길.. 티아는 왜 아버질 여기로 보낸거야~~~!!!! 그.. 나쁜 X.. "언제까지 계실거에요?" 조슴스런 목소리로 묻자 아버지는 당연하다는 듯이 씩~ 웃 으며 말했다. "펴~~~~엉~~생~~" 윽....... 망했다. 망했어.. 팔팔한 내 인생 종치는 소리가 귓가 에 들려 오누나. "제가.. 레어를 옮기지요.." "흑.. 아빠가 싫어진거야? 그런거야? 미워.. 시크도 미워.." 정말 미치겠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엽기적이 될 수가 있는 거지? 드래곤의 위엄따위는 눈씻고 찾아볼수가 없다. 전대 수장이자 이제 9천살이나 쳐먹은 내 아버지 드라시아 쿠스.. 블루 일족중 제일 고령인 드래곤. 물론 두 번째는 나다. 그래도 타 드래곤들 말을 들어보면 수장이었을 때는 위엄 & 거만 & 재수만땅 이었다는데.. 완전 이건.. 지금까지 내가 해온 엽기적인 행위들을 싸~악 눌러버릴만큼의 태도였다. 그 애비에 그 자식이라더니.. 역시 피는 물보다 진하다.. 이건가? 현실을 부정하고 싶어~~!!!!!!!!!!!!! 소리없는 처절한 나의 절규가 레어를 뒤흔들었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방글방글 이쁜 얼굴에 미소만 짓고 있는 울 아부지.. 진짜 나하고 똑같이 생겼구만... 이런 생각 할 때가 아니잖아~! 빨리.. 대책을 강구해야 돼.. 남은 내 생애가 편할수 있도록!! ------------------------------------------- 1편 더 올라갑니다~! 696년 6월 날짜 : 27일. 날씨 : 아무래도 상관 없다. 제발 내 옆에 있는 드래곤만 없어진다면 날씨 따위는 상관 없다. 으으.. 미치겠다. 내 옆에서 꽃미소를 듬뿍듬뿍 날리며 나를 자신의 품안에 넣고 부비적 거리는 인간으로 폴리모프한 드래곤.(어이~ 거 기! 이상한 생각하지 말라구!) "히히~ 울 시크가 젤루 이뿌닷~! 근데.. 사랑하는 시크야앙~ ♡" "왜요?" 뾰루퉁하게 대꾸하자 금방 눈에는 글썽글썽 눈물이 고이는 울 아부지. 못살겠다. 진짜! 정말 냉철한 내 아부지의 얼굴한번 보구 싶다. "너무해.. 이젠 아빠한테 화내기까지 하구. 아빠 상처받았 어~!" 받든지 말든지.. "네네~ 제가 죽일년입니다. 뭐든지 물어보세요." "쿠쿡.. 니 아들 어디갔어?" "놀러요." "어디로?" "인간들의 도시로.." "핏.. 나도 이번에 유희나 나가볼까?" 오옷~! 이게 무슨 횡재냐~! "가세요! 경비 부담 제가 다 할께요! 아버지께서 유희를 나 가신다는데 자식된 도리로서 효도한번 하죠!" 드래곤은 자기 자식이라도 절대로 자신이 소유한 물건을 내 주는 경우가 별로 없다. 그렇기에 내 제안은 상당히 파격적? "그냥 우리 시크랑 놀래~! 유희? 그딴건 질리도록 해봤어~! 역시 울 딸이랑 노는게 제일 좋아." 김샜다. 제발 가세요오~! 누구 놀리시나요? 결국 잠든 아버지의 얼굴을 한번 쓱 쳐다본 나는 어제 읽다 가 띵겨 놓은 책을 다시 펴들었다. 이거 원 글자가 눈에 들어와야지. "으음.." 조그맣게 잠꼬대를 하며 몸을 뒤척이는 아버지. 덮어준 모포가 침대 바닥으로 떨어졌다. "하아.. 아직도 어린 헤츨링 같으시다니까." 한숨을 내쉬며 모포를 끌어다가 덮어준 나는 잠시 아버지의 얼굴을 쳐다 보았다. "하이나.." 잠결에 부르는 어머니의 이름. 얼마나 힘드셨을까? 우리 아버지는 어머니를 정말 끔찍히도 사랑하셨다. 자신보다 1천살 가량 연상인 어머니를.. 그런 어머니께서 얼마전에 돌아가셨으니 아마 마음 고생이 심하셨을 거다. 드래곤들 중에서도 금슬이 좋은 부부라고 알려져 있었으니.. 어머니를 잃은 아버지는 아마도 쓸쓸해서 기댈 곳을 찾고 계셨던게 아닐까? 머리가 복잡하다. 후우.... 그나저나 이놈들은 언제 돌아올 예정인 거지? 뭐, 1년 정도 걸리겠지만.. 그래도 얼른 보고 싶다. 시오스는 아마 다시 만나게 되면 8서클 마법을 마스터 했겠 지? 쿠쿡, 시오스도 조금은 인간들의 생활 모습을 깨닳아야 한 다. 시오스 자체가 인간이기에.. 그리고 얼마 있어 내 곁을 떠날 것을 알기에.. 인간이 언제까지나 드래곤의 곁에 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나? 나야 언제까지나 내곁에 붙잡아 놓고 싶지만 어디까지나 그 건 내 욕심이다. 어쩌면 나는 시오스를 재미로 키운게 아닐까? 반은 맞는 말인 것 같다. "시크리오프스님!" 레어 밖에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잠시 잡생각에서 벗어나 나는 손님을 기다렸다. 곱디 고운 여성 그 자체의 목소리. 이 목소리 만으로도 지금 나를 찾고 있는 드래곤이 어떤 드 래곤인지 짐작이 간다. 드래곤 로드, 마리오네라. "로드님. 어쩐 일로..?" "역시 드라시아쿠스님은 이곳에 계셨네요." "무슨 일이라도..?" "얼마전에 그러니까 하라이스나스님께서 돌아가신지 얼마 되지 않아 드라시아쿠스님께서 저를 찾아와 한탄하며 통곡 하시더군요." 그렇다. 우리 아버지와 드래곤 로드, 그리고 우리 어머니는 꽤나 오 랜 친구사이 였던 것이다. 아버지가 헤츨링때부터 친구 사이라고 했으니 진짜 오래됐 군. 한때는 아마 삼각관계라고 했었지? "아버지 답네요." 내 대답에 살포시 입을 가리고 웃으며 잠든 아버지를 내려 다본 마리오네라는 가볍게 마법으로 아버지를 들어올리며 내게 양해를 구했다. "드라시아쿠스님은 제가 데리고 가겠습니다. 불편하셨을 테 니 지금이라도 자유를 누리세요. 후훗, 깨어나시면 제게 꽤 뭐라고 하실테지만요." 아마도 이건 백번 나를 위해서 하는 일같다. 그래도 명색이 드래곤이라고 우리 아버지 깨어나서 맘대로 집이 옮겨져 있다는 것을 보면 꽤나 발광할텐데.. 뭐, 나야 상관할 바가 아니지. 우리집으로 와서 대자로 뻗지만 않으면 되니까.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곧이어 사라진 로드를 보며 약간의 씁쓸함을 느꼈다. 하긴.. 우리 아버지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도 눈물 한방울 안흘렸으면 이미 애처가이길 포기한거지. bug 요즘엔 스토리 전개가 어둡네요? 696년 7월 날짜 : 29일 날씨 : 뜨거워~ 뜨거워~ 으.. 머리 스팀받았어!~~ 나는 아주 따사롭다 못해 열기 때문에 벌겋게 생기된 얼굴 을 하고는 나름대로 시원하다고 느낀 레어 앞의 바위에 누 워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으.. 씹.. 왜 이렇게 바위는 뜨거운 건데! 갑자기 구운 감자가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아니지. 나는 완전 구운 드래곤 구이 될 것 같군. "꾸에에엑~!" 듣기 싫은 오크 환장하는 목소리. 귀청 떨어지겠네. 그냥 이놈들 날잡아서 다 쫓아내 버려야지 원.. 인상을 팍 찡그리며 아래쪽을 내려다보던 나는 아주 재미있 는 구경거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사악한 마왕의 조무래기들! 정의의 칼을 받아라~~!!" 놀고 있네. 비리비리 청년 하나와 꽤 날쌔게 보이고 근육이 어느정도 붙은 청년 하나가 힘겹게 오크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오호~ 밀렸네. 밀렸어. 오크들도 힘들판에 가고일과 트롤들까지 합세했으니.. 공중과 주위에서 자꾸 공격해오는 몬스터들에게 힘이 부쳤 는지 둘의 몸에는 안그래도 상처가 많은 판에 줄어들지는 못할 망정 상처는 늘어가고 있었다. 거의 탈진 상태까지 간 그들은 이제는 무의미하게 칼을 휘 두르고 있었다. 마법사 하나 없으면서 어떻게 이 꼭대기까지 올라왔다냐? 솔직히 내 산에 드래곤을 죽이겠다며 찾아온 놈들은 이놈들 이 처음이다. 그러니 흥미가 땡길수 밖에. "야~! 뒤! 옳지! 그래~! 어어~ 옆에 하나~!" 나는 그렇게 응원을 하며 힘차게 소리치고 있었다. 어느새 내 머리에서도 땀방울이 하나씩 떨어지고 있었지만 그것에 신경쓸 내가 아니다. 이미 저 놈들의 몸은 땀으로 목욕을 하고 있었기에.. 저거 마르면 무지 찝찝하겠다. "꾸엑~ 주인! 우리 꾸엑~ 응원 안한다~! 꾸에엑~!" 어떤 미친 오크 환장하는 소리를 지르며 더위먹은 오크 하 나가 나에게 대들었다. 미쳤어. 미쳤어! 이제 막 대드냐? 대갈통 좀 컸다고 대들어? 저걸 그냥.. "이 쉐끼들.. 나중에 보자. 피의 응징을 가하리라. 꺼져버 렷!" 내가 중얼 거리자 흩어지는 몬스터들. 그것을 보며 안도했는지 땅바닥에 털썩 주저 앉는 두 놈들. 나는 방실거리며 그 놈들에게 물었다. "물줄까?" 어디서 그런 기운이 튀어나왔는지 벌떡 일어나며 나에게 칼 을 겨누는 비실이 놈. 저게 어디서 칼을! "너 죽을래?" 인상을 찌푸리며 나는 힘주어 말하고는 그 검을 맨손으로 잡아 그대로 던져 버렸다. 으악~ 난 바보였던 거야~! 치유마법은 할줄도 모르는데 검 칼날을 맨손으로 잡다니! 폼잡으려고 했던 일이 나를 바보로 만들었다. 피나~! 흑.. "피나~ 이 쉐끼야! 니가 나한테 칼을 들이 내밀지만 않았더 라도 이런일은 없었을 것 아냐! 힐링 있냐?" 설마 힐링이 없지는 않겠지. 그러면 나는 내 손이 낳을때까지 혼자 지랄해야 된다구우~ "아.. 네. 여기." 곧이어 주머니에서 약병을 꺼내주는 비실이. 그러면서도 자기가 지금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지 자각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그래야지~ 말 잘듣네~ 호호홋! 힐링을 쏟아붓자 약간은 당혹한 비실이. 하긴 이거 꽤 비싸지? 상처하나 없이 깨끗해진 내 손을 보며 만족한 나는 다시 그 놈들을 바라보았다. 한놈은 아직도 땅바닥에 주저 앉아 나를 향해 살기를 풀풀 날리고 있었으며 비실이는 나를 향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 었다. "이 미친년아! 그게 얼마짜린데 다써? 앙?" 욕얻어 먹었다. '콰과과광~'(베토벤의 '운명' 아시죠..?--;;맞나..?) 태어나서 처음으로 인간이란는 족속에게 욕얻어 먹었다. 으, 기분 참 더럽다. "이 씹새야~! !@$#%$^$&*@&*!^*()(차마 입에 담기어려운 말이라 심의에서 잘렸습니다.)" 내 말에 한참을 벙찐 얼굴로 있던 싸가지 없는 놈. "너 정체가 뭐야?" 나에게 묻자 나는 고로 대답했다. "이 산에 가녀린 여인이 혼자 있다는 것. 그리고 몬스터들 을 물러나게 했다는 것만 봐도 누군지 대충 짐작이 갈텐데.. 설마 그정도로 머리가 안돌아 가나?" 폼좀 잡으며 말하는 나를 보며 이에 굳어지는 이들. 안놀라나? 드래곤이라고 하면 다 놀랄텐데..? "이놈~! 이 사악한 마왕! 우리들을 홀리려고 가녀린 소녀의 모습으로 변했구나!" 이 미친놈들. 지금 뭔소리 하는 거야? 마왕? 그러니까 내가 언제 드래곤에서 마왕이 됐다는 거지? '삐죽'(머리 힘줄 삐져 나오는 소리.) "너! 내가 마왕이라는 거 뻥이지? 괜히 튀어보려고 한 짓이 지? 이런 X!! 미친놈들앗~! 난 위대한 블루 일족의 수장 시 크리오프스라는 고귀한 드래곤이란 말이다! 감히 그런 하찮 은 마족들의 왕을 나와 비교해? 그리고 그놈 죽은지가 언젠 데 나한테 와서 지랄이냐? 4천년이 지났는데 이제와서 뒷북 치냐? 앙????" 그렇다. 그 마왕이라는 작자가 죽은지는 이미 어언 4천년이 지났던 것이다. 아.. 짜증이 솟구친다. 마왕이 없는 마족들은 뿔뿔히 흩어지고 지금도 새로운 마왕 을 찾아내지 못해 꼼지락 거리고 있었다. "마왕이.. 아니셨어요?" "으악~ 그럼 어떻게 된거야? 분명히 여기에 마왕이 있다고 했잖아!!" 상황이 바뀐 그들. "누가 그래? 앙?" "아.. 저번에 우연히 여행하던 중에 만난 사람들이요." 어떤 간이 배밖으로 튀어나와 돌아 다니는 놈들이 그딴 소 릴 지껄여? "그놈들. 언제 만났어? 죽여버릴꺼야~아~~!!" 어차피 그놈들 찾으리란 보장도 없다. "아.. 그리고요 마왕님 만나면 프라니바투스라는 청년이 심 심한데 잘됐지? 라는 말좀 전해 달래요." "마왕 아니라니까!! 그 프라니바투스~! 으아아악~!" 거의 발광 수준에 미친 나를 그저 멍하니 그놈들은 바라보 고 있었다. 언제까지 날 가지고 놀테냐! 프라니바투스! 크크큭.. 놀러 다녀 온다음에 지옥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 지. "크하하하핫~!" 거의 미쳐버린 나를 벙찐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놈들을 본척만척하며 혼자서 이를 갈고 있는 나였다. 696년 7월 날짜 : 30일. 날씨 : 오지게도 덥다. "그래.. 그러니까 그놈이 방긋방긋 웃으며 이곳에 아주 사악 하고 성격 더럽고 얼굴 디따리 못생기고 우락부락한 근육질 의 마왕이 살고 있다고 했단 말이지?" "저기.. 방긋방긋 웃지는 않고 씨~익 웃으며 말했는데요.." 내 말에 토다는 이놈! 덩치! "시꺼! 내말이 곧 법이야." 더운 날씨속에 푹푹 찌는 듯한 레어 안에서 나는 이놈들이 이곳에 오게 된 경위를 아주 자세하게 들었다. 쿠쿠.. 프라니바투스!! 너 실수한거야. 헤헤~ 근데 안심심해서 좋다. "근데 그걸 믿는 너희도 바보 아냐? 어떻게 그 실력으로 마 왕퇴치 하겠다고 설치냐?" "으윽.." "용사 지망생이거든요~!" 덩치는 신음을 흘렸고 비실이는 아주 자랑스럽다는 듯이 용 사 지망생이라고 떠벌렸다. 진짜 가지가지 한다. 용사 지망생.. 하긴 그정도 나이면 그런 꿈을 꿀때도 있지. 다만 이루어질수 없다는 것이 문젠가? 우리 시오스보다 대여섯살 정도 나이가 많아 보이는 이놈들 을 보며 나는 시오스만은 절대로 허황된 꿈을 키우게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볼게요~"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며 레어를 빠져나가려는 이놈들. 쿠쿠.. 오랜만에 즐거운 장난감을 만났는데 내가 그냥 보내 줄 것 같애? "누구 맘대로?" "제맘대로요.." "말대답하지 말랬지? 내가 너보다 족히 6천살은 더먹고도 남았다! 감히 나한테 개겨?" "아니요오.." 캬캬캬~ 오랜만에 인간 갈구니까 잼있다. 은근슬쩍 이런 상황을 즐기는 나. 나도 싸이코 기질이 있는게 아닐까? "덩치, 비실이 이름이 뭐냐? 자꾸 덩치와 비실이라고 부를 수는 없잖아." "저요? 저는 카안이요." "린크." 비실이는 카안. 덩치는 린크라 이말이지? "언제까지 여기 있어야 되요?" "내 아들 올때까지. 덩달아 니네 보낸 웬수 족칠때까지." "흐윽.. 드래곤님.. 우리 안먹을 거죠?" "생각해 보고." 크큭.. 얼굴 하얗게 떴다. 잼있어~ 정말 잼있다~ 프라니바투스. 쿠쿠쿠, 심심한데 장난감을 보내줘서 고맙기는 한데 넌 오 면 나한테 죽었어. 용서해줄 마음이 없었던건 아니지만 뭐? 사악하고 성격 더 럽고 얼굴 디따리 못생기고 우락부락한 근육질? 흐흐.. 이말만 없었어도 살았을 텐데. 넌 나한테 죽었어. '흠칫.' 한가롭게 숲길을 말을 타고 천천히 이동하던 프라니바투스 는 날카로운 한기를 온몸에 느끼며 흠칫 거렸다. "응? 프라니바투스 아저씨. 어디 아파요?" "그러고 보니 창백해졌네?" "하하.. 아무것도 아닙니다. 잠시 한기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프라니바투스가 대답하자 시오스는 안됐다는 듯한 눈을 하며 프라니바투스의 어깨를 툭툭 두드 렸다. "아저씨, 이제 돌아가면 울 엄마한테 죽었네요. 성격 더럽잖 아요." 그제서야 자신이 한기를 느낀 이유를 알게된 프라니바투스 는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려댔다. "여기까지 쫓아오지 않은게 신기한거지."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고 그 누가 말했던가? 괜히 자신이 한 짓에 대해 후회가 밀려오는 프라니바투스였 다. 696년 8월 날짜 : 2일. 날씨 : 여름이니까 덥기는 매한가지. 아아~ 어째 이놈이나 저놈이나 노는게 똑같을꼬? 지금 이놈들은 아니, 정확히 말해서 프라니바투스가 선물해 준 장난감들은 얼마전에 아주 신나게 싸운 오크들과 족구라 는 운동을 하고 있었다. 공...? 저번에 죽은 가고일 머리통이 공을 대신하고 있다. (이.. 이건 판타지가 아닙니다~! 엽깁니다..--;;) 더 기가막힌 것은 나.. "어어? 안돼~! 빨리 뛰엇~! 와앗~ 1저엄~!" 참.. 정신 연령이 똑같다. 무식한 오크나, 어리석은 인간이나 지고지순한 나나.. 쩝.. "시크리오프스니임~!" 이 목소리는 아주 익히 잘 알고 있지. 일족 즈리카리안. 쟤는 왜 왔대냐? 시오스 없다고 안온지가 한 달이 넘었는데. 그럼 저 계집애가 왔으니 또 한놈 오겠군. "시크리오프스니임~!" 어째 말하는게 둘이 닮아간다? 프가크리스. "왜왔냐?" "재미있는 장난감을 찾으셨다길래." "내가 싫다고 안빌려 주면?" "허억~!" 저놈들.. 내가 거절할줄은 몰랐나 보다. 하긴 저놈들도 꽤나 심심했겠다. 시오스 없다고 안오던 놈들이 재미있는 장난감 생겼다고 오 는 꼬락서니 봐라. 나는 나의 넓은 아량으로 즈리카리안과 프가크리스를 용서 해 주고는 같이 재미있는 족구 게임에 들어갔다. "어어? 으앗~! 이 새끼~! 공 똑바로 안차?" "꾸엑~ 주인 바보같아서 꾸엑~ 공에나 맞고 다니냐? 꾸 엑~!" 요즘 저것들이 겁을 상실했단 말야? 이게 어디 드래곤들 밑에 있는 몬스터들이 하늘같은 주인에 게 할 말이란 말인가? 진짜 나도 갈데까지 갔다. 몬스터에게 바보 소리까지 듣고.. "너 나중에 보자. 뿌드득(이가는 소리.)" "꾸엑~ 나중에 보자는 드래곤 꾸엑~ 하나도 안무섭다~ 꾸 엑~!" 저것이? 언제부터 간덩이가 저리 커졌단 말이냐! 네 이놈들을 확~ 그냥, 산에 불질러 놓고 다른 레어 만들어 튀어? 아니지.. 바로 앞산이 카네스네 레어지.. 불 옮겨 붙으면 이번엔 나 진짜 구워버릴텐데.. 내가 참자. 참아. 난 자비의 블루가 아니더냐? 결국 우리는 땀을 비오듯이 흘러내린 다음에야 족구 게임을 그만두었다. "즈리카리안. 시원하게 마법좀 써봐라." "칫, 시크리오프스님께서 직접 하시면 될걸 가지고 왜 저 만.. 궁시렁, 궁시렁.." 요즘 것들이 왜 내게 하나같이 개기는 거지? 말세로다. 늙은이를 우대하지 못하는 드래곤들이라니! 언제한번 로드께 건의 드려 이놈들 근성을 바로 잡아야지. "지금 개기는 거냐?" "아니요." 곧이어 하늘에서 쏟아지는 빗줄기들. 망할.. "너 내가 비 싫어하는거 알고 일부러 그러는 거지?" 그 자리에 서서 소나기를 몽땅 맞은 이십여마리의 몬스터와 셋의 드래곤과 둘의 인간. 나 빼고 모두 자지러지듯 시원하다고 좋아했지만 나는 그렇 지 않다. "호홋, 설마요. 누가 물.을.다.스.리.시.는. 블루드래곤 시크리 오프스님이 비를 싫어하신다고 믿겠어요. 저는 정말 오늘 처.음.알.았.어.요." 저 강세는 뭐지? 저거 나 바보라고 놀리는 거지~! 자비의 블루인 내가 참는다. "호호홋~! 머리에서 열나시는 것좀 봐요. 아직도 더우세요? 그럼 조금더.." "닥쳐." 띱.. 두고보자 즈리카리안. 니 애비에게 가서 아주 처절히 일러주마. 음하하하핫~ --------------------------------------------------------- 담당자 민지홍임니다. 이제부터는 정말 꼬박꼬박 마니 올릴테니 마니 봐 주시길. 696년 8월 날짜 : 9일. 날씨 : 비가 조금 많이 온다. 그래서 레어에 짱박혀 있다. "헤헤~! 비온다." "그러게 말이다." "시꺼! 입닥쳐." "쳇." "핏." 비가 오는게 그리도 좋은지 카안과 린크는 레어밖을 바라보 며 함박 웃음을 짓고 있었고 할 일 이라고는 책 읽는 것밖 에 없던 나는 그소리에 신경이 거슬려 소리를 빽 지르고 있 었다. "그런데 비온 뒤 질퍽한 땅.. 난 정말 싫어." "나두~!" 내 말을 아주 이제 맛있게 씹는 구나. 그래 씹어 먹어라 먹어! 더 이상 상관하는 것이 귀찮아진 나는 그놈들을 한번씩 쏘 아봐준 뒤에 책으로 눈을 돌렸다. "우리 잘까?" "그러자. 시크도 우리랑 안놀아주는데 뭘." 이 인간들은 어느새 나를 맞먹고 있었던 것이다. "시크라고 부르지 말랬지." "내맘이다." 아주 이제 내가 만만한가 보다. 처음에 내 정체(?)를 밝혔을 때 하얗게 떠서 쫄았을때는 언 제고., 확, 먹어버려? 아니야. 인간의 피는 더러워. 배탈 날꺼야. "입닥치고 잠이나 퍼자라." "안그래도 그러려고 했어." 꼬박꼬박 하는 말대꾸. 그렇게 심심했나? 침대에 누워서 둘이 나란히 잠을 퍼잔다. 쩝, 저거 보니까 왜 잠이 오는 날까? 흐음, 그런데 저 좁은 침에에 끼어 누워서 자는건 싫다. 차가운 돌바닥 아무 곳에나 나는 누워서 잠을 퍼자기 시작 했다. 귓가를 때리는 빗소리가 노랫소리처럼 아득하게 울려퍼졌 다. 하암, 오늘 자면 언제 일어날꼬? 저놈들 나 잔다구 내 레어 털어가진 않겠지? 내 레어 털어가면 죽여버릴꺼야.. "시크리오프스님! 일어나십시오!" 누군가 내 얼굴을 찰싹찰싹 때린다. 기분 나뻐~! 슬쩍 실눈을 뜨니 아주 익숙한 얼굴. 프라니바투스와 카네스. 그리고 우리 이쁜 내새끼 시오스. "너 손 안치워? 이게 어디 그 손으로 내 뺨을 때려?" 아마도 돌바닥에서 자는 내가 기절한줄 알았나 보다. 위로 뻗친 머리를 가다듬으며 이미지 관리를 하고 있을 때 프라니바투스가 걱정스런 목소리로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어디 편찮으신 데라도..? 치유마법을.." "됐어. 그냥 자고 있었던 것 뿐이니까. 괜히 호들갑 떨지 마." "왜 이런 곳에서.." 나는 슬쩍 눈으로 내 침대를 가리켰다. 아주 팔자 좋게 늘어져 자고 있는 인간들. 그러고 보니 뭐가 생각 나는군. 아마 프라니바투스. 내게 갚을 빚이 있었지? "아니! 저 미천한 것들이! 감히!" 프라니바투스답지 않게 오버하는 모습. 어이~ 현실을 부정하지 말라구. "프라니바투스! 나랑 아주 진지하게 얘기를 나눠 볼까?" "하핫..;; 저는 별로 그러고 싶은 마음이.." "나는 그러고 싶은데?" 프라니바투스의 귀를 날쌔게 잡아채며 나는 내 보물창고로 끌고 들어갔다. "꾸에에에엑~ 살려주세요~!" "시꺼!" 끌려가는 프라니바투스의 처절한 비명소리에 깬 인간들. 아직 잠이 덜 깬듯한 멍한 눈과 목소리로 인간들은 물었다. "왜 그러는 거죠?" "어? 아.. 프라니바투스가 잘못한 일이 있거든." 심드렁하게 답해준 카네스는 곧이어 비가 그친 레어 앞마당 에서 시오스와 놀기 시작했다. 이에 레어 밖까지 우렁차게 들리는 비명소리. "후후.. 다시 말해 보련?" "아름답고 성격은 천상의 신들도 따라오지 못하고 온화하시 며 한떨기의 가녀린 꽃의 화신이신 시크리오프스니임!" "좋게 말해~! 이 새끼~! 저번에 저 인간들한테 했던 말 그 대로 복창해봐!!" '퍼억~! 퍽~! 우당탕~' 고문에 가까운 구타를 견디지 못하고는 다시 복창하는 소리 가 들렸다. "성격 더럽고 얼굴 디따리 못생기고 우락부락한 근육질이 요.." "말하라고 진짜 말하냐? 앙?" 참으로 말도 안되는 이유를 얻어터지는 프라니바투스였다. "괘.. 괜찮을까요?" 이미 하얗게 질릴대로 질린 카안과 린크는 걱정스런 목소리 로 카네스를 향해 물었으나 역시 카네스는 특유의 심드렁한 목소리로 귀를 후볐을 뿐이었다. "냅둬. 저러다가 말지." "후우, 프라니바투스 아저씨 죽겠어요. 카네스 아저씨. 엄마 성격 아시잖아요." "그렇긴 하지." "말려야 되지 않아요?" "나까지 저꼴 되는거 보고 싶냐? 분명 다음 타자는 날텐데. 난 내 몸이나 간수 잘해야 겠다. 뭐, 한놈만 맞으면 되지 미 쳤게 세트로 맞냐?" 이렇게 이들이 한가롭게 말하는 와중에도 프라니바투스의 처절한 비명소리와 시크리오프스의 절친한 대화는 계속되고 있었다. "이 새끼가~ 감히 치유마법을 사용하려 해? 오냐~! 오늘 내 가 그 입을 꼬매주마!!" 참으로 식은땀이 흐르도록 절친한 대화들이었다. 696년 8월 날짜 : 13일. 날씨 : 장마다. 장마. 이래서 나는 여름이 싫다. 지금 우리는 여섯이나 되는 대 인원을 가지고는 레어 안에 서 돗자리를 펴놓고는 한가롭게 비를 구경하고 있었다. "엄마~! 그래서요~! 제가 거기서 온천을 가봤거든요? 어떻 게 뜨거운 물이 쉬지 않고 흘러 나올수 있죠?" 시오스. 여름에 온천을 가다니. 참으로 대단한 인내심을 가졌구나. 흐흐, 나? 온천을 가느니 레드 드래곤의 레어에 있는 용광로에 몸한번 담그고 나오겠다. "그래그래. 원래 그러나 보지 뭐." 별로 성의 없이 대꾸해 주는 나. 흐음, 나는 엄마 자격이 없는 건가? 시오스도 이제 나를 어머니라 부르지 않는다. 엄마라고 부를뿐. 나는 잠시 내 옆에 누워 비를 구경하고 있는 녀석을 쳐다 보았다. 두 눈은 너구리가 되어 있었고 아름다운 황금빛 머리카락은 반 이상이 뽑혀 있고 온몸이 멍투성이에 아직도 흐르는 코 피. 이것으로도 충분히 이녀석의 정체를 짐작 했으리라 믿는다. 프라니바투스. 내가 치유 마법을 쓰면 친히 브레스로 구워 주겠다는 약속 을 했기에 자연스레 낳을때까지 이러고 있는 거다. "정말 할 일 없다. 우리 언제까지 여기에 죽치고 있어야 되 요?" 내게 물어오는 카안을 나는 잠시 아주 잠시 띠껍다는 눈길 을 보내주었다. 이에 대답한 드래곤은 당연지사 심드렁한 카네스였으니.. "비 그칠때까지.." "누가 그걸 몰라서 묻나요?" "말대답 하지 마라." 드래곤들은 성격이 똑같다고 생각하는 카안이었다. "그나저나 너 8서클 마스터 했냐?" 잠시 생각 나는 것이 있던 나는 시오스에게 물었다. 그러자 곧바로 얼굴이 환해지며 고개를 끄덕이는 시오스. "네~~~! 헤헤.. 엄마 나 대단하지 않아요? 난 천잰가봐.. 히 힛~ 이제 9서클 마법을 배워 보려구요." 이제껏 태어날때부터 드래곤 밑에서 그정도도 못했으면 그 게 인간이냐? 빙신이지. 아가아가~ 내 귀여운 아가야.. 아무래도 네 꿈은 이루어 질수 없을 거다. 인간의 몸으로 9서클의 마력을 받아내기란 어렵거든. 설사 받아낼수 있다 해도 몸이 분해되어 버리지. 뭐, 이런 말까지 일일이 해줄 필요는 없겠지. "어디 가십니까?" "서재에.." 뚜벅뚜벅 걸어가 서재의 창고 문을 활짝 연 나는 책꽂이에 있던 책 몇권을 빼들었다. 으음, 이건 애정 소설, 이건 로맨스, 이건 무협지, 이건 요리 책.. 끄악~ 어째서 내 서재엔 다 이런 책들만 있는 것이냐? 아아~ 현기증이 느껴지는 구나. 잠시 높디높은 책꽂이를 바라보던 나는 문득 내가 예전에 써놓은 마법책이 제일 꼭대기에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쩝, 내가 어떤 식으로 썼던가? 오랜만에 처음으로 내가 쓴 마법책을 보고 싶은 마음에 부 유 마법을 걸어 책이 있는 곳까지 날아간 나는 갑자기 목구 멍에서 넘어오는 뜨뜻한 액체를 감지 할 수가 있었다. "쿨럭... 제길.." 무의식 적으로 입을 가린 손에 한웅큼씩 뱉어지는 피. 제길.. 마법 역작용인가? "쿠쿡, 시크리오프스. 너도 갈때까지 갔군 그래." 공허한 나의 웃음소리가 서재에 울렸다. 4서클도 되지 않는 부유 마법 하나 썼다고 금새 반작용이 일어나다니.. 물론 예전부터 느끼고는 있었다. 육체가 무너져 가고 있다는 것쯤은. 뭐, 이정도면 오래 산거지. 푸하하핫~! 누군가가 내 손목을 잡아채는 것이 느껴진다. "뭐야?" 비릿한 피향이 내 입속에 느껴지는 것을 느끼며 약간은 불 쾌해진 감정으로 내 손목을 잡아챈 존재를 바라보는 순간 욕지기가 나오는 것은 어쩔수가 없는 일이었다. "또 너냐?" "마법.. 반작용입니까?" "알면서 묻냐?" "....... 언제부터.." "꽤 오래 됐어. 하지만 피까지 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군. 뭐, 내 기억력이 퇴화되지만 않았다면 정확할걸?" 으.. 속이 뒤집히는 것 같다. 아픔에 인상을 찡그리는 나에게 치유 마법을 걸어주는 프라 니바투스. 그렇게 진지한 표정을 하며 나를 바라봐도 웃기다구. 두 눈덩이는 너구리가 되어 한쪽은 화장지로 코피를 막고 있는 모습은.. 쿠쿠쿡.. "어이~ 그렇게 죽을상 하지 말라구. 이정도면 오래 살지 않 았나?" 왜 우는 거냐? 미친놈! 내앞에서 눈물 보이지 말란 말이다! 니까짓게 울어봤자 어차피 내가 죽는다는 것은 변함이 없지 않느냐! "얼마 남았습니까?" 으음.. 내 생명..? 얼마 남았더라.. 그러니까.. 헉.. 까먹었다. 나 드래곤 맞아? 맞는데.. 혹시 껍질만 드래곤 아니야? "지금 당장 죽는다고 해도 이상할 것 없지 않나? 그런거 알 아서 뭐하게? 내 장례식때 오려구? 하나도 고맙지 않다." 그러고 보니 나 죽으면 어디로 가는 거지? 신들이 드래곤의 영혼은 직접적으로 관리한다고 했으니까.. 캬캬~ 오랜만에 신들이랑 띵까띵까 놀아봐야지~! 무의식중에 미소를 짓는 나를 보고 프라니바투스는 내 볼에 살며시 손을 가져다 대었다. 보통 때같으면 바로 주먹이 날아가거나 발이 날아갔겠지만 이상하게도 나도 그 손길이 싫지만은 않았다. "동정하는 거냐?" "천만에요. 오히려 시원한걸요? 저를 그토록 미워하시는 분 께서 없어지신다니.." 말하고 행동하고 안맞는 것좀 봐라. 왜 울고 있는 건데? "그나저나 나 죽을때까지는 비밀이다. 호호홋~! 오랜만에 할 일도 없는데 유서나 작성 해봐야 겠군." "두렵지 않으십니까?" "드래곤이 죽음을 두려워 하는 것 봤냐?" 그렇다. 드래곤은 자신의 수명에 만족하고 죽는 순간 까지도 죽음 이라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오히려 좋아할 뿐이지. 죽는 다는 것은 길고 긴 삶을 끝으로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 와 같으니까. 쿠쿡, 말은 이렇게 했지만, 겉으로는 이리도 태연하게 굴고 있지만 지금 솔직한 내 심정은 너무나도 두렵다. 드래곤의 평균 수명인 1만살도 다 채우지 못하고 죽게 되다 니. 기분이 더럽게 씁쓸하군. 696년 8월 날짜 : 24일. 날씨 : 여름이 막바지에 접어들어 그렇게 덥지는 않지만 그 래도 덥다. 힘들다. 제길, 폴리모프를 유지하는 데도 이렇게 힘이 들다니. 정말 죽어야 하는 건가? 시오스는 카네스네 집에 놀러 간다고 가버렸고 그 외에 즈 리카리안과 프가크리스는 유희를 나간다며 가버렸다. 참 사이 좋아 졌네 그려. 그리고 두 인간은 시오스 따라 가버렸고 고로 내 레어에는 프라니바투스와 나밖에 없다. "많이.. 힘드십니까?" "아니. 별로.." 힘들어 죽겠다. 이눔아~! "그러고 보니 우리 시오스 9서클 마법 배우고 싶다고 그랬 지?" "인간의 몸으로 9서클 마법을 익히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알고 있지. 알고 있어. 하지만 해주고 싶은걸? 내 아들이 원하는 거니까. 한가지 방법이 있기는 하지. "쿡, 난 꼭 내 아들 선물 해줄꺼야." 헤헷,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잖아... "그건 안됩니다!!" 정색을 하고 내 어깨를 붙잡는 프라니바투스. 왜 안된다는 거지? 니가 뭔데? "네가 하는 짓을 더 이상 보고 있자니 역겹군. 나에게 기어 오르지 마라." 황급히 내 어깨에서 손을 때었지만 나의 더러운 기분은 가 시지 않았다. "드래곤 하트를.. 당신의 심장을 주시겠다는 말씀입니까?" "못할것도 없지." "왜, 인간에게 그토록 정을 쏟아 붓는 겁니까? 그것은 제가 반대하겠습니다." 웃음이 나온다. 참지 못할 정도로. 이녀석은 자칭 내 스토커라며 그 이유도 몰랐단 말인가? 쩝, 스토커 때려 치워라. "풋.. 푸하하핫~! 그것도 몰랐던 거야?" 갑작스런 크디큰 내 웃음에 어지간히 놀랬던 듯 나를 빤히 바라보는 프라니바투스를 보며 왠지 짜증이 느껴졌다. "내가 아기를 낳지 못하니까 그러잖아." 간단한 이유이지 않는가? 나는 헤츨링을 낳지 못하는 몸이다. 보통 드래곤들은 귀찮아서 헤츨링을 낳지 않지만 아마 모를 것이다. 헤츨링을 낳고 싶어도 낳을수 없는 드래곤이 있다는 것을.. 자신들이 얼마나 축복 받았다는 것을.. "뭐, 그리고 이게 마지막 선물이 될테니까. 어차피 죽으면 그만인걸? 차라리 누구 주는게 더 낫지." "당신은.. 정말 바봅니다." 메야? 저것이! "그렇기 때문에 제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내가 이렇게 프라니바투스에게 짜증을 낼수 있는 이 유는 누구보다도 사랑하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 아닐까? 하핫, 죽을때가 되니 감상적이 되어가는군. 닭살 돋아라. "꼬맹아, 헛된 상상 그만하고 결혼이나 해라. 으음, 내가 공 갈해서 모아둔 재산들 놔두고 가기에는 아까버~!" 진짜 아깝다. 저 루비, 저 다이아, 저 황홀히 빛나는 사파이어~! 으악~! 아까워.. 흑.. 가장 미련이 남는다. 저거 누가 다 갖을까? 흑, 내 재산 훔쳐가는 놈들은 저주할테닷~! "야, 거기 미련히 앉아있지 말고 와서 좀 거들어라. 유서 정 리 좀 해야 되니까. 흑.. 내가 이 이쁜 것들 보고 싶어 어찌 할꼬.." 주먹만한 루비를 껴안으며 눈물을 흘리는 나를 참으로 한심 스럽게 쳐다보는 프라니바투스였다. 내가 생각해도 한심하다. 하지만 가지고 갈수만 있다면 가지고 가고 싶다. 내꺼 누가 가져가는 꼴 난 절대 못봐~! "어? 엄마 뭐해요? 으앗~! 이쁘닷~! 엄마~!" 쪼르르 달려와 내 손안에 있는 루비를 빼앗는 시오스. 버릇 잘못들여 놨어! 감히.. "이자식이~!" "히힛, 메롱~!" 혀를 낼름 거리며 도망가는 시오스. 잡기에도 벅차다. "너 잡히면 다리 뿐질러 버릴꺼닷~!" 그럼에도 열심히 쫓아가는 나였다. "잡았다~! 이 놈~! 감히 에미를 놀려? 맞아야 정신을.." "흑.. 우엥~!" 내 품에 안겨서 서럽게 우는 시오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로는 눈물을 보이지 않던 시오스 였기 에 나는 당황했다. "야~ 왜그래? 어떤 간큰 놈이 널 건드려? 앙??" "엄마, 카네스 아저씨한테 다 들었단 말야! 아저씨가.." 역시 그 어리벙벙해 보이면서도 눈치 디따리 빠른 블랙 드 래곤 카이오네스는 알고 있었나 보다. 아마 그러니까 내가 그녀석을 좋아하는 거겠지? 시오스를 불러 어떤 말을 했을지 대충 짐작이 간다. 뭐 뻔한 말들. 마음의 준비를 해두어라. 당황하지 말아라. 대충 이런 말들 일 것이다. 쩝, 나도 죽어보는 건 처음이라서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 나? "울지 마라. 캬캬캬~! 이 엄마가 누구냐! 걱정마! 너 죽을때 까지 떵떵거리며 이 아리따운 외모를 유지하며 살아줄테 니." 쿡, 내가 거짓말을 하게 되다니... 시오스 보다도 오래 살지 못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엄마가 그런 의미에서 선물 하나 주지. 너 9서클 마법을 배우고 싶다고 그랬지?" "흑.." "사내 자식이! 한번만 더 울면 XX 떼어 버린다!" 나의 협박성 어린 발언에 '끅끅' 소리를 내며 울음을 멈추는 시오스. 그래야지. 쿠쿡.. 그럼 슬슬 선물 증정식을 해야 할까? "프라니바투스야~!" 내 목소리를 듣고 한달음에 달려오는 프라니바투스. "조금 있다가 치유 마법좀 걸어줘." 그래그래~! 넌 내가 아플 때 치료해주는 그런 존재야. 캬캬캬~ 잠시 내 가슴에 손을 가져다 대 보았다. '콩닥콩닥.' 심장뛰는 소리와 진동이 가슴에 손을 얹고 있는 나에게 전 해져 왔다. 이것도 이제 안녕인가? 여자의 가슴 답게 약간의 굴곡이 있는 가슴에 잠시 미련이 남은 듯 멈칫하는 나였지만 곧이어 마음을 다잡고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파악.' 붉은 피가 옷자락에 뿌려지며 내 얼굴과 앞에서 벙쪄있는 시오스의 얼굴에도 튀었다. 제길, 더럽게 아프군. 이렇게 아픈 고통은 처음 느끼는 나였지만 손가락은 가슴을 점점 더 파고들 뿐이었다. 그래 조금만 더.. 손가락에 이물질이 걸린다. 손가락을 타고 바로 전해져 오는 울림. 됐다. 그리고 나는 그걸 뽑아버렸다. '촤악' 한순간에 엄청난 피가 내 온몸을 적셨고 프라니바투스는 서 둘러 내게 치유마법을 걸려 했으나 나는 손을 들어 그것을 저지 했다. 너무나 심한 고통과 통증이 온몸을 휘감았으나 입술을 꽉 물어버린 나는 드래곤 하트, 내 심장에 마나를 모아 조그마 한 푸른빛의 구슬로 바뀌어 버렸다. 이미 왼쪽 가슴에 구멍이 뚫려 보통 인간 같으면 즉사였겠 지만 나는 지고한 드래곤이다. 정신력과 남아도는게 마나밖에 없을 만한 지상 최고의 생명 체. 드래곤 하트가 없어도 드래곤은 길게는 1년 정도 생명을 유 지 할수 있다. 내가 이렇게 있는 것도 아마 그것때문 일 것이다. 다만 보통 드래곤은 1년이고 육체가 무너져 있는 나는 하루 정도밖에 지속하지 못하다는 것이 맞을 거다. "치유 마법을..." 눈물이 범벅이 되도록 울고 있던 프라니바투스는 내 왼쪽 가슴에 입술을 묻었다. 주먹 하나가 들어갈 정도로 깊게 파인 가슴. 그곳에서는 아직도 피가 꾸역꾸역 빠져 나오고 있었다. 몸이 나른해 진다. 제길, 내 몸속이 이리도 피가 많았었나? "내 목숨과도 같은 분. 죄송합니다." 뭐가 죄송하다는 거냐..? 점점 흐려져 가는 의식 속에서 나는 잊지 않고 프라니바투 스에게 푸른 구슬을 쥐어주었다. 마지막으로 본 시오스의 모습은 처참했다. 내가 흘린 피를 뒤집어 쓴채 혼이라도 나가 버린 듯이 나를 멍하게 쳐다보고 있는 눈. 역시 시오스 앞에서 이 일을 하기에는 시오스의 나이가 너 무 어렸던 걸까? 하지만 끝까지 보거라. 시오스. 너는 내 생명처럼 소중한 아이란다. 너를 알게 되어서 무엇보다 기쁜 나였고 나는 너를 키우는 것이 한낱 유희에 불과 하다고는 한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 단다. 시크리오프스의 마지막 일기. 아련히 느껴지는 가슴의 통증과 함께 나는 눈을 떠보았다. 눈이 퉁퉁 붓도록 미련하게 울고만 있는, 아주 고지식하게 지금까지 나만 바라봐온 프라니바투스와 카네스, 그리고 몇 몇 친분이 있었던 드래곤들. 한쪽 구석에서 나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시오스를 향해 손을 뻗었다. 무의식적으로 내게 온 시오스. 눈물 자국이 나있다. "엄마.." 조그마한 입술에서 엄마라는 한 단어가 나왔다. 왜 이렇게 가슴이 뭉클해지는 거지? "엄마.. 시오스 때문에 아프죠..? 미안해요.. 미안.." 조금씩 흐느끼는 나의 아기. 아직 다 자라지 않은 것 같은데.. 조금이라도 더 자라는걸 지켜보고 싶은데 나에겐 시간이 별 로 없다. "쿡, 우리 잘생긴 왕자님. 울지 말아요. 프라니바투스 아저 씨가 치유 마법 걸어 주셔서 다 낳았어." 머리를 쓰다듬으며 내 품에 안겨 있는 시오스를 향해 나는 웃어주었다. 그게 내가 이 아이에게 해줄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였기에.. "내가 기절한지 몇시간이 지났지?" "18시간.." 으음.. 별로 시간이 남지 않았군. 차라리 그대로 깨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본체로 돌아가시지 않겠습니까?" 로드님이 나에게 물어왔고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인간의 몸을 싫어하던 나였지만 그래도 가장 행복한 기억이 남아있던 몸이였으니.. "네 엄마한테 안부나 전해라." 무뚝뚝하게 말하는 아버지. 하지만 눈에는 물기가 어려있다. 후훗, 저번의 그 푼수하고 동일 인물이라는 것이 상상이 안 간다. "쳇, 난 언니에게 갚아줄 빚이 아주 많다구.." 티아. 웬수같은 내동생.. 넌 왜온거얏~! 몇몇 드래곤들과의 인사가 거의 끝나가고 막바지에 이르렀 을 때 자칭 내 비서였던 카라드시크가 내 앞에 부복해 내 손에 입을 맞추었다. "제가 옆에서 챙겨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쓸쓸함이 묻어나오는 말투. 그러고 보니 잊은게 있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 나는 허리를 꼿꼿이 세운 뒤 카라드 시크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옆에서 눈치 빠르게 단도를 건네주는 로드님. '촥' 나는 빠르게 내 손목을 베어 카라드시크의 머리 위로 떨어 뜨리며 약간은 씁쓸한 마음으로 의식을 행했다. "나 블루 드래곤 일족의 수장 시크리오프스는 지금 이 순간 부터 수장의 직위를 카라드시크에게 위임한다. 이것은 나의 명예를 걸고 하는 맹세이며 카라드시크의 수명이 다할때까 지 유효하다." 조촐한 위임식(?)이었지만 그래도 죽기전에 후임을 정해두 고 갔으니 별 걱정은 없다. 뭐, 다른 드래곤들도 반대하지는 않겠지. 누가 반대를 해? 엉? 카라드시크는 내 손목에 입술을 맞추며 기어이 눈물을 떨구 었다. 그래도 나를 위해 울어주는 이들이 있어 행복하군. "잘가라. 나의 귀여운 친구이자 조언자여.." 내 이마에 키스를 해주며 카네스가 말했다. 조언자는 무슨? 맨날 잔소리 하다가 얻어 터지기나 했지. 마지막으로 내 앞으로 나온 프라니바투스는 내 입술에 깊은 키스를 했다. "쿡, 아직도 마음이 변하지 않는 거냐?" "당연합니다. 제가 태어났던 그 순간부터 제 마음은 당신에 게 주었습니다." 낯부끄러운 말은 잘도 한다. "그래그래. 잘났다." "사랑합니다. 당신이 환생 하신다면 저는 당신을 찾아가겠 습니다. 제게 남은 시간은 아주 많으니까요. 하지만 오래 기 다리게 하지 마십시오. 내 목숨같은 사랑이여.." 중얼 거리듯 하는 프라니바투스가 내게 한 두 번째의 사랑 고백. 이번 만큼은 나도 대답을 해주지 않을수 없었다. "내가 아마 평범한 드래곤이었다면 너를 사랑했었을거야." 나는 이 말밖에 해줄수가 없었다. 아무런 기약도 해줄수 없었기에.. 잠이 쏟아지듯이 온다. 죽는 다는 느낌이 이런건가? 뭐, 썩 나쁘지는 않군 그래. 나는 엄청나게 고통스러울 줄 알았다. 쿡, 두 번 죽어도 나쁠건 없겠군. 나는 마지막으로 내 눈에 지금의 모습들을 담아가고 싶었 다. 한마디로 미련이 남았다고나 할까? 내가 환생하게 된다면.. 이 녀석들은 나를 알아봐 줄까? 나는 이 녀석들을 기억하게 될까? 참았던 눈물 한방울이 내 볼을 타고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 에 필 로 그 . . . "아저씨~!" 멀리서 자신을 부르며 뛰어오는 소년을 향해 아니, 이젠 소 년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도 커버린 청년을 향해 입가에 조 그마한 미소를 띄울 수밖에 없었다. "흐음, 또 우셨어요?" "울기는 왜우냐?" 자신의 눈가에 있는 눈물 자국이 청년의 마음에 걸렸나 보 다. 청년은 씩 웃으며 자신의 손에 무슨 편지를 쥐어주었다. "엄마 레어가 무식하게 넓다는 거 잘알잖아요. 이거 찾느라 고 고생 꽤나 했어요." 이게 뭐지..? 조심스레 펴본 편지에는 아주 익숙한 글씨체들이 반듯이 정 렬하듯 놓여 있었다. '프라니바투스에게.. 쿡, 이거 너한테 보여주지 않으려고 일부러 나만 아는 곳에 감춰놨는데 이걸 보고 있는 걸 보니 시오스 녀석이 찾아서 너에게 줬나보네? 하핫, 죽기 전에 쓰는 거라 마음이 조금 착잡하네. 네가 그랬지..? 두렵지 않냐고.. 두려워. 누가 내옆에 있어줬으면 좋겠어. 아아~! 나 죽으면 우리 시오스 어떻게 할까? 물론 지금 잘 돌봐주고 있는 거겠지? 히힛, 내 아들 귀엽지 않냐? 난 너 싫어. 아주 미치도록. 이유가 뭔지 알아? 바보같이 나만 바라보니까. 이거 보면 조금은 너도 반성좀 하고 좋은 짝 찾아서 알콩달 콩 깨 쏟아지게 잘 살라구. 정말 내 조카만 아니면 그냥 넌 나한테 죽었었어. 내가 워낙 마음이 넓어 그런거지. 쿡, 너 진짜 스토커 같았다는 것 알아? 지금에서야 새삼스레 말하는 거지만 내가 유희 나갈때마다 졸졸 쫓아와서는 그냥.. 으이그, 내가 많이 봐줬다. 그러고 보니, 내가 아플때나 힘들 때 니가 곁에 있어줬군. 마지막으로 고맙다. 우리 시오스.. 예쁘고 참신한 여자애한테 중매 좀 서라. 그녀석 보기보다 꽤 여자엔 약해서. 하긴, 내 등살에 눌려 살았으니 장래 시오스가 지 마누라한 테 얼마나 잡혀 살지 걱정된다. 캬캬캬, 그리고 즈리카리안과 프가크리스가 결혼 할수 있도 록 분위기 조성좀 해라. 둘이 치고박는 원수 사이여도 은근히 서로를 좋아하고 있으 니까. 이런이런, 이렇게 말하고 보니 니가 꼭 중매쟁이 같다. 이제 우리 얘기나 해볼까? 하핫, 너 태어났을 때 내가 도끼 던진건 거의 히스테리였다 구. 티아 고년이 옆에서 자꾸 떠들잖아. 너도 알겠지만 난 옆에서 시끄럽게 쫑알 대는거 못참는 성 격이거든. 솔직히 그때는 도끼 던져서 니가 맞아 죽든지 말든지 상관 안했다. 헉.. 그러고 보니 난 헤츨링 살인 미수죈가? 으악~! 안돼~! 너 이거 나 죽고 나서도 로드님께 말하지 말아라. 블루 일족 망한다. 이야기가 딴데로 샜군. 어쨌든 조카인 네가 참 귀여웠던건 사실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단순히 귀엽다고는 표현이 부족했을지도 모르지. 지금 말하는데 너 앞에 여섯이서 내게 청혼했다고 그랬지? 그거 다 뻥이다. 캬캬캬~ ' '꾸깃' 여기까지 읽은 나는 무의식중에 손에 힘을 주어 종이를 구 겨 버렸다. 한마디로 그때 시크리오프스는 자신을 자지고 놀았다는 것 이 된다. 그것도, 심심해서! 자신을 죽도록 패다니!! 큭, 아주 보기좋게 속이셨습니다. 시크! 아직도 시크한테 맞은 자리가 비나 눈이 오면 시큰거린다구 요! 일명 신경통이라고! 아주 어이없는 이유로 저를 병신(?) 만들어 놨습니다. 다음에 보죠. 쿠쿠쿠.. 나는 다시 읽다만 편지로 시선을 돌렸다. '이새끼.. 종이를 구부려? 띱.. 넌 나중에 죽었어.' 헉, 나는 주위에 시크가 있나 두리번 거렸으나 곧이어 그게 부질없는 짓이란걸 알게 되었다. 벌써 환생했을 리가 없으니까.. 그리고 자신을 알아보지도 못할 시크니까.. '캬캬캬, 놀래서 두리번 거리는 것좀 봐라. 흠흠, 이제 장난은 그만치고 솔직히 딱 세 마리 있었다. 하나는 네 아빠고 하나는 카네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비서 카라드시크. 내가 매력이 넘쳐 흐르긴 흘렀지. 음훼훼훼~ 쑥쓰럽구먼~ 뭐, 모두 보기좋게 너처럼 죽지 않을 정도로만 맞고 지금은 친구로 지내고 있으니까. 어이~ 너 지금 가서 니 아빠 족칠 생각 하지 말아라. 너 태어나기도 전의 일이니까. 어린 것이 엄청난 애늙은이 였지 아마? 어려운 책도 많이 읽고 말야. 아머 머릿속에 든건 나보다 니가 더 많을 거다. 나야 원체 기억력이 딸리다 보니까.. 너한테 좋은 감정보다 쌓인게 더 많은 것 같다. 생전 처음 어깨에 칼도 맞아보고 손도 뽀샤져 보고, 후후, 찔리지? 찔려서 눈을 어디다 둘지 모르겠지? 너 찔리라고 한 말이었다. 이제 그만 쓰련다. 이렇게 주절 거렸다가는 평생이 지나도 다 못쓰겠다. 쿡, 이거 하나 가르쳐 줄까? 나.. 네가 청혼했을 때 받아 들일뻔 했다는 거.. 그때 나 너무 외로웠거든.. 뭐,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아라. 그럼... 689년 8월의 어느날에.. 유서정리하던 시크리오프스 씀. "하핫.. 시크! 이러면 제가 포기하기가 더 곤란해지지 않습 니까? 쿡, 어차피 포기할 마음도 없었습니다." 누구에게 하는 말도 아니다. 그저 나 혼자마의 중얼거림일 뿐. "아저씨! 또 우는 것좀 봐! 나도 이제 안운다구요!" 시오스가 자신의 눈가에 다시 맺힌 눈물을 보며 인상을 찌 푸리며 내게 설교를 했다. 도대체 애새끼가 아닌 것 같아~! 언제 이렇게 컸지? "니 엄마가 너 장가보내란다." "에엑? 싫어요~! 난 화려한 솔로로 지낼거에요." "풋.. 과연 그럴까?" "어어? 방금 아저씬 내 말을 무시했어요?" "그래그래. 니 맘대로 해라." 그러다가 나처럼 한사람한테나 푹 빠져 자기가 언제 그랬냐 는 듯이 따지지나 말아라. "엄마.. 행복할까요? 아프시지는 않을까요?" 별안간 묻는 시오스의 말에 나는 그저 웃음이 나올뿐이었 다. "니 엄마가 어디가서 맞고 다니는 것 봤냐? 뭐, 육체가 없 으니 아프지도 않겠지. 드래곤의 영혼은 천계에서 관리를 한다고 들었으니까 지금쯤 천계에서 꽤 난리가 났겠는걸?" "왜요?" "네 엄마 성격이 오죽하냐?" "푸하하핫~! 그건 맞는 말이네요." 빨리 돌아 오십시오. 당신이 어떤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난다 할지라도 결코 실 망하거나 당신을 외면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사랑합니다. 나의 연인이자 기다림이여.. ## 프 롤 로 그 . . . 어둡다. 이곳이 어디지? 내가 알기론 난 분명히 죽었을텐데? 사방이 캄캄하기만 하다. 답답해... 누가.. 나좀 잡아줘. 허공을 향해 손을 휘젓던 내 손가락에 아주 부드럽고 연한 (?) 실크처럼 느껴지는 것이 잡혔다. 당연히 나는 그것을 잡아 당겼고 그것은 이내 비명을 질렀 다. 엥? 비명을 질러? "으악~ 띱.. 무식한 년아! 왜 날개를 잡아당기고 지랄이야? 아에 다뽑아라. 다 뽑아! 끄악~! 더럽게 아프네." 난데 없이 들려오는 욕지기. 나는 화가 난다기 보다는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적어도 이 어둠속에 나만이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는 말이 니까.. "누구냐?" "다짜고짜 반말이냐?" 반말이 익숙한 나는 그 의문의 상대방에게 물었으나 그 상 대방은 왜 반말이냐며 툭 쏘아줬을 뿐이었다. 이 어둠속에 있다는 것도 짜증나 죽겠는데 별 거지같은게 성질을 돋구니 화가 난다. "니가 그 수명도 다 채우지 못하고 죽었다던 드래곤이냐?" 얘가.. 나를 알아? "어? 다 못채우고 죽긴 했지.." "쳇, 따라와라. 대천사님께 안내 해주지." 눈에 뵈는게 없는데 어떻게 따라가라는 거야? 지금 나하고 농담 따먹기 하냐? "쳇쳇쳇, 진짜 쓸모 없군." 곧이어 상대방의 손에서 흰 빛이 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 빛은 주먹만한 공모양으로 변해 이리저리 튀어(?) 다니 고 있었다. 잠시 눈이 부신 나는 눈을 감고 있다가 천천히 떠 상대방을 바라보았다. 노란색 잠옷에 호박빛이 나는 누런 머리를 어깨까지 기르고 등 뒤에는 핑크빛의 날개가 돋아 있는 인간..? 날개가 있어? "조륜가?" "난 새 아니얏~!" "그럼 파충륜가?" "파충류가 일케 생긴 것 봤냐? 으악~ 무식해도 정도가 있 지! 난 천사라구! 천사! 너의 안내를 맡게 된 천사말이야! 에그~ 무식한건 약도 없다더니." 쪼그만게 다짜고짜 반말이네. 재수없어. "너 이일 한지 몇 살이나 됐냐?" "어? 나? 올해로 3281년 됐는데..?" "띱.. 난 이래뵈도 6천살이 넘은 고룡이야. 임마~ 발바닥에 때도 안낀게 어디서 설쳐? 앙? 너 한번 죽도록 맞아야 정 신 차릴래? 콱~ 저걸그냥.." "그.. 그러셨어요..?" 바로 높임말이 나오는 이놈. 크하하핫~ 내가 이바닥에서 눈칫밥만 어언 6천년이다. 이놈이 신참이라는 것은 알아봤지. 음훼훼훼~ "빨리 대천산가, 뭔가 하는 놈한테 안내나 해라." "쳇." 조것이? 아직도 정신을 못차렸고만? '퍼억~' "끄악~" 내 주먹이 녀석의 복부를 가격했고 곧이어 비명을 지르며 날아가 버렸다. 날아가..? 날아가...? 나만 놔두고..? "너 잡히면 죽었어~~~!!!!!!!!!!!!!" 드래곤의 일기 2부 - 1 - 헥헥.. 이곳이 어디지? 그 핑크 천사를 찾느라 쫓아와보니.. 어딘지 모르겠다. 어차피 내가 알고 찾아왔냐? 나는 길 잃은 고아 드래곤이 됐단 말인가!!! "아~ 여기 계셨군요." 곧이어 주위가 환해 지더니 내 앞에 아까의 그 핑크 천사와 푸른 날개를 가진 천사 한명이 착륙(?) 했다. "이 새끼~~! 저 XX할놈의 새끼! 감히 나를 놔두고 튀어? 그래~ 또 한번만 더 튀어봐라. 그 날개 친히 반으로 갈라주 마." "대천사니임~ 보세요! 저렇게 버릇없고, 그렇다고 성격이 좋 은 것도 아니고 힘만 무식하게 쎈 드래곤을 다시 환생 시켜 봤자 이득될게 없다구요오~ 안그래도 밀린 차례도 많은데 저년 뒤로 제껴요~" 저거 나 욕하는 거지? 뭐? 그깟 한대 맞았다고 사내자식이 상관한테 쪼르르 달려가 이 르고 날 환생 못시키게 막아? 내가 그놈에게 손을 쓰려는 순간(무슨 손을 쓰냐구? 내가 패기밖에 더하냐?) 그 푸른 날개를 가진 대천사라는 놈의 발이 핑크 천사의 복부를 짓밟고 있었다. 그러면서 나를 향해 웃으며 하는 말. "하핫, 신경쓰지 마십쇼. 이놈이 들어온지 얼마 안된 놈이 라.." 한 발로 지근지근 밟아 주며 내게 웃으며 말하는 대천사. 엽기군. 나보다 더한 놈이 있었다니.. 독한 놈. "대천사니이이임~!" "시꺼! 이 새끼가! 내가 잠깐 일이있어 볼일을 맡긴 사이에 일을 저질러? 망할놈!" 하하.. 불쌍해라. 내 입에서 불쌍하다는 말이 나올정도의 상황이라면 알아서 머릿속에 떠올리기 바란다. 그것을 일일이 설명해줄만큼 지금 상황은 나에게 여유롭지 않거든? "야~! 그만좀 갈궈라." 보다못한 나의 따뜻한 한마디에 대천사는 여전히 그 예의 바른 미소를 지으며 핑크 천사의 복부를 밟고 있던 발을 치 웠다. "아~ 그럴까요? 하핫. 그럼 그러죠 뭐. 가서 일봐!" "네에.. 훌쩍.." 코를 훌쩍거리며 비틀비틀 날아가는 핑크 천사. "그럼 저도 어차피 시간이 남아도는 직업은 아니니 본론만 얘기하도록 할까요?" "그래라." 그러자 펜과 종이를 꺼내 드는 대천사. 뭐하려고 하는 거지? "그럼 환생하신다면 뭘로 다시 태어나고 싶습니까?" "당연하지 않아? 드래곤." "드래곤이요.." 그러면서 종이에 열심히 적는 천사. "한가지만 묻자. 여기 왜 이렇게 깜깜해?" "밤이니까요. 아침이 되면 밝아져요. 쿠쿡.." 밤.. 밤이었구나. 그럼 가만히 있어도 밝아진단 소리 아냐? 나 혼자 생쇼한거네. "아아.. 이를 어쩌죠? 지금 부화할 헤츨링들이 없는 걸요?" 메야? "왜?" "당연하죠. 교미를 하지 않으니까요. 그러니까 간단히 말해 한마디로 헤츨링 자리가 생기실 때까지 다른 종족의 몸을 이용해야 한다는 말이죠." 그 망할 새끼들~! 나 살아 있을때는 그짓도 많이 해서 헤츨링도 많이도 퍼낳 더만 나 죽으니까 왜 저런다냐? "그래...? 그럼 그 종족이라는 것이 오크나.. 트롤, 뭐 그딴건 아니겠지?" "하핫, 어떻게 아셨어요?" "..........." "농담입니다." 이거 천사 맞어? "종족은 인간. 성별은 뭘 택하실꺼죠?" "으음.." 남자가 좋긴 한데.. "남자." "네. 알겠습니다. 그럼 마침 적당한 인물이 있군요." "그래그래. 그보다 빨리 헤츨링 자리나 알아봐라." "쿡.." "왜웃어?" "아뇨.. 잠시 웃음이 나와서.." (2) "이게 뭐야?" 끄악~! 나는 비명을 지르고 싶은 것을 간신히 삼키며 침대 위로 시 선을 옮겼다. "아~ 인간이지 않습니까?" "알아! 하지만 내가 원한 것은 남자였다구! 저런 비실이같 은 여자가 아니라!" "시크리오프스님도 여성체이지 않았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남자를 원하는 거야." 내 말에 빙긋이 웃음을 짓는 대천사. 뭔가가 불길하다. "그래요? 알겠습니다. 남.성.체를 원하신다구요?" "엉? 어.. 응.." 왜 저렇게 기분 나쁘게 웃는 거지? "끄아아악~!" 난 기어이 비명을 지르고야 말았다. 그 망할놈의 대천사가 또다시 나를 데리고 간 곳은 (어차피 우리들의 모습은 영혼체 이기에 인간의 눈에 띌수 없다.)수 명이 다 되어 죽은 90넘은 할배네 집이었다. "나랑 장난치고 싶으면 말로해!" "분명히 남.성.체를 원하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지금 난 자리가 이것밖에 없는데.." 빙신같은놈.. 영악한 놈.. 하루에도 수천명이 죽어나는게 인간인데 감히 나에게 거짓 말을 해? 거짓말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나는 받아 들일 수밖에 없었다. 개겨서 쟤 기분 나빠지면 헤츨링으로 환생 못하게 될 수 있 는 확률이 아주 높기에.. 뭐,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지 뭐.. "알았어! 알았다구! 그 여자 몸에 들어가면 될 것 아니야! 하지만 분명히 알아둬! 이건 어차피 임.시.방.편 이라는 것 을! 헤츨링 몸이나 수색해봐! 안되면 억지로 라도 그짓 시 켜서라도 만들엇!!" "푸하하핫~! 알겠습니다." 왠지 계획적인 느낌이 풀풀 날린다. 으.. 짜증이 솟구친다. 제발 빨리 헤츨링 자리가 하나 남기를.. "대천사님! 이거 조금 너무한 것 아닙니까?" 나는 방금 그 드래곤을 숨이 끊긴지 얼마 되지 않는 인간 여자의 몸에 넣어 놓고는 콧노래를 부르며 천신계로 돌아와 있었다. 곧이어 나를 부르는 핑크빛의 날개를 가진 이놈. "뭐가?" "아무리 심.심.하.셨.다.고 해서 드래곤의 영혼을 저렇게까 지.." "냅둬." "헤츨링 수가 급격히 늘고 있다니까요! 남는게 헤츨링 자린 데.." 그.렇.다. 나는 이 생활을 6억 9천만년이나 해왔다. 성실하게 모든 임무(?)를 수행하던 나였지만 지루함이 깃든 것은 사실이다. 장난좀 조금 칠까해서 헤츨링으로 태어나야 하는 드래곤의 영혼을 숨이 끊긴지 얼마 되지 않은 인간의 몸속에 집어 넣 은 것이다. 푸헬헬~ 잼있구먼~! "주신님께서 아시면 어떻게.." "이.. 띱.. 너만 입닥치고 찌그러져 있으면 돼~! 캬캬캬~!" 그럼 오늘 내게 맡겨진 일에나 충실해볼까? 뭐.. 일도 저질렀으니 이제 몇만년간 죽어라 임무에만 충실 해야지. 드래곤의 영혼은 나중에 생각날 때 꺼내줘도 별 상관 없겠 지? 이렇게 해서 말도 되지 않은 초 엽기적이며 싸이코적인 대 천사의 손에서 놀아난 시크의 인간으로서의 하루가 시작되 려 하고 있다. 이거.. 정말 천사 맞을까? (3) 나른하다. 온몸이 찌뿌둥 하고 기분이 더럽다. 내 곁에서 들려오는 흐느낌과 통곡소리들. 자꾸 짜증이 솟구친다. 일어나면 다 엎어버릴까? 라고 나는 아주 진지하게 고민도 해봤다. 아직 익숙해지지 않은 인간의 몸. 폴리모프를 하고 있을 땐 그런걸 별로 느끼지 못했었는데 약간 괴롭다. 뇌에서 눈뜨라는 명령을 거부하듯이 눈꺼풀이 무겁기만 하 다. 그런 눈꺼풀에게 한번만 반항하면 사시미로 떠버린다고 협 박(?)을 하고는 나는 눈을 떴다. "꺄아아악~!" 허억.. 왠 비명소리란 말인가? 내 곁에 있던 여인네가 눈 뜬 나를 쳐다보며 끔찍한 비명소 리를 질러대고 있었고 잠시 흐느낌을 멈춘 방안에는 그 여 인네의 비명소리를 빼곤 정적만이 나돌 뿐이다. "시꺼!!" 크게 한번 소리친 내 목소리에 곧이어 입닥치는 여인네. 짜증나라. 그냥 다 엎어버려? 아.. 내가 아직도 드래곤인줄 착각했다. "아.. 아가씨..?" 약간 늙은 여인이 나를 조심스레 부르자 나는 그 여인과 눈 을 마주쳤다. "뭐야?" "어.. 어떻게 방금 돌아가신 분이.." 귀찮아. 귀찮아.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배고파." 배고프닷~! 내 뱃속에서는 위장이 당장 음식물을 들여 보내주지 않으면 가출한다는 협박을 보내왔고 고로 나는 가장 원초적인 본능 을 그 늙은 여인에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이중에 제일 정상적이고 지위가 높은 인간처럼 느껴졌기에.. "네..?" "야! 배고프다구! 누구 굶어죽게 할 일 있냐? 엉? 또한번 죽어주리?" 내 말에 약간의 부산을 떨며 내 곁에 있던 젊은 여자들을 지휘하는 늙은 여인. 쩝.. 내 예감은 역시 정확해~! 쟤가 대빵이었자너~ 키키.. "아가씨, 머리가 조금 이상해진 것 같지 않아?" 내 옆에서 조그맣게 속삭이는 두 여자. "응. 옛날에는 예의범절이 지독히도 바른 분이셨는데.. 저렇 게 막말하시다니.." 나는 비로서 내가 실수했다는 것을 깨닳았다. 이거이거 본 성격대로 행동했다가는 완전 비오는날에 돌아 다니는 소위 XXX 취급 받을 것 같군. "유모님도 꽤 당황하신 것 같지?" "응. 나두 그분이 그렇게 당황하시는 것은 처음 봤어. 하긴, 나두 엄청 놀랬다니까? 어떻게 죽은 분이.." "그러게! 주치의가 사망 확인도 했잖아?" 이 두 여자의 대화로 나는 아까 나간 늙은 여인이 내 유모 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제길.. 이제 어떻해야 하지? '딸깍' "아가씨, 여기 수프를 조금.." 늙은 여인이 내게 물과 수프 그릇을 내보이며 말했고 나는 그 말에 빙긋이 웃으며 대답했다. "고마워요. 유모." 그제서야 얼굴에 화색이 도는 여인. "다시 살아나셔서 이 늙은이는 기쁘기만 합니다." 쩝.. 미안하우. 그대가 기다리는 아가씨가 아니라서.. '쾅~' "뮤즈야!!!" 문을 부수다시피 하며 들어온 중년의 사내. 누구지? 누굴까?? "공작 각하." 고개를 숙이며 물러나는 여인들. 아마도 시녀들이겠지? 으음, 그럼 이사람이 내 아버진가? 공작이라.. 흐음, 인간들의 지위 중에서는 꽤 괜찮다고 들었던 것 같다. "아버님." "오~ 내 아가. 네가 숨을 거뒀다는 소릴 듣고 바로 왕궁에 서 돌아왔는데 아무래도 거짓말 같구나." 니 딸 죽은거 맞어.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우웩~ 구역질이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은 나는 어떻게든 이 상 황을 모면하고 싶었다. 제길.. 망할놈의 천사놈! 사전 정보는 주고 몸속에 넣어 놔야지! 만나기만 해봐라. 그래~ 너하고 나하고 만나는 날이 너죽고 나 사는 날이다. "아버님. 소녀가 잠시 사경을 헤메다 와 몸이 편찮으니 아 버님도 이만 자리에 들어가 쉬시지요." 한마디로 나 피곤하니까 빨리 좀 꺼져줘~ 라는 말이다. "그래, 내 아가. 니 어미를 잃어 내가 사는 이유는 너 하나 뿐인데 내가 무엇을 못해주겠느냐?" 시를 써라. 시를 써. 고로, 이 뮤즈라는 소녀는 어렸을 때 엄마를 잃고 불우한 환경까지는 아니지만 아버지랑 둘이서(물론 저택에 넘쳐나 는 하인들과 시녀들은 제외.) 쓸쓸히 살았다는 말이군. "아버님, 편히 쉬십시오." 하아, 힘들다. 공작이 내 방문을 닫고 나가는 것을 뚫어지게 쳐다본 나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흑, 그러고 보니 나 밥도 못먹었잖아? 나는 아까 유모가 가져다 준 수프를 바라보았으나 이미 차 갑게 식은 상태였다. 쿠쿠, 오크대신 트롤이라는 말도 있는데 그냥 먹지 뭐. 근데 왜 수프만 갖다 줬다냐? 배고파 죽겠다고 그렇게 말을 했는데도.. 에라 모르겠다. 먼저 배나 채우고 봐야지. 흐흐.. 이제 여기가 내 방이라~ 이말이지? 그래~ 아주 잠.시.만. 이곳에서 살아주마! "뮤즈 아가씨~!" 내가 이 저택에서 생활 한지도 어언 한달째이다. 도대체가 익숙해 질 수가 없는 생활. 나는 내가 무엇을 실수하기라도 하면 지금까지 사경을 헤메 다 와서.. 라는 핑계를 계속해 우려먹고 있다. 이것도 언제까지 통할런지.. "유모." "아가씨, 아직 몸도 좋지 않으신데 이런 곳에.. 빨리 들어가 시지요." 그러면서 내 뒤에 있는 기사들을 째려봐주는 유모. 아마도 내가 이렇게 추운 날씨에 바깥에 있는게 기사들 탓 이라는 것처럼. "..... 유모 ......" "네?" "나 밖에 놀러가고 싶은데 허락 안 해줄 꺼지?" "당연한 말씀 자꾸 물어보지 마세요." 쳇, 이곳에서는 숨막혀 죽겠단 말이다~! 자유로운 생활에 익숙해져 있던 나에게는 이곳 생활은 매일 따분한 일상만이 반복되는 지루한 생활이었다. 도망가버릴까? 이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나는 유모의 손에 이끌려 내방으 로 끌려 들어가고 있었다. 분명히 내가 더 신분이 높을 텐데.. 흑.. 이 할머니는 그런 것에는 신경도 쓰지 않는 모양이다. "아가씨. 오늘은 황태자님께서 아가씨의 몸 상태를 알아보 신다고 방문하신다고 하셨어요. 그러니 제발 말썽 피우지 마세요." 그동안 나는 진짜 말썽 많이 피웠다. 담넘어 도망가려다가 미친개(밤마다 저택을 싸돌아다니는 개. 즉, 경비견.)에게 쫓겨 연못에 빠진적이 한두번이 아니 었으며, 시녀로 변장하고 밖으로 나가다가 아버지한테 들켜 잔소리를 연 1시간 동안 들은 전적도 있었으며, 한마디로 지난 한달동안 내가 쌓아 온 것은 이곳에 익숙해지려는 노 력이 아니라 도망만 가려는 화려한 전적뿐이었다. 매일 소심하고 아름답고 기품이 넘쳐흐르던 아가씨가 사경 을 헤메고 온 후 줄곧 말썽만 피우니 아마 유모도 머리 빡 돌기 일보직전일 것이다. 하긴.. 나 참 성질 많이 죽었지. "빨리 들어가셔서 준비하셔야죠." 생각났다. 내 약혼자라는 황태자 놈이 우리집을 방문한다는 것을.. 프라니바투스가 알게되면 에구.. 미쳐서 지랄 발광하겠군. 약혼자라~ ...... 하아, 미치겠군. 어느새 거울앞에 앉아 거울속에 비치는 내 모습을 바라보 니, 참으로 낯설기 그지 없구나~ 황금색이라고 하긴엔 뭣하고 그렇다고 은색이라고 하기에도 뭣한 머리카락들이 부담스레 허리까지 길러 있었고.. 솔직히 부담스럽지는 않다. 발목까지 기르던 나였으니. 어쨌거나 내가 부담스럽다는 것은 이 머리색이다! 지나치게 화려해. 쩝.. 그에 어울리지 않게 보이면서도 묘하게 어울리는 커다란 붉 은 눈동자. 충혈된 것 같아~ 오똑한 코. 그리고 피를 머금은 듯 붉은 입술. 쥐잡아 먹었나? 한가지 익숙한 것은 전번의 내 모습처럼 새하얗기만 한 피 부. 맘에 안들어. 하여간 이 뮤즈라는 여자는 드래곤 때의 폴리모프한 내 모 습보다 더욱더 아름답다는 것이다. "아가씨는 참 아름다우세요. 아가씨의 뜻이 아니라 공작님 의 뜻대로 약혼 한거라 하지만 너무 싫은 내색은 하지 마세 요." 알았다구. 정말, 내 인내심의 한계가 느껴진다. 이 미모로 황태자 놈이나 꼬셔 탈출을 계획해? 그것도 좋겠군. '똑똑' "에구머니나. 벌써 오셨나 보네요." 조심스레 방문을 연 유모는 내 아버지와 또다른 인간이 있 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방문 밖으로 나가버렸다. "뮤즈야~ 오늘따라 더욱 아름답구나." 저게 황태잔가? 뭐야? 많이 먹어도 뮤즈라는 여자보다 한두살 많게 밖에 안보이 네. "하라이스 루네스 린 가아스트라 황태자 전하를 뵙습니다." 으.. 이름 한번 디따 길어~! 머리의 한계가 느껴진다. "아름다운 내 약혼녀를 이곳에서 만나게 되다니 나조차도 반갑소. 몸은 괜찮은 거요?" 금발 머리에 차가운 인상을 주는 검은 눈동자. 잘생겼기는 하나, 인간이 약간 싸늘한 냉기를 날리는 것이 가식적이다. 내가 내린 결론은 하나! 재수없어. "하하핫, 황태자 전하. 제 여식이 눈이 빠져라 전하만을 기 다렸답니다. 그럼 늙은이는 이만 빠질테니 담소를 나누십시 오." 내가 언제? 저 늙은이가 진짜 노망났나? 왜 하지도 않은 짓을 했다고 해? 내게 잘해보거라~ 라는 눈빛 공격을 철저히 한다음 방문을 빠져 나가는 아버지. '달칵' 그 소리와 함께 방안은 침묵의 도가니 속으로 빠져들었다. "........." "........." 아, 띱.. 할말 없으면 가서 발닦고 잠이나 잘 것이지 왜 내 얼굴은 그리 뚫어져라 쳐다본다냐? "쳇, 황제가 눈돌아간 이유를 알겠군. 얼굴과 배경이 죽여주 니 내 약혼녀가 될수밖에.." 이게 뭔소리여? 지금 나한테 시비거는 거냐? "무슨 말씀이신지..?" "쿡, 그렇게 내숭떨 것 없어. 약.혼.녀.씨."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갑자기 벽으로 나를 몰아붙이는 황태자. 뭐하는 짓이야? 내 얼굴 가까이에 자신의 얼굴을 가져다 대며 황태자는 가 증스럽게도 씩~ 웃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시치미 때지 말라구. 그 예쁜 얼 굴 속엔 어떤 가증스런 면이 숨겨져 있을까?" 으음.. 이놈 싸이코적이군. "비켜주십시오. 한 나라의 황태자께서 이런 모습은 추.합.니. 다." "킥." 내 말에 비웃는 이놈. 재수없어~ 본색이 이거였냐? 이중인격? "두번째 경곱니다. 비켜주십시오." "못비키겠다면?" 아아~ 나도 뭐 할수 없지. '퍼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날부러 지는 황.태.자. 나는 나만의 대화법으로(익히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이미 황태자를 떼어 놓은지 오래다. "오호호홋~ 화~앙~태~자~ 님께서 무슨 추태이십니까? 어서 일어나시지요." "쿡.. 푸하하핫~!" 이거 머리를 다쳤나? 왜 웃고 지랄이야? 보통 이럴 때 다른 사람 같으면.. "이 발칙한년! 왕족 기만죄로 네 목을 친히 내 손으로 따주 겠다!" 이래야 되지 않나? 나는 황태자한테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도대체 속마음을 모르는 놈. 고로 나는 아주 사뿐히 황태자의 마빡(머리..;;;)을 즈려밟고 화장대로 가서 의자에 주저 앉았다. 화장대 서랍에 분명 그게 있을텐데.. 어딨지? 저번에 여기서 봤던 것 같은데? "쿡.. 크큭.." 미쳤어! 난 미친놈하고 같은 방에 있다는 것 자체가 불쾌해! "너 왜웃냐?" "푸하하핫~!" 설마.. 아까 내가 머리를 즈려밟아서 아에 돌아버린건 아니 겠지? 내 몸무게가 얼마나 나간다고~! "이새끼야~! 말을해! 말을! 너 미쳤냐? 앙? 죽고 싶어?" "쿡.. 너, 맘에 들었어." 자신의 옷에 묻은 먼지를 털며 일어난 황태자는 나에게 뚜 벅뚜벅 걸어왔다. 아~ 여기 있었군. 나는 화장대에서 무엇을 찾은 그대로 그것을 황태자에게로 던졌다. "뭐지?" 자신의 손에 들린 하얀 약봉지를 가리키며 의아하다는 듯이 내게 묻는 황태자. "진정제." "쿠쿡. 진짜 재미있군." "미친놈한테 재밌다는 소리 들어봤자 하나도 않좋아." "뭐, 어차피 서로 씀고 살 사람인데 지금 친해두는 것 도 좋잖아?" 의미심장하고 약간의 장난스러움이 묻어있는 표정을 하며 내 어깨에 손을 올린 황태자는 곧이어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아~ 진짜, 너 비오는 날 먼지나도록 맞고 싶냐?" 그.. 남자의 중요한 부분을 내가 화장대에 놓여 있는 약간 뾰족한 머리에 꽂는 핀으로 찔러 버렸기 때문이다. 후훗, 나도 이런 잔인한 방법을 쓰기는 싫었다구. "너 진짜 여자 맞아?" "호호홋~ 당연한 말을 그렇게 하냐? 너 나한테 한번만 더 다가오면 그때는 고자가 될줄 알거랏! 오호호호홋~!" 내가 남이 고통스러워 하는 것을 보고 즐기는 뵨.태.였단 말 이냐? 뭐, 어차피 진지한 대화를 나누기는 틀린 우리였다. '후루룩' '쩝쩝' "야 이 새끼야! 소리내지 말고 먹어!" "그러는 지는..?" 나는 자를 후루룩 소리를 내며 마시고 있었고 이놈은 쩝쩝 소리를 내며 과자를 먹고 있었다. 쩝.. 나도 남말 할 처지는 아니군. '탁' 다시한번 내 방문이 열리며 들어오는 울 아부지. 왜 또 왔다냐? "허허~ 사이가 아주 좋은 것을 보니 제 마음도 놓입니다. 황태자 전하." "라이스네경, 경의 따님이 아주 참.하.고, 예.의.바.른 것에 아주 놀랄 따름입니다." "훗, 전하께서도 매.너.와, 기.품.이 넘쳐 흐르신 듯 합니다." '파바밧~' 우리 사이에 튀는 불꽃들. 우리 아버지는 그것을 느끼지 못했는지 연신 흐뭇한 표정만 짓고 있을 뿐이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군요.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그동안 모쪼록 몸조리 잘하시고 주신 선물은 감사히 잘 먹겠습니 다." 뒷말은 물론 나만 들을 수 있도록 작게 말했다. 한손엔 약봉지를 들고 흔드는 것은 잊지 않은채. 가증스러운 놈. 빨리 꺼져라. 나는 그날 아주 이중인격의 황자와 만나 죽이 서로 잘 맞아 띵까띵까 놀았다. 후후후.. 내 언젠가는 반드시 너의 가증스러움을 만 천하에 알리리 라~! 음훼훼훼~ (4) 몸상태가 최악이다. 머리에 열은 끓은 듯이 나며 어지럼증과 두통. 제정신으로 있는게 다행이다. 혹시 이거.. 혼이 바뀐 부작용인가? 설마.. 그 천사놈이 실수를 했을리가.. 아냐~! 이건 설마가 아냐. 진짠 것 같아~~~~~ "아가씨~~~~!" 멀리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 유모겠지. 난 지금 궁안에 와있다. 그 미친 황태자가 저번에 우리집 와서 잘먹고 잘 놀다(?)간 답례로 나와 아버지를 궁에 초청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아버지와 황태자는 무슨 사업(?) 얘기만 나누고 나는 그것을 듣다 못해(머리가 딸려서 뭔 말인지도 모른다.) 잠시 밖으로 나왔다. "하악.." 뜨거운 입김이 목을 타고 나오는 것이 느껴진다. 이런이런, 얼굴도 말이 아니겠군. 튼튼한 몸이라 좋아했는데 그것도 아니잖아? 난 이 몸 주인이 아니란 말이다~! 왜 내가 아파야 하냐구우~! 소리없는 외침이었다. "공녀님, 괜찮으십니까?" 내 옆에 있던 기사 한명이 나에게 조심스레 물어왔다. 그래~ 너희들만 없으면 괜찮아 질 것 같애~! 나의 여러번의 탈출(?) 계획의 전리품이라 할수 있는 이놈 들. 아버지는 나에게 감시겸 경호원 대여섯명을 붙였고 내가 밖 으로 나가기만 하면 따라와 일거수 일투족을 모두 아버지께 일러 바친다. "좀 꺼져주면 괜찮을 것 같애." "아가씨~~~~!" 저 퉁퉁한 몸으로 이곳까지 용케도 달려왔네. 존경하오. 할멈. "왜?" 기분이 가라앉은 나는 무의식적으로 반말이 튀어나왔다. 안돼~ 마인드 컨트롤.... "네...?" 내 반말에 놀랬나 보다. "나 제정신 아니니까 말시키지 마." 이 치맛자락은 왜이리 길고, 아니 그것까진 이해할 수가 있 어!! 왜이리 무거운 거냐구! 안그래도 물먹은 솜처럼 늘어진 난데!!! 흐윽, 누가 뒤에서 치맛자락 가지고 따라와 줬으면.. "너 단검있냐?" 나는 아까전에 내게 괜찮냐고 물은 기사에게 정중히 단검이 있냐고 물었다. 얼떨결에 단검을 내주는 기사. 으음... '쫘악~' "꺄악~~~~~" 아 시원해앳~! 단검은 땅바닥에 질질 끄는 스커트 자락을 아주 깨끗이 잘 라 겨우 허버지를 가리는 미니 스커트를 만들어 놓았고 고 로 다리의 통풍(?)이 잘된 나는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가 있었다. "시끄러워!! 아버지한테 말하면 나 죽어버릴테니까 알아서 해!" 소리 질렀더니.. 머리가.. 으윽, 이짓도 못해먹겠어~! 왜 헤츨링 자리는 빨리 안나는 거얏~! 열받으면 내가 드래곤 찾아가서 교미시켜 버릴까? 그것도 좋겠군. 하지만 일단 내가 조금 쉰다음에.. "쿠쿡, 정말 재미있는 여잡니다." "저.. 저.." 지금 라이스네 공작은 정원에서 자신의 딸이 저지른 만행을 똑똑히 보았기에 할말을 잃었고 황태자는 무엇이 그리 즐거 운지 쿡쿡대며 웃고 있었다. "제 여식이 저지른 잘못을 용서해주십시오." "그렇기 때문에 제 관심을 끄는 겁니다. 하하핫."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하는 라이스네 공작을 바라보며 웃 음을 멈추지 않는 황태자. "조만간 교육을 똑바로 시켜놓겠습니다." "아닙니다. 저는 지금... 헉...."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가는 황태자를 바라보다가 공 작은 무의식중에 자신의 딸이 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무엇보다도 아끼는 자신의 딸이 천천히 땅을 향해 쓰러져 가는 모습. "뮤즈!!!!!!" 공작은 황태자의 뒤를 따라 뮤즈에게 뛰어갔다. 안그래도 핏기 하나없는 창백한 얼굴이 왜그리 안쓰러워 보 이는 것인지..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고 죽은 듯이 쓰러져 있는 뮤즈를 보 며 황태자는 왠지 모를 기분 나쁜 느낌이 온몸을 휩쓸었다. "비켜라!" 뮤즈의 곁에 모여있던 기사들이 갈라지며 황태자가 지나갈 길을 열어주자 황태자는 서둘러 뮤즈를 안고는 곁에 있는 기사에게 소리쳤다. "빨리 내 주치의를 불러라! 안오면 목 잘라버리겠다고 해!! 만약 내 약혼녀에게 무슨 일이 생길시에는 너희들의 불찰로 알겠다!!" '오랜만에 생긴 장난감이 지금 없어지면 안돼지.' 역시 꿍꿍이 속이 있는 황태자였다. (5) 으.. 제기랄, 더럽게 아파. 머리가 깨질 것 같아. 이러다가 또한번 죽는거 아냐? 그래도 저번에 죽을땐 안아팠는데.. 하긴, 빨리 죽어야 그 망할 천사놈 만나 따지지. "너 뭐야?" 눈뜬 내 앞에 바로 보이는 인물. 내가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난후 제일 보기 싫고 가증스러운 놈. "나? 나 몰라? 기억 상실인가?" "농담따먹기 하냐?" "뮤.. 뮤즈야.." 떨리는 목소리로 나를 부르는 목소리.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부들부들 떨고 있는 모습이 안쓰 러워 보인다. 씹.. 어쩐지 이놈이 오늘따라 기어오른다고 했어. 다 들켜버렸다. 나의 이중인격 생활이.. "푸하하핫~!" 나쁜놈. 나를 함정에 빠뜨렸겠다? 프라니바투스보다 니가 더 싫엇~~~!!!! 너, 나중에 프라니랑, 카네스 만나면 주~~욱~~었~~어~~!!! 내 아들은 그리고 9서클 마법사라고!! 그러고 보니 9서클 마법 익혔을까? 익혔겠지. 안익히면 그게 사람이냐? '짝' 볼이 화끈거린다. 아무래도 저 아버지란 인간이 나를 때린 것 같다. 흑, 난 왜 맞고 살아야 되냐고요~!!! "황태자 전하. 자식 교육을 잘못 시킨 제 잘못입니다." 머리를 조아리며 용서를 구하는 아버지를 보며 나는 기분이 더러워 짐을 느꼈다. 내가 맞은 것에 이놈도 꽤나 놀랬는지 나를 빤히 바라보다 가 내 볼에 손을 가져갔다. "안아파?" "아프면? 너도 한번 맞아볼래?" "라이스네경, 다시한번 내 약혼녀에게 손을 댔다가는 내가 용서치 않을 것이오." 쳇, 주제에 개폼 잡기는.. "황공하옵니다." 대체 뭐가 황공하단 건지. "잠시 내 약혼녀와 얘기를 나누고 싶군요." 눈치채고 알아서 빠져주는 아부지. 뭔 얘기를 해? 아~ 우리 2라운드 들어가야 겠구나. 흐흐, 내가 화려한 내 말빨로 확실하게 밟아주지!! "너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했어야지!!" "내맘." "제길, 얼마나 걱정했는줄 알아?" "걱정 하든지 말든지~" "완전 삐뚤어진 여자군." "그러게, 파혼 하라니까." "미쳤냐? 내가 내 장난감을 내손으로 버리게?" "그래? 하긴, 나도 너 가지고 놀아야 되니까 뭐." "하여간 한마디도 안지는 드센 성격." "사돈 남말하냐?" "그러다가 왕궁에서 뼈도 못추리지." "설마 쫓겨나면 내가 갈곳 하나 없겠냐?" '으르렁~' 아아~ 역시 나는 대단해~! 한마디도 안지잖아? 2라운드는 무승분가? 음하하핫~! "너 맘에 안들어." 나는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 진짜 맘에 안들어. 왜 날 못잡아 먹어 안달인 건데? "난 네가 아주 맘에 드는데?" "그럼 너 나랑 결혼 할꺼야?" "응." "그래? 난 싫은데? 난 약혼자가 있어." "어떤 쉐끼야?" 프라니.. 미안하다. 어쩔수가 없어~! 하긴 이 말 들으면 더 좋아할 프라니바투스지. "알아서 뭐하게?" "조져버릴려고." "미친놈." "내가 왜 너한테 그딴 소릴 들어야 돼?" "캬캬캬~ 나 아니면 이런말 해줄 사람이나 있냐?" ".........." 크크큭, 3라운드도 나의 승~! 이것으로 3전 1승 1패다. 마지막.. "됐다. 내가 너하고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겠냐?" "어? 왜 그냥가?" "몸조리나 잘해라." 허억~ 가면 안돼~! 우린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잖아~! (6) "프라니바투스 아저씨~!" "응?" 나는 막 떠날려다가 시오스의 부르는 소리에 멈춰섰다. "정말 떠나실거에요?" "쿡, 유희를 나간다고나 할까?" "저도 같이가요." "넌 마법이나 배워." "쳇." "반항이냐?" "네." 어린 것이 많이 컸군. 시크 오면 일러버려야지. 감히 내게 반항을 했다고.. "같이 가요오오~!" 스물이 넘은 놈이 어린양을 피우며 내 팔에 매달리는 꼴이 라니. "맘대로 해." "헤헤~!" '너를 보고 있으면 괴로워. 시크가 네게 남기고 간 흔적들이 너무 많이 있기에..' 나는 이런 생각들을 지우고 싶었다. 드래곤이 미련이라는 것을 가지다니. "어디를 먼저 갈까?" "수도 같은 곳에 볼게 많지 않나요?" "그래? 그럼 루이크 왕국의 수도로 한번 가보자꾸나." "저야 언제나 찬성입니다요~!" 시크.. 왜 자꾸 요즘에 당신이 생각나는 걸까요? 나.. 당신이 환생했다고 믿어도 되나요? '풀썩'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나는 이 사실을 부정하려 애썼다. 침대 옆에 있는 난간을 잡고 일어나려 했지만 풀썩풀썩 쓰 러지만 했다. 헉.. 나 병신 됐나벼.. "유모!!!!!!!" 째지는 내 목소리가 방 안을 훓고 지나갔다. 문이 열리며 들어오는 유모. "나 못걷겠어. 어떡해야 해?"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말 그대로 나 일어설수가 없다구!!" 어느새 내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나 진짜 이대로 못일어서면 어쩌지? "잠시만.. 침착하세요. 아가씨. 곧 주치의를 불러올께요." "빨리.." 두려워하는 나를 엄마처럼 꼭 안아준 뒤 유모는 방문을 나 섰다. "뮤즈!!"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익숙한 웬수. "뭐야?" "다리가..? 어떻게 된거야?" "잔말말고 놀릴생각 아니라면 빨리 꺼져줘!" 열뻗져 환장하겠는데 저 쉐끼는 왜 들어오는 거야? 것도 숙녀 방문을(언제부터 댁이 숙녀였지?) 벌컥벌컥 열면 서! 대체 매너라곤 눈꼽 만큼도 없어!! "입이 팔팔한걸 보니 죽을 정도는 아닌가 보군." "꺼지라니까!! 자꾸 염장 지를래?" 옆에 있던 재수없는 꽃병이 눈에 뵈자 마자 나는 그것을 황 태자에게로 던졌다. '쨍그랑~' 가볍게 피해내는 놈. 오기가 생긴다. 가위.. 단검.. 심지어는 의자까지 그 놈에게 날아갔지만 여유롭게 피해낸 다. "끄아아악~!" "그걸 여자가 지를수 있는 비명이라 생각되냐?" "너 나중에 두고봐!!" 참으로 걷지도 못하면서 후일을 기약하는 나였다. "쳇, 그래봤자 너 저거 내가 다 맞고 죽었으면 어쩔 뻔 했 어?" "죽어버렷~! 그게 내 소원이닷~~!!!!!" "그럼 넌 사형감일텐데?" "상관 없어! 오히려 그렇게 되길 바라니까~~~~!!!! 으악~! 그 대천사놈! 생각할수록 열받어!! 겨우 진정시켰는데 너땜에 다시 생각났잖어!! 빨리 꺼져버렷~~~~!!!!!!!!" 생각나 버렸다. 헤츨링.. 왜 태어나지 않는거냐? 설마.. 이대로 몇 천년 지내야 되는건 아니겠지? 마법도 쓰지 못하는 이런 몸은 싫엇~! "저기.. 주치의가 왔는데요..?" 열받아서 발광하는 나와 황태자 사이에 조심스레 유모가 말 을 걸었다. 늙은 호박 덩어리 같이 생긴 할아범이 고개를 쑥~내밀더니 갑자기 내 발목을 잡고는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아프시지는 않습니까?" "그냥 확~ 뿐질러 버려~! 저거 일어서게 된다면 나먼저 족 칠테니까!" 저새끼가 지금 주치의한테 뭔소리 하는 거여? 내 다리를 뿐질러 버리라고? 크아악~! "너. 나.일.어.나.면. 아.주. 절.친.한. 대.화.를. 해.보.자.꾸.나." "케케~ 내가 미쳤냐?" 그러면서 방을 나가버리는 황태자. 나쁜넘. 두고 보자. 흐흐흐.. 내 너의 약점을 꼭 잡고 말테다. "흐음, 가벼운 신경성인 것 같군요. 며칠 후면 괜찮아 질겁 니다." "그거 뻥이면 주~우~거!!" 황태자야~~!!! 며칠 후에 보자꾸나. 아주 귀여워해 줄테니! 고자가 될 준비나 철저히 해두거라. 음하하핫~! (7) 그 주치의의 말대로 며칠 후 나는 일어설 수가 있게 되었 다. 후후.. 일어섰으니 갚아주러 가야겠지? 아아~ 지난 며칠 밤낮을 복수와 가슴아픔으로 때웠던 나날 들. 흐흐, 기다려다. 황태자야! 내가 간다~! "야! 황태자 어딨어?" "네?" "황태자 말야! 황.태.자. 니 나라 짊어질 왕자 몰라?" "기사들 훈련소에.." 지나가던 시녀를 붙들고 나는 다짜고짜 물어 황태자가 있는 곳을 알게 되었다. "니네들! 따라오지 마!!" 나는 뒤에서 뚤래뚤래 따라오고 있는 기사들을 바라보며 기 사들 훈련소로 걸음을 옮겼다. "근데 기사들 훈련소가 어디지?" 할 수없이 그 놈들을 앞장 세워 기사들의 훈련소로 가는 도 중 어떻게 하면 그 황태자를 잘 괴롭혔다고 소문이 날까~ 라고 나는 쓸데 없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앗~!" '챙' 넓다란 공터. 호오~ 왕궁에 이런 곳도 있었단 말이지? 내가 찾는 황태자는 검술이라는 것을 하고 있었다. 약한 내몸 지키느라 드래곤 철없던 시절.. 검술이란걸 배워 본적이 있는데, 내가 내린 결론은 하나! 배울게 못된다. 힘들기만 드럽게 힘들고 근력? 뭐, 그런걸 길러야 한다기에 400년 가량 배우다가 관뒀던 나다. 내 몸을 울퉁불퉁 근육질로 만들고 싶지 않았기에! 400년간 배웠으니 아무리 싫어도 솜씨는 느는법. 하긴 400년간 배우면 또라이도 일류 검사가 되겠다. "여어~ 왔냐?" 나를 보며 서슴없이 반말을 내던지는 녀석. 다른 기사들은 내가 공작의 딸내미 인줄 알고 고개를 숙였 으나 그런것에 신경쓸 내가 아니다! "나한테 갚아야할 빚이 있을텐데??" "뭘?" 이놈을 어떻게 납작하게 해주지? 순간 내 눈에 띄이는 것. 길다란 황태자의 손에 들려있는 롱소드. "너, 나랑 검술 시합 할래?" "푸하하핫~!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저게 나를 무시하는 발언을 했어! 이래뵈도 인간계에서는 소드 마스터라고 불리는 카네스에게 서 400년 동안 검술 가르침을 받아온 나라구!!!! "너 만약 내가 이기면 어떻게 할래?" 기사들은 반말과 반말을 주고 받는 우리를 하얗게 질린 얼 굴로 바라보고 있었고 그런 것에 굴하지 않는 우리였다. 이런이런, 이러다가 나 왕족 기만죄로 잡혀가는 것 아냐? "니가 이겨? 내참, 황당한 소리를 지껄이고 자빠졌군." 흑, 나를 무시한 것은 곧 카네스를 무시한거나 마찬가지 야~~!!!!!! "흐흐흐, 글쎄? 두고봐야 알겠지?" "좋아. 대신 조건이 있어. 니가 나를 이긴다면 네 소원을 한 가지 들어줄게. 그리고 내가 너를 이긴다면 넌 내 소원을 들어줘야 해." "좋아!" 드디어 복수할 시간이 왔도다!!! 음훼훼훼~ "야! 레이피어 가지고 와." 곧이어 기사는 레이피어를 가지고 내앞으로 다가왔고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을 받아 들였다. "이 거추장한 치마는 찢어 버리는게 낫겠지?" "맘대로." '찌~익' 들어난 내 하얀 속살에 고개를 돌려 외면하는 기사들. 푸하하하~ 귀엽군. 잠시 레이피어의 날이 제대로 섰는가 살펴보는 나. '흐흐, 저녀석 조져버리기에는 문제가 없겠어.' 아아~ 가끔씩 이녀석과 있으면 빡 돌아버리고 있는 나를 발 견한다. (8) "헉헉, 생각보다 제법인데?" "누가 할소릴!" 지금 우리는 연 1시간 동안 검을 부딪히고 있었다. 이미 기사들은 넋나간지 오래고. 내가 한방에 질줄 알았다면 오산이다! 근데.. 이놈 왜이렇게 쎈거야? 카네스한테 400백년 배운 나와 겨우 몇 년 배운 이놈과 실 력이 똑같다니~! 믿을수 없어!! 딴생각 하는 나를 바라보며 내 빈틈을 찾고는 찔러 들어오 는 황태자의 롱소드. 이거, 피할수 있을까? '챙~' 막.. 막았다. "이제 시작이라구!" 그러면서 왼쪽 손에 들려있던 단검을 내 목에 가져다 댄다. 자신의 롱소드를 피할 때 이런 반칙을 쓰다니!! "하라이스 황태자님 승!!" 곁에 있던 기사가 이것을 보고는 크게 외쳤다. 이건... 이건.... 반칙이라구우~! "반칙이야!!" "우리가 언제 정정 당당하게 싸운적 있냐? 이기면 장땡아 냐?" 저게 어떻게 봐서 황.태.자.란 말인가!! 안그래도 힘들어 죽겠는데 패배감으로 나는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황태자의 반칙에도 아무말 하지 않는 기사들. 저것들 기사 맞아? 다 때려 치워버려!! 어느새 아까의 단검 때문에 내 목에서 가늘게 흘러내리는 피. 약간 쓰라리다. "괜찮냐?" 손을 들어 목에 가져다 댄 나는 베어나오는 피를 보며 씩~ 웃었다. '할짝' "헉.. 너 돌았냐?" 할짝 거리며 피를 핧고 있는 나에게 돌았냐고 묻는 황태자. 난 지극히 정상이라구! 이 피먹는 버릇좀 고쳐야 된다니까!! 헤헤, 역시 드래곤일때의 내 피가 젤루 맛있었어. "너 며칠 굶었냐? 궁에서 밥 안주디? 공작이 너 굶겨?" "내가 배고파서 이러고 있는줄 알앗!!" 주저 앉아 있던 나는 진것에 대한 화풀이로 황태자의 정강 이를 그대로 걷어차 버리고는 씩씩거리며 훈련장을 나왔다. 두고봐. 나쁜놈. 무슨 일이 있어도 지금의 이 치욕은 갚아줄 테니까! "치료하지 않으셔도 괜찮겠습니까?" "꺼져버려!! 으악~~~~~!!!!!!!!!!! 내가 이곳을 일주일 내로 탈 출하지 않으면 자살한다!" 탈출 계획을 다시 세워야 겠어. 내 아버지의 얼굴을 보니 절대 몇 달 안으로 궁을 나갈 생 각이 없는걸 보니 나라도 탈출해야겠어. 저 비유상한 놈과 그의 떨거지들하고는 도저히 같은 공간에 서 숨쉬고 있을 수 없어! "뭐가 그렇게 심성이 꼬이셨습니까?" 내 뒤에서 들리는 기분 나쁜 목소리. "뭐야?" 짜증이 솟구쳐 화풀이 대상으로라도 삼으려 고개를 돌린 내 앞에 새파랗게 젊은 놈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공녀님. 왕궁 수석 마법사 시라이네 쥬르 팔라스 라고 합니다." 왕궁 수석 마법사...? 내가 알기론 그 황태자의 심복? 잘만났다! 내가 널 황태자 대신 갈궈주마!! "왜? 그 황태자가 나 열받아서 죽을 지경이니 가서 어떻게 죽나 구경이라도 하고 오라디?" "뭐, 꼭 아니라고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쌍쌍으로 재수없는 새끼들." 어째 황태자보다 더욱더 속을 알수 없는 녀석. 그러고 보니 마법사라고 했지? 그래.. 마법.. 후후, 마법을 익히면 되는거야. 이론은 완벽하게 머릿속에 들어 있으니 실습만 해보면 되는 거야! 저놈 때문에 내가 나갈수 있는 탈출구가 생기게 됐군. 고마워 해야 하나? 아냐! 내가 왜 웬수의 심복에게 고마워 해야 하는 거야? "음하하핫~!" 기분나쁘게 웃는 나를 긴장한 얼굴로 쳐다보는 그놈을 무시 한채 나는 서둘러 내방으로 걸어갔다. 텔레포트 마법으로 내가 사라져 주마! 캬캬캬~ (9) 어려워.. 결국 마법을 시작한지 2시간 만에 나는 포기했다. 제길, 이 몸으론 아무리 마나를 모아봤자 텔레포트 한번 하 면 탈진해서 죽는다는 소리아냐? 으아~~~~ 도망간다고 큰소리 뻥뻥쳤는데. 이론이 머리에 다 들어있으면 뭘~ 하냐고요!! 그걸 실행할 능력(?)이 없는데! 그럼 최악의 경우 그 가증스럽고 비열하고 치사 만땅인 놈 과 결혼해서 잘먹고 잘 살아야 한다는 소리 아냐? 거기 까지 생각이 미치자 곧바로 명상에 잠기는 나. 명상하는게 마나를 모으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들은 기억 이 있다. 어디서 주워들은 것은 많아가지고..;;;; '달칵' 으.. 맘잡고 일(?)좀 해보려 했더니 어떤 자식이 와서 훼방 이야? 짐작 가는 곳이 있는 나는 눈을 뜨지 않고 말했다. "씹, 개자식. 노크도 안하냐?" ".........." "얼레? 이제 내 말 씹냐?" 아무 응답이 없자 눈을 뜬 나는 도망을 가고 싶었다. 이게 어떻게 된거야~~!!!!!!!! 방 안에는 일렬로 나열해 있는 기사들과 우리 아버지. 그리고 처음 왕궁에 와서 만났던 황제라는 중년 남자가 같 이 있었다. 난 망했어~~~!!!!!!!!!!! 내 말투에 벙쪄서 입에 개거품을 물고 할말을 잃은채 손가 락질 하며 나를 가리키고 있는 아버지. 미안해요~~~~~!!!!! 그 가증스런 놈인줄 알았어요~ 그러게 노크 해야죠~! "하.하.핫, 라이네스경, 딸이 참 활.달.한. 성격이구려." 억지로라도 이 상황을 해결하려는 황제의 노력이 눈물겹구 나.. 고맙수! "폐하! 죽여 주십시오!!" 아저씨.. 난 죽기 싫단 말야. 내가 차마 보진 못했지만 그 황제의 뒤에서 배꼽 빠져라 웃 고 있는 자식. "너 이새끼!!!!" 내눈에는 그놈밖에 보이지 않았다. 흑, 또 저놈의 농간이었단 말인가? 나 이러고도 살아야 하는 거야? 3층에서 빼꼼히 열려 있는 창문. 떨어져 죽고 싶어~! 그럼 이 상황에서 당분간 모면은 되겠지. 흐흐, 하지만 혼자 죽을 수는 없는법~! 내 너만은 꼭 저승동무로 데려가겠다~! 침대에 앉아 있었던 나는 성큼성큼 걸어가 황제에게 간단한 목례만 한 후 뒤에있던 그 새끼의 귀를 잡아 끌었다. "으갸갹~ 아프다구!!" "아프다고 한짓이야. 바보야." 내 행동을 보며 슬그머니 미소를 짓는 황제. "우리 아들을 그정도로 다룰 수 있는 여자가 있었다니, 놀 랄따름이오. 레이디 뮤즈." "폐하, 소녀가 한가지 청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왠지 이 황제는 내 편인 것 같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거 이 상황을 최대한 이용해 주지! "입닥쳐라. 뮤즈! 황제께 이 무슨 실례냐? 당장 사과 드리지 못할까!" 아버지는 좀 빠져주세요! "그만 두게. 라이네스경. 장래 내 며느리가 될 아이네. 그 아이가 부탁한다는데 무엇을 못들어 줄꼬?" 역시 내편이었어~! "잠시 나가 계셔 주시면 안될까요?" "무례하구나!!" 이거 진짜 아빠 맞어? "이유를 물어도 되겠나?" "이유를 물으신다면 장래 지.아.비 될 분의 교육을 시키고자 합니다.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도 제 방문을 열지 않으셨 으면 합니다." "허허~ 당돌하구나. 알았다. 내 네말대로 하마." 그렇게 말하며 방을 나가는 황제. 고로 정렬해서 나가는 기사들과 아버지. 흐흐, 이제 이 방에 단 둘뿐이라 이거지? "너 가까이 오지마!" 뭘 그리 두려워 하시나? 황.태.자. "내가 받은 만큼 돌려줘야 하지 않겠어?" 교육 시키겠다고 허락도 받았겠다~ 이제 눈에 뵈는게 없는 나다! "너 때문에 자.살. 까지 생각했던 나라구! 죽는게 더 낳을 정도의 고통을 안겨 주지!" "미친년." "조금 후에도 그런 말이 입밖으로 나올지 심히 궁금해 지는 군." 그 넓은 방안을 나를 피해 도망 다니는 황태자. 도망 가거라! 어차피 지풀에 지칠테니! 그때 잡아서 족쳐주마! 설마 지도 체면이 있을텐데 쪽팔리게 방문을 뛰쳐 나가겠 어? "게임 스타트." 나는 천천히 그 가증스러운 놈을 향해 걸어갔고 놈은 꽁지 빠지게 도망갔다. 사냥감(?)이 이래야 제맛이지! 지금까지 내가 마음고생 한것과 플러스 해서 널 패주마! 한동안 잠잠했던 나의 싸이코 기질이 머리를 들고 일어나는 순간이었다. "나 아무래도 잘못 건드렸나봐~!" 절규하듯 외치는 황태자를 향해 나는 씨~익 웃어주었다. "오호호홋~ 그걸 이제야 깨닫다니.. 늦었다는 말을 해주고 싶군. 황.태.자." 날 건드리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몸소 실천으로 옮겨주지. "좋은 말할 때 제발로 걸어와서 덜맞는게 신상에 좋을거야. 호호홋~!" 이날 이후로 황태자는 나를 '마녀' 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그 소리가 들릴때마다 물론 비오는날 개패듯이 황태자가 두들 겨 맞았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뭐, 내가 이렇게 설칠수 있는 것도 황태자 보다 더 높은 황 제가 내편이라는 것! 한마디로 빽이 든든했다는 말이다. (10) "아저씨~ 왜 밖에 나와 있어요?" "아저씨라고 안부르면 안되냐?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잖 아!" 으.. 완전 내가 늙은이가 된 기분이다. "쳇, 그럼 뭐라고 불러요?" "형이라고 불러라." "그럼, 형~ 왜 밖에 나와 있어요?" 할말 잃었다. 그래~ 내가 너한테 뭘 바라리? 시오스.. 9서클 마법을 마스터 해버린 초 괴물 적인 인간..;; 쿡, 아마 시오스는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할걸? 이미 인간의 한계라는 것을 뛰어넘어 버린 아이니까.. 시크, 당신이 원한게 이런 거였나요? 우리들처럼 영원의 고독을 이 아이에게 줄 참인가요? "너 내 소원 들어 준다고 했잖아~!" 아까부터 곁에 들러 붙어 땍땍 거리고 있는 황태자. 왜 자꾸 황태자라고 부르냐구? 이딴놈 이름 알아서 뭐에 써먹냐? "흐흐, 비겁한놈. 소원? 웃기고 자빠졌네. 드래곤 브레스 뿜 다가 기도막혀 디지는 소리 그만하고 꺼져줘." 명상에 잠긴 나는 철저히 이놈을 무시하기로 마음 먹었다. 어째 저번에 한번 맞고 난뒤에 더 달라붙는 것처럼 느껴지 는 것은 왜일까? 설마.. 불난집에 부채질 한 격인가? 아니야.. 억측일거야. "나쁜년, 약속도 안지키는 년. 바보팅이, 그래도 이겼는데 이제와서 발뺌을 해? 인간도 아닌 오크의 탈을 쓴 괴물." 참으로 유치하게 노는구나. 이런것에 넘어갈 내가 아니... "이새끼~! 더 맞아야 정신 차릴래? 소원? 그래? 뭔지 한번 들어보자!" 내 자신이 싫어져~ "헤헤~ 키스해줘." '퍼억~' 내 주먹이 장렬히 황태자의 얼굴에 떨어졌고 쌍코피를 주르 르 흘리는 황태자. "말이 되는 소리를 좀 하고 다녀라. 빨리 꺼져. 안그러면 지 금 비도 오는데 미친년한테 맞아 볼래? 미친년이 비오는날 어떻게 되는줄 익히 알고 있을 텐데? 오호호홋~!" "쳇, X가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알고 있으면 빨리 나가." 저녀석은 왜 내방에 와서 이 지랄인지.. 난 빨리 마나를 모아서 탈출해야 되단 말이다~! 내가 이렇게 서두르는 이유는.. 바로.. 저놈과의 결혼 날짜가 잡혔기 때문이다. 앞으로 19일 남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탈출 해야돼. 으악~ 대천사야~ 오면 안때릴테니까 제발 나좀 데려가 줘~! 그냥 헤츨링으로 태어날때까지 천계에서 기다릴래~ "대천사님, 왜 그러십니까?" '긁적.' "아~ 누가 내 욕하는 것 같아서.." 아침부터 귀가 가렵다. 그러고 보니 뭔가 잊은게 있는 것 같은데..? 뭐지? 얼마전에 무슨 재미있는 일이 있었는데? "대천사님.. 이 서류는.." 아아~ 바쁘다. 뭐, 재미있었던 일이 있었다면 재밌었다고 느꼈으니까 그만 이겠지 뭐. 역시 시크의 일은 기억도 하지 못하는 망할 대천사였다. 언제적이나 기억하게 될꼬? 아마도 시크가 늙어 죽어 천계에 다시 올때까진 기억도 못 할 것 같다. (11) "이게 아니야~~!!!!!!" "아가씨, 이 옷은.." 으아~ 열뻗쳐서 돌아가실 지경인데 왜! 지금 옆에서 결혼식 옷타령을 하냐고요!! "나가! 나가라구! 내가 들어오라고 하기 전까지 들어오면 진짜 사람이 죽는 다는게 뭔지 보여 주겠어~!" "아가씨! 이제 열흘 정도밖에 남지 않았어요! 자꾸 그러시 면 공작님을.." 어뜬 년이 나한테 개겨? "너냐? 니가 감히 내가 대업(?)을 하겠다는데 회방 놓냐? 내 인생 망치면 니가 책임 질꺼야? 오호라~ 아빠를 불러 온 다구? 불러! 불러 와보라 이거야!~~~" 배째!! 광기 어린 나의 눈을 보고는 슬금슬금 물러간다. 텔레포트... 흐윽, 어느 세월에 마나를 모아 탈출 하냐고요~~~!! 희망이 없다. 남은건.. 육체 노동 뿐인가? 하긴.. 지금껏 정신적인 고통이 많았으니 이번 한번의 시도 로 탈출을 할 수만 있다면야.. 후후, 내친김에 하랬다고 오늘 밤에.. 뭐, 성공한 적은 한번도 없고 실패한 전적이 더 화려해 두 렵기는 하지만, 지금으로선 이 방법밖에 없다. "캬캬캬~! 역시 하늘은 나를 버리지 않으셨어~~~!!!!!" 나의 우렁찬 웃음소리가 방안을 가득 메우고 밖까지 울려 퍼지자 시녀들은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으나 곧이어 미친 듯 이 웃어제끼는 나를 보고는 문을 닫고야 말았다. '달칵' 고요한 복도에 유난히 크게 울려 퍼지는 내 방문 소리. "어디 가십니까?" 잊었다. 내 방앞에는 언제나 기사들이 버티고 있다는 것을.. "아, 산책! 그래! 나 산책 간다구!" 걸음을 옮기는 내 뒤를 졸졸 따라오는 놈들. 니네들은 잠도 없냐? '이걸 어쩌지?' "너네들은 그냥 가서 볼일 봐." 묵묵부답. "나 혼자 가도 괜찮은데.." 침묵... "흐흐, 니네 월급주는 사람이 누구더라?" 오호라~ 돌아서서 간다. 역시 돈의 힘이란 위대한 것이여~~~~~!!!!! 의외로 쉽게 기사들을 떼어내버린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정 원으로 나왔다. 여기로 쭈~욱 가면 내 뛰어난 기억력으로는 성문이 있을텐 데.. 지금 이 시각에 성문을 열면 눈에 띄겠지? 역시 담벼락을 넘는 수밖에는 없나? 아냐, 마법이 걸려 있을 텐데.. "이제 어디로 가야 되지? 으아~" 고민을 하고 있는 나는 문득 어제 아침에 시녀 하나가 궁의 뒤쪽에 있는 조그마한 쪽문으로 들어오는 것을 목격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 쪽문은 24시간 내내 개방되어 있지만 그만큼 검사가 엄 격한데.. 할 수 없지. "뭐~ 자유를 위해서라면야.. 무엇을 못하리?" "무슨 자유?" "당연히 탈... 끄악~~~~!" 갑자기 내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무의식중에 대답을 하던 나는 까무러 칠 수밖에 없었다. "너 이쉐끼.. 니가 왜 여기 있는 거야?" "내맘이지. 그러는 너는?" 그.. 그렇지. 이놈이 어떻게 여기있든 내가 상관할바가 아니 지. "나? 음.. 나야 뭐 꽃이나 구경하려고.." 으악~ 말도 안되는 소리! 야밤에 눈에 뵈는게 없는데 꽃구경은 무슨? "흐음.. 정말?" "정말." "진짜?" "..응.." "정말 딴 꿍꿍이 없어?" "어.. 없어.." "네 명예를 걸고 약속 할 수 있어?" "그래~ 있다! 있어! 됐냐?" 나는.. 왜이리도 단순하단 말인가? "쿠쿡, 넌 정말 재밌어." "놀리는 거라면 가서 잠이나 퍼자라." "진짠데.." 난 아무래도 이놈 장난감으로 태어났나벼...;;; "어디 갈꺼야?" "성밖." 뭐, 더 이상 숨길 것도 없지 뭐. 나중에 이놈이 없는걸 확인했을 때 나혼자 일을 처리해야 겠군. "그래? 그럼 같이 가자. 너 성밖 구경 한번도 안해봤지?" 오잉? 이게 무슨 소리야? "어? 응.." "호기심이 생길만도 하지. 것도 너같은 인간은.." 말을 해도 꼭 기분 잡치게 말해요. 후후, 하지만 의외로 쉽게 됐는걸? 설마, 황태자가 밖에 나간다는데 어떤 미친놈이 안보내 줘? "누구냐!" 머리에 로브를 둘러쓴 나는 황태자의 뒤를 졸졸 따라 쪽문 에 도착했다. 쪽문이라고 해도 보통 저택의 정문 정도다. "나야~ 나~!" 이 한미디로 모든게 해결 된다. "황태자님! 또..?" "응~" 순순히 비켜나는 기사들. 이런적이 한두번이 아닌가 보지? "뒤에 딸린 떨거지는..?" 내가 떨거지라고? "아~ 오늘은 몸종이 조금 필요해서.." "후후, 재미 좋으시겠습니다." "응~" 이... 이놈들 무슨 말을 지껄이는 거야? 기사가 저런말 해도 안짤려? 그리고 맞받아 치는 이놈은 또 뭐야? 아무튼 무사히 쪽문을 빠져나온 우리. "어디로 먼저 갈까? 시장? 그러고 보니 오늘이 5일에 한번 열리는 장날이지? 아마 지금부터 상인들이 몰릴껄?" 내 손을 잡고 골목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말을 거는 황태 자. 후후, 미안하오. 황태자. 나는 그런곳에 갈 여유가 없다오. 이미 내 손에는 벽돌 하나가 조심스레 들려 있었다. "야!" "왜?" 그놈이 고개를 돌리는 순간 장렬히 그놈의 면상에 작렬하는 벽돌. 흐흐, 미안하다구~ 이럴 수밖에 없는 날 용서해에~! 설마 죽지는 않았겠지? 손을 탁탁 털며 그 자리를 벗어나려는 내 뒤로 아주 음산한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뭐하는 짓이야..?" 아직, 기절 안했어? "독한놈!" "누가 할소릴!" 얼굴에 아주 이쁜 벽돌 자국이 찍힌 그놈은 내게 서서히 다 가오기 시작했다. 왜.. 왠지 이 분위기 장난 아닌걸? 이럴때는 본능적으로 튀어나오는 한가지 생각. 튀어! (12) "너 거기 안서? 너 잡히면 주~욱 었어!!" "미친넘~ 잡아 봐랑~ 서란다고 서는 바보같은 넘 구경해봤 냐?" 난 절대 서지 않는다. 다만 발을 더 열심히 놀릴뿐이다. 헥헥, 체력의 한계가 느껴진다. 저놈은 뭐가 그리 팔팔한지 아직도 내 뒤를 바싹 쫓아 오고 있었고 이제는 아주 농담까지 던지며 쫓아오고 있었다. 한마디로 가지고 논다랄까? 지가 맘 먹으면 언제라도 붙잡힐수 있는 나였다. "좀 빨리 달리지 그러냐? 느려 터졌네." "시꺼!" 살인 충동의 욕구가 무럭무럭 솟아 오른다. 참아야 하느니라.. '콰당~' "끄악~~~~ 어떤 쉐끼야~~~!!!!!!" 아무래도 내 입방정은 그냥... 세상에 욕먼저 튀어나오는 입이라니.. 내 앞에는 황금빛 머릿결을 가진 선이 고운 사내와 그와 같 은 조금 앳되보이는 사내 하나가 서있었다. 어디서 많이 본 얼굴들이군 그래~ "바보같은 년. 멍청한 년. 눈이 삐었냐? 사람이 앞에 있는 것도 모르고..?" "제발좀 꺼져줘~!!!!" 일생에 도움이 안되는 놈! 나는 이 사람들을 어디서 봤는지 기억할 여유따윈 없었다. 다만 이 놈에게서 도망가야겠다는 생각만이 머리를 차지하 고 있었다. "쳇, 부딪혀 놓고 사과도 안하고 가네요." "시크..?" 시크야..? 나는 이젠 멀어져 가는 여인의 뒷모습과 그 뒤를 여유롭게 따라가는 청년의 모습을 보며 문득 시크를 떠올렸다. "무슨 소리에요?" "아니..." "엄마요? 에이~ 설마요.. 하긴, 저런 말투 쓰는 사람이 그리 흔할리도 없겠군요." 사실 내가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여자를(속도 한번 디따 빠 르군. 그걸 여유롭게 쫓아간 사람이 더 대단한 건가?) 시크 라고 생각한 이유는 말투 때문이다. 말투가 너무나 익숙해서.. 후후, 과대망상증인가? 하긴.. 그녀가 나를 알아보지 못할리는 없겠지. "가자." "맞아. 시장 가신다고 하셨죠? 히힛~ 맛있는거 많이 사줘야 되요~!" 돈 날아가는 소리가 들리는군. 내가 이놈과 여행하면서 뼈저리게 느낀 점중에 하나가 바로 밥통이 무식하게 크다는 것이다. 그러고도 살이 찌지 않는 다는 것이 대단하지만.. 다큰놈이 어린애처럼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번진다.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게 있다. 아까 그여자.. 왠지 뭔가가 꺼림칙 하다. (13) 포기했다. 끊질기다 못해 고탄력 고무줄 같은놈. "이제 포기냐?" "그래. 이 망할놈아! 도대체 무슨 일을 하려고 해도 이놈 때 문에 되는 일이 있어야지!" "누가 도망가래?" "풋... 푸하하핫~!" "뭐.. 뭐야?" 얼굴 정 중앙에 시뻘건 벽돌자국을 새긴채로 날 뒤따라온 모습이라니.. 잘생긴 얼굴이 한순간에 망가졌군 그래? "쿠쿡, 니 얼굴 예술이다~! 캬캬캬~!" 배꼽을 잡고 뒹구는 나를 보며 그제야 상황이 이해가 갔는 지 안그래도 시뻘건 얼굴 색이 피가 몰려 전체적으로 빨갛 게 되었다. 어지간히 부끄럽나 보군. "웃지맛!!" "니 얼굴보고 안웃는 사람이 더 이상한거다." 그렇지.. 그거야.. "야.." "왜?" "너 쪽팔리지?" "당연한걸 묻냐?" 솔직해서 좋군. "너 그거 알아? 난 지금 네 약점을 잡은 거야. 내가 왕궁에 가서 이 사실을 소문으로 부풀리면 어떻게 될까?" 흐흐, 난 네 약점을 잡았다! 지금까지 당한 만큼 되돌려 주리라~! 참으로 악랄하고 비열한 나라는 인간을 뼈저리게 느꼈다. 뭐, 세상 사는게 다~ 이런거지 뭐.. "쿡,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군. 날 이렇게 만든 사람이 누 군데 그래? 과연 이번에도 폐하가 가만히 있을까? 넌 날 죽이려고 했다고!" ................... 내 꾀에 내가 속아 넘어갔다. 괜히 말했어~~~~ "아잉~♡ 그냥 한번 말해본 거였어~!" 내.. 내가 생각해도 도저히 입밖으로 낼 말이 못된다. 하지만 이런 말을 하는 나는 뭔가? 갑작스런 나의 애교에 당황한 황태자. 나조차도 당황했단다. "너 죽을 때 됐냐?" 저 자쉭이 말을 해도 꼭... "흑, 너무해. 넌 여자의 마음을 몰라줘.." 뛰어가는 나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 갑자기 쫓아와서는 내 머리채를 움켜 잡는다. "감.히. 내.앞.에.서. 연.극.을.해?" 눈치 빠른 자쉭.. 은근슬쩍 빠져 나가려 했던 나. "놔! 놓으라구! 그래~ 원하는게 뭐야?" "키스." "나가 죽어라." 이놈한테 뭘 원하냐고 물은 내가 바보다. "우리 사이에 뭘그래?" "우리 사이? 아항~ 언제부터 죽일 놈의 원수 사이가 다정한 우리 사이가 됐냐?" "일주일 후면 같은 침대 쓸 사인데 뭘 그리 섭하게 말을 해?" "놀고 자빠졌네. 너하고 나하고 같은 침대 쓰는 날이 너 시 체로 발견될 날이다." 아마도 이 자쉭은 날 놀리기 위해 태어난 신의 장난같은 존 재인 것 같다. 프라니도 이정도는 아니었다구!! 그자식은 날 사랑하는 정도가 강해 날 괴롭힌 거지만 이녀 석은 단순한 장난이라는 느낌이 풀풀 새어 나온다. 이러다가 진짜 얘한테 시집가는 거 아냐? 대천사라는 놈이 데리러 올때까지 평생 이놈 얼굴 보며 살 라구? 난 그렇게 못해! 아니 안해!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두고 보자구~!! (14) "힝... 넘 맛있다~!" 우는 소리를 내며 내 옆에서 아이스크림을 할짝이는 시오 스. 사달라는거 다 사줬는데 대체 뭐가 불만이야? "또 뭐?" "히힛~ 저거요~!" 시오스가 가리킨 곳에는 애완동물만을 전문적으로 파는 곳 이 있었다. "안돼." "힝.. 왜요?" "나 동물 싫어해." "쳇, 엄마는 동물같은거 좋아하셨는데.. 그래서 시오스도 동 물 좋아하는 건데.. 프라니 형은 그것도 모르고!" "가..자.." 졌다. 그래, 니가 원하는거 다~ 해주마! 폴짝 거리며 즐거운 걸음걸이로 가게 안으로 들어가는 시오 스. 발걸음이 무겁구나~ "끼앗~ 강아지 넘 이뿌다.." 눈물을 글썽거리며 강아지를 내려다 보는 시오스. 왜 눈물은 글썽 거리는 건데? "얼마에요?" 결국.. 강아지로 낙찰 봤다. 어차피 금방 죽을텐데 사서 뭐하려는 거지? 마음만 아프잖아. "끼우, 끼우." 시오스의 품안이 싫은지 뒤척거리는 강아지. "니 이름은 이제부터 시크야~ 시크~ 알았지?" 저자식.. 왜 개한테 내 연인의 이름을 붙여주는 거냐~~~~!!!! 자꾸 품안에서 벗어나려는 강아지를 바닥에 내려놓은 시오 스는 발발거리며 돌아 다니는 강아지가 뭐가 그렇게 좋은지 뽈뽈거리며 쫓아다니고만 있었다. 덕분에 나는 시오스의 꽁무늬를 쫓아다닌 건 말할 것도 없 다. 저놈은 시크 닮아서 방향치니까. 잃어 버리면 나만 골치 아프지, 뭐. "으악~~~!!! 이 개새끼 뭐야?" 하이 소프라노의 날카로운 목소리. 짜증이 난 나는 고개를 들어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살펴 보 았다. 아까.. 그 여자..? 오늘 하루 봉사하는 셈 치고 그 황태자를 따라 시장에 나왔 는데 의외로 볼거리가 아주 많았다. "저거 맛있겠지? 저거 사줄까?" 이놈만 없으면 아주 즐거운 하루를 보낼텐데. 이미 탈출한 마음따윈 물건너 갔다. 어떻게든 이놈 마음을 돌려 놔야지. 파혼으로... "아니. 아이스크림 사줘." "잉.. 그거 비싼데.." "지금 개기는 거냐?" "아니..." 곧이어 비싼 아이스크림을 사러 가게 안으로 들어간 황태 자. 딸기와 초코가 섞인 아이스크림을 내 앞에 내놓는다. 헤헤~ 맛있겠다. "앙~ 마시쪄.." 행복한 듯 아이스크림을 떠먹는 나를 보며 미소짓는 놈. 난 먹을 때 누가 꼴아보는게 젤 싫어~~!!!!! "뭘봐!" "너 먹는거." "눈 딴데로 돌려. 기분 나쁘니까.." "쳇, 대체 무드라고는 없는 여자." "상관 마셔." 아아~ 난 대단해~ 말로 이놈을 누르다니~ 행복하구낭~ 어느새 나는 이놈과 말싸움 하는 것을 즐기고 있었다. 내가 행복에 겨워 있을때 갑자기 발 아래쪽이 뜨끈해 진건 왜일까~! 내 눈앞에 한 그릇도 안되어 보이는 강아지 놈이 생리적인 현상을 내 발.목.에 보고 있었다. '쪼르륵~(무슨.. 소리인지는 알아서 상상하시길..)' "푸.. 푸하하핫~!" 지금 옆에서 자지러지게 웃는 이놈의 목소리 따윈 들리지 않은지 오래다. 잠시 후, 절규에 찬 내 비명소리가 시장바닥에 울려 퍼졌다. "으악~~~!! 이 개새끼 뭐야?" 헉.. 주목받아 버렸네? 일순간 고요해진 시장. 그 한가운데에 서있는 나. 쪼.. 쪽팔리군. 곧이어 미안하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이며 나타난 금발머리 의 청년. "저.. 저기요.. 우리 시크가 실례를 해서 죄송합니다.." 머리를 꾸벅 숙이며 사과를 한다. 난 용서해줄 마음따윈 없다. 꼭 저놈을 삶아 먹어야 속이 풀릴 것 같다. 살기어린 눈으로 내 발 아래를 노려보니 아주 태연히 그 커 다란 눈망울로 나를 말똥말똥 쳐다 보고 있는 개새끼... (개의 새끼.. 아시죠..? 욕 아니에요~!) 그렇게 내 마음이 찔리게 쳐다보지 말란 말이야~~!! "시오스~ 무슨 일이야?" "힝... 프라니 형...." 한손을 머리에 짚은 곧이어 나타난 또하나의 잘생긴 미청 년. 이.. 이쁘네.. 근데 이름이 어디서..? 시오스? 프라니? 시오스? 프라니? 잠시 화를 내는 것을 멈춘 나는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으윽, 기억력의 한계가.. 난.. 역시 무늬만 드래곤이었단 말인가!~~! "내가 저 개새끼 언젠간 일 저지를줄 알았다." "쳇, 형은 내 편은 못들어주구.." "크크크.. 쿡.." 아아~ 정말 저 망할놈의 웃음만 없어지면 생각해낼 수 있을 것 같다. "이 새끼야!! 입닥치고 제발좀 한쪽 구석에 가서 고이 찌그 러져 있어! 너땜에 생각이 안나잖아!! 넌 내게 암적인 존재 야! 알았어? 으악~~~!" 제 풀에 열받아 모든 화풀이를 애꿎은 황태자에게 하는 나 였다. "정말 죄송합니다~~~!" 내게 계속해서 고개를 꾸벅이는 청년. 또다른 한 청년은 뭐가 그리 신기한지 나를 말똥말똥 쳐다 보고 있었고 그 청년과 눈이 마주친 순간.. 생각 나버렸다. "시크..?" 프라니바투스.. 그리고 귀여운 내 아들 시오스. 프라니.. 날 알아봐 준거야? 내가 어떻게 이들의 얼굴을 까먹었을 수가 있는 거지? 으으.. 머리를 갈아채우든지 해야지. "시크 맞죠? 그렇죠?" 확인을 하듯 내게 다그치는 프라니. "사람 잘못 보신 것 같군요." 나는 부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 모습으로 만다다니.. 미안, 프라니, 시오스. 지금 나는 이런 모습으로 너희들 앞에 설수 없어. 왠지 이들이 나의 모습을 보고 실망할까봐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나도 갈때까지 갔군 그래... 기다려줘. 곧 헤츨링으로 어떻게 해서든 다시 태어날테니.. 훗날을 다짐하는 나였다. "시크!!" 매섭게 나를 부르는 프라니. 아니라니까 왜 그러냐?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야, 가자." 의아한 듯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황태자의 손을 거의 강제 로 잡아 끌며 나는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탁' 내 어깨를 잡아 돌려세운 프라니. "왜 부정하는 거에요! 시크 맞잖아요!" 어떻게 저렇게 확신 할 수가 있지? 멍하니 있는 내 얼굴 위로 프라니의 얼굴이 내려왔다고 느 껴졌다. 내 눈가를 할짝이며 핧고 있는 프라니. "이렇게 눈물이 고였잖아요.." 나.. 괜한 걱정을 했구나.. (15) "그래.. 그러니까 이게 네 약혼자라 이말이지..?" "하핫.. 응.." 나는 본의 아니게 프라니를 내 약혼자라고 말할 수밖에 없 었고 지금 황태자 놈은 주점의 테이블에 앉아 맞은편의 프 라니를 노려보고 있었다. "얼마면 떨어질래?" "엥?" "얼마나 주면 떨어질 거냐구!" 저자식 뭔 말하는 거야? 얼마면 떨어질거냐구? 저게 지금 돈 때문에 이러는줄 아나! "이자식아!! 난 너 싫다구! 우린 얘기까지 있는 사이야!" "호오~ 아기? 누군데?" "쟤.." 내가 가르킨 곳에는 맥주를 홀짝이며 행복해 하고 있는 시 오스가 있었다. 프라니와 나 사이에서 난 아이는 아니지만 뭐, 내 아들이 맞긴 맞는거지. "엥? 왜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는 시오스. "너 저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너하고 비슷한 나이의 놈 을 니 아이로 믿으라고?" "어. 쟤가 동안이거든." 내가 생각해도 말이 안된다... "좋게 말할 때 포기하고 꺼져 주시지." 지금까지 이런 논쟁속에 프라니는 침묵만을 지키고 서있었 다. 난 쟤가 저러고 있을 때 왠지 불길하더라.. "시크, 나 여기 밟아 버려도 되요?" 그럼 그렇지. 지 성격 개주겠냐? "참아라." "네.." 물론 이 대화는 황태자가 듣지 못했다. 다만 기분나쁘게 소근 거리는 우리를 힘껏 야리고 있는 황 태자의 눈길만을 받을 뿐이다. "떨어져!!" "연인끼리 붙어 있는게 뭐 잘못 됐냐?" "뮤즈!!" "왜?" "언제 나 모르는 사이에 약혼했냐? 너 내 약혼녀 아니었 어?" "어? 너보다 훨씬 전에.." "저런 평민하고..?" 평민이라.. 이건 말이 안되네. 얘는 엄연한 골드 일족의 수장이니까. 차기 드래곤 로드라고나 할까? 드래곤이 평민과 비교나 할수 있을까? "무식한 네 머리로 무엇을 이해하리? 그냥 입닥치고 얌전히 있어라. 그게 네 나라 돕는 길이고 너 사는 길이다." 내말 틀린거 하나도 없다. 프라니는 다른 일에는 침착하지만 내 일에 관여해서는 이성 을 잃어버리니까. 폭주하면, 뭐.. 나야 막을 힘이 있나? ------------------------------------------------ * 이 별 * 외로움이란 기다린다는 것인가 봅니다. 그대없는 하루가 이리 외롭기에.. 나 지금 그대를 기다립니다. 손에 잡힐 듯 하면서도 멀어지는 그대에게, 싫증이 날만도 하지만.. 그게 제 사랑인가 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이 사랑에 지쳐가고 있는 나를 발견합니다.. 나는 그대만을 바라보는데.. 나를 외면하는 그대가 너무나 애타기만 합니다. 한번쯤은 나를 보며 웃어줄 수도 있을텐데.. 그대 없는 곳에서 남몰래 눈물 한 방울을 떨어뜨립니다. 알고 있습니다. 이제 이 긴 사랑을 끝내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아직 자신은 없습니다. 그대를 잊는 다는 것은 곧 내가 나를 부정한다는 말과 같습 니다. 그래도 잊어보렵니다.. 힘들더라도 잊어보렵니다.. 내 사랑.. 당신이 행복할수 있다면.. 잊어 드리지요.. 부디 당신의 행복을 찾으시길......... 사랑하는 내 님이여.. (16) "떨어져. 떨어져. 떨어져." 이젠 아주 주문을 외우는군. "우린 이대로 떠날테니 황제하고 아빠한테는 그냥 나 가다 가 엎어져 죽었다고 해라." "시크, 가죠." "그래. 시오스! 그만 맥주 홀짝이고 빨리 와!" "네~ 엄마~ 히히~!" 저거 취한거 아냐? 코가 빨개서 비틀거리며 걷는 모습 하고는.. "바보 같은 놈." "딸꾹, 엄마~ 프라니 형이 어얼~ 마나 엄마르~을 기다려따 구요." 혀가 꼬여서 말 발음도 안되는거 봐라. "누가 얘한테 술줬어?" "뮤즈! 진짜 이대로 갈꺼야?" "응." 그럼 이대로 가지. 돌아서 가리? 아에 아빠하고 그 황제한테 인사까지 하고 예의를 지킨 다 음에 가리? 퍽이나 보내주겠다. "못가. 내가 누군줄 잊었나 본데 나는 이 나라의 황태자야. 눈앞에서 약혼녀를 빼앗기라고? 내 목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그꼴 절대 못봐!" "시크, 목 잘라 버릴까요?" 프라니 녀석.. 그걸 곧이 곧대로 듣냐? "냅둬. 알아서 잘 하겠지. 지가 못간다면 어쩔건데? 그냥 우 리끼리 가자구." "그래도.." "아이~ 띱.. 냅두라니까! 정 걱정되면 기절시켜버려." 그동안 그래도 미운정이란게 들어서 죽이기에는 찝찝해서 이렇게 말한 나였다. 아아~ 역시 나 성질 많이 죽었어! '퍽~' 내 말이 끝나자 마자 바로 날아가는 프라니의 손. 헉.. 저 새끼 황태자한테 쌓인게 많았나 보군. 내 벽돌 공격에도 아랑곳 하지 않았던 황태자가 기절했다. 호오~ 신기한걸? 프라니.. 언제 호신술을 배웠느냐? 언제 한번 배워야 겠군. "엄마~~~!!!" 이녀석을 잊고 있었군. "왜?" "히히~ 싸랑해요오~!" 맛이 갔군. "야, 곧바로 레어로 돌아갈꺼야?" "네? 레어로 가시려구요?" "아니." "그럼 조금 놀다가 가죠." "어." "히히~ 시오수가 엄마 싸랑하는거 알죠옹?" 맥주 한잔 먹고 취한놈. 이거 나보다 술이 더 약해서야, 원.. 그 엄마에 그 아들이네. 이걸 팰수도 없고~ 쩝.. (17) "시크.." "왜?" "헤헤.. 그냥요.. 아직도 안믿겨 져요.." "뭐가?" "시크가 내옆에 있다는 사실이.." 닭살 스러운 말을 눈하나 깜짝 안하고 자연스레 내뱉는군. 그래.. 이놈 솜씨가 한두번이 아닌 솜씨야. "입닥치고 잠이나 퍼자라. 정 할 일 없으면 니가 나대신 보 초 서." 지금 우리 셋은 노숙을 하고 있다. 쩝.. 노숙 싫은데... 하여간 첫 번째 불침번으로 내가 선택 되었으며, 두 번째는 프라니, 세 번째는 당근 시오스다. 불침번에서 나는 빼려 했으나 시오스의 내가 여자로 보이냐 는 질문에 나는 그 속으로 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저건 아들도 아냐. 자식 키워봤자 소용도 없다더니.. "시크, 나 잘께요.." 역시 이놈도 나대신 불침번 서기 싫은 거야~ 고요한 적막이 감도는 숲에 모닥불이 타는 소리만이 남았 다. 밤.. 어둠.. 밤.. 어둠.. 잠자는 시간..;;;; 분위기를 잡으려는데 왜 이따위 말이 튀어 나오는 거야~~ 제기랄.. 기어이 내 명을 거역하고 도망갔다 이 말이지? 그 기생 오라비(프라니) 같은 놈하고? 나를 잘도 바보로 만들었겠다.. "제 여식은.." 내 옆에서 자신의 딸 아이의 안부를 묻는 공작. 쿡, 당신 딸은 도망갔소. 감히 내 명을 거역하고 말이오. "걱정 마시오. 공작. 무슨 일이 있어도 찾아 낼테니.." 안되겠어. 내 주위에서 보기 힘든 특이한 성격을 가진 여자라 방심했 어. 이렇게 시원스레 내 뒤통수를 칠줄은.. 한번 손에 들어온 장난감은 놓지 않는게 내 성격이지. "뭐하시는 겁니까?" "보면 모르오? 여행 준비를 하지 않소." "단신으로 말씀입니까?" "그렇소만?" 내 여자를 되찾아 오겠어. 그러기 위해선 걸리적 거리는 놈들을 떼어내는게 우선이지. "황태자님! 다시 한번 생각을.." "아.. 이미 충분한 생각을 했소. 폐하께도 허락을 받았고.. 당신도 알잖소? 우리 가문 남자들이 자신의 여자는 뺏기지 않는 성격을. 오랜만에 여행도 조금 할겸 겸사겸사 해서 가 는거니 감시인을 붙일 생각은 하지 마시오." (18) 온몸이 뻑적지근하다.. 새벽이슬을 맞고 자는 노숙이란 역시 아무리 친숙해지려 해 도 정이 안든다. 잠시 기지개를 펴고 일어나니 내 옆에는 프라니가 누워 있 었고, 시오스는 다 꺼져있는 모닥불 옆에서 꾸벅이며 졸고 있었다. 아마 마지막 불침번이 시오스였지? 차가운 공기가 내 폐속을 휘젓고 나가버린다. 싫지만은 않은 느낌. "으음.. 시크..?" 나 때문에 일어났나? "응? 깨어나버렸네." 곧이어 멍해진 정신을 가다듬고 프라니는 나를 바라본다. 프라니의 푸른 눈동자를 보고 있노라면 깊은 바다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한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는 깊은 바다.. 프라니는 곧 깊은 한숨을 쉬고는 내 옆에 앉는다. 뭔가 걱정거리가 있나? "...... 시크 ...." "왜?" "우리 씻으러 가요." "저놈은?" 내가 한쪽발로 시오스를 가리키자 프라니는 고개를 젓고는 내 손을 잡아 끌었다. "더 자게 나둬요." "응..." 곧이어 프라니는 바람의 하급정령 실프에게 물이 있는 제일 가까운 곳을 부탁했고 그때까지 우리는 아무말도 없이 그저 멀뚱히 서로만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 아침따라 왜이럴 까..;;)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잘.." ".......;;;;" 대답 할말이 이것밖에 없었다. 고생 쪼금 하긴 했지만 그런대로 호강하며 살았으니 뭐.. 잠시 바람이 내 얼굴을 쓸어간다. 그에 따라 자연스레 흘러 바람에 나부끼는 내 머리카락들을 바라보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거 마구 헝크러 지겠네. 빗을 생각하면 앞이 깜깜해.' "실프가 가까운 곳에 조그만 강이 있다네요." "어? 응.." 프라니의 손을 잡고 그곳으로 가는 도중이 천년처럼 길게만 느껴졌다. 정말 오늘따라 내가 왜이러지? 안어울리는 내숭 하고는..;; "와아..." 그 강을 본순간 절로 탄성이 나왔다. 막 빛을 발하기 시작한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수면위로 옅 은 무지개가 보였고 우리가 나가자 물을 마시고 있던 산짐 승들이 놀라 달아나 버렸다. 예쁘다.. "얼른 씻죠." 내가 주위 경관에 감탄하고 있을 때 프라니는 내게 등을 보 이며 수면위로 손을 뻗었다. 히힛, 잼있는 생각이 떠올라 버렸어. 나는 한쪽발을 지긋이 들어올려 프라니의 등을 꾸~욱 눌러 주었다. "으악!~~~~" '첨벙~' 수면위로 떨어진 프라니. 좀.. 심했나? 그러고 보니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제법 쌀쌀한데.. 헛생각을 하고 있을 때 누가 내 발목을 잡아 채는 것이 느 껴졌다. "시크....!!! 시크도 당해 봐야죠!" "꺄악~" '첨벙~' "미친 쉐끼야.. 죽을래?" "누가 그 무식한 발로 밀래요?" "이게 감히 개겨?" 결국은 이리해서 본래의 우리로 돌아왔다. 역시 심각한건 체질에 않맞나봐.. 프라니를 향해 물을 뿌리던 나는 그날 나를 위해 웃어주는 프라니의 너무 예쁜 얼굴을 보았다. "너 이쁘다." 내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자 굳어지는 프라니의 얼굴. "남자한테 이쁘다고 하면 욕인거 몰라요?" "쳇." 그것가지고 따지냐? 쪼잔한 놈. 갑자기 내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들이대며 프라니가 조심스 레 물었다. "시크.. 우리 결혼 할래요? 아기도 낳고.. 이런 곳에서 우리 둘이만 살아요.." 그거.. 청혼이냐? "쿡, 난 인간이야. 아무리 전생(?)에 드래곤이었다 해도 지 금은 인간이야. 너와 내가 결혼한다면 그것은 너에게 한낮 유희 이상의 것은 되지 못해."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걸요..?" 나는 미련없이 뒤돌아 서서 물가에서 나와 버렸다. 더 이상 들을 가치조차 없는 말들뿐.. "지금은 아니야." 모기만한 내 마지막 목소리를 프라니가 들었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 이걸로.. 내가 프라니를 거부한게 세 번째인가..? (19) 대륙 최고의 황제 직속 암살집단 어쌔신 길드. 그들의 본거지는 왕궁의 지하에 있다. 황제와 그의 후계자인 황태자의 명에 따라 움직이며 고위 관리도 거리낌 없이 해할수 있는 집단. 이런 집단에게 지금 황당한 의뢰가 하나 들어와있다. "찾아." 단 이 한마디. 지금 어쌔신 길드 마스터는 이 어이없는 의뢰를 어떻게 받 아들여야 할 것인지 고민부터 되었다. 거절하자니 황태자라 후한이 두렵고 받아들이자니 이 넓은 대륙에서 딸랑 사람 하나를 찾아내라니.. 못할것도 없지만 꽤나 귀찮은 일이기에 이 겁없는 길드 마 스터는 한번 개겨 보기로 했다. "황태자 전하.." "왜?" "저희 암살 집단인데요?" "그래서?" 정말 몰라서 묻는단 말인가! 말 그대로 암살 집단이다! 사람 하나를 찾으라고 있는 집단이 아니란 말이닷~! 이런 소리없는 길드 마스터의 절규를 깡그리 무시하는 황태 자였다. (얼굴이 꽤나 두껍군..;;) "사람 하나 찾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 줄.." 그렇다. 이들은 지금까지 암살 의뢰를 명령받을 때 목표물이 어디에 있는지는 의뢰인쪽이(황제나 황태자다..;;) 가르쳐 줬던 것이 다. 그러니 사람 찾는 일에 자연히 둔해질 수밖에.. "너희에겐 세가지 선택이 있어." 아무래도 물러설 것처럼 보이지 않자 길드 마스터는 할수 없이 그 조건이나 들어보기로 마음먹었다. "첫째, 하루 아침에 실업자가 되고 싶으면 계속 개기는 길. 둘째, 그냥 단체로 고이 혀깨물고 저승가는 길. 셋째, 입닥 치고 고이고이 영광으로 알며 내 의뢰를 받아들이는 일." 설마설마 했는데 역시나다. 말도 안되는 조건들. 한마디로 하기 싫으면 죽으란 소리다. 앞으로 사람 찾는데에 꽤나 머리가 돌아버릴 것을 예상하고 는 길드 마스터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만족스런 웃음을 얼굴에 짓고는 뒷짐지고 나가는 황태자를 보며, 이제 부하들의 갈굼을 어떻게 당할지 걱정스런 길드 장의 얼굴은 참으로 가관이었다. (20) "아잉~♡ 엄마~~~♡" "꺼져라." "그러지 말구요~♡ 따~악 한번만~♡" 지금 어울리지 않게 이 시오스 녀석은 내게 갖은 애교를 다 부리며 내 마음을 돌리려 하고 있었다. "안된다고 분명히 말했다." "아앙~♡" 평소 같으면 그 성격에 제풀에 지쳐 포기 했을 테지만 지금 은 왠일인지 좀처럼 떨어져 나가지 않고 있었다. "시크, 왠만하면 시켜 주시죠?" "그..게.. 도..대..체.. 몇..번..째..지..?" 그렇다. 지금 시오스는 맥.주를 시켜 달라고 이렇게 때를 쓰고 있는 것이다. 나와 프라니.. 정말 오랜만에 말해봤군. 그때 강에서의 일 이후로 약간은 서먹해 졌던 우리 사이. 후.. 그 이후로 지금까지 3번의 여관을 들려서 그때마다 어 쩔 수 없이 아양을 떨어대는 시오스에게 술을 시켜줬지만 그 뒷일이 꽤나 고달펐기에 지금 이런 모진(?) 마음을 먹고 거절하고 있는 것이다. "엄마~ 시오스도 다 컸다구요." 그러냐? 맥주 반잔에 마을 하나 통째로 구워버린 애가? 지금까지의 지옥.. 생각하고 싶지 않다. 숲에서 작은 마을이 있어 그곳에서 쉬어가려 했는데 이놈이 여관에서 맥주를 시키지 않은가? 가만히 놔뒀지. 반잔 먹고 이성을 잃고 마을을 구워버리는 것을 기절시켜서 여기까지 끌고 왔다. 덕분에.. 그 마을.. 아마 지도에서 사라졌겠지. (조그마한 마 을이라 지도에 나와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가~ 내 눈에는 아직도 다섯살 먹은 꼬마애로 보인단다. "프라니, 넌 지금까지 이 애가 저지른 만용을 보지 못했단 말이냐?" 이놈도 눈이 달려있다면 봤을 것이다. "하지만 저렇게까지 부탁을 하는데.." 저게 부탁이냐? 아양까는 거지. "다큰 청년이 술좀 마시겠다는데 부인이 반대가 심하구 료~!" 아까부터 이 주점 겸 여관을 운영하고 있는 이곳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주정뱅이들이 슬슬 내 인내심을 시험하고 있 다. 이놈들은 시오스가 나를 엄마라고 부르는 것을 애써 무시하 고 아까부터 부인이라고 빡빡 우기고 있다. 그걸 가만 놔뒀냐고? 저런거에 일일이 신경쓰다보면 노화가 빨리 찾아와 오래 못 산다. "닥쳐. 주정뱅이." 아아~ 어째서 나는 말과 행동이 따로 나가는 거지? "오호~ 입이 꽤 매서운데?" 용병으로 보인 대머리 사내가 나를 바라보며 음흉한(?) 미 소를 지었다. 찝찝해. 저걸 어떻게 패줘야 잘패줬다고 소문이 날까? "쿡, 이봐 까까머리. 죽고 싶지 않으면 입닥치고 술이나 처 먹어. 함부로 계속 입을 놀렸다가는 고자로 만들어 버릴테 니까." 내 성격을 아는 사람들은 내가 저런 말을 할 때에는 알아서 긴다. 하지만 이놈은 그걸 모를테니.. 지금 나는 나의 아름다운 미모(?)를 감추기 위해(얼굴 내놓 고 다니면 여러모로 시선 집중이 되니까..;;) 로브를 뒤집어 쓰고 있다. 하지만 가는 목선과 로브 사이로 얼핏 보이는 얼굴만 봐도 대단한 미인인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놈은 나를 모르기 때문에 분명 나오는 반응이 한가지일 것이다. "이 XX년이~! 어디서 지랄이야? 얼굴 반반해서 봐주려고 했더니!" 이런 반응. 이제 하도 많이 당해(?) 봐서 이것도 지겹다. "아아~! 역시 천한 놈들과는 상대해선 안된다니까~!" "시크.. 그만 하시죠." 프라니 녀석이 나를 말린다. "넌 가만히 한쪽 구석에 짱박혀 있는게 도움되는 길이야." 무시당한 까까머리의 얼굴이 벌게지면서 나를 향해 삿대질 을 하는 것이 보인다. ")(*&^%$#@~!@~!@#$%^&*(심의에서 걸렸습니다..;;)" "띱.. 시끄러! 너 한번만 더 지껄이면 고자 만들어 버린다고 했지?" 나의 이 아름답고 곡선미 있는 발은(로브에 가려져 보이지 도 않는다.) 주저 없이 까까머리의 가장 중요한 부분에 가 서 꽂히게 되었다. "꾸엑~!" 어디서 오크가 비명지르냐? 그 고통(?)이 이루 말할수 없기에 바로 주저 앉아 버리는 까까머리. 얼마나 아프기에 저러냐구? 맞아보면 안다. "거봐.. 내가 경고 했잖아. 입 닥치라고. 엄살 피우지 말라 구. 그정도로 고자가 되지는 않을 테니까." "끅끅끅.." 이상한 신음소리를 내며 고통스러워 하는 놈을 보며 나는 짜증이 솟구쳤다. "이 새끼야! 진짜 고자 만들어 버리기 전에 닥치든지 나 가!!" 허리에 채워진 단검을 꺼내며 내가 말하자 갑작스레 주위에 는 침묵만이 남았다. 이런이런.. 시선 또 집중됐네. "(헤롱헤롱~) 엄마~~~! 히힛.. 울 엄마 이뿌닷~!" 이.. 이 소리는..? 등 뒤에서 내 허리를 껴안는 손길이 느껴진다. "너.. 술먹었냐?" "네엥~!" 내가 딴짓을 하고 있는 동안 술을 먹었다.. 이말이지? "프라니~!!!!!!!!!!!!!" "히엑~! 시크~! 나도 몰랐어요~" 아니야.. 저놈은 알고 있었어. "너네 둘다 맞아야 정신을 차릴래?" "히엥~! 엄마 무서버.." 나.. 나는 네가 더 무서워.. 두 손에 파이어 볼을 만들어 놓고 징징우는 모습이라니.. 피해야지.. 피해야지.. 설마 저거 나에게 던질까? 내 아들인데.. '퍼엉~' 나를 향해 날아오는 파이어 볼을 간신히 피한 나는 어이없 는 표정으로 시오스를 바라보았다. "어? 빗나갔네? 힝.." 저거.. 나 맞으라고 던진거야? "시크.. 일단 여길 좀 나가죠.." 난장판이 된 여관을 바라본 나는 등뒤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그건 뒤로하고, 감히 날 죽이려고 파이어 볼을 던졌단 말이 지? 더군다나 내 아들이? 용서가 안된다. '퍼억~' 나의 작고 아담한 주먹이 투덜대는 시오스의 배에 날아가 꽂혔고 그대로 기절한 시오스를 프라니에게 던져주며 나는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인적 없는 곳으로 텔레포트해." 오늘 사람하나 잡겠군. 2시간 후.. "끼엑~~! 엄마 잘못했쪄요~! 힝.." "이새끼!! 엄말 죽이려 했단 말이지! 너 누가 술먹으랬어? 엄마 말을 개뿔로 알아? 그래~! 오늘 날잡았다. 확실히 교 육시켜 주지." '퍼억~ 쾅~ 우직끈~!' 이 아주아주 자식 교육을 잘시키는 시크를 바라보며 식은땀 이 흐르는 프라니는 불길한 느낌에 일(?)이 끝날때까지 다 른곳에 피난해 있으려고 뒤돌아 섰다. 차마 눈뜨고는 못봐줄만한 애잡는 광경이 펼쳐졌기에.. "어.디.가?" 음침한 시크의 목소리가 들리자 돌려지지 않는 고개를 억지 로 돌려 시크를 바라본 프라니는 아주 어색하게 웃음지었 다. 아마도 저번에 그 자신도 시크에게 저정도로 맞은 기억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그냥 잠깐.." "흐흐.. 너도 교육한번 시켜야 겠어. 좋은 말할 때 일루 와. 감히 술을 먹여?" 그렇다. 프라니는 사실 시오스가 술을 먹는 것을 알고도 모 른척 했던 것이다. "네..;;" 도망가 봤자 더더욱 전투 모드가 되는 시크라는 것을 잘 알 기에 고이 맞아주기로 결심한 프라니가 조심스레 시크 앞에 가서 섰다. "크크큭, 오늘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 해소용이 둘이나 생겼 군." 이후에 우연히 이곳을 지나가는 사람의 말에 따르면 밤하늘 에 몬스터의 울음소리가 처절히 울려 퍼졌다고 한다. (믿거 나 말거나..;;) (21) "끄악~~~~~!!!!!!" 잠자다 일어난 나는 갑작스런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시크!!! 왜그래요?" "엄마~~~~!!!!!" "그.. 근육이 뭉쳤어.." 내 한마디에 바로 자리에 다시 들어누워 자는 둘. 그래.. 이제 나는 안중에도 없다 이거지? "나쁜 놈들." "잠이나 퍼자세요." "시크.. 더 자두는게 좋을 것 같군요." 노숙이란 말이다~~~~!!!! 근육이 똘똘 뭉쳐서 아파 죽겠는데, 니들은 남자라 이말이 지? '퍼억~' "아파~~~~~!" "헉..." 두 발로 하나씩 지긋이 밟아준 나는 뭉친 근육들을 풀며 고 양이 세수를 하기 시작했다. "히엥~ 추워.." 정말 춥다. 무언가 내 얼굴에 뜨끈한게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프라니야~~~~~~~" "또 왜요?" "나 코피나." "가방에 휴지 있어요." 다시 들어누워 잔다. 이제 애정이 식었어~! 나 삐졌어. 망할놈들. 둘다 내가 키웠는데 나를 지나가는 X개 쳐다 보듯이 해? "그런데 왠 코피지? 피가 남아 도나 보군." 으.. 할 일 없다. 심심해.. 자다가 근육 뭉칠까봐 또 자지도 못하겠구.. 뭐하구 놀지? 뭐하구 놀아야 잼있게 놀수 있을까? 하아............. "빨리 찾으라구~~~!!!!" 그 미친 황태자 놈이 여자 하나를 찾으라고 한 다음부터 나 는 이렇게 정보 길드를 족치고 있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내가 배째라는 식으로 나오니 이놈은 아주 밟고 지나가라 라는 식으로 나온다. "너 밥줄 끊기고 싶지 않으면 찾아!" "싫어. 정보가 부족해." 그러고 보니 그 여자가 엄청난 미인이라고 했지? 머리색도 특이하고.. "너 우리 나라 하나뿐인 공작 알지?" "어? 라이네스 공작? 그 공작보다는 딸이 더 유명하지. 천 상의 미로써, 대륙 제일의 미라고도 하지. 그 도도함은.. 