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 남매 프롤로그 이 세계에서 가장 강대하고 완벽하다는 신들의 창조물 드래곤. 각각의 속성마다 독툭한 색깔과 성격을 지닌 이 지상최강의 생물체중 온 몸이 눈부신 은빛으로 이루어진 이 일족의 한 드래곤의 자신의 레어 에서 무언가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세이르아 올해 나이 2500살로 아직은 젋은편에 속하는 윔급의 실버드래곤이었다. 지금 그녀는 자신의 그 거대한 손가락보다 더 작은 물체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것은 아주아주 조그마한 알 두개였다. "슬슬 깨어날때가 되었는데." 세이르아는 괜시리 알을 톡톡-아~주 사알짝-쳐보기도 하고 이곳저곳 쳐 다보면서 흐믓한 미소를 지었다. 처음 알을 낳을때 두개씩이나 나올때 그녀는 정말 놀랐었다. 드래곤 역 사상 쌍.둥.이가 태어난 전례는 단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사실을 다른 드래곤에게 연락을 하자 하나같이 뭐 잘못 먹었어? 산 후조리를 잘해야지 헛것이 쯧쯧 라는 소리들을 듣고는 토라져서 다른 드래곤에게 연락을 일절 끊어버리고 그녀의 알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 었다. 며칠이 지나고 몇달이 지났는지 이제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저 하루빨리 달링(?)과의 사랑의 증거물인 이 아이들의 귀여운 모습 을 보고 싶을 뿐이었다 다시 며칠이 지났을까? 얼굴을 땅에다 딱 붙인체 알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눈에 한 알이 움찔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오오 드디어...드디어..." 너무나 감격에 겨워 무슨말을 해야 될지 몰랐다. 그저 기쁘고 흥분되어 서 열심히 알을 깨고 나올려는 자신의 아기에게 마음속으로 응원을 보 낼뿐이었다. "자 먼저 팔부터 쭉 펴서 알을깨야지 아가야. 힘내렴 넌 할수있어. 아 가야 힘..." 빠지직! "......." 그녀의 첫 아기는 온몸을 쫙 펴면서 자신의 몸을 감싸고 있던 알을 완 전히 박살을 내버리면서 깨어났다. 뭔가 생명의 신비스러움이나 다른 유부녀 드래곤이 말하던 아기의 팔하 나 다리하나 나올때마다 느꼈다는 기쁨과는 엄청나게 거리가 먼 탄생장 면에 그녀는 말을 이을수가 없었다. 그녀의 그런 처량한-왜?-마음을 아느지 모르는지 그녀의 아기는 얼굴을 푸르르 흔들더니 곧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면서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 다. 그러다가 아기의 눈은 그녀의 눈과 딱 마주쳤다. 아기가 태어나면 엄마라는 말부터 가르쳐주겠노라고 결심하고 있던 세 이르아는 아기가 자신을 쳐다보는 것만으로 머리속이 새하예지는 기쁨 에 무슨말을 해야될지 감이 안잡혔다. 그날 세이르아는 너무 기뻐도 머리속이 새하예지는 충격을 받는다는 사 실을 처음 깨달았다. 세이르아의 말을 빌리자면 천사가 내려와도 이렇게 귀엽지 않을 귀엽고 사랑스러우면서 우아하고 아름답고 순진하고 순수한-어이 어이-그녀의 아기는 한참을 그녀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고 처음으로 말을 꺼내기 시 작했다. "누구세요?" 너무나 귀엽고 옥구슬 구르는듯한 목소리에 그녀는 그 아기가 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예상했던 질문에 세이르아는 빙그레 웃으 면서 말했다. "내가 너의 엄마란다." "엄마?" "응 엄마. 널 낳은 엄마란다." "엄마?" 자꾸만 엄마라는 단어를 말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녀의 귀엽고... -이하생략-한 아기는 곧 뭔가 생각이 났는지 그 자리에서 발딱 일어나 서 아장아장 걸어서 그녀 가까이 가면서 말했다. "엄마. 헤헤헤 엄마." 지금 그녀의 얼굴의 한부분에 그 조그마한 얼굴을 문지르면서 어리광을 부리는 그녀의 귀엽고 -다시 이하생략-한 아기의 모습에 그녀는 흐믓한 미소를 지어야 마땅하겠지만 그녀는 더 큰 충격에 얼굴이 굳어졌다. "아 아가야." 떨리는 목소리로 아기를 부르자 그 귀엽고 -지겹지만 또 이하생략-한 아기는 두리번 거리다가 고개를 갸웃하고 물었다. "내가 아 아가야야?" "아니 넌 그냥 지금은 아가야란다. 이름이 아직 없으니깐." "이름?" "그건 나중에 가르쳐줄께 그것보다 너 어떻게 걸은거니?" "걸은거니? 걸었다? 걷다? 웅....걷는게 뭔데?" 그녀는 자신의 귀엽고 -제발 이제 그만!!-한 아기의 쬐그마한 발을 가 리키면서 말했다. "이게 발이라는거야. 그리고 그 발로 이 땅을 딛고 이동하는것을 걷는 거라고 하는거야. 그런데...우리 아가는 어떻게 걸은거니?" 슬프지만-세이르아의 관점으로- 이제부터 확 생략하고 그냥 귀여운 그 녀의 아기는 잠시 생각에 잠긴듯 이리저리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생긋 웃으면서 말했다. "그냥." "그냥?" "응 그냥..." 그녀는 해츨링이 막상 태어나면 그때서야 알아서 하나하나 부딧쳐가면 서 아이를 키웠던 여타 드래곤과는 달리 부지런하게 해츨링 키우는 방 법을 여러 드래곤에게 물어보면서 철저하게 준비했던 준비된 엄마드래 곤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익힌 그녀의 상식중 해츨링이 태어나면 하루 나 이틀뒤에 걷기 시작한다는 논리가 처음부터 깨지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곧 쌍둥이는 드래곤 역사상 전례가 없었기에 쌍둥이는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기로 하였다. 그런 사소한(?) 일보다 지금 막 중요한 일이 새로 생긴것이다. 바로 그 녀의 또 다른 알 하나가 움찔거리기 시작했던것이었다. 그녀는 이 아기만큼은 자신을 배신(?)안하고 자신에게 생명의 탄생을 신비롭고 가슴 벅찬 기쁨을 줄꺼라고 믿으면서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녀의 첫 아기는 엄마의 눈길을 따라가다가 지금 막 움찔거리고 있는 알을 쳐다보게 되었다. 이번 아기는 세이르아의 믿음에 배신 때리는 짓을 하지 않고 은빛의 손 하나부터 불쑥 알을 깨고 튀어나왔다. 그리고 이리저리 바둥거리면서 손을 휘젖는것이었다. 그제서야 다른 엄마드래곤들이 말하는 생명탄생의 기쁨을 맛볼수가 있 었던 세이르아였다. 배경설정 : 이 두 남매 드래곤이 주로 모험을 벌이는 대륙은 그리노 대 륙으로 이 대륙은 고딩때 구상했던 글인 엘리멘탈 소드에서 구상했던 대륙으로 언젠가는 이 부끄러운 글을 보기좋게 고쳐서 여러분들께 보였 으면 합니다. 이 대륙의 본격적인 설명은 본문에서 하게 될테니 여기서 는 넘어가겠습니다.^^;;;; 테이 : 본 글의 주인공인 드래곤이지만....ㅡㅡ;; 항상 누나에게 당하 고 누나에게 잡혀사는 비운의 드래곤. 종족은 실버드래곤 어머니가 실 버일족이고 아버지는 레드일족이다. 성격은 착하고 순진하다. 그리고 어렸을때 신물나게 읽었던 용사들의 소설의 영향으로 엄청난 정의감을 자랑한다. 본명은 테이루아 이고 테이는 애칭이다. 티아 : 30분 먼저 알 깨고 나온 테이의 쌍둥이 누나. 주인공인 테이를 엄청나게 갈궈대는 누나로 주위에서 항상 아빠의 피를 다 이어받았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성격은 급하고 난폭하다. 그러면서도 은근슬쩍 약 자를 도와주고, 가끔 눈물을 보이는 한마디로 종잡을 수 없는 여자의 맘은 갈대라는 표현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여자. 본명은 티아루아 이고 티아는 애칭이다. 세이르아 : 테이와 티아의 엄마. 실버일족인데도 불구하고 레드일족을 사랑(?)하게 된 덕분에 성격이 불같은 딸을 가진 불행한 부인...아이들 을 잘 이해하고 보듬아주는 성격이긴 하나....시도 때도 없이 동생을 괴롭히는 티아때문에 골머리를 안고 있다. 오스타인 : 테이와 티아의 아빠. 레드일족인데도 불구하고 성격이 온화 한 아버지이나...그 피(레드일족의 피)가 어디 갈리가 없기에 일단 화 가 나면 같은 레드일족도 일단 고개부터 흔들고 보게 만드는 다혈질적 인 면도 있다. 그래도 보통때는 친절한 성격탓에 세이르아가 그의 아이 를 낳을 결심을 하게 만들었으니.... 드래곤 남매 1화 탄생(1) 이 이야기는 나의 아들 테이루아가 나에게 이야기 해줬던 자신의 모험 담을 글로써 남기게 된것이다. 드래곤 일족에게 있어서 기적과도 가까 운 쌍둥이의 탄생은 이제 전설이 되어가고 있다. 만약 이런 기적이 다 시 일어나지 않는 한은 이 일은 영원히 전설로 남게 될 것이다. 태어나면서부터 범상치 않게 태어난 이 남매가 후에 둘만의 아이를 만 들자는 약속을 하고 지금 그 약속을 지키게 되기까지 그들이 겪은 모험 은 여러 모험을 해봤던 나조차도 재미있는 이야기라서 이렇게 글로 남 기게 된 것이다. 만약 그들이 이 책을 보게 되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테이 녀석은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허허 웃고 끝내겠지만 티아는 틀림없이 이 책을 불태워 버릴려고 덤벼 될것이기에 이 책은 마법으로 봉인해서 몇천년후에 내 레어에 다시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러니깐 아마 내가 죽고 나서 몇천년후에 이 레어에서 살려고 들어온 드래곤이나 드래곤의 레어를 노리는 인간중 어느쪽이 먼저 이 책을 발 견할지 모르지만 그건 모두 신의 뜻에 맡길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나에게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를 남기게 도와준 내 아들 테이루아에게 감사를 표하고, 내 딸 티아루아에게 허락없이 이런 글 을 쓴걸 사과하는 바이다. 그리고 정말 마지막으로 내 아들과 딸에게 너희들을 사랑한다는 말을 남기고 싶다. 테이와 티아 이 아빠는 진심으로 너희들을 사랑한다. 그리노력 3271년 오스타인 씀 너무나 어둡고 답답하다는 감정.... 그것이 내가 정신이 들고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이었다. 그리고 그 감정 은 곧 이 곳에서-뭔지는 모르겠지만-빨리 나가야된다는 조급함으로 바 뀌었고 난 잘 움직이지도 않는 손과 발을 최대한으로 움직이기 위해 노 력했다. 그런 내 노력을 하늘이 보우하사 인지 조금씩 날 답답하게 만들었던 ' 그것'을 부수는데 한몫했다. 먼저 팔 하나가 밖이라고 생각되는 시원한 공간으로 빠져나간것이다. '이제 조금만 더..조금만 더...' 라고 생각하며 있는 힘을 다하려고 할때였다. "으꺄갸갸갸~~" 무언가 모를 힘이 날 감싸고 있던 '그것'에게 가해지는 걸 느낀 순간 나는 비명을 지르면서 구르다가 무언가에 강하게 부딧치게 되었다. 덕분에 날 감싸고 있던 '그것'은 완전하게 부서지면서 난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지만 어딘가에 머리를 부딧치는 바람에 그저 정신없이 헤 롱될 수 밖에 없었다. "저런 동생을 차면 어떡하니?" 부드럽고 인자한 목소리가 들렸다.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도와줄려구." 퉁명스런 목소리도 들렸다. "그 그랫니?" 부드럽고 인자한 목소리가 다소 황당하다는 목소리로 말을 했을때야 비 로서 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내가 먼저 본것은 엄청나게 크고 은빛 물체(?)였 다. 눈이 부실정도로 은빛 물체(?)를 따라서 눈을 돌리자 폭이 점점 줄 어들다가 끝에 달린 머리라고 생각되는 것이 날 걱정스레 바라보고 있 었다. 약간 옅은 황금색 눈은 방금전 들린 인자한 목소리의 주인공이라는 것 을 나타내듯이 인자한 눈빛으로 날 걱정스레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누굴까? 또 왜 저렇게 큰거지?' "엄마 근데 동생이 뭐야?" 아까의 퉁명스런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난 그쪽으로 고개를 돌려서 목 소리의 주인공을 찾았다. 그곳에는 방금전 그 큰 은색의 그분과 닮은 은색의 조그마한 생물이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 분에 비하면 작다는거지 그래도 내눈에는 나보다 좀 크게 보이기도 하였다. "동생이라는 건 너보다 약간 늦게 태어난 엄마의 아기가 바로 너의 동 생이 되는 것이란다 아가야. 그러니깐 넌 누나가 되는거야 알겠니? 다시 그 인자한 목소리가 말을 했고, 방금전 퉁명스런 목소리의 말과 조합해서 생각해 볼때 저 커다란 분이 엄마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 다. 다만 엄마가 뭘까? "엄마가....뭐예요?" 난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괜히 저 분의 마음 상하게 만들면 혼날꺼 같아서 목소리가 자연스레 조심스러워 졌다. 내가 그 분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을때 내 머리옆에서 그림자가 드리워 졌다. 고개를 돌리니 엄마라는 분과 비슷한 하지만 엄마에 비해서 엄청 나게 작은 아까 그 생물이 아니 엄마라는 분이 누나라고 한것 같았으니 깐 일단 누나라고 생각되는 이가 날 바라보면서 내 의문에 답을 해주었 다. "너 바보니? 엄마는 우리를 낳아주신분이니깐 엄마인거야. 알겠어." 웬지 모르게 알것 같기는 하였다. 따스한 기분이 드는 단어인 엄마. 내 앞에 그 거대한 분이 내 엄마라는 생각이 들자 괜시레 기분이 좋고 포 근한 느낌이...들어야 되는데 이 누나의 바보라는 말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웬지 무지 기분나빠진다. 그래서 약간 인상을 쓰면서 그 누나를 쳐다보자 그 누나도 날 가만히 쳐다보는 것이다. 얼마간 쳐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뭔가가 날아와서 내 옆구리를 가격했고 난 그대로 데굴데굴 굴려버렸다. "어머! 아가야 동생을 왜 또 발로 차니?" 엄마의 놀란 음성이 들려왔고, 난 뒤이어서 맞았다는 생각이 듬과 동시 에 그제서야 아프다는 기분을 느꼈지만 울고싶다는 기분보다는 황당한 기분밖에 안들었다. 내가 뭘했다고 발로 차는거야라는.... 그 이유는 금방 밝혀졌다. "재가 기분나쁘게 자꾸 쳐다보기만 하잖아!" "그 그게 이유였니?" '겨우 그런 이유야? 내가 맞은 이유가?' 난 속에서 무언가 울컥하는 기분을 느꼈고, 후에 이것이 분노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무튼 화가 난 나는 나도 한대 때려줄 생각에 힘차게 일 어섰다....가 아니고 일어날 수가 없었다. 아무리 낑낑대고 힘을 써도 도대체 발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몇번 손을 짚고 일어설려고 했지만 엎어지거나 그대로 주저앉을 뿐 도대체가 일어서지를 못하니 무슨 복수 를 할 수 있겠는가? 결국 분에 못이겨 씩씩대다가 결국 울음을 터트릴 수 밖에 없었다. "흐에엥 엄마~~~~" 그리고 내 생애 첫 울음과 동시에 난 처음으로 나도 모르게 엄마를 부 르게 되었고 엄마는 그런 나를 달래느라 누나를 야단치시는 걸 잊어버 리게 되었다. 엄마가 달래줘서 겨우 울음을 그친 나지만 여전히 분이 분이 풀리지 않 아 내 누나라는 녀석을 째려봤지만 내가 째려보는 것보다 몇배는 더 무 섭게 째려보는 바람에 고개를 돌릴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불리한 것은 누나는 걸어서 날 발로 찰 수 있지만 난 아직 걸음마는 커 녕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한다는 사실이다. "거참 태어나서 한시간도 안되서 걸어다니다니...." 엄마는 그런 누나를 여전히 황당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엄마 나 배고파." 누나는 그런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신의 배고픔을 호소했 다. 근데 배고파? 배고픈게 뭐지? 엄마는 누나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옆에서 무언가 꺼내서 누나앞에 내 려놓았다. 그러자 누나는 엄마가 꺼내놓은걸 맛있게 뜯어먹기 시작했 다. "너는 배 안고프니?" 엄마도 아직 이해가 잘 안가는 배고프냐는 말을 내게 하셨고, 난 곧 배 고픈게 뭔지 다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나 그 생각은 누나가 무언가를 뜯어먹고 있는 장면을 보고는 자연스럽게 무슨 뜻인지 알게 되었다. 아마도 생존의 법칙상 자연스럽게 터득하였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응 나도 배고파." 그리고 내 앞에는 나보다 조금 큰 털이 듬성듬성 나 있는 음식(?)이 놓 여졌다. 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새로운 지식하나를 익힌 즐거움을 만끽하면서 음식의 팔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을 뜯어서 먹기 시작했다. 난 아직 자리 에서 일어나서 걷지를 못하기에 엄마는 음식 이곳 저곳을 뜯어서 내앞 에 내려 놔 주었다. 뭐 처음에는 엄마가 찢어주었다는 것을 몰랐다. 음 식의 곳곳이 이리저리 공중에서 떠서 내 앞에 척척 내려오길레 난 처음 에 먹는거는 다 그런가보다 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누나가 언제 왔는지 내 옆에 와서 내가 먹는 모습을 빤히 바라 보는 것이다. '우씨 뭐야 아까는 자기를 쳐다본다고 발로 차더니 왜 누나는 날 쳐다 보는거야? 밥먹는거 첨보나?' 만약 내가 그때 이 말을 했다면 누나는 틀림없이 처음봤다고 말하면서 누나한테 대들었다는 이유로 날 팻을것이다. 뭐 사실 틀린 말은 아니 다. 누나도 태어난지 얼마안되었기에 남이 밥먹는거 처음 보는게 맞긴 맞는 말이다. 근데 문제는 그게 아니고 가만히 내가 먹는 걸 쳐다보던 누나가 아무 말도 없이 내 앞에 놓인 음식중에 가장 먹음직스러 보이는 가슴살-이라 는 것도 나중에 알았다-을 가져가더니 먹어버린 것 이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자신의 몫을 먹듯이 내 밥을 먹어버리는 누나를 난 그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었고 그 틈에 누나는 남은 가슴살 하나를 마저 먹어 치워버렸다. "우...." 난 또다시 울분을 느꼈지만 다시한번 설명하자면 난 현재 걷기는 커녕 일어날 수도 없기에 맨 처음 배운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식(?)중 하나인 울면서 엄마찾기를 다시 시도할 수 밖에 없었다. "우와아앙 엄마 누나가 내꺼 뺏어먹어!" 그러고 보니 이때 처음 누나를 불렀던 것 같다. 밉긴 했지만 그래도 그녀가 내 누나라는 걸 인정한 순간인 것이다. "아가야 동생걸 뺏어 먹다니 그러면 안돼." "하지만 배가 아직 고프단 말이야." "그렇다고 동생걸 뺏으면 안되는 거야. 그럴때는 엄마한테 더 달라고 하렴." "응 알았어 앞으로는 그렇게 할께." 설마 그걸로 끝? 만약 그걸로 끝내고 말겠다면 난 더 울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엄마가 새로 음식을 더 내주면서 나눠 먹으라고 했고, 덤으로 누나보고 나한테 미안해 라는 말을 시키게 하였기에 그만 울기 로 했다. "미안해 동생아." ....근데 말이야...전혀 미안해 하는 것 같지 않은 표정으로 미안하다 고 말하고는 새로 나온 음식중에 맛있어 보이는 부분만 뜯어먹는 누나 의 말을 믿어야 되나? 그날 나는 제일 맛있어 보이는 부분은 결국 먹지 못한체 울분을 삼키며 걸음마 연습에 들어갔다. 먹을거 다 먹고 쭉 뻗어 자는 누나를 살기어 린 눈으로 봐주고는 나도 누나를 찰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 에 죽을 힘을 다해 걸음마 연습을 하긴 하는데 이게 또 왜 그렇게 힘들 고 어려운지.... 그리고 그 후 걸을 수 있게 되어도 난 누나를 결코 찰 수 가 없었다. 항상 내가 먼저 당하게 되고 또 뭔 놈의 여자가 나보다 무식하게 힘이 쎈지.... 그런 사실을 아직까지 모르는 그때의 나는 두걸음 힘들게 걷고는 힘에 겨워 그대로 엎어져 자버렸다. 꿈속에서의 나는 누나를 뻥뻥 차버리는 기분좋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내일부터 닥쳐오는 현실은 결코 그렇지 못한 암울한 상황이었지 만 그래도 꿈만큼은 내 기분을 즐겁게 해주었다. 계속 드래곤 남매 1화 탄생(2) 툭툭... 누군가가 내 뺨을 살며시 쳤다. 툭툭.... 아마 일어나라고 하는 것 같은데 난 좀더 자고 싶단 말이야...어제 누 나를 차기 위해서 걸음마 연습을 너무 심하게 했는지 아직 졸려...그러 니 건드리지 마...라고 웅얼 웅얼 거리며 몸을 뒤척였다. 뻥! 갑자기 내 등을 무식하게 후려치는 바람에 난 몇바퀴 구르다가 벽에 부 딧쳤다. 덕분에 잠은 확실히 깨버렸다. "우씨 누구야!!" "나야." 그러면서 누나는 기분 나쁘다는 투로 날 쳐다보았다. 그러나 단잠을 방해받은 난 기분이 더 나빠기에 째려보면서 말했다. "왜 때리고 그러냐구!" "깨워도 안 일어난게 누군데." "난 더 자고 싶단 말이야!" ".....너 더 맞을레?" 흠칫 난 누나의 무시무시한 협박에 사방을 둘러보았다. 바로 이 상황에서 날 구해줄 엄마를 찾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엄마는 먹을거 사냥하고 오겠다고 아까 나갔어. 그러니깐 이제 어떡할 꺼야?" "....." 내 유일한 구원자가 없다는데 내가 무얼 할 수 있겠는가? 그저 "힝 누나 때리지마." 라고 최대한 불쌍한 표정으로 울먹일 수 밖에...-아 내 자존심이여..- 다행이도 내 동정어린 시선이 통했는지 아니면 내가 울던 말던 관심이 아예 없는건지-아마 후자쪽 같다- 누나는 바로 나에게 용건을 말해주었 다. "심심해. 같이 놀자." "....." 자신이 심심하다는 이유로 곤하게 자고 있는 동생을 무식하게 발로 차 서 깨우는 이 드래곤이 바로 내 누나라는 사실이 내 인생에 있어서 최 대의 불행이 될 것 같은 예감은 바로 그때부터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마다 난 애궂은 창조신만 씹기 시작했던 것 이다. 실제로도 그 후 누나는 내 사정따위는 알바 없다는 듯이 자신의 이익만 으로 날 부려먹거나 괴롭혀 되었다. 아무튼 지금 상황은 누나가 심심해 하는 상황이고 난 이제 잠은 다 깨 버렸으니 누나 말대로 같이 놀던지 어쩌던지 해야 되는 상황인데..... 문제점이 하나 생겨버렸다. "뭐하면서 놀껀데?" 그렇다 이제 태어난지 만 하루인 해출링 더구나 난 아직 걸음마도 못하 는 해출링이건만 둘이 무얼 할 수 있겠는가? 뭐 인간들의 놀이 중 꼬맹 이 둘이 앉아서 하는 놀이도 꽤 있긴 하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후에 책 을 보거나 아니면 유희중에 배우게 되는 한마디로 먼 훗날의 일이고, 지금 당장은 둘 다 할게 없었다. 그러나 누나는 천부적으로 무언가 저지르는-즉 말썽- 방법을 터득하고 태어났는지 항상 기상 천외한 방법으로 날 데리고 놀았다. -말 그대로 다 말 그대로 날 데리고 노는게 날 괴롭혀되는것이란 말이다!- 지금도 걱정말라는 표정으로 누나가 씩 웃으며 말했다. "웅 아까 엄마한테 물어본게 있어. 허락도 받아놓았고." "응?" "내가 일어나서 엄마한테 저기 동굴이 뭐냐구 물어봤거든..." 누나가 손으로 가르키는 쪽을 보니 누나 말대로 원 시커먼 구멍이 것도 아주 큰게 떡하니 있었다. 그제서야 엄마 레어를 구석구석 둘러보니 방 금 누나가 말한 구멍이외에도 반대쪽에도 구멍이 있었는데 그 쪽은 약 하지만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아마도 그 쪽이 출구 같았다. 그런데 "근데 저기에 뭐가 있는데..." 저기 뭐가 있길레 누나가 날 깨운것인가 하는 궁금증에 물어보았다. 그 러자 누나는 마치 큰 일을 가르쳐 준다는 것처럼 과장된 표정으로 말했 다. "응 저기에 엄마 보물창고가 있데." "보물창고? 그게 뭔데?" "응 뭐라더라 아 반짝반짝 빛나는 것들을 모아둔곳이레." "반짝반짝 빛나는거?" 그 말과 동시에 아마 그 때 내 눈도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으리라...드 래곤의 레어를 뒤지면 억만장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이 인간들에게 펴져 있는데 그 말은 사실이다. 드래곤은 유난히 반짝거리는 보석이나 보물 들을 좋아한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뭐 습성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아주 진지하게 생각해 본적이 있고 누나에게 그렇게 말해본적이 있다. 그러나 그런 나의 철학적인 생각을 '뭐하러 그런데 머리 쓰냐? 그냥 좋 으니깐 많이 모아놓으면 장땡이지' 라는 말로 멍청이 취급해버린 적도 있었다. 뭐 어찌 되었던 그 때는 나도 본능적으로 반짝 반짝 빛나는 것을 보고 싶다는 욕망이 무럭 무럭 솟아났다. "갈꺼지?" "갈께 갈께." 누나의 확인사살(?)적인 말에 난 얼른 고개를 끄덕이고 일어났다. 아니 일어 나고 싶었다. -이말 어제도 쓴거 같은데...- 다리에 힘이 없어 털 썩 쓰러져 버린 나.. 누나는 그런 나를 보며 한심하다는 듯이 중얼 거렸다. "뭐야 너 아직도 못 걷는거야? 바보아니야 걷는게 뭐가 어렵다구." 난 그때는 내가 아직 못나서 못걷는 줄 알고 누나 말에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이 울먹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중에야 해출링들은 태어난 지 하루나 이틀정도가 지나서야 걸음을 배운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된 뒤로는 그 때 그 말이 그렇게도 억울 할 수가 없었다. 태어난지 한시간만에 걸어다니는 누나가 훨씬 이상한 거란 말이다! 남자가 쫀쫀하게 뭐 그런 까마득한 옛날일로 억울해 하느냐고 물어본다 면...나도 할말은 있다. 천년이다! 자그만치 천년동안 누나는 틈만나면 걸음마도 늦는 늦동이라고 놀려되었는데 당신같은면 쫀쫀한걸 따질 수 가 있겠는가? 아무튼 난 꼭 그 반짝반짝 빛나는 물건을 보고 싶었지만 어쩌랴 기어서 갈 수도 없는걸... "힝...누나 미안...누나 혼자 갖다와." 그저 아쉬운 마음에 울먹이며 누나나 챙겨줄 수 밖에.. "에고 울지마! 누나가 데려가줄께." "어?" 지금 내 귀가 잘 못 된건가? "누나가 데려가 준다구." 우와 누나 이제보니 동생 챙겨줄주도 아는구나. 역시 누나가 최고야 음 음. 이라고 혹시나 생각하는 당신. 나도 솔직히 그런 생각 했었다. 그 러나 동생을 업고가는 따듯한 누나의 사랑 따위와는 애초가 거리가 먼 방법이었다. "자 가자." "응. 응 헤헤 누나 고마...어 누나 뭐하는...우꺄갸갸!" 누나는 내 꼬리를 잡더니 그대로 끌고 가는 것이었다. 뭐 해출링의 몸을 조금만 생각해본다면....그 짧은 손과 다리 그리고 머리와 몸의 1대 1 크기 더구나 등에는 날개 이런 몸으로 어부바 같은 방법은 애초에 무리라는건 조금만 생각해보면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는 데 그러나 태어난지 하루인 해출링이 거기까지 무슨 생각을 할 수 있었 겠는가.... 누나의 어부바를 기대한 나는 그저 비명을 지르며 끌려갈 수 밖에 없었 다. "악악 누나 아파! 우악 돌이! 악 턱에! 악 배가! 우아앙 아파!" "아 거 되게 시끄럽네 데려가 주는데 무슨 그런 말이 많아? 조용히 따 라 오기나해." "우아아앙 누나 너무해!" 그리고 그 순간 또 하나 느낀 사실은 올 누나 역시 힘 하나는 엄청 세 다는 것이다. 엄마 보물 창고까지 해출링의 걸음으로는 꽤 먼거리를 같은 해출링을 끌고 논스톱으로 갈 수 있는 체력이 과연 태어난지 만 하루가 지난 해 츨링의 체력이란 말인가?창조신이여 도대체 당신은 무슨 생각으로 누나 를 만든 것 입니까? 아니 왜 하필 나를 그녀의 동생으로 만드신거란 말입니까아! 그렇게 한참을 가던 누나가 멈쳐섰다. "흑 다온거야? 흘쩍." "아니 길이 세갈레야. 웅 이런 말은 못 들었는데...뭐 아무데나 가보 지." 그러면서 날 다시 질질 끌고 갔다. 어이 잠깐 만약 그 길이 아니라면 난 어떻게 되는거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오싹한 기분을 느낄때 누나가 멈처서서 주위를 두리번 거리는 것이었다. 그 방에는 천장에 빛의 구가 빛나고 있었고, 주위에는 책이 그득했다.- 물론 그게 책이라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되었다.- "잘못 왔나보다. 다른 곳으로 가자." 라면서 다시 날 질질 끌고 그 곳을 빠져나왔다. 분명 길이 세갈레라고 했지? 근데 만약 또 엉뚱한데로 가버리면....그 런 나의 예상을 누나는 훌륭하게 맞게 만들어 주었다. 젠장... "여긴 또 뭐야?" 그 곳은 아까 서재보다 절반이나 더 작은 곳 이었고, 생전 처음보는 - 아 우리 태어난지 아직 하루밖에 안되었으니 모든게 처음 보는거지...- 물건들 뿐이었다. 나중에야 그 곳이 인간들이 쓰는 여러 물품들을 놔두는 곳이라는 걸 알 았지만 어찌 되었던 우리의 목적지는 아닌게 분명했고, 난 다시 누나에 게 끌려서 다른곳으로 가야 되었다. 그 때의 나는 이미 울기도 포기했고, -목이 너무 아파서- 그저 이 고통 이 빨리 끝나기를 바랠 뿐이었다. 흑 불쌍한 내 뱃가죽 그리고 내 턱 흑흑흑 세번째에서야 제대로 길을 찾은 -당연하지 남은 길은 하나 뿐인데- 누 나는 멈춰서서 감탄사부터 뱉었다. "우와!" 난 누나 손에서 벗어나자 마자 아픈 배와 턱부터 만져보느라 조금 후에 야 누나가 신나게 보물들을 만져보는 걸 구경할 수 있었다. 그 곳은 산이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것들의 산....그리고 가장 많은 건 역시 누런 금들이었고 형형색색의 보석들과 각종 명검들과 무기들 왕관 과 목걸이 팔찌 기타등등...아마 인간들이 보았다면 정말로 눈물 나는 광경이었을 것이다. 나중에 인간 세상을 여행하면서 이런 보물들이 어떤 취급을 받게 되는 것인지 알게 되고나서야 왜 그렇게 인간들이 우리들의 레어를 목숨걸고 찾을려고 하는지 알게 되었다. "우와 멋지다! 이야 이건 뭘까? 아 머리에 쓰는건가 보네. 이야 이건 뭐 어떻게 하는거지?" 누나는 보물의 산더미를 헤치며 신나게 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부러웠던 나는 나도 어떻게 하든 하나 주워서 가지고 놀려고 노력을 했 지만.... 어쩌랴 가뜩이나 힘도 없는데 방금전까지 끌려다니느라 아파서 더 힘이 안나는데.. "누나." "와와 이건 또 뭘까?" "누나!" "응 동생아 이것봐 멋있지?" "힝 누나~~~!!!" "아 귀아파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누나 히잉 나도 나도." 난 지금 움직일 수 없다는 표현을 손을 마구 흔들면서 표현 하면서 최 대한 애처롭게 누나를 보면서 도움을 요청했다. 아니 솔직히 이야기 하자면 절반은 포기한체로였다. 어제부터의 누나 행적을 생각하면 과연 나한테 잘 해 줄까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에 거의 자포자기 식으로 손만 흔들어 된 것 이다. 그러나 내 자포자기식의 손 흔드는게 통했는지 누나는 주섬주섬 뭔가를 챙겨서 나에게 오더니 보석과 왕관으로 치장해주는 것이었다. 난 눈을 희동그래 뜨고 누나를 바라보았다. 그런 나에게 누나가 미소를 보이며 물었다. "어때 마음에 들어?" "응 응." 난 정말로 마음에 든다는 표현으로 최대한 머리를 크게 끄덕였다. 덕분 에 머리에 씌운 왕관이 탱그런 소리를 내면서 바닥에 굴렸고, 미소가 머무는 내 얼굴에서 급속도로 핏기가 가셨다. '우왕 난 이제 죽었다.' 감히 누나가 치장해 주는게 마음에 안든다고 내동댕이 치냐!라는 불효 령과 발길질에 미리 겁을 집어먹은 나에게 뜻 밖에도 조심해야지 라는 누나말과 떨어진 왕관을 손수 집어서 내 머리에 다시 씌어주는 누나에 게 난 너무나 감동해버렸다. 누가 말했는지 모르지만 불행을 많이 맛본 사람은 조그마한 행복에도 엄청나게 감동한다 라는 말 정말 맞는 말이었다. 이런 누나의 조그만한 친절이 지금까지 갖고 있던 누나의 악감정을 모 조리 녹여주었고, 지금 내 눈 앞에 서있는 누나는 나에게 천사로만 보 였다. ....근데 드래곤 천사라...웬지 상상이 안돼는군. "얘들아 어디 있니 밥먹어야지....얘들이 보물창고에 갔나?" 위에서 엄마 목소리가 들리자 누나는 그 즉시 네 라고 대답하고는 날 쳐다보았다. "동생아 지금 나는 너 데리고 가기에는 힘에 좀 부치는 것 같거든. 그 러니깐 엄마한테 가서 너 데려와달라고 부탁할테니깐 여기서 잠시만 이 거 가지고 놀고 있어." 라고 하면서 동생이 귀엽다는 듯이 쓰다듬어 주기까지 한다. 흑흑 누나 지금까지 누나를 난 잘못 봤나봐 이렇게 착하고 좋은 누나였 는데 나 누나 동생이어서 정말 행복해. 라는 눈빛을 보내주자 누나는 후후후 웃으면서 빠르게 아장아장 걸으면 서 -이런 표현이 맞을려나?- 올라가버렸다. 그리고 잠시후에 엄마가 날 데리러 오실때까지 난 누나가 놓고 간 장난 감을 갖고 놀았다. "아이고 우리 막내 재미있게 놀고 있어어?" 반가운 엄마 얼굴이 환하게 미소지으며 날 내려다 보자 가뜩이나 기분 좋은 상황에서 더욱 더 기분이 좋아진 나도 환하게 미소지으면서 고개 를 끄덕엿다. "응 엄마 이거 봐. 누나가 이거 전부다 나 가지고 놀라고 갖다주었다." "어머나 누나가 벌써 동생을 챙겨? 우리 막내 기분 좋았겠네." "응 기분좋아 헤헤헤 나 엄마도 좋고 누나도 좋아." "그래 그래 자 그만 놀고 가서 밥먹자. 우리 막내는 이따가 걸음마 연 습도 해야지." "네." 내 대답이 끝남과 동시에 내 몸은 허공에 떳다. 아마도 엄마가 띄운것 이리라. 난 무섭다기 보다는 신기하다는 기분에 마냥 즐겁기만 하였다. "응? 막내야 너 배는 왜 그러니?" "아 이거 아까 나 걸을 수가 없어서 누나가 날 여기까지 끌고 와줬어." "그 그러니?...아 안 아프니?" "쬐금 아프지만 괜찮아. 이렇게라도 안했으면 난 여기 놀러오지도 못했 는걸." "어쭈 너 녀석도 벌써부터 누나 감싸돌기냐. 후후후 엄마의 남매가 정 말 사이가 좋아서 엄마가 너무 기분이 좋구나." "나도 기분 좋아. 근데 역시 배는 조금 쓰라려." "후후후 그래 금방 안아프게 해 줄께." 그러면서 엄마입이 뭐라고 중얼거리자 내 몸은 금방 빛에 휩싸였고, 빛 이 사라지자 내 상처는 아주 깨끗하게 나아 있었다. "와 신기하다! 이제 하나도 안아파 엄마. 이거 어떻게 하는거야?" "너도 나이를 먹으면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단다." "응." 그렇게 기분좋은 우리 모자는 엄마 레어까지 오게 되고 난 먼저 밥을 먹고 있던 누나 옆에 앉아서 식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근데 말이지.. . "아 동생아 너 먹을거 여기 남겨놨어. 내가 먹기 좋게 찢어 놨다." "어머나 누나가 동생 너무 잘 챙겨 주네. 이러다가 나중에 엄마가 할일 이 없어지겠다." "헤헤헤." ".........." 기분좋은 모녀의 말과는 달리 내 기분은 최상급에서 갑자기 최하급으로 뚝 떨어졌다. 누나가 찢어놓은 음식들....제일 맛있는 부분은 온데 간 데 없고 살코기(?)가 적은 부분만 남아 있었던 것이었다. 그럼 그렇지 이게 당연한거지....누나한테 뭔가 바랜 내 잘못이지 뭐겠 어. 결심했어. 오늘 하루내에 반드시 반.드.시 걸음마를 완벽하게 해 내겠 어!! 두고보자 누나 언젠가는 나도 뻥뻥 차줄테니깐!! 난 복수를 다짐하며 되도록이면 안 들키게 누나를 째려보면서 배를 채 웠다. -째려보는거 들키면 틀림없이 맞을테니깐-...에휴 내 팔자야 계속 드래곤 남매 1화 탄생(3) 오늘도 어김없이 날이 밝아왔다.-당연한가?- 난 어제 저녁 늦께까지 걸음마 연습을 해서인지 상당히 지쳐서 일어날 생각을 못했다. 잠결에 엄마가 사냥 갖다온다는 말을 들은 것도 같은데.... 문득 누나 생각이 나서 벌떡 일어났다. 잠은 완전히 싹 달아나고 급히 주위를 둘러보니 내 옆에서 누나가 곤히 자고 있었다. 어제 늦게까지 -내가 지쳐 잠이 들때까지- 엄마 보물 창고에서 놀아서 그런지 나보다 더 늦게까지 자고 있는 누나... 숨을 색색 쉴때마다 누나의 등이 오르락 내리락 하였다. 후후후 여기서 누나품에 가서 다시 잠드는 귀여운 동생 어쩌고 하는 전 개를 상상하시는 분들은 아마 없으리라 본다. 누나의 행적(?)을 이미 알고 있는 분이 대부분일테니깐... 그렇다면 내가 할 행동은? 그렇다 바로 그것이다!! 복.수. 어제 나에게 누나가 했던 그대로 발로 뻥 차주고 그리고 '심심해 놀자' 는 말을 해주는 것이다. 크하하하하 생각만 해도 짜릿하고, 속이 다 풀어지는 기분이다. 험험 이럴때가 아니라 누나가 깨기 전에 빨리 작업(?)에 들어가야지. 먼저 깨우는 작업부터 해야겠지. 톡톡... "누나." 난 최대한 작은 소리로 누나를 부르고, 아주 사알짝 누나를 두어번 쳤 다. 지금 깨어나면 재미 없으니깐... 누나는 반응이 없다. 나이스!! 아 그래도 모르니깐 이번에 한번 더 조금 힘을 넣어서.. 톡톡... "누나야~~." 반응 없음. 모든 준비 완료. 어제 힘들게 걸어 다니면서 단련시킨 발길 질의 맛을 드뎌 누나에게 먹여 줄 수 있는 순간이다. 흠흠 자 흥분 가라 앉히고, 복수의 시작이다. 뻥! "누나야 나 심심해 놀자~~." 아 이 쾌감 그래 바로 이 맛이구나. 아마도 이 쾌감때문에 누나는 나를 그렇게 괴롭혀 된 걸꺼야. -지금 생각해보면 이때 나 무지하게 망가져 있었던 것 같다- 누나는 두어번 구르더니 부스스 일어나서 나를 쳐다보았다. 쩝 그대로 안 일어나면 한대 더 차 줄수 있었는데.... "같이 놀자고?" "응 응 놀자 누나야 나도 이제 걸을 수 있다." 그렇다. 오로지 누나에 대한 복수심 하나로 버터가면서 어제 열심히 연 습해서 걷게 된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인간...아니 드래곤...아니 해 출링 승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렇게 감격에 젖어 있을때 누나가 쓱 일어나더니 나에게 걸어왔다. 젠장 그때 누나가 살기를 안띠고 무표정으로 다가 올때 부터 알아챘어 야 되었는 데.... "그래 놀자 동생아." "응 응 뭐하면서 놀껀데?" "발차기 놀이." "에? 그게 무슨...우꺄갸갸갸!" 누나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해도 하기 전에 강력한 발차기가 나에게 날아왔고, 난 누나를 찼을때 누나가 두어번 구른거에 비해서 십여번은 넘게 굴러서 벽에 부딧혔다. 그렇다. 난 잊고 있었다. 단지 복수심에 불타서 가장 중요한 사실을 잊 어 버린 것 이었다. 누나는 도저히 해출링이라고 보기에는 힘이 너무 강했다는 사실을.... 그리고 나중에서야 알게 된건데 누나가 정말로 크게 화가 났을때는 표 정이 무표정해진다는 사실이었다. 결국 결론은 뭐냐고? 결론은 누나는 지금 무지하게 화가 났다는 사실이고 -겉만 봐서는 그렇 지 않은 것 같은데- 난 이제 죽도록 맞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제발 후자까지 맞아 떨어지지 말았으면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희망사항이고 화가 난 누나의 발길질이 사정없이 정말로 사정없이 내 온 몸을 유린하였다. "흐에에엥 누나 잘 못했어! 누나 아파!" "시끄러워! 넌 오늘 죽었어!" "흐엥 누나아!! 엄마아!!" 그리고 엄마가 돌아오셨을때 나는 기절 상태였다. 나중에 엄마가 치료 마법과 회복 마법을 걸어 주셔서 간신히 정신은 차렸지만 역시나 그 동 안 누나는 살코기는 다 먹어버리고, 찌꺼기나 다름 없는 음식만 남겨 놓았다. 그 날 얻은 일생일대의 교훈 하나...누나한테는 절대 개기지 말자. 그것이 곧 내가 살아가는데 신조가 되버릴 줄이야.... 그 때는 어찌 알 수 있었겠는가? "자 다 먹었으면 이제 갈 준비 해야지." 울분을 달래면서 맛없는 밥(?)으로 -이 밥이 오크였다는 건 나중에야 알았지만- 허기를 채우자 엄마는 평소대로 운디네로 -이게 물의 하급정 령이란다.- 우리를 씻기면서 말했다. "준비? 어디 가는데?" 실프의 부드러운 바람에 몸을 말리던 누나는 고개를 갸웃하면서 물었 다. "너희들의 이름을 지어야 되거든. 그래서 우리 실버 일족의 로드를 만 나러 가는 거란다. 거기 가면 너희들 할머니 할아버지랑 아빠도 만날 수 있단다." "로드? 할머니? 할아버지? 아빠?" 전부 다 처음 들어보는 말들에 누나랑 같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내 모습 에 엄마는 설명은 안해주고, 가보면 안다는 말만 하셨다. 그리고 엄마는 처음 들어보는 말을 하셨는데 그러자 갑자기 엄마의 몸 에서 눈이 부신 은빛이 퍼져나가더니 엄마의 온 몸이 빛에 휩사였다. 그리고 눈이 동그래진 누나와 내 앞에서 빛은 점점 작아졌고, 어느새 누나와 나의 몸보다 조금 큰 모습으로 빛이 작아지더니 갑자기 팍 하면 서 빛이 사라졌다. 빛이 사라진 자리에는 긴 은발을 허리 아래까지 늘어트리고 몸에 살짝 붙는 은색 실크 드레스를 입은 한 여성이 우리를 보면서 방긋 방긋 웃 고 있었다. 흠칫... 누나와 나의 반응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바로 이랬다. 그 크고 인자한 우리 엄마는 어디 가고 없어지고, 대신 첨 보는 생물이 우리를 쳐다보 고 있었으니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꼇다고나 할까? 그러자 그 생물이 -실은 엄마- 쓴 웃음을 지으면서 설명해 주었다. "이건 엄마가 인간으로 풀리모프 한거란다. 로드의 레어에 우리 실버일 족 대부분이 모이기 때문에 본래 모습으로는 갈 수 없거든. 어머 얘들 이 아직도 경계를 안푸네. 자자 엄마 눈을 봐요. 엄마 맞지?" 엄마의 말에 눈을 쳐다보니 과연 옅은 황금빛 눈이 인자하게 우리를 쳐 다보고 있었다. 엄마 맞군. 누나도 같은 생각인지 환하게 미소를 지으 면서 말했다. "우와아 엄마 신기하다. 그거 어떻게 하는거야? 그리고 인간은 뭐야? 우리가 실버 일족이야? 근데 실버 일족은 뭐야?" 거의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질문 공세에 엄마는 쓴 웃음을 계속 지었다. "나중에 다 설명해줄께 지금은 시간 없으니깐 일단 가자꾸나." "네" 우리는 합창 하듯이 귀엽게 -아마도 그랫던 것 같다.- 대답하자 엄마의 아까부터 뭔가를 참는 듯한 눈이 더 이상 못참겠다는 눈빛으로 변했다. 그리고.... "귀 귀 귀 귀...." "....?" "엄마 왜 그래?" 말을 잊지 못하는 엄마의 행동에 우리 둘의 고개가 다시 갸우뚱해졌다. 실수였다. "아앙 너무 귀여워!" "우꺄갸갸갸갸갸!" "엄마 숨막혀!!" 아마도 우리가 태어나면서 부터 무척이나 참으셨던 것 같다. -웬지 어 감이..- 우리 둘을 끌어안고 마구 비비고 키스세례에 그리고 또...그만 하자. 아무튼 그 대단한 누나 조차도 엄마에게 안겨서 손도 못 써보고, 당하 고(?) 있는데 내가 무얼 할 수 있겠는가? 인간 피부는 무척이나 연약하던데 드래곤이 폴리모프한 인간 피부는 강철의 피부라도 되는지 약간은 까칠한 비늘에 뒤덮힌 울 남매를 쉴새 없이 비벼대는데 -웅 역시 어감이 좀...다른 표현 없을려나?- 정말 죽 을 맛이었다. 아무튼 그 상황에서도 다행인 점 하나 꼽으라면 울 엄마가 본체 모습으 로 우리를 끌어안고 이 짓거리를 안해준 점이라고나 할까? 만약 본체 모습으로 우리에게 이런 애정표현을 보냈다면.....아마도 해 출링 엄마에게 안겨서 숨막혀 죽다 혹은 곤죽이 되어 죽다 정도로 드래 곤 역사에 길이 남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우와앙 아파 엄마!!" 결국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식 두번째(?) 울며불며 떼쓰기 모드에 들어 가서야 엄마는 미안한 표정으로 급히 우릴 놓아 주었다. 누나 눈은 진심으로 나에게 감사한다는 눈빛을 보냈다. 흠흠 내 울기가 이렇게 효과가 좋을 줄이야....앞으로 자주 이용해 먹 어야지... "미안해 많이 아프니. 너네들이 너무 귀엽다 보니깐 엄마가 잠시 이성 을 잃었구나 미안. 담부터는 살살 안을께." 그럼 나중에 다시 안긴 안아주겠다는 소린데....뭐 부드럽게 안아 준다 면야 나도 상관 없지만 -오늘 종일 어감이 이상하게 나가네- 방금전 같 은 우왁스런 모드는 절대 사양이다. "자 늦었으니 얼른 가자." 그러면서 엄마는 정말로 우리를 부드럽게 안아서 입으로 뭐라고 잠시 중얼 거리셨다. 그러자 우리 앞에는 새햐얀 터널이 나타났고, 엄마가 그 곳으로 들어가 시자 우리는 눈이 부셔 아주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빛이 사라진 것 같아 눈을 뜨니 그 잠시 동안에 주위 풍경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엄마와 같은 레어의 모습이지만 좀더 크고 웅장한 느낌까지 레어를 정 신없이 구경하고 있으려니 곧 우리 눈에는 엄마의 두배는 되어 보이는 커다란 은색 드래곤을 볼 수 있었다. 누나와 나는 절로 입이 딱 벌어졌다. 엄마도 큰 편이긴 한데 엄마의 두배나 넘게 큰 드래곤이라...저 분의 눈이 딱 우리 크기였다. 아무튼 눈은 인자하게 우리를 내려다 보셔도 그 크기에 질려서 나도 모 르게 엄마품에 더 파고 들었는데 누나는 겁도 없이 눈싸움을 하자는 듯 이 말똥말똥 더 쳐다 보기만 했다. 이 누나는 겁을 상실한건가? "세이르아 정말 쌍둥이였나?" "네 보시는 그대로 귀여운 쌍둥이 남매죠." 큰 드래곤 답게 목소리도 엄마보다 좀 더 크고 박력있는 목소리 그러나 인자함을 잃지않은 듣기 편한 목소리가 내 귀에 울려 퍼졌다. "어머나 설마 했는데 웬일이레." "거참 형제 자매도 아주 가끔 생기는 판에 쌍둥이라니...." "전 드래곤 역사를 통 털어봐도 쌍둥이는 쟤네들이 첨이겠죠?" "아무튼 우리 실버 일족으로서는 2000천년만에 것도 쌍둥이가 태어났 으니 겹경사군요." "세이라가 고생이 심하겠어요. 난 하나 키우는데도 장난이 얼마나 심한 지 지금 생각해도 끔직했는데...." "엄마 하나밖에 없는 딸 볼효녀로 만들지 말아요!" "사실이잖아. 태어난지 1년 날 수 있게 되자 마자 첫 가출을 시도한건 드래곤 역사상 너뿐이잖아." "그건 가출이 아니라 날아다니다가 길 잊어먹은거잖아!" 엄마 말에 주위가 갑자기 시끌 시끌 해졌다. 그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누나는 아직까지 그 큰 드래곤이랑 눈싸움중....역시 독한누나- 한 10 여명정도 되는 엄마랑 비슷하게 생긴 생물들이 -아마 인간이라고 했었 지?- 우리를 쳐다보며 저마다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아마도 폴리모프 한 다른 실버 일족인가 보다 머리색이 전부 다은색인걸 보니....어 근 데 빨간 머리를 한 드래곤도 있네. 튀어보일려고 저랬나? 그 드래곤의 의도가 정말 튀어보일려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튀어보이 긴 정말 튀어보였다. 근데 그 드래곤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 아니 그 드래곤 옆에 있는 다른 두분도 심상치 않은데...저 모습 얼마전에 본것 같은데...아 맞다 바로 엄마가 우리를 껴안기 전에 보여주었던 도저히 못 참겠다는.....허걱! 저 분들도 엄마처럼 우릴 껴안려고 차례(?)를 기다리시는 거란 말인가? 난 아까전에 엄마가 퍼부어 주던 조금 과한 애정표현을 생각하며 식은 땀을 흘렸다. 누나? 누나는 눈치채지 못하고 여전히......눈싸움 중이다. -역시 독 해.- "자자 잠깐만 조용히 하세요." 다시 큰 드래곤의 말이 떨어지자 주위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조용해졌 고, 우리는 갑작스레 공중에 떠서 곧장 그러나 우리가 놀라지 않게 천 천히 그 드래곤이 있는 쪽으로 날아갔다. 그 와중에도 결코 눈을 떼지 않는 독한 올 누나.... "반갑구나 우리 실버 일족의 해출링들아. 난 실버일족의 로드 [샤드락] 이란다." 로드? 샤드락? 로드샤드락 이 이름인가? 되게 이상하네. 그래도 난 예의 바른 엄마의 자식이길레 -옆에서 여전히 눈을 안 떼는 철 없는 누나는 열외- 예의바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안녕하세요. 로드샤드락님 저는 동생이고요. 옆에 있는 해출링은 제 누나입니다." 내 말이 떨어지자 밑에 어른들이 갑자기 킥킥 대며 웃기 시작했고, 여 전히 눈싸움을 하던 누나는 나에게 황당하다는 눈길을 보냈다. 내가 뭘 잘못 말했나? 혹시 예의에 어긋난 짓을 한거 아닌가? "큭큭큭 세이라의 아이 답게 정말 예의가 바르구나." 지금 생각하면 나도 웃음을 터트릴 항당한 인사였지만....태어난지 만 이틀이 된 해출링에게 너무 많은 걸 바라는게 아닌 것 이다. 로드 샤드락도 그것을 알았기에 화를 내기보다는 내 말의 틀린점을 천 천히 지적해 주었다. "우리들의 아이야 내 이름은 로드샤드락이 아니고 그냥 샤드락이란다. 로드란 그 일족을 대표하는 존재를 지칭하는 말이란다. 그리고 누나부 터 먼저 소개를 하고 너를 그동생이라고 소개를 해야 말의 문맥이 맞단 다. 방금 너의 소개는 마치 너의 이름은 동생이고, 너의 누나의 이름은 누나라는 말 같이 들렸으니 우리가 이름을 지어주기도 전에 멋대로 이 름을 지어준 것이니 우리가 저도 모르게 웃어던 것이란다. 하지만 너희 들이 귀여워서 웃은거니 용서 해주겠지." 용서고 뭐고 어디 있겠는가? 내가 실수를 한건데 난 얼굴을 빨갛게 물 들인체 고개를 숙이며 죄송합니다 라고 웅얼거릴 수 밖에 없었다. "바보." 누나의 말이었다. 하여튼 누나는 내 조그만한 실수 하나도 그냥 넘기지 를 않고 내 여린(?)가슴을 빡빡 긁어 놓았다. "자자 아무튼 일단은 너희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아빠를 만나봐야 되 겠지? 저 분들이 아까부터 빨리 너희들을 내 놓으라고 협박을 하시는 구나." 로드 샤드락은 그렇게 말씀은 하시면서 자신의 말이 농담이라는 표현으 로 부드럽게 웃으시며 우리를 아까 그 위험한(?) 눈빛으로 쳐다보던 세 분에게로 내려 보냈다. 난 본능적인 위협감에 몸을 움추렸지만 누나는 아까 그 눈빛을 못 봤기에 태평했다. 흑 누나도 바보 이제부터 무슨일 을 당할지도 모르면서 태평하다니..... "반갑구나 내가 너희들의 할머니란다. 내 이름은 레일리안 이란다." "난 너희들의 할아버지 크레스문 이란다. 귀여운 내 손주들아." 난 할머니라는 분에게 그리고 누나는 할아버지라는 분들에게 각각 안겼 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뭐예요?" "너희들의 엄마를 낳은 너희 엄마의 엄마 아빠지 그리고 너희들은 우리 에게 손주가 되는 것이고." "할머니의 간단명료한 친절한 설명에 난 대충 이해가 간다는 뜻으로 고 개를 끄덕이고는 조심스레 인사를 하였다. "안녕하세요. 할머니."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헉 누나 ~라니 귀엽게 굴지 말란 말이야!! 위험해!! 뭐 나의 이런 마음속의 외침이 들릴리가 없기 때문에 누나는 최대한 귀 엽게 살포시 웃으면서 할아버지에게 인사했다. 망할 누나의 행동은 완전히 브레스 뿜을려는 드래곤 앞에서 춤추는 꼴 이다. 그리고 내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에고 귀여운것!!" "우꺅갸갸갸!" 누나의 볼을 마구 비비고 꽉 껴안고, 키스세례를 날리는 할아버지의 팔 을 벗어날려는 누나의 헛된 몸짓 그나마 다행인건 나를 안고 있는 할머 니는 날 그저 조심스레 껴안으며 살짝 볼을 비빌 뿐이라는 것이다. 나를 할머니에게 내려준 로드 샤드락님 정말로 감사합니다. "에구 이 영감이 주책이야. 손녀 죽일 생각이유. 얘가 숨막혀 죽겠어 요. 어여 내려나요." 아마 나였다면 단번에 울고 불고 난리를 쳐서 할아버지의 손에서 벗어 낫겠지만 누나는 절대 울지 않고 단지 자력으로 빠져 나갈려고 애 다. 만약 할머니가 안말렸다면 누나는 아마 기절 해버렸을 것이다. 아깝다. ... "미안 미안 많이 아파니? 우리 손녀가 너무 귀엽다 보니 이 할애비가 실수 해버렸구나." 겨우 할아버지의 마수(?)에서 벗어난 누나는 과연 내 누나였다. 그 상 황에서도 한방 먹이는 걸 잊지 않았다. "히잉 할아버지 싫어잉." 원만한 상급마법인 헬 파이어보다 훨씬 더 화끈하고 충격적인 저 발언 은 할아버지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핏기를 사라지게 만들었고, 할아버지 의 손을 발로 만드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역시 누나는 무서워. 그 짧은 시간에 할아버지의 약점을 간파하고 그것을 쥐고 흔들다니..... 계속 드래곤 남매 1화 탄생(4) "히잉 할아버지 싫어잉." 원만한 상급마법인 헬 파이어보다 훨씬 더 화끈하고 충격적인 저 발언 은 할아버지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핏기를 사라지게 만들었고, 할아버지 의 손을 발로 만드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역시 누나는 무서워. 그 짧은 시간에 할아버지의 약점을 간파하고 그것을 쥐고 흔들다니..... "안녕 얘들아 내가 너희 아빠란다. 난 레드일족으로 이름은 오스타인이 란다." 아까의 튀어보이는 붉은머리가 싱긋이 웃으면서 우리에게 인사를 했다. "아빠?" "그래 그래 아빠란다." "레드일족?" 누나가 갸우뚱하자 아빠는 슬며시 웃으며 말했다. "드래곤들은 색깔에 따라 일족을 구분하거든. 너희같은 은색은 실버 일 족이고, 아빠는 붉은색이라서 레드일족이라고 부르는 거란다." "그럼 일족마다 다 틀린거예요?" "아니 겉모습은 다들 비슷해 색깔만 틀릴뿐이지." "응 그렇구나." "근데...." 아빠의 말에 납득해서 고개를 끄덕이는 우리를 보면서 아빠는 무언가 조바심난 태도를 보였다. "왜 그러세요?" "아빠한테는 인사 안하니?" 아빠는 무지 서운하다는 얼굴로 말하셨다. 웅 그러고 보니 깜박했네. 좀 미안하군. "안녕하세요. 아~빠." 우리도 모르게 아빠를 무시한거 같아서 조금 미안한 마음에 누나와 나 는 우리가 지을 수 있는 최대한의 가장 귀여운 얼굴로 웃으며 인사했 다. ....실수였던 것이다. "에구 귀여운 내 새끼들!" "우꺄갸갸갸갸갸!" "우악아아아!" 아빠의 힘은 무지 쎄다. 그것밖에는 기억 안난다. 미처 울고 떼쓰기 모 드에 돌입 하기도 전에 난 기절했던 것이다. 어느정도 정신을 차리고 나니 아빠가 엄마에게 무지 혼나고 있는 장면 이 눈에 들어왔다. "달링이 카이저 드래곤이라는 걸 꼭 그렇게 자랑해야 겠어요?" "미 미안해 허니...나도 모르게..." "아니 어느정도 힘으로 껴안았기에 얘들이 기절을 해요! 기절을!" "좀 봐줘 허니. 너무 귀여워서 그런건데..." "아무리 귀여워도 그렇지. 달링은 그 귀여운 아이들을 죽일 작정이예요 !" "내가 설마 정말 그런 마음으로 껴안았겠어? 아 일어났구나." 아빠는 엄마의 잔소리를 피할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막 일어난 우리들에 게 눈길을 돌리면서 환하게 웃으셨다. 그런데 엄마와 아빠의 대화중 달 링이라는 단어와 허니라는 단어에 왜 온몸에 소름이 확 돋는 것일까? 그때는 아직 어려서 잘 몰랐지만 후에 그말뜻을 알게 되었을때 할 말은 딱 한마디 뿐이였다. '아직 청춘이시구나.' 아무튼 아빠는 정신을 차린 우리에게 미소를 띠면서 걸어오는데....어 라? 누나가 내 뒤로 얼른 숨더니 부들부들 떠는 것이다. 그 누나가 떤. 다.고? 나의 패닉상태를 눈치도 못 차릴 정도로 누나의 행동은 아빠에게 엄청 난 충격을 안겨주었던 것 같다. "저 저기 내 귀여운 딸아." "....." "화 화났니?" "........" "에구구 이 아빠가 잘못했어. 그러니 화풀어라 응?" "화 난게 아니라 겁먹었나봐요." 어느새 다가온 엄마가 방금 언제 싸웠냐는 듯이 어쩔 줄 몰라하는 아빠 를 측은한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 말에 아빠 얼굴은 더욱 새파래 졌다. "미안 정말 미안!! 다시는 안 그럴께 그러니깐 에 또 그래 겁먹지 말 아. 그렇게 하고 있으니깐 아빠는 슬퍼진단 말이야." 어느새 패닉상태에서 회복한 나는 아빠의 필사적인 절규를 뒤로하고, 누나를 돌아 보았다. ....이런 누나는 어느새 눈에 눈물까지 그렁거리 면서 내뒤에 꼭 붙어 있었던 것이다. 이거 진짜 내 누나 맞어? "정말 안 그럴꺼야? 훌쩍." 보는 사람으로...아니 드래곤으로 하여금 가슴 어지게 만드는 불쌍한 표정으로 눈물을 흠치는 누나의 모습에 아빠는 정말 가슴이 어진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표정으로 누나를 살포시 안고 토닥거 렸다. "에구구 이쁜 내 딸내미. 아빠가 미안했어요. 다시는 우리 딸 아프지 않게 할께. 그러니깐 겁먹지 말아요." "응." 난 다시 한번 경악하면서 저기 약해보이는 누나가 정녕 내 친누나인지 다시 한번 확인 해보았다. 그런데...아빠는 나에게 등을 돌리고 있어서 못 봤지만 나는 보았다. 아빠에게 안겨서 눈을 빛내는 누나를....그리 고 나는 웬지 모르게 알 수 있었다. 그 눈의 의미를.... '이것으로 아빠 약점도 잡았다.' 그 눈은 그렇게 말하면서 그걸 눈치 챈 나를 보면서... '일러버리면 너 죽어.' 라는 눈빛을 보내는 걸 잊지 않았다. ....울 누나 맞군. 아무튼 그렇게 아빠의 할아버지의 약점을 손에 쥔 누나는 그 후 아빠와 할아버지를 우려먹을때로 우려먹었다는 건....말 로 설명 안해도 다들 눈치 채셨으리라 믿는다. 한편 그런 우리 따스한(?) 가족사랑에는 관심없다는 듯이 드래곤들은 큰소리로 이름들을 말하면서 논쟁 중이었다. 우리는 약 2시간정도 기절해 있었다는 말을 할머니께 듣게 되었고, 저 기 이름 짓는 드래곤들과 엄마에게 잔소리를 들었던 아빠가 두시간 동 안 그러고 있었다는 사실이 지금 생각하면 새삼스레 신기하게 느껴졌 다. 드래곤은 이 세상 그 어떤 종족보다 게으른 종족이다. 그런 종족이 무 려(?) 두시간이 넘어가고 있는데 그렇게 열렬하게 이름 짓는 일로 시끌 벅적했다니... 뭐 엄마가 쌍둥이를 낳았다는 말에 반신반의 하시다가 실제로 우리 쌍 둥이 남매를 보게 되신 분들은 마치 우리 둘에게 최고로 어울리는 이름 을 지어야 된다는 의무감으로 그렇게 뜨겁게 논쟁을 벌였다는 건 후에 알게 되었지만.... 그리고 그 논쟁이 끝날때쯤 -그 동안 우리 남매는 끊임없이 할머니 할 아버지 아빠에게 안겨가며 재롱을 떨어야 되었다.- 마침내 이름이 결정 되었다. 우리는 다시 로드 샤드락의 앞에 날아올라가서 그의 두 눈을 바라보았 다. 동시에 아까 흐지부지 되었던 누나와 샤드락님의 눈싸움 2차전이 시작되었다. -울 누나를 누가 말려?- "우리 실버일족의 축복받은 아이들아. 너희들의 이름은 이제부터 몸과 마음이 하나라는 뜻을 가진 문장 티아루아 테이루아라고 짓기로 하였단 다. 각각 애칭으로 티아와 테이라고 부르기로 하자꾸나. 마음에 드니?" 티아루아 테이루아 티아누나랑 나 테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누나도 마음에 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였고,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샤드락님도 그 이름이 마음에 드셨던 것인지 흡족한 미소를 머금으시면 서 우리를 다시 엄마에게로 보내주셨다. ....누나 이제 원만하면 그 눈 좀 돌리지. 엄마에게 안긴 나에게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가 다가오셨고, 다른분들은 일 끝났으니 각자 우리에게 축복의 말 한마디와 쓰다듬 한번을 해주시 고는 돌아가셨다. 그리고 어느새 우리 가족만 남게 되었다. "얘들아 언제든지 이 할아버지 레어로 놀려오거라. 이 할아버지가 옛날 이야기랑 맛있는것도 많이 줄께." "이 아빠 레어에 놀러오는 것도 잊으면 안된다. 꼭 와야 된다!" 라고 다짐에 다짐을 하시면서 돌아가셨고, 엄마는 오랜만에 할머니 레 어로 가서 하룻밤 자고 집에 가자고 하셨다. 엄마에게는 오랜만인지 모 르지만 할머니 레어는 우리에게는 처음인 장소였다. 아직 호기심에 눈을 반짝이는 우리들이 거절할 이유가 없었기에 고개를 크게 끄덕였고, 기분이 좋아지신 할머니는 집에가서 맛있는 거 많이 만 들어 주겠다면서 우리앞에 처음 이곳에 왔을때 봤던 새하얀 공간의 문 을 여셨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로드에게 인사를 하고 그 공간의 문으로 들어섰다. 그때 누나가 나에게 소근거렸던 말... "할머니 레어에는 어떤 보물이 있을까?" 이 누나 목적이 그거였구만....뭐 나도 솔직히 말하자면 아예 기대를 안했다면 거짓말이니깐... 계속 드래곤 남매 2화 누나에게 잡혀살기(1) 티아루아와 테이루아 몸과 마음이 하나라는 남매간이 쓰기에는 약간은 위험한(?) 이름이지만 귀여운 애칭 티아와 테이. 팔불출 엄마 세이르아 그리고 엄마못지 않은 팔불출 아빠 오스타인. 다정하신 할머니 레일리안 그리고 우리를 특히 누나를 위해서라면 간이 라도 다 빼주실 것 같은 할아버지 크레스문. 아는것 많고 친절한 로드 샤드락님의 가르침. 이렇게 우리 쌍둥이 남매는 어른들의 사랑과 보호를 받으면서 행복하게 무럭무럭 커가......야 정상이지만....한가지 변수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내 누나 티아때문이다! 덕분에 난 행복과는 거리가 먼 생 활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테이야 테이야!" 책 읽으러 간다던 누나가 즐거운듯이 나에게 뛰어왔다. 지금 난 심심해 서 레어바닥을 딩굴거리고 있는 중이었다. 태어난지 이제 겨우 5년이긴 하지만 할 줄 아는거라고는 걷는거 먹는거 자는것 밖에 모르는 해츨링 인지라 자다가 일어나서 먹고 멍하니 앉아 있다가 레어의 공터앞 한바 퀴 산책하고 들어와서 먹고 그리고 바닥을 구르다가 잠드는게 누나와 나의 하루 일과였다. 결국 심심하다 못해 폭발해버리려는 누나에게 엄마는 책이라도 읽으라 면서 언어를 깨닫게 해주시는 마법을 걸어주셨다. 처음에는 좋았다. 이런저런 용사소설이나 어린이 명작동화같은것을 읽 곤 했다. 특히 인간세계에서 일어난다는 범죄라는 것을 해결하는 <<드래곤 탐정 기 저니일>>과 여신흉내를 내면서 인간에게 소원들어주는 유희놀이했다가 한 인간남자에게 코가 꿰인 <<오!나의 드래곤님!>> 그리고 어렸을때 엄마와 떨 어지고 실수로 빙하속에 갇혔다가 인간의 집에서 더불살이하게 되면서 온갖 피박을 받지만 그래도 훌륭하게 커가면서 친구들과 만나는 한 해 츨링의 처절한 일대기<<아기 해츨링 두리>>는 나의 애장서가 되어버려서 읽고 또 읽었던 감동의 작품이었다. 그러나 잠자는 시간도 잊어버리면서 책을 읽다보니 어느새 그 많은 책 중에서 재미있는 소설은 싹 다 읽어버려서 남는것은 인간들의 역사나 아직은 뜻을 알아도 실행을 하지 못할 마법서, 이건 무슨생각으로 만든 줄 모를 철학책들 그외 기타등등만 남아서 책 읽는데도 흥미를 읽어가 고 있는중이었다. 솔직히 막 뛰어놀고 싶은 갓 태어난 해츨링들이 책을 붙잡아봤자 며칠 이나 가겠는가? 그나마 누나랑 나는 3년간은 책에 빠져 지냈으니 심심 하다고 칭얼대는 우리의 불만에 잠시나마 벗어났던 엄마는 행운아...아 니 행운룡이었다. 뻥! 데굴데굴 쿵 잠시 추억에 빠져있던 내 사고는 허리에서 전해지는 강렬한 고통과 바 닥을 구르는 유쾌하지 않은 느낌과 마지막으로 머리에 라이트닝이라도 맞은듯한 짜릿한 충격에 현실로 빠르게 복귀했다. "우씌 왜 때려!" "누나가 부르는데 누가 딴전 피우래? 그리고 이게 어디서 말대꾸야? 더 맞아볼레?" 도리도리 "잘못했어 누나 힝 때리지마." 지금은 엄마가 없다. 엄마는 요즘 일주일에 한두번은 아빠레어로 외박 (?)을 나가신다. 그때는 어려서 아직 그 이유를 몰랐지만 나중에 알고 나서는 '청춘이시구나 두분은'이라는 말을 누나가 했고 내가 전적으로 동의를 하곤 했다. 그건 그거고 난 누나가 나를 구타하면서까지 흥분했던 일이 뭔지 궁금 해졌다. 누나의 옆에는 엄마가 붙여준 실프가 책을 들고 있었다. 드래곤의 손은 인간들이 만든 책을 넘겨보기에는 너무나 불편했기 때문 에 엄마가 우리에게 하나씩 붙여주었던 바람의 정령이었다. 원래는 아직 마나순환이 안된 우리가 부릴 수 없는 정령이었지만 엄마 가 가지고 있던 정령에서 말 잘듣는 실프 둘을 누나와 나에게 붙여주신 거다. 그중 누나의 실프는 그 책이 뭘까 하는 내 궁금한 표정을 눈치채 고는 내 눈앞에 책을 가져와서 제목을 보여주었다. 역시 눈치하나는 끝 내주는 정령이었다. 그 책의 제목은 [레슬링 교본]이었다. "레슬링? 이게 뭔데?" 누나는 내가 책에 흥미를 보이자 아까 날 때릴때의 분노는 사그라 졌는 지 방실방실 웃으면서 말했다. "인간세상에서 스포츠레 읽어봤는데 재미있을꺼 같더라고 우리 이거 하 면서 놀자." 누나의 제의에 심심해서 레어 바닥을 딩굴고 있던 내가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재미있을것 같다는데 반대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난 그때 거절했어야 되었다. 젠장 내가 책을 보고 규칙을 익히겠다고 하자 시간이 아까우니깐 직접하면서 가르쳐주겠다고 누나가 말할때부터 알아 챘어야 되는데.... 난 누나의 음모도 알지 못한체 바닥에 누나가 그린 둥그런 원안에 들어 갔다. 그리고 누나의 말에 자세를 앞으로 숙이고 누나를 쳐다보았다. 해츨링 몸으로는 약간 힘든 자세였다. 그래도 꼬리 덕분에 중심을 잡는 데는 아무 이상 없었다. 그리고 누나말로는 이대로 엉겨붙어서(?) 상대 편의 양어깨를 땅에 닿게 하면 이기는거란다. 거 간단해서 좋군. "자 그럼 시작한다. 태클!" "커억!" 나중에 내가 그 책을 보고 안 사실인데...레슬링에서 태클은 상대방의 양다리를 안아서 넘어트리는 기술이었다. 그러나 잠시 여기서 해츨링의 아니 드래곤의 몸의 상태를 살펴보자 인간의 다리종아리에 해당되는 부 분은 드래곤의 다리가 배에 거의 붙어 있는 관계로 가랑이라는 것이 아 예 없는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아니 있긴 있지만 지상과 배의 거리가 머 리 들이밀면서 다리 잡기에는 상당한 무리가 따른다. 거기다가 손은 또 어떤가? 그 짧고 뭉툭한 손으로 어떻게 다리를 잡을수가 있겠는가? 결론은 누나가 나에게 건것은 태클이 아닌 박치기였다! 아직 뿔이 다 자라지 않고 뭉톡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배에 구멍뚫릴뻔한 상황을 피한 나는 대신 엄청난 북부의 고통을 느끼면서 날아가다가 벽에 부딧 쳤다. 간신히 몸을 일으키자 누나왈 "음 생각보다 이 기술은 잘 안되네...그럼 이 팔 잡아서 넘기는 기술 해볼까? 이 팔로는 무리고 꼬리 사용하면 되겠지." "누나 나 그만할...읍읍!" 누나는 내가 그만할꺼라고 말하기도 전에 꼬리로 목이 아닌 내 기다란 입을 꽉 쥐고서 그대로 던져버렸다. 그 후 레슬링 교본에 적힌 규칙들을 철저히 무시한 레슬링을 빙자한 누 나의 구타에 난 기절했고 다음날 엄마가 와서 걸어준 치료마법을 받아 서야 정신을 차릴수 있었다. "티아야 다음부터는 살살하면서 놀아야 된다." "네 엄마." 엄마의 다리를 붙잡고...아니 붙잡지는 못하고 엄마의 그 넓직한 다리 에 온몸을 붙인체 우는 나를 달래면서 엄마는 누나에게 주위를 주었고 누나는 정말로 믿음이 안가는 말 한마디로 이 사태를 넘어갔다. 누나는 기절한 나를 보고는 당연히 놀라서 어떻게 된건지를 누나에게 물어보았고 누나는 레슬링 교본을 보여주면서 심심해서 이거 하고 놀았 다고 말해서 엄마는 한숨만 쉬고 그냥 넘어간것이었다. 나? 그렇다고 나도 그냥 예 알겠습니다. 하고 넘어가겠는가? "엄마 아니야! 엉엉 누나는 논다면서 날 완전히 패..." 팻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때 난 확실히 느낄수 있었다. 뒤에서 느껴지는 '다음 엄마 외출때 너 정말 죽고싶냐'는 누나의 무언의 협박 을.... 그래서 그냥 울면서 엄마 다리에 얼굴을 비비는 것으로 내 서러운 마음 을 달랠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며칠뒤 엄마의 외박날. "테이야 테이야!" 저번 레슬링 사건과 똑같은 패턴으로 누나는 한권의 책을 가지고-물론 실프가 옆에서 들고- 나에게 왔다. 난 머리속에서 울려퍼지는 경보음을 들으면서 슬슬 한발짝 뒤로 물러났지만 외박하시는 날에는 우리가 밖에 못나가게 입구에 마법을 걸어두시는 엄마 덕분에 내가 도망칠곳은 없었 다. 그리고 도망치다가 잡히면 한대 맞을꺼 열대 맞는다는 사실을 몸으 로 기억하고 있는 나는 다 체념하고 실프가 보여주는 책의 제목을 보았 다. [권투 일주일만 하면 타이슨만큼 한다.] "권투?" "응 이번에는 더 간단해 그냥 주먹으로 서로 치고박고 해서 쓰러진 자 가 열셀때까지 못 일어나면 지는거야." "주먹으로?" 역시나 해츨링에게는 무리한 일이었다. 이 짧은 팔로 주먹을 날린다고 해봤자 얼마나 가겠는가? 이 주먹으로 해츨링끼리 주먹을 날릴려면 온 몸으로 날려야 되니 불편하기 그지 없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제법 간단한 규칙이고 그래도 못 미더워 하는 나에게 누나가 책을 보여주었기에 어느정도 규칙이랑 펀치 날리는 방법 주먹쥐 는 방법등을 자세하게 알 수 있었다. 물론 인간의 경우에나 해당되기 때문에 해츨링인 나와 누나로서는 약간 수정을 해야 되었지만.... "자 그럼 꼬리만 같이 사용하기다. 머리나 다리를 사용하면 안돼." "응 누나 각오해." "호호호 제법 귀여운 소리도 하네. 그건 내가 할 말이란다. 테이야." 난 이번 기회를 복수혈전으로 삼을 생각에 정말로 힘조절 따위는 생각 안하고 온 힘을 다해서 덤벼들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누나역시 힘조절 따위는 생각 안했나보다. 아니 전에 레슬링 사건때문에 엄마한테 혼났 던(?) 경험이 있는지 그래도 그 날은 날 기절시킬때까지 패지는 않았다 는 것이 유일한 행운이랄까? 아니지 기절도 못하고 그 고통에 밤세워서 끙끙되었으니 불행이라고 할수도 있을것이다. 그리고 다시 며칠후.... "테이야 테이야! 이번에는 격투기 책을 찾아냈어." 격투기라기보다는 무식하게 휘두르는 꼬리와 발차기에 나가떨어졌고, 그리고 다시 며칠후.... "테이야 테이야! 이것봐 검술에 관한 책이야!" 진짜검은 위험했기에 기다란 몽둥이를 사용하긴 했지만 검술이라기 보 다는 그냥 매타작에 가까운 누나의 몽둥이에 다시 쓰러졌고, 그리고 다 시 며칠후.... "테이야 테이야! 이건 동방이라는 나라의 격투기인데 태건도레!" 누나의 화려하다고 전혀 볼수 없는 무식한 발차기에 레어 바닥을 굴러 다녀야 되었고, 그리고 다시 며칠후.... "테이야 테이야!" "우와앙 누나 제발 나좀 살려줘!" 도대체 엄마레어에 무슨놈의 격투에 관련된 책이 그러게 많은건지 난 이제 누나가 책만 들고 뛰어오면 경기를 일으킬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렇게 누나 덕분에(?) 우리가 날수 있게 되는 10살까지 심심하지 않게 지낼수 있었다. 정말 심심하지는 않았다. 며칠에 한번씩 정확히는 엄마 의 외박날마다 생사의 기로를 체험했는데 심심할 틈이 어디 있었겠는가 ? 심심한거 하나는 확실히 없어졌으니 그거 하나는 누나에게 고마워 해 야될까? 10년째 되는날 엄마가 이제 날수 있으니 연습하자면서 우리를 지상에서 꽤 높으곳으로 끌고 올라갔다. 다른 집(?)에서는 절벽에서 떨어트리기 등 꽤 강도높은 스파르타 훈련을 시킨다고 들은적이 있었다. 하지만 우 리 엄마는 이 세상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티아와 테이 전용(?) 팔 불출 3인방중 한명이라는 사실때문에 스파르타 훈련의 걱정은 안해도 되었다. 그저 궁중에 띄워놓고 열심히 날개짓을 시키면서 조금 되었을 까 싶으면 슬쩍 힘을 없애서 떨어지면 얼른 공중에 다시 띄워서 다시 날개짓을 시키게 만들었다. "아직 멀었냐?" 지금 나는 열심히 날개짓을 하느라 대꾸를 못했고 엄마는 그 크게 벌어 진 입을 닫지 못해서 대꾸를 못했다. 누나는 어떻게 된게 엄마가 마법 을 거두는 그 순간부터 자유롭게 날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때는 누나만 멍하니 쳐다보는 엄마 덕분에 내 눈앞에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지상을 보면서 기절직전까지 갔었다. 누나는 이리저리 날아다니면서 엄 마와 내 주위를 날아다니면서 간간히 나를 보면서 한숨을 쉬고는 말하 였다. "느림보." 크아악! 한큐에 날아다니는 누나는 괴물이잖아! 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 간의 행적(?)등을 생각해서 꾹 참고 날개짓 만 열심히 하였다. 그 날 반나절이 지나서야 간신히 비틀비틀거리면서 날아다닐수 있었지만 난 기쁜 마음보다는 참담한 기분에 울분을 삼켜야 되었다. 지금 내 눈앞에서는 누나가 8자 날기, 고속비행, 직선으로 떨 어지다가 다시 날기등 온갖 묘기를 부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역시 내딸이다'라며 자랑스러워해야 될 엄마는 참담한 기분에 자살이라도 할것 같은 내 얼굴에 누나 칭찬은 하지 못하시고 날 위로하고 계셨다. 흑 엄마 마음은 정말 고맙지만 더 위축되는 기분이 드는건 왜 일까? 그렇게 처음으로 하늘을 날게 된 날이 저물어져 갔다. 계속 드래곤 남매 2화 누나에게 잡혀살기(2) 날게 된 이후에도 누나의 내 몸을 이용한 여러가지 실험(?)등은 계속되 었고 어느새 난 반항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반항해봤자 소용이 없 고 한대 맞을꺼 열대 더 맞는데 무슨 반항인가? 결국 그후 내 상황은.... "야 테이야." "응? 왜 누나?" "우 잠을 잘못 잤나부다. 어깨 좀 주물러." "........" "맞을래?" "무슨 농담을 누나 어디가 제일 아파?" 주물주물 "아 좀더 위에 그래 거기 아 시원하다." 이게 현재 내 상황이다. 정말이지 수도없이 몇십 몇백번씩이나 창조신 을 원망하면서 살았는지 기억도 안난다. 그렇게 살던 중 어느날 난 드디어 중대한 결심 하나를 하게 되었으니.. . .. '도망치자!' 이런 결심을 하게 된건 내 나이 20살 되던 해였다. 드래곤에게 20살은 정말로 어린나이다. 인간으로 치면 이제 돌 지난 아이정도라고나 할까? 물론 인간아이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지식과 지성을 겸비하고 있지만 드래곤 입장에서 보면 정말로 갓난아기 취급이다. 그런데 그런 내가 가출을 생각할 정도니 얼마나 당하고 살았는지는 구구절절 말하지 않아도 다들 눈치 챘을거라 생각한다. 난 실행의 그 날 새벽 몰래 일어나서 엄마 보물창고로 가서 검 한자루 를 들고 나왔다. 그리고 엄마와 누나가 깨지 않게 조심스럽게 바닥에 편지를 쓰고 곧바 로 나와버렸다. 편지내용? 내용은 '절 찾지 말아주세요. 테이.' 뭔가 근사한 내용을 쓰고 싶었지만 당시 시간상으로 길게 못 쓰겠길레. ...그래 솔직히 다 까고 이실직고 하면 당시 머리 상황으로는 저 글이 내 한계였다!! 아무튼 밖으로 나온 나는 무작정 걸었다. 날아가면 좀 더 빨리 그 자리 를 벗어날 수 있지만....아마도 마음 한구석에서 엄마가 나를 찾았으면 하는 마음이 남아 있었는지 그냥 무작정 걷기만 하였다. 역시 당시의 나는 얘는 얘 였던것이다. 엄마의 레어앞에는 자그마한 공터가 있고, 공터 앞에는 역시 작은 시냇 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시냇물 건너편부터 숲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난 바로 그 숲으로 들어가서 정처없이 헤메 다녔다. 날아다니게 된 뒤부터는 가끔 엄마가 사냥하는 걸 따라 나서곤 했었지 만 항상 숲위만 날아다녔지 숲안으로 들어가 본적이 없었다. 이제 막 새벽의 이슬을 머금은 상쾌한 숲의 느낌이 조금은 무거워진 내 마음을 달래 주었다. 빽빽한 침엽수 아래 수풀을 헤져지나가면서 어느덧 난 가출이라기 보다 는 산책나온 듯한 느긋한 느낌을 받으면서 즐겁게 걷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내 눈에 다섯마리의 오크가 눈에 띄었다. 사냥중이었는지 새끼 사슴을 등에 짊어지고 가던 오크와 내가 딱 마주쳐버린 것이었다. 당시 내 크기는 오크의 두배정도로 커 있던 상태였다. 하지만 그렇게 크더라도 내 정신연령이 인간에 비해 빠르더라도 어디까지나 난 갓난 해출링이라는 걸 부인 안하겠다. 그래서 오크들을 만났을때 나도 모르 게 겁먹고 흠칫했다. 그러나 오크들은 나보다 몇배는 더 겁을 집어먹고 사슴도 팽개치면서 잽싸게 튀는 것이었다. 다행인 것이 오크들은 몬스터라기 보다는 하나의 종족이었다. 그러므로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솔직히 문화라고 불러줘야 되는지 모르겠지만-를 가지고 있는 종족들이었다. 무식하면 장땡이라는 말이 있듯이 만약 이들이 무식했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나에게 덤벼들었을꺼고, 솔직히 말하면 내가 그 무장한 오크들을 이길 수 있을껏 같지가 안았기에 나로서는 정말 다행인 점이었다. 만약 그들이 무식하게 덤벼들었다면....아마도 해출링 슬레이어가 된 최초의 오크들이 되지 않았을까? "휴우 깜짝 놀랐네. 다행이긴 하지만 혹시라도 재네들이 패거리를 끌고 올지 모르니깐 도망이다." 난 도망치면서도 그들이 버리고 간 새끼사슴을 챙기는 걸 잊지 않았다. 쯧쯧 기껏 20살 먹은 해출링 보고 식량을 버리고 가다니 아깝게 시리.. . 뭐 내 입장에서는 잘된 일이지만.... 그러나 나의 혹시나 하는 생각은 맞는 생각이 아니었다. 그들은 내가 어린 해출링인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지식과 경험으로 어 린 해출링 근처에는 무시무시한 어미 드래곤이 버티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그렇게 급히 도망쳤다는 사실을 난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모르기는 그들 역시 모르고 있었다. 설마 여기 있는 바로 내가 누나 등쌀에 기가 질려 가출한 해출링이라는 사실을 저들이 어찌 알겠 는가. "어째 저 쪽이 시끄러운데...역시 날 쫓아 오는건가? 그렇다면 큰일인 데..." 이것 역시 내가 잘못 알은거다. 오크들이 도망친 곳에서 시끌벅적했던 이유는 자신들의 마을을 버리고, 도망치느라 그랬던 것이다. 그걸 알리가 없는 나는 급히 도망쳤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자존심 상하는 행동이었다. 최강의 종족이라 불 리는 드래곤이 고작 오크들에게 겁을 먹고 도망쳤다니.... 그래도 당시 나는 세상을 모르는 어린 해출링이기에 이성적인 판단보다 는 본능에 행동해서 그렇게 됐다고, 자위하는 수 밖에.... "어디보자 이쯤이면 못 오겠지." 한참 도망치던 나는 계곡쪽으로 오게 되었고, 바로 그 자리에서 날아서 계곡 반대편에 가서야 안심하고, 아까 오크들이 놓고 간 사슴을 느긋하 게 뜯어 먹었다. '지금쯤 엄마가 내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눈치 채셨을까? 채시고도 남았 겠지. 틀림없이 걱정하면서 나를 찾아 헤메고 계실지도...훌쩍 죄송해 요 엄마.' 혼자서 사슴고기를 먹다보니 웬지 처량한 기분에 그런 생각이 들자 눈 에 절로 눈물이 맺혔다. 정말 엄마 생각만 했다면 당장에 되 돌아 갔을 거다. 그러나.... '지금쯤 누나는....그래 누나는 틀림없이 밥이나 배부르게 먹고, 가출 한 나에게 바보멍청이라고 욕이나 하고 있겠지...으으으 대체 누구때문 에 내가 이 나이에 가출했는데!!!' 거의 멋대로 스토리 지어서 혼자 그렇게 생각한 나는 다시금 안 돌아가 겠다는 의지를 굳히고, 남은 사슴고기를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약간 양이 모자르긴 했지만 그래도 허기를 채우기에는 충분했다. 난 그 자리에 벌렁 드러누워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제부터 어쩌지 어디로 가지?' 해답없는 질문을 나에게 하면서 난 그냥 그렇게 푸른 하늘을 멍하니 쳐 다보았다.얼마나 오랫동안 그렇게 하늘을 보고 있었을까? 나는 문득 얼 마전에 읽었던 용사 소설이 하나 생각이 났다. 산속에서 어머니와 살던 한 소년의 이야기였다. 어느 날 소년이 사냥을 나간 사이 아름다운 어머니는 나쁜 국왕에게 사로잡혔고, 어머니를 구 하러 여행을 떠난 소년이 여러동료를 만나고, 강해지다가 결국 나쁜 국 왕을 물리치고, 왕이 된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스치는 엉뚱한 생각 하나.... "그래! 나도 여행을 떠나는 거야. 그리고 여러 동료들과 만나고, 점점 강해지다가 나중에 한 나라의 왕이 되는거야!" 난 현재 내 모습이 드래곤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을 정한 나는 캄캄하기만 한 앞일이 환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실상은 아직도 캄캄하기만 하였다...는 것을 당시의 나는 몰랐다.- "자 그럼 출발이다!" 아직 어디로 갈지도 정해놓지도 않고, 무책임하게 일어선 탓일까? 난 하늘에서 나를 노리는 겁없는 녀석들이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 다. "키이이익!" 난 이게 어디서 나는 소리인가 하고 둘러보기도 전에 등에 화끈한 통증 을 느껴며 땅에 데굴데굴 굴러야 되었다. "뭐 뭐야?! 가 가고일?" 그렇다 여섯마리의 가고일들이 어느새 하늘을 날아다니며 나를 노리고 있었다. 옛날 사악한 마법사들이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가고일은 보통때 는 석상같은 모습을 하고 있을 정도로 그것들의 피부는 단단한 바위 같 은 모양이었고, 실제로도 피부가 아주 단단한 몬스터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은 매우 머리가 좋고, 교활하다는 것 이다. 아마도 이 넘들은 내가 숲에서 헤멜때부터 몰래 따라 다니다가 내 주위에 엄마드 래곤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습격했던 것이었을 꺼다.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만약 내가 책을 읽어서 얻은 지식이 맞다면 저 녀석들이 노리는 것은 오직 살육뿐....더구나 최강이라고 불리는 종족 비록 지금의 나는 해출링이지만 어째든 드래곤은 드래곤이니....그런 최강의 종족을 죽일 수 있다는 흥분감 때문인지 그것들의 눈은 흥분이 가득했다. "끼에에에엑 엄마!!" 난 급히 엄마의 레어쪽으로 날개짓을 하면서 날아올랐다. 방금전까지 용사 어쩌구 했던 생각은 생명의 위협앞에서 간단히 사라졌다. 일단 살 고 봐야 용사놀이를 하던지 말던지 할 것 아닌가. 그러나 하늘로 날아올라 간 것은 실수였다. 이 넘들 무지 빨랐던 것이 다. 아니 내가 느렸을지도 모르겠다. 난 본격적으로 날기도 전에 놈들 의 공격에 추락했다. 쿵~~ 목직한 소리가 나면서 내 머리위에서 별들이 날아다니는 것을 느끼면서 도 겨우겨우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들은 뛰어서 도망치는 것도 용납 하지 않았다. 이리 저리 공격 을 당해서 내 몸에는 상처만 늘어갔고, 결국 난 울음을 터트리는 것 이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끼에에엑 엄마! 엄마! 우왕 누나 살려줘!" "으이그 이 멍청아!" "어라?!" 난 혹시 내가 벌써 죽은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이 목소리의 주 인공은 분명 지금쯤 레어에서 밥이나 배불리 먹고 가출한 나를 멍청이 라 욕하면서 편안하게 잠이나 자고 있을 위인이라 생각했었으니깐...그 렇다 바로 누나였던 것이다. 올리가 없다고 생각했던 누나.....그러면 서도 난 왜 막판에 누나를 찾으면서 울었을까? 그 이유는 곧 밝혀졌다. 내 옆에 공중에서 누나와 싸우던 한마리의 가 고일이 만신창이가 된체 내 옆에 떨어졌고, 그제야 위를 올려다 본 내 입은 절로 쩍하고 벌어졌다. 그렇다 누나는 힘은 무식하게 쎈 해출링이 었다. 누나는 지금 막 가고일 한 녀석의 꼬리를 붙잡아서 공중에서 빙글빙글 돌리고 있었고 그 원심력에 의한 파워로 주위의 가고일이 동료와 부딧 치면서 하나 둘 떨어지고, 있었다. 태어난지 20년만에 저런 공중전이 가능한 것이 누나였기에 난 무의식중에 누나에게 도움을 청한게 아니었 을까? 어느새 마지막 한마리 남은 가고일은 누나가 무시무시하게 흔드는 무기 (?)인 동료 가고일의 공격을 이리저리 피하는 중이었다. 남은 한 놈이 너무 날쎄게 도망다니자 누나가 열받았는지 손에 들고 있던 가고일을 그 놈한테로 냅다 던져버렸다. 그러나 그 공격을 능숙하게 피하는 가고 일....하지만 그것은 페인트 동작이었다. 가고일이 동료를 피하는 곳으 로 무시무시한 속력으로 날아가서 그대로 머리를 박아버린 누나....바 위같이 단단한 피부를 가진 가고일은 단말마의 비명만 남긴체 떨어졌 다. 그렇게 가고일이 다 처리되자 난 새로 등장한 누나에게 신변의 위 협을 느꼈다. 흑 반죽음일까? 아니면 초죽음일까? 그래도 동생인데 완 전히 죽이지는 않겠지. 이대로 확 도망갈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부상당한 몸으로 누나한테서 도 망칠 수 있을것 같지도 않았고, 괜히 도망가다가 잡혔다가는 매만 늘것 같아서 그저 훌쩍이면서 동정표를 사는 방법밖에 없었다. -누나에게 통 할지는 미지수지만...- 이런 생각을 하는 중에 누나는 어느새 내 앞에 와서 서 있었다. 흑 무서버... "이 이 이...." "훌쩍 누나 힝 미안 미안 누나. 잉잉잉." "이 멍청아! 죽을뻔 했던거 알아? 몰라? 그러길레 마법도 쓸 줄 모르는 놈이 무슨 가출이야! 내가 너 비명소리를 못들었다던지 이 근처를 안지 나쳤다면 어쩔뻔 했어? 바보짓도 이만 저만이어야지 이 초 특급 멍청아 !!!" "흐에엥 누나 미안 때리지마!" 그러나 누나는 날 때리지 않았다. 그저 날 조용히 껴안아 주었다. "누 누나?" "이 바보야 얼마나 걱정했다고....정말 걱정했단 말이야...멍청이, 바 보..." "누...나." "말미잘, 해삼, 약골, 늦동이." "누........나?" "꼴두기, 똥해출링, 오크머리 해출링, 고블린대가리, 슬라임지능, 가고 일한테도 쩔쩔매는 저능아, 내 동생은 저능아 해출링...." "히잉 너무 심하잖아...." "바보 심하긴 뭐가 심해! 난 너가 죽는 줄 알고 얼마나 가슴 졸였는지 알아? 이런말 들어도 넌 아직 모잘라! 이 바보 동생아...흑 이 바보... .바보 동생..." 어라? 어라?! 어라라라라!!! 누나가 누나가!!! 분명 잘못 봤을꺼야? 이건 꿈이야.. 그래 눈을 뜨면 여기는 엄마레어고, 난 엄마옆에서 막 잠을 깬 상태로 두리번 두리번 누나를 찾을꺼고.... 난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서 간신히 패닉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때까지도 누나는 날 껴안고 울고 있었다. 진심이었던 것이다. 진심으로 날 걱정해서 울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나 역시... "흑...으흑...히잉 누나 미안 미안해 우아아앙." "바보 훌쩍 이제 살았는데 울기는 왜..훌쩍.왜 울어...잉잉." 그렇게 누나도 나도 실컷 울었다. 어느정도 울고 나서 진정이 된 누나는 내 손을 잡고 날아서 엄마 레어 로 돌아왔다. 정말이지 자기 몸만한 동생을 안고 날아오는 누나의 체력 에 다시한번 감탄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가출한 상태였기 때문에 집에 들어가는 걸 머뭇 대는 나를 누나 는 걱정말라고 하고는 데리고 들어갔다. 그리고.... "얘들이 아무리 놀다가 시간 가는줄 몰라도 밥먹을때 되면 들어와야지! 배도 안고파?" '어라? 놀러가다니? 난 가출했었는데....' 난 의문을 풀기도 전에 엄마의 호들갑부터 먼저 들어야 되었다. "아니?! 테이야 너 그 몸에 상처는 뭐냐? 어 티아도 상처투성이잖아. 어떻게 된거야?" 난 엄마의 말에 그제서야 누나의 몸에도 크고 작은 상처가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아무리 무식하게 힘쎈 누나라도 가고일 여섯마리는 역시 무 리였나 보다... 하지만 나보다 훨씬 작은 상처들이니 역시 누나는 범상치 않은 해출링 인건 분명했다. 그나저나 뭐라고 둘러대지? "엄마 그러니깐....테이랑 날아가기 시합을 하다 너무 멀리 날아갔다가 가고일들을 만나서...." 임기응변도 역시 뛰어난 누나였다. 엄마는 우리가 엄마말을 어기고, 멀 리까지 갔다는 사실에 순각 파직하고 힘줄이 생겼지만 우리 둘의 몰골- 상처투성이에 너무 울어서 눈이 퉁퉁 부은 상태-을 보고는 더 더욱 화 가 나신것 같았다. "이 놈의 가고일 놈들이 겁도 없이 내 쌍둥이를 건드렸단 말이지?!" 헉 엄청난 살기...숨조차 못 쉬겠다. "자 일단 밥부터 먹거라. 엄마는 잠시 나갔다 오마." 엄마는 우리에게 밥(?)을 주고는 치유마법을 걸어주고 곧바로 나가셨 다. 난 엄마가 나가고 난뒤 내가 써놓았던 작별(?)편지를 써 놓았던데 를 살펴 보았다. 아침에 검으로 쓰고 검을 그 옆에 그냥 놔두고 왔는데 내 편지는 어느새 지워져 있고, 대신 '테이랑 놀다가 올께요. 엄마의 사랑하는 딸 티아가'라는 글이 써져 있었다. "누나..." "우물 우물 엄마보다 내가...쩝쩝.. 먼저 일어나서...우걱우걱 그 글을 본걸..꿀꺽...다행이라 여겨." 누나는 밥을 먹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난 누나의 무한한 사랑을 느끼면 서 다시 울먹였다. "누나...힝...고마워..히잉." "에고 또 우냐? 이 울보야 그만 울고 밥이나 먹어!" "응 누나." 난 눈물을 흠치고 누나옆에 앉았다. 그리고 누나가 남겨놓은....찌꺼기 에 가까운 음식을 보면서 한숨을 쉬어야 되었다. "왜 안먹어? 빨리 먹어." 도대체 내 누나는 사악한거야? 아니면 속마음은 착한거야? 제발 부탁이 니 누가 좀 가르쳐 줘!!! 아 그리고 그 후 엄마레어 근처에서 다시는 가고일은 볼 수가 없었다. 계속 드래곤 남매 2화 누나에게 잡혀살기(3) 100살이 되던 날이었다. 해츨링들은 100살이 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마나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제어할수가 있게 된다. 그 말 뜻은 마법을 100살때부터 사용할수 있다 는 뜻이었다. 엄마는 나와 누나에게 마법책 한권씩을 주고 밖에 나가서 연습하라고 하시고는 그대로 주무셨다. 난 마법책을 펴들고 일단 이론부터 익히기 시작했다. 마법의 종류와 그 양은 정말 무한하다고 표현할수 있을 정도로 방대했다. 일단 가장 크게 나누자면 공격용 마법, 보조마법, 기타마법으로 분류할 수 있고, 공격 마법은 다시 속성에 따라서 분류가 되고 또 등급에 따라서 하급, 중급, 상급, 최상급으로 분류가 된다. 이중 이제 막 마나를 느끼기 시작한 해츨링이 쓸수 있는 마법으로는 하 급마법들 뿐이었다. 그것도 성룡처럼 시동어만 외우면 되는게 아니라 주문까지 외워야 되는 불편함이 뒤따랐다. 하지만 그것도 나이를 먹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시동어만 외치면 마법이 나가게 되기 때문에 따로 인간들이 말하는 수련을 할 필요는 없었다. 그점이 드래곤을 마법의 종족이라고도 부르게 된 이유이기도 하였다. 나는 책을 덮고 가장 간단한 매직 미사일부터 시작하기로 하였다. "내 의지를 받아서 내 앞에 있는 나의 적을 칠 빛의 화살이여 내 부름 에 답하라." 주문캐스팅이 끝나자 내앞에는 제법 굵직한 매직미사일 하나가 맺혀졌 다. 난 그 매직미사일을 근처바위에 날렸다. 그러자 커다란 폭발음이 울려퍼지고 바위는 돌맹이 덩어리가 되어서 떨 어졌다. "헤 재미있다." 태어나서 처음 써본 마법은 확실히 매력적이게 느껴질정도로 재미있었 다. 처음에는 엄마가 시키니깐 시키는대로 시작했던게 매직미사일 한번 성공하자 시간가는줄 모르고 이것저것 써보게 된것이다. 공격용뿐만 아니라 보조마법중에서 하급인 라이트, 실드도 써보고 나중 에는 중급마법중 파이어볼까지 쓸정도로 실력이 늘어버렸다. 크 역시 난 태어나면서부터 범상치 않게 태어났다는 소리를 어른들에게 들을만 한것이다. 뭐 솔직히 말하자면 어른들이 말하는 그 범상이란 드래곤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던 쌍둥이의 탄생을 두고 하는 말이니 내가 마법 잘 쓰는거랑 은 하등 관계가 없지만....뭐 어떤가? 내가 기분이 좋으면 그만이지. 라는 생각으로 슬쩍 누나쪽을 보았다. 사방팔방을 마법에 의한 파괴의 흔적이 남아있는 내 쪽과는 달리 누나는 책만 진지하게 읽고 있었다. 재미있는거라면 나보다 더 사족을 못쓰는 누나가 책만 읽고 있는게 내 눈에 아주 신기하게 보여서 마법을 쓰느라 소모된 마나를 채울겸 난 누 나를 한동안 구경하기로 하였다. 실프에게 이곳저곳을 넘기게 하던 누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나 싶더니 머리를 뻑뻑 긁어되기도 하는둥 내가 이해못할 행동만 계속하였다. 그렇게 한참을 쳐다보고 있자 고갈된 내 마나도 다시 차오르는걸 느끼 고는 다시 마법난무(?)나 해볼 생각으로 누나에게서 신경을 끊었다. 그때 누나가 갑자기 캐스팅을 시작했다. "내 몸속에 흐르는 마나여 나의 의지를 받들어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날 비쳐지게 만들지어니..." 당연한 말이겠지만 난 저 주문을 처음들어본다. 난 내 실프에게 누나가 지금 외우고 있는 주문이 어떤건지 찾아보라고 시킨뒤 누나가 쓰는 마 법이 무슨 마법인지 구경했다. 누나의 몸은 캐스팅이 절정에 다다랐다고 생각될때 온몸에서 강렬한 은 빛이 쏟아져 나와 내 눈을 부시게 만들었다. 난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아 버렸는데 잠시후 빛이 사라진것을 느끼고 살짝 눈을 떠보니 누나모습이 안보였다. "어라? 누나. 누나. 누우나!" "여기야." "어라?" 분명 누나목소리는 들리는데 누나는 안보였다. 그리고 그 누나 목소리 도 너무나 가늘고 작아서 신경쓰지 않으면 들리지가 않았다. "누나 어디있어? 여기라는데가 어딘데?" "좀더 아래를 봐라. 아래를." "아래? ...?!" 너무나 황당하고 전율스런 그 모습에 난 입을 쩍 벌릴수밖에 없었다. 이제 누나와 나의 몸은 어느정도 커져있어 전에는 우리몸보다 큰 오크 라는 음식이 두입꺼리정도밖에 안될 정도로 커져 있었다. 그런데 지금 내 발밑에 누나라고 주장하고 있는 저 생물체는 처음 우리 를 이름 짓기 위해서 로드의 레어에 갈때 엄마가 보여주었던 마법이었 다. 처음보는 생명체로 변하는 마법....그때 내 실프가 책을 들어서 누 나가 시전한 마법이 있는 페이지를 보여주었다. 폴리모프 "......" 난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방금 누나가 한 마법은 기타에 속하는 마법 중에서 상급에 속하는 마법이었다. 그정도 마법을 쓸려면 적어도 30년 이상은 마나를 축척해야 가능한 마법인것이다. 그런데 지금 누나는 100살이 된 생일날 아주 자연스럽게 상급마법을 써 보인것이다. 도대체 이 누나의 황당함에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 가? 누나는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면서 폴리모프한 몸을 살펴보고 있었 다. 그런데 어째 걷는게 위태위태해보였다. 그 이유는 누나의 투덜거림 으로 곧 알수 있었다. "뭐야 이거 꼬리가 없으니깐 중심잡기 힘들잖아." 누나는 투덜거리면서 처음 걸음마 배우듯이 조심스럽게 한발씩 걸어다 녔다. 누나가 작아졌긴 하지만 드래곤 특유의 잘보이는 눈덕분에 누나 가 시전한 폴리모프로 인해 변해버린 누나몸을 잘 볼수가 있었다. 얼굴은 엄마가 인간으로 변신할때 보였던 모습과 흡사했다. 다른점이 있다면 좀더 어려보인다는 점이랄까? 그리고 머리는 원래 그렇게 생각 하고 변한건지 아니면 그냥 신경을 안써서 그런건지는 몰라도 발목까지 내려와서 잘만하면 바닥 쓸고 다닐정도로 길었다. 그리고 그밖에 팔다리는 우리랑 쓰는 용도(?)가 똑같은거니깐 모양만 다른걸로 치고 넘어가고 난 누나의 폴리모프가 엄마와 조금 틀리다는걸 알수 있었다. "누나 그건 뭐야?" "에 뭐?" "그러니깐 그쪽쯤이 가슴인가? 가슴에 달려있는거." "가슴에 달려있는거?" 누나의 가슴에는 처음보는 물건(?)이 달려 있었다. 모양은 구슬을 절반 쪼개서 하나씩 붙여놓은 모습에 끝에는 너무나 작은 열매(?)하나씩 달 려있는 희한하게 생긴 모양이었다. "어 이게 뭐지?" "누나도 몰라?" "응. 책에는 이런게 안나와 있던데...아 말랑말랑하다." "정말? 말랑말랑해?" "응 말랑말랑해." 말랑말랑하다는 말에 한번 만져보고 싶었지만-아무말 하지 말기를 바란 다. 난 그때 결단코 저 물건(?)의 정체가 뭔지 몰랐다....진짜다!-내 이 거대한 손으로 누나를 쥐었다가는 대형사고(?) 터질지도 모르기때문 에 그저 신기한 눈으로 누나를 쳐다보기만 할수밖에 없었다. 근데 아까부터 누나의 실프랑 내 실프가 안절부절 못하면서 무언가 우 리에게 하고싶은 말이 있는것처럼 굴었다. 그러나 그 실프들은 우리가 계약을 맺은 실프가 아니라 엄마의 실프가 단지 우리 명령에 따르도록 한것이기 때문에 친하력 따위가 우리와 그 실프들에게 있을리가 없었다. 고로 우리에게 실프들은 말을 걸수가 없 었다. 누나와 나는 이제는 패닉상태에 빠져가면서 손을 휘저어 되는 실 프를 이상하게 바라보고는 곧 신경 껏다. 아마도 해츨링이 갑작스레 상급마법을 쓴게 놀라서 그런거겠지. 나도 그 마음 이해한다. 정말이지 누나는 상식이라는 것을 벗어난 존재 인것 같았다. 뭐 나중에 그때 일을 생각해보면 상식이 없었던건 나와 누나였지만... 아무리 피를 나눈 자매라지만 누나는 알몸으로 동생앞에서 다 보여주고 (?) 있는 상태였고, 동생이라는 나는 누나의 알몸을 아주 조목조목 자 세하게 관찰하고 있는 상태였으니 상식운운 할 상태가 아니었던 것이 다. 하지만 믿어주기 바란다. 아직 어려서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지 못 한 누나와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인간들중에 조금 위험한 사상을 가진 이들이 꿈꾸는(?) 남매간의 위험한 관계따위는 생각해본적이 없다. 누나는 필사적으로 손을 흔들면서 온몸으로 퍼프먼스를 해보이는 실프 를 몇번 갸우뚱하면서 쳐다보다가 무슨소리를 하는지 알아듣지를 못하 니 신경 끊기로 했는지 나를 올려다 보면서 말했다. "테이야 너도 이거 해봐. 작은몸으로 주위를 둘러보니깐 처음 태어났을 때가 생각나. 아 그래 저기 저 나무도 내가 요만했을때는 무지 커보였 는데 요즘은 우리 만했지. 다시 큰(?) 모습을 보니 반갑다." "........" "어 왜 그래? 너도 얼른 변해." "누나...난 그거 아직 못해." "에?.....으이그 역시 느림보 해츨링." "누나가 이상한거라고!" 그렇다 결단코 누나가 이상한것이다. 엄마가 우리에게 마법을 배울때 보라고 준 책은 인간들이 쓴 책이 아니 라 드래곤이 쓴 [초보 해츨링 마법 길라잡이]라는 드래곤 입장에서 해 츨링에게 마법을 가르쳐주는 책이었다. 그 동안 인간들의 입장에서 쓴 마법책만 보다가 해츨링들에게 안좋은(?) 것들도 보게 되었던데 반해서 이 책은 이번 해츨링봄을 맞아서 한 드래곤이 엄마드래곤들을 위해서라 는 명목으로 만들어서 팔았다는데 지금 해츨링을 가진 엄마드래곤들은 안가진 드래곤들이 없을 정도로 인기높은 고가의 마법책이었다. 그 마법서에는 아주 친절하게 누나가 쓴 폴리모프에 대해서 적혀있었는 데 그 내용 중... [폴리모프는 드래곤들이 유희를 즐길때 가장 중요한 마법중에 하나이 다. 폴리모프 없이는 드래곤들이 살아가면서 즐길 유희도 곧 없는 것이 나 마찬가지이다. 폴리모프로 유희를 즐길 종족으로 변해야 유희를 즐 기던 말던 할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유희를 즐기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 한 마법인것이다. 그러나 이 마법은 상급마법이다. 그러니 처음 마법을 배우는 초보 해츨링들은 나이가 130살이 될때까지 기다렸다가 쓰기를 바란다. 개개룡의 차이에 따라서는 150년이 넘게 기다려야 될수도 있지 만 평균잡아서 130년 이상은 지나야 이 마법을 쓸 수 있게 된다. 만약 이 책을 읽고 있는 해츨링이여 그대의 나이가 130살이 넘었다면 365페 이지에 있는 상급 기타마법중 폴리모프 주문부분을 참고 하기 바란다.] 라는 것이다. 난 실프를 시켜서 그 부분을 똑똑히 보여주었고 누나에게 물었다. "도대체 130살이 넘어서야 쓸수 있다는 마법을 누나는 무슨수로 지금 쓴거냐고? 누나 괴물같아." "그냥." "그 그냥?" "응 그냥." 너무나 간단하지만 나의 물음에 조금도 해답을 주지 않는 대답을 한 누 나는 얼굴에 사악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이었다. "정말 나도 모르게 그냥 써보니 된걸 가지고 뭐가 어쩌고 어째? 누나가 이상한거라고? 그리고 뭐 괴물? 그게 동생이 누나에게 할 말이냐?" 라고 하면서 누나의 주위에 내 팔뚝만한 매직 마사일이 만들어지기 시 작했다. 아니 그것은 순수한 마나로만 만들어진 매직 미사일이 아니라 속성공격마법중 얼음에 해당되는 아이스 미사일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하나가 만들어지고 곧 두개 세개....총 아홉발의 아이스 미 사일을 공중에 띄우더니 사악한 미소가 더욱더 짙어지면서 누나의 입에 서 공포를 느끼게 만드는 말들이 튀어나왔다. "너 오늘 어디 한번 죽어봐라." 언제는 죽일듯이 안팬적 있나? 새삼스럽게 뭘.....이라는 말을 할때가 아니잖아!! "누 누나 그만해! 내가 잘못했어. 무조건 잘못했으니 제발 그거 치워!" "시끄러워 동생이면서 누나에게 이상하다는둥 하는 말을 하는 동생이 세상에 어디있어! 문답무용 가라 아이스 미사일!" 그럼 동생을 정말 죽일듯이 노려보면서 어쩌면 정말 죽일지도 모를 마 법을 난사하는 누나는 어떻고!! 난 있는 힘껏 비명을 지르면서 도망다 니기 시작했다. 실드? 젠장 실드를 펼칠 캐스팅 외울 시간도 없었다. 아 그러고 보니 누나는 방금 저 아이스 미사일 캐스팅 없이 만들지 않 았었나? 그것도 아홉발이나....라고 감탄하고 있을때가 아니잖아!! 이리저리 도망쳐 다니는 날 따라서 누나의 아이스 미사일이 날아왔고 난 정말 필사적으로 피해다녔지만 그때 당시 누나말을 빌리자면 표적( ?)이 커서 정말 잘 맞더라는 말대로 난 아이스 미사일에 이리저리 얻어 터져야 되었다. 아주 오랜만에 비명을 있는대로 질렀던 날이었다. 세이르아는 어제 오스타인에게 갖다오고 난후 완전히 지쳐서 달링은 여 전히 짐승(?)같다니깐이라는 티아와 테이는 절대로 이해불가능한 잠꼬 대를 하면서 잠을 자고 있었다. 그러나 그 단잠도 도저히 이 세상것 같 지가 않은 비명소리에 깜작 놀라서 깰수 밖에 없었다. 도저히 믿기 어 려웠지만 이 세상것 같지가 않은 비명소리를 지르는건 테이였다. "테이야! 무슨일이니?" 옛날에 가고일들의 테이루아 습격사건의 전례도 있었기에 세이르아는 그야말로 쏜살같이 레어밖으로 달려나갔다. 그리고 그녀는 그대로 몸이 굳은체로 눈앞의 이해하기 힘든 상황을 잠시동안 가만히 쳐다볼수 밖에 없었다. 지금 그녀의 사랑스런 아들은 원 발가벗은 인간여자에게 마법 으로 두들겨 맞고 있는중이었다.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에서 여 자가 알몸이기 때문에 혹시 테이가 저 여자가 목욕이라도 하는 장면을 훔쳐보았나 하는 실없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생각은 곧 고쳐야 되었다. 그 인간여자에게서 너무나 친숙한 느낌이 퍼져나오고 있었기 때문이었 다. "티 티아?" [그렇습니다. 주인님] 그녀의 옆에는 어느새 그녀가 사랑하는 아들 딸에게 붙여준 실프들이 와서 한숨을 푹 쉬는것이다. "정말 저 얘가 티아 맞니?" [믿어지지 않으시겠지만 티아님이 맞습니다. 폴리모프 하셨거든요.] "포 폴리모프?!" 세이르아는 입을 있는대로 크게 벌린체 그녀의 딸을 쳐다보았다. 실프 는 고개를 설래설래 흔들면서 설명을 계속했다. [티아님이 폴리모프 페이지를 펼치라고 했을때는 그냥 호기심에 미리 보실려는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군요. 그대로 캐스팅을 행하시더니 바 로 저렇게 변하셨습니다.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지금 티아님의 마력은 성룡의 수준이십니다.] "그 그러니?" [그렇습니다.] 세이르아는 이제 거의 다 죽을꺼 같아 보이는 자신의 아들에게로 시선 을 돌렸다. "그럼 테이는 왜 저렇게 얻어맞고 있는거야? 혹시 티아의 알몸을 보고 있었다고 저러는거야?" [그건 아닙니다. 티아님도 테이님도 부끄러운걸 모르시는지 알몸을 보 여주고 보면서도 뭔지 모르시는 눈치들이었습니다.] "그래? 아 맞다!" [짐작가시는데가 있으신가요?] "나 재들한테 성교육을 깜박하고 안시켰어." 세이르아의 무책임한 발언에 실프들은 비틀거리면서 떨어질뻔 하였다. 바람의 정령도 공중에서 떨어질뻔 할수 있다는 사실을 온 몸으로 증명 할뻔했던 실프들이 간신히 몸을 추스리자 세이르아가 다시 물었다. "그럼 테이는 무슨 잘못을 해서 저렇게 얻어맞고 있는거니?" [그건....] 이번에는 테이의 실프가 방금전에 있었던 일을 설명해주었다. 그제서야 세이르아는 지금 자신의 아들이 자신의 딸에게 반죽음을 당하고 있는 상황을 이해할수가 있었다. "그럼 어쩌지? 확실히 티아가 다른 해츨링들과 다르니 테이 입장에서 이상하다는 말을 꺼낸건 별 뜻이 없긴 하지만...그래도 누나에게 이상 하다는 말을 한 테이가 잘못이기도 하고....그렇다고 동생을 저렇게 뭐 (?) 패듯이 패고 있는 티아가 잘 하는것도 아니고....아앙 이럴때 난 누구편을 들어줘야 되는거야? 이렇게 나처럼 남매를 한꺼번에 키운 드 래곤들이 없으니 누구한테 물어볼수도 없고 잘못해서 한쪽만 편애한다 는 인상을 심어줄수는 없고..." [주인님 지금 그게 중요한게 아니잖아요. 저러다가 테이 도련님 죽겠어 요!] 테이의 실프가 비명을 지르며 말안하더라도 테이는 거의 죽을 지경처럼 보였다. 그때 티아의 눈에는 이제 마지막이다라는 살기까지 눈에 비쳤 다. 그제서야 세이르아는 지금 자신이 해야 될일을 깨달았고, 다행이 늦지 않아서 테이가 창조신을 만나러가는 사태는 막을수 있었다. 세이르아가 마법으로 테이에게 실드를 쳐서 티아의 공격을 막자 그제서 야 티아는 마법난무를 중지했다. 하지만 분은 아직도 풀리지 않았는지 그 백옥같은 피부가 붉게 물들어서 씩씩대고 있었다. 세이르아는 일단 올누드의 티아에게 원래몸으로 변하라고 주의를 준 뒤 기절해있는 테이에게 치료마법을 걸었다. 그리고 본래 모습으로 돌아온 티아와 상처가 회복된 테이를 앞에 앉히고는 일장 연설을 늘어놓기 시 작했다. "도대체가 생각이 있는거니 없는거니? 그렇게 생각없이 패다가 동생 정 말 죽어버리면 넌 어쩔려고 했어? 화가 난건 이해를 하지만 그래도 적 당히라는 단어가 있잖아. 그리고 테이 너도 잘한거 없어 누나보고 이상 하다는 말 하면 안돼. 더구나 누나는 여자야. 너보다 먼저 태어났긴 하 지만 남자가 여자에게 이상하다느니 괴물이라느니 하는 말을 쓰면 안되 는거야. 도대체가 너희들은 하루도....." 그렇게 티아와 테이의 탄생일로부터 지금까지 두남매가 벌인 그간의 행 적(?)까지 들먹이면서 오랜만에 어머니로서 일장 연설을 벌인 세이르아 였다. 다만 그동안 지나치게 쌓아놓고 참아왔었는지 밤을 세우고 다음 날 새벽아침이 밝아와서 티아와 테이의 얼굴에 눈물이 그렁거릴정도로 심하게 잔소리를 했다는게 옥의 티라면 티였을까? 계속 드래곤 남매 2화 누나에게 잡혀살기(4) "그럼 아기 만들려면 엄마랑 아빠가 뭘해야 되는데?" "그건 에 그러니깐...그 그래 사랑을 하면 되는거란다." "사랑? 그거 어떻게 하는거야?" "에 그러니깐....엄마가 저기 그걸...그렇게 하면...아빠가 그걸 그렇 게 해서....그렇게 되는거란다." "엄마 무슨소리인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엄마도 몰라!" 결국 세이르아는 소리를 빽 지를수밖에 없었다. 지금 세이르아는 티아와 테이에게 최소한의 수치심이라는 것을 일깨우 기 위해서 약간의 성교육을 실행중이었다. 드래곤의 생식기는 평소에는 몸속에 감추어져 있어 생식을 위해서 꺼내지 않는 한은 남이 볼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인간은 틀리다. 다른 동물처럼 생식기를 완벽히 몸속에 숨기거 나 털로 가리고 다닐수 없는 생물이고 지성을 갖춘 생물이기에 옷이라 는 것을 만들어서 가리고 다니는 것이다. 그런데 저번에 100살 기념 티아와 테이 마법 연습중 티아가 성룡과 막 먹는 마나로 상급마법으로 분류되는 폴리모프를 쓰게 된것은 이제 지나 간 일이니 그르려니 하고 덮어두고라도 기본적인 성교육을 시키지 않아 서 인간으로 폴리모프을 하였지만 옷까지 만들줄은 몰라서 다큰(?) 숙 녀가-아직 처녀라고 부르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나이이므로..-동생앞에 서 당당하게 알몸을 보이고 있었고 동생또한 처음보는 여자의 몸에 성 적호기심보다는 지적(?)호기심에 누나의 몸을 이리저리 살펴보는 남들 이 본다면 당장에 나이도 어린 해츨링들이 벌써부터 근친상간에 맛을 들였다느니 뭐니 하는 소리 듣기 딱 좋은 상황을 연출했었다. 그러니 부모된 도리로서 어찌 아이들의 무지를 그냥 넘어갈 수 있겠는 가? 세이르아는 급히 아이들의 성교육 지침서들을 구해서 속독으로 읽 고는 아이들을 앉혀놓고 남자와 여자의 차이나마 가르쳐주기로 한것이 다. 아니 할려고 했었다. 그러나 성교육이란게 참으로 오묘해서(?) 처 음에는 분명 남녀 몸의 차이만 설명해줄려고 했는데 우등생인 티아와 테이는 남녀의 몸이 틀린 이유를 물어봐왔고, 아기를 낳기 위해서 틀리 다고 답해주자 그럼 어떻게 해야 아기가 태어나냐는 성교육중에서도 최 고단위의 질문까지 나와버리게 된것이다. 자식 가진 부모라면 알것이다. 어느날 자신의 귀여운 딸-혹은아들-이 아기는 어떻게 해서 만들어져? 라고 순진하기 이를때 없는 눈빛을 초롱 초롱하게 빛내면서 물어올때의 그 당혹감을.... 세이르아는 아이들의 질문에 조금씩 답해줄때마다 헤어나올수 없는 늪 에 빠지는 기분이었고 결국 못견디고 괴성을 지르면서 항복할수밖에 없 었다. 그리고 티아와 테이는 한통의 편지를 가지고 할머니 레어로 거의 내던져지다시피 워프하게 되었다. 쿵~~~ 경쾌한 울림과 함께 할머니의 레어에 도착한 티아와 테이를 보고는 할 머니인 레일리안은 별로 놀라지도 않은체 그 둘을 맞았다. "어머 티아와 테이구나 잘 지냈니? 놀러온거니?" "으윽 그게 아니고요...누나 무거워 빨리좀 비켜." 테이의 또 한번의 실수였다. "여자를 무겁다고 말하는 남자가 어디있냐?" 테이를 쿠션삼아서 떨어질때의 충격을 최소하했던 티아는 테이를 지근 지근 밟아주면서 일어났고, 테이는 비명을 지르면서 겨우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놀러온게 아니라면 무엇때문에 할미레어에 온거니?" 레일리안은 놀러온게 아니라는 말에 약간 서운함을 느끼면서 귀여운 손 자, 손녀가 무엇때문에 자신의 레어에 내동댕이 쳐졌는지 궁금해져서 물었다. "그게 저도 모르겠어요. 엄마가 이거 주면서 할머니 레어로 강제로 이 동시켰어요." 테이는 레일리안에게 편지역활을 하는 수정구를 주었고, 레일리안은 수 정구를 받아들고는 약간 마나를 흘려보내보았다. 그러자 세이르아가 녹음(?)했던 내용이 흘러나왔는데.... "엄마 부탁드려요. 이건 제 능력밖의 일이예요. 이제 엄마밖에 믿을 드 래곤 없어요. 부탁이니 티아와 테이에게 성교육좀 시켜주세요. 자세한 내용은 동봉한(?) 실프들의 녹음을 들으시고요." 레일리안은 얼굴을 찌푸렸다. 자신의 자식교육을 책임져야 될 엄마드래 곤이라는 작자가 겨우-레일리안의 생각으로- 성교육하나 갖고 자식의 교육을 다른드래곤에게 떠 맡기다니 기가찼다. 하지만 실프들이 말하는 그 사건과 지금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엄마에게 못배운 그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손자, 손녀를 보자 레일리안도 약간 망설여졌다. 그래도 오래산만큼 인생을 헛살아온게 아닌 고룡 레일리안은 천천히 남 자와 여자와의 차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할머니 레일리안의 레어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지낸지 일주일째... "으아아아악!" 난데없는 괴성이 레일리안의 레어를 뒤흔들었다. 실로 일주일만에 들어 보는 오랜만이라고도 할수 있는 테이의 비명소리였다. "이 변태 해츨링아!" "으아악 난 그때 아무것도 몰랐단 말이야!" "시끄러워! 문답무용!" 테이는 정말로 억울했다. 레일리안의 일주일간의 교육으로 이제 남녀의 차이와 그것(?)에 대해 확실히 알아버린 테이와 티아였다. 그러자 티아 는 갑자기 온몸이 붉어지더니 '그럼 테이 넌 그때 감히 누나의 알몸을 즐겁게 구경했었단 말이지.'라는 이유를 들먹여가면서 테이를 구타중이 었던 것이다. "티아야." 레일리안은 조용히 티아를 불렀고 그제서야 티아의 구타는 멈춰졌다. 티아가 불멘 얼굴로 왜 자신을 불렀냐는 질문을 눈으로 묻자 레일리안 은 조용히 티아를 타일렀다. "그때는 너도 아무것도 몰랐고 테이도 아무것도 몰랐으니 쌍방의 실수 였잖니." "그렇긴 하지만...." 테이는 진심으로 감사하며 할머니를 쳐다보았다. 역시 할머니는 손자편 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너가 부끄러워서 그러는건 이해하니깐....적당히만 해라." 그러나 마지막 할머니의 말은 테이에게 다시 절망을 안겨주었다. 손자 가 사랑스럽긴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손녀도 사랑스러웠던 레일리안은 여자였던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가재는 게편이라고 할수 있을것이 다. "으와아앙! 할머니 제발 말려줘요!" "걱정마 이번에는 나도 할머니 말씀대로 적당히(?) 패줄께." "전혀 위로가 안돼!" "시끄러워!" "으아아악!" 그렇게 일주일간의 유익한(?) 교육을 마치고 졸업행사의 마지막 하이라 이트처럼 테이는 티아에게 적당히(?) 구타를 당하고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렇게 시글벅적하게 다시 3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내 몸속에 흐르는 마나여 나의 의지를 받들어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날 비쳐지게 만들지어니..." 캐스팅이 끝나자 내 몸은 눈부신 은색빛에 휩쌓였다. 내가 발동시킨거 지만 그 빛은 나의 눈조차 부시게 만들어 눈을 감아버렸다. 빛이 사라졌다고 생각되어서 눈을 뜨자 주위의 풍경이 달라져 있었다. 원래 커다랗던 엄마의 레어는 이제 거대해져 보였다. 드디어 폴리모프 에 성공한것이다. "흠 제법 잘되었는데...이 엄마 얼굴이랑 닮았구나. 하긴 내 자식이니 깐 당연한거겠지." 본래 모습을 하고 계시는 엄마의 모습은 아주 오래만에 거대해져 보였 다. 아마도 처음 태어나서 엄마를 보았을때도 저 정도 크기로 보였을것 이다. 누나는 나보다 한발먼저 폴리모프를 하고 있는 상태라서 내 가까 이에 앉아서 날 쳐다보고 있었다. 누나는 은색 블라우스에 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치마는 활동을 편하게 하기 위해선지 무지 짧아서 허벅지가 다 드러나 보이는 보기 민망한 모습이었다. 어라? 흡족한 눈길로 날 쳐다보고 있던 엄마의 눈빛이 갑자기 변했다. 뭐냐? 저 의미심장한 눈길은.... "어머 거기(?)는 꼭 너 아빠를 닮았구나. 음 역시 달링 아들다워." "네? 아악!" 깜박하고 옷을 생각안했던 것이다. 난 급히 다시 폴리모프를 할려고 주 문을 외울려고 하였다. 그런데 누나가 지긋이 날 쳐다보더니 한마디 하 는것이다. "작다." 너무나 짧고 간단한 한마디였지만 그 말속에 내포된 엄청난 정신적 공 격력에 견딜 남자는 아마 이 세상에 없을것이다. "누나 보지마! 내가 누나 알몸봤을때는 죽일듯이 패놓고는 누나는 그렇 게 지긋이 쳐다봐도 되는거야?" "당연히 되지. 난 여자지만 넌 남자니깐." 이 얼마나 간단하고 단순명쾌한 논리면서 엄청난 불평등을 안고 있는 궤변이란 말인가? 난 이를 한번 갈아주고 주문캐스팅에 다시 들어갔다. "테이야. 이번에는 좀 크게 만들어라." 끝까지 그냥 넘어가질 않는 누나덕분에 난 잠시 캐스팅중에 휘청되었고 엄마의 이마에는 굵은 땀방울이 맺혔다. "이번에는 제대로 되었네." 당연하지 누나의 방해공작이 있다하더라도 내가 거기에 굴복할리가 없 잖아. 난 연한 갈색바지에 흰셔츠를 입은 상태로 폴리모프를 다시 하였 다. 그리고....솔직히 말하자면...조금 크게 다시 만들었다. 다 눈치챘을꺼라고 생각하니깐 굳이 설명은 안하겠다. 그래도 혹시 모 르겠다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묻지 말기를 바란다. 어차피 대답해 줄수 있는게 아니니깐... "자 그럼 엄마는 잠시 아빠한테 갖다올테니깐 저녁은 너희들이 사냥해 서 먹으렴. 사냥나갈때 너무 멀리가면 안된다." "네." 쌍둥이답게 이럴때는 항상 똑같이 대답하는 나와 누나였다. 역시 쌍둥 이는 쌍둥인가봐... 엄마는 검을 한자루씩 주고는 다시 한번 주의를 주고 폴리모프을 시전 해서 사람으로 변했다. 휴 뻔할 뻔자군...또 아빠한테 가는건가? 엄마는 마치 새색시마냥 홍조를 약간 띄운 방긋거리는 미소를 지으면서 우리들보고 갖다오겠다고 말하고는 아빠레어와 연결되어 있는 공간의 문을 열었다. 그러자 손을 흔들면서 배웅하는 누나 왈. "엄마 아빠한테 힘내서 테이같은 동생하나 더 만들어달라고 해줘요." 엄마는 거의 쓰러질듯이 휘청이면서 공간의 문에 들어가셨고 문이 닫히 면서 절규를 하셨다. 내용인즉...'엄마는 얘들한테 뭘 어떻게 가르친신 거야!' 라는 내용이었는데...아마도 지금 당장 할머니 레어로 쳐들어 가시던가 아니면 내일 아빠레어에서 나오실때 들렸다 오시거나 둘중의 하나겠군. 어느쪽이던 할머니레어 주변 몬스터들은 좀 힘들겠어... 싸움한번 붙으시면 바깥에 나가서 마구잡이로 마법을 날리는 두분이시 니깐...그러고 보니 일단 수틀리면 마법이나 주먹부터 날리고 보는 누 나의 성격도 엄마를 닮은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가끔든다. 아빠는 레드 일족 답지 않으시게 무지 상냥하시니깐... "자 그럼 느림보 테이도 폴리모프에 성공했으니..." "그 느림보라는 말은 빼!" 퍼억~~ "반항이냐? 내가 하는 말을 중간에 짜르지 마." "으 응." 난 누나에게 정통으로 맞은 북부를 움켜쥐고 고퉁을 참으면서 간신히 대답했다. 뭐 하루이틀도 아니니 새삼스레 분노같은건 생기지도 않았고 내가 왜 그런 말 실수를 했을까 하는 후회만 들었다. 누나는 나때문에 끊겼던 말을 다시 하기 시작했는데 난 내 귀를 의심할수밖에 없었다. "자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검술대련을 할수 있겠구나." "대....련?" "응 대련." 난 과거 누나가 인간들의 스포츠를-전부다 격투기- 하자는 이유를 빙자 해서 구타에 가까운 행위를 했던것이 기억났다. 동시에 온몸에서 절대 위험신호가 울려퍼졌다. "싫어!" "맞고 할레? 그냥할레?" "으으..." 누나의 협박에 잠시 고민을....할 필요도 없었다. 이래 맞나 저래 맞나 맞는건 변하지 않는다면 차라리 합법적(?)으로 누나를 때릴수 있는 권 한을 가질수 있는 대련쪽이 나은게 당연하니깐... "할께." "좋았어 가자!" 신이나서 달려나가는 누나의 뒤를 따라가면서 오늘만큼은 절대로 지지 않겠다는 의욕을 붙태우면서 따라나갔다. 그리고 반나절후 난 온몸에 피멍을 울분을 삼키며 치료하고 있었다. 진 짜검은 위험하기에 적당한 길이의 나무몽둥이를 사용했는데 힘있게 검 을 겨루듯이 몽둥이를 겨룰때마다 내 몽둥이는 부숴져 나갔고 잠깐 타 임도 먹혀들지 않은체로 누나에게 열나게 얻어맞았다. 한참을 대련을 빙자한 구타로 날 괴롭히던 누나는 배가 고프다면서 사 냥해오라고 날 밖으로 내몰았고 지금 나는 이렇게 울분을 삼키면서 숲 속에서 멍이든 상처에 치료마법을 시전중이었다. 그때 옆에 수풀이 흔들리던가 싶더니 오크 대 여섯마리가 걸어나오는 것이었다. 오크들은 나를 보고는 내 귀에는 돼지의 킁킁거리는 자기네 들 말로 지내들끼리 쑥덕대더니 무기를 빼어들고 나를 포위하는 것이었 다. 그리고 내 앞에 선 오크가 인간들의 언어로 말하길... "쿠룩...인간...쿠룩...죽고싶지 않으면...쿠룩...얌전히...우리...쿠 룩...따라와라." "뭐할려고?" "쿠룩...인간...넌...쿠룩...이쁘다...쿠룩...다른...인간...쿠룩...너 같은...인간....쿠룩...먹을꺼...많이...주고...쿠룩...사간다." 이게 책에서만 보던 오크들의 인신매매라는건가? 난 한숨을 푹 쉬고는 누나에게 당했던 한을 살기로 바꾸어서 내 뿜었다. "이것들이...한끼 식사도 안될 놈들이." 내가 드래곤 피어를 온힘을 다해 말에 담아서 내뱉자 놈들은 하나같이 무기를 떨어트리고는 입을 쩍 벌렸다. 아직 난 성룡이 아니기에 100%힘 을 담아도 개거품물고 기절까지는 가게 만들지 못했다. 하지만 겁에 질 리게 만드는 효과는 충분했다. 난 검 대신 옆에 큼직한 나무 몽둥이 하 나를 집어들었다. "오늘 너희들 잘못 걸렸다고 생각해라. 정말 죽을때까지 패주마. 으드 득." 인간들 속담으로 치자면 딴데서 뺨맞고 엉뚱한데서 화풀이하는 하는 격 이랄까? 어차피 식사거리로 삼을 생각인 오크는 그 날 나에게 단칼에 죽는게 아니라 죽을때까지 나의 화풀이 상대가 되어주었다. "크아아악!" "꾸에에엑!" 고막을 찢을것 같은 오크들의 비명소리가 조용한 숲속을 뒤흔들었다. 그 날 내가 잡아간 오크들을 먹던 누나는 왜 이렇게 고기가 질기냐고 투덜되었지만 난 아무 대답도 해줄수 없었다. 쩝 먹을 음식이니 적당히 할껄.... 계속 드래곤 남매 2화 누나에게 잡혀살기(5) "엄마 나 아빠 레어에 갖다올께." 누나가 밖에 놀러나간 사이에 난 엄마앞에서 비장한 각오로 말을 꺼내 었다. 나의 비장한 각오를 모르는 엄마는 별 생각없이 누나랑 같이 놀 러가렴 이라고 말했지만 난 고개를 저었다. "놀러가는게 아니야." "그럼?" "남자가 되기 위해서 가는거야!" 난 내 딴에 가슴속에 품고 있던 원대한 야망에 대해서 진지하게 말했던 것인데 그때 엄마의 엄청나게 복잡한 표정이란...말로 설명할 수 없는 슬픔, 분노, 황당, 쓸쓸함등이 섞여있는 표정이었다. "나 나 남자가 되기 위해...서라고?" 엄마는 더듬거리면서 간신히 내 뜻을 다시 물어왔고 난 비장한 각오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의 비장한 각오를 알아차린 엄마는 잠시 말이 없으 시다가 곧 아빠레어와 통하는 공간의 문을 열어주셨다. 난 엄마에게 작별인사를 하고는 다시한번 각오를 다지고 공간의 문에 들어갔다. 문이 닫힐때 엄마의 '테이가 벌써 어른이 될려고 하다니 엄 마는 슬퍼.'라는 울부짖음이 들린것 같았지만 나의 의지는 확고했기에 엄마의 외침을 무시했다. 죄송해요 엄마. "오 테이 왔구나? 혼자 왔니?" 아빠는 그 큰입가에 보는 드래곤으로 하여금 기분좋게 느껴지는 부드러 움 미소를 띠고 날 맞아주셨다. 다시한번 느끼는거지만 아빠는 정말 레 드드래곤 같지가 않았다. 뭐 하루이틀 드는 생각도 아니니 난 그 생각 은 잠시 접어두고 아빠를 찾아온 이유를 말했다. "아빠." "왜 그러니? 내 귀여운 아들아." "절 남자로 만들어주세요!" 서론 본론 다 빼먹고 결론만 말한 나의 외침에 아빠는 잠시 뻥진 표정 을 지었다가 표정을 풀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테이야 넌 아직 어리다." "그래도 이렇게 살수는 없어요. 전 남.자.가 되어야 해요!" "그 그래도 해츨링끼리는 아직 그 뭐시냐...하여튼 그걸...할수가 없 고...아 너 폴리모프할수 있지...그렇긴 하지만...에 또 상대가 없으니 깐...아니 상대야 뭐 아빠가 인간들 나라에 가서 적당히 협박하면 인간 여자들 수십명은 간단히 데려올수 있지만....우 너도 알잖아 아빠는 그 런 공갈협박하는 드래곤들 싫어한다는걸..." "아빠 무슨 소리하는거예요?" "어? 무슨소리냐니? 너 남자가 되고 싶다고 했잖아." "그런데 여자가 왜 필요한데요?" "어? 너 그럼 남자가 되겠다고 한 이유가 뭐냐?" "그건..." 난 그 자리에서 아빠에게 그 동안 누나에게 당해왔던 지난날의 울분을 토했다. 얼마전 검술대련을 빙자한 누나의 구타이야기까지 나오자 나도 모르게 분해서 눈물까지 나올것 같았다. 내 긴 이야기를 다 듣자 아빠 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물었다. "결론은 누나에게 이기고 싶다....이거지?" "네. 그러므로 전 남자가 되어야 해요. 강한 남자가!" "에휴 그러면 그렇다고 진작 이야기하지. 왜 아까는 강한 이라는 단어 는 빼먹고 이야기 한거냐? 난 또 다른 의미로 남자가 되고 싶다고 한줄 알아서 놀랐잖아." "다른의미가 뭔데요?" "허걱! 그 그건...어른이 되면 알게돼. 더 이상 알려고 하지마라. 알면 다친다." "네." 뭐 궁금하긴 하지만 알면 다친다는데 뭐하러 알려고 하겠는가? 그냥 넘 어가고 말지. 웅 하지만 정말 궁금하긴 하다 왜 남자가 되는데 인간여 자가 필요한거지? "뭐 어찌되었던간에 누나에게 이길수 있는 강한 남자가 되고 싶다 이거 지?" "네." "하긴 티아가 말괄량이에 힘이 쎄긴 쎄구나라고 생각했었는데...아이들 은 싸우면서 크는거라 별 말 안하긴 했었지만 그래도 남자 체면에 여자 한테 지고만 사는건 자존심 상하겠지." "자존심 문제가 아니라 저에게는 생존의 문제가 걸려있다고요." "그 정도냐?" "그 정도인데요." 나의 말에 아빠는 믿지 못하겠다는 눈빛을 하셨다. 하긴 아빠 레어에 놀러왔을때도 가끔 누나와 싸움...아니 일방적인 구타를 당하긴 했었지 만 엄마레어에서 엄마 외출때마다 당했던거에 비하면 드래곤 발의 피밖 에 안되는 수준이었으니 아빠가 믿지 못하겠다는게 이해가 간다. "알았다. 그건 그렇다고 치고..." 그렇다고 치는게 아니라 정말 그렇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어른들 말씀에 함부로 끼어드는게 아니기 때문에 난 조용히 아빠의 말을 경청했다. "아들아 강한 남자의 첫발은 부자의 호칭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너 가 진정으로 강한 남자가 되고 싶으면 이제부터 아빠라는 호칭대신 날 아버지라고 불러라. 알겠느냐?" "네 아버지!" 난 비장한 각오를 더욱 굳히면서 한자한자 힘을 주어서 아버지를 불렀 다. 아버지의 눈길은 잠시 결언한 의지로 빛나는...가 싶더니... "아들아!" "네 아버지!" "두드러기 날꺼 같다. 그냥 아빠라고 불러라." "네 아빠." 그렇게 강한 남자로서의 내 첫발은 첫날부터 수정을 거치는 약간은 불 안한 한발을 내딛어야 되었다. 다음날 나는 아버지의....아니 아빠의 레어 공터에 정좌해서 앉아 있었 다. 내 옆에는 아빠가 만들어주신 목검이 놓여 있었다. 아빠의 드래곤 이빨을 가공해서 만든 목검이라 얇아보이긴 하지만 그 강도는 무시못할 수준인것이다. 나는 그렇게 아빠의 명에 따라 정신수양을 하면서 아빠 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후 폴리모프한 아빠가 레어에서 걸어나오셨 다. 걸어나오셨는데...뭐 뭐야? 저 처음 보는 복장은... 아빠는 녹색바탕에 갈색과 흑색이 절묘하게 섞인 바지와 상의를 입고 머리에는 붉은 모자를 쓰시고 계셨는데 더 눈에 띄는것은 처음보는 물 건으로 눈을 가리고 있었다. 양눈을 가리고 있는 검은색의 물건과 이상 한 옷 그리고 붉은모자까지 합세해서 아버지의 몸에서 웬지모를 공포까 지 느껴졌다. "아빠 그 얼굴에 쓴건 뭐예요?" "아 이거? 이건 선글라스라는거다." "선글라스?" "그냥 그런게 있단다. 그리고 아들아." "네 아빠." "이제부터 널 훈련을 시킬때는 난 너의 아빠가 아니다. 너를 강하게 만 들기 위해서 난 잠시 너의 아빠라는 직책을 벗어던지고 너를 매섭게 단 련시킬것이다. 각오는 되어있겠지?" "네." 세삼스레 각오같은거 할 필요도 없었다. 어차피 이대로 가다가는 언젠 가는 누나에게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떨면서 살지도 모르니깐... "좋다 그럼 훈련동안은 날 코치라고 불러라 알겠느냐!" "네 아...가 아니라 코치님!" 난 시키지도 않은 님까지 붙이면서 의욕에 몸을 불태웠다. 그리고 그 날부터 힘든 수행의 나날이 계속되었다. "뭐하고 있냐? 속도가 점점 늦어지고 있다. 아까 처음 기세는 어디 간 거야? 빨리 빨리 더 뛰어! 뛰란 말이야!" "899, 900, 901, 902." "어쭈 점점 더 늦어지지? 어라 목소리도 작아지네. 목소리 더 크게 안 해? 1000번 더 추가시킬까?" "903! 904! 905!" 난 지금 온몸에 무거운 추를 달고 10미터의 거리를 왔다갔다 뛰어다니 고 있었다. 아빠는 저 코치님 버전만 되면 정말로 드래곤이 달라져서 매섭게 나를 훈련시켰다. 요즘 내 하루 일과는 아침에 일어나서 휘두르기 천번하고 밥먹고 아빠 가 시키는 스피드및 근력 강화훈련이란걸 하고나서 점심먹고 반사신경 강화훈련을 하고 저녁먹고 대련을 한번 하면서 자세를 고쳐주는 정말로 쉴틈없는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지금 하고 있는 훈련이 스피드및 근력 강화 운동중 하나이다. 아빠는 어차피 지금 힘을 단련해도 누나를 따라잡기는 힘들것이라며 차라리 스 피드를 더욱 단련시켜서 스피드로 힘을 제압하라는 과제를 내주었다. 그리고 그 과제를 풀기위한 훈련을 매일 하고 있는것이다. 아무리 강력한 힘이라도 안맞고 내가 먼저 치면 장땡이라는 아빠의 논 리는 나에게 크나큰 감동을 안겨주어서 이런 힘든 훈련도 불만없이 받 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그 강도는 날이 가면 갈수록 점점 더 심해 졌고 이제 아빠는 저 코치버전의 옷을 입는걸 즐기는 듯한 인상까지 보 여서 이거 단순히 괴롭히기 좋아하는거 아니야? 라는 불순한 생각까지 들게 만들었다. "자 준비되었냐?" "네 코치님!" "그럼 간다!" 이번 훈련은 반사신경강화 훈련. 상대-누나-의 공격을 스피드만으로 피 하는것은 무리다 어디서 공격이 들어오는지 보고 빠르게 반응해서 피하 는 방법을 몸에 습득해야 된다는 취지하에 아빠가 고안한 훈련방법으로 몇개의 통나무들이 줄에 매인체 여기저기서 날 노리고 날아왔다. "하앗!" 두세개의 통나무들을 피하고 뛰어넘었다. 그러나 시계추의 원리에 의해 서 통나무들은 다시 날아왔고 통나무마다 무게 때문에 그 타이밍은 조 금씩 엇갈려서 날아들기 때문에 통나무가 완전히 멈출때까지는 긴장을 풀어서는 안된다. 긴장을 풀면... "우왓!" 말 끝나기도 전에 통나무 하나가 내 뒤통수를 갈겼고, 동시에 균형을 잃어버린 나에게 다른 통나무들이 부딧쳐왔다. 이 훈련은 부가적인 요 소로 맷집을 키우는데도 크게 공헌을 하였다. "이 느림보 녀석아! 그 꼴이 뭐냐? 벌써 한달이 되어가는데도 아직도 다 못 피한단 말이냐!" "죄송합니다. 코치님!" "다시 한번 더 간다!" "예 코치님!" 다시한번 말하지만 아빠가 저 코치버전 옷만 입으면 180?드래곤이 달 라진다. 그렇게 힘든 훈련이 계속 되던 날이 다시 한달이 지나고 아빠 레어에 온지 두달이 되어갈때.... "으헉!" 난 옆구리에 느껴지는 화끈한 통증에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었다. 내 앞에는 그 코치버전을 입은 아빠가 무표정한 표정으로 바라보면서 날 제촉했다. "어서 일어나라." "으윽...." 그러나 쌓이고 쌓인 내 불만은 결국 폭팔하고 난 그 자리에서 주저앉은 체 일어날수가 없었다. 정말 다 때려치고 싶을정도로 훈련의 강도는 더 욱더 쎄저만 갔다. "포기한거냐?" ".........." 난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아빠는 그 선글라스라는 것을 벗고는 날 쳐다보았다. 그 눈에는 슬픔이 어려 있었다. 나를 보던 아빠의 눈은 어 느새 지고 있는 석양을 바라보았고 내 시선도 자연스럽게 석양쪽으로 향하였다. 잠시 아빠의 드래곤 모습처럼 붉게 물들여 있는 석양을 바라 보고 있자 아빠가 나직하게 말하였다. "아름답지?" ".........." 아빠는 내 대답을 기대 안하셨는지 나의 무응답에 별 상관안하시고 계 속 이야기를 하셨다. "저 붉은 태양은 내일 다시 아름다운 일몰을 만들면서 뜰것이다. 그리 고 다시 아름답게 석양을 만들면서 지겠지." "........" "그렇게 오늘이 가고 내일이 찾아오는건 당연한 거지만...이대로 포기 한체로 내일의 아침해를 맞으면 넌 진정한 내일을 맞을수 없는것이다." "코...아빠..." "내일의 해는 내일 뜬다. 하지만 이대로 너를 찾아오는 어둠에 몸을 맡 겼다가는 넌 그대로 어둠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거야." "아빠." 아빠의 목소리 톤이 점점 높아져갔다. "넌 처음 이 아빠를 찾아와서 강해지고 싶다고 한 말을 잊은거냐? 내일 의 빛나는 태양과 같은 미래를 지금 포기하고 이제부터 찾아올 어둠에 너의 인생을 맡기고 싶은거냐? 남자라면 일어서라 테이야. 내일의 태양 은 너의 손으로 찾아야 되는것이다." "아 아빠." 난 나도 모르게 흘러내리는 주책맞은 눈물을 쓱 닦고는 아픈 옆구리의 통증을 참으면서 일어나서 목검을 고쳐들었다. 그런 나를 보고 아빠는 웃으시면서 석양을 등지고 목검을 드셨다. "저 태양이 지고 찾아오는 어둠을 이제부터 나라고 생각해라. 날 쓰러 트리는게 너의 내일의 태양을 찾는 일이다." "네 아빠!" "훈련중에는 뭐라고 부르라고 했지?" 아빠는 벗었던 선글라스를 다시 끼셨다. 난 나도 모르게 빙그레 웃음이 나오는 것을 느끼면서 힘차게 대답하면서 검을 고쳐지고 달려들었다. "갑니다 코치님!" "와라!" 아빠의 검과 나의 검이 교차하면서 태양은 저물어가고 있었다. 정말 감 동적인 하루였다. 그리고 다시 한달의 시간이 흘렀고 이제는 더 가르칠게 없다는 아빠의 말에 난 이만 하산....이 아니라 엄마레어에 돌아가기로 하였다. 공간의 문에 들어갈려는 나에게 아빠는 마지막으로 나에게 말했다. "내 귀여운 아들아 이 아빠가 말했던거 꼭 기억해야 된다." "네 내일의 태양을 찾는 일은 제 손으로 할께요." "녀석..." 아빠는 미소지으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아빠는 이제 남자가 다 되었구나 라는 눈빛으로 날 부드럽게 쳐다보시고는 곧 표정을 바꾸 어서 약간 안달이 난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그리고 테이야...그 엄마한테 가거든....언제 한번 오라고 해라." "네." 그리고 난 복수를 위해서 마음을 다짐하면서 엄마레어로 통하는 공간의 문에 발을 들여놓았다. 스산한 바람이 누나와 나의 사이를 가로 질러가고 있었다. 그 바람에 날리는 낙엽하나가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었다. 내 손에는 아빠가 만 들어 주셨던 드래곤이빨 목검이 꼭 쥐어져 있었다. 누나의 손에도 역시 훈련때 아빠가 쓰셨던 드래곤이빨 목검이 쥐어져 있었다. 이왕 할꺼라 면 같은 조건에서 동등하게 싸워야 된다는 나의 정의로운 마음씨로 누 나에게 건네준것이다. 엄마는 석달만에 돌아온 이 아들의 장하게 성장 한 모습을 보고....계신게 아니라 아빠의 말을 전해주자 쏜살같이 닫히 지 않은 공간의 몸으로 들어가셨다. 물론 엄마라는 직책을 망각하고 계 시지 않아서 밥은 알아서 챙겨먹으라는 사랑에 넘치는 주의를 주시는걸 잊지 않으셨다. 뭐 그건 그거고 난 조심스레 한 발을 떼었다. 그것이 신호였을까? 누나 는 갑자기 나에게 돌격해 들어왔다. "훗...보인다!" 그렇다 보였다. 내 눈에는 누나의 움직임이 훤히 보였다. 누나의 목검 이 허공을 가르는것이 똑똑히 보였던 것이었다. 지난 석달간의 피나는 훈련은 결코 헛된게 아니었다. "왼쪽? 아니 정면이구나!" 난 왼쪽으로 칠듯이 페인트를 쓰는 누나의 의도를 파악하고 오른쪽으로 뭄을 틀어서 정면에서 내려치는 목검을 피했다. 내려친 검을 빠르게 오 른쪽으로 휘두르는 놀라운 속도를 선보인 누나였지만 난 이미 그 누나 보다 더 빠르게 대응하고 있었다. 오른쪽으로 몸을 틀자마자 바로 정면 으로 달려가면서 누나의 등을 목검으로 후려쳤던것이다. 누나는 약간 비틀거렸지만 곧 자세를 잡고는 다시 덤벼들어왔다. 그러 나 이미 스피드와 반사신경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나를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몇번 검을 부딧치고는 생긴 누나의 헛점을 놓치지 않고 검을 쥔 누나의 손목을 강하게 내려쳤다. "꺄악!" 그래도 누나역시 여자였는지 귀여운 비명을 지르면서 검을 놓쳐버렸다. 그리고 나의 목검은 바로 누나의 목을 위협하고 있었다. 완벽 퍼팩트 그레이트한 나의 승리였다. "졌다." 누나의 짧은 패배를 시인하는 말에 나는 그동안의 암울했던 시절이 죄 다 보상되어지는 기분에 기뻐하였다. 아빠 전 저의 내일을 드디어 제 손으로 쟁취하였습니다. 이건 전부다 아빠의 덕입니다. 같은 생각을 하면서 이리저리 팔짝거리면서 기뻐하는 내 귀에 누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2차전을 시작해볼까?" "훗 아무리 그래도 누나는 나한테 안돼....라고 생각했는데....누나 2 차전이라면서 왜 주위에 아이스 미사일을 만드는거야?" 누나는 이제 자신의 18번 마법이 되어버린 특대 아이스 미사일을 만든 체 사악하게 방긋 웃으면서 말했다. "2차전은 마법 싸움." 깜박하고 있었다. 검술로 누나를 이겨봤자 성룡의 마나를 가지고 있는 누나에게 마법으로는 상대가 안된다는 것을.... "으아아아악!" 엄마레어의 공터에서는 아주 오랜만에 누나에게 얻어터지는 나의 비명 이 울려퍼졌다. 아빠 전 아직 내일의 태양을 저 손으로 얻지 못했어요. 아마도 누나가 내 누나인 한은 나에게는 암울한 어둠만이 함께 할꺼라 는 불길한 생각이 들어요. 계속 드래곤 남매 2화 누나에게 잡혀살기(6) 해가 지고 있었다. 엄마의 레어 앞 공터에서 피처럼 붉은 일몰을 보면 서 난 옛 생각에 빠져 있었다. 처음으로 가출한 날 누나가 날 구하러 왔을때의 일이었다. 가끔 그때 일을 떠올릴때면 누나가 날 껴안고 걱정했었다고 울던 모습이 생각난 다. 꿈이 아니었을까 할 정도로 가슴 뭉클하게 누나의 사랑이 느껴지..... "야 테이야." 퍽! 데굴데굴 쿵! "짜식이 허약하기는 기껏 그 정도 찼다고 구르냐?" 느껴지긴 개뿔이 느껴져 크아아악 역시 그때 내가 무슨 착각을 했던 걸 꺼야!! "우쒸 왜 그래?" 난 땅에 부딧친 머리를 만지면서 투덜거렸다. 이제 제법 머리가 길어진 성룡의 모습을 갖춘 나는 머리를 아래로 내리고 손으로 더듬을 수가 있 었다. 그렇다. 그 20살 가출미수사건 이후로 시간은 흘러 200년이 흘러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누나의 심한 괴롭힘에 다시 한번 가출을 생각할때도 있었지만 결국 그 날 이후로는 실행에 옮겨본적이 없었다. 현실적으로도 내가 가출을 해봐야 어디 갈때가 없다는 사실을 인식해서일까? 아무튼 이제는 제법 커진 내 몸과 누나몸 그리고 덤으로 누나는 커지면 커질수록 그 무식한 힘이 점점 배가 되더니 이제는 근처 몬스터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될 정도로 힘이 쎄졌다. 아마도 이 근처 몬스터들은 엄 마보다도 누나를 더 무서워 할 것이다. 일단 화가 나면 1차로 나에게 화풀이를 하고 2차로 근처 몬스터들을 몰살하는 누나니깐. "엄마가 오늘 늦을꺼라고 저녁 알아서 챙겨 먹으래." "엄마는 어디 갔는데?" "아빠레어에...외박이시지 뭐." 별일 아니라는 듯이 말하는 누나와는 달리 난 얼굴이 화끈 거렸다. 그 게 무슨 말 뜻인지 알아차린 것이다. 어릴때야 뭔지는 몰랐지만 그래도 커가면서 이런저런 남녀간의 일들을 책에서 읽었고 결정적으로 할머니 가 가끔가다가 성교육을 엄마대신 우리에게 시켜주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미 알꺼 다 안다는 뜻이다. 누나는 얼굴을 화끈거리고 있는 나를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다가 내가 말이 없자 다시 한번 발을 날렸다. 퍽! 데굴데굴데굴데굴 쿵! "......우~~~씌 왜 그러냐구!!!" "이게 감히 누나가 말씀 하시는데 딴 짓을 해놓고 대려 큰소리냐!!" ".........." 찍~~이렇게 나오는데 내가 뭔 할 말이 있겠는가? 저 자세로 나갈 수 밖 에 만약 여기서 더 게겼다가는 누나의 무시무시한 특대 아이스 미사일 연발이 날아 오기 때문이다. 난 반항을 포기하고 아픈 머리를 만지면서 다시 물었다. "그러니깐 왜 불렀는데?" 누나는 이제야 정신 좀 차렸구나 라는 눈빛으로 보며 말했다. "저녁 이따가 먹어야지." "그래서? 엄마가 잡아놓은 거 있잖아." "에이 보존마법 걸린거 말고 이왕이면 우리 싱싱한걸루 먹자 응? 너도 좋지?" 생각을 해보니 나 역시 반대할 일이 아니길레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알았어. 그럼 지금 빨리 사냥 갖다 와야 되겠네." 난 이제 서서히 어두워 지는 하늘을 보면서 서둘러야 된다는 생각으로 말했다. "그래 그러니깐 빨리 갖다와." "............." "아 그리고 우리 오랜만에 통구이 해먹자. 사슴이나 멧돼지로 잡아와 알았지?" "............" 결국 나 혼자 갖다오란 소리잖아...불공평해 라고 속으로 투덜거리고 있을때 누나 주위에서 특대 아이스 미사일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 했다. "누나 그럼 얼른 갖다올께 통구이 할 준비하고 있어. 헤헤헤." 거듭 말하지만 내가 무슨 힘이 있겠나? 아이스 미사일들이 날 노리기 전에 얼른 날아 오를 수 밖에.....흑 힘 약한게 죄지.... "그래 테이야 조심해야 된다. 그리고 빨리 갖다와~~~." 분명히 사이좋은 오누이의 사랑스런(?) 대화이긴 하다. 누나 주위에 저 특대 아이스 미사일들만 없다면 말이다. 한 숨을 푹 쉰 다음 사냥터인 숲을 날아가다가 어느정도 날았다 싶을때 난 땅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폴리모프를 실행하였다. 조그마한 사슴이나 멧돼지들은 숲위에 서 잘 안보이고, 아직 드래곤 피어를 잘 못 쓰는 나로서는 사냥감들이 알아서 기어나오게(?) 만드는 재주는 없기 때문이다. 그냥 숨어 있는 그자리에서 기절하게 만들뿐이지.... 평소 변하는 짧은 은발에 연한갈색 바지, 그리고 하얀셔츠차림으로 변 한 다음 난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아직 날이 완전히 어두워지지 않았으니 빨리 찾아야 되는데.... "실프." 난 엄마가 가르쳐준 정령마법중 실프를 불러내서 주위에 사슴이나 멧돼 지가 있는지 찾아보게 하였다. 실프는 잠시 사라지는가 싶더니 얼마후 다시 내 앞에 나타나서 날 어딘가로 안내했다. 실프의 뒤를 따라 어느정도 가자 커다란 사슴 한마리가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내 사냥방식은 간단했다. "실프 저 녀석 이리 가져와." 실프 하나를 더 불러서 사슴을 번쩍 들게 하고는 내 쪽으로 가져오게 만들었다. 사슴은 갑작스레 공중에 몸이 뜨자 당황했는지 비명을 지르 면서 몸을 버둥되었다. 툭 그런 사슴의 목을 난 간단히 쳐서 기절 시켰다. 누나와 나는 아빠레어 에 놀러 갔을때 아빠가 통구이를 먹게 해주겠다면서 사슴을 잡아와서 모닥불에 구워 준적이 있었다. 그 때도 우리는 폴리모프 한 상태로 놀 러갔기 때문에 아빠께서 여행을 하게 되면 자주 먹게 될 것이라면서 우 리에게 통구이를 해주었던 것이었다. 인간으로 폴리모프한 상태라 입맛도 인간으로 변해 있던 우리에게는 처 음 먹어보는 통구이가 굉장히 맛있었다. 그래서 가끔 우리끼리 사냥을 할때는 이 통구이를 해 먹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오늘도.... "누나가 모닥불 만들어 두었겠지. 얼른 가야겠다." 난 곧 레어 앞의 공터로 공간이동 하였다. 그 곳에서는 인간으로 폴리 모프한 누나가 모닥불을 피워넣고 있었다. 사슴을 -실프가-들고 누나에게 가자 누나는 생긋 웃으면서 말했다. "역시 내 동생이야 빨리 왔네." "그럼 내가 누군데." "걸음마도 느린 느림보 해츨링." ".....누우나아!" "아 미안 가고일에게 몰매 맞던 허약체질 해츨링이었지." "우~~씨!!" "뭐야? 그 도끼눈은 누나랑 한번 해 보겠다는 거야?" ".....아니 빨리 밥이나 먹자." 하아....약점 몇개 잡힌게 이렇게도 괴로울 줄이야...그러고 보니 아빠 도 할아버지도 누나한테는 꼼짝도 못하고, 오냐오냐 이시다. 난 그렇게 될줄 알았다니깐.... 난 누나가 건네주는 단검으로 사슴의 목을 단숨에 베었다. 실프에게 미 리 귀뜸을 주어나서 실프는 나에게 피가 튀지 않게 해주었다. 그리고 아빠에게 배우고, 몇번 해봐서 이제는 능숙하게 배를 갈라 내장 을 꺼내고 가죽을 벗기는 작업을 했다. 아까전에도 말했지만 누나와 내가 둘이서만 밥을 챙겨먹어야 될때는 가 끔 통구이를 해먹는다. 그러나 그 때 마다 누나는 불만 피울뿐 나머지 잡다한 것은 다 내가 하게 되었다. 뭐 내가 누나에게 한번도 시킨적이 없었서이기도 하지만 만약 누나에게 시켰다가는 뭐가 날라올지 모른다 는 것을 본능이 느끼고 있기 때문이랄까? 그리고 슬픔 현실은 이제는 이렇게 하는 것을 내가 당연하게 받아들이 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부부로 치면 공처가라고 부른다지 현재 누나와 나의 상황을..... 흑 슬픈 현실이여... 실프에게 근처 나뭇가지 큰걸 하나 꺽어오게 만들고, 그 나무에 사슴고 기를 끼워서 누나가 구해놓은 Y자 막대에 걸쳐놓았다. 이제는 엄마가 구해놓았던 인간들의 조미료중 소금으로 간을 맞추면서 굽기만 하면 되 었다. 고기가 구워지는 향긋한 냄새를 맡으면서 난 문득 누나를 쳐다보았다. 모닥불에 누나의 은색 머리칼은 약간 붉게 보이면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절로 모르게 예쁘다라는 말이 나올 것 같았다. 그러나 예쁘면 뭐하나? 속이 시커먼데.... 그런데 정말 속이 시커멓다면 왜 그때 나를 안고 그렇게 엉엉 울었던 것일까? 그 때의 누나는 정말 진심으로 날 걱정하며 울어 주었었다. 그러나 그 때뿐 그 이후에 보여준 누나의 더러운 성질은 정말 그때 누나와 동일 인물인지 믿어지지 않게 만들었다. "뭘 그렇게 빤히 쳐다봐?" "에 아 아니 그냥...." 난 괜스레 얼굴이 화끈거리는 걸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 "너 나한테 반했니?" "쿠헥! 무슨 농담을 하는거야?" "그럼 왜 그렇게 날 쳐다보았는데?" "우우...그건 그냥..." "그냥?" 얼라? 누나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나 한테 다가온다. 헉 또 때릴려고? 맞다 누나는 이유없이 째려보는 걸 싫어하지....근데 방금 전 누나를 보던 내 눈빛이 째려보는 눈빛이었나? 아니었는데.... 내 예상과는 달리 누나는 내 바로앞에 쭈구리고 앉더니 내 눈을 그윽하 게 바라보았다. "뭐 뭐야?" "아니 그냥 내 동생이 참 귀엽구나 하고...." "무 무슨....." "정말 왜 쳐다 본거야?" "......그냥..." "또 또 그런다. 자 내 눈을 쳐다보고 말해봐. 얼라 눈 쳐다 보랬지 고 개 돌리라고 안했다." 누나는 강제로 내 얼굴을 붙잡고 자신의 눈을 쳐다보게 만들었다. 윽 도저히 거짓말 못하게 만드는 저 눈매.... "자 사실대로 말해봐 누나를 왜 쳐다 봤어?" ".....그 그게...불에 비친 누나 머리결이..." "머리결이?" "반짝반짝 빛나는게...." "빛나는게...." "예....예...." "예...뭐?" "예쁘구나...해서..." "참내 그럼 그렇게 말하면 되지. 그 말하기가 그렇게 힘드니..." "아니...그냥..." "킥킥킥 하여튼 요 순진 덩어리...." 흡! 바 방금 뭐야? 누나가 갑자기 눈을 감고 그리고....내 눈에는 눈을 감은 누나의 눈이 바로 앞에 보였고, 그리고는 입술에서는 누나의 입술 이?!! 난 어찌 해보지도 못한체 당해(?)버렸다. "누나를 이쁘다고 해준 내 귀여운 동생에게 답례야. 흠 아직 어린애한 테 조금 심했을려나?" "......." "아 고기 탄다. 얼른 먹자." 누나는 방금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사슴통구이의 다리를 하나 뜯 어서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충격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는 나 에게도 다리 하나를 뜯어서 주었다. 난 고기를 먹을 생각도 못하고, 그 저 멍하니 허공만 응시 할 수 밖에 없었다. '방금 그게 뭐지? 귀여운 동생에게 답례? 누나가? 나를 귀엽다고 말해 준건가? 그 누나가?" 난 방금 전 입맞춤에 대해서는 가급적 생각 안할려고 노력하면서 누나 가 했던 말만 계속 되뇌였다. 그러고 보니 누나에게 처음 듣는 말이었 다. 귀여운 동생 이라는 말..... "아 잘 먹었다. 뭐야 아직도 안먹은거야? 얼른 먹고 자리 치워라. 이 누나는 먼저 잘께." 동생의 식욕을 단숨에 뺏어가놓고는 누나는 자기 배만 채우고는 레어로 들어가 버렸다. 누나가 없어지고 나서야 난 겨우 정신을 차리고 한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내 첫키스를 누나에게 뺏겨버렸다는 사실이었다. 계속 드래곤 남매 3화 미아가 된 테이(1) 적당한 온도 그리고 널찍한 공간 빛이 없어도 마법의 구에 의해 눈이 아프지 않을 정도의 밝기가 있는 커다란 드래곤의 레어 중앙에 드래곤 과는 하등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둥그런 탁자 하나가 놓여 있었고, 그 탁자에는 붉은색, 검은색, 하얀색, 은발, 금발, 녹색, 푸른색을 가진 각각의 남녀들이 탁자에 앉아서 심각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논의중이었 다. 그들이 드래곤이라는 것은 새삼스레 설명안해도 알것이고, 다만 부연 설명을 붙이자면 그 들은 각 일족을 대표하는 로드들이라는 것이다. "하아 해츨링들이 많아진 것은 종족에게는 기쁜 일이지만 이렇게 골치 아픈 일이 될 줄은 몰랐군요." 그렇게 말을 꺼낸 이는 30대의 인자한 얼굴을 가진 긴 은발머리의 남자 실버일족의 로드 샤드락 이었다. 샤드락의 말에 다른 일족의 로드들도 동감을 표현한다는 듯 고개를 끄 떡였는데 딱 한 사람...이 아니라 한 드래곤 블랙 드래곤의 로드라고 추정되는 남자만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설마 그 녀석이 이렇게 크게 사고를 칠 줄은 몰랐습 니다." 블랙일족의 로드 다므로는 연신 식은땀을 흠치면서 변명을 해되었다. 그 역시 30대의 남자로 샤드락과는 반대로 근엄한 얼굴이었건만 그 근 엄한 얼굴은 지금 식은땀에 주름살로 불쌍하게 보일 정도로 망가져 있 었다. "에구구 보기에 너무 불쌍해 보이니 그만두세요. 그게 어디 다므로님 잘 못이세요?자식 관리 제대로 못한 어미 잘못이지." 다므로의 모습이 너무 안되 보였는지 옆에서 위로를 해주는 자는 20대 중반의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초록색의 머리를 단정하게 단발머리로 다 듬고 보는 이로 하여금 편안한 느낌을 가지게 해주는 미소를 지닌 그린 일족의 로드 레이니루 였다. "레이니루 말씀이 맞습니다. 문제는 지금 지나간 일로 계속 사죄를 하 기 보다는 그 시간에 대책을 세워두는게 훨씬 급한 일입니다." 새하얀 머리를 길게 늘어트리고 전부다 인간으로 폴리모프한 드래곤 틈 에서 유일하게 엘프로 폴리모프한 화이트의 로드 텐인시야는 엘프들이 보아도 가슴앍이를 할 정도의 미모를 자랑하는 모습이었다. "어이구 오죽이나 로드가 못났으면 그 밑에 일족이나 제대로 되 있겠나 ? 무슨 애들관리가 어렵다고 이런일을 벌려놔? 이 일을 어떻게 책임질 꺼야?" 성질 급한 말투 굳이 설명안해도 알 것이다. 레드 일족의 로드 그레아 드는 불타는 붉은 머리를 길게 늘어트리고, 고집과 불만이 가득한 얼굴 로 회의에 다시금 찬물을 끼얹는 대사를 말했다. 다므로의 고개는 다시금 숙여졌고, 다른 로드의 얼굴에서 '이 양반이 기껏 가라앉았던 분위기 풀어놓으니깐 왜 다시 가라앉히고 난리야'라는 표정을 눈에 가득 담은체 그레아드를 노려 보았다. 그러나 그런 눈빛에 기 죽을 레드 일족이 아니었으니 그 들의 눈빛을 흥이라는 코웃음 한방으로 외면했다. 잠시후 허리까지 오는 푸른머리를 곱게 하나로 따서 묶은 이지적인 미 녀의 모습을 한 블루일족의 로드 다이넬은 고개를 설래 설래 흔들며 말 했다. "확실히 이번일로 비상사태가 걸렸고, 덕분에 우리 종족의 최대 즐거음 인 유희를 한동안 못하게 되었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이번 블랙 해츨링 가출 사건전에도 수많은 가출 사건이 있었으니 어찌보면 이번일 도 예상가능한 일이었을 겁니다. 언제 어떤 종족에게서 일어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을 사건이었는데도 우리가 대비를 너무 게을리 했던게 가 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논리적이고 또박또박한 그녀의 말을 텐인시야가 이어 받았다. "맞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이번일은 블랙일족에서 재수없게 걸렸다고는 하지만 원래 이번 일도 터질 가능성이 가장 높은 일족은 레드일족 였잖 습니까?" 그 말에 일동은 고개를 끄덕였고, 당연히 레드일족의 로드의 얼굴은 열 받아서 벌겋게 변해서 씩씩 되었지만 반문을 못했다. 그 말대로 가장 높은 가출률을 자랑하는 레드 일족은 해츨링이 태어날때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일족 전체가 어쩌다가는 종족 전체가 가출한 해츨링 을 찾아 나선적이 있었고, 지금의 레드일족 로드인 그레아드 역시 1년 간 인간세상으로의 가출경험이 있는 것이었다. 대충 이들의 말을 조합해보면 블랙일족의 해츨링이 인간세상의 모험을 동경해서 가출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흔한(?) 해츨링의 가출에 이렇게 각 일족의 로드가 머리를 싸매고 고민을 하는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만약 아직 가출한 해츨링이 안잡힌 것이라면 지금 전 종족이 다 이 아 이를 찾아 헤메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용감무쌍한 해츨링은 이미 잡혀와서 엄마에게 반 죽도록 맞아서 레어에 갇혀서 외출금지령을 받은 상태였다. 그럼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그걸 설명하자면 현재 이 드래곤들이 사는 대륙부터 설명해야 된다. 그 리노대륙이라 칭하는 이 대륙에는 큰 제국격인 나라가 다섯이 있다. 그 리고 기타 작은 나라들이 있는데 이 작은 나라는 제쳐두고 제국격인 다 섯 나라중에서 아주 특이한 나라가 하나 있다. 대륙 서쪽 끝에 위치한 프론트 연합국이라는 나라인데 이 나라는 말 그대로 여섯개의 작은 나 라가 군사적, 정치적, 경제적인 면에서 협력해서 세운 연합국이었다. 여기까지는 별다로 특이한 연합국이라고는 볼 수 없다. 그런데 정말 특이한 점은 이 나라를 연합하게 만들고, 다른 제국에 비 해서 작은 나라인데도 불구하고 다른 나라들이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하는 여섯명의 신적인 존재가 있기 때문이다. 일명 카이저 드래곤이라 고 불리는 드래곤들중에서는 돌연변이적 존재인 가장 신에 가까운 힘을 갖고, 보통 드래곤보다 몇십배는 더 살아간다는 특이한 드래곤들이 각 나라의 수호신으로 떠받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 드래곤들은 인간들에게 수호신 대접을 극진히 받으면서 그 들의 나 라를 도와준다. 그리고 오랜 연륜에서 나온 경험으로 그 나라의 정치적 경제적인 문제와 가끔 일어나는 각 나라들의 작은 분쟁을 중립적인 위 치에서 해결해 주기도 하기 때문에 프론트 연합국은 다른 네개의 제국 들과 비교해서 가장 작은 국토를 가지고 있지만 가장 번성한 나라이기 도 하였다. 더구나 드래곤들은 자국내 분쟁은 말로 해결해 주지만 타국의 침략에는 손수 힘을 빌려 주기도 하였기에 다른 나라들이 프론트를 넘보지 못하 는 힘이 되어 주었던 것이다. 다른 드래곤들도 지금 자신들의 로드보다 몇배는 더 살아왔다는 그 드래곤들을 신에 가장 가까운 자라는 뜻으로 그 들을 신룡이라고 부르면서 칭송해 왔었다. 그런데 그런 어찌보면 그 신룡들의 나라라고 할 수도 있는 프론트 연합 국의 나라 중 황금룡 골드 드래곤 세이고든이 있는 나라인 세인트의 한 작은 마을이 말그대로 개박살이 난 것이다. 더구나 마을을 개박살 낸 장본인은 바로 가출했던 그 블랙드래곤의 해츨링이었다. 차초지종은 이러했다. 엄마의 감시망을 피해 인간들 마을에 놀러나 간 것까지는 좋았지만 책만 보고 인간들의 생활상을 배워왔던 초보 드래곤 이 뭘 알겠는가? 결국 노예상인에게 납치당해서-납치당했는지 조차 모 르고- 돈 많은 변태 귀족에게 팔려갔다가 귀족이 덤비니깐(?) 놀라서 이성을 잃고 그 지역을 완전히 개박살 내 버린것이다. 원래대로라면 드 래곤들에게 인간들 마을 한 두개 파괴되던 말던 하등 상관이 없지만 문 제는 그 파괴된 마을이 황금룡 세이고든의 관할지인 세인트라는 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결국 세이고든에게 잡혀서 가출 해츨링은 잡혔지만 세이고든은 아무 죄 도 없는 다른 마을 사람들까지 휘말려 죽은것에 기분이 언쟎았는지 앞 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해결방안을 세우지 않을꺼라면 당분간 유희는 나오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았기에 귀찮은 일들은 질색인 드래곤들이 이 렇게 회의까지 열게 된 것이다. "에휴 차라리 부술려면 옆 나라인 가이라가나 다이러스나 부숴먹을 것 이지 왜 하필이면 프론트를 건드려 가지고, 이 고생이람....." 아무리 머리를 싸매고 해결방법이 안나오자 결국 그레아드는 고개를 쳐 박고 분개했다. 솔직히 나이가 많아서 각 일족의 로드가 된거지 게으른 드래곤들에게 이런 따분한 회의는 곤욕이다 못해 고문이었다. 그러자 그때까지 조용히 침목을 지키던 골드 드래곤 로드 카알로드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 방법은 어떨까요?" 그러자 모든 이들의 눈이 '이 회의 빨리 끝낼 수 있는 아이디어라면 뭐 든지 좋아요'라는 눈빛을 강하게 담아서 쳐다 보았다. 약간의 긴장을 느낀 카알로드는 헛기침을 몇번 하고, 입을 열었다. "예?" "엄마 방금 말 농담 아니지? 나중에 물리기 없기야!!" 나는 놀라서 입을 딱 벌렸고, 누나는 농담이 아니지를 계속 반복했다. 그만큼 엄마가 가져온 소식은 우리 남매에게 충격이었다. "그래 농담도 아니고, 거짓말은 더 더욱 아니란다." 드래곤은 가족들에게는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 종족이다. 물론 아직 어린 해츨링들은 완전한 성룡이 아니니 다소 얍삽하다는 사실은 넘어가 더라도 분명히 엄마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였다. "우와!! 만세 만세!!" "와! 와! 엄마 언제 가? 응 언제 출발할껀데?" 이번 블랙 해츨링 가출 사건 이외에도 과거 수많은 가출 사건들은 물론 이거니와 오랜만에 해츨링 풍년을 맞은 드래곤들은 우리 남매 이외에도 8명의 해츨링들이 더 있었다. 오랜만에 수많은 해츨링들이 태어난 것은 분명 신의 축복이지만 이 수많은 해츨링들이 모두 엄마 아빠를 닮아서 가출을 일삼아 보라 그 혼란은 불보듯 뻔한 것 아닌가? 더구나 이번 블 랙 해츨링은 전에 없이 신룡이 수호신으로 있는 나라에서 사고 치기라 는 초유의 어빌리티를 발동시켜서 그 게으른 드래곤들에게 대책마련을 시키게 만들었고, 그 결과가 해츨링일때 인간들이 축제를 열때면 10년 에 한번씩 부모 동반하에 놀러갈 수 있다 라는 결과였다. 오직 축제구경만 할수 있고 그이외에 여행을 다닌다던지 하면 안되지만 그래도 레어밖을 벗어난다는게 어디인가? "뭐 우리 티아와 테이는 워낙에 착해서 300살 될때까지 가출 한번 안하 고 착하게 커주기 때문에 안가도 상관 없지만....그래도 다른 애들도 다 가는데 우리 귀염둥이들만 안간다면 서운하겠지?" "네~~~." 누나는 시원스레 대답했지만 난 엄마의 가출 한번 안하고라는 대목에서 속으로 찔금해서 조금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난 과거 엄마에게 안들 켜서 -누나가 숨겨줬다-그렇지 이미 20살때 가출 미수 사건을 일으킨 경험이 있었더 것이다. 엄마를 속이는 결과가 되지만 뭐 어떤가? 가출이라고 해봤자 겨우 아침 나절 조금 돌아 댕기다가 가고일에게 쫓기다가 누나에게 도움받고 집에 돌아 온 가출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시간이었으니 그냥 모른척 넘어갈 수 밖에.... "마침 가까운 다이러스왕국에서 추수제가 열린다고 하니깐 거기로 놀러 가자꾸나 음 일주일 후라고 했지 아마...." "와이! 와이! 와이!" "일주일후? 지금 가면안돼? 응응 엄마." "안돼요. 엄마도 너희들 여행준비도 해야되고 로드에게도 보고해야 되 지....뭐 하지만 보통 인간들의 축제때는 여관잡기가 힘드니깐 축제 이 틀전에는 가봐야 되고.....그래 나흘후에 출발하자꾸나 알겠지?" "네!" "네!" "그러니깐 그 동안 인간들 역사서라든지 예절같은 책 좀 읽고 너희 나 름대로 준비하렴." "네!" "네!" 이 뜻하지 않은 행운...그러나 그 행운이 나에게는 평생 잊지못할 불행 한 추억이 될지 누가 알았겠는가?.....아아 창조신이시여 저의 누나를 만든 것도 모잘라서 꼭 이렇게 나를 고생을 시켜야 속이 시원하십니까? !!! 계속 드래곤 남매 3화 미아가 된 테이(2) 그리노 대륙 나중에 다른 대륙을 발견하게 되기 전에는 꽤나 큰 대륙으 로 꼽히고 있고, 다섯개의 강국이 있는 대륙이 현재 나와 누나가 살고 있는 대륙이다. 그 다섯개의 나라 중에서 우리 가족이 사는 인간들의 나라는 다이러스 제국이라는 이 대륙에서 두번째로 강한 군사 강국이다. 다이러스 제국 북쪽에는 가이라가 왕국이 있고, 서쪽으로 이 두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연합국가가 프론트 연합이다. 그리고 동쪽으로는 이 대륙에서 가장 큰 산맥인 나이르 산맥이 대륙을 양분하고 있고, 그 산맥 넘어에 동쪽 끝에는 이 대륙 최대 강국인 데스타 제국이 이 대륙 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스스로를 천년제국이라 칭하고 있다. -정말 역 사가 천년인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어찌보면 이 대륙에서 가장 약소국이라 할 수 있는 레이아스 왕 국과 오리하곤 왕국이 남은 땅을 양분하여 북쪽과 남쪽에 각가 자리하 고 있다. 이 두 왕국보다 더 작은 약소국이 있긴 하지만 이 약소국들은 대부분 왕권만 겉으로 내세울 뿐이지 속사정은 데스타 제국의 희하 소 국인면이 더 크다. 그러나 레이아스와 오리하곤은 적극적으로 이들 나라의 정통성을 인정 해주면서 서로 동맹을 맺었다. 바로 천년제국인 데스타 제국의 방패막 이로 사용하기 위함이였다. 결과는 데스타가 레이아스와 오리하곤중 아 무 나라와 전쟁을 일으키려면 이 약소국들의 나라를 필연적으로 지나쳐 야 되고, 그렇게 되면 레이아스 오리하곤 기타 약소국들과의 전면전을 불가해야 된다는 점을 이점으로 위태위태한 정세속에서 몇백년이 흘러 왔다고 한다. 약소국들은 데스타의 막강한 무력앞에 금방이라도 그들및으로 들어가도 할말 없는 처지였기에 레이아스와 오리하곤이 비록 자신들의 나라의 안 전을 위해서 자기들의 왕권을 인정해 준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왕 권을 유지시켜야 된다는 자존심에 이런 유리길을 걷는 듯한 정세를 잘 받아들이고 있는 상태였다. 나이르 산맥으로 양분된 가이라가 다이러스와 레이아스 오리하곤은 산 맥에 길을 내어서 서로 무역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실질적인 동맹을 맺 거나 할 여유가 없었다. 가이라가와 다이러스는 과거 몇차례의 크고 작은 전쟁으로 완전히 앙숙 상태였기에 어느 한쪽과 군사적 동맹을 맺을 수도 없었거니와 지금은 휴전 상태라지만 만약 전쟁이 터지면 어느 한쪽을 도와야 되지만 데스 타를 눈앞에 두고 후방으로 병력을 돌릴 여유가 안되는 것이었다. 가이라가와 다이러스는 오랜싸움에 지쳐 자연스레 휴전 상태였지만 그 래도 서로 앙숙인건 변하지 않기에 여전히 서로 견제 상태였다. 이렇게 복잡한 나라중 가장 작은 나라연합인 프론트가 그 사이에 끼어 당당하게 중립국을 표방할 수 있는것은 인간의 힘이 아니라 그들이 신 처럼 떠받들고 있는 여섯의 드래곤 덕택이다. 한나라를 가볍게 멸망시 킬 수 있다는 고룡보다 더 강한 존재라는 뜻으로 신룡이라 불리우는 드 래곤들이 하나도 아니고 여섯이나 있는 이 나라는 어찌보면 그리노대륙 에서 가장 강한 나라이나, 함부로 인간들의 전쟁에 관여 안하고, 오직 외세의 침략에만 힘을 빌려주는 신룡덕분에 대륙을 떵떵거릴 수 있는 힘은 없지만 그 누구도 침범하지 못할 강력한 방어막으로 인해 중립국 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해룡 블루드래곤 바슈티어의 도움으로 다른 대륙과의 안전한 해상로를 확보하여 무역강국으로 떠오르게 된 작지만 매운 나라가 프론트 연합이었다. 이런 인간들의 나라중에서 우리 가족이 사는 곳은 아까전에도 말했듯이 다이러스 제국이었다. 그리고 다이러스 제국의 이번 추수제에 나와 누 나는 놀러가게 되었던 것이다. '아아 얼굴을 본적이 없지만 정말 고마워요. 블랙 해출링 누나. 누나 덕분에 저희들이 성룡이 되기도 전에 이렇게 인간세상을 구경하게 되었 습니다. 블랙 누나 누나의 희생은 헛되이 하지 않을께요.' 만약 그 블랙 해출링 누나가 내 옆에 있고, 그 누나의 성격이 티아누나 의 성격과 판박이라면 비오는 날 먼지 나게 맞게 될 발언을 서슴없이- 마음속으로지만- 하면서 진정으로 감사했다. 이번에는 해츨링 봄이라고 할 정도로 많은 해출링이 태어났다. 지난 20 00천년간 해츨링이 단 한마리도 태어나지 않다가 갑자기 무려 다섯마리 의 해출링이 태어났다고 한다. 거기다가 우리 실버일족에서는 누나와 나. 즉 쌍둥이라는 드래곤 역사상 첫 쌍둥이 남매라는 쾌거(?)를 이룩 하는가 싶더니 레드, 골드, 화이트에서 각각 해출링 한마리씩 더 태어 났다고 한다. 이렇게 열 마리의 해출링이 한꺼번에 태어난 것도 드래곤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큰 경사라고 어른들이 떠드는 이유가 보통 해출링이 태어나면 그 해츨링이 성룡이 되기까지 한 두마리 해츨링이 더 태어나면 많은 것이요 그 해츨링이 성룡이 된뒤 한마리 태어나면 보 통이란다. 그러니 이번 열마리의 해츨링이 얼마나 많은지는 새삼스래 설명 안해도 이해가 될 것이다. 그런데 처음에는 경사라 칭하는 어른들도 해츨링들의 대가리가 어느정 도 크자 골치를 썩게 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이제는 연레행사(?)가 되어버린 해츨링들의 가출사건이 여기저기서 터 지는데 금방 잡히면 다행이건만 이번 블랙누나처럼 사고 치고 잡힌 횟 수가 꽤 된다고 한단다. 그나마 지금까지는 딴 나라도시들이 박살났다는 소식만 전해 졌는데 요 번 블랙누나는 신룡님의 도시 날려먹기를 실행해주는 바람에 신룡에게 꾸지람을 들은 로드님들이 대책회의를 열어서 해츨링들의 호기심을 어 느정도 풀어주기 위해 이번 엄마따라 인간 세상놀러가기라는 기획을 세 웠다고 하니 이 또한 해츨링들은 인간세상에 나갈 수 없다는 전례를 깬 해츨링에게 있어서는 또 다른 경사라고 할 수 있는것이다. 그러니 어찌 그 블랙누나에게 고마워 하지 않을수 있을까? 아무튼 엄마는 로드에게 언제 출발하며 어디로 가는지 보고하고 오시 고, 잠시 인간세계에 내려가셔서 우리가 입을 새 옷까지 사다 주셨다. 뭐 폴리모프하면 옷이야 생기긴 하다만 우리는 엄마나 아빠가 입었던 옷만 보고 따라서 한거라서 좀더 많은 치장과-누나의 경우- 세련되 보 이는 요즘 옷-이건 나의경우 아 누나도 포함되서-을 모르기 때문에 엄 마가 아예 사 오신것이다. 음음 엄마의 사랑은 역시 깊고 넓으시다. 뭐 정확하게 말하자면 자기 자식인만큼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게 보 이게 하겠다는 욕망이 더 앞서있으시지만....드래곤이나 인간이나 자기 자식을 남에게 잘 보이고 싶어하는 욕망이야 부모님 입장에서는 당연한 거 아닐까? 폴리모프한 우리를 -특히 여자인 누나를- 사오신 옷으로 몇번이나 패션 쇼를 시키시고 이것저것 달아보고 채워주고 머리손질까지 만 하루를 거 의 소비하다 시피 하셔서 겨우 마음에 들게 되셨는지 엄마는 흡족한 미 소를 지으셨다. "자 어디보자 어이구 우리 아들 딸 이만하면 어디 왕국의 왕자 공주라 고 해도 믿겠구나." 라고 하실정도로 당시 우리 모습은 정말로 과간이었다. 누나는 하늘거리는 실크드레스를 입었는데 어깨가 파인 옷으로 하얗고 긴 팔을 그대로 누출시키고 팔꿈치까지 오는 기다란 실크장갑을 끼고 있었다. 드레스는 누나 머리색과 같은 은색 그리고 장갑은 흰색이었다. 그리고 허리까지 내려오는 은발은 틀어몫어서 드워프들이 만들었다는 눈부시게 빛나는 별의 보석들이 박혀있는 황금의 머리장식으로 고정시 켰다. 그리고 가슴까지 파여있는 드레스라서 화려한 진주목걸이를 목에 걸고 엄마와 닮은 얼굴인 누나는 정말 일국의 공주라고 해도 아무도 의 심 안할 정도로 미인이었다. 단지 15세정도로 폴리모프 하였기에 아직 여자로서의 색기는 없고, 소녀적인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나? 나는 귀족들이 입는다는 요즘 잘나가는 디자이너가 디자인 했다는 옷을 입고 있다. 푸른색 바지에 -이것도 실크다- 역시 푸른색 셔츠를 입고, 속에는 하얀실크셔츠를 입고 머리는 언제나처럼 단정한 짧은 은 색머리 이게 다이다. 실은 엄마도 나에게 써클렛이다 뭐다 마구 달아주 고 싶어 했지만 내가 끝까지 싫다고 우겨대서 겨우 넘어갔다. 그런 악 세사리는 너무 갑갑해서이다. 그래도 엄마의 고집을 꺽을 수 없어서 무 늬가 없는 단순한 은색 팔찌 하나를 차긴 했지만....이 팔찌에는 마력 증 기 역활을 하는 붉은 보석하나가 박혀있다. 누나 역시 나와 같은 한쌍을 차게 되었다. 아직 마력이 약한 해츨링인 우리에게 무슨 위험이 닥칠때를 대비해서라고 한다. 하지만 엄마도 따라가는데 뭐 별일 있을라구.... 그렇게 준비를 끝낸 우리는 드디어 인간세상으로 떠나게 되었다. 우리가족이 살고 있는 산은 나이르 산맥에서 다이러스쪽으로 뻗어나온 산맥중의 하나인 산이다. 그리고 우리 산 아래에는 제법 큰 도시인 슈 워즈라는 도시가 있었는데 이 날 마을 근처로 워프한 우리는 엄마를 따 라서 바로 마차대여점으로 향했다. 이미 엄마가 하루전에 나가서 모든 준비를 끝내고 오셨다고 하셨는데 과연 엄마가 가서 한 인간에게 뭐라고 말하자 그 인간은 머리가 땅에 닿을 정도로 고개를 숙이고는 으리으리한 마차 한대를 가져왔던 것이 다. 엄마 왈... "이 도시에서 열리는 추수제도 제법 크지만 이 나라의 수도에서 열리는 추수제와는 비교도 못할 정도라서 수도로 가기로 하자꾸나." "응. 근데 차라리 수도로 워프하면 더 빠르지 않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수도로 워프하는게 더 빠르고 간편할 것 같은데....그 러자 옆에 있던 누나의 주먹이 날아왔다. "으~~~씌 왜 때려?" 난 머리를 만지면서 혹시 혹이 나지 않았는지 확인해보았다. "멍청아 바로 수도로 가면 우슨 여행이냐? 천천히 인간세상을 보여주고 구경시켜줄려는 엄마의 깊은 뜻을 모르겠냐?" "저기 티아야 너 말이 맞는데 꼭 그렇게 동생을 때려야 겠니? 말로 설 명을 해도.." "테이는 멍청이라서 말로 하면 못알아 들어." "나 멍청이 아니야!" "가고일에게 몰매 맞던 멍청이가 누구였더라?" "윽!" 내 수 많은 약점중 하나를 들먹이자 난 아무 소리도 못하였다. 지금은 가고일이야 가지고 놀 실력이라고 생각하지만 -전에 그 일이 있은 후 엄마레어 근처에서는 가고일을 볼 수가 없었다.- 그 때는 어리고 마법 도 못 쓰는 해츨링이 몰매 좀 맞은거 가지고 너무 괴롭힌다는 생각도 들었지만....그렇게 내가 애 먹을때 누나는 오히려 혼자서 가고일을 박 살을 내고 날 구해주었으니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그냥 속으로 분을 일 수 밖에... 아아 창조신이여 거듭 말해서 이제는 입이 다 아플 지경입니다. 왜 누 나를 이렇게 강하게 만들어 놓은거란 말입니까?! 흑 남자의 자존심이.. .. 그렇게 토닥대는 우리를 이제는 익숙해졌다는 듯이 엄마는 그저 한숨만 작게 내 쉬고는 그냥 바라보기만 하셨다. 지금 엄마는 약 30살 먹은 귀부인으로 플리모프 하였다. 아니 하셨단 다. 그때야 인간들의 나이 기준을 잘 모르는 나이기에 엄마가 그렇다니 그런가 보다 했지만 그 때 엄마는 어딜 봐서 15살 얘가 두명인 유부녀 라고 믿겠냐는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꾸미신 것이다. 뭐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역시 평소 입으시던 은색계통의 드레스를 입으시고, 사파이어, 루비, 에메랄드, 다이아몬드가 박힌 금목걸이를 하고 계셨다. 그리고 그 긴 은발은 역시 누나처럼 틀어올려 누나와 똑같은 머리장식으로 고정시키 셨다. 쩝 그렇게 비슷하게 안해도 어차피 얼굴이 똑같아서 누가 봐도 모녀지 간인거 다 아는데.... 어느새 말싸움에 흥미를 잃은 우리는 누가 뭐라하기도 전에 각각 창문 밖을 내다 보았다. 그런데 너무 흥분해서 출발할때는 몰랐는데 지금 보 니 인간들이 말을 탄채로 우리 마차 주변을 에워싸고 같이 달리고 있었 다. "엄마 저 인간들은 누구야?" "이제부터는 사람이라는 말을 사용하렴. 유희를 즐길때는 인간으로 폴 리모프 했으면 인간으로 살아가야 되니깐 말도 조심해야 된다." "네. 그럼 엄마 저 사람들은 누구야?" "아까 소개할때 정신없이 여기저기를 구경하면서 딴청 피우더니 결국 아무말도 못들었구나." 누나의 말...쳇 호기심에 이리저리 두리번 거리던 나와 달리 누나는 제 법 여유있게 주위를 살피면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던 것 같긴 한데... 나 역시 인간세상에 나간다는 들뜬 기분으로 열심히 인간세상의 역사와 예절같은 책을 죽어라 독파할때 한 두권 읽고 이거면 되었다고, 하던 누나에게 뒤지다니...흑 이놈의 호기심이 뭔지..아니 그것보다 누나도 처음 나온 인간세상인데 왜 저리 침착한거지? 그게 더 이상하다!! "저들은 엄마가 고용한 용병이란다. 다이러스는 몬스터가 많이 돌아다 니는 나라로도 유명하거든. 뭐 엄마정도면 몬스터 몇마리야 상관없지만 귀족흉내 내기로 했으면 철저히 내야되지 않겠니?" "응 그렇구나." "이제야 감이 잡히니 늦동이 걸음마 테이군." "그 얘기는 그만 좀 하자구!" "내가 말 안해도 테이가 멍청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껄." "내가 바보면 누나는 더 바보다!" "뭐야? 이게 죽고잡냐?" "으으...." 보통 누나와 나의 말다툼은 누나의 죽고싶냐라는 말에서 끝이 난다. 왜 냐? 난 아직 죽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남매분들 사이가 무척 좋으시군요." 아니 이 인간..아니지 사람은 누구야? 누구길레 이런 나와 누나 사이가 좋다는 망언을 하는거야? 이 사람이야 말로 내 손에 죽고 싶나? 감히 인간주제에... 내가 한 소리 할려고 생각한걸 엄마와 누나가 눈치챘는지 제지를 가할 려고 하였다. 몰론 옆에 앉은 누나쪽이 빨랐지만.... 지긋시 내 등에 댄 누나의 손에서 마나의 흐름이 급격히 느껴진다. 흑 이렇게 되면 별 수 없다. "아 네 뭐....누나랑 나는 쌍둥이거든요." "아 어쩐지 너무 닮았다. 싶었죠. 나이차도 별로 안나는 것 같았고. 그 런데 도련님께서는 제 이름 아직 모르시죠?" 윽 맞는 말이기에 난 아무소리도 할 수 없었다. "하하하 뭐 그렇게 미안해 하실 것 없으십니다. 저택에만 갇혀 지내셨 다고 하셨으니 여러가지 구경할께 많으셔서 그럴 수도 있지요." "예 그게 무슨...커헉!" 내가 무슨 말을 꺼내기도 전에 누나의 동생머리 내려치기가 작열하였 다. "무 무슨짓이야!" "어머 테이 너 머리에 벌레가 있길레...나도 모르게 손이 나가 버렸네. 호호호." "아 악녀...." [죽고싶냐?] 용언까지 동원해서 -누나의 얼굴은 수줍은 미소를 띠고 있는 소녀의 모 습이었다.-자신의 이미지를 지키려고 하지만 이미 나에게 말을 걸었던 아저씨의 얼굴에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헛웃음을 짓고 있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마! 엄마 말할때 뭐 들었냐?] [에?] [어이구 이 화상아. 이따가 설명해 줄께.] 누나의 얼굴은 여전히 수줍게 미소를 띠우고 있었지만 용언으로는 끊임 없이 폭언을 내뿜고 있으니 역시 여자는 무서워..... "여 역시 사이가 무척 좋으시군요. 하하하." 이봐요 아저씨 그렇게 무리하실 필요 없어요. 동정을 하던 뭘 하던 상 관 안할께요. 어차피 내가 누나에게 잡혀사는건 사실이니깐요. 난 나에게 말을 걸었던 아저씨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하프아머를 착용 하고 등에는 커다란 바스타드 소드를 장비한 그야말로 전형적인 파워형 용병의 모습이었다. 근육은 적당히 보기좋을 정도로 붙어 있고, 짧은 갈색머리에 시원스런 눈매가 상당히 호감이 가는 모습이었다. 아저씨가 자신을 쳐다보는것을 눈치 챘는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이제야 절 눈치체 주시는 군요. 전 도련님과 가족분들을 보호할 임무 를 맡은 이번 용병대의 대장 제이크입니다. 동료들은 편하게 제크라고 부르기도 하니깐 여러분들도 편하게 제크라고 볼러주십시요." "아 네...아까 소개받은 것 같네요. 그때는 죄송합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이번 여행이 처음이자 최초로 저택밖에 나오신거라 면서 부디 즐거운 여행이 되기를 빌겠습니다. 여러분들의 안전은 책임 지고 저희들이 맡을테니 걱정 마십시요." [웃기고 있네. 솔직히 우리끼리만 가도 충분한데...] [그렇게까지 말할 건 없쟎아.] [시끄러워 말 조심해야 되는게 너무 귀찮단 말이야. 더구나...] [더구나?] [너가 쓸데없는 소리 할때마다 조마조마해서 더 귀찮단 말이다. 이 느 림보 해츨링아!] [히잉.] [그만하려므나. 어차피 너희들도 나중에 유희를 즐기게 되면 다 겪어봐 야 되니 미리 예습도 되고 좋잖아. 그리고 테이는 동생인데 좀 더 부드 럽게 대해주렴.] 엄마는 내가 울어버릴 것 같은 낌새를 채시고는 얼른 누나를 달래주면 서 더 심한 말이 나오는 걸 막아주었다. [쳇 누가 동생같은거 갖고 싶대나? 난 혼자라도 편한데...동생은 귀찮 아.] [이잉....] [티아야 그런말 하면 못쓴다. 너희가 쌍둥이로 태어난 건 창조신의 은 혜라 생각하라고 항상 말했잖니...그리고 테이도 뚝 300살이나 되어서 아직도 누나말에 일일이 울거나 하면 안되요.] [네.] [네에. 훌쩍.] 내가 엄마말을 듣고 눈물을 삼킬때 누나는 대충 우리의 지금 사정을 설 명해주었다. 대 귀족가의 우리들은 아빠가 너무 엄격하셔서 주위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을정도로 교육을 시켜야 된다는 명목아래 이 나이때까지 저택 바깥에 나가보지를 못하다가 이번 추수제때 엄마의 설득에 간신히 여행을 허락 받았다 라는게 누나의 간추린 설명이었다. 밀 용병들과 마부들에는 우 리가 사정이 있어 저택 바깥에도 못나갔다는 말만 해두었으니 알아서 입을 맞추란다. 물론 내 누나이기에 이후로 엉뚱한 소리를 해대면 가만 두지 않겠다는 협박이 뒤에 붙었다는 것은 이제는 사소한 일이지만... [그런데 너무 아빠만 나쁘게 설정한 거 같은데 그래도 되는거야?] [뭐 어때서?] [그 정도는 괜찮은 편이잖니? 어차피 아빠도 안따라왔는데.] 누가 모녀간 아니랄까봐 이런데에서는 마음이 딱딱 맞는구나...에구 불 쌍한 우리 아빠... "마을이 보입니다." 그때 우리옆을 달리던 제크 아저씨가 앞을 보면서 말을 하였다. 엄마의 설명에 의하면 우리의 목적지는 좀더 가야 되기 때문에 오늘 저녁은 저 마을에서 자고 아침에 다시 출발한단다. 그래야만 내일 저녁쯤에 목적 지인 수도에 도착한다고 하던가? 우리를 태운 마차는 제법 큰 여관앞에 섰다. 여관의 이름은..... 젠장 '남매의 정이 머무는 곳'이라고라고라 정은 무슨 망할 놈의 정이 냐!! "하하하 이거 두 남매분들을 위한 여관 같군요." 윽 제크 아저씨 우리 남매사이가 그렇게 정이 넘쳐 흘러 보이시던가요? 만약 그렇게 보였다는 소리를 하신다면 난 아저씨께 눈이 나쁘냐고 말 하겠습니다. "어머나 정말 누군가와 짠거 같은 느낌의 이름이네요. 그렇지 티아야?" 흑 엄마 정말 엄마가 누군가랑 짠거 아니야? "호호호 웬지 기분이 좋은데 그치 테이야?" 좋긴 개뿔이 좋냔 말이다!!라고 소리치고 싶지만 언제나처럼 누나의 살 기가 감지되길레... "하하하 정말이네..마치 우리가 이곳에 들릴 걸 알고 있는 사람이 만든 것 같아." 라고 맞장구 쳐줄 수 밖에... '만약 정말로 그런 사람이 있다면 가만 안 두겠어. 빠드득.' 계속 드래곤 남매 3화 미아가 된 테이(3) 우리가 묵게 된 '남매의 정이 머무는곳'이라는 꽤 길고도 기분 나쁜 이 름의 여관은 -누나는 겉으로는 좋은 이름이라고 맞장구를 쳤지만 속마 음은 아닌 것 같다.- 이른바 중급여관 정도였다. 수도로 가기 위해 잠 시 들리는 중간 마을이라서 그런지 마을이 작은 편인데 이 작은마을에 서 가장 큰 여관이라고 하니 뭐 어쩌겠는가? 그냥 여기서 묵어야지. 그런데 방이 얼마 남지가 않았다고 한다. 축제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 마을을 거쳐가기 때문인가 보다. 아무튼 우리를 따라온 용병중 제크 아저씨와 실력이 있어보이는 세명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근처 다른 여관에 묵기로 하였다. 제크 아저씨는 큰 여관은 별로 마음이 안내킨다는 말을 하는 둥 했지만 그래도 우리 가족을 지켜야 되는 입장이기 때문에 대표로 몇명 남아 있 어야 되고, 자신이 대장이라는 직책을 갖고 있으니 그런 불평이 통할리 가 없었다. 그래도 저녁 식사는 푸짐하고 맛이 있었는지 역시 큰 여관은 음식맛이 죽인다는 말을 하면서 아까전에 자신이 했던 말을 번복하는 바람에 누 나에게 '남자는 한 입 갖고 두말하는 법을 배우나요?' 라는 소리를 듣 게 되었다. 하지만 잔뼈 굵은 용병이라고 자랑하던 말이 헛소리가 아니었는지 '불 필요한 일에까지 하나의 생각을 밀고 나가는 남자는 너무 고지식해서 재미 없잖습니까?' 라는 완벽한 반격으로 누나의 입을 다물게 하였다. 오오 제크 아저씨 전 정말로 아저씨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저 누나 를 실버 일족이면서도 성질 고약한 저 누나를 말로써 제압하다니.... 그렇게 되어서 이번 여행간 제크 아저씨에게 말싸움에서 뒤지지 않는 방법을 배우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힘싸움에서는 지더라도 말싸움에서 는 지지 않기 위해서.. 뭐 그 문제는 일단 넘어가고 음식은 정말 마음에 들었다. 훈제 베이컨 샌드위치랑 구수한 냄새와 맛의 콩이 들어간 따듯한 스프 그리고 상큼 한 야채 샐러드 후에 후식은 놀랍게도 아이스크림이라는 것이었다. 아 이스크림같은 고급음식은 왕실에서나 먹는 것이라고 엄마가 놀라워 했 기에 그런가 보다 했지만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그 맛은 누나와 나에게 하나 더 라는 말이 나오게 충분하였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그 여관 주인의 친구중에 안면있는 마법사가 있어 서 냉기가 걸린 항아리를 얻어서 그것으로 아이스크림을 보관하고 있다 고 하였다. 아 말 나온김에 지금 현재 엄마의 레어에는 침대와 식탁 그리고 음식을 짓는 부엌등이 꾸며져 있다. 이유인즉 엄마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후 아이가 성룡이 될때까지 함께 있고 싶어서 좀더 큰 레어로 이사를 했는데 뜻밖에도 태어난 것이 우리 쌍둥이 남매였기에 이사한 큰 레어 로도 우리 남매가 300살이 되자 좁아졌다. 그 상태에서도 우리 남매가 다른 레어로 가버리는 것을 원치 않은 엄마 는 우리에게 풀리모프를 시켜서 인간들이 쓰는 가재도구-전에 창고에 있던게 만약을 대비해서 엄마가 갖다 놓으신거란다.-를 꺼내서 생활하 기 시작한 것이다. 덕분에 우리의 식생활도 자연스레 인간들의 식생활에 맞쳐진 것이다. 그리고 얼마전부터 귀족들의 식생활을 스파르타식으로 가르친 엄마 덕 분에 우리 남매는 맛있는 그 음식들을 마구 먹고 싶다는 욕망을 눈물을 머금고 포기하고 우아하게 식사를 마쳤다. 그렇게 먹으면서도 그 많은 음식을 다 먹은 우리의 식욕이 무섭긴 하군.....그래도 아무리 우아함 1을 따져도 아이스크림은 포기 못하겠길레 엄마 눈치를 보면서 하나 더 를 시켰는데 엄마도 아이스크림이 마음에 드셨는지 우리랑 같이 하나 더를 시키셨다. 뭐 옆의 제크 아저씨와 다른 용병 아저씨들은 네개를 더 먹었으니 우리가 하나 더 먹는다고 뭐라 하진 않겠지. 배불리 먹은 우리는 지치지도 않고 엄마에게 마을 구경가자고 조르기 시작했다. "안돼요. 어차피 작은 마을이라서 볼것도 없는데다가 내일 일찍 출발해 야 수도에 도착할 수 있으니 오늘은 일찍자렴." "이잉 그래도 아직 잠도 안오는데...응 엄마..엄~~마~~이잉." 이렇게 조르는 일은 어느새 내 담당이 되었고 누나는 뒤에서 지원공격 (?)의 역활을 담당하였다. 평소 막내이고 항상 누나에게 잡혀 살아서 징징대던 나이기에 이런 역활이 어울리는게 당연하긴 하지만 가끔 아주 가끔 회의가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랑은 뒤쪽으로 밀쳐두고 지금은 바깥을 구경해야 되 겠다는 욕망을 해결해야 되는게 더 급하니....자존심이여 잠시만 눈 감 아주렴. "에휴 왜 그렇게 엄마 말을 안듣는지..." 이쯤되면 절반은 허락한 것이다. 난 급히 누나에게 눈짓을 보냈고 후방 지원공격(?)중인 누나는 잽사게 결정타를 날렸다. "엄마 내가 테이 데리고 잘 다닐께. 그러니 갖다오게 해주세요. 네? 엄 마." 평소대로 여기가 레어라면 엄마는 이런 누나의 결정타에 넘어가서 허락 해주지만 아무레도 인간마을이라 그런지 아직 걱정된다는 눈빛이었다. 결국 누나는 최종병기(?)까지 쓰게 되었다. "아잉 허락해 주세요. 네 어.머.니." 과연 누나의 최종병기 아양떨면서 어머니라고 부르기는 결코 실패하지 않았다. "아이고 알았으니깐 닭살 돋는 그 어머니라는 소리는 집어치워!" "와아 엄마! 사랑해요." "저도요. 엄마." 우리에게 키스 세례를 받으면서 다 커서 징그럽게 무슨 짓이냐고 역정 을 내시는 엄마지만 진담이 아니었다는 뜻으로 우리 남매를 꼭 끌어안 아 주셨다. 일단 허락은 받았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신 어머니 왈 "아무리 그래도 너희 둘만 가지고는 안돼. 제이크씨와 같이 갖다 와야 한다." "네~~." '헤헤 제크 아저씨랑 같이라면 더 좋죠. 누나를 눌러버릴 수 있는 말발 을 배울 기회다!' '뭐 그 아저씨야 어디서 적당히 버리고 다니면 되지 뭐.' 라는 상반된 생각을 가진 우리는 아래층 식당으로 내려가서 제크 아저 씨를 찾았다. 용병들중 맥주를 마시던 털보 아저씨 말로는 말을 보러 나갔다고 하길 레 마굿간으로 가보니 과연 제크 아저씨가 말을 돌보고 계셨다. "제크 아저씨 뭐하세요? 바쁘세요?" 뭐하는지 보면 모르나? 말 돌보고 있는 건 알겠지만 그래도 예의 삼아. .. "아뇨 도련님 별로 바쁜건 아닙니다. 그런데 무슨일이시죠?" "헤헤헤 저희 마을 구경을 하고 싶은데 엄마가 제크 아저씨랑 함께라면 좋다고 허락하셔서요. 정말로 안 바쁘시죠?" 제크 아저씨는 우리 마음을 알겠다는 표정으로 씩 웃으시면서 말을 하 셨다. "하하하 도련님의 부탁인데 바빠도 시간을 내는게 당연하죠. 그런데 뒤 에 아가씨도 같이 가시는 건가요?" "흥 저도 가는게 큰 불편이신가보죠?" 누나는 아무래도 저녁시간에 말로써 -것도 인간에게- 졌다는 사실이 분 한지 말에 가시가 돋혀 있었다. 그러나 내가 최초로 인정한 인간인 제 크 아저씨는 내 기대를 깨트리지 않았다. "하하하 불편이라뇨? 아름다운 레이디를 모시게 된것이 불편이라고 한 다면 세상 모든 남자들에게 온갖 욕을 다 얻어먹어도 할말 없을 껍니 다." 캬 역시 저 죽여주는 말빨 역시 내가 인정한 인간은 틀려. 와 누나가 토라져서 고개를 팩 돌려버리네. 저런 모습 처음본다. 역시 위대한 제 크 아저씨야. 인간들에게 위대한 종족이라고 불리우는 나에게 위대하다는 칭찬을 받 았다는 영광을 제크 아저씨는 평생 모르겠지? 아무튼 제크 아저씨의 안내에 그리 크지는 않지만 여러가지를 보면서 간간히 제크 아저씨으 친절한 설명을 들으면서 재미있게 마을을 구경할 수 있었다. 전형적인 작은 마을이라곤 하지만 제법 야시장도 발달해 있고 수도와의 중간 통행로였는지 여러가지 먹거리와 엑세사리 무기점들이 나와 누나 의 눈을 즐겁게 해 주었다. 나와 누나는 한번도 저택 바깥에 못 나가본 순진하고 세상물정 모르는 남매로 이미 알려져 있었기에 계속되는 나의 질문에 제크 아저씨는 한 번도 싫은 표정 한번 안보이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런데 우리가 가는 곳곳마다 무슨 사람들이 그렇게 쳐다 보는지 원. "저기요 아저씨 왜 사람들이 우리들을 저렇게 쳐다보는 거죠?" 난 참다참다 못참아서 살짝 제크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아저씨는 빙그레 웃으시면서 뒤에서 뚱한 표정으로 우릴 따라오는 누나를 슬쩍 가르켰다. "도련님의 누님께서 너무 아름다워서 쳐다보는 것일껍니다." 흠 역시 누나가 이쁘긴 이쁜가보다. 지금은 평상복이라고 엄마가 사다 주신 간편한 원피스를 입고 땋아올렸던 머리도 풀어서 끝을 가볍게 리 본을 은 수수한 차림인데도 밤에도 거리의 불빛에 반사되어서 묘한 빛을 발하는 누나의 은발도 예전에 내가 실수로 예쁘다는 말이 절로 나 왔을 정도니.... "저기 그런데 도련님." "예? 아 왜요?" "정말 죄송하지만 정말로 집에서 허락을 받고 나오십겁니까?" 헉 이 아저씨 눈치가 빠른건 알겠는데 이렇게 눈치가 빨랐나? 내가 뭔 가 이상한 소리를 했던가? 혹시 우리가 드래곤이라는 걸 눈치 챘나? 그래도 허락은 받고 나온건 사실이니깐 찔리는 건 없지만 뭐라고 설명 해야 되지? 난 왜 제크 아저씨가 그런 의문이 들었을까 혹시 거짓말 했다는걸 눈치 채게 행동한건가 하는 생각에 대답을 못하고 안절부절 못하자 뒤에 따 라오던 누나가 한숨을 푹 쉬었다. "테이야 진정하렴. 그보다 이봐요 어떻게 눈치챈거죠?" [으아악 누나 어떻게든 둘러되야지 그렇게 인정해버리면 어떻게 해!] [입 닥치고 얌전히 있기나 해. 너가 안절부절 못하는 것만으로도 돌러 되니 뭐니 하는건 물건너 갔으니깐.] [윽....] "아뇨 뭐 솔직히 이상한건 이상하잖습니까. 마님과 도련님 그리고 아가 씨를 보면 꽤 지체높은 가문의 사람이라는 건 알겠고, 그런 사람들 중 에 자제분에게 교육을 엄청나게 시키기에 저택 바깥에 못 나가 봤다는 소리도 이해가 가지만....허락 받고 나오신분들 치고는 호위기사는 커 녕 시녀 한사람 대등하지 않은건 아무리 생각 해도 이상하니깐요." "역시 눈치가 빠르시군요. 비밀을 지켜주시겠죠?" "네 물론이죠." "그럼 간단하게 말할께요. 지금쯤 아빠는 엄마가 남기신 편지에 사색이 다 되어서 우리를 찾고 있을껄요. 이정도 말하면 충분하겠죠?" "하하하 역시 자식사랑이 대단하신 마님이시군요. 그런 어머니를 두셔 서 무척이나 행복하겠습니다." "후후후 그 말대로예요." 어라 이상하다. 누나의 임기응변에 감탄을 한것은 잠시이고, 난 뭔가 삐걱대고 있다는 것을 느꼇다. 아까전만 해도 대화의 주도권은 나와 제 크 아저씨가 쥐고 있었는데 이 후에는 난 주도권은 고사하고 두 남녀의 대화에 낄 수조차 없었다. 얼떨결에 구경을 마치고 여관으로 돌아올때였다. "테이 제크씨를 더 이상 아저씨라고 부르지 마렴. 우리보다 6살 많은 것 같고 아저씨라고 부르는건 너무 하잖니. 그냥 제크씨라고 부르도록 하자. 괜찮죠? 제크씨." "하하하 저야 아름다운 레이디께서 그렇게 불러주신다면 영광이죠." "어머 말씀도 잘 하신다니깐." 하아 유일하게 누나의 대항수단(?)이라고 생각했던 제크 아저씨까지 이 렇게 누나 손에 넘어가 버리다니.....난 평생토록 누나에게 당할 수 밖 에 없는 운명이란 말인가? 창조신이시여 제발 제 말에 귀 기울여주십시 요. 도대체 내 편은 내 남은 운명중에 나타나긴 하는 겁니까? 혹시 이 렇게 누나에게 다 뺏겨버리는게 내 운명이란말입니까? 창조신이시여!!!! 계속 드래곤 남매 3화 미아가 된 테이(4) 다이러스 제국의 수도 다이리 초대 다이러스 국왕이 자신의 첫 공주의 이름을 따서 붙였다는 수도 다이리의 이름은 지혜의 여신 이름이기도 하였다. 여신의 이름을 받은 다이리 공주는 정말로 여신의 축복을 듬뿍 받았는지 그 총명함으로 다이러스 제국의 초대 여왕이자 마지막 여왕이 되었다. 아직 초대 다이리 여왕만한 인재가 공주들에게서 나오지 않아서라고 한 다. 아무튼 지혜의 여신 이름이자 다이러스 제국의 초대 여왕의 이름이기도 한 이 곳 수도 다이리 덕분인지 당연하게도 다이리 여신의 신전이 전 국토의 80%를 차지 할 정도로 압도적인 세력을 자랑한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이곳 수도에 다이리의 총본부가 있기 때문에 커다란 왕성과 다이리신전 본부로 그리노 대륙에서 손꼽히는 수도의 면 모를 지니고 있었다. 축제 하루전에 이 수도에 도착한 나와 누나는 그 압도적인 사람들의 수 에 입이 벌어지고 기가 질렸다. "이거 마차가 지나갈 길이라도 있는거야?" 걱정이 되어서 엄마에게 묻자 창밖에 말을 타고 서 있던 제크 아저씨가 웃으면서 대신 말해주었다. "걱정마세요. 이 수도에는 마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이 따로 있습니다." "테이야 이런 큰 수도에 마차전용도로가 있는건 당연한 거잖니." 쳇쳇 어제 마을을 구경하고 난 뒤 든든한 방패막이라고 생각했던 제크 아저씨는 지금 완전히 적군(?)으로 돌아섰고, 그런 배신자(?)의 편을 든 내 제일의 적 누나가 기회를 잡고 날 바보 취급했다. 젠장 그냥 걱 정되어서 물어본건데 그렇게 꼭 말해야 되나? 그리고 누나 역시 인간 세상에는 처음 나왔으면서 뭘 그렇게 잘 안다고 난리람? 어차피 제크 아저씨 말에 동의하는 것 밖에 못하면서... 라고 소리치고 싶은걸 꾹 참고 아예 입을 다물었다. 엄마는 처음에는 분명 어제 저녁식사때까지 찬바람이 쌩쌩불던 누나와 제크 아저씨가 외출 갖다와서는 하하 호호 거리면서 죽이 맞으니 바깥 에서 무슨일이 있었냐고, 시도 때도 없이 물어보셨다. 난 토라졌기에 말을 안했고, 누나는 그냥 그럴일이 조금 있었어요. 라 고 얼버므리기만 하니 엄마 지금 무지 답답할 것이다. 아직 성룡도 안된 금이야 옥이야 키우는 딸을 용병에게 빼앗기는 거 아 닌가라고 걱정하신다는 건 알겠지만.....내가 보기에는 누나는 그저 말 빨 좋고 눈치빠른 제크 아저씨에게 호기심이 생긴 것 같다. 아마도 그 럴것이다....그렇겠지...그래야 되는데....엄마야 그렇다쳐도 만약 아 빠나 할아버지 귀에 이상한 소리라도 들어갔다가는 제크 아저씨 모르긴 몰라도 편히 죽지는 않을텐데.... 아냐 날 배신한(?) 복수 삼아 콱 일러버려...웅 그건 또 너무 치사하 다. 엄마는 끝없이 늘어서 있는 줄을 보면서 한숨을 쉬셨다. 우리는 저녁일 찍 도착했는데 성문의 검문에 걸려서 이렇게 줄을 선채 한시간을 기다 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나저나 정말 줄이 길군요. 이럴줄 알았으면 하루 일정을 앞당겨서 출발하는 건데....실수 했네요." "삼사일전에 와도 이럴껍니다. 수도에서 한몫 잡아볼 생각으로 이맘때 쯤 악단이나 극단 음유시인에 상인들은 죄다 수도로 물리다 시피 하니 깐요." "그만큼 구경거리도 많겠네요? 제크씨는 이 추수제에 와 본적 있으세요 ?" "네 재작년에 와 봤습니다. 그 때도 호위임무를 맡고 여기로 왔죠." "헤에 그럼 여기 축제에서 뭐가 재미있는지 잘 알겠네요. 이따가 안내 부탁드려도 될까요?" "아름다운 레이디의 부탁을 거절하는 남자가 과연 세상에 있을까요?" "어머 말은 정말 잘 하신다니깐. 여자 많이 울리셨겠어요." "이런 이런 제가 말빨 좋다고 자주 그런 오해를 받는데 전 분명 여자 손목 한번 잡아본적 없는 총각입니다." "그 말 정말인가요? 거짓말이라면 정말로 능숙하시다고 칭찬해드려야 되겠네요." "레이디의 이름을 걸고 맹세할 수 있습니다." "어머 제 이름을 왜 함부로 사용하세요? 그러면 제가 제크씨 아내라도 되는 것 같잖아요." "아 그런가요? 이거 큰 실례를 범해버렸군요. 하하하 용서해 주시겠습 니까?" "뭘 그정도 가지고 당연히 용서해드려야죠. 대신 정말로 재미있는데만 데려다 주시기에요." "용서를 해주신다는데 책임지고 모셔다 드려야죠." 난 얼빠진 얼굴로 그 둘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누나 정말 이번에 처음 인간세상에 나온거 맞어? 어찌 저렇게 능수능란하게 제크 아저씨 를 다루는거야? 에휴 잠깐만이라도 제크 아저씨가 누나를 이길수 있는 상대라고 생각했 던 내가 잘못이지... 저렇게 하루만에 휘어잡힐 줄이야...제크 아저씨 위대했다는 발언 취소 다. 그런데 엄마쪽은 나보다 더 심하시다. 둘을 바라보는 얼굴은 새하얗게 변해 있었고 입으로는 끊임없이 '설마...하루만에...아니겠지...아닐꺼 야...우리 자기한테는 뭐라고 말하지...아니야...아닐꺼야...그래도 저 모습은...완전히...아니겠지...괜한 걱정일꺼야...'라는 말을 중얼거리 셨다. 흠 근데 자기...이거 아빠를 가르키는 말 맞겠지? 아직 청춘이 시구나 두 분은..... 하긴 아빠는 4000살이신데도 불구하고 위엄보다는 익살맞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이시고, 엄마는 이제 2500살이라 우리 실버일족 성룡중에서 최고로 어리시니...아직 신혼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겠지.... 울 할아버지 말을 빌리자면 아빠는 나이값도 안하고 영계를 꼬신 역적 같은 놈이라던가? 그래서인지 아빠와 할아버지는 사이가 별로 안좋으시다. 제크 아저씨는 얼마나 더 기다려야 되는지 알아보신다며 잠시 입구쪽으 로 가셨고, 그 틈을 타서 엄마가 누나에게 질문세례를 퍼부었다. "저기...얘 티아야." "예?" "저기 너...그러니깐 제크를 어떻게 생각하는거니? 그러니깐 혹시...내 말은...제크를 저 인간을 혹시...그 연애 대상으로 생각한다든지..." 대충 엄마의 말뜻을 알아차린 누나의 눈은 동그래졌다가 곧 미소가 어 렸다. 음 저 미소는 장난끼 어린...무언가 엉뚱한 말을 할 기색이군...엄마는 아직 알아채지 못하신거 같은데... "만약 그렇다고 하면 엄마는 어쩔꺼야? 허락해 줄꺼야?" 허억 엄마의 얼굴이 새파래지다 못해 저게 과연 사람피부색인가 할 정 도로 변했다. 엄청 충격이시겠지...누나도 참 못된데가 있다니깐...아 니 원래 못됐지. "저~얼~대 허락못해! 아직 성룡도 못된게 벌써부터 유희흉내야? 지금의 너희들은 그저 잠시 놀러나온 것 뿐이야! 나중에 성룡이 되어서 유희중 에 하는 거라면 몰라도 지금은 절대 허락 못해!!" "아이고 귀야 알았으니 소리 좀 지르지마. 나도 저 제크란 인간 좋아하 는 거 아니야." "그 말 정말이지?" "정말이래두...딸한테 속고만 사셨나? 난 그저 재미있는 인간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을뿐이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야." "재미있는 인간정도?" "응 첨에는 나를 순진한 귀족가 아가씨를 보고 나를 놀리는 듯한 말투 가 기분 나쁘긴 하지만 이 나를 꼼작못하게 할 정도로 말빨 좋은게 호 기심이 생기더라고, 그래서 어제는 외출중에 적당히 길에 떨궈놓고 고 생 좀 시킬려고 마음 먹었는데 테이랑말 하는걸 듣다보니 무지 재미있 게 말하잖아 그래서 나도 이야기 해보니깐 꽤 재미있게 말하더라구. 그 래서 흥미가 생긴 것 뿐이야." ".....그렇게 생긴 흥미가 위험한건데..." "에구 울 엄마 걱정도 팔자셔. 내가 설마 인간한테 반할라구? 뭐 나중 에 유희를 하게 되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걱정마요. 지금은 그런 생 각 전혀 없으니깐." "그래 너가 그렇다면 그렇겠지." "암 누구 딸인데." "흥 정말일까나?" "뭐야 테이? 너는 또 뭐가 불만이야?" "아무것도..." 난 고개를 홱 돌려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누나 말을 듣다보니 제크 아 저씨를 뺏아기게 된(?) 원인이 어쩌면 내가 제크 아저씨에게 많은 말을 시키게 만든 것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 추리가 사실 이라면 난 스스로 손에 들어온 무기(?)를 누나에게 갖다 바친 셈이라는 건데....어이구 이렇게 운도 지지리 없는 해츨링이 또 있을까? 아무튼 내 딴에는 고민중이었는데 누나 눈에는 어케 보였는지.... "요 귀여운 녀석 누나 뺏길까봐 질투하는거야?" 라면서 날 확 껴안는 것이다. "으악! 뭐야 이것놔!" "많이 삐진 모양이네 이 누나가 부비부비 해줄테니 참으렴. 귀여운 동 생아." 나의 놓으라는 말에도 아랑곳 않고 누나는 내 볼에다 자기볼을 비볐다. 착각은 자유라지만 무슨 이리도 끔직한 착각을 하는거야? 난 그 반대란 말이다! 엄마도 따뜻한 남매의 사랑을 쳐다보는 것 같은 표정 지으며 쳐다 보지 만 말고 도와 줘요! "하하하 언제 봐도 사이 좋은 남매이시군요. 이거 도련님이 부러운걸 요." 앞쪽 상황을 보러 간다던 제크 아저씨가 어느새 돌아와서 누나 품에서 바둥거리는 날 보면서 진심으로 부럽다는 표정을 하며 말했다. 하긴 누나 겉모습만 봐서는 거기 안긴 내가 부럽긴 하겠지. "아무리 부러워도 제크씨한테는 안해줄꺼니깐 꿈도 꾸지 마세요." "하하하 이거 너무하네요. 꿈 정도는 봐주시면 안될까요?" "글쎄요. 근데 제크씨는 꿈도 남한테 허락받고 꾸나요?" "레이디의 꿈이라면 반드시 허락을 받아야죠." "어머나." 둘이 다정하게 말하는건 이제 상관 않할테니 이것 좀 그만 놔주지. 숨 이 막힌단 말이야! "그런데 앞에 가신 일은 어떻게 되었죠?" 엄마가 둘의 말을 끊고 물어보았다. 만약 그렇게 안했다면 또 둘이서 끝없는 수다를 떨것 같은 분위기라서 그랬던것 같다. "아 앞쪽 상황으로 봐서는 적어도 한시간 정도는 더 기다려야 될것 같 습니다." "그래요." "휴 한시간이나 더 기다려야 되다니 사람이 얼마나 많길레..." '그것보다 누나는 날 언제 놔줄꺼야? 설마 한시간 동안 계속 이렇게 있 을셈인가?' 내 걱정과는 달리 누나는 곧 나를 놓아주었다. 그리고 다시 제크 아저 씨와 말을 하면서 무료한 시간 때우기를 하는 것이다. 나는 별로 할일 이 없어서 그냥 그렇게 창밖을 바라보았다. 아 사람 많기는 정말 많구 나.... "어디서 오셨죠?" 지나갈 것 같지 않던 시간이 지나 드디어 우리차례다. 창밖에는 이 도 시 경비병으로 보이는 사람이 피곤해 죽겠다는 얼굴로 물어보았다. 그 러나 그것도 잠시 그 경비병의 얼굴은 급속도로 헤벌레 하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아마도 엄마와 누나를 보고 그렇게 되겠지. "슈워즈에서 왔습니다. 목적은 관광이고요." "예? 아 예...그런데 슈워즈에서도 추수제는 할텐데 멀리서도 오셨군 요." 이 사람 앞에 사람한테는 그런식으로 안 물어보고 어디서 왔고, 몇사람 인지만 체크하고 보내주더니 그렇게도 엄마와 누나를 조금이라도 더 오 래 보고 싶은건가? "슈워즈도 큰 도시지만 이곳 수도 다이리에서 열리는 축제와는 비교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큰 마음 먹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아 예. 저기 그럼 사람은 여기 계신 분들이 다 이십니까?" "네." "저기...그 그럼 즐거운 시간 되시길 빕니다. 다이리 여신의 보살핌이 있길 빌겠습니다." "그쪽도 여신의 보살핌이 함께 하기를 멋있는 경비병님." 라고 누나가 엄마대신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말해주자 경비병의 얼굴이 잘 익은 사과처럼 붉어졌다. 한동안 멍한니 있던 경비병은 곧 자신의 신분을 자각하고는 다리위에 있던 동료들에게 통과시키라는 말을 하였 다. 그러나 누나의 장난끼는 그치지 않고 몸을 내밀어서 다른 경비병에 게도 미소를 지으면서 수고하세요 라고 하면서 경비병들의 마음을 뒤흔 들어 놓았다. "티아야 너무 사람들을 놀리지 말거라." 엄마가 눈치를 채고 누나에게 주의를 주자 누나는 그제서야 예 하고는 몸을 마차 안으로 넣고 혀를 낼름 내밀면서 헤헤 거렸다. "사람들 반응이 정말 재미있네. 이러다가 버릇될 것 같아." "버릇되면 큰일난다." "네에." 내가 슬쩍 뒤를 쳐다보니 거기 있던 경비병들은 아직도 멍한 눈빛으로 우리 마차를 쳐다보고 있었다. 쩝 이러다가 우리 여행 끝날때 상사병 환자 잔뜩 만들어 버리는거 아닌지.... 우리가 탄 마차는 마차가 다니는 도로로 들어서서 곧 우리가 묶을 여관 앞에 당도했다. 엄마가 나흘전에 예약했다는 여관으로 이 도시에서 최 고급인 여관이라 원만한 귀족가들이나 왕족들 아니면 얼씬도 못할 곳이 라고 한다. 용병들과 마부는 우리가 묶는 여관 맞은편에 묶기로 하였는데 그 여관 도 꽤나 고급여관이였다. "이거 별로 일도 안한거 같은데 이런 여관에 묶을려니 부담스러운걸요. " 제크 아저씨가 농담 반 진담 반이라는 뜻으로 말했다. 제크 아저씨 말 대로 수도에 도착하기 전에 가장 위험하다는 산길을 아무 이상없이 지 나쳐 와서 용병들이 몸 풀기회가 없다고 투덜투덜 될 정도로 그들이 한 일은 그저 우리옆을 나란히 따라서 온 것 뿐이었다. "무슨 소리세요. 제크씨네 용병들이 있어서 몬스터들이 겁먹고 접근안 한 것일 수도 있잖아요. 그러니 너무 어려워 마시고 푹 쉬시고 떠날때 도 확실한 경호 부탁드려요." 언제는 저런 인간들 왜 끌고 가냐고 투덜되던 누나 맞어? 처음에는 누 나의 호기심일려니 했는데 저 정도까지 제크 아저씨를 두둔해주니 나도 의심이 가기 시작한다. 여관에 당도했을때는 이미 늦은 시간이었지만 바깥의 가로등에는 마법 불빛이 반짝였고, 사람들이 시끌거리면서 다니는게 낮과 다름없는 모습 이었다. 그러나 나도 누나도 엄마도 거의 하루종일 마차 안에 멍하니 있어서인 지 피곤하다는 생각밖에 안나서 간단히 저녁을 시켜 먹고는 곧 침대로 들어가서 꿈나라로 떠나갔다. 어차피 축제는 내일부터이니 오늘 축제 전야제는 빼먹어도 상관 없겠지... 계속 드래곤 남매 3화 미아가 된 테이(5) 다음날 아침 전날 일찍 잔 덕분에 일찍 일어난 우리는 간단히 아침을 먹고 난뒤 건너편 여관으로 갔다. 용병들중에서 몇몇은 아직 자고 있는 지 여관안의 식당에는 대여섯명정도만 아침 식사중이었다. 그나마 우리 용병들은 세사람 뿐이었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제크씨?" "안녕하세요 아가씨? 구경하러 나가기 좋은 날씨죠." 누나의 화사한 미소에 역시 미소로 답하면서 세명의 용병중 제크가 일 어나서 우리를 맞았다. 덕분에 제크아저씨는 엄마와 누나에게 눈길을 보내던 다른 남자들에게서 바로 분노와 부러움, 저주가 함께 섞인 눈빛 을 받아야 되었다. 그러나 제크 아저씨는 그 눈길을 전부 다 무시하고 당당하게 우리를 맞 았다. "벌써 식사를 마치신 모양이죠? 잠깐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저희도 곧 식사를 마치고 바로 안내를 해드리겠습니다." "물론 호위도 겸해주시는 거겠죠?" "하하하 당연한거 아닙니까?" 하아 이제 누나와 제크 아저씨의 저 다정한(?) 대화를 들어도 패닉상태 에 빠지지는 않지만 심히 걱정이 된다는 엄마의 한숨 소리가 내 한숨소 리와 함께 섞여 나왔다. 제크 아저씨는 주위의 동료들을 닥달해서 얼른 식사를 마치고 곧 일어 섰다. 그동안우리는 다른 테이블에 앉아서 음료를 마시면서 주위의 시 선을 계속 느껴야 되었다. 참다 참다 못참겠는지 누나의 살벌한 눈빛이 쏟아지고 나서야 겨우 시 선이 거둬지었다. "오래들 기다리셨죠? 자 이제 즐거운 관광을 시작해 볼까요?" 제크 아저씨는 두명의 용병들중 한명을 데리고 우리에게 왔다. 남은 한 명에게는 아직 자고 있는 사람이 일어나면 저녁까지 자유시간이라는 말 을 전해주라고 시켰단다. 하긴 이런 축제 거리를 용병 십여명을 끌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리고 우리와 함께 갈 남자를 소개 시켜 주었다. "라이크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 녀석은 제가 처음 용병할때부터 같이 해온 특별한 동료이죠." "아 예 제크 녀석 말대로 특별하게 악.연.으로 묶인 불행한 동료사이 죠." "말을 해도 꼭 그렇게 해야 겠냐?" "사실이잖아. 너의 그 여자 갈아치우는 버릇때문에 내가 얼마나 고생했 는지 알아?" "이 이봐 라이크...." 헉! 엄마의 몸이 순간 굳어졌다. "그리고 왜 그 뒷처리(?)를 내가 다 떠 맡어야 되냐고?" 앗! 이번에는 얼굴이 새하예지셨다. "어 어이 누가 들으면 정말인줄 알겠다." "그럼 거짓말로 들으라고 이 말 하는줄 알아? 하여튼 여자라면 귀족부 터 노예까지 안 건드린 여자가 없으면서...." 어? 이제는 부들부들 떠시네....어 엄마 왜 손에 마력을 모으는거야? "티아루아 아가씨라고 하셨죠? 부디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울고불고 하 는 아가씨 뒷처리 임무를 다시 맞게 되는건 절대 사양입니다." "하하하 라이크...." 하하하 이거 저기서 한마디만 더한다면 위에서 당장 메테오라도 떨어질 분위긴데.. 아악! 라이크 아저씨 제발 그만하세요! 천신만고 끝에 구경나온 인간 세계인데 하루만에 도시 하나 박살내고 돌아가버리는 허망한 여행은 싫 다고요!! 그러나 여기서 구원자는 항상 등장하게 마련이다. 지금까지 내가 본 수 많은 소설에서도 그래듯이 지금 상황에서도 당연하다는 듯이 살벌해지 는 분위기를 잠재우는 구원자 등장이시니....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이크씨. 그러나 걱정말라고 말씀드리고 싶 군요. 전 제입으로 이런말 하기는 뭐하지만 굳이 말을 하자면 만만한 일반 귀족딸로 보시면 큰코 다치실껄요." 자신만만한 누나의 말투와 위풍당당한 저 태도...동료의 험담을 늘어놓 고 그 말에 쩔쩔매던 두 남자의 입을 한 순간 다물어버리게 충분한 박 력이었다. 덕분에 엄마의 살기를 가라앉히는데도 큰 역활을 하였다. 그러나 너무 많은것은 적은것만도 못하리니... "그러니 제크씨는 저를 어찌해볼려고 생각하셨다면 지금까지 다른 여자 에게 해오셨던 것 같은 방법말고 색다른 방법으로 도전해주세요. 혹시 알아요? 제가 거기에 넘어갈지도...." 자신이 진정시켜 놓은 분위기를 꼭 그렇게 망가트려야 속이 시원한거야 누나? 쩝 두 남자의 표정이 가관이구만....그나마 다행인점이라면 약간의 살 기를 아직 품고 있던-마법으로 치자면 파이어볼 대 여섯방 날릴 분위기 라고나 할까?- 엄마의 살기를 한순간에 흐트려놓았다는 정도일까? 엄마가 지금 막 자신들의 목숨을 쥐고 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두 용병 아저씨는 아마 지금까지 이런 귀족아가씨는 처음 보네라는 얼굴로 한동안 누나를 응시하다가 제크 아저씨가 먼저 한숨을 쉬더니 입을 열 었다. "정말이지 특이한 아가씨라는 생각을 했지만 귀족치고 이렇게 직설적으 로 말하는 귀족 따님은 처음 보는군요." 당연하지 나와 누나는 드래곤이니깐..더구나 귀족생활상 같은 건 책으 로만 보았지. 실제로 겪어본적이 없으니 그들의 윤리니 사상이니 하는 것들을 어찌 체험해보았겠는가? 그러니 지금 누나가 한 말은 일반적인 귀족아가씨가 한말이라고 하기보다는 누나의 본체 드래곤의 성격이 그 대로 방영된 말이니...용병아저씨들 눈에는 이런 귀족아가씨 첨본다는 표정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약간의 썰렁한 분위기가 지나간뒤 제크 아저씨는 곧 정신을 추수리고, 즐겁게 웃으면서 우리를 안내하였다. 일단 아침 일찍 왕궁앞 광장에서 열린다는 추수기원제를 구경하기로 하 였다. 이곳 추수 기원제는 신에게 이번 추수가 풍년인 것을 감사하면서 가장 잘된 곡식물을 받치면서 내년 추수를 부탁드린다는 기원을 하는 행사로 이 나라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종교인 다이리 여신관의 대신관이 직접 나와서 기원을 한다. 이때 거의 자주 볼수 없다는 교황과 황제가 참석하고 덤(?)으로 왕자님 공주님등 황실식구들도 볼 수 있기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고 하였 다. 특히 교황을 보기 위해서 다이리 신자들이 전국에서 모여들다 시피하기 때문에 빨리 안가면 자리를 못 잡는다는 말에 최대한 서둘러서 마차를 타고 왔는데도 자리는 거의 남아있질 않았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 나 평민에게 해당되는 말. 귀족들이 앉는 특별석으로 가니 자리가 아직 남아 있었다. 그리고 덤으 로 특별석이니 만치 전망도 좋았다. 귀족석 건너편 자리는 황실 식구및 교황과 대신관들이 있는 자리였고 왼쪽으로는 신관전사들이 오른쪽으로 는 기사들이 호위하고 있었다. -덤으로 그곳은 더욱 전망이 좋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평민들이 구 경하는 곳은 의식장의 정면이긴 하지만 의자도 준비안돼있고, 자리는 제일 넓지만 사람이 많아서 무척이나 북적되어 보였다. -덤으로 소란스 러웠다.-마차에서 내려서 귀족들의 자리 입구로 가자 그곳을 경비중인 경비병들이 한동안 헤 거리면서 우리가족 정확히는 엄마와 누나를 쳐다 보았다. 이거 가는데 마다 시선집중이군. 하긴 그만큼 엄마와 누나가 이쁘니깐 쳐다보는 거겠지...더구나 오늘은 다른 귀족들도 만날 수 있으니 엄마 는 절대 뒤쳐지는 모습을 보일 수 없다고 누나와 나에게 엄청난 정성을 들여 치장해주었고, 엄마도 자신의 미모를 한껏 과시하는 스타일로 꾸 미고 왔으니 남자들이라면 눈을 떼지 못하겠지. "일찍 온다고 오긴 왔는데 남아있는 자리가 있나요." 우리가 가까이 갈때까지 여전히 입을 벌리고 바라만 보던 경비병이 엄 마의 말에 그제서야 정신을 차렸다. "아 예. 걱정하지 마십시요. 아직 자리는 많이 남아있습니다. 세 분이 신가요?" 이런 우리뒤의 용병아저씨들은 보이지도 않는가 보군. "아뇨. 우리를 호위하는 두 분 포함해서 다섯입니다." "아 예. 그럼 호위 하시는분들이 같이 동석할 자리로 안내해 드리겠습 니다." 그리고 경비병은 앞장서서 우리를 안내했다. 얼핏 보니 주위 경비병들 이 우리를 안내하는 경비병에게 부러움의 눈길을 보냄과 동시에 우리에 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우리를 안내하는 경비병의 어깨에 웬지 모르게 힘이 들어간 듯한 느낌이 든다. "이곳입니다. 이 뒤쪽 의자에는 호위병님들이 앉으시는 자리입니다." 경비병이 안내한 자리는 고급스런 의자가 쭉 늘어서 있는 자리중에서 제법 전망이 좋은 것이었다. 그리고 앞쪽에도 의자들이 놓여 있었는데 아무래도 귀족들 자리와 호위병들및 호위기사들의 자리는 따로 뒤쪽에 놓여 있는 것 같다. 그가 안내해준자리는 그런 호위병들과 가장 가깝고 전망또한 좋은 한마 디로 특석이라고 할 수 있는 자리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직 아무도 자리에 앉은 사람이 없었다. 저쪽 평민자리는 아직 바글바글한데 말이 다. "일찍 못오면 자리를 못잡는다고 들어서 서둘렀는데 의외군요." 엄마의 말에 경비병의 얼굴이 환해졌다. 하여튼 이 아저씨는 아까부터 엄마가 한마디 할때마다 얼굴이 펴지는군. 저러다가 더 펴질 얼굴이 없 으면 찢어지겠다. "그런 말은 평민들에게 해당되는 말이죠. 대 부분 멀리서 오시는 귀족 분들이라도 이제서야 슬슬 오실 시간입니다. 이 곳에 사시는 다른 귀족 들은 좀 더 늦게들 오십니다." "네 그렇군요. 친절한 설명 감사드립니다." 감사하다는 듯으로 환한 미소를 엄마가 지어주자 우리 남매도 덩달아 살짝 미소를 지어주었다. 줄곳 무표정으로 따라왔던 누나가 미소지어주 자 이 아저씨 더 입이 벌어진다. "아 아뇨 뭘 그것 같고....그럼 즐거운 시간 되십시요." 경비병은 곧 뒤둘아서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지만 웬지 모르게 발걸음 이 느려보였다. 그리고 힐긋힐긋 뒤돌아 보는 것이다. 엄마와 누나는 경비병의 인사를 받고, 곧 앞을 바라보았지만 나는 재미있다는 생각에 경비병을 계속 쳐다보고 있어서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나와 눈이 마주친 경비병은 얼굴을 붉히고 허겁지겁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난 킥킥대면서 곧 의식장으로 눈을 돌렸다. 그제서야 뒤에 앉아 있던 제크 아저씨가 설명을 시작했다. "저기 의식장으로 만들어진 큰 무대는 이후 일주일간의 축제동안 무대 라던지 여러 용도로 사용됩니다. 보퉁 그날에 무엇을 하는지는 입구에 공표하거나 마을 곳곳에전단을 붙이기 때문에 흥미가 있으신 것은 미리 체크 해 두셔야 됩니다. 아 그리고 빠지지 않고 하는 행사중에서 가장 재미있는게 보석 경매입니다." "보석 경매요?" 보석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누나가 눈을 번쩍이며 물었다. 누나는 보물 중에서 보석을 가장 좋아하는데 가끔 할머니 할아버지 아빠 레어에 놀 러가게 되면 보물창고에서 마음에 드는 것을 꼭 하나씩 달라고 졸라대 면서 가져왔었다. 그러니 보석경매라는 말에 귀가 솔깃했을 것이다. 제크 아저씨는 흥미 있어 할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보통 마지막날 하던 행사인데 저쪽에 보이시는 큰 건물에서 보석세 공품 전시회가 열립니다. 전시회가 끝나면 마지막날에 전시하던 보석을 경매로 파는 거죠." "아아 멋질 것 같아....엄~마!!" "알았다 이따가 구경가잖구나." "피이 구경만...." "으이구 알았어. 구경하면서 사고 싶은거 몇개 골라나 경매할때 사줄 께." "와~아 역시 울 엄마가 최고!" "테이도 갖고 싶은거 있으면 봐두거라." "아니 난 별로...." 이상하게 난 보석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남자라서 그런건가 했었지만 보통 드래곤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보석이나 보물에 환장을 하는데 난 좀 특이 케이스인 것 같다. 뭐 그렇다고 보물에 아예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나도 할아버지 아빠에게 얻어온게 꽤 있다. 주로 책이나 무기 인게 누나와 다른점이긴 하지만... 난 슬쩍 라이크 아저씨를 돌아보며 말했다. 제크 아저씨(?) 이 아저씨 는 여전히 누나와 대화를 나누는데 정신없다. "여기에 큰 무기점 있나요? 제법 좋은 무기들만 파는 데요." "있습니다. 검을 사시게요?" 난 엄마를 돌아보면서 애원의 눈길을 보냈다. 엄마는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흔드셨다. "이따가 저녁때 라이크씨랑 갖다와." "와~아 엄마 감사합니다!" "너 집에 얻어온 검도 꽤 되잖아? 그중에는 마법검도 있던 것 같더구 만..." 누나가 어이가 없다는 얼굴을 하며 물었다. "아직 모잘라 세상에는 신기한 검들이 더 많을지도 모르잖아. 멋있는 검들도 아직 있을꺼고....생각만 해도 짜릿하다." "이상한 검 매니아." "칫 누나는 보석 매니아면서..." "보석이 뭐 어때서! 이쁘기만 한데!" "이쁘면 뭘해 쓸모가 없잖아!" "왜 쓸모가 없냐? 장식하는데 쓰잖아!" "그작 그것뿐이잖아!" "죽을레?" "헉...아 아니...미안 누나..." 윽 뒤에서 두 용병아저씨가 보는데 쪽 팔리게...흑 하지만 어쩌겠어? 쪽팔린 것보다 맞아죽는게 더 싫으니.... "하하하 역시....사이가 좋으시군요." 제크 아저씨왈 "아아 옆에서 보기가 무서울 정도로 사이가 좋군." 라이크 아저씨왈 "이제는 매일행사가 되버렸구나. 어떻게 하루도 안 거르는 날이 없니." 엄마왈 어느정도 시간이 흐르자 귀족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안내되어서 자리를 메꾸기 시작했다. 들어오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우리 가족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였다. 덤으로 이제는 여자들의 뜨거운 눈길도 감수해야 되었 다. 물론 이 눈길은 나에게 향했다는것은 말안해도 될 것이다. 아 가끔 제크아저씨에게도 향해졌다. 내 옆자리는 내 또래로 보이는 귀족아가씨가 안게 되었는데, 간간히 날 살짝 훔쳐보기만 할뿐 빨개진 얼굴을 내내 숙이고만 있었다. 반면 누나 쪽에는 한 백작이라는훨친한 청년이 앉아있었는데 끊임없이 누나에게 말을 걸어되었다. 그러다가 화가 난 누나에게 '난 당신에게 관심 없으니 말 걸지 말아요. '라는 말을 듣고는 충격을 받고 자리를 퇴장하였지만...뒤이어 자리에 앉은 사람은 점잖게 생긴 아저씨였는데 그 아저씨는 엄마에게 관심을 보였다. 다행이 생긴 것 답게 점잖게만 앉아 있어서 누나와 엄마에게 한소리를 안듣게 되었지만....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교황과 황제가 참석하고, 곧 의식은 시작되었다. 의식은 기다린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고 간결하게 끝났다. 수확물을 바치고 내년에도 풍년을 기원하는 기도를 드리고 끝이었으니... 하지만 곧이어 황제의 축하 연설과 마음껏 즐깁시다라는 말이 끝남과 동시에 마법사들이 하늘에 화려한 마법들을 터트렸고, 많은 꽃잎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면서 사람들의 함성이 도시를 흔들었다. 축제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누나와 나의 평가를 합치면 그냥 축제 시작될때까지 여관에서 시간때우 다 나올껏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정도였다. 왜 이것이 이 도시의 축제 명물중 하나라는건지... 제크 아저씨 말로는 이때가 아니면 같은 신전에서도 얼굴 보기 힘든 교 황과 늙어버린 황제는 둘째치고라도 젊은 황태자와 어여쁜 공주님들을 볼 수 있는 일년에 한번뿐인 기회라서 라고는 하지만 우리 드래곤가족 의 관심사 밖이었다. 우리는 천천히 자리를 빠져나와서 우리들을 기다리는 마차로 돌아왔다. "엄.마 헤헤헤." 최대한 귀엽게 엄마를 부르면 무언가를 원하는 아이의 똘망똘망한 눈빛 의 누나를 보고는 엄마는 알겠다는 듯으로 씩 웃으셨다. "그래 그래. 보석 전시회장부터 먼저 가자꾸나." "지금 벌써부터 가시게요?" "왜 안돼요?" 걱정섞인 라이크 아저씨의 말에 누나가 안되는 이유를 말해보라고 하였 다. "굳이 안될껀 없지만 첫날에는 사람이 북작대서 혼잡하거든요." 엄마는 그 말을 듣고는 굳이 오늘 가야되냐는 눈빛을 보냈지만 누나는 단호했다. "사람 좀 많으면 어때서요. 웅 엄마 엄마...나 또 어머니라고 부른다." "으이그 알았다 알았어. 요 떼장아." 엄마는 어쩔수 없다는 표현을 해보이고는 마부에게 보석전시회장으로 가자고 하였고 축제 첫날의 구경은 보석전시회장으로 결정되었다. 그래서 나는 무진장 불만이었다. "테이야 무슨 불만있냐?" "별로..." 들하여튼 누나는 눈치빠른거 빼면 시체라니깐...내 대답이 마음에 안 었는지 난 누나의 한바탕 하기 위한 꼬투리 잡기의 시선을 받으면서 빨 리 전시회장에 도착하기를 빌어야만 하였다. 전시회장은 입구부터 사람이 줄을 서서 내 기를 꺽어놓았다. 옆이 누나 의 표정도 기가 질린 표정이었지만... "이익 이런다구 내가 포기 할 줄 알고 엄마 줄서요. 오늘 반드시 구경 하고 만다!" 나중에 안건데 축제 첫날은 전시회장이 무료란다. 그러니 사람이 특히 평민들이 줄을 섰지....귀족중에는 누나처럼 보석광이0 아닌 한에는 보 통 둘째날부터 구경하기 시작한다고 한다. 여하튼 3시간동안 줄을 선 끝에야 우리는 겨우 전시회장에 발을들여놓을 수 있었다. 제크아저씨와 라이크아저씨는 둘 다 마차에서 기다린다고 하였다. 그 때 나도 그냥 기다렸어야 하는데.... 안에도 사람 많기는 마찬가지여서 구경할려면 꽤 힘들었다. 그 나마 다 행인점이라면 누나의 묘한 박력에 사람들이 비켜주었다는 점. 누나는 그야말로 정신없이 보석에 빠져 들었고, 나는 심드렁하게 주위 만 두리번 거리다가 문득 '용사 지엔크드의 검의 블랙다이아몬드'이라 는 문구를 보고는 그 쪽으로 가 보았다. 꽤 멋있는 검신의 바스타드 소 드였는데 검신 중앙에 내 엄지 손톱만한 블랙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었 다. 더구나 뭔지는 모르겠지만 검 자체에 마력이 깃들어 있었다. 한마 디로 이건 마법검이었다. 비록 검이지만 블랙다이아몬드가 흔하지가 않 기 때문에 이번 전시회에 나왔다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나에게는 그 다이아몬드 따위는 흔하든 흔하지 않던 관심 밖이었다. 오직 그 날씬하고 마법검 특유의 아름다운 광택에 혼이 쏙 뺏기는 기분 이었다. "엄마 나 이거 이번 경매때....어라 둘다 어디 간거야?" 주위를 두리번 거려봐도 내 옆에 있어야 될 엄마와 누나는 안보였다. 난 조금 사람들을 헤치면서 걸어보았다. 은색머리는 흔한색깔이 아니기 에 금방 찾을꺼라고 믿어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힝 정말 둘다 어디로 가버린거야? 