캬 하~ 내가 10년만 젊었어도.." "입닥치고, 내가 찾으라는 여자가 그여자야." 갑자기 눈이 땡그래 지며 벌떡 일어서는 정보 길드 마스터. 노.. 놀랬잖아. "정말? 이 새끼야~! 진작 말을 하지." "찾을꺼야 말꺼야?" "당연히 찾아야지~ 대륙 제일 미를 내눈으로 볼수 있다니.." "황태자 약혼녀니까 신경 끄셔." "쳇.. 지도 보고 싶으면서.." 솔직히 보고 싶다. 그 공작 따님에 대해서는 대륙 제일미란 소문만 들어봤지 집에서 1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하니까.. 얼마전에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소문도 있었는데.. "그정도로 미인이라면 분명히 본 사람도 있겠지?"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게 이 나라 최고의 정보 길드란 말인 가! 대체 이 길드 자체가 어떻게 생겼는지 해부해보고 싶은 맘 을 꾹꾹 눌러 담으며 정보 길드의 문을 나서는 내가 참 초 라해 보였다. 자고로 한 나라가 돌아가는 꼴은 정보 길드를 보고 알 수 있다고 했는데.. 아~ 우리 나라의 미래가 보이는 구나! 빨리 새로운 직장이나 찾아봐야지. 저 길드 마스터 놈을 보니 얼마 안가 나라 망할 것 같아~! '긁적긁적' 누가 내 욕하나? 귀가 자꾸 간지럽고 목이 컬컬하네? 허긴.. 어떤 미치고 간없는 놈이 내욕을 하고 자빠졌겠어? "프라니야~ 나랑 놀자~!" ".........." "놀자놀자놀자~!" ".........." "쳇, 애정이 식었어. 나쁜 놈." "시오스. 일어나라." 이 한마디에 벌떡 일어나 시오스를 깨우는 프라니. 오호호홋~! "싫어요. 시오스는 더 잘꺼에요오~!" 침낭 속으로 깊이 숨어버린 시오스를 보며 당연히 내 손은 삐져나온 금빛 머리를 들어올리고 있었다. "껙~~~ 아파아파~!" "일어나라고 했지!" "쳇, 폭력 엄마. 아들이 오랜만에 수면을 취하려 했더니 머 리카락 잡아당기다니... 궁시렁.. 쳇.." 어째 저 새끼가 저번에 한번 얻어터진 뒤부터 반항기가 도 졌단 말야? "비가 오려 하는구나." "히엑~" "입닥치는게 좋을 것 같구나." 아마.. 이놈은 지금 내가 옛날에.. 옛날에.. 비오는 날에 반 미쳤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는 듯 했다. 좀.. 오래 됐지. 아마 시오스가 3살땐가? 이놈이 감히 먹을 것 가지고 장난을 치는게 아닌가? 먹을 것 가지고 장난치는거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려고 몸소 조금 무리한 운동을 했더니만(그때가 비가 오는 날이 었다.) 어린 나이에 그게 꽤나 무서웠었나 보다. "으함~! 시크, 비가 오려 하니 가까운 곳에 동굴이 있나 살 펴보고 올께요. 시오스, 따라와." "그때까지 난 뭐하구 놀아?" "밥하세요.." "죽을래?" "아뇨.. 제가 나중에 와서 할께요." 시오스를 데리고 사라지는 프라니와 뽈뽈거리며 따라가는 시오스를 보며 왠지 기분이 저하된 나였다. 기분나뻐. 예감이 않좋아. 흐음.. 비오는 날이 되면 어째 발광하고 싶어진다니까~! 운동 에너지가 증가하나? 아까부터 어째 머리가 조금씩 아파 오는군. "추워..." 한기가 느껴진다. 아마 이게 감기 몸살 초기 증상이라고 대부분의 인간이나 드래곤들은 말하지. 제기랄, 감기라.. 조금 있다가 프라니 오면 치유마법 써달라구 해야겠다. 먼저 잠먼저 자구.. 한숨 자고 나면 그놈들 오겠지? 할 일도 없으니 나 잤다고 뭐라고 하는 놈 없을 거야. "시크.. 시크! 일어나요!! 제기랄." 거칠게 흔들리는 내 몸. 일어나고 싶은데.. 그럴수가 없다. 이놈의 몸뚱이는 왜이리 말을 안들어? "프라니형~! 치유마법 써봐요!" "치유마법이 듣지 않으니까 이러지!" 치유마법이 듣질 않는다구? 아아~ 그럼 감기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말이네? 눈을 뜨고 싶은데 움직이기가 싫다. 뇌에서 명령을 하는데 이놈의 눈알은 개김성이 투철해서 내 말을 씹고 있다. 제길, 어떤 새끼가 뺨때려? 나 일어나면 죽었어~! "엄마!! 눈떠봐요." 눈이 안떠져. 임마~ "엄마.." "시크!" 점점 이들의 목소리가 작아져 간다. 감기 하나 걸리는게 이렇게 큰 일인줄은 몰랐군. 역시 인간이란 존재는 허약하기 그지 없다니까. "이 미친 엽기 여인네야! 안일어나?" 이.. 이게 뭔소리여? 저거 내가 바르게 들었나면 내 욕하는 건데.. 말투로 봐선.. 말투로 봐선... 프라닛~~!!!! '번쩍' "헉.. 시.. 시크.." "잘도 지껄였겠다." 이 말이 어지간히 충격적이었는지 나는 내 의지대로 눈을 뜰 수가 있었다. "미친... 이건 넘어가고(맞는 말이니까...;;) 엽기.. 여인네? 흐 흐, 엽기라.. 엽기.. 나가 죽어버렷!!" 아~ 큰소리를 냈더니 현기증이.. "괜찮아요?" "안꺼져?" "엄마~ 걱정했어요~!" "너도 세트로 꺼져버렷~! 둘다 꼴도 보기 싫엇!" "쳇, 기껏 걱정해 줬더니만.." 뭐.. 뭐시라? 저거 아무래도 내 아들 아닌가벼.. 쟤도 나처럼 혼이 뒤바꼈나? 왜이리 개김성이 뛰어난 거냐? 아무리 왕년에 내가 조금 그랬다지만, 그렇다고 날 닮으면 어쩌라고! "야, 가까운 도시로 텔레포트 할수 없냐?" "언제는 여행의 묘미를 느껴야 한다며 걸어가야 된다면서 요?"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야. 내 말에 토달지마." "네. 좀 멀지만 대신전이 있는 곳으로 텔레포트 하겠습니다. 시크에겐 왠지 치유마법이 듣지 않으니까요. 연구할 가치가 있죠." 여행 비용이 딸리냐? 날 실험용 생쥐로 팔아 넘길려고? 참으로 상상력이 풍부해진 나다. (22) "문열엇~!" "시크~! 제발 그러지 마요." "엄마.. 쪽팔려요." 내가 뭘하고 있기에 지금 이둘이서 나를 말리고 있냐고? 새벽녘에 나는 지금 생명의 여신 하라트스라는 신의 대신전 에 와서 행패를 부리고 있었다. 새벽인데도 치유를 받거나 조언을 구하기 위해 병자들과 일 반인들이 길게 줄을 늘어서고 있는 한편 인내심이 그리 뛰 어나지 않은 나는 아직 열리지 않은 신전의 정문을 향해 큰 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안열어? 앙? 부셔버리기 전에 열라니까~!!!!" "신전에서 이렇게 행패부리다가는 천벌받을 거요!" 기다리던 사람중 하나가 나를 띠껍다는 듯이 쳐다보며 한마 디 던졌다. 흐흐, 한마디 안좋은 말 들으면 열배로 갚아주는 내가 아닌 가! "오호호홋~! 지가 이렇게 못하니까 남한테 와서 지랄은? 꼽 냐? 너도 이렇게 해봐라~!" 아..아무래도 난 내가 생각해도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죄송합니다.." 나 대신 시오스가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고 내 기분은 더 더러워 졌다. (안그래도 더러운 성격 더 더러워 지면 어떻게 되는지 알 지?) "어떤 년이 아침 댓바람부터 찾아와서 지랄이야?" 크디큰 정문 한쪽에 초라하게 붙어 있는 쪽문이 빼꼼히 열 리며 견습 신관 차림을 한 꼬마애가 욕을 해댔다. "야, 저거 신관 맞냐?" "뭐.. 시크같은 사람도 있는데 저런 신관도 있겠죠." 저거 욕이야? "대신관한테 안내해라." "너 누구냐?" 다짜고짜 내가 누구냐며 묻는 방자한 신관 꼬맹이를 흘겨봐 준 나는 고음의 하이 소프라노 목소리로 웃었다. "호호홋~! 꼬맹아, 대신관 한테나 안내해라." "미친년이냐? 아훔-. 조금 있다 문 열면 정신과 가봐." "키킥.." "푸하하핫~!" 프라니는 내게 걸릴까봐 입을 막고 웃었으며 시오스는 쫌 컸다고 대놓고 굴러다닌다. 굴러 다니는 시오스를 그 높은 계단에서 아래로 뻥~ 차준뒤 에 나는 꼬맹이의 멱살을 잡았다. "안내해." "싫어." "반항이냐? 난 쪼그마한 애하나 잡아서 구워먹고 싶은 생각 없으니까 안내해." "크큭, 그냥 안내해 주시죠." "쳇." 이것봐? 이놈 안쫄아? 감히 내가 이렇게 말했는데도? "배째. 구워먹든, 삶아먹든, 튀겨먹든, 회를 떠서 초장 찍어 먹든 맘대로 해." 그래~ 배짱으로 나온다 이거지? "흐흐, 간만에 화기애애한 대화 한번 해보겠군." "시크.. 참으세요." "살아있다는게 얼마나 큰 고통인줄 몸소 깨닫게 해주지~! 흐흐흐.." 아아, 마인드 컨트롤.. 또 머리 돌아버리네. 이놈의 성격 개나 줘버리고 싶다. "제길, 대신관 그 새끼가 어디 짱박혀 있는줄 알아야 안내 해주지!!" "엥?" 퉁명스레 대신관을 지나가는 똥개 초장찍어먹듯 말하는 놈 을 보며 나는 경악했다. "일주일 전에 바람병 도져서 어떤 여자하고 도망갔어." "도.. 도망가? 바람병?" "너 우리말 이해 못해? 아~ 씹.. 이생활도 더러워서 못해먹 겠네." 내가 멱살잡은 손을 놓아주자 침을 퉤퉤 뱉으며 꼬맹이가 들어가려 하는 것을 내 발(?)이 막았다. '퍼억~' "이게~ 어딜쳐?" 내 발에 정강이를 걷어채인 꼬맹이가 내게 바락바락 대들자 나는 연장자 답게 훗~ 하고 웃어주었다. "어디로 갔어?" "몰라. 그 여자한테 질리면 돌아올걸?" "이런일 자주 있냐?" "한달에 세 번 정도?" 오옷~! 그 바람둥이 대신관 얼굴 한번 보구 싶구먼~! 늙은이가 한군데 박혀서 여신이 강림하기를 기다릴 것이지.. 쩝.. 여기까지 찾아온게 헛고생인가? (23) "그럼 여기서 기다릴까요?" "으음.. 그럴까?" "그러죠, 뭐. 남는게 시간인데.." 그래! 나 할 일 없고 빈둥빈둥 노는 백수다! 그러는 지는~! "아아~! 카네스 보구 싶다.." "블랙 드래곤 카이아네스님이요?" "내가 아는 카네스가 걔말고 또 누가 있냐?" "제가 모시고 오죠.." "호호홋~! 그래? 이왕이면 로드님도 덤으로 모시고 와죠~" "목적이 그거였군요." 그 말을 남기고 프라니는 떠났다. 워프로 갔으니까 뭐.. 하루 내로 오던지 거기서 살던지 하겠 지. "너 놀고 있냐? 지금 환자들 서있는거 안보여?" 저 한입 거리도 안되는(물론 내가 드래곤이었을 때..) 꼬마 놈은 아까부터 내게 앙탈(?)을 부리고 있었다. "나 성질 더러워져 있으니까 자진해서 꺼져주거나 내 미모 를 보고 반했다면 입이라도 닥쳐줄래?" "놀고 있네." 메야? 그래도 얼굴에 꽤나 큰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는데(물론 내 본판은 아니지만..;;) 저놈이 저렇게 말하니 내가 무슨 추녀 라도 된 것 같잖아! "너의 미적 감각의 기준이 어떤건가 보고 싶군." "적어도 너는 내 취향이 아냐." 쪼그만게 벌써 취향찾고 있어? "쳇, 나도 너 같은 얘한테는 관심 없다." "누가 관심 가져 달래?" "오호~ 그래? 그럼 왜 내 성질 돋구는 건데?" "내말은 신전에서 눌러 있으려면 일손이라도 도우라는 뜻이 야!" "내가 왜?" 아아.. 정말 유치하게 논다. 어떻게 이 꼬맹이하고 내 정신연령이 똑같을 수가.. "쳇, 한참 기다려 봐라. 대신관이 오나." "저것이? 그건 그렇고 이제 프라니도 보내 버렸고, 시오스 도 환자 돌보러 갔으니 할말 하는게 어때?" "뭘?" 꼬마애가 큰 눈망울로 약간은 두려운 듯이 나를 쳐다보자, 나는 내 예감이 맞았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그만 빼시지. 대신관님." 이놈이 대신관이라는 것은 처음 만났을 때 알았다. 어떻게 일개 신관이 하늘같은 대신관에게 욕(?)을 할수 있 겠는가! 것도 견습이! 대신관을 앞집 똥개 보듯 할 인간은 세상에 신과 대신관 자 신밖에 없다. 한 나라의 국왕도 대신관 앞에서는 기어야 할판에.. "알아버렸네?" "다음부턴 어설프게 연기하지 마라. 그건 그렇고 왜 프라니 와 시오스를 내보내라고 그렇게 눈치를 줬지?" 이놈은 아까 이 신전에 들어올 때부터 프라니와 시오스를 계속 쳐다 보았다. "하나는 드래곤이고, 하나는 9서클 마스터잖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꼬맹이를 보면서 새삼 놀라웠다. 아무리 많이 봐줘도 15세가 조금 못되게 보이는데.. 대신관의 자리라.. 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꼬맹이가 다시 입을 열 었다. "그러는 넌 뭐지? 네게서 죽은자의 냄새가 나." 폼으로만 대신관 자리를 차고 있는게 아니군. "쿡, 그리고 이 정도로 버티고 있는 것도 무리일텐데?" "눈치 빠른 놈." "이 바닥이 다 이런 것 아니겠어?" 아까부터 배에서 통증이 오기 시작했고 점점 심해져 가고 있었지만 가벼운 복통 증상이려니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놈 말을 들으니 그게 아니군. "알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네 몸은 지금 붕괴되어 가고 있 어." 입술을 잘근 깨물고 그놈을 노려보자 꼬맹이는 내 앞으로 다가 오더니 조그마한 손을 내 배에 가져다 대었다. "그런 경우에는 두가지가 있지. 보아하니 넌 죽은자의 몸에 다른 영혼이 들어온 것 같군. 첫째, 영혼이 이 몸과의 파장 이 맞지 않아 생기는 일. 둘째, 아니면 그 영혼이 엄청나게 중요하고 강한 영혼일 경우. 예를 들어 드래곤이 이에 속하 지." 어린 나이에 대신관의 자리를 말로만 꿰어찬게 아니군. 그래.. 네 눈은 정확해. "꼬맹이, 꽤 제법인걸?" "천만에.." 꼬맹이의 손에서 푸른 빛이 나오더니 내 전신을 감쌌다. 따뜻한 기운.. 어머니의 품안에 있는 그런 기운.. "넌 나에게 고마워 해야해. 너에겐 어지간한 치유력은 듣질 않거든. 임시 방편이지만 뭐 며칠간은 버틸수 있겠지. 이건 내 생명을 태워서 내는 디바인 파워니까.." (24) "무슨 소리야?" "쳇, 그런것까지 일일이 설명해줘야 하나?" 생명을 태워서 내는 디바인 파워...? 처음 보는 나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태웠단 말야? 흠.. 그럼 나오는 결론은 하나뿐이군. 이놈도 나처럼 대단한 싸이코 기질이던가, 아니면 알량한 자선 사업가인 모양이지. "넌 실험할 가치가 충분히 있거든." ".....죽고 싶냐?" "정식으로 내 소개를 하지. 생명의 여신 하라트스를 섬기는 자비의 교황 르엔이라고 불러." 내 말을 무시하며 자신의 정체(?)를 밝히는 꼬맹이. 뭐 이 미 다 알고 있었지만. 그런데, 이름이 저렇게 짧나? 보통 저 정도 직위가 되면 이름 같은건 디따 길지 않나? "너 이름 그게 다냐?" "말해줘도 그 멍청한 머리에 외울 것도 아니면서 귀찮게 왜 말해?" 맞는 말이다. 내가 사람 이름 제대로 외우는 것은 잘 못봤으니.. 의외로 예리한 곳이 있군. "꼬맹아, 난 네가 왜 네 생명을 태워서까지 나를 구했는지 이해가 안가." "나도 그래." 황당 + 당황 + 무안 "말이 되는 소리냐?" "알아서 해석해." 조그만게 아주 귀엽게(?) 노는군. "꼬맹아, 이 누나는 지금 너와 농담 할 기분이 아니란다." "넌 이게 농담으로 보여?" 아까부터 이 놈이 경어체를 안쓰네? "너 몇살이냐?" "사람이 살아가는데 나이는 중요한게 아냐." 흐흐흐, 진실을 회피하려 하지 말거라. 그건 그렇고, 그런 말은 또 누가 지껄였다냐? 흐음, 저 꼬마의 말이 사실이라면 난 곧 또다시 죽는 건가? 아플까? 아프겠지. 허긴, 심장도 맨살 찢어 후벼판 년(?)인데 무얼 못참겠어. 음하하핫~ "그런데 너 생명 얼마나 남았냐?" "으음, 이것저것 나눠주다 보니까 20년 정도? 그래도 니가 제일 많이 퍼먹었다. 너 때문에 30년 홀라당 날아갔으니까." 꼬맹이, 자선 사업가였군. 20년이 남았다라.. 내가 30년을 갉아 먹었다고? 헐헐, 참으로 많이도 퍼먹었네. 미안한걸.. "내가 버틸수 있는 시간은?" 잠시 그 쪼그마한 손으로 꼼지락 거리며 계산을 하던 꼬맹 이는 나를 향해 빙긋이 웃었다. "짧으면 6개월, 길면 1년." 30년의 생명이 겨우 그 정도란 말이냐~~~!!!! 대천사 놈을 만나기는 해야 할 것 같은데(이대로 있다가는 절대 내가 죽기 전까지는 못만난다는 확신이 섰다.) 나는 죽는게 싫단 말이다~~~!! (25) 그것보다도.. 내가 자신의 앞에서 고통스럽게 죽는다면 시오스와 프라니 는 얼마나 슬퍼할까? 쿡, 커다란 눈망울에서 눈물이 방울져 내리겠지. 내 마음은 몸의 고통보다 더 찢어지겠지. 6개월.. 긴 시간은 아니다. 이제 마무리를 할 차례가 온건가? 내가 일어나서 짐을 챙기자 꼬맹이는 뭔가가 이상하다는 듯 이 내 팔목을 붙잡았다. "가려고?" "응." "떨쳐놓은 떨거지들은?" "프라니가 오면 이렇게 전해. 내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 갔다고.." "..... 네가 직접 말해." "그럴수 없다는거 니가 더 잘알잖아." 떠난다라.. 시오스.. 보고 싶다.. '달칵' 내 마음이 전달 됐는지 그딴건 모른다. 다만 그때 시오스가 피곤에 지친 얼굴로 들어 왔다는 것밖 엔.. "엄마, 뭐해요? 짐챙겨요? 갈려구요?" "하나만 물어라." "쳇." 흐미, 저놈 가면서 버릇한번 고쳐주고 가야 하는 것 아냐? 갈수록 기어 올라와~ "빨리 누워서 잠이나 퍼자." "아아~ 맞아요~ 시오스는 피곤해요." 옹알거리며 침대로 살며시 들어가 베개를 껴안고 눈을 감는 다. 사랑스러운 내 아들. "잠든 것 같은데?" "알고 있어." 정말 누굴 생각나게 하는 놈이다. 왜이리 내가 하는 일에 관심이 많을꼬? 희고 가는 내 손가락이 부드럽게 잠든 시오스의 머릿결을 쓰다듬었다. 황금빛의 부드러운 머리카락.. 이게 마지막인가..? 아니야.. 환생하면 만날 수 있겠구나.. "사랑한다.." 조용히 내 아들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나왔다. 휴.. 그건 그렇고 6개월간 어디가서 짱박혀 있지? "쿡, 현실을 도피하는 건가?" 내 뒤에서 들리는 싸늘한 음성. "네가 상관할 바가 아니야." "널 기다리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 "어떻게든... 되겠지.. 내가 아니어도 다 잘 살아갈 놈들이 야." "글쎄...? 그건 너의 희망사항이 아닐까?"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 "마음대로 생각해. 하지만 이건 알아둬. 네가 할 일은 내 말 을 그대로 프라니와 시오스에게 전해주는 일이야. 더 이상 관여하려 하지마. 네게는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하지만 이 건 내 일이야. 선택을 해도 내가해. 설령.. 그게.. 잘못된 선 택이라고 해도.." 미련이 남았다. 하지만 애써 나는 그것을 부정하고 떠나려 했다. 후후.. 오래 살다 보니 이런 꼬맹이에게도 배울 점이 있다는 건가? "젠장!! 말하려면 네가 직접 말해! 넌 후에 남겨진 이들이 얼마나 고통을 겪는지 몰라! 너만 떠나면 다 된거라구? 하 하, 천만에! 남겨진 이들의 마음을 헤아릴줄 모르는 넌 대 단히 이기적이야." 악에 받친 듯 내 뒤에서 소리지르는 꼬맹이의 목소리가 들 려왔다. 화가 치밀어 오른다. 맞는 말인데도 화가 난다. 난... 누구에게 화를 내고 싶은 걸까? 이기적..? 그래.. 그럴지도 몰라. 난.. 대단히 이기적이야. (26) '쾅' 헉스, 놀랬다. 갑자기 뒤에있는 벽이 무너져 버렸다. "무슨 말씀 입니까?" 프라니.. 네 짓이군. 언제 돌아왔지? 하여간 내가 분위기 잡게 놔두질 않아요. 쩝..;; "너 정말 시크냐?" 카네스. "그러는 넌 정말 카네스냐?" "시크 맞구나~" "친구도 못 알아보는 놈." 익숙한 얼굴. 안변했구나. "로드님은?" "수면기. 그때 깨우면 로드님 폭주한단 말야." 그.. 그렇지. 평소에는 우아 & 기품 & 인내심으로 소문난 로드님인데 잠자고 있다가 누가 억지로 깨우는걸 진짜 싫어하시니까.. 우리 아부지 또 심심해서 발광하시겠군. "잠시 시크와 둘이서 얘기를 나눠도 될까요?"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프라니가 묻는다. "마음대로~" 이제부터.. 모든 것은 연극이야. "떠나신다니요.." "어디서부터 들었냐?" "......" 흠, 꼴을 보아하니 다 들은 것 같지는 않군. "맞아." "왜!?" "지겨워 졌어. 너와 다니는 것도, 그리고 저기 세상 모르게 자고 있는 꼬맹이도." 넌.. 이게 거짓말인줄 알지..? "그게 이윱니까?" "응. 드래곤이 어떤 족속인지 아주 잘 알잖아? 짜증과 싫증 을 아주 잘내지. 난 가지고 놀던 장난감이 지겨워 졌을 뿐 이야." 너까지 내 맘 알아주지 않으면 난 미쳐버릴지도 몰라. 모른척 해줘. 더 이상 묻지마.. 이대로.. 그냥 보내줘.. (27) "제가 그 말을 믿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난 너의 그런 점이 재수없어. 모든걸 다 알고 있다는 소리 따윈 집어치워. 역겨우니까." 정말.. 내가 죽는다면.. 네 앞에서 고통스레 온 몸이 무너져가는 것 을 느끼며 죽는다면.. 네 마음이 찢어지겠지? 차라리.. 네가 나를 증오하는게 더 낳아. 그편이 나에겐 더 편하니까. "저는 당신을 보낼 수 없습니다." "내가 언제 네 허락받고 어딜 나다녔냐?" 나.. 돌아오지 못할지도 몰라. 네 옆으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몰라. 왜 이런 불길한 소리를 하냐구..? 나도 몰라. 자꾸 그런 느낌이 들어. 옛날부터.. 내 예감은 무섭도록 잘 들어맞았잖아. "제발좀 꺼져줄래? 나 가야 되거든?" "어딜 가신다는 말씀입니까!!" "호호홋~! 난 왕궁으로 다시 돌아가려구. 황태자와 결혼하며 사는 것도 꽤 재미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거든? 이제 내 장 난감에 질렸으니 새로운 장난감을 찾는게 당연하잖아?" 내 한마디, 한마디가.. 내 가슴에 비수가 되어 꽂혀 온다.. "엄마...?" 젠장.. 깨어나 버렸나?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은 표정으로 날 보지 말라구. 난 지금 이대로도 미쳐버릴 것 같으니까. 너까지 이러지 마. "거짓말이죠? 그렇죠? 내가 요즘 너무 건방지게 굴어서 화 난거죠?" "정말 짜증나는 아이군." 나는 조그마한 주머니칼을 꺼내들어 시오스의.. 팔을 그어버 렸다. 내 손에 떨어지는.. 시오스의.. 피가.. 붉다.. "악...." 조그마한 비명소리를 지르며 뒤로 물러서는 시오스를 보며, 그리고 내 손에 흐르고 있는 피를 보며.. 내 마음이.. 무너져 간다.. "쿡, 더 이상 내 할 일에 신경쓰지 마라. 장난감." '쫙~' 고개가 오른쪽으로 돌아간다.. 볼이 화끈거린다. 하지만.. 지금 내게는 내 손에 묻은 내 아들의 피가.. 더 뜨 겁다.. "이게 당신 진심이었군요." 프라니.. "마음대로 하십시오. 더 이상 당신을 붙잡지 않겠습니다." 내게서 등을 돌리고 시오스와 함께 걸어가는.. 그의 모습이.. 다시는 돌아올수 없다는 것을 경고해주는 듯 하다.. "엄마.. 흑.. 엄마.." 미안.. 아팠지..? 미안해..... 하지만 엄마는 더 이상 나 때문에 아파하는 너희를 보기가 두려워. 사랑해.. (28) 모든 것이 틀어졌다. 어디서부터.. 잘못된거지? 아마도, 이 모순은 내가 태어날 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드래곤답지 않은 약한 몸. 수명을 다 채우지 못하고 바보처럼 죽은 나. 환생을 하지 못해 인간의 몸에 들어온 영혼. 왜.. 내가 이런 일들을 겪어야 하는 거지? 왜.. 내가 이렇게 고통받아야 하지? 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야 하지? 왜.. 내가 그들의 마음에 비수를 꽂아야 하지? 모든 것이 모순이다. 신의 장난에 맞춰 인형처럼 놀아나는 지독한 놀이. 점점 지쳐간다.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모른다. 무조건 걷기만 했다. 머릿속에는 생각이라는 단어는 남아있 지 않은지 오래 됐다. 큰 호수로 보이는 곳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아름다운 호수지만.. 더 이상 생각하기를 난 거부했다. 꽤 튼튼한 나무 가까이에 가서 등을 기대었다. 나무 특유의 서늘하고 시원한 감촉이 등에 느껴진다. 왜.. 지금 이 순간에 떠오르는 사람이 안나일까? 안나.. 내가 사랑한 친구.. 지금 이 세상에 없을 다크엘프.. 보고싶어. 제발.. 아직까지 살아있다면 날 안아줘. 쓸데없는 말이란건 안다. 안나는 이미 죽은지 오래 됐겠지. 내가 다시 살아서 프라니와 시오스를 만날 수 있을까? 미안하다고.. 전할수 있을까? 내가 싫어졌다면 난 뭐라고 대꾸해줘야 할까? 그게 다 연극이었다고? 쿡, 시크리오프스.. 아주 감상적인 인간이 다 되었구나. 인간이란 이래서 이상한 동물이다. 쓸데없는 감정을 너무 많이 가졌어. 배에서는 이미 며칠 전부터 음식물을 섭취하라고 경고를 보 내왔지만 난 그것을 무시하고 지금까지 왔었다. 하지만.. 이제는 먹고 봐야겠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의미없이 일어난 나는 약간은 햇빛이 따갑게 내리쬐는 것을 느끼며 호수의 맑은 물을 두손으로 떠서 입가에 가져다 대 었다. "시원해..."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갑자기 그 호수에 얼굴을 담가보고 싶 은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치매 증상인가..?) 그.. 그러다 숨막혀 죽으면 어쩌지? 천천히 투명한 물에 얼굴을 가져다 대었다. 코끝에서부터 시원한 물이 닿아온다. 조심스레 눈을 떠보았다. 쪼그만한 물고기들이 내 코 옆을 지나가며 띠꺼운 눈빛으로 나를 한번씩 쏘아봐주고는(아무래도 자신들의 길목을 막고 서있어서 대단히 기분이 상했나 보다.) 가던 길을 계속 갔 다. 마.. 맛있겠다. 쩝..;; 호숫물이 워낙 차가워서 얼굴이 얼얼 해져서야 고개를 든 나는(어떻게 그 오랜시간동안 물속에 있었을꼬?) 어느새 흠 뻑 젖어 있는 옷을 보고는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하하핫, 머야머야? 다 젖었잖아?" 웃었다. 태어나서 처음 웃는 사람처럼 미친 듯이 웃었다. 지금 웃지 않으면 내 눈에서는 눈물이 떨어진다는 것을 알 고 있기에.. 지금 이 순간 만큼은 나를 위주로 세상이 돌아가는 것 같 다. 살고 싶다는 욕망이 든다. 좋아. 6개월.. 내게 남은 이 6개월의 시간을 철저히 즐겨주지. (29) 사막 왕국 트아티나. 보통 사막 왕국이라고 하면 철저한 힘 위주의 왕국을 생각 하지만 이 왕국은 조금 다르다. 완전 고지식한 미친놈들만 모아놓은 곳이랄까? 전통을 중시하고 철저한 보수주의 왕국. 얼마전 골골 앓던 왕이 죽자 옳거니~ 하면서 왕국의 주인이 된 새파란 젊은놈이 다스리는 왕국이란다. 사막 한가운데 있어 디따리 덥고 밤에는 무식하게 추운 곳 이지만 그런데로 볼만한 왕국이란다. 뭐, 보통 이 안내문에 나와있는 설명으로는 대충 이렇다. 난 지금 예전에 드래곤일 때 몇번 사막에 와본 것 빼고는 (것도 뜨거워서 5분만에 도로 날아갔다지..;; 그때는 어쨌거 나 물을 다스리는 블루 일족이었으니까. 뜨거운건 싫엇!!) 사막의 <사>자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은 괜히 왔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 준비 없이 나온건 당연하기에 이 백옥(?)같은 흰 피부 는 이미 생기를 잃고 축 늘어졌고 지금 나는 물을 애타게 찾고 있다. 디따 덥다. 제귈, 어떤 무식한 놈이 이 사막 한가운데에 왕국을 세웠 어? 짜증난다. 자꾸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이 귀찮다. 땀과 범벅이 되어 얼굴에 달라붙어 짜증을 돋구고 있다. 아깝지만 뭐.. '싹둑' 귀 밑까지 잘린 머리가 사막의 뜨거운 바람에 의해 휘날린 다. 내 손에 쥐어진 실버 블론드의 머리카락. 정들었었는데.. 에겅, 내 팔자려니 해야지. 지금은 살고 봐야 되니까. 이 걸리적 거리는 건 나중에 다시 자랄테니까, 머..;; 그러고 보니 돈도 없는데 거기가서 이거나 팔까? 이제 죽을 때 되니까 별 잡생각이 다 드는군. "목말라." 어느새 혼잣말이 버릇이 되어버렸다. 그냥 여기 누워서 자버리면 내일 아침에 시체로 발견될까? 아냐아냐, 지나가는 인간도 없겠다. 쿡, 그래.. 이렇게 죽는것도 뭐.. 나쁘지 않지. 6개월동안 이를 악물고 살려고 했는데, 뭐 세상이 도와주지 않으니 어쩔수 없잖아? 포기했다. 이대로 잠자고 싶어. 내가 눈 뜰때는 어떤 세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제발 눈떠서 처음 보는게 그 망할놈의 찢어죽일(?) 대천사 이기를..(그의 똘마니여도 상관 없다. 족쳐서 대천사 데리고 오라고 하면 그만이니까.) 내가 눈을 뜬곳은 몸이 좌우로 움직이는 낙타 위에서였다. "깨어났냐?" 자연스레 소리가 나는 곳을 올려다 보니 까무잡잡한 피부에 검은 눈을 가진 기분나쁘게 생긴 놈이 나를 내려다 보고 있 었다. "뭐야?" "사막에서 죽어가는 너를 내가 주워왔지." 주워와..? 어째 듣기 거북하군. "그래? 고맙다. 근데 어디로 가냐?" "왕궁." "왜 거기로 가는데?" "내가 왕이거든." "어.. 그렇구나." 참으로 평범한(?) 대화들이었다. "너 안놀래? 내가 왕인데?" "놀라길 바라냐?" "......." "어머~! 왕이었어? 왠일이야~! 놀랬어~! 놀랬어~!" "장난하냐?" 내.. 내가 생각해도 모자란 것 같군. 험험.. 그나저나 배고파 돌아가시겠는데 왕궁 가면 맛있는 것도 주겠지? 그러고 보니 목마르군. "나 물줘." "싫어." 메야? 저 새끼가..;; 자신의 허리에 메어져 있던 수통을 가져다가 나 보란 듯이 물을 맛있게 마시는 천하의 때려 죽일놈.. "치사한놈. 넌 저주 받을거야. 수분부족으로 나 죽기만 해봐 라! 자손 대대로.. 읍.." 앞을 보며 투덜거리고 있을 때 그 새끼가 한쪽 손으로 내 얼굴을 돌려 자신을 마주보게 했다. 더워서 말라죽겠는데 내 입술에 그 놈의 따뜻한(?) 입술이 닿았다. 그리고 나서 내 입속으로 들어오는 약간의 미적지근한 물. '꿀꺽' "으웩~ 뭐하는 짓이야!!" "쳇, 물을 줘도 뭐라고 하네." "죽고 싶냐!!" "더 줄까?" 누구를 생각나게 하는 놈. 내 염장지르는데 타고난 놈. 왠지 그놈과 엽기적으로 닮았다는 느낌이 든다. 아마 그놈에게 나는 신기한(?) 존재였었지? 으으, 그 새끼 생각하니까 열받는다. 벽돌로 때려도 기절 안하는 대단한 돌머리를 가진 놈. 왜 이놈하고 그놈하고 겹쳐 보이는 거얏~~~~~!!!!!!!!!!!! 이 흔들거리는 낙타에서 도저히 이놈의 얼굴을 때릴수가 없 기에 나는 내려서 보복하겠노라고 다짐했다. 왜 내 주위에는 이런 놈들만 꼬이는 거지? 아아~ 간만에 본 성질 튀어나오겠군. (30) 오호~ 지금 알았는데 이놈 뒤에는 호위 무사들이 따라오고 있었군. 내가 내려서 이놈 한 대 치면 바로 목 날아갈 기세잖아? 헐헐, 저 흉한 눈으로 날 째려보는 거 보게나. "왜 네 뒤에 저런걸 달고 다니냐?" "몰라. 날 사랑하니까 쫓아오는 거겠지." 우웩, 이놈 취향이 남색이었나? "야, 다 도착하면 깨워라." "거의 도착 했는데?" 여기까지 말하자 멀리서 어떤 긴 천을 칭칭 둘러맨 여자 하 나가 뭐라고 소리 지르며 달려오는게 보인다. 그 뒤에 어마어마한 왕궁이 보이는군. 정말 왕궁이라는 건 왕 하나 살 집만 아담하게 만들어 놓을 것이지, 뭐 저렇게 무식하게 등치만 크게 만들어 놨다냐? "폐하~~~!! 마음대로 나가시면 안된다고.." 그렇게 말하던 여자는 갑자기 나를 바라보더니 눈초리가 매 서워 졌다. "이 계집애는 뭔가요?" "어? 내 여자." 누가 네 여자라는 거야? "폐하!!" "왜? 유티스. 그만좀 소리 질러." "저 출신이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는 미천한 계집년을 폐하 의 후궁으로 두다니욧!!" "입닥쳐. 유티스. 더 이상 건방지게 내 앞에서 대들지 마 라." 에겅,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여튼 나 때문에 쌈 났나보군. "야, 나 내려줘." "저런 무례한!!" "너 얘가 입닥치라고 했잖아." 입닥치라는 년이 왜 나한테 말을 건다냐? 기분나뻐. "나 배고파." "후, 프란스." 뒤에서 이놈의 똘마니중 하나가 기어 나오더니 부복했다. "얘 데려가서 씻기고 옷입히고 밥좀 줘서 내 침실로 올려보 내." "알겠습니다. 따라오시죠.." 홍홍~ 얘만 따라가면 먹고 자고 입을수 있다는 말이지? 오호~ 횡재로다~! 돈도 없었는데 공짜로 먹여주고 재워주는 곳이 있다니~ 내가 뽈뽈 거리며 그 프란스라는 청년을 뒤따라 가며 슬쩍 고개를 돌리자 그 왕과 유티스라는 여자가 2차전으로 돌입 해 말싸움을 하고 있었다. 쿠쿡, 왕아~ 말싸움에서 여자를 이길 놈은 없단다~! 처음 이 무식한 왕궁을 보았을 때 소감은 솔직히 하얗다 였 다. 흰색의 부드러운 비단이 내 발아래 깔려 있었고 나는 그것 을 더럽히면 안된다는 의무감으로 조심스레 걷고 있었지만 이미 흰 비단은 더러워져 있었다. 난 흰색이 싫단 말이닷~~~~!!!!! 빨리 더럽혀지니까. 이 곳에 사는 시녀들은 매일 광나도록 빤질빤질 문질러 닦 느라고 고생하겠군. "화원의 방에 목욕물을 준비해 놓도록 일렀습니다." 화원의 방..? 풀이하면 꽃의 방? 에이~ 몰라몰라~! 나야 그냥 아랫목 뜨뜻하니 배부르고 돈 쫌 챙기면 나가면 되는거지. 귀찮게 그런거에 어떻게 일일이 신경써? 30분 정도 걸은 것 같다. 이래서 나는 왕궁이 싫엇~! 무슨 뺑뺑이 미로 찾기도 아니고.. 분명히 이 왕궁을 설계한 놈들은 비정상적인 미친놈들이거 나 엽기적이 싸이코들이었을 거야~! 도둑놈들도 먹고 살아야지. 이렇게 미로 식으로 설계 해놓으면 도둑이 들어오기도 어렵 잖앗~! 전직이 예전에 시크리오프스라는 도둑 길드 창시자로서 한 말이다. "이게 화원의 방..?" 몇 십분을 걸어서야 겨우 도착한 곳은 화원의 방이라는 이 름에 걸맞게 엄청나게 화려하고 무엇보다 방 안에 정원이 있었다. "예.. 그럼 편히 쉬십시오. 식사는 두시간 후에 방으로 가져 다 놓겠습니다." "어? 어.." 아무리 화려한것에 익숙해졌다고 해도 이건 정도가 심하다. 내 후각을 자극하는 은은한 향기. 꽃들이 이렇게 많다면 향기도 진하고 현기증도 날만 하건만 내 후각에는 은은한 옅은 향만을 맡을수가 있었다. 방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화원이었다. 뭐라고 이 방을 설명해야 하나..? 창문이 모두 열려져 약간은 뜨거운 사막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고 한 쪽 귀퉁이에 약간은 초라하게 침대와 가구들이 놓여 있었다. 가구들은 모두 화려했지만 이 꽃들의 아름다움에 그런 것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 그보다 목욕부터 해야지. 아마도 욕실로 향할 것 같은 문을 열어젖혔다. 3개의 방문이 있었는데 마지막 문이 욕실이었다. (몰라서 다 열어봤다..;;) 다른 하나는 옷장이었고, 다른 하나는 서재였다. 거의 수영장만한 욕조에 시원한 물이 담겨 있었고 너무너무 방가운 물을 본터라 나는 옷을 벗지도 않고 뛰어들었다. "으와~ 시원해~!" 음하하핫~~!!!! 지금쯤 나를 걱정하고 있는 녀석들에게 한마디씩 해줘야 겠 군. (과연 시오스와 프라니는 나를 걱정할까는 의문이지만..;;) 나 호강한닷~~!!! 음훼훼훼~~~!! (31) "너.. 너.. 너.." 지금 이놈은 이 욕실이란 곳을 보고 할말을 잃었나 보다. 내가 한번 정신을 놓으면 눈에 뵈는게 없지. 타올들은 이미 물에 젖어 창문이나 욕조에 흐트러지게 널려 있었으며 큰 욕실 안은 비누 거품들이 동동 떠다니고 있었 고 물은 이미 그 투명함을 잃어버린지 오래였다. 헐헐, 뭐 이런걸 가지고 할말을 잃으시나.. "이게 뭐하는 짓이얏~!!!!" "노는 짓." 으와~ 간만에 운동한번 했더니 온몸이 뻐근하며 뼈마디는 내일 아침 신경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나를 참으로 한심한 표정으로 쳐다보더니 방문을 열고는 뭐 라뭐라 소리치니 곧바로 대여섯명의 하녀들이 들어왔다. 한손을 머리에 얹으며 욕실쪽을 가리키자 그쪽으로 들어간 하녀들. 살짝 그곳을 바라보니 벙찐 표정으로 멍하니 있는 그녀들의 모습이 보인다. 이거 미안하다구~ "근데근데근데~ 너 이름 뭐야?" "나? 여태 내 이름도 몰랐단 말이냐? 촌년.." 흐미, 이걸 패~ 말어? "나는 라이가루타 필리스란 안뜨 피렌체스..." "닉네임만 말해! 그거 내가 다 외울수 있을거라 생각해?" 왜, 왜, 왜!! 귀족이나 왕의 이름은 이리도 디따리 길단 말 인가~~!! 하여간 작명센스 하고는.. 이름 길게 짓는 놈들은 다 죽어야 해~~ 지네들이 외울것도 아니면서.. "쳇, 예의없긴.. 루타라고 불러라." "루타루타루타야~~" "한번만 불러. 왜?" 세상에서 태어나자마자 느끼는 가장 기본적인 욕구. "배고파.." "조금 있다가 올려보내라고 했어. 후아.. 오늘 나는 손님이 있어서 좀 늦을지도 몰라." "네가 늦든지 말든지 나하구 무슨 상관인데?" 얘가 손님이 있든 여자가 있든 나하고 무슨 상관이란 말인 가? "몰랐어? 넌 내 후궁으로 이 성에 들어온 거야." 후궁이 뭐였더라? 후궁.. 후궁.. 후궁.. 에거, 머리아파. 나 정말 한때는 날리던(?) 드래곤이었던거 맞아? 이젠 그것마저 의심이 드는군. "후궁이 뭐야?" "지.. 지진아냐?" '퍽~' 내 다리는 사정없이 정강이로 날아들었고 곧이어 정강이를 붙잡는 루타를 보며 나는 씩 웃어주었다. "내 두 번째 여자." 역시~ 애들은 맞아야 정신을 차린.. 이게 아니지? 뭐? 두 번째 여자? 기억 났어.. 후궁이라면.. 왕의 뒤에서 애나 쑴풍쑤풍 낳아주면서 정비를 질투하는 못된 여자들? 내가 그 여자중의 하나가 된단 말야? "아가.. 장난치면 몸에 해로워." "넌 지금 이게 장난으로 보여? 난 네 생명의 은인이라구." 생명의 은인이라.. 에겅, 그 신관놈이 생각나네. 난 왜이렇게 생명의 은인이 많다냐? "생명의 은인도 은인 같아야 상종을 하지!! 맞아죽기 싫으 면 지금말 취소해."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 루타. "적어도 내 후궁이라면 영광인줄 알라구!" "놀고 뒤로 자빠지다고 코깨지는 소리 집어치우고 알아서 기어라." "이게 진짜~~" 막 본격적으로 말다툼을 하려는 우리 사이(?)를 방해하는 인간이 있었으니.. 프란슨가? 프란쭌가 하는 인간이었다. "폐하. 손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빨리 준비를 하시지요. 부부싸움은 나중에 해도 늦지 않을 듯 합니다만..?" "어? 알았어. 고마워, 프란스. 너!! 나중에 봐!" "나중에 보자는 놈치고 제대로된 놈 봤냐?" 루타가 프란스와 함께 나가려 하자 나는 주저없이 프란스의 뒷덜미를 낚아 채었다. "뭐야?" "넌 먼저 가있어. 난 얘하구 할 얘기가 남아있거든. 홍홍, 너도 설마 얘 없으면 길 잃어버리냐?" "너하고 말하는 내가 한심하다." "알면 됐어." 루타가 나간후 나는 음산한 웃음으로 프란스를 올려다 보았 다. (이놈 키가 한뼘정도 더 크군.) "아까 한말 다시 해봐." "네? 손님이 오셨다고.." "그 뒷말." "폐하께 빨리 준비하시라고.." "너 내가 어디까지 돌아버리나 시험중이냐?" "부부싸움.. 나중에 하라구요..?" "그래! 그거말야~ 그것!!" "그게 뭐가 어떻다구요~~" 약간의 울상을 지으며 말하는 프란스를 바라보며 나는 올라 갔던 주먹을 내리고 침착하게 말했다. "어딜 봐서, 어떤 근거로 걔하고 나하고 부부라는 거얏!!!" "부부 맞잖아.. 헉.." 뒷말을 맺지 못하고 나의 작고 가녀린 손이 프란스의 뒷통 수를 시원하게 가격했다. "다시 말해봐." "잘못했어요~" "앞으로 다시한번 그딴식으로 불러봐. 너 죽~~어!!" 흐미, 흥분했더니 에너지 소비가 대량으로 많아져서 배고파 돌아가시겠다. "가서 밥이나 가지고 와." (32) "그래서? 한마디로 니 마누라 찾아달라는 얘기냐?" 흐미, 이 새끼는 3년 동안 얼굴 한번 안비추다가 갑자기 찾 아와서 다짜고짜 한다는 소리가.. "나 사랑에 빠졌나봐.." 이 소리다. 약혼녀가 다른놈하고 눈맞아 도망갔댄다. 도망갔으면 도망 간데로 놔둘 것이지 저놈은 자존심도 없 나? 참으로 반쪽이긴 해도 우리 집안 피를 이은 놈이라고는 상 상도 못하겠군. "혹시나 이쪽으로 왔을지도 모르니까 애들 풀어." 지금 내 방에 말 안듣는 나를 개뿔로 아는 계집애가 있어 신경 날카로운데 이놈은 왜 지금 와서는 사람속 뒤집어 놓 는다냐? "너 정말 그 여자 좋아하냐?" "처음엔 장난이었는데 하는 짓 보니까 진심이 됐어." "하긴.. 어린놈이 옛날부터 특이한걸 좋아하기는 했지. 뭐, 알아는 보지." "너한테 그따위 소리 듣고 싶지 않군." 루이크 제국의 황태자. 하라이스 루네스 린 가아스트라.. 얼굴 한두번 밖에 보지 못한 우리 누님의(누님이 시집가고 난 뒤 내가 태어났다.) 아들이다. 즉, 내게는 조카가 되는 셈이지. 내 조카가 아닌 입장에서 본다면 한마디로 재수없는 놈이 다. 하지만 세간에는 이놈하고 나하고 닮았다는 말이 퍼지고 있 었으니.. 한마디로 뚜껑 열리는 소문들이다. "언제 갈꺼냐?" "몰라. 나중에.. 참, 너 오늘 후궁 데리고 왔다면서?" "어? 얼굴이 반반해서 주워왔더니 성깔은 니 뺨 칠정도로 더럽고, 사고 뭉치에다가 바락바라 대들기나 하고.." "꼭 누구를 생각나게 하는군." "아아~ 나는 교육이나 시키러 가야겠다. 넌 천천히 놀다 가 라." "꼭 찾아봐야 해." 그나저나 아까 그 계집애한테 붙잡힌 프란스는 왔나? "프란스~ 왔냐?" 문밖을 향해 크게 소리치자 언제나 처럼 대답소리가 들렸 다. "아.. 네.." "이 놈 아무 방이나 쳐 넣어 줘라." 뭐, 방이야 다 그게 그거니까 아무곳에나 머물러도 되겠지. (내방은 좀 다르지만..) 흐아~ 그나저나 아무리 내가 능력이 좋다고 하지만 여기서 니 마누라를 어떻게 찾냐? 노력은 해보마. 그건 그렇고, 그 계집애 교육시키려면 오늘 하루 죽어나겠 군. 서방님(?)을 공경하는 버릇부터 가르쳐야지 원.. 배불러... 거의 6인분을 먹어치운것 같다. 옆에 쌓인 접시를 보면 한숨이 나온다. 뭐, 내가 치울 것도 아닌데 걱정 할 것 없지. 아까 프란스가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경고를 무시하고 꽃구 경 하는 것도 지루해진 나는 빼꼼히 방문을 열어보았다. 흐흐, 다행이 지키는 놈은 없군. 이거이거, 또 혼자 싸돌아 다니다가 길 잃어버리는 것 아 냐? 그럼 완전 개쪽이지..;; 이리 저리 완전 촌년처럼 구경하다가 프란스를 보게 되었 다. 걸리면 또 그 방으로 가야 되겠지? 아는체 않하는게 좋을 것 같군. 살짝 몸을 돌려 모퉁이에서 들키지 않도록 고개만 빼꼼히 내밀고는 프란스의 동태(?)를 살폈다. 그런데 프란스 뒤에 따라오는 놈은 또 누구지? "이쪽 방입니다. 편히 쉬십시오." "고맙소." 익숙한 목소리. 내가 제일 듣기 두려워하는 목소리. 아닐거야.. 믿을수 없어. 하지만...... 흐윽.. 나는 보았다. 그 미친놈이 방으로 들어갈때의 옆모습을.. 나 놀리는 재미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놈. 그때 그냥 프라니를 말리지 말았어야 했어~~ 니가 왜 여기 있는 거냐!! 망할 황태자 새끼.. 차마 큰소리로 말하면 들킬까봐 소리없는 외침으로 절규하 는 나였다. 가만히 있다가 황제 죽으면 즉위나 할것이지 뭐하러 황궁에 서 기어나와? 나는 왜 내가 아는 놈들 중에서 쟤가 제일 두려운 걸까? 차라리 내가 널 피하마. X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버서 피하지. 제발 내가 여기 있는동안 저놈하고 마주치지 않기를.. 허긴, 이 넓은 궁에서 저놈하고 마주치면 행운이겠다. 일부러 찾아가지 않을시에는 말이지. (33) 으아~ 여기도 빨리빨리 챙길거 챙기고 나가야 겠군. 또다시 그 사막을 횡단한다고 생각하니 죽을 맛이네. 저놈 날 보면 칼들고 달려들텐데.. 아아~ 제길제길제길~ "여기서 뭐하고 계십니까?" 히엑~ 놀래라. 너너, 뭐냐? 그 까무잡잡한 얼굴을 갑자기 내 얼굴에다 들 이밀면 어떡해? 하여간 제대로 된 놈이 없어요. 애 떨어질뻔 했네. "으.. 으응.. 산책." 아까 까지만 해도 내가 족치던 녀석이었는데 나도 저지른 잘못이 있어서 숙이고 나간다. "방에서 나오지 말라고 했을텐데요?" "남이사. 거기서 안나오면 숨막혀 죽을 것 같아서 이랬다." "환기가 되지 않습니까?" 고지식한 놈. 그걸 곧이 곧대로 알아듣냐? "아니~ 그런건 아니구.. 에구, 모르겠다. 말해봤자 내 입만 아프지. 방으로 가자." "아.. 네." 이상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며 방으로 가는 길로 앞장슨 프란스를 바라보며 나는 왜 황태자 녀석이 이곳에 있나 궁 금해졌다. "그런데~ 아까 들어간 남자 누구야?" "보셨습니까?" "응. 보면 안되는 거였어?" "아닙니다. 폐하의 조카분 이십니다." 조카? 조카였어? 성격이 더럽다고 생각했지만 설마 친척이었을 줄이야. 내가 그 루타를 보고 황태자를 생각한것도 무리는 아니군. "그런데 여기 왜왔데?" "아, 도망가신 약혼녀를 찾아 지금 여러 나라를 여행하고 계신다는 군요." 히엑~ 끊질긴놈. 내 여태까지 네놈이 드래곤 심줄보다 더 독한 놈이란건 알 았지만 어떻게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날 찾아나설 생각을 했단 말이냐~ 그래~ 이제 이 왕국에서 너와 나의 술래잡기라 이거지? 흐흐흐~ 과연 네가 나를 잡을 수 있을까? 눈앞에 사냥감(?)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지나가겠군. 왠지 이런 상황이 갑자기 재미있어진 나였다. 후후, 지루한 일상보다는 이게 낫지. 어느새 '화원의 방' 앞에 도착해서 방문을 열자 고함소리가 내 고막을 울렸다. "야!! 어디 갔다 온거야!!" 우이띠~ 고막 떨어지겠네. 무슨 목청이 저리도 좋은 거야? "놀러." "누가 내 허락 없이 나가랬어!!" 소유욕이 강한 놈이군. 그럼 나는 네 허락 없이는 숨도 쉬지 못하냐? 상당히 기분 나쁜 발언이야. "소리좀 줄여라. 너 목청 크다고 온 사방에 방송하냐?" "저게..." 툭하면 이성 끊어지면서 열내는 것도 황태자랑 닮았군. 세트로 재수 없는 것까지도. "나 잘테니까 넌 니 할 일 이나 해라. 아참, 이상한짓 하면 반 병신 될건 각오해야 할꺼야." 뭐, 필요에 따라서는 이놈을 사살할 생각도 없지는 않지. 휴.. 오늘 하루는 상당히 긴 하루였군. (34) 혼자 논다는 것은 기분 더럽고 심심하다. 나하고 말싸움 하다가 제 풀에 지쳐 나가버린 루타. 밤에 잠도 안오고 별구경이나 하면서 이러고 있으려니 참으 로 청승맞군, 그래. 야, 미친 시크리오프스야. 이럴려고 프라니랑 다 버리고 뛰 쳐 나온거냐? 하늘에서 거만하게 나를 내려다보며 반짝이는 별들을 보면 서 왠지 서러워지는 나였다. 그런데.. 목아프다. 나는 뻣뻣하게 하늘을 바라보며 굳어있는 목 뒤를 주먹으로 몇대 쳐준 뒤에야 고개를 숙일수가 있었다. 어떤 새끼가 저 위에다 별 박아 놨어!! 사막 특유의 차가운 바람이 얇은 잠옷만 입은 내 옷자락을 펄럭거린다. 춥다.. 더럽게 춥다. '똑똑' 노크 소리가 나는 곳으로 눈을 돌리자 유티스라고 했던가? 하여튼 아까 루타에게 땍땍 거리던 계집애가 고개를 빼꼼히 내미는 모습이 내 시야에 들어온다. "뭐하냐?" "꺅~ 놀래랏." 놀래긴 내가 더 놀랬다. 그 고음의 소리로 땍땍 거리지 말라구. 아무리 내가 가끔 가다가 저런다지만 직접 듣고 나니 다음 부턴 고음의 소프라노로 땍땍 거리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의 방에 들어와서 왜 지랄인 건데?" "너.. 폐하에게 꼬리치지 맛!!" 저게 뭔말일까?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대체 말하고 싶은 내용이 뭘까? 차가워진 피부를 느끼며 테라스의 창문을 닫고 그 유티스란 여자를 바라보던 나는 더 이상 얘기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 했다. "나가." "뭐?" 말귀도 못알아 듣냐? 아아~ 잠이 안와서 심심하다고, 혼자 놀고 있다고 했더니 별 반갑지도 않은 거지 같은게 꼬여드네. 더 이상 상대조차 말아야지. 유티스를 철저히 무시하며 그 넓디 넓은 침대로 가서 살포 시 누운 나는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겼다. "너!! 내말 무시해? 감히 내가 누굴줄 알고!!" "......" 에휴, 사막에서 고생만 하다가 오니 삭신이 쑤시는 구나. 누가 와서 안마나 해주면 좋을텐데.. "이 계집애가!!" 성큼성큼 내게로 걸어오는 유티스의 발걸음 소리를 나름대 로 즐기며 끝까지 눈을 뜨지 않던 나는 머리의 통증을 느끼 며 어쩔수 없이 눈을 떠야만 했다. "감히 사람 말을 무시를 해? 너처럼 천한 것들은.." "놔." 짧은 머리카락을 아프도록 쥐고 있던 유티스는 내 한마디에 바로 반대쪽 손으로 내 뺨을 갈겼다. '쫙'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고개. 입안으로 퍼지는 씁쓸하고 비린 피맛. 입속이 터졌나 보군. 안되는데.. 밥먹을때 고통스럽다구. 때릴려면 좋게 위치를 계산해서 때릴 것이지. "무슨 짓이야!!" 열린 방문으로 보이는 루타가 보인다. "유티스! 감히.." 할말을 잃었나 보다. 왠지 화낼 기운도 남아있지 않았다. "방으로 돌아가 근신하고 있어라." "폐하.."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 했다!!" 울먹이며 나가는 유티스를 보며 왠지 불쌍한 마음이 들었 다. 유티스는 루타를 좋아한다..? 유티스가 나간 방문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던 나는 따끔거리 는 볼에 느껴지는 손길을 자각했다. "왜 맞고만 있었냐?" "그럼? 싸잡아서 죽도록 패기를 원하냐?" "그런 말뜻이 아니잖아. 그래~ 그 성격에 잘도 참은게 대견 하다." 맞은건 난데 왜 네가 더 열내냐? 기운 없어 죽겠는데 왜 자꾸 말을 시킨다냐? "나가." "뭐?" "나가라구!! 혼자 있게 놔둬!!" 잠시 나를 어이없게 쳐다 보다가 화가 난 듯이 방문을 쾅 닫고 나가버린 루타를 보며 왠지 모를 화가 느껴졌다. "여자 마음 따위 모르는 너 같은건 죽어버려라." 절대로 유티스 그 계집년이 좋아서 이런 말을 하는건 아니 다. 다만 자신의 마음도 전하지 못한채 끙끙대며 앓고 있는게 불쌍해서지. 여기나 저기나 골치 아픈 일 투성이군. 안그래도 황태자 때문에 싱숭생숭 할 판에 왜 나만 가지고 그러는 거냐구!! (35) "잠... 안와 죽겠는데, 더욱더 잠을 깨게 만드는군." 테라스의 얇은 커튼 사이로 사막의 뜨거운 햇빛이 조금씩 비추기 시작했다. 벌써 아침인가..? 저녁에 별 거지같은 것들 때문에 잠도 못잤구먼.. 짧은 머리카락이 조금은 어색하다. 괜히 잘랐나..? 뭐, 그 상황은 어쩔수가 없었다구. '똑똑' 또 누구야? 으아~ 날샌지 얼마나 됐다고 또 방문을 두드리냐? "어떤 새끼야~!! 루타면 꺼지고 유티스란 계집애면 좋은 말 할 때 고이 돌아가라." 뭐, 꺼지란 소리는 같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칠게 열리는 문. "뮤즈!!" 오싹... 방문을 보지 않고 있던 나는 아주아주 기분나쁜 목소리에 온 몸에 소름이 쫘악~ 돋는 것을 느낄수 있었다. "아.. 아~ 오랜만이야~" 이걸 어쩌지? 왜 그렇게 노려보는 거냐구~~ "그래.. 굉장히 오랜만이지." "여긴 어쩐 일이야?" "그것보다 그 후궁이 너냐?" 그.. 그렇겠지.. "아마.. 그럴껄?" 난.. 난.. 왜! 이놈 앞에서는 이리 쫄아드는 거냐!! "루타 녀석이 이곳에 있다길래 왔더니 뜻밖의 수확이군." 뭐가 뜻밖의 수확이란 거냐!! 내가 작물이냐? 정말 맘에 안드는 놈. 내가 저놈을 자근자근 다져서 뼈속까 지 갈아먹고 싶다. "설마 그놈과 잔건 아니겠지?" 머릿속에 든거 하고는? 꼭 지같은 상상만 하고 지랄이야. "하긴, 네. 성. 격. 에. 잤다면 루타 그놈이 살아 있을 리가 없지." 알긴 아는군. 잠깐, 이건 무슨 내가 괴수나 된다는 말투잖아? 저 망할 놈을 그냥.. 참자. 참아. 불쌍한 중생 하나 구원했다 고 치고 인내심 많은 내가 참아야지. 저 불쌍한 놈 때려봤자 나오는게 뭐가 있냐? "아아~ 입닥쳐. 난 너 지금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 수없으니까 더 이상 내 성질 돋구지마." "그것보다 빨리 짐싸." "내가 왜 짐 싸야 되는데?" "넌 내 여자니까." "누가 그런 소리 지껄이디?" 슬그머니 주먹이 올라가다가 변명이나 듣고 때리자는 마음 에 그놈을 빤히 쳐다봐 주었다. 이 한마디에 한해서 네 생사가 걸려있노라. 음하하핫~ "이런~ 벌써 양가가 인정한 사이잖아?" "미친놈. 좋은 말할 때 고이 창문으로 뛰어내려라." ------------------------------------------------ 감은 눈을 떠봐요.. 그대에게 애원하는 내 모습.. 보이지 않나요..? 조금만.. 안아줘요.. 나.. 너무 힘들어요.. 조금만 그대 품안에서 쉬게 해줘요.. 그리고 나서.. 놓아줄께요.... 내 사랑으로부터.. 놓아줄께요.. 너무.. 모질다고.. 잔인하다고.. 원망하지 마세요.. 그대의 깊은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네요.. 울지 말아요.. 더 이상.. 내가 눈물을 닦아 줄 수도 없잖아요.. 다음에.. 태어날 때.. 그때는 당신 슬프게 안할께요.. 잠시만.. 아주 잠시만.. 나를 잊어줘요.. 당신 기억속에서.. 나를 잊어줘요.. (36) "여전히 그 성질머리 하고는.." "내 성격 이런데 네가 뭐 보태준거 있냐?" "입닥치고 빨리 짐이나 싸." "내가 왜 널 따라가야 하는데?" "넌 내 약혼녀니까!!" "놀고 있네~~" 이 녀석과 만나면 새삼스레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깨닫는 다. 지금 이 세상에 이놈처럼 내 머리를 돌아버리게 만드는 인 간이 또 있을까? "후.. 사랑하는 내 조카 하이스. 내 방엔 무슨 일이냐? 감히 내 여자를 넘보다니.. 죽고 싶나?" 루타 녀석과 저녀석 성격이 똑같군. 대체 누가 누구꺼라는 거야? 피해자 앞에 두고 둘이서 잘하는 짓이다. "형~! 쟤가 도망간 내 약혼녀라구!!" 루타의 그 까만 째진 눈이 잠시 흠칫하며 위로 올라가는 것 을 본 나는 또다시 한바탕 갈굼을 당해야 한다는 설움에 머 리가 복잡해졌다. "정말인가?" "확인 사살까지 하냐?" "정말?" 나한테 진실을 물어오기에 그렇다고 대답해 줬다. 이제 와서 숨길게 뭐가 있겠냐? 그나저나 이놈은 확인 사살을 하다 못해 시체를 자근자근 다져 놓는 타입이군. 그런데 정말 저 황태자 새끼하고 나하고 운명적으로 맺어져 있는거 아냐? 왠지 우연을 가장한 계획적인 만남 같다. "쿡, 잘도 나를 속이셨군." "난 속인적 없어. 니가 니맘대로 나를 후궁으로 정한거고, 니가 언제 나한테 물어봤어?" 지가 나한테 안물어 본걸 내가 어떻게 대답하라는 거야? "형,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어졌어. 내 약혼녀를 데 리고 가겠어." "못가." "왜?" "쟨 내 여자야." 둘이 정말 잘 노는군. 누가 지네들 따라간데? "둘이 정말 닮았군. 누가 친척 아니랄까봐. 재수 없는 것까 지도 빼다 박았어." "누가 닮았다는 거얏!!" "입닥쳐!!" 둘다 왜 흥분을 하고 그러냐? "이 검둥이 형하고 나하고 닮았다니! 말조심해!!" 호오~ 검둥이? "오호호홋~ 네놈은 그렇게도 네 어미를 욕하고 싶었냐? 멍 석도 깔아놨으니 둘이 한판 붙지 그래?" 루타가 검둥이면 루타 누님. 즉 황태자의 어머니도 검둥이 이기에 한 말이었다. "잠깐 나좀 보자꾸나. 조.카.야." "형과 더 이상 나눌 대화 없어!" "형이 아니라 삼.촌.일.텐.데?" 더 이상 이 유치한 대화를 듣고 있자니 귀가 썩어드는 것 같다. "난 나갈테니 니네들끼리 띵가띵가 잘 놀아라~" 방문 손잡이를 돌리려 할 때 뒤에서 갑자기 내 어깨를 붙잡 는 손들. "어.디.를. 가.려.고.?" "모든 사건의 원흉~!" 왜. 왜. 왜!! 화살이 내게로 쏠린 거냐!! 강제로 침대에 앉혀진 나는 나를 바라보고 있는 재수 없는 시선을 고스란히 받아내야 했다. "즐거운(?) 대화를 나눠보자구." "이 일이 해결되기 전까진 밖으로 한 발자국도 못나가!" 이렇게 해서 우리 세명의 삼.자.대.면. 이 시작되었다. 아무 죄도 없는 내가 왜 이 유치하고 재수없기 그지 없는 싸움에 끼어들어야 되냐구! (37) "더이상 그 음침한 얼굴로 신전에 붙어있지 말라구!!" 정말 짜증이 난다. 이 프라니바투스라는 드래곤은 그 시큰가? 뭔가 하는 년이 가고 나서부터 계속 이 신전에 빌붙어 하늘만을 멍하니 쳐 다보고 있다. 하루 이틀이면 말을 안하는데 벌써 며칠째냐? 삼일까지 세다가 말았다. 시오슨가 하는 놈은 그래도 밥값이라도 하지. 저놈은 드래곤이기에 차마 때릴 수도 없고(때리면 아마 신 전 날아가지..) 이제나 저제나 두고 보다가 드디어 내가 폭 발 해버렸다. 잠시 나를 초점 없는 눈으로 쳐다보더니 곧이어 여신의 조 각상으로 눈을 돌리는 정신 나간 드래곤. "내 말 씹지마!!" "......." 더 이상 방해하지 말란 듯이 아에 이제는 눈을 감아버린다. 내가 여기서 이 신전을 말아먹는 일이 있어도 이 일만은 바 로 잡아야 겠다. "맛있냐? 그렇게 배고팠어? 앙? 빨리 꺼지든지 정신을 차리 든지 둘중 하나를 택해! 여신이 이 곳에 강림하려고 오셔도 음침한 네 얼굴보고 도망가게 생겼다구!!" "......." 정말 말로 해서는 정신을 차리지 않을 놈이군. '퍽~' 내 주먹이 정신 나간 드래곤의 얼굴에 정면으로 부딪혔다. 서서히 숙여진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보던 눈빛. 절대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이제 정신이 좀 드냐?" ".... 꺼져 ...." 아직도 정신을 못차렸군. "시크는 떠났다구! 네놈이 이곳에 이렇게 죽치고 앉아 있어 봤자 돌아오지 않아!!" 나는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황금빛의 눈동자에서 투명한 황금빛의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한방울이 톡 떨어져 땅에 닿을때쯤 말을 연 드래곤. "네가 뭘 안다고 그러는 거지?" "그래! 너보다 모를 수도 있어! 하지만 그녀가 네 이 바보 짓을 알면 과연 좋아할까?" "나를 버린 그녀야. 아니, 자신이 키워온 아들도 버린 그녀 야." 이 새끼.. 시크를 사랑한다는 말도 거짓말이었군.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이 무슨 고통을 겪고 보내야 했는지도 모른다는 건가? 아직도 애군. 애야. 클려면 한참 멀었어. "그녀가 무슨 마음으로 떠나야 하는지 한번이라도 생각해본 적 있나?" 어깨가 가느다랗게 떨리는게 눈에 들어온다. "무슨.. 소리야?" "이제 생명이 6개월 남았다. 그렇게도 그녀가 그립다면 찾 아. 더 이상 네 이런 꼴보고 싶지 않으니까." 또다시 한방울의 눈물이 떨어진다. "그녀를.. 아프게 했어.." "그렇다면 찾아서 사과해." "난.. 그럴 자격 없어." "바보 같은놈. 그게 바로 네가 말한 사랑이었나? 그건 집착 밖에 안되는 거야."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지 못하군. 찾고 싶으면 찾고, 용서받고 싶으면 용서를 구하면 될 것 아닌가? 왜 저렇게 고민하는 거지? "입닥쳐! 꼬맹이. 더 이상 지껄이는건 용납 안해." "그래. 꼬맹이 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너보다 정신 연령은 훨씬 성숙해. 가끔은 감정대로 행동해도 좋을 때가 있는 거 야. 시크가 어디에서 죽어가고 있지나 않을까? 아니, 벌써 죽었을지도 모르지. 수중에 돈도 얼마 없었을텐데? 그녀를 사랑한다면 가서 찾아라." "닥쳐! 너에게 그런 소리들을 이유가 없다." 이놈을 어떻게 하면 정신을 들게 만들 수가 있을까? 위대한 드래곤이 이성을 잃고 날뛰는 모습이라.. 우리 신전에서 폭주 안한걸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살다보니 별 구경을 다 해보는군. 뭐, 드래곤을 본다는 것은 상상도 안했지만.. 설마 드래곤이 모두 이런 건 아니겠지? "네가 말하는 사랑이 도대체 뭐냐? 그러고도 그녀를 사랑한 다고 자신있게 말할수 있나?" "수천년을 그녀만.. 사랑해 왔다.." "아니, 네가 수천년, 수만년 동안 그녀를 사랑했다고 해도 그녀의 마음 하나 이해하지 못한다는건 진정한 사랑이라고 할 수 없지."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나보군. 저게 과연 지혜의 종족 골드 드래곤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내게서 뒤를 돌린채 신전을 걸어 나간다. 무엇을 택했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더 이상 내가 할 일은 없어. "어? 형~ 어디가요?" 시오스가 환자들을 돌보다 달려나와 신전을 나가는 드래곤 을 붙잡는다. 쓴 미소를 지으며 시오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나직히 말 하는 드래곤을 보며 어느새 내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있었 다. "엄마 데릴러. 곧 돌아올께." (38) "그.래.서?" "형과, 아니 삼.촌.과 합의한 결과로 너는 내가 데리고 가기 로 했어. 대신 우리 왕국의 서쪽 하스 평원이 너.때.문.에 통 째로 날아가 버리긴 했지만." 회심의 미소를 짓는 황태자의 뒤에 음흉한 미소를 짓는 루 타가 보였다. 에구에구, 저놈 속았구먼, 그래. 루타 놈은 얼마전부터 그 평원을 노렸는데 내 덕분에 가지 게 됐다 이 말이지? 한마디로 저놈은 완전히 속았다는 말이 되지. 그건 그렇고 황태자 그 놈은 완전히 나라 말아먹을 놈이네. 내가 여기로 도망 칠때마다 땅덩어리 하나씩 날리겠군. "그게 일주일간 나를 이 방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한 이유가 된다고 생각하냐?" 나는 여기서 쥐죽은 듯이 고요히 앉아 있기만 했다. 그것도 일주일 동안이나.. (가끔 잠은 잤다.) 이 놈들은 테이블에 앉아 뭔가를 심각하게 토론(?)하고 있 었고, 내가 말을 걸때는 그저 노려만 보더니 내가 밖으로 나가려고 할 때는 강제로 서재에 쳐박아 놨던 것이다. 한마디로 그 일주일 동안 이 놈들은 나를 감.금.했.던 것.이. 다. 참으로 내 성격에 오래 참았지. "잔말 말고 돌아갈 준비나 해." 나쁜 새끼. 말을 해도 꼭 정이 뚝뚝 떨어지게 해요. (그러는건 댁이 더 심하다네..;) "그래. 가자. 가. 그러기 전에 둘다 나가." 꼴보기도 싫다. 그리고 나도 잠좀 자자구. 저 놈들 때문에 그동안 밤잠 설친걸 생각하면. 이.. 이.. 보름 밤낮을 대패로 패도 모자랄 놈들. "내일 바로 떠날거니까.." "알았다구!! 나가! 나가!!!!" 순순히 따라가 준다는데 뭔 전할 말이 저렇게 많아? 불만스런 얼굴로 나를 쳐다 보는 놈들을 향해 곱디 고운 내 손목을 들어 가운데 손가락을 펴준 뒤에 또다시 지껄이기 전에 고개를 돌려버렸다. "저.. 저게!!" "참아라. 가자." 폭주하려는 황태자를 지긋이 밟은 루타는 황태자를 질질 끌 고 갔다. 이제야 좀 조용하군. 눈을 감은 동시에 잠이 쏟아져 온다. 이렇게 잠이 오는데 이태껏 버틴게 신기하군. 조금만 자야지. 뭐, 황태자 따라가는건 자고 나서 생각해도 늦지 않겠지. "시크~! 어딨냐~!!" 멀리서 시오스의 목소리가 들린다. 분명 그 개새끼를 찾고 있는 거겠지. 도대체.. 도대체.. 왜 이 시크라는 개새끼는 내 신관복 자락 을 물고 늘어지는 거냐!! "놔! 놔! 놓으라구!! 제길, 찢어지면 책임 질꺼야? 야~!! 시 오스! 니 개새끼 여기있다!!" 내가 부르자 마자 내게로 쪼르르 달려오는 시오스. 나보다 나이가 많지만 어째 더 어려보이는군. "어..? 어? 너 뭐하는 짓이야~!!!" 나를 보자마자 소리먼저 치는걸 보니 가히 짜증이 난다. "뭐가?" "왜.. 우리 시크를 거꾸로 들고 있는 거지?" "내 옷자락 물고 늘어지는게 보기 싫어서." "그건 생명이라구!! 넌 생명을 아낄줄도 몰라? 니가 그러고 도 신관이야?" 우으, 말소리 좀 낮추지. 왜 이렇게 재잘거리는 거야? 이게 계집애도 아니고. 열받은 나는 그 상태 그대로 거꾸로 들고 있던 강아지를 놔 버렸다. "깽~ 깨갱~"(해석 : 어~ 끄악~) 떨어져도 죽지 않은 대단한 생명력을 가졌군. 역시 지나 다니는 X개라서 그런건가? 하얗게 질려 부들부들 떨고 있는 시오스의 모습이 들어온 다. 내가.. 잘못했군. 물론 이 말은 그 개에 대해 미안해서 이러 는건 아니다. 시오스의 잔소리를 들을 짓을 하다니. 난 저 한도 끝도 없는 잔소리를 듣기 싫단 말이다~~!! "니가 그러고도 인간이야~!!!! 시크가 떨어지는 순간 공포와 두려움에 얼마나 몸을 떨었을지 알기나 해? 이 몬스터 만도 못한 놈~!" 가만히 경청 해줘야지. 저번에 개겼다가 배로 잔소리 들었다. 내가 이게 왠꼴이냐? 지나가면서 나를 보고 웃음을 터뜨리는 견습 신관들의 모습 이 들어온다. 제길, 있는대로 쪽팔리는군. (39) 여기가 어딜까? 난 바보였던 건가? 뭐.. 그렇다고 치지 뭐.. 어쨌든 그 눈에 가시같던 황태자 놈이 보이지 않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여기가 어디냐고? 지하 감옥 엇비슷한 곳이다. 내가 왜 여기있냐고? 알게 뭐야~ 자다가 일어나보니 여기인걸 나보고 어쩌라고? 내가 자다가 몽유병에 걸려서 누굴 죽이기라도 했나? 아니면 내 발로 여기로 걸어들어 왔나? 그래도 이게 가장 현실성 느껴지는군. 어느새 나는 내가 이곳에 있게 된 것을 몽유병으로 치부하고 있었다. 눈에 뵈는건 대낮처럼 밝게 밝혀둔 횃불들과 음침한 감옥뿐이다. "유티스님. 깨어났는뎁쇼?" 목소리 추정 결과 40~50대 목소리인 것 같다. 유티스.. 유티스.. 아아~ 루타 좋아하는 그년? '덜컹' 갑자기 감옥 문이 덜컹 열리면서 유티스란 계집년이 내 앞에 와서 거만한 자세로 나를 내려다 보았다. "네가 나를 이곳에 데려다 논 건가?" "더이상 네년이 폐하 앞에서 꼬리치는 꼴 난 죽어도 못봐." "그래? 그럼 죽어." 난 꼬리친적 없다.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더불어 꽹가리까지 치냐? 나만 불쌍한 희생자라 이말이군. "이.. 이 천한 년이!!" 우띠~ 이곳 찝찝하고 냄새 한번 죽이고, 속에서 올라오려고 할참에 이년은 말도 잘하네. 비위가 강한건가? 아니면 축농증에 걸려서 냄새를 못맏는 건가? "어이~ 열내지 말라구." "발칙한 년." 그래그래~ 너 잘났다. "여기서 좀 꺼내주면 안되냐?" "호호홋~ 그거 안됐군. 넌 내일 이곳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나갈 거니까." 새는 몰라도 쥐는 알 것 같은데.. 여기 감옥에 돌아다니는 저 귀여븐 쥐새끼들.. "그래? 그거 잘됐네." "뭐?" "난 겁쟁이라서 혼자 자살같은거 생각은 해도 실천은 안해봤거든. 그런데 자진해서 죽여준다니 곱게 죽어야지." 별로 두렵지는 않다. 자살은 도저히 못하겠더니만, 누가 고맙게도 죽여준다니.. "지금이라도 내 발앞에 무릎꿇고 빈다면 생각해 보지." 미쳤냐? 살려고 마음만 먹으면 무릎꿇고 빌수야 있지. 하지만 난 내가 살아가야 되는 이유를 잃어버린지 조금 오래 됐거든. "아아~ 죽이려면 그냥 지금 죽여주지." 뜸들이는건 싫단 말이다. 그나저나 천계 가서 대천사를 만나 한 1년쯤 지긋이 밟아주고 그리고 나서야 환생하면 끝인가? 근데 그게 말처럼 쉽게 되야 말이지. "아~~ 그런데 내가 이렇게 없어지면 네 말 그대로~~ 그 루타가 날 걱정하지 않을까? 흐응~" "그분 이름을 함부로 그 천한 입에 올리지 말라!" "놀고 있네." 나한테 이렇게 군게 괘씸해서 루타 이름을 들먹여 봤는데 예상대로 펄펄뛰네. '쫙~' 이뛰~ 왜 내가 맞아야 하는 거야! 그래그래! 때려라 때려! 누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구! 나도 더 이상 맞고는 못살아! 죽이려면 곱게 죽이지. 고문까지 하냐? "이 망할~ 으이그~ 저걸 그냥! 콱~~!! 너 주~욱~었~어~ 너 내 얼굴 질투하냐? 왜 저번부터 내 뺨치고 지랄이야! 너도 한번 맞아볼래? 얼마나 기분 드러운줄 알어? 앙?" '쫙' 저.. 저게.. 또 때려? "감히 어딜 기어오르려고!" 내가 언제 기어올랐다고 그래!! 아아~ 혈압올라. 내일 아침 되기 전에 죽을 것 같아!! 밖에서는 말 그대로 당하고만 있는 나를 간수로 보이는 사내가 참으로 짠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고 거기에 더 악이 받친 나는 그대로 그 년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겨 나의 무시무시한 괴력(?)으로 땅바닥에 패대기 쳤다. "꺅~~!" "내가 니 샌드백이야? 으유, 가만히 죽어주려 했더니만 꼭 저렇게 한두놈이 성질을 건드려요." "이.. 이.. 삼족을 멸해도 모자랄 년이!!" 그건 안되겠수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 몸의 진짜 아버지는 꽤 높은 공작이란 말이외다. 것도 다른 나라의. "뭣들 하고 있는 거냐! 당장 이년을.." 유티스의 말은 끝을 맺지 못했다. 분노로 활활 타오르다 못해 눈에 쌍심지를 켜고 있는 황태자와 루타가 간수의 뒤에서 유티스를 노려보고 있는 것을 깨닳았기 때문이다. "유티스." "폐.. 폐하.." "뮤즈.." "왜?" "너 왜 여기 있는 거냐?"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네. 황태자씨. (40) "몰라." "그게 이유가 된다고 생각하냐?" "무슨 대답을 원하는 건데?" 껄렁껄렁하게 대답하는 내가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는지 눈살을 찌푸리며 나를 노려보는 황태자. 그렇게 노려봐도 안무섭다구. "유티스. 이게 무슨 짓이냐?" 황태자와 나의 대치 상태를 깨버리는 목소리. 그러고 보니 유티스란 계집애가 남아있었지? "아~~ 그냥 정다운 대화를 하자길래 이곳에 온 것 뿐이야. 그게 어찌어찌 하다가 격렬한 몸싸움으로 번진 것 뿐이라구. 오호호홋~ 자고로 여자들 싸움에 남자들이 끼여들어선 않되는 거야." 잠시 유티스가 놀란 듯이 나를 쳐다 보았고 나는 그 눈길을 피했다. 뭐, 불쌍해서 그런다. 그래~ 단순한 동정심 때문이라구. 사랑하는 사람에게 미움 받는 다는건 괴로운 일이니까. 않그래? "볼이 빨갛게 부었잖아." 저놈은 꼭 물고 늘어져요. "상관없어. 그나저나 배도 고픈데 밥이나 먹으러 가자구~!" "식충이." 저.. 저것이? 하.. 한번도 못 들어본 그 영광(?)스런 단어. 식.충.이. "스토커 주제에." 내가 식충이면, 여기까지 나 따라온 너는 당연히 스토커지. 그나저나 내가 이 곳에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지? "둘 다 조용히 이 곳이나 나가서 얘기하지? 냄새나는 곳에 뭐 볼게 있다고 그렇게 정답게 티격거리나?" 흐흐, 루타씨. 댁의 눈에는 이게 정다운 걸로 보이나 보군. 안경을 써야 겠수. "그래. 나가서 얘기 하지." 루타의 말에 동조하는 황태자. 호호홋~ 우리 사이에 무슨 나가서 할 얘기가 있다고..; '달그락, 달그락' "걸신 들렸냐?" "밥 먹을 때 건들지 마." "다 먹고 말해라. 이물질 튄다." 우띠, 배고파서 우걱우걱 먹고 있는데 수프를 뜬채 나를 멍하니 바라보던 황태자가 던진 엽기적인 한마디. 그래, 배에 귀신이 들러붙었나 보다. "루이크 제국으로 돌아가서 곧바로 식올릴꺼야." "푸악~" 내 입에 들어있던 물은 그대로 일직선으로 날아가 약간의 이물질(?)과 함께 황태자의 얼굴에 보기 좋게 튀어 들었고 황태자는 머리의 힘줄을 한 손으로 꾹꾹 눌러주고 다른 한 손으로는 손수건을 꺼내 얼굴을 닦으며 말했다. "뭘 그리 놀라냐?" "너 나같은 얘하고 결혼 하고 싶냐?" "....." "취향이 그렇게 독특한 놈이었다니." "그래. 내 취향 독특하다 못해 엽기적이다." 저 말은 듣기 민망하구먼. 그럼 평소에 내가 엽기녀였단 거냐? "좋아. 정 니가 나랑 결혼 하고 싶다면 못해줄 것도 없지. 않그래? 산 사람 소원 들어 준다는 데야, 뭐." "풋~" 찌.. 찝찝해. 이번에는 저 놈이 내 얼굴에 수프를 뿌렸다. 더러워~! 내 말이 그렇게 충격이었냐? "정말이야?" "속고만 살았냐?" "충분히 너에게는 속고만 살았지." "대신 조건이 있어." 얼굴에 묻은 물컹한 것을 손으로 쓰윽 닦아내며 나는 조건을 걸었다. "6개월 뒤. 결혼식은 6개월 뒤에 하는 거야. 결혼하기 전에 내게도 자유 시간은 있어야지. 않그래?" "그 사이에 도망가려고? 그리고 지금까지 싸돌아 다니는게 너에겐 충분한 자유 시간이 됐지 않나?" 내가 그렇게 신용이 없는 인간이었단 말이냐!!~ "안가!! 안간다구! 너도 싫으면 관둬! 내가 너랑 결혼하기 전에 무슨 일이 있어도 숨막혀 죽는다!" "좋아좋아.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그런데 6개월의 자유 시간동안 넌 뭘할꺼지?" "내가 그걸 너에게 말해줘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겠군." "난 그럼 너를 못믿어." "여행. 잠시 머리 좀 식히고 싶어." "정말? 그럼 나도 같이 가." "혼자 가고 싶어." "알았어. 하지만 감시는 붙여 놔야 겠어." "너만 아니면 돼." 맘대로 해라. 6개월 동안 싸돌아다니다가 조용한 곳에서 생을 마감하면 그만이지 뭐. 난 너만 내 앞에서 없어지면 살 맛 나는 인간이니까. (41) "시온이라고 불러 주십시오." 그게 끝이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검은머리를 끈으로 단정히 묶고 날카로운 검은 눈동자를 가진 남자. 왠지 낯설지가 않다. 그러고 보니 카네스와 닮았군. 그리 심한 거부감이 들지는 않을 것 같다. 무엇보다 말이 없어서 좋다고나 할까? "이제부터 어딜 가든지 얘가 따라다닐 거야." "맘대로." 설마 화장실까지 따라 올까? 흠흠, 이야기가 엉뚱한 곳으로 샜군. "나 간다." "지금?" "말 나온 김에 갈려구. 돈이나 줘." "날강도." 메야? 돈 가지고 쪼잔하게 구냐? 치사하다 치사해. "어디 가고 싶은 곳 있어?" 왕궁을 나와서 성문 앞까지 도착한 나는 그래도 예의상 시온에게 물어봐 주었다. "............" 돌아오는 대답은 묵묵부답. "..... 그래,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마." 흠, 어디로 가는게 좋을까? 사막은 더워서 가기가 싫고 북부 쪽은 추워서 가기가 싫네. "용병 길드가 어디 있는 줄 알아?" 내 말에 잠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본 시온은 앞서서 뚜벅뚜벅 걸어가기 시작했다. "야아~ 어디가?" "............." 우.. 우띠, 왠 걸음이 이리도 빠르단 말인가? 대체 누가 주인(?)이야? 내가 왜 얘를 이렇게 죽자살자 따라 다녀야 하는 거지? 지나가는 사람들은 이상한 우리를 신기한 듯 쳐다보았고, 남들보다 조금 뛰어난 외모를 가지고 있는 이 몸은 안그래도 당연한 주시 대상이었다. "야! 좀 천천히 걸어!" 열받은 나는 그 긴 머리카락을 잡아당겨 버렸다. 그.. 그런데 머릿결이 진짜 가늘다. 왠만한 여자보다 머리 손질에 신경 쓰나 보네? "뭡니까?" 내가 얘를 알게 된 후 두 번째로 들어본 목소리. "어디 가는 거냐구! 그리고 발은 왜 그렇게 빨라!" "용병 길드를 묻지 않으셨습니까." 거기 가는 거였어? 말 좀 해주지. 어쨌든 시온은 내 말에 상관도 안하고는 다시 뚜벅뚜벅 걸어가기 시작했다. 뚜껑 열리려던 나는 그걸 꾹꾹 참은 뒤에 묵묵히 따라 걸었다. 얘 정말 감시인이 맞을까? '쿵' 으아~ 머리야!! 갑자기 앞에 가던 시온이 서버리는 바람에 아무 생각 없이 뒤따라 가던 나는 그대로 시온의 등에 얼굴을 부딪혀 버렸다. 얘는 등에 돌맹이 박아 놨나? 디따 아프다. "왜 갑자기 서는 거야!!" 말없이 한쪽을 바라보는 시온을 보며 내 시선도 자연스레 그쪽으로 향했다. '용병 길드. 용병 지원자 환영. 지원자 아니면 들어오지 말 것.' 용병 길드라는 곳은 도시 한복판에 초라한 천막 하나 띵겨 놓고 머리 벗겨진 아저씨 한 분이 덩그라니 앉아 있는 곳이었다. 정말 용병 길드가 맞는 걸까? "저.. 저기 여기가 용병 길드 인가요?" "뉘슈? 앞에 플랜 카드 못봤수? 지원자 아니면 나가슈." "지원잔데요.." "여자가? 귀족집 자제 같은데 빨리 돌아가슈. 그 뒤의 청년이라면 또 모를까." "지원자라니까요!!" 왜 안믿어 주는 거야? 이 곱상한 얼굴 땜시? 확 칼로 그어 버릴까 부다. 인상을 팍팍 구기며 내가 서있자 그 대머리 아저씨는 옆의 의자를 가리키며 앉으라고 말했다. "나이는?" "18." "성별?" "여." 알면서 왜 물어? "용병일을 하고 싶은 계기?" "할일 없어서." "마법? 검?" "검. 어느 정도는 다룰 수 있어요." "일하다 죽으면 수당 없음." "상관없음." "이틀 후에 카타니 섬으로 떠나는 상인들이 있수. 조금 있다가 오기로 되어 있는데 거기서 일당 주면 7 : 3 으로 나누슈." "누가 7이에요?" "당연히 댁이지. 우리는 날강도가 아니란 말유." "그래유? 근데 왜 이렇게 사람이 없어유?" 내가 아저씨의 말투를 따라하자 아저씨는 빙그레 웃으면서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당연하쥬. 점심 시간인데. 그나저나 그 뒤의 음침한 청년도 용병일을 할 생각인감?" 음침.. 후후, 딱 알맞은 말이로군. "아니.." 막 말을 하려던 시온의 입을 틀어막아준 나는 자신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틀 후라고 했죠? 음.. 여관을 잡아 놨다가 오늘 저녁 쯤에 다시 들를게요." "맘대루 하슈." "저녁에 뵈요~" 아저씨를 향해 바이바이를 하자 약간 화가난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마음대로 결정하십니까?" "주인 말에 개기냐? 내가 하는 일은 너도 따라서 하는 거야." (42) "그런 명령은 받지 못했습니다." "우띠! 그럼 너는 뭐 할건데! 주인이 용병일 할 때 너는 뒤에서 띵가띵가 놀면서 쳐다만 보고 있을래?" "그럴 예정이었습니다." 마.. 말빨이 뛰어난 놈이었군. "어쨌든 이미 결정 된일! 더 이상 왈가왈부 하지 말 것! 빨리 여관이나 잡아서 쉬자구!" "............" 그래그래, 너는 그렇게 아무 말도 하지 말아라. 나 혼자 지껄일테니. 아까는 시온이 입을 열기를 바랬지만 지금 저 놈의 말빨을 들어보니 그 반대다. 제발 내가 하는 일에 토달지 말기를 간절히 원하옵고 비옵나이다. 이 수도에 아는 여관도 없는 나는 어떤 여관이 서비스가 좋고 물(?)이 좋은지 알지 못했다. 그렇기에 내 눈에 보이는 꽤 괜찮은 여관 하나를 목표점으로 정한 후 시온은 따라 오던지 말던지 내 갈길만 갔다. "어서 오세요~~~ 두 분이신가요?" 엄청나게 명랑하며 푼수기가 있고 활기찬 목소리. 왠지 기분이 좋아진다. "아, 네." 그런데 막상 대답은 했는데 상대방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요~ 여기!!" 목소리가 아래쪽에서 들리자 깜짝 놀란 나는 얼떨결에 아래를 내려다보니 많아도 7살 이상으로 보이지 않는 여자아이가 메뉴판을 품에 안고 활짝 웃고 있었다. "며칠 묵어가실 건가요?" "으.. 응." 왜 이런 어린 여자애가 서빙을 하는 거지? 이런, 얼떨결에 반말이 나와버렸다. 그런데도 이 여자아이는 당연한 일인 듯이 신경 쓰지는 않았다. "네에~ 3일에 1골드 입니다~" "이틀 묵을 건데.." "그럼 70 페니안만 내세요~ 각 방을 쓰실 건가요?" "응." "그럼 총 1골드 40페니안이 되겠습니다~" 뭔가가 굉장히 즐거운 것 같다. "식사는 방으로 가져다 드릴까요?" "응. 그러면 고맙겠어." 도저히 이 묵묵한 시온과는 밥먹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먹다가 체하면 나만 손해지. "메뉴는 뭘로 하실래요? 참고로 이번 주 추천 메뉴는 크림 수프와 산채 정식이랍니다~" 이.. 이번 주 추천 메뉴? 메뉴가 매주 바뀌나 보군. "얘는 그걸로 올려 보내주고 나는 간단한 섈러드와 음료수만." 별로 밥 먹고 싶은 생각이 없다. 뭘 먹어야 입맛이 살아날까? 요즘엔 그리 먹고 싶은 음식이 없군. 이게 바로 복에 겨워서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표현하지? "시리아~~!!!!" 뒤에서 들리는 우렁찬 여인네 목소리. 머리카락이 쭈뼛 설 정도로 하이 소프라노 목소리다. "꺅~~ 엄마~~" "너 누가 여기 나와서 설치라고 했엇!! 당장 방으로 기어들어갓!!" 그럼 부모 몰래 주문 받고 있었다는 건가? 한 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데 그래? "싫어!" "반항이냐?" "힝.." "오냐오냐했더니 패야 정신이 들겠군." "들어 갈께요오~~~" 마.. 마치 시오스와 나를 보는 것 같다. 대단하십니다. 아주머니! 역시 자식놈들은 그저 패야 말을.. 이게 아니잖아~~~ "호호홋~ 죄송합니다. 손님. 워낙 얘가 제멋대로 굴어서요." "별로 죄송할건 없는데요. 따님이 상인 정신이 투철하더군요." "호홋~ 감사합니다. 너!! 얼른 안들어가?" 아아~ 가식적인 웃음. 나에게 미소 지으며 말하다가 아직도 들어가지 않고 내 주위를 맴도는 딸을 매몰차게 쫓아내 버리는 아주머니. "흠.. 추천 메뉴와 섈러드와 음료수는 바로 방으로 올려 보내겠습니다. 방은 305호실과 306호실입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천만에요." 하지만 막 계단을 걸어 올라가는 나를 붙잡는 목소리가 있었으니.. "손님~~ 계산은 선불입니다~" 알았수다. 주머니에 있는 1골드 동전 두 개를 아주머니께 드리자 곧이어 그 빠른 손놀림으로 거스름돈을 넘겨주는 손. "아아.. 괜찮아요. 딸내미 맛있는 거나 사주세요." 보통 사람들은 자존심이 상해 이걸 거절한다. 하지만.. 상인들은 대게 이익은 꼭 챙기고 본다. 바로 이렇게.. "호호홋~ 감사해요~" "아줌마아~~ 여어기~~ 주우문~~ 받아요오오오오~~~" 메아리쳐 들리는 목소리. 참으로 특이하군. 묵묵히 있던 시온까지도 그 특이한 목소리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린다. 3명이서 앉아 있는데 한 명은 여자다. 방금 말한 사람이 저 여잔가? 무심한 눈빛으로 그 파티의 일행들을 쳐다보고 있자니 나는 머리가 백지 상태가 되어 버렸다. "안나..?" (43) 불꽃처럼 아름다운 붉은 머리. 그리고 나를 주시하고 있는(정확히는 주인 아줌마를 주시하고 있는) 붉은 눈동자. "안나!!!" 내 자제력이 무너지면서 나는 그 여인을 향해 뛰어가 덥썩 안아 버렸다. "살아 있었구나. 수명도 길지." "뭐.. 뭐에욧~~!" 엄청나게 놀란 듯이 나를 밀쳐내는 하얀 손. 하얀 손..? 안나는 다크 엘프인데? 검은 손인데.. 다시 한 번 그녀를 바라보니 귀가 뾰족하다. 흰 피부에 뾰족한 귀. 붉은 눈동자. 하이 엘프 인가? 제길, 저딴 것들하고 안나를 혼동하다니. "죄송합니다. 제가 사람을 잘못 본 것 같군요." 진정을 한듯한 엘프는 나를 바라보며 빙긋이 웃어주었다. 안나를 닮았어. 피부가 희다는 것을 빼면. "괜찮아요. 꽤나 소중한 분이었나 봐요." "네. 제겐 소중한 친구였죠." 씁쓸해진다. 나를 배신한 그녀에게 화가 나지는 않는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난 안나를 믿는다. "뮤즈님.." "아아~ 시온." "대책 없는 행동하지 마십시오." 헉, 벌써부터 잔소리냐? 갑자기 얘하고 다닐 생각을 하니 등골이 서늘하군. "와우~ 굉장한 미인이시군요." 그녀의 옆에 있던 청년 하나가 내게 말을 걸어온다. 녹색 머리에 푸른 눈동자. 미남형까지는 아니지만 꽤나 귀엽게 생긴 스타일이다. "감사합니다." "헤에~ 괜찮으면 합석 하시죠오~" 귀엽게 생긴데다가 애교까지.. "레온! 하핫, 이 녀석이 가끔 이래요. 그래도 레온 입에서 미인이란 소리를 듣는걸 보니 정말 대단한 미인이네요. 이래봬도 이 놈 눈이 꽤 높아요." 정확히는 이 뮤즈라는 여자의 미모겠지. 부드러워 보이는 갈색의 짧은 머리카락에 보랏빛 눈동자의 마법사의 로브를 걸치고 있는 청년이 빙긋이 웃으며 레온이라는 사람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잠깐, 보랏빛 눈동자? 흠.. 이거 꽤나 특이한 집단의 모임이군. "둘 다 조용햇~~" 두 청년의 수다는 엘프의 말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아, 레온 말대로 괜찮으시면 합석 하시죠." "죄송합니다. 조금 피곤해서요.. 나중에 시간이 된다면 그러도록 하죠." "뭐, 할 수 없죠. 푹 쉬세요." 머리가 뒤죽박죽이다. 어떻게 저 정도로 닮은 엘프가 있는 거지? 난 개인적으로 하이 엘프들을 싫어한다. 아마도.. 안나가 다크 엘프가 되기까지 가장 큰공을 한 족속들이 하이 엘프라는 족속이기 때문일까? "가자. 시온." "....." 정신 산만한 내 뒤로 여전히 속닥거리는 두 청년의 목소리가 들린다. 꽤나 재미있군. "힝.. 합석하면 좋을텐데.." "그러게. 그나저나 정말 예쁘다." "그치그치?" "레온! 필르난! 둘 다 조용히 못해~!" "쳇, 지가 못생겼으니까.." "쟤가 저런 미모 꿈이라도 꿨겠냐. 그냥 냅둬." "저.. 저.." 점점 작아지는 그들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나는 내 방 앞까지 왔다. "들어가서 쉬십시오." "응. 시온, 미안하지만 아래 내려가서 내가 주문했던 음식들 좀 취소 시켜 줄래?" "알겠습니다." "고마워." 내려가는 시온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가슴 한 켠에서 아려오는 통증에 정신이 들 수밖에 없었다. "안나가.. 정말 살아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쓸데없는 생각이다. 아아~ 잡생각은 그만~~ 어쨌거나 그녀는 안나가 아니다. 내가 신경 써야 될 이유가 없어. "무슨 잡생각을 그렇게 하십니까?" 잡생각이라닛!! 난 엄연히 뮤즈를 생각하고 있었다구! 이렇게 말하면 이 애늙은이 마법사한테 약점 잡히는 꼴이지. "잠시 명상에 잠긴 것 뿐이야." "호오~ 그러십니까? 입에 침이나 닦으시지요." "쳇."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잔소리꾼. 저게 어떻게 내 심복이라는 거야? 완전 고문이야. 고문. "황태자 전하." "왜?" "쳇이라뇨! 이 상황에서 쳇이란 단어가 나오십니까? 신성한 마법 수업 시간에 딴 생각을 한 것으로도 용서가 안되는 판에 대놓고 개기시는 겁니까아아아아아아~~" 꼭 이렇게 진지 모드로 나갔다가 뒤에서는 폭주 모드로 돌변한다. "쥬르. 그렇게 열내지 말라구." "이.렇.게. 만.든.게. 누.군.데.요!!!!!!" 다른 놈 같았으면 벌써 능지처참이라구. '콰앙~~~' 까.. 깜짝이야. 어떤 간큰 인간이 내 방문을 벌컥벌컥 노크도 없이 열어 젖혀? "황태자 전하~~~" 아아.. 어디서 본 얼굴인데.. "드디어 찾았습니다~!!!" 뭘? "생명의 여신 '하라트스' 대신전에 전하께서 찾는 그 여인이 있다는 보고가..." 어쌔신 길드 마스터 놈이구나. 그 옆에서 다 자신 덕분이라고 거만하게 웃으며 수염을 쓰담고 있는 작자가 정보 길드 마스터고.. 그게 언제쩍 일인데 지금에서야 말한단 말인가. 뮤즈가 돌아왔다는 소식조차 듣지 못했단 말인가? 과연 우리 나라 최고의 정보 길드가 맞는지.. 저놈들.. 지금까지 의뢰를 착실히 수행한 것만 해도 용하군. 분명 저기엔 어쌔신 길드 놈들도 껴 있으렸다? 하여간, 가지가지 뒷북 치는군. "쥬르." "네." "쟤들 데리고 가서 가볍게 손만 봐줘라." "아아~ 귀찮습니다." "이건 중요한 문제야! 우리 나라의 정보 길드와 암살 길드가 저 모양이라구! 이건 분명 망할 징조야!!!! 으아아아악~~" "흥분하지 마십시오." 역시나 침착한 카리스마가 넘치는 목소리로 나를 달래는 쥬르. "흥분 안하게 생겼냐~~~!!" "그래도 수업 시간에 잡생각 하는 전하보다는 백배 낫다고 생각합니다만? 저들이 없어도 나라는 돌아갑니다. 하지만 장차 이 나라를 짊어질 전하가 이 모양, 이 꼴이라니요! 아아~ 우리 나라의 미래가 보입니다!!" 휴.. 아바마마께 이르기 전에 자진해서 반성문 한 장을 빽빽히 써야 겠군. 내 손이 뒤적이며 종이를 찾고 있자 앞에서 싸늘한 목소리가 내 귓가를 후벼파고 뇌의 움직임을 마비시켰다. "한 장으론 안되지요. 10장 추가입니다." 상쾌한 아침. 이렇게 푸르고 환한 햇살 아래에서 하루를 시작한다는 것은 정말 보람찬 일이다. 세상이 나를 반기는 것만 같고 지나가는 똥개 한 마리도 나를 보며 미소짓는 상쾌한 아침. 내 옆에 있는 이 놈들만 없다면 금상첨화일 것 같다. "어? 그 옆에 설탕 좀 집어줘요~" "뮤즈양. 그쪽에 있는 소금좀.." 너네들이 집어먹으란 말이다. 난 지금 밥을 못 먹고 있다. 어제 오후에 본 이 일행들은 가뜩이나 어제 저녁 그 상인들을 찾아가 퇴짜맞아 기분 나쁜데 아침부터 와서 합석하자고 졸라대더니 이 지경이다. 내가 밥을 먹을려는 태도를 취할라 치면 이것 가져다 주라. 저것이 어떠냐? 아무래도 나를 굶겨 죽이기로 작정한 것 같다. "호호홋, 죄송해요. 뮤즈씨. 거기 있는 티슈좀.." "아, 이왕이면 그 쪽에 있는 나이프도 가져다 주시겠습니까?" 이 헬헬 거리는 엘프는 그렇다 치고 왜 시온 너까지 이러냔 말이다!! 열받은 나는 식탁을 박차고 2층으로 통하는 계단을 밟을 때 소근거리는 목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다. "호홋, 거봐. 한번도 음식 못 먹었지? 5골드 내놔." "제길, 거절할 줄 알았는데." "저런 사람이 거절을 못 한다구. 어쨌든 우리가 이겼으니 시온씨와 레온. 빨리 5골드씩 내놔." "아아, 저도 제가 모시는 분이 저 정도 일줄은 몰랐군요. 나중에 다시 한판 하죠." "좋아요. 시온씨." 저.. 저것들. 언제 그 착하고(?) 과묵한 시온을 내기에 참여시켰단 말이냐!!!! 내가 밥 못먹은게 다 저놈들 때문이지? 두고봐라. 내 이 배고픔을 언젠간 처절히 갚고 말테다!!! 이 내가 겨우 저것들의 놀림 대상이었단 말이지? 에잇에잇~ 어제 그 상인들을 생각하면 기분나빠 죽겠는데. 뭐? 여자라서 안돼? 그런 성차별적 발언이!!! 시온 하나면 받아 줄 수 있지만 나는 근육이 없는 여자라서 안된단다. 지들은 비곗살인 주제에. 용병 길드에서도 어쩔 수 없다며 다른 일자리가 나기전까지 며칠간 기다려야 한다기에 나는 상당히 화가 나있는 상태다. (44) 용병 일이나 해먹을려고 했는데 그게 생각만큼 쉽지가 않다. "식사는 하셔야죠." 병주고 약주냐? "니들이나 다 먹고 배탈나버려랏!!" "풋.." "쿠하하핫~" "끅끅.." 저.. 저것들이? 왜 웃는 거야? "그렇게 화내시지 말고 이리 와서 앉으세요." "싫어!!" 아직도 배꼽잡고 웃는 저들을 보니 왠지 놀림감이 된 듯 하 다. 휴우, 밖으로 쇼핑이나 나가서 늦게늦게 들어와야지. "어디 가십니까?" "후훗, 여자에겐 숨기고 싶은 비밀이 있는 거야." 키킥, 새빨개진 시온과 기타등등의 얼굴이 무척 재미있다. 이걸로 복수는 한건가? "같이.." "나 혼자 갈꺼야." "제가 감시인이라는 것을 잊으셨습니까?" "내 취미를 간섭받을 이유는 없다구!" "아아~ 그렇습니까? 그럼 다녀오시지요." 그렇다고 진짜 안따라 오냐? 내심 은근히 시온이 따라와 주길 바랬던 나는 그것이 물거 품이 되어 버리자 여관 문을 거칠게 열고 나왔다. '휘잉~' 찬바람이 분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별로 돌아다니지 않고 있 다. 하지만, 이런 나에게 굉장히 눈에 띄는 인간이 있었으니. 저기 멀리서 나를 빤히 쳐다보던 인간 하나가 갑자기 전속 력으로 달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짧은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리며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한 인영이 내게 달려 오는게 보인다. 이.. 이러다 부딪혀서 황 천길 가는거 아냐? "이 문디 자슥! 게 안스나? 잡히면 다리 뭉딩이를 확 뿐질 러 뿐다!" 이게 대체 어느 나라 언어란 말인가? "살려주세요~~~" 힘도 없는 나를 발견하고는 쪼르르 달려와 내 뒤로 숨어버 리는 한 인간. 뭐가 어떻게 된거야? "캬캬캬~ 니가 뛰어봤자 벼룩이제. 퍼뜩 안 튀어온나!!" "히엥~ 살려주세요~~" 내게 애원하는 인간을 본 나는 그대로 얼어버렸다. 내 미모(?)에 필적하는 아름다운 소녀가 큰 눈망울에 눈물 을 그렁그렁 달며 내 팔을 붙잡고 서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에 참으로 대비되게 이 소녀를 쫒아온 남자는 꼬 불이 수염이 얼굴에 득실득실 하고 눈은 충혈되어 벌겋게 되어 있고, 얼굴도 흥분했는지 달아올라 있었다. 몸집은 또 멧돼지 한 마리 그냥 때려잡게 생겼다. 한마디로 이 소녀는 착한 아이. 저 아저씨는 산적이란 말이다. 이른 아침이었기에 구경꾼은 별로 보이지 않았으나 걔중 지 나가는 몇몇 사람들은 구경하기위해 몰려들었고 내 주위는 어느새 인간들로 북적이게 되었다. "어이~ 가스나. 빨랑 좀 비켜 주이소. 내는 저놈의 문디 자 슥 잡아가야 한다 안캄니꺼." "흑흑흑, 절 버리지 마세요." 도저히 나를 보며 애원하는 이 눈빛을 모른채 할 수가 없 다. "너무한거 아니에요? 이 소녀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는 모르 지만.." "소녀 라고에? 저 문디 자슥이? 잘 보이소. 그럼 저 자슥 목에 달랑거리는 건 뭐란 말입니꺼?" 엥? 대충 알아듣자면 이 소녀가 남자라는 소리? 역시나 소녀라고 생각했던 인간의 목에는 남자들만이 있는 목젖이 예쁘게 솟아나와 있었다. 아아, 충격충격. 저 얼굴에.. 흐읍, 아깝도다.(뭐가 아까운 건데?) "흐윽, 끅끅.. 저를 저 산도둑 같은 아찌에게 넘겨주시진 않 을 거죠? 저 정말 죽어요.. 흑.." 예쁜걸 예쁘다고 알아보는 내 눈이 저주스러워~~ "오~ 레이~~ 또 한판 뛰는 거냐?" 근처에 있던 청년 하나가 감탄사를 내뱉으며 내 뒤에 있는 소녀같은 소년에게 한 말이었다. 근데 저게 무슨 뜻이지? "닥쳐. 크루슨." 이게 고 이쁜 입에서 나올법한 소리란 말인가!! 내가 깜짝 놀라서 소년을 바라보자 소년은 입가에 비웃음을 머금더니 내 볼에 살짝 키스를 했다. "미안, 이쁜 누나." "가자~! 드란!!" "아아.. 도련님. 폐.. 아니, 그분이 아시면 전 정말 죽어요." "냅둬. 그 인간 신경쓰다 보면 될 일도 안돼." 대체 뭐가 어떻게 된거야~~~~ "야!!!!" 내가 큰 소리를 내지르자 나에게 꽂히는 여러개의 눈동자. 이거이거 난 무대 체질.. 이게 아니다~~ "도대체 뭐가 미안하고 너네들이 하는 말은 뭐야?" "아.. 그렇지? 드란~! 튀어~!!!!!" 황당하고 어이가 없군. 뒤돌아서 튀어(?)가는 산적과 미소년을 보며 나는 바람 부 는 쓸쓸한 초원에 홀로 남긴듯한 외로움을.. 으앗~ 이야기가 또 딴곳으로 샜군. 내가 오늘따라 왜 이러지? "에구.. 저녀석 저러다가 한번 날잡아서 두들겨 맞지. 쯧." 아까 그 미소년에게 크루슨이라고 불린 청년이 할아범처럼 고개를 흔들며 하는 말이었다. "저기요.." "앗.. 네.." 내가 한 마디하자 얼굴이 벌게져서는 뒷머리를 긁적 거린 다. "저 사람 뭐하는 사람이에요?" "아.. 소매치기요." "그렇.. 엥?" 그러고 보니.. 지갑이 없군. 미안하다는 이유를 이제야 알겠어. 예의바른 소매치기 잖... 헉스, 거기에 황태자가 준 보석 몇 개랑 200골드가 들어있잖아~~! 한마디로 내가 아니라 시온과 나의 총 재산이라 이 말이지.. "하핫, 이제야 알아 차리셨나 보군요. 아침마다 저런 일이 일상화 되버려서.." "왜 저런 놈을 안잡고 그냥 두죠? 꽤 유명한 놈 같은데?" "아아.. 이곳에 처음 여행오신 분이신가 보군요. 쟤 잡아가 면 나라가 발칵 뒤집혀요. 아무리 왕궁에서 내놨다고 하지 만 그래도 명색이 사황자 거든요." 그.. 그럼 황태자의 동생에 동생에 동생? 내가 궁에서 본 인간은 왕과 왕비는 본지 잘 모르겠고, 황 태자와 그외 기타등등의 시녀와 기사들밖에 보지 못했는데? 아, 왕궁 수석 마법사도 봤구나. "그런 황자한테 맞먹어요?" "왕궁에서 내논 인간이라니까요." 참으로 나라 잘 돌아가는 짓이다. 명색이 황자라는 놈이 소매치기라니. 에구, 그런 놈에게 소매치기 당한 나는 뭐냐? 그나저나 시온의 그 눈빛을 보면 오늘 죽었군. 여관에서 나오자 마자 소매치기를 당한 사람은 나밖에 없을 거다!! 재수 더럽게 없군. "하아.........." "왜 벌써 들어오십니까?" 여관으로 다시 들어가자 마자 나를 반기는 시온의 정다운 목소리. "저기......." "?" "음.... 그러니까 말야..." "............" 제발 아무 말이나 해라. 차라리 이 상황에서 내가 돌이 되어버렸으면 좋으련만. "나 소매치기 당해서 전 재산 다 날렸어!!!!!" "..........." "아.. 아무 말도 안해?" 눈빛이 싸늘해졌다. 이거 잘못하다간 관짜게 생겼는걸? "제가 무슨 할말이 있겠습니까? 주.인.님.이 다 알아서 하시 겠죠." 나보고 알아서 하라구? 알아서 할 수 있었으면 너한테 이렇게 말하지도 않았어, 임 마. "어머, 이런.. 소매치기를 당하셨나요?" "쯧쯧. 관리 좀 잘 하시지." "레온, 넌 그런 말할 자격 없다. 여기 오자마자 소매치기 당 한 인간이 누군데 그래?" "내가 언제!!" "현실을 부정할 생각 말고 접시에 얼굴 박고 먹기나 해." "필르난!!" "왜 불러?" "우.. 우띠!! 나도 화나면.." "무서운 인간이라구? 알았으니까 빨리 먹기나 해." 참으로 필르난의 레온 다루기 솜씨는 뛰어난 것 같군. "혹시, 금발 머리에 금빛 눈동자를 가지고 여자처럼 생긴 외모에.." "아아, 뮤즈양도 그 놈에게 당하셨군요. 이 근방에서 꽤 유 명한 놈이랍디다. 옆에 산적 놈도 하나 붙어 있었죠?" "쯧, 여잔 줄 알고 쫓아갔다가 소매치기 당했다죠." "필르난!!!" "알았네. 알았어." 그것 까지는 물어보지도 않았다구. "잘하는 짓입니다." "미안해...." 난 정녕 바보였던 것일까? 으아~~~ 그 황잔가 뭔가 하는 놈 잡히기만 해봐! 내가 니 형한테 당한 것까지 배로 괴롭혀 줄테다!! 시온에게 온갖 구박과 잔소리를 경청하고 있는 도중에 나는 한가지 중대한 일을 결심했다. '그 놈 안잡고 내가 여행가면 성을 간다!' 2시간 24분짜리 시온의 잔소리 끝에 결정한 나의 마음이었 다. "저기, 저하. 폐하께서 궁으로 돌아오시라고...." "내가 그런 말 한다고 들을 위인이냐?" "아뇨.." "잔말 말고 돈이나 세." 아침에 한 건 할 때부터 이 놈은 이 모양이다. 뭐, 얼마 후에 형의 결혼식이니 들어오라나 뭐라나? 내가 그런 말을 들을 위인은 당연히 아니다. 가만히 있어도 숨이 턱턱 막히고, 자신의 본심을 숨기고 내 게 접근하려는 귀족들. 요조 숙녀인척 하는 여자들의 역겨운 향수 냄새. 나는 그런 모든 것을 증오한다. 어렸을 때부터 사황자로 태어나 모든 교육을 마쳐야 했던 나. 차라리 평민으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것을 황자라는 엄청난 직업으로 태어나 버린 나는 그에 대해 상당히 불만이 많다. 철이 들기 시작할 때부터 내 취미는 담넘기. 특기는 귀족들 의 지갑 슬쩍 하기로 바뀌었다. 이게 다 그 궁에 있어서 이렇게 된거라구! 매일 가출했다가 붙잡혀 들어와서 큰형에게 죽지 않을 정도 로만 맞고, 둘째형에게는 온갖 잔소리와 구박을 다 들었다. 셋째형? 모른다. 어디 여행 갔다고는 했는데 벌써 3년째 감감 무소 식이다. 뭐, 황제가 아무 말도 안하는 걸 보니까 어딘가에 짱 박혀 있겠지, 뭐. 얼굴 본지가 하도 오래 되서 까먹었다. 워낙 내 일이 아닌 일에는 무관심한 타입이라.. 결론은.. 나는 왕궁이 싫다. 내 자유를 박탈당하는 그런 숨막히는 곳에서 살아가다가는 말라죽고 말 것이다. 어쨌든 내가 제일 두려워하면서 무서워하는 첫째형이 황태 자가 되었으니 이제 왕궁에서는 별로 나를 호출할 일이 없 다. 그런데 요즘따라 그 황제가 자꾸 나를 궁으로 데려가려 한 다. 이유? 모른다. 고로 끝까지 개기고 있다. 아아, 나오는 폼을 보아하니 며칠 내로 무력을 동원할 것이 다. (이 장사 한 두번 해보냐?) 그러기 전에 어딘가에 은밀히 숨어있다가 황제가 제풀에 지 치면 그때서야 활동 재기(?) 해야지.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십니까?" "아, 아무것도 아니야. 오우~ 저기 또 한 건 온다~~" 나는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는 생각지도 않은 채 지금 이 시간에도 열심히 사냥감(?)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어딨어~~~~" "그만 하시지요. 보기 흉합니다." 이틀째다. 내 눈은 충혈된지 오래며(오늘 아침 거울보고 놀 랬다. 왠 뻘건 토깽이 한 마리가 나를 쳐다보고 있어서.) 식 사? 거른지 옛날이다. 그 황잔가 뭔가 하는 소매치기를 찾으려 그 긴 여정을 떠난 지 어언 이틀. 내가 찾는 줄 알고 고의로 잠수 한 건가? 의심이 가는군. 시장 바닥과 각종 뒷골목. 아무리 돌아다녀도 그 녀석은 보 이지 않았다. 최후의 수단으로 도둑 길드를 찾아가려고 오늘 마음을 먹고 는 여관을 나섰지만 내 가슴에 비수를 박는 시온의 목소리 에 나는 멈춰서야 했다. "니가 나보고 알아서 하라며!!" "그런 방법은 아니었습니다." "몸으로 때우리? 막노동하는 곳에 가서 한 판 뛸까?" "그 비실이 같은 몸으로 그런 생각을 하셨다는 것이 참으로 용하군요." 그럼 대체 어쩌라는 거야!! 내가 무시하고 산다. 참아야 하느니라. 시크리오프스. 여기서 폭발하면 죽쒀서 개준 격밖에 더 돼냐? 인간성이 괜찮은 네가 참아라. 어쨌거나 자기 암시였다. "냅둬! 난 꼭 그놈을 찾아서 뺏긴 돈 다시 찾아 올거야!" "뺏긴게 아니라 멍청해서 훔쳐간것도 몰랐던 거겠죠." "메야?" "그냥 황태자께 가서 다시 달라고 하시면 될 것 가지고.." "싫엇! 그딴 소리 입에 담지 마!" 그렇다. 그냥 황태자에게 가서 곱게 밟아준 뒤 돈 내놓으라 고 협박하면 그만인 것이다. 하지만 내 자.존.심.이 그것을 허락치 않는다. 내가 소매치기 당했다는(그것도 자기 동생에게.) 것을 알면 뼛속까지 우려먹을 놈이기에 나는 황태자를 찾아가느니 그 놈을 잡고 말겠다는 투지(?)에 불타고 있는 것이다. 흠흠, 나도 모르게 흥분했군. 불타고 있는 나를 보며 옆에 있던 엘프가 조심스럽게 시온 에게 물었다. "저대로 놔둬도 괜찮을 까요?" "냅둬요. 지 풀에 지치겠죠, 뭐." "야! 너 거기 안서?" 도둑 길드를 찾아가려 했던 오늘. 어디서 도둑 길드가 여기가 도둑 길드요~ 하면서 간판 내놓 고 다니겠는가? 당연히 소매치기 한 명 붙잡아서 약간 손봐주면 도둑 길드 가 어느 곳에 붙어 있나를 가르쳐 줄 것이다. "서란다고 서는 인간 봤냐?" 저 쪼그만게 그래도 반말이네? 어쨌든 시장 바닥에서 소매치기 하나를 발견하고 죽자살자 뛰는 나에게 그 꼬맹이는 누가 소매치기 아니랄까봐 엄청난 속도로 나를 피해 달리고 있었다. "서!!!" "그나저나 대게 끈질기네!" "하나만 물어 볼테니까 서!" 어? 뭐 물어본다니까 진짜 서네? "뭐 물어볼려고?" "단도직입적으로 도둑 길드가 어디냐?" "아~ 도둑 길드? 지금 난 바쁘니까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도둑 길드가 어디냐고 물어봐. 어? 레이니안~ 잘 만 났다~~ 얘 도둑 길드까지 좀 데려다 줘! 그럼 빠이~" "어? 그래? 잘가~" 벙쪄서 빠이빠이를 하고 있는 순간 나는 깨닳았다. 저 녀석이 나를 놀렸다는 사실을. 보통 사람이 도둑 길드를 알고 있을리 만무하잖아!! "크악~ 저 녀석 죽여버리겠어~~" "으악~ 바빠 죽겠는데!! 왜 나에게 그딴 일을 시키는 거 얏~~~!!" 동지가 한 명 있는 것 같군. 그러고 보니 이 여자에게 도둑 길드까지 안내를 부탁했던 가? 흘흘, 그러면 이 인간은 아까 그 녀석이 어디 있는지 알겠 군. "빨리 따라와욧! 우띠, 판. 두고 보자!" 엥? 어딜? "저.. 저기.." "도둑 길드 간다면서요!" "보통 사람이 도둑 길드를 알고 있을리 없잖아요. 혹시 당 신도 소매치기?" "거기 가보면 알게 되욧!!" 왜 화를 내는 거샤? 어쨌든 그 여자의 뒤를 따라가 한참을 골목길을 돌고돌고 돌아서(여관 찾아갈 때가 걱정이군.) 어느 삐까 번쩍한 곳에 다다르자 여자는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여기에요." "아, 네. 감사.. 헉." 그 삐까 번쩍한 건물을 올려다 보자 거기에는 대자로 이렇 게 쓰여 있었다. '도둑 길드. 신입 사원 환영! 잡상인 출입 금지.' 아에 대놓고 해라. 대놓고 해. "왜.. 왠 도둑 길드가 이래요?" "아아~ 그것 말고도 옆에는 상인 길드, 그 옆에는 정보 길 드. 그리고 그 옆은 요즘 새로 생긴 용병 길드. 그리고..." 다른건 다 이해가 간다만 어째서 도둑 길드가 완전 여기가 도둑 길드요~ 하며 내놓는 거지? "이해가 안되시겠지만 이 바닥이 이래요." 도둑 길드가 여기 떡하고 버티고 있는데 수도 치안대는 아 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단 말야? "볼일 있으면 빨리 들어가 보세요. 오후 5시에는 모두 퇴근 하니까." 그럼 공무원과 똑같이 퇴근한단 말야? 아직도 머릿속이 정리가 되지 않았는데, 나는 여자의 손에 이끌려 도둑 길드 안으로 들어서고야 말았다. "어서 옵쇼. 잡상인이라면 좋게 말할 때 나가고, 신입 사원 이라면 오른쪽 방문을. 피해 보상이라면 딴데 가서 알아보 쇼."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머리가 약간 벗겨진 비굴해 보이는 아저씨가 익숙한 일이라는 듯이 던진 말이었다. "사람을 찾고 있는데요.." "여기는 사람 따위를 찾는 곳이 아니니, 별다른 일 없으면 나가쇼." "도둑 길드원 하나가.." "아따~ 여기서 도둑 길드원 찾지 말랑께? 보아하니 소매치 기 당한 것 같은데 그냥 X 밟았다 치고 잊어버리소." 어떻게 잊을 수가 있을까!! 아아, 두 눈 벌겋게 뜨고 있었는데 소매치기라니. 얼굴 예뻐서 용서가 되려고 했는데, 시온의 그 비웃음 섞인 말들을 들어보면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여기 그 황잔가 뭔가 하는 놈 있지?" 이 아저씨가 이렇게 나온다면 나도 폭력적으로 나갈 수밖 에. "길드 마스터는 왜 찾으시오?" 오호라~ 길드 마스터? 하긴, 사황자 중 한 명이 도둑 길드 마스터이니 어떤 간 큰 놈이 여기 들어와서 체포하려고 하겠어? 바로 실직이지. "좋은 말 할 때 나오라고 해."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수만, 3시간 전에 잠수했슈." "메야?" "왕궁에서 자기 찾으러 오기 전에 숨어 있어야 한다면서 잠 수했는데, 뭐, 잠잠해지면 나오겠지." 나는 왜 되는 일도 안되는 것일까... "정말 어디 갔는지 몰라?" "글쎄올시다. 저번처럼 전국을 여행한다고 당당하게 성문을 나섰다가 성 문 앞을 지키고 있던 기사들에게 붙잡혀 왕궁 으로 끌려갔던지, 아니면 자신을 괴롭히는 왕에게 복수한다 면서 왕궁 털러 단신으로 갔다가 수석 마법사가 적으로 간 주해 파이어 볼 한 방을 맞고 전치 3주로 입원 해있는지.." 참으로 화려한 경력들이군. "내가 말한 건 그놈이 어디를 주로 가는가? 이걸 묻는 거 야!!" "아아~ 이 수도 전체가 마스터 놀이터인데 내가 어딜 갈지 어찌 알리오?" 말을 한 내가 잘못이다. 결국 그 날 나는 허탈하게 여관으로 오는 길을 걷고 있었 다. 그런데.. 여관이 어디지? ..............내가 방향치라는 것을 까먹 고 있었다. 난.. 정말.. 되는 .. 일이.. 없는.. 바보이다.. "저기요..." 내가 울상을 지으며 아까 나를 도둑 길드까지 바래다 주었 던 여자의 옷자락을 잡았다. "에? 왜요?" "저기요.. 저기.. 그러니까.. 음.. 여관 가는 길을 모르거든 요?" "후훗, 여관이 어딘데요?" "'베나의 노래' 라는 곳인데요?" "아아~ 플란타 언니네 집 말씀이세요? 아는 곳이니까 모셔 다 드리죠." 다행이다. 하지만 이로써 시온에게 갈굼 당할 일이 하나 더 생겼다. "너.너.너!! 니가 왜 여기 있는 거얏!!!!!" "앙? 내가 저번에 실례했던 누나네~~ 안녕하세요~~" 왜 저 도둑놈이 여관에서 시온과 엘프등등과 이야기를 나누 고 있는 것이냐!! "안녕치 못해!!!" "왜요?" "내 돈 내놔~~~~~" "아~ 벌써 다 썼는데요?" "뭐야? 그 많은 돈을?" "별로 많지도 않던데.." 난 꼬박꼬박 말대꾸하는 인간들이 제일 싫어~~~ "앉으시죠." 시온의 무감각한 음성이 들리자 그때서야 마이 페이스를 되 찾은 나는 의자에 거칠게 털썩 앉았다. "우아~ 누나 터프해요~~~" "쓸데없는 소리하지 마!!" "흐음~" 민망한지 내게서 시선을 돌리는 황자놈을 보며 나는 왠지 모르게 화가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시온. 그나저나 얘는 왜 여기 있는 거야?" "아, 여행에 따라가고 싶다고 하길래 허락했습니다만? 뭐가 잘못 됐습니까?" "잘못되도 한참 잘못 됐다구~~~!!!" 하루아침에 빈털털이 될 일 있냐? 얘가 우리 물건 가지고 튀면 어쩌려고? "이쁜 누나~ 허락 해줘요~ 갈 곳 없는 불쌍한 내 신세. 흑, 저번에 훔쳐간 돈도 다시 돌려줬는데.." 눈물 작전이냐? 흘흘, 내게는 안통한 다네. 저번에 그 이쁜 얼굴로 내 돈을 훔쳐 갔겠다~~~ "짜.증.나." "아잉~ 누나아~~~" "여린 소년의 마음에 불을 질렀으면 책임을 지셔야죠." 시온의 날카로운 한 마디. 뭐, 뭘 질러? 부울~? 놀고 있네! 누가 불을 질렀다구? 내 가? 말도 안되는 소리!! "시온! 입닥쳐!!!" "후훗, 그게 소원이라면 그래 드리죠." 처음엔 묵묵하고 말도 별로 없는 녀석이라 좋아했었다. 카네스와 왠지 모르게 닮은 분위기도 있어서. 하지만 이놈은 왠지 갈수록 푼수가 되어 간다. 내 염장을 바락바락 지르면서 말이다. "누나누나누나~ 내가 여행비용 다~~ 책임질게요~ 그러니까 데리구 가줘요오~" "택도 없는.. 엥? 여행비용?" 헐~ 역시 돈 많은 곳에서 커서 그런가? 화끈 하구만 그려. "좋아좋아~ 까짓거 뭐 안될게 있겠냐? 내일 떠날 테니까 당 장 준비해라~~~" "돈에 혹하는 성격이시군요." "공짜만 밝히다가는 대머리 됩니다." "시꺼!!! 엘프! 남의 일 아니면 상관하지 마세요! 그리고, 시 온! 그걸 유머라고 하는 거냐?" 헥헥, 한꺼번에 두 사람에게 말하려니 힘들군. "후훗, 남이라뇨. 이제 곧 동료가 될 사인데." 저건 또 무슨 말이야? 내가 외출(?) 한 사이에 대체 어떤 모종의 거래가 오간 거 지? "니네 맘대로 다 해먹어라!! 엘프를 여행에 끌어들이든지 말든지, 그리고 저 꼬맹이와 저기서 눈 부라리며 서있는 산 적 두목놈을 데려 가든지 말든지!! 너네 맘대로 하라구!! 나 한테 더 이상 묻지 마!!!!!" "역시 다혈질이시네요." 대체 내가 잘못한게 뭐가 있다고 내게 이러는 거냐~~~ 크아 아아악~~ "아아~ 그렇구나! 여기선 누나가 밥이네요." '쿵.' 기어이 그 꼬마 소매치기에게까지 한 소리를 들은 나는 뒤 로 발라당 넘어지고야 말았다. "흠, 그렇다고 기절까지 하실 필요는.." "방까지 옮겨야겠는데... 귀찮네요." "호호홋, 추우면 알아서 일어나서 들어가시겠죠 뭐.." "우리는 그 동안 포커 게임이나 할까요?" "좋아요. 제 방에서 하죠." 멀리서 그 놈들이 일어서서 계단을 올라가는 소리가 들린 다. 나... 나 좀 방까지 옮겨주이~ 결국... 그 날 나는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여행자들이 바닥에 대자 로 뻗어 있는 내가 참으로 짠.해.보.여.서. 여관 주인에게 내 방을 물어 나를 옮겨다 주었다. 흑, 인간만 아니었어도 본체로 폴리모프 해서 그 놈들을 밟 아 주는건데.. 역시 인간이란 여러모로 불편한 점들이 많다. "호호홋~ 이번엔 시온님께서 지셨군요." "아~ 그럼, 시온형이 3번 졌으니까 술 사기에요~~~ 드란! 오 늘 공짜 술 먹게 생겼다~" "도련님. 도련님은 미성년자라는 것을 기억해두세요." 도.. 도대체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 거냐~~~ 그 하이 소프라노 웃음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네, 엘프. 그.리.고, 시온. 3번이나 졌다고? 니가 인간이란 말이냐! 꼬맹이 황자. 감히 미성년자인 주제에 술타령을? 흐흐흐~ 황제 만나면 다 꼬질러 주마! 그나저나 오늘은 왠지 썰렁하군. 아, 그 엘프의 동료라는 놈들 두 명이 어째 안보인다 싶었 다. 엘프의 구박에 참지 못하고 나가버린 건가? 뒷목이 누워있어서 그런지 꽤나 뻐근해서 손으로 슬슬 맛사 지를 해가며 창문가로 다가가 수도의 야경을 살펴보았다. 약간은 서늘한 바람이 내 폐로 들어왔다. "헐~ 미풍이구먼." 아침부터 꿀꿀한 일만 있었는데 밤바람을 맞고 나니 기분이 매우매우 좋아졌다. "호호홋~ 또 지셨네요. 시온님." "아아, 이럴 리가 없습니다! 한 판 더하죠!!" "쿠쿡, 시온형. 왜 그리 못해요? 쿠하하핫~" "아닙니다! 여러분이 정상이 아닌거에요! 정말 엘프가 맞습 니까?" 물론, 저 옆방에서 지껄이고 있는 놈들만 빼면 금상첨화 일 것 같다. 저 놈들 소리 듣지 않으려면 그저 내가 피해야지. 옥상이나 올라가서 조금 더 이 바람을 즐길련다. "쿠우.. 음냐.." "레온, 내려가야 하지 않겠냐?" "쪼금만.. 음냐.." "도대체 이 녀석은.. 원.." 옥상에 또 누가 있었나?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간 썰렁한 옥상에는 벤치 하나만 덩그 러니 놓아져 있었고, 거기에는 이미 대자로 뻗어 있는 주인 들이 있었다. "아, 뮤즈님~" 그 주인들이란 놈들이 익히 아는 인간들이었으니.. "네... 여기서 뭐하고 계시는 건지.." "보다시피 바람 쐬러 나왔다가 이 웬수가 여기서 잠들어 버 렸습니다." "....... 엎고 내려가시지요 ...." "그게 귀찮아서요, 헤헤~" 아무 것도 모른다는 보랏빛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며 천진난 만하게 웃는다. 하지만, 그런 것에 속을 때는 지났다구. "한 가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마음대로요~" "왜, 마족이 이런 곳에 있는지 말해주실 수 있습니까?" 한순간 흠칫하는 필르난이라는 인간, 아니 정확히 마족의 마음이 당황하는게 느껴진다. 마족이라는 것을 알아내기란 아주 쉽다. 첫 번째, 보랏빛 눈동자. 인간들 중에도 간혹 보랏빛 눈동자 들이 있지만 모두 마족으로 간주 하지는 않는다. 아니. 인간 이란 족속들이 마족이 어떤 눈동자를 가졌는지는 알지 못하 기 때문이다. 보랏빛 눈동자를 가지고 있는 마족은 마족 중 에서도 몇 안되는 상급 마족이다. 마왕이 소멸하고 나서 뿔 뿔이 흩어져 있어, 절대 보지 못할 줄 알았던 상급 마족을 여기에서 보다니.. 반가운 느낌마저 드는군. 두 번째, 마족에게는 보통 사람이 느끼지 못하는 특유의 살 기가 있다. 곁에 가서 편안하지만 왠지 불안한 느낌. 흠, 엘프라면 그걸 못 느낄 리가 없는데, 모른척 하고 있는 건가? 사실은 이 필르난이라는 남자가 마족이라는 것은 순전히 떠 본 말이었다. 하지만 진짜 걸리다니.. "후우.. 어떻게 아셨습니까?" 천진난만한 웃음이 겆힌 얼굴에는 무표정하며, 약간의 살기 까지 띄운 보랏빛 눈동자의 마족이 있었다. "후훗, 반은 직감이었습니다." "때에 따라서는 당신을 사살할 수도 있습니다." "무슨 명령을 받고 이 곳에 온 겁니까?" "내게 명령할 수 있는 자는 마왕뿐입니다." 그런가? 자기가 그렇다는데 그렇겠지 뭐.. "저를 없애실 겁니까?" "때에 따라서는.." 그 때가 언젠데? "그런가요? 후훗, 여기가 소란스러워 지면 레온이 깨어날 텐데요?" "!?" 이제야 말귀를 알아듣나? 뭐, 대충 통했으니 된거겠지. 어쨌든 이 마족은 레온이라는 초록 머리 청년을 무척 좋아 하고 있는 듯 하니. "이만 내려가 보죠." "아직은 안됩니다." 괜히 마족이라고 말했나? 진짜 귀찮구먼, 그래. "오호~ 그래요? 당신의 어깨에는 사랑스러운 레온이 침을 흘리며 자고 있네요. 호홋~ 마족님, 지금 당신이 하시는 말 씀은 상.당.히. 위.압.적.이.시.군.요." 그러니까 한마디로 레온 침이나 닦아줘라. 니 옆에 그렇게 헤벌쭉한 놈이 기대어 있으면서 나에게 협 박을 하니 웃겨 죽겠다는 뜻이다. 살짝 계단을 내려오는데 뒤에 등지고 있던 옥상에서 폭주하 는 필리온의 음성이 내 귓가를 울렸다. "이.. 이.. 잠팅아!!!!! 당장 안일어나!!!!! 이 일생에 도움이 안되는 놈아! 넌 나의 웬수야!!!!!!!!" 그렇게 까지 과잉 반응할 필요는 없는데, 대체 왜 저럴까? "후암, 필리온아, 감히 나의 단잠을 깨우다니 죽고 싶냐?" "그걸 말하고 있는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럼?" "다 듣고도 모른 척 하지 마십시오." 레온과 필르난은 주변 사람들이 있을 때와는 다르게 서로에 게 깍듯이 예의를 차리고 있었다. 필르난이 쓰는 높임말이 처음은 아니었는지 그리 불편해 보이는 기색이 없던 레온은 필르난의 한마디에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서?" "그래도 다행입니다. 그 여자가 당신의 일은 아직까지 모르 는 것 같으니 말입니다." "응. 확실히 보통 여자는 아냐." "그러니까, 제발 행동 좀 조심하란 말입니다!!" "거기서 그게 왜 나와?" "말에 토를 달다뇨!!" "쳇." 절대로 다시는 이분을 모시고 여행을 다니지 않겠다고 저기 저 밝게 떠오른 둥근 달을 보며 눈물짓는 필르난이었다. 드디어 결전의 날은 밝아왔다. "아아.. 뮤즈님. 빨리 일어나십시오. 아침을 드시지 않을 생 각이십니까?" 남은 심각하게 폼잡고 있는데 겨우 아침이나 먹으라니? "뭐.. 표정을 보아하니 아침을 드시고 싶은 마음은 없는 듯 하군요." 아니아니, 난 그게 아니라.. "그럼 이만 내려가 보겠습니다. 아참, 이번에 엘프분들의 일 행과 같이 여행을 한다는 것을 알고 계시겠죠? 출발은 아침 을 먹고 난 다음입니다. 아, 뮤즈님께서는 아침이 생각 없으 시다고 하셨으니 짐이나 챙기고 있는 편이 좋을 것 같군요. 그럼.." 여.. 영악해. 저렇게 사람을 가지고 놀다니! 내려가서 한 대 쳐주고 지금 내 뱃속의 위장을 달래주고 싶 지만 애석하게도 나에게는 자.존.심. 이라는 한 단어가 나를 옭아매고 있었으니. 그리고 짐이나 챙기고 있으라니! 대체 누가 누구를 모시고 있는 거야! 도망가고픈 마음이 절실히 든다. 그래! 내가 이곳에 있어야할 이유가 없잖아? 어차피 저 시온이란 놈과는 남남이고, 괜히 카네스가 생각 나 지금까지 버티고 있었던 거잖아? 안나를 닮은 엘프도 마 음에 안들고 말야. 오호~ 말하고 나니 다 맞는 말이네. 나를 무시했겠다? 그래그래~ 여기서 갈라지는 거야. 넌 너 갈길 가고, 나는 내 갈길 가는 거야. 이 얼마나 간편하고 편한 방법이란 말인가!! 세상도 살만 하군 그래. 하지만 정문으로 나갔다간 어딜 가냐고 물을게 뻔하니 가장 원초적이며 가장 쉬운 탈출 방법을 동원할 수밖에. '벌컥' 오오~ 창문을 통해 보이는 저 아침 햇살을 찬란하고 고귀하 게 빛나는 도다. 내 탈출(?)을 다들 기뻐해 주는 것인가!! 기대에 부흥(?)하여 곱게곱게 뛰어내리겠다. '쿠왕~' 이.. 이런.. 뛰어내리면서 문턱에 발을 삐끗했군. "어머~ 뮤즈양~ 지금 여기서 뭐하는 짓이에요?" 아래층의 식당 창문이 갑자기 벌컥 열리며 엘프가 고개를 내밀고 흥미롭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엘프의 뒤에는 그럴줄 알았다는 표정의 시온, 아직 상황 파악이 되지 않는 중인지 뚫어지게 나를 쳐다보고 있는 꼬맹이 황자. 먹을것 에 열중하고 있는 산적. 그리고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킬 킬대며 웃어대고 있는 마족과 그의 연인.(나는 어느새 마족 과 붙어 다니는 레온이란 녀석을 마족의 연인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역시 나는 되는 일이 없는 녀석이었던 건가. "아침을 드시고 싶으셨다면 계단으로 내려오면 될 것 가지 고 어려운 방법을 택하셨군요." 그게 아닌데. "등장이 참으로 요란하군." 난 어디서든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란 말인가! 내 존재에 대한 회의가 밀려왔다. 이렇게 된다면 자아붕괴에 심하면 자폐증. 나쁜 녀석들. 너희들은 지금 멀쩡한 사람 폐인 만들고 있는 거야. "그렇게 계시지 말고 들어오시죠. 물론 들어오실 때는 정. 문.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안들어가!" "그래요? 그럼.." 내 면전에서 창문을 턱하니 닫아버린 시온. 나, 왠지 시온에게 엄청난 미움을 사버린 것 같은 느낌이 팍팍 든다. 내가 쟤한테 잘못한게 뭐가 있었더라? 잠시 그대로 바닥에 앉아 있던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시온에게 마땅히 미움받을 짓은 하지 않았다는 결론에 도달 했다. 이유 없이 미움 받는 다는 건 정말 기분 나쁜 일이라는 것 을 깨달았다. 뭐, 이제 헤어질 사람인데 내가 더 이상 신경 쓴다는 것이 멍청한 일이겠지. 나는~ 간다~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어~이~야~~~~ 헉, 이 노래가 아니다. 어쨌든 나는 간다! 잘 먹고, 잘 살아라! 두 번다시 만나는 일따윈 없을 테니!! 아아~ 마지막으로, 걱정하지마! 난 6개월 뒤에 제발로 왕궁 으로 찾아갈테니.(뭐, 이건 쪽지에 남겨 뒀으니 걱정할 필요 없겠군.) ........... 그런데........ 어디로 가야 하지? 뚜렷한 목적지가 없다. 용병으로 일 해먹으려고 했는데 그것도 생각만큼 쉬운게 아 닌 것 같다. 흘~ 덕분에 여성체들은 어딜 가서든지 대접을 못받는 다는 사실도 깨닳았고 말이다. 말 나온 김에 여성단체 하나 만들어서 나라에 개겨 버릴까? 에휴~ 말을 말자. 그러다가 밥줄 끊기지. 그냥 무작정 걸었다. 어차피 내 앞에는 길뿐이었고, 마땅한 목적지도 없는 상태 이니 걷기밖에 할 수 있는게 없었다. 그러기를 벌써 4시간 째다. 배가 고파 아무거나 사먹으려 했던 나는 나의 무식함에 혀 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 소매치기에게 받은 돈이 다 시온에게 있는 것이다. 내가 한번 소매치기 당한 전과로 믿지 못하겠다며 시온이 저번에 가져가 버렸다. 역시 난 운이 없는 건가? 그나저나 수도가 이렇게 넓은 줄은 몰랐다.(수도가 넓지, 좁 은줄 알았냐?) 4시간째 걸었는데 어째 성문이 안보이냐? (너는 성문과 정 반대편으로 가고 있다네.) "저기요.. 여기서 제일 가까운 성문이 어디 붙어 있어요?" "아, 여기는 아주 떨어진 곳인데요. 저~쪽 길로 2시간 정도 만 가다보면 나올거에요." 결국 나는 옆에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물어본 끝에 성문이 어디 붙어먹었는지 알게 되었다. 2시간.. 후훗.. 2시간이란 말이지? 끄악~~~~~ 난 지금 배고파서 돌아가시게 생겼단 말이 다~!!!!!!!! 그래도 어쩌겠나. 굶주린 배를 움켜쥐며 생사를 위해서 걸 어야지. 그런데 그 다음에는 뭘 해야 하지? 난 돈이 하나도 없잖아? 성문을 빠져나간다 해도 나는 배를 채울 수가 없다. 그건 그 때 가서 생각하고 일단은 이 수도를 빠져나가야지. 진짜 배고프다.(그럼 가짜로 배고팠냐?) 아아.. 이러다가 정말 굶어 죽는게 아닐까.. 나는 왜 대책 없이 일을 저지르는 걸까? 지금 와서 자책하면 뭐할까. 평소에 잘해야지. '쿵~' 눈, 눈앞에 별이 반짝인다. 드디어 배고파서 죽은건가? 이건 꿈이야!! "A~18 어떤 새끼가 감히 이 크라시오님께..." 환청이 들리는걸 보니 죽은건 아닌가 보군. 내가 아픈 머리를 문지르며 나와 부딪힌 그 물체를 멍하니 바라보자 그 물체는 뭐라고 지껄이던 말을 멈추고 나와 똑 같은 포즈로 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봐이봐, 왜 침은 흘리는 거야? "죄송합니다. 제가 배가 고파서 앞을 제대로 못봤어요." 일단 사과는 하지. 으악~ 왜 침닦은 손으로 나를 붙잡는 거야. "흐흐흐, 꽤 반반한걸?" 침 흘린 이유가 그거였냐? "사람을 쳤으면 대가를 치뤄야지. 따라와!" 내 손목을 잡고 어디론가 끌고 가려고 하는 덩치를 바라보 며 나는 이 상황을 아주 좋게 해결할 방안을 생각해 냈다. "밥 사주면 따라갈게." 나도 참.. 비굴하구나. "뭐, 뭐야?" 참 황당했는지 잠시 내 손을 놓고 말을 더듬는다. 그러지 말게나. 이 제안을 한 나도 황당하다네. "그 손 놓지 못할까! 이 더러운 악당놈아!!" 누가 이제와서 뒷북치냐? 이 덩치는 이미 내 손을 놨다네. "저건 또 뭐냐? 오호라~ 정의의 기사 등장이신가?" 화려한 금발을 휘날리며 마법사 로브를 입고 손에는 썩은 나무 지팡이를 하나 들고 있는 나 마법사요~ 하는 놈 하나 가 덩치 앞을 가로 막으며 소리치고 있었다. 쟤는 또 뭐야? 남의 밥줄 끊기게 하려는 나쁜 놈. 내 눈에는 이 마법사가 그런 놈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파이어 볼~~~" 주먹만한 불덩이가 덩치에게 날아갔다. 불의 하급 마법. 설마 저거 하나 맞고 저 등치에 뻗어버리진 않겠지? '털썩' 뻗었군. "아름다운 레이디. 당신을 악의 사자에게서 구해... 끄악~" 나는 내 작고 아담한 발로 그 놈의 발을 지긋이 밟아주었 다. "너땜에 밥줄 끊겼어. 그러니까 니가 밥 사줘." (45) "하.. 하핫.." 어색한 웃음으로 때우려 하질 말게나. "에잉~ 물에 빠진 사람 구해주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식 아 닌감? 에잉~ 요즘것들은.. 말세야 말세. 칸! 가자. 그러게 괜 히 쓸데없는 곳에 끼어들어서.. 에잉~" "스, 스승님.." 커다란 푸른 눈망울이 울상이 되서 나를 쳐다본다. 아마도 누구 말에 따라야 할지 걱정인 것 같다. "밥 사줘." "에잉~ 얼른 안따라 오고 뭐하는 게야!" "그, 그게.. 저.." 자기 주장이 없는 놈같으니라구. "얘가 나 밥사준다구 했어. 늙은이는 빠져." "메야? 늙.은.이? 이 팔팔한 이팔청춘 젊은이에게 무슨 소리 를 하는 게야?" 노망이 났군. 머리는 듬성듬성 난 까치집에 흐리멍텅한 회색 눈동자. 얼굴에는 주름이 잡혀 있어 아무리 잘 봐줘도 50대 후반이 다. "눈이 삐었어? 할범? 거울 안봐? 거울 줘? 이팔청춘? 농담 해?" "할.범? 누가 할범이라고 그래! 난 아직 팔팔 하다구!!" 지팡이에 겨우 의존해서 서있는 주제에 나를 보고 바락바락 대든다. 언제부터 인간이 이 나이가 되면 치매 증상에 시달리게 된 거지? "저.. 저기 싸우지들 마시고.." "넌 빠져!!" "닥쳐!!" 이 때만큼은 할범과 나의 마음이 맞는 유일한 순간이었다. "오호~ 할.아.범. 그래서 불만이신가? 누가 그대를 이팔청춘 으로 보겠나. 나이를 생각해 보시게." "이..이..이.." "오호호홋~ 할 말을 잃었나 보군." "닥쳐!! 이 늙은 할망구야!!" 여기서 그 칸이라 불린 내 새로운 밥줄과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할망구? 할망구?? 내가? 이 뛰어난(물론 내 얼굴은 아니지만.) 미모를 할망구 라 칭했단 말이지? 도대체 이 할범의 미적 감각은 어떻게 된거란 말이냐! "장님이야? 이 탱탱한 피부와 그 쭈글쭈글한 피부를 비교해 보라구! 이게 어떻게 해서 할.망.구. 라는 거야?" "내가 할망구라면 할망군거야!" 왠지.. 나와.. 같은 부류같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스타일. 잠시 이 할범에 대해 회의를 느끼고 있을 때 역시나 잘 돌 아가는 나의 머리는 이 상황에도 진가를 발휘했다. "할아범, 좋아. 한가지 부탁만 들어주면 20대 청년이라고 불 러주지." "뭔데?" 그럴 줄 알았다. "배고파, 밥사줘. 20대 청.년." "좋아좋아~ 낄낄~ 밥 사주지~" 역시나 단순하군. 예전의 나를 보는 듯한.. 끄악~ 왜 저 노인을 보면 예전의 내가 생각나냔 말이다!! "아, 화해 하셨군요." "이게 화해 한 것처럼 보이냐?" "..............." "에잉~ 빨리 안오고 뭐해?" "알았어. 간다! 간다구!! 20대 청.년." "낄낄낄~" 어쩔 수 없지. 뭐.. 어차피 배에서 배고픔을 호소하니까 일단 배만 채우고 보자구. 늙.은.이. 그런데, 어쩌다 이렇게 된거지? "그만 좀 먹어! 이 밥순아!!" 걸걸한 목소리로 소리치는 할범을 띠껍다는 듯이 바라보고 다시 그릇에 머리를 처박은 나는 열심히 가장 기초적인 본 능을 채우고 있었다. "에잉!! 먹다 죽은 귀신이 붙었나! 세상에 무슨 밥을 그리 많이 처먹어?" "시꺼!!!" 정말 재수 옴 붙은 날이다. 내가 어쩌다가 이런 황당한 꼴이 되었을까. 그래! 모든 원인은 시온! 그 놈 때문이야! 내 너를 용서하지 않으리!!! "이제 다 드셨으면 나가도 좋지 않을까요?" "응? 어." "에잉~ 돈 날아가는 구먼." "계산하고 나오세요, 스승님." "에잉~ 쯧쯧." 배고파서 눈에 들어오지도 않던 사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 작한다. 수도 사람들은 뭐가 그렇게 바빠서 미친 듯이(?) 돌아 다니 는 거지? "하핫~ 여전히 이곳은 활기차군요." "전에도 한 번 와본적이 있었나 보지?" "아, 이곳에서 태어났거든요." "그래?" 니가 여기서 태어나던지, 말든지. 나하곤 상관 없는 일이니 까 관심을 끊겠다. 더 이상 꼬치꼬치 캐물어 봤자 입만 아프고, 겨우 채운 에 너지를 소비 할 수는 없단 말이다. "에잉~ 가자가자." 텅 빈 주머니를 탈탈 털며 나온 할범을 쓱한번 쳐다 본 뒤 에 나는 내 갈 길을 가려고 했으나 곧이어 그 늙은 쭈그렁 탱이 할범의 손에 뒷덜미를 잡혔다. 왜 잡는 거야! 내 갈 길 간다니까!! "어딜 가? 흘흘~ 밥을 얻어먹었으면 밥값을 해야지! 에잉~ 이거나 들어." 턱하며 내게 준 짐주머니를 받는 순간 나는 '헉'하는 소리를 내뱉고야 말았다. "왜, 왜 이렇게 무거워!" "마법 물품과 서적들이 들어있으니까 조심히, 정성스레 옮 겨!" 이걸 이 할범이 들고 다녔단 말야? 존경하오. 그 연로하신 나이에 고생이 많았구려... 가 아니잖아! 왜 내가 이 무거운 물건을 들어야 하는 거지? "할범!!" "20대. 청.년." 꼭 저렇게 하고 싶을까.. "그래그래! 알았다구! 근데 이걸 왜 내가 들어야하지?" "세상에 공짜는 없는 거야, 흘흘." 아, 그래요? 할 줄 알았나 보지? 어림도 없다. "누가 그러길래 그 덩치와 있을 때 끼어 들래!!" "내가 끼어 들었냐? 저놈에게 물어봐라." 고개를 팩~ 돌려 금발의 청년을 쏘아보자 자신의 죄(위험에 빠진 레이디(?)를 구해준 죄밖에는 없다.)를 아는지 고개를 푹 숙이고 내 눈치만 슬금슬금 보고 있었다. 내가 말을 말아야지. 저 순둥이하고 대화를 하리, 아니면 저기 가는 저 능구렁이 를 열댓마리는 삶아 먹은 늙은이하고 대화를 하리. 나 혼자 화를 삭이는 수밖에. "똑바로 들지 못해! 바닥에 질질 끓고 오면 어쩌자는 거 야!!" "알았어! 알았다구!! 야! 니가 들어! 모든 원흉은 저 늙은이 말대로 너.니.까." "... 네에.." 침울하게 가방을 받아드는 순둥이를 보며서 나는 멀리가고 있는 그 할범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얼핏 들었다. "모~옷~난 놈!!" 그 못난놈을 제자로 둔 당신은 뭔데? 라고 묻고 싶었지만 그걸 묻는다면 음식값을 내놓으라고 할 까봐 겁나서 차마 못물어 보는 나였다. 아아~ 가여운 시크리오프스여~ 드디어 비굴해 지누나. "이름이 뭐냐?" "네?" "이름이 뭐냐구!!" "헤헤~ 칸이라고 부르시던데요." "누가?" "스승님이요." 자기 주장이 없는 놈. "좋아, 나도 칸이라고 부른다." "네~ 그런데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그냥 뮤즈라고 불러." 난 누가 모르는 인간들이 내게 맞먹으며 시크시크 부르는게 싫다. "네에~" 왜 저렇게 좋아하는 거지? 얼굴에 붉은 홍조를 띄며 그 무거운 가방을 들고 팔짝팔짝 뛰는 모습이 가히 개구리를 연상케 했다.(그 상황에서 개구 리를 생각한 니가 이상한 거야!) 머리에 별로 유익하지도 않은 쓸데없는 잡담을 중얼거리며 걷다보니 어느새 성문까지 온 것 같다. 기사들이 교대로 신원을 확인하고 성문 밖으로 내보내는 모 습을 지켜보며 할범은 칸을 한번 노려보더니 가방을 빼앗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뭐하는 거야?" "보면 몰라? 통행증 찾고 있잖아!" 왜 소리를 지르고 난리야? 난 귀 먹지 않았다구. 나하구 할범하고 같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지. "오호~ 그러셔?" 내가 열심히 할범을 빈정대고 있는 순간 기사로 보이는 복 장을 갖춘 인간 하나가 소리도 없이 쓱~ 다가와서는 음침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봐이봐~ 그렇게 다니면 놀랜다구. 이 더운 대낮에 망토까지 두르다니. 역시 기사란 존재는 대단하다니까? 심심한데 기사나 되볼까? "통행증을 제시해 주십시오." 사무적인 어투. 거기에는 약간의 깔보는 어투도 깔려 있었음을 알아두길 바 란다. 내가 알기로는 성문을 지키고 있는건 병사들과 그것을 통솔 하는 수비대장이나 기사 하나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내 앞에 보이는 것은 기.사.들이다. 대부분의 기사들이 직접 조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러지? 할 일도 디게 없나 보네. 약간 날카로운 눈으로 우리 세명을 쓱 훓어 보더니 칸에게 서 시선이 멈춘 그는 정중히(내게는 비꼬는.) 말했다. "죄송합니다. 당신들의 통행을 허락할 수가 없습니다. 잠시 저와 함께 가시죠." 이상하다고 했다. 아까부터 두리번 거리며 뭘 찾고 있는다 했는데 그게 우리 였나? "봐요! 그러니까 내가 오기 싫다고 그랬잖아요~" 울상을 지으며 할범을 바라보는 칸. 할범은 그런 칸을 싸~악 무시하며 딴 곳을 보고 능청을 부 릴 뿐이다. 너도 참 고생한다. 어쨌든 반 강제로 기사의 손에 붙들려 우리가 간곳은 초호 화판 여관. 왜 이곳으로 데리고 온거지? 일단은 들어가서 잠시 테이블에 앉아 쉬고 있는데 우리 뒤 를 이어 어떤 일행이 우르르 들어왔다. "어머~ 뮤.즈.양~" 활기차고 밝은 여인네의 목소리가 내 온몸을 휘감았다. 뒤를 돌아보니 역시나 시온과 그의 떨거지들. "쪽지 하나 달랑 남겨두고 가시는게 어딨어요?" "뛰어봤자 벼룩이네요." "오옷~ 그 옆에 있는 일행은 누구?" "참으로 일행도 빨리 만드시는 군요." "그 뛰어남에 경배를.. 키킥." 여기선 정말 나를 못잡아 먹어 안달이다. 하지만 이놈들은 그냥 넘어가도록 하자. 내가 무서운건 시온이다. 아까부터 주위에는 검은 오라가 널리 분포해 있었으며 내 얼굴을 쏘아보는 시선을 못 느낄 나도 아니었다. 왜 이렇게 조용한 거냐. "아는 사이에요, 뮤즈양?" 칸이 내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었을 때 정신을 차린 나는 칸의 얼굴을 한번 쳐주었다. 다시 시온을 바라보니 여자도 아니고, 삐졌는지 돌린 고개 사이로 보이는 입은 퉁퉁 부어있었다. "히끅~ 세.. 셋째 형.." 갑자기 숨 넘어가는 소리를 지르며 옆에 있는 산적놈 드란 의 옷자락을 움켜쥐는 꼬맹이. 칸은 그쪽을 한번 바라보고는 환하게 미소지었다. 그러고 보니 닮았다. 주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화려한 금발머리에 푸른 눈. 미소녀로 착각할만한 얼굴. "오옷~ 막내야!!" 환하게 웃으며 뛰어간 칸은 그 자리에서 방실방실 웃고 있 는 모습 그대로 꼬맹이의 배를 발로 차버렸다. "큭, 혀.. 형.." "님자 안붙이냐? 이게 어디서 머리 좀 컸다고 대들어?" 사악미소를 뿌리며 땅바닥에 쓰러진 꼬맹이를 자근자근 밟 는 칸을 바라보며 등줄기로 식은땀이 기어가는 것을 느꼈 다. 어이없는 이유를 잡아가며 꼬맹이를 패는 칸. 이게 아까 그 순둥이 맞아? 그런데 기가 막힌 것은 그런 칸의 모습에 얼어버린 일행들 이야 도움이 될만도 만무 하지만 드란이라는 산적놈이 발만 동동 구를뿐 도저히 말릴 엄두를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칸! 그만 해라. 에잉~" 할범의 단 한마디에 발길질을 멈추며 할범을 향해 생긋 미 소를 짓는 칸. "네~ 스승님." 도저히 아까와 동일 인물이라고는 생각이 안된다. "히엥~ 드란~" "도련님.." 일어나서 먼지를 털고, 울먹이며 드란을 향해 달려가는 꼬 맹이를 보았을 때 닭살이 돋은건 말 안해도 알것이라 믿는 다. "일단 대화를 좀 하죠." 조용히 침묵만을 지키던 시온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모두 동감 한다는 듯이 그 초호화 여관의 넓다란 탁자에 자 리를 잡고 앉은 우리들. "어? 레온과 필르난은?" 둘이서 어째 안보인다. "아~ 그 둘은 이 수도에 볼일이 있다고 오늘 아침에 헤어졌 어요. 어차피 이 수도까지만 동행이었는 걸요?" 엘프의 말씀이다. 둘이서 드디어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인건가? "그나저나 우리가 왜 이곳에 붙잡혀(?) 왔는지 알아봐야죠." 