별 수 없네 나가서 마차안에서 기다 려야 겠다." 난 누나한테 혼자 먼저 나가면 어쩌냐는 잔소리 들을 각오로 사람들을 밀치며 출구를 찾았다. "에구 정말 사람 많다. 겨우 숨통이 트이네." 밖에 나와서 시원한 공기를 들이마시자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어라 아까 이런 길이었나? 아닌데...." 그 전시회장은 입구 출구 합해서 무려 4개였다. 그중 내가 들어왔던 입 구로 나온게 아니기 때문에 내가 찾는 마차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조금 돌아보면 있겠지." 그리고 조금 돌아본다는게 원 음유시인의 노래 소리가 들려와서 그거 구경하고 가도 되겠지라는 생각에 노래가 들려오는 곳으로 갔다. 골목 을 지나쳐 가자 분수대가 있는 광장에서 용사의 이야기를 노래 부르는 음유시인의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불행이도 구경한지 얼마 되지도 않 아서 음유시인의 노래는 끝나버리고, 그가 인사를 꾸벅하는 것이었다. "감사합니다. 신사숙녀분들 그럼 이 노래의 후반부 이야기는 점심시간 이 끝난뒤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쩝 별수 없네. 누나가 빨리 구경 끝나고 올기를 바래야지. 그리고 졸 라서 여기 다시 와야 겠다. 근데 내가 어디로 나왔더라...아 저기다.' 난 내가 나왔던 골목을 발견하고는 되도록 빨리 마차가 있는 곳으로 가 기위해 뛰었다. 그렇게 한참을 뛰던중 엉뚱한 곳으로 나왔다는 생각이 들때는 이미 전시회장과는 상당히 떨어진 곳 이었다. '에구 이제는 정말 별 수 없다. 그냥 바로 여관 찾아가자.' 라고 생각을 해보니 또 다른 문제점이 하나 나왔다.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겠으니 여관을 어떻게 찾아가지? 난 다른사람에게 물어봐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그런데.... '가만 여관 이름이 뭐였지?' 어차피 마차타고 다닐꺼라 별로 중요하게 생각안해서 여관 이름을 기억 안해 놓았던 것이다. '으윽 귀찮아 텔레포트 할려고 해도 최소한 여관 방향이라도 알아야 텔 레포트하지.....' 마지막 방법이라고 할 수 있는 텔레포트도 텔레포트 할 장소의 모습과 그 대략적인 위치를 알아야 텔레포트를 할 수가 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여관의 모습은 기억이 나지만 동서남북중 어디에 붙어있는지 도저 히 감이 오지 않았다. 남은 방법은 방향과 모습을 잘 알고 있는 레어로 텔레포트 하는 방법 뿐.... 그러나 그 방법을 시행하면 여행끝이라는 도장을 찍는 의미이며 너 때 문에 여행도 제대로 못했다는 누나의 무시무시한 괴롭힘의 시작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에 '죽어도 레어로 가면 안돼.' 라는 결심을 굳건히 다져주었다. 아무튼 지금 모든 지식과 경험을 내 현재 상황에 비추어 볼때 나오는 결론은 딱 하나였다. '나 미아 해츨링이 되 버린건가?' 드래곤 남매 4화 인간누나와 만남(1) 테이가 최초의 미아해츨링이 되었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을때 세이르아 와 티아쪽은 난리가 아니었다. "엄마 테이 분명히 여관에 있겠지?" "그래 틀림없이 여관으로 갔을꺼야 너무 걱정하지마." "힝 내가 괜히 오늘 구경하자고 해서...." "자자 괜찮아요. 테이는 여관으로 잘 찾아갔을꺼니깐 너무 걱정말거라. " 세이르아는 울먹이는 티아를 달래면서도 마음 한구석으로는 불안한 마 음만 계속 들었다. 드래곤 일족 중에서 인간이 가장 잡기 쉬운게 해츨 링과 어린 성룡들인 것은 지나가는 어린애도 다 아는 사실이었다. 여행을 오게 되면서 아직 자신의 힘을 잘 갈무리 할줄 모르는 테이를 위해 마법을걸어서 숨겨놓긴 했지만 하루가 지나면 풀리기 때문에 다시 걸어줘야 되는 상태였다. 하루안에 테이를 못찾게 되면 테이의 미약한 해츨링의 힘이라도 알아채는 사람이 나올수도 있었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에는 그런 테이가 납치되어서 무슨 일을당할지 알 수 없는 상태였 다. 지금 둘은 아직 전시회장 주변을 찾아보는 중이었다. 다행이 은발은 눈 에 띄는 색이라 라이크가 사람들에게 물어가면서 찾아보는 중이었고, 제크는 한발 먼저 여관으로 돌아가서 혹시라도 테이가 여관으로 돌아왔 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만약 안돌아 왔으면 용병들을 풀어서 찾게 만들 기로 하였다. 그 때 라이크가 달려왔다. "우리 테이 본 사람 있대요? 네 라이크씨." 평소에는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던 티아가 지금은 눈물을 그렁거리면서 테이를 찾는것을 보고 라이크는 '역시 쌍둥이 남매는....'이라는 생각 을 잠시 하였다가 곧 자신이 알아본걸 말해 주었다. "저쪽 골목을 나가면 광장이 보이는데 그 곳에서 노래하던 음유시인이 봤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어느쪽으로 갔는지는 못봤다고 합니다." "....길을 잃었을 확률이 크다는 거군요." "죄송합니다. 아마 그럴껍니다." "그럼 뭐예요? 테이 찾을 수 있다는 거예요. 없다는 거예요?" "티아야 진정하렴. 라이크씨 일단 이 도시의 용병길드에게 사람을 찾는 의뢰를 맡기고 와주세요. 상금은 그래 일단 십만골드를 드린다고 해주세요." "십만!" 이곳의 물가로 십만골드는 일반 평민이 평생은 일해야 벌수 있는 금액이 었다. 하지만 귀한 자식을 찾는데 쓰는 돈이라면 별로 아까울께 없는 돈이려니 생각한 라이크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금방 갖다오겠습니다. 아!.....저기 괜찮으시다면...." "뭐죠?" "도적...길드에게도 협력을 구해볼까요?" 귀족에게 도적길드의 도움을 받게 한다는건 굉장한 자존심 문제였지만 어차피 세이르아는 드래곤이니 그런거 따질 이유가 없었다. "상관없어요. 테이만 찾을 수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좋 아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내친김에 가장 도움이 안될 것 같은 도시경비대 에게도 부탁하고 오겠습니다." "네 그래주세요. 지금은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심정이니깐요." "예." 라이크는 다시한번 고개를 끄덕이고 곧 인파속으로 사라져 갔다. 울먹되던 티아는 어느새 세이르아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소리죽여 울고 있었다. 테이를 끝없이 부르면서....... "하아 어쩌지?" 나는 지금 여기가 어딘지 모르는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도 최대한 머리써서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이 도시에서 제일 비싼 여관이 어디냐고 물어서 찾아왔는데 내가 묵던 여관이 아닌 곳이었다. 그래도 어찌되었던 지금 내가 밥을 먹고 있는 여관은 비싼 여관이었다. 비싼 여관이 한두군데가 아닌 모양이었다. 하긴 이 큰 도시에 이런 수 준의 여관이 한군데 밖에 없다는게 말이 안되는 거지만......... '우물우물 지금으로서는 별 수 없으니 쩝쩝 계속 고급여관만 찾아서 돌 아다녀볼 수밖에....우걱우거 그 수 이외에는 별 뾰족한 수도 없고...' 어느정도 포만감을 느낀 나는 곧 일어나서 주인에게 계산을 치르러 갔 다. "아 잘먹었다. 얼마죠?" "네네 고급정식 1인분 15센 되겠습니다." 나중에 안건데 100센이 1골드 금화 하나이고 50센짜리 은화와 10센짜리 은화 그리고 1센과 5센짜리 동화가 이 대륙의 화폐이고, 1골드면 보통 삼사일은 너끈히 먹고 잘만한 금액이었다. 그러나 당시의 나는 엄마가 대부분의 돈계산을 했기 때문에 물가가 얼마나 하는 줄 몰랐기에 가지 고 있는 금화 한닙을 건네주었다. 그러자 50센 하나와 10센 3개와 5센짜리 동전 하나가 나에게 돌아왔다. '흠 금화하나가 꽤 큰 돈인가 보네. 동전을 이렇게 많이 거슬러 주는 걸 보니...' 난 주인의 안녕히 가세요.라는 인사를 뒤로 한체 다시 밖으로 나왔다. '자 이제는 누구한테 물어보나?' 아까전에는 마음씨 좋아보이는 여자에게 물어보았었다. 그러고 보니 그 여자 처음에는 넋을 잃고 나만 쳐다보아서 몇번 계속 물어봐야 정신을 차리고 대답해주었지...이번에는 남자한테 물어보자. 난 주위에 걸어다니는 행인을 보다가 아무나 -남자를- 붙잡고 물어보았 다. "실례합니다. 이 도시에서 고급여관은 어디에 있죠?" "고급여관? 바로 자네 뒤에 있는데..." "아 아뇨 저 여관 말고 또 고급여관이 없나요?" "없을리가 있나 내가 아는 것만 해도 10여군데는 되는데..." "시 십여군데..." 기가 질렸다. 이거 오늘내로 찾아갈 수 있을려나? 뭐 어찌 되었든 이 방법외에는 다른 선택상황이 없는 나는 가까운 고급여관의 위치를 물어 본뒤 다시 그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 다시 약 한시간뒤.... "여기도 아니야....." 하아 이제 겨우 두군데 돌아다녀본걸로 힘이 빠진다. 아니 아직 포기할 수 없어. 난 누나의 얼굴을 생각하고는 다시 힘을 내어 주위사람들에게 여관위치 를 물어보고 다녔다. 만약 오늘내로 못찾아 갔을때 누나에게 혼날걸 생 각하니 절로 힘이 다 난다. 그런데 누군가가 내 어깨를 갑자기 치는 것 이었다. "누 누구....세요?" 난 혹시나 엄마와 누나를 기대하고 돌아보았지만 그 곳에는 20대 초반 의 시원스레 생긴 청년이 날 쳐다보고 있었다. 하아 다시 기운 빠진다. "아까부터 보자니 고급여관을 찾던데....왜 찾는거지? 고급여관이라면 너 뒤 편에도 있잖아." "그게 일행이랑 헤어져 버렸는데....아는거라고는 고급여관에 묵었다는 것 밖에 모르거든요." "여관 이름도 몰라?" "..예." 으 역시 쪽팔리다. "하하하 이것 참 황당한 도련님이군...그렇게 해서 어느 세월에 찾을려 고?" "하지만 방법이 이것밖에는 없는걸요." "하긴....그래 혹시 여관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라? 그것만 안다면 어 느정도 쉽게 찾을 수 있을텐데." "아 그렇군요.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음 그러니깐? 아 삼각형 지붕이 없었어요. 층은 5층 여관이었고요." "그런 여관이라면...가만 있어보자...이 도시에 그런 고급여관이라면 세군데 정도 될꺼야." '휴 역시 진작 이렇게 물어볼껄 무려 7군데나 안돌아봐도 되잖아.' "그중 하나는 이곳에서 가까운데 있어. 골목을 가르질러 가면 10분도 안걸려. 안내 해 줄께." "와아 정말요? 정말 감사합니다." "뭘 대신 찾아주면 저녁 비싸게 한턱 내라." "네." 그 깟 저녁한끼가 문제인가? 이것으로 내 목숨이 부지된다면 그 이상 뭘 못해주리. 난 마음씨 좋은 형-청년에서 한단계승격 친절하니깐-을 따라서 미아가 된뒤로 처음으로 즐겁게 주위도 천천히 둘러보는 여유를 즐기면서 걸어 갔다. 한때는 어떻게 되는 줄 알았는데 정말 다행이다. 드래곤 남매 4화 인간누나와 만남(2) 정말 실수였다. 지금까지 만만해 보이는 도련님들 주머니를 잘 만 털어오던 내가 이런 실수를 하게 될줄이야. 이번에도 여관을 찾는 순진한 도련님 하나 건져서 한 몫 잡는가 싶었다. 여간해서는 보기 힘든 은발의 약간 이상한 느낌이 드는 꼬맹이라 못 보던 머리색이라서 그런가 보다라는 안이한 생각을 하던 나의 완벽한 실수였다. 그 꼬마는 내가 안내하는대로 순진한 얼굴로 작업장(?)으로 잘만 따라 왔었 다. 그리고 미리 준비되어 있던 내 동료들이 에워싸도 여전히 그 순진한 얼 굴로 '아는 사람이세요?'라고 물어봐서 나와 동료들을 휘청이게 만들 정도 였다. 내 동료중에서 성질급한 붉은머리 잭이 "죽을레? 아니면 가진거 다 내놓을레?" 라는 말을 했는데도 그 꼬마는 무언가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 같더니 손을 탁 치면서 '아아 아저씨들 강도들이구나.' 라는 말을 하여 다시금 우리들을 휘청이게 만들었다. 그 때까지는 이 집안은 얘들 교육을 어떻게 시키는 거야? 라고 투덜거리면 서 여기까지 데려온 책임을 지기 위해 내가 손수 교육을 시켜 주기로 했다. "꼬마 도련님 우리들은 도적입니다. 강도들이랑은 차원이 틀리죠." 그러자 꼬마 왈 '어떻게 다른데요?' 하하하 정말이지 보기 드문 순진한 꼬마 도련님이군.... "강도들은 사람을 죽이고 물건을 빼앗지만 우리는 사람을 죽이지는 않습니 다. 단지 말을 안들으면 약간 아프게 패줄 뿐이죠." 이 정도면 알아들었을꺼라고 생각하고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어서 알아서 내놓으라고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그 꼬마는 순순히 허리에 찬 가죽주머니를 내미는 것이었다. "호오 이해력이 무척 빠른 꼬마구나." 라면서 잭이 그 주머니를 받아 들때까지는 한건 했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꼬마가 주머니에서 손을 떼자 마자 주머니를 받아든 잭의 몸이 불타올랐다. "뭐 뭐야!" 우리가 당황하자 그 꼬마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지갑에 엄마가 마법을 걸어주셨거든요. 나 이외에 사람이 손대면 불의 마 법이 발동하도록요. 걱정마세요. 울엄마는 쓸데없는 살생은 싫어하시는 분 이라 죽지는 않을꺼예요.' 라는 무시무시한 말을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말 하는 것이었다. 그 쯤에서 재빨리 튀었어야 되었는데 이미 동료들은 잭을 태운 꼬마를 죽일듯이 노려보았다. "이거 보통 꼬마 도련님이 아니구만." "댓가는 치를 각오가 되어 있으시겠지." "댓가? 저기요 저 아저씨 태운건 내가 아니고 내 주머니잖아요." 음 맞는 말이긴 한데....... "너가 아무말도 안하고 주머니를 건내준거니 처음부터 태울 셈이었잖아!" "어? 으음...아 그렇게 되네요. 난 책에서 본대로 100번 말하는 것보다는 한번 보여주는게 낮다는 생각으로 그런거였는데 죄송합니다." "........" "........" "........" "자 장난은 그만두고 너 오늘 죽었다고 복창이나 해라." 내 동료중에서 가장 인정사정없는 포악한 터울이 손에 단검을 꺼내서 꼬마 에게 덤벼들었을때는 '에구 오늘 얘 하나 반 병신 만드는구나.' 라는 생각 뿐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꼬마 주변에서 강력한 바람이 솟구치는가 싶더니 터울은 그대로 공중에 떳다가 꽤 세게 땅에 곤두박질 쳤다. "마 마법?!" "마법사였어? 이런 꼬맹이가?" 무식한 내 동료들이야 바람만 분거 가지고 마법이네 뭐네 수선을 피웠지만 난 내 뛰어난 판단력으로 방금 꼬마가 쓴 기술을 알아내었다. '정...정령?' "이익 주문외우기 전에 해치우면 돼!" 나보다는 경험이 적지만 나름대로 산전수전 다 겪은 디아브가 단도를 휘드 르며 빠르게 공격해 들어갔지만 내 생각대로 저 꼬마가 정령사가 맞다면 우 리 전부가 덤벼들어도 승산이 없다. 정령마법은 주문을 외울 필.요.가 없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었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난 급히 뒤로 돌아 도망치면서 외쳤다. "으아악! 잘못 걸렸어. 튀어!" 내 행동을 이해 못한 동료들이 머뭇거리다가 꼬마의 정령에 당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렸지만 난 멈추지 않고 뛰고 또 뛰어서 겨우 빠져 나울 수 있었 다. 에휴 아까 그 꼬마에서 느껴지던 묘한 느낌이 정령사의 느낌이었나? 아무튼 오늘 말로만 듣던 정령사를 보고 또 그 정령사들이 풍기는 느낌이라 는 것을 체험했으니 비싼 수업 받았다고 쳐야지. 동료들이야 또 구하면 되니깐....어이 잭, 터울, 디아브, 기타등등(?) 혼자 도망쳐서 미안혀. 그것도 자네들이 다 무식한게 가장 큰 죄니 날 너무 미워 하지 말라구. 난 분명 잘못 걸렸으니 도망치자고 충고했다구.... 자 그럼 잠시동안 몸을 숨겨다가 다른 지구에서 다시 작업(?)을 해야지. 역시 세상은 지식이 최고의 무기라니깐.... 테이를 꼬셔서 돈을 뺏으려고 한 이 도적은 하나 모르는게 있었다. 이 도적 이 테이에게서 느꼈던 이상한 느낌은 정령사의 느낌이 아닌 테이 엄마인 실 버드래곤 세이르아가 드래곤의 기운을 잘 숨길줄 몰랐던 아들에게 걸어준 마법의 기운이 다 되어가서 새어나온 테이의 드래곤의 기운이라는걸... 비록 모르고 한거지만 해츨링에게 돈을 갈취할려고 한 이 간큰 도적은 후에 진짜정령사를 못알아보고 또 예의 그 작업을 시도했다가 죽지 않을 정도만 맞았다던가 하는 이야기는 아주 사소한 이야기니깐 넘어가고..... "왜 왜 찾는 여관마다 내가 묵었던 여관이 아닌 이유가 뭐야?" 난 결국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벌써 이 곳이 아까 도적들을 혼내주고 찾아온 네번째 여관이었다. 그런데 그 제비족같이 생긴 도적 말대로 이제 세군데만 더 찾아보면 된다는 생각에 힘차게 찾아나선 건 좋았는데 그 도적말대로 세군데 하고 보너스로 한군데 더 내가 기억하고 있는 여관과 비슷한 여관을 발견했지만 내가 찾는 여관이 아니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지금 해까지 떨어져서 주위의 가로등에서 불빛이 거리를 비추기 시작했다. 밤은 점점 깊어가는데 여전히 축제의 열기는 시들줄을 몰 라서 거리에는 아직 많은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었고, 축제의 명물(?)이라 는 야시장의 노점상들이 하나 둘 불을 밝히며 손님들의 발을 잡아 끌었다. 그러나 여기가 어딘지는 여전히 모르겠고, 내가 미아라는 사실이 변한게 아 니기 때문에 난 그 휘항찬란한 축제의 불빛을 뒤로하고 걷고 또 걸을 수 밖 에 없었다. '다리도 아프고, 어 그러고 보니 배도 좀 고프네....' 난 식당에 들어가기가 싫어서 근처 노점상에서 적당히 빵을 사서 먹으면서 걷다가 결국 한 가게 벽쪽에 붙어서 지나다니는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았 다. 내 주위에는 인간들이 연인끼리 가족끼리 하하 호호 거리면서 돌아 다 니고 있었다. 특히 가족으로 보이는 인간들이 지나갈때면 못 견디게 엄마가 보고 싶어졌다. '히잉....' 나도 모르게 소리없는 울음이 터졌다. 지금은 나 혼자 뿐이라는 사실을 확 인할때마다 너무나 서러워져서 그냥 나중에 누나에게 죽던 말던 레어로 워 프를 할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도 누나의 공포심은 끝까지 날 레어로 돌아가지 못하게 붙잡고 있었으 니..........흑 누나 정말 미워!!! 난 어느새 그 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다리가 너무 아파서 더 걸을 힘도 없었고, 그냥 이대로 있으면 누가 찾으러 와주지 않을까 하는 안이한 생각까지 들어서 더 이상 움직이기가 싫었다. 그 때였다. "얘 왜 그러고 있니? 어디가 아프니?" 여자 목소리? 난 울먹거리는 눈을 간신히 진정시키고 고개를 들어서 날 내 려다 보고 있는 여자를 올려다 보았다. 긴 금발머리가 날 내려다 보느라 흘러내려서 손으로 쓸어넘기고 있는 미녀 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17세에서 18세정도 되어 보이는 어딘가 모르게 누나의 분위기를 풍기는....누나의 분위기?! 헉! 난 마음속 깊이 박혀있는 누나에 대한 공포감이 한 순간 내 몸을 내 의지와 는 상관없이 흠칫거리게 만들었다. 그 금발의 인간여자는 쓴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겁 먹지마. 난 수상한 사람이 아니야. 내 이름은 레이나. 레이나 크리아드 라고 해. 너는 이름이 뭐니?" "....테이...테이루아 오스타인이요." 일주일간의 엄마의 철저한 스파르타식 귀족예법 교육덕분에 우리의 성으로 사용하기로 한 아빠의 이름까지 빠짐없이 대답했다. 역시 스파르타식의 교육의 힘이란 정말 대단해. "테이루아. 좋은 이름이구나. 애칭이 테이일껏 같은데 맞니?" "예." "그럼 테이라고 불러도 될까?" "예." "자 그럼 테이는 여기 앉아서 뭐하고 있었니? 안색이 별로 안좋은데 어디 아픈거니?" 레이나라는 그 금발의 여자는 어느새 살짝 무릎을 굽히고 앉아 나와 눈 높 이를 맞추고 물어보았다. 덕분에 난 레이나의 눈동자를 볼 수 있었다. 레이나의 푸른 눈동자는 날 정말로 걱정하고 있는 눈빛이었다. 아까 누나같은 분위기여서 나도 모르게 흠칫거렸지만 같은 누나라도 레이나 누나의 분위기는 훨씬 더 자상한 분위기였다. 마치 어린시절 가고일에게서 날 구해주고 걱정했다면서 울던 누나의 또 다 른 면이었다고 생각되는 그 때의 자상한 분위기..... 난 이런 분위기에 무지 약한가 보다.... "흑...훌쩍..." "에? 어어 잠깐만..." "우 우와아앙~~." "잠깐만 테이야 왜 갑자기 우는거야?" 나도 모르게 레이나앞에서 긴장이 풀려버리자 참고 참았던 울음이 터져 나 와 버렸다. 이러니 내가 누나에게 울보소리를 자주 들었지.... "자 잠깐만 테이야. 자 제발 진정하고 뚝 응. 진정하고 무슨일이 있었는지 말해보렴. 내가 도와줄테니깐. 자 자 남자가 이렇게 함부로 울면 안돼." 레이나의 필사적인 달램 덕분에 난 어느정도 진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흑흑...훌쩍...힝 어 엄마랑 누나랑..흑흑 떨어져서..흐끅.." "너 미아가 된거니?" 끄덕끄덕 훌쩍 드래곤 남매 4화 인간누나와 만남 레이나는 자신의 다리를 베고 잠이 든 테이의 은색 머리칼을 쓰다듬고 있었다. 축제를 즐기다 슬슬 집에 가야지 할 때 거리 한 구석에서 쪼 그리고 앉아있는 테이를 첨 봤을때는 부랑자인가 라고 생각했었는데 가까이서 보니 입고 있는 옷이 고급이라 무슨일일까 라는 의문으로 그 에게 접근했었는데 길 잃은 미아일줄은 몰랐었다. 보통 이런 귀족자제가 경호원 하나 없이 거리를 헤메이게 되는 것은 상식밖의 일이기 때문이다. 레이나가 미아였냐고 묻자마자 울음을 그쳐가던 테이는 전보다 더 크 게 아예 통곡을 해버려서 주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결국 레이나는 급히 자신의 마차로 테이를 데려가서 달래게 되었던 것 이다. "그런데 어쩔거죠? 정말 그 아이의 부모를 찾아줄 껀가요?" 레이나의 앞에 앉은 남자가 그렇게 물었을때 레이나는 테이에게서 시 선을 떼고 앞에 앉은 남자를 바라보았다. 레이나와 같은 금발을 가진 남자로 레이나보다 서너살은 많아 보였다. "물론이죠 엔드르. 그러기로 약속했잖아요." 엔드르라고 불린 금발의 미남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울고 있는 테이를 레이나는 자신이 부모를 찾아줄테니깐 울지말라고 달래고 달래서 겨우 울음을 그친 테이가 긴장감이 완전히 풀렸는지 지금 모습 처럼 그대로 레이나의 다리를 베고 잠들어버렸었다. "당신은 어릴때부터 곤경에 처한 이들을 내버려 둔적이 없군요." "천성인가봐요." "그리고 내 기억이 맞다면 귀족의 자제를 돕는 일은 이번이 처음 같은 데요." "테이는 일반귀족의 밥맛없는 자제들이랑은 틀리니깐요." 엔드르는 슬며시 웃음이 새어나왔다. 귀족들을 밥맛없는 이들로 쳐버 리는 레이나 그녀 역시 귀족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조금 특이한 케이 스라고 할 수 있다. 레이나의 아버지는 왕가에서도 막강한 권력을 가 지고 있는 공작가였고 황실의 친인척이었다. 더구나 왕권계승자 서열 에서도 높은 위치에 있었다. 더구나 현 황제 베르크드 3세에게 자식이 없기 때문에 그들 가족의 위치는 다이러스 제국에서 양대 가문중 하나 로 꼽히고 있다. 그런 그녀가 같은 귀족들을 밥맛없는 이들로 쳐버리 니 웃음이 나올수 밖에 없었다. 물론 그녀가 그러는 것은 충분한 이유 가 있어서였다. 그리고 그 이유를 잘 알고 있는 엔드르이기도 하였다. "그래 그 꼬마가 다른 귀족의 자제와 어디가 다르다는거죠?" "꼬마가 아니고 테이예요. 음 테이는...순수하다고나 할까요." "순수?" "네 일반귀족 자제가 미아가 될 일은 없겠지만 일단 미아가 되었다고 쳐보죠. 만약 그들에게 도와주겠다고 나서면 어쩔꺼 같아요." "보나마나 자신이 도움받는 걸 당연하다고 느끼고 고자세로 나오겠죠. 그리고 당신이 신분을 밝힌다면 그 반대로 엄청나게 저자세로 나올꺼 고요." "맞아요." "그런데 그 꼬...아 아니 테이였죠. 테이는 다른가 보죠?" 엔드르는 레이나가 노려본다는 것을 눈치채고 급히 꼬마에서 테이로 말을 바꾸었다. 그 말이 재미있었는지 레이나는 잠시 킥킥거리며 웃다 가 자신의 생각을 말해주었다. "당신도 보셨잖아요. 귀족가의 교육은 제대로 받은거 같은데도 테이에 게는 아이들의 순수함이 그대로 남아 있어요. 자신의 처한 상황을 아 이답게 잘 이해하고 도움을 받게 되자 안심하고 주위에 상관없이 울어 대는걸 보면 알수 있죠. 어느 귀족가인지 모르겠지만 교육을 제대로 시킨거 같아요." "순수함이라 지금 당신 무릎을 베고 자는게 순수함인가요." "어머 아이를 상대로 지금 질투하시는건가요?" "별로요." 레이나는 소리를 죽여서 킥킥대었다. 엔드르의 떨떠름한 저 표정 틀림 없는 질.투였다. 그 역시 밥맛없는 귀족중에서 몇몇 안되는 레이나가 인정한 사람다운 사람이였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솔직히 표현하는 사람이었다. 말이 아닌 얼굴로 말이다. 그래서인지 표정관리를 잘 못해서 능력과는 상관없이 별로 대 접을 못 받고 있는 편이었다. 만약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재상의 자리도 노려봄직 할 정도로 능력이 되는 남자였기에 레이나는 그것이 안타까웠다. 그래도 저런 솔직한 반응이 엔드르의 매력이기도 하였다. 자신도 엔드 르의 솔직한 표정에 반한것 이었으니 그렇게 신경쓰지는 않았다. 레이나는 자신의 무릎을 베고 자고 있는 테이의 은색 머리칼은 조용히 쓰다듬었다. 그러자 테이가 잠시 뒤척이는 것 같더니 뭐라고 웅얼거리 는 것이었다. "무슨 잠꼬대를 하는거죠?" "음...누나 잘못했어 라고 하는 것 같은데요." "외동아들이 아니었군요." "아까 테이가 엄마랑 누나와 떨어졌다고 말했잖아요." "난 못 들었어요. 생긴건 12살정도인데 너무 어린애 같아서 외동아들 인줄 알았죠." "후후후 남자는 평균정신연령이 낮아서 얘같아 보여도 나이가 많은 경 우가 많답니다. 테이는 아마 13살에서 14살정도 될껄요."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는 겁니까?" "왜요? 어린애에 대해서 너무 잘 알고 있는 내가 아기라도 키워본 경 험이 있는 미혼모같아요?" "그 그게 아니라...." "이르한테서 배운 것예요." "아 아 당신네 집에 있는 그 엘프친구 말이군요." "네. 역시 오래 살아서 그런지 아는 것이 참 많더라고요." "하아 그래서 내가 당신을 이겨본적이 없는거군요." "절 그렇게 이기고 싶으세요?" "아 아니 그게 아니라...그냥 말하자면 그렇다는거죠..별 뜻이 있는게 아니예요." 레이나는 어쩔줄 모르고 변명을 놀어놓는 엔드르의 반응에 다시금 소 리죽여 킥킥대었다. 솔직히 까놓고 말하면 체통이고 뭐고 전당포에 맡 겨두고 크게 웃고 싶었지만 테이가 깰가봐 조용히 웃으려니 배가 아플 지경이었다. "역시 당신이란 남자는...." "네? 제가 뭘요?" "아뇨. 역시 당신과 사귀길 잘했다는 말이예요." 레이나는 하마트면 얘 같아요 라고 말할뻔 한걸 간신히 목구멍으로 삼 켰다. 엔드르는 눈치는 어느정도 챈거 같지만 방금전의 직설적 고백에 얼굴이 뻘개져서 시선을 피하느라 더 이상 뭐라 말을 할 수 없었다. 잠들어버린 미아 해츨링 테이를 태운 마차는 그렇게 축제의 첫날을 마 감하는 거리를 조용히 달려가고 있었다. 밤이 되어도 아무 소식이 없자 세이르아는 미칠 것 같았다. 방안을 왔다 갔다 거리면서 소식을 기다리고 있건만 그 어느곳에서도 테이를 찾았다는 연락이 오질 않자 불안은 점점 커져가고 최악의 상황 으로만 생각이 치닫았다. 테이가 없어지고 난뒤 한동안 울면서 난리를 치던 티아는 아예 넋을 잃은체 멍하니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다. 그러나 똑,똑 갑작스런 노크소리에 미처 세이르아가 열어보기도 전에 티아는 언제 넋 놓고 있었냐는 듯이 잽싸게 문을 열었다. 문앞에는 제크가 서 있었다. "테이는요? 테이는 찾았나요? 아니면 무슨 단서라도?" 제크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방금전까지만 해 도 제크의 멱살이라도 잡을 듯이 물어보던 티아는 그대로 주저 앉아 버렸다. "흑 테이야..흑흑." 그리고 다시금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테이가 보았다면 또 무슨 음모 를 꾸미냐고 겁부터 먹게 할 정도로 그녀의 망가진(?) 모습은 파격적 이었다. "티아야 진정하렴. 걱정하지마 테이가 약한것도 아니고 저 한몸정도는 지킬 수 있는 실력이 있잖니? 그리고 비상금은 충분히 주었고, 지갑에 는 마법도 걸려 있으니깐 어디서 굶고 있지는 않을꺼야. 그러니깐..." "맞습니다. 아가씨. 테이도련님을 조금 믿어보세요. 저는 여러분들을 호위한지 이제 고작 3일밖에 안되었지만 테이도련님은 어른스러운데가 있던걸요. 틀림없이 무사히 계실껍니다." "아무것도 모르면 가만히들 계세요!" "....!!" "....!!" 갑작스런 티아의 외침에 세이르아와 제크는 동시에 움찔하고는 말을 잇지 못하였다. 조용해진 여관방에서는 이제 티아의 흐느끼는 목소리만 나오고 있었 다. "테이는...흑 테이는 나와 한 몸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흑.. . 쌍둥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묘하게 같이 있으면 즐겁고...편한 느 낌이 들어요. 흑...그렇기 때문에 테이는 내가 잘 알아요...흑 그 바보 지금쯤 거리 어딘가에서 울고 있을지도 모른단 말이예요...으 흑...우 우아앙." 결국 다시 울음을 터트리는 티아를 세이르아는 필사적으로 달래야 되 었다. 솔직히 테이가 없어진 그 시간부터 티아는 내내 울다가 지치면 멍하니 있다가 체력이 회복되면(?) 다시 울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자 자 티아야 그만울렴. 그래 테이도 아마 지금쯤 어디서 울고 있을 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누나인 너까지 이렇게 넋놓고 울고 있으면 아 무것도 해결되지 안잖아. 그러니 그만 뚝 그쳐요. 다 큰 처녀가 남자 앞에서 이게 뭐니?" 멍하니 티아의 우는 모습을 보면서 아름답다고 생각하던 제크는 그제 서야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숙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아가씨. 제가 반드시 무슨수를 써서라도 테이 도련 님을 찾아오겠습니다. 제 이름을 걸고 약속 드리죠." 티아는 엄마와 제크의 말에 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제크를 올려다 보며 말했다. "부탁드려요. 제크씨 꼭 꼭 테이를 저의 분신같은 그 아이를 꼭 찾아 주세요. 부탁드려요." 눈물에 적어 있는 눈을 살며시 뜨고 그를 올려다 보고 있는 티아의 모 습은 평소에 자신만만하고 약간은 제멋대로인 그녀가 정말 맞는 것인 지 의심이 갈 정도로 약해보였다. 그리고 그 약함은 제크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네 반드시 찾아드리겠습니다." 티아는 그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얼굴을 살짝 물들 인체 고개를 숙였다.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드렸군요. 죄송합니다." "아 아뇨 저는 솔직히 형제가 없기 때문에 기분 같은건 잘 모르기 때 문에...조금 부럽군요. 그렇게 상대를 생각해 주고 걱정해주는게 조금 부러운데요." "테이와 저는 쌍둥이라서 조금 유별날지도 몰라요. 다른 남매들은 잘 모르겠어요." "그런건가요?" "그런거라고 생각해요." 티아는 어느새 손수건을 꺼내들어서 눈가를 꾹꾹 누르고 얼굴을 고치 고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잘 지어지지 않는 얼굴 근육을 무리하게 움직여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럼 부탁드릴께요. 제크씨." "맡겨두세요. 아가씨에게 억지 미소가 아닌 진정한 미소를 꼭 찾아드 리겠습니다." "제크씨..." 웬지 모르게 비상사태라는 생각이 전혀 안들게 만드는 꽃잎 날리는 사 태가 벌어지자 세이르아는 급히 헛기침을 몇번 하였다. "흠흠..." 그제서야 두 젊은 남녀는 시선을 세이르아 에게로 돌려서 아 이분이 같이 있었지라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세이르아는 그 표정을 애써 무시하고는 제크에게 다시 한번 찾아봐 달 라는 부탁을 하고 내 보냈다. "저기 티아야..." "응 엄마?" "너 정말 저 인간한테...반한건 아니지?" "글쎄..." "그 글쎄라니!" "그게 저기 미안 엄마...나도 지금 내 마음을 잘 모르겠어. 그냥 제크 씨가 믿음직하다는 생각뿐...어라 엄마? 엄마!" 티아의 엄마 세이르아는 티아의 말을 끝까지 듣지 못하고 졸도해 버렸 다. 입으로는 끊임없이 안돼 허락못해 를 중얼거리면서..... 드래곤 남매 4화 인간누나와 만남(4) 쏟아지는 아침햇살이 눈에부시는 기분이다. 절로 얼굴이 찌푸려지면서 내 손은 이불을 잡아서 얼굴을 가리면서 돌 아누웠다. 아직 일어나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때 누군가가 살며시 날 흔들었다. "으응 엄마? 나 조금만 더...." "휴우 원만하면 일어나시죠. 해츨링 테이씨." 난 낯선 여자의 목소리가 들린 것 보다 그 여자의 입에서 내 정체를 알고 있는 말이 나오자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눈부신 햇살에 눈을 찌푸리면서 내 앞에 있는 여자를 바라보았 다. 기다란 생금발을 늘어트린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자였다. 아침햇살 을 정면으로 받아서인지 모르겠지만 정말로 눈이 부셨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게 아니었다. "어 어떻게 내 정체를 안거죠? 여긴 어디죠? 난 어떻게 여기에...당신 은 누구세요?" 내 쏟아지는 질문에 생금발의 여자는 풋하고 웃었다. 와아 웃는 얼굴 도 너무 이쁘다. 크게 웃고 싶은걸 참는 것인지 그 길다란 귀가 아래 로 내려가 있는게 너무 이쁘다. ....가만 길다란 귀? 엘프?! "에 엘프?" "네 맞아요. 위대한 드래곤의 아이시여." "아 맞다. 어떻게 내 정체를 아신거죠?" "그렇게 넘칠듯한 마나를 가지신분은 드래곤 뿐인걸로 알고 있는데요. " 난 그제서야 엄마가 나에게 억제마법을 걸어주셨던게 기억났다. 보통 이틀정도는 갈꺼라고 들었는데 어제 도독아저씨들을 혼내주느라 정령 을 불러서인지 억제마법이 빨리 풀려버린 것 같다. 아 그러고 보니 나 엄마랑 떨어져서 미아가 되버린거지? 그러다가 이 쁜 누나를 만나게 되어서 그 누나 품에서 울다 지쳐서 잠들었고...그 럼 여기는 그 누나 집인가? 내 머리속에서는 어제의 일이 파노라마처럼 차례차례 지나갔다. "맞아 나 미아가 된거지....힝." "앗! 자 잠깐만요. 일어나자 마자 울기부터 할 셈인가요? 어제 레이나 말로는 잔뜩 울고 지쳐 잠들었다던데 어디서 그렇게 눈물이 나오는 거 예요." "나도 물라요. 훌쩍..." "자자 당신이 해츨링이란건 잘 알고 있어요. 그리고 당신 어머니와 떨 어졌다는 것도 알겠고요. 하지만 울기전에 어떻게 된일인지 나에게 좀 더 자세히 말해줄 수 없을까요? 난 당신을 돕고 싶어요." 엘프의 말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엘프들은 진실을 볼 수 있 는 종족이라 들었다. 그러니 내 기운을 느끼고 내가 해츨링이라는 것 을 알았겠지. 어찌 되었던 지금 내가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오크한테 서라도 도움을 받고 싶으니 이 엘프의 호의를 어찌 무시할 수 있겠는 가? 난 얼굴을 쓱쓱 문지르고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니 어제부터 모르는 사람들과 여기 엘프에게 부끄러운 모습만 보였군. 누나가 안다면 또 울보 해츨링이라고 놀리겠다. 내가 진정되었다는 걸 안 엘프는 예의 그 눈부신 미소를 보여주면서 고개를 끄덕 거렸다. "이제 진정이 된 모양이죠? 당신 이름은 레이나에게 들어서 알고 있어 요. 테이루아씨죠? 제 이름은 이르니라 라고 합니다. 보시는 바와같이 숲의 종족인 엘프입니다." "저기..." "네?" "테이라고 그냥 불러주세요. 제 애칭이예요." "네 그럼 테이씨?" "저기 그냥 테이로도 되는데요." 엘프라는 종족도 우리보다는 못하지만 오래사는 종족이라 들었다. 그 리고 내 앞에 있는 엘프도 누나같은 느낌이 들어서 존대말을 듣는다는 게 아무래도 불편했다. "그럼 저도 그냥 이르라고 불러주세요. 제 애칭이거든요." "네." "자 그럼 테이 어쩌다가 이 곳 인간세계에 온게 된거죠? 드래곤들의 아이 해츨링들은 인간세상에 나오는게 금지되어 있을텐데요." "그건...." 난 블랙누나 해츨링의 가출사건부터 말해서 인간세상에 나오게 된 이 유를 설명해주게 되었다. 내침김에 엄마와 누나와 떨어져서 미아가 된 이유까지 설명해주었다.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은 이르는 알겠다는 듯 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드래곤들에게서 해츨링의 가출사건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는 소 리는 들은적이 있어요." "저기 어제 그 누나에게...." "어제 누나? 아아 레이나 말이군요. 걱정마세요. 레이나에게는 테이가 드래곤이라는 말을 안했어요. 그리고 말할생각도 없으니깐 걱정 놓으 세요." 원래 엘프는 눈치가 빠른건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어떻게 안거지? 멀뚱히 이르만 쳐다보고 있자 이르는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라는 눈빛으로 날 쳐다보았다. "저기....제 옷은 어디있죠?" 지금 나는 누가 갈아입혔는지는 모르겠지만 첨 보는 잠옷을 입고 있는 체였다. "아 테이의 옷은 세탁을 했었요. 곧 시녀에게 새 옷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할께요." "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옷을 갈아입거든 시녀를 따라오세요. 아침 먹어야죠." "네...." "자자 위대한 종족이라 불리면서 그렇게 풀이 죽어 있으면 어떻게 해 요. 걱정 푹 놓으세요. 레이나는 좋은 사람이예요. 엘프의 이름을 걸 고 맹세할 수 있어요. 레이나가 이미 사람을 시켜서 당시 가족을 찾아 보라고 했으니 조만간 만날 수 있을꺼예요." 이르의 말에 그제서야 난 환하게 미소를 지을 수가 있었다. "정말요?" "거짓말 하는 엘프 본적 있으세요?" "저기 전 엘프는 아예 처음 보는데요." 어라 이르가 약간 비틀거린 것 같았는데 착각이었나? "그러고 보니 처음 인간세상에 나왔다고 하셨죠?" "네." "그렇군요. 그러니 저 같은 엘프도 처음 보겠죠. 그럼 드래곤은 약속 의 종족이라고 불릴만큼 맹약을 중시한다는 것은 아시죠?" "네." "저희도 드래곤과 같이 맹약을 중요시 해요. 거짓말도 안하고요. 저희 가 괜히 진실의 종족이라 불리는게 아니예요. 그러니 이 집의 딸 레이 나도 믿어주세요. 정말 좋은 사람이거든요." "네. 저도 레이나 누나는 좋은 사람이라고 느꼈어요." "후후후 테이도 사람 보는 눈이 있으시군요." "에? 뭐 뭘요." 어느새 내 눈높이와 눈을 맞추고 내 열굴에 바짝 다가와 있는 이르 때 문에 쑥스러운 기분에 헤헤 거리고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이르가 가까이 있자 묘한향기가 나는 것 같으면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런 내 얼굴 지금 빨개져 있겠지? 우 부끄러워.... 그렇다고 눈을 피하자니 괜히 캥기는 기분이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고 이르의 눈을 마주보고 그대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저도 해츨링은 처음보는 거예요." "그 그러세요..." "네 당신의 본 모습은 본적이 없으니 뭐라 말할 수 없군요. 하지만... ..레이나 말대로 눈이 굉장히 귀엽네요. 순수해 보이고요." "아 예 고 고맙습니다." 으으 제발 얼굴 좀 치워주고 말하면 안되나? 이거 부끄러워서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잖아....아 열난다 열이 나.... 어쩔줄 모르는 내 모습이 귀여운지 이르의 입가에 살며시 미소가 어리 는 것 같다. 그런데 갑자기.. 쪽 쪽? 쪽? 쪽?! 쪽오옥이라고라고라!!! 난 갑작스런 소리와 내 이마에 느껴지는 부드럽고 촉촉한 느낌에 패닉상태에 빠질것만 같았다. 아니 빠졌다. "에에에! 저 저기 나 나는 그 저기..." 방금 그게 소위 말하는 뽀뽀? 뽀뽀 맞지? 왜 왜 이르가 나에게 뽀뽀 를.....혹시 나한테 반했다는....이르 혹시 연하가 취향? 이 이런 난 연애는 처음인데 어쩌지? "어머. 미안해요. 너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놀랐어요?" "아니 그 저기..." "후후후 레이나 말대로 정말 테이같은 귀여운 남동생 하나 있었으면 좋겠네요." 하아 그럼 그렇지 남동생 취급인가? 거참 엄마 얼굴에 맞춰서 그래도 남자답게 보일 생각으로 폴리모프 했는데 왜 레이나도 이르도 귀엽다 고 하는건지... "자 너무 시간을 지체하면 안되니깐 바로 옷을 보내드릴께요. 이따가 식당에서 봐요." "네." 이르는 아까 뽀뽀만으로는 모자란지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쓱쓱 쓰다듬 어주고는 나갔다. 쩝 내 모습 어디가 귀엽다는 거지? 난 방안을 둘러보고 큰 거울을 찾아서 그 앞에 서서 내 모습을 살펴보 았다. 엄마를 닮았지만 소년같이 보이게 약간 각진 얼굴. 짧은 은발에 앞머리는 길게 이마를 덮었고, 누나와 비교해서 약간 작은키. 그리고 얼굴과는 약간 언밸러스 하면서 묘하게 어울리는 크고 둥글둥글한 눈 ........결론은 뭐냐 이 귀여운 얼굴은!!!! 우씌 그러고 보니 제 삼자가 폴리모프한 내 모습에 대해 감상을 말해 준적이 없지. 지금까지 엄마는 그저 아들이 귀엽다는 말 뿐이었니 그 런가 보다 했고, 누나는 원래 그런말을 잘 안하니 내가 폴리모프한게 귀여운건지 멋있는건지 체크를 안해본 내 실수군. 다음에 인간세상에 나올때는 반드시 멋있는 얼굴로 폴리모프해야지. 똑똑똑 "아 네." 노크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옷을 가져온 이 집 시녀로 보이는 여자가 나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같이 고개를 끄덕 여 인사를 했는데 이 여자 나를 보더니 눈이 휘동그래진다. 왜 저러지? "왜 그러세요?" "아 아뇨. 실례했습니다. 옷을 가져왔습니다." 시녀가 탁자위에 옷을 놓을 동안 난 내 모습을 살펴보았다. 잠옷도 위 에까지 단추가 잘 잠겨 있어서 흐트러진 모습도 아니고, 아까 거울보 니깐 머리가 많이 흐트러 진것도 아니고, 뭐 묻은것도 아닌데 왜 놀라 지? 궁금한걸 못 참는것도 내 성격중 하나 "저기요 왜 아까 날 보고 놀라셨죠?" "아 저기...죄 죄송합니다. 레이나 아가씨의 손님이라고 해서 누구신 지 했는데..." "했는데 뭐죠?" "그게...저기 죄송합니다. 도련님께서 너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저 안아주고 싶다는 기분이 들어서...아 기분상하셨다면 정말 죄송합 니다." ........다음에는 반드시 멋있는 남자로 폴리모프하겠다고 다시금 다 짐하게 만들어 주는 작은 헤프닝을 시작으로 하루가 시작되는 느낌이 었다. 드래곤 남매 4화 인간누나와 만남(5) "너 정말 꼭두새벽부터 열심히다." "당연하지!" 테이가 없어진지 하루가 지난 새벽 두명의 용병이 말 그대로 꼭두새벽 부터 일어나 거리를 헤메다니고 있었다. 의욕에 넘처서 눈을 번쩍이는 쪽은 제이크였고, 하품을 연발하면서 심 드렁한 얼굴로 뒤를 따르는 이는 라이크였다. 라이크는 새벽부터 일어나서 자신을 거의 반 두들겨 깨우다 시피 한 제이크에게 불만이 많았는지 1분간격으로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나 제이크는 그 말들을 철저히 씹고 그저 주위를 둘러보면서 거리 를 걷고 있었다. "참내 이렇게 무작정 걷는다고 찾을 수 있겠냐?" "물론 찾을 수 없지?" 한마디 씹어 줄 셈으로 말을 꺼낸건데 제이크의 대답은 너무나 당연하 다는 듯이 말했기에 라이크는 약간 황당한 어조로 다시 물었다. "그걸 아는 놈이 이 헛짓거리 중인거냐?" "헛짓거리가 아니야 일단 도적길드에 먼저 둘러보고 다음은 서쪽 시가 지 경비대에 둘러볼 생각이야." "그걸로 끝?" "그 다음에는 서쪽 시가지의 여관들을 알아봐야지. 용돈을 충분히 가 지고 있다고 했고, 주머니에 마법까지 걸려있어서 소매치기 걱정은 없 다고 했으니 어디 여관에서 자고 있을 확률도 높으니깐." "어이구 정말로 지극정성이구나." "어쩌면 처남이 될지도 모를 도련님이잖아." "처 처남암?! 너 방금 처남이라고 했냐? 테이도련님이 말이야?" 황당하다 못해 경악의 표정으로 입을 헤 벌린 라이크를 보면서 제이크 는 씩 웃으면서 또박또박 다시 한번 말해 주었다. "응 분명 처남이 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아니 틀림없이 될꺼야." "꿈도 크다. 마님이 자신의 가문을 밝히진 않았지만 꽤 있어보이는 집 안인데 너가 그 집안에 사위로 들어가겠다고? 한낱 용병인 너가? 그리 고 너랑 나는 고아원 출신이라는 핸디캡도 있는데?" "아아 하지만 어제 넌 티아 아가씨의 모습을 못 봐서 그래. 자신의 분 신과 같은 쌍둥이 동생을 찾아달라고 눈물로 호소하던 그 모습 그리고 나를 믿어달라고 했을때 내 모든걸 믿어주겠다는 그 눈빛. 이번 일만 잘 풀린다면 귀족가 아가씨와의 결혼도 꿈이 아니게 될껄." 경악의 표정을 어느정도 가라앉힌 라이크는 이번에는 한숨을 푹 쉬면 서 말했다. "너 정말 어디 아픈거 아니냐? 티아 아가씨 성격을 봐서는 꽤나 기가 쎈 아가씨 같던데 겨우 그 미아가 된 동생 찾아준 일 갖고 꿈을 너무 크게 꾸는거 아니냐?" "나도 어제까지는 그렇게 생각했지. 하지만 너 벌써 잊은거냐? 나의 화려한 여성경력을?" "잊을리가 있냐? 오히려 매일밤 그 뒷처리하던 기억이 악뭉이 되서 날 괴롭히지나 않으면 다행인데." 제이크는 친구의 푸념에 손가락을 하나 들어서 좌우로 흔들며 말했다. "내 경험에 비추어 보자면 티아 아가씨는 분명 기가 쎈 여자가 맞아. 하지만 그런만큼 정이 많기도 해. 그런 타입일수록 속마음은 부드러운 경우가 많거든. 그렇게 괴롭혀 되던 테이 도련님이 사라지자 단박에 성격이 확 바뀌어 버리는 걸 보면 알 수 있지." "그래서?" "그래서가 아니라 그리고다 그리고 티아 아가씨는 순진하다는거지." "순진? 순진은 무슨 세상물정 잘아는 아가씨인 것 같던데. 테이 도련 님은 이해되도 그 아가씨는 제법 밖을 많이 돌아다닌 것 같은 느낌까 지 들던데." "으이구 그렇게 겉만 보고 판단해버리니 너에게 여자가 없지." "왜 거기서 내 이야기가 나와야 되는거냐? 아무튼 그래서 그 뭐냐? 티 아 아가씨가 기가 센 만큼 속마음도 비례해서 부드럽고, 순진하다고 치자. 그게 너가 귀족가 사위가 되는 일에 무슨 도움이 된다는거냐?" "그런 타입은 대부분 세상을 직접 나와서 겪었다기 보다는 책을 통해 서 지식을 쌓은 타입이야. 아마도 티아 아가씨와 테이 도련님도 집에 서 엄하게 감시할 동안 책으로 세상물정을 익혔겠지. 그렇게 간접적으 로 세상물정 익힌 여자중 기가 쎈 타입은 의외로 로맨스를 꿈꾸는 여 자들이 많아. 자존심 강한척 해도 책에 나오는 백마탄 기사 앞에서는 허물어져 버리지." "그러니깐 너가 바로 로맨스 소설의 백마탄 왕자다 이거냐?" "기가 쎈 여자들은 어느정도 약해져 있을때 도움을 주면 반드시 걸려 들게 되어 있어. 더구나 연애한번 못해본 여자라면 성공률은 99%를 자 랑하지. 내가 이 상황만 잘 이용해서 백마탄 왕자가 되면 그녀는 곧바 로 나에게 넘어오게 되어 있어." "아주 확신을 하는구나." "그래 이번 일은 신이 내게 주신 기회야! 이 기회를 놓치면 난 평생 티아 아가씨같은 여자를 안을 기회가 없단 말이다!" 이제 라이크는 제이크가 발악을 하던 말던 속시원하게 미친놈 취급하 자고 마음을 먹었다. 제이크의 여자 사귀는 솜씨야 잘 알고 있는 라이 크였다. 그리고 제이크가 꼬신 여자중에서 귀족아가씨 숫자도 꽤 되는 편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결혼 어쩌고까지 자신한적은 없었다. 설사 그녀가 제이크에게 넘어온다 손 치더라도 그녀의 가족들이 과연 제이크를 그녀의 남편으로 인정해줄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과거 제이크가 꼬셨던 그 많은 귀족아가씨 중에서도 제이크와 결혼을 하고 싶어하던 여자들도 있있지만 일단 제이크가 결혼을 할 생각이 없 었고, 그 아가씨들의 가족도 용병에게 귀한 딸을 시집보낼 생각이 없 는게 당연했다. 결국 라이크는 제이크가 귀족아가씨를 건드리게 되는 날이면 그 즉시 타영지나 다른 나라로 도망쳐야만 되었다. 안 그러면 자신의 딸을 더 럽힌데(?) 분노한 귀족 아가씨들의 아버지에게 죽을 테니깐.... 라이크는 이번에도 결혼 어쩌고는 하지만 결국 그 티아 아가씨는 제이 크에게 몸 뺏겨서 울고 그 가족들의 화를 면하기 위해 도망쳐야 될 것 같은 예감이 팍팍 들었다. 그런데 하나 신기한 것은 그렇게 많은 여자들을 울리던 제이크는 끝끝 내 결혼을 생각해 본적은 결코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 제이크가 결혼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어찌보면 큰 변화였다. '만약...정말로 만약 기적이 일어나서 제이크가 귀족가 사위로 들어간 다면....정말에 정말로 만약이지만 그렇게 되면 나와 제이크의 악연도 끝이 나는건가?' 그렇게 생각이 든 라이크는 갑자기 후광이 비치는 기분이었다.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이 지긋지긋한 같은 고아원출신이라는 이유로 시작된 저 놈과의 악연이 끝난다는 소리였다. 그래서 확인차원에서 라이크는 넌지시 물어보기로 하였다. 만약 제이크의 결혼 어쩌고 하는 말이 진심이라면 뒷일이야 어떻게 되 든간에 자신도 적극적으로 밀어보겠다고 마음 먹고 말이다. "여어 근데 그 티아 아가씨가 대단하긴 한가보다." "응? 아아 대단한 아가씨지." "그러게 말이야 세상에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플레이 보이인 널 결혼하 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만들다니." "아아 정말이지 놓치면 땅을 치고 후회하게 만들 멋진 아가씨지. 아직 어린게 마음에 걸리지만 뭐 1년만 지나면 16세니깐...." "그래 결혼해도 될 나이지." "그래 나중에 누가 데려갈지 정말 부러워." '어라? 내가 잘 못 들었나?' "이 이봐 제크. 너 아까전에는 귀족가 사위도 꿈이 아니라고 했잖아 역시 신분의 차가 마음에 걸리는거냐?" "응? 무슨 소리냐? 신분의 차가 무슨상관이야. 난 단지 꿈이 아니라고 만 했지 그 꿈을 현실로 만들 생각은 없어." "..........." "아직 남자랑 손 잡은 적도 없을 여자니깐 내가 잘 가르치고(?) 후에 결혼하게 될 남자가 뿅 가게 만들정도로 매력이 철철 넘치는 여자로 만들어야지. 아마 티아 아가씨 남편될 남자는 복이 철철 넘쳐 흐르는 사람일꺼야. 나의 10년간의 경험을 전부 다 전수해줄 생각이니깐." "................" "역시 아무것도 모르는 숫처녀에게 이것 저것 가르친다는 것은 정말 기분 좋은 일이야. 새하얀 캠버스에 나만의 색을 칠한다는 느낌일까?" '뭐 뭐 뭐 뭐 이런게 다 있어!' 라이크는 속으로는 온갖 욕지기가 나왔지만 역시 이런 모습이 제이크 답다고 이해를 해버리는 자신이 미울 지경이었다. "어 다 왔다. 이 술집 맞지? 어제 너가 의뢰한 도적길도가?" 마음같아서는 허리에 찬 롱소드를 뽑아서 고기덩어리로 만들어주고 싶 지만 라이크가 플레이 보이인 제이크와 같이 다니는 이유는 제이크의 실력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다. 검을 뽑아서 덤벼봤자 질게 뻔하다는 사실을.... 그저 이런놈이랑 10년간이나 파트너를 하였고, 앞으로도 하게 되는 자 신의 운명이나 저주할 수 밖에.... 아침식사를 하면서 나는 나를 데려온 레이나 누나의 가족과 인사를 나 누었다. 아빠라는 분은 일이 바빠서 요 며칠 왕궁에서 돌아오지 못하 고 있다고 하셨고, 엄마라는 분은 곱게 늙었다는 말이 실감이 나게 만 드는 인자한 할머니정도로 보일정도로 좀 나이가 있어 보이셨다. 나중에 슬쩍 이르한테 들은 말로는 레이나 누나가 늦동이란다. 그래서 외동딸이자 늦동이라 온 집안의 귀여움을 독차지 하고 컷다나? 보통 그렇게 되면 버릇없는 아이로 크기 마련인데 교육을 참으로 잘 시키는 집안같다. 그리고 이 집의 가족이나 마찬가지라는 엘프 이르누나와 가족은 아닌 것 같은데 레이나 누나옆에 있는 엔드르라는 남자는 가족같은 분위기 로 앉아서 같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어디선 본 남자 같다고 생각했는데 소개를 받고 나서야 생각이 났었 다. 어제 레이나 누나의 마차안에 있던 남자였다. 그래 그때는 경향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누나가 저 남자를 엔드르라고 불렀던 것 같았 다. 아무튼 지금 자리에 없는 누나의 아빠까지 포함해도 3사람+1엘프+1식 객이 현재 이 집안 식구들이라는 건데 무척이나 조촐하군. 귀족가에는 아들딸들이 서너명씩 있다는 소설을 많이 봤었는데 역시 소설은 소설 현실과 조금 틀린 것 같다. "테이라고 했죠? 레이나가 항상 입버릇처럼 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노래를 불러되었는데 정말 잘 왔어요. 자기집처럼 생각하고 편히 있으 세요." "아 예 감사합니다." "그런데 테이는 몇살이지?" 내 나이를 물은건 엔드르라는 남자였다. "15살입니다." "15살...그렇게 보이지는 않았는데...." 라면서 놀란 표정을 짓더니 자기 옆에 앉은 레이나 누나를 얼빠진 모 습으로 쳐다보았다. 레이나 누나는 그 시선을 재미있다는 듯이 마주보 면서 작게 귓속말로 '내가 근사치로 맞쳤죠.'라는 말을 하였다. 이 사람들이 어제 내가 자고 있을때 내 나이 갖고 내기라도 한건가? 이르 누나는 내 부탁대로 내 정체에 대해서 아무말 하지 않았다. 그래도 이르 누나말고도 내 정체를 알아차릴 인간이 있을지도 모른다 는 불안감에 필사적으로 내 기운을 지울려고 해봤지만 역시 성룡인 엄 마가 해주는 것 만치 완벽하게 숨기지는 못하였다. 그걸 알아차린 이르 누나는 슬며시 웃으며 나에게 귓속말을 하였다. "걱정말아요. 이 집에는 나 말고 테이의 정체를 알아챌 이는 없어요." 그러자 레이나 누나가 우리 둘을 보고는 한 마디 하였다. "아앗! 이르 테이랑 무슨 비밀이야기야?" "아뇨 그냥 테이가 너무 뻣뻣해 하는 것 같아서 긴장 풀라고 말해주었 어요." "그래 그러고 보니 테이 너 너무 긴장해 있는 것 같다. 우리 엄마 말 처럼 내 집이려니 생각하고 편안하게 생각해 알았지?" "예? 예 감사합니다. 레이나님." 내 말을 듣고는 갑자기 레이나 누나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어라 내가 뭐 실수 한거 있나? "우 테이 너무하다." "에? 뭐 뭐가요?" "이르한테는 님자 안붙이면서 왜 나한테는 님자 붙이는거야? 어제는 내 무릎까지 베고 귀엽게 자놓고는 그렇게 첨 만난 사람같이 굴어야 겠니?" "그 그럼 어떻게...부르죠?" "누나라고 불러주라. 응? 응? 응?" 라고 하는 레이나 누나의 눈빛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어 차마 거절하기 가 어려웠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부르려니 조금 챙피한데.... 하지만 안 불러주면 밥은 안먹고 계속 부챌 것 같아서 불러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레이나...누나..." 으으 정말 쪽팔린다. 그런데 더 쪽팔리는 사태는 이 다음에 일어났다. "꺄아! 너무 귀여워!" 환성을 지른 레이나 누나는 벌떡 일어나더니 나에게 와서 내 머리를 꼭 껴안는 것이다. 으윽 누 누나 가 가슴이 얼굴에..... "너무 귀엽다. 이런 남동생이 있는 너 누나가 갑자기 무지 부러워진 다." 우리 누나가 들었다면 '그렇게 부러우면 당신이 가져가요.'라고 말할 게 뻔할 뻔잔데.... 그것보다 이거 언제 놔줄 생각이지? 악 놔주기는 커녕 더 쎄게 껴안으면 어쩌자구! 우우 숨이 막힌다. 아니 그것보다 얼굴에 부드러운 감촉에 현기증이 날 것 같다. "저기 레이나 지금은 식사중인데요." 조금만 더 그런 상태로 있었다면 숨이 막혀 죽거나 피가 역류해서 코 피를 뿜어대고 빈혈로 쓰러질 것 같은 사태에서 날 구원해준건 엔드르 였다. 레이나 누나는 그제서야 아 맞다라고 하고는 아쉬운듯이 내 머리를 놔 주었다. 그런데 나 역시 살았다는 안도감보다는 아쉬운 기분이 조금 더 드는 이유는 뭐지? 역시 나도 남자긴 남자인가 보군... "저기 테이야 있다가 식사가 끝나면 우리 뒤뜰 정원에서 차를 마시면 서 이야기를 나누자."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 레이나 누나는 나에게 이런 제의를 해왔다. 물론 절대로 거절못하게 만드는 반짝반짝 빛나는 눈을 하고서는... '그런 눈을 하면서 부탁하면 거절할 남자가 있을리가 없잖아요.' 라는 말을 목구멍으로 삼키고 난 고개를 끄덕였다. "야호! 있다가 내가 손수 쿠키를 구워줄께. 나 쿠키 잘 굽거든. 기대 해도 좋아. 엔드르도 오늘 바쁜일 없죠?" "당신이 그렇게 나온다면 있더라도 취소해야죠." 그렇게 말한 엔드르는 빙그레 웃으면서 아이처럼 좋아하는 레이나 누 나를 지긋이 쳐다보았다. '아하 그렇구나 저 엔드르라는 남자 레이나 누나를 좋아하는 구나. 음 누나의 엄마도 아무소리 안하고 둘을 바라보는 눈빛이 부드러운게 둘 이 공인된 커플사이인가? 아니면 약혼자?' 있다가 티타임때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난 일단 배부터 채우 기로 하였다. 식사중에도 레이나 누나는 이것 저것 챙겨주면서 내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즐겁게 바라보고 있었다. 나중에 안거지만 오늘 아침은 요리사를 시키지 않고 레이나 누나가 직 접 만든거라고 하였다. 난 가면 갈수록 누군가와레이나 누나를 비교하고 있는 나를 볼 수 있 었다. 그러나 누나가 나중에 이 사실을 알고 뭐라고 하던 나는 정당방위다. 그동안 누나가 나에게 한 일들을 생각하면 어제 처음 본 나에게 헌신 적으로 애정을 쏟아부어주는 레이나 누나와 어찌 비교 안할수가 있겠 는가? 티아 누나가 레이나 누나의 반만 닮았어도 내 지난 인생 300년이 그렇 게 암울하지만은 않았을텐데.... 창조신이시여 부탁드립니다. 이제는 더 이상 불평같은거 안할테니 내 조그마한 소원 하나만 들어주세요. 제발 우리 티아누나가 레이나누나 의 반만 닮게 만들어주세요. 아니 반의 반이라도 좋습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창조신이시여!! 계속 드래곤 남매 4화 인간누나와 만남(6) 가을을 느끼게 해주는 시원한 바람 따사로운 햇볕 아름다운 정원에 새 하얀 테이블과 의자 그리고 향긋한 차와 맛있는 쿠키 옆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웃는 인간누나와 엘프누나 이게 현재 내 상황이다. 레이나 누나는 정말 동생이 갖고 싶었는지 나한테 정말로 잘 대해준 다. 이르 누나 역시 내가 해츨링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마치 인간 아이를 대하는 듯이 날 대해주었다. 난 시도때도 없이 두 여자의 머리 쓰다듬기나 간간히 볼비비기 운(?) 이 좋으면 두 누나의 풍만한 가슴에 얼굴을 파 묻혀야 되었다. 으으 그럴때마다 피가 머리위로 솟구치는 느낌이 드는 건 왜 일까? 아무튼 그 동안 내 친누나에게 당했던 행적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 도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어쩌면 두 누나가 나에게 해주는게 진정한 누나로서 해야 될일이 아닐 까라고 진지하게 생각하다 나도 모르게 그 말을 내뱉었다. "레이나 누나같은 사람이 친누나였으면 좋겠는데." "어머 정말? 나도 테이같은 귀여운 남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 중 이었는데. 우리 둘 마음이 너무 잘 맞는가 보구나." 그러면서 다시금 내 머리를 콱 껴안아 버린다. 아아 또 피가 솟구치는 기분이....... "테이의 친 누나는 어떤 분이죠?" 이르누나는 날 허물없이 대해주는 것 같으면서도 나에게 항상 존대를 사용했다. 처음에는 내가 드래곤의 자식이라서 예의를 차리는건가? 그 러다가 내 정체가 들통나면 어쩌려고 라고 걱정을 했었는데 다른 사람 들이 신경 쓰지 않는 걸 봐서 아무한테나 존대를 쓰는게 이르누나의 버릇인 것 같다. 근데 친누나 티아누나가 어떤 분이라니? 생각하기도 끔직한걸 아무렇지도 않게 물어보시는군. 하긴 모르니깐 물어보는 거겠지. "최악의 누나죠." 두 누나가 흠칫하는 걸 봐서 아무레도 내가 말할때 살기라도 담아서 내뱉었나보다. 아니 혹시 무의식중에 드래곤 피어스를 담아버린건 아 니겠지? 두 누나의 안색이 괜찮은걸보면 그 정도까지는 아닌것 같다. 한참을 날 쳐다보던 누나중에서 정신력이 강한 이르누나가 먼저 입을 열었다. "누나분이....최악이라고요?" "네 최악이요." "왜 왜?" 난 레이나누나의 질문을 기다렸다는듯이 그 동안 가슴속에 품어왔던 한을 내뱉었다. "걸핏하면 말 안듣는다고 차죠. 아침에 일어나면 노인네도 아니면서 잠을 잘 못잤다고, 항상 어깨를 주무르라고 시키고, 힘은 또 어찌나 쎈지 반항한번 못해보고 얻어맞는게 일과에다가 입은 또 얼마나 험악 한지 나를 부를때 좋은말로 불러본적이 없어요. 항상 날 울보라는든지 겁장이라든지 느림보라고 놀려되는게 누나의 입버릇이라고요." "서 설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친누나인데 그렇게까지 할라고..." "레이나누나는 안당해봐서 몰라요. 얼마나 성격 포악하고 참을성 없고 난폭하다고요. 내가 이렇게 자기 험담하고 있으면 뭐라고 하는 줄 아 세요?" "죽고싶냐? 테이야!" "네 맞아요. 그렇게 말하고는 날 죽도록 패....어라? 방금 이르누나가 말했어요?" 이르누나는 얼굴이 새하얗게 되어서 고개를 저었다. 레이나누나를 바 라보자 레이나누나 역시 고개를 가로저으며 손으로 내 뒤를 가르켰다. 그리고 내 뒤에서는....내 뒤에서는.... 젠장 생각하기도 싫은 아주 익숙한 살기가 느껴졌다. 난 잘 돌아가지 않는 고개를 간신히 돌려서 어느새 와 있는 아주 익숙 한 얼굴들을 볼 수 있었다. 쓴 웃음을 지으면서 날 불쌍하다는 듯이 바라보는 제크아저씨랑 라이 크아저씨 내가 무사해서 안도하는 미소를 짓고 있는 엄마...그리고... 그리고.... "하하하 누나.....왔어?" "그래 왔다." "누나 미안 내 걱정 많이 했어?" "걱정은 무슨...잘 지냈나보구나?" "하하하 덕분에...." "내가 뭘 했다고 내 덕분이라는 걸까?" "저기 방금말....들었어?" "응 이 두 귀로 똑.똑.히." "변명....안듣겠지?" "당연하지." 잠시 스산한 바람이 지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테이가 레이나의 집에서 아침식사를 하던중의 일이었다. 어젯밤 제이크가 믿고 일을 맡겨달라고 했지만 그래도 역시 걱정이 되 어서 입맛이 없는 티아와 사랑하는 아들이 행방불명 된것에 사랑하는 딸까지 놈팽이-세이르아 시선으로-에게 반해버렸다는 이중충격을 받아 서 입맛이 없는 세이르아가 여관식당에 앉아서 스프만 휘접고 있을때 였다. "찾았습니다!" 갑자기 문이 거칠게 열리면서 제이크와 라이크가 뛰어들어왔다. 덕분 에 식당에서 아침식사중이던 다른 사람들의 눈총을 받아야 되었지만 제이크는 그런 눈길을 전부 다 무시하고 바로 놀란 눈으로 자신을 쳐 다보고 있는 티아와 세이르아 앞으로 걸어가서 다시한번 강조하듯이 말했다. "찾았습니다. 도련님을 찾았다고요!" 잠시 눈을 껌벅거리던 두 여자는 곧 눈에 생기를 되찾고는 환호성을 지르면서 서로 껴안았다. 세이르아는 입으로 끊임없이 창조신님 감사 합니다를 연발하였고 티아는 어느새 눈물까지 흘려가면서 기뻐하고 있 었다. 제이크는 싱글싱글 웃으면서 그 둘이 진정되기를 기다려주었다. 제일 먼저 진정하고 사태를 몰어봐온건 세이르아였다. "테이는 우리 테이는 어디 있죠?" "그게....높으신분께서 맡아주시고 계시더군요." "높으신분이요?" "예 레드포머 공작가에 계신답니다." 제이크의 말이 끝나자 마자 주위가 갑자기 시끌거리기 시작했다. 레드 포머 공작이라면 이 나라의 재상을 맡고 있고 현 국왕에게 자식이 없 기 때문에 차기국왕의 서열권중 영순위라해도 과언이 아닌 대귀족가였 던 것이다. 그런 귀족가에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어찌되었든 만나 러가게 될 세이르아 일행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인간의 권력같은거에 하등 관심이 있을리가 없는 티아였 다. 그저 빨리 그 공작가인지 뭔지에 가서 테이가 무사한지 확인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있었다. 세이르아는 그래도 몇번 유희를 즐겨보았기 때문에 어느정도 주위반응 을 보고는 제이크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어떻게 테이가 그 곳에 가있는거죠?" "그게 자세한 이야기는 저도 아직 못 들었습니다. 공작가에서 오신분 이 계십니다. 그 분이랑 같이 가면서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죠." 제이크는 그렇게 말하면서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제이크의 뒤에는 라 이크와 처음보는 남자가 서 있었다. 금발의 귀공자라는 호칭이 딱 어울릴 것 같은 미남이었다. 세이르아는 공작가의 사람으로 보이는 금발의 미남자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세이르아 오스타인이라고 합니다. 저의 아들을 보호해주셔서 정말 감 사합니다." "엔드르 그리프스입니다. 저는 별로 한게 없습니다. 처음 댁의 자제분 을 발견한 것은 레드포머 공작님의 공녀이십니다." 금발의 미남자 엔드르는 세이르아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저기 그것보다 테이는 어디있죠? 네." 지금 당장 테이를 보고 무사함을 확인하고 싶어서 몸이 달아오른 티아 가 둘 사이에 끼어들자 세이르아가 손으로 제지하면서 말렸다. "티아야 버릇없이 굴면 안된다." "하지만 엄마..." "아니 괜찮습니다. 나도 내 사랑하는 이가 그런일을 당한다면 허울좋 은 예의 같은거 다 집어던지고 상대방 멱살부터 잡고 안부를 물을지도 모르니깐요." 엔드르는 티아의 호감을 살만한 말만 골라서 하고 있었다. 엔드르의 말에 티아는 자신이 너무 성급했다는 걸 인정하고 엄마에게 받았던 특 훈대로 살며시 드래스 자락을 잡고 무릎을 굽히면서 순순히 사과했다. 테이가 없어지고 난뒤 참으로 많이 변한 티아였다. "아까의 무례를 용서해주십시요. 전 티아루아 오스타인이라고 합니다. 저의 동생을 보호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하하하 괜찮다고 했잖습니까. 그리고 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테이님 을 발견하신건 레드포머 공녀이십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가면서 하도 록 하죠. 레이디 얼굴에 빨리 동생분을 보고 싶다는 글이 가득 써 있 으시군요." 장난끼가 넘치는 말에 티아는 살며시 얼굴에 홍조까지 띄우면서 엔드 르에게 화사한 미소로 답해주었다. 덕분에 뒤에서 보고있던 제이크는 불안에 몸을 떨어야 되었다. "예상치 못한 라이벌 출현이구나 제크." 굳이 라이크가 귓속말로 해주지 않아도 충분히 실감하고 있는 제이크 였기에 라이크를 한번 째려봐주고 조용히 이를 갈았다. "훗 장애물이 많을수록 더 재미있는 법이지. 절대 포기못해 티아 아가 씨는 내가 먼저 찍었으니깐." "어련하실라고..." 제이크와 라이크가 도적길드에서 새로얻은 정보라고는 근처 똘마니가 테이라고 생각되는 아이에게 마법으로 무진장 얻어터지고 돌아왔다는 정보 뿐이었다. 그들이 말하는 인상착의는 테이와 비슷했지만 테이가 마법을 쓴다는 것을 모르는 둘은 그냥 테이와 닮은 마법사라고만 생각 하고 신경쓰지를 않았다. 그런 그들이 서쪽지구의 경비대에 둘렀을때 마침 미아신고를 하러온 엔드르와 만난것은 그나큰 행운이었다. 엔드르가 손수 자신이 타고 온 마차로 안내해 주겠다고 해서 여기까지 데려왔지만 일이-티아가 엔드르에게 반한 것 같은 상황- 이렇게까지 될줄은 몰랐다. 아니 어느정도 예상은 했지만 어쩔수가 없었다. 정중히 거절하고 자신들이 직접찾아가겠다고 말하기에는 엔드르라는 남자뒤에 있는 빽이 너무 컷다. 나중에 한나라의 국왕이 될지도 모를 집안이라니...말은 먼저 찍었네 어쩌네 하면서도 불안한 마음이 드는것은 어쩔수가 없을 것이다. 더구나 엔드르가 가져온 마차에 타고 테이가 있는 곳으로 가는 동안에 도 티아는 엔드르의 화려한 말솜씨에 연신 미소를 지으면서 생글거리 면서 가득이나 불안에 떨고 있는 제이크의 가슴에 못을 박아대었다. 결국은 '그래 한여름의 꿈을 꾸었다고 생각하자-지금은 가을이지만-' 라고 포기단계에까지 이르렀을때였다. "고마워요 제크씨." "에? 네?" "제크씨 새벽부터 일어나서 테이를 찾으러 나가주셨죠?" "아 그걸 어떻게...." "실은 걱정이 되서 뜬눈으로 밤을 세우다시피 해서요. 새벽에 두분이 나가는걸 창문으로 봤거든요." "아 그러셨군요. 아 뭐 제가 해야 될일이니깐요." "으으응 다른 용병들은 그렇게까지 열심히 찾아주지 않았잖아요. 정말 고마워요 제크씨. 어제 약속대로 테이를 저의 미소를 찾아주신것 꼭 답례를 해드릴께요." 그렇게 말하면서 미소짓고 있는 티아의 모습은 그야말로 천.사.였다. 그리고 그 미소는 제이크에게 다시한번 더 야망(?)을 불태우게 만들어 주는 계기가 되었다. 바로 옆에 앉아 있던 라이크는 그걸 눈치채고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냥 포기하게 내버려두지 저 아가씨도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파는군.' 그리고는 바로 앞에 앉은 걱정스런표정으로 딸과 제이크를 바라보는 세이르아를 보면서 어쩌면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복잡한 감정들이 엉켜있는 마차는 그렇게 레드포머 공작의 집으로 힘 차게 달려나갔다. 레드포머 공작의 집은 귀족가 저택에 비하면 크고 레드포머 공작의 지 위를 생각하면 작은편의 적당한 크기의 저택이었다. 정원도 깔끔하게 손질되어 있었고 집모양도 아담한 사람에게 편안한 느낌을 주게 만드 는 좋은 집이었다. 문앞에서 그들을 맞은건 공작부인이었고, 공작부인의 안내로 뒷뜰로 향한 일행은 그렇게나 찾던 테이를 정확히는 테이의 뒷모습을 볼 수 있엀다. 티아는 다시한번 기쁨의 눈물을 흘리면서 테이를 막 부르려고 하였고 쌍둥이 남매의 감동적인 해후를 볼 준비를 갖춘 일행이 미소를 지을때 였다. "걸핏하면 말 안듣는다고 차죠. 아침에 일어나면 노인네도 아니면서 잠을 잘 못잤다고, 항상 어깨를 주무르라고 시키고, 힘은 또 어찌나 쎈지 반항한번 못해보고 얻어맞는게 일과에다가 입은 또 얼마나 험악 한지 나를 부를때 좋은말로 불러본적이 없어요. 항상 날 울보라는든지 겁장이라든지 느림보라고 놀려되는게 누나의 입버릇이라고요." 갑작스런 테이의 누나 험담에 뒤에 와 있던 일행들은 기겁을 할수밖에 없었다. 티아는 테이말을 끝까지 다 듣고는 조용히 손수건을 꺼내서 얼른 눈물을 훔쳤다. 테이의 정면에 있던 레이나는 그들을 보고는 얼 른 변명을 해줄려고 하였다. "서 설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친누나인데 그렇게까지 할라고..." 그러나 테이는 레이나의 그런 마음을 무시하고 계속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였다. "레이나누나는 안당해봐서 몰라요. 얼마나 성격 포악하고 참을성 없고 난폭하다고요. 내가 이렇게 자기 험담하고 있으면 뭐라고 하는 줄 아 세요?" "죽고싶냐? 테이야!" "네 맞아요. 그렇게 말하고는 날 죽도록 패....어라? 방금 이르누나가 말했어요?" 자신들이 아니라고 말하는 두 여자와 겁에 질려서 뒤를 돌아보는 테이 그리고 온몸에 살기를 내 뿜으면서 몸을 떨고 있는 티아 웬지 모르게 화산이 터지기 일보직전의 상황을 연상시켰다. "하하하 누나.....왔어?" "그래 왔다." "누나 미안 내 걱정 많이 했어?" "걱정은 무슨...잘 지냈나보구나?" "하하하 덕분에...." "내가 뭘 했다고 내 덕분이라는 걸까?" "저기 방금말....들었어?" "응 이 두 귀로 똑.똑.히." "변명....안듣겠지?" "당연하지." 테이의 얼굴이 점차 일그러지더니 곧 비명을 지르면서 자리를 박차고 도망치기 시작했고, 티아의 노호성과 같이 주위의 공기가 급속히 얼어 붙으면서 티아의 주위에 십여개의 얼음송곳이 나타났다. "마 마법?" "마법사?" 누군가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티아는 신경쓰지 않고 도망치는 테이를 쳐다보면서 소리를 질렀다. "아이스 미사일!!" "으아아아악 시 실드!!" 날아오는 미사일을 실드로 막아내는 테이를 보면서 사람들은 다시한번 놀라고 말았다. "저 저기..." 침착한 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사람들의 눈이 일제히 그 사람에 게로 향했다. 그 사람-실은 드래곤-은 세이르아였다. 세이르아는 공작부인과 레이나에게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부서지는 정원은 책임지고 원상복구 시키겠습니다. " "부서지는 정원이라뇨?" 레이나의 의문의 해답은 바로 풀렸다. "이오나드!!" 콰콰쾅 "저건 상급공격마법!!" 엔드르의 놀란목소리에 레이나는 폭팔하는 정원을 멍하니 쳐다볼수 밖 에 없었다. "우와와왕 누나 잘못했어!!!" "문답무용 너 오늘 죽었다고 복창이나 해! 라이트닝 볼트!!" "우아아아아악!!" 테이의 비명소리에 급히 정신을 차린 레이나는 세이르아를 다그쳤다. "지금 정원 부서지는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저거 안말리면 테이가 죽 을지도 모르잖아요. 안말리세요? 아니 그것보다 어떻게 마법을..." "그건 제가 가르쳤습니다. 저는 상급마법에 정령마법까지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의 자식들도 마법적인 재능이 타고나서 호신 용으로 가르쳤지만...딸의 실력은 저도 놀랄 정도로 뛰어나더군요." "확실히 뛰어나군요." 다시한번 폭팔이 일어나는 정원을 보면서 엔드르가 허망하다는듯이 말 을 하였다. 레이나는 더욱더 급해졌다. "그것보다 빨리 안말리면 테이가...테이말에 누나분이 화가 난것은 인 정하지만 저러다가 동생을 죽이기라도 하면 어떻해요." "걱정마세요. 티아는 항상 저런식이지만 테이를 죽을때까지만 팰뿐이 거든요. 제 치료마법을 믿기 때문이겠죠." 듣기에 따라서는 아주 무시무시한 말을 일상생활 하듯이 자연스럽게 말하는 세이르아에게 사람들은 다시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 저게 일상생활이라는 것입니까?" 엔드르의 믿을 수 없다는 질문에 세이르아는 고개를 끄덕여줄수밖에 없었다. "테이가 없어지고 난뒤 하루동안은 티아가 놀라만치 순해져서 다행이 다라고 생각했었는데....이번일은 전적으로 테이가 자기무덤을 파는말 을 했으니 저도 말릴수가 없어요." 다시한번 큰 폭발음과 연기가 정원에서 솟구쳐올랐다. 눈을 있는대로 크게 뜨고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제이크가 조용히 한숨을 쉬면서 라이크에게 귓속말로 말했다. "어이 라이크...플레이 보이로서 자존심이 상하지만 티아 아가씨는 포 기할란다." "잘 생각했다....자존심보다 목숨이 더 중요한거니깐." 또 다시 폭팔음과 테이의 비명소리가 레드포머 공작가를 뒤흔들었다. 드래곤 남매 5화 남자의 자존심은 그렇게...(1) 레드포머 공작이 자신의 저택이-정확히는 정원이-폭팔하고 있다는 소 식을 듣고 즉시 희하의 군대를 이끌고 왔을때는 이미 남매싸움이-정확 히는 누나의 일방적인 구타- 끝난 뒤였다. 마치 전쟁이라도 난 것같은 자신의 정원의 모습에 기가막혀 하고 있을 때 자신의 정원을 개박살을 낸 남매의 어머니라는 사람이 정말 죄송하 다면서 부숴진 정원은 즉시 고쳐놓겠다고 했을때는 무슨소리를 하는지 도 모르고 그러시죠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또 한번 놀라고 말았다. 세이르아라는 여자는 수많은 정령들을 불러내더니 이제는 정원모습을 한조각도 찾아볼수 없는 폐허를 한시간만에 완벽히 복구시켜놓았던 것 이다. 그리고 완전복구가 된 정원에서 차를 마시면서 그제야 딸이 데려온 미 아였던 소년과 정원을 개박살을 낸 장본인인 그의 누나 그리고 그의 어머니가 때늦은 감동의 해후를 하였다. 보통때라면 아주 감동적인 장면이었겠지만 이미 큰일(?) 치르고 난 사 람들의 감동은 절반으로 줄어들 수 밖에 없었지만 어찌되었던 가족을 다시 만난 테이는 어머니품에서 기뻐하는 얼굴을 하고 있으니 다 잘된 거라고 치고 넘어갈 수 밖에... "후아아암 잘 잤다." 상쾌한 햇살과 지저귀는 새들이 새벽이 왔음을 알리고 있을때 나는 자 리에서 일어나서 기지개를 크게 폈다. 어제 그 난리-이번에는 정말 죽는줄 알았다.-가 있었던 집으로는 보이 지 않을만큼 평온한 아침이었다. "흐아 조금더 자고 싶다." "으음." 잠에 취한 머리를 흔들때 내 옆에서 누군가가 작게 웅얼거리면서 잠꼬 대를 하였다. 난 순간 지금 꿈속에 있나하는 착각이 잠시 들었지만 현 실이었다. 누군가 내 팔을 붙드는 감촉이 분명 느껴졌다. 난 졸음이 한꺼번에 싹 가시는 느낌이 들면서 옆을 급히 살펴보았다. "....누 누나??!!" 내 옆에서 내 팔을 붙들고 잠에 취해있는 이는 분명 내 누나였다. 분명 어제 레이나 누나가 각자 손님방을 마련해주었었는데 왜 누나가 내 방에 있는거야?! 아니 혹시 내가 밤에 누나방에 들어온건가? 아니 그건 절대 아닐꺼다. 난 몽유병도 없고, 설사 몽유병이 있다손 치더라도 내 발로 누나옆에 가는 미친짓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일단 주위를 먼저 살펴보니 내가 자던 방이 맞았다. 그것을 확인하자 약간은 안심이 되었다. 내가 실수한게 아니니깐. 일단 상황판단이 어느정도 되자 의문점이 들었다. '왜 누나가 내 방에 와서 자는거야?' 그 대답은 누나를 직접 깨워서 묻는게 최고지만 과거의 경험을 상기시 켜보면 잠자는 누나를 깨우는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잘아는 나는 일 단 방에서 나가고 보자는 생각에 누나에게 잡힌 팔을 살며시 빼내었 다. 그런데... "으으음." 내 팔이 빠지자 누나가 신음을 흘리더니 내 팔을 더 쎄게 붙잡고는 끌 어 당겼다. 누나의 무식한 힘에 대해서는 누차 말했기 때문에 잘 알리 라 생각한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잡아당기니 끌려갈 수 밖에... "푸악!" 누나는 팔을 잡아당긴걸로 모자란지 내 머리를 아예 가슴에다 꽉 껴안 고 다시 잠을 청하는 것이다. 젠장 이러고 다시 자면 어쩌자는 거야. 숨막히잖아! 난 어떻게든 이 자리를 벗어날려고 필사적으로 머리를 아둥바둥거려보 았지만 꿈적도 하지 않았다. 윽 숨이 막혀간다. 누나의 품에서 질식사한 동생 해츨링이라고 드래곤 역사에 길이 남는 거 아냐? 으 절대 그렇게 될수는 없다. 다시한번 하나 둘 셋! "으이샷!" 겨우 머리를 들수 있게 되서 숨을 어느정도 쉬게 되자 난 또 다른 충 격에 몸을 굳어야 되었다. 누나의 얼굴이 바로 내 얼굴 앞에 있었다. 새삼스럽게 말하기도 뭐하지만 내 누나는 정말 예쁘다. 만약 얼굴만큼이나 성격도 예뻣다면 사랑의 여신 샤이라스의 현신이라 고 해도 믿을 것이다. 그러나 내 몸이 굳은 이유는 그게 아니었다. 그 옛날 내 첫키스를 누나에게 뺏겨던 그 사건을 기억나게 만드는 누 나의 작은 핑크빛의 입술이 바로 내 입술에 가까이 있었던 것이다. 약간 벌린 입으로 숨이 색색 쉬어나와 내 입술을 간지럽혔다. 위험하다. 이 상황은 누가 봐도 정말 위험한 상황이다. 난 어떻게든 고개를 돌리려고 노력했지만 내 머리를 잡은 누나의 팔이 날 놓아주지 않았다. 아니 대려 나를 더욱더 꼭 붙들어 대었다. '누나 제발 부탁이니 놔줘!! 이대로는 입술이...입술이!!!' 악! 이제 누나의 숨결이 바로 앞에까지 느껴진다. 안돼 안돼!! '으읍!' 그때 내 나이 300살. 퍼스트 키스에 이어 세컨드 키스도 누나에게 빼 앗긴 아침이 밝아오고 있다. "으음." 새벽이 지나 아침이 오자 누나는 그제서야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았 다. 누나의 눈에서 천천히 생기가 돌아오는동안 난 현재 이 상태를 어 떻게 설명해야 좋을까 하는 복잡한 심정으로 거의 울먹이는 눈으로 누 나를 쳐다 보았다. 얼굴은 거의 맞대고 있는 상태였고, 누나의 우왁스 런 힘에 의해 몸도 딱 붙어 있는 이 상태 굳이 따지자면 누나가 멋대 로 껴안고 있는 상태지만 누나 성격상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 같은 느 낌이 들어서 그저 울고만 싶은 심정이다. "헤 테이야 잘 잤어?" 어라? 그러나 내가 예상했던 반응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누나는 그 아름다운 얼굴에 미소를 가뜩 머금고 나에게 아침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사태 파악이 안되어서 눈을 깜박거리는 내 머리를 다 시한번 가슴에 꽉 끌어안는 것이다. $#*-%!! "다행이다. 내 옆에 있구나 나의 반쪽 나의 동생..." '이거 내 귀가 잘못 된건가? 아니면 여기는 아직 꿈속?' 누나의 예상치 못한 행동과 말에 나의 뇌가 마비직전까지 내 몰렸을때 누나는 내 머리를 놓아주었고, 난 숨을 고를 수 있게 되었다. 누나는 멋쩍은 표정으로 일어나더니 총총거리는 걸음으로 문까지 달려 갔다. 그리고는 나를 돌아보면서 다신한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중에 보자 나의 반쪽 귀여운 내 동생아." 그렇게 말하고는 바로 나가 버렸다. "........" "누가...누가 설명 좀 해줘...방금 나간게 내 누나 맞어? 정말 내 누 나가 맞냔 말이야!!" 누가 들어줄리 없지만 난 그때만큼은 소리를 안지를 수가 없었다. 머리아픈 아침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어제는 잘 주무셨는지요." 레드포머 공작과 그의 부인은 환한 얼굴로 이층에서 내려오는 손님을 맞았다. 세이르아 오스타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저께 딸 레이나가 데려온 미아소년의 어머니인 그녀는 두 부부의 아침인사에 화사한 미 소를 지으면서 답하였다. "덕분에 정말 편안한 밤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공작님." "하하하 잘 주무셨다니 다행이군요. 그런데 자녀분들은?" "네 이제 막 일어난 것 같더군요." "그럼 어서 식사준비를 해야겠군요. 오늘은 오랜만의 손님이니 신경 좀 써야 겠어요." "어제 갑자기 들이닥쳐서 폐만 끼쳐드린 것 같은데 신경써주셔서 감사 합니다 공작부인." "쥴리아나 레드포머입니다. 쥴리아라고 불러주세요." "그럼 쥴리아씨로 될까요?" "물론이죠." "안녕히 주무셨어요." 그들이 아침인사겸 잡담을 나누고 있을때 위층에서 예쁘고 활기찬 목 소리가 들렸다. "잘잤니? 티아야?" "네 엄마.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레드포머 공작님." 티아는 세이르아 곁으로 와서 레드포머 공작과 쥴리아에게 아침인사를 하였다. "잘 주무셨나요? 장미아가씨?" 레드포머의 장난끼 어린 말에 티아는 얼굴을 붉혔다. 어제 그 소동의 자초지종을 들은 레드포머는 아름답지만 가시가 있는 장미같다고 티아 를 내내 장미아가씨라고 불렀다. 원래 티아는 이번 여행내내 얌전한숙녀로서 행동하면서 놀다 오리라 마음먹었건만 결과적으로 테이가 자신의 결심을 뒤흔드는 행동을 하는 바람에 사태가 자신이 원하는 방향과는 다르게 흘러가자 괜시리 기분 이 나빠졌다. 그렇게 되자... "엄마 테이를 깨우러 갈께요." "응 그래라." 딸의 속마음을 모르는 세이르아는 별생각없이 다녀오라고 말했고, 아 직 자신의 방에서 아까 있었던 일의 상황파악중이던 테이는 영문도 모 른체 티아에게 빨리 준비하라는 말과 발길질을 당해야 되었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저혈압이라 아침에 잠이 많다는 레이나가 이르의 도움을 받아서 겨우 일어나 마지막으로 내려와서 레드포머 공작가의 다른날과는 다른 시끌 벅적한 아침이 시작되었다. "공녀님 엔드르씨는 어디가셨죠?" "잠깐 티아야." "네?" "테이는 날 누나라고 불러주는데 티아는 섭섭하게 공녀님이 뭐니? 언 니라고 불러주라 응? 응? 응?" 테이가 당했던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와 응응응 스폐셜(?)에 당한 티 아는 그 압도하는(?) 분위기에 고개를 끄덕일수 밖에 없었다. "네 네. 어 언니." "꺄아 역시 귀여워! 테이랑 똑같은 얼굴로 언니라니 너무 귀여워!" "자 잠깐 언니?! 이거 놔줘요 언니!" "아 미안 테이랑 닮은게 너무 귀여워서..." "하아 괜찮아요. 테이가 여기 있는동안 어떤일을 당했는지 충분히 짐 작이 되네요." "헤헤헤." "그것보다 질문의 대답 엔드르씨는 여기 사시는게 아니셨나요?" "엔드르는 어제 자기집으로 돌아갔어 오늘 아침먹고 다시 온다고 했 어. 그런데 왜 그렇게 엔드르에 대해서 묻는거야? 혹시 반한거야?" "걱정놓으세요. 임자있는 남자에게는 관심없으니깐. 엔드르씨의 임자 는 누나맞죠?" "이 임자랄것 까지는 아니고..." "욘석 뭘 그렇게 부끄러워 하는거냐? 엔드르는 레드포머가 차기사위 후보 영순위이잖느냐..." "아...아빠!" "헤에 역시나...근데 언니야~~." "으 응?" "엔드르씨와는 어느정도의 관계예요? 키스는 해봤겠지요?" "자 잠깐 티아 너 아까 내가 껴안았다고 복수하는거지?" "자자 뭘 그렇게 부끄러워 하는거예요? 엔드르씨는 레드포머가 차기사 위후보 영순위잖아요." "우리 아빠 말투 흉내내면서 묻지마!" "호호호 티아양 둘이 어느정도냐면 말이죠." "엄마!! 말하지마!" 라는 다른날과는 확실히 다른 시끌벅적한 아침이었다. 엔드르는 어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가 아침을 먹고 티타임을 가지 는 시간에 공작가에 다시 왔다. 오늘은 하루종일 레이나와 이르 그리 고 티아, 테이남매와 같이 축제구경을 가기로 했던 것이다. 호위병으 로 기사두명과 용병인 제이크와 라이크가 동행했다. 일단 축제기간내내 레드포머 공작가에 머물러달라는 요청을 거절하지 못한 세이르아는 제이크와 라이크를 빼고 나머지 용병들은 후환 사례 를 하고 돌려보냈다. 어차피 실력(?)을 들킨 이상 그 많은 용병이 필 요없게 되버린 것이었다. 즐겁게 제잘제잘 떠들며 축제구경을 나가고 어른들만 남은 자리에서 세이르아는 레드포머 공작에게 다시한번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새삼스럽겠지만 다시한번 저희 테이를 보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 례는 꼭 하겠습니다. 저희 가문이 도울수 있는 일이라면 무슨일이든지 도와드리겠습니다." "하하하 너무 그렇게 마음쓰실꺼 없습니다. 어차피 댁의 아드님을 도 운것은 레이나였고, 레이나는 두명의 귀여운 동생이 한꺼번에 생겨서 무척이나 기뻐하고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하지만...그래도 은혜는 꼭 갚고 싶습니다. 하다못해 저의 마법의 힘 으로 도울 수 있는 일이라도 없을까요?" "마법의 힘으로라...." 확실히 어제 세이르아와 그의 아들 딸이 보여준 마법의 위력은 정말로 놀라운 것이었다. 그 정도 실력이라면 궁전마법사 자리에 당장에 앉혀 도 손색이 없는 실력이었다. 그런 실력자가 어째서 이름도 알려지지 않고 지금가지 지냈는지 궁금하였지만 레드포머 공작은 굳이 이유를 묻지는 않고 있었다. 상대방이 숨기고 싶은 이유가 있다면 들처낼 필 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야 어찌되었던 간에 세이르아정도의 마법사라면 도움이 될 일이 무척이나 많았다. 특히.... "그럼..." "뭔가 은혜를 갚을 일이 있나요?" "솔직히 이 일은 저도 어떻게 처리해야 될지 몰라서 난감해하던 일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도저히 손 놓고 볼 수 없는 상황이라 어떻게든 해야 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무슨일이죠?" "레이나와 이르가 관계된 일입니다. 나중에 돌아오면 그 때 말씀 드리 겠습니다." 드래곤 남매 5화 남자의 자존심은 그렇게...(2) "엔드르라는 남자 짝이 있었구나 너 아직 희망은 있는데." "있으면 뭐하냐." "뭐가요?" "으헉!" 설명을 하자면 축제구경을 나온 일행 중 제크아저씨와 라이크아저씨가 뒤에 떨어져서 뭔가를 수근거리고 있자 궁금해진 내가 가서 물어본 것 이다. 근데 왜 이렇게 놀라는거야? 내가 지긋이 쳐다보자 제크아저씨는 더운지 땀을 흘리면서 말했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도련님." "아무것도 아닌게 아닌것 같은데요." "이럴때는 눈치가 빠르신것 같네요." "우 말돌리지 말아요." 내가 한껏 째려보자 제크아저씨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면 서 나에게 설명을 해주었는데... "에 에? 제크아저씨 우리 누나 좋아하고 있었어요?" "쉿쉿 목소리가 너무큽니다. 도련님." 어차피 거리는 시끌시끌거리고 있어서 내 목소리는 저 앞에 걸어가는 누나네에게 들리지는 않았다. 난 잠시 혼란스런 머리를 진정시키고는 진정으로 진심을 담아서 제크 아저씨에게 충고했다. "아직도 그런마음을 먹고 계시다면 제발 포기하세요. 우리 누나랑 사 귈려면 목숨이 몇개가 있어도 모자른다고요." "어제 봐서 충분히 느끼고 있습니다." 힘이 없이 축 늘어지는 말투로 보아서 내가 굳이 말리지 않아도 알고 있는것 같았다. 누나의 그 가증스런 이중성을... "잘 생각하셨어요. 누나를 사귈 남자는 엄청난 힘과 마법력을 가진 용 사급이 아니면 불가능할껄요." "하아 솔직히 전 테이도련님이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왜요?" "어제 그 일이 거의 일상생활이라면서요. 용케 지금까지 살아계셨군 요." "어제는 저도 정말 죽는줄 알았어요." 그때까지 잠자코 우리말을 듣고 있던 라이크아저씨가 한마디 하면서 끼어들었다. "솔직히 어제일은 테이도련님이 실수하신겁니다." "우이씌 누가 온줄 알았어요? 왔다면 왔다고 기척을 내던가 하지." "타이밍이 너무 절묘했다고 밖에는 말씀못드리겠군요." 반박할 말이 없다. 아무튼 지나간일은 이미 지나간일 끙끙거리고 있어 봐야 나만 손해니깐 축제나 즐겨야지. 그렇게 제크아저씨의 누나에 대한 사랑이 허무하게 끝나가고...있을줄 알았는데... "제크씨 이것 좀 봐주세요. 이게 뭐예요?" 남자라면 누가 봐도 반할만한 아름다운 미소를 얼굴에 한껏 지으면서 노점상에 있는 물건을 가르키면 누나가 말했다. 기품있고 아름다운 레이나누나와 엘프특유의 신비스런 미모를 가진 이 르누나 그리고 생은발을 찰랑이며 여신이라 해도 믿을정도의 미모를 가진 누나와 같이 다녀서 가는곳마다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끄는데 그 세 미녀중에 한명이 제크아저씨에게 말을 걸자마자 주위의 남자들의 시선이 전부 제크아저씨에게로 몰렸다. 남자들의 질투와 부러움의 시선을 한껏 받고 있는 제크아저씨의 어깨 가 움찔거리고 있는듯한 느낌인데...설마... "하아 테이도련님." "네?" "남자라면 말입니다. 한번은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 될때가 있습니다." "그런데요?" "저는 지금이 그럴때라고 믿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제크아저씨는 질투와 부러움의 시선을 아직 보내는 남자들에게 의기양양한 시선을 보내면서 누나에게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곧 이것저것 누나에게 설명해주면서 즐겁게 웃는 것이었다. "도대체가 정신을 못차리는군." "저기 만약 저 둘이 기적이 일어나서 잘 된다면 나 제크아저씨를 매형 이라고 불러야 될까요?" 라이크아저씨는 쓴 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절대 그럴일은 없을꺼라 봅니다. 그전에 저 녀석 관이나 안맞추게 되 면 다행일꺼 같은데요." "맞추게 될지도 모르겠는데요." "그래서 더 걱정입니다." 제크아저씨가 우리가족이 드래곤이란걸 알게 되어도 지금처럼 저런 기 쁜미소를 지을수가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문득 들었다. 재미있겠는데 나중에 헤어질때 가르쳐 줘볼까? 아니 저 아저씨 성격이라면 자신은 드래곤-정확히는 해츨링-아가씨와 사랑을 한적이 있다고 대대손손 자랑할 것 같다. 즐거운 축제구경을 마치고 집-레드포머공작의 저택-으로 돌아오자 레 이나누나와 부모님과 우리엄마가 반가운 미소를 지으며 맞아주었지만 얼굴에 웬지 모를 그늘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만 눈치챈게 아닌지 그날 저녁은 다들 얌전히 먹고 거실에 앉아서 차를 마셨다. 특히 이르누나의 불안한 표정과 레이나누나의 뭔가를 굳게 결심한 표 정이 궁금증을 더욱 더 부채질 시켰다. 무슨일인지 물어볼까 말까 하고 있을때...이럴때 꼭 먼저 선수치는 자 가 있었으니 울 누나였다. "뭔가 중요한 이야기가 있는 것 같은데 뜸들이지 말고 이야기 해요." "아버지 그 일을 세이르아님에게 부탁하실 생각이죠?" 누나의 물음에 대답을 안하고 무시하듯이 레이나 누나가 공작님께 말 을 하자 누나의 눈꼬리가 조금 올라갔다. 하하하 조금 위험... 그런데 확실히 분위기가 이상하긴 이상하다. 누나도 분위기를 잡고 아 빠라고 안부르고 공작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데 심각한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팔불출인 우리 엄마 아빠라면 징그럽게 무슨 어머니 아버지냐 아빠 엄 마라고 불러 라고 소리칠테지만 공작님은 무겁게 고개만 끄덕이셨고 레이나누나는 역시 하면서 작게 한숨을 쉬고는 나랑 티아누나를 보면 서 말했다. "티아랑 테이는 잠깐 자리를 피해주겠니? 이제부터 하는 이야기는 너 희들이 듣지 말았으면 하거든." "싫어요." "티아야." 엄마가 버릇없이 무슨말이냐라는 눈빛을 하면서 누나를 지긋이 바라보 셨다. 하지만 그런것에 꺽일 우리 누나가 아니었다. "무슨 이야기인줄은 모르겠지만 테이랑 나도 15살이라고요. 어린애도 아니니깐 어린애 취급하면서 따돌릴 생각이랑 말아주세요." "어린애가 아닌긴 뭐가 아니야! 아직 어린애면서!" "엄마!" 우 분위기가 무거운 분위기에서 험악한 분위기로 바뀌어간다. 난 모자 의 싸움이 벌어질 것 같은 분위기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그냥 콱 울어 버릴까 하는 생각을 진지하게 해보았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여기 계신 어른들이 그걸 꼬투리 삼아 우릴 내좇 아내실테고 그렇게 되면 누나는 너 때문에 한세트로 어린애 취급받았 다고 날 또 무질 팰테니깐 그럴수도 없고... 그렇다고 어른들 말씀 안듣자니 지금까지 착한 해츨링 생활에 금이 갈 것 같아서 두렵고.... 힝 창조신이시여 이럴때는 나 누구편 들어야 되요? "괜찮습니다. 티아와 테이도 현재 이 나라의 아니 인간들의 양면성을 알아야 될껍니다. 나중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깐요." 험악해질 것 같은 상황을 중지시켜준건 이르누나였다. 인간들 레이나 누나측에서는 약간 이해못할 말일테고 우리 드래곤들 측에서는 이르누나의 말이 어느정도 이해가 되었다. 나중에라는 것은 역시 유희를 뜻하는 말이겠지. 난 내 생각이 맞는지 눈으로서 이르누나에게 물어보았다. 진실의 눈을 가진 엘프 이르누나는 내 생각대로 내 눈에 담겨있는 내 뜻을 읽고는 맞다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정말 괜찮겠어? 이르." "괜찮아요 레이나. 레이나도 알다시피 난 그때 이미 한번 죽은거나 마 찬가지예요.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과거의 죽었던 나의 이야기일뿐. 현재의...레이나에게 자유를 선물받은 지금의 나라면 걱정없어요. 그 리고 티아와 테이도 이 이야기를 들을 권리가 있어요." "어 어째서? 얘들은 아직 어린데..."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건 나쁜 버릇이라고 레이나가 입버릇처럼 이 야기 했잖아요. 확실히 티아와 테이는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중에서 제일 어리지만 저의 이야기를 이해못할만큼 어리지는 않아요." 누나는 그럼그럼 이라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승리의 미소를 지었 고 엄마와 레이나누나는 항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엄마와 레이나누나가 항복의 뜻을 표하자 조용히 중립을 지키던 공작님께서 헛기침을 하시면서 주위의 시선을 모았다. "크험. 그럼 티아양과 테이군의 문제는 같이 듣는 것으로 결정하죠. 티아양 테이군." "네." "네." "지금부터 이르가 할 이야기는 인간의 우리 인간의 또 다른 어둡고 추 악한 부분을 이야기할껍니다. 두 사람은 이르의 이야기에서 그런 인간 들도 있다는 사실을 항상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쩝 우리는 인간이 아닌데... 무언가 이해가 될듯 말듯 한 말이지만 일단 이르누나의 이야기라는 것 을 들어보면 무슨뜻인지 알것 같으니깐 누나와 나는 잠자코 고개를 끄 덕이고는 이르누나를 쳐다보았다. 이르누나는 잠시 눈을 감고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하다가 곧 몸서리를 쳤다. "이르..." 레이나누나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이르누나를 불렀다. 이르누나는 감았 던 눈을 뜨고는 레이나누나를 바라보면서 미소지었다. "괜찮아요. 전 괜찮으니깐 걱정말아요 레이나." 이르누나는 좌중을 쭉 흩어보고는 입을 열었다. "이 이야기는 제가 레드포머공작가의 레이나를 만나기 4년전에 있었던 제가 겪었던 일입니다." 이르누나의 눈은 어느새 길지도 짧지도 않은 그날의 일을 생각하는지 먼 시선으로 정면만을 쳐다보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계속 드래곤 남매 5화 남자의 자존심은 그렇게...(3) 그녀는 어렷을때의 기억이 나질 않았다. 8살이전에는 어디서 무얼했는 지 아무리 생각해도 생각이 나질 않았다. 단지 하나 알고 있는거라고 는 아빠가 없다는 것 뿐.... 가끔 엄마에게 물어보면 엄마는 슬픈 얼굴로 아빠는 하늘나라에 계신 다고 말했다. 아직 어렸던 그녀는 아빠는 하늘나라라는 [나라]에서 사 신다고 믿었다. 그곳 축복받은 숲에서 살고 있는 엘프들은 300명정도였다. 다른 엘프 마을에 비해서는 그 수가 조금 작은 마을이라고 그녀는 들었다. 마을의 엘프들은 그녀에게 친절했다. 또래의 아이들은 없었지만 어른 들이 잘 놀아주었기에 그녀는 별 불만이 없었다. 그렇게 행복한 시간이 지나가고 그녀는 성장하여 성인식을 치르게 되 었다. 그동안 마을에서는 10여명의 아기엘프들이 탄생하기도 하였고, 사춘기 소녀시절을 거치는동안 두근거리는 짝사랑도 경험해보았다. 그녀는 분명히 행.복.했다. 그 일이 있기전에는... 사춘기 소녀시절부터 짝사랑하던 남자에게 고백하리라 마음먹은 날 심 호흡을 하고 그의 집으로 가는 중에 마을 외곽이 소란스러워졌다. 그녀가 무슨일일까 하고 생각하는중에 갑작스럽게 불길이 치솟아 올랐 다. 남자엘프들과 검과 정령을 쓸줄아는 일부 여자엘프들은 즉시 불길 이 치솟아 오는곳으로 달려갔다. 그녀는 어쩌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있을때 그녀의 짝사랑 상대가 달려가는게 보였다. "베 베이트씨!" "이르? 이런곳에서 뭘 우물쭈물하는거야? 빨리 마을 안쪽으로 피해!" "무슨일이예요 베이트씨?" "인간들이다. 인간들이 쳐들어왔어. 이르 빨리 어머니를 모시고 마을 안쪽으로 피해있어." "베 베이트씨..." "응?" "아 저....무 무사하셔야 되요." 베이트는 싱긋웃으며 이르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주었다. 사랑하는 연인에게 하는것이 아니라 사랑스런 동생에게 하듯이... 자신과 잘 놀아주었던 어른엘프들중 가장 젊어서 자신을 마치 동생같 이 아껴주던 베이트였다. 이르는 그걸 잘 알고 있지만 고백하려고 마 음먹은 남자가 자신을 여전히 여동생 취급을 하자 잠시 지금의 상황도 잊고 불만을 말했다. "저도 이제 성인이예요. 언제까지 얘취급할껀가요?" "아무리 성인이 되어도 이르는 나에게는 소중한 동생이야." "우..." 입을 삐죽히 내밀면서 불만을 표했지만 그래도 소중하다는 말은 마음 에 들었다. 그때 마을 밖에서 다시 폭팔음이 들렸다. 폭팔음이 들려오는 쪽을 보면서 인상을 찡그리는 베이트의 입에서 분 노에 찬 음성이 흘러나왔다. "지난 100여년간 조용하다 싶었는데 인간들은 왜 저런지 모르겠군." "인간..." 이르는 인간을 본적이 없었다. 옛날에는 인간과 엘프는 사이가 좋았다 고 했지만 지금은 사정이 틀렸다. 100여년전 인간들이 만든 나라 다이 러스 제국의 국왕이 제이라스 1세가 등극하면서 엘프는 인간들에게 노 예취급을 받기 시작했고, 한바탕 두 종족간의 전쟁이 있은후 양쪽에 막대한 타격을 입고, 엘프들은 숲에 들어가서 숨어살게 되었고, 인간 들은 그들을 건드리지 않겠다는 조약을 맺었었다. 그 조약은 오늘로 깨진거나 마찬가지였다. "이르 난 빨리 가봐야겠다. 어머니를 모시고 너도 얼른 대피해야된다. " 베이트는 생각에 잠겨있는 이르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급히 몸을 돌렸 다. 그러자 이르는 자신도 모르게 베이트의 손을 잡아버렸다. "왜그래 이르?" "에? 아 아니 그게 저어...." 왜 그의 손을 잡아 멈춰세웠는지 그녀 자신도 몰랐다. 그냥 느낌상 불 길한 생각을 지울수가 없었다. "베이트씨 아 아니...오 오빠 꼭 꼭 무사하셔야 되요." 자신의 손을 꽉 잡고 애처럽게 말하는 이르를 보면서 베이트는 복잡한 기분을 느꼈다. "아주 오랜만이구나...오빠라는 호칭..." "....." 이르는 아무대꾸도 안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빨개진 자신의 얼굴을 봤을까 부끄러웠다. 하지만 손은 여전히 놓지 않았다. 이 손을 놓으면 두번다시 못 볼껄 같은 느낌이 마구 들었다. 자신의 손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 이르를 보면서 쓴 웃음을 짓던 베이 트는 이르의 손에 잡혀있던 자신의 손을 쎄게 잡아당겼다. "아..." 관성의 법칙 어쩌고보다는 환타지소설 법칙상 남자가 여자의 손을 잡 고 당기면 여자는 남자의 가슴에 안기게 된다는 철칙을 충실히 지킨 두 남녀는 아주 잠시동안의 포옹을 하였고 베이트는 이르의 이마에 입 을 맞추었다. "아...오 오빠..." 무슨말을 해야될지 어떤행동을 해야될지 몰랐다. 단지 사랑하는 이제 는 오빠가 아닌 한명의 남자엘프인 베이트의 가슴에서 그의 따스함을 느낀체 그렇게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베이트는 이르를 떼어놓고 바로 뒤돌아서 달려가기 시작했다. "오 오빠!" 베이트는 뒤도 안돌아보고 손만 들은체 근처 나무위로 뛰어올라가서 곧 소란스러운 마을 바깥쪽으로 날아가듯이 뛰어갔다. "오빠....좋아해요. 아니 사랑해요. 이 마음을 전하고 싶어요. 그러니 부디 무사히 돌아와주세요." 이르는 잠시동안 그렇게 베이트가 사라져간 방향을 보면서 그렇게 서 있었다. 이르가 집으로 가던중 다행이도 자신을 찾아다니던 엄마를 만나서 같 이 피난소로 갈 수 있었다. 피난소에는 싸움과는 거리가 먼 여자엘프들과 어린엘프들 그리고 노인 엘프들이 있었다. 그 중에는 족장도 있었다. 족장은 만약을 위해서 다른마을에 연락을 보내고 있었다. 어쩌면 이 일로 다시 인간들과 전면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르지만 어쩔 수 없었다. 먼저 조약을 깬건 인간들이니 전면전쟁은 피할 수 없는 시 점이었다. 그러나 족장은 모르고 있었다. 이미 이 마을이 물샐틈 없이 포위되었 다는 사실을 그리고 연락책으로 도망간 두명의 엘프들은 이미 붙잡혀 버렸다는 사실을 모른체 죽음을 맞이할 수 밖에 없었다. 이르는 차가운 지하감방에서 울고 또 울었다. 그렇게 열심히 싸웠지만 결국 자신들의 마을은 인간들에게 전멸당했다. 그리고 피난처에 있던 자신과 어머니를 포함한 여자엘프들과 어린엘프 들을 빼고는 족장과 노인엘프들은 모조리 죽었다. 그리고 이르는 보았다. 인간들에게 끌려가던 중 참사의 현장을 지나갈 때 인간들과 엘프들의 시체들 속에서 끝까지 검을 손에 쥐고 죽어있는 베이트를....이르는 그 자리에서 비명을 지르면서 기절했고, 다시 정 신을 차렸을때는 어두운 지하감방에 자신을 포함해서 10여명의 여자엘 프들과 같이 갇혀 있었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는 따로 떨어져서 남은엘프들과 다른곳으로 보내졌 다는 말을 듣고는 다시한번 울다가 정신을 잃을 수 밖에 없었다. 이르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때는 같이 있던 엘프중에서 한명이 사라지 고 없었다. 같이 있는 이들이 말하기를 누군가에게 끌려갔다고 한다. 지금 이르와 여자엘프들은 죄다 손에 마력제어팔찌가 채워져 있었다. 그렇게 모든희망을 잃고 며칠이 지났다. 다시 다른 엘프 한명이 끌려 갔다. 먼저 끌려갔던 엘프는 끝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세번째 엘프가 끌려갔을때도 앞서 끌려간 엘프들이 돌아오지 않자 남 은 엘프들은 불안에 떨어야 되었다. 그 후 며칠이 흘렀는지 모른체 시간이 지나갔고 드디어 그 날 이르의 차례가 되었다. 이르는 앞서 끌려간 엘프들중 몇몇은 그 와중에 반항 하다 개맞듯이 맞고 끌려갔던 것을 목격했던차라 얌전히 그들을 따라 갔다. 이르를 데리러 온 우락부락한 남자들은 그녀를 어느 방에 밀어 넣고는 돌아갔다. 그 곳에는 여러명의 인간여자들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곧 그녀 를 안쪽으로 데려가 목욕을 시키고 웃을 갈아입혔다. 그 와중에 이르는 그녀들에게 여러가지를 물었지만 그녀들은 묵묵히 자신들에게 주어진 일만 하고는 물러갔다. 다만 그녀들의 눈에서 이르는 자신을 불쌍하게 여기는 그녀들의 마음 과 그리고 어떤이에 대한 공포를 읽을 수 있었다. 옷까지 다 갈아입자 아까 자신을 데려왔던 남자들이 와서는 거칠게 이 르를 붙잡고는 입에 재갈을 묶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눈가리개까지 하고는 또 어딘가로 끌려갔다. 눈가리개가 풀려졌을때 이르는 비로서 지금이 밤이라는 것을 알 수 있 었다. 그동안 어두운 감방에서만 있어 낮인지 밤인지 시간조차 알 수 없었던차였다. 방안을 둘러보던 이르는 자신을 쳐다보는 한 인간남자를 발견하고는 몸을 흠칫 떨었다. 그 순간만큼의 진실을 본다는 엘프들의 눈인 자신 의 눈을 저주해야 되었다. 그의 눈에서 본 그 남자의 어두운 마음은 분명 탐욕이었다. 이르는 방안의 창문을 보고는 죽던살던 그 곳을 깨고 도망쳐야겠다는 생각에 달려갔다. 어차피 그대로 있다가 당할바에는 차라리 이곳이 높 은곳에 있는 방이라서 떨어져 죽더라도 도망치는게 나았다. 그러나 이르는 방안 전체에 결계마법이 처져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 다. 결계의 벽에 부딧쳐 쓰러진 자신을 보면서 그 남자는 웃으면서 입 으로 룬어를 나직하게 내뱉었다. [속박] 그러자 이르의 팔에 채워진 마력제어팔찌에서 강력한 마력이 치솟아올 라 이르의 정신을 멍한상태로 만들었다. 그리고 다시 깨어놨을때 이르는 자신의 몸이 침대에 결박당했다는 사 실보다 자신의 옷이 다 벗겨져 있다는 사실에 크게 놀랐고 겁을 먹었 다. 그 남자는 자신의 옆에 앉아서 자신의 알몸을 보면서 음탕한 웃음 을 흘리고 있었다. 치욕스러웠다. 그제서야 왜 자신에게 재갈을 물렸는지 알 것 같았다. 엘프들이 치욕을 당한 순간 자살을 막기위함이란 것을... 그 사실을 알게 되자 이제부터 자신에게 닥쳐올 상황에 눈물만 흘러나 왔다. 그 남자는 그 썩어빠진 미소를 지으면서 그녀의 몸에 얼굴을 갖 다되었다. 그리고 그날 이르는 베이트의 이름을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부르짖으면 서 치욕스런 수치심과 지독한 아픔을 느끼며 기절하였다. 정신이 서서히 들었다. 그러나 지금만큼은 정신따위는 차라리 계속 잃 은체 있고 싶은 기분이었다. 아니 하루빨리 죽고 싶었다. 그 악마같은 남자는 자신을 그의 성적노리개로 사용하고는 일이 끝나 면 마력제어팔찌에 덤으로 붙어있는 정신제어를 발동시켜서 자신의 정 신을 잃게 만들고는 다시 자신을 노리개로 사용할때 정신제어를 풀어 주었다. 결국 그녀가 다시 제정신을 찾는 시간은 치욕의 시작을 알리 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다시 며칠이 지났는지 몇번을 깨어나서 그 악마에게 몸을 더럽혀졌는 지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지금 이르의 소원은 단 하나 뿐이었다. 빨리 죽고싶다는... '죽어서 베이트를 만나면...아니 나에게는 이미 죽어서도 베이트를 만 날 자격따위는 없어...' 그렇게 다시 며칠이 지났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때 그 악마는 자신의 귀에다 대고 소름끼치는 목소 리로 말했다. "너는 특별히 내가 석달간 데리고 있었다. 이 정도까지 귀여워 해주었 으니 죽겠다는 생각을 버리는게 어때? 너 몸은 꽤 마음에 들어. 지금 까지는 나에게 몸뺏기고 이리저리 몸을 놀리고는 나중에 재갈을 풀어 주었을때 바로 자살해버리는 엘프들의 미련함을 즐겼지만 너는 달라. 너무 마음에 들어. 너가 원한다면 호강을 시켜주마. 어때 나의 전용노 예가 되어서 호강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텐데." 난 당장에 고개를 저으려다 말고 어떤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지금 여기 서 거절해버리면 다시 정신을 잃고 정신을 차릴때마다 이런 치욕을 겪 을것만 같았다. 절대 그렇게 될 수는 없었다. 그녀는 되도록이면 겁먹은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 악마는 얼굴에 역겨운 미소를 지으면서 날 한번 쓰다듬고는 재갈을 풀어주었다. "그래 그러고 보니 아직 너 이름을 모르는구나. 이름이 뭐...익?! 이 이 년이 뭐하는거야!" 난 그 악마에게 최대한 힘껏 침을 뱉어주고는 바로 혀를 깨물었다. 그렇게나 바라던 죽음을 이제서야 겨우 이룰수 있게 된것이다. 계속 드래곤 남매 5화 남자의 자존심은 그렇게...(4) 불행일까? 다행일까? 이르는 다시 정신을 차렸다. 입안이 특히 혀가 못견디게 아팠다. '죽지 못한것인가?' 그녀는 다시한번 혀를 깨물려다가 문득 지독한 악취에 눈을 뜨게 되었 다. 지금 그녀가 있는곳은 한적한 숲이었다. 그리고 악취의 정체는... "아...아...아...아아악!" 같이 갇혀있던 여자엘프들 자신보다 먼저 끌려가서 그런 치욕스런 일 을 격고는 목숨을 끊었을 자신의 이웃이 마음씨 좋던 언니들이기도 한 여자엘프들의 썩어가는 육신에서 나는 냄새였다. 그녀들은 죽어서도 쓰.레.기처럼 숲속에 버려진것이었다. 자신 역시 버려졌지만 죽지 않았던 것을 지금은 행운으로 여겼다. '죽여버릴꺼야. 그 악마 죽여버리겠어.' 그렇게 다짐한 이르는 온몸이 아프지만 힘겹게 일어나서 주위를 살폈 다. 그녀의 눈앞에 보인것은 숲 아래쪽에 있는 커다란 저택이었다. 이르는 알 수 있었다. 저 곳이 자신이 있던곳 악마가 사는 저택이라는 것을... '지금 이대로 갔다간 나는 다시 잡혀서 그 지옥을 겪어야 될꺼야. 도 움이 필요해.' 이르는 어떻게든 다른 엘프마을에 이 일을 알려야 된다는 사명감으로 아픈몸을 이끌고 그 곳을 빠져나갔다. 삼일을 헤메였다. 그동안 인간들의 마을에는 얼씬도 안하고 숲속에서 열매들로 허기를 채우면서 걷고 또 걸었다. 그러나 이르의 몸상태는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정도로 나빠져 있어 삼일간 걸었는데도 아 직 그 지역을 완전히 빠져나가지 못했다. 삼일째 아침... "앗 기다려 레니!" 어디선가 개짓는 소리와 인간이라고 생각되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 다. 급히 도망칠려고 했지만 이미 힘이 다 빠진 이르는 저 멀리서 자 신에게 달려오는 개와 인간여자의 모습을 보고는 쓰러졌다. "레니 도대체 왜 그렇게 뛰는...앗! 이봐요 무슨일이세요? 괜찮아요?" 자신을 걱정스레 쳐다보는 인간여자의 눈에서 이르는 놀라운 발견을 하였다. '이 인간여자는...신용할수 있다? 말도 안돼 내 눈이 잘못되었을거야 인간따위는 인간따위는...' 그런 이르의 놀라움을 아는지 모르는지 인간여자는 침착하게 이르의 몸상태를 살펴보더니 조심스레 이르를 일으켜서 부축하고는 힘겹게 걸 음을 욺겼다. "우우!" 아직 입안의 상처가 낮지 않아서 말이 안나오는 이르는 자신이 낼수있 는 최대한의 거부의 목소리를 내면서 그 여자를 밀쳐버렸다. 덕분에 둘은 같이 땅바닥에 넘어져야되었다. 힘겹게 몸을 일으킨 이르는 그 여자가 다시 자신을 부축하고 있는것을 발견하고는 다시밀어버리려고 했지만 이번에는 그 여자가 눈치채고는 강한 힘으로 제지했다. "무슨이유인줄은 모르겠지만 일단은 살아요! 살고나서 나에게 화풀이 를 하던 한탄을 하던 하란 말이예요." 강렬한 눈빛으로 자신에게 살라고 설득하는 그녀를 보자 이르는 갑자 기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래 지금은 살아야 돼. 이 인간말대로 지금은 살아야 돼. 복수를 위 해서라도 살아야 돼. 그런데 왜? 왜?' 왜 지금 도움을 주는 이가 인간이란 말인가? 자신이 그렇게도 증오하 게 된 인간에게 그런말을 들어야 되는가? 이 끊임없는 의문을 느끼면서 이르는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잃기전 인간여자의 놀란목소리가 들리는듯 하였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때는 아늑한 분위기의 천장이 먼저 눈에 보였다. 지금 이르가 누워있는 침대도 꽤나 고급인지 적당한 푹심함이 상처투 성이인 이르의 몸을 편안하게 감싸주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아 깨어났군요. 헤헤 오늘쯤은 깨어날 것 같았는데 역시 내 감이 잘 맞네요." 이르를 구해주었던 인간여자 아니 이제서야 자세히 살펴보니 아직 소 녀였다. 그 인간소녀는 사람좋아보이는 미소로 웃으면서 다행이라는 말을 연신 하였다. 정말 보면 볼수록 믿음이 가는 소녀였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 인간...믿을 수 없어.' 그렇게 마음먹고 있는 이르의 앞에 소녀는 무언가를 던져주었다. 바로 단검이었다. 눈을 희동그래 뜨고는 자신을 쳐다보는 이르를 보면서 소 녀는 말했다. "아직 아프겠지만 말을 할 수 있을꺼예요. 하지만 굳이 이유를 묻지는 않겠어요. 당신을 치료하기 위해 의사를 데려와서 당신의 몸상태를 알 게 되었고 대충 당신이 무슨일을 당했는지도 짐작이 되요. 그때 날 밀 친것도 날 못 믿어서였죠? 그러니 아직 나를 못 믿겠다면 그걸 가지고 계시다가 제가 당신눈에 수상한 행동을 하는것처럼 보이면 주저없이 절 찌르셔도 좋아요." 이르는 이 인간소녀의 말을 도무지 믿을수가 없었다. 지금 그 소녀는 자신의 목숨을 완전히 나에게 맡기겠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인 말을 하 고 있었다. 도대체 왜 무엇때문에 자신을 위해서 그렇게까지 하는 것 인가? 소녀는 이르의 눈에서 그 의문을 읽었는지 대답해주었다. "그렇게라도 안하면 당신은 이후에 내가 해주는 간호라던지 약이라던 지 음식을 아예 입에도 안댈꺼 아니예요. 그때 내가 말했죠? 일단 살 라고요. 살기위해서라면 당신은 아직 더 치료를 받아야 되요. 하지만 인간을 믿을 수 없게 된 당신이 내 호의를 받아들일리 없으니깐 그 단 검을 드리는거예요. 그것이 당신에게 드릴수 있는 내 최대한의 믿음의 증표예요." 이르는 다시 눈물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그 인간소녀의 말과 얼굴의 표정에는 한점의 거짓도 없었다. 순수하게 자신을 돕고 싶다는 일념으 로 타인을 살리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걸고 있는것이었다. 이르는 간신히 간신히 눈물을 참으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가..씨..의...이..름...은?" 그 소녀의 말대로 아직 말을 할때마다 입안이 쿡쿡 쑤시는 느낌이었 다. 그러나 묻지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소녀는 내 말을 기다렸는지 정말로 기뻣하며 말했다. "레이나. 레이나 레드포머예요. 엘프님의 이름은요?" "이...르...니...아..." "이르니아? 예쁜이름이네요." 그렇게 이르는 레이나에게 목숨을 구원받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4년 전의 일이었다. 이르누나는 긴이야기를 마치고는 잠시 그때의 끔찍한 기억때문인지 눈 을 감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레이나누나는 그런 이르누나의 얼굴을 걱정스런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공작님은 아무말도 할 수 없었던 우리들을 쭉 둘러보시고는 입을 열었 다. "이르의 병세가 호전되자 즉시 이르의 기억을 더듬어나가서 그 저택을 발견했지만 문제가 생겨서 어쩔수 없이 그 사건을 방치할 수 밖에 없 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문제요?" 엄마는 이르누나의 말을 들으면서 내내 얼굴을 찌푸리며 인상을 쓰고 계시다가 공작님의 말에 반문했다. 공작님은 분노에 찬 얼굴로 말을 계속하였다. "그 저택은 바로 로헨타이 공작가의 저택이었습니다." "로헨타이 공작?! 다이러스 제국의 양대 공작가중 하나인 로헨타이 공 작이 그때사건의 주모자란 말입니까?" 용병으로서의 잔뼈가 굵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이 제이크아저씨 가 아는체를 하면서 끼어들었다. 그제서야 이르누나에게서 시선을 돌 려 우리를 바라보며 레이나누나가 말했다. "아닙니다. 정확히는 로헨타이 공작의 외아들 라보오스 로헨타이가 그 사건의 주모자입니다. 로헨타이 공작은 그저 방광자일 뿐일껍니다." 이번에는 라이크아저씨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말했다. "그러고보니 4년전인가? 5년전인가에 로헨타이 공작가에서 수 많은 용 병들을 불려들였죠. 설마 그 용병들이..." "네 저희 마을을 습격한 인간들입니다." 이르누나는 눈을 뜨고 자세를 추스리고는 라이크아저씨의 생각이 맞다 는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공작님은 잠시 그들의 대화를 듣다가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지난 4년간 여러모로 조사해보았는데 이건 조사할때마다 심각한 문제 가 점점 밝혀지더군요. 아시다시피 로헨타이 공작가는 우리 가문다음 으로 왕위계승서열에 있습니다. 지금 황제인 제이라스2세께서는 태자 는 커녕 친인척까지 없기 때문에 제가 왕위를 이어받을께 거의 확실시 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역시 기회를 가지고 있는 로헨타이공작 역시 이 상황을 놓칠생각이 없는지 여러므로 손을 쓰고 있는 실정에다 가 어느새 왕실 마법사인 카스파까지 한편으로 끌인뒤더군요. 엘프마 을을 습격했을때도 그리고 엘프들을 구속했다는 마법제어팔찌라던지 결계같은것도 전부 다 그가 손을 쓴것입니다. 아마 로헨타이공작과 모 종의 계약을 맺은듯 보입니다. 그리고 그 라보오스는 노예상인에게 도 움을 주면서 뒷돈을 받아왔다는게 확인되었습니다. 엘프마을에서 잡혀 온 상당수의 엘프는 노예상인에게로 넘어갔고 노예상인들은 매달 잡은 엘프나 돈등을 라보오스에게 넘겼다고 생각됩니다. 어찌보면 약점이라 고 할 수 있는데 현재 우리로서는 결정적인 증거를 잡기가 어려운 상 태입니다. 섣불리 건드렸다가는 내란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기에 신 중하게 행동할 수 밖에 없어서 지금까지 이르게 된것입니다." "그렇군요. 그럼 제가 도와드릴일이란게 그 라보오스와 노예상인들의 거래내력을 밝히면 되는것입니까?" 엄마는 알겠다는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하자 공작님은 맞다는 표시 로 마주고개를 끄덕이셨다. 난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저기요..." 내가 말을 꺼내자 모든이의 시선이 내게로 쏟아졌다. 왜 내가 말할때 면 시선을 모아야 되는건지 원...부담되잖아. "그냥 이르누나가 다른엘프들에게 말해서 그 로헨타이인가 뭔가하는 집안을 치게 만드는게 더 빠르지 않을까요?" "역시 넌 바보구나." 라고 내 말을 딱잘라 바보취급한것은 누나였다. "우씌 왜?!" "이 바보야! 그렇게 되면 100여년전에 일어났다던 인간과 엘프의 전면 전의 재탕이 되버리잖아. 그러다가 100여년전처럼 쌍방이 다 큰피해를 입게 되면 뭐가 남냐? 그런 일을 벌인 놈들만 잡아다가 죽여버리는게 최선의 방법이란 말이다. 알겠냐? 느림보 동생아." "느림보라는 말 그만좀해!" "몇번이라도 말해줄꺼다! 느림보 느림보 느림보." 으아악 난 도저히 더 못참아! "으씌 성격나쁜 마녀누나." 근데 이말이 실수였다. "아이스 미사일!" "으갸갸갸갸 실드!" 다시한번 남매의 마법실력겨루기-실상은 누나의 동생에 대한 일방적인 폭력사태-가 막 일어날려고 하자 엄마가 싸늘하게 말했다. "너희둘 그냥 집으로 보내버린다." "헉!" "앗!" 어떻게 나온 인간세상인데 아직 구경할껏도 많이 남아있는데 강제로 돌려보낸다니 절대 그럴수는 없기에 누나와 나는 얌전히 자리에 앉았 다. 잠시 소란스러운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라기보다는 황당함을 감추기 위한듯-레이나누나가 말했다. "티아말이 맞습니다. 100여년전 쌍방에 아무득도 안된 무의미한 전쟁 이 다시일어나면 결국 고통받는 것은 국민입니다. 그 일만큼은 절대 막아야 됩니다." "저도 그걸 깨달았기에 레이나와 같이 조용히 그들을 제지할 방법을 찾고 있는겁니다." 이르누나는 이제는 어느정도 미소를 되찾아서 말을 하고 있지만 역시 아직 얼굴의 그늘은 완전히 지우지는 못하였다. 그 모습이 여간 측은 해 보이는게 아니였다. "좋은 방법이 있긴 있는데..." "응? 티아야 무슨 방법인데?" 레이나누나는 처음 우리가 이 이야기를 경청한다는 것을 탐탁치 않게 생각했었는데 티아누나의 말에 어쩌면 듣게한게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는 표정이었다. 티아누나는 그런 레이나누나를 바라보면서 활짝 웃으 면서 말했다. "응 그냥 나랑 엄마가 그 집에 몰래 쳐들어가서 그 자식만 찢어죽이면 되잖아." 갑자기 집안에 냉기가 흐르는 느낌이었다. 그걸 못 느꼈는지 아니면 느끼고도 별로 신경안쓰는지-틀림없이 후자일것이다.- 티아누나는 계 속 그 환한 미소를 유지하면서 듣기에도 서늘한 말을 계속 뱉어내었 다. "이곳 궁정마법사가 얼마나 실력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엄마의 정령 마법과 일반마법 그리고 나의 마법과 별로 도움은 안되겠지만 테이의 허접한 마법과 약하디 약한 하급정령들이라면 그깟 결계하나 부수고 그 자식 찢어죽이는건 식은스프 마시기보다 더 쉬워. 그치 엄마?" "그 그렇긴 하구나...하지만..." 젠장 무슨 허접한 마법에 약한 하급정령이야? 그렇게 꼭 강조해서 말 할 필요가 뭐가 있다고...솔직히 아직 해츨링이면서 성룡뺨치는 마법 력을 갖춘 누나쪽이 훨신 이상하다는 것을 모르나? 쳇쳇 확실히 누나가 제시한 방법이 훨신 현실성이 있었다. 그러나 "저기 그렇게 했다고 치고 만약 로헨타이 공작가에서 아들을 죽인 범 인으로 레드포머 공작가를 의심하게 되면 어떻하죠? 자칫하면 내전으 로 발달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라고 누나의 의견에 반대의견을 말한것은 놀랍게도-내 관점으로- 라이 크아저씨였다. 우와 라이크아저씨 넘 마음에 든다. 이제부터 아저씨라 는 호칭은 뺄께요. 라이크씨~~~ 라이크씨의 지적이 틀린게 아니라는듯 누나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고 개를 끄덕였다. 누나? 누나는 얼굴이 확 달아올라서 고개를 숙여버렸 다. 크크크 자존심에 상처좀 받았을꺼야. "절대 전면전쟁만은 피해야 됩니다. 그 방법은 최후의 방법이 될지도 모르지만 어찌되었던 지금은 노예상인과 라보오스와의 관계를 세상에 밝혀내어서 법으로 심판해야 됩니다." 공작님의 힘있는 발언에 엄마가 고개를 끄덕이며 물어보았다. "생각해두신 방법이 있나보죠?" 엄마의 질문이 맞다는 뜻으로 공작님은 씩 웃으시면서 고개를 끄덕였 다. "세이르아님 폴리모프를 다른사람에게 시전하실수 있죠?" "네." "저는 이미 저 휘하의 기사단중에서 실력이 뛰어난 여기사 몇명을 선 발해놓았습니다. 그들을 엘프로 변장시키고 직접 노예상인쪽에 침투시 킬생각입니다. 원만한 변장으로는 들키겠지만 폴리모프라면 속여넘길 수 있겠죠. 그리고 그 중 단 한명이라도 라보오스에게 가게 되면 현장 에서 빼도박도 못하게 잡을 수 있을껍니다. 그리고 마력제어팔찌의 영 향을 받지 않으니 그건은 걱정없다고 생각됩니다. 다만..." "정신제어는 조금 걱정이 되겠군요." "예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것은 제가 정신계정령을 하나씩 붙여주어서 방어를 하게 만들면 될 겁니다. 단 눈치채지 못하게 하려면 하급정령을 붙여야됩니다. 그리고 하급정령으로서 그 제어를 막을수 있는 횟수는 단 한번입니다. 그 단 한번의 기회를 적절하게 사용하는것은 그 기사님들의 몫이겠죠." 엄마는 은연중에 가장 뛰어난 기사여만 된다는 뜻을 내비쳤고 공작님 은 잘 알고 있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흡족한 웃음을 지었다. 엄마정도의 마법과 정령을 같이 다루는 실력가는 흔하지 않은가 보다. 공작님은 엄마를 만나게 된걸 큰행운으로 여기시고 있는 것 같다. 더불어 그런 실력자가 왜 알려지지 않았는지 궁금해 하시는 것 같지만 결코 물어보시지는 않았다. 무언가 숨겨야 되는 이유가 있다면 굳이 따지려 들지 않으려는 생각이시겠지. 근데 그 이유가 우리가족이 드래곤이기 때문이라는 걸 아시게 되면 어 떻게 될려나? 궁금한데 역시 갈때 다 가르쳐주고 반응을 구경해볼까? "흠 저기요." 이번에는 누나다. 아아 또 무슨 황당한 계획을 말한 생각인지... 모든이들의 생각이 나와 일치했는지 전부 불안한 얼굴로 누나를 바라 보았다. 누나는 역시 거침없이 말을 했다. "그 미끼작전 저도 참여할께요." "안돼!!!!" 라고 엄마와 레이나누나가 동시에 소리쳤다. "넌 아직 어리면서 무슨소리를 하는거야!" "티아야 그렇게 귀여운얼굴로 무서운소리를 하면 안돼." "티아 위험한 일이예요. 자칫잘못하면....저처럼 될지도 모른다고요." "티아양 도와주겠다는 그 마음만 받겠습니다." "티아아가씨 왜 그런 위험한 일을 스스로 하겠다는겁니까?" 위에서부터 차례대로 엄마, 레이나누나, 이르누나, 공작님, 제이크아 저씨 순으로 참으로 격한 반응들을 보이신다. 나? 나는 흐흐흐 당연히 찬성쪽이지. 누나는 한번 크게 혼나봐야돼. 잠자코 자신을 만류하는 말들을 듣던 누나가 입을 열었다. "제 실력 다들 아시면서 이러기예요. 저는 저 자신에게 폴리모프를 할 수 있으니 좀더 간편하고, 그리고 정신제어도 마력으로 방어막을 치면 막을수 있다고요." "마력제어는 어쩌고 카스파라는 궁전마법사는 최상급공격마법도 사용 할수 있다는 소문이 나도는 실력자란 말이야 그런사람이 만든 마력제 어팔찌인데 마법을 못쓰게 되면 넌 그저 평범한 소녀가 된단 말이야." "나 힘도 쎈데." 누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제이크아저씨에게 검한자루를 건네받고는 조 금 힘을 주는가 싶더니 그대로 부러트렸다. 역시 무식한 힘의 소유자. "내 검..." "미안해요. 제가 더 좋은검으로 하나 구해드릴께요." 제이크아저씨는 누나가 검을 부러트렸다는 것보다 자신의 검이 허무하 게 부러졌다는데 더 큰 충격을 받은듯한다. 다른이들은...엄마빼고는 전부 입을 다물지 못하고 누나를 쳐다보았다. 누나는 자신만만하게 말 했다. "이제 아무문제 없죠?" "티아야...너 집에 돌아가고 싶지?" 그러나 우리 엄마의 무적최강필살기!! 집으로 강제 소환!! 누나는 불 만이 가득한 얼굴로 엄마를 쏘아보았지만 이건 누나의 완벽한 패배다. "어휴...저런 왈가닥을 데려갈 남자가 있을런지 이 엄마는 벌써부터 걱정이다."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젖는 엄마에게 제이크아저씨가 무언가 무진장 말을 하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이는데....옆에서 라이크씨가 필사적으 로 말리지 않았다면 혹시나 '제가 데려가겠습니다'라는 말을 듣게 되 는건 아닐지... 공작님은 손을 두어번 치면서 주위의 시선을 모으고는 말했다. "자자 밤이 깊었으니 회의는 이제 마치도록 하죠. 지금은 축제기간이 라 어수선해서 일을 치르기는 힘들테니 축제기간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시작하겠습니다. 세이르아님 죄송하지만 그때까지 머물러 주실수 있겠 습니까?" 엄마는 빙그레 웃으시며 말했다. "오늘 아침에도 말씀드렸지만 저의 아이를 보호해주신데 대한 은혜를 갚는 일입니다. 성공할때까지는 계속 머무를 생각이니 걱정마세요." "감사합니다. 그럼 테이군과 티아양은 이번일에 대해서는 이제 신경을 끊고 축제를 즐기도록 하세요. 원래 이 수도에 온 목적이 관광인걸로 알고 있으니깐요. 그렇죠 장미아가씨?" "으 그건 그렇지만..." 누나는 끝끝내 포기못하겠다는 얼굴이지만 엄마의 매서운 눈초리에 결 국 항복하여야 되었다. 공작님은 말씀대로 잠시 잊고 있었지만 우리는 원래 관광을 목적으로 인간세상에 나왔던 것이다. 그게 어쩌다가-뭐 거의 내탓인가?- 이런 사건에 끼어들게 되었지만 그래도 즐길건 즐겨야지. "자 그럼 이만 일어나도록 하죠. 티아와 테이는 내일도 재미있는데 많 이 구경시켜줄께 아 그리고 내일은 여자들의 거리에 가보자." "여자들의 거리?" "후후후 우리 다이리도시의 축제중 명물로 통하는 여자들의 거리 기대 해도 될꺼야. 자세한건 내일 가르쳐줄께 그럼 내일 보자." 레이나누나가 일어나면서 이야기하자 그제서야 다른 이들도 하나둘씩 일어나면서 길고 긴 회의는 끝나게 되었다. 그나저나 여자들의 거리? 말그대로 여자들만 사는 동네인가? 뭐 내일이 되면 알 수 있겠지. 드래곤 남매 5화 남자의 자존심은 그렇게...(5) 지저귀는 새소리 포근한 아침햇살 푹신푹신한 고급침대의 기분좋은 느 낌 그렇게 아침이 또 밝아왔다. 그런데 말이야...왜 또 누나가 내 옆에 자고 있냔 말이야!! 누나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내 목을 끌어앉은체 색색거리는 숨결을 내 머리에 불어되었다. 그리고 하아 이제는 하도 당해서(?) 별 느낌조차 안드는 누나의 가슴 이 내 얼굴을 누르고 있다. 난 가만히 누워서 혹시나 누나가 몽유병이 있는건 아닌지에 대해서 심 각하게 고민해보았다. "으응..." 잠시 몸을 뒤척이나 쉽더니 누나가 일어나는 것 같은 기척이 느껴졌 다. "아함 잘잤다. 테이야. 테이야? 음 아직 자고 있나?" 왜 내가 자는척하고 있어야 되는거지? 난 나쁜짓(?)하다 들킨 아이마냥 자는척을 하게되었다. 실은 당장에 일어나서 왜 밤마다 내 침대에 들어와서 자냐고 따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웬지 그렇게 물었다가는 신변의 위협을 느끼게 될 것 같아서 얌전히 자는척하기로 하였다. 쪽 휴우 이번에는 하도 당해서 역시 아무 느낌도 안오는 모닝키스인가... "일어나렴 귀여운 내 동생." 다 닭살 돋는다아!! 이 상황도 한두번 겪다보니 패닉상태로 빠지는 상 황은 면했지만 대신 온몸에 닭살이 돋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러다가 닭 되겠다. "흐음...잠꾸러기 테이씨 일어나세요." "......" 무념무상 무념무상 무념무상 난 아무것도 안들린다아! "테이야 아침이야 일어나." "......" "맞고 일어날레 그냥 일어날레 아니면 그대로 죽을레?" "으아악 일어나면 되잖아 일어나면!" 누나는 급히 내가 일어나는걸 보고는 역시나 자는척했구나 하는 눈빛 으로 날 쳐다보며 씩 웃었다. 역시나 내가 자는척 하고 있었다는 걸 알고 있었군. 것보다 옆에 만들어둔 아이스 미사일이나 없애주면 안되 나? 누나는 아이스 미사일을 소멸시키고는 침대에서 일어나서 방문으 로 총총히 걸어나가다가 나를 보면서 말했다. "얼른 씻고 준비해. 이따가 식당에서 보자." "......." "대답은?" "네에..." 누나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작은 웃음소리만을 남기고 나가 버렸다. 나는....씻자 씻고나서 개운한 마음으로 누나때문에 흐트러진 정신이 나 챙기자... 아침식사를 마치고 레이나누나는 평소처럼 티아누나를 데리고 이것저 것 드레스를 고르면서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었고, 이르누나는 평소 입던 수수한 원피스대신 약간 수수한 드레스로 갈아입은 상태였다. 오늘은 여자들의 거리에 놀러가기 때문에 이르누나도 어쩔수 없이 드 레스를 입게 되었단다. 레이나누나는 여전히 이르에게 몸치장을 더 할것을 권했지만 이르누나 는 이 이상은 죽어도 싫다고 버티고 있는 중이었다. "이르 아무리 생각해도 이 녹색드레스가 더 어울린다니깐." "글쎄 그건 너무 화려해서 싫다니깐요." "레이나언니 귀걸이는 이쪽꺼?" "아니 그거말고 옆에 하트모양. 이르 그러면 제발 장신구라도 달자 응 ? 그 드레스에도 어울리는 장신구가 있단 말이야." "장신구라면 이미 했잖아요." "겨우 브르치 하나 달았잖아." "언니 이 목걸이보다는 이쪽게 이 드레스에 더 잘 어울리지 않을까?" "응? 티아야 아니야 그 목걸이는 귀걸이랑 한세트라서 같이 해야돼." "하지만 이 드레스랑은 별로 안어울리는 것 같은데..." "그거는 소형목걸이를 위에다가 하나 더 걸치면 돼. 이걸로 달아봐. 아 그래 이르도 이 목걸이 어때?" "답답해서 싫어요." "아앙 이르 제발부탁이야 응? 응? 응?" "나야말로 부탁이니 그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공격(?)하지 말아요!" "언니 다했어." "그래 그렇다면 나 좀 도와줘." "뭘?" "이르에게 장신구 달게 만들기." "협력할께." "티아 협력하지 말아요!" 하아 정말이지 옆에서 듣고 있는 내가 다 정신이 없다. 여자들은 뭐 그렇게 달게(?)많고 입을게 많고 또 찍어바르는게 많은지... 요 이틀간 이런 공방전(?)을 겪다보니 남자로 태어난게 이렇게 다행이 라는 생각을 거듭 들게 만들었다. 이르누나는 레이나누나와 티아누나의 연합공격에 결국 무너지고는 울 며겨자먹로 귀걸이랑 목걸이를 착용하고 있었다. 겨우 진정이 되는 것 같아서 궁금했던걸 물을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저기요." "응? 테이야 왜?" "여자들의 거리라는게 대체 뭐예요?" "아아 그거. 여기 다이리수도의 축제명물중의 하나야 동쪽지구 거리를 오늘 하루 통체로 오직 여자들만 들어갈수 있는 축제의 거리를 만드는 행사야 오늘 하루는 어떤 그 어떤 남자도 그 거리에는 출입금지야. 오 직 여자들만 모여서 노는거지." "잠깐만요. 그럼 난 못들어가잖아요." "아 깜박했군요. 테이는 남자였죠." 이 이르누나 테이는 남자였죠라뇨. 내가 언제 여자같이 군적 있어요? "괜찮아 괜찮아. 테이는 귀여우니깐 통과시켜줄꺼야." "........." "........" 아무도 말을 꺼낼수 없는 썰렁한 공기가 감돌때 가장 정신력이 강한 티아누나가 간신히 말을 꺼냈다. "지금 그 말 진심으로 하는 소리예요? 언니." "응? 안될꺼 뭐 있겠어. 어린 동생을 혼자 집에 놔둘 수 없어서 데려 왔다고 하면 되잖아." "하아 레이나 이 행사는 설령 일국의 왕일지라도 출입금지라는거 레이 나가 더 잘 알잖아요. 테이는 엔드르씨와 제이크씨 라이크씨와 같이 다니게 하죠. 지금이라도 엔드르씨를 부르면 점심때쯤 오실테니깐요." "하지만 테이도 데려가고 싶은데...정말 재미있는 구경거리도 많고 꼭 보여주고 싶은것도 있는데..." 제발 참아주세요 레이나누나 전 청일점이 되는건 결단코 사양입니다. 난 침묵으로 강하게 부정의 표시를 내비쳤고, 이르누나는 날 데려갈수 는 없다고 레이나누나를 설득중이었다. 그때까지 잠자코 있던 티아누나가 갑자기 손을 탁 치면서 말했다. "아 좋은생각이 났다." 불안하다... "응? 티아야 무슨생각? 테이도 데려갈수 있는 방법이 생각난거야?" 정말 불안해진다...레이나누나의 질문에 자신만만하게 웃음짓는 저 누 나의 미소는 분명히 날 이런방법으로 괴롭히면 재미있겠다고 짓는 바 로 그 미소다. "응. 레이나언니 테이와 난 쌍둥이라서 닮았잖아." "응? 그야 쌍둥이니깐 근데 그게 왜?" 난 여기서 도망쳐야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서 슬며시 뒷걸음질 쳤 다. 그러나 누나는 내 행동을 눈치채고는 재빠르게 내 뒷덜미를 나꿔 채서 씩 웃으며 말했다. "어딜 갈려고 테이야. 언니 어차피 나랑 똑같이 생겼으니깐 테이에게 여자옷 입히면 테이를 남자로 볼 사람 있을까?" "아 아 맞다 여장! 그 방법이 있었구나." "싫어~~~~~!" 내 그럴줄 알았어. 지난 300년간 누나와 관계된 불길한 예감은 결코 틀린적이 없다니깐. 난 어떻게든 빠져나가야 된다는 생각에 필사적으 로 머리를 굴리면서 반항했다. "내가 여장이 어울릴리가 없잖아!" "나랑 닮은 얼굴인데 안어울리가 없잖아." "맞아 테이야 이 누나가 예쁘게 꾸며줄께." 내 귀에는 예쁘게라는 말이 무지 강조되서 들리는 듯한데 착각일까? 아무튼 여기서 얌전히 여자옷따위 입을까보냐. "난 가슴도 없단말이야 근데 어떻게 드레스를 입어." "가슴작을때 입는 드레스도 있어. 걱정마렴." "아니 언니 그것보다 폴리모프로 가슴을 만들면 되지 않을까?" "아 그러면 되겠다. 역시 마법이란 편리하구나. 그래 이왕이면 머리카 락도 길게 만들수 있을까?" "당연하지. 내 머리카락이랑 똑같은 크기로 만들어줄께." 이거 점점 더 내가 내 무덤을 파는 기분이 드는것 같다. 난 유일하게 내편을 들어줄 -것 같은- 이르누나에게 애원의 눈길을 보냈다. 이 방 법 안통하면 난 정말 끝이다. 최대한으로 애절하게 보여야돼! 그러나 내 애절한 눈빛에 돌아온 대답은... '지금 레이나 상태는 말리는건 불가능해요. 티아님도 마찬가지 같고 요.' 라는 뜻을 담은 어쩔수 없다는 이르누나의 눈빛이었다. 한마디로 지금 내 상태는 절.망.적이다. "언니 이왕이면 내가 입은거랑 비슷한 스타일로 부탁해." "응 맡겨만둬. 최고로 예쁜 드레스와 코디로 최고로 귀여운 쌍둥이 자 매로 만들어줄께 ." "자 그럼 테이야 이제 옷 벗을 시간이다." "아악 누나 하지마 하지마!" 누나의 그 우악스런 힘이 지금 내 몸에서 옷을 하나 둘 벗겨가고 있었 다. 안돼 안돼 자존심이...남자의 자존심이!!! 내 남자의 자존심은 그날 그렇게 무너져갔다. 드래곤 남매 5화 남자의 자존심은 그렇게...(6) 레드포머 공작가 저택의 수련장에서 제이크는 어제밤에 티아에게 받은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티아가 부러트린 자신의 검 대신이라면서 갖다 준 검이었다. 그가 검을 이리저리 휘드를때마다 은색의 검광이 허공을 수놓았고 동 시에 주위의 공기가 조금씩 얼어가는 것만 같았다. 차갑도록 시린 검광을 품은 마법의 검. 티아가 갖다준 검은 몇만골드 를 주고도 못 구한다는 마법이 걸려있는 검이었다. 어젯밤 이 검을 받았을때 제이크는 놀란눈으로 정말 이 검을 받아도 되냐고 묻자 티아는 생긋 웃으면서 자신에게 가지라고 말했다. 거기다가 덧붙여서 "만약 내가 위험해지면 이 검으로 날 구하러 와주기예요." 라고 말하면서 환하게 웃어주었다. 이 세상 그 어떤 남자가 그녀의 그 아름다운 미소에 싫어요.따위의 말 을 할 수 있을까? 제이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 검을 받았었다. 몇번 검을 휘두르던 제이크는 마지막으로 나무말뚝을 과녁삼아 힘있게 검을 휘둘렀다. 제법 굵직한 나무말둑은 수수깡인냥 싹둑 짤려나갔고 잘려나간 부위는 새하얀서리가 끼여있었다. "거참 지혈효과 하나는 짱인 검이겠군." 제이크는 검을 이리저리 흩어보다가 검날에 살며시 손을 대보았다. "앗 차." 역시나 생각대로 검날은 무척 차가웠다. 검날은 손을 대기도 겁이 날 정도로 차가운데 손잡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검이었다. 정말이지 이 정도 위력이라면 이름있는 마검같은데 이런 귀한검을 선 듯 이렇게 받아도 되는건가 하는 의문이 다시 들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왕 쓰게 된거 검 이름이 있을까? 있다면 어떤 이 름일까 하는 궁금증도 들었다. "이거 다시한번 아가씨에게 물어봐야 되겠군. 이왕이면 검 이름도 알 아야 겠고..." 그렇게 마음먹고 뒤로 돌아서자 마침 문을 열고 나오는 티아가 보였 다. 타이밍 하나는 기가막히게 맞추는 아가씨라고 중얼대면서 제이크 는 티아에게 다가갔다. 티아도 제이크에게 볼일이 있었는지 제이크에 게 다가왔다. 그런데 걸음걸이가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 어딘가 위태위태한 것 같기도 하고 조심스러워 하는 것 같기도 하였 다. 왜 저러시지? 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티아의 거동이 불편해 보였다. 티아는 오늘 여자들의 거리라는 축제에 간다고 제법 신경써서 옷을 입 었는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푸른색의 어깨가 노출된 스타일의 드레스로 그렇게 야해보이지도 않으 면서도 매력이 넘치는 느낌을 주는 스타일이었다. 그리고 허리까지 찰 랑거리는 은발을 하얀별모양의 다이아몬드가 박힌 검은색의 머리핀으 로 양쪽으로 고정시키고 길게 늘어트리고 있었고 귀걸이와 목걸이는 같은 하트모양의 루비였다. 뭐 코디야 어찌되었던간에 더욱더 중요한것은 지금 티아는 평소와는 다르게 얼굴을 붉히고 있다는 것이엇다. 어느새 마주보게 될 정도로 가까워진 두명은 남자쪽은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에 입을 열지 못했고, 여자쪽은 뭐가 그리 부끄러운지 고개를 숙여버려 결국 가까이 와놓고도 아무말도 못하는 연애의 생짜 초보의 모습을 연출해보였다. '이거 내가 왜 이러지 플레이 보이라는 이름이 울겠다.' 제이크는 마음을 잡고는 입을 열었다. "저...." "저...." 동시에 말을 꺼내놓고 흠칫거리다가 다시 침묵에 들어간다는 생짜초보 연인들의 법칙을 훌륭하게 지키고 있는 두명중 남자는 머리를 긁적이 며 시선을 돌렸고, 여자는 아예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서 고개를 숙여 붉어진 얼굴을 감추었다. 제이크는 유난히 심장이 크게 두근되는것을 느꼈다.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여자들을 꼬시고 차 한잔에서 침대로라는 공식을 충실히 지켜온 플레이보이 제이크로서는 처음 느껴보는 감정을 어떻게 다루어야 될지 알수가 없었다. 더구나 지금 자신의 앞에 서 있는 티아는 어제 자신에게 검을 줄때부 터 웬지 의미가 있는 말을 했었던터라 지금 티아의 행동으로 티아가 무슨말을 할려고 하는지 충분히 짐작이 갔다. "저....무슨말을 할려고 하셨죠." 자신의 짐작이 짐작으로만 끝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제이크는 확인을 위한 차원으로 입을 열었다. "아 저기...제이크 아..가 아니고 제이크씨부터...말하세요." "아 아뇨 전 그다지 중요한 볼일이 아니어서..." "아 저 저는 그게...." 제이크는 절로 침이 꿀꺽 넘어갔다. 그 소리가 너무 크게 들리는 듯해 서 혹시나 티아가 듣고 다음에 이야기할께요라는 말만 남기고 돌아서 게 만들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제이크의 걱정과는 달리 티아는 그 자리에 서서 조용히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용기를 내기 위한 행동인가? 제이크는 문득 그런 티아가 무진 장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티아는 몇번 심호흡을 하더니 용기가 났 는지 제이크를 쳐다보며 굳은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아 아 드디어 티아아가씨에게서 사랑의 고백을 듣게 되는 날이 왔구 나.' "미 미안해요!" "예?" 사랑의 고백과는 약간 거리가 먼 단어가 나오자 제이크는 순간 어안이 벙벙해졌다. 미안하다니 도대체 뭐가 미안하다는건가? "아 아니 그게 아니고...." "예?" "그 그러니깐...조 좋아해요. 그...그래서...저기 미안해요." "예~에?" 제이크의 머리는 더욱더 혼란해졌다. 좋아한다는건 고백이 분명한데 그래서 미안하다니 도대체 뭐가 미안하다는거란 말인가? 간신히 고백(?)의 말을 내뱉은 티아는 내성적인 여자처럼 눈물을 그렁 거렸다. 평소에 보아오던 티아와는 확실히 무언가 차이가 났다. '역시 사랑을 하는 여자는 극단적으로 성격이 변한다니깐. 아니 그것 보다 도대체 뭐가 미안하다는거지? 혹시 나랑 신분차이가 나서 부모님 이 허락안해주니깐 그게 미안하다는건가?' 확실히 가능성이 있는 가설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자신이 노골적으로 티아에게 접근하면 노골적으로 차가 운 시선을 보내는게 티아의 어머니였으니깐. 혹시 그 일을 대신 사과하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자 제이크는 그정도야 뭐 어때서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은 그런 장애정도는 극복할 자신 이 있었다. "티아아가씨 전 괜찮으니깐 걱정마세요. 반드시 당신의 부모님을 설득 해보이겠습니다." "예? 뭐 뭐가요?" '어라 그 이야기가 아니었나?' 그게 아니라면 도대체 뭐가 미안하다는거란 말인가? 혹시 어제 자신에 게 준 검이 실은 무진장 귀한 검이라 도로 가져가야되는거란 말인가? 그렇다면 미안하다는 말은 이해가 가지만 좋아한다는 고백을 같이 할 필요가 뭐란 말인가? 알수 없는게 여자의 마음이란 말이 있지만 플레 이보이 생활 어언10년 사춘기 시절부터 여자를 울리기 시작한 그로서 는 지금 티아가 무슨마음으로 자신에게 좋아한다는 말과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건지 도저히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결국 그는 티아의 심증을 추리하는 것을 포기하고 직접적으로 물어보 기로 하였다. "저기 티아아가씨 도대체 뭐가 미안하다는거죠? 좋아한다는 말은 분명 히 저를 좋아한다는 말이 맞죠? 그렇죠?" "아 아니 그게 아니고...힝 훌쩍...그러니깐. 히잉..." "아악 우 울지마세요." 지금까지 숫한 여자를 울려왔지만 아직 시작(?)도 안해본 티아의 눈물 은 보기 싫었다. 이왕 티아의 눈물을 볼바에는 자신에게 푹 빠져서 당 신없이는 못살아요 라는 대사와 함께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고 싶은게 제이크의 심정이었다. 그러니 지금은 필사적으로 울먹이는 티아를 달 래고 있을떼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누군가 보면 꼼짝없이 여자올리는 나쁜남자로 찍힐판이라 변명을 위해 서 그쪽으로 고개를 돌린 제이크는 크나큰 충격을 받고 굳어버렸다. 세명의 여자들이 쳐다보고 있었는데 다 아는 얼굴들이었다. 곤란한 표정의 엘프 이르와 웃음을 참고 있는 레이나...그리고...그리 고 레이나와 같이 터져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참고 있는 티아! 제이크는 자신의 앞에서 울먹이는 티아에게 시선을 돌려서 이리저리 세세하게 살펴보았다. 분명 티아였다. 그는 다시 이제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음을 참으려고 노력하는 여자 를 이모저모 따져보고 살펴보았다. 그녀 역시 티.아.였다. 앞에 있는 티아와 저기 서서 웃음을 참는 티아를 번갈아보면서 패닉상 태에 빠진 제이크의 의문을 해결해준건 앞에 있는 울먹이는 티아였다. "히잉 누나 부탁인데 이런 일 두번다시 시키지 마. 창피하단 말이야 히잉." '누 누나? 가만 티아에게 동생은 테이이고 지금 앞에 있는 티아가 저 기 있는 티아에게 누나라고 했으니깐 지금 앞에 있는 티아는 테이란 말인가?!' 무진장 복잡하게 보이는 생각을 간신히 정리한 제이크는 지금 자신의 앞에 울먹이는 티아(테이?)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의문의 답을 구해보 았다. "저기....테이도련님입니까?" 끄덕끄덕 앞에 있는 티아(테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을 표했다. 간신히 웃음 을 참은 레이나가 손수건을 꺼내들고 와서 티아(테이)의 눈가를 찍으 면서 눈물을 닦아주고 있었다. 제이크는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테이도련님....은 여자였나요?" 제이크는 나름대로 정말 여자라면 테이아가씨라고 호칭을 고쳐야되지 않을까 하고 진지하게 고민까지 하면서 물었다. 그 고민은 필요없는 고민이었다. 테이가 소리를 빽 질러된것이다. "난 남자예요!" "그 그런가요? 그 그럼...그 머리카락이랑...가 가슴은 대체..." 테이는 가슴이라는 말에 얼굴이 확 붉히고는 고개를 숙여버렸다. 대신 제이크의 의문을 풀어준건 간신히 웃음을 참고 옆에 온 오리지널(?)티 아였다. "폴리모프예요. 뭐 남자치고는 호리호리한 체격의 테이라 몸전체를 다 안바꾸고 가슴과 머리카락만 변형시켰는데 어때요? 정말 나랑 닮았죠? 내 체형에 맞춰서 변형시킨거예요." "가 가슴말인가요?" "예? 아 예." 이번에는 티아가 가슴이라는 말에 얼굴을 약간 붉혔다. "정말 진짜같네요." "헤헤헤 내 실력으로 이정도면 가뿐하죠." "그러고 보니 크기도 똑같군요...감촉도 똑같은지 확인해봐도 될까요 ?" "윈디!" "라이트닝!" 제이크의 말이 끝나자마자 티아와 테이의 입에서 하급공격마법의 외침 이 터져나왔고, 제이크는 짜릿한 충격을 받으면서 바람에 날려서 뒤로 날아갔다. "무슨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거예요!" 격렬한 반응 이쪽이 틀림없는 진짜 티아가 맞았다. 제이크는 괜시레 웃음이 나와서 헤하고 웃으면서 툭툭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뭐가 우수워요. 변태아저씨." 티아가 입을 삐죽거리면서 변태라고 하는 말에 제이크의 미소는 쓴웃 음으로 변해버렸다. 제이크는 솔직히 말하기로 마음먹었다. "뭐 대충 상황은 이해가 갑니다. 테이도련님을 여자들의 거리에 데려 갈려고 여장을 시켰는데 티아아가씨랑 너무 닮았길레 어느정도 똑같은 지 시험해보려고 저에게 보내신거죠." 질문이 아닌 확인을 위한 말에 티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제이크씨가 마지막이었어요." 티아의 말에 지금쯤 저택안의 사람들도 패닉에 빠져있겠군 하는 생각 이 들었다. 제이크의 추리는 정확했다. 지금 저택안의 레드포머가 사 람들은 하인 하녀 그리고 공작과 그 귀부인 그리고 티아와 테이의 엄 마까지 패닉상태에 빠져있었다. 티아는 테이에게 반협박 아니 완벽한 협박으로 평소 자신이 안하던 짓을 시키게 만들고 어안이 벙벙해진 사 람앞에 자신이 모습을 짠하고 드러내서 패닉에 빠진 사람들의 모습을 즐겼던 것이었다. 첫 희생자는 불운하게도 라이크였다. 라이크는 갑자 기 당신을 좋아해요.라고 외치며 자신에게 안겨드는 티아(테이)에게 당황했고 곧이어 나타난 오리지널 티아가 자신에게 안겨있는 티아가 실은 테이예요 라는 말을 듣고 잠깐이지만 남.자.에게 마음이 두근거 렸던 자신에게 심한 회의감이 들어서 아침부터 술잔을 훌쩍이고 있었 다. 그밖에 기타 하인들도 마찬가지 상황이었고, 하녀들에게는 위험한 (?) 상상의 나래를 펴게 만들었으니 첫날 티아가 정원을 초토화 시킨 것과는 다른 의미로 레드포머가를 또 한번 초토화 시킨것이다. 그나저나 뻔히 자신의 집 사람들이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는 것을 알면 서도 말리지 않고 같이 즐긴 레이나는 과연 무슨생각인지... 갑자기 레드포머 공작가의 앞날이 불투명해지는 것 같았다. "자자 그것보다 어때요? 제이크씨. 저랑 테이 이러고 있으니깐 정말 쌍둥이 자매같죠." 레이나가 눈물을 다 닦아주자 티아는 테이의 손을 붙자고 테이의 뺨에 자신의 뺨을 갖다대고 서비스(?)포즈를 취해주었다. 아까는 혼란스러워 몰랐는데 지금 티아는 옷 색깔만 녹색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드레스부터 장신구 머리스타일 심지어 구두까지 테이와 똑같 은 스타일이었다. 옷 스타일 똑같고 얼굴 똑같고 체형까지 똑같은 쌍 둥이 자매(?)의 포즈는 정말 환상적인 그림이었다. 제이크는 방금전까지와는 다른의미로 멍하니 둘을 쳐다보았고, 티아는 또 아무말도 안하고 멍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제이크에게 약간 짜증을 느껴서 제촉했다. "제이크씨 어떠냐니깐요. 감상 말해주셔야지요." "가 감상이요?" "네 어때요 티아와 테이 정말 예쁘죠." 옆에서 레이나가 거들면서 물었다. 확실히 예뻣다. 그러나 제이크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전혀 엉뚱한 말이었다. "이 참에 취향을 바꾸고 싶을정도네요. 일명 2인 플레이라는..." "윈디x2" 자업자득 입이 웬수다라는 말은 이럴때 쓰라고 만든 말일것이다. 쌍둥이 자매(?)의 두배파워의 바람마법에 제이크는 데굴데굴 굴러서 근처 나무에 쿵 소리를 내면서 머리를 박고 말았다. "바보 제이크씨 변태 중년남 흥이예요! 언니 얼른 가요." "으 응." 흥흥거리면서 앞장서는 티아, 말은 안하고 있지만 화가 났다는 표정으 로 얼굴 한가득 부은 테이가 뒤를 따랐고, 레이나는 날려간 제이크와 앞서걸어가는 티아와 테이사이에서 안절부절 못하다가 곧 둘을 따라갔 다.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넷중에서 제일 예의바른 이르가 제이크에게 사과를 하고는 뒤따라갔 다. 조용하고 평화롭던 레드포머가의 아침을 일순간에 뒤흔들어 놓은 세여자와 가슴까지 달고 있어 이제 남자라고 부르기에는 약간 무리가 따르는 중성(?) 한명은 자신들이 저지른 일들을 수습할 생각도 안하고 그야말로 무책임하게 축제구경에 나섰다. 드래곤 남매 5화 남자의 자존심은 그렇게...(7) "우와 저기 저 여자들 좀 봐. 너무 예쁘다." "어머 저 둘은 쌍둥이인가봐." "어쩜 자매 둘이 스타일까지 똑같네. 너무 귀엽다." "그러게 납치해서 내 동생삼고 싶을 정도야." "호호호 그냥 콱 납치하지 그러니." "어머 정말 그래볼까?" 제발 참아주었으면 좋겠는데.... 지금 저 인간여자들은 저희들끼리 수근댄다고 우리한테 안들린다고 생 각하는가 본데 여기에는 드래곤 두명에 엘프 한명이 있어서 대화내용 이 아주 자아알 들린다는 사실을 알리없겠지... 여자들의 거리까지 와서 마차에 내리자마자 우리 일행은 가는곳마다 주위 여자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뭐 이르누나는 엘프니만큼 아무리 우리넷중에서 가장 수수한 옷을 입 었다고는 하지만 엘프특유의 신비스런 아름다움을 감추지 못하고 온몸 으로 발사하고 있었고, 레이나누나는 인간중에서도 꽤나 아름다운편에 속하는데다 공작가 따님답게 기품이 넘쳐흘러서 이목을 집중시키는데 한몫을했다. 그러나 그 둘의 아름다움을 가볍게 제압해버리는 것은 슬 프게도 우리 남매(?)였다. 인정하기 싫지만 누나와 나는 정말 닮아....아니 아예 붕어빵같이 똑. 같.은데다가 미모도 옆의 두 누나와 비교해서 더하면 더했지 결코 떨 어지지 않는 미모를 가지고 있었기에 더욱더 다른 여자들의 이목을 집 중시키는데 크나큰 공헌을 하였다. 주위 여자들의 수근거림이 들리지 않는 레이나누나는 그저 여자들이 수근대는 것만 보는 것만으로 무슨소리들을 하는지 알겠다는 표정을 짓고는 우리둘을 보면서 속삭였다. "테이를 여장시키길 너무 잘했다. 너희들 완전히 인기폭팔인걸." 난 다른의미(?)로 여자들에게 시선을 끈다는게 달갑지 않아서 대답을 안했지만 티아누나는 정말 즐거운지 레이나누나에게 대답했다. "정말 그렇네요. 호호호 그냥 테이를 축제기간내내 여장시켜서 데리고 다녀도 되겠어요." "나 난 절대 싫어! 오늘 하루뿐이야!" 나의 결사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레이나누나와 티아누나는 벌써 내일 은 뭘 입힐까 고민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도대체 이 여자들은 남자의 자존심을 얼마나 뭉개버려야 속이 시원한 거야? 개중에는 나처럼 -인정하기 싫지만- 여장이 어울리는 남자가 있 고, 그걸 자랑으로 삼아서 혹은 취미로 아니면 생계수단(?)으로 사용 하는자들이 있다지만 난 그런 특정분류 남자들과 명백히 틀린 오리지널 건장한 남.자란 사실을 왜 몰라주는거란 말인가? 한숨을 푹푹 쉬는 내가 불쌍해 보였는지 이르는 여기저기 둘러보면서 내가 흥미를 끌만한 구경거리들을 가르키며 내 기분을 풀어줄려고 노 력하고 있었다. '에휴 이르누나밖에 없네. 날 생각해주는건.' 유일한 내편-비록힘은 일행중에서 제일없지만-인 이르누나의 마음씀씀 이가 고마워서 난 되도록 분위기에 맞춰서 즐겁게 이곳저곳을 구경하 면서 즐겼다. 오해는 말기 바란다. 축제구경을 즐겼다는거지 여장을 즐겼다는건 절대 아니다. 여자들의 거리는 다이리여왕때부터 만들어졌다고 한다. 제국내에서 남자들이 가족과 나라를 지킨다면 그 뒷바라지를 하는 여 자들의 노고도 만만치 않기에 여자들을 위한 여자들만의 스트레소 해 소공간이 필요하다는 여왕의 명령에 따라 만들어진 축제행사로 이제는 이곳 수도 다이리축제의 명물로 자리잡게 되었다고 한다. 오늘 하루 이 거리에서 정말 남자라고는 코빼기도 보지 못했다. 오직 여자들만 거닐면서 여자들을 위해서 마련된 각종 놀이거리와 행 사 그리고 여성품등을 싸게 팔거나 혹은 경매가 열리는등 정말 모든행 사는 철저하게 여성들을 위한 행사였고, 이곳 치안을 오늘하루 담당하 는것은 여자기사들이었다. 주위에는 온통 여자여자여자 뿐이다보니.... '으으 머리 어지러워.' 여자들이 뿌리고 다니는 각종향수냄새때문에 머리가 어질어질거렸다. 내 상태를 눈치챈 레이나누나는 근천 노천카페로 데려가서 날 앉게 해 주었다. 그리고 내 옆에 앉아서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괜찮니 테이야?" "힝 안 괜찮아요. 여자들은 왜 그런 독한냄새가 나는 향수를 뿌리고 다니는거예요? 골치가 찌근거려요. 힝." "그거야 남자를 유혹하기 위해서지." 너무나 직설적인 지적에 날 위로해주려고 말을 꺼내던 레이나누나와 이르누나는 굳어버렸다. 하여튼 티아누나에게 과연 수치심이라는게 눈꼽만치라도 있는지 의심 이 들게 만드는 발언이었다. "티아야. 꼭 남자를 유혹할려고 뿌리고 다니는건 아니잖아." 손수건으로 땀을 닦으면서 어색한 미소로 변명하는 레이나누나에게 티 아누나는 지지않겠다는듯이 말로 밀어붙였다. "그럼 테이말을 빌리면 왜 그렇게 독한향수를 뿌리고 다니는거예요? 그런 향기로 여자들에게 잘보이려고 하는건 이상한 여자일테고 아무도 맡아주지 않을 향수를 굳이 뿌리는건 바보짓이잖아요. 남자들에게 한 번이라도 더 시선을 끌어보기 위한 여자들의 무기중 하나가 향수이고 시선끌기는 결국 절 꼬셔주세요 하는거나 마찬가지잖아요. 그냥 기분 삼아? 남들 다하니깐? 이런 이유로 향수뿌리고 다니는 여자들은 향수 사는 돈만 낭비하는 머리 빈 여자들이라고 생각해요. 땀냄새 같은걸 감추기 위한 여자라도 꼭 그렇게 비싸고 고급인 향수를 사용할 필요는 없잖아요. 제 말이 틀렸나요?" "그 그게 그러니깐....져 졌다." 티아누나의 한판승이었다. 티아누나를 말로서 이길려고 하다니...나야 워낙에 많이 당해봐서 지금 레이나누나의 참담한 기분을 여실히 느낄 수 있을껏 같았다. 티아누나는 아픈데를 콕콕 찌르거나 반론의 여지가 없게 직설적으로 문제를 지적해서 절대로 반론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 리고 설사 반론을 한다손 치더라도 그 반론의 두배세배는 넘는 양의 독설이 쏟아지고 최후의 무기인 그 넘의 무식한 힘까지 뒤에 버티고 있기때문에 말싸움이든 그냥 싸움이든 누나를 이겨본적이 없는 나였 다. 결코 자랑할 거리는 아니군..... 이르누나는 그 사이에 어느새 주문을 해주어서 난 내 앞에 놓여진 시 원한 과일쥬스를 마시면서 주위를 천천히 돌아보았다. 어느정도 향수냄새에 익숙해져서 머리아픈건 많이 나아 있었다. 색색별의 드레스를 입은 여자들이 지나다녔고, 간간히 여행을 하다가 들렸는지 여행복 차림의 여자들도 눈에 띠었다. 그리고... "어 엘프들이네요." 내가 깜작 놀라서 손으로 가리킨쪽에는 몇명의 여자엘프들이 구경을 하면서 지나다니고 있었다. "응 그래 인간들이 연 축제지만 타 종족도 가끔식 구경하러 온단다." 레이나누나의 설명에 난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런자리에서 이런말 하 기는 뭐하지만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엘프를 노예로 잡아간다는 도시에 용케 엘프들이 돌아다니는네요." 나의 직설적인 지적에-이런 나도 누나 닮아가나보다-이르누나와 레이 나누나의 표정이 삽시간에 어두워졌다. 티아누나는 내 생각에 동조한 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해볼것을 눈으로 요구했다. 한숨을 쉬며 먼저 입을 연것은 레이나누나였다. "타종족을 노예로 삼던 시절은 백여년전에 엘프와의 전면전쟁뒤로 완 전히 사라졌어. 법으로도 노예밀매는 금지되었고...어디까지나 표면적 으로지만..." "음성적으로는 얼마든지 선행되고 있다는 말이군요." 티아누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레이나누나의 얼굴은 한층 더 어두 워 지면서 말을 이었다. "이번 이르의 일로 조사하던중에 알아낸 것 중에서 충격적인 것은 일 부 고급귀족들중 몇몇은 아예 노예상인들의 뒤를 봐주면서 뒷돈을 받 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냈어. 그 중 몇명은 이름까지 확인된 상태야." "그럼 왜 잡아가질 않는거죠?" "그들의 권력이 쉽게 손을 대기에는 어려운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대 부분이야. 특히 그 중심적인 위치에 있는것은 바로 이번일의 주모자인 로헨타이 공작가였기에 더욱 신중하게 일을 진행시킬 수밖에 없어. 그 렇다고 잡혀서 팔려가는 엘프들을 그냥 놔둘수가 없어서 노예상인들이 라도 검거해서 재판에 회부하긴 했지만 하나같이 아래 하위조직들만 잡았고, 고위조직은 로헨타이 공작가의 입김때문에 접근도 할수가 없 었어. 아니 설사 잡았다손 치더라도 어떤 치사한 수법을 써서라도 풀 어주었을꺼야. 결정적인 증거를 잡아서 대외적으로 로헨타이 가문의 명예를 떨어트리기 전에는 이 악습은 고쳐지지 않겠지." 레이나누나는 자신의 앞에 놓인 쥬스잔을 만지작거리면서 침울해졌다. 그런 레이나누나 대신 이르누나가 부연설명을 더 해주었다. "저도 레이나의 도움을 받아서 근처 엘프마을에 경고를 했었어요. 엘 프들도 다시 전쟁이 일어나는걸 원하지 않기에 마을의 방어도 좀더 철 저히 하고 여행을 가는 엘프들도 충분히 주의하도록 교육을 시키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해결되지 않고 이대로 가다가는 언제 다시 백여년전 의 비극적인 전쟁이 일어나지 말란 법이 없습니다." "그래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너희들을 만난것은 크나큰 행운이야. 후 후후 테이의 불행이 설마 우리에게 행운을 안겨주게 될줄은 몰랐어. 처음 봤을때는 그저 엄마 잃어버리고 울던 불쌍한 아이로밖에 안보였 는데." "우 울었다는 말은 좀 빼죠." 하지만 이미 늦었다. "호오 역시나 테이 너 울고 있었구나. 내 그럴줄 알았지." 으윽 그렇게 누나가 집요하게 길 잃어버리고 울었지라는 질문에 안울 었다고 버티겼었는데 설마 이런데서 들통날줄이야... 이것으로 미아가 되서 울었다는 약점을 새로이 누나에게 제공해준 꼴 밖에 되지 않잖아. 누나라면 이것갖고 한 100여년은 날 괴롭혀 되겠지. 아아 앞날이 캄캄 해진다. 난 레이나누나에게 따지고 들고 싶지만 분위기가 착 가라앉은 상황에 서 도저히 왜 그런것까지 말해서 곤란하게 만드냐는 말을 꺼낼 분위기 가 아니었다. 더구나 이런 상황을 연출하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나였 기에 더욱 더 말을 따질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할 수 없다. 어차피 이런 일이 한두번인가 그냥 내 무덤 팟다고 생각 하고 이 건은 포기할 수 밖에... 아무튼 이런 좋은 날씨에 더구나 축제중에 이런 분위기는 결단코 어울 리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만들었으니 책임도 내가 져야겠지. 그렇게 결단을 내리고는 난 눈물을 삼키고 일을 실행하였다. "너무 걱정들 마세요. 우리 엄마는 정말 마법이 뛰어나시니깐 이번일 을 잘 해결해주실 수 있어요. 그러니깐 축제에 나왔으니 축제를 즐겨 야지요. 그렇지 않아요." 후우 잠시 심호흡 한번 하고....흑 정말 싫은데... "저 이제 머리아픈거 괜찮아졌으니 구경하러 가요. 네 언.니.들." 나의 마지막 최후의 자존심을 버린 결과는 훌륭하게 성공하였다. 레이나누나와 이르누나는 물론 티아누나까지 눈이 크게 떠져서 날 바 라보았다. "뭐 이왕 이렇게 차려입은거 계속 남자처럼 행세하면 보기 안좋잖아 요. 그러니깐 오늘 하루는 막내여.동.생 테이루아가 되어드릴테니 즐 겁게 놀아요. 네 언.니.들." 크하하하하 막내여동생이라...그래 이왕 버린 몸(?) 더 버린다고 어떻 게 될라고 이런 내 눈물겨운 노력으로 내가 가라앉혀버린 분위기를 다 시 띄울수 있다면 정말 여동생이 되주지. 누나들...아니지 할려면 확실하게 언니들은 나의 의도를 알아채고는 생긋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아 우리 귀여운 여동생 테이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오늘 하루 정 말 신나게 놀아봐야지 그렇지 티아야." "당연하지 언니. 자 그럼 안내는 언니에게 맡길께요. 오늘 하루 기억 에 남는 추억으로 만들자고요. 음 그런데 여동생 테이라...이름이 안 이뻐. 남자이름같잖아." 당연히 내가 남자니깐 그렇지! 이거 내가 괜한짓 한거 아닐까 하는 생 각이 스쳐지나간다. 하지만 이미 업질러진 물이니 어떻게 흘러갈지를 지켜보는 수밖에...흑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다. "루아가 어떨까요? 테이루아니깐 뒤에 두자를 애칭으로 붙이면 되지 않을까요?" "아니예요 이르. 나도 티아루아인데 같은 루아를 쓰면서 테이만 이 애 칭을 쓰게 만들수는 없잖아요." "그래 아예 귀여운 이름을 새로 만들어버리자." "좋은생각이야 레이나언니." 그리고 세명의 여자들은 나의 새로운 애칭및 이름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면서 걸어갔다. 나 잘한거 맞지? 분위기를 밝게 바꾸어 놓았으니 분명 내 희생이 쓸모 없진 않았을꺼다. 그런데 왜? 왜 이렇게 눈물이 날 것 같을까? 난 속으로 눈물을 삼키면서 뒤를 따라갔다. 이후의 일이 어떻게 진행 될지도 모른체.... "수많은 아가씨들을 제치고 본선까지 오른 8명의 아가씨들중 올해의 미 스 다이리. 대상. 대상은....놀랍게도 두명의 아가씨가 뽑혔습니다. 티 아루아 레아루아 쌍둥이 자매입니다." "와아아아아아아!" 떠날갈듯한 함성이 광장에 가득히 올려퍼졌다. 대부분 남자들의 열광 섞인 함성을 들으면서 난 어색하게 웃으면서 옆에 서있는 티아누나와 함께 손을 흔들었다. 흑 어찌된거냐 하면 어제 내가 쓸데없는 말을 한 덕분에 즐거워야 할 축제구경이 갑자기 우중충하게 되어서 분위기 바꾼답시고 자존심 버려 가면서 언니라는 말까지 써가면서 완벽하게 여자가 되어서 즐겁게 놀 았다. 난 그때 분명 오늘 하루만이라고 했건만 오늘 아침 레이나누나 와 티아누나가 내 방으로 쳐들어오더니 내가 뭐라 말할틈도 안주고 드 레스로 갈아입혀버렸다. 그 일사불란한 행동으로 추측컨데 아예 오늘 하루 여자로 다시만들 작 정을 하고 어제부터 준비해왔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상태로 아침식사에 나가서 다시한번 레드포머공작가에 찬바 람을 일게 만들고 누나들 손에 이끌려 오게 된것이 미인뽑기대회였다. 뭐 정확한 명칭이 미스 다이리 어쩌고저쩌고였지만 그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건 내가 이 놈의 미인대회에 대상을 받았다는 것이 다. 쌍둥이 미녀라는 신비스런 메트리가 크게 작용한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명색이 남자가 미인대회 우승이라니... 남자로서의 회의가 팍팍 느껴져서 괴로운 기분이다. 혹시 인간들은 이 럼 기분을 잊으려고 술을 마시는걸까? 만약 그렇다면 나도 지금당장 술독에 빠지고 싶다. 창조신이여!! 차라리 날 여자로 만들지 그랬읍니까? 왜 하필 날 남자 로 만들었습니까? 왜에에?!!!!! 드래곤 남매 5화 남자의 자존심은 그렇게(8) 미인대회 우승을 한자는 수도를 한바퀴 돌면서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되는 행사가 있었다. 오픈마차(?)에 타고 수도한바퀴 도는 행사를 마치니 이미 해가 지고 있었다. 난 행사내내 누나옆에서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손 흔드는 것 밖에 안했는데도 다른 그 어떤 날보다도 힘이 쭉 빠지는 기분이었 다. "레아야 피곤하니?" 레이나누나는 어제 내가 여장일때 부르기로 한 애칭인 레아라고 부르 면서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지금 우리일행은 노천카페에서 쉬고 있는중이었다. 레이나누나 걱정대로 난 피곤해 죽을 지경이었다. 카페에서 쉬고 있는 와중에도 지나가는 남자들마다 우리에게 정확히는 나와 티아누나에게 말을 걸어왔고, 여자들은 꺅꺅거리면서 우리를 쳐다보면서 수근대었 다. 그 내용은...관두자 생각하면 할수록 피곤하다. 레이나누나는 내가 아예 대꾸도 안하니깐 안절부절 못하면서 물었다. "오늘 너무 많이 시달려서 그런가? 레아야 졸리니? 이제 그만 집에 갈 까?" 난 힘없이 고개를 들어서 제발 그래달라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리 고 덧붙여서... "누나 우리끼리 있을때는 그냥 테이라고 불러주면 안될까요?" "얘는 언니라고 부르라고 했잖아. 그리고 지금 모습에는 레아라는 이 름이 더 어울리는데 왜 굳이 남자 이름으로 불리고 싶어하는거니?" "난 남자잖아요!" "지금은 여자잖아. 목소리 낮춰라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겠다." 티아누나의 말에 난 내 마지막 남은 이성의 끈 하나가 끊어지는 소리 가 들리는듯 했다. 누구때문에 내가 가슴까지 단 이상한 모습이 돼어 서 이 고생을 하게 되었는지 티아누나는 정녕 모른단 말인가? "무슨 상관이야! 난 더 이상 여자옷 안입을꺼야 절대 안입을꺼란 말이 야!" 발악을 하며 외쳐대는 내 모습을 보면서 세 여자들이 소근대는 소리가 내 귀에 정확하게 들렸다. "으음 역시 무리였나?" "잘 적응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속으로는 무지 참고 있었나봐요." "저기 이제 그만하죠. 레아 아 아니 테이가 불쌍해보일 정도예요." "에이 재미있었는데 그만둬야 되다니 아까워요." "나도 좀 아쉽다. 내일은 댄스파티에 데려갈려고 했는데." "댄스파티? 와 재미있겠다. 쌍둥이 미인자매가 나간다면 한 인기 끌수 있을텐데." "그렇지? 정말 아쉬워." 이 이 여자들은 날 이 꼴로 만든걸 정말 반성하고 있는걸까? 전혀 안 하고 있잖아. 난 기운이 쭉 빠지는 기분을 느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 다. "응 레아야 어디가니?" "화장실." "안돼. 숙녀는 화장실간다는 말을 직접하면 안돼." "그럼 뭐라고 해요?" "음 화장고치고 오겠다는 말을 하면 돼." 정말이지 여자란 존재는 무슨 자질구레한 일까지 신경 쓸게 이리 많단 말인가? 난 여자로 안태어난것에 무한한 감사를 함과 동시에 현재 이 런꼴이 된 내 운명을 저주하면서 화장실로 갈려고 할때 이르누나가 날 불렀다. "저 테이..가 아니라 레아." "왜요?" "아 저 저기....그러니깐....여자 화장실로 가세요." 내 얼굴은 단번에 확 붉어졌고, 레이나누나와 티아누나는 탁자에 고개 를 숙이고 어깨를 떨고 있었다.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고 있겠지. "알고있어요!" 난 소리를 꽥 질러버리고 홱 소리가 나도록 몸을 돌리고는 걸어갔다. 내 귀에는 이르누나가 레이나누나와 티아누나에게 자신이 말 실수 한 거 있냐고 물어보는 소리가 들렸다. 가끔 가다가 이르누나가 멍해보인다는 생각이 드는데 나 혼자만의 생 각일까? 우리 드래곤들은 뱃속에서 소화되고 남은 음식물들은 몸속에서 자연스 럽게 분해되어버린다. 그러니 굳이 배설을 위해서 화장실을 찾을 필요 가 없다. 그럼 난 왜 화장실에 가냐고? 골치가 아파서 세수나 할려고. ..진짜다 이상한 상상은 삼가하기 바란다. 난 여자화장실에서 여자들 훔쳐보는 변태따위가 아니란 말이다! 카페의 화장실은 카페가 고급이라 그런지 꽤나 깔금하게 청소되어 있 었다. 냄새를 없애기 위해서인지 민트꽃을 갖다놓고 민트향수도 잔뜩 뿌려서인지 화장실 특유의 냄새(?)는 거의 나지 않았다. 난 화장실 옆켠에 마련된 세면실-여자들에게는 화장을 고치는 용도로 더 많이 쓰인다지-에서 옆의 물통에서 물을 떠서 얼굴을 씻었다. 차가운 물에 얼굴을 씻고 나자 어느정도 정신이 들었다. 난 세면실에 설치된 거울로 보이는 내 얼굴이면서도 누나얼굴이기도 한 얼굴을 보면서 한숨을 푹 쉬었다. 난 영원히 누나의 그림자에서 벗어날수 없는걸까? '생각하면 할수록 우울해지니 그만 생각하자. 그렇게까지 난리를 쳤으 니 내일부터는 남자로 행동할 수 있겠지. 아마도...그렇겠지?' 만약 내일도 여장을 시킨다면 그때는...생각해보니 티아누나한테 반항 할 방법이 없잖아? 정 안되면 엄마한테 떼라도 쓰면 될테지만 웬지 자 존심 상하는 것도 같고... 이런저런 상념속에 빠져 있어서 누군가 내 어깨를 두드리는 느낌에 소 스라치게 놀라버렸다. "앗! 아 죄송합니다. 곧 비킬께요." 그 와중에서도 철저하게 여성스런 말투를 쓰는 나에게 새삼스레 놀라 면서-아무래도 몸에 익은것 같다-뒤를 돌아보자... 어라? 분명 여자화장실에 있어야 될 여자가 아니라 원 험상굿게 생긴 아저씨가 갑자기 손수건으로 내 입을 틀어막는 것이다. 난 반사적으로 그 아저씨의 배를 힘껏 걷어찼다. 아저씨는 윽 신음소 리만을 남기고 화장실 벽으로 날아가 부딧쳤고, 덕분에 아저씨의 손에 서 벗어난 나는 급히 일행이 있는곳으로 나갈려고 몸을 돌렸지만 갑자 기 머리가 어지러우면서 몸이 휘청였다. '수면향이었나?' 아까 그 험상굿은 아저씨가 내 입을 손수건으로 틀어막을때 달콤한 향 기를 맡았었다는게 기억나면서 난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톡톡 누군가가 내 뺨을 살살 두드리는 느낌이 들었다. 우웅 벌써 아침인가? 누나가 깨우는 것 치고는 너무 얌전하고...엄마인가? 아니면 이르누나 ? 레이나누나일수도 있겠군. 아무튼 티아누나만 아니라면 좀더 자겠다 고 어리광부려도 넘어가겠지? "으음 10분만 더요." 그렇게 말하면서 몸을 뒤척이자 누군가가 내 가슴을 정확히는 티아누 나가 나에게 건 폴리모프로 생긴 젖가슴을 아주 기분나쁜 손길로 주무 르는게 느껴졌다. "누구야!" 소리를 빽 지르면서 주먹을 휘두르자 내 가슴을 만지던 그 누군가가 얻어맞고 날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어라 근데 분명 오른손만 휘둘렀는 데 왜 왼손까지 따라가지? 난 졸음에 침침한 눈부터 비비고 자세히 볼려고 하자 역시 두손이 같 이 움직였다. 어찌어찌해서 눈을 비비고 내 손을 보자... "묶여있잖아." 지금 내가 어떤상황에 처했는지 실감이 나지 않아서 난 허무한 목소리 로 말을 하면서 어느새 양손목이 결박당한 손을 내려다보았다. 내 손 을 묶고 있는 끈 끝에는 끊어져 있는 줄이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분명 원래는 이 끊어진 줄과 원래는 하나였다고 생각되는 기다 란 줄이 내 눈앞에서 대롱대롱 흔들리고 있었다. 난 분명 누워서 자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내 모습을 보니 벽에 기 댄체 주저앉아 있는 상태였다. 원래는 양팔은 결박당해서 천장에 묶여 진 저 줄에 묶인체였던 것 같다. 그런데 여기는 어디고 난 도대체 왜 이곳에서 이러고 있는 것일까 하 는 생각이 들어서 주위를 두리번 거리자 아까 내가 잠결에 휘두른 주 먹에 맞아 날아간듯한 아저씨의 모습이 보였다. 벽에 거꾸로 부딧쳐서 쓰러진듯한 모습으로 기절해있는 저 험상굿은 얼굴의 아저씨는 분명 정신을 잃기전에 화장실에서 수면향이 묻어있는 손수건으로 날 기절시 켰던 그 아저씨였다. "그렇다면..." 난 분노를 느끼면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저 넘이 내 가슴(?)을 만졌단 말이렸다." 난 주체할수 없는 분노를 느끼면서 쓰러진 그 넘에게 가서 기분이 풀 릴때까지 실컷 밟아주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두운 지하창고 분위기 였고 중앙에는 나무상자위에 램프하나만이 불을 밝혀주고 있었다. 그 램프의 불빛으로 주위를 더 둘러보니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였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난 양팔에 힘을 주어서 팔을 결박하고 있던 줄을 가볍게 끊었다. "그렇지 않아도 기분더러운데 잘 걸렸다." 내가 생각해도 음산한 목소리로 이까지 빠드득 갈면서 분노에 찬 말을 내뱉고는 눈빛을 빛냈다. "전부다 제발 죽여달라고 사정하게 만들어주지."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난 처음으로 아빠의 피는 레드 드래곤이라는 것 을 확인한 것 같았다. 난 곧바로 계단끝에 있는 문으로 가서 가볍게 손을 들고 마법시동어를 외쳤다. "파이어 에로우." 십여발의 불꽃의 화살이 내 주위에 맺혔고 곧 내 의지에 따라서 문을 확실하게 부숴버렸다. 박살이 나버린 방금전에 문이라는 물건이 있던 공간을 넘어가자 조그만한 방이 나왔고 건너편 방에서 방금전 폭팔 소 리를 들었는지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우락부락한 남자 들이 들어왔다. 그리고 분노에 떨고 있는 나와 부숴져버린 문을 번갈 아 보면서 무슨일이 있었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무슨일이 생겼는지 잘 이해가 안가는 모양인가 본데..." 내가 말을 꺼내자 그제서야 부숴진 문과 나를 번갈아보던 눈동자가 전 부다 나에게 고정되었다. "지금부터 이해시켜주마!" 내가 부르짓음과 동시에 내 주위에는 나의 의지가 만들어낸 누나의 18 번 마법이자 우리 실버일족의 18번 마법이기도 한 얼음의 화살들이 생 겨났다. "아이스 미사일!" 커질대로 커져서 더 커질데가 남아있는지 의심이 갈정도로 눈을 크게 뜬 남자들이 사태를 파악하기도 전에 나의 수십발의 아이스 미사일들 은 남자들을 덮쳐갔다. 그리고 순식간에 울려퍼진 남자들의 비명소리라고 생각되는 괴성이 방 을 한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난 처음부터 탐탁치 않게 생각이 들었었다. 토끼는 풀을 먹고 살아야 되는 법이다. 요즘 경기가 안좋다고 돈많은 분들의 지갑을 나눠가지는 것만으로는 먹고 못 살겠다고 해보지도 않은 납치 몸값요구따위를 기 획하니깐 일이 이 모양 이꼴이 된것이다. 그 날의 기억은 정말 악몽 그 자체였다. 일단 레쿠 녀석이 이번 미스 다이리 미인대회에서 우승을 한 쌍둥이 여자중 한명을 잡아올때만 해 도 일이 잘 폴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여자가 아무리 봐도 누군가를 닮은 기분이 들었고 불안한 느낌이 들어서 견딜수가 없었다. 의기양양한 레쿠의 표정과는 달리 그 녀석의 몸이 불편해 보이는 것을 봤을때 눈치를 챘어야 되었다. 그리고 인질은 몸은 소중히 다루어야 된다는 철칙을 깨고 아까의 빛을 받아내야 된다는 이상한 소리를 하면서 맛(?)만 약간 보고 온다는 그 를 말렸어야 되었다. 레쿠에게 약간만(?) 당할 그 불쌍한 아가씨를 생각하면서 그 다음 차 례로 나도 끼어도 될까하는 불손한 생각을 한 벌을 받게 된건지도 몰 랐다. 갑자기 폭발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곧이어서 동료들의 비명소리 가 아지트를 뒤흔들었다. 두목이 헐레벌떡 나와서 무슨일이냐고 소리 를 쳤지만 난들 어떻게 알겠는가? 지하에서는 계속 폭발소리와 비명소리가 울려퍼졌고 갑자기 아지트 정 면쪽에서도 폭발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역시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두목은 아래쪽과 정면에서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원인모를 소리가 울려 퍼지자 나보고 정문으로 가보라고 닥달하고는 자신은 남은 부하들을 이끌고 지하로 내려갔다. 나 혼자 정문쪽으로 가라는 소리인가? 이런 썩을 지하에는 비밀통로가 있으니깐 여차하면 혼자 튀겠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잖아! 난 가라고 해서 말 잘듣는 착한아이가 절대 아니었기에 적당히 가는척 하면서 중간에 도망칠 생각으로 정문쪽으로 내려갔다. 중간에 적당한 창문으로 도망치면 되겠지라고 생각은 했는데...젠장 무슨놈의 불청객 들이 이리도 빨리 들이닥치냐 말이야?! 놀랍게도 불청객 세명은 전부다 여자였고 그중 앞에 서 있는 여자는 방금 우리가 잡아왔던 여자였다. 난 그제서야 우리가 잡아왔던 여자가 쌍둥이라는 것을 기억해내었고, 그 여자 주위에 둥둥 떠다니는 마법이 라고 밖에 볼수 없는 얼음덩이를 보면서 지하에서 소동을 벌이고 있는 정체가 단박에 그녀의 쌍둥이 자매중 한명이라는 것을 알아챌수 있었 다. 역시 내 머리회전률은 천재라는 것을 다시한번 확인하면서 난 자 아도취에 빠져서 미소를 지으면서 그 여자의 마법에 맞아서 정신을 잃 어갔다. 테이가 화장실에서 없어지자 티아는 엄마인 세이르아가 자신들이 차고 있던 마법팔찌에 서로 떨어져 있을때 상대방이 어디 있는줄 알수 있게 만들어주는 마법을 걸어준것을 이용해서 테이를 찾아나섰다. 이번 테이의 미아사건으로 세이르아가 혹시하는 마음에 걸어주었던게 이렇게 도움이 될줄은 몰랐다. 레이나가 일단 저택에 연락해서 병사들을 끌고 가자고 했지만 자신의 실력을 믿고 있는 티아는 그 동안 테이가 무슨일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말을 하면서 둘을 설득해서 마법의 팔찌가 테이가 있는 장소라고 가르 키고 있는 허름한 술집을 찾아갔다. 그리고는 이르의 상황을 살피고 오겠다는 말도 무시하고는 바로 마법 을 난사하면서 앞뒤 안가리고 쳐들어가서 보이는 사람은 족족 마법으 로 쓰러트려갔다. 힘 하나 안들이고 건장한 남자들을 마법으로 혹은 완력으로 집어던지 는 티아를 보면서 레이나는 새삼스레 티아의 실력이 굉장하다는 사실 을 상기해냈고, 이르는 티아가 정말 해츨링일까라는 고민을 진지하게 하면서 티아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지하에서 방금전 티아가 일으킨 소음과 비슷한 소리를 듣고는 내려간 세명의 여자가 본것은.... "헤에 저 녀석 평소에는 얌전 떨더니만 저런면도 있었구나." "저 저렇게 화낼만큼 큰일을 당한건 아닐까요?" "일이라고 해봐야 완전 여자도 아닌데 큰일이야 당했겠어요? 기껏해야 가슴이나 누가 만졌겠죠." "그것도 큰일이라고 할 수 있잖아." "폴리모프를 시켰지만 원판이 남자녀석인데 겨우 가슴한번 만져된것 갖고 무슨 큰일이라고..." 세명의 여자는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참극을 말릴 생각도 안하고 자 기들끼리 원래 남자인 테이가 가슴한번 건드린것 갖고 이렇게 분노해 야 옳은일인가에 대해서 진지하게 토의를 하고 있을때 이 도적길드의 아지트 두목은 그 세명의 기가막힌 행동에 어이없어 하면서 테이에게 얻어맞아 벽에 세게 부딧쳐서 기절해버렸다. 테이의 주위로는 마법화살에 의해서 다리나 팔에 구멍이 나서 비명을 질러대는 남자들과 테이에게 얻어맞아서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남자들 로 아수라장이었다. 그리고 자신을 찾아서 세명의 누나들이 왔다는 사실도 모른체 테이는 광분을 하면서 외쳐되었다. "크하하하하 더 질러 비명을 더 지르란 말이야! 어디한번 제발 죽여달 라고 애원이라도 해보거라 이 버러지 같은 놈들아! 절대 죽이지는 않 으마 죽어도 잊지못할 공포와 고통을 너희 몸과 정신에 똑똑히 새겨주 마. 크하하하하하!" 여전히 여장을 한체인 테이는 목소리까지 티아가 여자답게 나오도록 마법을 걸어서 여성특유의 소프라노 목소리인데 하는짓과 말투는 마왕 저리가라고 할 정도록 흉폭한 말투였다. 남자의 목소리라면 그래도 분 위기 하나는 짱이겠군 이라고 말을 할 수 있으려만 목소리가 하이 소 프라노 여자 목소리와 흉폭한 말투는 공포스러울 정도로 언밸런스 하 였다. "테이는 화가 나면 무섭군요. 원래 저런가요?" 이르가 광분하는 테이를 보면서 역시 드래곤의 자식이라는 생각을 하 면서 겁에 질려서 티아에게 묻자 티아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대답했다. "저렇게 화 내는건 저도 처음봐요. 역시 가슴만지기 이상으로 더 심한 일을 당한건가?" "혹시 여장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인게 폭발한게 아닐까?" 레이나의 지적에 세여자는 동시에 광분의 도가니에 빠져있는 테이를 쳐다보았다. "아마도...그런것 같은데요." "그렇게 여장이 싫었나?" "얌전히 있을때는 그렇게 이쁘고 귀여웠는데...이제 시키면 안되겠다. " "아쉽네요. 재미있었는데..." "그것보다 안말려도 될까요?" 이르의 마지막 말에 두 여자는 테이를 말려야 된다는 생각이 그제서야 들었다. 그러나.... "크하하하하 어떠냐 뼈가 부숴지는 아픔이 좋으냐? 아니면 몸이 뒤틀 리는 아픔을 원하나? 그것도 아니면 이 아이스 미사일로 몸이 뚫리는 고통을 맛보여줄까? 죽이지는 않을테니 자신이 원하는 고통으로 골라 보거라 어리석은 자들이여 크하하하하하!" 저걸 도대체 무슨수로 말린단 말인가? 자칫 잘못하면 자신들까지 휩싸 이게 될지도 모를 판이었다. "티아야 무슨 방법이 없니?" 레이나의 안타까운 시선을 받은 티아는 한숨을 푹 쉬면서 말했다. "말로는 안될테고 기절시키는 수 밖에요." "하지만 어떻게...저 상태를 봐서는 우리도 못알아 볼것 같은데..." "어떻게긴요. 이렇겠죠." 말을 마친 티아는 눈에 보이질 않는 속도로 앞으로 달려나갔다. 테이 는 자신의 옆에서 갑작스런 살기를 감지하고 그 쪽으로 마법을 시전하 였지만 미쳐 마법이 완성되기도 전에 뒷덜미에서 화끈한 통증을 느끼 면서 기절해버렸다. 엄청난 속도로 테이의 뒤로 돌아간 티아가 그야말로 인정사정 남매정 까지 없이 테이를 되게 후려쳤고 테이는 아예 벽을 부수고 옆방까지 날아가서 큰소리를 내면서 바닥에 굴러쓰러졌다. 티아는 손을 탁탁 털면서 체통도 잊어먹고 입을 있는대로 크게 벌리고 쳐다보는 레이나와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흔드는 이르를 보면서 헤헤 웃으면서 말했다. "걱정말아요. 죽이지는 않았어요." 레이나는 다시한번 저 남매는 범상치 않은 어린시절을 보냈을꺼라는 생각에 둘이 친동생이었면 좋겠다는 자신의 생각을 바꾸는게 낮지 않 을까 하는 고민을 진지하게 하였다. 드래곤 남매 5화 남자의 자존심은 그렇게...(9) "우아아아왕 누나 무서웠어." "자 이제 괜찮으니 그만 울렴 테이야. 응 뚝." "아아앙. 흑 훌쩍 히잉." 레이나는 자신의 품에서 울고 있는 테이를 달래면서 아까전에 보았던 테이의 또 다른 모습은 꿈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티아에게 얻어맞고 기절한 테이는 얼마후 정신을 차리는가 싶더니 주위 를 두리번 거리다가 레이나와 이르 티아를 발견하고는 갑자기 달려와 안겨서 그야말로 통곡을 하면서 울어대기 시작했던것이다. 더구나 도적들이 듣기에는 정말 가증스럽게 무서웠다는 말을 하면서 울 어대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그 도적들의 억울한 심정을 티아가 딱 한마디로 대변해주었다. "무섭다는 놈이 이 난리를 쳤냐?" 도적들은 자신들의 심정을 대표로 대변해준 티아에게 마음속 깊은 곳에 서 솟아오르는 감사의 미소를 보냈다. 티아와 이르는 부상이 너무 심한 도적들에게 힐링을 써주고 있었다. 경 비대에는 연락을 해두었으니 얼마후에 몽땅 잡혀갈 신세이긴 했지만 그 래도 까딱 잘못했으면 죽었을지도 몰랐기에 티아들의 출현은 도적들에 게 구세주 출현이나 마찬가지였다. 테이는 티아가 윽박지르자 울음을 그쳐가면서 변명아닌 변명을 늘어 놓 았다. "훌쩍 흑 나도 기억이...흑 잘 안 난단 말이야...그냥 문 부수고...훌 쩍 화가 난것까지는 기억이...흑 나지만...그 뒤로는 어떻게 된줄 모르 겠단 말이야 히잉." 테이는 어느정도 진정이 되가는지 레이나의 폼속에서 딸국질을 하면서 울음을 멈춰갔다. 어느정도 테이가 안정되어 간다고 생각했을때 한명의 도적이 혀를 내두르면서 테이에게 말을 걸었다. "거참 얼굴은 이쁘장한 아가씨가 홱 돌아버리니 죽음의 여신 헬레나 저 리가라고 할 정도군요. 아가씨는 평소에 스트레스를 가슴속에 쌓아두는 타입이죠? 원만하면 스트레스같은것은 빨랑빨랑 풀어버리라고요. 그렇 게 쌓아두다가 한번에 폭발하면 주위사람들만 피해를 입는다고요." 20대의 시원스런 인상의 청년의 말에 티아들은 깊이 공감하고 있다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애초에 테이에게 요며칠간 스트레스의 주 원인을 제공한건 바로 그녀들이 아닌가? 그걸 잘 알고 있는 레이나와 이르는 속으로 반성하고 있었지만... "무슨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이 난리를 피운거람. 참내 정말 피곤한 성 격이라니깐." 전혀 반성의 빛을 안 보이는 티아덕분에 테이는 다시한번 솟아오르는 분노를 느끼면서 발악을 했다. "누구때문에 이렇게 된건데 누구때문에?!" "누구때문인데?" 티아는 정말 모르겠다는 듯이 천연덕스럽게 대꾸했고 테이는 누나의 그 태도에 더욱 더 화가났다. "애초에 누나들이 날 억지로 여장을 시켜서 내가 스트레스를 받은거잖 아!" "어제는 여자답게 생글생글 웃으면서 잘만 놀았잖아." "그때는 분명 이왕 그렇게 된거 오늘 하루만 누나들에게 맞춰주겠다고 했지 계속 하겠다는 말은 절대 하지 않았단 말이야!" "뭐 어때서 그래 덕분에 미인대회에서도 우승했잖아." "남자가 미인대회 우승이라니 말이 된다고 생각해?" "말이 안될건 또 뭔데?" "저기 잠깐만요." 끼어들수 없을꺼만 같은 두 남매의 싸움에 끼어든것은 아까 스트레스 운운하여서 두 남매의 싸움에 불을 지른 장본이기도 한 청년도적이었 다. 티아와 테이는 동시에 죽고싶어서 끼어드느냐는 눈빛으로 그를 노 려보자 그는 잠시 죽음의 신이 자신의 뒤에 와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그러나 아무리 목숨의 위협을 느껴도 궁금한건 알고 죽어야 겠다는 생 각에 떨어질 것 같지 않은 입을 열었다. "저기...이야기중에 죄송합니다만...두 분 자매 아니셨나요?" "난 남자야!" 테이의 절규에 그는 고개를 갸웃하면서 테이의 몸을 이리저리 살펴보았 다. 긴 머리를 남색 리본으로 포니테일로 묶은 머리스타일과 사랑의 여 신 샤이라스의 현신이라고 불러도 될 아름다운 얼굴 약간 지저분해지긴 했지만 푸른색의 가슴을 유난히 강조해주는 요즘 유행하는 드레스와 그 드레스로 인해 강조된 봉긋 솟은 젖가슴 그 모든것을 조합해 볼때 그의 머리속에 떠오르는 단어는 하나뿐. "아무리 봐도 여자 맞는데요." "크아악 난 남자야! 누나가 마법으로 이렇게 만들었지만 달릴꺼(?) 다 달린 오리지널 남자란 말이야!" 그 도적의 멱살을 쥐고 흔들면서 테이가 발악을 하자 그 도적은 정말로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레이나와 이르는 너무 흥분해서 테이가 저도 모 르게 꺼낸 달릴꺼(?)라는 말에 얼굴을 붉히고는 고개를 돌리고 있었고 티아는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구경만 하고 있어서 테이의 제 2차 폭주를 말려줄 수 있는자가 없었다. 그는 그가 자랑하는 재빠른 판단력으로 이 위기를 벗어나야겠다는 생각 에 급히 변명을 하였다. "아아 말투를 들어보니 씩씩한 도련님이 맞군요. 몰라뵈서 죄송합니다. 도련님 제발..." 그는 끝에 살려주세요라는 말은 꿀꺽 삼켜버리고 눈으로 이제 놔달라고 애원을 하였다. 테이는 그래도 씩씩한 도련님이라는 말이 조금 마음에 들었는지 그 자리에서 청년도적을 놔버렸다. 덕분에 엉덩방아를 찍은 그는 잡혔던 목을 쓰다듬으며 켁켁거렸다. 그럴때 묘한 시선을 느끼고는 고개를 들자 방금전까지 자신을 죽일듯이 붙잡고 흔들던 테이가 이상하다는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에 왜 그러시죠?" 혹시 아직 화가 안풀렸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약간 겁을 집어먹고 추츰 거리면서 물어보자 테이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말했다. "웅 도적 아저씨 어디선가 본적이 있는 얼굴같은데." "그런가요? 하하하 제가 워낙에 눈에 잘 띄는 멋있는 얼굴이라서 스쳐 지나가면서 봤겠죠." 티아는 그의 멋있다는 말에 어디가? 라고 반문했고, 레이나는 그를 봄 면서 정말 넉살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 때 테이가 손을 탁 치면서 씩하니 불길하게 웃는것이었다. "에? 도 도련님? 그 웃음의 의미는 뭐죠?" 그제서야 그 역시 이 꼬마 도련님을 어디선가 봤다는 기분이 들면서 온 몸에 경계심이 절로 드는것을 느꼈다. 어디서봤더라? 테이는 한 손을 내밀고는 씩 웃으면서 말했다. "실프." 테이에 의해서 소한된 실프를 보면서 그의 머리속에 축제첫날 만났던 돈 많을것 같던 꼬마 도련님이 생각났다. 그 날 자신의 동료들을 그야 말로 개패듯이 패대기쳤던 무시무시한 정령사 도련님... "서 서얼마..." "난 그 설마가 맞다고 생각하는데 아저씨는 어떠세요?" "하하하 저도 맞다는 생각이 방금 드는군요." "아 그러고 보니 우리 통성명도 안했죠? 전 테이루아 애칭은 테이예요. 아저씨는요?" "라그 그냥 동료들사이에서 라그라고 불린답니다." "그래요 라그씨 일전에 절 속였던거 기억하시죠?" "하하하 설마아직도 그 일을 마음에 두고 계신건 아니겠죠? 오래전 일 이잖아요." "아직 나흘밖에 안지난걸요." 시원스러운 인상의 청년도적 라그는 이제 울쌍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그는 도움을 청하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주위에서는 무슨일인가 궁금해하는 눈으로만 보고 있을뿐 저 무시무시한 여자-실은남자-를 말 리는 일이라면 절대 사양이라는 뜻으로 라그의 눈길을 거부했다. "우리 그때 못다한 일이나 해볼까요?" 라그는 그때 6개월간의 꼼작도 못할 부상을 입은 동료들이 생각나면서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버렸다. "그나저나 도적이 납치를 하다니 노예상인들이나 다를바가 없네요." 티아는 저쪽에서 벌어지는 참극따위는 관심이 없다는투로 도적들의 두 목의 상처를 치료하면서 지나가는 말로 말했다. 티아가 별 생각없이 한 말에 두목이라는 작자는 놀랄정도로 화를 내면 서 소리를 질렀다. "이렇게 된것은 바로 그 놈의 노예상인때문이란 말이요!" 레이나와 이르는 두목의 말에 귀가 솔깃해졌다. 그들은 지금으로서 노 예상인에 관계된 정보는 그 어떤 하찮은 정보라도 흘려들을 수 없는 입 장이었다. "그 이야기 자세하게 듣고 싶은데요." "흥 그럼 나에게 뭘 해줄수 있소? 그러니깐 정보제공료 몇푼주고 말거 라면 관두쇼. 감옥가게 된 마당에 돈은 별 필요가 없으니..." 두목으로서는 심술 한번 부려볼려고 내뱉은 말이었지만 그 말이 그에게 는 득이 되는 말이었다. "유용한 정보를 제공한다면 당신에게 자유를 약속하겠습니다. 원한다면 일자리도 알아봐 드릴수 있습니다." "하 나원참 아가씨가 무슨 힘이 있길레. 이 나라 공주라도 된단 말이요 ? 쓸데없는 희망갖게 만들어서 입을 열게 만들거라면 관두쇼. 나도 산 전수전 다 겪은 몸이니깐." "저희 가문의 이름을 걸고 약속드리겠습니다. 저의 이름은 레이나 레드 포머입니다. 즉 레드포머 공작가의 이름을 걸고 약속하죠." "레 레드포머 공작가?" 두목은 입을 크게 벌리고 자신의 앞에 서있는 기품이 흘러넘치는 여인 을 올려다 보았다. "저 정말이요?" "원하신다면 저희 가문휘하의 기사단이라도 끌고 올까요?" "아니 관두시죠. 설마 어느 미친 사람이 함부로 레드포머 공작가를 사 칭하겠소. 그러고 보니 레드포머공작에게 총명한 딸이 하나 있다고 들 었던 것 같은데 그게 당신인가 보군." "네. 그것보다 저희 가문에서는 약속을 지키겠습니다. 그러니 그 쪽도 아까 말한 노예상인들에 대해서 아는대로 말씀해 주실수 있겠죠." "두말하면 잔소리죠. 그런데 먼저..." "먼저 뭐죠?" 두목은 슬쩍 고개를 돌렸다. 레이나가 따라 고개를 돌리니 그 곳에는 테이가 로그를 고문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저기 저 녀석 잘난척은 하지만 그래도 솜씨좋은 내 부하이니 좀 살려 주시면 안되겠소? 저러다 정말 죽겠소." "아 네...티아야 좀 말릴수 있겠니?" "뭐 테이라면 정말 죽이지는 않을테니 걱정없는데...저 녀석 마음이 여 린편이거든요." "그 그래도..." "알았어 말리면 되는거지?" "이왕이면 부드럽게 해라." 레이나는 아까전에 티아가 말렸던 방법을 생각하면서 걱정이 되서 미리 다시 그 난폭한 방법을 못 쓰도록 못을 박았다. 티아는 별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테이가 들릴정도의 크기로 말했 다. "테이야 그만해라. 안그러면 너부터 내 손에 죽는다." 그러자 도저히 못 말릴꺼 같던 테이의 행동은 거짓말처럼 딱 하고 멈췄 다. 그리고 불만에 가득찬 표정으로 티아를 쳐다보았지만 티아의 다음 말에 기가 죽어서 고개를 돌려버렸다. "진짜 한번 죽어볼래?" 옆에서 듣기에 무시무시한 남매간의 대화를 들으면서 두목은 레이나에 게 물었다. "친 자매 아 아니 남매라고 했던가? 아무튼 저 둘 친 남매 맞습니까?" "맞아요. 그리고 저게 일상생활이라던데요." 레이나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대답했다. "그것보다 정보를 들어봐도 될까요?" 두목의 말에 의하면 요 10년사이에 노예상인쪽의 갑작스런 세력확장에 관한 이야기였다. 원래는 각 도적길드및 암살자길드와 노예상인들은 독 자적인 자신들의 세력권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어느순간부터 노예상들쪽에서 세력권을 확장하기 시작했고 당연히 자신들의 세력권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 벌어졌지만 어찌된게 잡혀가도 노예상들쪽은 금방 풀려나고 다른 세력의 아지트는 누군가의 밀고에 의해 들키는등 1년사 이에 노예상들은 다이리의 전 지역을 손에 넣게 되었다. 결국 도적길드및 암살자길드는 잡혀가거나 다른곳으로 도망치든가 이도 저도 아니게 이곳 두목처럼 노예상들에게 굽신대면서 최소한의 세력권 을 얻는 방법뿐이었다. 노예상들은 세력권을 빌려주는 댓가로 매달 큰돈을 요구했고 그 세금 아닌 세금때문에 경기가 점점 어려워져 결국 납치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고 한다. 그리고 노예상들과 접촉하게 된 두목은 그제서야 자신들이 질 수밖에 없는 사실을 알아냈다. 돈을 바치러 노예상의 아지트에 갔을때 그곳에서 로헨타이공작가의 망나니 아들인 라보오스를 본것이다. 그런 큰 권력을 가진 이가 뒤에 버티고 있다면 자신들이 애초에 쨉이 안된건 당연한 결과였다. 그리고 몇번 더 그들과 접촉하면서 알게 된건 라보오 스가 매달 한번씩 노예상들의 뒤를 봐준 댓가로 몇명의 여자엘프들을 데려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잠깐 매달 한번씩 라보오스가 엘프들을 받으러 노예상의 아지트에 직 접 온단 말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확실히 음 매달 15일이었던 것 같군요." "레이나 15일이라면...." "오늘이잖아." "아 맞다 오늘이었군. 요즘 정신이 없어놔서 날짜 감각이 흐려졌군." 두목이 날짜감각이 흐려지던 맑아지던 그게 중요한게 아니었다. 만약 오늘을 놓치면 다음달까지 다시 기다려야 된다는 말이고, 그 안에 또 얼마나 많은 엘프가 희생될지 모를일이었다. "지금 즉시 저택에 연락을 해야겠어. 재빨리 준비하면 시간에 맞출 수 있을지도 몰라. 그 노예상들의 아지트는 어디죠?" "남쪽지구에 있습니다요. 근데 뭘 준비한다는거요?" "우리는 그 노예상인들과 그 뒤를 봐주고 있는 귀족들의 관계를 밝혀내 서 잡기위해 지난 4년간 준비를 해왔어요. 결정적인 증거가 오늘 벌어 진다는 이상 절대로 이 기회를 놓칠수는 없잖아요." "그럼 그 노예상들을 박살낸다는 말이요?" 두목은 순간적으로 다른길드처럼 도망안가고 참고 견딘 보상을 받을수 있다는 생각에 눈을 반짝였다. "물론이죠. 아 단 그렇다고 당신들 도적길드를 묵인해줄수는 없어요. 당신들이 일할 다른 직업을 알아봐줄테니 엉뚱한 생각은 삼가해 주세 요." "쩝 알겠소. 뭐 우리도 먹고살만한 직업이 생긴다면 굳이 이런일 하고 있을 이유는 없소." 두목은 한순간 들었던 전 세력권 제패라는 꿈을 망상으로 치부하고 포 기할려고 할때 경비대가 도착했다. "자 당신들은 일단 경비대를 따라가세요. 걱정마세요. 저희 가문의 이 름을 건 이상 약속은 반드시 지킬께요." "아가씨는 거짓말 안할꺼 같아서 믿는겁니다. 그럼 잘 부탁드리고 그 놈의 노예상들 좀 박살좀 내주쇼. 열살도 채 안되보이는 얘들도 잡아다 가 파는 악질적인 놈들이유." "당연하죠. 자 우리도 빨리 돌아가서 준비를...어라 테이랑 티아는?" "네? 어 어디로 갔지? 방금전까지 저기에...." 레이나와 이르는 방금전까지 티아와 테이가 있던 장소에 있던 한 도적 에게 둘의 행방을 물어보았다. 그리고 그 둘이 두목의 이야기를 듣더니 방금전까지 반죽음을 만들정도로 패던 라그를 데리고 몰래 나갔다는 말 을 듣고 얼굴이 하얗게 되면서 경악해버렸다. "이르 이 얘들 설마..." "아니요 틀림없을꺼예요. 자기들끼리 해결해보겠다는 생각에 먼저 가버 렸겠죠." 둘은 누가랄것도 없이 더욱더 서둘러서 경비대가 타고온 말을 빼앗듯이 타고 급히 저택으로 달려갔다. 말을 타기위해서 드레스를 허벅지까지 올려서 묶은 모습에 경비대가 경악과 황홀한 시선을 보냈지만 거기에 신경을 쓸 시간이 없었다. 정말로 사람 애간장 태우는 남매였다. 나는 누나가 잡은 마차안에 앉아서 내 옆에 앉아있는 라그라는 남자를 불만에 가득찬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누나는 지금 라그에게 자신이 세 웠다는 계획을 들려주고 있었다. 누나의 계획이란 라그네 도적길드가 아름다운 엘프 자매를 잡아서 데려왔으니 세금을 조금 면제해달라고 그 들에게 부탁하라고 말을 하라고 했다. 라그는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말을 했다. "저기 엘프가 어디 있는데요? 더구나 자매라뇨?" "당신 눈앞에 있는데요?" "에에? 아가씨는 인간이잖습니까?" 인간이긴 능구렁이 뺨치는 해츨링이지. 누나가 나와 라그를 끌고 몰래 빠져나올때부터 어느정도 눈치를 채고 레이나누나에게 이를려고 했는데 티아누나가 먼저 눈치채고는 내 배를 가볍게 쳐서 기절시킨 나를 끌고 와서 결국 원치않게 나까지 이 일에 휘말린 것이다. 우 씌. 결국 당분간은 계속 여장을 해야된다는 소리잖아. 아아 또 스트 레스라는 놈이 쌓이는 기분이다. "우와아 그것도 마법인가요? 정말 신기하군요." 라그의 함성에 슬쩍 쳐다보니 누나가 자신의 귀에 폴리모프를 걸어서 엘프귀를 만들었던 것이다. 하아 나도 이제 저렇게 해야겠지...인간여 자모습으로 변장한것도 모잘라서 이번에는 엘프여자가 되는건가? 이번 여행때 난 정말 여러가지로 해보는군. "근데 일부러 잡혀들어가야 겠습니까? 아가씨에게 너무 위험하잖습니 까. 잘못되면 어떻할려고요." "후후후 아까 당신네 길드를 초토화 시킨건 누구누구였죠?" "그거야 앞에 앉아계신 아가씨와 아가씨의 동생분이긴 하지만...그래도 그 로헨타이인가 뭔가하는 공작가에는 기사들도 있을거란 말입니다. 너 무 위험해요." "괜찮아요. 괜찮아. 지금쯤 레이나언니가 언니네 집에 연락했을테고 그 럼 우리엄마도 알게 될테니깐 문제 없어요. 여차하면 엄마가 손을 써줄 테니깐요. 자 그것보다 테이야." "왜?" 나의 불만이 가득찬 말투에 누나는 고개를 설래설래 흔들면서 말했다. "사내자식이 삐지기는 너도 준비해야지. 아 그리고 라그씨 밧줄 가진거 있으시죠? 좀 빌려주실레요." "도적이 밧줄 안가지고 다니겠습니까? 근데 뭐에 쓰시게요?" "당신에게 잡혀있는척 하는데 쓸려고요." 누나는 마법에 마법을 거는거 같았다. 아마도 포박의 밧줄이라는 마법 을 써서 밧줄이 끊어지지 않게 만드는것 같은데... 근데 묶인척 할려고 하는데 왜 저런 마법까지 거는거지? 난 귀에다가 폴리모프를 써서 귀를 엘프처럼 만들면서 누나가 하는짓을 가만히 쳐다 보았다. "테이야 손." "으응? 응." 난 갑작스런 누나의 말에 나도 모르게 손을 내밀었다. 젠장 내가 강아 진가? 누나는 왠지 모르겠지만 익숙한 솜씨로 내 양팔을 단단히 결박했 고 발까지 묶어버렸다. "누나 발까지 묶을 필요가 뭐 있어?" "그럴일이 있어. 아 재갈 물릴꺼니깐 입 약간 벌려. 그리고 이후로는 언니라고 불러야 된다. 나도 널 레아라고 부를테니깐." "재갈을 벌써 할 필요가 음음음.(없잖아)" 내 마지막 말은 누나가 한 재갈에 의해서 무슨말인줄 모르게 되었지만 누나는 마지막 말을 알아들었는지 생긋 웃으면서 말했다. 그 미소는....날 이렇게 괴롭히면 재미있겠지라는 바로 그 미소였다. "음 음 음 음음음음?!(뭐 뭘 할 생각이야?!)" "너도 이르언니의 과거이야기 들었잖아. 그 변태는 침대로 엘프를 데려 가기전에 목욕을 시킨다고 했는데 너가 아무리 귀를 엘프로 만들어도 목욕할때 남자라는 사실이 들킬지도 모르잖아." "음 음음...(서 설마)" "자 완벽하게 여자가 되어야지. 이 언니가 레아를 완벽하게 여자로 만 들어 줄께." 듣기에 따라서는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말이었다. 난 그제서야 왜 누나 가 날 발까지 완벽하게 묶었는지 알게 되었다. 날 반항하지 못하게 하 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음음음 음음음음!(하지마 하지마아!)" 나의 절교는 들리지도 않는다는듯이 누나는 나에게 폴리모프를 시전했 다. 내가 남자라는 마지막 증거(?)를 없애기 위해서... "음음 음음! 음음음음!(안돼 안돼! 하지마아!)" "저 저기 당신들 정말 친남매 맞아요?" 라그의 황당하다는 말이 내 귀에 들리면서 그날 그렇게 내 남자의 마지 막에 마지막의 자존심까지 누나손에 의해 완벽하게 뭉개졌다. 드래곤 남매 6화 변태를 잡으려면 변태굴에(1) 라보오스는 얼굴을 있는대로 구겨서는 내심 투덜대고 있었다. 라보오스 의 말을 빌리자면 이번달 납품 받은 물건(?)이 내심 마음에 안들었던 것이었다. 노예상들의 말로는 요즘 들어서 엘프들이 항상 세명에서 네 명이 같이 다니거나 아니면 아예 여간해서는 인간들의 마을에 잘 안내 려오기 때문에 어쩔수 없다고 변명을 늘어 놓고 있지만 그래도 겨우 한 명밖에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기분나쁜 라보오스였다. 지금 공포에 질려서 자신의 앞에 있는 엘프여자도 결코 추녀라고 할 수 없는 오히려 절세의 미인이었다. 하지만 이미 많은 엘프들을 접해본 라 보오스의 눈은 높아질때로 높아져서인지 눈앞에 있는 엘프가 영 마음에 안들었다. 그러나 그동안 납품받았던 엘프들은 이제 전부 죽고 없기 때문에 라보 오스는 그녀라도 데려가서 다음달까지 가지고 놀아야 된다는 생각이 들 자 더욱더 기분이 언잖아졌다. 노예상의 두목인 엑트는 라보오스의 표정을 보면서 역시나 화가 났구나 라는 생각에 어찌해야 이 놈의 성질드러운 손님을 만족시킬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허구한날 다른 절세 미녀는 놔두고 엘프만 찾는 변태이긴 하지만 엑트 에게는 그 어느 누구보다도 소중한 고객이었다. 그의 덕분에 이 다이리에서 엄청난 부를 얻은 엑트이기에 라보오스에게 는 언제나 설설 기다시피 하였다. 솔직히 라보오스 취향대로 엘프만 잡아다가 팔아서는 결코 이윤이 남지 않았다. 하지만 라보오스의 취향을 맞춰주어서 자신들은 언제나 법의 심판망을 피할 수 있기때문에 아무 여자나 잡아다가 팔거나 아니면 건 장한 남자를 콜로세움같은 경기장에 파는 이윤이 솔솔했다. 요즘은 한참 유행(?)인 로리콘족들 때문에 귀여워 보이는 평민들의 어 린 딸부터 심하면 하급귀족의 어린 딸까지 잡아다가 팔아서 이번달은 그 어떤달보다 최고의 흑자를 기록한 최고의 달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이었고, 정작 이런 흑자를 내게 도 와준 결정적인 은인인 라보오스가 원하는 상품(?)은 요즘 들어서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라보오스가 데려갔던 엘프중에서 이르가 도망쳤고, 그 이르가 다른 엘 프마을에 경고를 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엑트로서는 그저 엘프들이 요즘 들어 행방불명 사고가 잦으니깐 그 대책으로 인간마을에 안내려오거나 온다하더라도 우루루 몰려다닌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추측을 라보오스에게 변명을 했지만 지금 표정을 봐서는 그 변명이 먹혀든것 같지는 않았다. "헤헤헤 라보오스님." 엑트는 어떻게든 이런 험악한 분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 말을 꺼냈다. "뭐야?" 무척이나 귀에 거슬리는 반말로 대꾸하는 라보오스였지만 이미 그와 알 고 지낸게 한두해가 아니었고, 그의 험악한 말버릇부터 변태적인 취향 까지 낱낱히 다 알고 있는 엑트였기에 그저 실실 웃으면서 말을 계속 하였다. "저기 이번에 하급귀족 딸내미를 잡아온게 있습니다. 12살의 나이인데 도 16살여자얘 뺨칠정도로 몸매가 좋고 귀여운 아이가 있는데 그 아이 도 같이..." 퍽! 엑트는 느닷없는 라보오스의 발길질에 배를 맞고는 말을 끝내지 못하였 다. 엑트는 솟아나오는 눈물을 삼키며 아픈배를 움켜잡았다. '젠장 그럼 그렇지. 저 광적엘프마니아가 요즘 최신유행(?)이라지만 로 리콘에게 관심갖을리가 없는데 왜 쓸데없는 말을 해갖고...' 엑트는 고통에 찌든 얼굴을 억지로나마 들어서 라보오스를 올려다보면 서 비굴하게 웃었다. "헤헤헤 제가 실수했습니다. 라보오스님. 라보오스님의 고상한 취미가 있는데도 제가 잠시 머리가 어떻게 되었나 봅니다. 죄송합니다. 그러니 제발 자비를..." 어느새 허리에 찬 희황찬란한 검-이라고 생각되는 장식품-에 손을 가져 다대고 있던 라보오스는 그의 비굴한 표정과 말에 콧대높은 자존심이 더욱 높아지는걸 기분좋게 느끼면서 검이라고 생각되는 장식품에서 손 을 떼었다. "젠장 너희들이 옛날에 내놓았던 엘프마을 습격안건 덕분에 이익을 많 이 봐서 내 특별히 너희 노예상들만 적극적으로 밀어줬건만 그 보답이 고작 이거냐?" 라보오스는 자신의 앞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엘프를 확 끌어당겨서 자신의 폼안에 앉았다. 제갈까지 물려있는 엘프는 비명도 못지르고 그 대로 그에게 안겨버렸다. 라보오스는 그 엘프의 가슴과 엉덩이를 만지작거리면서 마치 상품의 질 상태를 확인하는 얼굴표정을 지었다. 엘프는 눈물을 흘리면서 몸을 비틀어 되었지만 손에 차고 있는 마력제 어장치때문에 아무반항도 못하고 눈물만 흘려댈수 밖에 없었다. 확인작업(?)을 마쳤는지 라보오스는 눈을 도끼눈으로 하고는 그 엘프를 확 밀쳐버렸다. 힘없는 그 엘프는 덕분에 바닥에 머리를 찍어야 되었 다. "역시 마음에 안들어. 왜 가면 갈수록 물건의 질이 하락하는거냐?" 그가 더 못참겠다는 듯이 소리를 있는대로 지르며 발광하자 엑트는 아 예 바닥에 납작 엎드려서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또 빌면서 용서를 구 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요즘 엘프들이 경계가 만만치 않아서 저희들도 힘이 듭니다. 지금 각지로 보낸 정보꾼들이 곧 조그마한 엘프마을을 발 견할 수 있을껍니다. 그때는 저번과 같이 용병들을 끌고 가서 한바탕 잡아오면 한동안 라보오스님의 취미를 충족시켜줄 엘프를 잡을 수 있을 테니 부탁드립니다. 제발 이번만은 저것으로 참아주십시요." 굉장히 긴말을 살기위해서 단숨에 뱉어내면 빌고 또 비는 엑트를 보면 서 라보오스는 기분잡친다는 듯이 쳇쳇거리면서 방금 던져버린 엘프를 쳐다보았다. 엘프여자는 바닥에 머리를 박을때 이마가 찢어졌는지는지 이마에 약간의 피를 흘리면서 몸을 있는대로 웅크리면서 그를 겁먹은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어쩔수 없이 저걸로라도 참아야 돼나?" 라보오스의 다 포기한듯한 말투에 엑트는 지금 이 상황이 다 해결된듯 한 말을 듣는듯했다. 제발 그래주십시요라는 엑트의 표정을 보자 다시 속알이 뒤틀리는 기분을 느낀 라보오스였지만 완전히 떼젱이 바보는 아 니었기에 정말로 별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되었다. "두 두목님!" 그때 정말로 무례하기 짝이없게 자신의 부하 하나가 문을 벌컥열고 뛰 어들어왔다. 엑트는 이제서야 겨우 진정된 라보오스가 방금 부하의 무 례한 행동에 다시 마음이 바뀌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자신도 모르게 언 성을 높여서 부하를 야단쳤다. "이 녀석 지금 어느분 앞인데 그렇게 예의 없이 구느냐!" 솔직히 노예상들도 도적들이랑 별반 다를게 없는 뒷골목 출신들이다. 아무리 돈 잘 벌어서 원만한 귀족가 떵떵거리면서 잘 살고 있다지만 뼈 에 박힌 출신신분이 어디 갈리가 없기에 예의 운운하는게 웃기는 일이 었지만 이 부하녀석은 그런 두목의 농담아닌 농담에 웃을 여유가 없었 던 것 같다. 그저 떨리는 입을 간신히 떼면서 말을 했는데... "지 지금 도적길드 녀석이...엘프를..." "도적길드? 엘프?" 갑자기 웬 자다가 엘프다리 긁는 소리란 말인가? 도적길드 녀석이라면 한때는 자신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던 뒷골목 출신들이었지만 지금은 앞 에 있는 라보오스 덕분에 매달 자신들에게 상납금을 바치는 예비저금통 밖에 안되는 존재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존재들이 갑자기 무슨 엘프들 이냔 말이다. 이런 의문에 엑트의 나쁜 머리는 곧 엉뚱한 해답을 주었 다. "뭐냐? 도적길드 녀석이 우리가 잡은 엘프를 노리고 쳐들어오기라도 했 냐? 무슨 이리도 간큰 녀석들이 다 있어? 그래도 완전히 없애는 건 불 쌍해서 세력 좀 남겨두고 오냐오냐 해줬더니 은혜를 모르는 놈들 같으 니..." 그야말로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덤으로 춤까지 한판 추고 있는 두목의 황당한 추리력에 부하는 답답하다는듯이 가슴을 치면서 다시 정확하게 설명했다. "그게 아니고 도적길드 녀석이 엘프 두명을 잡았는데 세금대신 납품해 도 되겠냐고 물어보러 왔습니다." "뭐야?" 그때까지 그들의 대화에 하등관심이 없던 라보오스는 엑트를 밀쳐버리 고는 엑트 대신 눈을 빛내면서 물었다. "그 엘프들 이쁘냐?" 단순명확한 질문에 돌아온것은 대단히 장황한 설명이었다. "말도 마십쇼. 사랑의 여신 샤이라스의 현신이라고 해도 믿을정도로 아 름답습니다. 더구나..." 라보오스는 안달이 나서 장황하게 설명할려는 부하를 제지하고는 다시 한번 단순명료하게 물었다. "둘 다 이쁘냐?" 이번에는 부하녀석도 더 이상 설명을 길게하지 않고 간단명료하게 대답 했다. "보기드문 쌍둥이 자매 엘프입니다." 부하의 대답에 라보오스의 눈은 무서울 정도로 초롱초롱하게 빛을 발하 였다. 그 눈빛은 엑트에게 걱정 끝을 알리는 청신호였다. "호오!" 라보오스는 도적길드라고 자신을 소개한 시원스레 생긴청년이 데려온 엘프 두명을 보고는 감탄사를 뱉었다. 아까 그 부하녀석이 왜 그렇게 장황하게 설명할려고 했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정말 아름다웠다. 글로써 표현하자면 이 세상에 퍼져있는 온갖 아름다움의 글자를 다 갖다붙여도 부족하다 싶을정도의 아름다움 도 모잘라서 두 엘프의 얼굴은 똑같았고, 스타일까지 똑같아서 한층 더 신비스러운 아름다움을 제공했다. 옷은 잡혀와서 그런지 그 아름다웠을꺼 같던 드레스는 여기저기 구겨져 있고 더러워져 있었지만 그런걸로는 그 두 엘프의 아름다움을 조금도 해치지 못했다. 이 신비스런 쌍둥이 자매엘프를 데려온 도적길드의 청년 라그-이름도 밝혔지만 라보오스는 그의 이름따위에 신경 쓸 겨룰이 없었다-는 연신 싱긋싱긋 웃으면서 아까 노예상의 부하녀석보다도 더 장황하게 침까지 티겨 가면서 설명을 늘어놓았다. "어떻습니까? 나리. 저희 도적길드에서는 나리의 수준높으신 안목을 익 히 들어서 알고 있어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힘.들.게 손에 넣은 최상급 엘프라고 자부합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 엘프들은 보기드문 쌍둥이 자매입니다. 더구나 쌍둥이라는 신기한 점만 있다면 감히 나리에게 데 려오지도 않았습니다. 사랑의 여신이고 최고의 미를 지녔다는 여신 샤 이라스도 울고 갈 미모에 몸매 또한 아직 어린 엘프들답지 않게 최고의 몸매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아마 조각가들이 보면 군침을 흘릴꺼라고 자신할 수 있는 최고의 몸매입니다. 그것뿐이겠습니까? 이 자매를 잘만 길들이면 나리께서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하신 2인플레이(?)및 관전모드 (?) 그리고 트레이닝모드(?)에다가..." [원만하면 그만해요!] "에 네?" 갑작스런 성난목소리가 들리자 놀란 라그는 설명을 끊고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그래서 지금껏 라그의 설명을 재미있게 듣던 사람들은 이상하 다는 듯이 그를 쳐다보았다. 한사람 라보오스를 빼고 말이다. 라보오스 는 라그가 데려온 엘프자매를 이리저리 살펴보느라 라그의 말이 들리지 않았던것이다. "에 또...하하하 요즘 환청이 자주 들려와서...에 계속 설명하자면. .." [그만하라고 했죠. 도가 지나치잖아요.] 환청이 아닌 또박또박한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귀가 아닌 라그의 머리 속에서 직접 들린것이다. 두리번거리면서 목소리의 주인을 찾던 라그의 눈은 쌍둥이 엘프 아니 실은 엘프로 변장한 그의 눈에는 인간이지만 실 체는 해츨링인 티아와 눈이 딱 마주쳤다. 그리고 티아의 이마에 약간 힘줄이 솟아나온걸 보고는 어색하게 웃어야 되었다. "하하하." "뭐냐? 설명 더 안해?"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인가? 어차피 본적없는 절세의 미녀엘프자매 라 지만 라보오스가 데려가기에 어차피 손도 못댈 존재들이라는 이유도 있 고 라그의 하는 말이 워낙 재미있어서 계속 설명을 부추기는 엑트와 그 의 부하들이었다. 하지만 라그가 계속 남들 듣기에는 재미있지만 본인 들 즉 티아와 테이가 듣기에는 결코 재미없는 말을 계속했다가는 목숨 부지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설명을 끝낼수 밖에 없었다. "저기 끝났는데요." 끝마무리가 썰렁하게 허술한 라그의 설명이 끝났다고 하자 다들 아쉬움 의 입맛을 다지면서 이번에는 엘프자매쪽으로 시선을 옮겨 눈요기를 하 였다. 지금 라보오스는 라그의 설명에는 하등 관심을 안가지고 자매중 에 한명의 가슴이나 엉덩이를 만져보거나 뺨을 붙잡고 이리저리 만져보 면서 평가중이었다. 당하고 있는 이는 테이였다. 테이는 자신의 가슴과 엉덩이-비록 만든거지만-를 라보오스가 만질때마 다 소름이 쫙쫙 돋아서 그냥 한대 날려버리고 싶었지만 티아가 완전여 성화(?) 폴리모프뿐만 아니라 그 놈의 성룡 뺨치는 마법력으로 테이의 힘까지 봉인시켜서 지금은 완벽하게 힘도 못쓰는 소녀엘프가 되버려서 라보오스의 우왁스런 손을 거부하지도 못하고 눈물을 흘리고 비명-입에 재갈이 물려있어서 음음소리밖에 안났지만-을 지르면서 당하고 있는 중 이었다. [거참 테이 다음은 내 차례인가? 이봐요 라그씨 나한테까지 손 안대도 록 해봐요.] [어떻게요?] 적응력 하나는 기차게 빠른 라그는 어느새 머리로 대화하는 마법에 익 숙해져서 티아와 편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그 화려한 말빨 좀 이럴때 사용해봐요. 테이가 당하는건 상관없지만 나까지 꼭 당해야 되겠어요.] [너무해 누나 흐엥.] [남자가 그깟 가슴이나 엉덩이 좀 만졌다고 해서 뭐 어떻다고 그래 닳 는것도 아닌데] [기분 나쁘단 말이야! 그리고 지금은 여자몸이라서 더 기분나빠!] [어차피 속은 남자면서 무슨 엄살.] [우에엥 누나 너무해!] [너 자꾸 울면 나중에 내 손에 죽는다. 그것보다 라그씨 빨리 좀 말려 봐요. 저 놈이 나까지 만질려고 하잖아요! 이대로 저 놈이 내 몸 만지 면 제일먼저 라그씨부터 죽여줄꺼예요.] 티아 말대로 라보오스는 테이의 몸을 어느새 다 평가(?)했는지 이번에 는 티아에게 손을 뻗치고 있었다. 라그는 이제는 남매의 살기어린 말싸 움을 재미있다는 생각으로 관전하기에 이르러서 자신이 해야 될일을 깜 박하면서까지 그 둘의 말싸움을 즐기고 있었다. 정말 무서울정도의 적 응력이었다. 레이나와 이르도 아직 둘의 싸움에 적응이 안되었는데 함 께 행동한지 단 한시간만에 이리도 빨리 둘의 분위기에 적응한것은 라 그가 처음이었다. 그러나 그건 그거고 지금 당장 티아의 몸을 더듬을려는 저 변태남을 안 말리면 확실하게 티아손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라그는 평소보다 더욱더 빠른 머리회전으로 라보오스를 말리기 위해 말을 꺼냈다. "저기 나리 나머지는 얼른 집에가서 직접 확인해보시죠. 눈으로 척 봐 도 특등상품 아닙니까? 이런건 집에서 천천히 확인을 하면서 음미하셔 야지 지금 미리 다 음미하시면 나중에 즐기실때 재미가 떨어지잖습니까 ?" 과연 말빨실력도 초 일류급이었다. 그 말에 라보오스는 기분좋은 미소 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거 이녀석 참 마음에 드는 소리만 골라하는군 그래. 