뭔가에 찔끔하는 꼬맹이. "다 저.놈. 때문이죠. 후훗~" 칸이 꽃미소를 날리며 꼬맹이를 바라보자 고개를 드란의 어 깨에 파묻어 버린다. "사랑하는 막내야~ 이건 분명 아버님께서 널 잡으려고 보낸 기사들인 게지?" "... 네..." "그.리.고. 거기에 재수없게도 내가 붙잡혔고 말야. 그렇지 않니?" 일어나서 꼬맹이에게 다가가려던 칸은 내 손에 붙잡혀 다시 자리에 앉고 말았다. "흑.. 네.." "용서가 안된다는 것은 알고 있겠지, 막내야?" "흑.. 네에.." 그만 겁줘라. 눈물 떨어질려고 하는거 안보이냐? 칸이 이중성격이었다니. "카이란스 루이크 린 가아스트 제 3황자님과 리메아난 루이 크 린 가아스트 제 4황자님을 황제 폐하께서 부르십니다." 참으로 이름도 거창하군. 칸과 꼬맹이는 고개를 설래설래 흔들었고 우리도 같이 가자 는 말에 나는 기둥을 껴안고 버티다가 끝내는 끌.려.가.게. 되.었.다. 결국 나는 황태자와 이별을 한지 약 일주일만에 다시 그 지 긋지긋한 궁성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여어~ 오랜만이야~" 빙긋빙긋 차.가.운 미소를 날리며 내게 걸어오는 놈을 한 대 패주고 싶은 욕망을 간신히 억누르고 나도 마주 빙긋~이 웃 어주었다. "별로." "내가 보고 싶어서 다시 온거야?" "죽고 싶으면 무슨 말을 못하겠니, 안그래?" "어째 변한게 없군." "일주일만에 인격체에게 변화를 바라는 것은 지극히 멍청한 일중의 하나지." (46) 이 놈과 말싸움 자체를 한다는 것이 멍청한 일이다. 칸과 꼬맹이는 폐하라는 인간을 만나러 갔고, 일행은 엄청나게 넓은 정원에서 그들을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뮤즈양~ 이분은..?" 엘프, 궁금한 것이 많은 모양이군. "약혼자." "웬수." 왜 말이 다르게 나오는 거야! "너 가만히 안있어?" "맞는 말이잖아." "오호~ 약혼자 이셨군요." "아니야! 내 말이 맞는 거야!" 하지만 일행은 이미 내 말을 씹고 있었다. 뭐, 일행이라고 해봐야 드란이란 덩치와, 엘프, 시온 뿐이지만. 아~ 할범도 있었구나? "어머~ 시온 들었어요? 약혼자래요." "아, 네." "낄낄낄~" 할범, 그렇게 웃지 말게. "정식으로 인사 드리죠. 이 나라의 황태자 하라이스 루이크 린 가아스트라입니다." "하이 엘프 레이니아입니다. 레니라고 불러주세요." "시온... 입니다." 음, 그러고 보니 황태자가 시온을 고용했지? 그런데 어째 황태자가 시온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네. "낄낄낄, 칸의 스승 롬이라고 하네."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정중히 할범에게 인사하는 황태자를 바라보며 약간의 의아함을 느끼는 나였다. 스승에게는 예의바르군. 평소에 저러면 어디가 덧나나? "제 4황자님을 모시고 있는 드리안스 밀리노 스트베리입니다." "아아, 드란경. 폐하께 말씀은 많이 들었소. 쿠쿡, 전직 백작이 한 낮 도둑질이나 하고 있다니." 오호~ 저 산적이 백작이었어? 무관 출신인가? 아무튼 소매치기 황자를 만나 참 고생하네, 그려. 하여간 나는 칼들고 설치는 놈들은 무조건 싫다. 소드 마스터까지 갈 생각이 아니라면 왜 칼을 잡는가? 기사가 되려고? 웃기는 소리하지 말라고 해라. 대다수가 빽으로 된 것들이 어디서 실력이라고 설치고 다니냐? 아무튼 나는 모조리 맘에 안든다. 뭐, 이것은 마법에 소질이 없는 놈이 평생을 마법에 쏟아부어 겨 우 2서클의 마법사가 된 것과 마찬가지의 식이다. 다만 다행인 것은 마법사는 빽으로 할 수 있는게 아니라는 점일 까?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내게 감히 대들겠다는 말이오?" 산적이 발끈해서 목숨이 아까운줄 모르고 대들었다가 당연하게 맞받아 치는 황태자의 입놀림에 고개를 숙인다. '퍼억!' 그 모습이 약간 안쓰럽고, 나는 이렇게 자신의 권력을 남용하는 놈이 싫었기에 사뿐히 즈려밟아 주었다. "뭐야!!" "........ 그냥 조금만 밟혀주면 되." 황태자를 매트삼아 몇 번 구르다 보니 정원 한쪽에서 금방이라도 울음이 쏟아질것만 같은 얼굴로 꼬맹이가 뛰어온다. 그 뒤를 따라 싱글벙글 칸. "쟤는 왜 울상이고, 너는 왜 이래?" "푸하하핫~ 쟤가 결혼할 상대가 생겼대요. 크하하핫~" 뭐가 저리 즐거운 거지? 결혼 상대가 생겼으면 결혼 하면 되잖아? "그게 누군데?" "플라린스 왕국의 셋째 공주 뮬르아 티니아스 한 플라린스라고 하던데요?" 이제 저렇게 무식하게 긴 이름도 지겹다. "결혼 하면 되지, 뭐."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호호홋~ 황자님~~ 여기에요~~~ 꺅~" 갑자기 난데 없이 들려오는 찢어지는 듯한 소프라노 웃음소리에 (네 웃음소리는 그보다 더하다네.) 치렁치렁한 일명 '공주 치마' 그리고 갈색 머리를 치렁치렁하게 기른 여자 하나가 웃으며 우리 앞을 지나가다가 그만 드레스 자락에 밟혀 그대로 앞으로 헤딩하 게 되었다. "흑.. 황자님~~~~~~ 리나, 다쳤어요. 흑.." 여기에 황자라고는.. 셋밖에 없는데? 누구보고 저러는 거지? 나는 황자 세명을 뚫어지게 쳐다보았으나 세명 모두 동시에 이 여자는 모른다는 듯 열정적으로 손을 엑스자로 흔들었다. "오옷!! 사랑스러운 리나!! 어디 다치진 않은 게요?" 닭살을 만발하며 달려오는 한 남자. 역시나 찬란한 금발 머리에(이 집안 식구들, 왜 다 이 모양이야?) 아랫부분이 무지무지 강조되는 쫄바지를 입고(사실, 황태자도 이 건 내 앞에서 안입었다.), 붉은 망토를 두른 전형적인 제비족의 청년이 달려와 여자를 일으킨다. "흑.. 왜 이제 오세요. 리나가 얼마나 아팠는데요." "미안하오. 이 배은망덕한 정원이 당신의 아름다움을 가려버려서 당신을 찾아낼 수 없었소." 이 닭살을 한부로 뱉어내는 이 놈은 누구란 말인가! 7명의 일행은 그 자리에서 얼어 붙어 자신의 몸에 주먹만하게 솟 아 나와있는 닭살을 대패로 밀기 시작했다. "프린스!!!" 황태자 특유의 째진 음성. 자신들의 닭살 시간을 방해받은 것에 화가난 프린스라고 불린 남 자가 황태자를 노려보자 이에 날아가는 주먹. '퍽' "이게 어디서 형님을 야려?" ".............. 형님이라고 답니까?" 오호~ 분위기가 꽤 심각해 지는군. "여자 앞이라고 폼잡는 거냐? 그러고 보니, 쥬르가 너를 애타게 찾더군." 이 한마디에 얼굴이 사색이 된 남자. "히엑~ 왜.. 왜 또 화난 거에요?" "그걸 몰라서 묻냐?" "난.. 난.. 난.. 내일 아침 시체로 발견될 거에요. 내가 죽으면 형 님 탓이에요!" "가서 빌어라." 아까의 그 카리스마가 남발하던 모습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 고, 두 눈에는 두려움을 가득 담은채 서서히 뒷걸음질치고 있었 다. "화~앙~자~아~님~~ 저를 두고 가시면 어떻게 합니까!!" 리나라고 불린 소녀가 신파극의 한 장면처럼 털푸덕 땅에 주저앉 아 그 남자의 쫄바지를 잡고 늘어진다. "놔라!!" "황자님! 애정이 식으신 건가요!" "놔!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냐! 저리 꺼.져." 아까의 그 닭살들은 어디 갔는지 마치 모르는 여자라는 듯 냉담 하게 뿌리치는 남자를 보며 여자는 그 큰 눈에서 눈물이 방울져 흘러 내렸다. "너..무.. 하세요.. 흑.." "잘들 논다. 잘들 놀아." 보다 못한 내가 침묵의 도가니에서 한마디를 꺼내자 그 남자의 시선이 내게 집중되었다. "오옷~ 레이디! 당신처럼 아름다운 분이 여기 계셨다니! 당신은 저 하늘의 별보다도 초롱초롱한 눈빛에 윤기나는 실버 블론드의 머리카락! 이런 섬세한 예술품 같은 손가락들, 와인보다 붉은 입 술! 이토록 완벽한 여자는 처음이오! 부디 내가 당신의 기사가 될 수 있도록 허락을 해주시오. 이 넓은 대륙 안에서 우리가 만 난건 필시 운명이 아니고 뭐겠소!" "하늘에 무슨 별이야, 임마! 해가 시퍼렇게 떠있는데!!" 대체 저 청산유수의 말솜씨는 뭐야? 운명? 그럼 저기 너에게 칼갈고 있는 황태자와 만난것도 운명이 란 말이냐! "아아~ 형님. 형님은 우리 사이를 갈라놓으려 하고 계시는 군요. 그녀의 미모를 보면 당연한 일이겠지요. 하지만 나는 그녀를 위 해서라면 형님이라도 결투를 할 각오가.." "놀고 있네." 어떻게 아까까지 닭살 모드를 하던 여자를 앞에두고 다른 여자에 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지? "당신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하나같이 아름답구려." 놀고 있네가 아름다워? 진짜 이 자식이 놀고 있네? "당신과 나는 운명의 끈으로 이어져 있는 몸. 우리는 헤어지면 안되는 운명이오. 오오~ 하늘이여! 여기 제 반쪽을 찾았습... 끄 악~" 이 녀석, 운명론자 였나? 무슨 광신도 같군. 나는 이 녀석이 더 이상 말하면 친히 약간의 무력(?)을 사용하려 했는데 다행이 황태자가 뒤에서 칼을 빼들고 설쳐서 내 수고는 덜게 되었다. "형님! 이 사랑스럽고 초절정 미모의 아름다운 미소년을 죽일 작 정이십니까!!" "누가 사랑스럽고 초절정의 미소년이란 말이냐! 그냥 죽어버려!!" (47) "형님께서 저를 질투하시는 모양이군요." "더이상 그딴 소리 지껄이면 아에 황제께 건의해 집안 족보에서 파버 리겠다!" "너무 하십니다! 이 초절정의 미소년을 족보에서 파내시겠다니요! 하 늘이 형님을 저주할 겁니다." 대체 앞 뒤 생각이 있는 놈이란 말인가! 시퍼렇게 눈을 뜬채 너에게 검은 오라를 내뿜는 황태자가 정녕 눈에 보이지 않는단 말이냐! "죽엇! 이 왕자암 말기 녀석!" "당연하죠! 저는 황자란 말입니다! 황자가 황자답게 구는데 무슨 상관 입니까!" 어째, 명을 단축시키고 있다는 느낌이.. "으아~ 둘째 형님~ 저 없는 동안에 드디어 미치셨군요! 축하드려요!" 꼬맹이가 재미있다는 듯이 황태자를 피해 돌아다니는 느끼한 놈에게 소리쳤다. "리아! 이 놈~ 돌아왔구나! 그래~ 그 동안 수입이 어떻게 됐냐?" 리아.. 리아라.. 풋, 푸하하핫~ 그게 저 꼬맹이의 애칭이란 말인가! 왠지 여자아이가 생각나는 군. "형님!! 리아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잖아요!" "왜 그래? 나의 사랑스러운 리아~♡" "으악~ 왜 그러세요~~" "이리와~ 마이 달링~♡ 부비부빗~" 황태자를 피해 도망다니던 중 꼬맹이에게 달려들어 품에 꼭 안고 부빗 거리는 느끼한 녀석을 바라보며 나는 이 녀석이 설마 동생까지도 넘보 는 그런 놈이 아닌가에 대한 심오한 고찰을 했다. "동생한테 뭐하는 짓이냐!" "왜요? 오랜만에 만난 동생에게 이 정도도 못해준단 말입니까?" "드.디.어, 네 간이 배밖으로 튀어나와 콩닥콩닥 뛰어다니는게 내 눈에 보이누나. 어디서 머리 컸다고 하늘같은 형에게 대든단 말이냐!!!!!!" "쳇, 형이라고 해봤자 겨우 두 달 차이인 주제에.." 두 달? 그럼 둘이 친형제가 아니란 소리네? "두우다알? 그래~ 너 말한번 잘했다. 두 달이면 내가 너보다 정확히 1440시간을 더 살았으며, 밥도 180끼를 더 먹었다. 으하하핫~ 네놈이 감히 나를 따라올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느냐!" 썰렁해진 주위. 황태자 자신도 크게 웃다가 무안했는지, 한 손을 들어 뒷머리를 긁적 였다. "무서운 놈. 그걸 다 계산하고 살았단 말이냐!" 느끼한 놈이 중얼거리는 소리는 물론 나밖에는 듣지 못했다. 확 꼬질러 버릴까도 생각했지만 귀찮아서 관뒀다. "레이디, 저와 차나 한 잔.." "이게 아직도 정신을 못차렸네!" 내 손목을 붙잡고 손등에 입을 맞추던 느끼한 놈은 내가 화내기도 전 에 뒤에서 내리친 황태자의 주먹을 맛보고는 그대로 앞으로 쓰러져 기 절해 버렸다. 내가 너 설칠 때부터 알아봤다. "꺄아아악~ 황자님~~ 기절하시다니요!! 흑, 그럼, 리나도 기절합니다." '쿵' 지금까지 존재감을 상실했던 아까의 닭살의 진수를 보여주었던 리나라 는 여자가 기절한 황자의 위로 사뿐히 쓰러지며 모든 일은 종결되었 다. 그런데 기절을 저렇게 쉽게 할 수 있는 건가? 이상하군. 그나저나 저 느끼한 놈, 일어나면 꽤나 온몸 마디마디가 쑤시겠군. 명복을............... "그.러.니.까. 방.금.하.신. 말.씀.이....?" "말 그대로라오. 레이디 뮤즈." 날보고 저 꼬맹이 약혼하는 곳을 따라가 지도를 해주라는 소리야? "이런 부탁을 하게 되어 미안하다고 생각하고 있소. 아들놈이 철이 없 어서.. 모르는 여자보다는 장래 내 며느리가 될 레이디 뮤즈가 황비를 대신해 아들놈의 약혼식에 참석해주었으면 하오."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황비가 폐위 됐다고 했지? 그리고 그 황비가 지금 있는 넷째 황자의 친어머니라 했고. 뭔가가 일이 꼬이는군. "좋.. 습니다." "고맙소, 레이디 뮤즈." 그걸 끝으로 황제의 알현실에서 나온 나는 곧이어 일행들의 초롱초롱 눈망울 공격을 받기 시작했다. 뭐야? 왜들 눈동자가 이 모양이야? "뭐래요?" "너 따라 가래." "히엑? 나요?" "그래. 너 약혼하는거 보고 오랜다. 여자에 쑥맥이니 내가 잘 좀 지도 해 달라고." "싫어요! 난 약혼 같은거 안해요! 정략같은건 싫어요!" "놀고 있네. 무슨 로맨스 소설 쓰냐? 일찌감치 포기하고 네 운명이니~ 하면서 받아들여라." 동정할 마음 같은건 없다. 어차피 왕족이나 귀족들은 정략 도구로 쓰이게 마련이니까. "너무해요~~" "입 닥쳐. 야! 내 방은 저번의 그 방을 써도 괜찮겠지?" "응." 내가 왕궁에 있을 때 머무르던 곳으로 가면서 계속 꼬맹이가 귀찮게 달라붙었지만 어차피 내가 결정할 간단한 일도 아니기에 그냥 몇번 뻥 뻥 차주는 걸로 끝냈다. 여전히 방은 화려하다. 바뀐게 없다. 이곳에 와서 잠깐 아버지란 인간을 만나봤지마 별다른 느낌을 받지는 않았다. 그러고 보니, 로드님의 레어에서 퍼자고 있을 아버지가 생각난다. 푼수. 자기 딸이 이렇게 나돌아다니고 있는건 알고나 있을까? 하긴, 잠자고 있는 양반이 뭘 알겠어? 그래도 조금은 알아줬으면 좋겠다. "짜증나짜증나짜증나짜증나짜증나!!!!!!!!" 그 넓은 방에 대고 큰 소리로 외쳤더니 마음이 조금은 풀린다. (48) 그럭저럭 시체놀이를 하다보니 그 넓은 창문 사이로 노을이 보인다. 주홍빛의 고운 빛무리가 창문 사이로 스며든다. 별로 지금까지는 노을에 대한 감상이 없었지만 오늘따라 조금은 색다 르게 보인다. "에휴, 무슨 청승인지.." 그러고 보니, 벌써 내 생명이 몇 주 줄어들었군. 이번에는 죽을 때 아플까? 난 아픈건 싫은데. 플라린스 왕국이라, 흠.. 거기로 가면 카라드시크의 레어가 나오지 않 나? 분명 플라린스 왕국과 젠다 공국의 사이에 있는 툰 산맥에 자리잡고 있다고 들었는데. 이번에 가는 김에 한번 들러볼까? 날 무시하면 어쩌지? 어쩌긴 어째. 그냥 정신 들때까지 패주면 되는 거지. 말보다는 주먹이 먼저 나가야 한다. "저녁 식사하십시오." 시종이 뻔히 있는데 왜 시온 저 자식이 문밖에서 나를 부르는 거야? "먹기 싫어." "도.대.체.가. 정.신.상.태.가. 어.떻.게. 된.겁.니.까!!" 정신상태? 양호한 편이지. 갑자기 왜 내 정신상태는 묻는 거야? "왜?" "왜요? 몰라서 물으십니까!!!!!!!" "그럼 너는 아는 문제를 가지고 의문문을 붙이니?" 논리적인 나의 열변에 얼어버렸나 보다. 잠시 찬바람이 휭하니 지나가는 것을 보니. "왜 항상 제가 식사 하시라고 하면 거부하는 것입니까!" "언제 그랬었냐?" "네!네!네! 그 머리로 그 일을 기억하라고 하는게 멍청한 짓이겠지요! 어쨌든 내려오십시오. 주.인.님 덕분에 모두 식사를 하지 못하고 있습 니다." 그래! 이 멍청한 머리로 다른건 몰라도 네가 지금 하고 있는 말이 나 를 욕하고 있는 말이란건 안다. "먹으면 되잖아?" "내려오십시오!" "안먹는다니까!!" 저번에는 안먹는다고 해도 아무말도 안하더니 왜이리 끊질겨 졌어? 누 가 협박하냐? "좋습니다. 그럼 황태자께서 명령하신 말을 전하겠습니다." "?!" "닥치고 빨리 내려왓!!!!!!!" 그, 그놈은 내가 식사를 하지 않을줄 알고 있었단 말이냐! 역시 강적이다. "그.리.고, 이미 음식이 준비가 다 되었는데, 뮤즈님께서 드시지 않는다 면 그게 바로 자원 낭비요, 국가 예산을 축내는 일입니다!" 왜 저런 말이 나오는 거냐? 내가 음식을 먹지 않으면 그 궁에서 일하는 인간들이 먹을거 아냐? "그러므로, 뮤즈님은 아래로 내려와 식사를 하셔야 합니다." 어째서 그런 말도 안되는 논리가 형성되는 거냐. "그래! 가자구! 가!" "그럼 내려가시지요, 후훗." 그렇게 승리의 미소를 대놓고 짓지 말라구. 나는 지금 매우 화가나 내려가는 대로 식탁을 엎어버릴 테니까. "맛없어! 이 풀쪼가리는 또 뭐야? 이 생선 눈은 왜 이리 흐리멍텅해? 이 바비큐 기름 질질 흐르는 것 봐. 기분 나뻐. 거기있는 새우는 왜 또 등이 구부러졌어?" 식당으로 내려와 보니 엄청나게 긴 식탁에 일행들이 옹기종기(?) 둘러 앉아 있었으며, 그 상석에는 황태자가 앉아 있었다. (황제는 집무가 밀 려 따로 방에서 간단히 먹는단다.) 일행들의 입에서는 침이 넘쳐 바닥에 흘러내리고 있었으며 내가 내려 가자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흡사 사냥감을 앞에 둔 몬스터와도 같았 다. 아마도, 내가 나올때까지 기다린 것 같다. 식탁을 엎어버릴 생각이었지만 아무래도 여기서 식탁을 엎었다가는 살 인이 날 것 같아서 나는 있는대로 요리 트집을 잡고 있었으며, 옆에서 는 하얗게 질린 주방장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당신에게 원한이 있는건 아니건만, 미안하우. 오늘로 목 달아나겠구려. "맛있어! 이건 샐러드라구! 생선을 튀기고서도 눈 색깔이 남아있다고 바라냐? 바비큐는 원래 기름이 있어야 제 맛인거 몰라? 너 바보냐? 새우는 원래 등이 구부러졌다구!" "흥! 어쨌든 기분 나빠서 못먹겠어. 먼저 들어가 보지. 생긋~" 항의하는 황태자를 향해 아까 시온이 지었던 승리의 미소를 지어주며 이제는 거의 실신 지경까지 간 요리사를 쳐다보고는 방으로 가는 계단 을 올라갔다. "대체 밖에서 놀면서 부실하게 음식도 제대로 못먹었을텐데, 어디서 입맛만 높아져서 온거야!" 뒤에서 고래고래 소리치는 황태자를 비웃으며 다음번 계단을 밟는 순 간 나는 뒤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끄악~" '우당탕~' "무슨 일이야?" 식당에 있던 일행들이 뒤로 대자로 뻗어있는 나를 보고는 폭소를 터뜨 렸다. "꼴 좋다." "...... (차마 쪽팔려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난 역시 사람을 비웃어 주고는 오래 못사는 체질인 건가? (그럼 지금까지 어떻게 버텨 왔나?) (49) "삭신이 결린다. 역시 노쇠하고 늙은 몸에 계단을 올라간다는 것은 무리였단 말이냐." "놀고 있네." "시꺼. 드디어, 내 명이 다 되어가는 구나." "시를 써라." "다리는 부러져 저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고, 머리에는 혹이 하나 나서 지끈거리는 판에 자꾸 열받게 하지마." "칠칠맞긴."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정말 이 놈이 싫다. 잘 대해 주다가도 갑자기 돌변해 사람 염장을 뒤집어 놓는가 하면, 빈 정대며 웃기도 한다. 만약 내가 6개월을 채우지 못하고 돌연사 한다면 그 사인이 화병이니 만큼 이 놈은 요주의 인물이다. 보거라. 단 두 마디를 써서 빈정대는 저 프로의 말투와, 부러진 내 다리를 툭 툭 치는 저 사악함. "왜 신관이 안오는 거야!!!!!!" "신관이 너처럼 한가하냐?" "나가!! 나가라구!!!!!!!!" 전에도 한번 이런적이 있었던 것 같군. "많이 아프냐?"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봐. 그럼 몸소 그 느낌을 체험하게 될거야. 뭣하 면 내가 직접 밀어줘도 되는데." "사악한.." "사돈 남말하네." '똑똑' "왔나보다." 방문이 살짝 열리며 12 ~ 14세 정도 되어보이는 소녀가 고개를 살짝 내밀었다. "세나!" "오라버니~" 다다다다 달려와서는 황태자의 품에 포옥 안겨 부빗거리는 모습을 보 며 슬며시 미소가 지어진다. "왠일이야?" "환자가 있다구 오라면서요. 헤헷~" 황태자는 나를 슬쩍 돌아보더니 곧 그 여자애를 소개 시켜주었다. "제 1황녀 세마르나 루이크..." "그만!! 이름이 세나라고?" 어차피 성까지 말해봤자 내가 외울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네." 활짝 웃으며 금발을 휘날리는 푸른 눈의 귀여운 꼬마애를 보고 있자니 시오스 생각이 난다. 헐, 그놈 참 어렸을 때 방긋거리며 웃고 다니는게 얼마나 귀여웠는데. "그런데 여기는 무슨 일로?" "헤헤~ 저 신관이에요~~" 그러고 보니 지금 이 아이는 흰색의 하이 프리스트 신관복을 입고 있 다. 하이 프리스트라고 해도 놀랄것도 없다. 주먹만한 꼬맹이가 대신관인 것도 구경했으니까. 요즘엔 나이 어린순으로 우대 받나? "아앗~ 다리가 부러지셨군요." "응." "원래 바보는 가만히 있어도 다리가 꼬여 넘어진다지." "닥쳐!" "후훗~ 세나야, 이게 이 나라의 황비가 될 여자란게 믿어지니?" "오라버니 성격에 딱인 걸요, 뭐." 오옷~ 저 어른스러운 말투! 저 녀석도 황태자에게 쌓여 있는게 많았단 말인가. 의외로 이 녀석, 적을 많이 두었군. "야!" 세나라는 아이에게 말을 건네자 황태자가 눈을 부라렸다. "무슨 짓을 하려고!" 내가 넌 줄 아냐? "너 내 동생해라." "?!" 충격이었나? 하지만 예전의 망나니 티아보다는 이런 예쁘고 아담하며 사근사근한 동생이 가지고 싶었다구. "네~~" 하얀 치아를 들어내며 웃는 세나의 콧가에는 약간의 주근깨가 박혀 있 었다. "둘이 잘 논다, 잘놀아." "알았으면, 우리 사이를 방해하지 말아줄래?" "어쨌든 나는 둘째 오라버니보다 오라버니 쪽이 더 좋아요." 저게 무슨 말이지? 무슨 말인지 어휘해석을 하고 있는 동안에 그제서야 나를 의식했는지 한 손가락을 내 눈앞에 흔들며 세나는 말했다. "언니 모르고 계셨어요? 둘째 오라버니가 언니 때문에 상사병에 나서 몸져 누웠대요. 아바마마께 언니와 혼인시켜 주지 않으면 자결하겠다 고 소동을 피웠어요." 그 느끼한 버터 삶아먹은 놈? "그러니까 폐하가 뭐라고 하디?" 궁금한 듯 황태자가 묻자 세나는 흠흠거리며 최대한 그 황제의 목소리 를 흉내내며 말했다. "나가 죽어." "..................." "................... 폐하답군." 어쩌면 이 녀석의 성격은 그 황제를 닮아서 이렇게 파탄적이지 않을 까? "다 됐어요~~~" 우리끼리 눈을 마주치며 대화를 하고 있는 동안 어느새 치유가 끝났는 지 머리에는 약간의 식은땀을 흘리며 웃고 있는 세나가 보였다. "수고 했다." "헤헤~ 오라버니~~" "응?" "돈준다면서요. 그래서 온건데." "넌 이 빈곤한 오라버니께 꼭 뜯어가야 겠냐?" "공과 사는 분명히 해야죠." "너도 넷째 닮아가냐?" "어머~ 넷째 오라버니는 엄연한 남의 물건을 슬쩍하는 도둑이며, 저는 정당하게 받는 돈이라구요." 돈 때문에 참 보기 좋은 광경이군. "지금은 돈 없어." "외상장부에 달아놓겠습니다. 오라버니는 싼줄 아세요! 하이 프리스트 의 디바인 파워가 얼마나 비싼 줄 아세요? 정말 오라버니만 아니었어 도 한 몫 단단히 챙겼을 거라구요." "잔소리 쟁이." "이걸 잔소리라고 듣다니 너무하시는 군요. 다 들어두면 약이 되고 좋 은 말들입니다." 저, 저게 과연 꼬맹이가 하는 말들이란 말이냐! 어떻게 저렇게 간단하게 황태자를 제압할 수 있는 거지? "그럼 새언니~ 다리 조심히 쓰세요~ 앗~ 잊을뻔 했는데요~ 아직 완전 한 치유가 된게 아니라 비오는 날이나 천둥번개와 우박이 동반할 시에 는 조금 시릴거에요~~" "이.. 이.. 돌팔이 같으니라고!!" 소리치는 황태자를 뒤로하고 방문을 빠져나가는 세나를 바라보며 나도 문득 생각난 사실이 있어 물었다. "그런데 둘째 황자라는 놈은 어떻게 됐지?" "알게 뭐야." "..................." "단식 투쟁 중 이라더군. 제놈도 죽을 자신은 없었겠지. 어디서 감히 형님의 여자를 넘봐?" 누구 여자? 에구, 이건 그냥 넘어가자. 열내봤자 내 머리만 아프니까. "그럼 조금 쉬도록 해. 내일이 출발이니까." 지금 쉰다고 해봤자 얼마 쉬지도 못하겠네. 난 피곤하다구. 거기다 부상자이고 말이야. 그나저나 내일 말타고 갈텐데 갈 생각하니 깜깜하군. 말안장 위에 앉아 있노라면 허리와 엉덩이 근육이 수축되면서 굉장한 근육통을 유발하게 된단 말이다. "헉.. 헉.. 헉.." 어스름할 새벽일텐데, 지금 밖은 부슬비가 내리고 있는 듯 하다. 깊게 잠들어 있던 나는 갑자기 오싹한 기운에 벌떡 일어났지만 내 주 위는 무섭도록 조용할 뿐이다. 꿈을 꾼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잠옷은 땀에 흠뻑 젖어 있었으며 머리카락은 엉켜서 얼굴에 달라붙어 있었다. 무언가 굉장히 좋지 않은 예감이 든다. 그리고.. 도무지 그 꿈내용이 생각나지 않는다. 귀찮은 것은 싫어하는 나이기에 다시 잠을 청하려고 누웠지만 뒤척이 기만 할뿐 도저히 다시 잠이 들지 않는다. 착잡한 마음에 물이라도 마실려고 옆에 있는 탁자에 있는 컵을 들어올 린 순간 컵은 내 손을 유유히 미끄러져 나가 바닥과 충돌하며 강한 마 찰음을 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는 확신 할 수 있었다. 며칠 내로, 아니 조만간 내게 아주 안좋은 일이 생길 거라는 것을. 내가 생각한 것이 엉터리이길 바랄 뿐이다. 하지만.. 예전부터 불길한 내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제길, 이게 뭐야!!" 마차가 싫다는 명목 아래, 왕이 내려준 소박한(절대 호화로운 마차 따 위는 싫다고 거절했다.) 마차에 타고 몇몇의 기사와 성을 출발하고 겨 우 몇 분전에 숲에 들어왔는데 바퀴가 진흙에 빠졌단다. 오늘 새벽부터 재수가 없다고 생각했더니, 이런 일이었나? "좀 내려서 같이 밀어주십시오." "왜? 쟤네들 있잖아. 저 힘좋은 놈들 뒀다가 뭐하게?" "같이 밀어주면 어디가 잘못됩니까?" 어제부터 시온은 내게 뭐가 불만인지 뾰루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계집애 같긴. 지금 마차안에 있는 인간은 넷째 황자 리아란 놈과, 그 재수없는 늙은 이, 그리고 엘프양이 타고 있었다. (저번에 뭐라고 이름을 지껄인 것 같기는 한데, 주의 깊게 듣지 않아서 모르겠다.) 나머지 놈들은 밖에서 말타고 가는 거다. (놈들이라고 해봤자 시온과 셋째 황자, 그리고 그 산적놈 뿐이다.) 그리고 소수의 기사들. 뭐, 그 중에 몇몇이 소드 마스터 어쩌구 하는 것 같았지만 어차피 내 일 아니면 신경 안쓴다. 내가 도저히 내릴 기미가 보이지 않자 이번에는 귀청 떨어지게 소리를 빽 지른다. 이놈 정말 여자 아냐? "그럼 좀 내려라도 주세요! 무거워서 밀지를 못하잖아요." 그 말에 어슬렁어슬렁 마차에서 나와서 옆에 다가가 멀뚱히 구경만 했 다. "구경하실거면 도와나 주세요!" "내가 왜?" "말을 말죠." 알아서 긴다~ 이거냐? 잘 생각했다. (50) 마차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커다란 나무 아래 앉아 혼자서 쓸데없는 생각에 잠긴다. 하늘은 왜 저렇게 파랄까. 이 땅은 왜 또 이런 구리구리한 색인 건가. 라는 생각을 하며 정말 쓸데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낄낄~" "할범! 웃지마!" "남자친구 생각하누?" ".......... 그딴거 없어. 자꾸 주위 썰렁하게 하지마." "낄낄~" "그런데 댁은 왜 따라온 거야?" "어차피 다음 목적지가 플라린스 왕국이었어. 에잉~ 마차좀 같이 타고 다니면 안되남? 요즘엔 늙어서 말야." 아에 이 말을 무시하기로 했다. 절대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는 말들뿐이었으며, 자신이 20대 청 년이라고 주장하는 치매노인과 더 이상 말을 나누고 싶지도 않았기 때 문이다. "뮤즈양~" "네?" 이 왼쪽에 앉아 있는 엘프는 왜 또 쓸데없이 나를 부르는 거야? 그리고 나는 왜 이 엘프에게 존댓말을 쓰는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예쁘군요." ".........." "흠.. 머리가 잘려서 흠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 미모를 감출 수는 없군 요. 호호홋~" ........ 대체 하고 싶은 말이 뭐지? 새삼스레 사람 얼굴이나 감상하자고 하는 말은 아닐테고 말야.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겁니까." "어머~ 무슨 말씀을 그렇게 서운하게 하세요? 말씀 드렸잖아요. 갑자 기 생각나서 하는 말이라고." 왠지 재수가 없다. "누나누나누나~~" 얜 또 왜 이래? "나 결혼 같은거 하기 싫어요오~ 폐하께 잘 좀 말해주세요~ 폐하는 누 나 말이면 다 듣는거 같던데. 히엥.." 내 일 아니면 상관할 이유가 없다. 니가 결혼하든지, 말든지. 그리고 그 황제가 내 말을 잘 듣는다구? 글쎄다. 설마 그렇다고 해도 나는 입아파서 말하기 싫다. "후아~ 겨우겨우 마차 바퀴를 빼내긴 했는데, 아무래도 지친 것 같군 요. 여기서 조금 쉬었다 가기로 하죠." 기사 몇몇들과 내가 있는 곳을 오며 칸이 외친 말이다. "멍청한 것들. 인간이 몇 명인데 저거 하나 가지고 쩔쩔매? 앞일이 고 달프겠군." "호홋~ 뭣하면 저도 제 몸 하나는 지킬 수 있어요. 너무 걱정 마세요." 누가 댁에게 물어봤나? '퍼엉~~~~~~ 쾅~ 우르르~' 에잇, 또야? 나 정말 천재가 맞을까? 그나저나 빨리 치워야 겠군. 3.. 2.. 1.. '퍽~' 내 뒤통수에서 방금 부서져 내린 돌조각 하나가 장렬이 떨어져 전사했 다. "시옷쑤~~~~~~~~~!!!!!!!!!!!!!!!" 귀 안먹었어. 조용히 말해도 시원찮을 판에. 그리고 남의 이름을 왜 저렇게 고쳐서 부르는 거지? "르엔." "너, 내가 대 신전 안에서는 마법 실험하지 말라고 그랬지!!!!" "응." 당연한듯한 나의 말에 잠시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는 르엔이 보인다. "청개구리냐! 왜 자꾸 하지 말라는 짓을 해!" "인간에게는 하지 말라는 짓은 더 하고 싶은 욕구가 있기 마련이지." "그렇게 얻어 터져도 아직도 정신을 못차렸냐!!" 왜 저렇게 땍땍 대는 거지? 오늘따라 히스테리가 극에 달했군. "폭력적인 인간 같으니라고. 정녕 네가 생명을 주관하는 하라트스의 대 신관이란 말이냐." "여신님의 이름을 함부로 입에 올리지 맛!" "너는 말로 살인을 한 인간이야." "난 사람을 죽인 적이 없어!" 키킥, 자꾸 저렇게 벌겋게 열내는걸 보니까 귀엽군. 음, 내가 자꾸 어머니를 닮아 가는 건가? 어머니를 닮아간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면, 내 성격이 아주 파탄적이지 는 않겠군. 그나저나 이 양반은 어디서 뭘하고 있는지, 소식 하나 없는 거야? "죽인적 있어. 넌 내 자존심을 죽였어." "이.. 이.. 이.. 구제 불능인 녀석 같으니라구!!" 자꾸 르엔을 보고 있으면 다혈질의 어머니가 생각 난다. 사실 저것보다 성격이 더 더러웠으면 더러웠지 절대 그 이하는 아니 다. "저기, 대 신관님." 내게 있어서 구세주가 나타났다. 머리를 양갈레로 땋은 견습 신관 하나가 발광중이던 르엔을 조용히 불 렀던 것이다. "크빌르스크 백작께서 오셨는데요." "뭐야? 그 똥돼지 또 왔어? 어제 왔다간 놈이 왜 또 온거야!!" "끅.. 끅, 네 표현력은 정말.." "내가 다시 돌아오기 전까지 이 잡동사니들과 사방에 돌아다니고 있는 돌덩이들이 다 치워져 있지 않는다면 너를 토막토막 내서 신전 점심 식사용으로 쓰고 말겠어!" 하여튼 입버릇 하고는. 흰 신관복을 나폴거리며 가는 르엔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어슬렁어슬렁 방안을 치우기 시작했다. 일주일전에 그냥 배째라는 식으로 나갔다가 정말 칼들고 덤비는 바람 에 꽤 고생을 했었다. 아아.. 생각하기 싫다. 그때 칼에 베인 손등이 아려온다. 그 뒤부터 나는 절대로 저 녀석의 비위를 맞춰주기 위해 노력중이다. 저놈이 저렇게 말하는 것은 헛소리일 가능성은 없으니까. 드래곤의 일기 (외전) - 프라니바투스 - - 프라니바투스 편 - "블루블루블루블루블루~!!" "골드골드골드골드골드~!!" 아아, 벌써 3시간 째다. 알속에 있는 나는 아까부터 바깥에서 들리는 두 남녀 드래 곤의 소리를 세뇌받듯 듣고 있었다. "입닥쳐! 듣고 있는 것도 한계가 있어! 입 찢어버리기 전에 닥쳐!" 귀.. 귀청 떨어질뻔 했다. 하마터면 나는 알에서 나갈 때 병신 드래곤으로 나갈뻔 했 다. 하지만 방금 들린 고음의 하이 소프라노 목소리. 정말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콕 찝어서 말해주었다. 고음의 목소리를 듣고 입닥친 그들은 이제 내가 들어있는 알을 껴안고는 그 여인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말하기 시 작했다. "블루블루블루~~!" "골드골드골드~~!" 참으로 존경스럽다. 쩝. 이 소리를 계속 듣고 있는다면 아마도 나는 얼마 되지 않아 돌아버릴 것 같았기에 지금 태어나기로 결정했다. '탁~' 짧은 발로 알의 껍질을 걷어 찼으나 이게 왠걸? 금가지도 않는다. 하지만 나의 이런 반응을 알아차린, 아마도 내 아버지와 어 머니인 것 같은 드래곤들이 말했다. "역시 골드였어! 내게 신호를 보내 왔다구!" "무슨 소릿! 이건 블루라는 신호라구!" 할말 없슴이다. 빨리 나가서 이런 엽기적인 내 부모의 얼굴이 보고 싶다. 나는 다시 한번 발로 힘껏 알 껍질을 걷어찼다. 제길, 이거 혹시 껍질 성분이 철 아니야? 힘들다.. 힘들어.. 이렇게 고민하고 있는 나는 갑자기 이런 껍질을 깨고 나온 선배 드래곤들이 존경스러워 졌다. 쩝.. '휘익~' 무.. 무슨 소리지? 본능적으로 살고 싶다는 욕망에 그 좁은 알속에서 나는 최 대한 몸을 웅크렸다. '빠직' 허억~... 알 깨지는 소리와 함께 곧이어 시원한 공기가 내 몸을 감싸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나에겐 그것도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으니.. 저건.. 도끼.. 내가 들어있는 알을 깬 물건은 도끼였다. 꽤 멀리서 던진 듯 그쪽을 자연스레 바라보니 밝은 푸른색 의 머리에 엄청나게 연약하게 보이는 여자가 나를 보며 만 족스레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내가 저거 피하지 못했으면 그대로 황천길이었겠지? "골드다~! 골드야!" 소리가 나는 쪽을 돌아보니 약간의 어두운 푸른 빛 머리를 하고 있는 여성과 환한 금발의 아름다운 청년의 모습이 보 였다. 이 드래곤들이 나를 낳은 부모인 동시에 나를 그렇게 괴롭 히던 드래곤들이군. 나는 내 엄마라고 생각되는 드래곤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나를 쏘아보며 이 드래곤은 처음 보는 나에게 상당 히 짜증 난다는 듯이 한마디 던졌으니.. "쳇, 골드네.." 이 대사가 과연 처음 보는 아들에게 할 대사란 말인가? "아아~! 둘다 입닥쳐." 나에게 도끼를 던진 여성이 내게 다가오며 나직히 깔린 목 소리로 말했다. 곧이어 조용해지는 그들. 대체 이 여자는 뭐지? 내가 그녀가 궁금하다는 듯이 바라보자 그녀는 나를 껴안아 머리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일족이 된걸 환영한다. 꼬맹이 헤츨링." 그래! 난 이런 환영 인사를 바랬다구! 이 셋중에 이 여자가 그래도 제일 정상적이군! 헌데 내 부모란 드래곤들은 지금 어떤 종이에 싸인을 하고 있었다. 저게 뭐지? 저게 뭘까? "난 쟤 안키워. 니가 이겼으니까 니가 가지구 가." 나를 힐끔 바라본 어머니는 아버지께 대단히 띠껍다는 듯이 내가 물건인 것처럼 말했고 어떤 종이를 만족스레 바라보던 아버지는 이에 정색했다. "니가 엄마잖아! 너 내기에서 졌다고 화풀이 하는 거야? 나 도 몰라!" 그렇다. 이들의 대화 내용에서 알수 있듯이 나는 애정과 사랑으로 태어난 드래곤이 아닌 내기를 걸어 태어난 드래곤이었던 것 이다. 기가 막혀서 할말을 잃었다. '촤악~' "꺄악~~! 차거!" "윽.."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물벼락. 조금 떨어져 있는 곳에 나를 도끼로 죽일뻔 했던 여성이 물 의 하급 정령을 부리고 있었다. "시크!~~" "이게 무슨 짓이야?" 시크라 불린 여성은 이에 아주 심드렁 하게 대꾸했다. "머리 식히고 정신좀 차라리고.. 애 보는데 부끄럽지도 않 냐? 내가 다 부끄럽네.. 쩝.." 이 엽기 적인 곳에서 유일하게 나라는 존재를 챙겨주고 편 들어 주는 여인. 눈물 나도록 고맙다. 결국 나는 나의 아버지인 골드 드래곤 타이아스크와 살게 되었다. 정말 아버지 따로 나 따로 놀게 된다. 내게 일말의 신경조차 쓰지 않는 저 무관심. 짜증난다. 마법? 책보고 내가 터득했다. 나는 다른 드래곤들과는 달리 해츨링일때부터 내 자신이 아 주 월등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쿠쿠쿠, 이런걸 보고 바로 천재 드래곤이라 하지. 지금 나는 혼자 있다. 아버지는 유희 나간다고 나 띵겨놓고 놀러 나갔고 지금 2년 째 나는 혼자 레어나 지키고 있는 신세이다. 헤츨링은 보호자의 동행이나 허락 없이는 레어 밖으로 나가 지 못하기에 나는 이러고 있는 것이었다. 나갈수 있었으면 벌써 나갔다. 쩝.. 여전히 아버지의 서적들을 훓어본 나는 한권의 책을 뽑아들 고는 그 자리에서 주저 앉아 읽기 시작했다. 드래곤의 모습은 귀찮기에 지금 나는 인간의 9세 정도 되보 이는 모습으로 폴리모프를 했다. "그책 재미 없어." 느닷없이 들리는 나직한 목소리. 뒤를 돌아본 나에게 저번의 그 도끼의 여인이 쪼그려 앉아 내가 읽는 책을 바라보고 있었다. "읽어 봤어요?" "응." "언제요?" "천년 전에.." "어떤 내용이에요?" "몰라. 기억 안나." 드래곤이 맞을까? 드래곤은 보통 자신이 읽은 책이나 지식들은 모두 머릿속에 자연스레 들어오기 마련이다. 지금 날 놀리고 있는 걸까? "니 아빠는?" "유희 나가셨어요." "너 이름 뭐냐?" "없는데요.." 그렇다! 이 아버지라는 드래곤은 내 이름조차도 지어주지 않았던 것 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서럽군. "그 새끼..... 죽여버리겠어.." 음산하게 깔린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갑자기 온몸에 오 한이 일었다. 차라리 그 고음의 하이 소프라노 목소리가 듣기 좋다는 생 각까지 들었다. "너 이름 프라니바투스 라고 하자." 프라니바투스..? 고대어로 축복받은 자...? 나와 너무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군. "네.." 어쨌든 나는 이런 속마음을 감추고는 그녀를 향해 대답했 다. 어쨌든 나에게 이름이란 것을 지어준 드래곤이기에.. "저기요.." "시크라고 불러." "시크, 왜 나에게 도끼 던졌어요?" 나는 저번부터 물어보고 싶은 말을 물었다. 진짜 궁금하다. 그러다가 그 도끼가 내 머리통을 박살냈으면 어땠을까? 아마도 시크는 헤츨링 살해 혐의로 구속될 것이다. "흐음, 그 알깨고 나오는거 힘들지 않아?" "네.." 그러고 보니 꿈쩍도 하지 않았지. "우리 어머니가 내가 알에서 나오려고 아둥바둥할 때 그렇 게 꺼내 주셨거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시크. 그.. 그럼 이런 괴상한 행동이 다 어머니께 물려받은 것이었 단 말인가? "쿠쿡, 그것도 못피하면 드래곤 자격 없는 거지. 어쨌든 이 렇게 살아서 다행이잖아?" 아아, 정말 괴상하다. 내 앞에서 천진난만(과연?) 하게 웃고 있는 시크. 웃는 얼굴에 브레스 뿜을 수도 없고.. "그런데 왠일이세요?" "어? 그냥. 생각나서..." 30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내 존재가 생각났단 말이냐! 그러고 보니 이제 200년 정도만 있으면 나도 성룡이군. 빨리 그때가 와서 독립했으면 소원이 없겠다. "나 잘련다. 너는 그거 읽던지 말던지 알아서 해라.. 뭐, 정 심심하면 나 따라서 자던지.." 그럴 마음 없습니다요.. 곧이어 한쪽 레어 구석에 팍 찌그러져 잠을 청하는 시크. 대체 왜 우리집에서 자는 거지? 정말 시크의 무신경에 혀를 내둘렀다. 아무리 내가 흔들어도 절대 깨어나지 않는 이 위대한 정신 력을 보라! 존경심까지 든다. "시크! 시크~~~!!! 일어나라니까요?" 쓸데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는 시크를 흔들어 본다. "이 쉐끼.. 잠도 못자게.." 아? 드디어 깨어났다. 솔직히 깨어나리라고는 기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곧이어 날아오는 주먹. '퍼억~' 주르륵.. 나는 내 코에서 흐르는 뜨끈뜨끈한 액체를 느끼며 시크를 바라보았다. 눈을 감고 손을 앞으로 뻗은 자세 그대로인 시크. 코피가 입술을 타고 내 입안으로 들어왔다. 짭짤한게 간은 들었군. 허억~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난생 태어나서 처음으로 맞아봤다. 하긴.. 태어나자 마자 도끼로 절단 날뻔 했는데 그것에 비하 면 약과지.. 약과야.. "우웅.." 눈을 비비며 조그맣게 웅얼 거리는 시크. 나는 그런 시크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기분 나쁘게 자는 사람 얼굴을 왜 쳐다보고 지랄이야?" 드래곤이 잠만 지지리도 많은 족속이라는 것은 일찍이 알았 건만 세상에 대체 시크는 정신이 있는 것일까? 자신이 어언 3년을 이곳에서 잠만 잤다는 사실을? 동면긴가? 아니지.. 그건 겨울에만 하는 거지.. 쩝.. "어? 너 왠 코피냐?" 그러면서 쿠쿡 소리를 내며 웃는 시크! 이게 다 누구때문인데! 설마 기억하지 못한단 말이냐! 설마 그것이 잠자면서 잠꼬대 한 것은 아니겠지? "내가 그랬냐?" 곧이어 조심스레 물어오는 시크. "네.." 조심스레 답하는 나.. "하하, 미안.. 내가 잠버릇이 좀 고약하거든.." 알긴 아는군. 나는 소매로 코피를 쓱 한번 훓고는 시크를 노려보았다. "그래요? 잠만 지지리도 많은 드래곤. 어떻게 3년이나 잠을 잘수가 있는 거죠?" "어? 드래곤은 잠 많은 족속 아닌가? 뭐, 3년 밖에 안잤구 만, 세삼스레 왜그러냐?" 당황.. "니 아빠 안왔냐?" "왔으면 이러고 있겠어요?" "하긴.. 강제 소환 시켜 버릴까나? 기다리기도 지쳤는데.. 이 자쉭을.." 강제 소환이라.. 아마 울 아버지란 인간은 오가려고 버틸껄? 지금 한창 재미 쏠쏠할때니 말야. 하지만 그녀의 말이 끝나자 마자 환한 빛무리가 생기며 나 타나는 대여섯명의 사람들. "시크!" 그 중에 한명이 시크를 알아보고 소리쳤다. 그러고 보니 나도 아는 사람이 아닌 드래곤이군. 울 아부지. 한창 유희를 즐기던 때라는 것을 절실히 보여주는 듯 여행 자 차림에 배낭, 그리고 그 옆에 떨거지로 딸려온 동료들. 그들은 지금 상황이 어떤지 이해가 되지 않나 보다. 아마 이해하고 싶지 않았는지도.. 쩝. "안녕~ 타이아스크.. 쿠쿡.." "너 이게 무슨 짓이야! 내가 한창 유희를 즐기고 있을때!!!" 아버지는 다짜고짜 시크에게 대들었다. 아버지의 일행들은 그런 우리를 이상하게 쳐다 보았고.. 그것을 의식한 아버지는 곧이어 손을 한번 흔들어 워프 게 이트를 만들어 강제로 그들을 그 속에 쳐박아 날려 버렸다. 불쌍.. "잘했어.. 타이아스크.. 하마터면 인간들에게 꼴사나운 모습 을 보여줄뻔 했어.." "왜 내 유희를 방해하는 거지? 시크. 이건 분명 명백한 선 전 포고다." 별걸 가지고 화내는 울 아부지. "그으래에~? 니 아들 이름 뭐냐?" 흠칫 하며 나를 돌아보는 아버지. 알 리가 없지. 지어 주지도 않았는데.. "그게 말이야.. 시크.." "일족의 고귀한 헤츨링이 300년째 이름이 없었다라.. 로드님 께서 이 일을 아시면 꽤나 좋아하시 겠군." 낮게 깔린 시크의 목소리. 내가 이렇게 무서운데 아버지는 얼마나 쫄았을까? "그게 아니야! 내가 일부러 그런게 아니라..!!" 열심히 해명하는 아버지..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역시 시크다운 한마디 였다. "개풀 뜯어먹는 소리하고 자빠졌네." 결국 내가 별로 사랑하지도 않는 아버지는 시크에게 죽지 않을 정도로만 맞은 뒤 지금 침상에 누워있다. "무식한 년.. 나쁜 년.. 천년 된 친구를 이렇게 만들어? 두고 보자.." "로드님께 말씀 드리러 가야겠군." 아버지의 말을 들었는지 가볍게 웃으며 말하는 시크. 잔인하다. 정말.. 브레스로 수십번은 굽힌 아버지.. 나까지도 동정심이 생긴다. "아니야! 내가 맞아 죽을 드래곤이야!! 더 많이 때리지 그랬 어! 난 맷집이 좋아서.." 참으로 비굴한 드래곤. 내가 저 성격 닮지 않은게 천만 다행이지..쩝.. "이 얘 이름은 프라니바투스. 고대어로 '축복 받은 자' 라는 뜻이란건 알겠지? 이 얘 이름이 뭐라고?" 아버지께 내 이름을 말해준 뒤 확인차 그녀는 재차 아버지 께 물었다. "프라니.. 뭐더라?" 아주 죽고 싶어 환장하다 못해 바짓가랑이 붙잡고 애원하는 군. "그래..? 생각나게 해줄까? 아주 조금이면 생각 나는데.." 시크의 두 손에 전격 마법이 발산 되는 것을 본 아버지는 황급히 사태 수습에 이르렀다. "프라니바투스! 프라니바투스!!!" 도대체 시크는 어떤 존재 이길래 아버지께서 그렇게 꼼짝을 못하고 당하셨던 것일까? 새삼 시크의 정체가 궁금해지는 나였다. 그 일이 있은후 시크는 약 200년간 우리집에 찾아오지 않았 다. 내가 시크를 다시 만나게 된 것은 내가 성룡식때 로드님의 레어에서 였다. "오랜만이다. 꼬맹이.." 내 머리를 툭 치며 감정없는 목소리로 말하는 그녀가 얼마 나 반가웠는지.. "티아시라스! 빨리 와!" 티아시라스.. 우리 어머니다. 뭐, 태어나고 나서 한번밖에 본적 없지만.. "오랜만이구나. 프라니바투스~!" 그러면서 나를 껴안는 어머니.. 화.. 황당 + 당황 드래곤들은 그런 우리를 보면서 참 모성애가 지극한 드래곤 들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나는 깨닳았다. 어머니의 이런 미소가 영업용(?) 미소라는 것을~! 어린(?) 나에겐 꽤나 신선한 충격이었다. "쿡, 티아. 얼굴에 철판이나 떼고 그런 소릴해라." 이어서 들리는 시크의 목소리. 시크는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말은 저렇게 약간 험하게 하 지만 나를 챙겨 주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아아~ 행복해~! 성룡식이 끝난후에 아버지, 어머니, 시크, 그리고 로드님과 의 면담이 있었다. "으음.. 헤츨링 수가 갈수록 줄고 있어요.. 걱정이네요.." 걱정스런 로드님의 말투. 쩝.. "줄든지 말든지.. 그러는 로드님이야 말로 헤츨링 한 마리 낳지 그래요?" 퉁명스런 시크의 말투. 저 말투에는 분명히 '니가 애 낳지 왜 남한테 낳으라 말라 지랄이야?' 라는 의사가 분명히 베어 있었다. "시크리오프스님!" 시크의 본명이 시크리오프스였던가? 하도 시크시크 하다 보니까 이름이 시큰줄 알았다. 정말 나는 하나도 안중에 두지 않는 말들 뿐이다. 대체 나는 왜 이곳에 있어야 하는 건지.. 아, 그러고 보니 기분 좋은 일이 하나 있었지? 바로 내 레어를 가지게 된다는 것~! 그럼.. 그럼.. 그럼 바로! 맘대로 밖으로 나가고 유희도 즐기 고 인간들을 공갈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나도 어쩔수 없 는 드래곤이었나 보다. 혼자 똑똑한 척은 다하더니만..) 그러고 보니.. 시크가 내게 성룡식의 선물로 레어를 줬다. 너무 기뻐랏~! 헤헷.. 내가 왜 이렇게 좋아하냐구? 내가 사랑하는 드래곤에게 선물 받아서 그런다! 왜?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시크도 꽤나 로드님의 잔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 귀찮았는지 내 팔을 잡아 끌며 억지로 로드님의 레어에서 나왔다. "후와~! 저 늙은이.. 잔소리 하나는 기가 막히게 해요.." 로드님께 이렇게 말하는 것도 드래곤 중에는 시크 뿐일 것 이다. "시크~!" 뒤이어 달려오는 내 어머니와 아버지. "왜 티아?" "으음.." 잠시 신음을 흘리는 어머니. 짜증 난다는 듯이 내뱉는 시크. "빨리 말해! 뭐! 부탁할 것 있으면 말하라구!" "헤헷~ 너무 그러지 마라~ 언니~" "쳇." 아.. 내가 말 안했었나? 시크와 우리 어머니는 친 자매이다. 500년 정도밖에 차이 나지 않는.. 보통 드래곤들은 헤츨링 하나만 낳아도 무슨 대단한 것을 했다고 유세를 떠는데 희귀하게도 헤츨링을 두 마리나 낳은 분이 계셨으니.. 쩝.. 그게 바로 시크와 우리 어머니의 어머니이다. 즉, 내 할머니가 된다는 것이지. "얘좀 어머니한테 데리구 가줘~! 나 바쁘단 말야~!" 어울리지 않게 애교를 떨며 말하는 어머니. 절대로 나에게 아들이나 좀더 자상한 호칭을 붙이지 않는 다. 뭐, 나도 그런걸 바라지는 않는다. "씹, 망할 년아. 니 아들 네가 데리고 가라! 그리고 아들한 테 얘가 뭐야? 얘가? 어머니가 알면 퍽이나 좋아하겠다." 이에 얼굴이 굳는 어머니. 화.. 화나신 것 같군. 그러고 보니 오늘 성룡식때 할머니께서는 오시지 않으셨다. 직접 찾아가서 뵈야 한다나 뭐래나? 우리 아버지는 이미 이 여인네들의 등살에 밀려 저만큼 떨 어져서 귀만 긁적이고 있었다. 충분히 이해가 간다. "흥! 내가 지 부탁 들어주나 봐라." 내 손을 거칠게 잡으며 워프 게이트를 여는 어머니. 사라지는 어머니의 뒤로 시크의 나직한 음성이 흘렀다. "내가 언제 너한테 부탁하는거 봤냐?" 시크~! 나 가기 싫어~! 얼마 후 (드래곤의 수준에서 얼마 후이다.) 시크가 유희를 나갔다는 말을 들었다. 아직 유희라는 것을 즐겨보지 못한 나였으니 나는 시크를 쫓아 내 딴애는 몰래 시크를 뒤따라 갔다. 후후, 이것도 스릴 넘치고 재밌군. 시크가 선택한 동료로는 마법사 하나에 신관 둘, 그리고 검 사가 하나였다. 으음.. 왜 시크가 저 검사에게 유난히 친절한거지? 배알이 꼬인다. 친절하게 검사에게 음식을 건네고 웃고 떠들고 하는 애정행 각(?)을 끝까지 보며 힘줄이 머리에서 불거져나온 대로 불 거져 나온 나는 시크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시크가 나 아닌 드래곤이나 하찮은 인간에게 미소를 지어주 는 것이 싫었다는 표현이 맞는 것일 거다. "꼬맹이.. 왜 따라 왔냐?"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차갑게 나를 내려다 보며 조소하 는 시크. "시크, 미워요! 왜.. 나만 두구..." 항의를 하려는 말을 내뱉고 있는 도중에 아까의 그 재수 디 따리 없고 느끼 & 비약 & 재수없는 검사가 시크를 불렀다. 씹.. 나하구 얘기하고 있는데.. "시크~! 밥먹어요~! 거기 누구에요? 아는 분...?" 그 검사는 시크의 옆에 와서 차~악 달라 붙어(물론 내 눈에 만 그렇게 보인 것이다.) 나를 동물원 원숭이 쳐다보듯이 쳐다 보고 있었다. 재수 없어... "아.. 다르크. 미안해요. 먼저 가서 저녁 먹고 있어요. 난 잠 깐 이 얘하구 얘기좀 하다가 갈께요." "시크, 그럼 빨리 와요~" 시크는 나를 쳐다보던 차가운 눈을 풀고는 그 검사를 향해 따스하게 웃어준 뒤에 다시 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여기서 그 침착하고 점잖고 매사에 차분한 나를(니가 언 제?) 폭주하게 만드는 일이 발생했으니.. '툭..(한줄기 남은 내 이성이 끊어지는 소리.)' 그 미친놈이.. 감히 내 허락도 받지 않고( 니 허락을 왜 받어야 되는데?) 시크의 볼에 키스를 한 것이다. 그후.. 눈앞이 캄캄해지고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시크.. 미워.. "깨어났냐?" 내가 눈을 떠보니 사방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매케한 연기와 뜨거운 불. 그리고 폐허가 된 도시였다. "미친 쉐끼." 거칠게 내뱉는 시크의 말에 움찔하는 나였다. "내 유희를 방해하지 마라." 나를 노려보며 시크가 한마디 한마디를 힘주어 말했다. "시크! 나만 바라 봐요! 유희 같은거 가지 말아요! 왜 내맘 을 몰라주는 거에요!" 진심을 담아 나는 이렇게 소리쳤으나 돌아오는 것은 싸늘한 비웃음. "넌 이제 더 이상 헤츨링이 아니다. 일족의 귀한 헤츨링이 다 해서 돌봐 줬더니 어딜 기어오르려고 하는 거냐? 성룡이 되었으면 좀더 성숙해져야 하는게 아닌가? 더 이상 날 화나 게 하지 마라." 시크.. 왜 그러는 거에요.. 내가 헤츨링이 아니기 때문에 싫어 졌나요? 차라리 그대로 평생 헤츨링으로만 살수 있다고 하면 그렇게 할께요.. 나한테 화내지 말아요. 잠시 그런 나를 차갑게 바라보던 시크는 그대로 내 곁을 지 나쳐 가버렸다. 지나가는 시크의 옷자락을 붙잡고 싶었으나 그렇게 하면 시 크가 나에게 더 화를 낼 것 같아 관두었다. 이제 시크는 내가 알던 나를 귀여워 해주던(언제 시크가 댁 을 귀여워 해줬지?) 시크가 아니었다. 500년이 지났다. 물론 그동안 나는 시크를 한번도 보지 못했다. 시크도 나를 찾아오지 않았고.. 흥~! 시크가 먼저 미안하다고 할 때까지는 나도 용서하지 않을 생각이다.(뭘 용서해? 용서 빌사람은 너 아니야?) 유희를 나갈 생각도 여러번 했지만 시크가 나를 찾아 올수 도 있다는 생각에 나는 꿋꿋이 그 유혹을 뿌리치고 지금 레 어에서 뒹굴고 있다. "프라니바투스~!" 시크? "오랜만이야~!" 아니군. 로이시아루스... 레드 드래곤답게 성격이 개같은 내 또래의 드래곤이다. "안심심했어?" 요즘 나를 졸졸 쫓아 다니는게 상당히 거슬린다. 으.. 이게 시크라면 좀 좋아? "꺼져." 상당히 냉담한 내 반응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들러 붙는 로 이시아루스. 차마 여성체라서 때리지는 못하겠고.. "어머~ 또 그런다. 울 엄마 성격 더러운거 알지? 나 때리면 가만히 안있을걸?" 쳇쳇쳇.. 헤츨링도 아닌게.. 엄마엄마 하구 지랄이야? 로이시아루스가 한 말에서도 알수 있듯이 이 계집애의 어머 니인 레드 드래곤 피아스라아스는 진짜 성룡이 되어도 자신 의 딸을 끼고 산다. 레드 드래곤의 화염의 브레스를 맞지 않기 위해서 나는 필 사적으로 인내하고 있었다. "이번에 시크리오프스님이 유희에서 돌아와 수면에 빠지셨 다는데.." 지나가는 말로 내뱉으며 내 표정을 살피는 로이. 로이는 내가 시크를 좋아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알고 있으면서도 이렇게 나를 공략하다닛! 참으로.. 뻔뻔함의 극치이다. "상관없어." "오호~ 정말? 표정은 그게 아닌데?" 염장 지르러 왔냐? 난 로이를 더 이상 상대하기가 귀찮아 레어 한쪽에 마련되 어 있는 서재로 가서 어제 읽다만 책을 펴 들었다. "무시하는 거야?" 알면서 묻냐? "흥. 시크리오프스님 같은 약한 드래곤이 뭐 볼게 있다고. 헤츨링도 낳지 못하는 몸이시잖아?" '탁!' 소리나게 책을 덮고는 나는 엄청난 살기를 담아 로이를 쏘 아보았다. 이에 지지않고 나를 쏘아보는 로이. '파바밧~' 불꽃 튀는 우리의 눈싸움 중에 불청객이 끼어들었 다. "뭐하냐?" 시크~! "시크리오프스님!!" 어지간히 놀랬는지 주저 앉는 로이. 그도 그럴 듯이 일족 전체에게 사랑(?) 받는 시크니까.. 아 마도 로이가 걱정하는 것은 내가 시크에게 아까 한말을 일 러바치지나 않을까 하는 것일 게다. 헤츨링처럼.... "니가 아까 했던 말은 맞는 말이니까 신경쓰지 마라." 시크! 나와 로이는 이런 시크의 반응에 엄청나게 놀랐다. 시크의 그 더러운 성격이라면 아마도 로이를 반죽음 시켜 놓았을 텐데.. "계속 여기 있을 거냐?" 로이를 힐끔 쳐다 보며 시크가 말하자 로이는 곧이어 인사 를 하고는 텔레포트로 사라져 버렸다. 헤헤~ 귀찮은 짐이 하나 없어졌다. "왜 왔어요?" 난 아직도 시크에게 화났다는 것을 전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뾰루퉁하게 답했다.(계집애군. 계집애야.. 쩝..) "잘려고.." 그 말만을 마치고 눈을 감는 시크. 왜! 왜! 왜!!! 내집에서 자는 거지? "수면 들어갔다고 들었는데요?" "다시 깼어." "치잇.." 투덜거리는 내 목소리에 다시 눈을 뜬 시크는 나를 그 가녀 린 발로 지긋이 밟았다. "말대답 하지마. 어차피 내가 지어준 레어니까 내가 자고 간다는데 누가 말려?" 억지다.. 억지야... 한번 준 선물을 뺏어가냐? 한쪽에 있는 내가 인간의 모습일 때 자주 애용하는 침대에 가서 벌러덩 눕는 시크를 향해 나는 아주 조심스레 말했다. "시크.. 나랑 결혼할래요?" 아무 반응이 없다. "죽고 싶냐?" 그럼 그렇지.. "왜 안되요..?" 나는 이왕 개길거 확실하게 개기기로 마음 먹었다. "말대답 하지 마라. 꼬맹아." "나 꼬맹이 아니에요! 어엿한 성년 드래곤이라구요!" 울컥한 나는 크게 소리쳤다. 일어나서 반듯하게 침대에 앉은 시크가 나를 노려보며 말했 다. "이것으로 넌 나에게 청혼한 7번째 어리석은 드래곤이 된거 야." 허억~ 어떤 자쉭이..(어이~ 당신보다 나이 많이 먹은 드래곤 들이라구..) "그리고 내가 경멸하는 한 부류지.." 시크... 진짜 화났다.. 어쩌지? 하지만.. 진짜 그게 내 마음인걸..? "어리석은 놈." "시크!" 괜찮아. 아직 싫다고는 안했으니까 기다릴꺼야.. 내게 뚜벅뚜벅 걸어와서 그 가녀린 발을 들어 시크는 내 복 부를 걷어차 주었다. "으윽.." "앞으로 만날 일 없을 거다. 그리고 그거 아냐? 네가 내게 한 발언은 충분히 근친상간 감이라는 걸?" 나와 시크의 사이는 급속도로 나빠져만 갔다. 약간의 복수심과 마찬가지로 나는 시크가 하는 일 족족마다 훼방놓기에 바빴고 시크는 그런 나를 씹기에 바빴다. 으음.. 이러면 더 미움 받을 텐데.. 하아.. "어디 가세요? 가이나스카네님..?" 나는 잠깐 나의 레어로 날아가다가 만난 화이트 드래곤 가 이나스카네에게 지나가는 말로 인사치레 물었다. "아.. 프라니바투스님. 시크리오프스님께 내일이 2천년에 한 번 있는 일족 모임의 장이라고 알려드리러 간답니다." 그렇다면.. 시크를 볼수 있어? "제가 대신 전해 드리죠." 너무너무 기쁘다~! 그동안 시크와 나는 서로 못잡아 먹어 안달난 사이였다. 헤헤.. "시크리오프스님~!" 나는 어느새 시크를 시크리오프스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유는 그날 이후로 시크는 내가 자신을 시크라고 부르는 것을 싫어했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그곳에 간 나는 참으로 내 환상이 아주 산 산조각이 났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들은 시크의 마음을 염장 지르기에 아주 적절하다 못해 탁월한 말들이었고 시크는 그런 나를 아주 씹어주었다. 이럴려고 온게 아닌데.. 바보같은 시크~! 정말 밉다.. 시크의 눈치로 봐선 내가 빨리 꺼져 주기를 바라는 눈치이 다. 그래요.. 내가 꺼져 줄께요.. 잘먹고 잘살다가 오크 뼈가 목에 걸려 죽지나 말아욧! 흥.. 유희를 나간 시크를 나는 또 몰래 뒤따라가 우연을 가장해 시크와 만났다. 비오는 날 단둘이 남겨진 마차 안에서 나와 같이 있다는 것 이 싫어 그렇게 싫어하는 빗속으로 뛰어 가버린 시크에게 난 충격을 받았다. 쿠쿡.. 그리고 실연도 함께.. 마차안에 혼자 남겨진 나는 펑펑 울었다. 이제 울지 않을 거야. 두고 보자구요, 바보같은 시크. 나도.. 잔인해질수 있다구요.. 다만 시크가 상처받을까봐 지금까지 그렇게 못했던 거지.. 의외로 시크의 절친한 친구라던 다크 엘프.. 이름이 안나 였던가..? 그 여성체 엘프는 내가 자신의 길드를 몰살 시키고 시크마 저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에 순순히 내게로 넘어왔다. 시크는.. 아마 그 엘프가 배신 했다고 생각하겠지? 쿠쿡.. 시크도 내가 당한 아픔.. 당해봐야 해.. 정말 건방진 왕의 곁에 비위나 맞추며 있게 된후 얼마 되지 않아 시크가 내 손에 들어왔다. 놓아주고 싶지 않다. 시크의 약함을 이용하는 나라니.. 쿠쿡... 하지만 날 이렇게 만든건 시크라구.. 시크가 잠들어 있는 방안으로 들어갔을 때.. 붕대를 감고 누 워있는 시크의 얼굴을 보자 울음이 나오려 했다. 제길.. 마음 같아서는 치유마법으로 치유해주고 싶었지만 이 왕 마음 모질게 먹은 것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어차피 드래곤의 자체 치유력이라는 것이 있을 테지만.. "꺼져." 자신의 상처가 벌어져 피가 흐르고 있는 와중에도 나에게 싸늘하게 말하는 시크. 그리고.. 눈물을 흘린다.. 왜 우는 거에요.. 시크..? 내가 잘못한거에요..? 말해줘요.. 가슴 한쪽이 아려왔다. 쿡.. 약해지면 안돼. 하지만 이런 치밀한 계산 가운데에서도 내가 빠트린게 있었 다. 바로 시크가 블루 일족의 수장이라는 것. 물이 아주 조금이라도 있으면 블루 일족들을 부르기에는 아 주 충분하지.. 계산 착오다.. 하지만 뭐, 원하던 성과는 얻었으니까.. 다크 엘프는 이 일이 끝난후 처리해 버렸다. 시크에게 상처를 입힌 죄는.. 내겐 너무 크거든.. 시크가 데리고 온 인간 남자 아이. 이름이.. 시오스..? 크큭.. 귀여운 이름이야. 그 인간 아이를 데리고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시크의 어머니 이신 화이트 드래곤 하라이스나스님께서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었다. 나의 할머니.. 시크가 너무나 걱정 되었다. 냉정하게 대해도 정이 아주 많은 시큰데.. 역시나 내 앞에서는 아주 당당한척..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 은척 행동하고 있지만 시오스의 손을 잡고 레어로 들어가는 시크의 뒷모습이 내 눈에는 그렇게도 슬퍼 보였다. 장례식에 참석한 뒤부터 자신의 아들 시오스에게 마법과 검 술, 그리고 자신의 모든 애정과 사랑을 담아 주는 시크를 보며 시오스에게 질투를 느꼈던 나였다. 시크.. 역시 시크 곁에 내가 있으면 안되는 거였나요..? 그래도 나 기다릴레요.. 시크가 나를 봐주길.. 기다려도 되죠? 그래도..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진 마세요.. 나도 이제 점점 지쳐가고 있으니까.. (51) "그나저나 프라니 형은 언제 오는 거야? 괴상한 인간이 데릴러 와서 갔는데." 프라니 형은 어머니가 떠난 후 1주 정도를 이곳에 더 있다가, 어떤 드 래곤이 부르러 와서 가버렸다. 그 인간의 몸에서 마나의 양이 턱없이 많았기에 드래곤이라는 것을 알 았다. 잠시 엄청난 마나의 기운 때문에 신전에선 난리가 났으나 그 드래곤은 프라니 형만 데리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뭐, 언젠간 오겠지. 프라니 형의 레어까지 가볼까도 생각해 봤지만, 곧 오겠지. 하는 마음 으로 방관만 하고 있다. 내가 아직까지 왜 이 신전에 남아 있는지는 모르겠다. 나 자신은 프라니 형 때문이라고 위로하고 있으나, 왠지 나는 형 때문 이 아니라도 이 신전에 남았을 것 같다. "너! 아직도 치우지 않았단 말이냐!" 한 곳만을 보며 멍하게 서있었던 당연히 나는 뒤에서 들리는 음침한 목소리에 흠짓 할 수밖에 없다. "아니, 그게 아니라." "변명은 필요 없다." "난.. 네가 이렇게 빨리 올 줄.." "흐흐흐, 오늘은 고기반찬~ 바루 신관님. 식당에 가서 불좀 지펴주시겠 습니까?" 바루라고 불린 신관이 나를 참으로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고는 슬쩍 사라졌다. 설마 쟤 정말 식당 간거 아냐? 프라니형. 형 생각 하다가 내가 이 꼴이 됐잖아요. 어쨌든 이 자리를 벗어나고 봐야겠다. '다다다다다다~~~' "흐흐흐, 저게 감히 도망을 가?" "그렇게 칼들고 웃지 말라구!" "빨리 이리와." "후훗~ 나는 내 발로 사지를 향해 걸어갈 정도로 멍청하진 않아." "여유가 있어졌구나." "이런 일을 한 두번 당해 봐야지." "아직 경험자처럼 말한다 마는 이제 그 입이 닥치게 해주지." "어.. 어딜 다가오는 거야!!" 그걸 마지막으로 나는 죽어라 대 신전 본관으로 도망갔다. 어쩐지 저놈은 내가 하라트스에게 예배드리는 '참배의 방'으로 도망가 면 조용해 졌기 때문이다. "저 녀석.." 도망가는 시오스를 쫓지는 않았다. 내게 충분히 생각할 만한 시간이 필요했기에. 똥돼지 백작을 치료하고 오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나의 디바인 파워. 내 생명력. 눈에 띄게 줄어들어 간다. 아직까지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지만, 나는 황당한 경우를 경 험했다. 똥돼지 백작을 치료하고 있을 때, 흰빛이 나오던 내 손은 갑자기 무엇 에 제지를 받은 듯이 그것이 뚝 끊겨 버렸다. 흰빛의 디바인 파워는 여신의 사제라는 증거. 그게 사라져 버렸다. 내색을 하지 않기 위해 내 생명을 태워 디바인 파워를 썼으나, 꺼름칙 하다. 무언가가 신들과 통하는 통로를 막아버린 느낌이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장로들은 나를 내칠려고 들것이다. 나는 절대 여신이 나를 버렸다고 인정할 수가 없다. "대 신관님.." 잠시 딴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에 하이 프리스트 몇몇과 신관들이 내게 찾아왔다. 이봐들, 난 내 일로도 충분히 머리 아프다구. "무슨 일들이십니까."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하며,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여신께서 저희를 버리셨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이 신전의 모든 신관과 프리스트들이 디바인 파워를 쓸 수가 없습니 다." 역시.. 누군가 고의적으로 저지른 짓이다. 이런 엄청난 일을 저지를 인간은 없는 걸로 아는데. "네라 신관님. 신관님께서는 각 지부와 다른 신전 측에서 이런 일이 있는지 알아봐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카나스, 하이 프리스트께서는 지금 당장 신전의 모든 문을 봉 쇄하십시오. 환자들은일단 모두 집으로 돌려보내고, 아무도 이 신전 안 으로 들이지 마십시오. 절대 디바인 파워가 사라졌다는 소문이 돌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네." "하지만, 대 신관님! 저희 신전은 하라트스 여신을 모신 뒤부터 한번도 신전의 문을 봉쇄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환자들을 그냥 돌려 보 내시겠다니요. 하라트스 여신의 뜻을 거역할 셈이십니까!" 지금 이 상황에 그게 중요한 건가. "지금부터 일어나는 모든 일은 대 신관인 제가 책임을 집니다. 교황청 에서 뭐라고 지껄이든 무시하십시오. 그리고 절대 제 명이 떨어지기 전까지 신전 문을 여는 사람은 용서하지 않겠습니다. 여신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이건 누군가가 고의로 저지른 일입니다. 지금부 터 저는 그 일을 조사하러 나가겠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겠지만, 신전 문을 봉쇄하고, 절대 외부에 이 일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주의하 십시오. 대 신관으로 내리는 마지막 명령입니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새어나간다. 내 디바인 파워가 약해졌다면, 그 여자는? 6개월의 삶을 선고받은 그 여자는? 내 생명력으로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다. 이번 일로 해서 내게 직접적으로 생명력을 받아서 연명하고 있는 그 여자는 꽤 타격이 크겠군. 그 여자를 찾아야 한다. 내 생명력의 이 디바인 파워까지 사라지기 전에 찾아야 한다. 갑자기 덜컥 죽어버리게 놔둘수는 없으니까. 무엇보다 시오스란 놈이 슬퍼할 테니까. 시간이 없다. "죄송하지만, '참배의 방'에 있을 시오스 신도님을 불러다 주시겠습니 까?" 옆에 있던 견습 신관에게 그런 말을 한 마디하자 바로 달려나간다. 서둘러 원인을 조사하고 그 여자를 찾아야 한다. (52) - 황태자 편 - "음식을 드실 때는 함부로 소리내지 않는 법입니다. 자고로 이 나라를 이끌어갈..." 지겹다. 이런 반복되는 일상들이. 내 앞에서 설교하고 있는 저 자식은 뭐야? 내가 어떻게 먹던 지가 무슨 상관이야? "자, 설명을 해드렸으니 다시 한 번 해보시죠." 내게 이래라 저래라 명령하지마. 나는 이렇게 거부하고 있는데 몸은 어느새 저 사람이 시키는 대로 반 응하고 있다. "황태자 전하!!" "무슨 일이냐?" 내가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내 앞에 있던 예절 선생이란 작자는 날카 로운 목소리로 자신의 수업을 방해한 인물을 다그치고 있었다. "황비께서, 황자 아기씨를 생산 하셨습니다." "오오~ 그게 정말인가? 황태자 전하. 기쁘시겠습니다! 이로써 우리 왕 국에 사황자가 생겼군요." "경하 드립니다." 왜 내게 축하한다고 하는 거지? 아기를 낳은 건 내가 아니야. 내 어머니께 가서 경하 드려야지. 이로써.. 동생이 한 명 더 늘었군. 그만큼 왕위 쟁탈이 힘들어 지겠어. "황비께 가보셔야죠." 좀처럼 자신의 수업을 빠트리지 않는 예절 선생 트피리스경도 내 등을 떠밀었다. 가기 싫다. 또 하나의 경쟁자를 보러 내가 왜 가야 한단 말인가? 하지만, 이번에도 내 몸은 뇌의 명령을 거역하고 어마마마의 궁으로 향하고 있었다. "경하 드리옵니다." "호호, 칸트경. 고맙소." 어마마마의 궁은 벌써부터 축하하러 온 귀족들로 가득차 있었다. 침대에 비스듬히 걸터 누워 인자한 눈을 하고 일일이 귀족들의 말에 응답해 주고 있는 여인. 검은 머릿결은 침대에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 고, 아직도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20대 중반의 아름다운 어머니. "황태자 전하께서 납셨습니다." 유모로 보이는 늙은 하녀 하나가 어마마마께 귓속말로 그리 전하자 그 하얗고 고운 이마 위로 살짝 인상이 찌푸려 지는게 눈에 들어왔다. "잘 오셨습니다. 황태자. 내키지 않은 걸음이었는데도 용케 오셨군요." "... 경하 ... 드립니다." "센디! 황자를 모셔와라." 곧이어 센디라고 불린 시녀 하나가 붉은빛 천으로 감싼, 태어난지 얼 마 되지도 않은 아이를 조심스레 안고 내 앞으로 가져 왔다. "이왕 어려운 발걸음을 하셨으니, 황자를 보고 가셔야 겠지요?" 싸늘한 음성. 결코 내게는 부드러운 음성을 들려주지 않는 어마마마. 내 작은 손에 아이를 들려주는 시녀를 바라보며 내 시선은 어느새 새 로 태어난 동생이라는 존재에게 머물러 있었다. 무엇이 그리 불만스러운지 눈을 게슴츠레 뜨고 있었고, 왕가의 상징인 금빛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나와 싸워야 할 존재. 내 밑의 두 동생들은 후궁의 몸에서 태어나 정식 왕위 계승권을 가질 수 없기에 내가 황태자의 자리를 역임하고 있었으나, 나 말고 정식 왕 위 계승권을 가진 존재가 오늘 태어났다. 쿡, 그래 봤자지. ........... 나는 이 자리를 절대로 뺏지지 않아. "황태자의 자리가 위험해 지겠군요. 내 이대로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정식으로 선전 포고를 하는 건가? "저는 이 아이를 절대 인정할 수 없습니다." 마음속에서만 맴돌던 말. 결코 평소의 내 성격으로는 할 수 없었던 말. 나는 그 말을 뱉어 내었다. "배.. 배은 망덕한 놈!!" "말을 삼가셔야 겠군요. 어쨌거나 저는 지금 이 나라의 황태자입니다. 당신과 동등한 지위. 아니, 그 이상의 지위라고 말씀해 드려야 겠군요. 아, 한가지 더 말씀 드려야 겠군요. 여자가 설치면 나라가 망하는 법입 니다. 후훗, 그럼 몸조심하시길.." 이것으로 우리는 완벽한 적대 관계가 된 것이다. 나는 등을 돌려 미련 없이 어마마마의 궁을 나왔다. 이제, 더 강해지지 않으면 안돼. 절대 뺏기지 않겠어. 무슨 짓을 하더라도, 난 당신을 밟고 일어 설거야. 그것이, 내가 6살때의 일이다. "전하! 어디 계십니까!!" 멀리서 나를 찾는 시종의 목소리가 들리자 나도 모르게 칼을 놓아버리 고 말았다. "휴우, 오늘은 이만 하죠." 기사단장이 나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웃는다. 대체 무슨 일이지? "전하! 여기 계셨군요." "무슨 일이냐?" "저기.. 그.. 그게.." "........" "전하께 어서 아뢰지 않고 무슨 짓을 하는 거냐?" 시종은 말을 더듬고 내가 그것을 빤히 바라보고 있자 보다못한 기사단 장 크린트 경의 말소리가 들렸다. "이번에 왕궁에서 파견하기로 한 기사단에 황태자께서 총 지휘자로 임 명되셨습니다." 가끔 툰 산맥에 출몰하는 오크 무리가 있다고 해서 왕궁에서 직접 기 사단을 파견해서 그 놈들을 전멸시키기로 했다. 이것 자체는 아무 것도 아니나, 그 오크들의 뒤에 드래곤이 있다면 그 상황은 달라진다. 이건.. 죽으라는 소리와 같다. 후후.. 어마마마. 당신의 짓입니까. 폐하를 구슬린 재주를 생각하며 경의를 표합니다. "미친! 황태자께서는 겨우 12살이시다!" 기사단장 란트경이 칼을 빼어들고 시종의 목에 겨누며 외쳤다. "살려주십시오. 저.. 저는 다만 .." "란트경, 칼을 치우게." "전하!" "어머님께서 굳이 나를 죽이시겠다면 어쩌겠나. 이번엔 그 장단에 놀 아나 드려야지." "저는 전하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곳에 죽으러 가시겠다는 소립 니까!!" 피를 토하듯 외치는 란트경을 조금은 이해할 수가 있다. 내게는 아버지 같은 사람이니까. "글쎄.. 그럴지도.." (53) - 황태자 편 - 내가 배정받은 기사단은 왕궁의 기사들 중에서도 가장 낮은, 갓 기가 된 새내기들과 이 쪽 방면으로는 잔뼈가 굳은 노련한 기사 몇몇이었 다. 총 합을 해도 30명이 못되는 일행. 아에 나가 죽으라고 대놓고 말하는 건가. 자신들이 죽으러 간다는 것을 아는지 왠지 기사단 사람들의 얼굴은 참 담했다. "황태자 전하.." "란트경. 그대는 이만 가보게." "하지만.." "그대답지 않군." ".............." 그들이 나를 보는 눈빛은 마치 나 때문에 자신들이 죽게 되었다는 의 미와 같았다. 맞는 말이지. 이 인간들이 나와 같이 죽을 동반자들인가. "황태자 전하를 뵙습니다." 전체가 부복하며 고개를 숙인다. "일어나라." 내게 상당히 쌓인게 많았던지, 툴툴거리며 일어나는 그들. 노련한 기사 몇몇은 내 눈치를 보고 있었지만 나는 그것을 신경쓰지 않았다. "........ 미안... 하다." "!?.... 전하! 고개를 숙이시다니요!" 하지만.. 어쩔 수가 없잖아. 저들에게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가족도 있고.. 항상 행복해야 할텐 데 이런 일이 생겨 버렸으니. 우리가 그곳에 가면 죽을 것이라는 사실은 기정 사실이다. 이들은 운이 없게도 나 하나 때문에 같이 죽게 생겼다. "... 그대들에게 정말 미안하게 생각한다." "전하..." 결국 그 무쇠 인간 란트경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진다. "우리는, 살아 돌아올 수 없는 겁니까." 애송이 기사 하나가 조심스레 내게 물어온다. 두 눈은 이미 두려움으로 가득차 있었으며, 얼굴은 창백해 있었다. "아니, 우리는 살아 돌아온다." 확신 할 수는 없다. 다만 조금이라도 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 내가 처음으로 거느리는 기사단. 이들을 이렇게 죽게 할 수는 없다. "나를 한번만 믿어다오. 우리는 살아 돌아온다." 잠시 동안의 침묵. 그리고 내 주위에 모여드는 기사들. "전하께 이 목숨 다 할 때까지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이건 전하께 죽으라는 말과 같았다. 이 나라의 황태자이시다. 여자 하나의 말로 휘둘러질 그런 사람이 아니란 말이다! 자신에게 내려진 사형 선고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전하를 바라보며 무력한 나 자신을 느꼈다. 황비가 얼마나 교활하고, 태자의 자리를 노리는 줄은 잘 알고 있었으 나 직접적으로 목숨을 위협 할 줄은 몰랐다. 황제 폐하께서는 정말 자신의 정통 후계자를 죽이실 작정이란 말인가. 내 누님이 전하만 남기고 돌아가신 후 내 아들처럼 전하를 길러 왔다. 내가 이렇게 전하를 아끼는 것은 핏줄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누님이 돌아가신 후로도 침착하고 눈물 한방울 보이지 않은 모습이 나를 아프 게 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 미안... 하다." "!?.... 전하! 고개를 숙이시다니요!" 지금까지 철저히 강인한 척을 해 오셨지만 아직은 어린아이일 뿐이다. 한낮 기사들에게 고개를 숙이는 어린아이일 뿐이다. 난.. 이 분을 지켜드릴 수가 없다. 내 자신이 너무도 비참하다. 이 상황을 두 눈을 뜨고 지켜봐야 하는 이 현실이 너무도 비참하다. "우리는, 살아 돌아올 수 없는 겁니까." 누군가가 물었다. 어떤 대답을 듣고 싶은 거지? 너희보다 더욱 괴로운 것은 이 작은 소년일 뿐이다. "아니, 우리는 살아 돌아온다." 조그맣지만 힘찬 목소리. 부릅뜬 눈에서는 자신감이 어려 있었으며, 두 손은 꽉 쥐고 있었다. 이 한마디를 뱉어 내시기까지 얼마나 힘이 드셨는지 짐작 할 수 있었 다. 자기 암시 처럼 한마디한마디 중얼거리시는 것을 보면서 그 분은 내가 지금까지 어리게 보아 오던 그분이 아니었다. 진정한 이 나라의 주인. 황제의 자질을 가지고 태어난 이의 그것이었다. 한순간 기사들을 압도하는 카리스마. 절대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제왕의 힘. 그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언제까지나 어리게 보았던 이 분은 더 이상 소년이 아니라는. 그리고 다시 살아서 돌아오시리란 것도. '누님, 당신의 아입니다. 당신의 목숨을 버려가며 지킨 아이입니다. 한 번만 더 지켜 주십시오. 사지로 걸어 들어가는 당신의 아이를 지켜주 십시오.' (54) - 황태자 편 - "하악, 하악."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내 앞에 있는 상대를 노려보았다. 돼지 머리를 한 몬스터. 우리는 그들을 오크라고 부른다. 어디서 구했는지는 엉성하게 생긴 도끼를 쳐들고는 나를 내려치려 하 고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내 검이 그 놈의 배를 갈랐고 그 배에서 쏟아지 는 내장이 키가 작은 내 얼굴위로 떨어졌다. 하지만 이 공격으로 나는 왼팔에 깊은 검상을 입어야 했다. 비릿한 향내가 풍기며 내 코를 마비시켰지만 지금 나에게는 그게 중요 한 것이 아니었다. 내 앞에서 달려드는 저 놈부터 처리해야 했기에. "전하! 어서 이쪽으로!" 몇 명이 죽어나갔는지는 모르겠다. 주위를 둘러봐도 내게 남아 있는 사람은 4명 뿐이다. 애송이들은 모두 죽었는지 시체가 굴러다니고 있었으며, 전장의 경험 이 많은 몇몇 기사만 살아남은 것 같았다. 그 중에서도 몇몇은 과다 출혈을 일으키고 있었으며, 떨어져 나간 팔 을 붙잡고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제길, 신관 하나 딸려 보내주지 않다니." 악에 받친 듯이 중얼거리는 노년에 접어든 기사를 보며 나도 모르게 화가 치밀어 올랐다. "죽으라고 이런 곳에 보낸 여자가 신관 따위를 챙겨줄 여유가 있었겠 나." "전하..." 황비에 대해 마구마구 씹어 주던 이들은 곧이어 다시 검을 들 수밖에 없었다. "또냐? 저 놈들은 지치지도 않나?" "간단히 잡을 수 있는 진수성찬이 여기 있는데, 다가오지 않는다며 오 히려 이상한 거겠지." 아까전 전투에서 우리가 만만치 않은 실력임을 알았는지, 놈들은 섣불 리 덤벼들지 않고 우리 주위를 에워쌌다. 아무리 숫자가 적어도 경계하고 볼 심산인가 보다. 저 돼지 머리로 어떻게 이런 전략을 생각해 냈는지. 나, 원 참. 점점 지쳐 온다. 차라리 이대로 쓰러져서 자고만 싶다. 우리의 체력이 떨어지길 기다리는 건가.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인지 정신을 차리기가 어려워 진다. 이대로.. 포기해야만 하는 건가. 살아서 돌아간다고 했는데.. 궁전 안에서 유일하게 나를 걱정하고 있을 란트경이 떠오른다. 시체만 남아서 가면 또 잔소리를 퍼부을까? 아아.. 그러고 보니 시체나 남을련가 모르겠군. 정말 사람은 죽을 때가 되면 쓸데없는 기억들이 떠오른다고 했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나를 이곳에 보낸 어마마마 마저도 보고 싶은 심정이라니. "어이~ 저 놈들 여기 왜 온거냐?" 처음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환청인 줄로만 알았다. 이 산 속에 여자가 있을 리는 만무하니까. "이봐들, 그 장난감은 내려놓으라구." 그녀를 꿈인 듯이 한참을 바라보던 우리는 그녀의 한 마디에 놓고 있 던 정신을 차렸다. 주위에 우리를 에워싸고 있던 오크들은 이미 없어진지 오래였고, 그녀 는 팔짱을 끼고 거만하게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경계의 눈초리로 쳐다보자 약간은 귀찮은 듯이 뭐라고 그녀가 중얼거 렸지만 자세히 뭐라고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갑자기 졸음이 쏟아지는 것을 느끼며 멀어져 가는 의식의 끈을 잡고 싶었으나, 너무 피곤한 탓에 의식은 내 몸을 떠나고 있었다. 하아, 눈을 떴을 때 오크 뱃속이면 어떡하지? "어머니, 레어까지 데리고 가죠." 그 목소리를 끝으로 나는 깊은 잠에 빠졌다. '촤악~' 뭐.. 뭐야? 갑자기 차가운 물이 내 위로 떨어지자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나 버렸 다. "윽.." 왼팔의 상처는 아무렇게나 붕대로 둘둘 말아져 있는 상태였고, 옆을 보니 나를 따르던 기사 몇몇이 정신을 추스르고 있었다. "으아.. 머리야.." "여긴.. 어디지?" "아직 죽지 않은 건가?" 서로의 안전을 확인하고 있을 때 고음의 목소리가 우리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시오스야~~~~~~~~~~~~~~~~~~~~" 누구를 부르는 듯 했지만, 그것에 신경쓰지 않고 먼저 경계를 했다. 하지만 우리의 행동이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그녀는 우리를 계속 노려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나도 따라서 노려보았으나 왠걸? 씨도 안먹힌다. "빨리 안나와?" "네네네~ 지금 나갑니다~" 나와 눈을 마주친 채로 그녀가 다시 한번 소리를 치자 어느 한 곳에서 앳된 목소리가 들리더니 문으로 생각되는 곳이 열리며 6~7세 정도로 보이는 남자 아이가 뒤뚱거리며 걸어온다. 아이..? 도저히 이 상황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누구십니까." (55) - 황태자 편 - 내 대신 묻기라도 하는 듯이 나이가 많은 노년의 기사가 물었다. 그녀에게 물었는데 그녀는 왠지 시큰둥한 반응이고, 그 아래에 있던 꼬마가 대신 대답했다. "이 곳의 주인이요." 견고한 돌벽으로 다듬어진 곳. 아니, 정확히 검은빛의 대리석을 다듬어진 곳이라고 해야 알맞을 것 같다. 이런 동굴에 대리석으로 이렇게 다듬을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군데군데 조각상도 눈에 띄는데 하나같이 정교한 작품들이다. 보통인간이 사는 곳이 아니다. 내가 그녀에 대해 이런저런 추리를 하고 있을 때 또다시 누군가가 말 문을 열었다. "설마.. 드..래..곤?" "딩동댕동~"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실실 웃으며 말하는 꼬마 아이. 여기가 말로만 듣던 드래곤의 레어란 말인가. 이미 나를 따라왔던 기사들의 얼굴에는 죽음이라는 공포심이 드리워져 있었다. "산넘어 산이라더니.." 누군가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저 말이 맞는 것 같다. 겨우 몬스터를 피했나 싶었는데, 이건 아주 늪에 빠진 격이다. 지금 그녀의 모습을 보니 심기가 많이 불편한 것 같았다. 여기까지 그래도 살아왔는데, 이대로 여기서 죽을 수는 없다. 조금이라도 승산이 있는 쪽에 패를 걸자. "위대한 드래곤이여.." "별로 위대하지는 않는데.." 할말없다. "......... 저희를 어떻게 할 생각이십니까." "글쎄, 먹어버릴까? 어이~ 그렇게 울상 짓지 말라구. 해본 소리니까. 그나저나 툰 산맥까지는 왠일이냐?" "오크를 진압하려고요." "겨우 그 수를 가지고?"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나를 죽이기 위한 일이니까요. 괜히 쓸데없는 인간들을 더 보내게 되어 내가 살아나기라도 하면 안되 지 않습니까. 그녀는 내게 이 일을 꼬치꼬치 캐물었고, 살아 나가고 싶었던 나는 모 든 일에 대해 말해주었다. "그러니까 네가 황태자란 말이냐?" "...... 네." "오호~ 그래? 대단한 분이시군." 왕족에게 무슨 원한이라도 있는 건가? 그녀에게서 충분히 비꼬는 음성이 들린다. 이 드래곤은 이상하다. 내가 알고 있던 잔인하고 냉철한 드래곤이 아니다. 우리에게 호기심을 드러내고 있지만 왠지 마음이 탐탁치않은지, 우리 와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는다. 살아 나갈 수 있다. 이 드래곤은 우리를 무사히 보내줄 것 같았다. 왜 냐고는 묻지 마라. 어쨌거나 살기 위한 나의 직감이니까. "계약을 해 주십시오." 드래곤은 자신과 계약을 맺은 인간은 싫든 좋든 무조건 적으로 도와준 다.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어쩌면 이것은 어마마마께 대항하라고 신이 내려준 기회일 수도 있다. "계약?" 조금은 호기심을 보이며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은 재미있는 장난 감을 찾아 낸 것만 같은 모습. "황태자 전하!!" "조용히 하시오. 네. 위대한 드래곤이시여. 제가 왕위에 오를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이 한마디로 인해 겨우 잡은 기회를 잃고 목숨마저 잃어버릴 수도 있 다. 나도 간이 커진 건가. 그녀는 뜻밖에도 자신에게 얻어지는 이득을 물었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조건을 말했다. 드래곤이란, 재물의 욕심이 많은 종족이니까. "매년 드래곤을 위해 축제를 열고 제물을 바치겠습니다. 그리고 나라 의 수호신으로 모시겠습니다." "이봐이봐." "네?" "제물? 대체 무슨 제물을 말하는 거냐?" "인간." "흐흐흐, 인간? 일없네, 이 사람아. 난 여기를 탁아소로 만들고 싶을 생각은 없어." "그럼.." "난 지금 충분히 내 지위에서 모든 걸 얻을 수 있다. 그런 내가 인간 과 계약을 할거라고 생각하나? 그리고, 수호신? 장난 하냐? 그럼 내가 평생 네 나라를 지켜줘야 한다는 의미잖아!" 거절.. 당했군. "내 집에서 나가라. 인간들이여." 화가 난듯한 그녀의 말에 기사들은 순간 낭패의 기색이 비쳤다. 이 몬스터들로 우글거리는 이곳에 이 정도의 인원으로는 잡아 잡수세 요, 라고 선전하는 것과 다름없다. 배째라는 식으로 이곳에서는 절대 못나간다는 우리를 그녀는 한참동안 말없이 바라보더니 자신의 옆에 있는 꼬마를 한번 쳐다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좋아. 그렇게 해주지. 좌표 대." 살았다는 표정의 기사들. 왠지 그 곳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이 기쁘지만은 않다. 실패했으니 또다시 내 목숨을 노리겠지. 다음에는 드래곤의 목이라도 갖다 바치라는 명이 떨어질지도 모른다. 어마마마는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여자니까. "왕국에 돌아가서, 드래곤이 너를 지켜 준다고 해라. 내가 너를 지켜줄 일은 없겠지만, 그렇게 말한다면 누가 너를 건드리지는 못할테니." !? 나를.. 지켜준다고? 귀찮은 듯이 말을 했지만, 그 말속에는 내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의미 가 담겨 있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황제가 되는 날. 이곳을 다시 찾 아오겠습니다." "오면 죽어~!" 왠지 그녀다운 말투라고 생각된다. 이름을 묻는 나의 말에 그녀는 시크리오프스라는 이름을 말해주었다. 시크리오프스.. 고대어로 '자비로운 여왕' 이라는 뜻. 기억하겠습니다. 내 이름을 말하려는 순간 갑자기 머리가 어지러워지더니, 속이 울렁거 리는 느낌 속에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내가 깨어난 곳은 익숙한 내 방 안이었다. 언제나처럼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란트경이 있는 그곳이었 다. (56) "뭐라고 하셨습니까?" 눈에 띄게 흠칫거리며 나를 돌아보는 시온을 보며 나는 어제 저녁에 생각했던 대로 다시 한번 말해 주었다. "그러니까, 가다가 툰 산맥에 들렀다 가잔 거야." "........... 누나 미쳤어요?" 솔직히 여기서 실질적인 리더는 나니까 내가 가자고 하면 가는 거지, 왜 이렇게 잔소리들이 많아? 그리고 저 놈은 플라린슨가? 플로리슨 가? 하는 왕국에 늦게 가면 더 좋은 거 아냐? "그곳엔 드래곤의 레어가 있다구요.." "응." "엑? 알면서 가자는 거였어요?" "흠.. 이상하군요. 뮤즈양, 왜 툰 산맥으로 가자는 거죠?" "친구가 있거든." "낄낄~ 그래, 그 친구가 드래곤이라는 거냐?" "조용햇! 뒷일은 내가 책임질 테니까 무조건 내가 가자고 그러면 가는 거얏!! 알았어?" 빽하고 소리를 지르자 일시에 입이 닫쳐지며 고개를 돌려버린다. 죽어도 억울하지 않게 장사는 지내줄 테니 걱정 말라구!! "쳇, 독재자." 저노므 시키가!! "좋아, 가도록 하지." "스승님~!!!!" "에잉~ 칸, 조용히 해라." "흠.. 드래곤이라.. 하지만 그곳까지 가는 도중 만날 몬스터가 더 시급 할 것 같은데요." "걱정마, 엘프~ 에잉~ 내가 대 마법사라니까." 자칭 위대한 대 마법사인 늙은이가 그렇게 말하자 불신의 눈초리로 늙 은이를 쏘아보는 인간들. "험험.. 뭘 그렇게 보시나." "쳇, 자뻑도 어느 정도여야지." 조용하게 중얼거리는 내 말을 들은 옆의 엘프와 시온이 쿡쿡거리는 소 리가 귀에 들어왔다. "에잉! 왜 웃는 거야?" "쿡.. 아니에요." "아닙니다. 아무 것도." "난.. 이 젊은 나이에 죽고 싶지 않아요. 히잉..." 누가 너 죽인데? 그나저나 저번처럼 신혼여행 갔으면 어쩌지? 이놈들이 나를 그냥 놔둘 리가 없는데. 뭐, 지금 사서 걱정할 필요가 있나. 그때 가서 잘못했다고 빌면 되지. "어머니를.. 찾으라고?" "그래." 어떤 신관 하나가 르엔이 급하게 찾는 다고 해서 와봤더니 기껏 지껄 인다는 소리가 이런 말이다. "내가 어떻게?" "혈연의 정 같은게 있지 않나? 안그러면 마법으로 찾으면 되구." 내가 무슨 사람도 아니냐? 혈연의 정? 그런게 있을 턱이 없잖아. 어머니와 나의 친부모가 아니니까. "마법이 그렇게 쉬운줄 아냐? 적어도 어머니가 남기고 간 물건 하나쯤 은 있어야 되다구." 내가 아무리 천재 라지만 없는 물건까지 만들어 내라고는 하지 마라. "정말 없어?" "거짓말 하겠냐?" "흐음.." "그런데 어머니는 왜?" (57) "그게.. 조금 그렇게 됐어." 뭘 숨기고 있는 거지? 표정이 이상하다. X 씹은 것 같은 얼굴. 흐흐흐, 감히 이 시오스님을 속이려 들어? "My baby~~~" "뭐.. 뭐야!!!!!!" 부비부빗 거리며 머리를 품에안고 쓰다듬자 얼굴이 빨개지며 도망가는 르엔이 보인다. 저게 저렇게 넘어가려 들어? 진실을 말할 때까지 부빗 거려주마!! 르엔을 쫓아가려던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버렸다. '나.. 나도 드디어 어머니의 마수를 따라하고 있는 건가. 그 더러운 성 격을? 헐, 제발 폭력성만은 어머니를 피해갔으면...' "어이.." ".........." "부빗거리지 않을 테니까 일루 와." "널 믿느니 네가 키우는 저 똥개를 믿겠다!!!!!!" 쿠웅.. 내가 개만도 못한 인간이었단 말인가. 잠시 내 발밑에서 내가 콩고물을 주길 바라는 시크를 쳐다본 뒤에 르 엔을 바라보았다. "내가.. 개만도 못하단 말이냐!!!!!!" "어? 이야기가 그렇게 되나?" "죽여 버릴테닷~!!!!!!!!!!" 두 팔을 걷어 붙이고, 음침한 얼굴로 르엔을 향해 다가가자 르엔은 또 다시 도망가기 시작했다. "저기, 대 신관님! 알아 오라고 하신 것.." 내가 쫓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르엔은 간크게도 멈춰서더니 지금 말한 인간에게로 뽀르르 달려가 버렸다. "시오스! 잠깐만~~ 이건 공적인 일이야! 이 일 끝나고 결판을 보자구!" "알았어." 여튼, 자기가 할 일은 칼이란 말야. 어리니까.. 저렇게 어리니까.. 조금은 놀아도 괜찮을 텐데. 르엔을 처음에 봤을때는 차가운 인상에 놀줄이라고는 모르는 아이 같 았다. 아랫사람들에게 얕보이지 않기 위해서일까?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자기 자신을 잘 아는 아이였다. 그러고 보니, 내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르엔을 저 모양을 배려논 사 람이 나라는 소리를 하고 싶었던 건가. "대 신관님, 대 신관님의 말씀대로 저희 신전뿐만 아니라 제가 알아본 모든 신전에도 저희와 같은 이상이 발생했습니다." "역시..." "신들께서.. 저희를, 이 인류를 버리신 걸까요." 떨리는 음성으로 묻는 프리스트를 바라보았다. "신은 우리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믿음을 주기 위한 말일지도 모른다. 이 프리스트에게만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믿음을 주는 말인지도 모른 다. "어떻게 하지요? 지금 신전 바깥에서 신도들의 항의가 자꾸 들어오고 있습니다." "무시하세요! 지금 그게 중요한게 아닙니다!" 아아, 그 장로 늙은이들이 날 잡아먹으려고 안달이 났겠군. "야~ 르엔! 아직도 안끝났냐?" "저 바보." "네?" "아무 것도 아닙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신관들이 당황하지 않게 주의 를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그 여자를 어디가서 어떻게 찾는다.. (58) "여길......." "올라가자고..?"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한참을 툰 산맥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인간들이 갑자기 나에게 돌아 서며 소리를 빽 질렀다. "도대체가 끝이 안보이잖아요!! 끝이!!!!!!" 하핫, 나도 이렇게 높은 줄 몰랐다네. 그냥 매일 텔레포트해서 다니길래 보통 산맥인가 보다 했지. 누가 이 정도로 무식할거라고 생각이라도 해봤나? 그나저나 카라드시크, 이 놈. 매일 날아다니면서 어지럽지도 않나? (참고로 드래곤은 고소공포증 자 체가 없다. 그러므로 시크리오프스의 걱정은 사서한다는 소리밖에 안 된다.)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그나마 가장 현실적이며 냉혈주의자인 시온이 그 특유의 서늘한 눈으 로 나를 노려본다. "어? 올라가야지." "혼자 올라가욧!!" 갑자기 터져나온 함성. 뭐가 그렇게도 불만인 거야? 그럼 올라가야지, 날아가리? 아, 날아가? 그렇지. 날아가면 되잖아? "할범~" "20.대.청.년. 낄낄~" 노망든게 확실해. "날아가자." "이 인원을?" "응." "못해, 임마!!" 냅다 소리지르는 할범이 이상하다. 왜 이 인원이 안된다는 거지? 도합 해봐야 20명도 안되는데.. "흘흘, 내가 아무리 대 마법사라고는 해도, 이 덩치들을 운반하라고?" "그럼 기사들은 떼어놓고 가." "우리는 누가 지켜주냐?" "설마 여기 바보들 중에 자기 몸 하나 지킬줄 모르는 바보 있겠어?" "너 있잖아, 너!!" 할범의 말에 공통적으로 다시 나를 쳐다본다. 이봐이봐, 쑥스럽다구. 오늘따라 주목을 참 많이 받는군. "저 결혼하러 가는 꼬맹이는, 그래도 전직이 도둑이라 위험이 닥치면 도망갈수 있는 빠른 발이 있지, 저 엘프는 숲에 대해서는 가히 천재적 이며, 정령술도 알지. 그리고 칸, 이놈은 내 수제자니까 왠만한 마법은 구사할 줄 알테고, 저기 산적놈과 시온이라는 놈도 칼 꽤나 쓰는 놈들 같은데.. 너만 별 볼일이 없잖앗!!" "이봐이봐, 나도 칼 꽤나 쓴다구." 나를 무시하지 말란 말이야. "니가? 칼을? 좋아좋아, 지가 쓴다는데 누가 말려? 믿어주지." 왠지 정말 짐덩어리로 취급 받는 듯한. "그런데, 어쩌냐? 이 넓은 산맥에서 어떻게 드래곤 레어를 찾냐? 아참, 그보다 우리가 먼저 브레스에 구워지겠구나. 브레스에 구워지면 조금 이라도 영광인 건가? 하급 마법에 죽지나 않아야 할텐데." 할범, 난 다 죽더라도 당신만은 살아남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오. 죽여도 죽여도 벌떡벌떡 일어날 것만 같은 그대. 흐흐흐, 실험 해보고 싶군. "그럼, 롬님과 칸 황자께서 저희들이 날.아.갈. 수. 있.게. 도움을 주십 시오." "호홋~ 저도 도울수 있는데. 저도 정령마법은 꽤 하거든요. 저 이외의 한 명 정도는 거뜬해요." "그럼 다 된거 아냐? 그나저나 쟤들은 어쩌냐?" 내가 귀찮다는 듯이 슬쩍 기사들을 돌아보자 모두들 고개를 가로젓는 다. "놔두고 가죠 뭐." "네엣? 호위로 따라온 놈들인데 놔두고 가자뇨!" 저 꼬맹이 하여간 할 말 다하고 사니까 입이 마르진 않겠다. "그럼 네가 데려가리?" 우리들은 지금 짐덩이가 되어버린 기사들을 바라보며 어떻게 처리(?) 할 것인가 대해 심각하게 논의하고 있다. 그냥 몬스터 밥으로 주자는 이야기도 있었고(내 의견이다. 하지만 당 연히 기각!), 왕궁으로 돌려보내자!(칸과 시온), 알아서 기다리게 놔두 자!(꼬맹이와 그의 부하 산적.) 쓸데없이 그런거 걱정해서 뭐하냐? 그 냥 알아서 쓱 처리해 버리고 묻어놓자.(자칭 20대 청년.) 그냥 불쌍하 니 데리고 가자!(엘프.) 걔중에 왕궁으로 돌려보내자가 그래도 제일 타당성이 있는 말이었고, 가장 정상적인 방법이었기에 뇌물과 협박과 공갈을 약간 들먹여 정의 와 쓸데 없는 의무감에 타올라 있는 기사라는 인간들을 왕궁으로 돌려 보낼수 있게 되었다. 나중에 왕이 뭐라고 하면 어쩌지? 하긴, 내가 언제는 뭐 그런거 일일이 신경쓰고 살았냐? 편한게 편한거지. (59) "툰 산맥이 높다는 말은 들었어도.." "그나저나 위로 올라오니 정말 썰렁하네요." "썰렁하기보다는 추운 것 같은데.." "쓸데없는 소리는 나중에 내려가서 하고 레어나 찾아 봐!!" "쳇, 우리는 거기에 볼일도 없는데." "자기가 가자고 해놓고선.." 내게 들리지 않게 속닥이고 있었지만, 내 귀에는 다 들린다. "닥.치.고. 찾아주지 않으련?" "대체 어느 근방인지 감이라도 잡아야 말이지." 하긴, 나라도 이 넓은 산맥에서 카라드시크를 찾는 다는 것은 불가능 하다. 좌표도 다 까먹었는데. 쓰읍. "호홋~ 대 마법사님. 마법으로 찾으면 되지 않나요?" "오오~ 그렇군. 마나가 무식하게 응집되어 있는 곳만 찾으면 되니까!" 그렇군. 저렇게 쉬운 생각을 내가 왜 못했지? 그나저나 저기서 우리에게 날갯짓 하며 다가오는건 또 뭐야? "가고일이다!" 가고일? 아아~ 내가 날아다니는거 자주 잡아서 이쑤시개 대용으로 썼던건 기억 난다. 저것들, 왜 여기로 몰려 오는거야? 것도 한 두마리가 아니네? 설마 단체로 여기 모여서 반상회 하는 것은 절대로 아닐테고, 그런다 고 우호적으로 오는 것은 저 거대한 날개짓으로 보면 절대 무리일 것 같고, 그럼 겨론은 하나인가? 맛있는 반찬으로 먹으려고 오는 것이겠군. 역시, 살다 보면 이런 것도 저절로 터득하고, 세상은 참 살기 좋은 세 상이야~ 내가 이런 쓸데없는 자화자찬에 빠져 있을 때 이미 시온과 산적은 바 스타드 소드를 들고 힘겹게 가고일을 막고 있었다. 공격? 꿈도 못꾼다. 오로지 막기에만 급급하다. 공중이라 이 정도로 중심 잡는 것도 대단 하다. 역시 인간의 타고난 순발력이란.. 드래곤은 느려 터진 생물체인 데. 뭐, 신이 꼭 불공평한 것만은 아니다. 그나저나 참, 저놈들도 간이 아주 커졌군. 한낫 이쑤시개가 나에게 개기다니. 이 몸의 실력을 발휘해 주지. 나는 지금까지 존재감 자체를 잊고 있었던 왼쪽 허리에 채워져 있는 칼을 빼들었다. '챙~' 빼어들자 마자 가고일의 발톱에 의해 동강난 칼. 내 눈앞에는 끔찍하게 생긴 이쑤시개가 날 보며 씨익~ 웃고 있었고, (정말로 웃었는지 그딴건 모른다. 다만 내 눈에는 웃고 있는 걸로 보 였다.) 그 커다란 부리를 벌리는 순간 누군가에 의해 가고일의 머리통 은 날아갔다. "에잉~ 짐만 된다고 했잖아!! 엎드려 있어!! 에구~ 이 늙은 것이 힘이 어디있다고.." 한방에 가고일 머리 날리는거 보니까 보통이 아니구먼 그려. "저기야! 저기!! 저기에 드래곤의 레어가 있을 거야! 마나가 응집....... 끄아아아아악~~~" "으악~~~~~~~~~~" "사람살려~!!!!!!!!!!" "할범! 죽여버릴테야!!" 이 비명소리의 정체는 바로 그 노망난 할범 혼자서 열내고 있다가 자 신도 모르게 플라이 주문을 해제 시켜 버린 것이다. 할범이 자신이 우리를 책임질 수 있다길래, 엘프도 정령을 쓰지 않고 이렇게 왔건만, 후회가 밀려온다. 하지만 뭣하리? 이미 늦은 것을. 할범, 기억해 두시게. 내가 살아남는다면, 꼭 그대의 시신이라도 찾아 서 밟.아.주.겠.네. 아래를 향해 고공낙하를 하던 나는 뭔가 이상한 것을 느꼈다. 몸이.. 더 이상 떨어지질 않는다? 위에서는 시온이 두둥실 뜬채로 한심한 듯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으며, 나만 떨어지지 않은게 아니라, 일행들 모두가 멀쩡했다. 뭐가 어떻게 된거야! "시온! 너도 마법사 였냐?" "멍청한 놈." (60) 많이 듣던 말투다. 저, 나를 깔보는 듯하며, 싸가지 없고, 재수 만땅의 비스무리한 면상에 빈정거리는 듯 한 놈은 내가 알기로는 한놈밖에 없다. "카이오네스!!!!!!!" "내 본명이 나오다니, 꽤나 놀랬나 보지?" 왜 이렇게 태연한 거냐! "너너너!!" "너? 끝말을 맺어." "으윽.." "일단 내려가서 말하지." "그래, 그러자꾸나." 뭔가가 정리가 안된다. 카네스가 시온이었다니? 그럼 내 정체를 알고 있다는 소리? 어떻게? 나를 아는 드래곤은 프라니바투스 밖에.. 설마 그놈이 불었나? 입도 싼놈 같으니라고. "뭐하냐? 안들어 올거냐?" 어느새 거대한 레어의 입구에 내려앉은 나는 다짜고짜 카네스의 멱살 을 붙잡았다. "너! 내가 누군 줄 아냐?" "전대 블루 드래곤의 수장이자, 자칭 자비의 시크리오프스. 아닌가? 그 리고 지금은 공작 집안의 레이디 뮤즈양." "장난하냐?" 그 순간 내 뒤에서 아주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몇 천년간을 옆에서 듣던 목소리. "제 집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전 블루 드래곤의 수장이시여.." "카라드시크.." 그럼, 그 할범이 카라드시크였단 말이냐. "너 상당히 내게 쌓인게 많았나 보구나." "하핫, 그렇게 보였나요?" "어머~ 시크리오프스님에게는 저는 보이지도 않나요?" 호.. 혹시.. "엘프!!" "제 이름도 못 외우시나욧!!" "아아~ 비루나스마." 카라드시크의 부인. 성격 더러운 레드 종족. 라그네시크의 딸내미. "너희들이 왜 한꺼버에 나에게 들러 붙어 있었던 거냐." "죄송합니다. 고의가 아니었어요." 그래그래, 어련하시겠어? 하긴, 고의였으면 맞아 죽었다. 너네는. "그런데 나머지들은?" "아아~ 칸과 드란, 그리고 꼬마는 기절했습니다." 참, 간도 연약하지. "좋아, 그건 그렇고 어떻게 나를 알아본 거야?" 물으나 마나 프라니바투스 그놈이 불었을게 틀림없다. "응? 지 성격 개주냐?" 메.. 메야? "네 성격보고 딱 알아봤지." 저놈.. 천재였나.. "이러면 얼마나 좋겠느냐 마는, 불행히도 우리에겐 그럴만한 능력이 없단다. 당연히 프라니가 가르쳐줬지." 그럼 그렇지. 뭔가가 심오하고 복잡 미묘하게 뒤엉켰다. 대체 이 놈들이 내 앞에 나타난 진짜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라고 이 놈들에게 묻는 다면 나오는 답은 단 두 마디일 것이다. "심심하잖아." "재밌잖아." (61) "그런데 왜 내 눈앞에 나타난 거냐?" "그냥. 외줄 타는 것처럼 보기 아슬아슬해서." "뭐가?" "혼자서 그렇게 끙끙 앓지 말라구, 친구." "보기 안쓰럽습니다." 너희들이 나에 대해 뭘 안다고 그렇게 말하는 거지? 내가 보기가 아슬아슬하고 안쓰러웠다고? "그래? 속여먹으니까 재밌든?" "응." 난 최소한 아니라는 대답은 할 줄 알았다. 하긴, 저 단순한 놈에게 그런걸 기대한 내가 바보인 걸까. "끄악~" 꼬맹이의 비명소리가 레어 안에 쩌렁쩌렁 울리자 그곳으로 일제히 시 선이 모아졌다. "벌레다..." ........없애 버리고 싶다. "일어났냐?" "누님~" 내 품에 포옥 안겨 부빗거리는 녀석을 보고 있자니 어렸을 때의 시오 스가 생각난다. 그놈이 이 정도로만 애교가 넘쳤어도. "무서워쪄요." "그래그래." "근데 여기가 어디에요? 우리 분명히 떨어지지 않았어요?" 그래, 떨어지긴 떨어졌지.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나를 쳐다보는 꼬마를 바라보자니 싱긋하고 웃음이 나왔다. "드래곤의 레어. 그리고, 떨어지긴 떨어졌는데, 저 할아범이 정신차리 고 다시 마법을 시전해서 별다른 피해는 없었다." "아~ 그렇군.. 뭐라구요!" 놀래라. 갑자기 왜 소리를 지르는 거야. 꼬마는 갑자기 레어 안을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한숨을 폭 내쉬었다. "여긴 드래곤의 레어라구요! 그런데 왜 드래곤이 없죠?" "아무도 없긴. 여기 있잖아." "에잇~ 드래곤 말이에요, 드래곤." 슬쩍 카네스와 카라드시크를 바라보자 고개를 돌리고 외면한다. 저게 말해도 좋다는 소리야, 아니면 말하지 말라는 소리야? "으응.. 나중에 오겠지 뭐." "정말 누나 친구 맞아요?" "그럴껄?" "에잇~ 그런게 어딨어요? 대답 여하에 따라 우리의 목숨이 달려있다구 요." 대답 안해도 살텐데. 그리고 니가 걱정하는 드래곤은 여기 우리 눈앞에서 빙글거리며 웃고 있는 저 녀석들인데. 이걸 어떻게 설명하지? "으윽.. 여긴 또 어디야?" "제길, 이상한 곳으로 떨어진거 같네." 꼬마를 차례로 인간들이 깨어났고, 주위를 둘러보는 폼이 영~ 어색하 다. "형님~ 살아있었군요~" 그럼 죽었으랴? "무사하셨군요." 산적의 걱정스러운 목소리. 무사하는게 당연하잖아. (62) "자자자~ 어머? 모두들 정신 차렸네요? 호호홋~" 잠시 잊고 있었다. 이 드래곤을. 손에는 커다란 쟁반을 들고 각종 비스켓과 음료수를 가지고 오고 있었 다. 저걸 다 어디서 난거지? 설마, 매일 손님을 위해 비축해 두는 건가? 에잇! 쓸데없는 노파심이다. "근데 이거 어디서 난거에요?" "응? 창고에서요. 호홋~ 안심해요. 안썩었어요." "그게 아니라.. 드래곤이 이런것도 먹나요?" "음.. 취미생활인가 보죠, 뭐." 아에 내가 드래곤이요~ 라고 대놓고 광고를 해라. 그런데 왜 비루나스마는 안나의 모습을 한거지? 그리고 왜 레드 드래곤 답지 않게 요조 숙녀인 척? 내가 너 어렸을 때 기저귀 갈때부터 봐왔지만 저런 모습은 처음이다. 지 엄마 닮아가지고 성격도 더러운게. 지금 많이 참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군. 어이, 참으면 병난다구. "카네스." "왜?" "이놈들 잠깐만 수면 마법 좀 걸어줘." "..... 슬립!" 말이 떨어지자 마자 픽픽 쓰러진다. 이 참에 피로나 풀라구. "....... 원하는게 뭐냐?" 웃으면서 쓰러진 그들을 바라보고 있던 카라드시크 부부가 순간 그 자 리에서 움찔한 것을 봤다면 착각인 걸까? "좋아. 말하지." "흐음.." "카이오네스님." "넌 빠져라." 무슨 일인지 카네스가 말하던걸 말리려던 카라드시크는 카이오네스의 한마디에 입을 다물었다. "프라니바투스, 음.. 그러니까 그놈이 조금 이상하다." "뭐가?" "저번에 우리를 찾아와 네 행방을 말해줄 때 비웃고 있었거든." "그게 뭐가 이상하다는 거냐?" 얼마나 니네들이 못나 보였으면 그랬겠냐. "그게 아냐. 요즘에 그놈이 종족들을 소집한다고 들었다." "체육 대회라도 하려나.." "장난하지 말고 들어! 그렇게 쉽게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왜 저렇게 어울리지도 않게 심각한 표정을 짓는 거냐. "그놈 분명 뭔가를 꾸미고 있어. 예전부터 교활한 놈이었잖아." "그랬나?" "당한 놈이 그걸 기억 못하냐!!" 그런거 기억 못할 수도 있지. 일일이 어떻게 따지고 사냐? "시크리오프스님. 이건 자칫하면 정말 큰일이 일어날수도 있습니다. 조 금은 심각하게 생각해 주십시오." "몰랐냐? 난 더 이상 드래곤이 아냐. 내가 관여할 일은 아무 것도 없 어. 너희들이야말로 왜 그러는 거지?" 순간 카네스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다. 내게 다시 입을 연 카네스의 목소리는 지금까지 내가 들어온 카네스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침착하리만치 조용하며, 냉기가 가득찬 목소리. "좋아. 우리가 잠시 어리석었군. 예전부터 유난히 네게 말하면 모든 일 이 수월해지고는 했지. 후후, 네가 드래곤이 아니라는 사실을 깜박했 어. 하지만 이것만은 알아둬라. 우리가 우려하는대로 벌어지길 바라는 바는 아니지만, 이 일은 자칫하면 로드님의 생명을 휘협한다. 이미 프 라니바투스는 골드 드래곤 특유의 현명함과 교활함, 그리고 힘을 앞세 워 이론적으로는 로드님을 뛰어 넘었다. 그 놈이 무슨 일을 꾸미려 한 다면, 한가지밖에 생각할 수가 없지. 로드님이 잘못되면 너의 아버지인 드라시아쿠스님도 잘못되리란걸 알고 있겠지?" (63) 결국 결론이 그건가. 프라니. 그 바보 같은 놈이 그런 짓을 저지를 이유가 없잖아. 결국 나는 이 말만은 입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어쨌든, 만약이라는 가능성이 있으니까. "카이오네스님, 너무 과잉반응이 아닐까요?" "카라드시크. 그 놈이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잊었단 말이냐." "무슨 소리야?" 내가 모르는 뭔가의 대화가 그들 사이를 오갔다. 잠시 난처한 듯이 나를 쳐다보는 그들이 왠지 거북스럽다. "호호홋~ 저는 이들에게 모포나 덮어 줘야 겠어요. 그럼 계속 이야기 들 나누세요." 자신은 빠지겠다는 의도인지 슬쩍 사라지는 비루나스마. "프라니가, 그러니까... 하참.." "말해." 카네스가 곤란한 듯이 얼버무리자 할 수 없다는 듯이 카라드시크가 입 을 열었다. 두 눈에는 자신에게 이 일을 떠넘긴 카네스에 대한 원망이 담겨 있었 으나, 차마 카네스가 연장자여서 그렇게 대놓고 불만을 표하지는 못하 는 것 같다. "프라니바투스님께서 이 대륙의 모든 신들과 신관들이 통하는 길목을 차단하셨습니다." "그래? 그게 어때서? 예전부터 기록을 보면 그런 일은 종종 있지 않았 었나? 드래곤은 신과 동등한 존재. 프라니가 한 일이 뭐가 잘못榮募? 거지?" 잠시 머리를 젓고는 카네스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쉰다. "정말, 너 머릿속에 든게 있기나 한거냐!! 차라리 기억을 지우고 오지 그러냐! 하긴, 왜 천계에서 네 기억을 지우지 않았는지 알만하다. 그 머리에 든게 없으니, 지우고 말것도 없었겠지." "죽고 잡냐!! 네가 그러고도 정녕 친구라고 부를수 있단 말이냐. 흐흐 흐, 쓸데없는 이야기 그만 지껄이고 본론만 말해." "아직도 생각나지 않은 거냐? 그런 일을 했던 드래곤들 대다수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무슨 일을 저지른다니. 말이 되는 소리를... 서, 설마.." "그 설마가 맞을 거다." 지금까지 드래곤의 역사상에 드래곤이 직접 신들의 힘을 차단한 것은 단 4번 있었다. 마지막으로 일어났던 일이 드래곤들의 입으로 전해진 때는 약 12만년 전으로 기억된다. 드래곤은 신과 대등한 존재. 신은 천계에서 띵까띵까 놀고 드래곤은 땅에서 논다는 점이 다를 뿐 힘은 동등한 위치에 있다. 다만 신들은 좀더 오래 산다고 할까? 신들이 자신들 보다 인간계에 간섭하는 일들이 많은 드래곤들을 견제 하기 위해서 만들어 낸 것이 신들의 아주 미약한 기운을 받은 신관이 라는 존재다. 드래곤에 대항하기는 미흡한 종족이나, 드래곤은 우호 협정 때문에 신 관에게는 직접적인 해를 끼치지 않는다. (뭐, 나라를 파멸시킨다고 브 레스를 뿜었는데 신전도 홀라당 타버린 경우는 신들에게 몇가지 선물 과 변명을 하면 땡이다.) 이것들을 만들어 낸 이유는 천계의 법칙으로는 신들은 인간들의 운명 에 직접적으로 간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드래곤은 지금까지는 신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하지만 지금 고의적으로 신관들과 신이 통하는 길목을 막아버렸다는 것은 조금 복잡한 사태를 의미한다. 어차피 신관들이란 정말 신들의 아주 약한 일부분만을 이용해 쓰는 존 재들이기에, 그 신들의 기운이 통하는 길목을 막는 것은 아주 간단한 일이다. 다만 그걸 막고 난 뒤의 일이 걱정이지만.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샜군. 어쨌든 지금까지 그 길목이란 것을 막은 드래곤은 4마리가 있다고 들 었다. 드래곤 종족의 최강의 로드에게 불만을 품고 있던 놈들. 드래곤 로드는 한번 임명되게 된다면, 그건 사상 최대의 드래곤이라는 뜻이다. 로드가 되는 드래곤은 모든 신과 드래곤들에게 인정을 받으며, 그 교 만한 신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게 된다. 로드는 강하고 절대적인 군주이다. 로드라는 직위에 대항하는 드래곤 들은 없었고, 로드도 그에 한해서 자신의 임기에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이런 로드에게도 대항하는 무리들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들이 취한 첫 번째 방법은 신들이 신관들을 통해 강림하지 못하도록 길목을 막는 것이었다. 신들은 인간들의 일에는 관여를 하지 못하지만 상대가 인간이 아닌 드 래곤의 일이라면 그 상황은 달라진다. 일단 쿠데타가 한번 일어나게 되면 꽤나 시끄럽기에, 각 분야의 상급 신들이 파견된다. 그들은 로드를 지지하며, 일당 드래곤 서너마리는 상대할 수가 있다. 하지만, 그들도 그 길.목.이 막혔다면 강림하지 못할터. 신관들은 신들이 없으면 무엇하나 쓸 수 없는 바보들이다. 신들도 만약 이 법칙을 무시하고, 신관들의 몸에 강림하려 한다면 신 관들은 신력이 없는 상태이기에, 몸이 터져 죽고 만다. 지혜로운 드래곤들은 쿠데타를 일으킬 때 항상 신들의 길목을 차단한 다. 한번 차단한 길목은 그 드래곤의 직접적인 해지 마법이나, 본인이 죽 기 전까지는 영원히 발동된다. 그건 신들도 어쩔수가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쿠데타가 일어났을 때는 로드와 그의 측근들만으 로 모든 일을 해결해야 했다. 말로만 최강의 드래곤이 아니다. 그것을 실천이라도 하듯이 지금까지 쿠데타를 일으켜 성공한 드래곤은 한 마리도 없다. 쿠데타 자체를 일으키는 것도 힘들거니와, 로드의 지위는 그야말로 절 대적이었다. (64) "머릿속에 정리 다 됐냐?" 갑자기 한꺼번에 이런걸 생각하다 보니 머리가 멍~ 하다. "대충은." "그럼 무슨 사태가 일어날지 짐작은 가겠네." "그러니까, 그걸 프라니가 꾸미고 있단 말이냐?" "..... 최악의 경우는." 최악의 경우라. 설마 그 놈이 정말? 항상 바보같이 쫓아다니고, 교활하긴 했어도 괜찮은 놈이었는데. "프라니.. 어디있지?" "그게 걱정이야. 행방이 묘연하다. 감시자를 붙여놓긴 했는데 따돌린 모양이야." "그럼 이번 일에 골드 일족 모두가 참여한다는 건가." "쿠데타가 일어나게 된다면 그들은 자신들의 수장을 따르겠지." 저번의 그 오싹한 느낌이 이것 때문이었나? 프라니! 무슨 생각인 거냐. 제발 어리석은 일은 꾸미지 말아라. 단순한 장난으로 넘어가기에는 일이 심각해 졌다. "그럼 그 놈을 먼저 찾아야 한다는 거냐?" "일단은." "찾아서 뭘 어쩌겠다는 거지?" "우리 힘으로도 놈을 막기에는 조금 벅차다. 어쨌거나 최강의 일족인 골드족이니까." "프라니가 발뺌을 한다면?" "그때 가서 생각해 봐야지. 그래서 말인데, 프라니는 네 말은 들을 것 같다." 안들을 걸? 저번 신전에서 있었던 일로 제법 삐져있을 테니까. 삐진 것만이면 다행인가? "내겐 할 일이 있어." "안다. 저 인간들을 데려다 줘야 한다는 것쯤은." "알면 다행이구." "내가 텔레포트로 저 인간들은 무사히 플라린스 왕국 앞뜰에 버려주 지. 대신 너는 조금 협력해 줘야 겠다." 내가 드래곤이 아니란 것을 의식하고 있는 걸까. 카네스의 말투에는 상당히 깔보는 투와 무시가 섞여 있다. 역시 몇 천년 우정은 아무 것도 아니라 이거냐? "마음대로 해라. 먼저 프라니를 찾도록 하지. 그놈이 갈만한 곳은?" "네가 더 잘 알지 않나?" 저 녀석.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그 놈이 갈 곳을 내가 어떻게 아냐구! 마치 지금 카네스가 나에게 하는 소리는 모든게 내 탓인 마냥 탓하는 것 같다. 이봐이봐, 나는 이 일에 아무 죄도 없다구. "카이오네스님. 그만 하시죠." "내가 뭘?" "더이상 저희들의 수장님을 욕보이지 마십시오." 역시! 카라드시크! 너밖에 없다. "수장? 지금의 수장은 너지 않나? 지금 시크리오프스는 하찮은 인간밖 에 되지 않는다. 아까 자신이 말했던 것처럼 말야." 카네스. 못본새에 왜 이렇게 삐뚤어 진거냐. "죄송합니다. 시크리오프스님. 왠만해서는 시크리오프스님 모르게 일을 처리하고 싶었으나, 프라니바투스님께서 나타나지 않으셔서 혹시나 시 크리오프스님과는 접촉을 하시리라 생각해 저희들이 주위에 있었던 겁 니다." 그래그래, 나는 미끼다. 그나저나 이 꼬맹이에게 미안해서 어쩌지? 거기에 어머니란 인간 대신에 참석 하기로 했는데. 내가 없다면 얘 혼자 쓸쓸할거 아냐. 칸이 있다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는 그 놈은 남자니까. 걱정스러운 눈으로 꼬마가 누워있는 쪽을 힐끌힐끔 쳐다보니, 카네스 의 눈살이 다시 찌푸려 진다. 저놈, 성격이 왜 이렇게 변했어? 예전에는 무뚝뚝해도 정이 많은 놈이었는데. 아주 성격이 더러워 졌구만. "걱정되나?" "별로." "표정은 그게 아닌데?" "신경 꺼." (65) 잠시 동안의 침묵. 아무래도 찔린다. "야, 그냥 나 저 꼬마 약혼식에 따라가야 겠다." "이제와서?"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 쟤 엄마도 없잖아." "언제부터 그렇게 불우이웃을 도왔냐?" "비꼬지 좀 마!" "내가 언제?" 세월이 많이 간 것도 아니고, 단지 몇 년 내가 없었던 것뿐 이다. 아무래도 카네스는 정서불안 같다. 몇 년 사이에 정신 연령이 헤츨링 수준으로 떨어지다니. "잠깐 바람 좀 쐬고 오지." 카네스가 나가고 나서 카라드시크가 내게 다가오더니 고개를 푹 숙이고 입을 열었다. 얜 또 왜이래? "카이오네스님은 두려우신 겁니다." "뭐가 말이냐?" "시크리오프스님께서 또 그렇게 떠나실까봐 두려운 겁니다." ........... 저렇게 콕 찝어서 말하니 할 말이 없다. 그 녀석, 그래서 내게 거리를 두고 있었던 건가? 생각보다 마음에 담아두는 쪼잔한 녀석이군. 아니, 여리다고 해야 할까? 그래도 나는 전에 그 카리스마가 뚝뚝떨어지는 놈이 그립다. 어쩌다 저렇게 계집애처럼 툴툴대게 됐는지. 어쨌거나 달래줘야 하겠지? 나 때문에 벌어진 일 같으니까. 내가 왜 이런 역할까지 해야 하냐고.. 안그래도 충분히 프라 니와 저기 잠 퍼자고 있는 놈들 때문에 머리가 두 쪽으로 갈 라질 판에. 카네스를 찾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마치, 나 여기있어. 와서 위로좀 해줘~ 라는 포즈로 레어 앞 에 긴 머리를 미친 듯이 휘날리며 앉아 있는 카네스. 고독을 씹는 거냐? "뭐하고 있냐?" "............" 내 말을 씹는 거였구나. "내 죽음이 그렇게 충격적이었냐?" "............" "지금 계집애처럼 꿍해 가지고는, 입은 오리 주둥이가 되어 있고 안다 알어. 얼마나 속으로 내 욕을 해댈지." "............" 이래도 말을 안한다 이거냐? 대체 얼마나 꼬여있는 거야~! "말해! 이 바보 같은 드래곤놈아! 말 못해?" 멱살을 잡고 마구 뒤흔들자 그 차가운 눈이 나를 쳐다보며 일순간에 내 손목을 뿌리친다. "귀찮게 하지마." 한다는 말이 겨우 그거냐? 내 드래곤 생애 몇천년을 저 놈하고 같이 생활해 봤지만 이 정도로 삐진 것은 처음이다. 아니, 삐진걸 못봤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싸워서 삐진쪽은 나였고 저놈은 달래주는 쪽이었으니까. 이놈의 이런 태도에 당황스럽기만 하다. 것도 헤츨링이 이러면 이해가 간다! 고룡에 가까운 놈이 이게 뭔 짓인지. (66) '쫙' 손바닥이 카네스의 뺨을 때렸고 고개가 약간 돌아간 상태에서 카네스 는 입을 열지 않았다. 힘이 조금 들어갔는지 흰 뺨이 붉게 부풀어오르고 있는 것을 본 나는 약간의 죄책감 비스무리한 것이 들었다. '쩝, 조금 심했나?' "너야말로 대체 왜 이러는 거지?" 낮게 깔린 목소리를 들으면 이 놈이 지금 엄청나게 화가 났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바보같은 짓 하지마. 예전의 카네스로 돌아와라." 잠시 허공을 바라보던 눈동자가 내 얼굴로 돌아섰다. 자신의 손을 들어 내 뺨을 천천히 쓰다듬던 카네스는 이내 피식 웃음 지으며 일어났다. "얼굴이 많이 달라. 시크리오프스와. 이번 얼굴이 예쁘긴 하지만 예전 이 더 좋았어." "그걸 이제 알았냐!!" 내가 장난스레 카네스의 목을 조르자 켁켁대며 빠져나오려는 그놈을 꼭 안아주었다. "보고 싶었다. 시크리오프스." "누구는 보고 싶지 않아서 이러고 있었는 줄 아냐?" "천하의 네가 인간으로 환생하다니." "환생한게 아니야. 이 몸은 어쨌거나 망할 천사 놈 때문에 임시로 쓰 고 있는 거라구." "어련하시겠어. 그 성격에." "호호홋~ 두분이서 뭐하고 계시나요? 사랑의 밀담?" 내가 막 반발하려는 차에 아까 도망갔던 비루나스마가 어느새 내 뒤에 서 고개를 불쑥 내밀고는 예의 그 호호홋~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죽을래? 드디어 눈이 맛이 갔구나. 이게 밀담으로 보이냐?" "그 말투를 아는 드래곤과 사람이라면 시크리오프스님을 절대 잊지 못 하죠." "칭찬이냐..?" "호홋~ 글쎄요." 아무래도 칭찬이 아닌거 같지? "그나저나 시크야, 로드님을 찾아뵙지 않을 거냐?" "내가 왜?" "이놈이 그렇게 설명을 해줬건만!!" "로드님의 일이야. 로드님께서 전적으로 부탁하시기 전까지는 손도 안 댈거야." 수줍은 소녀처럼 여리게 미소짓던 로드님이 생각나며 코끝이 찡해지긴 했지만, 어쨌든 프라니가 정말 쿠데타를 일으킬 생각이라면 로드님께 서 가만히 있지 않으실 테니까. 여성체라고 해도 어쨌든 현존하는 최강의 드래곤. 그렇게 쉽게 로드 자리를 빼앗길 분이 아니다. "많이 강해졌구나." "아니죠~ 그건 무식하고, 차가운 거죠~ 로드님을 알고 지낸지가 몇천 년 짼데 저렇게 냉정할 수가~" "드래곤이 정에 끌려 다니는 타입이었나? 공과 사는 분명히 해야 하는 거다." "그런데 로드님은 이 일을 알고 계시는 거냐?" "모르시는거 같던데." 메.. 메야? 그럼 뭐하자는 거야! "너네 말 안했냐? 자칭 로드님의 심복들이란 것들이." "우리가 말 안해도 아시겠지. 지금이 워낙 시끄러운 시기잖아." 로드님이 천재냐? 가만히 있어도 니네 마음을 알아주고 혼자 처리하시 는 무슨 해결사냐? 하루종일 레어에 박혀있는 양반이 그걸 어떻게 알겠냐! 여튼 윗 대가리는 가만히 있는데 아랫것들이 지네들끼리 쑥덕대는 꼴 이라니. 나중에 로드님을 만나면 심복부터 제거하라고 말씀 드려야지. (67) "너 지금 우리 로드님께 우리를 어떻게 하면 나쁘게 말할것인가에 대 해 혼자서 끙끙거리고 있지? 아냐, 네 성격같으면 우리를 제거하라고 말할지도." ......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지? 그냥 어색한 듯이 웃을까? "아하하, 곧 비가 올 것 같네. 레어가 부실 공사로 새지는 않겠지?" "호홋~ 걱정마세요~ 우리 그이와 둘이서 본체로 있어도 끄떡 없답니 다." "꼭 생각하는거 하고는.." 흐흐, 말을 돌릴때는 이렇게 돌려야 하는 것이야. 오랜만에 말 돌리기에 성공한 나는 혼자서 베실베실 웃으며 레어 안으 로 들어갔다. 하지만 내가 들어가고 나서 이들이 나눈 말을 나는 죽어도 모를 것이 다. "여전히 푼수지?" "호홋~ 말 돌리려는 의도가 가상한데요?" "쯧, 저렇게 식은땀을 흘려서야. 불쌍해서 더는 묻지 않았다만.." "생각하는게 얼굴에 나타나는 분이네요." "그걸 한마디로 이렇게 말하지. 단순한 놈." "아, 카이오네스님은 어떻게 됐습니까?" "잘됐어~ 헤헤~" 레어안으로 들어와 기쁜 듯이 헤헤거리자 무척이나 우리 둘을 걱정했 는지 카라드시크의 얼굴에도 곧 미소가 피어올랐다. "다행이군요." "그나저나 그것 말고 또 다른 일은 없어? 예를 들어 헤츨링이 태어나 지 않아 걱정이라든지." 환생하기 전에 천사놈이 요즈에 헤츨링 자리가 없다며 난리치던 것이 생각나 넌지시 물으니 카라드시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아, 헤츨링이요? 음.. 3개월 전에는 옆 산맥에 사는 그린 드래곤 브리 인스가 득남을 했고, 일주일전에는 펠룬 산에 사는 화이트 드래곤 사 라미나루가 딸을 보았다죠. 보다시피 헤츨링들이 남아도는 실정... 시크 리오프스님?" 나는 이미 그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속았다. 이상하다 했지만, 그래도 고이고이 넘어갔는데! 잊고 지냈던 그 망할 천사놈의 얼굴과 내가 드래곤으로 환생하고 싶다 고 했을때가 떠올랐다. 그렇게 생긋생긋 웃으면서 뒤로는 호박씨를 깠다 그거지? 기다려라. 천사 놈아. 어째 잊혀 질만하면 나와서 내 속을 긁어 놓는 거냐. 아직까지 데리러 오지 않았다면 잊혀졌을 가능성이 많군. 어차피 얼마 남지 않은 생명이다 흐흐흐, 그때 거기서 보자구. 최후에 웃는 자가 승자니라. 쓸데없는 곳에 복수심을 날리는 위대한 나였다. "어? 쟤 왜 저래? 아주 활활 타오르는 구먼." 혼자서 레어 천장을 바라보며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불타오르는 나를 들어오며 발견한 카네스가 카라드시크에게 궁금하다는 듯이 묻는게 귀 에 들어왔지만 나는 조금더 이 상황을 즐기고 싶었다. - 싸이코 일지 도. - "모르겠습니다. 헤츨링의 상태를 물으시더니 갑자기 저러시네요." "아직도 눈치 못채겠냐? 카라드시크, 저 놈은 낳고 싶어도 헤츨링을 낳지 못했잖아. 그러니 그 고약한 심보가 터진 거겠지."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만.." 내게 들리지 않으려는 듯이 속닥거리기 했지만 유난히 귀가 밝은 나는 다 들린다! "난 우리 시오스가 있다구~ 헤츨링 따위는 없어도 돼! 나는 우리 시오 스가 최고니까!" "자기 암시겠지." 그 날, 레어에서 카네스는 대패로 죽도록 맞아야 했다. 드래곤이 맞고 있는 그 엄청난 상황도 모른채, 여전히 마법에 곯아 떨 어져 있는 일행들과 저걸 어떻게 말려야 하나 하면서 혼자 고민하는 카라드시크. 그리고 결정적으로 쉬었다 하라면서 내게 다과를 건네는 비루나스마. 다시 깨닫게 된 사실이지만, 로드님의 심복중에는 제대로된 드래곤이 없다. (68) "더이상 동행을 같이 못하시겠다구요.." 겨우겨우 이들을 깨워서 텔레포트로 산 아래까지 온 나는 약간 미안한 마음으로 꼬맹이에게 말했는데, 의외로 이들은 담담한 표정이다. "미안하다." "엘프누나와 할아버지, 시온형이 드래곤이었다니." "충격이냐?" "조금은요." 이들은 지금 모든 일을 나에게 맏기고는 저기 멀리서 셋이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다. "그냥 너 따라가도 되는데." "아니에요, 누나도 일이 있는거 같은데요. 여기까지라도 동행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너 어쩌냐? 보호해줄 기사도 없는데." "당분간은 궁으로 돌아가 있으려구요." "텔레포트 시켜줄까?" "헤헷~ 부탁해도 될까요? 뭐 마지막 선물이라면.." 웃으며 말했지만 눈은 쓸쓸함이 깃든다. 하긴, 나도 조금 아주 조~금 정은 들었으니. "이번 일이 끝나면 찾아가지." "정말요? 정말이죠?" 눈을 빛내며 말하는 꼬마의 머리를 한번 쓱쓱 쓰다듬고는 칸쪽을 바라 보니 예전에 자시의 스승이었던 카라드시크를 바라보며 큰절을 하고 있었다. 카라드시크. 솔직히 가르쳐 주긴 열심히 가르쳤을 것 같다. 그래도 꽤나 책임감이 강한 녀석이라서. "카네스! 텔레포트 마법!!" "어디로?" "루이크 제국의 왕성으로." "누나누나~ 꼭 와야 되요!" 끝까지 소리치며 가는 꼬마가 약간은 귀여웠다. 글쎄다. 그때까지 이 일이 끝나면 가보도록 하지. "괜찮냐?" 아까부터 왕성에 돌아와 침울해진 리아는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꼼작 도 하지 않는다. 뮤즈양의 안부를 묻는 형님께 아무런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텔레포트 마법은 지금 현존하는 대 마법사 중에서도 쓸 수 있는 자가 극히 드물기에 왕성 마법사가 우리에게 와서 이것저것 물었지만 그것 조차도 대답하지 않았다. "흑.. 히엥.. 형님~" 결국에는 울음을 터뜨리며 내 품에 안겨 우는 리아. "흐끅, 누나 다시 오겠죠?" "그렇게 좋아했냐?" "쳇, 형님은요." "나야 형님의 부인이 될 분이니 눈길만 줬다만.." "그게 그거지." 형님께서는 6개월 뒤에 뮤즈양이 돌아올 거라고 했는데, 나는 그게 무 슨 뜻인지는 모르겠다. 형님과 어떤 약속이라도 있었나 보다. 정말 궁전의 여인들과는 다른 여자다. 신선하고, 무엇이든 두려울게 없는 말들. 솔직히 뮤즈양에게 끌렸다는 것은 부인하지 않는다. 이거이거.. 셋째는 상사병나서 들어 눕고, 형님은 형님 나름대로 걱정 하고, 이 꼬마까지 울고 있는 실정이라니. 참, 형제가 잘하는 짓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까지 할 정도로 그녀는 가치가 있다. (69) "먼저 프라니가 어디로 숨었냐가 제일 중요하지." "흠, 혹시 자기 집 레어 구석에 굴 파놓고 숨은거 아냐?" "시크. 지금 진지한 회의 중이다." "누가 뭐래?" 프라니, 프라니, 프라니. 1시간 전부터 이 이야기다. 대체 찾자는 거야 말자는 거야. "찾아서 어쩔 건데?" "본인에게 직접 물어봐야지." 그런다고 말하면 그게 음모 꾸미는 드래곤이냐? "다른 드래곤 집에 숨어 있을 가능성은?" "그놈이 친구가 있어야지, 원. 아는 사람이라고는 우리밖에 없는데." "골드 드래곤이라면 숨겨줄거 아냐!" "아~ 그런 방법이 있었군. 역시 넌 천재야." 니놈들이 바보가 아니었던 거냐. 우띠, 이거 하나도 생각해 내지 못하는 것들이 지혜있는 드래곤이라고. "근데 골드 드래곤이 42마리나 되는데." "어쩔 수가 없잖아. 딱히 방법이 없으니 일일이 찾아가서 물.어.봐.야. 지. 아참, 시크. 정확히 43마리야. 저번에 한 마리가 다시 태어났다고 들었거든." "내 앞에서 헤츨링 이야기하지 마!" 자꾸 그 천사가 생각나서 가슴이 찢어진단 말이다! 바보같이 속은 내 잘못도 쪼금, 아주 쪼~금 있지만. 어쨌든 다 그 천사놈이 잘못 한거야. "이봐이봐, 드래곤은 헤츨링을 사랑(?)해야 한단 말이다." "후후후, 친구. 난 지금 드래곤이 아니란걸 잊으셨나?" "호호홋~ 사랑싸움 그만 하시고, 다과를 좀 드시죠?" "넌 그말 밖에 할 줄 모르냐! 벌써 1시간 동안 7번의 다과를 먹었다! 너도 와서 네 생각을 이야기 하라고." 또다시 어디선과 과자를 잔뜩 내오는 비루나스마에게 실컷 화풀이를 하니, 비루나스마는 한두번도 아닌 일인지 씩 웃는다. "어머~ 저는 무.식.해.서. 그런 머리 아픈 일은 맞지 않는군요. 그런데 궁금한게 있어요." "뭔데?" "저기서 자고 있는 드래곤은 뭐죠? 후훗." 비루나스마가 가리킨 쪽을 바라보니 아주 팔자 좋게 쪼그려 앉은 자세 에서 자고 있는 카라드시크가 보인다. "일어나!" '퍽' "아아, 끝났습니까?" 어쩐지 이놈이 조용하다 했다. "너 한번만 더 자면 죽어!" "네." 세상에 자기 남편을 일러바치는 부인이나, 그것도 모르는 바보같은 순 딩이나. 쯧, 이래서 물을 다스리는 블루 드래곤은 성질 더러운 레드 드래곤과 는 결혼 해선 안된다니까. 아주 잡혀 살지, 잡혀 살어. 레드 드래곤은 활동적인 반면, 블루 드래곤은 소극적이니까. 아주 물러 터졌어. "그나저나 어디까지 얘기 했지?" "골드 드래곤을 다 찾아가 봐야 한다는 거지." "그럼 시간도 없는데 지금부터 갈까?" (70) '콰앙~ 푹~ 퍼억! 와장창~ 꾸에에에엑~' 제일 처음 찾은 곳은 브라.. 뭐라는데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어쨌든, 이놈이 가장 유력한 용의자(?)라고 해서 우리는 가택 침입죄라 는 엄청난 죄명을 달고도 모잘라 이 불쌍한 누렁이를 자근자근 짓밟고 있었다. 이건 정말 드래곤이 할 짓이 아니다. "오호~ 참 끈질겨. 이러고도 말 안해?" "정말 모른다니까요오.. 히끅.. 히엥~" "뚝! 저걸 확~" "뚝." 뚝 한다고 그치는 놈은 또 처음봤네. 하긴 저놈 말 때문에 그친게 아니라 저 놈 손에 들고 있는 몽둥이가 무서워서 그랬겠지. 역시 매 앞에는 장사 없다는 옛 드래곤들의 말씀 틀린 말 하나 없다니 까. 드래곤으로 폴리모프해서 이 좁은 레어 안에서 패려니, 위에서 돌덩이 가 떨어지는군. 쩝, 왜 저렇게 패는지 몰라. 어차피 비늘이 다 보호해 줄텐데 말야. 뭐, 패는거 보면 절대 그럴 것 같지는 않지만. 예전에 내가 프라니를 개패듯이 팬것과 비슷하다. (그때는 그냥 인간 인 상태에서 약간의 손만 봐줬지만.) 절대 치유마법을 쓰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 때린 곳을 또 때린다. 그럼 아무리 드래곤이라도 타격을 받게 된다. 저 놈도 개길 마음이 있는 것 같지만, 어쨌든 카네스가 연장자이기에, 연장자에게 개기면 죽음뿐이란걸 아는지 그저 맞고만 있었다. "야, 얘 정말 모르는거 같은데?" "........ 너 바보냐? 얘 모르는거 뻔히 알면서 이 꼴로 만들어?" 그 거무튀튀한 비늘을 자랑하며 카네스는 하품을 늘어지게 하더니 다 시 인간으로 폴리모프를 시도했다. "프라니 그녀석이 어디있는지도 모르는데, 짜증나길래 그냥 팼어." "어련하시겠어."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 말라구. 저 놈은 나보다 더했으니까." 카라드시크를 가리키며 말하는 카네스. 카네스의 말을 들었는지 누렁이를 향해 치켜올린 주먹을 어색한 웃음 을 지으며 내려놓고 있었다. "둘 다 빨리 다음 장소로 이동하자구. 그때는 이렇게 시간 끌지 말도 록 해." 아무튼, 죄없는 누렁이는 카네스와 카라드시크의 스트레스 해소용이 됐다는걸 아직은 깨닫지 못했나 보다. 그 거구에 가만히 무릎꿇고 손들고 서있으니 말이다. 아무튼, 가택 침입죄는 큰일인데. 누렁이가 저러다가 열받아서 로드님께 꼬질르면 머리가 아파진단 말이 다. 우리가 횡하니 사라진 다음 누렁이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이거 손 언제 내리지? 으윽.. 쥐가 나다니.'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차마 내리지를 못하고, 눈물만 글썽이는 누렁이 였다. 그 후, 누렁이는 평생 비가 오는 날이면 신경통에 쩔어 살았다나, 어쨌 다나. 비루나스마는 자신처럼 우아한 드래곤이 어떻게 타 드래곤들을 무식하 게 패냐면서 자신은 이번 일에서 빠지겠다는 의사를 조용히 전하였으 므로,(우리는 절대 이 말을 신뢰 할 수가 없었다. 레드 드래곤이 폭력 성을 싫어한다고 믿느니, 차라리 로드님이 드래곤 슬레이어에게 죽었 다고 믿겠다.) 우리는 조금 더 바빠질 수밖에 없었다. 하긴, 비루나스 마가 있었다고 해도 그게 그걸텐데. "다음은?" "프가크리스." "걘 넘어가." "프라니의 오른팔인 놈이야." "오른팔이고, 왼팔이고 간에 성룡이 된지 얼마 안된 놈이다."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냐. 무조건 프라니를 잡아야 한다." "오호~ 그래? 그렇게 잘났으면 아에 헤츨링까지 심문하지 그래?" (71) "오오~ 그러고 보니, 헤츨링이 있는 집에 숨었을 수도 있겠군. 역시 똑 똑하네, 친구." 널 누가 말리누. 맘대로 해라. 죽도 쑤고 밥도 하고, 혼자 다해먹어라. "저기요. 좌표 이동 어디로 해요?" 조심스럽게 묻는 카라드시크. 하긴, 전대 수장이던 나와 지금 실력을 행사하고 있는 카네스 사이에 서 갈등과 고뇌를 겪고 있는 모습이 안봐도 눈에 훤하다. "프가크리스 레어 말고 다른 곳으로." "프가크리스." "아직도 포기를 못했단 말이냐!" "너야말로. 공과 사는 분명히 해야 하는거 아냐?" "그딴거 필요 없어!" "왜 그 놈에게 그렇게 집착하는 건데? "그건..." 할 말이 없다. 그러고 보니 내가 왜 프가크리스 그놈에게 그렇게 집착하는 거지? 잠시 드래곤 시절 알았던 철없는 드래곤이었는데? 인간으로 있으니, 여러 가지 마음을 배우는군. "자자자~ 그럼 가자구." 얼렁뚱땅 넘어가려 하다니. 그래그래, 뭐 그놈 패면 말리면 되지. 설마 나까지 패겠어? "오셨습니까." 이미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이 인간으로 폴리모프해 있는 귀여운 소년. 못 본 사이 조금 더 어른스러워 진 것 같군. "전 블루 드래곤 수장이시여. 오랜만입니다." "많이 컸구나." 아주 드래곤족 전체가 내가 누군지 알고 있는 것 같군. 하긴, 1만년을 헛세월로 보내는 놈들이 아니니까. "저희 수장님을 찾아오셨다면 잘못 오셨습니다." 알고 있었군. "즈리카리안은? 잘 지내냐?" "그, 그게.." 갑자기 얼굴이 빨개지며 말을 더듬는다. "몰랐냐? 쟤네 결혼 했잖어. 즈리카리안은 헤츨링을 임신 한 걸로 아 는데?" "니가 언제 말 해줬냐!!" "난 또. 너라면 뭐든걸 다 아는줄 알았거든." "그래? 내가 무슨 독심술사냐?" "어? 아니었어?" 대체 웃으라고 하는 건지, 아니면 내 화를 돋구기 위해 하는 말인지. "어쨌든 축하한다. 하핫, 이녀석이 벌써." "노, 놀리지 마세욧!" 아까의 그 침착하던 모습은 또 어디에 던져 줬는지 예전의 그 철없던 모습으로 돌아와 있다. "에구~ 귀여워라. 그나저나 즈리카리안은?" "바.. 밥먹으로 갔어요. 로드님께서 초대해서." "너는 왜 안갔냐? 로드님이 초대했다면 꽤나 먹을게 많을거 같은데." "여자들끼리 할 말이 있다고 오지 말래요." "쯧, 너 내가 잡혀 살 줄 알았다. 벌써 찬밥 신세구나. 그냥 브레스 한 방 날려버려." 쯔쯧, 여자한테 잡혀 사냐? 헉, 어째 카라드시크도 그렇고 이놈도 그렇고 우리 아버지도 그렇고, 왜 다 마누라에게 잡혀 사는 거지? "그, 그럴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귀여운놈. 그걸 또 진담으로 들었냐?" 흠, 그건 그렇고 이놈도 아니군. 대체 어디에 박혀 있는거야? 빨리 찾아야 뭘 어떻게 해보든 하지. (72) "혹시 그 일로 수장님을 찾고 계신 겁니까?" 돌아 나가려던 나는 그 말을 듣고 약간 흠칫 했지만 곧이어 환하게 웃 으며 말했다. "그 일이라니? 무슨 소리하는지 모르겠네." "만약 그렇다면, 찾지 못하실 겁니다." 뒤에 대고 외치는 프가크리스의 목소리를 듣고는 카네스가 내게 물어 왔다. "아무래도 뭔가 알고 있는거 같지?" "그렇군요." 지금까지 존재감이 거의 없었던 카라드시크도 한 마디 거들었다. "가서 알아와." 어쨌든 알아내는게 중요한 거겠지. "폭력을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 골드 일족도 수장님을 찾기 위해 모든 노력을 했습니다만, 찾지 못했습니다." "넌 뭔가 알고 있는 말투였어." 잠시 당황하는 프가크리스를 보며 너무 재촉하는 것도 그리 좋지 않다 고 생각됐다. 역효과가 나면 큰일이니까. "사실, 3일전에 수장님께서 방문 하셨습니다." "그래? 어디로 갔지?" "그건 잘.. 최대한 골드 일족을 집합하라는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골드 일족의 모임이라. 드래곤이 일족끼리의 모임을 갖는 다는 것은 조금 드문 일이라고 할 수있다. 뭐, 친목 다지기를 좋아하는 화이트 드래곤이라면 다르겠지만. "역시.." "카네스, 조용해. 아직 확정하기는 이르다." "증거가 있잖아! 증거가!" "카이오네스님, 진정하십시오. 시크리오프스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제길.." 흥분하는 카네스를 말리며, 내가 더 말해보라는 듯이 눈짓을 하자 잠 시 생각을 정리하는가 싶더니 고개를 내저었다. "더이상은 곤란합니다." "그래? 고맙다. 가자." "야! 저놈 뭔가 알고 있다고!" 뒤에서 소리치는 카네스를 밟아준뒤에 레어를 나온 나는 한참을 생각 에 잠겼다. 대체 프가크리스가 말하고 싶었던 내용은 뭐였을까. 프라니는 절대 쿠데타 따위를 일으킬 놈이 아니다. 어쨌거나 내 조카이고 내가 그놈을 4000천여년 동안 봐왔으니까. 흑심이 있었다면 벌써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렇다고 가정한다면 떠오르는 사실은 단 하나다. 오해이거나, 프라니를 이용하고 있는 놈이 있다. 어떤 간 큰 놈인줄은 모르지만. 만약 쿠데타가 실패한다면, 골드족은 헤츨링을 제외하고는 멸망 직전 까지 갈텐데. "뭘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응?" "개인적인 감정은 접어두십시오. 어쨌거나, 로드님과 저희들의 운명이 달린 일입니다. 시크리오프스님의 눈을 바라보니 갈등을 하고 계시는 군요. 냉정하게 생각해 주십시오." 카라드시크의 말을 들으며 뒷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다. 혹시, 내가 프라니가 쿠데타를 일으킨다는 것을 믿고 싶지 않아서 감 싸고 도는게 아닐까. 개인적인 감정은 접어둬야 한다. 역시 내가 다음대 수장으로 고른 놈 답다. 자신의 관점에서 사건을 보지 않는 냉철함. 항상 부드럽게 웃고 있으면서도, 별로 자신의 속을 비치지 않는 드래 곤. (73) "이제 나오십시오." 카네스들이 나간 후에 허공을 향해 프가크리스가 중얼거리자, 아무 것 도 없던 허공에서 공간이 뒤틀려 지더니 한 청년이 가볍게 착지했다. "수고 많았다." 칭찬인 듯 하면서도 감정이 실려 있지 않은 무감각한 목소리. 절대 자신에게는 감정을 내보이지 않았던 수장이다. 다만, 시크리오프스. 전 블루 드래곤 수장과 있을 때만 어느 정도 안정 을 찾는 것 같았지만, 그 분이 돌아가시고 난 뒤로 그것도 곧 사라져 버렸다. "꼭.. 이래야만 합니까?" "..........." "다시 한번 생각해 주십시오." "명령을 내리는 건 나다. 너희들은 명령에만 충실해라." 이기적일 수도 있는 말투. 언제나 자신의 동족들에게 그는 차가웠다. "어디를.. 가시는 겁니까." "슬슬 시작할 시간이다. 첫 번째 제물을 찾아야지."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걸 막을 수가 없다. 나는 제 3자이기에.. "어디 가는 거야?" "좀 잠자코 따라올 순 없는 거냐! 날 그렇게 못믿어?" "믿을 드래곤을 믿어야지." "으윽.." 우리가 공간 이동을 한 장소는 조금 소란스러운 도시 한복판이었다. 유희 나온 드래곤이라도 찾고 있는 건가? 대체 이 바글바글한 인간들은 어디서 다 튀어나온 거야? "어디 가냐구~ 나도 좀 알자!" "밥 먹으러! 너 그럼 인간이면서 드래곤 식으로 오크 뒷다리나 뜯어먹 으려고 그랬냐!" "에이~ 진작 말하지." 말을 듣고 보니 배가 조금 고프기는 하다. 오랜만에 안돌아가는 돌덩이 억지로 굴려 봤더니 쉽게 피곤해 지는군. 역시 인간은 단순하게 살아야 한다니까. 매일 꼬박꼬박 밥 잘챙겨 먹고, 집에서 뒹굴거리며 놀던게 언제였던지. 절대 나 밥같은건 챙겨주지 않을 것처럼 굴어도 은근히 챙겨준단 말 야? 그 방법이 맘에 안들지만. "어서 오십쇼~" 메기 수염을 양쪽에 길다랗게 기르고, 쭉 째진 눈매에 올챙이 같이 툭 튀어나온 배. 그 작은 눈을 여기저기 굴려 우리의 차림새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 니, 아마 돈이 있나 없나 사전 검사인 것 같았다. 이곳에서 돈 떼먹고 도망간 놈들이 많았나 보지? "조용한 곳에서 식사 할 수 있게 해주시오." "네네~ 되구 말구요. 이쪽으로.." 능구렁이처럼 베실베실 웃으며 덥썩덥썩 말하는게 맘에 안들기는 했지 만 시설이 좋은 것 같으니 참지. 우리의 옷차림은 꽤나 고급이었다.(많은 돈 쌓아놓고 미쳤게 거지 차 림 하고 다니냐?) 절대 평범한 집안에서는 자랐을 것 같지 않은 외모.(드래곤이 못생긴 거 봤냐? 뭐, 나야 이건 내 몸이 아니니까.) 기품이 뚝뚝 떨어지는 말투.(얼어죽을.) 하긴, 나라도 오랜만에 봉잡았으니까 알아서 눈치 빠르게 대응하겠다. 1층에서는 벌써 몇몇의 인간들이 식사를 하고 있는 듯 했으나 우리는 그 사람이 안내하는 대로 1층을 지나서 2층으로 들어섰다. 2층에 있는 커다란 창문 아래로는 역시 인간들이 바글바글 끓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 곳에 있는 많은 테이블을 제쳐놓고 창가에 자리잡은 우리들은 (그 인간 말로는 명당 자리란다.) 천천히 식당 안을 구경했다. 2층은 꽤 있는 집 사람들이 오는 곳인 듯, 고급 옷을 입은 인간들 몇 몇이 한쪽 구석에서 조용히 내숭 떨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여기 정말 비싼 곳인 것 같군. 설마 돈 없는 나한테 내 밥값 내라고 하겠어? 여기로 데려온게 카네스니까 지가 알아서 내겠지. 공짜다 공짜. 많이많이 배터지게 먹어 둬야지. (74) "함박 스테이크 하나하구, 맥주 큰걸로 한잔, 그리구 크림 수프와 샐러 드. 아, 역시 멧돼지 뒷다리 요리도 있네? 이것도 가져다 주세요. 후 훗~" "작작 좀 먹어라. 괜히 데리고 왔네. 아아~ 주머니에서 돈 나가는 소리 가 들리는 구나." "너한테 얻어먹는건 처음이니, 엄살 좀 그만 부려." "내가 내는게 아닌데. 점심은 카라드시크라구." 헉, 잠시 카라드시크를 바라보니 얼굴은 웃고 있는데 식은땀을 삐질삐 질 흘리고 있다. 할 수 없군. "멧돼지 뒷다리와 샐러드는 취소." "어떻게 인간이 그렇게 바뀌냐? 나는 얻어먹어도 되고, 왜 쟤는 안 돼?" "너하고 카라드시크하고 어떻게 같냐? 카라드시크는 분명 비루나스마 의 등살에 비상금도 제대로 없을텐데, 저 식은땀 흘리는거 안보여?" 내 말에 카네스는 잠시 수긍을 하더니 더 이상 귀찮게 하지 않았다. "너 술 못마시지 않냐?" "응." "그럼 왜 마셔?" "폼 나잖아. 그리고 조금쯤의 알콜은 필요한 거라구." "핑계 좋고~" "저노므 자슥이!" 벌떡 일어선 나는 약간의 따가운 시선을 느끼며 주위를 둘러보니, 모 든 시선이 내게 집중되어 있었다. 그들의 눈빛에는 한결같이 단 하나의 단어를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보 이는 것은 나의 환상일까? 촌놈. 그들의 눈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앉아. 그 다혈질 좀 고칠 수 없냐?" "알게 뭐야, 성격이 원래 이런데." "음식이 나왔군요." 우리 앞에 놓여진 음식을 보며 카라드시크가 이야기의 화제를 바꿨기 에 더 이상 대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잘 먹겠습니다~~" "목소리 한번 우렁차고." "메야?" "아, 어서 드시죠. 시크리오프스님. 음식 식겠습니다." 카라드시크 없었으면 벌써 몇번은 이 식당 뒤짚어 엎고도 남았다. 먼저 나이프를 들어 먹음직스럽게 생긴 스테이크를 잘라 입에 넣었다. "맛있냐?" "그렇게 쳐다보지마. 너 줄생각도 없으니까." 자신의 음식을 먹다가 나를 빤히 쳐다보며 한다는 말이 저거다. 왜 묻는 거지? 당연한 말을. 맛없으면 이러고 먹고 있겠냐? "내가 그렇게 치사하게 보이냐?" "음식에 머리 처박고 먹기나 해. 계속 그렇게 쳐다보면 멀쩡한 사람도 체하겠다." "흠흠, 그만 하시고 드시죠." 먼저 먹고 난뒤에 무슨 일을 해도 하는 거지. 배고프면 다 소용 없다구! '홀짝홀짝' 시원한 맥주를 조금씩 음미하면서 마시고 있으니, 이 놈이 또 시비를 걸어온다. "그게 와인이냐? 마실려면 터프하게 마셔야지." 얼어죽을. 무슨 놈의 터프? 자기가 맛있게 먹으면 그게 다지. 갑자기 카네스는 자신 앞에 놓여있던 맥주잔을 집어들고는 그걸 벌컥 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맥주 몇 방울이 카네스의 볼을 따라 흘렀으며 나는 그것을 대단히 아 니꼽게 쳐다보고 있었다. "카네스님께서 오늘따라 오버하시는 군요." "저게 오버냐? 개폼이지." "꿀꺽꿀꺽.. 켁~ 쿨럭." 내 말을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사례가 들렸는지 기침을 해댄다. "내 저럴줄 알았지. 분수에 안맞는 짓하면 꼭 저렇게 된다니까." 카네스의 최후(?)의 순간을 만족스레 쳐다보며 나는 우아하게 음식을 다시 먹기 시작했다. (75) "쿨럭.. 켁켁켁." "너 여기까지 음식물 튀면, 그땐 정말 내 손에 죽는다." "쿨럭, 치사해서.. 쿠엑~" ............. 튀.. 었.. 다. 내 탐스러운 함박 스테이크에 저 놈의 배설물(?)이 튀었다. "가만히 있어. 조금 다칠지도 모르니까.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게 좋을거야." '타악' 내가 던진 나이프는 정확히 카네스의 얼굴 바로 옆의 벽에 박혔고, 어 느새 사례가 멈췄는지 젓가락으로 내 포크를 막고 있었다. "가만히 있으라고 했지! 내가 내 손에 죽는다고 했어, 안했어! 고의로 그런 것이 분명 하렸다!" "고의가 아니었네, 친구." "입으로는 무슨 말을 못해!" 열받은 내가 맥주잔을 집어던지자 고개를 숙여 그것을 간단하게 피한 다. 조용히 한숨을 내쉰 카라드시크는 자신의 옆에서 어떻게 할까 하며 안 절부절못해 하는 주인에게 조용히 한마디만을 했다. "함박 스테이크 1인분 추가요." 아무래도 이 일들이 자신의 돈을 뜯어가려고 일부러 만든 일이 분명하 다는 생각이 마구마구 드는 카라드시크였다. 불쌍한 놈. 한참 싸우는 중에 조용히 나에게 내미는 함박 스테이크를 보며 나는 싸움의 의욕을 상실했다. "너, 내가 이번만 넘어간다." "다혈질에 단순한 것." "카이오네스님, 이번에는 그냥 제발 조용히 계셔 주세요." 역시나 자기 주머니 돈은 깨지기 아쉬웠는지 카네스에게 애원하다시피 하는 카라드시크. 이래서 결혼이란 것을 하면 안된다니까. 얼마나 돈에 궁핍했으면, 원. 분명 비상금을 털어서 점심을 먹고 있는 것일 게다. 아, 그런데 내 돈들은 다 어디갔지? 난 누구에게 물려준 기억따위는 없는데. "카라드시크야." "네." "내꺼 보물들이랑 돈들 다 어디갔냐? 아직도 그 자리에 있냐?" 있다면 나는 부자지. 내 평생 모은.. 흐흐흐, 그것만 있으면.. "아, 드라시아쿠스님께서 와서 모든걸 수거해 가지고 가셨는데요." 메, 메야? 그 양반 좋아 죽겠군. 가만히 있어도 공짜로 번쩍이는게 대량으로 굴러 들어왔으니. 아깝다. 하지만 잊어야 한다. 그 양반이 주라고 해서 곱게 내놓을 양반도 아니고, 그저 처음부터 없 었던양 잊어야 한다. 그런데, 아깝다. "잊어라. 그냥 없었던 셈 치고." 내가 한동안 침울해 있자, 카네스 녀석이 위로랍시고 툭 던진 말이다. "너같으면 잊겠냐?" "아니." "말을 말아라." 시큰둥하게 답하고는 멍하니 창밖만 바라보는데 자꾸 귀를 쫑긋쫑긋 세우는(?) 카라드시크가 신경이 쓰였다. "뭐하냐?" "아, 저기 앉아 식사를 하고 있는 인간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습니 다." "그딴건 들어서 뭐할려고?" "의외로 정보를 얻을 수가 있거든요." "흐음.. 그래?" 별로 그렇게 귀를 세우지 않아도 가까운 거리라 소근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자들끼리 단체로 모임을 나오거 같은데, 앞에 놓여 있는 음식에는 거의 손을 안대고 잡담만 나누고 있었다. "어머~ 정말요? 아, 글쎄~ 폰루트양이 평민과 열애중이라는 소문이 있 더군요." "아, 저도 들었어요. 어쩜 그렇게 천박할 수가. 어떻게 천하디 천한 평 민과." "그녀는 하녀의 자식이잖아요." "호홋~ 역시 천한 신분은 어쩔 수가 없네요. 천한 것들은 천한 것들끼 리 놀아야.." 영양가 없는 이야기들뿐이군. "카라드시크, 저런 이야기들을 들었다 어디다 쓰게?" "하핫, 이런 이야기들일 줄은 몰랐습니다." 우리에게 도움 될만한 이야기들은 하나도 없었고, 그저 스캔들 이야기 들과 패션이나 유행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여인들. 저거 말하느라고 앞의 음식들 놓고 제사 지내는 거야? 음식이 아깝다, 음식이. "남의 일에 신경 끄고 우리 일이나 하지." "그래그래, 이런데 일일이 신경 써봤자 제 명에 못살지." 신경 끄고, 음식이나 먹으려고 하는데 갑자기 아까 쓸데 없는 이야기 를 하던 여인 하나가 벌떡 일어섰다. "정말 너무들 하시는 군요!" 일어나서 소리를 빽 지르는 20대 초반의 붉은 머리를 가진 여성. "폰루트양, 예의에 어긋나시는 군요." "예의에 어긋나는 인간들은 당신들 이에요! 어떻게 본인을 앞에 두고 그런 말씀을 하실 수가 있는 거죠? 대체 저를 이 식사에 초대한 이유 가 뭡니까!" "역시 신분이 천한 것들은.." "콜트 백작 부인, 자꾸 신분이 어떻고, 평민이 어쩌고 하시는데 가히 보기 좋지는 않군요." 어느새, 쓸데없는 잡담에서 말싸움으로 번진 여인들의 식사. 그러니까, 아까 그 이야기들이 본인을 앞에 두고 한 소리였단 말인가? 자존심 상하기도 했겠군. 나라면 저걸 엎어버릴텐데. 의외로 참을성이 강한 아가씨야. 보통 빨강 머리라면 다혈질에(사돈 남말.) 성격이 불같은데. 내가 레드 드래곤을 너무 많이 봐와서 그러나? "우리들에게 그딴 말을 중얼거리고도, 사교계에 얌전히 있을 생각은 아니겠죠?" 한마디로 매장 당할 것을 예고 하는 거다. "그런걸 두려워했으면, 애초부터 나서지 않았습니다." "호홋~ 역시 평민은 평민과 어울리는군요. 폰루트양, 당신 같은 귀족 때문에 우리 귀족들이 욕을 얻어먹는 겁니다." 네명의 여인이 한 여자를 공략하는 건가? 가히 기분이 좋지는 않군, 그래. "너 설마 나설 생각은 아니겠지?" 뚫어지게 그 쪽을 바라보고 있자, 노파심에서 하는 말인지 카네스가 물어본다. "조금만 더 지켜보고, 꽤 재밌는데?" "제발, 쓸데없는 일에 나서지 마라. 일은 네가 저지르고, 뒷처리는 우 리 담당이란 말이다." 카네스가 내게 경고하는 동안에도 일은 벌어지고 있었다. 카네스! 너 때문에 중간 말을 못들었지 않느냐! "가스란을 욕보이지 마세요, 후작 부인! 제가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어머~ 장난감이 아니었나요? 호호홋~" 여자들의 말싸움이란 참으로 무서운 것이다. 어느 나라 속담에도 있지 않은가. 여자 셋만 모여도 접시가 깨진다고. 이 대륙 어느 남자들이 말싸움만으로 여자들을 이길 수 있겠는가. 그만큼 여자들은 위대하다. 난 저 빨강 머리 여인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열세에 놓여 있는 것만 같으면서도, 상황을 반전할 기미가 보인다. 이봐, 어서 상황을 반전시켜 놓으라구. 이 몸이 식사도 하지 않고 응원하고 있잖아. "다 먹었으면 나가자. 저 뻔한 말싸움 같은거 구경해서 뭐할래?" "잠깐만, 거의 끝나가는거 같애." "취향하고는." 말은 저렇게 했지만 카네스 녀석도 흥미있는 얼굴로 여인들 쪽을 쳐다 보고 있다. 그러고 보니, 설마 카라드시크 녀석. 정보를 얻을수도 있다는 말은 순 개뻥 아냐? 저런 여자들이 어떻게 드래곤에 관해서 알고 있냐구. 아마 말싸움이 날 거라고 짐작하고는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슬쩍 카라드시크를 바라보니 이야기에 심취한 듯 턱까지 괴고, 열심히 경청하고 있었다. "당신들의 초대에 응했던 제가 바보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럼 저 는 이만 가야겠습니다." 말싸움의 끝은 빨강 머리 여인이 매섭게 중년 여자들을 노려보며 나가 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상당히 싱겁다. 나는 또 주먹질을 하거나 욕같은게 튀어나올 줄 알았는데, 의외로 예 의바른(?) 싸움이었군. 창문 밖으로 횡하니 지나가는 빨강 머리가 보인다. 단단히 화가 났나 보군. "호홋~ 제 풀에 지쳐서 가는 군요." "그렇게 예의에 어긋나는 말들을 할 수가." "어쨌거나, 저런 딸을 둔 백작님도 힘드시겠네요." 여전히 저 여자들은 빨강 머리를 씹기에 급급하다. (76) "싸움도 끝났으니, 우리도 이만 나가지. 찾아야 될 놈이 있거든." "누군데?" "너는 내가 이곳까지 괜히 밥만 먹으러 온 줄 아냐? 빨리 일어서기나 해." 툴툴거리며 거의 강제적으로 일어선 나는 식당을 빠져나가면서 까지 남은 함박 스테이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그런데 누구 찾으러 가는 거야?" "아, 너도 알걸? 레드 드래곤의 수장, 라그네시크." "라네? 걔가 왜?" "좀 도와달라고 부탁을 했거든. 어쨌든 힘쓰는 일은 그 놈에게 맡기면 되니까 좋지, 뭘." 카라드시크에게는 장인이 되는 걸까? "그나저나 어디서 만나기로 했어?" "몰라, 그냥 돌아다니다 보면 만나겠지." 쯧, 약속 시간 정도는 알아둬야 할거 아니냐. "헤헤~ 가스란, 그래서 말이지. 내가.." 어? 아까의 그 빨강 머리다. 빨강 머리 여자가 연한 하늘빛 머리의 남자에게 찰싹 달라붙어 이야기 를 나누고 있었다. 저 남자가 그, 평민인가 뭔가 하는 남잔가? 어? 잘생겼네? 에이그, 저러니까 빠질만도 하지. "또 뭘 그렇게 보냐?" "으응, 아까의 그 빨강 머리.. 엥?" 손짓을 하며 카네스에게 말하고 있었는데 순간 그 하늘빛 머리의 남자 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그는 씩 웃더니 빨강 머리의 손을 잡고는 내 옆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이봐이봐, 왜 이쪽으로 오냐구. 난 그냥 손으로 가리킨 죄밖에는.. "어? 아까 식당에서 만난 분.." 여자가 먼저 아는 체를 했다. 싸우느라 정신없는 줄 알았는데 볼 건 다보고 있었군. "아하하, 안녕하세요." 휘잉~ 잠시 어색함이 흘렀다. 어느 쪽에서도 먼저 말을 하지 않았으며, 서로 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이럴 때는 뭐라고 자연스럽게 말해야 한다 냐? "오랜만이야~ 후훗~" 하늘색 머리가 우리에게, 아니 정확히는 나에게 말을 걸었으나, 나는 이 놈이 누군지 전혀 모른다. 내가 아는 놈들 중에서는 하늘색 머리를 요상 야리꾸리하게 기른 놈은 없었으며, 저 면상도 전혀 낯익지가 않 다. "응? 가스란, 아는 분이야?" "오래된 친구." 씨익 웃는 그의 모습에서 나는 한가지 인물을 발견해 낼수야 있었다. "라네냐?" "반가워~ My love~" "꺼져!!" 포옹을 하려고 내민 두 팔은 내 한마디에 어색하게 제자리로 갔다. 라 그네시크. 레드 드래곤이 이게 뭐하는 짓이냐. 치렁치렁한 웨이브를 준 하늘색 머리는 또 무엇이며 저기 옆에 있는 빨강 머리와는 언제 만난 거냐. 돈도 많은 주제에 용케도 평민이라 속여 곱디고운 귀족 아가씨 를 꼬여낸 것이냐! 딸까지 있는 유.부.남. 주제에. "그렇게 노려보지 말라구, 시크. 아참 폰루트. 나는 오랜만에 만난 내 친구들과 할 얘기가 있어. 집으로 돌아가." "가스란.." 아무래도 라네가 나를 포옹하려 했던게 마음에 걸리나 보다. "우리 아무 사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고 돌아가세요." 그래도 걱정스런 표정을 짓고 한참을 주위를 맴돌다 사라지는 빨강 머 리. 나는 걱정하지마~ 난 라이벌도 안돼. 이 인간 부인 성질이 얼마나 불같은데. 날 걱정하지 말고 유부남 부인이나 걱정하길.. 그 유명한 성 질 더러운, 아마 몇 천년 전에 남편이 인간과 바람났다고 그 나라 전 체를 브레스로 날려버린 일이 있었다지? "너 머리 꼴이 그게 뭐냐?" "이게 어때서?" ".... 솔직히 촌스럽다." "개성이라고 말해줘. 후훗~" 자신의 웨이브 머리를 다듬으며 말하는 라네를 보며 순간 오싹하는 한 기가 드는건 왜 일까. "순진한 여자 꼬시니까 좋디?" "응. 재밌어." 사악한 놈. 왠지 저놈 때문에 아까 중년 여자들에게서 욕을 얻어먹은 빨강 머리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무럭무럭 든다. "일단 어디 들어가서 얘기하지." 마침 가까운 곳에 찻집이 있어서 일단은 앉아서 얘기하자는 욕심에 그 곳으로 들어갔다. 점심이 지난 시각이어서 차나 한잔 마시러 온 사람들이 꽤나 많았지 만, 찻집 자체는 그다지 시끄럽지는 않았다. 보통 주 수입원이 젊은 남 녀들인 듯 여기저기에 커플들이 꽤나 많이 보였고 여자들은 온갖 내숭 을 다 떨고 있었다. 여자의 내숭이 벗겨지는 날이 결혼하는 날이라고 흔히들 말하지. 일단 뭐 비밀 얘기 하니까 구석진 자리를 찾는 것은 당연한 거지. "우리가 무슨 음침한 인간들이냐? 그냥 대충 아무 곳이나 골라 잡어." (77) 쓸데없는 말이 많군. 내가 앉자면 앉을 것이지. "레몬 홍차 셋하고, 애플 주스 하나." 아르바이트생인 듯한 소년 하나가 주문을 받고는 곧이어 카운터로 돌 아갔다. "왜 너만 다른 거야!" "취향이 다른데 어쩌라고?" "나도 애플 주스 잘 먹는데.." "시꺼. 나중에 따로 시켜먹어." 투덜거리는 놈들을 조용히 시키고 보니, 불만스런 눈초리들이 보인다. "자자자~ 우리 이야기나 하자구. 이미 주문 한걸 어쩌겠어? 안그래? 호호홋~" "쳇." 작게 투덜거리는 소리가 있었지만, 내가 한번 노려봐 주니 곧 사라졌 다.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 라네에게 이것저것 미주알 고주알 이야기를 해주다 보니, 그럭저럭 내 정신없는 말들도 알아먹은 듯 하다. "큰일이네?" 레몬 홍차의 향을 음미하며 생긋 웃으며 말하는 라네에게 긴장감이란 것은 느껴지지 않는다. 대체 정말 큰일이라는 느낌이 들긴 드는 거야? "응." "그럼 이렇게 놀고 있어도 되나?" 정곡을 찔렀다. 우리는 놀고 싶어서 노는게 아니라구. 이 도시에서 밥 한끼 먹고 너를 만나서 이렇게 찻집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 뿐이야. 으음, 변명밖에 되지 않는군. "이제 슬슬 다시 시작해 봐야지." "자자~ 다 먹었으면 일어나자구." 그 말을 듣고 사과 주스를 원샷 해버린 나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 다. "어디로 갈꺼야?" "쪽수도 맞으니 둘씩 나눠서 가지. 그게 더 편하지 않을까?" 그 말도 맞는 것 같군. 그럼 라네와 내가 같이 활동해야지~ 카네스 저 녀석과 같이 다녔다가 는 매일 싸움만 할 가능성이 많다. "나와 시크, 그리고 카라드시크와 라네가 한 조가 되라." "좋아." "네." "뭐야? 왜 나하구 너야!" "내 맘." 저걸 그냥.. "그럼 우리는 다음 목적지로 먼저 가지. 툰 산맥 근처에 있는 레어들 은 모두 우리가 처리할테니, 너희들은 크론티아 산맥 쪽의 레어를 찾 아봐." "잘 가라. 나중에 보자." 텔레포트로 사라지는 그들을 차마 잡을 수가 없었다. "우리도 갈까?" "그래, 가자구! 가!" 아무래도 싸움은 피할 수 없겠군. "야야야~ 어디로 가야 어머니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응." 르엔은 무작정 나보고 어머니를 찾으러 가잔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 인간이니, 어디 붙어 있는지 어떻게 아냐 구! 그리고 이 많은 나라들 중에서 어디에 어머니가 있는지 알기만 해 도 용하겠다. "그냥 무작정 가자는 거냐?" "어디 있는지 대강은 알 수 있어. 어쨌거나 그녀의 생명을 유지시켜 주는게 나의 디바인 파워니까." 르엔이 어머니의 생명을 연장 시켜 줬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고마워 하고 있지만 내가 워낙 이 놈에게 당한게 많아서 그런 마음도 별로 들 지 않는다. 혹시 나는 어머니를 사랑하고 있지 않은 지도? 이런 말은 입에 담지도 말자. 어머니가 알면 죽음이다. 지금 전 드래곤족, 아니 정확히 말해서 골드 드래곤 일족 전체에 비상 사태가 걸렸다. 이름 모를 드래곤 두 마리와 인간 하나가 골드 일족의 레어를 돌아다 니며 골드 드래곤을 반 죽음 상태로 만들어 놓기 때문이다. 로드님께 건의하려고 해도 이 당사자 드래곤들이 일체 고개를 저으며 자신들은 그런 일이 없었다고 잡아빼기 때문이다. 그건 카네스가 남기 고간 단 한마디가 원인이었으니.. "누구한테 말하면 내가 잡혀가는 한이 있어도 찾아와 죽여버릴테다." 그 드래곤들은 누군지 절대 밝히지 않았으며, 친한 드래곤들 몇몇에게 만 이야기했을 뿐인데 사건이 이 정도로 커져 버렸다. 죽인다고 쉽게 죽는 드래곤이 아니었으나, 카네스는 드래곤들족도 몇 없는 에인션트 드래곤에 속해 있었기에 대들면 곧 죽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입을 다물 고 있는 것이다. 드래곤 로드는 이 일을 듣고 어느 정도 누구의 짓인지 짐작은 하고 있 었으나, 당사자 드래곤들이 가만히 있기에 그저 지켜보고만 있었다. 의외로 이런 상황을 즐기는 지도? "크아아아악!!!!!!!" "진정해, 진정해, 진정해." 레어 천장을 우러러보며 괴성을 지르는 카네스를 말리는 나였으니.. 우리가 찾아간 레어는 텅 비어 있었다. 아마 미리 알고 도망간 것이리 라. "왜 우리가 그딴 녀석 하나 잡으려고 이 일을 해야 하는 거냐고오오오 오오~~~" 결국은 화살이 프라니에게로 돌아간다. 내가 저런 말을 했을 때 이 녀 석이 뭐라고 했었지? 이런 소리까지 하는 걸 보니까 이성을 잃긴 잃었 군. "겨우 한 마리 도망간거 가지고 왜 그렇게 발악이냐." "프라니! 넌 잡히면 죽었다!!" "그래그래, 진정하고 가기나 하자." 오크 몇 마리가 레어 밖에서 신경 거슬리게 하고 있었지만, 그렇게 신 경 쓸 정도는 아니었다. "잠깐만.." "응? 왜 또?" 카네스는 갑자기 그 오크중에 한 마리에게 다가가더니 그 음산한 웃음 을 지어보였다. "여기 있었구나. 흐흐흐, 도망간 것까지는 좋았다만 멀리 갔어야지. 등 잔 밑이 꼭 어두운 것만은 아니군. 우리 조금 대화를 해볼까?" "꾸엑~" 집착이 정말 대단하구나. 아마도 저 드래곤은 오크로 변해서 우리가 가기만을 기다렸던 것 같다. 자신은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을 실천 하려 그랬는 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카네스에게 들켜 버렸으니.. 그냥 그대로 있다가 조금 덜 맞을 것이지. "불어! 안불어? 어쭈? 모올라? 그럼 왜 숨은 건데! 찔리는게 있지? 응? 빨리 불엇!!" 전문적인 고문사다. 대체 나는 저놈만 보면 궁금해 지는게 있다. 유희 에서 뭘 하다 돌아왔길래 못하는게 없을까. 심지어 아기 기저귀 채우 는 것까지도. (681년 3월 2일 일기 참조.) "오호~ 많이 컸구나. 감히 힐링을 쓰려해?" 레어 밖에서 들어보니 고통(?)에 못이긴 드래곤이 힐링을 쓰려고 했나 보다. 쯧, 그럴수록 매만 벌게 된다는 사실을 왜 모를꼬. "최후의 발악이냐? 이제 감히 공격용 마법까지?" 드래곤이 미치면 눈에 뵈는게 없어진다고들 하지. 에이구, 얼마나 쥐어 팼으면 공격용 마법을 날릴 생각을 했겠냐. "어? 아직도 안죽었네. 참~ 생명력도 끊질기구나." 사돈 남말 하네. 그 생명력 끊질긴 놈을 끝까지 잡고 있는 넌 도대체 뭐냐? 먼 산을 바라보며 레어 안에서 울리는 말소리에 혼자 답하고 있던 나 는 곧이어 레어가 아주 조용해 졌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카네스! 안나오냐? 끝났으면 나와." "알았다구! 지금 나간다, 나가!" 손을 탈탈 털면서 나오는 폼이 왠지 이상하다. "왜이렇게 조용하냐?" "어? 그놈 실신했거든." 아무래도 이건 프라니 찾는 일이 아니라 골드 드래곤을 멸망시키려는 이 놈의 사악한 계획이 아닌가 싶다. "이러고도 소문이 새어나가지 않길 바라는 거냐." "뭐, 별 상관은 없어. 알만한 놈들은 다 알고 있는데." 모르겠다. 대체 나는 여길 왜 따라다니고 있는 건지. 도움 따위는 이 힘만 무식하게 센 놈에게 절대 되지 않고, 그저 짐더미처럼 이리저리 끌려다니고 있다. "난 대체 왜 따라 다니는 건지." "응?" "아니다. 다음엔 또 어떤 불행한 드래곤이 네 타자냐?" "여기서 별로 안 멀어. 오늘은 그놈까지만 해야겠군." 어련하시겠어. "덥다, 더워. 실프!" 시원한 바람을 몰고 다니는 바람의 정령을 불러낸 카네스는 그래도 더 운지 연신 손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하긴, 그렇게 설쳤으니 더울 만도 하지. "조금 쉬었다 가자." 나는 계속 놀고 있는데 쉬어도 너혼자 쉬는 거지 뭐. 힘쓰는 일은 내가 아니니까. "그나저나 프라니 이 놈은 어디에 박혀 있는 거야?" "유희 나간거 아냐?" "수장쯤이나 되는 놈이 어딜 나다니면 바로 아랫것들이 알게 되는 거 야. 그리고 유희 나갈 시간도 없을걸? 처리해야 할 서류들이 얼마나 많은데. 유희를 나갈 때도 자신의 대리로 누구를 지목하고 나가야 한 다구." 음? 나는 그냥 놀러 나갔는데. 처리해야 할 서류? 그런게 있었던가? 카라드시크가 다 처리해줘서 나 는 별로 한 일도 없는데. 그러고 보면 나 복받은 건가? "이렇게 조용할 리가 없어. 저놈을 다시 한번.." "아서라. 얘 죽일 일 있냐." 왜 저렇게 카네스 놈이 쉽게 흥분하는 거지? 그러게 드래곤 성격 바뀌는 것도 시간 문제라니까. 실신 한 놈 억지로 깨워봤자 제대로 된 대답이 나올 것 같냐? (78) - 카이오네스 - '우띠, 여긴 어딘거야? 왜 이렇게 미어 터졌어? 등 좀 피자, 등 좀! 에 구에구, 허리야.' 내가 처음 자아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을 때에 나는 컴컴하고 좁고 습기찬 곳에 있었다. 나중에야 그곳이 알속이라는 것을 깨닫기는 했다. 좁아 터진 곳에 있으려니, 호흡 곤란이 되면서 짜증이 밀려왔다. 조금이라도 몸을 편하게 하려고 뒤척여 보니 이상한 소리와 함께 빛이 새어들어왔다. '빠각' "부화하려나 보네?" 곱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이것이 내가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첫발을 내딛는 거라고 생각했다. 무슨 특수한 금속으로 만들었는지, 아니면 먹은게 없어서 힘이 나지 않은 건지 도저히 알을 깨고 나오기가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갑자기 아래쪽에서 둔탁한 소리와 함께 통증이 밀려와 눈살을 찌푸렸을 때 나는 심한 어지럼증과 구토(먹은게 있어야지.)를 할것같은 상황에 놓였다. '떼굴떼굴떼굴.' 알이 마구마구 굴러가기 시작한 것이다. 아래쪽의 그 통증은 누가 알을 발로 찬 것 같았다. "시크리오프스!!!" 아까의 부드러운 음성과 대조되는 날카로운 여인의 목소리가 내 신경 을 자극했다. "쳇, 벌써 두 시간째라구. 무슨 놈의 알을 깨고 나오는데 이렇게 오래 걸려? 귀찮아서 한번 굴려준 것 뿐이야. 뭐, 어디 벽에라도 부딪혀 깨 지면 잘 된거지." "헤츨링에게 상처라도 생기면 어떡하니? 시크?" "내가 알 바 아냐. 그정도 고통도 못이기면 드래곤이라고 말할 자격 없어." 누군가가 내가 들어있는 알을 굴린 것에 대해 혼나고(?) 있었지만, 나 는 지금 그걸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어쨌거나 아까 그 말대로 벽에라 도 부딪히면 큰 일 이니까. "집에 가서 보자꾸나. 시크리오프스. 널 데리고 온 자체가 실수였다." "맘대로 보라구. 그리고 가기 싫다는 드래곤 끌고 온게 누군데." 이봐요들, 나는 지금 벽으로 굴러가고 있는 중이라오. 누가 나 좀 멈춰 줘. '빠가가가각.' "어? 부화했다." 헥헥, 드디어 알을 깨고 나오는 것에 성공한 나는 바로 1m앞에 벽이 있었던 것을 생각하고는 얼굴이 하얗게 변했지만 지금 당장은 배가 고 프고 힘들었기에 그대로 뻗어 버렸다. (솔직히 중심 잡기가 힘들어서.) 머리를 땅에 박고 뻗어 있는 내게 누군가가 다가오는 인기척이 느껴졌 지만 지금은 머리 하나 들 힘이 없다. '퍼억~' "끼우우우우욱~" 내 배를 강타하는 통증에 살짝 눈을 떠보니 푸른빛의 비늘을 가진 나 보다 조금 더 큰 것 같은 헤츨링 하나가 그 통통한 발로 내 배를 차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시크리오프슷!!!!!!" "따.. 따님을 참 과격하게 키우셨네요.." 저기 멀리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은빛머리를 한 여성이 고래고래 소리 치고 있었고, 그 옆에는 검은 비늘로 온 몸을 무장한 어마어마한 크기 의 드래곤이 칠흑처럼 까만 눈동자를 가지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까의 그 부드러운 목소리의 주인공인 어머니이리라. '벌러덩~' 갑자기 뒤집어진 나는 영문을 모른채 레어 천장을 바라봐야 했으나 곧 이어 그 푸른빛 비늘을 가진 헤츨링의 얼굴을 대면해야만 했다. "짜식! 사내놈이잖아." 그.. 그.. 헤츨링이 민망하게도 내 아랫부분을 빤히 쳐다보며 한 말이었 다. 나 장가 다갔다. 장가 다갔어. (79) - 카이오네스 - "이제부터 넌 내 부하다! 우리 드래곤 슬레이어의 꿈을.. 꾸엑!!" 혼자서 초롱초롱 눈망울을 빛내며 내 작달만한 손을 잡고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던 헤츨링은 어느새 다가온 은빛 머리의 여인에게 머리를 얻 어맞고는 비명을 질렀다. "왜 때려!!" "드래곤이 드래곤 잡겠다고 설치는거 봤냐! 당장 조용히 못햇!" 한참을 멍하니 있던 나는 곧이어 몸이 공중에 뜬 것 같은 느낌과 함께 아까의 그 검은빛 비닐을 가진 드래곤에게 날아갔다(?). "이 에미의 이름은 로리아나라고 한단다. 내 아가, 너의 이름은 무엇으 로 하면 좋을까?" 그 커다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고민하는 드래곤을 보며 나도 모르게 베실베실 웃음이 나왔다. 음, 어머니는 좋은분 같다. "내가 지을래! 내가 지을 거야! 내 부하니까 내가 지을래!!" 아까 나에게 폭력을 가했던 드래곤이 은빛 머리 여인의 손에서 벗어나 며 어머니의 발치에 다가와 큰 소리로 말했다. "시크가?" "안돼! 로리! 저놈에게 이름따윌 짓게 하면 네 아기는 저주받을 거다!" "엄마! 딸내미에게 그렇게 말할 수가 있어?" 아무래도 둘은 모녀지간인 것 같다. "그래, 시크 네가 우리 귀여운 헤츨링의 이름을 지어주지 않으련?" 왠지 불안하다. 어떤 이름이 나올지. "카이오네스!!" 생각이라도 해놨는지 금방 튀어나오는 이름. 그 말을 듣고 어머니의 얼굴에는 땀방울이 삐질삐질 흘렀으며 은빛 머 리의 여인은 어쩔줄을 몰라하고 있었다. "너 죽을래!" "시크, 그 이름은 좀.." "카이오네스! 카이오네스! 카이오세슷!!!!" 거의 오기로 소리치는 듯 빽빽 외쳐대는 그 헤츨링을 보며 나도 모르 게 등 뒤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어머니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래그래, 그걸로 하자꾸나." "로리! 저거 말 들으면 안된다니까! 드래곤은 한번 이름을 받으면 호 적을 고치지도 못한다구! 네가 시크를 오냐오냐 해주며 귀여워해 주니 까 저 놈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뛰는 거다!" 내가 만약 그 이름의 뜻을 알았다면 절대 목숨을 걸고 반대했을 것이 다. 하지만 나는 그 때 막 태어난 어린 헤츨링이었기에 고대어가 무엇인지 도 몰랐다. "카이오네스. 아가, 네 이름은 이제 카이오네스란다." "망했다." 내게 이름을 가르쳐 주는 어머니에게 대충 고개를 끄덕였지만, 왠지 아래쪽에서 들리는 한숨과도 같은 소리가 내 귓속을 맴돌았다. 그리고 몇 년 후에, 나는 차마 어머니께 물어보지는 못하고(어머니께 내 이름이 무슨 뜻이냐고 물으면 질문을 회피하셨다.) 혼자서 고대어 를 깨우쳐서 내 이름의 뜻을 알았을 때 나는 삶을 후회했다. 카이오네스.. 고대어로 '음침한 자.' 100년 후.. 나는 내 이름에도 어느정도 적응을 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 웬수같은 헤츨링이 다시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카네스, 어미는 이번에 로드님이 초대한 모임에 참가해야 한단다. 잠 시 집에 혼자 있으렴. 3~4일 내로 돌아올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집 잘 볼 수 있겠지?" "네." 3~4일 후에나 돌아온다는 말씀을 듣고는 밥까지 꼭꼭 챙겨주고 가시는 어머니를 보면서 나는 그 동안 못 읽은 책이나 읽어야 겠다는 생각으 로 서재를 향해 걸어갔다. '뒤뚱뒤뚱, 쿠당~' 에구, 또 넘어졌다. "쿠하하핫~ 더럽게 못 걷네. 100살이나 처먹은게 아직도 제대로 걷지 도 못하냐? 크크큭.." "시크! 조용해라!" 절대 변함이 없는 목소리. 한번 듣고 나면 꿈에 나타나서 괴롭힐 것만 같은 목소리. 슬쩍 뒤를 돌아보니 그 푸른빛 비늘을 하고 있는 헤츨링 시크리오프스 와 그의 어머니가 나를 보며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잘 있었니? 카네스." 내 애칭을 부르며 미안하다는 투로 말하는 은빛 머리의 여인을 바라보 았다. 실버 드래곤 하라이스나스님. 2천 몇 살의 어머니와 비슷한 나이의 드래곤이라고 들었다. 차기 실버 드래곤의 수장 자리에 지목되어 있다고도. 한마디로 장래가 촉망(?)되 는 드래곤이라는 거다. "어머, 로리는 벌써 갔구나. 호홋, 며칠 후에 돌아올테니 그 동안 시크 와 잘 놀고 있으렴." 싫어요! 싫다구요!! 나를 보며 음흉하게 웃는 헤츨링을 보며 오싹했지만 내가 이런 의사를 밝히기도 전에 하라이스나스님은 사라져 버렸다. (80) - 카이오네스 - "야!" "왜!" 그 블루 드래곤 시크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서 나는 간이 크게도 왜! 라고 맞받아 쳤다. '퍽~' "이게 어디서 누님에게 맞먹어? 너보다 50년은 먼저 태어났어, 임마!" 내가 왜 이런 폭력을 당해야만 하는 걸까. "우리 밖에 나가서 놀자." "보호자 허락 없이 밖에 나가서 놀면 안되는데...........요........." "짜식~ 이 누님만 믿어라. 요 앞에 잠깐 나가서 놀자는 건데 뭘." 시크는 이미 이때부터 나를 타락의 길로 안내하고 있었다. 아장아장 걸어서 레어 밖으로 나와보니 날씨는 맑게 개어 있었으며, 군데군데에는 몬스터들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보통 드래곤이 사는 레어 주변에는 몬스터들이 서식하지 않지만, 우리 어머니가 엄청나게 관대하고 자애로우셔서 몬스터들이 지나 다니는 것 에도 크게 신경쓰지 않으신다고 한다. "꾸엑~ 헤츨링이다." 우리를 보며 지나가는 오크가 하는 소리다. "꾸엑, 위대한 드래곤 꾸엑, 없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는 모르지만 우리를 향해 머라머라 중얼거리는 폼 이 예사롭지가 않다. "헤츨링, 꾸엑~ 레어 안으로 들어가라. 꾸엑~" 아마도 어머니가 나가면서 당부해놓고 가신 모양이다. "어? 점심 도시락이 이제 막 대드네?" 역시나 시크는 이 상황을 인정 못하겠는지 특유의 재수 없는 말투로 오크들을 빈정거리고 있었다. "누.... 님... 그냥 들어가시죠." 차마 떨어지지 않는 입을 열어 시크에게 말했지만 어차피 내가 말하는 말은 씨도 안먹힌다. 간단히 내 말을 무시하며 가던 길을 계속 가는 시크. 그런 시크 앞을 거대한 트롤이 막아섰다. "어라? 이제 저녁거리까지도 덤벼?" 참, 시크의 표현력은 내 상상을 초월한다. "아이스 미사일!" 시크의 주위로 냉기가 흐르는 화살 수십개가 만들어 지더니 곧바로 자 신의 앞을 가로막은 트롤에게 날아갔다. '촤악~' 얼음의 화살이 트롤의 몸을 군데군데 헤집어 놓았지만 역시 재생력이 강해서 그런지 살이 금방금방 붙는다. 아무리 헤츨링 이라고 하지만 지상 최강의 생물 드래곤의 새끼이다. 그러니 마법 한 두개 쯤은 가볍게 쓰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크하하핫~ 나를 막는 자에게는 죽음만이 있으리~" 이걸 어떻게 말려야 할까. 완전 혼자서 세계정복이라도 한 듯이 웃고 있는데. 그리고 그 트롤은 죽지도 않고, 어이가 없다는 듯이 시크를 바 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말해야 할까. 말 잘못하면 두들겨 맞을 것 같아서 차마 입을 열지 못하는 나. 나는 이때부터 시크에게 생명의 위협을 느껴야만 했다. "들어가지....요..." "사내놈이 이 정도에 굴해서야 되겠나? 흐흐흐~ 이대로 인간들의 도시 까지 내려가는 거야~!" "처음엔 그런 소리 없었잖아....요..." "사나이가 하는 대업에는 피치 못할 사정도 따르는 법이야." 넌 여자잖아! 라고 반문하고 싶은걸 간신히 목구멍으로 삼킨 후에 어 떻게 하면 시크를 떼어놓을 수 있을지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81) - 카이오네스 - 하지만 이내 단순하게 생각하자로 바뀌고는 나도 내심 인간들의 생활 상이 궁금했기에 못 이기는척 시크를 따라가기로 마음먹었다. "가자~ 음하핫~" "누..님, 이 상태로 가자구..요?" "그럼?" 아마 가자마자 맞아 죽을걸? 지금 우리는 헤츨링 상태다. 폴리모프도 하지 않았는데 이대로 갔다가 는 정말 몬스터로 오인 받고 맞아죽기 쉽상이다. 하긴, 헤츨링을 죽일 간 큰 드래곤이 어디있겠느냐만은.. 아무튼, 이 몸은 조금 문제가 된다. "우리 몰매 맞지 않을까요." 그 말을 듣고 잠시 자신의 몰꼴(?)을 살펴보던 시크는 이해 한다는 듯 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군. 폴리모프 하자~" "하는 방법 알아요?" "....... 아니." 대체 뭘 어쩌자는 건지.. "그럼 못가겠네요." "아니야! 가는 거야! 서적을 뒤져보면 나올거야! 뭐, 일단 마나는 충분 하고 어떻게 하는지만 알면 되니까. 자~ 가자!" "어딜요?" '퍼억~' 우씨, 왜 또 때리는 거야? "니 엄마 서재 몰라?" 제발 저 주먹 좀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 대들자니 내가 아는 마법도 별로 없고 필시 실패하면 죽도록 맞을게 뻔하고. 아에 대드는 자체를 생각 말아야지. 그냥 이대로 사는 거야. 자기도 철들면 좀 낳아지겠지. "룰룰루~ 무슨 놈의 서재가 이렇게 넓어?" 콧노래를 부르며 따라왔던 시크는 대뜸 이렇게 반항(?)을 한다. 드래곤의 서재니 넓은게 당연하지 않은가! "조, 조금 넓죠? 하핫.." "너 그렇게 웃지마. 바보 같애." 무슨 말을 못해요, 말을. 그나저나 이 많은 책들 중에 폴리모프에 관한 책이 있을까? 있기는 있을 것 같은데, 찾기가 장난 아니게 힘들겠군. "한숨부터 나오는 구나." 한숨이 아니라 한탄부터 나오지 않수? "어쨌든 찾자!" 무조건 찾자라고 하니.. 원, 무식하단 소리는 듣지 않는지 걱정이다. 이걸 찾느라고 피로와 스트레스로 죽느니 차라리 장렬히 맞아 죽는게 낫다는 생각이 파릇파릇 솟아오른다. 하지만 그럴 용기는 없다. 그저 찾는 척 할 수밖에. 뭐, 시크 자신도 찾다가 제 풀에 지치겠지. 내가 얼렁뚱땅 책표지를 뚫어지게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동안 시크 는 정말로 열심히(!) 나조차도 양심에 찔리도록 정말 열심히 책을 찾 고 있었다. 이 책들 다 뒤지는 동안 몇 년은 그냥 지나가겠다. 어머니도 2~3일 후에 오신다고 했는데. "찾았다!" 헉.. 드디어 찾고 말았던 것이냐. 장장 6시간동안 쭈그리고 앉아 있던 시크는 붉게 충혈된 눈을 보이며 입가에는 잔인한 미소(물론 내게는 그렇게 였다.)를 머금고는 책을 쳐 다보고 있었다. 독한 것. "우리는 도시로 내려갈 수 있게 된거야!" 그렇게나 좋을까. 어차피 성룡이 되면 신물나게 내려갈텐데. 하긴 헤츨링때 내려가는 것 도 커다란 묘미를 안겨주긴 하지만 말이다. 뒷일이 조금 심각한게 문 제긴 하지만. (82) - 카이오네스 - 어쨌든 폴리모프를 하고 보니 영락없는 어린애들 모습이다. "야, 근데 왜 이렇게 어려 보이냐?" "아, 아직 저희들이 헤츨링이라서 그런게 아닐까요?" "그런가? 뭐, 상관은 없겠지. 그냥 가자~!" 단순한 놈. 드래곤은 헤츨링일 때 폴리모프를 시도한다면 보통 꼬마아이 모습이 다. 왜 그런지는 잘은 모르겠지만, 성룡이 되면 자유자재로 변할 수 있다 고 한다. 나중에 어머니께 꼭 물어봐야지. "근데 여길 어떻게 내려가요? 무지 높은데. 그리고 저 몬스터들은 어 쩌구요?" "냅둬. 어머니들 등살에 죽든 내 손에 죽든 그게 그건데. 텔레포트 해 서 갈까?" "아, 할 줄 아세요?" "아니." 장난 하자는 건가. "그럼요?" "너 못해?" "...네.." "그럼 걸어서 내려가야 겠구만." 걸어서 내려간다라. 이 길이 얼마나 험하고 위험 지댄지 모르는군.(사실 나도 모른다. 그리 고 몬스터만 빼면 그리 위험이라 할 것도 없다.) "비행 마법으로 날아서 가는건 어떨까요?" "그래? 음, 그게 더 힘이 덜들겠군. 플라이!" 결국엔 날아서 가는구만. "플라이!" 허공을 향해 붕~ 뜨는 내 몸이 느껴진다. 처음 해보는 건데 되네? 약간의 어지럼증이 몰려오긴 하지만 내 머리 를 휘날리고 가는 부드러운 바람 때문에 그것도 곧 가라앉았다. "야~ 이 마법 꽤 좋은걸?" 비행 마법 중에서 플라이 마법은 2서클 정도의 마법이다. 마나의 소비도 적고, 꽤나 돌아다닐 때 유용한 마법이라고 책에서 봤 다. 다만 중심잡기가 힘들어서 조금 탈이긴 하지만. "야, 너 왜 거꾸로 가냐?" 피가 머리로 쏠린다. 앉은 자세로 물구나무 서듯이 뒤집어 가는 내가 퍽이나 웃겼나 보다. 웃지 말라구. 하지만 내가 생각해도 웃긴 모습일 것 같다. 빨리 산 아래에나 도착했으면.. "끄악~~~~" 갑자기 들린 괴성에 흠칫 하며 정신력이 흐트러진 순간 우리는 그대로 아래로 고공낙하를 했다. 대체 시크는 내게 원수진게 뭐야. '쿠당탕~' 다행히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난 곳으로 떨어졌기에 망정이지 다른 곳 으로 떨어졌다면 도저히 상상하기가 싫다. "괜찮냐?" "아, 네. 괜찮아요.." '괜찮긴 개뿔이. 세상구경 오늘로 끝나는 줄 알았다.' "대체 왜 그런거에요?" "아아~ 옷이 나무가지에 걸려서 당황하다가 여기로 떨어져 버렸어." 기가 막혀서. 그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말이 되긴 되는데, 어떻게 그것 가 지고 당황해서..... 말을 말자. 내 마음만 찢어질 뿐이다. (83) - 카이오네스 - "그냥 돌아가죠." "안돼." 이러고 가자는 말인가. "사나이가 한번 한말은 책임을 져야지." 대체 자기 자신이 여성체라는 자각이 있는 걸까. 내가 어떻게 이 드래곤을 이기겠는가. 얌전히 장단을 맞춰줘야지. 헝클어진 머리. 군데군데 진흙이 묻은 모습. 찢어진 옷자락. 땟물이 줄 줄 흐르는 손. 이렇게 꾀죄죄한 몰골로 가까운 인간들의 도시까지 걸 어서 내려온 우리는(아까의 그 추락건 이후로 시크나 나나 비행 마법 을 쓰자는 소리는 안했다.) 다리가 아파 죽을 지경이었다. "배고프다. 밥먹으러 가자." "돈 있어요? 난 없는데." "니 엄마 레어에서 꼼쳐둔게 있어." 나도 감히 바라보기만 하고 손도 못댄 어머니의 보석들을. 시크는 내 의견은 상관없다는 듯이 근처에 있는 만두장수에게로 가서 만두 두 개를 사왔다. "먹어." 일단 배는 고팠기에 먹기는 먹었는데, 인간들의 음식이라서 그런지 무 지 맛있었다. 신물나게 먹어온 오크고기나 질긴 트롤보다는 100배나 더 낳았다. 익 혀 먹어서 그런건가? 어쨌든 만두 하나를 뚝딱 해치운 우리는 그런 대로 구경이라는 것을 한답시고 이리저리 기웃 거려봤지만 사람만 북적거린다는 것 외에는 딱히 눈요깃거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 "으음.. 별로 볼 것도 없구만." 이 말이 나오자마자 지금까지 고생(?)한게 헛고생처럼 느껴졌다. "야.." "네?" 내가 시큰둥하게 반응하고 있을 때 (이때 나는 나름대로 삐졌던 거다.) 시크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되더니 내 손목을 잡고 간신히 말했다. "마녀 왔다. 튀어!"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하늘을 바라보니 거대한 실버 드래곤과 어두침 침한 블랙 드래곤이 대조 되듯이 하늘에서 도시를 내려다 보고 있었 다. 누군지 말 안해도 알리라. "여기서 튄다고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옆쪽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공포에 질려 있는게 눈에 들어온다. '휘이이이이잉~' 난 이게 무슨 소린줄 안다. "저 망할 마녀. 브레스 뿜을려고 하는 거야." 말 안해도 그딴건 안다구! "실드 칠줄 알지?" "네." "좋아. 최대한 강력한 실드를 쳐." 그 실버 드래곤의 입에서 은빛의 광선이 쏟아져 나올 때 그에 맞춰 나 는 몸속에 있는 마나를 모두 모아서 실드를 쳤다. 내 실드의 위로 시크의 실드가 겹쳐지는게 보인다. 20초 정도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몇 천년은 족히 지나간 듯 길게만 느껴졌다. 실버 드래곤의 브레스가 지나간 자리에는 모든 것이 꽁꽁 얼어있었다. 나도 자칫 잘못하다가는 저 꼴이 됐을까봐 오싹 했지만, 곧이어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그 두 마리의 드래곤이 유유히 우리가 있는, 이제는 폐허가 되어버린 대지 위에 착륙했다. "미친! 이 악독한 마녀얏! 우리를 죽일 셈이었냐!!" "시크리오프슷! 너야말로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감히 헤츨링 역사상 가장 큰 죄로 기록되어 있는 가출을 해?" "귀여운 내 아들, 카네스야. 에미는 네게 실망했구나." 어머니~ 그게 아니에요~ (84) - 카이오네스 - "가출한 헤츨링들에게는 어떤 형벌(?)이 기다리고 있는지는 잘 알겠 지?" "알게 뭐야." "저..저것이!" "하라스, 참아요." 그러고 보니 책에서 언뜻 읽은 적이 있다. 가출한 헤츨링들과 구제 불능인 헤츨링들이 가는 곳. 헤츨링 보호 센터. 죽지 않도록 얻어터지고, 심각한 수준의(후유증이 심각하다고 들었다.) 정신 교육. "시크리오프슷! 내 그동안 네놈이 하는 짓 자~알 보았다. 헤츨링 보호 센터에 가서 반성좀 하고 오너라." "쳇, 지가 귀찮으니까." 어쩌면 시크는 애정 결핍증 환자? 에이 설마~ 아참, 내가 이런 쓸데 없는 것을 걱정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헤츨링 보호 센터라니. 그 악명 높은 곳에 들어가란 소리 아냐? "어머니.. 이 예쁘고 착한 아들을 설마 그곳에 보낼 생각은.." 어머니는 잠시 나를 싸늘한 눈빛으로 쳐다보시더니 아주아주 유감이라 는 듯이 말씀하셨다. "너도 교육좀 받아야 겠더구나." "어서 오십시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어머니 레어 비슷한 곳으로 들어가니 책상에 앉아 있는 한 여인이 보 이다. 필시 드래곤 이리라. 설마 이것도 월급받고 하나? "아, 라라. 이놈들이 가출을 했다지 뭐야? 교육좀 부탁해." 라라라는 여성은 우리를 가만히 쳐다보더니 빙긋 웃으며 걱정말라는 듯이 말했다. "네. 성년식때 찾으러 오십시오." "그럼 잘 부탁해." 두 드래곤이 휭하니 가버린 후 나는 400여년동안 이곳에 있어야 한다 는 사실에 절망을 느꼈다. "감히 헤츨링 주제에 가출을 해?" 아까의 그 영업용 미소는 어딜가고 음침하게 웃는 여인. 그 여인을 보고는 시크 역시 한마디 했다. "할망구. 입닥쳐. 못생긴게 뭐가 잘났다고 큰 소리야?" 아무래도 여기 생활이 시크 때문에 아주 예술적인 생활이 될 것 같다. 모든 원흉의 여인. 나는 이때부터 아마도 이 천하의 시크리오프스를 무서워 하지 않았나 싶다. "이걸 어떻게 먹어!" "안먹냐?" "내가 초식 동물이냐? 육식동물이라구! 내가 다이어트 하냐? 난 성장 기라구! 내가 나 좋자고 이러냐? 다 드래곤족의 미래를 위해서 이러는 거라구!(어쨌든 헤츨링이 자라서 성룡이 되어 드래곤족의 미래를 책임 지기에.)" 말 하난 잘한다. 나는 묵묵히 앞에 놓인 풀 쪼가리들을 먹고 있었으며(의외로 그리 먹 어주지 못할 만큼은 아니었다.) 시크는 모든 일에 불평을 쏟아 버려서 감독관인 남성체 드래곤과 치고 박고 싸우고 있었다. "내 이짓으로만 2천년을 했지만 너같은 구제 불능은 처음본다." "나도 너같이 독한 드래곤은 처음봐." "하여튼, 말빨 하나는 강하구만." "그거 칭찬이지?" 참으로 대단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헤츨링이다. (85) - 카이오네스 - 어떻게 성인 드래곤에게 한 주먹감도 안되는 꼬마 헤츨링이 바락바락 대든단 말인가. 어머니의 곁에서 예의 바르게 자라온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사실이다. "하움, 아저씨. 나 잠와." "아직 결혼도 안했어, 임마." "잠온다니까!!" "아주 지네 집 안방이구만, 여기가." 그 정신 교육이란게 악명이 상당히 높아서 나는 공포에 질려있었다. "야, 너는 안자냐?" 나를 보며 띠껍게 묻는 성인 드래곤을 보며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여 억지로 시크 옆에 누워 잠자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잠이 잘 올 리 가 없잖아! 우리는 몇 백년동안은 그곳에서 처음에 들어왔을 때, 약간(?) 맞은 것 빼거는 정신 교육이라는 것을 받아보지 못했다. 그 남성체 교육관이 시크를 워낙 이뻐한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럴땐 시크에게 고마워 해야 하나?) 어찌보면 자유롭다고 할 수 있 을 정도의 생활이다. 하지만 일은 일어나고야 말았으니... "이게 뭐야아아아아아아아~~~~~~~~~~~~~~" 수십년 동안 써온 내 방. (거기서 배정받은 방이다.) 그 곳은 거의 초토화가 되다시피 되어 있다. 침대는 뒤로 발라당 뒤집어져 있었으며, (드래곤이 조그마한 생물이 아니기에 어쩔 수 없이 폴리모프해서 생활하고 있다.) 각종 쓰레기와 더러운 악취.(대체 이게 어디서 나는지 심히 궁금할 따름이다.) 군데군 데 찍혀 있는 검은 발자국. 이미 천장에 있는 마법구는 깨진지 오래였 으며, 책장에 있는 책들은 성한 것이 거의 없을 정도로 찢어지고 더러 워져 있었다. 과연 이게 드래곤이 할 짓이란 말인가. 어려서부터 깔끔하고 소박한(?) 어머니 밑에서 자라왔기에 나는 조금 이라도 지저분할라 치면 어머니께 큰 소리를 듣곤 했다. 그 습관이 몸 에 베어서일까. 누가 내 물건을 건드리는 것은 죽어도 싫어한다. "여어~ 왔냐?" 그.리.고. 마지막으로 거지중에 상거지처럼 방바닥에 대자로 누워서 코 까지 골며 자고 있는 시크리오프스라는 이름의 드래곤을 보니, 나는 삶 자체에 회의가 느껴지고, 죽더라도 개겨 보고 죽자는 마음에 소리 를 빽 질렀다. "여기가 니집 마당이냐!!" "어어~ 방을 잘못 찾았어." 내가 반말을 하는데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실실 웃는 시크를 보며 화가 누그러지고 있었지만, 내가 여기서 주저 앉는다면 앞으로의 내 미래(?)는 뻔할 뻔자기에 기어이 대들고 말았다. "당장 치워!!" "니방이니까 니가 치워." "이렇게 만든 드래곤이 누군데!" "선배에게 개기겠다는 거냐?" "선배고 나발이고 빨리 못치워!!" "오오~ 개김성이 투철한 저 버릇없는 놈." 이게 지금 장난으로 보이는지 시큰둥하게 답한다. "그래! 오늘 너죽고 나죽자." "너 세상에서 제일 무식한 짓이 뭔지 알아?" 시크를 향해 돌진해 가려던 나는 그 말을 듣고 흠칫했다. 이유는 아마 도 모르는 것을 배운다는 학구열(?) 때문이 아닌가 싶다. "뭐.. 뭔데?" "남성체가 여성체를 주먹으로 패는게 세상에서 가장 무식한 짓이래."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인 것도 같았다. 어쨌거나 시크는 여성체가 아닌가. 내가 참...자... 무식한 드래곤이라고 소문이라도 나는 날이면 어머니가 나를 블랙 일족의 호적에서 파버릴 것 같아(참고로 어머니는 무식한 것을 세상에서 가장 경.멸.한.다.) 잠 시 호흡을 고르고 있었는데 뒤이어 비수같은 말이 내 가슴을 파고들었 다. (86) - 카이오네스 - "쳇, 진짜 속네. 저거 바보아냐?" "내가 오늘은 참으려 했지만, 무식한 놈이라는 소리를 듣는 한이 있더 라도 그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고야 말테다!" "호호홋~ 꼬맹아, 이 누님의 버릇을 고치겠다고?" 두 손을 걷어 부치고 옆에 있는 아무 물건이나 냅다 시크에게 집어 던 졌더니 피할줄 알았는데 그걸 정통으로 맞고 만다. ".... 감히 누님에게 대들어? 흐흐흐.. 오늘 지옥을 맛보게 해주마." '쿠당탕~ 쨍그랑~ 퍼억~ 쿵~ 뻐엉~' "둘...다.. 아주 잘하는 짓이다." "그럼 잘했지, 못했냐? 버릇없는 놈 버릇좀 고쳐 줬는데." "입 안닥쳐!" "훗~ 자유 주의 사상인 드래곤을 그 한마디로 구속하려 하다니 가소롭 군." 우리의 교관이었던 드래곤은 몹시나 화가 난듯했다. 나는 찍소리 않고 찌그러져 있었지만, 시크는 말끝마다 교관의 말에 트집을 잡으며 저승 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왠만하면 그냥 넘어가려 했는데, 안되겠다! 지금부터 50년간 정신 교 육이다!" 올것이 왔구나. 하긴 나같아도 그냥 안넘어 가겠다. 치고박고 싸우다가 힘이 딸린까 둘다 드래곤으로 폴리모프 해서 방 두 개를 날려먹었으 며, 그에 딸린 작은 정원까지도 초토화시켜 놨으니. 잠시 외출한 교관 이 와서 우리를 말리지 않았으면 아마 헤츨링 보호 센터는 문을 닫게 됐을지도. "놀고 있네. 정신 교육 시킬 꼬투리가 필요했던 거겠지." "10년 추가다." "쳇." 제발 저 입을 꼬매버렸으면 좋겠다. 대체 저 드래곤이 두려워 하는게 세상에 뭐가 있단 말인가! "내 살다살다 너같은 드래곤은 처음본다니까!" "처음 보니까 맘대로 살펴봐라. 언제 이런 구경 해보겠냐." 하여튼 매일매일 느끼는 거지만 저 입만 다물면 모든게 만사형통일 것 같다. 정신 교육. 헤츨링 역사상 가장 악독한 형벌(?)로 기록되어져 있는 것을 책에서 언뜻 봤다. 구체적인 설명은 첨부되어 있지 않았지만 세간에는 정신 교육 받다가 미쳐버린 헤츨링까지 있다고 들었다. (어쨌거나 헛소문이다.) 내가 정신 교육실로 혼자 들어갔을 때 처음 받은 느낌이 '어둡다' 였 다. "왜 이렇게 어두워요?" '쾅~' 거대한 철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고 이 어둠 속에는 나 혼자만이 남게 되었다. 어두워서 불이나 켜볼까 하는 심산으로 마법을 써봤지만 특수한 방인 지 마법이 흡수되어 버렸다. 지독한 어둠만이 두렵게 자리하고 있었으 며 어느 누구도 철문을 열고 들어오지 않았다. '혹시 이게 정신 교육..?' 혹시나 해서 폴리모프를 시도 해봤지만 역시나 였다. 여기서 60년을 살라고? 음식은? 물은? 대체 어쩌자는 거야! 어찌어찌해서 음식과 물 없이도 60여년은 버틸수 있다만 헤츨링은 성 장기라구! 이럴 때 잘 먹어둬야 해! 굶기면 어쩌자는 거야? 그나저나 이거 만든 드래곤들 참 머리가 좋다고 밖에 말할 수가 없다. 그것도 악독한 쪽으로 꽤나 발달한 드래곤인 것 같다. 아마 자기 자식 이 가출해서 이걸 생각해 낸게 아닐까. 헤츨링은 어릴 때는 무조건 어머니의 보호 아래 있는다. 헤츨링때는 두려움을 느껴도 당연한 시기이다. 어쨌거나 인간으로 치 자면 한없이 약한 어린아이니까. 어린아이들은 대게 어둠을 무서워한다. 그런 습성을 잘 활용했군. 보통 헤츨링 같으면 정말 이런 곳에 하루라도 있게 된다면 무서워서 두려움 에 질리거나 실신해 버릴지도. 나야 원래가 어둠의 블랙 일족이니까 어둠에는 그다지 편견이 없다. 쯧, 그 웬수 시크가 생각나네. 나중에 우리가 그 곳을 졸업(?) 할 때 교관이 해준 말이지만 우리처럼 독한(?)놈들은 처음봤다고 한다. 정신 교육실에 들어가도 할 짓 다하 고 맘편히 쉬다가 나온 것은 우리들이 처음이라는 말이다. 사실 정신 교육은 겁만 조금 주고 헤츨링이 울면서 빌게 되면 그것을 적외선 마법을 통해 보고 있다가 교육이 됐다 싶으면 몇 년을 거기에 있어야 되는지에 상관없이 꺼내준다고 한다. 한마디로 우리는 괜히 생고생을 했다는 거다. (87) 뜨거운 열기가 느껴진다. 하늘에는 이미 말라버린 태양만이 자신의 열기를 발산하고 있었고, 그 아래 있는 땅은 사막으로 변해 버린지 오래였다. 죽음의 땅. 생명력이 강한 사막에 있는 몬스터조차도 떠나버리게 만든 땅. 이미 모래 위로는 뿌연 수증기가 올라오고 있었고 한걸음 한걸음 내딛 는 다는게 고문인 것 같은 사막. 그런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한 인 영이 그 사막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회색 로브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뒤집어쓰고 손에는 지팡이 비슷한 것도 들려있지 않았다. 발이 푹푹 빠질 텐데도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 가는 모습이 어찌 보면 가히 경외스럽다. 그 인영의 몸에는 사막을 지 날 때 필요한 아무런 장비가 갖추어 있지 않았으며, 몸에 걸친 거라고 는 거추장스럽게 보이는 긴 회색 로브 뿐이었다. 더운 열기가 코앞까지 느껴지는 상황인데도 숨소리 하나 거칠어지지 않는 것을 보니 보통 사람은 아닌 듯 하다. 뜨거운 사막의 바람이 그 인영의 머리 위에 있던 로브를 헤집고 가면 서 얼굴을 가리고 있던 로브 한 자락이 어깨 끝에 걸리게 되었다. 약간은 주인의 무관심이 기울어 진 듯, 색이 탁해져 버린 금발에 깊은 심연의 바닷속을 바라 보는 것만 같은 푸른 눈동자. 사막에 약간 그을 린 듯한 상아색 피부, 본래는 흰 피부라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 사막의 끝은 어디지.." 곁에는 아무도 없는 것을 보니 누구에게 묻는 말은 아니었다. 모래를 동반한 바람이 자신의 얼굴을 쓸고 지나갈때에도 눈 하나 깜짝 하지 않은 그였다. 죽음의 땅. 이 곳을 통과한 인간은 태초이래 생겨난 후로 아무도 없었 으며, 세간에는 드래곤까지도 이 땅을 피한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었다. 공허한 눈동자로 태양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약간의 씁쓸함이 깊게 베어있다. 약간은 길게 내려온 탁한 금발을 가는 손으로 뒤로 넘기고는 다시 후 드를 뒤집어썼다. 오후로 들어서면서 태양이 더욱 타는 듯이 내리쬐었지만 전혀 더위를 느끼지 않는 듯 무의미하게 다시 걸음을 옮긴다. "시크리오프스..." 그가 남기고 간 단 한마디의 말. 그 말에는 진한 그리움이 깊게 배여 있다. "우리가 꼭 여기서 놀다 가야 겠냐?" 응~ 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귀엽게 고개를 끄덕이는 시오스를 못말린다 는 듯이 쳐다보고는 가까운 곳에 있는 여관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중대한 임무(?)를 띄고 있다구." "알아." 알면서 저런 소리를 하는 건가. "아는 놈이 이따위 소리를 해?" "일단은 몸과 마음이 튼튼해야 일도 하지. 안그래?" 말이나 못하면 밉지나 않지. 지금 우리는 온천 도시 하페에 와있다. 화산을 사이에 끼고 빙~ 둘러 있는 특이한 형태인 이 도시는 관광객들이 주로 찾는 명소 중에 하나 다. 아직 활화산이긴 하지만 유사시에는 마법사들이 대기하고 있기에, 화산이 폭발한다고 해도 그다지 큰 위험은 없을 것이다. 이 도시는 주로 카지노와(이 시대에도 카지노가 있었냐고 묻지 마라.) 관광으로 먹고사는 도시다. 도시의 주 수입중 30%가 카지노에서 번 돈들.(도시 자체에서 카지노를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60%가 관광객 들로 인해 번 돈들이다. 나머지 10%는 이 곳에 있는 주민들이 내는 세금이다. 전혀 이쪽으로는 지나갈 예정이 없었으나, 시오스가 하도 근처에 지나 가는 길에 자꾸 조르길래 어쩔 수 없이 하루만 이곳에서 보내기로 한 것이다. "우리 온천 가자~" 방에 짐들을 풀어놓고, 아직 신관복을 벗지도 않은 나에게 와서 졸라 대는 귀찮은 녀석이다. "혼자 가." "혼자 무슨 재미로 가냐? 그러지 말구 가자~" 하루 종일 말을 타서 그런지 허리와 엉덩이가 너무 아파서 잠시 누워 있으려 했더니만 조금도 쉴틈을 주지 않는다. "엉덩이랑 아프지? 온천 가면 다 낫는다니까~ 가자~ 응?" 조용히 세면도구와 가운을 챙겨서 나오는 나를 보고 환하게 웃음 짓는 다. 저럴 때는 예쁜데 하는 짓 보면 악마란 말야? (88) 여관으로 내려가서 근처에 가까운 온천이 있냐고 묻자 자신의 여관에 서도 온천을 운영한다고 한다. 뭐, 다른 곳을 일부러 찾기도 귀찮을 것 같아서 그냥 가족실 하나를 달라고 했다. 여러 사람 북적이는 곳에서 온천욕을 하느니 차라리 조 용한 곳이 낫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와~ 너 돈 많다~" 많긴 많지. 신도들이 정성스레 전재산 털어서 바친걸 이런 곳에 쓰니 까 양심에 조금 찔리긴 하지만 말야. 가족실 문을 여는 순간 뜨거운 수증기가 내 얼굴을 적신다. 수건으로 살짝 몸을 가리고 저 보글보글 끓고 있는 곳으로 들어가야 하나.. 하고 한참을 망설였다. 왠지 들어가면 데일 것 같은 예감에. "어? 안들어가?" 내 뒤에서 어깨너머로 온천을 바라보며 나를 시오스의 손에 이끌려 겨 우 발목만 담그긴 했지만 역시나 예상대로 뜨겁다. (역시 온천을 처음 와본 거다.) "얼~ 시원~ 하다." 혼자서 콧노래까지 부르며 그 뜨거운 물에 목까지 잠긴 상태에서 나를 바라보며 의아한 시선을 보인다. "어? 안들어와? 설마, 온천이 처음이라거나 (이놈도 딱 한번 가봤다.) 너무 뜨거워서 못들어 온다는 건 아니겠지?(사실 이놈도 처음에는 뜨 거워서 발광했다가 이제는 조금 익숙해진 거다.)" "들어가! 들어간다구!" "야..." "왜!" "너 왜 가슴이 나왔어?" 수건으로 가린 내 가슴쪽을 빤히 쳐다보며 시오스가 묻는 말이었다. 저 녀석, 모르고 하는 소린가? "여자니까." "응, 그렇구... 에엑! 그게 아니잖아!" 엄청난 충격이란 듯이 온천에서 벌떡 일어난 시오스는 나를 향해 버럭 버럭 소리를 지르고 있다. 이걸 말 해야 하나? 역시 말 해야 하겠지? "저기.. 시오스.." "니가 어떻게 여자라고.. 응?" 계속 지껄이던 시오스는 나의 물음에 반사적으로 답한다. 고로 나는 아까부터 고민했던 말을 쉽게 할 수가 있었다. "수건이 흘러 내렸는데.." 잠시 멍한 눈으로 자신의 아래쪽을 빤히 쳐다본 시오스는 얼굴이 안그 래도 수증기와 열기로 벌건데 이제는 푸르딩딩해 져서 소리친다. "이.. 치한! 뭘 보고 있는 거야! 당장 나가지 못해~!" 어쩔수 없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가족실 문을 나선 나는 뒤이어 울린 통곡 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다. "흑.. 엄마~ 나 당했어(?)~" 도대체 알 수 없는 녀석이다. (89) 온천밖에 쭈그려 있다가 조금 추워져서 가운을 걸쳤다. 내가 왜 안에 서 쫓겨난거지? 보통 이럴때는 여자가 남자를 쫓아내는거 아닌가? '드르륵.' 가족실 문이 열리며 얼굴이 벌게진 시오스가 가운을 단단히 여미고는 나를 노려본다. "너!!" "왜?" "너.. 너무해." "뭐가?" "어떻게 여자라고 말하지 않은 거야." "알고 있는 줄 알았지." "몰랐단 말야~" "그건 네 잘못이지." 어떻게 이 아름다운(?) 얼굴이 남자란 말인가. 머리가 짧긴 하지만 절 대 남자처럼 생기지는 않았다. 펑퍼짐한 신관복이 굴곡을 가려줘서 여 자라고 하기에도 뭣하지만. "책임져!" "뭘?" "나 책임지라구! 볼거 다봤을거 아냐!" "응. 근데 내가 왜 널 책임져야 되지?" "남자 몸을 다큰 처녀가 봤다면 책임지는 거야!" "응, 그렇구나. 그럼 결혼해야 하는 거야?" "다..다..다.. 당연하지." "나 얼마 못사는데." 갑자기 이 말이 나오니까 주위가 더욱더 추워진다. "그런 소리 하지 마!" "사실인걸?" 괜히 이 말을 꺼냈나? 아참, 그리고 우리는 결혼도 금지라구. 특히 대 신관은 말이야. 뭐,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겠지. "바.. 밥 먹으러 가자." 황급히 몸을 돌려 여관으로 돌아가는 시오스를 보며 나도 모르게 어깨 를 으쓱했다. 이거, 가족실을 통째로 두 시간 동안 빌렸는데 20분도 안 되서 나오다니. 돈만 아깝잖아? 하여튼 저 삐돌이 자식. "야, 덥다. 땀이 비오듯이 쏟아지는거 안보이냐?" "내가 알게 뭐야. 더럽게 덥네." 우리는 마지막으로 드래곤 한 마리를 음.. 그러니까 아주 살짝 손봐주 러 레어에 갔다가 최신 정보를 듣게 되었다. 얼마 전에 프라니가 자신의 레어에 들려서 사막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 고는 바로 죽음의 땅이라고 불리는 사막쪽으로 갔다는 거다.(이 드래 곤의 레어가 그 곳과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것도 장장 이틀동안 팬 다음에야 알아냈으니 아마 정확할 것이다.(그냥 심심해서 이틀씩이나 패고 있었는데, 아니 정확히 이 놈이 마지막이라는 사실에 기념을 하 면서 패고 있었다.) 난 사막이라면 안좋은 기억이 있기에 질색을 했지만 어쩔 수 없이 내 뒷덜미를 잡고 끌고 가는 카네스의 손에 이곳까지 오게 됐다. "카네스야, 물 좀 줘." "물 없어, 임마." "쪼잔하게 굴지 말고 좀 줘!" 전직 드래곤 체면이 말이 아니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나간 보람은 있었던지 내게 물통을 건네는 카네 스. 다시 달라고 할까봐 채가듯이 물통을 들고는 벌컥벌컥 마시기는 했는데 물 맛이 이상하다. 뜨뜻하고, 음.. 그 맛을 뭐라고 표현해야 하지? 아! 쉬었다. 그래 물이 쉬었... "푸악~" (90) 나는 입에 있던 물을 그대로 뱉어 버렸고 카네스는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아 나를 노려보았다. "이..이..이.. 귀중한 물을 뱉어?" "물이 쉬었어, 임마! 보존 마법도 안걸어 놓냐?" "쉰 물이라도 이 사막 한가운데서 얼마야? 엉? 정신 상태가 썩어먹었 어!" "우띠.. 그래 먹는다! 먹어!" 다시 물통을 들고 마시는 나를 보며 카네스는 두 손으로 머리를 쥐어 뜯으며 절규(?)했다. "크아아아악~ 그 소중한 물을 다 먹어버리다니!!!!!" "그냥 정령을 부르면 안될까? 마법을 쓰든지." "싫어." "물이 부족하다며." "이럴 때는 그래야 하지 않나? 사막에서는 물이 부족해서 동료끼리 싸 워야 제맛이잖아." 잠시 잊고 있었다. 이 놈이 초 변태 엽기 싸이코적이라는 사실을. "너, 네 자신이 이상하다고 생각해 보지 않았냐?" "생각이야 많이 하지." "알면 됐다. 쩝.." 자기가 아는데 상대방이 더 이상 뭐라고 왈가왈부한다는 것인가. 그저 고쳐지길 바래야지. 이 곳이 왜 죽음의 사막이라 불리는지는 알 것 같다. 내가 저번에 지나갔던 사막은 그래도 선인장도 있고, 사막 동물(다행 히 몬스터는 만나지 않았다.)들이 몇몇 보였었지만 여기는 아주 황량 한 사막만이 넓게 펼쳐져 있다. 어디를 봐도 모래뿐이고, 저번에 내가 갔던 사막과는 비교조차도 되지 않게 햇빛이 강렬하게 내리 쬐어 오고 있었다. "그런데 이 넓은 사막을 지나서 프라니는 어디로 가려고 했던 걸까." "글쎄.. 아직까지 이 사막을 살아서 돌아간 자가 없다고 들었는데? 드 래곤조차도, 태양이 너무 뜨거워 이 곳에 오길 피했다고 들었다." "그 녀석은 왜 이곳에 온걸까." "심심해서." 말을 말자. 물먹은 지가 방금인데 벌써 입안이 바싹바싹 타들어 간다. 저번 사막 에서는 그리 타지도 않던 피부가 여기 태양이 얼마나 강했는지 빨갛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자각을 하니 좀 따갑군. 그나저나 카네스는 엄청 뜨거울 것 같다. 머.리.가. 새까매서 열도 엄청 받았을 것 같다. 이 정도라면 머리에 불 안붙는게 이상하네? 흐흐흐, 연구해볼 가치가 있겠어. (안타는게 아니라 안타게 막고 있는 거다. 사 막에 갔다가 머리에 불붙었다고 소문 나봐라. 그 드래곤 체면이 뭐가 되나.) "빨리 따라와." "헤엑~ 넌 드래곤이고 난 인간이야, 임마! 인간이 무식한 드래곤 체력 을 따라갈 수 있다면 벌써 신 됐겠다." "입만 살아서." 어느새 저기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중얼거리는 카네스를 있는 힘껏 쫓 아가 숨을 고르고 있었더니 또 저~만치 가서 나를 부른다. 지금 똥개 훈련시키는 거야, 아니면 장난 하자는 거야? "헥헥헥.. 조금만 쉬었다 가자." "쉬다가 자려고?" "자면 뭐가 어때서." "자살 행위라는 것만 알아주면 좋겠군. 여기서 잠들게 된다면 저 뜨거 운 햇빛이 네 몸을 피해 갈걸로 믿냐? 천만에. 햇빛은 그렇다 치고 저 녁에는 어떻게 할건데? 기온이 내려가 아마 햇빛으로 말라 죽는건 면 한다해도 얼어 죽을걸?" "그래그래, 너 똑똑해. 치사하고, 더럽고, 열받아서 안쉰다, 안쉬어!" 자고로 저렇게 논리 정연하게 따지는 놈들은 머리가 대부분 똑똑하기 에 대드는 멍청한 짓은 말아야 한다. 말빨에 밀리면 나만 쪽팔린다. (91) "하늘이 맑군요." "응." "사막으로 갔을까요?" "응." "따라가야 할까요?" "미쳤냐? 그 더운 곳에 맨정신으로 가게." "그럼 술먹고 갈까요?" "........... 너도 농담이란 것을 할 줄 아는 놈이었구나." 둘이서 오붓하게 레어 앞의 바위에 앉아 하늘을 보며 하는 말이었다. 어찌보면 아주 다정한 친구사이로 보일 수도 있지만, 아마 그 레어의 주인이 거의 반죽음이 되어 있는 상태로 레어 안에서 낑낑대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그런 말을 못할 것이다. 엊그제에 바로 시크와 카네스가 와서 자신을 죽도록 패서 그 멍이 가 라앉지도 않았는데 며칠 안가서 이 날강도 같은 놈들이 들어와서 이유 도 없이 자신을 다시 반 죽도록 패고 나서 알아서 술술 부니 레어 앞 에서 저 지랄(?)이다. "아무리 카이오네스님께서 계시다고 해도 시크리오프스님이 위험할지 도 모릅니다." 이에 라네는 참으로 신기한 동물을 보듯이 카라드시크를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너 이름 그렇게 길게 부르면 짜증나지 않니? 허~ 참, 이녀석 천연 기 념물일세. 그냥 닉네임 불러 닉네임. 카네스, 시크. 얼마나 좋아? 안그 래, 카라?" "함부로 닉네임 짓지 마십시오." "왜에? 이쁘잖아. 카라카라카라카라~ 훗~" 조련사와 원숭이 같다. "조금 자고 나서 가자. 사막의 저녁은 춥다구." "네. 하아암~ 그러고 보니 졸리네요." 멀리 사막에서 불어오는 뜨뜻한 바람을 맞으며 둘은 조용히 눈을 감았 다. "으.. 으이쒸~ 추.. 추워 죽겠다." "잔말 말고 자기나 해." 이 추위는 정말 살인적이다. 오후의 태양도 그에 못지 않았지만 지금 의 내 심정은 차라리 뜨거울 때 걷는게 100배 낫다는 생각이다. "추운데 어떻게 자라는 거야!" "모닥불 피워 놨잖아. 옆에 와서 자." "왜 이렇게 추워! 프라니~ 이 녀석 잡히기만 해봐라!" 왜 정말 이 생고생을 하는지. 그 놈이 세계 정복을 하든 로드를 하든 나와는 지금 관계가 없지 않은가. 드래곤은 남의 일에 끼어드는 것을 정말 싫어하는데 이놈들은 왜 이렇게 남의 사생활(?)에 관심이 많은 거야? "그런다고 없는 녀석이 나타나기라도 하냐? 그만 자라." "쳇, 정말 살인적으로 춥다구." "알아알아, 나는 안춥냐?" 나는 벌떡 일어나서 카네스의 멱살을 잡고는 흐흐흐.. 라는 웃음을 한 번 날려 주었다. "넌 드래곤이잖아. 뭐, 나는 저번에 허.약.한. 드래곤이어서 체온 조절 을 못했지만 보통 드래곤은 체온 조절을 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 순간 뜨끔해진 카네스는 나의 눈을 피했다. 역시나 그는 몸속의 체온 을 높여 놨다는 말인 된다. 여기서 어째 고생하는 건 나뿐이군. "이리와, 카네스!" "뭐, 뭐야!!" 카네스를 꼭 끌어안고 부빗거리며 그대로 모포를 덮고 잠자리에 누웠 다. "이거 놔!" "따뜻하다~ 흐흐흐, 이 누님을 위해 한 몸 희생해라." "놔! 놓으라구!" 내 품속에서 앙탈을(?) 부리는 카네스를 포옥 껴안고는 아주 편히 잠 드는 나였다. (92) 잠시 시크의 품에서 가만히 있던 카네스는 시크가 잠들었다는 것을 몇 번의 확인 사살을 통해 깨닫고는 슬쩍 일어나 자신의 모포를 덮어주었 다. 그리고는 저 멀리 다다다 뛰어가서 온몸에 방어태세를 취하며 경 계를 늦추지 않고 시크를 바라보았다. "우띠.. 추워.. 음냐." '어렸을 때부터 한시라도 방어를 늦출 수가 없는 놈이었다. 저 놈 때문 에 헤츨링 교육 센터에 들어간 것만 생각하면.. 크흑.. 이번엔 또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 "카네스!!!" "으.. 으응?" 거의 반사적으로 대답한 카네스는 곧이어 그것이 시크의 잠꼬대 였다 는 사실을 깨닫고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너 나중에 죽었어." 대체 왜 자신이 죽어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는 듯한 카네스다. "왜..?" "내 맘이야." 잠꼬대란 것은 분명한데 이상하게도 꼬박꼬박 대답하는 시크를 보며 카네스는 저걸 가서 발로 한번 차줄까 라는 표정을 짓다가 상종을 말 자고 생각했는지 그 자리에서 잠들어 버렸다. 내가 일어났을 때 카네스는 감히 내 품속에서 벗어나 저 만치 떨어져 서 자고 있었다. 어쩐지 춥다고 그랬다. 그래도 주제에 양심은 있었는지 자신의 모포를 나에게 덮어 주었던 것 같다. 괘씸한 놈. 감히 이 몸의 품을 벗어나서 저기 가서 자? '퍽~' 쪼그려 자고 있는 불쌍한 놈을 발로 그대로 차버리니 저만치 떼굴떼굴 굴러간다. 쪼그려 있는 모습으로 꽤 오래 있었는지 잘도 굴러 간다. 아 마 몸이 굳어서 쉽게 움직이지 못한 것이리라. "아하~ 잘 굴러간다~ 떼굴떼굴, 카리스마 카네스씨, 잘 굴러 간다~" "너 죽었어!" "혼자만 따뜻하니까 좋디? 넌 친구를 버렸어." "버리긴 개뿔이. 다큰 남녀가 서로 껴안고 자리?" "호오~ 꼴에 남자라고 위세 떠네?" '우드득~' 약간 경사진 곳에서 떼굴떼굴 잘도 굴러가다가 멈춘 카네스가 힘겹게 일어나자 뼈가 우드득 소리를 내며 뭉쳤던 근육이 풀어지는 것 같았 다. "아아~ 간만에 운동좀 했더니 덥네?" "너.. 나를 이 꼴로 만들고 무사할 줄 알았단 말이냐!!" "오호호홋~ 설마 카리스마적이고 레이디를 우선으로 생각하는 카네스 가 이 아름다운 숙녀를 때릴까?" "난 널 여자로 생각한적 없어." 오호~ 저게 이제 현실을 부정하네? "어머~ 자기? 어제 내 품에 안겨서 얼굴 빨개지며 앙탈을 부리던데 꽤 귀여웠어~" 정말 이렇게 치사하게까지는 나오고 싶지 않았지만 이 놈 하는 짓이 미워서 조금 곯려 줄련다. "네가 억지로 껴안았잖아!" "호홋~ 속으론 좋았으면서. 그렇게 부정하면 내가 섭하지~" "너 정말 네가 악마인건 알고 있냐?" "어머어머? 그걸 이제 알았어?" 잠시 한심한 듯이 내 얼굴을 쳐다보더니 카네스는 가지고온 배낭에서 딱딱한 빵과 육포를 꺼내어 내게 던져주고는 조용히 아침을 먹기 시작 했다. 반응이 없으니까 이짓도 재미 없네. (93) "우웅.." 목이 말라서 살짝 눈을 떠보니 르엔이 옆에 없다. "르엔?" "응?" 밖에 나간줄 알았는데 갑자기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 조금 놀랬지만 르 엔의 표정을 보니 그게 아니다. 창 밖을 멍하니 쳐다보면서 입술을 깨 물고 있는 르엔을 보자니 뭔가가 조금 이상하다. "이상해." "뭐가?" 창밖을 보니 아직도 깜깜한 밤인 듯 고요하기만 했다. 대체 뭐가 이상 하다는 거지? "너무.. 조용하지 않냐?" "밤이니까 조용한건 당연한거 아냐?" "아니, 이건 너무 심해." 왜 저렇게 쓸데없는 걱정을 사서하는 걸까. 설마 '그 기운' 때문에 그 런 건가? 아까부터 거대한 기운이 이 곳을 돌아다닌다는 생각은 했지 만 그냥 유희나온 드래곤이려니 했다. 이녀석도 그 기운을 느끼는 건 가? "너도 느끼냐?" "뭘?" "드래곤." "조금은." "유희 나왔나 부지. 그냥 자자." 여자인 르엔과 왜 한방을 쓰냐고 묻지 마라. 돈 아깝다고 어떻게 방을 두 개 빌리냐는 거다. 돈은 이 녀석이 가지고 있으니, 나는 뭐, 하라는 대로해야지. "유희 나온 드래곤이 가만히 잠이나 퍼잘것이지, 왜 이 시간에 돌아다 니는 걸까?" "너처럼 달밤에 체조하나 부다." "장난할 기분 아니야." "알았어, 알았어. 나가 보자." 결국엔 르엔과 밤길에 나가보기로 한 나는 서둘러 옷을 입고 여관을 내려왔다. 뒷문을 살짝 여니 여행자들이 밤에도 잘 돌아다니는 듯 뒷 문이 열려 있었다. "음.. 여기 지리는 잘 모르는데." "걱정마. 내가 외워둘 테니까." 볼을 부풀리며 뚱한 표정으로 계속 가다 보니 뒤에서 르엔이 툭툭 치 는게 느껴진다. "왜~ 또!" "저기.." 르엔이 가르킨 곳을 바라보니 밤이라 잘 모르겠지만 머리부터 발끝까 지 어두침침한 로브를 뒤집어쓴 인영 가 밤하늘을 올려다 보고 있었 다. "드래곤이군." "응." "말을 걸어야 할까?" "그냥 가자. 저렇게 감상에 젖어있는데 방해하면 한 대 맞을거 같은 데." 정말 의식이라도 치르는 듯 엄숙하게 하늘을 우러러보고 있는 드래곤 에게 말을 붙일 정도로 나는 간 큰 인간이 아니다. 그 드래곤은 왠지 내게 매우 익숙한 느낌이었지만, 나는 저렇게 음침 하게 다니는 드래곤은 알지 못한다. 온몸으로 '나 건들면 죽어!'를 외 치는 것만 같은 드래곤. 정말 여기서 잘못 건들면 죽을 것 같았다. 내가 아무리 어머니의 드래 곤 하트를 가지고 있다지만 말이다. "헤이~ 달밤에 체조하냐?" 갑자기 가까운 골목에서 덩치들 두셋이 나오더니 그 드래곤의 머리를 한번 툭 치고는 던지는 말이었다. 우리는 다행히 약간 어두운 건물이 모습을 가려주었기에 그들에게는 발견되지 않았다. ......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저들은 지금 드래곤이 뿜어내고 있는 위압 감이 느껴지지 않는단 말인가. (94) 하늘을 무심히 올려다보던 드래곤은 천천히 고개를 내리고 자신을 둘 러싼 이들을 하나하나 바라보았다. "인간.. 인가." "이거 미친놈 아냐? 그럼 우리가 인간이지 몬스터라도 된단 소리냐?" 드래곤의 어깨를 툭툭 치며 시비조로 말하는 사람을 바라보며 멈추라 고 말하고 싶었지만, 내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할정도로 드래곤이 뿜어내는 기운은 대단했다. "이 어두침침한 로브는 또 뭐냐? 이 자식, 혹시 도망자 아냐?" "경비대에 데리고 가볼까? 키킥." "우리 주제에 무슨 경비대냐? 이 놈 잡아가기 전에 우리먼저 잡으려고 달려들... 크악~" 사내는 말을 끝내지 못하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드래곤은 자신에게로 넘어지는 사내를 살짝 몸을 틀어 피하고는 마법이 난사된 곳을 바라보 았다. "뭐.. 뭐야!" 나도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마스터급의 마법사 7명이 드래곤의 주위를 둘러싸고는 자신의 앞을 막는 인간들에게 마법을 난사하고 있었다. 세 명의 인간이 죽자 마법사들은 드래곤에게 다가가더니 부복을 하고 외쳤다. "위대한 드래곤이시여, 여기까지 왠 일이십니까." "....... 너희도... 인간인가." 이상하다. 적대감이 커지고 있다. 심리가 불안해 지는지 드래곤의 마나가 상당히 불안정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갑자기 그 중에 마나의 흐름이 약한 자 하나가(그곳에 있는 마법사에 비해 약하다는 소리다.) 머리를 숙이고는 말했다. "잠시 생쥐들을 처리하고 오겠습니다." 우리를.. 느낀 건가. 하긴 우리가 저들을 느꼈는데 저들이라고 우리를 느끼지 못하란 법은 없지. 순식간에 우리 쪽으로 이동해 오는 마법사를 바라보며 르엔은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걱정하지 말라구, 르엔. 나도 대 마법사 급이라구. 경험은 떨어질지도 모르지만 내 마나로도 그들에게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저 괴물들 7이서 달려든다면 승산은 없을 것 같은데.. 그때는 죽어라 도망가야지, 뭐. (95) "아직 어린 얘들이군." 의외로 우리 앞에 나타난 마법사의 모습은 인자한 할아버지였다. 잘 웃는 사람인 듯 입가와 눈에는 잔주름이 잡혀 있었고 약간의 긴 수염 을 기르고 있었다. "빨리 끝내고 오게나, 멘." "미안하구나. 하지만 오늘 일을 본 인간은 살려둘 수가 없다." 증거 인멸이라는 건가. 내가 방어 태세를 완벽히 갖추고 있을 때 할아버지는 나를 신기한 듯 이 쳐다보더니, 고개를 갸웃 거렸다. "이상하군, 이상해. 어떻게 그 나이에 그런 마나를 가지고 있을 수 있 는 거지? 혹시 당신도 드래곤이십니까." 내게 있는 마나의 흐름을 읽혔나 보다. 하긴, 이 정도의 마나를 가지고 있는 인간은 인간이라고 생각지 못하 니까. 그런대로 숨기긴 숨겼는데 완벽하지 못했나 보군. "........시오스." 의문문도 아니었다. 나이길 확신하며 묻는 소리. 나는 확실히 저 목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프라니 형?" 할아버지는 드래곤과 내가 아는 사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괜히 화를 불 러들이지 않기 위해서인지 살짝 뒤로 물러났고 프라니 형은 내게로 다 가왔다. 자신의 로브를 살짝 뒤로 젖히고는 그 푸른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 다. "왜 이제 온거야? 내가 여기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지? 형 대단하네~" 그냥 좋았다. 나를 잊은 줄 알았던 존재가 내게 나타난 것만 같아서 그냥 바보처럼 좋았다. "아이스 스톰." 지나치도록 조용한 목소리가 밤하늘을 갈랐다. 무의식적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낀 나는 급하게 르엔을 막아서며 실드 를 쳤다. 거대한 얼음의 폭풍이 예리하게 내 실드에 부딪혀 왔고, 보통 인간도 아닌 드래곤이 난사한 마법을 완벽히 막는 것은 불가능했다. "큭.." "시오스! 괜찮아?"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주위를 둘러보니 7명의 마법사 들은 이미 자신의 주위에 실드를 치고 있었으나, 피해는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컸다. 르엔과 내가 기대고 있던 벽은 이미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얼음과 함께 벽돌조각이 뒹굴고 있었으며, 아까 우리에게 다가왔던 할아버지는 각 혈을 하고 있었다. 나도 그렇게 성한 편은 아니었다. 여행복의 상의가 세로로 길게 찢어져 적지 않은 피가 베어 나오고 있 었고, 르엔은 왼쪽 뺨에 가느다랗게 상처가 생겨 있었다. 역시 내 힘으 로 다 막기란 역부족이었나. "괜찮아?" "그것보다.. 앞에." "형! 미쳤어?" "..........." (96) 이번에는 형의 손에서 붉은 화염의 구가 맺혔다. "형, 왜 그래. 정신차려!" 내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맺히고 있었다. 나는 실전 경험이 부족한 편 이다. 아무리 마나가 넘치고 넘쳐도 실전 경험이 턱없이 부족해서 조 금만 노련한 마법사를 만나도 금방 고전을 면치 못한다. "제길.." "어떡하지?" "도망가야지. 형은 지금 제정신이 아니야." 붉은 화염의 구가 내게 날아오는게 보인다. "텔레포트!!" 조금 힘들긴 하지만 르엔을 안고 어머니의 옛 레어가 있던 곳으로 텔 레포트를 시도했다. 한시름 놓았다고 생각했을 때, 갑자기 눈앞에서 무언가가 찢겨져 나갔 고, 내 앞에는 프라니 형이 보였다. '공간을.. 찢었다..? 말도 안돼!' 지금 이 우스운 상황을 납득하지 못한 나는 잠시 멍해져 있었다. '촤악~' 어느새 프라니 형의 손에 들려있던 검은 정확히 내 어깨를 베어 왔고 그것을 막을 여유같은건 내게 없었다. "큭.." 아까까지만 해도 마법을 시전했던 나의 오른팔이 땅에 뒹굴고 있는게 눈에 보인다. 무의식적으로 오른팔이 있었던 곳을 만졌지만 이미 질퍽한 피만이 그 곳에서 솟구치고 있었다. 빨리 지혈하지 않으면 안될텐데. "시오스!!" 르엔의 소프라노 목소리가 밤하늘에 길게 울려퍼졌고 과다 출혈을 일 으킨 나는 흐려져 가는 정신 속에서도 르엔을 멀찌감치 밀어버렸다. 형의 손에서 다시금 황금색의 구체가 생겼을 때, 나는 직감적으로 알 게 되었다. 드래곤의 브레스를 압축시켜 놓은 것. 나는 그때 죽음을 예감했다. "헉.." "왜 그래, 시크? 또 이상한 꿈이라도 꿨냐?" 온몸을 타고 흐르는 이 오싹한 기운은 분명 사막의 밤 때문에 그런 것 은 아니었다. 무언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것만 같은 그런 느낌. "아니.. 아무것도." "제길, 오늘따라 정말 기분 더러운 밤이다." 왠지 어두운 얼굴로 밤하늘을 바라보던 카네스는 불안한 눈빛으로 나 를 바라보았다. "괜찮아, 아무 일도 없을 거야."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이 중얼거리며 내게 다가와서는 흘러내린 모포를 덮어주는 카네스를 바라보며 나는 나도 모르게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 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래, 정말 기분 더러운 밤이야.." (97) ".... 큭... 왜..." 묻고 싶었다. 형에게 내가 무슨 존재였는 지를. 이렇게 아무렇게나 끝낼 수 있는 존 재였는 지를. 죽는다는 것은 그리 억울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를 키우다시피 한 형이다. 내게 아무런 감정이 없었을까. 이렇게 매정하게 나를 죽여도 될만큼 아무런 감정이 없었던 것일까. 이미 드래곤의 브래스로 내 몸은 망가질대로 망가진 상태이다. 아무리 드래곤 하트를 가지고 있고, 9서클 대 마법사이자 불사신이지 만,(보통 인간의 힘으로는 나를 죽이지 못한다. 대 마법사의 칭호, 그 리고 엄청난 마나로 특별한 천재지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늙지 않고 불사신으로 살수 있다.) 심장이 몸과 분리되도 죽고, 목이 떨어져도 죽 는 인간이다. 다만 나를 죽일 인간이 흔치 않아 불사신이라 했지만. 어 머니가 있어서였을까. 난 절대 내가 드래곤의 손에 죽는 다는 것은 상 상도 해보지 못했다. 평소에 장난기 많은 그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아무말도 하지 않고, 형 은 끝까지 내게서 눈을 떼지 않는다. "윽.. 으윽.. 흐윽.." 충격으로 겨우겨우 비명소리를 참고 있는 르엔이 안타깝게 보인다. 저 녀석 두고는 불안해서 갈 수가 없는데. 결혼도 하기로 했는데. 눈에 서 눈물만 뚝뚝 떨어지는 모습에, 그리고 저 모습을 내가 만들어 냈다 는 사실에 가슴이 답답하다. 달빛에 반사된 차가운 칼날이 번쩍인다. 형이 가지고 있던 칼은 천천히 내 목을 향해 다가왔고 나는 조금이라 도 르엔의 모습을 담아두고 싶어서 눈을 크게 떴다. 울지 말라구. 세상이 끝난게 아니잖아. 너와 내가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잖아. 제발.. 울지말라구. 네가 울면.. 내가 미쳐가고 있는 것을 발견해. 목에 느껴지는 섬뜩한 칼날 앞에서도 나는 르엔에게 시선을 떼지 않았 다. "텔레포트.." 르엔의 모습이 흰빛에 둘러쌓여 사라지는 것이 어렴풋이 보인다. 내가 너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이야. 마나가 별로 없어서 도시 밖으로 이동시켰지만, 이걸로 만족한다. 형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고통을 아니까.. 널 죽이지는 않을거야. 그 럴거야.. 지금은.. 그렇게 믿을래.. 마지막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새벽이 다가오는지 푸르스름한 하늘은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면서 본 세상의 모습중에 가장 아름다웠다. "성문에 걸어 놓도록." 차마 눈도 감지 못한 머리를 근처에 있던 마법사들에게 던져 주며 짧 게 말한 드래곤은 곧이어 텔레포트로 사라져 버렸다. "에잇, 별 희한한 꼴을 다 당해보네." "늙어서 신경통 때문에 마법사 회의를 여기서 가진 것 자체가 잘못이 야. 에잉." "그나저나 이걸 어떻게 걸어놓는다." "멘, 네가 제일 막내지? 다녀와라." "어쨌든 드래곤이 명령한 거니까." 멀리서 희미하게 보이는 도시를 바라보며 이 '죽음의 땅' 이라고 불리 는 사막을 건너 왔다는 생각에 소리지르는 나를 가볍게 차버리면서 걸 음을 옮기는 카네스를 나는 꽤 냉정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온천도시 하페인가. 설마 사막과 이어졌다는 말은 들었어도 진짠지는 몰랐군." "아무렴 어때. 저기에 정말 프라니가 있을까." "글쎄.." "글쎄가 뭐야 글쎄가! 우리가 이렇게 찾아왔으면 있어야지!" "어제 희미하게 드래곤의 기운이 느껴지긴 했다만, 지금까지 있을지는 잘 모르겠군. 없다면 단서라도 조금 잡히겠지." 역시나 이 뜨거운 태양은 전혀 면역이 되지 않는다. "카네스야. 우리 이렇게 저기까지 걸어가기 힘들지 않아? 그냥 텔레포 트나, 날아서 가자~" "공간의 틈 사이에 끼고 싶냐. 텔레포트를 하고 싶어도 좌표를 모른다 구. 그리고 그 생각을 안해본건 아니다만, 이 사막에서는 모든 마법의 흐름이 엉켜 버리더군. 잘못하면 역으로 그 마법의 부작용이 나타난다 구. 그러니까 프라니도 걸어서 간거겠지." "쳇, 그놈은 분명히 폼 잡을려구 걸어서 갔을 거야. 모든 도시의 좌표 를 꽤고 있는 놈이 저곳의 좌표를 몰라서 하필이면 이 사막을 걸어갔 다는 것은 솔직히 상상도 안되거든." "우리에게 따라오라는 표식이었는지도 모르지." "그래그래, 프라니 놈은 지능범이야. 빨리 가기나 하자. 힘빠져." (98) 멀리서 희미하게 보이기는 했지만, 이렇게 멀 줄은 몰랐다. 뭔가가 이상하다. 도시에 다가갈수록 몸이 떨리는 오한이 계속 되었으 며, 식은땀이 몸을 가득히 적시기 시작했다. 우리가 도시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땅거미가 질 때쯤이었으며 도시의 경비병들은 도시와 밖을 통하게 해주는 유일한 문을 닫기 직전이었다. "시크..?" "왜." 저 놈이 왜 또 나를 부르는 거야? 띠꺼운 표정으로 카네스를 바라보자 카네스는 자기가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니가 아니면 귀신이 나 불렀냐? 저게 감히 장난을 해? "시.. 시크.." 그러고 보니 프라니의 목소리가 아니네. 희미하게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보니 눈물 범벅이 된 아이 하나가 나를 애타게 부르고 있었다. "혹시.. 르..엔?" 솔직히 신관복을 보고 알아 맞춘 거다. 신관중에 나를 아는 신관은 르 엔밖에 없으니까. 그런데 르엔이 나를 보고 더 이상 말을 끝맺지 못하고 계속 울기만 한 다. 안그래도 울어서 퉁퉁 부은 눈이 더 못쓰게 될 것 같다. "여긴 왠 일 이야? 왜 이렇게 운거야? 네가 있다면 시오스도 같이 왔 겠지? 어딨어?" "... 흐윽.. 끅... 흑.." 가까이 다가와서는 흙투성이간 된 손으로 내 옷자락을 붙잡고 말을 잊 지 못하는 르엔을 보며 뭔가가 잘못됐다고 생각 했다. "어딨어. 시오스 어딨어!" 다그치자 차마 말을 못하겠는지 떨리는 손끝으로 조심스레 내 뒤를 가 리키는 것을 보고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카네스는 르엔의 손짓이 무슨 뜻인지를 알았는지 한 손으로 조용히 내 눈을 가렸지만 그것을 거칠게 밀쳐내 버리고는 르엔이 가르킨 곳을 바 라보았다. 커다란.. 아주 길고 커다란 창에 시오스가.. 내 아이의 목이 걸려 있었 다. "시크, 진정해." 대체 뭘 진정하라는 거야. 초점 없는 눈을 뜨고는 이쪽을 바라보는 시오스를 나는 어떻게 해줄 수가 없었다. 조심스레 가까이 다가가 보니 시오스의 아래 쪽에 팻말로 '드래곤의 분노를 받은 자.' 라고 쓰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드래곤의 분노......? 우스워. 프라니바투스. 대체 내 아들이 네게 무슨 잘못을 한거냐. 조심스럽게 시오스를 향해 손을 내밀어 보았으나 닿지 않는다. 너무 높다. 내 손이 시오스의 얼굴에 닿지 않는다. "시크." "닿...지 않아. 너무.. 멀리 있어." 나를 이렇게 애타게 쳐다보고 있는데.. 자신의 눈을 감겨 달라는 듯이 이렇게 애타게 나를 쳐다보고 있는게 고작 나는 손이 닿지 않아 내 아 들을 품에 안지 못하고 있었다. "도와줘. 여기서.. 나보고 도와달라고 하잖아! 왜 이제 왔냐고 나보고 묻고 있잖아! 시오스가.. 울고 있잖아.." 카네스가 조용히 시오스의 머리를 내려서 두손을 내민 내 손안에 건네 준다. "미안해.. 조금 늦었지? 화났니..? 왜 아무 말이 없는 거야. 너.. 그렇게 삐지면 엄마한테 정말 혼난다구 했다.. 응?" 피로 인해 끈적끈적해진 금빛의 머리에 볼을 부벼대며 조용히 속삭였 지만 시오스는 대답하지 않는다. "..... 큭... 큭큭큭.." 눈물은 나오지 않는다. 예상 했었잖아. 시크리오프스. 왜 이렇게 망가지는 거냐. "큭... 큭큭.. 아아아아악!!!!!!!" 피를 토하며 절규하는 내 비명소리가 도시의 외곽에 울려퍼졌다. 프라니바투스. 내 너를 저주하리라. 죽음의 그림자가 뼛속 깊이 다가와 도 네 놈의 숨통을 끊어놓고 말겠다. 내 가슴이 이리 찢어지고 이 아 이가 죽어가며 받은 고통을 그대로 되돌려 주겠다. 너에게 죽음의 여신의 그림자가 언제나 함께 하기를.. 큭큭큭.. (99) "뭐 좀 먹어야 하지 않겠어..?" 시오스의 머리를 꼭 껴안고 있는 나에게 카네스는 조심스레 물었지만 누구보다도 카네스가 잘 알 것이다. "시오스 일은 유감이다." "... 유감? 그렇게 간단히 말할 수 있나..? 무엇보다도 네 아이잖아!" "알고 있었나..?" 긴장이 풀린 나는 그때서야 눈에서 쏟아지는 눈물을 느꼈다. 볼을 타 고 흐르는 눈물을 느끼며 내 품에 안긴 시오스의 머리를 매만졌다. 눈물 한 방울이 시오스의 머리로 떨어진다. "모를 수가 없잖아.. 너를 닮은 모습은 없어도, 알 수 있는걸." "그 아이는 잊어라." "..... 잊어...? 내 생명같은 아이를..? 너는 알잖아! 내가 어떤 마음으로 이 아이를 키워왔는지.. 너는.... 알잖아.." 방울방울 떨어지는 눈물이 시오스의 머리를 적시고 있다. 이미 온기가 빠져나가 버린 시오스의 모습은 나를 더 눈물짓게 한다. "헤이~ 생각보다 잘 지내잖아?" 장난스런 목소리가 내 앞쪽에서 들려왔고, 무엇보다도 잊고 싶지 않은 목소리였기에 고개를 들어 쳐다보니 핑크 천사가 내 앞에서 팔짱을 끼 고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이~ 그런 목을 안고 있으면, 살벌하게 보인다구." "...... 죽고 싶지 않으면 입닥쳐." 내 손은 어느새 핑크 천사의 목덜미를 쥐고 있었다. "여기서 조금만 힘을 주면 너희 망할 천사놈들도 죽는다구. 하지만 그 렇게 놔두지는 않아. 무엇보다 내가 너희에게 부탁이 있으니까." "이봐이봐, 너무 거친거 아냐?" "여기서 너 하나 죽인다고 달라질건 없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하며 손을 내젓는 핑크 천사는 조용 히 말했다. "좋아좋아, 나도 너와 장난하고 싶은 생각 없으니까. 이번에 온 이유는 데려가려고 왔다." "쿡, 내가 찾아가려고 했는데 번거롭지 않아서 좋군. 잘들어, 카이오네 스. 누구라도 내가 오기 전에 프라니바투스에게 손대는 놈은 용서하지 않겠다. 놈은 내가 죽인다." 잠시 내 머리에 손을 올려놓은 뒤 그 천사가 손을 떼었을 때 왠지 뭔 가가 가벼워 졌다고 생각 됐다. "시크!" 뒤를 바라보니 내 임시 육체였던 몸이 옆으로 쓰러지는게 보인다. 잠시 시오스의 머리에 살짝 입을 맞춘 나는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핑 크 천사를 따라 나섰다. -------------------------------------------------------- "시.. 시크.." 그러고 보니 프라니의 목소리가 아니네. 희미하게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보니 눈물 범벅이 된 아이 하나가 나를 애타게 부르고 있었다. # "시.. 시크.." 그러고 보니 카네스의 목소리가 아니네. 희미하게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보니 눈물 범벅이 된 아이 하나가 나를 애타게 부르고 있었다. (100) 눈이 아프도록 흰빛이 내 시야를 방해하고 있었다. 대 천사가 말했던 것처럼 지금이 아침인 건가? 너무나도 환한 빛이어서 눈이 아려와 감길 정도였다. 칠흙같은 어둠과 도 같이 지독하게 한치 앞을 볼 수 없도록 환했고, 그러기를 몇분정도. 슬슬 짜증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어떻게 된거냐." "아, 조금만 더 있으면 돼. 어둠에서 오래 있으면 익숙해지듯이 마찬가 지야." 겨우겨우 그 빛에 익숙해지니 옆에 있는 핑크 천사 정도는 구분할수 있게 되었다. "자, 그럼 모든 일의 원흉인 대 천사님게 가볼까?" "빨리 가지." "성격도 급하기는." 내가 핑크 천사를 따라간 최종 목적지는 조금 소박하게 생긴 인간계의 신전과 비슷한 모양의 건축물 앞이었다. 이 환한 빛과는 대조되게 건축물은 어두웠으며 살짝 안을 엿보니 간간 히 보이는 마법 등불만으로 안을 은은히 밝히고 있었다. "들어가지." 꽤 긴 복도를 걸었다고 생각되었다. 가면서 핑크 천사는 한마디도 하 지 않았고 나도 굳이 말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내 기 분이 더러웠으니까. 커다란 방문 앞에 다다러서 살짝 노크를 하니 안에서 신경질적인 목소 리가 들려온다. "들어와요." 문을 열고 들어가니 대 천사는 보이지 않고, 무슨 서류더미들만 잔뜩 있는 것이 아닌가. "데리고 왔습니다." "아아, 고마워요. 이만 가보도록 하세요." 문을 닫고 핑크 천사가 나갔으며 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보니 서류 더 미 속에서 허우적대며 싸인을 하고 있는 일생 일대의 웬수의 모습이 보였다. "오랜만이군요." "네가 지금 정녕 그딴 소리를 지껄일 처지가 아닐텐데." "하핫, 너무 화내지 마시라구요." "내가 꽤나 재미있는 장난감이었나 보지?" 잠시 인상을 찌푸린 대 천사는 그런 일이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젓고는 서류 더미 속에서 빠져나왔다. "설마요. 무슨 근거로 그런 소릴 하시는 거죠?" "왜 헤츨링이 태어나지 않는다고 거짓말을 했나." "아아, 제가 잘못 알았습니다." "그렇게 쉽게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 하나." 내가 처음에 헤츨링으로 태어났다면 시오스가 죽는 일 같은건 발생하 지 않았을 거라는 예감이 든다. 이 녀석의 철없는 장난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말씀이 심하시군요." "닥쳐." "겨우 섭리를 거스른 인간 하나가 죽었다고 이 난리라니." "쿡, 너에겐 겨우 인간 하나겠지. 하지만 내겐 아니야. 너의 그 어리석 은 장난만 없었더라도 내 아이를 살릴 수 있었어!" 이 말을 듣고 순간 피식거리며 비웃음을 흘리는 대 천사는 곧이어 내 게 다가와서는 말했다. "그 말 책임질 자신 있습니까? 어차피 명이 그 정도밖에는 되지 않는 인간이었습니다. 저의 장난과는 상관이 없는 아이죠. 지금 괜한데 와서 화풀이 하는게 아닌가요?" "너만 아니었다면, 내가 드래곤으로 환생했었다면 내 아이를 지킬 수 있었어!" "억지로군요. 과연 당신이 드래곤으로 환생을 했다고 해도 그 아이를 살릴 수 있었을 까요? 괜한 억지는 부리지 않는게 좋습니다." 맞는 말이라서 대꾸를 할 수가 없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이라서 인정하기가 두렵다. "내... 아이는 어딨지..?" "시오스란 아이 말인가요? 아아, 천재적인 아이였죠. 마법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구요. 그 아이가 당신의 드래곤 하트를 가진 뒤에는 보통 갓 성년이 된 드래곤의 힘과 비등하더군요. 뭐, 당신의 아이가 죽은건 실전 경험이 없어서가 아닐까요? 아,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샜군요. 드 래곤 슬레이어. 요 몇 천년간은 들려오지 않는 이름이죠. 왜 인간중에 9서클 마스터가 없는 줄 아십니까." "그걸 내게 묻는 이유가 뭐냐." "아, 별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드래곤 슬레이어가 있다면 분명 드래곤 하트를 가진 마법사도 있었겠죠. 아니 있었습니다가 맞는 말일까요. 드 래곤 하트는 드래곤의 엄청난 마나중 아주 극히 일부분만을 저장할 수 있는 곳이니까요.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부위랄까요? 당신도 알다시피 타의에 의해서 죽은 드래곤은 드래곤 하트에 자신의 의지를 담아두지 않습니다. 만약 그 드래곤이 죽기 전에 드래곤 하트에 자신의 모든 능 력을 부여했다면 그것을 가진 자는 9서클의 대 마법사가 되었겠죠. 뭐, 드래곤의 무한한 마나를 약간이라도 담고 있는 드래곤 하트를 가지고 있어도 대 마법사가 되었겠죠. 하지만 드래곤의 의지가 담기지 않은 드래곤 하트는 별 쓸모가 없습니다. 9서클 대 마법사까지 갈 수는 있 어도 육체가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드래곤의 의지가 담긴 드래곤 하트라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육체 따위는 얼마든지 커버할수 있습니다. 그만큼 드래곤은 위대하니까요. 불가능을 가능하게 할 정도 로 말이죠. 그렇기 때문에 드래곤을 신과 동등한 존재라고들 하죠." "서론이 너무 길군. 본론만 말해." "당신은 그 모든 이치를 깨버렸습니다. 아주 보란 듯이 인간에게 당신 의 모든 능력을 부여한 드래곤 하트를 줘버린 거죠. 덕분에 인간의 섭 리를 깨고 시오스라는 인간은 불사신이 되어버렸습니다." "제길, 그.. 아이는 어디있지?" "그래서 저희 장로급 천사들은 섭리를 저버린 그 아이를 소멸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개소리 집어쳐! 좋은 말 할 때 그 아이를 내 놓는게 좋을 거다." 나보고 지금 그딴 소리를 납득하라는 건가. "아까도 말씀 드렸다시피 괜한 억지는 부리지 마십시오." "너희들 천사의 정의라는게 뭐지? 죄가 있다면 나에게 있어! 왜 내게 는 아무런 처벌이 내리지 않는 거냐! 신과 동등한 지위의 드래곤이라 는 종족이라서? 그딴건 개나 줘버리라고 그래. 내 아이 하나도 살리지 못하는 지위따위는 필요 없다." "어쩔 수 없습니다. 이미 그 아이는 소멸계로 놈어갔습니다." 내가 그 불쌍한 아이를 위해서 무엇 하나 해줄수 없다는 말이냐. 크큭, 모든 원인이 나였군. 그녀석이 9서클 마법을 배우고 싶다고 아무리 졸 라도 그걸 주는게 아니었는데... ....... 결국은 내가 그 아이를 죽인거야. "제발.. 그 아이를 살려줘.."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아 빌었다. 대 천사의 옷자락을 붙잡고 매달 리다시피 해서 빌었다. 내 아이가 너무 불쌍해서, 내 부주의로 죽은 아 이가 너무 불쌍해서.. 이대로 그 아이를 소멸시켜 버린다면 나 자신을 용서 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제 권한으로 처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드래곤의 일기 2부 (101) "그럼 네 권한으로 처리할 수 있는 문제가 뭐냐." "무슨 대답을 원하십니까." "정말.. 많은건 바라지 않을게. 그 아이만, 불쌍한 내 아이의 영혼만 어 떻게 해서든 구해줘." "제 권한으로 처리할 수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만." 좋아, 결국에는 이렇게 나온다는 거냐. 그렇다면 나도 그에 맞게 해주 지.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고들 하지." "?" "별로 아무 것도 아냐. 나도 내 식대로 나가기로 했거든." 내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 듯 나를 쳐다보는 대 천사의 시선이 짜증을 돋군다. "위대한 드래곤. 신과 동등한 위치. 지상 최고의 강자. 두려우면서도 아름다운 종족. 드래곤에 대한 수식어는 아주 많지. 안그래?" "하고 싶은 말씀이 뭡니까." 키킥, 아까와 위치가 바뀌었네. 내 말에는 들은 척도 안하더니 말야. "아아, 뭐 별거 아냐. 네 말마따나 위대한 드래곤의 영혼인 나를 가지 고 장난을 쳤다라.. 그걸 주신에게 일러바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아 마도 신과 동.등.한. 지위에 있는 드래곤을 농락한 대가로 이에 관련된 이들은 그리 가볍지 않은 대가를 받게 될텐데." 승기를 잡은 입가에 여유로운 웃음이 맺혔고, 느긋하게 대 천사가 올 바른 선택을 해주기를 바랬다. "... 그래서요?" 말귀를 못알아 듣는 놈이군. "너와 합의를 하자는 거다. 나도 거저 얻어먹고 싶지는 않으니까 말 야." "그건 안된다고.." "닥치고 내 말부터 들어. 너도 지금 꽤나 노심초사하고 있을 거다. 어 쨌거나 한 드래곤의 영혼을 가지고 장난을 쳤다는 것은 꽤 시끄러운 일이 될테니까. 그래서 적당한 곳에서 합의를 보자는 거다." "조건은?" "하핫, 이제야 내 말을 이해했군. 모든 사건에서 증거가 사라지면 그 범죄는 완벽한 범죄가 되지, 안그래?" "............" "시오스의 영혼을 구해주고, 내가 해달라는 대로 해주는 대신 내 영혼 을 소멸시키지." 그 지독하리만큼 감정 없는 얼굴이 눈에 띄게 당황하는 모습을 바라보 며 살포시 미소가 번진다. "어때? 괜찮은 조건이지 않나." "... 그 정도로 그 아이를 사랑하는 겁니까." "글쎄.. 일단은 죄책감 정도로 해두지." 프라니에게 복수? 그런 일은 내 머릿속을 떠난 지 오래다. 내 아이가 억울하게 소멸될 판에 무엇이 중요하단 말인가. 내가 할 수 있는 최대 한의 패를 꺼내서 내 아이를 살려야 한다. "밖에 므티 천사 있습니까." 조용한 목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졌고 곧이어 문이 열리더니 핑크 천사 가 들어왔다. "지금 당장 소멸계로 가셔서 시오스라는 아이의 영혼을 회수해 오십시 오." "하지만 그건 이미 장로회에서.." "대 천사의 권한입니다."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한채 핑크 천사는 다시 황급히 방문을 빠져나갔 으면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됐습니까." "응. 고마워." "몇가지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더 남았을 텐데요." "그래. 시오스를 다시 환생하게 해줘. 마법이라는 것도 모르고, 그냥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아주 평범한 인생을 살아가다가 자신의 수명 을 채우고 죽게 해줘. 그렇게 시오스의 영혼이 평범한 일상을 살 수 있도록, 절대 마법과 관련되지 않도록 평범하게 태어나게 해줘." "그게 답니까." "응." "그럼 이제 제가 받아야 할 조건만 남았군요." (102) 자신의 코끝에 걸린 안경을 살짝 손으로 올리면서 대 천사는 내 눈을 바라보았다. 무언가를 꿰뚫을 듯한 눈빛을 보면서 피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 지만 죽기전의 오기랄까? 아무튼 그런게 발동된 듯 싶다. 나도 그를 빤히 쳐다보자 한참이 흘러 서로 무안한지 헛기침을 하더니 대 천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무엇이 당신을 그렇게 변하게 한겁니까." "............" "대답해 주십시오! 대답 여하에 따라 처분이 달라질겁니다." 날.. 변하게 한 것? 내가 어땠었지? 난 어떤 드래곤이었지? 그리고, 인 간일때의 난 어떻게 생활했었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제길!" 혼자서 열받았는지 자신의 앞에 있던 서류 뭉치들을 다 던져 버리며 화를 내던 대 천사는 잠시 후 자신의 책상으로 돌아가 의자에 앉아 진 정을 하는 것 같았다. "지금 천계에 약간의 문제가 생긴 점은 알고 계십니까." 프라니의 일을 말하는 건가. "대충은." "좋습니다. 드래곤으로 환생시켜 드리겠습니다. 대신 시급히 이 일을 처리해 주십시오. 신계에 있는 신들의 불만의 목소리가 커져 갑니다. 그리고 나서 후에 당신의 일은 처리하도록 하죠. 잊지 마십시오. 당신 의 영혼의 소유권은 제게 있습니다." 그런대로 급히 요약하자면 해결사를 하라는 말이군. '똑똑' "들어오십시오." 푸른빛의 날개를 가진 여성이 살짝 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잠시 대 천 사에게 귓속말을 속삭이고는 나가 버렸다. 둘이 연인 사이인가. "시오스의 영혼이 도착했다는 전갈이 왔습니다. 마지막으로 보러 가시 겠습니까." "... 아니." 그냥 잊자. 이제 아주 평범하게 살아갈 아이다. 대 천사는 가만히 나를 쳐다보더니 나즈막하게 물었다. "잠시 머리를 식히고 환생하시는게 어떻겠습니까." "일을 빨리 처리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시간의 틈새에서 지내십시오. 그곳은 전혀 시간이 흐르지 않는 곳입 니다. 조용히 생각을 정리하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머릿속을 정리 한다라. 차라리 불행한 기억들은 모두 잊고 싶군 그래. 하지만, 프라니바투스. 널 죽이기 전까지는 잊지 않겠다. 기억을 지우는 것은 그 후에 해도 괜찮겠지. "그곳으로 데려다 주지 않겠나." 시간의 틈새. 그 곳에는 나 혼자만이 지내는 줄 알았다. 하지만 대 천사의 손에 이 끌려 간 그 곳은 인간계와 전혀 다름이 없는 곳이었다. 초록빛의 가득 머금은 푸른 들판과 가끔씩 그 곳을 뛰어 다니는 어린아이들의 모습이 얼핏얼핏 보인다. 농가로 보이는 집에서는 시골 아낙이 흔히 그러하듯이 염소젖을 짜며 흐뭇한 미소로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멀리 보이는 산 위로 저녁 노을이 어슴푸레 지고 있었으며, 뛰놀다가 지친 아이들은 하나, 둘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아름다운 모습이지요." 모든게 평범하고 조용한 시골 풍경의 그것이었다. "시간의 틈새라고 이 곳을 부르기도 합니다만, 또 다른 이름이 무언지 아십니까." "....?" "'기억을 잃은 자들의 쉼터'입니다. "무슨.. 뜻이지?" 막 대 천사에게 물어보려던 찰나 대 여섯 살로 보이는 여자 아이 하나 가 뜀박질을 해가며 내 앞으로 달려왔다. "언니, 언니. 우리 엄마 못봤어요?" "어...? 으응.." "우웅, 헤헤~ 그런데 언니 너무 예뻐요." 어린 아이 특유의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눈이 작게 되도록 웃는 아이 가 그렇게 아름다워 보일수가 없었다. "카냐! 카냐, 어디있니?" 멀리서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리자, 카냐라는 아이는 곧 내게 작별 을 고하며 소리가 들린 쪽으로 사라져 버렸다. "어떻습니까." "... 행복한 곳인 것 같군." "아뇨, 이 곳은 천계에서 가장 불행한 곳일 겁니다." 대 천사가 슬퍼 보였던 것은 내 착각이었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내게 꾸벅 인사를 하고는 휘적휘적 날아가 버린 대 천사를 보며, 잠시 후에 나는 심각한 상황에 다다렀다. "이 망할 놈아~ 머물 곳은 알려주고 가야지! 또 구렁이 담 넘어 가듯 슬쩍 가버린 거냐아아아아~ 이 나쁜 놈아~" 대 천사가 사라진 노을 쪽을 바라보며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나에게 한 가지 정리된 사실은 대 천사는 건망증이 엄청나게 심하다는 것이었다. (103) "이 망할 놈아~ 머물 곳은 알려주고 가야지! 또 구렁이 담 넘어 가듯 슬쩍 가버린 거냐아아아아~ 이 나쁜 놈아~" 대 천사가 사라진 노을 쪽을 바라보며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나에게 한 가지 정리된 사실은 대 천사는 건망증이 엄청나게 심하다는 것이었다. 머리를 식히고 말 것도 없이 저 놈 때문에 속이 바싹바싹 타 들어간 다. 왜 내 주위에는 내 염장을 지르는데 타고난 놈들만 있는 것일까. 노을이 서서히 지고 어둠이 찾아온다. 스멀스멀 어두워져 가는 하늘을 보면서 노숙 준비도 없이 부랑자처럼 맨 바닥에 웅크려 자야 하나 하고 별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었다. "시..크?" 자그마하게 확인을 하듯이 중얼거리는 듯한 목소리를 듣고는 날 아는 사람을 만났나 보다, 라고 생각하며 좋아서 고개를 돌리니 어떤 여인 이 조심스레 내 얼굴을 뜯어보고 있었다. 주위가 어두워 그녀의 눈동자 색이나 머리색은 알지 못했지만 어쨌거 나 나를 아는 사람 같아서 오늘밤 노숙을 할 걱정이 없어져 마음이 놓 였다. 그녀의 얼굴 윤곽만을 살펴본다면 내 기억 저편에서 아련히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지만 그녀가 여기 있을 리가 없다는 생각에 고개를 휘휘 저어 그런 잡생각들을 쫓아 버렸다. "저 아세요?" 그래도 저렇게 물어오는 사람에게 반말을 할만큼 뻔뻔하지는 못했기 에, (사실 건방지게 굴면 밖에서 노숙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존칭어로 물으니 그녀는 고개를 끄덕인다. "여기 처음 오셨죠?" "아, 네." "제가 여관을 하나 경영하는데 가실래요?" "저 돈 없는데요." "괜찮아요." 설마 이런 평화로운 곳에서 인신매매가 이루어 질까. 그냥 공짜니까 따라가고 보는 거지. 서로 어색한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이제는 약간 썰렁해진 오솔길을 걷다가 문득 그녀가 입을 열었다. "여긴 어떻게 오셨어요?" "아, 천사가.." "천사님께서 보내셔서 왔군요." 우울한 목소리로 씁쓸하게 중얼거리며 그녀는 앞장서서 계속 걸어갔 다. 이봐, 난 이런 어색한 침묵은 싫다구. "저기, 멀었나요?" 그녀의 우울한 말투가 귀에 거슬려 조금이라도 다른 쪽으로 말할까 해 서 물어보자 그녀는 손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저기에요." "에에.." 꽤 작은 여관이다. 2층집에 정원까지 딸려있는 곳이다. 어두워서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꽤나 아름다운 정원일 것 같았다. 집 앞에 '엘프의 집' 이라고 써있는 간판을 보지 못했다면 평범한 가정 집으로 생각했을 것 같았다. 여관은 1층을 빼고는 불이 모두 꺼져 있었으며, 그녀는 주머니에서 열 쇠를 꺼내더니 곧 나에게 들어오라는 손짓을 하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설마, 손님이 나뿐인가. 잠시 어두운 정원을 둘러보다가 그녀를 따라 들어갔을 때 정말 나는 꽤나, 아니 엄청나게 놀랐다. "....안나?" 까무잡잡한 피부와 약간은 생기가 죽은 붉은 머리칼. 예전에 봤을 때 는 눈이 말똥말똥하고 활기에 차있었는데, 지금의 안나 눈은 지극히 평온하고 잔잔한 호수의 느낌이다. "이제 알았니?" '찰싹' 잠시 나에게 맞고는 아무 반응이 없이 가만히 있는 안나를 향해 나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배신의 대가야." "넌 언제나 그랬어. 정말 멍청하게도 단순했지. 난 네가 정말 드래곤인 지 조차도 의심스러웠어." 저게 욕일까, 칭찬일까. 내가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걸 아는지 모르는지 안나는 자신의 말을 이었다. "배신의 대가가 이거라니, 너무 싼거 아니야?" "더 맞고 싶나 보구나." "쿠쿡, 많이 변했어. 이제는 어리광도 안피우니 섭섭해." 부드러운 미소를 보이며 살짝 웃는 안나가 그렇게 예뻐보이다니. 안나 가 평온해 하는 것을 보니, 이 곳은 정말 조용하고 아늑한 곳인가 보 군. "행복해?" "행복..?" 잠시 안나의 얼굴에 깊은 씁쓸함이 내비쳤다. 그것을 보고는 더 이상 묻지 않는게 예의라고 생각되어서 곧이어 나는 곧이어 빙긋 웃으며 안나의 팔에 매달렸다. "안나야~ 나 배고파." "...... 여전히 먹성이 좋구나, 넌." 이봐이봐, 그말은 무슨, 내가 무슨 돼지라도 된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 는 것 같군. 난 배가 고파서 이러는게 아냐. 어쨌거나 화제를 돌리기 위해서 이러 는 거라구. 그리고, 내가 모든 음식을 맛있게 먹는건 주방장에 대한 예 의이자 식당 주인에 대한 예의 때문이라구. 안나가 주방이라고 생각되는 곳으로 들어갔을 때서야 비로소 나는 정 신을 차리고 식당안을 둘러볼 수가 있었다. 7개의 테이블이 가지런히 곳곳에 있었으며, 카운터로 보이는 곳은 내 가 들어온 문 바로 안쪽에 보였다. 손님이 나 뿐인 것 같은데 어떻게 벌어먹고 사나. 창문은 분홍빛 커튼으로 왠지 포근한 느낌을 주었으며, 각 테이블마다 수수한 꽃들이 꽃병에 꽂혀 있었다. 꽃 때문인가? 들어와서부터 느꼈던 거지만 독하지 않고 알게 모르게 은은하게 풍기는 향기. 왠지 여관이라는 느낌보다는 찻집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도둑 길드 마스터였던 안나와는 전혀 다른 이미지. 주방을 통한 문이 열리며, 안나가 쟁반에 간단한 음료수와 음식을 들 고 나오는 것이 보인다. "별로 솜씨가 없어서 그냥 그럴듯하게 흉내만 내봤어." 내가 좋아하는 샐러드와 야채 수프, 그리고 간단한 음료수. "저녁이니까 그냥 간단하게 먹을려구." 2인분의 음식들.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이고 음식을 먹는다. 안나가 지나 치게 내성적으로 변했군. 예전의 활발한 안나가 그리워진다. 가끔 내가 맞는게 맘에 안들긴 하지만. 이대로 먹다가는 둘 중에 하나가 채할 것 같아서 얼른 입을 열었다. "음식 솜씨가 괜찮은데?" "응, 그래?" 다시 침묵. 아주 바늘방석에 앉아 밥 먹는 기분이군. 안나의 조용한 모습이라. 정 말정말 희한한 구경을 다 한다. 잠시 관찰을 해보니 예전의 그 섹시한 모습과 노출증 환자가 의심스럽던 옷들은 모두 어디에 뒀는지, 평범한 시골 아낙 같은 옷차림이었다. 정말정말 세월이란게 신기하군. "그 동안.. 어떻게 지냈어?" (104) "무슨 말이 듣고 싶은 거야. 널 배신한 그 후? 말해줄까? 내가 어떻게 생활했는지?" "그런 뜻이 아냐. 괜한 일로 흥분하지마." "흥분? 넌 널 배신한 나에게 어떻게 이렇게 침착하고 관대한 거니." 잠시 안나가 흥분 한 것 같다. 나를 배신한게 그렇게 마음이 착잡했을 까. 하긴 나도 처음엔 펄펄 뛰긴 했지만 얼마 지나니 괜찮아 지던데. 날 싫어해서 배신한게 아니었구나. "오래 살다보면 배우기 싫어도 관대해지지. 그리고 잊었니? 난 자비의 블루 드래곤이라구." "쿡.." "웃지마. 예전에는 이 말을 달고 살았지만 이렇게 또 말할려니 쑥스럽 네." 쿡쿡대며 웃던 안나가 일어나서 식탁에 있던 그릇들을 치우자 멋적어 진 나는 뒷통수만을 긁어대고 있었다. "도와줄까?" "아니, 됐어. 그보다 피곤하지 않아?" "별로." "흐음, 이 그릇들은 내일 치우고 먼저 침실로 갈까?" "왠지 그 말 조금 야한 말 같애." 예전 모습으로 돌아간 안나가 무시무시한 눈길로 나를 노려보는게 보 이자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왜 난 안나에게는 약한 걸까. "테이블에서 자고 싶으면 맘대로 하구." "아냐아냐, 장난이야, 장난." 예전처럼 똑같은 장난을 치지만, 서로가 잘 알고 있다. 다시 예전처럼 돌아가기란 힘들 거라는 사실을. 불이 꺼져 컴컴한 복도에 촛불로 불을 밝히고 방을 안내해주는 안나의 뒤를 생쥐마냥 졸졸 따라갔다. 정확히 3번째 방문 앞에 멈춰선 안나는 뒤 돌아 서더니 씩~ 웃으며 말 했다. "같이 잘까?" "...... 그것도 야한 소리란거 아니?" "오호~ 누가 너 잡아먹는데?" "...... 너라면 충분히 그럴거 같애. 난 아직 순결하다구." "내려가서 자." 냉정하게 말하는 안나에게 특유의 넉살을 부리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안나가 불을 키자 단아한 방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커튼은 여전 히 분홍빛이었으며, 침대 커버는 은은한 하늘색으로 되어 있어 분홍빛 과 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따뜻하게 보이는 나무 테이블에 물주전자와 컵이 놓여 있는 보통 여관 과 똑같은 단조로운 방이지만 왠지 주인이 신경을 써서 배려한 듯 따 뜻함이 풍겨져 나왔다. "피곤하다아아~" 왠지 푹신해 보이는 커다란 더블침대에 다다다 달려가 눕는 나를 보며 안나는 피식 웃더니 내 앞으로 다가왔다. "하나 말해줄까?" "뭘?" "더블침대의 비밀." "뭐가 그리 심각해?" "이상하다고 생각해 본적 없어?" 대체 이 여자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뭐가?" "왜 이 사람도 별로 없는 곳에 여관이 있는지, 그리고 보통 여관답지 않게 깨끗하고 더블침대인지. 이구~ 이 바보야. 한가지쯤은 의심해 보 라구." "우웅, 난 네가 나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어." "이 둔치야, 아직도 모르겠냐?" "응." 내 얼굴 가까이에 다가온 안나는 싱긋 웃더니 내 귀에 살짝 속삭였다. "훗~ 일명 러브러브 여관이라고 들어봤어?" ............ 할 말을 잃었다. 정말 세상에서 나를 제일 황당하게 만드는 종족이 있다면 바로 이 엘 프라는 종족. 누구를 꼽는다면 안나 프리안스. 이 망할 다크 일족의 골 칫거리란 말이다. 나와 예전에 여행을 다닐때는 친히 다크 일족의 장 로가 킬러를 보내 안나를 제거하려 들었으니 그 명성을 익히 알 것이 다. "네가 생각하는 사고방식이 나와 똑같을 거라는걸 기대하진 않았지만, 과연 상상을 초월하는군." "호홋~ 여기서 놀라면 안돼지. 지금 왜 불이 다 꺼져 있는 줄 알아? 이미 이 여관에 있는 방은 모두 나갔다구." "제발 날 너와 동급으로 만들진 말아줘~" (105) "후훗~ 자 그럼 좋은걸 보여줄게~" 안나가 손가락을 튕기자 곧바로 어느 방의 영상이 이미지화 되어서 내 앞에 슬로우모션처럼 나타난다. 서, 설마. "바로 앞방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지. 아우~ 조금 안타깝네." 남자와 여자가, 그러니까 음.. 아무튼 엄청나게 낯뜨거운 장면을 연출 하고 있는 것이다. "너.." "응?" "너 마법을 그따위 곳에다가 쓰고 있었단 말이냐~" "호홋~ 나무라지 말아줘. 이게 다~ 개인 취미인 거야." "그런 짓 하면 사생활 침해로 재판까지 갈 수 있다는걸 모르냐?" "어머~ 러브러브 여관도 따지고 보면 불법이라구, 그리구 자기네들도 찔리는게 있어서 아무소리 못한다구." 이해하려고 했던 내가 바보같이 느껴진다. 아까의 그 나긋나긋하고 조 용한 안나는 어디로 갔는지, 나는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당장 저거나 지워!" "어머, 너도 그거 사생활 침핸거 알아?" 차라리 여기 와서도 도둑 길드를 운영한다면 아무 소리 안한다. 하지만 일명 '러브러브 여관' 이라니. 말로만 들어봤지만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다. "나 잘꺼야. 말시키지 마." "... 충격이었나? 쩝." 왠지 변태 취향을 선호하게 된게 아닐까. 예전에는 그래도 엽기적이었 지만 순수한 아이였는데. "사람 많이 찾아오냐?" "그럼~ 이 근방에서는 '러브러브 여관'을 모르는 곳이 없다구. 일단 눈 속임으로 '엘프의 집'이라고 해놨지만 알만한 사람은 다 알아." 자랑이다. 자랑이야. 물어본 내가 바보다. "그, 그런데 왜 아까 앞문이 잠겨 있었어?" 나는 여기에 사람이 있는대도 정문을 잠궈놓은 안나를 이상하게 생각 해서 물었다. "아아~ 가끔 돈 떼먹고 도망가는 놈들이 있어서 말이지. 후훗~ 그리고 창문에는 라이트닝 볼트 마법이 걸려 있다구. 호홋~ 계산하기 전까지 는 절대 못나가지." 역시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한게 없다. 저 광적이리만치 돈에 집착하는 모습. "그럼 나는 카운터나 보러 나갈께. 푹 쉬어." 절대 제대로 쉬어질 것 같지가 않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정리하려면 말이다. 안나가 문을 닫고 나간 자리를 빤히 쳐다보다가 창 밖으로 시 선을 돌렸다. "여기도 달이 뜨는 구나." 은은한 은빛을 뿌리며 새하얗게 하늘에 걸려있는 초승달을 보며 눈물 이 흐른다. 달의 옆에서 반짝이는 조그마한 별들은 달의 아름다움과 이상을 높여주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주신. 모든 신들과 드래곤과 이 지상의 모든 생물을 창조한 자. 주신을 달에 비유하면 우리는 언젠가는 불꽃이 꺼져버릴 별과 같다. (106) 주신을 만날 수 있는 제한은 극히 한정되어 있다. 상급신 중에서도 몇 몇만을 제외하고는 주신의 옷깃조차 스치지 못할 지경이니 그 권한과 도도함이 어느 정도인지는 익히 상상해야 겠다. "프라니.." 이 세상에서 가장 저주스러운 단어가 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죽여버릴거야." 차가운 조소가 입가에 걸렸다. 내 아이의 시신을 내 손으로 직접 느꼈다. 그걸 내가 잊을 줄 알았나. 크큭, 재미있어. 너무 재미있어서 미칠 것 같아. 프라니, 네가 시작한 이 게임이 나를 즐겁게 한다. 이제 다음 목표가 누구지? 기대 되는군. 몇 시간을 그렇게 중얼거렸는지 모른다. 내 머릿속에는 프라니에 대한 증오만이 가득차 있었고, 누군가가 내 곁에 다가오는 것 조차도 느끼 지 못할 만큼 나는 이성을 잃어가고 있었다. 차갑고 서늘한 손이 내 눈가에 잠시 닿았다. 