좋아 이런건 천천 히 즐겨야 되지. 암 그렇고 말고." 라보오스는 혼자서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제 기분좋은 말만 해 주는 라그에게 시선을 두고서는 말을 꺼내었다. "너희 도적길드가 이런 보물을 가져올줄은 정말 몰랐구나. 뒤를 봐주었 는데도 날 배신한 저 놈들보다 훨씬 낫군. 마음에 들었다. 그래 원하는 게 뭐냐?" 엑트는 정말로 억울했다. 그래도 지난 10년간 특등엘프들을 공급했고 4 년전에는 엘프마을 하나를 통체로 털어서 갖다바치기까지 했던 공적은 요 몇달 상품이 부진하다는 이유로 배신이라니 이런 기가 찰 노릇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런 엑트의 억울한 심정을 알리 없는 라보오스는 그저 평생을 가도 구 하기 힘든 보물을 갖다준 라그가 그저 귀여워 보일뿐이었다. 덤으로 이럴줄 알았으면 도적길드를 밀어줄걸 하는 생각과 이제부터라 도 밀어줄까 하는 결심을 하게끔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라보오스의 예상과는 달리 라그가 제시한 보답은 그에게는 소박 한 보수였다. "저기 몇달간만 저희 도적길드가 노예상들에게 내는 세금을 감면해주시 면 안되겠습니까? 한 30%라도 좋습니다. 요즘 경기가 별로 안좋아서 말 입니다." "에게 겨우 그건가? 이봐 엑트." "네? 넷!" "앞으로 한 10년간은 도적길드에게서 세금 받지 말아. 그리고 내가 자 네들에게 지원해주는 지원금의 50%는 저들에게 떼주도록." "예~~에?!" "뭐야 불만있어? 지금 당장 내 손길을 거둬볼까?" "아 아닙니다. 라보오스님 말씀에 제가 어찌 토를 달수 있겠습니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엑트에게는 정말로 청천벽력같은 소리였다. 하지만 그렇게 안하면 당장 라보오스가 자신을 보호해주는 그늘은 도적길드에 게 옮겨갈것이고 그렇게 되었다가는 현재 입장이 역전되는 상황도 벌어 질 수 있기에 엑트로서는 거부란 있을수가 없었다. "자 내가 마차한대 불러줄테니 자네는 그거타고 편하게 가게. 그리고 이건 용돈으로 쓰고." 정말 믿어지지 않게 말투까지 부드럽게 바뀐 라보오스는 보기에도 묵직 한 주머니를 라그에게 던져주었고, 티아와 테이를 묶은 마법밧줄-티아 껀 보통밧줄-대신 마력제어팔찌를 채우고는 손수 끌고 갔다. 그리고 마 음에는 안들지만 비상용(?)으로 아까의 엘프까지 끌고 라그와 같이 나 가버렸다. 그가 나가자 마자 소리없는 욕설이 뒤에서 난무하는것을 그는 결코 눈 치챌수 없었다. 라보오스의 시종이 라그에게 마차를 불러주기 위해 자리를 비우고 라보 오스가 먼저 티아와 테이 그리고 엘프를 마차에 태울때 티아는 마지막 으로 라그에게 마법으로 말을 전했다. [이제 당신은 바로 레드포머공작가로 가서 내가 부탁한것을 전해주세 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근데 정말 괜찮겠습니까?] [당신이 시간만 잘 맞춰준다면 위험한 일은 없어요. 뭐 시간이 늦다고 하더라도 나는 결코 당하지 않을꺼예요.] [나는...이라고요?] [뭐 시간이 늦으면 테이가 당하는거야 어쩔 수 없죠.] [누 누나...] 차마 말을 잊지 못하는 테이의 겁먹은 목소리에 라그는 현재 테이가 마 차에 타고 있어서 표정을 보지 못했지만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있을꺼라 는 짐작을 할 수 있었다. 지금 라그가 이 불쌍한 테이에게 해줄수 있는 위로는 딱 하나였다. [도련님 걱정놓으세요. 이 라그 절대 도련님의 정조(?)를 위험하게 만 들지 않겠습니다.] 평소때라면 정조 어쩌고라는 말에 화를 낼 테이지만 지금은 그저... [제발 부탁드려요. 빨리...제발 빨리 전해주세요. 우와앙!] 그저 울면서 인간인 라그에게 애원하는수 밖에 없었다. 계속 드래곤 남매 6화 변태를 잡으려면 변태굴에(2) "뭐라고!" 레드포머공작은 자신의 딸 레이나가 가져온 소식에 소리를 안지를수가 없었다. 그렇게나 기다리던 로헨타이공작가의 아들 라보오스와 노예상 인들과의 결탁에 대한 증거를 잡을 수 있는 결정적인 찬스를 오늘 잡을 수 있다는 소식은 기뻐해야 맞당하지만 지금 레드포머공작은 화를 내고 있었다. 그 이유는 말할것도 없이 티아와 테이때문이었다. 그 둘의 마법실력은 레드포머도 인정하는 바였다. 하지만 아무리 실력 이 좋다고 해도 둘은 너무 어렸다. 뭐 티아와 테이는 실상은 해츨링이라 레드포머보다 나이가 더 많으면 많았지 결코 적지는 않았지만 처음 인간세상에 나왔고 해츨링 나이 300 살이면 드래곤들 입장에서는 어려도 한참어린 꼬맹이이기에 레드포머공 작의 걱정은 틀린게 아닌것이다. "그렇게 말렸건만 결국은 사고를 치는군요." 라이크는 어느정도 예상했다는 듯한 말투로 말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라이크의 말에 동감을 표했다.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일단은 티아와 테이를 구해야죠. 라보 오스는 틀림없이 둘을 데려갈꺼라고요." "확실히 그렇겠죠. 둘의 미모라면야 어느 변태가 안데려 갈려고 하겠습 니까." "지금 당장 기사단을 소집해라." 레드포머공작의 명령에 문앞에 대기하던 집사가 급히 기사들을 소집하 기 위해서 밖으로 나갔다. 기사단은 금방 모일것이다. 공작가의 근처에 숙소가 있기때문에 서두르 면 30분안에 기사들이 모일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레드포머공작에게 선택의 시간은 없었다. 지금 노예상들 을 쳐도 이미 티아와 테이는 그곳에 없을 확률이 컸다. 그러면 직접 로 헨타이공작가를 쳐야된다는 소리인데 그렇게 되면 내전으로 발전할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그 두아이를 그대로 내버려둘수는 없는 노 릇이었다. 선택의 순간이 다가오고 레드포머공작은 세이르아를 쳐다보았다. 만약 그녀가 아이들을 구해달라고 부탁하면 주저없이 그 둘을 구하러 갈 생 각이었다. "저 부인?"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처음 레이나가 이 소식을 전해올때부터 세이르 아는 단 한마디도 안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 레이나도 세이르아의 상태 가 심각하다고 생각했는지 그녀의 어깨를 가만히 잡으면서 걱정마세요 라고 말할 참이었다. 쿵~~~~ "아악 세이르아님!" "부인!" "세이르아 마님!" "티아 어머니!" 세이르아는 그대로 선채로 기절해 있었다. 레이나의 생각보다 훨씬더 심각한 상태였던것이다. 이르는 기절한 세이르아를 간호하면서 드래곤 도 자식걱정에 기절도 한다는 새로운 사실에 세상은 오래살고 볼일이라 고 생각했다. 세이르아의 기절덕분에 레드포머공작은 결심을 굳히게 되었다. 자신도 딸자식 가진입장에서 세이르아의 심정을 모르는게 아니었다. 비록 내전 발전일지도 모를 위험한 도박이긴 하지만 티아와 테이가 로헨타이공작 에 잡혀있다는 움직일수없는 증거가 있기에 그걸 믿고 일을 벌릴 결심 을 하였다. 그런데... "공작님 티아아가씨의 전갈을 전해주러 왔다는 사람이 왔습니다." 기사단을 부르러 갔던 집사가 들어와서 이 소식을 전해주었다. "전갈?" "티아의?" "역시 티아 아가씨는 무언가 계획을 세워두었던거군요. 역시 저의 티아 아가씨가 아무생각없이 뛰어들지 않았을꺼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제이크의 말에 집사를 바라보던 시선이 다시 일제히 제이크에게 쏟아졌 다. "저의?" "티아 아가씨?" "언제부터?" 마지막 라이크의 질문에 제이크는 정말로 당당한 표정으로 말했다. "티아 아가씨를 처음 만난 순간 그때부터." "입에 침이라도 바르고 말해라." "뭐라고?" "거기까지만 해두게. 그리고 헨딜 전갈을 가져왔다는 자를 들여보내게. " 레드포머공작은 둘의 막 시작될 참이었던 말싸움을 중지시키고는 티아 의 전갈을 가져왔다는 자를 들어오게 하였다. 그리고 그 전갈을 가지고 온 시원스런 인상의 남자를 보는 순간 레이나와 이르의 눈이 놀라움으 로 커졌다. "당신 살아계셨네요." "테이가 정말 죽일듯이 때리던것 같던데 언제 치료를 받았어요?" 레이나와 이르의 안부(?)를 묻는 말에 라그는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 다. "다시 만났군요. 아름다운 두 레이디. 상처는 티아 아가씨가 치료해주 셨습니다. 아 그렇게 도끼눈으로 노려보지 말아주세요. 지금 상상하고 계시는 생각이 대충 뭔지 짐작이 가는데요. 저도 티아 아가씨의 협박때 문에 도와던겁니다. 저의 자의가 아니었다고요." 라그의 인사겸 긴 변명을 들은 두 여자는 한숨을 쉬면서 역시 그랬군이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티아가 무슨 계획으로 이런 일을 벌렸는지 궁금 해졌다. "티아의 계획이란건 뭔가? 어디 줘보게." 레드포머공작은 철없는 아이들이라는 생각은 못 버렸지만 그래도 한가 닥 기대를 가지고 티아가 써주었다는 계획을 받아서 읽어보았다. "허허...과연...이 장미아가씨는 정말 큰 인물되겠군." 묵묵히 편지를 읽던 레드포머공작의 얼굴은 점차 밝아지면서 나중에는 얼굴전체에 미소를 띠면서 흡족한 만족을 표했다. "무슨 계획이예요 아버지. 티아와 테이가 위험에 처하는건 아니겠죠?" "걱정말아라 레이나. 티아도 위험한건 싫은건지 아주 세세한것까지 부 탁해놓았구나. 다만 시간이 촉박해. 장미아가씨의 계획대로 할려면 지 금 당장 출발해야되겠군. 헨딜 기사단은 전부 모였나?" 레드포머공작은 편지를 레이나에게 넘기고는 헨딜을 돌아보았다. 헨딜 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모든 기사단이 전부 모였습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출발할 수 있습니 다." "좋아. 지금부터 내가 해야될일을 하러가겠다. 그러니 그쪽 두 용병은 편지를 다 읽으면 바로 출발하게. 말은 미리 준비시켜두겠네." 그렇게 말하고는 레드포머공작은 바쁘게 밖으로 나갔다. 남은 사람들은 레이나가 편지를 받아서 읽기 시작하자 이르와 제이크 그리고 라이크가 궁금한 표정으로 레이나 뒤에 섰다. 그리고 편지를 다 읽은 그들은 그 제서야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을 표했다. "이런 계획이라면 성공하면 별탈없이 이번일을 마무리 지을수 있겠군 요." 라이크의 말에 제이크는 싱긋웃으면서 이미 예견하고 있었다는 투로 말 했다. 아니 그는 정말로 티아를 믿고 있었을것이다. "내가 뭐라고 했어. 티아아가씨가 계획없이 그 변태굴에 뛰어들지 않았 을꺼라고 했잖아." "니가 언제 그런말 했냐?" "방금." 가을의 쌀쌀한 밤공기가 더욱 차가워지는걸 느끼면서 라그가 힘들게 입 을 열었다. "그만하고 빨리 갑시다. 읽어보셨으니 알겠지만 이번일은 시간과 타이 밍 싸움입니다.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큰일이라고요. 자칫잘못하면 테이 도련님의 정조가 위험해집니다." "에? 저 저기요. 테이는...남잔데..." 정조라는 말에 레이나가 조금 부끄러운듯 라그의 말을 정정해주자 라그 는 고개를 흔들면서 자신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고 다시 설명해주었다. "테이도련님이 위험한게 맞습니다. 지금 테이도련님은 티아아가씨의 마 법때문에...그 무슨 마법이더라...어째든 완벽한 여자가 되었습니다." "에? 이 이르 그렇게도 되는거야?" "티아아가씨의 실력이라면 그정도의 고난이도 폴리모프가 가능할껍니 다." 아니 틀림없이 가능하다고 이르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테이한테 들은 적이 있었다. 티아는 해츨링인데도 마력이 성룡뺨칠 정도로 뛰어나서 자신은 이긴적이 없다는 푸념을 들었었다. 보통 성별까지 확 바꾸버리 는 폴리모프는 원만한 하이클래스 마법사정도 되야 가능했고, 드래곤이 라 할지라도 성룡이 되어야 가능했다. 하지만 티아의 마법실력을 몇번 볼수 있었던 이르는 테이의 그때 푸념이 거짓이 아니란걸 알고 있었고 지금 라그가 했던말이 사실일꺼라고 생각했다. 아무튼 라그가 한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레이나는 또 다른것 이 궁금해졌다. "어떻게 테이가 위험할꺼라고 그렇게 단언할 수 있으세요?" 레이나는 물어보면서도 불길한 예감이 자꾸만 들었다. 그리고 불길한 예감은 멋지게 맞아떨어졌다. "티아아가씨 입으로 직접 들었습니다. 자신은 안당할 자신이 있지만 시 간이 늦어서 테이가 당하는건 어쩔수가 없다고요." "설마했었는데...그 둘 정말 남매 맞을까?" "제 말이 그말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설마 그렇게 될때까지 티아가 가만히 있겠어요. 그래도 동생인...." 말은 티아의 편을 들어주면서도 이르는 그 말을 끝까지 하지 못하였다. 남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한숨을 푹 쉬면서 각자의 분담역활에 맞게 몸 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테이의 안전을 위해.... 인간들 속담에 드래곤을 잡으려면 레어에 들어가라 하는 말이 있단다. 그 인간들 속담처럼 누나와 나는 변태 라보오스를 잡기위해 지금 라보 오스의 저택까지 들어왔다. 누나의 철저한 준비성 덕분에 난 아무의심 사지 않고 뜨끈뜨끈한 목욕물에 시녀들의 시중을 받으면서 목욕을 할 수 있었다. 손에는 여전히 마력제어팔찌가 쇠사슬에 연결되어서 채워져 있어 입고 있던 드레스는 시녀들이 가위로 짤라서 벗긴다음에 씻겨주웠 다. 대신 입은 드레스는 소매없는 하얀 원피스로 어깨에서 묶는 형태였 다. 어깨에 묶을때도 살짝 잡아당기며 금방 풀어지게 만들어서 남자들 입장에서는 참으로 편한(?) 용도의 잠옷을 겸하는 얇은 드레스라 인간 여자들 사이에서는 신혼여행준비물 필수폼목이라나 뭐라나 하는 소리 를 나중에 듣게 되었다. 목욕하는 와중에도 풀죽은 내 얼굴과는 달리 누나의 표정은 여유를 부 리면서 목욕을 즐기고 있는게 내 눈에 훤히 보였다. 정말이지 친누나지 만 그때만큼은 온갖 욕이 다 나올껏 같았다. 목욕 끝내고 무슨 향수 비 슷한것을 몸에 바르고는 아까 말한 신혼부부첫날밤용(?) 원피스를 입은 다음에 우리는 우락부락한 남자에게 끌려가서 어느 방에 들어가게 되었 다. 이르누나의 이야기 대로라면 이 방이 바로 변태보스의 방이었다. 폴네임은 발음하기가 귀찮다고 누나가 멋대로 지은 그 자식의 별명이었 는데 참으로 기억하기 쉽고 그 자식 이미지에도 잘 맞는 별명인지라 어 느새 나도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촛불몇개만 은은하게 밝혀져 있는 방안에는 그 역겨운 변태보스가 보기 에도 역겨울정도의 미소-라고 생각된다-를 지으면서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속박] 녀석이 룬어로 이 팔찌의 시동어를 말하자 곧 내 머리는 썰물빠져나가 듯이 정신이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필사적으로 저항해보았지만 누나에 게 마법과 힘을 봉쇄당한 나의 저항은 헛수고였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걸 느끼면서 누나를 보자 누나의 눈은 벌써 반쯤 풀어져 있었다. 그러 나 난 똑똑히 알 수 있었다. 지금 누나는 연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그래도 누나의 힘은 예상대로 통하는구나. 그거 하나는 다행이...' 그렇게 약간의 안심을 하면서 난 마지막 이성의 끈을 놓치고 머리속이 백지가 되었다. 드래곤 남매 6화 변태를 잡으려면 변태굴에(3) 라보오스가 가고 난뒤 노예상들은 두목의 갑작스런 얼차렷에 죽을 맛이 었다. 더구나 그 강도는 원만한 기사단의 훈련보다 더욱 심해서 노예상 들은 정말로 초죽음 상태까지 갔다. 엑트는 그것 갖고는 성이 안찾는지 월급까지 50%를 깍아버리겠다고 해 서 정신적인 데미지까지 주었다. 노예상들은 정말로 억울했다. 그들은 놀고 먹은게 아니었다. 정말로 열심히 온 도시를 이잡듯이 뒤졌고 축제 를 맞아서 이번에는 정말 대목 잡아야 된다는 생각에 가까운 마을이며 도시까지 원정가서 엘프를 몰색했건만 거짓말 하나 안보태고 혼자다니 는 잡기쉬운 만만한 엘프는 어딜가도 눈에 뛰지 않았다. 도대체 할줄 아는거라고는 소매치기밖에 더 있겠느냐고 생각하고 있던 도적길드에서 무슨수로 그런 고급이다 못해 아이템으로 치자면 초레어 급에 속하는 쌍둥이 엘프를 잡아왔는지 생각하면 할수록 신기하고, 자 신들은 그렇게 찾을때 안보이다가 도적길드에 덜컥 잡혀온 그 엘프들이 정말로 원망스러웠다. 두어시간을 강도높은 얼차렷과 월급하락이라는 정신적인 데미지로 힘이 쭉 빠진 노예상인들이 힘들게 각자 잠자리로 찾아가 거의 쓰러지다 시 피 할때 그날따라 운명은 그들을 철저히 고생시키기로 마음먹었는지 누 운지 10분도 안되서 급히 일어나야 되었다. "기사단이 쳐들어왔습니다!" 엑트는 정말로 오늘을 절대 못잊을꺼라고 생각했다. 정말 엎친데 덮친 격이라는 말로도 종일 재수없는 이 날을 표현하기에는 부족했다. 그들 이 쳐들어온 타이밍은 정말로 절묘했다. 하필 부하들이 완전히 녹초가 된날 쳐들어온건 또 뭐란 말인가? 부하들이 팔팔했다면 그래도 저항이라도 하면서 자기 도망갈 시간은 벌 수 있었겠지만 부하들을 지치게 만든것은 바로 자신이니 뭐라 할말도 없었다. 그저 이 모든 사태가 도적길드녀석때문이라고 책임전가 하면서 이를 갈수밖에.... '쳇 아무리 그래도 라보오스녀석이 금방 빼주겠지. 아무리 오늘 도적길 드 녀석때문에 인심을 좀 잃었다지만 그래도 그동안의 갖다바친게 어딘 데...' 그래도 마지막으로 믿는 구석이 있어서 엑트는 순순히 잡혔다. 그렇게 걱정을 놓고 있던 엑트는 얼마후 정말로 오늘을 이 사태를 만든 운명을 저주하며 욕을 바가지로 해야되었다. 그가 포박당하고 어느 사람에게로 끌려갔는데 그 사람은 그도 몇번 얼 굴을 본 사람이었다. "레 레드포머 공작..." 그렇다. 레드포머공작이 손수 기사를 이끌고 쳐들어왔던것이었다. 이때부터 엑트는 뭔가 일이 틀어지고 있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긴 말은 안하겠다. 이미 제보자에게 듣고 온것이니 거짓말 할 생각은 버려라. 티아님과 테...아니 레아님을 누구에게 넘겼느냐?" "티아님? 레아님? 그들이 누구죠. 저는 처음들어보는 이름입니다." "너희들이 납치했던 쌍둥이 엘프님들 말이다! 너 이놈 그 분들이 누군 줄 알고 이런 일을 벌인거냐!" "예? 그 엘프들이 누굽니까?" 엑트의 그 안좋은 머리가 또 한번 스스로 무덤을 파는 말을 하였다. 이 미 쌍둥이 엘프를 안다는 말투로 반문해버린 엑트는 이제와서 모른다고 잡아뗄수도 없게 된것이다. 그러나 엑트는 자신이 말실수를 했다는 사 실조차 알아채지 못하고 그저 그딴 엘프에게 님자를 붙인 레드포머공작 이 신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정말로 그딴 엘프들밖에 되지 않았다. 그의 머리속에는 엘프 는 그저 돈벌이용 가축이라고만 각인되어 있어 다음에 왕이 될지도 모 른다는 소문이 들리는 레드포머공작이 엘프에게 높임말을 쓴다는게 그 저 신기할 뿐이었다. "이 바보같은 놈아! 그 두분은 엘프들의 로드인 하이엘프 카슈타르님의 손녀들이자 이번 축제를 맞아서 특별히 우리 집에 초대한 귀하신 손님 이다. 너 이놈 만약 그 두분께 어떤 해라도 끼쳤다면 너의 목숨은 이미 없다고 생각해라!" 엑트는 정말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이엘프가 뭔지는 알고 있었다. 다 만 일반엘프보다 조금 오래산다고만 들어서 그것만 알고 있다는게 문제 였다. 하이엘프는 엘프족들중에서 몇 안되는 신비스런 이로 통하고 있 었고 그 몇명 안되는 하이엘프들은 그리노 대륙전체에 퍼져서 각 지역 의 엘프들을 다스리는 로드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니 인간으로 치자면 한나라의 국왕이었고 그의 손녀란 말은 일국의 왕자와 공주란 말과 같 았다. 그러나 불행이도 엑트는 거기까지 몰랐기 때문에 왜 엘프 몇명갖 고 목숨까지 잃어야 된다는 말인지 몰라서 억울하고 답답했다. 그리고 결국 그걸 그대로 말로서 해버렸다. "나리 억울합니다. 그깟 엘프로드가 뭐길레 사형이란 말입니까? 그리고 그 둘을 잡은거 저희들이 아닙니다." 처음말은 무식에 의한 실수였고 두번째말은 그래도 어느정도 사실이었 다. 자신들이 안잡은것은 정말이었다. "이 바보같은 놈아! 만약 그 두 분의 신변에 위험이 생기면 우리는 이 그리노 대륙의 전 엘프를 적으로 삼는거와 마찬가지이다. 100년전의 우 리국가에 있던 엘프들과의 전쟁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정도의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바로 너 녀석의 멍청한 짓 때문에 말이다. 그리고 분명하게 목격자가 있는데 어디서 거짓을 말하는것이냐? 분명 내가 찾 고 있는 두 엘프자매분이 여기서 나와서 누군가에게 끌려간걸 본 목격 자가 분명히 있는데 그래도 계속 거짓을 말할 생각이냐?" 엑트는 전쟁이라는 단어에 그제서야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태가 심각 하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정말 이런 인간이 어떻게 노예상을 이만 큼이나 키울수 있었는지 정말로 불가사의였다. 무식하면 장땡이라는 말이 있다지만 무식에도 정도가 있지 명색히 엘프 들을 잡아서 노예로 팔아먹는다는 노예상의 두목이란 작자가 이렇게 엘 프들의 사회에 대해서 모르고 있다니 레드포머는 기가 찰 노릇이었다. 만약 증거가 없어서 로헨타이공작가의 그늘에서 활동하는 이 노예상인 들을 계속 지켜보기만 했다면 이들은 정말로 큰 사고 한건 치고 나라를 확실히 말아먹을 놈들이었다. 그리고 라보오스에게도 다시금 깊은 분노 를 느끼는 레드포머였다. 도대체 그 공작가에서는 자녀교육을 어떻게 했기에 이렇게 나라를 말아먹을지도 모르는 짓을 버젓히 할 수 있단 말 인가? 분명 티아와 테이가 엘프로드 카슈타르의 손녀라는 말은 티아가 지어낸 거짓말이었다. 그러나 정말로 그들이 엘프로드의 가족을 건드렸다면 아 니 그들이 지금까지 엘프들을 노예로 불법적으로 부렸다는 사실이 엘프 로드의 귀에 들어간다면 이 나라와 대륙전체의 엘프들과 전쟁이 날지도 모른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그들은 지금 언제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옆에 끼고 자신들의 욕심을 채 워왔던 것이었다. 레드포머는 더 시간을 끌면안되겠다는 생각에 검을 빼들고는 엑트의 목 을 겨누었다. 엑트는 시퍼런 검날이 자신의 목을 노리자 얼굴이 사색이 되어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더듬더듬 용서를 구했다. "자 잘못했습니다. 나리 모르고 한일이니 제발 목숨만은...제발 목숨만 살려주십시요." 레드포머는 역시 이런 인간은 말보다는 실력행사가 낫다는 사실을 확인 하고, 덤으로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자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지금 목숨을 위협받고 있는 엑트는 그런 레드포머의 미소조차 소름이 끼칠정도로 공포스러웠다. "그럼 다시한번 묻겠다. 여기 납치된 쌍둥이 엘프님들을 어디로 보냈느 냐?" 엔드르는 레이나의 연락을 받고는 급히 휘하의 경비대를 이끌고 거리를 수색하기 시작했다. 이제서야 엔드르라는 남자의 직업이 밝히는데 뛰어 난 실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썩어빠진 왕가와 나라정책에 적응을 못하 고 동쪽지구의 경비대 대장으로 머물고 있던 엔드르지만 이번만큼은 엔 드르의 직업이 확실히 도움이 되었다. 엔드르는 이미 사정을 들었기에 로헨타이공작가의 거리만 유난히 시끄럽게 수색하면서 검문을 심하게 하였다. 덕분에 그곳에서 야간축제를 즐기던 많은 시민들에게 뭔가 문 제가 생겼다는 인식을 팍팍 심어줄수가 있었고, 덤으로 그 곳에 있던 사람들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켜서 몇명이 경비병에게 이유를 물어보았 다. 그리고 경비병들은 미리 엔드르가 시킨대로 대답해주어서 거리에는 삽시간에 소문이 쫙 퍼졌다. "정말 나라가 뒤숭숭하니 성스러워야 할 축제때도 이런 개같은 일이 생 기는구나." "야 도대체 무슨일이냐? 나도 좀 알자. 오늘 도대체 왜 이렇게 경비대 가 야단이야?" "어느 미친 노예상들이 엘프로드의 손녀들을 납치했데 정말 미친놈들이 지. 100년전에 일어났다는 그 끔직한 전쟁의 확장편을 벌이자는건가?" "100년전에 일어났다는 엘프들과의 전쟁이라면 그때 엘프들도 확실히 타격을 많이 입었을텐데 전쟁을 다시 벌일 여유가 있을까?" "이 멍청아 그때는 우리나라에만 있던 엘프와의 전쟁이었잖아. 엘프로 드는 이 대륙 모든 엘프들의 지도자나 마찬가지야. 지금 그 멍청이들때 문에 이 대륙 전체 엘프들과 전쟁이 날지도 모른데." "쳇 그것뿐이겠냐. 엘프로드들은 드워프나 기타 타종족과도 친분을 맺 고 있다고 들었어. 그런 타종족까지 전쟁이 끼어든다면...으이그 끔찍 하다 끔찍해." "더 걱정되는건 옆에 프론트연합의 신룡들이 가만히 구경할까 하는거 야. 그 드래곤들이야 프론트연합만 안건드리면 움직이지 않는 존재라지 만 이번 타종족간의 전쟁이 일어난다면 우리 인간편을 들어주겠냐? 바 로 타종족편 들어주겠지." "그렇게 되면 프론트연합과 교역도 끊기겠군. 하아 우리가게는 프론트 특사품이 매장전체의 60%를 차지하고 있는데 만약 수틀리면 우리가게는 망했다." "그리고 전쟁이 일어나면 가이라가 왕국이 잘도 구경만 하겠다. 이 기 회를 잡아서 엘프들 도와준답시고 쳐들어오면 우리나라는 정말 끝장이 야." 경비병들이 귀뜸해준 말은 단지 귀하신 엘프로드의 손녀들이 축제구경 하러 왔다가 노예상인들에게 납치되서 어디로 팔려가서 비상이 걸렸다 는 말뿐이었다. 그러나 엘프사회에 대해서도 잘아는 사람들과 확대해석 하기 좋아하는 인종들 덕분에 소문은 눈덩이처럼 커져가서 결국에는 다 이러스는 망했다라는 말까지 나돌고 있었다. 시민들은 하나같이 그 정신나간 미친놈을 잡아서 이 불안한 사태를 해 결해주었으면 하는 생각뿐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백지상태였던 내 머리가 어느정도 사고를 하 게 되자 난 흐릿한 눈에 초점을 맞춰서 주위를 둘어보았다. 내 팔은 침 대 모서리에 단단히 결박되어 있었고, 누나는 그 옆의 모서리에 결박당 한체 앉아있었다. 그리고...나는...침대에 누운 상태였고...으아악!! 그 보기싫은 변태보스가 내 얼굴을 쳐다보면서 웃고 있었다. 불안한 예 감은 결국 적중했고 내가 첫타자(?)가 된것이다. 재갈에 물려서 말을 할수 없는 나는 그저 신음을 흘리면서 몸부림을 필 사적으로 칠뿐이었다. 그 변태보스는 실실 웃으면서 시선을 누나쪽으로 욺기고는 말을 하였다. "내 뛰어난 추리력으로 생각하건데 거기 아까부터 무서운 표정으로 날 노려보는 너가 언니가 맞겠지. 그리고 여기 처음부터 겁에 질려서 울고 있는 여자가 동생이고." '난 여자 아니야!' "처음에는 재수없게 노려보는 널 먼저 괴롭힐까 생각했는데 생각이 바 뀌었다. 너가 보는 앞에서 너 동생을 먼저 범해주지. 그리고 그 뒤에도 너가 그런눈으로 날 노려볼수 있는지 어디 한번 지켜보마." 그러면서 그 놈은 자기 셔츠를 벗어서 옆으로 던졌다. 벗지마! 남자의 벗은몸을 침대에 누워서 보자니 역겨움을 넘어서 정말 말로 표현 못할 정도로 정신적 대미지를 입을것 같다. 그리고 그 놈은 내가 입고 있는 풀기 편한 옷을 푸는게 아니라 아예 쫙 찢어버렸다. 속옷? 아까 시녀들이 옷갈아 입힐때 노 부끄럼가리개에 노 으뜸부끄럼가리개의 스타일로 만들어주었기에 누나가 폴리모프로 만든 나의 탐스러운 젖가슴이 전부 그 녀석에게 노출되었다. 노출되었는데...이런 상황에서 마법으로 만든 내 가슴보고 탐스런운 젖 가슴이라고 표현하는 난 대체....겨우 이틀 여장했다고 이리 빨리 적응 이 되버리다니 내 적응력이 무서울정도다. "음음! 음음음음!(꺄악! 만지지마!)" 잠시 딴 생각하는동안 그 놈이 내 가슴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아까 옷 위로 만졌을때도 까무러치게 기분나빳는데 지금은 정말 까무러 칠것 같 았다. [누나! 누나 도와줘!] [테이야!] [응 빨리 도와줘 누나!] [기분 어때?] 이 무슨 고스트 씨나락 까먹는 소리란 말인가? 동생은 지금 성희롱때문 에 미쳐버릴것 같은데 갑자기 기분 어때? 라니!! [장난치지 말고 빨리 도와줘. 기분이 어떻냐니? 그건 또 무슨 소리야?! ] [그게 책에보면 인간들이 사랑할때 남자가 여자몸을 만져주면 여자들이 기분좋다고 하잖아. 어차피 나도 성룡되면 유희중에 겪게 될테니깐 미 리 어떤 느낌인줄은 알고 당해야 편안한 마음으로 당하잖아. 그러니깐 어떤 기분인지 말 좀 해봐.] 지금 내 가슴을 만지는 변태보스는 내 가슴때문에 누나에게 눈길을 못 주고 있어서 못봤겠지만 난 똑똑히 보았다. 누나의 정말로 궁금해 하는 순수한 호기심의 눈빛을...난 잠시 얼이 빠져서 멍하니 있다가 변태보 스가 목덜미를 ?자 퍼득 정신을 차리고는 다시 누나에게 소리를 질렀 다. [느낌은 무슨 느낌! 난 기분나빠 죽겠단 말이야! 난 남자인데 남자가 내 몸 더듬으면 기분좋을리가 없잖아!] [왜 인간들 문학중에 아오이라는 장르보면 남자들끼리 서로 좋아하는 내용도 있던데 그런걸로 치고 느껴보면 되잖아.] [날 그런 특수분류(?)에 끼워넣지마! 아악 이놈의 혀가 가슴으로 내려 간다! 동생 그냥 당하게 내버려 둘참이야? 빨리 도와줘 누나!] [걱정마 마지막까지는 가게 만들지 않을께.] 누나는 정말로 걱정할 필요없다는 투로 말했지만 누나의 말뜻은 마지막 까지는 안가게 만들테니 나머지 당해볼거(?)는 다 당해보라는 말이나 마찬가지 뜻이었다. 그러나 난 이대로 마지막 빼고 당해볼거 다 당할 마음은 눈꼽만치도 없었다. 그 놈의 손이 남은 옷가지를 완전히 다 찢 어버릴 낌새를 보이자 나의 머리는 정말 여느때와는 달리 필사적으로 이 난관을 벗어나기 위해 엄청난 머리회전을 하였다. 그리고 위기를 벗어날 방법을 찾았다. 극한상황에 몰리면 평소 발휘하 지 못하는 힘을 100% 발휘한다던가? 이건 인간들에게만 해당되는 상황 인줄 알았는데 드래곤에게도 해당된다는 사실을 그 날 처음 알았다. [누나!] [응? 왜 느낌이 오니?] [헛소리는 그만해! 그것보다 누나 내 몸 누나가 폴리모프 시켰지.] [당연히 내가 시켜주었는데 무슨 확인작업이니?] [그럼 이 몸 누구몸을 기본으로 폴리모프 시킨거야?] [그거야 당연히 내 몸....꺄악 이넘의 변태가!] 누나의 안색이 갑자기 180도 바뀌면서 이제 남은 치마를 막 벗길려는 변태보스를 뻥하고 걷어차버렸다. 그제서야 난 살았다는 안도의 한숨을 쉴수 있었다. 누나는 바로 그 자리에서 마법제어팔찌에 연결된 쇠사슬 을 끊어버리고 팔찌도 잡아뜯어버렸다. 평소에는 무식한 힘이라고 말했겠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고마운 힘이 었다. [누나 나도 나도.] 나의 애원에도 아랑곶 안하고 누나는 저 멀리-참 방이 넓기도 넓었다- 벽에 부딧쳐서 끙끙거리는 변태보스를 쳐다보면서 차갑게 입을 열었다. "감히...감히 인간주제에 내 몸을 만졌겠다. 그 댓가는 톡톡히 치러주 마." 그 순간 막 자리에서 일어나던 변태보스와 힘들게 몸을 일으켜서 침대 시트로 내 몸을 막 가리고 있던 나는 똑같은 눈빛으로 누나를 쳐다보게 되었다. 아마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저 녀석이 언제 누나를 만졌다는거야? 만져진건 바로 난데...' 그 녀석과 나는 똑같이 억울한 표정으로 누나를 쳐다보았다. 드래곤 남매 6화 변태를 잡으려면 변태굴에(4) 누나는 정말로 화가 난 눈으로 변태보스를 노려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변태보스도 그 눈빛에 주녹이 들었는지 겁먹은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점차 어차피 여자엘프라는 생각때문인지 몸을 일으키고는 옆에 있던 검 을 빼들었다. 난 변태보스놈이 빼들기 전에는 그게 검인줄 몰랐다. 무 슨 장식폼도 아니고 요란벅적하게 보석으로 치장되어 있는지 원.... 무기의 미학이라고는 전혀 모르는 놈이었다. "계집년 주제에 힘은 무식하게 쎄군. 하지만 그것도 거기까지다. 감히 미천한 엘프주제에 이 몸을 차다니...흐흐흐 사지를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고 널 범해주겠다! 너는 특별히 평생토록 눈물흘리게 만들어 주마. 아니지 그정도로 오래 내 품에 안기면 너도 생각이 달라져서 나에게 자 진해서 안기게 될날이 오겠지. 그렇게 되면 그때는 널 주저없이 내 손 으로 죽여주는것도 나쁘지 않겠군." "웃기고 자빠졌네." 아주 장황한 헛소리를 누나가 단 두마디로 압축시켜서 되받아쳐주자 그 놈의 눈이 순간적으로 분노에 불타서 검을 휘두르며 외쳤다. "너 이년! 우리 로헨타이 기사단들도 이 나를 한번도 이겨본적이 없다 는 것을 모르겠지. 오늘 너의 오만방자함을 철저하게 깨부서주겠다." "어이구 그러셔. 하지만 당신상대는 내가 아니야." 누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나의 손에 채워져 있던 마력제어팔찌를 부숴주 었다. 손이 자유러워지자 난 입에 물린 재갈을 풀었고 그때서야 누나는 봉인시켜두었던 나의 힘을 풀어주었다. "레아야 너 선에서 해결해라." "의외네. 누...아 아니 언니라면 직접 죽일듯이 팰줄 알았는데." "그럴라고 했지만...저 엉성한 자세와 전혀 맞지 않는 저 이상한 자신 만만함을 보니 웬지 힘이 빠진다. 나중에 내가 때릴부분만 남겨나." "확실히 자세가 엉성하네. 이곳 기사들 실력은 전부다 저런가?" "이 이놈들이 나를 얕보는거냐?" "응." "맞아." 이때만큼은 누나와 나의 마음과 호흡은 척척 맞아떨어졌고, 그만큼 변 태보스의 얼굴은 점점 더 분노로 붉어졌다. "이 이 미천한 엘프년들이 죽여주겠다. 아니 죽이는건 아깝고...아무튼 혼내주겠다." "넌 입으로 싸우냐 변태보스." "이년. 내 이름은 라보오스 로헨타이다. 자랑스럽고 긍지높은 로헨타이 공작가의 외아들보고 감히 변태라는 망언을 하다니 죽고싶으냐?" "아무리 봐도 변태맞는데." "맞어 변태보스 맞잖아." "내 이름은 라보오스라니깐!" "그래 너 보스인거 알어. 거기다가 변태이고." "그러니깐 합쳐서 변태보스." 난 무기가 될만한것을 찾으면서 누나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아마 도 지난 300년간 누나와 이렇게 호흡이 척척 맞는 일은 없었을것이다. 새삼스럽지만 누나와 난 역시 쌍둥이가 맞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눈에 뜨는 무기가 없다 뭐에 쓰는줄은 모를 물건은 잔뜩 있었 지만....그나저나 이거 내 거기랑 무척이나 닮았는데 어디다 쓰는거야. ...쩝 무기나 찾자. 그러나 무기가 될만한 것이 주위에 안보여서 난 할수없이 근처 탁자의 다리하나를 부러트려서 검대신 쓰기로 하였다. 내가 나무몽둥이를 잡고 자세를 취하자 변태보스놈이 코웃음을 쳤다. "여자주제에 폼을 좀 잡는다지만 어차피 여자 내 상대가 될수는 없다. 그냥 아까처럼 얌전히 있으면 천국을 경험시켜 줄테니 생각을 바꿔라." "아까 언니도 말했지만 다시한번 더 말할께. 넌 입으로 싸우니?" [호오 테이야 제법 여자같은 말투를 쓰게 되었구나. 그렇게 말하니깐 굉장히 귀엽다.] [그 그거야 저 놈이 날 여자라고 믿게 만들어야 되니깐. 연기야 그냥 연기라고!] [으음 그래 연기 음 연기 좋지.] [뭘 비꼬는거야?] [여유부려도 돼? 저 놈이 덤벼드는데.] 누나가 말안해도 놈이 덤비고 있는것은 아까부터 눈으로 보고 있었다. 그러나 정말로 한심할 정도로 느리고 박력없는 공격에 정말 상대하는 내가 힘이 쭉 빠지는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그대로 힘없이 놈의 공격을 맞아줄 생각은 없었기에 살짝 몸을 틀어서 피하면서 다리를 살짝 걸어 주었다. 아주 큰소리가 경쾌하게 울려퍼지면서 바닥에 나딩구는 놈을 보면서 난 한숨을 푹 쉴수 밖에 없었다. "정말 기사들을 이겨던거 맞아? 이건 상대할 가치도 못 느끼겠잖아." "이 이년이 비겁하게 다리를 걸다니...." "나무몽둥이 들고 있는 여자에게 검 휘드르는 남자는 안 비겁하고?" "시끄럽다. 나와 너같은 미천한 엘프를 똑같이 취급하지 말아라." "정말 왕자병도 너 정도 수준이면 정신병 수준이다." "시끄럽다!" 그놈은 다시 일어서서 검을 있는대로 크게 휘둘렀다. 얼마나 쎄게 휘둘 렀으면 내가 슬쩍 비키기만 했는데 자기힘에 그대로 바닥에 넘어질 정 도였다. 그 모습을 보니 대결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싶을 지경이었 다. 그래서 솔직하게 누나에게 말했다. "언니 이거 도저히 상대할 생각이 안들잖아. 이런 재미도 없는 대결을 계속 해야돼?" "하아...어차피 보는 나도 괴롭다. 대결모드에서 구타모드로 바꿔라. 아 내가 때릴곳도 남겨둬라." "응." 난 고개를 끄덕이고 바닥에 엎드려서 코를 쥐고 신음하는 그 놈을 돌아 보았다. 아마도 바닥에 엎어지면서 코라도 박은 모양이지. "겨우 코 하나 박은것 같고 그 모양이야? 참내 내가 본격적으로 패면 울고불고 난리나겠네." "이 이년이!" "시끄러워!" 난 아까부터 욕만 해대는 재수없는 그 놈의 입부터 먼저 차주었다. 놈 은 그래로 공중에서 한바퀴돌고는 다시 바닥에 얼굴을 쳐박고는 신음 을....흘리지 않고... "언니." "응?" "이 녀석 기절했어." "겨우 한방에?" "응 한방에..." 누나와 나는 진심으로 황당하다는 시선을 나누었다. 제이크와 라이크는 라그의 안내를 받아서 로헨타이 공작가의 정문앞에 서있었다. 그리고 라그는 즉시 상황을 알아본다면서 어둠을 틈타 저택 으로 숨어들어갔다. 그리고 얼마후 라그는 어둠속에서 몸을 불쑥 내밀 어 제이크와 라이크를 놀라게 만들었다. "깜작놀랐잖아. 인기척이라도 내고 다니면 안되나?" "도적이 인기척 내고 다니는거 봤어?" "본적은 없지만...그래도 놀랐잖아." "안의 상태는 어때?" 라이크의 질문에 실없는 농담따먹기는 거기서 그치고 라그는 진지한 어 조로 말했다. "아가씨들이 행동을 계시하셨어. 아마 조금있으면 저택문을 열고 나오 실꺼야." "아가씨들?" "......아가씨와 도련님이라고...해야겠지?" "어차피 지금은 도련님도 아가씨로 완전히 변했다면서 그럼 나중에 입 을 맞출때 헷갈리면 안되니깐 그냥 지금부터라도 아가씨들로 가자고." "그건 그렇군." "그럼 이쪽도 행동 계시하자고. 오랜만에 짜릿한 일거리를 맡았더니 몸 이 안달이 난거 같아." 제이크는 티아에게 받은 마검의 손잡이를 만지면서 흥분을 가라앉힐려 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래도 몸의 미세한 떨림은 막을 수 없었기에 옆 에서 보면 검을 쥐고 실실 웃으면서 몸을 떨고 있는 미친놈처럼 보였 다. 라그는 진정으로 걱정이 되어서 라이크에게 물었다. "저 친구 괜찮은거야?" "저레보여도 실력은 뛰어나. 나중에 확인해보면 알꺼야." 그렇게 말하면서 라이크는 자신의 장비를 점검하고는 말했다. "가자 이제부터는 타이밍 싸움이야." 테이는 앞서걸으면서 눈에 보이는 사람은 모조리 때려눕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야간순찰을 돌던 경비병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테이를 발 견하고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멍하니 바라만 보다가 테이의 일격에 미쳐 경고를 외치기는 커녕 비명도 못지르고 쓰러졌다. 그런일이 한번 도 아니고 만나는 경비병마다 자신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자신의 일격에 기절하는 사태가 계속되자 테이는 혀를 찼다. "도대체 이집에 제대로 된 사람들은 없는건가? 하나같이 왜 그렇게 빈 틈투성이들 뿐인거야?" "너가 너무 예뻐서 그냥 쳐다보다가 당한거겠지 뭐." 티아는 빙긋이 웃으면서 라보오스를 질질 끌고 뒤에 따라오면서 테이에 게 별일 아니라고 말해주었다. 지금 티아는 그 이유를 똑똑히 알고 있 었지만 워낙에 재미있는 일이라 테이에게 가르쳐주기 싫었던 것이다. 티아는 잠시 목걸이를 꺼내서 쳐다보았다. 그 목걸이의 용도를 잘 알고 있는 테이는 티아가 목걸이를 쳐다보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 목걸이 는 레이나가 둘에게 선물한 목걸이로 한쌍의 마법보석으로 가까이 붙어 있을때는 붉은색이고 점점 멀어지면서 색깔이 옅어지다가 나중에는 하 얀보석이 되어버리는 마법이 걸려있었다. 처음 이 목걸이를 선물하면서 레이나는 꼭 티아와 테이를 위한 목걸이 같다고 이야기 했었는데, 정말로 티아와 테이를 위한 목걸이였는지 이 번 계획에서 큰 역활을 해주고 있었다. 티아는 테이의 목걸이를 라그에 게 주고는 그들이 이곳에 도착하는 때를 알기 위해서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누나 무슨색이야?" "분홍색. 라그가 제크씨와 라이크씨를 근처에 데려왔나봐." "그럼 슬슬 정문에서 실랑이중이겠다." 그렇다. 테이의 말대로 제이크일행은 정문의 기사단과 시비가 붙어 있 었다. "다시한번 말하겠지만 저희가 경호를 맡은 아가씨들은 분명 이 저택안 에 있습니다." "너희들이 찾는 사람은 여기에 없다. 괜히 시비걸 생각말고 썩 꺼져라. 여기가 어디라고 생각하는거냐?" "아주 높으신분의 저택이라는것은 척보면 알겠군요. 하지만 왜 저희 아 가씨들이 이 저택에 있는지는 정말 궁금합니다." "그러니깐 너희들이 찾는 사람이 이 곳에 없다고 했는데 무슨 증거로 말도 안돼는 소리를 자꾸 하는거냐? 빨리 안 물러가면 힘으로라도 물러 가게 만들겠다." "증거? 증거라면 여기 있다." 라그는 티아에게 받은 목걸이를 꺼내들었다. 목걸이의 보석색깔은 분홍 색이었다. 그리고 조금씩이지만 색이 점차 진해지고 있었다. 그걸 눈치 못챈 기사는 다시 짜증난다는 어조로 말했다. "그런 목걸이가 무슨 증거냐? 설마 그 목걸이가 이 근처에 떨어져 있어 서 그런말을 하는거라면 착각이다. 이곳은 로헨타이공작가의 저택이다. 지금 자네들은 감히 그 분의 저택에 자네들의 아가씨가 납치되어 있다 고 생각하는건가? 다시한번 말하지만 자네들이 찾는 사람은 여기 없다. " 그러자 그때까지 잠자코 상황을 지켜보던 라이크가 콧웃음을 띠면서 끼 어들었다. "지금 당신들도 뭔가 착각을 하고 있군요. 첫째로 이 보석은 이 근처에 서 주운게 아닙니다. 아가씨들의 신변보호를 위해서 보관하고 있던겁니 다. 이 보석은 두개가 한쌍으로 가까이 있을때는 붉은색이고 멀리떨어 져 있으면 하얀색보석이 되죠. 그리고 근처에 점점 다가가면 갈수록 그 색깔은 점점 더 붉어지게 되는겁니다. 보시죠. 보석의 색깔이 점점 짙 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제서야 그 기사는 보석의 색깔이 점점 붉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채고는 혹시하는 생각에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둘째로 전 우리가 경호를 맡은 아가씨들이 사람이라고 말한적 은 한번도 없습니다. 아가씨들은 엘프입니다. 자 이래도 짐작가는 데가 없습니까?" 아니었다. 그 기사도 라보오스의 그 변태적인 취미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엘프 사냥에도 직접 참가한적이 있던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오늘 라보오스가 데려온 엘프들이 지금 이들이 찾는 엘프들이라는 것을 눈치 챌수 있었다. 그는 눈앞에 있는 세명의 남자들을 살펴보았다. 척 봐도 그들이 기사가 아닌것은 알수 있었다. '척 봐도 용병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겠는데 그럼 그 엘프들이 용병들을 보디가드로 고용한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지금 이 셋만 처리하면 증거 는 없어진다.' 거기까지 생각이 정리된 기사는 즉시 생각을 실행에 옮겼다. 그러나 제 이크들은 아까부터 주의를 게을리 하지 않고 있었기에 갑작스런 기사의 공격을 별 어려움 없이 피해버렸다. "이 놈들 드디어 본성을 드러냈구나!" "아가씨들은 어디있지? 아가씨들에게 손톱만한 상처 하나라도 났다면 결코 용서치 않겠다!" 겉으로는 분노했다는 표현을 했지만 속으로는 내심 기뻐하고 있는 제이 크들이었다. 이것으로 자신들의 정당방위는 성립된것이고 티아와 테이 를 납치해서 데리고 있다는 사실을 저들이 스스로 인정한것이나 마찬가 지였기 때문이었다. 제이크와 라이크는 검을 빼들고 덤벼오는 기사들을 맞으면서 라그에게 소리쳤다. "라그 뒤는 부탁한....어라?" 라그는 어느새 저 뒤에 달려가면서 손을 흔들면서 소리쳤다. "걱정마 바람같이 달려가서 응원군을 불러올테니 죽지나 말라고!" "정말 빠르군...어느새 저기까지..." 제이크는 진심으로 감탄하면서 말을 했고, 방금전까지 제이크와 말싸움 을 하던 기사는 사색이 되어서 주위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저기 도망가는 놈을 잡아라! 절대 놓치면 안된다!" 기사의 명령에 몇명의 병사들이 라그를 잡기위해서 우르르 몰려갔다. 그러나 제이크와 라이크는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아까의 몸놀림도 그 렇고 방금 스피드고 그렇고 절대 라그가 잡힐 걱정은 없었다. 오히려 상대해야 될 사람들이 줄어들어서 라이크는 안심이 되었다. 그 러나 제이크는 쓰러트려줄 적들이 줄어들어서 불만이었는지 잔뜩 불만 어린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 비겁한 놈들아 어디 내 검을 받아볼수 있으면 받아보아라!" 제이크는 티아에게서 받은 얼음의 마검을 힘껏 휘둘렀다. 그 검을 막을 려고 했던 한 병사의 검은 아주 깨끗하게 짤려나가 버렸고 그 모습에 다른 이들은 질려버린 얼굴로 뒤로 물러났다. "뭐하는거냐? 아무리 적이 마검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겨우 두명뿐이 다. 두세명이서 같이 덤벼들면 무서울게 없다! 저 놈들을 죽여라!" "쳇 한꺼번에 덤비라니....그런 명령을 내리고도 너가 기사냐?" 라이크는 쳇쳇거리면서 자신과 검을 맞대고 있는 상대의 북부를 발로 차버리고 한꺼번에 덤벼드는 병사들의 검을 막으면서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물러나는 라이크에게 공격을 가하는 병사들에게 제이크는 어느 새 옆에서 공격을 하였고 한명이 제이크의 검에 베이고는 비명을 지르 면서 쓰러졌다. 제이크는 어느새 자신에게 덤벼들던 세명의 병사들의 무기를 못쓰게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라이크도 싸우던 중에 곁눈길로 그것을 보고는 일부러 밀리는척하면서 제이크가 공격하기 쉬운 위치로 적들을 끌어준 것이었다. 특급용병의 칭호를 받고 있는 둘은 괜히 특급용병이 아니었다. 특히 오 랜세월동안 파트너로 같이 해온 둘은 각자의 장점과 서로의 빈틈이 어 딘줄을 잘 알고 있었고 그것을 서로 보완해줄수 있는 실력을 갖고 있었 다. 라이크가 제이크의 그 여자버릇때문에 골치를 썩히면서도 그와 계 속 파트너를 해가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때로는 협공으로 때로는 서로 떨어져서 싸우면서 한명이 빈 틈을 만들어주면 다른 한명이 베어나가는 형식으로 한명한명 힘안들이 고 베어나갔다. 그제서야 기사는 저 둘이 보통 용병이 아니란걸 인정했 고 급히 병사한명을 보내서 기사단에게 연락을 취하게 만들었다. 콰쾅! 그때 정문의 문이 큰 소리와 함께 박살이 나버렸다. "뭐 뭐냐?!" 기사는 부서지는 정문을 경악에 참 외침을 지르면서 쳐다보았다. 잠시 싸움은 멈추고 모든이의 시선이 연기가 잦아들고 있는 부서진 정문으로 모아졌다. "콜록 콜록. 언니...이렇게 화려하게 부술건 없잖아." "콜록 콜록. 멋있게 등장할려고 했던건데. 이렇게 먼지 뒤집어 쓸줄 알 았으면 안하는건데." "오오오옷!" 어느새 먼지가 가라앉고 나타난 두 엘프여자를 보면서 병사들은 함성을 질렀다. 두 엘프여자중 원래는 해츨링이자 남자인 테이는 갑작스런 함 성에 놀라서 두리번 거렸다. "저 사람들 갑자기 왜저래? 어라 저 사람은 침까지 흘리고 쳐다보네? 언니 저 사람들 왜 그러는거야?" "큭큭큭 아이고 배 아프다. 말시키지 마라." 티아는 테이의 질문에 대답해줄 생각은 안하고 배를 붙잡고는 웃어대었 다. 테이는 그런 티아를 이상하게 쳐다보고는 다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의 눈에는 곧 멍하니 자신을 쳐다보는 제이크와 라이크를 보고는 반 가움에 손을 흔들면서 외쳤다. "제이크씨 라이크씨 역시 와주었군요." 이 정도면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 정도의 연기라고 생각하며 흡족해하는 테이에게 라이크가 얼굴을 붉히면서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에 또? 티아 아가씨는 아니고...테...아니 레아 아가씨?" "네 저 레아예요." "레아 아가씨...저기 가슴이..." "가슴? 가슴이 뭐 어때서...꺄아악!" 테이는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고는 곧 비명을 지르면서 가슴을 가리고 는 주저앉았다. 테이의 옷은 아까 라보오스가 찢은체 그대로라서 그 새 하얀 젖가슴이 그대로 노출된 상태였다. 한마디로 테이는 이 상태로 아 까부터 저택을 활보하고 다녔던 것이었다. 아까 저택에서 자신들을 본 경비병이 하나같이 얼빠진 얼굴로 헤 하고 쳐다보다가 자신에게 간단히 얻어맞고 뻗은 이유를 그제서야 알수 있었다. 동시에 그걸 알면서도 그 럴일이 있다고만 말했던 지금 배를 붙잡고 웃음을 참고 있는 티아가 어 째서 자신에게 그 사실을 말해주지 않았는지도 알것 같았다. "언니! 동생 약올리는게 그렇게 재미있어?!" "호호호 미 미안 잠깐 나 배가 아프니깐...그 문제는 있다가 말하자 킥 킥킥 아이고 배야." [크아악 누나 이건 누나몸 폴리모프시킨거란걸 잊어먹은거야?] [에? 아악 맞다! 그걸 깜박해버렸다아!] 순식간에 웃음을 멈춘 티아는 이제는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달려있기 는 테이 가슴에 달려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자신의 가슴과 똑같은 모습 으로 폴리모프 시킨거기에 자신의 가슴을 보인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소 녀의 순진함은 창피함을 느끼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라 라보오스님!" 기사의 외침에 창피함에 어쩔줄 모르는 티아와 테이 그리고 테이의 새 미누드를 구경하던 제이크와 병사들의 정신을 차리게 만들었다. 지금 라보오스는 기절해서 티아에게 뒷덜미를 잡혀서 그때까지 끌려다니고 있었다. 그런 라보오스의 처절한(?) 모습에 기사는 경악을 하였고 그 경악은 분노로 바뀌어서 티아와 테이에게 칼을 겨누게 만들었다. "너 이놈들 감히 미천한 엘프주제에 라보오스님께 무슨짓을 저지른거냐 !" 자신의 주군과 똑같은 소리를 하는 기사를 쳐다보면서 티아와 테이는 한숨을 지었다. "이곳 사람들은 전부다 바보들만 모아놓은건가?" "그래도 저 사람은 조금 낮다. 검술은 제법할것 같거든." "그나마 여기 이 놈처럼 완전 바보는 아니란거군." "아가씨들 그렇게 여유부릴때가 아닙니다. 기사단들이 몰려오는 것 같 다고요!" "에 벌써요?" 티아가 라이크가 가르키는 방향을 쳐다보자 과연 이곳 로헨타이 공작가 의 소속으로 보이는 기사단들이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도 오는거지?" "정문을 그렇게 화려하게 부섰는데 빨리 안오는게 이상한거잖아!" "그 그런가?" 테이의 외침에 티아는 머리를 적이며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했 다. 아무튼 문제는 라그가 응원군을 데려올때까지 어떻게든 버텨야 되 었다. 일단 1차 응원군만 도착해도 이 계획은 성공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때 티아에게 목덜미를 잡혀있던 라보오스가 그제 서야 끄응하는 신음을 흘리면서 서서히 정신을 차려갔다. 티아는 그 모 습을 보고는 충분히 시간을 끌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드래곤 남매 6화 변태를 잡으려면 변태굴에(5) 로헨타이 공작가에서 폭발소리가 난것을 듣고 로헨타이 소속 기사단 1 개부대가 기세좋게 달려오기는 했지만 지금 그들은 손도 못쓰고 이를 갈면서 무기를 내려놓고 있었다. 로헨타이 소속의 그것도 무슨일이 있으면 즉각적으로 출동하는 그 기사 단은 엘프마을 습격건에도 참가한 적이 있기 때문에 라보오스의 변태적 취향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지금 왜 여자엘프가 라보오스의 목을 조른체 자신들에게 무기 를 내려놓도록 협박하는지 누가 설명안해줘도 알 수 있을것 같았다. 아니 처음에는 마법제어장치에 마법도 못 쓸 엘프가 어떻게 탈출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고, 라보오스의 목을 잡고 움직이면 졸라서 죽여버리 겠다는 엘프의 말에 코웃음을 쳤었지만 그 엘프와 얼굴이 똑같이 생긴 새미누드의 엘프가 큰바위를 하나 집어서 건네주자 그걸 아주 가루로 만들어버리는 힘에 어쩔수 없이 검을 내려놓고 물러날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해할수가 있었다. 어떻게 마법제어장치를 부수고 경비병들이 곳곳에 깔린 저택에서 유유히 탈출해서 정문을 박살내고 소동을 벌였는 지를....정말 엘프인지가 의심이 갈 정도로 무식한 힘이었다. 그들로서는 하나 다행인점이 있다면 그들은 라보오스를 잡은체 그자리 에서 도망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인질을 붙잡았으면 도망을 치던지 해야 정상적인데 그 엘프들은 머리가 나쁜건지 아니면 뭔가 기다리는건 지 그 자리에서 꼼짝도 않고 있었다. 그렇게 대치한지 30여분 저 멀리서 수많은 사람들이 달려오고 있었고 로헨타이가 기사들은 얼굴만면에 웃음을 띠게 되었다. 저 멀리 달려오 고 있는 사람들은 틀림없는 경비대였다. 아직 라보오스가 붙잡혀 있는 상황이긴 하지만 그래도 저 엘프들은 더 이상 도망갈수는 없다고 단언 했다. 그러나 그들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워 워." 맨앞에서 말을 타고 달려온 경비대 대장으로 보이는 남자는 엘프들의 앞에서 말을 멈추고 말에서 내리더니 거침없이 그들에게로 다가가는 것 이었다. "자 잠깐. 라보오스님이 잡혀있소. 섣불리 접근하면..." 그러나 경비대 대장은 그 말이 안들린다는 듯이 엘프들에게 가더니 갑 자기 고개를 숙이는것이었다. 라보오스는 미칠지경이었다. 그의 논리로는 보잘것 없는 미천한 엘프들 이 감히 자신의 목을 조르고 있는 꽤심한 상황에서 겨우 구해줄 이들이 나타났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경비대 대장은 다짜고짜 고개를 숙이면서 한다는 말이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라고 하는 것이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라보오스는 목이잡혀있건 말 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되었다. "야 이 눈이 삔 자식아! 넌 이게 무사한걸로 보이냐? 당장 이 미천한 엘프들을 붙잡지 않고 뭐하는거야?! 흐흐흐 너희들도 이제 끝장...켁켁 콜록콜록..." 마치 시끄러운 파리새끼 조용히 시키는 표정으로 라보오스의 헛소리를 목을 잡은 손에 약간 힘주기로 해결한 티아는 자신의 앞에서 고개를 숙 이고 있는 엔드르를 보면서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도우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엔드르님." "아닙니다. 좀더 계신곳을 빨리 찾지 못해서 구해드리지 못한점이 죄송 할뿐입니다." [호호호 연극솜씨가 제법이네요.] [티아야 말로 좋은 분위기 내고 있는데.] [음 과연 레드포머가 사위후보 영순위다워요.] [그거랑 이거랑 무슨 관계냐?!] 티아와의 마법에 의한 대화중에 티아의 놀림에 레이나와 똑같은 반응을 보이면서 얼굴을 붉히는 엔드르지만 주위에서 볼때는 고개숙이고 있다 가 고개를 들고 싱긋싱긋 웃더니 갑자기 얼굴을 확 붉히는 아주 이상한 모습이었다. 엔드르 뒤에 서있던 엔드르의 부하인 경비병들은 처음에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곧 티아가 아닌 테이-지금은 레아-를 보고는 아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고는 엔드르아 같이 얼굴을 붉혔다. 테이는 여전히 가슴이 노출된 세미누드 상태에서 손으로 가슴을 가리고 있는게 여의치 않아서 라이크의 몸뒤에서 몸을 가리고 있는 상태였다. 그래도 얼핏보이는 맨어깨와 라이크의 등에 바싹붙어있어 앞쪽(?)은 보 이지 않지만 뒤쪽의 새하얀 등은 라이크의 듬직한 체구와 묘하게 어울 려서 섹시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저 저기...망토좀 빌려주시면 안되요?" 테이는 머뭇거리면서 엔드르에게 몸을 가릴 망토를 요구했고 엔드르는 그제서야 테이의 상태를 보고는 자신의 망토를 벗어서 건네주었다. 그 리고는 정말로 머뭇거리면서 물었다. "저 저기 어디....다치신데는 없는지..." 생각같아서는 당했어 안당했어라고 묻고 싶었지만 아무리 테이가 원래 는 남자라고는 하지만 지금 여자의 몸을 하고 있는 테이에게 대놓고 물 을수가 없어서 무진장 고민하다가 빙빙 돌려서 물었건만 순진무구한(?) 테이가 엔드르의 깊은 뜻을 알리가 없다. "아니요 다친데는 없어요. 하지만..." "하 하지만?" "힝 저기 저 변태가 가슴을 주무르고 혀로 핥고 얼마나 기분 나빳다고 요. 힝~~." 아주 솔직한 테이의 답변에 엔드르와 경비병들은 다시금 얼굴을 붉혔고 곧이어서 그 변태(?)에게 무한한 분노를 느끼게 되었다. 지금 티아가 손에 힘을 준체로 고문중이라서 말 한마디 못하고 지금껏 대화에서 소외대고 있던 라보오스에게 일제히 분노의 눈빛이 화살이 되 어 꽂혔지만 그런걸 느끼지도 못했는지 라보오스는 켁켁거리면서 손넘 어갈듯이 기침만 해댈뿐이었다. "일단 라보오스는 놔주고 이야기 하죠." 엔드르의 말에 티아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곱게 놔줄 생각은 없었는지 목을 잡은체로 라보오스를 로헨타이가 기사들을 향해서 집어던졌다. "라 라보오스님!" 그때까지 멍하니 쳐다보면서 분명 도와주러 왔다고 생각되었던 수도경 비대가 엘프들과 노닥거리는 사태에 대해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던 로 헨타이가 기사들은 자신들의 주군이 하늘을 날아서(?) 자신들에게 떨어 지자 몇명이 온몸을 던져서 받아냈다. "나이스 캐치!" 라보오스를 간신히 받아낸 그들의 귀에 방금 자신들의 주군을 날려버린 엘프여자의 가증스런 목소리로 자신들을 놀리자 분노해서 덤벼들려고 했는데 간신히 받아낸 그들의 주군은 엄청나게 화를 내면서 그들을 야 단치는 것이었다. "우씌 이 X끼들아! 갑옷입은 몸으로 받으면 어쩌자는거야? 아파죽겠잖 아!" 정말 바보도 이런 바보는 없을것이요, 멍청해도 이리 멍청한 공작가 아 들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들이 몸바쳐서 받아주지 않았다면 분명 맨땅 에 헤딩해서 정말 죽었을것이다. 그러나 살아있다는 증거인 약간의 아 픔이 죽을뻔했다는 사실을 인식시키지 못하게 방해라도 한것인지 라보 오스는 애궂은 기사들을 야단쳤고 덕분에 가증스런-그들 관점으로-엘프 여자를 혼내주겠다는 생각도 실현시키지 못한체 어쩡정하게 넘어가게 되었다. 일단 무력으로 해결할 타이밍을 놓친 로헨타이 기사단의 대장은 몇걸음 걸어가서 자신의 소개부터 하는 기사들의 예우를 표했다. "내 이름은 로헨타이가 직속 기사단 늑대의 기사단 제 1부대 대장인 쥬 라 라이코오이다. 그대의 이름과 직책은?" 쥬라라고 자신을 밝힌 기사에게 엔드르 역시 예우를 표하면서 대답해주 었다. "저의 이름은 다이리 수도경비대 동쪽지구를 맡고 있는 수도경비대 대 장 엔드르 스테마이입니다." "좋소 엔드르경 그 엘프들은 우리 로헨타이 공작가에 불법적으로 침입 해서 저택을 부수고 우리 주군 라보오스님을 납치해간 주범이요. 그러 니 그 둘을 이리로 넘겨주시죠. 이후부터는 우리들이 해결하겠습니다." "호오 불법침입한 주범이라고요?" 엔드르는 눈을 살짝 치켜뜨며 잠시 호흡을 고르고 막 반박의 말을 할 찰라 테이가 먼저 끼어들었다. "우리가 아니 언니가 부순건 정문밖에 없어요! 그런데 저택을 부수다니 요? 저택은 멀쩡하잖아요!" 테이가 손가락질 하면서 말 안해도 로헨타이가의 저택은 멀쩡했다. 엔 드르는 잠시 다리에 힘이 빠지는걸 느꼈다. "아 그럼 정정하지. 그 엘프들은 우리 로헨타이 공작가에 불법적으로 침입해서 저택.정.문을 부수고 우리 주군 라보오스님을 납치해간 주범 이요. 이제 됐나?" 말을 고친 쥬라는 흡족한 미소를 띠우면서 이제 되었겠지라고 생각했고 테이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납득하였다. 그러나 주위사람들은 갑자기 몰 아닥치는 추위에 몸을 떨면서 올해 겨울은 유난히 빨리도 오는구나라고 생각하였다. 간신히 몸의 균형(?)을 유지한 엔드르가 약간은 맥이 빠지 는 목소리로 쥬라에게 말했다. "불법침입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저희는 지금 이 두 엘프님들이 노예상들 에게 납치되었으니 찾아서 보호하라는 명령을 받고 움직이던 중입니다. 그런데 납.치.되었다던 두분이 어떻게 로헨타이 공작가에 침입을 했는 지 납득하게 설명해주시겠습니까?" "그 그건..." 엔드르의 예리한 지적에 쥬라는 말을 할수가 없었다. 우리 주군의 고상 하신(?) 취미때문에 이 두 엘프를 사가지고 왔는데 난동 피우고 도망쳐 서 잡으러 나왔다는 말을 사실대로 할 수 있을리가 없었던 것이다. 100년전 엘프와의 전쟁으로 엘프들의 요구에 의해 이종족을 노예로 삼 는것은 금한다는 명백한 법이 정해진 마당에 암암리에 불법적으로 성행 된 엘프들의 노예화에 앞장선것이 바로 로헨타이가이니 뭐라 할말이 있 겠는가? 그러나 할말이 있는자가 있긴 있었나보다. "무슨 헛소리냐? 저 둘은 내가 데려온 내 시종으로 삼을 엘프들이다. 그런데 너는 감히 내가 저 둘을 불법적으로 데려왔다고 말할참이냐? 내 가 누구라고 생각하는거냐? 너 따위는 손가락 하나 까닥하는걸로 최하 층민으로 만들수 있는 몸이라는 것을 모르고 그따위 망언을 하는것이냐 ? 잔말말고 그 엘프들을 이리 넘겨라. 그렇치 않으면 힘으로 데려가겠 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을 누가 했을까? 정말 이리도 무식해서 용감한 자를 칭송(?)하기 위해 만든 말이 지금 라보오스에게 딱 어울리는말이 었다. 쥬라는 속으로 땀을 흘렸지만 그래도 라보오스의 말중에 틀리지 않은 말이 하나 있었으니 두자로 압축하면 권력이란 힘의 이름이었다. 라보오스는 정말로 손가락 까닥하는걸로 엔드르의 모든 권한을 박탈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쥬라도 그 권력을 믿기에 힘으로라도 데려 갈 준비를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오늘 날을 정말 잘못 잡았고, 엘프를 잡아도 정말 잘못 잡은 것이었다. 엔드르는 약간 성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쪽이야 말로 무슨 망언을 하십니까? 이 두 엘프님들을 시종으로 삼 기 위해서라고요? 저 따위는 손가락 하나 까닥하는것으로 끝장낼 수 있 다고요? 허참 기가 막혀서...똑똑히 잘 들으십시요. 여기 계신 엘프님 들은 엘프로드중 한분이신 하이엘프 카슈타르님의 손녀들이십니다." 쥬라는 경악했다. 하이엘프 카슈타르 이 곳 다이러스제국과 가이라가왕 국 그리고 프론트연합이 있는 이 지역의 모든 엘프들의 장인 엘프로드 카슈타르는 쥬라도 몇번 들어본적이 있다. 지난 몇백년간 모습을 보이 지 않아서 환상의 장로라고도 불리고 있는 이 자는 이미 3000천년을 살 아왔다는 엘프중에서도 최고로 장수한다는 하이엘프였고 이 지역 엘프 들의 정신적인 지주였다. 엘프들은 카슈타르의 명이라면 전쟁도 불사한 다는 각오를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엘프들이 원체 순수한 자연 을 사랑하는 부드러운 종족이라 전쟁따위를 생각할리가 없지만 그래도 만약에 카슈타르의 명이라면 전 엘프들은 몰론이거와 엘프들과 교류하 고 있는 타 이종족들도 카슈타르의 명령을 따를것이라는 소문도 있었 다. 그리고 프론트연합의 저 공포스런 신룡들과도 친분이 있다고 하여 카슈타르의 부탁이라면 인간계의 전쟁에는 관여안한다는 신룡들도 움직 일수가 있다는 소문도 있었다. 특히 카슈타르의 이름을 드높이게 된 전설하나가 있는데 1000여년전 아 직 인간들의 국가들이 제대로 모습을 못 갖추고 전국시대를 맞이하고 있을때 엘프들을 이끌고 가이라가 왕국의 건국을 도와준 일화는 가이라 가 건국신화로 역사책에 수록될 정도의 일이었다. 그런 환상의 전설적인 인물의 손녀들이라니 이건 잘못 건드려도 이만저 만 잘못 건드린게 아닌것이다. 쥬라가 당황해서 어쩔줄 모르고 있을때 라보오스는 심드렁하게 한마디 하였다. "엘프로드? 그게 뭔데?" 다시한번 찬바람을 이는것을 느끼면서 사람들은 몸을 떨었다. 이제는 하도 말해서 입이 아플지경이지만 다시한번 더 말할 수 밖에 없게 만드 는 저 라보오스의 무식함은 정말 하늘을 찌르고 땅을 가를 지경이었다. 쥬라는 자신의 무식한 주군에게 한숨을 쉬면서 설명을 하였다. "저기 라보오스님 엘프로드라는 것은 간단히 말해서 엘프들의 왕을 뜻 하는 말입니다." "왕? 그럼 저년들이 그 엘프왕이라는 작자의 손녀니깐 한마디로 엘프들 의 공주라는거네? 어쩐지 지금까지 데리고 놀던 엘프와는 틀리다 싶었 다. 이거 더욱 더 마음에 드는데." 쥬라를 돌아보면서 자신의 이해력이 좋지라는 눈빛을 빛내는 라보오스 를 보면서 쥬라는 진정으로 이 답답한 주군을 누가 어떻게 해줬으면 하 는 불경한 마음까지 들었다. 하지만 무식해도 그는 로헨타이 공작가의 외아들이었고, 자신은 그 희하의 기사였기에 라보오스를 보호할 임무를 상기시키면서 다시 이 사태가 얼마나 안좋은 사태인지에 대해서 설명했 다. "라보오스님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저 둘을 이대로 고이 돌 려보내지 않으면 자칫잘못하면 엘프와의 전면전이 벌어질지도 모릅니 다. 그리고 이대로 덮어두지 않으면 그동안 라보오스님의 행각이 왕국 에 발각되어서 로헨타이공작님의 입지가 약해질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제발 이번만큼은 자중하여 주십시요." 귓속말로 속닥거리는 소리라 엔드르를 위시한 인간들에게는 들리지 않 았지만 귀가 좋은 티아와 테이는 그들의 대화를 똑똑히 듣고 있었다. 티아는 저 바보가 어디까지 바보일까라는 생각에 흥미진지하게 그 이야 기를 엿듣고 있었고, 테이는 질리다 못해 얼이 빠진 상태로 그들의 이 야기를 엿듣고 있었다. 그리고 티아의 바램(?)을 깨트리지 않고 라보오 스는 다시금 그 이상하리만치 자신만만한 헛소리를 다시 하였다. "그깟 엘프들이 전쟁일으키면 뭐 어때서 100년전에는 바보같이 굴다가 당했다는 소리는 나도 들었지만 어차피 무승부였잖아. 지금 우리나라 군대는 그때와는 비교도 할수 없는데 그깟 천한 엘프따위가 무섭다고 대업(?)을 멀리하면 어디다 쓰겠어? 참내 아버지가 왕위에 오르시고 내 가 이어받으면 그 말도 안돼는 법부터 뜯어고치든지 해야지 원." 쥬라는 이제 속이 다 탈 지경이었다. 그러나 속을 태워도 어차피 자신 은 뼈속까지 기사이기에 다시한번 라보오스를 설득할 수 밖에 없었다. "그게 그렇게 간단한게 아닙니다. 엘프로드 카슈타르의 명령이 떨어지 면 이 다이러스는 몰론이거니와 가이라가와 프론트 연합에 살고 있는 엘프들및 이종족들이 전부다 전쟁에 투입될 것입니다. 만약 그것뿐이라 면 라보오스님 말대로 별거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프론트 연합은 신룡들 의 보살핌을 받고 인간과 이종족들이 함께 사는 국가이니 프론트 연합 의 참전도 생각하셔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가이라가쪽에서도 손가락 빨고 있지는 않을것입니다. 아마도 얼씨구나 하고 엘프들을 돕는답시고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고, 만약 카슈타르가 신룡들과 친분이 있다는 소 문이 사실이고 저 프론트 연합의 신룡 여섯이 전쟁에 참여하게 되면 우리 다이러스는 그야말로 끝장입니다." 그제서야 라보오스의 눈빛은 장난아니네로 바뀌었다. 그 눈빛을 보고 쥬라는 이제 겨우 되었구나라는 생각에 이제는 어떻게 저 둘을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보내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고민을 깨끗하게 해결해주기는 커녕 더 엉키게 만들 사람이 등장해버렸으니... "이게 무슨일이냐?" 날카로운 소프라노의 여자 목소리에 사람들의 시선은 부숴진 로헨타이 공작가의 정문으로 향하였고, 그곳에는 보디가드라고 생각되는 남자들 에게 둘러쌓여서 중년여성이 막 걸어나오고 있었다. 젊었을적에는 미인소리 제법들었을만한 미모였지만 그 놈의 표독스런 눈동자는 남자들 주눅들게 만들기 딱 좋았고 척 봐도 나 고집 무지 쎄 다라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도도하다 못해 거만이 하늘을 찌를 듯한 걸음걸이...뭐 저런 여자가 다 있어 얼굴만 이쁘면 다야? 라는 소 리도 젊었을적에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아 엄마다! 어~~엄~~마!" 버터를 온몸에 쳐발라도 저렇게 느끼하지는 않을것이라고 굳게 믿게 만 드는 목소리로 라보오스는 그 여자에게 달려가면서 외쳤다. 솔직히 티 아와 테이도 나이 15살-해츨링나이300살-에 다 컷다면 다 큰 나이이지 만 그래도 아직 소년소녀의 귀여움이 남아있어 세이르아를 엄마엄마 불 러도 귀엽기나 귀엽다. 아니 무지 귀여웠다. 그러나 라보오스 나이 어언 26살 더구나 덩치가 그렇게 작은것도 아니 고 평균보다 약간 큰편인데 그런 버터 쳐바른 목소리로 엄마하고 달려 가는 모습을 미소지으면서 바라볼 사람이 몇사람이나 될까? 지금 당장 응석(?)부리면서 달려오는 아들을 맞이하는 그 어머니의 미소를 빼고는 주위 모든사람들의 얼굴은 있는대로 구겨져 버렸다. 다만 그 여인의 옆 에 있던 보디가드들과 로헨타이 기사단들은 많이 당해왔던 일인지 얼굴 을 약간 찌프린 정도가 다른 이들과 다르다면 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어이구 귀여운 내 아들. 응? 아니 이게 무슨꼴이냐? 이 상처들은 뭐야 ? 응 누가 그랬어? 누가 우리 금쪽보다 더 귀한 외아들 몸에 상처를 낸 거야? 어디의 어떤 불한당같은 놈들이냐고!" 갑작스런 소프라노 째지는 비명에 조용히 귀를 막고 있는 티아에게 제 이크가 한숨을 쉬면서 말을 건넸다. "저 무식한 인간이 왜 저렇게 무식하게 되었는지 알것 같군요." "하아 누가 아니래요? 정말 어머니 치마폭이 얘들 망치는 지름길이라는 말의 뜻을 알것 같아요." "난 우리 엄마 아들이라는게 오늘처럼 다행이라고 느껴본적이 없을 것 같아." 테이의 마지막 말에 일동은 물론이거니와 두 모자간의 상봉장면에서 조 금이라도 멀리 떨어질려고 노력하던 로헨타이 기사단들조차 고개를 끄 덕여주었다. 다만 라보오스의 어머니곁에 있어야 되는 보디가드들은 정 말로 힘겹게 모자의 상봉장면을 바로 옆에서 지켜봐야 되었기에 다른 모든 이들의 동정을 살수가 있었다. 드래곤 남매 7화 첫 외출의 끝(1) "누가 감히 우리 귀한 아들을 이렇게 만든거야? 응? 누구야?" 로헨타이가의 공작부인 라보오스의 엄마라는 여자는 도끼눈을 뜨고는 주위를 둘러보면서 눈이 마주치는 자들을 잡아먹을듯이 노려보았다. 그 살기 넘치는 시선에 드래곤인 테이까지 저도 모르게 고개를 피할정 도였다. 다만 어릴때부터 이유없이 실버일족 로드 샤드락과 눈싸움을 했던 티아는 예외였다. 로헨타이공작부인의 살기어린 시선을 피하기는 커녕 똑같은 살기어린 시선으로 맞받아 쏘아붙여주었다. 잠시 두 여자 로헨타이공작부인 대 티아의 눈싸움이 벌어졌고 주위를 넘쳐대는 살기에 주위모든 사람들이 숨을 죽이고 그 조용하지만 살기 넘치는 싸움을 관전하였다. 영원히 계속될것 같은 그 승부는 5분여만에 로헨타이 공작부인이 고개를 돌리는것으로 승부가 결정되었다. 로헨타이 공작부인이 패배를 하자 주위 사람들은 모두 감탄사를 뱉으면 서 티아를 놀라운 시선으로 쳐다보았고 티아는 '흥'이라는 한마디로 사 람들의 탄성에 보답해 주었다. 티아에게 눈싸움에서 졌는지 로헨타이 공작부인은 얼굴을 붉게 물들이 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자신에게 안겨서 우는 라보오스에게 물었 다. "아가야. 널 이렇게 만든게 저 눈매 사나운 천한엘프여자가 맞지?" 질문이라기보다는 확신하는 물음에 라보오스는 그제서야 로헨타이 공작 가부인의 가슴에서 얼굴을 떼고 눈물로 엉망인 얼굴로 말했다. "응 엄마 저 얘가 그랬어." "아가야?" "저 얘?" 주위사람들은 모자의 사랑스러운(?) 대화에 더욱더 뭄을 꼬면서 괴로워 했고 일부는 헛구역질을 하는둥 난리였지만 그래도 로헨타이 공작가 기 사들과 보디가드들은 아직 뭐 이정도 갖고 라는듯이 한숨만 푹푹 쉬고 있었다. 그런데 티아는 몸서리치게 만드는 그들의 대화 내용과 행동보 다도 자신을 눈매 사납다고 한말에 분노를 하였다. "흥 눈매 사나운데 보태준거 있나?" "뭐라고 저 천한엘프가 감히...여봐라 너희들은 뭐하고 있는거냐? 저 천한엘프를 당장 잡아다가 내 앞에 데려오지 않고..." 로헨타이 공작부인은 아들의 얼굴을 손수건으로 다정하게 닦으면서 한 손으로는 티아를 삿대질 해가며 로헨타이가 기사들에게 명령하였다. 하지만 기사들은 쭈볏거리면서 눈치만 불뿐 누구하나 움직일 생각을 못 했다. 그들의 행동에 로헨타이 공작부인은 당연히 화가 나서 한 옥타브 더 올라간 목소리로 다시한번 명령했다. "뭐야? 다들 발에다가 꿀이라도 쳐 발랐어? 왜 아무도 안움직는거야? 어머 내가 너무 흥분했나? 이렇게 천한 말투를...." 마지막에 100% 내숭떠는 말투에 주위사람들은 다시한번 정신적 데미지 를 받았고, 기사들의 대표로 쥬라가 분노에 찬 로헨타이 공작부인에게 움직이지 못한 이유를 설명하였다. 쥬라의 설명을 다 들은 로헨타이 공작부인은 쥬라의 기대대로 '뭐라고 그렇게 지금 상황이 안좋으냐?'라고 대답해주지 않았다. 공작부인의 대답은 황당하게도 "그게 뭐 어때서." 였다. "그 그게 어떻냐고....무 물으셨습니까?" 쥬라는 진정 저 여자가 이 상황을 모르고 물었는지 의심이 가서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이번에는 로헨타이 공작부인이 쥬라의 생각대로 말을 하였다. "그러니깐 그게 뭐 어때서냐고 물었다. 그깟 엘프로드인지 뭔지 하는게 알게 뭐냐? 지금 중요한것은 저 오만하고 천한 엘프가 내 귀한아들을 때렸다는게 더 중요한 문제잖느냐!" 누군가 이런 말을 했었다. '어머니는 강하다!' 라고....그러나 강한것 과 무식한거 또는 겁을 상실한거는 철저하게 다른 말이었다. 지금 로헨타이 공작부인은 '어머니는 강하다' 라기보다는 '그 어머니는 무식했다!' 라는 표현이 훨씬 더 어울렸다. 쥬라 역시 그 사실을 통감하고 있는 바이지만 그래도 다시한번 말하지 만 그는 뼈속까지 기사였다. 그것도 그 무식한 어머니가 안주인인 로헨 타이가의 기사였기에 자신이 느낀바를 입밖으로 표현할수가 없었다. "정말 저 변태자식이 왜 그렇게 무식했나 싶었더니 다 그 엄마 교육때 문이군." 정말로 고맙게도 티아가 쥬라가 하고 싶었던 말을 대신해주었다. 쥬라 는 자신 앞에 있는 로헨타이 공작부인이 눈치못채도록 티아에게 고마움 을 눈길로 보냈다. 그러나 티아는 무식하다는 말에 자신을 째려보는 로 헨타이 공작부인과 제 2차 매서운 눈매의 여자들 싸움에 돌입해서 쥬라 의 눈길을 눈치채지 못했지만... 아무튼 2차전 역시 티아의 승리로 끝나고 연이은 패배와 티아의 독설에 약이 오를때로 오른 로헨타이 공작부인은 거의 날뛰다 라는 표현이 어 울릴정도로 발광을 하면서 쥬라를 다시 다그쳤다. "쥬라경 정말 저 천하고 입버릇이 꽤씸한 엘프를 그냥 놔둘셈인가요? 당장 저것들을 혼내주고 내 앞에 대령해요. 이것은 명령입니다!" "하오나 마님 저들을 건드렸다가는 엘프와의 전쟁을 다시 해야 될지도 모릅니다." "다시 하면 되잖아요!" "마 마님..." 로헨타이 공작부인의 무식함을 더 두고 볼수 없었던지 잠시 상황을 방 관하고 지켜보던 엔드르가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리고 원래대로 라면 도착했어야 될 레드포머 공작이 늦는것 같아서 도착하기까지 시간 을 끌어볼 목적도 포함이 되어있었다. "말씀중에 잠시 실례합니다." 엔드르가 끼어들자 로헨타이 공작부인은 '넌 또 뭐야?'라는 살기어린 시선을 쥬라는 저 무식한 여자를 설득하는데 도와달라는 도움의 시선을 동시에 보냈다. 각기 상반되는 시선에 엔드르는 잠시 흐트러지는 생각 을 잡은뒤 로헨타이 공작부인에게 일단 자기 소개부터 하였다. "저의 이름은 다이리 수도경비대 동쪽지구를 맡고 있는 수도경비대 대 장 엔드르 스테마이입니다." 엔드르는 고개를 깊이 숙이면서 자신의 소개를 하자 로헨타이 공작부인 의 기세가 약간 수그러들었다. 그리고는 궁금함에 입을 열었다. "경비대 대장이시라면 이 소동때문에 오셨군. 그런데 그대들은 왜 저 무례한들을 체포하지 않고 그렇게 방관만 하고 있는거냐?" "공작부인 저희들은 이 소동을 해결하러 출동한게 아닙니다. 저희들은 어느 어르신의 명령으로 저 두 엘프아가씨들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서 출동한것입니다." 엔드르의 보호라는 말에 잠시 기세가 누그러든 로헨타이 공작부인의 눈 에 쌍심지가 다시 켜졌고 덕분에 목소리는 다시 한옥타브 높아졌지만 다행이도 쌍스러운 말 모드까지는 가지 않았다. "뭐라고? 지금 저들이 내 귀한 아들을 이 꼴로 만들었다는 명백한 증거 가 있는데 무슨 보호? 내 아들이 누군줄은 잘 알꺼 아니냐? 지금 다 이러스 제국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아니지 첫번째로 지체높은 우리 로헨타이가문의 귀중한 외아들이라고. 그러니 당장 저두 년을 체 포해서 내 앞에 대령해놔! 감옥까지도 갈것 없어. 우리가문선에서 해결 할테니 그리 알도록!" 로헨타이 공작부인은 엔드르의 눈앞에 라보오스를 들이대면서 말했다. 공작부인이 말안하더라도 지금 엔드르의 몰꼴은 불쌍하긴 하였다. 온 몸은 이리저리 끌려다니느라 옷이 구겨지고 흙에 범벅이 된 상태에 얼 굴은 누군가에게 맞았는지는 모르지만-엔드르는 틀림없이 티아일꺼라 생각했지만...실은 테이작품이었다.- 입과 코가 퉁퉁 부어 있었다. 사실 라보오스가 단 한방에 기절했으니 이정도로 그친거지 만약 기절하 지 않았다면 아마 테이에게 죽도록 맞은뒤 티아몫(?)까지 맞아서 형체 를 알아볼수 없었을지도 몰랐다. 만약 그정도였다면 엔드르도 약간이나 마 동정을 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그리 심하지는 않은 상태고 그 동 안의 라보오스의 행적을 생각한다면 동정은 커녕 약간 고소하다는 생각 까지 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때가 아니라는 생각에 곧 사정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해야 겠다고 판단했다. "공작부인 그쪽의 기사분이 설명했을꺼로 압니다만 저 분들은 엘프로드 의 손녀분들이십니다. 그리고 저희들은 저 분들이 납치되었으니 빨리 찾아서 보호하라는 명령을 받은 몸입니다.만약 저 두분이 잘못되면 엘 프들과의 전쟁도 불사해야 되는 지경이었습니다. 그런데 분명 납치되었 다고 들은 저 두분이 어째서 로헨타이 공작가에 계신건가요? 전 공작부 인 아드님이 맞았다는 이유보다는 납치되었다는 저 두분이 왜 공작가에 있었고 공작부인 아드님을 인질로까지 붙잡아서 탈출을 감행했었던 이 유가 더 궁금합니다." 엔드르는 분명 조리있게 지금 상황을 설명하였고 바보가 아니라면 지금 로헨타이 공작가가 얼마나 위험한 지경에 빠졌는지 잘 알수 있었다. 그 러나 모전자전이라는 말이 있듯이 무식한 아들을 키운건 바로 그 무식 한 어머니이고 그 어머니인 로헨타이 공작부인은 자신보다 아래인 사람 들은 인간취급을 하지 않는 여자였다. 사람도 자신보다 낮다 싶으면 인 간취급 안하는 여자가 인간이 아닌 엘프들의 왕이니 공주들이니 하는 논리에 무슨 귀를 기울이겠는가? 더구나 엘프들의 자신들의 영토를 따 로 가지고 사는 것도 아니었다. 인간이 살아가기 힘든 깊은 숲속이라면 그곳에서 마을을 만들고 옹기종기 살아가는 종족이니 인간들의 왕이니 귀족이니 하는 신분 자체가 없고 엘프들의 정신적인 지도자인 로드나 마을 장로들은 지금 이 무식한 여자에게는 인간취급은 커녕 자기 집에 서 기르는 개보다 더 못한 이들이다 라는 논리를 가지고 있는 여자였 다. 진정 무식이라 함이 이렇게까지 두려운것이었나 라는 생각을 새삼 스럽게 확인시켜주는 여자였다. "그럼 지금 그대말은 우리 지체높은 로헨타이 공작가가 저 엘프들을 납 치했다는 말이냐? 그대는 지금 그게 사실이라고 믿는 어리석음을 보이 고 있군. 우리 아들말을 한번 들어볼까? 내 귀여운 아가야 너가 저 천 한 엘프들을 납치했니?" "아뇨 안했어요." "그것봐라! 내 아들이 안했다잖느냐." "하 하오면 그럼 저 두분은 어째서 로헨타이 공작가에서 탈출하신겁니 까?" "저 둘은 선물 받은거다." 라보오스의 선물로 받았다는 말은 분명 거짓은 아니었다. 단지 엘프들 을 선물받기 위해서 노예상인들의 뒤를 봐주고 지원금 형식으로 돈을 댄 덕분이라는 말은 쏙 빼놓고 했지만... "서 선물이라고 하셨습니까? 저 두분은 납치되었던 분들입니다. 도대체 누구한테 선물받으셨다는 말입니까?" "에 에이. 지금 그대는 누구를 의심하고 있냐? 설마 내 귀여운 아들이 납치범들과 친분관계라도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거냐?" "모든 정황을 분석해볼때는 그렇게밖에 생각할수 없습니다." "정말 말이 안통하는 고지식한자이군. 더 이상 그대와 말할 필요 없다. 우리가문의 문제는 우리가 해결할테니 더 이상 끼어들지나 말아라." 지금 도대체 누가 말이 안통한단 말인가? 엔드르는 이때쯤 슬슬 히든 카드를 뽑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공작부인께서 무슨말을 하는줄은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저희들도 높 으신 어른께 명령받은 일이라 이 일의 흑막을 밝혀야 되기 때문에 이대 로 물러설수는 없습니다." "호오 그래? 그럼 그 높으신 분 성함이나 들어보자. 설마 국왕폐하께서 저 엘프들을 초대했다는 얼통당토 않을 소리는 안하겠지?" "저 두분을 보호하라고 명령을 내리신분은 레드포머 공작이십니다." "레 레드포머 공작?!" 이제서야 철저하게 도도하던 로헨타이 공작부인의 얼굴도 심각한 표정 으로 변해갔다. 원래는 레드포머 공작이 도착할때까지 말로서 시간을 벌 속셈이었지만 여기서 더 시간을 끌다가는 티아와 테이 그리고 그 둘 의 탈출을 도왔던 제이크와 라이크에게 공격이라도 할껏 같은 분위기라 더는 시간을 끌수 없었다. 아무튼 엔드르의 생각대로 로헨타이 공작부 인도 생각을 달리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티아와 테이를 데리고 그냥 돌아가라고만 하고 사태수습에 들어갈 소지도 있었다. 그 렇게 되면 기껏 잡은 기회가 물거품이 될수도 있다. 그렇기에 엔드르는 선수를 쳐서 물러서지 않을 결심을 하였다. "공작부인 저는 레드포머 공작님께 저 엘프두분을 찾아서 보호하라는 명령이외에도 이번 납치사건을 벌인 주모자를 잡아서 엄히 다스리라는 명령도 받았습니다. 무례한줄은 알지만 저 두분이 이 저택에 있었던걸 로 보아서 결코 이번일과 무관하지 않을꺼로 생각됩니다. 그렇기에 감 히 라보오스님께서 이번일에 대해서 좀더 자세하게 설명해주셨으면 합 니다." "엄마 나 어떡해?" 라보오스는 지은죄가 있기에 어쩌지도 못하고 로헨타이 공작부인을 보 면서 다시 울먹이기 시작했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정말 보기 역겨운 말 과 행동이었다. 남들에게는 정신적인 데미지를 주는 말과 행동이었지만 로헨타이 공작부인은 그런 아들이 그저 안스러운지 머리만 쓰다듬어 주 었다. 이때만큼은 로헨타이 공작부인도 어떻게 해줄수 있는 문제가 아 니었다. 그저 다이러스 제국의 실질적인 제 2인자라 할 수 있는레드포 머 공작이 왜 저런 천한 엘프를 감싸고 도는지 그게 궁금할뿐이었다. 그렇게 로헨타이 공작부인이 이를 갈면서 지금 상황을 빠져나갈 궁리를 하고 있을때 저 멀리서 말발굽소리와 마차가 오고 있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서야 도착하셨나?' 엔드르는 그 소리를 듣고 이제야 사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있겠다는 생 각을 하였다. 이것으로 로헨타이공작가의 부정은 완전히 밝혀진거였다. 남은건 국왕폐하의 이름을 들어 이들의 죄를 처벌하는 일만 남았다. 로헨타이 공작가의 재력이나 발언력등이 무시할수 있는 수준이 아니어 서 큰 벌을 줄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왕위계승에 커다란 타격을 줄수는 있을것이다. 그 말은 레드포머가는 안정적으로 왕위를 이어받을 수도 있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엔드르는 잠시 자신의 장인어른이 될뿐( ?)과 레이나의 성품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아마 그분이 왕이 되시고 레이나가 그 뒤를 이으면 부정부패에 찌든 귀족들은 살아가기 힘들겠군....' 그런생각을 하자 문득 피식웃음이 나오는 엔드르의 뒤를 누군가가 톡툭 건드렸다. 엔드르가 웃음을 거두고 뒤를 돌아보자 테이가 울상을 지으 면서 그를 쳐다 보았다. "왜 그러시죠? 레아 아가씨." "저기 오는....사람 누구죠?" 테이의 질문에 엔드르는 안좋은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테이가 바라보 는 방향을 보고는 신음을 애써 삼켜야 되었다. 엔드르의 그런 기분을 알리 없는 로헨타이 공작부인과 라보오스는 환호를 지르면서 지금 이리 로 오고 있는 사람을 맞았다. "여보오~~~!" "아빠~~~~~!" 로헨타이 공작부인의 정상적인 호칭은 넘어가더라도 라보오스는 그냥 넘어가지를 않고는 다시한번 주위에 정신공격을 가하면서 손을 흔들어 되었다. 지금 오고 있는 마차에는 로헨타이 공작가의 가문문장이 화려 하게 새겨져 있었다. 드래곤 남매 7화 첫 외출의 끝(2) 로헨타이공작가쪽에서는 환호성을 -이라고 해봐야 공작부인과 라보오스 둘뿐- 테이쪽은 긴장감을 -이라고 하지만 티아만은 귀찮은 인간 하나 늘었다고 귀찮아하는 정도뿐- 가지고 다가오는 마차를 쳐다보았다. 이윽고 요모조모 뜯어보고 아무리 쳐다보아도 로헨타이가의 마차가 확 실한(!) 마차는 사람들 앞에서 멈추고 문이 열렸다. 그리고 로브를 입 은 깡마른 사내가 먼저 내렸다. 누가 설명 안해주더라도 테이 일행은 그 자가 누군지 알수 있을 것 같았다. "왕실 마법사 카스파님!" 테이 일행의 예상대로 그가 이번 사건의 주모자들중 한명인 카스파라는 사실이 엔드르의 말에서 확인되었다. 카스파는 마차에 내려서 난장판이 되버린 로헨타이공작가 정문과 기사 들과 대치중인 경비병들 그리고 그 사이에 끼인 테이 일행들을 한번씩 쳐다보고는 혀를 차면서 옆으로 비켜섰다. 그러자 마차에서 또 다른 남자가 한명 나왔다. 풍체가 당당한 중년남자 로서 제비족같은 느낌이 드는 얼굴때문에 테이 일행들은 거부감부터 먼 저 들었다. 웬지 모르게 라보오스와 닮은 얼굴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남자 역시 누가 설명안해줘도 누군지 테이 일행은 충분히 짐작을 하 였고 그런 테이 일행의 생각을 확인시켜준 인물은....아니 인물들은 로 헨타이 공작부인과 그의 개망나니-테이일행의 표현을 빌려서-아들 라보 오스였다. 각자 '여보~~~'라는 말과 '아빠~~~'라는 말을 하면서 그에게 달려갔는데 다시한번 말하지만 로헨타이 공작부인의 여보는 들어줄만 하였지만 라보오스의 아빠 라는 닭살이 돋다 못해 솟궂쳐오르는 듯한 느낌마저 들게 만드는 말에 테이 일행들은 저도 모르게 무한한 살기를 내 뿜었다. 로헨타이 공작은 자신에게 달려오는 사랑스런(?) 아내와 아들을 가볍게 앉아주고는 그 둘을 쳐다보면서 이게 무슨 소동이냐고 물으려다가 아들 의 상처투성이의 몰꼴을 보고는 아까 로헨타이 공작부인과 똑같은 반응 을 보여주었다. "아니 우리 귀한 아들 얼굴이 이게 뭐야? 어느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놈들의 짓이야!" 테이 일행들은 그래도 혹시나하는 생각에 로헨타이 공작을 바라보다가 역시나라는 말이 나올 그의 행동에 고개를 저으면서 한숨들을 내쉬었 다. 라보오스 대신 로헨타이 공작에게 사건의 경위를 설명하는 역활은 이번에도 쥬라였다. ".........그렇게 된것입니다." 제법 긴 이야기의 사건 경위를 쥬라는 요점만 간단히 요약해서 로헨타 이 공작에게 설명하였다. 기사로서의 감같은거였는데 이번일은 너무나 수상한 냄새가 많이 났다. 굳이 표현의 예를 들자면 함정같은 느낌이었 다. 그래서 쥬라는 시간이 촉박하다는 예상에 되도록 설명을 짧게해서 얼른 저 골치덩이 두 엘프여자들을 경비대들이 데려가고 오늘 일에 대 해서 함구하게 만들어야 된다는 생각을 하였다. 특히 저 경비대장이라 는 엔드르는 아까부터 묘하게 시간을 끄는듯한 느낌을 주는 행동들을 하여서 쥬라의 위기램프에 빨간불이 번쩍이게 만들어서 쥬라는 자신의 불길한 예감이 맞아떨어질꺼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서 되도록 빨리 해결하자는 뜻에서 설명을 빨리 해던것이었는데... "그래? 그렇다면 지금 뭐하고 있는거냐?" "예?" "당장 저 천한것들을 잡아서 내 앞에 대령하지 못할까?" "........." 일순 주위가 얼어붙은 시간속에 갇힌것은 분명히 착각이 아니었다. '내가 설명을 너무 부족하게 했나?' 간신히 마음을 추스린 쥬라는 다시한번 중요한 요점만 끄집어내서 설명 을 하였다. "공작각하 저들은 엘프로드의 손녀분들이십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엘프 들과의 전면전을 피할수 없게 됩니다. 100여년전에 있었던 그 끔직하다 던 엘프와의 전쟁이 재탕이 될수도 있습니다. 더구나 저들은 레드포머 공작가의 손.님.들이십니다. 자칫 잘못하면...." 내란까지 일어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말까지는 쥬라는 차마 내뱉지 못하 고 그대로 삼켜야 되었다. "흥 자칫하면 뭐? 내란이 터질지도 모른다 이거냐?" 고맙게도 로헨타이 공작은 쥬라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었던 말을 대신 해주었다. 쥬라는 그래도 역시 주군은 좀 다르구나 하는 생각에 크게 기뻐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공작각하 그러니 이번일은 빨리 조용히 수습하시는게..." 엔드르는 지금 자신의 신분상 끼어들수 없다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시 간을 좀더 지연시키지 않으면 정말 힘들게 얻은 찬스를 그냥 놓칠것 같 았다. 그러나 엔드르가 각오를 하고 끼어들기도 전에 로헨타이 공작의 입에서는 그 막강한 주위 시간 얼어붙여 버리기 라는 필살기를 다시 구 사하였다. "그대는 지금 내가 레드포머공작가 따위에게 질꺼라고 생각하는가?" "네?" 이해가 안된 쥬라가 반문하였고 막 한마디 할려고 한 엔드르는 순간 멈 칫해서 끼어들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그러나 지금 엔드르에게 그 문제 가 중요한게 아니었다. "어차피 한번은 겪어야 될일. 그 일이 좀 빨리 찾아온 것 뿐이다." "그 그게 무슨....소 소인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안사옵니다. " 로헨타이 공작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싱글싱글 웃으면서 아까부터 조용 히 자신의 뒤에 있던 카스파를 돌아보았다. "경이 대신 설명해주는게 좋겠군." "그렇게 하겠습니다. 공작각하. 아니 폐하라는 호칭이 이제 더 어울리 겠습니다." 주위의 반응은 그야말로 가지각색 다양했지만 단 하나 공통점들이 있다 면 하나같이 놀라버린 얼굴들이라는 점이다. 감히 정식으로 결정된 사 항도 아니고 지금 제이라스 2세가 병석의 몸이긴 하지만 왕의 자리에 앉아있는 상황에서 로헨타이 공작에게 폐하라니....이것은 완벽한 반역 행위를 의미하는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무엄하시군요. 지금 공작각하께서는 전하를 반역하려는 의도로 그런말 을 하십겁니까?" 더 참지 못한 엔드르는 사납게 소리치면서 대답여하에 따라서는 지금 당장 일전이라도 벌이겠다는 기색으로 검 손잡이에 손을 갖다 되고는 로헨타이 공작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로헨타이 공작은 엔드르의 말에 콧웃음을 치면서 대답해주었다. "오늘밤이 고비라는 노인네따위는 이미 죽은것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그 그럴수가!" 이제 주위의 반응은 놀라움에서 경악으로 바뀌어갔다. 그리고 엔드르는 이상하게 레드포머 공작이 늦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로헨타이 공작의 말이 사실이라면 레드포머 공작은 왕명에 의해서 지금 궁전으로 불려갔 을것이다. 1년전부터 차기 왕의 후보순위 1순위인 레드포머 공작이 제 이라스 2세께서 사경을 헤메고 있다면 당연히 왕의 임종을 옆에서 지켜 보아야 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더 추측이 가능한 사실. 로헨 타이 공작역시 당연히 궁전에 가 있어야 될텐데 왕실 마법사인 카스파 와 저택에 다시 돌아온 이유는 틀림없이 이 사태를 손놓고 그냥 구경하 고 있지는 않겠다는 의지일 것이다. 엔드르의 예상은 그가 질문도 던지 기 전에 로헨타이 공작이 풀어주었다. "왕국의 멍청이들은 당연히 레드포머 공작놈을 왕으로 추대하기 위해 준비중일테지? 그런 좋은 기회를 내가 놓칠리 없지 않은가? 더구나 거 기 두 엘프여자들이 레드포머 공작의 귀한 손님이라니 이거 하늘까지 나를 도와주는 셈이로군." 마지막의 레드포머 공작의 말에 테이일행은 흠칫하였다. "이미 1개 기사부대를 왕국으로 출동시켜놓았다. 몇시간후면 급습에 놀 라서 허둥되던 왕국놈들과 레드포머 공작의 머리가 내 앞에....아니지 이제 곧 황제가 될 몸 이 짐 앞에 놓여질것이다. 하지만 실패했을때의 대비를 해놔야 되겠지? 여봐라 저 엘프들을 당장 잡아서 이리 대령해라 죽이면 안된다. 죽이면 인질의 가치가 떨어질테니 생포해서 내 앞에 대 령해라." 로헨타이 공작은 이제 스스로 자아도취에 심치해서 마치 연극배우인냥 오버액션까지 취하면서 테이일행 정확히는 테이와 티아를 가르키면서 쥬라에게 명령하였다. 그리고.... "음하하하하 어때? 이 아빠 멋있지?" "응 울 아빠 최고!" "당신 오늘 너무 멋져보여요. 다시 한번 더 반해버릴것 같아요." "음하하하하 내가 원래 한 멋짐 하잖아." 잊지 않고 정신공격을 주위에 퍼붓는 로헨타이 공작가 가족들의 다정한 (?) 대사에 어쩔수없이 검을 쥐고 테이일행을 포위해가던 기사단과 자 세를 잡던 테이들을 한순간 비틀거리게 만들어서 기껏 만들어놓았던 긴 장감이 일시에 풀어져 버렸다. "하아 저기요. 기사양반들 저 사람들이 왕이 되면 이 나라 꼴이 어떻게 될것 같아요? 꼭 저 사람들 말을 들어야 되겠어요?" 티아는 잠시 흩어졌던 긴장감을 최대한 노력해서 긁어모으고 있는 기사 단들에게 말했고, 기사들은 마음속으로나마 티아의 말에 공감하였다. "죄송합니다 아가씨. 기사의 서약은 신성한것입니다." 쥬라는 고개를 흔들면서 어쩔수 없다는 의사표시를 하였다. "신성한거 좋아하시네. 저런 속까지 시커먼 놈들한테서 무슨 신성을 찾 을수 있겠어요?" 티아의 계속되는 설득-이라고 하기보다는 독설에 더 가까운-에 기사들 은 마음이 흔들렸지만 뼈속까지 기사인 그들은 애써 마음을 추스렸다. 그 어떠한 경우도 기사로서의 맹세는 신성한 것이었다. 비록 그 신성한 의식으로 주군으로 선택한자가 저렇게 시커먼 인간들이라 하여도 잘못 을 따지자면 그런 주군을 선택한 자기 자신의 잘못이요 원하지도 않았 지만 그들에게 기사의 맹세를 해버린 자신들의 운명의 장난이라고 필사 적으로 생각하면서.... 그러나 역시 주저하게 되는것은 어쩔수가 없는 일이었다. 기사의 맹세 그 신성한 서약에는 레이디들을 보호하는 것도 기사들의 의무였다. 극 악무도한 마녀같은 여자들이 아닌한은 비록 인간이 아닐지라도 그들앞 에 있는 엘프아가씨들은 피해자였고 마땅히 기사들이 지켜야 될 가련한 (?) 레이디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부연설명을 덧붙이자면 기사 어쩌구를 떠나서라도 제대로 정신상태가 박혀있는 남자들이라면 지금 매서운 눈으로 자신들을 쏘아보는 티아는 예외로 제쳐두고라도 (티아가 들었다면 틀림없이 '죽고싶냐!'라고 외쳤 을 것이다. 아니 진짜로 실행해버렸을지도...) 꽉 안으면 부숴질것 같 은 가녀린 몸에 틀림없이 험한꼴 당하다가 간신히 도망쳐서 남자의 망 토로 몸을 가리고 겁먹은 눈망울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테이의 가냘픈 모습에 기사도가 자극받지 않을 남자가 몇명이나 있을까? 더구나 얼굴또한 미인이고 아직 동안의 티가 남아있는 얼굴탓에 로헨타 이 기사들은 누구하나 그 둘을 덮치지(?) 못하고 우물쭈물되고 있었다. 단지 그들이 모르고 있는 사실하나 있다면 테이가 실은 남자라는 것이 지만 뭐 지금 테이는 겉모습이나 생물학적(?)으로 완벽한 여자였으니 속마음이 남자라는것은 일단 제쳐두자. "에이 이 녀석들 지금 뭐하고 있는거냐? 상대는 겨우 둘이다. 얼른 끝 내버려라!" 로헨타이 공작이 말한 둘이란 테이와 티아가 아닌 그 둘을 호위하듯이 앞을 지키고 서 있는 제이크와 라이크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미안하지만 둘이 아니다." "뭐 뭣이? 이 이 천한 놈이 나에게 거역하겠다는거냐?" 그렇게 말하고 제이크와 라이크 옆에 나란히 선 인물은 엔드르였다. "대장님!" "엔드르 대장님!" 엔드르의 부하들은 지금 급박하게 흘러가는 사태에 적응 못하고 안절부 절 되던차에 엔드르가 엘프여자일행에 가담하자 놀라서 대장님! 이라는 소리만 연발하였다. "기사의 서약은 신성하고 중요한것. 그러나 그 이상으로 왕명 또한 신 성한 것이거늘. 스스로 그 신성을 더럽히는 자를 그래도 따르겠다니 로 헨타이 기사들에게 거듭 실망만 드는군요. 저는 정통 왕위계승자인 레 드포머공작님께 이 두분의 신변안전을 부탁받은 몸 이미 역적이나 다름 없는 당신따위에게 거역이니 뭐니 하는 소리를 들을 이유가 없다!" "뭐 뭣이?! 저 저 발칙한....뭐하는 것들이냐? 저 발칙한것들을 당장 베어버리지 않고!" 로헨타이 공작이 길길이 날뛰자 이제는 정말 어쩔수가 없다는 표정으로 로헨타이 기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엔드르는 자신의 부하들 에게 큰소리로 말을 하였다. "지금 너희들의 혼란스러운 마음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진정 가슴으 로 생각해보아라. 지금 누가 역적이고 이 나라의 적인지를....그리고 진정 지켜야 될 이들이 누군지 알것같은 이들만 계속 나의 명령에 따라 주기 바란다!" 엔드르의 외침에 정신을 추스린 경비대들은 오래 생각하지도 않았다. 잠시 로헨타이 가족들 특히 라보오스를 한번 쓱 쳐다본 다음 티아와 테 이를 쳐다보고는 뭔지 모르겠지만 '절대 안돼' 라는 결의에 찬 얼굴로 티아와 테이의 앞에 서서 둘을 보호하는 자세를 취했다. 쥬라는 그런 그들을 보면서 어쩌면 기사에 잘어울리는 것은 바로 저들 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잠시 하였지만 이제부터 시작될 전투에서는 금물 인 생각 곧 그 생각을 지워버리고는 마음을 다시 잡았다. 숫적으로는 경비대들쪽이 조금 많았지만 그래도 경비대들의 전투력이 기사만 할리가 없었다. 여러므로 불리한 싸움이었지만 그래도 티아의 마법실력을 아는 엔드르는 아직 승기는 자신들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다만 저 궁정마법사 카스파가 어떤 행동을 취하느냐에 따라서 그 승기 는 단숨에 패색에 물들겠지만.... 그래도 아직 희망이 있는건 카스파가 테이와 티아를 우습게 보고 사태 를 관전만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 때를 잘 노려서 티아가 기사들의 수를 최대한 줄여준다면 아예 희망이 없는것은 아니었다. 그런 자신의 계획을 티아에게 말해주기 위해서 고개를 돌리자.... "꺄아악! 엔드르씨 보지 마세요!" "으아악?! 미 미안!" 엔드르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고 갑작스런 테이의 비명에 다른 사람들 모두 돌아보았다가 엔드르처럼 황급히 고개를 다시 돌렸다. 개중에는 흘끔흘끔 쳐다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티아의 매서운 눈초리에 잽싸게 고개를 원위치 시켜야 되었다. 테이는 팔을 수평으로 든체 서 있었고 티아가 테이의 가슴을 망토를 짖 어서 묶어주고 있는 중이었다. 마침 경비대들이 앞을 막아주어서 쨉사 게 입힐생각이었지만 엔드르가 정말 타이밍 좋게 고개를 돌리고 쳐다보 는 바람에 본의아니게 테이 몸에 달린 티아의(?) 가슴이 다시한번 사람 들의 좋은 눈요기감이 되자 티아는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이 바보야! 왜 비명을 질러가지고...." "그 그치만...힝..." "뚝! 울면 때린다!" "흐끅!" 때린다라는 말 한마디에 본능적으로 입을 가리고 억지로 울음을 삼키는 테이 덕분에 긴장감은 다시한번 봄눈 녹듯이 녹아버렸고 대치중이던 기 사들과 경비대들은 지금 자신들이 뭔짓을 하고 있는걸까? 라는 회의감 이 들어서 멍하니 서로만 쳐다본체 어떤 행동도 하지 못하였다. 테이는 티아가 가슴을 천으로 완벽히 묶어주자 바로 자기앞에서 등을 돌리고 서있는 경비병의 어깨를 톡톡 쳤다. "예? 무 무슨일이신지....아!" 테이가 어깨를 치자 돌아보면서 용건을 묻던 그 경비병은 술집여자들의 무용수나 입을법한 테이의 파격적인 차림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그러나 고개가 숙여지자 자연히 새하얀 배와 앙증맞은 배꼽이 훤히 보 였다. 그래서 다시 고개를 돌렸다. 단 아주 천천히.... 그런 경비병의 행동에 약간 불만을 느낀 테이지만 내색하지 않고 용건 을 말하였다. "검 한자루 빌려주세요." "네? 아..네 검이요." 경비병은 허리에 차고 있던 롱소드를 뽑아서 테이에게 주웠다. 테이는 롱소드를 들고 가볍게 허공을 몇번 휘저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자신의 몸을 지킬 무기를 찾으시는건 이해가 갑니 다만 걱정마세요. 반드시 제가 아가씨를 지켜드리겠습니다. 절대 그 무 기를 쓰게 만들지 않을테니 안심하세요." 테이가 이리저리 검을 휘드르는 모습을 보면서 그 경비병은 결의에 찬 목소리로 말을 하였다. 그러자 주위는 삽시간에 야유의 소리가 울려퍼 졌다. "치사하다 릭. 너 혼자 저 아가씨들을 지키겠다는거냐?" "야 릭. 이런때 여자 꼬시는 말을 꼭 해야겠어?" "우리들도 아가씨들을 지킬 의무가 있는데 혼자 나서다니....치사한걸. " "그러게." "아 아니 난 그런뜻으로 말한건 아니고...." 릭이라고 불린 남자는 얼굴을 붉힌체 손을 휘저으면서 주위에 변명하였 다. 결국 목숨을 걸어야 될 전장이 될지도 모를 곳이 긴장감이 감돌아 도 모자랄판에 전혀 안어울리는 왁자지껄한 분위기로 변해버렸다. 그런 분위기를 지켜보면서 로헨타이 공작가 기사들도 웬지 싸울맛이 다 달아나 버렸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지금 당장 빌고 빌어도 모자랄 판 에 여유부리면서 웃는 꽤심한 놈들 그냥 놔두냐는 로헨타이 공작의 욕 이 쏟아지기전에 처리는 해야 된다. "저기 슬슬 싸....워도 될까요?" "아 예? 아 그렇군요. 뭐 시작하죠." 쥬라와 엔드르의 연극 시작하자는 분위기의 대사가 온간뒤에 그제서야 긴장감이 다시 감돌았다. 잠시 분위기는 풀어졌었지만 목숨이 왔다갔다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기에 맥빠지는 전투선언이었지만 긴장감을 다시 찾는데는 충분하였다. "잠깐만요." 티아의 만류에 이제야 겨우 뭔가 시작해보겠구나라고 생각하던 양측은 다시 힘이 빠지는 것을 느끼고 양측 모두 똑같이 원망스런 눈으로 티아 를 쳐다보았다. 물론 그런 눈초리들에게 기가 죽을 티아가 아니었다. 드래곤 남매 7화 첫 외출의 끝(3) 티아는 테이의 손을 잡고 경비병들을 헤치고 앞으로 걸어나갔다. 경비 병들은 의아해 하면서도 티아의 박력에 눌려서 길을 터주었다. "티아양 뭘 할 생각입니까?" 엔드르는 자신의 앞을 지나쳐서 로헨타이 기사들앞에 당당히 서는 티아 를 보고는 불안한 생각이 들어서 물었다. 이야기 전개상 주인공이나 그 주위 인물들이 드는 불안한 예감은 항상 맞아떨어진다는 법칙은 이번에 도 여지없이 맞아떨어졌다. "저들은 레아가 맡으면 되니깐 걱정마세요." 티아가 너무나 당당하게 말하자 엔드르는 잠시 티아의 말 뜻을 못 알아 듣고는 '뭐라고요?'라고 반문했다. 하지만 곧 테이가 검을 고쳐쥐고 자 세를 잡자 그제서야 소스라치게 놀라서 테이를 말렸다. "레아양! 여기는 우리한테 맡기세요. 너무 위험해요. 그리고 티아양 이 게 대체 무슨짓입니까? 동생을 위험하게 만들 생각입니까?" "그럴 생각은 없는데요." "그럼 도대체 왜?" "레아의 실력을 믿고 있으니깐요. 보시면 알아요. 자신있지 레아야." 테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되도록이면 죽이지 말고 해결봐. 저 사람들은 어떻게 보면 불쌍 하다고 할수 있는 사람들이니깐." "잠깐 언니. 죽이지 않고 제압하는건 더 어려워." "그럼 처음부터 죽일 생각이었니?" "아 아니...그런건 아니지만..." 테이 스스로가 자신에게 물어봐도 확실히 티아말처럼 처음부터 저들을 죽일 생각은 없었다. 아니 죽이고 싶지가 않았다. 저들은 라보오스같이 속까지 시커먼 악인이 아니기때문이다. 단지 너무 고지식하게 맹약에 얼매여 있다는 점이 마음에 안들뿐.... 아무튼 죽이지 않고 제압하기로 마음먹은 테이는 다시 자세를 잡았고 티아는 뒤를 돌아보면서 제이크와 라이크 그리고 엔드르에게 말했다. "세 분은 테이를 도와주세요. 단 되도록이면 저들을 죽이지는 마시고 요." "하지만 티아양..." "만약 경비대와 기사가 붙게 되면 많은피가 흐르는건 당연하겠죠?" "그 그거야...그 그렇지만..." "전 지금 되도록이면 희생을 줄이고 싶어요. 정말로 나쁜건 저기 뒤에 서서 희희덕거리는 멍청이 가족들뿐이니깐요." "뭣이?! 저 저 천한것이 감히! 이 놈들아 빨리 저 년들을 잡아와라. 내 가 손수 톡톡히 교육시켜주마! 그래...손수..." 로헨타이 공작은 자신을 손가락질하며 멍청이라고 말하는 티아에게 크 게 분노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근데 끝에 말을 하면서 로헨타이 공작은 입가에 흐르는 침을 쓱 닦으면서 티아와 테이를 음흉한 눈길로 바라보았는데 그야말로 부전자전이었다. "당신 왜 침을 질질 흘리는거죠?" 역시나 그런 로헨타이 공작을 그냥 두고보질 못한 공작부인이 소리를 빽 질렀고 로헨타이 공작은 헛기침을 하면서 시선을 외면했다. 저런 인간들이 과연 왕이 되면 이 나라 꼴이 정말 어떻게 되버리는 것 일까? 하는 생각이 들자 테이는 더 시간을 지체하면 안되겠다고 생각하 고는 몇걸음 앞으로 걸어나갔다. 그렇지 않아도 가련한(?) 레이디들을 강제로 붙잡아야 된다는 명령때문에 갈등을 겪던 로헨타이 기사들은 그 가련하다고 생각한 테이가 직접 검을 들고 앞으로 나오자 어찌할바를 모르고 그냥 쳐다만 보았다. "휴우...별수없군. 되도록이면 저 아가씨를 다치지 않게 사로잡도록 하 라!" "쩝 검을 들고 있는 상대를 다치지 않고 사로잡기는 힘든데요." "그래도 힘은 없어보이니깐 검만 날리면 되겠지." 쥬라의 명령에 기사들은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내딛을때 테이는 검을 양손으로 쥐고는 손을 가슴께로 가져가서 대결전에 보이는 기사들의 예 를 취했다. 그 덕분에 로헨타이 기사들도 얼떨결에 따라하게 되었다. 그리고 검을 내리자마자 테이는 무서운 속도로 그들에게 대쉬했다. 얼마나 무서운 속도냐면... "뭐 뭐야?" "움직이는게 안보여!" "조심해라 정면으로는 안들어 올....크악!" 정면 어쩌고 한 기사의 말과는 달리 티아는 바로 정면으로 먼저 치고 들어가서 한 명의 기사를 전투불능으로 만들어버렸다. 손쉽게 상대방을 전투불능으로 만드는 방법은 쉬웠다. 아무리 갑옷으로 완전무장한 기사들이라도 손목, 무릎, 목등 움직여야되는 관절부위는 방어력이 낮을수 밖에 없었다. 테이는 그 점을 노려서 정확히 한명의 기사의 손목을 쳐서 검을 떨어트리게 만들고 기세를 줄이지 않고 낮게 몸을 낮춰 달려가면서 무릎뒤를 아주 쎄게 쳐서 무릎 꿇게 만든것이다. 이렇게 말하기는 쉬운일이나 실제로 비슷한 실력을 가진이들끼리 그렇 게 상대방의 관절부위를 공략하기는 결코 쉬운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테이는 과거 티아를 검술로나마 이겨보기 위해서 아버지인 오스타인에 게 검술지도를 받은적이 있었고, 힘이 티아보다 약한 테이를 위해서 오 스타인이 선택한 방법은 스피드와 반사신경을 높이는 훈련을 시켰었다. 그 때 했던 훈련덕분에 테이의 스피드는 비정상적으로 빨라져 있었고 원래 드래곤인 테이는 체력또한 보통인간보다 좋아서 기사들 사이를 그 무서운 스피드로 휘젖고 다니는데도 전혀 지친기색을 안보였고 스피드 또한 줄어들 기미를 안보였다. 그렇게 대 여섯명의 기사들이 더 쓰러지 자 쥬라는 그제서야 심상치 않다는것을 느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 서 부하들을 지휘했다. "아무리 빨라도 적은 한명이다. 진형을 무너트리지 말아라! 둥글게 포 위진형을 짜라!" "으아아악!" 그러나 쥬라의 필사적인 지휘도 보람이 없이 간신히 테이를 포위해가던 기사들 뒤쪽에서 제이크와 라이크 엔드르가 끼어들자 그나마 짜여가던 진형은 단번에 무너졌다. 그 셋도 티아의 부탁대로 되도록이면 죽이지 않고 전투불능으로 만드는데 주력했다. 특히 제이크가 쓰고 있는 마검 은 기사들의 검과 갑옷정도는 우습게 찢어버려서 제압하기가 한결 더 수월했다. 기사들이 그 셋을 상대하려고 돌아서면 어느새 다가온 테이 가 그들을 쓰러트렸고 테이를 잡으려고 이리저리 쫓아다니다가는 제이 크들에게 쓰러져갔다. 그렇게 20여명이 넘던 로헨타이 기사들은 어느새 절반가량 줄어들었다. 로헨타이 공작은 처음에는 싱글싱글 웃으면서 관 전하다가 점차 얼굴이 굳어지다가 점점 이마에 힘줄이 늘어가더니 막판 에는 얼굴색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뭐 뭐 저 저런 괴물같은 것들이 다 있어?!" 라는 로헨타이 공작의 절교가 울려퍼지자 갑자기 뭔가 쉬웅하고 날아오 더니 로헨타이 공작의 뺨을 스치듯이 지나서 뒤의 벽면에 꽂쳤다. "누가 괴물이야? 누가!!" 열이 받을대로 받아서 검을 집어던진 테이는 매서운 눈초리로 로헨타이 공작을 쏘아보고는 자신이 쓰러트린 기사의 검을 주워들고는 차갑게 말 했다. "거기서 조금만 기다려. 다음은 너 차례니깐." 로헨타이 공작 가족들은 테이의 차가운 살기어린 말에 기가 죽었고, 겁 을 집어먹었다. "누 누가 가서 대기하고 있는 병사 2개부대를 불러와라! 그 그리고 카 스파경!!" "이런 다른 병사들이 오면 더 귀찮아지는데..." 엔드르가 신음을 삼키며 말하자 테이가 걱정없다는 말투로 말했다. "그전에 여기 남은 기사들 쓰러트리고 저 공작을 잡으면 상황 끝이잖아 요." "하긴 그렇긴 그렇군." 아까전이었다면 힘들겠다고 생각했을 엔드르는 지금 테이가 보이고 있 는 엄청난 힘덕분에 희망이 생기는듯 하였다. 부정부패의 교과서나 마 찬가지인 로헨타이 공작을 누르고 레드포머 공작이 왕위에 오르면 그 동안 부패로 찌들대로 찌든 다른 귀족들은 발 붙일곳이 없게 될 것이 다. 그렇게만 된다면 엔드르가 바라던 그 옛날 다이리 초대여왕이 만들 었던 살기좋은 국가로 다이러스는 바뀔지도 몰랐다. 아니 꼭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레이나가 있으니깐...' 총명하고 결단력 있는 그러면서도 차별을 할줄 모르고 마음씨 착한 그 녀라면 분명 다이리 1세 여왕의 뒤를 이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하면 서 검을 쥔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지금이 그녀를 도와줄수 있는 큰 기회라고 생각하면서... "보이지 않는 힘의 밧줄이여. 내 의지에 따라 나의 적을 속박하여라. 속박!" 갑자기 들리는 노인의 음성이 마법주문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엔드르는 급히 정신을 집중시켰다. 그러나 소용없는 일이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적이라고 할수 있는 마법사는 최상급 공격주문도 쓸수 있다는 궁전마법 사 카스파이기 때문이다. "젠장!" "이익 이게 뭐야?!" 저쪽에서 테이와 라이크의 낭패감이 가득한 말들이 들려왔다. 아마 엔 드르처럼 보이지 않는 힘에 몸이 꽁꽁 묶여있을 것이다. "이런 괜찮아?!" 그런데 놀랍게도 제이크만은 마법에 걸리지 않았는지 일행을 보호하듯 이 앞을 막아섰다. "호오 내 마법을 견딜 실력이 있는 녀석이었나? 그렇게 보이지는 않았 는데." "헹 사랑의 힘이라고 해두죠. 할아범." "사랑? 그게 무슨 힘이냐? 그리고 뭐 할.아.범? 예의없는 젊은이구만.. .쯧쯧쯧 하여튼 요즘 젊은것들이란..." 카스파는 그 깡마른 얼굴에 잔뜩 주름살을 지으면서 혀를 찼다. "헹 당신같이 속이 시커먼 할아범한테까지 노인공경하고픈 생각이 없습 니다. 그나마 존대말 써주는거나 다행으로 여기슈." "그게 존대말이냐?" "아님 막말로 나갈까?" "관둬라. 그런데 이제 어쩔거냐 너 혼자서 남은 기사 십여명과 상대할 꺼냐? 아니면 거기 뒤에 경비병이라도 같이 싸워볼테냐? 아무리 수가 줄어들었어도 실력차이가 나는건 여전한데 말이야." "........젠장..." 카스파가 그렇게 빈정거리지 않아도 지금 상태가 역전되버렸다는것을 잘알고 있었다. 그나마 자신은 티아가 주었던 마검에 냉기가 자기몸을 감싸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무언가의 힘을 밀어주었기 때문에 버틸 수가 있었지만 지금 다른 이들은 온몸이 밧줄이라도 묶여있는듯이 꼼작 달삭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혼자서 이 셋을 보호하면서 싸울 자신 은 도저히 없었다. 더구나 경비병들이 지금 끼어든다 하더라도 기사와 병사의 차이는 아무리 실력이 낮은 기사일지라도 10:1의 비율로 저쪽이 우세한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나마 티아의 마법이 마지막 희망이 되버 렸지만 저 궁전마법사라는 카스파를 과연 티아가 이길수 있을지도 미지 수였다. 그렇게 끙끙거리면서 제이크가 고민하고 있을때... "해제!" 뒤에서 팔장끼고 구경하던 티아는 손을 들어서 시동어를 외쳤고 속박의 밧줄에 묶여있던 세 명의 몸에서 새하얀 빛에 감싸였다. 빛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세 명은 이리저리 몸을 움직여보면서 몸이 움직인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역시 나의 아가씨군요!" 기쁨이 넘쳐서 소리치는 제이크의 '나의'라는 말에 티아는 살포시 얼굴 에 홍조를 띠우면서 미소로 답해주었다. 그리고 카스파는 흥미있다는 얼굴로 티아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허허 내가 또 한분의 엘프를 몰라보았군. 아까부터 듣자하니 저기 검 들고 설치는 엘프가 동생이라고 했던거 같은데 언니 되시는분은 마법에 재능이 있다 이거군. 그나저나 엘프가 정령마법이외에 보통마법에도 재 능이 있는줄은 몰랐는걸." "인간들도 여러종류의 인간들이 있듯이 엘프들도 여러종류의 엘프들이 있는거죠. 당신네들의 편견을 상식으로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티아는 천천히 걸어나와서 카스파의 정면으로 걸어가서 몇걸음 떨어진 곳에 서서 카스파를 지긋이 노려보았다. 그러나 아까 로헨타이 공작부 인과는 달리 카스파는 티아의 노려봄을 능글맞은 시선으로 마주봐주면 서 입을 열었다. "확실히 인간들은 자신들과 다른것에 대해서는 상식이라고 착각하는 편 견을 가지고 있지. 그러나 그건 엘프도 마찬가지인것 같은데. 겨우 내 가 건 기초마법 좀 해제했다고 나와 상대가 될거라고 생각하고 있는건 가?" "그게 편견인지 상식인지는 겨루어봐야 결과를 알수 있는거 아닌가요?" "허허 거참 마음에 드는 아가씨인걸. 저 마검 든 젊은이와는 달라서 예 의도 바르고...허참 그 녀석 애인으로 있기에는 아까운 여자로군." "제이크씨는 제 애인이 아닌데요." 너무나 자연스럽게 생글거리면서 확실하게 애인 아니라는 선언에 제이 크는 온몸에 감전이라도 걸린듯이 몸을 떨었고 그 자리에 쭈구리고 앉 아서 마검으로 땅바닥을 긁으면서 중얼거렸다. "애인 아닌건 알고 있지만....그래도 가능성은 있는줄 알았는데...테이 아가씨는 너무해. 그 말을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져버린 제이크가 옆에서 궁상을 떨던 말던 티아 는 카스파를 쳐다보면서 입을 열었다. "말싸움은 이쯤에서 끝내고 시작해볼까요?" "큭큭큭 좋다. 보여주마 인간들에게 마도사란 칭호를 얻은 이 나의 실 력을!" 카스파는 소리를 치면서 지팡이를 쥐고 주문영창에 들어갔다. 그에게 마도사의 칭호를 얻게 만든 최상급 공격마법중 하나인 불의 최상급 마 법 프레아를 쓸 생각이었다. "만물을 태우고 재 창조하는 피닉스의 날개와 같은 불꽃의 힘이여. 지 금 나 그대에게 원하여 그대의 힘을 빌리자 하니. 나의 부름에 응답하 여.....뭐 뭐냐?!" 한참 주문이 절정에 달했다고 생각될때 카스파는 경악에 찬 비명을 질 러야 되었다. 최상급 주문을 영창할때는 몸주위에 자연스럽게 마나가 마법진을 그리면서 다른 마법의 공격을 막아주는 역활을 하였다. 그 방 어력은 상급공격마법도 무효화 시킬수 있을정도로 단단한 방어벽이었 다. 그러나 물리적인 공격에는 하등 도움이 안된다는 약점 또한 있었 다. 그렇다. 티아는 바로 최상급 공격주문의 약점을 이용하기 위해서 일부러 카스파에게 곧바로 최상급 공격주문을 쓰도록 유도했고 그가 마 법을 쓰기위해 주문영창에 들어가자 바로 대쉬해 들어갔다. "무 무슨짓을?!" 이라는 말을 남기고 카스파는 티아의 어퍼컷을 얻어맞고 하늘높이 떠올 랐다가 곧 중력의 영향에 의해 다시 땅에 떨어졌다. 무언가 번쩍번쩍거리면서 콰광같은 마법싸움을 기대하면서 지켜보던 이 들은 일순간 말들을 잃었고, 큰소리로 땅에 떨어진 카스파는 몇번 꿈틀 되다가 간신히 고개를 들고 티아를 보면서 힘들게 입을 열었다. "이 이게....무슨...비겁한...짓이냐?" "어머 내가 아까 말했잖아요. 당신네들 편견을 상식으로 생각하지 말라 고요. 내가 마법을 조금 쓰긴 하지만 당신과 싸울때 꼭 마법으로 싸우 라는 법은 없잖아요. 제가 당연히 마법을 쓸거라고 생각한 당신의 상식 이라고 생각한 편견에 진거죠." "치...치사한...마 마녀..." 카스파의 뒷말은 티아가 걷어차버리는 바람에 끝까지 말하지 못하고 조 용히 기절해버렸다. 이마에 힘줄이 돋은 티아는 씩씩거리면서 말했다. "누가 마녀야? 누가?!" 그래도 화가 안풀렸는지 티아는 쓰러진 카스파의 몸을 살픗이 지근지근 밟아되면서 화풀이를 하였고 그 모습에 사람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생각 을 하였다. '그 무식하고 인정머리 없는 행동때문에 마녀같다고 하는거잖아!' 몰론 그 말을 입밖에 내는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사람들은 하나도 없었 다. 드래곤 남매 7화 첫 외출의 끝(4) 완전히 기절해서 뻗어버린 카스파를 보면서 로헨타이 공작은 경악에 몸 을 떨었다. 카스파는 로헨타이 공작이 믿고 있는 히든카드나 마찬가지 인 존재였다. 그런 그 히든카드가 카스파가 마지막에 남긴 말처럼 마녀 같은 저 엘프에게 밟히고 있었다. "뭐하는거냐? 다 당장 저것들을 없애버려라!" 아까전만해도 인질이 어쩌고 하면서 잡으라고 난리를 치던 로헨타이 공 작은 남은 기사들에게 테이들을 죽이라고 명령했다. 괴물같은 저들을 인질로 잡는다는게 더 이상 힘들다는것을 깨닫고 명령을 번복한것이지 만 죽이는 것 역시 쉬운일이 아니었다. 로헨타이 공작의 명령에 남은 기사들이 티아에게 덤벼들었다. 그러나 기사들이 달려오는것을 흘긋 쳐다보던 티아는 재빠르게 뒤로 물러났고 다시 테이들이 기사들을 상대하였다. 그리고 결과는 조금전과 마찬가지 로 기사들은 하나둘 테이들에게 쓰러져갔다. "이런 이런 말도 안돼는....조금만 더...조금만 있으면 이 내가 왕이 될수 있는데..." 로헨타이 공작은 절망감이라는 존재가 자신을 덮쳐오는 기분이 들었다. 옆에서 구경하던 공작부인이 더는 못참겠는지 자신들을 지키고 있는 보 디가드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지금 당장 저것들을 죽여버려라! 이런 날을 위해서 비싼돈주고 너희들 을 고용한거니깐 그동안 받은 돈값을 하란 말이야!" 공작부인의 명이 떨어지자 그림자처럼 공작부인의 주위를 호위하던 검 은옷의 보디가드들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쨉사게 앞으로 뛰쳐나갔다. 그때 테이는 마지막 남은 기사 셋에게 덤벼들던 중이었다. "레아양 위험합니다!" 뒤에서 라이크가 소리치지 않더라도 이상한 살기를 느낀 테이는 달려가 던 걸음을 멈추고 살기가 느껴지는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그런데 눈에 잠시 무언가 스쳐지나간듯한 느낌이 들었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 새 공작부인곁에서 조용히 있어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던 보디가드들이 테이를 포위하고 있었다. 그 재빠른 스피드에 테이는 긴장감을 느끼면서 검을 고쳐쥐고 바로 앞 에 서 있는 남자를 노려보았다. 그런데 테이가 노려보던 남자는 손에 뭔가 천쪼가리를 들고는 흔들고 있었다. '저게 뭐지? 최면술이라고 불리던 뭐 그런건가? 근데 어디서 본것 같은 천이네.' 테이는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천쪼가리를 흔들고 있는 남자를 노려보면 서 공격자세를 취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그가 흔들고 있는 천쪼가리 가 낯설게 보이지가 않았다. 그때 뒤에서 티아의 비명에 가까운 외침이 터져나왔다. "레아야! 가슴! 가슴 가려!" "에?" 티아의 외침에 의아해 하면서도 반사적으로 자신의 가슴을 쳐다본 테이 의 얼굴은 금방 홍당무처럼 붉어져 버렸다. 그 남자가 들고 흔들던 천 쪼가리는 아까 티아가 망토를 영어서 가슴을 가려준 그 천쪼가리였던것 이다. "꺄아아아아악!" 이 급박한 상황에서조차 여자인척 하는걸 잊어먹지 않았는지 아주 귀엽 게(?) 비명을 지르면서 테이는 가슴을 감싸안고 주저앉아버렸다. 그리 고 그 순간 검은옷의 남자들이 일제히 테이에게 덤벼들었다. "위험합니다! 피해요!" 라이크는 소리를 지르면서 테이에게 뛰어갔다. 아니 가고 싶었지만 방 금 테이가 공격할려고 했던 기사들이 앞을 막아섰다. 그 셋은 아까 픽 픽쓰러지던 하급기사들과는 다른지 제법 강해보였다. 더구나 그들 기사 대장인 쥬라도 셋중의 한명으로 살아남아 있었다. "크윽." 신음을 흘리면서 라이크는 바로 앞의 기사와 검을 겨누었고 곧 뒤에서 달려온 엔드르와 제이크도 테이를 도우러 가지 못하게 방해를 받았다. 테이는 라이크의 외침덕분에 다행히 정신을 차리고 피하고 있었다. 그 러나 그들의 움직임은 아까 테이가 보여주었던 그 무서운 스피드에 결 코 뒤지지 않는 움직임이었다. 그리고 테이는 잘 피해다니고 있긴 했지 만 가슴을 손으로 가리고 있는탓에 움직임이 아까보다 조금 더 둔해보 였다. 창피한것 무릅쓰고 반격해볼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너 가슴 똑바로 가려! 또 남들한테 보이게 하면 죽을줄 알어! 그 가슴 은 내꺼란 말이야!" 라는 티아의 외침에 휘청대면서 결국 가슴을 가린 손을 떼지 못하였다. 테이가 휘청되던게 기회라면 기회였지만 검은옷의 남자들은 물론이고 주위 모든 사람들이 몸을 휘청이고는 아~~주 복잡한 표정으로 티아를 쳐다보았다. "뭐 뭐야? 왜 다들 날 쳐다보는거지?" 자신이 방금 말한게 엄청나게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말이라는것을 알아 차리지 못한 티아는 방금까지 죽일듯이 서로 싸우던 사람들이 일제히 자신을 쳐다보자 이상하다는듯이 말했다. 한참동안의 침목을 깬건 로헨타이 공작이었다. "여봐라....마음이 바뀌었다. 저 엘프들은 사로잡거라." "여보! 그게 무슨뜻이죠?" "아 아니 그냥...역시 인질이 있어야 될것 같아서...." "말은 그렇게 하면서 얼굴은 왜 붉히는거죠?" "아 그 그게...." "아빠 저 엘프들은 내꺼예요. 이상한 생각은 하지 마세요!" "좀 빌려주면 안되냐?" "여보!!" 금세 지금 상황을 잊어버리고 티격태격하는 가족들을 보면서 티아는 딱 두마디를 하였다. "전부 바보." 티아의 말에 죽일듯이 남편을 노려보던 공작부인은 그 시선을 그대로 티아에게 향하였고 티아 역시 눈에 살기를 띠고 마주 노려봐 주었다. 바야흐로 제 3차 여자들의 눈싸움 대전이 벌어진것이었다. 이번 3차대전(?)은 금방 끝나지가 않았다. 공작부인이 이번에는 끈질기 게 물고 늘어졌기 때문이었다. 비록 해츨링이긴 하지만 드래곤 아이를 쳐다보면서 이렇게 오래 버티는 인간을 본적이 없기에 티아는 속으로 약간 감탄을 하였다. 아무리 오래 오래 버틴다고 해봐야 인간은 역시 인간 비록 해츨링이긴 하지만 드래곤 아이를 쓰고 있는 티아의 눈길을 끝까지 쳐다보지는 못했다. 결국 3차 대전도 티아의 승리로 끝나자 눈 길을 돌려 패배한 공작부인이 이를 갈면서 소리쳤다. "뭐하는거야? 어서 빨리 저 년들을 죽여! 이럴때를 대비해서 내가 너희 어새신들에게 비싼돈주면서 데리고 있던거라는걸 모르는거냐?" 공작부인의 외침에 어새신이라고 불린 검은옷의 남자들은 그제서야 정 신을 추스린듯 다시 예의 그 스피드한 움직임으로 테이를 포위하였다. 그리고 제이크들은 어새신이라는 말에 크게 놀라버렸다. "어새신?!" "어둠의 암살자라고 불린다는 그 암살자 집단 말인가?" "젠장 레아양 위험해요! 마법이라도 써서 피하세요!" 엔드르가 외치지 않더라도 테이는 마법을 써서 이 난국을 타개할려고 했었다. 그러나 어새신들의 움직임이 너무 빨라서 도저히 맞출수가 없 었다. 좀더 광범위한 마법을 쓰면 될것 같았지만 그정도의 광범위 마법 을 쓰기 위해서는 상급공격마법을 써야 되겠지만 아직 테이는 광범위 마법을 쓰기 위해서는 주문캐스팅을 해야 되었다. 하지만 시동어도 간 신히 외칠 시간을 주는 어새신들을 상대로 캐스팅을 외울 시간따위는 없었다. 그저 뛰어난 반사신경으로 어새신들의 공격을 피하는데만 급급 했다. "레아야! 실드 펴!" 갑자기 실드를 펼치라는 티아의 외침에 그 짧은 시간에도 테이는 불길 한 예감이 드는것을 느끼면서 실드를 펼쳤다. 그리고 테이가 실드를 펼 치자 마자 티아의 입에서 상급공격마법의 시동어가 터져나왔다. "중력주문 베이데트!" 중력. 인간을 끌어당기는 그 힘을 이용하는 마법중 인간을 중력에서 해 방시키는 레비데트의 반대되는 성질로 일정범위에 중력을 더 얹어버리 는 마법이 발동되었다. 그것도 테이 바로 머리위에.... "으아아아악!" "꺄아아악!" 어새신들은 처절한 비명을 지르면서 땅바닥과 키스를 하였고, 실드를 펼쳐긴 하지만 티아의 무식한 마법력에 점점 땅에 주저앉아버리는 테이 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물론 그 와중에도 테이는 철저하게 여자 로서 행동했기에 그 비명소리는 듣기에 참으로 애처로웠다. 베이데토의 효과가 사라지자 어새신들은 쓰러진체 움직일줄 몰랐고 테 이는 간신히 비틀거리면서 일어났다. "언니...너무해..." 간신히 일어났나 싶었던 테이는 그 말만을 남긴체 다시 쓰러져버렸다. "살려줬는데도 너무하다니...너가 더 너무하다. 응? 어머 지금 뭘 보고 있는거예요. 다들 고개 안돌려요?!" 어째 쓰러져도 그렇게 비스듬하게 섹시하게 쓰러진건지....테이의 섹시 하면서도 완전 무방비 상태의 모습에 사람들은 침을 삼키면서 구경했 고, 티아는 급히 아까 쓰고 남은(?) 망토를 들고 와서 테이의 몸을 가 려주었다. 일단 테이의 가슴에 달린 자신의 가슴(?)이 가려지자 티아는 안심을 하고는 시선을 로헨타이 공작에게로 돌렸다. 그리고 생긋 웃으 면서 물었다. "또 다른 히든 카드 남은거 있어요?" 로헨타이 공작은 이를 갈면서 고개를 저었다. 이제 남은게 뭐가 있겠는 가? 기껏해야 일반사병들이 많이 남아있긴 하지만 사병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게임은 끝나버린것을.... "어머 그래요. 그럼 다 끝난거군요. 그렇다면...." 티아는 평소 테이를 골려먹을때 괴롭힐때나 쓰던 눈빛을 빛내면서 로헨 타이 공작에게로 한걸음 발을 떼었다. 동시에 로헨타이 가족은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티아는 입가에 미소를 지우지 않으면서 말했다. "이제는 벌 받을 시간이네요." 유난히 '벌'이라는 단어를 강조한 티아의 말에 로헨타이 공작가족의 얼 굴은 그저 새하얗게 변해버릴수 밖에 없었다. 다시 티아가 한발작 걸음을 떼자 저 멀리서 수많은 사람들이 달려오는 게 보였다. 로헨타이 공작은 '간신히 시간에 맞췄나' 라는 생각을 하면 서 이제 정말 마지막이라고 할수 있는 자신들의 사병들을 기대에 찬 눈 으로 바라보았고 티아는 '에궁 또 귀찮은 것들이 왔군.' 이라고 생각하 면서 마법을 쓸 준비를 하였다. 그러나 로헨타이 공작의 기대도 티아의 귀찮움도 한순간에 없애버린 소리가 엔드르의 입에서 터져나왔으니... "저건 레드포머가의 기사들입니다!" 거의 환호성에 가까운 엔드르의 외침에 로헨타이 공작은 마지막 희망마 저 잃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버릴수 밖에 없었다. 완벽하리라 생각 했던 자신의 모든 계획이 완벽하게 부숴지는 순간이었다. 단 두명의 엘 프들(실은 해츨링들) 때문에.... 계속 드래곤 남매 7화 첫 외출의 끝(5) 레드포머가의 기사단과 그 병사들이 도착하였을때는 이미 상황 끝이었 다. 레드포머가의 기사단을 끌고 온것은 레드포머 공작이 아닌 레이나 였다. 사슬갑옷을 입고 그 위에 새하얀 셔츠를 입은 레이나의 모습은 지금까지 테이와 티아에게 보여주었던 마음씨 좋고 약간은 엉뚱한면이 있는 누나 언니의 모습이 아닌 기사단을 이끌고있는 대장으로서의 책임 감있는 모습이었다. 급히 달려온듯한 모습의 레이나는 현장을 한번 본것만으로도 사태를 이 해했는지 기사들에게 뒷정리를 시키도록 이것저것 지시하면서 빠르게 사태를 마무리지어나갔다. 여러가지 의미(?)로 대단한 티아도 이때만큼 은 레이나의 변신에 혀를 내둘렀다. 테이들에게 당해서 부상을 입은 기사들이 실려가고 궁정마법사 카스파 는 마력제어팔찌를 차고는 호송마차에 타게 되었다. 재미있는 점이 하 나 있다면 카스파가 차고 있는 마력제어팔찌는 바로 카스파 그 자신이 만든것이었다. 설마 자신이 만든 제어팔찌에 힘을 잃고 잡혀가는 날이 오게 될줄은 그 자신도 예상은 하지 못하였을것이다. 좀더 마법에 대해서 더 연구하고 싶고 그러기 위해서 좀더 자신이 마음 대로 설칠수 있는 든든한 지원자가 필요했기에 로헨타이가를 고른 그의 판단이 틀렸다는것을 이제 감옥에 들어가서 처절하게 느껴야 되는 인생 만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것이다. 로헨타이가의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거의 모든 기사들은 불명예퇴직을 당하고 전부다 추방당할 수밖에 없었 다. 그나마 사형이라도 피하니 어찌보면 천만다행이었지만 명예를 목숨 처럼 여기는 몇몇 정상적인 기사들에게는 불명예퇴직이라는것은 사형선 고보다 더욱 잔인한 판결이었지만. 티아는 손에 포박을 당하고 호송마차에 오르는 쥬라를 보고는 그쪽으로 뛰어갔다. "어머? 티아야 어디가니?" "응 잠깐만!"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있는중에 티아가 갑자기 호송마차쪽으로 뛰어가자 놀란 레이나가 불렀지만 티아는 뒤도 안돌아보고 대답하고는 급히 뛰어 갔다. "잠깐만요!" 티아가 레드포머가의 손님이라는것을 알고 있는 기사들은 호송마차로 달려온 티아를 의아하게 보다가 그래도 눈치가 있었는지 자리를 비켜주 었다. 티아는 신경을 써주는 기사들에게 고개를 꾸벅숙이고 쥬라를 쳐 다보았다. 쥬라는 복잡한 시선으로 티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도 기사의 맹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나요?" 쥬라는 티아가 무슨 생각으로 자신에게 그런 질문을 했는지 그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티아의 눈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티아는 쥬라의 눈을 피 하지 않고 쳐다봐주었다. 하지만 쥬라로서는 티아의 의도가 뭔지 알수 없었다. 쥬라는 가만히 한숨을 쉬고는 입을 열었다. "저희 집안사람들은 대대로 기사들만 배출한 집안입니다. 남자도 여자 도 기사들이었고 심지어 결혼조차 같은 기사가 아니면 할 수 없었죠." "대단한 집안이었군요." 쥬라는 비꼬는듯하게 들리는 티아의 말을 피식 웃으면서 넘어가고 계속 말을 이었다. "저 역시 말을 배울때부터 기사라는 말을 먼저 배웠고 그리고 기사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아오면서 커왔습니다. 주군의 명령이라면 죽음도 불사해야 된다는 맹세의 서약에 대해서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으면서 컸죠. 그래서인지..." "어느새 그렇게 해야된다는게 당연한것처럼 생각되었겠군요." "맞습니다. 눈치가 빠르시군요. 엘프라서 그런건가요?" 티아는 피식 웃으면서 쥬라의 생각을 정정해주었다. "아까 내가 말했죠. 상식이라고 착각하는 편견은 버리라고요. 눈치가 빠른것과 엘프인건 관계없다고요." 쥬라는 티아의 말에 반박도 동의도 하지 않고 그저 싱긋 웃기만 하였 다. 어느새 쥬라는 티아와 대화하는걸 즐기고 있었다. 지금 자신의 처 지도 잠시 잊어버리고... "그것보다 당신의 과거 이야기는 아까 내 질문에 대한 답이 안나오는데 요. 다시 한번 물을께요. 아.직.도 기사의 맹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쥬라는 잠시 하늘을 쳐다보면서 한숨을 쉬면서 뭔가를 생각하였다. 그 리고 고개를 내려서 티아를 쳐다보며 자신도 알수 없다는 말을 하였다. "솔직히 말하면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기사의 맹세를 하고 로헨타이 공작가의 기사가 되었을때는 옛날 교육을 받았던대로 맹세를 지키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납득하지 못하는 명령이라도 주군의 명령이라고 생각하면서 늘 스스로 납득시키면서 살아왔습니다. 하지만...잘은 모르 겠지만...." 쥬라는 마지막 말을 하면서 고개를 숙이고 티아의 눈길을 피했다. 도저 히 티아를 정면으로 쳐다보면서 말을 할수가 없었다. "....지금은...후회가 됩니다." 마지막 말을 내뱉고는 쥬라는 깊게 한숨 쉬었다. 티아는 묵묵히 그의 말을 다 들어주고는 살짝 허리를 굽혀서 고개를 숙인 쥬라의 눈을 올려 다 보았다.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있던 쥬라의 얼굴에 티아의 귀여운 얼굴이 나타나자 소스라치게 놀라서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뭐 뭡니까?" "아직 늦지 않았어요." "에?" 쥬라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뭐가 늦지 않았다냐는 뜻을 담은체 티아를 쳐다보았다. 티아는 예의 그 귀여운 생긋웃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한번 말해주었다. "아직 늦지 않았어요. 후회라는 감정이 든다면 완전히 늦은건 아니예 요. 저들처럼요." 티아가 고개를 돌리고 쥬라는 티아가 고개를 돌리는 방향을 쳐다보았 다. 그 곳에는 기사들에게 연행되면서도 바락바락 악을 쓰는 세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이런 천한것들이! 지금 당장 이 몸에서 그 천한 손을 떼지 못할까?" "아얏! 숙녀(?)를 난폭하게 다루다니...그러고도 너 놈들이 기사냐?!" "이거 놔! 놓으란 말이야! 난 엘프들을 선물받은 일밖에 한 일 없단 말 이야! 반역행위는 아빠가 다했는데 왜 나까지 잡아가?!" "뭐라고? 이 후레자식같은 놈이!" "아야! 으...우왕 엄마 아빠가 나 때려." "당신은 왜 엄한 얘한테 화풀이 하고 난리예요!" "엄한? 이렇게 된게 다 누구탓인데! 저 놈이 저런 괴물같은 엘프를 데 려와서 이렇게 된거잖아!" 티아의 이마에 로헨타이 공작이 괴물이라고 하는 소리때문에 힘줄이 쏟 아올랐지만 애써 참았다. 그리고 더 볼것 없다는듯이 아니 더 보고 싶 지 않다는듯이 고개를 돌려서 방금전까지 자신의 주군이었던 사람들이 끌려가는걸 물끄러미 보고 있는 쥬라를 보면서 말을 하였다. "저들은 어렷을때부터 특권을 갖고 태어낮겠죠. 공작가의 집안으로 태 어났으니깐. 하지만 단지 그것뿐 집안이 좋다는 이유를 빼면 자신들은 한낱 보잘것 없는 인간이란걸 자각하지 못하고 있어요. 어릴때부터 그 렇게 가르쳐준 사람들이 주위에 없어서 저렇게 된거겠죠. 그래서 저들 에게는 후회라는 감정이 없어요." "...그럼 나에게는 그 후회라는 감정이 있기 때문에 저분들보다 낮다는 말인가요?" 티아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쥬라의 추측이 맞다는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리고 당신의 그 고지식할정도의 강직한 성격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 예요. 하지만 그렇게 강직한 성격으로 잘못된것은 잘못되었다는것을 가 르쳐주고 고쳐주는 부하들이 저들에게 필요하지 않았을까요?" ".....그렇겠죠." "그 다 끝났다는 듯한 표정은 제발 지워요. 아직 다 끝난게 아닐지도 모르니깐요." "네?" "그런게 있어요. 그럼 다음에는 절대 후회할 짓은 하지 마세요. 맹세도 중요하지만 주군을 목숨걸고 바른길로 인도하는것도 훌륭한 기사라는것 을 잊지 마시고요." "아가씨 잠깐만요! 다음이라뇨?" 쥬라가 소리쳐 물었지만 티아는 벌써 저만치 달려가고 있었다. 쥬라는 멀어져가는 티아의 모습을 보면서 혼자서 중얼거렸다. "엘프가 발이 빠르다는 말은....상식이라고 착각하는 편견이 아닌가 보 군." 티아가 떠나자 비켜주었던 기사들이 다가왔다. "죄송합니다. 잠시만이면 되니깐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요." 기사들의 양해를 얻은 쥬라는 티아의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거칠것 없이 달려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기억속에 잘 담아두고는 기다려준 기사들에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하였다. 그리고 스스로 걸 어서 호송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후에 강직한 성격과 뛰어난 실력으로 가이라가 왕국과의 전쟁에서 선봉장에 서면서 이름을 떨치게 될날이 오 게 되리라고는 그때의 쥬라는 상상도 하지 못하였다. 그저 티아가 자신 에게 다시 기회를 주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했고 이번에야말로 그 기회 를 절대 놓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을 뿐이었다. 티아는 레이나에게 가다가 아직도 악을 쓰면서 버둥되고 있는 로헨타이 세 가족들을 보면서 얼굴을 찌푸렸다. 그들은 호송마차에 타지 않으려 고 주위 기사들과 몸싸움(?)중이었다. 기사들은 그래도 한때는 이름을 떨치던 공작가 사람이라 최대한 편의를 봐주려고 정중히 대하고 있었는 데도 난리를 쳐대는 바람에 기사들의 얼굴은 점점 험악해져 갔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끝까지 신사적으로 나가는 기사들을 보면서 티아는 한숨을 푹 쉬었다. '도대체 기사라는 직책을 얻게 되면 왜 저렇게 사람이 답답해지는거야? 나중에 연구해볼 가치가 있군.' 티아는 언젠가는 기사란 종족(?)에 대해서 철저히 연구해 보리라 마음 먹고 악을 써대면서 난리를 치는 로헨타이 가족에게 다가갔다. 소리를 치던 세 사람중 제일먼저 로헨타이 공작이 티아를 보고는 헛 하면서 헛 바람을 삼키면서 입을 다물었고 로헨타이 공작의 행동이 이상하다고 생 각한 공작부인과 라보오스는 로헨타이 공작의 시선을 따라가다가 티아 를 발견하고는 역시 똑같이 입을 다물었다. 티아는 그들의 시선을 처음 에는 모른체 하고는 기사들에게 생긋 웃으면서 인사를 하였다. "안녕하세요? 수고하시네요." 그 기사들도 티아를 알아보고는 고개를 숙여 인사하였다. 티아와 테이 는 모르고 있었지만 그 둘은 레드포머가의 손님들중에 엄청난 미녀로 유명인사였다. 이틀전 테이를 여장시키고 한바탕 레드포머가에 찬바람 을 일게 만들고 난뒤부터는 쌍둥이 미녀 자매(?)로 더욱 유명해져버려 서 레드포머가 사람이라면 일반 사병까지 그 둘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 던 것이다. "무슨 일이십니까? 티아루아 아가씨." "어머? 제 이름을 아세요?" "아 네 뭐....그 저...." 티아의 이름을 부른 기사는 티아의 질문에 차마 이뻐서 유명해졌다느니 조금이라도 그녀들(?) 얼굴을 더 볼려고 다들 저택가를 기웃거렸다든지 하는 말같은건 차마 하지 못하고 머리를 긁적거리기만 하였다. 티아도 그렇게 크게 궁금한게 아니었고 지금은 더 중요한 볼일이 있기 에 그냥 알고 있나보다라고 생각하였다. "대답하기 곤란하시면 안해도 되요. 그리고 전 폴네임보다는 애칭으로 불리는게 좋으니깐 다음부터는 티아라고 불러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티아 아가씨." 애칭으로 부르게 해준게 기뻣는지 기사는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티아의 이름을 은근히 강조하면서 힘차게 말하였다. 그러다가 티아가 여기에 온 용건을 물어본다는 것을 깜박한 기사는 그것을 물어보았다. "아 그러고 보니 무슨 볼일이시죠?" "음 별건 아니고요." 티아는 거기서 말을 그치고는 슬쩍 뒤에서 사색이 되어서 자신을 쳐다 보고 있는 로헨타이 가족들을 바라보면서 그 귀여운 미소를 사악한 미 소로 바꾸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는지 지금까지 테이밖에 알아차리지 못한 그 미묘한 변화를 알아챈 로헨타이 가족들은 더욱더 겁에 질려서 차라리 얼른 호송마차에 탈걸하는 생각을 하였지만 이미 때는 늦은후였다. 자신들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도 모르고 후회라는 것을 모르고 오만방자하던 그들도 죽음의 위협앞에서는 약간이나마 제 정신을 차리는 것 같았다. 그 복잡한 얼굴 변화를 쳐다보면서 티아의 사악한 미소는 더욱 짙어졌고 고개를 돌리지 않은체 말을 하였다. "이 사람들이 호송마차에 잘 타지 않을려고 해서 고생이시네요." "아 네...뭐 그게 저..." "제가 이 사람들에게 조금 볼일이 있는데 시간 좀 주시겠어요?" "예? 볼일이라뇨?" "아까 벌을 줄려고 했는데 여러분들이 오셔서 흐지부지 넘어갔거든요. 아주 잠시만이면 되요. 아주 잠.시.만.이면..." 기사는 티아의 잠시만이라고 강조하는 말에 일말의 불안감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도저히 거절할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였다. 그래서 어쩔수 없 이.... "네 잠시만이라면요." 로헨타이 가족들은 이제 자진해서 호송마차에 들어가겠다고 말을 꺼내 던 참이었지만 기사의 허락은 결국 떨어졌고 티아는 그들에게 한걸음 다가섰다. "자 이제 아까 우리 못다한 일이나 해볼까요?" 티아는 다시한번 한걸음 다가갔다. "감히 숲의 고귀한 종족인 엘프들을 천한 존재라고 이야기한 죄." "이르언니에게 지울수 없는 상처를 준 죄." "우리 둘을 납치한 죄." "우리에게 검을 들이되도록 명령한죄." 티아는 말을 할때마다 한걸음 한걸음 그들에게 다가갔다. 미리 드래곤 아이로 최대한 겁을 주면서 다가가는 것이라 겁에 질려 몸이 얼어버린 로헨타이 가족은 그 자리에서 꼼작도 못하고 덜덜 떨기만 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감히 내 가슴을 만지면서 휘롱한 죄!" 마지막 티아의 외침에 라보오스는 너 동생껄 만졌었다고 마지막 죄목은 억울하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말을 꺼낼 기회가 없었다. 소리를 치자 마 자 티아의 무식한 힘이 담긴 주먹이 날아왔기 때문이었다. ------------------------------------------------------------------ 드래곤 남매 7화 첫 외출의 끝(6) "자 이제 얌전하게 호송마차에 태울 수 있을꺼예요. 그럼 뒷일을 부탁 드릴께요." 티아는 손을 탁탁 털고는 레이나쪽으로 걸어갔다. 뒤에 남은 기사들은 기절해서 움직일 수 없는 로헨타이공작 가 가족들을 보면서 이건 얌전 히 태울 수 있는 게 아니라 실을 수 있다는 표현이 맞지 않을까라고 생 각하였다. 티아는 아까 라보오스가 테이에게 단 한방 맞고 기절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는 이번에는 맞아도 기절하지 않고 고통만 느낄 수 있 는 부위만 골라서 팬 다음 마지막에 한방에 기절들을 시켜놓았던 것이 다. 티아에게서 그 무언가의 환상을 찾던 기사들은 하나같이 환상이 깨져버 렸다는 등의 말을 하면서 로헨타이공작들을 마차에 실었다. 로헨타이공작이 반란을 일으키고 실패하는데 까지 걸린 시간은 단 1시 간이었다. 그래서 후세 역사가들에게 1시간짜리 반란이라 불리면서 비 웃음을 당해야 되었고 많은 교훈을 남겨주었다. 그 교훈 중 반란을 하 려면 철저하게 준비를 하고 쓸데없는 문제를 거사(?)의 그 날까지 일으 키지 말라는 교훈을 더 많이 지킨다는 게 인간들의 한계라면 한계였지 만… 티아가 레이나에게 가보니 아까는 보이지 않던 이르가 테이에게 회복마 법을 걸어주고 있었다. "이르 언니? 언제 왔어요?" 레이나는 티아를 힐긋 쳐다보고는 회복마법을 쓰고 있는 이르 대신 대 답해주었다. "이르는 나와 같이 왔었어. 다만 아까 그 사람들이랑 마주치는 게 껄끄 러울 것 같아서 멀리 피해 있었던 거야." "레이나 언니가 신경 써준거군요." "뭐…꼭 그런 건 아니고…" 레이나는 티아의 시선을 외면하면서 얼굴을 붉혔다. 티아의 칭찬이라고 할 수 있는 말에 부끄러워 하는걸 보면서 티아는 레이나라는 인간이 대 단히 마음에 들었다. 만약 레드포머가 같은 사람들만 있다면 이 세상은 살기 좋은 천국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드래곤 역사상에도 악룡이라 불리는 존재들이 있듯이 인간들에 게도 독버섯 같은 존재들은 어디나 꼭 있었다. 티아는 하다못해 레이나 같은 인간들이 독버섯 같은 인간보다 더 많았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보 았지만 곧 부질없는 소망이라고 생각하면서 미련을 버렸다. 인간이란 존재는 그렇게 소망대로 고쳐지는 존재가 아니니깐…. '우 답지 않게 머리 좀 썼다고 골치가 아프네.' 티아는 더 이상 생각을 그만두고 머리를 휘 젖고는 테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아까 전 자신의 마법에 타격을 받았긴 하지만 그래도 지금쯤이 면 깨어날 때라고 생각했는데도 깨어나지 않는 게 조금 걱정이 되었다. 이르는 치료마법의 시전이 끝났는지 깨어나지 않는 테이를 보고는 고개 를 갸웃거렸다. "이상하네요. 별다른 외상도 없는데. 정신을 못 차리고 있어요." 이르의 말에 레이나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테이를 내려다 보았다. "무슨 다른 문제가 있는 거야?" "모르겠어요. 외상도 거의 없기 때문에 기절했다는 것도 이상하긴 했지 만…치료를 다했는데도 깨어나질 못하다니…" "티아야 테이가 도대체 무슨 일을 당한 거니?" 레이나가 물어보지 않더라도 티아는 아까부터 곰곰이 생각 중이었다. 그러다 손을 탁 치면서 아~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무언가 집히는 데가 있어 보였다. "무언가 알고 있는 게 있니?" 레이나의 급한 질문에 티아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다소 미안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게 아까 테이가 위험한 것 같아서 실드를 펼치라고 소리치고는 그대 로 광범위 마법을 썼었거든요." "무슨…마법이요?" 이르는 설마 하는 표정으로 조심스레 물었다. "이르 언니의 그 설마 하는 표정이 맞아요. 중력마법 이예요. 것도 상 급…" "하아…어쩐지." 이르는 티아의 말에 납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레이나는 마법에 대해서 자세히 모르기 때문에 이르와 티아를 번갈아보면서 뭐야? 라고 물었다. 레이나의 질문에 대답해준 것은 티아였다. 이르는 다시 테이에 게 마법을 시전할 준비를 했기 때문에 질문에 대답해 줄 수가 없었다. "내가 쓴 광범위 중력마법은 상급마법 이예요. 중력의 상급마법은 일정 범위 안에 엄청난 무게를 더하는 마법이죠. 그런데 테이가 어새씬들에 게 당할 것 같아서 어새씬들이 테이를 덮치려고 할 때 테이의 머리 바 로 위에 그 마법을 걸어버렸거든요." 레이나는 티아가 더 설명안하더라도 테이가 기절해버린 이유를 충분히 알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자 궁금해진 것은 왜 이르가 치료했는데도 깨어나지 못하는가 하는 점이었다. 그 이유를 레이나가 물어보기도 전 에 계속되는 티아의 설명에 레이나는 아~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마법에 테이를 덮치던 어새씬들은 땅에 충돌해서 쓰러졌지만 테이 는 내 외침에 실드를 펼쳐서 직접적인 타격은 받지 않았을꺼예요. 다만 내 마력을 견디기 위해 온 힘을 다 펼쳐서…그러니깐 저기…힘에 부쳐 서 기절한 거예요. 그러니 상처를 치료하는 치료마법으로는 효과를 보 지 못했던 거고요." 티아의 설명대로 이르는 이번에는 몸의 체력을 회복시켜주는 회복마법 을 시전했다. 이르와 레이나는 다시 한번 느끼는 바이지만 정말 티아에 게 적당히라는 단어가 있는 것인지 의심이 갔다. 그러나 이번에는 분명 회복마법을 써주었는데도 테이는 깨어날 줄 몰랐 다. 그러자 레이나가 발을 동동 구르면서 물었다. "왜 그래도 안 깨어나는거야? 혹시 뭔가 잘못된 거 아니야?" 이르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어찌해야 될지 몰라 하고 있었다. 티아는 그 둘을 보면서 한숨을 푹 쉬고는 누워 있는 테이에게 뚜벅뚜벅 걸어갔 다. 그 걸어가는 폼에서 원인 모를 불안감을 느낀 레이나와 이르는 급 히 티아를 저지했다. 가 아니라 저지하려고 했지만 늦어버렸다. 공을 차듯 티아는 테이의 옆구리를 차버렸고 테이는 비명을 지르면서 깨어( !)난 것이었다. "꺄아악! 뭐 뭐야? 어? 레이나 언니? 이르 언니도 있네…근데 누가 날 찬 것 같은데…" "나야. 내가 찾다."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면서 인상을 쓰는 테이를 보면서 티아가 무덤덤하 게 말하자 테이는 티아를 올려다보고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역시 그랬 군. 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티아는 험악 하게 인상을 쓰면서 화를 내었다. "눈 안 깔아?! 사내자식이 겨우 연약한 누나가 쓴 마법 갖고 지쳐서 쓰 러지질 않나 회복을 시켜줘도 쿨쿨 자느라 주위 사람을 걱정시킨 놈이 무슨 할말이 있다고 노려보긴 노려보는 거야?" 티아의 험악한 협박에 테이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래도 끝까지 중얼 거리는 걸 잊지는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그렇게 무식하게 패면서 깨울 건 없잖아…" "뭐 시라? 더 맞아볼레?" "됐다. 티아야. 그 정도까지만 하렴. 아무튼 모두 무사하니 그걸로 된 거니깐." "아직 모두 무사한 게 확인된 건 아닙니다. 레드포머 공작님께서는 어 떻게 되신 겁니까?" 기사들과 합세해서 정리를 하던 엔드르가 제이크와 라이크와 함께 걸어 오면서 물었다. 주위는 이미 정리가 다 끝나서 이제 몇몇의 기사만 남 아있고 나머지는 전부 죄수들을 호송해서 가버리고 난 뒤였다. 엔드르 를 보면서 레이나는 생긋 웃으면서 말했다. "걱정 없어요. 아빠가 간단히 당할 위인도 아니시고 세이르아님이 함께 계시니깐 염려 없어요." "그러고 보니 언니 굉장히 빨리 구하러 와주셨네요. 공작님께서는 오시 는 도중에 왕국에 불려가셔서 어떻게 든 우리 힘으로 빠져나가려고 했 었는데…" 티아의 말에 레이나는 생긋 웃으면서 자신이 이렇게 타이밍 좋게 오게 된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레이나는 혹시 있을지도 모를 만약의 일에 대비해서 남은 기사단을 정 비하고 자신도 언제든지 출동할 준비를 갖춰놓고 있었다. 기절했던 세 이르아는 얼마 후 정신을 차리고는 티아와 테이가 걱정이 되니 혼자서 라도 가보겠다는 말을 꺼내었지만 아버지를 믿고 있는 레이나는 걱정 말라고 안심을 시키면서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이대로 출발해볼까 하는 생각에 출동준비가 끝난 기사단을 이끌고 로헨타이 공작가로 천천히 이 동 중이었다. 만약 이미 아버지가 다 해결하고 난 뒤라면 뒷정리나 도 와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동을 하던 중에 레이나는 뜻밖의 인물을 만 났다. 바로 라그였다. 라그는 경비대 정확히는 엔드르에게 상황을 연락 하고는 같이 오다가 근처에 숨어서 조용히 돌아가는 상황을 살펴보다가 로헨타이 공작이 오고 일이 꼬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더구나 로헨 타이 공작이 반역을 꾀하는 말까지 하자 이대로는 위험하다는 생각에 급히 레드포머가에게 알리기 위해서 달려가다가 중간에 레이나와 만난 것이다. 그 간의 자초지종을 들은 레이나는 왕께서 돌아가셨다는 말보 다도 티아와 테이가 위험하다는 말에 크게 놀라고 빨리 티아와 테이에 게 가야겠다고 말을 하였다. 그런데 그것이 세이르아는 이상했는지 고 개를 갸웃하면서 레이나에게 물었다. "내 아이들이 위험한건 알겠지만 공작님도 지금 위험한 상태일지도 모 르는데 괜찮으세요?" "전 아빠가 간단히 당하리라고는 생각 안해요. 왕께서 돌아가셨는데도 로헨타이공작이 자리를 비웠다는 사실을 아시면 틀림없이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대책을 세워두고 계실꺼예요. 그리고 티아와 테이는 저희 집 안의 손님이자 저에게는 소중한 동생들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걸 요. 그러니깐 지금은 티아와 테이를 먼저 도우러 가는 게 당연한 거고 요." 정말 아무런 사심도 없이 솔직하게 말하는 레이나를 보고는 세이르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는 이대로 공작님을 도우러 가겠습니다." "네?! 세이르아님 티아와 테이가 위험한데 어머니께서 도우러 가는 게 당연하잖아요. 그런데…" "레이나양 잠깐만 요." 놀라서 소리치는 레이나의 말을 중간에 자르고는 세이르아는 조용히 자 신의 생각을 말하였다. "레이나양이 방금 말한 내용을 그대로 돌려드릴게요. 전 저의 아이들 특히 티아의 실력을 믿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쉽게 당하지는 않을 꺼라 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희들은 비록 손님이긴 하지만 친 가족같이 대해 주신 공작가 여러분들이 저에게는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제가 공작님을 도우러 가는 건 당연한 겁니다." 그렇게 말한 세이르아는 레이나의 흉내를 내듯이 생긋 웃으면서 걱정 말라는 뜻을 내비쳤고 곧 전에 봐두었던 궁전을 생각하면서 텔레포트 시동어를 중얼거렸다. 세이르아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남은 레이나는 마음속으로 감사의 말을 몇 번이나 생각하면서 티아와 테이를 돕기 위 해 말을 달렸다. 그러나 세이르아의 말대로 이미 상황이 끝나버린 뒤였 다. '세이르아님이 티아 실력을 믿고 있는 이유를 알겠군.' 레이나는 특히 사상자가 거의 없다는 사실에 놀라워 했고 그나마 몇 명 생긴 사상자도 처음에 제이크와 라이크가 입구에서 실랑이를 벌이면서 벌인 싸움에서 생긴 사상자라는 걸 알고는 더욱 놀라워 했다. 티아와 테이는 그 와중에서도 사상자를 최대한 줄이면서 싸웠던 것이었다. 그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 잘 아는 레이나로서는 티아와 테이 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실력이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레이나의 이야기가 끝나자 마지막에 자신들을 칭찬한 말에 테이는 헤헤 거리면서 얼굴을 붉혔고 티아는 그 정도야 당연한건죠. 라고 중얼거리 면서 정말로 당연하다는 듯이 심드렁하게 행동했다. "고마워요. 티아 그리고 테이. 이것으로 죽은 우리 일족들도 편안하게 눈을 감았을꺼예요." "뭘요. 당연히 해야 될 일이었는데. 그것보다 그 나쁜놈들 좀 더 패주 는건데." 티아는 레이나의 칭찬에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행동했지만 이르가 정색 을 하고 감사를 표하자 그건 조금 부끄러웠는지 약간은 얼굴을 붉히면 서 딴말을 하였다. 그러나 남은 기사 중에서 티아의 말을 듣고 경악을 하는 기사들이 있다는 사실을 티아는 모르고 있었다. '세상에. 완전히 사람 잡듯이 때리고는 그것도 모자랐단 말인가? 차라 리 죽이겠다는 표현이 훨씬 더 낫겠다.' 기사들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자신들의 천사와도 같은 티아의 본 모습 (?)에 경악하면서 속으로 눈물을 삼켰다. 뭐 정말 성격까지 천사 같은 테이가 남아있긴 하지만 아무리 여장을 했다고 해도 남자는 남자. 자신 이 위험한 길(?)을 걷기로 마음 먹지 않는 한은 테이 역시 그림의 떡이 기에 기사들의 슬픔은 더해 만 갔다. 그런데 티아의 본 모습을 알고서도 열렬히 사랑의 노래를 부르는 남자 가 하나 있었으니…. "티아 아가씨. 아까…하셨던 말…때문에…드릴 말이 있습니다." 제이크는 이대로 물러설 수 없다는 비장한 각오까지 하고 티아의 앞에 섰다. 남자가 저 정도 말을 더듬으면서도 비장한 표정으로 여자에게 할 말이란 단 하나밖에 없기에 주위는 일수 조용해지면서 둘 에게 시선이 쏟아졌다. 제이크는 둘만 있을 때 조용히 말을 꺼낼걸 하는 후회감도 들었지만 그래도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남자답게 밀어붙이기 위해 입을 열었다. "티아 아가씨…저 저는…(꿀꺽) 티아 아가씨를 좋아합니다!" 침 한번 삼키고 용기를 낸 제이크의 깜작 고백에 흥미를 담은 시선으로 구경하던 주위 사람들이 박수를 쳐주었고, 곧 금방 조용해져서 이제 티 아의 대답을 듣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티아는 얼굴을 붉히지도 않고 당황한 기색도 없이 담담한 표정으로 제 이크의 고백을 듣고는 무언가 잠시 생각하다가 생긋 웃으면서 대답해주 었다. "저도 제이크씨 좋아해요." 티아의 고백에 주위는 다시 한번 시끄러워 지면서 휘파람 소리까지 간 간히 섞여서 들려왔다. 제이크는 너무나 기쁜 표정을 지으면서 입이 귀 에까지 닿을 것 같이 벌리면서 기뻐했다. 그러나… "그리고 라이크씨도 좋아하고요." 라이크는 크게 당황하면서 휘청되었고 주위는 일순간에 침목에 잠겼다. "레이나 언니랑 이르 언니도 좋아요. 그리고 엔드르씨도 좋아하고요. 또 이렇게 도우러 와준 기사님들도 좋아해요. 아니 레드포머가 사람들 전부를 좋아해요." 악의는 절대 없다는 미소를 지으면서 제이크이 가슴에 비수를 꽂는 말 만 하는 티아의 앞에 더 서 있을 수 없었던 제이크는 티아의 말을 끝까 지 듣지 않고 뒤로 돌아서 아까처럼 쭈구리고 앉아서 마검으로 땅을 파 면서 궁상을 떨었다. 하지만 역시나 티아는 제이크가 궁상을 떨던 말던 신경 쓰지 않고 제이크를 불쌍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레이나에게 말했 다. "언니 이제 다 끝났으니깐 돌아가요. 아니 궁전에 먼저 들려야 겠구나. 뭐 어차피 우리 엄마가 갔다면 깨끗하게 해결되었겠지만. 그래도 예의 상 가봐야죠." "으 응 그렇지…그렇긴 한데…" "자 그럼 빨리 가요." 티아는 정말 보기에도 매몰차게 돌아서서 걸어가고 레이나를 선두로 남 은 사람들은 어쩔 수 없다는 뜻으로 고개를 저으며 티아의 뒤를 따랐 다. 그때 앞서가던 티아는 뭔가 빠트린 것 같은 기분에 빠져 있었다. '웅 뭐지? 뭐였더라? 무지 중요했던 문제 같은데 생각이 안 나네. 뭐였 더라? 우 생각이 안 나니깐 엄청 답답하잖아. 짜증나게 시리…." 아무리 짜증을 내고 생각을 해보아도 도저히 그 무언가의 중요한 일이 생각이 나지 않던 차에 뒤에서 들리는 테이의 귀여운 소프라노 목소리 를 듣고는 스치듯이 해야될 일이 생각났다. '아 맞다. 테이 저 녀석한테 걸린 마법 해제해주어야지.' 티아가 그렇게 마음 먹었을 때 마침 맨 마지막으로 테이가 따라오다가 궁상 떠는 제이크에게 한마디 하는 게 들렸다. 테이는 정말 작게 속사 이는 것이었고, 티아보다 더 그 둘 에게 가까이 있던 이르조차 듣지 못 했던 말을 티아는 똑똑히 들었다. "그러게 왜 하필 우리 누나같이 괴팍한 성격의 여자를 좋아해서 그런 창피를 당하는 거예요?" 티아는 솟아오르는 힘줄을 애써 누르고는 방금 전 생각했던 해야 될 일 을 기억에서 다시 삭제 시켰다. 이후 성으로 가면서 테이는 내내 마법 좀 풀어달라고 졸랐지만 티아의 정말로 무서운 눈초리에 기가 질려서 더 이상 해제 시켜달라는 말을 하지도 못했고, 무엇 때문에 누나가 갑 자기 화를 내는 건지 이유를 몰라서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그 후 테이의 여성화를 풀어준 것은 좀 더 후의 일이었다. 좀 더…. 계속 ------------------------------------------------------------------ 드래곤 남매 7화 첫 외출의 끝(7) "에에에~~~" 누나의 찢어지는 비명소리에 난 귀를 막았다. 엄마는 여자가 예의없게 무슨 짓이냐고 눈을 흘겼지만 누나는 야단 맞을 때 맞더라도 할말을 해 야된다고 생각했는지 필사적으로 엄마에게 사정했다. "엄마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예요." "무슨 소리긴. 집에 간다는 소리지." "엄~마!" "시끄러워! 이번에는 아무리 졸라도 절대 안 넘어 갈 테니깐 일직 감치 포기해!" 왜 갑자기 이런 이야기가 나왔냐 하면 시간은 잠시 거슬러 올라가 조금 전 우리 가족은 평소와 다름없이 레드포머 가의 사람들과 식사를 마친 후 티타임의 시간에 엄마는 지나가는 말투로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오늘 집에 돌아간다는 말을 꺼내었다. 너무나 담담히 말하는 엄마 의 말투에 나와 누나 그리고 다른 사람들 전부 다 아 그런가요. 라고 말하다가 뜻을 알아채고는 전부 놀란 눈으로 엄마를 바라보았다. 특히 누나의 반응은 방금 본 것처럼 제일 격렬한 반응으로 엄마에게 항의했 다. 누나는 엄마의 포기하라는 말에 포기할 생각이 절대 없었는지 더욱 더 따지고 들었다. "왜 갑자기 간다는 거예요? 축제는 아직 며칠 더 남았잖아요! 약속이 틀리잖아요. 엄마!" "지금이 축제 할 정신이나 있겠니? 어제 그 난리가 났었는데." "윽…." 엄마의 지적에 누나는 신음을 흘렸다. 확실히 어제 축제는 중지되었다. 이 나라 왕이 돌아가시고 로헨타이 가에서 내란을 일으켰는데-비록 한 시간만에 진압되었지만 어쨌든 내란은 내란이었다.- 무슨 축제를 계속 할 정신이 있겠는가? 아무튼 국왕이 붕어하고 레드포머 공작님이 평소 왕국에서 지지를 받아오던 대로 며칠 후 국왕즉위식을 가지게 되었다. 일부 귀족들은 은근히 로헨타이 가를 지지하는 세력도 있었고, 때 마침 일으킨 어제의 내란에 환영하는 눈치를 보이면서 지원을 할 눈치까지 보였지만….크크크 설마 단 한시간만에 진압될지 그 누가 짐작이나 했 겠는가? 초반에 얼씨구나 하고 여기저기서 사병들을 지원한다면서 부산 히 움직이던 일부 귀족 무리들은 단 한시간만에 잡혀간 로헨타이 공작 의 모습에 경악을 하고 급히 군대를 돌렸지만 일찍 군대를 보낸 귀족들 은 재수없게 잡혀 들어갔고 간신히 군대를 돌린 귀족들도 반역자들과 내통이 있었다는 이유로 조사를 받게 되었다. 조사를 받게 되는 귀족들 도 결코 무사히 넘어가지는 못 할 것이다. "엄~마~." 내가 한참 어제 일을 생각하고 있을 때 누나는 잠시 쉬었다가 다시 엄 마를 공략(?)하기 위해 말을 꺼내었지만 엄마는… "왜?" 라고 짧게 대답하고는 여유 있게 차를 즐기셨다. 무슨 말을 하든지 절 대 듣지 않겠다는 뜻이 강하게 내포되어 있는 행동이었다. "엄마가 약.속.을 어겨도 돼? 어기면 안.돼.죠." "엄마는 약.속.을 어긴 적 없단다. 축제 기간동안만 구경하기로 하고 집을 나온거잖아. 그런데 축제가 어제부로 끝났으니 약.속.대로 돌아가 야지." "이 잉. 어~머~니 원래 축제 기간은 며칠 더 남았잖아요." 누나는 최후의 승부수를 띄우기 위해 빨리도 최후 결전병기 간드러진 목소리로 어머니 부르기를 사용하였다. 평소 다 큰 것처럼 보여도 아직 남아있는 앳된 얼굴과 말투 때문에 엄마라고 부르는 호칭에 익숙한 주 위 사람들은 처음 겪어보는 누나의 간드러진 목소리와 어머니라는 단어 에 당황하였다. 헛기침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벙찐 표정으로 쳐 다보는 사람들도 보인다. 그러나 정작 어머니라고 부르지 말라고 소리 쳐야 될 엄마는 유지부동 이었다. 마치 지금 누나가 무슨 소리 하는 줄 모르겠다는 듯이 아니 어머니라고 부른 게 안 들린다는 듯이 얼굴표정 변함없이 담담히 말하셨다. "축제 기간이 남아있으면 뭐하니? 축제 행사를 안 하는데." "하지만 보석경매에서 보석 사주겠다는 약속도 안 지켰잖아요. 보석경 매는 며칠 후 조금 잠잠해지면 실행한다고 들었단 말이에요!" "그래 알고 있어. 자 이거 맞지? 너가 사 달라고 했던 거. [다이리 여 왕의 진홍의 목걸이] 여기 있다." 엄마는 품속에서 붉은 루비들로만 이루어진 목걸이를 꺼내서 누나에게 건네주었다. 얼떨결에 목걸이를 받아둔 누나의 눈은 놀라움으로 크게 떠졌다. "이, 이, 이거 어떻게…엄마가…." "어제 구해 놓았다." "훔쳤어?" "어제 일 끝내고 산거다!!! 앗 죄 죄송합니다." 누나의 훔쳤냐는 말에 화가 나서 소리를 빽 지른 엄마는 금방 실수를 깨닫고 주위에 사과를 하였다. 다행히도 주위 사람들은 신경 쓰지는 않 았다. 엄마는 이제 매서운 눈으로 누나에게 또박또박 말을 하면서 못을 박겠다는 의지를 내 보이셨다. "이제 더 할말 없지? 없으면 오늘 출발이야!" "엄마~~. 테이도 가기 싫다잖아." 드디어 누나는 떼쟁이의 대명사인-별로 이렇게 불리긴 싫었는데-나를 들먹였고, 엄마는 조금 긴장하는 표정을 보였다. 그 만큼 나의 떼쓰기 는 신의 경지에 다다르고 있었고-신이 떼를 쓴다면…-엄마도 나의 선공 과 누나의 후공 그리고 연합공격에 안 무너진 적이 없기 때문에 자연히 긴장이 되실 것이다. 그러나… "응 나도 집에 가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 "테이야?!" 누나가 소리를 지르던 말던 난 엄마처럼 담담하게 말을 꺼내고 난 뒤 엄마 흉내를 내면서 차를 마시고는 제일 떼를 쓸 거라고 생각한 막내 둥이가 왜 생각이 변했는지에 대해서 설명했다. "이제 여기 더 있어봐야 볼 것도 없고, 나는 어제 일로 누나와 같이 여 행을 다닌다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충분히 느꼈어. 그러니깐 난 한시라도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어." 엄마는 장한 아들이라는 뜻이 담긴 시선을 내게 보냈고, 누나는 지난 3 00년간 내가 이렇게 자신의 말에 반항한적이 없기 때문이었는지 지금 나의 반항에 엄청나게 놀란 얼굴로 분노보다는 믿지 못하겠다는 아니 슬퍼보이는 듯하게 보이는 얼굴을 내게 향하고 있었다. 음 쬐~~~에~~~금 미안하긴 하지만 방금 내가 한말은 내 진심이다. 더 이상 여기 있다가는 누나에게 무슨 짓을 더 당할지 알 수가 없다. 차라 리 레어에서 누나한테 얻어맞는 시절이 좋았지 싶을 정도로 몸도 마음 도 지쳐버렸다. 무엇보다 내 자존심이 여러 번 금이 갔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지만… 누나는 더 이상 말도 못 꺼내고 울상이 되어서 엄마와 나를 번갈아 쳐 다보면서 애원을 하였다. 처음이지 아마? 누나가 저렇게 불쌍하게 보인 적이…우 마음이 약해지면 안돼는데… 가족 회의나 마찬가지인 일인지라 처음에는 방광하던 사람들 특히 레드 포머 공작님 아니 이제 다이러스 제국의 국왕이 되실 레드포머 국왕님 과 레이나 언니…가 아니라 누나(!)가 끼어들었다.-젠장 아직도 적응이 안 된다.- 덧붙이자면 누나가 내 여자로 변한 몸의 마법을 풀어준건 바로 오늘 아 침이었다. 또 어느새 내 침대에 들어와서 자던 누나는 내 몸을 원래대 로 만들어주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한다는 말이 '남자쪽 테이를 안고 자는 것도 좋지만 여자쪽 테이도 부드러워서(?) 감촉이 좋다.'라나 뭐 라나…. 가족에게는 철저히 배신(?)을 당한 누나는 지금 끼여드는 레드 포머 공작님과 아니 국왕님….에이 귀찮아!! 어차피 아직 즉위식을 안 치렀으니 그냥 계속 공작님으로 나가야지. 아무튼 공작님과 레이나 누 나의 참전은 누나에게 한줄기 희망의 빛이나 마찬가지였다.-아니 두 분 이니깐 두 줄기 빛인가?- "저 부인 뜻은 잘 알겠지만…."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미 결심을 굳혔으니 더 이상 아무말도 하지 말 아주세요. 그리고 어제 보석을 사야 된다는 저의 부탁을 들어주셔서 감 사합니다." "아니 그건 별로…그냥 선물로 가져 가셔도 되는데…" "이런 비싼 것을 그냥 가져 갈 수는 없지요. 그렇게 된다면 저의 마음 이 편치 못할 것입니다." "아이고 그럼 도움을 받은 저의 마음은 어떻하고요. 보답도 못한 제 마 음도 편치 못합니다." 누나에게는 아쉽겠지만 공작님은 우리 엄마의 상대가 되지 못하였다. 공작님이 말을 꺼내자 먼저 눈치를 챈 엄마는 절대로 뜻을 굽힐 생각이 없다는 말로 못을 박았고, 덤으로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려서 좀 더 있 다 가라는 말 한마디 꺼내지 못하셨다. 일단 누나의 두 줄기 희망의 빛 중 하나는 아주 빠르게 사라져 갔다. 그러나 아직 굵직한 희망의 빛이 남아 있으니…. "세이르아님 오늘 당장 가시다니 너무해요. 하다 못해 즉위식 할 때까 지 계시면 안될까요? 저희 가족도 이제 곧 성으로 이사(?)를 가는데 같 이 가셔서 왕국 구경도 해보고 즉위식이 끝나고 난 뒤 열리는 파티에도 참가 하셔 야죠. 그냥 그렇게 가신다니 너무하세요~~~." 역시 생각대로 레이나 누나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미쳐 우리 엄마 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있을 것을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가면서 강력히 주장하는 레이나 누나는 우리 누나의 감사와 다시 한번 의지를 불태운 강력한 지원으로 언젠가 액세서리를 달기 싫어하는 이르 누나를 침몰시 켰던 그 실력으로 강력하게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그래 엄마아~~. 나 성 구경도 해보고 싶단 말이야잉. 이때 아니면 언 제 구경을 해봐? 그리고 공식 파티에도 참가해 본적이 없는데 지금이 기회란 말이야." "그래요. 더구나 티아도 이제 15살 조금 있으면 16살인데 슬슬 결혼상 대를 찾아봐 야죠. 좋은 남자 찾는데 는 공식파티 만큼 좋은 자리도 없 단 말이에요." "그래요. 엄마 저도 이제 결혼 상대를….에~에?! 가 아니라 우…에이 모르겠다. 엄마 저도 결혼하고 싶다고요!!" 쩝 평소에는 황금의 콤비 같던 누나와 레이나 누나도 급했긴 급했는지 약간 삐걱 되었군. 레이나 누나가 조금 실수 했다는 걸 깨달았지만 이 미 속사포같이 말을 하는 통에 주워 담을 수 없었고, 누나도 필사적으 로 레이나 누나의 말을 이어받아서 말하느라 말을 실수 했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곧 표정을 지워버리고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결혼하고 싶 다고 소리쳤다. 엄마는 그런 누나를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았고, 다른 사람들은 이제 이 공방을 즐기는 입장에서 차를 마시면서 관전하고 있었다. 단 한 사 람 제이크 아저씨만 빼고 말이다. 제이크 아저씨는 누나의 결혼 하고 싶다는 절규에 응접실 구석에 가서 뭔가 중얼거리면서 음침한 분위기를 자아냈지만 아무도 그 쪽에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안돼! 너가 지금 나이가 얼마나 되었다고 결혼은 결혼이야?! 이 엄마 는 절대 허락 못해!" "흑 엄마 그럼 딸을 노처녀로 평생 살게 하실 생각이었어요?" "세이르아님 너무하세요. 결혼은 모든 여자의 꿈이라고요. 언덕 위의 새하얀 집. 멋지고 자상한 남편. 귀여운 아기." "순백의 웨딩드래스, 버진로드, 하늘에서 던지는 신부부케. 그것은 모 든 여자의 꿈." "오버들 하지마! 누가 결혼 안 시킨대? 지금은 너무 이르다는 말일 뿐 이야!" "엄마는 뭘 몰라. 여자 나이 15살이면 가슴 두근거리는 남자들을 만나 고 싶어하는 그 꿈을 왜 모른단 말이야?!" "그래요. 세이르아님 티아도 이제 당당하게 사랑을 하고 반려자를 찾을 나이란 말이에요!" 어?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싶었는데 제이크 아저씨였군. 저렇게 머 리를 박아대면 아플 텐데…. 그러나 역시 그 쪽에 신경 쓰는 사람은 아 무도 없었다. 나만 한번 힐긋 그 쪽을 쳐다본 뒤 곧 시선을 돌려버렸으 니깐. "어머 그러고 보니 레이나가 엔드르군을 데려왔던 것도 15살이었지. 그 렇죠 여보?" "그렇지 그 때는 얼마나 서운하던지 모든 아버지들이 딸 자식 시집 보 낼 때 겪어보는 기분이 이런 거구나 싶었지." "어 엄마! 아빠!" 레이나 누나와 엔드르씨는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고, 누나는 재미있다는 시선으로 그 둘을 보고는 공작부인에게 물었다. "처음 데려와서 뭐라고 소개시켜 주었어요?" "호호호 티아양 그 때 레이나가 말이죠." "엄마 말하지마!!!" 휴 결론을 내리자면 그 날 결국 우리 가족은 떠나지 못하였다. 이야기 가 이상하게 사랑 이야기로 넘어가버리자 남자들은 싸 그리 무시한 체 누나와 레이나 누나, 공작 부인님 그리고 우리 엄마는 아주 유쾌하게 이것저것 이야기 하면서 웃음꽃을 피웠고 졸지에 꿔 다 놓은 보리자루 가 되 버린 남자들은-나를 포함해서- 차만 홀짝이다가 하나 둘 자리를 떠났다. 아 누나의 '아아 어디 날 데려가는 멋있는 남자 없을까.'라는 말에 굳어버린 제이크 아저씨는 라이크 아저씨가 끌고 나갔다. 여자의 수다는 정말 무섭다. 원래는 이런 의도로 말을 꺼낸 게 아닐 텐데도 어 째든 누나와 레이나 누나의 목적은 달성해버렸으니… 결국 하루 늦쳐진 엄마는 만찬이라도 열 테니 제발 그것만 참가하고 가 라는 공작 부인님과 레이나 누나의 만류에 넘어가서 하루 더 있게 되었 고, 다음날 열릴 만찬준비와 손님초대로 그 날 저녁부터 레드포머 가 사람들은 바쁘게 하루를 보내었다. 다음날 말이 조촐한 만찬이지 꽤 많은 귀족들이 만찬에 초대되어서 왔 고, 어느새 만찬은 만찬이 아니라 파티가 되어 버렸다. 드래곤 남매 7화 첫 외출의 끝(8) 만찬이라는 이름을 사칭한 파티는 급하게 열렸는데도 불구하고 레드포 머 가의 하인들과 하녀들이 필사적으로 준비해서인지 어디 하나 손색이 없는 파티장이 되었고, 곧 왕위에 오를 레드포머 가라서 그런지 제법 많은 사람들이 초대에 응했다. 하긴 곧 왕이 될 분에게 잘 보여야 되는 데 이런 기회를 마다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아무튼 테이 가족은 이번 내란을 진압한데 엄청난 공헌을 했다는 레드 포머 공작의 소개로 사람들 앞에 나타났고 사람들은 하나같이 감탄을 하였다. 특히 도저히 티아와 테이 같은 15살 먹은 아이를 가진 여자로 는 보이지 않는 세이르아의 미모에 수 많은 중년 남들은 가슴 앍이를 하며 쳐다보았고, 파티가 끝나고 난 뒤 자신들의 부인에게 엄청난 잔소 리들을 들었다는 후문은 사소한 것이니 넘어가고…. 역시나 아직 앳된 얼굴이지만 아름다운 미모에 레이나가 3시간이나 공 들여서 천박하지 않은 섹시함을 강조 시킨 코디로 모든 귀족들의 아들 들이 파티 내내 티아의 곁을 떠날 줄을 몰랐다. 테이 역시 마찬가지였 다. 마지막으로 여장을 시켜보고 싶어하는 레이나와 티아의 음모를 알 아차린 테이는 만약 또 여장을 시켜버리면 그 날로 가출하겠다고 으름 장을 놓아서 별 수 없이 남자 옷을 입히기는 했지만 레이나는 그냥 넘 어가질 않고 화장을 살짝 여자식으로 해서인지 미소년의 아름다움을 사 람들에게 어필해서 모든 여자들의 시선을 끄는 것은 물론이고, 일부 취 향을 바꿔볼까라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남자까지 만들어 버렸다. 아무튼 여기 저기 사람들에게 둘러 쌓인 테이 가족들 정확히는 티아를 구석에서 지켜보던 제이크는 씁쓸한 얼굴로 파티장을 나와서 정원에 나 왔다. 밤하늘을 쳐다보면서 한숨을 짓고 있는 제이크는 뒤에서 인기척을 느끼 고는 자신도 모르게 버릇대로 두어 걸음 물러나서 자세를 취했다. 오랜 용병생활동안 몸에 익은 자연스런 움직임이었다. 그러나 곧 제이크는 자세를 풀고 씁쓸한 웃음을 흘리며 자신에게 오고 있는 티아를 처다 보 았다. "우 귀찮아. 남자들은 왜 이렇게 여자를 귀찮게 하는 거예요?" 티아는 제이크에게 다가가자 마자 볼을 잔뜩 부풀리고는 불만을 표했 다. 제이크는 쓴 웃음을 지으며 티아의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남자라고 아무 여자에게나 귀찮게 하는 게 아닙니다. 아가씨정도 되야 귀찮아 하는 걸 알지라도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거죠." "칭찬 고마워요." "칭찬이 아니라 진심으로 하는 말입니다." 제이크는 정말 진심을 말하였다. 티아는 후후 웃으면서 실프를 불러내 서 시원한 바람을 불게 만들었다. 실프가 일으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 면서 제이크는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정령도 쓰실 수 있는 겁니까?" "네. 엄마가 쓸 수 있는데 저라고 못 쓰겠어요." "하하하 아가씨는 정말 볼 때 마다 놀라게 하는군요.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별거 아닙니다. 그냥 아가씨에 대해서 알 때 마다 아가씨는 저에게 멀어지는 느낌이 드는군요. 그래요. 저 하늘에 별처럼 절대 손 에 넣을 수 없는 존재같이…." 티아는 아무 대답도 안하고 제이크의 옆에 나란히 섰다. 그리고 슬며시 제이크의 팔짱을 꼈다. 제이크의 몸이 굳어버리는걸 느낀 티아는 작게 킥킥 웃으며 말했다. "긴장 하시는 거예요? 제이크씨가 나를 대하는 걸 볼 때면 정말 플레이 보이가 맞나 하고 의심이 들어요. 말만 그런 건 아니겠죠." "……만 뒀어요." "네?" 너무나 작은 제이크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티아가 반문하자 제이크는 조금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만 뒀다고요. 플레이 보이 생활 같은 건…." 티아는 놀라운 눈으로 제이크를 쳐다보았다. 지금 자신의 곁에 있는 사 람은 평소 화려한 말발로 자신을 즐겁게 해주던 그 제이크가 맞는지 의 심까지 들었다. 그런 티아의 마음을 알아차린 제이크는 쓴 웃음을 지으 며 말했다. "플레이 보이의 수명이 끝나는 때가 언젠지 아십니까? 바로 진짜 사랑 을 알게 되었을 때죠. 그리고 나 역시 그 진짜 사랑이란 걸 알아버린 지금…플레이 보이 같은 건 진작에 그만 두었어요." "저기 그 진짜 사랑이라는 상대가…혹시…." 티아의 내키지 않는 질문에 제이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바로 아가씨입니다." 티아는 혼란한 눈으로 제이크의 눈을 쳐다보았다. 제이크는 티아의 눈 을 피하지 않고 마주 쳐다 보았다. 티아는 잠시동안 제이크의 눈을 쳐 다보고는 한숨을 쉬면서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 때 그 말…진심이셨군요." "네." "그렇다면 정말 미안해요. 전 당연히 그냥 날 한번 꼬셔 보자는 속셈인 줄 알고…." 티아는 라보오스 사건을 해결한 직후 갑작스러운 제이크의 깜작 고백을 플레이 보이의 여자 꼬시기 작전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제이크를 그런 식으로 골려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제이크가 진심이라는 걸 안 이상 더 이상 이대로 있을 수는 없 었다. 티아는 잔인하드는 건 알겠지만 말을 안 해줄 수는 없었다. "저 미안해요. 저는…" "말 안 하셔도 알고 있어요." "예?" "저를 뭐라고 생각하시죠? 한때는 플레이 보이로서 여성들의 마음을 사 로잡은 경력이 화려한 사람입니다. 티아 아가씨의 마음정도는 진작에 눈치 채고 있었어요. ……좋아하는…사람이 있죠." 티아는 놀란 눈으로 어떻게 알았냐는 시선으로 제이크를 쳐다보았다. 제이크는 역시라고 생각하면서 쓴 웃음을 지었다. "눈이죠. 당신의 눈은 연애에 호기심을 반짝이는 소녀의 눈이 아니라 이미 사랑을 알고 있는 여자의 눈이거든요. 그것도 짝사랑의 아픔을 알 고 있는…" 티아는 얼굴을 붉히면서 제이크의 시선을 피했다. "미 미안해요. 미안해요. 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진작에 눈치를 채고 있었지만 어차피 짝사랑이니깐 내가 파고 들어갈 틈이 있다고 착각한 내 잘못이니깐요. 그냥 임자 있는 것을 알고도 당신의 사랑을 얻고 싶어했던 어리석은 남 자가 있었다 고만 기억해주세요." "제이크씨는 어리석지 않아요!" 티아의 갑작스러운 외침에 제이크는 깜작 놀라버렸다. "알겠어요? 어리석지 않다고요. 아는 것도 많으시고 또 얼마나 친절한 남자인데요. 내 마음속에서 제이크씨는 어리석은 남자가 아니라 친절했 던 남자로 기억 될꺼예요!!" 티아는 마지막에 거의 악을 써가면서 소리를 질렀다. "알겠어요?!!!!" "네. 아 알겠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박력 있는 티아에게 졸아버린 제이크는 반사적으 로 대답을 하였고 제이크의 대답을 들은 티아는 만족한 표정으로 생긋 웃으면서 발 뒤꿈치를 살짝 들었다. 그리고… '쪽~' 제이크는 방금 자신의 뺨에 느껴진 부드러운 감촉에 또 놀라버려서 티 아를 쳐다보았다. 티아는 부끄러운지 손을 깍지 끼고는 그것을 바라보 면서 제이크의 눈을 피했다. "첫 키스는 못 드리겠지만 티아의 첫 뽀뽀는 제이크씨에게 드릴께요. 이건 그 동안의 답례라고 생각해주세요." 제이크는 피식 웃고는 곧 정색을 하면서 얼굴 표정을 바꾸었다. 아주 음흉하게… "이거 보답치고는 조금 모 자른 데요." 티아는 깜작 놀라서 제이크를 쳐다보았고, 제이크의 음흉한 미소를 보 고는 긴장감에 한발짝 뒤로 물러섰다. "뭐…할 생각이죠." 티아는 자세를 잡고는 제이크를 긴장감 어린 눈으로 쳐다보았다. 제이 크는 그런 티아가 귀여운지 쿡쿡 대면서 웃어 젖혔다. "뭐가 우스워요?!" 그제서야 제이크가 자신을 놀린 거라는 것을 눈치챈 티아는 화를 내면 서 소리쳤고, 웃느라고 바로 대답을 못해주는 제이크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았다. 티아의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내고 정말 잡아먹어 버릴까라 는 고민을 진지하게 할 때 즘 제이크는 간신히 웃음을 그치고는 말했 다. "정말 당신이란 여자는 모르겠군요. 도대체 그 수많은 모습 중에 어느 게 진짜 당신 모습이죠?" 어느새 아가씨에서 좀 더 친근한 '당신'이라는 호칭을 쓰고 있었지만 티아는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그게 뭐 어때서요? 테이에게 난폭한 모습도 아까 내 모습도 그리고 지 금 절 놀린 제이크씨에게 대가(?)를 치르게 할까 고민중인 나도 전부다 나인걸요." "이런 이런 알겠으니 화 푸세요. 하지만 보답이 모자란다는 말은 진심 입니다.." "뭘 원하는 거죠? 이상한 거라면 가만 두지 않겠어요." 제이크는 티아가 상상하고 있는 일이 아니라는 뜻으로 고개를 저으며 티아에게 가서 팔을 내밀었다. "오늘 파티 내내 나하고만 춤을 춘다는 게 조건이죠. 이정도면 어려운 조건이 아닐 텐데요. 레이디." 장난스레 말하며 팔을 내밀고 티아의 반응을 살피고 있는 제이크를 티 아는 웃으며 그의 팔을 살짝 잡는 걸로 허락한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두 남녀는 미소를 지으며 파티장으로 향했고, 그 날 파티장에서는 오직 제이크하고만 춤을 추는 티아덕분에 모든 남자들은 제이크에게 분노와 부러움의 시선을 보내게 되었다. 테이? 테이는 아예 줄을 서서 기다리는 귀족 딸들과 일일이 춤을 춰 주 고는 거의 녹초가 되어서 파티가 끝날 때 즘 비실거리면서 방으로 올 라가는 게 티아의 눈에 비쳤다. '멍청하게 아무리 착해도 그렇지. 거절한번 안하고 풀로 뛰냐?' 레이나는 역시 임자가 있는 몸인지라 내내 엔드르하고만 붙어 다녔고, 접근하는 남자도 없었다. 그리고 세이르아에게는 수 많은 남자들이 접 근했지만 일일이 거절하던 세이르아는 더 참지 못하고 '난 우리 달링 거니깐 더 이상 접근하지 마세요!'라고 소리쳐서 잠시 파티분위기에 찬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뭐 덕분에 더 이상 접근하는 남자는 생기지 않 아 세이르아는 편하게 공작부인과 담소(=수다)를 나눌 수 있었다. 이르는 역시 한 미모 하는지라 많은 남자들이 접근했지만 이런 자리에 익숙치 않고 또 아직 그 기억에서 완전히 벗어난 게 아니기에 접근하는 남자들을 꺼리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양해를 구한 다음 일찍 감치 방으 로 올라가버렸다. 그렇게 첫 외출의 마지막 밤은 지나갔다. 다음날 레드포머 공작은 영지와 작위를 내려줄 테니 이 근처로 오지 안 겠냐고 끈질기게 세이르아에게 권했다. 세이르아정도의 실력이라면 전 궁정마법사 카스파를 능가하고도 남는 실력이었다. 갑작스러운 로헨타 이 공작의 기습공격이었긴 하지만 레이나 말대로 눈치를 채고는 준비를 하고 있던 레드포머 공작은 잘 막아내었다. 그러나 숫적인 열세에 밀려 위험하던 차에 세이르아가 도착했고 세이르아는 바람계열의 최상급 마 법인 토네이도를 캐스팅 없이 시동어로만 발휘해 로헨타이 공작의 군사 들과 지원을 나온 일부 귀족들의 사병들을 일 순간에 날려버렸다. 그리 고 그 와중에도 힘 조절을 했었는지 사망자는 극히 적었었다. 운이 나 쁘게 머리부터 떨어졌다거나 물에 빠져서 무거운 갑옷 때문에 빠져죽은 몇몇 병사들을 제외한다면 세이르아의 마법은 희생자를 거의 내지 않 고, 일을 마무리 시켰던 것이었다. 그때부터 티아와 테이를 데리고 집 에 돌아갈 결심을 했던 세이르아는 레드포머 공작에게 이번 축제 때 보 석경매에 나올 [다이리 여왕의 진홍 목걸이]를 부탁하였고, 거절할 이 유가 없었던 레드포머 공작은 손쉽게 그것을 구해다 주었었다. 내심 공 짜로 주고 어떻게 든 세이르아를 궁전 마법사로 들이고 싶었으나 세이 르아는 많은 돈을 지불하였다. 물론 그 돈을 레드포머 공작은 받지 않 으려고 했지만 세이르아를 이길 수 없었던 레드포머 공작은 세이르아 궁전 마법사에 앉히기 계획은 실패하였다. 그러나 그대로 세이르아 같 은 실력자를 놓치기 싫은 레드포머 공작은 끝까지 세이르아에게 궁전 마법사로 올 것을 권하였지만 세이르아는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저으 며 거절의 의사를 밝혔다. "죄송하지만 저는 공작님의 제의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도대체 무슨 이유가 있으십니까? 저도 물질적인 보상으로는 아무리 부 인에게 해줘도 모자랄 판에 이런 부탁을 드리는 게 미안하긴 하지만 부 인의 실력은 제가 실례를 무릅쓰고 부인을 귀찮게 할 정도로 뛰어난 실 력이십니다. 그리고 부인의 두분 자제분 들도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인 재들입니다. 왜 이런 가능성을 그냥 묻어둘 생각이십니까?" 세이르아는 곤란한 표정으로 머뭇거리다가 결심을 굳혔다. "지금 당장은 말씀드릴수가 없습니다. 저희들이 떠나고 난 뒤 이르양에 게 물어보십시오. 이르양은 우리에 대해서 좀 더 많이 알고 있습니다." "이르양이요?" "예. 이르양의 말을 듣게 되시면 저희들이 왜 공작님의 부탁을 곤란해 하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럼 친절하게 대해주신 점 다시 한번 감사 드립니다." "허허 무슨 섭섭한 말씀을 오히려 저희들이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대접 이나 제대로 해드렸는지 걱정이 됩니다." "아뇨 저희는 충분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여러분들을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세이르아는 돌아갈 때는 마법으로 가겠다고 말하고는 레드포머가에서 내준 마차도 거절하고 지금 정원에 나와 있었다. 레이나는 눈물을 흘리 면서 티아와 테이에게 엄청난 양의 옷과 보석을 선물로 안겨주고 있는 중이었다. "잘 가. 몸 건강해야 된다. 그리고 꼭 이야 꼭 한번 다시 놀러 와야 돼." 레이나의 다시 한번 놀러 오라는 당부에 티아는 잠시 세이르아를 쳐다 보았지만 절대 안 된다는 확고한 의지의 눈을 보고는 한숨을 쉬고는 고 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그건 어려울 꺼 같아. 언니 미안." "그런 섭섭한 소리는 하지말고…." "내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아 앗! 레이나 누나 이건 뭐예요?!!!" 테이는 레이나가 준 선물박스(?)중에 제법 큰 박스에 옷이 삐죽히 빠져 나온 것을 보고는 집어넣으려고 뚜껑을 열었다가 엄청난 수의 하늘거리 는 드레스를 보고는 기겁을 하고 소리쳤다. "아 그거? 내가 어렸을 때 입던 드레스들이야. 헌 옷이긴 하지만 몇 번 안 입었던 것만 넣었으니깐 다 상태는 좋은 것들이야." "그게 아니고 왜 여자 옷이 내가 받은 선물 틈에 있어야 되는 거예요.? 이거 누나꺼랑 바뀐 거 아니에요?" "아니 그거 테이꺼 맞아. 여장도 즐거운 추억으로 생각하라는 뜻에서 준거야." "즐거운 추억? 나한테는 끔찍한 악몽이란 말이에요!!!" "그렇다고 이 누나의 선물을 거부하는 거니? 그런 거니? 응? 응? 응?" "아 알았어요. 받을 테니 제발 그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애원하지 말아 요!!" 결국 레이나의 응응응 어택(?)을 이길 수 없었던 테이는 그 선물을 받 아들여야만 했다. 서로 작별인사를 하면서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동안 시간은 되었고 티아와 테이는 세이르아옆에 가서 섰다. 그리고 세이르 아의 마법이 발동하자 셋은 빛에 휩쌓이기 시작했다. "티아!" 어제 같이 춤을 추면서 완전히 말을 낮추게 된 제이크는 마지막으로 티 아를 불렀다. 티아는 대답을 안하고 그 빛 속에서 제이크를 쳐다보았 다. "짝사랑하는 상대가 누군질 모르겠지만 힘내!! 나도 또 다른 진짜 사랑 을 찾아 볼 생각이니깐 티아도 힘을 내!!!" "옛! 제이크씨 건강하세요. 그 동안 고마웠어요!" "티아!" "제이크씨!" 누가 보면 헤어지는 연인사이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게 만드는 둘의 부르짖음이 끝나자 빛은 사라졌다. 동시에 테이들도 그 자리에서 사라 졌다. "뭐라고?!" 그리고 얼마 후 이르에게서 테이들의 정체를 듣게 된 레드포머 가의 사 람들은 전부 다 놀라서 경악을 하였다. "이르양 그 그게 사실인가?"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는 레드포머 공작이 다시 물었다. 이르는 고개 를 끄덕이며 다시 한번 또박또박 테이들의 정체를 말해주었다. "세이르아님은 실버드래곤입니다. 티아와 테이님은 세이르아님들의 아 이 즉 해츨링이고요." "하 하 하…범상치 않다고는 생각했지만 드래곤이었다니. 그렇다니…." 제이크는 어제 미소를 지으며 자신에게 안겨서 춤을 추던 티아의 얼굴 과 실제로 보지는 못했지만 들어서 알고 있는 드래곤의 생김새를 떠올 려 보았지만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았다. "흠 그랬구나." 의외로 담담하게 말하는 레이나에게 사람들은 다시 한번 놀라면서 속사 포같이 질문들을 쏟았다. "그랬구나 라니? 레이나 너는 안 놀란 거냐?" "레이나 아가씨. 그들의 정체를 이미 알고 계셨나요?" "레이나 설마 정말로 그들이 드래곤이었다는걸 알고 있었던 거야?" "만약 그렇다면 왜 지금까지 잠자코 있었니?" 수많은 질문이 쏟아지던 말던 레이나는 여유있게 차를 마시면서 질문을 해대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반문을 하였다. "그게 뭐 어때서요?" "……?" 레이나의 반문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침묵으로 쳐 다만 보자 레이나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어차피 티아와 테이가 범상치 않다는 건 다들 눈치채고 있었잖아요. 새삼스럽게 드래곤이라고 해서 달라지는 게 뭐가 있겠어요. 우리 가문 은 분명 그들의 도움을 받았었고, 그리고 그들은 우리의 손님으로서 이 곳에서 우리와 같이 즐겁게 있다가 돌아갔잖아요. 그거면 되지 또 무슨 이유가 더 필요해요?" "하지만 레이나. 그들의 정체가 드래곤이란 말이다. 드래곤!" "그러니깐. 그게 뭐 어떠냔 말이에요. 티아와 테이가 드래곤이든 하이 엘프이든 중요한건 티아는 티아였고, 테이는 테이였다는 거 아닐까요? 지금 우리 옆에 있는 이르가 이르인 것처럼요." 레이나의 명쾌한 해답에 다른 사람들은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면서 흥 분으로 붉어진 얼굴들을 식혔다. "그렇지. 티아양과 테이군이었고, 우리에게 도움을 주었다는 게 중요한 거지 그들의 정체가 뭔지는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지. 하하하 하지만 조금은 놀라버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구나 지금까지 드래곤과 같이 생 활했었다니." "살다 보면 별 일 다 겪어보는거죠." 레드포머 공작은 잠시 세상 오래 산것처럼 말하는 자신의 딸을 황당한 눈으로 처다 보았고 주위 사람들은 쓴 웃음을 지으며 각자의 생각에 빠 졌다. 그때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이 엔드르가 황당하다는 말을 꺼내었 다. "잠깐 그렇다면 우리가 처음 테이를 만났을 때 테이는 미아가 되어 있 었잖아요. 그럼 해츨링이 미아가 되기도 한다는 말인가요?" 엔드르이 말에 잠시 생각을 해보던 사람들 모두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 었다. 미아 해츨링이라 상상도 할 수 없는 첫 만남이었다는 생각이 들 었다. 그러나 레이나는 여전히 담담한 표정을 유지하며 말했다. "테이 성격이라면 그럴 수도 있죠." "그럴 수도…있다는 건가?" "테이라면요." 레이나는 마시던 차를 내려놓고는 조금은 아니 아주 많이 서운한 목소 리로 말했다. "그나 저나 이제 티아와 테이를 두 번 다시 볼일은 생기지 않겠구나." "네 세이르아님이 그 두 분이 멋대로 군 벌로 100년간은 인간들 나라에 데려가지 않겠다고 결심했다고 들었어요." "휴. 그래…100년이라….그럼 여기 우리들은 무리겠고 이르는 인연이 닫는다면 만날 수 있겠네." "장담은 못 드리지만….그럴 수도 있겠죠." "그럼 이르 부탁이 있어." "부탁이요?" 이르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궁금한 표정을 짓자 레이나는 웃으면서 말을 꺼내었다. "다시 한번 티아와 테이를 만난다면 정말 고마웠고 평생 잊지 않았다고 전해줘. 나 정말 그 둘을 평생 잊지 않을 테니깐." 이르는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레이나와 약속을 해주었다. 당초 인간들 나라에서 열리는 축제만 구경하고 갈려고 했던 티아와 테 이의 첫 외출은 테이의 미아가 되는 사태 덕분에 생각지도 못했던 일에 휘말리고 몇 명의 사람들의 인생을 조금씩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티아 와 테이의 첫 외출은 100년간 외출 금지라는 보너스(?)를 동반하고 그렇 게 끝이 났다. 드래곤 남매 8화 내 레어의 손님(1) "어머니 너무하세요. 이 어린것들을 꼭 저에게서 떼어놓아야 하겠어요? 전 못합니다. 절대로 이 아이들을 못 보냅니다." 엄마는 정말 서럽다는 듯이 우셨다. "엄마!" "엄마!" 나와 누나는 울고 계신 엄마 품에 매달려 같이 울었다. "흑흑흑 불쌍한 내 아이들아. 너희들을 보내야 된다니. 난 절대 못 보 낸다. 절대 못보내! 흑흑흑" "엄마!" "엄마!" '엄마 흑흑흑 너무 오버하셨어요.' 겉으로는 정말 헤어지기 싫다는 듯이 장단을 맞춰드렸지만 솔직한 속마 음을 말하자면 지금 엄마는 엄청나게 오버하고 계셨다. 그리고 나 역시 효자 해츨링 답께 울고 계시는 엄마의 품에서 정말 떨어지기 싫다는 듯 이 울고 있지만, 지금 내 눈에서 흐르는 눈물은 기쁨의 눈물이었다. 지금 노예상인들 에게 어린 아이들이 팔려가는 분위기를 연출하게 만든 장본인이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황당하다는 얼굴을 하셨고, 아빠는 속 으로는 엄마의 행동이 황당하다고 생각하시고 있는 것 같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아내의 눈물에 약한지 엄마를 위로하고 계신 중이었다. 이게 무슨 상황이냐 면 그 날도 다른 날과 변하지 않는 하루를 보내고 있을 때 갑작스레 찾아온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아빠가 나와 누나의 레어 로 쓸만한 곳을 찾아내었으니 독립을 시키자는 말을 꺼내셔서 이렇게 된 것 이다. 평소 팔불출 3룡방 중 최고의 실력가(?)이신 엄마는 우리 남매를 성룡 이 될 때까지 데리고 계실 생각이었단다. 그런데 설마 쌍둥이가 태어날 지 모르셨던 엄마는 드래곤 두 마리가 거뜬히 들어갈 레어로 이사를 하 셨는데 하필 우리 쌍둥이가 태어나서 300년 정도 지나자 그 큰 레어도 좁아져서 도저히 엄마와 우리 남매가 본래모습으로 생활하기에는 무리 가 따랐다. 그래서 엄마는 우리에게 폴리모프를 한 체 생활하게 하셨고 그런 생활 을 하게 된지 100년의 시간이 흘러갔던 것이었다. 평소 그것을 탐탁히 않게 보시던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시켜서 엄마 몰 래 우리 둘의 레어로 쓸만한 곳을 알아보게 하셨고, 오늘 레어로 쓸만 한 곳을 발견했으니 우리 둘 에게 독립을 하라는 말을 꺼내셨다. 그러 자 마자 엄마가 방 금처럼 우리를 껴안고 울면서 절대 못 보낸다고 소 리를 치시고 계신 것이다. 엄마의 사랑은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다고 들었다. 그런 사랑 때문 에 이렇게 슬피 우신다는 것은 잘 알겠고 그래서 이렇게 엄마의 장단을 맞춰주면서 엄마랑 헤어지기 싫다는 듯이 서럽게 울고 있지만 내 속마 음은 그게 아니다. '드디어! 드디어! 이 누나와 안녕이다! 영원히 안녕! 푸하하하하하.' 그렇다. 독립이라 함은 다른 해츨링에게는 엄마와 떨어져서 자신의 레 어를 가진다는 말이었다. 설사 독립을 한다 손 치더라도 우리는 아직 어린 해츨링이라 부모님과 어른들의 관심과 보호를 받게 된다. 뭐 어른 의 간섭을 받는다는 건 지금의 나에게는 전혀 귀찮은 사항도 아니고 문 제될 건 아무것도 없다. 누나와 떨어져서 산다는 것! 지금의 나에게는 그거 하나만이 중요할 뿐이었다. 근데 정말 서러운 듯이 우는 엄마가 더 꼴 보기 싫으신지 할머니가 결 국 참지 못하고 소리치셨다. "그만 뚝 울음을 그치지 못하겠니? 다 커서 얘들 보기 창피하지도 않아 ?!" 그러자 엄마는 눈물에 젖은 얼굴을 들고는 바락바락 악을 쓰셨다. "우리 티아랑 테이랑 같이 살 수만 있다면 창피한 게 문제겠어요?" "어이구. 이 어미 말을 뭐로 들은 거냐? 얘들 독립 안 시킬 꺼야? 100 년 후면 얘네 들도 성룡이다. 그런데 언제까지 날개품속에 감싸고 있을 꺼냐? 더구나 이 아이들이 도대체 해츨링이냐? 아니면 인간이냐? 지금 얘들 데리고 유희 놀이 하는 거냐? 뭐냐? 해츨링이면 해츨링 답게 본 모습으로 많이 먹고 많이 커야 될 것 아니냐?!" "아니 어머니 지금 내가 얘들 굶기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이런 식으로 생활하긴 하지만 그래도 하루에 한번씩 헌신 시켜서 주위 산책 도 시키고 얼마나 잘 키우고 있는데 왜 뺏어가려고 하시는 거예요?" "하루 한번 헌신 시키면 뭐하니? 그것 빼고는 이 얘들 생활은 완전히 인간이나 마찬가지잖아! 이 얘들 드래곤으로 키울꺼냐? 아니면 인간으 로 키울꺼냐?" "뭐로 크던 착하고 건강하게만 자라면 되잖아요?!" 어느새 엄마는 울음은 완전히 그치고 할머니와 대전모드로 들어가 있었 다. 쩝 지난 400년간을 생각해보면 조금만 있으면 두 분은 뒤쳐나가셔 서 마법대전을 벌이실 분위기다. 아니나 다를까 나 서로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던 두 분 중 할머니가 눈짓으로 바깥으로 나가자고 했고 어머니 는 그것에 응했다. 주위 몬스터들에게 또 비상이 걸리겠군. 하지만 몬스터들에게 천만 다행인 점은 지금 옆에는 말려줄 드래곤들이 있다는 점이었다. 아빠는 엄마를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붙잡고 필사적으 로 말리고 있었다. "이익! 자기 이거 놔요. 절대 우리 아기들 안 뺏길 테니깐 그냥 보기만 봐요!" "당신 이거 안놔요? 저 멍청한 드래곤 머리 속을 뜯어고쳐야 되니 방해 하지 마요!" "이봐 허니 지금 장모님이 싸우려고 온 게 아니잖아. 조금만 참고 이야 기를 더 들어보자고." "레일! 제발 진정하고 냉정해지라고! 당신이 레드일족이야? 실버일족이 면 실버일족답게 좀 진정하라고!" 온갖 욕을 다 들어먹으면서도 끝까지 두 분을 놓지 않고 말리는 아빠와 할아버지의 정성이 통했는지 엄마와 할머니는 서로를 씩씩거리면서 처 다만 보셨을 뿐 마법대전을 벌일 기색은 보이시지 않았다. 조금 사태가 진정이 되자 옆에서 누나가 "시시하게 말싸움으로 그냥 끝인가? 오늘도 화끈한 거(?) 구경하나 했 건만." 이라면서 아쉬움의 입맛을 다지는 것이다. 뭐 이런 누나의 엽기성을 평 소대로라면 씹어버려야 당연하겠지만…. 솔직히 이야기 하면 엄마랑 할 머니랑 싸우면 재미있는 구경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에 나 역시 은근히 두 분이 싸우는 모습을 어느새 즐기고 있었다.-참으로 불효 해츨링이었 던 생각이었다.- 아무튼 누나와 나의 기대를 저버리고(?) 두 분의 싸움은 거기서 그치고 아빠와 할아버지는 갑작스럽게 우리보고 정하는 게 어떠냐는 의견을 내 셨다. 그러자 엄마와 할머니도 거기에 동의 하셨다. 그리고는 "티아야! 테이야! 엄마랑 같이 사는 게 좋지 응? 좋지? 그러는 게 훨씬 좋지?" "티아와 테이는 잘 생각해야 된다. 언제까지나 엄마 옆에 있으면 어른 이 못 되요." "나중에 엄마가 티아와 테이 어른 되면 훨씬 더 좋은 레어 구해줄게. 응 그러니깐 같이 살자." "할아버지가 알아오신 레어가 훨씬 더 좋단다. 이런 레어는 다시 찾을 수도 없어요. 다른 해츨링이 가져가기 전에 얼른 가서 살아야 되는 거 야." 라는 말씀들로 서로들 필사적으로 우리 남매를 설득하셨다. 그러나 설 득이고 자시고 나는 이미 누나와 빠이빠이 나의 레어로 라고 마음을 굳 힌 상태였다. 그러나 저 울 것 같은 엄마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차마 '엄마 나 레어로 갈래요.'라는 말이 나오질 않았다. 위의 말을 정정하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역시 난 효자 해츨링이었다. "저기요." 잠자코 있던 누나가 말을 꺼내었고 엄마와 할머니는 눈을 반짝……아니 번쩍이면서 누나에게로 시선을 집중시켰다. 나라면 부담감이 들어서 아 무 말도 하지 못할 상황이었는데 누나는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자기 할 말을 하였다. "테이랑 나 레어로 갈께요." 누나의 폭탄 선언에 할머니는 승리감으로 두 손을 번쩍 들고 기뻐하셨 고 엄마는 세상 다 끝난 것 같은 얼굴로 주저앉으신 체 일어날줄을 몰 랐다. 그러나 누나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대신 성룡이 되기 전까지 테이랑 자주 놀러 올께요. 놀러 올 때마다 엄마랑 며칠간 자고 갈께요. 그거면 안될까요?" 이번에는 반대로 엄마가 역시 내 딸이야라는 표정으로 환한 미소를 지 으셨고 할머니가 끝까지 어미 품에 있어야 되겠냐고 중얼거리면서 고개 를 푹 숙이셨다. 누나는 나를 바라보면서 미소를 지으면서 나에게 오더 니 내 귀에 대고 뭐라고 속삭이는 것이다. "이러면 되겠지. 효자 해츨링 테이군." 난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느낌을 받으면서 어떻게 그걸 알았냐고 소리 높여 물어보려고 했다. 그렇다 하고 싶었다. 그러나 누나의 주먹이 번 개같이 내 배에 꽂혀서 난 배를 감싸쥔체 신음도 흘리지 못했다. 컥컥 이번 건 엄청 아프다. 너무나 아픈 충격에 난 그때 누나가 나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신경 쓰 지를 못하였다. 설마 그런 이유가 있었으리라고는 그 때 당시에는 꿈에 도 생각 못했었다. 아무튼 결정이 되자 엄마와 아빠,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빠르게 우리 둘 의 이사 준비를 하셨고 그리고 우리는 할아버지에 의해서 공간이동을 하였다. 난 출발하기 전에 가장 궁금하고 중요한 사항을 물어 보았었 다. "할아버지 누나랑 내 레어는 어느 정도나 떨어져 있어요?" 난 내심 이 대륙 끝에서 끝으로 떨어지길 원했지만 그렇게는 안될 것 같고…. 하다못해 자주 못 오는 곳으로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면서 "네 레어는 다이러스 왕국에 있고, 티아의 것은 가이라가 왕국에 있단다." 라고 엄청나게 기쁜 말을 해 주시는 게 아닌가? 비록 대륙 끝에서 끝은 아니지만 그 정도면 충분했다. 그렇게 내 인생의 서광이 비치는 것을 느끼면서 즐겁게 먼저 나의 레어로 갔다. 나의 레어는 산속 골짜기 아래 위치해 있었다. 골짜기라고는 하지만 인 간 입장에서 보면 까마득한 벼랑아래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보물 노리 고 레어에 오는 인간이 적을 것이라는 게 할아버지의 설명이었다. 레어 안으로 들어가자 여기저기 할아버지가 손 보셨는지 쾌적하고 아늑한 공 간이 나타났다. "할아버지~고맙습니다.~" 난 할아버지에게 안겨서 어리광을 부리는 서비스(?)를 해주면서 할아버 지에게 감사를 표했다. 위치 좋고, 살기 좋고, 무엇보다 저 누나랑 떨 어져 있는 나만의 공간. 드디어 내 인생에도 태양이 떠오르는 것이다. 엄마와 아빠는 내 물건들을 내려놓으시고 정리는 나중에 하고 일단 누 나 레어에 가보자고 하였다. 뭐 내가 갈 이유가 없지만 그래도 이동마 법으로 갈려면 기억을 해두어야 된다는-어차피 갈 생각은 조금도 없다. -어른들의 말씀에 따라서 할아버지를 따라서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할 아버지는 바로 우리들을 공중에 띄우시더니 바로 산 건너편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 "하 할아버지. 어디 가시는 거예요." 난 불안한 마음이 들어서인지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어디긴 어디냐. 티아 레어지. 자 다 왔다." 이동한지 몇분 도 되지 않아서 다 왔다고요? 내 귀가 잘못된 건 아닌 데. 나도 모르는 세 순간이동을 했나? 불행히도 그 어느것도 아니었다. 누나의 레어는 내 레어의 반대편 산 골짜기 즉 아까 와 같은 절벽 아래 에 위에서 보면 서로 레어가 마주보는 형식인 그런 곳이었다. 난 너무나 어이없는 사실에 경악을 하여 입을 벌렸고 어른들 손에 이끌 려서 누나의 레어에 얼떨결에 들어갔다. 그리고 내 레어와 비슷한 크기 의 아늑한 공간에 우두커니 서서 지금 이 상황이 꿈인지 현실인지에 대 해서 멍하니 생각하고 있었다. "어머 똑 같은 크기의 레어가 용케 가까운데 있었네요." 엄마는 이제 완전히 기분이 풀어졌는지 나와 누나의 새 레어를 돌아보 고는 만족한 웃음을 짓고 계셨다. "그렇지? 내가 이 레어를 발견했을 때 감이 탁 왔지. 이 레어들은 우리 쌍둥이 손주들 주라고 하늘에서 내린 선물이라는 것을." 하하하 할아버지 농담이시죠? 농담 맞죠?! 농담이라고 해줘요!!!! "제 기억이 맞다면 이곳은 인간들의 가이라가 라는 나라에 있는 산 아 닌가요?" 아 맞다 누나 레어가 가이라가에 있고 내 레어가 다이러스에 있다고 했 잖아요. 할아버지 드래곤이 그것도 고룡이 거짓말해도 되는 거예요?!!! "뭐 인간들이 그어 놓은 국경선따위가 뭐가 중요하냐? 그러고 보니 똑 같은 산 하나 갈라서 테이쪽은 다이러스라는 나라 영토라고 하더구나." 으흑. 그럼 아까 그 의미심장한 웃음의 의미가 바로 이런 것이었나? 누 나는 어른들의 대화에 관심을 안가지고 레어안을 두리 번 거리면서 구 경하더니 만족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정말 마음에 들어요. 할아버지. 우와 우리 할아버지는 이런 좋은 레어 도 금방 찾으시고 넘넘 좋으신 분 이예요." 라고 하면서 아까 내가 했던 어리광이라는 선물을 할아버지에게 주셨고 할아버지는 입이 찢어져라 좋아하셨다. 흑 이건 사기야. 내 어리광 도 로 돌려줘요 할아버지!! 나 이제 할아버지 평생 미워할 꺼야!! "그렇게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구나. 이거 찾은 보람이 있는걸." "그럼요. 너무 마음에 들어요. 장소도 좋고 아늑하고 무엇보다." 그렇게 말하면서 누나는 나를 바라보면서 씩 웃는 것이다. 저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난 예상 할 수 있었다. 내 드래곤 하트를 걸어도 좋 다. 틀림없이 내가 가까이에 있으니깐 이라는 소리를 하겠지. "테이가 바로 옆에 있으니 너무 좋아요." 에휴 그러면 그렇지. 어른들은 역시 사이 좋은 남매라고 고개를 끄덕이 지만 난 알 수 있었다. 앞으로 무지 귀찮아질 꺼라는 예감이 팍팍 들었 다. 그런 나의 예감은 그날 어른들이 떠나시고 바로 실행되었다. "자 그럼 청소나 해볼까?" "응 그럼 나도 가서 청소나 하고 짐이나 정리할게." "어딜 가?" 라며 누나는 내 뒷덜미를 낚아 채고 약간 화가 난 상태로 나에게 물어 왔다. "어디긴 어디야 내 레어지." "야 둘이 하면 빠르잖아. 둘이 하면 빠른걸 꼭 혼자 해야겠냐?" 듣고 보니 누나 말이 맞긴 하였다. 혼자 하는 것보다 둘이 하는 게 훨 씬 빠르기 때문에 난 누나 의견을 받아들여서 누나의 레어부터 먼저 청 소했다. 뭐 청소라고 해봐야 쌓인 먼지 좀 실프 불러서 털어내고 브레 스로 벽에 구멍 뚫어서 보물 집어넣는 게 다였지만 그래도 누나 말대로 둘이 하니깐 배로 빨랐다. 대충 정리가 되자 난 이제 내 레어 청소하러 가자고 누나에게 말을 꺼내었다. "응? 벌써 갈려고? 그래 그럼 잘 가." "에?" "에라니?" "누나 같이 가서 내 레어 청소 도와주는거 아니었어?" "내가 왜?" "……." "헛소리 그만하고 후딱가서 너 레어나 청소해. 아 그리고 싱싱한 놈으 로 저녁거리 좀 잡아와라. 알았지 늦으면 가만 안둬." 크아아악!! 누나 말을 굳이 곧 대로 들은 내 잘못이지. 젠장! 젠장! 엄청나게 부었을 꺼라고 생각되는 내 얼굴을 보더니 누나는 차갑게 웃 으면서 말했다.-이 상태는 약간 화가 난 상태 즉 약간 위험- "그럼 넌 연약한 누나한테 너 레어 청소까지 도와달라 이 말이냐? 그러 고도 너가 남자냐?!" "남자랑 청소랑 무슨 상관이야! 너무해 누나 오늘은 정말 나도 그냥 못 넘어가!" 나 그때 완전히 머리에 열이 받아서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했던 것 같 다. 감히 누나에게 큰소리를 지르면서 덤빌 생각을 했다니…내가 진짜 미쳤었지. 이미 여기까지 나의 이야기를 들어왔던 이라면 이 뒤의 전개 는 어떻게 되었을지 잘 알고 있을 꺼라 생각하기에 넘어가겠다. 아니 한마디만 하자면 참으로 오랜만에 본 모습을 한 누나의 힘은 예전보다 더욱 쌔진 것 같다. 엄마로부터 독립을 했지만 누나한테는 여전히 잡혀 살아가는 나의 하루는 반죽음=기절로 마감하였다. 계속 ---------------------------------------------------------------- 드래곤 남매 8화 내 레어의 손님(2) 하늘이 도우셨다고 해야 되나? 이 곳으로 이사 오고 난 뒤 난 누나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에 좌 절했지만 정말 하늘이 보우하사 누나는 이곳에 오고 난 뒤 며칠 후 동 면에 들어갔다. 나 역시 조금 졸리기는 했지만 누나로부터 잠시간이지 만 해방이라는 사실을 기뻐하며 이리저리 마음껏 싸돌아 다녔다. 그러나 그렇게 지낸지도 몇 년의 시간이 흐르자 슬슬 지겨워 지기 시작 했다. 얼마나 지겹고 심심했으면 누나가 빨리 깨어났으면 하는 엽기적 인 생각까지 들었을까? 한 순간이나마 그런 엽기적인 생각을 한 나 자 신이 저주스러웠다. 슬슬 나도 동면에 들어가볼까라고 고민을 하던 중에 나는 또 다른 만남 의 기회를 가졌다. "까아아아악!!!" 오늘은 뭘 먹을까라고 고민하던 나의 귀에 하이 소프라노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고 난 반사적으로 비명소리가 난 곳으로 뛰어갔다. '어 라? 왜 인간이 이 곳에 온 거지?' 난 뛰어가면서 의문이 생겼다. 이 곳은 다이러스와 가이라가의 국경지 대라고는 하지만 워 낙에 산이 험해서 인간들은 이 곳을 전략적 요충지 로 생각 안하고 있었다. 물론 산을 우회해서 상대편 국가를 공격하는 방법도 있긴 있지만 수 많은 군대가 이 곳을 지나쳐서 공격하는데 드는 시간이 너무 들었기 때문에 이 곳은 사람의 발자취가 거의 닫지 않는 곳이었다. 그런 곳에 인간의 그것도 여자의 비명소리 라니…난 내가 잘못들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꺄악!!! 누가 좀 도와줘요!!! 아아악!!! 엄마!!!!" 그런 내 생각이 틀렸다고 말하듯이 비명소리는 더욱 더 큰 소리로 내 귀를 때렸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목청이 굉장히 큰 여자군.' 난 더욱 더 속력을 내서 수풀을 헤치고 바위 등을 뛰어넘으면서 비명소 리가 난 곳에 도착했다. 내가 본 광경은 오크 대 여섯 마리가 한 여자 아이의 머리를 붙잡고 끌고 가고 있는 광경이었다. 녹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는 계속 그 엄청난 비명소리를 연신 지르고 있어 내 귀가 따가울 지경이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는지 여자를 끌고 가던 오크들도 인상 을 찌푸리다가 결국 기절 시켜서 데려가려고 마음먹었는지 몽둥이를 쳐 들었다. 여자의 비명소리는 더욱 커졌고 여자를 인신매매해가는 오크들 의 행동보다는 그 여자의 비명소리에 내가 더 못 견디고 뛰쳐나갔다. "잠깐 기다려!" 난 그 여자의 비명소리를 그치게 할 셈으로 그 여자보다 더 큰 목소리 로 소리를 지르며 나갔다. 그렇게라도 안 하면 내 목소리가 그 여자의 목소리에 묻혀서 오크들이 못들을 꺼 같아서 였다. 오크들은 여자의 비 명소리보다 더 큰 목소리가 들리자 크게 놀라고는 전부 나를 바라보았 고, 여자도 -정말 다행히도-비명을 그치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난 천천 히 허리에 찬 검을 뽑아서 오크들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긴 말 않겠다. 그 여자를 내려놓고 어서 여기서 꺼져!" 나의 박력 있는 태도에 졸았는지 오크들은 주춤주춤 물러났고, 그 여자 는 살았다는 안도감과 기쁨에 겨워 눈물 젖은 얼굴에 억지로 미소를 지 으며 나에게 말했다. "고맙습니다. 용사님!! 어서 좀 저를 구해주세요." 그 여자의 말에 난 갑자기 전류라도 감전된 듯이 몸이 움찔거렸다. "저기 미안하지만 아까 그 말 한번만 더 해줄레?" "예?" "방금 했던 말 말이야. 한번 더 말해줄 수 없겠냐고." "구해달라는 말이요?" "아니 그 앞에 말." "용사님이라는 말이요?" "응 그래 바로 그 말." 여자는 뭔가 생각하는 듯하다가 곧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 시 나에게 말해주었다. "멋있게 생긴 용사님!! 제발 저 좀 구해주세요. 용사님~~~~!!" 난 밀려드는 감동에 몸을 떨었다. 용사. 그래 잊고 있었다. 용사가 되 고 싶었던 그 어린 날의 추억을 완전히 잊어먹고 있었다. 이런 중요한 꿈을 잊고 지냈던 건 다 누나의 엽기적인 괴롭힘에 하루하루 살기 힘겨 워서 어느새 까맣게 잊어먹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 것이 저 여자의 용사님이라는 단어에 다시 눈을 뜬 것이다. 난 밀려드는 감동에 잠시 주먹을 쥐고 감동에 빠져 있었는데…. "쿠룩…이 놈도 예쁘다...쿠룩…이놈도 잡아간다…쿠룩…비싸게 팔릴꺼 다…쿠룩." 아니 이것들이 어르신의 감동적인 시간을 방해하다니…그리고 뭐? 잡아 가? 팔아? 이 오크 인신매매단은 몇 백년이 흘러도 고쳐지질 않냐? 난 여자를 잡고 있는 오크를 빼고 나머지 오크가 나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을 보고는 한숨을 푹 쉬고는 드래곤 피어를 쓸려다가 나를 쳐다보고 있는 여자때문에 검을 고쳐 쥐었다. 이왕 용사라고 불린 김에 철저하게 멋있게 나가야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뭐 말하자면 일종의 팬 서비스 차원이랄까? 아니 솔직히 이야기 하자면 겉 멋이 들렸다는 말이 더 알 맞은 표현일거 같지만 뭐 어떤가? 구해주면 그만이지. 여자를 붙잡고 있는 오크를 뺀 나머지 오크는 모두 다섯 마리 결국 그날 저녁식사 거 리까지 해결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상황이었다. 오크들은 보기에는 비리비리한 인간이 검을 쥐고 자세를 취하자 코웃음 을 치고는 덤벼들었다. 그러나 몇분…아니 몇 초 후 쓰러진 동료를 경 악의 눈으로 쳐다보는 오크에게 난 사악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너도 덤빌레?" 그러자 그 오크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고 여자를 놓고는 쏜살같이 숲 으로 도망쳤다. 뭐 다섯 마리 정도면 조금 모자란 감이 있지만 그래도 레어에 비상식량도 있겠다. 오늘은 더 사냥을 할 수 있는 분위기도 아 니라서 뒤 좇는 건 그만두고 죽인 오크…아니 이제는 저녁식사거리를 레어로 공간이동 시킨 다음 잡혀있던 여자에게 다가 갔다. 여자는 멍한 눈으로 내 모습을 쳐다보다가 내가 다가가자 화들짝 놀라서 일어나더니 고개를 숙이는 것이다. "구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이름은 카렌이라고 합니다.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용사님." 난 카렌이라는 여자의 용사님이라는 말에 다시 밀려드는 감동을 느끼다 가 더 중요한 볼일이 생각나서 아쉽지만 잠시 감동의 물결을 치우고 여 자를 쳐다보았다. 긴 금발의 생머리를 허리까지 늘어트린 카렌은 얼굴이 굉장히 미인이었 다. 루비 색의 맑은 눈동자, 적당한 크기의 오뚝한 코, 핑크 색의 자그 마한 입술, 긴 생머리 바깥으로 비쭉 나온 기다랗고 앙증맞은 귀, 응? 기다랗고 앙증맞은 귀? 기다란 귀?!! "너 엘프였냐?!" 난 인간이라고 생각했던 여자가 엘프라서 잠시 놀랐다. 그런데 카렌은 내 질문에 곤란한듯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귀를 만지 작 거리다가 고 개를 저었다. "전 하프엘프예요." "하프엘프? 인간과 엘프사이에서 나온다는 아이?" "네." 흠 엘프는 저 번 외출 때 이르 누나와 축제기간에 몇 번 봤었지만 하프 엘프는 처음 보았다. 겉 모습은 거의 엘프와 다를 바 없는데 어딜 봐서 하프엘프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걸까? 난 내가 느낀점을 솔직히 말하였 다. "엘프랑 똑같이 생겼는데 어딜 봐서 하프엘프라는 것을 알 수 있지?" "그게…하프엘프라고는 하지만 다른 엘프와 생김새는 똑같아요. 다만 순수한 엘프처럼 오래 살지 못할뿐이예요. 그리고 엘프들은 붉은색의 눈이 없어요. 오직 하프엘프만 붉은색의 눈을 가지고 태어 난데요." 카렌의 설명에 난 카렌의 얼굴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루비 색의 눈동자 를 쳐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많은 엘프를 보지는 못했지만 대 부분의 엘프들이 녹색이 아니면 푸른색이었다는 게 기억 났다. 난 그제서야 납 득하고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까부터 궁금했던 가장 중요한 질문을 하 였다. "그건 그렇다 치고 넌 이렇게 깊은 산속에 무슨 일로 왔지? 여기는 너 가 오기에는 위험해." "그게…이 근처에는 좋은 약초가 많아서요. 5년 전만 해도 몬스터가 많 이 없었는데 요즘 들어 갑자기 많아져서 이상하다고 생각이 들었고, 위 험한 줄은 알지만 그래도 어머니가 병에 걸리셔서 어쩔 수 없었어요." 그럼 카렌의 어머니 때문에 이런 험한 산속에 그것도 몬스터가 우글거 리는 산속에 들어왔다는 말인가? 크흑 나와 같은 효자 해츨링이 아니라 효녀 하프엘프이군. "그럼 카렌 어머니는 어느쪽이야? 인간? 엘프?" "엘프이세요. 아버지가 인간이시고요." "그래 아무튼 약초라는 것을 캐야 된다고 했지. 마침 지나가던 길이니 깐 내가 보호해줄 테니 얼른 약초라는 것을 캐. 그리고 마을근처까지 데려다 줄게." 내 말에 카렌은 곤란한 얼굴로 머뭇거렸다. "왜 그래?" "저 저기 약초는 아까 다 캤거든요." 그렇게 말하며 카렌은 바닥에 떨어져 있던 나무줄기로 만든 가방을 들 어서 보여주었다. 가방 안에는 이름 모를 약초라고 생각되는 풀들이 잔 뜩 들어있었다. "그래? 그럼 가자. 나는 사정이 있어서 인간들 마을에는 못 들어가니깐 근처까지 데려다 줄게." "아니 그게 아니고…." 카렌은 마을로 가자는 내 말에 계속 머뭇대다가 결국에는 포기하고 고 개를 푹 숙이고는 작게 중얼거렸다. 물론 내 귀에는 카렌의 말이 똑똑 히 다 들렸다. "마을에…안 살거든요." 난 내 귀를 의심하면서 재차 물었다. "마을에 안 살다니? 그럼 어디에 사는데…마을 근처 숲속?" "아니요. 저기…여기서 조금만 내려가면 집이 있어요." "조금? 여기서 조금이면 어느 정도 조금?" "1시간 정도면…." "1시간?! 그럼 이 숲속 한가운데 산다는 소리야? 이 숲에 엘프들이 산 다는 말은 처음 들어보는데…." "아니요. 어머니와 저만 둘이서 살고 있어요." 난 방금 들은 말이 진실인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둘이서?" "네." "몬스터가 우글거리는 이 숲에서 단 둘이서?" "그 그게…5년 전에는 몬스터가 거의 없었어요." "요즘 들어서 많아지긴 했지만 전에도 몬스터는 있었는데 몬스터가 있 는 숲속에서 둘이서 산다고 한 거니?" "예." 카렌은 내 질문이 계속될 때마다 얼굴을 붉히면서 점점 고개를 숙였다. 동시에 목소리도 점점 작아져서 결국에는 개미만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하하 이런 깊은 산속에 모녀 단 둘이서 산다니 이건 완전히 자살하겠 다고 온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는 거나 마찬가지잖아. 확실히 누나와 내 가 이사 오고 난 뒤 숲은 두 마리의 해츨링 때문에 마력의 영향을 받아 빠르게 울창한 산림으로 변해갔고, 가뜩이나 인간들이 들어오기 힘든 숲이 더욱 인간들이 들어오기 힘들어 졌고, 그에 비례해서 몬스터들은 늘어만 갔다. 하지만 그 전에도 이 숲은 분명 사람이 살기 힘든 곳이었 고, 몬스터가 지금보다 적었다 뿐이지 분명히 돌아다니는 숲이었다. 그 런 숲에까지 들어와서 살고 있다니 무언가 이유가 있어 보였다. 하지만 지금 카렌의 행동으로 봐서는 그 이유를 말하기 싫어하는 것 같아서 궁 금했지만 묻지 않기로 하였다. "그래 알았어. 그렇다 치고 넘어가고, 그 집에까지 데려다 줄 테니 가 자." "아 예? 아 감사합니다. 용사님." 난 어깨를 으쓱하면서 내 이름을 말해주었다. 용사라고 계속 들어도 좋 긴 하지만 그래도 자꾸 듣다 보니 닭살 돋는 느낌이 들어서 였다. "내 이름은 테이루아야. 그냥 테이라고 불러도 좋아." 그렇게 말하면서 앞서 걸었는데 카렌이 따라오질 않는 것이다. 뒤를 돌 아보니 카렌의 얼굴은 경악으로 물들어 있었다. "왜 그래?" 내가 다시 카렌에게 다가가자 카렌은 설마 설마라는 말만 반복하다가 다짜고짜 내 손을 덥석 잡는 것이었다. "으아 악! 왜 왜 이러는 거야?!" "잠깐만 요. 잠깐만 그대로 있어주세요." 라는 말만 하고는 내 손을 잡고는 눈을 감았다. 난 처음 보는 여자에게 손을 잡힌 것 만으로도 어쩔 줄 모른체 얼굴을 붉혔다. 음 순진했다는 것도 한 몫 했지만 너무 갑작스럽게 잡힌 거라서 더욱 놀라버린 것이 다. 카렌 이런 남녀 사이는 천천히 진행시켜야 되는 거야! 난 번개불에 콩 복아 먹는 사랑따위는 질색이야!!……하지만 손이 참 부드러운 게 감촉은 좋다…라는 말을 할 때가 아니잖아!! 내가 패닉에 빠지던 말던 카렌은 내 손을 잡고 한참을 눈을 감고 있더 니 곧 눈을 뜨고는 놀라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역시 드래곤이시군요. 혹시 실버 드래곤 테이루아님 맞으세요?" "으에엑?!!! 내 내 정체를 어떻게 안 거야?!!!!!" 난 카렌에게 손을 잡혔을 때 보다 배는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나의 비 명 소리에 주변의 새들이 놀라서 하늘로 날아올라가는 광경이 보였다. 계속 ------------------------------------------------------------------ 드래곤 남매 8화 내 레어의 손님(3) 난 카렌의 손에 잡힌 체 카렌의 집으로 가는 중이었다. 카렌은 어떻게 내 정체를 알았냐는 질문에 나중에 대답해준다고 하고는 빨리 자신의 어머니를 만나봐야 된다고 말하고는 이렇게 날 끌고 가는 중이었다. "카렌 어머니가 날 알아?" 다짜고짜 어머니 만나러 가자는 말에 황당해서 내가 물어본 말에 카렌 은 아주 자알 알고 있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하고는 날 끌고 가고 있었 다. 뭐 지금 당장 궁금하긴 하지만 가면 안 다는데 어쩌겠나? 일단 가 봐야지. 아까 카렌이 말한 대로 과연 1시간 정도 가자 사람(엘프?)이 살만한 집이 보였다. 아담한 오두막집에 마당에는 텃밭이 있고, 취미인 지 꽃밭도 보였다. 그리고 지붕의 굴뚝에서는 연기가 나고 있는 게 아 마도 저녁 준비하는 것 같았고 오크들이 왔다갔다하면서 먹을 꺼와 돈 될만한 걸 챙기는 아주 평화로운 오두막이었다. 가만? 오크? 오크?!!!!! "까아아아아악!!!! 어머니!!!" 으 아까 전에도 느낀 거지만 카렌의 목소리는 정말 크다. 카렌 소리를 안 지르더라도 저기 오크에게 끌려가고 있는 엘프가 너희 엄마인 거 아 니깐 비명 좀 그만 질러!!! 귀 따갑단 말이야!! 카렌의 비명소리를 들 었는지(안 들린 게 이상하지)오크들은 일제히 나와 카렌 쪽을 쳐다보았 고, 자기네들끼리 수군대더니 우리 쪽으로 오는 것이다. 크하하하하 이 번에도 뻔할 뻔자군. 우리들도 예쁘니깐 잡아가겠단 소리겠지? "쿠룩...너희들 예쁘다...쿠룩...비싸게 팔 수 있다...쿠룩...따라와 라...쿠룩." 아까 그 오크들이랑 토씨하나 안 틀리고 똑같은 패턴이군. 이 놈의 돼 지 대가리들은 발전이라는 단어도 모르나? 난 드래곤 피어를 쓰려다가 생각을 바꿨다. 어차피 옆에 카렌도 내가 드래곤인줄 다 알고 있는데 드래곤 피어를 안 쓰는 건 오크들만 타격을 받는 게 아니라 옆에 카렌 과 카렌의 어머니라는 분도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이 야기하면 여자가 입에 게거품 물고 기절하는 광경을 보고 싶은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드래곤 피어를 안 쓰기로 한 나는 바로 드래곤 아이를 쓰기로 하였다. 물론 폴 파워로~~ "너희들 다 죽고 싶냐?" 인간의 모습을 한 나지만 드래곤 아이를 폴 파워로 쓰면 눈은 원래 드 래곤의 눈으로 바뀐다. 인간의 모습에 눈은 드래곤 객관적인(인간 입장 에서) 입장으로 보면 이게 굉장히 두렵게 보인다. 그리고 그 공포는 오 크들에게도 똑똑히 전달 된 것 같다. 나와 눈이 마주친 오크들이 죄다 무기를 떨어트리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린 것이다. 난 좀 더 목소리 를 깔아서 더 겁을 주기로 하였다. "다시 한번 묻는다. 너희들 죄다 죽고 싶냐?" 공포에 떨면서도 놈들은 죽기 싫었는지 전부 고개를 힘차게 좌우로 흔 들었다. 난 입가에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 죽기 싫다 이거지?" 이번에는 고개가 힘차게 아래위로 움직였다. 근데 이 놈들이 아까부터 말은 안하고 왜 고개만 까딱거리는 거야? 기분 나쁘게 시리.... "그럼 왜 내 영역의 손님을 건드리는 거야?" 난 바로 앞에 있는 오크의 가슴을 발로 가볍게 차버렸다. 난 가볍게 찼 는데 오크에게는 가벼운 게 아니었는지 공중에 붕 떴다가 머리부터 떨 어져 버렸다. 쩝 저녁거리 하나 더 추가 된 건가? 머리부터 떨어져버린 오크는 잠시 머리를 부여잡고 고통스러운지 머리를 잡고 이리저리 굴러 다녔다. 저녁거리 추가는 아쉽게도 물 건너 가버렸군. 죽지는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오크들에게 충분히 겁을 줬는지 이 놈들은 아예 땅에 머 리를 박고 열심히 손이 발이 되도록 용서를 빌기 시작했다. "쿠룩...위대하신 존재시여...쿠룩...모르고 저지른 짓이니...쿠룩." "쿠룩...제발 용서를...쿠룩....용서해 주십시오...쿠룩." "쿠룩...제발 살려주세요...쿠룩...저 이제 결혼해서...쿠룩...신혼입 니다...쿠룩." "쿠룩...전 토끼(?)같은 자식이...쿠룩...있는 몸입니다...쿠룩...제발 자비를...쿠룩." 어째 이 놈들도 무진장 오버들 한다. 쩝 만약 죽일 생각이었다면 이렇 게 입 아프게 떠들지도 않았다. 그냥 그 자리에서 다 베어 버리지... 그걸 눈치 못 챈 오크들은 그야말로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또 빌고 있 었다. 이 정도면 되었다고 생각한 나는 아까 토끼(?)같은 자식 어쩌고 한 놈의 머리를 가볍게 밟으면서 말했다. 토끼 같은 자식이 있다면 이 중에서 제일 나이가 많겠지? "너희 마을에 돌아가서 모든 오크들에게 전해라. 이 곳에 사는 엘프모 녀는 이 산의 주인 실버드래곤 테이루아 님의 귀중한 손님이니 만약 이 들에게 손을 대거나 하면 너희 일족 모두를 갓난아기부터 늙은이까지 하나도 남기지 않고 씹어 먹어버리겠다. 알겠느냐?!!" "예...쿠룩...잘 알겠습니다...쿠룩." 이제야 자신들을 살려줄 거라는 걸 눈치챈 그 오크의 말에서는 공포심 이 약간 누그러져 들어 있었다. 어째 마음에 안 든다. "아 그리고." 내가 그냥 보내줄 것 같이 말하다가 그리고 라고 한마디 더하자 오크들 은 혹시나 내가 마음이 변했나 하는 생각에 전부 다 얼굴색이 아까 전 처럼 새파래졌다. 그런 변화무쌍한 오크들의 표정을 보자 왠지 재미있 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거 누나의 그 엽기적인 성격이 전염된 거 아 니야? 젠장 나는 착한 드래곤으로 살려고 했는데...뭐 어째든 재미있으 니깐 넘어가고, 시킬 일은 시켜야겠지? 난 부서져 버린 카렌 집의 가구들과 엉망이 되어버린 텃밭과 꽃밭을 가 르치며 말했다. "너희들이 엉망으로 만들었으니깐 너희들이 원래대로 만들어 놔. 오늘 해지기 전까지 다 안해 놓으면..." 난 거기서 잠시 말을 끊고 오크들의 반응을 즐겼다. 젠장 정말 누나의 성격이 전염되었나 보다. 오크들이 내 뒷말을 기다리면서 덜덜 떠는 모 습이 통쾌하고 재미있다니 이런...뭐 재미있으니깐 넘어가자. "너희들 전부 다 내 저녁식사거리가 될 줄 알아." 마지막 말은 진심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집에 갖다놓은 오크들로는 오늘 저녁거리가 좀 모자란 감이 있었다. 보존시켜 놓은 게 있긴 하지 만 그건 신선도가 떨어지니깐... 오크들은 내 마지막 말에 절망하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원래 파괴하 는 건 엄청 쉽다. 그냥 힘주어서 닥치는 대로 부수면 되니깐. 하지만 창조라는 것 무언가 아무거나 하나 만든다는 건 그게 아무리 하찮은 것 이라도 파괴하는 것보다 배는 힘든 게 당연한 이치...아까 오크들이 부 순 건 해질 녘까지 도저히 복구할 수 없는 양이다. 왜냐하면 조금 있으 면 해지니깐...아 생각해보니 이 엘프모녀를 못 건드리게 말을 전할 녀 석하나를 살려보내는 걸 잊어먹었다. 그래서 난 아까 한 말에 한마디 덧붙였다. "다 못하더라도 내 눈에 가장 열심히 한다고 보인 놈은 한 놈 살려 보 내주마." 내 말에 오크들의 눈빛이 빛났다. 그리고 시작하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 에 힘차게 일어서더니 그야말로 열심히 살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다. 오크는 게으르고 약탈을 좋아하는 종족이라는 상식을 부술 정도로 정말 열심히 일을 하는 것이다. 이 놈들 평소에 그렇게 부지런히 일하면 굳 이 인신매매업 같은 거 안해도 잘 먹고 잘살겠구만...자식들이 평소에 게을러빠지니깐 그 대가를 지금 받는 거 아니야. 쯧. 난 열심히 일하는 오크들을 한번 쓱 둘러보고는 혀를 차며 카렌한테 걸 어갔다. 카렌은 어머니 옆에서 안부를 물으면서 낑낑대며 어머니라는 엘프를 집안으로 옮기려고 노력 중이었다. "도와줄게." 난 그렇게 말하면서 카렌의 어머니를 부축하기 위해서 손을 뻗었다. "오랜만입니다. 테이님." 난 뻗은 손으로 카렌의 어머니를 잡지도 못한 체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 다. 너무나 반가운 목소리를 들은 것이다. 이제 다시는 만날 수 없다고 생각한 목소리...카렌의 어머니는 천천히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늠름해 지셨네요. 이제 성룡이 되신 건가요?" 익숙한 얼굴 그리고 목소리 보는 이로 하여금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저 미소...난 떨리는 목소리로 그 엘프의 익숙한 이름을 불렀다. "이르...누나?" 가만 카렌의 어머니라고 했던 엘프가 저기 카렌에게 부축을 받고 있고, 그 엘프가 이르누나라면 카렌의 어머니라는 엘프가 이르누나라는 소리 니깐 이르누나는 유부녀라는 소리다 그럼 이르 아줌마라고 정정하는 게 낮지 않을까? 난 너무나 갑작스런 반가운 얼굴을 봐서 그런지 순간적으로 현실 도피 적인 생각을 하다가 곧 정신을 차리고 이르누나를 쳐다보았다. 틀림없 이 이르누나였다. 첫 외출 때의 추억을 생각나게 만드는...여장추억 빼 고...반가운 얼굴이 분명히 나를 쳐다보면서 미소짓고 있었다. 그래도 믿지 못한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르누나...맞아요?" 이르누나는 여전하시군요. 라는 표정으로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 였다. 난 현실을 받아들이게 되자 너무나 기뻐서 나도 모르게 소리를 쳐버렸다. "우와아! 너무 반가워요!! 이르누나 정말 맞죠? 그때 날 위로해주었던 그 이르누나 맞죠?" "네 테이님. 그때 그 이르가 맞아요." 이르누나도 반가웠는지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나와 같이 기뻐해 주었 고, 카렌도 미소지으면서 우리의 재회를 같이 기뻐해 주었다. 그런데 잠깐.... "그럼 저 놈의 오크들이..." 난 살기를 띠고는 오크들을 돌아보았다. 오크들은 열심히 가구들을 고 치고 밭을 원래대로 되돌리다가 내 살기에 어린 눈을 보고는 전부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 "나의 정말로 소중한 손님을 아까 뭐처럼 끌고 가고 있던 중이었지?" "저 저기 테이님?" 카렌은 내 행동에서 뭔가를 눈치채고 날 말리려고 했지만 이르누나의 제지에 날 말리지를 못했다. "테이님이 저렇게 화가 나면 아무도 못 말린단다. 저 분의 누님 빼고 는..." "그 그렇지만..." 쩝 아직 그 정도로 열받지는 않았는데 난 아직도 기억 못하는 도적길드 에서의 폭주 때처럼 화가 난 것은 아니었기에 아직 제 정신은 박혀 있 는 상태였다. 아니...박혀 있겠지? 아니 틀림없이 제 정신이다. 지금 저기서 저 오크들을 죽이면 부서진 거는 누가 고친단 말인가? 아직 그 정도까지 생각을 할 정도라면 제 정 신인 게 확실하겠지. 그러니깐 난 적당히 벌을 주기로 마음먹었다. "너희들 일은 할 때 하더라도 일단 맞고 시작하자." 난 손을 풀면서 오크들에게 다가갔고, 오크들은 내가 가까이 감에 따라 얼굴색이 점점 더 새파랗게 변해갔다. 그 뒤는 간단히 말하면 내가 누 나에게 맞던 만큼만 때려주었다. 물론 수리해야 되는 놈들이 필요하니 기절까지는 가지 않게 적당히 때려주었다. 난 누나처럼 무식하게 무적 당주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카렌은 나한테 맞은 오크들이 뭐가 불쌍하다고 일하고 있는 오크들에게 차를 한잔씩 대접하는 엽기까지 보 이는 거야? 쳇 그러니깐 내가 마치 천하에 나쁜 놈처럼 보이잖아. 계속 ------------------------------------------------------------------ 드래곤 남매 8화 내 레어의 손님(4) 이미 해는 져서 숲 속은 어둠에 묻혀가고 있었다. 그런 깊은 숲 속에서 유일하게 빛을 내고 있는 오두막에서 난 이르누나와 누나의 딸 카렌에 게 저녁 식사를 대접받고 있었다. 나한테 맞았던 오크들은 믿어지지 않는 엄청난 속도로 일을 마쳐서 결 국 저녁식사거리들은 당당하게 내게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역시 뭐 든 맞아야 일의 능률이 오른단 말인가? 제길 패지 말걸. 하지만 저녁식사를 같이 하자고 말을 해준 이르누나 덕분에 신선도 떨어지는 보존식품 뜯어먹어야 되는 사태는 피할 수 있 었다. 보존 식품들은 재수 없게 그야말로 정말 재수 없게 사냥감을 발 견 못한 날이나 어쩔 수 없이 뜯어먹는 것이지. 맛을 따지자면 정말 형 편없다. 그러니 이르누나의 식사대접을 마다할 이유가 없는 나는 기쁜 마음으로 엘프모녀의 저녁식사 초대에 응했다. 카렌이 만들었다는 맛있 는 식사가 끝나고 난 그동안의 이야기를 이르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그나저나 카렌 정말 음식을 맛있게 만드네...누가 데려갈지 정말 그 놈 이 부럽다. 아니지 듣도보도 못한 말뼈다귀 같은 놈한테 뺏기기 전에 내가 챙길까? 헉 내가 무슨 엽기적인 생각을!!! 정말 누나 성격이 전염된 거 아니야? 당분간 누나를 멀리해야겠다. 젠장 멀리한다고 마음먹어 봤자 하루도 안 거르고 찾아오는 누나를 무슨 수로 멀리 한단 말인가? 그냥 지금까 지 살던 대로 그르려니 하고 살아야지. 다만 누나의 그 엽기적인 성격 은 더 이상 닮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 이르누나는 우리가 떠나고 난 뒤부터 이야기를 해주었다. 우리가 떠나 고 난 뒤 레드포머 공작님은 순조롭게 즉위식을 마치고 레드포머 1세로 등극했고, 곧 부정부패로 찌든 귀족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개혁을 계속 적으로 시행해 귀족들에게는 원성을 일부 양심적인 귀족과 평민에게는 엄청난 지지를 얻으며 왕권을 굳건히 다지고, 레이나 누나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고 했다. 레이나 누나는 다이러스 제국의 두 번째 여왕으로 등극하고, 아버지가 이룬 나라 안의 평화를 더욱 굳건히 다지면서 외교 적으로 활동하면서 엘프들과의 오랜 냉전에 종진부를 찍게 만들었다. 특히 누나와 내가 그 변태보스를 잡기 위해서 이름을 빌렸던 엘프로드 인 하이엘프 카슈타르님이 놀랍게도 직접 찾아와서 인간과 엘프와의 평 화를 이룩하는데 적극적으로 협조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몇 백년에 걸 쳐서 삐걱대는 가이라가 왕국과 정식휴전을 수립하는데 성공하였고 이 후 가이라가 왕국과 조금씩 교류를 하면서 선대 다이리 여왕이 결국 이 룩하지 못한 평화를 얻는데 성공하였고, 카슈타르님의 도움으로 프론트 연합과 좀더 적극적인 교류가 오가게 되었다고 한다. 엘프들의 로드 하 이엘프 카슈타르님은 다이러스 제국 내에서 어느 정도 인간과 엘프와의 공존이 형성되었다고 생각될 때 '다시 여행을 떠납니다.'라는 쪽지를 남기고 사라졌다. 그리고 누나와 나의 예상대로 레이나 누나는 엔드르 씨와 결혼하고 왕자와 공주를 낳으면서 행복하고 오래오래 잘 살았다는 감동적인 옛날 이야기였다. 뭐냐? 이거 이야기가 어느새 옛날옛적에 분위기로 끝나버렸잖아. 뭐 옛 날 이야기가 맞긴 맞으니 별 상관 없으려나? 아무튼 이르누나는 옛날이 야기(?)를 마치고 나에게 레이나 누나가 혹시라도 이르가 나와 누나를 만나게 되면 전해달라고 부탁했다는 편지를 나에게 주었다. 꽤나 오래된 듯한-하긴 100년이나 지났으니 당연한 거지만-편지지만 이 르누나가 소중하게 간직했는지 상태는 읽는데 지장이 없었다. 그래도 오래된 편지라 조심스레 꺼내어서 읽어보았다. 아직 이르누나도 그 편 지내용은 모른다고 해서 이르누나와 카렌에게 들리도록 소리를 크게 해 서 읽었다. "안녕 티아와 테이 잘 지내고 있니? 이 편지가 과연 티아와 테이 손에 가게 될지는 지금 쓰고 있는 나도 장담은 못하겠지만 그래도 혹시 라는 말도 있고 인연이 닿으면 이라는 말들처럼 이르와 너희가 인연이 닿으 면 만날지도 모르니깐 그때를 대비해서 너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쓰 는 거야. 음 근데 무슨 이야기부터 하지? 아 너희들이 해츨링이라는 건 너희들이 떠나고 나서 이르한테 들어서 알고 있어. 하지만 너희들은 내 마음속에서는 영원히 귀여웠던 동생들로 남아 있으니 이렇게 반말로 편 지 쓴다고 기분 나빠하기 없기다. 기분 나쁘다고 말하면 레이나 누나 (언니)는 너무 슬퍼.(뭘 새삼스럽게 그런걸 따지시지 않아도 상관없는 데...) 아 역시 테이야. 이해해주는구나.(헉 어떻게 내 마음을...) 너 희들이 도와준 덕분에 로헨타이 공작 가는 완전히 망했고 아버지가 즉 위한 후에 그 동안 부정부패를 일삼으며 호위 호식한 귀족들도 모조리 다 지위를 박탈하거나 벌금을 매기는 등 한동안 난리가 아니었어. 하지 만 로헨타이 공작이라는 그들에게는 거물급의 인물이 반역죄 및 왕권모 독죄 그리고 불법 부녀자 납치 및 폭행죄로 모조리 숙청 당해서 그 재 수 없는 귀족들에게는 더 이상 방패막이가 없어져서 아주 손쉽게 처리 할 수가 있었어. 그런데 그 와중에 알아낸 건데 로헨타이 공작놈 아니 이제 공작칭호도 붙일 필요 없겠지. 그 로헨타이와 몇몇 귀족들은 아예 작당을 하고 반역을 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거야. 그때 티아랑 테이랑 세이르아님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상상하 면 지금도 오싹해. 정말 티아랑 테이에게는 몇 번을 감사해도 모자를꺼 야. 만약에 그렇게 되었다면...지금의 티아랑 테이도 없었겠지. 아 이 티아와 테이는 이 누나의 딸과 아들이란다. 너희들 이름을 붙여 거든. 괜찮지? 허락해 줄꺼지? 와! 역시 허락해주는구나 정말 고마워. (레이 나 누나 이번에는 나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아 그리고 테이 지 금 쓸데없는 걱정하는 거라면 괜찮아. 내 티아는 테이를 괴롭히지 않거 든. 아 속으로 부럽다고 생각하고 있지? (부럽다 뿐입니까? 피눈물이 나도록 부럽습니다.) 참 이 아이들도 쌍둥이란다. 지금 이제 막 5살이 된 나랑 그이의 사랑의 결정체 막내들이야. (음 조금 닭살이...울 엄마 아빠랑 닮았다고 생각되는 건 나뿐일까?) 위로는 아들이 둘하고 딸이 하나 더 있어. 응? 많이도 낳았다고. 호호호 내가 생각해도 좀 많이 낳 았다고 생각하지만 난 외동딸로 자라서 남매랑 자매들이 있는 가정이 부러웠거든. 그리고 드래곤이면서도 쌍둥이 남매였던 너희 둘이 정말 부러웠고, 너희 같은 동생들이 갖고 싶고 부러워서 우리 자기한테 힘 좀 써달라고 말했지. 꺄~~내가 지금 무슨 말을 아이 부끄러워. (부끄러 우면 그런 말을 쓰지 말던가요!! 읽는 나는 닭살 돋는단 말입니다!!) 흠흠 어째든 기회만 되면 너희들을 다시 한번 더 보고 싶어. 하지만 어 렵겠지. 지금 쓰고 있는 이 편지가 너희 손에 가게 될지 안될지도 모르 는데...하지만 난 믿고 있어. 이르와 너희들이 만나서 내 편지를 웃으 면서 읽으면서 추억을 회상하는 그런 날이 올 거라고 반드시 믿어. (네 레이나 누나. 누나의 믿음대로 전 지금 추억을 회상하면서 미소짓고 있 어요.) 아 그리고..." "그리고 뭐예요?" 내가 편지를 읽는걸 멈추자 카렌이 물어왔다. 하지만 난 카렌의 물음에 대답을 해 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다음의 내용은 '아 그리고 테이가 여장했을 때 그 귀여웠던 모습이 생각나서 나의 테이에게도 여장을 시 켜서 쌍둥이 자매로 꾸며보았는데 테이 때처럼 영 어울리지가 않더라. 다시 한번 더 테이를 만나게 된다면 정말 예쁘게 다시 한번 코디 해주 고 싶은데 참 아쉬워.'라는 말을 어떻게 카렌한테 할 수 있냔 말이다!! 눈치를 보아하니 카렌은 나와 누나의 이야기를 이르누나에게 많이 들었 던 것 같지만 착한 이르누나는 나의 그 봉인하고 싶은 추억에 대해서는 말을 안 해주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내용을 읽어주겠는가? 이거 읽어주면 당연히 내가 여장을 했을 때의 추억....아니 악몽도 이 야기 해주어야 되는데...난 카렌한테만큼은 절대 그 악몽을 이야기하고 싶지가 않았다. 음 근데 왜 카렌한테 이야기하기 싫은 거지? 그냥 쪽팔 려서 인가? "아니 그게...에 여기는 개인적인 이야기라서 그냥 넘어갈게." 이렇게 얼버무리고 넘어가자 이르누나는 내용을 눈치채고는 묻지 않았 고, 카렌도 엄마를 닮아서 착한지 사적인 이야기라고 하자 고개를 끄덕 이면서 넘어가 주었다. 이 편지가 누나 손에 가기 전에 내 손에 먼저 들어와서 다행이다. 누나라면 온 가족이 모인데서 아주 당당하게 읽어 되겠지. 그렇게 되면 나의 인생은 저 어둠 속으로라고나 할까? 아무튼 누나한테 보이기 전에 이 부분은 어떻게든 해야되겠군. 난 일단 그 내 용을 건너뛰고 계속 읽어 나갔다. "아 참 너희 가족이 데려왔던 용병 두분 제이크씨와 라이크씨는 우리 가문의 기사작위를 받았어. 실력도 뛰어난데다가 인품도.....제이크씨 는 열외로 치자. (동감입니다. 응? 이르누나 표정이 어째 씁쓸해 보이 는데...) 아무튼 인품도 훌륭해서 아버지가 기사로 들어올걸 권했고, 두 사람도 흔쾌히 허락하고 우리 가문의 기사로서 많은 공적을 세웠어. 그런데 말이야. 티아를 사랑한다고 외치던 제이크씨 기억나지? 한동안 은 티아가 드래곤이라는 아니 해츨링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사람이 멍해졌는데....5년 후 정신을 차리는가 싶더니 갑자기 이르한테 청혼을 하는 거지 뭐니. 이르도 놀라고 나도 놀라고 하여튼 주위사람 모두들 다 놀랐어. 이르는 당연히 거절했지. 근데 제이크씨가 엄청 끈질기게 쫓아다니는 거야. 3년 간이나...결국 이르는 그 마수(?)에 넘어가서... 흑 낼 둘이 결혼한다니 깐...지금 이 누나는 이르의 앞날을 생각하면 너무 슬퍼....라고?!!!! 가만 그렇다면 카렌은??!!!" 내가 편지를 읽다 말고 놀라서 소리를 지르면서 벌떡 일어나자 카렌은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쳐다보았고, 이르는 씁쓸하게 웃으면 서 내 의문에 답해주었다. "네 카렌은 저와 제이크의 아이예요." 난 제이크 아저씨의 그 서글서글하면서도 어딘가 능글맞은 얼굴을 기억 하면서 카렌의 얼굴을 요모조모 뜯어보았다. 카렌은 내가 자기를 뚫어 지게 쳐다보자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히면서도 내 시선을 피하지는 않았 다. 발갛게 물든 뺨을 보면서 난 너무나 귀엽고 예뻐서 나도 모르게 안 아주고 싶다....라는 생각을 할 때가 아니잖아!! 나 오늘 왜 이러지? 아무튼 카렌의 얼굴에서는 이르누나를 닮았다는 느낌만 날 뿐이지 어딜 보아도 제이크 아저씨의 얼굴과 닮은 점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성격도 이르누나를 닮아서 착하고 한 마디로 말해서 이르누나의 승리였다.(뭐 가?) 응? 근데 생각해보니깐 아까 숲 속에서 다 큰 처녀가 다 큰 총각 (?)손을 갑자기 붙잡았었지. 설마 그때 그것은 제이크 아저씨의 피의 힘 때문?!!! 설마 아니겠지. 그러고 보니 내 손을 잡는 걸로 내 정체를 알아차렸지. 분명 그때는 드래곤의 기운도 완벽히 지우고 있었는데 어떻게 알아차린 거지? 난 그것을 물어보기 전에 더 중요한 게 생각나서 이르누나에게 먼저 질 문을 하였다. 아까 카렌이 나의 정체를 알아차린 것보다 지금 이 질문 이 훨씬 더 중요했다. "이르누나." "네?" "제이크 아저씨....결혼 후에 바람 안 피웠나요?" 그렇다 이 질문이야말로 현재 가장 중요한 질문인 것이다. 근데 난 중 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둘의 표정을 보니 아닌가 보네. 왜 그렇게 황당한 눈으로 쳐다보는 거야? 난 걱정이 되어서 물어 봤던 건데. "아버지는 바람 같은 거 안 피웠어요. 어머니를 정말로 아껴주고 사랑 하셨다고요." 쩝 내 질문에 카렌이 흥분했는지 아까 물들인 뺨의 색깔을 원래대로 되 돌릴(?) 생각도 안하고 이번에는 흥분해서 빨갛게 되었을 게 뻔한 얼굴 로 나에게 따지고 들었다. 난 정말 걱정이 되어서 물어 본 건데. 설마 카렌은 제이크 아저씨의 그 화려한 젊은 날의 추억을 모르고 있단 말인 가? 하긴 자식한테 그런 말을 해줄 리가 없겠지. "우리 아버지가 비록 젊은 시절에는 그...저...아무튼 조금 노셨는지( ?)는 몰라도 어머니랑 결혼하고 나서는 그런...아무튼 바람 같은 거 안 피셨다고요!!" 설마 그 인간 그게 뭐 자랑할거리라고 자식한테 이야기 한 거란 말인가 ?!!! 난 너무나 당황해서 이르누나를 쳐다보았다. 이르누나는 아직도 씩씩대고 있는 카렌을 진정시키고는 내 의문에 답해주었다. "실은 제이크는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카렌에게 솔직했거든요. 항상 시 간이 날 때마다 말해주었죠." "과거의 여성들과 화려하게 사귀는 날들 이야기를요?" "그게 아니에요!!!!" 으아악!!! 고막 터지겠다. 도대체 카렌은 왜 이렇게 목청이 큰 거야? 이르누나는 귀를 안 막는 걸 봐서 익숙하다 이건가? 헐 존경스럽다. 엘 프는 드래곤보다 귀가 좋으면 좋았지 결코 나쁘지 않는데 저런 귀청 찢 어지는 목소리에 익숙하다니...자식이라서 그런 건가? 그런데 이런 생 각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카렌이 아까보다 더 씩씩대면서 나를 몰아붙였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항상 자신은 나쁜 사람이라고 스스로 자책하면서 자신과 결 혼해준 어머니를 고맙게 생각한다고 그래서 나랑 어머니를 제일 행복하 게 만들겠다고, 노력하겠다는 말을 하면서 정말 나와 어머니를 행복하 게 해주려고 얼마나 노력했었는데요. 그래서....반쪽 짜리 엘프인 나도 아빠 덕분에 정말 행복했었다고요. 행복했었는데...." 호오 어느새 말투가 아버지라면서 어른스럽게 굴다가 어느새 아빠로 낮 아진 걸로 봐서 억지로 어른인체 하고 있었던 것 같군. 카렌의 또 다른 면을 봤다. 라고 즐거워 할 때가 아니었다. "흑...." "어라?" "흑...훌쩍...흑흑흑...." "아악!!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사과할 테니깐 제발 울지마!!!" "으아아앙 아빠아. 엉엉엉..." 내가 달래는 보람도 없이 카렌은 울음을 터트렸다. 이르와 나는 울고 있는 카렌을 필사적으로 달래느라 그 날은 더 이상 추억을 이야기 할 수가 없었다. 덕분에 카렌이 내 정체를 알아차린 것에 대해서 물어볼 수가 없었다. 카렌은 거의 1시간 가까이 울다가 지쳤는지 잠들었고 내 가 손수 안아서(거기 이상한 상상하지마!!) 침대에 눕혀주었다. 카렌을 눕히고 나오자 이르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미안합니다. 테이님. 저 얘는 제이크를 무척이나 따랐거든요. 그래서 빨리 죽어버린 아빠를 못 잊는 거 같아요." "그랬군요." 그렇다. 제이크 아저씨는 인간이다. 엘프와 인간의 사랑 이야기는 연애 소설로 많이 이용되지만 실제로 이루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루 어진다 하더라도 인간은 항상 엘프보다 먼저 죽어버리고 엘프는 사랑했 던 인간의 추억을 안고 인간보다 몇 배는 더 오래 살게 되는 것이다. 결국 엘프에게는 손해보는 사랑인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 다. 그래서 슬며시 이르에게 물어보았다. "저기 행복하셨나요? 카렌 말 대로요." 카렌이 저렇게 울며불며 말하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못 미더워서 물 어보자 이르는 정말 행복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행복했었어요. 전 처음에 제이크의 구혼을 내 과거를 알고 있는 남자 라고 생각해서 피해 다녔죠. 하지만 그는 나의 과거도 다 잊어버릴 만 큼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노력하겠다고 말하면서 따라다녔어요. 그리고 정말 약속대로 절 행복하게 해주었어요. 비록 그이는 먼저 떠났지만 전 그를 사랑하게 된걸 후회하지는 않아요." "왜죠? 부부라면 누군가 먼저 죽는 날이 오더라도 그래도 같이 오래 살 아야 행복한 거잖아요. 그때는 행복했는지는 몰라도 지금은 제이크씨는 죽고 이르누나랑 카렌만 남겨져 버렸는데 뭐가 행복한 거죠?" 난 이르누나의 얼굴 붉히며 남편 자랑하기라는 필살기에 닭살이 돋는 느낌에 전율하면서도 솟아오르는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물었다. 그러 자 이르누나는 아까 카렌을 달랠 때 그리고 처음 만났을 때 미아가 되 었다는 사실과 모르는 인간 집에서 잤다는 불안감에 울던 나를 달랠 때 의 얼굴로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럼 나와 카렌이 불행하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생각이고 자시고, 카렌이 울었잖아요. 물론 내가 잘못하긴 했지만 그 래도 카렌은 아빠를 그리워하며 울었잖아요." "그래요. 그리움에 카렌이 울기는 했죠. 하지만 그것 때문에 나와 카렌 이 불행하다고 할 수는 없어요." "어째서요?" "카렌이 울었던 건 지금 불행해서가 아니라 행복했던 추억이 생각나서 죠. 행복했던 추억을 그리워하며 우는걸 불행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 "그 그건...." 이르누나는 나의 어깨를 붙잡고 말했다. 처음 만났을 때는 나는 이르누 나보다 키가 작았다. 하지만 지금은 나이에 맞게(?) 16세정도의 훤칠한 키를 가진 성인의 문턱에 선 소년의 모습으로 변해있는 나는 이제 이르 누나와 눈높이를 맞출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옛날처럼 이마에 뽀뽀 당하기는 이제 당할 이유가 없다....이런 젠장 이야기가 또 엉뚱한 데 로 센다. 난 이르누나의 눈을 바라보면서 이야기가 딴 데로 안 세게 이 르 누나의 입에서 나올 말에 집중했다. 아 오늘 나 정말 왜 이러지? "테이님. 인간과 엘프의 결혼은 인간의 일찍 죽는 걸로 엘프가 불행해 진다고 생각하고 있는 걸 알아요.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 이유 때 문에 제이크한테 마음을 허락하면서도 주저한 적이 있어요. 그때 제이 크가 이런 말을 해주었어요." "어떤?" "앞으로 다가올 불행 때문에 겁을 먹고 지금 행복한 시간을 멀리하는 자는 정말 용기 없는 자라는 말을 해주었죠. 그래요. 전 한때 이웃에서 같이 자라던 소꿉 친구 오빠를 좋아한 적이 있었어요. 하지만 난 내가 고백함으로서 오빠와의 관계가 깨지는 게 두려워서 고백도 못하다가 결 국 영영 그 오빠와 행복했었을 수도 있는 시간을 스스로 놓쳤어요. 제 이크는 나에게 그 말을 해주면서 이렇게 청혼하더라고요. 비록 내가 당 신보다 먼저 죽더라도 내가 죽는 그 순간까지 나를 행복하게 해주겠다 고, 그러니 용기를 내 달라고 청혼하더라고요. 그 청혼이 1001번째 청 혼이었고 결국 그 청혼에 넘어가서 제이크와 결혼하고 전 그이 말대로 정말 행복했어요. 그리고 카렌은 그 행복이 거짓이 아니었다는 그이와 저의 증거품(?)이고요. 지금 다시 생각해도 그이랑 결혼한걸 불행이라 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이가 죽었을 때는 슬프긴 했지만 정말 죽기 전까지 절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그이는 지켜주었는걸요." 어느새 남편 자랑으로 바뀌어 가는 이르누나의 말에 난 얼굴을 붉힐 수 밖에 없었다. 누나 그런 낯뜨거운 이야기까지 할 건 없잖아요. 저 충분 히 이해했으니깐 자라나는 건전한 청소년(?) 해츨링에게 부부생활의 행 복한 이야기라는 주제는 좀 넘어가죠. 내 절실한 요구가(눈으로) 통했는지 이르누나는 거기서 이야기를 마치 고는 내 어깨에 올려놓았던 손을 내리고는 웃으면서 말했다. "밤이 늦었으니깐 주무시고 가세요." "예?! 아니 괜찮아요. 저는..." "알아요. 여기가 테이님 레어 근처라는 건 말 안 해줘도 알 수 있어요. 하지만 이렇게 오랜만에 만났는데 그냥 돌아가시면 섭섭해요. 전 카렌 이랑 같이 자면 되니깐 테이님은 제 침대를 쓰세요." "아니...그게 저...." "어머 혹시 카렌이랑 같이 자고 싶은 건가요?" "아니에요!!!" 난 카렌이 자고 있다는 사실도 잊어버리고는 나도 모르게 소리쳐 버렸 다. 바로 실수를 알아차리고는 카렌의 침실을 쳐다보았지만 조용했다. "걱정 마세요. 카렌은 한번 잠들면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귀가 어 둡거든요. 가끔 정말 내 엘프의 피를 이어받았나 하는 의문이 들 정도 라니깐요." "그 그런가요?" "그래요. 아무튼 주무시고 가세요. 알겠죠? 그렇게 하기예요." 솔직히 아까 일도 있고 해서 카렌 얼굴을 아침부터 보기가 좀 껄끄러워 서 사양했던 건데 이르누나는 이런 내 마음을 모르는지 확실히 못을 박 는 말을 하고는 나를 침실로 안내했다. 이르누나. 누나 결혼하고 엄마 가 되더니 성격이 변한 것 같아요. 원래 처녀가 아줌마 되면 다 누나처 럼 변하는 건가요? 아 그러고 보니 우리 엄마랑도 비슷한 것 같고.... 역시 처녀가 엄마가 되면 성격이 저렇게 변하는 건가? 내가 머리 아프 게 고민을 하던 말던 이르누나는 날 침실로 안내해주었고 이르누나의 침대라고 생각되는 침대에 누워 자기를 권하고는 방밖으로 나가려는 이 르누나를 난 할 말이 있어 붙들었다. "왜 그러시죠?" 젠장 막상 붙잡고 그 말 하려니 무진장 쪽팔리네. 생각해보면 별로 쪽 팔리는 일도 아닌데 왜 이러지? 아무튼 난 마음을 잡고 누나에게 부탁 했다. "이르누나...저기 날 테이님이라고 부르는 거요. 그냥 옛날처럼 테이라 고 불러주시면 안 되요? 존댓말 쓰는 거는 이르누나 버릇이니 그렇다 치고 넘어가더라도...전 아직 성룡도 아니고...뭐 이제 성룡 되려면 10 0년도 안 남았긴 하지만 아니 그게 아니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우씨 사랑 고백 하냐? 테이 너 그러고도 남자냐 똑바로 하자. 똑바로!! "저기 오랜만에 만났는데 이르누나가 자꾸 내 이름에 님자 붙이니깐 멀 게 느껴지잖아요. 그냥 옛날처럼 불러주세요." 에휴 이 말 하기가 왜 그렇게 힘이 들었던거람. 이래서야 나중에 사랑 고백을 하게 될 때는 입도 안 떨어지겠다. 이 성격 고쳐야 되는데.... 이르누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 말을 끝까지 들어주더니 후후후 웃 으면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네 그렇게 할게요. 그럼 잘 자요 테이." 난 옛날처럼 이르누나가 날 테이라고 불러주자 그 짧기도 길기도 했던 첫 외출의 추억이 생각났다. 그때 추억의 시간으로 돌아간 느낌을 받으 면서 난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르누나에게 저녁인사를 하였다. "안녕히 주무세요. 이르누나." 이르누나는 미소로 내 인사에 답해주고 문을 닫고 나갔다. 난 이르누나 의 침대에 누워서 실프에게 촛불을 끄도록 명령했다. 방은 금방 어둠에 묻혔고 난 편안한 기분으로 수면에 취했다. 그 날 꿈에서 반가운 얼굴 들을 차례로 만났다. 레이나 누나, 엔드르씨, 레드포머 공작님, 공작부 인님, 제이크와 라이크 아저씨, 로헨타이 공작과 그 부인 그리고 변태 보스...???!!! "쓰바!! 너희들이 왜 나와?!!!" 난 벌떡 일어나서 마지막에 나타났던 세 명의 얼굴을 애써 지우고는 다 시 잠을 청했다. 좋은 꿈이 졸지에 악몽으로 변해버릴 뻔했다. 계속 ------------------------------------------------------------------ 드래곤 남매 8화 내 레어의 손님(5) "테이님." "카렌?" 어라 카렌이 언제 내 방에 들어온 거지? 아 여기는 이르누나 방이지... 난 잠결에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에 잠을 깼다. 날 깨운 것은 카렌이었 다. "무 무슨 볼일이야? 이 밤중에..." 원래라면 단잠을 깨운 카렌에게 화를 내야 맛 당하지만 난 아까 저녁에 카렌을 울린 죄가 있기 때문에 말투가 조심스러워 졌다. 카렌은 얼굴을 붉히면서 가만히 내 얼굴을 쳐다보다가 갑자기 나에게 와락 안기는 것 이다. "헉?! 카 카렌." "어머니는 깊이 주무시고 계세요. 아무도 우리를 방해할 자는 없어요. 그러니..." 그러니 뭐? 저 저기 카렌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안 돼 우리는 아 직 미성년자고 그리고 또 서로를 잘 알지도 못하고....가만 나야 뭐 아 직 성룡이 아니지만 나이가 410살이니 인간들 입장에서 보면 미성년자 라고 보기는 힘들다. 그것은 카렌도 마찬가지이다. 하프엘프라 오리지 널 엘프보다 수명이 짧다고는 하지만 80살이나 먹은 카렌 역시 미성년 자라고 부르기에는 무리가 있다. 뭐 어디까지나 인간들의 입장에서 본 것이긴 하지만...어째든 아무 문제없다. 라는 결론이 나온다. 젠장 내 가 무슨 엉뚱한 생각이야?! 아무문제 없으니 한번 건드려 보자 이건가? 내가 언제부터 이런 사악한 생각을?!! 휴 반성하자. 패닉에 빠져서 혼자 고민하고 반성하는 사이에 카렌은 포옹을 풀더니 서서히 지금 입고 있는 원피스의 단추를 하나하나 풀기 시작했다. 난 눈이 튀어나오는 듯한 충격을 받고는 시선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모른 체 뒤로 슬슬 기었다. 하지만 침대 위에서 도망을 가봐야 어디까지 도망갈 수 있겠는가? 금방 벽에 부딪쳐서 더 이상 도망가지도 못하고 몸이 굳 은 체 카렌이 펼치고 있는 엽기적인 행동을 구경할 수밖에... 카렌은 단추를 다 풀고는 침대로 올라와서 천천히 나에게 다가왔다. 카 렌의 단추가 풀린 옷은 나에게 천천히 기어오는 동안 흐트러져갔고 동 시에 내 눈은 점점 더 커졌다. 놀라서 커진 것이다. 다른 뜻으로 커진 게 아니니 착각은 말아주었으면 한다. '도대체 카렌이 왜 이러는 거야? 혹시 저녁에 자기를 울렸다고 복수하 는 건가? 만약 이게 카렌식 복수라면 남자에게는 참으로 기분 좋은... 험험 아무튼 얘 왜 이러는 거야?!!! 아! 혹시 이것은 제이크 아저씨의 피의 폭주?!!'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였다. 라이크 아저씨에게 들었던 오는 여자 막지 않고 안 오는 여자 오게 만든다는 제이크 아저씨의 딸인 이상 아 버지의 피를 이어받은 것은 당연한 것. 이 산 속에서 5년 간이나 이르누나랑 둘이서만 살았다고 했으니 혹시나 남자가 그리워져 있던 차에 멋있게 생긴 내가 와서 그 피가 폭주해버린 것이 아닐까? 라는 엉뚱한 아니 타당성이 충분한 생각을 할 때가 아니 었다. 카렌의 얼굴이 어느새 내 얼굴 바로 앞에 와 있었다. 촉촉이 젖 어있는 눈동자, 새빨갛게 물든 뺨, 그리고 앵두 같던 입술은 어느새 붉 어져 있었고, 그 섹시한 입술에서 숨결이 새어나와 내 얼굴을 간지럽혔 다. "카 카렌..." "테이님..." "카렌 난...저기..." 젠장 도대체 무슨 말로 이렇게 흥분한 카렌을 말려야 되는 거야?!! 이 런 경우는 처음 당해봐서 어떻게 대응해야 될지 내 머리를 아무리 굴려 보아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별말이 없자 카렌은 그걸 허 락의 뜻으로 받아들였는지 팔을 내 머리에 두르고는 서서히 얼굴을 가 까이 했다. 으아악!! 위험수위다!! 이런 식으로는 절대 싫다. 첫 경험 은 내가 리드하고 싶단 말이야!!! 라는 소리를 할 때가 아니지... "카 카렌." "테이님." "카렌 제발..." "테이님!" "카렌....난...아 카렌..." "테이님!!!" 크아악! 갑자기 귀에다가 그 큰 목소리를 지르면 어쩌자는 거야?!! 으 고막이 울린다. 너무 놀라서 침대에서 떨어져 버렸는지 엉덩이에서 약 간의 통증이 느껴졌다. "어머나. 괜찮으세요? 테이님." 내가 떨어진 게 놀랐는지 카렌은 급히 내 안부를 물었다. 근데 어째 말 에 가시가 들어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아무튼 뭐 이 정도야 별 거 아니긴 하지만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지... "카렌 제발 부탁이야. 난 아직 성룡도 아니고 아니 성룡이 아니더라도 사랑을 불태우기(?)에는 별 문제가 없지만...그래도 우린 아직 어려!!" "아침부터 무슨 헛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어? 아침?" 카렌의 말에 난 주위를 둘러보았다. 카렌이 열었을 거라고 추측되는 창 에서는 아침 햇살이 들어와 방안을 밝히고 있었고, 새소리가 들리면서 아침의 평화로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나의 뛰어난 추리에 의해 서 이 상황을 이해하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꿈이었구나.' 다행이라고 생각되면서도 마음 한곳에서는 슬며시 아깝다라는 생각도 드는...뭐 대충 복잡한 기분이라고 쳐두고 난 자리에서 일어나서 카렌 에게 늦은 아침인사를 하였다. "하하하 안녕 카렌 좋은 아침이지." 무지 어색하네. 카렌의 얼굴에는 홍조가 어려 있었다. 근데 그게 화가 나서인지 아니면 부끄러워서(뭐가?)인지 분간이 가지를 않았다. 아마 나와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복잡한 얼굴로 내 인사를 퉁명스럽게 받으면 서 말했다. "아침준비 다 되었으니 씻고 오세요. 세수를 하는데는 집 뒤뜰에 개울 이 있으니깐 그 쪽에서 하시고요." 라는 말만 남기고 나가버렸다. 문을 아주 소리나게 쾅 닫고는... 역시 화가 난 것 같은데 어제 내가 말실수 한 것을 아직도 마음에 담아 두고 있는 건가? 어지간히 제이크 아저씨를 따랐나 보구나. 이거 얼른 사과를 해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카렌이 말한 개울가로 일단 씻으 러 갔다. 뭐 가는 도중에 귀찮은 생각이 들어서 운디네를 불러서 해결 하고 와버렸지만... 카렌이 만든 간단하지만 아주 맛있는 아침식사를 마치고 어제 읽다가 만 레이나 누나의 편지를 계속 읽었다. 그 뒤 내용은 별 내용이 없었 다. 정말이다. 제이크 아저씨와 이르 누나의 결혼에 관해서 걱정이 된 다는 내용만 장장 다섯 페이지에 달하니깐....그 뒤 내용도 안부를 묻 는 내용이었다. 다만 마지막 부분은 "티아와 테이. 난 너희 둘을 결코 잊지 않고 있어. 지금까지도 잊지 않 고 있고 앞으로도 내가 죽는 날까지 잊지 않을 꺼야. 정말 고마워. 귀 여운 쌍둥이 드래곤 남매들...그리노력 523년 가을 추수제를 바라보며 레이나 언니(누나)가..." 난 다 읽고나서 잠시 레이나 누나의 얼굴을 생각했다. 한번 본 것이나 들은 것은 잊어먹지 않는 드래곤의 기억력이 지금 이때만큼 고마운 적 이 없었다. 100년여의 시간이 흘렀지만 누나의 얼굴은 똑똑히 기억났 다. 나를 대할 때는 항상 귀여운 동생 대해주듯이 약간의 장난기를 발 휘하면서 날 귀여워해 주던 레이나 누나....난 편지를 고이 접어서 다 시 봉투 속에 집어넣었다. "나중에 티아님과 세이르아님에게도 보여주세요." "예 물론 그렇게 해야죠." 난 이르 누나에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 자리에는 카렌이 없다. 카렌은 아까 레이나 누나의 편지에서 제이크 아저씨와 이르 누나 가 안 어울리는 101가지 이유부분에서 토라져서 나가버렸다. 난 지은 죄(?)가 있기 때문에 카렌에게 사과를 할 셈으로 이르 누나에게 양해를 구하고 마당(이라고 생각되는)으로 나왔다. 카렌은 마당 한 구석에서 천을 펼쳐놓고 약초로 보이는 식물을 말리고 있는 중이었다. "아 안녕. 지금 뭐 하는 거야?" 아직도 어색해서인지 내 인사는 아주 어색했다. 카렌은 나를 힐긋 보더 니 찬바람이 쌩 불 정도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약초 말려요." 춥다. 이제 초여름의 날씨에 접어들어서 햇볕이 제법 따가워 졌는데도 지금 카렌과 내가 서 있는 곳은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 "아 맞아 어제 우리가 만난 것도 카렌이 약초를 캐고 있어서 만나게 된 거지. 카렌은 오크에게 잡혀가고 있었고." "예 그 때는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아 이르 누나에게 쓸 약초라고 했지? 그러고 보니 이르누나 어디가 아 픈 거야?" "몸이 좀 안 좋으세요." "아 그 그래...아 맞아 내가 집 주위에 결계를 쳐줄게. 어제 오크들은 나한테 되게 혼났기 때문에 안 올 테지만 다른 몬스터들은 특히 지능이 없는 놈들은 위험하니깐." "고맙습니다." 춥다. 정말 춥다. 내가 아무리 실버드래곤이라서 냉기에 강하다지만 이 런 추위는 정말 참을 수가 없다. 난 결국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잠깐만 카렌! 어제 분명 사과했잖아. 아직도 그 일로 화가 안 풀린 거 야? 물론 네가 아버지를 정말 좋아했다는 건 이해하지만 그때 제이크 아저씨는...저기 바람둥이여서 그래서 걱정이 좀 된 것뿐이지 제이크 아저씨한테 나쁜 감정이 있었던 건 절대 아니야!!" "그 일이라면 화 풀렸으니깐 걱정 마세요." 얼굴도 안 돌리고 말투도 여전히 냉랭하면서 화 풀렸다는 말을 지금 나 에게 믿으란 말인가? 아무리 사과를 해도 용서해줄 분위기가 아니라서 난 한숨을 쉬면서 집 주위에 결계를 치기 시작했다. 최상급 결계라면 안심이지만...아직 성 룡이 아니라서 최상급 마법은 아직 나에게 무리라 상급결계를 치기로 하였다. 상급결계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원만한 몬스터는 얼 씬도 못 할 것이다. 난 결계 치는 작업을 끝내고 약초를 다 꺼내놓고 그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있는 카렌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카렌의 뒷모 습은 아직도 화나 있습니다. 라고 말하고 있었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여름에도 눈이 내린다는 인간들 속담처럼 정말 찬바람이 휘몰아치는 분위기였다. 난 문득 궁금했던 의문이 들어서 분위기도 바꿔 볼 겸 카 렌에게 질문을 하였다. "저기 카렌...." "왜요?" "어제 날 처음 만났을 때 어떻게 내가 드래곤이라는 걸 알았어?" 내 질문에 카렌의 어깨가 흠칫하면서 떨렸다. 역시 뭔가 있긴 있구나. "그때 카렌은 내 손만 잡고는 내가 드래곤이라는 걸 알았지? 그때 난 드래곤의 기운을 완벽히 지우고 있었는데 어떻게 안 거야?" 카렌은 한숨을 쉬고는 내키지 않는 다는 말투로 내 질문에 답해주었다. "전 어렸을 때부터 이상한 능력이 있어요. 하프엘프들 중에는 가끔 이 상한 능력에 눈을 뜨는 이가 있대요. 저도 그 중에 하나고요." "이상한 능력?" "저 같은 경우에는 상대방의 몸을 만지면 그 상대방의 마음속을...생각 을 읽을 수가 있어요. 어제는 정말 죄송했어요. 허락도 없이 테이님의 생각을 잠시 엿봤어요. 보통 때는 잘 안 하는데 어제는 정말 놀라서 혹 시나 하는 생각에...아 너무 걱정 마세요. 테이님이 드래곤이라는 생각 만 읽었어요. 그 이상은 절대 엿보지 않았어요." "그 그래?" 그러고 보니 할머니한테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았다. 타 종족끼리 아이 를 낳으면 아이는 가끔 이상한 능력을 타고 태어나기도 한다고 하였다. 그것이 엄청난 힘 일수도 있고 천부적인 마력일수도 있다고 하였다. 그 이외에도 여러 특수한 능력들을 타고난다고 했는데 이런 경우는 정말 몇 백년에 한번씩 나올까 말까한 특이한 경우라고 들었다. 카렌은 그 특수한 능력 중 타인의 마음을 읽어버리는 능력을 타고 난 것이다. 난 문득 카렌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다는 능 력은 보기에는 굉장히 편해 보여도 어찌 보면 굉장히 불편한 능력이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도 있듯이 그 사람의 추악한 부분까지 원치 않게 보게 된다면 그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이겠는가? 인간불신...아니 타인 불신을 빠른 시간 내에 만들어 버리는 능력이 바로 카렌이 가진 능력인 것이다. 그래도 제이크 아저씨와 이르 누나들이 정말 잘 키우긴 잘 키 운 것 같다. 보통 그런 능력을 가졌다면 타인불신에 걸린 어두운 아이 로 컷을 텐데 저렇게 밝고 착한 아이로 컸으니깐...다만 저 삐지는 버 릇만 없다면 정말 100% 훌륭한 신부감일텐데...쩝 내가 왜 이러지? 어 제부터 자꾸 쓸데없는 생각을...이런 생각을 자꾸 하니깐 그런 불건전 한(?) 꿈을 꾸는 거지....가만 꿈? 꿈?! 꿈!!!! 난 아침에 일어났던 상황을 생각해보았다. 카렌은 오늘 아침 나를 깨우 러 왔다. 그런데 난 꿈에 취해 카렌이 깨우는 소리를 못 들었다. 어쩔 수 없이 날 흔들어 깨웠다면...그래서 카렌이 무의식중에 내 꿈을 봤다 면??!!!! 하하하 설마 아니겠지. 아닐 꺼야. 그럴 리가. 그럴 수도 있을려나? "저기 카렌...." "네?" 난 정말 힘들게 입을 열어서 말을 꺼냈다. 막상 말을 시작하였지만 정 말 물어보기는 겁이 났다. 하지만 반드시 확인을 해보아야 되었다. 그 래서 용기를 내서 물어보았다. "혹시...저기 오늘 아침에...아니라면 미안하지만...내 꿈...읽었어." ".........." 기분 나쁜 침묵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카렌의 입이 열렸 다. "테이님....저질." 그 한마디로 모든 상황이 설명되었다. 오 마이 갓!!!! 이 내가 그런 불 순한 꿈을 꾼 것도 충격인데 그 꿈이 하필 본인한테 들키다니....어쩐 지 아침에 카렌의 얼굴이 붉어져 있다 싶었더니...그러고 보니 오늘 아 침부터 카렌이 날 슬슬 피하는 눈치였지? 하긴 카렌 말대로 저질 드래 곤(?)이 옆에 있으니 피할 만도 하지...으아악 난 저질 드래곤이 아닌 데!!...그럼 어제 일은 화가 풀렸다는 말은 정말 이었구나. 하지만 어 제 화가 풀리면 뭐하나 더 심한 일로 화나게 만들었는데... "그 그건...정말 미안해. 그건 그러니깐...꿈이란 게 내 마음대로 컨트 롤 되는 것도 아니고...내 꿈에 왜 카렌이 나왔는지는 나도 모르지만.. . 으아악 어째든 미안해!!!" 난 마지막에는 거의 발악적인 수준으로 외쳤고, 그 소리에 놀랐는지 이 르 누나가 '테이 무슨 일이에요?' 라고 물으면서 밖으로 나왔다. 그러 나 지금 난 이르 누나도 볼 면목이 없었다. 난 급히 이르 누나에게 다 음에 다시 놀러오겠다는 말만 남기고 이르 누나가 미처 나에게 뭐라고 하기도 전에 워프로 내 레어로 돌아왔다. "으아악!! 이 바보 테이야!!! 니가 무슨 착한 드래곤이야?!! 이 멍청이 드래곤!!!" 난 레어로 돌아오고도 한동안 자책을 하면서 레어 바닥을 굴러다녔다. 흑 이제 카렌 얼굴을 무슨 수로 보나? 이르는 거의 도망치는 분위기로 인사를 하고는 사라진 테이가 있던 자 리를 멍하니 보고는 카렌에게 설명을 부탁하는 시선을 보냈지만 카렌은 이르의 시선을 모른 척 하였다. '바보 테이님.' 카렌은 속으로 테이에게 바보라고 하면서 고개를 푹 숙였다. 그때 이르 도 보지 못한 카렌의 얼굴은 화가 난 것이 아닌 부끄러움에 발갛게 물 들어 있었다. 카렌의 그 행동은 테이에게는 다행히도 아직 기회가 있다 는 것을 뜻했다. 하지만 그것을 알리 없는 테이는 마음에 드는 여자를 만났는데 이제 못 만나러 간다고 레어 구석에서 한숨지으며 청승만 떨 고 앉아 있었다. 일단은 '힘내라 테이' 라고 말해주어야 되나? 계속 ------------------------------------------------------------------ 드래곤 남매 8화 내 레어의 손님(6) "호호호 그런 일이 있었구나." "어머니 뭐가 우스우세요?" "이런 때 아니면 언제 웃으라고? 호호호." 카렌은 이르에게 끈질기게 아까 일을 물었고, 결국에는 약을 안 먹겠다 는 아주 유아틱한 방법까지 동원해서 결국 테이가 도망치듯이 사라진 이유를 듣고야 말았다. 카렌은 그때 테이의 꿈이 다시 생각나서 부끄러 워서 얼굴을 붉히며 덤으로 화가 나서 흥분을 하면서 아까 일을 설명해 주자 미소를 지으며 듣던 이르는 조금씩 웃기 시작했고 이야기가 끝나 자 테이블을 붙잡고 웃기 시작했다. "어머니!! 웃지 마세요!!" 카렌이 화가 나서 소리를 빽 질렀지만 한번 시작한 웃음을 참기는 굉장 히 힘든 일이었다. 이르의 웃음소리가 길어지면서 길어질수록 그에 비 례해서 카렌의 얼굴은 점점 찡그러져 갔고 나중에는 울상까지 짖게 되 었다. "어머니!" "알았어. 그만 웃을 테니 소리 좀 지르지 말렴. 쿡쿡쿡." 바로 웃음을 멈추기에는 아쉬운지 끝까지 소리 죽여 다 웃은 이르는 이 제 얼굴 표정을 고치고 거의 눈물이 나올 것 같은 카렌의 얼굴을 보면 서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어이구 우리 딸 벌써 남자가 따라다닐 나이가 되었구나." "저 지금 농담할 기분 아니에요." "이 엄마도 지금 농담하고 있는 거 아니다." "어머니!" "테이가 마음에 안 드니?" "마음에 들고 자시고가 어디 있어요?! 그런 저질 드래곤 따위!!" 카렌은 여전히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있는 이르의 손길을 피하면서 토 라져 버렸다. 이르는 목표물(?)을 잃은 손을 거둬들이고는 카렌에게 말 했다. "테이도 신체 건강한 남자니깐 어쩔 수 없는 거야. 그런 건...더구나 꿈같은 건 자기 자신이 어쩔 수가 없는 거잖니. 설령 드래곤이라고 할 지라도 꿈을 꾸는 것을 컨트롤 할 수는 없는 거야." "얼마나 저를 보면서 야한...흠흠 아무튼 그런 상상을 했으면 꿈에서까 지 그런...하여튼 그런 꿈을 꾸는 거예요? 엄마랑 레이나 이모 말만 들 어서 난 테이님이 상당히 괜찮은 남자인 줄 알았는데 실망했어요. 처음 만났을 때는..." 카렌의 테이 욕하기는 꽤 긴 시간 동안 계속되었다. 이르는 카렌이 말 을 한 귀로 흘리면서 오랜만에 들은 '레이나 이모' 라는 말에 잠시 옛 생각이 났다. 카렌은 레이나를 어려서부터 이모라고 부르며 지냈다. 카렌이 태어나고 철이 들 때쯤 레이나는 다이러스 제국의 여왕으로 올라서 처음에는 카 렌은 레이나를 여왕님이라고 불렀었다. 하지만 자신의 오랜 친구이자 이제는 자매같이 느껴지는 이르의 딸에게 여왕님이라고 불리는걸 엄청나게 싫어하는 레이나는 카렌에게 이모라고 부르기를 교육시켜서 어느새 카렌은 레이나를 자연스럽게 이모라고 부 르게 되었다. 뭐 그 교육과정(?)이 어쨌다는 것은 그냥 넘어가도록 하 자. 안 봐도 비디오니깐... 이르는 씩씩대면서 테이 욕을 하고 있는 카렌의 말이 끝날 때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한 시간 정도 지나자 그제야 카렌의 말은 끝이 났다. "....라고요!! 어머니 제 말 듣고 계세요?" "응 요약하면 테이가 멋있게 생겨서 반했는데 그런 남자 인줄은 몰라서 실망했다. 맞지?" "제가 언제 테이님을 좋아한다고 했어요?!!!" "그럼 왜 아까부터 테이를 부를 때는 꼭 님자를 붙이니? 너 말대로 저 질 드래곤이라면 님자를 붙일 이유가 없잖아." 이르의 반론에 카렌은 벙어리가 되었다. 카렌은 그냥 자연스럽게 테이 에게 님자를 붙이면서 말을 했던 건데 이르의 말을 듣고 보니 테이를 그렇게 나쁘게 보면서 님자를 붙일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카렌 은 욕을 하는 와중에도 테이에게 꼬박꼬박 님자를 붙이고 있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될까? "그 그거야....테이님은 일단은 드래곤님이시니깐...그 저기...그리고 날 구해 주셨고...어머니도 구해 주셨고..." 엄청나게 벅벅대면서 설명 같지도 않은 변명을 늘어놓는 카렌의 얼굴을 붉어져 있었다. 이르는 카렌의 말을 중간에 자르면서 말했다. "한마디로 백마 탄 왕자님이니깐?" "아 아무튼 그거랑 이거랑은 별개의 문제예요!!" "알았다 알았어. 그럼 엄마가 딱 한 마디만 할 테니 이 일은 그냥 넘어 가자꾸나." "뭔데요?" 이르는 자신의 귀여운 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번에는 카렌도 피하 지 않았다. 이르는 딸의 부드러운 머릿결을 손으로 쓸어 넘기면서 말을 꺼냈다. "테이는 카렌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나쁜 드래곤은 아니야. 오 히려 순순한 거지. 오죽하면 널 보고 마음에 들었는데도 그 말 한마디 못해서 끙끙거리다가 그런 꿈을 꾸었겠니." "그 그럴리가요. 테이님은 드래곤이고 전 하프엘프인데...." "그런 걸로 치면 엄마는 엘프고 아빠는 인간이잖아." "어머니랑 틀리다고요. 테이님은 드래곤이라고요. 드.래.곤!!" "하지만 그 전에 테이는 남자고 넌 여자잖아." "그 그거야 그렇지만..." 고개를 푹 숙이고 이제는 완전히 입을 다물어 버린 카렌의 머리에서 손 을 떼고는 손을 깍지끼고 그 곳에 머리를 올리고는 카렌을 쳐다보면서 계속 말을 했다. "지금 네가 테이를 많이 오해하고 있는 건 잘 알겠다. 하지만 다음에 테이를 만나게 되면 알게 될 꺼야. 네가 오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카렌은 아무 대꾸도 안하고 묵묵히 고개만 숙인 체 생각에 잠겨 있는 표정이었다. 이르는 사랑하는 딸에게서 옛날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이 너무나 즐거웠다. 카렌의 지금 모습은 이르가 옛날 베이트라는 이웃집 엘프 오빠를 짝사랑할 때의 그 모습이었다. 이르는 테이와 카렌이 어울 릴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카렌 말대로 테이는 드래곤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르는 테이가 카렌을 울릴 만한 짓은 하지 않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 어저께부터 카렌을 대하는 테이의 눈빛을 이미 읽어 버린 이르 는 그렇게 확신 할 수가 있었다. "자 밤이 늦었으니깐 이제 그만 자자꾸나. 아까도 말했듯이 너의 오해 는 테이를 다시 만나 보면 풀릴 테니깐." "예 어머니. 아 그전에." "응?" 이르는 이제 막 일어나다가 딸의 제지에 일어나는 그 자세에서 엉거주 춤하게 멈췄다. "약 드셔야죠. 약속했잖아요. 다 말하면 약 드시겠다고요." "그...그랬지." "금방 약 데워 올게요." 카렌은 그렇게 말하고는 주방으로 달려갔다. 효녀의 역할을 톡톡히 하 는 딸의 뒷모습을 쳐다보면서 어머니로서 흐뭇해하는 미소를 지어야 할 이르의 표정은 어두웠다. 슬픈 눈빛으로 주방에서 약을 불 위에 올려놓 는 딸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이르는 딸에게 들리지 않게 작게 중얼거 렸다. "미안하구나 카렌." 테이가 갑자기 없어지고 난 뒤 며칠이 지나도록 테이는 다시 이르 모녀 의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테이가 쳐 두고 간 결계 덕분에 몬스터들이 집에 쳐들어오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가끔 약초를 캐려고 결계 밖으로 나간 카렌은 오크들과 만나기도 했지만 미쳐 카렌이 도망치기도 전에 오크들이 먼저 걸음아 날 살려라 하면서 도망치기에 바빠서 카렌에게 쓴웃음을 짓게 만들기도 하였다. 확실히 안전하긴 했지만 자기 얼굴보 고 몬스터가 도망을 친다면 누구라도 카렌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게 당연 할 것이다. 자신이 떡대 좋고 싸움 잘할 것 같은 근육질의 전사도 아닌 데 자신의 얼굴만 보면 소스라치게 놀라서 도망가는 오크를 보고 기분 좋게 생각할 여자가 어디 있겠는가? 그렇다고 오크들이 자신에게 덤벼 드는 것을 원하는 것도 아니니 정말 복잡한 기분에 쓴웃음 한번 짓고 넘어갈 수밖에.... 그렇게 다시 몇 달이 지났다. "음 확실히 뭔가 이상해." 카렌은 캔 약초를 가방에 담으면서 중얼거렸다. 카렌의 이마는 무언가 를 생각하는지 주름이 잡혀 있었다. 하지만 원판이(?) 예쁘다 보니 그 찡그린 얼굴조차 귀엽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바로 지금 카렌의 머 리 위 까마득한 하늘 위에서 카렌을 지켜보는 존재의 생각이었다. 그 존재는 말 할 것도 없이 테이였다. 자신의 머리 위에서 테이가 자기를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 없는 카렌은 약초를 챙기면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생각했다. '오크들을 만나고 오크들이 날 쳐다보고 도망치는 것은 이해가 돼. 내 뒤에 버티고 있는 테이님 때문일 테니깐.' 그 뒤로도 약초를 캐러 결계밖에 나올 때 가끔 오크들과 마주치기도 했 었지만 카렌의 생각대로 오크들은 카렌의 얼굴만 보고는 이 산에 살고 있는 무시무시한-그들 관점으로-실버 드래곤이 버티고 있다는 생각이 나서 부리나케 도망쳐 다녔다. 그런 상황에 익숙해지자 카렌은 새로운 의문점이 떠올랐다. '왜 오크 이외의 몬스터는 만나질 못하는 걸까?' 카렌이 특별하게 몬스터를 좋아하는 엽기적인 하프엘프라서 하는 생각 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오늘도 운이 좋아 자신만 보면 도망치는 오크 이외의 몬스터를 만나지 못했다고 생각하면서 다행이라고 자위하며 지 내는 것도 하루 이틀이었다. 그런 상황이 몇 칠, 몇 주, 몇 달간 계속 되면 바보가 아니라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드는 게 당연한 것이다. 카렌이 그런 고민 중이라는 것을 알리 없는 테이는 공중에서 그 좋은 시력으로 카렌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다가 카렌이 집에 돌아갈 채비를 하자 즉시 카렌이 돌아가는 길목으로 날아갔다. 카렌에게서 좀 떨어진 테이는 지상으로 내려와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면서 주위를 살폈다. 얼 마쯤 걸어가자 오우거 두 마리가 나무를 헤치며...아니 부러트리면서 걸어오는 게 보였다. 테이는 좀 더 빠른 걸음으로 오우거에게 다가갔 고, 오우거도 테이를 발견하고는 빠른 걸음으로 테이에게 다가왔다. 오 우거의 눈빛에는 먹을 거다, 사냥감이다 라는 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테이는 그들이 손에 들고 있는 굵직한 몽둥이를 휘두르면 머리가 깨질 수도 있는 거리까지 걸어가서 몽둥이를 치켜드는 오우거들을 쳐다보았 다. 물론 드래곤 아이를 100% 폴 개방하고 쳐다보았다. 그러자 치켜든 몽둥이를 내려칠 생각도 못하고 오우거들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어 버렸 다. 테이는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선택의 기회를 줄게. 저 쪽으로 사라질레? 아니면 내 손에 죽을레?" 오우거들의 선택은 당연히 전자였다. 살려주겠다는 말에 허겁지겁 테이 가 가르친 방향으로 도망가는 오우거들에게 테이는 한마디하는 것을 잊 지 않았다. "다음에 이 근처에서 날 만나게 되면 그 때는 바로 죽는다." 이번에는 드래곤 피어를 살짝 섞어 준 말에 도망치던 오우거들은 몸을 한차례 부르르 떨었고, 도망가는 다리에 더욱 힘을 주어서 쏜살같이 사 라져 버렸다. 아마 어느 오우거들도 그 오우거 둘보다 빨리 달려 본적 이 없을 것이다. "자 그럼 계속 청소를 해볼까?" 혼자 중얼거리고는 테이는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요 몇 달간 테이는 청소라는 이름 아래 카렌이 약초를 캐러 올 때마다 주위의 몬스터들이 카렌에게 가까이 가지 못하도록 공갈 협박을 하고 다녔다. 공갈 협박이 먹히는 어느 정도 지능을 가진 몬스터들은 순순히 협박대로 카렌 주위 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고, 지능이 없는 몬스터들은 테이에게 청소(?)를 당하였다. 몇 달전 이르를 만나고 이르의 딸인 카렌을 만나서 카렌이 첫눈에 마음 에 든 테이는 실수를 하는 바람에 도저히 얼굴 똑바로 들고 카렌을 쳐 다 볼 용기가 나지 않아서 카렌이 약초를 캐러 결계 밖으로 나올 때마 다 이렇게 수고를 해주고 있었다. 그냥 남자답게 터프하게 사과를 하면 끝날 일인 것을 소심한 성격의 테이는 카렌의 얼굴을 똑바로 볼 용기가 나지를 않았다. 그래도 카렌이 잘못되는 것을 원치 않는 테이이기에 이렇게 몰래 따라 다니면서 카렌을 지켜주고 있는 것이다. 그 날도 그렇게 카렌이 집에 돌아가는 길을 미리 청소(?)중인 테이에게 갑작스런 일이 터졌다. "꺄아아아악!" "카렌?!" 좀 뒤쪽에서 잘 오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카렌의 비명 소리가 들린 것이다. 테이는 번개같은 속도로 몸을 돌려서 비명이 터진 방향으로 달 려갔다. '젠장 좀 더 조심했어야 되는 건데. 눈치챌 것 같아서 카렌 주위에 아 무것도 놔두지 않은 게 실수였어. 실프 정도는 주위에 놔두는 건데.' 테이는 엘프의 피를 가지고 있는 카렌이 정령의 기운을 눈치챌 것 같아 서 실프를 카렌 곁에 놔두지 않은걸 엄청나게 후회하면서 달려갔다. 테 이가 카렌의 비명 소리가 점점 더 커진다는 생각이 들 때 주저앉아 있 는 카렌이 눈에 보였다. "카렌!!" "테이님!!" 카렌은 테이를 쳐다보고는 테이를 불렀다. 테이는 즉시 카렌의 앞을 막 아서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카렌 뭐야? 어떤 몬스터야? 내 오늘 이 놈의 몬스터를 그냥...." 갈갈히 찢어 죽여 버리겠다는 말은 그 상황에서도 용케 꺼내지 않고 주 위를 살피는 테이에게 뒤에 주저앉아 있는 카렌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 려 왔다. "테이님..무 무..." "무? 무 뭐야? 어떤 몬스터야? 어디 있어?" "무당벌레가 제 손에 앉았어요." "뭐?" 테이가 황당함에 눈을 크게 뜨고 카렌을 바라보자 카렌은 어느새 일어 나서 자신의 손에서 기어다니는 빨간 무당벌레를 보여주면서 말했다. "이 얘가 갑자기 내 손에 날아와서 놀랐지 뭐예요. 아 귀여워라."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기어다니고 있는 무당벌레를 보면서 즐 거워하는 카렌을 보자 테이는 힘이 쭉 빠지는 기분을 느끼면서 그대로 쓰러졌다. "괜찮으세요? 테이님? 왜 그러세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럼 별일 없는 것 같으니깐 난 이만 가 볼게. " 그렇게 말한 테이는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나 웃을 털고는 카렌에게 작 별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그러나 카렌에게 뒷덜미를 잡혀서 그 자리에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테이님 어딜 가시려고요. 저랑 조금 이야기 좀 할까요?" 테이는 카렌의 말에 울상을 지으면서 생각했다. '젠장 당했다.' 테이는 여자란 종족을 초월해서 전부 다 불여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 다. 계속 ------------------------------------------------------------------ 드래곤 남매 8화 내 레어의 손님(7) 지금 나는 카렌과 산책을 하다가 눈에 띠는 큰 바위를 발견하고는 저기 앉아서 이야기하자는 카렌에게 끌려가고 있었다. 카렌은 편편한 바위에 먼저 앉고는 나에게도 앉을 걸 권했다. 난 이제부터 카렌의 말에서 어떤 말이 떨어질지 불안한 기분이 들면서 카렌의 맞은편에 앉았다. "테이님." "으응?!" 윽 벌써부터 카렌의 말 한마디에 깜짝 놀라다니...그런데 내 걱정과는 달리 카렌은 아직 내가 걱정하고 있는 말을 하지는 않았다. "왜 그렇게 앉으세요? 그렇게 무릎 꿇고 앉는 게 편하세요?" 젠장 나도 모르게 완전히 누나에게 당하기(?) 직전 용서를 비는 자세로 앉았잖아. 카렌의 지적에 잽싸게 편하게 앉긴 했지만 전혀 편하지 않았 다. 돌 방석에 앉은 느낌이 이런 느낌일까? 아 지금 돌 위에 앉은 거니 돌 방석에 앉은 느낌이 맞구나. 내가 자세를 고쳐 앉자 카렌은 잠시 생긋 미소를 짖더니 즉시 미소를 싸늘하게 바꾸었다. 아 여자의 저 무서울 정도의 속도 변화여.... 카렌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변하자 난 주위에서 차가운 냉기가 흐르는 느낌에 몸을 움츠렸다. 가만 생각해 보니 난 실버 드래곤이잖아. 그런 내가 이런 차가운 분위기에 몸을 떨다니 있을 수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 하면서 똑바로 카렌의 눈을 당당히 쳐다보았다. 10초 후 난 슬며시 카렌의 시선을 피했다. 욕을 하려면 해라. 하지만 좋아하는 여자의 차가운 눈빛을 마주 대할 용기가 있는 자만 욕할 자격 이 있다는 것을 미리 밝혀 두는 바이다. 흑 카렌 너무 무서워. 귀찮으니 따라다니지 말라는 소릴 하면 어떡하지? 여기는 엄청 위험 한 데라서 카렌 혼자 돌아다니게 할 수가 없는데... "테이님!" 난 카렌의 약간 목소리가 커졌다는 걸 느끼고 카렌을 쭈뼛거리면서 쳐 다보았다. 아마 내가 딴 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 여러 번 날 불렀던 것 같다. "무슨 생각하세요?" "아 아니 생각은 무슨...." "아 아. 혹시 그때 꾸신 꿈 생각?" "절대 아니야!!" 난 펄쩍 뛰면서 부정했다. 그렇지 않아도 그 생각만 나면 내가 왜 그랬 을까 하면서 자책하며 레어 바닥을 굴러다니는데 지금 카렌을 앞에 두 고 그런 생각을 할 리가 없지 않은가? 절대 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 다. 그때 꿈에서 본 카렌의 맨 어깨는 참으로 매끄럽고 부드럽게 보였 다든지, 카렌의 가녀린 몸을 으스러지도록 안아 보고 싶었다든지, 그 붉게 변한 입술에 키스를 하고 싶었다는 생각 따위는 절대!!....젠장 카렌이 말 꺼내는 바람에 생각 해 버렸다. 그래 까놓고 말하면 그 뒤 레어에서 멍하니 있을 때면 저런 생각이 나도 모르게 나서 내가 생각하 고도 화들짝 놀라서 레어 바닥 굴러다녔다. 이제 됐냐? 신체 건강한 남 자라면 이런 생각이 드는 건 당연한 거잖아!! 남자라면 날 욕할 자격이 없다!! 여자라면....그냥 넘어가자. 지금은 이런 이야길 할 때가 아니 니깐. "흐음" 내가 펄쩍뛰고 부정을 하자 카렌은 못 미덥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 고 그 시선에 내 등줄기에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좋아요. 그건 그렇다 치고 넘어가고, 테이님 요 몇 달간 저 뒤를 따라 다니면서 날 지켜 주셨죠?" "으응..." "왜 내 앞에 직접 나타나서 도와주겠다고 안 하셨죠?" "........" 젠장 미안하고 부끄러워서 안 했다고 어떻게 말하라고 카렌은 심술쟁 이. 그런 이유로 아무 말 대답도 못하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버린 내가 답답했는지 카렌은 대답을 재촉했다. "테이님 왜 아무 말도 못하는 거예요? 이유가 뭐냐니깐 요?" "미...." "미?" "미안해서....차마 카렌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기가 미안해서..." 힘들게 사과를 한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아아 여자 앞에서 한없이 약 한 그대여. 그대는 사랑에 빠진 남자이니라...한참 동안 침묵이 계속되 었다. 실제로는 몇 분 지나지 않았지만 나에게는 그 시간이 지금까지 살아온 그 어떤 날보다 더 길었던 것 같다. 아 정정하겠다. 두 번째다. 첫 번째는 뭐냐고? 당연히 티아 누나에게 구타당할 때다. 그럴 때는 왜 그렇게 시간이 안가고 누나의 구타는 멈 출 줄 모르던지.... "풀렸어요." "에?" 한참 동안 말이 없던 카렌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 내용이란. ..난 깜짝 놀라서 카렌을 쳐다보았다. 카렌은 나처럼 얼굴을 붉히고, 그러면서도 이르 누나에게서 물려 받았을꺼라고 의심이 들지 않는 그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번 나에게 말해 주었다. "화는 이미 풀렸다고요." "저, 정말?" "그럼 내가 그런 일로 몇 달간이나 삐져 있을 여자로 보이세요?" 난 힘차게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내 레어가 생겼을 때보다 훨씬 더 큰 기쁨을 느꼈다. "정말 용서 해주는 거지?" "용서하고 뭐고 가 어디 있어요. 테이님은 그 동안 날 지켜 주었잖아 요. 제가 감사를 드려도 모자랄 판인데요." "야호!!" 난 너무나 기뻐서 두 손을 하늘로 쳐들고 환호성을 질렀다. 지옥에서 천국으로라는 기분이 어떤 기분인지 난 이때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아 하지만..." 천국에서 다시 지옥으로 빠지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절실히 느끼게 만 드는 카렌의 제동이었다. 젠장.... "벌써부터 울상 짓지 말아요. 테이님이 울상 지을 내용은 아니니깐 요. " "그럼 뭔데?" "이제부터 저 따라다니면서 지켜 주지 않으셔도 되요." 젠장 귀찮으니깐 따라다니지 말라는 뜻이잖아. 그게 뭐가 울상 짓지 않 아도 되는 내용이야? 울고 싶어지는 내용인데....그러나 말이라는 것은 끝까지 들어보고 판단해야 되는 거였다. "전 삼일에 한번씩 약초를 캐러 다니시는 거 알고 있죠?" "응." "그러니깐 내가 약초를 캘 때....저기 같이...다녀 주실 수 있죠?" 난 내 귀를 의심했다. 그러나 잘 들리는 드래곤 귀를 왜 의심해야겠는 가? 그녀는 지금 분명 나와 같이 다니고 싶다고 말한걸 이 귀로 똑똑히 들었다. "응! 난 혹시 카렌이 못 들었을까 싶어서 다시 한번 더 크게 대답했다. "당연하지 당연히 내가 같이 다녀 줄게. 널 지켜 줄게." 카렌은 눈부실 정도로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난 그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지금부터 잘 부탁드려요. 테이님." "응 나만 믿어!" 그렇게 난 카렌의 손을 잡고 카렌을 집으로 데려다 주었다. 이제부터 삼일에 한번씩 카렌과 같이 이 숲에서 데이트(?)를 할 수 있다는 생각 에 난 또 다른 궁금증을 까맣게 잊어 먹고 있었다. 다시 만나면 반드시 물어 보겠다고 생각했던 그 의문을.... 계속 ------------------------------------------------------------------ 드래곤 남매 9화 티아 깨어나다! 그리고...(1) 나이르 산맥은 다이러스 제국과 가이라가 왕국을 이어주고 있었다. 나 이르 산맥의 절반씩을 다이러스와 가이라가가 나누어 갖고 있지만 워낙 에 험하고 산이 울창하여 가지고만 있다 뿐이지 실질적으로는 쓸모가 없는 산들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국경선이라고 할 수 있는 인간들의 세 력권이 가로질러 있는 티아와 테이가 사는 산은 전략적 상황으로는 중 요한 산이지만 도저히 전쟁용으로 써먹지 못할 정도로 산이 험하고 숲 이 울창해 지난 몇 백년간 사람의 손길이 닫지 않았고, 인간들의 지도 에만 단지 여기는 내 땅 저기는 너 땅씩으로 나누어져 있을 뿐이었다. 그런 산의 가이라가 쪽 골짜기 아래 커다란 동굴에서 이 세상 모든 생 물체 중 최강이라고 불리는 존재가 조용히 숨을 쉬며 수면을 하는 중이 었다. 눈이 부신 은색의 비늘은 천장에 붙은 마법의 구에 의해 그 빛이 더욱 번쩍거리고 있었다. 올해 406살의 해츨링인 티아는 한순간 몸이 꿈틀대나 싶더니 곧 고개를 든 다음 긴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희뿌옇게 보이는 눈을 몇 번 깜박거 리면서 중얼거렸다. "하암...깜박 잠이 들었네..." 그렇다. 테이가 잘 못 알고 있었던 부분이 있었다. 티아는 동면에 들어 간 게 아니었던 것이다. 티아는 레어도 새로 옮기고 새 생활이 시작된 시점에서 정말 재미있는 일이 없을까라는 고민에 들어갔고, 고민에 고 민을 거듭하다 보니 그만 깜박 잠이 들고 만 것이었다. 그 깜박이 6년 간이나 계속 되어서 테이는 티아가 한 50년 동면에 들어간 걸로 착각을 해 버린 것이다. 아무튼 6년 간 깜박(?) 잠이 든 티아는 다시 한번 길게 기지개를 폈다. "으라찻! 테이는 지금 뭘 하고 있으려나?" 티아는 가만히 눈을 감고 테이의 마음을 느껴 보았다. 테이는 눈치채지 못한 티아와 테이의 교감 능력. 처음 티아가 이 능력을 알게 된 건 막 태어난 테이를 봤을 때였다. 너 무나 귀여운 동생이라는 존재에 마음이 빼앗겨 있던 티아는 눈앞에 있 던 테이의 마음이 느껴졌다. 두려움과 호기심에 가득한 마음으로 엄마 와 자신을 쳐다보는 테이의 마을이 느껴졌다. 놀라움과 호기심과 동생 의 사랑스러운 기분에 복잡해 하던 티아는 문득 동생도 나와 같이 나의 마음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 자 소스라치게 놀란 티아는 마음을 닫고 테이를 퉁명스럽게 대했다. 그 후부터 티아는 테이가 자신의 기분을 마음을 느낄까 봐 테이를 대할 때 는 항상 퉁명스럽게 대하거나 괴롭혀 되었다. 덕분에 테이는 티아에 대 해서는 오직 공포라는 감정만 갖게 되었다. 어쩔 때는 그것이 티아의 마음을 괴롭히기도 하였지만...'뭐 날 무서워 하면서 떠는 것도 꽤 귀여워 보이네.'라는 생각을 하는 바람에 테이 괴 롭히기에 완전히 취미를 붙이게 되어 버렸다. 그렇게 테이에게 이 능력 을 숨긴 체 400여 년의 시간이 흘렀고, 잠에서 깨어난 티아는 그 능력 으로 사랑스러운 동생의 마음을 느껴 보았다. 빠직! 순간 티아의 이마에 힘줄이 돋았다. "무지 즐거워하고 있잖아. 이 녀석 누나가 잠들었으니 해방이라 이건가 ? 이런 버릇없는 자슥이..." 동생이 사랑스럽다는 생각은 어느새 명함도 내밀지 못하고 마음속 깊이 사라져 갔다. "뭐 뭐야 이게!!!" 티아는 경악을 해서 눈을 번쩍 떴다. "잘못 느낀 건가?" 티아는 다시 한번 테이의 마음을 느껴 보았다. 그러나 잘못 느낀 게 아 니었다. 테이의 마음은 지금 틀림없이 핑크색으로 물들어서 즐거워하고 있었다. 테이의 지금 마음 색이 뭘 말하는 건지 티아는 똑똑히 알 수 있었다. "이 놈의 바람둥이 해츨링이!!! 어디서 여자를 데려와서 연애 놀음이야 !!! 아직도 한참 어린것이!!!" 엄연히 따지자면 티아는 테이와 똑같은 나이다. 단지 티아가 30분 먼저 태어났다 뿐이지...하지만 티아는 테이를 항상 나이보다 몇 배는 어리 게 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 테이의 마음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테이....죽었어!!!!" 점점 짙어만 가는 핑크빛 테이의 마음에 이성을 잃은 티아는 소리를 지 르고는 곧 인간 모습으로 현신 하였다. 처음 변신 했을 때처럼 발목까 지 오는 긴 은발의 머리와 간편한 은색의 원피스를 입은 이제는 16세에 서 17세 정도의 시집가도 될 처녀(?)의 모습으로 변한 티아는 즉시 테 이의 기운이 느껴지는 곳을 좌표로 잡고 워프를 시도하였다. "꺄아! 물이 너무 시원해요!" 겨울이 가고 봄이 와서 쌓인 눈이 녹아 내리자 여기저기서 봄의 생명의 탄생을 알리는 새싹들이 돋아날 때 약초를 캐러 가자는 카렌의 부탁에 난 흔쾌히 데이트(?)를 승낙했다. 겨울 동안은 약초를 찾기가 힘들어서 그동안 카렌이 열심히 모아 둔 약초로 겨울을 지내고, 봄이 오자 오랜 만에 카렌과 숲속으로 들어온 평화로운 한때였다. 약초는 이미 다 캐서 카렌의 가방에 차곡차곡 넣어져 있었고, 손을 씻으러 냇가로 왔을 때 카렌은 아직 물이 차가우니 그만두라는 내 만류에도 불구하고 신발을 벗고는 냇가에 발을 담그고 즐거워하고 있었다. 난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물에 젖지 않 기 위해 치마를 살짝 들어올린 카렌의 새하얀 맨다리가 내 눈을 즐겁게 해주고 있었다. 커험! 잠시 말이 헛소리가 나왔다. 잊어 주기 바란다. 카렌과 같이 다 닌 요 몇 달간 우리 사이는 점점 더 가까워졌고, 약초를 캐기 위해 카 렌의 집을 들락거리다가 아예 여기서 살지 않겠냐는 이르 누나의 제안 에 어쩔 수 없이....그래 속마음 까놓고 말하면 정말 기쁘게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때 같이 산다는 그 말에 볼을 발그레 붉히는 카렌이 얼 마나 귀엽던지....만약 이르 누나가 곁에 없었다면 다짜고짜 덤벼들었 을지도...험험 내가 무슨 소리를... 아무튼 카렌과 이르 누나가 지었다는 조금은 부실한-솔직히 그 둘이서 그 정도로 집을 만든 것도 대단한 거였다.-오두막을 내 레어에서 조금 떨어진 산에 사는 드워프들에게 부탁-협박이 쬐금 들어갔다.-해서 내 방을 만들고 좀더 튼튼하고 좀더 크게 지었다. 일주일 안에 해 놓으라 는 나의 협박...이 아니라 부탁에 드워프들은 내 기대를 뛰어넘어서 아 담한 이층집을 지어 주었다. 2층에 각각 나와 카렌의 방이 있고, 몸이 불편한 이르 누나는 1층에 햇볕이 잘 드는 방이 지어졌다. 그리고 부엌 과 식당, 거실까지 만들어 놓고 이 정도면 어떠냐고 묻는 드워프들에게 난 너무나 고마워서 공짜로 시켜 먹으려던 생각을 고치고 보석을 한 주 먹씩 줘서 돌려보냈다. 뭐 오두막 하나 지은 것치고는 너무 많이 받았 다고 말하면서 절반만 가져가긴 했지만....젠장 그 절반도 사양하면 안 되나? 그렇게 해서 카렌과 나의 신혼집...이 아니라 내 영역에 별장 겸 이르 누나와 카렌의 집이 새롭고 멋있는 모습으로 지어졌다. 참 요즘은 눈을 뜰 때마다 행복에 겨워서 어쩔 때는 너무 두려울 지경 이었다. 누군가에게 자랑하지 않고는 도저히 못 배길 것 같으니 자랑이 나 좀 하자면... "테이님 아침이에요. 일어나세요." 내 방에서 새색시처럼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아침마다 날 깨워 주는 카 렌의 옥구슬 같은 목소리로 하루를 시작해서 카렌이 만든 식사로 아침 을 먹고, 오전에는 검술 연습을 하거나 나무를 해거나 해서 오전을 보 냈다.-귀찮으니 마법을 사용해서- 그 동안 카렌은 약초를 말리거나 그 걸로 약을 달이고, 집안을 청소하였고, 오후에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거나 삼일에 한번씩 약초를 캐러-나에게는 그것이 데이트 같다.-숲속 을 거닐기도 하였다. 그리고 저녁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그리고 서로의 방에 들어가기 전에 굿나잇 키스....는 아직 한번도 못했다. 젠장.... 하지만 잘 자라는 인사를 약간은 수줍은 듯이 하는 카렌의 미소를 보는 걸로 하루를 마치고 꿀맛 같은 수면에 취하는 게 내 요즘의 일과다. 언젠가 차를 마실 때 이르 누나가 '요즘 둘이 꼭 신혼부부 같다.'는 말 을 농담 삼아 해서 한동안은 카렌이 서먹하게 대한 적도 있다. 하지만 그 부끄러워서 날 피하는 서먹함마저 내 눈에는 너무 귀엽게 보였다. 그렇다 이것이야 말로 콩깍지 200% 씌인게 아니고 뭐란 말인가? 콩깍지가 씌었던 콩깍지를 눈에 쳐 발랐던 아무튼 나는 지금의 생활이 너무나 행복했다. 크하하하 지금 이 세상 그 어떤 남자보다도 난 정말 행복 할거라고 생 각한다. 창조신이여 감사합니다. 당신의 뜻을 이제야 알겠습니다. 고통 뒤에 찾아오는 열매가 이렇게나 달콤하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가만 고통?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난 그 동안 까맣게 잊고 있던 티아 누나의 생각 이 문득 났다. 만약 티아 누나가 깨어난다면....난 등줄기에 흐르는 식 은땀을 느끼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직 동면에 들어 간지 6년밖에 안 지났는데 벌써 깨어날 리가 없다. 앞으로 40년 이상은 누나가 깨어날 리가 없을 것이다. 40년이라....흐흐흐 일(?) 치르고도 충분히 남아도 는 시간이구나. 음 내가 인간으로 폴리모프 해서 살고 있으니 카렌과나 사이에서 아이가 생기면 그 얘는 쿼터 엘프가 되는 것인가? 그냥 엘프 로 변해서 좀더 엘프의 피와 가까운 아이를 만들까? 가만 아들이라면 이름은 뭐로 짖지? 아냐 딸이 더 좋아. 카렌을 닮은 딸을 하나 낳아서. ...음 이름은 내 이름과 카렌 이름을 따서 루렌? 이상하다. 루엔? 이건 좀 낮지만...남자 이름 같아서 좀 그렇고...음 뭐 좀더 귀여운 이름 없 을까? "앗! 침을 흘리면서 뭘 생각 하는 거예요?" 카렌의 외침에 난 퍼뜩 현실로 돌아왔다. 이런 너무 생각이 앞서갔다. 내 상상대로 되려면 일단 청혼부터 하고 그리고 또.... "우 테이님 저질!" "헉!" 난 혹시나 카렌이 내 마음을 읽었나 싶어서 놀라서 옆을 쳐다보았다. 다행히 카렌은 냇가에서 나와서 치마를 풀어서 내리고 있었다. "내 맨다리 보면서 침 흘렸죠?" "아, 아냐!" 난 강하게 부정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카렌은 일단 저질스런 일을 당하 거나 하면 무섭게 화를 내곤 했다. 언젠가는 실수로 카렌이 옷을 갈아 입고 있을 때 모르고 들어갔었는데 얼마나 무섭게 화를 내던지...지금 생각하면 티아 누나와 만만치 않은 무서움을 자랑했었다. 단지 다른 점 이라면 주먹이 날아오는 게 아니라 말을 안 한다는 것이다. 그때는 거 의 한달 간 나와의 대화를 피하고 필요한 말만 하는 차가운 모습으로 대했었다. 두 번 다시 그런 끔직한 경험은 절대 하기 싫다. "절대 아니야! 정말 아니야! 난 그저..."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 라죠?" 쓰벌 어느 할 일 없는 자식이 그 딴 말을 만들어 가지고...뭐 솔직히 맨다리보고 헤벌레 한게 아니라 헤벌레 할 상상을 해서 조금 찔리는 게 있긴 하지만...아무튼 카렌의 표정은 삐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난 이 상황을 어떻게든 모면하려고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 나갔다. "그게 아니야! 그냥 카렌과 내가 결혼하면 어떤 생활이 날 기다릴까 하 고 생각하다 보니!! 허걱!" 난 급히 입을 막았지만 그렇다고 이미 밖으로 나온 말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밖으로 튀어 나간 말은 공기를 타고 정확하게 카렌의 귀에 들어갔다. 그 증거로 카렌은 귀 끝에서부터 목덜미까지 새빨개진 얼굴 로 고개를 숙였다. 우리 둘은 잠깐동안 아무 말도 못하고 시선을 피했다. 꽤 시간이 지난 다음 카렌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 "저기...시간이 늦었어요. 이제 집에 가야죠." 말하면서도 내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나 역시 카렌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어서 시선을 피한 체... "어 그래." 라고 대답 할 수밖에 없었다. 젠장 상상으로는 미성년자 관람 불가도 상상하면서....커험...아무튼 못하는 상상이 없으면서 현실에 부딪치면 왜 이리 용기가 안 나는지... 우리는 아무 말도 안하고 기계적으로 짐을 챙겨서 집으로 발걸음을 돌 렸다. 그렇게 어색한 침묵이 계속되는 것을 참지 못한 나는 머릿속을 필사적으로 정리해서 말을 꺼내었다. "근데...갑자기 생각난 건데 이르 누나는 무슨 병에 걸린 거야?" 뭐 대화를 할 만한 거리가 없을까 필사적으로 고민하던 내 머리가 선택 한 것은 항상 궁금해하면서도 물어 보지 못했던 질문이 생각나서 무심 코 물어 보았다. 그런데 별 생각 없이 한 질문에 카렌은 발을 멈추고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숙여 버렸다. "카렌?" 카렌은 내 부름에도 대답하지 않고 몸을 떨었다. 난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르 누나의 병이 뭔지는 몰랐지만 나날이 약해져 가는 이르 누나가 진작부터 이상하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설마... "카렌...." 나직이 부르는 내 두 번째 부름에 카렌은 그제야 얼굴을 들고 금방이라 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은 눈으로 날 바라보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카렌의 입이 열리자 난 머리에 강한 충격을 느끼면서 서서히 쓰러졌다. 카렌의 놀란 비명 소리가 들리는 듯 하면서 난 정신을 잃었다. 너무나 크나큰 충격에.... 계속 ------------------------------------------------------------------ 드래곤 남매 9화 티아 깨어나다! 그리고...(2) 쿵~~~ 경쾌한(?) 울림이 숲 전체에 울려 퍼졌다. "으 엉덩이야...이런 너무 흥분해서 좌표 설정을 잘못했다." 커다란 소리를 낸 장본인인 티아는 일어나면서 아픈 엉덩이를 만지며 인상을 찡그렸다. 급한 김에 좌표 설정을 조금 급하게 설정했더니 지상 에서 6미터 가량 떨어진 공중에 워프하는 바람에 미처 레비데트를 쓸 여유도 없이 그대로 지상으로 추락해 버린 것이다. 일단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자 티아는 주위를 둘러보았고, 곧 금발의 긴 생 머리를 가진 귀엽게 생긴 여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여자는 공중에서 갑자기 나타난 티아에 놀랐는지 손으로 입을 가리고 경악으로 눈을 크게 뜨고 티아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여자를 보자 티아의 머리 는 재빠르게 회전하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테이가 사랑에 빠져 있다. 난 화가 나서 테이가 있는 곳으로 워프했 다. 워프한 곳에 저 여자가 있다. 결론. 저 여자는 테이가 좋아하는 여 자다. 정리 끝.' 거기까지 정리가 되자 티아는 정말로 사납게 그 여자를 노려보았다. 여 자는 이제는 겁에 질려서 티아를 쳐다보았다. '감히 내 장난감(?)을 뺏어 갈려고 했다 이거지? 너는 일단 테이 먼저 족치고 나서 보자.' 라고 생각한 티아는 겁에 질려서 아무 말도 못하는 여자에게서 시선을 떼고 주위를 둘러보면서 테이를 찾았다. 그런데 졸지에 티아 전용 장난 감(?)이 되어 버린 테이는 주위에 보이지가 않았다. "이상하다 분명 이 근처에서 테이의 기운이 느껴져서 왔는데....어이 거기 여자!" 티아는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금발이 여자에게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금발의 여자. 카렌은 티아가 부르자 반사적으로 "예?"라는 말을 하면서 티아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금방 티아의 살벌한 시선에 고개를 숙여야 되었다. "테이 어디 있어?" "네?" "테이 이 자식 어디 있냐고?" 듣기에 따라서는 바람 난 남편 내 놓으라는 티아의 으름장에 카렌은 머 뭇대다가 대답해 주었다. "티아루아님...발 밑예요." "뭐?" 티아는 카렌의 말에 자신의 발 밑을 쳐다보았다. 그 곳에는 테이라고 생각되는 물체(?)가 쓰러져 있었고, 티아는 그 테이를 밟고 있었다. 아 까의 상황과 맞추어 보면 티아는 테이의 바로 머리 위에 워프를 하였 고, 떨어지는 티아의 무릎에 찍혀 테이는 그대로 기절하고 테이 덕분에 티아는 그렇게 크게 충격을 받지 않았던 것이다. "어쩐지 높은데서 떨어지고도 좀 덜 아프다 했네. 잠깐...너 방금 날 티아루아님이라고 불렀지?" 티아는 자신의 이름을 카렌이 알고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서 카렌을 쳐다보았다. "네 실버 드래곤 티아루아님." "내 정체는 어떻게 안 거지? 흥 아니야 보나마나 테이 녀석이 말했겠 지." 티아의 멋대로의 추측에 카렌은 고개를 저었다. "아닌데요." "아니야? 그럼 어떻게 내가 드래곤인 것과 내 이름을 알고 있는 거지?" "어머니한테 들었어요." "어머니?" "저희 어머니는 이르니아라는 이름을 사용하시는 엘프입니다." "이르니아? 엘프.....서 설마 이르 언니? 너 이르 언니의 딸이야?" 티아의 눈은 이제 놀라움으로 커졌다. 그래도 테이보다는 정신력이 강 한 티아는 곧 정신을 차리고 궁금한 것부터 차례로 질문했다. "이르 언니가 왜 이런 곳에 있는 거야?" "저기 여기서 살고 있습니다." "살아? 여기에서?" "아 네..." "흠 그래 그건 그렇다 치고....아버지는 누구야? 내가 아는 사람...아 아니 엘프겠군. 그럼 내가 모르는 엘프겠지. 뭐 아는 엘프야 이르 언니 밖에 없으니깐." 이번에도 티아의 멋대로의 추측에 카렌은 고개를 저어서 틀리다는 걸 확인시켜 주고 티아가 묻기 전에 먼저 대답하였다. "저는 하프엘프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인간이고요....저의 아버지는. ...제이크 드 레이세스입니다." "제이크 드 레이세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네. 아니 제이크씨랑 이름 이 똑같다. 근데 어떤 귀족이랑 결혼한 거야? 이르 언니 이제 인간 남 자라면 질색을 할 줄 알았는데." "티아님이 알고 계시는 제이크씨가 제가 말한 저의 아버지 맞는데요." 티아는 잠시 카렌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눈만 끔벅거리다가 곧 카렌 의 말뜻을 알아차리고는 정말로 태어나서 처음으로 엄청나게 놀라워했 다. 입을 있는 대로 크게 벌리고 카렌을 손으로 가르치면서 무언가 엄 청 말하고 싶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말은 결국 나오지 않았고, 티아는 답답해서 가슴만 치고 있을 때 카렌이 티아가 알고 싶어하는 대 답을 해주었다. "저의 이름은 카렌입니다. 저의 어머니는 엘프 이르니아이시고, 아버지 는 티아루아님도 잘 알고 계신 제이크씨가 저의 아버지입니다." 또박또박한 카렌의 말에 티아는 입만 헤 벌리고 쳐다보다가 곧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곧 생각을 정리하고는 카렌에게 질문을 하였다. "카렌이라고 했지." "네." "너의 아빠. 그러니깐 제이크씨....결혼 후에 바람 안 피웠니?" "........" 원래대로라면 카렌이 우리 아빠는 그런 사람 아니에요! 라고 소리를 질 러야 정상이겠지만 어쩜 남매끼리 저렇게 똑같은 질문을 할까 하는 생 각이 먼저 들어서 잠시 말을 잊었고, 덕분에 화내야 될 타이밍을 놓쳐 버렸다. 하지만 초롱초롱한 눈을 빛내면서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티아 에게 일단 대답은 해줘야 될 것 같아서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아버지가 젊은 시절에는 조금...그런 경향이 있어서 착각하시는 건 이 해를 하겠는데요. 결혼 후에는 절대 그러시지 않았어요. 얼마나 엄마를 사랑하고 절 아껴 주셨는데요." "한 마디로 공처가에 팔불출이었구나." "........." "이봐 이봐 그렇게 노려보지마. 우리 아빠도 똑같단 말이야." 티아의 변명에 카렌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티아루아님의 아버지도 그런가요? 그 저기..." "공처가에 팔불출."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하는 카렌 대신 자신의 아버지를 다시 한번 씹어 준(?) 티아는 다시 눈을 빛내면서 질문했다. "저기 저기. 제이크씨가 어떻게 프로포즈했어? 이르 언니는 보통 방법 으로는 안 넘어 갔을 텐데? 아 너 이야기 듣고 나서 우리 엄마 아빠 연 애 시절 이야기도 해줄게. 응 제발 말해 주라." 티아의 말에 카렌은 눈을 빛내면서(왜?) 즉시 제이크의 파란만장한(?) 이르에게 사랑 얻기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여자들이 수다를 오래 떨게 만드는 3대 수다 거리 유행 이야기, 남자 이야기, 남에 사랑 이야기 중 남의 사랑...아니 부모님 연애 시절 이야기가 시작되고 둘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말하면서 깔깔대며 웃었다. 그렇다 그 둘은 완전히 잊어 먹고 있었다. 티아 발 밑에 깔려서 기절한 테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완전하게 잊어 먹고 수다에 열중하고 있었다. 계속 ------------------------------------------------------------------ 드래곤 남매 9화 티아 깨어나다! 그리고...(3) 티아 누나와 이르 누나는 지난 이야기를 즐겁게 하는 중이었고, 카렌은 가끔 있는 티아 누나의 질문에 대답 해주면서 대화에 참가하고 있는 중 이었다. 그 셋에게 소외당한 나는 아픈 허리를 문지르며 인상을 쓰고 있었다. "뭐야? 남자 자식이 사과를 했으면 됐지. 아직도 삐져있냐?" 티아 누나가 문득 날 보더니 인상을 쓰고 있는 내가 마음에 안 드는지 한마디하였다. 사과라...그래 기절한 나를 실컷 밟고 있다가 수다에 정 신 없던 카렌이 겨우 나에 대해서 생각한 덕분에 풀려나자 대뜸 '어머 왜 내 발밑에 네가 있는 거니? 아무튼 미안하다.'라고 한 말도 사과라 고 한다면 사과겠지...만 난 그냥 아 그래 누나. 이제 안 삐질 게 하고 넘어갈 수가 없었다. "누나! 왜 하필 밟아도 허리를 밟고 있었냐고? 남자는 허리가 생명인데 이렇게 만들어도 되는 거야?!" 이 나의 외침에 세 명의 여자들은 반응이 제각각이었다. 이르 누나는(애 하나 딸린 주부) 여유 있게 차를 마시면서도 나의 이야 기에 관심을 표했고, 티아 누나는(철면피에는 당할 자가 없는 자) 눈을 빛내면서 호기심을 나타냈고, 카렌은(알건 다 아는 나이)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체 고개를 푹 숙였 다. 근데 반응들이 왜 저러지? "호오....허리가 생명이라...왜 허리가 생명인데?" 티아 누나의 질문에 카렌은 제발 그런 질문을 하지 말아 달라고 티아 누나의 팔을 잡고 작게 속삭였다.-물론 내 귀에는 똑똑히 들렸다.- 분 위기가 이상한 게 내가 실수를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응 테이야 남자는 허리가 왜 생명인데?" 카렌의 부탁은 싹 무시한 체 계속되는 누나의 질문에 난 얼떨떨한 표정 을 지으며 말했다. "아빠가 그러던데 남자는 허리가 생명이라고. 남자는 허리가 잘못되면 죽는 거 아니었어?" 내 말이 끝나자 이르 누나는 의미를 알 수 없는 한숨을 푹 쉬었고, 카 렌은 다행이다 라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티아 누나는 한심하 다는 뜻의 한숨을 쉬었다. "그래. 그럼 그렇지. 너한테 그런 기대를 한 내 잘못이다." "뭐가?" "그냥 넘어가자. 이야기하면 골 아프다." 어째 내가 무시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팍팍 들긴 했지만 더 물었다가는 나만 더 바보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 조용히 입을 다물기로 하였다. 티아 누나는 날 싹 무시하고는 다시 이르 누나와 정답게 이야기를 하였 다. 대화의 주된 내용은 우리가 떠난 후의 일과 그리고 제이크 아저씨의 청 혼에 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주로 티아 누나가 질문하고 이르 누 나가 대답할 때마다 세 여자의 웃음소리가 오두막을 가득 채웠다. 그리 고 그 한 쪽에서 나는 대화에 끼지도 못하고 혼자 처량하게 차만 홀짝 이고 있었다. 흑 어저께만 해도 저 티아 누나의 자리는 내가 차지하고 있었는데... "테이님? 어디 불편하세요?" 그렇게 헤어나올 수 없는 외로움의 늪에 빠져서 음침한 분위기를 자아 내고 있던 나를 구해준건 카렌이었다. 카렌의 날 걱정 해주는 마음이 춥고, 외로운 나의 마음에 따스한 빛을 내려 주는 느낌이었다. 천사가 이 세상에 있다면 그건 바로 카렌 너야. 카렌 나만의 천사가 되 어 주지 않겠어? 라는 말을 차마 꺼내지는 못하고 눈에 담아서 카렌에게 보냈다. 나의 눈빛을 알아챘는지 카렌은 볼을 발그레 물들이고는 고개를 숙였다. 귀. ..귀엽다. "흠...카렌 너 테이 좋아하니?" 갑작스런 티아 누나의 질문에 나와 카렌은 화들짝 놀라고는 티아 누나 를 쳐다보았다. "아 아니에요!!" 티아 누나의 질문 테이 좋아하니? 카렌의 대답 아니에요. 크흑 차였다. 다시 암울한 어둠에 쌓여 가는 나를 보면서 카렌은 눈에 띄게 당황하고 있었다. "테 테이님 그 그러니깐...내 말뜻은 그게 아니고요...." 무언가 열심히 변명하려고 하는 카렌을 가만 두지 않고 티아 누나는 다 시 카렌에게 물었다. "그럼 싫어 하는구나." "아니에요!" "거참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좋아하는 것도 아니면 대체 뭐야?" "그 그건...." 카렌은 궁지에 몰려서 대답을 못하고 주위를 둘러보면서 도움을 요청하 는 눈빛을 보냈다. 그러나 이르 누나는 여전히 여유 있게 차를 마시면 서 이제는 사랑하는 딸의 입에서 어떤 대답이 나올까 기대에 찬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고, 방금 전 카렌의 대답으로 한순간에 희망을 얻은 나 역시 카렌의 대답을 기대하며 바라보고 있었기에 티아 누나의 마수에서 카렌을 구할 수가 없었다. 그래 솔직히 말하면 구할 생각이 없었다. 나 역시 카렌의 진심을 듣고 싶으니깐....하지만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은 카렌의 눈빛에 내 마음이 흔들리고, 아쉽지만 티아 누나를 말 리려고 누나를 불렀다. "누나." "아 그래 테이야." 내가 미처 그만 하라고 말을 꺼내기도 전에 누나의 질문 공세는 나에게 로 쏟아져 버렸다. "너 카렌 좋아하지?" "그 그게..." "카렌이 마음에 들지? 좋아하지? 곁에 두고 싶지? 사랑하지? 덮치고(?) 싶지?" 누나의 속사포 같은 질문 공세 중 맨 마지막 말에 발끈한 나는 나도 모 르게 실언을 하고 말았다. "덮치고 싶다는 생각 따위는 가져 본적 없어! 난 카렌을 소중히 하고 싶단 말이야!!" "왜?" "좋아하니깐!! 헉!" 거듭 말하지만 이미 입에서 내 뱉은 단어를 주워 담는 것은 설령 신이 라고 할지라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주위는 일순간에 침묵에 잠겼다. 숨막히는 침묵 끝에 카렌은 벌떡 일어나더니 '죄송합니다. 저 먼저 실 례할게요.'라는 말만 남기고 서둘러 2층으로 올라가 버렸다. 그 모습을 빙그레 미소지으며 보던 티아 누나가 한마디하였다. "청춘이네요." "저럴 때가 좋은 거죠." 분명히 얘 하나 낳아본적 없을 누나는 현역 주부인 이르 누나와 죽이 착착 맞아서 즐겁게 나와 카렌을 씹어 되었다. 난 참담한 기분을 느끼 면서 힘없이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발을 올렸다. 그러자 뒤에서 티 아 누나가 날 불렀다. "어디 가니?" "자러....머리가 아파." 다 누나 때문이야!!라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어서 꿀꺽 삼켜야 되었다. 내 뱉으면 어떻게 된다 는걸 머리가 아닌 내 온 몸이 먼저 반응(?)을 해 버려서 나온 자연스러운(?) 방어 본능이었다. 별론 자랑할 본능은 아니군... "잠깐만 오늘 나도 자고 갈 거야. 여기 방은 3개뿐이라면서, 내가 너 방에 잘게." "그럼 나는?" 난 계단을 올라가던 걸 멈추고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넌 당연히 카렌 방에서 같이 자야지." "그게!!!.....마 말이 된다고 생각해!!" "대답을 다 하는데 몇 초 걸렸죠?" "11초요." "흠 그럴 마음은 있지만 용기가 안 나서 실행을 못하겠다는 뜻이네요." "그런 셈이죠." 라는 내 마음을 정확하게 읽어 버린 이르 누나와 티아 누나를 나는 그 저 경악의 눈으로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밤이 늦었는데 우리도 이만 일어나죠." "그래요. 아 근데 티아는 정말 어디서 잘 생각이죠?" 이르 누나의 질문에 아직도 경악의 표정을 짖고 있는 나를 슬쩍 쳐다본 티아 누나는 별거 아니라는 말투로 대답했다. "뭐 생각 같아서는 테이를 카렌의 방에 던져 버리고 밖에서 문을 잠근 다음 테이 방에서 자고 싶지만.....카렌한테 미안하잖아요. 이르 언니 랑 같이 자도 되죠?" "어머 그렇게 해도 전 상관없는데....하긴 그렇게 하면 저도 엄마 되는 사람으로서 조금 딸에게 미안하긴 하네요. 그럼 저랑 같이 자요. 테이 도 잘 자요." "잘자. 테이야." 그렇게 말하고 이르 누나의 방으로 들어가는 티아 누나의 뒷모습을 보 면서 난 오한이 드는 느낌에 몸을 한차례 떨었다. "여자란....무서워." 아주 쬐금-정말 쬐금- 아쉽다는 기분도 들지만 고개를 저으며 그 아쉬 움을 억지로 털어 내고 나도 내 방으로 올라갔다. "그나저나 엄청나게 화를 낼 줄 알았던 누나가 의외로 협력적이네...." 방에 들어와서 침대에 몸을 던진 체 한 숨을 푹푹 쉬던 난 그 생각이 나면서 몸을 돌려 천장을 쳐다보았다. "좀 나와 카렌을 놀리는 경향이 있지만....그래도 은근히 나와 카렌을 연결시켜 주려고 하는 것 같단 말이야. 무슨 생각일까? 그냥 놀리는걸 즐기는 걸까?" 이것저것 생각해도 티아 누나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을 리가 없는 나는 끙끙거리며 고민하다가 어느새 잠이 들어 버렸다. 아마도 누 나들 덕분에 오늘 꿈에도 카렌이 나올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근데... ..또 다 벗고 나오면 어떡하지? 계속 ------------------------------------------------------------------ 드래곤 남매 9화 티아 깨어나다! 그리고...(4) 이름 모를 벌레 소리와 부엉이 소리, 가끔 가다 늑대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야 당연할 숲속 한가운데의 오두막 안은 조용한 침묵만이 감돌고 있었다. 해츨링인 테이가 펼친 결계치고는 성능이 좋아서 풀벌레도 새 들도 늑대들도 접근하지 못하는 덕분에 결계 안에 있는 오두막 안은 침 묵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좀 운치가 없기는 했지만 그래도 몬스터들이 돌아다니는 이 숲속에서 이렇게 살게 된 것만으로도 이르 모녀에게는 다행스런 일이었다. 이르의 딸 카렌은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징징 짜고 있는 중이었다. 여 자는 눈물이 많은 존재이다. 슬프면 우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기뻐도 눈물을 흘리고, 행복해도 눈물을 흘린다. 또 카렌처럼 너무 부끄러워도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리는 경우도 있다. 부끄러워서 얼굴이 화끈거렸 고, 눈물이 나서 눈이 따끔거렸다. "훌쩍 내일부터 테이님 얼굴을 어떻게 보지? 훌쩍." 카렌은 이미 테이의 마음을 눈치채고 있었다. 그리고 카렌도 테이가 싫 지는 않았다. 아니 싫기는커녕 오히려 테이에게 마음은 어느 정도 있었 다. 하지만 결혼 후 초 보수주의가 되어 버린 카렌의 아버지 제이크 덕 분에-아마도 카렌 때문일 것이라고 이르는 생각하고 있었다.- 남녀 교 제라고는 해본 적이 없는 카렌에게는 지금 테이에 향해 있는 자신의 마 음이 부담스러울 뿐이었다. 더구나 말로만 듣다가 오늘 만난 테이의 누 나인 티아는 완전히 자신과 테이를 한데 엮어서 맺어 주고 말겠다는 의 지를 불태우고 있는 게 눈에 선히 보였다. 테이와 자신이 엮어진다? 그 말뜻은 남녀간의 교제를 뜻했고, 미래로 나아가서는 결혼을 뜻했다. 그리고 나이가 나이인지라-하프엘프인 그녀 의 나이는 83살이다- 알거 다 아는 나이인 카렌은 결혼 후에 남녀의 일 (?)까지 생각이 미치자 얼굴이 더 이상 빨개질 때가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빨개져서는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는 '나 어떡해. 난 내일부터 테이님 얼굴 똑바로 못 봐. 난 몰라.' 등등의 사춘기 소녀는 첫사랑의 고민을 이렇게(?) 해야 된다 는걸 온몸 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이미 깊이 잠이 든 테이는 무슨 꿈을 꾸는지 입을 헤벌쭉 벌리면서 미 소를 짓고 있었다. 안 봐도 뻔하니 꿈 내용이 무엇인지는 그냥 넘어가 도록 하겠다. 그 아래층의 이르 방에서 이르는 밝은 귀로 들리는 카렌의 징징 짜는 사랑의 고민을 들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같이 자고 있는 티아는 지금 몸을 돌아누워서 이르에게 등을 보인 체로 규칙적인 숨소리를 쉬고 있 었다. 하지만 이르는 티아가 자고 있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티아." 부드럽게 부르는 소리에 일순 티아가 움찔하였고, 어둠 속에서도 사물 을 볼 수 있는 엘프인 이르의 눈에 그 짧은 티아의 움직임이 보였다. "자지 않고 있죠?" 물어보는 질문이 아닌 확인을 위한 질문에 티아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 다. "괜찮으세요?" 다 알고 있다는 투의 이르의 말에 티아는 이제 누구라도 알아 챌 수 있 을 정도로 몸을 떨었다. "무리하시는 거 아닌가요?.......휴 진작에 눈치채지 못한 내 잘못이 크군요. 티아의 마음을 진작에 알았다면." "괜찮아요." 황급히 이르의 말을 자른 티아는 두 번째 말은 자신에게 하는 것처럼 다시 한번 말했다. "괜찮아요." 그러나 이르는 티아의 말을 믿지 않았다. 아니 지금 티아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똑똑히 알 수 있었다. "티아." ".........." 다시 한번 티아를 불렀지만 티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르는 티아의 대 답을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였다. "티아. 그 어떤 종족보다 수가 적은 당신들을 위해서 신이 허락하신... 남매 간의 출산. 내가 알기로는 드래곤은 그런 걸로 알고 있는데 내 말 이 틀렸나요?" 티아는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티아의 은빛 머리칼이 달빛에 반사되어 그녀가 고개를 흔들 때 신비로운 색으로 빛났다. "역시 그렇군요. 그럼 티아 당신의 감정은 잘못 된건 아니잖아요. 왜.. .." "제발 그만하세요." 티아는 어느새 돌아누워서 이르의 얼굴을 쳐다보며 이르의 말을 잘랐 다. 티아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어려 있었다. "이르 언니의 말이 맞아요. 하지만 나와 테이는 특별해요. 다른 남매들 처럼 엄마가 다른 것도 아니에요. 그렇다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것 도 아니고요. 우리 둘은 드래곤 역사상 유래 없는 쌍둥이라고요. 거의 같은 날에 태어난 쌍둥이가 서로 맺어질 거라고 이르 언니는 그게 가능 하다고 생각하시나요? 태어나면서부터 인간들과 똑같이 친남매로서 커 온 우리 남매가 과연 맺어져도 되는 건가요? 그래도 되는 건가요?" 말을 하던 티아는 점점 감정이 격해지면서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 다. 이르는 티아의 눈물을 손으로 닦아주었고, 티아는 그 손길을 피하 지 않고, 손으로 입을 가리면서 흐느끼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 다. "두려우신 거죠?" 흐느끼는 소리를 참느라 손으로 입을 가린 티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티아의 마음을 숨기고....카렌에게 테이를 양보해도 그래도 티아는 괜찮은 건가요?" 겨우 흐느낌이 멎었는지 입에서 손을 뗀 티아는 목이 잠긴 탁한 목소리 로 대답했다. "모르겠어요." 이르는 더 묻지 않고 티아의 머리를 살며시 쓸어 넘겨주었다. 이르가 머리를 만져 줄 때마다 티아는 계속 말을 하였다. "테이가 좋아요. 하지만 이르 언니도 좋아요. 그리고....이르 언니의 딸인 카렌도 마음에 드는걸요. 카렌이 밉지 않아요. 밉지는 않아서.... 그래서....하지만 모르겠어요. 내가 어떻게 해야 옳은지 도저히 모르겠 어요." 모르겠다는 말만 반복 중인 티아를 이르는 부드럽게 안아 주었다. 티아 는 어머니의 품에라도 안긴 것처럼 편안함을 느끼면서 눈을 감았다. "아직 어린 해츨링인 티아. 티아도 테이도 카렌도 아직 다 어려요. 너 무 깊게 생각하지는 마세요. 아직 어리기 때문에 실수도 하고 잘못도 하는 거예요. 하지만 자신을 속이지는 마세요. 자신을 속이면 속일수록 나중에 아파지는 것은 티아 자신이에요." "무서워요. 진실을 말한다는 건...너무 무서워요. 지금 테이와의 생활 까지 깨질 것 같아서 두려워요." "깊이 고민하지 마세요. 너무 깊이 고민하면 언제까지나 제자리걸음만 하게 되요. 자신의 마음에 솔직해 지도록 노력하세요. 조금씩이라도 좋 아요. 조금씩.....조금씩....." 어느새 티아는 이르의 품안에서 잠들어 버렸다. 조금씩이라는 이르의 말을 자장가 삼아서 그 순간만큼은 티아는 편안한 기분에 빠져서 수면 을 취했다. "잘 자요. 어린 해츨링 티아. 언젠가는 당신의 정신이 성장하여서 오늘 의 아픔을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면서 말할 날이 올 거예요. 그때를 위 해서 지금은 편안히 자 두세요." 계속 ----------------------------------------------------------------- 드래곤 남매 9화 티아 깨어나다! 그리고...(5) 난 일어나자 마자 잽싸게 옷을 갈아입고 조용히 문을 열었다. 지금까지 카렌과 동거(?)를 하던 경험을 생각하면 지금 카렌은 아직 자고 있을 이른 시간이었다. 어제 일도 있고 해서 도저히 얼굴 마주칠 용기가 없 는 나는 잽싸게 일어나서 장작이라도 팰 생각으로 일찍 나온 것이다. 카렌의 방쪽은 조용했다. 난 카렌의 귀는 엘프의 피를 이어 받은 것치 고는 어둡다는 이르 누나의 말과 지금까지의 경험(?)에 의해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을 다 내려가자 그제 야 안심이 된 내가 한숨을 내쉬며 다행이다 라고 생각할 때 마침 부엌 에서 나오던 카렌과 딱 마주쳐 버리고 말았다. "........." "........." 차라리 서로 비명이라도 질렀으면 좀 더 낮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숨막히는 침묵이 주위를 맴돌았다. 얼마간의 침묵 후에 정신력 이 나보다 강한 카렌이 어색하게 웃으며 아침 인사를 하였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일찍 일어나셨네요." "아 응....장작이나 만들어 놓으려고....카렌도 일찍 일어났네." "아? 네? 아 그게....티아님이 오셔서 1인분을 더 준비해야 되니...그 래서..." 다시 침묵....참 견디기 힘들다. 이럴 때 카렌이 만드는 음식이라도 탄 다든지 하면 카렌이 음식 탄다고 호들갑을 떨면서 이 자리를 벗어날 수 도 있겠지만 이제 막 수프를 끓이기 시작했는지 아직 수프 끓는 소리는 커녕 수프 냄새조차 나지 않았다. "거참. 봄인데 무슨 장작이 그렇게 많이 필요해? 어제 보니깐 장작도 꽤 많더구만. 그리고 카렌도 겨우 1인분 하나 더 만드는데 이렇게 일찍 일어날 필요가 없을 텐데." 갑자기 들려 오는 목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란 카렌과 내가 소리가 난 곳 을 쳐다보았다. 아마도 카렌도 나와 똑같이 그 목소리의 주인을 짐작했 을 것이다. 티아 누나는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싱글싱글 웃으면서 우리 둘을 아주 재미있다는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참으로 부담되는 시선이었다. 더구나 티아 누나의 지적은 날카로웠다. 그렇다 장작은 겨울 전 내가 여유분으 로 잔뜩 해 놓게 아직 양이 꽤 많아서 한 달간은 더 쓸 수 있는 양이었 다. 카렌 역시 1인분 더 만든다고 이렇게 일찍 일어날 필요는 없었다. 이 정도 시간에 일어나서 음식을 만든다면 동네(?) 파티하고도 남을 음 식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결론은 나도 카렌도 서로의 얼굴 을 아침부터 보기가 거북해서 일찍 일어나서 하지 않아도 될 일로 부산 을 떤 것을 티아 누나는 날카롭게 지적했던 것이다. 우리 둘 다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서 아무 말도 못할 때 티아 누나는 우리 사이를 유유히 걸어서 탁자에 앉더니 카렌을 보면서 말했다. "미안. 어제 잠을 조금 설쳐서 그런데 차나 한잔 태워줄레?" "아 네. 곧 갖다 드릴게요." 카렌은 순간 살았다는 안도감의 눈으로 급히 주방으로 뛰어갔다. 나 역 시 살았다는 기분이 들었지만 병주고 약주는 듯한 티아 누나의 행동에 눈살을 찌푸렸다. 물론 뒤에서...정면에서 그랬다가는 그 날이 내 제삿 날이 될 것이다. 아무튼 그냥 넘어갈 수 없던 나는 한마디하기로 하였 다. 휴...그냥 조용히 장작이나 패러 가는 거였는데.... "흥 뭘 하셨길레 잠을 설치셨을까?" 나도 모르게 누나의 말투를 흉내낸 비아냥거림의 말에 난 실수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누나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그야 밤에 누군가가 시끄러운 잠꼬대를 하는 바람에 귀가 밝은 내가 잘 수가 있어야지." 난 그 말에 티아 누나에게만 작동하는 위기감이 경고를 보내는 걸 느끼 고는 조용히 이 자리에서 물러나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테이야 꿈에서까지 카렌을 찾을 정도면 그냥 콱 덮쳐라." -쨍그랑 부엌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면서 난 등에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무, 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하하하 내가 왜 잠꼬대에서 카렌을 찾 았다는....거야. 누나가 잘 못 들었겠지." "그래? 그럼 그 '카렌 너무 좋아. 사랑해 카렌.'이라는 말을 들은 것 같은데 착각이었나?" -쨍그랑 다시 한번 부엌에서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난 더 말해 봤자 내 무덤을 파는 결과라는 걸 인식하고는 이 자리에서 벗어나기로 결정하였 다. "그런데 테이야. 그것뿐만이 아니라 '아 카렌...-18세 미만 경청 금지 로 인한 중략-...너무 좋아 카렌.'이라는 말도 들었던 것 같은데 그것 도 착각이겠지?" -와장창! 부엌에서 아예 무언가가 박살이 나는 소리가 나고는 바보라도 느낄 수 있는 서늘한 살기가 부엌에서 흘러나오자 난 거의 도망치듯이 오두막에 서 뛰쳐나갔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실수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냥 이렇게 도망쳐 나오 면 난 누나의 말을 인정하는 꼴이 되버리잖아! 으아악!! 이 남 잘되는 꼴은 절대 못 보는 이 마녀 누나야!!! 누나가 들으면 2박 3일간 얻어맞고 보너스로 한 대 더 맞을 욕을 끊임 없이 퍼부으면서 난 그 울분을 모조리 장작에게 풀었다. 평소에는 실프 의 진공의 바람으로 장작들을 쪼개었는데 그 날은 손수 도끼를 들고 장 작들을 말 그대로 패는 것으로 내 울분을 달래었다. '밥 먹으러....어떻게 들어가지?' 참으로 눈앞이 캄캄해지는 아침이었다. 티아는 굳은 얼굴로 차를 내오는 카렌의 얼굴을 보면서 생긋 웃으며 차 를 받아 들었다. 카렌의 몸에서는 누가 봐도 '저 엄청 화났어요.' 라는 오로라가 퍼져 나오고 있었지만 그런 것에 눈 하나 깜짝할 티아가 아니 었다. 티아는 여유 있게 차를 마시면서 감상을 말했다. "찻잔이 어제꺼랑 달라졌네." 카렌은 그 말에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어제 쓰고 씻어 둔 찻잔 세 트는 지금 그 본래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을 정도가 되어서 쓰레기통 에 들어가 있었다. 그렇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한 티아는 그저 뭐가 재 미있는지 웃으면서 차 맛이 좋다고 칭찬을 하였다. 차를 다 마신 티아는 카렌을 쳐다보면서 물었다. "테이를 어떻게 생각해?" "저질 드래곤으로 생각해요." 티아의 질문에 카렌은 어제와는 달리 빨리 대답했다. 단지 그 내용을 테이가 들었다면 아마도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버렸을 것이다. 티아는 피식 웃으면서 카렌의 말을 정정해 주었다. "저질 해츨링이겠지." "..........." "너무 그렇게 노려보지마. 아까 한 말은 농담이었어." "그럼 테이님은 왜 그렇게 도망치듯이 나가 버리신 거죠. 뭔가 찔리시 는 게 있으니깐 도망치신 거잖아요." "그거야 당연히 찔리겠지. 왜냐하면 처음 말한 '카렌 사랑해'라는 잠꼬 대는 정말이었거든." 얼음 같던 카렌의 얼굴이 순식간에 확 달아올랐다. 티아는 카렌의 그런 표정 변화를 재미있다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뒤에 말도 약간(?) 심하게 덧붙이긴 했지만 완전 거짓말이 아니라는 건 말 안 하는 게 좋겠지?' 어제부터 얼굴이 식을 날이 없는 카렌이 티아 앞에서 우물쭈물하고 있 을 때 이르가 나왔다. "잘들 잤어요?" "안녕히 주무셨어요? 어머니." "안녕히 주무셨어요? 이르 언니." 각자 아침 인사를 마치자 비로소 아침이 시작되는 느낌이 들었다. "아 맞다. 수프를 올려 두고 깜박했네요." 티아 앞에 있기가 거북한 카렌이 수프 냄새가 나자 눈에 보이는 과장된 행동을 하면서 부엌으로 들어갔다. "아침부터 또 둘을 놀리셨군요." 딸의 오버액션을 보면서 이르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하자 티아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헤헤 웃었다. "저 둘이 너무 순진하니깐 나도 모르게 마구 놀려 주고 싶은 기분이 자 꾸 드는걸요."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티아의 맞은편 자리에 앉으면서 둘은 둘만이 아 는 의미 있는 시선을 주고받았다. '어젯밤 일은 잊어 주세요.'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나요?' 티아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면서 머리칼을 자꾸만 쓸어 넘겼다. 그 모습 을 가만히 보던 이르는 곧 빗을 가져와서 티아의 뒤로 돌아가서 머리를 빗겨 주었다. "머리카락이 너무 긴 체로 변했군요." "그게 변하면서 신경을 안 쓰면 이렇게 되더라고요." 티아의 머리를 정성스럽게 빗어 준 이르는 곧 머리를 꼬아서 하나로 모 으고는 리본으로 묶어 주었다. 티아의 머리가 너무 길어서 머리를 꼬아 주는 것에도 시간이 꽤 걸렸다. "고마워요. 언니." 티아는 활동하기 편하게 머리를 묶어 준 이르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네 었다. 그리고 부엌에 있는 카렌과 지금 문 앞에서 안의 상황을 훔쳐 듣 고 있는 테이에게 들으라는 듯이 큰 목소리로 말했다. "아 오늘 테이를 데리고 돌아갈게요." "뭐라고?!" "뭐라고요?!" 반응들이 상당히 빨랐다. 카렌은 젖던 수프가 눌어붙던 말던 테이는 훔 쳐 듣고 있었다는 사실을 들키던 말던 놀란 눈으로 식당으로 뛰어들어 왔다. 그 둘을 보면서 티아는 싱글싱글 웃으면서 또박또박하게 다시 말 해 주었다. "오늘 테이를 데리고 가겠다고 말했어." 계속 ------------------------------------------------------------------ 드래곤 남매 9화 티아 깨어나다! 그리고...(6) "자 얌전히 따라와 테이. 넌 여기 있을 수 없어!" 누나의 억센 손아귀가 나의 뒷덜미를 잡고 날 거의 뭐(?)처럼 끌고 가 기 시작했다. "젠장 이거 놔! 이 마귀 누나야! 난 카렌과 헤어질 수 없어!" "테이님!!!" "카렌!!!" 난 있는 힘껏 손을 뻗어서 카렌의 손을 잡으려고 했다. 그러나 닿을 듯 말 듯한 손은 끝까지 닿지 못하고 마귀 누나에 의해 나와 카렌은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 카렌은 그 큰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닿지도 않는 손을 뻗으 며 울부짖었다. "테이님!!!!" "카렌!!!" "네?! 테이님 왜요?" "............" 이런 패닉에 빠져서 정신이 잠시 다른 상상의 세계에 갖다 와 버렸다. 하지만 그 정도로 누나의 입에서 떨어진 말은 나를 절망으로 인해 현실 도피를 하게 만들어 버릴 정도의 위력을 지닌 말이었다. 난 떨리는 목 소리로 누나에게 물었다. 제발 내가 잘 못 들었기를 바라면서... "누나 방금 그 말 무슨 뜻이야?" "밥 먹고 나서 너 데려가겠다고 했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한번 절망의 말을 내뱉는 누나에게 난 분노를 느 꼈다. "왜?! 왜 데려가려고 하는데!! 그렇게 내가 잘 사는 게 아니꼬운 거야? 왜 카렌과나 사이를 갈라놓으려 하냐고?!" 너무나 크나큰 분노에 난 몸에서 보내는 경고 신호를 무시한 체 탁자를 쾅 치면서 누나에게 대들었다. 보통 때라면 이 정도면 나 죽여주세요. 라고 누나에게 말하는 거나 마찬가지지만 만약 누나에게 끌려가서 카렌 과 헤어지게 된다면 차라리 누나에게 죽도록 맞는 게 더 나았다. 그때 난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갈라놓는다고? 카렌과 네가 갈라놓다 뭐다 할 정도의 사이였니?" "그....그건 아니지만....아 그래! 내가 없으면 카렌은 이르 언니의 약 초를 캐러 갈 수가 없단 말이야! 그러니 난 갈 수 없어!" 간신히 돌파구를 찾은 난 의기양양해졌다. 이 정도면 내가 여기 있어야 될 이유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그것은 착각이었다. "어차피 3일에 한번씩 약초 캐러 갈 때만 따라다니면 되잖아. 그러면 될걸 꼭 여기서 살면서 지켜 줄 이유는 없을 텐데." "그 그건...." 젠장 할 말 없다. 나 혼자로서는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난 주위 를 둘러보면서 도움을 청했다. 이르 누나는 중립을 지키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카렌이라면.... "티아님!" 역시 카렌은 이 나의 편이었다. 같이 지내면서 알게 된 건데 카렌의 말 솜씨 역시 만만치가 않았다. 하긴 처음으로 말발에서 티아 누나를 이긴 적이 있는 제이크 아저씨의 딸이니깐 당연하다면 당연한 말솜씨일 것이 다. 난 모든 희망을 카렌에게 걸었다. 근데...명색이 남자가 이런 중요한 일을 여자에게 맡기고 뒤에서 후방 지원(속으로 응원하기)이나 해야 되다니...괜히 울적해진다. "왜 테이님을 데려가려고 하시는 거죠? 테이님이 3일에 한번씩 찾아와 주셔도 되긴 하지만 그 먼 거리를 왔다 갔다 하시는 건 테이님한테도 귀찮을 수도 있잖아요." "흠 그래서 같이 살고 싶다고?" "그, 그러니깐 꼭 같이 살고 싶다는 것은 아니고...난 단지 테이님이 귀찮으실까봐..." "그럼 테이가 귀찮지 않다면 상관 없는 거네." "난 귀찮아!" 카렌이 불리한 것 같아서 난 잽싸게 끼여들었다. "응? 카렌이 귀찮다고?" "내가 카렌을 귀찮아 할리 없잖아?!! 왔다갔다하기 귀찮다고....그러니 깐 그냥 이대로가 나한테는 편하고...좋단 말이야!!" 실은 카렌이 좋다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꼬투리 잡힐 것 같아서 그 말은 꿀꺽 삼켜 버렸다. "어차피 워프를 지정해 두면 눈 깜박 할 사이에 왔다 갔다 수 있잖아. 근데 뭐가 귀찮아? 그냥 솔직히 말해라. 카렌이랑 같이 사는 게 좋다 고." "........." "........." 누나의 직설적인 지적에 나와 카렌은 얼굴만 붉힌 체 반론을 할 수가 없었다. 왜냐? 누나 말이 맞으니깐. 뭐 카렌이 날 정말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지금의 반응을 보면 결코 날 싫어하지도 않는다는 건 잘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모를 건 여자의 마음이라고 난 이 기회에 확실히 해 두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요." "에?" "응?" 속삭이는 것 같은 카렌의 말에 누나와 내가 카렌을 동시에 쳐다보았다. 카렌은 여전히 얼굴을 붉힌 체 고개를 숙인 상태에서 중얼거리고 있었 다. "좋아...해요. 테...이님을..." 난 놀라움과 기쁨, 그리고 기타 여러 복합적인 감정에 눈을 크게 떴고, 누나는 미소를 지으면서 카렌을 쳐다보았다. "흠. 그래? 테이를 좋아한단 말이지." "네. 테이님이 좋아요.....같이 있고 싶어요. 진심이에요." "그렇다면 같이 동거하는 것에 반대는 안해." "누나. 그렇다면 나..." 안 돌아가도 되겠지? 라고 물으려고 했다. "아니. 난 널 데려가야겠어." "왜에!!!" 퍽! 아 이것은 오랜만에 느껴 보는 누나의 어퍼컷. 하도 오랜만이라서 그 아픔에 반가운 기분이 드는 엽기적인 생각까지 들면서 나의 몸은 붕 떠 서 그대로 한바퀴 돌고는 바닥과 깊은 딥키스를 나누었다. "테이님!!!!" 으 카렌...나 아직 안 죽었으니깐 그렇게 붙잡고 흔들지마. 골이 더 울 리는 것 같단 말이야. "제발 말 좀 끝까지 들어. 난 테이 널 할.아.버.지 레어에 데려가겠다 고 말하려고 한 거란 말이야." "으...할아버지 레어?" 아픈 턱을 매만지며 간신히 몸을 일으킨 나는 누나의 말뜻을 이해하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잠깐 그럼 처음부터 내가 여기서 살고 있는 건 신경 안 쓰고 있었다는 말이야?" "내가 그걸 왜 간섭 하냐? 어차피 이 곳은 너 영역인데. 동생이 자기 영역에서 연애를 하던 결혼을 하던 내가 상관할 바 아니잖아." "하지만 아까 데려가시겠다고...." 카렌도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느꼈는지 말끝을 흐리면서 끝까지 말하지 못하고 티아 누나를 쳐다보았다. "그러니깐 말했잖아. 밥 먹고 나서 잠시 할아버지 레어에 테이를 데리 고 가겠다고. 잠시동안만." 젠장! 언제 잠시동안이라는 말을 했다고!! 방금 전까지 완전히 데려가 버리겠다는 뜻으로 말해 놓고는!! 난 누나에게 완전히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으로 늦은 반응이었지 만 이것은 전적으로 내가 둔해서가 아니라 티아 누나가 처음부터 오해 할 만한 말을 했기 때문이다. 결코! 내가 둔해서가 아니다. 그런데 날 부축하던 카렌 몸이 움찔거리나 싶더니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누나를 쳐다보았다. "저기...혹시...그럼...설마..." "순진한 처녀의 멋진 고백 타임이었지?" 난 그제야 누나가 왜 그런 오해받을 만한 말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카렌의 입에서 거의 반 억지이긴 하지만 고백의 말을 받아 내기 위해서 였던 것 같다. 티아 누나가 싱글싱글 웃으면서 건넨 말에 카렌은 입만 크게 벌린 체 아무 말도 못하다가 날 부축하던 손을 급히 거두고는... "저, 저기...수, 수프를 만들다 와서....시 실례할게요!" 라고 소리치고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카렌이 주방으로 들어가고 나서 무언가 엄청나게 무너지는 소리가 났지만 난 감히 주방으로 들어갈 용 기가 나지 않았다. 주방에서 '절대 들어오지 마세요. 특히 테이님 절대 출입금지' 라는 오로라가 퍼져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립의 입장에서 구경하던 이르 누나는 쿡 하고 웃더니 카렌을 도와주 기 위해서 주방으로 들어가고 식당에는 나와 티아 누나만 남았다. "이 정도까지 도와 줬으니 아무리 순진한 테이군 이라도 이 뒤는 알아 서 할 수 있겠지?" "뭐 뭐를 알아서 하라고..." "에 아직도 몰라? 에 그러니깐. 왜 그 남자랑 여자랑....." 누나의 입에서 무언간 엄청나게 위험한(?) 말이 나올 것 같아서 난 급 히 누나의 말허리를 잘랐다. "아 알았어! 이제 뒤는 내가 알아서 할게!!!" "그래 그래야지. 그래야 내 동생이지." 그렇게 말하면서 누나는 싱긋 웃었다. "근데 할아버지 레어에는 갑자기 왜? 더구나 나까지 따라갈 일이란 게 뭐야?" "이 녀석아. 아무리 너 영역 안이라지만 그래도 이런 일은 어른들에게 말씀드려야지. 뭐 엄마 아빠에게는 내가 시간 나면 천천히 말해 줄게. 하지만 지금 당장 할아버지한테 가서 말도 드릴 겸 보디가드를 얻어 와 야겠어." "보디가드? 카렌 보디가드라면 내가 할 수 있는데." "어이구 이 한심한 놈아. 너 눈에는 이 집에 카렌만 살고 있냐? 이르 누나를 지켜 줄 보디가드가 필요하잖아." 난 누나의 말을 이해 못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 이... "집 주위에는 결계를 쳐 두었으니 몬스터들은 출입 못해. 그리고 이르 누나는 어차피 몸이 안 좋아서 멀리까지 산책 같은건 못하는데." 그렇다. 이 정도면 완벽한 보안장치이고, 그리고 지난 몇 달간 아무 문 제도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르 누나에게 무슨 보디가드들이 필요하 단 말인지... "멍청아! 너의 이 무식한 결계는 확실히 몬스터의 출입을 용서하지 않 긴 해! 하지만 숲의 기운까지 다 막아 버리잖아! 요양을 위해 깊은 숲 을 찾아온 이르 누나에게 숲의 기운까지 다 막아 버리면 어쩌자고? 엘 프에게 숲의 기운을 막아 놓고 약초만 잘 달여 주면 다인 줄 알어? 어 이구 이러니 멍청이 해츨링 소리 들어도 할말 없지." 누나의 말은 구구절절 옮은 말이다. 단 하나 틀린 말이 있다면 그건 맨 마지막 멍청이 해츨링 소리 들어도 난 할 말없는 게 아니다. "누가 멍청이야! 누가?!" "너지! 누구긴 누구야?!" "난 멍청이 아니야!!!" "우리 오랜만에 마법 대련이나 할까?" "........" 앞에 말을 정정하겠다. 멍청이 소리를 들어도 찍 소리 못할 해츨링은 존재한다. 다만 한마디 덧붙이자면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폭력이라는 보너스를 동반했을 때만 한해서다. 그리고 지금의 내 상황이 바로 그 상황이다. 아무 말도 못하고 울분을 삼키는 나를 보면서 '그럼 그렇지. 어디 감히 누나에게 덤벼.' 라는 눈빛으로 보이는 눈으로 날 쳐다보면서 누나는 확실히 못을 박았다. "할아버지는 아무리 나한테 잘 해준다고 해도 이번 것은 나도 확실히 줄지 안 줄지 모르기 때문에 너까지 데려가는 거야. 그러니 실수하지 말고 잘 도와야 된다." "가만 할아버지한테 보디가드를 얻으러 간다면....혹시 다크 나이트?" 누나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다크 나이트. 아 밥 나왔다. 카렌 요리 솜씨 되게 좋더라. 너 복 받은 거야." "으응 그래." 난 머리를 긁적이면서 아침 식사를 나르는 카렌을 도와주었다. 카렌은 여전히 나와 정면으로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있었다. 어쩌다가 눈이라 도 마주치면 볼이 발그레지면서 급히 고개를 돌렸다. 크흑...귀여워. 의외로 방해할 줄 알았던 누나가 도와주고, 덕분에 카렌의 마음도 확실 히 알았으니 이제 나에게 남은 해츨링 생활은 오직 장밋빛 생활만이 남 은 기분이다. 누나와 나는 카렌이 만든 아침 식사를 하고 둘에게 할아버지 레어로 가 는 이유를 설명 해주고, 곧바로 할아버지의 레어로 통하는 워프의 문을 열었다. 아 사소한 일이 하나 있었는데, 오늘 아침 식사는 식기가 모조 리 다 새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마도 아까 큰 소리가 났던 것과 관계 있겠지? 뭐 이제 할말(?) 다 해 버렸으니 앞으로 식기가 바뀔 일은 없 겠지. 계속 ------------------------------------------------------------------ 드래곤 남매 10화 의지를 가진 다크 나이트(1) 티아와 테이의 할아버지인 실버 드래곤 크레스문은 오리하곤 왕국의 캐 럿 산맥에 살고 있었다. 드래곤들은 각자의 개성이 뚜렷했다. 오랜 세 월을 살아오면서 젊어서 이것저것 해보던 드래곤들은 각자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에 파고들었고, 이 분야에서만은 내가 최고다! 라고 소리치는 드래곤들이 있는데 크레스문은 일명 다크 나이트 컬렉션에서만큼은 최 고의 수집 율을 자랑하고 있었다. 뭐 다크 나이트를 모으는 드래곤은 크레스문밖에 없기 때문에 자연히 최고가 되기는 하였지만...하지만 크레스문은 정말 최고라고 자부할 수 있을 정도로 다크 나이트들을 모았다. 수없이 유희를 하면서 죽어 가는 혹은 죽은 기사나 전사들을 다크 나이트로 만들어서 모아둔게 지금에 이르러서는 대륙 최고의 대국이라 일컫는 데스타 제국은 능히 쓸어버리 고도 남을 병력을 모은 것이다. 더구나 다크 나이트에는 절대 불가능하다고 알려진 의지를 가진 다크 나이트도 보유하고 있었다. 그 다크 나이트는 크레스문의 자랑거리로 다크 나이트에 별 관심 없는 드래곤이라 할지라도 의지를 가졌다는 다 크 나이트를 구경하러 왔다가 감탄을 하고 돌아가기도 할 정도였다. 다 크 나이트이면서도 의지를 가졌고, 다크 나이트이면서도 검은 갑옷이 아닌 찬란한 은빛의 갑옷을 입은 다크 나이트 제임스. 그 제임스라는 이름의 크레스문의 자랑거리인 은빛 갑옷의 다크 나이트 는 지금 크레스문의 레어 중 보물 방과 마찬가지 역할을 하는 다크 나 이트의 방(?)에서 조용히 한숨을 쉬고 있었다. "오 아름다운 이 광채여~~다크 나이트~~너 참 아름답다~~." 크레스문은 가만히 듣고 있기도 괴로운 노래를 부르며 다크 나이트를 손에 쥐고 입김을 불어 가면서 헝겊으로 빡빡 닦고 있는 중이었다. 100 여년 만에 갑자기 집합을 명령한 크레스문은 제임스가 다크 나이트들을 다 집합시키자 보기에도 불안한 미소를 지으며 무식하게 큰 헝겊이라 생각되는 천을 들더니 다크 나이트에게 먼지가 쌓였다면서 저렇게 청소 (?)중이었다. 하나...아니 한명, 한명 정성스럽게 다크 나이트들을 닦 아주는 크레스문의 얼굴은 어릴 적 부모님에게 장난감을 선물 받고 소 중히 간직하는 인간 아이의 바로 그 얼굴이었다. 어울릴 수도 있을 꺼라 생각이 안 드는 건 아니지만...상상을 해보라 나이 8000살 이상을 먹은 커다란 실버 드래곤이 얼굴 가득히 미소를 띠 면서 다크 나이트에게 입김을 불어 대면서 헝겊으로 닦아주는 광경을.. ..어울린다는 생각을 할 사람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아마도 같은 드 래곤이라도 할지라도 그 모습에 입을 쩍 벌리고 쳐다보던가 아니면 솟 아오르는 구역질에 몸을 비틀어 될 것이다. 그리고 의지를 가졌다는 그 죄(?)로 그 보기 힘든 장면을 바로 곁에서 보고 있는 제임스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참다 참다 참지 못한 제임스는 간신히 즐거움에 빠져 있 는 자신의 주인을 불렀다. "마스터." "응? 뭐냐?" 제임스가 부르자 크레스문은 잠시 작업(?)을 멈추고 제임스를 쳐다보았 다. "힘들게 그러실 것 없이 다크 나이트들에게 몸을 닦으라고 명령을 내리 시는 건 어떠신 지요?" "뭐? 넌 감히 내 취미 생활을 그만두란 말이냐?" "아 아닙니다. 제가 감히 어찌 마스터에게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겠습 니까? 전 그저 마스터가 힘드실 것 같아서..." "즐거운 일을 하는데 힘들게 뭐가 있냐? 난 지금 힘이 넘친다." "네 그러시군요." 제임스는 크레스문에게 들키지 않게 조용히 한숨쉬었다. 차라리 지금 크레스문의 손에서 윤기를 내고 있는 다크 나이트들처럼 의지라도 없다 면 이렇게 괴롭지 않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 그러고 보니 제임스 너도 좀 먼지가 쌓였구나. 이 놈 끝내고 너도 좀 닦자." 크레스문의 말에 제임스는 하늘이....아니 레어 천장이 무너지는 소리 를 들은 것 같았다. "마 마스터?" "잠깐만 기다려. 이 녀석 금방 끝나니깐." 이미 갑옷으로 온 몸을 무장하고 갑옷이 곧 다크 나이트의 몸이나 마찬 가지인 제임스는 흐를 리가 없는 식은땀이 등을 흐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 아닙니다. 마스터 전 제가 몸을 닦는걸 좋아합니다. 제 스스로 닦 겠습니다." 급히 그렇게 말한 제임스는 크레스문 옆에 쌓인 아마도 오늘 하루 완전 히 날 잡아서 가져 왔을 헝겊이라고 생각되는 천 한 장을 빼서 열심히 몸을 닦기 시작했다. 그러자 크레스문이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저었다. "이 녀석아 그냥 먼지만 닦으면 뭐해? 입김을 불어서 닦아야 윤이 나 지. 잠깐만 기다려 지금 이 녀석 다 끝나 가니깐. 넌 특히 은빛 갑옷을 입고 있어서 같이 먼지가 끼여도 다른 다크 나이트보다 배는 더 더러워 보인다. 특별히 넌 정성을 다해서 닦아주마." 제임스의 속마음을 알리 없는 크레스문의 말에 제임스는 속으로 '신이 여!'라는 소리를 지르며 절망했다. 그리고 영원히 계속되었으면 하는 다크 나이트 닦기가 끝났는지 크레스문은 닦던 다크 나이트를 내려놓고 제임스에게로 손을 뻗었다. "저기 마스터." "아 거 되게 말 많네. 버둥거리지 좀 마. 깨끗하게 해 주겠다는데 뭔 말이 그렇게 많아." 결국 마지막 저항다운 저항 못해 보고 꼼짝없이 당할(?) 위기에 처한 제임스에게 마지막 희망의 빛이 찾아왔다. "마스터. 누군가 레어에 침입했습니다." 레어 경보 장치(?)의 기능을 가진 제임스는 레어에 누군가 들어온 느낌 에 막 입김을 불려는 크레스문을 말리면서 말했다. 처음에 크레스문이 제임스에게 이 기능을 줄 때는 내가 레어 지키는 강아지인가? 라며 한 탄을 하던 제임스에게는 지금 이 순간 그렇게나 저주하던 기능이 이렇 게나 고마울 수가 없었다. "침입자?" 크레스문은 막 제임스에게 입김을 불려다가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레어 안에 들어온 두 생명체의 반응을 느껴 보았다. "예끼! 이 녀석!" "네?" 침입자의 반응을 느끼던 크레스문이 갑자기 제임스에게 역정을 냈고, 이해가 안된 제임스는 네? 라고 멍청하게 반문했다. "지금 레어에 들어온 게 왜 침입자냐? 내 손자, 손녀잖아!" "아아 도련님과 아가씨 군요." 제임스는 전에 자주 놀러 오던 크레스문의 손자 손녀라는 테이와 티아 를 기억해 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하도 오랜만에 놀러 와서 그들의 기운이라는 것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제임스에게는 천만다행인 일로 오랜만에 놀러 온 손자, 손녀 때문인지 크레스문은 제 임스를 내려놓고 방 밖으로 걸어나갔다. "아. 애들 정렬시켜서 세워 놔라." "네 마스터." 가다가 생각났다는 듯이 말하는 크레스문의 명령에 제임스는 환한 미소 를 지으며 말했다. 투구 안쪽은 어두운 공간처럼 아무것도 없는 암흑에 은색의 눈동자도 없는 눈 두 개만 빛나고 있었지만 보는 이로 하여금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제임스가 기뻐하고 있다는 것을 똑똑히 알 수 있 었다. 그것을 느낀 크레스문은 괜히 기분이 나빠져서 한마디 안하고는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손자, 손녀 돌아가고 나서 계속 할거니깐. 헝겊은 치우지 마라." ".....네 마스터." 이번에는 속으로 눈물을 삼키는 제임스의 말에 기분이 풀어진 크레스문 은 제임스 입장에서 보기에는 소름끼치는 미소를 지으며 다크 나이트의 방에서 나갔다. 제임스는 제발 티아와 테이가 한 몇 칠 여기서 놀다 갔 으면 하는 마음으로 다크 나이트들 앞에 섰다. "정렬!" 제임스의 명령이 떨어지자 검은 다크 나이트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 며 둘 줄로 섰다. 자신과는 다른...의지를 가지지 않은 검은 다크 나이 트들이 움직일 때마다 철컥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그 소리는 제임스의 귀에는 마치 차가운 기계가 움직이는 소리처럼 들렸다. "쉬어!" 두 줄로 선 다크 나이트들에게 다시 소리치자 다크 나이트들은 양쪽으 로 갈라져서 벽으로 걸어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제임스와는 다른...아 니 일반적인 다크 나이트들의 붉은 눈이 사라지자 다크 나이트들의 고 개가 숙여지고, 수면에 빠졌다. 아니 빠진 것처럼 보였다. 의지가 없는 다크 나이트들도 수면에 취한다면 지금 다크 나이트들은 수면을 취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들은 제임스와는 달랐다. 그저 몸의 기능을 정 지하고 있을 뿐 수면은 아니었다. 오직 수면을 취할 수 있는 다크 나이 트는 은빛 갑옷의 제임스뿐이었다. 인간의 기억과 의지를 가지고 몇 천 년을 살아가는 제임스의 괴로움을 아는 크레스문이 준 능력 중 가장 마 음에 드는 능력인 드래곤과 같이 동면에 들어가는 능력. 이 능력이 없 었다면 제임스는 옛날에 미쳐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또 그 꿈을 꾸겠지." 요즘 들어서 옛날 일이 자꾸 꿈에 나타나 잠드는 것도 옛날같이 반가운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폐쇄된 공간에서 멍하니 있 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제임스는 자신의 자리로 가서 서고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잠이 들었다. '살아야 돼! 살고 싶어!' '살고 싶나?' '살고 싶습니다. 살려 주십시오.' '왜지?' '전 아직 지켜야 될 사람이 있습니다. 지켜 주겠다고 약속한 사람이 있 습니다. 아직 죽을 수는 없습니다.' '그대의 몸은 이미 죽어 가고 있다. 아니 이미 심장은 멈추고 죽어 있 다. 그러나 그 의식만큼은 죽지 않은 것이 바로 그 지켜 주겠다고 약속 한 인간 때문인가?' '....그렇습니다.' '그대에게 새로운 몸을 줄 수는 있다. 그러나 그 몸을 가지게 되면 앞 으로 그대의 의지대로 죽지도 못할 것이다. 그래도 상관없나?' '그녀를....그녀를 지킬 수만 있다면...나중의 일은 어찌 되어도 상관 없습니다.' '그녀라. 지켜 주겠다는 게 여자였나?' '그렇습니다.' '그러나 네가 다시 살아서 그녀를 지켜 주어도 넌 그녀를 다시는 안을 수 없다. 넌 다크 나이트로 다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다크....나이트...' '그렇다 죽지 않는 불사의 육체. 그러나 의지가 없는 갑옷으로 평생을 살아가야 된다. 아니 이미 그것은 산다고 볼 수도 없는 것이다.' '그 힘을 가지면 그녀를 지킬 수 있습니까?' '내가 만드는 다크 나이트는 무적이다.' '그 힘을 받겠습니다.' '후회할텐데.' '그녀를 지키지도 못하고 죽는 게 저에게는 더 후회스러운 일입니다.' '알았다. 너를 다크 나이트로 만들어 주겠다.' 제임스의 죽은 몸에서 그의 의식과 대화를 나누던 찬란한 은발을 길게 기른 청년은 제임스의 몸에 조용히 마법의 진을 그리고 주문을 외웠다. 제임스는 의식이 무언가 에게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끼면서 오직 그녀 를 지키겠다는 생각만을 하였다. 그녀만 지킬 수 있다면 자신은 어떻게 되도 상관없다는... '이럴 수가? 은빛의 다크 나이트라니...다크 나이트는 죽음의 검은 갑 옷. 그런데 어째서 생명의 은빛을 지닌 다크 나이트가 된 거지? 아니 다크 나이트이긴 한 건가?' 은발의 청년은 놀란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내 몸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손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이 먼저 움 직였다. 그 손에 힘을 주고 천천히 몸을 일으켜서 내 몸을 바라보았다. 21년 간 내 몸이라고 생각되던 모습은 이제 찾아볼 수가 없었다. 오직 은빛의 갑옷만이 내 몸을 감싸고 있었다. '다크 나이트가 된 것입니까? 저는...' '이럴 수가!! 의지까지 가지고 있단 말인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은발의 청년. 실버 드래곤 크레스문은 놀라움의 수준을 넘어 경악을 하 였다. 생명의 색인 은빛의 갑옷을 입고 태어난 다크 나이트가 된 나는 그 갑 옷을 자신의 몸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으아악!! 은갑옷의 기사다!' '죽음의 은갑옷이다!' 적군은 내가 나타나자 비명들을 지르며 물러섰다. 난 거대한 투핸드 소 드를 한 손에 들고 천천히 걸어나갔다. 1000년전 수십 개의 왕국이 당 시 이름도 없는 이 대륙에 생겨나고 또 사라져 갔다. 내가 있던 작은 왕국도 그 중 하나였고, 난 이웃 국가의 침략을 막다가 전사하였다. 그 러나 새로운 힘과, 생명을 얻고 내 국가를 지키기 위해 사랑하는 내 약 혼녀를 지키기 위해 적군에게 죽음의 은갑옷 기사라는 명칭으로 불리게 되는 것을 기꺼이 허락했다. 그러나 그녀는 내가 죽은 줄로 알고 있다. 울다가 졸도까지 했다는 그 녀 앞에 서고 싶었다. 난 아직 살아 있다고 말해 주고 싶었다. 그러나 다크 나이트가 된 내가 살아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인가? 아니 어째서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인가? 차라리 의지라도 없어졌다면 슬퍼하는 그 녀를 보지 않아도 될 일 일 것을... 나에 의해 그녀의 나라는 지켜졌다. 하지만 그녀는 적국이었던 왕자와 혼인을 하는 것으로 전쟁은 일단 끝이 났다. 그리고 나의 존재는 더 이 상 그 국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아니게 되었다. '이제 나와 함께 가겠는가?' '네. 마스터.' '후회하지 않나?' '그녀를 지켰습니다.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그랬다. 어찌되었던 나는 그녀를 지켰다. 그것이면 충분하였다. 아니 충분하다고 생각 안 하면 미칠 것만 같았다. '충분합니다. 마스터. 후회는....없습니다.' 그렇게 살아 있는 다크 나이트 제임스는 크레스문을 따라왔다. 그리고 다크 나이트의 컬렉션 중에 레어 아이템으로 대접받게 되었다. 그로 인 해 제임스는 아주 약간 후회를 하게 되었다. 계속 ------------------------------------------------------------------ 드래곤 남매 10화 의지를 가진 다크 나이트(2) "할아버지~~." "에구. 귀여운 내 새끼 왔구나." 레어로 돌아온 크레스문은 티아를 맞기 위해서 인간의 모습으로 변하고 는 달려가서 티아를 꼭 끌어안았다. 품에 안긴 티아가 헤헤 웃으며 크 레스문의 가슴에 뺨을 비벼 대면서 재롱을 떨자 크레스문은 세상 그 무 엇도 부럽지 않을 행복을 느꼈다. 그러나 그건 앞으로 닥쳐 올 그에게 있어 불행이 될 일을 감추기 위한 티아의 계산 된 행동이란 걸 지금의 크레스문은 알 리가 없었다. "호오 테이가 말이냐?" "예. 아~~~주 귀여운 하프엘프를 아내로 맞아서 자기 영역에서 잘 살고 있대요." "겨 겨 결혼은 아직 안 했어." 테이는 티아의 놀림에 얼굴을 붉히며 대꾸했다. 그러자 크레스문이 고 개를 저으며 혀를 찼다. "사내놈이 그게 무슨 부끄러운 일이라고 얼굴 붉히고 난리냐? 아직 해 츨링이긴 하지만 너 영역에서 하는 일이니. 나쁜 짓 하는 것도 아닌데. 쯧 왜 그렇게 숫기가 없는지. 나를 반만 닮았어도...." 크레스문의 말에 티아가 눈을 동그랗게 물었다. "에 할아버지를 닮았으면 테이가 저렇게 부끄러워하지 않을까요?" 크레스문은 싱긋 웃으면서 자신의 무릎에 앉아 있는 티아의 머리를 쓰 다듬으며 말했다. "그럼 이 할아버지가 젊었을 때는...흠 지금도 젊긴 하지만...아무튼 젊었을 시절에 얼마나 여자들이 이 할아비를 따라다녔었다고. 너 할머 니도 그 여자 중에 하나였지. 하지만 이 할아버지는 당시 아직 한 여자 에 얽혀 살 생각이 없어서 너 할머니의 청혼을 거절하고 세상을 여행하 면서 많은 여자들을....흠흠 아무튼 제법 많은 여자들이 이 할아버지를 따랐단다." "아아 한마디로 바람둥이었군요." 직설적인 티아의 지적에 크레스문은 입을 쩍 벌린 체 몸이 얼어붙었다. 티아는 크레스문이 젊었을 시절 뭘 했든 상관할 생각이 없고, 지금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기 때문에 언제 끝날지 모를 크레스문의 옛 날 이야기를 계속 들어줄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그것보다 할아버지~~." 티아가 다시 크레스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부비적 거리자 언제 얼었 냐는 듯이 크레스문의 몸은 급속도로 해동(?)되더니 얼굴 가득 웃음을 띠고 물었다. "그래 왜 그러니. 요 귀염둥이." "그게 말이죠." 티아는 지금 이르의 상황과 테이와 카렌의 관계를 좀 더 자세하게 이야 기 해주고는 드디어 본론을 꺼냈다. "......그래서 보디가드로 쓸 다크 나이트가 하나 필요해요." 뒷말의 부탁에는 하트 표시가 난무하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진한 애 정(?)이 담뿍 담긴 티아의 말에 할아버지의 수집품을 달라고 하는 것은 힘들지 않을까 라고 걱정하던 테이의 염려와는 달리 크레스문은 즉시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했다. "내 귀여운 손자가 쓸 거라는데 그깟 다크 나이트 한 마리가 문제냐? 원한다면 한 부대를 줄 테니 가져가서 아예 그 숲에 몬스터란 몬스터는 싹 다 쓸어버리거라." 그 말을 들은 테이는 입을 쩍 벌릴 수밖에 없었다. 크레스문이 평소 다 크 나이트들을 얼마나 아끼는 줄 잘 알고 있는 테이로서는 정말 파격적 인 제안이었다. 다크 나이트를 주기 위해 다크 나이트의 방의 문을 열려고 가는 크레스 문의 뒤를 따라가던 티아는 생긋 웃으면서 테이를 바라보면서 마음속으 로 말을 걸어왔다. [어때 간단하지?] [으응. 누나 정말 대단하다.] 테이는 진심으로 감탄을 하였다. "어라?" 근데 테이의 진심 어린 칭찬이 떨어지자 티아가 살짝 얼굴을 붉히면서 고개를 돌리는 것이다. [설마...누나 부끄러워 하는 거야? 안 어울리는 짓은 하지마. 누나 같 지가 않...] 테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티아의 발이 비호같이 테이의 북부에 꽂혔 고, 테이는 짧은 비명 소리를 내면서 그 자리에 쓰러졌다. "무슨 일이냐?" 크레스문이 그 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보니 티아가 쓰러진 테이를 흔들 며 말하고 있었다. "테이야 괜찮니? 얘는 뭐 걸릴게 있다고 넘어지고 난리야? 괜찮아? 머 리를 세게 부딪친 것 같던데." 쓰러져 넘어진걸(?) 가지고 호들갑을 떨면서 동생 걱정을 하는 티아의 모습에 크레스문은 그저 미소만 나왔다. 그러나 당사자인 테이는 티아 의 그 가증스런 이중성에 치를 떨고 있다는 사실을 크레스문이 알 리가 없었다. "역시 내 손자, 손녀는 착한 아이들이라니깐. 허허허 난 복 받은 드래 곤이야." '그게 아니란 말이에요!!' 라고 소리치고 싶은걸 테이는 자신의 등에 살며시 주먹을 갖다 대고 무 언의 압력을 가하는 티아 덕분에 속으로만 울분을 삼켰다. "정렬!" 제임스는 생각보다 빨리 돌아온 크레스문 덕분에 긴장을 하고 있었다. 티아와 테이를 데리고 들어온 크레스문의 모습에 제임스는 크레스문의 컬렉션(?)-자신을 포함해서-을 구경시켜 줄 생각이라고 단정지었다. 그 때문에 제임스는 아직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둘을 데려와서 다크 나 이트들에게 재롱 잔치(?)를 시켰던 기억이 나서 긴장감이 들었던 것이 다. 더구나 그 둘이 돌아가고 난 뒤에는 청소라는 명목으로 자신의 몸 이 크레스문의 손에 의해 닦일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긴 장감은 더욱 배가되었다. 제임스는 재롱 잔치와 청소를 당하는 것 중 어느게 더 쪽팔릴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잠시 현실도피를 하였다. 그러나 제임스의 걱정과는 달리 다행히도 재롱 잔치 때문에 집합시켰던 것은 아니었다. "자 테이야 어느게 마음에 드니 전부다 말은 잘 들으니깐 어떤걸 골라 도 후회는 하지 않을 꺼다." 마치 장난감 가게에 손자를 데려와서 이건 어떻고 저건 어떻고 하는 식 으로 다크 나이트를 가르치면서 설명을 해주는 모습에 제임스는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티아는 다크 나이트들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열심히 이것저것을 고르는 가 싶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마음에 드는 게 없는 것 같은 모습 이었다. 그에 반해 테이 쪽은 크레스문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어 느걸 고를까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제임스는 그것만 보고도 단번에 남매의 성격 차이를 알 수 있을 것 같 았다. '누나 쪽은 똑 부러지는데 반해 남자 동생 쪽은 우유부단하군. 마치... .이런 내가 무슨 생각을...' 제임스는 요즘 들어서 자주 꾸는 옛날 꿈 때문인지 이제는 잊어버렸다 고 생각한 그녀와 그때 그녀와 사귀던 자신의 모습과 티아와 테이를 어 느새 비교 해보고 있는 자신을 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티아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가만히 서 있는 다크 나이트들을 괜스레 툭툭 쳐보았다. 도저히 마음에 드는 게 눈에 안보였다. 결국 티아는 아 무거나 골라 가지자는 생각을 하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라?" 티아의 무심한 눈동자가 갑자기 반짝였다. "할아버지." "왜 그러니 티아야. 마음에 드는 게 있니?" 열심히 테이에게 설명을 해주던 크레스문은 사랑하는 손녀가 부르는 소 리에 얼굴 한가득 미소를 띄우고는 티아를 쳐다보았다. 티아 역시 얼굴 한가득 미소를 지으며 손으로 어딘가를 가르치며 말했다. "저거 마음에 들어요. 저거 주세요." "오 마음에 드는걸 발견한 모양이구나. 우리 손녀가 달래는데 내가 못 줄 것 없...." 티아가 가르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하던 크레스문은 말을 끝내 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굳어 버렸다. 테이 역시 그쪽을 보고는 마음 에는 드는데 그래도 저건 좀...이라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티아에게 지목 당한 다크 나이트는 손으로 자신을 가르치며 '저 말입니까?' 라고 황당한 음성으로 말했다. 크레스문이 가진 다크 나이트 중 유일하게 그런 행동과 말을 할 수 있 는 살아 있는 은빛의 다크 나이트 제임스는 흐를 리가 없는 식은땀이 그날따라 참 자주 흐른다는 생각을 하였다. 계속 ------------------------------------------------------------------ 1. 레드 드래곤 오스타인과 실버 드래곤 세이르아의 닭살 신혼 일기. 2. 이 남자가 잡혀 사는 법(가칭) 엔드르와 레이나 커플 이야기 3. 나도 엘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가칭) 제이크 이르에게 공개 구 혼 이야기. 드래곤 남매 10화 의지를 가진 다크 나이트(3) "글세 저건 안된 다니깐!" "싫어요. 저게 좋아요. 저거 아니면 싫어요!!" "티아야 제발...." "이잉. 저거 주세요. 네 할~아~버~지. 저거 주~세~요." 마치 장난감 하나 두고 손녀와 할아버지의 대립을 보는 것 같은 광경에 그 둘에게서 저것이라 지칭되는 제임스는 씁쓸하게 웃었다. "이거 완전히 장난감 인형이라도 된 기분이군." 지금 자신의 처지가 손녀와 할아버지가 서로 달라 못 준다의 장난감 취 급을 받는 게 달가운 일이 아니라 혼자 한숨쉬며 중얼거렸다. "아직 이 정도면 차라리 괜찮은 편이야." 분명 혼자서 중얼거린 말에 누군가 대꾸를 해주자 제임스는 소스라치게 놀라서 대꾸를 한 인물을 쳐다보았다. 그 인물이 아닌 용물(?)은 테이 였다. 테이는 어느새 제임스의 옆에 앉아서 티아와 크레스문의 제임스배(?) 은빛 다크 나이트 소유권 대전을 구경하고 있는 중이었다. 제임스는 드 래곤들에게는 약간의 무례하게도 들렸을 불평을 테이가 들었다는 것보 다 테이가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가 더 궁금했다. "도련님. 실례가 안 된다면 방금 도련님이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이죠? 이보다 더 나빠질 수도 있다는 말씀이신 가요." 테이는 제임스의 말에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만약 누나가 이겨서 널 받아 내면 이르 누나의 경호를 맡길 꺼야. 그 동안은 별 문제가 없겠지만 이르 누나에게 네가 더 필요해지는 일이 생 기지 않으면 틀림없이 누나는 할아버지에게 널 안 돌려주고 자기가 가 질걸. 그렇게 되면...." "그, 그렇게 되면....뭐죠?" 제임스는 테이의 말에 왠지 모를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그 불안함을 애써 삼키며 다음 말을 재촉하자 테이는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너에게는 이미 지옥에 빠진 거나 마찬가지의 생활이 기다릴 꺼야." "서 설마 그렇게까지...." 애써 그 사실을 부정하는 제임스에게 테이는 강하게 말했다. "그 설마를 난 매일 400년 간 겪어 왔어. 앞으로도 겪을 테고...." 그렇게 말하면서 멍한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는 테이의 눈에서 제임스는 지난 400년 간 테이의 말대로 지옥을 경험한 것 같은 자의 눈빛을 볼 수 있었다. 그로 인해 제임스의 등에서 흐르는(?) 식은땀의 개수는 더욱 증가하였 고, 차라리 매일 크레스문에게 닦이는 생활을 할지언정 티아에게 자신 의 소유권이 절대 넘어가면 안되겠다는 마음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마음을 먹자 지금 한참 제임스배(?) 은빛 다크 나이트 소유권 대전을 자연스레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게 되었다. 지금 그가 보는 상황은 크레스문이 '절대 안 돼. 죽어도 안 돼. 설사 손녀라도 절대 안 돼!'라고 소리치면서 밀어붙이고 있었고, 그 기세에 눌려서 티아는 꿀 먹은 벙어리 마냥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사태가 자신의 걱정대로 흘러가지 않게 되자 조금 안심이 된 제임스는 약간 여유를 가지고 테이에게 말을 걸었다. "두 분께는 안된 일이지만 저에게는 다행히도 저의 마스터의 승리가 확 실하군요." "그럴까?" "예?" 제임스의 말에 무심하게 반응하는 테이의 대답에 제임스는 설마 하면서 이제 클라이막스로 다가가고 있는 대전을 지켜보았다. 크레스문은 아예 핏발을 세우고 제임스를 못 준다고 열변을 토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거 알아?" "네?" "우리 할아버지는 실수 한 거야." "뭐를요?" "남자는 사랑하는 여자의 눈물에 약하지. 그리고...." 크레스문은 마치 손녀를 잡아먹을 듯이(?) 토하던 열변을 멈추고 크게 당황하면서 안절부절못했다. 티아가 바닥에 주저앉더니 크게 울어 버린 것이다. "사랑하는 손녀의 눈물을 이기는 할아버지는 못 봤어. 적어도 우리 할 아버지라면 말이야." 테이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 제임스를 쳐다보며 씩 웃으며 말 했다. "당분간은 잘 부탁해. 보디가드씨." 제임스의 투구 속의 감정이 없을 것 같은 은빛 눈은 신기하게도 지금 제임스가 어떤 마음인지 뚜렷하게 나타내 주고 있었다. 당혹 감이라는 감정을... "으아앙 할아버지는 날 싫어하는 거야! 엉엉!" "티아야. 내가 널 싫어하다니 그런 일은 하늘이 무너져도 안 생겨요." "앙앙 그럼...훌쩍 저런 다크 나이트 하나 갖고 손녀를 야단치는...엉 엉 할아버지가 어디 있어요? 엉엉엉." 티아는 전형적인(?) 아이가 떼쓰기 울음 모드인 두 손등으로 눈을 가리 고 큰 소리로 울기를 시전 중이었다. 이 모드의 장점은 역시 뭐니 뭐니 해도 감정을 표현하는 눈을 가리고 울기 때문에 상대방으로 하여금 정 말 우는지 안 우는지 분간을 가게 만들지를 않는다는 점이다. 조금 과 장된 행동 때문에 안 울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도 만들지만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 때문에 그런 정상적인 사고 방식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덤 으로 티아 같은 여자가 사용하면 귀여워 보이는 모습까지 한몫 하여 제 아무리 위대한 종족으로 추대 받는 크레스문이라고 하더라도 어떻게 해 야 될지 몰라서 안절부절 하기만 할 수밖에 없었다. "흐어엉. 동생을 도와주려고...흐끅 그래서 할아버지한테 부탁했던 건 데...으아앙 할아버지 미워! 차라리 아빠한테 가는 건데 엉엉엉." 그리고 지금 울고 있는 티아는 영악했다. 평소 엄마인 세이르아를 금이 야 옥이야 다루었다는 팔불출 아빠였던 크레스문은 1500살 이상이나 나 이 차가 나면서도 딸을 훔쳐 간-크레스문의 관점에서-티아와 테이의 아 빠인 오스타인을 굉장히 안 좋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건 단지 딸 사랑이 지나친 크레스문의 생각일 뿐이지 일족의 수가 적은 드래곤 사회에서는 1500살 차이는 오히려 적당한 나이 차였 다. 최근 티아와 테이에게는 똑같은 팔불출 아빠와 할아버지로 통한다 는 공통점이 생기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오스타인에게 안 좋은 감 정을 품고 있는 크레스문에게 사랑하는 손녀가 자신에게 괜히 왔다고, 아빠한테 갈 것이라는 소리를 듣고 가만있을 리가 없었다. 티아에게는 일종의 도박이었다. 자신의 말에 삐쳐서 '그럼 당장 그 잘 난 아빠한테 가거라!'라고 쫓겨날지도 몰랐다. 하지만 생각대로만 된다 면 이번 공격(?)은 최고의 공격이 될 수도 있었다. "뭐라고?!" 분노에 찬 크레스문의 외침을 들으면서 티아는 속으로 혀를 찼다. '쳇 실패인가?' "그 놈이 나보다 뭘 더 잘 해줄 것 같아? 티아 넌 이 할아비한테 온게 백번 아니지...백만번 잘한 일이야!" "훌쩍 정말요?" 티아는 조심스레 눈에서 손을 떼고 울어서 빨개진 눈으로 크레스문을 조심스레 쳐다보았다. 눈물에 젖었고, 눈물 때문에 새빨개진 눈에 크레 스문이 화를 내서 겁을 먹은 것 같은 저 티아의 표정에 넘어가질 않을 드래곤이 과연 있을까? 만약 있다면 당장 그 놈의 머리 속을 해부해서 조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크레스문은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당연하지. 이 내가 다크 나이트 하나 때문에 손녀를 울리는 그런 파렴 치한 드래곤으로 보이느냐?" 크레스문은 손수건을 만들어서 티아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손수건 하나 만드는 건 고룡인 그에게는 정말 손쉬운 일이다. 그냥 허공에 용언으로 손수건이라고 외치면 되니깐. 그렇게 용언으로 만들어진 손수건으로 티 아의 얼굴을 닦아주지 않아도 그냥 마법으로도 티아의 얼굴을 원상태로 만들어 줄 수 있지만 크레스문은 그러기는 싫었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손녀의 눈물을 손수 닦아주는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 모습을 다시 보일 기회가 올 것인가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실상은 깨물어 주고 싶을 만큼 귀여운 손녀의 얼굴을 합법적(?)으로 마음껏 만질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잠자코 크레스문이 얼굴을 닦아주는 대로 얌전히 있던 티아가 손수건이 치워지자 물었다. "그럼 저 다크 나이트 주실 수 있어요?" "그 그건 그러니깐...." 역시나 아까운 기분에 말끝을 흘리는 모습을 보자 티아의 눈에 눈물이 다시 맺혔다. "히잉." "줄게! 준다니 깐 제발 울지만 말아라!" 크레스문의 허락이 떨어지자 티아는 즉시 소매로 눈을 쓱쓱 닦고는 헤 하고 웃으면서 크레스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역시 할아버지가 정말 좋아요." 그렇게 말하면서 크레스문의 가슴에 뺨을 부비적 거리는 손녀의 모습에 크레스문 마음속에 있던 단 하나의 아깝다는 감정까지 봄눈 녹듯 사라 졌다. '그래 저런 다크 나이트보다 사랑하는 손녀의 웃는 얼굴이 최고지.' 귀여운 손녀를 안아 주면서 크레스문은 진정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하 지만 크레스문에게 안긴 체로 손으로 테이에게 'V'표시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만약 크레스문이 알게 된다면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테이는 그런 궁금증을 느끼면서 고개를 흔들면서 중얼거렸다. 그런데 마침 테 이와 똑같은 제스처를 취하면서 중얼거리는 제임스와 똑같은 말을 내뱉 게 되었다. "여자란...." 똑같은 말을 중얼거린 테이와 제임스는 서로를 쳐다보고는 의미를 알 수 없는 한숨을 쉬었다. 조금 시끄러운 일이 있었긴 하지만 테이는 그 래도 티아 덕분에 원하는 것을 손에 넣어서 조금은 누나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다. 그리고 제임스는 앞으로 어떤 불행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까 하는 걱정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계속 ------------------------------------------------------------------ 드래곤 남매 10화 의지를 가진 다크 나이트(4) "제임스라고 합니다. 의지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일단은 다크 나이트 입니다." 제임스는 이르와 카렌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면서 인사를 하였다. "반갑습니다. 이르니아입니다." "안녕하세요? 카렌이에요." 셋이 정답게 인사를 주고받고 있을 때 테이는 부서진 현관문을 보면서 이걸 어떻게 하지라는 뜻으로 한숨을 쉬고 있었다. 할아버지에게 제임 스를 넘겨받고 여기까지 데려 오는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문 제는 집안에 들어가려고 할 때 생겼다. 제임스의 덩치가 테이 전용 별 장(?)의 현관문보다 커 이대로는 도저히 집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제임스는 그냥 밖에 서 있어도 되니 상관없다고 했지만 티아가 첫 대면 을 집 놔두고 밖에서 서서 차 마시면서 할 생각이냐며 다짜고짜 현관문 을 부숴 버린 것이다. "자 이 정도면 제임스가 충분히 들어갈 수 있지?" 테이 입장에서는 정말 가증스런 웃음을 지으면서 자신이 저지른 일을 자랑스럽게 말하는 티아를 보면서 제임스는 결과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티아를 쳐다보면서 속으로 한숨쉬었다. '똑 부러지는 것은 그녀와 같지만...방법 선택 문제에 있어서는 닮은 게 전혀 없군. 그녀라면...이런 내가 또 무슨 생각을...' 가뜩이나 요즘 꿈에서 옛 기억이 떠오르는 중이고, 정말 근 몇 백년만 에 크레스문의 레어 밖으로 나와 세상을-비록 숲속이지만- 보고 있자니 옛날 생각이 자꾸 나는 제임스였다. 고개를 저으며 옛 기억을 마음 깊 숙이 밀어 넣고는 이제부터 자신이 경호해야 될 대상을 쳐다보았다. 대 강의 해야 될 일은 오면서 티아와 테이에게 들어서 잘 알고 있었다. 테 이는 제임스를 데려오자마자 주위에 쳐 둔 결계를 해제했다. 이것으로 결계가 무식하게 막아 대던 숲의 기운이 차단되는 상황은 없어진 것이 다. 대신에 이 오두막은 이제 몬스터들의 좋은 사냥터(?)가 된 것이기 도 하였다. 다만 변수가 하나 있다면... "결계를 걷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손님이 왔군요." 제임스가 밖에서 무언가를 느낀 듯이 말하더니 문밖으로 나가면서 말했 다. "금방 돌아오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제임스가 나가고 난 뒤 얼마 후 이 세상 것이라고는 믿 을 수 없는 비명 소리가 숲을 뒤흔들었다. 그리고 비명 소리라고 생각 되는 소리가 없어지고 난 뒤 제임스는 손을 탁탁 털면서 들어왔다. "다녀왔습니다." "오자마자 수고하네. 그래 뭐였어?" 티아가 차를 마시다 말고 막 들어오는 제임스에게 물었다. "길 잃은 고블린 떼들이 헤매고 있길레 가야 될 곳으로 보내 주었죠." "친절하네." 해석하자면 누군가 사는 흔적을 따라 와서 약탈을 하려고 찾아온 고블 린들을 모조리 척살 했다는 잔인한 내용의 말이지만, 말을 어떻게 하느 냐에 따라서 저렇게 부드럽게(?) 말할 수도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깨달 은 테이가 감탄을 하며 말했다. "헤에. 역시 할아버지가 자랑할 만하네. 어떻게 몬스터들이 접근한다는 것을 안 거야?" "별거 아닙니다. 저한테는 침입자 경보 장치가 달려 있습니다. 원래 크 레스문 님의 레어에 침입자를 제거하기 위해서 달려 있는 기능인데 그 기능을 이 주변 범위로 바꾼 거죠." 제임스는 정말로 별거 아니라는 뜻으로 말했지만 테이에게는 별거 아닌 게 아니었다. "그럼 안심하고 이르 누나를 맡겨도 되겠네." 테이는 새삼 제임스를 대단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그런데 잠자코 듣 고만 있던 이르가 갑자기 쿡 하고 웃더니 테이에게 말했다. "어머나. 맡긴다니요? 테이 말하는 게 꼭 딸 시집보내는 아버지 같은 말투네요." "정말이네요. 내 딸을 잘 부탁하네. 하는 듯한." 이르가 농담 삼아 한 말을 티아가 받아서 한층 더 업그레이드 시켜서 놀리자 테이의 얼굴은 대번에 붉어지면서 손을 저으며 소리쳤다. "그, 그런 게 아니에요!" "어마? 그럼 전 테이를 할아버지라고 불러야 되겠네요." "카, 카렌." 생각지도 못한 카렌은 배신(?)에 테이는 이제 울상을 지으면서 배를 잡 고 웃는 여자 셋을 바라보았다. 다시 한번 느끼고 거듭 느끼는 거지만. ...여자 셋이 모이면 남자 하나 우습게 만드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하 지만 카렌도 그렇게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는 게 테이에게는 위안이 될 수 있다고 할 수 있었다. "호호호. 말도 안 돼. 테이를 할아버지라니 카렌 넌 테이를 당신이나 여보 라고 불러야지." "아니 그것보다는 자기야~라고 부르는 게 더 낮지 않을까요?" "아 그게 더 났겠네요." "어머니! 티아님!" 방금 전까지 같이 웃던 카렌은 금방 테이와 같이 얼굴이 빨개지고 울상 을 지으면서 웃고 있는 두 여자를 쳐다보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티아 는 '둘이 정말 천생연분이다.'라는 말을 덧붙이는 바람에 결국 카렌은 볼 일이 있다는 말을 하면서 2층으로 도망치듯이 사라져 버렸다. 테이 도 그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도망치면 죽어 라 는 분위기가 티아의 몸에서 흘러나와서 꼼짝도 못한 체 그 자리에 얼어 붙은 듯이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제임스는 그 광경을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처음 에는 테이가 겁을 좀 많이 주었고, 티아의 그 영악한 모습을 보아서 걱 정을 했지만 막상 일을 맡고 보니 그렇게 힘든 일도 아니었고, 무엇보 다 그 답답한 동굴-레어-안에서 나왔다는 것에 기분이 좋았다. "저기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죄송합니다." 제임스는 궁금한 점을 묻고 싶어 끼어 들 수 없을 것 같은 두 여자의 수다에 끼어 들었다. 이르와 티아 그리고 테이까지 돌아보면서 무슨 일이냐는 뜻으로 쳐다보 자 제임스는 잠시 머리를 긁적이다가 물었다. "지금이 몇 년이죠?" "그리노력 621년인데요. 왜 그러시죠?" "그리노력이라고요?" 제임스는 이르의 말을 이해 할 수가 없었다. 당연한 것을 묻고는 고개 를 갸웃거리는 제임스를 잠시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던 이르는 아 하 는 탄성을 질렀다. "왜 그래요? 이르 언니." 이르는 티아의 물음에 대답을 해주지 않고 대신에 제임스에게 질문을 하였다. "그리노력을 모른다면 혹시나 당신은 대륙력에 사시던 분인가요?" "네 제가 다크 나이트가 되었을 때가 대륙력 1202년이었습니다. 근데 그리노력이란 게 뭐죠?" 티아와 테이는 대륙력이라는 말에 놀랐고, 테이는 아예 소리를 지르면 서 제임스에게 물었다. "에에?!! 당신 그럼 1000년 전 사람이었단 말인가요?" "1000년 전?!! 그럼 지금 1000년이나 지나 있단 말인가요? 아니 그것보 다 그리노력이란 건 뭡니까?" 제임스는 놀라서 소리를 지른 테이보다 더 놀라 버렸다. 잠드는 시간이 길어지고 많이 잠들 때가 많아서 정확히 몇 년이나 흘렀는지 감은 안 왔지만 대충 500~600년은 흘렀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1000년이라니... 이르는 잠자코 있다가 제임스의 흥분이 가라앉자 조용히 설명해 주었 다. "대륙력 1202년이었다면 정확히 1231년 전이군요. 대륙력은 당신이 다 크 나이트가 된 610년 후 1812년에 사라졌습니다. 당시 데스타 제국이 프론트 연합국을 뺀 전 대륙을 통일하였고, 대륙을 통일한 지그이라드 그리노 폰 데라스타 1세는 자신의 이름을 따서 이름이 없던 이 대륙에 그리노 대륙이란 이름을 붙이고 그때부터 그리노력으로 연도를 따지게 되었어요." "프론트 연합국이요?" "아 맞다. 그때는 아직 연합국은 아니었군요. 세인트, 이류더, 화티마, 후라도나, 오리콘, 모샤니국이 데스타 제국의 대륙 통일에 저항하기 위 해 연합을 하면서 탄생한 연합 국가예요." 그 말에 제임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신룡들의 가호를 받는다는 나라들이었군요." "네 맞아요." "휴...1000년이나 흘렀단 말이군요. 1000년이라...." 제임스는 잠시 천장을 쳐다보면서 중얼거리다가 이르를 쳐다보고 다시 물었다. "그럼 지금도 이 대륙...아 그리노 대륙이라고 하셨죠. 이 그리노 대륙 은 데스타 제국에 의해서 통일 된 상태인가요?" 이르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데스타 제국은 지그이라드 1세가 죽은 후 100여 년 후에 분열 되었어요. 좀 더 자세한 걸 알고 싶다면 역사책을 빌려 드릴까요?" "부탁드립니다. 아 분열되었다는 나라 중에 혹시 페이안이라는 나라도 있나요?" "페이안? 가만 페이안....페이안이라면...아 분명 레이아스와 데스타 제국 가운데 끼여 있는 소국 중에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요? 있었군요." 제임스는 고개를 끄덕였고, 이르는 잠시 역사책을 가지러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무언가 이유가 있어 보이는 제임스의 질문에 티아와 테이는 물어 보고 싶었지만 분위기가 도저히 물어 볼 분위기가 아니었다. 테이는 별 수 없이 입맛만 다시며 이런 저런 추측을 해보았고, 티아는 관심을 끊고 고민 중인 테이에게 말했다. "나 그만 갈련다." "어 누나 벌써 가게?" 말은 벌써 가냐고 하면서 테이는 마음속으로 티아가 간다는 말에 아주 반가워했다. '드디어 골칫덩어리가 가는구나. 나이스! 이제 내 인생은 청신호다!' 그러나 티아는 그런 테이의 속마음을 알아 챌 수 있었다. '아주 즐거워하고 있군. 이 버릇없는 자식. 조용히 사라져 줄라고 했는 데...그래 어디 한번 두고보자.' 속으로는 이를 갈면서도 겉으로는 생긋생긋 웃으면서 큰 소리로 말했 다. "저는 이제 그만 가 볼게요." 마침 책을 찾았는지 가지고 나오던 이르가 놀란 눈으로 티아를 쳐다보 았고, 볼일(?)이 있다고 방에 틀어박힌 카렌이 슬며시 1층으로 내려왔 다. "벌써 가시게요? 좀 더 있다 가도 되는데." "여기 있어 봤자 이제 내가 할 일도 별로 없고, 또 자다 일어나서인지 좀 졸려서요. 아예 본격적으로 동면이나 들어갈까 봐요." "저기 여러 가지로 도와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카렌이 머리 숙여 인사하자 티아는 별거 아니라는 뜻으로 어깨를 으쓱 했다. "남도 아니고, 외출 때 신세를 진 이르 언니한테 이 정도야 뭐. 고맙다 는 인사를 받을 정도는 아니야. 아 그리고 테이야." 테이는 티아가 자신을 부르며 쳐다보자 일순간 긴장감이 들었다. 표정 을 보아하니 그냥 넘어갈 것 같은 표정이 아니었다. '절대로 당하지 않겠어.' 속으로 다짐에 다짐을 하고 굳은 얼굴로 티아를 쳐다보면서 부른 이유 를 물었다. 티아는 잠시 생각하는 듯 하다가 말했다. "저기 첫 아이는 이름을 뭐라고 지을까? 이레느라는 이름이 어때?" 잔뜩 긴장하고 있던 테이는 티아의 물음에 바로 얼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에? 별로야. 더구나 아직 아들인지도 딸인지도 모르잖아." "아 그렇구나. 그럼 딸이 태어나면 뭐라고 지을 건데?" "루엔이라고 부를 꺼야? 어때 괜찮지?" "이레느랑 비슷하구만. 아무튼 첫 딸이라면 카렌 닮아서 미인이 태어나 겠다 그렇지?" "그야 물론 카렌이 정말 귀엽고 예쁘니깐 우리 아이는 틀림없이....가 아니잖아!!! 누나!!!" 그제야 말려들었다는 걸 눈치챈 테이가 분노해서 소리쳤지만 이미 늦었 다. 다시 얼굴이 빨개진 카렌은 다시 볼 일(?)이 생겼다며 울 것 같은 얼굴로 2층으로 달려가 버렸고, 덕분에 이르와 티아는 한바탕 웃으면서 마지막으로 둘을 씹으며 작별 인사를 하였다. "정말 순진 덩어리네요. 테이가 고생하겠어요. 저 이만 갈게요." "테이님도 만만치 않은걸요. 잘 가요. 또 놀러 와요." "네. 어이 테이야. 담에 올 때는 정말 예쁜 딸 하나 만들어서 보여줘야 해. 아 아기 만드는 방법은 알지? 모르면 가르쳐 줄까?" "누우나!!!!" 그렇게 다짐을 했건만 끝까지 티아 페이스에 말려든 테이는 또 당분간 은 카렌이 자신을 피하겠구나 하는 생각에 왜 그렇게 누나에게는 잘 말 려드는 것인가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해 보았다. '생각한다고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에휴 모르겠다. 그나마 누나 가 가니깐 이제 좀 조용해지겠지.' 티아가 밖으로 나오니 마당 한 구석진 곳에서 앉아서 책을 읽고 있는 제임스가 보였다. 티아는 바로 갈려던 생각을 고치고 제임스에게 가서 말을 걸었다. "집안에서 보지 않고 왜 여기서 봐?" "여기가 햇볕이 잘 들고, 또 저 집에는 내가 앉을 만한 곳이 없으니깐 요. 그것보다 이제 가시는 겁니까?" "응. 내 할 일은 다했으니깐. 앞으로 잘 부탁해 보디가드씨." 티아의 말에 제임스는 피식 웃었다. "어? 왜 웃어?" 감정이 전혀 있는 것 같아 보이지 않는 제임스의 투구 안의 은빛 눈은 정말 볼 때마다 신기하게도 제임스의 희로애락을 잘 표현하고 있었다. 티아는 언제 한번 시간이 나면 갑옷을 해체해 볼까 하는 생각을 잠시 접어 두고 자신의 말에 웃는 제임스에게 이유를 다시 한번 물었다. "왜 웃냐고?" "아 기분이 상하셨다면 죄송합니다. 별 뜻은 없습니다. 방금 아가씨가 하신 말씀은 아까 전에 크레스문 님의 레어에서 도련님과 하신 말과 똑같아서 역시 쌍둥이구나 라는 생각에 그냥 웃음이 나오더군요." "그래." 티아는 더 이상 따지기를 그만두고 배웅을 나온 이르와 테이를 한번 쳐 다보고는 다시 제임스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그런데 잘 부탁한다는 내 말에 대한 대답은?" "물론 맡겨만 주십시오. 라고 말하면 되겠죠?" 이번에는 티아가 피식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 걸리겠지만 이 일이 끝나면 널 데려가야겠어. 넌 재미있을 것 같 아." 티아의 말에 제임스의 머릿속에서 순간 테이가 했던 말이 스쳐 지나갔 다. '너에게는 이미 지옥에 빠진 거나 마찬가지의 생활이 기다리고 있을 꺼 야.' "저, 저기....아가씨. 전 그렇게까지 재미있는 녀석이 아니라서...." "응? 그래서?" 제임스는 다시 한번 흐를 리가 없는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끼면서 필 사적으로 티아의 마음을 돌리려고 애썼다. "그러니깐 아마도 아가씨의 즐거움을 충족시키지 못할까 걱정이 됩니 다. 그러니...." "아, 아 그거라면 괜찮아. 지금 쩔쩔매고 있는 모습만 봐도 재미있는 걸." "하지만..." "자, 자 그럼 결정된 걸로 치고 일이 끝나면 그때 보자. 난 이만 갈게. 이르 언니도 테이도 건강하게 잘 있어. 테이는 카렌에게 대신 안부 전 해 주고." "저기 아가씨!" 필사적으로 티아의 마음을 돌리려던 제임스의 노력은 티아가 워프의 문 을 열고 들어가면서 무위로 끝나 버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널 데려 가는 그 날을 기대할게.'라고 하면서 그 어떤(?) 의미가 가득 담겨 있 는 시선을 보내고 티아는 그렇게 훌쩍 떠나가 버렸다. "아가씨이!!!!" 이미 아무 소용없는 외침을 피를 토하는 듯이 외치는 제임스를 보면서 테이는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희생자 한 명이 추가되었군. 나에게는 동지가 생겼으니 기뻐해야 되나 ?" 그러나 전혀 기쁜 마음이 들지 않는 테이였다. 계속 드래곤 남매 10화 의지를 가진 다크 나이트(5) 티아는 자신의 레어로 돌아와서 폴리모프를 해제하였다. 눈이 부신 은 빛의 거대한 드래곤(해츨링(?))인 실버 드래곤인 본 모습으로 돌아온 티아는 곧바로 엎드려서 눈을 감았다. 그러나 잠은 오지 않았다. '잠이 올 리가 없지. 자고 싶은 마음도 없었는데...' 그러나 계속 눈감고 가만히 있으면 잠이 올 거라고 믿으면서 억지로나 마 잠을 청했다. '테이 녀석...행복하겠지? 내가 이렇게 까지 희생해 주었는데 행복하지 않으면 안되지. 만약에 행복하지 않으면 가만 안 두겠어.' 잠시 속으로 이를 갈던 티아는 테이와 카렌을 나란히 두고 상상해 보았 다. 아무리 생각해도 잘 어울리는 한 쌍의 순진한 커플이었다. 그 사이 에 자신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아무리 생각해도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 도... '하지만....난 테이의 누나야. 지금은 이걸로 만족하자.' 스스로 마음에 위안을 주면서 티아는 계속 잠을 청했다. '그래 난 테이의 누나. 지금은 이거면 충분해. 정말로....충분해....' 그렇게 티아는 조용히 그리고 서서히 동면에 들어갔다. 페이안국 대륙력 993년에 건국된 신성 왕국이라는 이름의 이 국가는 미의 여신이 자 평화의 여신이기도 한 샤이라스를 받드는 나라였다. 그러나 안타깝 게도 당시 대륙의 많은 사람들은 샤이라스를 믿는 신도들이 상당히 적 었다. 수십 개의 나라가 세워지고 또 망해 가는 난세에 사람들의 평화 의 여신보다는 전투의 신 레이칸이나 죽음의 신 하데스를 숭배하는 국 가들이 더 많았다. 그리고 스스로를 신성 왕국이라 칭하며 샤이라스의 가르침에 따라 평화와 화합을 부르짖는 왕국을 곱게 생각하는 나라는 없었다. 샤이라스 여신의 가르침인 평화를 지키기 위해 수 많은 젊은이 들이 전쟁에 몸을 내 던졌다. 당시 페이안국은 귀족이든, 평민이든 상관없이 많은 젊은이들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샤이라스 여신의 가르침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목숨이 희생되었고, 그 희생을 발판 삼아 대륙력 1 053년 60년 간의 투쟁 끝에 대륙에서 인정하는 선진국으로 성장하였다. 그리고 그 성장을 밑바탕 삼아 샤이라스 여신의 가르침을 대륙 널리 퍼 트리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오늘날 민중들이 가장 많이 믿 는 3대 신들 중에 미의 여신이자 평화의 여신인 샤이라스 여신교가 그 리노 대륙 널리 퍼진 건 페이안국의 노력에 따른 결과일 수도 있다. 그 렇게 세력을 확대해 가고 주변 국가에서 아무도 건드리지 못할 것만 같 던 페이안국도 대륙력 1203년 대륙 통일을 부르짖던 데스타 제국에 의 해 다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었다. 다른 왕국과는 달리 10년 간이나 처절하게 항전하던 페이안국도 결국은 당시 제미라스 세이트 폰 아트라드 2세의 딸인 레이나르 세이트 폰 아트라드 공주가 데스타 제국 의 크레스트 요셉 드 캐드리안 5세의 후궁으로 들어가면서 페이안국은 데스타 제국의 소국이 되면서 전쟁은 끝이 났다. 그리고 100년 뒤 그나 마 국가로서 모습이나 남아 있던 페이안국은 완벽하게 데스타 제국에 흡수되고, 대륙력에서는 끝내 그 모습을 감춰 버렸다. 그러나 당시 스스로 후궁을 자원해서 나라를 지킨 레이나르 공주의 총 명함은 캐드리안 5세의 눈에 들었고, 덕분에 데스타 제국의 막강한 군 사력을 이용해서 샤이라스 여신교를 대륙에 널리 퍼지게 만드는데 결정 적인 밑거름을 쌓아 놓았다. 그리고 데스타 제국은 그 종교를 이용해서 대륙 통일의 정당성을 부여 하는데 사용하였다. 결국 데스타 제국이 프론트 연합국을 뺀 전 대륙을 통치하게 되었을 때 샤이라스 여신교가 국교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그리노력 102년 스스로를 천년 제국이라 칭하던 데스타 제국이 분열하게 되었고, 대륙력 때 이름 있는 나라들이 기회를 잡고 독립을 외쳐 되었다. 페이안국도 그 중 하나였다. 더구나 샤이라스 여신교의 총 봉산인 샤이 라스 여신 신전이 있는 곳이라 지지도도 컸다. 그러나 지지도만큼 옛 국력은 결국 회복하지 못하고 레이아스 왕국과 데스타 제국의 사이에 끼인 소국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작은 나라로 독립에 만족해야만 되었다. 혼란스런 전국시대가 정리되고 이제 샤이라스 여신교의 총 봉산의 이미 지를 강하게 내포한 페이안국은 옛날 신성 왕국이라 칭하던 위엄은 찾 아 볼 수 없으나 평화의 여신 샤이라스 교의 수많은 신자들이 항상 들 리는 나라로 유명해져 갔다. 케이시스의 그리노 대륙 국가 분석 중 페이안국 부분 제임스는 읽고 있던 책을 덮고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당신은 그 전쟁터에서 왔다고 하셨죠? 혹시 제임스라는 기사를 만나지 못했나요? 생김새는...' '죄송합니다. 공주님 제가 그 곳에서 본 것은 수많은 사람들의 시체뿐 입니다. 공주님이 찾던 분은 아마도....' '그럴 리가 없어요! 제임스는 날 지켜 주겠다고 말했어요. 그는 약속을 안 지키는 남자가 아니에요!' '당신의 진짜 이름은 뭐죠? 실버라는 건 당신이 항상 입고 있는 갑옷 색깔의 별명일 뿐이잖아요. 실버의 진짜 이름은 뭔가요?' '전 우리나라 국민들이 좋아요. 여신 샤이라스 님의 가르침에 따라 평 화를 사랑하는 국민들이 너무 좋아요. 하지만 지금 대륙의 시국은 이런 우리나라의 국민들의 염원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죠. 만약 제 몸 하나 희생되어서 당분간이나마....아주 잠깐일지라도 국민들이 원하는 평화 가 찾아온다면 아무것도 아깝지 않아요.' '후회하지 않으십니까?' '후회하지 않아요. 후회하면 미칠 것 같으니깐 요.' '하나 후회되는 게 있다면....' '그건 실버 당신의 정체를 끝까지 모른 체 떠나간다는 것 정도네요.' '제임스도 용서해 주겠죠? 틀림없이 이런 날 용서해 주겠죠?' "젠장!" 제임스는 쿵 소리가 날 정도로 머리를 땅에 박았다. 요즘 들어서 꿈에 나타나는 옛 기억들 더구나 자신이 떠나고 난 뒤의 페이안국의 안부가 궁금해서 읽어본 역사책에 그녀의 이름이 나오자 못 견디게 옛 생각이 나서 머리가 돌아 버릴 지경이었다. '제임스도 용서해 주겠죠? 틀림없이 이런 날 용서해 주겠죠?' "젠장!" 입만 열면 욕지거리밖에 나오질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그녀의 마 지막 말이 자꾸만 반복되어서 들렸다. '용서를 빌어야 되는 건 바로 나야. 내가 용서를 빌어야 됐어. 바로 내 가....' "무슨 일이세요?" 갑작스런 말소리에 제임스의 사고는 빠르게 현실로 돌아왔다. 뒤를 돌 아보니 자신이 보호해야 될 그리고 자신의 새 마스터인 이르가 걱정스 런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아마도 그가 땅에 머리를 박는 광경을 본 것 같았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산책 나오신 겁니까?" "아뇨 햇볕이 따뜻해서 밖에서 책을 볼까 해서요." 이르가 가르치는 쪽을 보니 어느새 가지고 나왔는지 흔들의자가 마당에 볕이 잘 드는 곳에 놓여 있었다. 드워프들이 집을 고치러 왔을 때 만들 어 준 가구들 중 하나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왜 저에게 시키지 않으셨습니까?" 그 흔들의자는 이르가 들고 나오기에는 무거운 거였다. 안 봐도 이르가 저 의자를 들고 나오는데 얼마나 힘들었는지 제임스는 알 수 있었다. 그 증거로 이르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너무나 진지하게 책을 보시고 계시기에 방해 할 수가 없었는걸요." "그렇다고 저 무거운걸 직접 들고 나오신 겁니까?" "저도 책 읽는데 누가 방해하면 기분이 굉장히 나쁘거든요. 제임스씨도 그럴 꺼라 생각했어요." "그냥 제임스라고 부르라고 했을텐데요." "아 그렇죠. 미안해요. 제임스." '이런...' 제임스는 속으로 혀를 찼다. 말을 하다 보니 어느새 이르가 저 의자를 혼자서 들고 나온 것에 대해서 따지던 말이 흐지부지 넘어가게 된 것이 다. 더구나 미안하다면서 웃는 이르의 말투에서 제임스는 이르가 일부 러 제임스씨라고 불러서 이야기의 핵심을 빗나가게 만든 것 같은 느낌 이 들었다. 그러나 이미 그걸 따질 타이밍은 물 건너 가 버렸다. "그런데 아까는 왜 그랬던 거죠? 갑자기 쿵 소리가 나서 쳐다보니 머리 를 땅에 박고 계시기에 놀랐어요." "그 정도 머리를 박는 걸로는 전 끄덕도 안 합니다." "흠 내 질문에 대답 안하고 엉뚱한 소리를 하시는걸 보니 이야기하기 싫은가 보죠?" '못 당하겠군.' 이르의 말투를 흉내내서 그냥 슬쩍 넘어가려고 했지만 이르는 넘어가 주질 않았다. 하지만 이르는 이야기하기 싫다는 사람에게 억지로 이야 기하라고 강요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말하기 힘든 일은 누구에게나 있는 거니 더 이상 묻지 않을게요." 그렇게 말하고는 이르는 흔들의자 쪽으로 가서 앉고는 책을 펴 들었다. "그냥 옛날 생각이 난 겁니다." 제임스는 오히려 이르가 안 듣겠다는 태도를 보이자 자신도 모르게 그 렇게 말해 버렸다. 물론 자세한 내용은 다 말하지 않았지만 이르는 그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뜻으로 이르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르가 다시 책으로 눈을 돌리자 제임스도 현재 이 대륙이 돌아가는 정 세를 좀 더 알고 싶어서 역사책을 다시 펴 들었다. 그러나 몇 페이지 읽기도 전에 제임스는 책을 내려놓아야 되었다. '몬스터? 둘이군. 덩치가 큰걸 보니 중급 정도 되어 보이는데....' 제임스의 경보 장치가 제임스가 쳐 둔 영역 안에 몬스터가 침입했다고 알려주고 있었다. 제임스는 고개를 들어 책을 보고 있는 이르를 쳐다보 았다. 그리고 잠시 혼자 고개를 끄덕이더니 조용히 그 자리에서 벗어났 다. 테이 전용 별장(?)-테이 왈-에서 조금 떨어진 숲속을 두 마리의 오우거 가 무식하게 생긴 몽둥이를 들고 사냥감을 찾아서 배회 중이었다. 어느 정도의 지능을 갖추어서인지 어디서 구했는지는 짐작도 가지 않는 천 쪼가리로 치부는 가렸지만 녹색의 그 커다란 몸은 근육 자랑이라도 하 려는지 그 탄탄한 몸매를 거리낌없이 내보이며 살육에 물든 눈으로 주 위를 두리번거렸다. "잠깐 너희들이 올 수 있는 건 거기 까지다. 거기부터는 통행세를 내야 돼. 아주 비싼 통행세를 말이야." 오우거는 갑작스럽게 나타나서 알아듣지 못할 말을-인간의 말- 하는 존 재를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뿐 곧 살육을 즐기는 눈빛으로 돌아와서 그 둘의 앞을 막아선 눈부신 은빛의 갑옷을 입은 다 크 나이트 제임스를 노려보았다. 보통 인간이라면 그 눈빛을 보기 전에 오우거의 그 덩치에 겁을 집어먹 는 게 당연하겠지만 지금 제임스는 자신의 두 배가 넘는 오우거 그것도 한 마리가 아닌 두 마리와 대치된 상황에서도 겁을 먹기는커녕 코웃음 을 치며 자세를 잡았다.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다크 나이트로서의 힘을 믿는 것도 있 지만 그에게는 죽음의 두려움이 없다. 인간이 저런 몬스터에게 겁을 먹 는 것은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 때문이다. 그러니 비록 의지를 가졌 다고는 하나 실체는 생명체가 아닌 살아 있는 갑옷인 제임스가 공포를 느낄 이유가 없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도 생각을 할 수 있는 존재만큼 위험한 존재는 없었다. 그런 제임스의 존재는 이미 페이안국과 데스타 제국의 전쟁에서 확인된 바 있었다. 수 백명의 병사들과 대치하고도 두려움 없이 달려드는 제임 스는 적국 병사가 붙인 죽음의 은갑옷 기사라는 별명이 정말 잘 어울릴 정도로 싸웠었다. 그리고 살아 있을 적에 기사로서의 단련과 다크 나이 트가 되고 난 뒤 수많은 전쟁에서 싸웠던 경험은 제임스에게 지금 두 마리의 오우거는 상대도 안될 정도의 힘을 보유하게 만들었다. 아니 애초에 상대라는 단어조차 쓰는 게 아까울 정도였다. 오우거 중 한 마리가 제임스를 노리고 몽둥이를 들었을 때 제임스는 이 미 도약해서 양손으로 각각 오우거의 머리를 하나씩 잡고 땅에 패대기 치는 중이었다.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오우거들은 머리에 느 껴지는 고통보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 표정으 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제임스를 쳐다보았다. 제임스는 오우거들이 비명을 못 지르도록 아예 처음부터 그들의 입을 막아서 땅에 패대기친 체 손아귀에 힘을 주어서 오우거들을 천천히 땅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제야 죽음의 위협 앞에 오우거들이 발광을 했지 만 엄청난 힘을 가진 제임스의 손아귀를 떨쳐 낼 수는 없었다. 부드러운 흙이라서 부딪친 타격은 그렇게 크지 않았지만 엄청난 손아귀 힘에 오우거들은 머리가 빠개지는 것 같은 아픔과 호흡의 곤란함에 미 친 듯이 발광이 심해져 갔다. 더구나 점점 힘을 주어서 자신들을 흙 속 으로 머리를 밀어 대는 제임스의 의도를 알아챘을 때의 그 오우거들의 살기 위한 몸부림은 정말로 곁에서 보기에 처절할 정도였다. "미안하군." 제임스는 자신의 몸에 쏟아지는 오우거의 주먹질 등에는 전혀 타격을 받지 않는다는 듯이 담담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원래는 이런 식으로 죽이긴 싫지만 내 새 마스터께서 책을 읽는데 방 해받는걸 기분 나쁘다고 했거든. 그러니 너희들의 비명 소리에 내 새 마스터가 기분이 나빠지면...." 내가 야단맞을 꺼야 라는 말을 하려다가 제임스는 입을 다물었다. 그 정도 일로 화낼 이르가 아니라는 건 바보라도 알 수 있는 점이었다. 그 래서 제임스는 대신 다른 말을 했다. "내 기분도 나빠질 것 같아. 그러니 이대로 조용히 죽어." 오우거들은 제임스의 말을 하나도 알아들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 만 마지막 '죽어'라는 단어를 내 뱉을 때의 제임스 몸에서 피어오르는 살기 덕분에 오우거의 눈에는 이제 살기 위한 발악의 눈빛이 아닌 죽음 을 앞둔 공포의 눈빛으로 변했다. 그 눈빛을 마지막으로 오우거들의 얼굴은 완전히 흙에 파 묻혔고, 동시 에 마지막까지 발악을 하던 주먹질이 서서히 멎어 갔다. 제임스는 그래도 오우거의 끈질긴 생명력을 알기 때문에 그 상태로 한 참을 더 있다가 흙에 파묻힌 손을 꺼내었다. 오우거의 끈질긴 생명도 산소를 한참 동안 공급받지 못하자 생명의 활동이 정지되었다. 제임스는 손에 묻은 흙을 가볍게 털고 테이 전용 별장(?)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죽음의 은갑옷 기사다!' '으아악 죽기 싫어! 싫어!!' '죽어라 은갑옷 기사!!' 제임스는 고개를 저었다. 요즘 들어서 옛날 생각이 너무 자주 났다. '기억을 지우는 마법 같은건 없을까? 아니 그전에 내가 그녀의 기억을 완전히 잊어버릴 용기가 생길까?' 옛 기억에 가슴 아파하면서도 이런 몸이 되면서까지 지켜 주고 싶었던 그녀를 잊을 용기가 생길까? 하는 의문에 그의 대답은 '아니요' 였다. '결국 쓸데없는 바램이었군.' 제임스는 다시 한번 고개를 저어서 과거의 상념을 벗어 던지고 다시 걸 음을 옮겼다. 지금은 그가 해야 될 일이 주어졌다. 지금은 그 주어진 일만 완수하자고 마음을 잡고 또 다 잡았다. 계속 ------------------------------------------------------------------ 드래곤 남매 10화 의지를 가진 다크 나이트(6) 제임스가 이르의 경호를 맡은 지 석 달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 동안 알게 모르게 영역을 침범해 가는 몬스터들은 제임스의 손에 죽어 갔고, 결국 몬스터들에게는 제임스의 영역이 암암리에 접근 금지라는 인식들 을 갖게 되었다. 간혹 지능이 거의 없는 몬스터들이 그야말로 겁없이 들어오는 것을 제외하면 제임스의 본래의 임무는 점점 할 일을 잃어 가 고 있었다. 그로 인해 시간이 많이 남아도는 제임스가 하게 된 일은 독서와 밭 가 꾸기였다. 죽음의 다크 나이트인 제임스가 밭을 가꾸는 광경은 아무리 좋게 봐줘 도 도저히 어울리지 않았다. 아니 그전에 큰 덩치에 갑옷까지 입은 기 사처럼 보이는 자가 밭을 가는 장면을 상상 해보라. 언밸런스도 이만 저만이 아닌 모습인 것이다. 하지만 요즘 들어서 제임스의 할 일(?)이 많이 줄어들어서 그런 거라도 안하고 있으면 제임스는 요즘 들어서 자꾸 떠오르는 과거의 상념에 묻 힐 것 같은 기분에 자꾸만 무언가 일을 만들어서 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르는 여전히 날씨가 좋을 때는 밖에 나와서 독서를 하였고, 그 날도 밖에서 독서를 즐기는 중이었다. 테이와 카렌은 3일에 한 번 있는 정기 데이트(?)날이라 집안에 없었다. 그리고 제임스는 밭일을 하고 있는 평 화로운 초여름의 하루였다. 제임스의 경보 장치가 울리기 전 까지는 평 화로운 하루였다. 제임스가 말 없이 바구니를 내려놓고 일어서자 그 기척을 느낀 이르가 책에서 눈을 떼고는 말을 걸었다. "오랜만에 침입자인가요?" "침입자라고 부를 몬스터도 아닐 겁니다. 또 들개나 늑대들이겠죠." 가끔가다가 작동하는 경보 장치에 가보면 그런 몬스터라고 부를 수도 없는 짐승들인 게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제임스는 이번에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면서 말을 한 것이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수고해 주세요." 몬스터와 싸우러 가는 자와 그런 자를 배웅하는 자의 말투와는 전혀 어 울리지 않는 일상적인 대화가 오가고 난 뒤 제임스는 침입자들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제임스는 이르에게 하나 말하지 않은 사 실이 있었다. 경보 장치에서는 별거 아닌 늑대 떼나 들개들이 아닌 것 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 근처에서는 처음 보는 반응이었다. 그리고 경 보 장치가 알려준 그 무엇인가를 찾은 제임스는 탄성을 내 뱉었다. "가고일?! 이런 몬스터는 이 주위에서는 처음 보는군."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게 별거인(?) 경우도 오늘처럼 가끔 있긴 했지 만 몬스터 박물관을 방불케 하는 이 산 속에서 가고일은 제임스도 처음 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가고일에게 아픈 기억이 있는 테이가 이 곳 레어로 온 다음 제일 먼저 한 일이 눈에 보이는 가고일들은 닥치는 대로 패 죽이 는 일이었다. 결국 1년도 채 안돼서 테이 영역에서 가고일들은 사라졌 고, 한 동안은 가고일들이 이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었지만, 테이 가 여기에 눌러 살면서 가고일들에 대한 보복(?)이 조금 뜸해져서 한 마리, 두 마리씩 생겨 난 것이라는 걸 알리 없는 제임스는 머리를 긁적 이면서 중얼거렸다. "이거 조금 귀찮게 되었군." 지상에 두발(혹은 네발)로 걸어다니는 몬스터와 똑같은 조건에 힘이 더 쌘 제임스가 유리한 게 마땅하지만 공중을 날아다니는 몬스터는 이야기 가 틀렸다. 물론 그 가고일에게 이길 자신이 없는 게 아니었지만 그래 도 귀찮은 건 귀찮은 것이었다. '이럴 때는 도발을 하는 게 낮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제임스는 상대방을 깔보는 듯한 웃음을 지으며 손가락 을 까닥거렸다. 감정 표현이 제대로 되는지 의심이 되는 제임스의 은빛 눈이 보기에도 이상한 웃음을 지었지만 손가락을 까닥거리는 행위와 알 아보기 힘든 웃음(이라고 생각되는)이 합쳐지자 제임스가 생각했던 도 발의 모습이 제대로 표현되었다. 그리고 반응이 즉각 왔다. "키이이익!!" 화가 있는 대로 났다는 울음소리를 지르며 미친 듯이 제임스에게 달려 드는 가고일 떼들을 제임스는 공격을 그대로 받아 주면서 일일이 카운 터 펀치를 날려 주었다. 바위같이 단단하다는 가고일의 몸도 바위도 부 숴 버리는 제임스의 주먹에는 견디지 못하고, 나무 조각 부서지듯이 부 서져 나갔고, 대 여섯 마리의 가고일은 순식간에 두 마리만 남게 되었 다. 남은 두 마리는 뒤늦게 달려들다가 동족이 너무나 쉽게 죽어 가는 것을 보고는 즉시 하늘로 날아올라서 그나마 목숨을 건진 것이었다. 그 러나 제임스는 그런 두 마리의 행운을 계속 지켜봐 주지 않았다. 앉았 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나 싶던 제임스는 어느 순간 크게 도약해서 공중 을 돌면서 상황을 살피던 가고일 한 마리보다 더 높은 위치에 서게 되 었다. "키아아악!" 지상에 있던 제임스가 갑작스럽게 눈앞에 나타나자 크게 놀라 버린 가 고일은 미쳐 피한다는 생각도 못하고 그냥 그 자리에서 굳은 체 비명만 질렀다. 그리고 그 순간을 놓칠 리가 없는 제임스는 공중에서 떨어지는 가속도까지 이용해서 가고일의 머리를 부숴 버렸다. "키이이익!" 그제야 남은 한 마리는 도저히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을 느끼고는 도망치 기 시작했다. 제임스는 공중을 날아서 도망치는 가고일을 뒤좇아갈 능 력까지는 되지 않아서 가만히 그걸 쳐다보고만 있었다. "한 놈 정도는 살려 보내면 가고일들이 다시 이곳에 올 생각은 못하겠 지." 그렇게 말하면서 오랜만에 몸을 풀었다고 생각하며 발길을 돌리던 제임 스는 문득 방금 도망친 가고일이 이 곳의 위험함을 알리기보다는 동료 들을 데리고 복수하려고 찾아오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 그렇게 되면....본격적으로 몸을 풀겠군." 그렇게 가고일 여섯과 싸운 게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중얼거린 제임스는 다시 테이 전용 별장(?)으로 돌아왔다. "이런...." 별장으로 돌아와서 제임스가 제일 먼저 본 것은 햇볕을 쬐며 기분 좋게 낮잠을 자고 있는 이르의 모습이었다. 누구는 뭐가(?) 빠지게 몬스터랑 싸우고 왔는데 한가롭게 낮잠이나 잔다는 뜻으로 혀를 찬 것은 아니었 다. "오후가 되면 뙤약볕이 쏟아질텐데 이런데서 잠들다니...썬텐이라도 하 고 싶으셨나?"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면서 제임스는 조심스레 이르를 들었다. 집안의 침대에 눕혀 둘 생각이었다. "엄청나게 가벼우시군." 제임스 입장에서는 깃털이라도 든 듯한 거의 무게 감이 느껴지지 않는 이르의 몸무게에 여자는 원래 다 이렇게 가볍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제임스도 살아 있는 인간의 몸일 때는 한 나라의 기사로 그것도 공주의 호위 기사로 그 공주와 뜨거운 사랑에 빠진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여자 를 안고 신방 입장이라는 행사(?)를 해 본적 없어서 처음 들어본 여자 의 그 가벼운 무게에 신기한 기분까지 들었다. 뭐 그 전에 제임스가 인 간이었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있긴 하 지만 이르가 가벼운 것도 사실이긴 하니 지금 제임스가 느끼는 신기한 기분은 절반 정도는 맞아떨어지는 셈이었다. 그렇게 새로운 사실하나를 깨달은(?) 제임스는 이르가 깨지 않도록 조 심스럽게 걸어서 집안의 이르 방까지 옮겼다. 그리고 침대에 눕히고 나 오려고 할 때 이르의 잠꼬대를 듣게 되었다. "으음...전 행복했어요. 그러니 후회 안해요...그런 슬픈 표정 짓지 말 아요. 제이크...으음..." 이르의 잠꼬대에 제임스는 애써 없는 일까지 만들어 가면서 잊으려고 노력하던 일이 떠올랐다. '후회하지 않아요. 후회하면 미칠 것 같으니깐 요.' '후회하지 않나?' '그녀를 지켰습니다.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충분합니다. 마스터. 후회는....없습니다.' "젠장." 자신도 모르게 욕지거리를 뱉으며 제임스는 방문을 조용히 닫으며 밖으 로 나왔다. "젠장." 제임스는 이르의 남편이 인간이었다는 것을 들었다. 인간과 엘프와의 사랑. 사람들은 그 사랑을 인간은 엘프보다 먼저 죽기 때문에 불행한 사랑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르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었다. 그리 고 지금 잠꼬대로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럼 나는 무엇인가? 이르와 다른 상황이긴 하지만 그 역시 오래 살았 고, 사랑하는 여자가 먼저 죽었다. 하지만 이르처럼 자신 있게 후회하 지 않는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자신은 죽어서 죽음의 기사 다크 나이트로 되어서 그녀에게 정체를 숨 겼고 자신이 죽은 줄 알고 울고 있을 때 아무런 위로도 해주질 못했다. 그리고 그녀는 나라를 위해 국민을 위해 자신의 몸을 기꺼이 침략자의 왕에게 팔아 버렸다. 그러나 그녀도 그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을 했 다. 하지만 이르처럼 진정으로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이 아니었다. 제임스는 그 순간 정말로 이르가 부럽다고 생각했다. 진심으로 이르와 제이크라는 남자가 부러웠다. 이르가 눈을 뜨고 제일 처음 생각난 것은 의문이었다. 분명 기분 좋은 따뜻함에 눈을 감은 게 잠들어 버린 것 같았는데 누가 침대로 데려다 주었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하지만 그 의문은 곧 창 밖에 보이는 은빛의 기사를 보면서 확신으로 변해 갔다. "제가 잠들었을 때 침대로 옮겨 주셨죠? 고마워요." 밖으로 나와서 제임스에게 감사를 표하자 제임스는 잠시 이르를 쳐다보 다가 곧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당연히 해야 될 일이었습니다." "죄송해요. 햇볕이 너무 기분 좋게 따뜻해서 그만 잠들었어요. 다음부 터는 주의할게요." 쌀쌀맞은 제임스의 태도에 이르는 그가 화가 났다고 생각해서 이번에는 사과의 말을 하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제임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 다. 잠시 제임스의 대답을 기다리던 이르는 제임스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곧 대답을 듣기를 포기하고는 아직 마당에 놓여져 있는 흔들의자 에 가서 앉았다. "이제 오후라 햇볕이 따갑습니다." "네?" 이르는 제임스가 무슨 뜻으로 말한 건지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서 반문 했다. 제임스는 여전히 이르를 쳐다보지를 않은 체 다시 한번 말했다. "이제 초여름이라 낮의 햇볕은 아침처럼 따뜻하지 않을 겁니다. 정 밖 에 계실 꺼 라면 의자를 그늘로 옮겨 드리겠습니다." 목소리는 쌀쌀 맞았지만 하는 말투는 평소의 무뚝뚝하면서도 이것저것 챙겨 주는 자상한 제임스의 모습이었다. 그것을 눈치 챈 이르는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그럼 부탁드릴게요." 제임스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흔들의자를 그늘진 곳으로 옮겨 주었다. 그리고 밭일을 돌보기 위해서인 듯 밭쪽으로 걸어가는 제임스를 쳐다보 면서 이르는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어서 그를 불렀다. "제임스씨." "그냥 제임스라고 부르십시오." 조금 짜증이 섞인 제임스의 말투에 이르도 지지 않고 맞받아 쳤다. "그럼 저야 말로 그 마스터라는 호칭 대신 이르라고 불러 주셔야 되요. " "네, 네 제가 졌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부르셨죠?" 제임스가 항복의 뜻으로 손까지 들면서 말하자 그 모습이 재미있었는지 이르는 잠시 킥킥대고 웃다가 곧 정색을 하고 말했다. "옛 기억 때문에 힘든 신가 보죠?" 짧고 간단한 질문이었지만 지금 제임스의 마음의 정곡을 찌르는 말에 제임스는 크게 당황하였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걸 어떻게 알았냐는 제임스의 무언의 질문에 이르는 피식 웃으며 답해 주었다. "제가 엘프이기 때문이죠." "진실을 보는 눈!" 그제야 제임스는 언젠가 들었던 엘프들의 진실한 마음을 보는 엘프들의 신기한 능력에 대해서 생각해 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전 그냥 제임스가 뭔가를 괴로워한다는 것만 알 것 같았어요. 과거의 기억 때문에 괴로워한다는 것은 추측이었죠." "추측이라고요?" "언젠가 옛날 일이 생각난다고 하신 적이 있잖아요. 그리고 역사책을 읽고 나신 뒤로 우울해 하실 때가 많아졌으니...이 정도면 꼭 진실의 눈을 가진 엘프가 아니라도 누구라도 알아 챌 수 있지 않을까요?" 제임스는 신음을 삼켰다. 생각해 보니 요새 자신이 나 기분 우울합니 다. 라고 너무 티를 내고 다닌 것이다. 하지만... "그 이유에 대해서는 전 말 할 의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물론이에요. 저도 구태여 이유를 묻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저 역시 잊어버리고 싶은 괴로운 과거는 있는걸요." 이르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라보오스에게 잡혀서 당한 수모들... 아마 그 악몽은 이르가 죽는 날까지 기억날지도 모를 괴로운 과거였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너무 과거에 매달려서 현재의 자신을 자책하지 말아 주세요." "충고인가요?" "네. 남편이 한때 괴로워하던 나에게 해주었던 충고였죠. 저의 괴로운 기억까지 모두 감싸주었던 따뜻한 인간이었어요." "저에게는 별 필요가 없는 충고로군요." "네?" 이르가 놀란 목소리로 반문하자 제임스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심장 부근 을 가리키며 말했다. "전 살아 있는 인간이 아닙니다. 이르님의 말은 살아가면 언젠가는 과 거의 불행을 잊게 해줄 행복한 삶을 살지도 모른다는 말이겠죠? 하지만 전 살아 있지 않습니다. 전 죽음의 기사 다크 나이트란 말입니다!" 이르는 제임스의 절규에 가까운 말을 끝까지 들으며 고개를 저었다. "당신은 살아 있어요. 제임스." "?!" "살아 있다는 게 뭐죠? 단지 심장이라는 게 뛰고, 살아 있으니 무언가 를 먹고, 아픔을 느낀다는 게 살아 있다는 증거의 다인가요?" "........" "당신은 생각을 하고 있어요. 과거의 아픔을 알고 계시고 그것으로 인 해서 괴로워하실 줄 알고 있어요. 그러니깐...." 이르는 제임스의 은빛 눈을 바라보며 또박또박 힘주어 말했다. "당신은 살아 있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살아가겠죠." 제임스는 충격을 받은 듯 아무 말도 안하고 이르의 녹색의 눈동자만 뚫 어져라 쳐다보았다.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한 이르의 눈에 비친 제임스의 은빛 눈은 가볍게 흔들리고 있었다. 이르는 조용히 다시 입을 열었다. "앞으로 살아간다는 건 과거에 겪은 일보다 더한 슬픔을 가져올지도 모 를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과거를 다 보상해 줄 행복 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잖아요. 미래가 어떻게 될는지는 아무 도 모르는 거예요. 그러니....너무 과거의 일에 연연해서 자신을 탓하 지 마세요. 제발....저와 같은 실수는 저지르지 마세요." 마지막 말을 하면서 이르의 녹색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리고 제임스 가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그 눈동자에는 물기가 어려 있었다. "조금 주제넘게 참견한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죄송합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만해서요." 이르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곧 몸을 돌려서 집안으로 발을 옮겼다. 그러다가 무언가 생각났는지 발을 멈추고 돌아보면서 말했다. "그리고 이르씨가 아니라 그냥 이르라고 불러 주세요." 그렇게 말하는 이르의 눈동자는 평상시와 같은 모습이었다. 굉장히 빠 른 회복이었다. 