시원한 느낌에 머리가 맑아진다. "울고 싶으면 울어." 나직하게 내 머리를 끌어안고 말하는 목소리를 들으며 살짝 몸을 기댔 다. "괜찮아. 그래, 괜찮아. 모두 괜찮아 질꺼야. 내 앞이니까 울어도 돼." 기분 좋은 손길로 나를 어루만져 주며 조심히 다독이는 것을 느꼈다. 어쩌면, 나는 누군가가 내게 이렇게 말해주기를 바랬을 지도 모른다. 괜찮다고, 다 잘된 일이라고.. 이제 편히 울어도 되다고... "우욱.. 흑.. 흐윽.." 앙다문 입술 사이로 조금씩 흐느낌이 번져 나왔고 나는 안나의 품에서 어린 아이마냥 계속해서 울어댔다. 안나는 아무 것도 묻지 않고 그저 나를 토닥여 주었다. 편하다. 무엇보 다도 나 하나도 지탱할 수 없을 만큼 작은 어깨이지만 지금 나의 이성 을 지탱해 주는 안나의 마음에 무한한 고마움을 느낀다. "이곳은.. 이승에서의 지독한 슬픔을 가진 자만이 들어올 수 있는 곳이 래. 영혼들의 슬픔의 원한이 담겨 있는 이 곳의 밤은 아주 구슬픈 거 래. 죽어도 죽지 못하는 자들의 안식처. 그곳이 여기야. 이곳에 있는 존재는.. 모두 깊고 뼛속까지 시릴정도로 진한 슬픔을 가진 자들이야.." 조용히 중얼거리며 내가 듣든지 말든지는 상관하지 않는다는 듯이 안 나는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그래서인지 이곳은 무척이나 평화로워. 사람들의 얼굴에는 언제나 평 온과 행복이 가득해 보이지. 하지만 밤이라는 시간은 그렇지 않아. 지 독히도 슬픈 시간이거든. 밤마다 이곳에 있는 존재들은 모두 악몽에 시달려. 자신이 경험했던 슬픔의 그대로가 꿈속에서 자신을 괴롭히거 든. 하지만 다음 날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평화로운 시간이 반복돼. 저주스러운 나날들이 반복되지." 나를 쓰다듬어 주는 손길이 점점 떨려오고 있는데 안나는 그것을 느끼 지 못한 듯 더욱더 나를 끌어안으며 중얼거렸다. "저주받은 곳이야. 이곳은. 벗어나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는 곳이야." 안나의 눈물이 내 머리를 적신다. 우리는.. 그렇게 밤새도록 울었다. "떠날.. 려구?" 언제 울었는지 이제는 흔적조차 남기지 않은 얼굴. 그런 얼굴로 내게 잔잔한 미소를 지어 보여주는 안나가 대견스럽다. "같이 갈래?" "갈 수 없어." 딱 잘라 거절하는 안나에게 어떻게 대꾸조차 할 수가 없었다. 내가 떠 나려는 것을 알았을까. 아니면 우연이었을까. 그 대 천사는 입가에 푸 근한 미소를 보이며 안나의 집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마음의 정리가 되셨습니까." "물론." "그럼 가시죠. 주신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쿠당탕~' 갑자기 발을 헛디뎌 계단에서 굴러버린 나를 안나가 부축해 주었다. "왜 그러십니까?" "주신을 만난다는 얘기따윈 없었잖아아아아~" "아아, 예정이 바뀌었습니다. 주신께서 당신을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저희야 그 명을 따를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딴 건 몰라." "여전히 자신만 생각하시는 군요. 남을 생각할 줄 아는 자세도 배우십 시오." 선생이라도 된 듯 내게 이러쿵 저러쿵 교훈을 늘어놓는 대 천사가 꽤 나 마음이 들지 않아 그의 옆을 지나갈 때 최대한 세게 발을 밟아주었 다. "크윽.." "난 너무 남을 생각해서 탈이야." 키킥대며 안나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고 그 덕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살짝 안나의 이마에 키스를 했다. "악몽같은거 잊어버려. 난 널 용서했어. 언제 환생한다면 꼭 나를 찾아 야 돼. 알았지? 사랑해." 정말 사랑해, 안나. 나의 오래된 친구. "나도 사랑해, 시크. 언제나 네 곁에 있는 존재들을 잊지 마. 힘들때는 조금 기대도 되는 거야. 너도 감정이 있는 종족이란걸 잊지마." 잊지 않을게. 절대 이 말 잊지 않을게. "흠흠, 보는 눈들이 있습니다만?" 갑작스런 헛기침으로 우리 사이를 갈라 놓은 대 천사는 내 손목을 잡 아끌었다. "이봐, 아프다구." "이 정도 아픔쯤은 감수하셔야죠." "이봐, 난 성인군자가 아니라구." "알고 있습니다만?" 놀리는 듯이 꼬박꼬박 말대꾸를 하며 눈웃음 치고 있는 대 천사를 다 시 한번 예전의 원한까지 플러스해서 밟아준 뒤에 안나에게 힘껏 손을 흔들었다. "망각의 강이 너의 기억을 지운다 해도 시.크.리.오.프.스. 이 이름은 잊 지 마." (107) 온통 백색인 곳에 또 와버렸다. 눈이 이곳에 적응이 되기까지는 또 다시 엄청난 시간이 걸렸으며 내가 옷자락을 붙잡고 있는 대 천사는 기다리는 것에 익숙한지 옆에서 미동 도 않은채 가만히 서있었다. "도저히 적응이 안돼." "흐음, 뭐 적응할 필요도 없지 않습니까? 어차피 몇 시간 후면 떠날 분인데요. 왜요? 다시 죽어서 이 곳에 취직하시게요?" "농담이라도 그런 소리하면 죽는다." "그럼 어느 정도 적응을 하셨으면 이만 가실까요?" 주위의 사물 따위는 구분조차 되지 않는 이 곳에서 나는 대 천사의 옷 자락을 붙들고 장님처럼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어딜 가는 거야?" "주신께 간다고 말씀드리지 안았습니까." 곧이어 온통 백색인 것 같던 저 쪽 끝에서 희미하게나마 붉은 색의 건 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게 뭐야?" "저희를 창조하신 분이 계시는 곳입니다." 쳇, 아까는 주신이라더니. 그 건물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몸이 오싹해지고 대단히 기분이 더러워 졌다. 건물은 그저 보통 신전보다 아주 약간 큰 상태였으며, 건물 자체 에서 붉은 빛이 흘러나와 마치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는 루비처럼 느 껴졌다. "들어가시죠." "너는? 같이 안들어 갈거야?" "허락 받지 못한 자는 들어가지 못합니다." "허락 받지 못한 자가 들어가면 어떻게 되는데?" 잠시 몸이 움찔거리더니 곧이어 대 천사 특유의 얼굴을 하고서는 빙그 레 웃으며 내 질문에 대한 답을 해주었다. "그 자리에서 소멸됩니다. 약간 성격이 더러운 분이라서요." 마치 일상사인 듯 당연하게 말하는 대 천사를 보면 왠지 모르게 화가 치밀어 오른다. "만약에 내가 초대받지 않았다면?" "그 자리에서 소멸되지 않을까요." "그럼 나 안들어 갈거야. 확실하지도 못한 곳에 들어가서 엉뚱하게 소 멸될 일 있어?" 이 한 마디에 적지 않게 당황한 듯 내 손목을 움켜쥐었다. "그럴 일은 만에 하나라도 없으니 들어가십시오." "농담이었어. 니가 이렇게 당황하지 않아도 내 발로 들어간다구." 내가 그 기분 나쁜 건물에 들어가는 것을 대 천사가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시선이 느껴진다. 설마 도망이라도 가나 감시중인건가. 그 건물 안은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인지 지독하리만큼 고요했다. 주신 이 바로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며 내가 주신인지 뭔지를 찾아야 하나 보 다. 이거 무슨 술래잡기도 아니고, 원. 붉은 와인 빛이 조명처럼 건물 안을 밝히고 있었고, 지금에서야 안 사 실이지만 이 건물은 돌로 만든 건물이 아니었다. 온 내벽이 매끄러웠 으며, 왠지 투명한 유리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마치 투명한 유 리잔 안에 붉은 와인을 집어넣은 듯이 말이다. "내 의지를 담고 있는 곳이라서 그래." 살짝 감상에 젖어있는데 갑자기 옆에서 말소리가 들린다면 얼마나 놀 라겠는가. 반사적인 행동으로 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보니 귀 바로 아래까지 짧 은 단발머리를 한 여자아이가 내가 바라보고 있던 벽을 바라보고는 무 표정으로 말하고 있었다. 많이 봐줘야 8살 미만으로 보였으며, 그다지 귀여운 얼굴도 아니였고, 그저 한 번 보면 잊혀질만한 그런 얼굴을 가진 여자 아이였다. 건물 자체에서 내는 빛 때문인지 아이가 무슨 색의 옷을 입었는지, 머리와 눈의 색깔이 어떤지 정도는 구분해내지 못했지만 이 건물 자체에 있는 걸로 봐서는 이 아이가 주신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어쨌든 현재 이 건 물에 있는 존재는 이 아이와 나뿐인 것 같았다. "주신..?" 잠시 보통 아이라면 절대 갖지 못할 서늘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던 아이는 입을 열었다. "보통 나를 아는 존재들은 그렇게 부르더군." (108) 상당히 건방진 말투로 말하는 아이를 쥐어박고 싶었지만 이 아이의 위 치를 계산하니 그럴 수도 없었다. 성격이 더럽다고 했으니, 열 받으면 나를 소멸시킬 수도 있다는 소리가 아닌가. "저를 부른 이유가 뭡니까." "...... 그냥." 순간 휘청거리며 간신히 벽을 잡고 넘어지는 꼴만은 피한 내가 무시무 시한 눈으로 주신을 쏘아보자 슬쩍 고개를 돌려 다른 곳을 바라본다. "제 짧은 생각으로는 지상에서 일어난 일과 관계가 있을 듯 싶습니다 만..?" "...... 응." "당신이 직접 간여하신다면 쉬워질 텐데요." "...... 귀찮아." "저도 귀찮습니다만?" "...... 넌 쥐새끼 한 마리가 온 집안을 휘젓고 돌아다닐 때 네가 직접 그 쥐를 잡겠나. 고양이를 풀어놓으면 간단할 걸 가지고 말야." 지독히도 맞는 말이라서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 "...... 잘 봐라." 가느다란 손가락이 공중에서 튕겨지자 내가 지금 서있었던 건물은 없 어지고 하늘에서 올려다보는 대륙의 땅덩어리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마치 공중에서 대륙을 내려다보는 듯한 느낌에 잠시 탄성이 나왔지만 곧이어 주신이 무슨 생각으로 내게 이것을 보여 주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 내가 창조해낸 곳이다."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혼자서 말하고 싶은지 중얼거리는 주신을 보며 어쩔 수 없이 가만히 경청하고 들어주어야만 했다. 혹시 지나가는 말 들 중에라도 이 일을 해결하는 방안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 내가 창조했지만 나는 그들을 일일이 신경 쓸 여유가 없다. 그래 서 만들어 낸 존재가 신과 드래곤이다. 신은 생명과 영혼을 관장하고, 드래곤은 죽음을 관장하지. 신은 지상에 있는 생명체에 대해 죽음을 선사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드래곤은 다르지. 넘쳐나는 생명체들의 변동을 조절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나는 드래곤에게 죽음 이라는 권능을 선사했다. 그리고 반대로 신들에게는 생명이란 권능을 선사했지. 그들은 조화를 이루었고, 별 탈 없이 오랜 세월동안 공존하 며 지내왔다."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대륙을 내려다보며 주신은 말을 이었다. "...... 하지만 모든 일에도 이단아란 있기 마련이지. 가끔씩 아주 재미 있게도 내 권능에 대항하는 존재들이 있더군. 벌레보다 하찮은 것들이 나의 이 위대한 권능에 대항한다라.. 재미있지 않나. "제길, 계속 들어주려고 했더니만 못들어 주겠군. 한 마디 해도 될까? 넌 미쳤어." "......" "왜? 너무 정곡을 찔렀나?" "난 지금 너를 이대로 소멸시킬 수도 있다." "닥쳐. 어울리지도 않게 인형을 내세워 시험하지 말라구. 난 누가 내 뒤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건 기분 나빠서 말야." "쿠쿡, 정말 눈치 하나는 빠르군요." 아까까지만 해도 주신으로 생각했던 아이가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듯 이 사라지고, 내 뒤에서 슬쩍 고개를 내미는 여자 아이. "이번에도 아이냐." "늙으면 동심으로 돌아간다는 이야기가 있지 안습니까. 한번쯤 이런 모습도 괜찮을 것 같아서요." (109) 애늙은이 목소리를 내면서 여자아이가 말을 하자 가히 엽기적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이곳까지 친히 부른 이유가 뭐냐." "희한한 드래곤이 있다기에 보고 싶어서. 어찌됐던 간에 너는 나의 자 식이 아닌가." 니 배아파 났냐? 엄연히 우리 어머니 배 아파 난 자식이야, 임마. "궁금한게 있는데." "말해봐. 난 모든 걸 다 알고 있어." "쳇, 잘난 척은. 드래곤과 신들의 영혼은 네가 창조하지?" "물론. 육체까지도 가끔 심심하면 내가 만들지." 그래? 궁금증이 풀리겠군. 내가 주신에게 한 발자국씩 천천히 다가가 며 미묘한 웃음을 지어보이자 주신이 대단히 불쾌한 얼굴을 하며 뒤로 물러난다. "내가 태어날 때부터 약해 빠진 드래곤이었다는 것은 알고 있나."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뜨더니 헛기침을 하는 주신을 보며 왠지 모르게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알..고는 있었지." "이유를 말해줄 수 있나." "흠흠, 우리 차나 마시면서 이야기를.." 서서히 뒤로 물러서며 말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주신의 멱살을 잡으 며, 씩 웃어주었다. "말 해." "이봐이봐, 이건 아동 폭행이라구." "아동 폭행? 하~ 더한짓도 할 수 있으니 입닥치고 말이나 해." "켁켁~ 알았어. 알았다니까. 이거나 놓고 말하지." 내팽개치듯이 거칠게 잡고 있던 멱살을 놔버리자 한참을 켁켁대던 주 신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 말을 듣고 폭주하지 않는다고 약속하면 말해주지. 신의 영혼이 폭 주하면 나조차도 힘들어 지거든." "신의.. 영혼?" 말하기가 어색한지 자신의 의지로 테이블과 의자를 만들어내 나보고 앉으라고 권했다. 그 의자에 가만히 앉자 내 앞에 찻잔과 다과가 놓여 졌다. "어디서부터 이 말을 시작해야 좋을까.." 나를 멍하니 쳐다보며 회상에 잠긴 듯한 주신은 머리 속에서 모든 정 리를 다 끝냈는지 다시 입을 열었다. "그게.. 그러니까 얼마 전의 일이더라? 1만년 정도 전의 일일거야. 드 래곤이나 신의 영혼을 만들기란 조금 복잡하고 미묘한 일이지. 내가 몇 억년의 시간을 투자해서야 몇몇의 신과 드래곤이 탄생하게 되었으 니까 말야. 드래곤은 죽으면 그 영혼 그대로 드래곤으로 환생하고 신 도 소멸하지 않는 한 마찬가지야. 음.. 가끔씩, 아주 가끔씩 새로운 영 혼을 창조해 내기도 해. 내가 할 일이 없을 때, 아주 심심할 때 말야." 주신이 직접 이야기해서 그런가. 이야기 하나하나에 자연스레 경청하 게 된다. 그것이 내가 약하게 태어난 이유라서 그런 걸까. "이봐, 듣고 있어?" 딴 생각을 하는 줄 알고 있었는지 불쾌한 표정으로 나를 부르자 그 때 서야 대답하게 되었다. "듣고 있어. 계속 말해봐." "이야기 해달라는 쪽은 너였다구." (110) "알았어. 계속해." "그러니까 그 때 어떤 상위 신 하나가 내 허락 없이 이 곳을 몰래 들 어왔었지. 그런데 나는 내 허락 없이 이 곳에 들어오는 존재들을 소멸 시키라고 이 건물 자체에 의지를 불어넣었었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그 신은 소멸됐어. 하위 신과 중급의 신들은 많지만 상위 신은 얼마 되지 않아. 할 수 없이 상위신의 수를 채워 넣기 위해 내가 손수 영혼을 만 들었다. 알다시피 신은 생명을, 드래곤은 죽음을 관장하지 않나. 상위 신을 하나 만들 때마다 그에 대응하는 드래곤의 영혼을 하나씩 만들게 되지. 비례가 맞게 말야. 이해가 가나?"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내게 대답을 구하는 듯이 묻길래 얼떨결에 '응' 이라고 답해 버렸다. "그래서인지 둘은 상극이라고나 할까." "그게 내가 약하게 태어난 것과 무슨 상관이냐." "휴우..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최대한 충격을 덜 받을꼬." 한숨을 쉬며 중얼거리길래 빨리 말하라는 눈짓을 보내자 모든걸 포기 한 듯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태어난 신.이. 바로 너다." "...... 난 드래곤인데?" "그게 말이지.. 음.. 이 곳에서는 대 천사가 환생을 담당해. 신과 드래 곤을 하나씩 만드느라 약간 피곤해진 나는 약간의 수면을 취하면서 대 천사에게 두 개의 영혼을 환생시키라고 당부하고는 수면에 들어갔어." "...... 그런데?" "하핫, 그런데 대 천사가 실수를 했지 뭐야. 신의 영혼인 네가 드래곤 이 되어버리고, 드래곤의 영혼이 상급 신이 될 뻔했지." "왜 나는 드래곤이 되어버리고, 드래곤의 영혼은 상급 신이 될.뻔.했. 다.는.거.지?" "네가 환생해 버리고 난 다음 내가 바로 깨어났으니까. 뭔가가 잘못 됐다는 것을 알고는 막 신으로 환생 준비에 있던 드래곤의 영혼은 바 로 소멸시켜 버렸지만, 이미 너는 환생 해버리고 말았다지. 어쨌든 너 는 헤츨링으로 환생해서 내가 건들 수가 없었거든. 헤츨링은 절대 보 호가 아닌가. 그 덩치들이 떼로 내게 덤빈다고 상상을 해봐라. 끔찍하 지. 그래서 나를 비롯한 상급 신들의 회의가 열렸었어. 어차피 너와 드 래곤의 육체는 맞지 않으니, 빨리 죽을거라는 결론에 도달해 이대로 두고 보자는 결론이 나왔지. 하지만 예상외로 오래 버티더군." "내게 치유 마법이 통하지 않았던 이유는?" 상당히 어색한 웃음을 짓고 있는 주신에게 싸늘한 말투로 말을 건냈 다. "말했잖아. 너는 생명을 관장하는 상급 신에 맞게 영혼이 구성되어 있 다구. 네 자체가 생명이며 치유력인데 너는 굳이 그걸 받아들일 필요 가 있겠나. 치유력을 행해도 곧바로 그걸 영혼 자체가 흡수해 버리지. 하지만 힐링 포션이라면 얘기가 달라지지. 치유력이 간접적이고 내상 과 외상 모두를 낫게 하는 반면, 힐링 포션은 직접적이라고 할 수 있 거든. 직접 물질이 네 몸 속으로 들어가서 네 몸을 구성하고 있는 입 자들을 분석해 치유가 빨리 되도록 도와주는 물질이니까, 말야. 치유력 이 거의 강제로 낫게 한다는 거에 비해서 말이지. 에구, 내가 얘기해 놓고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네." "대체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군." "음.. 그러니까 드래곤의 영혼도 위대하긴 하지만 직접적으로 영혼이 신에게 타격을 줄 수 있지는 않아. 하지만 육체가 있다면 그건 최강이 지. 영혼으로는 드래곤은 인간이나 모든 생명체에게 티끌만치도 상처 를 주지 못해. 그러면서 왜 드래곤의 영혼 하나를 만드는데 그렇게 시 간이 오래 거리냐고 묻는 다면 최강의 육체를 견딜 수 있는 영혼이 필 요하기 때문이라고 밖에는 대답 할 수 없군. 흠흠, 이야기가 다른 곳으 로 샜군. 신은 영혼 자체이지만 말야. 그 어머어머한 상급 신의 영혼이 최강의 드래곤의 육체와 만난다고 생각 해봐. 상상이 가지 않나?" "너무 어려워." "쳇, 무식하게 강해서 영혼이 붕괴되거나 몸이 붕괴된다는 거야. 그것 도 특성이 맞는다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신은 생명, 드래곤은 죽음을 관장하니까." "그럼 나는 후자쪽이군." "다행이 영혼에는 별 무리가 없더군." 그래서 그런 건가. 흐흐흐, 대 천사. 나는 너를 처음 본 순간부터 왠지 재수가 없었다. 정말 모든 일의 근원지는 네 놈이었군. 잠깐, 주신의 말을 가만히 정리해 보면 나오는 결론은 한 가지 밖에 없다. "그렇다면 나는 드래곤으로 환생하지 못한다는 얘긴가." "흠, 결론은 그거지. 하지만 네가 직접적으로 그렇게 물어볼줄은 계산 에 넣지 않았군. 조금 당황했어." "내가 묻지 않았어도 어차피 말해줬을 내용이군." "......" "상관없어. 난 프라니만 죽이면 되니까. 드래곤의 몸으로 몇 천년을 버 텨왔던 나다. 단 몇 년이라도 상관없어. ...... 난 환생한다." (111) 흥미롭게 나를 지켜보던 주신은 자신의 앞에 놓여진 차를 한모금 마시 고는 향을 음미하듯이 눈을 감고 있었다. "좋아. 뭐, 정 그렇다면 안될 것도 없지. 불쌍해서 이번만 봐준다." "무슨 소리냐." "뭐, 만들어 본적은 없지만 지금의 네 영혼에 맞는 드래곤의 육체를 직접 제작해 줄 의향이 있어. 조금 시간이 걸리는 일이니까 먼저 헤츨 링으로 환생해. 몇 년이면 된다고 했지? 그 때까지 최선을 다해 만들 어 놓지. 이거, 무슨 내가 장인같군." "필요.. 없어. 그때가 되면 내가 알아서 소멸 할 거야." "앞일은 모르는 법이지." "넌 지금 지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관심이 없는 건가." 입가에 미소를 띄우며 장난스레 쿠키를 집어먹는 모습은 정말 천진난 만한 어린아이의 모습 그대로였다. "관심이야 있지. 하지만 이건 드래곤의 집안 싸움아닌가? 그리고 이번 에 일어난 일은 신들이 개입하지 못하도록 막아 놨더구만. 예전에도 그런 일이 몇 번 있기는 했지만. 이번엔 다른 것 같아. 잘하면 그 아이 의 쿠데타가 성공할 것 같더군."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안나." "왜 안들겠어? 부모 된 마음으로 뿌듯하지."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어진 나는 가만히 자리에서 일어나 나직하게 말했다. "이만 가보도록 하지." "어어, 벌써 가는 거야? 손님이 온지 오래되서 잘 대접했나 모르겠군. 그럼 잘가." 그 말과 함께 나는 쫓겨나듯이 대 천사가 기다리는 곳으로 이동되어 와버렸다. 잠시 얼떨떨 해 있는 내게 푸근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대 천 사가 입을 열었다. "이야기가 끝나셨습니까." 갑자기 이놈을 보니 화가 난다. 내가 이렇게 된게 다 너 때문이라 이 거지. "끝나다 못해 아주 합의까지 봤다." "잘되셨군요. '환생의 장'으로 가시겠습니까." "가야지." 여전히 이 곳에는 적응이 되지 않은 내가 대 천사의 옷자락을 잡고 있 자 대 천사는 휘적휘적 먼저 걸어가 버렸다. "야, 거기가 어딘데 걸어가?" "그럼 걸어가지 어떻게 갑니까?" "날아서 안가?" "...... 이 가녀린 날개로 날아가자는 말씀이십니까. 교통체증이 심각합 니다. 요즘 너도 나도 걸어다니기 싫어 날아 다니는 관계로 부쩍 교통 경찰 천사들이 늘었단 말입니다. 될 수 있으면 걸어 가야죠." 그래그래, 너 아는거 많아서 좋겠다. 아주 날개를 신주단지 모시듯이 고이고이 매일 빗질도 해주고, 기름도 발라주지 그러냐? "다리 튼튼해서 좋겠다." "네?" "아니, 네 말을 들으니 감격먹어서." (112) 두 세시간 정도 계속 걷기만 한 것 같았다. 여전히 내 눈에는 백색의 세상이었지만 대 천사는 익숙한지 알아서 휙휙 걸어가더니만 어느 한 지점에 와서는 그 자리에서 멈춰섰다. "'환생의 장'입니다." 그가 그렇게 말했지만 여전히 내 눈에는 백색만이 온통 시야를 차지하 고 있을 뿐이었다. "보이는게 없는걸?" "'환생의 장'은 그 어떤 모양도 갖추고 있지 않습니다." "그럼 어떻게 환생하라는 거.. 우욱.." "안녕히 가십시오. 아, 기억을 지우지는 않겠습니다. 그게 더 편할 것 같으니까요." 갑자기 구토증과 빈혈이 몰려오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대 천사는 그저 가만히 미소를 띄고 서있다가 서서히 내 영혼이 사라 지는 것을 보고는 뒤를 돌아서서 가버렸다. 점점 내 영혼이 투명해져 가는 것을 느끼며, 나는 의식을 잃었다. 698년 2월. 날짜 : 5일. 날씨 : 밖에 나가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내가 자아를 가진 것을 확인할 때쯤에 나는 끈적끈적하고 습기찬 곳에 몸을 돌돌 말고 있었다. 아마도 예전에 이런 느낌이 있었던게 기억 나 는거 보니까 알속인가 보다. 자아를 가졌다면 이미 알 밖으로 나갈 준비가 되었다는 뜻. 어느 정도 몸의 구실도 갖추고 있으니 이쯤에서 깨고 나가도 될 것 같았다. 먼저 택도 없겠지만 힘껏 구부렸던 허리를 피자 대단히 힘만 들 뿐 알 에는 금도 가지 않았다. 이제야 생각난 거지만 내가 드래곤생에서 가 장 힘들었던 일이 알을 깨고 나온 일이 가장 힘들었지 않았나 싶다. '예전에는 생각도 못해봤지만, 내가 나가서 꼭 이 성분을 조사해 볼테 다!' 그 작은 발로 열심히 한 곳을 집중해서 쳐봐도 이놈의 알 껍질은 정말 오래 버틴다. '그래, 니가 깨지든지 말든지 상관 안할테니까 어디 얼마나 버티나 보 자.' 신경질적으로 알 껍질을 발로 퍽 차준 뒤에 가만히 있으려니 얼마 안 가 알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빠직' 오오~ 이게 드디어 깨지나 보다. 약간 금이 간 곳에서 새어 들어오는 빛을 느끼며 그 곳만 죽어라 발로 차자 겨우 주먹 하나가 들어갈 만한 구멍이 생겼다. 온 몸이 끈적끈적 해서 빨리 밖으로 나가고 싶은데 생각대로 그게 되 지 않자 발끝에서부터 짜증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온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한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 밖.에.서.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이쯤 되면 '어머? 우리 아기가 알을 깨고 나오려나 봐요.' 나 '어떤 아 기일까?' 라는 반응이 나와야 한다. 하다 못해 어머니가 될 드래곤의 기쁨에 겨운 탄성이라도 말이다. 하지만 밖은 지나치게 조용하다. 뭔가가 잘못됐다고 느낀 나는 머릿속에서 예전에 기억해 두었던 마법 을 구사했다. 드래곤일 때 터득한 마법 정도는 기억하고 있고, 지금 헤 츨링 이라고 해도 보통 인간 마법사 정도의 마나는 가지고 있다. "아이스 스톰." 재빨리 내 몸 주위에 실드를 치고는 얼음 마법의 일종인 아이스 스톰 을 난사하자 '촤앙~'하는 소리와 함께 내 주위에 있던 알 껍질은 본 모 양을 잃어버린 듯이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이거이거, 드래곤 헤츨링 역사상 최초로 마법으로 알 깨고 나온 드래 곤으로 역사에 길이길이 남는거 아냐? 쓸데 없는 생각을 하면서 엉금 엉금 기어 힘들게 땅바닥에 엎드렸다. "우띠, 알 깨고 나오는거 한 번 더럽게 힘드..." 아무래도 처음부터 예감이 좋지 않다고 느꼈다. 처음 알을 깨고 나왔을 때 내 눈앞에 보인 것은 이 넓다란 레어 안에 이미 죽은지 며칠은 지난 듯한 내 어머니로 보이는 목과 몸이 분리된 드래곤의 시체였다. 아마도 낮인 듯 사물을 뚜렷하게 분간할 수 있었으며 레어의 바깥으로 통하는 것 같은 통로에서는 비이 새어들어 오고 있었다. 피 비린내가 레어 안에 진동하고 있었으며, 그 드래곤의 몸은 이미 마 법으로 헤집어져 있는 상태였다. 가슴쪽이 텅 빈 것을 보니 드래곤 하 트를 빼갔나 보다. 드래곤은 실버 드래곤으로 레어 안에서 보면 꽤나 치열한 접전을 벌였 던 것 같다. 아마도 상대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느끼고는 모성애의 본 능으로 나를 지키려 한 거겠지. 드래곤을 이렇게 죽일 수 있는 인간은 없다. 그렇다면 범인은 같은 드 래곤이라는 이야기. 나를 발견했겠지만 드래곤은 헤츨링에게 위해를 가하지 못한다는 방침 에 따라 나는 그냥 두고 간 것 같았다. 제길, 처음 시작부터 재수 없는 일 뿐이군. 어떻게 할 지를 몰라 그냥 멍하게 그 드래곤의 시신만 바라보고 있었 다. 억울한 듯 눈을 치켜 뜨고 죽어있는 모습이 내 마음을 안쓰럽게 만들 고 있었다. 마법을 쓰면서 알을 깨고 나오느라 꽤 힘들었지만 그래도 나를 낳아준 드래곤이기에 눈이라도 감겨주고 싶어서 엉금엉금 기어갔다. 거의 핏물이 도랑을 이루고 피비린내가 진동해 있는 상태에서 자꾸 헛 구역질이 나왔지만 끝까지 그 드래곤의 목이 있는 곳으로 기어갔다. 마치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모습에 잠시 움찔거렸지만 힘겹게 일 어나서 짧은 손으로 조심스레 그 드래곤의 눈을 감겨 주었다. 별로 낯이 익지 않은 드래곤인 것을 보니 나와의 친분은 없었던 것 같 다. 잠시 그 드래곤의 목을 안고 있으려니 레어 바깥쪽에성 웅성거리는 소 리가 들려왔다. "제길, 여기까지 퍼져나와있는 피비린내를 맡아보면 파이나스도 당했 나 보군." "얼마 전에 헤츨링을 낳은 아이라구!" "그 미친놈은 헤츨링까지 죽였을 지도 몰라." 내가 익히 알고 있는 목소리가 들려와서 힘겹게 고개를 돌려보니 레어 안으로 세 명의 그림자가 들어오고 있었다. 카네스와 카라드시크, 그리고 라네. 레어 안쪽으로 들어오다가 뒤를 돌아본 나와 눈이 마주친 이 세명은 곧이어 한숨을 내쉬더니 이렇게 말했다. "헤츨링이 살아있었군." "다행히 그 놈은 완전히 미치지 않은 모양이야." 이 세 명이 나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끼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아마도 처음 태어난 날에 이 세 명을 만난 것을 보니 아주 질긴 인연 이 있나 보다. 나는 그렇게 엄청난 일을 겪으며 드래곤으로 환생했다. (113) 698년 2월 날짜 : 6일. 날씨 : 맑다. 어제 잠깐 눈을 감는 다는 게 깜박 잠이 들었나 보다. 내가 눈을 떴을 때는 비루나스마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고 나는 뒤뚱거리며 일어나려고 용을 썼다. "불쌍한 것. 어미를 잃어서 힘들어하는 구나." 이봐, 나는 지금 일어나려고 용쓰고 있는 중이라구. 이상한 소리로 머 리 혼란 스럽게 하지 마. "카네스, 카라, 라네! 이리 와서 얘 좀 봐요. 깨어났다구요." "비스마! 내가 그 이름으로 부르지 말라고 했지 않습니까!" 카라라고 불린 카라드시크가 화를 내자 비루나스마는 그저 못들은척 내게 신경을 곤두세웠다. 곧이어 내 옆에는 4명의 인간으로 폴리모프 한 드래곤들이 모여들었고 나는 4쌍의 눈초리를 받으며 그렇게 앉아있 었다. "파이나스가 죽었으니 이 아이를 어쩌지?" "'헤츨링 보호 센터'에 보내야지." "이 아이를 죽일 일 있어? 아직 엄마 품이 그리울 나이라구. 엄마 품 에도 못 안겨봤을 텐데." 이 말을 하며 비루나스마는 나를 꼭 안아주었다. 그래봤자 내 허리만 잡고 매달린 거지만. "그런데 아들이야, 딸이야?" "아들~"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비루나스마가 말하자 잠시 그 뜻을 생각하던 나 는 만족스레 웃음을 지었다. 흐흐, 남성체구나. 내가 그리도 원했던. "얘 좀 폴리모프 시켜." "아아, 알았어. 폴리모프!" 비루나스마가 강제로 나를 폴리모프 시켰고, 8살 정도의 모습으로 변 한 나는 약간 멍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엄마가 죽은 충격이 컸나봐. 눈동자가 풀려있어." 이봐, 아직 잠에서 안깼다구. "불쌍하군." "이 아이를 딱히 맡아줄 드래곤도 없으니, 원." "내가 이 아이가 성룡이 될 때까지 키울거야! 그래도 되지? 카라~?" "그 이름만 부르지 않으면 생각해 보도록 하죠." "호홋~ 역시 자기야~" 나를 비루나스마가 키우는 건가. "귀여운 실버 드래곤. 너의 이름을 뭘로 짓는게 낳을까." "시크리오프스." 잠시 그 말을 듣고 움찔거리던 나는 나를 보고 씩 웃고 있는 카네스와 정면으로 눈을 마주쳤다. "시크리오프스? 흐음, 시크님의 본명 말이지?" "몰라서 묻는 거냐." "확인 사살이야, 확인 사살." 성인에 비해 턱없이 작은 나를 들어올리며 라네는 무표정으로 내게 말 했다. "그럼 만장 일치로 시크리오프스. 시크라고 하자." "아빠! 그 얜 내 아이라구요!" "얘가 언제 네게로 호적을 옮겼냐? 잊지 마라. 비루나스마. 이 아이에 게 잊게 해주면 안돼. 이 아이의 어머니는 파이나스다. 너도 알아두거 라. 네 억울하게 죽은 어미의 이름은 파이나스다. 알겠냐." 라네 답지 않은 심각한 말투에 고개를 끄덕여 버린 나는 곧이어 내 발 이 땅에 닫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땅에 닫자 마자 곧바로 비루나스마 가 다시 나를 들어올렸고, 자신의 눈높이에 내 얼굴을 가져다 대었다. "실버 드래곤의 헤츨링, 시크리오프스. 난 이제부터 네 양엄마란다." 조금만 잘못해도 뼈가 부러져 나가겠군. 예로부터 레드 드래곤의 자식 사랑은 독특한 법이니까. "비루나스마. 너는 그럼 그 아이를 데리고 네 엄마에게 가있거라. 그 미친 드래곤이 어디서 나타날지 감을 잡지 못하겠으니까." "나 혼자서도 충분히.." 뾰루퉁한 목소리로 자신의 힘을 은근히 과시 하는 비루나스마였지만 라네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곧이어 그 소리가 쏙 들어가버렸다. "네 안위를 걱정해서가 아니다! 네가 데리고 있는 저 헤츨링을 걱정해 서야! 네 부주의로 헤츨링이 죽는다면 그것보다 큰 일은 없다." "...... 네." 여전히 나를 한 손에 안아들고는 말하는 비루나스마의 말투에는 상당 히 기분이 상했다는게 들어났다. "텔레포트!" 나를 안고 비루나스마는 텔레포트를 시도했으며, 내 시야에서 이들 세 명의 모습은 사라졌다. 이 드래곤들. 정말 헤츨링 키우는 방법을 알기 나 해? 태어나면 밥부터 줘야지, 아니 내가 잠이 들어서 그런거라고는 해도, 아침에 일어났으니 밥이라도 챙겨줘야지 아주, 꼬르륵거리는 내 배는 무시하고 있군. 작은 나의 투덜거림 속에 우리는 화산 근처에 있는 비루나스마의 어머 니, 시실리아나의 레어에 도착했다. (114) 레어 앞에서 나는 진한 피비린내. 하루동안 맡아온 거라서 잊을 수가 없다. 슬쩍 비루나스마의 얼굴을 보자 이미 하얗게 질려서는 나를 놔두고 달려가다시피 해서 레어 안쪽 으로 들어간다. 나도 따라서 그쪽으로 들어가자 나를 낳아주었던 드래 곤과 같은 모습으로 레드 드래곤 시실리아나는 죽어있었다. 시실리아나의 몸체는 아직도 용암에 깊이 담겨 있었으며, 머리만이 따 로 떨어진 곳에 있었다. "꺄아아아악!!!!!" 그녀의 비명소리가 레어 안으로 울려퍼졌고, 곧이어 나는 이 곳에 우 리 이외의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이미 그 존재의 기 운을 느끼고는 살벌하게 그 존재에게 다가서고 있었다. 프라니바투스. 여기서 만나게 되는 건가. "네가.. 우리 어머니를 죽였나!" 이성을 잃은 그녀가 거의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고 검은 로브를 뒤집 어쓰고 있던 프라니바투스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손에는 시 실리아나의 드래곤 하트가 들려 있었으며, 그것을 본 그녀는 거의 미 친 듯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파이어 스톰!!" 이성을 잃은 그녀의 마법이 그에게 난사되었고, 그는 실드를 침으로써 간단히 막아내었다. 그의 입가에는 차가운 조소가 걸려있었다. 그는 확신하고 있는 거다. 자신이 절대적으로 이 싸움의 승자라는 것을. 그녀마저 이대로 죽게 할 수는 없었다. 아직은 복수를 할 때가 아니다. 그가 막 마법을 난사하려 할 때 내가 그 사이에 조용히 끼어들었다. 그는 차가운 눈으로 나를 한 번 바라보더니 다시 그녀에게 시선을 돌 렸다. "실버 일족의 헤츨링인가. 아아, 며칠 전에 죽인 그녀의 아이군." 그의 푸른 눈동자는 이미 광기로 새빨갛게 변해 있었으며, 내가 헤츨 링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만 해도 용했다. 아직은 이성이 남아있는지 그는 나에게 비키라는 손짓을 했지만 나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죽어!!!" 비루나스마의 목소리가 내 뒤에서 들려왔고 나는 내 뒤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살기에 잠시 프라니에게서 눈을 떼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헤츨링을 죽일 셈인가." 미성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내 입에서 흘러 나왔으며 이성을 잃어가던 그녀에게 이 말은 아주 효과적이었다. 그녀가 막 마법을 쓰려던 손을 조용히 내려 놓았기 때문이다. 그에게 궁극의 마법을 쓰려면 나를 거쳐야 했으니까. "슬립!" 거의 미쳐있던 그녀에게 이 마법은 아주 쉽게 들어맞았다. 그녀는 털 썩 무릎을 꿇더니 그대로 앞으로 쓰러져 잠이 들어 버렸다. "이번엔 이대로 가지." 프라니는 조용히 나를 응시하더니 뒤를 돌아서서 레어 밖으로 나가버 렸고 나는 그런 그를 붙잡을 수가 없었다. 조용히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지금 공격하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그에게 더 잔인한 고통을 안겨 주어야 해. 아직은 때가 아니다. 그를 죽이는건 나중의 일이야. "프라니바투스.." 내 목소리를 들었는지 그는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헤츨링이 내 이름을 알고 있다니, 감회가 새롭군. 나조차도 잊고 있었 던 이름을 말야. 하하하핫."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거냐. 너를 향해 이 살기를 정녕 모른다고 잡아 땔 거냔 말이다! 이렇게 외치고 싶은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레어 밖으로 나가버렸다. 당장에라도 그를 죽이고 싶지만, 조금은 참아야 한다. 조금만 기다려 줘. 내가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너를 죽여줄테니. (115) 698년 2월. 날짜 : 7일. 날씨 : 소나기가 내린다. 비루나스마는 제 정신이 아닌 듯 잠에서 깨어난 뒤에도 멍하니 시실리 아나의 시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해 줄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녀가 이성을 찾 을 수 있기를 기도할 뿐이다. '꼬르륵' 배가 고프구먼. 태어난지 이틀동안 굶었으니 그럴 만도 하지. 갑자기 멍하니 있던 그녀가 나를 돌아본다. 나도 마찬가지로 그녀를 빤히 쳐 다보니 그녀가 입을 열었다. "배고파?" 고개를 열심히 끄덕이자 그녀가 밖으로 나가더니 오크 한 마리를 잡아 왔다. "먹어." 내가 잠시 머뭇거리며, 오크를 쳐다보고 있자 그녀는 힘없이 웃더니 곧이어 오크를 불로 구워주었다. 그리고는 내게 먹으라는 눈짓을 하고 다시 멍한 패닉 상태에 빠져들었다. 구수한 오크 구워진 냄새가 내 식욕을 돋궜으며, 나는 행복한 표정으 로 오크 시식에 나섰다. 쫄깃쫄깃 구수한게 맛이 일품이군. 음, 이 구불구불한 내장은 맛있게 보여도, 왠지 거부감이 드는군. 일단 제쳐두고, 심장도 먹기가 껄끄럽고, 장기들은 일단 제쳐두자. 뼈에 있는 갈비살만 맛있게 발라먹자 어느 정도 배가 불러온다. 보통 헤츨링은 하루에 오크 대 여섯 마리는 뚝딱 하는데 나는 겨우 고 기 몇점을 먹었을 뿐이다. 폴리모프한 상태여서 그런가? 아니면, 내가 소식 주의자라서? 흠, 후자 쪽은 절대 아닌 것 같군. 그러고 보면 나도 비위가 좋은 건가? 피비린내 나는 이 곳에서 드래곤 의 거대한 시체를 마주보며 고기를 뜯고 있는 걸 보니 말이다. 내가 만족스레 부풀어 오른 배를 바라보고 있는 동안 레어 바깥에서 다시금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리더니 세 명의 인간으로 폴리모프한 드 래곤이 들어왔다. 아마도, 그녀가 연락을 했으리라. 카네스는 시실리아나의 시신을 바라보며, 잠시 고개를 숙였고, 카라드 시크는 가만히 비루나스마에게 가서 어깨를 꼭 안아주었다. 그리고 가장 충격이 클 것 같았던 라네는 조용한 시선으로 묵묵히 자 신의 아내였던 드래곤의 시신을 바라보았다. "그 놈이 여기까지 왔었단 말인가." "설마 했었지요. 이미 그 놈은 미쳤습니다. 빨리 각 수장들의 회의를 해 해결 방법을.." "잊었나. 성룡끼리 싸우다 죽은건 누구도 뭐라고 나무랄 수가 없다. 드 래곤이 모이는 일은 2천년에 한 번뿐인 각 수장들의 모임과, 헤츨링의 신변에 위협이 닥쳤을 때, 그리고 로드님의 명이 있을 때다. 천재 지변 이 일어나지 않는 한 우리는 그 놈에게 뭐라고 말 할 수가 없다. 하아, 그 놈도 교활하게 헤츨링만은 피하고 있으니." "하지만 너무하지 않습니까! 벌써 4번째입니다!" "로드님과 헤츨링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지는 않았으니, 어쩔 수 없지. 계속 놈을 주시해야 한다." "이미 그린, 실버, 레드, 화이트 드래곤의 드래곤 하트를 가지고 있는 놈입니다. 억울하지만 지금 우리 일족 중에서는 그를 능가할 자가 없 습니다." 카라드시크의 말에 라네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의 최종 목표는 로드님이다. 우리는 그 분의 옆에만 있으면 돼." "앞으로 블루 드래곤과 블랙 드래곤이 남았습니다. 그 두 무리중 한 마리씩은 모두 희생될 겁니다." "딱히 방법이라도 있나. 그 중에서 무차별 적으로 하나를 지목해 죽이 는 놈인데." "그래서 대책을 생각해야 하지 않겠.." "닥쳐라. 더 이상 지껄이는건 용납하지 않겠다. 우리는 로드님의 레어 로 간다." (116) "오셨습니까." 드래곤 로드 마리오네라님은 우리를 푸근한 미소로 맞아주셨다. 모든 것을 따뜻하게 감싸줄 것만 같은 미소를 보며 나도 모르게 미소 가 피어 올랐다.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절대 미소가 흘러나올 것 같지 않은 상황이 다. 아버지는 어디 가셨는지 보이지 않았으며 로드님만이 40대 정도의 중년 여성으로 폴리모프해서 조용히 테이블에 앉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레드 드래곤 시실리아나가 사망했습니다." "...... 그렇습니까. 안타깝군요. 좋은 분이셨는데. 그런데 이 아이는 누 굽니까." "며칠 전에 죽은 실버 드래곤 파이나스의 아들입니다." 로드님의 자애로운 눈빛이 잠시 내 얼굴에 머물렀다. 그리고는 두 팔 을 벌려 내게 오라는 손짓을 하자 나는 주저 없이 달려가 그 품에 안 겼다. "어머니가 보고 싶지는 않으십니까?" 가만히 고개를 젓자 로드님이 다시 살포시 웃음을 짓는다. "강한 분이로군요. 이름이 뭡니까." 내가 막 대답하려는 찰나에 옆에 있던 카네스가 대신 답했다. "시크리오프스. 시크입니다." "시크리오프스라..." "로드님, 저희는 이만 프라니바투스의 행방을 찾으러 가겠습니다. 만일 을 대비해 카네스가 여기 남아있을 테니 이해해 주십시오." "쓸데없는 짓을 하는 군요." 여전히 입가에 웃음을 띄우시고는 말씀하시는 로드님에게 의아함을 느 낀 라네가 물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말 그대로입니다. 어차피 제가 죽을 목숨이라면 어떻게 해서든 죽을 겁니다. 괜히 아둥바둥 살 필요가 없지 안습니까?" 로드님은 자신의 죽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셨다. "아닙니다. 로드님은 현 드래곤들중 최강이 아니십니까." "예전의 일이지요. 수명이 다할 때까지 로드 자리에 남아 있어야 한다 는 규율이 없었다면, 벌써 내팽개치고도 남았습니다." 아마 지금의 로드님은 역사상 가장 자애로운 로드일 것이다. 실버 드 래곤이 로드가 된 적은 이번이 두 번째이다. 거의 대다수를 골드나 레 드 드래곤이 로드 자리를 차지해 왔으므로, 다른 드래곤이 로드의 자 리를 맡기란 아주 어렵다. 강하고 지혜로운 드래곤으로 로드 자리에 뽑히게 된다면 로드는 수명 이 다 할 때까지 그 자리를 지켜야 한다. 한 번 로드 자리에 앉게 되 면 그 후의 일은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로드가 약해져도 지혜만 있다 면 로드 자리를 충분히 꾸려 나갈 수가 있기 때문이다. 가끔 로드 자 리를 탐내며 로드께 결투를 신청하기도 하지만 최강의 드래곤답게 모 든 걸 처리한다. 그리고 로드는 들어오는 결투를 모두 받지 않아도 된 다. 거부 의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한 번 로드가 되면 자신의 수명이 다 할 때까지 있는 경우 가 대 부분이다. "로드님께서는 프라니바투스가 찾아와도 절대 결투에 응하지 마십시 오." "모든게 주신의 뜻대로 되겠죠." "그럼 저희는 이만..." 라네와 카라드시크는 사라져 버렸고, 로드님은 나를 무릎에 앉히시고 는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이렇게 의젓하시니 훌륭한 성룡이 되시겠군요." 하암, 슬슬 잠이 온다. 로드님의 가슴에 고개를 파묻고는 곧 잠에 빠져 들었다. 그렇게 카네스와 비루나스마, 그리고 나는 로드님의 레어에 식객 아닌 식객으로 들어살게 되었다. (117) 698년 2월 날짜 : 9일 날씨 : 서늘한 바람이 불어온다. "마법이란 건 편하고 좋은 일에 쓰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살상용으로 쓰이기도 한답니다. 드래곤이 인간을 무차별적으로 죽인다는 소문이 대륙에 돌고 있지만, 그게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 두세요. 드래곤은 절 대 이유 없이 타 종족들을 죽이지는 않습니다. 이걸 명심하고 마법을 사용하도록 해요." 라네와 카라드시크가 간 뒤 바로 직후부터 나에게 마법에 대한 이론을 가르치시는 로드님. 이미 마법에 대한 이론은 내 머릿속에 있었지만 나는 잠자코 로드님의 수업을 듣고 있었다. "식사하시고 계속 하세요." 밝은 모습의 비루나스마가 우리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예상외로 빨리 슬픔을 털고 일어났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아직도 깊은 슬픔이 자리하고 있엇다. "그럼 식사하러 가실까요." 로드님의 무릎에서 내려와 쪼르르 식탁으로 달려가는 나를 쫓아오며 로드님은 짐짓 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렇게 뛰어다니다가 상처라도 생기면 어쩔려구요. 조심조심 다니세 요." "아, 이번 아이가 실버 일족에서 2천년만에 태어난 귀한 헤츨링이라 면서요?" "후훗, 그렇답니다. 이제 다시는 헤츨링이 태어나지 않는건 아닌지 꽤 나 걱정을 했는데, 이번에 태어나게 되었지요." "저희가 멋대로 이름을 붙여서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저도 시크리오프스라는 이름을 좋아한답니다." 세 명의 존재는 식사시간 중에 수다를 떨고 있었고, 나는 묵묵히 밥상 에 머리를 숙이고는 내 앞에 놓여진 음식만을 먹었다. "그런데 이 아이가 도무지 입을 열지 않네요." 비루나스마가 걱정스럽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고 로드님도 안색이 변 하셨다. "충격이 큰 게지요. 이 어린 것이 어미의 죽음을 앞에서 보고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갑자기 세 존재가 나에게 동정표를 던졌다. 이봐들, 나는 말을 안하는게 아니라 말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 안 하고 있는 거라구. 앞에 놓여진 수프를 신경질적으로 떠서 먹다가 입가에 묻히고 먹는 나 를 바라보며 비루나스마는 냅킨으로 닦아주었다. "아, 카이오네스님. 시크리오프스님의 잠시 몸을 빌리고 있던 육체가 죽었다고 저번에 말씀하셨지요?" '쿨럭' 갑자기 내가 이야기의 화제거리가 되자 사례가 들려서 기침을 해대는 나를 잠시 바라보다가 카네스가 대답했다. "네. 정확히는 환생하러 천계로 간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겠지요. 조만간 환생하시겠군요." "그럴 것 같습니다. 아, 그런데 드라시아쿠스님은?" "그 분은 제 레어에서 독립해서 바다로 나가셨습니다." "수중 레어를 만드신 겁니까?" "아뇨, 무인도를 하나 찾아서 거기에 레어를 만드셨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그렇게 사시는군. 죽을 때까지 로드님의 레어에서 안나갈 줄 알았는데 철이 든건가. 하 지만 이곳에서 아버지를 못보니 조금은 씁쓸하군. "왜, 더 먹지 않니?" 갑자기 스푼을 놓아버리는 내가 걱정스러웠는지 비루나스마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조심스럽게 말한다. 그녀에게 간단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레어 한쪽에 있는 작은 서재로 갔다. 가까이에 있는 꽤 고위 마법들이 담겨있는 마법 책을 꺼내어 눈으로 읽고 있었지만 머릿속에는 다른 생각들이 꽉 차 있었다. "이런 어려운 책은 아직 보기 이르다." 카네스가 다가와서는 내가 보고 있던 책을 뺏어 들었다. 끝까지 나를 방해하는군. 내 딴에는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자 그는 손가 락으로 내 머리를 툭치며 입가에 비웃음을 담고는 말했다. "꼬마야, 그렇게 노려보면 어쩔 건데? 감히 내게 대들기라도 하겠다는 거냐." 으이그! 내가 참자 참어. 저 정신연령 낮은 놈하고 이야기하면 나도 똑같은 꼴 된다. "이름은 그녀와 똑같은데 넌 그녀의 성격을 닮지 않았구나." 힘든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카네스가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혹시, 지 금 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야? "그렇게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쳐다보지 마라. 잡아먹고 싶어지니까." 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카네스, 네가 어린아이를 좋아하는 로리타 변태였단 말이냐. 내가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자 카네스는 장난스레 다가와서는 자신의 얼굴에 내 얼굴을 가져다 대었다. '쪽' 내 볼에 살짝 키스를 하는 카네스. 이거 도대체 뭐하는 짓이야! 어린 몸으로 있던 나는 차마 반항 한번 못해보고 당해야만 했다. "쿡, 귀엽군." 내 머리를 쓱쓱 비벼주며 말하는 카네스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오지 않 았다. 내게는 카네스가 변태가 되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 다. 카네스가 저 지경이 될 동안 내가 모르고 있었다니. 패닉 상태에 빠져 있는 내 얼굴을 들어올리며 카네스가 씨익 웃더니 말했다. "장난이야, 장난. 꼬마야, 그렇게 심각할 것 없단다. 키킥." 멍하게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나를 내버려두고 서재를 나가는 카네스 를 향해 옆에 있는 책을 집어던졌지만 유유히 그것을 피하고는 콧노래 를 부르며 나가버린다. 예전의 카네스는 어디 간거야! 소리없는 절규가 조용히 서재에 메아리쳤다. "어때요? 카네스? 말을 하던가요?" "어떤 짓을 해도 절대 입을 열지 않던데." "정말 큰 일이군요." "분명 어머니의 레어에 있을 때 그 아이가 나와 그를 가로막고 말을 했단 말이에요." "잘못 들은게 아닐까? 넌 그 때 거의 이성을 잃고 날뛰고 있었잖아." "자자자~ 어서 꼬마 헤츨링의 입을 열게 만들어야 해요. 저러다가 자 폐증이나 우울증이 오기라도 하면 큰일나죠." "훗~ 충격 요법이 먹히지 않으니 이제 어떤 방법을 쓰실 겁니까?" 서재 밖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잠시 나는 책장을 잡고 휘청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 카네스가 변태 짓거리를 한게 내 입을 열기 위해서? 이봐, 그냥 말 하라고 했으면 말 했다구. 굳이 볼에 키스까지 하다니. 왠지 그것에 대해 불만이 컸던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입을 열지 않겠다고 혼자서 다짐했다. (118) 698년 2월 날짜 : 17일. 날씨 : 아침부터 흰 눈이 내린다. "꼬마야, 이리와." 그 날 이후로 슬슬 자신을 피하는 나를 알아챘는지 카네스가 내게 다 가와서는 나를 번쩍 들어올렸다. 아둥바둥 발버둥을 치자 내 엉덩이를 찰싹 때리더니 씩 웃는 카네스. "좋은 거 보여주려고 그러는 거야. 발버둥치지마." 이봐, 네가 그렇게 말하면 꼭 나를 잡아먹으러 가는 것 같다구. 나를 데리고 레어 밖으로 나온 카네스는 온통 하얀 세상을 내게 보여 주었다. 우중충한 먹구름이 낀 하늘에는 흰 함박눈이 소리 없이 내리고 있었 고, 레어 주위는 온통 하얀 세상이었다. "이걸 보여주려구." 한참을 그 눈들을 바라보고 있자 카네스가 멋쩍은 듯이 말했다. "맘에 드나 보구나. 저번에는 내가 미안했다." 은근슬쩍 사과하는 카네스를 싫어할 수가 없다. 자기 딴에는 용기를 내서 하는 걸텐데. 드래곤은 헤츨링의 생각과 사상을 존중해 준다. 그렇기 때문에 이 드 래곤이 내게 사과하는 것일 테지만. 내가 화라도 나면 큰일나니까 말 이다. '푸욱' 카네스의 품에서 내려와 살짝 땅을 밟아 보니 다리의 반이 푸욱 눈 속 으로 파묻혔다. 아마도 어젯밤부터 쭈욱 함박눈이 계속 내려서 쌓인 것 같았다. "키킥." "어? 뭐가 그렇게 재밌냐? 소리내어 감정을 표현한건 처음인 것 같 군." 신기하다는 듯이 말하며 파묻힌 내 발을 조심스레 꺼내어 준다. "들어가자. 감기 걸릴라." 도리도리 고개를 내젓자 한숨을 폭 쉬는 카네스. "괜히 데리고 나왔나." 카네스의 중얼거림을 뒤로하고는 조그맣게 눈덩이를 뭉쳤다. 흐흐흐, 난 아직도 서재에서의 일을 잊지 않고 있다. '퍼억' "뭐야!" 뒷통수에 커다란 눈덩이를 맞은 카네스가 얼굴이 벌개져서 내게 소리 쳤다. "까르르~" 헉, 이 목소리는 뭐냐. 내 목에서 이런 아기같은 목소리가 나오다니. 어려서 그런가. 뭐, 크면 괜찮아 지겠지. "...... 에구, 귀여운 것." 갑자기 나를 끌어안고 부빗거리는 카네스를 간신히 떨어뜨린 후 새초 롬하게 노려보자 카네스는 커다랗게 웃었다. "에구, 니가 남자라는걸 자꾸 잊어먹는다." 정말 로리타 변태가 된건가. "꼬마야, 나만 말하니까 왠지 썰렁하고 재미없지 않냐?" 나에게 말을 하라는 건가? 내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면서 말하 기를 요구하는 카네스가 너무나 불쌍해서 한마디를 던졌다. "면상 저리 치워." "......" 잠시 벙쪄 있는 카네스를 한심한 듯이 바라보고는 다시 눈밭으로 시선 을 돌렸다. 왠지 이렇게 떨어지고 있는 눈들은 차가운데 여기에 누우 면 따뜻할 것만 같은 느낌이든다. '풀썩' 눈밭에 누운채로 하늘을 바라보니, 회색의 구름과 쏟아지는 눈들만이 보일 뿐이었다. 얼굴에 눈송이가 차갑게 내려앉았고, 나도 모르게 고개 를 움츠려 들었다. 그렇게 하늘을 감상하고 있을 때, 다시 눈에 보이는 카네스의 얼굴. "너 방금 뭐라고 그랬었지?" 상당히 기분이 상해서 띠꺼운 눈빛으로 카네스를 쏘아보자 머리를 갸 우뚱하더니 혼자서 뭐라고 중얼거렸다. "하핫, 저놈이 내게 말을 했을 리가 없지. 완전히 마이 페이스인 녀석 인데. 내가 잘못들은 거야."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가 보다. "카네스." "어?"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반사적으로 대답하는 카네스가 우스워서 쿡쿡대 며 웃고 있을 때 갑자기 카네스가 누워있는 내 어깨를 잡았다. "네가 부른 거냐...?" 믿고 싶지 않았는지 뒷말을 끌면서 말하는 카네스에게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본명 카이오네스. 자신의 물건이나, 레어가 더럽혀지는 것을 광적으로 싫어하는 깔끔한 성격이며, 현재 죽어버린 시크리오프스의 앞집에 살 고 있으며, 마지막으로 시크리오프스가 죽을 때 같이 있었던 드래곤이 다." "...... 설마..?" "반가워, 카네스." "제길, 설마설마 했는데 진짜였군."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던 것 같군. "오랜만이야." "별로. 네가 죽은지 한 달도 안됐으니까. 파이나스의 레어에 네가 혼자 있었을 때부터 설마 했었지. 보통 헤츨링들은 너처럼 그렇게 냉정하게 서있지 않거든." 차가운 눈에 앉아 있는 나에게 카네스의 손이 다가오더니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힘들었겠구나." "프라니를 만났을 때를 묻는 건가." "......" "강하더군." "그래, 강하지. 우리 따위는 상대도 되지 않을 정도로." "... 하지만 난 그를 죽일 거야." 아까의 그 웃음은 어디로 갔는지 눈가에 깊은 쓸쓸함을 보이며 나를 바라보는 카네스. 눈물이 떨어지려고 했지만 입술을 깨물고 참았다. "그래, 너라면 그를 죽일 거야. 그리고... 너도... 같이 죽을 테지. 아직 제대로 살생조차 해보지 못한 아이니까." "쿡, 내가 그에게 손대지 않기를 바라나." "네가..." "잘 들어. 시오스가 죽은 후부터 나는 그에게 복수 이외의 감정은 가 지고 있지 않아." 카네스의 말을 가로막으며 말을 했지만, 이건 그에게 하는 말이 아니 었다. 내 자신에게 다짐을 하는 것뿐. "내가 그를 죽일 때까지, 내 존재 자체를 잊어라. 실버 드래곤의 헤츨 링 시크리오프스로 생각해." "...... 춥다. 들어가자. 감기 걸릴라." 내 손목을 붙잡고 끌고 가다시피 레어로 들어간다. 너도 힘들겠지. 미안하다. 나중에 꼭 이 말을 해줄게. "어머, 벌써 온 몸이 얼음장이 됐네? 카네스! 이렇게 될 때까지 뭐했 니?" 비루나스마의 잔소리를 그대로 경청하는 그에게 다시 한번 미안했다. 밖에서 좀더 있자고 한건 나였는데. 나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고 내가 인상을 찌푸리자 그것을 곁눈질로 본 카네스는 조심스레 손을 놓아주었다. "다 이 녀석 때문이라구. 자꾸 놀다 가자고 그러잖아." 네가 배신을 때리다니! "호홋~ 그래? 둘 다 오늘 점심은 굶어." 잔인한 비루나스마. 그녀에게 서재로 쫓겨난 우리 둘은 서로를 앙칼지 게 노려봤다. "나쁜 놈. 왜 나는 끌고 들어가는 거야? 네가 잠자코 잔소리를 들었다 면 이런 일은 없었잖아! 난 배고프다구!" "너만 배고프냐! 그리고 난 사실을 말한 것 뿐이야." "그 사실이란 걸 두 번만 말했다가 아주 쫓겨나게 생겼다! 그리고 나 는 배고픈 헤.츨.링.이라구! 너같은 성룡과는 기본적으로가 다르단 말 이다." 서로 삐진 우리는 각각 양 쪽 벽으로 갈라져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흥! 나도 아쉬울 것 없다! 차라리 이 시간에 책이나 더 봐야겠다는 생각에 내 곁에 있는 책장에 서 '마법 학교 교과서' 라는 책을 꺼내 들었다. 인간들의 마법 교과서라. 재미있겠군. '페르란 마법 학교 초급 교과서' 책장을 처음 폈을 때 보이는 건 드래 곤이 그려진 그림이었다. "어? 그거 로드님이 세운 마법 학교네."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온 카네스가 책을 흘낏 보고는 던진 말이었고, 그제서야 이 드래곤 그림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로드님 취향도 독특하시네." "너만 하겠냐." "메야? 너 정말 죽도록 맞아볼래!" "그 작은 손으로 때리면 얼마나 때린다고." '퍼억' 손에 있던 책이 날아가 정통으로 모서리에 이마를 직격당한 카네스는 잠시 그 자리에 굳어있었다. 그리고 몇 초 지나지 않아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는 아픔을 참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무슨 짓이야!" "누가 내 손으로 때린데?" "넌 네 자신이 상당히 사악하다는 걸 알고 있냐! 잘못했으면 그거 맞 고 바로 골로 갈 뻔했잖아!" "피하지 못한 놈이 잘못이지." '벌컥' 갑자기 서재의 문이 벌컥 열리더니 무시무시한 눈빛을 하고 있는 비루 나스마의 얼굴이 보인다. "둘 다 뭐하는 짓이야!" 화를 내는 비루나스마에게 나는 최대한 불쌍한 얼굴로 다가가서 그녀 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늘어졌다. 그리고는 두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달고 카네스를 가리켰다. "카네스! 이 어린아이에게 무슨 짓을 한거야! 왜 얘가 울려고 하는 거 지? 너 아동 폭력범으로 잡혀가고 싶은 거냐." 평소에는 그래도 높임말을 쓰더니 이제는 아에 맞먹는 비루나스마. 카네스는 대꾸도 못하고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비루나스 마 몰래 혀바닥을 낼름거리며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비루나스마 를 올려다 보았다. "카네스, 이틀간 이 곳에 감금이다." "내가 아니라구, 저 영악한." 더 이상 듣기 싫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비루나스마는 나가 버렸다. 그녀를 따라가기 전에 하는 쯧쯧 혀를 차면서 최대한 미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불쌍한 카네스. 키킥, 그럼 이틀동안 빠이빠이~ 그러게 이 몸에게 대 들지 말았어야지." "저.. 저.. 영악한 놈!" "너무해. 이 가녀린 아이에게." 그 말을 남기고는 절규하는 카네스를 두고 서재를 나와버렸다. 어린아이의 모습일 때는 이런 점이 유리하군. 자주 써먹어야 겠어. 698년 2월 날짜 : 25일 날씨 : 햇빛이 환하게 내리쬐어 쌓여 있던 눈이 녹고 있다. "오늘은 손님이 오시겠군요." 로드님의 무릎에 앉아 쿠키를 가지고 장난을 치던 나는 이상한 소리에 로드님께 반문했다. "네? 무슨 소리에요?" 이제는 어느 정도 말을 하면서 장난도 치는 내가 그저 귀여워보였던지 연신 입가에 미소를 잃지 안는 로드님이 나는 좋았다. "이 곳으로 두 존재가 오고 있답니다." "언제쯤 도착할까요?" 이들 이외의 존재를 오랜만에 보게 된다는 사실에 흥분이 되어 볼이 빨개진 나를 바라보며 로드님이 다시 말씀하셨다. "글쎄다. 저녁쯤에나 도착하겠군요. 이 곳에 몬스터가 한 둘이 아니라 서 말이에요." "살아서 올라올 수 있을 까요?" "그럴 것 같군요." 로드님께서 저렇게 확신할 수 있는 존재라면 대체 누굴까. 드래곤은 굳이 산 아래서부터 올라오지는 않는다. 그냥 레어 앞으로 텔레포트 해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존재라는 것은 인간일 가능성이 컸다. 인간이 로드님의 레어에 무슨 일이지? "그렇지, 시크는 드래곤 이외의 종족은 처음 보는 거겠군요." 아뇨, 예전에 질리도록 많이 봤는데. 하지만 나는 천진난만한 얼굴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로드님의 뒤 에서 카네스가 가증스럽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지만 못본척 무시한 채 말이다. "로드님, 지금 오는 종족이 인간인가요?" "후후, 그들이 오면 말씀해 드리지요." "피이.." 입을 내밀며 불평하는 나에게 잠시 웃음을 보여 준 후, 로드님은 비루 나스마와 할 말이 있다며 나를 내려놓고 저만치서 오크와 눈싸움을 하 고 있는 비루나스마에게 다가갔다. "가증스러운 것." "훗, 이게 다 생존 방식이야." 카네스의 말에 연장자다운 웃음을 흘리며 로드님의 보물들만 모아놓 는, 일명 보물 창고로 나는 쏙 들어가 버렸다. 드래곤은 본디 자신의 것은 자식이라고 해도 무조건 손대지도 못하게 철저히 보관한다. 하지만, 로드님이 나를 꽤 예뻐해서 나는 로드님의 보물 창고 출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로드님은 별로 자랑할 만한게 못된다고 하셨지만 나는 아담하면서도 화려한 이 곳이 좋았다. 그다지 많은 보석이나 금화들이 있지는 않았지만, 꽤 많은 마법 용품 들이 즐비해져 있는 곳이다. 선반에 일렬로 죽 늘어서 있는 마법 용품들을 둘러보고 있자니, 신기 한 물건도 꽤 있었고, 9서클 궁극의 주문이 걸린 방어구도 꽤 눈에 띄 었다. 로드님도 취향이 특이하시지. 이걸 언제 모아두고 있었던 거야? "어? 거울이네?" 예전에는 미처 살펴볼 겨를이 없었던 구석에는 꽤나 큰 전신 거울이 덩그라니 홀로 놓아져 있었다. 이렇게 큰 거울이라면 못 볼 리가 없는 데. 약간 먼지가 끼긴 했지만 그런 대로 형상은 비추어져 보이는 거울에 내 전신을 비추어 보았다. "어..." 거울 안의 내 모습은 백색에 가까운 은발 머리를 허리까지 기르고 있 는, 그다지 특별한 것이 없어 보이는 평범한 소년의 모습이었다. 아니, 어린아이라고 해야 하나? 은백색의 눈동자를 보면 순수 실버 족인가 보다. 그리고 약간은 하얀 피부에, 분홍빛 입술. 어떻게 보면 귀엽다는 느낌도 들었지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 다. 평범에서 약간 위로 상승했다고나 할까. 이 은빛의 머리카락 때문 에 어딜 가나 눈에 확 튈 것 같아서 걱정이다. "이 은발만 어떻게 커버했으면 하는데.." 그러고 보니 카네스 취향이 의외로 평범하군. 잠시 내 모습을 감상하다가 이내 그 얼굴에 식상해져서 다시 로드님의 마법 물품들을 구경하기에 이르렀다. 조금 괜찮고, 반짝이고 쓸만한게 있으면 주라고 졸라봐야지. 이런 사악한 생각을 하며 히죽히죽 웃고 있을 때 갑자기 이 주위의 마 나가 요동을 치며 공간이 급격히 뒤틀리는 현상이 일어났다. 이곳은 마법으로부터 완전히 차단된 곳일 텐데. 함부로 자신의 집에 들어오는걸 싫어하는 로드님께서 레어 안에 결계 를 쳐서 외부로부터 이 곳으로 공간 이동을 하지 못하게 차단하셨다. 이 결계는 로드님과 몇몇의 고룡들만이 깨고 들어올 수 있는 결계란 소리다. 갑자기 잠만 퍼자고 있는 고룡이 이 곳으로 쓸데없이 텔레포트 할 리 는 없고, 이 결계를 깨고 이 곳까지 부득이하게 와야 하는 존재는 단 하나밖에 없다. 프라니.. 드디어 온건가. 그 공간 왜곡이 된 곳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자, 쿵 하는 소리와 함 께 선반위로 무엇이 떨어져내렸다. "에, 에구구.. 삭신이야. 골다공증으로 뼈 마디마디가 쑤시는데 이제는 아에 다 부러진 것 같네. 에구에구.." 드래곤의 일기 2부 - 119 - 자욱히 쌓인 먼지 사이를 뚫고 나온 한 인영을 보며 경계 태세를 취했지만, 곧이어 나타나 는 얼굴에 나는 허탈해 질 수밖에 없었다. '쿠당~' "무슨 일입니까!" 갑자기 자신의 레어로 이동 마법을 펼친 존재에 당황한 로드님이 성급히 이 곳으로 오신 것 같았다. "마리~ 나야, 나. 에구구, 억지로 공간을 비틀어 왔더니만 온 몸이 쑤시네 그려." 잊고 있었다. 아버지도 그 잠 퍼자고 있는 고룡들 중에 한 드래곤이라는 것을. 아버지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지. "드라시아쿠스님 여기는 어쩐 일이십니까." "어어? 내가 독립했다고 화난 거야? 에이~ 화 풀어." 내가 생각해도 왠지 차가운 로드님의 말투. 아버지는 로드님께 달려가 손을 붙잡고는 온갖 아양을 다 떨었다. 그러다가 옆에 멍하니 서있는 나를 발견하시고는 손가락으로 가리키셨다. "얜 뭐야?" "실버 일족의 헤츨링입니다." "왜 여기 있는 거야?" "파이나스가 죽었습니다." "어어? 걔가 왜 죽어?" "일단 나중에 이야기를 해 드리죠." 살짝 내 눈치를 보시며 말을 돌리는 로드님. 나는 괜찮다는 표정으로 한번 웃어주었다. 그리고는 아버지와 로드님의 손을 잡고 보물 창 고를 나왔다. "로드님, 로드님 카네스 아저씨와 비루나스마 아줌마는요?" "잠시 제 심부름으로 어딜 갔답니다. 곧 올거에요." 로드님의.. 심부름? 대체 뭐지? "그럼 나 레어 밖에서 놀래요." "멀리 가면 안됩니다." "네." 깡충깡충 뛰어서 레어 밖으로 나왔다. 햇살이 눈부시게 내리쬐고 있었지만 겨울이라 그런지 아직까지는 추운 기운이 남아있었다. 그래도 햇살 하나에 행복했으며, 군데군데 녹아있는 눈 사이로 보이는 초록빛 새싹이 눈을 즐겁게 하고 있었다. 봄이 오고 있구나. 하늘을 바라보며 크게 숨을 내쉬었고 차가운 공기가 내 콧속을 통해 폐까지 시원하게 전달 되었다. 조금 산책이라도 할까? 로드님의 앞마당은 엄청나게 크다. 드래곤 서너마리가 굴러다녀도 될 만큼 말이다. 이 근처에서 조금 돌아다니는 건 괜찮겠지. 살짝 신고 있었던 신발을 벗었다. 맨발로 이 땅을 걸어다니고 싶은 호기 때문이었는지도 모 른다. "키킥, 아직은 차갑다. 그래도 좋은걸."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콩콩 뛰어다니다가 갑자기 발바닥에서 꿈틀대는 무언가를 느끼고는 그 자리에서 얼어버렸다. "이.. 이게 뭐야. ....왜 지렁이가 여기서 나오는 거야~!" 처참한 비명소리가 로드님의 앞마당을 울렸고 나는 찝찝한 기분으로 들고 있던 신발을 신었 다. 겨울인데 무슨 놈의 지렁이야! 우이씨, 이 넓은 곳에서 하필이면 왜 이걸 밟은 거야. 혼자서 찝찝함에 쩔어 있을 때 갑자기 얼굴에 차가운 금속이 내 뺨에 닿는게 느껴졌다. "누구냐." "이건 또 뭐야." "천천히 고개 돌려." 옆으로 살짝 고개를 돌려보니, 갈색 머리의 익숙한 얼굴 하나가 내 목에 칼을 들이대고 있 었다. 그리고 이 놈이 있다면 아주 곁에 찰싹 붙어 다니는 놈 하나가 더 있지, 아마? "아직 아이잖아."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않습니까." 드래곤의 일기 2부 - 120 - 레온과 필르난. 수도에서 헤어졌던 마족과 그의 연인. "그런데 진짜 머리색깔 죽인다." "그런 상스러운 표현은 쓰지 말라고 했지 않습니..." 필르난의 목소리가 끊겼다. 아마도 뒤에서 자신의 목을 겨누고 있는 칼 때문이리라. "드래곤의 로드의 레어 앞마당에 이렇게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는 어린아이는 없지. 드래 곤족 전체의 분노를 받고 싶지 않다면 그 칼을 내려놓게." 카네스, 멋있다. 언제 왔는지 카네스가 필르난의 목을 겨누고 있었고, 필르난은 하는 수 없이 내 목에 겨루 고 있던 칼을 치웠다. "카네스~ 에.. 아저씨~" 카네스를 부르며 포옥 안길려다가 그 옆에서 레온을 제압하고 있던, 차마 존재를 모르고 있 던 비루나스마를 발견하고는 얼른 아저씨자를 붙이며 나는 실실거리며 웃었다. "시크, 나는 눈에 보이지도 않나 보구나!" "아니에요, 비루나스마 아줌마." "흥! 이 놈들. 감히 하찮은 마족주제에 감히 드래곤족의 헤츨링을 건드려? 마족놈들이 드디 어 세상 살기를 거부하는 발버둥을 치는 구나!" 매섭게 눈매를 치켜뜨며 필르난과 레온을 번갈아 바라보는 비루나스마를 보며 식은땀을 흐 르는 나. 잊고 있었다. 그녀가 성질 더러운 레드 드래곤이라는 것을. "아줌마, 아줌마. 이 분들이 로드님께서 말한 손님 같으니까 일단 로드님께 데리고 가요~ 아 참, 드라시아쿠스님께서도 오셨어요." "어어? 그분 또 할 일 없어서 왔나 보네?" 자주 오시나 보군. "뭐해! 들어가자며!" 필르난의 멱살을 잡으며 질질 끌고 가던 프라니가 잡담을 나누고 있는 우리가 눈에 거슬렸 던지 크게 소리쳤다. 비루나스마는 그 하얀 이마에 살짝 인상을 찌푸리더니 마찬가지로 레 온의 멱살을 잡고 질질 끌고 가기 시작했다. "어어~ 아가씨, 좀 살살 다루라구요. 레어 안에 들어가기도 전에 목졸려 죽겠어요." 특유의 넉살로 눈웃음까지 치며 귀여운 청년이 말하는데도 비루나스마는 상당히 재수가 없 다는 듯이 쏘아봐준뒤에 말했다. "입닥쳐. 넌 일족의 헤츨링을 죽이려 했다." "헤에~ 제가 아니라, 저기 끌려가는 저 놈이 그랬는데요." "가만히 있었던 너도 공범이야." "오오~ 그런 억지가." 정말 의외로 죽이 잘맞는 두 사람이다. 뒷짐을 지고 천천히 그들을 따라가던 나는 둘이서 하는 얘기가 재미있어서 킥킥대고 웃다가 비루나스마의 날카로운 눈초리를 받았다. "시크! 안에 들어가서 보자." 볼게 뭐가 있다고. 난 죄 없다구. 내가 가만히 있는데 쟤네들이 와서 칼을 들이댄 것 뿐이라 구. 불만스런 얼굴로 투덜댔지만 비루나스마는 그 투덜거림을 무시한채 레어 안으로 들어가 버 렸다. 정말 성질이 불같구먼. "아, 오셨군요." "모든 드래곤의 우두머리이신 실버 드래곤 마리오네라님께 인사드립니다." "당신은 마족 서열 2위의 에르프냐 포루 사키네스이군요." 내가 들어갔을 때는 이미 로드님과 그들의 대화는 진행 중이었다. 로드님의 말씀에 잠시 움찔 하던 필르난이 입을 열었다. 로드님의 말씀을 들어보면 필르난이란 이름은 가명이었던 건가? "기억해 주시다니 감사합니다." "그런데 예전에 봤을 때는 굉장히 아름다운 모습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그리고 에르프 냐님께서 중성이라고 들었습니다." 잠시 망설이던 필르난은 자신의 얼굴에 걸었던 마법을 지우며 씁쓸한 얼굴로 웃었다. "역시 제 기억대로 그 아름다움은 여전하군요." 필르난은 부드러운 갈색 머리에 커다란 진한 보랏빛 눈동자. 그리고 붉고 선이 뚜렷한 도발 적인 입술을 가진 미인이었다. 하지만 여자라고 하기에는 뭔가가 부족하고, 남자라고 하기에 는 여자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아, 중성이라고 했던가. "로드님, 로드님." 옆에 있던 로드님을 부르자 그쪽에서 고개를 돌린 로드님이 부드럽게 나를 바라보셨다. "왜 그러십니까." "마족은 성년이 되면 성별을 결정해야 한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저 마족이 서열 2위라면 꽤 많은 세월을 살아왔다는 거잖아요. 성년이 훨씬 지났을 텐데 왜 중성인가요?" "호홋, 그건 어디서 알았나요?" 잊고 있었다. 나는 세상물정 모르는 태어난지 얼마 안된 어린 헤츨링이라는 것을. "아.. 그러니까.. 음.. 아! 책에서 봤어요. 헤헷~" "음.. 에르프냐님은 약간 특이한 경우죠. 에르프냐님께서는 어렸을 때부터 그 힘이 상위 마 족을 훨씬 웃돌았답니다. 지금 에르프냐님은 순리를 거부하고 자신의 힘으로 지금까지 중성 을 유지하고 계신답니다. 에르프냐님께서 마음만 먹는다면 당장이라도 성별을 결정할 수 있 지요." 정말 특이한 마족이군. 나같으면 남성체로 변했을 텐데. 아쉽게도 위대한 드래곤들은 자신의 맘대로 성별을 결정할 수가 없어서 말야. "그렇군요. 헤헷~" 내가 제일 귀엽다고 생각되는 모습으로 웃어준 뒤에 로드님과 필르난이 아닌 에르프냐라는 마족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뒤로 비켜섰다.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드래곤의 일기 2부 - 121 - 에르프냐는 슬쩍 레온을 바라보더니 한숨을 내수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새로운 마왕이신 레오니아 쉐레스타마 프론 코라엘라님이십니다. 드래곤들께서 먼저 이 분 을 인정해주십시오." 무.. 무슨 이름이 저렇게 길어? 마왕이라.. 그 여자가 죽은 뒤에 이제서야 제대로 된 마왕을 뽑았다는 건가. "인정이라.. 하지만 이 분은 인간이 아닙니까." "예. 이 분은 마족이 아니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저와 여러 종족들을 찾아뵈어 허락을 구하고 있는 겁니다." "인간이 마족이 된다라.. 전례에 아주 없었던 일은 아니군요." "예. 이미 전대 마왕님의 힘의 계승을 끝낸 상태입니다." "후훗, 일을 먼저 저지르고 보자. 이건 가요?" "인정하시는 겁니까?" "저희 전 드래곤족의 대표로써 레오니아 쉐리스타마 프론 코라엘라님이 제 235대 마왕이 되 셨음을 인정합니다."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에르프냐. 어째 그냥 내 생각인데 레온이라는 놈을 데리고 다니는 것 자체가 고문일 것 같다. 어쨌든 인간이 마왕이 되었고, 꽤 이런 특이한 경우도 재미있을 것 같다. "카네스 아저씨~" "어머, 요즘 시크님께서는 카이오네스님만 찾는군요." "헤헤~ 아니에요, 로드님." 최대한 어린아이답게 순수하고 귀엽게 웃으며 나는 카네스의 손을 잡아 끌었다. "에? 뭐야?" "입 닥치고 빨리 따라와." 카네스만 들을 수 있도록 중얼거리며 거의 반 강제로 카네스를 데리고 서재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카네스를 벽으로 밀어붙이고는 손을 탁 집었다. 그래봤자 어린아이가 카네스의 다리를 끌어안고 있는 꼴밖에 안된다. "뭐야? 내가 그렇게 좋냐? 다리는 왜 껴안고 그래. 안도망갈테니까 비켜." "우이씨, 이래서 키가 작으면 폼이 안난다니까." "그 말하려고 불렀냐?" "아니아니, 있잖아~ 너 쟤네들 알지?" "알지." "헤헤~" "... 원하는게 뭐야." "역시 눈치가 빨라서 좋다니까. 히힛~" "빨리 말해." 두려운 듯이 내 뒷말을 재촉하는 카네스를 좀더 놀려주고 싶었지만 그냥 내가 부탁할게 있 어서 장난은 이쯤에서 그만두고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마왕이라면 곧 취임식을 갖겠지? 우리에게 인사를 했으니 말야." "그렇겠지." "그럼 취임식이 상당히 대단하겠지?" "음.. 몇 천년동안 비워있던 마왕자리라서 엄청날걸?" "드래곤들 중에서도 축하 사절로 몇몇이 가겠지?" "그.. 그럴걸..? 그.. 그런데 왜..?" 에구, 귀여워라. 왜 말을 더듬으시나. "헤헤~ 내가 가면 안될까?" "...... 너는 네 자신의 나이가 몇이라고 생각 되냐. 1년도 안된 놈을 보낼 것 같냐? 태어난지 한달도 안된 놈이." "그러니까 너도 같이 가면 되잖아. 나 그녀가 죽은 뒤론 마계를 한번도 못가봤단 말이다~" "잘못한 일이 있으니 찔려서 못간거겠지." "죽을래? 우이씨, 정중히 부탁하려고 했건만. 내 손에 죽기 싫으면 로드님께 나 데리고 간다 고 말해." "네 손에 죽기 전에 로드님의 손에 죽게 생겼어, 임마. 그 말 꺼내자 마자 내 영혼만 천계로 이동되어 있을 거다. 난 싫어. 절대 안해." 드래곤의 일기 2부 - 122 - "그래? 알았어. 네가 정 그렇다면야 어쩔수 없지, 뭐." 내 말에 잠시 당황한 카라드시크는 미심쩍은 얼굴로 나를 내려다 보았다. "무슨 꿍꿍이냐?" "어머? 꿍꿍이라니?" "내가 아는 시크리오프스를 말해줄까? 절대 자신이 고집한 일은 물리지 않는 성격이지." "어머~ 세월이 흘렀는데 성격도 바뀌는 법이잖아." "좋아. 말은 해볼게." "호홋~ 고마워." 내가 무슨 짓을 해서라도 따라갈거라는 것을 알고 있는 카네스였기에 이상한 짓을 저지르기 전에 자신이 알아서 저렇게 말하는 거다. 카네스, 난 네가 이럴줄 알고 저런 말을 해본 거라구. 역시 넘어가는 구나. 단순한 놈. "야.." "응?" "너 그 꼬마 아이, 것도 남자인 얘가 그 얼굴로 호홋~ 하고 웃는게 말이 되다고 생각하냐?" "훗, 아직도 나를 모르는구나. 안되면 되게 만들어야지." "......" 잠시 얼어 있는 카네스를 밖으로 떠밀며 환하게 웃었다. "자~ 로드님께 말하러 가자구!" "하여튼, 혼자 신났어. 혼자." 나는 빙글거리며 웃고 나오고 카네스는 무슨 사형선고를 받은 듯이 축 늘어져 나오니 로드 님과 비루나스마가 참으로 이상하게 생각했다. 카네스에게 어서 말하라는 투로 콕콕 찌르자 카네스는 할 수 없이 로드님께 가서 고개를 푹 숙였다. "아, 무슨 일인가요? 카이오네스님." "저기.. 로드님. 휴.. 시크를 이번 마왕 취임식 축하단으로 마계로 내려보내면 안될.. 헉." 자신도 모르게 말하다가 고개를 들어 로드님을 봤을 때 카네스는 기어이 등을 돌리고 말았 다. "...... 다시 말씀해 보십시오." "아뇨, 그냥 잘못 말한거였어요." 우이씨, 하여튼 저 놈 도움 되는게 없어요. "로드님~" 싸늘한 냉기가 풀풀 날리던 로드님이 내가 부르자 살짝 웃으신다. 에휴, 할 수 없이 내가 말해야 하나. "나 마계에 가고 싶어요!" "... 이유를 말씀해 보십시오. 그리고 지금 시크리오프스님께서는 태어난지 몇 주밖에 안된 헤츨링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말씀해 보십시오." "헤헷~ 이유는 마계를 구경하고 싶다는 거죠. 그리고 태어난지 얼마 안됐다는건 그다지 문 제될게 없어요. 로드님도 같이 가시면 되잖아요~" "시크! 로드 자리가 한가한 줄 알고 있니?" 옆에서 비루나스마가 야단을 치듯이 말했지만 그걸 무시하고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로드님을 바라보았다. "거기는 관광지로 가는 곳이 아닙니다. 후우.." "로드니임~ 정 안되면 카네스 아저씨라도 괜찮아요~ 아저씨 힘 무식하게 쎄잖아요." "이번 축하 사절로는 제가 직접 가기로 하죠. 비루나스마, 카네스. 모두 갈 준비를 하세요." "네에?" 에르프냐와 레온은 상당히 놀랐는지 로드님의 말에 반박했고, 비루나스마도 잠시 무슨 소리 를 들은 건지 이해가 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긴, 역대 로드들이 직접 마왕 취임식을 축하하기 위해 마계를 방문한 적은 없다. 그만큼 마족은 하대시 되는 존재였다. 그런 마족들의 왕을 위해 마계로 가다니.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 일어나겠군. 뭐, 마족의 왕을 위해 가는게 아니라 나를 위해 가는 거지만. "그곳에 가셔도 제 곁에 붙어계셔야 합니다." "네에~" 비루나스마와 카네스의 째림을 못본 척 하며 로드님의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아양을 떠는 나. "너 잠깐 나 좀 보자." "에에~" 카네스가 내 허리를 잡고 들어올려 어디론가 들쳐메고 나갔고, 로드님은 아직 벙쪄있는 마 족들에게 상황을 설명하셨다. 레어 밖까지 나와서 근처에 있는 돌에 나를 앉히고는 자신의 얼굴을 또다시 내게 가까이 가 져다 대었다. "뭐야!" "너 설마 그녀 때문에 가는 거냐?" "......" "쓸데없는 생각하지마. 절대 그녀를 만나서는 안돼." "그것 때문에 가는 거 아냐. 난 마계가 보고 싶어 가는 거라구." "좋아. 믿지. 그곳에 가서 내가 내내 너를 따라다닐 테니 말야." 드래곤의 일기 2부 - 123 - 698년 3월 날짜 : 4일 날씨 : 바람이 조금 불고 약간 쌀쌀한 날씨. 주홍빛의 고운 빛 무리가 서서히 서쪽으로 지기 시작할 때 우리는 게이트를 통해 마계에 도 착했다. 조금 오래된 고성을 연상케 하는 마왕성에는 한창 손님 맞을 준비로 분주함이 느껴졌다. 이 곳은 그다지 계절의 영향을 받지 안는 곳인지 마왕성 근처에는 푸른 초원이 넓게 분포해 있 었으며, 그 곳에는 여러 가축들을 사육하고 있었다. 마왕성의 입구에 개방된 게이트에는 상위 마족과 다른 종족들의 축하 사절이 속속 도착하고 있었으며 우리는 따로 한 마족의 안내로 각자의 방을 배정받았다. 마족들은 드래곤들이 꼭꼭 숨기는 헤츨링을 처음 보는지 내게 바글거리며 모여들었고 카네 스는 그런 존재들을 눈빛 하나로 모두 쫓아 버렸다. "이래서 오기 싫었다니까." "그래도 시크리오프스님께서 좋아하시지 안습니까." "그렇긴 하지만요.." 나는 전혀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고, 여러 곳을 둘러보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뭔가를 찾는다고 해야할까. "시크리오프스님, 절대 방안에 들어가셔서 나오면 안됩니다. 저는 마왕을 뵙고 오겠습니다." 로드님과 비루나스마, 그리고 카네스가 나를 방안에 감금해놓고는 마왕을 만나러 간다고 가 버렸다. 각자의 방을 배정받았건만 로드님은 그것을 사양하고 나와 극구 한 방을 쓰겠다고 주장하셨 다. 에구, 이러면 일이 꼬이는데. "쳇, 그런다고 못나갈 내가 아니라구요." 살짝 창문을 열어보니 약간 높은 곳이다. 보통 건물의 4층정도 되는 높이랄까? 슬쩍 아래를 쳐다보니 축하 사절단이나 귀족처럼 보이는 마족 하나가 화려한 옷을 입고, 어 슬렁 거리는게 보인다. 흐흐흐, 무조건 눈에 보이는건 이용하고 보는 거야. "에~ 거기 아저씨이이이이~~" 크게 소리치자 아래쪽에 있던 마족이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본다. 헉, 눈빛이 왠지 싸늘하다. 설마 이거 잘못 걸린거 아냐? "나 뛰어내릴 테니까 잘 받아욧!" 이유를 물을 수도 있으니 그냥 뛰어내리고 보자. 마법을 쓸 수도 있었지만 잔뜩 나에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을 로드님은 아마 내가 마법을 쓴다면 귀신처럼 알아낼 것이다. 그럼 밖에 나간 것까지 아실테지. 그리고, 절대자가 사는 성이라고 하면 결계쯤은 걸려있겠지. 괜히 마법따위를 써서 소란스럽게 하면 머리가 아파진 단 말이다. "꺄우~~~" 얼떨결에 나를 받아든 마족은 상당히 충격이 컸던지 약간 얼떨떨한 상태인 것 같았다. 이봐, 내가 무거우면 얼마나 무겁다고 그래? "고마워요~ 나중에 이 은혜는 꼭.. 으악~" 폴짝 뛰어내려가려고 했더니만 곧이어 뒷덜미를 잡혀 나는 들어올려졌다. 내가 키 작다고 무시하는 거야, 뭐야! 그래, 너 키 크다. 키 커! "넌 뭐냐?" "에.. 그러니까 방을 잘못들었는데.. 에.. 방문이 갑자기 잠겨서.. 음.. 불러봐도 사람이 없고.. 그래서 급한 일이 있었는데.. 에.." 도저히 앞뒤가 맞지 않는 말들을 지껄이며 있자 상당히 골치 아픈 듯이 인상을 찡그린 마족 은 나에게 휘휘 가라는 손짓을 해보였다. "앞으로는 아무 곳에서나 뛰어내리지 마라." "옙~ 고맙습니당~" 다시 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마족의 목소리가 내 발목을 잡았다. "잠깐.." "네?" 드래곤의 일기 2부 - 124 - "뭔가가 이상해." "... 뭐, 뭐가 이상하다는 거에욧!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어요." 더 이상 다른 말이 나오기 전에 나는 전력 질주로 달려 그 자리를 벗어날 수가 있었다. 후우, 이제 그녀를 찾으러 나서 볼까. 내게 주어진 시간은 얼마 안되니까 말야. 헉, 그러고 보니 나중에 어떻게 들어가지? ... 몰라몰라. 그때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하자. 저기 멀리 보이는 나무를 바라보고는 심호흡을 한 나는 다시 당당하게 성문 입구를 향해 걸 어갔다. 그리고는 지금 들어가는 축하 사절단에 살짝 끼어 무사히 성안으로 잠입해 들어온 나. "분명 내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지하에 있을 거야." 에? 그런데 지하로 통하는 계단이 어디 있었더라? "지하로 통하는 계단은 식당 맞은 편을 가로질러 왼쪽으로 꺾은 뒤, 바로 직선에 보이는 커 다란 문 뒷편에 있다." "넵! 고맙습니.. 끄악~" 나를 쳐다보며 대답을 해주는 마족을 발견하고는 나도 모르게 소리를 치자 당황한 마족은 내 입을 틀어막았다. "도와주는데도 소리를 지르나?" 이봐, 아무도 없던 뒤에서 갑자기 목소리가 들려보라구, 넌 안 놀래겠냐? 그러고보니, 아까 나를 도와줬던 마족이군. 짙은 보랏빛 눈동자에 보랏빛 머리의 마족이라.. 잘생겼긴 한데 지나치게 차갑게 보인다. "너도 그녀를 만나러 왔나." 끄덕끄덕. 그녀를 아는 존재인 것 보니 별 해가 되지는 않겠군. "가자." 지하라고 해서 습기차고 어두 컴컴에다가 기분 나쁜 곳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이 곳은 보통 지하의 상식을 뛰어 넘는 곳이다. 시원하게 잘 되는 통풍하며, 성안의 벽보다도 견고하고 세련된 인테리어. 곳곳에 마법의 구 가 떠다니며 우리가 가는 길을 비춰주고 있었다. "왠만한 곳보다는 좋지. 대게 마족들은 이 성에 이런 지하가 있는 줄은 상상도 못할 거다. 이 지하의 존재를 알고 있는 마족은 극소수 장로급 들이지." "그녀는?" "이 복도의 제일 끝 방에 감금되어 있는 상태지. 그 곳은 마력이 완벽히 차단되어 있다. 하 긴, 그녀라고 해도 힘의 계승이 끝난 상태에서 마력을 쓰기란 힘들 거다." "보통 마족과 똑같다는 소리에요?" "그녀를 아직도 모르나. 그녀는 역대 마왕 중 최고의 힘을 가진 마왕이었다. 아무리 힘의 계 승이 끝났다고는 하지만 지금의 어리숙한 마왕에 비해서는 그녀의 힘이 월등하다. 힘의 계 승이란 그녀에게 있어 아주 일부분에 지나지 않지." 그녀를 이 정도까지 자세히 알고 있는 마족은 얼마 없다. 이 마족은 대체 누구지? "넌 누구냐." "... 가보면 알게 될거다, 꼬마." 그 말에는 약간의 살기가 섞여 있어 아주 잠시 동안 내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이 마족의 말대로 가보면 알게 되겠지. 복도의 제일 끝 방에 도착하자 육중한 철문이 우리를 가로막고 있었다. 직사각형으로 된 이 철문은 일정한 마력을 받아 움직이는 것인지 손잡이나 기타 무엇 등이 철문에 붙어 있지 않 았다. 간단하게 자신의 마력을 개방해 철문을 열어버리는 마족을 보고는 왠지 대단한 놈에게 걸렸 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성에서는 마력을 쓰지 못한다고 들었습니다만?" "반말했다 경어썼다 자기 맘대로군. 내가 그런 것에 일일이 상관할 마족으로 보이나." 철문 안쪽에는 나무로 만들어진 소박한 문만이 존재했다. 거침없이 그 곳에 마력을 주입하고 열고 들어간 마족. 그 뒤를 내가 서둘러 따라 들어갔다. 방안은 썰렁하게 침대 하나만이 덜렁 놓여져 있었고, 마력이 통하지 않는 방이라서 그런지 떠다니는 마력구들도 없는 곳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이 곳은 밝았다. "그녀의 힘이다. 마력이 통하지 않는 이 곳에서 마력을 쓰지 못하기 때문에 그 엄청난 마력들이 몸밖으로 배출되고 있는 거다." "그녀는 어디 있지?" 빠른 건지 느린건지..원..;;;;;;;;;;;; 드래곤의 일기 2부 - 125 - 그의 눈빛이 침대 위로 향했다. 그곳에는 죽은 듯이 가만히 누워있는 그녀의 얼굴이 보였다. 햇빛을 못봐 핏기 없이 창백한 얼굴과 입술. 그리고 그녀의 긴 머리카락이 베개에 어지러이 널려있었으며 이마에는 식은땀이 흥건히 고여있었다. 놀라서 그녀의 몸을 잡고 흔들어 깨우려고 했지만, 나는 그녀의 몸에 손을 대자마자 떼어낼 수밖에 없었다. "차가워..." "당연하지. 그녀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넌 이곳에 왜 온거지?" 그는 잠시 그녀를 쳐다보고는 자신의 허리에 있는 긴 장검을 뽑아 들었다. 왠지 모를 불길한 생각에 그녀의 앞을 가로막은 나는 그에게 매섭게 소리쳤다. "무슨 짓이냐!" "아직도 모르겠나. 난 그녀를 죽이기 위해 온거다." "간도 크군. 감히 내가 보는 앞에서 요루나를 죽이겠다는 거냐." 그의 눈빛이 잠시 흔들리더니 그 칼을 내 목에 가져다 대며 외쳤다. "너야말로 누구냐. 어떻게 그녀의 이름을 알고 있는 거냐!" "마족인 주제에 인간과 사랑에 빠져버린 어리석은 마왕 요루나 크리트핀 카사 히에라네스." "그건 금기일텐데, 일개 꼬마가 알고 있다니." "닥쳐." 맨손으로 그의 장검을 쳐버리며 그녀의 침대에 걸터앉아 세상에가 가장 불쌍한 그녀의 머리 를 쓰다듬었다. "하지만 그것 가지고는 네가 누군지 알 수 없다." "아직도 모르겠나. 마계의 출입을 금지당하고, 마족들의 철천지 원수, 블루 드래곤 시크리오 프스라고 하면 알아듣겠지?" "그녀는 이미 죽었다고 들었다." "그녀의 환생체라면 다르지." 그의 눈에는 당황한 눈빛이 서려있었고 이 때를 놓치지 않고, 나는 미약하나마 용언을 담아 소리쳤다. [ 물러서라. ] 내가 용언을 사용할줄은 몰랐는지 무의식적으로 뒤로 물러서는 그를 보면서 나는 다시 한번 소리쳤다. "하찮은 마족주제에 누구에게 검을 들이 대는 것이냐!" "쿡, 그 고고한 블루 드래곤 시크리오프스님께서 이런 곳에는 왠일이지?" "내가 사랑하는 아이를 만나러 왔는데 뭐가 잘못 된거냐." - 시크, 한번만 도와주세요. 제발.. 이번 일이 잘못되어 제가 폭주하게 된다면 저를 죽여 주세요. - 내가 왜 그런 번거러운 일을 해야 하지? - 그가 그렇게 네게 중요했나. 일족까지 저버릴 정도로? ... 네가 죽을 수도 있는 일이다. 잘생각해 보고 결정해. - 이미 선택은 끝났습니다. 저는 그를 죽인 모든 마족을 죽여버릴 겁 니다. 그 와중에 제가 힘을 제어하지 못해 폭주하게 된다면 인간계 에도 영향을 미칠테니 저를 죽여주세 요. 그녀는 자신의 말대로 실천했으며, 그 와중에 폭주해버렸다. 나는 그녀를 죽일 수 없었으며, 몇몇 드래곤들의 힘을 빌려 그녀의 힘을 봉인해 이 곳에 가 둬둘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생명을 포기하면서까지 멸족시키려 한 상급 마족들은 대다수가 인간계로 피신한 상 태였으며, 죄없는 하급 마족들만이 그녀의 손에 죽었다. 이것만해도 이 일은 마계 최대의 학살 사건이었으며, 그 주동자가 마왕이라는 사실에 마족 들은 분노했다. 그녀를 죽일 능력이 없었던 마족들은 새 마왕이 탄생할 때까지 그녀를 이 곳에 가둬놓기로 결정했으며, 그녀를 도왔던 나는 살아있는 동안에는 마계의 출입을 금지당했다. 아마도 내가 그녀를 빼낼까봐 걱정해서 그랬을 거다. 이 모든 일이 그녀가 사랑한 인간이 죽음으로써 일어난 일이었으며, 이 일은 마계에 금기 아닌 금기가 되고 말았다. ...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도 미쳐버린 사랑을 했다. 드래곤의 일기 2부 - 126 - "내가 있는 한 그녀는 절대 죽이지 못해." "호오~ 대단한 자신감이로군. 보아하니 헤츨링 같은데 네가 과연 예전처럼 힘을 쓸 수 있을 까?" 살짝 눈앞으로 나온 은빛의 머리를 뒤로 넘기며 나는 입가에 조소를 머금으며 가소롭다는 듯이 그를 바라봤다. "헤츨링? 쿠쿡, 헤츨링에게 손대면 어떻게 된다는 것쯤은 알겠지? 이봐, 드래곤은 지상 최강 의 종족이다. 감히 그런 나를 비웃는 건가!" "... 내 쪽에서 먼저 공격하지." 그의 검이 내 어깨를 목표로 파고들었다. 하핫, 자신도 두렵겠지. 헤츨링이라는 존재를 죽이기가. [ 멈춰라. ] 언령을 사용했지만 이번만큼은 당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있기 때문인지 그는 헤츨링의 언령 따위는 간단히 깨버렸다. 이래서 헤츨링이라는 존재는 싫다니까. 그는 칼등으로 내 어깨를 내리치고는 곧바로 그녀쪽으로 몸을 돌렸다. "제길, 멈춰!" 옆을 보니 무기가 될 만한게 아무 것도 없었다. 이래서는 ... 그녀는 죽는다. 가벼운 몸을 이용해 어깨의 통증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가 누워있는 쪽으로 몸을 날렸 다. 그의 검이 내 얼굴을 스치는 것이 느껴졌고, 나는 힘껏 그녀를 껴안았다. 비정상적으로 차가운 몸에 움찔 거렸지만 내가 비키면 그녀는 죽는다. "요루나! 정신차려, 이 계집애야! 네가 선택한 결과가 겨우 이거였나!! 증명해! 네 선택이 잘 못되지 않았다는 것을 당장 내 앞에서 증명해라!" 하지만 그녀는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비켜간 그의 검이 일직선으로 우리를 같이 죽여버리 기라도 하려는 듯이 내리꽂혔고, 나는 눈을 감았다. '챙~' 금속성의 날카로운 소리에 감은 눈을 떳고, 내가 그렇게 외쳐댔던 아이 요루나는 나를 품에 안고 자신의 손에 마력을 주입시켜 그 칼을 막고 있었다. "이곳이 어디라고 함부로 발을 들여놓는 거냐." 그녀의 검은 머리칼들이 공중으로 흩어졌고 그는 그녀의 마력을 정통으로 맞아 벽 저편으로 날아가 버렸다. 하늘하늘한 흰 천 하나로 몸을 가리고 있던 그녀는 스르륵 일어나 나를 품에서 내려놓고는 그가 쓰러진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내가 이런 곳에서 정말 마력을 쓰지 못할 줄 알았나. 역대 마왕 중 최강이라는 호칭이 괜 히 생겨난게 아니다." 그의 목을 발로 짓밟으며 그녀는 감정 없는 목소리로 조용히 말했다. "크윽.." "... 살고.. 싶나.." 그녀는 자신의 발에 힘을 주며 말했다. 그의 얼굴은 점점 창백하게 질려갔으며 그녀는 그럴 수록 잔인하게 그를 짓밟았다. "그도 살고 싶어했어! 네가 살고 싶어하는 만큼, 그도 살고 싶어 했다구! 너희들이 죽인 거 야! 내 삶의 이유를 너희들이 밟아버린 거야!" 그렇게 말하며 손에 마력을 응집해 가는 그녀를 말려야 겠다는 생각에 나는 힘껏 그녀의 손 을 붙잡았다. "놔! 뭐야!" "그는 죽지 않았어." 그녀의 슬픈 눈이 나를 향했다. 그러더니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 아냐... 그는... 죽었어. 그의 피가 내 몸을 흠뻑 적실 동안 나는 바보처럼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어..." 내 작은 손을 들어 이제는 주저 앉아 버린 그녀를 꼭 껴안았다. "그는 죽지 않았어. 사랑하는 내 아가, 네가 사랑한 그는 죽지 않았어." 그 말을 듣고 난 뒤 그녀의 몸은 심하게 떨렸으며, 아까 그녀의 손에 쓰러져 있던 마족은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나는 그에게 비키라는 손짓을 해보였고, 다시 한 번 그녀에게 나직히 말했다. "그는 출혈이 심했지만 죽지 않았어. 드래곤인 내가 살렸으니까. 이 블루 드래곤 시크리오프 스를 믿지 못하는건 아니겠지?" "그럼.. 그는 어떻게 됐어? 왜 내게 돌아오지 않은 거야?" "널 사랑했기에 돌아가지 않은 거야. 그는 오래오래 살다가 죽었어. 끝까지 너만을 생각하며 너만을 사랑하다 죽었어." "... 정... 말?" 거짓말이다. 그녀를 진정시키기 위한 거짓말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도착했을 때 그는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고 그녀는 그의 시신을 붙잡고 미친 듯이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내가 치유 마법을 쓰지 못한 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이런 내 말을 믿고 싶었는지도. "헤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예전의 그녀로 돌아온 그녀는 실없이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자기 뒤가 오싹해지는 느낌에 그녀를 붙잡았으나 그녀는 그런 줄도 모르고 해맑게 웃고 있었다.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그에게 가야지." "어딘지 알고 하는 소리야!" "응. 그가 나를 기다릴 거야. 지금까지 그가 나를 기다려줬으니 내가 이제 가야지. 그가 이 리로 올 수 없다면 내가 가는게 당연하잖아." 무슨 바보 같은 소리를 하는 거냐! "요루나. 좋은 말로 할 때 자리에 앉.아." "사랑하는 시크, 내 사랑은 잘못 되지 않았어. 내가 지금 이렇게 행복하다면 그 사랑은 잘못 되지 않았어." 그 마를 끝으로 요루나는 자신의 몸에 있는 모든 마력을 개방했다. 그리고는 옆에 떨어져 있는 검을 주워들어 자신의 가슴에 찔러 넣었다. 주위에 개방되어 있던 마력들이 일순간 집어삼키듯이 그녀의 몸을 뒤덮었고 나는 그녀의 웃 음을 마지막으로 정신을 잃었다. 드래곤의 일기 2부 - 127 - 조용한 가운데 희미하게 정신이 드는 것을 느끼며 눈을 떴다. 그 마족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나는 무의식중에 그녀가 있었던 곳을 살폈다. "이제 만족하나." "어쨌든 내 임무는 끝났으니 다행이군." 내가 그를 무섭게 노려보며 방문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 청천벽력같은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그냥 있는게 좋을걸? 아까 그녀가 마력을 개방하면서 왠만한 마족은 모두 눈치 챘을 테니 까. 지금 여기로 달려오고 있는 중일거야. 네가 없어진걸 안 네 보호자도 함께 말야." 그래.. 내가 그녀를 걱정하고 있을 틈이 없지. 난 이제 죽었구나. '쿠앙~' 문이 박살나며 먼지가 뭉게뭉게 피어 올랐다. 에휴.. "쩝.. 대단하군." 어렴풋이 굉음과 함께 마족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곧이어 듣기 거북한 하이 소프라노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크리오프슷!!!!!!!!!!" 비루나스마군. "너 임마! 내가 그럴 줄 알았다!" 제일 먼저 부서진 문 사이로 세명의 알고 있는 공포스런 얼굴이 비쳤으며, 그 뒤에는 새내 기 마왕과 에르프냐. 그리고 수많은 마족들이 경계 태세를 취하며 이 곳을 노려보고 있었다. 흐음.. 일이 조금 심각하게 됐군. "으아아아앙~ 로드니임.. 흑흑.. 무서워쪄요~" 내게 어울리지 않게 귀여움을 떨며 로드님께 안겼지만 로드님도 화가 단단히 나신 듯 나를 보려보기만 할 뿐 안아주지를 않으셨다. "흑흑.. 저 아찌가 저를 갑자기 데리고 사라지는 거여요. 얼마나 무서웠는데.. 흑흑흑.." "뭐야? 저 마족이 감히 우리 헤츨링을 건드려?" 후우, 이름 모를 마족. 미안하다. 아까 내게 검을 겨눈 대가로 널 좀 써먹어야 겠다. 괜찮아, 괜찮아. 그렇게 겁먹지 말라구. 최하가 죽음이니까 말야. 네가 죽으면 간단해져. 흐흐흐. "꼬마! 너 뭐냐. 왜 없는 말을 지어내고 그래!" 당황한 마족이 내게 대들었지만 나는 로드님의 얼굴을 쳐다보며 눈물을 글썽였다. "감히 저희 일족의 헤츨링을 건드리시다니, 후한을 예상하고 건드렸으리라 알겠습니다." 로드님은 그 인자한 얼굴에 엄청나게 화났음을 표시하고는 그 기다란 옷자락을 펄럭이며 돌 아섰다. "지금부터 마족과 드래곤의 평화 협상을 깨도록 하겠습니다." 선전 포고다. 이런이런, 일이 엄청나게 커졌군. "로드니임~ 저도 잘못한게 있어요. 그렇게까지 하지 마시구요~ 그냥 저 무례한 마족을 제 부하로 주세요!" "로드님, 저도 로드님의 선택이 너무 성급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쪽에서의 잘못도 적지 않게 있지 않습니까?" 카네스만이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이 나를 노려보고 로드님께 건의드렸다. "말씀중에 죄송합니다만, 한 가지 집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에르프냐가 당당하게 나섰고 로드님은 굉장히 기분이 상하신 듯 인상을 찡그리셨다. "뭡니까." "이곳에 감금되어 있던 마족은 어떻게 됐습니까." 그녀는 마족이 아니라 마왕이야! 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대신 아까의 그 마족이 앞으로 나와 새내기 마왕에게 부복하고 소리쳤다. "그녀가 힘을 개방해서 할 수 없이 처형했습니다." 거짓말. 네가 그녀를 죽인게 아냐. 그녀는 자신 스스로 그에게 가기를 택한 거라구. 그녀를 모욕하지마! 작은 주먹을 꽉쥐고 부르르 떠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로드님께서 나를 들어올리셨다. "이번 일은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겠군요. 저희는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그리고 이 마족은 저희가 처벌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의가 있으시진 않겠죠. 일주일 안에 이 마족을 제 레어로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만약 이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그 뒤의 일은 아시리라고 알고 이 만.." 당연하다는 듯이 싸늘히 말하고 돌아서는 로드님의 뒤를 따라 비루나스마와 카네스가 따라 왔다. 드래곤의 일기 2부 - 128 - 698년 3월 날짜 : 7일 날씨 : 비오는 찝찝한 날. 아침부터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그 비는 오후가 되서는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우비가 되고 말았다. 비오는 날이 싫다. 예전에 비오는 날 비 맞고 폐렴까지 갔던 기억이 있어서인지 나는 비가 싫다. 로드님의 레어 안쪽에 돗자리를 마련해 놓고는 가만히 앉아서 멍하니 밖에 떨어지는 비를 감상하고 있을 때, 그 엄청난 빗속에서 한 인영이 어렴풋이 보였다. 누구지? 로드님이 아침에 아무런 말씀이 없었던거 보니까 손님은 아닐텐데. 그 인영이 점점 레어쪽으로 다가오면서 나는 그가 누군지 알아볼 수 있었다. 그녀를 죽이려 했던 마족. 로드님이 일주일 내로 오라고 했으니 약속은 지켜진건가. 단발머리의 보랏빛 머리가 비 때문에 얼굴에 달라붙어 짜증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왼 쪽 허리엔 검집이 메어져 있었고, 붉은 색의 정장 비슷한 옷을 입고 있었다. 그도 나를 발견한건지 얼굴이 무섭게 찡그려 지더니 거의 뛰는 것처럼 성큼성큼 다가와 내 앞에 섰다. 헉, 이봐 설마 그 칼로 나를 찌르지는 않겠지? "드래곤 로드께 안내해라." 상당히 화가 났는지 거의 협박조로 말하는 그에게 한마디 쏘아주려고 했지만 내가 지은 죄 도 있어서 가만히 레어 안쪽으로 들어갔다. 로드님은 테이블에 앉아 조용히 차와 다과를 드시고 계셨다. 비루나스마는 저쪽에서 또 카 네스와 무슨 문제가 있는지 다투고 있었고, 곧이어 나와 그를 발견하고는 내 쪽으로 왔다. "오호~ 드디어 오셨군. 위대한 마족님. 헤츨링을 납치하다니 드래곤이 우습게 보였나 보지?" 입술을 깨물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마족은 그대로 로드님께 다가가 부복했다. "마족 서열 1위의 에카리아 크로스 프 라네이지입니다." "... 당신의 처분은 시크리오프스님에게 맡기기로 하겠습니다." "!?" 상당히 놀란 마족은 나를 쳐다보았고 나는 사악하게 씨익 웃었다. 내게 무례하게 군 대가는 받고야 말겠다. "자자자~ 그럼 둘은 밖에 나가서 놀아라." 카네스가 그와 나의 등을 떠밀며 말했지만, 나는 카네스를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는 소리를 질렀다. "밖에 비가 오는데 어딜 나가서 놀라는 거에욧!" "아, 밖에 비가 오나?" [ 멈춰라. ] 쏟아지는 비에 자신의 의지를 불어넣어 언령을 쓴 카네스는 나를 보며 됐지? 라는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어.. 언령을 이런 곳에 쓰다니 무식한 놈. 할 수 없이 밖으로 쫓겨난 나와 마족은 질퍽한 땅을 밟으며 둘다 기분 나쁜 표정을 짓고 있 었다. 우이씨, 이러다가 또 지렁이 나오는거 아냐? 난 꼭 이런 땅을 밟으면 X을 밟는 것 같아서 기분이 더럽단 말이다. "블루 드래곤 즈리카리안을 마지막으로 모든 일족의 드래곤 하트를 모았습니다." "즈리카리안은 헤츨링을 가지고 있었지 않습니까!" "... 파이나스와 비슷한 경우입니다." "그럼 그 헤츨링은 어떻게 됐습니까!" "헤츨링 보호 센터에.." "이리로 데리고 오십시오. 시크리오프스님도 친구가 필요할테니 이리로 데려오십시오. 제가 키우겠습니다." "로드님, 그건.." "불쌍한 아이입니다. 어미의 사랑도 못 받고 자라나란 말입니까." "알겠습니다." 카네스는 로드님께 인사를 하고는 서둘러 헤츨링 보호 센터로 이동했다. 남은 비루나스마가 로드님의 옆에 있는 찻잔을 치우며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로드님, 이제 그가 원하는건 거의 다 이룬 것 같군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그의 최종 목표가 저니 이제 그에게 맞서야지요." "......" 드래곤의 일기 2부 - 129 - "우이씨, 왜 내가 이런 곳으로 쫓겨나야 되냐구." 기다란 나무막대를 들고는 로드님의 레어 앞마당에 커다랗게 카네스 바보라고 써놓고는 끄 적이고 있는 나에게 그 마족이 다가왔다. "잘도 저에게 누명을 씌우셨습니다." "... 내가 살려면 어쩔 수 없었다구." "이 은혜는 꼭 반드시 갚도록 하겠습니다." "에.. 뭐 은혜랄 것까지야.. 그것보다 내가 너를 뭐라고 불러야 하지?" "에릭이라고 불러주십시오." "그냥 반말 쓰지. 니가 갑자기 경어체 쓰니까 이상해." "좋을 대로." 에릭은 절대 나를 좋아하지 않을 것 같다. 마지못해서 내 곁에 있는 것뿐. 아마도 내가 성년 이 되면 얘가 날 죽이려고 달려들지나 않을까. "미안." "뭐라고?" 에릭도 조금 잔인한 면이 있군. "미안하다구!" "알면 됐어." 잠시 동안의 침묵이 흐르고, 에릭은 절대 다시 입을 열지 않았다. 아직도 꿍해 있는 거야. 사나이가 저렇게 삐지면 자고로 큰 일을 못하는 법이지. "마계로.. 돌아가고 싶어?" "그건 왜 묻지?" "뭐, 돌아가고 싶다면 내가 보내줄 수도 있어." 내 딴에는 크게 인심을 쓴다고 한 말이었는데 에릭의 인상이 구겨졌다. 내가 또 무슨 잘못을 한건가. "야, 시크. 들어가 봐라." 카네스가 레어에서 나오며 뭔가가 뚱해진 듯이 중얼거렸고 어딜 가려는 듯한 카네스에게 물 었다. "어? 어디가?" "로드님 없다고 이제 반말이냐?" "쳇." "훗~ 어른들이 가는 곳은 묻지 않는 법이지. 꼬마야, 들어가서 로드님과 놀아라." "너 나중에 두고봐." 투덜대는 나를 뒤로하고 카네스는 이동 마법으로 사라져 버렸고 약간 추워진 날씨에 에릭에 게 따라오라는 눈짓을 해보이고는 로드님의 레어로 콩콩거리며 뛰어갔다. "로드니임~ 카네스 아저씨 어디 가는 거에요?" "아, 시크리오프스님의 친구분을 데리러 갔답니다." 헉, 혹시 로드님이 내 정체를 눈치 채신 걸까. 내 친구가 누가 있다고.. "무슨 말씀이세요?" "어떤 이유로 헤츨링이 이곳에 와서 살게 됐답니다." 로드님의 슬픈 얼굴을 보니 무슨 일인지 짐작이 된다. 그가 또 나와 같은 아이를 만들어 냈 단 말인가. "로드님, 왜 헤츨링들을 아빠에게 보내지 않는 거죠?" "그건 말입니다. 역시 남성체 드래곤은 아이에 대한 애정이 부족하다고나 할까요. 차라리 어 미를 잃은 헤츨링은 헤츨링 보호 센터에 보내죠. 아니면 근처의 여성체 드래곤이 키워준답 니다." 헤.. 헤츨링 보호 센터? 차라리 남성체 드래곤에게 크는게 더 낫겠다. 거기 드래곤들이 얼마나 성격이 더러운데. "그럼 지금 그 얘는 헤츨링 보호 센터에 있나요?" "네. 카네스님께서 데리러 갔으니까, 곧 오실겁니다." "웅.. 제 동생이 되는 건가요?" "후후.. 그렇게 되네요." 나는 그래도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으니, 그런대로 참을만 하지만 그 헤츨링은 아기의 생 각 그대로다. 아무리 지능이 높은 드래곤이라고는 하나 자신의 어미가 처참하게 죽는 모습 을 목격한 헤츨링이라면? 휴우.. 머리가 돌아버리지 않은게 신기하군. "다녀왔습니다." 힘없는 목소리로 카네스가 중얼거리며 들어왔고 나는 혼자만 온것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했 다. "왜 혼자 와요?" "혼자긴. 이놈 데리고 오느라고 돌아가시는 줄 알았다. 무슨 놈의 헤츨링이 이렇게 똥 고집 이냐?" 지쳤다는 듯이 자신의 뒤에 있는 무엇을 쑥 끄집어내더니 앞으로 내어놓는다. 내 또래로 보이는 푸른 머리를 한 귀여운 소년. 겁먹은 눈초리로 우리를 둘러보더니 곧이어 내가 제일 만만했던지 달려와서는 내 옷자락을 붙잡고 울어버린다. "으앙~~" 잠시 당황한 내가 멍해있을 때 퉁퉁 부운 커다란 눈망울로 나를 올려다보며 내 품에 포옥 안겼다. 이거 대체 뭐야? "후훗, 라피라즐리님께서는 시크리오프스님이 마음에 드시나 보군요." "이곳에 있는 꼬마애가 시크밖에 없으니까 그런게 아닐까요?" "호오~ 그럴 수도 있겠군요." 내 옷에 눈물 콧물, 심지어는 침까지 줄줄 쏟아내며 우는 아이를 보니 처음에 봤던 귀엽다 는 인상이 사라지고 제발 내 곁에서 떼어놓고 싶었다. 하지만 우는 아이를 상대로 무엇을 한다는 말인가. 한 대 때렸다가는 분명히 로드님의 레어가 떠나가라 울 것이고, 말려봤자 더욱더 서러워 울 것이다. 그냥 잠자코 있어야지. 결국에 라피는 내 옷이 질퍽해질 때까지 울고 나서야 지쳐 잠이 들었고, 나는 찝찝함에 울 상을 지었다. "시크리오프스님, 라피라즐리님과 잘 지내 주세요. 여린 분입니다." 앞으로 라피와 지낼 생각을 하니 눈앞이 깜깜해졌다. 나중에 로드님께서 계시지 않을 때 라피를 데려다가 교육 좀 시켜야지. 드래곤의 일기 2부 - 130 - 698년 3월 날짜 : 10일 날씨 : 꽃샘추위로 엄청나게 춥다. "혀엉~" 채 뭉쳐지지도 않은 눈이 내게 날라왔고 나는 그것을 고스란히 맞을 수밖에 없었다. "라피!" "헤헤~ 혀엉! 화났어?" 짧은 컷트의 블루 머리카락에 조금씩 쏟아지는 눈을 맞아서 그런지 상당히 보기가 좋았다. 그 푸른빛 눈동자를 굴리며 내게 눈웃음을 치던 라피는 아까 자신이 던진 눈의 파편이 튄 에릭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자신의 옷자락에 묻은 눈을 신경질적으로 털어내면서 그 부리부리한 눈빛으로 라피를 노려보자 라피가 내게 달려와 안긴다. 처음 이 곳에 왔을 때보다는 많은 안정을 찾고 있었다. 이제는 제법 이 곳의 드래곤들에게 애교도 떨었고, 장난도 치는 전형적인 말썽꾸러기가 되어 갔다. 하지만 그런 라피가 무서워하는 존재가 하나 있었으니. 바로 내 옆에서 절대 떨어지지 않는 에릭이다. 내게 형이라고 부르며 잘 따르는 라피가 귀엽기도 하지만 사실 귀찮기도 하다. "헤에~ 화났구나?" 다 안다는 듯이 자신과 비슷한 키의 나를 톡톡 두드리며 장난을 치는 라피. 이걸 때려, 말어? "에릭, 니가 내 대신 패라." "아아, 어린아이를 때리는 변태 취미는 없어. 사양하겠다." 졸지에 변태가 되버린 나는 에릭을 죽일 듯이 노려봤고 에릭도 그에 맞서 나를 노려보았다. "어이~ 거기 뭐해, 체온도 조절할 줄 모르는 헤츨링들 주제에 춥지도 않냐? 빨리 들어와!" 도대체가 이 곳은 로드님 빼고 맘에 드는 존재들이 없어, 정말! 후우, 라피가 온 후로 이 레어의 귀염둥이는 라피가 되었다. 물론 나도 귀여워는 하지. 조그만게 바락바락 대들기는 하지만 그런 대로 귀여운 맛이 있는 아이다. "네~ 카네스 아저씨!" 뛰듯이 레어 안으로 들어가려는 라피의 뒷덜미를 잡아다가 짐짓 엄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러고 들어 갈거냐!" "왜요?" "얼굴이 이게 뭐야!" 정말 라피의 얼굴은 좀 더러웠다. 눈밭에서 구르다가 흙이 있는 곳에서 뒹굴었는지 얼굴과 옷 여기저기에는 얼룩이 묻어있었다. "네가 그러고 들어가면 형님인 내가 혼난다구." 사실 혼나지는 않는다. 다만 얘가 이러고 다니는걸 보는 내가 마음이 편치 않아서 그런다. "운디네, 라피를 따뜻한 물로 씻어줘." 공중에서 물의 정령 운디네가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재미있다는 듯이 키득키득 웃으면서 따뜻한 물로 조심스럽게 라피를 씻길 때 그 물방울이 내게도 조금씩 튀었지만 별로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실프! 따뜻한 바람으로 라피를 말려주렴." 아무리 따뜻한 물로 씻겨 줬다고 해도 이대로 놔두면 감기 걸리기 쉽상이다. 반나체를 한 여성이 차가운 바람과 함께 나타나서 라피의 곁에서 실실거리고 웃던 운디네를 한번 쏘아본 뒤에 할 수 없다는 듯이 내키지 않는 얼굴로 따뜻한 바람으로 라피를 말려주었다. 운디네와 실프가 앙숙인가? 드래곤의 일기 2부 - 131 "헤헤, 형~ 나 다 씻었어. 우리 이제 들어가자아~" 형이라고 해봤자 겨우 몇 주차인데. 정령들을 돌려보내고 난 뒤에 멍청하게 헤헤거리면서 웃고 있는 라피를 데리고 에릭은 따라 오든지 말든지 상관을 안하며 레어로 들어갔다. "아, 시크리오프스님. 요 몇 주간 이 곳에 손님이 많이 오시는군요." "네?" "오늘 어떤 귀한 분이 이 곳에 오신답니다." "무슨 소리에요? 누가 온다는 거지요?" "신들과의 길목이 차단된 이 시기에 신의 대리자가 이 곳에 온답니다." 저게 무슨 소리지? 지금 이 대륙에는 신성력을 쓸 수 있는 신관이 없을텐데. "호홋, 궁금 하신가요?" "네!" "앞으로 두 세시간 후면 도착하겠군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로드 아줌마아~ 그럼 오늘 인간이 오는 거에요?" 아무 것도 모른다는 눈빛을 하고는 천진하게 라피가 물었고 로드님은 고개를 끄덕이셨다. "헤헤~ 형! 오늘 손님이 온데. 난 인간은 처음 봐. 헤헷~" 알고 있어. 대체 나와 로드님이 하는 말을 뭘로 들은 거냐. 뭐가 그렇게 좋은지 라피는 기대에 잔뜩 부풀다 못해 터질 얼굴을 하고는 레어 안을 구석구 석 굴러다니기 시작했고, 로드님과 대화를 나누려던 나는 그게 상당히 신경에 거슬렸다. "라피! 가만히 안있냐! 혼날래?" "에~ 형 너무해! 인간을 처음 만난단 말야. 헤헷, 가슴이 막 뛰어." 저게 과연 드래곤이라고, 원. "너 가슴 뛰는 거하고 레어 안을 방황하는 거하고 무슨 상관이냐!" "헤헷, 지금 진정시키고 있는 거야." 특이한 놈. "에릭, 쟤 좀 내 눈앞에서 안보이는 곳에 데려가서 놀아라." 다른 때 같았으면 한 마디 했을 에릭이었지만 지금은 옆에서 로드님의 무서운 눈빛이 느껴 지는지 잔말 않고 거의 강제적으로 라피를 들어올려 서재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로드님." "왜 그러십니까?" "그 신의 대리자란 인간이 왜 이곳에 오는 거죠?" "... 오면 알게 되겠죠." "그와.. 관계된 일입니까?" "... 시크님은 그의 일을 어떻게 알고 계시는 겁니까." 의문문이 아니었다.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예상했다는 목소리로 나직히 말씀하시는 로드 님을 속여야 한다는게 약간은 죄의식이 들었다. "저번에.. 하시는 말씀 들었어요. 그리고 우리 어머니가 그에게 돌아가셨잖아요. 라피도 마찬 가지고." "그런가요." 뭔가가 미심쩍은 듯이 말씀하셨지만, 더 이상 이 일을 걸고 넘어가지는 않으셨다. "신의 대리자인 인간이 온다면 어떻게 되는 거죠?" "아직은 확실하지 않지만, 신의 대리자께서 오신다고 해도 별반 달라지는 일은 없을 것 같 습니다. 그가 일족까지도 사살하는 마당에 신의 말을 들을 이유가 없으니까요." 드래곤의 일기 2부 - 132 - "이상해요. 그럼 왜 오는 거에요?" "명목상이죠. 어차피 그들은 우리 종족이 어떻게 되든지 상관하지 않아요." "그럼 어차피 결론은 우리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건가요?" "결론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습니다." "잔인한.. 현실이군요." 갑자기 붇받쳐 오는 설움에 마음이 아파와 인상을 찡그리자 옆에 있던 비루나스마가 서둘러 나를 끌고 로드님에게서 멀어졌다. "쓸데없는 소리하지마, 시크." 이게 어떻게 쓸데없는 소리란 거지? 난 지극히 정상적인 말들만 하고 있다구. 비루나스마가 거의 나를 보물창고에 가두다시피 하고는 나가버렸을 때 나는 왠지 모를 허탈 감 같은 것을 느꼈다. 헤츨링의.. 의사가 이렇게 무시될때도 있었던가. "이번엔 네가 실수 한 것 같군." "카네스. 왜 내가 실수했다고 생각하는 거냐." "후, 그냥 넘어가려고 했지만 어쩔 수 없군. 넌 네 정체를 만 천하에 알리고 있는 거나 같 아. 처음 시작은 네가 [ 그녀 ] 를 만났을 때부터다. 내게 그녀를 만나지 않겠다고 약속하지 않았었나. 그리고 아까 네가 로드님께 말한 내용은 평범한 헤츨링이 할만한 이야기가 아니 야. 이미 로드님이나 비루나스마는 어느 정도 눈치 챘을 거다. 천하의 시크리오프스가 이런 실수도 저질렀었던가? 어리석은 일은 저지르지 말아라." "내가 그렇게 어리석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둘이서 그렇게 서로를 노려보다가 갑자기 문이 열리며 비루나스마가 소리치면서 들어왔다. "빨리 나와. 기다리던 존재가 왔으니까." 벌써 온건가. 궁금한 마음에 카네스보다도 한발 앞서 로드님이 계시는 곳까지 뛰어갔다. 멀어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로드님의 옆에 한 인영이 조용히 서있다는 것만을 깨닫고는 그 인영의 얼굴을 보기위해 가까이 다가갔을 때 무의식적으로 나는 멈춰서고야 말았다. "르엔.." 로드님과 인사말 같은 것을 주고 받던 르엔은 갑작스런 불청객인 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감정이 느껴지지 않은 싸늘한 눈동자. 보는 이로 하여금 불쾌감을 줄 정도로 감정이 개입되 어 있지 않은 무표정인 얼굴을 보고는 잠시였지만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이.. 눈을 본적이 있다. 프라니바투스. 그도 르엔과 같은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그동안.. 르엔을 잊고 있었다. 워낙 정신없게 천사를 따라와 어쩌다 보니 얼렁뚱땅 환생하게 되고, 팔자에도 없던 드래곤 들을 만나고, 정신없이 보내다 보니 시오스가 있던 곳에 혼자 남겨졌을 르엔을 생각하지 못 했다. 그 자리에 카네스가 있었다고는 하나, 그는 드래곤이다. 자신의 일이 아니면 개입하지 않는 존재. 르엔을 버려두고 왔을게 틀림없다. 그 짧은 시간 사이에 몰라보게 변화해버린 르엔은 더 이상 내가 알던 꼬마 대 신관이 아니 었다. 지나치게 차가운 모습. 이건 이제 겨우 10대 중반인 아이에게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르엔, 널 이렇게 변화시킨 이유가 뭐지? 네 앞에서 죽어간 시오스를 바라보며 자신의 무능력을 한탄해서? 아니면, 그에 대한 복수? 그것도 아니면.. 스스로 강해지기 위해서냐? "생명의 여신 하라트스를 받드는 미천한 종 르미에닌 로트 포르시카세입니다." 일정한 톤을 유지하며 말하는 르엔의 미성이 이렇게 차갑게 들리다니. 그를 만났을 때와 똑같다. 이거 완전히 제 2의 프라니바투스군. "어서 오십시오, 신의 대리자여."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이런 때는 웃어도 좋으련만 형식상 하는 말인 듯 묵묵히 포커 페이스만 유지하고 있는 르엔 이 불쌍해 보인다. 드래곤의 일기 2부 (133) 그런 르엔의 모습이 더 이상 보기 싫어서 등을 돌리고 뛰쳐나오다시피 나오다가 나는 내 뒤에서 걸어오던 카네스와 정면으로 부딪히고야 말았다. "앞 좀 보고 다녀라! 누가 쫓아오.. 엥? 너 우냐?" 그 말을 듣고서야 내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창피해서 손등으로 쓱쓱 문질러 닦은 뒤에 앙칼지게 쏘아붙였다. "누가 운다고 그래! 너 시력검사나 다시 해봐!" 넘어져 있는 카네스를 지나가면서 꾸욱 밟아준뒤에 쿵쿵거리며 뛰어갔지만 나는 그 때 뒤에서 쿡쿡거리며 웃는 로드님을 발견하지 못했다. "으윽, 로드님! 웃지 마시라구요." "쿠쿡, 재미있지 않습니까? 시크리오프스님께서 저렇게 다혈질이시다니. 마치 블루 드래곤 시크리오프스님을 보는 것 같지 않습니까?" 그 말에 카네스가 움찔거렸지만 로드님은 속을 알 수 없는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쿠당~' 서재문을 벌컥 열고 들어간 나는 상당히 화가 나 있었지만 지금 눈 앞에 있는 장면을 보고는 박장대소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바로 그 천하의 에릭이.. 냉혈마가 무릎에 라피를 앉히고는 동화책을 읽어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는 갑자기 쳐들어온 나를 바라보고 하얗게 질려서는 동화책을 내던졌다. "푸하하하하~" "웃지마!" "네가.. 네가.. 끅끅.." "계속 웃으면 헤츨링이고 뭐고 엎어버릴테다." "끅끅.. 맘대로 해." 라피는 이 소란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자신이 그렇게 무서워하던 에릭의 품안에서 침을 질질흘리며 가끔 이를 드드득 갈며 조용히 잠들어있었다. 아까는 꿀꿀했던 기분이 이 정겨운 모습에 조금은 풀린다. "너 결혼 할 생각은 없냐? 왠지 좋은 아빠가 될 것 같군." "입닥쳐!" "흐흐흐.. 늙은 몸에 흥분하면 혈압에 안좋아. 몸 생각도 해야지, 응? 푸하하하~" "...... 죽여 버릴 테다." 자신의 허리에 매달린 검집을 잡고 에릭이 일어섰으나 곧이어 그는 도로 앉을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의 바지를 꽉 자보 대롱대롱 매달리는 라피가 있었기에. "오오, 에릭 보모. 그 아이를 잘 보살펴 주구려. 흐흐흐.." 이번에는 그가 라피를 떼어놓고 달려들 기세였기에 내가 얼른 서재문을 닫고 도망쳤다. 뒤에서 에릭의 처절한 울음소리가 레어 안을 맴돌았지만 그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인 듯, 나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이제 기분도 어느 정도 풀렸으니 감동의 재회를 하러 갈까? 후암~ 지루하다. 로드님과 르엔은 서로 테이블에 앉아 침묵만을 지키며 차를 마시고 있었다. 누가 먼저 말을 꺼내기는 해야 할텐데. 내가 말을 할라치면 옆에서 카네스가 말하면 '너 죽고 나 산다'라는 무시무시한 눈빛을 보내와서 제대로 입을 열지 못했다. '후루룩~' 앞에 있는 다과에는 손 하나 안대고 차만 마시는 꼴들이라니. 아주 바늘방석이 따로 없구만. 이렇게 있어서야 차가 코로 넘어가는지, 목으로 넘어가는지 모르겠다. 드래곤의 일기 2부 (134) "저기.." 설마 카네스가 정말 나를 때릴까 하는 마음에 내가 입을 열자 아래쪽에서 극심한 통증이 밀려왔다. "으윽.." "시크리오프스님? 왜 그러십니까?" "아, 아니에요." 내 발을 밟은 카네스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차를 홀짝홀짝 마시고 있었고, 열받은 나는 발로 카네스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먹고 있던 차를 앞으로 내뿜으며 그 자리에서 때굴때굴 굴러가는 카네스. 차~암 잘도 굴러간다. 때굴때굴~ 어머? 앞에 벽이 있네? 조심.. '쾅' 해야지. 하긴 돌머리가 돌에 박는다고 상처가 생길까. 아니나 다를까 카네스는 벌게진 얼굴로 씩씩거리며 벌떡 일어났다. 재생력도 좋지. "너!" "웅, 카네스 아저찌 왜 그러세요오?" 아무 것도 몰라요, 난 순진한 소년이에요. 왜 그렇게 무섭게 노려보세요. 라는 눈빛을 초롱초롱하게 보내며 로드님과 카네스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나를 가리킨 손가락을 잠시 부르르 떨더니 고개를 푹 숙이고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앉는 카네스. 그러게 건들 사람을 건들어야지. "모두 기다리는 것 같군요, 이제 슬슬 본론으로 들어갈까요?" "원하던 바입니다." 드래곤 로드의 앞인데도 그 도도함을 앞세워 조금 재수 없게 말하는 르엔. "이번 일에 신들이 개입할 생각입니까?" "아뇨. 이번 일에서 신들께서는 뒤로 물러나 계신다고 하셨습니다." "예상했던 대답이군요. 신들도 희생을 치루기가 겁이 난 거겠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 저는 미천한 대리인일 뿐입니다. 신께 직접 물어보십시오." "당돌하군요. 당신이 신의 대리자라해도 제게 이렇게 무례하게 굴 수는 없을 텐데. 그 용기가 가상하군요." "이미 제 목숨은 버린 상태입니다." "대단한 인간이군요. 이 대륙에서 유일하게 신성력을 쓸 수 있는 인간이라.." 르엔이 신성력을 쓸 수 있을 리가 없다. 모든 신관들이 신성력을 잃어버린 이 마당에. 아마도 신과 대화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생명을 태워 디바인 파워를 썼기 때문이라고 나는 확신할 수 있다. 바보 같은 것. 찻잔을 쥐고 있던 내 손이 떨려오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우습구나, 시크리오프스. 드래곤인 주제에 자신의 마음하나 다스리지 못하다니. 한때 잠시나마 인간이었다고, 인간의 아이를 키웠다고 네가 인간이 된 착각은 하지 말아라. 한날의 환상은 그 순간 즐기고 잊어버리는 것. 넌 드래곤이다. 세상의 생명체를 죽음으로 몰고 갈 수 있는 지고지순한 드래곤이란 말이다. "시크리오프스님, 몸이 불편하십니까?" 유난히 창백해진 내 안색 때문인지 로드님은 몸상태를 물어왔고 나는 간신히 고개를 저어 괜찮다는 뜻을 표현했다. 르엔이 지금 이렇게 이 곳에 차를 마시며 태연히 앉아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곧 쓰러져도 이상할게 없는 주제에. "제가 아는 분과 이름이 닮았군요." 르엔의 감정없는 목소리가 오싹했지만 곧 그녀가 나를 말한다는 것을 알았다. 날.. 기억하고 있는 거냐. "얘가 아픈가 봐요, 로드님. 들어가서 재워놓고 나올께요." 르엔에게 말하려던 순간 카네스가 번쩍 나를 들어올려서는 서둘러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무슨 짓이야." "그래그래. 그 르엔인지 뭔지 하는 얘가 불쌍하기는 해. 하지만 인간일 뿐이야. 제발 감정적으로 나가지 말아줘." "누가 감정적으로 나갔다고 그래!" 버럭 소리를 지르자 카네스가 내 입을 막고는 낮은 톤으로 말했다. "그럼 지금 네가 이렇게 화내고 있는 상황이 감정적이 아니라는 거냐?" 드래곤의 일기 2부 (135) "...난 예전부터 네가 싫었어." "동감이야." "모든 걸 아는 듯이 재수 없게 말하지 마." 엄청나게 화나버린 나는 심한 말을 던져 놓고는 로드님이 계신 곳으로 돌아왔다. "르엔, 나 좀 보자." 이렇게 된 이상 내가 누구인지 밝혀지든 말든 상관 안한다. 나는 지금 이 엄청나게 삐뚤어져 있는 르엔을 바로 잡아주어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고 있었다. 르엔이 내 말에 채 대꾸하기도 전에 이 작은 손으로 르엔을 질질 끌고 갔다. "뭐.. 뭡니까!" "안녕, 르엔." "......" "날 기억하지 못하는 거야? 아무리 몸이 바뀌었다고는.." "기억합니다." 내 말을 자르고는 퉁명스레 내뱉는 말투에 약간은 곯려주고 싶어진다. "저번에는 경어쓰라니까 기어이 반말이더니, 무슨 심보냐?" "... 아무렇지도 않으십니까." "뭘 말하는 거지?" 르엔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면서 짐짓 모르는척 시치미를 떼었다. 그러자 바로 르엔의 눈에서 분노의 빛이 스치며 나를 때릴 듯이 주먹을 쥐고는 외쳤다. "당신의 아들이었잖아요! 너무해요, 그렇게 쉽게 잊을 수 있을 만큼 시오스는 당신에게 아무 것도 아니었어!" 상당히 흥분했는지 경어와 반말이 섞이며 씩씩거린다. "잊었니? 난 드래곤이고 시오스는 인간이었다. 처음부터 서로 맞 지 않은 존재였어." "당신 때문에 죽은 거야!"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면 그렇게 생각해." 왠지 예전의 나를 보는 것 같다. 시오스를 내가 죽였다고 믿고 싶으면 그렇게 믿어라. 그러면 조금은 편해 질 테지. "프라니를 죽이고 당신도 죽여 버릴 거야." "제발 그렇게 해줬으면 좋겠어. 하지만 프라니는 내가 죽일 거야. 그에게 손대면 날 죽이기 전에 네 목이 날아갈걸?" "후훗, 시크님은 여전하시군요." 뒷머리를 긁적이며 다가온 카네스에게 시크가 르엔을 끌고 나간 자리를 빤히 쳐다보며 하신 말씀이었다. "알고 계셨어요?" "호홋,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죠. 그나저나 시크님께서 제가 어리광을 피우는 모습이라니. 정말 기상천외하군요." "쩝.."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시크님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셔야 합니다." "가만히 놔둬도 살아날 놈인데요, 뭘." "약속하십시오. 내게 무슨 일이 생길 때 어리석게 저를 구하려하시면 안됩니다. 시크님과 라피님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십시오." "생각해 보고요." "명령입니다." "아아, 네네네. 제가 어찌 로드님의 명령을 거역하겠습니까." 건성으로 대답하는 카네스에게 의미심장한 웃음을 날리는 로드님이었다. 드래곤의 일기 2부 (136) 698년 3월 날짜 : 17일 날씨 : 곧 소나기가 쏟아질 것 같은 우중충한 날씨. "오늘은 느낌이 이상하군." "뭐가?" "몸이 오싹하면서 왠지 기분이 더러워." "당연하지. 추우니까. 그리고 넌 비오는 날만 되면 그러지 않았냐?" "그런가?" 커다란 이불을 뒤집어쓰고 얼굴만 쏙 내민 채 말하는 내 머리를 쓱쓱비비며 카네스가 말했다. "혀엉! 뭐하고 있어어어어~" 르엔의 손을 잡고 뛰듯이 걸어오는 라피가 내 이불을 잡아당기면서 자꾸 놀자고 조른다. "추워, 임마. 저기 떨어져 있어." "히엥, 형보다 어린 나도 이렇게 뛰놀고 있건만.. 아무튼 형은 너무 매정해." "꺼져. 자꾸 이불 잡아당기지 말고. 추워 죽겠단 말이다. 저리 안가? 뭐야? 이.. 이.. 이.." 내 이불 속으로 꼼지락꼼지락 들어와서는 내 가슴에 얼굴을 비비며 라피는 최대한 귀엽고 앙증맞은 표현을 지었다. "이제 안 춥지? 헤헷~ 따뜻해애~" "누.. 누가 얘 좀 데리고 가!" "다 네가 자초한 거잖아." "떨어져, 떨어져, 떨어져!" 자신을 발로 차고 때리고 밀어내는데도 끝까지 내 품속에 자리를 잡는 라피. 너도 참 끈질기다. "우이씨, 그래. 내가 나간다, 나가!" "히힛~ 그럴 줄 알았어! 혀엉, 우리 로드 아줌마한테 가자." "그래그래." 내 키와 비슷한 라피에게 질질 끌려가면서 카네스에게 도와달라는 눈빛을 던졌으나 카네스는 이미 르엔과의 이야기에 열중해 있었다. '쾅~' 그때 갑자기 굉음이 들리며 레어가 지진이라도 난 듯이 흔들렸다. 카네스는 심각한 얼굴로 내 앞을 지나쳐 레어 안쪽으로 달려갔다. 르엔이 바로 그 뒤를 따라 가버렸고 라피가 두려운 듯이 내 옷자락을 꼭 잡고는 흔들었다. "쿠쿡, 드디어 온 건가." "혀.. 형.." "라피, 이 곳에 가만히 있어. 알았지? 절대 이 곳에서 나오면 안돼. 우리 라피는 착하니까 형 말 잘 들을 거지?" "으.. 으응." 얼떨결에 대답하는 라피를 그 곳에 두고는 입가에 조소를 머금고 그 소란이 일어난 곳으로 달려갔다. 드래곤의 일기 2부 (137) 레어의 입구쪽은 이미 돌더미로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고 그 한쪽 구석에서는 프라니가 예의 그 살기가 충만한 얼굴로 로드님을 바라보고 있었다. 반면에 로드님은 입가에 온화한 웃음을 띄고 천천히 일어나 간단히 프라니에게 목례를 해보였다. "오랜만입니다, 골드 일족의 수장 프라니바투스님." 곁에 있던 비루나스마는 프라니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고,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듯 했지만 어느새 자신의 팔목을 잡고 있는 카네스 덕분에 그 상황은 무마되었다. 르엔은 의외로 침착한 모습으로 내 앞에서 팔짱을 끼고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 골드 일족의 수장 프라니바투스. 로드님께 결투를 신청합니다." 주제에 예의는 아는지 부복하고 외치는 프라니바투스. "안됩니다, 로드님. 지금 그의 결투를 받아들이면..." 로드님은 결투를 거부할 의사를 가지고 계신다. 