제임스는 그런 이르의 회복력에 감탄하면서 고개를 끄 덕였다. "알겠습니다. 이르. 아 하지만 존댓말을 쓰는 것 정도는 넘어가 주세 요. 이르가 저의 마스터인 건 변함 없으니깐 요." "네. 알았어요." 그렇게 말하며 이르는 화사하게 웃었다. 아까 전의 어두운 분위기는 이 미 찾아 볼 수가 없는 미소였다. 그리고 이르는 저녁 준비를 해야겠다 며 집안으로 들어갔다. "살아 있다고...이 내가...." 제임스는 그 자리에 서서 곰곰이 아까 이르가 해주었던 말들을 되씹었 다. "과거를 다 보상해 줄 행복이라....그래 적어도..." '적어도 실버 드래곤의 레어에서 1000년 간이나 쳐 박혀 있는 것보다는 지금의 생활이 행복일 수도 있겠지. 적어도...' 계속 ------------------------------------------------------------------ 드래곤 남매 11화 행복한 시간...그러나(1) 제임스가 오고 누나가 돌아 간지 석 달이 지나고 있었다. 이제는 초여 름의 싱그러움이 숲의 곳곳에서 느껴질 때 나와 카렌은 숲을 거닐며 행 복한 데이트를 즐기고 있었다. ......쓰바 그래 솔직히 말해서 그냥 약초 캐러 왔다. 하지만 그게 무 슨 상관인가?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좋아하는 여자와 단 둘이 있다는 것만 해도 행복한 것이다. 아니 그렇게 라도 생각해야 됐다. 왜냐하면 카렌과 나는 별 진전이 없 다. 내가 순진한(?) 것도 한 몫 했지만 카렌 역시 나와는 비교를 거부 할 정도로 순진한 것 때문이다. 지난 석 달 동안 기회는 참으로 많았 다. 거기 자네 착각은 하지 말아 주었으면 좋겠다. 그냥 고백할 기회일 뿐이지 자네가 생각하는 삐리리~한 기회가 아니다. 아무튼 그런 기회만 오면 숨이 가빠 오고 얼굴이 화끈거리고, 말은 더 듬거리게 나오고, 거기다가 카렌도 그런 기회를 눈치채면 고개만 숙인 체 부끄러워 하다가 엉뚱한 말을 하면서 그 기회를 없애버렸다. 예를 들면... "꺄악!" 설명하기도 전에 기회가 빨리도 찾아오네. 이렇게 된 거 직접 보면 알 것이다. "괜찮아?" 난 미끄러져 넘어진 카렌의 손을 붙잡았다. 카렌은 엉덩이가 아픈지 인 상을 찡그리다가 내가 손을 내밀자 금방 환하게 미소지으며 내 손을 붙 잡고 일어났다. 귀 귀여워. "네 괜찮아요. 테이님... 아..." 금세 얼굴이 빨개지는 카렌. 카렌의 마음을 읽는 능력은 어느 정도 제 어가 되기 때문에-그렇게 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다고 한다.- 원만 해서는 다른 이의 마음을 잘 안 읽는다. 하지만 그 대상이 마음이 절실 할 정도로 강하게 생각하는 것은 카렌의 제어에도 아랑곳없이 읽힌다고 들었었다. 그 증거로... '너무 귀여워. 카렌. 꽉 껴안아 주고 싶어!!' 라는 내 생각을 카렌은 잡은 내 손을 통해서 읽고 있었던 것이다. 증거 ? 아무리 순진한 카렌이라도 이제 몇 십번이나 잡아 본 내 손을 잡고 일어났다고 해서 저렇게 얼굴을 화끈거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이유가 있다면 내 마음속의 외침을 어쩔 수 없이 읽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말한 기회란 바로 이런 기회들이었다. 여름의 시원한 바람이 숲속을 가로지르다가 카렌의 황금색 머리카락을 어루만졌고, 바람 때문에 휘날리는 금발은 햇빛에 반사되어서 반짝이고 있었고,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붉어진 귀여운 카렌의 얼굴... 이것이 바로 기회(?)란 것이다. "카렌... 저기... 나는...." 아 젠장 왜 이리 떨리지? 같이 산지도 이제 반년이 넘어가는데 아직도 이러 다니 쯧... 나도 중병이야. 하지만 카렌도 만만치가 않다. 더구나 카렌은... "어마! 테이님 저기 저 약초는 내가 찾던 거예요!" 라고 소리치면서 자연스럽게 내 손에 잡힌 자기 손을 빼고는 후다닥 달 려 가 버렸다. 이제 알겠는가? 지난 석 달간 기회가 찾아와도 내가 말 을 꺼내기도 전에 카렌은 도망치듯이 빠져나가고 집안에서 그런 일이 생기면 언제 어떻게 알고 왔는지 이르 누나가 흥미진진한 얼굴로 구경 하기 때문에 놓치고, 마당에서 그런 일이 생기면 왠지 뚱한 눈으로 쳐 다보는 제임스 때문에 놓치고... 처음에는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그래 꼭 오늘이 아니더라도 나에게 시간은 많으니깐.' 이라는 생각으로 그냥 넘어 갔지만 그 시간이라는 것도 석 달이 넘어가자 날 초조하게 몰아 붙이기 시작했다. 언제 티아 누나가 마음을 바꾸고 날 방해하러 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뭐 그렇게 된 것에는 내 실수가 좀 들어가 있다. 막상 잠이나 자러 돌아간다는 누나 말을 믿을 수 없었던 나는 몰래 누 나 레어에 정말 자고 있는지 확인하러 갔을 때 실수로 정말 자고 있던 누나를 깨운 적이 있었다. 그때 잠이 깨 버린 누나는 무섭게 화를 내면 서 한번만 더 자다 깨어나는 사태가 발생하면 이유 불문하고 죽을 때까 지 내 청춘사업(?)을 방해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 그 말을 들으면 서 실컷 얻어맞았다는 건 굳이 설명 안 해도 이제는 다들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 그러니깐 그때 누나 말을 풀이하면 꼭 나 때문에 잠이 깨 지 않더라도 실수로 누군가가 누나 잠을 깨워 버리면 나한테 화풀이를 하겠다는 뜻이었다. 뭐 억울하긴 했지만 나도 실수 한 것이 있으니.... .. 아무튼 그 건 때문에 난 하루빨리 카렌과 도장 쾅(?)을 찍고 싶었지만. .. 카렌 왜 내 마음을 몰라 주는 거야? 흑흑흑 "테이님 도와주세요. 저거 너무 높은데 있어요." 카렌이 가리키는 곳을 쳐다보니 200년 이상 묶은 나무에서만 기생한다 는 라칸이라고 불리는 약초였다. 꽤나 심장에 좋다는 평가를 듣는 귀한 약초인데 용케 저걸 찾았네. 눈도 좋아라. 아 하프엘프지만 엘프의 피 를 이어 받았으니 눈 좋은 게 당연한 건가? "아앙. 왜 그렇게 가만히 서 계신 거예요? 빨리 도와주세요." 쳇 내 마음도 몰라주면서 그렇게 귀엽게 군다고 내가.... "응. 카렌 나한테 맡겨 줘!" 넘어가는군. 이 놈의 콩깍지라는 놈은 대체 정체가 뭐길레 긍지 높은( ?) 우리 드래곤 족의 자긍심을 쓰레기 버리듯이 버리게 만드는지... 하 지만 뭐 어때. 내가 좋으며 그만이지. "레비데트." 중력 마법 중 중력에서 몸을 해방하는 마법을 시전 하자 카렌의 몸은 공중에 뜨기 시작했다. 내가 따다 주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 만 카렌에 비해서 난 약초를 조심스레 캐는 법을 모른다. 더구나 카렌 왈. '약초라는 것은 캐는 사람의 정성이 들어가야 더욱 효과를 발휘하 는 거예요.' 라면서 항상 자신이 직접 캐기를 희망했다. "조그만 더 위로요. 아 됐어요!" 카렌의 외침에 난 높이를 조절하다가 문득 카렌의 긴 원피스 치마가 바 람에 하늘거리는 게 눈에 띠었다. 컥! 코 코피가 나올 것 같다. 난 급 히 -실은 천천히- 고개를 둘리면서 솟아오르는 피를 역류(?)시키기 위 해 애썼다. 카렌은 아마도 귀한 약초를 발견했다는 기쁨에 미쳐 신경을 쓰지 못 한 것 같다. 크 덕분에 좋은 구경했다. 고맙다! 라칸! 넌 역시 아주 귀한(?) 약초구나! "테이님 됐어요! 이제 그만 내려 주세요!" 카렌의 외침이 들리자 난 약간 아쉬운 기분을 느끼면서 마법으로 서서 히 카렌을 지상으로 내렸다. 뭐가 아쉽냐고? 실은 고개를 돌린 직후 코 피를 역류(?)시킨 다음에....다시 감상했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았으면 좋겠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난 신체 건 강한 거기에다가 성에 호기심을 보일 사춘기(?)의 건장한 남자란 말이 다! 어차피 카렌을 책임 질 생각이니 뭐 조금 앞서(?) 간다고 욕 얻어 먹을 이유는 없다고 난 생각한다. 아니 쪼금 마음에 양심의 가책이 느 껴지긴 한다. "테이님 얼른 돌아가요. 후후후 오늘은 운이 좋네요." 카렌의 부드러운 손이 내 손을 잡고는 정말 즐거운 듯이 웃으며 앞서 걸어갔다. 역시 너무 귀여워. 콱 안아 버리고 싶다. "어머나!" 이런 또 절실한 내 마음이 멋대로 카렌에게 읽혔군. 카렌이 짧은 비명 을 지르더니 내 손을 얼른 놓아 버렸다. 뭐 한 두 번 있는 일도 아니 니...가 아니잖아! 이건 또 기회다! 오늘 운 좋은데 두 번이나 고백 기 회가 오고, 좋은 구경(?)도 하고 하늘도 날 도와 주는 건가? 그런데 어째 이번 카렌의 붉어진 얼굴은 부끄러워서 붉어진 게 아니라 화가 난 것 같이 보이는데 착각인가? 카렌이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 었을 때 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테이님... 하얀색 이라는 게... 무슨 뜻이죠?" 이런 엉뚱한(?) 생각을 읽어 버리는 건 또 무슨 이유냐고?!! 하얀색 그 건 바로 아까 본 카렌의 속옷 색깔... 이라고 다시 생각 할 때가 아니 다. 카렌이 삐치기 일보 직전인 위험 상황이긴 하지만 그래도 난 믿는 구석이 이제 생겼다. "응? 하얀색이라니? 아아 저기 하얀 구름이 참으로 하얗다. 라는 생각 을 읽은 거야?" 어떠냐? 누나에게 배운(?) 딴 말하면서 은근슬쩍 넘어가기!! 크하하 누 나가 도움이 될 때도 가끔 있다니 깐. "구름은 원래 하얗잖아요. 그런데 그런 이유를 내가 읽어 버릴 정도로 절실하게 생각한 이유가 뭐죠?" ......누나처럼 되지가 않는구나. 젠장 "그 그거야... 카렌 먹구름은 까맣잖아. 그리고... 에... 그냥 오늘은 정말 구름이 눈부시게 하얗다는 생각이 나서... 오랜만에 구름 속을 산 책하고 싶다는... 그래 오랜만에 본 모습으로 날 아 다니고 싶어서 그 랬어. 카렌도 내 등에 타고 날아 보자. 기분 굉장히 좋을 꺼야!" 라고 필사적으로 변명을 했지만 카렌은 전혀 믿어 주지 않는 눈치였다. 그리고 하늘 어쩌고 하는데서 뭔가 눈치를 챘는지 -여자의 육감이란 정 말 무섭다.- 새삼스레 치마를 꼭 붙들면서 매서운 눈으로 날 쳐다보았 다. 찌 찔린다. "봤죠?" "뭐... 뭐를?" "내 속옷... 아까 날 올려 주셨을 때 밑에서 봤죠?" "아 아니야! 난 절대 그런 변태 같은 짓은.... 아 안 했어!!" "테이님." "응?" "정의의 용사는 거짓말해도 되나요?" 이것으로 내 패배는 확정지어졌다. 왜냐고? 정의의 용사가 거짓말 하는 거 봤나?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것도 있지만 내 건은 아무리 좋게 봐줘 도 선의의 거짓말의 발가락의 때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말에 발이 랑 발가락이 달려 있다면...- "미안." 결국 고개를 푹 숙이고 사과를 했다. 그러나 경험상으로 이럴 때는 카 렌은 쉽게 사과를 받아 주지를 않았다. "우....테이님 변태!!" 카렌은 그렇게 소리를 빽 질러 버리고는 혼자서 걸어가 버렸다. 이럴 때는 카렌 뒤를 따라다니며 필사적으로 잘못을 비는 게 카렌이 조금이 나마 빨리 화를 푸는데 대한 지름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나는 필 사적으로 실행에 옮겼다. "카렌 미안해! 어쩔 수가 없었단 말이야! 바로 고개 돌렸어! 정말이야 !" "몰라요!" "카렌! 제발 용서해 줘!" "몰라요!!" "카렌!!" "가까이 오지 마세요!!" "좀 봐줘! 어차피 결혼하면 다 보게 될텐데 뭐 어때?!!" 이크! 이건 실언이다. 난 급히 입을 막았지만 이미 카렌은 자리에 멈춰 서서 몸을 떨고 있었다. 주 죽음의 예감이 느껴진다. 그런데 내 예감과는 달리 살인적인 카렌의 고함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혹시 이게 폭풍 전의 고요라는 것인가? "테이님..." "으응?!" 엄청 긴장하고 있던 나는 카렌이 조용히 날 부르는 소리에 놀라서 반문 했다. 카렌은 고개를 돌리지 않은 체 조용히 물었다. "정말 저와... 결혼하고 싶으세요?" "응!"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카렌이 처음으로 직접 저런 질문을 하는 데 놓칠 리가 없는 나였다. 나는 다시 한번 강조해서 말했다. "카렌을 좋아해. 진심이야!" "휴... 진심이라... 유희로서의 진심인가요?" "응?" 난 순간 카렌의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해서 반문했다. 카렌의 목소 리는 무겁다는 느낌이 팍팍 들 정도로 어두운 목소리였다. "그러니깐. 드래곤들의 유희로서 날 좋아한다는 거... 아닌가요?" 난 그제야 카렌의 질문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드래곤들은 긴 수 명을 견디지 못하고 무언가 짜릿한 즐거움을 찾기 위해 유희라는 것을 즐긴다. 그리고 그 유희 중에 타 종족과 결혼도 하고 자식도 남기는 경 우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드래곤에게 어디까지나 유희. 즉 놀이일 뿐 이다. 유희로서는 진심일 줄은 모르지만 본체로 돌아가 버리면 그때까 지 살았던 인생은 그저 놀이로 끝나 버릴 뿐이었다. 카렌도 걱정이 되겠지. 자신이 그저 나의 놀이에 해당되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그렇게 생각이 드니 그 동안 계속 나를 피하던 것 같은 카렌의 행동들 이 이해가 될 것 같았다. 놀이로서 밖에 사랑 받지 못한다면 그건 정말 카렌에게 잔인한 일이 될 수도 있으니깐. 난 결심을 굳히고 카렌에게 다가가서 카렌의 어깨를 잡고 나에게로 몸 을 돌리게 만들었다. 별 저항 없이 카렌은 돌아섰다. 하지만 고개는 계속 숙이고 있었다. 하 지만 그것은 나에게 별 문제가 될게 없었다. 난 그대로 카렌을 콱 껴안 아 버렸다. "테 테이님!" 놀란 카렌의 목소리... 그리고 저항하는 카렌의 주먹질이 내 가슴에서 느껴졌다. 하지만 난 더욱 힘주어서 끌어안는 것으로 카렌의 저항을 봉 쇄했다. "말로는 아무리 진심을 말해도 믿어지지 않을지도 몰라. 카렌에게 지금 까지 사랑을 고백한 남자들의 속마음을... 진심을 읽어 왔을 테니 말로 는 내 말을 안 믿을지도 몰라. 그렇기 때문에 난 이렇게 하는 거야. 내 마음을 마음껏 읽어. 내 모든 생각을 내 모든 과거를 다 읽어도 좋아." "그렇게 할 수는 없어요!" "만약 그렇게 안 하면 난 카렌을 안 놓아 줄 꺼야!" 난 강하게 소리치면서 카렌을 안은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가녀린 카 렌의 몸은 내 가슴에 한번에 쏘옥 들어왔다. 정말 감촉이 좋다...커험. 그게 아니고 난 카렌을 안은 체 끊임없이 생각했다. '카렌이 좋아. 곁에 있고 싶어. 곁에 두고 싶어. 장난으로 끝내고 싶지 않아. 카렌이 나보다 먼저 죽더라도... 난 카렌이 죽는 그 순간까지 함 께 있으면서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 진심이야 카렌. 난 진심이야.' 어느새 카렌의 저항은 사라졌다. 하지만 난 카렌을 안은 손을 풀지 않 았다. 계속 그렇게 쭉 있고 싶었다. "테이님. 그만 놓아주세요. 다 읽었어요." 찹찹한 카렌의 목소리에 난 고개를 끄덕이면서 안고 있는 손을 풀었다. 그러나 카렌은 떨어지지 않고 그 상태로 가만히 있었다. 아니 오히려 내 가슴을 치던 손으로 날 살짝 껴안았다. "저 그동안 무서웠어요. 테이님의 마음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내가 테이님에게 그저 스쳐 지나가는 꿈속의 여자는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 각에 무서웠어요." "드래곤의 기억력이 좋다는 건 알고 있지? 난 널 영원히 기억할 꺼야. 내가 죽는 그 순간까지." 난 살짝 카렌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카렌은 고개를 천천히 끄떡 였다. "믿을게요. 아니 믿어요. 테이님의 마음... 그리고 과거... 다 읽어 버 렸는걸요. 이제 다 알아 버린걸요. 그러니깐 저도 다 말할게요." 난 묵묵히 카렌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대답을 기다렸다. 겉으로는 태연 한 척 하고 있지만 내 속은 애간장이 탈 정도로 타오르고 있었다. "테이님이 좋아요. 아니 사랑해요. 저도 진심이에요. 곁에 있고 싶어 요. 같이 살고 싶어요." "카렌." "많이는 안 바랄게요. 제 곁에 있어 주세요. 그리고 제가 죽고 난 다음 에도 가끔 절 생각해 주세요." 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많이 바래도 난 괜찮아. 행복하게 해줄게. 그리고 지금 당장 먼 미래 의 일은 생각하지마. 당장 내일의 일만 생각하자. 내일은 무엇을 하면 서 어떻게 행복해 질지만 생각하자. 응 카렌?" "흑... 네... 네." 결국 카렌은 울먹이면서 나에게 더욱 밀착하면서 흐느꼈다. 그리고 난 다시 카렌을 안아 주었다. 이번에는 절대 놓지 않겠어. 카렌이 울음을 멈출 때까지 놓지 않겠어. 라고 생각하며 카렌을 안은 손에 힘을 주었 다. 음 아니지 울음을 그치게 만들어 주는 것도 남자의 의무(?)일 테니. 역 시 여자의 울음을 그치게 만드는 건 사랑하는 남자의 키스겠지? -어째 서?- 그렇게 생각하며 내가 생각해도 약간 음흉한 미소를 지을 때 카렌 은 급히 날 밀치며 떨어졌다. "미 미안해요. 전 아직 거기까진... 마음의 준비가..." "자 잠깐 단지 키스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뿐이라고 뭔가 대단한(?) 것 은 나도 아직 안 바래!" "정말... 키스뿐인가요?" "응." 나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카렌의 반응을 살폈다. 카렌은 얼굴을 붉힌 체 우물쭈물 하다가 용기를 냈는지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훗 잠시 티아 누나에게 뺏긴 내 퍼스트 키스와 세컨드 키스여 안녕. 그리고 레 이나 누나와 엄마 아빠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 수 없이 당했던(?) 날들 이여 안녕. 난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가 스스로 원해서 키스를 하는 역 사적인 순간의 날을 맞이한 것이다! 이것으로 지난날의 암울한 인생과 는 굿바이! 그리고 새로운 행복의 시작을 알리는 역사적인 첫발을 내딛 었다. 내 손이 카렌의 어깨에 올려지자 잠시 머뭇거리던 카렌은 두 손을 꽉 쥐고 고개를 들고는 눈을 꼬욱 감았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난 슬 쩍 웃음이 나왔다. 카렌은 엘프 입장에서는 아직 어린 나이이다. 나 역시 드래곤 족에서는 아직 어린 나이이다. 인간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종족으로서는 아직 미성년자인 나는 역시 종족으로서 아직 미성년자인 카렌에게 키스하기 위해 살짝 허리를 굽히고 천천히 내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카렌의 미세한 몸의 떨림이 내 손을 통해 느끼며 카렌의 꼭 감은 눈이 내 눈앞 에 다가왔다 싶을 때 나도 살며시 눈을 감았다. "테이 도련님! 카렌 아가씨!" 쓰바 누구야! 역사적인 이 순간에!! 갑작스런 외침에 카렌은 깜짝 놀라서 날 밀쳐 버렸고, 미쳐 대비를 못 한 나는 그대로 넘어져서 굴러 버렸다. 그리고 붉어진 얼굴로 우리의 역사적인 순간을 방해한 인물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면서 어쩔 줄을 몰 라 하고 있었다. 젠장 죽여 버릴 꺼야!! 그렇게 마음먹으며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은빛의 다크 나이트 제임스를 노려보면서 어떻게 죽여야 잘 죽였다는 소리를 들을까 하는 고민을 할 때였다. 멀리서 우리를 부르며 찾다가 우리를 보고는 정말 빠르게 달려 오는 제임스가 소리쳤다. "큰일났습니다! 이르 님께서 쓰러지셨습니다!" 카렌은 제임스의 말에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셨다. 그리고 나 역시 머 리가 멍해지는 충격을 받았다. 나는 카렌의 손을 잡고는 제임스에게로 달려갔다. 너무나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젠장 내 불길한 느낌은 너무 잘 맞아떨 어지던데... 계속 ------------------------------------------------------------------ 그냥 키스 시켜 버리고, 내용 좀 더 끌까 -한편정도- 하다가 걍 스토리 진행 나가기로 마음 먹었습니다.ㅡㅡ; 그래도 좀 찝찝한 마음이 역시 든다는.... 직연 신청은 이제 받지 않겠습니다. 제가 직연을 하는 곳은 별나우, 뮤즈, 작가들의 왕국, 라니안, 삼룡넷, 판타지 월드(원래 퍼가 시는 곳인데 주인장의 요청으로 직.연으로 전환) 판타지 하우스 이상 7군데입니다. 이제 이 이상은 전 죽어도 늘릴 생각 없으니 제발 직연 신청은 하지 말 아 주세요. 그리고 퍼가는 곳도 많은 관계로 더 이상 늘리지 않겠습니다. 더 늘렸다가는 제가 관리를 못 할 것 같습니다. 그럼 다음편에 다시 뵙겠습니다. 늘 노력하는 작가가 되겠습니다 드래곤 남매 11화 행복한 시간...그러나(2) 이르가 저녁을 지겠다며 집으로 들어가고 난 뒤 제임스는 평소 하는 대 로 마당 한가운데 팔짱을 끼고 앉았다. 평소에는 그 상태에서 가만히 자신이 펼쳐 놓은 영역 안을 들락거리는 생물들의 기운을 감지하거나 생각에 잠겨 있을 때가 많았다. 그 날 제임스는 후자 쪽의 일을 하고 있었다. 단지 옛 기억을 떠올리며 우울해 하는 경우가 많던 날과는 달 리 방금 전 이르가 해준 '당신은 살아 있어요.' 라는 말에 대해서 곰곰 이 생각하고 있었다. 그냥 위로해 주는 말로 치고 넘어 갈 수도 있지만 그런 것으로 치기에는 이르의 눈은 너무나 진지했었다. '살아 있다고... 이 내가? 죽음의 기사인 다크 나이트인 내가...' 그러고 보니 살아 있다는 말을 들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저에게는 죽음만 함께 할 뿐입니다.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 게 좋습니다.' 용병으로서 페이안에 자원한 제임스가 전쟁마다 공헌을 세워서 내 별명 이 알려져 있을 때 당시 레이나르 공주는 시도 때도 없이 그에게 와서 말을 걸곤 했다. 여자의 육감이었을까? 그녀는 끈질기게 제임스의 정체 를 밝히려고 해서 참다 못한 제임스가 한 말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군요. 생명을 상징하는 은빛의 갑옷을 입고 있으면서 마치 자신 이 죽은 사람처럼 굴려고 하는 이유는 뭐죠? 실버 당신은 살아 있어요. 차가워 보이는 당신의 갑옷도 이렇게나 따뜻한걸요.'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갑옷에 손을 대고 말하는 레이나르의 모습에 제임스는 속으로 얼마나 눈물을 삼켰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리고 1000년 후 '당신은 살아 있어요.' 그녀가 했던 말을 똑같이 해준 이르 덕분에 제임스는 다시 한번 눈물이 날것 같은 기분이었다. -털썩 그때였다. 누군가가 쓰러지는 소리가 난 것은... 미약한 소리이지만 제 임스의 귀에는 똑똑히 들렸고, 그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제임스의 눈은 커졌다. "이르?!" 소리가 들려 온 곳은 오두막 안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미약한 신음 소 리가 들려 왔다. 더 이상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틀림없는 이르의 목소 리였다. 제임스는 급히 집안으로 들어갔다. 티아가 부순 문은 제임스가 깨끗하 게 고쳐 놓았다. 만약을 위해서 제임스도 집안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 로 문을 크게 만들어서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집안으로 들어간 제이크 는 곧바로 부엌으로 달려갔다. 부엌의 문은 제임스가 들어가기에는 작 았지만 지금 그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나중에 이것도 고쳐야 되겠군.' 그렇게 생각하며 부엌의 문을 통째로 잡아뜯고 들어간 제임스가 본 것 은 바닥에 쓰러져 가슴을 쥐고 신음하고 있는 이르였다. "무슨 일입니까?" 이르에게 달려가 살짝 그녀의 몸을 일으키자 고통에 찡그린 이르의 얼 굴이 보였다. 이미 고통 때문에 기절을 했는지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와중에도 이르는 손으로 가슴을 움켜지면서 신음을 계속 흘리고 있었 다. 이르가 손으로 움켜쥔 부분은 심장 부위였다. 불길한 느낌을 받은 제임스는 이르를 방으로 옮겨 놓고 집밖으로 나와 서 집에 결계를 쳤다. 드래곤에 비할 바는 아니었고, 범위도 간신히 집을 둘러싼 작은 결계였 지만 없는 것보다 훨씬 나았다. 그리고 숲속으로 들어가서 큰 소리로 테이와 카렌을 찾기 시작했다. 제임스에게 달려간 나는 급히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제임스는 천만다행히도 인간이 아니라서 숨이 차서 말을 못 하는 사태 는 일어나지 않았다. "집안에서 미약하나마 누군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려서 들어가 보니 이 르 님께서 쓰러져 계셨습니다. 일단 침대에 눕혀 드리고 급히 티아 도 련님과 카렌 아가씨를 찾으러 온 것입니다." "어머니는요? 어머니는 괜찮으세요?" 제임스는 카렌을 살짝 쳐다보고는 곧 시선을 돌리고 말했다. 도저히 카 렌을 쳐다 볼 용기가 없는 것 같아 보였다. "저도 약간의 결계는 칠 수 있기 때문에 결계는 쳐 두고 왔습니다. 그 러니 위험한 일은..." "지금 그런걸 물은 게 아니잖아요! 어머니는 어떻게 됐냐고요?!!" 내가 봐도 질문을 회피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제임스의 대답을 듣다가 카렌은 소리를 빽 질렀다. 제임스는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정신을 잃으시긴 했지만 괜찮습니다. 다만... 심장을 움켜쥐신 체 기 절해 계셨습니다." 카렌의 얼굴색은 이제 새하얗게 변해 버렸다. 그리고 미친 듯이 달려가 려는 걸 마침 내가 손을 아직 잡은 체로 있어서 저지할 수 있었다. "이거 놓아주세요!" "카렌 진정해!" "놓아주세요! 빨리 어머니한테 가 봐야 된다고요!!" "나도 알아! 좀 진정해! 워프로 가는 게 더 빠르단 말이야!" 내 외침을 듣고는 내 손을 뿌리치려는 움직임이 멈춘 카렌을 당겨서 내 가슴에 안고는 제임스에게 눈짓을 하였다. 제임스는 내 의도를 알아채 고는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워프!" 몇 십 번이나 마법으로 왔다 갔다 한 적이 있는 카렌의 집의 좌표는 따 로 계산 안 하더라도 내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떠올랐고, 그리고 난 곧 바로 워프를 시전 하였다. 눈앞의 시선이 흐릿해지나 싶은 건 잠시뿐 곧바로 눈앞에 익숙한 오두막의 모습이 나타나자 카렌은 내 품속에서 빠져나가서 집안으로 달려갔다. 나 역시 카렌의 뒤를 따라 갔고, 그 뒤 로 제임스가 '결계 해제' 라는 말을 한 후 내 뒤를 따라 왔다. 먼저 집안으로 들어가서 곧바로 이르 누나의 방으로 달려갔다. 방안에 는 먼저 들어간 카렌이 이르 누나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엄마. 제발 눈을 떠 주세요. 제발요. 흑흑흑. 제발 엄마..." 난 흐느끼고 있는 카렌의 옆에 가서 이르 누나를 쳐다보았다. 이르 누 나는 조용히 눈을 감은 체 잠들어 있었다. 착각일까? 아니 착각이길 바 랬다. 조용히 잠들어 있는 누나에게서 난 살아 있는 자들의 생동감을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난 입술을 잘끈 깨물고는 울고 있는 카렌의 어깨를 조용히 두들겼다. 카렌은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잠깐 주무시는 걸 꺼야. 아무 일 없을 꺼야. 그러니... 제발 나에게 사실대로 말해 줘. 이르 누나는... 몸의 어디가 안 좋으신 거야?" 카렌은 눈물을 먼저 닦았다. 그러나 흐르는 눈물은 멈출지를 몰랐고, 결국 눈물을 닦는 것을 포기하고 입을 열었다. "엄마는... 흑흑... 으흑... 심장이... 안 좋으세요. 으흑... 아아앙 테이님!" 카렌은 결국 울음을 터트리며 나에게 와락 안겼다. 난 설마 하던 사실 을 카렌의 입으로 직접 듣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난 카렌을 살짝 안았다. 카렌은 저항하지 않고 내가 하는 대로 가만히 따르다가 내가 안아 주자 내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울었다. 그 상태로 제임스에게 나가자는 눈짓을 하고는 거실로 나왔다. 그리고 제임스가 내 뒤를 따라 나오면서 조용히 문을 닫았다. 난 소파에 카렌을 안은 체 앉았다. 그리고 아직까지 울고 있는 카렌의 머리를 조용히 쓰다듬어 주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난 뒤 카렌 의 울음이 그칠 기미가 보이자 손수건을 꺼내서 카렌에게 얼굴을 들게 만들고 얼굴을 닦아주었다. 잠자코 내가 하는 대로 가만히 있던 카렌은 내가 얼굴을 깨끗이 닦아주자 한결 나아진 얼굴로 조용히 이야기를 시 작했다. "흐끅... 흑... 훌쩍... 엄마는 몸이 안 좋으셨어요. 특히 심장이요. 아빠가 돌아가시고 난 뒤 몸이 더 안 좋아지시기 시작했고, 레이나 이 모가 돌아가시고 난 뒤에는 나를 데리고 근처 숲속에서 지내게 되었어 요. 하지만 점점 더 몸이 약해지시다가 레이나 이모의 뒤를 이어 왕이 된 가드란 삼촌이 보내 준 의사한테 진찰을 받으셨는데... 심장이 더욱 안 좋아졌다고... 길어야 1년밖에 못 산다고 했었요. 그래서 엄마는 나 를 가드란 삼촌에게 맡기고 혼자 숲에 들어갈 결심을 하셨죠. 하지만.. . 내 능력 덕분에 엄마의 마음을 알아차리고는 몰래 따라 왔어요. 엄마 는 날 돌려보내려고 했지만 내가 끝끝내 고집을 부려서 둘이 같이 이 숲에서 살게 되었어요. 그리고 그 뒤 몸에 좋다는 심장에 좋다는 약초 란 약초는 죄다 구해서 해 드리고, 그리고 깊은 산 속에서 숲의 기운을 얻으신 엄마는 비록 몸은 약하셨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잘 버티셨는 데... 이제 완전히 병이 나았을 거라고... 아니 하다 못 해 몸이 좋아 지셨다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흑." 카렌이 이야기를 하다가 다시 울 것 같은 낌새를 보이자 난 카렌을 다 시 안아 주었다. 이번에는 크게 울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 가슴에서 조 용히 흐느끼는 카렌을 보고 있자니 내 가슴이 아파 오는 느낌이었다. "걱정하지마. 카렌." 난 카렌의 귀에 조용히 속삭였다. "절대로 이르 누나는 괜찮을 꺼야. 절대로..." 그렇다 절대로 이르 누나는 괜찮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그렇게 되게 만들 것이다. 반드시... 난 그 말을 따로 할 필요가 없었다. 절실할 정 도로 외쳐 대는 내 마음속의 외침은 카렌에게 똑똑히 전달되었다. 카렌 은 흐느끼는 와중에도 고개를 끄덕이며 내 팔을 잡은 손에 힘을 꽉 주 었다. 그리고 나 역시 카렌의 마음을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끊임없이 '고마워요.' 라고 말하는 소리가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는 느 낌이었다. 혹시 이것도 카렌의 능력일까?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마음도 상대방에게 전달할 수 있는 것인가? 아무려면 어떤가. 지금 중요한 것은 카렌의 마음도 나의 마음도 하나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카렌의 따스하면서도 슬픔에 잠긴 마음을 느끼면 서 난 끊임없이 '걱정하지마.' 라는 생각을 하면서 카렌의 머리를 쓰다 듬어 주었다. 그리고 어느새 카렌은 울다 지쳤는지 내 품안에서 잠들었다. 난 아까 숲에서 하지 못한 키스 대신 잠이 든 카렌이 이마에 입을 맞추고 카렌 이 깨지 않도록 조심스레 카렌의 방으로 옮겼다. "제임스." "예 테이 도련님." "난 도와줄 드래곤한테 갖다 올께. 아직 해츨링인 나에게 이 문제는 너 무 어려워. 갖다 올 동안 이르 누나와 카렌을 부탁해." "예 알겠습니다." 맡겨 달라고 하는 제임스의 믿음직한 모습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고는 난 조용히 워프를 할 좌표를 머릿속에서 계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워 프를 하자 내 눈에는 금방 커다란 동굴의 입구가 보였다. 난 묵묵히 걸 어서 그 동굴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장막에 멋지게 머리를 부딪치고는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크윽. 결계 한번 무식하게 쳤군." 달려들어가지를 않았다는 것을 천만 다행으로 생각하면서 난 결계를 조 심스레 살펴보았다. "이거 도저히 내 마법으로는 해제 못하겠군. 그럼 남은 방법은....." 남은 방법이라고는 하나뿐. "폴리모프. 해제." 내 몸은 순식간에 나의 눈까지 부시게 만드는 은빛에 휩싸였고, 본체의 모습으로 돌아 온 나는 그 남은 방법인 몸으로 무식하게 부딪쳐서 들어 가기를 실행하였다. "으라찻! 크윽! 젠장 엄청 단단하게도 쳤네. 이런다고 내가 포기할 줄 알고! 다시 한번 셋! 둘! 하나! 으라찻!" 참으로 보기에도 무식한 방법을 몇 십 번이나 반복한 후에야 겨우 난 결계를 부수고 들어갈 수 있었다. '젠장 접근 금지 결계는 언제 펼쳐 둔 거야? 하여튼 이 누나는 적당히 라는 단어를 모른다니 깐 드래곤도 들어오기 힘든 결계는 뭐 하러 펼쳐 가지고...' 난 속으로 온갖 욕을 하면서 티아 누나의 레어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 고 레어 안에서 본 것은 분명 누나가 쳐 둔 레어를 부수고 들어 왔는데 도 불구하고 쿨쿨 잘만 자고 있는 누나의 모습이었다. 그 둔하디 둔한 모습에 난 절로 입이 쩍 벌어졌다. "세상에 아무리 둔해도 그렇지. 자기가 펼쳐 놓은 결계가 부숴 졌는데 도 세상 모르고, 자고 있다니..." 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누나를 깨우기 위해서 누나를 흔들다가 왜 누나가 깨어나지 않았는지 알아 차렸다. "수면 마법!" 누나는 자기 자신에게 수면 마법을 쓴 것이다. 그러니 만약을 대비해서 저런 드래곤도 들어오기 힘든 무식한 결계를 쳐 둔 것이다. 어차피 누 나 레어에 올 드래곤이라고는 엄마와 아빠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와 나 밖에 없으니 정 자신이 보고 싶으면 결계 부수고 들어오라는 소리인 것이다. 난 누나의 엽기성을 잠시 접어 두고 어떻게 수면 마법에 걸린 누나를 깨울까 고민해 보았다. 자존심 상하지만 누나의 마법력은 나보 다 월등하다. 그러니 내 마법으로는 깨울 수 없었다. 하나 방법이 있다 면...... "맞아 죽을 걸 각오해야겠군. 그래도 시급을 위하는 일이니 이해해 주 겠지." 아니 이해해 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이해해 주지 않더라도 물러 설 수 는 없는 일이었다. 난 잠시 심호흡으로 마음을 굳게 다지고 힘차게 정말로 힘차게 누나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퍽! -데굴데굴 쿵! 참으로 오랜만에 들리는 누나를 찰 때의 타격음과 누나가 구르다가 벽 에 부딪치는 소리가 레어 안에서 울려 퍼졌다. 미쳤냐고? 난 미치지 않았다. 그럼 죽고 싶으냐고? 내가 왜 죽고 싶어 서 이 짓거리를 하겠는가. 귀여운 신부도 생긴 판에... 그럼 왜 사서 맞을 짓을 스스로 하냐고? 젠장 누나가 자신에게 건 수면 마법을 깨기 위해서는 몸 흔드는 걸로는 씨도 안 먹힌다. 이렇게 큰 충격을 주거나 아니면 시전자 보다 더 높은 마법력을 가진 자가 풀어 주기 전까지는... 가만 생각해 보니 지금 아빠나 엄마를 데려와서 깨워 달라고 하는 편이 더 낮지 않았을까? 아니 항상 무슨 일이 생기면 누나에게 도움을 받았 던 생각에 누나한테 의논하러 올 생각을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아빠나 엄마 아니면 아는 것 많은 할머니에게 물어 보는 게 더 빠른 지름길 아 니었을까? 이런 생각이 내 머릿속을 지나가자 난 온 몸에서 소름이 돋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화살은 내 손을 벗어나서 저 멀리 날아가 고 있었고, 그 증거로 누나는 굉장히 기분이 나쁘다는 얼굴로 천천히 고개를 들고는 잠이 덜 깬 얼굴로 나를 째려봤다. "누나... 저기 잠을 깨워서 미안하긴 한데... 지금 정말 급한 일이 있 어서...." "급한 일?" "응 그게...읍읍!" 난 말을 꺼내지도 못했다. 누나의 꼬리가 내 입을 강하게 쥐어 버린 것 이다. "읍읍! 읍읍 읍 읍읍읍 읍읍읍!!!" [누나! 잠깐 내 말부터 들어줘!!!] "일단 널 반쯤 죽인 다음에 들어줄게." 그렇게 말하고는 익숙한 구타가 시작되고, 난 끊임없이 지금 이럴 때가 아니라고 소리치면서 -마음속으로- 기절해 버렸다. 계속 ------------------------------------------------------------------ 리니지...하이네 업데이트....하고 싶다. ㅜ.ㅜ 그러나 할 수 없는 내 신세여~~~ㅜ.ㅜ 오늘은 2연참에서 끝이네요. 그럼 다음편에서 뵙겠습니다. 늘 노력하는 작가가 되겠습니다 드래곤 남매 11화 행복한 시간...그러나(3) "이 바보 자식아! 왜 그 말을 이제야 하는 거냐?!!" 잠을 깨운 것보다 더 화가 난 누나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이번 에는 난 정말 억울했다. - 안 억울한 적이 없었지만. - 젠장 말도 못하 게 날 패던 드래곤이 누군데? 누나는 그래도 내가 급하다는 말을 기억했는지 날 실컷 패서 기절시킨 다음 회복 마법과 치료 마법을 걸어 주고는 이유를 물었고, 내가 이유 를 말하자 이렇게 화를 내면서 난리였다. 억울하다고 말 안 하냐고? 지금 내 목을 붙잡고 부러트릴 듯이 흔들어 되는데 무슨 변명을 할 수 있겠는가? "그... 켁... 누나가... 켁... 말... 켁... 제발... 켁... 놔줘... 켁 켁." 간신히 그 와중에 몇 개의 단어를 뱉어내며 사정을 하고 나서야 누나는 흔들고 있는 내 목을 놓아주었고, 난 그제야 공기라는 존재의 고마움을 실감할 수 있었다. "뭐해? 빨리 폴리모프 해!" 내가 간신히 정신을 수습해 갈 때 누나는 벌써 인간 모습으로 변해서 날 닦달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인간 모습으로 변하자마자 내 뒷덜미 를 낚아채고는 외쳤다. "워프!" 순식간에 다시 내 개인 별장(?)으로 돌아온 나는 누나에게 끌려가다 시 피 해서 별장 안으로 들어갔다. 집 안에는 제임스가 평소 그 팔짱을 끼 고 서 있는 모습 그대로 나와 누나... 아니 정확히는 날 쳐다보며 말했 다. "빨리 오셨군요." "끌려온 거야." 난 제임스의 말을 수정해 주고 주위를 둘러보며 카렌을 찾았다. "카렌은?" "아직 자고 있습니다." "그래?" 나와 제임스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누나는 이르 누나의 방으로 들어 가고 있었다. 나도 따라 들어갈까 하다가 마음을 바꾸고 카렌한테 가기 로 하였다. 카렌은 아까 내가 눕혀 준 모습대로 자고 있었다. 눈물은 아까 다 닦아 주었지만 눈 주위가 퉁퉁 불어서 붉어진 얼굴이 내 가슴을 아프게 만들 었다. "운디네." 난 조용히 물의 정령을 불러서 카렌이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카렌의 얼굴을 씻겨 주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운디네가 카렌의 얼굴을 씻겨 주 기도 전에 카렌의 눈이 천천히 떠졌다. "깼어?" "네. 제가 얼마나 잔 거죠?" "그렇게 많이 자지 않았어. 그것보다 얼굴은 괜찮아?" 내 질문에 카렌은 잠시 얼굴을 찌푸렸다. "조금 쓰라려요." "너무 많이 울었으니깐. 잠깐만 그대로 있어." 난 머뭇거리고 있는 운디네에게 카렌의 얼굴을 씻어 주라고 다시 명령 을 내렸고, 운디네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신의 몸을 투명한 물의 막으 로 만들어서 카렌의 얼굴을 조심스레 감싸안았다. 그렇게 운디네로 세 수(?)가 끝나자, 난 곧바로 운디네를 돌려보내고 실프를 불러서 젖은 카렌의 얼굴을 말려 주었다. 카렌은 내가 하는 대로 얌전히 있다가 세수가 끝나자 한결 나아진 얼굴 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마워요. 테이님." 미소를 짖고는 있지만 그 미소는 억지로 지은 미소라는 게 눈에 띠게 보였다. 하지만 잘못 말을 했다가는 금방이라도 다시 울 것 같아서 그 냥 고개를 끄덕이면서 안심하라는 뜻으로 살짝 카렌의 머리를 안아 주 었다. 근데 이게 또 실수였다. "흑." "에?" "으흑." "자 잠깐. 카렌 울지마." "흑. 죄송해요. 하지만... 흑... 테이님이 안아 주니깐... 흑흑 눈물 이... 아앙..." 아아 조그만 일에도 울고 웃는 그대의 이름은 여자이니라. 도대체 울지 말라는 뜻에서 안아 준건데 왜 우냐고? 내가 같이 울고 싶어진다. "뭐야? 왜 여자를 울리고 난리야?" 난 깜짝 놀라서 카렌을 안은 체 어정쩡한 자세로 뒤를 돌아보았다. 이 르 누나 방에 들어갔던 티아 누나가 어느새 이층으로 올라와서는 나를 아주 한심한 놈이라는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아니 그게... 울리려고 한 건 아니야. 정말이야." "정말?" "응." "혹시 이 상황에서 정신 못 차리고 카렌의 마음이 약해져 있는 틈을 타 서 덮친 건 아니겠지?" "내가 짐승이야?!" 내가 발끈해서 소리치자 누나는 아주 못마땅한 눈으로 내 위아래를 흩 어 보며 말하는 것이다. "그럼. 지금 너 상황을 봐서 무슨 생각을 할 수 있겠냐?" "내 상황이 뭐 어때서?" "침대에 남녀가 같이 앉아 있고, 여자는 '나 이제 어떡해요.'라는 분위 기로 울고 있고, 남자는 '내가 다 책임질게' 하는 폼으로 여자를 확 끌 어안고 있는 모습을 보고 무슨 상상을 할 수 있겠냐?" "......" 어떻게 해석을 해도 저런 식으로 해석을 할 수 있냐고!! 아니 확실히 그런 폼이긴 하지만... 다 입고 있잖아!! -뭘?- 뭐 그래도 우리 남매의 대화에 카렌이 울음을 그치고 눈물을 닦으며 누나를 맞이하러 일어나니 다행이긴 하다. "오셨어요? 죄송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여서." "뭐 보기 좋았던 모습이니깐 상관없어." "......" "농담이야 그것보다 퉁퉁 불은 얼굴이나 해결하고 아래로 내려와 할 이 야기가 있어." "네." 누나가 내려가고 난 뒤 난 카렌의 부탁으로 다시 한번 운디네와 실프에 게 수고를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카렌을 데리고 내려가자. 혼자서 차 를 타서 마시고 있던 누나가 우리가 내려오는 걸보고는 우리 몫의 차를 따라 주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해야 될 일인데." "됐어. 누가 하던 무슨 상관이야. 더구나 이제 남도 아니고..." "네?" "시누이 사이잖아." "......" 누나! 어떻게 그런... 기분 좋은 소리를 해줄 줄이야. 흐 시누이 사이. 음. 참 좋은 말이야... 라는 소리를 할 때가 아니잖아!! "지금이 그런 소리를 할 때야?" 내가 자리에 앉으며 벌컥 화를 내자 누나의 눈 꼬리가 살짝 치켜드나 싶더니 조용하고 음산하게 나갔다. "그럼 가뜩이나 분위기 안 좋은데 더 안 좋게 나가 볼까?" "......아니 좋게 나가자." "까불고 있어. 쯧." 그리고 잠시 누나의 말에 머뭇거리던 카렌이 자리에 앉자 곧 누나는 정 색을 하며 말을 꺼냈다. "일단 이르 언니를 보고 왔는데 지금은 편하게 자고 있더라." "네." "에휴. 카렌아 그렇게 다 끝난 듯한 얼굴 표정 하지 말아라. 방법이 아 예 없는 것도 아니야." "네?" "누나 좋은 방법이 있어?" 카렌의 축 처진 귀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쫑긋 세워졌고, 난 탁자를 치면서 일어나며 흥분했다. 역시 잔머리 굴리는 데는 일가견이 있는 누 나라 도와 달라고 부탁하러 간 보람이 있군. 누나는 손가락을 까닥거리면서 말했다. "이 세상에 못 고치는 병이란 건 없어." "하지만 인간 의사 선생님이..." 카렌이 말끝을 흐리며 다시 귀를 축 늘어트리자, 누나가 혀를 쯧쯧 차 며 말했다. "그래 확실히 인간들에게는 힘든 병일지는 몰라도 일명 만병통치약이란 게 있잖아. 그걸 구하기가 힘드니깐 인간들에게는 고치기 힘든 병일지 몰라도 우리 드래곤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병이야." "정말요?" 참 오늘따라 카렌의 귀가 바쁘게도 위 아래로 까닥거렸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는 잠시 지금 상황이 급하다는 사실도 잠시 잊은 체 카 렌을 사랑스런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퍽! "꺄악! 테이님!" 누나의 카운터 펀치를 맞고 날아가는 나 때문에 카렌의 비명 소리가 울 려 퍼졌다. "우씨! 왜 때려?" "지금 시국이 어느 땐데 사랑 타령 운운하고 있어?" "헉 그걸 어떻게?" 내가 아픈 턱을 어루만지다 놀라서 반문하자 누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너는 원체 표정이 얼굴에 솔직히 나타나는 놈이잖아. 니 얼굴 표정보 고도 지금 너 마음이 뭔지 모르는 드래곤이 바보인 거야. 아무튼 한번 만 더 엉뚱한 소리하면 죽여 버릴 테니 얌전히 이야기나 들어!" "네." 잠시 불행한(?) 사고로 중단되었던 누나의 이야기가 계속 되었다. "만병 통치약은 구하기가 쉬워. 바로 가까이에 있거든." "어디에?" "그게 어디 있죠?" 나와 카렌이 동시에 물어 보자 누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드래곤 하트! 그것만 있으면 만사 오케이지." "드래곤 하트?!" "그래 그게 있었구나!" 카렌은 얼굴을 찌푸리면서 반문했지만 난 뛸 듯이 기뻐서 소리를 질렀 다. 드래곤 하트. 드래곤의 마나의 집합지라고도 할 수 있는 그 물건은 마 법사에게는 무한한 마나를 제공하는 마법 아이템으로 그리고 그걸 갈아 서 가루로 만들면 죽어 가는 생명도 살린다는 신비한 명약이 된다는 말 을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났다. 그럼 당장 그 드래곤 하트만 구해서... 그런데 구해야 된다는 생각이 미치자 난 문득 엄청나게 중요한 사실을 하나 잊어 먹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래곤 하트... 하트는 심장... 드래곤 하트... 드래곤 심장... 심장?! 나도 모르게 내 눈은 나의 왼쪽 가슴을 향했다. 잠시 내 왼쪽 가슴을 쳐다보던 눈은 다시 누나에게 향했고, 난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 다. "설마... 내 심장을?" 그러자 누나는 피식 웃더니 곧바로 주먹을 날렸다. -퍽! "크악!" "이 멍청아! 누가 너 심장 달래? 카렌을 남편 죽이고 어머니 살리는 극 악녀로 만들일 있냐? 그리고 성룡도 아닌 고작 해츨링 심장 가지고 잘 도 약 만들겠다! 이 멍청아!......아니지." 누나의 구구절절 옳은 독설을 들으며 코에다 힐링을 걸면서 일어나는 나를 빤히 쳐다보던 누나가 손으로 턱을 괴고는 생각을 좀 하는가 싶더 니 손을 탁 쳤다. "엘프를 살리는 일이니깐 해츨링 하트도 되겠다. 정 못 구하면 니꺼 쓰 자." "농담하지마!" "농담 아닌데." "......" 누나의 엽기적인 농담-제발 농담이기를 바란다.-은 그렇다 쳐도... 카 렌 왜 눈을 빛내면서 내 심장을 빤히 보는 거야? 그 눈빛이 워낙 순식간에 일이라 내가 본게 정말 제대로 본 건지 의심 이 되긴 했지만... 목숨의 위협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 혹시 정말로 하 프엘프 카모양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남편인 실버 해츨링 테모군을 살 해하다 뭐 그런 일 생기는 거 아니야? 아니겠지... "아무튼 다른 드래곤들이 죽으면서 드래곤 하트를 남기는 일이 가끔 있 다고 할머니가 그렇게 말한 적이 있잖아. 그러니 할머니한테서 가서 물 어 보자." "응." "정 안되면 정말 테이 니꺼 쓰고." "그런 말도 안 되는 농담하지 말라니깐." "이 기회에 확실히 해 둘게. 이 누나 농담하는 거 아니다. 자 아무튼 가서 드래곤 하트의 유무나 알아보고 생각해 보자." 무서운 누나. 누나가 그러고도 드래곤이야!! "저..." 카렌이 자리에서 막 일어나는 우리를 잡으며 머뭇거렸다. "응? 왜 잡았으면 말을 해." 누나가 재촉하자 카렌이 고개를 꾸벅 숙이며 말했다. "저도 데려가 주세요. 부탁입니다." "우리끼리 갖다 와도 돼. 카렌은 이르 누나 곁에 있어." "아니요. 아무 도움도 안되겠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도와주시는데 혼 자 편하게 있을 수는 없어요. 저도 따라가게 해주세요." 카렌이 애원을 하자 누나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정말 효녀 하프엘프로군. 효자 해츨링 테이군 이랑 천생연분이라니깐. 좋아 이 기회에 할머니에게도 소개 시킬 겸 데려가지 뭐. 같이 가자." 누나의 허락이 떨어지자 카렌의 얼굴은 금세 환해졌고, 곧 내 옆에 와 서 내 팔을 살짝 잡았다. 그 모습을 보던 누나가 혀를 쯧쯧 찾다. "아까 전에는 아예 찰싹 달라붙어 있더니, 또 갑자기 왜 그래? 남의 눈 신경 쓰지 말고 좀더 신혼 분위기 좀 내봐라." "아 아니에요. 아직 테이님과 그 정도... 관계까지는......." 누나는 끝내 말을 흐리는 카렌을 보다가 한심하다는 듯이 혀를 차며 나 를 보며 말했다. "참나 느림보 해츨링 아니랄까 봐. 내가 잠든 지 꽤 된 것 같더니 아직 도 그대로냐? 보나마나 키스 한번도 안 했겠지? 어떻게 테이 넌 차려진 밥상 놔두고도 못 챙겨 먹냐?" 구구절절 옳은 누나의 말이 비수가 되어 내 가슴에 꽂혔고, 카렌에게는 불화살이 되어서 꽂혔는지 금세 얼굴이 빨개졌다. 흑흑 그럼 나보고 뭘 어쩌라고? 카렌의 방어벽이 그 동안 얼마나 두터 웠는데... 그나마 오늘은 정말 키스까지 갈 뻔했고, 오늘을 기점으로 관계가 급진전 할 뻔했는데... 그래 모든 원흉은 내 첫(?) 키스를 방해 한 저 제임스 때문이야! 저 망할 놈의 고철 덩어리! 라는 시선으로 매섭게 제임스를 쳐다보자 아까부터 묵묵히 서서 우리말을 듣던 제임스가 내 눈빛을 눈치채고는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돌아오실 때까지 이르 님을 잘 지키고 있겠습니다." 이봐 난 그런 눈빛으로 바라본 게 아니잖아! 최소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해야 될 것 아니냐고!! 역시 넌 좀 맞아야 되겠구나. 어라? 근데 왜 저 제임스가 흐릿하게 보이는 거지? "워프!" 누나는 어느새 내 어깨를 붙잡고 워프를 시전 하였고, 동시에 제임스의 모습이 흐릿해져 갔다. 누나! 잠깐만! 1분만 시간을 줘! 저 남 잘되는 꼴 못 보는 다크 나이트 교육 좀 시킬 시간을 달란 말이야!! "어머나? 티아와 테이구나. 오랜만에 왔네." 젠장 빨리도 도착했네. 아 워프 썼으니 빨리 온 게 당연한 건가? 오랜만에 본 할머니는 여전히 그 커다란 몸과는 어울리지 않는 인자한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시다가 내 팔을 꼭 붙들고 있는 카렌을 보고는 고 개를 갸웃거리셨다. "저 하프엘프 소녀는 뭐냐?" 계속 ------------------------------------------------------------------ 오늘은 좀 늦게 쓰게 되었네요. 곧이어 뒤에편도 써서 올리겠습니다. 오늘은 내 동생 킹덤 3차리그 두번째 시합이 있는 날. 나 : 동생아 이 형이 응원하라 가줄까? 동생 : (아주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형 마감이라며. 어제 그 난리를 치 더니 그래도 돼? 나 : 야 이 형 마감도 중요하지만 오늘 너 이기면 거의 8강진출 확정이 나 마찬가지잖아. 그런 중요한 시합을 형이 직접 가서 응원 해주겠다는 데 지금 마감이 문제냐? 동생 : (한숨을 푹 쉬며) 형 그냥 솔직히 말해라. 나 : 뭘? 동생 : 놀고 싶은 건데기 찾는다고 솔직히 말하라고. 나 : ..... 동생 : 얌전히 집에 쳐 박혀서 글이나 써라. 그럼 나 갔다 올께. 나 : (크윽 동생아 너마저! ㅜ.ㅜ) 이리하여 평화주의는 놀 건데기를 끝끝내 못 찾아서 오늘도 종일 컴 붙 잡고 살고 있다는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상황 연출이...퍽! 다음편에 뵙겠습니다. 늘 노력하는 작가가 되겠습니다 드래곤 남매 12화 만병통치약을 찾아서(1) 할머니는 의아한 눈빛으로 카렌을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쭉 흩어 보셨 고, 카렌은 생전 처음 보는 드래곤의 모습에 -내 본 모습은 한번도 본 적이 없으니 이번에 처음 본 게 맞다.- 겁을 먹었는지 나한테 몸을 더 욱 밀착하였다. 흐 부드러운 감촉이 기분 좋다. 그리고 카렌의 모습을 관찰하던 할머니가 알겠다는 듯이 손을 탁 치면 서 말했다. "아 너희들 도시락이구나. 근데 하나 갖고 양이 되니?" "......" "......" "......" 난 경악해서 입을 쩍 벌렸고, 카렌은 아예 내 뒤에 숨어서 날 꼭 붙들 었다. 그리고 누나는 참으로 한심하다는 눈으로 할머니를 쳐다보았다. 우리 셋의 반응을 본 할머니는 혀를 차며 말했다. "오랜만에 놀러 와서 반가운 마음에 할미가 농담 좀 했기로서니 그 표 정들이 뭐냐?" 농담이라고요? 어떻게 그런 듣기에 아주 잔인한 농담을... 그 일로 인 해 난 누나의 저 엽기적인 성격은 역시 할머니로부터 엄마에게 그리고 다시 누나에게 이어졌다는 확실한 증거를 포착(?)한 느낌이다. 할머니의 입이 잠시 중얼거리나 싶더니 곧 은빛의 눈부신 빛이 할머니 의 몸을 감싸고 빛이 사라졌을 때 그 자리에는 30대의 인자한 여인이 눈부신 은색 드레스를 입고 긴 은발을 늘어트린 체 서서 우리를 쳐다보 았다. [테이블, 의자, 차.] 인간으로 폴리모프 한 할머니가 용언으로 말하자 테이블과 의자와 향긋 한 냄새의 차가 척척하고 나타났다. 거참 보면 볼수록 신기하단 말이야 용언 마법이라는 거... 내가 저거 쓸려면 앞으로 4600년 정도 남았나? 까마득하군. "자 이리 와서 앉거라. 서서 할 이야기가 아닌 것 같으니깐." 할머니의 말하기도 전에 이미 누나는 척척 걸어가서 테이블에 앉아서 차를 음미하고 있었다. 난 머뭇거리는 카렌의 손을 꼭 잡고 안심시킨 다음 데리고 가서 자리에 앉혔다. 그 모습을 빙그레 웃으며 보시던 할머니가 카렌을 보면서 입을 여셨다. "그래 우리 테이랑 만난 지는 얼마나 되었니?" "네?" 갑작스런 할머니의 질문에 카렌이 깜짝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할 머니를 쳐다보며 반문하자 할머니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호호호 내가 한 눈치 한단다. 넌 테이의 애인이 맞지?" 아무 말도 못하고 빠르게 새빨개지는 카렌의 얼굴을 재미있다는 시선으 로 보던 할머니는 이번에는 나에게 물었다. "그래 테이는 오늘 애인 자랑하러 할머니한테 온 거니?" "할머니 그게 아니고요." "호호호 뭘 그렇게 부끄러워 하니. 남자 녀석이 그러면 안되지. 그런데 넌 인간 세계에 나가지도 않은 것 같던데 어디서 이런 귀여운 아이를 데려온 거니. 너도 너희 아비 닮아서 능력 좋구나. 그래 증손자는 언제 보여 줄거니? 호호호 첫 증손자가 쿼터 엘프가 되겠구나. 그것도 나름 대로 재미있지. 아 그것보다 테이 네가 아예 엘프로 폴리모프 해서 애 를 낳아. 쿼터 엘프는 나중에 자식을 생산 할 수 없단다. 아무리 유희 중에 낳는 자식이라지만 그래도 자식에게 힘든 미래를 지워 주면 안 되 는 거야. 어머 왜 아무 말들이 없는 거니? 혹시 벌써 애까지 가진 거야 ? 그럼 이 할미가 남자앤지, 여자 앤지 봐줄까? 마법으로 확인하면 굉 장히 정확하게 알 수 있단다." 도대체 뭘 어떻게 생각하면 줄거리를 멋대로 저기까지 지을 수가 있는 거야?!! 난 벙찐 표정으로 입만 딱 벌리고 할머니의 장황한 이야기를 들었고, 카렌의 얼굴은 여전히 잘 익은 과실처럼 되어서 점점 고개를 숙이고 있 었다. 그리고 할머니는 아예 팔까지 걷어 부치고 카렌의 배에 손을 대 보려고 하고 있었다. 아기(?)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확인(?)해보기 위해 서...... "할머니 소용없어요. 테이 저 녀석 숫기가 엄청 없어서, 같이 산지 1년 이 다 되가는데도 아직 키스조차 안 했어요." 그 때 조용히 웃으며 구경 중이던 누나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그러 자 막 카렌의 배에 손을 대보려고 하던 할머니가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 정을 지었다. "1년이나? 같이 살면서? 손도 안됐다고?" "네. 저 정도 숫기 없는 것도 기네스북 감이라니깐요." "기네스북? 그건 또 뭐냐?" "엄마 레어에 있던 책이요. 뭐 전 세계에서 희귀한 거나 어떤 일에 대 해서 최고 기록 등을 보유한 인간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책이던데 재미 있더라고요." "호 그래? 그럼 나중에 세이르아에게 빌려 봐야겠구나. 잠깐 그럼 너 말대로라면 테이는 순진한 것 중에는 최고라는 말이니?" "저기 카렌도 만만치 않아요. 뭐 하지만 여자가 순진하면 남자라도 밀 어붙여야 일(?)이 되도 될텐데. 남자 쪽은 정말 한심하다 싶을 수준이 니... 누나로서 정말 걱정이 되요." "카렌?" "아 죄 죄송합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카렌이라고 합니다." 할머니가 누나에게 반문하자 그제야 우리들은 아직 카렌을 소개하지 않 았다는 것을 알아 차렸다. 하지만 아까부터 할머니 혼자서 떠들다 시피 해서 도저히 소개시킬 타이밍은커녕 생각조차 못하게 만든 할머니한테 도 잘 못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난 벌떡 일어나서 고개를 숙이며 '죄 송합니다.'를 연발하는 카렌을 잡아서 도로 자리에 앉히며 말했다. "그만하면 됐어. 카렌. 내가 미쳐 소개를 시켜 준다는 것을 깜박한 잘 못도 있으니깐. 카렌 혼자만의 잘못이 아니야." "하지만...." "괜찮다니 깐!" 내가 제법 강하게 나가자 카렌은 '네.'라고 대답하고는 곧 할머니의 눈 치를 살폈다. 그때 할머니는 누나와 속삭이고 있는 중이었다. "저렇게 보면 남자답기도 한데 정말 둘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던 거니 ?" "글세 말이에요. 쓸데없는 일에는 남자다우면서 정작 중요한 때는 순동 이 저리 가라니깐요. 오죽이나 내가 답답했으면 밥상까지 다 차려 줬는 데도 못 먹는 거(?) 있죠." "어머 너무 심했다. 그렇게까지 돼서도 손을 안 되는 것도 여자한테 실 례인데..." 아니 지금 이 드래곤들이!! 속닥거리려면 안 들리게 하던가!! "지금 그런 이야기하러 온 거 아니잖아!" 난 너무 열이 받쳐서 잠시 그 옛날 처음 겪었던 폭주 상태로 빠진 것 같았다. 정신이 들어보니 테이블은 뒤집어져 있었고, 그 와중에 카렌은 급히 자신의 찻잔과 내 찻잔을 들어서 내 손에서(?) 안전하게 지켰다. 그리고 할머니와 누나도 어느새 실프 한 마리씩 불러서 자신의 찻잔을 공중에 띄우고는 나를 황당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아니 정확히는 그런 눈으로 쳐다보는 건 할머니와 카렌뿐이었다. "저게 백년 전 외출 때 테이가 보였다는 폭주라는 거니?" "네. 참 오랜만에 다시 보네요." 할머니의 황당한 음성에 누나는 이미 한번 봤기 때문에 별거 아니라는 말을 해주었다. 첫 외출 때의 이야기는 당연히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 고 아빠에게도 해주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듣던 세분은 하나같이 배 를 움켜쥐고 거의 구르다시피 하며 웃으셨다. 아 정정하겠다. 할머니는 그래도 조용히 품위를 지키면서 웃으셨다. 다만 눈물까지 흘려 가면서 웃었다는 게 문제였지만...... 그리고 나의 여장에 대해서 듣고 나신 뒤 그 반짝이는 눈빛이란...... 정말 생각하기도 싫다. 그때 한번 해보라고 끝까지 권유와 협박과 회유 를 하셨지만 그래도 굳건하게 내 남자의 자존심을...... 그래 솔직히 이야기하겠다. 누나의 협박과 아빠와 할머니의 권유 그리고 마지막으로 할아버지의 마법검 세트 뇌물에 넘어가서 다시 여장을 했었다. 솔직히 정말 하기 싫었지만 그 놈의 속성 마법검 세트에 눈이 뒤집혀 서...... 아무튼 옛날 추억은 이미 지나간 일이니 여기서 그만 접고 난 사태 수 습을 먼저 하기로 하였다. 뒤집어진 테이블을 바로 세우고 공중에 떠 있는 찻잔 세트들과 카렌 손에 있는 카렌의 찻잔과 내 찻잔을 다시 테 이블에 올려놓고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다시 앉았다. 이 정도면 되겠지. 근데 왜 아직도 그런 눈으로 쳐다보는 겁니까? 할머니... 카렌도 그만 그 황당한 표정 좀 지워! "이해해 주세요. 테이 저 녀석 마음속으로는 카렌과 이것저것 다 해보 고 싶은데 현실에서 는 마음 먹은 대로 안되니깐 그 동안 쌓인 게 많은 가 봐요." 누나 지금 그 말 분명 날 변호해 주려고 한 말이지? 그렇지? 그런데 왜 내 귀에는 비꼬는 말로 들리는 거야? 누나의 말을 들은 할머니는 진심으로 측은한 눈으로 날 바라보았고, 카 렌은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뭘?-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카렌이 작게 나에게 속삭였다. "죄송해요. 전 정말 그런 쪽(?)은 정말로 잘 몰라서... 저 앞으로 노력 할게요." 카렌 그 말은 정말 고마워. 근데 꼭 그 말을 지금 여기서 하는 이유는 또 뭐야? 아무리 속삭여도 저 큰 마녀, 작은 마녀 드래곤들은 다 듣는 단 말이야! 봐 다 듣고는 벌써 저렇게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웃고 있잖아. "좋겠구나. 테이야. 노력한 다잖아." "호호호 테이가 정말로 착한 손자 며느릿감을 데려왔네." 카렌은 경악의 표정으로 어떻게? 라는 표정을 지었다가 퍼뜩 자신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드래곤이라는 것을 기억해 냈는지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여 버렸다. "하지만 테이도 노력해야 돼. 여자를 너무 기다리게 만드는 것도 안 좋 은 거야. 휴. 테이가 너희 할아버지 반만 닮았어도, 손자며느리에게 아 기가 생겼을지도 모를텐데." "네? 할아버지가 왜요?" "호호호 너네 할아버지가 젊었을 때 얼마나 날 따라다녔다고, 난 싫다 고 했는데도 엄청나게 따라다니다가 결국... 음 이런 이야기 얘들한테 해도 되려나?" "에이 뭐 어때요. 어차피 알거 다 아는데 그냥 해주세요." 나랑 카렌은 듣기 싫은데. 하지만 그런 말을 한다고 들어줄 두 여자가 아니었다. 그러니 잠자코 듣다가 걸러 낼 것은(?) 못 들은 걸로 쳐야 지. "그래 이왕 말 꺼내건 다 해줄게. 아무튼 싫다고 말로도 해보고, 패서 도 쫓아내고, 레어를 몰래 다른 데로 옮기고, 하여튼 별별 노력을 다 했는데도 막 찾아오는 거야. 그러다가 어느 날 그냥 힘으로 덤비더니 덜컥 나한테 임신을 시켜 버렸지 뭐니." "어머나! 그게 혹시 우리 엄마?" "그래 그게 세이르아였단다. 아무튼 당했다는데 너무 화가 나고 속상해 서 그냥 니네 엄마 지우고, 할아버지랑 사생결단을 낼까 하다가 이왕 생긴 아기니 잘 키워 보자는 생각과 그래도 정 붙이고 살면 괜찮겠지 하는 생각에 그냥 낳았단다." "헤 그런 일이 있었군요." 라는 말을 하면서 누나는 흥미 진지하게 듣고 있었지만 나랑 카렌은 그 럴 수가 없었다. 도대체 저 드래곤들의 얼굴 가죽 두께는 얼마나 되는 거야? 그게 손녀와 손자, 그리고 손자며느리(?) 앉혀 놓고 할 말이란 말인가? 이럴 때는 정말 잘 들리는 귀가 참 원망스럽다. 서로 빨개진 얼굴로 어딜 쳐다봐야 될지 몰라서 안절부절 하던 카렌과 나는 딱 눈이 마주쳐 버렸다. '미안해. 우리 가족은 원래 이레.' '아뇨. 전... 괜찮아요... 정말로...요.' 전혀 괜찮아 보이지가 않는데 카렌 애쓰는구나. 흑 고마워. 이렇게 우리 둘이 눈으로 대화를 나눌 동안 뭔가 곰곰이 생각하던 누나 의 고개가 갸우뚱하더니 말했다. "가만 전에 할아버지한테 들은 내용과는 틀린데." "응? 할아버지가 뭐라고 했는데?" 가만 누나 말을 듣고 보니 확실히 저런 줄거리가 아니었는데...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엄청 쫓아다녔다고 했었는데요. 더구 나 젊었을 시절에 인기가 좋아서 여러 여자들이 따라다녔고, 할머니도 그 중 하나라는......" 저 아무리 대단한 누나라도 결국 말을 끝내지는 못했다. 넘실거리는 뜨 거운 살기가 할머니는 혹시 원래는 레드 드래곤이 아니었을까 라는 의 심이 들게 만들 정도였고, 그 살벌함에 난 급히 카렌에게 보호막을 덮 어 줘야 될 지경이었다. "그래? 그 영감이 그런 소리를 했단 말이지?" "네. 네." 누나의 목소리는 정말 오랜만에 떨고 있었다. 그 정도로 할머니의 살기 는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내 이놈의 영감탱이를 그냥... 알았다. 그럼 우리 손자며느리가 왔는 데 대접을 제대로 못해서 미안하구나. 다음에 조용할 때 다시 이야기하 자꾸나." 그리고 할머니는 우리가 미쳐 말리기도 전에 바로 워프를 하셨다. 안 봐도 어딜 가실지는 뻔했다. 그저 손자의 도리로서 할아버지의 안전이 나 빌 수밖에... 근데 뭔가 중요한 걸 잊어 먹은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앗! 할머니한테 드래곤 하트에 대해서 물어 보는걸 잊어 먹었다!" 누나의 경악에 찬 외침을 듣고서야 우리는 할머니 레어에 온 목적이 생 각났다. 우리 셋은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절망적인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어디서부터 이야기가 꼬인 거지?" "어디서부터고 자시고 처음부터 엉뚱한 이야기만 나왔잖아." "저... 이게 어떻게 하죠?" 누나는 한숨을 푹 쉬면서 어쩔 수 없다는 체념의 투로 말을 꺼냈다. "이렇게 되면 정말 믿기 힘든 드래곤이지만... 아빠와 엄마한테 가 보 자." 오로지 서로의 달콤한 신혼 생활에 -정말 엄청나게도 긴 신혼이다.- 빠 져 사는 닭살 커플 아빠 엄마를 찾아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나도 누 나도 절망적인 생각밖에 안 들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철석같이 믿고 있던 할머니가 완전히 열이 받아서 할아버지에게 갔고, 할아버지는 지금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왔다갔다 하고 계실 것이니... 믿을 건 이제 아빠 엄마뿐이었다. "가자." 정말 내키지 않는 말투로 누나는 할머니 레어에 있는 엄마 레어와의 공 간 이동 터널을 열었고, 난 카렌의 손을 잡고 정말 내키지 않는 걸음을 터널로 옮겼다. 일이 잘 풀리려나? 걱정이다. 계속 ------------------------------------------------------------------ 컥 늦어서 죄송합니다. 그래도 오늘(?)이 가기전에 올렸으니 부디 용서 를 구합니다. 12시 다 되가긴 하지만 어째든 오늘(!)이잖아요.^^;; 그럼 다음편에 뵙겠스니다. 드래곤 남매 12화 만병통치약을 찾아서(2) 공중에 떠 있는 은은한 조명의 마법 등불이 비치는 가운데 열 명이 누 워서 뒹굴어도 남을 침대 위에서 단 두 명의 남녀가 뜨겁게 키스를 나 누고 있었다. 언제 끝날지도 모를 키스가 끝나자 여자는 긴 한숨을 쉬 면서 숨을 고르고 남자는 그런 여자를 아주 사랑스럽다는 시선으로 바 라보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아 달링 키스는 너무 길어요. 숨이 찰 정도예요." 은빛 머리카락을 완전히 풀어헤쳐서 자신이 누운 공간을 은빛으로 수놓 은 세이르아가 입을 삐죽 내밀면서 불평을 하자. 그녀의 머리카락을 손 가락 사이로 흘려 보내는 놀이(?)를 하던 붉은 머리의 오스타인이 씩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서 내가 싫어?" 오스타인은 장난스럽게 물었지만 세이르아는 정색을 하면서 고개를 크 게 좌우로 흔들었다. 덕분에 침대에 흩어져 있던 그녀의 머리카락이 은 빛의 물결을 출렁였다. "싫어하다니요. 왜 그렇게 슬픈 말을 하는 거예요. 전 언제나 달링을 사랑하고, 나에게는 오직 달링뿐인걸요." "나 역시 그래. 나도 언제나 허니 뿐이야. 내 귀여운 드래곤. 그럼 우 리 한번 더 뜨겁게 불태울까?" "아이... 자기 짐승. 몰라요." "아까 말했잖아. 오늘은 허니를 재우지 않겠다고." "언제는 재운 적 있어요. 불면은 미용의 최대 적이란 말이에요." "그래? 그럼 그만 자자." 오스타인은 그렇게 말하고는 곧 베개에 머리를 뉘이고 금세 눈을 감아 버렸다. "에? 달링? 정말 자는 거예요? 아앙 그냥 해본 소린데. 달~링~." 미용 어쩌고 하던 말은 이미 저 멀리 던져 버린 체 세이르아는 오스타 인의 가슴에 얼굴을 부벼 대면서 아양을 떨자 자는 척 하던 오스타인은 입가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세이르아를 덥석 안아 버렸다. "앗! 자기 역시 자는 척 했군요. 이이 심술쟁이." 세이르아는 오스타인의 꽉 끌어안자 놀랐고, 또 자신을 속였다는데 심 술이 나서 주먹으로 오스타인의 가슴을 토닥였다. 오스타인은 짐짓 아 픈 척 하면서 말했다. "아야야. 미안해. 허니. 미안. 속인 것 대신에 오늘은 다른 때보다 배 는 더 당신을 사랑해 줄게. 그만 용서해 줘." 그 말에 세이르아는 얼굴을 확 붉혔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도 입가에 행복한 미소를 짖는 것은 잊지 않았다. "그럼 난 자기보다 배의 배는 더 사랑 할거예요." "그럼 난 허니의 배의, 배의 배는 더 사랑해 줄게." "그럼 난 자기보다 배의, 배의, 배의, 배는 더 사랑 할거예요." "그럼 난 허니의 배의, 배의, 배의, 배의, 배는 더 사랑해 줄께." "그럼 그만 거기서 그치죠. 그렇게 나가다가는 며칠을 꼬박 새면서 말 해도 안 끝나겠어요." "응?" "에?" 세이르아와 오스타인은 난데없이 들려 오는 자신들이 사랑하는 딸의 목 소리에 순간 환청을 들었나 하는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서로의 눈에서 똑같은 말을 들었다는 사실을 눈빛으로 교환한 두 드래 곤은 아주 불안한 눈으로 침대 아래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곳에는 팔짱을 끼고 흥미진진한 눈으로 두 드래곤의 사랑 놀음을 구경하고 있 는 그 들의 사랑스러운 딸 티아가 서 있었다. -휘이잉 분명 레어 안에서 불 리가 없는 찬바람이 불었고, 두 드래곤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충격 받으신 건 이해하겠는데요. 옷 안 입으실 거예요? 전 괜찮지만 내 뒤에서 눈감고 귀 막고 있는 두 순진이들에게는 엄마 아빠의 신혼 생활이 보기 힘든가 봐요." 티아의 말에 오스타인이 먼저 정신을 차리고 티아 뒤쪽을 보니 테이와 처음 보는 엘프가 뒤로 돌아선 체 귀를 막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오스 타인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저기 티아야." "왜요? 아빠." "너도 뒤돌아보면 안되겠냐?" "음. 난 괜찮은데." "이 엄마랑 아빠가 안 괜찮아!!" "네. 네. 그럼 잠시 얘네 들 데리고 레어 바깥으로 나가 있을 테니 정 리가 되면 부르세요." 그렇게 말하면서 티아는 정말 고맙게도 테이와 엘프를 데리고 나가 주 었다. 하지만 티아의 특기인 막판에 분위기 썰렁하게 만들기는 잊어 먹 지 않고 발동시켰다. "아 참. 우린 좀 급하니깐 한번 더 불태우시려면 조금 있다가 태우세 요. 우리 나가자마자 태우시면 안돼요." "잔소리 그만하고 빨리 나가!" 세이르아의 분노에 찬 외침을 들으면서 티아는 킥킥대며 얼른 둘을 데 리고 밖으로 나갔다. 티아가 둘을 데리고 나가자 세이르아는 거의 울 것 같은 얼굴로 말했 다. "재네 들 언제부터 보고 있었을까요?" "음... 말하는 것 봐서는 내가 그... 불태우자는 말할 때부터 보고 있 었던 것 같은데..." 오스타인이 머쓱해 하면서 얼른 마법으로 옷을 가져와서 입으며 말했 다. "난 몰라요. 왜 재들이 온걸 못 느껴 가지고... 힝 왜 달링도 못 느낀 거예요? 나보다 오래 살았으면서..." "그거야 허니를 사랑하는데 온 신경을 다 쓰다 보니깐. 그렇지." "달링." "허니." 두 드래곤은 다시 뜨겁게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입구 쪽에서 짜증 이 섞인 티아의 목소리가 그 뜨거운 기운을 순식간에 꺼 주었다. "글세 지금 바쁘니깐 나중에 태우라고 했잖아요!" 드래곤이 귀가 밝다는 이야기는...뭐 이제 새삼스레 말하지 않아도 다 들 알고 있는 내용이니 넘어가겠다. 다만 세이르아는 왜 드래곤들은 귀 가 밝아서 이 고생이냐고 투덜대었다. 그런데 왜 귀가 밝은 그 두 드래 곤은 자식들이 왔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한 것일까? 참으로 미스테리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나와 카렌은 오늘 하루종일 얼굴색이 정상이 되는 시간이 없었다. 이제 되었을 거라고 누나는 다시 아빠 레어 안으로 우리 둘을 끌고 들어가려 고 했지만 카렌과 나는 방금 봐서도 안되고 들어서도 안 되는 장면을 목격하고 들었던 차라 들어가기가 아주 껄끄러웠다. 하지만 이르 누나 의 병을 안 고칠 생각이냐는 티아 누나의 닦달에 어쩔 수 없이 - 정말 로 어쩔 수 없이. - 다시 레어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레어 안은 아 가의 그 요상한(?) 분위기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아빠와 엄 마도 평소 모습대로 우리를 반겨... 아니 무슨 볼일인지 모르겠지만 빨 리 해결하고 돌아가 달라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도대체 해츨링은 드래곤 족에서 제 일 보호 대상이자 관심을 기울여야 된다는 드래곤 족의 기본 규율이 이 부모님 머릿속에는 없는 것일까? 뭐 우리가 아직 새파랗게 어릴 때는 고슴도치 팔불출도 울고 갈 정도로 과도한(?) 애정을 쏟아 부으셨고, 우리의 독립을 그렇게나 반대하던 엄 마였는데 독립해서 좀 떨어져 지내니깐 금세 신혼 기분이 나셨나 보다. 하아. 저 두 분을 무슨 수로 말려? 그냥 그러려니 해야지. 한동안 어색해 하는 세 마리의 드래곤과 한 명의 하프엘프 그리고 지금 상황을 즐기고 있는 한 마리의 드래곤은 아무 말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서로를 쳐다보다가 아빠의 한 마디로 겨우 말문을 트게 만들었다. "엘프 인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하프엘프로구나. 그래 이 하프엘프 아 가씨는 누구니?" 아빠의 한마디에 카렌은 정신을 차리고는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아 안녕하세요? 카렌이라고 합니다." "그 그래? 만나서 반갑구나. 난 레드 일족이자 티아와 테이의 아빠 되 는 오스타인이라고 한다. 이거 아까는 못 보여 줄걸 보였구나." "아 아닙니다.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온 저의 잘못입니다." "허허. 이것 참 예의 바른 아가씨구먼. 마음에 들어. 드래곤이면 며느 리 삼고 싶을 정도인데." "카렌은 이미 테이의 아내인데요." 분위기가 조금이나마 좋아지려고 하는데 바로 초를 치는 드래곤이 있으 니 그것은 티아 누나이니라. 아내라는 말에 엄마의 눈꼬리가 살짝 올라 갔다. "잠깐만. 테이 너 언제 엄마 몰래 인간 세상에 내려간 거야? 거기다가 벌써 여자를 챙겨서 들어와? 도대체 누구한테 배운 버릇이니." "아빠한테 서요." 너무나 솔직한 내 대답에 엄마와 아빠는 입을 벌리시며 감동하셨고... 그래 솔직히 말한다. 아주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셨다. 그리고 누 나는 옆에서 배를 움켜쥐고 킥킥거리며 웃음을 참고 있었다. 도와주려 고 같이 왔으면 좀 도와 줘야 될 것 아니야. 저 놈의 누나라는 작자는 쯧. 아무튼 일단 천장을 쳐다보면서 뭔가를 중얼거리는 아빠와 이제 막 폭발할 것 같은 엄마에게 난 제대로 설명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카렌을 정식으로 소개했다. 이거 어째 부모님에게 '제가 결혼하고 싶은 여자입니다.'라고 소개시키 는 기분이다. "정식으로 소개해 드릴게요. 이름은 카렌이고 이르 누나와 제이크 아저 씨의 딸이에요." 내 소개에 잠시 무언가 생각에 잠기던 엄마는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카렌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아빠는 우리와 같이 나간 게 아니라 말만 들었기 때문에 그렇게 크게 놀라지는 않고 흥미로운 눈으로 카렌 을 쳐다보았다. 엄마는 정색을 하면서 카렌에게 물었다. "카렌...양이라고 불러도 되니?" "네." "그래 그럼. 카렌양." "네?" "제이크라는 인간 이르 씨랑 결혼하고 나서 바람 안 피웠니?" 카렌은 그 말 나올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푹 쉬었다. 누나는 엄 마의 질문에 이제는 거의 죽을 듯이 웃어 되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 면 나도 웃음이 나왔지만 억지로 참았다. 카렌에게 미움 받기는 싫으니깐. "아버지께서는 젊은 시절에는 좀 노시는(?) 분이셨지만 결혼하시고 난 뒤에는 어머니를 아껴 주시고, 절 사랑해 주셨던 정말 다정하신 분이었 습니다." "그래? 흠 역시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라니깐. 그렇죠? 달링?" 엄마가 그렇게 말하면서 아빠를 쳐다보자 아빠는 뜨거운 눈으로 엄마를 쳐다보며 말했다. "당연하지. 난 당신을 만나고 나서 세상 모든 것이 변한 기분이었는걸. 언제나 당신만을 사랑하고 당신만을 위해 살겠어." "달링." "허니." "참 뜨거운 사랑이라니깐. 테이랑 카렌도 좀 보고 배워라." 내가 카렌을 사랑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저 정도까지는 죽어도 싫다. 아 무튼 누나의 말에 부모님은 정신을 차리고는(?) 다시 우리를 쳐다보면 서 말했다. "그건 그렇다 치고 무슨 일로 왔니? 정말 결혼하고 싶은 여자 생겨서 소개하러 온 거야?" "그게 아니고요." 다행히도 할머니 때와는 달리 일단 본론을 이야기 할 수 있어서 다행이 었다. 내가 카렌과 만나게 된 일과 이르 누나를 내 영역에서 만나게 된 일부 터 쭉 설명을 해주었다. 내 설명을 시종일관 진지하게 듣던 엄마는 처 음에 보였던 분노는 어느새 눈 녹듯이 사라졌고, 이제는 완전히 카렌이 마음에 들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리고 이야기가 끝났을 때 엄마는 카렌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 "카렌양." "네?" "부족한 게 많은... 아니지. 부족한 것 하나도 없는 내 아들이지만 잘 부탁한다. 아 그리고 날 이제부터 어머니라고 불러줄레?" "네? 네?" 엄마. 말의 앞뒤가 안 맞잖아요. 그 팔불출 성격 고쳤나 싶었더니 역시 나 그대로구나. 하지만 정식으로 부모님에게 허락을 받은 건 기분이 좋다. 더구나 엄마 도 카렌을 마음에 들어 하니 다행이고... 엄마의 부탁에 난처해하던 카 렌은 결국 우리 엄마의 성화에 넘어가서 입을 열었다. "어... 어머니." 거의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였지만 충분히 알아들은 엄마는 함박 웃음을 지으면서 카렌을 꼭 껴안으며 기뻐하셨다. "호호호 딸이 새로 하나 생긴 기분이네. 너무 기분 좋다." "저기 카렌양. 나도 아버지라고 불러줄레? 불러 줄 수 있지?" "아. 네 아버님." 이번에는 아빠의 얼굴에 미소가 어리면서 기뻐하셨다. 참으로 가슴 따 뜻한 훈훈한 장면에 나도 가슴이 절로 뭉클해졌다. "저기 좋은 분위기에 초치는 것 같아서 미안한데요. 지금 중요한 볼일 이 카렌을 부모님에게 소개시켜 주는 일이 아니거든요." 아뿔싸. 누나 말을 듣고 나서야 난 이르 누나가 쓰러져서 약이 필요하 다는 말을 빼먹은 게 생각났다. 누나는 나를 쳐다보면서 어쩔 수 없다 는 표정으로 고개를 젖고는 내가 말하지 못한 우리가 여기에 온 진짜 이유를 설명했다. "....그렇게 해서 드래곤 하트가 필요해서 아빠 엄마에게 물어 보러 온 거에요." 아빠는 누나의 말을 끝까지 다 듣고는 약간 얼이 빠진 목소리로 대답했 다. "그래서? 이 아빠 심장을 달라고?" 누나는 잠시 아빠를 쳐다보다가 시선을 돌려 나를 쳐다보고는 고개를 저으며 아주 한심하다는 목소리로 한마디하였다. "부전자전." 내 성격은 아무래도 아빠를 많이 닮은 것 같다. 잠깐 그럼 아까 그 느 끼한 성격도 나중에 닮아 버리는 건 아니겠지? 절대 그 성격만큼은 난 사양하고 싶다. 앞으로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노력에 노력을 해야 지. 그런데 내 옆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카렌을 보자 마음이 약간 흔들렸 다. 잠시 아까 전의 상황을 떠올려서 그 상황에 나와 카렌을 출현시켜 서 상상을 해보니... 흐 그것도 괜찮을 것 같은... 응? 카렌의 몸이 순 간적으로 흠칫거린 것 같은데 또 내 생각이 절실했었나? 하지만 아까 노력하겠다던 카렌의 말이 진심이었는지 평소처럼 나한테 서 후다닥 떨어지거나 하지를 않았다. 그냥 부끄러운지 고개만 숙이고 는 오히려 더욱 나에게 밀착을 해 오는 것이었다. 크흑. 카렌 드디어 내 마음(?)을 알아주는구나. 이제 행복한 신혼 생활이 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자 온 세상의 행복을 내가 다 가진 것 같았다. 그러나 그 행 복한 생각은 누나의 외침으로 깨어졌다. "네? 없다고요? 드래곤 하트가 없단 말이에요?" 계속 ------------------------------------------------------------------ 오늘은 늦은데다가 달랑 한편뿐이라 죄송합니다. 수정을 하다보니 욕심이 생겨서 수정작업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다 보니 이렇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앞부분의 닭살 돋는 두 신혼(?) 부부의 대화에 정신적인 충격을 먹은 분들이 있다면 머리 숙여 사죄 드립니다. 그리고 덧붙여서 변명도 하자면....저것도 많이 순환(?)시킨 것입니다. ㅡㅡ;; 내용도 처음보다 좀 짧아 진거고요. 25일까지는 양이 좀 적게 올라가더라도 이해를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럼 다음편에 뵙겠습니다. 늘 노력하는 작가가 되겠습니다 드래곤 남매 12화 만병통치약을 찾아서(3) 누나의 경악에 가까운 외침에 카렌이 순간 비틀거렸다. 난 급히 카렌을 잡아 주고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아빠를 쳐다보았다. 아빠는 지금 누나에게 목을 잡혀서 켁켁 거리고 있는 중이었다. "아빠! 그 말 농담이죠? 네? 농담 맞죠?! 농담이라고 안 하면 진짜 아 빠 심장이라도 써 버릴 거예요!!" "켁켁 좀 진정해라. 켁켁." "티아야. 일단 그거는 놓고 말해라. 아빠가 말하고 싶어도 못하잖니." 옆에서 엄마가 뜯어말리자 그제야 누나는 손을 놓고 거의 울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럴 수가... 난 드래곤 하트만 철썩 같이 믿고 온 건데 없다니... 그 럴 수가... 흑..." "티아님..." 내 옆에 있던 카렌은 어느새 누나 옆에 가서 누나의 팔을 붙잡고 누나 를 불렀다. "미안 카렌. 미안. 흑." "티아님 잘못이 아니잖아요. 티아님은 절 도와주시려고 최선을 다하셨 어요. 전 그것만으로도 고마워요." "흑. 카렌." "티아님. 훌쩍." 그리고 두 여자는 서로 껴 안은 체 목놓아 울어 버렸다. "저기 이 아빠는 드래곤 하트는 없다고 말했지만 방법이 없다는 소리는 안 했다." 아빠가 목을 쓰다듬으며 목놓아 울고 있는 두 여자에게 말하자 울음소 리는 정말 거짓말처럼 뚝 그쳐 버렸다. "그 방법이란 게 뭐예요?! 빨리 말해요!!" 그리고 언제 울었냐는 듯이 티아 누나는 다시 사납게 아빠를 몰아 세웠 다. 누나의 사나운 기세에 아빠는 한 걸음 물러서시며 말했다. "한마디로 지금 너희들은 만병통치약이 필요한 거지?" "네." "그런 약이라면 룬라이란 꽃이 있단다." "룬라이?" 처음 들어보는 꽃의 이름에 난 약초 박사라고도 할 수 있는 카렌을 돌 아보았다. 티아 누나와 난 의아한 표정인데 반해 카렌은 놀란 얼굴로 우리 아빠를 쳐다보고 있는 걸 봐서는 무언가 알고 있는 듯 했다. "카렌 그 룬라이라는 꽃을 알아?" 내가 물어 보자 카렌은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해 주었다. "네. 달의 정기와 태양의 정기를 흡수하는 꽃으로 백년에 한번씩 꽃을 피운다는 전설의 꽃으로 그 꽃이 실존 여부조차 불분명하다고 책에서 봤어요." 약초 박사답게 카렌의 명쾌한 설명에 누나와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바 로 사나운 눈으로 아빠를 쳐다보았다. "아빠! 실존하지도 않는 꽃이 방법이란 말은 아니겠죠?" "그게 방법인데." 간단한 아빠의 대답에 나와 누나는 눈꼬리를 치켜들며 따졌다. "도대체 실존하는지 안 하는지도 모르는 꽃을 어느 세월에 찾아 다녀요 ? 지금 우리는 급하단 말이에요. 자꾸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면 아버지라고 부를 거예요." "잠깐만 내가 설마 불가능한 방법을 말했겠니? 룬라이는 실존해. 내가 그 장소도 알고 있고..." "정말요?" 아빠가 급히 손을 흔들면서 변명하자, 나와 누나 그리고 카렌까지 눈이 휘둥그래져서 반문했다. 그 모습에 아빠는 약간 여유를 가지셨는지 미 소를 지으며 말해 주었다. "아빠가 사는 이 모번 산맥에서 최고로 높은 산인 에레스트 산 정상에 인간들이 말하는 전설의 꽃인 룬라이가 있단다." "아빠 그거 정말이죠? 응? 진짜죠?" 누나는 어느새 아버지에서 아빠로 한 단계 승격(?)해서 부르며 아빠를 다그치자 아빠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확실하게 말했다. "물론이지. 이 아빠도 그 꽃을 구해 다가 먹은 적이 있거든." "어? 아빠 어디 아프신 적이 있었어요?" "달링! 정말이에요? 어딘가 아픈 적이 있었던 거예요? 달링이 아프면 내 마음도 아프다는 소리했다고 나한테 비밀로 했던 건가요?" 눈치 없는 우리 엄마가 기겁을 하며 끼여들자 아빠는 머리를 긁적이며 시선을 돌리며 대답을 회피했다. "아니 뭐... 꼭 아팠다기보다는 그냥 좀... 필요 한데가 있어서." "달링! 너무해요. 왜 나에게 숨기는 거예요. 제가 알면 안 되는 건가요 ?" "아니 그게 아니고..." "아 맞다! 룬라이라는 꽃은 정력에도 좋다는 글을 본적이 있어요." 드래곤 일동의 시선이 일제히 손을 탁 치며 엄청난(?) 발언을 한 하프 엘프 카렌에게로 향했다. 카렌은 처음에는 우리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 중하자 그것 때문에 당황하다가 곧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닫고는 배의 배는 당황해서 울상을 지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그냥 갑자기... 생각이 나서..." 역시 카렌은 이르 누나의 딸이었다는 것을 확인한 기분을 느끼면서 얼 이 빠져 있을 때 누나만이 금방 회복해서 흥미 있는 표정으로 카렌에게 말했다. "헤에 그래서 엄마가 시도 때도 없이 아빠를 찾아가도 아빠가 지치지 않았구나. 이거 여유분까지 있으면 테이에게도 먹여야겠다. 그치 카렌 ?" "아... 아니에요! 전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절대 아니에요!!" "알아. 농담으로 한 소리니깐 그렇게 소리 좀 지르지 마. 아 그것보다 아빠 그 룬라이가 있는 산으로 우리를 워프 시켜 주실 수 있죠? 시켜 주실 거죠? 네 아~빠~." 누나가 아빠의 목에 손을 감고 얼굴을 아빠 가슴에 부비적 거리면서 말 하자 아빠의 표정은 급속도로 미소가 번지더니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내가 그 정도도 못해 줄까 봐. 자 저기 가서 서거라." 아빠는 우리를 셋을 나란히 세운 다음 손을 들고는 외쳤다. "워프!" 그리고 곧 아빠와 엄마가 흐릿하게 보인다 싶을 때 누나가 소리쳤다. "아빠! 엄마! 좋은 시간 방해해서 미안해요! 아 그리고 그냥 사랑도 좋 지만 가끔은 본 모습으로 사랑 좀 하셔서 테이 같은 동생 좀 하나 더 만들어 줘요!!" 누나의 외침에 아빠와 엄마가 휘청되는 것 같았는데 아쉽게도 얼굴 표 정까지 구경할 수는 없었다. 곧바로 우리 눈앞에는 바위투성이의 지형 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누나는 지금쯤 자신이 한 말에 아빠와 엄마가 받았을 정신적인 데미지 를 생각하며 재미있어 하는 얼굴로 우리를 돌아보며 말했다. "산 정상이라고 했으니깐 저 위로 가면 되겠지? 자 그럼 가 보자." "응." "네." 나와 카렌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힘차게 앞서 올라가는 누나의 뒤를 따 랐다. 아이들이 가고 난 뒤 분위기가 완전히 썰렁해진 신방(?)을 겸하는 레어 에서 오스타인과 세이르아는 머뭇거리며 시선을 피했다. 그 와중에 오 스타인은 중요한 사실을 말 안 해줬다는 생각이 자꾸 났지만 그게 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디 보자. 내가 룬라이를 먹은 게 2000년 전이었는데... 그때 무슨 일이 있었더라. 음 아주 하찮은 일이었던 것 같은데.' 그렇게 혼자 끙끙대며 고민을 할 때 세이르아는 뭔가를 결심했는지 곧 주문을 외워서 시공간을 열더니 그 안에서 아까 집어넣었던 침대와 마 법 등불을 꺼내서 아까의 끈적끈적한 분위기로 세팅했다. 일을 끝마치 고 흡족한 미소를 지은 세이르아는 아직도 뭔가 끙끙거리며 고민하는 오스타인을 뒤에서 살며시 껴안으며 그의 귓가에 속사였다. "무슨 생각해요?" "아니 뭔가 중요한걸 우리 애들에게 안 해준 것 같아서." "중요한 일이에요?" "그게 잘 생각이 나질 않아. 하찮은 일이었던 것 같은데..." "그 일이 지금 우리가 아까 하던 일을 계속하는 것보다 중요해요?" 그 말에 오스타인이 뒤를 돌아보아 세이르아가 만들어 둔 분위기를 보 고는 미소를 지었다. "아니 허니를 사랑해 주는 일보다 중요한 일이 어디 있어. 그것보다 우 리 허니 이제 많이 대담해 졌는걸 처음에는 무서워서 싫다면서 엉엉 울 던 때가 엊그제인 것 같은데." "날 이렇게 만든 드래곤이 바로 달링이잖아요. 그러니 책임을 지셔 야 죠." 세이르아는 얼굴에 홍조를 띠면서 오스타인의 손을 잡고 침대로 이끌었 다. 그리고 오스타인은 세이르아 말대로 책임(?)을 지기 위해 세이르아 의 손길에 이끌려 갔다. 이미 그 하찮은 일이라는 것은 머릿속에서 바로 삭제된 상태였다. "젠장. 아빠 바보!!" 그 때쯤 에레스트 산을 등반하고 있던 티아는 분노의 외침을 퍼붓고 있 었다. 바로 그 꽃이 있는 데까지 워프시켜 준 줄 알았는데 오스타인은 아이들을 산 중간쯤에 워프시켜 놓았던 것이다. "바보 아빠. 누가 부전자전 아니랄까 봐 테이랑 하는 짓이 똑같아!" "왜 거기에 날 끌어들여?" 테이가 뒤 따라 올라가면서 떨떠름한 표정으로 따지자 티아는 바로 매 서운 눈으로 쏘아보았다. "너 지금 나한테 따지는 거야?" "아니... 그럴 리가..." 두려움에 말을 끝내지도 못하고 시선을 피하며 테이는 이렇게 된 것은 워프를 시전 중에 티아가 엉뚱한 말을 해서 아빠인 오스타인이 당황해 서 좌표를 잘 못 설정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말은 입밖 에 꺼내지 않았다. 꺼냈다가는 이유 없이 얻어맞을게 뻔하니깐... "저기요. 아버님께서 티아님 말씀에 당황해서 엉뚱한 쪽으로 좌표를 잡 으신 게 아닐까요?" 카렌의 저 자연스럽게 나오는 아버님이라는 말은 그렇다 치고 넘어가더 라도 -어째서?- 테이가 하고 싶었던 말이지만 못했던 말을 자연스럽게 해 버리는 카렌을 티아와 테이는 잠시 침묵으로 쳐다 만 보았다. 카렌 은 두 드래곤의 반응을 보고 자신이 뭐 말실수했냐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했다. "테이야." "응." "일단 맞고 시작하자." "에?" 테이가 뭔가 말을 하기도 전에 티아의 주먹이 날아왔다. "으악! 크윽... 갑자기 왜 이래?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그럼? 내가 카렌을 때릴까? 아내의 잘못은 남편에게 묻는 법. 궁시렁 거리지 말고 얌전히 맞아. 오늘은 급하니깐 적당히만 해줄게." "그런... 말도 안 되는!!" "그럼 카렌 때릴까?" "...아니." "그럼 얌전히 맞아!!" "너무해!!" "아앙! 제가 잘못했어요. 티아님 테이님 때리지 마세요!!!" 그렇게 그들은 에레스트 산 정상에서 시간을 보내는 중에 해는 천천히 지고 있었다. 계속 ------------------------------------------------------------------ 오늘은 2연참입니다. 그리고 나도 정신(?)을 차리고 이제부터 여유분 좀 만들어 둘 생각입니다. (고로 원래 3편을 썼지만 두편만 올리겠습니 다.) 슬슬 마감 날짜도 끝나가는군요. 이미 글은 다 고쳤지만 그래도 불안한 마음에 지금 읽고 또 읽으면서 고칠데가 없는지 몇번이나 확인 중입니 다. 그럼 다음편에 뵙겠습니다. 늘 노력하는 작가가 되겠습니다. 드래곤 남매 12화 만병통치약을 찾아서(4) "후아. 기분 좋다. 진작 이렇게 갈걸." 누나는 밤바람을 맞으며 정말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우우." "카렌 왜 그래?" "아뇨 이렇게 높은데 는 처음이라... 더구나 속도도 빠르고..." "테이야 들었지? 속도 좀 낮춰서 천천히 날아." 누나는 내 등을 탕탕 두들기며 말했다. 젠장! 내가 무슨 대여점 마차야?!!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하면 카렌의 생각 없는 발언에 - 역시 카렌은 이르 누나의 딸이었다. - 누나에게 얻어터지다 보니 해가 졌고, 누나에 게 나 때문에(?) 날이 어두워 졌으니 어쩔 거냐는 말과 보너스로 한 대 더 맞고 산을 오르던 중 카렌이 손을 탁 치며 '날아가면 빠르지 않을까 요?' 라는 말을 했기 때문이다. 누나와 나는 잠시 왜 드래곤인 우리가 그 생각을 못했을까 에 대한 심 각한 고찰을 하고는 누가 현신 해서 태우고 갈지 정하지도 않고 내가 알아서 본 모습으로 돌아와서 카렌과 누나를 태우고 산 정상으로 날아 가는 중이었다. 난 속으로는 투덜대었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카렌이 무섭다는데 어쩌겠 는가? 속도 낮춰서 날아야지... "이 정도면 될까?" 이 정도면 적당하겠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속도를 낮춘 다음 물어 보자 카렌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죄송해요. 귀찮게 해 드려서..." "아니야. 이 정도 가지고 뭘...근데 내 본 모습은 처음 보는 거지? 무 섭지 않아?" 난 혹시나 카렌이 내 본 모습을 보고 정나미가 떨어 졌으면 어쩌나 하 는 걱정에 물어 보았다. 물론 난 카렌을 믿고 있었고, 카렌은 그런 나 의 믿음을 배신하지 않았다. "아니요. 무섭기는커녕 멋있어요." 그렇게 말하며 카렌은 빈말이 아니라는 증거로 환하게 웃어 주었다. "카렌..." "테이님..." "거참. 우리 아빠 엄마 좀 배우라고 했더니 금방 배워서 써먹냐? 써먹 는 건 좋지만 지금은 좀 자중해라." 누나의 심드렁한 말에 난 급히 고개를 앞으로 돌렸고, 카렌도 시선을 딴 데로 향했다. 이런 절대 그것만큼은 안 닮겠다고 굳게 다짐 한지가 언제라고 벌써 이 러는지... 누나가 킥킥대는 소리가 들렸고, 난 조금 짜증이 나서 짜증 섞인 말투 로 물었다. "뭐가 우스워?" "아니 순진이 두 명이 드디어 행복한 닭살 커플로 발전하는 것 같아서. .." "우. 적어도 아빠 엄마 정도까지는 안 갈 꺼야. 지금 우리는 이 정도로 도 충분해." "헤 그럴까? 아까도 말했지만 부전자전이라고 너 아빠 꼭 닮았잖아. 더 구나 부부는 서로 닮는다고 했으니 카렌도 우리 엄마처럼 너한테 물들 어 가면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지. 뭐 어찌 되었든 축하 해줘야 될 일 이잖아." 도저히 반박할 수 없는 누나의 말에 카렌과 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왜 반박 못하냐고? 실은 마음 한 구석에서 아까 그 신혼(?) 생활처럼 살아봐도 좋겠다는 생각을 진짜로 했으니깐... 그런데 하나 궁금한 건 난 그 때문에 반박 못한다 치더라도 나와 백중 지세를 이루는 순진한 카렌이 아무 말도 못한다는 것은.... 역시 누나 말대로 부부(?)는 닮아 가는 것이란 말인가? 이렇게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산 정상이 보였다. 제법 널찍한 장소에 착륙해서 카렌과 누나를 내려놓고 주위를 두리번거 리며 말했다. "여기 어딘가 일텐데 어디 있을까?" 내 혼자 말에 가까운 질문에 카렌은 소형 책자를 꺼내서 펼치더니 룬라 이 부분을 찾아서 읽어 주었다. "룬라이는 푸른색의 꽃잎이 다섯 장인 꽃이라고 되어 있어요. 이 꽃 한 장만 섭취해도 원만한 병은 바로 치료가 되고, 다섯 장 다 먹으면 죽어 가는 사람도 살리고... 저기 그리고..." "그리고?" 말을 못 이어 나가는 카렌에게 대답을 할 것을 요구하자 카렌이 거의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 평생을 다 써도 못 쓸... 정력가가 된다고..." 누나는 배를 잡고 키득키득 웃어 되었고, 난 괜히 물어 봤다는 생각에 쓴 입맛을 다셨다. "됐어. 얼른 찾아보기나 하자. 솔직히 인간들에게 전설로 통하는 꽃이 라 인간이 썼다는 그 책을 100% 믿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전설의 꽃이 라고 불릴 정도니 뭔가 특이한 점이 있겠지." 내가 말을 끝내자 카렌은 고개를 끄덕이며 주위를 둘러보며 찾기 시작 했고, 누나는... "누나... 그만 좀 웃어!" "킥킥킥 아이고 배야. 테이야. 너 그 꽃 꼭 두 개 찾아서 하나는 네가 먹어야겠다. 그래야 카렌에게 좀 더 사랑 받지. 아빠처럼 말이야. 킥킥 킥." "됐어. 난 필요 없어." "오호. 아직 젊으니깐 그런 쪽으로 자신 있다는 말이니?" "그게 아니고... 우씨 몰라. 난 꽃이나 찾을래." 난 더 말을 해봐야 본전도 못 찾을 거라는 생각에 폴리모프를 하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제법 넓은 산 정상은 이름 모를 들풀들이 빽빽하게 나 있었다. 달도 그 리 밝지 않은 밤이라 어둡긴 했지만 드래곤과 하프엘프에는 그 미약한 빛으로도 충분할 정도의 밝기였다. 나는 풀을 조심스레 헤치면서 파란색 꽃을 찾아 다녔다. "운디네! 실프! 윌위스오포!" 갑작스런 누나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누나는 각각 물, 바람, 빛의 정 령들을 불러 놓았다. 그리고 카렌에게 책을 빌려서 룬라이 꽃이 나온 부분을 보여주고는 말 했다. "알았지? 이걸 찾는 거다." 정령들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즉시 사방으로 흩어졌다. 내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면서 왜 난 저 생각을 못했을까 하는 생각을 할 때 누나는 날 쳐다보고는 생긋 웃으며 말했다. "그야 넌 바보니깐." "......" "아까 말했지. 넌 얼굴에 표정이 솔직하게 나타난다고. 알았으면 너도 얼른 정령을 불러서 찾아." 내가 말 한마디 할 기회도 주지 않고는 누나는 책을 나에게 던지면서 자신은 정령들이 간 반대 방향으로 몸을 돌려서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 피기 시작했다. 나는 절로 나오는 한숨을 쉬고는 누나처럼 정령을 불러서 책에 나와 있 는 룬라이 꽃 부분을 보여주고 찾으라는 명령을 내렸다. 정령들은 즉시 고개를 끄덕이고는 사방으로 날아갔다. "자 그럼 나도 찾아 보실까?" 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저쪽에 절벽이 보이기에 그쪽에서 찾기로 결 정했다. 원래 그런 중요한 약초일수록 저렇게 찾기 힘든데 있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난 절벽 아래쪽을 주로 살펴보면서 주위를 뒤졌다. "뭐 찼냐?" "그걸 몰라서 물어? 룬라이 꽃을 찾고 있잖아." "그걸 왜 여기서 찾는데?" "참네. 그렇게 귀한 꽃일수록 이렇게 찾기 힘든데 있는 게 당연한 거잖 아." "그래? 하지만 룬라이는 저기 중앙에 있는데." "에? 그래? 고마워. 어 근데 누구....세요?" 난 그제야 나와 이야기를 나눈 존재가 누나와 카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얼굴을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그 존재를 찾아서 쳐다 보고는 입을 딱 벌릴 수밖에 없었다. 염소와 사자, 드래곤의 머리와 사자, 염소, 드래곤 순으로 된 몸과 드 래곤의 날개를 가진 복잡한 그 생물을 보고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는... '키메라?!!' 즉시 내 머릿속에서 예전에 보았던 키메라에 관련된 정보를 찾기 시작 했고, 그 정보가 나에게 가르쳐 준 것은.... [키메라는 세 가지 생명체(염소, 사자, 드래곤)의 끔찍한 결합체이다. 세 가지 머리로 각각의 공격을 할 수 있고, 특히 성룡급의 브레스를 뿜 을 수 있는 용의 머리는 키메라를 위험한 몬스터 중에서 일급으로 분류 되게 만든다. 더구나 한 미친 마법사의 광기 어린 작품이 빚어낸 태어 나서는 안 되는 생명체라고도 불리는 이 전설의 생물은 매우 광폭하며 특히 우리 드래곤들을 이유 없이 미워한다. 만약 유희 중에 이 전설의 생명체를 만났다면 아직 1000살이 안 넘은 어린 드래곤들에게는 피할 것을 권유하는 바이다. 똥이 무서워 피하는 것이 아니다. 더러워서 피 하는 것이다.] -초보 해츨링 마법 길라잡이 기타 몬스터 백과사전 중- 내 기억 속에서 내 앞에 선 몬스터의 정체에 대한 기억이 검색되자 그 중 성룡급의 브레스란 말과 아직 1000살이 넘지 않은 어린 드래곤은 피 할 것을 권유하는 바라는 부분이 특히 강조되면서 생각이 났다. 동시에 내 등에서는 식은땀이 흘러 내렸다. "아. 저기 중앙에 있다고요?" "응 그래. 근데 다시 묻겠는데 그 꽃은 왜 찾지?" "필요 한데가 있어서요. 아는 엘프 누나가 아파서 그 꽃이 필요하거든 요." 어느새 누나와 카렌은 내 옆에 와서 이 거대하고 전율스런 몬스터를 보 면서 경악하고 있었다. 키메라의 세 가지 얼굴들은 각자 뭔가 수군대더 니 곧 그들(?)의 대표격으로 드래곤이 나에게 말했다. "근데 꼬마야. 문제가 두 개나 있다." "무슨 문제인데요?" "첫째는 우리도 그 꽃이 필요하거든." "아 정력에 좋아서요?" "커험. 그건 알 것 없다." 누나가 잠자코 지켜보다가 한마디하면서 끼여들자 드래곤 머리는 헛기 침을 하면서 말했다. 아무래도 대답을 회피하는 것을 봐서는 누나 말이 맞는 것 같은데... "그리고 두 번째 문제. 이게 가장 중요하단다." "뭐죠?" "우리들은 드래곤이 싫어." 그렇게 말하고는 키메라는 엄청난 도약력으로 절벽 끝에서 바로 중앙으 로 점프해서 - 아마도 룬라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중앙에 떡 하 니 버티고 앉았다. "우리가 드래곤이 싫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린애들까지 혼내 주는 막 되 먹은 형(?)들이 아닌걸 다행으로 여기고 그냥 얌전히 내려가라." 이번에는 사자 머리가 으르렁거리는 음성이 섞인 목소리로 한마디하였 다. 물론 그런다고 '네 알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마음씨 좋은 형(?)들.' 하고 물러날 우리가 아니었다. 아니 물러설 수가 없었다. 드래곤 하트도 없다는 이 마당에 그 꽃을 가 져가지 않으면 이르 누나는 죽을지도 모른다. 더구나 그렇게 되면 저 마녀 누나가 정말 내 심장을 빼 갈지도 모를 일이란 말이다!!! "흥 이리저리 뒤섞인 잡탕 아저씨들 주제에 정력 세져서 뭐하게요? 그 런다고 받아 줄 암컷이나 있어요? 키메라에 암수가 있다는 소리는 들어 본적이 없는걸요. 도대체 아저씨들이 룬라이가 필요한 이유가 뭔데요?" 과연 티아 누나. 조금도 겁먹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말 다 해주는 건 고마운데... 누나 뒷일은 생각하고 그러는 거겠지? 대책 없이 막말 하 는 거 아니지? 불안하다. "뭐라고? 잡탕 아저씨라니?!! 형이라고 부르라고 했잖아!!" 이번에는 염소 머리가 성을 내면서 소리를 꽥질렀다. "형은 무슨 형이에요? 난 여자예요!!" "그럼 오빠라고 불러라." 드래곤 머리가 심드렁하게 말하자. 누나의 눈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내가 왜 댁들을 오빠라고 불러야 되요? 나하고 나이 차이도 엄청나게 많이 나는 것 같은데..." "그거야 우리가 아직 총각이니깐. 아 아니다. 요 염소 머리는 얼마 전 에 암컷 염소랑 한번 했으니(?) 총각이 아니구나. 이 염소 머리만 아저 씨라고 불러." "뭐야? 이이 숫총각 주제에!!!" 사자 머리의 말에 염소 머리 아저씨(?)가 화를 내던 말던 그게 우리가 알바 아니었다. 우리들은 잠시 저 큰 몸집의 키메라가 암염소를 덮치는 (?) 장면을 생각하고는 고개를 저었다. '왠지 못 볼걸 상상한 기분이다.' 아마도 내 옆에 두 여자도 나와 똑같은 생각이었는지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사자 머리와 염소 머리는 열심히 서로 으르렁거리며 말싸움 중이었고, 그 농도는 점점 저질스런 말까지 오가는 분위기가 될 때 드래곤 머리가 심각한 표정으로 우리를 아니 굳이 따지면 누나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그렇게 이 꽃이 필요할 정도로 절실하냐?" "네. 그러니 그 꽃을 양보해 주세요." "그럼 좋아. 이걸 주는 대신 네가 내 신부가 되어 준다면 이 꽃을 주 마." 누나는 자신이 잘 못 들었기를 바란다는 눈으로 우리를 쳐다보았다. 우 리는 그런 누나의 질문에 누나가 들은 게 맞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리고 그 즉시 누나의 쌍심지가 올라갈 때로 올라간 상태로 악에 받쳐 고함을 질렀다. "뭐라고요!! 내가 뭐가 아쉬워서 드래곤도 아닌 키메라의 신부가 되어 야 하는데요?!!! 더구나 나이도 지긋하신 분이 지금 손자뻘 되는 해츨 링한테 신부가 되 달라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리예요?!!!" 누나의 말에 우리는 물론 이거와 한참 말싸움 중이던 사자 머리와 염소 머리까지 고개를 끄덕이며 드래곤 머리를 못 마땅한 눈초리로 쳐다보았 다. "그럼 어떡하냐? 내 옆에 두 놈이야 암컷 염소나 암컷 사자는 구하기 쉽지만 암컷 드래곤은 구하기 힘들단 말이야. 더구나 우리도 이유는 모 르겠지만 성인 드래곤을 만나게 되면 이상하게 먼저 공격부터 하고 싶 어진단 말이다. 그러니깐..." "호오 그러니깐 아직 어린 나를 옆에 두고 정붙이면서 키우다가 내가 크면 잡아 잡수시겠다. 이 말인가요?" "그런 셈이지." "젠장! 와이번한테나 알아봐요!!" "야 개네 들은 별로 예쁜 맛이 없단 말이야." "그런다고 새파랗게 어린 나를 키우다가 잡아 잡수시겠다는 게 말이 된 다고 생각해요?!!" "말이 안될 건 또 뭐냐?" "젠장 말이 안 통하는 아저씨네. 이렇게 된 거 그냥 힘으로 가져가겠어 요!!" 그렇게 말한 누나는 즉시 폴리모프를 풀었고, 난 즉시 카렌을 안고 옆 으로 피했다. "호오 힘으로라. 그래 힘으로 옆에 두고 키우는 재미도 정말 재미있지. " 그렇게 말하면서 키메라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서... 아니 분명 일어나 고 싶어하는 것 같은데 뒷다리만 엉거주춤하게 일어서더니 드래곤 머리 가 왜 이러지? 라는 표정으로 염소 머리와 사자 머리를 쳐다보았다. "그런 반인류적인...아니지 흠흠 반몬스터적인 짓 하려면 너나 해. 나 까지 끼여들게 만들지 마." "그래. 우리가 뭐가 아쉬워서 해츨링을 덮쳐야 되는데 나잇살이나 먹어 가지고 노망났냐?" 사자 머리와 염소 머리의 말을 미루어 보건대 지금 사자의 앞발과 어깨 가슴 부위와 염소의 허리 부위가 드래곤 머리에게 협조할 맘이 없다는 뜻으로 힘을 빼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미 누나는 본 모습으로 변해서 어딜 어떻게 패 줄까 하는 듯이 손을 풀고 있었다. "야 그럼 이대로 룬라이 뺏겨도 괜찮아?" 급한 마음에 드래곤 머리가 악을 쓰자 그게 싫었는지 키메라의 앞발이 땅을 딛고 일어났다. "이씨. 젠장 룬라이 때문이다. 너의 변태적인 취향 때문에 도와주는 거 아니니깐 착각하지마." "해츨링은 정말 키메라적(?)으로 죽이긴 싫지만 어쩔 수 없지." 염소 머리가 그렇게 말하자 드래곤 머리가 처량한 눈빛으로 말하는 것 이었다. "야 꼭 죽여야겠냐? 봐 저렇게 예쁘고 귀여운 드래곤보고 너희들은 뭐 느끼는 것도 없어? 우리 그냥 죽지 않을 만큼 손봐주고 옆에 놔두고 키 우자." "그리고? 키운 다음에는 네가 잡아먹으려고?" "응." 드래곤 머리가 너무나 당당하게 말하자 사자 머리와 염소 머리는 뭐 이 런 게 다 있어? 라는 눈으로 드래곤 머리를 쳐다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에휴. 어쩌다가 내가 이런 변태랑 한 몸이 되었는지..." "신이시여 이 놈 머리만 떼다가 어디 갖다 버릴 수는 없습니까?" 거의 모든 걸 체념한 두 머리의 독백과 독설에 드래곤 머리는 헤헤 웃 으며 말했다. "야 그럼 허락한 걸로 안다. 대신 싸움은 나 혼자 할게. 너희들은 몸만 움직여." "그래. 그래. 니 마음대로 하세요." "어이구 저 드래곤도 불쌍하다. 어쩌다가 이런 변태 같은 놈의 눈에 뛰 어서...다른 키메라라면 그냥 그 자리에서 고통 없이... 아니 고통이 좀 있겠지만 그래도 나중에 무서운(?) 일은 안 당했을 텐데..." 그들의 말싸움을 처음부터 끝까지 미친놈들 지랄하네 라는 표정으로 듣 고 있던 누나가 나에게 용언으로 말을 걸어 왔다. [테이야. 저 놈들과 내가 싸우는 중에 빈틈이 보이면 꽃을 갖고 바로 이르 언니에게 워프해 알았지?] [근데 누나. 누나 혼자서 괜찮겠어? 재들은 성룡급의 힘을 가졌다고 들 었단 말이야.] [좀 믿어 봐라. 난 너 누나잖아.] ....어째서 누나의 그 한마디에 믿음이 생기는 이유가 대체 뭐야? [신호하면 가라. 알았지?] 일단 믿음이 그냥 막 생기는 이유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였다. 지금은 룬라이를 구하는 게 먼저니깐. 난 누나의 신호를 기다리며 카렌의 손을 꽉 잡고 룬라이가 있을 거라고 생각되는 키메라의 발 아래를 쳐다보았 다. 그리고 겨우 말싸움이 끝난 키메라 쪽도 준비를 하고는 우리들을 노려 보면서... 아니 드래곤 머리만 능글능글한 웃음을 지으며 누나를 쳐다 보고 있었다. 이리하여 괴수(?) 대 결전이 이제 막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드래곤 남매 12화 만병통치약을 찾아서(5) 티아와 키메라가 대치된 긴장된 상황 속에서 테이는 열심히 키메라의 발 밑을 쳐다보면서 룬라이를 찾았다. 푸른색의 조그마한 꽃이 곧 테이 의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어째서 저기에 있는 거야?!!' 테이가 마음속으로 절규를 할 수밖에 없는 위치. 룬라이는 키메라의 뒷 발 부근에 있었다. 아마도 키메라가 싸움 중에 룬라이를 노릴 것이라는 생각에 그렇게 경계를 하는 것 같았다. 더구나 싸움은 드래곤 머리에게 맡긴다고 한 말 때문인지 사자 머리가 룬라이를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 이래서는 티아가 키메라를 확실히 견 제해서 저 곳에서 물러나게 하지 않는 한은 절대 손에 넣을 수가 없었 다. 아니 잘못해서 밟아 버리기라도 하면 큰일인 것이다. [누나.] [알고 있어.] 그것을 말해 주기 위해 테이가 티아를 부르자 티아는 다 알고 있다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말고 누나만 믿어] [알았어 누나만 믿을게.] 난 내내 카렌의 손을 꽉 잡고 누나와 나의 -실은 누나의 일방적인- 계 획을 마음속으로 전해 주었다. 이럴 때는 카렌의 능력이 정말 편리하 다. 굳이 입으로 말 안 해도 다 설명이 되니 정보 유출의 걱정도 없고, 마음만으로도 다 통하니 같이 오래 산 부부 같은 느낌도 들고...아 이 건 지금 이 상황에 맞는 말이 아니군. "조금 아프더라도 참거라." 계속 능글능글한 시선을 보내던 드래곤 머리가 크게 입을 열면서 소리 쳤다. 그러자 드래곤 머리의 입으로 주위 공기가 급격히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브레스!!" 내가 소리치자 누나도 기다렸다는 듯이 주위 공기를 빨아 들였다. "크아악!" 괴성과 함께 드래곤 머리의 입에서 새빨간 불길이 일직선으로 누나를 노리고 쏟아져 들어 왔고, 동시에 누나의 입에서도 새하얀 냉기의 브레 스가 일직선으로 쏘아져 나갔다. 허공에서 맞부딪친 키메라의 불꽃의 브레스와 누나의 냉기의 브레스가 새하얀 증기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소리를 만들어 내면서 서서히 서로 소멸해 가면서... 나는 입을 크게 벌리고 그 놀라운 광경에 경악을 했다. 누나의 브레스 가 서서히 키메라의 브레스를 누르고 점차 드래곤 머리 쪽으로 밀어붙 이기 시작한 것이다. 드래곤 머리도 처음의 그 능글능글한 표정은 싹 사라져 버리고 놀란 눈 으로 자신에게 밀려오는 브레스를 보다가 곧 정신을 차렸는지 목 줄기 에 힘을 불끈 주었다. 드래곤 머리가 뿜던 브레스의 굵기가 커지는가 싶더니 엄청난 굉음의 폭발 소리가 나고는 누나의 브레스와 드래곤 머리의 브레스는 소멸해 버렸다. 잠시 정적이 감도는가 싶더니 곧 사자 머리와 염소 머리가 아주 못 마 땅한 얼굴로 드래곤 머리를 쏘아보았다. "뭐야? 적당히 봐주는 것도 좋지만 너무 봐주는 거 아니야?" "하하하. 그 그게..." "한번만 더 이런 재미없는 장난치면 가만 안 두겠다." "......."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드래곤 머리는 굉장히 억울한 표정을 짓고 있 었다. "봐주신 건가요? 어쩐지 브레스가 너무 허.접.하다는 생각이 들긴 들었 는데, 봐.주.신거군요." "크아악! 이제는 안 봐줄 테니 각오나 하거라!" 누나의 도발에 열이 받은 것처럼 보이는 드래곤 머리가 크게 포효하더 니 숨을 있는 대로 들이쉬었다. "누나! 이번건 엄청 큰건가봐!!" "알고 있으니깐 소리지르지마!" 누나도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리고 서로 노려보던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까 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브레스를 내뿜었다. "이런! 실드!!" 이번건 여파가 위험하다는 생각에 난 카렌을 끌어안고 주위에 실드를 펼쳤다. "이렇게 무식한 게 부딪쳤다가는 룬라이까지 날아가겠다." 이런 걱정을 하며 룬라이가 있는 곳을 쳐다보니 다행이라고 해야 될지 귀찮게 되었다고 해야 될지 사자 머리가 어느새 자신의 앞 발가락 사이 에 룬라이를 뽑아서 지키고 있었다. 설사 저걸 뺏어 가는데 성공하더라도.... 저걸 어떻게 이르 누나에게 먹이지? "저기 저거 뺏으면 일단 씻어야 되겠죠?" "......." 카렌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던 것 같다. 난 뭐라 해줄 말이 없어서 슬며 시 브레스 결전을 벌이고 있는 두 무식한 존재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둘의 극과 극을 달리는 불꽃과 냉기의 브레스들이 맞부딪친 장소에는 엄청난 양의 수증기를 생성하면서 주위의 풀과 나무들을 불타게 만들거 나 얼어붙게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열기와 냉기는 내가 펼친 실드 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실드를 이중으로 펼치긴 했지만 이것도 불안한 상 태일 정도였다. 키메라의 최고의 무기라고 할 수 있는 드래곤의 브레스 는 우리 드래곤과 마찬가지로 나이를 먹을수록 위력이 증가한다. 우리 드래곤보다야 못하지만 키메라도 오래 사는 몬스터라고 들었다. 척 보 기에도 몇 천년은 산 것 같아 보이는 저 키메라의 브레스는 당연히 성 룡급의 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분명히 그럴 것이라고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말도 안 돼." 내 입에서 허망한 음성이 절로 나왔다. 분명히 성룡급의 힘을 가졌을 저 키메라의 브레스가 조금씩 -아주 조금씩이지만- 티아 누나에게 밀리 고 있었다. 키메라 본인도 -본인들이라고 해야 되나?- 나와 마찬가지 생각인지 그 들의 눈은 경악에 물들어 있었다. "크윽!" 브레스를 뿜던 드래곤 머리가 신음을 삼키는 것 같더니 곧 목덜미에 힘 을 불끈 주었고, 밀리던 브레스가 역으로 누나에게 밀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 누나는 아주 가소롭다는 시선을 보내고는 역시 목덜미에 힘 을 주었다. 결과? 키메라 쪽이 다시 밀린다는 당연한 결과를 낳았다. 그런데 어째 서 저게 당연한 거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가 대체 뭘까? 누나는 해츨링 이니 성룡급의 힘을 가졌다는 키메라를 누르는 저 비상식적인 광경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역시 티아 누나가 비상식적인 해츨링 이라서 그런 건가? "크아아아악!" 난 키메라의 비명 소리가 들리자 급히 방어막을 하나 더 쳤다. 내 생각 대로 그 엄청난 브레스는 곧 폭발을 일으켰고 엄청난 열기와 냉기가 주 위를 뒤흔들었고, 내 3중 방어막 중 첫 번째 방어막을 부서 버렸다. "야! 이 바보 자식아!" "적당히 해주는 것도 정도 것이지! 하마터면 룬라이까지 날아갈 뻔했잖 아!!" "아니야. 그게 아니란 말이야." 어느 정도 수증기가 가라앉자 염소 머리와 사자 머리가 드래곤 머리를 윽박지르는 광경이 보였다. 그리고 드래곤 머리는 정말 억울하다는 표 정으로 필사적으로 변명하고 있었다. "봐준 게 아니면 대체 뭐야?! 정말 저 쪼그마한 해츨링에게 네가 밀렸 다는 말이야?!" 사자 머리의 저 말은 틀렸다. 키메라의 몸집이 크긴 하지만 지금 누나 보다 조금 작은 편인 키메라가 누나를 조그마하다는 말은 아무리 생각 해도 맞는 표현이 아니었다. 누나 생각도 나랑 같았는지 눈을 치켜 뜨 며 말했다. "흥 땅달보 아저씨들 주제에 누가 작다는 거죠?" "뭐라고? 저런 버릇없는 해츨링 봤나?" "내가 아저씨들한테까지 예의 차릴 이유 따위는 없을텐데요. 땅.딸.보 아.저.씨!" "저 저런 발칙한!!" "잠깐만!" 동료(?)들의 윽박지름에 기가 죽었는지 잠시 허공을 쳐다보며 뭔가를 중얼거리던 드래곤 머리가 염소 머리와 우리 누나의 말싸움을 중단시키 더니 누나를 쳐다보며 힘들게 입을 열었다. "너 정말 해츨링이냐?" "보면 몰라요? 성룡이 나처럼 쪼그마... 가 아니고 아무튼 나처럼 귀엽 게 아담한 거 봤어요?" ......귀엽게 아담하다니 무슨 그런 엽기적인 농담을...... [뭐? 엽기적인 농담? 테이 너 있다가 보자. 뿌드득.] [헉! 어떻게 내 생각을 안 거야?!] [말했지. 넌 얼굴에 표정이 솔직히 나타난다고. 아무튼 너 있다가 내 손에 죽었어!] 난 누나의 협박에 평소처럼 겁을 먹기보다는 뭔가 이상하다는 점을 알 아차리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나 지금 내 얼굴 안 쳐다봤잖아.] 내 말대로 누나는 대치하고 있는 키메라를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에 나 에게 얼굴을 돌리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내 표정을 보고 내 마음을 알았단 말인가? - 이미 내 표정보고 내 생각 읽는 것은 납득하기로 했 다. - [그거는...] [그거는?] 난 잠시 현재 상황도 잊어 먹고 누나에게 대답을 재촉했다. "까아아악! 테이 님!" 어? 카렌 왜 비명을 질러? 아 내가 누나 꼬리에 맞아서 날아가는 모습 에 걱정돼서 그랬구나. 걱정하지마 카렌. 슬프지만 워낙에 자주 당했던 일이라 그렇게 아프지도 않아. 그런 생각을 하며 날아가는 나에게 누나의 생각이 전달되었다. [바쁜데 자꾸 따질래? 한번만 더 귀찮게 하면 너부터 밝아 준다!] 누나.... 너무해. 난 울분을 삼키며 땅과의 온 몸 접촉을 실행하였고, 달려온 카렌이 마 구 흔드는 바람에 2차 적으로 머리가 핑핑 도는 고통을 견뎌야 되었다. "으... 카렌 나 살아 있으니깐 그만 좀 흔들어." 난 어지러운 머리를 만지면서 일어났다. 카렌은 눈물에 젖은 얼굴로 날 걱정스레 쳐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이번에는 내 가슴이 아파졌다. "카렌 걱정하지마. 워낙 자주 당했던 일이라. 별로 아프지도 않아." "흑 하지만 아픈 건 아프신거잖요. 테이 님이 아프시면 내 가슴도 아파 요." "카렌." "테이 님." 난 밀려오는 격정을 이기지 못하고 카렌을 와락 안아 버렸고, 카렌은 내 품에 순순히 안겨 왔다. "......닭살 커플 탄생이군. 아 미안해요. 키메라 아저씨 우리는 아까 하던 이야기나 마져하죠." "그..그러자꾸나."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황당하다는 눈으로 나와 카렌을 쳐다보던 드래곤 머리가 누나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우리에게서 눈을 떼었다. 쩝 정말 닭살 커플이 되어 버린 건가? 뭐 어때 좋으면 그만이지. "그럼 다시 질문하겠는데 너 정말 해츨링 맞냐? 올해 몇 살이야?" "올해 406살이고 조금 있으면 407살이 되는 해츨링 맞는데요." "그래 400살 정도라 정말 딱 좋구나 100년만 키우면 풋풋한 처녀가 되 는 나이... 쿨럭 쿨럭. 아..아무튼 그게 아니고 네가 정말 400살 정도 라면 브레스가 왜 그렇게 쎈거냐?" 드래곤 머리의 절규에 사자 머리와 염소 머리가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 를 갸웃거렸다. "쎈거라니? 네가 봐준 거 아니었냐?" "이 자식들아 같은 몸이면서 그것도 눈치 못 챘냐? 두 번째는 나도 진 짜로 쏜 거란 말이야!" "진짜로 쏜 거라고? 너 밀렸었잖아." "그러니깐 진짜로 밀린 거란 말이다! 자존심 상하지만 쟤 브레스는 나 랑 막 먹어!" "설마...." "이봐 재미없는 농담은 그만둬라." "진담이다." 드래곤 머리가 진지한 얼굴로 말하자 사자 머리와 염소 머리가 경악을 하면서 티아 누나를 위부터 아래까지 구석구석 흩어 보았다. "쟤 아무리 봐도 해츨링 맞는데." "그러게 분명 해츨링인데... 어떻게 된 거야?" "나도 모르니깐 저 애한테 물어 본 거잖아! 그러고 보니 아직 대답을 못 들었군. 다시 한번 물어 보자. 너 힘이 왜 그렇게 쎈거냐? 정말 해 츨링 맞냐?" 드래곤 머리가 으르릉 거리며 티아 누나에게 묻자 누나는 코웃음을 치 면서 대답해 주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전 해츨링 맞아요." "그럼 어째서 내 브레스랑 막 먹는 파워를 가진 거냐?" "아저씨 브레스가 허접하니깐요." 명쾌한 누나의 답변에 드래곤 머리는 경악과 분노로 입을 크게 벌리고 누나를 노려보았다. 물론 그 표정에 주눅 들 티아 누나가 아니기에 누 나는 팔짱을 낀 거만한 자세로 드래곤 머리를 마주 쏘아보았다. "그래 어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너 힘이 우리와 비슷하다는 것을 인 정하마." "그럼 룬라이를 포기하시는 거죠?" "흥. 포기?" 드래곤 머리는 어느새 여유를 찾았는지 아까 전의 그 가소롭다는 말투 와 행동으로 누나를 노려보며 물었다. "실버 해츨링아. 우리가 왜 룬라이를 먹으려는 줄 아냐?" "정력에 좋으니깐 요." "아니야!" 드래곤 머리가 소리쳤고, 사자 머리는 씩 웃으며 룬라이를 끼고 있던 발가락을 들었다. 그 커다란 발가락 사이에 끼인 룬라이를 쳐다보면서 드래곤 머리와 염소 머리도 같이 씩 웃었다. 난 뭔가 일이 잘 못 되가 는 것 같아서 긴장을 하면서 만약을 위해서 마법을 쓰기 위해 안고 있 던 카렌을 내 뒤로 오게 만들었다. - 아까부터 내내 안고 있었다. 카렌 의 부드러운 감촉이 기분 좋았고, 또 놔 달라는 소리를 안 해서 그냥 그렇게... 긁적 - 누나도 긴장을 했는지 약간 딱딱해진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왜 룬라이를 먹으려고 한 거죠?" "큭큭큭 너희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룬라이는 태양의 정기와 달 의 정기를 흡수하는 특수한 꽃이지. 명약으로도 쓰일 때가 많지만 룬라 이의 가장 큰 특징은 먹은 이에게 태양의 정기와 달의 정기를 주어서 힘이 되어 주는 용도가 가장 쓸 만하단다." "네가 해츨링이면서 우리와 힘이 비슷한 것은 이제 신경 쓰지 않으마. 어차피 돌연변이라고 생각하면 그만이니깐." "너의 힘은 우리와 비슷하다. 하지만 룬라이를 먹고 파워업이 되면 그 래도 비슷할까? 후후후 각오나 해 두거라." 말을 마친 드래곤 머리와 염소 머리 그리고 사자 머리는 입을 벌렸고 룬라이를 입 가까이에 가져갔다. "안 돼!"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었다. 누나와 난 소리를 치면서 앞으로 뛰어 나갔다. 절대로 먹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계속 ------------------------------------------------------------------ 한달에 한번 걸리는 마술....쿨럭 쿨럭 그게 아니고... 아무튼 오랜만에 다시 뵙겠습니다. 평화주의 입니다.^^ 자 자 손에 든 ?기들 내려주세요. 늦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ㅜ.ㅜ 원고도 넘겼고, 추석이라 지방에 내려 갔다 온 일도 이제 다 해결 되었 으니 당.분.간은 다시 정상적인 연재 들어갑니다.^^ (왜 당분간이라는 말에 힘을 팍팍 주냐고요? 또 어떤 일이 생겨서 글을 한동안 못 쓰게 될 일이 생길지도 모르기 때문에....쿨럭 쿨럭.) 그럼 내일 만병 통치약을 찾아서 6편으로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몸 컨디션을 완전히 되찾으면 연참도 하겠습니다. 밤차 타고 올라와서 비 맞았더니 바로 감기에 걸려서 오늘 종일 누워 羚解킵玲? 오죽이나 내 목소리가 힘이 없었는지 편집부 누나까지 오늘 하루 푹 쉬라는 소리 를 하더군요. (그렇게 내 목소리가 힘이 없었나? ㅡㅡ;;;)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늘 노력하는 작가가 되겠습니다.(아 정말 오랜만에 써보는 끝인사말이 다. 감동....찡~~~~ㅜ.ㅜ) 드래곤 남매 12화 만병 통치약을 찾아서(6) 누나도 나도 알고 있었다. 키메라가 룬라이를 입으로 가져가는 행위를 멈추기에는 늦었다는 것을... 그러나 그렇다고 눈 빤히 뜨고 그걸 그냥 보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저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면서 난 아이스 미사일을 시전 했고, 누나 는 온 몸으로 부딪치려는지 달려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예상대로 룬라이는 막 키메라의 입 속에 들어가기 직전이었다. 그야 말로 절대절명의 순간 기적은 일어났다. 근데... "야 잠깐만!" 드래곤 머리가 막 룬라이를 먹으려는 사자 머리에게 불맨 목소리로 불 렀다. "왜?" "그걸 왜 네가 먹어?" "누가 먹든 무슨 상관이냐? 어차피 뱃속에 들어가면 다 똑같은걸." "그래 그렇다면 내 입 속으로 넣어 줘." 염소 머리가 그렇게 말하자 드래곤 머리가 째려보면서 말했다. "내가 싸우는 중이니깐 당연히 내가 먹어야지." "무슨 소리야?! 내 발로 들고 있는 거니깐 내가 먹는 게 당연한 거잖아 !" "야! 너만 입이냐? 그냥 3등분으로 나눠!" 어째 소설 속에서 나오는 신성하고 신비스러운 기적과는 차이가 나는 기적이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찬스를 잡을 수는 있었다. 룬라이를 갖고 옥신각신 하는 키메라가 누나의 무시무시한 어깨로 부딪치기에 맞아서 뒤로 날아 간 것이다. 그리고 난 그 찬스를 놓치지 않고 내 주위에 만들어 둔 아 이스 미사일을 키메라에게 날렸다. 별 타격은 입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누나에게 공격 기회는 충분히 줄 수 있었다. 그 증거로 비틀거리며 일 어나던 키메라가 내 아이스 미사일에 잠시 당황했고, 그 짧은 틈을 누 나가 놓치지 않고 두 주먹으로 사자 머리와 드래곤 머리를 후려치고 염 소 머리의 목덜미를 물어뜯을 수 있었다. "메에에에!! 이거 놔!!" 염소 머리는 염소답게(?)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처절하게 비명 을 지른다고 놔줄 우리 누나가 아니었다. 누나는 목을 크게 좌우로 흔 들면서 염소 머리를 뜯어 낼 듯이 흔들었다. 잠시 혼란에 빠져 있던 드 래곤 머리와 사자 머리가 염소 머리의 비명에 정신을 차렸는지 각각 누 나의 양 옆구리를 물려고 하자 누나는 잽싸게 염소 머리를 놓아주고, 뒤로 물러났다. 난 이번에는 상급 공격 마법을 쓰기 위해 캐스팅을 실행했다. "내 의지를 받들어 너의 모든 힘을 개방하라. 폭염의 꽃, 지옥의 업화, 모든 것을 불태우는 지옥의 불꽃이여...." 내 본래 속성과는 정 반대의 마법인 헬 파이어지만 아빠가 레드 드래곤 이라서 그런지 가끔 시험삼아 써 봤던 헬 파이어의 공격력은 조금도 떨 어지지 않았었다. 그래서 난 사자 머리를 노리고 마법을 쓰기 위해 캐 스팅을 실행하고, 누나는 브레스를 뿜기 위해서인지 숨을 크게 들이쉬 었다. 저 키메라를 이길 수도 있겠다는 낙관적인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브레스 를 막 뿜으려던 누나의 눈이 당황하는 빛을 띠었다. "이봐요 아저씨! 꽃은 어디 있었요?" 목숨 걸고 싸우는 중에 물어 볼 만한 질문이 아니었다. 하지만 방금 전 까지 사자의 앞 발가락 사이에 끼어 있던 룬라이가 보이지 않자 나도 크게 당황하면서 어울리는 질문이 아니라는 생각 따위는 머리 속 깊숙 이 밀어 넣고 소리쳤다. "근처에 떨어트린 것 아닐까?" "아니 근처에는 안보여. 우씨 바보 아저씨들!! 그거 하나 꼭 못 붙잡고 있어요?" "너 같으면 그 와중에 꽃 붙들고 있을 정신 있냐?!" "젠장 혹시나 밟아 버렸다면 어쩌지?" "발 조심해서 찾아봐!" 싸움은 잠시 중단되고 먼저 찾는 몬스터가 임자라는 논리 하에 키메라 와 나와 누나는 주위를 조심스럽게 살피며 룬라이를 찾기 시작했다. 그 러나 눈 좋은 몬스터 세 마리가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찾아보아도 룬 라이가 보이지 않았다. "아 젠장.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이 꼬맹이들아! 만약 룬라이가 먹을 수 없게 되어 있으면 전부 너희들 탓이야!" "똑바로 안 붙들고 있던 아저씨 탓이지 왜 우리 탓이에요?" "꽃을 놓칠 만큼 공격했던 건 너희들이잖아!" "잔소리 그만하고 꽃이나 먼저 찾아! 저 녀석들보다 먼저 찾아야 돼!" 난 문득 키메라의 외침을 듣고 저 놈부터 손봐주고 천천히 찾는 게 낮 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생각을 누나에게 마음 속으로 전달 하자 바로 답이 왔다. [나도 그 생각 안 해본 건 아니야. 하지만 만약 룬라이가 이 근처에 떨 어져 있다면 괜히 싸움 벌렸다가 망가지면 안되잖아. 저 키메라도 그걸 알기 때문에 무언의 휴전에 합의 한 거고.] 난 누나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반드시 저 키메라보다 먼저 찾아 야 된다는 사명감을 더욱 불태우며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테이 님 저기예요!" 내가 눈을 너무 크게 떠서 아플 정도의 느낌이 들 때 카렌의 커다란 외 침이 들렸다. 그 쪽으로 자연스럽게 고개가 돌아가고 내가 본 것은 절 벽을 향해 달려가는 카렌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카렌이 눈으로 쫓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파란색 꽃이 공중에서 바람에 나부끼며 날아다니고 있었다. 아마도 싸움 중에 공중으로 내 던 져진 룬라이가 지금까지 바람에 날려서 우리 머리를 맴돌고 있었던 것 같다. 젠장 그러니 아무리 땅을 뚫어져라 노려보며 찾아도 안 보였지. "카렌 위험해!" 아무튼 문제는 지금 카렌은 오직 룬라이만 보고 달려가느라 앞에 절벽 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난 급히 카렌 쪽으로 달려갔다. 누나도 날아 오르는 건지 날갯짓하는 소리 가 들렸다. 그리고... "크아악!" "어머나! 미안해라. 왜 하필 내 꼬리 쪽에 있으셨나요?" 키메라의 비명 소리와 빈정대는 누나의 말에 그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상황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룬라이에게 정신이 팔려 룬라이 쪽으로 날아가려던 키메라를 누나가 꼬리로 한 대 세게 치고 날아올랐 겠지. "실프! 저 꽃 잡아!" 난 달려가면서 실프를 불렀다. 그러나 실프가 미쳐 꽃을 잡기 전에 카 렌이 먼저 잡았다. 그리고 나를 쳐다보면서 정말 기뻐하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하긴 이르 누나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전설의 꽃을 드디어 손에 넣었으니 기뻐하는 게 이해는 된다. 그런데.... "카렌!" 내 외침과 함께 카렌의 몸이 순식간에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왜 사라 졌냐고? 절벽에서 떨어지면 시야에서 순식간에 사라지는 게 당연한 것 이다. 고로 부연 설명을 덧붙이자면 카렌은 꽃은 잡았지만 몸은 절벽에 떨어져 이미 공중에 뜬 상태였던 것이다. 그 상태에서 몸을 돌려서 나 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던 일이 신기하게만 느껴질 뿐이었다. "까아아아악! 테이 님!!" "카렌!" 난 달려가면서 폴리모프를 해제했다. 그리고 몸이 본래 모습으로 돌아 왔다는 것을 느끼자마자 바로 공중으로 날아올라서 카렌이 떨어진 절벽 아래로 최대의 속도로 떨어졌다. 저 아래 떨어지고 있는 카렌이 보였지 만 아무래도 따라 잡을 수 없을 것 같아서 아까 불러 둔 실프를 마음 속으로 불렀다. 실프는 아까 내가 처음 내린 '꽃을 잡아라!' 라는 명령 을 실행 못해서 안절부절 하다가 내가 부르자 잽싸게 내 옆으로 왔다. "카렌을 붙잡아!" 내가 새로운 명령을 내리자 실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 카렌에게 힘 을 쓰려다가 금세 울상을 짓고는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이번에는 실프 가 힘을 쓰기 전에 먼저 날아간 누나가 떨어지는 카렌에게 엄청난 속도 로 날아가서 안전하게 등위에 태운 것이다. 실프는 두 번이나 내 명령을 실행 할 수 없어서 나한테 혼날 거라고 생 각했는지 거의 울 것 같은 얼굴로 날 쳐다보았다. "에...그게...괜찮아. 괜찮으니깐 이제 가 봐도 좋아." 뭐 과정이야 어쨌든 결과적으로 카렌이 무사하니 실프가 명령을 실행할 수 없었던 건 괜찮다는 내 말에 실프는 금방 얼굴이 환해졌고, 나에게 고개를 한번 꾸벅 숙이고는 곧 정령계로 돌아갔다. 아직 정령들과 친화 력이 높지 않은 나에게 정령들은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처음 정령 과 계약을 맺을 때는 무표정 일색이었던 실프가 여러 가지 표정을 보여 주는 것이 내게는 흐뭇한 일이었다. "뭘 그렇게 멍청하게 서서 생각하는 거야?" 잠시 생각 중이던 나에게 누나가 다가와서 표독스런 목소리로 쏘아 붙 여 주었다. 덕분에 정신을 차리고 누나를 쳐다보자 누나 머리 위에 얼 굴이 새파랗게 질린 카렌이 보였다. 아마도 떨어졌던 일 때문에 충격을 받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내가 그런 카렌에게 안부를 물을 틈도 없 었다. "이놈의 자슥들아! 당장 룬라이를 이리 내놔!" 누나의 꼬리 공격에 맞고 나가 떨어졌던 키메라가 어느새 쫓아오고 있 었던 것이다. "쳇. 정말 귀찮은 아저씨네. 카렌 얼른 테이에게로 가렴. 그리고 테이 너는 이곳을 벗어나서 적당한 곳에서 워프해서 언니한테 꽃을 갖다 줘. " "응." 난 누나의 이마에 내 이마를 대고는 카렌에게 내 머리로 옮겨오기 쉽게 해주었다. 그런데 당연히 '네.' 라고 대답하고 나에게 올 거라고 생각 했던 카렌이 누나 머리 위에서 그냥 멍하니 있는 것이었다. 이런 충격 이 그렇게 심했나? "카렌!" 내가 소리치자 카렌은 몸을 흠칫 하더니 주위를 둘러보고는 곧 상황판 단을 하고는 내 머리 위로 얼른 올라왔다. "자 그럼 빨리 가. 여기는 이 누나한테 맡기고." "알았어. 알겠지만... 누나 정말 혼자서 괜찮겠어?" "아 정말... 이 누나 좀 믿어라. 알겠어? 난 걱정 없으니깐 날 믿고 얼 른 이르 언니에게나 가 봐." "으응." 믿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일말의 불안감이라는 게 있어서 조금 주저 가 되어서 물어 본 나의 질문에 누나는 귀찮다는 투로 말하고는 손을 휘휘 저으며 빨리 가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뭐 저렇게까지 말하니 믿고 가 봐야지. 난 날갯짓을 하면서 빠른 속도로 그 곳에서 벗어났다. "카렌! 속도 좀 내야 되니깐 꽉 잡아!" "네." 착각일까? 카렌의 목소리가 왠지 힘이 없게 들렸다. 하지만 지금은 그 런 세세한 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빨리 이 지역을 벗어나서 워프하 는게 급선무인 것이다. "카렌! 떨어질 때 어디 다친 거야? 목소리에 힘이 없어." 따질 때가 분명히 아니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카렌이 걱정이 되어서 물어 볼 수밖에 없었다. "괜찮아요. 전... 괜찮아요. 테이 님." 카렌 그렇게 힘이 없는 목소리로 괜찮다고 해도, 나 안 괜찮아요. 라고 하는 말이랑 다를 게 없단 말이야. 뭔가 좀 더 물어 보고 싶었지만 여건이 되지 않았다. 난 그저 빨리 이 지역을 벗어나 안전한 곳으로 가서 카렌의 상태를 알아 볼 생각에 날개 에 힘을 줘서 더욱 빨리 날았다. "테이 님." 아직까지 힘이 없는 목소리로 카렌이 날 불렀다. "왜?" 난 빨리 나는데 신경을 쓰면서도 카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저기 테이 님은... 아..아무것도 아니에요." "엥?" "카렌 말을 하다가 말면 더 걱정이 되잖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속 시원히 이야기해." "아니에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에요. 전 정말... 괜찮아요." "저기 카렌?" "그것보다 테이 님. 부탁이에요. 좀 더 빨리 가 주세요. 제발요." 무언가 더 물어 보고 싶었지만 카렌은 대답 해주기가 싫었는지 내 말을 자르고는 평소의 도저히 거절할 수 없게 만드는 애원하는 목소리로 부 탁해 왔다. 궁금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카렌의 애원을 외면하고 싶을 정도로 궁금하 지는 않았기에 난 내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를 내면서 날았다. 계속 ------------------------------------------------------------------ 드래곤 남매 13화 괴수(?) 대 결전(1) 키메라는 한 마리의 실버 해츨링-테이-이 도망치는 것을 보고 직감적으 로 룬라이가 그 해츨링이 가지고 있다고 짐작했다. 그러나 자신의 앞을 막아서고 있는 다른 한 마리의 해츨링 때문에 쫓아 갈 수가 없었다. 티아는 팔짱을 끼고 자신 만만한 자세를 취하면서 거만한 목소리로 물 었다. "지상전과 공중전 어느 쪽이 자신 있죠?" ".......지상전." 드래곤 머리가 이빨을 갈면서 말하자 티아는 피식 웃고는 아까의 산 정 상 부근을 가리켰다. 키메라의 세 가지 머리가 동시에 끄덕이고는 곧 그 장소로 날아갔다. 그리고 티아가 뒤를 따랐다. 브레스의 격돌에 의해 반 폐허로 변한 정 상 부근에 내린 두 거대한 생명체는 서로를 노려보았다. 침묵의 시간을 먼저 깬 건 키메라 쪽이었다. "실버 드래곤의 해츨링아. 이제는 봐주지 않겠다." 드래곤 머리가 살기를 가득 담아서 한 말에 티아는 코웃음을 쳤다. "그럼 아까는 봐주신 건가요?" "큭큭큭 아까는 이 드래곤 녀석 혼자서만 싸웠기 때문에 착각하고 있는 가 본데..." "보여주마. 우리 셋이 같이 싸우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각오나 해 라!" 마지막에 사자 머리가 소리를 지르면서 세 머리를 가진 키메라가 티아 에게 달려들었다. "아이스 미사일!!" 티아는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의 18번 마법 아이스 미사일을 시전 하였 다. 십여 발의 아이스 미사일은 시전자 티아의 명령에 따라 사방 팔방 으로 흩어져서 키메라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어흐흥!" 그러나 사자 머리가 포효를 지르자 아이스 미사일은 무언가에 부딪친 것처럼 비틀대다가 공중에서 부서졌다. "무, 무슨!!" 티아가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아차리기도 전에 바로 코앞까지 달려들어 서 자신의 팔을 물어뜯으려고 하는 드래곤 머리와 사자 머리의 공격부 터 피해야 됐다. 티아가 뒤로 물러나서 공격을 피하자 염소 머리의 몸 의 일부분인 염소의 허리가 조금 휘어지나 싶더니 엄청난 도약력으로 티아에게 달려들어서 뿔로 티아의 배를 들이받았다. "까아아악!" 티아는 배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비명을 지르고 뒤로 넘어졌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염소 머리는 아까 티아에게 물어뜯긴 목이 성하지 않은 터 라 배에 난 뿔에 의한 상처는 그리 깊지는 않았다. 그리고 공격을 했던 염소 머리 또한 무사하지는 못했다. 무리를 해서 공격을 했던 것인지 아까 전에 티아에게 물렸던 상처가 다시 터져 버린 것이다. "크으윽." 신음을 흘리며 고통스런 표정을 짓는 염소 머리에게 사자 머리가 말했 다. "넌 공격하지 말고 허리 움직임이나 신경 써!" 굉장히 퉁명스럽고 오해받기 쉬운(?) 말이지만 걱정 해주고 있는 말투 에 염소 머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나 먹어라!" 드래곤 머리는 배를 움켜쥐고 일어나는 티아에게 성난 목소리로 외치며 브레스를 뿜었다. 티아는 미리 준비하면서 일어났는지 곧 냉기의 브레 스로 맞대응 했다. 다시 한번 브레스끼리 부딪쳤고, 주위의 꽃과 풀들이 불타 올랐고, 얼 어붙었다. 브레스가 멈추자 주위는 수증기로 가득 차서 흡사 안개라도 낀 것처럼 사물을 알아 볼 수가 없었다. "기척이... 안 느껴진다?!" 티아는 몸을 긴장한 체 주위를 경계했다. 수증기는 서서히 걷히고 있었 지만 아직 사물을 분간 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공 격당하면 치명상을 면하기는 어려운 상태였다. "젠장! 사자 대가리의 능력인가?" 티아는 이제는 아예 반말에 욕까지 섞어서 키메라를 씹어 주며 주위 경 계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티아의 생각대로 사자가 사냥감을 노리기 직 전에 목표가 눈치채지 못하게 조용히 움직이는 그 움직임대로 키메라는 조용히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슬슬 수증기가 완전히 걷히고 주위 사물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티 아는 다시 한번 브레스를 뿜을 셈으로 준비를 하고 서서히 자기 주위를 살폈다. "크아앙!" "까아아악!" 키메라는 바로 그 때를 노렸다. 주위가 보이자 않다가 보이게 될 때 안 심하고 긴장을 약간 늦춘 그 짧은 순간을 놓치지 않고 달려든 키메라의 사자의 앞 발톱에 티아의 날개가 상처 입었고, 그 화끈한 통증에 티아 는 비명을 질렀다. "이게!!" 티아는 통증과 분노로 화가 날대로 나서 브레스를 그대로 쏘아 붙였다. 하지만 분노로 인해 제대로 조준을 못했기 때문에 키메라는 아주 손쉽 게 브레스를 피했다. 그리고 경직 상태에 있던 티아의 목을 드래곤의 꼬리가 강하게 때렸다. "커억! 콜록! 콜록!" 티아는 브레스를 뿜던 도중이라 방어는커녕 완전한 무방비 상태에 하필 이면 브레스를 뿜던 순간에 맞은 공격이라 숨이 갑작스럽게 막히는 사 태에 기침만 해대었다. 그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키메라는 다시 공격을 시도했다. "까아악!" 사자 머리와 드래곤 머리가 각각 티아의 팔과 다리 한 쪽씩을 물고 옆 으로 힘껏 잡아 당겨서 티아를 땅위에 쓰러트렸다. 그리고 잽싸게 티아 의 몸에 타고 올라가서 양 날개를 앞발로 붙잡아서 움직이지 못하게 만 들었다. "훗. 끝났다. 애송아." 사자 머리가 승리감에 도취되어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티아는 이를 갈면서 속으로 조용히 정령을 불렀다. '빛의 하급 정령 윌위스오포.' 티아는 되도록 많은 빛의 정령을 불러서 정령계에 대기 시켰다. "자 그럼 이 버릇없는 아가씨를 어떻게 요리 해줄까?" 사자 머리가 이를 갈면서 티아를 노려보았다. "당연히 잘 키워서 내 전용 노리개로 만들어야지." 사자 머리의 말에 드래곤 머리가 맞장구 치자 사자 머리와 염소 머리가 아주 못마땅한 얼굴로 드래곤 머리를 노려보았다. "왜?" 둘이 노려보던 말던 천연덕스런 얼굴로 '왜'냐고 물어 보는 드래곤 머 리에 염소 머리는 저절로 이가 갈렸다. 그리고 큰 소리로 화를 내기 시 작했다. "야! 이 정신 못 차리는 애로 중년 같은 자식아!! 우리가 이 애송이 때 문에 당한걸 잊어 먹었냐? 룬라이 뺏기고 난 목에 상처 입었는데 기껏 복수가 잘 키워서 섹시 삼는 거냐?!!" "그럼 그냥 이대로 죽이자고?" "당연한 거잖아!" 사자 머리도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자 드래곤 머리가 떨떠름한 표정으 로 말했다. "야. 그럼 이 아까운 해츨링을 그냥 죽이면 너무 아깝잖아. 그리고 생 각 해봐라." "뭘?" "이대로 그냥 죽이는 것보다 나한테 시집을 오는 게 이 해츨링에게 더 굴욕적으로 고통스러울 수도 있잖아." "그, 그렇긴 하다만...." "그것 봐. 아무리 생각해도 살려 두고 기르는 게 훨씬 낫겠지? 그렇게 하기다." "으응." 사자 머리와 드래곤 머리는 속고 있다는 느낌이 팍팍 드는데도 불구하 고 드래곤 머리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결국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좋아 너 말대로 한다. 단 반항 못하게 어디 몇 군데 부러트리고 날개 정도는 찢어 놔야 되겠지?" "그, 그래.... 날개는 좀 아깝다. 예쁜데." 드래곤 머리가 정말로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쩝쩝 다시며 말했지만 얼 른 그 말을 번복해야만 되었다. 사자 머리와 염소 머리가 '이것부터 먼 저 팰까?'라는 표정으로 노려보았기 때문이다. 드래곤 머리는 괜스레 시선을 딴 데로 돌리다가 곧 티아를 쳐다보며 능글맞게 웃었다. "조금.... 아니 많이 아프겠지만 참거라. 우리랑 같이 사는 것도 의외 로 괜찮을지도 모르니깐." 티아는 싸늘한 시선으로 드래곤 머리를 노려보면서 입을 열었다. "내가 말했죠." "?" "와이번한테나 알아보라고요. 나와! 윌위스오포!!" 마지막의 정령을 부르는 소리에 키메라는 엄청 당황했지만 미쳐 무언가 대응하기도 전에 각각의 머리들 바로 눈앞에 빛의 정령 윌위스오포가 나타나서 강렬한 빛을 쏘았다. "크어헝!!" "메에에!! 누, 눈이!!!" "이런 제길!!" 각각 비명을 지르며 눈을 감고, 사자 머리는 반사적으로 발을 들어 눈 으로 가져갔다. "찬~~~스!!!!" 티아는 자유롭게 된 한쪽 몸을 비틀어서 키메라를 옆으로 굴려 버리고 잽싸게 꼬리를 붙잡았다. 티아에게 꼬리를 붙잡힌 드래곤 머리가 소리 쳤다. "뭐, 뭘 할 셈이냐?!!" "이렇게 하려고요. 하나, 둘, 셋!!!" 티아는 크게 기합을 넣으며 있는 힘껏 꼬리를 위로 쳐들었다. 그러자 티아보다 조금 작다 뿐이지 결코 작지 않은 키메라의 몸이 하늘로 번쩍 들어올려졌다. "뭐? 뭐야!!!" "말도 안 돼!!" "크아아악!!" 키메라의 세 가지 머리에서 각각 믿을 수 없다는 말들이 튀어 나왔고, 그 외침은 땅에 강렬하게 부딪치는 충격에 의해 비명으로 바뀌었다. 그 렇게 몇 번을 키메라를 땅에 메치던 티아는 그거로는 성에 안 차는지 꼬리를 꽉 붙들고 천천히 회전을 시작했다. "아악!!" "그, 그만해!! 하지마!!" "키메라 살려!!!" 티아의 행동이 뭘 의미하는 건지 알아차린 키메라의 세 가지 머리는 정 신 없는 와중에도 다시 비명을 질렀다. 천천히 돌던 티아의 몸이 키메 라가 공중에 뜬다 싶을 때부터 엄청난 속도로 회전을 시작했다. 동시에 키메라의 세 가지 머리의 비명 소리도 엄청나게 커져만 갔다. 티아는 약간 머리가 어지럽다 싶을 때 키메라를 놔 버렸다. 키메라는 원심력에 의해 상당한 거리를 굴러서 아니 굴렀다기 보다는 땅에 부딪 치며 절벽 끝까지 날아갔다. 티아는 거기에서 멈출 생각이 아니었는지 바로 키메라를 따라가서 그 큰 발로 키메라의 이곳 저곳을 그야말로 사정 봐주지 않고 밟아 주었 다. "크어헝!!!" "메에에!! 나 죽는다!!" "이 해츨링 정말 해츨링 맞아?!! 으아악!!" 드래곤 머리가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말은 곧 비명으로 바뀌어 갔고, 아까 전만 해도 조용하던 에레스트 산 정상은 이제 키메라의 비명 소리 로 시끄러워졌다. 그런데 키메라의 믿지 못하겠다는 비명 소리에 동조 해주는 존재들이 에레스트 산 정상에 있었다는 사실을 티아도 키메라도 아직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달링. 저 해츨링... 우리 티아 맞죠?" "응. 분명 우리 티아야." 세이르아의 믿지 못하겠다는 물음에 긍정의 대답을 해주는 오스타인이 었다. 하지만 오스타인의 말투에서도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느낌이 강하게 내포되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런데 어떻게 키메라를...그것도 상당한 나이로 보이는 키메라를 저 렇게 개 패듯이 팰 수 있는 거죠?" "내가 알 리가 없잖아." 허망하게 말을 내뱉은 오스타인은 자신과 세이르아의 사랑스런 합작품( ?)인 티아를 쳐다보면서 한숨을 푹 쉬었다. "힘이 좀 세다고 느끼긴 했지만....아무리 그래도 저건 너무 심했다." "하지만 덕분에 티아가 무사한 것 같으니깐... 일단은 다행이라고 쳐야 되겠죠?" "응. 다행이긴 다행이지." 그렇게 서로 위로 아닌 위로의 말을 나눈 오스타인과 세이르아는 한숨 을 푹 쉬며 마음 속으로 똑같은 생각을 하였다. '저렇게 난폭해서 데려갈 남자라도 생길지 벌써부터 걱정되네.' 계속 드래곤 남매 13화 괴수(?) 대 결전(2) 잠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티아와 테이가 키메라를 막 만났을 때 신 혼(?)커플 쪽은...... 세이르아는 숨을 고르며 누워 있었다. 멍해진 눈에 천천히 생기가 돌아 오자 제일 먼저 가장 사랑하는 자신의 반쪽부터 찾았다. 오스타인은 옆 에서 손에 턱을 괴고 그녀를 내려다보며 미소지어 주고 있었다. 완전히 생기를 되찾은 세이르아는 약간 수줍어하는 미소를 지으며 양팔을 벌렸 다. 세이르아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는 오스타인은 너무나 사랑스 러워 못 견디겠다는 얼굴로 세이르아가 원하는 것 바로 깊은 키스를 해 주었다. 오랫동안 맞붙어 있던 입술이 떨어지고 세이르아는 숨을 고르며 오스타 인의 몸에 자신의 몸을 더욱 밀착시키면서 말했다. "하아. 이 세상에서 달링이 제일 좋아요." "그 거짓말 정말이야?" 100% 농담이라는 뜻이라는 미소를 지으며 오스타인이 말했다. 세이르아 는 오스타인의 말이 농담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괜히 심통이 난 표 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럼 내가 달링말고 다른 남자라도 좋아한다는 건가요? 그런 의심을 하다니 너무 슬퍼요." "허니한테는 나 말고 사랑하는 남자 있잖아." 세이르아는 오스타인의 말에 심통이 난 표정에서 경악에 찬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 그런... 말도 안 되는 의심을 하시다니.... 흑 달링이야말로 내가 싫어진 거죠? 그래서 그런 소리를 하시는 거죠?" 세이르아가 거의 울 것 같은 얼굴로 말하자 오스타인은 세이르아의 눈 가를 울지 말라는 뜻으로 어루만져 주며 말했다. "허니는 테이루아라는 남자도 사랑하잖아. 내 말이 틀렸어?" 울상이었던 세이르아의 얼굴에 급격히 멍한 표정으로 바뀌었다가 금방 화가 난 표정으로 변했다. 그 표정 변화를 지켜보던 오스타인의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오스타인의 미소를 보자 세이르아는 더욱더 약이 올라서 벌컥 소리부터 질렀다. "뭐가 우스워요! 드래곤 놀라게 만들어 놓고는!!" "하하하. 미안, 미안." "몰라요!!" 화가 나서 팩 몸을 돌려버리는 세이르아를 오스타인은 난처한 얼굴로 바라보다가 조용히 뒤에서 세이르아의 몸을 쓰다듬어 주었다. "손 치워요!" "미안하다니 깐. 그리고 허니도 말실수를 했잖아." "내가 무슨 말실수를 했다는 거예요?" "나를 세상에서 제일 좋아한다고 했지?" 약간은 풀죽은 목소리와 오스타인의 질문의 의도를 파악 못한 세이르아 는 궁금한 표정을 지으며 오스타인 쪽을 슬쩍 쳐다보았다. 오스타인은 진정으로 슬프다는 표정으로 세이르아를 쳐다보며 말했다. "난 허니를 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데, 허니는 나를 좋아한다고만 말해서 내가 잠시 심술이 나서 장난 친 거야. 미안." 세이르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풀죽은 표정의 오스타인을 쳐다보다 가 세이르아 역시 슬픈 표정을 지으며 오스타인의 목을 끌어안으며 말 했다. "미안해요. 달링의 뜻을 내가 눈치 채지 못했어요. 나 둔한 여자죠?" "아니야. 나야말로 장난쳐서 미안해. 허니." "달링." "허니." 둘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다시 뜨거운 키스를 나누었다. 옆에 빙산을 갖다 놓아도 녹아 버릴 기세의 뜨거운 키스가 끝나자 오스타인 은 슬며시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그럼 사과의 뜻으로 다시 한번 허니를 사랑해 줄게." "아앙. 몰라요. 달링은 정말 짐승." 말은 그렇게 하고 있지만 세이르아의 표정에는 전혀 싫다는 기색을 찾 아 볼 수 없었다. 그것을 아는 오스타인은 보기에도 음탕한 웃음을 지 으며 세이르아를 끌어당겼다. "자. 내 품으로 와." "아잉." 오스타인이 팔을 벌리자 이미 몸이 달아오른 세이르아는 냉큼 오스타인 의 품에 안겼다. 그리고 오스타인의 입술이 자신의 입술에서 목덜미로 옮겨가자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하아. 우리 아이들은 이미 꽃을 찾아서 레어로 돌아갔겠죠?" "그걸 왜 갑자기 지금 묻는 거야?" 오스타인이 목에서 입을 떼고는 세이르아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세이르 아는 고개를 살짝 들어 오스타인을 쳐다보며 속삭였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괜히 부끄러워져서요. 달링과 같이 살아가는 것도 천년이나 지나가는데도 아직도 이러니깐 우습죠?" "아니. 오히려 귀여워. 그리고 아이들 걱정은 이제 그만해. 그 애들도 백년 후면 성룡들이 된다고, 우리 아이들도 다 큰 거야." "그게 조금 슬퍼요. 내가 낳은 자식들인데 이제 나한테서 완전히 독립 한다고 생각하면 허전해요." "대신 내가 허니의 허전한 마음이 안 들게 다른 때보다 두 배는 사랑해 줄게." "저는 그 네 배로 사랑할게요." "그럼 나는...." 잠시 그들은 그렇게 사랑의 대화를 나누었고, 결국에는.... "그럼 나는 달링을 천 이십 네 배로 사랑할게요." "그럼 나는 허니를 이천 사십 여덟 배로 사랑할게." "그럼 나는.... 쿡. 이러다가 언제 끝날지 모르겠네요." "그래. 그러니 여기서 적당히 양보해서 우리의 사랑은 끝이 없다는 것 으로 결론짓자." "좋아요. 달링. 그렇게 해요." "사랑해." "저도요. 사랑해요. 달링." 겨우 사랑의 대화(?)가 끝난 둘은 다시 본격적으로 키스를 나누며 아까 하다 만 일(?)을 다시 시작하였고, 세이르아는 다시금 부끄러운 기분이 들어서 아까 하던 말을 계속하였다. "달링. 아이들이 간 곳 안전한 곳이죠? 멀리까지 둘이서만 보냈더니 좀 불안해요." "걱정하지마. 나도 룬라이를 먹으러 그 곳에 갔을 때는 힘 약한 키메라 한 마리밖에 없었던 안전한 지역이었어." "네 그렇군요. 하지만 걱정이 되네요. 하지만 달링이 그렇게 까지 말한 다면.... 잠깐 달링 방금 뭐라고 했어요!" 세이르아는 갑작스레 소리를 지르며 일어났고, 덕분에 세이르아의 가슴 에 얼굴이 내려가던 오스타인은 그대로 세이르아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 은 형상이 되어 버렸다. "달링 방금 힘 약한 키메라라고 하지 않았어요?" "응. 그런데 그게 왜?" 오스타인은 세이르아의 가슴에서 얼굴을 떼고는 왜 좋은 분위기였는데 망쳤냐는 듯이 불멘 목소리로 말했다. 세이르아는 아직까지 눈치를 못 첸 오스타인을 노려보며 말했다. "달링이 그 정력 꽃을 먹으러 갔던 게 언제였죠?" 졸지에 전설의 명약을 한낮 정력제로 낮추어 버린 세이르아였다. "이 천년 전이었는데 그게 왜?" 세이르아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오 스타인이 대답하자 세이르아는 오스타인을 더욱더 흘겨보면서 말했다. "그럼 그 때 달링 나이는 이 천살 조금 넘었을 때죠?" "응." "그럼 그 때는 키메라는 달링에게는 힘이 약한 몬스터죠? 더구나 달링 은 카이저 드래곤이니깐 키메라 한 마리 정도는 아무 문제도 안되겠죠 ?" "응. 그런데 그게 왜?" "달링 바보오!! 우리 아이들은 아직 해츨링이란 말이에요!! 아무리 둘 이 갔다지만, 그리고 티아가 무식하게... 아! 아니지 여자답지 않게 쪼 금 힘이 세긴 하지만 둘 다 아직 나이 어린 해츨링들이라고요!!" 아주 급박한 듯이 말을 하는 와중에도 자신이 팔불출 엄마라는 사실을 망각하지 않은 세이르아의 티아 두둔해 주기는 그렇다 치고 넘어가고, 사태는 세이르아 말대로 정말 심각했다. 그리고 그제야 오스타인의 얼 굴은 납빛으로 변해서 급히 시트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럴 때가 아니야! 당장 애들한테 가야겠어!!" "달링! 옷은 입어요!!" 그렇게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 아이들이 있을 에레스트 산 정상에 도착 한 두 드래곤이 본 것이 바로 해츨링인 티아가 그것도 혼자서 성룡급의 힘을 갖고 있다는 키메라를 개 패듯이 패고 있는 광경이었다. 그 믿을 수 없는 광경에 한참을 넋을 잃고 쳐다보던 두 신혼(?) 부부는 이제는 거의 기절하다시피 한 키메라를 잡초 밟듯이 밟고 있는 티아의 뒤에 내려갔다. "티아야?" 지상에 내려가자마자 폴리모프를 풀고 실버 드래곤과 레드 드래곤의 본 모습으로 돌아온 두 부부 중에 오스타인이 먼저 조심스럽게 티아를 불 렀다. 그러자 키메라를 구타하던 티아의 발길질이 멈추고 뒤로 돌아다 봤다. 그 얼굴은 분명 두 부부의 사랑하는 딸의 얼굴인 티아가 분명 맞았다. 티아가 티아인 것을 확인한(?) 오스타인은 일단 한숨부터 먼저 쉬고 티 아에게 말했다. "그만 하렴. 그 키메라는 이제 전투 불능이잖아." "아빠?" "그래 아빠야." "아빠!" 티아는 밟고 있던 키메라를 차 버리고는 두 팔을 벌리고 오스타인에게 달려갔다. 오스타인은 힘이 세고 난폭하긴 하지만 그래도 자신의 사랑 스런 딸이 아빠를 외치며 달려오자 '이제 걱정하지마. 아빠가 왔으니 다 괜찮아.' 라고 말해 줄 셈으로 팔을 벌리고 딸을 안을 자세를 취했 다. 옆에 있던 세이르아는 자신의 사랑하는 딸이 아빠만 부르며 달려오 는 모습에 서운한 감정을 느꼈다. 그런데 그 서운함은 곧 안도로 바뀌 었다. "바보 아빠!!" "컥!" 티아는 달려오던 그 자세 그대로 몸통 박치기를 하듯이 오스타인의 복 부로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두 주먹을 불끈 쥐 고 한이 팍팍 맺힌 펀치를 마구 날리는 것이었다. "왜 저런 괴물이 있다는 것을 말 안 해준 거야?! 아빠 바보! 바보!! 바 보!!!" 옆에서 보면 아빠 때문에 무서웠다고, 투정부리는 사랑스런 딸의 모습 이었다. 하지만 아까의 몸통 박치기부터 지금의 겉은 귀여운 토닥거리 는 것 같은 펀치 속에 실린 힘은 사랑스런 광경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 는 무서운 힘이었다. 티아의 무서운 힘이 실린 투정(?)을 받고 있는 오스타인의 얼굴 표정은 시시각각으로 점점 파래져 갔고, 고통 때문에 정신이 없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아무리 아파도 사랑하는 딸을 내칠 수 없다는 팔불 출 아빠의 투철한 직업(?)정신을 살려서 오스타인은 억지로 미소를 지 으며 티아를 안아 주었다. 옆에서 보고 있던 세이르아는 처음의 서운했 던 감정은 말끔히 사라지고, 대신 자신한테 티아가 달려들지 않았다는 안도감과 사랑하는 남편의 저 강인한 딸 사랑 정신에 경의를 표했다. "그나저나. 정말 걸레로 만들었구나." 아무리 오스타인의 딸 사랑 정신이 강인하다 하더라도 거의 기절 직전 으로 몰리는 것 같은 얼굴 표정에 세이르아는 남편을 살리기 위해 티아 의 주위를 끄는 말을 했다. 다행히도 티아는 세이르아의 생각대로 오스 타인에게 퍼붓던 애교를 가장한 구타를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세이르 아는 정말 걸레라고 의심이 들게 만들 정도로 엉망이 된 키메라를 쳐다 보고 있었다. "흥 그 놈은 그 정도로도 모자라." "티아야. 아무리 널 죽이려고 한 몬스터라지만 그래도 약육강식의 세계 에서는 약자의 목숨을 깨끗하게 끊어주는 것도 중요하단다. 그것이 우 리 몬스터의 방식인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아니 그것보다 여자가 이렇 게 잔인하면 안 되는 거야. 자고로 여자란...." 세이르아의 잔소리가 슬슬 길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자 티아는 그 큰 눈에 눈물을 그렁거리면서 세이르아의 말을 막았다. "힝. 하지만 엄마. 저 녀석은 날 죽이려고 한 게 아니란 말이야. 그것 보다 더 심한 짓을 하려고 했다고." "시, 심한 짓?!" 티아의 구타에서 벗어난 오스타인이 간신히 몸을 추스르고, 티아가 말 한 심한 짓이라는 말에 눈을 크게 뜨고 키메라와 티아를 번갈아 가며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시, 시, 심한 짓이라니.... 도대체 무슨 짓을 당한 거야?" "히잉. 아빠 저 나이 값도 못하는 키메라가 날 억지로 잡아서 키워 가 지고 색시 삼을 거라고 말했어. 더구나 아까 전에 날...." "나, 날? 티아 널 어떻게 했는데?" 세이르아도 입안이 바짝 타는 느낌에 침을 삼키며 티아를 다그쳤다. 티 아는 아예 고개를 숙이고 손으로 눈가를 가리며 흐느끼면서 말했다. "날 쓰러트리고는....흑 으앙." 티아의 말에 오스타인과 세이르아는 하늘이 무너진 것 같은 표정을 지 었다. "그, 그럴 수가... 고이고이 키운 내 귀여운 딸이.... 시집가기도 전 에.... 아니 성룡이 되기도 전에 저런 키메라에게...." 오스타인의 슬픔에 가득 찬 중얼거림에 티아가 고개를 들고는 소리를 빽 질렀다. "아빠! 지레짐작하지마!! 그냥 내 날개를 찢으려고 했었단 말이야!" "그, 그러냐?" "그나마 천만 다행이구나." "힝. 천만 다행이긴 뭐가? 난 엄청 무서웠었단 말이야. 만약 이 녀석들 이 지네들끼리 말다툼 같은 거 안 했다면 나 꼼짝없이 당할 뻔했단 말 이야. 그런데도 내가 한 짓이 심한 짓이야?" 티아의 말에 두 부부는 당치도 않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무슨 소리. 저것도 많이 봐준 거구나." "티아야. 죽이지 않도록 조심하면 좀 더 때릴 수 있을 꺼야. 아니 엄마 가 대신 때려 줄까?" "그럼 부탁할게요. 전 테이한테 가 봐야겠어요. 룬라이를 줘서 먼저 보 냈는데 무사히 이르 언니에게 전했는지도 궁금하고요." "그래. 이제부터는 티아 교육상 안 좋은 장면들을 보이게 될지도 모르 니깐 티아는 얼른 가 보거라." "네 엄마. 부탁해요. 아빠." "으응." 그런데 티아의 애교 넘치는 부탁에 오스타인은 무언가 멍하니 있다가 곧 정신을 차리고는 얼른 대답해 주었다. 그런 오스타인의 이상한 행동 에 티아는 고개를 갸웃하면서 물었다. "아빠 왜 그래요?" "그게.... 아, 아니다. 아직 확실한 것도 아니니깐 나중에 이야기하자. 티아는 지금 바쁘다고 했지? 이 놈의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키메라는 아빠. 엄마한테 맡기고 얼른 가 보렴." "네." 석연치 않은 답이었지만 티아는 저 괘씸한 키메라를 더 이상 꼴도 보기 싫었으므로 두 말 없이 오스타인의 말을 듣기로 했다. 티아는 폴리모프를 시전하고는 곧 이르가 살고 있는 집과 통하는 워프 의 문을 열고는 바로 가 버렸다. "달링 왜 그래요?" 세이르아는 키메라에게 적당한 회복 마법을 걸어 주면서 안색이 어두운 오스타인을 이상하게 보면서 물었다. "아니. 그게.... 뭐 아직 확실한 게 아니니깐. 나중에 확실해지면 그때 말해 줄게. 그런데 그것보다 허니는 지금 뭐하고 있는 거야?" 오스타인은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키메라에게 회복과 치료의 마법을 걸 어 주고 있는 세이르아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얼굴을 찌푸리며 물었 다. 그러나 세이르아의 대답은 이해를 할 수밖에 없는 대답이었다. "응. 우리 귀여운 딸에게 나쁜 짓을 한 이 키메라를 지금 이 상태에서 달링이랑 나랑 같이 때리다가는 죽어 버릴지도 모르잖아요. 그러니깐 어느 정도 회복 시켜 놓고 때리게요." 그렇게 말한 세이르아는 몸이 어느 정도 치료가 되자 정신을 차리는 키 메라를 보고는 사악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너 오늘 잘 걸렸다. 감히 내 딸을 건드리려고 해? 입에서 제발 죽여주 세요 라는 말이 나오게 만들어 주마." 오스타인은 그 모습을 보면서 세이르아가 못 듣게 조용히 중얼거렸다. "모전녀전." 계속 ------------------------------------------------------------------ 드래곤 남매 14화 꿈의 끝(1) 나와 카렌이 집에 도착하자 제임스가 기다렸다는 듯이 결계를 해제했 다. 나는 룬라이를 구했다는 기쁨에 소리를 치면서 집안으로 뛰어들어 갔다. "야! 제임스 만병통치약을 구했어!!" 그러나 예상대로 돌아온 대답은 심드렁한 목소리의 '그렇습니까?' 라는 정말 날 잡아서 교육 한번 시켜야지 하는 생각을 들게 만드는 대답이었 다. '에휴 그래. 내가 너한테 뭘 바라겠냐? 넌 날 잡아서 나한테 교육 좀 받아야겠다.' 난 속으로 이를 한번 갈아주고는 카렌의 손을 잡고 말했다. "카렌 얼른 이르 누나에게 약을 먹이자." "네 테이 님." 그렇게 대답한 카렌의 얼굴에는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은 정말로 기쁜 환 한 미소를 지어 주었다. 그렇게 우리 둘이 다정하게 손잡고 앞으로 내 장모님 될 이르 누나에게 약을 드리기 위해 집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그런 우리 앞을 제임스가 조용히 막아섰다. "뭐야?" 그런 제임스의 말 없는 행동이 기분 나쁜 내가 화를 내면서 묻자 제임 스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르 님께서 마지막으로 전해 달라고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순간 난 둔기에라도 머리를 얻어맞은 듯 한 충격을 받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저 다크 나이트가 드디어 미쳤나? 무슨 헛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너 도대체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려고 하는 거야?" 내 목소리는 착 가라앉았고, 나도 모르게 노여움이 물씬 담겨 있었다. 잡고 있는 카렌의 손이 떨고 있었다. 난 속으로 제발 내 앞을 막아선 다크 나이트가 미쳤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도로 할아버지한 테 갖다 주고 인형같이 맡은 일만 하는 말 잘 듣는 다크 나이트를 얻어 와야지. "테이 님과 티아 님에게는 자신을 위해서 애써 주어서 고맙다는 말입니 다. 그리고 카렌 님에게는 미안하다고 그리고, 너무 슬퍼하지 말고 행 복하게 살아 달라는 말입니다." "너 이 자식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냐고?!" 난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제임스를 강하게 후려쳤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자랑하는 최고의 다크 나이트인 제임스는 뒤로 몇 걸음 물러날 뿐 그렇 게 크게 타격을 입지 않은 것 같아 보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저리 비켜요!" 제임스를 치느라 카렌의 손을 놓치자 카렌은 제임스를 밀치고는 집 안 으로 달려갔다. 해츨링인 내 주먹에도 몇 걸음 밖에 안 밀린 제임스가 카렌이 밀친다고 밀어질 리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제임스는 카렌이 밀쳐서가 아니라 카렌의 비키라는 말에 몇 걸음 뒤로 물러섰고, 카렌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그대로 집으로 뛰어 들어 갈 수가 있었다. "엄마! 엄마!! 엄마!!!" 끊임없이 엄마를 외치며 집안으로 들어간 카렌의 뒤를 나 역시 재빨리 쫓아 들어갔다. 카렌이 먼저 집안으로 들어가기는 했지만 하프엘프인 카렌보다 내가 더 빠르기 때문에 금방 카렌을 따라 잡았고, 우리 둘은 동시에 이르 누나의 방에 들어갈 수가 있었다. 이르 누나의 방에서 우 리 둘이 본 것은 자는 듯이 편안하게 누워 있는 이르 누나의 얼굴이었 다. 너무나 평온하고 소름끼칠 만큼 고요한 그 얼굴에 나는 아무 말도 아무 행동도 할 수 없었다. 나와는 달리 카렌은 천천히 이르 누나에게 다가 가며 말했다. "엄마. 수면이 피부에 좋다고는 하지만 너무 그렇게 주무시면 오히려 피부가 빨리 늙는데요. 이것 봐요. 엄마 병을 고칠 수 있는 약을 구해 왔어요. 테이 님과 티아 님이 구해 주신 아주 귀한 전설의 꽃이에요." "카렌." 내가 조용히 카렌을 불렀지만 카렌은 내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는 듯 이 계속 이르 누나에게 다가가면서 말을 했다. "지금 티아 님은 이 꽃을 뺏으려고 한 키메라를 상대로 혼자서 싸우시 고 계세요. 걱정이 되지만 테이 님이 티아 님은 괜찮을 거라고 했어요. 저도 티아 님을 믿어요. 귀찮은 일 하나 해결했다는 표정으로 금방 돌 아 오셔서 '아 피곤한 일이었다. 동서 나 차 한잔만 타 줘.' 라면서 날 놀리 실걸요. 헤헤헤. 대하기 좀 곤란하신 분이지만 그래도 엄마 말대 로 좋은 분이세요." "카렌." "하지만 난 이제 전처럼 그냥 당하지는 않아요. 테이 님이 제게 드디어 청혼을 해 주었어요. 더구나 날 드래곤들의 유희로서의 꿈속의 사랑이 아닌 진심으로 사랑해 주시겠다고, 맹세 해주셨어요. 그러니깐 저도 네 언니. 잠깐만 기다리세요. 라고 맞받아 쳐줄 거예요. 하지만 역시 조금 부끄러울 것 같아요." "카렌!" "엄마 말 대로였어요. 테이 님도 티아 님도 그리고 세이르아 님도 정말 로 좋은 드래곤 님들이었어요. 아 그리고 테이 님의 아버님도 만나 봤 어요. 아버님이라고 불러 달라고 하셔서 처음에는 무척 곤란했는데 아 버님이라고 불러 드리자 너무 좋아하시는 모습에 저도 기분이 좋아지더 라고요." "카렌!!" 난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달려가서 카렌을 뒤에서 강하게 끌어 앉았다. 내 눈에는 카렌의 손에 들려 있던 룬라이가 하늘거리면서 바닥으로 떨 어지는 게 보였다. "이제 엄마의 병도 고치고.... 그리고 제가 테이 님과 결혼해서 얼른 엄마를 할머니 만들어 드리고.... 그리고 엄마도 이제 할머니네요. 라 고 그렇게 놀려 드리려고 생각도 했었는데.... 그렇게 행복하게 살아가 려고.... 아니 그렇게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엄마.... 장난 치시는 거죠? 장난치지 마세요. 이런 장난.... 이런 장난은 하나도 재 미없어요. 엄마. 엄마! 엄마!!!" 카렌은 나도 놀랄 정도의 힘으로 날 뿌리치고는 이르 누나에게 달려들 어서 이르 누나의 몸을 마구 흔들었다. "제발 장난치지 마세요! 제발 장난이라고 해주세요! 제발.... 엄마! 제 발요! 엄마!!! 눈을 떠 주세요!! 제발요!!" 카렌은 이르 누나의 몸에 얼굴을 묻고는 울음을 터트렸다. 난 가슴 아 프지만 이럴 때는 어떻게 위로해 줘야 될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울고 있는 카렌을 안타까운 눈으로 쳐다 볼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이야?!" 난 익숙한 목소리에 슬쩍 고개를 돌려서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하고는 금방 고개를 돌려 버렸다. 티아 누나였다. 티아 누나는 어떻게 된 일이라고는 물었지만 지금 상황을 한 번 보고는 금방 무슨 일인지 알아챈 것 같았다. 하지만 누나의 눈빛은 믿지 못하 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누나는 천천히 이르 누나에게 다가가서 조용히 이르 누나의 얼굴에 손을 갖다 대었다. 그 모습은 숨을 쉬는지 안 쉬는 지 확인하는 것 같았다. 누나의 표정이 급격하게 딱딱하게 변하더니 금 방 몸을 돌려서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 짧은 순간 난 똑똑히 볼 수 있 었다. 누나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털썩 누나가 나간 곳을 멍하니 보고 있던 나는 이상한 소리에 급히 카렌 쪽 을 보았다. "이런?! 카렌!!" 카렌은 그대로 쓰러져서 기절했다. 난 달려가서 카렌의 몸을 안았다. 카렌의 힘없이 축 늘어진 몸을 안으면서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보게 되자 내 얼굴에도 뜨거운 뭔가가 흘러내렸다. 난 그대로 카렌의 몸을 끌어 앉았다. 그리고 솟아오르는 눈물을 억지로 참으며 카렌을 꼭 안고 는 이르 누나의 방에서 나왔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하는 생각에 밖을 보니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방안도 이미 어둠에 쌓여 있었지만 창문으로 들어오는 달빛만으로도 주 위가 잘 보이는 내 눈 덕분에 촛불을 켤 필요는 없었다. 아니 켜고 싶 지도 않았다. 난 지금 카렌의 방에 있다. 카렌을 방으로 옮겨 주고 간신히 울음을 참 은 나는 제임스를 시켜서 이르 누나의 시신을 안고 이르 누나를 숲으로 돌려보내 주었다. 내가 책에서 본 게 맞다면 엘프는 인간과 달리 땅에 묻는다 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숲으로 돌려보내 준다 라는 표현을 쓴 다고 한다. 나는 숲에서 숲의 기운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큰 나무에 이르 누나를 숲에 돌려주고는 기절해서 잠이 들어 버린 카렌의 곁에 계 속 앉아 있던 상태였다. 내가 제임스와 같이 이르 누나를 데리고 나왔을 때 티아 누나는 마당 한구석에 앉아 있다가 아무 말도 안하고 우리 둘을 따라왔고, 우리가 이르 누나를 숲에 돌려보내는 일을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그 자리에 꼼 짝 않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그 자리를 떠날 때까지 티아 누나는 계속 그 자리에 있었다. '지금도 그 자리에 계속 있을까?' 나는 조용히 일어나서 창문으로 다가가 이르 누나를 숲으로 돌려보낸 장소를 쳐다보았다. 아무리 눈 좋은 드래곤이라지만 울창한 숲 속 안의 모습까지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지금 그 곳에 누나가 있는지 없는지는 알 수 없었다. 밤바람이 차가운 것 같은 느낌에 나는 창문을 닫았다. "테이 님?" "어? 일어났어?" "네." 창문을 닫는 바람에 달빛이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완전히 어두워 도 내 눈에는 귀가 축 늘어진 카렌의 모습이 잘 보였다. 그 처량한 모 습에 가슴이 아픈 느낌이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카렌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아까도 카렌이 울 때 아무 말도 못했는데 지금 무슨 말로 카렌 을 위로해야 된단 말인가? 막상 카렌 앞에 섰지만 아무런 말도 해줄 것 이 없는 지금의 나로서는 그냥 조용히 카렌의 머리를 쓰다듬어 줄 수밖 에 없었다. 카렌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 다. 가끔 카렌이 못 견디게 귀여워 보일 때 쓰다듬어 준 적이 있었다. 그때는 얘 취급하지 말라면서 화를 내는 카렌 덕분에 얼른 손을 떼야 되었지만 지금 카렌은 내 손길을 거부하지 않고 얌전히 앉아 있었다. "엄마....는요?" "......숲으로 돌려보내 드렸어." "......꿈이 아니었군요. 난 악몽이라도 꾼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차라리 지금 이 현실이 카렌의 말처럼 자고 일어나면 다 잊어버릴 악몽 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곧 그런 현실 도피적인 생각은 접어 버리고 지금 내가 카렌에게 어떤 위로를 해줄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다시 하였다. "안아 주세요." "응?" 갑작스런 카렌의 말에 난 금방 말뜻을 파악 못해서 반문하자 카렌은 다 시 말해 주었다. "안아 주세요. 테이 님한테 안기면 저 마음이 편안해질 것 같아요." 난 카렌의 마음을 읽는 능력에 대해서 생각해 냈다. 지금 내가 카렌에 게 무슨 말을 해줘야 될지 모를 이때에 카렌의 마음을 읽는 능력은 참 으로 편리한 능력이었다. 난 카렌의 부탁대로 카렌을 부드럽게 안아 주 었다. 가녀린 카렌의 몸이 그 날은 더 힘이 없어서인지 더 연약해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조심스레 카렌을 안아 주자 카렌이 내 가슴에서 도리질을 하였다. "이런 것 말고요." "응?" "이런 것말고.... 절 안아 주세요. 테이 님 부탁이에요." 카렌은 촉촉이 젖은 눈동자로 날 올려다보며 말했다. 난 그제야 카렌이 말하는 안는다 라는 말뜻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카렌 하지만...." "부탁해요. 저 다 잊어버리고 싶어요. 테이 님 품에서 한 순간이라도 좋으니 다 잊어버리고 싶어요. ......안아 주세요." 여자가 이렇게까지 부탁하는데 남자로서 뭘 어떻게 해줘야 되는 것일까 ? 하지만 곧 나는 더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하였다. 난 카렌을 안은 체 조심스럽게 카렌의 얼굴에 내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카렌의 촉촉한 눈은 곧 감겨졌고, 난 생애 처음으로 사랑하는 여자의 입술이라는 것을 느껴 보았다. 과거 티아 누나와 레이나 누나 그리고 이르 누나에게 강 탈당했던 입맞춤과는 확실한 차이가 있었다. 달콤하고 부드럽고, 그리 고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느낌.... 난 입술을 떼고 카렌의 몸을 좀더 세게 껴안았다. 그리고 카렌을 안은 체 그대로 침대에 누웠 다. 야릇하고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두려운 기분도 들었다. 그 증거로 내 몸이 떨리고 있었다. 떨리고 있었는데....어라? 내가 떠는 것보다 카렌은 더 많이 떨고 있었다. 덕분에 내 몸도 배는 떨리는 것이었고.... 카렌이 떨고 있는 것을 느끼자 야릇한 기분이고 뭐고 몽땅 다 날아가는 느낌이었다. 덕분에 냉정을 되찾은 나는 카렌의 이마에 키스를 해주고 는 카렌의 몸 위에서 비켜서 카렌의 옆에 나란히 누웠다. "테이 님." "아직은 이런 일은 나나 카렌에게나 너무 이른 것 같아. 더구나 카렌은 지금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쳐 있잖아. 그게... 나 잘 말은 못하겠지만.. . 이런 상태에서 카렌을 안기는 싫어. 상처를 줄 것 같고, 나도 후회할 것 같아. 저기... 그래서 오늘은 옆에서 같이 자 줄게. 그거로는 안될 까?" "테이 님... 흑... 으흑." "울지마." "테이 님. 미안해요. 미안해요." 카렌은 본격적으로 내 폼에 얼굴을 묻고 울기 시작했다. 난 그런 카렌 을 토닥여 주며 말했다. "미안할 것 없어. 카렌은 지금 많이 지쳐 있기 때문에 그런 거야. 난 괜찮으니깐 미안해 하지마. 그리고 울지마." "흑. 미안해요. 흑흑. 저... 저는." "괜찮아. 아무 말도 안 해도 돼. 그냥 푹 자. 모든걸 잊고 푹 자." 난 목구멍으로 올라오는 말을 삼키고는 그대로 카렌을 좀 더 강하게 앉 고는 내 마음을 카렌이 읽도록 강하게 기원했다. '내가 행복하게 해줄게. 오늘 카렌이 불행했던 것을 전부 다 보상할 수 있게.... 정말로 많이많이 행복하게 해줄게.' 난 사랑하는 여자의 체온을 느끼면서 그렇게 잠이 오는 것을 필사적으 로 참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카렌의 울음이 그치고,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고른 것을 확인하고는 그제야 긴장을 풀고 나도 잠을 청했 다. 계속 ------------------------------------------------------------------ 드래곤 남매 14화 꿈의 끝(2) 한 밤중의 숲은 멀리서 볼 때는 고요하다. 그러나 숲 속으로 들어가 보 면 평소에는 시끄러운 새소리와 짐승 소리 그리고 몬스터들의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던 소리들로 시끄러워 지는 것이 한 밤중의 숲이었다. 이름 모를 풀벌레들이 우는 소리와 간간이 멀리서 들려 오는 늑대의 울 부짖음을 들으면서 카렌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자신의 손은 아직 테이에게 잡힌 체였다. 카렌은 테이의 손에서 자신의 손을 빼고는 아주 작게 속삭였다. "미안해요. 테이 님." 카렌은 조심스럽게 일어나서 방구석에 있는 옷장으로 갔다. 엘프의 피 를 이어받은 하프엘프 카렌에게는 발소리를 죽여서 이동하는 건 식은 수프 먹기였다. 하지만 짐을 챙기기 위해서는 조심해야 됐다. 테이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간단한 옷가지를 조그마한 배낭 속에 넣은 카 렌은 그대로 방문을 살짝 열고 복도로 나와서 나올 때와 마찬가지로 살 짝 문을 닫았다. 1층으로 내려온 카렌은 잠시 망설이는 듯 싶더니 결심 을 하고는 이르의 방문을 살짝 열고는 조심스레 주위를 살폈다. 방안에 는 아무도 없었다. 방안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카렌은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조용 히 방으로 들어가서 방문을 닫았다. "헉!" 카렌은 방문 뒤에 있던 존재에 대해서는 눈치 체지 못해서 방문을 닫을 때 팔짱을 끼고 벽에 기대어 있는 티아를 발견하고는 재빨리 자신의 입 을 막아서 비명 소리가 안 새어나가게 했다. 그런 카렌을 잠자코 바라 보던 티아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뭐 하는 거야? 아니 그 여행용 가방 때문에 어딜 가는 거냐고 물어야 되겠지?" "......." "어딜 가는 거지?" "휴.... 몰래 떠나려고 했는데.... 잠시만 시간을 주시겠어요? 여기서 는 제대로 말을 못할 테니 장소를 옮겨요." 티아는 고개를 끄덕여서 동의를 표했고, 카렌은 이르가 아끼던 보석함 을 서랍 속에서 꺼내서 가방 속에 집어넣었다. 이르는 보석으로 치장을 안 좋아하지만 제이크가 살아생전 결혼 기념일 때마다 숲 속의 딸인 이 르를 숲으로 데려가서 액세서리를 하나씩 선물했었다. 이르는 비록 치 장을 할 때가 극히 드물어 그 액세서리들을 다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그 래도 보석함에 넣고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이르는 입버릇처럼 이 보석들은 나중에 카렌이 커서 시집가면 지참금으로 줄 거라고 말하던 보석들이었다. 이르가 죽고 난 뒤 그 보석을 챙긴 카렌이지만 이것들을 팔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었다. 유일하게 이르와 제이크의 손때가 가장 많이 묻은 물건이 이것이라 챙긴 것이었다. 그리고 그 물건을 챙겨 넣 었다는 것은 카렌이 이곳을 떠나겠다는 의지이나 마찬가지의 행동이었 다. 카렌이 물건을 챙기자 티아는 조용히 따라 나오라는 손짓을 하고는 먼 저 나갔다. 카렌은 티아의 뒤를 따라갔고, 그렇게 해서 두 여자는 달밤 에 산책을 시작했다. 꽤 깊숙이 들어왔다고 생각이 들 때 앞서 가던 티아가 걸음을 멈췄다. 이 정도 거리면 대화 소리가 커져도 테이가 듣지 못할 정도의 위치였 다. 티아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꽤 크고 널찍한 바위를 찾아내고는 그 자리에 가서 앉았다. 카렌도 티아가 그 바위를 쳐다 볼 때부터 눈치 채고 티아가 자리에 앉는 동시에 자신도 그 맞은편에 앉았다. 그리고 두 여자는 잠시동안 입을 다물고는 서로를 쳐다보았다. 티아는 카렌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짐을 쌓는지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카렌의 눈을 한참 동안 쳐다보았다. 이르가 숲으로 돌아간 장소에서 한 동안 멍하니 있던 티아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어느새 이르의 방에 와 있었다. 그래서 쓰러지듯이 이르의 침대에 누워서 멍하니 있던 티아는 누군가가 조용한 발걸음으로 집안을 돌아다니는 것을 느끼고 자신이 있 는 이르의 방으로 오는 것을 느끼고는 문 뒤에 숨어서 누구인지 살펴보 았다. 그런데 도둑 발놀림 같은 발걸음의 주인공이 카렌인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한밤중에 이르의 방까지 찾아왔던 것도 자신과 같은 기분 때 문이라고 치더라도 카렌의 등에 매여 있는 저 여행용 가방과 아까 전의 이르의 방에서 유품 챙기는 행동으로 카렌이 집을 나갈 것이라는 사실 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왜 카렌이 나가려고 하는지에 대해서 까지는 카렌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티아는 한참 동안 카렌의 눈을 쳐다보았 지만 결론은 모르겠다 이였다. "왜 나가려고 짐까지 챙긴 거야? 이유가 있겠지?" "......." 결국 의도 파악해 보기는 포기한 티아가 단도직입적으로 묻기를 사용하 자 카렌은 묵비권 행사로 대답(?)했다. "이르 언니 때문에 나가는 거야? 이르 언니가 돌아가신 게 그렇게까지 충격이고, 견디기 힘든 일인 거야? 나도 그걸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 야. 하지만 네가 그렇게 말 없이 사라져 버리면 상처받을 테이에 대해 서 생각은 해본 거야? 그 녀석은 카렌 네가 말도 없이 없어진걸 알게 되면 비관해서 자살까지 해 버릴지도 몰라." 티아에게 있어서는 최후의 승부수인 멋대로 시나리오 지어서 과장되게 부풀리기를 사용하자 그제야 카렌의 입이 열렸다. "곁에 있을 수가 없어요." "응?" "모든 것을 알고 나서도 곁에 있을 만큼 전 독한 여자가 아닌걸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테이가 너한테 변태적인 짓이라도 한 거야? 원래 취향이 그런 녀석이 아닌데 스트레스가 쌓여서 성격이 변했나?" 이번에도 음악으로 치자면 혼자서 작사 작곡에 편곡까지 멋대로 해 버 리는 티아의 질문에 카렌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 보니 아직 티아 님에게는 말씀드린 적이 없네요." "뭘?" "저한테는 타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요." "......그거랑 네가 테이 버리고 떠나는 거랑 무슨 관계가 있는데?" "티아 님도 좋아하잖아요. 아니 사랑하잖아요." "......." "테이 님을요." "......." 티아는 계속되는 카렌의 추궁이라고도 할 수 있는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그저 침묵으로 대했다. 카렌은 별로 티아의 대답을 기대하 지 않았는지 계속 말을 하였다. "제가 절벽에서 떨어졌을 때 티아 님이 저를 받아 주셨죠? 전 평소에는 이 힘을 내 의지로 억누르고 있어요. 내가 조금이라도 신경을 쓰지 않 으면 이 힘은 멋대로 나와 접촉한 이의 마음을 읽어 버려요. 내가 절벽 에서 떨어졌을 때 티아 님께서 절 받아 주셨을 때 난 정신이 없었어 그 만 티아 님의 마음을 읽어 버렸어요. 그것도 아주 깊숙한 곳까지요." "그래서?" 오랫동안 입을 닫고 있던 티아는 카렌의 말이 긴 말이 끝나자 다시 질 문을 하였다. "그래서 전 테이 님 곁에 있을 수가 없어요." "무엇 때문에? 나 때문에? 걱정마! 나랑 테이는 남매 지간이야. 그것도 쌍둥이 남매란 말이야. 그래 인정할게. 난 동생을 사랑하는 못난 누나 야! 거기다가 내 이런 감정을 동생에게 들키는 게 두려워서 일부러 동 생을 괴롭히는 못된 누나란 말이야!! 그러니깐 날 신경 쓸 필요 없어!" 티아의 목소리는 점점 격앙되어서 커져 갔다. 티아의 말을 끝까지 들어 준 카렌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티아 님. 당신은 드래곤이에요. 인간들의 법칙에 얽힐 필요가 없어요. " "하지만 우리 남매는 지금까지 드래곤 역사의 남매들과 달라! 몇 천년 의 나이 차가 나는 것도 아니야! 그리고 엄마가 다르던지 아빠가 다르 던지 하는 것도 아니야!! 한날 한시에 태어난 쌍둥이란 말이야!! 지금 까지 드래곤 역사에 유래 없는 쌍둥이 남매가 맺어지는걸 다른 드래곤 들이 곱게 쳐다볼까? 아니 그것보다 우리 부모님이 허락해 주실까? 아 니 그것보다 테이가... 그 바보 같을 정도의 바른 생활 드래곤인 테이 가 나를 받아 줄까? 나보고 도대체 어떻게 하란 말이야?! 난 겨우 내 마음을 정리했어! 이대로 테이의 누나로 만족하기로.... 그런데... 그 런데... 왜? 왜 내 결심을 흔드는 거야? 왜냐고?!!" 티아의 눈에서는 어느새 맑은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 르에게까지 이렇게 격하게 자신의 속마음을 완벽히 털어놓지는 않았었 다. 오랫동안 혼자서 가슴속에 간직했던 비밀을 모두 털어놔 버리자 티 아는 격한 감정을 못 이기고 저절로 눈물이 흘러내린 것이다. "울지 마세요." 카렌은 티아의 눈물을 닦아주며 위로했다. "미안해요. 티아 님을 괴롭힐 생각으로 말을 꺼낸 건 아니에요. 티아 님 속으로 나를 마음에 들어 하시는 것도 읽었어요. 그래서 테이 님을 나한테 양보할 생각을 하신 거잖아요. 나도 그냥 아무것도 몰랐다면 그 냥 그대로 테이 님과 살아갔을 거예요. 하지만.... 이미 다 알아 버린 걸요. 알지 말아야 될 것까지 다 알아 버린걸요. 저도 티아 님이 좋아 요. 정말 티아 님과 티아 님의 가족 분들도 다 좋아요. 그런데 좋아하 는 티아 님의 마음을 다 알아 버린 체 테이 님 곁에 있을 수는 없어요. 전 그렇게까지 독한 여자가 아닌걸요. 미안해요. 그러니 울지 마세요. 최강의 종족이라 불리는 드래곤인 당신이 하프엘프인 제 앞에서 우시다 니...창조신께서 웃으실 거예요." 그렇게 티아를 위로하는 카렌의 눈에서도 어느새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 었다. "난 아직 해츨링이야. 그리고.... 드래곤은 몸은 최강의 종족일지는 몰 라도 정신적인 면에서는 가끔 인간들보다 약해질 때가 있다고 우리 아 빠가 말했어. 그때는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지금은 약간은 이해가 될 것 같아." 티아는 카렌의 눈물을 손으로 닦아주었다. 그리고 두 여자는 서로의 눈 물을 닦아주다가 아예 서로 부둥켜안고 목놓아 울어 버렸다. 한참을 울 고 난 뒤 둘은 눈물로 범벅이 된 서로의 우스꽝스런 얼굴에 두 여자는 동시에 피식하고 웃음을 흘렸다. "티아 님. 저의 어머니가 테이 님과 사귀는 것에 대해서 내가 고민하고 있을 때 해주신 말이 있어요." "뭔데?" "종족은 다르더라도 테이 님은 남자고, 난 여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 는 다고 하셨어요." "......." "티아 님도 드래곤 역사상 유래 없는 쌍둥이 남매라지만 테이 님이 남 자고, 티아 님은 여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요. 그러니깐 포기하지 마세요." "하지만.... 난 이미 늦었어. 테이는 이제 나를 너무 무서워하는걸."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하며 고개를 숙이는 티아에게 카렌은 생긋 웃으 며 말했다.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 라잖아요. 테이 님이 티아 님을 무서워하면 무서워 하는 대로 휘어잡으시면 되잖아요." "미안 카렌. 나 때문에 카렌이.... 그리고 이르 언니도 우리가 좀 더 빨리 서둘렀다면...." 카렌은 손가락으로 티아의 입을 가리며 조용히 '쉿.' 이라고 말하고는 티아의 말이 멈추자 손을 떼고 말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에요. 티아 님과 테이 님은 최선을 다해 주셨어요. 어머니도 고맙다는 말을 전해 달라고 하셨다잖아요. 그리고 저도 두 분 께 정말 감사하는 걸요. 그리고...." "그리고?" "저도 티아 님을 좋아해요. 그러니깐 더더욱 티아 님과 테이 님이 행복 하셨으면 해요. 저 솔직히 말하면 오늘밤 테이 님에게 제 모든 것을 드 리고 애써 모른 척 하면서 행복하게 살까라는 생각도 했었어요." "뭐라고? 그럼 설마 테이가 덤빈 거야? 그래서 결국 해 버린 거야?" 카렌의 폭탄성 고백에 티아는 놀라서 테이의 총각 유무(?)에 대해서 물 어 보자 카렌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제가 억지로 용기를 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그냥 손을 잡 고 같이 자줄 테니 푹 쉬라고 격려해 주셨는걸요." "으이그.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둔탱이라니깐. 여자가 그 정도까지 용 기를 냈는데 왜 그걸 몰라주는 거야? 그 바보는..." "하지만 만약 그대로 테이 님에게 모든 걸 드렸다가는 틀림없이 제가 나중에 후회했을 거예요. 그건 사랑이 아니라 뺏기기 싫다는 구속이니 깐 요." 카렌은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카렌." "그런 표정 짓지 말아 주세요. 솔직히 지금은 조금 괴롭지만 그래도 시 간이 해결해 주는 문제인걸요. 그동안 정말 고마웠습니다. 이 빛은 꼭 갚을게요." "쳇. 설득을 해봐야 소용없다고 못을 박는구나. 그래 알았어. 나도 더 이상은 안 잡을게. 하지만 나에게 빛 지는 김에 이거 하나만 더 져." "네?" "제임스 이리 나와." 티아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뒤쪽을 쳐다보며 말하자 어두운 수풀이 움찔거리나 싶더니 은빛의 다크 나이트 제임스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카렌이 어떻게 된 거냐는 눈빛으로 티아와 제임스를 번갈아 가며 쳐다 보자 티아가 어깨를 으쓱하고는 설명해 주었다. "제임스는 이르 언니와 카렌 너의 경호원이야. 그러니 자신이 지켜야 될 자가 자신이 설정해 둔 영역을 벗어나면 따라와서 지키게 되는 거 야." "그런 건가요?" "그렇습니다." 카렌의 질문에 대답을 해준 건 티아가 아니라 제임스였다. "이게 너에게 안겨 주는 내 마지막 빛이야. 어차피 둘의 경호원으로 데 려 온 다크 나이트니깐 이제부터 소유권은 너에게 있어. 네가 죽을 때 까지." "하지만 티아 님." "괜찮아. 난 나중에 너한테 제임스가 필요 없어지면 자동적으로 나에게 오도록 명령을 내려놓았으니깐 걱정말고 데려가. 더구나 이 깊은 밤에 몬스터와 짐승이 돌아다니는 산을 내려갈 생각을 하다니 무대포도 이만 저만이지." "저기 전 도망은 잘 쳐요." "됐네요. 누가 너 하프엘프 아니라고 한적 있니? 너 발 빠른 건 알고 있지만 만약이라는 것도 있으니깐 긴 말 하지말고 얼른 데려가. 자꾸 어영부영하면 테이 깨워서 데려온다!" 티아의 협박 아닌 협박에 카렌은 쓴웃음을 지으며 티아의 호의를 받아 들였다. "마을까지 안전하게 데려다 줘야 된다." "알겠습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제임스에게 다짐을 받아 낸 티아는 카렌을 쳐다보았다. 카렌도 티아를 쳐다보았다. 둘은 누가 뭐라 할 것도 없이 미소를 보내고는 손을 맞잡 았다. 흔히들 남자의 우정보다 여자들의 우정이 더 깊을 수는 없다고 말을 한다. 하지만 지금 그 둘은 남자들 못지 않은 우정으로 맺어져 있 었다. "꼭 다시 만나자. 꼭." "네. 그리고 죄송하지만 테이 님한테는 적당히 둘러대 주세요." "응." 그리고 마지막 작별 인사를 마치고 카렌은 천천히 뒤돌아 걸어갔다. 그 리고 그 뒤로 은빛의 다크 나이트 제임스가 뒤 따라 갔다. 그 둘이 사 라지는 것을 끝까지 지켜 본 티아는 어떻게 둘러대야 테이에게 카렌이 떠난 것을 납득시켜야 되는지에 대해서 고민해야만 되었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어떻게든....' 계속 ------------------------------------------------------------- 드래곤 남매 14화 꿈의 끝(3) 흐릿하게 천장이 보였다. 난 졸린 눈을 비비며 옆을 돌아보았다. 그러 나 그 곳에는 카렌이 없었다. "이런 벌써 일어났나?" 난 쏟아지는 아침 햇살을 맞으며 사랑하는 여자에게 아침 인사를 하고 싶었었다. 그런데 내가 늦잠을 자는 바람에 이루지 못한 게 못내 아쉬 워서 입맛을 다셨다. 뭐 기회야 앞으로도 많이 찾아 올 테니 다음 기회를 노리자는 생각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서, 아래층으로 내려 가보니 누나가 탁자에 앉아 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잘 잤어?" 평소라면 일단 카렌부터 먼저 찾았겠지만 어제 여러 일이 있었고, 누나 한테 도움 받은 것도 많았던 터라 내가 먼저 아침 인사를 건넸다. "잘 잤니?" 기분 탓인가? 누나는 힘이 없어 보이는 인사를 하고는 고개를 슬쩍 돌 려버렸다. 뭐 어제 이르 누나를 숲으로 돌려보내 줄 때 누나가 보여주 던 행동을 생각하면 이해가 가는 행동이었다. 그나저나 카렌은 어디로 갔지? 혹시 이르 누나를 숲으로 돌려보내 준 장소로 갔나? "카렌은 가 버렸어." 내가 카렌을 찾는다는 걸 알았는지 누나가 카렌의 행방에 대해 말해 주 었다. "아아. 역시 이르 누나를 숲으로 돌려보내 준 장소로 갔구나. 날 깨웠 으면 같이 가 주었을 텐데. 근데 카렌은 장소를 모를텐데. 제임스랑 같 이 갔나?" "그게 아니라.... 떠났다고." "아침부터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난 말을 꺼내 놓고 곧 후회를 했다. 왜 나는 자꾸 맞을 말만 골라서 하 는 걸까? 내 몸은 자연히 구타를 당하기 직전의 자세로 흠칫했다. 그러 나 다행히도 아이스 미사일 연발 구타는 쏟아지지 않았다. "하아.... 떠났다고 했잖아." 누나는 한숨을 쉬면서 방금 전 했던 말을 다시 해주었고, 나는 누나가 한 말의 뜻을 한참 동안 생각해야 됐다. 아니 머리로는 그 말의 뜻을 이해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그 말을 계속 부정하고 있었 다. 아니 부정할 수밖에 없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말이었으니깐... . "농담하지 말라고 했어! 자꾸 그런 듣기 거북한 농담을 하면 아무리 누 나라도 가만히 놔두지 않겠어!!" 난 평소라면 죽을 때까지 맞고 보너스로 한 대 더 맞을 말을 서슴없이 누나에게 말했다. 그러나 누나는 평소와는 달리 내 말에 발끈 하기는커 녕 침울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침묵했다. 그 침묵에 난 더 미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뭐라고 말 좀 해봐! 재미없는 농담은 하지말고! 누나!!" "미안해. 잡을 수가 없었어. 미안해 테이야." "젠장!" 난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욕지거리를 뱉고는 곧장 문으로 달려갔다. 그 러나 나보다 한 발 앞서 문 앞을 막아선 누나 때문에 멈출 수밖에 없었 다. "비켜!" "내가 비키면 넌 어떻게 할건데?" "당연하잖아! 카렌을 다시 데려오겠어! 아직 인간들 마을까지 가지 못 했을 테니 충분히 데려올 수 있어!" "그렇다면 난 못 비켜!" "왜?!" 난 미칠 것만 같았다. 이러는 사이에도 카렌은 인간들의 마을로 향하고 있을 것이다. 해츨링인 나는 아직 부모님이 같이 가지 않으면 인간들 마을에 들어갈 수가 없다. 아니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일단 카렌이 인 간 마을에 들어가 버리면 찾기가 더 힘들어진다. 어떻게든 카렌이 이 산을 벗어나기 전에 빨리 가서 데려와야 하는데 누나는 왜 날 방해 하 는 거야?! "도대체 카렌이 떠난 이유가 뭔데? 누나가 이렇게 날 막아서는 이유는 누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기 때문이지?" "......." 누나는 대답이 없었다. 하지만 고개를 숙이고 내 시선을 피하는 걸 봐 서는 틀림없이 이유를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난 그 이유를 지금 듣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이유 따위는 카렌을 데려온 후 카렌에게 직접 들으면 돼.' 그렇게 생각한 나는 누나의 어깨를 잡고 옆으로 밀었다. 하지만 힘이 나보다 센 누나는 밀리지 않았다. 아마도 그 어느 순간보다 지금 누나 가 나보다 힘이 쎄다는 사실이 원망스러웠다. "제발 비켜 누나. 아니면 하다 못해 카렌이 떠난 이유가 뭔지 말이나 해줘. 내가 납득할 수 있게 말이야!!" 답답한 마음에 내가 소리를 지르며 누나 어깨를 붙잡고 흔들자 누나는 도리질을 쳤다. 그리고는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나에게 말했다. "납득이라고? 지금 너 상태에서는 무슨 말을 해도 납득하지는 못 할거 야. 그리고 이거 하나는 알아둬. 카렌은 테이 네가 싫어서 떠난 게 아 니야. 그럴 만한 사정이 있어. 제발 그걸 이해 해줘." "그럴 사정이란 게 뭔데?!" "그건.... 미안 말할 수 없어." "지금 장난 하자는 거야?! 이유도 모른 체 무슨 이해를 할 수가 있냐고 ?!" "미. 미안.... 미안해.... 테이야. 흑 미안해." 누나의 눈가에 이슬이 맺히나 싶더니 곧 고개를 숙인 체 흐느끼기 시작 했다. 난 잠시 충격에 빠져서 누나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처음 보았다. 누나가 이렇게 슬프게 우는 모습은.... "왜 우는 거야? 누나가 왜 우는 거냐고?!!" "미안해. 미안해 테이야. 미안해." "젠장! 뭐냐고? 왜 우는 거냐고?!! 도대체 내가 자고 있는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긴 거야!!" 정말로 미칠 것만 같은 내 심정을 대변하는 외침에 돌아온 것은 아예 큰 소리로 울음을 터트려 버린 누나의 울음 소리였다. 갑작스럽게 너무 나 많은 일이 생겨 버렸다. 이르 누나의 죽음. 카렌과의 헤어짐. 그리고 너무나 약하게 보이는 누 나의 지금 모습. 난 혼란스런 와중에 하나는 알 수 있었다. 카렌을 지금 당장 데리러 가지 않으면 영영 못 볼 수도 있다는 사실이 었다. "누나 부탁해. 이유는 나중에 들을게. 나 카렌을 데려오고 싶어. 어젯 밤에 약속했단 말이야. 어제 불행했던 것만큼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우리 드래곤이 약속을 어기면 안되잖아. 누나는 하나밖에 없는 동생을 거짓말쟁이 드래곤으로 만들고 싶은 거야? 그러니 제발 날 보내 줘." 누나가 울음을 터트린 덕분에 약간의 냉정을 되찾은 나는 더 이상 화내 지 않고 누나에게 애원을 하였다. 내 애원이 통했는지 정말 서럽게 울 던 누나는 조금씩 울음을 그치면서 고개를 저었다. "넌 지금 카렌을 데려 올 수 없어. 이유는 말해 줄 수 없지만.... 카렌 을 나도 붙잡으려고 했었어. 우리 드래곤의 이름을 걸고 맹세할 수 있 어. 하지만 잡을 수 없었어. 카렌은 단단히 각오를 하고 나간 거란 말 이야. 아무리 네가 가도 데려 올 수 없어." "그렇다면 억지로라도 데려오겠어!" 다시 발끈해서 소리를 지르는 나를 보면서 누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억지로 데려와서는? 네가 알면 안 되는 이유 때문에 떠난 여자를 억지 로 데려와서 어쩔 건데?" "카렌이 마음을 돌릴 때까지 옆에 놔두겠어! 억지로라도 행복하게 만들 어 주겠어!!" "이 바보야! 억지로 데려오면서 무슨 행복이야?! 카렌은 애완동물이 아 니야! 그건 이미 사랑도 뭐도 아무것도 아니야!! 그건 단지 이기적인 소유욕일 뿐이야!" "하, 하지만...." 무언가 변명 거리를 찾는 나를 누나는 강하게 끌어안았다. "지금은 아무것도 말해 줄 수가 없어. 하지만 이거 하나는 말할게. 결 코 카렌은 네가 싫어서 떠난 게 아니야. 제발 부탁이니깐 이성을 찾아. 부탁이니깐 평소의 약간은 멍청한 내 사랑스런 동생으로 돌아와. 현재 네 모습은 테이가 아니야. 내 동생이 아니란 말이야!" "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돼. 현재 네가 가장 하고 싶은 걸 해. 네가 지 금 가장 하고 싶은 것. 울어도 돼. 주위에는 아무도 없어. 그러니 울고 싶은 만큼 실컷 울어도 돼." "누나가 있잖아." 퉁명스럽게 대꾸하는 내 목소리는 이미 떨리고 있었다. 그러나 애써 숨 기고 싶지 않았다. 누나가 내 투정에 어떻게 대답해 줄지 알 수 있었 다. "바보. 난 너 누나야. 괜찮아. 누나 이외에는 아무도 없어. 울고 싶은 만큼 실컷 울어. 곁에 있어 줄게. 상냥하게 대해 줄게. 그러니 동생이 면 동생답게 이 누나에게 응석을 부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누나라면 그렇게 대답해 줄 것 같았고, 누 나는 내 생각대로 대답해 주었다. "나..나는..." "응." "구하고 싶었어. 이르 누나를 구하고 싶었어. 그리고 카렌도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어. 그런데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 이르 누나도 구하지 못 했고, 카렌도 행복하게 해주지 못했어. 웃기잖아. 뭐가 최강의 종족이 야? 뭐가 위대한 종족이야? 엘프 한 명도 살리지 못하고, 하프엘프 한 명도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는 내가 무슨 위대한 종족이야. 제이크 아저 씨가 이르 누나에게 해주었듯이 카렌이 죽는 그 순간까지 이르 누나가 죽는 그 순간까지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는데.... 그랬는데...." 난 제법 긴 말을 쉬지 않고 내뱉었다. 누나는 부드럽게 날 안은 체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넌 최선을 다했어. 그러니 괜찮아. 그리고 카렌을 행복하게 해주지 못 한 것도 너 탓은 아니야. 그러니깐 괜찮아. 너 자신을 자책하지마." "나..나는, 나는..... 흑... 으흑." 티아 누나가 상냥하게 대해 주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르 누나에게 그 리고 카렌에게 아무것도 못해 준 것 때문일까? 아마도 둘 다였을 것이 다. 난 참고 참았던 울분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결국 막을 수 없었다. 큰 소리로 울부짖으며 누나 품에 거세게 파고드는 나를 누나는 상냥하 게 안아 주었다. 그리고 내 귀에 속삭여 주었다. "실컷 울어. 그리고 난 다음에는 푹 자렴. 자고 일어나면 다 괜찮아. 잊지는 못하겠지만.... 후회는 남겠지만 그래도 수많은 다른 삶들이 널 기다리고 있어.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괜찮아 질 거야. 지금은 누나가 옆에 있어 줄게. 그러니 울고 싶을 만큼 실컷 울어." 누나의 위로를 들으며 난 울고 또 울었다. 이것이 해츨링 시절의 내 마지막 이야기였다. 누나 말대로 울고 싶을 만큼 울고 난 나는 누나의 권유로 동면을 시작했다. 기억력 좋은 드래 곤인 나는 잊지는 못할 것이다. 첫 외출 때 만난 엘프 이르 누나와 첫 사랑이었던 카렌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추억이 될 것이다. 가슴 아픈 추억이지만 그에 못지 않게 카렌과 지낸 날들은 행복했다. 좋은 추억만 생각하며 살기는 힘들겠지만 그렇다고 행복했었던 그 시간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행복했던 추억을 그리워하며 우는걸 불행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언젠가 이르 누나가 나에게 물어 보던 질문이 생각났다. 난 지금도 이 질문에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지금일 뿐이었다. 시간이 많이 지나고 난 뒤에는 난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았 다. 난 그때가 되면 뭐라고 대답을 할까? 티아와 테이가 처음으로 주위에 있던 소중한 이를 잃는 아픔에 울고 있 을 때 그 둘의 부모인 오스타인과 세이르아는 멀리서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우리 사랑스런 아이들이 너무 일찍 잃어버린다는 슬픈 감정을 알아 버 린 것 같아요." 세이르아가 울고 있는 티아와 테이의 모습을 보며 측은한 듯이 말하자 오스타인이 담담하게 말했다. "드래곤으로 태어났다면 언젠가는 한번은 거쳐가야 될 과정이야. 우리 아이들은 단지 너무 빨리 겪었다 뿐이지. 우리 아이들이니 잘 헤쳐 나 갈걸. 더구나 우리 아이들은 같은 날 태어난 쌍둥이니깐 유대감도 다른 형제 드래곤들보다 훨씬 깊을 테니 서로를 잘 감싸줄 수 있어. 난 우리 아이들을 믿고 있어. 그러니 허니가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래도요." "아니 우리 아이들은 분명히 괜찮아 질 거야. 하지만 지금은 저 일보다 더 큰 문제가 있어." "더 큰 문제요?" 오스타인의 더 큰 문제라는 말에 세이르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오스 타인을 쳐다보았다. 오스타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허니의 일족에게는 경사일 수도 있지만 우리 아이들에게는.... 시련이 될 수도 아닐 수도 있는 더 큰 문제...." 세이르아는 대답은 해주지 않고, 아리송한 말만 하는 오스타인을 불만 에 가득 찬 표정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예요?" 오스타인은 자신이 없다는 말투로 고개를 저으며 대답해 주었다. "확실한 건 아니야. 하지만.... 어쩌면 티아는...." "티아는?? 티아가 왜요?" ".......카이저 드래곤일지도 몰라." "!" 세이르아는 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놀랐는지 입만 크게 벌리고 있었 다. 오스타인은 그런 세이르아가 이해가 되었다. [카이저 드래곤] 여타 드래곤에 비해 엄청난 힘과 마력 그리고 영원의 시간을 삶을 살아간다는 가장 신에 가까운 드래곤. 그리노 대륙에는 이 신에 가까운 존재가 현재 일곱이었다. 그 중 여섯은 인간들의 나라 중 프론트 연합국에서 인간들을 지도하며 인간을 도와주며 그리고 외세의 침략에 힘을 빌려주며 인간들과 유사 인종들과 지성을 가진 몬스터들의 이상향의 국가를 건설했다. 그리고 그 여섯의 신룡들은 자신들의 자식 들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 중 그들의 힘을 이어받은 것은 유일하게 화 룡 가이라가의 자식이며 티아와 테이의 아버지인 오스타인뿐이었다. 그 런데 지금 오스타인의 첫 자식인 티아와 테이 중 티아가 자신의 피를 이어 받았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세이르아에게는 꽤나 충격적인 일이 라고 오스타인은 생각했다. "허니. .....허니의 놀란 마음은 인정해. 하지만.... 저기 뭐라고 할까 ?" 그렇게 생각한 오스타인은 세이르아를 위로할 셈으로 말을 꺼내긴 했지 만 위로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해요." "응?" 머릿속에서 필사적으로 위로의 단어들을 조합하던 오스타인은 세이르아 가 중얼거리는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세이르아를 쳐다보았다. "굉장해요." "응?" 세이르아가 중얼거리는 '굉장하다'는 말뜻이 이해가 가지 않아서 반문 한 오스타인을 세이르아는 반짝이는 눈으로 쳐다보면서 또박또박한 어 조로 말했다. "정말 굉장한 일이라고요. 티아가 카이저 드래곤이라면 전 신에 가까운 아이를 낳은 위대한 드래곤 어머니가 되는 거잖아요." "에?" "까악! 드래곤 역사상 전설이 될지도 모를 쌍둥이 남매 출산에 더구나 신에 가까운 아이를 낳다니... 드래곤 역사상 나보다 훌륭하고, 복 받 은 드래곤 어머니가 또 있을까요? 아아 달링의 어머니인 프르레이 님께 서 당신을 낳았을 때 수많은 여자 드래곤들이 부러움을 표했다던데... 아아 내가 달링 어머니만큼 유명해 진다고 생각하니 너무 기뻐요!" 오스타인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철없이 좋아하는 자 신의 아내를 사랑스런(?) 눈빛으로 쳐다 볼 수밖에 없었다. 실은 한심 하다는 눈으로 쳐다보고는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세이르아는 틀 림없이 삐쳐 버릴 테고, 그렇게 되면 세이르아의 기분을 풀어 줘야 될 고생을 생각하면 차마 한심하다는 눈으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아니 그전에 이런저런 이유를 다 따져 보아도 이미 그녀에게 콩깍지가 쓰인 오스타인으로서는 철없는 세이르아의 모습도 '역시 우리 허니는 귀여워' 라는 엽기적인 생각이 먼저 드는 그는 어쩔 수 없는 애처가였 다. 계속 ------------------------------------------------------------------ 드래곤 남매 15화 내 누나는 카이저 드래곤(1) 얼마나 잤을까? 그건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다만 잠이 더 이상 오지를 않았다. 꽤 오랫동안 잔 것 같았다. 그러나 난 일어나기 싫었 다. 그래서 오지도 않는 잠을 억지로 청했다. 눈을 감은 체 계속 잠을 청하다 보니 오지 않던 잠도 다시 오는 것 같았다. 난 그렇게 다시 동 면에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시간은 흘러갔다. 톡, 톡 누군가가 내 몸을 살며시 치고 있었다. 덕분에 내 잠은 확실히 깨 버렸 다. 하지만 여전히 일어나기가 귀찮은 나는 억지로 다시 잠을 청했다. 톡, 톡, 톡 여전히 누군가가 날 깨우기 위해 나를 치고 있었지만 난 그것을 완전히 무시했다. 그런데 갑자기 머리털이... 아니 지금은 본래 모습인 드래곤 상태니깐 머리털이 있을 리가 없고... 정정하자면 온 몸의 비늘이 곤두 서는 느낌이 들었다. 온 몸에서 내 머리로 보내는 위험신호에 난 벌떡 일어나서 후다닥 뒤로 물러섰다. 내 등에 레어의 벽이 느껴질 때까지 물러선 내가 본 광경은 막 들었던 발을 내리면서 웃고 있는 누나의 모 습이었다. "아! 일어났구나." "아! 일어났구나. 가 아니잖아! 내가 안 일어났으면 무슨 짓을 하려고 한 거야?" "당연하잖아. 차서 깨우려고 했지." "......." '도대체 동생을 구타하는 일이... 왜 당연한 일이 되야 하는 거냐고?!' 입 밖으로 꺼냈다가는 누나한테 개기냐는 이유로 맞을 말을 마음속으로 외치면서 난 이를 갈았다. "용건이 뭐야? 난 더 자고 싶으니깐 용건만 간단히 말해." 퉁명스럽게 내 뱉은 내 말에 누나는 아주 한심하다는 뜻이 가득 담긴 말을 해주었다. "더 자고 싶다는 놈치고는 이미 정신이 말똥말똥 하면서 무슨 잠을 더 잔다는 거야?" '누나의 그 구타 때문에 내 몸이 알아서 반응을 해 버리는 걸 난들 어 쩌라고?' 이 생각 역시 말로 할 수 없는지라 조용히 속으로만 생각하면서 억지로 나마 피곤한 얼굴을 지어 보였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난 지금 피곤해. 더 자고 싶으니깐 용건만 말해. " "너 말이야. 백년만에 만난 누나한테 태도가 너무 차갑잖아." "백년? 흠 내가 백년간 잤구나. 그럼 한 이, 삼 백년 더 자야 되겠어." 내가 말을 끝내자 누나는 한심해 죽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잠보같 이 굴어서 그런가? "이 바보야!!" "왜 소리부터 지르는 건데?!!" 갑작스런 누나의 외침에 난 귀를 막고는 마주 외쳐 주었다. 그러자 누 나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왜냐고? 네가 하도 한심해서 그런 다! 이 바보야!! 너 자기 전에 몇 살이었어?" "자기 전에? 아마 406살 정도였지? 어라? 가만 백년. 그렇다면 나 지금 506살... 나 성룡이 된 건가?" "잘 아네. 정확히는 넌 94년 동안 잤어. 그래서 오늘이 너랑 나랑 성룡 식 하는 날이다 이 바보야!" 그제야 난 누나가 날 깨우러 온 용건을 알았다. 성룡식 하는 날이니 손 수 날 깨워 주러 왔겠지. 그래도 누나라고 날 깨우러 온건 고맙지만... . "귀찮아." "에?" "귀찮다고, 어차피 성룡식 때는 우리 일족 어른들에게 인사하고 끝이잖 아. 그러니 누나가 내 대신 내 몫까지 인사하면 되잖아. 어차피 쌍둥이 라 모습도 똑같은데 하나만 가면 되잖아." 분명히 말하겠지만. 내가 위에 한말은 말이 안 되는 말이다. 하지만 난 진심으로 귀찮은 마음에 그렇게 내뱉어 버리고는 내 말에 얼어 버린 누 나에게 관심을 끊고는 다시 누워서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쿡. 생각 해보니 나는 자기 성룡식에 불참한 최초의 성룡이 되겠군. 뭐 그건 어찌되던 내 알 바가 아니고, 잠이나 자자.' 라는 생각을 하며 잠을 청할 때 난 화끈한 열기를 느낌과 동시에 다시 온 몸에서 보내는 위험 신호를 느끼면서 후다닥 일어나야 됐다. "누, 누나." "이 놈의 게을러터진 드래곤 놈아. 얌전히 갈래? 아니면 이 자리에서 누나 손에 죽을래?" 엄청나게 화가 났다는 저 무표정 참으로 오랜만에 본다 라고 반가워(?) 할 때가 아니었다. 난 누나 손에서 떠오른 새하얀 불꽃의 구체를 보고 는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야 됐다. "누나! 농담 한번 해본 거야! 그래 농담이야. 농담. 헤헤헤 재미없었어 ? 재미없는 농담해서 미안해. 미안하니깐 제발 그 [프레아] 좀 치워 줘 !" 여기서 잠시 설명을 덧붙이자면 누나가 지금 발동시킨 마법은 프레아라 는 불의 최상급 마법이었다. 상급 화염 마법인 [헬 파이어]가 대상이 죽을 때까지 불꽃으로 태우는 마법이라면 프레아는 대상을 일순간에 재 로 만들어 버리는 마법이다. 소멸에 가까운 그 위력에는 불꽃에 내성을 지닌 레드 드래곤이 아니라면 타 드래곤들은 그야말로 소멸이거나 목숨 을 위협받는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된다. 뭐 물론 실드 놔두고 그 마법을 그냥 곧이곧대로 맞아 줄 드래곤이 있다는 가정이 붙지만... 우리 남매는 냉기의 속성을 지닌 실버 드래곤이지만 레드 드래곤이며 카이저 드래곤인 아빠를 둔 탓인지 불의 마법에도 상당한 재능을 가지 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누나가 만든 저 프레아는 위력이 떨어지기는 커녕 최고의 폴 파워를 지니고 있는 게 마력과 열기로 똑똑히 느껴졌 다. 그 느낌이 나에게 주는 것은 죽음에 대한 위협이었다. 실드를 펼치 면 되겠지만... 지금까지의 누나와 내 마력의 차이를 생각하면 내가 10 0% 안전하게 저 프레아를 막을 확률은 0%이다. 아무튼 설명은 이걸로 끝이고 난 다시 누나에게 빌면서 목숨을 구걸하 였다. "누나! 귀여운 동생을 정말 죽일 생각은 아니지? 응? 누나. 제발 부탁 이니깐 그 위험한 마법 좀 치워. 내가 잘못했어. 누나 말이라면 뭐든지 잘 들을게. 그러니 제발 살려줘!" 마지막에 살려 달라는 내 외침에 누나는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다행히 도 프레아를 소멸 시켰다. "내가 설마 널 정말 죽이겠냐? 그냥 겁만 주려고 한 건데 살려 달라긴 뭘 살려줘? 으이그 역시나 겁쟁이 해츨링. 아니지 이제 성룡이니 겁쟁 이 드래곤이군." 젠장 정말 살기를 띠면서 프레아를 만들어 놓고는 뭐가 겁만 주려고 했 다는 거야? 나니깐 정신 차리고 살려 달라는 말이나 했지. 다른 드래곤 이라면 누나의 그 살기에 겁먹고는 그런 말도 못 했을걸. 이 세상에 동 생을 정말 죽일지도 모를 마법을 위협용으로 쓰는 드래곤은 누나뿐일 거야. 어라? 그러고 보니 방금 누나는 주문 없이 저 최상급 마법을 쓴 것 같은데... 설마 착각이겠지. 제 아무리 성룡이라도 고룡이 아니면 최상급 마법을 시동어로만 만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데.... 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누나가 나를 재촉했다. "뭐해? 엄마가 빨리 너 데려오라고 했단 말이야. 얼른 폴리모프 해." 누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바로 인간으로 변신했다. 나 역시 누나를 따라 서 변신했다. "자 가자." 내가 변신을 하자 누나는 바로 내 손을 잡고는 워프를 했다. 공간이 흔 들거리나 싶더니 내 눈앞에는 바로 익숙한 엄마 레어....가 아니네? "누나 여기가 어디야?" 난 주위를 둘러보며 누나에게 물었다. 지금까지 본적 없는 엄청나게 큰 레어였다. 실버 일족의 로드 샤드락 님의 레어도 크긴 했지만 지금 나 와 누나가 온 곳은 샤드락 님 레어의 세 배는 돼 보이는 큼직한 곳이었 다. "드래곤들의 성룡식은 이곳에서 한단다. 일종의 이벤트 회장이랄까? 뭐 그런 곳이지." 누나 대신 내 물음에 대답해 준 것은 엄마였다. "아. 엄...." 난 엄마를 부르려던 순간 문뜩 스쳐 지나가는 생각에 입을 다물었다. 성룡식 하는 이 마당에 아직도 엄마라는 것은 아직도 나 어린애입니다. 라고 광고하는 거나 마찬가지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남들에게 예의 바르고 교육 잘 받은 드래곤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호칭부터 바꾸기로 결심했다. "아. 어머니. 오랜만입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내가 예의를 차려서 인사를 하자 인사를 받던 어머니가 몸을 흠칫 하시 더니 부들부들 떠시다가 옆에 오신 아버지 품에 얼굴을 묻고는 대성통 곡을 하셨다. 이해할 수 없는 어머니의 행동에 내가 멍하니 그 광경만 쳐다보자 어머니의 등을 토닥여 주던 아버지가 나에게 말했다. "테이야 무슨 일이냐?" "내가 묻고 싶습니다. 아버지." 어라? 아버지도 충격 받은 얼굴로 날 쳐다보면서 아주 힘들다는 듯이 더듬더듬 입을 여셨다. "테, 테, 테이야. 우리가 너에게 뭐 서운하게 대한 적 있냐?" "네?" "어머니에 아버지라니 왜 그렇게 귀엽지 않게 구는 이유가 뭐냐?" "......." "엉엉 달링! 테이가 이제 다 컸다고 부모님은 필요 없다는 뜻으로 어머 니라고 부른 게 틀림없어요. 엉엉! 그렇게 사랑스럽고 귀엽던 우리 아 이가 저렇게 딱딱해지다니... 엉엉 난 이제 뭘 믿고 살아요!!" "......." 내가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정말이지 우리 부모님은 해도 너무했다. 내가 귀엽다는 사실은 인정하겠지만 - 인정하기는 싫지만 - 그래도 성 룡이 되는 이 마당에 아직도 그렇게 얘 취급하고 싶으신 걸까? 하지만 어머니가 서럽다는 듯이 우는데 효자로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하하하. 재미없었어요? 그냥 농담해 본 거예요. 농담. 네 엄마 농담이 라고요. 그러니 그만 우세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엄마는 언제 울었냐는 듯이 울음을 딱 그치고 보기 에도 무서울 정도의 속도로 얼굴 표정을 바꿔서 웃으시며 나를 쳐다보 았다. 여자들의 안면 근육은 대체 뭐로 이루어진 걸까? 시간 나면 한번 연구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아유. 요 떼쟁이 우리 막내가 농담을 다 하다니. 너도 이제 다 컸구나. 엄마 놀릴 줄도 알고." "하하하. 뭐 그거야...." '도대체 농담이랑 다 큰 거랑 무슨 관계가 있냐고요?!' 라고 마음속으로 외치면서 난 겉으로는 미소를 짓기 위해 무진장 애를 썼다. 이 짓도 생각보다 엄청 힘든 일이었다. 다행히 이런 거북한 상황 을 해결해 줄 드래곤이 뒤에서 엄마에게 핀잔을 주셨다. "도대체 얘가 성룡이 되는 마당에 넌 아직도 얘 취급이냐?" 할머니 감사합니다! 할머니의 핀잔 덕분에 내가 억지로 짓고 있는 미소 를 사랑스런 시선으로 보시던 엄마는 단박에 사나운 표정이 되어서 할 머니를 돌아보았다. 덕분에 난 겨우 경직된 얼굴을 풀 수 있었다. 하아 정말 피곤하다. "엄마는 또 왜 시비예요? 어미가 자식 사랑하는 게 그렇게 눈꼴 시러우 세요?" "그 자식이 이제 성룡이 되는데도 어머니라는 작자가 아직도 얘 취급 하는 게 못 마땅해서 그런 다." "그게 뭐 어때서요? 성룡이 되던 도로 해츨링이 되던 귀여운 내 자식이 라는 건 변함이 없는 건데 엄마가 자식 사랑하는 게 그렇게 큰 잘못이 에요?" "어이구. 귀여운 자식 사랑? 그렇게 말하는 어미가 얘 독립하자마자 남 편이랑 다시 신혼 살림 차리고, 얘들에게 신경 안 쓴 어미가 할 말이냐 ?" "그, 그건...." 할머니 말은 사실이었다. 그러니 변명할 말이 없는 엄마는 머뭇대다가 결국 '아앙! 달링!' 이라고 외치며 아빠 품에 안겨 우셨고, 할머니는 두 팔을 번쩍 하늘로 들고는 승리의 기쁨을 표현하셨다. 뭐 항상 말싸 움으로는 결말을 못 내시고 너 죽고 나 살자 식으로 싸우시던 두 분이 니 어쩌다가 한번 말로서만 이겼을 때의 그 기쁨이 큰 건 이해를 한다. 하지만 역시 보기가 좀 그렇다고 생각되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나 보다. "이봐 레일. 주위 눈도 좀 생각하면서 행동하라고." 뒤에 있던 할아버지가 씁쓸한 표정으로 할머니에게 말했다. 그제야 할 머니는 주위를 둘러보며 흥미 있는 표정으로 우리 가족들을 쳐다보는 다른 드래곤들의 시선에 얼굴을 붉히며 팔을 내렸다. 그런데 난 그것보 다 할아버지를 보면서 크나큰 놀라움을 경험했다. 그 놀라움은 곧 솔직 하게 내 마음을 말로 표현해 버렸다. "할아버지 살아 계셨네요. 정말 다행이네요." 그렇다. 제임스를 데려 올 때 할아버지에게 들었던 과거와 할머니가 말 한 과거가 좀 틀린걸 누나가 지적했을 때 할머니가 보였던 그 살기는 앞으로 할아버지를 영원히 못 보는 줄 알았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렇 기 때문에 지금 할아버지가 내 앞에 나타나신 게 나에게는 정말 큰 놀 라움이었다. 할아버지는 내 말에 쓴웃음을 지으며 '간신히' 라는 짧지만 아주 심오 한 뜻(?)을 가진 말만 한마디 하셨다. 아무튼 할아버지 말에 주위를 다 시 한번 둘러볼 여유가 생긴 나는 머리 색깔이 아주 가지가지인 인간 및 유사 인종들로 변한 드래곤들을 보았다. 머리색이 가지가지 인걸로 보아 아마도 다른 일족의 드래곤들도 모인 것 같았다. 신기한 마음에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는 나에게 누나가 내 궁금증을 알아챘는지 대답해 주었다. "이것도 전통이래. 옛날에는 해츨링이 귀했으니깐 그 해츨링이 무사히 성룡이 된 것을 온 일족이 다 축하해 주었다고 하더라. 지금이야 해츨 링들이 넉넉하니깐 이런 행사를 안 해도 되겠지만 그래도 전통이라 다 들 와 주신 거래." "헤에? 그런 거야?" 난 족히 이, 삼십 명은 되어 보이는 인간 및 유사 인종으로 변한 드래 곤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일 때 한 명의 검은머리에 몸 색깔도 검은 엘 프 한 명이 우리에게 걸어왔다. 가슴과 유연한 허리 라인을 엄청 강조 한 섹시한... 아니 솔직히 말하면 엄청 야한 옷을 입은 검은 엘프는 거 칠 것 없이 우리 남매에게 걸어왔다. 아마도 저게 다크 엘프라고 부르 는 종족인가 보다. 책에서만 보았던 다크 엘프를 - 속(?) 안은 드래곤 이지만 - 처음 보는 나는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자 다크 엘프로 변 한 드래곤인 그 여자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뭘 그렇게 쳐다보니? 드래곤 부끄럽게 시리." "예? 아. 죄, 죄송합니다." '부끄러우면 왜 그런 야한 옷을 입은 거야?' "변태 드래곤." "아니야!" 누나가 툭 내뱉은 말에 내가 발끈해서 소리지르자 누나는 흥흥거리면서 고개를 팩 돌려버렸다. 아마도 블랙 드래곤이라 추측되는 그 여자는 우 리 남매를 이모저모 뜯어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헤에. 쌍둥이 드래곤이라고 해서 뭐 특별할 줄 알았는데 다른 드래곤 이랑 별 다를 게 없어 보이네. 본체 모습이 특별 한 건가?" "......." "그래. 어차피 성룡식이 진행되면 본체 모습으로 돌아가야 되니깐 지금 폴리모프 좀 풀어 봐라. 특별 한 것 있나 찾아보게." "......." "우리는 구경거리가 아니야!" 내가 황당해서 아무 말도 못하고 있을 때 누나는 그 블랙 드래곤 -이라 고 추측되는 - 여자에게 소리를 빽 질렀고, 블랙 드래곤 여자는 얼굴을 찌푸렸다. "왜 초면부터 반말이니? 내가 너희들보다 더 나이가 많은데." "먼저 예의 없이 군건 댁이잖아. 우리가 뭐 인간들의 몬스터원의 구경 거리라도 되는 줄 아는 거야?" "누나 몬스터원이 뭐야?" 누나는 그 블랙 드래곤 여자와 눈싸움을 하면서 내 질문에 대답해 주었 다. 내가 자고 있을 때 외출 금지가 풀린 누나가 심심해서 엄마를 졸라 서 한번 더 인간들 세상에 외출을 갔었는데 데스타 제국이라는 나라의 축제에 갔다가 지능이 없고, 비교적 안전한 몬스터들을 잡아서 우리에 넣고 인간들에게 구경시켜 주는 몬스터원이라는 곳을 구경했단다. 그리 고 자매품(?)으로는 동물원이라는 것도 있었다는 말을 덧붙여 주었다. "그거 재미있겠다." "뭐 별로 특이하게 볼 거는 없더라." 나와 이런 대화를 나누면서도 누나는 끈질기게 블랙 드래곤 여자와 눈 싸움을 계속했고, 결국 승리했다. 블랙 드래곤 여자는 눈을 돌리고는 이를 갈았고, 누나는 팔짱을 끼고 거만한 자세로 승리자의 여유를 보였 다. 하긴 태어난 지 이틀만에 로드 샤드락 님과 눈싸움을 했던 누나가 질 리가 없지. 블랙 드래곤 여자는 다시 한번 이를 갈고는 누나를 똑바 로 쳐다보면서 또박또박 말했다. "내 이름은 유이르나. 다음에는 이대로 끝나지는 않을 꺼다. 그러니 내 이름을 똑똑히 기억해 둬." "흥. 기억하기 싫은데 어떡하지?" 블랙 드래곤 여자 아니 유이르나는 뭔가 사납게 외치려다가 우리 주위 에 계신 어른들을 보고는 조용히 어른들에게 인사만 하고는 그대로 뒤 돌아서 가 버렸다. "저 애 스칼라 딸 맞지?" "그래요. 근데 뭐 하러 온 거죠?" "모르겠어요." 엄마와 아빠 그리고 내가 허망한 음성으로 말할 때 누나는 코웃음을 치 며 말했다. "훗. 유이르나라고? 다음에는 좀 더 눈싸움을 갈고 닦아 왔으면 좋겠 군. 오랜만에 좋은 라이벌을 만난 것 같아." 엄마와 아빠 그리고 나는 누나를 황당한 시선으로 바라볼 때 우리 머리 위에서 조심스런 음성이 들렸다. "저기... 이제 성룡식 시작해도 될까?" 난 놀라서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리니 그 곳에는 씁쓸한 웃음 을 짓고 있는 실버 일족 로드 샤드락 님의 모습이 보였다. "이제야 날 바라 봐주는구나. 저기 드래곤들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면 안되거든. 그러니 슬슬 성룡식 시작 하자구나." 샤드락 님 말에 주위를 둘러보니 처음에는 흥미 있는 얼굴로 우리들이 노는(?) 걸 지켜보던 드래곤들이 '식 언제 시작하는 거야?' 라는 짜증 난 표정들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쩝 너무 오래 놀았나? 아무튼 샤드락 님의 말씀대로 성룡식이 시작되었 다. 계속 ------------------------------------------------------------------ 드래곤 남매 15화 내 누나는 카이저 드래곤(2) 식은 내 생각대로 정말 간소하게 진행되었다. - 그동안 들은 게 많았 다. - 샤드락 님의 일장 연설을 시작으로 주위에 우리가 성인이 되었다 는 것을 선포하고는 우리 앞날에 창조신의 가호가 함께 하기를 빈다는 말을 끝으로 성룡식은 끝이었다. 그리고 우리 일족의 어른들과 다른 일 족의 어른들이 축하한다는 말과 충고 등을 해주시고는 정말 끝이었다. 시작부터 끝까지 단 십분도 걸리지 않는 식을 위해서 모인 분들이 대단 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나뿐일까? 뭐 하긴 전에 인간들의 축제 때 보았 던 볼 것 하나도 없으면서 시간만 질질 끄는 기원제에 비해서 간단해서 좋긴 좋았다. 아무튼 끝났다는 생각에 난 인사를 드리고 레어로 돌아가서 더 잘 생각 을 했었는데 샤드락 님의 말씀이 다시 시작되어서 난 의아해 하며 그 자리에 가만히 설 수밖에 없었다. "오스타인의 말을 들었을 때도 반신반의했었는데 정말이었구나." '뭐가요?' 라고 끼어 들고 싶은걸 꾹 참고 샤드락 님의 말을 경청하였다. 우리 아 빠가 샤드락 님의 말씀에 고개를 끄덕이자 샤드락 님은 한숨을 푹 쉬셨 다. "어찌 보면 이것은 우리 실버 일족의 경사 일수도 있으나 본인에게는 어떤 일이 될지..." 계속해서 이해 못할 말만 하는 샤드락 님이 난 이해가 가지 않아서 물 어 보고 싶은걸 참고 또 참느라 무진 애를 써야만 했다. 난 어디까지나 예의바른 드래곤이 될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샤드락 님 아까부터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아니나다를까? 누나는 더 참지 못하고 샤드락 님의 말씀을 듣다 말고 따져 들었다. 훗 역시나 예의 없는 누나라니깐. "그래. 본인의 일이니깐 궁금하기도 하겠지. 그럼 빙빙 돌려 말하지 않 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주마." 샤드락 님이 마음씨가 좋으셨으니 망정이지 저기 레드 드래곤 로드 님 이었다면 누나는 뼈도 못 추렸을걸. 뭐 아무튼 나 역시 궁금하기는 궁 금했기에 샤드락 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믿어지지 않는 말 을 들었다. "실버 드래곤의 쌍둥이 아이 티아여. 너는 카이저 드래곤이란다." 난 내가 잘 못 들었거나 샤드락 님이 잘 못 말했기를 빌었다. 그러나 내 귀에는 샤드락 님의 마지막 말인 누나가 카이저 드래곤이라는 말이 자꾸 반복되어서 들렸다. "가장 신에 가까운 힘과 마력, 그리고 영원의 시간을 산다는 카이저 드 래곤은 우리 실버 일족에서만 없었단다. 그런데 이번에 티아 네가 카이 저 드래곤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단다." "즈..증거는요?" 누나는 믿어지지 않는 다는 말투로 더듬더듬 간신히 말했다. 그러자 아 빠가 폴리모프를 풀고는 누나 앞에 섰다. 그러고 보니 아빠의 본체 모 습을 난 처음 보는 것이었다. 아빠는 레드 드래곤답게 아주 새빨간 몸이었고.... 그리고 음.... 조금 안 좋은 표현을 하자면 우락부락한 모습이었다고나 할까? 아무튼 유연 한(?) 몸매가 실버 드래곤의 특징이라면 보는 이로 하여금 압도하는 모 습을 자랑하는 게 아빠 모습이었다. 아빠는 드래곤 모습으로 돌아오고 나서 우리들에게 이마를 가리키며 말 했다. "이거 보이지?" 아빠가 가리킨 곳은 이마 정 중앙이었는데 그 곳에는 육각형의 작은 뿔 이 하나 솟아나 있었다. "그게 뭐예요?" "이게 바로 카이저 드래곤의 증거인 [육망성의 뿔]이란다." "육망성의 뿔? 잠깐만요. 그럼 설마...." 누나가 자신의 이마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나도 궁금해서 누나의 이 마를 살펴보았다. 누나의 이마에는 아빠보다 작지만 그 육망성의 뿔이 란 게 분명히 나 있었다. 누나는 만지는 걸로 확인이 안 되는지 나에게 물었다. "테이야. 저 뿔 나한테 있니?" "......응. 있어." 누나는 증거라고 할 수 있는 것을 확인하고도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 역시 눈 앞에서 증거를 보고도 도저히 믿지를.... 가만... ... "아빠." "왜 그러니? 테이야." "카이저 드래곤은 가장 신에 가까운 힘과 마력을 지니고 있다고 하셨죠 ?" "그래 거기에다가 무한의 삶을 살수 있는 존재란다." "그럼 해츨링 때부터 무식하... 가 아니고 여하튼 힘과 마력이 타 드래 곤에 비해서 센가요?" 난 무식하게 힘이 쎄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내 뒤에서 '쓸데없는 소 리하면 알지?' 라는 누나의 무언의 협박에 급히 말을 정정해서 물어 봤 다. 아빠는 내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내 생각이 맞다는 것을 확인 시켜 주었다. 크윽 역시 그랬구나. 저 누나가 왜 그렇게 힘이 무식하게 쎈지 이제야 이유를 알 것 같다. 동시에 나는 평생을 가도 누나를 결코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대답이나 마찬가지였다. "테이야 왜 그러니?" 내가 좌절감에 바닥에 주저앉아 눈물을 삼키자 걱정이 된 엄마가 내 옆 에 와서 안부를 물었지만 난 너무나 크나큰 충격에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젠장 엄마! 왜 누나만 아빠 피를 이어받게 낳으신 거예요? 라고 소리치 고 싶은 기분을 억누르고 난 손을 저으며 괜찮다는 뜻을 간신히 표현하 였다. 그런데 내 이 모습을 보고 한 소리를 할 줄 알았던 누나가 너무 나 조용했다. 난 아무 일도 없는 것이 없는 것대로 불안해서 간신히 몸 을 추스르고 일어나서 누나를 쳐다보았다. 누나는 아까 나한테 이마를 보여주던 그 자세 그대로 가만히 굳어 있었 다. 아니 자세히 보니 몸을 부들부들 떨며 입으로 뭔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럴 수가... 내가 카이저 드래곤이라니... 신룡 님들과 똑같은 카이 저 드래곤이라니... 이럴 수가......" 라는 말만 계속 반복하고 있었다. 그런 누나가 걱정이 되었는지 아빠와 샤드락 님이 누나 곁에 가서 위로를 해주었다. "너에게는 갑작스런 사실이라 충격이 되는 건 이해를 한다. 하지만 티 아야 카이저 드래곤이라고 해서 그렇게 특별한 것은 없단다." "그래 그리고 카이저 드래곤으로서 제 임무를 다하려면 말이다...." "...해요." "에?" "응?" "굉장해요!" "......." "......." 갑작스런 누나의 '굉장해요!' 라는 외침에 일순간 아빠와 샤드락 님의 할 말을 잃고 얼어 버리셨고, 두 분이 얼던 말던 누나는 두 손을 맞잡 고 하늘을.... 아니 레어 천장을 보면서 감격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아아. 쌍둥이 드래곤이라서 힘이 쎄구나 했었는데... 내가 신룡이라 니... 그런 대단한 분들과 내가 동격이라니... 정말 굉장해요. 이것이 야말로 창조신의 은혜가 아니고 뭐겠어요?" '은혜라니.... 저주지 나에게 있어서는 저주야!' "저, 저기 티아야." "엄마 나 신룡이래요. 엄마의 자랑스런 딸이 신룡이 됐어요!" 저 철부지 누나를 대체 무슨 수로 말려. 저렇게 까불다가 엄마한테 또 잔소리 좀 듣겠군. 여자가 조신해야 되느니 뭐라느니 하는 잔소리... 그때는 나도 같이 들었었는데 정말 고문이었다. 잠도 안 주무시고, 했 던 이야기를 약간 말만 바꾸어서 끊임없이 하시던 엄마의 그 끔찍한 잔 소리를 생각하면 지금도 오한이 든다. '쩝 엄마가 누나에게 다가가네. 나까지 휘말리지 않게 멀리 떨어지자.' 그러나 기대했던 엄마의 잔소리는 시작되지 않았다. 잔소리는커녕... "그래 정말 장하다 내 사랑하는 딸아." 어라? 저게 아닌데...... "엄마. 절 이렇게 훌륭하게 낳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누나가 그렇게 말하며 엄마에게 안기자 엄마는 감격의 눈물이라고 생각 되는 눈물을 흘리시면서 누나를 꼬~옥 안으셨다. 그 황당한 광경을 보 면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아니 한마디 말이 나오긴 나왔다. 그런데 아빠와 샤드락 님이 나와 동 시에 같은 말을 했다. "모전녀전." 그 말을 내 뱉고는 그 분들과 나는 서로를 쳐다보고는 누가 먼저랄 것 도 없이 한숨을 푹 쉬었다. "테이야! 이 누나가 카이저 드래곤이래!!" 어느새 엄마 품에서 벗어난 누나가 나에게 달려오며 외쳤고, 난 한심해 죽을 것 같았지만 그대로 진실을 말했다가는 한심해 죽기 전에, 누나 손에 맞아 죽을 염려가 있기 때문에 얼굴 한 가득 미소를 지으며 말했 다. "누나 정말 축하해! 누나는 역시 대단한 드래곤이야!" 그러나 속으로는... '젠장 이것으로 이 대륙은 망했군. 기회를 봐서 동방 대륙으로 튀어야 겠다.' 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겉모습은 정말 축하한다는 미소를 얼굴 한 가득 담은 상태였다. 이 정도면 나도 훌륭한 포커 페이스를 유지한 셈 이겠지? "테이야." "응. 누나." "넌 어떻게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말해도 속마음을 완전히 못 숨기니? 그 이 대륙 망했다 라는 표정 좀 지워라." 생글거리며 말하는 누나 말에 난 미소를 지은 그 모습 그대로 얼어 버 릴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내가 누나 말대로 정말 속마음 숨기는데 미숙한 거야? 아니면 저 누나가 남에 속마음 읽는데 도가 튼 거야? 아무튼 그 문제는 일단 절로 치워 두고... "저기 누나." "응?" "복부야? 아니면 얼굴이야? 날개는 제발 건드리지 말아 주라." "뭐가?" "때릴 때 말이야. 미리 힘 좀 주게." 이제 구타에 익숙해지다 못해 미리 준비까지 할 수 있는 여유까지 지니 게 된 나는 어떤 의미로는 대단해졌다.... 고 생각한다. 아무튼 내가 죽을상을 하고 누나의 기습적인 구타에 대비를 할 때 누나는 잠시 뭔가 를 생각하더니 손을 탁 치는 것이었다. '부. 불안하다 저 누나 또 무슨 엉뚱한 생각을 한 거야?!!' 내 불안한 마음에도 아랑곳없이 누나는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빚으로 달아 두자." "에?" "빚 말이야. 넌 이제 나한테 한번 빚진 거니깐 앞으로 내 부탁 한번은 반드시 들어줘야 되는 거야. 어때 이걸로 넘어가 주니 고맙지?" "차라리 날 때려 줘!!!" 누나에게 빚을 지다. 어떻게 생각하면 안 맞고 넘어가는 거니깐 다행이 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 누나가 나에게 부탁이 아닌 그 어떤 명령을 내리느냐에 따라서 차라리 지금 맞고 치우는 게 더 다행 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가 처음으로 날 때려 달라는 엽기적인 부탁을 했지만 누나는 못 들은 체 했다. "자 그럼 너 나한테 빚진 걸로 친 거다. 담에 이 누나 부탁 잘 들어줘 야 돼. 오호호호호." 저 웃음소리조차 지금의 나에게는 엄청나게 불길한 웃음으로 들렸다. "저기 샤드락 그 이야기는 언제 할건가?" 저쪽에서 우리 가족의 황당한 행동들을 멍하니 구경하던 골든 드래곤 로드 카알로드 님이 아직까지 얼어붙어 있던 샤드락 님에게 말을 건네 자 그제야 겨우 해동(?)이 된 샤드락 님이 정신을 차리고는 누나를 불 렀다. 누나는 지금 다시 인간으로 폴리모프를 해서 주위 드래곤들의 손 을 잡고 '나 카이저 드래곤이래요!' 라는 자랑을 하고 다니는 중이었 다. 그리고 그 자랑에 당한 드래곤들은 하나같이 이 그리노 대륙의 앞 날을 걱정하는 모습이거나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얼어붙은 모습이 되고 있는 중이었다. 아직 안 당한 드래곤들은 샤드락 님이 누나를 부르자 천만다행이라는 표정들로 가슴을 쓸어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누나가 다시 드래곤 모습으로 돌아와서 샤드락 님 앞에 서자 샤드락 님 은 간신히 근엄한 모습을 되찾으시고 누나에게 말했다. "실버 드래곤의 아이이자 창조신에 가장 가까운 카이저 드래곤 티아루 아여." 방금 전까지 마구 까불어 대던 누나도 샤드락 님이 근엄하게 나오자 긴 장이 되었는지 자연스레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네. 위대한 실버 드래곤의 로드 샤드락이시여." "너에게 카이저 드래곤과의 삶과 보통 드래곤의 삶. 둘 중에 하나를 선 택하게 할 생각이었지만 아까 너의 행동으로 카이저 드래곤이 되고 싶 어하는 걸 잘 알 것 같구나." '어라? 저 육망성의 뿔만 있으면 카이저 드래곤이 되는 거 아니었나?' 이런 나의 의문은 누나도 느꼈는지 당혹스런 얼굴로 샤드락 님을 쳐다 보았다. 샤드락 님은 근엄한 얼굴이시지만 자상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 다. "육망성의 뿔은 단지 카이저 드래곤으로서의 증거일 뿐. 진정한 카이저 드래곤이 되려면 [각성]을 해야 된단다. 너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단다. 카이저 드래곤으로 살아 갈 건지 아니면 너의 아버지처럼 보통 드래곤 의 삶을 살지는 너의 선택에 달렸다." 난 샤드락 님의 설명에 내 옆에 아빠를 쳐다보면서 저게 무슨 소리예요 ? 라는 시선을 팍팍 주었다. 아빠는 곧 내 귀에 대고 작게 속삭여 주셨 다. "카이저 드래곤의 표식인 육망성의 뿔이 나 있다고 신에 가까운 힘과 마력과 영원한 삶이 그냥 떨어지는 것이 아니란다. 스스로 카이저 드래 곤임을 자각하고 [각성]을 해야만 진정한 카이저 드래곤이 되는 것이란 다. 각성을 하지 않아도 보통 드래곤보다 힘과 마력에서는 앞서지만 일 단 영원의 삶은 살수 없고, 신에 가까운 힘은 포기해야 된단다." "그럼 아빠는...." "그래 아빠는 카이저 드래곤의 영원한 삶보다는 너희 엄마와의 행복한 삶을 택한 거지. 그렇지 허니?" "네 달링. 전 그것 때문에 당신을 더욱 사랑해요." "난 날 받아 준 허니를 허니보다 더욱 사랑해 줄게." "그럼 저는......" 뭐 이 뒤는 사랑에는 장소와 시간을 따지지 않는다는 우리 부모님의 철 학(?)에 따라 차마 옆에서 듣기 힘든 낯뜨거운 말들이 오가고 있기 때 문에 그냥 넘어가겠다. 난 슬슬 옆으로 물러서서 완전히 자신들만의 세 계에 빠진 두 분 곁에서 물러났고, 다시 누나와 샤드락 님 쪽으로 시선 을 돌렸다. 샤드락 님은 누나에게 지금 막 아빠가 나에게 말해 줬던 내 용을 말해 주는 중이었고, 누나는 고민하는 표정으로 그 말을 듣고 있 었다. 이윽고 설명은 끝이 나고 샤드락 님은 마지막에 신룡 님들을 만 나 볼 것을 권하셨다. "신룡 님들을요?" "그렇단다. 너는 각성은 하지 않았지만 카이저 드래곤이라는 증거를 타 고 태어났다. 그리고 실버 일족에서는 카이저 드래곤이 없었기 때문에 너의 탄생은 우리 드래곤 일족에서도 그리고 나아가 이 대륙에서도 중 요한 일이란다. 그러니 그 분들에게 해답을 구하는 방법도 괜찮겠지. 하지만 어디까지나 최후에 선택을 하는 것은 바로 너라는 것을 잊지 말 기 바란다." "네. 항상 기억하고 있겠습니다." 샤드락 님은 미소를 지으며 누나의 머리에 손을 얹고 창조신의 가호를 빈다는 말을 하셨다. 그리고 주위를 돌아보며 성룡식이 완전히 끝났음 을 선포하였고, 다른 드래곤들은 하나, 둘 워프로 자신들의 레어로 돌 아갔다. 그리고 우리 가족만 남게 되었을 때 할아버지가 말씀 하셨다. "지금 신룡 님들에게 갈 거라면 이 할아버지가 워프로 보내 주마. 원한 다면 이 할아버지가 같이 따라도 가 주마." "내가 원한다기보다는 할아버지가 따라오고 싶어서 안달 나신 것처럼 보이시는데요." 악의는 절대 없다는 미소를 지으며 누나는 할아버지를 얼려 버리고는 아직 남아 있는 각 일족의 로드 님들에게 물었다. "지금 당장 가야 되나요?" "아니 천천히 가도 된단다. 왜 묻는 거니?" "그럼 천천히 여행을 하면서 프론트 연합국으로 가도 상관없는 건가요 ?" "상관없단다. 아니 오히려 여행을 해서 프론트 연합국으로 가는 것이 더 낫겠구나. 여행을 하다 보면 뭔가 느낄 수도 있을 거다." 샤드락 님의 대답에 누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를 돌아보았다. 난 뭔 지 모를 오한이 드는 것을 느꼈다. "들었지? 테이야 여행 준비하자." "가..같이 가는 거야?" "당연히 같이 가는 거지." 나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다. 계속 ------------------------------------------------------------------ 드래곤 남매 15화 내 누나는 카이저 드래곤(3) 분명히 말해 두지만 누나가 같이 가자고 했다고 난 바로 '응 알았어. 준비할게.' 라고 대답하지는 않았다. 반항은 해 보았다. 하지만.... "너 나한테 빚 있잖아. 잔말말고 얼른 준비해!" 라는 누나의 호통에 울며 겨자 먹기로 준비를 하였다. 크흑 내 이럴 줄 알았어. 차라리 그때 한 대 맞고 아니 몇 대 맞고 치우는 게 훨씬 나았 는데.... 난 혹시 누나가 이렇게 될 거라는 걸 미리 예상하고 내가 빼도 박도 못 하게 함정을 파 놓은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여행 준비를 하였 다. 검은 속성 마법검 세트 중에서 한참을 고르고 골라서 결국 나한테 가장 잘 맞는 냉기의 마법이 걸린 검을 골랐고, 간단한 여행용 가죽 갑옷을 입고, 그 위에 여행용 셔츠를 입었다. 배낭에 각종 식기와 침낭과 여행 용 옷을 싸고는 보석 몇 개를 챙겼다. 금화보다는 보석이 여행을 할 때 편하다는 아빠와 엄마의 충고대로 챙긴 것이다. 그렇게 챙기고 나서 내 키지 않는 걸음으로 누나 레어로 가자 누나는 레어 입구에 앉아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뭐 하느라 이렇게 늦었어?" "이것저것 필요한걸 챙기느라... 어? 누나. 누나 짐은 어디 있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내 거는 당연히 네가 챙겨야지." "......." "뭐해? 내 짐은 저기 입구에 놔두었으니깐 얼른 가서 챙겨 와." '도대체 누나 짐을 내가 챙기는 게 왜 당연한 일이 되야 하는 거냐고! !' 그렇게 난 누나 짐까지 챙겨서 간편하게 마법 지팡이 하나 챙긴 누나 뒤를 따라야 됐다. 출발부터 심상치 않은 이 여행을 시작하며 난 첫날 숲에서 야영을 할 때 기도를 하였다. '제발 이 여행에서 살아만 돌아오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그 다음날부터 아침에는 '오늘도 무사히' 밤에는 '오늘 하루의 안전을 감사 드리며 내일도 무사히' 라는 기도를 빠짐없이 드리게 됐 다. 하지만 그 기도는 단 삼일만에 '오늘 하루는 위험하게 지냈지만 제 발 내일은 무사히' 라는 기도로 바뀌게 되었다. 삼 일째 아침 타다 남은 장작에 누나는 얼음의 하급 공격 마법인 [아스 ]로 불을 끄고 난 짐을 챙기고 어제 밤에 먹다 남은 고기와 물로 간단 한 아침을 때우고 길을 나섰다. 그런데 고블린 떼와 마주치게 된 것이 다. 야행성인 고블린을 아침부터 만나는 것은 복권 당첨되는 확률이라 고 나중에 인간들에게 듣게 되었다. 뭐 그건 그거고 아무튼 십여 마리 의 고블린들은 야간 약탈을 하고 돌아가는 중이었는지 손에 인간들의 물건으로 보이는 물건들을 들고 있었다. 오로지 약탈과 살육만을 삶의 보람으로 느낀다는 고블린들은 손에 든 물건들이 어디에 쓰는지도 모르 면서 재미로 집어 왔다는 느낌이 팍팍 드는 물건들만 들고 있었다. 뭐 간혹 인간들의 무기인지 롱소드와 갑옷 같은 것을 쓸 만한 물건들도 있 었지만 인간의 절반 정도의 크기인 고블린들에게 롱소드는 장식품이나 마찬가지였다. 결국 고블린들에게는 아무짝에도 쓸모 없어 보이는 물건 들을 자랑스럽게 들고 가던 고블린들이 누나와 나를 보더니 실실 웃으 며 우리를 포위했다. 난 '아침부터 재수 없네' 라는 생각을 하며 드래곤 피어를 쓸려고 했 다. 그런데 내가 드래곤 피어를 쓰려는 것을 눈치챈 누나가 날 제지했 다. "잠깐 테이야." "왜?" "정식으로 유희나 마찬가지인 여행이 시작되었는데 꼭 드래곤 식으로 싸워야겠니? 너 용사가 되고 싶다고 했잖아. 그런데 무슨 드래곤 피어 냐?" 듣고 보니 누나 말이 맞았다. 그래서 난 드래곤 피어 대신 냉기의 검을 빼 들었다. 예전에 누나에게 빼앗겼던 [시바의 눈물] 이라는 최고의 냉 기 마법에 적의 공격용 마법에 자동으로 반응해서 실드까지 펼쳐 주는 검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검을 휘두를 때마다 냉기를 주위에 뿌려서 적의 움직임을 둔하게 만드는 이 검은 내 빠른 스피드와 합쳐져서 무서 운 위력을 내는 무기이다. 그래도 역시 시바의 눈물은 아깝다. 어차피 그 검을 가지고 있던 제이크 아저씨는 이미 죽었으니 나중에 그 검을 갖고 있는 인간을 찾아서 도로 가져와야지. "지원 필요하니?" "아니." 누나는 어차피 이 정도의 고블린들은 나에게 문제가 안 된다는 것을 알 지만 그래도 예의상 물어 본 것 같았다. 그래서 난 괜찮다는 뜻에 내 사냥감을 빼앗지 말아 달라는 뜻으로 거절하자 고개를 끄덕이며 내가 내려놓은 배낭에 걸터앉아서 턱을 괴고 아주 편한 구경 자세를 잡았다. 고블린들은 누나의 행동을 자신들을 깔보고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는 지 - 실제로 깔보고 있었다 - 흥분을 하면서 일제히 덤벼들었다. 난 누 나에게 조잡한 창을 찌르는 고블린의 공격부터 막고 난 뒤에 몸을 회전 하면서 검을 휘둘러 녀석의 조잡한 창을 세 동강으로 내주고 그 기세로 밀고 들어가 그 고블린의 가슴을 찔렀다. 마법의 검답게 별로 힘을 주 지 않아도 검은 손쉽게 고블린의 가슴에 들어갔고, 고블린은 몸이 얼어 붙는 것 같은 - 실제로 이 검은 시바의 눈물보다는 못하지만 적을 얼리 는 기능도 있다 - 충격에 비명도 못 지르고 그대로 죽어 갔다. 난 검을 죽은 고블린의 몸에서 빼 들면서 재빨리 두, 세 걸음 물러났다. 그렇게 포위망을 뒷걸음치며 벗어나면서 검을 휘둘러서 두 놈을 더 없애고, 한 놈에게 깊은 상처를 주어서 녀석들의 공격을 나에게만 집중하게 만들었 다. 생각대로 놈들은 이제 완전히 누나에게서 나에게로 검들을 돌렸고, 난 최후의 결정타로 검을 어깨에 걸치고, 손을 까닥거리는 도발로 놈들에 게 공격을 유도했다. 다시 한꺼번에 덤벼드는 고블린들의 공격을 나는 현란한 몸놀림으로 피하는 동시에 빈틈을 보이는 고블린들에게는 가차 없이 검으로 꽂고 베었다. 결국 얼마 지나지도 않아서 주변은 고블린들 의 시체로 뒤덮였고 난 가볍게 검을 흔들어서 고블린들의 피를 털어 내 고, 헝겊을 꺼내서 나머지 피를 닦아 낼 때 누나가 박수를 두어 번 치 면서 일어났다. "와! 느림보 드래곤답지 않게 굉장히 빨리 끝냈다." "그거 칭찬이야? 비꼬는 거야?" "당연히 칭찬이지." 그렇게 말하는 누나의 얼굴은 악의 100% 없음의 웃음을 짓고 있었다. 에휴 내가 차라리 말을 말아야지. 누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고블린들이 가져온 물건들을 살피며 말했다. "정말 쓸데없는 것들만 가져왔네. 책으로만 보던 고블린들의 멍청한 습 성을 실제로 보게 되니 정말 할말 없다." "누가 아니래." "그것보다 이 녀석들이 이런 물건들을 가져왔다는 것은 근처에 인간들 의 마을이 있다는 거겠지?" "그렇겠지." 난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제법 큰 나무를 발견하고는 재빠르게 점프 해서 나뭇가지들을 밟으며 나무의 꼭대기로 올라갔다. 높은데서 주위를 둘러보자 서쪽에 인간들의 마을이 보였다. 그렇게 크 지도 작지도 않은 마을이었다. 내가 나무에서 내려오자 누나가 곧 궁금 한 표정으로 와서 물었다. "마을이 있었니?" "응. 저쪽이었어." 내가 손으로 마을이 있던 쪽을 가리키자 누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거참 백년 전에는 이 곳까지 인간들의 마을이 없었는데 언제 여기까지 들어와 사는 거지? 난 인간들의 마을로 나가려면 아직 5일은 더 가야 된다고 계산했는데...." "뭐 우리 레어와는 한참 떨어져 있고, 더 이상은 위험한 몬스터들도 많 으니깐 더 들어오지는 않겠지. 더구나 저 마을 역시 고블린들에게 습격 을 당하니 그 등쌀에 못 이겨서 도로 나갈지도 모르잖아." "하긴. 아무튼 오늘은 오랜만에 인간들이 만든 침대라는 것에서 자는구 나. 인간들은 편리한 물건들을 만드는데는 머리가 비상하게 잘 돌아가 는 것 같단 말이야." "편리한걸 좋아하나 보지." "우리 드래곤도 편리한걸 좋아하는데 왜 안 만드는 걸까?" 난 잠시 우리 드래곤이 누울 수 있는 침대를 상상하였다. 누나도 나와 같은 상상을 했는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만들기 귀찮아." "동감이야." 우리가 마을에 도착해서 본 것은 여기저기 부서진 집들과 죽어 있는 인 간들과 고블린들의 시체들이었다. "심하군." "그러게." 내가 솔직하게 말하자 누나도 맞장구를 쳐주고는 주위를 둘러보며 살아 있는 인간을 찾았다. 나도 좀 더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며 살아 있는 인 간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마을의 광장으로 보이는 곳으로 나오자 복구 작업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인간들의 모습이 보였다. 인간들은 나를 보 자 흠칫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건장한 체격의 남자들이 손에 무 기를 들고 다른 마을 사람들을 지키려는 듯이 앞을 막아섰다. 난 급히 손을 저으며 말했다. "저어... 수상한 사람은 아닙니다. 여행을 하다가 지나가는 중이었습니 다. 오다가 고블린들과 마주쳤습니다. 이 마을이 그 고블린들에게 습격 을 당한 거죠?" 인간들은 내 말에 자기네들끼리 수군대더니 이 마을 촌장쯤으로 보이는 할아버지가 앞으로 나왔다. "그렇습니다. 여행자라고 하셨죠? 어디서 오셨습니까?" "예? 에...." "오리하곤에서 왔습니다." 인간들은 깜짝 놀라서 일제히 내 뒤를 쳐다보았다. 인간들은 나 하나만 있다고 생각했다가 누나가 나타나자 놀란 것이다. 그리고 누나의 모습 을 본 몇몇 남자들의 입에서는 탄성이라고 생각되는 음성이 튀어나왔 다. 누나는 내 앞에 서서 생긋 웃으며 허리를 꾸벅 숙이며 말했다. "인사가 늦어서 죄송합니다. 제 이름은 티아루아입니다. 프론트 연합국 으로 가던 중 이 산을 넘어가다가 이 마을에 들리게 되었습니다." 누나의 말에 마을 사람들 중 남자들은 즉시 경계를 풀며 히죽 히죽 웃 으며 우리에게 다가와서 '아 그렇습니까? 고생이 많으셨겠네요' 라고 하는 것이었다. 젠장 여하튼 남자란 녀석들은 종족의 개념을 떠나서 죄 다 늑대들이라니깐. 나? 나는.... 그냥 넘어가자. "어머. 고생이라뇨. 저희 둘보다 마을 사람들께서 고생이 심하신 것 같 은데요. 고블린들의 습격이 잦은 편인가요?" 누나의 말에 마을 청년 중 한 명이 울분을 참으려는 듯이 고개를 숙이 며 말했다. "아닙니다.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런가요? 그럼 앞으로의 일을 대비해서 대비책을 세워 두셔야 갰네 요. 혹시 저희 둘이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 전 마법사입니다. 분 명 도움이 될 수 있을 겁니다." 누나가 자신을 마법사라고 밝히자 인간들 사이에서 희망의 빛이 퍼져 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아마도 인간들에게는 지금 누나의 모습이 천사 로 보이겠지? 아까 촌장이라고 생각되어지는 할아버지가 다시 앞에 나 서더니 말했다. "여행 중이라고 하셨죠? 일단 저희 집으로 가시죠. 식사라도 하면서 이 야기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호의에 감사 드립니다." "도와주신다고 하셨는데 오히려 저희들이 고맙습니다. 자자 이렇게 서 있을 것이 아니라 저희 집에서 여장을 푸십시오." "네." 이때까지는 분명 아무 문제가 없었다. 이때까지는.... 내가 내려놓았던 배낭을 다시 짊어지자 누나는 내 옆에 오더니 인간들 에게 다 들으라는 듯이 큰소리로 말했다. "자기. 힘들지?" 난 매던 배낭을 그대로 땅에 툭 떨어트려 버렸고, 촌장의 명령에 다시 마을 복구 작업을 하면서 힐끔힐끔 누나를 훔쳐보던 마을 남자들이 죄 다 얼굴이 흑색이 되어서 우리들 쪽을 쳐다보았다. 너무 놀라서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 나에게 누나는 다시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아. 자기 역시 힘들었구나. 조금만 참아. 오늘은 산 속에서 야영이 아 니니깐 푹 쉴 수 있을 꺼야." 누나의 의도는 잘 알 것 같았다. 지금 마을 청년들에게 열렬한 눈빛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누나로서는 이곳에 머무르는 동안 귀찮은 일은 피하 고 싶어서 나와 애인 사이 인척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성적으로는 누 나의 의도를 잘 알 것 같은 나지만 본능적으로 온 몸에서 울리는 절대 위험신호에 쉽게 누나의 의도에 협조할 수가 없었다. 내가 멍하니 가만 있자 처음에는 충격과 실망감에 좌절하던 마을 청년 들이 수상하다는 눈빛을 보냈고, 누나는 나만이 알아볼 수 있는 짜증이 약간 섞인 얼굴로 내 팔에 팔짱을 끼었다. "자기야. 그렇게 힘든 거야? 왜 말이 없어. 피 나 삐쳐 버린다." 크아악! 다..닭살 돋는다!! 그런데 닭살은 둘째 문제고 지금 은근히 누 나의 손에 모이는 마나의 기운을 감지한 나는 살기 위해서 급히 양심을 팔아 치우기로 하였다. "아. 미..미안. 조금 피곤한데다 잠시 딴 생각을 하느라. 자..(침 한번 꿀꺽 삼키고) 자기야 화내지마." 양심을 팔아 치운 대가는 굉장히 비쌌다. 난 파도처럼 밀려오는 닭살들 을 잠재우기 위해 온 신경을 다 쏟아 부어야 됐다. "헤. 나도 미안. 실은 삐진 척 한 거야. 자기를 너무나 사랑하는 내가 자기한테 화낼 리 없잖아. 자 가자." 그렇게 말하며 내 팔에서 손을 뗀 누나는 '젊은이란 좋은 거군. 나도 젊었을 시절에는 저랬지' 라고 하는 것 같은 미소를 짓고 있는 촌장에 게 다시 안내를 부탁했고, 촌장은 왠지 모르겠지만 엄청 기분 좋은 표 정으로 우리를 그의 집으로 안내했다. 난 땅에 떨어진 배낭을 메고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양심을 팔아 치운 대가 두 번째를 치르게 되었는 데... '저런 말랑깽이 자식이 어째서 저런 미인이랑.' '기생오라비도 너 얼굴보다는 낫겠다.' '솔직히 불어. 너 그 얼굴로 여자 많이 울리고 다녔지? 저 여자도 나중 에 질리면 차 버릴 거지?' '젠장 하늘도 너무하시지? 남자는 얼굴이 다가 아닌데. 얼굴만 믿고 다 니는 저런 남자에게 저런 미인을 내리다니.' 그 외 기타 등등 차마 말로 표현 못할 느낌의 시선들이 끊임없이 내 뒤 통수에 와서 박혔다. 누나는 나를 애인 삼은(?) 덕분에 남자들에게 귀 찮은 일을 당하지는 않겠지만 나는 이 마을 남자들에게 한 순간 미움을 받게 된 것이다. 어째 앞으로의 여행길도 결코 순탄치 않을 거라는 예감이 드는 날이었 다. 계속 ------------------------------------------------------------------ 드래곤 남매 15화 내 누나는 카이저 드래곤(4) 식사는 꽤 맛있었다. 저번 외출 때 인간들의 음식점에서 파는 음식들을 먹어 봤지만 이런 가정집에서 먹는 음식은 또 맛이 틀렸다. 뭐라고 할 까? 먹기 편하다고나 할까? 음식점처럼 이것저것 차려져 있고, 화려하 지는 않지만 그 만큼 먹기 편하고 맛이 있었다. 촌장의 집에는 우리말고도 마을 청년 두 명이 같이 앉아 있었다. 밥을 먹기 전에 간단한 소개를 받았는데 둘 다 체격이 꽤 좋은 게 마을 경비 대 정도로 보였고, 내 추리는 맞아 떨어졌다. "맥스라고 합니다." "크락입니다. 저는 이 마을 경비대의 대장입니다." "티아루아라고 합니다. 마법사입니다." "테이루아입니다. 저는 검을 약간 다룹니다." 우리들이 인사를 마치자 음식들이 나왔고, 가정적인 따뜻하고 맛있는 식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누나는 이왕 애인으로 행세하기로 했으니 철 저하게 하고 싶었나 보다. "자기야 이거 먹어 봐. 아~~~ 해봐." "저기 티....아." "아잉. 자기야. 아 하라니깐." 식사 동안 내내 나에게 저렇게 엉겨붙는 것이었다. 내가 무슨 반항을 할 수 있겠는가? 겉에서 보면 행복한 닭살 커플같이 보이겠지만 나는 다른 인간들이 느끼지 못하는 누나의 '장단 안 맞춰 주면 나중에 재미 없어' 라는 무언의 협박에 울며 겨자 먹기로 입을 벌릴 수밖에.... 주 위에 인간들 특히 맥스와 크락은 그런 우리들을 아니 정확히는 나를 아 주 못 마땅한 표정으로 쏘아보았고, 덕분에 맛있는 음식도 나에게는 거 북한 음식이 되어 갔다. 젠장 치료 마법으로 배탈 고칠 수 있다는 소리 는 들어 본적이 없는데 어떡하지? 그렇게 간신히 식사가 끝나고 난 뒤 후식으로 나온 차를 들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됐다. "고블린들의 습격은 언제부터 있었습니까?" 내가 이번 일을 후딱 마칠 생각에 성급하게 본론부터 물었다. 왜 빨리 끝나고 싶냐고? 젠장 난 누나 애인 역할을 계속하고 싶은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이 마을에서 내내 아까 같은 일을 당하다 보면 속병으로 앎 아 누울 것 같았다. 하루빨리 여기 고블린 문제를 해결하고 이 마을을 뜨고 싶었다. 그리고 누나에게 두 번 다시 애인인 척 하지 말라고 해야 지. "우리 자기는 정의감이 강해서 이 마을의 불행을 그냥 넘어가기 싫으신 거예요. 그러니 솔직하게 지금까지의 일을 다 말해 주세요. 우리 자기 의 검 실력은 정말 초 일류급 이예요. 그러니 안심하셔도 되요." 누나 웬만하면 그 자기라는 호칭 좀 그만 사용해! 라고 소리 지르고 싶 은걸 꾹꾹 참으면서 누나의 말들은 애써 무시하기로 결심하고는 온 신 경을 촌장에게 쏟아 부었다. 윽 쭈글쭈글한 할아버지에게 신경을 쏟아 부으려니 내 눈과 귀가 무슨 미친 짓이냐고, 아우성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저 누나의 우리 엄마에 게 배운 것 같은 100% 닭살성 말을 듣는 것보다는 낫다고 자위하며 꾹 참고 촌장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촌장 할아버지 얼굴은 왜 붉히는 거야?!!' 나의 뜨거운 시선(?)에 촌장은 몸 둘 바를 모르겠는지 잠시 얼굴을 붉 혔다가 곧 정상적인 색으로 돌아와서 말을 하기 위해서 입을 열었다. 나는 잠시 못 볼 것을 봤다는 생각에 천장을 한번 쳐다보고 촌장의 말 에 귀를 기울였다. "고블린들의 습격이 있었던 건 오늘이 처음입니다. 그 전에는 마을 청 년들이 나무를 하거나 마을 아낙들이 나물을 캐러 산 속 깊이 들어갔을 때 한 두 마리 만났던 게 전부입니다. 그래서 마을 경비대를 만들어서 산 속 깊이 들어갈 일이 생기면 경비대와 같이 가는 것으로 피해를 줄 여 왔습니다." "그러게 내가 진작 방책 정도는 만들어 두자고 했잖습니까? 방책이라도 만들어 두었다면 오늘 같은 일은 없었을 겁니다." 촌장이 잠시 목이 타는지 말을 멈추자 크락이 탁자를 쾅하고 치면서 흥 분한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아마도 저 남자는 책임감이 꽤 큰 것 같 다. 아까 식사 때도 내내 우울한 얼굴이었다. 이 마을을 책임진 경비대 대장으로서 마을 사람들의 희생에 책임감이 느껴지겠지. "크락 너 잘못이 아니니 그렇게 분개하지 말거라. 그리고 방책 건도 우 리 마을에는 여유가 없었잖느냐. 지금이라도 마을 사람들 전부가 힘을 합하면 금방 튼튼한 방책이 만들어 질 테니 너무 상심하지 말아라." "잃고 난 뒤에 대책을 세워 봤자 뭐합니까? 로라는 오늘 자기 약혼자를 잃었습니다! 그것뿐입니까? 죽은 마을 사람들의 가족들은 어떡합니까? 그들은 이제부터 슬픔을 안고 살아가야 된단 말입니다!!" "저기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 이제는 거의 달려들 듯이 말하던 크락과 땀을 뻘뻘 흘리던 촌장이 누나 가 끼여들자 각자 상반된 표정들 크락은 '왜 끼여드냐?' 촌장은 '말려 줘서 감사합니다' 라는 표정으로 누나를 쳐다보았다. "대충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느 정도 이 마을이 돌아가는 꼴을 알 것 같 군요." "꼴?" 크락이 사나운 표정으로 누나를 노려보았지만 기껏해야 인간이 노려보 는데 눈 하나 깜짝할 누나가 아니었다. 누나는 천연덕스럽게 차를 음미 하며 다시금 강조해서 말했다. "네. 돌아가는 꼴이라고 했습니다." "외지인이 뭘 안다고 참견이야?!" 아까 전에만 해도 경어를 써 주던 크락은 열이 받을 대로 받았는지 누 나에게 하대를 쓰면서 탁자를 쾅 쳤다. 그때 난 누나의 머리에 다른 인 간들이 눈치채지 못한 미약한 힘줄 하나 솟은걸 발견했다. 난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즉시 튈 속셈으로 의자를 슬슬 뒤로 빼면서 물러났다. 다행히도 누나는 크락을 마주 쏘아보는 중이었고, 촌장과 맥스는 크락 과 누나를 주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의 이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지 않 아도 되었다. "호오. 외지인이면 무조건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 천지인가요? 제가 보 기에는 이 마을 사람들의 책임자라는 분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은 데요." "그럼 우리가 바보 천지란 말이냐?" "내가 언제 바보 천지라고 했나요? 아무것도 모른다고 했을 뿐입니다." "젠장! 그 말이 그 말이잖아!" "하긴 뜻을 해석하는데 따라서는 그 말이 그 말이 될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당신들의 한심한 꼴을 보고 있자니 그 말밖에는 해줄 말이 없더 군요." "뭐라고? 이 계집애가?!!" "크락 중요한 손님에게 뭐 하는 짓이야?! 좀 참아!!" 결국 폭발한 크락이 누나에게 덤벼들 듯이 달려들자 아까부터 사태를 지켜보며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던 맥스가 급히 크락의 뒤를 붙잡고는 진정시키려고 애를 썼다. 누나는 자신이 크락을 화나게 만들어 놓고는 먼 나라 이야기인냥 천천히 남은 차를 마저 마시고 있었다. 그 모습은 크락을 더 화나게 만들기 충분했다. 맥스를 쳐버리고 누나에게 덤비려 고 날뛰는 크락을 촌장과 그 아들까지 나와서 말리던 중에 차를 다 마 신 누나가 차를 내려놓고는 탁자를 쾅 치며 일어났다. 그리고 매서운 눈으로 크락을 쏘아보았다. 그 박력에 인간들이 얼어붙어서 일순간 동 작을 멈추자 누나가 천천히 입을 열며 그들을 쏘아붙였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당신들은 정말 한심하군요. 이런 깊은 산 속 에 몬스터들이 있는 것은 당연한 것. 무슨 이유로 이런 깊은 산 속까지 들어와 사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데서 산다면 방책 같은 방어책은 당연 한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습격까지 당한 마당에 한시라도 빨리 대비책 을 마련할 생각을 안하고 당신들은 아직도 옛날 일에 연연하며 니 잘났 다 나 잘났다 싸움이나 하고 있군요. 크락 씨 당신이 진정으로 희생자 들의 일을 슬퍼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지금은 희생자의 죽음을 슬퍼하며 책임 문제 운운할 때가 아니잖아요! 당신은 이 마을의 안전을 책임지는 경비대 대장이에요. 그런 사람이 다시 닥쳐올지도 모를 위험에 대비할 생각은 안하고, 책임 문제 갖고 말싸움이나 하고 있는데 한심한 거에 바보 천지라는 말밖에 더 할 말이 있나요? 있다면 듣고 싶군요. 어디 한번 할 말 있으면 해봐요!!" 땡~~~ 네 티아 선수의 매몰찬 한판 공격 이였습니다. 크락 선수 완전히 얼어서 아무 말대답도 못하고 멍하니 티아 선수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 습니다. 그리고 촌장과 그 아들과 그리고 맥스도 침묵을 지키며 크락 선수가 열 받을 때의 대비를 하고 있군요. 자 과연 크락 선수 과연 이 대로 무너져 내릴 것인가? 아니면 덤벼 들것인가? 귀추가 주목되는 순 간입니다. 인간들의 검투사들의 대결을 중계한다는 해설자들의 느낌이 이런 느낌 일까? 아무튼 오랜만에 누나의 독설이 내가 아닌 다른 이에게 향하자 나는 흥미진진하게 그 광경을 구경했다. 하지만 역시 누나는 누나였다. 할 말 있으면 해보라고 해 놓고 그렇게 죽일 듯이 노려보면 할 말 있어도 못 할걸. 아무튼 누나의 그 살기 등 등한 시선 때문인지 아니면 누나의 구구절절 옳은 독설 때문인지 - 난 결단코 전자라고 생각하지만 - 크락은 고개를 떨구며 자신의 잘못이라 는 것을 인정했다. "당신 말이 맞소. 그래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지." 이라는 말을 내뱉고는 크락은 한동안 한숨만 쉬더니 곧 기운을 차리고 말했다. "당신 말대로 일단은 방책부터 쳐야 되겠군요. 그리고 희생자들의 시신 들도 성대하지는 못하겠지만 서운하지 않게 장례를 치러 주고... 하하 하 이거 생각해 보니 내가 해야 될 일이 이리도 많은데 얘들처럼 불평 이나 늘어놓고 있었다니.... 고맙습니다. 티아루아 양." "티아로 불러 주셔도 돼요." 누나는 크락이 자신의 말을 잘 알아듣고 착하게(?) 행동하자 마음에 들 었는지 자신의 애칭을 부르게 해주었다. 크락은 고개를 끄덕이며 '고맙 습니다. 티아 양' 이라고 정정하고는 아직도 얼떨떨해 하고 있는 맥스 를 데리고 나갔다. 그런데 크락이 맥스를 데리고 나가면서 나에게 귓속 말을 하고 나갔다. "저렇게 기가 쎈 여자를 데리고 다녔으니 당신도 고생 좀 했겠습니다." 거 참 마음에 드는 말을 하는 인간이군. 내 처지(?)를 저렇게 잘 이해 해 주다니... 그런데 크락은 하나 모르는 게 있었다. 아무리 누나에게 안 들리게 나에게만 살짝 귓속말을 했지만 저기 있는 누나는 인간이 아 니라 드래곤이다. 그러니 나에게만 한 귓속말은 당연히 티아 누나도 들 어 버린 것이다. 누나의 이마에 힘줄이 하나 솟으면서 '나중에 두고보 자' 라는 시선으로 쳐다보았다는 것을 크락은 결코 모를 것이다. 뭐 그 렇다고 내가 누나를 상대로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명복이나 빌어 주는 수밖에.... 크락이 나가고 나자 난 아까 누나가 말했던 독설 중에 이런 깊은 산 속 에 마을을 만든 이유를 모르겠다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나 역시 이런 깊은 인간이 살기 힘든 산 속에 들어온 이유를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촌장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 보았다. "촌장 님 도대체 이런 위험한 산 속에까지 들어와서 사는 이유가 뭡니 까? 아까 언뜻 보니 집들도 지은 지 몇 년 안되어 보이던데 거의 최근 에 들어 오신 거죠? 이유가 뭔가요?" 내 질문에 촌장의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한숨을 쉬며 푸념을 늘어놓았 다. "우리라고 이런 위험한데서 살고 싶었겠습니까? 다 전쟁 탓이죠." "전쟁이요?" 내가 반문하자 촌장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갸웃거렸다. 이런 실수다. "모르셨습니까? 지금 저희 다이러스 제국과 가이라가 왕국은 5년째 전 쟁 중입니다." "아... 그게... 윽!" "윽이요?" 촌장은 점점 이상한 표정을 지었지만 난 발등이 부러진 것 같은 고통에 아무 대답도 해줄 수 없었다. 누나는 내 발을 지긋이 밟은 정도가 아니 라 콱 밟아 버리고 보너스로 힘을 콱콱 줘서 짓누르고 있는 중이었다. 내가 비명을 참고 있는 동안 누나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호호호 웃으며 말했다. "호호호. 그게 우리 자기는 원만하면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이 없거 든요. 그리고 저도 전쟁이 터졌다는 소리만 풍문으로 들었는데 그 전쟁 이 아직도 계속 되고 있었는지는 몰랐네요." "아 그렇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오호호." [알았어! 앞으로 말할 때 조심할게. 그러니 제발 이 발 좀 치워 줘!!] 내가 마법으로 누나에게 애원을 해야 될 정도로 누나는 계속 내 발을 짓누르고 있었다. 내 발등은 껍질이 벗겨지는 듯한 화끈한 고통을 계속 받고 있는 중이었다. 아니 이미 다 벗겨졌을지도.... [너는 첫 외출 때도 그렇고, 왜 그렇게 눈치 없게 행동하는 거야? 으이 그 이러니 내가 널 혼자서 어디 못 보낸 다니깐. 내가 따라다니면서 챙 겨 줘야 되니. 원.] [헉! 누나 그 말은 내가 여행을 갈 때마다 따라다니겠다는 말? 으아악! ! 아니야! 귀찮다는 뜻으로 말한 것도 아니고, 이제 내 인생은 암울하 다 라는 생각 따위는 절대 안 할게! 그러니 제발 발 좀 치워 줘!! 아니 하다 못해 짓누르지는 말아 줘!!] 내가 순간적으로 '내 유희 인생은 이제 끝장이다' 라고 생각한걸 또 얼 굴 표정에서 읽었는지 누나는 내 발을 짓누르고 있는 발에 더욱더 힘을 주었고, 난 급히 내 생각을 번복하며 용서를 빌어야 됐다. 내가 탁자를 붙잡고 얼굴을 붉히고 있는걸 촌장은 어떻게 해석을 해 버린 건지... "아니 뭐 세상일에 관심 없으신 게 이상한 것도 아니고 부끄러워하실 일도 아닙니다. 그렇게 너무 창피해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라고 위로(?)를 해주는 것이다. 난 '그게 아니야!' 라고 소리치며 테이 블을 뒤집어엎고 싶은걸 간신히 참으며.... 아니 실은 고통 때문에 그 렇게 할 수도 없었다. 그저 눈물을 삼키며 이 고통이 빨리 끝나기를 비 는 수밖에...... 간신히 누나의 발이 치워지고 난 몰래 힐링을 써서 발 을 치료할 동안 촌장은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말에 제법 상세하게 설 명해 주었다. "10년 전에 즉위한 국왕이 갑자기 그 동안 화해의 분위기로 나가고 있 던 가이라가 왕국에 갑작스런 전쟁을 걸었습니다. 그 기습적인 공격에 처음에는 상당한 크기의 영토를 빼앗아 올 수 있었지만 분노한 가이라 가 왕국의 반격이 시작되었고, 두 나라와 동맹을 맺었던 프론트 연합국 도 다이러스 제국의 비열한 기습에 유감을 표한다며 가이라가 왕국에 물자를 거의 무상으로 지원해 주는 바람에 다이러스는 연일 패배 중이 었습니다. 용케 지금까지 버티고 있기는 하지만 믿었던 우방에 배신을 당한 가이라가 왕국은 이 기회에 끝장을 보자는 생각인지 전쟁을 끝내 지 않고 있는 중입니다. 저희 마을도 원래는 평화로운 곳이었지만 전쟁 에 휘말려 들다 보니 안 좋은 꼴을 워낙에 많이 당해서 그대로 마을에 있다가 죽거나 이런 산 속에 들어와서 몬스터에게 죽거나 죽기는 매 한 가지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래도 몬스터들만 조심하면 살 수 있다는 희망에 모든 걸 걸고 결국 이 산 속으로 몰래 도망쳐 온 것입니다." "거 참 이백년 전에 레이나 여왕님이 이룩했다던 평화를 하루아침에 뭉 개 버린 셈이군요." 난 모든 사람들과 이종족들이 평화롭게 사는 나라를 만들고 싶다던 레 이나 누나가 생각이 나서 씁쓸한 마음에 말하자 누나가 한숨쉬며 내 말 을 받아서 말했다. "하여튼 선조 들이 이룩한 평화를 깨부수는 것은 후손들의 몫이고, 또 그 후손들이 다시 평화를 이룩하고, 또 그 후손들이 그 평화를 부수는 군요. 인간이란 존재는 왜 이렇게 악순환을 반복하는 건지...." 나와 누나의 말에 촌장은 자신이 죄를 진양 얼굴이 붉어져서 고개를 숙 여 버렸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주위 공기를 간염 시키자 그 거북한 공 기를 못 견딘 나는 별 생가 없이 물었다. "그런데 레이나 여왕님이 이뤘던 평화를 부순 장본인은 도대체 누구입 니까? 어떤 개망나니 국왕이죠?" 이 나라 국왕을 모독하는 말이었지만 촌장은 내 생각에 동조했는지 국 왕 모독 죄에 해당하는 내 발언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오히려 이까 지 갈면서 분노에 찬 음성으로 말했다. "랑그람 로헨타이 1세라는 자식입니다. 정말 인간 같지도 않은 자가 국 왕이 되 버렸죠." 나는 촌장의 말에 머리에 망치라도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누나 역시 나와 같은 상황이었는지 더듬대면서 촌장에게 반문했다. "바..방금 로...헨타이 라고 하셨나요?" "네 로헨타이 1세라는 국왕이라는 칭호가 아까운 배신자 가문의 아들입 니다." 촌장은 나와 누나의 믿고 싶지 않은 사실이 진실이라는 것을 확실히 확 인시켜 주었다. 내가 절대로 잊어버리고 싶은 이름 1위를 내내 고수하 고 있는 이름인 로헨타이라는 성을 쓰는 남자라니...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도대체 내가 자고 있는 동안 무슨 일이 생긴 거냔 말이야! ! 계속 ------------------------------------------------------------------ 드래곤 남매 16화 여행의 시작은 고블린 퇴치부터(1) "응 여기는 어디? 어라 뭐? 뭐야?!" 내 팔은 침대 끝에 단단하게 묶여 있었다. 끈을 끊어 버리려고 힘을 주 었지만 밧줄은 꿈적도 하지 않았다. 난 밧줄 끊기를 포기하고 주위에 누가 있는지 살펴보았다. 침대 가장자리에 누군가가 앉아서 날 쳐다보 고 있었다. "누나야? 지금 이거 무슨 장난이야? 재미 하나도 없단 말이야. 이거 얼 른 풀어!" "흐흐흐. 아주 좋은 몸매로구나." "......네가 왜 여기 있는 거야?!!!" 어두워서 보이지 않던 그 누군가가 가까이 다가오자 똑똑하게 얼굴이 보였다. 죽어도 절대로 보기 싫은 얼굴... 라보오스 로헨타이!! 왜 저 자식이 여기 있는 거야?! "흐흐흐. 귀여운 베이비. 오늘은 너에게 천국을 경험시켜 주마." "웃기는 소리 집어치워!! 난 남자야!!" 라고 소리는 쳤지만 난 문득 가슴이 무겁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 저게 왜 나한테 달려 있지? 내 가슴에는 어느새 여자들의 가슴이 만들 어(?)져 있었다. "이런 젠장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아악!! 너 이 자식 만지지마!!" 그 놈의 변태 보스는 내(?) 가슴을 주물러 되었다. 결코 다시 느끼기 싫었던 까무러칠 것 같은 역겨운 느낌에 나는 비명을 질렀다. "으아악!! 하지마!! 꿈이라면 누가 나 좀 깨워 줘!!" "시끄러워!" 난 옆구리에 화끈한 통증을 느끼면서 침대에서 떨어졌다. 옆구리를 움 켜쥐고 간신히 일어나자 누나가 잠이 덜 깬 얼굴로 인상을 쓰며 날 째 려보고 있었다. "뭐야? 한 밤중에 시끄럽게 소리나 지르고! 잠 좀 자자! 잠 좀!" 그렇게 소리치고는 누나는 팩 돌아눕더니 잠시 후 색색대는 숨소리가 들렸다. '다행이다 꿈이었구나.' 난 잠시 누나가 날 차서 깨워 준 것이 고맙다는 평소라면 미친 생각이 나 다름없는 생각을 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이런 생각 하기도 싫은 꿈을 꾸게 된 건 낮에 촌장에게 들었던 이야기 때문이다. 난 잠시 낮의 일을 회상하기 시작했다. "바..방금 로..헨타이라고 하셨나요?" "네 로헨타이 1세라는 국왕이라는 칭호가 아까운 배신자 가문의 아들입 니다." "잠깐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죠? 로헨타이는 이 백년 전의 그 유명한 한시간 반란으로 집안이 완전히 망한 게 아니었나요?" 난 옛날 기억을 더듬어서 그렇게 물었다. 그때 일가족 전부가 분명 다 끌려갔었는데... 그런데 어떻게 로헨타이라는 집이 다시 생길 수가 있 지? 내 질문에 촌장은 혀를 차며 설명했다. "다 다이러스 제국의 2대째 여왕이신 레이나 여왕님께서 마음이 착하신 탓이죠. 로헨타이 가의 일가족은 분명히 반란의 이유로 전부 참수형이 처해졌습니다. 그러나 배신자 로헨타이에게는 첩이 있었는데 그 첩이 아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원래 배신자의 집안은 갓난아기까지 참수형 에 처하는 게 당연한 것이지만 레이나 여왕님은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 에게까지 죄를 적용시키는 건 인간의 도리가 아니다' 라는 말씀을 하시 고는 그 아기와 첩은 살려 두었습니다. 그렇게 로헨타이 가의 핏줄은 남게 되었는데 그 아기 제로드 로헨타이는 레이나 여왕님의 교육에 무 척이나 똑똑하고 사리 분별력 있는 청년으로 성장해서 나중에는 다이러 스 제국의 국무대신까지 지내고 한시간 반란군 집안의 아이라는 주위 사람들의 비아냥거림을 잠재웠습니다. 그러나 그 피가 어디 갈 리가 없 는지 3대째 신(?) 로헨타이 가문의 현 국왕인 랑그람 로헨타이는 정말 로 치밀하게 계획을 짜고 또 짜서 원래 국왕의 자리에 오르실 레이르 레드포머 3세이시자 이 다이러스 왕국의 3대째 여왕이 되실 레이르 님 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르신 게 6년 전의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레이르 님의 생사도 확인이 안된 체 6년의 세월이 지나갔습니다. 훌쩍 레이르 님은 레이나 여왕님과 빼다 박았다는 말들이 있을 정도로 정말 총명하 고 마음씨 좋으신 분인데 살아나 있으신 지......" 그렇게 이야기를 끝맺은 촌장은 손수건을 꺼내서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난 측은한 기분을 느끼며 촌장의 어깨에 손을 얹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았다. 촌장은 날 위로해 줘서 고맙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았고, 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런데 굉장히 잘 알고 계시네요. 마치 이 백년을 사신 분 같아요." "......." 어? 내가 뭐 실수했나? 왜 그런 황당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거야? 누나 도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젖고 있었다. 왜 그러는 거야? 대체 이유가 뭐야? 내가 당황해서 두 명을 번갈아 쳐다보자 촌장이 누나를 보며 말했다. "고생이 심하셨겠습니다." "뭐 한 두 번 있는 일도 아닌데요." 그렇게 말하면서 다시 한숨들을 쉬는 것이다. "잠깐만! 내가 무슨 실수를 했다고 그러는 거야?!" 결국 참지 못하고 내가 테이블을 치면서 화를 내자 촌장은 일어나서 뒤 에 있는 책꽂이에서 책 한 권을 꺼내 왔다. 그리고 그 책을 내 앞에 놓 았는데.... 책제목은 [알기 쉽고 재미있는 다이러스 제국 역사] 라는 긴 이름의 책이었다. "......아 역사책을 보셨군요. 하하하 뭐 그럴 거라고 생각했었어요. 아까 말은 농담이었어요. 농담. 재미있는 농담이었죠? 그렇죠?" 그러나 돌아오는 눈빛은 측은한 눈빛들이었다. 더구나 촌장은 손수 내 손에 책을 쥐어 주며 '귀찮더라도 꼭 읽어보세요' 라고 하기까지 했다. 단 한번의 말실수로 난 멍청이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런데 아까 레이르 님이라는 분의 소식은 정말 아무런 소문도 없는 건가요?" 내가 좌절감에 바닥에 쓰러져 눈물을 흘릴 때 누나는 그런 나에게 신경 을 끊어 버리고, 촌장에게 좀더 많은 정보를 요구했다. 촌장은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으로서는 어디에서든 살아만 계셨으면 하고, 빌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자 그것보다 손님들은 여행 중이라고 하셨죠? 계속 노숙만 하셨던 것 같은데 방을 드릴 테니 짐을 푸시고 푹 쉬십시오. 그리고 저녁에는 목 욕물도 준비하겠습니다." 촌장은 애써 분위기를 밝게 하려고 노력한다는 티를 내면서 말했다. 그 런 촌장의 마음 씀씀이가 고맙기도 하고, 촌장의 말대로 계속 노숙 생 활을 했던 피로가 조금 있긴 있었기에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그래서 누나도 나도 고개를 끄덕이고, 나는 배낭을 들었다. 그런데...... "아 방은 하나만 주세요." 이게 뭔 소리야? 그럼 나보고는 밖에서 자란 소리인가? "하..하나 만이요?" "어머 당연하잖아요." 그렇게 말하는 누나의 얼굴은 살짝 붉어져 있었다. 촌장은 다 알겠다는 의미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아주 조용하고, 방음이 잘되는 방이 하나 있으니 그 방을 쓰십시 오." 왜?! 조용하다는 말과 방음을 강조하는 거야?!! 그렇게 촌장과 누나는 내 의사는 물어 보지도 않고, 멋대로 이야기를 진행시키더니 굳어 버린 나를 두고 그 조용하고, 방음 잘된다는 방으로 걸어갔다. "자기야~~ 뭐해? 빨랑 와~~." 내가 따라가지 않고 그 자리에 멍하니 있자 누나는 아무리 계속 들어도 적응이 안 되는 닭살 돋는 말투로 말했다. 난 어쩔 수 없이 배낭을 다 시 들고 뒤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오해는 하지 말기를 바란다. 누나가 커플들이라면 사랑스럽게 들리는 말투로 말했다고 듣는 게 아니다. 나만이 느낄 수 있는 '안 따라오거나 쓸데없이 방 하나 더 달라는 소리하면 죽어' 라는 살기를 느끼고 따라 가는 것이다. 하아... 오늘밤은... 지옥이 될 것 같다. 회상 끝. 아무튼 난 누나와 같은 방에 같은 침대에서 자게 됐고, 자리 에 눕자 말자 누나는 아무 말도 없이 나를 꼭 껴안고 자는 바람에 잠들 기 위해서 무척이나 고생했다. 그렇게 겨우 잠이 든 건데 낮에 들었던 신(?) 로헨타이가 사람의 이야기를 듣게 되자 진짜로 잊어버리고 싶은 그 놈의 변태 보스가 꿈에 나와서 날 괴롭힌 것이다. 그나저나 그 놈들 집안하고는 정말 악연이다. 어떻게 이 백년이 지났 고, 더구나 우리 남매가 여행을 위해 인간 세상에 나온 이때 타이밍 맞 춰서 사고를 치는 건지...... 아무튼 나로서는 이 일을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이 놈의 로헨타이 가문의 씨를 이번에는 반드시 말려 버려야 지. 그래야 내가 더 이상 악몽에 시달리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 다. '누나라면 어떻게 할까? 누나도 맺힌 한(?)이 있기 때문에 틀림없이 그 냥 넘어 가지는 않을 텐데....' 이런 생각을 할 때 누나가 부스스 일어나더니 잠이 덜 깬 눈으로 주위 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다가 나를 쳐다보더니 바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 나서 나에게로 다가왔다. "뭐? 뭐야?" 심상치 않은 누나의 모습에 내가 긴장해서 뒤로 슬슬 물러나자 누나는 재빠르게 내 손을 낚아챘다. "왜 이래?" "잠이 안 와." "누나가 잠이 안 오는걸 나보고 어쩌라고?" 누나는 더 이상 말을 안하고는 그대로 날 끌고 가더니 침대에 내 던지 고는 바로 내 옆에 누웠다. "으아악! 뭐..뭐 하는 거야?!!" 누나는 여전히 대답을 안 해주고는 그대로 날 끌어안고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음. 역시 너를 안고... 자야.... 잠이...... 하암...... 잘 온다." 그렇게 말하며 완전히 잠들어 버렸다. '내가 여자들 수면용 봉제 인형이냐?!!!' 라고 마음 속으로 소리를 질렀다. 가뜩이나 악몽 때문에 잠이 깼는데 이 상태로는 더 자기 힘들었다. 그렇게 선택의 여지도 없는 나에게 남 은 것은 날밤 새는 것이었다. "아함! 잘 잤다." 누나는 아침 햇살을 받으며 기지개를 쭉 펴며 말했고, 난 벌게진 눈으 로 눈부신 아침 햇살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자 오늘은 근처에 고블린들의 소굴이 있나 찾아보자. 아마도 고블린들 이 이 곳에 마을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마을 근처에 소굴을 만들었을 거야." 그렇게 말하고는 누나는 먼저 세수하러 간다며 밖으로 나갔다. 난 침대 위에 걸터앉아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고는 피곤을 참으며 마음속으 로 다짐했다. '최대한으로 빨리... 되도록 오늘 고블린들을 일망타진 시켜 주겠어. 안 그랬다가는....' 아 그랬다가는 또 누나랑 같이 자야 되고 난 오늘처럼 밤잠 못 자고 날 밤 새겠지. '제발 오늘은 무사히.' 내 기도는 '오늘도 무사히' 에서 불과 삼 일만에 제발 이라는 단어가 붙어 버렸다. 정말 앞날이 컴컴하다 못해 한치 앞도 안 보일 정도로 어 두운 느낌이다. 계속 ------------------------------------------------------------------ 드래곤 남매 16화 여행의 시작은 고블린 퇴치부터(2) 마을 외곽에는 어제 저녁나절부터 똑딱똑딱 대더니 엉성하지만 제법 모 양은 갖춰진 방책이 세워져 있었다. 우리 남매가 아침 식사를 하고 준 비를 갖춘 다음에 밖에 나가니 크락이 보람에 찬 얼굴로 우리를 맞았 다. "안녕히 주무셨나요?" "네 노숙만 하다가 오랜만에 푹 쉴 수 있었어요." "그런데 남자 쪽 분은...." "테이루아입니다." "아 네. 테이루아 씨는 피곤해 보이시는데...." 크락 옆에 있던 맥스가 내 안색을 살피며 물었다. 누나만 챙겨 주는 사 내놈들이라 생각했는데 내 걱정도 해주다니.... 고마운 마음에 졸려서 잘 지어지지 않는 미소를 억지로 지으며 말해 주었다. "어제 잠을 좀 설쳐서 일뿐입니다. 오늘 일에는 아무 지장 없으니 걱정 놓으세요. 나보다는 당신들이 이 방책 만드느라 밤을 샌 것 같은데 괜 찮으세요?" 그렇게 말한 나는 아예 내 애칭으로 부르라고 할까 하는 생각까지 했 다. 그런데.... 맥스 이 녀석이 잠을 설쳤다고 하니깐 슬픈 얼굴로 크 락을 쳐다보았고, 크락은 그런 맥스에게 고개를 저었다. 마치 맥스가 ' 누구는 미인이랑 밤을 보내느라 잠을 못 자고, 누구는 방책 만드느라 잠을 못 자고 이런 불평등이 어디 있냐?' 라고 하자 크락이 '세상이란 원래 불평등 한 거야' 라고 인생을 달관 한 사람 같은 말을 하는 분위 기였다. 약간 성질 나는데 방책에 확 불질러 버려? 내가 방책을 정말 불지를까 고민할 때 누나는 그 방책을 살피고 있었다. 누나가 방책을 살피고 있자 크락이 자랑스러운 듯이 말했다. "어때요? 아직 부실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모양은 갖추었습니다." "네. 하루만에 만든 것치고는 굉장히 튼튼하네요. 고생하셨네요." 누나가 생긋 미소를 지으며 크락을 칭찬하였다. '......왜? 주먹을 쥐고 하늘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데?' 크락의 한심한 꼬락서니를 보면서 난 한숨을 쉬었다. 누나 같은 여자가 칭찬해 준 게 그리도 기쁠까? 하긴 저 인간들은 아직 누나의 실체를 모 르니 저런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을 테지. 그런데 더 한숨 나오는 사태는 다음 순간에 벌어졌다. "아가씨! 저는 이 방책에 쓸 튼튼한 나무를 베어 왔습니다!" "야 임마! 나무는 너만 베어 왔냐? 아가씨 이쪽에 굵직한 나무는 제가 베어 왔습니다!!" "나무 베어 온 게 그렇게 자랑이냐? 아가씨 저는 나무를 꽂을 구덩이를 팠습니다! 무려 스무 군데나 혼자서 팠습니다!!" "난 서른 군데 팠습니다!!" "거짓말하지마! 아가씨 이 놈 말은 뻥입니다. 제가 서른 군데 팠습니다 !" "저는 방책의 설계를 맡았습니다. 지금의 방책이 있게 된 것은 저의 공 이 큽니다!" "저는 크락과 같이 처음부터 방책을 만들자고 주장했던 사람입니다. 전 부 귀찮고 자기 일에 바쁠 때 저는 끊임없이 방책의 필요함을 주장했던 사람입니다." 우리 주위에서 일을 하던 남자들이 누나가 크락을 칭찬하자 너도나도 자신들이 더 힘든 일을 했다고 소리쳤다. 너무나 어이없는 그들의 모습 에 나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누나는 그런 그들에게 '전부다 너무 수고 많으셨어요' 라고 생긋 웃어 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전부 크락과 같은 자세를 취했다. 감동의 여운이라도 느끼는 그 자세를 보며 누나는 예의 그 악의 절대 없음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런데 난 어차피 고블린들이 퇴치되면 떠날 몸인데 방책 튼튼한 것은 솔직히 나랑 아무 상관이 없네요. 뭐 그래도 수고들 하셨어요." 남자들은 그 감동의 여운 자세(?) 그대로 얼어 버렸다. "자기야 얼른 출발하자." 누나는 얼어 버린 남자들은 아예 관심 없다는 듯이 말하며 내 팔에 팔 짱을 끼고 걸어갔다. 그리고 내 뒤에서는 엄청난 수의 살기들이 내 뒤 통수에 꽂히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젠장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다들 그러는 거야? 난 억울하다고!! 나 도 피해자란 말이야!!' 그러나 그걸 알리 없는 그들에게 소리칠 수도 없는 노릇이라 끊임없이 한숨을 쉬며 누나에게 끌려갈 때 간신히 해동이 되었는지 크락이 쫓아 오며 불렀다. "잠시만 요! 두 분만 가실 생각이었습니까?" "네 그런데요." "너무 위험합니다! 저와 마을 경비대가 따라 가겠습니다." "따라올 필요 없어요. 저의 마법과 우리 자기의 검술 실력만 있으면 고 블린들은 충분히 상대 할 수 있어요." "그...그렇지만....." 누나를 보호하고 싶다는 그 마음은 이해가 된다. 인간들 입장에서 그 수조차 정확히 확인 안된 고블린 떼들에게 단 둘이 가는 게 걱정이 되 겠지. 그런데 말이야.... 왜 날 그렇게 못 미더운 눈으로 바라보는 거 냐고?!! "아무리 그래도 마법을 쓰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고 그 시간을 검사 들이 벌어야 되잖습니까. 그런데 겨우 검사 한 명으로 그 시간을 벌 수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되는데요." 어느새 뒤에 따라온 맥스가 어디서 주워들은 지식이 있는지 마법사, 검 사 파티는 이렇게 싸워야 된다는 논리를 들고 나왔다. 누나는 곤란한 표정.... 실은 저 둘에게는 그렇게 보이겠지만 나에게는 귀찮다는 표정 으로 보였다. 누나는 조금 생각을 하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확실히 그렇긴 해요. 하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이 가면 오히려 마법을 쓰는데 방해가 되요. 그러니 두 명 정도만 같이 가는 게 좋은데...." 누나가 두 명도 귀찮아서인지 말끝을 흐리자 그걸 또 어떻게 해석했는 지 얼어 버렸던 인간들이 일제히 해동되면서 '제가 가겠습니다!' 라고 소리치며 살기 등등하게 외쳐 됐다. "잠깐! 넌 나보다 검술 실력도 못하면서 왜 나서!!" "난 창을 잘 쓴다고!" "남자는 검이다! 검 아닌 사람은 빠져!!" "웃기고 있네! 아가씨! 엘프도 울고 갈 최고의 명사수는 접니다! 저를 데려 가세요!!" "아가씨! 이 큰 도끼가 보이십니까? 이 큰 도끼를 다루는 것으로 모든 것이 설명될 겁니다!" "만부부당이라는 말을 들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저를 데려가시면 만 명의 병사를 상대한다는 장군의 기질을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헛소리에 귀 기울이지 마십시오! 남자는 입으로 안 떠듭니다. 저를 데 려가시면 실력으로 보여 드리겠습니다!" "너도 입으로 떠들잖아!" 하하하.... 이제 황당하다 못해 무섭다. 살기 등등한 욕정에 물든 늑대 들(?)의 기세에 내가 질려서 뒤로 물러설 때 누나는 재미있다는 얼굴로 '누굴 데려갈까?' 라는 표정으로 인간들을 고르고 있었다. 누나와 눈이 마주친 남자들은 일순간 세상을 다 얻은 표정을 짓다가도 곧 다른 곳으 로 눈길이 가자 세상을 다 잃은 것 같은 표정으로 좌절했다. 나 역시 보다 보니 '재미있네' 라는 생각이 들어서 누나랑 같이 구경하고 있을 때 잠자코 사태를 지켜보던 크락이 팔짱을 풀고는 앞으로 나서며 말했 다. "전부 거기까지다. 아가씨를 따라가는 것은 나와 맥스가 할 일이다." 크락의 말이 떨어지자 인간들의 입에서 일제히 야유와 불만이 쏟아졌지 만 크락의 단 한마디의 말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누가 대장이지?" 그 한마디는 인간들의 권력이라 하는 힘의 차이를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의미 있는(?) 한마디였다. 우리 드래곤들에게도 로드라는 직책이 있다. 그러나 그런 직책은 단지 그 일족을 대표한다는 뜻에서 가장 나이 많은 드래곤이나 현명한 드래곤이 맡는 것뿐이지 방금 같은 절대적인 힘의 차이는 아니다. 아니 비슷한 예가 있긴 하다. 가장 가까이 있는 예로 누나와 나의 차이가 지금 저기 크락과 다른 인간들의 차이가 아닐까? 그런데 생각해 보니 이놈의 인간이 '아가씨를 따라가는 것은' 이라고 했지? '젠장 누나만 가냐?! 나도 가는데 나는 싹 무시하는 거냐?!' 아무튼 그렇게 돼서 크락과 맥스가 우리 남매 - 이들에게는 애인 사이 - 동행하게 되었고, 다른 인간들은 나에게 향해지던 살기를 크락과 맥 스에게 골고루 나눠주며 방책을 좀 더 튼튼하게 만드는 일을 하게 됐 다. "자 출발할까요?" 누나는 어차피 귀찮은 혹이 따라 올 바에는 그래도 안면 있는 인간이 따라오는 게 나을 거라고 나에게만 살짝 말했다. 그리고 덧붙이기를... "그래야 이것저것 많이 써먹지." 라고 덧붙였다. 불쌍한 인간 녀석들.... 뭐 하러 사서 고생을 하겠다는 건지.... 하긴 모르니깐 따라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거지. 어이구 무 지가 죄다. 무지가 죄야. 그렇게 인간 둘과 드래곤 둘로 급조된 신생 고블린 퇴치 파티는 숲 속 으로 첫발을 내딛었다. 계속 ------------------------------------------------------------------ 드래곤 남매 16화 여행의 시작은 고블린 퇴치부터(3) "고블린들이군요." "저기가 고블린들의 소굴이군요." "의외로 빨리 찾아서 다행이에요." "찾는 과정이 조금 그랬지만... 뭐 어째 든 잘된 거네요?" 티아가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지만 인간 남자 둘과 드래곤 남자 하나는 그 말에 동의할 수가 없었다. 제법 깊은 숲 속에서 헤매던 중 고블린 퇴치 파티는 동물 멱따는 것 같은 소리를 듣고 조용히 그쪽으로 접근했 다. 그리고 그들은 고블린 커플의 밀회를 구경할 수 있었다. 고블린들 은 야행성이라 밤에만 활동한다. 그렇기 때문에 고블린들을 낮에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야간 작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던 길이거나 고블린 들의 소굴에 가까이 접근했을 때뿐이었다. 아니 그들도 분명 그때까지 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불타는 젊음(?)을 억누르지 못해 인간으로 치자면 그들에게는 으슥한 밤 시간인 이때에 불장난(?) 을 치러 소굴 밖으로 나온 것을 발견한 것이다. 고블린을 퇴치하기 위 한 방법을 다시 써야 될 이 황당한 광경에 남자들은 얼이 빠져서 멍하 니 두 고블린 연인의 사랑 놀음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고, 티아는 '호 오. 음. 아하! 킥킥킥' 등 온갖 감탄사를 사용하면서 구경하고는 일(?) 이 끝나고 사이좋게 손잡고 소굴로 돌아가는 고블린 연인들의 뒤를 쫓 자면서 아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남자들을 닦달해서 미행을 시작했 다. 그리고 제법 한참을 몰래 따라가서 커다란 나무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동굴을 발견하였고, 고블린 연인이 그 동굴에 들어가는 것을 확인 하였다. 그렇게 해서 고블린들의 소굴을 생각보다 빨리 찾게 된 것이 다. 뭐 찾는 과정이야 두 번 다시 생각하기 싫은 광경이었으니 잠시 접어 두고, 그들은 어떻게 저 놈들을 일망타진할까 라는 고민을 시작했다. "그냥 마법으로 저 입구를 부숴 버릴까요? 매장을 시켜 버리는 거예요. " 좋은 방법이기 하다. 그러나.... "안됩니다. 아가씨. 저 녀석들의 입구가 꼭 저기 하나만 이라는 법이 없습니다." "맞습니다. 더구나 방금 그 녀석들의 행동으로 미루어 보아 몰래 나온 것 같습니다. 저 입구도 엄청 좁아 보이는 걸로 보아 진짜 입구가 아니 라 일종의 개구멍일지도 모릅니다." 맥스의 제법 조리 있는 설명에 크락과 테이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매서 운 눈으로 맥스를 노려보았다. 맥스는 뭐 실수한 거 있나 당황하다가 아무 생각 없이 말했던 자신도 생각하기 싫은 고블린들의 불장난 광경 이 생각나서 고개를 숙이며 미안함을 표했다. 필사적으로 잊어버리고 싶었던 광경을 다시 생각나게 해준 맥스를 노려보던 크락과 테이는 맥 스가 고개를 숙이자 눈길을 거두고는 다시 고민에 빠졌다. "좀더 이 주위를 조사해서 진짜 입구를 찾아볼까요?" 테이의 말에 크락은 조금 힘든 표정을 지었다. 크락은 고블린들의 개구 멍(?)을 가리키며 말했다. "보시는 바와 같이 큰 나무에 가려 안보이지만 저 동굴의 입구는 조그 마한 언덕에 있습니다. 저런 종류의 자연 동굴은 안이 굉장히 복잡하 고, 입구도 여러 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아니 고블린들이 쓰는 입구는 한 군대 일수도 있지만 꼭 저 입구와 가까이에 있다는 보장도 없습니 다. 그걸 찾으려면 흩어져서 찾는 방법이 제일 좋지만...." 크락이 마지막 말을 흐리며 말을 잇지 못하자 테이는 알겠다는 듯이 고 개를 끄덕였다. "하긴 따로 행동하는 건 이 숲 속에서는 위험한 일이죠." 테이는 이 인간 둘만 행동하게 되면 이 둘이 위험하다는 생각을 했고, 크락과 맥스는 절대로 아가씨를 위험하게 만들 수가 없다는 생각을 - 여전히 테이는 그 둘에게 관심 밖이었다 - 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드래 곤이 인간을 인간이 드래곤을 걱정해 주는 우스운 꼴이 된 것을 알 리 가 없는 남자 셋이 한숨을 쉬며 다른 방법을 생각할 때 티아가 손을 치 며 자신 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좋은 방법이 있어요!" "뭡니까?" "말해 보세요." 크락과 맥스는 기대에 찬 눈으로 티아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지난 오백 년 간 당할 만큼 당했던 테이는 한숨을 쉬었다. 마치 무슨 말을 할지 다 안다는 듯이... 티아는 그런 테이는 싹 무시하고, 기대에 찬 크락과 맥스에게 말했다. "정면 돌파! 괜찮은 방법이죠?" "......." "......." 크락과 맥스가 아무 대답도 못하고 있을 때 티아는 '괜찮은 방법이죠?' 라는 의미의 미소를 계속 지으며 둘의 대답을 기다렸다. 테이는 '그럼 그렇지' 라고 중얼거렸고, 간신히 정신을 차린 크락과 맥스와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차라리 지금 경비대를 데려올까요? 정규 병사는 아니지만 그래도 나무 꾼을 하며 단련된 체력을 가졌으니 고블린 몇 마리와는 충분히 싸울 수 있습니다." "안에 고블린들이 몇 십... 아니 몇 백 마리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충 분히 파악도 안됐는데 들어가는 건 너무 위험합니다." "테이루아 님의 말이 맞아 맥스. 일단은 오늘은 진짜 입구를 찾는 거로 만족하고 내일 화공책이라도 준비해서 다시 오는 게 좋을 거야." "하지만 당장 오늘밤에 저 놈들이 쳐들어올지도 모르잖아요?" "그러니 방책을 세워 둔 것 아닙니까? 당신들이 만들었으니 믿음을 가 지세요. 그 방책은 꽤 튼튼하더군요. 그 정도면 두 세 번의 공격은 충 분히 막을 수 있을 겁니다." 티아는 싹 무시한 체 열심히 작전을 짜는 남자 셋을 그냥 곱게 보고 있 을 티아가 아니었다. 그러나 테이 혼자 뿐이라면 벌써 성질 내고도 남 았지만 인간들이 있는데서 함부로 본성을 내 보일 수 없기 때문에 티아 는 속으로 이를 갈아야 됐다. 그러다가 문득 좋은 생각이 난 티아는 세 남자가 모르게 생긋 웃으며 테이에게 말했다. 아니 정확히는 남은 두 남자도 들으라는 듯이 대놓고 말했다. "그럼 자기는 내일 싸워야 되니깐 힘을 아껴 두어야겠네. 아쉽지만 오 늘밤은 일찍 재워 줄게. 대신 이 일이 끝나고, 이 마을에 며칠 쉬었다 가자." 세 남자는 순간 자신들이 환청을 들었나 하는 표정으로 티아를 쳐다보 았고, 티아는 방금 한 말이 환청이 아니라는 의미로 한마디 더했다. "헤 그치만 역시 자기를 재우기 싫다." 티아는 말을 하면서 얼굴까지 살짝 붉어졌다. 부끄러우면 왜 그 따위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는 테이의 무언의 질문을 티아는 싹 무시하고 는 몸을 돌려 숲 안쪽으로 걸어갔다. "어..어...어디 가십니까? 혼자서 가시면 위험합니다." 크락이 간신히 정신을 추스르고 물어 보자 티아는 여전히 얼굴을 붉히 며 말했다. "여자는 가끔 혼자서 해야 될 일이 있는 법. 그런걸 함부로 물어 보시 면 안돼요." "앗?! 죄..죄송합니다!!" 티아가 말하는 의미(?)를 알아채고 크락이 호들갑을 떨면서 큰소리를 지르자 놀란 맥스와 테이가 급히 크락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고는 고블 린들의 소굴로 눈을 돌렸다. 다행히 그 입구는 정식 입구가 아니어서 그런지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티아는 작게 킥킥 웃고는 그대로 숲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어느 정도 충격이 가시자 크락과 맥스는 다시 금 테이를 부러움과 질투를 담아 흘겨보았다. 그러나 바닥에 두 팔을 딛고 엎드려서 허탈해 하고 있는 테이는 그 둘의 시선을 느낄 수가 없 었다. '크흑. 오늘밤도... 지옥이야.' 정말 눈물밖에 나오지 않는 테이였다. 일행과 어느 정도 거리가 떨어지자 티아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혹시라 도 몰래 따라왔을지도 모를 죽여도 시원찮을 놈이 없나 살폈다. 그러나 그런 짓을 할 위인은 애초에 따라오지도 않았기에 주위에는 아무도 없 었다. "에이구. 역시 테이랑 나랑 둘만 왔으면 벌써 해결하고 돌아갔을 텐데. .. 뭐 별 수 없지." 티아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곧 마법을 시전 하였다. "워프" 워프를 쓴 티아는 어두운 동굴 속으로 이동했다. 티아는 아까 보았던 그 조그마한 동굴 입구 안으로 워프 한 것이었다. 다행히 입구 앞의 큰 나무가 입구를 거의 가려 주고 있기 때문에 남자들에게는 티아가 이곳 에 있다는 사실을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티아는 아 무런 꺼림임 없이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동굴 깊숙이 들어가면 갈수록 좁아지던 공간은 어느 순간부터 확 트인 공간으로 바뀌었고, 좀 더 안 으로 들어가자 넓은 공터가 나왔다. 축축한 공터 여기저기에는 고블린 들이 거죽에 가까운 덮을 거라고 차마 부르기 힘든 그 무언가(?)를 덮 은 체 여기저기 흩어져서 웅크리고 누워 자고들 있었다. 그리고 티아가 들어온 입구 반대편에는 제법 큼직한 또 다른 입구가 있었다. 티아는 조용히 주변을 둘러보며 무엇인가를 찾았다. 그리고 그 무엇인가를 찾 은 티아는 조용히 그 곳으로 이동했다. 티아가 찾은 것은 바로 고블린들 중에서 우두머리 급인 고블린 왕이었 다. 일반 고블린의 배 이상 큰 그 고블린 왕은 왕이라는 것을 선전이라 도 하는지 침대에서 자고 있었다. 침대라고 부르기가 힘든 조잡한 물건 이지만 그래도 다른 고블린들이 바닥에서 자는 것에 비하면 권력이라는 게 얼마나 좋은 건지 보여주는 셈이었다. 하지만 그 덕분에 티아는 아 주 힘 안들이고 고블린들의 왕을 찾았기에 지금은 재수가 없는 셈인지 도 모른다. 뭐 어차피 티아는 처음부터 찾다가 못 찾겠으면 다 깨워 놓 고 찾을 생각이었기에 별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티아는 고블린 왕의 침대(?)에 가서는 침대 끄트머리를 잡아서 그대로 확 들어 버렸다. 아주 간단하고 확실한 잠 깨우기에 고블린 왕 은 비명을 지르며 일어났고, 그 소리에 다른 고블린들이 후다닥 일어났 다. 잠시 갑작스런 일에 상황판단이 안되던 고블린들은 곧 머리를 쥐고 일어나는 자신들의 왕과 그 앞에 서서 생글거리고 있는 인간(?) 여자를 보고는 감을 잡았는지 실실 쪼개면서 각자 무기를 잡았다. 그러나 고블 린들은 감을 잘못 잡은 것이다. "일어났으면 나 좀 도와줄래?" 생글거리면서 웃는 티아의 말에 고블린들은 일제히 무기를 떨어트리고, 바닥에 머리를 박으며 두려움에 떨어야 됐다. 어느새 티아는 드래곤 아 이를 풀어서 100% 힘으로 고블린들을 지긋이 쳐다보았고, 목소리에는 드래곤 피어를 적당히 담아서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 도와줄 수 있지?" 여전히 생글거리며 말하는 티아의 부탁(?)에 고블린 왕은 감히 고개를 저을 수가 없었다. 그저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기만 할 뿐이었다. "그래? 도와준다니 고맙네. 그런데 너 일단 맞고 시작해야겠다." 고블린 왕은 고개를 번쩍 들고는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냐고 억울하다 는 눈빛으로 티아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이고, 여전히 드래 곤 아이를 풀지 않은 티아의 드래곤 눈에 얼른 눈길을 돌렸다. "도와주겠다는 건 아까도 말했듯이 고마운데 왜 대답은 안하고 고개만 까닥거려? 그렇게 내가 우습게 보여?" 티아는 기분 나쁘다는 말투로 말했지만 여전히 얼굴은 생글거리고 있었 다. 마치 부모님에게 선물 받는 것을 기다리는 어린 아이의 눈빛과 같 다고나 할까? 그런 천진 난만(?)한 표정의 티아는 미스릴로 만들어서 원만해서는 절대 부러지지 않는 마법 지팡이를 들었다. "그러니 너는 맞고 시작하자." 잠시 후 고블린들의 소굴에서 고블린 왕의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한참 떨어진 입구에 있던 남자들은 결코 들을 수가 없었다. 동굴 안의 방음이 워낙 잘 되어 있어서 테이조차 그 처절하고 자신과는 친숙할 수 도 있는 비명 소리는 듣지 못했다. 상당한 시간이 지난 것 같았다. 나야 인간들처럼 배설이라는 것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들의 그(?) 시간 어느 정도인지 모르기 때문에 아까부 터 '왜 아가씨가 안 돌아오시지?' 라고 안절부절못하는 두 인간들을 보 고는 티아 누나가 인간들에 비해서 오래 시간을 때우나 하는 생각 중이 었다. 그런데 그 자존심 높은 누나가 인간들 그것도 남자 앞에서 배설 하러 가겠다는 말을 한 이유가 뭐지? 도대체 또 무슨 꿍꿍이를 꾸미는 거야? 라는 생각들을 하면서 끙끙대고 있을 때 맥스가 나에게 짜증을 부렸다. "테이루아 님. 애인이신 티아 님께서 안 돌아오시는데 걱정도 안되십니 까? 그렇게 느긋하게 되십니까?" "......." 이 인간이 지금 무슨 망언을 하고 있는 거야? 역시 그냥 콱 죽여 버려? 난 죽인다 인생이 불쌍하니 그냥 놔둔다 에서 갈등하면서 아무렇게나 말했다. "원래 오래 걸려." "네?" "티아는 원래 오래 걸린다고!" "아! 그..그랬습니까?" ......얼굴은 왜 붉히는 거야? 이 마을 사람들은 얼굴 붉히는 게 취미 인가? "앗 저것은?" 내가 이번에는 이 마을 사람들은 심심하면 얼굴 붉히는 것에 대해 심각 하게 생각하고 있을 때 크락이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 덕분에 나랑 맥 스는 다시 잽싸게 크락의 입을 막아야 됐다. 하지만 이번에는 크락도 쉽게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음! 음!' 이라고 외치며 손으로 동굴 입구 쪽을 가리켰다. 나와 맥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크락의 손가락을 따라 서 동굴로 눈길이 향했고, 고블린들이 내 누나라고 생각되는 것(?)을 묶어서 들고 동굴로 들어가는 게 보였다. 나는 너무나 황당한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고, 크락을 말리던 맥스도 누나의 모습에 흥분을 해서 바로 검을 빼 들고 뛰어갈 자세를 취했다. 그때 한발 먼저 누나의 외침 이 터져 나왔다. "자기야! 크락 씨! 맥스 씨! 미안해요!! 잡혀 버렸어요!! 하지만 걱정 은 마시고, 제발 도망가세요!! 지금 크락 씨들이 뛰어들면 모든 계획이 말짱 헛것이 되 버려요!! 저 하나 때문에 마을을 희생시키지 마세요!! 자기야!! 미안해!! 나 자기를 정말 사랑해!!!" 으에엑. 마음에도 없는 말을 저렇게 리얼하게 하다니... 누나가 소리 칠 것 다 치고 나니깐 그제야 고블린들이 조용히 하라는 듯이 몽둥이로 누나를 후려쳤다. 그리고 누나는 축 늘어져서 기절했다. 아니 기절한 척 한 거겠지. 내가 이렇게 자신할 수 있는 이유는 네 가지다. 첫째 잡힌 것 치고 타이밍 잘 맞춰서 할말 다하는 포로가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둘째 그리고 그런 포로가 할 말 다할 때까지 기다려 줬다가 기절시키는 몬스터가 어디 있겠는가? 더구나 슬쩍 때리는 척 하는 것이 뻔히 보였 다. 셋째 고블린들은 오로지 살육과 약탈만을 일삼는 몬스터다. 오크처럼 어느 정도 지능이 있어서 인간들과의 거래로 인신매매를 하는 고등(?) 몬스터가 절대 아니다. 마지막으로 이것이 절대적인 이유다. 내 누나가 고블린들에게 잡힐 리 가 없기 때문이다. 뭔가 꿍꿍이가 있으면 있었지. 절대 그냥 잡힐 위인 이 아니다. 이런 이유로 내가 과연 저 누나가 노리는 게 뭘까? 하는 고민을 할 때 크락과 맥스는 굳은 얼굴로 검을 빼 들었다. "티아 아가씨! 당신의 그 굳은 결심은 잘 알겠습니다. 그러나 이대로 아가씨를 못 본 척 하는 것은 남자의 도리가 아닙니다." "설령 내 목숨이 끊어져도 마을이 박살나도 당신을 구하고 말겠습니다. " 그렇게 굳은 결의를 다지는 인간 둘을 바라보며 난 속으로 중얼거렸다. '누나. 누나가 노리는 게 이거였어?' 참 티아 누나답다고 해야 될까? 그냥 쳐들어가면 어차피 누나와 나의 능력은 고블린 안녕 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인간 두 명 때문에 자꾸 시간을 잡아먹는 게 누나도 무척이나 아까웠던 모양이었다. 고블린들을 시켜서 자신을 인질 삼게 만들고는 말로는 절대 오면 안 된다느니 자신 이 희생하는 건 상관없다는 듯이 말을 하지만 그 말 깊숙이 담긴 뜻은 알아서 빨리 구해 오라는 뜻이었다. 그 증거로 방금 전까지 신중론을 펼치던 인간 둘은 눈에 뵈는 게 없다는 눈빛으로 결의를 다지고, 나를 쳐다보았다. 솔직히 '저게 누나 수법이야! 넘어가면 안 돼!' 라고 하고 싶지만 나 역시 하루라도 빨리 누나와 애인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기에 장단을 맞춰 주기로 하였다. 얼음의 마법검을 검집에서 빼 들고는 비장한 각오를 다지며 말했다. "티아. 당신은 반드시 이 손으로 구해 주겠오. 설령 그것 때문에 내 목 숨을 잃게 되더라도...." 이 정도면 제법 분위기가 나는 것 같은데.... 이보셔들 왜 '그래 잘 생 각했어. 너 죽고 그녀 살려' 라는 눈으로 쳐다보는 거야?! 지금 여기서 너희들 숨쉬기 운동 멈춰 줄까? 그리고 우리는 마을가서 당신 둘은 용 감히 고블린들과 맞서다가 골로 갔다고 말해도 문제없다는 것을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군. 이라고 아무리 마음속으로 이를 갈아 봐야 소용없지. '에휴 이제 나도 몰라 될 대로 대라지.' 난 그 둘의 죽으려면 얼른 죽어! 라는 그들의 눈빛을 무시하고는 검을 든 체 고블린들의 동굴을 향해 기합을 넣으며 달려갔다. 그리고 두 명 의 인간 남자가 정말 죽음을 각오하고 내 뒤를 따랐다. 첫 여행의 시작 은 고블린 퇴치 연극(!)부터 시작된 순간이었다. 계속 ------------------------------------------------------------------ 드래곤 남매 16화 여행의 시작은 고블린 퇴치부터(4) 누나는 이미 고블린들에게 의해서 동굴 속으로 끌려(?) 들어가고 난 뒤 였다. 나와 크락과 맥스는 있는 힘껏 기합을 지르며 동굴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동굴 속은 들어갈수록 좁아지다가 곧 넓어지더니 곧 큰 광장 으로 통했다. 그리고 그 광장에는 가운데 모닥불이 피워져 있었고, 다 른 고블린들과 덩치에서부터 차이가 나는 고블린들의 왕이 검을 누나에 게 막 겨누고 있던 차였다. 마치 구워 먹기 일보 직전의 분위기 같았 다. 그 광경을 쳐다보던 크락과 맥스의 눈은 뒤집혔다는 표현이 옮을 정도 로 뒤집히더니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그 기세에 고블린의 왕은 잠 시 주춤했다. 그러나 앞을 막아선 고블린들 덕분에 몸을 피할 시간을 번 고블린 왕은 다시금 몸을 추슬러서 누나의 목에 검을 갖다 대고 소 리를 질렀다. "크으욱." 마치 무기를 안 내려놓으면 재미없다는 듯한 행동에 비록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뜻을 전달하기에는 무리가 없었다. 앞을 막아선 몇 마리의 고 블린들을 베어 버린 크락과 맥스는 이를 갈면서 무기를 내려놓았다. 무 기를 내려놓은 크락이 한 발짝 앞으로 다가섰다. 고블린 왕은 다시 한 번 누나의 목을 그을 듯이 위협했고 그 자리에서 멈춰선 크락은 큰 소 리로 외쳤다. "우리가 졌다! 내가 대신 죽을 테니 그 아가씨는 놓아주기 바란다!" "크락 대장!" "아무 말도 하지 말아라. 맥스 나는 죽을 곳이 생기면 그리고 그 죽음 이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다면 아무 후회도 없다. 그리고 난 이 곳이 내가 죽을 곳이라고 믿는다." 그렇게 말한 크락은 정말 죽어도 후회가 없다는 듯이 양팔을 벌리고 찌 르려면 얼마든지 찌르라는 폼으로 천천히 고블린 왕에게 다가갔다. "크락 대장!!" 맥스는 비명에 가까운 소리로 크락을 불렀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정말 멋있는 남자의 모습이라 생각 될 것이지만 난 참으로 한심 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 모습이었다. 고블린들은 무조건 죽이고 약탈하는 것만 일삼는 몬스터. 그것이 일반 적인 상식이다. 그러니 지금 크락이 인질 교환이다 뭐다 하는 것이 일 반적으로 고블린들에게 먹힐 리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 크락과 맥스는 그런 일반적인 상식마저 생각이 안 날 정도로 머리가 굳어 있는 것 같 았다. 하긴 고블린들이 인질을 잡는다는 것 자체가 벌써 상식을 뛰어넘 은 행동이니 굳이 크락과 맥스만 탓할 이유는 없군. 그렇게 말하는 나는 지금 무얼 하고 있냐고? 눈에 뵈는 게 없이 뛰어 들어간 그들과는 달리 난 입구에서 살짝 빠져서 어둠을 이용해서 몰래 고블린 왕의 뒤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아까 입구에서부터 그 둘이 신경 을 끌어 준 탓에 나를 본 고블린들이 없는 상태였다. 이대로 누나한테 까지만 몰래 접근하면 이 연극은 끝이었다. 누나도 아마 이런 스토리로 무대(?)를 맞추었는지 누나가 고블린 왕에게 잡혀(?) 있는 곳은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가기 좋은 코스였다. 그리고 드래곤인 나는 이런 어 둠 속에서 몸을 움직이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었다. 어차피 어둠 속에 서도 사물을 볼 수 있는 것은 고블린들도 마찬가지이지만 뭐 저 둘이 알아서 잘 주위의 이목을 끌어 주고 있으니 아무 문제없다. "크으?" 고 생각했다. 젠장 꼬맹이 고블린 한 마리가 나를 무심히 쳐다보고 있 었다. '젠장 계획이 틀어져 버리겠군. 어쩌지? 그냥 확 뒤집어엎어?' 내가 검에 손을 가져가 대고 만약을 대비할 때 꼬맹이 고블린이 날 가 리키며 소리를 지르려고 했다. 정말 계획 틀어졌다 라고 생각할 때 그 꼬맹이 고블린의 엄마로 보이는 고블린이 쏜살같이 아이를 낚아채더니 입을 틀어막고 품속에 꼭 안은 체 시선을 다시 크락과 맥스에게로 돌렸 다. 어안이 벙벙해진 내가 멍하니 검에 갖다 댄 손을 뗄 생각도 못하고 있는데 내 주위의 고블린들도 방금 전 소동으로 나의 존재를 눈치 챈 것 같았다. 그러나 그들은 죽어도 절대로 나를 쳐다보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를 표출하며 오로지 앞만 쳐다보고 있었다. 잠시 허탈한 기분이 든 나는 이제 조심스럽게 걷기를 포기하고 크락과 맥스에게만 안 들키게 조심하며 졸래졸래 걸으며 고블린 왕이 있는 곳 으로 갔다. 고블린 왕은 여전히 누나의 목에 검을 들이댄 체였다. 그런데 가까이서 보니 그 상태에서 몸을 벌벌 떨며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었다. 모닥 불 하나 피워 놓은 어두운 동굴 속이라 크락과 맥스는 눈치 채지 못한 그 모습을 가까이서 본 나는 우습기도 하고, 왠지 그 고블린 왕이 불쌍 한 기분도 들었다. 이게 동병상련의 아픔이라는 걸까? 쩝 고블린과 같 은 아픔을 느끼다니 정말 우습군.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 다. 누나가 내가 가까이 온 것을 눈치 채고는 빨리 알아서 움직이라는 오로라를 팍팍 내뿜고 있었다. 동시에 실패하면 가만 안 두겠다는 친숙 한(?) 살기도 같이...... "뭐 하는 거냐? 어서 그 아가씨를 놓아주고 이 나를 죽여라! 아가씨를 살릴 수 있다면 내 이 한목숨 아무것도 아깝지 않다!" 음 내가 이동하는 동안 크락이 고블린 왕에게 아주 가까이 접근해 있었 군. 그래서 누나가 혹시라도 들키기 전에 빨리 끝내라고 날 협박한 거 구나. '......젠장 왜 난 누나의 협박을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이는 거 냐고?' 속으로 투덜대면서도 내 몸은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흑흑 드디어 내 몸 도 내 의지를 배신하는구나. 난 재빠르게 검을 빼 들고 달려가서 고블린 왕의 검을 두 동강내고는 그대로 고블린 왕의 뒤를 잡아서 목에 검을 들이대었다. "모두 움직이면 너희들의 왕의 목숨은 없다!!" 내 외침에 왕이 당하는 모습에 일순간 당황한 척(!)을 해주던 고블린들 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동작을 딱 멈췄다. 그 일사불란한 행동에 난 혀 를 내두르며 고블린들 맞아?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 생각은 곧 역시나 그러면 그렇지 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내가 인질(?)로 잡은 고블린 왕의 몸을 가까이서 보게 되니 여기 저기 멍이 든 것이 누군가 에게 죽도록 얻어터지고 간신히 움직일 수 있는 정도만 치료 마법을 받 았다는 티가 팍팍 났다. 그 누군가는 당연히 내 뒤에 있는 저 능구렁이 사촌쯤 되는 티아 누나겠지. 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고블린들도 자 기네 두목이 죽도록 얻어터지는 것을 보고는 겁이 나서 저런 움직임을 보이는 걸 테고.... '너도 정말 험한 꼴 당했구나.' '그래도 저 보다도 위대한 드래곤님께서 더 고생하셨겠습니다.' 난 눈으로 고블린 왕에게 위로를 하자 거꾸로 고블린 왕은 나를 위로하 는 눈빛으로 날 쳐다보았다. 크윽 이것이야말로 종족을 초월한 우정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녀석과 나는 잠시 같은 아픔을 겪었던 동지의 기 분을 맛보았다. 내가 고블린 왕의 뒤를 잡자 잠시 당황하던 크락과 맥스가 금방 상황판 단을 하고는 달려와서 묶여 있던 누나를 풀어 주었고, 우리는 고블린들 에게 따라오면 왕을 가만 안 두겠다는 제스처를 취하고는 고블린 왕을 인질(?)로 잡은 체 천천히 반대편의 고블린들의 진짜 출입구라 생각되 는 입구로 나아갔다. 고블린들은 정말 꼼짝도 하지 않은 체 우리를 멀 뚱멀뚱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멀게만 보이던 입구에 간신히 닿게 되자 누나는 나에게 마법으로 말을 걸었다. [이때야! 고블린 왕을 고블린들에게 집어던져!] 난 '왜?' 라는 질문은 생략하고 바로 고블린 왕을 번쩍 들어서 집어 던 졌다. 물론 속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것을 잊지는 않았다. 종족을 초월한 우정도 중요하겠지만.... 역시 난 누나에게 아직은 죽기 싫기 때문에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고블린 왕도 내 손에 날아가면서도 '괜찮습니다. 다 이해할 수 있습니다' 라는 눈빛 을 보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오나드!" 내가 고블린 왕을 집어 던지자마자 누나의 입에서 폭발계 마법의 시동 어가 터져 나갔고, 동시에 누나의 손에서 새하얀 빛의 구체가 맹렬하게 날아서 고블린들의 머리 뒤쪽을 지나쳐서 개구멍(?)이었던 입구를 말 그대로 개 박살을 냈다. 엄청난 폭음과 진동에 고블린들이 비명을 지를 때 누나가 소리쳤다. "뛰어요!" 난 아무 생각 없이 반사적으로 출구로 향해 뛰었고, 크락과 맥스도 죽 어라 뛰었다. 우리 뒤를 쫓아오던 누나는 다시 손을 들고는 외쳤다. "이오나드!!" 다시금 누나의 손에서 새하얀 빛의 구체가 쏜살같이 날아가서 우리가 빠져나온 출구의 천장에 부딪쳐서 이번에는 폭음과 진동에 먼지 폭풍까 지 동반했다. 누나는 실프들을 불러서 먼지에 묻히지 않게 해주었고, 우리들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못한 체 한동안 주저앉아 있었다. 어 느 정도 여유가 가라앉자 누나는 바로 마법 주문 영창에 들어갔다. "죽음의 신의 한숨! 어둠보다 더 어두운 안개! 그대에게 닿는 자들에게 죽음만을 안겨 주는 죽음의 안개여! 내 의지에 따라 내 앞을 막아선 어 리석은 자들에게 죽음을!" 주문이 끝나자 누나 손에서 어두운 안개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킬미스트!" 그리고 누나의 시동어에 죽음의 안개는 완전히 돌 더미에 묻힌 고블린 들 소굴의 입구로 천천히 스며들어갔다. 완전히 안개가 안으로 다 사라 지자 누나는 힘을 다한 듯이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티아 아가씨!" "아가씨!" 누나가 주저앉자 크락과 맥스가 누나 주위에 달려가서 안부를 물었고, 누나는 힘없이 미소를 지으며 괜찮다는 대답을 하였다. 정말 저 정도면 수준급의 연기였다. 아마 유명한 연극배우도 누나의 연기에 울고 갈걸. ... 그래도 나 역시 이 무대의 주역 중 한 명이기 때문에 말을 맞추기 위해 누나에게 다가갔다. "괜찮아?" 내가 손을 내밀자 누나는 미소를 지으며 내 손을 잡고 일어났다. "어?" 일어난 누나는 나에게 와락 안겼고, 눈물을 흘리며 내 귀에 속사였다. "고마워. 자기가 나 구하러 올 거라고 믿고 있었어. 아까 도망치라고는 소리쳤지만... 그래도 자기가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구해 주러 와서 고마워 자기야." '누나 아무리 연기도 좋지만 이 정도까지 철저하게 할 필요는 없잖아! 어이 거기 너희 둘! 노려보지마!! 나라고 좋아서 이러고 있는 줄 알아! !' 하지만 이미 누나에게 스타일을 잘 알고 있는 나는 겉으로는 다정한 미 소를 지으며 누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있었다. 덕분에 크락과 맥스 는 날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난 정말 억울해!! 계속 ------------------------------------------------------------------ 드래곤 남매 17화 구세주 전설의 탄생(1) "호오 그렇다면 고블린들은 생매장 당한데다 가 그 킬 뭐라는 마법에 의해 모조리 죽었다는 말인가요?" "킬미스트예요. 그 마법은 독 안개로 상대방의 목숨을 빼앗는 즉사 마 법 중에서도 상급에 속하는 마법이라 고블린들은 한 마리도 남김없이 죽었을 겁니다. 아니 확실히 다 죽었어요." 누나의 자신 있는 말에 크락과 맥스는 엄청나게 기뻐했다. 그렇게 마을 로 돌아온 우리들은 고블린들을 모조리 없앴다는 소식을 들고 가서 영 웅으로 환영받았고, 덕분에 그 날 마을에서 잔치가 열렸다. 밤늦게까지 계속 된 잔치는 그동안 전쟁에 시달렸고, 전쟁을 피해 산의 숲 속에 숨 어 들어와 살다가 몬스터들에게 시달려서 얼굴에 그늘이 져 있던 마을 사람들의 얼굴에 오랜만에 미소라는 감정을 찾아 준 것 같았다. 끊임없 이 먹을 것과 술을 권하는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맥스가 우리들의 활약상을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그런데...... "그렇게 되자 크락 대장님이 검을 버리고 소리쳤지. '너희들의 칼에 아 가씨의 고귀한 피를 흘리게 할 수 없다! 죽이려면 나를 죽여라!' 라고 소리를 치자 그 기세에 고블린들이 글쎄 검을 떨어트리고 길을 비켜 주 는 것이었어!" "오오!" 마을 사람들의 감탄을 들으면서 난 한숨을 쉬었다. 원래 저렇게 멋있는 대사였었나? 그리고 고블린들이 길을 비켜 준건 뒤에서 누나가 시켰기 때문인데.... 뭐 모르는 게 약이라고 했으니... "그래서 나는 '크락 대장' 이라고 소리쳤어. 하지만 부르기만 불렀지 차마 내가 대신 죽겠다고 할 용기가 나지를 않는 거야. 그러자 대장은 나를 바라보며....." 신경 끊자 신경 끊어. 저런 헛소리는 신경 끊고 밥이나 먹자. 먹는 게 남는 거다. 그런 생각에 난 부지런히 수저를 멈추지 않았는데 어느 순 간 수저를 딱 멈출 수밖에 없었다. "크락 대장의 장렬한 희생이 눈앞에서 막 일어나려는 찰나에 저기 테이 루아 님이 크락 대장이 기회를 만들어 주니깐 그걸 놓치지 않고 잽싸게 돌아가서 고블린 왕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인질극을 연출하더군." "에휴." 왜 그렇게 힘없이 설명하고 다들 - 전부 남자 - 한숨들을 쉬는 거야? 그럼 그 상황에서 그렇게 안 하면 다 죽을텐데... 연극이니깐 그렇게 크락의 쇼가 통했던 거지 실제 상황이었다면 너희 둘은 이미 죽었어. 그것도 모르면서 함부로 떠들다니.... 으이그 무지한 촌마을 인간들에 게 내가 뭘 바래? 이해심 깊은 내가 그르려니 하고 참아야지. "그리고 우리들은 고블린 왕을 인질 삼아서 그 자리를 탈출했어. 어느 정도까지 가자 티아 아가씨께서 재치 있게 마법을 써서 고블린들의 양 쪽 통로를 완전히 막아 버렸지. 그리고 킬... 거 뭐더라? 하여튼 대단 히 성스러운 마법으로 고블린들을 그 동굴 속에서 완전히 죽여 버렸어 !" 성스러운?? 즉사 계열의 마법이 성스럽다는 소리는 처음 듣는다. 누나 가 쓴 그 어두운 기운의 안개가 너 눈에는 새하얀 성스러운 안개로 보 였냐? 으이그 이제 더 이상 진짜로 신경 쓰지 말자. 머리만 아프다. "그럼 고블린 왕은?" 마을 사람들 중 누군가가 물어 보자 맥스는 잠시 나를 설명하기 힘든 눈빛으로 쳐다보더니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하는 것이었다. "테이루아 님이 알아서 집어 던지더라." "에에?!" 사람들의 입에서 감탄사와는 거리가 먼 소리가 튀어나오더니 죄다 나를 쳐다보았다. 하나같이 보기보다 하는 짓이 잔인하다는 그 시선에 난 나 도 모르게 절로 힘줄이 솟는 느낌을 받았다. 후..... 참.... 자. 빠드 득 "이야 역시 크락 대장이라니깐." "글세 말이야. 나라면 절대 그렇게 못할 거야. 여자를 위해서 당당하게 목숨을 버리겠다니 정말 멋있어." 멋있긴... 사랑하는 여자 놔두고 죽는 남자가 뭐가 멋있어? 더구나 그 렇게 죽는다고 여자가 살아 날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는데.... 여러 번 말하지만 만약 그게 실제 상황이었다면 크락이 죽는다고 고블린들이 잘 도 누나를 살려 두겠다. 뭐 하긴 고블린에게 죽을 누나는 아니지만. "야 말 들어보니 티아 님과 크락 대장이 이번 고블린 퇴치에 가장 큰 공헌을 한 거잖아!" "그러게 정말 멋있는 한 쌍이라니깐." "크락 대장님과 티아 님에게 모두 건배하자!" '후후후 그래 마음대로 떠들고 정말 부탁이니깐 내 누나 제발 좀 데려 가라 흥!' 생각은 그렇게 했지만.... 젠장 왜 다 엎어 버리고 싶은 거지? 내가 원 인 모를 분을 삭이고 있을 때 내 옆에 앉아 있던 누나가 내 어깨에 얼 굴이 비비더니 말했다. "자기야. 나 졸려. 몸도 안 좋은데 무리한 마법을 썼나 봐." "어? 으응 그래? 그럼 그만 가서 쉬어." "안아서 데려가 줘." 거듭 말하자면... 그래 솔직히 말해서 거듭 변명하자면 누나의 명을 거 역한다는 것은 목숨과도 관련이 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난 누나를 가볍 게 앉아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이 많이 아프신 겁니까?" 누나 바로 곁에 있던 크락이 걱정스런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누나는 힘이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홀몸도 아닌데 무리를 좀 했나 봐요." 나도 크락도 그리고 주위의 마을 사람들 - 전부가 남자 - 전부는 잠시 누나가 한 말의 뜻이 무엇일까? 하는 고민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 역시 마찬 가지였다. 아니 전부들 뜻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크락은 간신히 더듬대며 누나에게 확인을 하였다. "호..홀몸이... 아니시라고요?" "어머 눈치 못 채셨어요? 우리 자기랑 저랑 성이 똑같다는 사실을요." "예? 그럼 루아란 게.... 성이었습니까?" "네. 좀 저희 둘 다 이름이랑 어울려서 자주 오해를 받았었는데 미리 말을 한다는 게 깜박했네요." 누나는 충격에 굳어 있는 나와 마을 청년들은 싹 무시한 체 설명이라고 생각되는 말을 시작했다. "우리 자기랑 저는 여행 중에 만났어요. 여러 가지 공통점이 있어서 곧 서로에게 끌렸고, 같이 여행을 하던 중에 마음이 통해서 둘 만의 결혼 식을 올렸습니다. 그때 우리 자기는 나중에 한 자리에 정착하면 꼭 웨 딩 드레스를 입고 성대하게 결혼식을 다시 하자는 말을 해줬어요. 전 정말 행복했어요. 지금도 행복하고요. 근데 신혼여행이라고도 할 수 있 는 둘만의 결혼식 직후의 여행에... 그... 허니문 베이비가 생기는 바 람에 저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중이랍니다. 아기는 제 고향에서 낳고 싶 다는 제 고집을 우리 자기가 들어준 거예요. 그래서 저희 둘은 내 고향 인 프론트 연합국으로 돌아가는 중이었습니다." 누나의 말에 로맨스를 좋아할 나이인 마을의 소녀들은 부럽다는 표정들 을 지었고, 아줌마들은 '저럴 때가 정말 좋을 때지' 라고 말하며 축복 을 해주셨다. 물론 나는 그 축하 인사들을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 어서 어정쩡하게 서 있을 때 한 아줌마가 말했다. "아 뭐해요? 새신랑. 새색시의 몸도 안 좋은데 얼른 들어가서 푹 쉬어 요." 누가 새신랑이에요? 누가? "지금이 임신 중에 가장 위험한 시기라고요. 쯧쯧 하긴 젊은 사람들이 그걸 잘 알고 있을 리가 없지. 정말 큰일 날 뻔했네요." 임신이라니.... 그렇게 무서운 단어 함부로 내 뱉지 마세요! 주로 아줌마들이 우리 둘을 빨리 들어가서 쉴 것을 권했고, 누나는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내 목에 팔을 두르고 꼭 안으며 부끄럽다는 자세를 취했다. 그 곳에 더 있어 봐야 못들을 말만 더 들을 것 같은 예감에 난 못 이기는 척 고개를 끄덕이며 그 자리를 재빨리 벗어났다. 그리고 좀 더 사실성을 주기 위해 선지 누나가 마법으로 [좀더 다정하게 행동해] 라는 명령을 내려 어쩔 수 없이 새색시를 소중히 안고 가는 새신랑의 따뜻한(?) 뒷모습을 연출하였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우리가 자리를 뜨 고 난 뒤에 술이 급속도로 비워져서 마을에 있던 1년 치 술이 몽땅 동 이 낫다고 전해 들었다. 물론 그 술은 마을의 청년들 및 일부 유부남들 이 비웠다고 한다. 우리가 그 자리를 벗어나자 누나는 갑자기 킥킥거리며 웃다가 고개를 들고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이 정도면 아까 남자들에게 충분히 복수가 되었겠지?" "......." 역시나 예상은 하고 있었다. 누나는 시종일관 남자들에게 둘러 쌓여 이 야기를 들으며 웃음 짓고 있었지만 아까 맥스의 이야기에서부터 나만이 알 수 있는 화났다는 표시를 보이고 있었다. 이것이 티아 누나 식의 동 생 사랑인가? "자 그럼 아까 그 장소로 가 보자. 참 내 그 놈들도 인간 둘이 따라오 는 덕분에 목숨을 건지다니 웃긴 상황이긴 하지만 그래도 약속을 해줬 으니 지켜야지." "누나." "응?" "그럼 그만 내려." 내가 누나에게 말하며 내려놓으려고 하자 누나는 내 목에 두른 팔에 더 욱 힘을 주면서 말했다. "으음 조금만 더 이렇게 있게 해줘. 자기야~~." "우리 둘이 있을 때는 그 연극은 집어치워!!" "뭐 어때? 연습한다고 생각하면 상관없잖아." "누나하고는 절대로 죽어도 싫어!" 앗! 실수다. 내가 급히 입을 막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으아악 난 죽었다! "그래 나랑은.... 싫은 거구나." '어라?' "하긴.... 매일 동생이나 괴롭히는... 누나는 싫겠지?"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저기 눈에서 볼 타고 흐르는 물이 눈물이라 는 것 맞지? 설마 지금 꿈속인가? "난 그저... 그냥 그저 귀여운 동생이랑 애인 놀이해도 재미있겠다 생 각했는데 그랬는데...흑... 미 미안 안 울려고 했는데... 으흑." 내가 받은 충격이 어땠는지 다들 알리라 생각하고 넘어가더라도 난 충 격 때문에 멍하니 있거나 하지를 못했다. "저기 누나." "미안. 미안해 테이야. 흑흑흑. 안 울려고 했는데 눈물이...." "우..울지마!! 내가 잘못했으니 울지 말란 말이야!!" 솔직히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아무리 무섭고 미운 누 나라도 누나가 저렇게 불쌍하게 우는 것을 보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 다. 거듭 말하지만 누나는 예쁘다. 본체 모습으로도 드래곤 특유의 여 성 체로서 아름다움이 돋보였고, 인간으로 폴리모프 해도 그 아름다움 이 그대로 인간 모습으로 변해서 아름답다. 그런 여자가 속 내용물(?) 이 어떻고 간에 저렇게 약하고, 처량하게 보이게 울자 내 머릿속에 이 성이란 이성은 전부 누나의 울음을 멈추게 하라고, 명령을 내리고 있었 다. 그것이 남자가 해야 될 일이라고, 굳건히 믿고 있는 나는 필사적으 로 누나를 달래 주었다. "누나 울지마.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한말이야. 나도 모르게 나온 말이 라고 신경 쓰지마." "흑. 무의식중에 나온 말이 진실이라던데. 흑 역시 테이는 이 누나를 싫어하는구나." "그게 아니라니깐!! 난 누나 싫어하지 않아!!" "정말?" "정말이야!!" "정말에 정말?" "정말에, 정말에 정말이야!!" "그럼 계속 애인 행세 해줄 거야?" "당연하지!!" "헤헤헤 고마워. 역시 착한 내 동생이야." 누나는 언제 울었냐는 듯이 금방 표정을 풀고는 밝게 웃었다. 왜 갑자 기 말려들었다는 느낌이 팍팍 드는 거지? 누나는 뭔가 일이 틀어진 것 같은 느낌이 자꾸 드는 내 팔을 잡고는 내 귀에 속삭였다. "자 그럼 얼른 가서 해결하고, 자러 가자. 자~기~야." .......마 말려들었다아!!! 내가 급히 말을 정정하려고 했지만 누나 쪽 이 훨씬 빨랐다. 그리고 완벽했다. "역시 자기는 약속 잘 지키는 멋쟁이 정의의 용사 드래곤이야." 라고 못을 박아 버린 것이다. 아는 분들이 많겠지만 모르는 분들을 위 해 부연 설명을 붙이자면 난 용사를 동경한다. 그리고 정의의 용사가 되고 싶다. 그런 나에게 일종의 용사 수칙이라는 게 생겨 버렸는데 그 중 하나가 용사는 약속은 절대 지킨다. 라는 항목이 있다. 어차피 우리 드래곤들은 약속을 지켜야 되는 약속의 종족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은 용언으로 한 맹약일 때뿐이지 이런 간단한 약속에까지 유효한 게 아니다. 하지만 내 용사 수칙 상황을 어기면 용사가 될 수 없다는 생각에 난 되도록 이 수칙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지켜 왔다. 그리고 누나는 이런 나를 아주 자~알 알고 있었다. - 옛날에 내 가 떠든 적이 있다 - 그러므로 나의 대답은... "당연하지! 난 정의의 용사 드래곤이니깐. 여자를 울리는 나쁜 드래곤 이 아니거든! 하하하!" 난 말은 이렇게 했지만 속으로는 눈물을 삼키며 생각했다. '역시 여자는 종족을 막론하고 전부 여우야아!!!' 그렇게 헛된 외침을 지르며 누나의 손에 끌려 워프를 했다. 계속 ------------------------------------------------------------------ 드래곤 남매 17화 구세주 전설의 탄생(2) 조용한 숲 속의 밤. 그러나 지금 만큼은 조용한 숲 속의 밤은 더 이상 조용하지가 못했다. 수 십 마리의 고블린 떼들의 북적거림으로 인간들 의 큰 도시의 소음을 방불케 하는 중이었다. "자. 자. 조용히 약속대로 죽은 고블린들은 없지?" 누나는 시끄러운 고블린들에게 배는 큰 목소리로 조용히 시키자 거짓말 처럼 고요해졌다. 역시나 내가 생각했던 대로 누나도 이곳에서 시간을 더 끌 생각은 없어서 아까 우리보다 한발 앞서 고블린들에게 시키는 대 로하면 살려 주겠다는 협박을 - 누나는 권유라고 주장했지만 - 했던 것 이다. 누나가 아까 쓴 마법은 즉사 계열의 킬미스트가 아닌 단지 잠을 부르는 구름이었을 뿐이다. 그것을 누나는 안개처럼 보이게 하고 제법 분위기 잡고, 써서 크락과 맥스를 완벽하게 속였던 것이다. 하긴 그들 이 마법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 리가 없으니 속아 넘어 간 거지. 아 그 리고 아까 크락과 맥스에게 베인 고블린들이 있긴 있었지만 그리 깊게 베인 것은 아니어서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고, 잠을 부르는 구름 덕분에 푹 자자 어느 정도 자연 치유가 되었고, 누나가 치유 마법을 걸어 줘서 누나는 100% 완벽하게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 그리고 누나가 그 약속 을 지킨 대가로 얻어 낸 것은..... "자 그럼 약속대로 두 번 다시 여기 인간들의 마을은 안 건드리는 거 다. 그럼 어서 저 위로 올라가!" 라고 하면서 우리들의 레어가 있는 즉 강한 몬스터가 우글거리는 곳을 손으로 가리켰다. 물론 고블린들 입장에서는 지금은 살려 두겠지만 나 중에 죽든지 살던지는 알아서 노력하라는 뜻이다. 그러나 고블린이 어 찌 드래곤을 더구나 우리 누나의 말을 거역할 수 있겠는가? 그저 가라면 가야지.... 나 역시 얼마 전이라면 이 녀석들이 죽거나 말 거나 상관 안 하겠지만.... [그럼 몸 건강하게 지내십시오. 위대한 드래곤이시여.] 라고 눈으로 나를 걱정해 주는 저 고블린 왕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았 다. [그대의 이름은?] [저 같이 미천한 미물에게 이름은 없습니다. 그저 수많은 고블린들의 부족 중 하나인 이름 없는 부족의 이름 없는 왕일 뿐입니다.] 크윽. 이름이라도 알아두려 했는데 이름 마저 없다니.... 이 무슨 슬픈 일이란 말인가? 더 이상 참지 못한 나는 고블린 왕의 검을 빼 들었다. 내 갑작스런 행 동에 고블린 왕이 눈만 멀뚱하게 뜨며 바라보자, 난 그냥 조용히 웃으 며 그 왕의 검에 내 기운을 주입했다. 가만히 빼 들어도 내 기운이 주위에 넘실거릴 정도로 내 기운이 주입되 자 난 검을 고블린 왕에게 건네주고는 눈으로 말했다. [이것은 네가 나의 신하라는 의미이다. 그러니 내 너에게 친히 이름을 내리니 너의 이름은 앞으로 [라더]이다. - 동지라는 의미의 고대어 -] [위..위대한 드래곤이시여...] 비록 내가 지어 준 이름의 뜻은 고블린 왕은 이해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위대한 종족으로 통하는 내가 직접 이름을 내린 것만으로 고 블린 왕은 감동을 하였는지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이제부터 너는 내 레어를 수호하는 문지기이다. 내 레어에 접근하는 몬스터에게 그 검을 들이대라 나의 권능으로 너희들에게 그 어떤 몬스 터도 해를 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너희들은 내 레어를 목숨걸고 지켜야 된다.] 내 엄숙한 말에 고블린 왕은 눈물을 흘리며 내 발 앞에 엎드려 앉아 고 개를 땅에 닿을 때까지 숙였다. 내 뒤에 있던 고블린들도 왕이 땅에 엎 드리자 전부 엎드려 나에게 예를 표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고블린 왕보다 더 지능이 떨어지는 일반 고블린들 은 그저 '왕이 뭔가 잘못해서 용서를 빈다! 우리도 빌자! 자칫하면 죽 을지도 몰라!' 라는 분위기를 팍팍 풍기고 있었다. 휴 드래곤의 깊은 뜻을 고블린이 어찌 알겠는가? 내가 이해하는 수밖에.... 한참 동안 엎드려 있는 고블린 왕에게 난 일으켜 세웠다. 말이 안 통하 는 게 좀 불편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고블린들 말을 배우기는 싫으니 조 금 귀찮지만 이렇게 해야 됐다. 여전히 고개를 숙인 체 일어나는 고블 린 왕에게 나는 가지고 있던 보석 중에 제일 값 안 나가는 -이때 잠시 동안 값 안 나가는 보석 좀 찾았다 - 것을 꺼내서 다시 마법을 걸어 주 었다. 일정의 위치 파악 마법으로 옛날 레이나 누나에게서 받았던 서로 떨어지고, 붙는 것에 따라 색깔이 달라지는 마법에 대해 인간들이 연구 해 놓은 책을 뒤져서 찾아 낸 것이다. 내가 보석에 내 레어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마법을 걸어서 고블린 왕에 게 내밀자 고블린 왕은 두 손을 모아 머리를 숙이며 조심스레 보석을 받았다. 고블린 왕이 보석을 받아서 소중히 손에 쥐자 나는 머리를 들 게 하여 나를 쳐다보게 만들었다. [너에게 준 빛나는 돌은 내가 사는 곳에 가면 밝게 빛날 것이다. 그 근 처에서 너의 터전을 만들어라. 그리고 내 영역을 지켜라.] [네 위대한 드래곤이시여. 저와 제 부족의 목숨을 걸고 지키겠습니다.] 그렇게 다시 한번 나에게 복종하는 표식을 한 고블린 왕이 지네들 말로 뭐라고 고블린들에게 떠들자 고블린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손을 높 이 들기를 반복했다. 마치 드래곤님 만세를 외치는 것 같은 그 광경에 내가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어서 답해 주었다. 그런데 내 옆에서 팔짱 을 끼던 누나가 생긋 웃으며 고블린 왕에게 말했다. "한심한 짓거리는 끝났니? 끝났으면 시끄러우니 얼른 사. 라. 져!" 누나의 마지막 말은 드래곤 피어가 담겨 있어 고블린들은 일제히 쥐죽 은듯이 조용해졌다가 곧 흙먼지를 일으키며 부리나케 나와 누나의 레어 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들이 달려가고 난 뒤 난 흙먼지를 막아 준 실프를 - 잽싸게 불렀다 - 정령계에 돌려보내며 불만을 토했다. "뭐야? 꼭 그렇게 쫓아 보낼 건 없잖아." "으이그 이 한심한 드래곤아! 너 레어의 수호자를 만든다는 게 기껏 고 블린이냐? 미노타우루스나 하다 못해 오우거는 갖다 놔야 될 거 아니야 ?!" "뭐 어때? 어차피 저번에 그 키메라 같은 몬스터가 아니면 원만한 몬스 터는 내 기운이 담긴 검 때문에 도망칠 테고, 레어에 침입하는 간 큰 인간은 군대나 용사들이라고 불리는 강한 인간 뿐이라 잔아. 그럼 뭘 갖다 놓아도 다 부수고 들어올 테고, 결국 내가 상대해야 되니 뭘 갖다 놓아도 그게 그거지. 더구나...." "더구나?" "어차피 이런 깊은 산 속에 인간들이 쳐들어 올 리가 없잖아. 누나와 내 레어의 위치를 아는 건 인간 세상에는 카렌뿐인걸. 그러니 절대 걱. .. 정... 이 없는데... 카..렌?" 내가 카렌의 이름을 중얼거리자 누나는 눈에 띄게 당황하는 모습을 보 였다. 하지만 난 그 모습에 신경 쓰지 않았다. 잠에서 깨어나고, 너무 나 정신 없이 지내서, 그만 까맣게 잊어 먹은 이름 카렌. 카렌. "흑." "이..이봐 테이야." "흑 카렌. 왜 날 떠난 거야? 이유가 대체 뭐야? 카렌. 흑 돌아와 줘 카 렌!" 내가 어두운 숲을 향해 카렌의 이름을 들먹이며 돌아와 달라는 둥 모든 걸 용서할게(?) 라는 말들을 하고 있자, 누나가 옆에서 한심한 표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난 그것에 신경 쓰기는 싫었다. 한심하게 생각 하려면 하라지 뭐. 언제는 나를 안 한심하게 대해 준 적 있나? 아무튼 내가 카렌의 이름을 부르며 궁상을 떨고 있을 때 내 팔에 부드 러운 감촉이 느껴졌다. "어? 누..누나?" "그래 괴롭겠지. 하지만 자기야 이제 그만 아픈 사랑은 잊어버려. 좋은 추억만 생각해." 왜 갑자기 다시 자기야 분위기로 돌아간 거야?! 누나는 내 팔에 팔짱을 꼭 끼고 분위기를 더욱 돋구면서 말했다. "그래도 잊기 힘들면 내가 오늘밤 다 잊게 만들어 줄게." "누..누나?!!" 내가 뭐라 변명할 사이도 없이 누나는 입으로 워프를 중얼거렸고, 순식 간에 촌장이 우리에게 내 준 그 조용하고 방음 잘(!) 되는 방으로 이동 했다. 누나는 더욱 나에게 밀착하며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밤 자기 안 재울 꺼야." 안 돼! 안 돼!! 안~~돼~~에!!! 지저귀는 새소리 창문을 향해 쏟아지는 아침 햇살. 난 햇살에 눈을 찡 그리며 졸린 눈을 찌푸렸다. 결론부터 말하겠다. 나 어젯밤에 잠 한숨 도 못 잤다. ......그런 짐승 보는 듯한 눈으로 보지 말기를 바란다. 짐승 대하는 눈으로 쳐다 볼 짓(?)은 없었다. 내가 잠을 못 잔 것은.... "으음." "우푸푸푸." 난 버둥거리며 간신히 누나의 품에서 얼굴을 들어 숨을 들이쉬었다. 하 아. 이게 도대체 몇 번째야? 자다가 몸을 뒤척이며 나를 확 끌어안는 바람에 그때마다 실버 드래곤 모군(500세) 누나 품에서 질식사하다 라 는 상황을 몇 번이나 넘겼다. 결국 난 누나 말대로 밤새 잠 한숨 못 자 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것이다. 뭐 그 이유말고도 또 다른 이유가 있 긴 하지만... 관두자. 다만 혈기 왕성한 남자라면 내 심정을 이해 할 것이라는 말 한마디만 하겠다. '그나저나 언제 일어날 거냐고? 해는 이미 떴는데.' "우푸푸푸." 난 속으로 투덜거리는 걸 멈추고, 다시 이승과 저승 사이를 왔다 갔다 할 상황에서 필사적으로 이승에 남기 위해 버둥거렸다. 거듭 말하고, 이제는 이유까지 밝혀진 카이저 드래곤인 누나의 힘은 정말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러니 잠을 못 잔 것에 밤새 누나의 손에서 벗어나려는 내 힘겨운 몸싸움(?)으로 인한 피로감이 한꺼번에 덮친 상태라 언제 힘이 다해 누나 품에서 질식사를 할지 모를 위험스런 상태였다. '부탁입니다. 창조신이여. 살아서 태양을 보게 해 주십시오. 이제 막 성룡이 돼서 죽기는 싫단 말입니다. 창조신이시여!!' 창조신에게 애원을 하면서, 차라리 숲 속에서 노숙하던 게 몇 배는 편 하다는 생각을 하며, 난 누나가 빨리 깨어나기를 바랬다. 왜 지금 안 깨우냐고? 누나를 깨웠다가 또 무슨 짓을 당하게? 누나를 잠에서 깨우 는 것은 정말 내가 죽을 것 같은 최후의 최후일 때뿐이다. "우푸푸푸푸." 그냥 지금 확 깨워?! 이러다가는 깨워서 맞아 죽거나 힘이 빠져 질식사 하거나 둘 중의 하나겠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네 안녕히 주무셨어요?" "안.. 녕히... 주.. 무셨.. 습니.. 까?" 기분 좋게 티아와 아침 인사를 나누던 촌장은 뒤에서 다 죽어 가는 목 소리와 거의 좀비와 같은 핼쑥한 얼굴로 밝은 아침 인사를 나누기에는 절대 무리인 것처럼 보이는 테이를 놀란 얼굴로 쳐다보았다. "저..저기 테이 님?" "네?" "피로에... 좋은 차가 있는데 한잔 타 드릴까요?" "부.. 탁... 드립... 니다." 그렇게 말한 테이는 정말 좀비와 같은 몸짓으로 흐느적흐느적 걸어서 의자에 털썩 앉더니 테이블에 얼굴을 그대로 박았다. 그리고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는 테이를 보며 촌장은 티아에게 귓속말로 조용 히 말했다. "아무리 신혼이라도 아기를 가졌다면서 그렇게 무리를 하면 안됩니다. 아기를 생각해 야죠." "네? 아 네... 뭐 그게...." 얼굴을 붉히며 말을 더듬거리다가 아예 고개를 푹 숙여 버리는 티아를 보며 촌장은 미소를 지으며 차를 타기 위해 부엌으로 들어갔다. 물론 그 속삭임은 테이도 들었다. 그러나 촌장에게는 다행히도 테이는 손가 락 하나 까딱할 힘은 커녕 이를 갈 힘도 없었다. 그러니 그저 마음속으 로 울분을 삼키며 테이블을 눈물로 적시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 그래 도 하나 테이에게 다행인 점이 있다면...... '결국 살아서 태양을 보게 되었습니다. 창조신이여 당신의 은혜에.... 아주 조금만 감사 드리겠습니다.' 옛날처럼 대놓고 창조신에게 대들며 따지는 점이 없어 졌다는 것은 테 이가 성장(?) 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일까? 아무튼 테이는 대놓고 덤 벼들어도 모자를 상황을 만들어 놓았던 창조신을 그 넓은 아량(?)으로 용서하고, 감사하며 그렇게 몸이 회복되기를 기다렸다. "힐링." 작은 속삭임과 자신의 등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마나의 기운에 조금씩 체력이 회복되는 것을 느낀 테이가 간신히 고개를 들어 티아를 쳐다보 자 티아는 정말로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미안. 고의는 아니었어. 내 마음 알지?" '몰라! 누나 마음 알게 뭐야?! 이 병 주고, 약 주는 마녀 누나야!!' 라는 테이의 마음속의 외침을 알 수 있는 티아였지만 이번에는 정말 지 은 죄가 있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티아가 일어나서 나른한 몸에 기지개를 펴며 테이를 부르며 쳐다보았을 때 테이는 이미 혼의 절반은 빠져서 창조신의 멱살을 잡고 흔들기 일보 직전의 상황이었다. 티아는 비명을 지르며 회복 마법에 치료 마법에 인 공 호흡과 드래곤 하트 마사지까지 동원해서 간신히 테이를 살려(?) 놓 는데 성공했다. 하마터면 사랑스런 동생을 정말로 죽일 뻔했다는 생각 에 미안한 마음이 든 티아는 열심히 테이의 마음을 풀어 주려고, 태어 나서 처음으로 진심을 담아 테이에게 사과했다. [정말 미안해. 테이야 진짜 사과할게. 그러니 용서해 주라.] [몰라! 동생을 정말 죽이려고 작정을 한 누나에게는 일 없어!!] [테이야~~ 너 부탁이라면 뭐든지 하나 들어줄게. 응 테이야. 화 풀어.] 테이는 더 화를 벌컥 내려다가 생각을 달리 했다. 티아가 자신의 부탁 을 들어주는 것이 어디 평생에 두 번이나 올 기회인가? 그런 생각이 든 테이는 자신의 목숨을 위해서 하나의 제안을 내 놓았다. [앞으로는....] [앞으로는?] [앞으로 이번 여행 동안은 절대로 침대 따로 사용하기야!] [아..알았어. 그렇게 할게.] 티아가 진심으로 미안해하며 테이의 부탁을 들어주는 약속을 하자 테이 는 엄청난 기쁨을 느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티아에게 조건을 걸어서 그것을 받아 낸 것을 기뻐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 테 이는 목숨을 걸었다.(?) 목숨 걸고 받아 낸 것치고는 너무 작은 조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은 들지만... 뭐 테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티아에게 자기 말 듣게 만들었다고, 기뻐하고 있으니 다 잘 된 거라고 치고 넘어 가야 될 것이다. ......정말 그래도 되는 건가? 계속 드래곤 남매 17화 구세주 전설의 탄생(3) 다이러스 제국 수도 다이리. 이곳은 지혜의 여신 다이리의 이름을 가졌 던 다이러스 제국의 첫 여왕의 이름을 따서 수도 다이리라 불렸었다. 불과 6년 전에만 해도 활기가 넘쳐흐르는 이 도시는 지금 적막만이 흘 렀고, 간간이 병사들과 기사들만 적막한 거리를 시끄럽게 지나다녔다. 중후한 멋을 자랑하는 다이리 성의 가장 높게 솟아 있는 중앙의 탑 꼭 대기에서 한 명의 남자가 창에 걸터앉아서 적막한 다이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화려한 금발 아래 짙은 갈색 눈동자는 적막한 다이리를 매서운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이런 곳에 계셨습니까?" 금발의 남자는 분명 자신을 찾는 목소리에 대꾸도 하지 않고 여전히 창 아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 금발의 남자 랑그람 로헨타이 1세를 쳐 다보며 유크로드는 쓴웃음을 지으며 랑그람에게 다가갔다. "뭐하고 계십니까? 이런 위험한 곳에서...." "......." 여전히 대답이 없는 랑그람을 유크로드는 한숨을 쉬며 그의 곁에서 세 발자국 떨어진 곳에 서서 그가 바라보는 창 밖의 도시 모습을 쳐다보았 다. "날 죽이고 싶어 안달인 자들이 본다면 정말 좋은 기회겠지?" 한참 동안 말없이 밖을 내다보던 랑그람의 입이 드디어 열리나 싶더니 아까부터 묻던 유크로드의 질문과는 전혀 상관없는 엉뚱한 말이 튀어 나왔다. 그것뿐이라면 유크로드도 아무 말 안하고 넘어가겠지만 그 말 의 내용은 도저히 그냥 듣고 넘어갈 수 없는 말이었다. "지금 누가 페하를 죽여주기를 바라시는 겁니까?" 유크로드가 얼마나 높은 지위에 있는 자인지는 모르지만 일국의 왕에게 해서는 안 될 말인 것은 분명했다. 자신의 목숨이 왔다갔다할 말을 천 연덕스럽게 내뱉는 유크로드에게 랑그람은 드디어 시선을 돌려주었다. 그러나 그의 눈에는 화가 났다는 표정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저 재미 있다는 눈으로 말했다. "내가 만약에 그렇다고 대답하면 유크로드가 내 소원을 들어줄 수 있어 ?" "명령이시라면 따르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유크로드가 한 발짝 앞으로 나가자 랑그람은 급히 손을 흔들며 말했다. "어이어이. 정말 할 작정이냐?" "싫으시면 방금 명령을 철회하시고, 군사 회의 시간에 여기에 계시는 이유를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결론은 내가 땡땡이 쳐서 기분 나쁘다 이거로군." 랑그람이 싱글싱글 웃으며 말하자 유크로드는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잘 알고 계신다면 굳이 더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아셨으면 지 금 당장 회의실로 가시지요." 랑그람은 여전히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려 창 밖을 내다보며 짧게 말했다. "싫어." "......페하." "아 정말 싫단 말이야. 어차피 전에 작전대로만 하면 만사가 잘 풀릴텐 데 왜 그렇게 확인을 하려고 난리들이냐고?" "이번 일전은 중요한 일전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일전으로...." "가이라가의 공세를 멈출 수 있느냐 없느냐가 정해지기 때문이지?" 랑그람은 유크로드의 말을 막으며 대신 말했다. 유크로드가 '네 그렇습 니다' 라고 대답하고 재차 랑그람에게 회의실로 갈 것을 권했다. "정말이지. 나잇살들 먹어 가지고 무슨 걱정이 그렇게 많은 거야?" 랑그람은 슬슬 짜증이 나는지 목소리가 점점 거칠어져 갔다. "나잇살들 먹었기 때문에 쓸데없는 걱정이 더 심한 겁니다. 페하도 처 음부터 이렇게 될 것은 각오하고 그들을 끌어 들였잖습니까?" 유크로드의 말은 맞는 말이었다. 랑그람 자신도 애초에 나중에는 이렇 게 귀찮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 랑그람이 이 다이러스 제국을 손에 넣기 위해서 같은 편으로 끌어들인 기사들은 거의 다가 나이는 많지만 그리 높은 지위에 있지 못한 하급 기사들이었다. 랑그람은 그들에게 이 다이러스 제국의 앞날을 바꾸자는 제안과 그 후의 높은 지위를 약속하고 치밀한 계획을 제공해서 그들을 끌어 모았다. 랑그람은 14년 전부터 조금씩, 조금씩 사람들을 모았다. 물론 아주 조심스럽게 그리고 되도록 출세를 하지 못한 자들 중 입이 무거운 자들만 골라서 그의 휘하로 모았다. 그러나 랑그람이 제시한 세 가지 조건 중에서 그들의 구미를 가장 많이 끈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높 은 지위였다. 랑그람이 내란을 일으킨 가장 큰 이유라고도 할 수 있는 다이러스 제국의 앞날을 바꾸자는 말에 그에게 협력한 것은 바로 뒤에 서 있는 유크로드를 비롯한 손에 꼽을 정도의 인재뿐이었다. 랑그람은 지난 6년 간 그 손에 꼽히는 인재들과 랑그람이 말하기를 나잇살만 먹 은 기사 대장들만을 가지고 프론트 연합국과 가이라가 왕국의 공세를 내었다. 초반에 가이라가 왕국을 급습해서 얻은 영토는 이미 다시 가이 라가 왕국의 손에 넘어 간지가 1년 전이었고, 지금의 가이라가 왕국의 군대는 제국 깊숙이 침투 중이었다. 지금 높은 지위에 있는 예전의 나이 많은 하급 기사들은 큰일이라고 난 리를 치지만 랑그람은 오히려 적이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여 주고 있기 때문에 아무 걱정이 없는 상태였다. 랑그람은 자신의 계획대로만 된다면 다이러스는 강해질 것이라고 생각 했다. 그리고....... "나중에 내려갈게." "지금 오셔야 됩니다." 랑그람의 나중에가 며칠 후가 될지 장담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아는 유크로드가 못을 박으며 지금 내려 올 것을 강력히 권하자 랑그람은 혀 를 차며 어쩔 수 없다는 제스처를 취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맞다. 레이르는 어떻게 됐어?" 원래 지금 랑그람의 자리에 앉아 있어야 될 레이르를 동생 부르듯이 부 르며 묻자 유크로드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아무 소식도 알 수 없습니다." "그래? 하루 빨리 이 다이리로 데려와야 될텐데...." "아 다만...." "다만?" "남쪽으로 보냈던 일부 수색병들의 소식이 끊겼습니다." "흠... 그래? 몬스터에 당했을 확률은?" "큽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몬스터 짓으로만 넘기고 그냥 지나쳐 가기에 는 석연치 않은 기분입니다." 랑그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발을 돌려 창가로 돌아갔다. 그 모습을 보면서 유크로드가 인상을 쓰자 랑그람은 손을 들어 미리 유크로드가 아무 말도 못하게 막고는 자신이 묻고 싶은 것부터 물었다. "대책은 세워 뒀겠지?" "네. 그 주위에 있는 다른 수색병들에게 연락이 끊긴 병사들이 있는 곳 을 수색하게 명령을 전달했습니다. 그것 보다 페하." "회의에 지금 내려 갈 거야. 그러니 정말 잠깐만." 유크로드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 알고 있는 랑그람은 다시 유크로드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막고 창 밖을 내다보았다. 창 밖은 여전히 적막 함만이 감돌았다. 잠시동안 그 적막함을 내려다보던 랑그람은 고개를 돌려 유크로드를 부 르며 물었다. "유크로드. 너는 활기가 넘치는 다이리와 지금의 적막한 다이리 어느 게 더 좋지?" 그렇게 묻는 랑그람의 얼굴에는 내가 듣고 싶은 대답을 해 달라는 아이 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유크로드는 '정말 어쩔 수 없는 분이야' 라고 생각하며 그가 원하는 대답을 해주었다. "저 역시 진정으로 활기찬 다이리가 좋습니다." "그래. 맞아. 활기찬 다이리가 역시 낮지. 어이어이 내려갈게. 내려간 다니 깐. 그러니 그 인상부터 풀어." 랑그람은 유크로드의 표정에서 더 이상 시간을 끌었다가는 큰일나겠다 는 느낌을 받고는 급히 발을 계단으로 바쁘게 옮기며 말했다. 유크로드 가 그 뒤를 따르자 랑그람은 계단을 내려가며 다시 한번 물었다. "끝까지 날 도와 줄 수 있지?" "최후까지 도와 드리겠습니다." 앞서 내려가던 랑그람은 유크로드의 말을 들으며 싱긋 웃었다. 정말 고 맙고, 이런 힘든 일에 끌어 들여서 미안하다는 뜻의 그 미소는 뒤에 따 라가던 유크로드는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느낌으로 알아챌 수 있었던 유크로드는 그 딱딱한 인상을 펴고는 앞서 걸어가는 랑그람이 알아 볼 수 없게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당신이 원하는 미래는 곧 내가 원하는 미래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 문에 오히려 기회를 제공해 주신 당신께 감사 드리고, 최후까지 당신의 뒤를 따르겠습니다.' 너무나 울창한 나무들 덕분에 햇빛이 들어오지 못해 낮에도 약간 으슥 한 산 속에 한 명의 덩치 큰 사람이 땅을 파고 있었다. 구덩이를 파고 있는 한 쪽에는 사람들의 시체가 쌓여져 있었다. 자신의 큰 덩치의 두 배... 아니 세 배는 됨직한 구덩이를 판 사람은 그 뒤에 쌓여 있던 시 체들을 차곡차곡 구덩이에 넣고는 잘 묻어 주고는 표식이 남지 않게 주 변에 풀과 나무로 잘 위장했다. 그렇게 일을 마친 사람은 자신의 은빛 갑옷에 묻은 피를 보며 혀를 차며 주위를 둘러보다 어느 한쪽으로 걸어 가기 시작했다. 한 시간을 걸었을까? 그는 제법 큰 냇가에 도착했다. 그대로 냇가에 들 어간 그는 주변에서 풀을 뜯어 자신의 갑옷에 묻은 피를 정성스럽게 지 웠다. 갑옷을 벗어서 씻어도 될 것을 굳이 갑옷을 입은 체로 씻고 있는 이유 는 그가 입고 있는 갑옷은 그의 신체의 일부이자 그의 몸이기 때문이 다. 생명의 은빛의 몸을 가진 의지를 가진 다크 나이트 제임스는 묵묵히 몸 (?)을 씻고 나서는 다 씻었다고 생각을 했는지 냇가에서 걸어 나오더니 몸의 이곳 저곳을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제임스가 특별하게 유난히 깨 끗한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 아니다. "휴. 이 정도면 표 안 나겠지? 이것으로 카렌의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겠군." 그렇다. 바로 카렌의 잔소리가 두렵기(?) 때문에 싸움에 의한 피를 몸 에 남기지 않으려고 고개를 있는 대로 돌려서 엉덩이까지 확인하는 그 런 우스꽝스런 광경을 연출하였던 것이다. 더구나 이번에는 몬스터와의 싸움이 아닌 인간과의 싸움이었다. 만약 이 일을 카렌에게 들키게 되면 그때는 잔소리가 문제가 아니었다. 아마 도 몇 칠은 침울해 하는 카렌의 모습을 봐야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제 임스는 평소에는 귀찮아서 그냥 피 묻히고 집에 갈 것을 굳이 냇가까지 찾아서 씻었던 것이다. 몸이 깨끗하다는 것을 확인한 제임스는 다시 아까 시체를 묻었던 장소 에 가서 땅에 묻힌 죽은 사람들에게 가볍게 묵념을 하고는 몸을 돌려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나저나 저들이 이 근처에서 실종됐다는 것을 수도에서 알게 되면 골 치가 아픈데....' 그런 걱정이 순간 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곳은 몬스터가 잘 나오는 외 진 산 속이었다. 나중에라도 죄 없는(?) 몬스터 몇 마리 잡아서 그들이 쓰던 무기로 죽인 다음 싸움의 흔적을 남겨 놓으면 죄다 죽어서 식사 거리로 잡혀갔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그렇게 마음먹은 제임스는 오늘 밤에라도 다시 몰래 나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제임스!" 그런 계획을 짜고 있던 제임스의 귀에 자신을 반기는 목소리가 들렸다. 제임스가 고개를 들자 긴 금발을 끈으로 동여맨 하프엘프 카렌이 손을 흔들며 웃고 있었다. 제임스의 은빛 눈도 카렌의 미소를 대하자 절로 웃는 표정이 되었다. 그리고 그 웃음은 제임스의 결심을 더욱더 확고히 굳히게 만들었다. '지키겠다. 내가 괴물 취급을 받는다 하더라도 지키겠다. 카렌의 미소 를....' 그렇게 생각하며 제임스는 손을 들어 흔들며 카렌에게로 걸어갔다. 그 러나 몇 분 후... "도대체 갑자기 씻고 들어온 이유가 뭐죠?" '젠장!' 제임스는 꼬치꼬치 따지고 묻는 카렌의 질문에 식은땀을 흘리며(?) 속 으로 비명을 질렀다. 오면서 마르겠지 했는데 미쳐 다 마르지 않은 물 기를 보고는 카렌이 이상하게 생각 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평소에 는 한 시간은 잔소리를 해야 겨우 씻는 척하러 가던 제임스가 갑자기 밖에서 작업(?)이 끝나고 난 뒤 씻고 들어온 게 카렌은 아무리 생각해 도 수상했던 것이다. 더구나 남 속이는데는 테이와 막상막하로 어리숙한 제임스는 변명다운 변명이라 생각하고 말해 보았지만.... "그냥 평소에 말하던 카렌의 위생 문제를 나도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나 서 말이야." "흐음. 왜 오늘 갑자기요?" "그게 오늘은 유난히 덤벼드는 몬스터가 많아서 정말 그 녀석들의 피로 샤워를 해서 내가 찜찜하기도 했고...." "흐음. 두 달 전인가? 그때는 샤워 정도가 아니라 갑옷 칠을 새로 하고 왔었죠?" "그..그리고 마침 냇가가 근처에 있어서...." "흐음. 제임스는 아까 북쪽에서 침입자가 느껴진다고 하고는 나갔죠? 냇가는 남쪽으로 내려가야 있는데요." '누가 좀 카렌에게 변명할 모범 답안지 좀 보여줘!!' 헛된 비명을 지르며 제임스는 항복의 깃발을 들 수밖에 없었다. "제임스 씨! 카렌 씨! 거기서 뭐하고 계세요?" 이제 막 진실을 밝혀야 되는 제임스에게 구원의 손길 같은 소리가 들렸 다. 제임스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자는 카렌과 마찬가지로 긴 금 발을 끈으로 동여맨 18~19세 정도 되어 보이는 이제 막 처녀가 된 듯한 소녀였다. 아무리 봐도 인간이 입는 옷이 아닌 엘프들이 입는 간편한 초록색 원피스는 이 옷 카렌한테 빌렸어요 라고 광고하는 것 같았지만 인간인 그녀에게 잘 어울렸다. "빨리 좀 와 주세요. 토미가 울고 있어요.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단 말이에요!" 울고 있는 아이 달래다가 지쳤다는 표정을 하며 소리지르는 그녀의 말 에 카렌은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금방 가겠다고, 소리쳤다. 그 소녀 덕 분에 제임스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을 때 카렌은 제임스에게 가서 제임스만 들리게 목소리를 낮춰서 말했다. "이따가 밤에 계속 이야기해요." 그냥은 넘어가지 않고 꼭 듣고야 말겠다는 카렌의 말에 제임스는 그 자 리에 우뚝 서서 토미가 울고 있다고 소리친 소녀한테 달려가는 카렌의 뒷모습만 쳐다 볼 수밖에 없었다. "오늘밤은.... 지옥이야." 그 말을 중얼거리며 제임스는 결국 그 자리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계속 ------------------------------------------------------------------ 드래곤 남매 17화 구세주 전설의 탄생(4) "그런 일이 있었군요." 카렌은 결국은 밤에 제임스에게 자초지종을 듣게 됐다. 제임스는 버티 고 버티다가 카렌이 삐치기 일보 직전까지 가자 결국 항복하고, 모든 걸 설명했다. 평소처럼 침입자 경보 장치에 몬스터를 처리하러 간 제임스가 만난 것 은 몬스터가 아닌 인간이었다. 더구나 그들이 제임스를 보자 무기를 겨 누며 물었던 첫 질문이 '이곳에 금발의 긴 머리 여자가 있느냐?' 라는 질문이었다. 금발의 긴 머리 여자는 아주 흔한 여자였다. 하지만 다이 러스 제국의 문장을 달고 있는 그들이 찾는 여자는 단 한 명뿐이라는 것을 제임스는 알아 챌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적당히 둘러대려고 했지만 깊은 산 속에 갑옷으로 온 몸을 무장한 - 그들은 그 갑옷이 제 임스의 몸이라는 것을 알 리가 없었다 - 제임스를 수상하게 생각하던 그들과 결국 싸우게 되었고, 그들을 전부 죽였던 것이다. 설명이 끝나자 제임스는 목소리를 낮춰서 덧붙였다. "카렌. 이 이야기는...." "알고 있었요. 레이르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말아 야죠." 카렌은 건넛방에서 아이들을 안고 자고 있을 레이르를 생각하며 단호하 게 말했다. 카렌은 테이의 영역에서 나오고 난 뒤 한동안은 왕국에서 신세를 졌다. 그러나 곧 제임스 때문에 그리고 이미 어머니도 아버지도 레이나 이모도 없는 다이리에 머물 이유가 없었던 카렌은 레이르가 일 곱 살 때 왕국을 나와 정처 없이 떠돌다 이곳 조용한 숲 속에 오두막을 짓고 살았다. 그리고 얼마 후 랑그람이 내전을 일으켜 왕위를 빼앗았다 는 소문과 전쟁이 터졌다는 소문을 듣고 몰래 수도로 내려와서 레이르 를 찾았다. 결국은 찾지 못하고 헛수고만 한 카렌과 제임스는 다이러스 제국의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그리고 전쟁 고아들을 데려다가 키우며 레이르를 찾아다녔다. 그러다가 4년 전에 어느 술집에서 머리를 짧게 자르고, 남자 행세를 하며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던 레이르를 발견한 건 그야말로 행운이었다. 비록 전쟁 때문에 민심이 흉흉해져서 남장을 하고 다녔다지만 여성스러 움을 완전히 없애지 못한 레이르는 그동안 말못할 고생을 했었는지, 카 렌이 데려왔을 때는 제대로 말 한마디 안 하는 차가운 아이로 변해 있 었다. 그리고 때때로 악몽을 꾸는지 밤마다 비명을 지르는 레이르를 카렌과 제임스는 정말 헌신을 다해서 간호하고, 따뜻하게 감싸주었다. 그런 카 렌과 제임스의 노력과 전쟁 고아들을 같이 돌보던 레이르는 조금씩 옛 날의 활발하고, 총명하던 모습을 되찾아 갔고, 지금은 완전히 나아서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와중에 제국에서 자신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또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제국의 손길이 여기까지 닿았다는 사실이 카렌은 못내 불안하기만 하였다. "그들이 다시 오겠죠?" "아무래도 연락이 끊긴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겠지. 그들로서는 6년 간 끈질기게 찾고 있는 레이르가 안 보이는 것을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 이런 깊은 산 속까지 레이르를 찾으러 사람을 보낸 것을 보면 알 수 있지. 아무튼 난 나가서 그들이 몬스터와 싸우다가 죽은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 놓을 테니 너무 걱정은 하지마." "네. 조심하세요." 제임스는 문제없다는 뜻으로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카 렌은 칭얼대며 자지 않던 토미가 자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침대에 뉘 이고는 손을 맞잡고 기도를 올렸다. "지혜의 여신 다이리시여. 당신의 은혜와 권능으로 레이르를 도와주십 시오. 그 애는 너무나 힘든 일을 겪었습니다. 이제 편안히 쉰다고 해서 뭐라고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니 제발 그 애를 레이르를 내가 좋아 하던 레이나 이모의 핏줄인 그 애를 당신의 힘을 빌려 주십오소서. 당 신의 권능과 기적을 믿습니다." 카렌은 그렇게 기도를 드리며 눈물을 흘렸다. 왜 인간들은 이렇게 슬픈 일을 자꾸 자처하는 것일까? 전쟁 같은 땅따먹기 싸움을 해봐야 무엇이 남는단 말인가? 남는 것은 그저 부모 잃은 아이들의 울음과 웃음을 잃 어 가는 사람들만 늘어가는 전쟁을 왜 하는 것일까? 카렌은 레이르가 불쌍하고, 그리고 자신이 키우고 있는 부모 잃은 아이 들이 불쌍해서 울고 또 한참을 울었다. 작업(?)을 마치고 돌아 온 제임스는 그 모습을 보고는 뭐라고 해줄 말 이 없어서 집안에도 못 들어가고, 집 밖에서 하늘을 보며 생각했다. '나의 이 힘은 그때 그녀의 나라를 지키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곳에서 카렌과 레이르와 아이들을 지키면서 쓸모 있는 힘이라고 생각했다. 그 러나... 내 힘이 쓸모 있는 힘이라면 왜 카렌은 우는 것인가? 왜 레이 르는 그런 아픔을 겪어야 되었나? 진정으로 힘이라는 것이 이리도 쓸모 없는 것이라니....' 제임스도 기도했다. 그녀들을 도와줄 수 있는 아이들을 지킬 수 있는 좀더 강하고 올바른 힘을 원했다. 아니 그것이 안 된다면 하다 못해 기 적이라도 일어나기를 빌었다. 의지가 없는 다크 나이트인 자신에게 의지를 가지게 되었던 그런 기적 을 다시 한번 일어나기를 빌었다. 테이의 몸 상태(?) 덕분에 하루를 더 쉬게 되었던 티아와 테이는 다음 날 아침 짐을 꾸려서 촌장에게 작별 인사를 하였다. 촌장은 지도를 주 면서 둘에게 당부했다. "아시다시피 지금 다이러스 제국과 가이라가 왕국은 전쟁 중입니다. 더 구나 프론트 연합은 가이라가 왕국을 지원해 주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 에 다이러스 제국을 경유해서 프론트 연합으로는 들어가실 수 없습니 다. 그러니 좀 돌아가시더라도 저 산을 넘으셔서 가이라가 왕국으로 들 어가셔서 프론트 연합으로 가십 시요." "충고와 지도 감사히 받겠습니다." 티아는 공손하게 말하며 지도를 받아 들었고, 테이는 촌장에게 얻은 식 량을 배낭 속에 다 챙기고는 힘차게 배낭을 짊어지고 일어났다. 그리고 티아가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내민 지도를 챙겨야만 했다. '젠장. 지도 정도가 뭐가 무겁다고 이것까지 맡기냔 말이야?!' 어쩔 수 없이 지도까지 챙긴 테이가 촌장과 티아의 뒤를 따라 마을 밖 입구로 나오자.... '뭐? 뭐야?!' 테이는 입구에서 쭉 늘어선 마을 사람들의 행렬을 놀란 눈으로 쳐다보 았다. 그 행렬의 대부분이 남자라는 것은 이제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전부 아쉬운 눈으로 티아를 쳐다보는 - 테이는 여전히 그들 에게 무시되고 있었다 - 남자들 중에 두 명이 나귀를 끌고 앞으로 나왔 다. 크락과 맥스였다. 크락과 맥스는 테이처럼 얼떨떨한 표정의 티아 앞에 가더니 나귀의 고 삐를 넘겼다. 얼떨결에 고삐를 받아 들고 설명을 요구하는 티아의 눈빛 에 크락이 웃으며... 아니 억지로 웃고 있는 표정으로 말했다. "몸이... 조심하셔야 되니... 도보 여행은 무리일 겁니다. 그러니 이걸 타고 가세요." "하지만 마을에 나귀는 몇 마리 되지도 않던데 이 귀한걸 주셔도 되요 ?" 티아의 말 대로였다. 원래 마을을 등지고 떠나면서 많은 것을 챙겨 올 수 없었던 마을 사람들에게 몇 마리 없는 나귀는 정말 귀하고 귀한 가 축이었다. 크락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것은 마을 사람들이 만장일치로 결정한 일입니다. 저희들의 목숨을 구해 주셨고, 그리고 마을의 안전을 지켜 주셨습니다. 그러니 이 정도 선물은 당연한 것입니다. 오히려 더 못 도와 드리는 게 아쉽습니다." "그런 전 오히려 고블린들에게 잡혀서 두 분을 위험하게 만들었는데요. 더구나 마을을 구한 결정적인 도움은 우리 자기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건 그냥 넘어가죠." '왜 그게 그냥 넘어갈 일이냐?!' 테이는 속으로 이를 갈면서 이제 자신의 가드가 된 고블린들을 불러서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까 하는 악룡 적인 생각까지 했다. 자신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마을의 안전을 점점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 리 없는 크락은 여전히 나귀를 받을 수 없다는 티아의 말을 아예 싹 무 시하고는 티아를 번쩍 들어서 나귀에 억지로 태웠다. "아...." "자꾸 거절하시면 저희들이 미안하니 더는 아무 말 마시고 타고 가세 요." "네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티아는 얼굴에 홍조를 띠면서 결국 나귀를 받았다. 붉어진 티아의 얼굴 에 크락은 감동(?)의 물결이 몸을 휩싸이는 느낌을 받으며 주먹을 쥐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티아의 몸에서 테이만이 느낄 수 있는 살기가 퍼져 나오고 있었 다는 것을 크락은 알 리가 없었다. 테이는 그 살기를 감지했는데 그 내 용인 즉 '왜 함부로 내 몸을 건드리는 거야? 콱 뒤집어 버릴까?' 라는 내용이었다. 그 생각에 테이는 동조하면서 마법으로 마음속으로 물었다. [누나 도와줄까?] [에휴 관두자. 아무것도 모르는 인간 몇 놈 족쳐야 봐야 어디다가 쓰게 ? 그냥 평생의 영광으로 생각하라지 뭐.] [영광으로 삼을 것도 대게 없는 인간이네.] [테이야 마을 벗어나서 이 누나에게 반 죽는 영광을 안겨 줄까?] [......미안 누나. 때리지만 말아 줘.] 성룡이 되도 여전히 변함 없는 다정한(?) 남매 간의 대화를 마음속으로 나눈 둘은 마을 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며 마을을 나섰다. 여기서 테이도 한 인기를 끌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는데 마을 처녀들이 테이를 눈 물로 배웅하였던 것이다. 그 동안 티아가 테이에게 착 달라붙어서 여자 들만이 알아차릴 수 있는 '울 자기야 에게 접근하면 가만 안 두겠다' 라는 접근 금지 살기를 팍팍 풍기고 있었기 때문에 테이는 마을에 있을 동안 내내 마을 처녀들의 안타까운 눈길을 받았다는 것을 알리 없었다. 아니 그것보다 마을을 돌아다니다 보면 받게 되는 남자들의 증오 어린 시선 덕분에 알아차리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던 테이는 유희 간에 섬씽 기회를 눈앞에서 놓치고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티아가 탄 나 귀의 고삐를 잡고 마을을 떠났다. 앞으로 테이가 티아와 같이 다니는 한은 내내 저렇게 될 것 같다는 느 낌이 드는 작은 일화였다. 드래곤 남매 17화 구세주 전설의 탄생(5) 티아와 테이가 마을을 떠나고 난 뒤 마을 사람들은 - 대부분 청년과 처 녀와 일부의 유부남들 - 아쉬움을 느끼며 각자가 해야 될 일을 하기 위 해 흩어졌고, 촌장도 마을을 돌아다니며 방책을 보고, 밭을 확인하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촌장이 집에 돌아와서 본 것은 테이블 위에 놓인 [알 기 쉽고 재미있는 다이러스 제국 역사] 책이었다. 바로 촌장이 테이에 게 줬던 책이었다. "이런, 이런 깜박하고 안 가져 가셨나 보군." 이미 마을을 떠난 지 한참 되었기 때문에 지금 따라가서 전해 주기에는 너무 늦은 상태였다. "뭐 어차피 내 충고대로 가이라가 왕국 쪽으로 간다면 이 책은 필요가 없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촌장은 책을 흩어 보다가 레이나 여왕 부분을 펼쳐서 읽었다. 책에는 레이나 여왕이 이루어 놓았던 각종 업적이 적혀 있었 다. 노예 제도의 폐지. 귀족의 권력 약화와 신분보다는 능력으로 사람 을 뽑아서 온 국민의 평등하고, 생활을 윤택하게 하기 위해서 노력했던 다이러스 제국의 두 번째 여왕. 그녀는 분명 다이러스 제국을 평민들이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나가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은 그 녀의 자식들도 어머니의 유지를 이어받아 다이러스 제국은 점점 더 살 기 좋은 나라로 발전했다. 그런 노력이 하루아침에 무너졌다는 사실에 촌장은 다시 가슴이 아파 왔다. 역사가들에게 '한시간 반란' 이라고 비아냥거림을 받던 로헨타이 공작가의 이야기가 펼쳐지자 지금의 랑그람에게 분노가 드는 촌장이었 다. 그런데 그런 촌장의 눈길을 끄는 문구가 눈에 보였다. 실제로 확인되지 않은 전설이라고 생각되는 이야기 쌍둥이 실버 해츨링 들의 도움으로 로헨타이 공작가의 반란을 진압하는데 큰 도움을 얻었다 는 이야기. 그때는 이 이야기는 역사책은 한쪽 구석탱이에 아주 작게 이런 일이 있었다는 레이나 여왕의 말이라고 적혀 있었고, 내용도 한 페이지도 체 안 되는 내용이라 별 신경을 쓰지 않았던 부분이었다. 그 런데 지금 레이나 여왕의 말이라고 쓰여 있는 한 문장에 눈길이 갔다. [쌍둥이 실버 해츨링 티아루아와 테이루아에게 정말 고맙다는 말과 영 원히 기억하고 있다고 그들에게 전하고 싶다.] 라는 문장이었다. "티아...루아? 테이루아?!" 촌장은 이 기막힌 우연에 손을 떨며 레이나 여왕의 실버 해츨링에게 남 기는 말을 천천히 그리고 자세하게 읽어 갔다. [누나인 티아와 동생인 테이는 정말 꼭 닮은 얼굴이었다. 테이를 여장 을 시켜 봤을 때는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둘은 닮았다.] '그러고 보니 그 둘은 꼭 닮았지. 부부는 닮아 가는 거라고 생각하고 넘어갔었는데... 왜 이상하다는 것을 그때는 눈치채지 못한 거지?' [티아는 마법을 정말 잘 썼다. 나의 친구이자 자매이기도 한 엘프 이르 의 말에 의하면 해츨링이지만 성룡급의 마법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 다. 그리고 동생인 테이는 검술에 능했다. 나중에 테이와 로헨타이 기 사와 싸운 라이크 경의 말로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스피드 한 검 술을 사용한다고 했다.] '여자 쪽은 마법사라고 했어. 그리고 남자 쪽은 분명 검사라고 했고, 더구나 크락과 맥스의 말로는 고블린 왕과 싸울 때 정말 눈 깜작할 사 이에 고블린 왕의 뒤를 잡았다고 했지?' [티아는 허리까지 내려오는 은발이었고, 테이는 짧은 은발이었다. 차가 운 색이지만 둘의 분위기 때문인지 성격 때문인지 전혀 차갑게 보이지 않는 오히려 따뜻하게 보이는 은색의 머리였다.] '그 둘도 은발이었어. 그리고 지금 생각해 봐도 차갑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어!' 처음에 손만 떨던 촌장은 이제 온 몸을 떨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미친 생각일 수도 있었다. 말이 안될지도 몰랐다. 아니 촌장의 추리대로 그 둘이 이 책에 나오는 그 실버 해츨링이라 하더라도 그 둘이 지금의 다 이러스 제국을 구해 줄 리가 없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티아는 어젯밤에 촌장에게 레이르 공주의 인상 착의를 자세히 물어 본적이 있었다. 촌장은 자신이 알고 있는 한도 내에서 대답해 주며 왜 그런 것을 물어 보는지 이유를 물었다. 그때 티아는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그냥 두고 볼 수 없다는 우리 자기야의 정의심 때문이에요. 혹시나 여행 중에 만 나게 되면 보호해서 같이 프론트 연합국으로 데려가면 뭔가 수가 생겨 도 생기지 않을까 해서요' 라고 대답했었다. 그때 촌장은 그런 우연은 일어날 리가 없지만 기적이라도 그런 일이 일 어났으면 좋겠다고 했고, 티아는 '지금 다이러스는 그런 기적이라도 일 으켜 야죠.' 라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했었다. 그때는 의미를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만약 그 둘이 이 책에서 레이나 여왕이 언급했던 실버 해츨링 이었다면 그 말은 레이르 님을 찾아서 다이러스 제국을 도와주겠다는 의미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일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말도 안 된다고 생 각하고 덮어두기에는 이 책에 나오는 실버 해츨링과 그 둘의 공통점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세상 물정에 어두운 테이도 몇 백년간 인간 세상 에 나오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그것조차 말이 맞아 떨어졌다. "아..아...아." 촌장의 눈에서는 어느새 눈물이 촌장의 뺨을 타고 내려갔다. 그리고 입 속에서 무슨 말인가가 자꾸 나오려고 했지만 입안을 맴돌 뿐 나오는 말 은 그저 '아' 라는 말뿐이었다. 더 이상 벅찬 감정을 이기지 못한 촌장은 밖으로 뛰쳐나가서 방책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달려가면서 끊임없이 외쳤다. "구세주 납셨네! 기쁘다 구세주 납셨네!! 다이러스 제국 살리러!! 기쁘 다 구세주 납셨네!!!" 지나가는 마을 사람들은 그런 촌장을 쳐다보며 모두 황당한 얼굴로 쳐 다보던가 당황해서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일단 말리려고 뒤를 쫓아오 거나 했다. 촌장은 그런 그들을 무시하며 방책까지 달려갔고, 방책에서 일하던 남 자 몇 명이 촌장 뒤를 쫓아오던 사람들의 고함소리에 촌장을 붙잡았다. 촌장은 붙잡힌 상태에서도 몸을 버둥거리며 끊임없이 소리쳤다. "우리 다이러스는 살았어! 구세주가 납시었단 말이야!! 암울한 우리 다 이러스에 희망의 빛이 내려오셨단 말이야!!! 내가 왜 미쳐 그분들을 못 알아 봤을까? 몇 번이나 읽었던 책인데 왜 못 알아차린 것일까? 다이러 스 만세!! 티아 님, 테이 님 만세!!! 레이르 여왕 페하 만세!!!" 그 날 촌장은 마을 사람들에게 늙으신 분이 너무 무리를 했다는 진단을 받아서 집안에 요양을 - 말이 좋아 요양이지 감금이나 마찬가지였다 - 해야 된다는 진단을 받았다. 집안에 갇힌 촌장은 그제야 제정신으로 돌아오기는 했지만 이미 마을 사람들로부터 정신병자 취급을 받게 됐다. 그 때문에 아무리 티아와 테 이에 대해서 레이나 여왕이 만났다던 실버 해츨링일지도 모른다는 설명 을 했지만 아무도 믿어 주는 이는 없었다. 촌장은 그저 이를 갈면서 혼자 외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 두 분은 실버 해츨링이다! 언젠가는 알게 되리라 티아 님과 테이 님의 정체를 그리고 우리 다이러스 제국의 구세주가 되어 줄뿐이 라는 것을!!" 테이는 나귀를 타고 가는 티아의 옆을 나란히 걸어가다가 귀가 간지러 움을 느꼈다. 더구나 참으려고 노력은 했지만 자꾸 코도 간질거리는 것 이 재채기가 나올 걸 같았다. -엣치! 테이는 꾹 참고 참았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크게 재채기를 해 버리고 말았다. 테이가 재채기를 하자 티아가 한심하다는 얼굴로 쳐다봤다. "너는 어떻게 된 애가 드래곤이 걸릴 리가 없는 감기에 다 걸리냐? 원 래 느림보 해츨링이었던 드래곤은 다른 드래곤이 안 걸리는 감기도 걸 리는 거냐?" '젠장 이런 소리들을 것 같아서 꾹 참았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테이는 티아의 말에 발끈 하며 외쳤다. "감기 아니야!! 그냥 재채기가 나왔던 거야!!" "왜 재채기가 나왔는데?" "코가 간지러워서!!" "감기 맞네." "아니야!!" "건드리지도 않은 코가 간질거리고 재채기가 나오면 감기 맞지 감기 아 니면 뭔데?" "우......." 더 변명의 여지가 없는 테이는 억울한 얼굴로 불을 잔뜩 부풀리는 일밖 에 할 수 없었다. 티아는 그런 테이가 귀엽다는 생각을 하며 킥킥대며 웃었다. 테이에게는 그런 티아의 웃음조차 자신을 비웃는 것 같아서 기 분이 더 나빠졌다. 그 때였다. -엣치! 쌍둥이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재채기의 원인(?)이 같아서인지 테이와 토씨 하나 틀리지 않는 재채기를 해 버리는 티아를 테이는 멍하니 쳐다 보았고, 티아는 재채기를 한 그 자세로 굳은 체 멍하니 있었다. 얼마간의 침묵의 시간이 흐르고 제일 먼저 입을 연 것은 티아였다. "테이야." "으..응?" "너 일단 나한테 맞아라." "?!" 테이가 미처 무슨 말이냐고 물어 보기도 전에 티아의 주먹이 날아갔고, 그 주먹에 맞아 뒤로 날아간 테이는 나무에 세게 부딪쳤다. "갑자기 왜 때려?! 이유는 말하고 때리란 말이야!!" 테이는 티아에게 맞아서 부은 코를 잡고는 억울해서 소리쳤다. 티아는 테이를 싸늘한 시선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너 내가 너랑 똑같이 재채기했다고, '흥 누나 역시 나랑 똑같네. 아니 재채기했다고 멍청이 취급했던 누나가 재채기를 한 거니 나보다 더 멍 청하다' 라고...." "자..잠깐!! 나는!!" "생각하려고 했었잖아! 그러니 그런 생각하기 전에 나한테 맞고 그런 생각 안 하도록 정신차려!!" "그건 억지야!! 난 억울해!!!" "시끄러워! 문답 무용!" 그렇게 말하며 익숙한(?) 테이의 구타를 시작하는 티아의 이유라는 것 은 분명히 말하면 테이 말대로 억지가 맞았다. 그저 잘난 척 떠들던 자신이 방금 지적했던 테이의 실수를 똑같이 따라 한 것이 너무나 창피한 나머지 실제로 그런 생각을 하려고 했는지는 모 르지만 아직 아무 생각도 안한 테이에게 죄를 뒤집어 씌어서 아니 솔직 히 뒤집어씌울 죄도 없으니 죄를 만들어서 테이를 패면서 얼렁뚱땅 넘 어가려고 한 것이다. 이번만큼은 테이는 정말로 억울한 상황인 것이다. 그러나.... "으아악 너무해 누나!!!" "시끄럽다고 했지! 아이스 미사일!!" "아아앙!! 실드!!!" 언제 나와 같은 패턴으로 당하다 보니 테이는 어느새 억울하다는 생각 보다는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왜 맞는지에 대한 이유는 빠르게도 새카맣 게 잊어 먹은 것이다. 좋게 말하면 그 만큼 적응을 했다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슬픈 조건 반사라고나 할까? 아무튼 실컷 때릴 만큼 때린 티아는 씩씩대며 다시 나귀에 오르려고 했 는데 나귀는 그 난리 통에 이미 도망가고 없었다. "아악!! 너 때문에 내 탈것이 도망갔잖아!! 책임져!!" "힝 그게 왜 내 탓인데?...훌쩍." "네가 얌전히 맞으면 될 것 가지고 그 난리를 피우면서 도망 다녀서 내 탈것이 놀래서 도망친 거잖아!" "말도 안 돼!" "시끄러워!!" 실컷 테이를 패다 보니 어느새 자신도 처음의 이유를 까맣게 잊어 먹고 이유 모를 열이 받은 상태가 된 티아는 그렇게 평소대로 되지도 않는 이유를 갖다 붙여서 보너스로 한 대 더 때려 주었다. 티아의 이 행동도 말하자면 그 만큼 테이를 구타하는 것이 일상의 버릇 이 되었다는 뜻이다. 아무튼 그 날 후에 미치광이였다고 생각했던 작은 마을 촌장이 전해서 다이러스 제국의 전설 중 하나로 남게 되는 구세주 전설의 주인공들은 남들이 보기에는 약간은 한심하고 걱정이 돼 보이는 출발을 시작했다. .. 드래곤 남매 18화 마족의 모녀(1) "어서 오세요! 당근 주점에 잘 오셨습니다." 뭐라 묘사하기 힘든 옷을 입은 여자 점원이 나와 누나를 맞으며 생글생 글 웃으며 말했다. 거참 노출도가 적당한 옷이 눈을 참 즐겁게 해준다 는 게 아니고오!! '누나 이상한 생각 안 할게! 발 좀 치워어!!' 누나는 겉으로는 생글생글 웃고 있지만 나만이 알 수 있는 화가 났다는 표정으로 내 발을 되게 밟고는 여자 점원의 안내를 받아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난 그 뒤를 비틀거리며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누나와 나는 산을 내려와서 남서쪽으로 방향을 잡아 일주일을 걸어와서 인간들의 마을에 들어왔다. 오랜만에 인간들의 음식과 침대에서 푹 잘 수 있다는 생각에 누나와 나는 힘든 것도 있고, 커다란 당근이 간판으로 달린 특이하게 생긴 주점으로 날듯이 뛰어들어왔다. 그리고 방금 전 본 거와 같은 참사(?)를 겪고 난 뒤에 자리에 앉자 여 자 점원의 엄청난 속도의 말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두 분이시군요. 식사 먼저 하실 거죠? 저희 집의 오늘의 스페셜 추천 요리는 양고기 스테이크와 야채 수프와 당근 샐러드 그리고 후식으로 달콤한 주스가 나오는 요리가 있습니다. 만약 매콤한 것을 원하신다면 핫 소스를 얹은 우리 다이러스 제국산 쇠고기 스테이크가 마련되어 있 고, 매운 것을 싫어하신다면 돼지고기 돈까스와 맵지 않고 새콤달콤한 소스를 얹어 드립니다. 그리고 수프는 저희 주점의 자랑으로 각종 맛있 는 수프가 종류별로 구분되어 있어 손님들 입맛에 맞게 골라 드실 수 있습니다. 아까 말한 야채 수프 외에도 쇠고기 수프, 땅콩 수프, 크림 수프, 부츠 수프, 고추 수프, 마카로니 수프, 양송이 수프, 닭고기 수 프, 양고기 수프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후식으로는 저희 집의 간판 자 랑거리인 당근 샐러드 이외에도 왕족들의 맛 아이스크림과 각종 과일 푸딩, 달콤한 케익 시리즈, 애플 파이, 파인 파이, 딸기 파이의 파이 삼 형제와 음료로는 시원한 과일 주스에서 각종 맥주들과 양주류 그리 고 저희 가게 최고 자랑거리이자 그 누구도 한 병 이상 먹지를 못한 돈 크라주 일명 [헬 파이어]주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끝도 없을 것만 같은 그 여자 점원의 음식물 선전에 내가기가 질려 있 을 때 누나가 손을 들더니 말했다. "연인들의 특별 이벤트 음식으로 줘요." "네? 아 역시 연인들 분이시군요. 그럼 어떤 종류로 드릴까요?" '뭐가 역시 연인들이란 말이야!! 얼굴도 똑같게 생겼는데 연인이 아니 라 왜 남매로 봐주지 않는거냐고오!! 인간들은 전부 눈이 삐었냐아?!!' 내가 마음속으로 비명을 지르고 있을 때 누나는 여유 있는 모습으로 음 식을 주문했다. "[기억에 남는 밤으로]로 주세요." 그렇게 말하며 누나의 뺨이 살짝 발그레지면서 의미 있는 눈으로 여자 점원에게 말하자 여자 점원도 의미 있는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예 알겠습니다. 오늘밤이 추억이 되시게 정~성~껏 만들어 올리겠습니 다." 그렇게 말하고 주방 쪽으로 가는 여자 점원의 뒷모습을 멍하니 쳐다보 다가 누나에게 시선을 돌려서 물었다. "누나 그 [기억에 남는 밤으로]라는 굉장히 불안한 이름의 음식은 뭐야 ?" "아 테이 씨 목소리 좀 낮추고, 티아라고 불러 주세요." ".......나 농담할 기분 아니야." [어머나 우리 마음이 통했네. 나도 농담할 기분 아닌데. 알았지? 귀찮 은 일을 피하려면 너와 난 연인 사이로 돌아다니는 것이 편해. 아무튼 신혼 부부는 네가 질색을 하는 것 같아서 일단 연인으로 낮춘 거니 싫 다는 소리는 안 하겠지?] 누나... 그렇게 알기 쉽게 마력을 모아서 언제라도 뭔가 터트릴 준비를 하면서 묻는 건 무슨 심보야? 그렇게 물으면 내가 할 대답은 하나밖에 없잖아. [연인 사이로...... 크흑 행동할게.] [그 크흑은 뭐냐? 크흑이......] 누나는 더 따져 묻지는 않고 마력을 거두었다. 누나의 마력이 거두어지 자 난 아까 물었던 그 이상하리 만치 불안한 이름의 음식에 대해 다시 물었다. "그런데 저기... 그 [기억에 남는 밤으로]라는 음식의 정체가 뭐냐고?" "티아라고 불러 주세요." 왜 그 말을 하면서 뺨을 물들이는 거냐고?! 귀..귀엽긴 귀엽지만.... 이런 엽기적인 생각은 잠시 치워 두고 난 흐트러지는 마음을 잡아서 또 박또박 다시 물어 보았다. "그러니깐 티아. [기억에 남는 밤으로]라는 음식의 정체가 뭐지?" [내가 외출 나갔을 때 이 음식점을 이용한 적이 있어. 꽤 인기 있는 음 식점이라 여기저기 지점이 많다고 들었는데 이 곳에도 있을 줄은 몰랐 어. 하긴 인기 있으니 다이러스 제국에 없는 게 이상한 거겠지?] [저기 누나 말 돌리지 말고, 내 질문에 먼저 대답해.] [힝 테이 씨는 거짓말쟁이 애인처럼 불러 주겠다고 약속해 놓고 딱 한 번 불러 주고 그만 부르다니...] 난 열이 받쳐서 이성을 잃을 것 같은 느낌을 간신히 참았다. [마음속으로 둘이서만 대화 할 때조차 그것을 지킬 이유가 없잖아! 그 냥 대화 할 때는 누나 말대로 할게. 그러니 지금은 내 질문에 대답해!! ] "먹어 보면 알아요." 그렇게 말하면서 누나는 도저히 더 물어 보지 못할 미소를 지으며 말했 다. 훗 더 이상 물어 보면 밥 굶기고 실컷 패 주겠다는 표정이군. 난 어느새 누나의 얼굴만 봐도 누나의 생각을 알아차릴 정도의 경지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날 협박할 때의 표정만 기가 막 히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아니 아주 큰 문제였다. 아니 그래도 그거라도 읽을 수 있으니 목숨 부지하는데 도움이 돼서 다 행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 '전혀 다행이라는 생각이 안 드는군.' 한숨을 푹푹 쉬며 나올 음식이 제발 정상적인 음식이기를 바랬다. 얼마 후 누나가 시킨 음식이 나왔는데 그렇게 이상하게 보이는 음식들 은 아니었다. 저번 외출 때 먹었던 음식들과는 틀린 고기와 수프들이었 는데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수프부터 한 입 떠서 먹어 보았다. "맛있어요?" 누나의 질문에 나는 수저를 멈추지 않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거는 정말 굉장히 맛있는 음식들이었다. 괜히 걱정했다는 생각이 팍팍 들었 다. 내가 열심히 수저를 멈추지 않고 수프를 먹자 누나는 내 옆에서 자 상하게 나를 챙겨 주었다. "그거는 장어라는 물고기 수프예요. 맛있지? 아 그리고 이 사슴 고기 스테이크도 먹어 봐요. 사슴의 뿔을 끓여서 만든 소스를 얹은 고기예 요." "사슴 뿔??" "몸에 좋은 거래요. 어차피 사슴뿔을 먹는 것이 아니라 뿔을 끓여서 향 료를 첨가해서 소스를 만든 거니 먹을 만 할거예요. 먹어 봐요." 사슴뿔이라는 말에 조금 꺼려지긴 했지만 그래도 누나 말을 믿고, 고기 를 잘라서 입에 넣어 보았다. 그 순간 정확한 정의를 내리기 힘든 향긋 한 향기가 내 입안에 퍼졌고, 고기가 정말로 사르르 녹는 것 같은 착각 이 들었다. "이것도 굉장히 맛있다!" 그렇게 말하며 나는 고기를 열심히 입에 넣었다. 그러다 언뜻 누나를 봤는데 누나는 손을 V자로 만들어서 누군가와 시선 교환 중이었다. 그 시선을 따라 가보니 아까 그 여자 점원이 누나와 똑같이 손을 V자로 누 나와 사인(?)을 교환 중이었다. "티아... 뭐 하는 짓이야?" "으..응?" 누나는 후닥닥 손을 치웠지만 이미 다 봐 버린 나는 수상하다는 눈으로 바라봤다. "그냥 맛있는 음식 만들어 줘서 고맙다고 사인 보낸 거예요." "음식은 주방장이 만들었을 텐데." "아잉. 테이 씨. 지금 저를 의심하는 거예요? 테이 씨가 절 의심하면 티아는 너무 슬퍼요." 누나는 그렇게 말하며 눈에 눈물을 그렁거렸다. 나는 여자의 눈물에 약 했다. 누나도 일단은 여자다. 고로 난 누나의 눈물에도 약해지기 때문 에 애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의심하는 거 아니야! 자 봐. 잘 먹잖아. 아 이것도 맛있다. 이것도 맛 있고!" 그렇게 말하면서 난 허겁지겁 음식을 목구멍으로 쑤셔 넣었다. 그제야 누나는 흘러내릴 것 같은 눈물을 싹 닦아 버리고, 다시 생긋 웃으며 아 까처럼 이것저것 음식 이름만 말해 주며 먹기를 권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역시 수상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에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난 거북한 느낌이 들었다. 쩝 나중에 소화제를 먹어야 되겠 군. 우리 남매가 한참 식사 중일 때 다른 손님이 왔는지 아까 그 여자 점원 의 손님맞이 인사 소리가 들렸다. "어서 오세요. 당근 주점에 잘 오셨습니다. 여섯 분이 신가요?" 누가 오던 말던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난 그쪽을 보지 않고 음식 먹 는데 만 열중을 했다. "식사 먼저 하실 거죠? 저희 집의 오늘의 스페셜 추천 요리는 양고기 스테이크와 야채 수프와 당근 샐러드 그리고 후식으로 달콤한 주스가 나오는 요리가 있습니다. 만약......." 대..대단하다! 저걸 아까 우리에게 했던 말과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다 말하다니.... 결국 내가 그 쪽으로 고개를 돌려서 바라보자 여섯 명의 남자는 아까 내가 지었을 거라 생각되는 기가 질린 표정으로 점원을 바 라보고 있었다. 점원의 설명이 끝나자 남자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서로 눈으로 '네가 시켜'라고 윽박질렀고, 결국 제일 성격이 좋아 보이는 남 자에게로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 남자는 머뭇거리다가 결국 말을 꺼냈 다. "추..추천 요리 여섯 개요." "네 감사합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여자 점원은 미소를 지으며 주방으로 들어갔고, 나는 누나에게 슬쩍 물 었다. "티아. 그 스페셜 추천 요리라는 거 비싸?" "네. 제일 비싼 요리들로 이루어진 음식이에요." "......인간들의 장사 속이란...." 내가 허탈해 하며 말하자 누나가 킥킥대며 웃었다. "만약 내가 같이 안 왔다면 테이 씨도 틀림없이 그 비싼 요리를 시켰을 걸요." "하긴......" 누나의 지적에 난 반론을 할 말이 없어 머리만 긁적였다. 누나 말대로 나 역시 그 장황하고 쉴 틈을 주지 않는 설명에 기가 질려서 머릿속에 는 제일 처음 말했던 스페셜 추천 요리만이 맴돌았었다. 누나가 아니었 다면 나도 틀림없이 그 요리를 시켰을 것이다. 난 나와 같은 일을 겪었고, 거기에 넘어간 남자들을 다시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불쌍한 사람들 이라는 표정으로 쳐다 만 봐주려고 했는데 아 까 여자 점원의 정신 없는 말투에 모르고 지나친 점을 발견했다. 여섯 명의 남자는 전부 병사 옷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가슴에 단 문 장은.... [테이 씨! 저건 다이리 수도의 문장. 수도 병사들이에요.] [...누나 아까 말했지? 둘이서만 있을 때나 마법으로 대화 나눌 때는 그 연인 사이 인척 하는 것은 관두자고.] [쳇! 일일이 신경 쓰는 게 귀찮은데 그냥 넘어가지. 아무튼 그것보다 테이야.] 누나의 투덜거림은 신경 끄고 난 누나의 뒤에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누나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나와 같은 생각일 것이다. [수도의 병사들이 이런 변두리까지 와 있다는 것은 역시 레이르 때문이 겠지?] 누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겠지. 레이르는 아직 붙잡히지 않았다고 했어. 그리고 시체도 발 견되지 않았다고 들었고, 죽었더라도 시체라도 사람들 앞에 보여야 그 로헨타이 자식의 왕권은 더욱더 강화되겠지. 레이르가 살아 있는 한은 정통 왕위 주장하는 민중들이 아직 남아 있을 거고, 그렇게 되면 로헨 타이 자식은 영원히 반쪽 자리 왕 대접밖에 받을 수 없을 거야.] [그러니 저렇게 수도의 병사들을 풀어서 레이르를 찾으려고 기를 쓰는 거겠지. 아무튼 우리가 저들보다 먼저 레이르를 찾아야 될텐데....]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니깐. 일단 확인부터 해보자. 그리고 저들에게 서 얻을 수 있는 정보도 얻어 놔야 되니 나한테 맡겨 둬.] [응 부탁해 누나.] 누나는 생긋 웃으며 걱정 말라는 눈짓을 보냈고, 이런 일에는 누나가 믿음이 가기 때문에 난 고개를 끄덕이며 걱정 안 한다는 제스처를 취했 다. 누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자연스럽게 밖에 나가는 척 하다가 그들 옆 을 지나쳐 갈 때 머리를 붙잡더니 그들 앞에서 쓰러졌다. 놀란 그들이 누나를 부축하자 누나는 '죄송합니다. 잠시 빈혈이 일어나서... 이제 괜찮아 졌어요' 라고 말하며 일어났다. [누나. 내가 가서 괜찮냐고 물어 봐야 되는 거야?] [아니 나한테 올 필요 없어. 넌 그저 그냥 거기서 밥이나 먹고 있어.] 그렇게 말하며 누나는 밖으로 나갔다. 어째 불안해지는데.... 방금 누 나의 그 행동은 연기라는 것을 난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애인으로 행동 하기로 해 놓고, 애인이 쓰러지는데도 밥이나 먹으라니 무슨 생각으로 저런 행동을 하는 거지? 생각하면 할수록 불안했다. 잠시 후 누나는 무언가를 사 와서 들어왔고, 누나가 들어오자 병사들이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누나는 그 표정에 미소로 답해 주고, 우리 자 리로 와서 내 앞에 앉고는 힘없는 모습으로 밥을 먹었다. [누나 왜 그렇게 힘이 없어? 그리고 무슨 계획을 짠 거야?] [나중에 방에 올라가서 말해 줄게. 일단 저들에게 이상하게 보이면 안 되니깐 적당히 무표정하게 밥이나 먹어.] 그렇게 말하며 누나는 정말 힘이 하나도 없는 모습으로 밥을 깨작깨작 먹었다. 평소답지 않은 누나의 모습과 나보고 무표정하게 밥 먹어 라는 소리에 난 불안감이 자꾸 들었다. 이 누나 도대체 이번 계획에 날 어떤 배역으로 집어넣은 거야? 생각하 면 할수록 불안한 마음에 거북한 배가 더 거북해지는 것을 느끼며 억지 로 밥을 삼켜야 됐다. 18화 마족의 모녀(2) 추천 요리는 정말 맛이 있었다. 단지 단점이 하나 있다면 너무 비싸다 는 점뿐이었다. 보통 요리 하루치 식사값을 단 한끼의 식사값으로 써 버린 병사들은 추천 요리를 시킨 병사에게로 못 마땅한 시선을 집중시 켰다. 그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의 나쁘게 말하면 세상 물정에 약간은 어두운 순진한 병사는 동료들의 시선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는 아까부터 건너편에서 밥을 먹고 있는 은색 머리의 여자에게 시선을 두 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자신의 앞에서 쓰러졌을 때 놀라서 그녀를 부축했을 때 느꼈던 그녀의 부드러운 감촉이 아직도 손에 남아 있는 기분이었다. 또한 그녀 의 향긋한 재취는 아직도 그의 코에서 떠날 줄을 모르고 있었다. 그러 나 그 무엇보다 그가 그녀에게 신경이 쓰이는 이유는 그녀의 손수건 탓 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부축했을 때 아무도 모르게 손수건을 자신에게 건네주고는 밖으로 나갔었다. 그 손수건은 아무도 모르게 자신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사기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음식값을 치르고 난 뒤 그는 여관으로 가서 짐을 풀기 전에 몰래 혼자서 그 손수건을 살펴보았다. 그의 예상 대로 손수건에는 글씨가 써져 있었다. [저를 데리고 도망쳐 주세요. 오늘밤 마을 동쪽 밖에서] 여자들의 입술연지로 급하게 휘갈겨 쓴 듯이 보이는 글씨는 그녀가 얼 마나 급박한 상황에 놓여 있는지 알려 주고 있었다. 그는 잠시 그 글의 의미를 생각하다가 아까 식당에서 보았던 그녀 앞에 앉아 있던 남자에 대해 생각해 냈다. 그녀와 똑같은 은색의 머리지만 힘없이 식사를 하는 그녀를 앞에 두고 무뚝뚝하게 밥을 먹던 남자였다. 그리고 그녀가 쓰러 졌을 때도 괜찮냐는 말 단 한마디도 건네주지 않던 남자. 비록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그 남자의 이미지는 이미 그 병사의 머리 속에서 멋대로 만들어져 있었다. '도대체 어떤 극악무도한 자일까? 도대체 그 여자에게 무슨 짓을 했기 에 그렇게 그녀의 얼굴이 초췌해진 거지?' 만약 테이가 그 말을 들었다면 이 남자는 3박 4일간 얻어맞고 죽도록 더 맞을 생각을 서슴없이 하고 있었다. 그는 동료들의 투덜거림에 신경을 끄고 빨리 밤이 오기를 기다렸다. 어 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가녀린(?) 그녀를 구하기 위한 시간이 빨리 가기를 기다렸다. 테이는 밤이 되자 티아의 손에 끌려서 마을 밖으로 향했다. 마을 입구 까지 가자 티아는 테이를 어둠속에 몸을 숨기게 만들고 혼자서 걸어갔 다. 그 곳에는 테이와 티아가 낮에 음식점에서 본 병사중에 한 명이 서 있었다. '헤에. 누나가 어떻게 저 남자를 불러낸거지?' 테이는 궁금증을 억누르며 티아와 그 남자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아... 나와 주셨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티아는 눈물까지 글썽이며 남자에게 감사를 표하자 남자의 얼굴이 붉어 지며 어쩔 줄 몰라 했다. "레이디를 돕는 것은 남자의 의무입니다. 그러니 어려워하지 마시고, 무슨 일인지 저에게 말해 주세요. 있는 힘껏 힘이 돼 드리겠습니다." 얼굴은 더 붉어질 때가 없을 정도로 붉어져 있었지만 그래도 용기를 냈 는지 제법 멋있게 말하며 티아를 안심시키려는 그 남자의 말투에 테이 는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인간들은 왜 누나의 속을 못 알아보고, 얼굴만 보고 자기 멋대로 판단 해 버리는 거지?' 테이 입장에서는 백 번을 죽었다 깨어나도 절대로 이해 불가능한 일이 었다. 하지만 인간들의 그것도 남자들의 입장에서 티아 같은 미녀가 약 한 척(!) 하며 도움을 청하면 그것을 뿌리치기 힘든 법이었다. "실은 저는 잡혀 있는 몸이랍니다." '이건 또 뭔 소리야?' 티아의 말에 테이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끼며 청각을 곤두 세웠다. "저는 원래 하급 귀족의 딸이었는데 집안이 몰락하는 바람에 아까 낮에 보셨던 남자에게 팔려서 그 남자와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중입니다. 그 남자는 밤마다 저를 노리개로 사용하며.... 으흑... 흑흑흑." 티아는 말을 더 잇지 못하고 작게 흐느끼기 시작했다. 티아 앞에 선 남 자는 처음에는 충격을 받은 듯 했으나 티아가 흐느끼자 곧 분노를 느꼈 는지 험악한 말투로 울고 있는 티아를 다그쳤다. "왜 지금까지 도망치지 않으셨던 겁니까? 아까 전에는 물건 같은 것을 사기 위해 자유롭게 밖으로 나가 다니셨잖아요!" 다그치는 남자의 말에 티아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흐느끼는 소리를 죽 이며 간신히 말을 이어갔다. "흑흑. 하급 귀족이라고는 하지만.... 으흑 저도 역시 귀족의 딸이라 혼자 도망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약한 여자입니다. 몇 번 도망을 생각했지만 역시 혼자서는 아무것도.... 그 남자도 그것을 알기 때문에 저를 이렇게 자유롭게 풀어 두는 것입니다. 그 남자는 밤마다 술을 사 오게 하기 때문에 아까 낮에 기사 님을 보고 이렇게 도움을 청할 생각 을 했습니다. 기사 님 제발 부탁드려요. 저를 도와주세요. 저를 데리고 도망쳐 주세요!" 남자는 순간 자신은 기사가 아니라는 말이 나올 뻔했으나 티아의 눈물 젖은 얼굴에 차마 아니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도망치지는 않습니다. 그 극악무도한 놈을 반드시 없애 버리고 아가씨를 구해 드리겠습니다." 남자는 기사가 아니라는 말 대신 티아를 안심시키기 위해 자신 있게 말 했다. "안돼요! 너무 위험해요! 그 남자는 약해 보여도 엄청 강해요. 몇 번인 가 몬스터들을 힘 안들이고 없애는 것을 본적이 있어요!" 티아의 외침에 남자는 순간 갈등을 겪었다. 하지만 곧 자신의 동료들을 생각하고는 마음을 잡고 말했다. "낮에 저와 같이 있는 동료들을 보셨죠? 우리들과 함께 덤비면 아무리 강하다고 하지만 그 놈도 어쩔 수 없을 겁니다." "그래도...." "물론 우리들도 다치는 사람이 나올지도 모르고, 죽는 사람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가까이에 그런 극악무도한 자를 가만히 두고 볼 만큼 저희는 비겁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아가씨 같은 미인을 돕는 일이라면 목숨을 걸 가치는 충분합니다." "아...아... 가... 흑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티아는 남자의 품으로 뛰어 들었다. 얼떨결에 티아를 받 아서 안은 남자의 입은 저러다 찢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벌어 졌다. 그리고 남자는 티아의 몸에서 풍겨 나오는 향기에 정신이 몽롱해 지는 기분을 느꼈다. '너무나... 아름다운... 사람이다.' 남자는 그렇게 생각하며 기분 좋은 몽롱한 느낌에 몸을 내맡겼다. "잘 해결 됐군." 누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말했다. 하지만 난 그 말에 긍정적으로 대답해 줄 수는 없었다. "왜 내가 극악모드한 악당이 되야 하는 건데?" "그래야 이 남자를 밤에 몰래 불러낼 수 있잖아." "하지만 처음부터 드리아드를 쓸 생각이었다면 굳이 그렇게 연극 따위 는 하지 않고, 바로 드리아드를 쓸 수도 있었잖아! 굳이 날 악당같이 만드는 이야기를 한 이유가 뭐야?!" 난 이를 갈며 말하다가 결국 분노로 인해 소리를 질렀다. 누나가 남자에게 쓴 드리아드는 나무의 정령이지만 동시에 매혹의 정령 이다. 남자들을 유혹하는 드리아드로 저 남자를 멍한 상태로 만든 것은 이해를 한다. 하지만 굳이 그렇게 연극을 하면서 시간 끌지 않아도 남 자를 불러낸 그 순간부터 걸어도 될 것을 난 있는 대로 나쁜 놈 만들어 놓고 마지막에 거는 그 이유는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이를 갈면서 누나에게 대답을 요구하는 나를 누나는 생긋 미소로 답하 며 말했다. "그거야 이렇게 해야 폼 나잖아." "폼?" "그래. 용사라면 때로는 이렇게 적을 속이면서 정의를 지켜야 될 때도 있잖아." "그...그렇긴 하지만...." 이..이거 또 내가 말려 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이런 시련을 겪지도 않으면서 무슨 용사가 된다고 그러는 거니? 이런 시련을 겪으면서 위험에 빠진 공주를 구하는 게 진정한 용사 아니겠어 ?" "아니 그거야 그렇겠지만... 하지만...." "자자 잡담은 그만하고 우리는 얼른 정보나 얻어 가자. 이렇게 있다가 다른 인간들 눈에 띄면 골치 아프잖아." 그렇게 말하며 누나는 싹 돌아서 버렸다. '이곳에 인간이 올 리가 없잖아! 젠장 또 말려들었다!!'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마을 입구에서 좀 떨어진 으슥한 숲이었다. 인 간이 밤늦게 돌아다닐 리가 없는 장소인 것이다. 누나는 더 말하기 귀 찮다는 뜻으로 그렇게 둘러 댄 것이겠지. 그걸 알고 있더라도 누나에게 대들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누나의 용사 어쩌고 하는 말에 약간 수긍 을 해 버렸다. 하지만...... '어째서 누나의 스트레스 해소 상대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거냐 고 오!!' 물론 그렇게 느끼고는 있지만 그걸 따질 생각은 없었다. 따졌다가는 ' 시간도 없는데 자꾸 귀찮게 할래?' 라며 또 맞을 테니... 그저 평소처 럼 속으로 '누나 미워. 너무해.' 라고 생각하며 울분이나 삼켜야지... "자 정신이 들어?" 누나는 드리아드로 멍한 상태가 된 남자에게 물었다. 남자는 초점 풀린 눈을 껌벅이며 잠시 고개를 흔들더니 멍한 눈과 똑같은 멍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으응. 내가 어떻게 된 거지?" "그건 내가 물을 말이야. 왜 한밤중에 여기 나온 거야?" "여기? ...몰라 내가 왜 여기 나온 거지?" 드리아드의 매혹의 힘에 현혹된 남자는 자기 눈앞에 있는 누나가 동료 처럼 보이는 것 같았다. 좀더 엽기적인 부연 설명을 붙이자면 우리 냉기의 실버 드래곤과 나무 의 정령은 속성이 맞지 않았다. 정 반대의 속성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얼음과 식물은 상성이 맞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난 당연하다면 당연히 식물 계열의 정령은 쓰질 못했다. 나중에 내가 고룡이 되면 모를까 이 렇게 상성이 안 맞는 정령까지 다루는 누나의 아니 정확히는 카이저 드 래곤의 능력에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각성을 하지 않아도 저 정도인데 각성을 한다면.... 끔직하다.' 난 잠시 각성을 한 누나의 힘에 상상하다가 너무나 비참한 내 미래의 모습에 경악을 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몽유병이라도 생긴 거야? 아무튼 나온 김에 우리 임무나 다시 한번 생 각해 보자." 내가 뒤에서 참혹한 내 미래에 절망하고 있을 때 누나는 서서히 본론으 로 이야기를 진행 중이었다. "우리 임무? 아아 레이르 공주를 찾는 일 말인가?" "그래 바로 그거!" 누나는 눈을 빛내면서 물었다. "참네. 긴 금발의 미인이 어디 한 둘인가? 이 넓은 다이러스 제국에서 어떻게 공주를 찾으라는 건지...." "그래도 정보는 얻었잖아." 누나와 나는 그 남자의 말에 눈빛을 교환했다. 내용은 '빙고'였다. 제 대로 찾은 셈인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 정보가 맞을까? 허탕친게 어디 한 두 번이라야지." 누나는 흥분 감에 몸을 떠는 나와는 달리 침착한 목소리로 유도 질문을 계속했다. 고맙게도 그 남자는 우리가 듣고 싶은 내용을 꼬박꼬박 대답 해 주었다. "뭐 일단 레이르 공주 같다는 여자가 발견되었다는 로즈렌 마을에 가보 면 확인되겠지." "그래 이번에도 허탕을 치던 말던 일단 명령이니 가 봐야지. 자 그럼 슬슬 돌아가자고, 이 밤중에 여기는 왜 나온 거야?" "글세.... 나도 기억이 안나." 누나가 앞서 걸어가자 따라가던 남자가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누나는 그 자리에서 멈춰서 누나를 지나쳐 가는 남자의 뒤통수에 대고 말했다. "기억하지 않아도 돼." "응?" 퍽! 누나의 말뜻을 이해 못한 남자가 반문하려고 하자 누나는 잽싸게 주먹 을 날려서 남자의 명치를 쳤고, 남자는 비명도 못 지르고 그 자리에 쓰 러져서 기절했다. "네가 기억하면 내가 귀찮아 지거든. 내일 아침 우리가 출발할 때까지 여기서 푹 주무셔." 누나가 남자를 처리할 동안 나는 지도를 꺼내서 로즈렌 마을을 찾아보 았다. 제법 큰 마을인지 다행히 지도에 로즈엔 마을이 나와 있었다. "어디 있는 마을이야? 지도에는 나와 있어?" 누나가 남자를 풀숲에 잘 숨겨 두고 나와서 나에게 물었다. "응 이 마을에서 좀더 남쪽이야." "그래? 아무튼 이렇게 빨리 레이르를 찾게 될 줄은 몰랐어. 이건 하늘 이 도우신 거야." "그곳에 있는 게 아직 레이르인지 아닌지도 모르잖아." 내가 지도를 말아서 주머니 속에 집어넣으며 말하자 누나는 손가락을 하나 들어서 좌우로 까닥거리며 말했다. "걱정하지마. 난 알 수 있어. 이건 여자의 감이야." "하아. 여자의 감?" "어머? 너 못 믿는 거니? 여자의 감을 우습게 보면 큰코다쳐." "알았어. 그것보다 얼른 가서 잠이나 자자. 내일 출발하려면 일찍 자야 돼." 내가 피곤한 표정을 지으며 걸어가자 누나도 무언의 동의를 하면서 내 뒤를 따라왔다. '정신적으로 조금 피곤하긴 했지만...그래도 오늘은 무사히 지나갔다.' 난 그때는 그저 오늘은 무사히 지나갔다고 안심하고 있었다. 내 인생 최대의 위기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그때까지는 알지 못했던 것이다. 18화 마족의 모녀(3) 분명 어느 때와 다름없는 밤이었다. 분명 그렇다고 믿었고, 또 그러했 었다. 내가 잠을 깨기 전까지는 말이었다. "젠장! 왜 잠이 안 오는 거야?!" 옆에 자고 있는 누나가 깨지 않게 조심스레 투덜대며 일어난 나는 갈증 을 느껴서 탁자 위에 놓인 물병을 병째로 들이켰다. 그러나 미지근한 물은 갈증을 달래기는커녕 더욱더 갈증을 가증 시켰다. "휴우...." 한숨을 쉬며 침대에 걸터앉은 나는 물끄러미 누나가 자고 있는 것을 쳐 다보았다. 누나는 마침 나에게로 얼굴을 돌리고 자고 있었다. '자고 있을 때는.....정말 예쁘다.' 라는 생각을 잠시 했었다. 하지만.... '내가 무슨 엽기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거냐아!!' 금방 그렇게 부정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누나가 예뻐 보인다니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질 생각이다. 저런 야만적이고, 자신만 알고, 동생 알기는 뭔뿔로 아는 누나를....정말 예쁘다...가 아니잖아!!! "으음." "헉?" 누나가 잠꼬대를 하는 소리에 놀란 게 아니다. 누나는 손을 휘저으며 뭔가를 찾는 듯한 행동을 보였기 때문에 놀란 것이다. 이미 누나와 자 면서 당해 본(?) 경험이 있는 나는 슬쩍 내 침대의 베개를 누나 손에 건네주었다. "으음." 아니나 다를까 내 생각대로 누나는 베개를 으스러지도록 안으며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나에게는 죽을뻔 했던 기억을 되살려 주는 저 행동에 왜 나는 예쁘다는 생각을 했을까? 겨우 침대에 흐트러진 누나의 신비한 빛을 띠는 은발과 조용히 감은 작 은 눈과 앵두 같은 입술 따위에 예쁘다는 생각을 하다니....... ...난 왜 저런 설명이 나올 정도로 자세하게 쳐다 본거지? 내가 의문을 느끼며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나의 손은 내 이성을 배 반하고 누나의 얼굴에 손을 가져가고 있었다. '너 지금 뭐하는거야? 주인을 죽게 할 셈이냐?! 당장 멈춰!!!' 라는 내 명령을 간단하게 배반한 내 손은 어느새 누나 얼굴을 쓰다듬고 있었다. 누나가 정말 예쁘게 보였다. 동시에 내 몸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뜨거워졌다. '이런 난 레드 드래곤이 아닌데....' 이런 와중에 썰렁한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아직 내 이성이 남아 있 다는 뜻이다. 그러나 내 몸은 철저하게 이성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천 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누나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이 이봐. 저기 내 손아! 멈춰! 멈추라고!! 이것이 진짜 미쳤냐?!! 멈 추라고 했잖아!!' "도둑이야!!" 갑작스런 바깥의 외침에 누나의 입술을 매만지던 내 손은 급히 치워졌 다. 겨우 내가 제어할 수 있게 된 내 손을 꾹 쥐며 난 창 밖을 보며 중 얼거렸다. "나이스 타이밍이었어. 고마워 도둑씨." 일단 위기는 넘겼지만 그래도 여전히 내 몸은 이유를 알 수 없는 뜨거 움으로 못 견딜 정도였다. 더구나 무슨 향기인지는 모르지만 누나 몸에 서 풍기는 달콤한 향기에 미칠 것 같았다. 카렌에게서도 맡아 본적이 있는 향기의 근원지(?)를 꼭 껴안아 주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만드는 이 정체 불명의 향기에 이성이 마비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나마 유지하던 이성까지 날아가면 난 그 다음에 일어날 끔찍한 사태 를 상상하고는 머리를 흔들며 재빨리 행동을 계시했다. "아빠한테 얻은 게 어디 있을 텐데.... 아 이거다." 내가 찾은 것은 아빠가 걸어 준 포박의 밧줄 주문이 걸린 밧줄이다. 아 빠의 마력으로 만들어진 거라 인간 만 명이 매달려도 절대 끊어지지 않 는 밧줄이라던 아빠의 말을 기억하고는 그것을 찾은 것이다. 일단 준비 물은 준비됐고, 다음은 행동이었다. 난 침대에 누워서 실프를 불렀다. [부르셨나요? 주인님] "어 너 이제 나랑 말을 하는 게 가능하냐?" [네. 주인님도 이제 성룡이 되셨기 때문에 정령 친화력이....] "알았어. 그건 별로 중요한 문제는 아니니, 그렇다고 치고 넘어가고, 이거나 받아." 실프의 말이 장황하게 늘어날 것 같은 느낌에 내가 말을 끊어 버리고, 밧줄을 건넸다. 실프는 서운한 표정을 지으며 밧줄을 바람의 힘을 이용 해서 들었다. 왜 서운해하는 거야? 아무튼 실프가 서운해하던 말던 중요한 문제는 그것이 아니므로 그냥 넘어가고 난 밧줄을 든 실프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걸로 나 묶어." [네?] 내 명령이 너무나 간단해서 실프가 이해를 못한 것 같았다. 그래서 나 는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걸로 나 움직이지 못하게 묶으라고." 당황한 표정으로 밧줄을 들고.... 아니 밧줄을 공중에 띄운 거지.... 아무튼 실프는 안절부절못하더니 결국 울상을 지으며 더듬더듬 말했다. [주.. 주인님.] "왜? 묶으라면 얼른 묶을 것이지 왜 그래?" 실프는 내 재촉에 결국 울음을 터트리며 울부짖었다. [전 그런(?) 취미 없어요!! 우에엥] "......." [친구들 중에 가끔 그런 변태적인 일(?)을 시키는 주인이 있다고... 훌 쩍 푸념을 늘어놓는 애들이 있었는데... 훌쩍 내 주인님도 그럴 줄은 몰랐어요. 너무해요. 우에엥.] "도대체... 뭘 어떻게 생각하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거냐?" [주인님이 묶으라고 했잖아요.] 결국 난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를 뻔했으나 옆에 자고 있는 누나를 생 각하며 내 목숨의 안녕을 위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움직이지 못하게 묶어 달라는 명령이 왜 변태적인 일(?)이 되야 하는 거냐고?! 잔말말고 날 움직이지 못하게 침대랑 통째로 묶어!" 짜증 섞인 내 말에 실프는 여전히 의심이 풀리지 않은 얼굴로 갸웃거리 며 물었다. [정말 이상한거 아니죠?] "속고만 살았냐? 묶어 놓는게 왜 변태적인 일(?)이 되는 줄도 모르니 걱정말고 묶어!!" [네? 네!] 내가 분노로 얼굴이 시뻘게져서 짜증을 내자 실프는 그제야 밧줄로 내 몸을 칭칭 동여맸다. "침대와 함께 묶어. 매듭도 내 손이 안 닿는 침대 밑에 놔두고... 다소 아파도 상관없으니 단단하게 묶어라." [네에....] 이유는 모르겠지만 힘없는 실프의 대답을 들으며 난 어느 정도 묶인 몸 을 움직이며 실프에게 추가로 지시를 내리며 내가 만족할 때까지 일을 더 시켰다. "이 정도면 됐어. 이제 돌아가도 돼." 내가 실프를 정령계로 돌려보내는 명령을 내리자 힘없이 어깨를 늘어트 리고 있던 실프는 조금씩 어깨를 들썩이다가 결국 울부짖으며 정령계로 돌아갔다. 그런데 왜? [아앙! 난 이제 시집 못 가!] 라니... 도대체 정령이 무슨 시집을 가고말고 할 것이 있다고 저런 말 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정령과의 친화력은 타고난 것이 아니면 엄청난 마력과 긴 시간을 정령과 같이 해야만 대화를 할 수 있는 정도가 된다 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은 친화력을 타고 난 인간이 아니면 정 령과 결코 대화를 할 수 없다. 그리고 엘프들 역시 친화력을 타고 난 엘프가 아니면 드래곤보다 더 늦게 정령과의 의사소통이 가능해 진다. 문제는 그것이 아니라 그렇게 친화력을 타고 난 인간이나 또는 오래 산 엘프들과 어느 정도 시간만 있으면 정령들을 부릴 수 있는 드래곤이 자 주 부르는 정령들은 그 주인의 성격을 닮게 된다고 한다. 나중에 내가 이때 있었던 일을 누나에게 말해 주고, 정령이 주인의 성 격을 닮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누나는 '역시나 못 말리는 멍청이 드래곤' 이라고 나를 놀리며 웃었다. 난 그저 머리를 긁적이며 아무 반 문도 할 수 없었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 황당하게 실프를 돌려보낸 나는 잠시 말을 잊 었다가 곧 정신을 추스르고 그 다음 단계를 시작했다. [잠의 정령 샌드맨] 처음 불러 보는 정신계 정령 중 잠의 정령을 불렀다. 처음 불러 보는 정령이지만 정신계 정령은 그렇게 속성과는 관계가 없기 때문에 쉽게 모습을 드러냈다. 빨간 모자와 빨간 옷을 입고 커다란 짐 보따리를 들고 나타난 귀여운 샌드맨을 보면서 난 계약의 의식을 시작했다. [나 실버 드래곤 테이루아는 이제부터 너의 주인이 되기를 원한다. 내 가 그대와 계약을 맺을 수 있는 존재라면...] [저기요.] 내 계약의 의식이 끝나기도 전에 샌드맨은 손을 들어 날 저지하며 말했 다. "왜?" 내가 계약하기도 전에 나와 대화를 하는 샌드맨을 신기한 눈으로 쳐다 보며 묻자 샌드맨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해츨링도 아니고, 성룡이신 분이 저 같은 하급 정령 불러 놓고 계약 의식을 왜 하시는 거죠?] "왜라니? 계약을 해야 너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거 아니었어?" [드래곤 맞으세요?] "......." 내가 아무 말도 못하자 샌드맨은 고개를 저으며 한심하다는 투로 말했 다. [저 같은 하급 정령한테는 그냥 불러서 명령만 내리세요. 강대한 마력 을 지니신 분이 겨우 나 같은 하급 정령한테 일일이 계약 의식을 치룰 필요는 없습니다.] 샌드맨의 친절한 설명에 난 이를 갈며 나직이 말했다. "그래? 잘 알았다. 그런데 너 감히 드래곤인 이 몸에게 잘난 척 하겠다 이거냐? 너 이 녀석...." [자자 주무시고 싶으신 거죠? 즉시~ 재워 드리겠습니다.] 내가 샌드맨을 어떻게 요리할까 고민을 할 때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았 는지 샌드맨은 급히 손을 흔들며 짐 보따리를 풀었다. 내가 그것을 제 지하기도 전에 샌드맨은 잽싸게 내 눈에 가루를 뿌렸다. '젠장 이것이 잠의 정령이 사용한다는 잠의 가루인가? 이 놈의 자식 다 음에 두고 보자. 아 눈이 감...긴...어라?' 내가 눈을 말똥말똥 뜨면서 샌드맨을 쳐다보자 샌드맨은 놀란 얼굴로 날 쳐다보며 물었다. [잠이 안 오세요?] "잠이 안 와." [.......] "......." 결론을 말하자면 그 날 난 샌드맨에 의해 잠들기까지 잠의 가루를 세 포대는 사용했다. 내 마력을 최대한 낮춰서 하급 정령인 샌드맨이 힘 을 발휘하게 쉽게 해줬는데도 잠이 오지를 않았다. 겨우겨우 내 눈이 감기려고 하자 샌드맨이 [젠장 이런 불면증 드래곤은 처음 보네] 라는 맞아 죽어도 할 말 없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바람에 순간 머리에 피 가 솟구치는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잠의 가루 세 포대를 맞은 나는 이 미 잠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너 이 자식. 담에는 반드시....' 라는 생각을 마지막으로 난 잠에 빠져들었다. 테이의 숨소리가 조용히 규칙적으로 방안을 맴돌 때 부스럭거리는 소리 가 들렸다. 티아는 침대 시트를 걷고 침대에서 내려와 살금살금 테이에 게로 다가갔다. 온몸을 칭칭 묶고 잠의 가루를 퍼부었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맞고 잠든 테이의 모습에 티아는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살다 살다 이런 순동이는 정말 처음 본다." 인간에 비해서는 정말 오래 살았으니 인간의 입장에서 본다면 저 말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드래곤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제 막 미성년자 딱지 를 뗀 티아의 저 말은 다른 드래곤에게 애늙이냐? 