당연히 로드님께서는 그 결투를 거부할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로드님의 입에서는 다른 말이 흘러나왔다. "받아들이겠습니다." "로드님!!" 곁에 있던 비루나스마와 카네스가 놀란 듯이 동시에 외쳤고 로드님은 입가의 웃음을 지우셨다. "조용히 하십시오. 신성한 결투를 모욕할 참입니까." "로드님, 아직은..." "내가 여기서 물러나면 더 많은 드래곤이 희생됩니다. 모르시지는 않으시겠죠? 지금까지 각 일족의 드래곤을 죽인 건 경고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알고 있습니다. 저는 그를 이길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희생함으로써 앞으로 죽어갈 드래곤들을 구할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시크님이나 라피님의 뒤를 잇는 헤츨링이 발생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프라니는 가만히 그들이 대화하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싱긋 웃어주자 그도 차가운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보다 카네스님. 저와 약속하신 일이 있을 텐데요?" 르엔의 뒤에서 카네스를 바라보고 있던 나를 발견하고는 로드님이 카네스에게 말했다. "...... 알겠습니다." "비루나스마님께서도 같이 가세요. 이 곳은 저 혼자서도 충분합니다." "싫어요!" "... 개죽음 당하고 싶으신 겁니까. 당신이 양자로 들인 시크님은 어떻게 합니까. 이미 한 번 어미를 잃은 분입니다. 다시 잃게 만 드실 겁니까." 그 말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한 비루나스마는 내게 다가와서 나를 꼭 껴안았다. "가십시오. 가서 시크님과 라피님을 지켜주세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눈물을 흘리시는 로드님. 닦아 드리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프라니는 이미 우리에게 흥미를 잃은 듯이 무슨 짓을 하든 목표는 로드님이라는 행동을 하고 있었고, 나는 아까 그 곳에서 라피를 데려와 그 곳을 빠져나가려 했다. 아직은.. 내 손으로 그를 죽일 수 없다. "시크..?" 내 이름에 반응을 하는 건지 아니면 기억에 남아 부르는 건지 프라니가 그 이름을 입에 올렸다. "닥쳐. 넌 그녀의 이름을 부를 자격 없어." 화가 난 카네스가 말했고, 프라니는 피식 웃었다. "그 꼬맹이가 시크일 리가 없지. 크큭, 쫓아가서 죽이지는 않을 테니 빨리 꺼져주길." 충분히 우리를 무시하며 말하는 카네스에게 욱하는 비루나스마였지만 곧이어 우리를 데리고 공간 이동을 시도했다. 그와 동시에 프라니가 로드님을 공격했고, 로드님은 그것을 힘겹게 실드로 막아내셨다. "로드님!!!!" 아무래도 로드님이 걱정되었는지 레어 안에 라피의 울음소리가 맴돌았고, 나는 그 장면을 보지 못하게 손으로 라피의 눈을 가렸다. 예전의 아줌마라는 소리는 어디 갔는지 로드님이라고 부르면서 엉엉우는 라피를 어쩔 수가 없었다. "빨리 가세요." 마지막으로 아름다운 미소를 지어주는 로드님. 라피는 나를 뿌리치고 로드님께 달려가려 했지만 옆에 있는 카네스에게 붙잡혔다. "놔! 나 갈거야. 로드님한테 갈거야!" '쫙~' 작은 라피의 얼굴이 오른쪽으로 돌아갔다. "정신 차려라." "윽.. 으윽.." 원망스러운 듯이 카네스를 바라보며 울음을 삼키는 라피를 나는 조용히 안아주었다. 우리에게 마법의 피해가 오는 것을 막으려는 듯 비루나스마가 실드를 쳤고, 그와 동시에 로드님이 폴리모프를 시도했다. 우리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지 로드님은 입구에 쌓아져있는 돌더미를 치우고는 밖으로 날아갔고 나에게 살짝 눈길을 준 프라니가 곧 그 뒤를 따랐다. 레어 밖에서 엄청난 마나의 흐름과 굉음이 들려왔지만 아무도 그 곳에 나가보지 않았다. "이만.. 가지." 카네스가 그렇게 말했을 때 나는 이미 레어 바깥을 향해 뛰고 있었다. 로드님이 가시는 마지막 길을 끝까지 봐 드려야지. 안그래? 난 로드님의 딸같은 존재였으니까. 금방 비가 쏟아질 것 같은 어두운 하늘 위로 찬란한 은빛 비늘을 자랑하는 실버 드래곤과 황금빛의 골드 드래곤이 나란히 대치하고 있었다. 엄청난 마나의 흐름에 몸이 견디지 못하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지만, 옆에 있는 벽에 몸을 기대고 로드님의 마지막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시크." "... 잠깐만. 잠깐만 이대로 있을래." 멍한 눈으로 은빛의 고운 드래곤이 달무리가 지듯이 지상으로 추락하는 것이 보였다. "... 아름... 다워." "... 가자." 푹 잠긴 목소리로 카네스가 나를 잡아끌었을 때에서야 걸음을 옮겼다. 회색 하늘을 도도히 날면서 지상을 내려다보는 붉은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의 눈동자에게 나는 환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기다려. 내가 널 죽여버릴 거니까." 드래곤의 일기 2부 (138) 698년 3월 날짜 : 20일 날씨 : 봄이 다가왔는데도 눈이 내린다. "좀 먹어라. 언제까지 그러고들 있을 거냐." "먹고 있어." "음식 깨작거리지 좀 마. 그리고 라피 좀 어떻게 해봐라." 내 옆에 앉아 음식에는 눈을 돌리지 않고 그저 초점 없는 멍한 눈으로 앞만 바라보고 있는 라피. "라피, 밥먹자." "......" "안먹는다는데?" "억지로라도 먹여!" "오호~ 억지로 먹일 희한한 재주 있으면 잘난 니가 먹여라." "저걸 그냥.." "흑.. 아저씨.. 그 무지막지하게 험한 손으로 이 가녀리고 바람한번 불면 날아갈 것 같은 어린아이를 패시겠다구요? 흑흑흑.. 너무 하십니다.." 우리를 상관하지 않겠다는 의미인지 비루나스마는 묵묵히 앞에 있는 음식을 먹고 있었고 내 목소리가 조금 컸던지 주변에 있던 인간들이 모두 이쪽으로 고개를 돌려서는 카네스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미 비루나스마가 내 존재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 같아서 굳이 숨기고 싶지 않았다. "나쁜 놈. 저 조그만 아이 때릴게 뭐가 있다고 손을 치켜들어?" "말세여, 말세. 저런 놈들 때문에 나라가 망해먹는 거여." 주위에서 들려오는 각양각색의 말소리에 내가 킥킥거렸고 카네스는 치켜올린 손을 부르르 떨면서 내릴 수밖에 없었다. "아, 그런데 하나가 빠진 것 같은데?" 4명밖에 없는 일행을 쳐다보다가 곧이어 나는 요 며칠간 내게 찰싹같이 붙어있던 한 놈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 에릭 ... 어디... 갔냐?" "... 급해서 못 챙겼는데.." "헐.. 놔두고 왔구먼." "뭐, 명색이 상위 마족이니 알아서 찾아오겠지. 걔 정도라면 벌써 네 냄새 정도는 알고 있을 걸? 훗~ 충견은 알아서 주인을 찾아오는 법이야." "걔가 개냐! 왜 내 냄새를 맡아! 그리고 아마 걔는 살아있다면 룰루랄라 신나서 마계로 돌아갔을 걸?" "쩝.. 아직 모르냐?" "뭘?" "마족은 타의에서든 자의에서든 한 번 섬기기로 한 존재는 하늘이 두 쪽 난다고 해도 목숨이 붙어있는 한은 옆에서 그 존재가 죽을 때까지 따라다닌다는거." 나는 무슨 큰 잘못을 한 것 같다. 그.. 그럼 결론이 나는 평생 그 차가운 놈을 끼고 살아야 한다는게 아닌가! 제발 내게 오지 마라. 넌 날 싫어하잖아. 나 찾지 마. 그냥 니 갈 길 가는 거야. "그나저나 쟨 어떻게 하냐? 완전 패닉상탠데." 내 옆에 앉아서 아직도 멍해있는 라피를 가리키며 카네스가 물었다. '푸욱~' 라피의 머리를 아주 사뿐히 앞에 있는 수프 접시에 박아준 나는 싱긋 하고 약간은 괴기스러운 미소를 지어주었다. "우앙~~" 머리와 얼굴에 수프 범벅이 된 라피가 울음을 터트리자 주위 사람들이 다시금 카네스를 노려봤다. "나쁜 놈. 아까는 주먹으로 아이를 때릴려고 하더니 이제는 울리네?" "어머, 저 불쌍한 아이 좀 보세요. 수프가 범벅이 됐네요." "저노므시키를 그냥!" "놔둬요, 놔둬. 인상 봐요. 얼마나 괴팍하게 생겼어요? 괜히 우리 같은 민간인이 덤볐다가 칼이라도 뽑으면 어떻게 해요?" 막 우리 쪽으로 뛰쳐오려던 아저씨를 옆에 있던 중년부인이 조용히 말렸다. 유난히 청력이 뛰어난 드래곤들이라서 그런지 그 소리를 못들은 이는 없었다. 카네스의 그 고운 얼굴이 한순간에 괴팍한 얼굴로 전락해 버렸고, 내가 저지른 일이 카네스가 저지른 일이 되어버렸다. 어쩌면 내가 이 것을 바랬는지도? 그 고운 얼굴에 힘줄이 뽁하고 솟아나오는게 보였고, 나는 천진 난만한 웃음을 지었다. "여기서 폭발하면 정말 너 죽고 나 죽는 거야. 헤츨링을 죽인 살인룡이 되고 싶진 않겠지?" "꼭 그렇게 했어야 됐냐?" "어쨌든 정신이 들어서 울고 있잖아." 앙앙거리며 시끄럽게 웃어대는 라피의 머리를 이 조그맣고 앙증맞은 손으로 살짝 쳐준뒤에 나는 다시 식사에 열중했다. 드래곤의 일기 2부 (139) 붉은 달이 떴다. 붉은 달이 뜨면 불길하다고 했는데. 내 눈에는 그저 예쁘게만 보인다. 붉은 피를 머금은 새하얀 붉은 달. "우엥~ 혀엉!" 간신히 울어대는 놈을 재워 놨더니 어느새 깨어났는지 창가에 앉아있는 내게 다가와 안겨온다. "떨어져떨어져떨어져! 더워 죽겠는데 왜 이렇게 엉겨붙고 난리야!" 사실 덥지는 않다. 약간 춥다고나 할까. 하지만 라피가 이렇게 울면서 안겨온다면 위로라는 귀찮은 것을 해줘야 하기에 이렇게 발로 밀면서 떨어지길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우엥~ 흐끅.. 끅.. 혀.. 혀엉.. 흐아앙~" "뚝!" "흐끅.. 뚝!" 말은 잘 듣는군. "너 한번만 더 울면 내 손에 죽는다." "우욱.. 끅.." 차마 대답은 못하고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는 라피를 어쩔 수 없이 포근히 안아주며 귓가에 속삭였다. "아직은 울 때가 아냐. 복수를 해야지, 안그래? 그를 죽인 뒤에 울어도 늦지 않아. 내 말 알아들었지?" 순진한 얘한테 이게 잘하는 짓일까.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자기 딴에는 비장한 얼굴을 하고 고개를 끄덕인 라피는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저씨랑 아줌마는?" "몰라. 일 있다고 나갔어." "안오면 어쩌지?" "... 걱정 마. 걔네 우리 잊어버리면 바로 재판 받아서 사형 당할걸. 어쨌거나 우리는 일족의 고귀한 헤츨링이니까." "웅..." 아직도 할 말이 남았는지 내 옷자락을 붙잡는 라피를 억지로 침대에 뉘여 이불을 덮어준 나는 가볍게 마법으로 라피를 재워놓았다. 창 밖으로는 여전히 붉은 달이 기분 나쁘도록 아름답고 매혹적인 붉은 달빛을 내뿜고 있었고, 나는 거기에 취해 창턱에 걸터앉아 붉은 달을 감상하고 있었다. '달칵' "시크." 비루나스마와 카네스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게 느껴졌지만 지금은 이 매혹적인 달빛을 구경하는 시간이기에 나는 그들을 돌아보지 않았다. "여길 좀 봐." "듣고 있어, 말 해." 목이 빠져라 달만을 쳐다보던 내게 한숨을 짓던 카네스가 입을 열었다. "우리는 너희를 지켜주지 못해." "알고 있어. 그래서?" "... 떨어져... 있어야 할 것 같다." "짐밖에 되지 못하니까 이제는 아에 보내버리겠다는 건가." "아냐." "아니라고? 후후, 그래. 그럼 어디로 보낼 거지?" "잠시.. 인간들 속에 섞여 있길 바래." "... 너희는?" "지금 그와 대적하기 위해 준비중이다. 헤츨링이 끼어있는 건 위험해." "위험한게 아니지 않나? 날 최후의 히든 카드로 제시할 생각인거 아냐?" 드래곤의 일기 2부 (140) "......" "뭐, 아무래도 좋아. 그래, 어디에 있으면 되지?" " '페르란 마법 학교' " 로드님이.. 설립하신 곳이라고 했었나. "좋아좋아. 이제 볼일이 끝났으면 그만 꺼져주시지. 슬슬 잠오기 시작했거든." "다시 데리러 오지. 입학 수속은 마쳐 놨으니 내일 아침에 등교하면 될거야. 기숙사 생활인건 알고 있겠지?" "나.가." "라피를 부탁해." "내가 누군지 잊었나. 전대 블루 드래곤의 수장이다. 이 꼬맹이 하나 지켜줄 능력은 가지고 있어." "누가 뭐래? 여기 일단은 돈이 필요할테니 놔두고 간다." "나가!!!!!!" 결국에는 뒤돌아서 소리를 빽 지르는 나를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바라본 카네스는 어깨를 으쓱이며 비루나스마와 나가버렸다. 이게 마지막인가. 씁.. 이제 저들을 당분간 만날 일도 없겠군. 다시 붉은 달을 바라보며 씁쓸히 중얼거렸다. "제군들, 오늘부터 함께 마법사의 과정을 거치게 될 시크 라미젠과 라피 라미젠군이네." 그냥 애칭에 아무 성이나 같다 붙인 우리들. 10살 이하의 아이들은 입학이 허가되지 않았다. 사실 우리의 몸은 7~8살로 보였기에 교감이라는 사람이 의심을 했지만 태연한 얼굴로 12살이라고 빡빡 우겨서 겨우 이곳에 들어왔다. 초급반인 듯 아직은 정돈되지 않은 어수선한 분위기에 지금 우리 앞에서 말하고 있는 순둥이 선생을 보니 아주 이 반 얘들이 이 선생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참 잘 알 것 같았다. "자, 그.. 그럼 시크와 라피는 저기있는 제크의 옆자리에 앉거라." 제크라는 아이가 심히 띠껍다는 듯이 손을 들었고 나는 라피의 손을 잡고는 그 곳으로 걸어갔다. 몇몇 아이들이 킥킥대며 웃는게 들렸지만 그것을 무시하고 뒷 자리에 있는 제크라는 아이의 곁으로 가려는데 금발의 꽤나 도도하게 생긴 여자애가 꽤나 도도하게 슬쩍 발을 걸었다. 뭐야, 벌써부터 시비야? 타고난 운동신경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명색이 드래곤이기에 차마 거기에 걸려서 넘어질 수는 없고, 슬쩍 그걸 피해 괘씸한 마음에 그 발을 지긋이 밟아주었다. "꺅~" 차마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알았는지 큰 소리를 못내고 작은 비명을 지른채 레이스가 치렁치렁 달린 양말을 신은 발을 잡고 나를 매섭게 노려보는 계집애. 흐흐흐, 여기서 지면 이 시크리오프스님이 아니지. 나도 따라 띠껍게 노려봐 주었다. "혀엉." 내 손목을 잡고 불안한 듯이 흔들어 대는 라피를 생각해 되도록 조용히 제크라는 아이의 옆자리에 와서 라피와 나란히 앉았다. "쳇, 꽤 한다 이거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시비를 걸어오는 놈을 그냥 무시한 채 첫 수업이 시작하려 해서 그냥 칠판만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자, 오늘은 역사 시간이에요. 먼저, 마법사중 최강의 대 마법사라고 불리며 이 '페르란 마법 학교'의 초대 교장 선생님이신 마리오네라님에 대해 알려드려야겠군요." "로드님!" 갑자기 로드님을 외치며 벌떡 일어난 라피. 모든 학생들의 눈동자가 우리에게 꽂힌걸 느낀 나는 상당히 쪽팔린 마음에 거의 강제로 라피를 앉혔다. "우엥, 형 왜 그래." "입 닥치고 가만히 있어. 심심하면 자던지." 선생이란 사람은 그런 라피를 보며 약간의 식은땀을 흘리고는 어색하게 웃으며 다시 설명을 시작했다. "첫날부터 튀어보려고 별 짓을 다하네." 저것이? 내가 홱 노려보자 슬쩍 고개를 돌린다. 헐, 요즘 어째 황태자와 닮은 놈들이 대량 생산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첫 교시가 끝나고 나서 갑작스레 교장이라는 인간이 부른다는 소리를 듣고는 책상에 퍼질러 자고 있는 라피를 깨워다가 교장실이라는 곳으로 갔다. 아주 광고를 하듯이 대문짝만하게 '교장실'이라고 쓰여져 있는 곳을 찾기는 엄청나게 쉬웠다. 뭐, 방향치인 내가 찾을 만한 곳이었으니 어디있으리라고는 짐작하길 바란다. 드래곤의 일기 2부 (141) '똑똑' "들어오세요." 의외로 엄청나게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안에서 흘러나왔고 의아해진 나는 새삼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약간은 작은 듯한 방안. 그 작은 방안은 온통 책으로 가득차 있었고, 그 정 중앙에 조그마한 책상하나가 덩그러니 놓아져 있었다. 어두울만도 하건만 그 책상의 뒤에 있는 창문에서 빛이 들어와 방 안을 환하게 밝혀주고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인건 그 방안에는 교장뿐만이 아니었다. 나를 바라보며 냉소적인 웃음을 짓고 있는 에릭. 그리고 에릭의 옆에서 마찬가지로 나를 쏘아보고 있는 르엔. 그러고보니 르엔도 그냥 놔두고 왔군. 나 혹시 바보가 아닌가. "오랜만이군." "너.. 왜 여기 있는 거야아아아~" "죽기 전까지는 내게 네 곁에 붙어있어야 돼. 나도 좋아서 온건 아니다." "아아, 기쁨의 상봉은 그 정도로 하세요." 의자에 앉아있던 20대 후반의 금발머리 여자가 짜증이 난다는 듯이 말했다. 잠깐, 지금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이 마나의 기운은 인간의 것이 아니다. "혹시, 드래곤이십니까."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거에요?" "네..?" "타이아스크의 에미가 바로 나에요, 시크. 프라니의 친할머니죠." 기억났다. "절.. 어떻게 아시죠?" 몇 번 본 기억이 나지만, 난 지금 환생체이다. "아, 로드님께 대강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시크님께서 이 곳에 오신건 카이오네스님의 말 때문이란건 압니다. 하지만 카이오네스님의 뒤에 로드님이 있었다는 걸 알아주세요. 모든게 로드님의 뜻입니다." 로드님은 내가 지낼 곳까지 철저하게 준비해 놓았군. "내게 왜 친절을 베푸는 거죠?" "일족의 고귀한 헤츨링이니까요." "... 헤츨링, 헤츨링, 헤츨링! 정말 지겹습니다! 그냥 가면을 드러내시죠. 지금 현 상황에서 그를 막을 수 있는 존재는 저밖에 없다고 그냥 대놓고 말씀하시죠!" 드디어 내가 폭발해버렸다. 아마도 여기에는 로드님의 죽음에 대한 감정도 실려 있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생각해온 여러 감정들이 뭉쳐있다가 한꺼번에 폭발해버렸으니까. "호홋, 그 놈 지 할미도 못 알아보고 다짜고짜 죽이려고 달려들 더군요." "?" "제가 갔을 때는 이미 늦었더군요. 이들만 데리고 간신히 도망왔습니다. 뭐, 그 놈이 그래도 죽이려는 마음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이 젊은 나이에 세상 하직할 뻔 했다구요." 에릭과 르엔을 데리고 온게 저 아줌마였군. "당분간은 이 곳에서 지내세요." "모두 나가있어." 왠지 이 아줌마는 모든걸 알고 있을 것 같다. 어쨌든 그의 할머니니까. "형~" "라피, 에릭이랑 르엔과 같이 밖에 나가있어." 거의 떠밀다시피해서 놈들을 밖으로 내보내놓고는 나는 그 아줌마에게 물었다. "그가 왜 저렇게 미쳐버린지 알고 있습니까." "... 모든 일의 원흉인 네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을까." 드래곤의 일기 2부 (142) "그건 또 무슨 소립니까." 알고 있지만 정확히는 모른다. "설마 부인하지는 않겠지? 내 손자놈이 저렇게 된 것은 네 공이 가장 컸다는 걸 말이다." 아까의 그 존대는 어디 가고 라피들이 나가자 바로 하대로 낮춰 버리는 그녀에게 약간의 불만감도 들었지만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그 아이가 처음 태어날 때 가장 먼저 안아준 이가 부모도 아닌 너라고 알고 있다." "그렇습니다만." "지금까지 사랑이란 걸 받아오며 지낸 아이가 아니다. 할미인 나까지도 그 얘에게 무심했으니까." "......" "유일하게 그 아이에게 손을 내밀어준 존재가 너 하나였다. 네가 웃으면 그 아이도 행복했고, 네가 슬프면 그 아이의 가슴도 찢어졌다. 그 아이가 인정한 존재는 이 세계에 너 하나밖에 없다는 소리야." "그게..." "하지만 그 아이의 그런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다. 유일하게 자신에게 애정을 보여준 너를 손에 넣고 싶은 어린 아이 같은 유치한 집착이었지." "하고 싶은 말씀이 뭡니까." "지금 그 아이는 자아가 붕괴되어 버렸어. 자신의 눈앞에서 삶의 목표를 잃어버리자 머리가 그것을 통제하지 못한 거다." 말도 안돼. "지금까지 잘 버텨온 아입니다. 인간일 때의 저를 만났을 때만 해도.." "그래그래. 하지만 네가 떠나고 난 뒤는? 어리석은 것. 네가 결정한 일이 지금 상황을 만들었어! 네가 그 아이 곁에만 있었어도, 로드님께서 억울하게 돌아가시지는 않았을 거다." "저보고.. 책임지라는 말씀입니까." "알긴 아는군." 떨리는 다리를 주체하지 못하고 책상에 손을 짚으며 억지로 미소를 띄워보였다. "...당신이야말로 어리석군요. 애초에 당신이라도 관심을 가졌다면 그가 제게 집착하는 일도 없었을 테니까요." 그 말을 끝으로 그녀의 이야기를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 방을 나왔다. 여전히 무표정한 에릭과 르엔. 라피만이 나에게 달려와 안기며 걱정스런 목소리로 물었다. "형.. 형도 나 놔두고 가는거 아니지..? 응?" '부비부빗' 대답대신 내 작은 품안에서 라피의 머리를 부빗거려주었다. "따라와." 에릭과 르엔 라피를 데리고 학교의 정원쯤 되어보이는 곳으로 걸어갔다. 수업중이라 그런지 돌아다니는 학생들은 몇몇 보이지 않았다. 저들도 수업 빼먹고 노는 건가. 뭐,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지. 충분히 내 일 만으로도 머리가 깨지기 일보직전이니까. "다 들었지?" "......" "......" "들었으면 말 좀 하라구. 르엔, 날 죽이고 싶냐? 지금 일이 이렇 게 된 원인이 나니까?" "너 때문에 시오스가 죽었다고 생각하면 지금 당장 여기서 갈가리 찢어 죽여버리고 싶어." 이봐, 살벌하다구. "너! 우리형한테 그딴 소리하지마!" 라피가 르엔에게 으르렁거리며 내 허리를 꽉 안아온다. 제발 좀 떨어져라. 한 손으로는 라피의 얼굴을 밀면서 에릭에게 눈짓을 했다. "마계로 돌아가." "돌아가면 난 죽어." "뭐?" "주군으로 모시고 있는 존재와 일주일 이상 떨어져있으면 소멸한다." 드래곤의 일기 2부 (143) 니가 언제 나를 주군으로 모셔줬었냐. 아주 니 밥이었지. "그럼 너는 건너뛰고, 라피는 내가 원래 데리고 있어야 하고, 르엔. 넌 가라고 떠밀어도 안갈거지?" "알면서 묻냐?" 그럼 그렇지. "그럼 우리가 학교 다닐 때 너네는 뭐하고 있을 거야?" "우리가 너처럼 한가한 줄 아냐!" 둘이서 동시에 내게 큰 소리로 말했다. 어이, 나 귀 안먹었다구. "그럼 나는 수업이나 들어 갈 테니 있던지, 말던지 알아서 해. 가자, 라피." "응~" "아주 범생 나셨군." "냅둬." 약간의 양심과 찔림이 있었던 터라 조심히 교실 안으로 들어갔다. "아, 교장 선생님께 갔다 왔니?" 의외로 선생은 빙긋이 웃으며 친근하게 말을 던져줬고, 뒷문으로 조심히 들키지 않게 들어가던 나는 수십개의 눈동자가 나와 라피에게 꽂히는 것을 느꼈다. "아하하, 네." "자리에 앉으렴. 지금 마법 이론 수업이란다." 자리에 앉자 옆에 있던 제크가 아니꼽다는 듯이 빈정댔다. "호오, 교장하고 연줄이라도 닿아 있나 보지?" "연줄이라면 연줄이지." "뭐라고?" 내가 워낙 속삭이듯 조용히 말했기에 제크가 다시 되물었다. "어디다가 그 면상을 들이대는 거야? 안치워?" 내 앞에 놓여져 있는 제크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려준 후 들으나 마나한 이론 수업시간에 책상에 엎드려 잠이나 퍼잤다. 아아.. 누가 그랬던가. 동생을 잘 가르키려면 형이 모범이 되어야 한다고. 나를 본받는 것인지 라피도 나와 똑같은 자세로 책상에 엎드려 버렸다. 제발 이상한거 보고 배우지 말아라, 라피야. 아무리 생각해도 내 행동은 네게 도움될만한 것이 없구나. 요란한 종소리가 시끄럽게 귓가에 울려대고, 드디어 쉬는 시간이란게 왔다. "꺄아아아악~ 카이란스 황자님이시다~" "저 환상적인 미소. 옆에 있는 사람은 누구야?" "아, 얼마 전에 황궁으로 돌아오셨다는 막내 황자님 아냐?" "아, 리메아난 황자님? 어쩜 좋아~ 너무 귀엽다~" 계집애들이 하나같이 창문에 달라붙어서는 꺅꺅거리며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고 있을 때 나의 귀는 심한 청력 장애를 일으켰다. 저 목소리 좀 어떻게 할 수 없나. "우엥~ 형, 시끄러워." 드래곤의 일기 2부 (144) "입 안닥쳐! 시끄러워 잠을 못자겠네. 계집애들이 더럽게 땍땍거려!" 안그래도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어서 화풀이 식으로 소리를 지르니 날카로운 시선들이 나에게 꽂혔다. "쳇, 부러우면 부럽다고 말해. 성격이 저렇게 더러워서야, 원." "어우, 재수 없어." "쟤 뭐니?" 계집애들이 나를 마구 씹어댄다. "조용히 안해! 못생긴 것들이 어디서 시끄럽게 지랄이야!" "뭐야? 저걸 그냥!" "빽으로 겨우 들어온 주제에 감히 우리들에게 대들어?" 우이씨. "라피! 나가자! 더러워서 여기 못있겠다." "응, 형아." 더 이상 이런 정신이 분열될 것만 같은 곳에서 있기 힘들어 라피를 데리고 교실을 나와버렸다. '쿵' 혼자서 씩씩거리며 걷고 있는데 갑자기 내 눈앞에서 시꺼먼스한게 나에게 덮치더니 그대로 부딪혀 버렸다. "으악~" "에구에구.." 화려한 옷을 입은 아이는 내 옆에 쓰러져서는 자신의 엉덩이를 만져대고 있었다. 약간의 낯익음에 나보다는 훨씬 큰 그 놈의 몸에 올라타서는 그 얼굴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을 때 누군가가 이쪽으로 뛰어오는게 보였다. "리아! 괜찮냐?" "형님! 그 이름으로 부르지 말랬잖아요. 우띠, 아퍼 죽겠네. 어떤 무식한 놈이.. 엥?" 그렇게 말하던 그는 갑자기 자신의 가슴에 앉아있는 나와 눈이 마주쳤다. 무신경한 인간이군. 아까부터 자신의 가슴에 앉아있었는데 눈치도 못채다니. "꼬맹이잖아." "누가 꼬맹이라는 거야!" "너." 기억난다. 내가 예전에 이 놈에게 꼬맹이라고 불렀었지. 설마 내가 그 말을 다시 이 놈의 입에서 듣게 되리라곤 생각도 못했다. 아주아주 얼마 전에 헤어졌었지, 아마? 하나도 안변했군. 멀리서 달려온 칸이 이상야리꾸리한 우리의 자세를 바라보고는 리아의 머리를 발로 자근자근 밟기 시작했다. "로리타 변태 놈. 나는 너를 그렇게 키운적 없다. 어디 아무리 여자에 굶주렸다고 해도 감히 이 작은 어린애를 덮쳐?" "형~ 그게 아니에요!" "변명은 필요 없어. 흐흐흐. 황실 계보에 먹칠한 놈에게는 오직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 아무래도 칸은 자신의 동생을 곯려줄 거리를 찾고 있었던게 아닐까. "우이씨, 그게 아니라니까!" "닥쳐!" 마법사답지 않게 오른손에 칼을 들고 덤비던 칸을 피해, 리아는 나를 방패막이로 내세웠다. "오호라, 이젠 개기겠다는 거냐." 드래곤의 일기 2부 (145) "정말 형님은 미쳤어요!" "그걸 이제 알았다니, 역시 넌 우리 황실에서 가장 멍청해." 그 말을 마치자 마자 리아가 나를 칸에게로 힘껏 떠밀고는 뒤를 돌아 도망쳐버렸다. '우당탕~' 허걱, 저 칼에 찔릴 뻔했다. 리아! 이 꼬맹이! 너 나중에 보자! 살인 미수죄로 헤츨링 보호 센터에 일러버리겠어! 지금 이 자세도 상당히 요상한 자세였다. 내가 쓰러지자 마자 칸이 내가 다치지 않게 손에 있는 칼을 놓아버리고는 안고 뒹굴었던 것이다. 덕분에 나는 칸의 아래에 깔린 자세고, 칸은 위에서 민망하게도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오호, 지금에서야 봤는데 머리색깔이 굉장히 독특하네?" 이봐, 그건 내려와서 해도 되지 않아? "어쩌지? 저 놈이 도망가 버렸네? 혹시 어디 다치진 않았니?" 이봐, 난 네 이중인격을 알고 있다구. 그렇게 베실베실 웃고 다니면 바본 줄 알아. "우아~ 근데 무지 부드럽다. 꼭 실크같아." 드래곤이 머릿결 나쁜거 봤냐? '보비보빗' 갑자기 내 머릿결이 부드럽다면서 조심히 자신의 뺨을 부빗거린다. 너 변태갔다는건 알고 있냐? '퍼억~' "윽.." "너! 우리형한테서 안떨어져?" 자신의 머리만한 돌을 칸의 등위로 떨어뜨리고는 노려보는 라피. 라피, 날 생각해 준건 대단히 고맙다만.. 지금 나는 이 놈의 밑에 깔려있단 말이다! 이 놈 몸무게가 얼마나 나갈지 상상이나 해봤냐구! 난 어리고 연약한 소년이란 말이다~ 으악~ 온몸의 뼈가 비명을 질러댄다. 거의 실신 지경에 이르러 있는 나에게 아주 정신을 잃게 만드는 말소리가 들려왔으니. "꺄아~ 칸님~ 지금 포즈 야해요~" "좀더 찐~ 하게 해주세요~" "키스키스키스!" "덮쳐버려욧~" 잊고 있었다. 아까의 그 재수 없게 꺅꺅대던 계집애 부대들이 창문에서 이 놈들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었다는 것을. "에구에구~ 그래? 여기서 좀더 찐~ 하게?" 얼굴을 들고는 건물 쪽을 빤히 바라보던 칸은 계집애들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씨익 웃더니 그 징그러운 면상을 내 얼굴로 가져다댔다. '쪼옥~' "베이비 키스~" 붉은 내 입술에 살짝 자신의 입술을 가져가 쪽 소리가 나도록 키스를 하고는 건물쪽의 계집애들에게 빙긋 웃어보였다. "꺄아~ 키스야, 키스~ 어쩜 좋아~" "칸니이이이임~ 아주 덮쳐버리세요~" "에게~ 뭐야, 뽀뽀잖아~ 찐~하게 키스로 나가요~" 무.. 무서운 것들. 얼이 빠져있는 나를 보고 울상이 되어있는 라피. 곧이어 칸의 등으로 올라가 마구 머리를 잡아 뜯는다. "너! 빨리 형한테서 내려와!" "윽.. 이건 또 뭐야~" "이.. 이.. 이.." 얼굴이 온통 새빨개진 내가 드디어 상황을 머릿속에 잘 정리해 폭발해 버렸다. "더러운 변태 새끼야아아아아아아아아~~~" 드래곤의 일기 2부 (146) 그 크고 큰 교내에 나의 중성적인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퍼졌고, 칸은 그런 나를 상당히 흥미로운 듯이 쳐다보았다. "너..." 제발 좀 내려가서 말하자구! "내가 아는 사람이랑 닮았구나. 물론 얼굴이 닮은건 아닌데.." "... 좀 내려가 줄래?" "처음 본 사람에게 반말하는 것까지도.." 너 같으면 그런 일을 당하고도 그 상대에 대해 존중해줄 마음이 생기겠냐! "비켜!" 이눔아, 무겁단 말이다. 내가 자신의 밑에 깔려서 낑낑대고 있자 그 때서야 상황 파악이 됐는지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내 위에서 내려온다. 우이씨, 흰색 옷인데 풀물 다 들었잖아. "혀엉! 저 늙은이 뭐야? 재수 없어." 헉, 저런 소리는 어디서 배운 거지. "라피야, 저렇게 크면 안되는 거야. 인간 말종이지." "응!" 우리 형제(?)가 이런 얘기를 하고 있을 때 칸은 슬쩍 일어나 자신의 로브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고는 내게 다가왔다. "꼬마야, 이름이 뭐니?" "너 따위에게 감히 이 고귀하신 이름을 말해줘야 한단 말이냐." "호오~ 정말 닮았어. 넌 정말 [그녀]와 닮았구나." "흐음.. 그녀가 누군데?" 그 환한 웃음이 일순간 지워지면서 두 눈에는 약간의 쓸쓸함과 슬픔이 자리잡았다. "... 죽... 었어." 설마.. 나를 얘기하는 건가? 어쨌든 그 몸은 죽었을 테니. "뮤즈를 말하는 거냐?" 상당히 이 한마디에 충격을 받았는지 갑자기 내 어깨를 아프게 잡는다. "이거 놓고 말해." "네가 어떻게 그녀에 대해 알고 있는 거지?" "... 내가 그녀니까." 키가 작은 나는 안그래도 키가 큰 칸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내 말을 듣고 난 후 갑자기 그가 내 앞에 주저앉듯이 앉아버리고는 믿을수 없다는 듯이 머리를 쓸어올렸다. "말도 안돼. 그녀는 죽었어." "환생을 믿나." "... 그녀가 환생했다고 말하고 싶은 거냐?" "뭐, 못 믿는다면 어쩔 수 없겠지." "형,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빨리 가자. 나 배고프단 말야." "그럼 나중에 다시 보자, 칸." 배고프다고 내 옷자락을 붙잡고 칭얼대는 라피를 데리고 사라지려는 찰나, 갑자기 내 몸이 붕 뜨는 것처럼 느껴져 약간의 멀미증세에 인상을 찌푸렸다. "혀엉!" "꼬마야, 잠깐 니 형이라는 사람 좀 빌리자. 나중에 돌려줄게." 내가 물건이냐. "야! 너 빨리 형 안내려놔?" "라피, 에릭에게 가있어. 조금 있다가 돌아갈 테니까. 에릭이라면 아마 밥 줄거다." 칸의 어깨에 거의 걸쳐져 가면서 흔들거림을 참고 간신히 외친 마지막 말이었다. 역시 끝까지 동생의 밥을 걱정하는 이 참된 형의 모습. 헐.. 나 맘 잡았구나. 드래곤의 일기 2부 (147) 오옷, 황궁! 너 오랜만에 본다. 이게 얼마 만이냐. 마음 같아서는 사뿐히 걸어가 으스러지도록 껴안아주고 싶지만, 아무래도 그건 안될 것 같구나. 보다시피 이 칸이라는 놈의 어깨에 대롱대롱 매달려 가고 있어서 말이다. "이봐악~ 이봐악~ 이마안~ 내려주어도~ 되지않아?" 흔들림에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는 내 목소리를 들은 듯 만 듯 하면서 계속해서 칸은 황궁으로 걸어갈 뿐이었다. 대체 왜 그 편한 말이나 마차 안타고 가는 건지. 그래그래, 다 괜찮다구. 하지만 주위의 저 시선들은 뭐냐. 아무리 드래곤 비늘보다 두꺼운 낯짝이라지만 쪽팔린다구. "어우~ 야! 이마안~ 내려어~ 다알라아구우~ 우띠, 호흡곤란 오잖냐." 꿈쩍도 안하고 나를 안고 황궁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간 칸은 내가 아주 잘 알고 있는 방문 앞에 멈춰섰다. '똑똑' "들어와." 가벼운 노크를 하니 안에서 절대로 잊을수 없는, 세상에서 가장 재수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왕에 이렇게 된거 될대로 되라지. 칸의 등만 뚫어지게 쳐다보던 나는 곧이어 테이블로 보이는 곳에 내려졌다. "뭘 보쌈해왔냐?" 테이블에 앉아 발을 흔들다가 황태자와 눈이 마주쳤다. "안녕?" 씨익 웃으며 손으로 턱을 받치며 말하자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는 황태자. "뭐냐?" "... 이 아이가 레이디 뮤즈래." "뭐!?" 상당히 어이없다는 표저을 지으며 벌떡 일어선 황태자는 곧이어 내 몸 구석구석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몇분후에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 다시 앉아 칸을 바라보고는 말했다. "닮은 곳이 하나도 없잖아." "꼭 닮아야 한다는 법이라도 있어?" "흐음..." "환생했데." "그걸 어떻게 믿지?" "직접 물어봐."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다시 내게로 고개를 돌렸으나, 나는 그를 보고 있지 않았다. 이 곳은 정말 변한게 하나도 없군. 매일 똑같은 이런 곳에서 살려면 숨이 막히지 않을까. 가끔 변화를 주는 것도 괜찮은데. "꼬마야." "시크." "그래? 그럼 시크. 네가 그녀라는 걸 증명할 수 있니?" 잠시 방 안을 둘러보다가 이 말에 심히 기분이 상해서 나는 내 은빛 눈동자로 황태자를 바라보았다. "내 자신이 그년데 내가 왜 그걸 증명해야 하지?" "그럼 누가 믿냐?" "믿어달라고 한적 없어." "오호라~ 너 사기꾼 아냐?" "흐흐흐, 넌 황태자 상대로 사기치는 미친놈 봤냐?" "봤지. 지금 내 눈앞에서. 그녀가 죽은지 몇 달이 흘렀어. 겨우 몇 달인데 넌 지금 10세 정도의 나이를 가지고 있지 않나. 이론적으로 맞지 않는 말이야." "여전히 너의 멍청함과 둔함과 오만함은 하늘을 찌르는군." "뭐야?" "쯧쯧, 날 따라오려면 아직 멀었군." 어느새 자신도 흥분했는지 내 말에 꼬박꼬박 말대꾸를 한다. 헐.. 옛날 생각 나누만. "저 꼬맹이가!" 알밤을 먹이려고 황태자가 주먹을 쥐고 내리치려는 순간 작은 몸집으로 여유롭게 그것을 피해낸 나는 슬쩍 기분 나쁜 웃음을 지었다. "난 드래곤이야. 태어난지 한 달도 안된 헤츨링. 감히 이 몸에게 상처를 입힐 생각은 아니겠지? 내가 드래곤이라면 모든 상황은 설명되는 것 아닌가." 드래곤의 일기 2부 (148) "네가 드래곤이라고 말하고 싶은 거냐?" "왜 그런 눈으로 쳐다보냐? 후훗,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눈치로 군." 그래도 가장 만만해 보이던 놈이었는데. 날 기억하고 있을 거라고 약간은 기대했는데, 역시 이 놈도 똑같은 놈이군. "형님, 뮤즈양이 맞는 것 같은데요." "알아, 임마." 알면서 왜 저런대냐?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괘씸해. 6개월의 시간을 줬더니 덜컥 죽어버리다니." 너.. 너.. 너.. 엄청나게 쪼잔한거 아냐! "야! 나 배고파! 칸이 다짜고짜 데려와서 밥도 못먹었단 말이다! 고로 형인 네가 밥을 줘야 해." "너 어째 나만 보면 제일 많이 한다는 소리가 배고프다는 소리 같다?" "다른건 멍청해도 그건 잘 기억하네." "뭐야!" "흐흐흐, 꼬마야. 날 따라오려면 멀었다니까. 몇 천년을 살다보니 느는 거라곤 말빨밖에 없거든." "몇.. 천년? 헤츨링이라며." 이럴 때는 꼭 예리하다니까. 하여튼 쓸데없는 것만 물어봐요. "있어, 그런게. 말하려면 꽤나 복잡해. 우리 밥이나 먹으러 가자. 설마 일족의 고귀한 헤츨링을 굶어 죽일 생각은 아니겠지?" '와장창~' 슬슬 식당으로 이동하려는 찰나 3층인 이 곳의 창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산산조각 부서지며 곧이어 그 곳으로 몇몇의 인영들이 들어왔다. 이건 또 무슨 쇼야?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반짝 빛나는 유리조각들. 예쁘긴 하지만 이거 치우려면 석 달 열흘은 고생해야 하며 치우고 나도 몇 달간은 유리 조각에 계속 찔릴 것 같다. "여기야? 어딨어!" 약간 흥분한 듯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나는 그 침입자들을 볼 수가 있었다. 에릭.. 르엔.. 라피. 에릭의 오른쪽 팔에는 르엔이, 왼쪽 팔에는 라피가 매달려 이곳까지 용써서 온 듯 하다. 방 안을 둘러보고는 르엔은 자신의 옷자락을 털며 에릭의 팔에서 떨어졌고, 라피는 아직까지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상태에서 주위를 둘러보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혀엉~" "야! 너 납치 됐었다며!" ... 이야기가 그렇게 됐냐. 그나저나 에릭. 네가 이럴 처지가 아닐텐데. '쿠앙~' "황태자 전하! 괜찮으십니까!" 문을 거의 박살내다시피 해서 들어온 은빛 갑옷을 입은 인간들. 소위 기사라는 족속들이다. 에릭, 앞 뒤 생각하고 쳐들어 와야지 무작정 미련하게 쳐들어 오면 어쩌자는 거냐. 뒷처리는 네가 알아서 해라. "아아, 모두 물러가 있어라. 내 손님들이다." "하지만.." "내가 괜찮다는데 누가 뭐라고 해." 이 한 마디에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기사들은 나갔고, 나는 참으로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에릭을 바라보았다. "이봐, 걱정되서 온거야." "어련하시겠어." 변명아닌 변명을 에릭이 했지만 이미 나에게는 그것은 통하지 않는다. 하아, 이상한 구경까지 했더니 더욱더 배가 고프군. "이왕 온김에 우리 밥이나 먹고 가자." 드래곤의 일기 2부 (149) "여전히 이 식탁은 기름기가 줄줄흐르며 느끼한 식탁이군." "그 느끼하다는 식탁을 제일 잘 먹은게 누구였더라." "글쎄.. 누굴까?" 황태자가 은연중에 나를 말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흐흐흐, 저런 간단한 말에 넘어갈 내가 아니지. 서로를 으르렁대고 있었지만 그 말속에는 서로에 대한 반가움이 언뜻 묻어있었다. 아주 조금 알아챌 정도지만. "며칠간 이 곳에서 쉬다가 가도록 해." "싫어. 학교로 돌아 갈거야." 카네스가 언제 데리러 올지 모르니까. 괜히 다른 곳에 있다가 그 성격 더러운 놈이 쫑알대기 전에 기다리라고 한 곳에 있어야지. "내 말 좀 들어." "내가 왜? 야! 다 먹었으면 일어나!" 사실 나도 아직 다 먹지는 않았다. 하지만 여기 계속 있다가는 황태자 이 놈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알고 있기에 서둘러 이들을 챙겨서 가려고 하는 것이다. 에릭과 기타등등의 얼굴은 아직 다 못 먹었다고 말하고 있었고, 그것을 깡그리 무시한 나는 식당 문쪽으로 몸을 돌렸다. "가자." "거기 서." "또 뭐야?" 그는 내게 다가오더니 예전과 다른 모습인 차가운 눈으로 나를 응시하며 내 작은 손목을 움켜쥐었다. "그럼 내가 지금까지 널 기다린 건 뭐가 되는 거냐. 조금쯤은 내 입장을 생각해서라도 이곳에 남아주면 안돼?" "놀고 있네. 임마, 인상 펴. 안그래도 인상 더러운 놈이 찌푸리고 있으니, 기분 더럽잖아." "이게 말을 해도, 꼭!" "아무튼 난 간다. 빠이빠이~ 나 보고 싶으면 학교로 찾아와. 물론 도시락 싸가지고 오는 것 잊지 말구." 698년 3월 날짜 : 22일. 날씨 : 뭐, 별다를게 있겠냐. 맑지. 지금 나는 상당히 썰렁한 교실을 둘러보고 있었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차가운 눈으로 우리를, 아니 정확히는 나를 노.려.보.고. 있었고 영문을 모르는 나는 고스란히 그 눈길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움.. 형, 뭐해. 1교시 시작했어. 아웅~ 지루한 역사 시간이네." 뭐, 어차피 친해질 마음도 없는데 얘들이 나를 어떻게 보든 무슨 상관이냐. 난 내 할 일에만 충실하면 되는 거지. 이딴 생각을 하며 책상 서랍에 있는 책들을 꺼냈을 때 참 이런 생각은 편한 생각이란 걸 깨닳았다. 아마도 책상 속에 있던 책들이 걸레가 되었기 때문이리라. "형, 책이 왜 이래?" "낸들 아냐." 걸레가 된 책들을 한심하게 쳐다보는 나를 보고는 주위의 얘들이 킥킥대고 웃기 시작했다. 설마 저놈들 짓인가. 약간의 짜증에 일어서서 밖으로 나가려 했던 나는 곧이어 누군가의 발에 걸려 교실 바닥에 뒹굴었다. 무릎이 까졌는지 약간의 피가 베어나오고 있었으며, 고로 내 성질도 더러워졌다. "뭐야!" 내가 소리쳤지만 아무도 이에 대꾸하지 않고 그저 비웃거나 자기 할 일들을 하고 있었다. "형, 괜찮아?" 설마... 나 왕따가 된건가.. 드래곤의 일기 2부 (150) "자~ 모두 자리에 앉으세요. 수업 종 울린 지가 언젠데 아직도 그러고 있나요? 거기, 시크군과 라피군. 빨리 자리에 가서 앉도록 하세요." 그래. 이 정도에 넘어가면 이 위대한 시크리오프스님이 아니지. "죄송합니다." 살짝 선생에게 웃어준 뒤에 자리에 돌아가서 앉자, 라피가 자신의 책을 가운데에 놓고 같이 보자고 한다. 흐흐흐, 라피야. 너 같으면 지금 저 깨알 만한 글씨가 눈에 들어오겠냐. 지금 반 얘들이 내게 단체로 반항을 한단 말이다. 그날 나는 6교시 내내 어떻게 하면 이 수모를 갚아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다. '주르륵' 청소 시간이라는 것도 까먹고 열심히 고민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위쪽에서 차가운 기운이 느껴지더니 곧이어 투명한 액체가 내 얼굴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어머, 미안. 손이 미끄러져서." 어디서 통하지도 않는 개그를 하고 자빠졌냐! 넌 손이 미끄러진게 참 희한하게 미끄러지는 구나. 지금 네가 위에서 주전자를 가지고 내게 물을 떨어뜨리는 장면은 뭐지? 그냥 맞고만 있었다. 물이 몸에 닿는걸 끔찍히 싫어하긴 하지만 지금처럼 부글부글 끓고 있을 때는 열을 식히기 위해 맞는 것도 몸에 좋을 듯 해서 말이다. "야! 너 뭐야! 왜 형한테 이런 짓 해!" 계속 쏟아지면서 라피의 책을 적시기 시작했다. 이미 교복의 상의는 질퍽하게 젖어 있었고, 그럴수록 내 위에서 물을 뿌리는 계집애는 상당히 즐거운 듯이 웃고 있었다. 마지막 방울이 내 얼굴 위로 떨어지고 나는 최대한의 인내심을 발휘해서 그 계집애를 향해 싱긋 웃어주었다. "이제 다 했냐?" "재수 없어." 중얼거리는 계집애를 지나 교실 문을 나가려고 할 그 짧은 거리까지 나는 3번의 걸림돌과 비웃음을 받아야 했다. 제길, 대체 왜 이러는 거냐구. 열받은 내가 라피가 따라오든지 말든지 상관 않고 걸어가고 있는 목적지는 바로 화장실이다. 그래도 귀족 집안 자제들이 많이 다니는 이유인지, 구린 냄새가 나지는 않는 깨끗한 화장실이지만 화장실은 화장실이다. 아무리 깨끗해도 그게 안방이 될 수는 없는 거다. 흠흠.. 이야기가 이상한 곳으로 샜군. 어쨌든 나는 화장실 근처에 있는 양동이에 물을 가득 쏟아 부었다. 거의 낑낑대며 교실까지 그 큰 양동이를 끌고 가다시피 운반하고는 교실 안까지 들어왔다. 아까의 나를 염장지르던 계집애는 몇몇 아이들과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연신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고, 내가 다가갈 때까지 그 계집애는 그걸 눈치채지 못했다. '촤악~' "꺄아아아아아악~" 오호~ 비명소리 한번 우렁차고~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된 그 계집애는 무섭게 나를 노려봤지만, 그 정도 가지고 무서워할 내가 아니다. 나보다 훨씬 더 큰 그 계집애가 손을 치켜드는 것이 보였지만, 곧이어 그 손은 한 인간에 의해 저지 당했다. "무슨 짓이지?" 그 하얀 이마가 찡그려지며 내게 묻듯이 말하는 황태자. "난 잘못 없어." 결국에는 그 고귀하신 분이 여기까지 행차하셨군, 그래. 내팽개치듯이 계집애의 손을 놔버린 황태자는 물에 흠뻑 젖어 있는 나를 보고는 자신의 겉옷을 벗어 감싸주었다. "이게 뭐냐, 칠칠맞게." "낸들 이러고 다니고 싶어서 다니냐." "이야기 좀 하자." "내가 너하고 뭔들 못하겠니." 푸른 잔디가 끝없이 깔려져 있는 이 곳은 일명 '휴게실' 이라는 곳이다. 뭐, 말로는 자연과의 동화를 위해 이런 곳에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눈요기 감으로 만든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곳이다. "쟤네들이 너한테 왜 그러냐?" "내가 알면 이렇게 억울하겠냐?" "그렇군. 그럼 이제 어떻게 할거냐. 교장에게 반 바꿔 달라고 할까?" "네 도움 따위는 필요 없어. 흐흐흐.. 한번 받은 건 배로 되돌려 준다." "쯧.. 오죽 못났으면 왕따를 당하겠어." "우씨, 너 말 똑바로 해! 내가 왕따를 당하는게 아니라 그 놈들을 내가 왕따시키는 거야!" "어련하시겠어." 어깨를 으쓱이며 지루하다는 표정을 짓는 황태자를 일어서서 이 가볍고 하늘하늘하고 조그마한 몸으로 죽지 않을 정도로만 밟아준 다음 씩씩거리며 교실로 향하고 있었다. 교실에 혼자 둔 라피가 걱정스러워서였다. "호호호~" "헤헤~" 교실 밖까지 들려오는 떠들썩한 소리에 심히 기분이 더러워진 나는 일부러 교실 문을 활짝 열며 들어갔다. "헤헤~ 누나 그래서요~" 저 녀석 뭐냐. 지금 나는 내 시력 좋은 두 눈을 의심하고 있었다. 라피 녀석이 실실대며 나를 그렇게 괴롭히던 놈들과 히히덕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놈, 생각이 있는 거야? 감히 내 적(어느새 나는 이들을 적으로 간주했다.)들과 같이 실실대며 웃어? "어? 형~" 라피의 부름에 모든 시선이 내게로 쏠렸다. 아까의 그 히히덕대던 모습들은 어디 갔는지 모두들 내가 미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돌변하는 건 왜 일까. 그들에게서 내게로 뛰어오는 라피는 잠시 다리를 삐끗해 비틀거렸지만, 중심을 잡고는 다시 내게로 달려왔다. "뭐하고 있었냐?" "응. 저기 있는 누나들이랑 얘기했어." 사실 우리는 나이가 조금 어린 편이다. 이 학교는 입학할 나이 빼고는 나이 제한을 따지지 않는다. 한 마디로 실력대로 반에 넣는단 말이다. 이 곳은 중급생들의 반으로, 그 교장이라는 드래곤이 다짜고짜 임시로 집어넣은 반이다. "그래, 잘했다." 뭐, 라피까지 건드리지 않으니 다행이지. 아까 내게서 물벼락을 맞은 계집애가 나를 노려보고 있기에 나도 따라 노려봐 주니 '흥!' 하는 콧바람 소리를 내며 고개를 돌려버린다. 아참, 그런데 왜 쟤들이 나를 싫어하는 거지? 드래곤의 일기 2부 (151) 698년 3월 날짜 : 29일 날씨 : 기분이 더러운 만큼 날씨도 더럽다. "이 생기다 만게 어디서 대들어!" "뭐야? 땅꼬마 주제에!" '으르렁' 세상에 황태자가 눈앞에 안보여 살맛 난다 했더니 이제는 이 것들이 말썽이다. 대체 왜 내 주위에는 이런 놈들만 꼬이는 거냐아아아아~ 주전자 사건이 있은 후, 반 얘들이라는 것들이 이제는 노골적으로 대놓고 개기기 시작했다는 말씀이다. 라피는 처음에는 말리더니 이제는 조금 재미가 붙은 듯 제 3자의 입장에서 괘씸하게도 관람을 하고 있었고, 나는 차라리 그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내가 너보다 먹은게 얼만데!" "치사하게 이제는 나이 가지고 대드냐?" "뭐야?" 어찌보면 유치하다 싶은 싸움이지만 지금 이 싸움의 본인들인 우리는 상당히 진지하게 이 싸움에 임하고 있다. 야! 나이하면 니가 나 따라올 수 있을 것 같아! 내 나이가 7천은 더먹었다!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말했다가는 정말 미친놈 취급받을게 뻔하기 때문에 속으로만 끙끙거렸다. "저리 안가? 수업 시작했어." "너 나중에 보자." 내 앞에서 으르렁거리며 사라지는 계집애. 우후, 이걸로 1라운드는 끝인가. 벌써 며칠째냐. 처음에는 참을만 하더니 계속 나날이 싸우는 내용이 업그레이드되자 자꾸 히스테리를 부리게 된다. 정말 드래곤 미치는건 시간문제군. "형, 어떻게 할거야?" "어떻게 하긴. 조금 있다가 오면 받아줘야지." "흐음.." 볼을 크게 부풀리고 뚱한 표정을 짓는 라피의 머리를 비벼주며 그제 새로 산 교과서를 펼쳐들었다. 에구, 이거 다 아는 내용인데. 내가 설마 이 나이에 이걸 배우고 있을 줄 그 누가 알았겠냐. 지금 그 교장이 마련해준 기숙사 방안에 에릭과 르엔은 조용히 한 마디로 짱박혀 있다. 가끔 심심하면 쇼핑이나 어딜 돌아다니라고 해도 둘은 묵묵부답이다. 아주 천생연분으로 잘 어울린다고 하면 맞아죽겠지? 흠, 밥은 제대로 챙겨먹나 몰라. "크아아악! 기분 더러워! 대체 내게 이러는 이유가 뭐냐!" 결국에는.. 물어봐 버렸다. 진짜 내가 왕따를 당해야 하는 이유 좀 알고 당하자. "그것도 몰랐니? 당연하잖아. 네가 칸님을 빼앗아가서 그런다구." ... 저건 또 무슨 말이냐? "우리 같은 미녀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칸님이 너 같은 아이에게 눈을 돌리다니. 정말 인정할 수 없어." 참.. 10대 중반이 다 큰 처녀라고 하면 퍽이나 믿겠다. 정말 너네들을 여자로 본다면 그 인간은 로리타 변태이거나(아참, 칸이라는 놈. 로리타 변태였지.) 너희들의 얼굴이 너무 삭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가장 하고 싶은 말.. "내.가. 어.때.서?" 아무리 얼굴이 드래곤답지 않게 지극히 평범에서 조금 낳은 정도라지만, 감히 칸과 비교를 당하다니. 지금 이 몸은 심히 기분이 나쁘다. "어때서라고 묻는 거니? 어머~ 이 지극히 평범한 얼굴이 우리처럼 꽃다운 얼굴과 비교되다니. 머리색이 조금 특이하긴 하지만 플러스 점수는 아냐. 그리고, 그 우리를 깔보는 듯한 재수 없는 태도. 마지막으로, 넌 남자잖아?" 마지막 이유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언제는 키스하라고 떠들어대던 것들이 어디서 저런걸 따져? "다 말했냐." "아니, 아직 더 남아있어." "오호~ 그래? 계속 해봐." 마음이 넓은 나는 팔짱을 끼고 살짝 미소를 날려주며, 자리에 앉았다. 처음 내가 이 학교에 왔을 때 내게 발을 걸었던 계집애가 혼자 신이나 신나게 떠들고 있었고, 나머지 얘들은 그저 동의한다는 표정만을 짓고 있었다. 아아, 지루하군. 이유나 좀 들어보려 했더니, 무슨 이유들이 저렇게 많아? 헐, 라피 녀석. 결국엔 못견디고 자버리는군. 드래곤의 일기 2부 (152) "....... 이게 우리가 너를 괴롭히는 이유.. 야!!" 앙칼지게 째지는 목소리에 부시시한 머리를 다듬고, 눈을 비비며 일어나보니, 상당히 화가난 계집애가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흐음.. 점심 시간이 2시간이니.. 내가 잠든지 1시간이 지났군. 헐.. 그럼 지금까지 말을 했다는 건가? 존경스러워. "하암.. 끝났냐?" "그래! 너 정말 재수 없구나. 사람이 말을 하고 있는데 경청하지는 못할망정.." 또 설교 시작이네. 자아, 이제 곧 나를 구원하려 구원의 기사가 등장할텐데.. "자아~ 여러분! 즐거운 5교시를 시작하겠어요~ 자리에 앉아 주세요~" 역시 우리의 순둥이 담임 선생. 여전히 그 멍청한 웃음을 입가에 머금고는 손에 교과서를 들고 나타났다. 뭐, 매일 있는 일이니 만큼 교탁까지 오다가 자신의 발에 꼬여 두 서너 번 넘어지고 교과서 를 잘못 가지고 와서 학생의 교과서를 빌리기도 하지만, 지금은 이 계집애의 잔소리에서 구 해줄 기사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음, 아이들과 잘 적응을 못하나 보구나." 저건 또 어디서 들었지? 수업이 끝나자마자 순둥이 선생은 나와 라피를 잠시 보자고 하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이런 말을 꺼냈다. 적... 응은 잘 하고 있는데. "우리형이 적응 얼마나 잘하는 데요." 눈치 빠르게 라피가 선생에게 과장된 몸짓을 보이며 말했고, 딱히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던 나는 버릇없게도 그저 고개만 끄덕여 주었다. "그래? 그럼 무슨 일이 있거든 선생님께 말하렴." 조심스럽게 내 의사를 묻고는 서둘러 그 자리를 빠져나가는 선생을 보며, 나도 모르게 슬쩍 웃음이 나왔다. 무의식적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니, 회색의 먹구름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곧 비가 오려나 보다. 698년 3월 날짜 : 30일 날씨 : 아직도 창 밖으로는 비가 내리고 있다. "안일어 나냐?" 뭔가 악몽을 꾸고 있었던 것 같다. 굉장히 슬프고도, 차갑고, 가슴이 매우 아픈 그런 꿈. 아마도 울었는지 내 두 눈가가 촉촉히 젖어있었다. 흠, 꿈꾸면서 울다니. 내가 아닌 것 같군. 가위까지 눌렸던 것 같은데, 어쨌든 제때 깨워준 에릭에게 고마워해야겠다. 아직까지 일어나면서 놀래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 이 방에는 익숙해 졌다. 이 방을 설계한 사람은 붉은 색을 좋아했는지, 거의 모든 가구와 천들이 붉은 색이다. 기숙사라고 하는데, 기숙사에서도 황족이나 왕족만이 사용할 수 있는 방이라고 들었다. 척 봐도, '어~ 이거 값이 꽤 나가겠는데?' 하는 물건들만 들여다 놨는지, 방은 한 마디로 삐 까번쩍했다. 가구들이 하나같이 붉은 빛의 띄고 있다는게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의외로 화려하고 예쁜 방이었다. 침대는 두 개가 있었고, 르엔과 라피가 한 침대를. 그리고 나와 에릭이 다른 하나의 침대에 서 자기로 했다. 침대의 시트마저 붉은 빛이어서 누워있으면 피비린내가 나는 것 같은 착각도 들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착각은 착각일 뿐이다. 요즘들어 가위에 자주 눌린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갑작스럽게 잠자리가 바뀌고, 학교라는 곳에서 생활하니 그러 는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내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하나 같이 대단하거나, 아니면 엄청 나게 유치한 일들뿐이니까. "열 있네." 차가운 에릭의 손이 머리를 만져주자, 시원한 느낌에 나도 모르게 '흐응~'하고 콧소리를 흘 렸다. "그러게 어제 비 쫄딱 맞고 들어올 때부터 알아봤다." 르엔이 막 욕실에서 라피를 씻겨주고, 나오며 한다는 소리가 저거다. 하지만 나는 이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차가운 에릭의 뺨에 얼굴을 계속 부빗거 렸다. 흐응~ 시원해서 기분이 좋다. 입에서 자꾸 뜨거운 김이 나오고, 어지럽고 나른하긴 하지만 왠지 자꾸 차가운 것만을 찾아 간다. 마족은 다 이렇게 시원한가? "준비해. 학교 안갈 거냐?" "... 응.. 가야지." 그 말을 하면서까지 나는 에릭의 얼굴에서 내 얼굴을 떼지 않았다. "그거 누가 보면 상당히 야한 자세라는거 아냐? 떨어져. 그러니까 저 조용하고 카리스마적 인 에릭이 로리타 변태 같잖 아." '부비부비' 무시하고 계속 얼굴을 부빗거리던 나는 왠지 모르게 에릭의 얼굴이 상당히 따뜻해 졌다는게 느껴졌다. 잠시 얼굴을 떼고 쳐다보니 거의 잘 익은 토마토처럼 시뻘게진 에릭이 나와 눈이 마주치는 걸 거부하며 고개를 돌렸다. 흐음, 얘도 열 있나? "안씻어?" "응." 약간 높은 침대에서 폴짝 뛰어내려, 약간은 먼 거리에 있는 욕실로 가려고 걸음을 옮기는 순간 눈앞이 빙빙 돌더니 나는 붉은 양탄자가 곱게 깔려있는 바닥에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온통 하늘이 붉게 변한 그 아래에서 그가 잔인하게 웃고 있었다. 두 손 가득 피가 묻어있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피식 웃음을 짓던 그는 내가 자신을 바라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는지 나를 돌아보았다. 핏빛의 붉은 눈동자. 예전에는 아름다운 블루 빛 눈동자가 이제는 광기에 젖은 눈동자가 됐다. 그가 자신에게 오라는 듯이 두 팔을 벌렸지만, 나는 서서히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그는 강했고.. 지금의 나는 약했다. 일순간 그의 잔인한 웃음이 사라지고 얼굴에 슬픈 빛이 감돈 것처럼 보였다면, 내가 잘못 본 것일까. 천천히 내밀어진 자신의 손을 떨구며, 그는 자신의 두 손을 내려다 봤다. - 크아아아악!!!!!! 붉은 핏빛의 하늘을 바라보며 절규하는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귀를 틀어막았다. 아무리 꼭꼭 틀어막아도, 그의 비명소리는 내 귀를 찢어버리는 듯이 파고들었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 수밖에 없었다. 사실... 지금 누구보다 아픈건 내가 아니라... 그가 아닐까... "헉헉헉.." 가슴을 찢는 듯한 통증에 벌떡 일어난 나는 내 머리에서 떨어지는 물수건을 보고는 정신을 차렸다. 걱정스러운 얼굴의 라피가 옆에서 내 손을 붙잡고 있었고, 에릭은 다른 물수건으로 갈아주 려는 참이었는지, 손에는 차가워 보이는 물수건이 들려있었다. 옆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는지 르엔은 강제로 다시 나를 침대로 눕히며 입을 열었다. "악몽이라도 꿨어?" "응." 식은땀으로 축축해진 잠옷이 거추장스럽다. "샤워할래." "그래." 침대 아래로 내려가자 아까처럼 어지러웠지만 그래도 좀 견딜만 했다.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욕실에 들어가 그냥 바닥에 주저앉았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 왔고, 지금 나는 정상적인 사고방식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세면대에 차가운 물이 가득 차오자 나는 무의식중에 세면대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차가운 물의 느낌이 얼굴 구석구석으로 번져갔고, 호흡곤란이 생기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죽고 싶지 않다는 단순한 욕망에 고개를 들어보니 얼굴이 팅팅 부어있는 못생긴 꼬 마가 거울을 보고 있었다. 은빛 머리인걸 보니 이게 나군. 안그래도 평범한 얼굴, 아주 다 찌그러졌네. 역시 사람은 한 번 아프면 얼굴이 반쪽이 된다는데 그게 사실인가 보다. 아까 식은땀에 축축히 젖은 잠옷을 입고 있으니 곧이어 몸이 으슬으슬 떨려오기 시작했고, 얼른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은 나는 그 곳에 옷도 벗지 않고 서둘러 들어가 쪼그려 앉았다. "추워." 뜨거운 기운이 느껴질만한 온도임에도 내 몸은 자꾸 춥다고 보채고 있었다.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난.. 아직 체온을 조절할 수 있는 성룡이 아니라구... 698년 4월. 날짜 : 1일. 날씨 : 주룩주룩. 얼마동안 잤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내 앞에서 무시 무시한 얼굴을 하고 있는 이들의 얼굴을 보면 엄청나게 잤나 보다. "욕조에 익사해서 죽는 드래곤을 살다살다 그제 처음 만날 뻔했다." "......" "숨막히지도 않디? 어떻게 그렇게 그냥 자냐? 흠.. 넌 지금 잔게 아니라 기절했다고 말하고 싶은 거겠지?" "......" "자~알 하는 짓이다." "......"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왜냐. 다 맞는 말이니까. 그냥 멀뚱멀뚱 이들의 잔소리를 받아주고만 있었다. 이봐들, 난 환자라구. 그렇게 큰 소리로 떠들면 머릿속이 윙윙거리면서 터질 것 같다구. "이틀동안 열도 안내리지. 그렇다고 뭘 먹으려고 정신을 차리는 것도 아니지. 의사 말로는 곧 깨어난다고 했는데, 이건 원체 깨어날 기미도 안보이니, 원." "미안.." "미안하다는 걸 아는 놈이 걱정이나 시키냐?" "내가 얼마동안 잤지?" "음.. 이틀 정도." 별로 많이 잔 것도 아닌데, 왠지 엄청난 시간이 지나가버린 것 같았다. "라피는?" "학교 갔지, 어딜 갔겠어? 안떨어 지려는 놈 억지로 붙잡고, 교실까지 데려다 주니 그 자리 에서 엉엉 울어버린다." 그럴 만도 하지. "배고파. 밥 줘." "밥 달라는 소리가 아주 당연하게 나오는 구나. 뻔뻔한 것 같으니라고." "응." 배고픈데 너는 그냥 참고 있으랴? 속이 자꾸 쓰리다구. 창 밖을 바라보니, 빗줄기가 세차게 창문을 내려치고 있었다. "아직도 비와?" "응. 얼마동안 계속 올거래." 나는 비오는 날이 싫다. 방문이 열리고, 르엔이 간단한 음식 몇 가지를 가지고 들어왔다. 향긋한 야채 수프 냄새가 금새 방안으로 퍼졌고, 르엔이 점점 다가올수록 풋풋한 과일 향내 가 더욱 진해졌다. 불만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으나, 차마 내가 환자라는 사실을 감안했는지 내게 조심스럽게 쟁반을 내려준다. "에게? 이게 뭐야? 수프뿐이잖아?" "그럼 빈속에 고기 먹으리? 속 쓰려 죽을래? 잔말 말고 빨리 먹기나 해. 이게 어디서 기껏 가져다주니까 투정이야? 먹기 싫어?" "아, 아니. 먹을래." 울며 겨자 먹기로 이 몇 숟가락 되지 않는 수프를 몇번 떠먹었다. 둘은 나를 체하게 하기로 작정했는지 내가 먹는 모습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고, 먹다가 도저 히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뭐야, 먹는 것 처음 봐? 왜 이렇게 빤히 쳐다봐?" "먹기나 해." "니가 먹어봐! 그렇게 빤히 쳐다보고 있으면 잘 넘어가던 수프가 기도로 넘어가 버린다구!" 그제 서야 슬쩍 둘은 창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겨우겨우 수프를 다 먹은 나는 옆에 놓여져 있는 사과를 집어들고는 아삭하고 베어 물었다. 사과 특유의 풋풋함과 향긋한 향이 유혹하듯 타액과 함께 입안 곳곳으로 퍼졌고, 행복함에 나는 잠시 웃음을 지었다. 얼마 만에 먹어보는 사과지? "그러니까, 내가 기절해 있는 동안 반 애들이 전부 우루루 몰려와서 미안하다고 사과하고는 그리고 난 후에 교장이 와서 몸조리 잘하라고 하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황태자와 그의 형제 들이 와서 애도(?)를 표하고 갔다고?" "황태잔가 뭔가. 여튼 그 놈들 안간다고 하는거 거의 반 강제로 쫓아 냈다." "오랜만에 이쁜 짓 했구나, 너?" "너한테 칭찬 들을려고 한 짓 아냐." "그래그래. 짜식, 쑥쓰러워 하긴." "아니라니까!" 그나저나 그 계집애들은 왕따 시킬 때는 언제고 와서 또 미안하다고 말하고 가는 거야? 내가 기절 한 건 거의가 니네 탓이라는 생각이 든거냐! 하긴, 요즘 그것들 땜에 정신이 황폐해지긴 했지. "있잖아. 내 배가 지금 몹시 고픈데, 먹을 것 좀 더 없을까?" "도.대.체.가 뱃속에 뭐가 들어앉은 거냐! 오늘에야말로 내가 해부를 해볼테다!" 별 일 아닌걸 가지고 어디서 났는지, 식칼을 들고 덤비는 르엔을 피해 슬쩍 에릭의 뒤에 가 서 섰다. 거참, 성격 한 번 더럽네.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자꾸 옆으로 교묘하게 찔러 들어오는 칼을 피해, 나는 잠시 르엔의 무 식함에 대해 생각했다. (사실, 나도 뒤지지는 않는다.) 이 얘는 내가 일족의 고귀한 헤츨링이라는 자각이 있는 걸까. 흠흠, 이 아이야말로 뇌나 간을 해부해볼 가치가 있겠군. 뇌가 어떻게 됐길래, 이리도 건방지고 재수 없다는 말인가. 그리고 간이 보통 인간보다 얼마 나 크기에 이렇게 겁도 없이 주제넘게 나선단 말인가. "다시는 그 주둥이 먹지도 못하게 바늘로 봉해주겠다!" 입도 험하지. 솔직히 내가 무슨 천벌 받을 말이라도 했단 말인가. 헐, 르엔 저 녀석 뭔가가 꼬이는 일이 있었던 모양이군. 오늘은 내가 아파서 참는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솔직히 대들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저렇게 칼 들고 칼춤 추는 것 보니까,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에릭, 쟤 오늘따라 왜 저러냐?" "몰라. 한 달에 한번 있는 그날인가 보지." "... 쟤... 여자였냐?" "몰랐냐?" 그러고 보니.. 르엔을 저번에 만났을 때 치마를 입고 있었던 것 같기도.. 경황이 없어서 잘 살펴보지를 못했었다. 오호~ 여자였단 말이지? 흠, 신기해. 저 말투, 저 얼굴, 그리고 저 일자형의 몸매. 어딜 봐서 저게 여자지? 어느새 인간들은 여자라는 개념을 잊어버린 건가. "으음.. 아무튼 좀 말려봐라." "그런 신기한 재주 따위는 없다. 뭐, 원한다면 영원히 잠들게 만들어 버리는 수도 있지만." 에릭은 너무 지나친게 흠이다. 다른 인간들이 저런 말을 했다면 농담으로 웃고 넘어갈 말이지만 그 말을 에릭이라는 놈이 했다면 그건 실제로 실현될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지금이 몇 시야?" "음.. 오후 4시쯤?" "하루가 허무하게 지나가는군." 698년 4월 날짜 : 2일 날씨 : 비온다. 몸이 아프다고 학교를 가지 말라고 이들이 하도 보채니, 나는 이 곳에 남아있을 수밖에 없 다. 학교 안가니까 좋긴 한데, 심심하다. 르엔은 아침부터 어딜 나갔는지 그림자도 보기 힘들었고, 라피는 학교, 그리고 에릭은 묵묵 히 책만 읽고 있었다. 저 놈에게 말 붙이면 내가 정말 죽을 때 된거지. '쿠웅~' 그 넓디 넓은 침대가 끝까지 이어져 있는 줄 알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굴러다니기만 했던 나는 꽤 높은 침대 높이에서 민망하게도 쿵~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에구구.." 그래도 쪽팔린 나머지 테이블에 앉아 독서를 하고 있는 에릭을 쳐다보니, 에릭은 참으로 한 심하고 멍청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왠지, 내게 뭘 기대하는걸 포기한다는 뜻인 것 같군. 바닥에 바로 헤딩한 머리를 어루만지며, 다시 침대로 올라가기도 뭐해서, 그냥 창문 쪽으로 다가갔다. 여전히 비는 세차게 쏟아지고 있었고, 비 맞을 필요 없는 나는 구경하는 것에 정신이 팔렸 다. 솔직히 별로 구경이랄 것도 없었지만 말이다. 커다란 창문에 거의 찰싹 붙어있다시피 하자, 유리의 차가움이 내 몸에 깊숙이 베였고, 아직 몸이 좋지 않은 나는 어쩔 수 없이 창문에서 떨어졌다. "심심하면 이리 와서 책이나 봐." 음, 나야 뭐 별로 보고 싶진 않지만 니가 그렇게 원하니. 후후후. "뭐 보고 있어?" "그냥. 대륙의 정세 정도.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 할거 아냐." "오호~ 너도 생각하고 사는 동물이었구나." "......" 에릭의 얼굴을 보니, 내 말이 욕인가 아닌가로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욕이었어, 임마. "음, 왜 책들이 다 이상한 것들 뿐이야?" "읽어두면 다 도움이 돼." "난 로맨스나, 무협이 좋은데." '탁' 결국에는 나의 말에 무시무시한 얼굴을 한 에릭은 책을 덮어버렸다. "대체 내게 불만 없는게 뭐냐?" 이봐, 그렇게 직접적으로 물으면 찔린다구. "보기 싫으면 보지마. 됐지?" 그리고는 다시 책을 펴서 시선을 돌리는 에릭을 바라보며 정말 냉혈한 같은 놈이라고 속으 로 중얼거렸다. 흐음, 심심한데 밖이나 나가볼까. 뭐, 기숙사 안에서만 돌아다니는 건데 별 일이야 나겠어? "에릭~ 나 놀러갔다온다~ 점심때 돌아올게~" "야, 너..." 에릭이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방을 나와버린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내가 나간 뒤에 에릭은 혼자서 중얼거리더니 될대로 되라는 듯이 다시 손에 들고 있던 책을 펴들었다. "잠옷은 갈아입고 나가야 될 것 아냐." 푸른빛에 가까운 카펫이 길게 깔려있는 복도를 보며, 새삼 고급스럽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내 발이 맨발인데도, 이 카펫은 발자국 소리를 모두 지워주었다. 내가 알아본 바로는 방은 총 6개가 있었다. 오른쪽 3개, 왼쪽 3개. 우리는 왼쪽 가장 끝 방이었다. 뭐, 방이 얼마 없어서 좋군. 내 방 까지 찾아갈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게 뭐란 말인가. 아무튼 모두 학교 가고 텅 빈 이 시간에는 남의 방에도 들어갈 수 있다는 말. 흐흐흐, 어떻게 생겼나 구경만 하는 건데, 설마 누가 뭐라고 하겠어? 내 바로 옆방에 있는 손잡이를 돌려보니 손잡이가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고 잠시 주 위에 누가 있나 살펴봤다. 이 쪽팔린 장면을 누가 보면 안돼지, 암. 그러고 보니 모두 문단속하고 학교 가는 구나. 쳇, 그래도 믿져야 본전인 듯 하나하나 다 손잡이를 돌리고 다니니, 우리 방과 마주보는 오 른쪽 끝방 손잡이가 스르르 돌아가는게 느껴졌다. 그럼, 그렇지. 덜렁대는 누군가가 필시 문단속을 하고 가지 않은게 틀림없었다. 처음 들어가 보는 이 방은 우리 방과는 아주 대조적으로 보든 것이 블랙 계통으로 인테리어 가 되어있었다. 블랙이면 어둡고 음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이 곳은 뭐라고 해야 하나. 왠지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풍긴다. 블랙인데도, 이 정도로 밝은 분위기를 낼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새삼 이 곳을 디자인한 인테 리어에게 존경심이 무한히 느껴진다. 방 구조물은 우리 방과 별반 다른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전체적인 색깔이 우리는 레드 계통이고, 여기는 블랙 계통이랄까? 아무튼 나는 우리 방에라도 온 것처럼 편하게 그 곳에서 돌아다닐 수가 있었다. '쿠앙~' 갑자기 서재로 보이는 곳에서 엄청난 굉음이 들려왔다. 역시 남에 방이기에 화들짝 놀란 나는 급히 나가려 했으나, 그래도 궁금한건 궁금한거기에 살짝 서재로 다가가 문을 열어봤다. 열자마자 뭉게뭉게 나오는 검은 연기들. "콜록콜록~" 매케한 연기 속에서 어렴풋이 보이는 한 인영이 바닥에 주저앉아 콜록거리며 기침을 해대고 있었다. 나도 상당히 눈이 매웠기에 몇 번 눈을 비비고는 어느 정도 연기가 빠져나가자 이 방의 주 인으로 보이는 그 인영에게 다가갔다. "아웅~ 또 실패야?" 여기저기 검댕이가 묻어 더러워진 얼굴에, 얼굴의 반을 가릴정도로 커다랗고 까만 뿔테 안 경을 쓴 여자 애는 투정을 부리듯이 자신의 손에 들려져있던 공책을 멀리 내던져 버렸다. 검은 카펫은 그을려져있다고 해도 색이 워낙 까매서 구별을 잘 못하겠고, 이 아이는 아주 이 방과 동화되려는 생각인지 옷도 시커먼 옷을 입고 있었다. "앙? 처음 보는 애네? 누구야?" 나이는 르엔과 비슷한 또래인 것 같았다. 내가 그녀를 관찰하고 있느라 멍해 있을 때 이름 모를 그녀는 내 앞에서 자신의 손을 흔들 고 있었다. "음?" "너 누구냐구?" "아아, 그.. 그냥 이상한 소리가 들리길래 들어와봤어요." "그렇구.. 앙? 여기 방음 시설 잘되는 곳인데?" "음.. 그러니까.." 절대 여기 도둑고양이처럼 몰래 사뿐사뿐 들어왔다고는 말 못해! "저하, 점심을 가지고.. 저하!" 쟁반에 이것저것 음식을 가지고 오던 여자 하나가 바닥에 쓰러져(?)있는 그녀를 보고는 놀 래서 쟁반을 내팽개치고 달려와서 그녀를 일으켰다. 다행이다. 어쨌든 저 여자의 등장으로 그녀는 내게서 시선을 돌렸다. "괜찮으십니까!" "난 괜찮으니 제발 조용히좀 해, 실." 실이라고 불린 여자는 그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구급상자니 어쩌니 하며 부산을 떨고 돌아다녔다. 덕분에 찬밥신세가 된 나는 그냥 그 자리에 넋놓고 있다가 곧이어 그녀가 침대에 앉아 내게 손짓한다는 것을 깨닫고는 그녀에게 걸어갔다. "귀여운 아이구나. 이름이 뭐야?" "시크." "시크? 성은?" "없어요." "뭐, 성이란 것도 꼭 필요하진 않아. 뭐, 머릿속이 텅 빈 바보 같은 것들이 어떻게 하면 더 위대해 보일까 해서 생각해 논게 겨우 이름 뒤에 귀찮게 몇 자 더 붙이는 것뿐이거든." 왠지 성격이 굉장히 호탕한 것 같았다. "음.. 그런데 이 방에는 어떻게 들어왔니?" "... 문이 열렸길래요." "그래그래, 잘했다. 실, 그거 다 치웠으면 다시 음식 좀 갖다 줘. 여기 이 꼬마손님도 먹을 수 있도록 2인분으로." "네." 대충 서재를 정리한 실이 아까 엎지른 음식을 다시 가지러 아래로 내려간 사이 그녀는 자꾸 내 머리가 신기한지 손으로 장난을 치면서 키득거리는 웃음을 지었다. "너 보통 여자 애들보다 머릿결이 더 가늘구나? 흐음, 아직 어려서 그런가?" "그래요? 음, 누나는 무슨 일을 했길래 방이 저 모양이에요?" "마법 실험." "학교에서 안해요?" "응. 보다시피 감기에 걸려서 말야. 며칠동안 쉬고 있어." 겉보기에는 다 낳은 것처럼 보인다. 설마, 학교 가기 싫어서 이러는 건 아닐 테지? "아, 그런데 어쩌다가 이곳까지 올라오게 됐니? 음.. 보아하니 대 귀족이나 황족은 아닌 것 같은데." "그냥 조금 사정이 생겨서 이 방 바로 앞방에서 살고 있어요." "호오~ 그 깐깐한 교장이 그 방을 내줬단 말야? 내가 아무리 떼를 써도 눈 하나 꿈쩍 안하 던 인간이." 교장을 마치 잘 알고 있는 듯 말하는 그녀가 참 재미있게 보였다. 호탕한 성격에 다혈질? "아참, 내 이름은 그냥 지나라고 불러 줘. 그게 내 애칭이니까." "네." 그리고서 지나는 벌떡 일어나더니 아까의 그 폭발이 일어났던 서재로 들어가 공책을 가지고 나왔다. "뭐에요?" "음, 어떻게 하면 가장 이상적인 파이어 볼을 만들 수 있나 연구중이야." 그냥 만들며 되지 않나? "저도 보면 안돼요?" "안될 것도 없지. 자아~ 이론상으로는 이렇게 마나 배치를 하는게 가장 이상적인 파이어 볼 을 만들 수 있다고 나와있어. 하지만 내가 아까 그렇게 했을 때는 실패했거든? 그 이유를 찾아야돼. 아아, 또 며칠 밤을 꼴딱 새게 생겼군." "아뇨, 이쪽 계산이 잘못됐어요. 이걸 이것과 같이 계산해 주면 이렇게 나오거든요? 그럼 그 걸 다시 소수로 분해해서요." 그래도 내가 마법의 종족 드래곤이 아니냐. 한 때는 마법에 대한 공부도 조금 하고 책까지 냈던 나다. 이 정도쯤이야. 흠흠, 어려운 마법은 아직 머릿속에서 정리가 안됐지만, 가장 초급인 파이어 볼이라면 어떻 게 계산하는지 정도는 안다. 마법사는 역시 똑똑해야 한다니까. "너 굉장하구나. 나도 천재라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너 만큼은 아닌 것 같애." "네?" "너 굉장하다구." 흠흠, 나야 원래 한 굉장하지. "저하, 식사를 가져왔습니다." "고마워, 실. 배도 고파오고 이제 음식이나 먹을까?" 갑자기 음식을 보니, 에릭이 생각난다. 점심 먹기 전에 돌아온다고 했는데. "아, 누나. 저 가봐야 될 것 같아요. 지금 누가 기다리고 있거든요." "어머? 그럼 이 음식들은.." "저기 저 누나 주세요." 실을 가리키며 말하고는 나는 서둘러 에릭이 기다리는 내 방으로 돌아왔다. 문을 열자마자 들려오는 소리가.. "잠옷입고 참 잘도 돌아다니는 구나. 네 낯짝은 얼마나 두껍길래 부끄러움이라는 단어를 모 르는 거냐." 그제 서야 내가 아주아주 편하고 야시시한 붉은 색 잠옷을 입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나도 모르게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졌다. "르엔은?" "몰라. 밥 먹고 오려나 보지." "밥 줘." "......" 698년 4월 날짜 : 4일 날씨 : 아직도 비가 내린다. 대체 언제 그칠 런지.. "음.. 그러니까 이걸 이렇게 계산해야 된다, 이거지?" 몸이 다 낳았는데도 나는 등.교.거.부.를 하면서 매일 지나의 방에 놀러와 마법에 관한 이야 기를 나누고 있었다. 대부분 지나가 내게서 배우는 쪽이었고, 당연히 나는 가르치는 쪽이었다. "그런데 넌 어떻게 이 많은걸 다 알아?" 정곡을 찔린 나는 움찔했지만 곧이어 얼굴에 영업용 미소를 띄웠다. "저도 자세히는 몰라요. 몇 가지 초보 마법만 아는 걸요." "흐음..." "제 주위에 마법에 상당히 조예가 깊으신 선생님이 계셔서 어깨 너머로 배웠어요." "흐음..." "조.. 조금 전수 받기도 했죠." 그 검은 뿔테안경 뒤로 그제 서야 지나의 웃는 눈이 보였고, 나는 안심했다. 며칠 동안 지나와 지내다 보니 이제 그녀의 행동패턴은 거의 알고 있는 참이었다. 지나는 황태자의 먼 친척 뻘 되는 아이라고 한다. 어째 내 주위에 있는 인간들은 모두 황태자와 관계 있는 사람이냐? 아무튼 명색이 황족이라서 좋은 대우는 받고 있지만, 그래도 눈치가 보이는 건 어쩔 수 없 다고 한다. "비가 너무 많이 오네? 안그래?" "네. 벌써 며칠 째죠?" "여름도 아닌데. 설마 저게 장마일 리는 없겠지?" "여름 아니라면서요." "응." 벌써 며칠째 쏟아지는 데도 멈출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게 계속 쏟아지고 있었고, 하늘에 구멍이라도 났는지 정말 이 많은 비 가 어디서 내리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다행이 이 학교는 산 위에 있어서 그런지 홍수가 나지는 않았지만, 아래쪽에 사는 사람들은 홍수가 나도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고 보면 참 독한 학교야. 이 정도인데도 학생들을 가르치다니. 며칠 쉬게 해주면 안되나? "이상한 일이야. 그렇지?" "나중에 생각하고 빨리 이 문제나 풀죠." "그래." 나조차도 바라만 봐도 머리 아픈 수학문제를 가지고 우리가 끙끙대는 동안, 빗줄기는 더 거 세어지면 거세어졌지 수그러들 생각은 안하고 걱정스럽게 쫙쫙 내리고 있었다. "이유를 묻는 거냐?" 저녁때쯤에 우리 방으로 돌아와 비가 너무 많이 온다고 걱정을 하니 느닷없이 르엔이 내게 묻는 말이었다. "응?" "비가 왜 이렇게 쏟아지는지 이유를 묻고 있냐구." "응, 간단히 말하면 그거지." 요 며칠간 얼굴 보기도 힘들었던 르엔이 방구석에 붙어 있는 것을 신기하게 바라보자 내 시 선이 신경쓰인다는 듯이 슬쩍 피하는 르엔. "간단하잖아." "뭐가?" "신들이 지금 이 세계에 관여를 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 "다시 말해서 지금 신들이 지탱하고 있던 이 세계의 질서가 무너진거야." "뭐라구?" "다시 한번 말해 줘? 너의 그 잘난 드래곤이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구." 후우, 또다시 그 이야기냐. 그가 신들이 이 곳과 통하는 '길'을 막아버려서 그렇단 말이지? "방법은 하나밖에 없군." "두개 있어. 죽이거나, 아니면 자신의 의지로 모든 것을 원상 복귀해 놓는 것. 두 가지지." 나은 줄 알았던 머리가 또다시 깨질 것처럼 아파 온다. 테이블에서 일어서자 또다시 온 세상이 빙글빙글 춤을 춘다. 아직 쓰러지면 안돼. "어디 가는 거야?" "교장에게." "가서 어쩔려구?" "몰라. 그냥 가볼 거야." "대책이 없구나." "......" "우산이라도 가지고 가. 설마 비를 쫄딱 맞고 가려는건 아니겠지?" 르엔은 핑크 빛 우산을 건네주며 싱긋 웃었다. ...지금 보니 여자 같기도 하군. '쏴아아아아' 비는 시원스레 쫙쫙 내리고 있었지만 내 눈에는 그것이 공포스럽게 보였다. 산 위라서 물이 차지는 않는다고 해도, 이 빗속을 뚫고 교장실까지 갈 생각을 하니 포옥~ 하고 조그마한 한숨이 나온다. 르엔이 준 핑크 빛 우산을 펼쳐 들고는 그 흙탕물을 걷자 붉은 로브를 입고 있던 나는 흙탕 물이 여기저기에 튀자 눈살을 찌푸렸다. 우산을 가지고 있어도 비는 세차게 내 얼굴을 때렸고, 이제는 우산이 아니라 거추장스러운 물건이 되어버린 우산을 그냥 던져버렸다. 더 이상 비 때문에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버린 나는 그냥 흙탕물에 주자 앉아 엉엉 울 어버렸다. "대체 나보고 어쩌란 거야!" 빗물과 눈물이 섞여 구정물이 되어 흘러내리는 것에도 아랑곳 않은 채, 투정이라도 부리듯 그렇게 앉아있으려니 또다시 머리가 빙빙 도는게 느껴졌다. "너 바보니?" 어느 순간 내게로 떨어지는 비가 멈춘 것을 깨달은 나는 살짝 위를 올려다 보았다. 뭔가 물컹한게 30센티 밖에서 내 몸을 실드처럼 감싸고 있었다. 아마도 그게 비를 차단해주 는 것이리라. "누나?" 나와 같이 이 물컹한 젤리 같은 걸로 뒤집어쓴 지나는 입가에 장난스런 미소를 걸고는 나를 일으켜 주었다. "이 빗속에 우산 하나 가지고 달랑 뛰어가다니. 천잰줄 알았는데 바보였구나." "그.. 그건.." "생각을 해봐. 우산 하나 가지고는 어림도 없는데 그 많은 기숙사 생들이 등교했다는게 이 상하지도 않니?" 서.. 설마.. "르에에에에에에에에에엔~!" 빗속을 뚫고 나의 절규가 온 건물에 메아리 쳤고, 멀리 보이는 기숙사 창문에서 르엔이 나 를 바라보며 사악한 미소를 짓고 있을 거라는 확신이 섰다. 역시 과다한 친절은 받지 않는 거였어. "지금 절규하면 뭐하니? 나중에 가서 해도 늦지 않아. 자, 가자." "내가 어딜 가는지 알고 있어?" "... 교장 할멈에게 가는거 아냐?" "응." "뻔하지, 뭐. 니가 이 시간에 어딜 가겠니? 설마 수업을 경청하려고 그 어려운 걸음을 하는 건 아닐테고. 분명 드래곤인 교장 선생님에게 할 말이 있어서겠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지나는 말을 하고 있었지만, 나는 이 말에 흠칫놀라 지나의 곁에서 떨 어졌다. "어떻게 그걸 알지?" "... 그냥 우연히 알게 됐어. 꼬마 헤츨링씨." "너.. 너.. 너 누구야!" "말했잖아? 내 이름은 지나야." 도저히 거짓말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순수한 눈망울을 하고서 그런 말을 하니까 믿지 않을 수가 없다. "나에 대해 어떻게 아는 거지?" "... 너 같으면 나보다 나이도 어린애가 마법에 대해 박학다식 할 수 있다고 생각 하니? 아 무리 천재라도 그 정도는 아니야." "......" "꼬맹아, 사람을 속일려면 아직 한참은 더 커야겠구나." "우욱.." "자, 가자." 비에 젖은 내 머리를 마구 헝클어 놓더니 지나는 먼저 앞장 서서 성큼성큼 걸어가 버렸다. 이상한 여자다. "무슨 용건이죠? 하지나르 쉐프론다스 밀 크로아티아?" 음.. 길군. 말 안하려고 하는 것도 이해가 돼. "아뇨, 교장 선생님. 제가 볼일이 있는게 아니라 여기 있는 시크가 교장 선생님을 만나보고 긴히 할 얘기가 있다고 해서요." 지나에게서 눈을 돌려 상당히 냉정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던 교장은 자신의 손에 들린 찻잔 을 내려놓고, 지나에게 자리를 비켜달라는 눈빛을 보내왔다. "볼 일 끝나고 나와. 밖에서 기다릴게." "응." 지나는 교장에게 살짝 목례를 하고 나가버렸고, 이 작은 방 안에는 내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은 드래곤과 나. 이렇게 둘이 남게 되었다. "무슨 일이냐." 지나가 나가자마자 바로 반말 조로 시비를 거는 이 할머니 드래곤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자조적인 웃음이 나왔다. "꼭 일이 있어야만 볼 수 있나요?" "용건이 없다면 나가라." 찬바람이 휭휭 몰아치는군. "지금 이 자연현상이 모두 '그' 때문인가요?" "모든 걸 알면서 모른다는 듯이 그렇게 말하지 말아라. 역겨워." "... 카네스는?" "잘 있다. 넌 카이오네스의 안부만 묻는군." 그녀의 말투에서 이상한 뉘앙스가 풍긴다고 생각하는 순간 청천벽력같은 소리가 내 이성을 마비시켰다. "... 어젯밤, 비루나스마가 네가 소위 말하는 '그' 에게 대적하다가 주신의 품으로 갔지." ...괜찮아, 괜찮아. 어차피 이런 것쯤은 예상하고 있었던 거잖아. 벌써 소중한 존재를 몇이나 일었는데, 이것 가지고 흥분하는 거니. 한번 푹 자고 일어나면 모든게 정리되어 있을 거야. "이제 슬슬 네가 나서야 할 차례가 아닌가? 얼마나 더 희생시킬 참이지?" "... 아직은 아닙니다. 카네스가 나를 데리러 오지 않았어요." "어린아이군. 누군가가 너를 데리러 오기만을 바라는 거냐. 네 스스로 찾아가라. 더 이상 너 때문에 피해를 늘이는 일 같은건 보고 싶지 않다." "카네스와 약속했습니다. 카네스는 저를 꼭 데리러 올겁니다." 또다시 일방적으로 그녀의 방을 나와버린 나는 떨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 앉아 버렸다. "괜찮아?" "아.. 누나." "힘든.. 일에 부딪힌 모양이구나." "응.." 방안의 대화를 이미 들었는지 모든 걸 이해한다는 얼굴로 서있는 지나가 부담스러웠지만, 그래도 지금은 기댈 곳이 필요했다. "어쩌면 좋지? 아직은 잘 모르겠어. 처음엔.. 복수 해주려고.. 그 마음 하나로 버텨왔는데.. 이젠 그것마저 무의미해져버렸어." "왜 그렇게 생각해?" "그..그냥.. 누구보다 고통받는 사람은 '그' 일 것 같아. 내가 아니라.. '그' 일 것 같아.." 자세한 내용은 모르는 듯한 지나였지만, 그저 내가 하는 말만을 듣고 있었다. "그래그래, 그럼 넌 이제 어떻게 할 거니?" "모르..겠어. 나도 그걸 모르겠어.." "조만간 마음의 결정을 할 때가 오겠구나. 부디 나는 네가 후회하는 결정을 하지 말았으면 해." 결국 결정은 내가 하라는 소린가? 드래곤의 일기 2부 (153 ) 힘들어.. 힘들다구.. 왜 내 생각은 모두들 해주지 않는 거야. "이만 가자. 너무 무리한 것 같아." "응.." "르엔! 너 그럴 수 있는 거야? 내가 얼마나 너 때문에 고생을 했다구!" 학교에서 돌아온 라피와 말장난을 하고 있던 르엔은 구정물이 뚝뚝 떨어뜨리며 들어오는 나를 보고는 도리어 소리를 빽 질렀다. "야! 니가 청소 할 꺼야? 안 할 거잖아! 당장 나가!" 대체 화내야 할 존재가 누구지? "화낼 사람은 나야! 너 나를 곯려먹는게 그렇게 재미있냐? 난 네 장난감이 아니라구!" "당연히 재미있으니까 곯려먹는 거 아냐? 야! 카펫 더러워지잖아! 빨리 안나가?" 우씨! 확 폴리모프해서 밟아줄까 보다! 마음과는 다르게 몸은 이미 다시 문손잡이를 돌리고 있었고, 대충 르엔이 던진 옷을 받아든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방에서 쫓겨났다. ... 그런데 대체 어디서 갈아입으라는 소리야? 설마.. 이 복도에서 갈아입으라는 소리는 아니겠지? 한참이 지나도 열리지 않은 방문을 바라보며, 기다리기에 지친 나는 할 수 없이 지나의 방앞에 다가가 노크를 했다. '똑똑' "누구세요?" "누나~" 청아하고 단아한 실의 목소리가 들렸고, 어느새 실과도 누나 동생하는 사이가 되버린 나는 한층 애교섞인 목소리로 실의 이름을 불러댔다. "시크? 이 시간엔... 꼴이 그게 뭐니?" "쪼.. 쫓겨났어. 씻기 전에는 못들어온데." "네 방 욕실 가서 씻으면 되지 않니?" "... 카펫 더러워진다고 들어오지도 못하게 해." "참.. 인생을 불쌍하게 사시는 군요." "누나까지 그런 소리를 하다니. 실망이야! 욕실이나 빌려줘." "... 지금 저하께서 쓰고 계시는데..." "기다려도 되지?" "그러렴." 내가 방안으로 들어가려하자 내 뒷덜미를 잡은 실은 그대로 다시 복도로 내몰았다. "왜 그래?" "카펫이 더러워지잖니. 저하께서 나오실 동안에 그 곳에서 가만히 기다리렴. 후훗~" "누나!!! 다들 똑같아!" 정말 악독한 인간들이다. 어찌 보면 황태자보다도 더 악독하고, 음흉하고 묘략에 가득 찬 인간들. 그 대표 격이 신의 대사제라는, 그 직위가 심히 의심스러운 르엔이다. "뭐가 이렇게 시끄러워?" "저.. 저하." "시크, 헤어진지가 방금인데 벌써 누나가 보고 싶어서 온거니?" 장난이란 걸 알기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지나가 방금 나온 욕실로 후다닥 뛰어가 버렸다. "쟤 왜 저래?" "화장실이 급한가 봅니다." 실! 나가면 죽었어! 지나가 뜨거운 물로 샤워를 했는지 욕실은 수증기로 가득차 있었다. 역시나 우리 방 욕실과 별다른 점이 없군. 다른 점이라면 여자용 향수가 가득하다는 거다. 욕조에 물을 채워 넣고, 옆에 있는 작은 바구니에 담겨있는 장미 꽃잎을 아주 들이부은 다음 나는 만족스런 웃음을 짓고는 수증기가 올라오는 욕조에 몸을 담갔다. 뜨거움과 오싹함이 동시에 온 몸을 전율하게 했고, 기분이 좋아진 나는 잠시 모든 일을 잊고 명상에 잠길 수가 있었다. 발끝에서부터 기분 좋은 느낌이 서서히 올라오면서 나른한 기분에 정신이 몽롱해졌다. 무언가가 내 몸에 올라오는 것을 느낀 나는 이 기분 좋음에서 깨고 싶지는 않았지만, 무의식중에 뭔가가 잘못됐다는 생각에 번쩍 눈을 떴다. 내 가슴에 비늘을 가지고 뭔가가 길쭉한 것이 낼름거리고 있다고 생각한 나는 그 징그러움에 따뜻한 물 속에서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으아아아악!!!!!" 욕실 문을 잠그지 않았는지, 내 비명 소리를 듣고 바로 지나와 실이 욕실 문을 열어젖혔다. 내 가슴에 올라와 있는 심히, 뱀이라고 불리는 이 길쭉이가 무서운건 아니다. 다만 놀랐을뿐. "무슨 일이야?" "이거 뭐야!" "어~ 안 물어. 걱정마." "이게 왜 이런 곳에 있냐구~" "애완용이야, 애완용." "당장 데리고 나갓!"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내 가슴에서 뱀을 맨손으로 쑥 끌어낸 엽기 소녀 지나는 곧이어 내 눈앞에서 그 허연 뱀의 아랫배를 흔들어 보이며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상당한 찝찝함에 얼른 욕조에서 나와 샤워를 했다. 미쳤지, 미쳤어. 욕조에 들어간 것부터가 잘못된 거야. 오늘 따라 일진이 왜 이럴까. 욕조를 경멸스럽게 바라보던 나는 깨끗이 비누로 온 몸을(특히 가슴부분을) 빡빡 문질러 닦고는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말리며 욕실에서 나왔다. 지나의 목에는 그 허여멀건 한 뱀이 감겨있었고, 지나는 그 뱀이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누나, 그거 뭐야?" "응~ 민이라고 불러." "아니, 그게 아니라 그게 왜 욕실에 떨어져 있냐구." "애완용이라니까?" "그거 교칙 위반아냐?" "맞아." "근데 왜 키워?" "귀엽잖아~" 저 붉은 혀를 낼름 거리는게 귀엽다고 하는 건가. "저게 어디가 귀엽다는 거야! 낼름거리 혀와 쭉찐어진 눈동자. 그리고 삼각형의 머리. 기다란 몸퉁. 어딜 봐서 귀엽다는 거야!" "... 드래곤이 꼭 그런 말하고 싶니? 뭐, 친척으로 따지자면 우리 민이도 드래곤과 먼 친척이라구." "저능한 뱀 따위와 친척이라니!" "저능하다니, 저능하다니. 뱀이 교활하다는 소리도 못들어봤니?" "우욱.. 아무튼 뱀을 키우다니! 정말 이해가 안돼!" "이해하면 되잖아? 오호~ 설마 뱀을 무서워하는 거야?" "누가 무서워한다고 그래!" "무서워하는구나. 흐흐흐.."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내게 다가온 지나는 나를 도망못가게 붙들어 놓고는 내 목에 그 허여멀건 한 뱀을 턱 얹어 주었다. 석고상처럼 굳어져 있는 나를 보고 씩~ 웃음을 짓고는 몇 걸음 떨어져 예술 작품을 감상하기라도 하는 듯이 턱을 괴고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 모습은 가히 살인욕구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더군다나 이 뱀은 내가 뭐가 그리 좋은지 자꾸 내 목을 졸라 오고 있었고, 그에 따라서 내 얼굴은 점점 창백해져가고 있었다. 이건 분명 이 뱀이 나를 죽이려고 하는 짓일거야. "꾸엑~ 이것 좀 떼어 줘! 목 졸려." "우리 민이 인정하는 거지?" "해! 한다구! 이것 좀 어떻게 해봐! 누나 나 죽으면 헤츨링 살해죈거 알지?" "당연히 알지~" 지나가 내 목에서 그 망할 뱀을 떼어놓는 순간 나는 도망치듯이 다시 우리 방으로 뛰어왔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등뒤에서 지나가 박장대소를 하고 있는 장면이 안봐도 상상이 되었으나 나는 절대 다시는 그 망할 뱀이 있는 지나의 방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누가 뒤에서 쫓아와? 왜 그렇게 호들갑이야?" ... 여기에도 강적은 있었지만 차라리 그 뱀과 한 방에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698년 4월 날짜 : 5일 날씨 : 비온다. 더 이상 뭘 묻고 싶나. "언제까지 학교 안올거야? 모두 형을 기다리고 있다구." "어떤 쓸데없는 놈이 날 기다리냐?" "반 학생들 모두 형을 기다리고 있다구!" 침대에서 뒹굴거리던 내게 다가와 라피는 아까부터 학교를 가자고 조르고 있다. 난 비오는 날에 움직이는 것 싫어한단 말야. "가자아아~ 혀어어엉~" '딱~' "이 녀석이 때려야 말을 듣냐! 당장 나가!" 결국에는 머리에서 김이 뿜어져 나와 나도 모르게 라피의 알밤을 먹이고는 거의 내쫓다시피 귀찮은 방해꾼을 방밖으로 몰아내는데 성공했다. "어디가?" 라피가 나가자마자 슬쩍 눈치를 보더니 내 눈을 피해 나가려던 에릭을 붙잡고 물었다. "마계에 좀 다녀오려고." "안가도 된다며. 나하고 평생 같이 산다고 했잖아." "누가 평생 같이 산다고 했냐! 어쩔 수 없이 같이 다닌다고 했지." "그게 그거네, 뭐." "아무튼 다녀올게." "나하고 떨어지면 안된다며." "오늘 저녁에 돌아 올 거야." 그리고선 방문을 닫고 나가버리는 에릭을 향해 옆에 있던 베개를 집어던지며 소리쳤다. "영원히 오지 말아버렷!" 이미 조용해진 방안에는 썰렁한 공기만이 감돌았고, 나는 혼자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했다.(르엔은 이미 내가 일어났을 때 평소와 마찬가지로 머리카락 한 올 보이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라피에게 학교 가지 말라고 할 걸 그랬나? 드래곤의 일기 2부 (154) 어제 저녁 꿈속에서 내내 그 뱀에게 쫓기는 끔찍한 악몽을 꿔서 그런지 심신이 매우 피곤했다. "후암~ 조금만 자고 일어날까? 또다시 그 망할 길쭉이가 꿈에 나오면 당장에 달려가 몸보신하고 말테다." 무언가 굉장히 기분 좋은 꿈을 꾸고 있는 듯 했다. 무슨 이유에선지 꿈속의 나는 굉장히 큰 소리로 웃고 있었고, 기분도 매우 좋은 것 같았다. 하지만 곧이어 머리 쪽에서 느껴져 오는 부드러운 손길에 어쩔 수 없이 행복한 꿈에 작별을 고해야만 했다. "우웅..." "... 내가 깨웠나 보네?"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부드럽고 다정한 목소리로 앞에 있던 검둥이가 말했다. "누구야?" 흐릿한 시각에 알아볼 순 없었지만, 어쩐지 익숙한 목소리여서 물으니 검둥이는 내 머리를 쥐어박았다. "카네스다." 그제서야 눈에 뚜렷한 윤곽이 잡히기 시작하면서 나는 나를 부드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카네스의 눈동자와 마주쳤다. "진짜.. 카네스구나." "그럼, 가짜 카네스도 있나?" "아니." 설마.. 날 데리러 온거야? 왠지 카네스의 눈동자는 다정함을 품고 있으면서도 그 내면에는 슬픔을 간직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아니." "세상에. 너 네가 얼마나 큰 죄를 저질렀는지 알기나 해? 감히 이 시크리오프스님을 속이려 하다니. 이놈아, 내가 너 태어나는 것까지 다 봐준 사인데 내게 감히 숨길게 있다는 거냐?" "... 하핫, 그렇지. 그래, 그 천하의 시크리오프스님께 속이려 하다니 소인의 우둔함을 꾸짖어 주옵소서, 마마." 장난스레 내게 고개를 숙이며 말하는 카네스를 아량 넓은 내가 용서해 주기로 했다. "무슨 일이야? 말해봐." 아직도 망설이는 듯한 카네스가 보였으나, 나는 이미 카네스가 무슨 말을 할 지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다. "비루나스마가.. 그제.. 죽었어." "그래?" 의외로 담담한 내 모습에 약간 놀랬는지 나를 빤히 쳐다보던 카네스는 곧이어 내 표정을 읽고는 씁쓸하게 미소지었다. "괜찮니." "안괜찮으면? 괜찮아야지. 나 때문에 죽은 존재가 한 둘이야? 이제 면역이 되서 말이지. 하핫, 아참. 너 목마르지? 이 몸께서 특별히 물이라도 한 컵 떠다가 주지. 영광인줄 알라구." 허세를 부리듯 말하는 나를 보며 예전에는 한마디라도 해줬을 법 한데 그저 바라만 보는 카네스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나는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났다. 이 정도쯤이야 어차피 예상하고 있었던 일인데, 이제는 비루나스마라니. 어미가 죽어 오갈데 없는 헤츨링을 선뜻 자신이 기르겠다고 나선 드래곤. 레드 일족이지만, 성질이 그렇게 더럽지도 않고 오히려 친 엄마보다도 새심하게 챙겨주었던 드래곤. 내가 이토록 그녀에게 미안한데, 카라드시크의 마음은 얼마나 찢어질까. 평생의 반려를 잃었으니, 카라드시크는 거의 제정신이 아닐 가능성이 많다. 물과 불의 속성은 맞지 않는 법인데도, 사랑한다는 이유로 결혼한 그들. 아마도 카라드시크는 남은 여생에서도 절대 재혼 따위는 하지 않을 것 같았다. 후훗, 어쨌든 내 양 아빠니까 한다해도 내가 못하게 막아야지. 물 컵을 들고 다시 카네스에게로 가니, 카네스는 내가 누워있던 자리에 그대로 누워 잠들어 있었다. 잠들어 있는 카네스의 얼굴도 참 오랜만에 보는군. "녀석, 많이 피곤했구나." 그에게 살며시 이불을 덮어 주고는 나는 창가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 멍하니 쏟아져 내리고있는 빗속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중에.. 슬퍼해도 늦지 않아. 모든 일이 끝난 후에, 그때 슬퍼해도 이들은 이해해 줄거야. "야, 일어나." "흐음.." "일어나라니까! 뭐라도 좀 먹고 자라." "... 음?" 간당한 수프와 빵과 음료수를 가지고 올라온 나는 자고 있는 카네스를 깨웠다. 필시 이 놈은 자기 몸 챙기지 않고 굶고 지냈을 거다. "오오, 내가 배고픈지 어떻게 알았어? 역시 친구는 멋으로 사귄게 아니었군." "이거 먹기 싫은가 보구나. 잔소리가 많은걸 보니." "아니아니, 와우~ 맛있겠는걸?" "그럼 많이 먹어." 억지로 삼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목에 넘어가지 않을텐데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나를 위해 지금 열심히 먹고 있는 척 하는 거다. 마음도 넓지. '달칵' 저녁 늦게 서야 빈둥대며 들어올 줄 알았던 르엔이 피곤한 얼굴로 방에 들어섰다. 그리고는 나와 카네스를 발견하고는 슬금슬금 걸어오기 시작했다. "안녕." "응." 르엔이 인사하자 카네스는 스푼을 놓고 르엔을 바라봤다. "시크를 데려가려고 온거야?" 그 말에 잠시 르엔에게 시선이 머물러 있다가 나를 쳐다본 카네스는 대답했다. "응." "어떻게 할 생각인데?" "데려가 봐야 알겠지. 아직은 잘 모르겠어." "... 에릭과 라피가 오면 가자." "라피는 안돼. 아직 헤츨링이야." "그럼 그 아인 어떻게.." "이 곳이 더 안전해. 걱정마." "응.." 과연 라피가 나와 떨어지려 할지 그게 걱정이다. "알았어, 형. 다녀와." 내 예상과는 다르게 라피는 약간 서운한 감정을 드러냈지만 웃는 얼굴로 나보고 다녀오라고 말해주었다. "라피..?" "내가 거기 가봤자 짐만 될 거라는거 알고 있거든. 차라리 안전한 이 곳에 있을래." "철 들었구나." "대신 형, 꼭 나 데리러 와야돼? 알았지?" 미안, 그 약속 할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약속을 한다면.. 그건 용언으로서의 약속이기에 나는 라피에게 대답해 줄 수가 없었다. 그만큼 드래곤의 약속이란 중요한 것이다. "왜 대답이 없어?" "노력해볼게." "그런 애매 모호한 대답은 싫어." "요 녀석이, 하늘같은 형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거야." "독재자야, 형은." 어차피 에릭은 내가 없으면 살수 없는 몸(?)이기에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먹기로 나를 따라와야 했다. 이봐, 그렇게 인상쓰지 말라구. 안그래도 너와 만난걸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으니까. 698년 4월 날짜 : 6일 날씨 : 흐리지만 비가 오고 있지는 않다.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 우리는 툰 산맥으로 향했다. 아마도 일이 그쪽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자고 있는 라피의 이마에 살짝 키스를 해주고는 텔레포트로 거대한 툰 산맥의 어느 레어 입구에 도착한 우리는 크게 한 숨을 내쉬었다. 레어에서는 진한 핏빛의 향내가 코끝을 날카롭게 적셔왔고, 이미 육안으로도 식별할 수 있게 내 발 밑에는 핏물이 줄줄줄 강을 이루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가 이 정도로 강한 거야? 이 많은 드래곤을 죽일 수 있을 정도로 강한 거야?" "아니, 그도 강하지만 그를 따르는 무리들 때문에 이 지경까지 된 거지." "... '그'를 두둔하는 세력이 있다는 건가." "'그'는 어쨌든 로드님을 꺾고 그 자리에 오른 현존하는 최강의 드래곤이니까." "웃기는 소리하지마. '그'는 로드의 자질을 가진 존재가 아냐." "... 들어가 보지." 질퍽거리는 땅을 딛고 발목에 감겨오는 핏물을 느끼며 레어 안으로 들어갔다. 드래곤의 일기 2부 (155) 흐음.. 도대체 이게 몇 마리야? 레어의 천장과 벽은 이미 굳어버린 검붉은 피가 덕지덕지 묻어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고, 몇 마리인지 세지도 못할 정도로 많은 드래곤들이 거의 몸이 산산히 분해되어 핏구덩이 속에 파묻혀 있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이 죽은 거야?" "......" "대체 어떻게 하면 이렇게 되는 거지? 모두 같은 종족인데 이렇게 잔인해질 수가 있나?" "인간과 같은 섭리야. 인간도 서로를 살육하려 전쟁을 벌이지 않나. 이건 우리의 전쟁이야." "... 아니, 달라. 지고하고, 신과 동등한 존재라고 콧대를 세우며, 이 대륙에 존재하는 가장 현명하고 강한 종족인 드래곤이 고작 인간 따위와 비교될 수는 없어!" "시크, 인간과 우리는 다를게 없는 종족이다. 그리고 그 말을 시오스도 들었으면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네가 생각하는 그런 인간이란 존재를 네가 네 손으로 손수 키웠다는걸 잊지 말아라." 아냐, 카네스. 다르다구. 달라. 모든 인간이 그렇지는 않지만 인간은 약하고 쉽게 쓰러지는 종족이야. 서로를 시기하고 탐내고 살육하는 존재야.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아. 우리는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잖아.. 무엇이 옳고 그른 건지 구별할 수 있는 판단력을 가졌잖아. 이건 옳은게 아냐. 이건... 절대 선이 될 수 없어. 시오스.. 난 어떻게 하면 좋은 걸까.. 카네스가 어떤 연락을 취했는지 초췌한 모습의 드래곤들 몇 몇이 이 레어 안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이미 그 존재감은 거대할 정도로 레어 안을 메우고 있었으며, 각기 인간이나 몬스터로 폴리모프한 상태였다. 눈빛은 이미 거의 희망을 잃은 듯한 포기의 눈빛이었지만, 그래도 끝까지 하겠다는 욕심이 서려있었다. 대부분이 블루 일족으로, 그린이나 화이트 일족은 찾아보기가 극히 드물었다. 아마도 '그' 쪽으로 돌아선 거겠지. 익숙한 얼굴이었지만 얼굴 가득히 피곤함을 안고 있는 라그네시크와 카라드시크도 보였다. 그들은 나를 발견하고는 살짝 미소를 지어보였으나, 그게 가식이라는 건 여기에 있는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우리들의 새로운 로드를 소개한다. 실버 드래곤 시크리오프스님께서 지금 이 순간부터 새로운 로드다." 40여마리 가량 모여있던 드래곤들은 각기 불만이 서린 얼굴로 카네스의 말에 이의를 제기했다. "아직 헤츨링아닙니까!" "아무리 우리가 열세이긴 해도 이런 헤츨링을 로드로 내세우자니요!" "안되는 일입니다. 아무리 내세울 존재가 없기로서니 헤츨링을 내세우다니요." "맞습니다!" 여러 가지 의견들이 분분했고 가만히 그것을 들어주던 카네스는 잠시 반발하는 말들이 약해지자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여기 따로 로드의 자리에 앉으실 분이 계십니까." "여기 라그네시크님이.." "닥쳐." 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라그네시크가 상당히 화가 난다는 듯이 자신을 지목한 드래곤에게 소리쳤고 장내는 일순간 침묵에 휩싸였다. "블루 드래곤 시크리오프스를 아는 존재가 있으면 손을 들어보도록." 그 곳에 있던 드래곤 모두가 손을 들었고, 라그네시크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존재를 뛰어 넘을 수 있는 드래곤은 손을 들어봐라." 그들의 치켜 올라갔던 손들이 슬며시 모두 내려졌고, 이 결과에 만족한다는 웃음을 짓던 라그네시크는 내게 다가와 내 작은 어깨에 손을 올렸다. "여기 이 실버 드래곤 시크리오프스가 블루 드래곤 시크리오프스의 환생체다." 다시 장내는 웅성거림에 휩싸였고, 나는 라그네시크가 나를 안아올리는 것도 잊은 채 잠시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아직까지 가시지 않은 피비린내가 독하게 내 코를 자극하고 있었고, 내 머릿속은 그만큼 엉망으로 뒤엉켜있었다. "'그'를 막을 수 있는 단 하나의 존재. 실버 일족의 헤츨링 시크리오프스가 로드가 된다는 것에 반대하는 자는 지금 이 곳을 떠나라."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선 이들 중 실버 일족으로 보이는 존재 하나가 라그네시크에게 다가왔다. "마음은 어떤지 잘 몰라도 아직은 헤츨링입니다. 드래곤족에게는 헤츨링을 절대 보호해야 한다는 규칙이 있습니다. 라그네시크님의 말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의 말에 몇몇 드래곤이 맞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고, 라그네시크는 가소롭단 듯이 웃어보이고는 나에게 물었다. "그럼 시크에게 묻도록 하지. 이들의 말이 옳다고 생각해?" 왜 이렇게 내게 모질게 구는 거니. 내가 어떻게 하길 바라는 거니. 왜 내게 이렇게 큰짐을 지우는 거니. 난.. 아직 모르겠다구. 누가.. 나 좀 도와줘. 내가 이 상황에서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누가.. 나 좀 도와줘.. "웃기는군." 그들의 말에 냉소를 던지며 르엔은 라그네시크의 앞으로 나섰다. "인간은 우리의 일에 끼어들지 마라." "... 너희는 지금 시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줄 알고 그런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지금 시크는 괴로워하는 거라구! 너네가 그러고도 시크와 몇 천년을 같이 산 드래곤이라고 말할 수 있어! 만난지 겨우 1년도 되지 않은 내가 시크의 마음을 이해하는데 너희들은 지금 그의 감정 따위는 생각하고 있지 않아! 제발 부탁이니 강제로 시크에게 이래라 저래라 명령하지마. 그에게는 그만의 해결 방식이 있을 테니."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르엔이 뱉어낼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릴 뻔했다. 입술을 악물고 그걸 참으며, 나는 억지로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 나 실버 드래곤 시크리오프스는 지금 이 순간 104대 로드가 되었음을 선포한다. 로드의 이름으로... 프라니바투스를 처형한다."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 르엔에게 아마도 찡그렸을 법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지금에서야..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깨달았어. 지금 내가 선택하는 이 순간이 후회하되지 않길 바라며.. 아니, 설령 후회가 된다 해도 그 땐 내가 이미 이 세상에 없을테니까 후회란 없을 거야. 내 말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라그네시크는 나를 그들의 중앙에 데려다 주었다. 그들은 일제히 내게 부복하며 고개를 숙였고, 다시 한번 나는 내 선택을 마음 속 깊이 새겼다. "로드께 피의 서약을.."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정신이 다시 몽롱해지는 것을 느꼈다. 어느새 베어진 내 손목의 피가 핏물이 고여진 웅덩이로 떨어졌고, 그 자리에 있던 모든 드래곤들은 자신의 손목을 베고는 떨어지는 핏물에 아랑곳하지 않고 나를 바라봤다. 이젠... 피할 수 없다. 어쩌면 지금까지 나는 '그'를 피해왔는지도.. 그가 설령 이 세계에서 가장 슬픈 존재라 해도 이제 돌이키는건 이미 늦어버렸다. 드래곤 일기166 # 한 존재를 사랑함으로서 미쳐버린 드래곤의 슬픈 사랑의 노래 698년 4월 날짜 : 9일 날씨 : 또다시 비가 내린다. "이렇게 비 맞는 것 싫어하잖아." 빗속 한 가운데에 서서 멍하니 떨어지는 빗물을 맞으며 회색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때, 르엔이 다가와 나를 일으켰다. "어..? 어.." 쿠쿡, 그러고 보니 '그'도 내게 이런 소리를 했었어. 그때는 당연한 건 줄 알았어. 그런데... '그'의 목소리가 이렇게 그리워 질 줄은... "갑자기 비 맞는게 좋아졌어. 환경에 따라 이렇게 변할 수도 있는 건가봐." "이 바보야, 너 내가 기껏 너를 위해서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 그런 짓을 해줬는데 보기 좋게 네 자신을 속였더군." "아니, 날 속인게 아냐. 네 말로 더욱 확신을 가졌던 것 뿐이야. 르엔, 우리에게는 네가 상상도 못할 일들이 많아. '그'가 나 때문에 그렇게 됐다면.. 내가 편하게 해줘야지. 안그래?" "헤츨링 주제에 무슨 힘이 있다고." "응. 그러게 말야. 힘도 없으면서 쓸데없이 자존심만 강한 드래곤이지." "알면 됐어." 비에 젖어 진흙과 같이 얼굴에 달라붙은 내 머리를 부드럽게 부벼주는 르엔의 손길이 너무 따뜻해 눈시울이 붉어질 뻔했다. "들어가자. 몸 상태가 말이 아니야." 아까부터 통증이 있었던 복부에 살짝 손을 올리고는 신성력을 써주는 르엔의 손을 나는 조심스럽게 밀어냈다. "됐어, 참을 만해." "어이구, 잘나셨어." "네가 자꾸 이러면 네 몸만 아프잖아. 난 조금만 참으면 돼." 르엔의 생명을 걱정해서 하는 말이다. 어차피... 르엔의 생명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는데, 어차피 죽을 내 몸 하나 때문에 불쌍한 르엔의 생명을 단축시키고 싶지 않았다. "... 어차피 시오스가 죽었을 때부터 미련이 없던 몸이야. 여기서 더 망가져도, 더 나아져도 미련이 없어." 오늘따라 창백하게만 보이는 르엔이 내 앞에서 슬픈 웃음을 보인다. "들어가자." 르엔이 나를 잡고 레어로 들어가려 했는데도, 나는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았다. "뭐해? 들어가자니까." "... 왔구나." 내 말에 갑자기 무서운 표정을 짓고는 하늘을 올려다본 르엔은 얼굴이 굳어졌다. 이미 하늘에는 드래곤이라는 존재들이 인간이나 기타 다른 종족으로 폴리모프한 상태로 공중에 떠 있었고, 그들의 앞에는 피 묻은 검을 늘어뜨리고는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가 보였다. 하긴... 이렇게 많은 드래곤이 한 곳에 모여있는데, 철저한 '그'가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리가 없지. 내 편이 아닌 존재는 확실히 죽인다. 잠시 레어 안쪽에서도 웅성거림이 들리고 나를 로드로 추대하는 존재들이 하나 둘씩 나와 내 앞을 가로막았다. '그'는 그것을 가소롭다는 듯이 비웃음을 걸고 쳐다보고는 우리의 반대편 쪽의 커다란 바위 위에 살짝 걸터앉았다. 적을 앞에 두고 이런 여유라니. 자신 있다는 거냐. "제 104대 로드, 실버 드래곤 시크리오프스의 이름으로 골드 드래곤의 수장 프라니바투스의 죽음을 명한다." 조그마한 입이 열리고 낭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하늘 위에 있던 드래곤들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피식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너희들이 우리보고 반역이다, 어쩐다 하지만 우리 로드님은 정당하게 전대 로드님을 결투로 이기고, 로드 자리에 오르신 분이다. 이런 분을 거역하려 하는 너희가 반역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은가." "쿠쿡, 로드로 누굴 내세웠나 했더니 겨우 헤츨링인가?" 여러 가지의 비웃음소리가 빗소리와 섞여 내 귓가를 때렸고, 나는 여유롭게 그걸 바라보고 있었다. "... 시크리오프스라..." '그'가 입을 열자 단번에 조용해진 이들은 말싸움을 멈추고 바위 위에 앉아 있는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 오직 들리는 것은 빗소리뿐이었고, 고요한 침묵에 휩쌓인 이들은 곧 다시 '그'가 입을 열길 바랬다. "... 그녀의 이름을 들먹인다고 내가 너희를 살려둘 줄 아나." 내가 이렇게 네 앞에 서있는데, 넌 내 존재를 부정하는 말을 하는구나. 비행 마법으로 살짝 뜬 몸을 움직여 '그'의 앞으로 갔다. 카네스가 당황하며 나를 막으려 했지만, 라그네스크는 그 큰손으로 가만히 카네스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모든 걸 내게 맡기겠다는 거구나. ... 고마워 ... 그와 한 손을 뻗으면 맞닿을 수 있는 거리에 선 나는 가만히 그의 눈을 응시했다. "내가 없을 때, 많은 일들이 있었더구나." 가만히 손을 뻗어 빛을 잃어버린 그의 금빛 머리를 쓰다듬 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야, 프라니." 그의 눈동자가 흔들리면서 믿지 못하겠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잠시 흔들리던 그의 눈동자가 다시 메말라 버리며 제 자리를 잡았다. 피식 웃으며 내 손을 차갑게 쳐내어 버린 그를 보며 나는 쓴웃음을 머금었다. "왜 이런 일들을 하는 거냐." 내가 보기에는 프라니는 자아가 붕괴되어 있다고는 믿어지지가 않았다. 놀랍도록 냉철하고 차가운 마이 페이스. "......"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는 모습이 슬퍼보인건 내가 잘못본걸까. "왜 네가 여기 이러고 있는 거야? 응? 네가 있을 곳은 이곳이 아니잖아." 창백한 자신의 손을 꽉 움켜쥔 프라니는 거칠게 나를 밀어냈다. "... 그렇겠죠. 당신은 나만 탓할거잖아요. 내가 왜 이렇게 됐는지 묻지도 않을 거죠? 내가 매일 당신 생각에 울었다면 당신은 이해할까요? 내가... 이렇게 맘이 아픈데... 이런 내 마음을... 당신은 알까요?" 마치 어린아이가 어머니에게 때를 쓰듯이 내게 외치는 '그'가 안타까워 보였다. "프라니..." 다시 한번 내 입에서 '그'의 이름이 불리자 '그'의 눈은 처음 봤을 때처럼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당신이 제게 도전을 했기에, 나는 당신과의 결투를 인정하겠습니다." 결국... 둘 중에 하나는 죽어야 한단 소리구나. 시크리오프스... 이럴 줄 알고 있었잖아. 지금 흔들리면 안돼. 네가 그렇게 증오하고 미워하던 '그'가 네 앞에 있는데 어째서 넌 선뜻 나서지 않는 거지? 이유가... 뭘까... 내게 살짝 목례를 한 프라니는 바로 한 손에 9서클의 화염계 마법을 만들어냈다. 가만히 그 마법을 바라보고 있자니, 한 숨이 나온다. 헤츨링인 내가 저걸 막을 수 있을 리가 없잖아. 한번에 끝낸다, 이거냐? 그가 끝났다는 듯이 가볍게 내게 마법을 난사할 때 나는 최대한 고개를 숙이고 실드를 펼쳤다. 거대한 9서클의 화염계 마법이 실드에 부딪히면서 한꺼번에 엄청난 타격을 받은 듯 가슴이 울렁거렸고, 나도 모르게 입가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제길... 이 놈... 생각보다 강하잖아..." 실드에 쩍쩍 금이 가는 소리가 들리고 뒤이어 바로 나는 실드가 깨졌다는 것을 느꼈다. 일순간 거대한 화염이 내 몸을 덮쳤고, 대부분의 화염은 아까 실드로 막으며 사라졌기에 나는 큰 부상은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그 마법 하나를 막느라 거의 몸에 있는 마나가 바닥났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정말 한 방에 이렇게 되다니. 그런 나를 보고 아무도 말리는 이는 없었다. 신성한 로드의 결투. 그들에게 참견할 권리는 없다. "...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편히 쉬십시오." 10서클에 한하는 빙하계 마법이 '그'에 의해서 다시 시전되었고, 나는 이렇게 허무하게 죽나 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정말 내가 '그'에게 반항한건 어리석은 짓이었을까. 빗속에서 저기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그'를 마지막으로 나는 입가에 살짝 웃음을 띄웠다. '그'의 마법의 기운이 이곳까지 영향을 주는지 이미 대기의 공기는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눈앞에서 그의 손에서 푸른색의 구가 내게 날아오는 모습을 보고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콰앙~' 내 바로 앞에서 엄청난 굉음이 들렸고, 왠 일인지 몸의 모든 감각들이 아직도 살아있다는 것에 놀라며, 그리고 불길한 예감에 황급히 눈을 떠 내 눈앞에서 벌어진 일을 바라보았다. 일시적으로 비가 멈추고, 내.. 아니 이 계곡 전체가 은은한 푸른빛으로 둘러 싸여있었다. "르엔!" 그 푸른빛의 근원은 한 작은 체구의 여자아이에게서 뻗어나오고 있었다. 내 앞에서 두 팔로 나를 가로막으며 나를 보고 희미하게 미소를 짓는 여자아이. ... 신의 권능을... 사용한거냐. 한웅큼의 피가 르엔의 입가에서 쏟아지고는 가슴을 움켜쥐고 쓰러져 버리는 르엔을 내 작은 손으로 안아줄 수밖에 없었다. "쿨럭... 내가... 너... 이럴 줄... 알았다니까..." 말을 하는 것조차 힘이 드는지 겨우겨우 말을 하며 내 볼에 피묻은 자신의 손을 가져다 댄 르엔은 억지로 입가에 미소를 지어보였다. "... 마지막이야... 내가 네게 해 줄 수 있는... 울지마. 아마... 여기에 시오스가 있었다면... 그도 이렇게 했을 거..." 차마 눈을 감지 못한채 싸늘히 식어가는 르엔을 보고 흐르는 눈물을 참기 위해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 의외의 인물이군요." "... 한 가지만 묻자." "말씀하십시오." 어느새 비는 그쳐있었고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선 '그'의 눈을 바라보고 내가 나직이 입을 열었다. "날... 사랑했니?" "네." 그랬구나. "그럼 됐어." "...?" 왠지 마음이 편해진다. 이 짤막한 한 마디에 이렇게 마음이 평온해질 줄이야. "카네스, 검." 어차피 내가 '그'를 검으로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카네스는 알고 있었지만 내게 뭐라고 하지 않고 순순히 단검을 내어주었다. "... 이제... 끝내자." 다시 한번 거대한 마력이 '그'에게 응집되는 것을 느꼈다. "그럼 안녕히..." 자신의 브레스를 응집시킨 황금색의 구체가 내게 날아오는 것을 느꼈다. 오른손에 늘어지게 검을 붙잡고 있었지만 어차피 저건 검으로 쳐낼 것도 되지 않고, 이미 실드를 치기엔 너무 늦었다. "나도... 너 사랑해." 조그마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이 고요하리 만치 조용한 가운데서 내 목소리는 유난히 크게 들려왔다. 공격적인 황금빛 구체가 내 눈앞까지 다가왔지만 나는 눈을 감지 않았다. '파앗~' 내 눈앞에서 황금빛의 비가 쏟아져 내리며 그 구체는 산산조각으로 부서졌다. 최후의 순간에 자신의 힘으로 구체를 없애버린 듯한 '그'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 "지금 말하면 어쩌라구요! 늦었어요... 너무 늦었잖아요." "... 미안." "미안하다고 될 일이 아니잖아요..." "알아. 이 말로는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내가 너 대신에 죄 값을 받으려고 해." 의아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는 '그'를 향해 난 다시 한 번 가식적인 웃음을 지었다. 오른손에 들고 있던 단검이 일순간 떨리면서 가차없이 나의 왼쪽 어깨를 깊숙이 베었다. 허연 뼈가 들어 나며 대량의 피가 내 옷자락을 적시고 질퍽한 땅으로 쏟아졌다. "이건... 시오스꺼." 아팠다. 하지만... 내겐 이 아픔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권한이 없었다. 다시 한번 단검이 내 오른쪽 다리를 길게 베었다. "이건... 로드님." 이미 대량의 피가 빠져나가 현기증이 일어나고 있었지만, 비틀거리면서도 난 이를 악물고 내 몸을 칼로 난도질을 했다. 결국에는 땅바닥에 주저앉은 '그'는 넋이 나간 눈동자를 멍하니 내게서 쏟아진 피를 주시하고 있었고 마지막으로 나는 아직 멀쩡한 오른손을 바라보곤 단검을 내 심장쪽으로 가져갔다. "... 그리고 이건... 네꺼." "그만해요!" 어느새 달려왔는지 그의 넓은 가슴에 안겨있는 나를 발견했다. "내가 잘못했어요. 내가 잘못했어요. 그러지 말아요. 나 때문에 그러지 말아요. 내가 잘못했어요... 내가... 너무 어리석었어요..." 서둘러 내게 치유마법을 걸어주려고 '그'는 여러번 시도했지만 난 치유마법이 듣지 않는 존재다. "프라니...?" "말하지 말아요. 내가 어떻게든 해볼께요. 걱정마요. 이번엔 안보낼 거에요. 미안해요. 조금만 참아요." 내 말은 들으려 하지도 않고 계속해서 내게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리는 '그'에게 나는 미안한 마음을 느꼈다. "... 난 널 사랑하지 않아." 일순간 나를 향하던 그의 손길이 멈칫했지만 곧이어 다시 나를 끌어안았다. '푸욱' 내 오른손에 들려 있던 단검은 이미 프라니의 가슴에 깊히 박혀있었다. "... 시... 크?" "날 원망해라. 심연의 끝에서 생살을 씹으며 끝없이 널 속인 나를 원망해라. 그리고... 다시 내 목숨을 취하러 찾아와." 마지막 남은 힘으로 이미 눈물로 범벅이 되버린 나는 조용히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미안하단 말은... 네가 다시 날 찾아오면 그때 할게. 빨리 와야 돼. 그렇지 않으면... 나도 너처럼 미쳐버릴지도 모르거든..." 드래곤의 일기 2부 (159) 새로운 몸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온 몸이 근육통을 호소하고 있기에 퉁퉁 부은 눈을 살며시 떠보았다. 밝은 햇살이 눈을 통해 들어왔고, 갑작스러운 빛에 얼른 다시 눈을 감아버린 나는 그 빛에 적응하기 위해 상당한 시간을 들여야 했다. 얼마 만에 보는 햇빛이지? "일어났네?" 난생 처음 보는 나무들의 빛을 머금은 초록빛 머리를 가진 7~8살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내게 생긋 웃으며 말을 걸었다. 처음 보는 아이였지만 내 머리는 이 아이가 누군지 아주 잘 기억하고 있다. "몸은?" "응? 아아, 너무해. 나를 다시 만나는 반가움 따윈 없는 거야?" "장난할 기분 아니야. 몸은?" "다 만들었으니까 내가 이렇게 내려왔지." "언제... 왔어?" "네가 '그'를 죽일 때부터." 기억이 나버렸다. 나를 마지막으로 보던 그 핏빛 눈동자가 생각 나버렸다. 후후, 그래. 내가 그를 죽였지. "힘든 일을 했더구나." 어린 몸답지 않게 입에서 할아버지 같은 소리를 중얼거리며, 주신은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응... 힘들었어." 평평한 넓은 바위에서 상체를 일으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주신과 눈을 마주쳤다. "하나만 물어봐도 돼?" 갑작스러운 내 질문에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던 주신은 이내 싱긋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어떻게 됐어?" "...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렇지 않아도 지금 천계의 신들은 '그'를 소멸시키라고 나를 구워먹고 있는데." "환생시켜줘." "... 어려운 부탁인거 알지?" "응." "그 부탁 들어주면 난 맞아죽을지도 모른다구." "이거 안들어주면 내가 죽어." "... 일단 새로운 몸으로 옮기지." "이거 놔! '그'를 살려준다고 약속해. 약속해! 안그럼 내가 죽어. 내가 죽는단 말야." 눈물, 콧물 질질 짜면서 울고 있는 나를 그 작은 품으로 안아준 주신은 내 어깨를 토닥거렸다. "흐응.. 왜 이렇게 누굴 닮아서 고집이 셀까." "조용히 해. 흐끅... 들어 줄 거야, 말 거야." "글쎄다... 조금만 더 참아라." "무책임해." "일단 새로운 몸으로 옮기기나 하자." 약간 높은 바위에서 땅으로 사뿐히 뛰어 내린 주신은 왜 빨리 내려오지 않느냐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어디있는데?" "이 레어 안쪽에. 내가 고이 모셔오느라고 얼마나 힘들었는 줄 알아?" "......" "빨리 가자." 마지못해 내려서는 내 손목을 붙잡고 서둘러 레어 안쪽으로 걸어가는 주신은 주신으로 보이지 않았다. 마치 자신의 선물을 받고 기뻐하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보고 싶었는지 나를 데리고 가는 와중에도 얼굴에는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상처가 다 나았군. 주신이 치료해 준건가. 하긴... 주신의 능력으로 이 정도는 일도 아니지. 지상으로 내려오지 못하는 신들을 처참히 무시하고 내려와서 '그'와의 싸움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해 보인다. "어때어때, 감상 좀 말해봐. 역시 블루 드래곤이 좋지?"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내 얼굴을 바라보는 주신을 보고는 그제서야 정신이 들어 정면으로 눈을 돌렸다. "아..." 자그마한 탄성이 입에서 터져 나왔고, 난 내 앞에 서있는 거대한 존재를 새삼 바라보았다. "대단하지? 역시 이 몸이 만들어서..." "이렇게 커서 어디다 쓰라는 거야? 보통 드래곤보다 반은 더 크겠다." "뭐야? "뭐야? 이 몸이 바쁜 시간을 쪼개서 힘들여 만들어주니까!" 사실 내가 감탄한 이유는 한 마디로 이 드래곤의 크기가 무식하게 커서였다. 드래곤의 일기 2부 (160) * 내 이름은 라냐 "... 이 덩치를 어디다 써먹냐?" "몰라. 그건 네가 알아서 해야지. 이거 만들어 준 것만 해도 어딘데." "아... 그런데 다른 드래곤들은?" "응? 아아... 귀찮아서 다른 곳으로 쫓아냈는데..." ... 알만 하군. "조금만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것이 다 끝나 있을 거야. 자면서 마음을 좀 가다듬도록 해." 내 이름은 라냐 "로닌! 빨리 안 일어날래? 곧 아주머니 오신단 말야!" 네모나게 각진 조그마한 사각 유리창 사이로 이른 아침 햇살이 어슴푸레하게 비춰 들어올 때, 방안에서는 약간의 싸움이 일어나고 있었다. "뭐야! 라냐, 조금 더 자게 내버려둬." 갈색 머리를 한 소년이 길게 실눈을 뜨고 자신의 앞에 있는 소녀를 쳐다보고는 이내 다시 따뜻한 이불 속으로 고개를 파묻으며 중얼거렸다. 예쁘게 뒤로 째진 눈이 위로 확 올라가며 소녀는 그 분홍빛 입술에 미소를 걸고는 긴치마에 가리워져 있던 발을 서서히 들어올렸다. "이러고도 안일어나면 내가 포기할게, 로닌~♡" 소녀의 입에서 간드러진 새된 소리가 나오며 그 작은 발은 가차없이 아래 누워있던 소년의 몸을 짓이기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아악~" 아직 채 이슬이 가시지도 않은 아침이 소년의 억울하고 고통스러운 비명소리로 시작하고 있었다. "뭐야! 니가 내 마누라라도 되냐! 우리 어머니도 가만히 계시는데, 왜 허구헌날 니가 와서 날 깨우냔 말야!" 대략 15 ~ 17세로 추정되어 보이는 소년이 짧게 귀밑으로 머리를 기른 다크 계열의 블루 빛 머리카락을 가진 예쁘장하게 생긴 소녀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방금 자다가 깬 듯 환한 갈색 계통 머리를 허리까지 기르고 있는 소년의 얼굴은 차라리 소녀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다지 잘생기지도 않았고, 대단히 못생기지도 않은 그냥 평범한 모습이었다. "아직도 몰라?" "뭘!" "사랑하니까 그런 거잖아~♡" "... 너 그러다가 정말 내 손에 죽는 수가 있어." 험악한 소년의 말에 입을 삐죽이 내민 소녀는 토라진 듯이 고개를 돌려버렸다. "빨리 씻고 나와. 아주머니가 기다리셔." "라냐. 제발 내일 아침부터 그 얼굴 좀 안봤으면 하는데..." 이 한 마디에 라냐라고 불린 소녀의 눈이 위로 치켜 올라가더니 그 작은 주먹으로 소년의 배를 '퍼억' 소리가 나도록 친 다음 손을 털고는 방 문 밖으로 나가버렸다. "로닌 카르타그! 그게 네 소원이라면 내가 평생 널 깨워주도록 할게." 방문을 나선 뒤에도 방안에 남아있는 로닌 때문에 화가 난 듯 씩씩거리던 라냐는 곧이어 다시 방문을 벌컥 열고는 소리쳤다. "10분내로 안나오면 밥 굶길줄알어!" "빨리 안나가! 어디서 감히 남자가 옷 갈아입는데 들어오는 거야!" "어머~ 로닌~♡ 너도 남자였니?" 통쾌하게 로닌을 패닉상태에 빠트리며 라냐는 문을 닫았다. "라냐 크리스틴! 너 나가면 죽을 줄 알아!" 항상 말로만 라냐를 죽인다고 하면서 실천에도 못 옮기는 로닌임을 알기에 라냐는 혀를 빼꼼히 내밀고는 아직은 차가운 아침 공기를 마시며 마당으로 나왔다. 드래곤의 일기 2부 (161) #이벤트 당첨자. *내 이름은 라냐 "정말 저 구제불능, 로닌." "라냐, 또 로닌이 네게 못된 소리를 했나 보구나." "하비 아주머니. 어휴, 로닌은 누굴 닮아서 저렇게 잠이 많아요? 평소에는 자상하더라도 아침에 일어날 때만 성격이 불같아 진다니 까요." "어쩌겠니. 천성이 저런걸. 아무리 내 아들이지만 가끔은 나도 때려주고 싶단다." "낸들 아니겠어요." 얼굴에 불만을 가득 나타내며 삐죽거리는 라냐의 볼을 한 번 잡아 당겨 준 아주머니는 곧이어 아침 준비를 하러 식당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침엔 정말 미안해, 라냐. 고의가 아니었어." "누가 뭐래?" 자신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를 하는 로닌을 차갑게 바라보며 라냐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라냐아~" "정말 하루 이틀도 아니고, 로닌! 전부터 물어보고 싶었는데 혹시 너 이중인격자니?" "그럴 리가 없잖아~" "오호~ 그럴 리가 없어? 난 매일 아침 일어난 일만으로도 그럴 리는 충분히 있다고 생각되는데?" "정말 다시는 안그럴게." "... 정말이지?" "응!" 어차피 내일이면 어겨질 약속이란 것을 뻔히 알면서도 로닌의 저 눈물 맺힌 눈동자만 보면 모든 것을 들어주고 마는 라냐였다. "대신 오늘 딸기 케이크 사줘." "또?" "또 라니? 사주기 싫다는 거야?" 