라는 핀잔을 받기 충 분한 발언이었다. 티아는 테이의 침대에 걸터앉아서 테이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매만졌다. 부드러운 머릿결의 감촉을 즐기며 티아는 잠이 든 테이에게 나직이 말 했다. "순동이라 이런 방법이라면 남자답게 덤벼들지 않을까 했는데... 역시 무리였나?" 테이가 머리가 간지러운지 웅얼거리며 몸을 돌리려고 움찔 되었지만 꽁 꽁 묶여 있는 테이의 몸만 움찔거릴 뿐 돌아간 것은 머리뿐이었다. 하 지만 덕분에 티아의 손은 테이의 머리카락을 놓쳤다. 티아는 테이의 머 리를 매만지던 손을 거두고 테이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대며 조용히 속삭였다. "역시 이건 반칙이지? 그래 시간은 많아. 그러니 천천히 나아가자. 알 았지?" 티아는 대답이 돌아올리 없는 질문을 하면서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그 리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자신의 침대로 가면서 다시 한번 테이를 돌아 보며 말했다. "절대 놔주지 않을 꺼야." 그렇게 말하고 티아는 자리에 누워서 잠을 청했다. 그 말을 하고 나서 바로 고개를 돌리는 바람에 티아는 보지 못했지만 테이는 순간 몸을 부 르르 떨었다. 아마도 익숙해진 불안감에 알아서 몸이 반응했을 것이다. 티아의 본격적인 선전포고(?)를 한 날의 밤은 그렇게 지나갔다. 18화 마족의 모녀(4) "산이다." "산이네." 네 허망한 말에 누나는 이를 갈면서 맞받아 쳐주었다. 난 그 시선을 필 사적으로 외면하면서 지도에 눈길을 주었다. "테이야. 너 분명 이 산을 넘는게 지름길이라고 했지?" "으응. 지도에 그렇게 나와 있어서...." 누나는 한 발짝 다가왔고, 난 지도를 보는 자세 그대로 한 발짝 물러났 다. "그럼 왜 마을이 안나오고 산이 또 하나 나올까?" "그..그게 지도에는 저 산이 나오질 않더라고...." 누나는 다시 한 발짝 다가왔고, 난 다시 한 발짝 물러났다. "어머나~ 그러면 저 산은 여기 없는 거네. 그런데 왜 산이 갑자기 생긴 걸까? 응? 우리 귀~여~운 동생아 이유를 말해 보렴." '위..위험 수위다아!' 다시 누나가 한 발짝 다가왔고, 나는 다시 한 발짝 뒤로... 물러날 수 가 없었다. 뒤는 절벽이었다. 뒤에는 까마득한 절벽 앞에는 성난 누나. .. 이것이야말로 옛 어른이 말씀하신 진퇴양난이란 말인가? 라고 현실 도피를 하는 사이에 누나는 서서히 손을 풀고 있었다. 난 죽었다!! "누..누나 잠깐만!" "시끄러워!! 문답 무용!!" "으아악!! 레비데트!!" 난 재빨리 비행 마법으로 이 자리를 벗어났다. 가 아니고 벗어나고 싶 었다. 그러나 누나가 한발 빨랐다. "어딜! 중력 주문 베이트!!" 자 급박한 상황이지만 새로운 마법에 대한 설명을 하겠다. 베이트는 베 이데트의 하급 중력 주문으로 베이데트가 일정 지역 안에 중력을 얹어 버리는 마법이라면 베이트는 한 개인의 몸에 중력을 거는 마법이다. 이 때 상대방의 마력과 자신의 마력의 차이에 따라서 걸리는 무게의 차이 는 변한다. 시전자가 마력이 높으면 높을수록, 걸리는 대상이 마력이 낮으면 낮을수록 무게는 더 무거워 지는 것이다. 결론은 난 내 몸에 걸 리는 엄청난 무게에 레비데트를 쓴 것도 헛되게 땅으로 떨어졌다. 그리 고...... "호오 이 마법 상당히 괜찮은데 도망도 못 가게하고, 앞으로 자주 이용 해 먹어야겠어." "누나!! 미안 살려줘!! 길 찾을께에!!!" "내가 언제 너 죽인 적 있냐? 새삼스럽게 뭘 살려 달라는 거야? 걱정마 죽이지는 않는다." '그게 더 잔인하다는 사실을 왜 알아차리지 못 하는 거야?' 그렇게 평소에 하던 일일 행사(?)를 치르고 난 뒤 나는 비틀거리면서 제대로 된 길을 찾아야 됐다. 요 며칠 잠잠했다가 얻어맞아서 그런 건 지, 아니면 도망도 못 가고 움짝달삭도 못하는 무방비 상태에서 밟혀서 그런 건지 평소보다 배는 아팠다. 지도에도 없는 산을 넘기 위해 산 아래로 내려갔을 때 조그마한 마을이 보였다. 산골짜기 사이에 있는 완전한 산골 마을의 모습에 누나는 한마 디했다. "저런 산골 마을이 로즈렌은 아니겠지?" "아닐 거야. 그냥 시골 마을 같은데." "시골 마을이라... 로즈렌 찾으라고 했더니 이름도 없는 시골 마을을 찾았다 이거지?" "앗! 저기 아이들이 놀고 있네!!" 난 다시금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급히 누나의 주의를 돌리기 위해 마을 어귀에서 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아이들을 손가락질하며 고개를 돌렸 다. "역시 아이들은 종족을 초월해서 너무 귀엽다. 그치 누나?" 필사적으로 누나의 주의를 돌리려는 나의 노력이 성공했는지 누나는 아 이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난 그제야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 다. 그런데 누나는 나를 아주 한심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왜?" 내가 고개를 갸웃하며 누나의 그 한심한 눈빛에 대해 물어 보자 누나는 한숨을 쉬며 아이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너 눈에는 저게 노는 걸로 보이냐?" 누나의 말에 난 다시 아이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남자아이들이 각자 의 손에 돌멩이를 들고 한 여자아이를 향해서 열심히 돌팔매질을 하고 있는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훈훈하게 만들어 주는 노는 모습에... 가 가만 뭐야? 저거!! "너희들 뭐 하는 짓이야!!" 난 깊게 생각할 것도 없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그쪽을 향해 뛰어갔다. 누 나는 내 뒤를 따라오면서 한마디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멍청이 드래곤." '젠장! 급하게 보느라 자세하게 관찰 못했었단 말이야!!' 라는 헛된 변명을 늘어놓으며 그쪽으로 열심히 뛰었다. 우리 드래곤 눈 이 좋아서 그 모습을 보고 바로 달려갔지만 생각보다 거리가 꽤 되었 다. 아까 내가 지른 소리도 너무 멀어서 아이들에게는 들리지 않았는지 아이들은 내가 그곳에 도착하기 전까지 여전히 돌팔매질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가까이 가면 갈수록 아이들의 목소리가 똑똑히 들렸다. "저리가!! 더러운 악마!" "죽어라 악마의 자식!!" "우리 마을에는 왜 온 거야? 이 악마!!" "그대로 죽어 버려!!" 난 아이들의 성난 목소리를 들으며 순간 할말을 잊었다. 저게 과연 아 이들이 할 말이란 말인가? 아무리 나이를 많이 잡아도 이제 열 살에서 열두 살로 보이는 아이들은 아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험악한 말을 입 에 담고 있었다. 그리고 역시 열 살이 조금 넘은 것 같은 한 여자아이 에게 끊임없이 돌을 던지고 있었다. 난 더 생각 할 것도 없이 배낭을 집어 던지고 남은 거리를 점프해서 그 여자아이의 앞을 막아섰다. 아이 들이 던진 돌이 여자아이를 감싼 내 몸에 맞고 떨어졌다. 갑작스런 내 등장에 놀랐는지 아이들의 동작이 일순간 멈췄다. 덕분에 여유를 찾은 나는 성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너희들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내 성난 목소리에 겁먹었는지 아이들은 흠칫대며 아무 말도.... "악마를 죽이고 있었어요." 하지 못 하는게 아니라 아주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요즘 아이들 은 도대체 어떤 교육을 받고 사는 거야? 내가 할말을 잃고, 당당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는 아이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으려니 달리는 속도가 나보다 느린 누나가 그제야 겨우 나에게 다가왔다. 누나는 내 뒤에서 울고 있는 여자아이를 보더니 아까 악마를 죽이고 있다고, 당당하게 말 한 아이를 쳐다보며 생긋 웃으며 물었다. "이 여자아이가 악마니?" 이미 달려오면서 그 좋은 청력으로 방금 나와 아이의 대화를 들은 것 같은 누나의 질문에 아이들은 순간 흠칫하며 몸을 떨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누나는 나만이 알 수 있는 약간 화가 난 상태이기 때 문이다. 아이는 어른이 느끼지 못하는 것을 가끔 느낄 때가 있다는 소 리를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나만이 느낄 수 있는 누나의 위험신호를 느낀 것 같다. 그 증거로 아이들은 슬슬 몸을 뒤로 피하고 있는 중이었 다. 아니 다만 아까 나에게 당당하게 대든(?) 아이만은 몸을 떨면서도 물러나지 않았다. 아마도 그 아이가 다른 아이들의 골목대장인 것 같 다. 누나도 그것을 눈치채고 그 아이만을 쳐다보며 다시 물었다. "이 여자아이가 악마니?" 여전히 약간 위험한 상태의 미소로 물어 보는 누나의 똑같은 질문에 그 아이는 대답을 못하고 그저 고개만 끄덕거렸다. "그래? 하지만 꼬마야. 악마라는 것은 말이야." 누나는 손을 옆으로 들며 말했다. 아이는 맞을 거라는 생각을 했는지 몸을 흠칫거렸다. 그러나 누나의 손은 길옆에 있는 나무를 향해 있었 다. 그리고 그 손에서는 아이스 미사일 연발이 나갔고 바람을 가르는 아이스 미사일의 소리가 주위를 울려 퍼지며, 나무를 뚫고 지나갔다. 여기저기 구멍이 난 나무는 자신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옆으로 쓰러 졌다. 쿵~~ 제법 큰 소리가 울려 퍼진 다음 소리가 가라앉기를 기다린 누나는 미소 를 지으며 계속 말했다. "이렇게 너희 같은 꼬마 정도는 가볍게 죽이는 있는 힘을 가진 자란다. 너희들이 돌 따위를 던진다고 아무 저항도 못하고 맞아 주는 것은 악마 가 아니란다." 간신히 용기를 내서 누나 앞에 서 있던 꼬마도 점차 얼굴에 울상을 지 으며 몸을 점점 더 심하게 떨었다. 누나는 아이와 시선을 맞추기 위해 서인지 무릎을 굽히고 아이의 눈을 쳐다보며 계속 말했다. "그리고 악마는 나처럼 경고 같은 것도 안 한단다. 눈에 보이는 야들야 들하고 먹기 좋게 보이는 아이들은 바로 잡아 먹어 버린단다." 그렇게 말하며 누나는 아이의 불을 잡고 생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이는 보기에도 딱할 정도로 울먹이며 간신히 아주 간신히 입을 열었 다. "나... 나는요." "응?" "훌쩍. 마..맛이 없어...요. 훌쩍. 자..잡아먹지... 마세요. 훌쩍." 훌쩍이며 간신히 말을 끝낸 아이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살려 달라 는 눈빛을 계속 누나에게 보냈다. 누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일어나서 아 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 누나가 말했지? 진짜 악마는 이렇게 겁도 안 줘요. 그냥 바로 잡아 먹어 버리지. 그러니 이 누나는 악마가 아니야. 알겠지?" "네..네." "자 그럼 그만 가보렴. 다시는 이런 짓 하면 안 된다." 아이는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도 안하고 쏜살같이 마을로 도망 쳤다. 나머지 아이들은 누나가 나무를 부러트린 순간에 이미 도망가고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다. 큰소리로 울면서 도망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누나는 머리를 긁적이 며 말했다. "내가 너무 겁을 준건가?" "뭐 그 정도면 그리 심한 편도 아닌데." 내가 당했던 거에 비하면 새발의 피에도 못 미치는 수준의 겁주기 갖고 무슨 생색을... 아 하긴 내가 당했던 만큼 그 아이들이 당하면 그 아이 들 죄다 죽은목숨이겠지? 나는 내 뒤에서 몸을 웅크리고 울고 있는 여자아이에게 치료 마법을 써 주며 여자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까만 생머리가 이리저리 흐트러 져 있고, 원래 두가닥으로 묶었던 것으로 보이는 리본은 한쪽에만 매어 져 있었다. 나머지 리본 하나는 땅에 떨어져 있었던 걸로 보아서 이 여 자아이가 얼마나 험한 꼴을 당했는지 잘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치료 마법이 끝나도 여자아이는 여전히 얼굴을 들지 않고 계속 울고 있었다. "자자. 괜찮아. 이제 널 아프게 하는 것들은 아무것도 없어. 그러니 겁 내지 말고 얼굴 들어보렴. 응 얼굴이 귀여울 것 같은데 이 오빠한테 얼 굴 좀 보여 봐." 그렇게 말하며 난 여자아이의 몸을 조심스레 일으켰다. 여자아이는 저 항을 하지 않고 내 손에 의해 몸이 일으켜 졌고, 그제야 난 여자아이의 얼굴이 똑똑히 보였다. 여자아이는 내 상상대로 까만 머리와 똑같은 큰 까만 눈동자의 귀여운 얼굴이었다. 그 까만 눈동자에서는 끊임없이 커 다란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난 손수건을 꺼내서 여자아이의 눈물 을 닦아주며 말을 걸었다. "역시 귀엽네. 이름이 뭐야?" "......." "아! 이 오빠 이름부터 먼저 말해야 되겠지? 오빠 이름은 테이루아. 그 냥 테이라고 불러도 돼. 자 귀여운 아가씨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내가 장난스레 물어 보는 질문에 아이는 주저주저하며 간신히 입을 열 었다. "......뮤나." "뮤나? 귀여운 이름이네." 눈물을 다 닦은 나는 허공에 손짓을 해서 운디네와 실프를 불렀다. 물 과 바람의 정령이 나타나자 뮤나는 순간 흠칫 했지만 곧 신기한 눈으로 운디네와 실프 그리고 나를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난 씩 웃으며 뮤 나를 안심시키며 운디네와 실프에게 뮤나의 얼굴을 씻어 주도록 명령했 다. 운디네의 차가운 물에 닿자 뮤나는 다시 깜짝 놀라는 것 같았지만 곧 신기했는지 그 큰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자신의 얼굴을 씻어 주는 운 디네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촉촉해진 얼굴에 실프의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 뮤나의 얼굴을 말려 주었다. 그 동안 누나는 빗을 꺼내고 떨어진 뮤나 것으로 보이는 리본을 들어 뮤나의 긴 머리를 빗어서 다시 리본을 매주고 있었다. 그렇게 씻기고 흙을 털어 내고 머리를 빗기고, 리본을 매 주자 뮤나는 아주 귀여운 모습으로 변했다. "와아! 이 오빠 생각대로 뮤나 너무 귀엽네. 어디 보자 음 여기에 웃으 면 더 귀여울 텐데." 내가 턱에 손을 대고 뮤나의 얼굴을 훑어보며 말하자 뮤나의 새하얀 양 볼은 금새 붉어졌다. 보면 볼수록 귀여운 아이였다. 옆에서 누나도 생 글생글 웃으며 내 말에 동조.... "너 정말 꼬시는 솜씨가 대단하다. 로 . 리 . 콘 . 씨!" 하는게 아니라 헛소리를 하는 바람에 내 이마에 혈관이 툭 붉어져 나왔 다. "......난." "응?" "난! 로리콘이 아니야!!" "방금 너 말은 아무리 봐도 로리콘이 맞는데." "얘 달래는 게 왜 로리콘이 되야 되는데?!!" "너는 얘 달랠 때 그렇게 위험하게(?) 다루니?" "뭐가 위험한데?!!" "소리 좀 그만 질러! 뮤나가 놀래잖아!!!" 라고 누나는 내 목소리보다 몇 배는 큰 목소리를 내 귀에 대고 질렀다. 덕분에 머리가 빙글빙글 도는 충격에 난 더 따지지를 못했다. 뭐 누나 말대로 뮤나는 정말 겁에 질려서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기에 나 도 조용히 입 다물기로 했다. '하지만 난 로리콘이 아니야!!' 라고 속으로 다짐하는 것을 잊지는 않았다. 누나는 뮤나를 상냥하게 내 려다보며 물었다. "저기 뮤나 집은 어디야? 우리 뮤나 집에 놀러 가도 될까?" 누나의 질문에 뮤나는 잠시 주저주저하더니 곧 조그마한 손가락을 들어 산 중턱을 가리켰다. 누나의 이마에 굵은 땀방울이 맺히며 헛웃음을 지 었다. "하하하. 사..산 속이었어?" -끄덕끄덕 뮤나의 작은 고갯짓에 누나와 나는 한숨을 쉬었다. "어째 우리는 산 속이랑 인연이 많은 것 같다. "팔자려니 생각해야지." 그리고 우리 둘은 누가 뭐라고 할 것도 없이 마주보고 한숨을 쉬고는 뮤나의 손을 잡고 산 속으로 즉 뮤나의 집으로 향했다. [이 얘 마족이야.] [에?] 뮤나의 안내를 받아서 뮤나의 집으로 가던 중 누나가 뮤나를 마족이라 고 말했다. 누나의 말뜻을 제대로 파악 못한 내가 반문을 하자 누나는 다시 설명을 덧 붙여서 말했다. [너도 마족이 뭔지 정도는 알지? 뮤나는 바로 그 마족이야. 더구나 순 수 혈통 같은데... 이상해...] 나도 마족이 어떤 종족인지는 알고 있다. 태어나면서 어둠의 마법에 천 부적인 재능을 타고 난 존재인 마족은 우리 드래곤보다 약하다 뿐이지 마법을 익히는데는 인간과는 달리 손쉽게 익힐 수 있는 종족들이다. 그 런데... [뭐가 이상해?] 누나의 마지막의 무언가 걸린다는 뜻의 말에 내가 궁금증을 표하자 누 나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넌 인간 세상에 단 한번 나가 봤으니 잘 모르겠구나. 마 족은 데스타 제국의 변두리에만 모여 살고 있는 소수의 종족들이야. 그 수가 극히 적은 마족이 대륙의 반대편에서 살고 있다는게 아무리 생각 해도 이상해.] [헤에 잘 알고 있네?] [외출 금지가 풀리고 가본 나라가 데스타였다고 했잖아. 그때 마족을 본적이 있어. 그래서 마족의 느낌을 알고 있기 때문에 금방 알아차린 거야.] [흠...] 난 우리 앞에서 통통거리듯이 걷고 있는 뮤나를 보면서 새삼 인간과 다 른 느낌이라는 것을 느껴 보고 싶었다. 뮤나는 겉모습은 완벽하게 인간 이라 구분이 가지를 않았다. 뮤나의 상처는 치료 마법으로 완전히 치료 했다. 그리고 집에 가까워져서인지 아까의 우울한 분위기는 이미 사라 졌고, 뮤나 나이 또래 여자아이들의 발랄한 느낌이 들었다. 가끔 웃음 도 보이는게 너무 귀여웠다. 아 이런 인간과 다른 점을 찾는다는게 그 만 뮤나의 귀여움에 딴 생각을 해버렸다. 다시 한번 정신을 추스르고 뮤나의 마족으로서의 느낌이라는 것을 느껴 보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 다. "언니! 오빠! 거의 다 왔어요!!" 언덕 위를 가리키며 뮤나가 환하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정말 귀엽다. . ...가 아니잖아!!! 정말이지 나란 놈은.... "확실한 로리콘이군." "아니야!!!" 누나의 말에 내가 발끈해서 소리를 질렀다. "아까부터 내 말에는 관심도 안 갖고 음흉한 눈으로 뮤나를 쳐다봤으면 서 뭐가 아니야?" "내가 언제 음흉한 눈으로 쳐다 봤다는 거야?!! 난 단지 뮤나의 마...! !" 내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언제나 그렇듯이 누나의 카운터 펀치가 날 아왔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처럼 펀치에 맞아 날아갔다. "꺄아악! 오빠야!!" 확실히 뮤나는 착했다. 아직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은 날 걱정까지 해 주고... 그나저나 왜 여자들은 내가 쓰러지면 목부터 잡고 흔드는 거야 ? "으으. 뮤나야 이 오빠 죽지 않았으니 그만 좀 흔들어." 내가 빙빙 도는 머리를 간신히 붙잡고 비틀거리며 서자 바로 누나의 성 난 음성이 내 머릿속에 전달됐다. [이 멍청아!! 아직 뮤나보고 마족이니 뭐니 하는 소리하지마!!] [왜?] [넌 아까 뮤나가 마을 아이들에게 당했던 일을 벌써 잊었냐? 뭔가 이유 가 있을 것 같으니 그 이유를 알기 전에는 뮤나가 마족인 것에 대해서 필요 이상으로 신경 쓰지마!! 지금은 그저 뮤나를 뮤나로서만 대해!] 반론의 여지가 없는 누나의 말에 난 찍소리도 못하고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뮤나는 성난 누나와 비틀거리며 일어나는 나 사이에서 안절부 절못하고 있었다. 그 큰 눈에 눈물이 그렁거린 모습이 너무 불쌍하게 보여서 나도 모르게 가슴이 찡하니 아파 왔다. "걱정마. 이 오빠는 하도 당해서 이제 별로 아프지도 않으니깐. 그러니 뮤나가 울면서까지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내가 뮤나의 눈물을 손으로 훔쳐 주며 안심시키려고 했지만 뮤나는 눈 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하지만 아픈 거는 아픈 거잖아요. 뮤나 아픈 거 싫어요. 흑 다른 사람 이 아픈 것도 싫어요. 훌쩍." 이 얼마나 착하고 순수한 마음씨란 말인가? 옆에 있는 누군가가 더도 말고 딱 절반만 닮았으면 하는 뮤나의 착한 마음씨에 내가 감동해서 뮤 나를 꼭 껴안아...주고 싶었는데 누나가 잽싸게 뮤나를 확 낚아채서 내 손에서 뮤나를 떨어트려 놓았다. 그 재빠른 동작에 내 손은 허공을 휘저었고, 나와 뮤나는 동시에 누나 에게 '왜 그래?'라는 눈빛을 보냈다. 누나는 그런 나의 눈빛은 싹 무시 하고, 뮤나에게 말했다. "뮤나야 저 인간(?)의 탈을 뒤집어 쓴 짐승 가까이 가면 안 된다. 저 놈은 로리콘이거든." "......." 내 턱이 빠진게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입을 벌리고 내가 경악 을 하고 있을 때 뮤나는 아이답게 순진하게 물었다. "언니 로리콘이 뭐예요?" "응 로리콘이란 뮤나같이 예쁜 여자만 보면 잡아먹으려고 덤벼드는 짐 승이란다." "애한테 이상한거 가르치지 마!! 그리고 내가 왜 로리콘이냐고오?!!" 내가 얼굴을 붉히며 씩씩대자 뮤나는 손가락을 빨면서 나와 누나를 번 갈아 가며 쳐다보다가 누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오빠는 로리콘이라는 짐승이에요?" "......." "어머나. 뮤나는 이해력도 빠르구나. 굉장히 똑똑하네. 바로 맞췄단다. " 그러자 뮤나는 누나의 품속에 파고들면서 겁먹은 눈으로 날 쳐다보며 물었다. "그럼 오빠. 뮤나 잡아 먹을 꺼예요? 그러면 오빠 싫어요. 힝..." 난 더 이상 그 자리에 서 있을 수 없었다. 그저 그 자리에 쓰러질 수밖 에... 내가 쓰러지자 두 여자의 말을 들려 왔다. "아 로리콘 오빠가 쓰러졌어요!! 어떡해요? "그냥 놔두면 알아서 일어 날거야. 뮤나가 걱정할 필요는 없어." '난 로리콘 아닌데. 왜 날 그 변태 보스랑 같은 취급을 하는 이유가 뭐 냐고... 창조신이시여 당신은 이제 당신의 자식에게 변태라는 오명까지 뒤집어 써야 속이 시원하십니까? 그런 겁니까? 창조신이시여!!!' 뮤나의 안내를 받아서 뮤나의 집에 도착한 티아와 테이는 제법 튼튼하 게 지어진 아담한 오두막집을 보면서 큰 감동을 느꼈다. "정말 잘 지어졌다." "그러게 이거 정말 여자 혼자서 지은거 맞아?" 뮤나가 집에 오면서 이곳까지 엄마랑 둘이서만 와서 집 짓고 살고 있다 는 말을 듣고, 근처에 적당히 부려먹을 드워프가 있나 하는 고민을 하 던 티아와 테이였기에 생각보다 튼튼하게 지어진 뮤나의 집은 실로 놀 라움 그 자체였다. "이거 정말 굉장한데 도저히 여자 혼자서 지은 집 같지가 않아." "그러게 전에 이르 누나랑 카렌은 둘이서 지었다고 했는데도 이것보다 는 훨씬 불안한 오두막이었는데..... 카..렌?" "에고고." 티아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한숨을 쉬었다. 테이가 자기 스스로 카렌 의 이름을 꺼내 놓고는 카렌의 이름을 멍하니 중얼거리더니 결국에는 산을 향해서 입을 모으고 소리를 치기 시작한 것이다. "카렌! 내가 잘못했어!! 날 용서해 줘. 그리고 돌아와 줘!! 카렌!!!" "한동안 조용하다 싶었더니 저 상사병은 고쳐질 생각을 안 하냐?" "언니. 오빠 왜 저래?" "그게...." 테이가 혼자서 청승떠는 모습이 이해가 되지 않은 뮤나가 티아의 치맛 자락을 붙잡고 물었다. 티아는 막상 대답을 해주려고, 입을 열었지만 저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될지 감을 못 잡아서 우물쭈물할 때 마침 테이의 청승떠는 소리를 들었는지 여자가 나왔다. "누구시죠?" 첫 눈에 딱 봐도 '난 뮤나의 친 엄마입니다'라고 말하는 듯한 뮤나와 꼭 닮은 일명 성인판 뮤나 얼굴(?)의 여자였다. 뮤나의 엄마로 보이는 여자는 뮤나와 티아와 그리고 청승떠는 테이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급히 뮤나에게 와서 뮤나를 자기 몸 뒤로 숨기며 티아와 테이를 경계하며 물 었다. "누구십니까?" "아니... 저기 저희들은 수상한 사람들이 아니고요." "카렌!! 왜 날 떠난 거야?!! 내가 잘못한게 있으면 고칠게!! 제발 돌아 와 줘!!" "......." "...아무리 봐도 수상한데요." 뒤에 누가 왔던 안 왔던 신경 쓰지 않고 자기 할 일(?)에 충실한 테이 를 보면서 뮤나의 엄마가 불신하는 얼굴을 하자 티아는 한숨을 쉬며 말 했다. "저기 저 애는 제 동생인데요. 자주 일어나는 발작이니 신경 안 쓰셔도 되요. 지금 금방 조용히 시킬게요." "크아악!!" 티아는 말을 끝나자마자 번개같이 테이에게 주먹을 날렸고, 테이는 비 명을 지르며 나가 떨어졌다. 그 모습을 뮤나의 엄마는 얼이 빠진 얼굴 로 쳐다보았고, 엄마의 뒤에 있던 뮤나의 비명 소리가 산을 뒤흔들었 다. "꺄아악!! 로리콘 오빠야!!" 뮤나의 엄마는 그렇게 소리치며 테이에게로 달려가는 자신의 딸을 쳐다 보다가 곧바로 시선을 티아에게 주면서 불신의 얼굴로 되물었다. "로. 리. 콘이라고요?" "하하하... 그..그게." 티아는 머리를 긁적이며 실수 했다라는 생각을 했다. 역시 애들에게 무 언가 가르칠 때는 조심해서 가르쳐야 되는 것이었다. "차린 것은 없지만 많이 드세요."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약간 안 좋은 소동이 있었지만 그래도 해결이 잘 되어서 천만 다행이었 다. 뭐 나는 누나의 주먹에 기절해서 자세한 상황을 못 봤지만 누나의 변명과 뮤나가 아까 자신을 구해 줬다는 말로 뮤나의 어머니를 겨우 이 해 시켰다고 한다. 뮤나의 어머니는 자꾸 뮤나를 내 곁에서 떨어져 있게 하려는 것이 왠지 모르게 신경 쓰이기는 하지만... 따뜻한 수프와 빵으로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실 때 뮤나는 잠이 들었고, 뮤나의 어머니가 뮤나를 침대에 눕 히고 올 동안 잠시 대화는 중단되었다. 뭐 어차피 뮤나가 있어서 본론 은 이야기하지도 못했지만... 뮤나의 어머니가 뮤나를 재우고 오자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 됐다. "아까는 뮤나를 구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제 이름은 제니아입니 다." "아 저는..." "테이 님이시죠? 아까 티아 님에게 들었습니다." "아 네." "근데 테이 님." "네?" 제니아 씨는 진지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테이 님.... 실례이지만 로리콘이.... 아니시죠?" 난 얼이 빠져서 제니아 씨의 얼굴을 마주보다가 곧 제니아 씨의 입에서 저런 질문이 나오게 만들 만한 드래곤이 생각나서 누나를 매서운 눈으 로 쳐다보았다. 누나는 고개를 흔들면서 자신이 아니라고 했지만 그 말 을 믿으면 내가 차라리 오크가 되고 만다. 난 이를 갈면서 누나에게 시 선을 떼고는 제니아 씨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무슨 오해가 있었는지 감이 잡히네요. 하지만 절대 믿지 마세요. 저는 로리콘이 아닙니다." "아 예. 역시 위대하신 드래곤께서 그럴 리가 없었다고 믿고 있었습니 다." 젠장! 믿는다면서 확인 작업을 하는 이유가 뭐야?! 어라? 제니아 씨가 어떻게 나와 누나가 드래곤인 것을... 난 누나를 쳐다보면서 답변을 요 구했다. 누나는 찻잔에서 입을 떼면서 말했다. "어쩔 수 없었어. 오해를 풀려면 우리의 정체를 밝히는 수밖에는 없었 다고." "그래? 그럼 뮤나도 알고 있는 거야?" "굳이 뮤나까지 알 필요는 없잖아. 제니아 씨만 알고 있어. 마법 대화 로 말해 줬거든." "말씀 낮춰 주세요. 저의 뮤나의 은인이시고, 더구나 위대한 종족께서 저 같은 미천한 마족에게 높인 말이라니 어울리시지 않습니다." 제니아 씨의 위대한 종족이라고 추어주는 말에 난 부끄러운 기분이 들 어서 머리를 긁적이며 머뭇거렸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응 그럴께." 저런 싸가지가 바가지인 드래곤 봤나? 척 봐도 제니아 씨가 우리보다 연장자.... 가 아니었군. 쩝 아직 잠에서 깬지 얼마 안되서 그런지 내 가 성룡이 되었다는 사실을 가끔 깜박해 버린다. 아무튼 말을 낮추기로 한 우리는 편하게 제니아의 말을 들을 수가 있었다. 제니아의 말에 의하면 뮤나는 처음부터 괴롭힘 같은 것은 당하지 않았 다고 한다. 처음에는 마을에는 내려가지 말라는 제니아의 말을 듣는 것 같았지만 곧 마을 주위를 배회하다가 마을 아이들과 친해져서 곧잘 같 이 놀고 오고는 했다고 한다. 그러던게 한달 전쯤부터 맞고 돌아오는 날이 생기더니 어쩔 때는 큰 상처를 입고 돌아오기도 한다고 했다. 만 약 오늘 우리가 그 장소를 지나치지 않았다면 뮤나는 오늘도 큰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무언가 이상한데." "그러게 처음에는 잘 놀았다던데... 왜 갑자기 그렇게 괴롭히기 시작한 것일까? 뮤나의 정체가 마족이라서 그런 건가?" -뻑 "크아악!! 왜 때리고 그래?!!" "말이란 함부로 하는게 아니라고 했다." 난 내 마족이라서 그런 건가 라는 말에 얼굴색이 어두워진 제니아를 보 고는 아무 소리도 못하고 아픈 코에 치료 마법을 걸었다. 내가 실수했 으니 얌전히 있어야지 뭐. "아무튼 이왕 나온 말이니 너 말에 대해서 생각 해보면 뮤나가 마족이 라는 사실을 알았다고, 그 아이들이 갑자기 태도를 바꾼 것은 이상해." "왜?" "전에도 말했지만 마족은 데스타 제국의 변두리에만 사는 극히 적은 종 족이야. 그런 종족이 대륙의 반대편인 이 다이러스 제국에 와 있는 이 유는 나중에 듣기로 하고, 아무튼 그렇게 극소수의 종족이 이 대륙 반 대쪽까지 알려져 있을 리가 없어. 더구나 이런 산골 마을에... 그러니 하물며 아이들이 뮤나가 마족이라는 것을 알았다손 치더라도 마족이 뭐 하는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괴롭혀 댈 이유가 없잖아." "확실히 그렇네." 코를 다 치료한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 다. 생각나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혹시... 선동하는 인간이 있는 건가?" "내 생각에도 그래.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마족에 대해서 약간이나마 알 고 있는 인간 소행 같은데... 도대체 무슨 목적인지는 감이 잡히지가 않아. 제니아는 뭐 아는거 없어?" 누나의 질문에 제니아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무언가 알고 있는 표정이 었다. "무언가 집히는 게 있군." 누나의 대답을 해보라는 뜻의 말에 제니아는 한숨을 쉬고는 입을 열었 다. "실은 제가 한달 전에 어떤 남자에게.... 그 저기... 습격을 당한 적 이... 있습니다." 말이 끝났을 때 제니아의 얼굴은 붉어질 때로 붉어져 있었다. 그리 듣 기 좋은 이야기는 아니라 난 얼굴을 찌푸렸다. 젠장 이래서 남자들이란 족속들은... 나? 나는 그냥 넘어가자고 전에 분명 말한 것으로 아는데. .. 그러니 나는 그냥 넘어가고, 제니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래서 당했어?" 누나의 직설적인 물음에 제니아는 펄쩍 뛰면서 부정했다. "그럴리가요!! 전 마법의 종족인 마족입니다. 위대하신 드래곤님들에 비해서는 턱없이 약하지만 그래도 인간 남자 한 명에게 당할 만큼 약하 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반격은 했지만 죽이지는 못하고 상처만 줬고, 그 남자는 도망 쳤겠군." ".....네." "누나. 역시 그 인간 남자가..." "아니 단정짓기는 일러. 하지만 가능성은 있어. 조사를 해 봐야겠지만. ... 그리고 이왕이면 함정도 좀 파고." "땅 파자고?" 갑자기 겨울의 바람이 매섭게 -지금은 겨울이 아니지만- 몰아치는 분위 기가 방안을 감돌았다. "엄마. 나 추워." 뮤나가 방에서 나와서 칭얼대자 제니아는 잽싸게 뮤나를 안아서 달래며 다시 재우려고 노력했고, 누나는.... 누나는.... 날 보면서 미소짓고 있었다. 약간 화가 난 상태의 그 웃음을 짓고 있었던 것이다. "테이야." "누..누나. 웃자고 한 이야기란 말이야. 재미없었어? 미안 누나. 담에 는 좀 더 재미있는 농담을 할게." "농담이고 자시고 간에.... 제니아." "네?"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제니아는 뮤나를 안고 안절부절못하다 가 누나의 부름을 받고 퍼뜩 대답했다. 누나는 얼굴색 하나 안 바꾸며 말했다. "지금부터는 뮤나의 교육상 안 좋은 광경이 일어날 테니 뮤나 안고 방 으로 들어가 있어 줘." "네? 아 네." "아 잠은 저 방에서 자면 되지? 나중에 알아서 잘 테니 더 챙겨 줄 필 요는 없어. 그러니 오늘 저녁은 푹 자. 차 맛있었어." 알아서 방으로 들어가라고 압력을 팍팍 넣은 누나의 말에 제니아는 말 대꾸 없이 뮤나를 안고 방으로 들어갔다. '편히 쉬세요'라는 말을 남기 고.... 그리고 누나는... "자 테이야. 우리는 잠시 교육(?)시간을 가지자." "누..누나 잘 못 했다고 했잖아." "문답무용" "으아악!!" "베이트." 내가 소리를 지르며 도망가자 누나는 전에 그 중력 마법으로 내 몸에 중력을 걸었다. 결국 몇 걸음 도망 가보지도 못하고 난 도마 위에 생선 꼴이 됐다. "정말 이거 편리하네. 정. 신. 교. 육 용으로 말이야." '구타가 무슨 교육이야!!' 어느새 누나는 침묵 마법인 사이레스까지 덤으러 걸어 버려서 내 비명 은 헛되게 입안에서만 맴돌았다. 그리고는 평소대로 난 죽을 때까지 맞 다가 기절했다. 그 놈의 중력 마법 덕분에 그래도 전에는 열대 중에 한 두 대는 피했었는데 이제는 피하지도 못하고 맞기 때문에 정말 생사의 기로라는게 뭔지 확실하게 경험한 하루였다. 다음날 아침 나는 누나의 명령에 따라 - 누나는 부탁이라고 했지만 주 먹 쥐고 하는 부탁도 부탁이라면... - 난 마을로 내려갔다. 마을 아이 들이 내 얼굴과 누나 얼굴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난 후드를 뒤집어쓰고 마법사로 행세하면서 마을을 거닐었다. 이 변장을 할 때도 약간의 문제가 생겼었다. "테이야 마을 갈 때는 변장을 하고 가라." "왜?" "마을 아이들은 너 얼굴 알잖아. 그러니... 음 여장...." "여장은 죽어도 안 해!!! 절대 안 해!!! 무슨 일이 있어도 안 해!!! 차 라리 날 때려죽여!!!" "테이야." "왜?!!" "말은 끝까지 들어라. 여장을 해봐야 애들이 내 얼굴도 알고 있으니 아 무 소용없다고 말하려고 했다." "......." "그런데 감히 그것도 확인 안하고 누나 말을 짤라? 그것도 바락바락 대 들면서?" "누..누나...." "테이야~." "으응?" "이럴 때 누나가 자주 하는 말이 뭐지?" ".....문답무용." "잘 아네." 그렇게 아침 행사(?)를 하고 나서 난 마법사로 변장해서 마을을 거닐게 된 것이다. ......크흑 왜 눈물이 나오는 거야? 어차피 한 두 번 당한 것도 아닌데.... 울면 안 돼. 울면 완전히 지는 거야. 내 자신에게 지 는 거라고. 크흑. 어라? 내가 혼자서 궁상떨면서 눈물을 삼키고 있을 때 어디서 모여들었는지 아이들이 나를 쳐다보면서 눈을 반짝거리고 있었다. 이런 들켰나? "아저씨 마법사예요?" 빠드득. 아. 저. 씨?! 후 참자. 애들을 상대로 무슨 화를 내는 거냐? 아무리 내가 누나한테 당하고 살았다지만 그 화를 애들한테 풀 수야 없 지. 아무튼 들키지는 않은 것 같군. "바보야 아니야! 마법사는 아저씨가 아니라 할아버지야!" "그래? 그럼 할아버지 마법사예요?" ......참아야 되나? 참아야겠지? 그래 참자. 세 번만 참으면 살인도 피 한다고 옛 현자가 말했다던데 참아야지. "혹시 마법사 할머니가 아닐까? 봐 이쁘게 늙으셨잖아." "응 그런가? 그럼 할머니 마법사예요?" 창조신이시여 부탁이니 제발 저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테이가 마을에 가고 난 뒤 티아는 뮤나를 데리고 놀아 주고 있는 중이 었다. 그러나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애들 봐주기는 테이를 데리 고 질리도록 해본 티아지만 테이식 데리고 놀기를 했다가는 뮤나는 당 장에 이승 하직이기 때문에 무엇을 하며 같이 놀면 되는지 감이 잡히지 를 않았다. 결국 티아가 선택한 것은 정령들이었다. "와아! 이쁘다아!!" 바람의 정령이 시원한 바람을 불며 춤을 추고, 물의 정령들은 허공에 물을 뿌려 무지개를 만들었다. 빛의 정령들은 깜박거리며 뮤나의 주위 를 맴돌았고, 불의 정령들은 불투견(?) 싸움을 벌였다. "음 역시 이건 애들 교육상 별로인가?" 실감나게 싸우는 불의 하급 정령 사라만다의 불투견(?) 싸움에 금방 까 지 웃으면서 즐거워하던 뮤나는 울 것 같은 얼굴로 티아의 등뒤에 숨어 서 티아는 머리를 긁적이며 사라만다를 정령계로 돌려보냈다. "미안 마지막에는 무서웠지?" "응. 하지만 재미있었어요. 언니 고마워요." 뮤나는 눈물을 쓱쓱 닦고는 금방 헤헤거리며 웃었다. 티아도 마주보고 웃으며 뮤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여동생이라는 것도 꽤나 귀엽네. 이번에 신룡 님들 만나고 돌아가면 엄마 아빠한테 여동생이나 하나 만들어 달라고 해야겠다." 티아는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상당히 굉장한(?) 발언을 애 앞에서 서슴 없이 해 버렸다. 뭐 뮤나가 그 뜻(?)을 잘 모르고 있으니 별 문제는 없 었지만.... 아무튼 티아는 그저 여동생이라는 존재가 귀엽기만 했다. 뮤나는 갑자기 티아가 아무 말도 안하고 자신을 빤히 바라보기만 하자 부끄러워서 얼굴을 붉혔다. "언니 왜 자꾸 쳐다봐?" "아니 뮤나가 정말 귀엽구나 해서. 이 언니 진짜 여동생이 있으면 좋겠 다 해서." "뮤나는 언니 여동생 아니야? 난 언니가 진짜 언니 같은데." 그 한 마디에 티아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감동을 했다. 그리고 그 감동은 주인의 몸을 멋대로 움직여서 뮤나를 콱 끌어안게 조종했다. "아유 귀여운 것! 너무 귀엽다. 우리 뮤나~~." "언니 숨막혀." 티아의 포옹과 키스 세례에 뮤나는 얼굴을 찌푸렸지만 전혀 싫다는 기 색은 없었다. 그만큼 뮤나는 외로움을 많이 탔던 것이다. 티아도 은연 중에 그걸 눈치채고는 뮤나에게 더 잘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진짜 동 생같이 귀여워 해줬다. 만약 테이를 이렇게 대해 줬다면 테이는 천국의 생활을 하지 않았을까? 제니아는 집안일을 하면서 둘의 노는 모습을 지켜보며 둘의 친자매 같 은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평화라는게 있다면 이런 광경이 아닐 까 하는 생각이 드는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저기다!! 저기가 마녀의 집이다!!!" 그런 평화는 오래 가지 않는다는게 문제점이지만.... 티아는 급히 뮤나를 자신의 뒤로 가게하고, 몰려오는 마을 사람들을 성 난 눈으로 쳐다보았다. 티아는 이를 갈면서 욕설을 내뱉었다. 그런데.. . "그 느림보 드래곤 결국 늦었군. 좀 빨리 행동하면 어디가 덧나나?" 화살은 죄 없는 테이에게로 향하고 있었다는게 조금 문제일까? 아무튼 손에 농기구 등의 무기(?)를 들고 성난 외침을 지르며 올라오는 마을 사람들을 보면서 티아는 어떻게든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여야겠다고 생 각했다. '테이야!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내가 시킨 일 얼른 처리하고 와! 안 그러면 죽어!!' 마음속으로 테이를 닦달하며 티아는 마법을 쓸 준비를 하였다. 마을 사 람들은 이제 조금만 있으면 뮤나의 집으로 들이닥칠 거리였다. 티아는 입술을 깨물며 손을 쳐들며 외쳤다. [결계] 티아의 결계 덕분에 손에 농기구를 -무기?- 든 마을 사람들은 더 이상 제니아의 집에 접근하지를 못했다. 티아의 결계에 몇 번 부딪친 마을 사람들은 살기를 피우면서 결계 건너편에서 마구 욕설을 내뱉고 있었 다. "역시 마녀다!! 마녀가 사악한 마법을 쓰고 있다!!" "이대로 놔두면 언젠가는 우리 마을에 해를 끼치려고 할 것이다!!" "물러가라 사악한 마녀야!!" "신의 저주가 두렵지 않으냐?! 이 사악한 마녀야!!" 티아는 솟아오르는 힘줄을 애써 누르며 참았다. 마을 사람들은 제니아 의 오두막을 둘러싸고 욕설을 퍼붓고 있는 중이었는데 그 욕설은 죄다 티아에게 향한 것이었다. 한 마디로 지금 마을 사람들은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다. 지금 제니아는 뮤나를 안고 집안에 피해 있던 중이었다. 그걸 알리 없는 마을 사람들은 결계 마법을 쓴 티아를 그들이 마녀라고 믿고 있는 제니아라고 생각하고, 죽을지도 모르는 실수를 범하고 있는 중이었다. 티아는 어렸을 때부터 엄마인 세이르아와 아빠인 오스타인에게 인간을 함부로 죽이면 안 된다는 가르침을 받고 자랐다. 만약 그러지 않았다면 마을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전멸이었을 것이다. 티아는 팔짱을 끼고 온 갖 욕설 소리를 들으며 가만히 서 있었다. 이 상태에서 마주 소리를 질 러 봐야 씨도 먹히지 않을게 뻔하기 때문에 그들이 제 풀에 지치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과연 티아의 생각대로 소리를 지르던 마을 사 람들은 온갖 욕을 해대도 티아가 아무 반응을 하지 않자 제 풀에 지쳐 서 하나 둘씩 조용히 침묵을 지키기 시작했다. 이윽고 마을 사람 전체가 말을 멈추고, 티아만 노려보고 있었다. 티아 역시 팔짱을 끼고, 마주 노려보아 주었다. 태어나면서부터 눈싸움에 있 었어 타의 추종을... 아니 다른 면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긴 하지만 어째든 눈싸움에 진 적이 없는 티아의 매서운 눈초리가 마을 사람들에 게 향했다. 드래곤 아이를 개방하지도 않은 티아의 눈과 마주친 마을 사람들은 하나같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고, 결국 전 마을 사람들이 티아의 눈을 피해 고개를 돌리는 사태가 발생했다. "흥." 모든 마을 사람들의 시선을 돌리게 만든 티아는 가소롭다는 코웃음을 쳤다. 티아의 코웃음 소리에 한 인간이 이를 빠드득 갈면서 소리쳤다. "넌 도대체 뭐.....예요?" 원래라면 뭐냐? 정도로 소리칠 생각이었던 인간은 티아의 매서운 눈초 리와 마주치자 시선을 돌리며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 한심 한 행세에 티아는 여전히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당신들이 나보고 마녀라면서?" "우리가 듣기로는 마녀는 검은머리라고 들었....는 데요." 여전히 기세 좋게 소리치다가 티아와 눈만 마주치면 목소리가 줄어드는 인간을 보며 티아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호오. 역시 누군가가 선동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군. 그 사람이 누군 지 궁금한데..." "젠장! 왜 말 끝마다 반말....인가요?" 처음에 티아를 뭐냐고 물었던 인간은 끝까지 반말로 말하는 티아의 말 투에 울컥해서 소리는 쳤다. 끝은 여전히 아니 올시 다였지만...... 티 아는 그 남자의 외침에 생긋 웃으며 물었다. "내가 반말해서 기분 나빠?" "아니 기분 나쁘다기보다는 나도...가 아니라 저도 존댓말 해 드렸으 니...존댓말을 해주시는 게 예의에 맞는 일이 아닌가 생각....하는데 요." 우물쭈물하면서 간신히 자신의 생각을 다 말한 남자를 쳐다보며 티아는 기특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 저도 이제부터 존댓말 사용할게요. 이러면 되겠죠?" 티아가 아까의 매서운 눈초리는 지우고, 한껏 미소지으며 말하자 남자 는 눈물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됐어. 난 해낸 거야!" 그 남자가 주먹까지 불끈 쥐고 기뻐하자 모습에 마을 사람들은 하나같 이 고개를 저으며 시선을 외면했다. 그리고 맨 뒤에서 한 중년의 남자 가 걸어나왔다. 남자는 티아의 결계 앞까지 가서 서자 티아가 입을 열 었다. "당신이 이번 사태의 주모자인가요?" "그렇다. 너 뒤에 있는 집안의 모녀는 악마다. 우리 마을에 해를 끼치 기 전에 없애 버려야 된다. 그것보다 너야말로 뭐냐?" "나? 저는 보시는 바와 마법사인데." "왜 반말이냐?" "당신이 먼저 반말했잖아!" 중년 남자는 티아의 무례함 입이 벌어졌다. 아무리 봐도 자신보다 몇 십 년은 어려 보이는 여자가 반말을 툭툭하니 놀란 것도 무리는 아니 다. 하지만 티아는 티아대로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 어차피 인간들보다 더 오래 사는 드래곤이니 인간들의 나이들이야 아무리 먹어 봤자 티아 에게 상대가 되지 않는 게 뻔하다. 하지만 티아도 지금은 인간의 모습 이라는 것은 자각은 하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에게 먼저 호의적으로 대 해 주는 인간에게는 인간들 식으로 말하면 일명 나잇값 대접을 해줄 용 의는 있었다. 하지만 덮어놓고 초반부터 무례하게 구는 인간에게는 그 런 대접 해줄 마음은 손톱만큼도 없는 티아였던 것이다. "이, 이, 이 무례한.... 야 이 년아!! 넌 너희 어미 아비도 없냐? 도대 체 어떻게 가르쳤기에 예의라는 것도 모르냐?!!" 중년 남자가 얼굴이 시뻘개져서 소리치자 티아는 코웃음을 흘리며 받아 쳤다. "당신같이 가르쳐 주던데요." 중년 남자는 다시 입을 딱 벌리고 그 자세대로 굳어 버렸다. 아마 세이르아와 오스타인이 티아의 말을 들었다면 딸자식 키워 나야 말짱 헛것이라고 울고불고 난리였을 것이다. 물론 진짜 부모님 앞에 놔 두고 저런 소리 할 정도로 티아가 막 대 먹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 그럴 것이다. "에에이!! 말이 필요 없다!! 만약 저 마녀를 계속 감싼다면 너도 마녀 와 같은 일행이라고 생각하고 함께 없앨 것이다!! 그러니 좋은 말 할 때 물러나라!!!" "없앤다고? 호오 무슨 그런 농담을...." "내가 못 할 것 같나? 비록 작은 마을 촌장이지만 마을 사람들을 위해 서라면 한다면 한다!! 이 말이 농담 같으냐?!!" "내 결계도 못 뚫으면서 뭘 하겠다는거람? 그러니 농담 같이 들리지." "......." 촌장이라고 자신을 밝힌 남자는 더 이상 아무 할 말이 없었다. 맞는 말 이었다. 아까 결계에 부딪치고 난 뒤에 사람들은 기를 쓰며 결계를 부 수려고 온갖 짓을 다 해보았다. 하지만 결국 허사로 끝나서 어쩌지도 못하고 지금 결계 앞에서 농성이나 벌리고 있는 처지였다. 이런 상황이 니 없애느니 마니 하는 말보다는 결계부터 깨고 봐야 될 처지였다. 촌장이 이를 갈면서 방법을 생각해 보고 있을 때 티아는 촌장과 마을 사람들을 살피며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흠. 선동했다고는 하지만 이 촌장은 제니아를 덮친 장본인 같지는 않 은데.... 저런 비리비리한 인간이 했을 리는 없고.... 더구나 바보같이 강직한 성격인 것 같으니 그런 추잡한 짓을 벌릴 인간으로는 더더욱 아 닐 것 같아. 그럼 대체 누굴까?' 티아가 그렇게 머리를 굴리며 마을 사람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있을 때 촌장이 손을 탁 치며 말했다. "그래 그거다!" "뭐가?" "너 마법사라고 했지?" "응." 이미 촌장은 티아의 반말에 대해서는 신경 끊기로 했는지 더 신경 쓰지 않고,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차피 이 결계도 너의 마력으로 지탱하고 있는 것! 너 마력이 떨어질 때를 기다리면 되는 거야!! 자 어쩔 거냐? 힘이 다 떨어져서 같이 당하 는 것보다 얌전히 길을 비키는 게 좋을 것이다." 그래도 들은 풍월이 있어서 자신 만만하게 말한 촌장이지만 잘못 짚어 도 한참 잘못 짚은 것이다. "마음대로." "에? 방금 뭐라고?" 티아는 생긋 웃으며 덧붙여서 또박또박하게 말했다. "마음대로 하라고. 어디 며칠이나 버티나 나도 궁금해졌거든." '한 몇 달은 이 앞에 죽치고 있어 보라지.' 그렇다. 이제 성룡이 된 티아에게는 더구나 보통 드래곤도 아니고, 신 과 같은 힘을 가질 수 있다는 카이저 드래곤에게는 이 정도 약한 결계 를 계속 펼치는 것은 숨쉬는 것같이 쉬웠다. 티아는 하품을 하면서 물었다. "계속 수고해. 난 어제 잠을 설쳐서 그런지 졸려서 낮잠이나 한숨 잘 래." "저 저기. 이봐!" 티아는 뒤에서 촌장이 부르던 말던 뒤돌아서 손만 흔들고 그대로 집안 에 들어갔다. -휘이잉 왠지는 모르겠지만 처량한 느낌의 바람이 마을 사람들 머리 위로 지나 갔다. "저기 티아 님. 괜찮을까요?" 티아가 집안으로 들어오자 아까부터 창문으로 밖의 동태를 살피던 제니 아가 티아가 들어오자 잽싸게 다가가서 물었다. "괜찮아. 괜찮아. 어차피 지금 주모자는 나서지도 않는 것 같은데 섣불 리 나섰다가는 주모자가 사라질 수도 있으니 지금은 이대로 놔두면 돼. 이 놈의 테이 자슥이 늦을 것 같으니 이대로 시간 좀 때우고 있지." "그래도...." "걱정하지마. 나도 이대로 나 몰라라 할 생각은 없어. 이왕 끼여들게 된 일이니 해결은 확실히 해주고 갈게." "티아 님. 정말 뭐라고 감사를 드려야 될지..." 제니아가 말을 잊지 못하고 흐느끼자 티아는 무안한 기분이 들었다. 티 아는 코를 만지작거리며 제니아의 시선을 외면하며 말했다. "아니... 그저... 그냥 저기 밖에서 난리 치는 인간들이 마음에 안 들 어서 도와주는 것 뿐이야. 정말 그 뿐이야." "언니. 왜 얼굴이 빨개?" "아..아무것도 아니야!! 아 피곤해. 난 낮잠이나 한숨 잘게. 아무리 느 림보 테이라도 나 한숨 자고 있을 동안에는 내가 시킨 일을 해 놓겠지. 정말 이 오두막은 보면 볼수록 튼튼하게 지었네. 통풍도 잘되고 참 좋 은 집이야." 티아는 쓸데없는 말까지 하면서 잽싸게 방으로 들어갔다. 테이가 이 장 면을 봤다면 '티아 누나 맞아?' 라고 맞을지도 모를 발언을 서슴없이 하게 만들 행동이었다. 그런 티아의 모습을 보며 제니아는 눈가에 눈물 을 훔치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티아가 들어간 방을 향해서 진심을 담아 허리 숙여 인사를 했다. 뮤나는 티아의 이해 못할 행동과 역시 이 해 못할 제니아의 행동을 보며 고개만 갸우뚱거렸다. '어른들은 이해 못하겠어. 하아. 그나저나 로리콘 오빠야는 어디간 걸 까? 같이 놀고 싶었는데...' 뮤나에게 테이는 완벽하게 로리콘으로 찍혀 있었다. 완전히 찍힌(?) 테 이는 그때쯤 마을의 꼬마들을 상대하면서 애를 먹고 있는 중이었다. "자 사탕 사줬으니 약속대로 물어 본 것에 대답해 줘야 된다." 테이는 어제 만났던 꼬마들의 골목 대장이었던 꼬마를 구슬리고 있는 중이었다. 사탕 한웅큼이 든 주머니를 건네며 테이는 꼬마의 입에서 나 올 정보를 기대했다. 그러나... "에게 겨우 이거예요? 쩨쩨하게 요즘 우리들도 경기가 안 좋아서 이것 갖고는 어림도 없다고요." "......." "뭐해요? 정보를 듣기 싫으세요? 싫으면 말고요. 아 하지만 여기까지 따라온 수고비로 이 사탕은 접수할게요." "더 사줄게." "진작 그렇게 나오시지. 애들아 이 마법사 형아가 사탕 더 사준데." "와아아아." 골목대장 꼬마의 말에 뒤에 있는 아이들이 환호성을 질렀고, 테이는 한 숨을 쉬며 사탕 가게로 들어갔다. '요즘 아이들은.... 무서워....' 테이는 불현듯 다이러스 제국의 앞날이 순탄하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낮잠을 자던 티아가 일어난 것은 한낮이었다. "하암~ 잘 잤다." 온 몸의 기지개를 쭉 펴며 자리에서 일어난 티아는 밖에 마을 사람들이 궁금해졌다. 티아가 방에서 나오니 제니아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티아 를 쳐다봤다. "왜 그래?" 티아가 무엇에 겁을 먹었냐는 뜻에서 묻자 제니아는 떨리는 손으로 창 밖을 가리켰다. 티아가 옆에 가서 창 밖을 보자 마을 사람들이 커다란 통나무를 들고 티아의 결계를 부수려고 폼 잡고 있는 중이었다. "......저 인간들 공성전이라도 할 생각인가?" "티아 님 괜찮을까요?" 제니아가 뮤나를 안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 질문에 티아는 고개 를 설래설래 흔들며 말했다. "걱정하지마. 내 결계가 겨우 저런 공성전에나 쓰는 비슷한 무기에 부 서질 것 같아? 걱정하지 말고 나가자. 이 정도면 테이도 슬슬 돌아올 테니 그 전에 제니아를 덮쳤다는 그 인간을 잡아내야지. 그 인간 얼굴 은 기억하고 있어?" "아니요. 워낙에 순식간에 일어났던 일이라..." 제니아는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그래? 이궁 얼굴이라도 알면 쉽게 찾을텐데. 하지만 저 중에 그 인간 이 틀림없이 있겠지. 일단 나가자." "....네." 티아는 제니아와 뮤나를 데리고 집 밖으로 나왔다. 집 밖으로 나오자 통나무에 부딪치는 결계의 느낌이 미약하게나마 느껴졌다. 그 정도로 미약한 힘이었기에 티아는 결계에 인간들이 헛짓거리를 하던 말던 느끼 지를 못했던 것이다. "앗! 마녀다! 마녀가 나왔다!!" 열심히 결계를 부수려던 사람들 중에 한 명이 제니아를 보고 외치자 통 나무를 들고 결계에 부딪치던 작업(?)을 하던 사람들이 동작을 멈추고, 제니아를 쳐다보았다. "마녀다!!" "사악한 마녀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죽여라!" "우리 마을을 위해서 죽여야 된다!!" "마녀의 딸도 같이 화형에 처하자!!" 사람들은 지금 티아의 결계에 아무 짓도 못한다는 사실도 잊고, 소리를 질러 댔다. 살기 등등한 사람들의 외침에 뮤나는 제니아 품에 파고들며 오돌오돌 떨었다. "엄마. 무서워." "뮤나야. 괜찮아. 겁먹지 않아도 돼. 이 언니만 믿으렴." 티아는 제니아에게 안겨서 떨고 있는 뮤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뮤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리고 시선을 마을 사람들에게로 돌리고 손을 옆으로 향했다. 티아의 손은 결계 안에 있는 제법 큰 나무를 향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광기에 물들어서 죽여라 라는 말을 외치느라 티아의 행 동을 눈여겨보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금방 티아에게 주목을 해야만 됐 다. "아이스 미사일! 다연발!!" 일명 테이 구타용 마법이 되다시피 한 티아의 주력 마법인 얼음의 화살 들이 티아의 손에서 쏟아져 나왔고, 티아가 노린 나무들을 향해 쏜살같 이 날아갔다. 곧이어 마법이 나무에 작렬하고, 제법 큰 나무의 줄기에 커다란 구멍들이 생겼다. 나무는 결계에 붙어 있는 사람들 바로 앞에 큰 소리를 내면서 쓰러졌고, 덕분에 마을 사람들의 외침이 일순간 사라 졌다. 사람들이 조용해지자 티아는 생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 이제 조용히 대화 좀 나눠 볼까요? 결계는 걷을 테니 서로 얼굴 붉히지 말고 진지하게 이야기 좀 해요." 티아는 아까 자신이 촌장이라고 말한 중년 남자를 보며 웃으며 말했다. 촌장이 티아의 요구라기 보다는 협박에 가까운 제안을 놓고 이를 갈고 있을 때 뒤편에 있던 마을 사람 하나가 넌지시 촌장에게 귓속말을 했 다. "촌장님. 제가 듣기로는 마법사들은 마법을 쓰기 위해서는 주문을 외워 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 대화를 하는 척하고, 결계를 풀 때 덮치 면 됩니다." "....나도 알아. 내가 그런 것도 모르고, 촌장 자리에 오른 줄 알아? 괜히 아는 체 하지마!" "아...네." 촌장은 주문 어쩌고 라고 말한 사람에게 무안을 주고는 티아에게 시선 을 돌리고 말했다. "좋다. 그 쪽의 요구를 들어주겠다." 그러나 귀가 좋은 티아는 이미 그들의 속삭이는 대화를 다 듣고 난 뒤 이기 때문에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정말 약속을 지키는 건가요?" "물론이다! 어디 대화라는 것을 해보자." '참네. 결계만 걷으면 바로 덤벼들겠다는 자세를 취하면서 하는 말이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하여튼 말로는 안 되는 무리들이군.' 티아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겉으로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결계를 해제하겠습니다." 티아가 결계 해제의 룬어를 나직이 외우자 마을 사람들 앞에 있던 투명 한 결계는 사라졌다. 그리고 그 순간 마을 사람들이 함성을 지르며 티 아와 제니아에게.... 덤벼들지는 못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티아는 결계를 해제할 때 테이 구타용(?) 특 대 아이스 미사일을 주위에 만들어 두었던 것이다. "자 이제 평화적으로 대. 화. 를 나눠 보자고요." "......." "......." "......." "저기.... 평화적으로 대화를 나누려면 그 얼음 좀 치우고 이야기 할 수 없을까?" 촌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아이스 미사일을 가리키며 말하자 티아는 고개 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왜요? 이건 여러분이 아무 짓도 안 하면 함부로 날아가는 마법이 아니 에요. 그러니 평화적으로 이야기 할 수 있으니 걱정 마세요. 아 혹시 무슨 짓 할 생각이었나요? 웅 그렇다면 전 어쩔 수 없이 이 마법을 날 릴 수밖에 없는데...." "......대화라는 것을 시작하도록 하지." 결국 촌장은 항복의 깃발을 올리고 티아의 대화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네. 평화롭게 대화를 시작하자고요." 티아는 생긋 웃으며 촌장의 말에 동의했다. 주위에 특대 아이스 미사일 을 시전한체 평화적인(?) 대화가 시작됐다. "흠 그렇게 된 거군." 테이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티아의 생각 대로 였다. 테이는 자신이 들은 정보를 티아에게 즉시 알려야겠다고 생각하 며 실프를 소환했다. 테이 주위의 공기가 흔들리며 푸른색의 귀여운 여성의 모습인 실프가 나타나자마자 테이가 명령을 내리기도 전에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저기... 주인님... 오늘도 묶어야.... 돼요?] "......안 묶어도 돼." [아! 다행이다.] "......머리 아픈 이야기는 그만두고 내가 지금부터 말하는 내용을 티 아 누나에게 전해 줘." 실프는 안도의 한숨을 쉬다가 티아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티아 님...한테요?] "응." [저기....] "또 뭐야?" 테이는 실프의 입에서 또 엉뚱한 말이 나올 것 같아서 짜증부터 먼저 났다. 그리고 그런 테이의 예감은 맞아 떨어졌다. [전 티아 님이 무섭단 말이에요. 딴 정령 시키면 안 되요? 힝.] "......알았다. 돌아가라." 테이는 한동안 한숨을 쉬며 울먹이는 실프를 보다가 손을 저으며 실프 에게 가라고 했다. 실프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테이에게 인사를 하고 는 곧바로 정령계로 사라졌다. [네. 죄송합니다. 주인님.] 테이는 실프를 돌려보내고 대신 물의 정령 운디네를 소환했다. 그리고 운디네에게 명령을 내리자... [저기 꼭 제가 가야 되나요? 다른 정령들도 많잖아요. 주인님 제발 절 보내지 말아 주세요. 티아 님은 무섭단 말이에요. 잉잉] "......." 그리고 빛의 정령 윌위스오포와 대지의 정령 놈을 불렀지만 그들 대답 도 실프와 운디네와 별반 다를 게 없는 대답이었다. 특히 작은 할아버 지 모습의 놈은 테이의 다리를 붙잡고 대성 통곡을 하면서 애원을 해서 사탕을 먹고 있는 아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얼음의 정령 큐린!" [네 주인님.] 테이의 실버 드래곤의 속성이기도 한 얼음의 정령을 부르자 무표정의 소년 같기도 소녀 같기도 한 모습의 정령이 나타났다. 테이는 큐린을 부르자 마자 명령을 내리지 않고 질문부터 했다. "넌 티아 누나가 무섭냐? 안 무섭냐?" [......대하기 힘든 분이긴 하지만 무섭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는 않 습니다.] "그래? 다행이다. 젠장 다들 왜 티아 누나에게 가기 싫다고 생떼를 부 리는 이유가 뭐야?" [그건 주인님이 더 잘 알고 계실텐데요. 정령은 싫던 좋던 오랫동안 지 낸 주인님과 성격이 조금씩 닮아 가는 겁니다.] "......." [그것보다 명령은 뭐죠?] 테이는 속으로 차갑고 재미없는 녀석이라고 큐린을 씹으면서 명령을 내 렸다. 큐린은 명령을 받자마자 즉시 테이에게 인사를 하고는 사라졌다. "와 멋있다. 마법사 형! 방금 그게 뭐예요?" 아이들은 정령들이 차례대로 나타나자 입만 딱 벌리고 구경하다 큐린이 사라지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재잘대며 테이에게 질문 공세를 쏟아 부었다. "정령이라는 거란다. 이 형은 마법사지만 정령사이기도 하거든. 그래 너희들 형 부탁하나 들어줄래?" "에? 또 부탁할게 있어요? 그럼 이번에는 사탕 가지고는 안 되는데. 어 쩔까나?" 완전히 테이를 뜯어먹는데 맛을 들인 아이들의 골목대장이 그렇게 말하 자 테이의 이마에 힘줄이 돋았다. 하지만 테이도 나름대로 아이들을 다 루는 법에 감을 잡기 시작했다. "실프! 운디네! 윌위스오포!" 생김새가 귀여운 여성형 정령 셋이 동시에 소환되었고, 아이들의 입은 다시 커졌다. 그리고 테이의 명령에 의해서.... [자 어린이 여러분 줄을 똑바로 서세요!] [여러분 앞으로 나란히! 바로.... 앞으로 나란히!! 자 앞사람 뒤통수보 고 줄 맞추세요!] [자 출발합니다. 아까 가르쳐 준 구호 다들 알고 있죠?] 정령들이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아이들의 줄을 맞추고는 어느 정도 됐다 고 생각이 들자 대표로 실프가 아이들에게 물었다. "네~~에!" 아이들은 함박 웃음을 지으며 실프의 물음에 답했다. 원래 정령과의 친 화력이 없다면 정령의 말을 알아듣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테이는 마법을 이용해서 정령들의 말이 아이들의 머릿속에 직접 들리게 만든 것이다. 아무튼 아이들이 줄을 똑바로 다 서자 실프 선생님(?)은 아이들의 선두 에 서서 큰소리로 외쳤다. [자 그럼 아까 가르쳐 준 구호를 외치면서 출발해요~~] [바람!] "실프!" [물!] "운~디네!" [빛은?] "윌위스~~오포!" 그렇게 아이들은 정령 선생님(?)들의 인도에 따라 힘차게 산길로 올라 가기 시작했다. 그 맨 뒤에 테이는 진작에 이렇게 할 걸이라고 중얼거 리며 홀가분한 표정으로 따라 올라갔다. "거듭 말하지만 저들은 마녀 모녀요. 저대로 놔두면 우리 마을이 위험 해집니다. 지나가는 여행객이 끼여들 문제가 아니요!!" "그러니깐 왜 저 모녀가 마녀라는 거죠? 증거가 있습니까?" "에에이!! 증거는 무슨 증거?! 내가 마녀라면 저 둘이 마녀 인줄로 알 고 넘어가쇼!!" "어머나 그럼 당신이 저 나무를 돌이라고 하면 저건 돌이겠네요." "......." 티아 쪽은 아까부터 이런 말싸움이 계속 되고 있었다. 티아 성격은 급 하고 더구나 말도 험한 독설가였다. 그런데 이 마을 촌장 역시 둘째가 라면 서러워할 급한 성격의 보유자였다. 그런 둘이 평화롭게 대화를 한 다는 것은 애초에 무리였던 것이다. 다른 마을 사람들의 티아 주위에 떠 있는 특대 아이스 미사일에 겁을 먹고, 멀찍이 떨어져서 티아와 촌장의 말싸움을 구경하고 있었다. 처음 에는 촌장이 한마디 할 때마다 소리를 지르며 촌장을 응원(?)했었지만 티아의 아이스 미사일 하나가 그들 앞에 떨어지자 찍 소리도 못하고 조 용해진 상태였다. 계속 비슷한 말이 반복되는 말싸움에 지쳐서 촌장이 자연스럽게 입을 다물자 티아는 기회를 잡았다는 생각에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신들은 처음 제가 마법을 쓰는 것을 보고 저를 마녀로 착각했죠?" "에? 그거야...." "그럼 당신들은 저 모녀를 마녀라고 단정짓는 이유가 뭘까요? 처음 내 가 쓴 마법을 보고, 날 저 모녀로 착각을 한 걸로 봐서는 저 모녀가 마 법을 쓰기 때문 아닌가요?" "......." "아~~ 바보 같아. 마법을 쓰는 거야 마법사라면 당연한 건데 그것 같 고, 마녀다 뭐다 말하다니 정말 바보 같으시네요." 촌장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자 티아는 정말 고개를 저으며 정말 한심 하다는 말투로 말했다. 그러자 결국 촌장은 예의고 뭐고 다 집어던지고 벌컥 화를 내며 소리쳤다. "아니야! 윌리가 저 모녀가 마녀라고 했단 말이다!!" "촌장님!!" 촌장이 소리를 지름과 동시에 한 남자가 비명을 지르듯이 촌장을 불렀 다. 약간 까무잡잡한 얼굴에 마른 체격의 음흉해 보이는 인상의 남자가 소리를 지르자 티아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빙고! 너 딱 걸렸어!' 티아는 생글생글 웃으며 윌리라는 남자에게 물었다. "당신이 뮤나 모녀를 마녀라고 했단 말이죠?" 티아의 표적이 윌리로 바뀌자 윌리도 촌장도 크게 당황한 표정을 지었 다. 특히 윌리는 겁을 먹은 표정으로 오들오들 떨었다. 티아는 얼굴에 미소를 지우지 않고, 윌리에게 다가가자 촌장이 급히 앞을 막아서며 소 리쳤다. "그만 둬라!! 윌리는 마녀의 정체를 알아채고는 지금까지 목숨을 위협 받았단 말이다!! 알겠는가? 저 모녀는 마녀다!! 우리 마을에 재앙을 몰 고 올 마녀란 말이다!!!" "호오. 목숨의 위협이라??" 티아는 그 자리에 서서 팔짱을 끼고, 촌장 뒤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윌리라는 남자를 흘겨보았다. 그 모습은 정말 무언가에 겁을 집어먹고 있는 모습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마녀의 저주다 뭐다 수군수군 대었지만 티아의 생각은 달랐다. '흥! 그동안 지은 죄가 있으니 들통나면 끝장이라 겁을 집어먹은 모양 이군. 그러니 누가 그렇게 살래? 이놈의 자식 조금 있다 두고보자.' 티아는 마음속으로 이를 갈며 윌리를 노려봤다. 그 사나운 눈빛에 윌리 가 찔끔하며 티아의 시선을 외면했지만 티아는 노려보기를 멈추지 않은 체 입을 열었다. "그래 저 윌리라는 남자가 무슨 말을 하던가요?" "저 둘은 마녀라고 했다. 보름달이 뜨는 밤에 아이의 생간을 악마에게 바치는 의식을 모르고 봤다가 생명의 위협을 받았다고 한다. 우둔한 여 행자여 이제 알겠는가? 저 둘은 마녀란 말이다!!" 제니아는 기가 막힌 표정으로 열변을 토하는 촌장을 쳐다보았다. "그..그런 저는 그런 적이 없어요!! 오히려 저는..." "에에이 시끄럽다!! 마녀가 언제 나 마녀입니다 라고 광고 하냐? 거짓 말 할 생각은 말아라!!" 제니아가 변명을 하기 위해 입을 열었지만 촌장이 걸 곱게 들어주지 않 자 제니아는 티아에게 어떻게든 해 달라는 시선을 보냈다. 티아는 어깨 를 으쓱하며 말했다. "일단 제니아 정체부터 말해. 그리고 나서 반응을 보고...." 제니아는 약간 망설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뮤나를 티아에게 맡기고는 마을 사람들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마을 사람들이 흠칫하긴 했지만 제니아는 신경 쓰지 않고, 입을 열었다. "저는 마녀가 아닙니다. 저는 마족입니다." 크고 또박또박한 제니아의 마족이란 말에 마을 사람들이 일순간 술렁거 렸다. "마족?" "마족이 뭐지?" "난 몰라. 넌 들어본 적 있냐?" "아니 나도 들어본 적 없어." "그럼 도대체 마족이 뭐야?" "혹시 촌장님은 아실까?" "촌장님은 아시겠지." 마을 사람들은 시끄럽게 저희들끼리 떠들다가 촌장을 쳐다보았고, 촌장 은 당황해서 윌리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윌리도 고개를 저었다. 마을 사람들이 처음 들어보는 마족이라는 단어에 시끌시끌할 때 테이가 보낸 얼음의 정령 큐린이 티아에게 도착했다. '흠 그렇단 말이지? 테이 이 녀석 너무 늦게 알아냈잖아. 좀 더 빨리 알아 볼 것이지. 그래 테이는 지금 뭣하고 있어?' [테이 님은 지금 아이들을 데리고 이 곳으로 오시고 계시는 중입니다.] '알았어. 수고했다. 그만 돌아가 봐.' [네.] 사람들 몰래 큐린과 대화를 끝낸 티아는 슬슬 정리가 되어 가고 있는 마을 사람들 쪽을 보면서 특히 윌리를 노려보면서 생각했다. '이제 슬슬 끝내야 될 시점이군. 한심한 인간들 같으니라고....' 촌장은 머리를 싸매다가 결국 티아에게 이를 갈면서 물었다. "여행자여. 너는 아느냐? 마족이 무언지?" 티아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당연히 알고 있으니 이 모녀가 마녀가 아니란 것을 알고 있는 거죠?" "그럼 마족이란 게 대체 뭐냐?" 은근히 촌장의 무식함을 비꼬는 티아의 말을 알아차린 촌장은 더욱 이 를 갈면서 물었다. 이 마을 안에서는 유식하다는 소리를 들었던 촌장 의 알량한 자존심에 상처를 받았던 것이다. "선천적으로 마력을 타고난 존재. 드래곤과 같은 마법의 종족. 인간과 는 달리 별다른 수업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마나를 다루어서 마법 을 쓰는 종족이 바로 마족입니다." "그래? 그럼 마녀 맞네." "......." 이때만큼은 그 대단한 티아도 입을 벌리지 않을 수 없었다. 티아가 입 을 벌리고 무언의 왜? 라는 질문을 하자 촌장은 눈치를 채고는 이유를 말해 주었다. "마족이나 마녀나 똑같이 마법사용하고, 무엇보다 똑같이 마 자로 시작 하잖아. 그러니 마녀가 맞지. 마녀가 아니면 뭐란 말이냐?" "네 살다 살다 당신같이 무식한 인간은 두번째로 본다. 그래도 지금까 지 촌장이라고 하기에 예의 바르게 대답해 준 내 말이 아깝다." "뭐야?" "당신 정말 촌장 맞아? 유식해서 촌장 된거 맞냐고? 혹시 팔씨름 대회 라도 해서 촌장된거 아니야?!! 아니면 도대체 그렇게 무식....에?" 마구 몰아 붙이는 티아는 촌장이 머리를 긁적거리며 시선을 피하는 것 을보고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 정말 팔씨름으로 촌장 된거야?" "......날씨가 좋군. 이런 날은 밭에 채소가 잘 자라지." "말 돌리지마. 정말 촌장을 팔씨름으로 뽑은 거냐고?" "아니 그게... 전 촌장님이 워낙에 괴짜라 자신이 죽기 전에 마을 사람 들 중에 제일 팔씨름 잘 하는 사람에게 촌장 자리를 넘겨준다고...." 촌장의 말은 끝까지 들리지 않았지만 뜻은 이미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 다. 촌장의 말에 티아도 제니아도 할말을 잃었다. "제니아." "네? 네?!" 간신히 먼저 정신을 차린 티아가 말을 걸었고, 그 바람에 제니아도 겨 우 정신을 차릴 수가 있었다. 제니아가 깜짝 놀라서 대답하자 티아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너 차라리 이사가라. 이런 동네에 있어 봤자 뭐하냐? 뮤나 교육상으로 도 안 좋으니 차라리 이사를 가라." "그...그게..." "왜 이 마을이 아니면 안 되는 이유가 있어? 아 그러고 보니 어제는 테 이 때문에 이유를 듣지 못했는데... 마족은 데스타 제국의 변두리에서 모여 살고 있잖아. 그런데 이런 대륙 끝이라도 할 수 있는 장소로 온 이유가 뭐야?" 촌장과 마을 사람들은 그 말에 귀를 쫑긋 세웠다. 그들이 마녀라고 생 각하는 제니아가 원래는 데스타 제국이라는 이 마을 사람들에게는 엄청 나게 먼데서 왔다는 말에 흥미가 생긴 것이다. 제니아는 얼굴을 붉히며 더듬더듬 말했다. "그게... 이 아이... 뮤나의 아빠가 이 마을 출신이기 때문입니다." "에에?!!" 폭탄 선언과 같은 제니아의 말에 티아도 마을 사람들도 죄다 놀라 버렸 다. 무엇보다 촌장은 입을 있는 대로 크게 벌리면서 뮤나를 손가락질하 며 간신히 물었다. "그..그 아이는...인간이란 말인가?" "멍청아 넌 가만있어. 뮤나에게서는 마족의 느낌이 날뿐 인간의 느낌은 안나." "누가 멍청이냐?! 이런 버릇없고...." 한바탕 촌장이 성질을 내며 덤벼들려고 하듯이 티아에게 소리 질렀다. 하지만 티아의 아이스 미사일이 촌장 바로 앞에 날아와서 꽂히자 즉시 조용해졌다. 주위가 조용해진 티아는 다시 차근차근하게 제니아에게 물 었다. "그럼 뮤나는... 혼혈이란 말이야? 그런 느낌은... 아 하긴 난 마족과 인간의 혼혈을 보지 못해서 어떤 느낌인지 모르지." "그게 아닙니다. 마족과 인간의 혼혈은 마족의 피가 더 강하기 때문인 지 거의 순수한 마족의 아이만 태어납니다. 하지만 그 아이가 나중에 다시 아이를 낳으면 그때는 마력을 타고나지 않은 보통의 아이가 나옵 니다." "그렇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어른들의 얼굴이 심각해지자 뮤나는 겁을 내며 제니아와 티아를 번갈아 쳐다보며 물었다. "저기 뮤나가 이상한 거예요? 그래서 엄마가 고생하는 거예요? 뮤나는 그럴 생각이 없는데... 나 때문에 엄마가..." 그렇게 말하면 울먹이는 뮤나를 티아는 미소지으며 살며시 끌어안아 주 었다. 티아는 자신의 품속에서 훌쩍이며 딸꾹질을 하는 뮤나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뮤나의 귀에 속삭였다. "뮤나는 이상하지 않아. 뮤나는 잘 못한 거 하나도 없어. 그러니 울지 마." "하지만... 하지만..." 이번에는 제니아가 뮤나의 곁에 앉아서 뮤나를 부드럽게 쳐다보며 말했 다. "엄마는 뮤나가 태어난 게 너무나 기뻐 단다. 아빠도 마찬가지야. 뮤나 가 엄마 딸로 태어나 줘서 너무 고마워. 그러니 뮤나가 미안해하지도 않아도 돼." "엄마...." 뮤나는 티아의 품속에서 빠져나와 제니아에게 안겨서 울어 버렸고, 티 아는 몰래 눈물을 훔치며 뮤나의 머리를 토닥여 줬다. 그런데 그런 감 동적인 장면에 초치는 인간은 꼭 있기 마련이다. "그 마녀 꼬맹이의 아비 이름이 뭐냐?" 티아는 마녀 꼬맹이라는 단어에 발끈해서 조용히 또 다른 아이스 미사 일을 촌장에게 날렸다. "으허헉!!" 이번에도 아이스 미사일은 촌장 발 아래에 꽂혔고, 죽음의 위협 앞에 촌장의 말투는 급히 바뀌었다. "아..아니 그 귀여운 꼬마의 아빠는 누구냐?" 끝까지 하대하는 말투는 고치지 않았지만 그래도 저 정도면 많이 정신 차린 것이라 티아는 그냥 그 정도 선에서 봐주기로 했다. 그리고 티아 역시 뮤나의 아버지라는 인간의 정체가 궁금해서 입을 다물고, 제니아 의 입에서 나올 말에 귀를 기울였다. "뮤나의 아빠는...저의 남편은 레이브입니다." "레이브?? 설마 그 미치광이?!" "미치광이?? 그게 무슨 말이죠?" "흥! 한 15년 전에 이 대륙의 끝에서 끝까지 여행을 하겠다고 훌쩍 떠 나 버린 놈이다. 그런 미치광이가 살아 있었단 말인가?" "왜 말끝마다 미치광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거야? 애들 교육상 좋지 않 다고." 티아는 다시 한번 아이스 미사일을 이번에는 촌장 발가락에다 날릴까 고민하며 소리쳤다. 그러나 촌장은 이번에는 겁을 먹지 않고 당당하게 말했다. "흥! 그런 집안의 수치를 주는 동생 험담 좀 하는 게 잘 못이냐?" "동..생.. 험담?" 티아가 촌장의 말뜻을 정확히 파악 못해서 고개를 갸웃거릴 때 제니아 가 탄성을 질렀다. "혹시 레이브씨의 형님이신 레라드 님이세요?" "흥! 그런 집안의 수치에게 형이라는 말을 들을 이유 없어!! 불가능한 여행한답시고, 집 나가서 몇 십 년이나 소식 없는 동생은 동생이 아니 야!!!" "팔씨름으로 촌장이 된 것은 집안 자랑이고?" "에에이!! 이제 더 이상 말 돌리지 마라!! 아무튼 우리는 마녀 모녀를 우리 마을에 지내게 할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다!! 그러니 냉큼 우리 손 에 심판을 받던가 당장 우리 마을에서 나가라!! 이 이상의 피해를 주었 다가는 용서하지 않겠다." 촌장의 마지막과도 같은 발악을 티아는 중간에 자르지 않고 - 아이스 미사일을 날리지 않고 - 끝까지 들어주었다. 할 말 다한 촌장이 씩씩대 고 있을 때 티아는 조용히 물었다. "저 모녀가 이 마을에 끼친 폐가 뭐지?" "그거야 애들을 산 제물로 삼는 행위가 아니고 뭐겠냐?" "제물이라... 이 마을에서 사라진 애들 있어?" "없다." "그럼 피해가 뭔데? 아무 피해도 없잖아." "앞으로 피해가 생길게 뻔할 뻔자다!!" "말이 안 통하는군. 거기 너 윌리라는 녀석. 정말 그 장면을 보기는 봤 데?" 촌장은 윌리에게 눈짓으로 말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윌리는 떨리는 목 소리로 말했다. "저..정말 제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내가 숨어서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자 악마의 불길을 나에게 쏘았는데 얼마나 놀라고 무서웠는지. ... 정말 죽을힘을 다해서 도망쳐서 겨우 살았습니다." "내가 들은 내용과는 좀 틀리군. 내가 듣기로는 제니아가 밤에 정체 모 를 괴한에게 습격 당해서 몸을 지키기 위해 마법을 날렸다고 들었는데. " "거짓말일게 뻔하다." 잠자코 티아와 윌리의 대화를 듣던 촌장이 한마디하자 티아도 지지 않 고 맞받아 쳤다. "윌리가 거짓말 했을 수도 있지." "윌리는 거짓말 할 위인이 아니다!! 우리 마을 아이들도 죄다 저 꼬마 가 마녀라는 것을 알고 겁먹고 있다. 그러니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저 마녀 모녀는 나가야 된다!! 아니 죽여야 된다!!" "와아!!! 맞다!! 죽여라 마녀를 죽여라!!" 촌장의 말이 끝나자 마을 사람들이 살기 등등하게 소리를 질러 댔다. 그 함성은 이윽고 죽어라 라는 한마디의 말이 되어서 주위를 뒤흔들었 다. "티아 님. 어떻게 하죠?" "언니 무서워." 티아는 입술을 잘끈 깨물었다. 더 이상 말이 통할 것 같지가 않았다. '그냥 확 다 죽여 버리고, 이 둘을 프론트 연합으로 데려갈까?' 라는 고민을 진지하게 할 때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의 함성에 도취됐는 지 그대로 무기를 - 농기구 - 들고 천천히 티아와 제니아 주위를 둘러 쌓다. 티아가 이를 빠드득 갈면서 마법을 시전 하기 위해 손을 들었을 때.... "타앗!!" 마을 사람들의 함성 소리에 뒤지지 않는 크고 힘찬 기합 소리와 함께 은색의 빛이 마을 사람들의 포위망을 뚫고 지나갔다. 그리고 빛이 자리 에 멈추자 그 자리에는 은빛 머리의 남자가 검집에 검을 넣고 있었다. "아악!! 뭐.. 뭐야?!" 너무나 순식간의 일이라 사람들이 일순간 정적에 휩싸였다가 비명을 지 르는 사람에게로 전부 시선이 모아졌다. 비명을 지른 사람의 손에 들린 삽이 정확하게 두동간 나 있었던 것이다. "어? 내 것도!" "내 것도 마찬가지야!!" 방금전 은색의 빛이 지나간 자리에 있던 마을 사람들의 무기 대용 농기 구들이 죄다 잘라져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귀신에 흘린 얼굴로 조각 나 있는 농기구들을 보고는 설마 하는 시선으로 방금전 은빛 머리의 남 자... 테이를 쳐다보았다. 테이는 망토를 손으로 뒤로 넘기고는 머리칼 을 한번 쓰다듬고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다행히 늦지는 않은 모양이군." 우수에 젖은 눈동자로 중얼거리는 테이의 낮은 음성은 그 자리에 있던 여자들을 나이에 상관없이 죄다 두근거리게 만들기 충분했다. 테이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 곳에는 제니아와 뮤나가 멍하니 자신을 쳐 다보고 있는 게 보였다. 테이는 씩 웃으며 말했다. "이제 괜찮아 걱정하지마." "오빠야...." 뮤나는 멍하니 테이를 부르며 쳐다 만 보았다. 테이는 그런 뮤나에게 윙크를 하고는 이번에는 티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누나 나 이제 왔...." "으이그 빨리도 왔다. 이 느림보. 아무튼 제 시간에 와 줘서 다행... 어 너 왜 그래?" 티아는 말을 다 끝내지 못하고 황당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갑자기 테이가 그 자리에 엎드려서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있 는 중이었던 것이다. 아직 아무 짓도 안 했고, 할 생각도 없었던 티아 로서는 그런 테이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나 테이는 테이대 로 할말이 있었다. "누나 늦어서 미안해!! 제발 죽이지만 말아 줘!! 제발 부탁이니 그 위 험한 마법 좀 치워!!" "하하하." 티아는 쓴웃음을 지으며 원래 테이 전용(?) 구타용 마법이었던 특대 아 이스 미사일을 소멸 시켰다. '거참 반복 학습이라는게 참 효과가 크군.' 티아는 그렇게 생각하며 다음부터는 테이가 말 안 들으면 이 마법만 보 이면 편하겠다는 생각도 했다. 정말 반복 학습이라는 것은 효과가 정말 큰 것이었다. 알아서 기게(?) 만드는 효과를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오빠야." 뮤나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마을 사람들도 - 특히 여자들 - 아까전 등장할 때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의 엄청난 갭에 왠지 모르게 한 숨이 나왔고, 더불어 저 둘의 관계와 평소 생활상을 한눈에 알아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테이는 마법이 사라지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지으며 일어났다. 테이 는 일어나자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윌리를 쳐다보며 나직하게 입을 열 었다. "이야기는 여기 오면서 다 들었다. 네가 이번 일의 원흉이라지? 용서하 지 않겠다." 제법 멋있는 말투였다. 하지만 방금전 테이의 평소 생활상(?)을 낱낱이 다 본 마을 사람들에게는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했다. 그것은 윌리에게 도 마찬가지였다. 티아에게는 찍 소리 못하던 윌리도 큰소리로 대들었 던 것이다. "니는 뭔데 갑자기 나타나서 원흉이니 뭐니 알 수 없는 소리하는 거냐? 헛소리하지 말고 저기 찌그러져 있어!" 의기양양해서 소리친 윌리는 테이가 자신의 말에 겁먹고 구석탱이에 찌 그러지는 모습을 볼 준비를 했다. 근데 잘 못 짚은 거였다. 방금 전의 테이의 한심한 모습은 어디까지나 티아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 한 것이다. 테이는 피식 웃으며 재빠르게 검에 손을 가져가는 자세를 취했다가 곧 자세를 풀었다. 윌리는 순간 흠칫 했다가 테이가 자세를 풀자 떨리는 목소리로 비웃었 다. "뭐..뭐야? 깜짝 놀랐잖아. 꼴에 자존심은 있는 모양이지? 뽑지도 못할 칼에 손은 왜 대?" 윌리의 비아냥거림에 테이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 속옷이나 빨아 입어라." "뭐? 어? 아앗!!" 윌리의 바지는 어느새 발목에 걸려 있었다. 윌리는 '어쩐지 갑자기 썰 렁하더라' 라는 생각을 하며 급히 바지를 치켜 입었다. 하지만 바지 끈 이 잘린 상태라 바지를 입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손으로 잡은 상태로 테이를 쳐다보았다. "이거... 네가... 한 거냐?" "한번 더 해볼까?" "....촌장님!!" 윌리는 촌장을 부르짖으며 얼른 촌장 뒤에 숨었고, 촌장은 이를 갈면서 테이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넌 뭐냐?!" "나? 난 정의의 용...가 아니고 내 뒤에 있는 누나의 동생이야. 머리색 이 같은데 그것도 못 알아봐?" 테이는 정의의 용사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등뒤에서 쓸데없는 소 리하면 알지 라는 살기가 느껴지자 급히 말을 정정했다. 테이가 말을 제대로 하자 티아는 그제야 살기를 풀고 테이에게 맡겨 두고 가만히 구 경만 하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제대로 못하면 죽어.' 라는 무언의 협박을 하는 것을 잊지는 않았다. 그것을 똑똑하게 알아차 릴 수 있는 테이는 식은땀을 흘리며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촌장에게 말했다. "당신이 촌장님입니까?" "그렇다. 그런데 무슨 볼일이냐? 너도 너 누나처럼 우리 일을 방해 할 거냐?" "방해고 뭐고 할게 뭐가 있습니까? 있지도 않은 일에 흥분하실 필요 없 습니다. 흥분하셔야 될 일은 따로 있거든요." "그게 무슨 소리냐?" "일단 뒤를 쳐다보시죠." 테이가 뒤를 가리키며 말하자 촌장은 미심쩍은 눈초리로 잠시 쳐다보다 가 뒤를 쳐다보았고, 마을 사람들도 뒤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몇몇 마 을 사람들 입에서 놀란 외침이 터져 나왔다. "테리야! 네가 여기 왜 온 거냐?!!" "앤디!! 너 이 녀석!!" "죠야! 여기는 위험하니 오지 말라고 했잖아!!" 그리고 그 외 기타 등등 자식들의 이름을 부르는 마을 사람들로 잠시 분위기는 어수선해졌다. 촌장 역시 자신의 아들 이름을 부르며 호통을 쳤다. "세티드 이 녀석!! 너 여기 왜 온 거냐?!!" "이 형이 따라오라고 해서요." 세티드라고 불린 꼬마는 티아와 테이가 만났던 바로 그 골목 대장 꼬마 였다. 촌장은 세티드가 테이를 가리키자 사나운 눈으로 테이를 쳐다보며 따졌 다. "아이들을 끌고 온 이유가 뭐냐?" "진실을 가르쳐 줄 아이들입니다." "진실?" "그렇습니다." 테이는 세티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아까 형에게 말해 줬던 그 말을 너의 아빠와 마을 사람들에게 말해줄 레?" 세티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으로 윌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윌리 아저씨가 우리들에게 여기 사는 아줌마와 뮤나가 마녀라고 했어 요." "그게 뭐 어쨌단 거냐? 우리도 윌리에게 들은 말인데." 촌장이 언짢은 표정으로 말하자 테이는 손을 들어 촌장을 제지하며 말 했다. "말이라는 것은 끝까지 들어봐야 아는 겁니다. 계속 하렴 세티드야." "네. 그때 우리는 뮤나와 같이 놀았던 적이 몇 번 있어서 뮤나는 마녀 가 아니라고 했는데 저 아저씨가 마녀가 맞다고, 막 화를 냈어요. 그리 고 우리 보고는 마녀랑 사이좋게 놀았다고, 어른들에게 다 일러줄 거라 고 했어요. 더구나 앤디가 뮤나가 왜 마녀냐고 물어 보자 왜 자꾸 내 말을 안 믿고, 따지냐면서 앤디를 때렸어요. 그리고 자꾸 말 안 들으면 우리도 때리겠다고 해서.... 그래서 우리는 어른들에게 야단 맞기 싫 고, 윌리 아저씨한테 맞기 싫어서 시키는 대로 마녀가 마을 위쪽에 산 다고 다른 어른들에게 말했어요. 그러자 윌리 아저씨가 잘 했다면서 과 자를 사주고는 앞으로도 시키는 일 잘하면 계속 과자를 사주겠다고 했 어요." 꽤 긴 이야기를 세티드는 쉬지 않고, 아이들 특유의 호들갑을 떨면서 한번에 말했다. 세티드의 말이 끝나자 촌장을 비롯한 아이들의 부모가 모조리 윌리를 쳐다보았다. 특히 앤디라는 소년의 부모는 앤디에게 정 말 맞았는지 안 맞았는지 확인을 하고 있었고, 아이의 몸에 채 낮지 않 은 멍을 보고는 성난 눈으로 윌리를 째려보았다. "자네. 저게 무슨 말인가?" "초..촌장님 그리고 여러분 아시잖습니까? 저는 저 마녀의 딸에게 우리 마을 아이들이 흘리는 것 같아서 그래서 좀 과격한 건 인정하겠습니다 만...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그렇게 된 겁니 다." 윌리가 땀을 뻘뻘 흘리며 변명하고 있을 때 테이는 세티드에게 또 다른 것을 물어 봤다. "윌리라는 아저씨가 너희들에게 그렇게 말하라고 시킨 적이 언제였지?" "웅... 한달 전이였어요." 세티드가 머리를 갸웃거리며 대답하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이번에 는 티아가 제니아에게 물었다. "괴한에게 습격 당했던 게 언제였지?" "하..한달 전이었습니다." 제니아는 그때의 끔찍했던 기억이 나는지 인상을 찌푸리며 간신히 대답 했다. 제니아의 대답을 듣고 티아는 씩 웃으며 테이를 쳐다보았다. 테 이 역시 티아를 마주보고 웃으며 대답했다. "계산상으로." "딱 맞는데." "거짓말입니다!! 난 덮친 적 없어요!! 내가 왜 마녀를 덮치겠습니까? 이건 저 녀석들이 아이들을 꾀어 낸 것입니다!! 다 새빨간 거짓말이라 고요!!!" 윌리는 거의 발악을 하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수군수군 대면서 딴 이야기들 중이었다. 그래도 이야기 중에 제니아가 마녀라는 사실(?)을 믿는 것 같은 말들이 오가는 중이었다. 그래서 윌 리는 얼굴을 일그러진 와중에도 억지로 웃으며 소리쳤다. "우리 마을에 저런 마녀가 살고 있으면 언젠가는 해가 될 것입니다. 우 리 손으로 마녀를 몰아 내야 됩니다!!" "웃기는군." 테이는 피식 웃으며 손을 하늘로 들었다. 그러자 곧 눈부신 구체가 테 이의 손에서 뻗어 나갔다가 곧 공중에서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서 지상 으로 떨어졌다. 빛이 떨어진 땅은 큰 굉음을 내며 폭발했고, 사람들은 비명을 질렀다. 연기와 비명 소리가 사그라지자 테이는 멍하니 자신을 쳐다보는 윌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난 누나보다는 못하지만 마법을 쓸 수 있어. 방금 내가 보여준 마법은 폭렬계 중급 범위 마법이야. 만약에 제니아가 정말 마녀라면 지금 당장 여기 사람들은 눈 하나 깜짝 안하고 다 쓸어버릴 수 있어. 그런데 너는 지금 사람들이 제대로 된 무기도 아닌 농기구를 들고 오면 마녀를 잡을 수 있다고 믿고 사람들을 선동한 거냐? 정말 그렇다고 믿은 거냐?" "......." 윌리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버렸고, 마을 사람들 역시 겁에 질렸는지 찍 소리도 내지 않고 테이를 쳐다보기만 했다. 테이는 마을 사람들을 쭉 돌아보면서 말했다. "왜 당신들은 한사람이 그렇다고 말하면 다 그런가 보다 라고 생각하는 거죠? 왜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려고 하지 않는 거죠? 지금 여 기 이 자리에 서 있는 사람들 중에 자신의 눈으로 직접 저 작자가 말한 마녀라는 것을 확인 해본 사람이 있습니까?" 마지막 테이의 질문에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기만 할 뿐 누구 하나 직접 확인 해봤다는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 테이는 그럴 줄 알았 다는 코웃음을 치고는 윌리를 노려보며 말했다. "이제 순순히 너의 잘못을 인정해라. 그래도 더 헛소리를 지껄인다면 가만 두지 않겠다." "...나..나는 잘못한 게...없어. 저 여자는 마녀야... 난 저 여자에게 죽을뻔 했단...말이야. 그래 죽을뻔 했어. 그런데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는 거야?" 윌리는 겁에 질린 얼굴로 바들바들 떨면서 쉰 소리로 간신히 말을 내 뱉었다. 테이는 사나운 얼굴로 변해서 호통을 쳤다. "네가 제니아에게 안 좋은 짓을 하려고 했었잖아. 그때 죽지나 않은 것 을 다행으로 여겨!! 이 멍청아!!" "내가 했다는 증거가 있어?!! 내가 저 여자에게 나쁜 짓을 하려고 했다 는 증거가 있냐고?!" 윌리는 거의 악을 쓰면서 테이에게 덤벼들었다. 거의 낭떠러지로 밀린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라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의 외침 같았다. 테이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아쉽게도 그 건에 대해서는 증거가 없다." "그것 봐!! 증거도 없으면서..." "하지만!!" 윌리는 기회를 잡았다는 생각에 필사적으로 변명을 하려고 했다. 하지 만 테이는 그런 윌리의 변명의 기회도 주지 않고 윌리의 말을 딱 자르 며 말했다. "너 역시 제니아가 악마의 계약을 했다는 증거는 없잖아!" "아니야!! 난 분명 봤어! 저 여자가 아이의 생간을 악마에게 바치는 것 을 봤어!! 그리고 그걸 들켜서 난 이상한 불에 공격당했단 말이야!! 이 화상 자국이 증거야!!" 윌리는 윗옷을 벗고는 배에 난 커다란 화상 자국을 보여줬다. 이 정도 면 충분한 증거가 된다고 윌리는 생각했다. 그리고 윌리의 생각대로 그 끔찍한 화상 자국을 본 사람들은 다시금 동요했다. 다시 역시 마녀인가 라는 소리들이 사람들 사이에서 나오자 윌리는 의기양양해서 테이에게 소리쳤다. "이제 알겠어? 네가 말하는 것이야말로 헛소리야! 저 년은 틀림없는 마 녀다!!" 그런데 윌리는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이 정도라면 틀림없이 테이 가 당황할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테이는 당황하기는커녕 가소롭 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테이는 티아와 제니아를 쳐다보며 웃으며 말하 고 있었다. "저 사람 분명 아이의 생간이라고 했지?" "너 뭔가 알고 있구나?" 티아가 반가워하며 묻자 테이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뭐야? 누나도 모르는 거야? 하긴 워낙 오래된 책에 누나는 관심 없었 으니... 모르는게 당연하지." "뭐라고?" "앗! 화내지마!! 장난 안치고 말할게!! 아이의 생간은 악마를 부르는 의식에 사용되지 않아. 악마를 소환하고 계약하려면 다른게 필요하거 든." 사람들은 수군거림을 멈추고 죄다 테이를 쳐다보았고, 윌리는 아직 테 이의 말뜻을 파악 못했는지 멍하니 쳐다 만 봤다. 테이는 잠시 기다려 달라는 말을 하고는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바로 공간의 문을 열어 서 자신의 레어로 가서 책 한 권을 들고는 다시 제니아의 집안으로 돌 아왔다. 그리고는 마치 책을 배낭 속에서 찾은 듯한 말을 하며 밖으로 나갔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책이 배낭 깊숙한데 있어서요." 테이는 책장을 넘기다가 어느 한 페이지를 찾고는 그 페이지를 촌장에 게 보여주며 말했다. "이건 악마에 관해 연구했다는 한 연금술사의 책입니다. 오래 전 책이 라 옛 고대어로 쓰여져 있지만 얼마 전에 유명한 학자가 완벽하게 해석 해 놓은 책이죠. 그리노어로 쓰여져 있으니 읽는데 지장 없어요. 이 페 이지를 읽어보세요." 촌장은 잠깐 주저하다가 책을 받아서는 헛기침을 몇 번하고 더듬거리며 읽기 시작했다. "에... 또 어디 보자. 악마를 브 아니 부...으? 아니 부르기 ...해서는 에 또...." "역시나 팔씨름 촌장답군." "팔씨름?" 티아는 한심하다는 얼굴로 말했고, 지금의 촌장이 팔씨름으로 촌장이 된 것이라는 것은 모르는 테이가 갑자기 무슨 팔씨름이라는 얼굴로 반 문했다. 팔씨름(?) 촌장은 얼굴이 시뻘개져서는 결국 마을에서 글을 잘 아는 똑똑한 청년에게 책을 맡겼다. 청년은 책을 받아 들고는 유창한 말로 책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음 어디 보자. 악마를 부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순결한 처녀의 피 약간과 계약자 자신의 피 약간이다. 이 피를 섞어서 피가 응고하기 전 에 그믐날 태어난 양의 심장에 부으며 계약의 주문을 외워야 한다. 이 때 계약 의식은 반드시 보름날 밤 폴 한 포기 없는 평지에서 오망성을 그리고 그 오망성의 중앙에서 해야 된다. 그리고 계약자가 여자라면 그 대로 소환되는 악마에게 자신의 처녀를 바치면 그 대가로 암흑의 마력 을 얻게 되고, 계약자가 남자라면 자신을 대신할 순결한 처녀를 반드시 준비해야 된다. 처녀를 준비하지 않은 남자는 소환 의식에 성공하더라 도 힘을 얻지 못하거나 심하면 악마에게 혼을 뺏겨 버릴 수도 있다. 그 리고 계약자가 여자인 경우 자신이 처녀가 아니라면 역시 대신할 순결 한 처녀를 준비하지 않으면 역시 힘을 얻지 못하거나 죽을 수도 있다. 그리고 소환에 성공하고 완벽한 계약을 맺은 계약자는 암흑의 마력을 얻게 되는데 이 암흑의 마력은...." "그만요. 거기까지 읽었으면 이해가 되시겠죠." 테이는 어느새 흥미 진지하게 책을 읽고 있는 청년의 손에서 책을 뺏으 며 말했다. 그런데 책을 뺏긴 청년이 입맛을 다시며 아주 아쉬워하는 얼굴로 테이를 쳐다보았다. 테이는 잠시 장난감을 뺏긴 어린아이의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는 청년을 보며 땀을 삐질 삐질 흘리다가 머뭇거리며 물었다. "...이 책... 더... 읽고 싶으세요?" 그러자 청년은 '네' 라고 몇 번이나 웃으며 대답했고, 테이는 빌려준다 는 조건을 붙여서 청년에게 다시 책을 건넸다. 청년은 므흐흐한(?) 웃 음을 지으며 책을 소중하게 안고 마을로 내려가 버렸다. 어째 새로운 골칫거리를 만드는 것 같다는 생각이 잠시 테이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 나갔지만 애써 그 생각을 지우고 테이는 윌리를 쳐다보며 물었다. "자 그럼 다시 한번 물어 볼까? 제니아가 무슨 생간으로 어쨌다고?" "그..그게...." 완전히 궁지에 몰린 윌리의 얼굴에는 비가 내리는 듯이 땀이 흘러 내렸 다. "하..하지만 난 저 여자를 덮친 적은 없어!! 난 그런 짓을 한 적은 없 단 말이야!! 저 여자는 마녀가 맞아!! 절대로 마녀야!!!" 이제 진짜 정말로 마지막 발악을 하는 윌리에게 테이는 최후의 일격을 가했다. "세티드야. 너 저 아저씨가 또 시켰다는 일이 있었지?" 세티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테이의 질문에 대답했다. "예. 그게 우리 뒷집 하르페 누나의 속옷 가져오라고 했어요. 죠 누나 의 속옷도 가져오라고 해서 가져왔었고, 로드나 누나를 몰래 방앗간(?) 으로 불러내라고 했는데 로드나 누나가 아파서 못 갔어요. 그랬는데 제 대로 시킨 일 안 했다고 혼났고, 또... 아 티르 누나의 속옷도 가져오 라고 한 적도 있어요." 테이는 승리감에 미소를 지었고, 윌리는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져서 얼 굴이 흑색이 됐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경악에 눈이 커졌다. 그런 희 로애락의 감정이 마구 교차하던 순간 마을 처녀들과 그 처녀들의 남자 친구들의 경악의 감정은 분노로 변하는 것은 정말 순간이었다. "저 변태 자식 죽여!!" "저 놈부터 잡아 죽여!!" "야!! 이 변태야 죽어!!" 온갖 돌들이 윌리에게 날아갔고, 윌리는 돌들을 피해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그런 윌리의 눈앞에 티아와 테이가 막아서고는 싱긋 웃으며 말 했다. "진실이라는 것은 말이야. 언젠가는 밝혀지는 거야." "그게 늦으면 너 같은 놈들에게는 이익이겠지만 이렇게 빨리 밝혀지면 너 같은 놈들은 끝장나는 거지." 테이는 그렇게 말하며 검에 손을 가져갔다. 그것을 쳐다보는 윌리의 눈 은 커졌고 필사적으로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 "으아악!! 제가 잘못했어요. 제발 목숨만... 목숨만 살려주세요." "걱정 마라." 테이는 검집에서 검을 빼는게 아니라 허리띠에서 검집체로 빼면서 말했 다. "너 같은 놈의 피를 내 검에 묻히는 것도 내 검에 미안한 일이야!!" 그렇게 소리치며 테이는 검집으로 윌리를 올려쳤고, 공중에 잠시 떴다 가 추락하는 윌리를 티아는 손수건으로 주먹을 감싸고 땅에 떨어지기 전에 날려 버렸다. 티아는 방금 사용한 1회용(?) 손수건을 마법으로 태우며 저 멀리 날아 가서 꿈틀대는 윌리에게 소리쳤다. "나 역시 너 녀석을 맨손으로 쳐서 내 손을 더럽히기는 싫어! 그리고.. ." "이제 시작이니 벌써 기절할 생각은 하지마." 그렇게 티아와 테이의 보기 드문 합동(?) 구타가 시작됐고, 한 남자의 처절한 비명 소리가 산을 뒤흔들었다. 그 처절한 모습에 처녀들은 분노 하는 것도 잊어 먹고, 기가 질린 얼굴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하지만 그 둘이 변태에게 당했던 수모(?)를 아는 사람이라면 둘이 하는 행동이 잔 인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마도 19화 쥐덫작전 .. 다이러스 제국의 수도 다이리의 왕 성에는 커다란 탑이 하나 우뚝 솟아 있다. 다이리 수도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이 탑에 꼭대기 창에서는 언제나처럼 랑그람 로헨타이 1세가 수도를 내려다보고 있는 중이었다. "또 여기 계셨군요." 한숨쉬는 유크로드의 말이 랑그람의 뒤에서 들렸지만 랑그람은 돌아보 지도 않고 대답했다. "회의 시간만 대면 왜 이런데 있냐고 묻고 싶은 거지?" "......잘 아시는군요." 랑그람은 여전히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다이리 수도를 내려다보며 말 했다. "유크로드 너는 이 삭막한 다이리와 활기 넘치는 다이리 중 어느 것이 더 좋지?" 라고 묻는 랑그람의 질문에 유크로드는 엉뚱한 말로 질문을 했다. "그렇게 군사 회의에 참석하기 싫은시겁니까?" "이봐. 이봐 난 단지 감상에 젖어서 질문 한 것 뿐이야. 넘겨짚지마." "그 질문은 벌써 열 다섯 번째 받은 질문이고, 그 질문을 할 때마다 폐 하께서는 군사 회의에 땡땡이를 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감상이라고요 ?" "......." 랑그람은 속으로 못 당하겠군 이라고 생각하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렇게 잘 안다면 내가 할 말도 잘 알고 있겠지?" "네. 그렇기 때문에 저는 폐하를 군사 회의에 데려 가야겠습니다." "이봐. 난 앵무새가 아니야. 그런데 그 열 다섯 번의 군사 회의에서 난 똑같은 말을 매번 조금씩 바꾸면서 몇 번을 더 지껄여야 되는 거야? 이 제 난 지쳤어. 그러니 날 못 찾은 걸로 치고 가서 다른 일이나 보라고. " "하지만 이미 찾았는데요." 랑그람은 '이 융통성 없는 녀석아!' 라고 소리치고 싶은 것을 꾹 참으 면서 간신히 다른 말로 유크로드에게 변명을 늘어놓았다. "유크로드 너는 나를 앵무새로 만들어야 속이 시원하겠냐? 그런 거냐?" "그럴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전시 중이라 매일도 모자랄 판에 일주일에 세 번 있는 군사 회의조차 빠지시면 곤란합니다." "하아...." 결국 랑그람은 항복의 깃발을 들고 유크로드의 앞에 서서 걸었다. 유크 로드도 그 뒤를 따라가면서 며칠 간 바뀐 전황에 대해서 설명했다. "지금 적은 해조 성까지 밀고 들어온 상태입니다." "해조 성이라 조금 있으면 이곳 다이리까지 쳐들어 올 기세군. 해조 성 의 방어력은?" "바그온 장군이 잘 막고 있습니다. 이 이상은 밀리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흠. 바그온이 막아 낼 수 있는 기간은 어느 정도 될 것 같나?" "성의 방어력과 주둔 군사를 보면 두 달은 버틸 것 같습니다." "두 달이라...." 랑그람은 앞서 걸어가다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유크로드는 그 뒤에 서서 얌전히 랑그람의 생각이 정리되기를 기다렸 다. "가이라가 본토에서의 움직임은?" "아직 별 다른 움직임은 없습니다." "케르디온 그 자식은 정말 겁쟁이인가?" 랑그람은 가이라가 왕국의 왕 케르디온 트라만 헬리오스 2세를 씹으며 이를 갈았다. 케르디온이 움직이지 않으면 랑그람의 계획에 차질이 빚 어지기 때문에 랑그람은 화가 안 날수가 없었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작전을 실행시킬까? 아니야. 지금 공격해도 큰 타 격을 주겠지만 이 작전의 궁극적인 목표는 실패한다. 그럼 차라리....' "유크로드." "네." "지금 아도니스에게 연락해라. 이 작전의 작전 명이 정해졌다고." "작전 명이요? 무슨...." "이 작전의 작전 명은 쥐덫 작전이다!" "쥐덫 작전?! 폐하 그것은...." 유크로드는 단박에 그 작전 명에서 뭔가를 느끼고 급히 입을 열었지만 랑그람이 한발 먼저 유크로드의 입에 손을 갖다 대는 걸로 유크로드의 입을 막았다. 그리고 랑그람은 웃으며 말했다. "도박이다. 유크로드 명령의 수행을 부탁한다." 유크로드의 유능함을 믿고 있는 랑그람은 세세한 작전 지시는 하지 않 고, 웃으며 다시 걸어 내려갔다. 그러나 유크로드의 유능함은 랑그람의 행동에서 깊숙이 숨어 있는 뜻까지 알아차리고는 볼멘 소리로 말했다. "결국 세세한 작전까지는 저보고 짜란 말씀이시군요." 앞서 걸어가던 랑그람은 유크로드의 볼멘 소리를 듣고는 걸음을 멈추고 는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하하. 눈치 챘냐?" "언제나 같은 패턴이니 눈치 안채는 것이 이상하지 않을까요?" "하하하." 랑그람은 머리를 긁적이며 유크로드의 말에 무언의 동의를 표하며 물었 다. "해줄꺼지." "당연한 질문은 하지 말아 주십시오. 주군의 명령을 행하는 것은 당연 한 것입니다." "그래. 그럼 부탁해." "아 그리고." "에?" 유크로드의 제지에 랑그람은 왜 그래 라는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유크 로드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젖고는 분명하게 못을 박는 말을 했다. "지금 당장 회의실에 가세요. 검을 휘두르는 것은 회의가 끝난 뒤에 해 도 충분합니다." "......?" "폐하께서는 항상 검 연습을 하러 가기 전에는 검 손잡이 끝을 손가락 으로 만지작거리는 버릇이 있습니다. 저에게 들키기 싫으면 앞으로 주 의하십시오." 그렇게 유크로드는 랑그람의 의문을 풀어 주는 것과 동시에 다시 한번 회의실로 갈 것을 상기 시켜 주었다. 랑그람은 아무 말도 못하고 아직 그 자리에 멍하게 서 있었고, 그런 랑그람에게 다시 한번 회의실로 갈 것을 유크로드가 눈으로 요구하자 랑그람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너를 얻은 것은 내 인생에 최고의 신하와 최고의 친구를 얻은 것과 동 시에 최고의 골칫거리를 얻은 것 같은 기분이 요즘 매일 들어." "폐하께서 절 선택했으니 전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그래 그래. 알았다고 꼭 갈게. 에휴...." 그렇게 있는 대로 한숨을 푹푹 쉰 랑그람은 힘없이 털래털래 걸으며 회 의실로 향했다. 물론 유크로드는 중간에 다른 데로 새지 못하게 끝까지 동행했다가 랑 그람을 회의실에 집어넣고(?) 자신의 개인 집무실로 향했다. 유크로드 의 직책은 일단(?)은 국무대신이었다. 그러나 말이 국무대신이지 실제 는 랑그람의 오른팔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덕분(?)에 랑그람의 뒤치다 꺼리는 죄다 유크로드의 몫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귀찮다는 생각을 한 번도 가져 본적이 없는 유크로드였다. 이번에도 랑그람이 작전 명만 말 하고 세세한 작업은 죄다 유크로드에게 맡겼지만 귀찮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명령을 내린 상대가 폐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랑그람이기 때문 이다. "어디 보자...." 집무실의 안락한 의자에 앉은 유크로드는 즉시 편지를 작성했다. 얼마 되지도 않아서 3통의 편지를 쓴 유크로드는 창밖에 있는 세 마리의 전 서구에 편지를 매어서 날려보냈다. 전서구는 여러모로 편리한 비둘기이다. 하지만 이런 전시에 전서구같이 불안한 방법을 택하는 것은 조금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마치 적이 저 전서구를 발견했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는 듯한 행동을 한 유크로드는 다시 의자에 이번에는 제법 길게 편지 한 장을 써내려 갔다. 아까 편지 세 통을 쓴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을 소비해서 하나의 편지를 완성한 유크로드는 편지를 봉투에 넣으면서 나직하게 말을 뱉었다. "록크." "네." 언제 왔는지....아니 어느새 나타났는지 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유 크로드의 뒤에는 어느새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얼굴도 검 은 복면으로 가렸기 때문에 오직 회색 빛의 눈동자만 보이는 음침한 모 습의 남자가 나타나자 유크로드의 집무실에 냉기가 흐르는 듯한 착각마 저 들게 만들었다. 그러나 유크로드는 평소와 다름없는 어투와 행동을 하였다. 제법 그 복면의 남자와 친분이 있어 보이는 행동이었다. "이것을 전방에 있는 아도니스 장군에게 전달 해주었으면 한다." "전방이라... 한참 밀려들어와 있는 적군들 눈을 피해서 갖다 줘야 되 는 거군요." 말의 내용은 아주 위험한 일을 시킨다는 비아냥거림의 뜻을 담고 있지 만 그렇게 말하는 록크의 말투는 아주 담담했다. 마치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는 것처럼....... "언제까지 전달하면 됩니까?" "적어도 일주일 안에." "빠듯하군요." 여전히 말 내용과 말투가 모순되는 록크의 말에 유크로드는 피식 웃으 며 말했다. "그래. 하지만 해줄 수 있겠지? 뭐니뭐니 해도 어세신들의 마스터인 너 라면 가능할 것 같은데...." "그런 식으로 추켜세워 주시지 않아도 못 하겠다고 징징 짜는 소리는 안 합니다. 더구나 우리 어세신들의 은인이신 랑그람 폐하의 명령이겠 죠?" "내가 너에게 부탁할 때는 오직 랑그람 폐하의 명령이 내려졌을 때만이 야." 유크로드의 말에 록크는 이 방에 나타나서 처음으로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기쁨 마음으로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록크는 유크로드에게 편지를 받아서 가슴속에 잘 갈무리하고는 머리를 가볍게 숙였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방안의 그림자에 녹아 들 듯이 사 라졌다. 그 마법 같은 모습을 보면서 유크로드는 머리를 저으며 말했다. "몇 번을 봐도 신기하군. 마법도 아니라던데 어떻게 하면 인간이 저렇 게 사라질 수가 있는 거지?" 가이라가 왕국 데스타 제국에서 독립을 했을 때의 가이라가는 분명 다이러스 제국과 서로 형제 국이라고 말할 정도로 사이가 좋은 나라였다. 하지만 다이러 스 제국이 배신해서 가이라가 왕국을 데스타 제국에 파는 바람에 하마 터면 겨우 잡은 독립의 기회를 놓칠뻔 했었다. 다행히 기회를 노리고 있던 레이아스와 오리하곤이 독립을 외치며 데스타에 덤벼들지 않았다 면 가이라가 왕국은 역사의 한 귀퉁이에 독립에 실패한 나라로 낙인 찍 힐뻔 했었다. 그 후 가이라가는 다이러스를 배신자라고 칭하며 계속적 인 전쟁을 일으켰다. 그렇게 어제의 동지가 순식간에 철천지원수가 된 가이라가와 데스타는 오랜 분쟁을 계속 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다이러스는 다이러스대로 가이라가는 데스타 제국에 속은 것인 데 그것을 잘 알아보지도 않고 전쟁이나 일으키는 멍청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워낙에 오래 전 일이라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고, 당시 국가들이 혼란한 시기라 정확한 기록을 한 나라가 없어서 다이러스 제국과 가이 라가 왕국은 끝없는 전쟁과 휴전을 반복해 왔다. 어느 한쪽도 결정타를 먹이지 못하고 몇 백년이 흐른 지금 가이라가 왕 국의 국왕 케르디온 트라만 헬리오스 2세는 흥분 감에 몸을 떨고 있었 다. 방금 전장에서 보고가 도착했는데 다이러스 제국의 수도를 바로 목 전에 두고 있다는 보고였기 때문이다. 마지막 관문인 해조 성을 앞에 두고 물량과 인적 자원이 부족하니 지원 을 요청한다는 보고도 같이 받은 케르디온은 급히 물자를 준비시키게 하는 한편 스스로 자신의 휘하 부대를 이끌고 출병하기로 결정을 내렸 다. "폐하 적진 깊숙이 침투한다는 것은 너무 위험합니다. 나중에 배신자들 의 수도를 점령하고 난 뒤에 입성하셔도 늦지 않습니다." 일부 귀족들과 대신들이 앞다투어 케르디온의 출병을 반대했지만 케르 디온은 뜻을 굽힐 생각이 없었다. "지금 우리 가이라가 왕국의 역사적인 순간에 놓인 이때 짐보고 가만히 뒤에서 구경이라 하라는 거냐? 난 적어도 마지막에는 내 손으로 다이러 스를 무너트리고 싶다. 그것이 가이라가 왕국의 왕인 짐이 해야 될 일 이다." 그렇게 만류를 뿌리친 케르디온은 출병 준비를 완료시키기 위해 준비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어느 정도 출병 준비가 되 가고 있는 어느 날 전 방에서 새로운 소식이 전해져 왔다. 적의 전서구로 보이는 새를 포획했 는데 그 전서구에 매달린 편지에 다이러스의 새로운 작전이 쓰여 있다 는 소식이었다. 큰 일전을 앞두고 얻은 귀중한 정보라 가이라가에서는 환영해야 될 일 이었다. 하지만 편지에 쓰여 있는 내용을 케르디온이 들었을 때의 반응 은 그리 환영 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 편지에 쓰여 있는 작전 내용은 적의 - 가이라가 왕국을 칭하는 말 - 멍 청이 왕을 본토 깊숙이 끌어 들여서 왕을 친다는 내용과 그 작전을 위 한 세세한 전달 지시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작전 명이 적 혀 있었는데 작전 명은 [쥐덫 작전] 이었다. "그러니깐 저 겁도 없는 배신자 무리들이 감히 이 짐을 쥐로 취급하고 있다는 말인가?" "그..그게 저기...." 정보를 가져온 병사는 비 오듯이 흐르는 땀을 훔칠 생각도 못하고 그저 고개만 숙인 채 떨고 있었다. 케르디온은 이를 갈다가 외쳤다. "지금 당장 출병 준비를 해라!! 다이러스의 배신자 무리들에게 이 짐이 직접 본때를 보여주겠다!!!" "폐하 아니 됩니다!! 이것은 적의 함정이 분명합니다. 제발 진정하시고 냉정하게 사태를 파악하심이 좋습니다." 한 대신이 급히 나와서 케르디온을 만류했지만 케르디온은 그런 대신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며 소리쳤다. "지금 그대는 짐이 쥐 취급을 당했는데도 가만히 앉아서 구경이나 하란 말이냐?" "아..아니 그게 아니오라..." "어차피 배신자들의 작전은 짐의 손안에 있다. 그러니 짐은 함정에 빠 진 척 하면서 몸소 배신자들을 끌어들여서 단번에 해치워 버리겠다. 짐 을 쥐 취급한 것을 뼈저리게 후회하게 만들어 주겠다!! 그러니 당장 출 병 준비를 하라!!" "예..예!" 결국 성난 케르디온을 말릴 수 있는 인재가 없었던 가이라가 왕국은 그 리노력 715년 왕의 직속 부대 2만을 포함한 10만 병력이 다이러스 제국 의 본토로 진격했다. 이미 본토로 진격해 있던 15만 병력과 합쳐지면 총 25만의 병력에 달하 는 대부대였다. 케르디온이 직접 출병한 가이라가 왕국의 침공 소식은 그리 오래지 않 아 랑그람의 귀에 들어갔다. "드디어 시작이군. 이 전쟁을 종결시킬 최후의 전쟁이...." 여느 때처럼 왕 성의 중앙탑 꼭대기에서 다이리 수도를 내려다보던 랑 그람에게 소식을 전해 온 유크로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랑그람의 말에 동의했다. "자아 그럼 지금쯤 혼란 상태에 들어가서 안절부절못하는 늙은 고양이 들을 달래러 내려가 볼까?" 랑그람은 기지개를 펴며 일어났다. 그리고 유크로드의 어깨를 툭툭 치 며 말했다. "끝까지 따라와 주겠지?" "당연한 질문은 하지 말아 주십시오." 유크로드는 미소를 지으며 랑그람의 질문에 답했고, 랑그람도 미소로 답하며 회의실로 내려갔다. 다이러스 제국과 가이라가 왕국의 국경 도시 중 베스라는 도시가 있다. 그 도시는 이미 가이라가 왕국의 손에 들어간 상태였다. 거리 곳곳에 가이라가 왕국의 병사들이 돌아다니고 있는 이곳은 이미 다이러스 제국 의 영토라고 부를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런 베스의 한 구석진 곳의 슬럼 가에서 술에 절은 남자가 쓰레기통 옆에 기대서자고 있었다. 옆에 쓰레기통에서 온갖 악취가 나고 벌레들 이 기어다니는 것에 아무 상관이 없다는 듯이 누더기 같은 천 하나 덮 고 잠들어 있는 남자는 보기에도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 정도로 더러운 몰골이었다. 그러나 누구라도 그의 잠에 술에 취한 듯이 보이는 게슴츠 레 한 눈을 자세하게 관할했다면 범상치 않은 느낌을 가지게 될 것이 다. 술에 취한 듯이 보이는 눈에는 일반 사람들은 절대로 느낄 수 없는 번 쩍임이 항상 주위를 경계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이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지면 남자는 재빨리 그 눈빛을 게슴츠레하게 바꿨다. 평소에는 그 렇게 하면 다가오는 자들은 멀리 돌아서 피해 가거나 침 한번 뱉고 욕 을 하고 가지만 그 날은 달랐다. 그 사람은 술 취한 남자의 앞에 당당 하게 와서 서는 것이다. '이 놈은 뭐지?' 술 취한 남자로 위장해 있던 아도니스는 암암리에 살기를 지으며 조용 히 품속에 단검에 손을 뻗쳤다. "저 앞에서 살기를 지우려고 하는 노력은 소용없는 짓입니다." 순간 높은 소프라노의 목소리가 아도니스의 손길을 멈추게 만들었다. 아도니스는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여성(?)을 바라보았 다. 흔한 창녀 차림의 여자였지만 아도니스의 눈에는 다른 무언가를 감 춘 이로 보였다. "너는 누구냐?" 아도니스는 목소리를 낮춰서 나직하게 상대방의 정체를 물었다. 여자도 조용히 목소리를 낮춰서 입을 열었다. "다이리에서 전갈을 가져 왔습니다." 그 목소리는 더 이상 여성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더구나 아도니스가 잘 알고 있는 목소리였다. 아도니스는 눈을 있는 대로 크게 뜨고 입을 벌 렸다. "로..로..록크?" 아도니스의 입에서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는 음성이 새어나오자 록크( ?)는 생긋 웃으며 답했다. "오랜만이야 아도.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지는 않군. 고생하는데. 그것보다 장소를 바꿔서 이야기하자." 아도니스는 록크라고 생각되는 여성(?)을 자세하게 관찰했다. 보통 여 자들은 절대 입지 않는 긴치마 대신 미끈한 다리를 자랑하는 아슬아슬 한 짧은 치마에 몸에 착 달라붙는 반 팔 티셔츠. 그리고 허리까지 내려 오는 흑발의 긴 생 머리에 화장으로 떡칠을 했지만 남자라면 한번쯤은 욕정을 품을 만한 얼굴을 보면서 자신이 알고 있는 록크의 얼굴과 대조 시켜 보았다. '아차! 난 록크의 얼굴을 본적 없지.' 항상 검은 복면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다녔던 록크의 얼굴(?) 생각 나서 아도니스는 속으로 혀를 차며 록크에게 물었다. "너 여자였냐?" "......난 남자야. 이 모습은 변장 한 거야. 이런 슬럼 가를 돌아다니 려면 부랑자나 창녀가 제일 좋으니 이 모습을 선택한 거다." "그래? ......가슴 잘 만들었다." "만져 볼래?" "됐네. 난 남자는 취미 없어." "나 역시 취미 없어. 그것보다 이런데 계속 있을 거야? 남들 눈에 띠기 전에 얼른 자리를 옮기자." "알았어." 아도니스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앞장서서 걸었고 그 뒤를 록크가 따 라 걸어갔다. 그 둘이 도착한 곳은 허름한 술집이었다. 아도니스는 거 침없이 문을 열고 들어가서 카운터로 걸어갔다. 카운터 안에 서 있던 술집 주인은 아도니스를 힐긋 쳐다보고는 무표정하게 물었다. "무슨 일이요?" "나 같은 놈도 마실 수 있는 싸구려 술 있소?" "창고 구석에 있을 거요. 직접 갖다 마시구려." "고맙소." 아도니스는 록크에게 눈짓으로 따라오라고 한 뒤 앞장서서 카운터 옆의 지하 술 창고로 향했다. 록크는 아도니스를 따라가며 힐긋 곁눈질로 카 운터에 서 있는 주인을 살펴보았다. 어세신들은 요인 암살도 주된 임무 중의 하나였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 인들은 느낄 수 없는 미약한 기운을 느낄 수 있도록 훈련을 쌓는다. 그 렇기 때문에 어세신들의 마스터인 록크의 눈을 속일 수 있는 사람은 드 물었다. 배가 나온 너무나 평범한 아저씨 같은 술집 주인장에게서 록크 는 일반인과는 다른 점을 발견했다. 그래서 록크는 앞서 걸어가던 아도 니스에게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부하인가?" "응?" 마침 창고로 다 내려와서 옆에 술통을 만지던 차라 록크의 말을 못 알 아들은 아도니스가 반문을 하자 록크는 좀더 상세하게 물어 보았다. "아까 주인 말이야. 보통 사람은 아닌 것 같더군." "그래? 금방 알아차리네. 네 말이 맞아. 저 녀석은 연락 책이지." "위험하지 않을까? 너무 티가 나던데." 록크의 걱정에 술통의 꼭지를 막 돌리려던 아도니스는 어이가 없는 얼 굴로 록크를 바라보았다. "왜 그래?" "몰라서 묻냐? 어디 다른 일반 병사들이 다 너 같은 줄 알아? 저 정도 면 충분히 못 알아차릴 정도로 변장한 거니 걱정을 하지마." 아도니스는 술통의 꼭지를 돌렸다. 그러자 술통 옆의 벽이 스르륵 열리 며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타났다. 아도니스는 계단 옆의 횃불을 손 에 들고 아래로 내려갔고, 록크도 그 뒤를 따라 내려갔다. "하지만 최근 정보에 의하면 프론트 연합국에서 군사 지원을 한다는 소 식이 있던데...." "아아 그 정보? 케르디온이 거절했다고 하더군. 아무래도 가이라가 왕 국의 힘만 갖고 이 전쟁에서 이기고 싶은 고집이겠지. 뭐 덕분에 우리 는 힘들지 않아서 좋잖아." "그래? 다행이군 다크 엘프 암살 부대라도 왔다면 정말 골치 아팠을 거 야." "그들이 그 정도로 괴물이냐?"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는 다이러스 제국도 프론트 연합과 적극적으로 교 역이 이루어지고 있던 상태였다. 무기와 부대 훈련에 관한 기술도 서로 교환했었는데 -물론 비공식적으로였다- 그 중 어세신들이 프론트 연합 의 다크 엘프 암살 부대에 훈련을 받으러 간 적이 있었다. 당시 마스터 가 아니었던 록크는 다크 엘프들의 인간을 뛰어 넘는 초감각과 완벽하 게 자연과 동화되는 기술에 혀를 내둘렀었다. 그리고 마법까지 사용하 는 다크 엘프들은 한명한명이 엄청난 전력이었다. 다크 엘프 부대만이 아니었다. 프론트 연합국의 군사 조직은 데스타 제국과 막 먹는 전력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자국 내의 평화만을 지키기 위해 사용되는 그 군사들이 만약에 전쟁을 일으킨다면.... 상상조차 하기 싫은 일이었다. "다 왔어." 잠시 상념에 빠져 있던 록크는 아도니스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살폈다. 지하 계단 끝에는 견고한 철문이 하나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록크는 벽을 만져 보고는 금새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설사 여기가 들키더라도 금방 몸을 피할 수 있겠군." "눈치챘냐?" 록크는 아도니스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철문 옆에 벽을 만지작거렸다. 그러자 철문이 아닌 옆의 벽이 스르륵하고 열렸다. "휘오. 대단한데 한번 척 본 것만으로 이 장치를 알아냈단 말이야?" "초보적인 장치니깐." "그..그러냐?" 아도니스는 자신이 며칠 간 고민해서 만든 비밀 문이 간단하게 초보적 인 장치로 전략하자 쓴 입맛을 다시며 '이래서 어세신이란 인간들은 무 서워' 라고 중얼거리며 열린 문으로 들어갔다. 록크도 그 뒤를 따라서 들어가자 다시 계단이 나왔고, 그 계단을 내려가자 다시 철문이 나왔 다. 이번 철문은 진짜였다. 철문을 열고 들어가자 몇 명의 남자들이 무기를 손질하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 "이 놈들 대낮부터 술이냐?" 아도니스가 으름장을 놓았지만 남자들은 누구 하나 술잔을 치울 생각을 안하고 막 들어온 아도니스를 아니 정확히는 아도니스 뒤에 서 있는 록 크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아도니스는 혀를 차며 록크에게 말했다. "이렇게 버릇없는 녀석들이 아니었거든. 네가 이해 해줘라." 록크는 괜찮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아도니스는 자신의 부하들에 게 무기 손질을 잘 해 두라고 말하고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록크 가 아도니스를 따라 방으로 들어가자 부하들은 그 문을 멍하니 쳐다보 고는 술잔의 술을 한번에 들이켰다. 그리고 잽싸게 방문 앞에 달라붙어 서 술잔을 문에 붙이고 귀를 기울였다. 그들은 아도니스가 록크를 데려 온 것을 다른 쪽(?)으로 착각하는 것 같았다. 아도니스의 방은 책상 하나와 침대 하나 덜렁 놓여 있는 간소한 방이었 다. 한 구석에는 다이러스 제국 붉은 황소 부대의 붉은 갑옷이 놓여 있 었다. 다이러스 제국의 붉은 황소 부대는 초반에 적을 막다가 패배하여 와해 된 것으로 아군도 적군도 알고 있지만 실상은 처음부터 패한 것처 럼 꾸미고 붉은 황소 부대의 실직 적인 엘리트 부대 원들은 가이라가 왕국의 손에 들어간 다이러스 제국 영토 내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방에 들어가자 록크는 품속에 든 유크로드의 편지를 꺼냈다. 그 편지를 아도니스에게 건네자 아도니스는 손을 저으며 말했다. "아니아니 이건 나중에 보고, 너 그 모습 어떻게 안되겠냐?" "내 모습이 어때서?" 록크가 묻자 아도니스는 어이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어때서냐고? 너 지금 그렇게 잘 빠진 여자로 변장하고 목소리는 남자 목소리라니.... 어울린다고 생각 하냐? 그런 네 모습이랑 이야기하다 보면 좀 찜찜한 기분이 느껴지니 제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 주라." "찜찜?" "아..아니 그게... 별 뜻 없어. 아무 뜻 없으니깐 새겨듣지마!!" 록크가 얼굴 표정을 찡그리자 아도니스는 급히 사과하며 변명했다. 록 크는 쿡 하고 웃으며 방금 말이 농담이었다는 것을 표현하고는 씩 웃으 며 말했다. "장군께서 정 그러하시다면 옷을 갈아입겠습니다. 하지만 우리 어세신 들의 맨 얼굴은 비밀이라는 것을 아시겠죠? 그러니 자리를 피해 주셨으 면 합니다." 장난스럽게 말하는 록크에게 아도니스는 쓴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 어났다. 방문으로 다가가 문고리에 손을 대는 아도니스에게 록크는 담 담하게 말했다. "아도." "왜?" "문 열 때 조심해." 하지만 록크의 충고는 일부러 그랬는지 아니면 아도니스의 손이 빨랐는 지 이미 문이 열리고 문밖에 붙어 있던 부하들이 아도니스를 덮치는(?) 중이었다. "으아악!! 뭐야?!" "우아아악!!" 아도니스의 비명과 부하들이 비명이 울려 퍼졌고, 곧이어 몸이 엉킨 상 태를 풀기 위한 비명과 욕설이 오고가고 난 뒤 아도니스는 겨우 일어나 서 부하들을 노려보았다. "네 녀석들...." "아니 대장님. 그게 아니고요." "그냥 대장님이... 예쁜 여자를 데려와서....그래서...." "네 그래서.... 단지 그것뿐입니다." "이 녀석들아! 저 녀석은 남자야!" "예?" 부하들은 죄다 록크를 한번 쓱 쳐다보고는 다시 아도니스를 쳐다보며 ' 저 사람 여자 맞는데요' 라는 표정을 지었다. 아도니스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저 녀석은 수도에서 연락을 갖고 온 어세신이야. 그러니 변장을 한 거 란 말이다." 그 말에 부하들은 죄다 아깝다라는 표정을 지으며 자리를 털고 각자 할 일을 하러 일어났다. 하지만 아도니스는 그런 부하들을 제지했다. "너희들 요새 군기가 빠진 것 같다. 전장에서 군기가 빠진 것은 곧 죽 음과 직결된다 그러니 우리 이 건에 대해서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눠 보자." 아도니스는 그렇게 말하며 몽둥이를 들고 부하들을 끌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이야기하는데 몽둥이가 왜 필요한데요?!!' 부하들은 속으로 한결같은 생각을 하며 다 죽었다는 표정을 지으며 끌 려나갔다. 사람들이 다 나가자 록크는 옷을 갈아입기 위해 야한 드레스 를 벗으며 한숨을 쉬었다. "아도 바보." 그 순간 록크의 입에서 나온 음성은 가느다란 소리.... 그 소리는 분명 한 여. 성의 목소리였다. "어디 보자. 어떤 명령이려나?" 아도니스는 편지를 뜯으며 중얼거렸다. 록크가 옷을 다 갈아입었다며 나왔을 때는 평소 입던 검은 옷에 검은 복면을 한 상태였다. 그런 모습을 15년 간 봐 왔던 아도니스는 '역시 네 녀석한테는 그 옷이 제일 잘 어울려' 라고 말하며 록크가 준 편지를 받았다. 아도니스는 편지를 진지한 얼굴로 읽다가 끝에 가서는 너털웃음을 지으 며 편지를 록크에게 건네줬다. "왜 그래?" 록크가 편지를 받으며 물어 보자 아도니스는 편지를 읽어보면 안다고 대답했다. 록크는 그 말대로 편지를 읽어보았다. 이번 '쥐덫 작전'이라 는 것에 대해 상세한 설명과 움직여야 되는 곳 최종 결전지등 꽤 자세 하게 이것저것 설명해 놓은 편지였다. 그리고 자신도 아도니스와 합류 한 시점에서 아도니스의 곁에 머무르며 그를 도우라는 명령도 포함되어 있었고, 마지막으로 당부의 말까지 포함된 어딜 봐도 웃음 따위는 나올 이유가 없는 내용이었다. "이 편지 내용 어디가 우스운데?" "그 맨 끝에 내용 말이야. 추신이라고 적힌 것." 록크가 다시 편지의 맨 끝을 보며 추신이라고 적힌 내용을 다시 읽어보 았다. "[만약 이 작전대로 적들이 움직이지 않고, 만약의 사태가 발생하면 모 든 상황 판단을 장군에게 위임하겠습니다. 부디 건승을 기원합니다.] 이 내용이 뭐가 어때서 웃음이 나온 건데?" "말이 모든 상황 판단 어쩌고지 뜻을 풀이하면 작전대로 안 될 때는 목 숨걸고 막으라는 이야기잖아." "꼭 그렇게 생각해야 되겠어? 그만큼 너를 믿는다는 이야기 아닌가?" "그게 부담이 된다 이거지. 우리 주군은 이렇게 해라가 아닌 문제만 내 주고 알아서 하시오. 하는 경황이 많다니깐." "그래서 싫단 말인가?" "쳇." 아도니스는 코를 긁적거리며 얼굴을 붉혔다. "언제 싫다고 했냐? 단지.... 그게.... 저기...." 아도니스가 말을 이어가지 못하자 록크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눈 치를 챘다. "믿어 준다는 것이 그렇게 부끄러운 일인가?" "내가 언제 부끄럽다고 했냐?!! 시끄러 내일부터 바쁘니 얼른 잠이나 자!! 넌 어세신이라 독방을 써야 된다며!! 여기 독방은 내 방밖에 없으 니 여기를 써." 아도니스는 소리를 치고는 그대로 밖으로 나가 버렸다. 혼자 남은 록크 는 아도니스가 나가 버린 방문을 쳐다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부끄러움 잘 타는 성격은 20년 전이랑 변한 게 없네." 록크는 방문을 잠그고는 복면을 벗었다. 그러자 복면 속에 숨겨진 회색 의 머리카락이 록크의 어깨를 덮었다. "내가 어세신이라서 꼭 혼자 자야 된다는 것은 아니야. 잘 때만큼은 편 하게 복면과 가슴에 붕대를 풀고 자고 싶거든. 알겠어 아도? .....하긴 알 리가 없겠지." 록크는 가슴에 붕대를 풀어 버리고는 아도니스의 침대에 누웠다. 아도 니스와 록크가 처음 만났던 것은 15년 전이 아니었다. 아도니스는 기억 하지 못하는 20년 전 여름날 아직 어세신의 수업을 받기 전의 록크를 아도니스가 구해 준 적이 있었다. 그리고 5년 후 둘은 다시 만났다. 그 러나 20년 전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아도니스였다. 하지만 록크 는 상관없었다. 다시는 못 만나리라 생각했던 사람을 다시 만났으니... .. 자리에 누운 록크는 금방 잠이 들었고, 좋은 꿈을 꾸는지 입가에 미소 가 드리워 졌다. 랑그람의 예상대로 작전 명에 격분한 케르디온은 10만의 대군을 이끌고 다이러스 제국의 영토로 들어왔다. 베스로 들어와서 여장을 푼 케르디 온은 이튿날 군대를 이끌고 해조 성으로 방향을 잡은 케르디온은 그 날 밤 장군들을 모으고 작전 회의를 시작했다. 장군들이 다 모이자 케르디온은 옆의 부관에게 이번에 손에 넣은 다이 러스 제국의 작전을 적은 편지를 읽게 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해조 성까지 밀고 들어온 적들은 단번에 우리 조국 다이러스의 숨통을 끊기 위해 추가로 보낼 것이라는 정보가 입수됐다. 그 추가 병력에는 케르디온 왕도 출전할지도 모른다. 이 이상 적의 추가 병력이 밀고 들 어오면 우리 다이러스로서는 더 이상 막아 낼 여력이 없다. 그러므로 바그온 장군은 별동대를 조직하여 적의 추가 병력에게 타격을 줌과 동 시에 적의 보급을 끊길 바란다. 적이 해조 성까지 오려면 필연적으로 레테의 산을 넘게 될 것이다. 산 악이 험준하고 벼랑이 많은 이 지역에서는 어쩔 수 없이 병력이 길게 늘어서서 지나야 된다. 그러므로 길 위쪽 벼랑에 별동대를 위치시킨 다 음 적이 길게 늘어졌을 때 앞쪽과 뒤쪽에 공격을 가해 적에게 혼란을 유도하고 그 틈에 적의 보급품에 불을 질러라. 병력을 많이 못 줄여도 좋다. 하지만 적의 보급품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없애야 된다. 덤으 로 케르디온 왕이 출전했다면 그 지역에서 반드시 숨통을 끊기를 바란 다. 이번 작전의 가장 큰 목적은 적의 보급품의 파괴와 케르디온 왕의 암살 이다. 철저하게 덫을 준비해 놓고 적을 맞아 반드시 목적을 이루어라. 더불어 이 작전의 작전 명은 쥐덫 작전이다. 이미 이 작전의 작전 명은 우리측의 스파이에 의해 가이라가 왕국에 퍼트리고 있는 중이다. 이 작 전 명에 화가 난 쥐는 반드시 출전할 것이다. 그러니 그 쥐를 무슨 일 이 있어도 잡아야 된다. 마지막으로 장군의 무운을 빈다. -랑그람 로헨타이 1세-] 편지의 내용을 다 읽자 케르디온은 머리에 보아란 듯이 혈관 마크를 만 들면서 바로 옆에 장군에게 물었다. "지금 우리 가이라가 왕국에서 저런 소문이 퍼졌나?" "네... 확실히 저.... 입에 담기도 힘든 작전 명이 퍼져 있는 상태입니 다." 적에게 쥐 취급당한 왕 앞에서 차마 쥐라는 단어를 내뱉지 못한 장군이 땀을 뻘뻘 흘리며 대답하자 케르디온은 코웃음을 쳤다. "흥. 정말 주도면밀한 작전이다. 이 내가 이 작전의 본 내용을 몰랐다 면 아마도 정말로 큰 타격을 입었겠지. 하지만 신은 이 나의 편이다. 이미 적의 작전은 훤히 내 손에 있는 이상 승리는 이미 이 짐의 것이다 !!"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적은 절대 폐하를 어쩌지 못할 것이옵니다!" "승리의 여신은 폐하 편입니다!" 케르디온의 눈치를 살피던 장군과 기사 대장들은 케르디온의 말이 끝나 자 기다렸다는 듯이 그 말에 동조했다. 제발 이 아부로 케르디온의 화 가 누그러들기를 바라면서.... 그들의 지극 정성(?)이 통했는지 케르디온은 한결 누그러진 얼굴로 장 군들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자 그럼 저 오만한 배신자들의 왕에게 어떻게 복수해 주었으면 좋겠는 가?" 그렇게 본격적으로 군사 회의가 시작되자 많은 의견과 반박이 장군들과 기사 대장들의 입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일반 귀족 출신의 장군들은 주 로 먼저 별동대를 보내서 적의 별동대를 치자는 작전과 기사 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기사 대장으로 오른 기사 대장들은 그 레테 산을 우회하는 안전 책을 내 놓았다. 끝날 것 같지 않던 회의는 레테 산 아래쪽에 위치한 도플평원으로 최대 한 빨리 우회한 다음 이미 진출한 15만 대군이 해조 성을 잡고 있는 동 안 케르디온의 본대가 다이러스 제국의 수도 다이리를 친다는 작전 쪽 으로 의견이 기울게 되었다. 더구나 이 작전은 케르디온의 염원인 자신의 손으로 직접 배신자들의 수도를 친다라는 점이 크게 매력으로 작용되어 케르디온은 이미 그 쪽 으로 마음을 굳히고 있는 상태였다. "그럼 포드 기사 대장의 의견에 더 이상 반대 의견이 있는가?" 회의를 종결시키기 위한 케르디온의 발언에 반대 의견 따위는 나오지 않았다. 말속에 '난 이 작전이 마음에 든다. 그러니 헛소리 할 생각 말 라' 라는 뜻을 팍팍 품은 왕의 말에 싫습니다 라고 할 신하가 역사적으 로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모르긴 몰라도 '폐하 그것보다는' 보다 '폐하 말이 백 번 옮습니다' 라고 할 자들이 더 많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번 케르디온의 주변에도 전자의 신하들이 압도적이었다. 좀 더 세세 한 작전은 도플평원을 넘어간 다음 정하기로 하고 그 날의 회의는 그것 으로 끝이 났다. 그리고 다음날 케르디온의 군대는 동쪽에 있는 빠른 길인 레테 산의 길 을 버려 두고 진로를 남동쪽의 도플평원 쪽으로 진로를 잡았다. 케르디온 왕이 베스에서 떠나던 날 그 대군을 쫓아가고 있는 검은 그림 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케르디온의 군대는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 검은 그림자들은 바로 아도니스 장군의 붉은 황소 부대의 아도니스 장군 본인과 엘리트 병사들 그리고 어세신 마스터 록크였다. 베스에서 케르디온 왕의 군대를 미행하던 그들은 삼일 째 아침 진로를 남동쪽으로 잡는 것을 보았다. 그것을 지켜보던 아도니스는 혀를 내둘 렀다. "거참. 유크로드 님이 적의 심중을 쥐고 흔드는 건지 아니면 적의 심증 을 유크로드 님이 읽고 계시는 건지.... 어느 쪽인지는 몰라도 적들이 기가 막힐 정도로 작전에 맞게 움직여 주는군." "어느 쪽이든 상관없잖아. 이로서 만약의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으니 아 도 네가 모든 상황 판단을 할 필요 없으니 좋은 것 아닌가?" 록크가 그렇게 말하자 아도니스가 어이없는 얼굴로 록크를 쳐다보았다. "뭐야? 그 얼굴은...." "너 방금 그 말 농담이지?" "그럼 당연히 농담이지. 설마 진담으로 알고 마음 상했던 건가?" "농담을 하려면 그렇게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하지 말라고... 그렇게 말하면 너무 무서운 소리가 된단 말이다." "......노력할게." "그런 것 가지고 노력할 필요는 없어." "대장님 이제 작전대로 움직이는 겁니까?" 둘의 수상한(?) 말싸움을 중지 시킬 겸 옆에 부관이 아도니스에게 말을 걸었다. 부관의 적절한 말 끊기 덕분에 애들 장난 같은 말싸움을 중지 한 아도니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전에 지시해 두었던 대로 병력을 도플평원으로 집결시킨다. 10만 대군 이 도플평원까지 도착하려면 적어도 일주일은 걸릴 것이다. 그러니 나 흘 이내로 병력을 모아야 된다." "넷!" 아도니스의 명령이 떨어지자 부하들은 즉시 사방으로 흩어졌다. 부하들 이 전부 가고 난 뒤 아도니스는 록크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 그리고 록크." "어세신들이라면 벌써 연락해 놨어. 일부는 중간에서 저 대군을 추격 할거야.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시간 벌기도 명령해 두었다." 록크는 아도니스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알아서 아도니스가 원하는 대답 을 해주었다. "쳇! 용의주도한 녀석." "이왕이면 준비성의 철저하다고 솔직히 칭찬해 주었으면 좋겠는데...." "이게 내 식대로의 칭찬이다." "하긴...." '그런 점이 아도의 매력이지' 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록크는 씩 웃으며 말했다. 어째서 그런 점이 매력이 된다는 것인지.... 뭐 눈에 콩깍지가 씨이면 다 그렇게 되는가 보다 하고 넘어가는 것이 정신 건강에 이로울 것이다. "자 그럼 우리도 출발할까요? 용맹하신 붉은 황소의 대장님."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기분이 좋은가 보군.' 아도니스 역시 록크와 오래 알다 보니 자연스럽게 알게 된 사실 중 하 나가 록크는 기분이 좋을 때면 항상 자신을 대장이라 부르며 경어를 사 용한다. 다만 아도니스는 록크가 어느 때 기분이 좋아지는 지에 대해서 는 감을 못 잡고 있었다. 자신은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말에도 록크는 재미가 있는지 가끔 경 어를 사용하고는 했다. 아마도 아도니스는 그 이유를 죽을 때까지 모를 것이다. "자 그럼 출발하자." 아도니스는 자신의 붉은 갑옷을 검은 망토로 잘 가리고 말에 올라타고 는 바로 출발했다. 록크도 자신의 말에 올라서는 아도니스의 뒤를 따라 갔다. 록크는 아도니스의 뒤를 따르며 그의 등을 보며 가만히 생각했 다. '난 언제나 저 등을 보며 그를 따라갔지. 아마도 앞으로도 계속 그의 등을 보면서 그를 따라다니게 될지도 몰라. 하지만 그래도 좋아. 아도 당신의 등은 내가 지켜 주겠다고 생각했으니깐. 그 날 내 자신에게 맹 세했던 그 맹세를 이번 전쟁에도 앞으로도 계속 지킬게. 계속....' 그 날부터 이미 가이라가 왕국의 수중에 떨어진 다이러스의 제국의 영 토에서 조그만 이변들이 생겼다. 밤마다 검은 후드를 눌러쓴 사람들이 어둠을 틈타 어딘 가로 향했던 것이다. 성에서 마을에서 농가에서 심지 어 깊은 산 속에서까지 나온 사람들의 목적지는 바로 도플평원이었다. 처음에는 한 두 명이었던 인원들이 도플평원 쪽으로 다가갈수록 점점 수가 불어나 대 인원이 되어 갔다. 어둠을 틈타 숲으로만 이동했고, 도 플평원 쪽에는 가이라가 왕국의 군사들이 주둔하고 있는 곳이 없어서 가이라가 왕국은 그 대이동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로부터 나흘 후 초반에 가이라가 왕국의 공격에 대파하고 없어졌다고 생각 됐던 다이러스 제국 제일의 맹공 부대로 알려진 붉은 황소 부대 1 만 병력이 도플평원에 모였다. 그로부터 삼일 후. 다이러스 제국의 대 반격이 시작되는 전쟁이 도플평 원에서 시작됐다. 가이라가 왕국에서 붉은 들소 부대를 제일 먼저 발견 한 것은 정찰병이 었다. 정찰병은 분명 자신들의 공격에 의해 없어졌다고 생각했던 붉은 들소 부대의 깃발을 보고 놀라서 급히 본진에 그 소식을 전했다. "붉은 들소 부대? 그 무식함이 하늘을 찌르고 할 줄 아는 거라고는 돌 격밖에 없다는 짐승 같은 놈들 말이냐?" 케르디온은 말을 그렇게 했지만 속으로는 약간 떨고 있었다. 붉은 들소 부대…‥ 레이나 여왕이 등극하면서 조직된 실력만 있다면 계급 구분 없이 출세의 길이 열려 있는 이 집단은 과거 가이라가 왕국의 전쟁에서 큰 전과를 올렸고, 덕분에 레이나 여왕이 제의한 화평에 어쩔 수 없이 합의하게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래서일까? 가이라 가 왕국에서는 아직까지도 붉은 들소 부대라면 치를 떨었다. 그런 부대가 초반에 쉽게 깨져 버린 것은 이상한 일이라고 가이라가 왕 국의 작전 참모들이 결론을 내고 다른 수상한 움직임에 대해 조사했었 다. 하지만 6년 간 이 부대에 대한 그 어떤 정보도 얻지 못해 결국 붉 은 들소 부대의 사령관급 대장들이 전부 사망했기 때문에 붉은 들소 부 대는 괴멸했다는 결론을 내렸었다. 그런 부대가 다시 나타났으니 케르디온은 자연히 긴장이 될 수밖에 없 었다. "그래 적은 수는 얼마나 되냐?" "약 1만의 병력이 집결해 있습니다." "1만?" "네! 그렇습니다. 폐하!" "지금 장난하자는 거냐?" "네?" 케르디온의 말뜻을 이해 못한 정찰병이 반문을 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 가 본 것은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분노를 하고 있는 케르디온의 얼굴이 었고, 그것을 본 순간 정찰병의 머릿속에 생각 난 것은 '난 죽었다'였 다. "지금 겨우 1만의 병력 갖고, 큰일났다고 떠들러 돌아온 거냐?" "아‥아닙니다. 폐하. 전 그저……" "말이 필요 없어!! 누가 저 놈을 당장 죽여라!!" "폐‥폐하?!! 죄송합니다. 제발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 정찰병은 '내가 왜 죽어야 되는데요?!'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일단 살고 봐야겠다는 생각에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면서 열심히 빌었다. 그 러나 화가 날대로 난 케르디온은 정찰병이 소리를 지르던 말던 옆에 호 위병을 시켜서 끌고 나가게 했다. '젠장 산수도 못하는 녀석인가? 우리 병력이 10배나 되는데 무슨 큰일 이라고 호들갑을 떨어서…. 괜히 겁먹었잖아.' 케르디온은 처음 조금 겁을 집어먹었던 화가 났던 것이다. 그리고 정찰 병 하나 처리한 것으로는 화가 풀리지 않은 케르디온은 옆에 장군들에 게 호령했다. "지금 당장 출전 준비를 하라!! 오늘이야말로 그 무식한 놈들에게 짐의 노여움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톡톡히 보여주겠다." "폐하!!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그런 케르디온을 저지하고 나선 것은 그라케인 장군이었다. 명문 귀족 가 출신인 그라케인은 실력에 의해서가 아닌 가문의 힘을 등에 없고 장 군의 지위에 오른 자였다. 그리고 명문 귀족가 출신들의 단점답게 그도 지금의 지위에 만족하지 않고 더 높은 권력의 욕심을 품고 있었다. 그 리고 실력도 없으면서 그런 욕심을 품는 자들은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무슨일인가?" "폐하께서는 배신자들의 수도를 함락시켜야 되는 중대한 거사를 앞두고 있습니다. 그깟 무식한 무리들을 처단하는데 폐하께서 직접 가실 필요 가 없습니다. 저에게 2만의 병력만 주시면 먼저 가서 폐하께서 아무 방 해 없이 배신자들의 수도까지 가시는 길을 터 놓겠습니다." 아부하는 말발 하나는 죽여준다는 것이었다. 그라케인 말에 곰곰이 생 각하던 케르디온은 확실히 그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전부 다 가는 것이 아니지만 그래도 적의 2배 병력이면 절대 지지는 않을 것 이라는 계산을 한 것이다. 그리고 확실히 그라케인 말대로 그깟 떨거지 (?)들 잡는데 자신이 나서기보다는 확실하게 적의 수도를 치는 것에 힘 을 아낀다는 작전이 더 매력적이었다. "그럼 그대에게 2만의 병력을 주겠다. 귀관의 승전을 기대하고 있겠네. " "걱정하지 마십시오. 쓰레기 청소는 확실히 하고 돌아오겠습니다." 쓰레기란 말에 케르디온은 유쾌하게 웃었다. "하하하하! 그래! 쓰레기. 그 무식한 집단에게 정말 어울리는 지칭이로 다. 그럼 당장 가서 그 쓰레기들을 청소하라!!" "맡겨만 주십시오." 다른 장군들은 그 모습을 보며 '왜? 내가 먼저 그 말을 안 꺼냈을까?' 하는 아쉬운 표정들을 지었다. 물론 다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몇 명 제대로 군사교육을 받은 이들은 그라케인의 역량을 잘 알기 때문에 2만 병력 갖고는 모자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전략의 기본 적인 요건인 항상 병력은 적보다 많게라는 사항은 충실히 지키고 있었 고, 아무리 무능한 자라도 적의 두 배 병력을 갖고도 설마 지겠냐는 생 각에 아무도 반대 의견은 내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그때 반대를 하 거나 적어도 병력을 좀더 충분히 주어야 된다고 의견을 냈어야 했다. 적어도 병력이 조금만 더 많았다면…‥ 아도니스는 적의 2만 병력이 이리로 오고 있다는 소리에 고개를 갸웃거 렸다. "겨우 2만? 그 자식들이 장난치나? 우리 붉은 들소에게 겨우 2만이라니 …." "케르디온도 출전하지 않았어." 정보를 가져 온 록크가 덧붙여서 말하자 아도니스는 얼굴을 찡그렸다. "겁먹은 건가? 쳇 원만하면 여기서 끝내고 싶었는데…." "깔보고 있을지도 모르지." 록크의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분이 안가는 농담(?)에 아도니스는 얼굴이 확 붉어지면서 흥분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이 나와 나의 붉은 들소를 깔본 대가를 치르게 해주지!!" "…‥넌 정말 붉은 들소 부대에 잘 어울린다." "그 말도 농담이냐?" "진심이야." "…….하아 관두자. 아무튼 우리도 출전이다! 우리를 깔본 대가는 전멸 로 갚아 준다!" 그리노력 715년 후에 도플평원 전투라 기록되는 전쟁은 다이러스 제국 의 선공으로 시작됐다. 가이라가 왕국 주력 병력 2만과 다이러스 제국 의 붉은 들소 부대 5천의 병력과 일반 병력 5천의 혼성 1만 부대가 만 난 곳은 도플평원의 가장 넓은 지역이었다. 그라케인은 붉은 들소 부대의 명성을 만천하에 떨치게 만들었던 기마대 가 앞에 있는 것을 보고는 코웃음을 쳤다. "하하하하! 역시 아는 것이라고는 돌격밖에 모르는 머리 빈 자식들이 군. 오늘 저 녀석들에게 내 손수 전술이란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보여 주겠다!!" 라고 큰소리를 뻥뻥 친 그라케인이 보여준 것은 기발한 전술이 아닌 기 껏해야 대 기병 전용 파이크를 사용하는 창병 부대를 앞으로 내세우고 뒤에 궁수 부대를 배치한 전술 중에 가장 기초가 되는 기본적인 전술이 었다. 물론 기본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런 기본적인 것 같고 마치 전술 의 신이 되는양 떠드는 그라케인의 모습은 그리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 었다. 한편 아도니스도 가이라가 왕국의 움직임을 보고는 한마디 안 할 수가 없었다. "움직임이 엉망이군 완전히 나 잡아 잡수세요 하는 움직임이잖아." 군사가 붉은 들소 부대보다 많기 때문에 움직임이 둔한 것은 사실이나 그걸 감안하고라도 가이라가 부대의 움직임은 한숨이 나올 정도로 느려 터졌다. "공격 안 해? 이대로 진형을 다 짤 동안 기다려 줄 생각이야?" 말에 타고 있지 않은 록크가 아도니스를 올려다보며 묻자 말에 타고 있 던 아도니스는 록크를 내려다보며 한쪽 눈을 찡긋했다. "아무리 보기 지루해도 저 상태에서 공격을 하는 것은 신사가 할 짓이 못되지." "신사? 너 언제부터 전쟁에서 그런 것 따졌냐?" "안 따졌지. 그리고 완벽하다고 생각한 진형 부수는게 좀 더 상대방에 게 정신적 충격을 많이 주잖아. 그리고 통쾌하고 말이야." "그게 본심이지?" "맘대로 생각해." 둘은 여유 있는 농담 따먹기를 하며 아도니스의 말을 빌리자면 지루한 진형 갖추기를 구경했다. 간신히 진형이 완성된 가이라가 왕국은 전진 을 시작했다. 궁수 부대의 사정 거리까지 이동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던 아도니스는 손을 들며 명령을 전달했다. "특수 궁수 부대는 기마대 뒤로! 공격 준비!!" 아도니스의 명령은 곧 북소리와 마법 뿔피리 소리로 구석구석까지 전달 되었고, 병력들은 아까 가이라가 왕국과는 확연하게 비교가 되는 움직 임으로 부드럽고 재빠르게 진형을 갖춰 나갔다. 진형이 완성되자 아도 니스는 들었던 손을 내리며 외쳤다. "공격!" 아직 기본적인 활의 사정 거리 밖이었다. 그라케인은 붉은 들소 부대에 서 활을 쏠 준비를 하는 것을 보고는 '공격의 기본도 모르는 멍청하고 무능한 놈' 이라고 비웃었다. 하지만 붉은 들소 부대의 궁병들이 일제 히 활을 쏘자 분명 사정 거리 밖이었지만 화살은 비 오듯이 가이라가의 진형에 쏟아졌다. 비명 소리가 난무하며 기껏 힘들게 짜 놓았던 진형은 한순간에 흐트러 졌다. "뭐냐? 도대체 뭐야?! 저 비겁한 놈들이 무슨 속임수를 쓴 것이냐?!!" 그라케인은 흔들리는 진형을 돌볼 생각도 안하고 아도니스 쪽이 신성한 (?) 전쟁에 속임수를 썼다고 분개했다. 그라케인이 속임수라고 분개하 는 붉은 들소 부대에 배치된 특수 궁병들이 쓰는 활은 바로 와이번의 뼈를 깎아서 만든 활이었다. 드래곤에 비교할 바는 못 되지만 나름대로 튼튼한 와이번의 뼈는 그 강 도가 일반 나무 활과 비교를 할 수가 없었고, 크기도 일반적인 롱보우 의 두 배였다. 끈도 제일 튼튼하고 탄력성이 좋은 끈으로 세 가닥을 꼬 아 만든 활줄은 혼자서는 절대 당기기 무리이기 때문에 세 명이 달라붙 어서 쏘아야 되는 단점이 있다. 지금 붉은 들소 부대는 겨우 1천 개의 이 특수 활을 쓰기 위해 무려 3천명의 병력들이 붙어 있었다. 하지만 이 활의 관통 능력과 사정 거리는 그 단점을 보안해 주고도 남았다. 그동안 절대 쓰지 않고 아껴 두었던 비밀 병기를 마음껏 선보인 아도니 스는 다시 손을 들어 기마대를 준비시켰다. 물론 그 동안에도 화살은 계속 가이라가의 진형을 흔들고 있었다. "방패 부대는 앞으로 나가서 화살을… 아니 이 나를 먼저 지켜라!!" 그라케인은 뒤에 대기시켜 놓았던 방패 부대를 앞으로 - 특히 자신의 앞으로 - 나오게 하면서 정작 중요한 앞쪽의 진형은 돌보지 않았다. 아 니 그라케인의 능력으로는 돌볼 여력이 없었다는 게 정확한 이유였다. 방패 부대가 앞으로 나오기 위해 기를 쓰자 가뜩이나 혼란한 진형은 더 욱더 혼란을 가중시켰고, 아도니스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붉은 들소 기마대! 돌격이다!! 멋지게 놀아 보자!!" 록크는 아도니스의 놀아 보자는 말에 '애들 같아'라는 말이 절로 나왔 다. 그런 애들(?) 같은 명령에 저돌적인 돌격의 용맹함으로 이름 높은 붉은 들소의 주 병력인 기마대 3천이 앞장서고 붉은 들소 소속 보병 2 천과 일반 보병 2천이 그 뒤를 따랐다. 평원 전투의 기본은 기마대가 앞장서서 적의 진형과 방어 라인을 흔들어 두고 그 뒤를 보병들이 치고 들어가서 적을 전멸시키는 게 기본적인 전술이었다. 하지만 붉은 들소 부대는 기마대만으로도 적을 전멸시키고도 남을 정도였다. 그들이 타는 말은 일반적인 말과 질적으로 차이가 있었다. 혈통 좋은 것은 기본이고, 그 혈통 좋은 말을 망아지 때부터 산 속에 풀어놓고 야 생마처럼 키웠다. 그런 야생마를 길들여서 자신의 말로 만드는 것이 신 분에 관계없이 붉은 들소 기마대로 들어가는 조건이었다. 붉은 들소 부대의 거친 야생마들은 대 기병 전용 창인 파이크를 두려워 하지 않는다. 보통 말이라면 앞에 창을 들이대면 그 자리에서 날뛰느라 말에 타고 있던 기사들을 떨어트리기 일수지만 야생마들은 자신이 선택 한 주인을 믿고 따르기 때문인지 죽음도 불사한다는 모습으로 오로지 돌격만 할 뿐이었다. 이런 저돌적인 돌격 그리고 기마병들과 말들의 마상용 갑옷의 붉은 색 갑옷 덕분에 붉은 들소떼라는 별칭을 얻게 되고, 결국 그 별칭이 부대 의 정식 이름이 된 것이 지금의 붉은 들소 부대였다. 그리고 자신의 말을 아끼는 붉은 들소 부대의 기마병들은 일반적인 기 마병용 무기인 랜스를 쓰지 않고 특수 제작된 길고 얇지만 단단한 기다 란 검을 사용한다. 그 검의 용도는 당연히 말을 노리는 창병들의 창을 자르기 위한 용도이고 그것을 위해서 달리면서 기다란 검으로 창을 자 르는 훈련을 해 왔던 붉은 들소 기마병들은 정신 없는 와중에도 창을 들어 자신들을 막아서는 가이라가의 창병들의 창을 잘랐다. 그리고 야 생마들은 말발굽으로 병사들을 쳐내며 자신의 주인을 좀더 깊숙이 적진 으로 안내했고, 붉은 들소 기마병들은 방해하는 창이 없어지자 본격적 으로 기다란 검을 휘두르며 가이라가의 병사들을 죽여 나갔다. 그렇게 붉은 들소의 야생마와 기마병이 지나간 자리에는 시체들만 남겨져 있을 뿐이었다. "적의 기마병이 본진 깊숙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옆의 부관이 비명을 질렀지만 그라케인은 머리를 있는 대로 숙이며 자 신을 화살에서 지킬 방패 부대를 빨리 데려오라고 소리만 질렀다. 그런 그라케인 덕분에 다이러스보다 두 배가 많은 가이라가의 병력은 유리하 기는커녕 오히려 불리한 점으로 작용했다. 그나마 실력 있는 부관들이 간신히 진형을 유지하며 안쪽으로 들어온 붉은 들소 부대의 기마병들을 없애기 위해 필사적으로 명령들을 내렸고, 뿔피리와 북소리가 바쁘게 전장에 울려 퍼졌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이상 적의 기마병들을 진형으로 들여보낼 수는 없다!! 창병은 창만 들고 적이 찔리기를 기다리지 마라!! 두 사람이 같 이 창을 잡고 찌르란 말이다!!" "남쪽의 방어를 좀 더 튼튼히 하라!! 적의 보병들이 들어오면 정말 끝 장이다!!" 그런데 그런 명령들을 열심히 내리던 뿔피리와 북소리가 갑자기 뚝 끊 겼다. "뭣들 하는 거냐? 더 빨리 명령 전달을 해도 모자랄 판에!!" 한 부관이 신경질을 내며 뒤를 돌아봤다. 그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죽 어 있는 연락병과 피 묻은 차크람이었다. 그리고 곧바로 그도 비명 한 번 못 지르고 죽어 갔다. "여기는 끝인가?" 피 묻은 차크람을 손에 든 록크는 다른 쪽으로 재빠르게 이동했다. 앞 쪽에서 아도니스가 혼란을 일으켜 주고 있어서 록크를 비롯한 다른 어 세신들은 아주 손쉽게 적들 사이를 누비며 제대로 된 명령만 내리는 지 휘자를 골라서 죽였다. 그나마 제대로 된 명령마저 없어지자 가이라가 의 2만 병력이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끝까지 방패병을 부르던 그라케인은 아무것도 해보지도 못하고 화살에 맞아 죽었고, 아침부터 시작된 전쟁이 끝난 것은 저녁 노을이 질 때였 다. 도플평원의 결과는 가이라가의 2만 병력의 전멸이었다. 간신히 살아 남은 몇몇 병사들의 보고를 들은 케르디온은 분개를 하며 다음날 남은 8만 병력을 이끌고 직접 도플평원으로 출전했다. 하지만 그가 도착했을 때는 붉은 들소 부대는 남쪽으로 도망치고 있는 중이었 다. 케르디온은 보아란 듯이 가이라가의 병력이 도착하자 도망치는 붉 은 들소 부대를 추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함정일지도 모른다고 주위 지휘관들이 말렸지만 [쥐새끼들 왕아! 용기가 있으면 따라 와라!] 라는 커다란 피켓을 케르디온에게 보아란 듯이 남긴 덕분에 이성을 잃은 케 르디온은 오로지 추격을 명령했다. 그렇게 케르디온의 남은 8만 병력은 선봉 부대인 15만 병력을 위한 지 원 물자만을 약간의 호위병과 같이 해조 성으로 보내고 붉은 들소 부대 를 추격했다. 남쪽 깊숙이…… 20화 티아의 첫사랑 "에에?!! 너무 비싸요!! 좀 깎아 줘요!!" 가게에서 물건값을 실랑이하는 광경은 어디서든 볼 수 있는 평범한 광 경이다. 하지만 가게에 들어오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물건값을 실랑이하 고 있는 남자들을 한참이나 쳐다보다가 나갔다. 아니 나가지 않고 끝까 지 구경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정도로 지금 물건값을 실랑이하는 남 자들은 튀어 보였다. "저기 시이터 씨 돈은 충분히 있어요." 다시 정확히 말하면 물건값을 깎으려고 흥정하는 남자는 흑발의 키가 큰 청년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 곤란한 얼굴을 하고 있는 청년이라고 부르기에는 어려 보이는 은발의 소년이 흑발의 남자에게 작게 속삭였 다. 흑발의 청년은 단단한 근육에 여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돌아 볼 정 도로 잘 생겼다. 그리고 은발의 소년은 호리호리한 체격에 남자라면 ' 아깝다'(?)라며 눈물을 흘리게 만들거나 혹은 취향(?)을 바꿀까라는 생 각을 한번쯤 해보게 만들 정도의 미모였다. 가게에 물건을 사러 온 사 람들 중 대다수의 여자들은 여행자 차림의 두 남자를 보면서 어떠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둘을 훔쳐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아마도 저 여자들의 집은 오늘 저녁은 꽤나 늦게나 먹을 것이다. 어느 정도 늦게라면.... 저 남자가 물건값을 깎는데 성공할 때까지라고 해 두자. "안돼요! 테이군 돈이라는 것은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여유가 있어도 아껴야 되는 겁니다. 더구나 이 물건값에 3골드면 너무 비싸요. 이 정도면 1골드 50센밖에 안 한단 말입니다!" 은발의 남자는 바로 테이였다. 도대체 어쩌다가 티아를 놔두고 저런 정 체 불명의 남자와 함께 다니게 된 것일까? '도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된거야아?!!' 테이는 자신에게 따끔한 충고를 해주고 다시 물건값 경쟁을 시작하는 시이터를 바라보며 한숨지었다. 열심히 물건값을 실랑이 벌이는 시이터 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테이의 시선은 분명히 지쳤다는 눈빛이다. 그런 데 그 눈빛이 여자들에게 어떻게 보였는지..... "저거 봐. 저 눈빛! 틀림없이 그거(?)야! 그거!!" "까악! 나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야." "아아.... 저 정도면 거의 예술 작품이야. 저건 신이 만든 최고의 작품 이야." "어떡해. 나 당분간 잠 못 잘 것 같아. 아아 내 꿈에 나타나 주었으면. ..." "쉿! 쉿! 목소리 낮춰. 다 들리겠다." '이미 다 들었어!!' 테이는 여자들의 극성맞고 무서운(?) 상상을 연상케 하는 대화를 들으 며 살풋이 이를 갈았다. '에휴.... 도대체 이 남자 정체가 뭐야?' 다시 한번 한숨을 쉬며 시이터를 바라보는 테이는 생각에 잠겼다. "마을을 떠날 준비를 하세요." 제니아의 사건이 해결되고 이틀이 지나고 촌장이 우리 남매와 제니아 모녀를 자신의 집으로 부르더니 대뜸 저 말부터 했고, 난 급히 귀부터 막았다. "지금 장난치자는 거예요? 마을을 떠나라는 말을 하는 이유가 뭡니까? 어디 이유라도 들어보죠. 단! 그 이유가 타당치 않다면...." 그럼 그렇지. 귀 막길 잘했지. 누나의 엄청난 고함 소리에 촌장은 말을 꺼내 놓고 얼어붙었고 제니아는 '언니가 또 무서워졌어' 라고 칭얼대는 뮤나를 꼭 안아 줬다. 티아 누나는 끝에 말을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수룩한 인간이라도 알 아차릴 수 있는 살기를 넘실넘실 뿜어내고 있는 것으로 뒤에 말이 뭔지 는 충분히 상상이 가능케 해주었다. 앞에 앉아 있는 팔씨름 촌장도 그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는지 얼굴이 식 은 땀 투성이였다. 촌장이 쩔쩔매며 말을 잊지 못하자 누나는 정말 잡 아먹을 듯이 촌장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빨리 이유를 말해 보라고 했어요! 난 참을성 없으니 시간 끌 생각은 하지를 말아요!!" '와! 오랜만에 누나가 자신의 단점을 솔직하게 말하네. 역시 여행을 하 면 변하는 거구나.' 라고 생각을 하자마자 익숙한 누나의 펀치가 날아와서 난 벽을 뚫고 밖 으로 날아갔다. "테이 님!!" "오빠야!!" 제니아와 뮤나가 동시에 소리를 질렀고, 뮤나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나에게 달려 왔다. 달려 온 것까지는 좋은데 말이야.... "으아앙! 오빠야 죽지마!! 죽으면 안 돼!!" 왜 내가 쓰러지면 여자들은 목부터 잡고 흔드는 이유가 뭐냐고오?!! "뮤나야 이 오빠 아직 안 죽을 테니 그만 좀 흔들어라." "흑흑흑. 다행이다. 다행이야 오빠야." 내가 간신히 일어나서 흔들리는 머리를 진정시키려고 노력하자 뮤나는 울먹이며 말했다. 크윽 역시 너무 귀엽다! 여동생이 생기면 이런 느낌 일까? "에구구 귀여운 것!!" 난 이 오빠(?)를 생각해 주는 뮤나가 너무나 귀여워서 그냥 콱 껴안아 주고 싶었다. 그런데.... -휘잉 바람을 가르며 새하얀 무언가가 내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굳이 고개 를 돌려서 그게 무엇인지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너무나 익숙한 누나의 아이스 미사일이었다. "순진한 어린애 꼬드길 생각하지 말고 얼른 안 들어와!" 지금 엄청나게 화가 난 누나는 무표정한 -하지만 왠지 모르게 싸늘하게 보이는- 얼굴을 하면서 주위에 아이스 미사일을 시전 시킨 상태였다. 과거 여러 번의 경험으로 저런 상태의 누나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잘 아는 나는 잽싸게 뮤나의 손을 잡고 촌장의 집안으로 들어갔다. 다 시 집안으로 들어가자 촌장은 거의 석고상으로 보일 정도로 굳어 있었 다. 내가 평소 누나에게 맞던 생활상을 보여준 것이 꽤나 겁을 준 것 같다. 뭐 저만큼 겁을 준 것에 나도 한몫을 하게 된 거지만..... 하나 도 기쁘지 않다. 내가 뮤나를 데리고 들어가자 누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촌장을 노려 보며 다시 한번 소리쳤다. "왜 말 못해요?! 제니아와 뮤나가 마녀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는데 왜 나가란 거죠? 이유가 있겠죠? 빨리 말해요?!! 정말 죽여 버리기 전 에!!!!" "누나 참아!!" "티아 님! 잠깐만 진정하세요!!" 누나는 소리를 지르다가 감정이 격해졌는지 아직 없애지 않은 아이스 미사일을 날릴 태세를 취해서 나와 제니아가 급히 뜯어 말려야 됐다. 우리가 누나를 붙잡고 말리자 더 흥분을 했는지 -이게 역효과인가?- 정 말 사고 칠 것 같은 소리를 지르며 난리를 쳤다. "이거 놔!! 젠장 역시 죽여 버릴 꺼야!! 이따위 마을 부서 버리겠어!!" "티아 님! 제발 참으세요!!" "누나!! 정신 좀 차려어!! 이러면 내가 정신 나갔을 때랑 똑같잖아!!" 그냥 생각 없이 나간 말이었다. 그런데 이 말이 의외의 효과를 일으켰 다. "......안되지 테이 녀석하고 같은 취급당할 수는 없지. 후아후아." 누나는 내 필사적인 외침에 정신이 들었는지 화를 가라앉히기 위한 심 호흡을 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화가 가라앉았는지 평소 모습의 누나로 돌아와서 생긋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고마워. 테이야. 네 덕분에 눈을 정신을 차렸어. 하마터면 정말 큰일 날 뻔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고, 또 누나에게서 여간해서는 들을 수 없는 고맙다 는 말도 들었지만.... "하나도 기쁘지 않아.... 훌쩍훌쩍." "그렇다고 구석에서 쪼그리고 울 것까지는 없잖아." 누나는 구석에서 훌쩍거리는 내가 한심하다고 말했지만..... 젠장 방금 누나 말 듣고 기분 좋을 동생 있으면 나와 보라고 그래!! '흑 나란 놈은 불행의 별을 안고 태어났을 거야.' 그 외 기타 등등 여러 가지 궁상의 단어로 내 자신의 운명에 대해서 한 탄하고 있을 때 촌장이 정신을 차렸는지 촌장의 말이 들렸다. "저..저기...." "네 말씀하세요. 방금 전에는 너무 흥분해서 추태를 보여 드려 죄송하 네요. 하지만 촌장님 말씀이 너무 심해서 그런 거니 이해해 주시겠죠? 그리고 다시 한번 묻겠지만 제니아 모녀에게 마을을 나가라고 한 저의 는 뭐죠? 좋은 변명을 기대 할게요." 거 원만하면 그 살기 좀 지우고 말하지. 또 촌장이 얼어서 대답 못하면 또 홱 돌아 버릴 셈인가? 그런 나의 걱정과는 달리 촌장은 이번에는 용 기를 냈는지 더듬더듬 말을 꺼내 놓았다. "그러니깐.... 마을을 나가 달라는 것은 그 저기.... 전쟁 때문에.... 위험하니....." "전쟁?" 누나의 이마에서 혈관이 솟아올랐다. "전쟁이라고 해봐야 저기 전방에서 일어나는 전쟁 때문에 마을을 나가 서 안전한 곳으로 가라? 이런 말인가요? 참으로 고마우신 소리네요." "그..그게 아닙니다. 지금 가이라가에서 많은 병력이 더 넘어왔다는 소 문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뭐죠?" "그 병력이 바로 수도 다이리로 진격하지 않고 이곳으로 오고 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이곳으로? 이곳에서 수도로 가려면 빙 돌아가야 되는데 가이라가는 바 보들만 모였나 보죠?" "정말입니다!! 내가 어떻게 그 가이라가 멍청이들 머릿속 생각을 알겠 습니까? 하지만 분명 도플평원 건너편 마을에서 도망쳐 온 자가 있습니 다." "도플평원?" 누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할 때 나는 재빨리 지도를 펼쳐서 지형을 보았다. 이 마을에서 산 하나만 넘으면 원래 우리가 가려던 로즈렌 마 을이 있고, 그 로즈렌 마을 바로 앞이 도플평원이라는 곳이었다. 그런 데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분명 가이라가에서 다이리 수도로 진격 하려면 일직선으로 쭉 가서 산 하나만 넘으면 끝이었다. 그 도플평원이 라는 곳을 지나쳐서 수도로 공격해 들어간다면 상당히 빙 돌아가는 길 이었다. "이 녀석들 정말 바보인가?" "모르지. 그 녀석들 생각 따위야 알게 뭐야. 중요한 것은..... 그래서 여기는 위험하니 도망쳐라 이건가요?" 누나는 지도에서 눈을 떼고 촌장을 쳐다보며 물었다. 촌장은 고개를 끄 덕이며 말했다. "벌써 이 소식을 전해들은 로즈렌 마을에서도 피난 준비를 하고 있습니 다. 저희라고 앉아서 당할 수는 없는 노릇이잖습니까? 저희도 좀 더 후 방으로 피난을 갈 생각입니다. 이곳에서 일주일만 가면 이코스 성이 있 으니 그곳으로 피할 생각입니다." "헤에.... 도망치는 건가요?" "그럼 맞서 싸우라는 건가요? 이미 건장한 남자들은 죄다 전쟁터로 나 갔습니다. 남은 남자들 중에서도 오늘부터 수도로 병사를 지원하러 아 침 일찍 마을을 나간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라고...." 촌장은 더 말을 잊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이를 갈았다. 나는 저 뒤의 말이 무슨 말인지는 알 것 같았다. "하긴 당신들이라고 고향을 버리고 도망치기는 싫었겠죠." 내 말에 촌장은 고개를 숙인체 대꾸를 안 했지만 분위기상 내 말을 부 정하지는 않았다. "......뭐 전쟁이 나면 고생하는 것은 노인과 아이와 여자뿐이니 촌장 님의 마을을 떠나라는 말은 이해가 가네요. 하지만 좀 솔직하게 이유 좀 설명하면 안돼요? 꼭 그렇게 오해하기 쉽게 말해야겠어요?" "험험!" 누나가 처음에 촌장이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마을을 떠나라는 말에 화를 낸 것이 미안했는지 조금 돌려서.... 아니 많이 돌려서 은근슬쩍 촌장 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따지지 말기를 바란다. 저게 누나의 최대 한의 미안하다는 뜻의 말이니 나에게 저 말이 왜 미안하다는 말뜻을 담 고 있는지 묻지 말란 말이다. 아무튼 누나의 사과(?)에 촌장은 헛기침만 할 뿐 대답을 하지를 않았 다. 그런 촌장의 행동에 누나는 무언가를 알아차렸는지 생긋 웃으며 한 마디 더했다. "그렇게 부끄러워요?" "어험! 어험! 어....콜록 콜록!" 헛기침을 얼마나 세게 하면 기침이 날까? 누나의 지적이 정답이었나 보 다. 누나는 촌장을 더 곤란하게 하기 싫었는지 자리에서 일어나며 우리 에게 말했다. "제니아 남편이 살던 고향을 떠나는 게 아쉽겠지만 떠날 준비를 하는 게 좋겠어." "아...네. ....하지만 언젠가 전쟁이 끝나면 꼭 다시 여기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라고 하는데요. 괜찮겠죠? 촌. 장. 님~~." 방금 위에 곤란하게 하기 싫었다는 둥의 말은 취소하겠다. 장난스레 물 어 보는 누나의 말에 촌장은 더욱더 크게 헛기침을 하면서 고개를 홱 돌렸다. 그리고 짧게 대답했다. "맘대로." 어이없는 대답이었지만.... 뭐 저게 저 부끄럼쟁이 촌장이 대답할 수 있는 최대한의 대답일 것이다. 누나도 나와 같은 생각인지 생긋 웃기만 했다. 누나 뒤를 따라서 내가 나가고, 내 뒤에 제니아와 뮤나가 나올 때 촌장 의 질문이 우리 발을 붙잡았다. "레이드는...." "네?" 우리 전원이 촌장을 바라봤을 때 촌장은 여전히 고개를 돌린 체였다. 그 상태에서 약간 쑥스러운지 손가락으로 뺨을 긁으며 지나가는 어투로 물었다. "레이드는... 저기.... 부인을 만나서 행복...했습니까?" 누나와 나는 입을 벌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설마 저 팔씨름 촌장 입에 서 부인이라는 단어가 나올 줄은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그야말로 엄청 난 변화였다. 그 변화에 우리 남매가 경악을 하고 있을 때 제니아는 촌 장의 질문 의도를 알아차리고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남편은.... 레이드 씨는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어요. 대륙을 여행해서 정말 즐거웠다고요. 그리고 나를 만나서 뮤나가 태어난 것이 너무나 행 복하다는 말을 자주 하셨습니다." "그...그런가요?"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항상 형과 가족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했습니다. 언젠가는 우리 가족 모두 자신의 고향에 가서 살자고 말했습니다. 병에 걸려서 사경을 헤맬 때도 자주 레라드 씨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헛소리처럼...." 제니아가 더 말을 이어가지 못하고 흐느끼자 촌장도 찹찹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합니다.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해서.... 그만 가 보세요." "네." 그렇게 우리는 촌장의 집을 나왔다. 조금 가슴이 찡하긴 했지만.... 그 래도 기분 좋은 찡함이었다. "잘됐다. 그치?" "응." 누나가 얼굴에 홍조를 띄우며 나에게 귓속말을 했고, 나도 그 말에 동 의했다. 앞으로 저 모녀가 더 괴롭힘 당할 일은 없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누나도 나도 슬슬 짐을 챙겨서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엄마! 언니야! 오빠야! 누가 우리 마당에서 잠자고 있어요!" 집에 갈 때면 언제나 활기차게 맨 앞에서 뛰어가던 뮤나가 집에 다 와 서 우리에게 소리쳤다. 나와 누나는 불길한 느낌을 받으며 뮤나가 가리 키는 마당으로 뛰어갔다. 아이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뮤나가 가리키는 곳에 정말 사람 한 명이 마당에 누워서 자고(?) 있었다. 제일 먼저 달려간 내가 그 사람을 안아 일으키며 살아 있는지 확인부터 해보았다. 다행히 죽은 사람은 아니었다. "이봐요 괜찮아요? 정신 차리세요! 무슨 일입니까? 정신 차리세요!!" "으...으..." "괜찮으세요? 정신이 드세요?" 누나도 어느새 내 곁에 다가와 치료를 해줄 생각인지 손에 힐링을 시전 시켰다. 그러던 중에 뛰엄뛰엄 말하는 남자의 말에 난 온 신경을 곤두 세우고 들었다. "으..으... 배.... 배고...파..아." "......." "......." 나도 그 대단한 누나도 그 자리에 석상처럼 굳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시이터라는 남자와 우리 남매의 첫 만남이었다. "이거 한 그릇만 더 주세요!!" "아.. 네." "정말 잘 먹네." "무서울 정도로 잘 먹네." 누나와 나는 멈출 줄 모르고 쌓아져 가는 접시들을 보며 기가 질렸다. 제니아의 집 마당에 쓰러졌던 남자는 뱃속에 거지 운운할 정도의 수준 은 이미 초월하여 먹보들의 신이란 칭호를 붙여 주고 싶을 정도로 잘 먹었다. "아아! 잘 먹었다." 결국 제니아 집에 접시가 모조리 다 쓰이고 난 뒤에야 남자는 먹는 걸 멈췄다. "저기 다 드셨으면.... 일단 당신 이름과 왜 거기 쓰러져 있었는지 말 해 줄래요?" 자신의 배를 두드리며 포만감에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남자에게 누 나가 묻자 남자는 누나를 쳐다보며 대답했다. "저기 이거 한번만 더 먹을 수 있을까요?" "......." 지금 누나의 이마에 힘줄이 솟아나고 있다는 것은 말 안해도 다 알 것 이다. 그래도 여행이 드래곤을 변하게 하는지 누나는 필사적으로 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봐요.... 다시 한번 묻겠는데.... 당신 이름과.... 거기 쓰러진 이 유를.... 말해 주세요." 아주 힘들게 정말 힘들게 분노를 억누른 누나가 간신히 다시 이유를 묻 자 돌아 온 대답은... "웅? 우흠흠 음후" -응? 뭐라고 했어? 라고 말하는 듯- 입 안 가득히 수프에 젖은 빵을 입에 물고 있는 남자의 알아들을 수 없 는 대답이었다... 라고 상황 설명할 때가 아니다. 성질 급한 누나는 지 금 완전히 폭발 직전이었다. 그래도 누나는 꾹 참았다. 주먹을 쥐고 부 들부들 떨고 있었지만 얼굴은 미소를 유지한체 잠자코 그 남자가 빵을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려 줬다. 그래도 일말의 불안감이 든 나는 슬쩍 뮤 나를 데리고 뒤로 슬슬 피했다. "오빠야 왜 그래?" "아니 그게...." 차마 누나 앞에서 '지금 이 오빠야 누나가 엄청난 마법 연발 아니면 식 탁 뒤집고 난동 피우기 일보 직전이야. 그래서 위험해' 라는 말을 할 수가 없어서 머뭇거릴 때 드디어 그 남자의 식사가 진짜로(!) 끝났다. "아! 정말 잘 먹었다." "다 드셨겠죠? 자 그럼 우리는 아까 하던 이야기를...." "저기 부인. 정말 죄송하지만 차 한잔만 더 주세요." -툭 내 귀에는 똑똑히 들렸다. 누나의 이성의 끈이 끊어지는 소리가..... "지금 장난치자는 거야?!!" "으아악!! 피해 뮤나야!!" 난 살짝 뒤로 빼 두었던 뮤나를 안고 눈을 가리며 살육의 현장이 될 장 소에서 뒤로 도망쳤다. 뮤나의 눈을 가린 것은 지금부터 벌어질 참상을 보여주지 않기 위한 나의 따뜻한 배려였다. 라고 내 스스로 '난 역시 너무 착해' 라는 생각을 하는 동안 놀라운 일 이 벌어졌다. "이봐. 왜 그렇게 화가 난 거야?" 그 남자는 누나의 공격을 여유 있게 피하면서 말을 하고 있었다. 나도 누나의 주먹질을 요즘 잘 피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피나는 수행 의 결과 얻어진 결실이었는데 나처럼 그런 노력을 했었는지 그 남자는 누나의 공격을 정말 잘 피했다. "이익!! 이 미꾸라지 같은 남자가아!! 어디 이것도 피해 보시지! 아이 스 미사일 다연발!!" 자신의 주먹이 헛되게 허공만 휘젓자 약이 오를 대로 올랐는지 누나는 내 전용(?) 구타 마법인 아이스 미사일 다연발을 시전 했다. "끝이다." 난 그 모습을 보면서 진심으로 그 남자의 명복을 빌었다. 말이 내 전용 (?) 구타 마법이지.... 인간에게 쓰면 그것은 살육 마법이 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내가 얼음 꼬챙이에 꽂힌 남자의 끔찍한 모습을 상상하며 치를 떨 때 믿어지지 않는 일이 발생했다. "defense.(방어)" 그 남자는 검을 빼 들었다. 그리고 알아듣지 못할 말을 중얼거리자.... . 아아! 저런 멋있는 검이 이 세상에 있었다니.... 저 늘씬한 검신은 마 치 여성의 긴 다리와 같이 아름답고, 날카로운 매력을 품고 있었다. 그 리고 저 역광을 받아 여러 색으로 빛나는 저 광채. 그 어떤 마법검도 울고 갈 정도로 흠집 하나 잡을 수 없는 완벽한 빛이었다. 그리고 저 손잡이 모양은 또 어떤가? 육망성의 모양을 한 손잡이에는 각각 다른 색깔의 둥근 구슬 여섯 개가 끼워져 있었고, 그 구슬에도 마력을 머금 고 있는지 신비로운 빛을 발했다. 바스타드 특유의 한 손으로도 양손으 로도 사용할 수 있는 저 검은 길이 또한 신이 만들었다고 해도 좋을 만 큼 너무나 적당한 크기였다. 그리고 또..... 아! 이런 너무 멋있는 검을 봤더니 잠시 정신이 다른 세계로 외출을 했 다. 난 머리를 두어 번 흔들어 외출한(?) 정신을 불러들이고 믿어지지 않는 광경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누나도 믿어지지 않는지 마법을 시전 한 손을 내릴 생각을 못했다. 완벽. 지금의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저 말 이외에 또 있을까? 그 남자의 마법검은 누나의 마법을 정말 완. 벽. 하. 게 막아냈다. "성격이 급한 아가씨군. 어차피 다 대답하려고 했었는데 그걸 못 기다 려? 아아 밥 먹을 때는 오크들도 안 건드린다던데...." 저 남자 몰라서 그러는 걸까? 아니면 자신이 있었어 누나의 타오르는 성질에 기름을 붓는 걸까? - 근데 인간이 밥 먹을 때 안 건드리는 오크 들이 정말 있을까? - 누나의 잠시 얼이 빠져 있던 상태가 남자의 말에 빠르게 복구됐다. "그럼.... 내가.... 오크보다 못하단 말이야아?!! 너 오늘 죽었어!! 이 오나드!!" "으아악!! 참아 누나!! 집 날아간단 말이야아!!" 내 비명도 헛되이 폭발계 상급 마법인 이오나드는 이미 누나의 손을 벗 어났다. 난 제니아를 옆으로 데려와서 실드를 전개했다. 아무리 피난을 떠날 것이라지만 집을 부수면 제니아와 뮤나가 돌아올 장소가 없어지는 데.... 그것도 생각 못할 정도로 화가 난 것인가? 그런 내 걱정은 기우였다. "absorption.(흡수)" 남자가 아까 했던 말과는 다른 말을 중얼거리자 그 새하얀 아름다운 검 의 검신에서 빛이 퍼져 나오더니 누나의 이오나드의 마법 탄을 그대로 삼켜 버렸다. 아아! 세상에 저렇게 여리고 아름다운 검이 존재할 줄... ... 아니 그게 아니고 아무튼 누나의 마법력을 흡수 할 정도의 마법검 이 이 세상에 존재할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 못했다. 누나는 자신의 마법이 두 번 연속 막히자 허망한 얼굴로 남자를 쳐다보 았다. 그 누구도 아닌 인간에게 자신의 마법이 두 번이나 막혔으니 누 나가 얼마나 엄청난 충격을 받았는지 알 것 같았다. "다..다..당신..... 대..대체..... 저...정체가 뭐야? 그..그리고 그 검은 대체 뭐야?" 누나가 저렇게 말을 더듬는 건 처음 봤기 때문이다. 누나가 간신히 떨 리는 목소리로 물어 보자 남자는 더 이상 공격이 없을 거라는 것을 알 아 차렸는지 그 아름다운 마법검을 -나도 중증이다- 엄청나게 멋있는 검집에 집어넣고 자리를 털며 일어났다. "내 이름은 시이터.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여행자야. 그런데 귀여운 아가씨의 이름은 뭐지?" 절대 거부할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그 남자... 시이터가 묻자 누나는 더욱더 당황하며 말을 더듬었다. 자세히 보니 얼굴도 상기된 것 같았 다. "에? 아... 저기 나는.... 그....저." 누나가 손가락만 빙빙 돌리며 아무 대답을 못할 때 시이터는 씩 웃으며 걸어왔다. "뭐.. 뭐야? 다가오지마." 시이터는 누나 말은 들리지도 않는 다는 듯이 손을 뻗었다. "뭐? 뭐야?!! 만지지마!! 내 몸에 손대지 마아!!!!" "자자 겁먹지 말고 이름을 말해 줄래? 귀여운 꼬마 아가씨." "에?" 시이터는 누나는 싹 무시한체 어느새 우리한테 다가와서 떨고 있는 뮤 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미소짓고 있었다. 방금 전 소동으로 겁을 먹었 던 뮤나지만 시이터의 따뜻한 미소에 마음이 놓였는지 자신의 이름을 대답했다. "뮤나요." "뮤나? 너무 귀여운 이름이네. 몇 살?" "여덟 살이요. 저기요. 근데 아저씨." "이런 아저씨라니. 시이터 오빠라고 불러 줄래?" "그럼 시이터 오빠." "왜?" "뒤에서 티아 언니가 무서운 눈으로 쳐다봐요." 그렇게 말하며 뮤나는 제니아의 치마를 꼭 붙들었다. 시이터의 예상 못 한 행동 때문에 잠시 넋이 빠졌던 나는 뮤나의 말에 퍼뜩 뒤를 쳐다보 았다. 그 곳에는 지금까지 절대로 본적도 없고, 앞으로도 절대 보고 싶지 않 은 악마 같은 눈으로 시이터를 노려보는 누나가 있었다. "이봐.... 당신 말이야." "이봐 라니. 나보다 나이가 어린 것 같으니 그 쪽도 시이터 오빠라고 불러 줬으면 해. 아 근데 말괄량이 아가씨의 이름은?" "너......." "응? 뭐라고? 안 들려." "너 따위한테 밝힐 이름은 없어!!!" 그리고 쫓고 쫓기고, 마법과 아름다운 마법검과의 공방이 시작됐다. 그 광경을 쳐다보던 제니아가 조심스레 날 불렀다. "저기요. 테이 님." "응?" "저 남자.... 일부러 저러는 것 같은데요." "내가 보기에도 즐기는 것 같아." 아마도 그 순간 제니아와 나는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저 남자 성격도 참 이상하군.' 소란이 겨우 가라앉은 것은 자존심 상하지만 내가 지쳤기 때문이다. 시 이터라는 남자는 여전히 여유 있는 얼굴로 웃으며 제니아와 테이의 질 문에 대답하고 있었다. "어쩌다가 식량도 떨어져서 그런데 쓰러진 거예요?" "하하하. 그게.... 길을 잃었거든. 그래서 식량도 떨어지고, 물밖에 못 먹으면서 일주일을 헤매다가 간신히 이 집을 발견하고 마지막 남은 힘 을 향해 뛰어 온 것까지는 좋았는데.... 집에 아무도 없잖아. 그래서 그만 힘이 쭉 빠져서 쓰러진 거야." "엄청난 방향치군요." 난 아까 당한게 한이 맺혀서 즉시 그 남자를 씹어 줬다. 이거라도 안 하면 내 분이 풀릴 것 같지가 않았다. -아니 이거 갖고는 모자라지만 일단은....- 그런데.... "응. 맞아. 내가 좀 방향치거든." '그렇게 산뜻한 얼굴로 웃으면서 인정하지 말란 말이야!!' 화를 내거나 부끄러워하거나... 하다 못해 쩔쩔매는 꼴이라도 보고 싶 었던 내 마음과는 달리 시이터는 실실거리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시 한번 내 가슴에서 불이 나는 듯한 분노가 느껴졌지만 방금 전 인 간 모습으로는 그 남자를 어찌하지 못한다는 것을 충분히 맛보았다. 그 래서 난 속으로 내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서 저 남자를 자끈자끈 밟아 주는 상상을 하면서 화를 삭이려고 노력할 때 테이가 물었다. "저기... 그 검 이름이 뭐예요?" "마법검에 관심 있어?" 그 남자의 질문에 테이는 정말 기쁜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떡였다. '쳇! 어쩔 수 없는 검 매니아. 하지만....' 저렇게 기쁜 얼굴로 웃고 있는 테이의 얼굴은 정말 보기 좋았다. 제발 내 성질만 안 건드리면 더 귀여울 텐데.... 저 녀석은 너무 둔해. "이 검 이름이 뭐죠?" "이름은 몰라. 유적의 지하에서 우연히 얻은 검이거든." "유적? 지하??" "어? 몰랐니? 가끔 오래된 유적의 지하에는 고대인의 굉장한 보물들이 있기도 하거든. 나도 그 검은 오리하곤의 나가 산에 있는 유적에서 얻 은 거야. 그때 이 검을 얻기 전에는 정말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어. 그 지하에는 말이야...." 테이는 그 남자의 이야기를 하나도 놓치기 싫은지 진지한 얼굴로 경청 하고 있었다. 저 얼굴은 자기도 그런 유적 탐사를 하고 싶다는 얼굴이 었다. '유적 탐사라.... 레이르를 찾고, 내가 신룡 님들을 만나고 나서 한번 데리고 갈까?' 어차피 신룡 님들을 만나고 난 뒤의 일정은 잡히지 않은 상태였다. 그 러니 이 참에 테이가 좋아하는 곳으로.... "아! 맞다. 난 지금 프론트 연합에 있는 라바다 유적에 갈 생각이거든. 관심 있으면 같이 갈래?" "와아!! 정말요? 그렇지 않아도 저희도 프론트 연합으로 가는 길이었어 요!" 저 정신 없는 녀석.... 레이르의 일은 몽땅 다 까먹은 거냐?!! 내가 무언의 협박을 보내자 테이는 손을 들고 기뻐하다가 내 협박을 알 아차리고 슬며시 손을 내리면서 아쉬운 표정으로 내가 원하는 말을 해 줬다. "죄송해요. 저희는 들렸다 가야 되는 곳이 있어서...." "나도 같이 들리면 되잖아." 거참 끈질긴 남자네.... "아니... 그게.... 저기 사람 찾는 일이라 서요. 언제 찾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시이터 씨 일정에 맞출 수가...." "아! 그거라면 걱정 마. 어차피 나도 시간이 남아도는 여행자인걸. 그 리고 자고로 여행이란 여럿이 같이 가야 즐거운 거야." "그건 알지만....." 테이는 슬쩍 날 쳐다보았고, 난 웃으면서 테이에게 무언의 협박을 보냈 다. '귀찮은 일은 절대로 사양이다. 테이야 알아서 해!' 레이르가 변태 로헨타이에게 쫓기고 있는 터에 알지도 못하는 남자를 끌고 여행하는 것은 절대로 사양이다. 테이는 거의 울 것 같은 얼굴로 '나 어떡해' 라고 갈등을 하다가 결국 내 협박에 굴복하고는 그 남자에 게 거절의 말을 꺼냈다. "시이터 씨. 죄송해요. 저희들은 역시...." "아! 이 검 일주일 동안 너 빌려줄까?" "형님!! 같이 가요!!" 난 그만 의자에서 비틀거리다가 넘어지고 말았다. "앗! 언니야 괜찮아?" 뮤나가 내 곁에 와서 걱정스런 얼굴로 내 안부를 물었고, 테이는 그 남 자에게 검을 받아 들고 기뻐하다가 나를 보며... "누나 왜 그래?" 라고 물었다. 휴.... 왜 그래 라고? 왜 그러냐고 물었지? 이 바보 멍청 이가아!! "테이! 이 멍청아!!!" 결국 이번에도 참지 못하고 내 주먹은 날아갔고, 테이는 내 주먹에 맞 아서 벽을 뚫고 바깥으로 날아갔다. "꺄아악!! 테이 오빠야!!" 뮤나는 재빨리 밖으로 뛰어나갔다. 아마도 또 테이 멱살을 쥐고 흔들겠 지. 근데 왜 여자들은 테이가 기절하면 목부터 잡고 흔드는 거지? 시종 일관 미소를 유지하던 그 남자도 이번에는 얼빠진 얼굴로 나를 쳐다보 았다. "뭘 쳐다봐요?!" 내가 기분이 나빠서 소리를 빽 지르자 그 남자는 머뭇거리다가 대답했 다. "너무 난폭한 거 아니야?" "남이사!!" "그래. 그래. 남이 참견할 문제는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 남자는 내 곁에 다가왔다. 난 그 남자 손에 검이 없다는 것을 확인 하고는 - 그 빌어먹을 마법검은 테이 손에 들린체 같이 날아갔다 - 마 법을 시전 할 준비를 했다. 이 기분 나쁜 남자. 이번에는 반드시 매운 맛을 보여주겠어!! - 아니 아이스 미사일이니 차가운 맛인가? - 그런데 그 남자가 바로 내 곁에 다가올 때 이상한 기분이 느껴졌다. 가슴을 방망이로 두들겨 맞는 듯한 느낌이었다. 사정없이 울리는 내 드 래곤 하트를 진정시키려고 노력할 때 그 남자는 내 귀에 대고 속삭였 다. "자꾸 그러다가는 정말 미움 받을지도 몰라." "......!" 이 남자... 도대체 뭐야? 정체가 뭐야? 마치 다 안다는 듯한 저 말뜻은 뭐고.... 저 표정은 또 뭐냔 말이야?! 그 남자의 검은 눈동자가 마치 나를 빨아들이는 듯한 기분이었다. 난 필사적으로 이상한 기분을 억제 하며 소리쳤다. "다.. 당신 따위가 참견할 일이 아니야!!" 그리고 나는 손바닥으로 그 남자의 뺨을 후려갈기고.... 싶었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마치 내 몸이 아닌 것처럼.... "티아 양이라고 했지?" "내 이름 함부로 부르지 마!! 그리고 양이라는 호칭 붙이지마!!" 그러나 그 남자는 내 말을 철저하게 무시하고는 계속 티아 양이라는 기 분 나쁜 호칭으로 불렀다. "티아 양. 잘 들어. 너무 숨기는 것보다는 본래 마음을 전하는 것이 훨 씬 나을 거야." "무..무슨 뜻으로... 하는 말이야? 함부로... 지레짐작하지마!!" "지레짐작이 아닐텐데.... 너는...." 그 남자의 입에서 내 본심이 나올 것 같아 두려웠다. 더구나 테이가 비 틀거리면서 집안으로 들어오고 있는 중이었다. 절대 테이가 들어서는 안될 말을 그 남자가 해 버릴 것 같았다. "제발 하지마. 제발 말하지마!!" "너는!!" "안 돼!!" "나한테 반한 거지?" "에?" 난 순간 내가 뭔가 잘 못 들었나 싶은 기분에 그 남자를 쳐다봤다. 그 남자는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 같은 산뜻한 미소를 - 나한테는 정말 기 분 나쁜 미소다 - 지으며 얼빠진 나에게 말했다. "내가 여자한테 인기가 좀 많아서 잘 알고 있지. 나와 같이 여행한다고 생각하니 부끄러워서 그런 거지? 하지만 부끄럽다고 그렇게 난폭하게 행동할 것까지야 없잖아. 나도 너를 처음 본 순간 가슴속에 필이 왔거 든. 그러니 우리 함께 즐거운 여행을...." 내가 미쳤다고 저런 소리를 계속 듣고 있어야 되나? "헛소리하지마!!" 참지 못하고 날아간 내 주먹을 그 남자는 이번에도 아주 손쉽게 피했 다. 그리고 나를 쳐다보며 뒤로 도망가며 말했다. "이봐. 이봐. 좀 솔직해 지라니깐. 사랑이란 감정은 부끄러워 할 것 하 나도 없는 감정이야." "입 닥치라고 했어!!" 난 그 남자를 쫓아가며 주먹을 휘둘렀고, 그 남자는 아주 손쉽게 내 주 먹을 피했다. 어느새 집밖으로 나온 나는 이리저리 피하는 남자를 맞추 려고 노력하다가 남자가 내 뒤로 돌아가자 돌려차기를 먹였다. 그러나 이 공격도 남자가 덤블링으로 피해 버렸다. 그런데.... "여어! 분홍색 속옷이네. 고급 속옷이잖아!" "꺄아아아악!!" 내가 허벅지가 트인 치마를 입고 있다는 사실을 깜박했던 것이다. 난 비명을 지르면서 치마를 붙잡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고, 그 남자는 휘파 람을 부르며 말했다. "휘유. 이거 아주 좋은 구경했어. 그리고 티아 양 비명 소리가 너무 귀 여워. 갈수록 마음에 드는걸." "난...." 난 이를 갈면서 이판사판이라는 생각에 손을 들었다. "난 당신 같은 남자 딱 질색이야!!! 만물을 태우고 재창조하는 피닉스 의 날개와 같은 불꽃의 힘이여!!" 나는 불의 최상급 마법인 프레아로 그 남자를 완전히 소멸시킬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내 정체를 들키기 싫었는지 이따위( ?) 마법 쓰는데 주문 영창을 할 필요도 없었는데도 난 주문 영창에 들 어갔다. 어차피 죽이려고 생각했었던 나로서는 모순된 행동이었다. "누나 제발 참아!!" 테이의 비명에 가까운 외침이 들렸지만 난 이미 눈에 보이는게 없는 상 태였기 때문에 그 외침에는 일절 신경을 끊어 버리고 주문의 완성에만 신경 썼다. "지금 나 그대를 원하여 그대의 힘을 빌리고자 하니 나의 부름에 응답 하여 내 적을 소멸시켜라! 프레아!!" 새하얀 불꽃의 구체는 이 세상 그 어떤 것이라도 소멸시킬 기세로 날아 갔다. 테이가 급히 그 남자의 마법검을 던져 주는게 보였지만 아무리 대단한 마법검이라도 내 최고의 마력이 들어간 프레아는 막지 못할 것 이다. "defense.(방어)" 그러나 내 생각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남자는 테이가 던진 검을 받아 내더니 아까의 알아 듣지 못할 말을 중얼거렸고, 그 남자의 검은 다시 새하얀 빛으로 내 프레아를 막아냈다. 프레아의 폭발 충격으로 남자가 뒤로 밀리기는 했지만 어쨌든 내 마법은 또 그 검에 막힌 것이다. "티아 양 이제 그만 하자. 부부 싸움이라면 나중에라도 얼마든지 해 줄 게." "우...." 난 이제는 분노보다는 울분이 느껴졌다. 결국 내가 선택한 것은.... "우와아앙!!" 울면서 그 자리에서 도망치는 일 뿐이었다. 처음이었다. 이 내가 아무 것도 못하고 이렇게 일방적으로 당했던 것은.... 그리고 두 번째였다. 남자 때문에 눈물을 흘린 것은.... '두고봐!! 반드시 본체 모습으로 밟아 줄 꺼야!! 절대 용서 못해!! 절 대!!' 누나가 울면서 도망치고 난 뒤 시이터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미안 하다는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미안. 장난이 심했나 봐. 너의 누나는 생각보다 마음이 여리구 나." "저기요." "응?" "방금 그 누나 내 친누나 맞죠?" ".......그걸 왜 나한테 묻냐?" '그럼 난 누구한테 물어야 되는 거야? 500년 간 누나가 저렇게 울 면서 도망치는 것은 처음 본 나는 누구한테 물어야 되는 거냐고?! !' 내가 마음속으로 이 믿어지지 않는 사태에 대해서 비명을 지르고 있을 때 시이터는 부서진 제니아의 집 벽을 살피면서 말했다. "이거 꽤 튼튼한 통나무로 만든 것 같은데.... 너 지금까지 누나 랑 싸우면 이런 식으로 당했냐?" "싸우는 게 아니라 일방적으로 맞고 살았는데요." 내가 생각해도 한심한 답변이지만 솔직히 말했다. 내 말을 듣고 시이터는 잠시 나를 말 없이 쳐다보다가 한마디했다. "너 맷집은 엄청나게 길렀겠구나." "전혀 기쁘지 않아요." "흠. 그래? 아무튼 별로 중요한 문제는 아니니 절로 젖히고..." 뭐가 안 중요한 문제야?!! 안 당해 봤으니 그런 말을 쉽게 하겠지 만 나처럼 매일 생과 사의 갈림길을 경험해 봐!! 라고 소리지르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시이터는 부서진 벽을 꼼꼼하게 살펴보고는 아까부터 우리 사이에 서 안절부절못하는 제니아에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부인. 부서진 벽은 오늘 내로 고쳐 드리겠습니다." "아니요. 그렇게 하실 필요는 없어요. 어차피 내일이라도 피난민 들에 합류해야 되기 때문에... 이 집을 더 쓸 일은 없거든요." "하지만 전쟁이 끝나고 돌아오실 거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말을 잇지를 못하는 제니아를 보면서 시이터는 예의 그 거부할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돌아올 곳이 없으면 슬픈 겁니다. 그리고 돌아올 집이 있어도 그 집이 부서져 있으면 그것 역시 슬픈 일이고요. 걱정 놓으세요. 언 제 돌아와도 튼튼하게 남아 있게 확실하게 고쳐 놓겠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제니아가 고개를 숙이자 시이터는 기겁을 하면서 손을 흔들었다. "고개 드세요. 감사는 제가 해야 되는걸요. 굶어 죽을 뻔한 저를 살려 주었잖아요." 저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시이터라는 남자가 그렇게 나쁜 인간처 럼 보이지가 않았다. 근데 왜 누나는 그렇게도 저 남자를 못 잡아 먹어서 안달이었지? 하긴 시이터가 누나를 좀 놀리긴 했지만 평소 의 누나라면 주먹보다는 말로써 상대방을 깔아뭉갰을 텐데... 누나가 말과 폭력을 동시에 사용하는 것은 나뿐이었으니 시이터에 게 보여준 누나의 행동은 이해 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어라? 누나가 나한테 말과 폭력을 사용하는 것을 어느새....'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당연해야 할 일이 따로 있지.... 이런 일을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니... '왠지 슬프다.' 갑자기 서러운 기분이 들어서 마당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서 눈물 로 쥐를 그리고 있을 때 누군가가 내 뒷덜미를 잡아끌었다. "어? 누구? 시이터 씨?" "자자 테이군. 날이 저물기 전에 식량이랑 집을 보수할 물품을 사 와야지. 같이 가자고." "예? 아니... 하지만...." 평소 같은 모습이 아닌 누나의 울면서 도망가던 모습이 자꾸 마음 에 걸려서 이 남자랑 같이 물건을 사러 가는 것이 마음에 좀 걸렸 다. 그래서 내가 주저하자 시이터가 뭔가 생각났다는 듯이 손을 탁 쳤다. "아차 마법검 빌려주기로 했었지. 자 여기. 아까는 정말 나이스 타이밍으로 던져 줘서 고마워." "형님! 고마워요!!" 난 마법검을 받아 들고 너무 기뻐서 입이 찢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 정도로 히죽 웃었다. "자 그럼 마을에 물건 사러 출발이다!" "예!!" 힘차게 대답은 했는데 바로 그 다음 순간 난 이 남자의 수법에 말 려들었다는 생각이 났다. 하지만 너무 늦게 알아차린 것이다. 절 반은 시이터에게 끌려가듯이 난 마을로 내려가게 됐고, 덕분에 티 아 누나에 대한 생각은 잠시 접어 두어야 했다. 그리고 마을에 있는 상점에서 물건을 사다가 물건값의 실랑이가 붙어서 이렇게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1골드 90센! 그 이하는 안 돼!" "1골드 50센!! 저도 그 이상은 못 드립니다!!" "젠장!! 1골드 89센!!" "1골드 55센 드리죠!! 더 올릴 생각 마세요!!!" 한숨을 있는 대로 푹푹 쉬면서 난 끝날 것 같지 않은 시이터와 가 게 주인의 물건값 경쟁을 보면서 누나를 생각했다. 그렇게 약하게 울면서 도망가는 모습은 난생 처음 봤다. 아니 가짜 울음은 많이 봤지만 진짜로 우는 것을 본 건 세 번째 군. 첫 번째는 내가 가출 했다가 날 구해주고 울었던 때와 두 번째는 카렌이 떠나고 난 뒤.... 날 안고 울어 줬던 너무나 약해 보였던 누나의 모습.... 이번에도 그런 약한 누나의 모습을 본 것이다. 그런 누나를 보고 느낀 것은 아무리 성격이 괴팍하고 입이 험해도.... 누나도 역시 여자란 것을 느꼈는데..... 카렌? 흑.... 또 생각 나 버렸다. 난 가게 창문을 열고 입을 모아 소리쳤다. "카렌!! 내가 미안해!!! 다 내 잘못이야!! 제발 돌아와 줘!! 카렌 !!" "......." "......." 내 그리움이 가득 담긴 외침에 시이터와 가게 주인이 날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지만 그것에 신경 쓸 생각은 없었다. 그저 난 충실하 게(?) 카렌을 부르면서 우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 "어머머!! 저 사람들 혹시 도망간 연인을 찾는 중일까?" "아니야! 혹시 저 검은머리 남자가 은발의 소년에게 사랑을 느껴 서 소년의 연인을 억지로 쫓아 낸 건 아닐까?" "설마... 그렇게 악독한 사람처럼은 안 보이는데." "사람은 겉모습보고는 모르는 거야." "그것보다는 소년이 저 남자와 사랑에 빠져서 여자를 차 버리고 도망쳤다가 후회를 하는 게 틀림없을 거야." "내 생각에는 소년이 남자와 자주 어울리는 것을 보고 소년의 연 인이 착각을 하고 떠난 게 아닐까? 그래서 저 남자가 책임을 느끼 고 소년의 연인을 찾아 주려고 같이 여행을 하는 거고...." "아 그게 제일 낫다. 그러다가 저 둘은 사랑에 빠지게 될지도... 그러다가 결국에는...." "꺄악! 난 몰라!!" 차라리 야오이 소설을 한편 써라!! 난 절대로 정상적인 남자란 말 이다아!!! 지금도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하는 순수하고 착한 남자 란 말이야!! 라는 소리는 차마 할 수가 없어서 속으로 이를 갈면서도 입으로는 카렌의 이름을 부르면 울먹였다. 덕분에 가게는 나의 흐느끼는 소 리와 여자들의 제잘 되는 소리로 굉장히 시끄러워 졌다. 가게가 시끄러워 졌어도 주인과 시이터의 대화는 똑똑히 들렸다. 시이터 의 목소리는 승리감에 들떠 있었다. "1골드 60센에 해주시면 저 애 데리고 얼른 나갈게요. 어때요?" "......크윽 1골드.... 65센... 그 이하는 절대 안 돼." "좋아요. 그 가격에 하죠." 내 순애보가 겨우 물건 깎는 용도밖에 안되나? 내가 시이터를 노 려보자 시이터는 횡재했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응? 뭐가?" 짐짓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말투에 난 발끈해서 소리쳤다. "너무하잖아요. 남의 아픈 추억을 겨우 물건값 깎는 용도밖에 사 용 못해요." "테이군." "예?" 늘 실실 웃고 있던 시이터의 얼굴에 갑자기 무게감이 실렸다. 그 근엄한 모습에 조금 쫄아서 내가 당황하자 시이터는 내 어깨에 손 을 올리고 힘을 주며 근엄하게 말했다. "이 세상에는 말이야. 이용해 먹을 수 있는 것은 전부다 이용해야 돼. 그게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야." "...... 하아.....그딴 말도 안 되는 논리를 진지한 얼굴로 말하 지 마요!!" "말도 안되다니 그렇게 살아야 세상을 편히 살지. 자 그럼 다음 가게로 가자!! 다음에는 식량을 사러 가야지!" "저기요!! 시이터 씨!!" 시이터는 내 말을 더 들을 필요 없다는 듯이 나를 끌고 막무가내 로 끌고 식품 가게로 갔다. 우리가 - 정확히는 시이터 혼자 - 거 덜 낸 제니아 집의 식량을 넉넉히 산 다음 여행에 필요한 비상 식 량을 꼼꼼하게 샀다. 그거까지는 좋았는데.... "잠깐만요!! 9골드 30센이라니 이건 비싸도 너무 비싸잖아요!!!" "손님 어쩔 수 없습니다. 전쟁 중이기 때문에 물건값이 안 오를 수가 없어요. 그것도 싸게 파는 겁니다." "전쟁 감안한다 하더라도 3배 가격이라니 지금 장난하는 겁니까? 내가 보기에는 6골드면 되겠는데!!" "그렇게 팔면 저희도 남는 게 없어요!!" 그렇게 또 다시 물건 값 깎기 경쟁이 시작 됐다. 난 가게 의자에 걸터앉아서 깎자, 안된 다의 공방전을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이거 물건 다 살려면 오늘 밤 새도 모자라겠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물건을 다 사고 제니아 집에 돌아왔을 때는 저녁이 다 되어서였다. 시이터는 근처 숲에서 단단한 나무를 그 마법검으로 잘라서 통나무로 만들고, 아까 가게에서 산 나무못 등 을 이용해서 부서진 집 벽을 정말 깔끔하고 단단하게 고쳐 놨다. "밥 먹어." 시이터 옆에서 부서진 벽을 수리하던 나는 누나의 힘없는 소리에 그 쪽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누나는 이미 그 말만하고 집안으로 들어가고 난 뒤였다. 우리가 돌아 왔을 때는 누나도 이미 돌아오고 난 뒤였다. 누나는 방에 틀어박혀서 묵묵히 짐을 싸고 있던 중이었고, 분위기가 절대 말 걸지 말아야 될 분위기였다. 결국 식탁에서도 그 우중충한 분위기..... "와!!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그래서 이 오빠는 검을 빼 들고 죽기 살기로 휘두르며 몬스터들 의 포위망을 뚫으려고 했어. 그런데 이 검이 너무나 좋은 마법검 이라서 그런지 고렘들이 모래성 부서지듯 부서지는 거야." ......정정하겠다. 우중충한 분위기는 누나가 내고 있었고, 나는 그 분위기에 압도 돼서 얌전히 밥만 먹었다. 그리고 뮤나는 자칭 멋쟁이(?) 여행자 시이터의 모험담을 들으며 눈을 빛내고 있었다. "뮤나야 너도 어서 밥을 먹어야지. 그러다가 밥 다 식는다." "에? 하지만....." 시이터의 모험담이 재미있었는지 - 실은 나도 시이터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 뮤나는 아쉬운 얼굴을 했다. 하지만 밥 다 먹 으면 또 다른 모험 이야기도 해주겠다고 시이터가 약속을 하자 그 제야 밥을 먹기 시작했다. "잘 먹었어요." - 시이터가 있어서 우리들은 제니아에게 존댓말을 썼다. - 얼마 먹지도 않던 것 같던 누나는 결국 음식을 남기고 방으로 들 어갔다. '그렇게 충격이 컸나?' "저기 나도 잘 먹었어요." 나도 급히 일어나서 방으로 들어가 보았다. 누나는 어느새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 있었다. 바닥에는 내 침낭이 깔려 있었는데 원래 뮤나 방이었던 이 방은 뮤나의 작은 침대에 둘이 자기도 좁고 전 에 내 약속 때문에 난 바닥에서 침낭을 깔고 잤었다. 하지만 중요 한 것은 그게 아니고 평소에는 내가 알아서 침낭을 깔고 잤는데 오늘은 누나가 침낭을 깔아 줬던 것이다. '도대체 얼마나 충격을 받았기에 이렇게 드래곤이 달라지는 거야 ?' "저기.... 누나.... 자?" "......." 분명히 자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무서운 느낌까지 드는 침 묵에 난 더 물어 보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서 있다가..... 별수 없 이 침낭 속으로 들어갔다. 문 밖에서는 시이터의 말소리와 간간이 뮤나의 탄성과 웃음소리가 들렸다. 문 하나를 놓고 이렇게 분위기가 다른 공간이 생길 수 있 을까? 덕분에 잠도 오질 않아 가만히 누워 있기도 뭐해서 슬쩍 밤 인사를 해봤다. "잘 자. 누나." "......너도 잘 자." 차라리 침묵하게 놔둘걸.... 너무나 힘없는 누나의 목소리에 괜스 레 나까지 기분이 가라앉는 것 같았다. ".......저기 누나. 잠이 안 오면 같이 잘래? 누나가 언젠가 나를 안고 자면 잠이 잘 온다고 했었잖아." 내가 생각해도 '너 미쳤냐? 그렇게 죽고 싶었냐?'라는 말밖에 안 나올 제의였다. 하지만 너무나 숨막힐 것 같은 침묵과 평소와 다 른 누나의 모습이 견딜 수 없어서 저런 미친 - 나에게는 - 제의를 해본 것이다. 하지만...... ".......미안. 그냥 혼자 자고 싶어." "에? 아..아니야. 나야말로 이상한 말해서 미안. 그럼 이번에야말 로 정말 잘 자 누나." 그렇게 밤은 깊어 갔다. 그런데.... 잠결에 들은 누나의 흐느끼는 소리는 내 착각이었을까? 아니면....... 아까 테이의 말들은 자기 딴에 나를 걱정 해주는 것 같았다. 역시 저 녀석은 착해도 너무 착했다. 내가 그렇게 괴롭혀 된 것들은 벌써 다 잊 은 것인가? "바보. 하지만..... 고마워." 잠든 테이의 얼굴을 꾹꾹 누르면서 그렇게 말하자 테이가 웅얼웅얼 뭐 라고 그랬지만 잘 들리지가 않았다. 잠꼬대 같았는데 그렇게 잠든 모습 이 너무나 귀여워 보였다. "우웅. 성격 나쁜 마녀 누나. 음냠음냠...." "......." '내일 아침에 두고보자!' 내가 차마 잘 자고 있는 테이를 어쩌지 못하고 주먹만 쥐고 - 아마도 거기서 테이 녀석이 한마디만 더 했다면 뭔가 날렸을 것이다 - 이를 갈 때 아름다운 선율의 음악 소리가 들렸다. "뭐지? 집 밖인가?" 한번도 들어 본적이 없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속 깊은 곳에서 그리움을 자아내는 음악이었다. 조심스레 집밖으로 나가 보니 오늘은 보름달이 떠서 주위가 환했다. 뭐 어두워도 나에게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저기인가?" 음악이 들려 오는 곳은 제니아의 집 근처 큰 나무였다. 그리고 그 음악 을 연주하고 있는 것은.... '으득... 그냥 잠이나 잘걸.' 보기 싫은 남자 시이터였다. 그 남자는 풀피리로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 는데..... 솔직히 인정해서 대단했다. 겨우 풀피리로 그렇게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기분 상으로는 그냥 무시하고 들어가서 계속 자고 싶었지만 아련하게 옛 향수를 자극하는 음악 때문에 발을 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옛 향수가 무엇인지 감이 안 잡힌 다는 것이었다. 그냥 아련히 떠오 르는 희미한 추억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마음에 들었어?" "앗!!" 내가 잠시 음악에 빠져 향수에 젖어 있을 때 어느새 음악은 끝나고 그 남자가 바로 앞에 서 있었다. "뭐..뭐야?! 깜짝 놀랐잖아!!" "......여전히 반말이군." "당신 같은 남자한테 존댓말 써 줄 생각은 없어!!" "그래? 그럼 그 건은 그렇다 치고 넘어가고 내 음악 마음에 들었어?" "흥. 흥!" 난 코방귀를 뀌며 그 남자의 말을 무시했다. "긍정은 아니지만 부정도 하지 않는 걸로 봐서는 부끄러워서 인정 못하 겠다는 건가?" "함부로 단정짓지마!!" 내가 소리를 빽 지르자 그 남자는 싱글싱글 웃으며 나를 쳐다봤다. "뭘봐?!" "귀여워서." -두근 또다. 이 남자의 말 한마디가.... 이 남자의 분위기가.... 내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처음 느껴 보는 이상한 기분을 난 애써 부정하며 그 남 자의 눈을 노려보았다. 자랑은 아니지만..... 아니 그냥 자랑하겠다. 자랑을 하자면 이 나는 태어나서 이틀만에 우리 실버 일족 로드 님과 눈싸움에서 지지를 않았 고, 지금까지 숱한 눈싸움을 하면서 한번도 져 본 적이 없었다. 이번에 는 약간의 드래곤 아이도 사용했기 때문에 이 남자의 기를 완전히 꺾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눈이 참 맑구나. 티점 하나 없어." ......이 남자 진짜 정체가 뭐야? 드래곤 아이를 보고한다는 말이 눈 맑다는 말밖에 없나? 이 남자의 진짜 정체가 궁금해진 난 필사적으로 이 남자의 느낌을 알아보기 위해 남자의 눈을 노려보았다. "그런데 그렇게 애절한 눈빛을 나 이외에 다른 사람에게 했다가는 큰일 날걸. 마구 안아 주고 싶은 눈이란 말이야." 니 눈에는 이 성난 눈이 사랑 고백하는 소녀의 눈으로 보이냐?!! ".....이상한 소리하지마!! 한번만 더 이상한 소리했다가는 죽여 버리 겠어!!!" 내 성난 소리에 남자는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 결국 그 남자에게서 뭔 가 특별한 느낌은 발견하지 못했다. 평범한 인간에다가 전사라서 그런 지 마력도 거의 바닥인 것이 느껴졌다. '그럼 도대체 이 자식 정체가 뭐지?' 내가 남자의 정체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하고 있을 때 그 남자의 절대로 흘려 듣지 못할 말이 내 귀에 들렸다. "얼굴은 귀여운데 말이 험악하군. 그 말투만 고치면 내 색시 삼아 줄 수 있는데." 한계 상황이다. 내 머릿속의 이성이 끊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한 착각 을 느끼며 난 노호성을 질렀다. 내 부름에 내 주위에 아이스 미사일 다 연발이 시전 됐고, 그 남자를 노려보며 말했다. "분명히 말해 두겠는데.... 그 이상 지껄이면 내일 태양을 못 불 줄 알 아!!" "그래? 아쉬운걸. 내일의 태양은 너와 같이 보고 싶었는데 말이야. 그 래 이왕이면 침대에서 같이!" "죽어!!" 결국에는 참지 못하고 내 아이스 미사일이 그 남자를 노리고 날아갔다. "recall.(소환)" 그 남자가 손을 앞으로 내밀며 소리치자 분명 테이가 갖고 있을 그 남 자의 마법검이 남자의 앞에 나타났다. 그 검을 보는 순간 난 끝났다는 생각을 해 버렸다. "defense.(방어)" 역시나 그 검은 내 마법을 간단하게 막아냈다. 스피드로는 상대가 안되 고 마법은 막혔다. 정말 태어나서 이렇게 절망감을 느껴 보기는 처음이 었다. "소용없는 짓 말아. 이 검은 설령 드래곤이라 할지라도 절대 마법으로 어찌할 수 있는 검이 아니야." "......어떻게... 어떻게 저런 검 따위가...." "고대 문명을 우습게 보면 안 되는 거야. 그것보다 생각해 보니 너에게 아직 받질 않았군." 지나가는 어투로 말해서 말뜻을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방금 그 남자가 굉장히 위험한 발언을 했다는 것은 알 것 같았다. "무...무슨 소리야?" "몰라서 물어?" 그 남자가 나에게 한 발짝 다가왔다. 난 본능적인 위험을 느껴서 한 걸 음 물러섰다. "내 멋있고 아름다운 연주를 들었잖아. 내 연주료는 비싸." 능글 100%의 웃음을 지으며 다가오는 그 남자에게 난 주먹을 날렸다. 하지만.... 역시나 이것도 그 남자는 가볍게 피해 버렸다. "힘만 좋다고 다 장땡은 아니야. 너 공격은 너무나 알아보기 쉬운 직설 적이야. 그런 공격은 공격 방향만 알면 무용지물이지." "시끄러워!!" 뒤로 물러서는 남자에게 난 발차기를 먹였다....가 아니라 먹이고 싶었 다. 하지만 그 남자는 이번 공격도 예상했는지 뒤로 물러서자마자 바로 허리를 숙여서 내 공격을 피했다. "오! 어느새 속옷 갈아입은 거야? 하얀색이네." "보려면 실컷 봐!! 대신 구경 값은 너 목숨이야!!" "그래? 그거 고마운데.... 가 아니라 귀찮게 됐군." 독이 오를 대로 오른 나는 이번에는 그 남자의 도발에 넘어가지 않고 공격에 집중했다. 그 남자는 여전히 내 공격을 여유 있게 피하는 상태 에서 나에게 말을 했다. "쓸데없는 힘을 너무 많이 쓰고 있어. 그러니 아까도 금방 지치는 거 야. 가끔은 공격을 멈추고 숨을 고르며 적의 의중을 살펴보는 것도 중 요한 거야." "시끄럽다고 했지!! 당신 따위한테 충고 듣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어!!" 난 주먹질과 발길질을 멈추지 않으면서 남자에게 쉴 틈을 주지 않을 생 각이었다. 약간이라도 빈틈이 보이는 순간 중력 주문 베이트를 날리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아차!!" 돌부리에라도 걸린 건지 남자의 몸이 순간 휘청댔다. "지금이다!! 중력 주문 베이트!!" 쓰러지는 남자를 향해서 베이트를 날렸다고 생각한 순간 눈앞에서 그 남자가 사라졌다. "역시 생각 대로군." "꺄악!" 그 남자는 어느새 내 뒤로 돌아가 있었고, 나를 뒤에서 덮쳐 안은 체 내 목에 검을 들이대고 있었다. "뭔가 노리는 게 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중력 주문일 줄은 몰랐어. " 그 남자의 말 따위는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 내 신경은 언제라 도 내 목을 벨 수 있는 남자의 검에 가 있었다. 내 떨림을 눈치 챘는지 남자는 혀를 차며 말했다. "떨거 없어. 죽이려고 칼 들이댄 건 아니야. 단지 이야기를 하고 싶었 을 뿐이야." "이야기 할거면 이 칼 치우고 얘기해!!" "싫어. 놔주면 또 덤비려고? 그냥 이대로 들어." 남자의 윽박지름에 난 찍소리도 못하고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가 아 니고 솔직히 말하면 귀에 속삭이는 그 남자의 숨결에 나도 모르게 힘이 쭉 빠지는 기분이었다. 가슴속의 드래곤 하트는 사정없이 요동쳐서 그 소리를 남자가 들을 것 같아서 두려웠다. 내가 얌전(?)해지자 그 남자는 말을 시작했다. 그것까지는 좋은데 제발 귀에다 대고 말하지 말란 말이야아!!! "일단 낮에 울린 거 사과할게. 그냥 앞으로 같이 여행하게 될 동료끼리 친하게 지내자는 의미로 농담 좀 했는데 그게 그렇게 너에게 충격적이 었는지는 몰랐어. 정말 미안해." "......." 내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남자는 '에구 역시 화가 단단히 낫나 보 네' 라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 남자는 하나 모르고 있 었다. 내가 대답을 하지 않은 것은 아직 화가 났다는 것 이외에도 그 남자의 속삭임에 몸이 떨려서 말소리까지 떨리게 나올 것 같아서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이봐 티아 양. 같이 여행할 건데 계속 이렇게 티격태격하면서 지낼 수 는 없잖아. 앞으로 나도 입조심 할 테니 제발 화 좀 풀어." "티......." "응?" "티아 양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잖아." 난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목소리가 떨려 나오는 것을 도저히 억제 할 수 없었다. 테이 이외의 남자에게 느끼는 이 이상 한 감정 때문에 난 내 자신을 용서 할 수가 없었다. 이대로 계속 있다 가는 내가 어떻게 될 것 같았다. "제발 놔줘. 부탁이야. 제발......" 결국 나는.... "제발 놔...주세요. 부탁이에요. 제발....흑." 울면서.... 거기에다가 그 남자에게는 절대 쓰기 싫은 존댓말까지 하면 서 애원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악!! 잠깐 왜 우는 거야? 이 검 때문에 그래? 아무 짓도 안 한다고 했잖아!! 이건 그냥 위협용으로.... 아 위협이 아무 짓도 아닌 것이 아 니지. 미안." 그 남자가 검을 치우는 게 느껴지자 난 있는 힘껏 남자를 밀어 제치고 집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우리 남매가 자고 있는 방까지 무슨 정신으로 왔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난 침대에 엎드려서 울 고 있었다. '뭐야? 왜 이러는 거야? 내가 왜 저런 인간에게 가슴이 두근거리는 거 야? 도대체 왜? 왜?!' 내 자신에게 환멸을 느끼고 있을 때 테이의 잠꼬대가 들렸다. 아무것도 아닌 잠꼬대에 난 가슴이 철렁했다. 보통 때라면 '바보 테이'라고 할 잠꼬대.... "우웅. 카렌.... 가지마.... 카렌." "흑....으흑..... 미안해. 미안 테이야. 그리고.... 카렌에게도 미안 해. 정말 미안해. 으흑... 흑. 난... 난 이제 뭐가 뭔지 모르겠어. 난. ...흑." 테이가 깨지 않도록 입을 막고 난 계속 울었다. 아무리 울어도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새벽이 올 때까지.... "이런 또 울려 버렸네." 티아의 무시무시한 힘에 날아간 시이터는 나무에 대게 부딪치고는 쓰러 진 상태였다. 그 상태에서 시이터는 눈을 가리고 집으로 달려가는 티아 를 똑똑히 보았다. "하아.... 정말이지 울릴 생각은 없었는데.... 내가 너무 심했나? 이거 슈아한테 야단 맞겠는걸.... 어떡한다.... 아! 골치 아파..... 역시 에 바론한테 맡길걸." 뜻 모를 말을 혼자 중얼거리며 시이터는 누운 자세로 하늘을 쳐다보았 다. 수만 개의 별들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이 똑똑하게 그리고 매우 가깝게 보였다. "역시나 아름다워. 이 대륙은.... 이 세계는.... 너무나 아름다워." 별로 춥지도 않은 날이라 시이터는 이대로 별을 보면서 잘 생각을 했 다.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시이터는 나직하게 말했다. "이런 날씨 좋은 밤에는 별은 밤하늘의 꽃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그렇 지?" 옆에는 분명 아무도 없는데 시이터는 마치 누군가 옆에 있는 듯한 말을 했다. 그런데 그 말에 대답해 주는 존재가 있었다. -우웅 시이터의 마법검이 마치 시이터의 말에 대답해 주듯이 검신이 부르르 떨면서 작게 웅웅 소리를 냈다. "아 그래. 테이군을 어떻게 생각해?" -우웅웅 "역시나.... 너도 마음에 들었구나. 나도 마음에 들었어. 그리고 티아 양은..... 아니 관두자. 잘 자." 마치 친구에게 이야기하듯이 검에게 이야기를 한 시이터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시이터의 잘 자라는 인사에 검은 '안녕히 주무세요'라는 듯이 몇 번 우웅거리고는 조용해졌다. 21화 다시만난 카렌 ..