다시 앙칼진 목소리로 로닌에게 쏘아 붇이자 박력에서 밀린 로닌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부터 입안에서 녹는 달콤한 딸기 케이크 생각에 군침이 돈 라냐는 로닌의 손을 잡아당기고는 거의 강제로 마을에 있는 소냐 아주머니의 케이크 가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소냐 아주머니! 여기 딸기 케이크 한 조각 주세요~" 행복한 얼굴을 하며, 언제나 그렇듯 아침에 로닌을 끌고 들어와 딸기 케이크를 주문하는 라냐에게 푸근한 웃음을 지어 보인 소냐는 이른 아침의 첫 손님을 위해 주방으로 들어갔다. "너 때문에 내 용돈이 남아나는 일이 없어." "흐응~ 그래서 싫은 거야?" 콧소리를 내면서 은근히 엉겨붙는 라냐를 멀찌감치 떨쳐내고 로닌은 자리에 앉았다. "라냐. 정말 너 그런 표정 짓지마." "흥." 새침하게 로닌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조그마한 창문 밖을 쳐다보는 라냐의 모습에 로닌은 또 다시 깊은 한 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아참, 로닌! 어제 밤늦게 촌장님 댁에 프랭클린 기사학교에서 전령이 도착했다는 구나." 창 밖만을 바라보던 라냐가 눈을 번쩍 뜨면서 로닌의 옷자락을 세게 움켜쥐었다. "너, 바른 대로 말해봐." "뭐.. 뭘?" "지난달에 너 나 몰래 어디 갔었지? 어디 간거야? 응?" 자신의 얼굴에 라냐가 얼굴을 아주 들이밀며 말하자 얼굴이 새빨개진 로닌은 황급히 뒤로 물러서려 했다. 하지만 재빠르게 라냐의 손이 로닌의 얼굴을 붙잡고 자신의 눈에 고정시켰다. "사.실.대.로. 말.하.면. 별.로. 아.프.지.는. 않.을.거.야." "라냐, 저기 있잖아." "뭐?" "... 케이크가 나왔다구..." "조용해, 로닌. 내가 그 수법에 또 넘어갈 줄 알아?" 식은땀을 흘리던 로닌은 곧이어 라냐의 손목을 붙잡고 다시 자리에 앉히며 심호흡을 깊게 내쉬었다. "그럼 잘먹고 와. 난 이만..." 뒤를 돌아 빠르게 도망가는 로닌을 멍하게 바라보던 라냐는 들고 있던 포크를 멀리 보이는 로닌의 뒤통수에 집어던지고는 씩씩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너 두고봐! 촌장님 댁에 있을 거란거 누가 모를 줄 알아!" 드래곤의 일기 2부 (162) * 떠나는 로닌 다시 새 포크를 손에 쥐고 마치 딸기 케이크가 로닌인양 무자비하게 포크를 찔러대던 라냐는 곧이어 아까 미처 로닌이 계산하고 가지 못한 딸기 케이크 값을 계산하고는 케이크 집에서 나왔다. "라냐, 오늘도 어김없이 네 하루는 케이크집에서 시작하는 구나." "피소 아저씨! 농담 할 기분 아니에요." "홀홀, 우리 새침때기 아가씨가 또 무슨 일로 이렇게 심통이 났을까." "흥." 죄 없는 흙을 발로 차올리며 라냐는 쌀쌀한 마을길을 걸었다. "나쁜 로닌. 두고봐. 흥흥흥, 정말 무심해도 너무 무심하다니까." 어느새 촌장의 집 앞까지 온 라냐는 일단은 정중히 나무로 된 문을 두드렸다. '똑똑' "누구세요?" 촌장 할아버지의 손녀 마론의 목소리가 들리자 반가워하며 라냐가 큰 소리로 외쳤다. "나야, 마론! 문 좀 열어봐. 여기 로닌 왔지?" 살짝 문을 열고 조금은 난처한 듯이 웃고 있던 마론은 방안으로 들어가려는 라냐를 막으며 속삭였다. "할아버지가 로닌에게 할 말이 있다고 아무도 들이지 말래. 그리고 지금 저 방에는 손님도 와계시단 말야." "손님? 프랭클린 기사학교에서 왔다던 그 전령 말야?" "어? 벌써 소문이 거기까지 퍼졌나?" "그런데 대체 왜 온거래?" "응? 몰랐어? 후훗, 아마도 조만간 로닌이 프랭클린 기사학교에 입학하게 될 것 같애." "뭐어!"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이며 라냐는 앞 뒤 볼 것 없이 작은 방문을 열어 젖혔다. "로닌!" "라... 라냐."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라냐를 바라보며 넋이 나간 듯 앉아 있는 세 명을 보고는 라냐는 그제서야 약간의 쪽팔림과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곧이어 로닌에게 이 일들을 묻기 위해 로닌의 앞까지 걸어가서 거만하게 아래에 있는 로닌을 쳐다보았다. "그게 사실이야?" "뭐가?" "네가 기사학교에 입한 한다는 거." "응. 그럴 것 같아." "뭐어? 너 그럼 한달 전에 입학시험 보러 갔었던 거야?" "응." "... 나 네가 기사학교 들어가는 것 싫어." "네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들어가는 건 내 자유야." 한참을 둘이서 눈싸움을 하고 있을 때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촌장이 험험거리며 헛기침을 해댔다. "흠흠, 라냐야. 일단 자리에 앉거라." "아, 안녕하세요." 라냐는 그제 서야 방안에 있던 촌장과 그 전령이란 사람을 인식하고는 서둘러 고개를 숙였다. "마론. 나가서 다과를 내오너라." "네, 할아버지." 조용히 문을 닫고 마론이 나가자 촌장은 그 인자한 웃음을 입가에 머금고는 라냐에게 물었다. "라냐, 왜 로닌이 기사학교를 들어가는 것을 반대하는 거냐." "난 로닌이 그냥 평범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로닌이 그곳에 가면 저와 로닌이 떨어지는건 당연한 일이잖아요." "네 생각만 하면 안된단다. 로닌이 기사학교를 들어간다는 것은 마을 전체의 큰 경사야. 로닌도 자신이 원해서 들어가는 거잖니." "로닌! 가지마, 응?" 더 이상 촌장과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라냐는 최대한 불쌍한 얼굴로 로닌의 손을 붙잡고 말했다. "... 라냐. 언제까지 네 응석을 받아 줄 수는 없어. 가서 검술을 배우고 올 거야. 영원히 떨어지는 것도 아니잖아. 그냥 보내 줘." 자신이 부탁해도 냉정하게 거절하는 로닌을 바라보며 라냐의 큰 눈망울에 눈물이 고였다. "그래! 네 멋대로 해, 이 바보 천치야!" 드래곤의 일기 2부 (163) * 몬스터 "라냐, 정말 괜찮은 거야?" "... 괜찮지 않으면!" "로닌이 떠나는데 인사도 안 할 거야?" "걔가 가든지 말든지 무슨 상관인데?" "라냐!" "조용해, 마론." 로닌이 떠나는 날까지 라냐는 한번도 로닌을 찾아가거나 로닌 근처에 얼씬도 하질 않았다. 아마도 단단히 삐졌기 때문이리라. 로닌이 여러 번 라냐를 찾았지만 그 때마다 라냐는 도망가기 일쑤였다. 다시는 로닌이 보고 싶지 않다고 하면서 로닌이 떠나는 마지막 날까지 배웅을 나가지 않았던 것이다. "로닌이 슬퍼할 꺼야." "슬퍼한다면 가질 말아야지." "왜 그렇게 기사학교에 불만이 크니?" "몰라. 그냥 싫어." "로닌이 어이없어 할만도 하다." "뭐야?" 독기 서린 라냐의 말에 찔끔한 마론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운 라냐를 보고는 고개를 설래설래 내젓고는 작별 인사와 함께 집을 나섰다. "라냐는?" "여전하지 뭐. 안온다구 방안에 처박혀 이불이나 뒤집어쓰고 있어." "하여간 저 성질..." "... 네가 그런 말 할 자격이나 있니? 네가 워낙 라냐를 오냐오냐하며 키워서(?) 그래. 너 잘한 거 하나도 없어. 그러니까 라냐가 저렇게 제멋 대로지." "휴우... 내가 가도 문전박대 하겠지?" "그걸 꼭 물어야 아니? 라냐의 성격을 알잖아." "그래... 그럼 라냐한테 안부 전해 줘." "잘 가. 다음에 볼 땐 멋진 기사님이 되어 있기를 바래." "응."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는 로닌이 참으로 불쌍하다고 생각하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갔...어?" 나무 사이로 빼꼼히 고개를 내민 라냐는 눈물 범벅이 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래, 갔어. 이 바보야." "흑... 왜 간거야. 내가 가지 말라고 하면 안가야지." "로닌은 이미 다 컸어. 로닌에게도 로닌이 가고 싶은 길이 있는 거야. 네가 그걸 막으면 안돼지." 라냐는 불만스러운 듯이 입을 삐죽였지만, 마론은 가차없이 라냐를 탓했다. "곧 돌아올 거야. 여기에 이 라냐 크리스틴이 있는데 로닌이 빨리 돌아오지 않을 리가 없잖아. 멋진 기사가 되서 널 데리러 올 거야." "... 내 말도 안 듣고 갔으니까 성공해서 안 오면 때려 줄 꺼야." "그래, 그래." 하늘에는 검은 먹구름이 잔뜩 몰려있었고, 곧이어 소나기라도 퍼부을 듯이 바람이 세차게 불어왔다. 이런 날씨에 마을의 중앙에 있는 조그마한 광장에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모여 촌장의 입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로닌이 떠난 지 3년이 넘어갔지만 라냐는 그 날 이후로 한번도 로닌에 대해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었다. 방학 때면 마을에 내려 올만도 한데 로닌은 어떤 이유에선지 3년 동안 단 한번도 마을에 내려온 적이 없었다. 가끔 부모님께 편지만을 쓸 뿐, 라냐에게는 단 한 줄의 편지조차도 도착하지 않았다. "여러분, 지금 몬스터들이 대단히 극성을 부리고 있습니다. 아직 우리 마을까지는 피해가 가지 않았지만 우리 마을도 언제 몬스터들의 습격을..." 이미 촌장의 말은 마을 사람들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잔혹한 몬스터가 마을을 습격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마을 사람들 때문에 광장은 순식간에 두려움과 공포심이 가득한 목소리로 술렁거리게 되었다. 드래곤의 일기 2부 (164) * 몬스터 "흠흠, 자 조용히들 하세요. 3년 전에 우리 마을을 떠나 기사학교를 입학한 로닌을 모두 알고 계실 겁니다. 기사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왕께 당당히 기사자격을 수여 받은 로닌이 드디어 우리 마을로 돌아왔습니다." 그제서야 마을 사람들의 얼굴은 조금이라도 밝아졌다. 로닌이라는 단 한 단어에 얼굴에 당황스러움을 보인 라냐는 옆에 있던 마론의 옷자락을 꽉 잡았다. "... 정말... 정말 로닌이 온거야? 왜 나한테 말 안했어?" "로닌이 비밀로 해달라고 했어." 아무래도 마을에 자신들을 지켜줄 기사라는 위대한 존재가 있다는 것이 안심이 되는지 마을 사람들은 차차 안정을 찾아갔다. "난 로닌이 성공할 줄 알았다구요." "기사라면 병사들도 데리고 왔을까?" "이 작은 마을 하나 지킬 수는 있겠지?" "다행이에요." 옆에서 마을 사람들이 떠들어댔지만 라냐는 그 소리 중 아무 것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곧이어 촌장이 서 있는 높은 단상에 흰 망토를 걸치고, 백색으로 은은히 빛나는 갑옷을 입은 로닌의 모습이 보였다. 3년이란 길다면 긴 세월동안 얼굴도 많이 변해서, 예전의 그 장난기 많았던 소년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갈색 눈동자는 아무런 동요 없이 침착하게 마을 사람들을 둘러보고 있었고, 얼굴에는 약간의 미소가 걸려 있는 로닌의 모습에 마론이 라냐에게 물었다. "어른스러워졌지?" "응..."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라냐는 남몰래 광장에서 나와 자신의 집으로 뛰어갔다. 나무문을 거칠게 열고는 바로 앞에 있는 테이블에 주저앉아 어느새 흘러내린 눈물을 닦아 냈다. "바보, 정말 성공해서 왔잖아?" 손등으로 몇 번이나 얼굴을 닦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물은 계속 쏟아졌다. '똑똑' 닫혀진 문 사이로 노크 소리가 들려오자 울던 라냐는 흠칫 놀라며 문 가까이 다가갔다. "라냐...?" 3년 동안 그토록 그리워하던 목소리가 자신을 부르자 또다시 눈물이 흘러나와 옷깃을 적셨다. "라냐, 안에 있는 줄 다 알아. 문 열어." "... 싫어. 가버려." '달칵' 마음속으로는 로닌이 들어오길 바라는 마음이 더 커서일까. 문이 열리며, 예전처럼 환하게 웃는 로닌이 들어와 주저 앉아있는 라냐를 일으켜 세웠다. "울보야, 또 우냐?" "누, 누가 울보라는 거야!" "그럼 여기 너 말고 누가 있냐?" "너! 나도 이제 19살이라구!" "난 20이야. 너가 뭐냐, 너가. 오라버니한테." 예전에는 자신과 키도 비슷하고, 반말을 써도 아무렇지도 않은 로닌이었지만, 지금은 뭔가가 달랐다. 자신보다도 훌쩍 커버린 키에 고개를 올리고 로닌을 쳐다봐야 하는 라냐는 선뜻 오빠라는 말이 나오지 않아 웅얼거렸다. "바보야, 장난이야, 장난. 네가 그렇다고 나보고 오빠라고 할 리가 있겠니?" 예전과 다름없는 말투였지만, 어린애를 대하듯이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로닌에게 조금은 불만인 라냐였다. "로닌! 로닌!" 새하얗게 질린 마론이 급히 뛰어왔는지 헐떡이는 모습으로 로닌을 찾았다. 잠시 행복감에 젖어있던 라냐가 얼굴을 찌푸리자 로닌이 살짝 알밤을 먹이고는 마론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로닌, 모... 몬스터가... 으흑..."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울음부터 터트리는 마론에 의해 로닌의 얼굴은 무섭게 굳어져갔다. "라냐, 마론과 함께 여기서 절대 나오지 마. 알았지?" "로닌!" 뛰어가는 로닌을 크게 외쳐 부르자 로닌이 잠시 뒤돌아보고는 굳은 얼굴에 살짝 미소를 보여주었다. "걱정 마." "... 조... 조심해." 겨우 벽에 몸을 기대고는 입을 가리고 두려움에 울고 있는 마론의 어깨를 감싸안고는 문을 꼭 걸어 잠그고, 라냐는 집안으로 들어갔다. "어, 어떡해... 흑..." "괜찮아, 로닌이 갔잖아. 로닌이 다 알아서 해줄 거야." 말은 그렇게 하고 있었지만 무엇보다 로닌이 걱정되는 라냐였다. "몬스터가... 너무 많았어. 내가 로닌을 부르러 가는 동안에 도... 마을 사람들이 죽었어. 으흑..." 또다시 라냐의 품에서 울음을 터트리는 마론의 어깨를 토닥여주며, 라냐는 벌떡 일어섰다. "라냐?" 자신의 방으로 달려가 긴 레이피어를 들고 나오던 라냐는 마론과 눈이 마주치자 생긋 웃어 보였다. "알잖아... 나도 검은 조금 쓸 줄 안다구." 사실 처음에 로닌에게 호신술을 가르쳐 준다고 검을 잡게 한 것은 라냐였다. 그 이후로 3년간 검을 손에 잡지 않았지만 아직 감각을 잃어버린 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어떻게 검술을 알게 됐는지는 잘 모르지만,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검을 손에 들고 있었다. 라냐는 사실 이 마을 사람이 아니었다. 거의 10년 전에 9살의 어린아이가 혼자서 레이피어 하나를 쥐고는 이 마을에 흘러 들어왔고, 마을 사람들은 불쌍한 마음에 라냐를 거두어 드린 것뿐이었다. 이제는 완전히 이 마을의 주민이 된 라냐는 그런 것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9살 이전의 기억은 전혀 없는 라냐는 보통 어린아이와 똑같이 지냈고, 손에 들고 있던 검은, 몇 년간이나 옷장 깊숙한 곳에 박혀 있었다. "다녀올게. 여기 이대로 있어. 우리 집은 마을과 조금 떨어져 있어서 왠만해서는 찾을 수 없을 거야." 간편한 바지를 입고 레이피어 한 자루를 쥐고 마을을 향해 뛰는 라냐를 바라보는 마론의 눈빛에는 착잡함만이 담겨있었다. 마을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점점 더 마을에서 치솟는 불길이 눈에 들어왔다. 매캐한 연기와 생물이 타는 듯한 노린내가 한꺼번에 코와 눈 속으로 밀려들어오자 라냐는 찔끔찔끔 눈물을 흘렸다. "제길..." 곳곳에 여러 명의 마을 사람들이 죽어있었지만 슬퍼할 시간이 없는 라냐는 로닌을 찾아서 마을 전체를 돌아다녔다. "라... 라냐..." 라냐가 자주 가던 케이크 가게의 소냐 아주머니가 처참한 몰골로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아주머니!" 이미 한쪽 다리가 떨어져 나갔고, 얼굴에는 심한 화상을 입고 있었지만 라냐는 소냐 아주머니를 알아볼 수 있었다. "난 괜찮다. 라냐... 빨리 광장으로... 그곳에 마을 사람들과 몬스터가..." "로닌은요? 로닌은..." "로닌도 아마 거기 있을 거야. 조심... 하거라." 힘들게 말하며 거칠게 숨을 내쉬는 소냐 아주머니가 걱정 됐지만 라냐에게는 무엇보다 로닌이 우선이었다. 아무리 기사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다고 해도 라냐에게는 아직도 어릴 때 로닌 그대로였던 것이다. 소냐 아주머니를 일단 불길이 닿지 않는 곳으로 옮겨 놓고는 대충 응급처치를 한 다음 광장으로 뛰어갔다. 로닌이 데려온 것으로 보이는 병사들 십 수명이 힘겹게 몬스터와 대치를 이루고 있었고, 마을 사람들은 대다수가 죽어 있었고, 나머지는 공포에 떨며 병사들의 뒤쪽에서 울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차마 도망갈 생각도 하지 못하는 마을 사람들을 대피시켜야 겠다는 생각을 하며, 라냐는 서둘러 그 곳으로 달려갔다. "빨리 일어나서 마을 밖으로 나가요!" "으... 으악!" 병사 한 명의 머리를 자르고, 마을 사람들에게 덤벼드는 오크를 라냐가 힘겹게 레이피어로 막으며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빨리 나가라니까요!" 누군지는 미처 보지 못했지만 마을 사람 하나가 덜덜 떠는 발로 황급히 도망가자 그것을 시초로 대부분의 마을 사람이 광장을 빠져나갔다. 몬스터가 얼마나 있는 줄은 잘 모르지만, 일단 이곳에 있는 것보다는 마을 밖으로 나가는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에 라냐는 한 숨을 내쉬었다. '촤악~' 검붉은 피를 내쏟으며 머리가 잘려나간 오크를 보고는 라냐는 로닌을 찾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엄마를 잃었는지 울고 있는 꼬마 하나가 도망가지 못하고 울고 있고, 그 앞에서 꼬마에게 덤벼드는 트롤을 상대로 로닌이 겨우 막아내고 있었다. 이론은 완벽히 꽤고 있을지 몰라도 로닌은 아직 전투경험은커녕 살생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기에 전투로 몸이 단련되어 있는 트롤을 상대하기에는 벅찼다. '팍' 트롤의 뒤에서 등을 뚫고 심장을 꿰뚫은 라냐는 자신의 앞에서 넋이 나가 서있는 로닌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라냐!" "귀 안먹었어." "나오지 말라고 했잖아!" "상관마." 이미 병사들은 전멸한 상태였고, 점점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몬스터를 보고 라냐와 로닌은 꼬마아이를 안고 뒤로 한 걸음씩 물러섰다. 몬스터들은 도망간 마을 사람들을 쫓지는 않고, 오직 둘에게만 관심이 있다는 듯이 무기를 들고 다가오자 라냐와 로닌은 한 편으론 안심이 되었다. [ 그만. ] 갑자기 엄청난 기운이 마을 전체를 감싸고, 사라지자 어리둥절한 상태의 둘은 길을 내주려는 듯이 서서히 반으로 갈라진 몬스터들을 바라보았다. 그 사이로 평범한 여행자 복을 입고, 긴 흑발을 위로 높이 묶어 올린 날카롭고 이지적인 검은 눈동자를 한 장신의 청년이 그 둘을 향해 걸어왔다. "우앙~" 꼬마는 뭔가가 두려운 듯이 계속 울음을 그치지 않았고 라냐는 본능적으로 아이를 자신의 뒤로 숨겼다. 로닌은 라냐의 앞에서 검을 빼어들고 그를 노려보았고 그는 로닌따위는 관심도 없다는 듯이 길게 내려온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내가 꼭 이렇게 까지 해야겠냐." 알아듣지 못할 말을 중얼거리며 그 청년은 라냐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만 꿈에서 깨어 나오시죠, 시크. 아니, 로드님." 드래곤의 일기 2부 - (165) *로드란 자리의 의미 갑자기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것을 느끼며 라냐는 자신이 잊고 있었던 9살이라고 생각했던 이전의 기억들이 물밀 듯이 머릿속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카네스..." "꿈에서 깬거냐?" 상황파악이 되지 않는 듯 자신을 멍하니 바라보던 로닌을 라냐는 쓴웃음을 짓고 바라보았다. "갑자기 왜 깨우는 거야." "... 이만 깨워야 될 것 같아서." "가자." 이미 몬스터들은 마을을 빠져나가고 있었고 카네스의 손을 붙잡은 나도 마을을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탁' 내 손목을 붙잡고 아직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로닌은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야." "로닌." "설마 몬스터를 네가...?" "... 사랑해." [ 잠들어라 ] 한마디의 용언에 무너지듯 쓰러지는 로닌을 부축하고는 바닥에 조심스럽게 눕혀놓았다. "후회되냐?" "... 후회 따윈 안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들 찾았다고 좋아한 녀석이, 지금은 왜 이러냐?" "평범하게 키워달라고 했더니 기사 따위나 되다니..." "오호~ 그래서 삐지셨구만?" "닥쳐." 그렇다. 로닌은 시오스의 환생체다. 내가 직접 주신을 거의 협박하다시피 해서 찾아낸 아이다. ... 처음엔... 그냥 옆에만 있고 싶었다. 이제는 그럴 수도 없겠군. 카네스가 날 깨우러 왔으니...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30년 정도." "내가 그렇게 오래 있었나?" "20여년 동안 싸돌아다니고 10년 여기 있었어." "응." "가자. 밀린 일이 산더미야. 어쨌거나 넌 로.드.님. 이잖아?" 로드란 자리의 의미 730년 6월 날짜 : 12일 날씨 : 봄 날씨. 내 레어로 돌아와서 태평하게 돗자리를 깔아놓고 봄 햇살을 즐기고 있는 나에게 카네스가 다가왔다. "언제까지 놀거야? 일 안해." "네가 해." "야! 넌 로드라구." "그 자리가 뭔데? 족쇄잖아. 너희들이 날 이 자리에 올려놨으니, 그런 일들은 너희들이 해야지. 드래곤이 째째하게 뭐 일일이 보고를 하고 다녀? 네 선에서 처리해." "너..." "왜 싫어? 로드자리 그만둘까?" "끄응..." 역시 이 말만 하면 카네스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다. 대체 로드 자리가 뭘까. 지금까지의 정의로는 정말 피곤한 자리라는 거다. "에릭 불러와." 사실 내가 꿈에서 놀 때 에릭도 내 곁에 있어야 했지만(사실 주군(?)과 같이 있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롭다고 했다.) 마족이라는 놈이 동.면.기. 란다. 마족 인생에 단 3번 있는 동면기. 마족은 동면기를 거치면 더욱 강한 마족으로 다시 태어난다. 에릭은 이번이 마지막 동면기라고 한다. 언제 깨어날지 알 수 없는 시간. 사실 카네스가 나를 데리러 온 것도 에릭이 깨어났기 때문이다. 내가 꿈.에.서. 도저히 깰 기미가 보이지 않자 약간 거친 방법을 썼다고 했다. 하긴... 이번 꿈은 지독했어. 내가 드래곤이라는 사실마저도 잊어버리고 있었다니. "왜 불렀어." 아직 잠에서 덜 깬 모습으로 멍한 눈빛을 하고 나타난 에릭이 내 앞에 서서 물었다. 난 앉아있었기에 그를 올려다 볼 수 밖에 없었다. "여기 누워." "... 안본 사이에 취향이 많이 변했네." "시끄러워. 누우라면 누워." 투덜대면서 얌전히 내 옆에 눕는 에릭을 보고 살며시 웃음이 나왔다. "왜 웃어." "그냥. 귀여워서."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얼굴을 찡그리고 에릭은 내 손을 쳐냈다. "건들지마." "매정하긴..." 드래곤의 일기 2부 - (166) *황태자 쓰게 웃을 뿐 더 이상의 행동은 하지 못했다. 그냥 슬퍼졌다. 갑자기 이런 태평한 나날들에 대한 회의가 밀려왔다. 눈을 감아도 눈꺼풀 사이로 빛이 새어 들어왔다. "야." 눈을 뜨니 에릭의 얼굴이 바로 앞에 있었다. "또 무슨 짜증이 난거야?" "아냐." 에릭의 하얀 얼굴을 한번 만져준 후 허탈한 걸음으로 어두운 레어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기 싫어. 아무도 보기 싫어. "아, 로드님아." 여러 가지 서류들을 처리하다 나를 발견하고는 말을 거는 카네스를 무시하고 레어 안쪽에 있는 침대로 다가가 쓰러지듯 누워 이불을 뒤집어 썼다. "야, 내가 부르잖아." 얇은 이불을 걷어내고 불만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는 카네스를 보고 난 다시 카네스의 손에 서 이불을 잡아끌어 뒤집어썼다. "좋아좋아. 또 무슨 일로 심통이 났는진 모르지만, 황태자가 잠깐 자신 좀 찾아와 달라고 하 더라." "... 언제?" "10년 전에." "... 그걸 왜 이제 말해?" "까먹었거든." 드래곤에게 망각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카네스 또 일부러 지금 생각난 듯이 말하는군. 그러고 보니 황태자를 만난지도 카네스 말마따나 싸돌아다니다가 잠깐 왕궁에 들린 것 뿐이 니 연 20년이 되가는가? 지금 살아있는지도 잘 모르겠군. "다녀올게." "지금?" "에릭 밖에 있어. 데리고 와." "내가 네 심부름꾼이냐!" 말은 그렇게 하면서 또다시 에릭을 데리러 투덜대며 밖으로 나가는 카네스였다. 황태자 730년 6월 날짜 : 13일 날씨 : 맑다. 우선은 예전에 기억하고 있는 좌표대로 왕궁 정원으로 텔레포트를 시도했다. 설마 그 사이 지형이 바뀌어서 절벽이 나타나거나 그러는건 아니겠지? 만약을 대비해 몸에 부유 마법을 걸어놓고 나는 에릭을 데리고 텔리포트를 시도했다. 뭐, 에릭이야 떨어지던지 말던지 별로 상관은 안한다. 재수 없으면 떨어지고 아직 명이 남았으면 살겠지, 뭐. 자기 몸은 자신이 간수해야 하는 법. 텔레포트로 이동하자마자 진하고 아찔한 꽃향기가 잔인하게 내 콧속을 휘저었고, 이런 은은 하면서도 독한 향기가 맘에 들지 않은 나는 서둘러 옷에 묻은 꽃가루를 털어 버리고는 내가 기억하고 있던 대전으로 향했다. "콜록... 흐윽... 콜록~" 심하게 기침을 해대는 녀석 때문에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다시 뒤를 돌아봤다. 내 뒤에는 꽃 속에 머리가 파묻혀서 눈물, 콧물 다 쏟아내며 기침을 하고 있는 에릭의 모습 이 보였다. "뭐냐..." "코, 콜록! 보면... 흐윽.... 몰라서 콜록~ 물어!" 차라리 보는 사람이 안쓰러울 정도로 심하게 기침을 해대는 통에 웃기다기 보다는 불쌍하다 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빨리 와. 놔두고 가버리기 전에." "같이... 콜록~ 가!" 서둘러 일어나 나를 따라오는 에릭을 보고 피식 웃음을 흘렸다. 넓은 복도에 들어설 때까지 계속해서 기침을 해대던 에릭은 그제 서야 기침을 멈추고는 나 를 바라보았다. "입가에 걸려있는 그 웃음은 뭐지?" "비웃음." 드래곤의 일기 2부 - (167) *황태자 "너..." 내게 무엄하게도 손가락질을 해대며 손을 부르르 떠는 에릭의 머리에 묻은 꽃가루를 거칠게 털어 준 다음 나는 다시 황태자를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 역시나 거의 모든 왕궁들의 공통점. 지나가는 인간들이 없다. 대체 모두 어디에 있는 거야. 검은 로브 자락을 휘휘 날리며 무조건 걸어가는 내 뒤를 묵묵히 따라오는 에릭. 잠깐 내가 가는 길이 맞나, 하고 생각하고 있을 때 난 내 기억력을 확신 할 수가 있었다. 내가 회의실이라고 생각했던 곳, 바로 앞에 엄청난 수의 기사들과 시녀, 시종이 있었기 때문 이다. "찾았다." 내가 그 곳을 찾음과 동시에 그 쪽에 있던 기사들도 나를 발견하고는 조심스레 검을 빼어들 고 다가왔다. "누구십니까. 신분을 밝혀주십시오." "... 비켜." "어떻게 왕궁에 숨어들어 왔는 줄은 모르겠소만 저희와 함께 가주셔야 겠습니다." "내가 왜?" 말로는 통하지 않는 상대라는 것을 알았는지 대장격으로 보이는 기사가 입을 열었다. "생포해라." ... 내가 죄인인가. 난 엄연히 황태자의 부탁을 받고 온건데.(10년 전의 일이지만.) 내게로 다가오는 기사들은 신중히 행동하고 있었다. 아마도 이 마법사의 표식인 로브 때문 이리라. "에릭, 부탁한다." "귀찮아." 그러면서 내 앞으로 나서는 에릭을 보고, 난 뒤에서 편히 구경했다. "조용히 처리해." 슬쩍 고개를 끄덕이고 자신의 허리에 찬 검을 뽑아든 에릭은 그 곳에 마력을 주입해 거무스 름한 검기가 형성하게 했다. 이 정도 일에 검기까지 쓰냐? 내가 마음속으로 딴 생각을 하는 잠깐 동안 에릭은 칼등으로 기사들 모두를 바닥에 뒹굴게 만들었다. 물론 어.떠.한. 유혈사태도 없었다. 홀, 밥 값하는군. 또다시 다른 인간들이 몰려오기 전에 벌벌 떠는 시녀들과 시종들을 지나 나는 회의실 문을 벌컥 열었다. 회의중이였던 듯 수 십 명의 인간들의 시선이 내게로 쏠렸다. "무엄하다! 감히 이곳이 어딘 줄 알고!" 흰 수염을 멋있게 기른 할아버지 한 명이 나를 보고는 무엄하다 어쩐다 시비를 걸었다. "조용해." 상당히 낯짝이 두꺼워진 나는 그들에게 일체의 관심도 쏟지 않은 채 가장 상석을 바라보았 다. 벌떡 일어선 채로 나를 보고 당황스러움과 반가움을 표시하는 황태자, 아니 황제가 되어버 린 놈을 보면서 나는 웃어주었다. 이미 황제가 된지는 오래됐지만 난 아직도 황태자를 황태 자라고 부른다. "잘 왔어." 몇 분간의 긴 침묵 끝에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환영 인사를 건네는 황태자에게 다시 한번 미소를 보여 주고는 상석으로 걸어갔다. "폐하! 미천한 소인이 한가지 묻겠습니다. 이 방자한 여인은 누굽니까." 이번에는 메기 수염을 기른 뚱뚱한 중년인이 건방지게도 물었고 황태자는 인상을 찌푸리고 는 내 손을 잡고 말했다. "그녀는 드래곤이오. 대신들이 함부로 말할 존재가 아니오." 갑자기 싸늘하게 내려앉는 공기. 새하얗게 질려서 주저앉는 대신들을 보고는 나는 힘없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뭐,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오랜만에 황태자의 얼굴을 다시 천천히 뜯어보았다. 20년 전에 만났을 때와 판이하게 다른 황태자의 얼굴. 그 장난기 많던 얼굴이 이제는 근엄한 황제의 그것으로 바뀌었다. 많이 늙어버린 얼굴. 이제서야 겨우 30년이라는 세월이 실감났다. 얼굴에는 이미 주름살이 깊게 패여있었고, 찬란한 황금빛의 머리카락은 백색으로 물들어있 었다. 하지만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건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검은 눈동자. "부른지가 언젠데 지금에서야 기어 나오는 거냐?" "사정이 있었어. 그런데 왜 부른 거야?" "그건 나중에 얘기하고, 여봐라." "네." 내가 열고 들어온 문에서 한 시녀 하나가 조용히 대답했다. "가서 황태자를 데리고 오너라." 드래곤의 일기 2부 - (168) *황태자 "결혼했냐?" "그럼 내가 평생 너만을 바라보고 살 줄 알았던 건 아니겠지?" 실없는 농담을 서로 주고받으며 우리는 자리를 옮겼다. 아무래도 회의실은 딱딱하기에. "아바마마~" 황태자의 서재에서 간단한 티타임을 즐기고 있을 때 서재의 문이 열리고 대략 15 ~ 17 정도 로 보이는 소년이 뛰어들어 왔다. "뮤즈." "응?" "네?" 뮤즈라는 이름에 반사적으로 대답해 버린 나. 하지만 뭔가 이상한게 느껴져서 재빨리 황태자를 바라보니 황태자가 의미있는 웃음을 입가 에 그렸다. "뮤즈가 얘 이름이다. 닉네임이지. 이 정도면 외울 수 있겠지?" 내 성격을 파악해서인지 그 긴 성을 붙이지 않고 닉네임만 말하는 황태자에게 나는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뮤즈라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쿡, 아주 황태자 판박이네, 판박이. 설마 더러운 성격까지 닮은 건 아니겠지? "아, 안녕하세요?" 밝게 웃으며 내게 인사하는 뮤즈를 보고 나는 안도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새로 온 후궁인가 보네요? 어쩌죠? 아바마마는 새로 들어온 후궁에게는 금방 질리시는 편 이거든요. 아무쪼록 잘해보세요." "뮤즈!" 제길... 지아비랑 판박이잖아? "하긴, 내가 뭘 기대하겠냐. 네 아들이면 너하고 닮았을 것을." "흠흠..." 어색한 듯이 헛기침을 하고 있는 황태자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인 뮤즈를 사이에 두고 나와 에릭은 입가에 미소를 걸고 있었다. "그나저나 나는 왜 부른 거였어?" "10년... 아니 정확히 15년 전부터 우리 나라와 전쟁을 벌이는 국가가 있지. 처음엔 작은 나 라가 반란을 일으켜서 그냥 군사를 보내고 말았는데 그게 아니었어." "그게 아니라니?" "... 사막 왕국 트아티나를 제외하고는 이 대륙의 거의 모든 국가들이 우리의 적이 되었다는 얘기야." "그게 나를 부른 이유와 무슨 상관이야?" "10년 전엔 정말 멸망할 지경까지 갔었다구. 다행이 네 카이오네스님이 도와줘서 멸망까지 는 피했지." 호오, 카네스 그 놈이? 간만에 예쁜 짓 했군. "그럼 지금은 괜찮아?" "아직도 전쟁이 끝나지 않았어." "그쪽에서 원하는게 뭔데?" "... 제국의 멸망." "흐음, 너네 꽤나 밉보였나 보구나." "그래그래. 잘난 네가 그러니까 전쟁터에 나가서 브레스 한 방 쏴줘라." 브레스란 말에 동그란 눈이 되어서 나를 쳐다보고 있는 뮤즈를 못 본 채 하며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싫어. 귀찮아." "그럼 최소한 도와주기라도 해." 진지한 모습으로 말하는 황태자를 보고는 어쩔 수 없이 이 놈을 도와줘야 겠다는 생각이 들 었다. 또 위에 있는 신들이 인간의 역사에 끼어 든다고 나보고 땍땍거릴게 뻔했지만 어차피 잔소 리 몇 번 듣고 끝 날일이다. 드래곤의 일기 2부 - (169) *황태자 "내가 뭘 해야 되는데?" "그럴 줄 알았어. 역시 넌 내 사랑이야." 금방이라도 나를 안고 부빗거리려는 황태자를 쓱 피하면서 나는 빨리 대답하라는 눈초리를 보냈다. "흠흠... 조금 미안한 말이지만 직접 전쟁터에 나가 싸워줘야겠는데." "그래." 인간을 죽인다. 얼마만의 일이지? ... 기억 안나는군. 내가 알기로는 인간을 죽인 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나 때문에 죽은 인간은 몇 있었지. 상관없다. 뭐, 끝까지 가보기로 하지. "마법사가 좋을까, 검사가 좋을까." "편한 대로 골라." "둘 다 하지." "네가 갈 곳은 최전방이야." "응." "고맙다." "밥이나 제때 줘." 농담 아닌 농담을 주고받으며, 옆에서 무섭게 나를 노려보는 에릭을 무시한 채 나는 내가 묵을 방으로 들어갔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응?" "네가 그런 일을 받아들일 리가 없잖아." "아아, 그거 말야?" "아아가 아냐, 아아가." "쿡, 피에 미쳐보는 것도 좋겠지." 짧은 시간동안 왠지 내가 완벽한 싸이코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에릭, 그런 눈으로 보지마. 나도 지금 혼란스러우니까." "아직까지 괴로운거야?" "......" "잊을 때도 됐잖아." "... 하나만 말해 둘까, 에릭?" 어느새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는 바깥을 보며, 나는 겨우 에릭에게나 들릴만한 목소리로 입 을 열었다. "... 드래곤에겐 망각이라는 단어 자체가 존재하지 않아..." 방 하나에 여러 방문이 연결되어 있어서 왠지 편했다. 밤늦은 시각에 거실이라고 생각되는 방으로 가서 아까 주방에서 몰래 슬쩍 해온 와인을 투 명한 유리잔에 담았다. 창가 옆이라서 달빛이 희미하게 테이블 위에 있는 유리잔에 비추자 선명한 붉은 와인의 자 태가 고고하게 드러났다. "술에 약하긴 하지만 뭐, 조금쯤은 괜찮겠지." 달빛을 안주 삼아 혼자 홀짝였다. 가슴 한구석에서 따뜻한 무언가가 점점 온몸으로 퍼져서 결국은 알딸딸한 지경까지 오게 된 나는 왠지 한 편으론 슬퍼지고 한편으론 기분이 좋아졌다. "헤헤... 미치겠네, 그냥." 바깥으로 보이는 마법으로 밝힌 불들과 횃불을 감상하면서 이제는 아에 테이블에 들어 누워 나는 중얼거렸다. "후움, 벌써 이만큼이나 먹었네. 왜 오늘따라 잠이 안오지이... 헤헤~" "아주 청승 맞는 짓은 혼자 다하고 사는 구나." 감정 없는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렸고, 와인을 입으로 가져가던 나는 그 목소리에 바보처 럼 헤실거렸다. "에릭, 자는 줄 알았는데... 헤헤." "자다가 깼어. 네 그 청승맞은 웃음소리 때문에." "너도 한 잔 할래? 왕궁 거라서 그런지 맛이 좋아." "... 내일 숙취에 해롱대고 싶지는 않군." "그래그래, 나만 마시지 뭐." "겨우 와인에 취하냐?"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거야. 하암~" "한가지만 묻자." "엥? 그래그래, 물어봐물어봐~" 갑자기 잠이 와서 졸린 눈을 비비고는 나는 다시 웃으며 에릭에게 말했다. "대체 왜 그런 일을 수락한 거냐." "무슨 이일?" 혀가 꼬여서 말 발음이 잘 되지 않은 상태로 물으니 에릭의 인상이 구겨지는게 보인다. 무슨 일인지는 잘 아는데, 그 대답은 피하고 싶다. "빨리 말해."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침실로 가면서 에릭에게 손을 흔들었다. "잘 자." 커다란 더블 침대에 기우뚱거리면서 넘어진 나는 거의 술에 취해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렸다. "이제 지켜줄게 없어졌거든... 누구라도 내 도움이 필요하다면 나는 무슨 일이든지 할거야. 그게 설령 목숨을 내놓는 일이라도..." 드래곤의 일기 2부 (170) * 황태자 730년 6월 날짜 : 14일 날씨 : 여전히 맑은 공기의 맑은 하늘이다. 언제나 새벽의 차가운 공기는 폐를 시원하게 해준다. 테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차가운 공기에 은은한 꽃향기가 실려 있어 오늘 아침의 나는 더없 이 기분이 좋았다. "옷 좀 입지 그래?" 하늘거리는 레이스가 달리고 속이 훤히 다 비치는 잠옷을 입고 뛰어 다니는 내가 마음에 들 지 않았는지 보다 못한 에릭이 조용히 말했다. 그를 보고 한번 장난스런 웃음을 지어준 나는 다시 테라스로 걸어가 맑은 공기를 마셨다. "추워, 문 닫아." ... 꼭 판을 깨는 소리를 한다. "하앙, 오랜만에 이 곳에 왔으니 라피라도 보러 갈까나?" "혼자 가라." "어머? 우린 떨어져서 살 수 없는 존재잖아~ 나는 괜찮지만 너는 나 없인 못살잖아. 안그 래? 내가 라피에게 가서 며칠동안 안오면 어쩌려구? 그때 또다시 죽어 가는 얼굴로 찾아오 느니 지금 나와 같이 가는게 더 나을걸?" 누가 보면 떨어져선 죽고 못사는 연인들의 장난스런 대화 같지만 이 말은 사실이다. "... 너 네 자신이 사악하다고 느낀 적 있냐?" "아니. 내가 사악해?" "모르면 됐다." 사실 내가 사악하다는 것은 충분히 뼈저리게 안다. 인정하기가 싫을 뿐. "좋은 아침~" 아침부터 나답지 않게 헤실헤실 웃으며 에릭과 함께 식당에 들어서자 그 곳에서 나를 기다 리던 황태자는 벙찐 얼굴이 되었다. "왜 그렇게 봐? 내 얼굴에 뭐 묻었어?" "아니. 네가 그렇게 웃는 건 오랜만에 봐서." "그나저나 속이 쓰리다. 어제 술을 좀 마셔서 그런지... 여기 꿀물 좀 가져다 줘요." 옆에 있는 시종을 붙잡고 말하자 그 시종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황급히 사라졌다. "밤에 혼자 술 마셨어?" "어? 응." "왜?" "흑... 네가 나를 버렸으니 당연히 내 마음이 아플 수밖에..." 장난으로 말한 거지만 황태자는 얼굴이 뻣뻣이 굳어버리더니 황급히 옆에 있는 여인을 주시 했다. 그제 서야 황태자의 옆에 있는 기품 있는 중년 여인을 발견한 나는 멋쩍게 다시 웃을 수밖 에 없었다. "누구야?" 낮은 목소리로 황태자에게 물었지만 그 목소리를 조용하던 식당에 있는 사람 모두가 들었다 는 건 굳이 말 않해도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에릭은 나를 보고 한심하다는 듯이 고개를 젓고는 내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바마마의 부.인.이시며 제 어머님이십니다." "아하핫..." 또다시 존재를 잊고 있었던 뮤즈가 내 앞에서 얼굴을 굳힌 채로 상당히 불쾌하다는 듯한 말 투를 보내왔고 나는 다시 이 어색함을 모면하기 위해 웃.었.다. "왜 진작 말 안했어!" "언제 물어봤냐." 황태자를 한 번 째려봐 준 뒤에 나는 그 중년 여인에게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다지 마음이 쫀쫀한 양반은 아닌 듯 마주 웃어 보이는 그녀를 바라보고는 왠지는 모르지 만 역시 황태자가 잡혀 사는 구나 라는 생각이 든 건 내가 이상해서일까. 마침 이 어색한 상황을 깨고 시종이 내게 꿀물을 가져 왔고, 약간 속이 쓰리던 나는 예쁜 유리잔에 담긴 꿀물을 단숨에 비워버렸다. "예의가 없군요. 그건 천한 평민이나 하는 짓입니다." 뮤즈가 나의 행동에 이의를 제기해 왔고, 예전의 황태자와 정말 똑같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대답해 보였다. "... 내가 그런 것 따질 드.래.곤.으로 보이냐? 인간의 예절을 내게 강요하지 마라." 참 나도 이 어린애 데리고 잘 하는 짓이다. 드래곤의 일기 2부 (171) * 새로운 만남 "언제 떠날 거야?" "으음... 언제 갈까. 일단은 라피도 좀 만나봐야 되구, 2주 후에나 가게 되겠네. 너무 늦나?"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게 아니지. 너 편할 대로 해." "... 빨리 가라구? 알았어. 1주일 후에 가지." "눈치 빨라졌구나." "그게... 욕이냐?" "설마. 쿠쿡." 음흉하게 웃는 저 놈이 상당히 거슬렸지만 뭐, 너그러운 이 아량으로 용서해 줘야겠다. "너네 부인 착하게 생겼더라." "그래?" "응. 왠지 기품 있어 보이더라구." "흐음, 그렇긴 하지. 너와 정 반.대.의. 스타일을 고르느라 좀 힘이 들었어. 네가 보기에도 그렇게 보이지?" 저것도... 욕인가... "라피에게는 언제 갈 거냐?" "내일. 오늘은 그냥 놀래." 짧은 푸른빛의 머리를 긁적이며 말하자 황태자는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방을 나갔다. "에릭아." "왜?" 언제 빌려왔는지 왕궁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수북히 쌓아 놓고 창가에 앉아 사과 하나를 물고 책을 보던 에릭은 내가 부르자 상당히 불쾌한 듯 입을 열었다. "나 놀러 갔다 올게." "... 언제는 내 허락 맡고 나갔냐?" "그랬지? 그래, 나 가출한다. 잘 먹고 잘 살아라." 나에게 시시콜콜 따지고 드는 에릭을 뒤로하고 나도 역시 방을 나와 돌아다녔다. 하.지.만. 내가 간과 한 게 한가지 있었다. ... 난... 길.치.였.다. "크아아아아악~ 왜 이렇게 넓어! 왕 하나만 달랑 살면 될 것 가지고 왜 이렇게 무식하게 넓어! 내가 돌아가자마자 왕궁 지은 놈 찾아서 안밟아주면 드래곤도 아니다!" 역시나 내가 예전에 당했던 대로 지나가는 사람 하나도 없는 곳에서 길을 잃고 말았다. 대체 이건 미로도 아니고. 적군이 쳐들어오면 완전 미로 찾기 되겠군. "흑... 으흑... 흑..." 유난히 청각이 좋던 나는 어느 한 곳에서 들리는 울음소리에 절규(?)를 멈추고 반가움에 그 곳을 찾아갔다. 약 5분 정도 거리에 있는 넓은 복고 한 구석에서 초록색 머리를 가진 인간 하나가 무릎사이에 고개를 묻고 훌쩍이고 있었다. '톡톡' 계속 꿈쩍도 안하고 울기만 하길래 나는 옆에 가서 발로 살짝 건들어봤다. 헐~ 움찔움찔 하는게 정말 재미있군. 그렇게 한 10여분을 놀았을까. 이 인간은 움찔거리면서도 우는 것을 멈추지 않더니 내가 계속 건들자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나를 쏘아보았다. 이봐, 간 떨어질 뻔 했다구. 진한 초록빛 눈동자가 앙칼지게 쏘아보는 가운데 나는 약간 잘못을 저지른 것도 있고 해서 은근슬쩍 그 눈을 피했다. "뭐에욧! 그냥 지나가면 되지 왜 자꾸 건드려욧!" 보기에는 사내놈 같은데 말투 보면 여자다. "길을 잃어서." 내 말에 잠시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던 인간은 곧이어 나를 쓱쓱 살펴보았다. "어디 가는 길이에요?" "목적지가 없어. 근데 배고파서 식당 가고 싶어. 여기서 길 잃은 지 한참 지났거든." "식당까지 데려다 줄게요." "응." 당연하다는 듯이 내가 말하자 인간은 잠시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고는 먼저 앞장서서 성큼성큼 걸어갔다. 데려다 주는걸 보니 천성이 나쁜 인간처럼 보이지는 않군. "인간. 이름이 뭐냐?" "인간이라뇨. 당신은 인간 아니에요? 내 이름은... 잠깐만요. 내가 왜 상대방 이름을 밝히지도 않은 사람에게 이름을 가르쳐 줘야 되요?" "내가 궁금하니까." 드래곤의 일기 2부 (172) * 새로운 만남 "브리안이에요. 브리안 카르미나 스노파리카." "브리안이라. 내 이름은 시크." "성 없어요?" "없어." 성이 없다면 그건 평민을 말하는 거다. 잠시 평민이 어떻게 왕궁에 들어왔는지 궁금해하는 눈치였지만 나는 그것을 모른 척 했다. "궁금한게 있어." "뭔데요?" 내가 자신에게 호기심을 나타내자 조금 귀찮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꼬박꼬박 묻는 말에 대답 해 줬다. "너 왜 울었어?" 내 질문이 상당히 충격적이었는지 브리안은 얼굴이 빨갛게 되었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흐음, 이봐. 온몸으로 부끄러운 일이라고 표현하지 말라구. 더욱 알고 싶잖아. "묻지 마요." [ 말해. ] 아무리 물어도 대답을 해줄 것 같지가 않아서 드래곤 피어를 조금 섞어서 물었다. 왠지 온 몸을 덜덜 떨면서 겨우 입을 여는 브리안에게 약간 미안한 감이 있었지만 난 얼굴 이 상 당히 두껍다. "난 얼마 전부터 왕궁에서 키우기 시작한 마검사 중에 한 명이에요. 아니, 정확히는 수련생이라고 해야 되죠. 소질이 있어서 왕궁에서 배우게 됐는데 매 일 선생님들께 혼나요. 마법은 아직 1서클도 마스터 못했구요, 검술도 기초 단계에요. 나와 같 이 배우는 아이들은 모두 적어도 3서클은 마스터 했다구요. 난 바본가 봐요. 흐윽..." 결국에는 울음을 터트리는 브리안을 보며 상당히 찝찝함을 느꼈다. "야, 왜 울어. 울지마. 누가 보면 나 욕해." "으허어어엉~" 아까의 그 훌쩍임이 아닌, 갑자기 복도에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하는 브리안을 난처하게 바 라보 면서 나는 드디어 말로 해서는 안되겠다는 단계에 들어섰다. '퍼억' "꾸엑~" "울지 말랬지! 이게 그냥, 확~! 너 앞으로 내 앞에서 질질 짜면 죽어!" 난 내 성격이 많이 고쳐졌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 내 본 성격을 튀어나오게 해준 이 브리안이라는 존재에게 엄청난 경외심이 든 다. "너무 해요." "닥쳐." 주저 앉아있는 브리안을 억지로 패서 일으킨 후 나는 브리안을 앞장세워 천천히 식당으로 가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왕국도 급하긴 급했나 보군. 마검사까지 키우려고 하다니. 차라리 한쪽으로 치우치면 될텐데... 쩝, 나도 모르겠다. 난 그냥 나가서 싸워주기만 하면 되지. "여기에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나를 식당 문 앞에 데려다 놓은 뒤 브리안은 황급히 사라져 버렸다. 원, 싱거운 놈. 왠지 참으로 낯설어 보이는 식당 문을 연 나는 약간의 당혹감에 시달렸다. 걸신들린 귀신처럼 입에 음식을 꾸역꾸역 넣고 있는 인간들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 이곳 아무래도 병사들 식당 같은데...(상황 파악 중...) ... (상황 파악 끝...) 내가 밥 먹는 곳이 아니잖아! 크악~ 브리안! 이 놈! 너 나중에 잡히면 죽었어! 난 내가 왕이 밥 먹는 식당으로 데려가 달라고 하지도 않은 주제에 지금 광분해서 날뛰고 있었 다. "뭐냐?" "으응, 왠지 네가 이 아이를 맡아 주면 최고로 만들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 겨우 내가 밥 먹던 식당을 찾아(그 곳에서 밥 먹고 있던 병사 하나를 거의 협박과 폭력으로 때 려눕힌 뒤에 알아냈다.) 조용히 밥 먹고 있을 때 황태자가 아주 잘 알고 있는 얼굴 하나를 데리 고 들어왔다. 대체 내가 여기 있는 줄은 언제 알았는지. "내가 왜 저 놈을 맡아야 하는 거지?" "가장 실력이 떨어지거든." "밥 먹고 있어. 그만 가봐." "맡아 줄 거지?" 황태자가 데리고 들어온 아까의 그 소년, 브리안을 찬찬히 살펴보며 나는 나를 보고 식은땀 을 흘리고 있는 브리안에게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마검사 수업한지 얼마나 지났지?" "... 3년이요."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는 고개를 돌려 황태자를 바라보았다. 내 눈길을 피하는 황태자에게 근처에 있던 접시를 집어던지며 거의 절규하는 듯한 소리를 내질 렀다. "얜 완전한 바보라고! 이런 놈을 내가 가르치라고! 대체 무슨 소질이 있어서 데리고 온 거 냐! 당장 집으로 보내!" 드래곤의 일기 2부 (173) * 가르치는 일이란 멀고도 험하다 말을 조금 심하게 하긴 했지만 이 말은 정신 차리고 다른 일을 찾기엔 딱이다. 무슨 소질이 있어서 브리안을 키우는 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가망성이 없는 놈이다. "오호, 네가 성의껏 키워보겠다고? 이런 고마워서 어쩌냐? 그럼 난 바쁜 일이 있어서 이만." 입안에 있던 음식물들을 황급히 뿜어내는 나를 뒤로하고 약삭빠르게 도망가는 황태자에게 물 컵을 던지고는 넋 나간 얼굴로 나를 쳐다보는 브리안을 띠껍게 바라보았다. "할래 말래?" "네?" "배울 거냐고 말 거냐고!" "배, 배워요." 내 박력에 거의 궁지에 몰려서 대답한 브리안은 다시 먹는 것에 열중한 나를 그 자리에 서서 빤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너 아무나 붙잡고 내방 찾아가서 거기서 책보고 있는 놈한테 검술 가르쳐 달라고 해." "네?" "야! 너 대륙 공통어 못 알아들어? 확 패버리기 전에 가라고!" 왠지 엄청난 짐덩이 하나를 떠맡았다는 생각에 머리가 아파 온다. "여기 수프 하나 더 추가!" "내가 대체 왜 이 꼴통을 맡아야 한다는 거냐!" 내가 황태자에게 이 말을 들었을 때와 같은 반응이 나오는군. "맡아 줘. 어차피 매일 놀고먹는 주제에." "놀고먹어도 검술의 기초만 겨우 아는 저 꼴통을 가르치고 싶은 마음이 들지는 않군." "나도." "그럼 대체 왜 내가 맡으라는 거냐!" "귀찮아서. 내가 맡기는 싫고, 다시 돌려주자니(?) 그것도 귀찮고 그냥 놀고먹는 네가 맡아." "용납 못해!" "네가 주군으로 모시는 이 몸의 명령이다. 신전 구경하고 싶지 않으면 맡아." 이 문장에 아무 말도 못하니 신기도 하여라. 물론 마지막 말은 브리안이 듣지 못하도록 에릭에게만 살짝 말했다. 아무래도 에릭이 마족이라는 것을 안다면 일이 약간 귀찮아 질게 뻔했기 때문이다. 졸지에 도마 위에 올려진 생선 꼴이 된 브리안의 표정이 말이 아니다. 훗, 나 같은 위대한 몸께 배우려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 "난 마법. 쟤는 네 검술을 가르쳐 줄 거다. 꾀부리거나 그날그날 할 일들을 충당하지 못하면 바로 쫓아 낼 테니 그렇게 알아." 내가 말했지만 무슨 노예부리는 것 같군. 배도 부르고 몸도 뻐근해서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침대로 기어올라가는 내 등뒤로 네 개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지만 이래봬도 나는 얼굴에 철판 깐 종족인 드래곤이다. "여기서 연습하면 시끄러워서 수면에 방해되니 나가서 연습해." "너 바보냐? 아니, 바보 맞구나. 거기에 검을 찔러서 어쩌자는 거야? 아주 그냥 적이 너에게 다가와 죽여주길 바라는건 어떠냐?" 제길, 왜 이렇게 시끄러운 거야. 분명히 밖에서 나는 소린데 열린 테라스 창문 사이로 에릭의 신랄한 비평이 내 귓가를 파고 든다. 이봐, 드래곤 로드 수면 부족으로 죽다라는 기사가 내일 아침 신문에 나오기를 바라는 거야? "나도 하는 만큼 한다구요!" "내가 충고 한마디하마. 그냥 목 씻고 가만히 적진에 뛰어들어라." 나도 그러는게 좋을 것 같군. 내 다리보다도 긴 베개에 얼굴 전체를 파묻으며 내 체온으로 따뜻하게 덥혀진 침대 위에서 계속 뒹굴거리고 있자니 밖에서 들리는 소리가 자꾸 내 귀를 자극한다. "말이 너무 심하잖아요!" "야, 이건 살리려는 검술이 아니라 죽이려는 살상용 검술이야. 너처럼 해서 잘도 사람 죽이겠다. 어디 그 옆에 지나가는 개미나 찔러 봐라." "아무리 사부라고 해도 심하잖아요, 그런 말은!" "어쭈? 이게 감히 하늘같은 몸에게 대들어? 안그래도 귀찮아 죽겠는데 한번 나하고 대련해서 일방적으로 맞아볼래?" 잠시 침묵하는 브리안의 모습이 머릿속에 상상이 된다. 드래곤의 일기 2부 (174) * 가르치는 일이란 멀고도 험하다 '콰앙~' "혀엉!" 침대 모서리에 아슬아슬 걸쳐져 있던 나는 갑자기 문이 부서지듯 열리며 들리는 굉음에 화들짝 놀라서 떨어질뻔 했다. "뭐, 뭐냐?" '다다다다다~ 포옥~' 갑자기 뭔가가 달려와서 내 품에 포옥 안기자 나는 정말로 간신히 지탱하고 있던 중심을 잃고 바닥과 엉덩이를 마주해야 했다. "으윽..." 너무 아파서 신음소리가 절로 흘렀지만 지금 내게 달려든 존재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내 품에서 부빗거리고만 있었다. "형, 내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몇 년만에 보는 거야." 푸른 머리를 한 소년. 그 푸른 눈동자가 나를 꿰뚫어 볼 듯이 쳐다보자 나는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형?" "라피, 오랜만이다. 짜식, 많이 컸구나." 라피는 의아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지만 내 말투에 곧 그 의아함을 풀고는 내게 다시 안겨왔다. "우웅, 그러고 보니 이제 형이 아니라 누난가?" "그냥 편하게 형이라고 불러." "응!" 몇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순수한 아기 같은 모습에 자연스레 내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그 동안 마법은 많이 공부했니?" "음... 헤츨링이 배울 수 있는 마법이 거기서 거기지, 뭐. 별게 있나?" 은근슬쩍 눈으로 자신에게 새로운 마법을 가르쳐 달라고 조르는 라피의 눈을 못 본 채 하며 나는 쓸데없이 계속 블루 일족 특유의 푸른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가 내일쯤 학교로 찾아가려고 했는데." "웅, 그러기 전에 내가 먼저 왔지. 헤헤~" "다 컸구나. 기특한 것."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갈 거야." "그래, 여기 남는게 방이니까." "싫어! 오랜만에 형이랑 같이 잘 거야." 자는게 아니라 밤새 새로운 마법을 익히게 해달라고 조르려는 거겠지. "네가 정녕 인간이 맞단 말이냐! 아냐! 믿을 수 없어! 분명히 하급 몬스터와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저능아일 거야!" 아까 라피가 오면서 열어놓은 방문 사이로 에릭이 들어오면서 씩씩거리며 자신의 뒤에 대고는 거의 욕 수준의 말을 퍼부었다. 에릭의 뒤를 따라 얼굴이 붉어진 브리안이 들어서고 있었고, 에릭은 나를 보자마자 눈을 부라렸다. "난 절대 저 인간을 맡을 수..." "에릭 형~" 역시 내가 에릭에게 한 소리를 들을 것을 예상했는지 라피는 눈치 빠르게도 에릭에게 달려가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 라피?" 역시 단순한 에릭은 금새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었는지 잊어버리고는 예전에 자신이 귀여워(?) 해줬던 존재에게 관심을 쏟아주기 시작했다. 브리안은 변모한 에릭의 모습에 잠시 넋이 나갔지만 내가 그 놈의 뒤통수를 때리며 조용히 가까이 오라는 손짓을 해 보이자 두려운 얼굴로 침대 옆에 있는 테이블에 살짝 걸터앉았다. 내가 자신을 빤히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자 브리안도 나를 계속 쳐다봤다. 에릭을 저렇게까지 흥분시키다니. 과연 이 녀석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정말 기대가 됐다. "너 나하고 마법 대련할래?" "네에? 난 지금 피곤해 죽겠다구요." "그래? 그럼 내일 아침 10시까지 대련장에서 보지. 그럼 넌 이만 방으로 가봐." 730년 6월 날짜 : 15일 날씨 : 언제나 그렇듯 맑다. 이 말밖에 더 이상 뭘 바라나. 밤새도록 라피에게 시달리다가 새벽녘에서야 겨우 잠들었다. 내가 일어났을 때는 이미 점심 시간이 한참이나 지난 뒤였다. 내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고 일어나자 마자 난 심한 고독감에 휩싸였다. 대체 왜 나와 같이 잔 놈들이 이렇게 빨리 일어나서 아침(?)부터 싸돌아다니는 거지. 점심 시간이 지난 뒤인데도 나는 아침이라고 생각하며, 부스스해진 머리를 손으로 가볍게 제자리로 원상복귀 시켰다. 아아, 갑자기 짜증이 난다. 지금 이 상황에 배가 고프다는 사실이 떠오르자 화가 나면서 짜증이 솟구친다. 하지만 나는 식당까지 내려가는게 너무 싫다. 아니, 정확히는 귀찮다.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긴 실크 잠옷 자락을 휘날리며 방안을 배회했다. ... 식당까지 내려가기 위한 준비운동이라고 생각하면 간단할 것이다. "사부님!" 갑자기 방 바깥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서 나는 그대로 실크 자락을 밟고 부드러운 카펫 위로 넘어지고 말았다. "뭐야!" 저렇게 부르는 인간은 브리안이겠군. 내 대답이 들리자 그제 서야 문을 열고 들어온 브리안은 바닥에 주저앉아 아픈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 나에게 씩씩대며 와서는 따지기 시작 했다. "왜 약속을 지키지 않으셨습니까!" "무슨 약속." "오늘 아침 10시에 대련하기로 했지 않습니까." "아아, 그거? 깜박했어." 차마 체면이 있지. 늦잠 잤다는 소리를 하지 못하고 나는 내 기억력을 탓했다. 드래곤에게 기억력을 탓한다라, 조금 우습군. "마침 너 잘왔다." 저 한마디에 정말 홍당무처럼 얼굴이 벌게져 황소처럼 씩씩거리던 브리안은 또 다시 이어지는 내 말에 화를 가라앉혔다. "뭡니까." "가서 밥 좀 가져다줄래. 가기가 귀찮아서 말야." ".....!!!!!" 내가 간다 내가 가. 그렇게 죽일 듯이 노려볼 건 또 뭐냐. 드래곤의 일기 2부(175) *난 말야... 언제나 생각하는 거지만 정말 이 드래곤이라는 종족은 움직이기 싫어하는 종족이다. 그 중에서 나는 그래도 꽤나 활동적이라고 할 수 있지. 무심코 짧은 머리를 뒤로 묶으려다가 잡히는 머리가 없으니 왠지 웃음이 나온다. 다시 긴 머리로 만들어 버릴까나. 나를 노려보고 있는 브리안을 쫓아내고는 옷을 갈아입었다. 내 다시는 이 잠옷 입나 봐라. 그러고 보니, 라피. 이놈 어디 갔지? 어제 그렇게 나를 닦달하다가 내가 겨우 기절시켜놓고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내 눈 앞에서 알짱거리며 나에게 조를 것처럼 보이던 놈이 어딜 간거지? 왠지 이상해. 이렇게 쉽게 포기할 종족이 아니야, 드래곤이라는 종족은. 자신이 원하는 것은 꼭 손에 넣고야 만다. 한마디로 독한 놈들이다, 그 말이지. 대충 드레스 룸에 있는 가장 정상적으로 보이는 핑크 빛 무릎까지 오는 원피스를 입고 밖에 서 싸늘하게 방문을 노려보고 있는 브리안을 지나쳐 식당으로 내려갔다. 이제는 식당은 내 힘으로 찾을 수 있다. 아아, 빨리 그 전쟁턴가? 아무튼 그 곳을 가야겠다. 이 곳에 있으니 밥만 축내는 밥벌레 이 상의 존재는 되지 못하는 느낌이다. "어? 형 일어났네?" 손에 두꺼운 책을 한아름 안아들다 못해 뒤따라 들어오고 있는 에릭의 손에도 두꺼운 책들 은 들려있었다. 분명히 라피 녀석이 시킨 짓일 테지. "으윽, 무거워라." "뭘 이렇게 많이 빌려왔냐?" "왕궁 도서관은 왠만해선 잘 안가거든. 시간이 없어서. 오랜만에 왕궁에 왔는데 도서관에서 도움되는 책 좀 보다 가야 지." "그래. 열심히 읽어라." "아참, 형. 형 전쟁터 갈 때 나 데리고 갈 거지?" "내가 왜." "그럴 줄 알았어. 내겐 인질이 있지." 라피가 씩 웃으면서 자신의 손을 펴보였다. 그 곳에는 절대 잊지 못할 단검 한 자루가 들려있었다. 아마... 단검의 안쪽은 새빨간 붉은 피로 장식되어 있을 테지. "내놔." "데려가 줘." "완력으로 뺏길 바라나." 내 목소리가 가라앉으면서 순식간에 방안이 위압감으로 가득 찼다. 아무리 라피라지만 내 물건에 함부로 손대는 건 용서할 수가 없다. 특히 저건... "라피, 그 물건은 좀 심했다. 시크에게 돌려줘." "싫어! 이번엔 싫어! 데려가! 왜 나만 안된다는 거야? 누나가 날 데리고 가지 못한다면 이 자리에서 이걸 부숴버리겠어." 지금 라피는 그 물건이 어떤 물건인줄 모른다. '퍼억' 거의 울먹이며 말하는 라피에게 순식간에 다가간 나는 주먹으로 라피의 얼굴을 내리쳤다. "난 네게 도둑질 이라는건 가르치지 않았다." 화가 났다. 저걸 라피가 어떻게 발견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필시 내가 자고 있을 때 내 물건을 뒤졌겠지. 아직 헤츨링이라서 그런가. "좋아, 데리고 가지. 단 드래곤으로 폴리모프 할 시에는 내가 널 죽여버리겠다. 순수한 네 마법의 힘만 가지고 싸워라. 설마 그것도 못하는 주제에 데려가 달라고 하는건 아닐 테지? 누구에게 의지할 생각 같은 건 하지마. 네 몸은 스스로 지키도록. 누구도 네가 죽어갈 때 구 하러 오지 않아도 원망하지 마라." 문을 쾅 닫고 나가는 내 뒤로 계속해서 에릭과 멍한 라피의 시선이 느껴졌다. 내 처사가 잘못 된 건가. "네가 잘못한거다, 라피." "내가 뭘 잘못했는데! 나도 안다구. 저 검이 형에게 어떤 검인 줄은 나도 안다구. 그래서 저 검을 없애버리고 싶었다구!" 눈물을 뚝뚝 떨구는 라피를 조용히 바라보며 에릭은 위로할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아까 들 고온 책으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자신도 의심해온 일이었다. 설마설마 해오던 일이 라피가 이번 일을 저지름으로서 확신이 갔다. 피가 베어나올 정도로 입술을 꽉 깨물고는 에릭은 자신의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무시하 며 거칠게 책장을 넘겨갔다. '죽으려고 하는 거야, 시크는. '그'가 돌아오면 시크는 그의 목숨을 취한 검으로 자신이 죽 을 속셈인 거다. 제길.' 왠지 씁쓸하다. 내 생각을 그 어린 라피에게 들켜 버린 것 같다는 생각에 쓴웃음이 터져 나온다. 그래, 난 죽어 버릴 거야. '그'를 보고 죽고 싶어. 누가 들으면 어리석다고 할 지도 모른다. 아마 카네스는 이런 말을 들으면 '그'가 다시 미치지 않을까 걱정할지도 몰랐다. 아니, 나부터 말릴 수도 있겠군. 하지만 '그'는 모를 거야. 내가 누군지, 어떤 존재인지. 전생의 기억 따위는 잊고 태어날 거야. 내가 그렇게 주신에게 부탁했으니까. 다시는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시는 '그'의 붉은 입술이 내게 속삭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시는 '그'의 손길이 내게 닿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시는 '그'의 존재를 느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괜찮아, 다 참을 수 있어. 네가 겪은 아픔보다는 나을 테지. 난 말이야. 네가 다시 태어나면 행복하게 살기를 바래. 내가 네 눈앞에 없을 때 넌... 행복으로 미소를 지을 수 있길 바래... 드래곤의 일기 -------------------------------------------------------------------------- ------ Name : 설 담당3 Date : 29-10-2001 00:29 Line : 90 Read : 972 [219] 드래곤의 일기 (외전) - 마왕 요르나 편 - -------------------------------------------------------------------------- ------ -------------------------------------------------------------------------- ------ Ip address : 211.216.185.93 Browser version : Mozilla/4.0 (compatible; MSIE 5.5; Windows 98) 외전 - 마왕 요루나 편 - "제길, 요루나님께서는 또 어딜 가신 거야?" "빨리 찾아봐. 지금 인간계로 통하는 차원의 문이 열려서 난리가 났단 말이다. 장로들이 겨 우 막고 있긴 하지만 요루나님이 계시지 않으면..." 오래되어 보이는 고성은 지금 천천히 지고 있는 노을을 배경으로 굉장히 분주하게 보였다. 그 고성의 위쪽에는 공간이 튀틀림을 알려주듯이 도저히 자연생성으로는 어렵게 보이는 거 대한 차원의 문이 생성되어 있었다. 고성의 아래쪽에서 몇몇의 마족들이 황급히 손을 써보고는 있었지만 아무래도 역부족인 듯 입에서는 거친 욕설이 나왔다. "요루나님은?" "아직..." "바보 같은 놈들! 그분 하나 찾지 못하면서 무슨 수호 기사란 말이냐! 인간계로 통하는 차 원의 문을 통해 들어온 인간들이 필시 있을 것이다. 모든 마족에게 명해 인간들과 요루나님 을 찾아라. 인간은 찾는 즉시 사살한다." "예!" 차가운 보랏빛 머리와 눈동자를 가진 마족이 자신의 앞에 부복해 앉아 있는 마족을 호되게 나무랐으며 그 마족의 입에서 한마디 한마디가 떨어질 때마다 부복해 있는 마족은 몸을 찔 끔거릴 수밖에 없었다. 대충 허리까지 내려오고도 남을 만한 검은머리가 미풍에 의해 살짝 바람에 날리자 그 머리 의 주인공은 기계적으로 손을 들어올려 자신의 얼굴에 달라붙어 있는 머리카락을 떼어 냈 다. 공허한 검은 눈동자가 마왕성이 있는 곳을 향해 있었고, 그녀는 눈 한번 깜박이지 않고 그 곳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몸에 걸친게 아무 것도 없었다. 나신으로 바위에 걸터앉아 아래쪽을 내려다보고 있 는 모습이 천박하다기 보다는 고귀하고, 신성하게만 느껴졌다. 붉은 입술은 왠만해선 입을 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듯 굳게 다물어져 있었고, 쌍커풀이 진하게 진 눈동자는 감정을 내보이고 있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보면 미인의 그것이었다. 새하얀 얼굴과 검은머리가 대조되어 그런지 왠지 병약해 보이는 미인이었다. 불어오는 바람 이 미풍이라 해도 늦가을이라 그런지 꽤 쌀쌀한 날씨였지만 그녀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 는 듯 했다. '바스락' 왠지 새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조용한 숲 속에 그녀가 앉아 있는 곳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 지지 않은 쪽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자신의 자세를 그대로 유지하며 그녀는 그쪽으로 눈길을 돌리지 않았 다. 수풀 속에서 나온 존재는 인간이었다. 부드러운 갈색 머리를 뒤로 묶고 전형적인 여행자 복장을 한 그는 갑자기 앞에 벌거벗은 여 인이 있자 황급히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는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하는 반면에 그녀는 여전히 그쪽으로는 시선도 주지 않은 채 마왕성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 저기..."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리고 그는 조심스레 여인에게 말을 붙여보았으나 그건 곧이어 무참히 씹혔다. "저기요, 이봐요." 몇 번을 불러도 대답이 없자 할 수 없이 눈을 질끈 감고 그녀에게 시선을 돌린 그는 곧이어 엄청나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왠지 굉장히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그녀의 눈동자 때문이리라. "... 너. 마족이 아니야?" 절대 열릴 것 같지 않던 붉은 입술이 열리며 그에게 물은 첫 마디였다. -------------------------------------------------------------------- 본래 시크편을 쓸 예정이었다죠..ㅡㅡ;; 그런데 쓰기가 참 난감해서..ㅡㅡ;; 궁금해 보이는 요루나편을 씁니다..ㅡㅡ;; 로맨스..구 요..^^;; 생그으으읏..ㅡㅡ;; 그..그럼 이만..ㅡㅡ;; 그냥 제목만 요루나 편이지..실제로는 시크편이라고 생각해도 좋을듯 합니다..ㅡㅡ;; 1인칭은 아니에요..ㅡㅡ;; 엘프냥의 글을 보면서 조금이라도 행복을 느끼셨으면 합니다.^^ - 꼬마엘프 - -------------------------------------------------------------------------- ------ Back : 220 : 드래곤의 일기 (외전) - 마왕 요르나 편 - (written by 설 담당3) Next : 218 : 드래곤의 일기 2부(175) *난 말야... (written by 설담당) -------------------------------------------------------------------------- ------ -------------------------------------------------------------------------- ------ Total access : 105929 , Current date and time : Sunday 18th November 2001 03:23:38 -------------------------------------------------------------------------- ------ Copyright 1998-2001 HolyNet . All rights reserved. 드래곤의 일기 -------------------------------------------------------------------------- ------ Name : 설 담당3 Date : 30-10-2001 09:12 Line : 104 Read : 833 [220] 드래곤의 일기 (외전) - 마왕 요르나 편 - -------------------------------------------------------------------------- ------ -------------------------------------------------------------------------- ------ Ip address : 211.216.185.250 Browser version : Mozilla/4.0 (compatible; MSIE 5.0; Windows 98; DigExt) "아, 그게... 저기, 그게 말이죠. 저도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몰라서... 제가 길가다가 여기로 갑 자기 떨어졌거든요?" "......" "저기... 그래서 말인데, 여기가 어디죠?" 아까 대체 여인이 하는 소리를 뭐로 들었는지 청년은 이 곳이 마계 인줄은 꿈에도 생각 못 하고 있었다. 청년이 어렵게 말을 꺼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여인은 여전히 호기심이 약간 도는 눈동 자로 그런 청년을 무안하게 빤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어색해하던 청년은 갑자기 여인이 알몸이라는 것을 깨닳았는지 얼굴이 빨개지며 서둘러 자 신의 뒤에 매달려 있던 약간은 유치한 붉은 색 망토를 꺼내 여인에게 내밀었다. 그 망토의 의미를 해석하지 못하는지 이게 뭐냐는 얼굴로 자신을 호기심있게 쳐다보자 다시 청년은 당황해하며 떨리는 손으로 여인의 어깨에 망토를 둘러 단단히 여며주었다. 그때까지도 아무 말 하지 않고 있던 여인은 곧이어 망토가 불편하다고 느꼈는지 그것을 벗 기 위해 그 가느다란 손으로 열심히 망토를 조물락 거리고 있었다. "에, 그거 그냥 놔두세요." 청년은 열심히 여인을 말렸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요루나님!" 갑자기 위에서 마족 하나가 내려오더니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요루나라고 불린 여성은 대단히 싸늘한 표정을 짓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마족을 바라보았으 나 끝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장로님들께서... 인간?" 막 말을 하려다가 요루나의 옆에 있는 청년의 존재를 인식했는지 살기를 띄워 가는 마족. 청년은 긴장하며 자신의 검을 꼭 쥐었으나 그것은 청년과 마족 사이를 가로막는 요루나로 인해 무산되었다. 마치 자신을 따라오라고 하는 듯이 성큼성큼 아래로 내려가는 요루나를 청년은 뒤따라가며 자신의 실수 하나를 깨닳았다. 대체 망토가 뒤에서 펄럭거려서 앞을 전혀 가려주고 있지를 못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본 목적은 청년의 눈에 그 눈부신 나신이 보여지지를 않길 바랬던 거였기에 다소나 마 뒤에서 걸어가던 청년은 안심할 수 있었다. 요루나의 저런 모습은 익숙하다는 듯이 걸어가던 마족은 그 와중에도 청년에게 무시무시한 눈빛을 보내는 걸 잊지 않았다. 인간은 무조건 사살하라는 명령이 있었으나 어쨌거나 저 인간은 자신들의 껍질밖에 없는 마 왕이 마음에 들어하고 있는 인간이다. 아무리 장로들의 꼭두각시라지만 자신이 무시 못할 자리에 있는게 바로 자신의 앞에 걸어가 고 있는 저 여인인 것이다. "요루나님!" 화가 난 듯이 보이는 보랏빛 머리를 가진 마족이 씩씩거리며 요루나의 앞으로 달려왔다. "대체 어딜 가 계신 겁니까! 요루나님의 눈에는 이 상황이 보이지 않는 겁니까! 저희들이 겨우 대처를 하고 있으니 빨리 요루나님께서 차원의 문을 닫아주십시오." 명색이 마왕인 요루나다. 아무리 서열 5위의 상급 마족이라지만 마왕에게 이런 무례한 언어를 행사할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요루나는 무표정으로 상공에 커다랗게 뚫려있는 차원의 문을 바라보았다. 곧이어 요루나의 몸이 섬광처럼 차원의 문을 향해 다가가는 것을 보고서야 그 마족은 한숨 을 내쉬며 여기까지 쭈뼛쭈뼛 따라온 인간을 볼 수 있었다. "내가 인간은 모두 사살하라고 명령했을 텐데?"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차가운 목소리가 요루나를 데리고 온 마족에게 전해지자 그 마족은 요 루나의 앞에서도 꿇지 않았던 무릎을 꿇고 대답했다. "요루나님께서 이 인간을 마음에 들어하는 것... 커억!"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마족의 발이 가차없이 부복해 있던 마족의 얼굴을 향해 날아갔고 그 것을 피할 수 없었던 마족은 그걸 맞고 그대로 뒤로 엎어졌다. "변명은 필요 없다. 너는 지금 내 명령을 거부했다. 죽어라." 쓰러져 있다가 간신히 일어난 마족은 미처 위에서 내려오는 칼날을 막지 못했다. 정확히 쓰러져있는 마족의 심장에 박힌 칼을 뽑아내며 보랏빛 머리를 가진 마족은 청년에게 로 시선을 돌렸다. 이미 이 곳이 어떤 곳인지 짐작을 하게 된터라 아직도 피를 뚝뚝 흘리는 검을 잡은 채 자신 에게로 돌아선 마족에게서 느껴지는 위압감에 청년은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귀찮군." 마치 귀찮은 벌레를 죽이는건 당연하다는 듯이 검을 자신의 심장을 향해 내뻗는 것을 보고 청년은 황급히 검 집에서 검을 꺼내려 했지만 이미 상황은 늦었다. '탁' 눈을 질끈 감은 청년은 왠지 자신의 가슴에 아무런 통증이 오지 않자 살며시 눈을 떠보았 다. 요루나는 이미 자신의 앞에 와서 마족이 날린 칼날을 맨손으로 붙잡고 있었다. 그 마족도 꽤나 당황했는지 서둘러 검을 회수하려 하자 요루나는 붉은 피가 뚝뚝 흘러내리 는 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무표정하고 감정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 꺼야. 손대지마." -------------------------------------------------------------------- 왠지 카리스마적으로 요루나 설정 해놨는데..(그렇게 안보이신다면 죄송합니다..ㅡㅡ;; 제 글 빨 딸리는거 알잖아요..T^T) 프냥은 가면서 말아먹잖아요..;; 쿨럭..ㅡㅡ;; 내일 프냥 학교 축제해요~>.< 그리고 지금 프냥 카페 대문에 링크되어 있는 '드래곤의 일기 정팅방'에 와있답니다~>.< 이거 보는 분들 거기 들어오셔서 쪽 날려욧~>.< 생그으읏~>.< 엘프냥의 글을 보면서 조금이라도 행복을 느끼셨으면 합니다.^^ - 꼬마엘프 - -------------------------------------------------------------------------- ------ Back : 221 : 드래곤의 일기 (외전) - 마왕 요루나 편 - *완결이에요.^^ (written by 프 레이야) Next : 219 : 드래곤의 일기 (외전) - 마왕 요르나 편 - (written by 설 담당3) -------------------------------------------------------------------------- ------ -------------------------------------------------------------------------- ------ Total access : 105930 , Current date and time : Sunday 18th November 2001 03:23:47 -------------------------------------------------------------------------- ------ Copyright 1998-2001 HolyNet . All rights reserved. 드래곤의 일기 -------------------------------------------------------------------------- ------ Name : 프레이야 Date : 03-11-2001 19:30 Line : 356 Read : 889 [221] 드래곤의 일기 (외전) - 마왕 요루나 편 - *완결이에요.^^ -------------------------------------------------------------------------- ------ -------------------------------------------------------------------------- ------ Ip address : 211.187.21.62 Browser version : Mozilla/4.0 (compatible; MSIE 5.0; Windows 98; DigExt) 항상 자신의 의사를 뚜렷하게 밝히지 못했던 그녀가 이토록 강하게 주장하는 것을 처음 본 에릭은 놀랍다기 보다는 더욱더 앞에 서있는 인간에게 살기를 뿜어냈다. 그런 에릭의 얼굴을 다시 차갑게 가라앉은 눈동자로 한 번 바라봐 준 요루나는 성문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 곳에 더 있게 되면 저기서 자신을 무섭게 노려보는 마족에게 뼈도 못 추릴 것 같아 청년 은 다시 황급히 요루나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계속 뒤에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마족 때문에 신경이 쓰인 청년은 미처 앞에서 갑자기 요 루나가 멈춰선 것을 느끼지 못하고 그대로 요루나와 충돌하고야 말았다. "요루나님." 몇몇의 마족들이 요루나의 앞을 가로막았다. "앞으로 저희들의 허락 없이 함부로 성 밖 출입을 하지 마십시오." 엄연한 명령이었다. 요루나는 그 검은 눈동자로 그들을 하나하나 노려봐 준 뒤에 붉은 입술을 열었다. "개새끼들." 그 하얗고 조그마한 팔을 들어 그들을 밀쳐내며 요루나는 긴 복도를 성큼성큼 걸어가 버렸 다. 뒤에 남겨진 청년은 아직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상황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는 마족들을 향 해 가운데 손가락을 지긋이 올려줬다가 다시 요루나를 따라잡기 위해 뛰기 시작했다. 그들도 당황했을 것이다. 자신들의 허수아비로 착각했던 마왕이 이제 자신들에게 조금씩 반항을 하기 시작했다는 사 실에... "저기, 요루나. 이름이 요루나 맞죠? 으음, 요루나라고 불러도 되죠?" 어느새 요루나의 왼쪽에 서서 계속 말을 걸던 청년은 곧이어 아무 반응도 없는 그녀에게 약 간의 무안함을 느꼈다. "내 이름은 한이에요. 평민이라 아쉽게도 성은 없답니다." "...한..." 그녀가 대답을 한다는 것을 이미 포기하고 있었던 청년은 나지막하게 들리는 그녀의 목소리 에 불현듯 고개를 쳐들었다. "시끄러워." 이어 이어지는 말에 실망하는 한이었지만 그래도 그녀가 자신의 말에 대꾸를 해줬다는 것만 으로도 행복했다. 커다란 어느 방문 앞에 멈춰선 그녀는 잠시 그 문 앞에 서있다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 다. '크르르르...' 갑작스러운 동물의 울음소리에 놀란 한은 서둘러 자신의 옆을 쳐다봤다. 그 곳에는 상당히 자신을 향해 띠꺼운 눈빛을 보내고 있는 검은 표범 하나가 방금 돌아온 자신의 주인에게 다가가 다리에 자신의 거대한 몸체를 비벼대기 시작했다. 잠시 표범과 눈싸움을 하던 한은 요루나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달자 당황했다. 절대 웃을 것 같지 않던 얼음 마녀가 입가에 웃음을 달다니. 그녀를 본지는 몇 시간도 채 되지 않았지만, 이미 그 몇시간 만으로도 그녀의 성격을 파악 해 버린 한이었다. "칸."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도 자신을 노려보는 표범과 눈싸움을 하던 한은 또다시 들려오는 그 녀의 목소리에 그녀를 보았다가 그녀가 곧이어 그게 표범을 가리키며 하는 말이라는 것을 깨닳았다. "이름이 칸이군요. 무섭게 생겼는 걸요? 그런데 이걸 애완용으로 키우다니. 에구, 뒤틀리면 아주 물려죽겠네요." "친구야." 왠지 눈가에 슬픔을 담고 말하는 요루나의 목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요루나, 이것 봐요. 당신이 자꾸 칸의 버릇을 다 받아주니까 이게 이렇게 건방진 거잖아 요." 그를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이 노을이 지는 하늘 아래 자신의 정원에 있는 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 있던 요루나는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한을 만나고 난 뒤부터 한의 고집 속에 옷을 입고 다니는 그녀는 아직은 자신의 붉은 색 원 피스가 약간 불편하다는 듯이 몸을 움찔거렸다. 한에게는 계속 얼음 마녀라는 놀림을 받고 있긴 하지만 한이 오고 난 뒤로부터 감정 표현에 대해 아직은 서투르지만 조금씩 배워 가는 요루나였다. 정원에 있는 꽃들을 다 짓밟으며 뒹굴고 있는 성인 남자 하나보다 더 큰 표범인 칸과 한. 요루나가 가끔 책을 보거나 자리에 없을 때면 이런저런 장난을 치는 사이가 되어있었다. 칸이 자신을 욕하는 한에게 으르렁거렸지만 그건 위협의 뜻이 아니었다. "오히려 버릇을 받아주는 건 한이잖아." 부쩍 말이 많아진 그녀는 한에게 이쪽으로 오라는 듯이 손짓을 했다. 잠시 일어나 옷에 묻어있는 꽃가루와 흙을 털어낸 한은 이미 자신의 초록빛 옷에 물들어버 린 풀물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그녀에게 다가가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한, 돌아가고 싶어?" 불현듯 자신에게 묻는 요루나의 말에 한은 잠깐 그 자세로 굳어버렸다. "왜 그런 소릴해요?" "아니, 그냥. 그리울 것 같아서..." "... 내가 돌아갔으면 좋겠어요?" "......" 아무 말도 못하는 요루나를 보고 빙긋이 웃어준 한은 요루나의 긴 검은머리를 쓰다듬어 주 었다. "안갈께요. 요루나 놔두고 안갈테니까 걱정하지 마요." "응." 잠시동안의 침묵이 흐르자 요루나가 불현듯 다시 질문을 했다. "한." "네?" "사랑이 뭐야?" 어느새 자신의 앞에 다가와서 자신의 다리를 가지고 장난을 치던 한은 또다시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도대체 이 요루나라는 여인은 자신을 정말 당황하게 만든다고 생각하며. "음... 사랑은 말이죠.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그 상대방을 보고 있으면 먹지 않아 도 배가 부른 다고나 할까요? 하나가 없으면 살지도 못할 정도로요. 서로 떨어지게 되면 가 슴이 찢어질 것 같이 아프고, 둘 중에 하나가 죽기라도 하면 다른 하나는 살지 못해요. 여기 가 너무 아파서요. 뭐, 다 그런 건 아니지만요, 그 아픔을 이겨내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사 랑하는 존재가 죽는다면 살지 못할 것 같아요." 자신의 가슴을 가리키며 말하는 한을 바라보며 요루나는 순간 얼굴을 붉혔다. "하.. 한은... 사랑하는 사람 있어?" "있어요." 순간 한의 말에 요루나는 몸의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을 애써 내색하지 않고, 지나가는 말로 칸에게 슬쩍 물었다. "어떤... 사람이야?" 꼭 사람이라는 법도 없건만 그녀는 어느새 한이 사랑한다는 존재가 사람이라고 단정을 지어 버렸다. "글쎄요...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는 존재에요." "응..." 한이 자신을 아련하게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모른 채 고개를 숙이고 끄덕이던 요루나는 손 에 들고 있는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내 권리를 되찾겠다고 말했다." 눈에는 냉기가 철철흐르고, 입가에는 상대방을 무시하는 조소가 핀 채 요루나는 자신의 앞 에 있는 마족에게 말했다. 말투에는 아무런 억양이 없었지만 앞에 있는 마족의 존재를 무시하는 느낌이 강하게 실려 있었다. "권리라뇨?" "감히 내게 말대답을 하는 건가." 그 마족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대며 그녀는 살짝 입 꼬리를 올렸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긴급회의라는 명목아래 모인 고위 마족들은 정말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한번 똑똑히 말해주지. 마.왕.의. 권.리.를. 되.찾.겠.다.고. 했.다." 한자한자 또박또박 끊어 말해주는 그녀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고위 마족 하나가 다시 그 녀 앞에 나섰다. "권리라 하셨습니까? 대체 저희는 요루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군요." 이대로 자신들의 입지를 잃어버릴 수는 없다는 생각에서 나오는 반항의 말이었다. "건방지군." 일순간 그녀의 오른손에게 마기가 흐른다고 생각한 순간 그 마족은 먼지하나 남기지 않고 흔적도 없이 그녀의 앞에서 소멸되어 버렸다. '쾅' "난 너희들의 인형이 아니다. 아니, 조금 전까지는 인형 노릇을 했었지. 지금부터는 철저히 내 권리를 되찾겠다. 반항하거나 내게 건방지게 구는 놈은 모두 아까의 그 마족처럼 될 것 이다. 잘 생각해 보고 결정하도록." 그들은 알고 있었다. 자신들의 허수아비였던 그녀가 실은 역대 마왕들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의 소유자라는 것 을. 지금까지 그녀를 가지고 놀기에는 쉬웠으나 그 인간이 온 뒤부터 그녀는 달라졌다. 그녀가 나가고 나서 고위 마족들은 등뒤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을 새도 없이 서둘러 대책 회 의를 마련했다. "제길, 이게 다 그 인간 때문이오! 그 인간이 없었다면 계속 우리의 인형으로 남아있을 수 있지 않았소!" "맞습니다. 그 인간을 죽여야 합니다." 인간계나 이곳이나 권력이라는 것은 더럽기 짝이 없는 곳이다. 지금 이렇게 맘이 맞아 떠들고 있었지만 이들의 목표는 한가지다. 마왕의 자리. 모든 마족의 우상이며, 최대의 권력자. 마왕의 후계자는 마왕이 뽑는다. 천한 하위 마족과 고위 마족 사이에서 태어난 요루나는 우연히 요루나의 힘을 알아본 전대 마왕에 의해 후계자로 발탁되었다. 당연히 거기에 승복을 해야 하는 마족들 이었지만 마왕이 죽고 난 후, 아무 것도 모르는 어 린 그녀를 마왕의 자리에 형식적으로 앉혀 놓고 모든 권력을 좌지우지했던 것이다. 이미 회의는 끝나가고 있었다. 마족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했다. 모든 일의 원흉인 한을 죽이기로. "잘했어요, 요루나." 핏기하나 없이 창백해진 뺨을 어루만져 주는 한을 향해 요루나는 힘겹게 미소를 지어 보였 다. 아직까지 자신의 손으로 생명을 죽여본 적이 없는 그녀였다. 죄책감에 힘들었지만, 자신을 향해 웃어주는 한에게 그것을 표현할 수는 없었다. "힘들어. 쉬고 싶어." '시크, 한을 지켜줘요.' - 내가 왜? '나한테 소중한 사람이거든요.' - 인간이냐? '네.' - ... 한가지 말해두지. 인간을 사랑한다면 그 사랑은 잊도록 해라. 인간을 사랑하면 그 결말 은 불행하거든... '시크...' - 네 부탁은 들어주지 못할 것 같다. 공교롭게도 로드님의 부르심에 달려가 봐야 하거든. "칸, 한을 지켜 줘." 600년에 한번 있는 마계의 대 축제. 그 곳에 마왕의 참석은 필수적인 것이었다. 이제는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되찾고 혼자서 그 많은 문제를 해결하는 요루나였지만, 뭔가 가 깨름칙 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되도록 한을 데리고 가고 싶었지만, 마족들의 강경한 반대에 의해 한은 이 곳에 혼자 남겨 져야 했다. 자신은 괜찮다고 다녀오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요루나는 이상한 느낌에 기어이 칸을 한의 옆 에 붙여둬야 한다고 우겼다. 요루나가 보기에는 한의 검술 실력이 정말 고개를 숙일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 검술 실력가지고 대체 칼은 왜 차고 있는지. "그럼 다녀올게." 2주 동안 이어지는 축제에 참석해야 하는 요루나는 한에게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하고 방을 나섰다. 방문을 닫는 순간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한기에 잠시 몸을 떨고는 요루나는 많은 마족들이 기다리는 성문으로 걸음을 옮겼다. '괜찮겠지, 괜찮을 거야... 시크가 와 줄 거야.' "허억... 허억... 제길, 치사한거 아냐?" 한은 거칠게 숨을 내리쉬며 자신이 이곳에 처음 왔을 때 자신을 향해 엄청난 살기를 뿜어댄 마족과 대치하고 있었다. 칸은 이미 그 마족이 들어왔을 때 자신을 지키려다가 그 마족의 서늘한 칼에 운명을 달리했 다. 자신이 이 정도까지 살아 있는 것도 모두 칸 덕분이었다. 몇 달 동안 요루나와 함께 정 든 녀석이 자신을 위해 목숨을 던지고 싸늘한 시체가 되어 쓰러져 있는 것을 본 한은 분노 가 치밀어 올랐지만 자신의 앞에 있는 마족은 그것을 즐기는 듯이 자신을 조롱하고 있었다. 이미 피해다니기에 지친 한은 마지막으로 요루나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온 힘을 다해 마족에게 달려들었다. 그의 검이 자신의 심장에 박히는 것을 눈으로 본 한은 고개를 떨구었다. "요... 루..." 그의 심장에서 빼낸 검에 묻은 피를 더럽다는 듯이 그의 옷자락에 닦고는 에릭은 피비린내 가 진동하는 방을 나왔다. 뭔가가 이상했다. 에릭이 보이질 않았다. 거의 대다수의 마족들이 참가한 이 축제에 고위 마족의 하나인 에릭이 참가하지 않았다는 것을 느낀 요루나는 벌떡 일어났다. 아까부터 자신을 쳐다보며 피식피식 웃음을 터트리는 마족들에게 살기를 날려주고는 요루나 는 급히 공간이동을 했다. ... 자신의 사랑이 있는 곳으로. 자신의 방문 앞에서 파르르 손이 떨린 그녀는 이미 비릿하게 풍기기 시작한 향기에 짐작하 고 있었다. 힘겹게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칸의 모습이었다. "칸..." 요루나가 자신에게 부탁한 일을 수행하다 죽은 칸의 모습에 요루나는 슬퍼할 틈도 없이 서 둘러 안쪽으로 들어갔다. 심장에 구멍이 난 채 그 부드러운 갈색 눈을 뜨고 있는 존재는... 한이었다. "한...?" 힘겹게 그의 이름을 불렀지만 돌아오는 따뜻한 대답은 없었다. "한... 눈 좀 떠봐. 나 이제야 알았거든? 좀 일어나 보라니까." 한의 머리를 껴안고 이미 차가워진 그의 입술에 대고 중얼거리며 요루나는 자신의 눈에 무 언가 따뜻한 것이 떨어진다고 느꼈다. "사랑... 이었어. 내가 널 사랑했다구." 그의 입술에 자신의 볼을 부벼대며 요루나는 말을 이었다. "어떻게 해... 네 말처럼... 여기가 너무 아파..." 자신의 가슴을 가리키며 말하는 요루나의 눈에서는 계속해서 눈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무언가 부드러운 것이 자신을 감싼다고 생각하며 요루나는 자신의 앞에 있는 존재를 바라보 았다. "이런... 서두른다고 왔는데 늦어버렸군." "시크, 시크! 시크... 으흑... 미워. 왜 이렇게 늦어버린 거야!" 시크의 가슴을 때리며 울음을 터트리는 요루나를 시크는 가만히 감싸안았다. "... 미안하다." "다 죽여 버릴 거야! 다 죽여 버릴 거야. 그를 아프게 한 존재를 다 죽여 버릴 거야." 마족들에게는 다시없는 큰 전쟁이 일어났다. 자신들의 주군인 마왕의 분노. 하지만 그 전쟁으로 많은 중, 하위 마족은 소멸하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고위 마족들 대부분 은 인간계로 피신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한 일을 뼈저리게 후회했겠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미쳐버린 그녀를 나와 몇몇 드래곤들이 마왕성의 지하, 가장 깊숙한 곳에 감금시켰으며 마 족들은 그녀를 도왔다는 명목으로 로드께 청해 내가 마계에 출입하는 것을 일체 금지시켰 다. "네가 말하던 사랑이 이런 거였나..." 갑자기 오래된 옛날 일을 들춰내며, 노을이 지는 하늘을 향해 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어차피 이루어지지 못할 사랑이었다. "요루나... 하지만 이제 네 마음을 알 것도 같구나..." -------------------------------------------------------------------- 오오~ 엄청난 분량입니다..쿨럭..ㅡㅡ;;(퍼억..ㅡㅡ;;) 초반부는 상당히 맘에 들었는데..ㅡㅡ;; 이거 맘에 안드신다구요..ㅡㅡ;; 쿨럭..T^T 죄송합니다. 프냥 꼭 뒤에가서 망하잖아요..T^T 쿨럭.. 그래도 프냥 맘에는 들더군요..ㅡㅡ 말이 안되는 부분이 있어도.. 그냥 넘어가시길..ㅡㅡ;; 이상한 부분있으면.. 메일 주세요.^^ 엘프냥의 글을 보면서 조금이라도 행복을 느끼셨으면 합니다.^^ - 꼬마엘프 - -------------------------------------------------------------------------- ------ Back : 222 : 드래곤의 일기 2부 (176) * 난 말이야... (written by 설 담당3) Next : 220 : 드래곤의 일기 (외전) - 마왕 요르나 편 - (written by 설 담당3) -------------------------------------------------------------------------- ------ -------------------------------------------------------------------------- ------ Total access : 105930 , Current date and time : Sunday 18th November 2001 03:23:52 -------------------------------------------------------------------------- ------ Copyright 1998-2001 HolyNet . All rights reserved. 드래곤의 일기 -------------------------------------------------------------------------- ------ Name : 설 담당3 Date : 13-11-2001 23:27 Line : 112 Read : 733 [222] 드래곤의 일기 2부 (176) * 난 말이야... -------------------------------------------------------------------------- ------ -------------------------------------------------------------------------- ------ Ip address : 211.216.186.188 Browser version : Mozilla/4.0 (compatible; MSIE 5.5; Windows 98) "아름다운 레이디, 이 곳에서 뭘 하고 계시는 겁니까."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정말 다시는 듣고 싶지 않은 목에 버터를 바르다 못해 떡칠한 목 소리가 들려왔다. "제길..." "아아, 욕설을 입에 담는 모습까지 아름답군요." 딱 한번 만나봤지만 어떻게 변한게 하나도 없냐? 내가 이 인간을 기억하는 이유는 이 버터 처바른 목소리 때문이었다. "꺼져주시지 않겠습니까?" 입가에 억지로 미소를 띄우며 그 이름도 기억 나지 않는 망할 황태자 동생에게 말하자 그는 고개를 젓고는 내 어깨에 손을 살짝 얹었다. "상심에 젖어 계시는 군요. 제가 위로해 드리고 싶습니다만..." 지 버릇 개 못 준다는 어느 나라 속담이 있다. 어째 늙은게 변함이 없냐? 이런 놈 전쟁터 안보내고 뭐 하는 거야! "제발 꺼져 주는게 나에겐 위로가 되는 길이야!" 발로 지근지근 밟아주며 씩 웃었다. "더 밟아줄까? 좋은 말로 할 때 가는게 좋을 것 같은데." "크윽, 아름다우신 레이디. 당신의 분이 풀린다면 얼마든지 이 한 몸 바칠 각오가... 크윽, 돼있습니다!" "정말 아주 죽여달라고 짖어대는 구나!" 입가에 음산한 웃음을 흘리며 손을 쓱쓱 비벼대는 날 보고 당황한 듯이 그 놈은 눈동자를 크게 떴지만 이미 난 경고를 준 상태였다. "그럼 죽어버려!" "그래서 이렇게 얻어맞고 왔단 말이냐?" "얻어 맞은게 아니라 넘어진 거라니까!" 내 밑에 깔려서 거의 죽기 직전까지 간 놈이 갑자기 벌떡 일어난 것이다! 덕분에 나는 뒤로 발라당 넘어져서 삭신이 멍들어 엉금엉금 방으로 기어 들어왔던 것이다. 물론 그 황태자 동생놈은 차마 잡을 겨를도 없이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다. 너, 진짜 내 손에 걸리면 아주 회떠버리겠어! "쯧쯧, 얻어맞고 다니게 생기진 않은 놈이... 쯧쯧..." "야, 너 내 말 뭐로 들었어! 내가 얻어맞을 놈으로 보이냐!" 내 팔다리를 주무르고 있는 에릭에게 버럭 화를 내며 고개를 픽 돌려버렸다. "그만 엄살 피우고, 내려가서 밥 먹자." "안먹어!" "왠일이냐? 정말 안갈거야?" "배아퍼! 안먹어!" 에릭은 잠시동안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곧이어 내 배로 손을 가져다 대고는 슬슬 문지르기 시작했다. "뭐하는 거야!" "배아프다며!" "그거랑 이거랑 무슨 상관인데!" "... 내 손은 약손이다." "......" 정말 되는 일이 없는 하루다. 엄청나게 진지한 표정을 짓고 내 배를 쓰다듬어주고 있는 이 녀석에게 화를 낼만큼 난 몰인 정하지 않다.(그럼 지금까지 내가 소리지른건 뭐였지.) 에릭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고 있자니 곧이어 내 시선에 벌게진 에릭은 내 시선을 외면하고 자신이 할 일에(?) 열중했다. 마음에 안들어. 왠지 심통이 생긴 내가 에릭의 그 긴 머리카락을 확~ 잡아챘을 때 정말 의외로 에릭은 내가 잡아채는 쪽으로 몸의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하필이면 그게 내 가슴 위였으니... "형! 아깐 내가 미안해!" 갑자기 방문이 벌컥 열리며 들어온 라피는 정말 오해받기 딱 좋은 포즈로 얼어있는 우리를 보고는 다시 문을 조용히 닫았다. "나 신경쓰지 말고 계속해." ... 정말 일진이 재수 없는 날이다. -------------------------------------------------------------------- 거의 열흘동안 잠수한건가요? 그점에 대해서는 대단히 죄송하게 생각합니다..T^T 변명이라면 변명이겠지만.. 정말 글이 안써졌거든요..T^T 다시한번 사죄를..^^ 엘프냥의 글을 보면서 조금이라도 행복을 느끼셨으면 합니다.^^ - 꼬마엘프 - -------------------------------------------------------------------------- ------ Back : 223 : [공지] 드래곤의 일기 삭제공지입니다.^^ (written by 설 담당3) Next : 221 : 드래곤의 일기 (외전) - 마왕 요루나 편 - *완결이에요.^^ (written by 프 레이야) -------------------------------------------------------------------------- 나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는 황태자와 그 눈빛에 지지 않으려 마주 노려보고 있는 나. 그리고 새하얗게 질려버린 아까의 그 버터 삶아 먹은 놈. "뮤즈, 다시 말해 주지 않겠소?" "늙으니 이제는 대륙 공통어도 못 알아듣는 거냐? 나 혼자 전쟁터에 못 가. 하지만 저 놈을 .부.관.으로 딸려 보내준다면 뭐 갈 수도 있지." "드래곤이 약속을 어길 참이오?" "훗, 내 맘이다. 날 보통 드래곤으로 생각하지마." 아마도 보는 눈이 많아 내게 존대를 하고 있는 거겠지. 언뜻 보기엔 나도 자신에게 존대를 해주길 바라는 모양이지만 나는 지금 기분이 매우 않좋 으므로 그런 상상을 깨길 바란다고 충고해 주고 싶다. "프린스." "형님." 프린스라... 쯧, 기억났다. 예전에 엄청나게 느끼한 버터 발라먹는 소리를 내며 어떤 계집이랑 잡기 놀이란 걸 했었지. 그러나가 나와 꼬여서 어쩌고저쩌고 하다가 황태자가 호적에 파버린다고 죽이려고 달려들었 었지. 헐, 그때가 좋았어. "따라가라." "형님!" "거역하는 거냐?" "이 가녀린 팔로 검을 어찌 들란 말입니까." "몇 년 전만 해도 잘 설쳤던 걸로 기억된다만?" "세월이란 속일 수 없는 겁니다." "넌 나라가 망하면 네가 존재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 거냐?" "그래도 못하는건 못하는 겁니다. 어떻게 이 레이디의 부관으로! 제가 총사령관이 된다면 한 번 생각은 해보겠습니다." "내 손에 피를 묻히고 싶지 않구나. 좋은 말 할 때 말도 안되는 소리를 지껄이는 입을 닫고 조용히 뮤즈를 따라가라." "훗, 아무리 소드 마스터이신 형님이라도 그 몸으로는 절 죽일 수 없으실 겝니다." 순간 황태자의 몸에서 검은 오오라가 뻗치더니 순식간에 앞으로 튕겨져 나갔다. 물론 손에 는 언제 빼어들었는지 황금으로 반짝이는 자신의 장검을 들고 말이다. "이놈! 오늘이야말로 내 살아생전의 소원을 성취하고야 말리다!" ... 왜 예전과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걸까. "닥쳐닥쳐닥쳐! 제발 그 유치찬란한 싸움 따윈 집어치우고 여기 앉아!" 그대로 검으로 내리치려는 자세에서 멈칫한 황태자는 자신에게 쏠린 수많은 시선을 의식했 던지 어색함을 감추려고 헛기침을 몇 번했다. "버터, 넌 총사령관으로 간다. 그리고 황태자는 이에 토달지 말 것." 황태자와 버터 모두 얼굴이 뭐 씹은 것처럼 일그러졌다. "그.리.고. 난 혼자 행동 할 테니까 날 총사령관의 권력으로 잡아 두려하지 말 것. 이제 됐 지? 그럼 모두 밥이나 먹으러 가지." "정말 말도 안되는 소리에요! 아름다운 드래곤 레이디." 드래곤이란건 이해가 가는데 왜 레이디가 거기에 붙냐? "날 여성으로 생각하는 존재는 아마 이 세상에 너밖에 없을 거다." 아까의 그 이상한 포즈 때문에 에릭은 내게 가까이 다가오지 않고 있었다. 라피는 이상야릇한 눈빛으로 우리 둘을 바라보며 쿡쿡대며 웃었지만, 내가 한번 노려봐 주 자 곧이어 조용해졌다. "내일 출발하지. 내가 먼저 가고, 버터야, 너는 나중에 덩치들 끌고 천천히 와라." 벌써부터 신계의 놈들이 땍땍거리는게 눈에 선했지만, 약속한건 약속한거다. 아아, 또 아까 운 물품을 드워프들에게서 뜯어 내야하는 건가. 신이란 놈들은 절대 신력이 담긴 물건이나, 엄청난 예술품이 아니면 거들떠도 안본다. 아마 내가 무릎꿇고 빌면 겨우 눈요기나 할까. "몸조심해." "드래곤에게 그따위 말을 하다니, 너도 어지간한 바보구나." 귀찮다는 듯이 손을 흔들며 식당으로 사라지는 내 뒤로 수많은 눈초리가 날아왔지만 역시 난 무신경이며 둔치였다. 730년 6월 날짜 : 16일 날씨 : 푸른 하늘에 햇빛이 알맞게 비춰지고 있다. "쿡..." 내가 낮게 웃음을 터트리자 라피는 인상을 찌푸렸다. "왜 웃는 거에요." "황태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군. 어떻게 이 정도로 당할 수 있는 거지?" 말 그대로였다. 우리가 텔레포트로 도착한 일명 '전쟁터'는 완전한 폐허였다. 이미 썪어가기 시작한 시체냄새가 코를 자극하기 시작했고, 그 냄새를 맡은 몸속의 기관들 은 주인의 명을 거역하고 속을 울렁이게 만들었다. 적군과 아군(일단 이놈들을 도와주러 왔으니 아군이라 칭하겠다.)은 대치상태에 있었고 그 가운데에 있었던 평원이라 생각되는 곳은 말 안해도 알리라. 이거, 시체 처리반부터 만들어야겠는데? "누... 누구냐!" 아까부터 조심스레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지만 별로 위해가 될만한 인물은 아니었기에 그 냥 놔뒀다. 에릭도 나와 마찬가지였는지 바로 앞에 검을 빼어들고 덜덜덜 떠는 병사를 한심 하게 바라보았다. "어... 어디 소... 소속 누구냐!" 이봐, 그 말 좀 어떻게 할 수 없겠어? 알아 먹기 힘들다구. "책임자가 어디에 있지?" "으으... 브... 블러드 나이..." 뭔지는 몰라도 공포에 질린 것 같군. "이봐, 네 대장말이다. 대장." 결국에는 바지에 오줌을 지리며 기절해버리는 병사를 나는 황당하게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얘 왜 이러냐?" "나도 묻고 싶은 말이다." "블러드 나이? 그게 뭐야?" "흐음, 형, 블러드 나이트를 말하는게 아닐까요?" "그게 뭔데?" "음... 몇 달 전부터였지? 아마 3~5달 전부터 적군쪽에서 여자 한 명을 내보내나 봐요. 그런 데 보통 여자라면 괜찮은데 한가닥하는 여잔가 봐요. 아마 일방적으로 전투가 일어날 때마 다 대량학살을 한다고 하던데요?" ... 보통 여자가 전쟁터에 나와 뭘 어쩌겠다는 거냐. 당연히 좀 하는 얘가 나와서 설치겠지. "근데 쟤가 나를 보고 기절한 것과 무슨 상관인데?" "... 중요한 점이... 형이 그 여자랑 얼굴이 닮았거든요." "왜 황태자는 그걸 말해주지 않았지?" "형이 가만히 있겠어요? 안그래도 귀찮은데 기분 나쁘다는 이유로 여기 안왔을거 아니에 요." ... 무서울 정도로 나를 잘 알고 있는 녀석이군. "근데 얘를 우리가 들고 저기까지 가야 하는 거냐?" 기절한 병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묻자 어깨를 으쓱하며 라피가 대답했다. "몰라요." "냄새나는 놈을 어떻게 들고 가나." "귀찮다. 그냥 가자. 알아서 깨어나면 기어오겠지." -------------------------------------------------------------------- 이상하면 이상하다고 메일주세요..TT 엘프냥의 글을 보면서 조금이라도 행복을 느끼셨으면 합니다.^^ - 꼬마엘프 - -------------------------------------------------------------------------- ------ Back : 97 : 드래곤의 일기 2부 (178) * 카네스는 괴롭다 (written by 프레이야) Next : 95 : [공지] 드래곤의 일기 삭제공지입니다.^^ (written by 설 담당3) -------------------------------------------------------------------------- * 카네스는 괴롭다 "그래서 말입니다. 총 3만의 병력 중 1만 5천이 사망했고, 1만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이 중 에서 활동 가능한 병력은 약 3천 가량... 제말 듣고 계시는 겁니까!" 수도에서 황태자의 명을 받고 내려왔다고 하니까, 아니 정확히는 황태자의 도장이 찍힌 종 이 하나를 던져주니 나를 막사에 모셔두고 그동안 한이 많이 맺혔는지 설명을 하기 시작한 20대 중반의 청년. 얘가 총 사령관이라지? 왜 이렇게 젊은 걸까. "응응, 하나도 남김없이 다 듣고 있어." 하품을 늘어지게 하며 입을 가렸던 손을 그의 째림을 받고 은근슬쩍 내려놓으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럼 말씀해 보시지요." "......" "... 다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제길, 그 긴 설명을 다시 들어야 하다니. 여기 있던 병사들은 내 얼굴을 보고 끔찍하다 못해 공포에 질렸지만 그건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대체 그 블러드 나이트란 인간이 어떤 인간이기에 고귀한 내 모습과 닮았다고 하는 거지? 나를 보고 두려움에 잠기는 인간을 본다는 것은 참 기분 더러운 일이다. 드래곤들 가운데는 그것을 꽤나 즐기는 새디스트 경향을 가진 놈들이 많다지만 나는 그쪽 취향에서 빼주길 바란다. "... 아시겠습니까?" "응?" 내 앞에서 설명을 하고 있는 놈이 점점 위험순위에 도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하하, 이만 일행들이 기다리고 있어서." 슬금슬금 뒷걸음질치며 나는 에릭과 라피가 기다리는 막사로 죽어라 뛰었다. 그놈의 살기 어린 눈빛에서 벗어나자 안도의 한숨이 밀려온 나는 막사를 열어 젖히고 호기 심에 가득 찬 눈동자들을 대면해야했다. "무슨 일인데 그렇게 호들갑이야?" "형, 얼굴이 빨개." "응? 아무 것도 아니..." ... 여기서 잠깐! ... 난 왜 그놈을 두려워하고 있는 거지? 내가 인간을 두려워 할 이유는 없다. 왜냐고? 난 지고지순한 드래곤이니까. 고로, 내가 그 놈을 피해 여기까지 온 것도 이해가 안되는 행동이다. 왜냐고? 나는 자존심이 드센 드래곤이니까. 결론은 난 당당하다는 거다.(어째서 이런 결론이 나왔는지는 내게 묻지 말라.) "아아, 정말 미치고 팔짝 뛰겠군." 시크의 레어에서 긴 한숨을 내쉰 드래곤은 자신의 앞에 있는 서류들을 무의미하게 주욱 훑 어보았다. 다시 한번 그것들을 보고 깊은 상념에 잠긴 드래곤은 곧이어 육중한 자신의 몸을 일으켰다. "대체 어떤 미친것들이 이렇게 무식한 서류들만 골라서 보낸 거야!" 이 거대한 몸집을 자랑하는 드래곤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카이오네스였다. 드래곤 로드 인 시크의 부재로 시크가 처리해야할 모든 서류들을 떠 안아 버린 불운의 드래곤 카이오네 스. 어머어머한 양의 서류들을 보기가 이제는 역겹다는 듯이 발로 지긋이 밟아버리고는 카이오 네스는 유유히 시크의 레어를 나섰다. "내가 미쳤지, 미쳤어. 미쳐도 아주 단단히 미쳤지. 왜 거길 가라고 등을 떠밀었을까." 차마 그 엄청난 서류들 때문에 레어 밖까지는 못 나가겠는지 입구에 서서 중얼거리던 카이 오네스는 자신의 일생일대의 엄청난 잘못을 거듭 후회하며 다시 레어의 깊숙한 곳으로 발걸 음을 옮겼다. 자신이 밟아서 무참히 형체도 거의 남아있지 않고 쥐포가 된 서류들. 슬쩍 발톱으로 그것들을 들어올리며 카이오네스는 또 다른 자신의 막노동이 추가되었다는 사실에 슬픈 눈빛을 띄었다. "아아, 나도 이거 다 던져놓고 유희나 나가버릴까..." 물론 말만 하고 언제나 행동으로 실천을 하지 못하는 그였다. -------------------------------------------------------------------- 왜 시험때만 되면 글이 잘써지는 걸까요? 누가 A4 150매 꽉꽉 채워..ㅡㅡ 논문 발표 해주실분? +__________+ 엘프냥의 글을 보면서 조금이라도 행복을 느끼셨으면 합니다.^^ - 꼬마엘프 - -------------------------------------------------------------------------- ------ Back : 98 : 드래곤의 일기 2부 (179) * 카네스는 괴롭다 (written by 프레이야) Next : 96 : 드래곤의 일기 2부 (177) * 블러드 나이트? (written by 소설 담당3) -------------------------------------------------------------------------- ------ -------------------------------------------------------------------------- ------ Total access : 117070 , Current date and time : Wednesday 28th November 2001 19:40:28 -------------------------------------------------------------------------- ------ Copyright 1998-2001 HolyNet . All rights reserved. 드래곤의 일기 -------------------------------------------------------------------------- ------ Name : 프레이야 Date : 24-11-2001 10:44 Line : 98 Read : 752 [98] 드래곤의 일기 2부 (179) * 카네스는 괴롭다 -------------------------------------------------------------------------- ------ -------------------------------------------------------------------------- ------ Ip address : 211.187.21.62 Browser version : Mozilla/4.0 (compatible; MSIE 5.5; Windows 98) 문득 자신의 앞에 뒹굴고 있는 서류하나를 무심코 집어든 그는 그것을 보고 곧이어 새하얗 게 질려버렸다. "어, 어떻게 이런 일이... 제길, 내가 그 잡것들 꼭 일 저지를 줄 알았다." 카네스가 서둘러 시크에게 알리기 위해 텔레포트를 시도하고 곧이어 그가 사라진 자리에는 그가 미처 가지고 가지 못한 상소문이 바람에 펄럭거리며 그가 사라진 자리 위로 떨어졌다. '태어난지 60년된 블루 일족의 헤츨링이 납치되었습니다. 아직 로드님의 지시가 내릴때까지 아무런 행동을 취하고 있지 못하니 속히 결정해주시기 바랍니다. 헤츨링을 납치해간 존재 는... 인간 같습니다.' "죽을 때까지 평생 밥만 먹었으면 좋겠다." "정말 단순한 소망이구나." 에릭은 무시하고 나는 앞에 있는 수프를 떠서 먹기에 바빴다. "역시 걸신들린 거야." "아니에요, 에릭형. 지금 시크형은 할 일이 없어 심심한 시간을 먹는 걸로 때우는 거라구 요." 저, 저놈이 나를 배신했단 말이냐. 이 놈들에게서 무얼 찾으려한 내가 바보천치지. 지금 내 정신상태에 대해서 둘이 심각한 토 론을 벌이는 것을 보며 정말 살의라는 감정이 오랜만에 내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빨리 나오십시오." 그 총사령관이라는 인간이 나를 급히 부르기 시작했다. "왜?" "그녀가 나타났습니다. 당신과 똑같은 그녀가." "그래서?" "도와주러 오신 것 아닙니까?" 음, 대충 그렇지 뭐. "그럼 가자." 이미 바깥쪽에서 희미하게 풍겨오는 혈향이 짙어져 있었기에 슬슬 일어나려던 참이었다. "또 한바탕 춤췄나 보군." 그 블러드 나이튼가 하는 인간 근처에는 가지 못하고 맴도는 병사들 옆에는 새로 생긴 시체 들이 수두룩했다. 이거 정말 전쟁은 저 위에 날아다니는 조류들 좋으라고 하는 짓이다. 그 가운데에 어느 여자 하나가 떡 버티고 서있었으니, 저 여자가 그 블러드 나이튼가 하는 여잔가 보다. 자세히 보니 별로 나와 닮은 점은 없다. 약간 특이한 푸른빛 머리카락과 눈이랄까. 어떻게 보면 닮았다고 할 수도 있겠군. 왠지 눈에 초점 없이 멍해 보이는 눈빛을 보고 있자 니 화가 났다. "야, 네가 블러드 나이튼가 하는 계집애냐?" 기껏해야 13~14살로 보이는 계집애. 내가 적이라는 것을 인식했는지 피로 물든 레이피어를 들어올렸다. 뭐, 상대방이 저렇게 나 오는데 응해주지 않으면 정말 예의에 어긋난 일이기에 나도 똑같이 검을 들었다. 막 튀어나가려는데 나를 지긋이 막는 손길이 있었으니... "잠깐만." "왜?" 한 손으로 나를 막고 그 여자 쪽을 가리킨 에릭은 나를 돌아보았다. "뭔가 이상하지 않아?" "뭐가?" "너희 동족의 냄새가 나." 에릭의 말에 엄청나게 당황한 나는 서둘러 그 계집애의 기를 읽어보기 시작했다. 어쩐지 이상하다고 했어. 머리색부터가 불길하더니만. 꽤 빠른 속도로 기의 흐름을 읽었을 때 나는 결국엔 경악하고야 말았다. "제길! 헤츨링이 왜 이딴 곳에 있는 거야!" 내 절규를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그 헤츨링으로 추정되는 나를 향해서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냥 걸어오기만 한다면 나도 당황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 손에는 검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전격마법을 시전하며 다가오고 있는 모습만 없었다면 말이다. "이거 죽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대로 놔둘 수도 없고 참 고민이구먼." 그렇다. 간단히 패주자니 저 아무 것도 뵈는게 없다는 눈동자가 맘에 걸린다. 이럴 경우 패 봤자 나만 피본다. 그렇다고 죽이기라도 하면 그 다음 차례는 내가 된다. 아마도 드래곤 일 족 전체가 사시미 들고 날 쫓아오겠지. 이대로 놔둬도 문제다. 난 황태자와의 약속을 지킬 의무가 있단 말이다. 할 수 없다. "에릭, 나가서 기절시켜서 끌고 와라." "왜 내가 나가야 하는 건가." "내가 나서면 분명히 어디 한군데는 부러뜨려서 끌고 올걸. 그래도 육탄전에는 나보다 네가 더 낫잖아." 나를 카리스마 있게 팍 째려봐준 에릭은 정말 내키지 않는 걸음 옮긴다는 듯이 느릿느릿 헤 츨링을 향해 다가갔다. 헤츨링의 그 푸른 눈동자가 갑자기 붉은 빛으로 번뜩이더니 그대로 에릭의 품속으로 파고 들었다. 헤츨링의 손에 검이 쥐어져 있었기에 에릭은 슬쩍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혼자서 핏물이 고여있던 바닥에 처박힌 헤츨링은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에릭을 노려봤으나 에릭은 정말로 카리스마적으로 훗~ 하고 폼을 잡은 뒤에 그대로 자신의 오른발을 들어 헤츨 링의 복부를 가격했다. "커억" 처음 들어보는 헤츨링 기절하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인상을 찌푸렸고 에릭은 손을 탈탈 털 더니 어깨를 으쓱했다. "나한테 불만 있으면 말로 해. 괜히 헤츨링 패지 말고." 왠지 에릭녀석이 너무도 멋있어 보이는 바람에 화가 나서 한 말이었다. "근데 이걸 어떻게 처리하지?" 헤츨링은, 아니 헤츨링이라고 할 수 없는 존재는 조용히 죽은 듯이 누워있었다. 가끔 오르락내리락 하던 가슴만 아니라면 죽은 걸로 착각할 정도로 말이다. "웃기네." "......" "많이 건방져졌어." "......" "않그래?" "......" "어떤 미친 자식들이 헤츨링 복제 따위를 하고 지랄이냔 말이다!" 결국에는 폭발해버렸다. 그렇다. 이건 헤츨링이 아니었던 것이다. 기절시켜서 데려와 찬찬히 살펴보니 이건 헤츨링의 기를 가지고 있는 키메라 였던 것이다. 대체 어떤 미치다 못해 죽고 싶어서 환장한 새끼가 헤츨링 복제 따위를 했는지, 아니 어떤 방법으로 복제 헤츨링을 만들었는지 무지하게 알고 싶다. 인간이란 정말 가만히 놔두니 주제도 모르고 설치는 버릇없는 동물이다. 복제할 존재가 없이 지고한 위치에 있는 드래곤의 아이를 복제한단 말이냐! 잠들어 있는 키메라를 향해 씩씩거리며 분노를 토한 나는 차마 이 키메라는 잘못이 없다는 생각에 없애지를 못하고, 분만 삭이고 있었다. "종족 회의를 해야 하는가." "?!" 옆에서 에릭이 놀란 표정을 지었고, 나는 그것을 애써 무시하며 아까부터 뻐근해져 오는 뒷 목을 주물렀다. 종족회의. 이 상황에서 종족회의를 한다는 것은 인간 말소의 의견을 가지고 회의를 하는 거 나 다름없다. 헤츨링은 절대적이다. 고로, 헤츨링을 무단(?)으로 복제한 인간들은 그 싹을 잘 라내야 한다. 헤츨링이 아니라 키메란데 뭐가 어떠냐고 하겠지만, 저 키메라가 만들어지기 까지는 아마도 헤칠링이 한 마리 이상이 죽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형, 깨어났는데." 아까부터 그 키메라의 옆에 있던 라피가 혼자서 흥분해 있던 내 옷자락을 붙잡으며 말했고, 나는 다시 키메라에게로 눈을 돌렸다. 두 눈에 살기를 띄고 나를 바라보고 있는 키메라. 확 저 눈알 뽑아버릴까 보다. 열 받아서 그런지 드래곤인 내 존재감이 주위에 강하게 느껴졌다. 아직 헤츨링의 기운을 가 지고 있는 것인지 본능적으로 살기만을 겨우 내뿜을 뿐 덤벼들지 못하는 키메라를 보며 허 탈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종족 회의를 하면 어떻게 될지 알고 있을 텐데." 에릭이 차분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물론 만장일치로 인간 말소에 들어가겠지. "내 선에서 해결할 일이 아냐. 헤츨링 보호법은 절대적이거든. 기억안나? '그'도 헤츨링만은 죽이지 않았어. 헤츨링을 죽였으면, 일족 전체의 분노를 받게 되니까. '그'도 죽이지 못했던 존재가 헤츨링이야. 만약 저 키메라를 만드는데 썼던 헤츨링이 살아있다면 모를까, 너도 느 끼지 않아? 저 키메라의 몸 속에는 아직 완벽하지 않은 드래곤 하트가 있다는 것을." 자꾸 귀찮게 나를 노려보고 있는 키메라를 확 패주려고 했지만 라피가 신기한 눈빛으로 키 메라를 쳐다보고 있으니, 차마 그런 짓은 할 수 없었다. "형, 배고픈가 봐." 헉, 내 눈이 잘못 된 건가. 저 러브씬은 뭐냐! 키메라가 무표정한 얼굴로 라피의 가슴에 부빗거리고 있었고, 라피는 심히 걱정된다는 듯이 내게 말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봐, 밖에 누가 있으면 먹을 것 좀 가지고 와라." 표정이 없는 녀석인가? 하긴, 키메라에게 표정이 있는게 더 이상하겠다. "그나저나 저건 어떻게 처리해야 하지?" 입 속에 꾸역꾸역 빵을 집어넣는 키메라의 모습이 참으로 불쌍해 보였다. 하지만 어차피 최 후에 저 키메라에게 돌아가는 것은 죽음뿐이다. 아마도 헤츨링의 어미로 추정되는 드래곤에 게 잔인하게 찢겨 죽을지도. "헐, 드디어 소식을 가지고 도착하는 중이시군." "잘 생각해 보고 결정하길." 멀리 보이는 새까만 점을 바라보며 중얼거리자 에릭이 내게 못을 박듯이 말했다. 그 점은 점점 커지더니 이제는 또렷한 형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저 자식, 어지간히 급했나 보군. 본체로 여기까지 날아온거 보면." 드래곤의 위압감. 적군이나 아군이나 이미 병사들은 넋 놓고 카네스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고, 대부분은 이 미 눈뜨고 기절한 상태였다. 카네스는 그 까만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더니 막사 밖에 나와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서둘러 폴리모프를 시도했다. "시크!" "응." 자신이 설명하기 귀찮은지 공간에서 서류 한 장을 쓱 꺼낸 카네스는 그것을 내게 넘겨줬다. "흠..." "인간들이 결국에는 일을 저질러 버렸다. 이제 어떻게 할거냐?" 내가 어떻게 할지 뻔히 알면서 묻는 카네스. "종족 회의를 소집해야지." 730년 6월 날짜 : 20일 날씨 : 덥다. "당연히 말살이죠." "인간을 말살하면 우리 종족도 보존이..." "헤츨링을 죽였습니다. 용서받지 못할 존재요, 인간이란 존재는. 그 존재자체가 세상에서 없 어져야 하는 존재라오!" "헤츨링을 죽인 국가만 멸망시키는 건 어떨까요?" "말도 안되는 소리! 무조건 말살이오, 말살! 감히 우리에게 대들기 시작했소, 하찮은 인간 따위가. 이 기회에 말살시켜야 하오!" "하지만, 신들이 가만히 있을 것 같소?" "일족의 고귀한 헤츨링이 죽었다! 헤츨링은 절대 보호라는 걸 신들이 모를 리가 없을 텐데. 그들은 우리를 막을 권리가 없어!" 전쟁터. 아니, 정확히 내 막사에서 종족 회의가 열렸다. 마땅한 장소도 없고, 비상시이기도 해서 그냥 무조건 여기로 집합하라고만 했을 뿐이다. 드래곤족 전체가 이곳에 모여들었고, 이미 적군은 후퇴한지 오래다. 열 받은 블랙 드래곤의 젊은 성룡 하나가 적군의 진지에 브레스를 뿜어댔고 적군은 우왕좌 왕하며 어디론가 가버렸다. 내가 존재감을 나타내면 죽여놓는다고 엄포를 놓았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여기 있 던 병사들까지도 도망가버렸을 것이다. 시끄럽게 떠드는 그들에 비해 엘프족과 드워프족은 의외로 조용한 상태를 유지했다. 종족회 의라 해서 형식상 참여한 그들은 드래곤들의 언쟁 사이로 끼어들 힘이 없었나 보다. 인간의 몸을 빌어 신 하나가 대표라고 강림해 아까부터 내게 자꾸 말을 걸고 있었지만 나는 그것을 무시하고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안았다. "입들 닥치고 가만히 찌그러져 있어!" 서로 목소리 크다고 자랑할 일이 있나. 이 놈들은 위대한 이 몸이 앞에 있는 대도 버릇없이 언성을 높이기에 급급했다. 내가 이렇게 소리를 쳤건만 여전히 지 잘났다고 떠드는 놈들을 향해 브레스를 날리고 싶었 지만 나는 자비의 블루 드래곤이다. 그들에게서 시선을 돌려 내 시선이 간 곳은 자신의 아 이를 잃은 어미 블루 드래곤 메이카즈나에게로 향했다. 자식을 잃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 침착한 모습으로 키메라를 응시하고 있던 그녀는 곧이어 내 시선을 느끼고는 내게 살짝 고 개를 숙였다. 키메라는 라피의 뒤에 서서 그녀를 바라보다가 그녀의 시선이 자신에게서 내게로 옮겨지자 불쾌한 듯이 인상을 썼다. 키메라도 감정표현을 할 줄 아는 건가? 니가 노려보면 어쩔테냐? 메이카즈나는 키메라를 바라보며 두 손을 내밀었다. "내 아가, 이리 온." 그녀의 목소리에는 고통과 슬픔이 깊게 자리잡고 있었으며 키메라에게 내뻗은 두 손은 미세 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봐, 그런다고 키메라가 옳다구나~ 하고 안겨올리... "... 마마~" 멍한 눈으로 키메라가 두 손을 뻗은 그녀의 품속으로 달려가 안겼다. 이 어이없고 희한한 광경에 일순간 막사 안이 쥐죽은듯이 고요해졌다. "말도 안돼." 고요한 막사 안으로 어떤 드래곤의 넋이 빠진 소리가 맴돌았고, 다른 존재들은 그 말에 절대적으로 동감할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 보라. 인간의 몸에 심장 대신 드래곤 하트와 인간의 피 대신 드래곤의 피를 주입해 살고 있는 이제는 인간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키메라다. 마법력이 있는 드래곤의 피가 인간의 몸에 저렇게 활발하게 돌아다닌다는 것도 신기해 미치겠는데 전생(?)의 기억까지 가지고 있다니! 말도 안된다. "메이, 그 아인 우리 아이가 아니오." 남편으로 보이는 드래곤이 정신을 수습하고 자신의 아내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아니에요, 카든. 우리 아이에요. 엄마라고 부르잖아요." 키메라는 그 드래곤이 자신의 존재를 부정한다는 것을 아는 듯 메이카즈나의 허리를 붙잡고 무섭게 그 드래곤을 노려보았다. "마미... 마미..." 어느새 에릭은 나보고 수습을 하라는 듯이 내 옆구리를 사정없이 찔러 대었고, 나는 정말 할 수 없이 억지로 그들 사이에 나섰다. "이봐들." "아, 로드님." "이 상황을 수습해 달라구." 에릭은 내게 기대한게 잘못이라는 표정으로 내게서 시선을 돌렸지만, 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일을 했을 뿐이야. "쥬르, 내 귀여운 아가. 대체 어디 있다가 이제 온거니. 앞으로 엄마에게 말하고 혼자 돌아다니면 혼내 줄 거야." 키메라를 껴안고 소근거리는 그녀를 바라보며 드래곤들은 이 기가 막히고 황당한 상황에 적응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인간들의 처리를 어떻게 하면 좋겠나."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 말 속에는 저 키메라에 대한 처리의 뜻도 포함하고 있었다. "멸족입니다!" "말도 안돼요! 인간을 멸족시키면 이 세계는 망한다구요!" "맞습니다!" "아무리 헤츨링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해도, 드래곤이 아닌 키메라일 뿐입니다. 살려둬서는 안됩니다." 아아, 정말 단결력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놈들이군. "그만해요!" 메이카즈나의 눈물 섞인 목소리가 들리자 다시 막사 안은 고요해졌다. "우리... 아기가 놀래요. 그만 해요. 인간이 멸망하든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요. 하지만, 이 아이만은 내게서 빼앗지 말아줘요." 정말 처치곤란이군. 이래서 로드자리 따윈 맡기 싫었단 말이다. 메이카즈나와 그의 남편은 키메라를 데리고 막사 밖으로 나갔고, 다시 막사 안은 열띤 토론을 하는 장소로 바뀌었다. "이봐, 좀 목소리 좀 낮추라구. 한 놈만 얘기해. 의견이 섞여서 알아먹을 수가 없잖아." ... 묵묵부답. 왜 메이즈카나가 한 마디 할 때는 조용해지고, 내가 한마디 할 때는 당연한 듯이 씹는 거냐! "그래, 이 세상 말아먹든지 말든지 니들 맘대로 해라! 나는 발 닦고 잠이나 잘테니 어디 나 씹고 얼마나 멋진 결과가 나오나 기대하마." 나가면서 앞에 걸리적거리는 놈들을 모조리 밟아주고 나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아참, 일주일 내로 결론이 안난다면 내가 결정한다. 내가 결정하게 만들면... 너희 다 밟아버릴 거야. 그.리.고. 내 결정에 토다는 놈 있으면 산채로 뼈까지 발라서 잘근잘근 씹어먹어 주마." 아주 내가 로드가 아니라 밥으로 생각하는 놈들을 향해 무시무시한 말을 집어던지며 나는 깜깜해져버린 바깥으로 나왔다. 낮은 덥다고 해도 밤은 아직 쌀쌀한 날씨였다. "... 야..." 뒤 따라 오던 에릭이 내가 부르자 무슨 일이냐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 아까 그 막사 우리 잠잘 곳이었잖아... 이제... 어디서 자냐?" ... 왠지 오늘따라 내 옆을 쓸고 지나가는 바람이 싸늘하다고 느껴졌다. 제길, 아까 그 놈들 쫓아내고 내가 거기서 자야 하는 건데. 730년 6월 날짜 : 21일 날씨 : 적당히 덥다. "마마..." 아직도 내가 곁에 다가가면 두려운 건지 메이카즈나의 허리를 붙잡고 뒤로 숨는 키메라를 보며 자조적인 웃음이 나왔다. "쥬르, 로드님이다. 인사드려야지?" "마마..." "아니, 됐다. 저렇게 무서워하는데 일부러 인사할 필요까지는 없지." 왠지 어제 바깥에서 잤더니 감기에 걸려버린 듯 하다. 아까부터 미열이 오르고 있는 나를 걱정스레 쳐다보던 에릭이 입을 열었다. "치유마법 걸어줄까?" "쳇, 마족이 치유마법이라니. 안어울려. 관둬. 치유마법이라면 나도 걸 수 있다구." 내게 걸 맞는 육체가 있는 한 이따위 감기는 아무 것도 아니다. ... 그런데... 왠지 낫게 하고 싶지 않다. "그냥 이대로 죽어버릴까..." "뭐?" "아냐." 다행이 에릭은 내 말을 듣지 못한 것 같았다. 왠지 저 키메라를 보고 있으면... 슬픈... 기억 이 떠오른다... "그놈들은 아직도 그대로야?" "응. 어젯밤 그대로, 서로 양방향에서 서로 자기들의 주장만 내세우고 있는 상황이지." "... 이대로 일주일이 지났으면 좋겠군." "뭐?" "내가 결정해야 하잖아." 정말 무슨 결과가 나올까 궁금해진다. 인간들의 멸망이라. 그것만은 피했으면 좋겠는데. 머리를 긁적이고 있을 때 나는 나를 빤히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져 그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를 쳐다보고 있던 키메라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얼른 고개를 돌려버렸다. "흐음..." "왜 그래?" 나는 입가에 희미한 웃음을 머금고 메이카즈나의 옆으로 걸어갔다. "로드님?" "잠깐 이 놈 좀 빌릴게." 거의 반 강제로 메이카즈나의 품에서 키메라를 안아든 나는 내 품속에서 괴성을 지르며 발 버둥치는 그 놈의 엉덩이를 때려준 뒤에 당황하는 메이카즈나에게 안심하라는 뜻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마마~" "가만히 있어. 누가 널 죽이기라도 하냐?" 처절하게 울부짖는 키메라를 데리고 메이카즈나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곳까지 와서야 키메 라를 내려주었다. 도망가려 했지만 내가 옷자락을 붙잡고 있어서인지 가려고 뛸 때마다 철 퍼덕 넘어지는게 재미있었다. 계속 그 짓을 반복하다가 결국에는 포기한 건지 역시나 그 무표정한 눈빛으로 재수 없게 날 대놓고 야리기 시작했다. 에릭은 옆에서 '저 싸이코들...' 이라는 눈빛으로 나와 키메라를 바 라보고 있었으나, 에릭은 언제나 무시당할 뿐이다. "너 진짜 드래곤일 때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거냐?" 고개를 휙 돌려버린다. 크악~! 요즘엔 정말 개나 소나 날 무시하고 자빠졌다. "마마!" 자신의 어미를 부르는 키메라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으려다가 에릭의 '그 손으로 아이의 머 리를 쥐어박으면 유아학대다!'라는 눈빛을 보고는 슬쩍 손을 뒤로 감췄다. "... 근데 이놈, 할 줄 아는 말이 마마라는 소리밖에 없는거 아냐?" "설마 그러기야 하겠냐." "야, 말 좀 해봐. 그렇다고 또 마마라는 소리하면 그땐 정말 한 대 맞는다." "... 마미~" ...... 미친다. 그래, 내가 너한테 물어서 건질게 뭐가 있겠냐. 혼자 머리 깨지도록 싸매고 있 는게 낫지. 마음은 이렇지만 정말 이 놈을 한 대 쥐어박고 싶다. 키메라 주제에 왠지 나를 놀리는 것 같아 보인다. "... 로드 무서워." 포기하고 그놈을 메이카즈나의 품속으로 돌려보내려 할 때 키메라가 입을 열었다. "너 뭐라고 했냐?" "너 뭐라고 했냐?" 사실 내게는 그놈이 말을 했다는 사실보다 그놈이 저런 망발을 입에 담았다는 사실이 더 충 격적으로 다가왔다. "그러게 애 앞에서 인상 풀라고 했잖냐." "내 인상이 어때서!" "... 로드 인상 더러워." 휘청거리는 내 어깨를 붙잡으며 에릭이 씩 웃었다. 이놈 웃는 얼굴 보는 것도 정말 오랜만 이다. 매일 허탈한 웃음밖에는 지어준 적이 없으니. "이 아이도 공감하잖아." 정말 오랜만에 살의의 욕구가 치솟아 오른다. ... 참자. 난 자비의 블루 드래곤, 시크리오프스 다. 슬쩍 에릭의 정강이를 발로 차버리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나는 얼굴에 미소를 자아냈 다. "키메라야, 우리 계속 이야기나 해볼까?" "결국 알아낸 건 하나도 없잖아?" 빙글거리며 말하는 에릭을 정말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애버리고 싶었지만, 참았다. "잠깐 얘기 좀 할까?" "지금 하고 있는건 뭐냐?" "... 좀 진지하게 좀 하자." 난데없는 얘기를 하자며 으슥한 곳으로 나를 끌고 가는 에릭. "어떻게 할거냐." "응?" "... 저 아이... 살려 둘 거냐?" 갑자기 묻는 에릭의 질문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흐음, 글쎄... 저대로 살려 둔 다라. "내가 저 키메라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살려두자니 일족들이 반대할거고, 죽이자니 메이카 즈나가 미쳐버릴 것 같고. ... 미쳐버린 존재는 한 존재만으로 족해." "그럼 살린다는 말이군." "일단은 저기 막사 안에서 의미 없는 논쟁만 하고 있는 놈들에게 선택권을 줬으니, 저 놈들 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렸지." 여름이 다가와서 그런지 따뜻한 나는 바람을 맞으며 짧은 단발머리를 뒤로 넘겼다. 머리가 짧아서 뒤로 넘겨봤자 다시 바람에 날릴게 뻔한대도 나는 이 동작을 반복하고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전쟁터였는데 이미 적군들은 지평선 너머로 사라진지 오래다. 적군이 사라졌다지만 그들이 만들어 놓은 시체들은 악취를 풍기며 썪어 가고 있었다. 바람결에 피비린내와 악취가 풍겨오는 것 같았지만, 이미 이 냄새에는 익숙해져 코에는 아 무런 감각이 없었다. 무의미하게 적군이 사라진 쪽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던 나는 고개를 돌려 나와 같은 쪽을 바라보던 에릭의 옆모습을 바라봤다. 아까의 그 웃음은 어디로 갔는지 무표정으로 눈동자에는 아무런 감정을 담지 않고 지평선을 바라보는 모습이 하나의 조각상 같았다. 내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느꼈던 걸까.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더니 그대로 입 꼬리를 위로 올리며 피식 웃어버린다. ... 그게 왜 그렇게 슬퍼 보였던 걸까. "물어볼거 있어." 에릭의 눈을 피하지 않고 나는 똑똑히 말했다. 말해 보라는 듯이 나를 쳐다보는 눈동자에서는 아직도 감정이 담겨있지 않았다. "... 요루나. 왜 그녀를 죽이려 했지?" 일순간 에릭의 눈에서 슬픔을 봤다고 하면, 내가 잘못 본 것일까. "... 네가 그녀를 봉인한 후 우리는 새로운 마왕을 맞기 전까지는 그녀를 죽일 수 없었다. 힘 의 계승식을 해야 했으니까. 그녀의 힘을 견딜 수 있는 마족들이 없더군. 그래서 그랬던 걸 까. 그녀는 꽤나 오랫동안 살아 있었지. 하지만 지금의 마왕이 나타난 뒤에 더 이상 그녀는 쓸모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어. 그 밀실에서 너도 봤을 거다. 힘의 계승식이 끝난 상태였는데 도 그녀는 엄청난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지금의 마왕에게 방해가 되기에 그녀를 처 형하기로 장로회에서 결정이 났다." "왜 네가 그녀를 없애러 가야했던 거냐." "시험해 보고 싶었거든. 아직도 예전의 그녀인지. 내가... 사랑했던 그녀인지를..." 역시 요루나를 사랑했었군. 윤기가 흐르는 에릭의 보랏빛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 손길에 움찔하는게 느껴졌지만 지금은 에릭이 너무 슬퍼 보여서 이래주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로드." 한참 에릭을 다독여주고 있는데 뒤에서 키메라가 나를 불렀다. 아까부터 방황하는 것 같았 지만 어련히 알아서 메이카즈나에게 돌아갈까 싶어 그대로 놔뒀는데 끝내는 메이카즈나를 찾지 못하고 내게 돌아온 것 같았다. "... 마... 마미가 없어." 눈동자에 눈물을 가득 담고 울먹이는 키메라가 상당히 당혹스러웠다. 정말 난 감정이 있다 는 키메라는 듣지도 못했단 말이다!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주저 앉아버리는 키메라를 보고 한숨이 나왔다. 에릭도 어느새 평소의 에릭으로 돌아가 먼지를 털고 일어섰고, 나는 이 멍청한 키메라를 메 이카즈나에게 데려다 주기 위해 일어섰다. 대체 내게 그렇게 적대감과 살기를 뿜어대던 놈으로는 안믿겨진다. 키메라를 에릭의 품으로 넘겨주며 알아서 메이카즈나에게 데려다 달라고 눈짓을 한 뒤에 나 는 부상자나 돌보고 있을 라피를 보러 라피가 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막사로 이동했다. 가끔씩 두려운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병사들이 보였지만, 한 두 번 겪는 일도 아니고 해서 그냥 무시했다. 이들에게 두려움을 느끼게 하지 않으려고 기를 감췄으나 이들은 우리 종족 자체를 워낙 무서워해서 이리도 쫄고 있는 것이다. "라피!" 막사를 젖히자마자 지독한 소독약냄새와 약초, 그리고 피비린내가 함께 풍겨온다는 것은 썩 기분 좋은 느낌이 아니다. "어, 형!" 막 창상을 입은 병사 하나의 어깨에 붕대를 매주며 나를 보고 반가운 척 하는 라피를 보고 는 씩 웃어주었다. 그래도 이 놈은 병사들을 도와주러 다녀서 그런지 그다지 이들이 두려워 하는 기색은 없었으나 내가 막사 안으로 들어가자 무슨 화이트 드래곤의 레어에 온 것처럼 주위가 썰렁해졌다. 괜히 들어왔나. "그냥 하던 일 계속해라." 왠지 여기 있으면 이 환자들이 다 밖으로 나가버릴 것 같군. 이들이 불편한 것 같으니 그냥 내가 나가자는 생각에 뒷머리를 긁적이며 막사를 나왔다. "인간을 멸족해야 한다니까요!" "안되는 말씀이죠!" "왜 헤츨링을 죽인 인간을 그렇게 싸고 도는 겁니까! 혹시 헤츨링 납치에 가담이라도 하셨나요?"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헤츨링을 죽인 존재는 드래곤 전체의 분노의 대상인데요." 여기까지 목소리가 들려온다. 서로 자기들 주장만 내세우면 정말 뭘 어쩌자는 건지... 하긴 그게 내가 바라는 상황이다. 이쪽을 선택할 수도 없고, 저쪽을 선택할 수도 없는 상황. 그러 면서 일주일이 지나면 내가 결정할 권한이 오는 거지. 인간을 멸족시키자는 파들은 내가 일주일이 지나면 무슨 짓을 벌일지 대충 짐작이 가는지 강경하게 멸족하자는 뜻으로 밀고 나갔고, 엘프와 드워프, 그리고 몇몇 드래곤들은 절대 안 된다고 밀고 나갔다. 그래그래, 그렇게 일주일만 버티라구. 730년 6월 날짜 : 24일 날씨 : 맑음. "사부님!" 에릭과 무의미하게 요즘 시간때우기로 키메라와 놀고 있을 때 난 갑자기 내 뒤로 안겨든 놈 때문에 앞으로 고꾸라 졌다. "뭐야!" 날 사부라고 부르며 갈색머리를 지닌 순둥이는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다. "사부님~ 저만 놔두고 가시면 어떻게 해요." 내 등에 얼굴이 비비며 말하는 그놈을 어떻게 해서든 떼어내고 싶었지만 절대 안떨어졌다. "브리안!" "그 동안 못 배운거 가르쳐 주실 거죠?" ... 이놈 내가 보고 싶었던게 아니라 내가 습득하고 있는 마법지식과 기술이 그리웠던 거군. "떨어져, 징그러워, 임마!" 그제서야 내 등에서 슬쩍 떨어지는 그 놈을 붙잡아다가 차원의 틈 사이로 던져버리고 싶었 으나, 나는 또다시 참았다. 요즘에는 정말 인내력을 테스트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이러 다가는 인내력으로 유명한 실버 드래곤이 되어버릴 것 같아서 걱정이다. "사부, 빨리 시작하죠." 방긋방긋 웃으며 빨리 뭔가를 가르쳐달라고 조르는 이놈을 보고는 나는 에릭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야, 너한테 뭐 가르쳐 달라잖아." "... 이번엔 네가 가르칠 차례 아니냐?" "니 차례 내 차례가 어딨어? 그냥 한가한 놈이 가르치면 되는 거지." "그럼 나와 놀고 있는 넌 한가하지 않다는 거냐?" "난 키메라를 돌봐야 해. 메이카즈나가 레어로 잠시 돌아간 사이 여.성.체 드래곤인 난 엄마 를 대신해 이 아이를 돌봐야 하지." "변명 하나는 끝내주는구나."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에릭이 키메라와 붙잡고 있던 손을 놓고 자리를 일어나 브리안을 데리 고 사라졌다. 아무래도 검을 사용하려면 이런 좁은 장소보다는 공터가 나으리라. 나를 슬슬 피하는 키메라를 붙잡고 맞은 편에 앉혔다. 내가 자신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고 자신이 생각하기에 내가 만만한 상대라고 인식이 된 것일까. 이 키메라는 나를 뚫어지게 바 라보며 관찰을 하고 있었다. "뭘 보냐?" "......" 정말 말수가 더럽게도 없는 놈이다. 하긴, 키메라가 말을 많이 한다는 것도 우습지만. "네 이름이 뭐라고 했지?" "... 쥬르." "쥬르라... 쥬르쥬르쥬르." 자신의 이름을 자꾸 부르는게 거슬려서일까. 띠꺼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 쥬르라고 이름 이 있는 키메라의 머리를 한 대 쳐주고는 말했다. "어감이 굉장히 좋군. 쥬르라..." 불만스럽다는 듯이 볼을 크게 부풀리고 나를 쳐다 보는게 영락없는 어린아이의 그것이었다. 주머니에서 어제 라피 몰래 몇 개 챙겨놓은 사탕을 꺼내서 쥬르에게 주자 그것을 한참을 바 라보더니 껍질에 싸여있는 그대로 입으로 가져갔다. "야, 이거 벗기고 먹어야지." 또다시 쥬르의 머리를 쥐어박은 뒤에 사탕의 껍질을 벗겨 내가 친히 입 속으로 넣어줬다. 잠시 그 맛을 음미하며 오물거리더니 먹고 죽을 것이 아니라고 판단되었는지 기분 좋은 얼 굴로 사탕을 쪽쪽 빨아먹었다. 임마, 설마 내가 너 먹고 죽으라고 그것을 줬겠냐. 이런저런 딴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나는 앞에서 뭔가가 나를 콕콕 찌르는 느낌에 현실로 돌 아와야 했다. 손가락으로 내 얼굴을 찌르던 쥬르는 내가 자기를 쳐다보자 무뚝뚝한 입을 열 어 말했다. "... 더 줘."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손을 내밀며 말하는 쥬르를 보고는 참 기가 막혔다. 늦게 배운 도둑 질 날새는 줄 모른다고 했던가. 내가 줄 생각을 하지 않자 아까 주머니에서 사탕이 나온 것 을 봤는지 쥬르는 내 주머니를 뒤져서 그나마 하나 남아있던 사탕을 입 속에 넣었다. 벙쪄 있는 내 곁을 지나서 쥬르는 아까 에릭이 있던 곳으로 가버렸다. 허참, 살다보니 기가 막히는 일도 다 있군. 쥬르를 저대로 둔다면 필시 에릭은 자신이 쥬르를 돌본다고 하고선 분명 나에게 브리안을 가르치라고 할게 뻔하기에 나는 쥬르를 다시 붙잡으러(?) 뒤따라갔다. 막 대련을 하고 있었던 듯 에릭과 브리안이 대치해 있던 상태에 갑자기 그 사이로 쥬르가 불쑥 끼어들더니 에릭을 향해 손을 벌렸다. "뭐야?" 에릭의 당황한 목소리가 울려퍼졌고, 에릭을 향해 검을 내리치던 브리안은 그 자세 그대로 굳어버릴 수 밖에 없었다. "... 줘." 한 손을 떡하니 내밀고 무엇을 달라는 건지 에릭에게 계속 달라는 소리를 하는 쥬르를 보고 에릭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고 나를 바라보았다. 대충 쥬르가 에릭에게 달라는게 뭔지 알 것도 같았다. "뭘?" 사탕이란 이름을 몰라서 그런걸까. 잠시 고민을 하더니 쥬르는 아직 자신의 입 속에서 녹고 있는 사탕을 입을 벌려 보여줬다. "그게 뭐냐?" "... 줘." 에릭은 못볼걸 봤다는 듯이 고개를 돌렸고, 이마에 혈관마크가 찍힌 쥬르는 이제는 거의 때 쓰다시피 에릭에게 말하고 있었다. "사탕 주라는 소리다." 옆에서 보다 못한 내가 한마디 던지자 에릭은 입을 떡 벌리더니 나에게 물었다. "얘가 왜 사탕을 찾아?" "몰라. 심심해서 하나 줬더니 저러네." 무섭게 에릭을 노려보며 손을 벌리는 쥬르의 목덜미를 한손에 잡고 나는 쥬르를 질질 끌고 가기 시작했다. 바둥바둥 거렸지만 곧이어 쥬르는 내 한마디에 잠잠해졌다. "그거 많이 있는 곳에 데려다 줄게." "라피야, 사탕 있는대로 좀 꺼내 봐라." 환자들을 돌보고 있던 라피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나 때문에 상당히 당황한 눈치였다. "응? 갑자기 사탕은 왜?" 에릭이 물었던 질문과 거의 비슷한 질문을 던지는 라피에게 쥬르를 손가락질로 가리켰다. "쥬르 줄려구?" "응." 핏자국이 묻어 있는 옷 주머니에 손을 넣고 한참을 꼼지락대던 라피는 곧이어 사탕을 한웅 큼 쥐어서 쥬르의 손에 쥐어주었다. "많이 먹어." 사탕을 받고 자기 볼일은 끝났다는 듯이 막사를 도망치듯 빠져나가는 쥬르를 뒤치닥거리 하 기 위해 나도 덩달아 라피에게 인사를 하는둥 마는둥 하며 그곳을 빠져 나왔다. '우물우물' 입술을 꼼지락거리며 쉴새없이 사탕을 입안에 넣고 있는 쥬르를 그다지 말릴 생각은 없다. 뭐, 질리도록 먹으면 먹고 싶은 생각이 달아나 버리겠지. 못 먹게 막는 것보다는 원 없이 먹이고 다시는 못 먹게 하는게 낫다. 내가 쥬르를 돌본다고는 했지만 별로 할 일은 없다. 정상적인 애들처럼 뛰어 노는 것도 아 니고 그냥 가만히 앉아서 사탕만 까먹고 있을 뿐이었다. 물론 그것도 사탕이 다 떨어지면 슬쩍 일어나 라피에게 가서 또다시 한 웅큼을 가져와 우물거리며 먹는다. 고로 난 이 조용 한 아이에게 신경 쓸 일이 거의 없다. 몇 시간 전에 내가 쥬르의 사탕 하나를 그냥 무의식적으로 입에 넣으려다가 거의 날 죽일 듯이 노려보는 눈빛에 슬쩍 내려놓았다. 누가 드래곤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 않을까봐, 자기 소유는 더럽게 챙긴다. 빈 막사가 없어서 땅바닥에 앉아 서로를 말똥말똥 쳐다만 보고 있는 우리. 그렇게 노을이 지고 또 하루가 지나가 버린다. 730년 6월 날짜 : 25일 날씨 : 흐리고 비옴. 날씨가 우중충해서 밖에 나가 놀지도 못한다. 오늘은 그래도 내가 사부라는 명목 하에 브리안에게 마법에 관한 이론을 정리해주고 있었 다. "너 인간의 탈을 쓴 돌이지? 솔직히 말해봐." "사부, 정말 어렵다구요." "같은 말을 몇 번하게 만드냐?" 어제 내가 쥬르와 논 것처럼 이번엔 에릭이 쥬르와 서로 마주보면서 멀뚱멀뚱 앉아만 있었 다. "딱 두 번 말해줬잖아요." "어디서 말대꾸야, 어디서?" "사부, 너무해요." "오호라, 나에게 배우고 싶지 않은 모양이지? 맘대로 해라. 어차피 나도 아쉬울 것 하나도 없다." "아, 알았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딱 다시 한번만 설명해주세요." "망할 돌 같으니라구. 마지막이다. 석두야, 제발 이해 좀 하며 들어라." 막 브리안에게 큰 소리를 치고 설명을 다시 시작하려는 찰나 싸늘한 비웃음이 들려왔다. "사돈 남말하네." ... 에릭, 이 자식! "나가!" 내 말에 토도 안달고 바로 기다렸다는 듯이 쥬르를 어깨에 들쳐 매고 나가는 에릭을 보며 분해서 씩씩거리다가 나를 조심스레 부르는 브리안의 목소리에 난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돌의 한계를 넘어선 강철 수준이구만." 내가 분명 그때 뭔가에 씌었었을 것이다. 내가 미쳤지, 내가 미쳤어. 어쩌자고 이 석두를 맡 아가지고 이 생고생이란 말이냐. 하나를 가르치면 기본적으로 그 가르친 하나는 알아야 할 거 아니냐!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이 석두에게 대체 뭘 바라는 건지, 참 궁금하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잖아! 그래도 약속은 약속인지라 인내심과 끈기로 버티고 있는 나. 이런 난 정말 내가 봐도 대단 한 것 같았다. 이 석두를 가지고 이 정도로 버틴게 얼마냐. "그나저나, 너 검은 잘 배우냐?" 이 정도의 석두라면 분명 에릭에게 심한 말 한 두 마디는 들으며 배울 것이다. "매일 벌만 서는 걸요."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군. 그런데 에릭 녀석이 내게 불평 한 마디 안했다고 한다 치면, 정말 이 놈에게 소질이란 것이 있는 모양이군. 그때 막사가 열리며 에릭이 쥬르를 안고 막사 안으로 들어왔다. "나가!" "비와." 나가라고 하자 비가 온다고 맞받아치는 에릭. 흠, 그러고 보니 에릭의 앞머리와 옷자락이 조 금 젖었다. 쥬르도 약간은 젖은 것 같았다. 아마도 막사에서 멀리가지 않았던지 비가 쏟아지 자 마자 막사 안으로 다시 들어온 것 같았다. 에릭과 쥬르가 들어오기 무섭게 또다시 막사가 열리더니 병사 하나가 두려운 얼굴로 내게 말했다. "총사령관님께서 모셔오라고 하십니다." "누굴? 날?" "네." ... 하긴 브리안이 왔다면 그 뜻은 그 버터 녀석도 여기 왔다는 뜻이 된다. 그 미친 버터 녀 석은 비도 오는 이 마당에 감히 누굴 오라가라 하고 명령이야? 그 놈은 드래곤에 대한 공포 도 없단 말인가! 아니면 내가 황태자와 약속을 했다고 믿고 까부는 것인가. 그도 저도 아니 면 정말 뵈는게 없어 그러는 것인가. 정말정말 내키지 않는 억지 걸음으로 나는 그 미친 버터놈을 만나러 갔다. "오셨습니까, 레이디 뮤즈." ... 난 뮤즈가 아니고 시큰데. "비에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정말 아름답군요." 눈이 삐었냐. "아마도 하늘이 당신을 질투해서 당신의 아름다움을 조금이라도 감추기 위해 이 비를 내렸 나 봅니다."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하고 자빠졌네. "서론 빼고 본론만 얘기해라." "흠흠..." 내 말에 헛기침을 하며 슬슬 그 버터자식은 본론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 살인마가 우리 진영에 있다는 것은 사기에도 문제가 되고, 언제 다시 말썽을 부릴지 모 르니 처형해야 합니다." "그래, 네 능력있으면 해봐라. 말리지 않을테니." 네놈들이 용케 사형을 시킨다 해도, 메이즈카나가 가만히 보고만 있을 것 같냐? 그때야말로 너희 일족들의 이 대륙 위에서 말라버리는 때지. 다시는 그 느끼한 버터놈이 그런 소리를 꺼내지 못하게 단단히 못을 박아 놓고는 그 막사를 나서는 내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730년 6월 날짜 : 27일 날씨 : 매우매우 맑음. 드디어 결전(?)의 날이 밝았다. 아직까지 서로의 주장만 내세우다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존재들을 보며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막사 안으로 걸어 들어가니 인간멸족이라고 지껄이던 파들은 포기했다는 듯 한 얼굴이었고, 끝까지 인간이 살아야 한다고 주장했던 존재들은 날 보더니 반색을 하며 반 가워했다. 한쪽에서 카네스가 매우 피곤한 얼굴로 턱을 괴고 앉아있었다. 그의 표정으로 미루어 짐작 해볼 때 카네스는 이들의 토론에 매우 지친 기색을 띄고 있었다. 아마도 요 일주일간 카네 스가 보이지 않았던 이유는 적당히 이들의 사이에서 사회자의 역할을 했기 때문이리라. 일주일간 잠도 안자고 토론을 했을 이 놈들에게는 조금 미안한 말이지만 난 놀 것 다 놀고 잘 것 다 자고 먹을 것 다 먹고 온 드래곤이다. "이봐들, 아직까지 결론이 나지 않았으면 내가 선택하라는 뜻이겠지?" 빙글빙글 웃으며 말하는 내 모습이 꽤나 저들의 눈에는 얄밉게 비춰졌으리라. "로드! ..." 어떤 드래곤이 내게 항의할 듯이 입을 열었다. "응? 말해봐." 내가 다시 웃으며 그 드래곤을 재촉하지 금새 입을 다물어 버린다. 후훗. "물론 우리 일족의 귀한 헤츨링을 죽인 것은 정말 천인공노할 짓이지. 하지만 그 헤츨링의 부모 되는 존재들이 키메라로 만족한다 했다. 그러니 인간을 모두 죽이는건 말도 안도는 말 이지. 대신 헤츨링을 이렇게 만든 인간의 왕국은 멸망시켜도 좋다." 그다지 마음에 드는 처사가 아니었는지 인간을 멸족시키자는 의견을 내놓은 파들의 얼굴은 깨림칙하게 변해있었다. 이봐이봐, 이 뛰어난 처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뜻이냐? "이상. 이의 없지?" '있으면 죽어!'라는 눈빛으로 그들을 쓱 둘러본 뒤에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막사를 나왔다. "... 로드 사악해." 막사 바로 앞에서 키메라가 에릭의 손을 잡고 나를 보자마자 한 첫마디였다. 이놈이 자기 목숨 구해주니까 감히 내게 사악해? "흐흐흐, 정말 사악한게 어떤 건지 가르쳐줄까?" 약간의 장난을 치려고 나는 쥬르의 손에 있는 막대사탕을 가져다가 얼른 입 속으로 넣었다. "... 로드 아직도 어린애야?" 쿠웅 뒤통수를 뭔가에 크게 맞은 것 같았다. 당연하다는 듯이 쥬르는 화를 낼 것 같았는데 도리 어 내게 반격하다니. 크흑, 계산 착오다. "잘했다, 시크." 뒤따라 나온 카네스가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럼그럼, 이 몸이 누군데. 당연히 잘했 어야지. 일단 키메라를 만든 카크국이라는 곳으로는 드래곤을 보냈다. 물론 그 드래곤은 그곳을 멸 망시키러 가는 것이다. 카크국이라는 곳이 쥬르를 만들었고 페이난국에서는 헤츨링을 잡아 왔으니 그곳에도 드래곤을 보냈다. 멍청한 인간들. 복수 당할 것을 알고 있으면서 헤츨링을 납치하다니. 정말 이해할 수 없는 희한한 동물이다. 그리고 좀 머리를 쓰려면 지능적으로 쓸것이지. 쯧쯧... 아마 오늘 오후쯤엔 두 나라가 폭삭 망했다고 연락이 오겠지. 꽤 영향력이 강한 두 나라가 망했으니, 연합해있던 다른 나라들은 섣불리 제국을 공격하지 못할 것이다. "그나저나 천계에서는 난리가 났겠군." "그래, 조만간 사자를 보내오겠지." 카네스는 벌써부터 천계에서 올 사자를 어떻게 달래놔야 하는지 골치가 아픈 모양이었다. 뭐, 카네스가 알아서 다 처리하겠지. 정 안되면 무력(?) 행사를 할 용의도 있다. 신들은 아마 자기네들 신전이 날아갔다고 손해 배상을 청구할 것이다. 그러면 또 우리 일족 들의 피 같은 재산이 고스란히 신들의 손으로 넘어갈 것이 보지 않아도 뻔했다. 스멀스멀 어둠이 기어 들어오는 시각. 지금 일족 전체는 나라를 멸망시키러 간 드래곤들을 한 자리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 다고 엄청난 침묵 속에서 기다렸다고는 생각하지 말라. 저마다 수다라는 것을 떨고 있었으 니. "역시 새파란 젊은것들이 가서 이렇게 늦게 온다니까. 우리 같은 노련한 드래곤들은 더 일 을 빨리 끝내고 올텐데, 역시 젊어서 힘이 남아도는 걸까." "로드, 이 시간까지 안오는거 보면 아마도 다른 나라까지 피해를 입히고 있는 듯 한데요." 혈기왕성으로 한 나라를 멸망시키는 것 가지고는 못 참는다 이건가? "조금만 더 기다려 보다가 안오면 말리러 가죠." 역시 레드 드래곤을 보낸게 잘못한 건가. 성질 더러운 놈을 보냈으니, 이만큼 기다리는건 일 도 아니다. "흠, 오고 있군요." 누군가가 말하자 다른 드래곤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와 가깝지만 조금 떨어진 곳에서 두 존재가 날아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봐, 그렇게 날아오면 여기 있는 병사들이 또다시 쫄 잖아. 이 날 드래곤 역사상 처음으로 키메라 헤츨링(?)이 탄생되었으며, 두 나라가 대륙의 지도에 서 없어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는 이 대륙에 드래곤의 공포를 다시 한번 떨쳐주는 계기가 되었다. 730년 7월 날짜 : 7일 날씨 : 덥다. 황태자는 연신 내게 고맙다고 했고, 나는 약간의 찔림을 받았었다. 그게, 헤츨링이 관계되어 이렇게 된건데. 처음에 원정 나갈때는 멸망시킬 생각이 없었다구. 어쨌든 일은 일단락 되었고, 나는 카네스의 엄청난 째림을 받으며 브리안과(이 놈은 제국에 남아있으라고 해도 끝까지 사부를 따라가야 한다며 내 뒤를 따라왔다.) 에릭과 함께 레어로 돌아와있었다. 라피는 아직 끝내지 못한 마법 공부를 더 해야 한다며 마법 학교로 쏙 들어가 버렸다. 레어 로 오자마자 내게 주어진 산더미같은 서류들. 대체 내가 없었던 동안에 이 카네스란 놈은 서류 처리를 했었단 말인가, 안했었단 말인가. 카네스를 의심하며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하나하나 읽어보고 있을 때 초췌한 얼굴로 카네스 가 나타났다. "얼굴이 왜 그 모양이냐?" "... 우리 전쟁하면 안되냐?" "누구랑?" "신들이랑." "왜?" "... 짜식들, 거 되게 깐깐하게 나오잖아!" 신들과 합의를 보러 갔던 카네스는 얼굴을 찌푸리고는 아주 이 자리에 신이 있다면 말 그대 로 씹어먹을 듯이 말을 뱉어내었다. "카네스, 진정하라구."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냐!" "그들의 요구조건이 뭐야?" "... 몰라. 나하고는 대화가 안된다며 조만간 널 찾아오겠다는 군." 이 자식, 자기 선에서 해결하라고 하니까 기어이 그 놈들이 날 찾아오게 만들었군. 그 놈들 이 오면 얼마나 내게 땍땍거릴 것인가. 아아, 안그래도 이 서류들 때문에 머리가 깨지기 직 전인데 신들이 온다고 하니 아주 머리가 남아나지를 않겠군. 어떻게든 감언이설로 최대한 피해(?)를 적게해서 꼬셔야 할텐데, 아무래도 똑똑한 놈이 오게되면 그것도 못하겠군. "우이씨, 정말 짜증나게 만드네. 야, 니가 이거 다 처리해." "내가 왜?" "네가 일을 잘못해서 내가 신들을 만나야 되잖아. 니가 해." 말도 안되는 이유를 달며 나는 지금 쌓여있는 서류들을 노골적으로 카네스에게 떠넘겼다. 짧은 머리를 벅벅 긁으며 신경질을 부리는 나를 피해 곁에 있는 서류 하나를 조용히 집어드 는 카네스. "에릭 어딨어?" "밖에서 브리안이랑 놀고 있던데." 얘는 검술 배우는게 놀고 있는 걸로 보이나 보다. 하긴, 진짜 다른 건 못 봐 줘도 카네스의 검 실력만큼은 뛰어나니까. 잠시 레어를 둘러보니 헛웃음이 나온다. 이리저리 팔랑거리면 날아다니고 있는 서류들. 그리 고 내 억지에 나와 같이 밤을 샌 몇몇의 블루 일족들. 이미 서류를 뚫어지게 쳐다보느라 그 들의 눈은 붉게 충혈 되어 있었다. 육체적 피로는 마법으로 어떻게 할 수 있지만 아무래도 정신적 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나 보다. 그들이 읽어보고 쓸데없는 서류들은 폐기 처분. 그리고 왠만한건 내게로 돌아온다. 하지만 그 양이 장난이 아니다. 내가 이렇게 지겨움과 머리아픔에 치를 떨고 있는데 일일이 검토해 서 왠만한 것만 내게 넘겨주는 저들은 어떻겠는가. 발에 밟히는 서류들을 참으로 원망어린 눈길로 바라보며 나는 발에 힘을 꾹꾹주어 서류들을 자근자근 밟았다. 레어 밖에 나가자마자 뜨거운 7월의 햇살이 나를 반긴다. 그러고 보니 좀 덥군. 한쪽에서 정말 기합소리를 내어가며 땀을 뻘뻘 흘리며 찌르기를 하고 있는 브리안이 보인 다. 에릭은 그걸 구경 삼아 그늘에 앉아 음료수를 마시고 있었다. 가끔 브리안이 곁눈질로 에릭을 바라보는 것이 여간 목이 탄가 보다. "시크." 나를 발견하고 에릭이 입을 열었다. 막상 나왔는데 할 일이 없다. 할 일이 없다고 해서 다시 그 지겨운 서류더미 속으로 파묻히고 싶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냥 다만 막상 자유시간이 주 어지니 무얼할까 고민하고 있다는 것뿐이다. "응?" 역시 푸른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을 하자 에릭이 씩 웃으며 말한다. "좀 씻고 오지 그래?" 저, 저놈의 자슥이! 일단 며칠간 씻은 전적이 없는 나는 그 말에 약간 찔려서 서둘러 근처 에 있던 시냇가로 달려갔다. 깨끗한 물에 얼굴을 비춰보았다. 물이 아무리 맑다 해도 왠만해 서는 더러운 얼굴이 잘 나타나지 않는 법이다. 하지만 지금 비춰지는 내 모습은 정말 퀭~해 서 어딘가 하나 나사가 빠진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긴, 밥을 제때 먹었냐, 잠을 제때 잤냐. "더... 더럽다." 군데군데 땟구정물. 커다랗게 끼인 눈곱. 그리고 퍼석퍼석한 머리카락. 일일이 씻기도 귀찮은 나는 얼굴을 냇물에 처박아 버렸다. 더웠는데 얼굴에 갑자기 찬기가 도니 정말 시원했다. "쿨럭, 에취~ 푸헤~" 미친다. 난 바보였던 거다. 물 속에서 숨 따위를 쉬다니. 혼자서 패닉상태에 빠져있을 때 나 는 분명 들었다. 킥킥거리는 웃음소리를. 나의 이 수치스러운 상황을 봤다는 것만으로도 사 형에 처할진데 감히 웃기까지 하다니. 땀을 너무 많이 흘려서 냇가로 나왔다가 나의 이 상황을 보고 한 손으로는 나무를 붙잡고 한 손으로는 입을 가리고 웃는 브리안을 보며 살의의 욕구를 느꼈다. "닥쳐라." "프읍, 픕, 쿠쿡..." 나도 안다. 코에 물이 들어가 엄청나게 고통스러운 얼굴로 '닥쳐라'라고 말하는게 얼마나 우 스꽝스런 짓 인줄은. "조용해, 조용해, 조용햇!" 내 말에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웃고 있는 브리안의 멱살을 잡고 나는 아주아주 조용히 단 한 문장만을 말했을 뿐이다. "에릭에게 말하면 너 죽는다." "푸웁~" 내 말이 우습게 들렸는지 내 얼굴에 침을 튀기며 웃는 그 놈의 중요한 부분을 발로 걷어 차 준 뒤에(자근자근 밟을 까도 생각해 보았다.) 나는 긴 로브 자락으로 대충 얼굴에 묻은 물기 를 닦아 내었다. 제길, 이렇게 치렁치렁하게 긴 로브나 입고 다니니 당연히 더울 만도 하지. 이렇게 날씨가 맑고 청명한데 정말 기분 더럽게도 서류 따위나 처리하고 있어야 하다니. 그 래도 나 때문에 억지로 맡은 서류들을 정리하고 있을 드래곤들이 생각나 나는 다시 브리안 에게 '에릭에게 말하면 죽어!' 라는 눈빛을 한번 던지고는 레어 안으로 기어 들어왔다. 제 길, 바깥하고 안하고 정말 천지차이군. 여긴 진짜 무슨 동굴도 아니고, 내 집인데 왜이리 어 두워? 난 더 이상 어둠의 자식이 되기 싫단 말이다! 내가 들어온 줄도 모르고 그저 기계적으로 서류 두 개를 양손에 들고 고개를 왔다갔다 하는 놈들을 보며 정말 미안함을 느꼈다. 그게 과연 얼마나 갈지 모르겠지만. "좀 쉬었다 해라." 내 말이 과연 들리기나 하는지, 카네스가 날 한번 힐끗 쳐다봤고 그 다음부터는 계속 서류 넘기는 소리와 사각거리는 소리가 레어 안에 울려 퍼졌다. "머리쓰다 죽은 드래곤으로 역사에 남고 싶냐? 쉬었다 해라." "... 쉬고 싶은데 머리가 안움직인다구요! 서류가 눈에 보이면 무조건 그걸 읽고 손에 쥐게 되는데 대체 어떻게 쉬라는 말씀입니까!" 신경이 날카로워졌는지 로드에게도 대든다. 내가 참자. 저럴 수도 있는 거지, 뭐.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시... 심장 떨어질 뻔했다. 갑자기 레어 입구에서 들려오는 엄청난 괴성에 그 일순간 그 자리에서 모두 얼어버렸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탐스러운 금발머리를 쥐어싸고 레어 천장을 향해 절규하는 황금빛 눈을 가진 미청년은 곧이어 무서운 눈으로 우리를 노려보았다. 가히 죽이기라도 할 만한 눈빛이 어서 정작 화를 낼 존재는 우리들인데 도리어 우리는 쫄고 말았다. 그의 눈빛에 나를 도와 주던 드래곤 둘은 손에 들고있던 서류를 떨어뜨려버렸고, 카네스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한숨 비슷한걸 내쉬었다. "제길, 깐깐한 놈이 온 것 같군." 나는 미처 카네스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너희가 진정 드래곤의 탈을 쓴 존재란 말이냐! 이 쓰레기만도 못한 것들아!" 그 미청년은 절규하듯이 또다시 소리쳤고, 그의 엄청난 성량에 고막이 멍멍해진 나는 카네 스를 향해 '저거 뭐냐?' 라는 시선을 보냈지만 카네스는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하긴 내가 저 망할 놈에게 물어서 언제 제대로 된 대답을 얻었던 때가 있었던가. "야! 조용해! 안그래도 머리가 깨질 것 같은데 거기에 소리를 지리면 어떻게 하냐! 뇌가 파 열될 것 같잖아!" 눈에 뵈는게 없는 드래곤 하나가 소리쳤다. 이미 그의 눈동자는 블루 드래곤 특유의 푸른 눈동자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광기에 미친 붉은 눈을 하고서 핏발선 목으로 외치는 드래곤 을 바라보며 약간의 죄의식을 다시 느끼게 되었다. 아마도 이 블루일족의 드래곤은 저 미청년이 다른 드래곤 일족으로 생각되었나 보다. 처음에 내 레어에 저렇게 당당하게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나도 그렇다고 생각이 되었었는 데, 풍기는 기운을 보니 우리 드래곤들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천계에서 땍 땍거리러 사자가 하나 내려온다고 그랬지. "당장 치워! 당장 치워! 이게 어떻게 드래곤 로드의 레어라는 거야? 당장 치우지 못해!" 히스테리적으로 발광하는 미청년을 넋이 나간 듯이 보고 있던 드래곤들은 내가 잠시 나가있 으라는 뜻의 손짓을 해보이자 그를 무시하고 밖으로 쏙 나가버렸다. "으아아아아악!!!" 또다시 괴성을 지르며 이리저리 뛰어 다니는 미청년. 그리고 그런지 몇 분 안되어 레어는 정말 말 그대로 깨끗해졌다. 어지러이 비행하던 서류들은 모두 한쪽 구석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고, 레어는 먼지 하나 없이 청소가 되어있었다. 참, 수단도 뛰어나다. "휴우~"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을 쓰~윽 닦아 내며 보람찬 듯한 표정을 짓는 그 청년을 보며 나는 청소부로 쓰면 그만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자신이 청소한 구역(?)을 만족스레 쳐다보고는 그는 우리에게 시선을 돌렸다. "안녕하세요? 이번 천계에서 사자로 온 청결의 신 데히모스라고 합니다." 눈웃음까지 살랑살랑 치며 그 아름다운 미로 우리에게 인사를 했지만 우리는 이미 저 놈의 볼 꼴 못 볼 꼴 다 본 후라서 그다지 그게 아름답게 보이지는 않았다. 청결의 신이라... 흐음, 그런 반응 보일 만도 하군. 내가 봐도 돼지우리 저리 가라였으니. "본론만 말하지." "흐음, 그럼 할 수 없네요. 먼저 주신의 말씀부터 전하겠습니다." 정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포옥 내쉬고는 숨을 가다듬는 데히모스. "잘~ 하는 짓이다! 드래곤이 헤츨링 하나 간수 못해서 어쩌자는 거냐! 몰라! 나도 몰라! 인 간뿐만 아니라 너희에게도 잘못이 있다는 걸 잊지 마라! 이 일로 인해 신들이 얼마나 반발 할 지는 나도 잘 모르니까 너 알아서 처리해!" 정말 토씨 하나도 안틀리고 그대로 베껴 온 것 같다. 어쩌면 목소리와 말투까지도 그렇게 똑같냐? "여기까지입니다. 아, 기타 다른 신들의 전언도 전해드릴까요?" 안들어도 뻔하지, 뭐. "그래, 그 치들이 원하는건 뭐래?" "드래곤 일족 전체가 앞으로 300년간 인간계로 유희를 나가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앞 으로 1천여년간 인간계에서 드래곤족 중 누군가가 어떤 말썽이라도 일으킨다면 알아서 하라 고 전하셨습니다." "미친놈들. 배 째라고 해." 당연하다는 듯이 맞받아치는 나를 바라보며 데히모스는 빙긋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습니다. 선배 신님들께서 시크리오프스님의 반응을 각양각색으로 연출해 주시더군요. 그래도 어쨌든 조건은 조건입니다." "... 저것만 들어주는게 아닐텐데?" "물론입니다. 그에 따른 약간의 공물들이 있어야죠." 신들... 이 망할 아그작아그작 씹어먹다 못해 뼈까지 우려먹을 놈들! 그래, 다 가지고 가라! 다 가지고 가! 진짜 치사하다. 드래곤들 보물, 니네들 퍼주면 얼마나 남는다고 다 가지고 가 려고 지랄이냐! 그거 다 가져가면 우리는 누구에서 뜯어 내냐? 소량으로 뜯어 낼 땐 드워프 를, 대량으로 뜯어 낼 땐 인간을! 이라는 문구도 못 들어봤냐! 치사하다, 치사해. 니네들 그렇게 사는거 아니다. "이봐, 타협 좀 하자구." 카네스가 왜 화를 내고 그냥 왔는지 알만 하다, 알만해. 아주 영상이 바로 머리 위로 떠오르 는 구나. 내가 이렇게 열 받는데 쟤는 그냥 뒤엎고 싶은거 얼마나 참았을꼬. "너 왜 이렇게 잘생겼냐?" "제가 또 한 미모 하죠." ... 지랄. "네가 신들 중에서 가장 능력이 뛰어 날거야, 안그래?" "하핫~ 당연한 말씀을." ... 놀고 있네. "네 신전에는 여신도들이 줄을 서겠군." "왜 자꾸 당연한 말씀만 그렇게 하십니까." ... 얼씨구. "네가 너무 잘나서 신들이 따돌리지?" "뭐, 그런 경향이 많더군요." ... 육갑떠네. "그래서 말인데, 니가 가서 신들에게 잘 좀 말해라. 다른건 다 지킬 수 있는데 그 공물들 좀 어떻게 해달라고.." "하핫, 제가 또 누굽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저만 믿으라니까요!" ... 단순한 놈. 그렇다. 나는 지금 온갖 감언이설로 이 놈을 속여먹고 있는 중이었던 것이다. 별로 이 놈이 하는 말이 믿음직스럽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안한 것보다는 낫겠지. 정말 신이 이리도 단순 할 수가 있냐고 묻는다면 난 주저 없이 아니오 라고 답할 것이다. 이 놈은 정말 단순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내가 레어가 엉망이 되어있을 때 절규하는 이 놈을 보고 진작에 알아봤다. "아참, 주신께서 또 전해드리라는 말이 있었는데." "말해봐." "'조금만 기다려라.' 였어요. 무슨 뜻이냐고 물어봤는데 그냥 시크리오프스님께 전하면 아신 다고 하셨어요." 이제 '그'가 환생할 시간이 멀지 않았다고 말해 주고 있는 건가? 카네스는 불안한 얼굴로 날 쳐다보았고, 난 별일 아니라는 듯이 웃어주었다. 그래, 별일도 아니다. 난 그냥 이대로 있 으면 되는 거야. "피곤하다. 나 들어가서 눈 좀 붙일 테니까 알아서 잘 데려다 줘라." 레어에 붙어있는 서재로 들어오며 카네스에게 중얼거렸다. 정말 피곤하다. 몸이 물먹은 솜에 절어있는 것 같았다. 730년 7월 날짜 : 8일 날씨 : 맑음 오전 내내 잠을 퍼자다가 어슬렁어슬렁 일어나서 굳어있는 근육을 기지개 한번으로 모두 편 다음에 나는 서재에서 나왔다. 흠흠, 책상에 엎드려 잤더니 뼈 마디마디가 다 쑤시는군. 오 랜만에 그래도 편히 잤다고 느끼고는 즐거운 마음으로 서재로 나온 내 눈에 가장 먼저 띄인 건 브리안과 데히모스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었다. "쟤 안가고 여기서 뭐하냐?" "가라고 하니까 자기가 알아서 갈 때 되면 간다고 버티던데." 한쪽에서는 여전히 드래곤들과 카네스가 열심히 서류를 정리하고 있다. 서류가 조금이라도 흐트러지거나 날아다니면 데히모스가 무서운 눈길로 노려봐서 그들은 그의 눈치를 보며 조 심스레 서류를 정리하며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그런 모습을 보며 킥킥대며 웃다가 카네스의 눈길을 받고는 얼른 멋적은 듯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웃을 시간 있으면 여기 앉아서 서류나 같이 보지 그래. 누.구.때.문.에 이 고생을 하 고 있는데 말야." 거참 저 자식, 꼭 눈치를 준단 말야. 오랜만에 기분 좋게 일어났는데 그렇게 니가 비꼬면 서 류 처리 안하고 어디론가 놀러 가버리고 싶다구. "... 로드!"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내가 뒤를 돌아보자 쥬르가 한쪽 구석에 앉아서 방실방실 웃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쟨 또 언제 온거냐? "아까부터 와서 기다리고 있었어. 메이카즈나가 잠시 부탁하고 가더군." 쥬르는 내게 오더니 오른손을 내밀었다. "... 사탕." 하긴, 이 놈이 내게 악수하자고 손을 내밀었을 리는 없지. 쥬르를 데리고 식료품을 저장해 논 곳에 가서 사탕을 한 웅큼 빼서 줬다. 주머니가 커다란 옷을 입고 있었는데 거기에는 내 가 준 사탕 말고도 엄청난 양의 사탕이 호주머니에 곱게 모셔져 있었다. 허참, 무슨 용돈 주는 드래곤 같군. 그때 괜히 사탕을 줬나? "맛있냐?" "... 그럼 로드는 맛없는 것도 먹어?" 맛있게 먹길래 은근슬쩍 물어봤더니 기가 막힌 대답이 나온다. 말을 말자. 어린애 앞에서 내 가 무슨 할 말이 있다고 하겠냐. 으음, 저들을 쭉 둘러보고 있자니 갑자기 대가족이 된 듯한 기분이군. "흐음... 그럼 열심히들 하라구. 난 쥬르와 놀아줄 테니." 쥬르를 데리고 또다시 레어 밖으로 나왔다. 아아, 역시 덥 다. [실피드] 바람의 정령왕 실피드. 대체 정말 몇 년만에 용언으로 불러보는 거냐? - 오호, 참으로 빨리도 부른다. "얼마만이지?" - ... 너 성인식하고 나서 처음이라는거 아나? "아, 그랬던가?" - ... '아, 그랬던가?' 그래, 말 한번 잘했다. 우리 정령들은 너희 같은 족속들이 한번씩 불러 줘야 인간세상을 구경할 수 있다구. 예의상 주기적으로 한번씩은 불러 줘야 하지 않냐? 지가 무슨 주기적으로 불러서 갈고 닦아주지 않으면 녹이라도 쓰는 물건이냐? 반투명한 커다란 새의 모양을 한 실피드는 곧이어 내 곁을 지나 쥬르에게 시선을 돌렸다. - 호오, 특이한 아이군. 드래곤의 기운을 가지고 있는데 드래곤이 아니라니? "머리가 녹슬었냐? 키메라도 모르냐?" - 그럼 이 아이가 그 소문의 아인가? 벌써 그쪽까지 소문이 퍼졌단 소리냐? 허참, 하여간 입들은 엄청나게도 싸요. 키메라란 말에 발끈 했는지 볼을 크게 부풀리는 쥬르였지만 실피드가 신기하긴 했는지 실피드를 바라보는 눈길에는 호기심이 가득 묻어 나오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 놈에게 할 말이 있다. "... 요즘에 참 정령들이 싸가지가 없더라." - 그걸 왜 내게 말하는 거지? "아아, 그냥 잘 좀 다스리라구. 얼마나 윗대가리가 싸가지가 없었으면, 감히 드래곤에게 정 령이 함부로 개길까." 아주 예전에 실프와 운디네가 버릇없이 군게 기억나서 그걸 가지고 슬쩍 한마디를 하자 반 투명한 새의 몸이 실체를 가진 것처럼 진해졌다. 열 받았나 보군. "이봐, 연로하신 몸에 혈압 올리면 참 안좋다구." - ... 나 간다. "어? 갈려고? 바람은 시원하게 불게 해준 뒤에 가지 그래?" '휘오오오오오오오오~' 엄청난 강풍이 살을 에이 듯이 일순간에 주위를 초토화시키며 휩쓸고 지나갔고, 정령왕이 사라진 자리에 서서 나는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성질 더럽긴." "... 또 불러 줘." "뭘?" "... 새! 큰 새!" 정령왕들은 일정한 모양새가 없다. 흐음, 그냥 한 번 더 불러볼까? [실피드] - ... 너 나랑 맞짱뜨고 싶냐? 간신히 분을 눌러 말하고 있다는 듯이 잇몸사이로 새어나오는 목소리로 실피드는 내게 아주 친절히 물었다. "우리 꼬마 도련님께서 네가 또 보고 싶단다." - ... 내가 네 장난감인가? 몇 천년동안 난 안중에도 없이 놀고 있던 놈이 어디서 지금 날 불러낸 것도 상당한 낯짝이 아니면 불가능한데 그것을 능가하며 두 번씩이나 날 불러내는 거냐? 단단히 삐졌군. 정령왕은 별로 불러내서 놀만한 존재가 아니라고 여겼기에 지금까지 부르지 않았던 것뿐. 내가 예전에 이놈을 불러낼 때 이놈이 정말정말 건방지게 굴고, 날 절벽에서 밀어버렸다고 해서 거기에 대한 악감정이 있어 불러내지 않은건 정말 아니다. "... 태워줘." 실프드의 날개를 잡아끌며 쥬르가 말했다. - 꼬마, 넌 마음에 드는군. 특별히 이 몸이 태워주지. 쥬르가 자신의 등에 앉을 수 있도록 자세를 낮추는 실피드. 참, 날 처음볼 땐 그렇게 무서워 하더니, 어떻게 저런 희귀한(?) 생명체는 무서워하지 않는 거냐! 저놈이 나보다 성질도 더 더럽고 쪼잔하다구! 실피드가 쥬르를 등에 태우고 높게 날자 쥬르의 입에서 금새 웃음이 흘러나왔다. "헤헤~" "짜식, 내가 놀아줄 때는 그렇게 살벌하더니만." 약간의 배신감을 쥬르에게 느끼며 말했지만 내 입가에도 미소가 걸려있었다. "호오, 실피드군요." 내 옆에서 불쑥 튀어나오며 말하는 데히모스를 노려봐 준 뒤에 다시 쥬르에게로 시선을 돌 렸다. 브리안과 이야기를 하고 있던데, 걔는 어디에 떼어 두고 온거지? "브리안이란 소년은 에릭군이 끌고 나갔습니다만...?" 순간 뜨끔했다. 내가 브리안에 대해 묻고 싶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지? "시크리오프스님은 정말 생각하는게 얼굴에 다 나타납니다." 단순한 너보다는 낫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정령이군요. 페어리는 많이 봤습니다만, 정령은 인간계로 내려오거나, 정령계로 가지 않는 한 만나기가 정말 어렵거든요." "그게 어쨌다는 거지?" 데히모스는 내 말에 피식 웃으며 슬쩍 내게 다가와 귓가에 속삭였다. "주신의 마지막 전언을 말씀드리죠. '바보 같은 후회는 그만해라. 넌 최선의 선택을 한 것 뿐이다.'" 그는 그 말을 끝으로 내 뺨에 살짝 키스를 했다. "그럼 저는 가보겠습니다. 드래곤 로드여." 730년 7월 날짜 : 19일 날씨 : 장마다. 새벽부터 내리는 빗소리가 음악처럼 내 귓가에 맴돌았지만 나는 지금 서류에 파묻혀 감상이 고 뭐고 할 겨를이 없었다. 오죽하면 오늘 훈련을 쉬는 에릭과 브리안이 내 일을 도와주겠 다고 나섰지만 실상 고대어를 모르는 브리안은 쓸모가 없었다. 그저 옆에서 서류를 가지런 히 정리하는 것을 빼고는 말이다. "요즘엔 이런 서류가 많이 들어오는군." 내게 던진 서류를 받아 들고 펼쳐 보았다. 『친애하는 드래곤 로드께... 300년간 유희 금지령이 내려졌다고 들었습니다. 너무한 것 아닙니까? 유희를 취미로 살아가 는 저희 같은 젊은 드래곤들은 어쩌란 말씀입니까. 속히 현명한 판단을 바랍니다. ... 젊은 드래곤 일동.』 그건 자기들 사정이지. 이미 신들이 들고 온 계약서에 어제 싸인을 했단 말이다. 뭐, 나의 뛰어난 노력으로 공물은 반이 줄었지만. "아아, 무시해 그냥. 심심하면 잠이나 퍼자라지. 정말 더럽게도 할 일이 없어 이런걸 보내나 보군. 어이~ 에릭. 이런 서류들은 그냥 가져다가 폐기 처분해 버려." 안그래도 서류 양이 장난 아닌데 별 이상한 서류들이 머리를 어지럽게 한다. 대체 마리오네 라님은 이 많은 서류들을 혼자서 어떻게 처리했었단 말이냐! 새삼 마리오네라님이 존경스럽 고 얼마를 주고서라도 스카웃해오고 싶었다. 이래서 로드따위는 하기 싫었단 말이다! 자질구레한 일은 모두 로드가 담당이니, 내가 무슨 뒷마무리 담당이냐! 『로드, 잠깐 외출한 사이에 내 레어에서 보석을 도둑맞았어요! 분명 레드 드래곤 페이란스 마의 짓을 거에요! 무슨 대책을 세워줘요! 블루 드래곤 다라아니네』 "이 놈 누구야! 누군데 이따위 장난질이야! 뭐? 블루 드래곤? 수치다! 당장 호적에서 파버 려!" 그 자리에서 서류를 쫙쫙 찢어버리며 광기에 사로잡힌 나를 그 자리에 있던 존재들은 모두 철저히 무시한 뒤 몇 개의 서류를 골라내기 시작했다. 이제는 엄청난 전문가의 수준으로 한 번 쓱 서류를 보더니 필요 있는 내용 같으면 앞으로 던져놓고 쓸모 없는 내용들은 뒤로 던 져버렸다. 쥬르는 비가 와서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일하는 우리를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있었다. 심심 한건 알겠는데 내가 여기서 또 쥬르와 논다고 하면 진짜 생매장 될 것 같아서 가끔 쥬르를 쳐다보는 것 외에는 쥬르에게 다가갈 수가 없었다. 심심하지도 않은지 쉴새없이 입에 사탕을 넣는 쥬르. 저러다 이 다 썩어서 메이카즈나가 내 게 따지러 오지 않나 몰라. 눈알이 빠질 것 같은 느낌에 잠시 서류에서 눈을 떼고 레어 천장을 한번 쳐다봤다. 빗소리 를 들으며 다시 서류에 눈을 돌리는 내 신세가 생각해보니 처량했다. 서... 설마 평생 이 서 류더미에 묻혀 살아가야 한다는 소린 아니겠지? 로드님이 왜 유희를 안나가나 궁금증이 일 었었는데 그 이유를 이제야 뼈저리게 체험해 보는 구나. 730년 7월 날짜 : 28일 날씨 : 열기가 장난 아니다. 확실히 공문을 보냈더니 서류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 흠흠, 내가 무섭긴 무섭나 보지? 오늘 도 어김없이 부시시한 머리를 벅벅 긁으며 나는 건성으로 서류에 싸인들을 해나가고 있었 다. '파악~' 일순간 검은빛이 레어안을 물들였고 반사적으로 우리는 눈을 감았다. 곧이어 그 빛이 걷히 자 마자 그 산더미 같은 서류더미를 뭉게 버리고 앉아 있는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존재 하나가 그 자리에 있었다. 누구더라. 부드러워 보이는 갈색 머리. 흐음, 갈색 머리라... 갈색 머리를 가진 내가 아는 인 간은 브리안과... 누구더라? "104대 로드 시크리오프스님께 마족 서열 2위인 에르프냐 포루 사키네스가 인사드립니다." 갑자기 쏟아진 언어에 멍해있던 나는 그제서야 번개처럼 스쳐지나가는 생각에 손가락으로 그를 가리키며 물었다. "피... 필르난?" "... 인계에 있을 때 잠시 그 이름으로 불렸던 적이 있습니다. 로드님께서 어떻게 그걸 아시 는지...?" 인상을 약간 찌푸리며 내게 묻는 그에게 나는 어색한 웃음만을 흘렸다. 흠, 그라고 칭하기에 는 무리가 있나. 어쨌거나 중성이니까. "에른이라고 불러도 되겠지?" "예." 또다시 인상을 찌푸렸지만 감히 내게 대들 생각은 못하겠는지 마지못해 대답하는 에른. "그런데 무슨 일로 이곳까지 왔나?" "에카리아 크로스 프 라네이지님을 만나 뵈러 왔습니다." 저건 누구냐?라는 눈빛의 나를 보고는 에른은 눈을 아래로 깔고 다시 입을 열었다. "이곳에서는 에릭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십니다." "아아~ 에릭 찾아왔구나. 어이~ 에릭! 면회다!" 손에 들려있던 서류를 뒤로 던지며 에릭은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 다가왔다. 브리안은 넋 나간 눈빛으로 에른을 황홀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하긴, 내가 봐도 정말 예쁜 마족이니. 내 가 약간의 변태끼만 있었어도 아마 에른을 납치해다가 미소년 콜렉션에 집어넣었을 것이다. "마족 서열 1위의 에카리아 크로스 프 라네이지님께 에르프냐 포루 사키네스 인사드립니 다."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고 허리를 구부리며 말하는 에른. 에릭은 그것을 아주 당연하게 받아 들이고 있었다. 흐음, 보기에는 에른이 서열이 더 높을 것 같은데. 훗, 난 대단한 놈을 부하 로 가지고 있군. "무슨 일로 마왕님을 보필하지 않고 이곳까지 온거냐." "마왕님의 전언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에카리아 크로스 프 라네이지. 인계에 있는 내 여동 생을 찾아 마계로 데려와라.' 였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마왕님께서 직접 여동생분을 모시러 가고 싶은데 마왕께서는 함부로 마계를 떠나면 안된다는 것을 알지 않습니까. 저도 마찬가 지로 마왕님의 오른팔로서 자리를 비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인계에 있는 에카리아님께 이 일을 맡기신다 하셨습니다." "주군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걸 알고 있을 텐데." "훗, 로드님께서는 허락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이봐, 그렇게 말하면 내가 거절을 못하잖아. 잠깐, 에릭은 나와 떨어져서는 얼마 살지 못한 다. 그럼... "허락할게, 에릭." 에릭은 잠시 의문의 눈빛을 띄었으나 나의 의미심장한 웃음을 보고는 그 뜻을 파악했는지 고개를 흔들었다. "마왕님께 알았다고 전해드려라." "그럼 조만간 좋은 소식 기대하겠습니다. 마왕님께서 마지막으로 계셨던 곳이 소룬국의 페 피나라는 마을이었습니다. 아직까지 그 곳에 계실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곳을 먼저 가보 시길. 그 분의 이름은 메이샤입니다." 에른이 사라지려는 순간 낮은 목소리가 레어 안에 울려퍼졌다. "어딜 가." 검은 오라를 뿜어내며 에른을 노려보고 있는 카네스. "......?" "이.거. 치.우.고. 가." 음산한 목소리로 에른이 떨어지면서(?) 난장판을 만들어 놓은 서류더미들을 보고 카네스가 소리쳤다. 몇 주간 날 밤 샌 데에 대한 히스테리가 이제 나오는군. "아, 네." 카네스의 살기에 억눌려서일까. 조심스럽게 답한 에른은 서둘러 서류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 놈을 따라 간다는 거냐?" "응."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며 여행자 로브를 걸치는 나를 카네스는 부리부리한 눈빛으로 쏘아보 았다. "누구 맘대로? 이걸 우리에게 다 떠넘기고? 못 가! 절대 못 가! 배 째!" 광기에 젖어 외치는 카네스를 보고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게 말할 줄 알고 생각해둔 말이 있다. "에릭과 나는 떨.어.져.서.는. 안.되.는. 사.이.잖.아." "제길..." 카네스의 입에서 저런 소리가 나온걸 보면 가도 좋다는 뜻이군. 아아~ 지겨운 서류들이여~ 나는 간다~ 나는 간다~ 안녕~ "야! 이 빌어먹을 신들아! 너희들의 멍청한 머리로 이해를 할까 모르겠다만은 이건 분명 유. 희.가 아니다! 난 엄연히 볼.일.이 있어서 마.지.못.해 가는 거다!" 과연 신들이 들었을까 모르겠다. 뭐, 하늘을 향해 소리쳤으니 들었겠지. 730년 8월 날짜 : 6일 날씨 : 오지게도 덥다. "야야야~ 천천히 좀 가." 브리안과 나는 거의 체력이 바닥나서 길 한 복판에 주저앉았고(브리안이란 놈은 에릭에게 검을 배워야 한다며 끝까지 따라간다고 우겼다. 하긴, 나라도 그랬겠다. 거기 있었으면 서류 에 압사당했을테니.) 그에 비해 에릭은 쌩쌩한 얼굴로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징한놈) 갈 길을 계속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렇다 치고, 얘는 기초체력이 생명(?)인 놈이 왜 이렇게 약해? 옆에 나와 같이 헐떡 이고 있는 브리안을 바라보며 생각나는 말이었다. 나야 검으로 먹고살지는 않는다만, 넌 그 게 아니지 않냐? "야, 페피나란 마을은 아직 멀었냐? 며칠 째냐, 며칠째! 일주일이 넘었어, 임마!" 또다시 불평을 터트리는 나를 무시하고 에릭은 열심히 손에 들고 있는 지도를 뚫어지게 쳐 다봤다. 그래, 아주 니 눈빛에 뚫어지겠다, 이놈아. 그래도 레어 안은 시원하기라도 했는데 밖은 완전 온천 저리가라이니, 원. 근처에 아무리 둘러봐도 그늘이라고는 찾아 볼 수도 없는 넓은 평지였다. 망할망할망할! "야, 물 있으면 좀 줘봐." "아까 다 먹었잖아요!" "운디네!" 브리안의 말이 떨어지자 마자 나는 주저없이 물의 하급정령 운디네를 불렀다. 내 말이 떨어 지기가 무섭게 눈앞에는 반투명한 여인의 나신을 한 운디네가 수줍은 듯이 서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아, 시원한 물 좀 먹을 수 있겠지? "물 줘." 기껏 자신을 불러서 물을 달라고 한게 맘에 들지 않았던지 수통에 물을 가득채워 놓고는 돌 아가라는 소리도 하지 않았는데 운디네는 모습을 감춰버렸다. 하, 저 싸가지 보게? 다시 불러다가 엄청나게 쥐어 패주고 싶었지만 일단은 목도 마르고 그렇게 한다면 땀도 엄 청나게 날 것이 뻔하기에 그냥 이번만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봐주기로 했다. 난 자비의 블루 드래곤 시크리오프스니까. "나도 물 줘요." 물을 마시고 수통의 뚜껑을 닫으려 할 때 브리안이 간절한 얼굴로 말했고, 나는 몰인정한 드래곤이 아니기에 수통을 브리안에게 넘져줬다. "에릭, 너도 물 마실래?" "난 됐어." 지도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하는 에릭. 독한 것. 물도 안마시고 버티겠다는 거냐! "이틀정도만 더 가면 되겠군." "꾸엑~ 여기서 이틀을 더 가란 말이냐! 난 일사병으로 말라죽을 거야!" 텔레포트로 가자니... 좌표를 모른다. 이 지도는 정말 믿을게 못된다. 언제는 하루정도 거리 밖에 걸리지 않는다 해서 따라왔더니 일주일이라니! 이 지도에 나와있는 좌표대로 갔다가는 어디로 떨어질지 모른다. "말라죽든지 말든지 내 상관은 아니고, 빨리 일어나." 그 말을 남기고 먼저 걸어가 버리는 에릭을 브리안과 나는 죽일 듯이 노려봤다. 으윽, 차라 리 레어에 있는게 나을 뻔했어! 드래곤이 한입가지고 두말할 수도 없고. 그러고보면, 에릭 저 놈도 상당히 잔인한 면이 있는 놈이란 말야? 브리안을 지팡이 삼아 겨우겨우 일어나서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을 향해 나는 가운데 손가락 을 지긋이 들어 보였다. 신이 여름이란 계절을 만든건 분명 실수일거야. 실수이고야 말고. "마을이군." 4~5시간을 내리 걸었을까. 밥 먹고 바로 또 걷기만 했다. 이틀은 걸려야 나온다는 마을이 바 로 눈앞에 있자 정말 이게 꿈인가 생신가 눈을 비벼볼 수밖에 없었다. "... 인간의 마을이 저렇게 반가울 줄은 몰랐어." "마찬가지에요." 브리안과 둘이서 손을 부여잡고 감동의 물결을 타고 있을 때 에릭은 이미 마을을 향해 걸어 가고 있었다. 하여튼 저 무뚝뚝한 놈. 캄캄한 저녁이라서 그런지 낮보다는 별로 덥지 않다. 마을은 겨우 20~30채 될 정도의 작은 마을이었다. 이거 사람 찾기도 굉장히 쉽겠군. 먼저 잘 곳을 찾느라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어디에도 여관 비스무리 한 것은 눈에 띄지 않 았다. "노숙이냐? 오늘도?" "아마도." "삭신이 결린다." 이럴 때는 지나가던 누군가가 자신의 집에 와서 묵어가라고 친절히 말해주겠지만 아쉽게도 이 근처에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없었다. 하긴, 이 시간에 지나다니는 사람이 있으면 정상이 아니겠군. "일단은 자고 내일 생각하자. 너무 피곤해." 730년 8월 날짜 : 7일 날씨 : 여름이니 당연히 더울 수밖에 없다. 대체 뭘 바라는 건가. 아침 일찍 일어나 대충 수프와 마른 빵으로 아침을 때운 뒤에 우리는 물어물어 촌장의 집까 지 도착했다. 마을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촌장의 집. "누구 계세요?" 아침 준비를 하고 있었던 듯 문이 열리며 앞치마를 두른 노인이 한 손에 국자를 들고 나왔 다. "누구십니까?" "초... 촌장님을 뵈러 왔는데요." "저를 말입니까?" 이 노인이 촌장인가 보다. "네. 잠깐 얘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 들어와요." 작지만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집안. 거실로 우리를 안내하며 촌장은 자신의 손에 들려 있 는 국자를 의식했는지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여보~ 손님 왔소. 나와 보구려." 그 말이 떨어지자 잠시 후에 중년 여인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얼굴은 주름졌지만 왠지 모를 기품에 나는 그녀를 다시 쳐다보았다. 입가에 살짝 웃음을 띠고 우리를 향해 가볍게 목례하 는 그녀. "한나는 말을 못한다오." 어느새 촌장이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우리를 향해 말했다. 어쩐지 그녀가 우리를 향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채 인사만 한게 이상하다 싶었다. "촌장님, 저희는 사람을 찾으러 왔습니다." "그건 나중에 이야기합시다. 아직 아침들 안먹었소? 우리와 같이 들도록 합시다." "아, 저희는 이미 먹..." "네. 폐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에릭의 말을 자르고 브리안과 나는 얼른 촌장의 말에 대답 해버렸다. 에릭! 넌 맡아지지 않 느냔 말이다. 이 향긋한 스튜 냄새가! "그래, 누굴 찾으러 왔소?" 아침을 맛있게 먹고 배부른 배를 쓰다듬고 있을 때, 촌장이 물은 말이었다. "이 마을에 살던 메이샤라는 여인을 아시는지요?" 아마 그 마왕이 30년 전에 마왕이 됐을 테니, 그 여인은 적어도 40살은 넘었을 것으로 추정 되었다. 나는 의외로 일이 쉽게 풀린다는 것을 직감했다. 촌장의 얼굴이 급격히 굳어가고 있 었으므로. "메이샤는 왜 찾는 거요?" "아는 분께서 메이샤양을 모셔오라고 하셨습니다." "... 혹시... 레온이 보내서 온거요?" 으음... 레온이라. 그럼 저번에 만났을때의 이름은 가짜가 아니라 자신이 인.간.이.였.을. 때. 의. 이름이었나 보군. 지금은 인간이라고 부르기 뭐한 존재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두죠." "메이샤는 이 곳에 없소." "... 설마... 돌아가셨습니까?" "우리도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가 없소." 이상한 여운이 남는 촌장의 목소리에 잘 되던 일이 상당히 꼬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쩐지, 너무 쉽다고 그랬다. "무슨 말씀이신지...?" "정확히 레온이 떠난 지 5년째 되던 날 메이샤는 마을에서 행방불명이 되었소." "... 그녀를 찾을 수는 없는 겁니까?" "이곳에서 멀지 않은 도시인 피파니라는 도시에서 그녀를 봤다는 마을 사람을 꽤 보았으나, 자세한건 잘 모르겠소." "그때 그녀의 나이가 얼마였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열 아홉이었을 거요." 왠지 촌장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행방불명이 되었다니? 분명히 그녀가 사라진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녀를 찾는게 임무 (?)이기 때문에 촌장에게 그걸 따져 물을만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촌장에게 정중히 인사를 하고 우리는 그 마을을 빠져 나왔다. "뭔가 이상하지 않아?" "필요한 정보는 모두 얻었으니 피파니라는 도시로 가보도록 하지." "흐음... 갑자기 사라진 여자라... 여자가 갑자기 사라질때는 이유가 있는 법이지." 730년 8월 날짜 : 15일 날씨 : 맑음. 피파니. 도시는 작지만 시장 활동이 활발한게 상업 쪽으로 발달이 되어 있는 도시 같았다. 이 곳에 도착해서는 제일 먼저 여관을 잡고 먼지를 뒤집어쓴 몸을 깨끗이 씻었다. 사람들이 북적대 고 여기저기에서 물건값을 깎고 흥정을 하는 소리가 여관 안까지 들려왔다. 왠지 이곳에서 메이샤라는 이름 하나로 사람을 찾기란 정말 힘들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메이샤란 이름의 여자가 가명으로 이 곳에 있다면 우리는 그녀를 찾지 못할 것이다. 한가지 다행이라고 느껴지는 것은 이 도시가 그다지 크지 않다는 점이다. 상업쪽으로 발달 이 되어 있어서 크지 않으면 이상할 것 같았지만, 아무래도 [길목] 쪽인 듯 이 곳에서 좀 더 위로 올라간 도시는 엄청나게 클 거 라고 예상이 되었다. "먼저 정보 길드에 의뢰해 볼까?" 여관의 1층에 있는 식당에 앉아 내가 먼저 의견을 내었다. 일일이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무 식하게 물어보는 것보다는 정보길드에 의뢰하는게 현명하게 느껴졌다. "그럼 무식하게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물어보려고 그랬냐?" 당연하다는 듯한 에릭의 말. 그래, 이놈아! 니 X 굵다! 한참을 에릭을 향해 궁시렁거리고 있을 때 내가 주문한 통돼지구이와 야채수프가 나왔다. "이거 먹고 정보 길드부터 가지." "페피나라는 작은 마을에 살던 지금은 40대 후반정도의 메이샤라는 이름의 여인을 모두 찾 아 조사해 주시오." "이 곳은 여러 마을이나 심지어는 대륙에서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라 찾기 쉽지 않을 겁니 다. 일단인 메이샤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이나, 그녀를 아는 사람들을 수소문 해보도록 하겠 습니다. 사흘 뒤에 오십시오. 정보료는 그때 받도록 하겠습니다." 안경을 코끝에 걸친 전형적인 학자풍의 인간이 빠른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일단은 뭐, 한시 름 놓았군. 메이샤라는 여인이 이 도시에 있기만을 바래야지. 이미 떠났다면, 그녀의 행방을 아는 또 다른 사람이 나오길 바래야한다. 정보 길드를 나오면서 근처에 있는 사과가게에서 사과를 하나 사서 베어 물었다. 달콤새콤 한 액체가 순식간에 입안을 감싸자 그 향에 도취되어 잠깐 눈을 감았다. "먹을걸 그렇게 밝혀서 어쩔래." 또다시 내 염장을 지르는 에릭의 목소리가 들리자, 나는 이 사과를 에릭에게 던져버릴까라 고 생각을 했지만 사과가 너무 맛있었기에 참았다. 여관으로 돌아오자마자 뒤뜰로 가서 검술 연습을 하는 에릭과 브리안을 창문에 걸터앉아 바 라보다가 지겨워진 나는 차라리 돌아다니자는 심산에 약간의 돈을 챙겨서 여관을 나왔다. 물론 아마도 그 돈은 먹는 곳으로 쓰일 것 같았지만 말이다. 베이지색의 로브를 써 얼굴을 감추고 여관을 나섰다. 물론 환기가 잘 통하는 로브이기에 평복을 입고 있는 것과 그다지 더움에 관해서는 차이가 나지 않았다. 헐, 역시 비싼 값을 한다. "아유, 아가씨~ 이 비단 좀 봐요. 동방에서 어렵게 구한거라 아주 고와요. 내가 아가씨가 사 면 특별히 싸게 해줄게요." 로브를 뒤집어썼는데 내가 여자라는 것을 알다니. 역시 상업 쪽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눈치 하나는 엄청나다. '쿠웅' "꺄앗! 뭐야?" 갑작스럽게 나와 부딪힌 여자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져버렸다. 사람들은 구경거리가 난 듯이 내 주위로 우르르 몰려들었고 여자는 곧이어 자신의 드레스 자락을 털어냈다. "이봐! 앞 똑바로 보고 다녀! 이 더운 날 로브를 쓰고 다니니까 앞을 못보는게 당연하지!" 라고 하며 여자는 내 로브를 벗겨버렸다. "흐음, 귀여운 얼굴이네? 왜 이런 얼굴을 가졌으면서 음침하게 로브를 뒤집어쓰고 다니는 거니?" 이봐, 음침하다니. 난 그래도 엄연히 그렇게 보이지 않으려고 밝은 베이지 계통의 로브를 입 고 나왔다구. 긴 금발머리를 높게 위로 묶고는 약간은 새침한 표정으로 그녀가 물었다. 물론 나는 그녀의 말에 대꾸를 하지 않고 그녀가 벗겨 놓은 로브를 묵묵히 제 자리로 돌려놓았 다. "내 이름은 다나. 다나르아 케이피트 마르카시스야." 오른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하는 다나라는 여자를 무시하고 나는 먹을 것을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 "사람이 악수를 청하는데 너도 응해줘야지. 안그러면 내가 너무 무안하잖아?" 흐음, 듣고 보니 그렇기도 하군. 나는 예의상 그녀의 손을 잡아줬다. "말 잘 듣는구나." "누가!" 엉겹결에 튀어나온 말에 그녀가 사악하게 빙긋이 웃는다. 이봐, 왜 그렇게 웃는 거냐. 우리 는 처음 만났다구. 그렇게 사악하게 웃으면 내가 무슨 네게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사람 같 잖아. "아이구, 다나르아 아가씨! 후작부인께서 화가 단단히 나셨습니다요!" 어느새 그녀를 뒤쫓아온 유모로 보이는 여인이 다나라는 여자를 향해 소리쳤다. "칫, 어머님은 나를 너무 과잉보호 하신다니까. 아참, 네 이름은 뭐니?" "시크." 내가 왜 대답 따위를 해 줬는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더위를 먹어 입이 미쳤나 보다. "시크. 기억할게. 그럼 난 이만 바빠서." 금새 유모를 따라 가버리는 그녀를 바라보며 나는 방금 무슨 일이 있었지. 라며 한참을 그 자리에 멍하니 서서 생각했다. 바람처럼 왔다가 정말 바람처럼 사라지는군. 아아, 정신없어. 더 이상 구경이고 뭐고 정이 팍 떨어져버린 나는 여관으로 돌아왔다. 길치인 내가 여관까지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내가 구경나온 곳이 여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았던 곳 이였 기 때문이다. ... 그러고 보니 나는 왠지 내 이름을 아는 인간과는 악연이 길게 이어지더라. 730년 8월 날짜 : 18일 날씨 : 비온 뒤 갬. 오후에 한차례 소나기가 쏟아졌다. 쭉쭉 쏟아지는 것을 보니 더위가 한결 가시는 느낌이었 다. 에릭은 한 시간 전에 정보 길드에 다녀온다며 브리안과 같이 나갔다. 나는 비오는 날에 움직이는 것 자체를 싫어하기 때문에 여관에 남아있기로 했다. 지금 쏟아지는 비가 시원하게 보여도 실상 맞아보면 미지근할 것이다. 나는 지금 욕조에 누 워 쏟아지는 비를 감상하고 있었다. 왠지 아이러니 하지만 말이다. 요새는 별로 밖에 나갈 일도 없고 해서, 매일 목욕을 하는 사치를 누리고 있었다. "시크."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고 에릭이 들어섰다가 막 욕조에서 일어나려는 나를 보고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서둘러 방밖으로 나가는 에릭. 뒤이어 브리안이 괜찮냐고 묻는 소리가 들려왔다. 순진한 것. 나야 워낙 여자라는 개념이 없으니 그렇다 치지만 에릭은 꽤나 충격이었나 보다. "옷 갈아입고 식당으로 나와." 문 앞에서 외치고 계단을 내려가는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흐음, 저러면 더 놀려주고 싶어지 잖아. 느릿느릿 옷을 갈아입었다. 짧은 나시티에 긴 면바지. 그리고 위에 통풍이 잘되는 로브 하나 를 걸쳤다. 물기가 아직 뚝뚝 흐르는 머리카락을 말릴 생각도 하지 않고 아래층 식당으로 향했다. 목욕 을 하고 나면 언제나 배가 고프다. 계단 바로 옆쪽에 에릭과 브린안이 테이블을 잡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훈제 연어나 먹어볼까? 껄렁껄렁한 자세로 의자에 앉아 있는 나를 향해 에릭이 서류봉투를 내어 주었다. 이봐, 서류 라면 질릴 정도로 봐왔다구. "지금 이 도시에서 20년 이상을 산 메이샤라는 40대 중년 여성은 30여명이 있어. 먼저 그 사람들을 간단하게 조사해 왔다더군. 아, 출신이 어딘지는 각양각생이라서 조사하기가 쉽지 않아, 몇 명밖에 조사를 하지 못했다더군." "그럼 일일이 발로 뛰어야겠네?" "음..." 긍정의 신음을 흘리고는 침묵하는 에릭. 요 며칠간 발바닥에 불나겠구나. "어? 시크!" 카운터 쪽에서 들려오는 왠 젊은 여자의 목소리에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 다. 외출용 초록빛의 드레스를 입고 챙이 넓은 모자를 쓴 다나라고 소개를 했던 여자가 나 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쟤가 왜 여기 있는 거야!" 누구에게도 묻는 말이 아닌 혼자만의 절규를 하면서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억지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설마 부딪혀서 넘어졌다고 쪼잔하게 치료비 받으러 온건 아니겠지?(어쨌거 나 나는 멀쩡했고 다나라는 여자는 뒤로 넘어졌으니까.) "그.러.니.까 네 부하를 보내 날 뒤쫓게 해서 여기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단 말이냐?" 어느새 나는 다나에게 반말을 쓰고 있었다. 이거 순 스토커 아냐? 부딪혔다고 지 부하를 시 켜 날 뒤쫓게 하냐? 돈도 많은 집안 딸이 그깟 몇 푼 받으려고 참 별 짓을 다한다. "응, 응." 뭐가 그렇게 좋은지 날 보면서 헤실헤실 웃는 그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얼마면 되냐?" "응?" "치료비 얼마면 되냐구!" "뭐야?" 갑자기 그녀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며 금방이라도 나를 칠 듯이 노려본다. "내가 그깟 치료비 받으려고 널 따라왔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럼 아니냐?" 에릭과 브리안은 그냥 옆에 서서 사태를 관망하고 있었고 그녀의 유모로 보이는 여자는 나 를 경망스럽다는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난 너와 친구가 되고 싶어서 왔다구." "너와 난 만난지 며칠 안됐을 텐데. 그렇게 말하는걸 보니 뭔가 흑심이 있군." "이봐! 너 사람의 호의를 그렇게 밖에 생각 못하는 거야!" "응." 열 받아서 방방 뛰는 다나를 무시하고 훈제 연어로 관심을 돌렸다. 흐음, 정말 향이 좋단 말 야. 가면서 주방장에게 무슨 향료를 넣었냐고 꼭 물어봐야지. 혼자 흥분해서 씩씩거리다가 식당에 있는 모두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느꼈는지 흥분을 가라앉히고 심호흡을 하 는 그녀가 우습게 느껴졌다. 내가 피식하고 웃자 그녀의 옆에 있던 유모가 얼굴이 새하얘지 더니 큰 소리로 입을 열었다. "감히 누구를 비웃는 거냐! 이 천한 천민주제에! 이 분이 뉘신 줄 알고!" 정말 여자나 유모나 성격이 비슷하군. "유모, 됐어." "... 시끄럽군." 드디어 에릭이 입을 열었다. 하긴, 저 놈이 자신의 옆에서 모르는 인간이 저렇게 땍땍대는데 지금까지 가만히 있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지만. "다 먹었으면 일어나라." 들고 있던 스푼을 내려놓고 일어나는 에릭은 막 훈제연어의 살점을 크게 떼어내어 입에 넣 고 있는 날 보며 말했다. 흐음, 아깝긴 하지만 저 여자의 수다를 벗어나려면 어쩔 수 없지 뭐. 내가 음식을 포기하도록 만든 여자라면 어느 정도인지 상상이 가리라. 브리안은 테이블 위에 있던 서류를 조그마한 배낭 속에 넣고는 서둘러 에릭을 따라 일어났다. 다나라는 여자는 자신을 무시했다고 생각했는지 얼굴이 다시 새빨개졌고, 우리는 식사 계산 을 하고 여관 문을 나섰다. 귀한 집에서 자라 이런 모욕은 처음인지 그녀가 우리를 따라오 는 듯한 기세는 없었다. 하긴, 이 정도로 무시를 받고 따라오면 그게 사람이냐? "일단 시간을 줄이기 위해 나눠서 다녀오도록 하지." 종이를 한 장씩 주며 세 방향으로 갈라지자는 말을 하는 에릭. "야, 나 길친데." 그 말을 하자 에릭은 '자랑이다.' 라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브리안은 고개를 끄덕였 다. 아마도 브리안과는 왕궁에서 길을 잃었을 때 만나서 그런건가. "그럼 브리안과 네가 같이 가라. 난 혼자 갈테니." "그래. 저녁에 여기서 다시 보자." "으으으으음..." "히엑~ 난 안들어 갈래요." 지금 나오는 반응들. 난 신음소리를 흘렸고, 브리안은 기겁을 하고는 고개를 내저었다.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일명 뒷골목이다. 그 메이샤라는 40대 여인이 뒷골목의 두목으로 있다고 는 생각하지 말라. 정확히는 뒷골목의 '창녀촌'이니. "뭘 안들어가 임마! 따라와!" 나보다 키가 조금 더 큰 브리안의 귀를 잡고 억지로 끌고 들어간 '창녀촌'. 오물 냄새가 가 득해서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지만 그래도 혹시나 그녀가 우리가 찾는 메이샤일지도 모른다 는 희망에 어지러이 널려져 있는 오물들을 피해 안쪽으로 깊이 들어갔다. "뭐하는 거야!" 갑자기 뒤에서 내 옷자락을 붙잡는 손길. "뭐야?" 허걱, 뒤를 돌아본 나는 다나라는 여자가 화가 난 얼굴로 날 붙잡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아무리 힘들다 해도 '창녀촌'으로 갈 생각을 하다니! 그럼 안되는 거야. 인생을 쉽게 포기 하지 마!" 무...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 거냐. 황당한 얼굴로 브리안과 내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그녀는 계속해서 설교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봐, 우리는 사람을 찾으러 들어가는 거라구." "알았어. 인생은 아직 아름답다구, 지금 인생을 포기하면... 뭐?"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뇌에서 내가 말한 말이 해석이 되었는지 되묻는 그녀를 향 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안돼! 아무리 이 곳에 있는 여자가 돈을 떼어먹고 도망갔다 해도 여기까지 복수하러 오면 잔인하잖아! 그 여자가 빚진 돈이 얼만지는 몰라도 내가 줄게." ... 미친다. 말이 안통한다. 이걸 그냥 팰 수도 없고! "브리안, 나 혼자 들어갔다가 나올 테니 넌 이 여자 데리고 있어라." "네." 다시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려는 날 그녀는 막았지만 곧이어 그녀의 손길은 브리안에 의해 막히고 말았다. "아름다운 레이디, 지금 시크님은 오래 전에 헤어진 어머님을 찾고 계신답니다. 걱정 마시고 이 곳에서 시크님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주시길." ... 누가 어머니를 찾는다는 거냐! 브리안에게 따지고 싶었지만, 그 후에 들린 '아~ 그렇구나! 진작 말을 하지.' 라는 대답 소리를 듣고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어쨌든 저 여자가 다시 땍 땍거릴 일은 없겠지? 어떻게 이런 곳에서 사람이 살까 궁금했다. 이 곳에서 며칠만 살아도 바로 병에 걸릴 것 같 다는 것이 내 솔직한 심정이다. 이 곳은 쥐들의 천국이 아닐까 싶다. 오물이 쌓여있는 곳에 는 쥐들이 들끓었고, 더욱 깊이 들어가니 악취와 속의 거북함이 더욱 심해졌다. 짜증나면 그 냥 가버릴까 보다. 뒷골목의 안쪽에는 조금 넓은 공터가 있었다. 그 곳에는 천막을 치고 거 의 벗다 시피 한 여자들이 밤새 일을 하고 피곤한지 이리저리 엎어져있었고, 환한 오후라 그런지 남자들은 그다지 찾아보기 어려웠다. 외지인인 내가 그곳으로 들어서자 그나마 깨어있던 여인들은 신기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 거나 혹은 두려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하긴, 로브를 뒤집어쓴 여자가 온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지. "말씀 좀 묻겠습니다." 가슴을 거의 다 드러내놓고 천막에 누워 있다가 날 보고는 깜짝 놀라는 그녀. "뭐에요?" 진하게 화장을 해서 나이 들어보이게 하려고 노력한 것 같지만 목소리나 말투로 보아 10대 인 것 같았다. 씁쓸하군. "이곳에 메이샤라는 분이 계십니까?" "메이샤? 아아, 큰언니라면 이쪽 줄 가장 마지막에 있는 천막에 있어요. 조심하세요, 큰언니 는 외지인을 달가워하지 않거든요." "아, 감사합니다." 군데군데 남자들이 아에 없지는 않았다. 그들은 날 보고 이 상야릇한 웃음을 짓기도 했었는데, 한 대 패줄려다가 여기서 일을 벌이면 왠지 시끄러워질 것 같아 그것을 꾹 참고 넘겼다. 아무래도 난 너무 성격이 좋은 것 같다. 마지막에 있는 천막에 갈 때까지 나를 향한 시선은 끊이지 않았고, 무안해진 나는 발걸음을 빨리 할 수밖에 없었다. 하긴, 어떤 멀쩡한 여자가 창녀촌에 발을 들여놓겠냐. 마지막 천막 앞에 서서 막 천막을 드리우고 있던 천을 걷는 순간 풍겨오는 술냄새에 나는 반사적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그 안에는 붉게 충혈된 얼굴로 술병을 붙잡고 나발로 불고 있 는 메이샤로 추정되는 여인이 있었다. 갑자기 햇빛이 천막안에 들어와서일까. 눈살을 찌푸리 며 나를 바라보는 그녀를 바라보고는 나는 예의상 목례를 해보였다. "뭐야?" "메이샤님 이십니까?" "무슨 일로 나를 찾지?" "물어 볼 것이 있어 왔습니다." "물을게 있다면 빨리 묻고 꺼져버려." 내가 온게 상당히 불쾌한 듯이 퉁명스레 내뱉는 그녀를 보고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20살 이전에 페피나라는 마을에서 이곳으로 오셨습니까?" "페피나? 그게 어떤 마을이지?" 무언가를 숨기는 표정도 아니었고, 정말로 모른다는 듯이 묻는 그녀를 보고는 나는 그녀가 우리가 찾는 메이샤가 아니라는 것을 확신했다. "제가 찾는 분이 아닌 것 같군요. 죄송합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이봐, 내게 뭔가를 물어봤으면 대가를 주고 가야지."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그녀를 보고 나는 로브에서 금화 몇 개를 꺼내어 그대로 그녀에게 던져주고 나와버렸다. 한시라도 이 곳에 더 이상 있고 싶지 않았다. "꺄아~ 이거 뭐야! 이거 놔!" 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고, 나는 조그맣게 욕설을 중얼거리며 로브자락을 펄럭이며 그 곳으로 뛰어갔다. 서둘러 뛰어간 곳에는 브리안과 아까 나를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던 남자들에게 손목을 잡 힌 다나가 있었다. 결국에는 말 안 듣고 따라왔군. 브리안 저 놈은 또 어떻게 넘어가서, 허 참. "그 손놓으시오!" 브리안은 딴에 다나의 손목을 잡고 있는 인간을 향해 소리쳤지만 그는 비실비실한 브리안의 몸을 보고는 픽~ 하고 웃었을 뿐이었다. 저놈은 왜 오늘따라 칼은 안차고 나온거야? "뭐 하는 짓이야!" "시크님!" "시크!" 둘이서 무지하게 나를 반기며 반색을 하자 이쪽에서 볼 때는 치한들이 자신들의 뒤에 서있 는 나를 돌아보았다. 웃옷은 어디 벗어뒀는지 없었고, 자신의 비계덩어리를 자랑하듯이 내놓 고 다니는게 심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건 또 뭐냐?" "가만히 기다리라고 했더니 그새를 못 참고 쫓아 왔냐?" 내게 시비를 거는 치한을 무시하고 브리안과 다나를 향해 무섭게 소리쳤다. "이년이!" 자신을 무시했다는 것에 대해 화가 났던 것일까. 내게 날아오는 주먹을 보며 나는 코웃음을 쳤다. 감히 더러운 손으로 나를 치려 하는가. '탁' 하지만 그 치한의 손은 브리안의 손에 저지되었다. 뜻밖의 상황이라 어이가 없어 브리안을 바라보자 브리안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여자에게 손찌검을 하다니, 같은 남자로서 수칩니다." "이 새끼가 아까 까지만 해도 빌빌대던 주제에 어디라고 감히!" 허리춤에 채워져 있던 단검을 꺼내들고 위협을 하는 치한을 브리안은 냉정한 시선으로 쏘아 보고만 있었다. 왠지 순둥이로 봤었는데 내가 잘못 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이 놈도 왕 궁에서 자랐으니, 기사도라는 것이 있겠지. "집어넣으십시오. 무기가 없는 자에게 칼을 들고 덤비는 것은 불한당이나 하는 짓입니다." 이봐, 브리안. 저 놈은 불한당이라구. "슬립!" 더 있으면 정말 유혈사태가 날지도 모르는 일이기에 나는 서둘러 마법으로 치한들을 잠재워 버렸다. '창녀촌'에 있는 여자들의 눈빛은 점점 험악하게 변해가고 있었고 나는 그 이유를 잘 알 수 있었다. 귀족차림을 하고 있는 다나와 역시 곱상한 귀족의 외모를 가지고 있는 브 리안 때문일 것이다. 천한 천민 계급들은 귀족들을 부러워함과 동시에 가장 증오하니까. 치한들이 바닥으로 쓰러지자 브리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 아무런 대책 없이 저 놈들에게 대들었단 말이냐? "시크! 마법도 할 줄 알아?" 어느새 아까의 그 비명을 질러대며 두려워하던 모습은 어디 갔는지 눈을 반짝이며 내 손을 잡고 묻는 다나에게 나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정말 귀찮은 여자이다. "와아, 멋있다. 아버지 옆에 있는 마법사만 봐왔지, 그 이외에 또다른 마법사를 본건 시크가 처음이야." 귀찮아 죽겠는데 내 오른팔을 잡고 늘어지면 말하는 다나. 브리안은 뒤에서 날 따라오고 있 었고, 이 여자를 정말 떼어내지도 못한 채 나는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정말 덥지도 않냐? 왜이리 엉겨붙고 지랄이야! "... 좀 놔줄래? 더워 죽겠거든?"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내 땀을 봤는지 슬며시 손을 놓으며 멋쩍은 듯이 웃는 다나를 잠깐 쳐다보고 나는 이 냄새나는 뒷골목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걸음을 더욱 재촉하고 있었다. "그럼 그 여자는 아니었다는 얘기군." "너도 아니냐?" 저녁 무렵에 에릭과 만나서 내 방에 들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에릭이 찾아간 여자도 우리가 찾는 메이샤란 여자가 아니었나 보다. "흐음, 뭐 천천히 찾도록 하지." "왜?" 에릭의 입에서 천천히란 단어가 나오자 나는 궁금증에 물었다. 언제는 빨리 찾아야 한다며? "그냥. 이대로의 일을 즐겨보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되는데." 임마, 니놈이 오늘 '창녀촌'에 다녀왔어 봐라. 그런 소리가 입 밖으로 삐져 나오나! "그럼 내일은 다른 곳을 찾아보도록 하지. 피곤할 테니 쉬어라." 그러고 보니, 에릭도 나를 꽤 배려해 준다는 느낌이 있다. 예전에는 카네스가 뒤에서 묵묵히 나를 도와줬는데, 그 놈이 없으니 에릭이 날 챙겨주는군. 그나저나 카네스 이놈은 레어에서 열심히 서류정리를 하고 있겠지? 돌아가면서 선물이나 하나 사가지고 가야겠다. 드래곤이라 왠만한 선물에는 눈도 돌리지 않을 테니... 제길, 또 돈 깨지겠군. 한편, 시크의 레어. "마셔마셔!" 이미 서류는 한쪽으로 치워놓고 레어 깊숙이 박혀 있는 술(어차피 술을 못하니 그냥 선물 받은 것들을 모아둔 것뿐이다.)을 꺼내와 같이 서류정리를 하던 드래곤들과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던 카네스. "괜찮을까요? 저희에게 서류를 맡기고 가셨잖아요." "괜찮아, 괜찮아. 우리가 무쇠냐?(무쇠나 다름없지) 쉴 때도 있어야지. 자기는 쏙 빼먹고 놀 러간 주제에 우리에게 뭐라고 할 권리는 없다. 마셔, 마셔!" 왠지 돌아와서 이 꼴을 보면 폭주할 시크가 걱정되는지 한 드래곤이 조심스레 물었고, 카네 스는 연신 괜찮아를 외치며 술잔에 술을 쏟아 붇고 있었다. "흐음, 왜이리 귀가 간지럽지?" 가려워진 귀를 긁으며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카네스. 어느새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730년 8월 날짜 : 19일 날씨 : 땅에서 아지랑이가 피워 올라올 정도로 극악하게 찜통 같은 더위다. "나왔어~" 어제 데리고 다녔다고(일방적으로 쫓아 온 거다.) 이제는 아주 대놓고 와서 저 난리다. 자신 은 식당 밥을 먹지 않고 우리가 먹는 모습을 옆에서 빤히 쳐다봐서 나라도 음식을 남길 수 밖에 없었다. 난 누가 먹는데 옆에서 쳐다보면 밥맛 떨어진단 말이다! "왜 더 안먹어?" 다나는 내가 먹다가 스푼을 놓아버리자 궁금한 눈빛으로 물었다. 정녕 네가 네 죄를 모른단 말이냐. 에릭도 입맛이 떨어졌는지 곧이어 자리에서 일어나 버렸고, 우리 중에 유일하게 브 리안만이 끝까지 음식을 먹고 있었다. "시크는 소식가인가 보네." ... 난 대식가다. 다만 네가 옆에 있어서 신경에 거슬려 많이 먹지 못하는 것뿐이다. "오늘은 어디 갈거야? 응?" "... 너." "응?" "따라 가려면 그 치렁치렁한 드레스 좀 갈아입고 와라." 내 말에 잠시 자신의 옷을 쳐다보더니 왜 그러냐는 표정으로 다나는 물었다. "이 옷이 왜?" "우리는 눈에 띄고 싶지 않단 말이다! 네가 그렇게 부티나게 차려입고 '나 귀족이요~'라고 우리와 같이 돌아다니면 우린 당연히 눈에 띌 수밖에 없어!" "좋아. 내가 갈아입고 올 동안 기다려 준다고 약속해." "그래." 옳지~ 사실 난 이렇게 말하고 다나가 옷을 갈아입으러 가면 브리안과 얼른 일을 처리하러 가려고 했다. 훗, 내 계획대로 이렇게 움직여주니 눈물나게 고맙군. 여관의 문을 나서는 그녀의 뒷모습이 보이자 나는 그로부터 정확히 100을 세고 브리안의 손 을 잡고 뛰듯이 여관을 뛰쳐나와 10여분을 뛰었다. "헤엑, 헤엑..." "헉... 헉... 왜 뛰는 거에요!" "음, 그냥." 왠지 다나가 쫓아올 것 같아서. 라고 말하기에는 내 자존심이 허락치 않았다. 인간 위를 두 려워하다니. 말도 안되는 일이지, 암. 에릭이 두 번째로 나눠준 종이에는 평범한 남편의 아내로 있는 메이샤라는 여인의 신상이 적혀있었다. 역시나 출신이 어디인지는 밝혀져 있지 않았다. 가정집들이 쭉 늘어서 있는 거 리로 들어서니 왠지 돌아다니는 꼬맹이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아이들 중에 몇몇이 우리를 보고 경계심을 가졌다. 하긴, 이 곳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이 곳에 집이 있는 사람들일 테니까 경계심을 가질만 하군. "마법사에요?" 맹랑한 여자아이 하나가 내 로브자락을 묻더니 날 올려다보며 물었다. "왜?" "우리 엄마가 로브를 입고 있는 사람은 무조건 마법사라고 했거든요." ... 아이에게 그런 얼토당토하지도 않은 소리를 지껄이다니. 로브는 모든 여행가들이 애호(?) 하는 옷이란 말이다! 차마 이 어린아이에게 절규하듯이 외칠 수는 없었고, 그저 그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채 나는 종이에 적혀 있는 주소에 걸 맞는 집을 찾기 시작했다. 흐음, 저 집인가?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빨간 벽돌로 아담하게 지어놓은 2층집 건물이 보였다. 저 정도면 그래도 평민 중에는 꽤 잘 사는 축에 속하겠군. 내 허리정도 오는 대문에 안에는 조그마한 정원까지. 그리고 한쪽에는 간단한 티타임과 여가를 즐기기 위해 놓아두었을 테이 블과 의자가 보였다. 정원에 물을 주고 있었는지 우리가 그곳에 다가가니 약간은 경계 심어 린 눈초리로 우리를 지켜보는 그녀에게 나는 로브를 벗고 정중히 인사를 했다. "실례지만 메이샤님 이십니까?" "아, 네." "혹시..." "시크!!!!" 막 말을 꺼내려는 순간 어제와 비슷하게 뒤에서 들리는 우렁찬 비명 비슷한 소리에 나는 입 을 다물고 마음속으로 굳게 '제길!'이라고 외칠 수밖에 없었다. "날 떼어놓고 왔단 말이지? 내 그럴 줄 알고 감시인을 붙여둔게 천만 다행이지!" 독하다, 독해. 나와 무슨 원수가 졌길래 이리도 거머리처럼 달라붙는 거냐. "브리안, 데리고 가서 처리 좀 해라." 브리안만이 들을 수 있게 속삭여 놓고는 나는 나를 더욱더 의심스럽게 쳐다보는 메이샤라는 여인에게 영업용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 제 친군데, 약간의 문제가 있어서요." "결국 이 여자도 아니란 소리군." 미련 없이 아까의 메이샤란 여인의 신상명세서가 담긴 종이를 쫙쫙 찢어버리며, 앞에서 걸 리적거리고 있는 다나를 쳐다보았다. 마치 그녀가 우리가 찾던 그녀가 아닌게 다나 탓이라 도 되는 듯이 말이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말라구." 아까부터 살벌해진 나를 느꼈던 걸까. 내 눈치를 살금살금보며 입을 여는 다나. "대체 왜 자꾸 날 따라 다니는 거냐! 귀찮아, 귀찮아, 귀찮다구! 가뜩이나 더워 죽겠는데, 너 같으면 누가 졸래졸래 따라다니는걸 원하겠냐? 우리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자! 대체 우리 만 난지 며칠이나 됐다고 이러냐? 내가 너한테 뭐 잘못해서 복수심으로 거머리처럼 달라붙는 거냐?" "당연한걸 묻네. 맘에 드니까 쫓아다니는 거지!"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안떨어지고 더욱 달라붙는 다나를 한심스럽게 바라볼 때 옆에서 브리 안이 남모르게 킥킥대고 있는 것이 눈에 띄였다. "시끄러워!" "아참, 오늘 우리 집에서 저녁식사 안할래?" 갑작스레 묻는 다나의 말에 나는 쓸데없는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왠 저녁식사란 말 인가. "왜?" "우리 엄마가 초대했어." "... 메뉴는?" "오늘 저녁이... 아, 송아지 안심스테이크와, 달콤한 과즙으로 향을 낸 달팽이 요리." "... 몇 시까지 어디로 가면 되냐?" "내가 마차를 보낼게. 그럼, 난 먼저 집으로 가있을 테니까, 꼭 와." "그래." 빙긋 웃으며 손을 흔들고 사라지는 다나를 향해 마주 손을 흔들어주었다. ... 잠깐, 내 목적은 이게 아닌데! 다나를 떼어내려고 했었는데 오히려 저녁식사 초대나 받다 니! "전부터 느끼는 거지만 단순하시군요." 비수같이 내 고막을 울리며 지나가는 목소리에 나는 거리가 떠나가도록 외칠 수밖에 없었 다. "죽고 싶냐!!!!!" 저녁이 되자 약속대로 마차 하나가 여관 앞에 서서 우리를 찾았다. 붉은 새의 문양이 그려 져 있는 마차는 그다지 사치스럽게 보이지도 않았고, 소박하게 보이지도 않았다. 흠, 이 마 차 주인이 그다지 사치스런 사람은 아닌 모양이군. 그다지 창 밖을 바라보고 싶지도 않았기에, 마주 앉은 에릭과 그냥 서로를 뚫어지게 쳐다만 봤다. 옆에서 뭐라고뭐라고 브리안이 떠들었지만 귀에 들리는건 없었다. 마차를 타고 한 10여분 정도 달렸을까. 마차의 속도가 점점 줄더니, 곧이어 멈춰섰다. "도착했습니다." 앞에서 도착했다며 말을 건네는 마부의 소리를 듣고야 우리는 마차에서 내렸다. "시크!" 다나가 푸른색 이브닝 드레스를 입으며 내게 뛰어와 안겼다. 왠 친한 척이냐? "엄마가 아까부터 기다리고 계셔. 내가 친구를 사겼다고 하니까 여간 기뻐하시더라." 누가 네 친구란 말이냐! 라고 금방이라도 따지고 싶었지만 꾹 눌러 참았다. 어쨌든 우린 여 기 손님 자격으로 식.사.하.러 온 것이기에. 커다란 저택 안으로 들어서자, 2층으로 이어진 계단에서 하얀 세틴 드레스를 입은 우아하게 보이는 중년의 부인이 은은한 미소를 입가에 걸고 내려오고 있었다. "엄마!" "녀석, 다 컸으면서 아직도 엄마라니. 손님들이 흉보시겠다." "소개할게. 우리 어머니야." "아빠는?" 엄마만 소개하길래 무의식적으로 물어봤다.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약간 침울한 얼굴을 하고 다나는 중얼거렸다. "1년 전에 사고로 돌아가셨어." "아... 미안." 일단 사과는 해야겠기에 사과를 했다. 옆에서 브리안과 에릭이 '바보.' 라는 눈빛으로 쳐다 봤다. "괜찮아, 괜찮아." "안녕하세요, 시크리오프스라고 합니다." "에릭입니다." "브리안 카르미나 스노파리카입니다." 정중히 귀족식으로 인사를 하는 브리안을 보고 중년 여인의 얼굴에는 약간의 의아함이 스쳤 다. "스노파리카 후작 가문의 자제분이셨군요. 몇 년 전에 우연히 루이크 제국에 갔을 때 스노 파리카 후작 가문과 인사를 나눴었죠. 그 여리게 보이던 분이 아주 멋있게 크셨군요." "예?" 그걸 어떻게 아냐는 듯이 브리안이 되묻자 중년 여인은 다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프네케 케이피트 마르카시스입니다. 마르카시스 후작 가문의 안주인이죠." "호... 혹시... 예전에 한동안 저희 집에 놀러오셨던...?" "아, 이제야 기억하시나 보군요. 루이크 제국에 방문했을 땐 한동안 스노파리카 후작 부인과 같이 지냈죠." 호오, 브리안 녀석도 꽤 높은 집안의 자제였나 보군. 한참을 둘이서 서로 떠들기에 이대로는 도저히 끝나지 않을 것 같아, 나는 나름대로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식당으로 안가나요?" "아, 이런 제가 손님들을 너무 오래 붙잡아 둔 것 같군요."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웃는 후작부인을 보고는 갑자기 에릭의 얼굴이 싸늘하게 식은 것만 같았다. 굳어있는 에릭을 아무리 팔꿈치로 쳐도 도무지 풀릴 것 같지 않아 발을 콱 밟아줬 다. 물론 후작부인을 향해 짓는 가식적인 미소는 여전히 입가에 짓고 말이다. "무슨 짓이냐." 힘껏 밟았는데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낮은 목소리로 내 귓가에 속삭였다. 다정스레 귓가 에 속삭이는 우릴 보고 후작부인은 그렇고 그런 사이인걸로 오해하고 있었다. 대화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지만 말이다. 긴 식탁 위에 여러 가지 음식이 놓여있었다. 맛깔스러운 음식 때문에 절로 배가 고파왔고, 그 향긋하고 먹음직스러운 냄새에 나도 모르게 침을 흘릴 뻔했다. 흠흠, 누가 보면 며칠 굶 은 줄 알겠군. 음식을 먹고 있으면서 옆에 앉은 에릭을 힐끗 쳐다보니 아직도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이 고 민에 빠져있었다. 밥상머리 앞에서 저런 꼴이라니. "에릭군, 음식이 입에 맞지 않으신가요??" "아, 아닙니다." 정신이 든 에릭이 서둘러 자신의 앞에 있는 음식을 먹었다. 이봐, 그러면 체한다구. "호홋, 정말 인물들이 훤히 잘생긴 분들이군요." "엄마, 시크는 여자라구요." ... 내가 남자처럼 보였었나? "알고 있단다. 다나." 저녁을 먹고 가벼운 차까지 마시고 난 뒤에 후작부인이 배려해 준 마차를 타고 어둑어둑 해 진 길을 가로질러 여관으로 오는 도중이었다. 내내 굳어있던 표정의 에릭이 입을 연게. "왠지 닮았어." "응?" "마왕님과 저 중년 여인. 왠지 모르게 닮았어." "야, 저 아줌마는 이름이 프네켄데?" "그러니까 이상하다는 거다." 열려진 창문 사이로 차가운 바람이 불어 들어왔고 마차 밖에서 달을 올려다보며 에릭은 조 용히 중얼거렸다. 곁에 있는 나만이 겨우 알아들을 수 있도록. "... 다시 한번 정보 길드를 찾아가 봐야겠어." 730년 8월 날짜 : 22일 날씨 : 비온다. 비도 오고 해서 그냥 식당 테이블 하나를 죽치고 앉아서 안에 들어오는 손님들을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내가 비가 오니 나가기 싫다고 하자 브리안은 메이샤라는 여인을 찾으러 간다 고 하고는 종이 한 장을 들고 몇 시간 전에 나갔고, 에릭은 저번에 말한 정보 길드에서 정 보를 주기로 한 날짜라며 아침 일찍 나가버리고 없었다. 다나는 아마 비가 와서 안오나 보 다. 점심시간이라서 그럴까. 빗속을 돌아다니다가 비를 피할 겸해서 점심까지 먹으러 여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꽤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 여관은 값싸고 맛있는 음식으로 소문이 나 있는 곳이라 안그래도 평일에도 사람이 꽤 몰렸다. 그러니 여관 주인이 가만히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날 보는 시선이 고울 리가 없었다. "여기 과일 샐러드와 맥주 한잔. 그리고 크림 수프 하나요." 오랜만에 비도 오고 해서 술이나 한잔할까? 하는 마음에 그 래도 걔중 나은 맥주를 시켰다. 술만 먹으면 필름이 끊기는 나였지만, 왠지 오늘은 술 한잔 을 먹고 싶다. 간단한 음식이라 그런지 몇 분 기다리지 않아 금방 나왔다. 흰 거품을 가득 물고 있는 맥주 를 보니 예전에 몇 번 마셨던 쓴맛이 생각났지만, 이런 축축하고 기분 나쁜 날에는 시원한 맥주가 제격이라는 생각에 맥주를 들어 홀짝홀짝 마셨다. 물론 안주는 크림 수프와 과일 샐 러드다. 난 절대 술은 원샷은 거의 못한다. 아무리 약한 술이라고 원샷하면 골로 간다. "역시 쓰군." 입안 가득 느껴지는 쓴맛에 인상이 찌푸려졌지만, 일단은 속에서 올라오는 열기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한 모금 더 입에 머금었다. 과일 샐러드에 있는 토마토를 집어먹으며, 웅성거리 는 식당의 분위기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끼익~' 낡은 여관 문이 소리를 내며 열렸지만 웅성거리는 소리에 아무도 그 곳으로 눈을 돌리지 않 았다. 청각 좋은 나만이 그 곳을 쳐다봤고, 검은 로브를 뒤집어 쓴 에릭(비를 덜 맞기 위해 로브를 쓰고 나간 것 같았다.)이 로브에 묻은 물기를 털어내며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식당 안에서 곧 나를 발견하고는 뚜벅뚜벅 걸어와 목이 탔는지 내 앞에 있는 맥주를 원샷으 로 마셔버리는 에릭. "여기 맥주 두 잔 더요." 앞자리에 앉는 에릭을 쳐다보며 내가 다시 주문했고 곧이어 맥주가 나왔다. 로브 안쪽에서 축축해진 서류를 꺼내 에릭은 내게 넘겨줬다. "후작 부인에 대해 조사한거야." 그 서류를 그냥 슬쩍 보며 넘기려던 나는 가장 첫째 줄에 있는 글을 보고 순간적으로 움찔 할 수밖에 없었다. 본명 : 메이샤 메이샤라니? 그럼 에릭의 직감이 맞았다는 소린가? "다시 만나러 가야겠군. 후작부인을." "이런, 비를 맞고 오시다니. 급한 일이라도 있으신 건가요?" 점심을 먹던 중이었던 듯, 급히 식당 쪽에서 다나와 후작부인이 걸어나왔다. 아마도 우리의 방문에 꽤나 놀랬나 보다. "후작부인,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겠습니까?" 에릭이 정중히 후작부인을 향해 인사를 하며 물었고, 다나가 아닌 자신을 만나러 왔단 말에 잠시 당황하던 후작 부인도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아, 잠시만 응접실에서 기다려 주세요. 집사, 이 분들을 응접실로 모시도록 해요." 집사라는 할아버지는 우리를 응접실로 데리고 갔다. 응접실 소파에 앉아 집사 할아버지가 내주는 다과를 먹고 있을 때, 문이 열리며 후작부인과 다나가 들어왔다. "손님들을 너무 기다리게 했군요." "아닙니다, 불청객인 저희를 쫓아내지 않고 이렇게 잘해주시니 저희야말로 감사합니다." "그럼 할 얘기를 들어볼까요?" "... 다나양, 자리를 피해주셨으면 합니다만?" 갑작스러운 에릭의 말에 다나는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싫어요. 나도 있을 거에요." "알겠습니다.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페피나 마을에서 19살 경에 이곳으로 오신 메이샤란 아가씨가 후작부인 이십니까?" 미소를 짓던 후작부인의 얼굴에서 미소가 순간적으로 사라졌다. 다나는 무슨 말을 하냐는 듯이 우리를 바라보았고 후작부인은 다시 입을 열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 저희도 이런 소리를 할만큼 조사를 마치고 왔습니다." 후작부인의 손이 가느다랗게 떨리고 있다는게 느껴졌다. "그럼 할 수 없겠군요. 제가 메이샤가 맞습니다." 목소리가 심하게 떨리며 말하는 후작부인이 안쓰러웠지만 에릭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다 시 입을 열었다. "메이샤님의 오라버니께서 메이샤님을 찾고 계십니다." "레... 레온 오라버니께서 살아 계신다는 겁니까!" 눈이 크게 뜨여지며 순식간에 눈물이 흘러내리는 후작부인을 보며 나도 모르게 가슴이 찡해 졌다. ... 죽은 줄로만 알고 있었을 것이다. 30여년 동안 연락이 없었으니. 입가에 손을 가져가며 눈물짓는 후작부인을 보고 다나가 우리에게 물었다. "우리 엄마에게 무슨 짓이지? 너희들 우리 엄마를 찾고 있던 거였어? 시크! 네 엄마를 찾고 있다고 했잖아!" "거짓말이었어." 머리가 아파 오는지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고 쇼파에 등을 기대는 후작부인을 부축하며 다나 는 원망스러운 눈길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다나에게 괜찮다고 손짓을 해보이며 후작부인은 앞에 놓여져 있는 냉수를 입으로 가져갔다. "... 하아... 제 오라버니는 어디 계십니까?" "이 곳에 안계십니다. 저희를 통해서 모셔오라는 말씀만이 계셨습니다." "그곳이 어딘가요?" "... 아직은 말씀 드릴 수 없습니다." 마계라고 말하기가 곤란하겠지. 없어진 오라버니가 갑자기 마계의 마왕이 되었다고 하면 아 마도 후작부인은 그 자리에서 실신할 것 같다. 우리를 미친놈들로 볼 가능성도 아에 없다고 는 할 수 없으리라. "후작부인, 여쭙고 싶은게 있습니다." 어두운 안색의 후작부인에게 이런 말을 묻기는 조금 뭐하지만 내가 페피나라는 마을에서부 터 품어왔던 궁금증이다. "왜 마을을 도망치듯 그렇게 떠나셨던 겁니까?" 내 말을 듣자 더욱 어두운 안색이 되어버린 후작부인을 보며 나는 필시 무언가가 있다는 생 각이 강력하게 들었다. "떠난게 아니라 쫓겨났습니다." 역시... 떠난게 아니었군. "그 사람도 지금은 마을 촌장이 되었겠지요. 후훗, 그 마을에 가보셨다면 아실 듯 합니다. 우린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약혼녀가 있었죠. 그는 그래도 마을의 제일 가는 부자였습니다. 촌장님의 하나뿐인 아들이었거든요. 전 오라버니가 떠난 뒤에 겨우 겨우 남의 집일을 도와주며 살아가고 있었구요. 촌장님께서 저희 사이를 눈치 채셨는지, 그 날 밤에 조용히 오셔서 떠나달라고 하시더군요. 아마 절 억지로 떠나보내려 했다면 전 끝까 지 오기로라도 남았을 겁니다. 제 앞에 꿇어앉아 눈물로 애원하시더군요. ... 결국 그날 밤 도망치듯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라버니라면 내가 어디에 있어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한결 편한 마음으로 떠나 올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맺히는 그녀의 눈물을 보며, 나는 왜 그리 촌장이 우리에게 그 이야기를 할 때 어두운 기색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녀가 타지나 다름없는 이 곳에 와서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 을까. 아마도 지금의 후작을 만나기 전까지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여자 혼자의 몸이었으니 까. 지금의 자리에까지 오기 위한 그녀의 노고를 나는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시 입가에 부드러운 웃음을 지으며 후작부인은 고개를 저었지만, 안색은 여전히 어두운 상태였다. "... 비가 많이 오니, 오늘은 이 곳에서 묵었다 가시죠. 자세한건 내일 이야기하도록 하죠. 오 늘은 피곤하군요." "아닙니다. 일행이 여관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제가 사람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이곳에 오늘 묵었다 가세요." 후작 부인이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어쩔 수 없이 오늘 하룻밤은 이 곳에서 지내야 할 것 같 다. 손님방을 내어준 후작부인은 저녁 식사 때 보자며 내려갔고, 내 옆방인 에릭은 잠이나 잔다 며 방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다나도 어쩐 일인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오후인데도 비가 내리고 있어, 그런지 컴컴한 하늘. 살짝 테라스의 창문을 여니 바로 세찬 바람이 쏟아져 들어왔다. 흐음, 올 때보다 바람이 더욱 거세어진 것 같군. 창문을 급히 닫고 옆에 있는 테이블 위에 놓여져 있는 술잔에 눈이 갔다. 흐음, 저거 먹으라 고 놔둔 건가? 내가 그렇게 술을 밝히게 생겼을까? 잠시 그 술잔과 술병을 노려보며 의자 에 앉았다. 살짝 병 뚜꺼을 열어 향기를 맡아보니 포도주는 아닌 것 같고, 냄새도 그리 독하 지 않았다. 쓰읍, 할 일도 없고 잠이 오지도 않으니, 살짝 한 잔만 마셔봐야 겠다. 살짝 술잔에 한 모금 정도를 채워 넣고 들이키는 순간, 나는 배속에서부터 올라오는 엄청난 열기와 후끈함에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이건 사기야!!!!!" ... 보기완 다르게 엄청나게 독했다. "야, 일어나. 밥 먹으러 가자." 누군가가 날 흔들어 깨우는 바람에 헤롱대는 정신으로 어렵게 눈을 떴다. 에릭이 셋으로 보 이다가 여섯으로 늘어나자 나는 눈을 비비고 꼬인 발음으로 입을 열었다. "아먹어. 끄져...(안먹어, 꺼져...)" 나는 제대로 된 발음을 했다고 생각했으나, 에릭의 표정이 이상하게 바뀌며 테이블 위에 술 병을 바라보고는 중얼거렸다. "... 누가 데킬라를 이런 곳에 가져다 놨지?" ... 망했다, 제길. 나는 에릭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다시 깊은 잠 속에 빠져들었다. 730년 8월 날짜 : 23일 날씨 : 아직도 비온다. 망할, 언제 그치냐? "잠팅아, 일어나." "커헉..." 한참을 꿈속에서 서성이고 있었는데 배에서 오는 극심한 통증에 나는 벌떡 상체를 일으켰 다. 그 통증의 근원을 찾고 있을 때 에릭이 슬그머니 오른쪽 발을 내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 다. "이 새끼! 죽고 싶냐! 감히 이 고귀한 몸에 너의 족을 올리다니! 이리 와봐. 확 뿐질러 버릴 테다!" "그 독한 술 먹고 속도 안쓰리냐?" ... 그, 그러고 보니 속... 속이 이상하다. "... 내가 어제 기절했냐?" "거의 기절과 다름없었다고 생각된다." 테이블 위의 어제 그 술병이 보이 길래 열 받은 나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테이블에 다가가 테라스의 창문을 열고 비오는 밖으로 그대로 던져버렸다. "성격도 더럽기는. 술 먹은 네가 잘못이지, 술이 잘못이냐?" 아무렇게나 흩어져있는 내 이부자리를 정리하며 에릭이 퉁명스레 말했다. "그거 조금 있다 사람들이 와서 다 할텐데 왜 니가 하냐?" "... 이 정도 일쯤은 자기 손으로 해야지. 하지만 너한테 하라고 하느니 차라리 내 손으로 하 고 만다." 짜식, 무섭도록 날 잘 알고 있는 놈이다. 열 받으면 일주일동안 숨어버릴까 보다. "몇 시야?" "남에게 물어보지 말고 네가 직접 알아봐라, 잠팅아." "야, 너 자꾸 잠팅이잠팅이 그러는데, 너도 술 먹고 취해봐! 이만큼 안자나!" "... 난 그런 적 없다. 술 먹고 이 정도 잤다고? 오호, 넌 맨날 술 먹고 자냐?" 할말없다. 내 가슴을 사정없이 비수로 후벼파며 확인사살로 소금까지 뿌리는 에릭을 노려보 는 것 외에는 정말 반박할 말이 없었다. "드래곤은 잠이 많은 존재야!" "자랑이다." 제길, 그래도 가장 타당한 이유를 말하니 가장 적합한 말로 내 입을 막아버린다. 너 나한테 한번만 더 그러면 네가 찾을 수 없도록 숨어 버릴 테다. 죽든지, 말든지. "야, 밥 먹으러 내려가자." 저 놈을 어떻게 놀려주지. 으드득, 나도 저녁에 저 놈 자고 있을 때 가서 밟아버릴까. '퍼억~' 에릭에게 등을 돌리고 씩씩거리고 있을 때 나는 등에서 내리치는 충격으로 앞으로 고꾸라졌 다. 으윽, 등보다 바닥에 찍은 턱이 장난 아니게 아프다. 눈에서 눈물을 찔끔거리며 뒤를 돌 아봤을 때, 에릭이 또다시 오른발을 슬쩍 내리는게 보였다. "이 자식아! 나 턱 부러지고, 잘못 넘어져서 뇌진탕으로 죽은 비운의 드래곤 로드가 되면 니 가 책임질래!" "그 정도 가지고 죽으면 그게 드래곤이냐? 병신이지." 저, 저놈 왜 오늘따라 저렇게 폭력적이며 개싸가지 성질머리가 된거냐! 날 때린 적은 없었 는데. "너 대체 날 발로 찬 이유가 뭐냐!" "밥 먹으라는 내 말을 무시하다니." "너 에릭 아니지?" "어디서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를 하나?" 차갑게 내뱉고 나를 지나쳐 방문을 나서는 에릭. 내 옆을 지나갈 때 얼굴이 빨게 보인 건 착각일까? 아무튼, 저 새끼가 정상이 아니란 것은 확실하다. 감히 날 발로 밟고, 차다니. "엥? 야, 어디가?" 식당으로 들어가려 할 때 에릭이 로브를 두르고 저택의 현관문을 열자 당황한 나는 에릭에 게 물었다. "여관에." "왜 지금 가? 조금 있다가 같이 가지." "먼저 갈테니 밥 먹고 천천히 와라." 그 말을 마치고 휭~하니 가버리는 에릭. 허참, 저 자식 진짜 오늘따라 왜 저래? 식당안에 들 어가자 후작부인과 다나가 나를 반겨주었다. 갑자기 에릭이 바쁜 일이 있다고 먼저 갔다고 하면서 걱정하는 후작부인과 다나에게 살짝 웃어주었다. 바뻐? 바쁘긴 개뿔이. 지가 무슨 일 이 있다고. "그럼, 오라버니를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점심 식사를 하면서 물어보는 후작부인에게 대충 에릭에게 물어보라는 소리를 하며, 오늘 저녁에 떠나자고 했다. "그렇게 일찍이요?" "아, 거기에 있을 건 다 있으니까, 그냥 몸만 가면 될거에요." 뭐, 명색이 마왕성이니 있을 건 다 있겠지. 점심을 먹고 후작부인이 내어준 마차에 앉아 편히 여관에 도착한 나는 여관 문을 열고 들어 가자마자 문 앞에서 브리안과 맥주를 마시고 있는 에릭을 발견했다. 흐흐흐... '퍼억~' 나의 그 가녀리고 조금 과장을 섞어서 툭 치기만해도 부러질 것 같은 다리로 아까 전의 복 수를 갚기 위해 에릭의 등을 밟아버렸다. "뭐 하는 짓이냐." 미동도 하지 않고, 손으로 내 발을 쳐내버리는 에릭. 왠지 오늘따라 저 놈이 상당히 저기압 으로 느껴진다. "너야말로 오늘따라 나한테 왜 그리 불만인건데." 설마, 그 동안 내가 조금 괴롭혔다고 그게 지금에서야 터진건 아니겠지? "오늘 저녁에 떠나기로 합의 봤다. 있다가 저녁에 후작부인댁에 가면 니가 댁의 오라버니가 사실은 마왕입니다~ 라며 말해라." 쩝, 후작부인 성격에 오늘 저녁에 집에서 기절하겠군. 그럼 오늘 저녁에 마계로 가는건 그른 건가? 에릭은 나와 같이 있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어서 열 받은 나는 내 방으로 올라와 버렸다. 우이씨, 이유나 알면 이렇게 억울(?)하지는 않다. 730년 8월 날짜 : 24일 날씨 : 열라 덥다. 에릭이 후작부인과 다나를 데리고 마계로 떠난 지 하루가 좀 못됐다. 브리안은 마계에 꼭 가보고 싶다며 따라갔고 에릭은 내가 따라오는걸 바라지 않는 눈치인 것 같아서 그냥 나는 레어로 돌아간다고 했다. 시크리오프스, 너 성질 많이 죽었다. 텔레포트로 오자마자 눈에 보인건 술판을 벌이고 있는 카네스와 드래곤들. 나를 보고 서둘 러 술병들을 뒤로 감추었지만, 이미 레어안에 가득히 퍼진 술 냄새를 짐작해보면 며칠동안 내리 들이부은 것 같았다. "... 누구는 지랄 맞게 고생만 하다왔는데 어떤 새끼들은 맘편히 여기 앉아서 술이나 쳐먹 어? 오호, 잘 넘어가디?" "시... 시크, 그게 말이지." 정말 서류 처리는 안하고 놀았다는게 여실히 들어 난다. 어째 내가 갈 때와 다름없냐? "저기, 다른 놈들은?" "마계로 데려다주러 갔어. 곧 올 거다." 일주일 안에는 오겠지. 에릭은 나와 일주일 이상 떨어져있으면 안되니까. "자아~ 서류를 처리합시다~!" 카네스의 넉살스러운 목소리가 레어 안에 울려 퍼졌고 나머지 드래곤들은 서둘러 자신의 자 리로 돌아가 서류에 얼굴을 박고 열심히 일을 하기 시작했다. 참나, 혼낼 기분도 안난다, 이 것들아. "아참, 카네스. 물어볼게 있어." "응?" 서류를 쳐다보며 건성으로 말하는 카네스에게 옆에 있는 엄청나게 두꺼운 서류뭉치를 날려 주었다. 그때서야 날 쳐다보며 빨리 얘기하라는 듯한 카네스의 눈빛을 보며 난 입을 열었다. "어젠가? 그때부터 에릭이 자꾸 날 피하는 것 같아." "... 흐음." 고개를 끄덕이며 신음소리를 흘리는 카네스. 저 표정은 뭔가를 알고 있다는 표정이군. "말해봐." "에릭이 밝히기 싫어하는 것 같으니, 그냥 넘어가라." "임마, 빨리 말 안해?" "꼭 알아야겠냐?" "응!" 카네스 외에 다른 드래곤들도 이유를 알고 있는 듯, 갑자기 서류더미에 얼굴을 박고 킥킥거 렸다. 카네스는 이내 곧 한숨을 내쉬고 입을 열었다. "발정기라서 그런다." "엥?" "마족은 100년이나 200년에 한번씩 발정기가 오거든. 물론 남성체 마족들만. 그때 여성체 마 족들과 결합해서 마족 꼬마가 탄생하는 거다. 물론 이 시기를 놓치면 다음 발정기 때까지 기다려야하지." "근데 그거랑 에릭이 날 피하는 거랑 무슨 상관이야?" "둔녀." "빨리 대답해." "에릭이 널 여성체로 본다는 소리다. 네 옆에 있으면 널 덮치지 않고 못 버티겠으니까, 널 피하는 거다. 이제 알았냐? 둔팅아." 뒤통수에 뭔가를 맞은 것처럼 갑자기 멍해졌다. 짜식, 진작 말을 하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카네스가 내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는게 느껴졌다. "뭘 그렇게 보냐?" "아무래도 에릭의 눈은 신기하단 말야." "뭐가?" "... 어떻게 이걸 여성체로 볼 수가 있는 거지?" 정말로 신기한 듯이 카네스가 요모조모 뜯어보고 있을 때, 멍하게 있다가 한참후에야 카네 스의 말을 뇌에서 인식한 나는 레어가 떠나가라 소리쳤다. "카이오네스! 일루 와! 너 죽었어!" 얼굴은 말도 못하게 팅팅 붓고, 코에서는 코피가 계속 쏟아져 나왔으며, 눈은 밤탱이가 된 카네스가 피묻은 손으로 서류를 넘기고 있었다. 아까의 내 만행(?)을 모두 보아온 드래곤들 은 감히 내게 말 붙일 생각도 못하고, 카네스를 동정의 눈빛으로 쳐다봤다. 언젠가 누구에게 도 쓴 방법이 있는 '치유마법 쓰면 죽인다!' 라고 말해 카네스는 치유마법을 쓰지도 못하고 아픈 몸을 이끌고 서류를 처리하고 있었다. "야, 이거 읽어봐." 코를 훌쩍이며, 내게 서류를 던져주는 카네스. 서류를 받아든 나는 이제는 숙달된 눈빛으로 그걸 읽어 내려갔다. 『로드님! 저희 골드 일족에서 이번에 헤츨링이 태어났습니다. 저희 부부에게는 그래도 귀 한 아이라 저희가 이름을 짓기보다는 로드님께 이름을 부탁하고 싶습니다. 바쁘시지 않다면 저희 레어에 한번 들려주시길. 골드 드래곤 세피아니스타』 "부탁할 드래곤도 없나보네. 너한테 부탁하는거 보니." 그새 내게 맞은 자리가 아물었는지 뚫린 입을 나불거리는 카네스의 머리를 밟아주고는 나는 골드 드래곤 세피아니스타의 레어 좌표를 찾기 시작했다. 아마도 카네스가 저런 소리를 하 는 이유는 내가 지은 자신의 이름 때문이 아닐까. 이봐, 그때는 철없던 어린 시절이었다구. 그것 가지고 지금까지 꿍해있긴. 우이씨, 드래곤들 레어 좌표들 주소 모음집이 여기 어딘가에 있을텐데... 서류들 사이를 뒤적이며, 아무리 찾으려고 노력을 했지만 눈에 보이지 않았다. 여기가 아니 라 서재에 있을려나? "그나저나 피곤 할텐데 좀 자고 나서 가지 그래?" 헐? 저놈이 왠 일이야? 내 몸 생각도 해주고? "그래, 네가 정 그렇게 말하면 이 몸이 수면을 취해주지. 아참, 카네스. 너 나 잘 때 치유마 법 쓰면 죽는다." 내 예상이 맞았던 듯 인상을 찌푸리는 카네스. 이놈아, 내가 네 머리 위에 있다. 자아, 그럼 합법적(?)으로 자볼까? 730년 8월 날짜 : 26일 날씨 : ... 여름이니 더운건 당연하다고 생각된다. 인간 상태로 너무 오래 자서 그런지 눈이 퉁퉁 부은 얼굴로 일어났다. 서재에 있는 거울에 비춰보니 내 얼굴이 아닌 것 같다. 머리가 간지럽길래 손으로 긁으며 서재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한가롭게 놀고 있던 세 마리 의 드래곤들은 흠칫 놀라서 서둘러 옆에 있는 서류 아무거나 붙잡고 읽어 내려갔다. 별로 탓하고 싶지는 않아서(지금까지 난 잠을 잤기 때문에. 양심에 조금은 찔렸다.) 넘어가려 했 는데 왠지 깨끗한 카네스의 얼굴이 눈에 거슬렸다. "얼굴 다 나았네?" "그, 그럼! 이 정도 상처는 며칠이면 낫는 다구!" "그렇구나... 할 줄 알았냐? 너 내가 치유마법 쓰면 죽는다고 했지! 적어도 일주일은 갈 상처 였어, 임마! 설마 내가 일주일동안 내리 잤다고 말하려는건 아니겠지?" 서재에서 세피아니스타의 레어 좌표가 있는 서류를 발견해 그녀의 레어로 텔레포트를 준비 하려는 나. 며칠전보다 더욱 카네스를 밟아줘서 그런지 몸이 찌뿌둥 했다. 일어나자마자 너 무 과한 운동은 안되는데... 그녀의 레어 바로 앞까지 온 나는 아이의 이름을 곰곰히 생각해 봤다. 카네스처럼 그런 엽 기적인 이름으로 지으면 안되겠지? 여러 가지 이름을 궁리하며 레어로 막 들어섰을 때 나는 희번득 거리는 황금 눈동자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랬다. 보통때 같으면 가까운 곳에 뭐가 있 는지 벌써 알고 놀라지 않았겠지만, 내 머릿속은 헤츨링의 이름을 짓느라 복잡한 상태가 되 어있었다. "허걱..." "꾸엑?" 아름다운 황금빛 눈동자를 가진 몸집이 작은 헤츨링. 그렇다. 그 놈(?)은 헤츨링이었던 것이 다. 그 놈도 나와 같이 놀랬는지 짧은 손을 휘둘러가며 당황한 행동들을 마구마구 연출해내 고 있었다. "니가 세피아니스타가 낳았다는 그 아이냐?" "어... 어머니요?" 야리야리하고 가녀린 목소리가 곧이어 헤츨링의 입에서 나왔고,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줬다. "어머니는... 우웅...." 아직 언어 순환이 제대로 안된 모자란 놈인지 짧은 손으로 머리를 싸매고 고심하는게 여간 귀엽게 보이지 않았다. "아아~ 아버지 집에 잠깐 간다고 했는데..." 그제 서야 입이 트이는지 말을 여는 헤츨링을 보며, 정말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마, 손님을 이곳에서 멍하니 있게 할거냐? 레어로 안내해야지 않냐?" "우웅..." 다짜고짜 자신을 혼내는 내가 맘에 들지 않았는지 볼을 크게 부풀리며 느릿느릿 앞장서는 (태어난 지 얼마 안된 헤츨링이라 걸음마에 익숙할 리가 없다.) 헤츨링을 보며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억눌렀다. "저... 저기..." 고개를 돌리고 쿡쿡대며 웃는 나를 조심스럽게 부르는 헤츨링. "왜?" 무뚝뚝하게 한마디 던지자 또다시 버벅대면서 대답을 한다. "그게... 다 왔거든요? 헤헤..." 나와의 대화가 제딴에도 어색하다고 느껴졌는지 웃음까지 바보처럼 짓는 헤츨링. 어느새 나 는 레어 안쪽까지 도착해있었다. 이 놈을 구경하며 걸어오느라 그걸 미쳐 몰랐다는게 왠지 한심하게 느껴졌다. "엄마 언제 온다고 하던?" "... 몰라요." 내가 자신에게 화풀이라도 할까 걱정됐던 걸까. 조그마한 소리로 모른다고 중얼거리는 헤츨 링. 내참, 내 첫인상이 그렇게 무서웠나? 잠시 흐르는 어색함과 썰렁함. "이름이 뭐냐?" "웅... 로드님이 지어 주실 거랬어요." 아, 정말 나 바본가? 나 이놈 이름 지어주러 왔잖아. "쩝, 심심해 죽겠네." 정말 난 지지리도 재수 없는 드래곤인가 보다. 왔는데, 하필 그 날이 세피아니스타가 외출한 날이라니. 흐음, 세피아니스타는 무슨 배짱으로 얠 혼자 두고 간거지? 저번에 인간들의 헤츨 링 키메라(?)사건이 있어서 안그래도 뒤숭숭한데. 나와 있는게 불편해서일까. 몸을 움직이는 것까지 내 눈치를 슬슬 보며 행동하는 헤츨링을 보고는 왠지 괴롭혀주고 싶다는 사악한 생각이 내 머릿속에서 꾸물꾸물 기어 나오기 시작했 다. "흐흐흐, 너 로드가 어떤 드래곤인지 아냐?" "네, 네?" 음침한 웃음을 짓고 말하는 내가 무서웠던지 벌벌 떨면서 대답하는 헤츨링을 보며 난 더욱 더 놀려주고 싶어졌다. 아마 이걸 세피아니스타가 알면 난 세피아니스타와 원수지간이 될 것이다. "드래곤 로드는 말야, 너처럼 연~한 헤츨링 살을 무척이나 좋아한단다. 흐흐흐, 헤츨링을 레 어 천장에 거꾸로 매달고 비명 지르는 헤츨링을 감상하는 괴상한 취미를 가지고 있지." 그 누런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벌벌 떠는 헤츨링을 보며, 나는 다시 한번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 로드가 이 곳에 온다고 하는데, 흐흐흐... 너도 참 불쌍하구나." "... 우... 우... 우엥~~~~~~~" 결국에는 울어버린 헤츨링을 보며 나는 마음속으로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그 큰 황금빛 눈 동자에서 구슬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니 왠지 생각나는 얼굴이 있어서 나는 고개를 세차 게 저었다. 설마... 아닐거야, 그래. 아직은... 이렇게 빨리... 그래, 아닐 거다. 「조금만 기다려라.」 문득 데히모스가 주신의 전언이라고 하며, 남기고 간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온 몸이 떨려 왔다. 멍하니 정신을 놓고 있을 때 내 손에서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울지 마요..." 황금빛 눈동자에 그렁그렁 눈물이 달려있는 주제에 내 손을 붙잡고 말하는 헤츨링을 보며, 나는 반사적으로 눈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 축축했다. 자꾸 흐려지는 눈을 손으로 비비며 나는 그 헤츨링을 끌어안았다. "... 너구나, 너구나...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내 품안에서 미동도 하지 않은 채(사실 내가 헤츨링에게 안겨있는 것처럼 보였다.) 가만히 서있는 헤츨링을 보며 나는 눈물을 닦았다. "아, 로드님. 잠깐 외출한 사이에 오셨네요?" 세피아니스타가 레어 입구 쪽에서 걸어오며 나를 보고 아는 척을 했다. 그녀의 말에 헤츨링 은 눈에 띠게 움찔하더니 내 얼굴을 쳐다봤다. "... 응." "우리 아가 이름을 뭘로 하면 좋을까요?" "글쎄..." "아직 어릴 텐데도 지나치게 의젓해요. 어미된 마음으로서 뿌듯하답니다." 그래... '그'는 정말 의젓했어. 왜 몰랐던 걸까. 오히려 카네스나 에릭보다 옆에서 더욱 지켜 주고 날 위해 모든 걸 했던 존재는 '그'였다는걸. "잠깐 자리 좀 피해줘. 헤츨링과 할 얘기가 있거든." "... 아, 네." 내가 처음 본 헤츨링과 할 이야기가 있다고 말하자 의아한 눈빛을 띠었지만 그녀는 내게 아 무것도 묻지 않고 조용히 텔레포트로 사라졌다. 그녀가 완전히 갔다는 것을 깨닫고 난 뒤 나는 약간은 두려운 눈빛으로 날 쳐다보고 있는 헤츨링을 바라보았다. "... 그런 눈빛으로 보지마. 네가 날 보던 눈빛이 아니야..." "로... 로드님?" "제발... 그런 눈빛으로 날 보지마..." 어리석게도... 정말 어리석게도 또다시 내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 나처럼 눈물 많은 드래곤이 또 있을까. 정말 드래곤으로서 실격이다. "울지 말라니까요." "... 우욱... 왜... 왜...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 넌 왜 내게 모질지 못한거니... 난 널 죽였는 데... 그래! 내 몸을 너의 붉은 피가 적셨어. 하하하, 그래. 넌 의아한 눈빛으로 날 바라봤지! 네 자신의 죽음도 모른 채 끝까지 내게 물었어. '왜 그랬어요...'라는 눈빛으로 내게 물었어! 당연하잖아. 넌 내 아이를 죽였는걸... 그랬는걸. ...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증오한다고 여겼 는데! ... 그게 아니었어..." '짝~' 화끈한 느낌에 나는 눈물로 인해 흐릿하게 보이는 헤츨링, 아니 '그'를 바라보았다. "나 지금 로드님이 내게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몰라요. 아니, 알고 싶지도 않아요. 나는 이 제 태어난지 얼마 안된 골드 일족의 헤츨링이거든요. 왜 로드님을 때렸냐고 묻지 마세요. 그 냥 그래야 될 것 같았어요." 전혀 나를 때린 것이 미안하지 않다는 듯이 말하며 '그'는 내게 미소지어 보였다. ... 그래. 이제 웃을 수 있구나. "로드님, 저 이름 안지어 주실 거에요?" "... 프라니바투스. 그래, 네 이름은... 프라니바투스다." "프라니바투스..." "... 그 이름을 가졌던 드래곤은 어리석게도 한 존재 때문에 미쳐버린 드래곤이다. 그리고 끝 내는 가장 사랑한 존재의 손에 죽게 된 불운의 드래곤이다. 잊지 말아라. 그의 죽음을. 드래 곤 역사상 가장 악하다는 억울한 누명만 쓰고 죽어버린 그 드래곤을 잊지 말아라." 어쩌면... 미쳐버린 존재는 나였을지도 몰라. ... 오늘... 그녀를 보았습니다. 날 보고 놀래더라구요. 조금은... 슬펐습니다. 날 기억 속에서 지워버린 줄 알고, 슬펐습니다. 그녀는 내게 겁을 주려고 했는지, 있지도 않은 이야기를 지어냈습니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어떻게든 울고 싶어서... 날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너무 슬퍼서 울어버렸습니다. 내 눈물을 보고 그녀도 웁니다. 왜 우는 걸까요. 혹시... 아주 혹시라도... 내가 생각이 나서 우는 걸까요. 그녀의 모습이 너무 서러워 보여서 나도 모르게 눈물을 닦아주었습니다. ... 알잖아요. 난 당신 우는거 싫어요. 내가 기억이 났다면 내게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일이지만, 나 때문에 운다면 그건 내겐 가장 잔인한 일이에요. 내 어머니가 왔습니다. 그녀는 눈물을 서둘러 닦아내었지만 눈이 빨개진 건 어쩔 수 없었죠. 예전과는 다르게 난 정말 사랑 받고 있어요. 그녀와 어머니가 약간의 이야기를 하더니 어머 니는 곧 사라져버렸습니다. 울어서 눈이 빨개진 그녀를 보니, 다시 슬퍼 옵니다. 그녀는 보이지 않는 걸까요. 겨우겨우 눈물을 참으며 이를 악물고 있는 내 모습이. 나와 눈이 마주친 그녀의 눈에서 또다시 투명 한 눈물이 떨어집니다. 날 보며 미친 듯이 소리치는 그녀에게 나도 모르게 뺨을 때려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녀를 향 해 억지 웃음을 지어주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또 울 것 같았거든요. 내가 아무 것도 없는 암흑 속에서 나는 그녀의 얼굴만을 그리며 살아남았습니다. 다시 그녀 를 볼 수 있게만 해달라고 빌며 살아남았습니다. 내가 잘못했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그녀를 사랑하는 방식이 틀렸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몇 번이고 울고 싶었지만, 그녀가 없을 때 울면 그녀에게 바보소리를 들을까봐 지금까지 참아왔습니다. ... 난... 그녀에게 용서받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녀에게 내가 프라니바투스라고 자 신 있게 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말하면 그녀는 또 아파할걸요... ... 난 그녀의 아이를 죽였으니까요... 그냥 아무 것도 모르는 헤츨링으로 살겠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렵니다. 그녀를 다시 만났던 그 순간부터 새로운 사랑이 시작된 겁니 다. "로드님, 저 이름 안지어 주실거에요?" 아직은 그녀에게 로드님이라고 부르는게 어색합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 프라니바투스. 그래, 네 이름은... 프라니바투스다." "프라니바투스..." "... 그 이름을 가졌던 드래곤은 어리석게도 한 존재 때문에 미쳐버린 드래곤이다. 그리고 끝 내는 가장 사랑한 존재의 손에 죽게 된 불운의 드래곤이다. 잊지 말아라. 그의 죽음을. 드래 곤 역사상 가장 악하다는 억울한 누명만 쓰고 죽어버린 그 드래곤을 잊지 말아라." ... 너무 기쁩니다. 조금이라도 미쳐버린 내 사랑을 알아준 그녀에게 너무 기쁩니다. 다시 ' 프라니바투스'라는 이름을 받았습니다. 역시 날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 네. 시크. 잊지 않을게요. 당신을 슬프게 한 나를 절대 잊지 않을게요. 왜 주신이 내 기억을 지우지 않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아마도 그녀가 날 이미 용서했다는 것을 내게 느끼게 해주려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