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난 우리는 즉시 여행 준비를.... 할 것도 없었 다. 누나가 어제 미리 짐을 다 꾸려 났기 때문에 그곳에 식량만 넣으니 준비 끝이었다. 제니아와 뮤나는 이 삼일 후에 마을 사람들과 같이 피난길에 오른다고 했기 때문에 이제는 정말 작별이었다. "힝. 이잉. 오빠야! 언니야! 가지마아! 에엥!!" 우리가 떠난다는 말에 뮤나는 아침부터 훌쩍이고 있었다. 그런 뮤나를 달래느라 나도 제니아도 혼이 빠질 지경이었다. 누나도 좀 도와주었으 면 했는데 어제 그 일이 아직도 충격이었는지 아침부터 내내 시무룩해 하고 있었기 때문에 도움이 되지를 않았다. 도대체 겨우 인간에게 놀림 좀 당했다고 그렇게 풀 죽을 건 또 뭐람? 정 수틀리면 그냥 밟아 버리 면 될텐데... '헉! 내가 언제부터 이런 사악한 생각을?!!' 젠장 이것도 전부 다 누나의 성격에 전염(?) 되고 있기 때문이겠지? 더 이상 물들지 않도록 조심해야지.... 우리는 산을 넘어 원래 우리의 목적지였던 로즈렌 마을에 들려서 정보 를 얻을 생각이었다. 로즈렌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이미 피난길에 올랐 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뭔가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고, 딱히 목적지도 없는 우리는 어떻게든 가야 될 길을 정하기 위해서라도 로즈렌 마을은 필수로 들려야 됐다. 우리가 간다는 소리에 팔씨름 촌장과 그 아들 세티드가 마중 나와 주었 다. 그 이외에도 그 날 소동에 왔었던 몇몇 마을 사람들과 물건을 사기 위해 가게에 들렸다가 만난 여자들도 와 있었다. 그 예의 이상한 눈빛 을 하면서..... "정말 고마웠습니다." 촌장은 나와 누나의 손을 잡으며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 다. 윌리는 실컷 얻어맞고 마을에서 추방되었다. 생각 같아서는 그냥 콱 죽여 버렸으면 속이 시원하겠는데.... 그래도 한때 같은 마을 사람 이었다고 촌장이 추방으로 봐준 것 같았다. "저희들이 하고 싶어서 한 일입니다. 그리고 이제 슬슬 출발해야 될 것 같네요. 안녕히 계세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촌장에게 빨리 손 놔! 라는 메시지를 담아서 눈길 을 팍팍 주었다. 그러나 그 눈길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우 리들을 보내기 싫었는지 촌장은 끊임없이 고맙다는 말을 하며 같이 가 자는 메시지를 팍팍 담은 눈길을 내게 보내고 있었다. 난 도움을 요청하는 눈으로 누나를 바라봤지만 누나는 어제의 충격 때 문인지 아침부터 내내 시무룩해 있었기 때문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결국 항상 누나가 처리하던 일을 내가 처리해야만 했다. "이제 정말 떠나야 됩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만나서 다행이었습니다." 드래곤 피곤하게 여러 가지로 귀찮게 했었지만 예의 삼아 그렇게 말해 주고, 한마디 덧붙였다. "그리고 앞으로는 너무 한쪽의 말만 듣고 판단하시지 말았으면 합니다. 그래도 촌장이시니 공정한 면이 있어야 되지 않을까요?" 은연중에 뮤나와 제니아의 일을 들먹이자 촌장은 얼굴이 뻘게지면서 머 리를 긁적였다. 덕분에 내 손은 겨우 촌장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었 다. "앞으로는 주의하겠습니다. 저도 이번 일로 반성을 많이 했어요." "그럼 됐죠. 같은 실수를 다시 반복하지 않으면 되요. 그럼 저희들은 이만 가보겠습니다." "힝....오빠 정말 갈꺼야?" ......겨우 촌장의 손에서 벗어났나 했더니 이번에는 뮤나가 우리를 잡 았다. 난 그 자리에 앉아서 뮤나와 눈높이를 맞추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말했다. "미안. 오빠랑 오빠 누나는 꼭 해야 될 일이 있거든. 그래서 가 봐야 돼." "오빠. 꼭 다시 와야 돼. 나 오빠 기다리고 있을게." '이거 무슨 뜻으로 받아 들여야 되지?' "여어. 테이군 인기 좋은걸. 이런 미인이 될지도 모를 아이를 낚다니(?) 솜씨가 좋아." 낚다니? 저 인간 눈에는 뮤나가 물고기로 보이나? "시이터 씨. 이상한 말은 하지 말아 주세요." "뭐. 10년만 지나면 귀여운 신부가 될지도 모를텐데 이상할 건 없잖아. " "시이터 씨....." "하지만 경쟁자가 있으니 힘들겠어. 뭐 구경하는 입장에서는 재미있지만." "에?" 시이터의 말은 내가 아까부터 신경 쓰이는 따끔한 시선을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았다. 그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은 촌장의 아들 세티드였다.아이들의 골목 대장이라 이번 뮤나 괴롭히기에 한몫 했던 녀석이지만 사태가 해결되고 난 뒤 그 날 저녁에 아이들을 끌고 와서 뮤나에게 사과하고는 자신을 기분이 풀릴 때까지 실컷 때리라고 했었다. 그때 뮤나는 때리는 대신에 다시 자신과 친구가 되면 용서해 주겠다고 했었는데 그 말대로 세티드는 솔선해서 뮤나에게 잘 대해 주었다. 그런 세티드가 날 노려보는 것을 느끼고 난 곤란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다가 세티드에게 물었다. "너 내가 없는 동안 뮤나를 잘 지켜 줄 수 있니?" "흥! 아저씨가 다시 와도 뮤나가 아저씨를 잊어 먹을 정도로 잘해 줄거예요." 맹랑하고 조숙한 놈이네. 하긴 그러니 아이들 사이에서 골목대장이 될 수 있겠지. 그런데 아저씨? 난 얼굴로는 웃었지만 머릿속에 치솟는 혈관은 어찌하지 못한 체 - 누나의 특기(?)인데 나도 어느새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 세티드를 쳐다보며 말했다. "글세 너 같은 꼬맹이가 과연 뮤나를 지켜 줄 수 있을까?" 조용히 넘어가려고 했는데 저쪽에서 싸움을 걸어 왔으니 그냥 피할 수가 없다는 생각에 마주 응수해 줬다. 지금 생각 해보면 애들 상대로 좀 심했던 것 같다. 그냥 한 귀로 흘려 듣고 말걸.... "지켜 줄 수 있어요! 아저씨가 사용하는거 나도 사용할 수 있다고요." "내가 사용하는거? 검술??" "이거요! 나와 실프!" "에에엑?!!" 난 괴상한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그 녀석이 볼러 낸 것은 분명히 바람의 정령 실. 프. 였다. "어..어떻게 정령 어도 모르는데 실프를 불러낼 수 있는 거지?" 나는 누나를 쳐다보며 물었고, 아직 시무룩해 있는 누나지만 세티드가 쓴 정령을 보고는 흥미를 나타내며 세티드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뭐? 뭐 하는 거예요? 놔요!! 나한테는 뮤나가 있단 말이에요!!" 정말 조숙한 녀석이군. "조용히 안 하면 죽는다." 누나가 무표정하게 말하자 평소에는 농담으로 들려야 될 말이 지금은 진심같이 들렸다. 하하하.... 설마 정말 애들 상대로 진심은 아니겠지? 아무튼 덕분에 세티드는 조용해졌고, 잠시 세티드에게서 뭔가 느끼던 누나는 손을 떼고 말했다. "역시. 이 애 정령사로서 소질이 있어. 친화력이 장난이 아닌걸." "누나 정령 어도 모르는데 정령을 그냥 불러낼 수 있을 정도의 친화력 은 엘프들 사이에서도 드물잖아." "그래. 천 분의 일 확률이라던가?" 그럼 세티드 저 녀석은 만...아니 십만 분의 일 확률의 정령사란 말인 가? 우리 대화를 가만히 듣던 세티드는 무슨 뜻인지는 자세하게 모르지 만 은연중에 자기가 대단하다는 사실은 알아들은 건지. 의기양양해서 말했다. "어때요. 이만하면 저도 뮤나를 지켜 줄 수 있죠? 나도 말이에요. 한다 면....어? 어? 어?!! 뭐..뭐 하는 거예요?! 이거 놔줘요!!" 누나는 세티드를 달랑 들어서 촌장에게 건네주면서 - 물건인가? - 말했 다. "이 녀석은 전쟁이 끝나면 반드시 정령사에게 보내서 교육을 받게 하세 요. 이 애 재능을 이대로 썩히는 건 정말 아까운 짓이에요." "예? 예!!" 자신의 아빠인 촌장 품에 안겨서 남자 체면 어쩌고 하는 세티드에게 누 나는 미소를 지으며 - 근데 그 미소라는 게 평소 누나의 쾌활한 미소가 아니었다 - 말했다. "정령사에게 교육을 받게 되면 열심히 해야 된다. 그래야 뮤나를 지켜 줄 수 있는 멋진 남자가 되지." "흐흥. 말 안 해도 그렇게 할거예요. 두고봐요. 난 반드시 멋진 남자가 될 거예요." 라고 의욕에 불탄 그 녀석의 의욕을 한순간에 꺼트린 사람이 있었으니. "난 테이 오빠가 더 좋아." 바로 뮤나였다. 자신에 대해서 남자 둘이 경쟁(?)을 벌이는 것을 가만 히 쳐다보던 뮤나의 결론에 세티드는 세상 모든 절망을 안 자의 얼굴로 - 아직 8년밖에 안 산 녀석이 - 실망했고 난..... 쩝 애들 상대로 이래 서는 안 된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통쾌한 기분이 드는 건 왜 일까? 울고 있는 뮤나와 가만히 눈물을 훔치는 제니아 그리고 팔씨름 촌장이 힘있게 손을 흔들어 주었고, 세티드와 아이들과 많은 마을 사람들이 열 심히 손을 흔들며 우리를 배웅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이 마을에서 많 은 일들이 있었다. 그런 추억을 뒤로하고 우리들은 시이터라는 남자와 동행해서 레이르를 찾는 일을 하기 위해 그 마을을 떠났다. 후에 전쟁이 끝난 후 이 마을에서 역사상 가장 강한 정령사가 탄생했다 는 소리가 들렸다. 이름은 듣지 못했지만 아마도 그 건방진 꼬맹이겠지 ? 그리고 이건 별로 환영하고 싶은 생각이 없지만 이 마을에서 탄생한 여류작가의 [그대의 흑발과 나의 은발] 이라는 금단의 사랑을 이야기한 책이 불티나게 팔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중에 누나가 웃으며 나에게 그 책을 갖다 줬고, 책을 읽던 나는 그대로 얼어 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 책에 묘사된 남자 둘은 분명히 시이터 씨와 나였기 때문이다. 그렇 게 우리 남매는 그 마을에서 많은 추억을 만들었다. "으아악!!" "괴물이다!!" 깊은 산 속에서 사람들의 비명이 들렸다. 그 비명을 만들어 내는 장본 인인 은빛의 갑옷을 입은 기사는 수십 명의 병사들을 상대로 흔들림 없 는 모습으로 차근차근 병사들을 죽여 나갔다. 병사들은 처음에는 단 한 명뿐이라는 생각에 마구잡이로 덤벼들었지만 창도 검도 통하지 않는 그 남자의 갑옷과 주먹 한방에 갈비뼈를 부수고 머리를 날리는 남자의 힘 에 전의를 상실하고 이리저리 도망쳐 다니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크고 무거워 보이는 갑옷을 입은 남자는 마치 가벼운 맨 몸처럼 재빠르게 병사들을 추격하며 한 명 한 명을 확실하게 죽여 나갔 다. 그 남자를 상대로는 숨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다. 도망치다가 발견 한 큰 나무뿌리 아래와 풀숲에 숨어서 숨을 죽여도 어떻게 알았는지 반 드시 찾아내는 은빛 갑옷의 남자는 병사들에게 확실한 악마로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은빛 갑옷의 남자는 다크 나이트 제임스였다. 일반적인 의지가 없는 인형 같은 다크 나이트가 아닌 의지를 가지고 있 는 다크 나이트 제임스는 과거 죽어 가는 자신을 다크 나이트로 만들어 준 실버 드래곤 크레스문 덕분에 강력한 힘을 갖게 되었다. 거기다가 절대 불가능이라고 알려진 의지를 가진 다크 나이트가 된 덕분에 생각 을 하며 싸울 수 있었고, 크레스문이 달아 준 침입자 방비 장치 덕분에 숨어 있는 병사들도 찾아내서 확실하게 한 명씩 저 세상으로 보내 줄 수가 있었다.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공포감을 안 겨 주며..... "휴....." 이번이 두 번째였다. 첫 번째보다 좀더 많은 병사들이 왔지만 이번에도 다 막아낸 제임스는 묵묵히 시체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분명하게 말 하면 절대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오늘은 또 어떻게 막아냈다 하더라도 전쟁이 끝나면 다이러스에서 이곳으로 몬스터 토벌대를 보낼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만약에 가이라가 왕국이 이긴다면..... 아니야. 그렇게 되 면 안되지." 그렇게 되면 확실히 이 산 속의 몬스터(?)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르게 되고 다이러스를 정복한 가이라가 왕국도 손을 쓸 생각을 안 할 것이 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레이르는 자신의 조국을 잃게 된다. 제임스는 그렇게 만들기는 싫었다. 카렌과 같이 100년 간 살아온 이곳 다이러스 는 이미 제임스의 두 번째 고향이나 마찬가지인 상태였다. 그런 고향을 전쟁에 의해서 잃는 것은 절대로 싫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살육을 계속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미...궁인가?" 빠지면 절대 빠져 나오지 못하고 같은 곳만 계속 도는 미궁.... 그런 미궁이 실존한다면 제임스는 바로 그 미궁에 빠진 것이다. 후퇴도 전진 도 허락되지 않는 제자리걸음만을 강조하는 미궁.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계속 있을 수는 없어. 뭔가 방법을 생각해야 돼. 무언가...." 이리저리 고민을 하는 동안 시체 처리하기가 끝난 제임스는 한가지 결 론을 내렸다. 그 결론은.... "젠장! 역시 난 생각하는 것이랑 거리가 먼 것인가? ......카렌이랑 상 의해 봐야겠군." 이었다. 시체 처리가 끝난 제임스는 고민하는 것을 그만두고 몸을 씻기 위해 냇가로 향했다. 차가운 시냇물의 감촉을 느낄 수가 없는 제임스는 묵묵히 몸을 씻다가 침입자 경보 장치가 울리는 것을 느끼고 소스라치 게 놀랐다. 경보 장치가 울리는 곳은 집 근처였다. "이런 젠장!! ....카렌!!" 씻다 말고 제임스는 있는 힘껏 달렸다. 인간이 아니기에 숨이 찰리가 없는 제임스는 엄청난 속도로 집이 보이는 언덕까지 달려왔고, 카렌의 이름과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집 쪽으로 거의 날 듯이 달려갔다. 집 밖에는 카렌과 아이들이 나와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부르는 소리에 10살 정도 된 코모가 손을 흔들며 자신을 불렀다. "아! 아빠!! 처음 보는 사람들이 왔어요!!!" "그 자리에서 물러나!!" 제임스는 엄청난 점프로 아이들과 카렌을 뛰어 넘어서 침입자의 앞에 섰다. 놀란 카렌의 외침과 아이들의 소리가 들렸지만 그쪽에는 신경 끊 고 침입자들을 노려봤다. 하지만 매서운 눈은 곧 놀라움의 눈으로 바뀌 었다. "서... 설마... 설마!! 티아루아 님? 그리고 테이루아 님?!!" 놀라움은 곧 반가움으로 바뀌었는데..... 티아와 테이 쪽도 놀라워 하 다가 곧 반가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런 얼굴을 보인 것은 티아뿐 이었고 테이는..... "아빠라고? 그리고 엄마? 더구나 애들?!!" 계속 카렌과 제임스와 아이들을 번갈아 쳐다보던 테이는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고, 티아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한숨을 쉬었다. "에휴휴... 일 터졌다." 제니아와 뮤나와 헤어지고 난 뒤 우리는 원래 예정대로 로즈렌 마을로 출발했다. 조금 변한 게 있다면 시이터라는 남자가 따라오게 되었다는 거지만 난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뭐 솔직히 말하면 난 내내 시이터에게 빌린 이 멋진 마법검에 신경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 그러고 보니 오면서 이 마법검과 고대 문명 에 대해서 시이터에게 들었었다. 로즈렌 마을로 가는 길에 첫 번째 날 밤에 야영을 할 때였다. 몇 천 몇 만 년 전 시대의 고대인들의 마법은 지금의 마법과는 달리 주 문이나 정신력이 아닌 특별한 고대어를 말하는 것만으로 마법을 발동시 켰었다고 했다. 그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그 마법의 특징은 우리 드 래곤들이 쓰는 용언 마법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시이터는 이렇게 말했 었다. "고대인들이 썼다는 그 마법의 체계는 현재 우리가 쓰기에는 무리가 따 른다더라 그 마법의 구현에 관해 정확하게 써 있는 문서가 남아 있는 게 없다던가? 여하튼 우리가 현재 고대인들의 유적에서 제일 건질 만한 것은 세공품과 마법 무기와 방어구들 정도 뿐이야. 그 이외의 것은 발 견해도 쓸데가 없지. 아니 정확히는 어떻게 써야 되는지 모르는 물건 뿐이라는 게 더 정확하군. 내가 구한 마법검도 나중에 고대 유물에 관 해서 연구하는 사람한테 보여줬지만 이 검에 걸려 있는 고대 마법 중에 알아낸 건 단 세 가지밖에 없어. 적의 마법을 방어하는 defense(방어), 적의 마법탄류의 주문을 흡수하는 absorption(흡수), 그리고 검이 멀리 떨어져 있을 때 부를 수 있는 recall(소환) 이 세 가지 마법에 대해서 겨우 알아냈어. 하지만 이 검에는 또 다른 힘이 있을 것 같아. 지금으 로서는 알아낼 방법이 없지만..... 이번에 프론트 연합으로 가는 이유 중의 하나가 고대 문명에 대해서 좀더 정확하게 알아보기 위해서야." 프론트 연합에 고대 문명에 관해서 잘 아는 사람이 있냐는 내 질문에 시이터는 웃으면서 대답했었다. "설마 모른다는 농담은 하지 않겠지? 신에 가까운 자들이 사는 곳이 바 로 프론트 연합이잖아." "아아! 신룡 님들?!! 우리도 신룡 님들을 만나야 되는데!!" "뭐? 너희들은 왜?" "에? 아..아니 그게 저어기..." 으이그 이놈의 입이 원수다. 곧이곧대로 '우리 누나 가요 그 신룡 중에 하나인 카이저 드래곤이라서 만나 보러 가는 길이에요' 라고 말할 수도 없고..... 내가 어떻게 둘러댈 말을 찾지 못하고 쩔쩔매고 있자 시이터 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말하기 곤란하다면 묻지 않을게. 그러고 보니 너희들은 특이하구나." "뭐... 뭐가요? 어디가 특이해요?" 나 지금 말을 떨고 있니? "그렇잖아. 동생인 너는 전사같이 검을 잘 쓰고 몸이 날렵한데 정령사 이고 너 누나인 티아 양은 마법사인데 힘은 몽크 수준이니 특이하지." "그게. 난 정령보다는 검을 쓰는 게 좋아서 수련했고요. 누나의 힘은 천성적인 거라...." "그래? 하여튼 너희들이 원래 가야 될 길을 갔다면 정말 역사에 이름을 날릴 수 있는 정령사와 몽크가 됐을 텐데.... 하긴 뭐 지금도 크게 나 쁘지는 않지만...." 보통 때라면 누나에 대해서 힘 어쩌고 몽크 어쩌고 라는 말이 나오면 가만 안 있을 누나는 멀찍이 떨어져서 침낭을 뒤집어쓰고 누워 있었다. 거참 삐쳐도 단단히 삐진 것 같았다. 밤은 깊었고, 먼저 불침번을 설 테니 자두라는 시이터의 말에 나도 자리에 누워서 잠을 청했다. 물론 검은 소중하게 안고...... 그런데 불침번 교대를 한 것 같지도 않은데 아침이 왔다. 시이터는 어 제 그 자세 그대로 나무에 기대서 도둑잠을 자고 있었다. 나중에 시이 터에게 왜 안 깨웠냐고 물어 보니 우리들이 아직 어리기 때문이라고 대 답했다. 쩝 원래 우리가 나이가 더 많은데.... 뭐 솔직히 편하기 때문 에 난 그 다음날 불침번도 시이터가 대신 서 주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 다. 그렇게 로즈렌 마을에 도착한 우리들은 레이르라고 생각되는 여자를 수 소문 해보았지만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시이터도 도와주겠다고 했지 만 아직 시이터의 정확한 정체도 모르기 때문에 그 제의를 거절한 우리 남매는 술집을 돌아다니며 어떻게든 정보를 모으기 위해 노력했지만 얻 은 정보라고는 전쟁에 관계된 이야기뿐이었다. 결국 우리 남매는 소득 없이 여관으로 돌아왔다. "여어! 여기야! 여기!!" 먼저 여관을 잡고 따로 행동하기로 했던 시이터는 벌써 와서 식사를 하 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시이터 옆에 가서 앉았지만 누나는 그냥 방으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누나 어디가? 밥 안 먹어?" "입맛 없어." '내일 이 대륙이 멸망할 징조인가?' 충분한(?) 가능성이 있는 생각을 하면서 방으로 올라가는 누나를 보며 난 한번 어깨를 으쓱하고 식사를 시켰다. 내 식사가 나올 때쯤 시이터 는 식사를 다 끝내고 간단한 빵과 음료수 그리고 과일 몇 개를 더 시켰 다. "후식인가요?" 내가 막 빵을 뜯으며 묻자 시이터는 피식 웃으며 나온 빵과 과일을 바 구니에 담으며 내게 말했다. "이거 있다가 티아 양에게 갖다 줘라. 내가 샀다는 말은 말고 네가 가 져간 걸로 치고...." "에? 왜요? 누나는 입맛 없다고 했는데요." "넌 그 말을 믿냐? 나랑 밥 먹기가 싫어서 그렇게 말한 거야." "설마 그 때 한번 울린 것 같고 아직도 삐쳐 있다는 말씀인가요? 에이. .. 내 누나는 그렇게 좀생이 아니에요." "그게.... 한번 더 울렸었거든." ".......존경스럽습니다." "그게 무슨 뜻이냐?" 난 막 수프에 빵을 찍어 먹느라 시이터의 질문에 대답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대답할 생각도 없었다. 누나한테 맨날 맞고 살았는데 그런 난 폭한 누나를 사춘기 소녀같이 만들어 버리는 솜씨에 감탄했다고 솔직하 게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깐.... "아! 맞다. 너희들이 찾는다는 사람은 찾았어?" 내가 밥 먹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시이터는 느닷없이 나에게 물었 다. 이거 뭐라고 대답하지? "그게 찾기는커녕 어디 있는지 감도 못 잡겠어요." "도대체 누구를 찾는데... 아 말할 수 없다고 했지?" "죄송합니다." 내가 머리 숙여 사과하자 시이터는 어차피 자신도 남아도는 게 시간이 라며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거참. 이렇게 좋은 인간인데 왜 누나는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지?' 뭐 시이터를 내가 좋게 보는 이유 중의 가장 큰 이유가 시이터가 빌려 준 그 멋들어진 마법검 때문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로즈렌 마을까지 오는 이틀 동안 시이터는 자신이 나이가 많다는 이유를 들면서 우리의 편의를 많이 봐줬다. 하지만 누나는 그런 시이터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내내 뚱한 표정을 짓고 있어서 여기까지 오는 이틀 동안은 내내 먹구름 을 동반한 듯한 착각까지 들었었다. "이봐. 테이군. 테이군? 테이군!!" "네? 네!!" 이런 잠시 딴 생각을 하느라 시이터가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시 이터는 깜짝 놀라는 나를 보며 혀를 찼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깊게 하기에 내가 몇 번을 불렀는데도 못 알아 차 린 거야?" "그게 저기... 그냥 생각할게 좀 있었어요." "혹시 애인 생각? 그때 울면서 부르던 카렌이라는 아가씨 생각인가?" 쩝 역시 그때 내 모습이 웃겼나 보다. 시이터는 그때 내 모습이 생각났 는지 싱긋 웃으며 물었고, 그 질문에도 마땅히 대답하지 못한 나는 머 리만 긁적였다. "이번에는 안 우네." "우....내가 뭐 날마다 울 것 같아요? 어차피 언젠가는 만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는 걸요. 그래서 이제 울지 않기로 했어요." "호오. 훌륭한 생각이야. 그런데 그 카렌이라는 아가씨 예뻐?" "그럼요!! 정말 짱으로 예뻐요. 그리고 얼마나 착한데요." "그래? 그런데 어쩌다가 헤어진 거야?" "그게...." 그건 나도 모른다. 왜 카렌은 날 떠난 것일까? 이르 누나가 죽어서? 그 충격 때문에? 단지 그것뿐이라면 이유가 되지 않는다. 그때는 정신이 없어서 자세히 생각을 해보지 않아서 그냥 넘어 갔는데 생각하면 할수록 그 이유를 모 르겠다. 도대체 왜 나를 떠난 것일까? 지금도 이렇게나 카렌을 좋아하는 내 마 음을 카렌은 알까? 이런저런 생각에 난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결 국..... "어? 이봐 테이군 왜 일어나? 밥이 아직 남았는데." "카렌 미안해!! 제발 돌아와 줘!! 나 너무 외로워!! 카렌엔!!" "......." 내가 여관 창문을 열고 소리를 치자 여관 안에 다른 손님들도 그리고 길가를 가던 사람들도 전부 다 나를 쳐다봤다. 하지만 내가 이 짓(?) 할 때 언제 다른 이의 눈을 신경을 쓴 적이 있던가? 난 그저 충실하게 내 할 일(?)을 다할 뿐이었다. 할 일(?)을 다하고 밥을 마저 먹은 나는 시이터가 건네준 음식이 든 바 구니를 들고 누나와 내 방으로 돌아왔다. 누나는 침대에 앉아서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다. 누나가 무슨 병약한 미소녀인가? 하루에도 몇 번이고 이 누나가 내 친 누나 맞나 하는 생각을 들게 만드는 그 약한 모습에 난 조심스럽게 먹 을 것이 든 바구니를 누나 앞에 내 밀었다. "......이게 뭐야?" "밥. 아무리 입맛 없어도 억지로라도 먹어 둬야 여행을 다니지. 그러다 가 병나겠다." "......이 누나 걱정해 주는 거야? 그렇게나 널 괴롭혔던 나쁜 누나인 데...." "우.... 이상한 소리말고 얼른 먹기나 해!!" 난 괜히 기분이 이상해져서 거의 반 강제로 바구니를 누나에게 건네주 고 내 침대에 앉아서 마법검을 꺼내 들었다. 난 하루에 한번씩은..... 그래 솔직히 말해서 하루에 몇 번씩 마법검을 닦았다. 마법검 특유의 광채가 겨우 하루 이틀 먼지 묻는다고 더러워지는 것이 아니지만 멋있 는 마법검을 빌린 기간 동안 조금이라도 더 만지고 싶기 때문에 난 하 루에도 몇 번씩 마법검을 닦았다. 잠자코 내가 검을 손질하는 모습을 보던 누나는 한숨을 쉬다가 내가 가 져다준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어째 지금까지는 누나가 날 챙겨 주었는 데 - 가끔....이 아니라 자주 폭력을 동반해서 - 지금은 내가 누나를 챙겨 준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분이 묘했다. 쩝 저렇게 얌전히만 있으면 정말 예쁘고 귀여운데.... 누나의 본 모습 도 실버 일족 중에서는 잘 빠진(?) 편이고.... 또 비늘도 매끄럽고 날 개 또한 보드라워 보이는 게 무척이나 예쁘다..... 가 아니잖아!! 이런 내가 무슨 엽기적인 생각을...... "테이야." "으응?!!" 난 방금전 내 생각이 들킨 것 같은 기분에 깜짝 놀라서 대답하자 누나 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너 안 아프니?" "뭐가?" "손 말이야. 안 아파?" "손?" 무슨 손? 아아 멍하니 검을 닦다가 손을 검에 베였구나... 어쩐지 좀 아프더라....가 아니라 이거 무진장 아프잖아!! "아야야야!!!" 내가 비명을 지르며 호들갑을 떨자 누나는 피식 웃으며 상처가 난 내 손을 잡았다. 힐을 걸어 줄 생각인가? 그러나 그런 나의 예상은 빗나갔 다. "누..누나!" 누나는 내 상처가 난 손가락을 살며시 입에 물고 상처를 빨아 주었다. 그런 누나를 보며 난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왜 힐 안 써?" ....방금 순간적으로 누나의 이마에 혈관이 솟은 것 같았는데 착각인가 ? "바보. 이렇게 하고 힐을 써야 더 빨리 낫는 거야." "그..그런 거야?" "그런 거야." 난 처음 듣는데.... 하지만 아까 순간적으로 누나의 이마에 나타났던 혈관이 생각나서 얌전히 있기로 했다. 내가 하루라도 안 맞고 넘어가는 기적 같은 나날을 내 손으로 없애기는 싫어서였다. 상처를 깨끗하게 빨 아서 피가 멈춘 내 손에 누나는 힐을 걸어 주었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자신의 침대로 가서 아까 먹던 밥을 계속 먹었다. 난 머쓱한 기분 을 느끼면 하던 마법검 손질을 계속하기로 했다. "테이야." "으..응?" "고마워. 아주 맛있어." "무..무슨 겨우 빵하고 과일인데.... 그것까지고 고맙다는 말을 들을 정도는....." 내가 왜 이렇게 당황하는 거야? 오늘은 나도 누나도 이상해지는 날인가 ? "테이야?" "왜?! 왜?!!" "너 또 손 베였어." "......우갸갸갹!!" 그렇게 로즈렌 마을에서의 첫 날은 소득 없이 지나갔다. 아니 누나의 아주 얌전한 모습을 본 것이 소득이라면 소득일까? 다음날 목적지가 정해지지 않은 누나와 내가 한숨을 쉬면서 어디를 갈 까 하는 의논을 하고 있을 때 밖에 나갔던 시이터가 재미있는 정보를 알아 왔다고 했다. "재미있는 정보가 뭔데요?" "응. 그게 이 로즈렌 마을에서 남쪽으로 가면 있는 이브람 산에 정체를 모를 몬스터를 퇴치하기 위해 병사들을 보낸다는 소리야." "에? 그게 무슨 재미있는 정보예요?" "잘 들어봐. 지금 이 다이러스 제국은 전쟁 중이야. 이런 상황에서 한 사람이라도 병사가 아쉬운 판에 굳이 몬스터를 퇴치하는 병사를 보내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정 그 정체 모를 몬스터가 방해된다면 굳이 병사 를 쓰지 않고 용병들을 써도 될텐데 말이야. 내 생각에는 그 산에 몬스 터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야." "다른...." "무언가?" 누나도 나도 혹시나 하는 생각을 했다. 혹시 그곳에.... 레이르가? "내 생각에는 그 곳에는 틀림없이 고대 유적이 있을 거야!!" "에?" "예?" 누나와 나는 시이터의 말에 레이르의 생각을 잠시 접어 두고 궁금한 표 정으로 시이터를 쳐다봤다. "고대 유적에는 고대인들이 사용하던 마법 가디언들과 마법 함정들이 남아 있기 때문에 무척이나 위험해. 하지만 그곳에서 내가 테이 군에게 빌려준 마법검 하나만 구해도 엄청난 전력이 되는 거야. 그렇기 때문에 각 나라에서 고대 유적이 발견된다면 일단 비밀에 부쳐서 그 고대 유적 에서 무언가 얻기 전에는 일반인들에게 공개 안해. 내가 그 검을 얻은 것은 솔직히 거의 기적에 가까워. 오리하곤 왕국의 그 나가 산의 유적 은 너무나 위험해서 오리하곤에서도 포기한 던전이거든. 그 후에도 수 많은 모험자들이 그 곳에 들어갔지만 결국 살아 돌아온 사람도 없고,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 본 사람도 없어. 솔직히 나도 동료들과 들어갔지 만 지하 70층에 도착할 때쯤 모두 죽고 나 혼자만 살아 남았었지. 나도 만약 그 70층에서 그 검을 못 얻었다면 죽었을 거야. 역시 난 운이 따 라 주는 사람이라니깐." 시이터의 장황한 설명+자기 자랑을 우리 남매는 한 귀로 흘려 들으면서 눈짓으로 의견을 교환했다. 결론은.... "시이터 씨 우리 그곳에 가 봐요!" "어? 나야 상관없지만.... 너희들은 괜찮아? 찾는 사람이 있다면서." "저희들은 어차피 아무 정보가 없기 때문에 다음 목적지가 없는 상태예 요. 무작정 찾는 것보다는 무언가 목적지를 정하고 움직이는 게 효율적 이잖아요." 나의 조리 있는 설명에 시이터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해 주었다. "맞아. 그게 훨씬 더 낫지. 낫긴 한데.... 그런데.... 도대체 너희들이 찾는 사람이 누구냐? 아직도 말 못해 주니?" "아 그게....." 내가 또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자 그것을 잠자코 보던 시이터는 손을 치며 말했다. "아! 혹시 너희들!!" "예?! 예?!!" 난 깜짝 놀라 버렸다. 그런 나를 보며 시이터는 뭔가 감을 잡았다는 얼 굴로 낮은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네가 찾는 사람 말이야. 혹시...." 눈치 챈 건가? 하지만 난 이미 시이터는 믿어도 좋을 사람이라고 판단 했기 때문에 더 이상 숨길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런 나 에게 '철저하게 둘러 대!'라고 눈으로 명령을 내리는 누나 덕분에 난 어떻게 둘러댈까 고민을 해야 됐다. 젠장! 이건 원래 누나 일이잖아!! 우.... 안 쓰던 곳에 머리 쓰려니깐 골치가 아프다. 그러나 그런 걱정 을 할 필요가 없었다. "도망쳤다는 테이 군 애인 찾는 일이지? 테이 군 생각보다 질긴데. 그 래 남자라면 그렇게 밀어 붙여야 될 때도 있는 거야. 나도 전적으로 테 이 군의 애인 찾는 일을 도와줄게." 이 인간이 가끔 엉뚱한 면이 있어서 살았다. 뭐 조금 안 좋은 기분이지 만 그렇게 라도 오해를 해주면 나야 편하지. 편하긴 편한데..... 흑 카 렌.... 또 생각났다. 그렇게 그 날 아침에도 일일 행사(?)를 치르고 난 뒤 빠르게 여행 준비 를 마치고 그 날 점심때 우리는 이브람 산으로 출발했다. 이브람 산으로 가는 도중 우리들은 다이러스 제국의 병사들을 만나게 됐다. "멈춰라! 지금 어디로 가는 길이냐?" 그 병사들의 대장인지 콧수염을 기른 남자가 말 위에서 거만을 떨며 우 리의 길을 막았다. 정말 빈말이라도 '멋있는 콧수염입니다' 라는 말이 안 나올 정도로 그 사람 얼굴에 안 어울리는 수염이었다. 굳이 정직하 게 표현하자면 '참 쥐새끼 같은 수염이다' 라고나 할까? 아무튼 말 위에서 거만 떠는 것까지 한몫 해서 우리들은 암암리에 이 놈이랑 절대 같이 못 다녀 라고 결정을 내렸다. "홀 도시로 가는 길입니다. 뭔가 앞쪽에 문제가 있습니까?" 시이터는 우리 앞을 막아서며 대표로 대답했다. 그 쥐 수염 남자는 - 라고 부르기로 했다 - 그 보기 역겨운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여전히 거 만을 떨며 말했다. "우리는 저 앞에 이브람 산에 있는 위험한 몬스터를 처리하러 가는 길 이다. 그러니 너희들은 우리가 몬스터를 처리하는 동안 안전하게 로즈 렌 마을에 있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응?" 아주 장황하게 나 잘났습니다 라고 설명하던 쥐 수염 남자가 묘한 소리 를 내더니 누나를 쳐다보며 말을 잇지를 못했다. 누님. 누님에게 반해 버린 불쌍한 중생이 또 생겨 버렸습니다. 이걸 어떻게 처리하지? "뭐. 정 산을 넘어가고 싶다면 나 케프카 드 라이코네스 님께서 손수 호위를 해주겠소. 그러니 레이디는 안심하고 날 따라오시오." 왜 내 누나한테는 말이 달라지는데? 존댓말은 쓰지만 그 거만한 말투는 변하지 않았고, 척 보기에도 '저 여자를 어떻게 해봐야지' 라는 욕망이 철철 넘치는 눈에 누나는 얼굴을 찌푸리며 내 뒤에 숨었다. 쩝 보통 때 라면 뭔가 날렸을 텐데.... 누나 많이 얌전해졌다. "아닙니다. 용감하신 기사 님 저희들이 괜히 따라갔다가 기사 님의 발 목을 잡을 것 같아서 두렸습니다. 그러니 얌전히 마을로 돌아가서 용감 한 기사 님께서 승전보를 울리고 돌아오시는 것을 기다리겠습니다." 시이터가 우리 앞에 나서서 그냥 얌전히 갈께요 라는 뜻의 말을 그 쥐 수염 남자의 취향(?)에 맞쳐서 대답하자 그 남자는 좀 아쉬운 말투로 말했다. "그..그러냐? 그냥 따라와도 될텐데...." 누나가 내 뒤에 숨었긴 하지만 그 쥐 수염 남자는 높은 말 위에서 내려 다보기 때문에 누나를 계속 쳐다 볼 수가 있었다. 그 기분 나쁜 음탕한 눈으로 누나를 쳐다보고 있는걸 보자니 난 슬며시 울컥하는 느낌이 치 솟아 오르는 기분이었다. 그래서일까? 난 나도 모르게 누나를 내 가슴 으로 끌어당겨 안아서 최대한 가려 주며 그 보기 싫은 쥐 수염 남자에 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저의 누나는 심장이 약하기 때문에 그 위험한 몬스터를 보고 놀래서 잘못 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그러니 이대로 마을로 돌아가 있겠습니다." "그..그래? 그럼 이 몸이 거기 아름다운 레이디를 위해서 그 흉악하고 위험한 몬스터를 반드시 물리치고 돌아오겠소. 그러니 안심하고 기다리 시오." 그렇게 말한 쥐 수염 남자는 의기양양하게 말을 몰고 쉬고 있던 병사들 을 일으켜서 위풍당당하게 산으로 출발했다. 쩝 저 병사들 방금 쉬기 시작한 것 같던데 괜히 우리 때문에 일어난 거는 아닌지.... 조금 미안 하네. 아무튼 그 남자가 떠나고 난 뒤에 난 살포시 가운데 손가락을 그 남자가 사라진 방향으로 들어 보이며 말했다. "이거나 먹어라." "이거나 먹어라." 그런데 어느새 시이터도 나와 똑같은 행동을 하며 욕지기를 내뱉었다. 나랑 똑같은 말을 동시에 하며.... 시이터와 나는 그런 서로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쩝 머쓱한 기분이 드네.... "킥...킥킥킥... 호호호호." 갑작스런 웃음소리에 나와 시이터가 돌아보니 그 곳에는 누나가 아주 오랜만에 밝은 얼굴로 웃고 있는 것이 보였다. "훗..우하하하하하!" "푸..푸하하하하하!" 그런 누나를 보며 나도 시이터도 어느새 같이 웃고 있었다. 왜일까? 지 금까지 누나의 이상했던 분위기가... 시이터와 누나와의 껄끄러웠던 분 위기가 방금의 웃음으로 순식간에 사그라 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우리 셋은 한동안 웃고 또 웃었다. 배가 아파서 더 웃을 수 없 을 때까지.... 그 후 시이터와 누나 사이에 어두운 분위기는 말끔하게 없어졌다. 아직 누나가 시이터를 피하는 듯한 행동을 보였지만 그래도 뭐라 설명할 수 없던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는 없어진 것이 천만 다행이라 할 수 있었 다. "그러니깐 분명 저쪽으로 갔을 것 같은데요." "아니야! 이쪽으로 간 것이 분명해." "둘 다 적당히 좀 해. 이러다가 해 지겠어." 시이터와 나의 격렬한 이쪽 길이다 공방전에 누나가 심드렁한 목소리로 중재를 했다. 지금 우리들은 그 쥐 수염 남자의 뒤를 따라서 이곳 이브 람 산에 들어온 상태였다. 그런데 중간까지는 그들의 발자국으로 잘 쫓 아오다가 중간에 바위투성이 길에서 그만 발자국을 놓친 것이다. 그래 서 나와 시이터는 서로 이쪽이다 저쪽이다라는 공방전을 벌이고 있는 중이였다. 결국.... "좋아! 이렇게 하자!" "어떻게요?" 시이터가 내 놓은 제안은 둘로 나뉘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까의 병사들 을 발견하게 되면 그들이 찾는 것이 진짜 몬스터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 인가인지를 확인하고, 이곳으로 돌아오고 발견 못한 쪽도 밤이 되면 다 시 이곳으로 돌아오기로 한 우리는 둘로 나뉘기로 결정했다. 나는 위험한 일이 있을지도 모르고 나는 누나와 둘이니깐 마법검을 다 시 돌려줬지만 시이터는 자기 검 대신 가져간 내 마법검도 쓸 만하다면 서 그 멋진 마법검을 계속 가지고 있게 해주었다. 흑...시이터 씨 당신 정말 좋은 인간이야. 난 알고 있었다니깐. -속 보이는 말인 것을 인정 한다 - 그렇게 시이터가 가고 난 뒤 둘만 남은 우리 남매는 내가 주장하던 길 로 출발했다. "근데 왜 이 길이라고 생각한 거야?" 잠자코 걸어가던 누나가 나에게 물었고, 그냥 말없이 걷는 것보다는 낫 다는 생각에 이야기나 하면서 걸을 생각에 대답했다. "그냥 감이야." "감?" "응. 뭐 여자의 감보다는 못하겠지만...." "야성의 감인 거니?" ".......누나 내가 드래곤이지 짐승이야? 무슨 야성의 감이야? 그냥 감 이지." "흠 그래? 그럼 그때 왜 자고 있는 이 누나의 얼굴을 쓰다듬었을까?" "그때? 쓰다듬어? 앗!! 혹시 그때 깨어 있었던 거야?!!" 난 그 놈의 당근 주점에서의 악몽(?)이 되살아나서 소리쳤다. 누나는 내 질문에 대답 해줄 생각은 안하고 내 팔에 팔짱을 끼며 딴 소리를 늘 어놓았다. "자자. 얼른 가야 되는 거잖아. 오랜만에 둘이서 걷는 기분이다. 동료 가 많아서 시끌벅적한 것도 재미있지만 역시 이렇게 둘만 다니는 것도 참 좋다 그치?" 보통 때 이런 말을 하는 누나는 손에 마력이나 힘을 모으고 언제라도 뭔가 터트릴 준비를 하고 물었었다. 하지만 지금의 누나는 솔직한 표정 으로 웃으며 묻고 있었다. "으..응 그래. 맞아. 이런 것도 좋지." 난 평소 누나의 협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눈물을 삼키며 대답했을 때 는 누나보다 힘이 세지면 마구 반항 할거야 라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 런데 막상 누나가 아무 폭력 없이 묻자 나도 모르게 동의를 해 버리고 말았다. 흠. 여행을 하면 많은 것을 배우고 변하게 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 다. 누나의 이런 변화도 여행 때문일까? 만약에 그렇다면.... 여행.... 넌(?) 정말 좋은 놈이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팔에 느껴지는 누나의 온기를 느끼면서 - 솔직히 고 백하면 조금 기분 좋았다.... 아니 약간 많이.... 우씨 그래 엄청 기분 좋았다!! -고개 하나를 넘자 나와 누나는 놀라움에 눈을 크게 떴다. "집이다!!" "오두막이잖아!!" 이런 깊은 산 속에서 오두막을 보게 되다니.... 그런데 놀라움은 잠시 동안 이었고, 나와 누나는 한숨부터 쉬었다. "어째서 우리들은 이렇게 산 속에서 오두막집을 많이 보게 되는 거지?" "에휴.... 팔자라고 생각하자." 팔자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자주 만나는 것은 무슨 마가 낀게 아닐까? 라는 생각까지 드는 깊은 산 속 오두막집을 잠시 쳐다보고 있자니 아이 들로 보이는 인간들 몇 명이 집 마당에서 놀고 있었다. "점점 더 수상한데... 위험한 몬스터가 있다는 산 속에 오두막집이 있 는 것도 이상하지만 저런 어린 아이들이 그것도 적은 숫자가 아닌 것 같은데.... 도대체 저 오두막집의 정체가 뭘까?" "내려가서 직접 확인 해보자. 그나저나 아까 병사들은 그 남자가 고른 길로 갔나 보네." 하긴 그런 병사들이 지나갔다면 저 오두막집이 성히 남아 있지를 않았 을 거라는 생각은 나도 들었다. 쩝 내 감은 빗나 간 건가? 자신 있었는 데.... 우리가 오두막에 가까이 내려갈 때 그 집 문이 열리면서 한 명의 여자 가 나왔다. "애들아 밥 먹어야지!" "네~~에!" 아이들의 우렁찬 소리에 미소를 짓는 저 여자의 목소리는.... 설마... 설마... 기억에 남아 있는 목소리였다. 아니 절대 잊을 수 없는 목소리 였다. 난 누나의 손을 뿌리치고 그 오두막집으로 달려갔다. "테..테이야!!" 누나의 놀란 목소리가 내 귀에 들렸지만 난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그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하고 싶을 뿐이었다. 누 나의 외침과 내가 달려가는 소리를 들었는지 금발의 여자가 나를 향해 얼굴을 돌렸다. 약간 먼 거리였지만 그 여자의 얼굴과 그 여자의 놀라 워하는 목소리가 똑똑히 들렸다. "테이....님?" "카......렌?" 긴 금발이 바람에 흩날렸다. 그리고 놀라서 크게 떠진 황금색 눈..... 카렌이었다. 꿈에도 그리워하던 나의(?) 카렌이 그곳에 서 있었다. 어 느새 내 곁에 다가온 누나의 놀란 신음이 들렸다. "카...렌... 어떻게... 여기에...." 나도 그런 궁금증이 들었지만 그것을 알아보는 것보다 더 급한 일이 있 었다. 다시 만난 카렌을 내가 사랑하는 카렌을 꼭 안아 주는 일이었다. - 94년만의 감격적인 포옹이다 - "카렌... 나는...." 그런데 카렌 옆에 있던 한 꼬마의 말에 난 그 자리에서 얼어붙어 버릴 수밖에 없었다. "엄마. 누구야?" '엄마?!!' 난 내가 잘못 들었겠지 하는 마음으로 카렌을 쳐다보았다. 카렌 부탁이 야 저 꼬맹이가 잘 못 말했다고 해줘!! 라고 마음으로 외칠 때 그 꼬마 는 갑자기 뒤를 돌아보더니 반가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 아빠!! 처음 보는 사람들이 왔어요!!!" "그 자리에서 물러나!!" 이번에도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면서 내 눈앞에 갑자기 은빛의 거대한 물체가 떨어(?)졌다. '제임스?!!' 은빛 다크 나이트 제임스를 보면서 난 혼란스런 머리를 진정시키기 위 해 노력할 때 처음에 우리를 노려보던 제임스의 눈이 놀라움으로 바뀌 며 우리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서... 설마... 설마!! 티아루아 님? 그리고 테이루아 님?!!" 하지만 난 그 소리에도 그 녀석의 반가운 눈빛에도 응해 줄 여유는 없 었다. 너무나 갑작스런 충격적인 만남에 결국 내 머리는 정리를 포기한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비명을 지르는 일뿐이었다. "아빠라고? 그리고 엄마? 더구나 애들?!!" 누가 제발 이건 꿈이라고 해줘!!!!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부분은 아주 오랜만에 누나의 카운터 펀치 의 감촉이 느껴졌다는 것이다. 너무나 오랜만이라 반가운 기분까지 드 는 그 감촉을 마지막으로 내 이성의 실은 끊겼다. 쉽게 말해서 기절했 다는 것이다. 그 위험한 검을 꺼내 들고 제임스에게 덤벼들려는 테이를 간발의 차로 날려 버린 티아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휴우. 하마터면 대형 사고 터질 뻔했네. 뭐 조금 시끄러운 일이 있었 지만 아무튼 다시 만나서 반가워. 카렌 그리고 제임스." "네. 오랜만이에요. 티아 님." "두 분은 여전하시군요." 제임스는 저 하늘 높이 날았다가(?) 땅에 추락한 테이를 보며 약간은 허무한 목소리로 말했다. 티아는 기절한 테이를 들쳐업으며 물었다. "미안한데 이 녀석 좀 눕힐 때가 없을까?" "아! 이리로 오세요." 티아는 카렌의 안내를 받아서 테이를 카렌의 집안으로 데려가서 눈에 보이는 침대에 눕혔다. 일단은 이것으로 안심이지만.... "이 녀석이 눈뜨면 또 난리 칠텐데. 충격이 너무 컸을 거야." "......." "아 그렇다고 카렌이 잘못 한건 없으니 그렇게 풀죽을 필요는 없어. 그나저나... 제임스 너." 미안함 때문인지 아무 대답도 못하는 카렌을 격려한 티아는 제임스를 바라보며 그 장난끼 넘치는 미소를 지었다. 이 표정도 실로 며칠만에 보는 표정이었다. - 아마도 시이터가 옆에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 제임스는 티아가 부르는 소리에 지은 죄(?)때문인지 찔끔하는 눈빛이 었다. 하지만 티아의 입에서 나온 말은 놀리는 말이나 추궁하는 말은 아니었다. "약속대로 카렌을 잘 지켜 주고 있었구나." "제가 당연히 해야 될 일입니다." "호오. 카렌이랑 결혼한 것도 네가 당연히 해야 될 일이었냐?" "그..그것은...." 물론 한번 씹고 넘어가는 것을 잊지 않는 티아였다. 대답을 못하고 약간 감탄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 감이라는 게 정말 정확하다. 남자의 감이라는 것도 무시 못하겠는 데...." "저..저기...." 티아가 테이의 야성적인(?) 감에 감탄하고 있을 때 티아 앞에 서 있던 레이르가 우물쭈물하며 티아를 불렀다. "응? 왜?" "저기.... 저기요! 저기요! 두 분이 레이나 고조 할머니를 도와주셨다 는 쌍둥이 실버 드래곤 티아 님과 테이 님이 맞나요? 네? 네? 네?" 부끄러운지 얌전하게 말을 시작했던 레이르는 점점 흥분이 됐는지 목 소리 톤도 올라갔고, 막판에는 티아와 테이가 엄청나게 당했던(?) 반 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티아를 바라보았다. 아주 오랜만에 당해서인지 충분히 면역이 되어 있던 티아도 기가 질린 얼굴로 급히 고개를 끄덕였고, 레이르는 전설이라고 생각했던 존재를 만난 기쁨 때문인지 거의 팔짝 뛰는 분위기로 좋아했다. "와아! 반가워요!!! 전 두 분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얼마나 보고 싶 었다고요.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어요!! 카렌 씨에 게 들었던 대로 정말 닮으셨네요. 아니 똑같아요! 쌍둥이는 인간이나 드래곤이나 이렇게 얼굴이 닮는 건가 봐요. 꺅꺅! 어쩜 좋아!! 만약 만나게 되면 여러 가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는데 무슨 이야기를 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아 머릿결이 정말 좋으시네요. 부럽다. 나도 티아 님같이 찰랑찰랑 거리는 생 머리가 무척이나 부러워요. 그리고 그 얼굴 화장은 안 하신 거죠? 어쩜 얼굴에 잡티 하나 없으시네요. 너 무 부러워요!! 에...." 레이르의 수다를 가만히 듣고 있던 티아는 기가 질린 얼굴로 레이르의 어깨에 손을 올려서 끝날 것 같지가 않던 레이르의 수다를 멈추게 했 다. "너..... 정말 레이나 언니의 핏줄이구나." "네?" 티아의 말을 이해 못한 레이르가 반문을 하자 뒤에서 지켜보던 카렌이 쿡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기가 질려 있던 티아도 점차 표정이 풀리더 니 카렌과 같이 웃어 버렸다. "에?? 저기 제가 무슨 이상한 말했어요? 저기요! 카렌 씨! 티아 님! 왜 웃어요? 네?" 레이르가 당황하며 카렌과 티아를 번갈아 보며 물었지만 둘은 웃느라 정신이 없어서 대답을 해주지 못했다. "도대체 왜 웃는 거예요? 힝...."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렸다. 난 아픈 턱을 매만지며 자리에서 일어났 다. "에휴. 요즘 하도 카렌 생각을 많이 했더니 악몽을 꿨나 보네. 꿈치고 는 상당히 현실감 있는 꿈이었어. 어떻게 카렌과 그 고철 덩이가 부부 라니.... 하하하 내 상상력도 이 정도면 풍부한데. 나중에 소설가나 대볼까?" 난 방금 전에 꾸었던(?) 정말 상상하기도 싫은 꿈에 몸을 떨며 일어났 다. 내가 일어난 곳은 처음 보는 방이었다. "여기가 어디지?" 방문 저편에서는 끊임없이 여자들의 웃음소리와 이야기 소리가 들렸 다. 난 순간 불안감을 느끼며 조심조심 방문 손잡이를 잡아서 열어 봤 다. "호호호호호!" "에엥! 왜 웃는 거예요?!" "미안, 미안. 네가 너무 레이나 언니랑... 큭큭큭 너무 닮았다." "얼굴이요?" "글세~~ 어딜 까나?" "앗! 치사해요!" 누나는 처음 보는 여자랑 즐겁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는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고 있는 나의 카렌이 있었다. "......훗. 아직 잠이 덜 깼군." 난 잠이 덜 깼다고 생각이 들어 다시 자려고 했는데 누나가 날 붙들었 다. "이제야 일어 난거야? 오랜만이라서 그런지 내가 힘 조절을 잘 못했나 봐. 머리는 괜찮아?" ".....이거 굉장히 현실감 있는 꿈이다. 누나가 진짜 날 붙든 것 같 아." "......." 내 혼잣말을 들은 꿈속의(?) 누나는 어이없는 얼굴을 했다. 이 꿈 반 응도 가지가지네. 비록 꿈속에서라도 카렌을 보는 것은 정말 즐겁고 편안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난 이제 잠에서 깨 어나야 된다. 할 일이 많으니 이대로 계속 잘 수는 없지. 언젠가는 꼭 진짜 카렌을 찾아야지. "그럼 이제 잠에서 깨어나야지. 안녕 꿈속의 카렌. 현실에서 다시 볼까?!!" 난 카렌의 손을 뿌리치면서 소리쳤다. 가만히 나와 꿈속의 - 라고 믿 고 싶다 - 카렌을 쳐다보던 누나는 한숨을 쉬나 싶더니 번개같이 주먹 을 날렸다. "으아악!!" "꺄악! 테이 님!!" 아! 이 아련히 느껴지는 펀치 속에 담긴 힘은 분명히 누나의 것이 틀 림없었다. 날 날려 버린 누나는 쓰러진 나를 보며 생긋 웃으며 물었 다. "어때 아프지? 이제 꿈이 아니라는 것을 알겠지?" 확실히 아프긴 아프다. 하지만 내 이성은 확실히 아프다고 인식하고 있지만 내 감정은 이게 현실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아플 리가 없잖아. 이건 꿈인데. 하하하!" 젠장 다리가 왜 이렇게 떨리는 거야? 난 떨리는 무릎에 힘을 주며 애 써 태연한 척 했다. "호오... 그래? 그렇단 말이지? 그렇다면....." 아앗! 저것은 엄청 화가 났다는 싸늘한 무표정!! 난 죽었다!! 가 아니 야. 이건 꿈이야! 꿈에서 죽는 것은 죽는 게 아니야!! 그렇게 생각한 나는 당당하게 가슴을 펴며 소리쳤다. "그래 어차피 이건 꿈이야!! 현실이 아니야!!" "그렇게 생각하면 그냥 이거 꿈이라고 생각 한 체로.....죽어!!!" 누님 오랜만에 흥분하시는군요. 라고 농담 따먹기 할 새도 없이 난 걸 레가 되도록 얻어맞았다. 아마도 옆에 카렌과 처음 보는 여자가 말리 지 않았다면 난 정말 꿈속에서 죽었을지도... 아니 난 기절하면서 결 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현실이라는 것을.... 내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주위는 완전히 어두워지고 난 뒤 였다. 차가운 물수건의 감촉이 기분 좋았다. 흐릿하게 눈을 뜨니 아까 꿈속에서.... 아니 이제 그만 현실을 직시하자. 아마도 카렌의 오두막 집이라고 생각되는 천장이 보였다. "깨셨어요?" 부드러운 음성.... 카렌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내 머리맡에 놓여 있던 물수건이 떨어졌다. 카렌은 잠 자코 물수건을 회수해서 옆에 놓여 있는 대야에서 물을 적시더니 내 얼굴을 정성스럽게 닦아주었다. 난 가슴속에 뭉클한 감정. 카렌은 변한 것이다. 100년 간의 시간 동안 내가자는 동안 카렌은 계속 살아 왔다. 그래서 변한 것이라고 생각 됐다. "시간은 여러 가지를 변하게 만든답니다." 카렌의 마음 읽기 능력.... 내 생각을 읽은 것인가? "제가 테이 님을 떠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요. 시간이 지나면 테이 님의 마음도 추억으로 치유될 거라고 믿었는데.... 그런데 실의 에 빠져서 동면에 들어가실 줄은 몰랐어요. 죄송해요. 테이 님은 마음 은 100년 전 그때와 똑같은데..... 저는... 저는......." 난 카렌의 어깨에 두른 내 팔을 살며시 빼냈다. "미안 곤란하게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어. 미안..... 저기.... 언젠가 는 이유를 말해 줄 수 있겠어? 나.... 기다릴 테니깐." "굳이 제가 설명 안 해도..... 언젠가는 알게 되실 거예요." "하..하지만....." "식사.... 갖다 드릴게요." 그렇게 내 말을 끊어 버린 카렌은 재빨리 나가 버렸다. 난 허탈한 마 음에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이런게 아니었다. 카렌을 곤란하 게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저 다시 만나게 되면..... 다시 만나 게 된다면........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는데.... 내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이브람 산의 산 중턱은 바위투성이의 길로 - 길이라고 부를 수준도 되 지 않았지만 - 이루어져 있다. 그 중 커다란 바위 그늘 아래에 모닥불 을 펴놓고 침낭을 뒤집어 쓴 사람이 모닥불을 쬐고 앉아 있었다. "젠장 슬슬 가을이 다가오는 건가? 밤이 되니깐 추워지네.... 하긴 이 렇게 높은 산 위에 있으니 기온이 더 떨어지겠지." 누가 그 모습을 본다면 누구라도 '버림받은 것 같아' 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처량하게 혼자서 모닥불을 쬐고 있는 사람은 바로 시이터였다. 산으로 올라간 병사들은 결국 찾지 못해서 약속 장소로 돌아와서 야영 준비까지 해 놓았지만 티아와 테이는 나타날 줄을 모르고 있었다. 걱 정이 되긴 했지만 티아와 테이의 실력을 잘 알고 있고, 무엇보다 자신 의 마법검을 맡겼기 때문에 절대로 위험한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26화 조금은 나의 마음을…‥ 다음날 아침 난 일어나면서부터 찜찜한 기분에 시달려야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생각 안 나는 그 무언가가 내 기분을 최악으로 만들었다. 카 렌 때문이건 아니다. 카렌에 관해서는 어제 힘들지만 마음을 털어 버리기로 결심했다. 100년 의 시간이 얼마나 긴 시간인 줄은 나도 잘 알고 있다. 그 긴 시간 동안 나에 대한 마음을 다 정리했을 카렌을 더 이상 힘들게 하고 싶지 않다. '그래 이럴 때는 물러나는 것이 남자다운 거야.' 그렇게 결심한 나는 홀가분하게 아침을 맞고 싶었지만 생각 안 나는 그 무언가가 자꾸 내 기분을 건드려서 찜찜한 기분으로 맞은 최악의 아침 이다. "웅. 뭐지? 뭐였더라?" 내가 혼자 말을 중얼거리며 나올 때 식탁을 차리던 제임스가 나에게 아 침 인사를 건넸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테이 님." "…아…응." 약간 머뭇거리며 인사하는 제임스에게 나도 좀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역시 이 놈이랑 얼굴 대하기는 아직 껄끄러웠다. 그나저나 식탁 차리는 다크 나이트라…‥ 안 어울려. 더구나…. "그 앞치마는 도대체 뭐냐?" 난 어린애가 만들어 붙였을 거라 생각되는 삐뚤삐뚤한 별무늬 앞치마를 걸친 제임스를 기가 질린 얼굴로 쳐다보며 물었다. "그게… 아이들이 만들어 준겁니다. 난 밥을 먹지는 않지만 이런 식탁 차리는 일이나 치우는 일을 합니다. 처음에는 실수로 내 몸에 음식물을 좀 흘리고는 해서…, 그걸 본 여자아이들 몇 명이…." 제임스는 쑥스러운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아‥ 그래?" 난 더 할말도 없고 해서 식탁에 앉아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제법 큰 거실 - 이라고 생각되는 공간 - 에는 조금 큰 아이들은 분주하 게 아침 준비들을 했고, 어린 꼬맹이들은 자기들끼리 깔깔거리며 놀고 있었다. 대충 눈으로 흩어 보는 것만으로도 열 명 이상의 아이들이 있 었다. "도대체 이 아이들은 다 누구야? 어제는 정신이 없어서 그냥 넘어 갔는 데 아무리 생각해도 너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잖아. 어디서 난 아 이들이야?" "…‥전쟁 고아들입니다." 제임스는 아이들이 들리지 않게 나만 들리도록 살짝 속삭였고, 그 한마 디로 사태 파악이 된 나는 더 이상 물어 보기를 그만뒀다. 밝고 활기차 게 생활하는 아이들이지만 아픈 상처들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었니 필 요 이상으로 그 상처를 건드리기는 싫었다. "역시… 카렌은 착하구나." 혼자 그렇게 중얼거리고 한숨쉬고 있던 나는 누나가 보이지 않는 다는 사실이 생각나서 다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누나를 찾았다. "티아 님은 아직 주무시고 계십니다. 어제 레이르에게 잡혀서 모험담 이야기를 끝없이 해주셨거든요." 그런 나를 보고 제임스가 눈치 챘는지 누나에 대해서 말해 주었다. "아! 그래? 그럼 나 차 한잔 부탁해도 될까?" "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잠시 후 부엌에 들어갔던 제임스는 향긋한 차를 내왔고 난 그 차를 음 미하며…‥ 그래 솔직히 말해서 고독을 음미하며 차를 마셨다. 흑 그래 남자는 때로는 고독을 음미해야 되는 거야. "응?" 혼자 고독을 음미… 실은 거의 궁상에 가까운 생각을 하며 차를 마시던 나는 갑자기 아까 제임스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비명처럼 소리를 지르며 일어났다. "레이르라고?!!" "무‥무슨 일이십니까?" 손에 수프가 든 쟁반을 가져오던 제임스가 비명(?)을 지르는 나에게 와 서 물었다. "너 아까 레이르라고 했냐?" "예? 예 그런데 뭔가 문제가 있나요?" 문제? 그걸 이 깡통이 몰라서 묻는 건가? 레이르라면 누나와 내가 찾아 다니던 레드포머 가의 후손이잖아! 레이르를 찾아다니다가 카렌을 다시 만난 것도 충격인데 여기 카렌이 사는 곳에 레이르가 있다니… 이런 기 막힌 우연이 생기다니! "어디 있어?!" "네? 뭐‥ 뭐 말입니까?" "레이르 말이야!! 어디 있냐고?" "저‥저기 2층 계단 옆 오른쪽 방입니다. 지금 막 일어나서 티아 님이 랑…‥." "알았어!" 난 그렇게 찾아 헤매던 레이르를 얼른 보고 싶어서 제임스가 가리키는 2층 방으로 쏜살같이 뛰어갔다. 제임스가 뒤에서 날 부르는 소리가 들 렸지만 난 그것에 신경 쓸 시간이 없었다. 살아 생전 두 번 다시 못 볼 거라 생각했던 레이나 누나의 후손을 보게 되다니…. "레이르가 누구야?!" 난 있는 힘껏 문을 열어제치며 소리쳤다. 그리고 그 자세 그대로 굳어 버렸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방안의 두 여자도 굳어 버렸다. 누나와 레이르라고 생각되는 웨이브 진 금발의 소녀는 지금 막 옷을 갈 아입으려고 했는지 방금 벗은 것으로 보이는 잠옷을 손에 들고 있었다. 그런 얼어붙어 있는 시간을 깬 것은 밑에서 급히 날 부르는 제임스의 외침이었다. "테이 님! 지금 티아 님과 레이르는 막 일어나서 옷 갈아입는다고 했 …. 이미 늦었군요." 이 고철 덩이야!! 늦은 것뿐이냐!! 왜 좀더 빨리 말 안한 거야?!!! 대 형 사고 터졌잖아!!!! "…흑. 으흑…. 에에엥." 레이르라고 생각되는 소녀는 잠옷으로 몸을 가린 체 그 자리에 주저앉 아서 울어 버렸고, 누나는 손마디를 풀면서 싸늘한 무표정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 옷은 좀 입고 오지 그 동안에 도망이라도 가게…. - "저기… 누나… 그게 아니고… 아니 진짜 그게 아닌데…. 그러니깐 그 게 뭐냐면… 에 그게…." 내가 변명하려고 필사의 노력을 다했지만 내 머릿속에는 그 어떤 변명 의 단어도 떠오르지 않았다. '하긴 변명할 말도 없네.' "이 놈의 변태 드래곤이…." 음산한 누나의 말을 들으면서 내 머릿속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자동적 으로 생각해 냈다. '난 죽었다!' 정말 여러 가지로 힘든 아침이었다. 간신히 살아난(?) 나는 직접 내 몸을 치료하면서 슬며시 두 여자의 눈 치를 봤다. 레이르 쪽은 얼굴을 상기시킨 체 가끔 나랑 눈이 마주치면 급속도로 고개를 숙여 버렸다. 에구구 양심의 가책이 느껴진다. 그리고 누나 역시 믿어지지 않지만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단지 레이르랑 다른 점이라면 나랑 눈이 마주치며 무시무시하게 쏘아보는 바람에 고개를 숙 이는 쪽은 내 쪽이라는 것이다. 그나저나 레이르는 그렇다 치더라도 누 나는 동생한테 겨우 속옷 좀 보였다고 뭐가 부끄럽다고 저 난리인지… ‥. '쩝. 저렇게 난폭해도 일단은 여자라는 건가? 쳇! 저런 폭력녀가 수줍 음이라니 안 어울려.' "아이스 미사일 다연발!" "우아아악!" 젠장! 또 깜박했다! 누나의 무시무시한 내 얼굴 표정보고 내 생각 알아 내기와 뒤이어 날아오는 폭력을!! 겨우 몸을 치료했는데 한순간의 생각 실수로 난 다시 상처를 입고 쓰러졌고…‥ "꺄아악! 테이 님!!" "앗! 드래곤 오빠야!!" "드래곤 형!!" 레이르뿐만이 아니라 이곳 아이들도 카렌과 제임스에게서 나와 누나의 전설(?)에 대해서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다들 우리를 한번이라도 만나 고 싶었다고 했다는데…, 그 덕분인지 우리의 이름을 들은 아이들은 단 번에 드래곤 오빠 또는 드래곤 형이라고 부르면서 우리 남매에게 붙임 성 있게 행동했다. 그래서 내가 날아가는 모습에 비명을 지르며 걱정을 해주는 정말 착한 아이들이다. 그런데…‥ '왜! 단체로 목을 붙잡고 흔드냔 말이야!!' "켁켁! 이 정도로… 켁! 안 죽으니깐… 켁! 제발 목 좀 놔줘!!" 간신히 내가 아이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서 아픈 목을 쓰다듬으며 일어 나자 누나가 나에게 싸늘하게 말했다. "한번만 더 쓸데없는 생각하면 다음에는 이 정도로 안 끝난다. 이 변태 드래곤아!" "우…‥." 젠장! 겨우 한번 실수한 것 같고 내내 변태라니!! 해도 너무하잖아!! 라고 누나가 내 표정을 못 보게 고개를 숙이며 속으로 분을 삼켰다. "자! 밥 먹자. 어서 모두들 자리에 앉아야지!" "네에!" 식사 준비가 다 된 카렌이 마침 우리들을 불렀고, 아이들은 저마다 대 답하며 식탁으로 몰려갔다. 누나도 씩씩대면서 식탁으로 갔고, 난 떨어 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떼면서 힘들게 식탁으로 갔다. 아침의 소동 때문에 누나와 레이르와 같이 앉는 게 마음에 걸렸고, 또 거창하게 물러나는 것이 남자다! 라고 마음먹었지만 역시 아직 카렌 얼 굴 보기가 괴로워서 자연히 발걸음이 무거워 졌다. 더구나 아침부터 내 마음을 괴롭힌 그 정체 모를 찜찜한 기분 때문에 입맛은 더 없었다. "테이 님! 어서 오세요. 왜 그런데 계세요." 카렌이 멀찍이 떨어져서 주저하는 나를 보고 얼른 오라고 말을 해줬지 만…‥ "아니… 그게…." 우… 본인들 앞에서 얼굴 대하기가 껄끄러워서 밥 못 먹겠다고 말 할 수도 없고…. "흥. 변태 드래곤은 눈요기만으로도 배가 부른가 보지?" -빠직 "드래곤이 말이야! 도대체 언제까지 그까지 일로 꽁해 있는 거야? 내가 사과 안 했어? 아까부터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잖아!! 도대체 이 이상 뭘 어떻게 하라는 거야?!!" 라고 소리치고 나서는 바로 제 정신으로 돌아왔다. 젠장! 차라리 정신 이 나간 상태가 계속이나 될 것이지 할 소리 다 해 놓고 제 정신으로 돌아오자면 어쩌자는 거야?! "그까지 일?" "아니 누나 그게 아니고… 미안 내가 잠시 정신이 나갔나 봐. 이해하지 ? 응 누우나∼." "그까지 일이라…. 시집도 안간 처녀의 몸을… 그것도 두 명이나 한꺼 번에 잘 감상해 놓고 그까지 일?" "잠깐만!! 그래서 사과했잖아!!" "그게 사과로 끝날 문제냐?!" "그럼 나보고 이 이상 더 뭘 어쩌라고?!" "그대로 죽어!!" 그렇게 말하면서 누나는 손을 앞으로 뻗었다. 저것은 프레아…. 정말 저 누나 동생 죽일 작정인가? 절체 절명 위기의 순간 내 머릿속에서 이 위기를 벗어날 방법이 갑자기 생각났다. "recall.(소환)" 내 명령에 의해 내 손에 그 멋진 마법검이 소환됐고, 날아오는 프레아 를 보며 급히 그 다음 주문을 외웠다. "defense.(방어)" 멋진 마법검 덕분에 난 처음으로 누나의 공격을 완벽히 막아냈다. 그런 데 생각보다 프레아의 위력이 약하네. 일부러 약하게 쓴 건가? 하긴 아 무리 막 가게 화가 났다고는 하지만 정말 동생을 죽일 생각은 아니었겠 지. - 그렇다고 믿자 - 아무튼 난 시이터가 했던 대로 누나의 공격을 막은 덕분에 누나가 더 날뛰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며 그 다음 공 격에 대비했다. 그런데 공격은 날아오지 않았다. 누나는 나를 보며… 아니 정확히는 내 손에 걸린 멋진 마법검을 보며 입을 딱 하고 벌렸고, 나도 곧 누나가 놀란 이유를 알아채고 같이 입을 벌리고 놀라 버렸다. "시이터 씨!" 누나도 나도 그제야 시이터의 존재를 까맣게 잊어 먹었다는 것이 생각 난 것이다. 어쩐지 아침부터 내내 찜찜하다 했었다. "아침 햇살이 따뜻한데 마음은 왜 이렇게 추운 걸까?" 시이터는 따뜻한 아침 햇살을 맞으며 마른고기를 씹으면서 한숨을 쉬었 다. 결국 티아도 테이도 돌아오지 않았다. 무슨 사고가 생긴 걸까? 하 는 걱정도 했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마법검을 가진 테이와 티 아의 실력을 합하면 둘을 위협할 위험이라는 게 쉽게 생각나지 않았다. "혹시 진짜 버려진 건가?" 시이터의 마음은 점점 더 불행한 결론으로 기울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불행한 결론은 실은 절반은 사실이었다. 물론 그걸 시이터가 알 리가 없었지만…. 어쨌든 맛없는 마른고기를 다 먹은 시이터는 둘을 찾기 위해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 때…‥ "시이터 씨!!" "아…. 테이‥군." 저 멀리서 시이터의 이름을 부르며 자신을 찾고 있는 테이를 보며 시이 터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눈시울을 붉혔다. "역시 내가 너무 안 좋은 쪽으로 생각했었군. 티아 양은 그렇다 치더라 도 테이 군이 날 버리고 갈 리가 없는데. 내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상상 을 했던 건지…‥. 테이 군!! 여기야!!" 그렇게 반갑게 손을 흔드는 시이터였지만…‥ 어제 오지 못한 진실을 테이에게 듣게 되면 과연 어떻게 될까? 도플평원에서 케르디온이 아예 출전하지 않아서 암살에 실패했다는 보 고를 받은 랑그람은 출전 준비를 시켰다. 이번 작전이 실패할 때를 대 비해서 또 다른 작전을 짜 둔 랑그람은 아도니스 장군이 가이라가의 병 력을 남쪽으로 끌고 가고 있다는 소리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즐거우십니까?"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갑옷을 입고 있는 랑그람을 보며 유크로드가 물 었다. 랑그람은 그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대답했다. "당연하지! 아도니스 녀석 내가 명령을 내리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알고 그 쪽으로 적을 끌어들일 생각을 했을까? 정말 내가 얻은 몇 명의 신하 는 내 마음을 너무 잘 아는 것 같아! 그러니 즐겁지 않을 리가 있나?" "그래서 즐겁습니까?" "응! 즐거워." 유크로드는 미소를 지으며 더 묻지 않았다. 유크로드는 랑그람이 언제 나 인재에 목말라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랑그람 이 쿠데타에 성공했을 때 실질적으로 랑그람에게 많은 도움을 준 충신 들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자신도 그 중에 한 명이고, 아도니스와 록크 그리고 해조 성에서 적의 대 병력을 막아내고 있는 바그온 장군이 진정 으로 랑그람을 따르는 충신들이었다. 그 이외에 신하들은 죄다 권력에 눈이 멀어서 랑그람의 꼬심에 빠진 자들이라 지금 전쟁에서는 하등 도 움이 되지 않는 자들이었다. 랑그람은 그런 도움도 안되면서 불평만 많은 자들과 정말 믿을 수 있고 실력 있는 몇 명만을 가지고 6년 간 이 전쟁을 버텨 왔다. 그런 랑그람 이 믿고 있던 자들 중에 한 명이 이 전쟁을 끝낼 수 있을지도 모를 상 황을 명령 없이 독자적인 판단으로 적을 유인하고 있으니 그 기쁨이 이 루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유크로드는 잘 이해하고 있었다. 다만…. "전하… 노래는 그렇다 치더라도 그 춤은 좀…." "응?" 랑그람은 어깨춤에다가 흥겹게 스텝까지 밝으면서 갑옷을 입다가 한숨 쉬는 유크로드를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뭐 잘못된 거 있어?" "……아닙니다." "싱겁긴. 아무튼 빨리 병사 소집을 부탁해. 아도니스 장군이 알아서 파 티 준비를 잘 해주고 있는데 내가 지각을 하면 안되잖아. 빨리 가서 잘 놀고 오자고." 유크로드는 두 국가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도 있는 전쟁을 파티 취급하 는 랑그람의 센스에 다시 한번 한숨쉬고는 병사 소집이 어느 정도 진행 되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나갔다. 그러나 그 날 병사 소집보다 더 중요한 일이 생겼다. "케프카가 돌아왔다고?" "네. 케프카 한 명만 돌아왔습니다." "한 명만?" 케프카는 얼마 전에 레이르의 수색대 중 한 그룹의 소식이 끊긴 이브람 에 보낸 몬스터 퇴치 및 레이르 수색을 맡겼던 기사였다. 말이 기사지 인재가 없어서 케프카에게 맡긴 것이지만 케프카는 기사의 직위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자였다. 그런 자가 병사들을 어딘가에 버리고 혼자 왔다 는 소리에 랑그람의 이마에 핏줄이 돋았다. "어디 한번 변명이나 들어보러 가지." 순식간에 기분이 나빠진 랑그람은 거칠게 망토를 걸치며 접견실로 걸어 갔다. 접견실에 서성이던 케프카는 랑그람이 들어오자 급히 바닥에 넙죽 엎드 려서 바닥에 머리를 조아렸다. "소인 케프카 랑그람 전하를 뵈옵니다." 완전히 쑈를 하고 있다는 것을 광고라도 하는 듯한 케프카의 말과 행동 에 랑그람의 얼굴은 더욱 찌푸려졌다. "그래 보고 할 것은 뭔가?" 랑그람의 당장에 소리를 지를 것 같은 상태를 눈치 챈 유크로드가 선수 를 쳐서 케프카에게 묻자 막 한마디하려고 입을 연 랑그람은 어쩔 수 없이 입을 닫으며 케프카의 입에서 나올 변명을 기다렸다. "그‥그게 전 랑그람 폐하께 보고 드릴 일이…‥." "짐의 오른팔이 유크로드인 것은 잘 알텐데! 유크로드의 명령은 곧 내 명령이다!! 그대는 지금 짐의 명령을 거스르겠다는 건가?!" 일단 입을 닫았지만 한마디 안 해주면 입에 가시가 돋칠 것 같던 랑그 람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역정을 냈다. 케프카는 바닥에 더욱 머리를 조아리며 급히 말을 고쳤다. "아‥아닙니다. 소인 잠시 착각을 해서 큰 죄를 저질렀습니다. 제발 페 하의 넓으신 아량으로 용서해 주십시오." 케프카는 나름대로 예의를 차려서 용서를 빈 것이나 진심이 들어가지 않은 과장된 말은 극도로 싫어하는 랑그람의 화를 오히려 부추기는 결 과만 낳았다. 한마디 더 해주려고 입을 여는 랑그람을 유크로드는 케프 카가 눈치 채지 못하게 조용히 제지하며 다시 케프카에게 물었다. "그래 보고할 것은 뭔가?" "어‥엄청난 괴물과 만났습니다." "엄청난 괴물??" 괴물이란 말에 흥미가 생긴 랑그람은 분노를 가라앉히고 케프카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랑그람의 화가 가라앉았다는 것을 말투로 알아챈 케프 카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한결 편해진 말투로 설명을 계속했다. "네. 은빛의 갑옷을 입은 괴물이었습니다." "은빛 갑옷의 괴물이라고?" 랑그람은 눈을 빛내며 되물었다. 케프카는 이제 고개를 들며 랑그람을 쳐다보며 말했다. "네! 폐하 그것은 틀림없는 괴물이었습니다! 덩치가 산만하고 얼굴도 보이지 않는 은빛 갑옷을 입은 괴물이었습니다! 그 괴물에게는 검도 창 도 소용없었고, 엄청나게 빨라서 도망도 제대로 못 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그만…." "흠…. 그래서 병사들은 전멸이다 이건가?" "네. 그렇습니다. 죄송합니다! 소인의 실력으로는 그 괴물을 어쩌지 못 해서 그만 페하의 귀중한 병사들을 죽게 만들었습니다. 죽여주십오소서 !" 말은 죽여 달라며 머리를 조아렸지만 케프카의 말속에는 제발 살려 달 라는 뜻이 팍팍 담겨 있었다. 아마도 보통 왕이었다면 자신의 잘못을 자책하며 울분을 토하는 신하를 달래거나 다시 기회를 줄지도 몰랐다. 하지만 케프카가 실수 한 것은 자신을 죽여 달라고 외치고 있는 사람이 다른 일반적인(?) 왕과는 틀린 괴짜 왕이라는 것이다. "그래? 그럼 그대의 바램대로 죽여주겠노라." "네?" 철저하게 느끼할 정도로 궁정 예법을 지키던 케프카는 너무나 의외의 대답이 나오자 그만 불순한 대꾸를 하고 말았다. 하지만 랑그람은 그 실수에는 별 신경 안 쓰며 무덤덤한 목소리로 케프카에게 다시 한번 말 해 줬다. "그대가 죽어야만 마음이 편해진다면 짐이 손수 죽여주겠네." 그렇게 말하며 허리의 검을 빼는 랑그람을 보며 케프카는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났다. "아‥아닙니다. 페하! 역시 다시 생각 해보니 제 손으로 병사들의 원한 을 갚고 싶습니다. 그러니 제발 한번만 더 기회를…‥."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케프카를 보며 랑그람은 비웃음을 흘리며 말했 다. "병사들이 죽어 나갈 때 아무것도 못하던 자가 무슨 원한을 갚는다는 거지?" "그‥그것은 일단 페하께 보고를 올리기 위해…‥." "그런 것은 연락병한테 맡기면 되지 않나? 자네는 그 연락병이 무사히 보고를 할 수 있도록 병사들과 같이 목숨 걸고 그 괴물을 막아야 되는 직책 아니었던가?" "하‥하지만 페하. 제가 마침 그 자리에서 떨어져 있어서." "호오! 항상 병사들의 앞에서 지휘를 해야 되는 기사란 자가 어째서 싸 움 장소에서 떨어져 있었는지 알고 싶군." 랑그람은 이미 케프카의 앞에 서서 검을 머리 위로 쳐들었다. 케프카의 얼굴은 이미 새파란 수준을 넘어서 새하얀 얼굴이 돼서 덜덜 떨고 있었 다. 랑그람은 잔인하게 미소지으며 물었다. "유언은 없나?" "사‥살려 주십시오!!" "유언치고는 너무 짧군. 잘 가게!" 랑그람은 그대로 검을 내리 그었고, 케프카의 비명 소리가 접견실에 울 려 퍼졌다. "쳇! 완전 겁쟁이가 따로 없군." 랑그람은 검을 거두며 혀를 찼다. 랑그람의 검은 케프카의 가랑이 사이 에 꽂혔다. 처음부터 겁만 실컷 주려고 마음먹었던 랑그람은 입에 게거 품을 물고 오줌까지 지리며 기절한 케프카를 불쾌한 눈으로 보며 경비 병을 불렀다. 접견실 안으로 들어온 경비병에게 랑그람은 케프카의 머 리를 툭툭 차며 명령을 내렸다. "이 놈을 당장 지오아 탄광으로 보내 버려라! 아 그리고 유크로드!" "알겠습니다. 케프카의 지위 및 재산과 가문은 이 시간 부로 다 박탈하 겠습니다." "……넌 너무 눈치가 빨라서 가끔 무서워." "칭찬 감사 드립니다." "너한테는 농담도 제대로 못하겠다. 아무튼…." 랑그람은 끌려나가는 케프카를 슬쩍 곁눈질로 쳐다보며 유크로드에게 물었다. "그 은빛 갑옷의 괴물이라는 거… 뭐라고 생각해." "생각나는 것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나도 생각나는 것이 하나밖에 없어. 우리 동시에 말해 볼까?" 어느새 화가 풀렸는지 싱글벙글 웃으며 장난을 치는 랑그람의 행동에 유크로드는 한숨을 쉬면서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랑그 람의 '하나, 둘, 셋!'의 구령에 맞춰서 유크로드는 자신의 생각을 말했 다. 동시에 랑그람의 입에서도 같은 말이 튀어 나왔다. "하프엘프 카렌 아줌마의 가디언! 은빛의 다크 나이트!!" 랑그람과 레이르 그리고 유크로드는 어린 시절에 소꼽 친구였다. 신분 의 차라는 것이 있었지만 그 셋이 마음놓고 아이들처럼 웃으며 놀 장소 가 한군데 있었다. 별궁에 기거하고 있던 하프엘프 카렌 아줌마의 방이었다. 다른 사람들 눈치 안보고 아이들답게 실컷 놀고 싶을 때는 늘 찾아가던 곳이었다. 레이나 여왕과 자매결연을 맺었던 엘프 이르의 딸이기 때문에 카렌에게 도 형식상이지만 왕위 계승 권이 있었다. 비록 형식뿐이기 때문에 실제 로 왕위 계승은 할 수 없어도 그만큼 대우를 받던 카렌이지만 레이르들 이 딱딱한 궁중 예법보다는 아이들답게 커 가길 바라는 마음에 자신의 궁에 들렸을 때는 그 또래 아이들을 대하듯이 같이 놀아 줬기 때문에 랑그람도 레이르도 유크로드까지 카렌을 무척이나 따랐었다. 나중에 카렌이 궁을 나갔을 때 레이르는 삼일 낮 밤을 울었었고, 랑그람 과 유크로드는 그런 레이르를 달래느라 자신들도 울고 싶은 것을 까맣 게 잊어버렸던 적이 있었다.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며 랑그람은 유크로드에게 자문을 구했다. "그때 카렌 아줌마의 가디언이라던 그 은빛 다크 나이트 이름이…‥ 제 임스 아저씨였지?" "그렇습니다." "카렌 아줌마와 제임스 아저씨는 지금의 다이리 궁전에서도 아는 사람 들이 제법 남아 있는데…‥." "그만큼 인상이 강했던 분들이었으니 당연하죠." "그래. 그렇기 때문에 그 곳에 살고 있다가 우리 병사들을 만나게 되었 다면 직접 오시던가 우리에게 말만 전하게 해도 우리들이 손을 안 댈 것이라는 것을 잘 아실 분들이란 말이야. 그런데 두 번이나 우리 병사 들과 싸움을 벌이셨어." "지켜야 될 것이 있기 때문이겠죠. 우리에게 숨겨야 될…‥." "후후후. 두려움을 모르지만 의지를 가진 특별한 다크 나이트. 더구나 전설이라고 생각한 실버 드래곤 티아루아에게 받았다던 최강의 다크 나 이트라면 병사 1개 부대… 아니 그 이상을 보내도 상대가 안 될게 뻔하 지. 그런 존재가 지키고 있는 공주님이라…, 하지만 그냥 놔둘 수는 없 어. 전쟁도 끝나 가는 판이니 반드시 레이르를 데리고 와야 해!" 랑그람의 결의에 찬 외침을 들으며 유크로드는 조용히 물었다. 아니 확 인했다. "직접 가실 겁니까?" "유크로드 너의 생각은 어때?" "제발 부탁이니 이미 결정하시고 묻는 것은 그만 둬 주세요. 그런데 아 도니스 장군에게 지원군을 어떻게 할 생각이십니까?" 유크로드는 어쩔 수 없는 분이라는 생각을 하며 아도니스에 대해서 물 었다. "뭐… 어쩔 수 없지. 내가 직접 결말짓지 못 하는 게 아쉽긴 하지만 그 일보다는 레이르의 일이 더 중요해. 아도니스 장군에게는 예정대로 지 원군을 보낸다. 그리고 나는 내 직속 부대와 함께 레이르를 찾으러 가 겠다. 레이르를 반드시 이 다이리로 데리고 돌아와야 해. 반드시…‥." 그렇게 말하는 랑그람의 눈은 광기로 번쩍거렸다. "너무해. 너무해. 너무해. 너무해. 너무해. 너무해. 너무해." 난 머리를 긁적이며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고, 누나는 짜증이 나서 못 견디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시이터를 데리고 카렌의 오두막까지 온 것 은 좋았으나 이 오두막과 카렌에 대해서 설명해야 됐고, 그것을 설명하 게 되자 자연히 어제 밤 시이터를 버린 것(?)에 대해서도 설명할 수밖 에 없었다. 어젯밤 자신이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시이터는 구 석에 쪼그리고 앉아서 계속 '너무해'라는 말만 반복했다. "남자가 언제까지 궁시렁 댈 거야!! 아까부터 나랑 테이가 미안하다고 했잖아!!" 참다, 참다 못 참은 누나가 소리를 빽 지르자 시이터는 고개만 슬쩍 돌 려서 누나를 쳐다보았다. 원망에 가득 찬 눈으로…‥ "뭐‥뭐야?" "어제 침대에서 편하게… 그리고 따뜻하게 잤지?" "윽…." "나는 밤새 추위에 떨며 혹시 잘 못된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을 하며 잠도 제대로 못 잤어." "으… 그래서 미안하다고…‥." "거기다가 아침 맛있게 먹은 것 같네." "……." "난 바로 티아 양이랑 테이 군을 찾기 위해서 아침도 마른고기 하나 씹 었는데… 아주 맛있는 식사도 하고…‥." "으으으…. 그래서 미안하다고 했잖아!!!" "말로만?" "뭘 바라는데?" "해줄 꺼야?" "요구 조건 먼저 들어보고." 시이터는 더 말할 것도 없다는 듯이 다시 고개를 돌리고 '너무해'를 반 복했다. "젠장!! 혼자 실컷 궁상이나 떨라지." 누나도 더 상대하기 싫다는 듯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시이터가 자아 내는 음침한 분위기에 주눅든 아이들을 보자 누나는 몸을 떨다가 결국 항복을 하고 시이터에게 소리쳤다. "알았어! 내가 졌어. 요구 조건을 말해." "정말 해 줄 거지?" 다시 고개만 살짝 돌리고 묻는 시이터에게 누나는 결국 승낙의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또 싫다고 하면 금방이라도 아까의 음침한 '너무해' 반복을 계속할 것 같은 분위기였기 때문일 것이다. 누나가 완전히 약속을 하자 시이터는 언제 음침했었느냔 듯이 금방 웃 음을 띠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만!!" 누나가 급히 다가오는 시이터를 제지하자 시이터는 '나 다시 삐진다'라 는 표정으로 얼굴을 찌푸렸다. "요구 조건을 들어주긴 들어주겠어. 단 이상한 것은 절대 시킬 생각하 지마!!" "이상한 것? 어떤 이상한 것?" "그‥그러니깐. 그‥그거 있잖아!" "그거? 그거가 뭘까?" 시이터는 다 알고 있으면서 짐짓 모른 척 하자 누나는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이며 몸을 떨었다. 누나가 말하고 싶은 것은 나도 대충 눈치챘다. 그런데 평소 얼굴에 철판을 몇 십 겹은 깔았다는 듯이 멋대로 행동하던 누나가 설마 그 키스라는 말을 하기가 부끄러워서 저렇게 머뭇대는 게 믿을 수가 없었다. 뭐 시이터와 같이 행동하고 나서 누나답지 않은 모 습을 워낙에 많이 봐서 그런지 이제는 별로 신기하지도 않았지만…. 난 이 기회에 누나에게 점수 좀 따 둘까 하는 생각에 대신 말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시이터 씨. 누나가 하고 싶은 말은요. 키스 라던지 아니면 포옹이라던 지 또는 그 이상의 이상한 짓(?)은 절대 안 된다고 말하고 싶은 거예 요. 맞지 누나?" 누나는 있는 대로 얼굴이 빨개져서 날 노려보았다. 내가 뭐 실수했나? 난 도와준 건데 표정이 왜 저래? 내가 뭔가 실수했긴 했나 보다 누나가 갑자기 노호성을 지르며 나를 있 는 대로 패대기치는 것을 봐서는…‥. 하지만 난 억울해!! 내가 뭘 실 수했다고 갑자기 패냐고?!! 결국 나를 죽지 않을 정도만 팬 누나는 숨을 씩씩 들이쉬며 시이터를 노려보며 말했다. "알겠지? 이상한 거를 요구하면 당신도 이 꼴로 만들어 주겠어!!" "난 이상한 거 시킨 적 없는데." "아무튼 이상한 요구는 할 생각 절대 하지마!!" "티아 양 난 그저 나한테 존댓말 써 달라는 요구를 하고 싶을 뿐이야." "윽!" "설마 못 들어주겠다는 것은 아니겠지? 이상한 것만 아니면 다 들어주 겠다고 했으니 너보다 오빠인 나에게 존댓말 쓰는 것은 당연한 거지 절 대 이상한 게 아니잖아." "으으으." "자 약속했지? 뭐든지 들어주기로." 난 레이르의 부축을 받아 간신히 일어나며 내 몸에 힐을 걸었다. 누나 는 지금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마치 뭔가를 참는 듯한 행동을 보였다. 흠. 지금까지 누나가 시이터를 대하는 것을 봐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존 댓말을 쓰기 싫어할텐데…. 그렇다고 이미 약속을 해 버렸으니 안 쓸 수도 없고, 고민 좀 되겠군. 난 왠지 고소하다는 생각에 느긋하게 상처를 치료하며 흥미진진하게 구 경했다. 시이터는 자꾸 누나에게 '존댓말, 존댓말' 노래를 부르며 재촉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누나의 주먹이 불끈 쥐나 싶더 니…. "아‥알았…어……‥요." "응? 뭐라고 잘 안 들려?" "으득. 알았다고요. 시이터… 씨." "에? 시이터 오빠라고 불러." "그것까지는 죽어도 못해!! …요." "쳇 아쉽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시이터 오빠라고 부르게 시킬걸. 아 그래 만약 존댓말 약속 어기면 오빠라고도 부르기야 알았지?" "아‥알았어요? 이제 됐…죠?! 이것으로 어제 모르고 내버려 둔 것은 그냥 넘어가는 거죠?" "응. 이제 됐어." 아주 산뜻하게 웃으며 대답하는 시이터의 얼굴에는 우중충한 분위기의 얼굴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설마… 시이터는…. "당신… 일부러 삐진 척 한 거였죠?" 누나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이를 갈면서 물었다. "응? 당신? 그럼 난 너를 여보 라고 불러야 되나? 우리 관계 진전이 너 무 빠른 것 같지 않아?" 그러나 시이터는 여유 있게 말을 돌리며 누나의 질문을 회피했다. 덤으 로 누나의 속을 빡빡 긁는 말을 하면서…. "헛소리 하지 마!!" "앗! 존댓말 약속 안 지켰다. 이제 오빠라고도 부르기." "으으으…." "뭐해? 오빠라고 불러야지. 약속했잖아." 시이터는 장난끼 가득한 웃음을 지으며 누나를 재촉했다. 그러자… "으…흑… 우아앙!" 결국 누나는 울분에 못 이겼는지 울면서 2층으로 도망치듯이 올라가 버 렸다. "쩝. 또 울린 건가? 이거 울릴 생각은 정말 없는데 또 울려 버렸네." "거듭 느끼지만… 시이터 씨는 정말 굉장해요." 내 솔직한 감탄에 카렌과 제임스도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놀라워하 며 - 제임스는 입이 없지만 분위기 상 그런 것 같다 -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를 표했다. 저 둘은 인간 남자 앞에서 꼼짝도 못하는 누나를 처음 봤으니 더 놀랐을 것이다. 하긴 나도 처음에 엄청 놀랐으니깐. 시이터 는 뭐가 쑥스러운지 머리를 긁적이다가 레이르와 카렌과 그리고 제임스 를 차례대로 쳐다보다가 마지막에 나를 보고는 말했다. "이제 누가 누군지 소개 좀 시켜 줄래? 덤으로 너희들과 어떤 관계인지 도." "에 그게…." 이거 뭐라고 둘러대며 설명해야 되지. 카렌은 그렇다 치더라도 의지를 가진 다크 나이트에 쿠데타로 쫓기고 있는 왕녀 레이르를 뭐라고 설명 해야 되는 거야? 아악!! 왜 요즘 누나가 해야 할 역할을 내가 다 떠맡 아야 되냐고오!!! 저녁을 먹은 우리들은 밤늦도록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결국 우리 남매가 드래곤이라는 사실을 빼고는 나머지는 전부 시이터에게 솔직하 게 다 털어놓았다. - 난 누나처럼 적당하게 둘러대는 재주가 없어서였 다. - 우리 남매가 드래곤이라는 것을 시이터에게 비밀로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 첸 카렌과 제임스는 적당히 말을 맞춰 주었고, 레이르는 틈을 봐 서 칭얼대는 아이들을 다른 방으로 데리고 갔다. 아마도 분위기를 봐서 누나와 나를 드래곤이라는 호칭 빼고 부르라고 교육을 시키는 것 같았 다. 설마 그 반짝반짝 빛나는(?) 교육은 아니겠지? "흠… 그나저나 놀랬는걸 난 단순히 테이가 도망친 애인 찾는 줄 알았 는데… 설마 이 나라의 왕녀일 줄이야." "에 그게…." "테이 님과 티아 님은 어렸을 때 왕궁에서 저와 같이 산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레이르를 잘 알고 있는 거죠. 한동안 둘이서 여행을 떠났다가 오랜만에 고향에 왔다가 레이르가 행방불명이 된 것을 알고 찾아 다녔 다고 합니다. 그런데 시이터 님은 고향이 어디시죠?" 카렌은 우리 남매 둘에게 님자를 붙이는 것을 그만 두지는 않았다. 하 지만 자연스럽게 레이르와 시이터에게까지 님자를 붙이면서 대화를 하 며 마치 그것이 입버릇인 것처럼 꾸며서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에? 저요? 저는 고향은 프론트 연합국입니다.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여행을 시작했고, 워낙에 여행을 좋아해서 고향의 의미가 거의 없어요. " "그래도 이번에 고향에 돌아가시는 거네요." "에 그게… 뭐 그렇다고 할 수도 있죠." 시이터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이번에는 질문의 화살을 제임스에게로 돌 렸다. "아까 제임스 씨라고 했죠? 왜 아까부터 갑옷을 계속 입고 있는 거죠?" '크윽! 올게 왔다.' 난 우리 남매가 드래곤이라는 것을 숨긴 것 이외에도 제임스가 다크 나 이트라는 것도 숨겼다. 도대체 의지를 가진 다크 나이트라니… 저걸 어 떻게 설명해야 된단 말인가? 그러나 제임스는 미리 준비를 해 두었는지 바로 대답을 했다. "난 저주에 걸려서 이 갑옷을 벗을 수가 없습니다." "네에? 저런 어쩌다가 그렇게…‥." "당신이 구했다는 고대 검과 비슷하죠. 고대 갑옷을 손에 넣고 입었긴 입었는데 도대체가 벗겨지지를 않습니다. 더구나 무슨 저주인지 모르겠 지만…. 후후후 마음대로 죽지도 못한답니다. 먹지도 자지도 않아도 그 리고 오랜 시간을 살아왔는데도 죽어지지도 않더군요. 고대 병기라는 것은 생각보다 위험한 물건이던군요." "그‥그런가요? 그런 것도 있었다니…, 나도 고대 유적은 꽤나 돌아다 녔다고 자부했는데 아직 많이 멀었군요." "행여나 죽지 않는다는 내 말에 솔깃해서 이거와 똑같은 것을 얻을 생 각은 마시오. 죽지 못한다는 것은 축복이 아니요. 저주… 그것도 지독 한 저주입니다." 어째 저 말에는 뼈가 들어 있는 것 같은데 내 착각일까? 연기치고는 피 를 토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말을 내 뱉는 제임스의 팔을 카렌이 부드 럽게 잡았다. 마치 안심시키는 듯이…. 난 바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포기했다고 마음먹었다. 이제는 아프지만 그래도 즐거웠던 기억을 추억으로 삼기로 결심했다. 아니 그렇게 억지 로 내 자신을 납득시키기 위해 어제부터 계속 결심에 결심을 했다. 하지만 역시나 아직까지 둘의 다정한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내게 고통 이었다. "나… 잠시 소화 좀 시킬 겸 바람 좀 쐬고 올게." 소화 따위는 아까 전에 다 됐다. 하지만… 그 자리에 더 있고 싶지가 않았다. 더 앉아 있다가는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를 일이었기 때문이 다. "테이 님." 뒤에서 카렌이 날 걱정해 주는 목소리가 날 붙잡았지만 난 뒤도 돌아보 지 않은 체 대답했다. "금방 돌아올게. 이야기 나누고 계세요." 문밖에 나서자 가을이 깊어 가는 느낌이 드는 쌀쌀한 바람이 날 맞았 다. 마치 지금 싸늘한 내 심정을 대변해 주는 듯한 기분이었다. "휴…. 차라리 잠을 자지 말걸. 그냥 누나랑 같이 시끌벅적하게 놀았다 면… 미친 듯이 그렇게 놀았다면…‥." 한숨을 쉬며 목적지 없이 그냥 발길 가는 대로 걸어가던 나는 아름다운 휘파람 소리에 걸음을 멈췄다. 어딘가 아련히 옛 향수를 자극하는 음률 이었다. "누구지?" 휘파람을 부는 이가 누군지 궁금했고, 그리고 너무나 아름답고 아련한 추억을 자극하는 음악에 나도 모르게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누나?" 아까 2층으로 울면서 올라갔던 누나는 어느새 나왔는지 큰 나무에 기대 서 휘파람을 부르고 있었다. 나무 사이로 비치는 달빛에 반사되어 환상 적인 빛을 내는 은발은 나와 같은 은발이지만 너무나 틀린 것 같은 느 낌이었다. 누나는 내가 왔다는 것을 눈치 챘는지 슬쩍 곁눈질로 나를 한번 쳐다보 고는 계속 휘파람을 불었다. 머쓱하게 떨어져서 서 있기가 쑥스러운 기 분에 난 누나 곁에 다가가서 옆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잠자코 누나가 부르는 휘파람 음악을 듣다가 음률에 익숙해지자 나도 따라 불렀다. 우 리 쌍둥이 드래곤 남매의 휘파람 소리가 숲 안에서 울려 퍼졌고, 주위 는 갑작스레 조용해졌다. 주위의 풀벌레도 숲 속의 새들과 동물들도 전부 숨을 죽이고 우리 둘의 조그마한 음악회를 감상한다는 착각까지 들었다. 이윽고 휘파람 음악은 끝이 나고 난 어색한 기분에 침묵했다. 누나도 나무에 기대서서 하늘을 보며 조용히 서 있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 르고 먼저 말을 꺼낸 것은 바로 나였다. "누나." "응?" "누나는 알지? 카렌이 떠난 이유." "……." 침묵은 긍정의 뜻도 된다던가? "누나도 말해 줄 수 없는 거야?" "……." "나 이제 그만 포기하고 싶어. 하지만 이유를… 적어도 카렌이 날 떠난 진짜 이유를 알고 싶어. 그렇지 않으면… 난…. 어?" 누나는 갑자기 나에게 안겨 왔다. 얼떨결에 누나를 안은 나는 금방 내 가슴이 촉촉해지는 것을 느꼈다. 소리 없이 누나가 울고 있었다. "젠장…. 도대체… 누나도 카렌도 나에게 뭘 숨기고 있는 거야? 도대체 왜 이유를 물으면 누나는 울기부터 하는 거냐고?" 누나는 내 품에서 도리질을 쳤다. 난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도대체 뭐야? 왜 우는 거냐고!! 왜 카렌이 날 떠난 거냐고?!! 울지만 말고 제발 말해 줘!! 이유가 뭐냐고!!" 난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누나의 어깨를 거칠게 붙잡고 흔들었다. "미‥미안. 미안해. 미안해 테이야." 젠장… 그렇게 눈물이 범벅이 돼서 힘없이 말하면 나만 나쁜 놈이 된 것 같잖아. "젠장… 젠장!!" 난 그 자리에 더 있을 수가 없었다. 정신 없이 달리고 달렸다. 눈앞에 큰 나무가 보이자 난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르며 뛰어서 나무를 걷어찼 다. "제기랄!!" 나무는 내 힘을 버티지 못하고 부러지며 커다란 소리를 내며 쓰러졌고, 나무를 걷어차고 난 뒤에 난 그 자리에 쓰러지듯이 누웠다. 큰 나무가 부러진 덕분에 하늘이 손에 잡힐 듯이 잘 보였다. 보름달은 아니었지만 제법 큰 달빛이 주위를 환하게 밝혀 주었고, 난 누운 체로 두 팔로 눈 을 가렸다. 한참을 그렇게 누워 있자니 어느새 내 눈에서도 한줄기 눈 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가슴속에 무언가 따뜻한 무언가가 퍼져 나가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너 무나 포근하고 너무나 소중한 두근거림이 느껴졌다. 이것의 정체를 알 수가 없었지만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그 느낌에 몸을 맡기고 싶었 다. 그 정도로 그 알 수 없는 느낌은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왠지 모르게 안타까운 느낌도 들었다. 그래서 눈물이 흘러내 렸다. 그리고 기분 좋은 피로감이 몰려왔다. 그렇게 난 조용히 잠들었다. 테이가 가 버리고 난 뒤 난 그 자리에 주저앉은 체 참고 참았던 오열을 터트렸다. 내가 테이를 불행하게 만든 것이다. 그 동안 괴롭힌 것은 비 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테이 마음에 상처를 줘 버렸다. 모든게 다 나 때문이다. 한참을 그렇게 울고 있을 때 부드러운 손길이 내 어깨를 감싸는 것을 느꼈다. 난 흠칫하며 뒤로 물러났지만 다행히 그 남자가 아니었다. 카 렌이었다. "뭐‥뭐야? 왜 나온 거야?" 난 급히 눈물을 닦으면서 애써 태연한 척 애쓰려고 했지만 닦아도, 닦 아도 눈물은 계속 흘러내렸다. 결국 닦기를 포기한 나는 그대로 손으로 얼굴을 가린 체 흐르는 대로 내버려뒀다. 카렌은 내 옆에 살며시 앉아서 내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기다려 줬다. 한참을 울고 나자 울만큼 울어서인지 아니면 눈물이 말라 버린 건지 눈 물이 더 흐리지 않아서 겨우 얼굴에서 손을 뗄 수 있었다. 내가 손을 떼자마자 카렌은 기다렸다는 듯이 차가운 물수건으로 내 얼굴을 정성스 럽게 닦아주었다. "언제부터 나와 있었던 거야?" "두 분 이서 휘파람을 부르실 때부터요. 엘프들의 귀도 드래곤보다는 못하지만 굉장히 좋은 거 알고 계시잖아요." "카렌은… 하프엘프잖아." 할말이 없었던 난 엉뚱한 말을 해 버리고 말았다. 카렌은 내 엉뚱한 말 에 조용히 미소지으며 내 얼굴을 마저 닦아주었다. "왜 아직 말 안 해주셨나요?" "…말 할 기회가 없었어." "드래곤들은 저 같은 미천한 종족에게 거짓말 같은 것도 하나요?" "미안… 실은 무서워서… 더구나 요즘은…." "시이터라는 남자 때문이죠?" "으응." 역시나 눈치가 빠른 카렌이었다. 더구나 카렌은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분위기가 이르 언니와 비슷했다. 편안하고 포근한 정말 친언니가 있다 면 이르 언니 같은 타입의 언니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분위기 와 똑같아졌다. 그리고 그 분위기 탓에 난 거짓말은 하지 못할 것 같았 다. 뭐 어차피 마음을 읽는 능력이 있는 카렌에게 거짓말은 애초에 통 하지 않겠지만…‥. "나 테이를 배신했어." 서론 본론 다 빼 먹고 결론만 말한 내 말에 카렌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무슨 배신이요?" "테이를 좋아하는데도… 다른 남자에게 가슴 두근거림을 느꼈어. 내 테 이에 대한 마음 때문에 카렌이 떠나갔는데… 그런데 나는…. 난 카렌과 테이 둘 다 배신한 거야. 난… 흑… 난 나쁜 드래곤이야. 나쁜 여자라 고. 흑…." 도대체 이 많은 눈물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아까 전에 눈물이 말라서 울음을 그쳤던 것이 아닌가 보다. 카렌은 잠자코 내 등을 토닥여 주며 말했다. "그 두근거림은 테이 님한테 두근거렸던 것과 같은 두근거림이었나요?" "아니. 테이에게 느끼는 건 따뜻한 두근거림이야. 하지만 그 남자가 가 까이만 오면… 또 내 귀에 속삭이거나 하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 리면서 온 몸에 힘이 쭉 빠져." "그럼 티아 님은 그 시이터라는 남자를 좋아하시나요?" "아니야!! 절대로 싫어!! 그런 남자… 그런 남자 따위는 정말 싫어!!" 내가 정색을 하며 부정하자 카렌은 살짝 미소지으며 말했다. "그럼 된 거잖아요. 그 남자에게 가슴이 두근거렸던 것은 뭔가 다른 이 유가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하지만… 나도 그렇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런데 도저히 모르겠어. 아 무리 그 남자의 특이한 점을 찾아보려고 해도 보통 인간인걸." "제가 몰래 마음을 읽어봐도 보통 인간이더군요. 그가 말한 것도 거짓 말이 아니고요. 그리고 레이르에 대해서 도와주고 싶다고…. 솔직하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착한 인간이던데요." "몰라. 그깟 오만불손하고, 저질에다가, 빈정거리기 좋아하는 남자 따 위는…." "후후후. 자세히도 관찰 하셨네요. 하지만 이건 못 느끼신 것 같네요." "에?" "너무 정신 없어서 못 느낀 것 같으신 데요. 시이터라는 남자 분위기가 티아 님의 아버님과 비슷한 느낌이에요" "말도 안 돼!!!" 난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르며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내가 비록 부모님께 테이보다 못하지만 그래도 효녀로 통한단 말이야! ! 그리고 난 우리 부모님을 굉장히 좋아하고!! 자랑스럽다고 생각한단 말이야!!! 그런데 저런 자식과 우리 아빠가 똑같다니 절대 아니야!!!" "음. 분명 말투나 행동은 하나도 안 닮았어요." "당연하지!! 우리 아빠는 엄마 이외에는 그런 느끼한 말 사용 안 해!!" 근데 이 말도 칭찬이라고 쳐야 되나? 에이 금술 좋다는 뜻인데 그냥 넘 어가자. 아무튼 내 외침에 카렌은 조용히 침묵을 지키다가 내가 숨이 차서 말을 잠시 멈췄을 때 다시 말을 꺼냈다. "티아 님도 테이 님도 그리고 두 분의 부모님도…. 저 시이터라는 사람 과 공통점이 있는데요. 어려운 사람은 그냥 두고 못 지나친다는 착한 마음씨예요. 그리고 티아 님의 아버님은 겉으로는 잘 들어내지 않는 자 상함이 있었어요. 뭐 그때 처음 뵈었을 때 내 앞에서 완벽히 감추지는 못했기 때문에 느낀 건데…‥ 너무나 따뜻한 마음이라 기억에 남아 있 어요. 시이터라는 사람의 마음속에도 그와 같은 따뜻한 마음이 있더군 요." "이봐 카렌. 보통 여자들의 어린 시절 첫 사랑은 자기 아빠라고들 하지 만 난 아니야. 백 보 양보해서 그 인간이 우리 아빠랑 닮았다고 치더라 도 난 처음으로 좋아한 것은 테이야." "테이 님은 그 따뜻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겉으로 들어내고 다니잖아 요." "……." "말이 없으신 걸 보니 인정하시나 보네요." "우… 인정 안 할 수가 없잖아. 처음 알을 깨고 나왔을 때 그 바보 같 을 정도로 따뜻한 마음 때문에 반했는걸." "마음이 통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편리하네요." 난 그 말에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피곤한 일이야. 조금이라도 내 마음을 안 들키려고 얼마나 신경 쓰는 데… 내가 조금이라도 마음을 느슨하게 가지면 테이는 금방 내 마음을 눈치 챌 거야. 그것 때문에 테이가 부담을 가지고 날 멀리할 것 같아서 … 두렵단 말이야." 우… 또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이러다가 몸에 수분이란 수분은 죄다 나오는 게 아닐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카렌은 다시 내 등을 다독여 주며 말했다. "꼭 그렇게 숨길 거는 없잖아요. 아주 조금씩이라도 좋으니 테이 님에 게 티아 님의 마음을 전달하세요." "하지만…‥." "무섭다고… 두렵다고 생각해서 자꾸 숨기면 티아 님만 상처 받는 게 아니에요. 나중에 티아 님의 마음이 어느 순간 들키게 되면 테이 님은 더 큰 충격 받을지도 몰라요.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이라서…. 그래도 좋으세요?" "……그건 싫어." "그럼 조금씩 용기를 내서 티아 님의 마음의 문을 여세요. 테이 님에게 조금씩 열어 나가세요. 아주 조금씩이라도 좋아요. 두 분에게 남겨진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았잖아요." "카렌 꼭 이르 언니 같아." 내가 마치 어린애같이 카렌에게 달래지는 느낌에 입을 삐죽이 내밀며 말하자 카렌은 장난스럽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후후후 당연하죠. 저는 우리 엄마 딸인걸요. 그리고… 인간 세상에서 100년을 산 것과 티아 님처럼 그냥 레어에서 혼자 100년을 산 것은 커 다란 차이가 있답니다." "경험의 차이라는 거야?" "맞아요. 그러니 인간 세상에서 갈고 닦은 인생의 선배 말을 믿어 주세 요." "쳇! 나이는 우리보다 적으면서…." 난 가시 돋친 말을 했지만 속은 한없이 카렌에게 감사하고 있었다. 입 으로 그 말을 하기가 쑥스러운 나는 알아서 카렌이 읽기를 바라면서 강 하게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테이의 마음이 느껴졌다. 불안. 초조. 분노. 슬픔 등의 마음이 마구 뒤 엉켜 있는 테이의 마음이 느껴졌다. 저렇게 만든 게 나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자 한없이 미안해졌다. 난 테이의 마음을 가만히 감싸주기 위해 테이에게 꼭꼭 닫아 두었던 내 마음의 문을…‥ 내 진심을 담은 마음의 문을 살며시 열었다. 그리고 테이의 상처 입은 마음을 살며시 보듬어 주었다. '이것 가지고는 너에게 했던 심한 짓의 반에 반도 안 되는 보상이지만 … 미안해 아직 용기가 안 나서 이 정도 밖에 못해 주는 누나를 용서해 줘. 그리고 잘 자. 내 사랑하는 동생아.' 내 진심을 담은 마음에 쌓여서 안정되어 가는 테이의 마음을 느끼며 난 조용히 일어났다. "드래곤이 감기 걸릴 리가 없지만… 테이 녀석은 워낙에 멍청이라서 이 대로 자게 내버려두면 감기 걸릴지도 몰라. 그러니 데리고 들어갈게." "도와 드릴까요?" "아‥아니야. 내가 하고 싶어." 난 쑥스러워서 빨개진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아 얼른 고개를 돌리며 말 했다. 내 뒤에서 카렌이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후후후. 그러세요. 사랑하는 동생을 업고 올 기회를 다른 누군가에게 넘기기 싫으신 마음 이해해요." "그‥그런 거 아니야!! 아‥아무튼 나 갖다 올게!!" 난 허겁지겁 그 자리에서 벗어나서 테이에게로 달려갔다. 난 테이를 업 어 본적이 없다. 우리 드래곤들의 본 모습일 때는 날개 때문에 당연히 테이를 엎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인간의 모습일 때는 좋아하는 이의 따뜻한 체온을 느낄 수가 있었다. '아마도 신은 오래 살지 못하는 인간들에게 이런 몸을 준 것은 이런 이 유 때문이 아닐까? 사랑하는 이의 체온을 좀더 많이 느낄 수 있게…‥ 신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 가끔 인간들의 세계에 내려가서 노는 드래곤들은 그 따뜻한 체온이 부러워서 인간의 모습을 하는 것일지도… ‥.' 조용히 잠들어 있는 테이를 발견한 나는 테이를 조심스럽게 엎었다. 테 이의 따뜻한 체온이 내 등을 통해 느껴졌다.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내 소중한 동생. 내 소중한 사랑. "미안. 힘들게 해서 정말 미안해. 앞으로는 나 상냥하고 착한 누나가 될게." 내 마음이 전달 돼서인가 테이는 웅얼거리며 '누나. 누나.'라고 잠꼬대 를 하고 있었다. 내 얼굴에는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누가 보면 너무나 행복해 보인다는 말이 나올 미소일 것이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세상 그 어떤 여자 중에서도 내가 가장 행복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우웅. 누나 폭력녀." -빠직 훗! 참자. 그냥 잠꼬대인데. 참아야지. "마녀 누나…. 힘만 무식하게 세고…. 우웅. 얼굴 예쁘면 단가? 마음은 … 우웅… 그 모양인데… 바보 누나…." 호호호… 차‥참아야지 우리 귀엽고 사랑스러운 동생이 그냥 헛소리하 는 건데 참아야지…. "시이터한테 시집이나… 가 버리면…‥ 속이… 다…‥ 시원할 텐데… ‥." -빠지직 내 이성의 끈은 끊어졌고, 난 있는 힘껏 테이를 던져 버리고 그냥 카렌 의 집으로 돌아갔다. "으으. 테이 이 바보 드래곤아!! 너 따위는 이제 나도 몰라!!!" 있는 힘껏 소리치고 돌아가는 내 뒤에서 카렌의 한 숨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하아. 왜 두 분은 언제나 끝이 그 모양이신지…."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나도 몰라!! 27화 레이르와 랑그람 "엣치!" 쩝 어제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숲에서 잠드는 바람에 감기에 단단히 걸린 것 같다. 드래곤도 감기에 걸리냐는 질문은 삼가 해주기 바란다. 나도 왜 감기에 걸렸는지 모르겠으니.... 지금 우리는 아침 식사 후 본격적인 레이르 왕좌 탈환하기 작전을 짜는 중이었다. 분명 처음 시작은 그랬지만..... "싫어요!!" "왜 싫은데?!!" 이렇게 레이르가 갑자기 왕좌 탈환을 하기 싫다고 말했고, 레이르를 도 와주려고 생각했던 누나는 왜 우리 도움을 거절 하냐고 질문 중이었다. 카렌과 제임스는 중립의 입장을 표하며 얌전히 앉아 있었고, 시이터는 관전자의 입장으로 흥미 진지하게 누나와 레이르의 말싸움을 구경하고 있었다. 나 역시 처음에는 누나를 거들었지만 분위기가 갈수록 험악해 져 가자 결국 얌전히 구경만 하기로 했다. "싫으니깐 싫다고요!!"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이유가!! 왜 싫은지 이유를 말해!!" "어쨌든 무조건 싫어요!!" "이유 없는 반항은 안 통해!! 네가 그러고도 레이나 언...가 아니라 왕 녀님의 자손이니? 적어도 뺏긴 것은 되찾아야 될 것 아니야?! 그리고 너도 잘 알다시피 지금 가이라가 왕국의 백성들은 전쟁에 지쳐 있다고! ! 그게 다 변태 보스 탓인 것 알고 있지? 그런데도 왕녀인 너는 이대로 수수방관하며 구경만 할 셈이냐?!" "랑그람 오빠는 변태가 아니에요!! 앗! 아니... 그게...." 레이르는 말을 무심코 내뱉고는 급히 입을 막았지만 우리는 이미 들을 것 다 들은 상태였다. "랑그람 오빠라? 너 어렸을 때 같이 놀았던 것을 아직도 마음에 품고 있는 거니?" 우리는 이미 카렌에게서 랑그람과 레이르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미리 들어 놓은 상태였는데 그것을 이용해서 시이터에게 우리 남매가 랑그람 과 레이르와 어렸을 때 같이 지낸 것으로 속이고 있었다. 내가 이 말싸 움에서 빠진 이유가 분위기 험악한 탓인 것도 있지만 그것말고도 레이 르와 어렸을 때 알고 지낸 걸로 쳐야 되는 점을 신경 쓰는게 머리 아파 서 침묵을 지킨 것이다. 누나는 그런 나와는 달리 철저하게 레이르와 어렸을 적에 알고 지낸 걸 로 행동하고 있었고, 레이르는 어릴 때부터 우리 둘의 이야기가 동경의 대상이라서 그랬는지 자연스럽게 우리들을 옛날부터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해 줘서 시이터가 눈치 챌 만한 말은 하지 않았다. 아무튼 레이르는 손으로 입을 막은체 애써 누나의 시선을 외면했지만 누나가 그것을 그냥 두고 볼 리가 없었다. "나를 쳐다 봐!" "꺄악! 이거 놔요!!" "가만히 안 있어?! 나를 쳐다보고 똑바로 대답하란 말이야!! 너 진짜 어렸을 때 랑그람이랑 놀았던 추억 때문에 주저하는 거야? 정말 그런 거냐고?!" "그 질문에 대답 할 의무는 없어요!!" "난 들어야 될 의무가 있어!! 랑그람이 먼저 널 배신했잖아!! 그런데도 넌 억울하지도 않아?!" "그런 것 몰라요!! 난 절대 말못해요!!" "말 해!!" 누나는 결국 레이르를 완전히 덮친(?) 상태에서 악을 썼고, 레이르는 누나의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 바동거리며 악을 썼다. '하아... 그냥 두고 볼 수준이 못 되는구나.' 여자 둘이 바닥을 딩굴거리며 악을 쓰는 모습은 정말 보기 힘들었다. 결국 난 방관하기를 그만 두고 둘을 말리기로 했다. "저기 누나. 그리고 레이르." "응?" "예?" "속옷 보여." "꺄아악!!" "엄마야!!" 흠 금방 후다닥 일어나잖아. 이거 상당히 괜찮은 방법인걸. 시이터 식 싸움 말리기라 명명할까? "이 바보 멍청아!!" 누나의 주먹이 날아왔지만 난 여유 있게 피했다. 후후후 거기 눈을 동 그랗게 뜨고 내 새로운 모습에 놀라는 당신.... 이건 별거 아니다. 요 령을 알게 되니 피하기가 무지 쉬웠다. 오늘 아침에 시이터에게 있는 아부 없는 아부 다 떨어서 누나의 공격 패턴이라는 것을 배운 것이다. 시이터가 설명 해준 누나의 버릇이란 누나는 주먹을 쥐면 그 주먹을 쥔 방향으로 일직선으로 주먹을 날리는 것이었다. 결국 누나가 주먹을 쥔 방향만 알면 스피드가 더 빠른 내가 피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된다. 누나는 내가 누나의 공격을 피하자 잠시 놀란 듯한 눈을 했지만 곧 독 이 오른 표정으로 연발로 주먹을 날렸다. 하지만 이미 눈을 뜬(?) 나에 게 누나의 공격은 통하지 않았다. 이런 간단한 패턴을 나는 왜 지난 500년 간 눈치 채지 못한 것일까? 그 것은 아마도 누나의 살기에 먼저 몸이 반응해서 얼어 버린 탓일지도 몰 랐다. 하지만 그동안 험한 꼴 많이 당했고, 또 마음에 충격을 먹은 탓 인지 담력이 좀 커진 나는 이 정도 누나의 살기에는 침착하게 대할 정 도로 성장한 것이다. 아아! 창조신이여 감사 드립니다. 당신께서 당신의 자식인 나를 결국 불쌍히 여기셔서 시이터를 내려보내 주신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이익! 아이스 미사일!!" 결국 누나의 타개책은 마법이었다. 하지만... "recall.(소환)" 내 명령에 멋진 마법검이 내 손에 소환되었고, "defense.(방어)" 다시 내 명령에 의해 검에서 생겨난 무형의 방어막이 누나의 아이스 미 사일을 완전무결하게 막았다. 훗! 이것이야말로 완전무결! 완벽한 나의 승리인 것이다. 누나는 분노에 몸을 떨었고, 난 500년만의 첫 승리에 기쁨을 느끼며 손 가락을 좌우로 흔들어서 누나를 도발했다. - 그 동안 쌓인게 많았는지 난 눈에 뵈는게 없었다. - "쯧, 쯧, 쯧. 누나도 이제는 나한테 안 되는구나." 크흑! 그래 이 말이야! 이 승리의 말을 하기 위해 난 지난 500년 간의 암울한 청춘(?)을 보낸 것이야! 난 속으로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며 눈물을 흘렸지만 겉으로는 긴장을 풀지 않은 모습으로 누나의 다음 공격에 대비했다. 이대로 물러설 누나 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방심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할 때 누나는 제임스를 쳐다보며 소리 질렀다. "제임스! 저기 있는 네 마법검 좀 빌려줘!" '호오 제임스도 마법검을 갖고 있었나?' 라는 궁금증에 난 나도 모르게 누나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방향으로 고 개를 돌렸다. 아니 마법검이라는 말 때문에 고개를 돌려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내가 고개를 돌린 곳에는 꼬마 아이들이 우리 남매의 싸움을 구 경하고 있을 뿐이었다. '속았다!' "중력 주문 베이트!" 속았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는 동시에 누나의 중력 주문의 시동어가 들렸다. 그리고 난 누나의 주문에 걸려서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이 놈의 자슥...." 몸에 걸린 무게 때문에 고개를 들 수가 없어서 누나의 얼굴을 보지 못 했지만, 누나의 성난 목소리만으로도 난 앞으로 내게 닥칠 일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다. '난 완전히 죽었다아! 젠장! 내가 두 번 다시 마법검이라는 소리에 현 혹되나 바라!! 두 번 다시 이런 실수는 하지 않을 거야!!' 나는 만약에 살아야만 실행할 수 있는 일들을 후회하며 누나에게 골방( ?)으로 끌려갔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살아 남아도 정말 마법검이 라는 소리에 현혹 안 될지는 자신이 없다. 티아가 절대 방해하지 말라는 분위기를 풍기며 테이를 끌고 빈방으로 들어가고 난 뒤에 남은 사람(?)들은 겨우 숨을 돌릴 수가 있었다. "언제나 저 패턴인가요?" 티아와 테이에 대해서 이야기만 들어왔던 레이르가 카렌에게 묻자 카렌 은 애매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나? 티아양이랑 테이군 어렸을 때는 저러지 않았습니까? 왕녀님께 서는 저 둘과 같이 어린 시절을 보냈잖아요." 잠자코 구경만 하던 시이터가 한마디하자 레이르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손을 내저으며 소리쳤다. "그! 그게!! 티아님이랑 테이님과 지냈던 어렸을 때는 거의 기억에 없 어서!! 그래서.... 아! 잘 생각해 보니 어렸을 때도 저랬어요! 하도 오 랜만에 만나서 깜박했네요!!" 그 누가 보더라도 난 지금 숨기는게 있어서 켕깁니다 라는 분위기를 팍 팍 내고 있는 레이르의 목소리와 행동에 카렌은 절로 한숨이 나왔다. 다행히 시이터는 그런 레이르의 모습을 본래 그런가 보다 라고 생각했 는지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습니까? 근데 저 남매의 진짜 정체가 뭐기에 다이러스 제국의 왕 녀께서 존댓말을 쓰는 겁니까?" 저 질문에는 어떻게 대답해야 될 것인가? 점점 자기 무덤 파기를 실행 하는 레이르는 울상을 지으며 반 포기 상태로 중얼거렸다. "이건 그냥 내 말버릇이에요." "그런가요? 뭐 그건 그렇다 치고....." 레이르는 또 무슨 곤란한 질문을 하실 생각인가요? 라는 분위기를 눈에 팍팍 담아서 시이터를 쳐다보았다. 물론 반짝거리는 눈동자는 기본이 고, 덤(?)으로 눈물까지 약간 맺힌 눈동자에 시이터는 땀을 흘리며 손 을 저었다. "왕녀님께서 곤란해 할 질문이 아닙니다! 그러니 그 눈빛은 제발 그만 두세요!!" 시이터의 간청에 레이르는 즉시 눈빛을 바꿨다. 하지만 언제라도 곤란 한 질문을 하면 다시 그 눈빛(?)으로 쳐다보겠다고 다짐을 하고 시이터 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서 또 뭐가 궁금하세요?" "아니 그게.... 이건 아까 티아양도 했던 질문입니다만.... 왜 왕위를 찾으실 생각이 없으시죠? 티아양과 테이군 둘 만으로는 무리라서 걱정 하는 것이라면 이해가 가지만 그래도 이 제국의 상당수 백성들은 레이 르 왕녀님께서 왕위를 잇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것을 모른 척 하실 생각입니까?" 레이르는 '뭐야 엄청나게 곤란한 질문이잖아' 라고 중얼거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그 모습은 묵비권을 행세하겠다는 행동이었다. 시이터는 곤 란한 듯 한숨을 쉬며 그런 레이르에게 말했다. "저는 저 남매의 여행에 도중에 끼여든 불청객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렇 기 때문에 주제넘게 참견할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약간이나마 같이 여행했던 동료로서 저 둘의 편을 들어주고 싶습니다. 저 둘은 왕녀님을 찾기 위해 엄청 고생을 했습니다. 그런 둘의 노력을 쓸데없는 일로 만 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왕녀님은 왕위를 되찾기 위해 저 둘에게 도움을 받던가 아니면 왕위를 찾기 싫은 이유를 납득이 가게 설명을 하셔야 되 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렇게 솔직하게 털어놔야 앞으로 어떻게 할지도 결정할 수 있는 겁니다." "그건... 알지만...." 레이르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체 모기 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시이터는 책망하는 어조에서 말을 부드럽게 바꾸며 레이르를 달랬다. "알고 있습니다. 안정된 생활에서 한 발짝 내딛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 지를.... 하지만 결정을 내려야 될 때 주저하면 평생 후회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앞일을 걱정하며 주저하는 인간보다는 어떤 일이 닥치던지 헤쳐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용기 있는 인간이 발전하는 법입니다. 레이르 왕녀님 용기를 내세요. 자신을 위해서라도, 늘 왕녀님 곁에 있 는 저 두 부부와 왕녀님을 위해서 고생했던 저 남매를 위해서라도...." 시이터의 설득에 잠시 생각에 잠기던 레이르는 고개를 들어 카렌을 바 라보았다. 카렌은 자신이 어릴 적에 늘 보여주던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쭉 지켜보고 있었다. 그 뒤에 차갑게 보이지만 속은 늘 따뜻하 고 다정했던 제임스도 묵묵히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둘을 쳐다보 던 레이르는 결심을 굳히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저와 랑그람 오빠와의 사이에 있었던 그 때 일을.... 랑그 람 오빠가 쿠데타를 일으켰던 상황을 상세하게 설명하겠습니다. 그리 고.... 앞으로 제가 하고 싶은 일도요." "네. 잘 생각 하셨습니다. 그럼 남은 문제는...." 레이르의 힘있는 대답에 미소짓던 시이터는 바로 한숨이라도 쉴 듯한 얼굴로 티아가 테이를 끌고 들어간 방을 쳐다보았다. "누가 들어가서 지금 벌어지고 있을 참상을 말리죠?" 시이터의 질문에 전부다 곤란한 얼굴을 했다. 지금 벌어지고 있을 참상 을 말릴 자신이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아아! 심심해!!" "방금 전까지 실컷 잘 놀았잖아요." 레이르가 손으로 턱을 괴고 심심하다고 징징 짜는 소리를 하자 랑그람 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랑그람 말대로 방금 전까지 레이르는 랑그람과 검술 놀이(?)를 하고 있었다. 원래라면 레이르는 책을 보며 공부할 시간이지만 요즘 들어서 몸이 둔 해진 것 같다는 이유를 들어서 공부할 시간을 땡땡이 치고 랑그람을 졸 라서 검술 연습겸 놀이를 했던 것이다. 레이르도 연습 때라면 진지하게 임하지만 검을 들고 같이 놀자고 할 때 는 연습과는 다른 식으로 해줘야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랑그람은 자주 레이르가 검을 들고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바라볼 때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으며 같이 놀아 주었다. 하지만 나긋나긋한 햇살이 비치는 봄날은 사람을 자동적으로 무기력하 게 만들곤 했다. 그 날도 레이르는 검을 들고 열심히 놀기는(?) 했지만 얼마 안 가서 그 나긋나긋한 햇살에 몸을 맡겨 버리고 말았다. "검술 연습도 재미없어. 심심해 오빠." 랑그람은 이게 노는 거지 연습이냐? 라고 핀잔을 주려다가 입을 다물었 다. 그리고 얼른 주위를 살폈다. 다행히도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괜찮아 내가 연습하는데 방해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사람들에게 접근 하지 말라고 말했어." "하아.... 저기 공주님." "앗! 약속했잖아!! 둘이 있을 때는 레이르라고 불러 주기로!!" 분명히 그러기로 약속은 했었다. 단지 억지가 너무 들어갔기는 하지만. ... "하지만 레이르... 공주님...." 하지만 랑그람은 아무리 주위에 아무도 없다지만 이름만으로 부르는 것 은 꺼려졌다. 이제 레이르도 자신도 그 어린 시절의 나이가 아니기 때 문이다. 머뭇거리다가 결국 공주님이라는 호칭을 붙이는 랑그람을 레이르는 몸 을 떨면서 가만히 있다가 결국에는 울음을 터트렸다. "아앙! 오빠는 거짓말쟁이! 나에게 그런 짓(?)까지 했으면서 약속도 안 지키고!! 너무해! 아아앙!!" 라는 엄청난 발언과 함께.... "레이르!! 누가 들으면 오해할 만한 말은 하지마!!" "앗! 드디어 레이르라고 불러 줬다. 헤헤헤." 랑그람이 급박한 상황(?)에 자신도 모르게 공주님 호칭을 빼 버리자 레 이르는 언제 울었냐는 듯이 금방 활짝 웃으며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역 시나 거짓 울음이었던 것이다. 랑그람은 고개를 저으며 기뻐하는 레이르를 진정시키며 말했다. "레이르 공주님. 이제 그만 하세요." "앗! 왜 또 금방 공주님으로 부르는 거야? 그냥 오빠는 날 레이르라고 불러도 되는데... 너무해. 나 또 운다." 레이르의 협박(?)에 랑그람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레이르 공주님이 아무리 그러셔도 저는 공주님의 충직한 신하이고 공 주님은 저의 주군입니다. 아무리 고집을 부리셔도 이 사실은 영원히 변 하지 않습니다." "칫!" 랑그람의 보수적인 고집에 결국 레이르는 정말로 삐쳐 버렸다. "어차피 오빠가 내 신랑이 되면 될텐데...." 레이르가 고개를 팩 돌려버리며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랑그람은 그저 쓴웃음밖에 짓지를 않았다. 레이르는 이미 어렸을 때 랑그람에게 청혼을 한 적이 있다. 그때 랑그 람도 어렸기 때문에 아이들의 소꿉장난 식으로 그 청혼을 받아들였다. 시간은 흘러서 둘이 철이 들고난 뒤에는 랑그람은 그때 일을 아이들의 장난으로 치고 넘어갔다. 하지만 레이르는 그때의 추억의 약속을 소중 히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랑그람은 필요 이상으로 레 이르와 선을 긋고는 자신을 추스르기 위해 노력을 해 왔다. 그러나 레 이르는 그런 랑그람의 노력을 언제나 간단하게 뭉개 버리기 일수였다. "그럼 랑그람경 그대의 주군으로서 명령을 내리노라!" 뒤돌아 서서 투덜거리던 레이르는 갑자기 표정과 목소리에 무게를 깔았 다. 랑그람은 급히 고개를 숙이며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그는 그 명령 이라는 것을 받기도 전에 그녀의 입에서 나올 말을 잘 알고 있었다. 그 렇기 때문에 랑그람은 한숨부터 나왔다. "짐이 몹시 심심해 죽을 것 같으니 경은 언제 나와 같은 방법으로 짐을 즐겁게 해 달라. 설마 왕명을 거역하지는 않겠지?" 레이르의 말대로 신하인 랑그람이 왕명을 거역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그 명령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랑그람은 절대로 그 명령을 실행할 생각은 없었다. "알았어! 알았다고 레이르라고 부를 테니 제발 그 명령은 철회해 줘!!" 랑그람이 그 명령을 따를 바에는 차라리 얼굴에 철판 깔고 레이르를 어 렸을 적에 대하듯이 하는게 더 낫다는 생각에 항복의 깃발을 들었지만 레이르는 그냥 넘어가 주지 않았다. "어허! 그대는 지금 짐의 명령을 거부하는 것인가?" 최대한 근엄함을 유지하려고 애를 쓰는 레이르지만 새어나오는 웃음은 어쩌지 못하고 속으로 킥킥대며 랑그람에게 재차 명령을 내렸다. 별수 없이 랑그람도 레이르의 말투에 장단을 맞추기로 했다. "공주님 주군께서 잘못된 길을 가게 된다면 그것을 막고 제대로 된 길 로 안내하는 것도 신하가 해야 될 일입니다." 하지만 끝까지 못하겠다는 말을 하는 것은 잊지 않은 랑그람의 강경한 말에 레이르는 작전을 바꾸기로 했다. "정말 안 돼?" "안됩니다." "정말?" "안...됩니다." 랑그람은 필사적으로 레이르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레 이르는 아예 랑그람의 얼굴을 붙잡고 자신과 눈을 맞추게 했다. 랑그람 은 눈을 감아 버리고 싶었지만 차마 공주님 앞에서 눈을 감을 수도 없 는 노릇이었다. - 더구나 그 상태에서 눈을 감았다가는 다른 사람에게 는 남녀가 입맞춤하기 일보 직전으로 보였을 것이다. - 공주님의 손을 뿌리 칠 수도 없었다. 결국 어쩔 수없이 레이르의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를 정면으로 봐야 되는 랑그람은 마음이 약해져 가는 것을 필사적으로 억제하기 위해 노 력했다. 그러나 그 옛날 드래곤조차도 - 비록 해츨링이었지만 - 꼼짝 못하게 만들었던 그 눈빛을 그대로 이어 받은 레이르의 눈빛을 당할 수 는 없었다. 랑그람은 결국 항복하고 말았다. "와아! 와아! 바깥이다!! 바깥 세상이다아!!" 기뻐 날뛰는 레이르와는 달리 랑그람은 세상 다 끝난 듯한 얼굴로 한숨 을 푹푹 쉬었다. 결국 레이르의 눈빛 공격(?)에 져서 평소 레이르가 조 르던 대로 평민으로 위장해서 밖으로 나온 것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그 날은 다른 날과는 달리 나오다가 경비대에게 들킨 것이다. 랑그람은 이렇게 들켜 버렸으니 레이르도 얌전히 궁전으로 돌아가겠지 라고 생각했었는데 레이르는 그런 랑그람의 바램을 깨고 경비병을 쓰러 트리고 무력으로 궁전 밖으로 나왔던 것이다. 아마도 지금쯤 궁전에서 는 난리가 났으리라.... "저기, 저기! 랑그람 오빠 오늘은 어디 놀러 갈까? 응? 응? 응?" 궁전에서 일어날 소동을 걱정하는 랑그람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레 이르는 기대에 찬 눈으로 랑그람을 바라보며 물었다. 랑그람은 엄청 피 곤한 얼굴로 레이르에게 손을 저었다. "나도 몰라. 묻지마." "치. 뭐야? 남자가 돼서 쫀쫀하게 겨우 그런 일 갖고...." "겨우 그런 일?! 이 녀석아! 그래도 공주님이라고 반격도 안 하는 경비 병과 호위 기사를 반 죽이다시피 만들고 도망친 일이 겨우 그런 일이냐 ?!!" "아! 오빠 이제야 겨우 옛날과 같은 모습이네. 헤헤헤 레이르는 기뻐." "말 돌리지마!!!" 랑그람은 더 참지 못하고 레이르의 머리에 알밤을 먹였다. "아얏! .....흑 오빠가... 오빠가.... 아앙! 오빠가 나 때렸어! 아아앙 !!" 짧은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감싸던 레이르는 랑그람이 자신을 때렸다는 게 엄청 충격이라는 듯이 말을 더듬다가 큰 소리로 목놓아 울어 버렸 다. 일이 그렇게 되자 당황하게 된 쪽은 랑그람 쪽이었다. "레이르! 그렇게 세게 때리지 않았잖아. 응? 자자 착하지? 뚝!" "아아앙! 오빠 미워! 내 마음도 모르고 정말 미워! 아앙!" "레이르!! 당장 울음 안 그치면 또 공주님이라고 부른다!!" 랑그람은 순간적으로 유치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래도 레이르에게 가장 잘 통하겠다 싶은 협박이라는 생각에 급히 소리쳤다. 랑그람의 선 택은 정답이었다. 레이르는 그게 아주 큰일이냥 손으로 입을 막으며 억지로 울음을 삼켰 다. "흐끅! 흐끅!" 손으로 가린 입에서 따꾹질을 하며 눈물을 그치려고 노력하는 레이르를 보며 랑그람은 한숨을 쉬며 레이르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진정이 좀 되니?" "으..으." 레이르가 고개를 끄덕이자 랑그람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가 미워서 그러는게 아니야. 하지만 레이르 이것만 알아줘. 더 이상 레이르와 나는 그 옛날 어렸을 적의 레이르와 내가 아니야. 아이들만의 자유로운 시간은 이제 끝난 거야. 앞으로 레이르는 공주님으로서 그리 고 나는 공주님의 충실한 신하로서의 살아가야 하는 책임이 있어." "그런거 난 몰라." 레이르는 고개를 팩 돌리며 말을 내뱉었다. "레이르." "난 아무것도 달라진거 없는데. 랑그람 오빠랑 유크로드 오빠랑 같이 놀던 그 레이르인데... 오빠는 스스로 신분의 차에 너무 얽매이는 것 같아!" "하지만...." "하지만이 아니잖아!! 난 레이르야! 이 제국의 공주님이고 왕위 계승 서열 1위인 레이르 레드포머이지만 그 레이르도 오빠들과 어릴 적부터 놀던 레이르도 전부 나란 말이야!! 왜 자꾸 나를 특별 취급하려고 하는 거야? 난 오빠가 그렇게 선을 그으려는 이유를 모르겠어!!" 정확히는 4년 전부터였다. 카렌이 궁에서 나간지 1년이 넘어갈 때부터 랑그람도 유크로드도 레이르를 더 이상 귀여운 동생으로 대해 주지 않 았다. 그 둘에게 레이르는 공주님이었다. 그리고 그 둘이 그렇게 자신을 대할 때마다 레이르는 가슴이 아팠다. 자신의 소중한 반쪽이 사라져 가는 느 낌이었다. 레이르는 랑그람의 팔을 붙잡으며 소리쳤다. "나는 오빠에게 도대체 뭐야?! 오빠는 레이르에게.... 레이르에게 소중 한 사람이란 말이야!! 그런 레이르는 오빠에게 도대체 뭐야?! 뭐냐고?! !" "나는..... 레이르는 나의...." "나의? 나의 뭐야? 이번에는 대답을 회피할 생각하지마! 오늘이야말로 제대로 된 대답을 듣고 싶어!! 오빠의 마음을 알고 싶어!!" 그 말을 하면서 레이르는 얼굴이 절로 화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 말 은 올해 열두 살인 레이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고백이었던 것이다. 랑그람은 잠시 눈을 감았다. 어릴 적부터 자신의 옷자락을 붙잡고 졸졸 따라다니던 귀여운 레이르의 모습이 보였다. 무서운 꿈을 꿨다고 울면서 갑작스럽게 자신의 방에 찾 아왔던 너무나 작고 약해 보이던 모습이 보였다. 조그만 꽃 한 송이 준 것 가지고 너무나 기쁘게 웃는 모습도 보였다. '너무나 소중한... 하지만 그래서 더욱더 아껴 주고 싶은....' "왜 대답이 없어?" 랑그람이 눈을 감고 자신의 고백겸 질문에 대답해 주지 않자 불안한 마 음에 불맨 목소리로 랑그람을 재촉했다. 랑그람은 한숨을 쉬며 레이르의 얼굴을 쳐다보며 말을 꺼냈다. "너는.... 너는 내게 있어서 소중한 동생이야." "그것뿐?" "그리고... 우리들의 소중한.... 공주님이고." "......." "레이르?" "오빠 바보!!!" 레이르는 랑그람을 힘껏 밀어 버리고 그대로 다이리로 달려 내려갔다. 랑그람은 바닥에 주저 앉은 체 달려가는 레이르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 거렸다. "그리고... 레이르는 내 소중한... 소중한 나만의 공주님." 끝까지 레이르에게 말하지 않았던 랑그람의 속마음. 하지만 그 속마음 을 지금 말할 수는 없었다. '언젠가는 꼭 레이르에게 어울리는 지위에 오르겠다. 그때에는 반드시. ... 반드시!' 그렇게 랑그람은 속으로 다짐하며 삐쳐 버린 레이르를 어떻게 달랠까 고민하며 레이르가 내려간 다이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오빠는 수줍어서 그런 말을 했던 걸까요? 하지만 정말 너무했어 요. 어린 마음에 최대한 용기를 내서 고백한 건데 그것을 그렇게 간단 하게 딴 대답을 해 버리다니... 정말 심술쟁이였어요." "하아?" 티아는 한숨을 쉬었다. 레이르가 겨우 마음을 잡고 모든 것을 말하겠다는 말을 듣고 자리에 앉 았는데 자신이 기대했던 대답은 나오지도 않고 난데없이 '열두 살의 첫 사랑' 이라는 제목을 붙여도 될 사랑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중이었다. "저기 레이르." "티아님! 같은 여자로서 티아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정말 너무하지 않아요?! 하긴 내가 그때는 오빠 눈에 아직 어린 꼬맹이로 보였을 지는 몰라도 여자가 사랑을 할 때는 나이에 관계없이 진지하다는 것을 왜 몰 라주는 걸까요? 정말이지 남자들은 정말 둔해요. 그 중에 랑그람 오빠 는 정말 초 둔감이라니깐요!" "아니 내 생각에는 그 이야기보다 말이야...." "더구나 그 뒤에 말이죠!!" "에휴휴. 이제 나도 정말 모르겠다." 결국 티아는 레이르 입에서 제대로 된 이야기가 나올 때까지 얌전히 이 야기를 듣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솔직히 티아도 레이르와 랑그람의 사 랑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한가지 의문이 들었다. '레이르의 이야기를 들어보며 랑그람이라는 녀석 꽤 괜찮은 녀석 같은 데.... 왜 레이르를 배신 한 것일까? 아마도 레이르도 그 이유를 모르 겠지. 모르니깐 그 이야기를 하기 싫은 거겠지. 흠... 그나저나 초 둔 감이라....' 티아는 거의 반 시체가 돼서 자기 몸에 겨우겨우 힐링을 걸고 있는 테 이를 쳐다보았다. '저 녀석도 만만치 않은 초 둔감이지. 바보. .....바보지만. 정말 바보 같지만....' "아 그리고 또 이런 일도 있었는데요." "레이르 잠깐만!" "네? 네?!" 갑작스럽게 큰 소리로 레이르의 말을 자른 티아는 의미 있는(?)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랑그람이라는 녀석... 정말 초 둔감에 바보 같은 남자였지?" "네? 아... 그렇긴 하지만... 저기...." '자신이 바보 취급하는 것은 괜찮지만 다른 사람이 바보 취급하는 것은 역시 못 참겠다인가? 역시나....' 아까 전에 그렇게 랑그람 씹기에 열을 올리던 레이르가 자신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 못 하는 것을 보며 티아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약간은 장난스럽게 다시 물었다. "정말 바보지만... 어쩔 수 없지?" "네? 뭐가요?" "좋아서... 너무나 좋아서 어쩔 수 없었지?" "아! 으..으 그게...." 얼굴을 붉히고 한참을 뜸을 들이던 레이르는 결국에 고개를 숙이며 작 게 '네'라고 대답했다. "그 마음 이해해." "네?" 티아의 말을 이해 못한 레이르가 반문하자 티아는 얼굴을 살짝 붉히며 레이르의 귀에 대고 살짝 속삭였다. "나도 너와 같은 마음이거든." "네? 아! 네 그래요? 정말요? 상대가 누군 데요?!" "비~밀." "에?! 치사해요!!" 가만히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카렌은 티아의 변화를 보며 생각했다. '조금씩이지만 한 발작씩 다가갈 생각이시군요. 하지만 티아님 이것은 알아두세요. 어느 한쪽의 감정만으로는 결코 행복해질 수가 없어요. 둘 이서 같이... 같은 마음으로 걸어나가야 돼요. 그걸 잊지 마세요.' 카렌은 다른 이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살며시 티아의 손을 잡아서 자신 의 생각을 전달했다. 카렌의 숨겨져 있던 또 다른 능력인 자신의 생각 을 상대방에게 전하는 능력으로 카렌의 생각은 티아에게 전달되었고, 티아는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 조금 이야기가 옆으로 샜는데 이야기를 계속하자. 그리고 그 뒤에 어떻게 된 거야? 랑그람이랑 키스는 해 봤어?" 티아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붉어지는 것을 보고, 한마디 놀려 주려고 마 음먹었던 레이르는 갑작스런 티아의 역습에 되려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 다. "아..아니에요!! 키..키스 같은 것은 안 했어요!!" "키스 같은 것이라... 다른 건 했다는 뜻이네. 다른 건 뭐 했어?" "우우..." 그렇게 본래 이야기에서 벗어나서 사랑 이야기로 꽃을 피우게 된 여자 셋의 한 쪽에서는 철저하게 무시당한 남자 셋이서 차를 홀짝이며 궁상 들을 떨고 있었다. "여자 셋이 모이면 뭐가 깨진다고 들었는데... 정말이었군." "차 더 드시겠습니까?" "차는 그만두고 날이 저물고 있는데 도대체 언제 레이르의 왕위 계승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간신히 몸을 다 회복한 테이의 질문에 시이터와 제임스는 웃으며 이야 기꽃을 피우는 여자 셋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난 저기 못 끼어 들겠어." "저 역시 못하겠습니다. 테이님은요?" "다들 불가능한 일을 나한테 떠넘기려 하지마." 결국 세 남자는 얌전히 차나 마시기로 - 제임스는 마시지 못하지만 - 결론지었다. 여자들의 사랑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그런데 저 이야기는 도대체 언제 끝날 것인가? 그것은 신조차 알 수 없 는 문제였다. 다이러스 제국 수도 다이리의 왕성의 긴 복도에서 한 남자가 바쁜 걸음 을 옮기고 있었다. 남자이면서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금발을 가진 남자 는 얼굴에 드리워져 있는 신경질적인 표정만 없으면 반반한 미남으로 보일 법한 얼굴이었다. 그 신경질적인 표정을 짓고 있는 남자의 이름은 루그라드 레드포머로 레이르의 배다른 오빠이자 제 2왕비의 몸에서 태어난 왕위 계승 서열 2 위의 황태자였다. 원래대로라면 그가 다음 황제의 자리에 올랐어야 하 나 레이르가 태어나는 바람에 서열 2위로 밀려난 왕자였다. 그는 황제의 알현실에서 나오던 중이었다. 자신의 아버지인 크라우드 레드포머 3세를 만나기 위해 알현실에 갔었지만 왕은 그곳에 없었다. 알현실의 문지기가 곤란한 얼굴로 왕께서 안에 계시지 않는다는 말에 루그라드는 한숨을 쉬며 어느 장소로 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 장소는 왕궁의 정원으로 루그라드의 예상대로 크라우드 왕은 그 곳 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중이었다. 크라우드 왕의 취미로 날씨가 좋은 날이나 기분 좋은 날에는 항상 그곳에서 그림을 그리고는 했었다. 왕의 주위에 있던 경호 기사들이 루그라드를 알아보고 인사를 하자 크 라우드 왕은 붓을 놓고 루그라드를 돌아보며 웃으며 말을 건넸다. "오오 루그라드냐? 그런데 이런 화창한 날씨와는 어울리지 않는 우중충 한 얼굴이구나. 무슨 문제가 있니?"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골치 아픈 큰 문제입니다. 아버지." "골치 아픈 큰 문제? 그런 문제라면 이 내가 먼저 알아야 될텐데 왜 내 게 직접 보고가 들어오지 않은 거지?" "그게... 레이르의 문제입니다." 작게 속삭이는 루그라드의 말에 크라우드 왕은 감을 잡고는 허허 웃으 며 주위의 경호 기사들을 물러가게 했다. 경호 기사들이 물러가자 크라 우드 왕은 미소를 계속 유지하며 물었다. "그래 오늘도 성을 빠져나간 모양이구나." 레이르가 성을 빠져 나간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질문 이었다. 루그라드는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며 대답했다. "네. 더구나 이번에도 랑그람과 함께입니다." "그래? 랑그람이 따라갔다면 걱정 없겠군." 그렇게 말한 크라우드 왕은 내려놓았던 붓을 들고 그리던 그림을 마저 그리기 시작했다. "아버지! 하실 말씀이 겨우 그것뿐이십니까?" "그럼 달리 더 할말이 있느냐? 어차피 레이르가 성밖에 나갔다가 안 돌 아온 적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랑그람과 함께 갔다면 위험한 일도 없을 테고, 걱정할게 없지 않느냐." "이 달에만 벌써 여섯 번입니다! 레이르는 장차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이 다이러스 제국의 세 번째 여왕이 되야 할 위치에 있습니다. 그런데 공부는 뒷전으로 검술 수업을 핑계로 랑그람과 유크로드와 놀기만 하 고, 하루가 멀다 하며 성밖으로 나가는데도 할 말이 없으십니까?!" 아무리 황태자라도 황제 앞에서 언성을 높이는 것은 불경한 일이었다. 루그라드도 곧 그 사실을 눈치채고는 얼굴을 붉히며 급히 사죄했다. "죄송합니다. 너무 흥분하는 바람에...." "아니다 괜찮다. 자식이 아비에게 의견을 말하는 것에 불경이고 뭐고가 어디 있느냐." "하지만 아버지." "루드야." 크라우드 왕은 붓을 멈추지 않은 체 자신의 첫 번째 아들의 애칭을 불 렀다. "네." "레이르도 자신이 여왕이 되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을게다. 하지만 레이르는 이제 겨우 열두 살이다. 아직 사춘기 소녀도 아닌 아 이에게 한꺼번에 너무 많은 짐을 지우는 것은 아이를 교육시키는게 아 니라 망치는 길이란다." "하지만 레이르는 너무 제 멋대로 입니다. 왕녀라는 최소한의 자각을.. .." "루드야!" 엄숙해진 크라우드 왕의 말투에 루그라드는 찔끔해서 입을 다물었다. 루그라드가 입을 다물자 잠자코 침묵을 지키던 왕은 붓을 내려놓고 그 리던 그림을 루그라드에게 보여주며 물었다. "네가 보기에 이 그림은 어떠냐?" 불호령이 떨어질 줄 알았던 루그라드는 갑작스럽게 그림 감상을 물어 오자 당황해서 무슨 대답을 해야 될지 알 수가 없었다. 크라우드 왕은 그림을 잘 그렸다. 왕이 그렸기 때문에 왕궁 곳곳의 복도에 걸린 게 아 니더라도 크라우드 왕이 그린 그림은 왕국에 걸릴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었다. "이 그림에 대해서 솔직한 감상을 말해 보거라." "멋진 그림입니다. 그리고 특히 색감이 아주 부드럽고 사실적입니다." 유크로드 왕이 다시 한번 그림에 대한 감상을 물어 보자 결국 루그라드 는 솔직하게 그림에 대한 감상을 말했다. 루그라드의 감상을 들은 크라 우드 왕은 미소를 지으며 루그라드의 손에 붓을 쥐어졌다. "......?" 크라우드 왕이 자신에게 붓을 쥐어 준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한 루그라 드가 눈만 끔벅거리고 있자 크라우드 왕은 손수 루그라드를 그림 앞으 로 데려와 말했다. "이 부분을 칠해 보거라." "네? 아버지 무슨...." "자자. 질문은 나중이다. 일단 직접 칠을 해보거라." 루그라드는 별수 없이 조심스럽게 크라우드 왕이 칠하던 부분을 칠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분명 같은 색의 물감인데도 불구하고 루그라드가 칠 하자 그림은 순식간에 어색해져 버렸다. "후후후. 너무 힘을 줬구나." "저는 그림을 잘 못 그립니다." 크라우드 왕의 말에 루그라드는 얼굴을 붉히며 붓을 내려놓고 그림 못 그린다는 변명을 했다. 그리고 크라우드 왕이 대체 무슨 생각으로 자신 에게 칠을 하게 시켰는지가 궁금해졌다. 크라우드 왕은 그런 루그라드의 궁금증에 대답을 해줄 생각을 안하고 새로운 종이를 꺼내서 캔버스 위에 올려놓고 정원에 있는 나무 하나를 빠른 속도로 스케치 해 갔다. "자 이번에는 이 나무 전체를 직접 칠해 보거라." 스케치가 끝나자 크라우드 왕은 다시 루그라드에게 스케치한 그림을 건 네주며 말했다. 잠시 망설이던 루그라드는 다시 붓을 들고 조심스럽게 색을 칠해 나갔다. 이번에는 비록 크라우드 왕보다는 못했지만 그래도 어색하지 않은 색으 로 칠해졌다. 루그라드가 칠을 끝내자 크라우드 왕은 빙그레 웃음을 지 으며 말했다. "이제 알겠느냐?" "저 혼자서 칠하는 게 아버지보다는 못해도 어색하지는 않군요. 하지만 이런 일을 시키시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이 종이는 레이르란다." "네?" 갑작스럽게 종이가 레이르라니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어안이 없어 아무 말도 못하는 루그라드에게 크라우드 왕은 천천히 설 명을 하기 시작했다. "루드야. 아이들은 이 순백의 종이와 같은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마 음을 갖고 태어난단다. 이 종이에 앞으로 살아가야 할 인생에 대해서 스케치를 해줘야 하는 것은 부모의 몫이다. 하지만 그 스케치에 색칠을 하는 것은 자신의 몫인 것이야. 너무 간섭을 해서 부모들이 색칠까지 다 해주려고 하면 아까 전에 네가 내 그림에 칠을 했듯이 어색해져 버 리고 보기 싫어지는 그림이 될지도 모른단다." 루그라드는 그제야 크라우드 왕이 자신에게 칠을 하게 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버지 제 스스로 칠을 한 그림은 아버지가 그리신 것보다 훨 씬 못 그렸습니다. 멋진 그림이 되도록 옆에서 도와 줘야 되는 것도 부 모와 주위 가족들의 책임이 아닐까요?" 루그라드의 말에 크라우드는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다른 사람과 비교를 하지 말거라. 이것은 단지 그림으로 비유를 한 것 뿐이란다. 사람의 인생이란 그림과는 틀리단다. 자신이 아무리 잘 그렸 다고 생각해도 주위에서 나쁘게 볼 수도 있고, 자신이 아무리 못 그렸 다고 생각해도 주위에서 잘 그렸다고 칭찬할 수도 있는 것이 살아 온 인생이란 것이다. 잘 그렸던 못 그렸던 자기 자신에게 떳떳한 인생 그 림을 그려 왔다면 부끄러울게 없지." "하지만 아버지! 레이르에게는 최소한 이 나라의 왕녀라는 자각을 갖게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아직 열두 살인 꼬마 숙녀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면 안 된다. 지금 레이르는 자신의 그림에 무슨 색을 사용할까 고민하는 나이란다. 그럴 때는 옆에서 고민을 들어주고 도와 줄 수 있는 것은 도와주는 것만 하 면 된다. 결코 참견해서는 안 돼." 루그라드는 뭔가 더 말을 하고 싶었지만 더 말을 해봐야 왕에게 통할 것 같지가 않아서 얌전히 그 자리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그럼 아버지 실례가 많았습니다. 그만 가보겠습니다." "그렇게 하거라." 루그라드가 물러가고 난 뒤 크라우드 왕은 루그라드가 색칠한 그림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색이...... 탁하군." 크라우드 왕은 한숨을 쉬었다. 루그라드는 어릴 적에는 총명하고 착한 아이였다. 그리고 책임감도 강한 황태자로서 어울리는 성격이었다. 그 성격은 레이르가 태어나고도 변하지 않았다. 아니 않았다고 지금까지 생각했다. 하지만 그 책임감 있는 성격이 자신이 되지 못할 왕의 자리 에 오르는 레이르를 훌륭한 여왕으로 키워야 된다는 사명감이 된 것 같 았다. "너무 책임감에 얽매여서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았으면 좋으려만....." 크라우드 왕은 걱정이 짙은 얼굴로 루그라드가 칠한 그림을 손보기 시 작했다. 자신이 고친 그림처럼 루그라드의 마음속의 탁한 마음이 씻겨 지기를 빌면서.... 그로부터 2년 후 레이르의 나이가 15살이 되던 해 크라우드 왕은 세상 을 떠났다. 원인은 전염병이었다. 전염병이 퍼진 지방으로 직접 피해 상황을 알아 보러 갔던 왕은 그 곳에서 실수로 병에 걸려 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전염병의 원인이 물에 있다는 것을 알게 돼서 급히 대책을 세운 덕분에 전국적으로 병이 퍼지는 것을 막을 수는 있었다. 그렇게 크라우드 레드포머 3세는 인자하신 왕이라는 백성들의 평가대로 마지막까지 백성들을 위해 희생을 했다. 그리고 아직 나이가 어린 레이르 대신에 루그라드가 왕위를 임시로 이 어받고 레이르가 16세가 되는 내년에 즉위식을 하도록 결정되었다. 레 이르는 그 날부터 왕녀로서 백성들에게 사랑 받았던 아버지의 뒤를 잇 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그리고 1년 뒤.... "절대 잊을 수 없어요. 잊고 싶지만 잊어지지가 않아요. 랑그람 오빠의 반란.... 믿었던 사람의 배신...." 레이르는 슬픈 표정으로 그때의 잊고 싶지만 잊을 수 없는 그 날을 떠 올렸다. 즉위식이 거행되기 하루 전. 그 날도 다른 날과 다름없는 아침이 시작 되었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시녀들의 시중을 받아 목욕을 마칠 때까지 레이르에 게는 평소대로의 아침이었다. 성밖에서 시끄러운 소음이 들리기 전까지 는.... "큰일입니다! 반란입니다!!" 그 소음이 무엇인지 확인 해보기도 전에 방문이 거칠게 열리면서 한 기 사가 뛰어 들어 왔다. 주위의 시녀들은 갑작스럽게 들어온 기사 덕분에 비명을 지르며 수선을 피웠다. 평소대로라면 그렇게 들어온 기사는 모독죄로 지위를 박탈당해도 할말 없을 상황이지만 기사가 뛰어 들어와서 말한 반란이란 사건은 모독죄 어쩌고를 따질 때가 아니었다. "무슨 일입니까? 반란이란 말은 뭐죠?" 레이르는 떨리는 몸을 필사적으로 진정시키며 현재 상황을 물었다. "말 그대로다. 반란이 일어났다." 레이르의 물음에 대답 해준 것은 기사가 아니었다. "오라버니!" 기사의 뒤에는 루그라드가 갑옷을 입은 모습으로 들어와서 레이르의 물 음에 답해 주었고, 레이르는 놀란 나머지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로 루그 라드를 불렀다. 그가 입은 갑옷은 이미 한번 전투를 치렀는지 군데군데 피가 튀어 있었다. "오라버니 반란이라뇨? 도대체 누가?" 아까부터 기사도 루그라드도 반란이 일어났다고 말만하고 정작 중요한 주동자는 말하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그래서 재차 물어 보는 레이르의 질문에 루그라드는 어두운 얼굴로 정말 말하기 싫다는 듯이 말을 겨우 뱉어냈다. "랑그람이다." "그..그런....." 레이르는 순간 루그라드가 농담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녀석이 도대체 무슨 짓을 했는지 주요 병력과 많은 장군들이 놈의 명령대로 움직이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는 일단 남은 병력을 모아서 몸 을 피할 생각이다. 그러니 너도 어서 몸을 피하거라. 이 기사를 따라서 성밖으로...... 이 다이리에서 벗어나 지방에 몸을 숨기고 있거라. 나 중에 연락하겠다. 꼭 살아야 된다." 루그라드의 말이 들렸다. 하지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는 들리지 않았 다. 레이르는 세상이 뒤집어 지는 것 같은 착각을 느끼면서 정신이 아 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간간이 정신이 들었을 때는 자신의 손을 붙잡고 아수라장 같은 성을 빠 져나가는 기사가 뿌옇게 보였다. 랑그람 오빠는 어디 있는 것인가? 오빠가 정말 반란을 일으킨 것일까? 정말 나를 배신 한 것일까? 오라버니는 어디 있는 걸까? 어마마마는 이 미 피하신 걸까? 도대체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아니 이것이 정말 현실일까? 악몽이 아닐까? 수많은 의문들이 레이르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런 의문 속에서 레 이르는 팔에 통증이 생긴 것을 느끼면서 정신이 획하고 돌아왔다. "으아악!!" 자신을 데리고 도망치던 기사의 비명이 들렸다. 아직 뿌연 시선 저 너 머로 기사가 피를 흘리며 쓰러지고 있었다. "레이르." 너무나 친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레이르는 이제 눈으로 완전히 주변을 볼 수가 있었다. 덕분에 절대로 잊어버리고 싶은 믿지 못할 광경도 보게 됐다. 레이르는 지금 바닥에 쓰러진 상태였다. 아마도 자신을 여기까지 데려 온 기사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자신을 밀었던 것 같았다. 현재 레이르 가 있는 곳은 옛날에 자주 성밖으로 도망칠 때 왔었던 성 뒤편의 강가 였다. "역시나 이곳에 있었구나." 다시 한번 친숙한 목소리가 레이르의 귀에 들렸다. 레이르는 절대로 그 곳으로 고개를 돌리기 싫었다. 고개를 돌리면 믿기 싫은 진실을 볼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었다. 하지만 레이르의 얼굴은 주인의 의지를 배신 하고 서서히 목소리가 난 곳으로 서서히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그 곳에는 피묻은 검과 피묻은 갑옷을 입은 랑그람이 서 있었다. 그리 고 그 앞에는 방금 전까지 자신을 데리고 도망쳤던 기사가 쓰러져 있었 다. "레이르." 랑그람이 레이르에게 한 발짝 다가섰다. 그러나 더 이상 다가갈 수가 없었다. 죽었다고 생각한 기사가 필사적으로 랑그람의 발을 붙잡고 있 었던 것이다. "와..왕녀님... 어서... 도망... 가세요... 꼭 살아....크윽!" 간신히 말을 내뱉던 기사는 랑그람의 발에 얻어맞는 바람에 비명을 질 렀다. 하지만 랑그람의 발을 놓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기사는 최후의 힘을 짜내서 소리쳤다. "도망가세요!!" "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레이르는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달렸다. "이런! 레이르!! 이거 놔!!" 랑그람이 필사적으로 붙들린 발을 흔들었지만 기사는 끝까지 놓을 생각 이 없었다. "쳇. 죽이기에는 아까운 인재지만 어쩔 수 없군." "으아악!!" 평소의 랑그람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잔인한 말이 들렸다. 그리고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지고 난 뒤 잠잠해졌다. 레이르는 뒤를 돌아봐서 확인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지금까지 소중히 간직해 왔던 무언가가 깨지는 느 낌이었다. "흑...으흑." 그제야 눈물이란 것이 나왔다. 눈물을 흘리며 레이르는 달리고 또 달렸 다. 숲으로 도망친 레이르는 정신 없이 달렸다. 숨이 턱에 차서 주저앉 을 때까지 달린 레이르는 그 자리에서 오열을 토했다. 자신은 배. 신. 당한 것이다. 믿었던 그리고 사랑했던 사람에게.... "그렇게 며칠을 숲 속을 헤매 다니다가 간신히 작은 마을에 도착했어 요. 전국에는 이미 저와 오라버니에 대해서 지명수배가 내려진 상태라 저는 머리를 자르고 남자처럼 행세하며 몸을 피해 다니던 중에 한 술집 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저를 찾아다니던 제임스씨와 카렌씨와 만나서 이곳에서 살게 된 것입니다."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던 테이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주머니를 뒤져 서 손수건을 레이르에게 건네줬다. "예? 이것을 왜...." 얼떨결에 테이가 준 손수건을 받아 든 레이르는 왜냐고 물어 보다가 뺨 이 촉촉해진 것을 느꼈다. 어느새 레이르는 울고 있었던 것이다. "헤헤. 왜 눈물이... 주책없게... 이제는 다 털어 버렸다고 생각했는 데... 왜 눈물이? 흑. 흑흑흑." 레이르는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손수건으로 눈을 가리며 흐느꼈다. 아무 도 말을 꺼내는 이는 없었다. 정적이 감도는 오두막에서 레이르의 흐느 끼는 소리만이 들렸다. 랑그람과 레이르(4) 갑작스런 누나의 제의에 레이르는 깜짝 놀라 버렸다. 하긴 서론 본론 다 빼먹고 바로 결론만 말했으니 이해가 가지 않겠지. 누나는 그런 레이르에게 차근차근 설명했다. "내일 우리랑 같이 다이리 수도로 가자. 가서 그 랑그람이란 놈이랑 단 판을 짓자. 왜 배신했는지 말이야. 우리가 도와줄게. 여차하며 그 놈을 날려 버리고 네가 여왕이 되면 되잖아. 도와 줄 테니 우리를 믿어." "티아님." 레이르는 감동을 받았는지 다시금 눈물이 흘러내릴 것 같은 얼굴로.... "싫어요." 딱 잘라 거절했다. 뭐..뭐야? 나만 당황한 게 아닌지 누나도 당황한 얼굴로 레이르에게 다시 질문했 다. "싫다고?" "네 싫어요." 레이르가 그 말하는데 그렇게 산뜻한 미소를 짓는 이유는 뭐지? 누나도 얼굴에 웃음을 띠고 있긴 하지만... 난 그 웃음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기 때문에 제임스와 카렌을 뒤로 물러나게 했다. 그런데 시이터도 뭔가를 느꼈는지 아이들을 뒤로 물러 나게 하는 중이었다. "시이터씨 감이 좋으시네요." "너희들이 하는 행동 패턴은 이제 대충 알 것 같거든." 시이터는 그렇게 말하며 종이로 귀를 틀어막으며 아이들에게 귀를 막으 라고 했다. 나 역시 알아서 귀를 막았다. "싫은 이유가 뭐야!!!" 역시나 오두막이 떠나갈 듯한 누나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왜 소리부터 지르시는데요?!!" 레이르는 누나가 소리를 지른 것에 화가 났는지 누나의 질문에는 대답 하지 않고 그것부터 따졌다. 그런데 누나와 똑같으면 똑같았지 결코 뒤 떨어지지 않는 큰소리를 지르는건 또 무슨 심보일까? "내 질문에 대답부터 해!!!" "대답하고 싶지 않아요!!!" "이유를 말하란 말이야!!!" "이유 없어요!!!" "그게 말이 돼?!!" "말이 안될 게 뭐 있어요?!!" "자자. 둘 다 잠시만요." 이대로 오두막이 부서지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두 여 자의 고함소리를 제지시킨 것은 카렌이었다. 둘은 왜 말리냐는 분노의 눈빛을 카렌에게 돌렸지만 카렌은 그 눈빛에 꿈적도 안 했다. "화가 나는 것은 이해하지만 이 한 밤중에 그렇게 큰 소리로 싸우면 이 웃에 폐가 되요." "......." "......." "......." 우리는 카렌의 말에 모순을 지적하고 싶었지만 카렌의 이유를 알 수 없 는 저 당당하고 산뜻한 미소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카..카렌씨. 여기는 숲 속인데요." 간신히 레이르가 카렌의 말에 모순을 지적했다. 레이르의 말을 들은 카 렌은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나 싶더니 예의 그 산뜻한 미소를 다시 지으 며 말했다. "어머. 숲에 사는 몬스터들도 이웃이에요." '어째서?' 난 그렇게 묻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았다. 카렌의 말을 부정하면 안될 것 같은 오로라가 카렌의 몸 주위에 떠돌고 있기 때문이었다. "자 그러니 싸움은 그만하고, 이제 그만 자도록 하죠. 아이들도 이제 자야 되잖아요." "하지만...." 카렌이 슬쩍 누나의 눈치를 보면서 말을 얼버무렸다. 누나는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는 강경한 눈으로 레이르를 쏘아보고 있는 중이었다. "하아. 어쩔 수 없네요. 티아님은 옛날부터 한번 하겠다고 정하면 끝장 을 보는 성격이신데...." "잘 알고 있으면 이 이상 방해하지마. 나도 조용조용히 이야기하도록 할 테니깐." "누나 성격에?" 내 솔직한 질문에 돌아온 대답은 '너 죽을래?' 라는 누나의 눈빛이었 다. 억울해 내가 뭐 틀린 말했나? "음.... 아 이러면 어떨까요?" 역시 이웃 어쩌고는 관두더라도 저 둘을 그냥 내버려두면 안되겠다는 생각이었는지 뭔가 한참을 고민하던 카렌이 손을 치며 말했다. "뭔데?" "뭐예요?" "먼저 자는 사람이 지는 걸로 해요." 카렌의 말에 레이르는 '그게 뭐야?' 라는 표정을 지었고, 나를 포함한 남자 일동들은 과연 누나가 그런 어린애 같은 내기에 응할까라는 표정 을 지었다. 그런데 의외로 누나는.... "좋았어. 그걸로 결정하자. 진 사람이 이긴 사람 말은 무조건 듣기로 하는 거야." 라면서 순순히 카렌의 제의를 받아 들였다. "에? 티아님 진심이세요?" 설마 누나가 그 제안을 받아들일 리가 없다는 생각이었는지 레이르가 깜짝 놀라서 물어 보자 누나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왜 질 것 같아서 겁이 나는 거야? 그럼 항복하고 내 말을 들어." "그 승부. 받아들이겠어요!!" 누나의 어린애 같은 도발에 레이르는 발끈했는지 결국 잠 안 자기 내기 를 받아 들였다. "자 그럼 결정됐네요. 승부 시간은 무제한 먼저 자는 쪽이 무조건 지는 것입니다. 아 티아님 마법은 사용하시면 안돼요." 레이르가 내기를 받아들이자 카렌은 두 여자의 어린애 수준의 말싸움에 얼이 빠져 있는 남자들의 - 나도 거기에 포함된다 - 정신을 차리게 만 들 셈인지 박수를 두어 번 치며 주위를 환기 시켰다. 누나는 마법을 쓰지 말라는 카렌의 당부에 처음부터 마법을 쓸 생각도 없었는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후후후 레이르를 상대로 마법까지 쓸 것도 없어." "어머나~~ 그게 무슨 뜻이죠? 제가 그렇게 만만해 보이시는 건가요?" "응. 만만해 보여." "절 너무 과소평가 하시는데 나중에 지고 우셔도 전 몰라요." "호오~ 대단한 자신감이시네. 그 자신감이 언제까지 가는가 볼까?" 벌써 신경전이 시작된 건가? 누나와 레이르는 서로 미소를 짓고는 있지만 다가가기 힘든 분위기를 내뿜고 있었다. 아이들도 우리들도 그 분위기에 눌려서 아무 말도 못하고 있을 때 카렌 혼자서만 방긋방긋 웃으며 다시 한번 주의 사항을 - 내기 규칙이라고 해야 되나? - 둘에게 숙지시키고 있었다. "알았죠? 이 내기는 절대로 조용히 해야 된다는 조건입니다. 만약 소리 를 지르게 된다면 먼저 소리 지른 쪽이 지는 겁니다. 그리고 티아님 절 대 마법을 쓰시면 안돼요. 차를 마시는 것은 자유입니다. 그럼 둘 다 몸을 생각해서 너무 무리는 하지 마세요." "알았어." "네 알았습니다." 그리고 전의에 불타는(?) 두 여자를 내버려두고 카렌은 자기 싫어하는 아이, 졸립다고 칭얼대는 아이들을 재우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할 일이 없는 나는 멀뚱히 서 있다고 시이터에게 물었다. "시이터씨 정말 저대로 놔 둬도 될까요?" 시이터는 내 질문에 살기 등등한 눈으로 서로를 쏘아보는 여자를 보고 는 어깨를 으쓱했다. "놔두지 못하면 어쩌려고? 난 분명히 말하겠는데. 저 두 사람을 말릴 자신은 없어. 너는 말릴 자신 있어?" "없어요." 난 속으로 '누나는 드래곤인데요' 라고 생각하며 시이터의 질문에 대답 했다. 내 솔직한 대답에 시이터는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지? 저럴 때는 가만히 내버려두는 것이 상책이야. 뭐 잠을 안 자 고 버티는 거야 아무리 숙련된 사람이라도 삼일 이상을 버티기는 힘들 어. 더구나 여자들이 밤을 세워 봤자 하루나 제대로 견디겠어? 저러다 둘 중에 한 명은 포기하겠지." "제발 그랬으면 좋겠네요." 내가 한숨을 쉬며 둘을 바라보고 있을 때 시이터는 계속 날 쳐다보고 있었다. "왜요? 그나저나 시이터씨는 안 주무실 건가요?" 그 시선에 신경이 쓰인 내가 안 자냐고 물으며 슬쩍 볼 일 없으면 그만 쳐다보라는 뜻을 담아서 말하자 시이터는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넌 어느 쪽이 이겼으면 좋겠니?" "예?" 그런 질문을 한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내가 되 묻자 시이터는 누나 와 레이르를 곁눈질하며 목소리를 낮춰서 다시 물었다. "넌 저 둘 중에서 누가 이겼으면 좋겠냐고?" 그런 질문을 하는데 왜 그렇게 얼굴이 진지한 건지..... 아무튼 질문은 대답을 하라고 만들어진 것이니 대답을 하자면..... 어..어라? '누가 이기면 좋을까?' 그렇다. 난 누가 이기면 좋을지 모르고 있었다. 더구나 누가 이기던 나 와 상관없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고민하고 있는 것을 본 시 이터는 그런 내 마음을 눈치 챈 것 같았다. "누가 이기던 너와는 상관없다는 얼굴이구나." "예. 솔직히 누가 이기던 저와는 상관없잖아요." 내 솔직한 대답에 시이터는 고개를 저었다. "저 승부(?)에서 이기는 사람에 따라 앞으로의 계획이 세워질텐데 너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거냐?" "......." "전부터 느낀 건데 너는 거의 티아양에게 끌려 다니고 있는 것 같아. 정말 하고 싶은 것이 없냐? 네가 정말로 하고 싶은 거 말이야." "내가... 하고 싶은 거?" 난 어렸을 때부터 용사가 되고 싶었다. 인간들 사이에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전설적인 존재가 되고 싶었다. 아 악룡으로서가 아닌 정의룡( ?)으로서 말이다. 그런데 시이터의 질문을 받고 나서 난 한가지 의문이 들었다. '정의의 용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지?' 그 의문이 들자 내 머릿속은 갑자기 혼란해졌다. 시이터의 말 대로였다. 난 지금까지 누나에게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데 바빠서(?) 내가 하고 싶었던 것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될지 생각해 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정말 하고 싶은 것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될지를 감도 못 잡고 있는 상태였던 것이다. 복잡한 생각과 상념, 의문, 불확실한 목표, 정해지지 않은 길.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나의 머리를 괴롭힐 때 시이터가 가만히 내 머 리를 쓰다듬었다. "시이터씨." "너무 깊이 고민할 필요는 없어. 지금까지 생각 없이 살아왔다고 너 인 생이 다 쓸데없는 일이 되는 건 아니야. 그리고 생각 없이 살아왔다는 기분이 들어도 너는 분명 하루하루를 생각하며 살아 왔을 꺼야. 어렸을 때 분명히 너만의 꿈을 생각한 적이 있지? 아니면 무언가를 해보고 싶 다는 생각 같은 거를 분명히 했을 거야. 그때 꿈을 아직도 이루고 싶다 는 생각은 하겠지?" 내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자 시이터는 미소를 지었다. "그래 어린 시절 아무것도 아닌 꿈이지만 그런 꿈이 있었기 때문에 지 금 테이가 있는 거야.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아니 꿈이 있었는지 조차 잊어버린 사람보다 훨씬 나은 거라구. 그러니 지금 너무 고민하다가 꿈 을 포기하거나 자신을 버리는 짓은 하지 말아라. 비록 이룰 수 없는 꿈 일지라도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도전하다 보면 네가 가야 될 길은 자연 히 열리게 마련이야." "시이터씨도.... 꿈이 있나요?" "당연히 있지! 하지만 이건 나만의 비밀이니 말해 줄 수 없다." "그건 저도 마찬 가진걸요." 난 그 말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무심코 웃어 버렸다. 시이터는 내 웃는 얼굴을 보고는 내 머리를 마구 헝클어트렸다. "이제야 좋은 얼굴이 됐군." "아야야! 이러지 말아요!!" "하지만...." "에?" "이대로 계속 네 누나에게 끌려 다니는 것은 분명히 안 좋아. 그러니 너도 결단을 내리도록 해봐." "하지만 결단이라고 해봐야.....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는걸요." 나는 다시 순식간에 근심에 쌓여서 한숨을 쉬자 시이터는 눈짓으로 누 나와 레이르를 가리키며 말했다. "일단은 당장 눈앞에 일부터 생각해 봐. 저 고집쟁이 두 여자에게 네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라는 생각부터 해보렴."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 한번도 생각 해본 적이 없었다. 내가 앞장서서 무언가 해보겠다는 생각 은.... 지금까지는 항상 누나가 계획하고 난 옆에서 누나 지시대로 움 직인 일밖에 없었다. 그런 내가 누나와 레이르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 은..... 난 누나의 진지한... 아니 살기 넘치는 얼굴을 쳐다보고는 누나와 비교 해서 만만치 않은 레이르도 쳐다보았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지금은.... 일단은 지켜 볼 수밖에 없네요. 아무리 생각 해봐도 역시 저 분위기에 끼는 것은 사양하고 싶어요."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시이터는 어깨를 으쓱하며 그렇게 말하고는 기지개를 폈다. "아함~ 그러고 보니 졸리다. 저 내기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우리들은 자자. 자고 일어나서 결과를 보고 결단을 내려도 늦지 는 않아." "네." 난 2층 방으로 올라가는 시이터의 뒤를 따라 올라가다가 슬쩍 아래층을 내려다보았다. 카렌과 제임스는 아이들을 재우고 뒷정리를 하기 위해서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다가 카렌의 눈과 내 눈이 딱 마 주쳐 버렸다. "테이님 주무시러 가시는 건가요?" "에? 아아 그... 응. 이제 자려고."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슬쩍 돌리며 말했다. 역시 아직은 얼굴을 똑 바로 쳐다보며 말하는 것은 힘들었다. "저기 그러면 이 아이들도 같이 데려가 주세요." "응? 아아." 카렌이 부탁한 아이들은 올해 9살에서 12살 사이의 남자아이들로 시이 터씨와 나는 그 아이들과 같은 방에서 잤다. 카렌의 오두막에는 방이 많기는 했지만 그 방만큼 아이들이 많기 때문에 제대로 된 손님용 방이 없었다. 그래서 나와 시이터는 꼬마 남자아이들과 누나는 지금까지 레 이르가 여자아이들과 자던 방에서 지내는 중이었다. 우리와 같이 자는 남자아이들은 활달한 아이들로 나쁘게 말하면 말썽꾸 러기 집단이라 할 수 있었다. 아무튼 그 녀석들은 누나와 레이르의 내 기가 재미있어 보였는지 아까부터 카렌의 자라는 소리에도 유지 부동이 었다. 난 카렌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 아이들에게 가서 그만 자러 가자고 말했다. 그런데 이 놈의 꼬마들 왈. "에? 형 조금만 더 있다 가요. 재미있을 것 같은데...." 재미는 무슨 재미? 저 살벌한 기운이 재미있어 보이나? 내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을 때 옆에 있던 또 다른 꼬마가 말했다. "맞아요. 얼마나 스릴 있는데요. 이걸 못 보고 자야 되다니 억울해요." 스릴이라... 하긴 스릴이 넘칠 정도로 살기 등등하지.... 이 녀석들 그 동안 숲 속에서만 살아서인지 아니면 우리 남매가 드래곤이라서 그런 건지 이런 자극적인 상황을 무척이나 재미있어 하는 것 같았다. 아무튼 나는 아무리 아이들이 애원을 하더라도 들어줄 생각은 없었다. "카렌 말 들었잖아. 밤이 깊었어. 너희들이 자야 될 시간은 훨씬 지났 으니 우리랑 같이 올라가서 자자." "하지만...." "가만있어 보자 내가 예전에 들어갔던 던전에서 아주 괴상망측한 몬스 터를 만난 적이 있었는데...." 아이들이 여전히 불만스런 얼굴로 내 말을 듣지 않아서 곤란한 상황이 됐을 때 2층에서 시이터가 지나가는 어투로 말했다. 아이들은 괴상망측 한 몬스터라는 말에 단번에 눈을 빛내며 2층을 올려다보았고, 시이터는 그런 아이들을 쳐다보며 씩 웃으며 못을 박았다. "지금 이야기 해주고 싶은데... 이 이야기는 내일이 되면 하기 싫어질 지도 몰라." 아이들은 시이터와 누나와 레이르 쪽을 번갈아 보면서 고민하다가 결국 시이터를 선택했다. 아이들이 환호성 비슷한 것을 지르며 단번에 시이 터가 있는 2층으로 뛰어 올라갔고, 혼자 남은 나는 잠시 살기가 넘치는 내기 현장(?)을 잠시 쳐다봤다. '에구구 저러다 병이라도 안 났으면 좋겠는데....' 나는 누나와 레이르를 쳐다보며 그런 걱정을 잠시 하고는 2층으로 올라 갔다. 그나저나 정말 저 둘 중에서 누가 이길까? 그리고.... '난 정말 누가 이기기를 바라고 있는 거지?' 저 승부에 따라서 앞으로 레이르의 일을 어떻게 해야 될지가 결정될 것 이다. 하지만 누나의 방식이 아닌 나는 어떤 식으로 레이르를 도와주고 싶은 걸까? 그런 의문을 간직한 체 나는 잠자리에 들었다. 28화 이별 (1) 여느 때와 다름없는 아침이었다. 다만 난 전날 밤에 고민을 하다가 잠 을 설쳐서 그런지 늦잠을 자 버리고 말았다. "아함 좋은 아침이요. 좀 늦잠을 잤어요." 난 기지개를 펴며 아래층으로 내려갔는데 시이터와 제임스와 심각한 얼 굴로 날 맞아 주었다. "무슨 일 있어?" 내가 제임스에게 묻자 제임스는 식당을 가리켰다. 제임스가 가리킨 곳 에는.... "호호호 눈 밑에 기미가 끼었네. 더 이상 객기 부리지 말고 항복하는 게 어때?" "그러시는 티아님이야 말로 눈이 빨간 토끼 같아요. 티아님이야 말로 가서 주무시는게 어떨까요?" "내 걱정 안 해줘도 돼. 난 하루 안 자는 걸로 쓰러지거나 하지 않거 든." "어머나! 모르셨나요? 여자 피부에 최대 적은 불면이랍니다. 그만 포기 하시고 그 아름다운 피부를 간직하고 싶으면 그만 포기하시죠." "너야말로 더 이상 소녀적 시절 생각말고 포기하지 그래? 여자는 20대 부터 피부관리를 제대로 안 해 두면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걸." "그거 경험담인가요?" "내 백옥 같은 피부 갖고 경험담이라니. 농담이 심한거 아니야?" "어차피 마법으로 만드신거 아닌가요? 본래는 어떨까나?" "확인해 보고 싶어?" "......어떻게 된 건지 물어 봐도 될까?" 어제보다 더욱 살기 넘치는 현장에서 눈을 떼지 못한 체로 내가 묻자 제임스가 한숨을 쉬며 설명해 줬다. "둘 다 고집이 여간이 아니라서 그런지.... 우리가 일어났을 때부터 내 내 저런 식입니다." 실은 제임스가 설명해 주지 않더라도 그런 것은 보면 알 수 있었다. 우 리 드래곤은 마음만 먹으면 며칠 동안 자지 않고도 버틸 수가 있다. 그 렇기 때문에 난 어제 고민 중에 어차피 누나가 이기겠지 라고 생각하고 잠을 잤었다. 그런데 지금 누나는 척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마력을 최대한 낮춰서 마치 인간 같은 힘을 유지하고 있었다. 정정당당하게 겨 루고 싶은 고집 때문이겠지. 아니 그런 누나의 고집은 제쳐 두고라도 레이르도 만만치 않은 것도 예 상 이외였다. 이러다가는..... "진짜 한 삼일 밤을 샐지도 모르겠는걸." 시이터가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대신 말했다. 시이터의 말에 나와 제임스는 동조를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누나와 레이르는 말싸움에 지 쳤는지 이제는 보기에도 살벌한 눈싸움만을 하고 있었다. "오호호호호." "호호호호." 도저히 의미를 알 수 없는 웃음을 흘리며..... "저대로 둘을 그냥 놔두었다가는 정말 쓰러질 때까지 그만 두지 않을 거야." "에에. 정말 그럴 지도요." 시이터의 말에 내가 동의하자 시이터는 내 어깨를 잡으며 진지한 얼굴 로 날 쳐다보며 말했다. "네가 말려라." "네? 네에?! 왜 내가요?!!" "너 누나잖아. 그러니 네가 말려야지." "하지만...." 저 상황에 목숨걸고 끼여들 생각은 조금도 없기에 내가 머뭇거리자 시 이터는 내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을 주면서 말했다. "네 누나에게 너무 끌려 다니는 것은 안 좋아. 그러니 너도 결단을 내 려야 될 때는 확실히 해야 되는 거야! 지금이 네가 결단을 내리고 시행 을 해야 될 때다! 자 가라 테이야!" "시이터씨도 하기 힘든 일을 나한테 떠넘기는 거면서 그런 진지한 얼굴 로 진지한 말은 하지 마세요." "너도 눈치가 빠르구나." "그 정도는 바보라도 알아 챌 겁니다!!" "시끄러워!" "시끄러워요!" 나와 시이터의 말싸움에 누나와 레이르가 도끼눈을 부릅뜨고는 소리쳤 다. 그 살벌한 - 잠 못 자서 뻘게진 눈매 - 눈매에 나도 시이터도 놀라 서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 자리에서 멀리 떨어졌다. "오빠 이게 한심한 모습이란 거야?" "응 그런 거야. 난 절대 저런 모습 안 될게." "응. 유키나는 오빠 믿고 있어. 오빠는 반드시 멋진 남자가 될 거야." 아이들의 대화 소리에 그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추정 연령 7~8살짜리 로 보이는 남자애가 역시 추정 연령 5~6살로 보이는 꼬마 여자에게 으 쓱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건 넘어가더라도 꼬마 여자가 우리 둘 을 가리키며 한심한 모습 어쩌고 한 것에 대해서는........ '할 말 없다.' 뭔가 한 마디 해줄까 하는 생각이 순간 들었지만 애들 상대로 화내는 것은 정말 한심한 일이라 한 귀로 듣고 흘려 버리기로 했다. 그런데... . "그럼 저 둘은 한심한 오노랑 똑같네." "아니 한심한 오노가 아니라..." "누가 오노냐아?!" 유키나라는 꼬마 여자 애가 우리를 가리키며 그렇게 말하자 남자아이는 곤란한 얼굴로 설명을 해주려고 했는데 나와 시이터가 소리를 치며 끼 어 들었다. "한심한 오노가 아니라 비겁자 오노야!! 이 오빠가 왜 그 비겁자랑 같 은 취급을 받아야 하는데에?!!" "그 말이 맞단다 아가야! 한심한 거랑 비겁한 것은 틀려! 특히 그 비겁 자 오노랑 아저씨를 동일 취급하는 것은 엄청난 욕이란 말이야!!" 우리 둘은 엄청나게 흥분해 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비겁자 오노란 역 사상 가장 강한 검투사로 불렸다가 그 연전 연승이 실은 조작극과 사기 였다는 것이 밝혀져서 엄청난 욕을 얻어먹은 비겁자 검투사 오노라 불 리게 된 인물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비겁했느냐 하면 오노의 소문은 하늘을 찌르고 결국에는 인간 세상 소문에는 별 관심을 가지지 않던 우리 드래곤들까지 오노의 소문 을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오노의 비겁함의 소문을 들은 블루 드래곤 도오서님께서 손수 인간 검 투사로 변해서 그 놈과 정정당당하게 결투를 신청했었다. 하지만 오노 는 미리 심판들에게 돈을 먹인 상태라 누가 봐도 다 이긴 판정을 뒤집 었다. 그 비겁함에 치를 떤 도오서님은 당장에 오노를 죽여 버렸다. 그 리고 온화한 종족으로 소문난 블루 일족 중에서도 특이나 온화하고 인 간들을 아끼던 도오서님은 그 날로 인간 불신에 빠져서 지금도 인간 세 상에 나오시지 않고 계신다. 그런 역사상 최악의 비겁자로 불리는 인간과 내가 같은 취급이라니 아 무리 꼬맹이의 모르고 한 발언이라도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말이었다. 그건 시이터도 마찬가지였는지 평소에는 늘 싱글벙글 웃던 시이터도 이 때만큼은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이며 흥분했다. "흑... 미..미안해요. 유키나... 아무것도 몰라서... 정말 아무것도 몰 라서... 미안해요... 흑흑.. 으에엥!" 이런 울려 버릴 생각은 아니었는데... 하긴 다 큰 남자 둘이 이마에 핏 대 세우고 덤벼드는데 안 울 여자아이가 어디 있겠는가? 결국 우리는 급히 유키나를 달랬다. "미안. 미안 우리가 잘못했어. 너무 흥분했구나. 자자 뚝 그치렴. 착하 지?" "착하지? 착하지? 아저씨가 잘못했다. 소리를 지를 것까지는 없었는데. ... 응? 울면 예쁜 얼굴 다 망가진단다." 그렇게 미안한 마음에 아이를 달래던 우리 둘은 곧바로 필사적으로 아 이를 말려야 됐다. 앞에서 자기 애인(?) 울렸다고 눈 부라리는 남자 아이 때문이냐고? 천 만의 말씀. 돌아보지도 않아도 느낄 수 있는 '다 커서 왜 애는 울리고 난리야?' 라 는 누나와 레이르의 시선 때문이다. "우에엥! 미안해요! 미안해요!!" 도대체 울지 말라고 달래는데 더 크게 우는 것은 또 무슨 심보란 말인 가? 서서히 손목을 푸는 누나와 목을 가다듬는 레이르를 곁눈질로 보며 나 는 애 달래는 최고의 비법을 전수해 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당장에 그 자를 평생 스승으로 모시고 싶은 심정이었다. "유키나 무슨 일이니?" 구원의 여신은 정말로 존재했었다. 나와 시이터는 똑똑히 목격했다. 카 렌은 등뒤에 새하얀 날개를 달고서 우리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어 준 것 이다. - 헛것으로 날개가 보일 만큼 그때는 급박한 상황이었다. - "엄마!" 유키나는 카렌을 부르며 - 근데 엄마라니... 아직 조금 가슴 아프다 - 달려가서 품에 안겼고, 카렌은 유키나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이유를 물었다. "흑흑. 유키나가... 아저씨들을... 흑흑 오노가.... 비겁자가 됐는데.. . 흑흑 그래서... 유키나가... 한심하다고 말해서... 흑흑 아저씨들이. ... 화가... 흑흑 오노가 돼서... 그래서 유키나... 잘못했다고... 흐 끅." 유키나는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지도 못할 말을 늘어놓고 있었다. 어째 카렌에게도 오해받을 것 같다는 걱정에 한숨이 나올 때 그런 걱정을 카 렌은 깔끔하게 없애 줬다. "유키나야. 아저씨들을 보고 오노라고 욕한 것은 네가 심한 거야. 가서 제대로 사과해야지. 유키나가 잘 모르고 한 짓이니 분명히 용서 해줄 거야." 아아! 위대한 자여 그대 이름은 어머니인지라!! 난 왜 어머니들을 위대하다고 찬양하는지 그 이유를 똑똑하게 목격한 기분이었다. - 근데 그 대상이 카렌이라는게 좀 슬프지만....- 아니 생 각해 보니 카렌은 마음을 읽을 수 있잖아. 혹시 읽은 건가? 아무튼 울음을 그치고 진정이 된 유키나는 우리에게 와서 다시 한번 미 안하다고 말했고, 나와 시이터는 괜찮다고 웃으면서 배낭을 뒤져 과자 를 찾아서 유키나에게 주는 걸로 일은 잘 해결됐다. 하지만 여전히 집안에서 불길한 기운을 내 뿜는 저 두 여자에 대한 처 리 문제는 남아 있었다. 시이터와 나는 처절하게 눈빛 교환을 하며 서 로 말려 보라는 메시지를 주고받았고, 결국에는 '마법검 대여 일주일 더 연장' 이라는 시이터의 속삭임에 항복의 깃발을 들었다. 에구구 그 마법검만 아니면.... 어쩔 수 없이 머뭇거리는 걸음으로 두 여자에게 다가가자 곧바로 '방해 할 생각하지마' 라는 매서운 눈빛이 쏟아졌다. 하지만 나도 남자로서의 자존심이 있지 여기까지 와서 물러설 생각은 없었다. "저기 이제 그만 고집은 그만 피우고... 크헉!" 말도 끝나기 전에 누나의 펀치에 난 구석으로 날아갔다. 젠장 말이라도 끝까지 들어 달란 말이야!! "방해하지마! 난 이 철없는 왕녀님에게 세상의 쓴 맛이라는게 무엇인지 철저하게 가르쳐 주겠어!" "어머나! 저도 세상의 쓴맛은 충분히 겪었는걸요. 일부러 힘들게 가르 쳐 주실 필요 없어요." "무슨 소리를 아무리 쓴맛을 봤다고 도망친 다는 것은 아직 철이 덜 든 증거. 이 내가 오늘 확실히 그것을 가르쳐 주지." "졸려 죽겠다는 눈으로 그런 말을 해봐야 설득력은 없어요." "후후후후후." "호호호호호." 저건 무리다. 절대로 말리기 무리란 말이다아! 난 아픈 턱을 어루만지며 마음속으로 그렇게 외쳤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 죽어 가는 마감 작가(?)같은 꼬락서니를 그냥 놔둘 수도 없고.... 나 이럴 때 어떡해야 되는 거야? "자자 아침 드셔야죠. 분명히 입맛들이 없을 테니 이 민트차부터 드시 고 머리를 맑게 하세요." 카렌은 정신이 개운해지는 것 같은 향긋한 내음의 차를 둘에게 내밀었 다. "고마워." "감사합니다." 그렇게 차를 마시는 둘을 내버려두고 카렌은 조금 큰 여자아이에게 2층 레이르의 방에 침대를 정리하라고 시켰다. 그 말을 들은 누나는 졸려 죽을 것 같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약주고 병주기야? 아무튼 그 침대에 내가 먼저 눕지는 않을 테니 레이 르 것만 먼저 깔아 두라고 해." "그 말 그대로 티아님에게 돌려주겠습니다." "그렇게 졸려 죽겠다는 얼굴로 말해 봐야 설득력은 없어." "그건... 티아님도... 마찬가지... 잖아... 요." "후후후. 졸려.... 죽으려고... 하는... 구나." 슬슬 둘이 한계가 왔는지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갑 자기 왜 저럴까? 아까 기세를 봐서는 정말 며칠 밤을 버틸 셈이던 것 같던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레이르도 누나도 동시에 탁자에 얼굴을 박고 잠이 들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싱긋이 웃는 카렌의 모습에 내 머릿속 에서 번개같이 하나의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약 탄 거야?" 내 말에 카렌은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답해 줬다. "네. 인체에 절대 무해하면서도 잠을 푹 자게 만드는 특제 케리날나스 약초를 듬뿍 넣었어요." "케리날나스? 설마 무색 무취에 드래곤도 재운다는 그 구하기 어렵다는 약재? 도대체 그걸 어디서 구한 겁니까?" 시이터가 감탄을 하는 걸로 봐서 뭔지는 모르겠지만 엄청나게 귀한 약 초인 것 같았다. 역시나 약초 박사 카렌답다. "비~밀~이랍니다." 카렌이 저렇게 말하니 더 물을 자신이 없었는지 시이터는 입맛만 다시 며 궁금함을 포기하고 대신에 잠이 든 레이르를 안았다. 그리고 눈짓으 로 나에게 누나를 안고 오라고 하고는 먼저 2층으로 올라갔다. 내키지는 않지만 누나를 안으려는 나에게 카렌이 살짝 귓속말을 했다. "조심해서 옮기세요. 여자는 강한 것 같으면서도 실은 한없이 약하답니 다." "......." 하마터면 우리 누나만은 예외일 꺼야 라는 말이 나올 뻔했다. 나는 그 말을 억지로 목구멍으로 삼키며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차." '어라?' 잠이 든 누나를 안은 나는 잠시 너무나 가벼운 누나의 무게에 당황했 다. 누나를 안고 옮기는 것은 이번으로 두 번째였다. 하지만 그때 누나 는 깨어 있는 상태였고 날 놀리던 중이었다. 그래서인지 무게 따위는 느낄 겨를이 없었는데 지금 완전 무저항의 잠든 누나는 굉장히 작고 약 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가벼웠다. '쩝. 평소에도 이렇게 얌전하면... 귀여운데.' 그런 생각을 하며 난 누나를 안고 2층으로 올라가서 시이터가 눕혀 놓 은 레이르 옆에 누나를 내려놓았고, 시이터는 둘에게 시트를 잘 덮어 줬다. "잠자는 숲 속의 미녀가 둘이나 되는군. 테이군은 어느 쪽을 깨우고 싶 어?" "깨우다니요?" "미녀를 깨우는 것은 근사한 왕자의 키스잖아.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 라면 어느 쪽을 선택하고 싶냐고." "선택? 키스?" 그 말에 내 눈은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누나에게 향했다. 과거 내 퍼 스트 키스와 세컨드 키스를 앗아갔던 그 입술을 새삼스럽게 쳐다보게 됐는데.... '너무나 작다. 그리고.... 아름답다.' 이런 무슨 엽기적인 생각을!! "무..무슨 헛소리 세요?! 제가 깨우고 싶은 미녀는 여기 없어요. 아 배 고파라~ 저 먼저 내려갈게요!!" 난 내가 생각해도 엄청 어색하다는 것을 느끼면서 그 자리에서 후다닥 벗어났다. "보면 볼수록 재미있는 남매라니깐." 내 뒤에서 시이터가 웃으며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 인간은 우리 남매가 인간들 웃기는 피에로로 보이나? 쳇! 마법검만 아니라면 정말 밟아 버릴까 보다.' 라는 평소에는 하지 않는 위험한(?) 생각을 해 버리는 것도 내가 좀 이 상해진 것 때문일까? 정확히는 누나를 안고 올라가면서부터.... 아니 그 전에 카렌의 말을 들었을 때부터 내가 이상해 진 것 같았다. 아침 식사를 하면서 난 내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상념에 몇 번이나 포크 와 스푼을 바닥에 떨어트렸고, 그때마다 카렌은 조용히 미소지으며 새 포크와 스푼을 가져다 주었다. 난 결심을 굳혔다. 적어도 카렌과의 일은 결말을 내고 싶었다. 그렇게 결심을 한 나는 포크를 새로 갖다 주는 카렌에게서 포크를 받는 척하면서 내 마음을 카렌에게 강하게 보냈다. 역시 카렌의 능력은 여러 가지로 편리한 점이 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굳이 다른 이들 눈치 안보 고 말할 수 있으니... '이번이 마지막이야. 그러니 꼭 들어줘. 식사가 끝나고 오두막의 뒤쪽 언덕 아래에서 기다릴게. 꼭 나와 줘.' .. 28화 이별(2) 내 휘파람 소리가 바람을 타고 숲 속에 퍼졌다. 얼마 전에 누나가 혼자 부르던 휘파람..... 그때 이후에 이 음색이 머릿속에서 떠나가질 않았다. 그래서 가끔 혼자 서 휘파람을 부르게 됐다. 이거 이러다가 버릇되는 거 아닐까? "좋은 음악이네요." "카렌?!" 휘파람을 부는데 열중해서 카렌이 바로 곁에 온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 다. 카렌은 미소지으며 내 옆에 앉았고, 머쓱한 기분이 드는 것을 느끼 며 다시 휘파람을 불었다. 기억도 나지 않는 그 무언가의 추억을 생각나게 만드는 음악이 내 휘파 람으로 연주 됐고, 카렌은 눈을 감으며 내 음악 소리를 들어 줬다. 나는 아예 자리에 들어 누워서 눈을 감고 휘파람을 불렀다. 이렇게 하 는 쪽이 더 느낌이 강하게 왔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아련한 기억.... . 누나는 이 음악을 어디서 들은 것일까? 음악은 끝났다. "......." 막상 카렌을 불러냈지만 가슴이 떨려서 진정 좀 시키려고 휘파람 불었 는데도 부를 때만 진정이 좀 됐지 끝나고 나니 말짱 헛 짓이었다. '에... 우 그냥 휘파람 부르면서 이야기할까?' 라는 현실도피를 할 때가 아니잖아!! '어?' 카렌은 누워 있는 내 손을 살짝 잡았다. 카렌의 온기를 느끼면서 난 얼 굴을 붉혔다. 그리고 동시에 용기도 샘솟았다. "저기.... 카렌." 그렇게나 말이 나올 것 같지 않던 내 입에서 드디어 말이 나왔다. "네?" "저기.... 이제 날 좋아하지 않는 거야?" 그렇다 이 한마디를 물어 보고 싶었다. 만약에 카렌이 더 이상 나를 좋 아하지 않는다면... 그 은색 고철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남자답게 물러 날 생각으로 카렌을 부른 것이다. 실은 조금 깽판 칠까 하는 마음도 있긴 하지만.... "테이님." "응?" "좋아하는 마음은 어디로 간다고 생각하세요?" "에?" 난 카렌의 질문 뜻을 이해하지 못해서 카렌을 쳐다봤다. "그... 저기... 무슨 뜻이야?" "좋아하는 이에게 거절당한 마음은 어디로 간다고 생각하세요?" "좋아하는 마음이 거절당하면? ....에 또... 사라지지 않을까?" 카렌은 고개를 저었다. 눈부신 금발이 카렌의 도리질에 출렁이며 반짝 반짝 빛이 났다. "좋아하는 마음이 거절당해도 가슴속에 남아 있답니다." "그 말은.... 아..아직 날 좋아하고 있다는 말?!" 난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나서 카렌에게 물었다. 갑자기 희망이 샘솟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카렌의 얼굴에 그늘이 져 있었다. 그 모습에 난 갑 자기 절망이 샘솟는 기분이었다. "그 마음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가슴속에 남아 있어요. 그래요. 분명 저에게도 그 마음은 남아는 있어요. 하지만 어디까지나 추억의 형태로 남아 있을 뿐이에요." "추...억? 어? 어어!!" 카렌은 아직 잡고 있던 내 손을 강하게 잡아끌었다. 덕분에 내 얼굴은 카렌의 가슴에 안겨 버린 형태가 됐다. ....기분 좋다~ 가 아니잖아!! 정신차려라! 테이루아!! 카렌은 그 상태로 가만히 내 머리를 손으로 쓰다듬어 주며 속삭였다. "미안해요. 이 말은 꼭 전하고 싶었어요. 내 진심을 담아서.... 그 때 테이님 곁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제대로 설명도 못해 드리고... . 그리고 지금도 말 할 수 없어서 미안해요." "우...웅." 카렌이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내 얼굴은 파묻힌 상태라 입에서는 이상한 응얼거림만 나왔다. 이거 놔주고 말하면 안되나? 아니 안 놔줘도 상관 은 없지만 그래도 이런 상태로는 대화에 전념할 수가.... 약간은 엉큼한 생각도 불쑥 들었지만 솔직히 말하면 굉장히 편안한 기 분을 느꼈다. 카렌의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절로 마음이 차 분히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지금 이런 상태로 만나게 되었지만... 테이님도 티아님도 저에게는 소 중한... 제가 너무나 좋아하는 소중한 분들이라는 마음은 변함 없어요. 이것만은 알아주세요." 그런 것은 굳이 카렌의 입으로 듣지 않아도 다 알고 있었다. 난 다만 카렌이 제대로 날 차 버려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불렀다. 그래야 내 마음을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렌의 성격상 그런 모진 말은 못하겠지. 난 카렌의 손에서 빠져나왔다. "그래? 소중하다라.... 좋아하는.... 아니 사랑하는 감정은.... 아닌거네." "......네." "그래? 그랬구나. 아니 눈치는 채고 있었긴 하지만...." "테이님." "저기 미안. 나 혼자 있고 싶거든." "......네." 카렌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나에게 고개를 숙이고는 집 쪽으로 걸어 갔다. 그리고 혼자 남은 나는 다시 그 자리에 털썩하고 누워 버렸다. "완전히 차였군." 그렇게 중얼거리는 내 마음은 이상하게도 슬프다거나 화가 난다거나 하 는 감정이 생기지 않았다. 그저 담담한 마음이었다. 이상했다. 내 스스 로 원해서 카렌에게 거절의 말을 하게 했는데 가슴이 답답한 것은 왜일 까? '좋아하는 감정이 거절당하면... 어디로 갈까? 정말 내 마음속에 숨어 버리는 것일까?' 그렇게 한참 동안 고민을 하던 내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여어." "시이터씨?" 시이터는 빙긋이 웃으며 내 옆에 앉았다. 한동안 그 상태로 침묵이 흘 렀다. '어 이 음악은?!' 난 익숙한 음색에 옆으로 곁눈질을 해보았다. 시이터가 그때 누나가 휘 파람으로 부르던 곡을 부르고 있었다. 아마 누나가 시이터에게 배웠나 보다. '쳇! 뭐야? 죽일 듯이 싸우더니 결국 사이가 좋았던 거잖아.' 그렇게 멋대로 결론을 짓자 그동안 사이가 나빠서 항상 으르렁거리는 - 정확히는 누나만 으르렁거렸던 것이지만.... - 둘 사이에 끼어서 어쩔 줄 몰라 하던 내가 억울했다. 하지만 그 감정도 곧 시이터가 부르는 아 련한 추억을 자극하는 음악에 묻혔다. 그 음악에 몸을 맡기고 한참을 감상을 할 때 음악은 그치고 다시 침묵 의 시간이 돌아왔다. 하지만 곧 침묵을 깨고 시이터가 나에게 물었다. "차였구나?" - 뜨금 그렇게 직설적으로 아픈 가슴을 찔러야 속이 시원하나? 난 대답하기 싫 어서 옆으로 돌아 눕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확실히 네가 반할 만 여자더군. 카렌씨는 나도 반하고 싶을 정도로 멋 있는 여자야. 아깝게 됐다." '저건 헛소리다. 저건 헛소리다. 저건 헛소리다.' 필사적으로 마음을 가다듬는 내 노력도 헛되이 드래곤 속을 빡빡 긁어 놓는 시이터의 말은 계속됐다. "울고 싶으면 울어." "무슨 헛소리를!!" 난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주먹을 날려 버렸다. 내 주먹을 시이터는 가볍 게 막으면서 잡은 손을 잡아 당겼다. 결국 주먹을 날린 힘과 시이터의 끄는 힘에 난 시이터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말았다. .....기분 나빠. "이것 놔요!" "실컷 울고 나서 잊어버려!" "누가 운다고 멋대로 결정하는 거죠?" "그렇게 울고 싶다는 얼굴로 그런 말을 해봐야 설득력 없어!" "누가 울 줄 알고! 누가 울 것 같아요?! 난... 난!! 흑. 으흑. 젠장!! !" 나도 모르게 울분을 토하자 시이터는 나를 더욱더 꽉 끌어안으며 말했 다. "걱정 마라 너 우는 얼굴은 절대 보지 않을게. 그러니 속이 풀릴 때까 지 울어! 그렇게 마음속에 담아 두다가는 잘못하면 네 좋아한다는 감정 이 미움의 감정이 될지도 몰라. 그러니 울분으로나마 풀란 말이야." '이 인간이 뭘 다 안다고 울라고 부추기는 거야?' 그렇게 마음속으로 생각했지만 내 감정은 이성을 배반하고 무언가를 토 하듯이 나를 울게 만들었다. 어느새 이성도 감정이 흐르는 대로 내버려 두자 라는 방관자가 되어 버려서 난 정말 미친 듯이 울고 또 울었다. 시이터는 그런 나를 잠자코 울도록 내버려둬 주었다. 한참을 울고 나자 더 이상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내가 울음을 그치자 시이터는 날 놓아 주었고, 약속대로 얼굴은 보지 않았다. 그런 시이터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지만 그래도 펑펑 울어 버린 것이 부끄러워서인지 내 말투는 가시가 돋쳐 있었다. "젠장...."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라고 말하고 싶은 거지?" 이 인간도 혹시 마음을 읽는 능력이 있나? 시이터는 차마 하지 못해서 삼킨 내 말을 정확하게 꼬집어 줬다. 나는 침묵으로 그 말에 반론하지 않았다. 어차피 사실이니 반론할 건더기도 없었지만.... "기분은 좀 풀렸냐?" ".....네." "그럼 됐다." "시이터씨." "응?" "좋아하는 마음이 거절당하면 그 마음은 어디로 간다고 생각하세요?" 난 아까 카렌이 물어 본 질문을 시이터에게 물어 봤다. 아무래도 카렌 이 말해 준 해답으로는 내 성에 차지 않아서였다. "어딜 가긴 네 마음 속에 남아 있는 거지." 시이터는 카렌과 똑같은 대답을 해줬다. 생각 할 것도 없이 바로 나오 는 시이터의 대답에 난 혹시 하는 생각에 다시 물었다. "아까 카렌과 내 대화를 들은 건가요?" "카렌씨의 좋아하는 마음 어쩌고 라는 말부터였나?" 처음부터 다 듣고 있었단 소리잖아! "다른 사람 말을 엿듣다니 악취미군요." "그러게 내가 낮잠이나 자려고 자리 잡은 장소에 오랬냐? 먼저 와서 잘 자고 있던건 나야." "쳇!" "그리고 덕분에 너도 기분 풀릴 때까지 펑펑 울 수 있었잖아." "그 이야기는 그만둬요!! 그리고 절대로 티아 누나한테는 비밀입니다!! 절대로요!!" 난 새삼스레 방금 전에 펑펑 울었던 게 생각나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내가 흥분을 하며 소리치자 시이터는 뭐가 재미있는지 킥킥대고 웃으면 서 알았다고 건성으로 대답했다. 이 인간 그냥 콱 밟아 버릴까? 가만 생각해 보니 이 인간 죽이면 그 멋진 마법검도 영원히 내 것이 되잖아. 음 한번만 양심을 팔까? 그런 용사 드래곤의 사상(?)에 위배되는 생각을 잠시 하는 동안 시이터 는 웃음을 그치고 말했다. "테이군. 감정이라는 것은 말이야 쉽게 사라지거나 하는 것이 아니야. 물론 망각이라는게 있지만 당시 감정이 얼마나 격렬했는지에 따라서 그 감정을 잊어버리는 시간에 개인차가 있지. 하지만 카렌씨 말이 맞아. 시간이 지나서 망각에 의해 그때 감정을 잊어버려도 그 감정이 없어지 는 건 아니야. 마음 속 깊이 새겨지는 거야. 그리고 잘못해서 그 감정 에 너무 얽매이면 삐뚤어 질 수도 있어. 그래서 너보고 울분으로 풀라 고 한 거다." "쳇! 쳇!" "얼굴이 뻘게질 정도로 부끄럽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면 어느 정도 풀린 모양이구나. 너 아까 전에는 뭔가 터트릴 것 같은 표정이었다는 것도 모르겠지?" "모릅니다." 내 퉁명스런 대답에 시이터는 화를 내지는 않았다. 내 머리를 툭툭 치 고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몸을 쭉 펴며 말했다. "다시 낮잠 자기에는 다 틀릴 정도로 잠이 깼으니 아이들한테 이야기나 해주러 가볼까? 테이 너는 여기 계속 있을 거냐?" "예." "그래? 그럼 이번 기회에 앞으로 뭘 어떡해야 될지는 스스로 결정해 보 도록 해봐. 그럼." 시이터는 그 말을 끝으로 오두막 쪽으로 가 버렸다. 혼자 남은 나는 그 자리에 다시 벌렁 드러누웠다. 확실히 아까 카렌에게 정식으로 차이고 난 뒤에 - 비록 카렌은 끝까지 직설적인 말은 하지 않았지만 - 꽉 막혔 던 가슴은 어느 정도 확하고 뚫린 기분이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될까?' 그 인간 말을 따를 생각은 별로 없지만 확실히 그 동안 너무 누나에게 끌려 다닌 것은 사실이고, 아까 내기도 거의 무승부라 봐도 좋으니 아 마도 누나와 레이르가 일어나면 또 다시 신경전이 벌어 질 것이다. 그 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 '좋아하는 감정은 아니 감정이라는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가슴 한 구석에 새겨지지만 그것을 잊을 뿐이다. 인가?' 카렌과 시이터가 해줬던 말을 상기시키면서 난 레이르와 레이르가 이야 기 해줬던 랑그람의 일에 관해서 생각해 봤다. 감정이 사라지지 않는 다면 분명히 레이르의 마음에도 아직까지 랑그람에 대한 감정이 있겠지 ? 그리고 지금은 그 감정을 잊기 위해 필사적일 테고.... 하지만 그렇 다고 레이르가 이대로 여왕의 자리를 포기하는 것은 도망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별로 좋은 일은 아닌 것 같단 말이야. 하지만 레이르의 의견도 존중해 줘야 되고.... "으아악! 머리 아파!!" 난 머리를 붙잡고 딩굴거렸다. 젠장 역시 이런 쪽으로 머리를 안 쓰다 가 쓰려니 제대로 정리가 안 된다. 무언가 좋은 방법이 없을까? 이대로 레이르가 왕위를 포기하지 않고, 랑그람의 일도 해결할 좋은 방법... 한참을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정말 태어나서 처음으로 머리 아프게 고 민 한 날일 것이다. 어느 정도였냐면 유키나가 '오빠야 저녁 드세요!' 라면서 날 부르러 올 때까지 계속 고민했던 것이었다. '에휴. 내가 고민을 해 봤자 인가?' 확실히 그 동안 누나의 괴롭힘에 하루하루 살아가기도 벅찬 나날이었지 만 좀 진지한 고민 좀 해 보는 것도 안 된다니.... 왠지 모르게 슬픈 기분이었다. "저기 오빠야." "응?" 집으로 걸어가던 중에 유키나가 나에게 말을 걸었고, 난 건성으로 대답 했다. "또 여행을 가는 거야? 카렌 엄마 말로는 오빠야랑 언니야랑 얼마 안 있어서 여행을 떠난다고 했는데.... 언제 가는 거야? 좀더 오래 놀다 가면 안 돼?" "글세... 언제 떠날지는....." "어디로 가는데?" "음... 일단 정해진 곳은 프론트 연합일까?" "와아!! 신룡들이 있는 곳이구나!! 유키나도 꼭 한번 가서 신룡님들을 보고 싶었는데." 그 말에 난 피식 웃었다. "티아 누나도 그 신룡 중에 하나야." "에? 정말?" "정말." "우와아! 대단해! 티아 언니의 본 모습 보고 싶다! 유키나는 드래곤은 책으로밖에 본적이 없어. 그래서 꼭 보고 싶어!" "언젠가 기회가 되면 보여줄게." "약속이야!" "응. 약속." 난 유키나와 손가락을 걸면서 문뜩 머릿속에서 어떤 생각이 스쳐 지나 갔다. 프론트 연합의 신룡.... "가만..... 그래! 그거야!!" "에?" 갑자기 환호성을 지르는 나를 보며 유키나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난 유 키나의 궁금증을 해결해 주는 것보다 더 급한 일이 생각났다. 이미 집 앞까지 다 온 나는 급히 유키나에게 물었다. "티아 누나랑 레이르 이제 일어났니?" "아? 으응. 일어났어. 근데 오빠야." "미안 있다가 대답해 줄게!" "아니 그게 아니라!" 난 유키나의 말을 더 듣지 않고 바로 집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중간에 카렌이 내 모습을 보고 날 불렀지만 난 그것보다 내가 생각한 '방법'을 누나와 레이르에게 말해 주는 게 더 급했다. "누나! 레이르!" 둘을 부르면서 있는 힘껏 문을 연 나는 그 자리에서 바로 얼어 버렸다. 에 또... 레이르는 79. 54. 80 정도 돼 보이고 누나는 81. 55. 82 정도 되어 보였다. 라고 몸매 평가 할 때가 아니겠지? "우에엥!" "이 놈의 변태 드래곤아! 한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엿보냐?!!" 레이르는 가슴을 감싸안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울음을 터트렸고, 누 나는 주먹을 풀며 다가왔다. "아니 그게 아니고.... 저기 누나 잠시 진정하고... 일단 옷부터 먼저 입고 난 다음에...." "옷 입는 동안 도망가려고?" 하여튼 누나는 눈치가 좋아서 탈이다. "누나! 나한테 좋은 생각이 나서... 그래서 빨리 말하려고 뛰어 들어왔 는데... 그런데 그 생각이... 그러니깐...." "유언은 그게 끝이겠지? 누나의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나는 지붕을 뚫고 밖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땅에 떨어진 나에게 유키나가 조심스럽게 다가와서 말했다. "저기. 아까 언니들이 일어나서 목욕하고 옷 갈아입는다고 했었어." "......가르쳐 줘서..... 고맙다." 좋은(?) 구경했으니 행운이라고 해야 될까? 아니면 변태 드래곤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썼으니 불행이라고 해야 될까? 아무튼 난 맞아 죽더라도 내 생각을 말해야 된다. 처음으로 내 스스로 가야 될 길을 정했으니... . 28화 이별(3) "에?" "뭐라고?" "호오. 그거 괜찮은데." "저는 찬성입니다." "......좋은 방법이라 생각되는군요." 약간 안 좋았던 사건 후에 -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나한테는 좋았던 사 건 일수도... - 저녁 식사 자리에서 난 내가 생각한 방법을 말했다. 시 이터와 카렌 그리고 제임스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누나와 레이르 는 왜? 라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 봤다. 내가 말했던 방법이란 레이르가 우리와 같이 프론트 연합으로 여행을 가자는 말이였다. "왜냐면 여행은 여러 가지로 생각할 기회를 많이 주잖아. 그러니깐 여 행을 하면서 느끼는 대로 레이르가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기회가 될지도 몰라. 그 결론이 무엇인지는 레이르에게 달렸지만...." "흠. 그런가?" "그런 거야. 그리고 프론트 연합에는 신룡님들이 계시잖아. 그분들에게 도 자문을 구해 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될 거야. 여차하면 그분들에게 도 와 달라고도 해보지." 누나의 질문에 덧붙여서 설명하자 시이터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신룡님들이 도와줄까? 막상 거기까지 갔는데 안 도와 주시면?" "일일이 그런걸 따지면 안되죠. 도와 주실 지 안 도와 주실 지는 직접 부딪쳐 봐야 되는 거잖아요. 그렇다고 생각하면 시이터씨도 옛 고대어 에 대해서 알아보기 위해서 신룡님들에게 가는 건데 만약에 그걸 안 가 르쳐 주면 어쩔 작정이었죠?" "허. 거기까지 생각한 거냐? 뭐 안 가르쳐 주면 안 가르쳐 주는 대로 따로 프론트 연합에서 고대어를 연구하는 현자라도 만나 볼 생각이었 다." "제 생각에도 안되면 프론트 연합의 현자라도 만나 볼 생각이었죠." "음. 괜찮은 방법 같다. 그런 좋은 방법을 생각해 내다니 우리 테이 많 이 컸네." 누나의 칭찬에 난 조금 부끄럽고도 으쓱한 기분에 헤헤헤 웃으며 머리 를 긁적였다가 누나의 말뜻을 알아차리고 바로 인상을 구기며 따졌다. "그 말은 지금까지는 내가 덜 컸다는 소리야?!" "응." 내가 따지자 누나는 '뭘 그리 당연한 걸 물어 보니?' 라는 표정으로 바 로 대답했다. "......젠장. 관두자 관둬. 어차피 누나한테 더 따져 봐야 나만 바보 될 것 같으니...." "반항도 하고 아주 많이 컸어." "헉!" 누나 몸 주위에서 암암리에 퍼져 나오는 살기에 난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 어째 내가 더 크던 말던 이 관계는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은 불 길한 예감이 드는건 왜일까? "레이르는 어쩔 생각이죠?" 카렌이 레이르에게 묻자 레이르는 잠시 생각을 해 보는 것 같았다. 하 지만 표정을 보면 이미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린 것 같았다. 다만 걸리 는 게 있겠지. "저어....." 레이르가 간신히 말을 꺼냈지만 카렌의 눈치를 보면서 더 말을 꺼내지 못했다. 카렌은 그런 레이르의 마음을 알아 차렸는지 괜찮다는 듯이 고 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레이르는 자신이 떠나고 난 뒤 남은 이 많은 아 이들이 일이 걱정이 된 것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카렌이 괜찮다고 고개 를 끄덕여도 레이르는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잠자코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주변에서 어린 아이들과 놀아 주던 추정 연령 12~14세 소년. 소녀들이 서로 무언가 속닥거리더니 뭔가 결 심한 표정으로 레이르 앞에 섰다. "누나 가세요." "에?" "여행이라니 너무 멋져요."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잖아요." "아! ....저기 애들아 하지만...." 그래도 쉽사리 결정을 못 내리자 아이들은 생긋 웃으며 말했다. "갔다 와서 재미있는 여행 이야기 많이 해 주셔야 되요!" "아!" "그러니 아무 걱정말고 다녀오세요." 아이들은 레이르에게 이 여행이 영원한 이별이 아닌 꼭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언제든지 돌아 올 수 있는 곳. 집이 있으니 꼭 다시 돌아오라는 아이들의 마음을 알아차린 레이르는 울먹이 며 고개를 푹 숙였다. "나... 갖다 올게. 카렌씨 저 갖다 올게요." 간신히 말을 꺼내는 레이르에게 카렌은 미소를 지으며 진심을 듬뿍 담 아서 말했다. "다녀오세요. 레이르." 다음날 아침 레이르는 짐을 꾸려서 티아들과 집을 나섰다. 그동안 정 들었던 이들을 뒤로 하고, 그리고.... "이젠 정말 이별이네."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응." 카렌과 테이는 작별 인사를 하는 중이었고, 티아와 제임스는 알아서 자 리를 피해 줬다. "건강 조심하세요. 그리고 레이르를 잘 부탁드릴게요." "카렌 말투가 어째 시집 보내는 딸 걱정하는 어머니 같아." "어머나! 레이르는 제 딸이나 마찬가지인걸요." "그..그래? 알았어. 레이르는 맡겨 둬. 여행을 하다 보면 틀림없이 레 이르도 자신이 가야 될 길을 찾을 수 있을 거야." "테이님은... 자신의 길을 찾으셨나요?" 테이는 카렌의 질문에 작게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표정은 더 없이 밝아 보였다. "이제부터 찾을 거야. 내 스스로 내가 가야 될 길을!" "테이님이라면 틀림없이 찾을 수 있어요." "고마워. 그럼 안녕." "안녕히...." 그렇게 카렌들과 헤어진 테이들은 진로를 남서쪽으로 잡았다. 신룡들의 나라 프론트 연합국으로 가기 위해서.... 그런데 그 날 밤 야영을 하던 중에 문제가 생겼다. "그런데 어떻게 프론트 연합국으로 넘어 갈 거죠? 지금 전쟁 중이라 프 론트 연합으로 넘어가는 일이 쉽지 않을텐데요." 레이르의 지적에 티아도 테이도 속으로 '아차'했다. 레이르의 지적대로 지금 프론트 연합으로 넘어가기는 힘들었다. 전쟁 중이기 때문에 국경 에서 걸릴게 뻔했다. 아니 수배자인 레이르를 데리고 국경까지 갈 일도 걱정이었다. 티아와 테이뿐 만이라면 넘어가기는 쉬웠다. 레이르야 테이 등에 태우 고 넘어가면 간단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이터에게 드래곤이라 는 정체를 밝힐 수 없기 때문에 티아와 테이는 어떻게 레이르를 프론트 연합으로 데려가야 될지 고민이 됐다. "저 시이터씨. 어떻게 국경을 넘어가죠?" 테이의 질문에 시이터는 곧바로 명쾌하게 해답을 제시했다. "담 뛰기!" "......." "......." "......." "농담이야. 그런 불신의 눈초리로 쳐다보지마." 시이터가 손을 저으며 농담이라고 말했지만 테이들의 눈에서 불신은 사 라지지 않았다. 별수 없이 시이터는 진지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국경 지대라고 해서 그 넓은 지역에 전부 병사들이 지키고 있을 리가 없잖아. 좀 위험하지만 산을 넘는 방법밖에 없어." "병사들이 지키지 않을 정도의 산이라면... 엄청나게 험난하고 특히 위 험한 몬스터도 많다고요." 레이르의 지적에 시이터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시이터의 표정은 걱정보다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힘들긴 하지만 방법은 그것뿐이고 또 몬스터는 걱정 할 필요 없어. 나 와 테이군과 티아양만 있으니 그렇게 위험한 일은 없을 거야." "티아양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죠!!" 저번 내기 때문에 티아는 시이터에게 꼬박꼬박 존댓말은 쓰고 있었다. 다만 가시가 조금... 아니 아주 많이 들어가 있긴 하지만... "그럼 티아양이라고 안 부르면 뭐라고 불러?" "그냥 티아라고 불러요!!" "흠. 근데 너 나 부를 때 존칭은 빼고 부르는 것 같다. 그렇게 오빠라 고 불러 주는 게 싫어?" "흥!" 티아는 고개를 팩 돌리며 대답할 의사가 없다는 뜻을 내비쳤다. 시이터 가 아쉽다는 표정을 짓고 있을 때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던 테이가 고개 를 갸우뚱했다. "왜 그래?" 시이터가 묻자 테이는 정말 궁금한 얼굴로 시이터에게 물었다. "시이터씨 지금 다이러스 제국이 전쟁 중인 것은 알고 계셨죠?" "응." "그럼 왜 가이라가 왕국이 아닌 다이러스 제국으로 들어오신 거죠? 프 론트 연합으로 가실 거라면 가이라가 왕국을 경유하는 것이 좀더 안전 하잖아요." 테이의 지적에 티아도 레이르도 그렇구나 하는 탄성을 뱉으며 시이터를 불신의 눈으로 쳐다봤다. 테이의 지적대로 현재 동맹을 깨고 전쟁을 건 다이러스 제국을 거쳐서 프론트 연합으로 들어가는 것보다는 가이라가 왕국을 경유하는 것이 훨씬 안전한 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프론 트 연합에 갈 생각이라며 다이러스 제국에 들어온 시이터는 아무리 생 각해도 수상했다. 시이터는 그런 불신의 눈초리를 받으면서도 무덤덤한 얼굴로 별거 아니 라는 듯이 말했다. "아아. 그거는 내가 방향치라서 길을 잘못 든 거였어. 나중에 그것을 알아차리고 가이라가로 넘어가려고 했는데 오히려 더 길을 잃고 거기다 가 식량까지 떨어져서 정말 아사 직전이었지. 내가 배고파서 쓰러진 것 은 티아양과 테이군도 봤잖아." '확실히 그랬지.' 테이는 처음 시이터와의 평범하지 않았던 만남을 생각하며 쓴웃음을 지 었다. 그런데 오해가 풀렸는데도 레이르는 불안한 얼굴로 시이터를 계 속 쳐다봤다. "왜 그래요? 레이르양." "저기... 방향치라고 하신거 사실인가요?" "네 그런데요." "그럼 나중에 산 속에서 어떻게 길을 찾아서 프론트 연합으로 가실 생 각이죠?" "아아 난 또 뭐라고. 그거야.... 근성으로 찾는 거죠." "그..근성?" 티아가 기가 질린 얼굴로 시이터의 말을 받아서 다시 물어 보자 시이터 는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근성!" '뭐가 근성이야?! 완전히 운은 하늘에 맡기겠다는 책임감 없는 소리잖 아!!' 티아는 그렇게 생각은 했지만 말로 하지는 못했다. 그동안 시이터에게 당해 왔던 게 생각나서 따지기를 아예 포기해 버린 것이다. 테이들의 걱정이야 알 바 아니라는 듯 시이터는 시종일관 여유 만만하게 웃으며 말했다. "자자 밥이나 먹자. 먹는 게 남는 거라는 말이 있잖아. 앞일이 불투명 할수록 일단 먹고 힘을 내야지." '불안해. 정말로 불안해.' 티아, 테이와 레이르는 똑같은 생각을 하면서 불투명한 미래에 대해서 진심으로 불안감에 떨었다. 다이러스 제국 수도 다이리에서는 지금까지 아끼고 아끼던 다이러스 주 력 5만 부대가 정렬을 끝냈다. 현재 적의 15만 부대를 막고 있는 해조 성의 4만 부대는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니 사실상 이 부대가 다이러스 의 최후의 군대나 마찬가지였다. 언제든지 출병 준비가 끝난 부대지만 정작 지휘관인 랑그람은 자신의 휘하 부대 1만을 따로 빼내서 전장과는 다른 지역으로 이동 준비를 하 고 있었다. 출병 준비가 끝나고 자신의 말에 오르는 랑그람 옆에서 유 크로드는 불안한 얼굴로 랑그람을 쳐다보고 있었다. "유크로드 제발 부탁이니 그 불안한 표정은 지워라. 내가 죽으러 가냐 ?" 유크로드는 랑그람의 부탁(?)에도 여전히 불안한 표정을 지우지 않고 입을 열었다. "불안해서가 아니라 불만입니다. 이 급박한 시기에 전하께서 꼭 직접 가셔야 됩니까? 병사들과 장군 한 명만 보내도 충분하지 않습니까?" 그렇다. 유크로드의 그 표정은 불안이 아닌 불만이었고, 목소리 또한 불만에 가득 찬 목소리였다. 랑그람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도 그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미안하다. 유크로드 난 직접 가서 레이르를 데려오고 싶다." "그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만!" 랑그람은 손을 들어서 유크로드의 말을 제지했다. "부탁이다 유크로드 이번 한번 만이다. 이번 한번만 내 마음대로 하게 해 다오. 지금 이 기회를 난 놓칠 수 없단 말이다." 유크로드도 그런 랑그람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유크로 드의 감정으로는 이대로 랑그람을 보내 주고 싶었다. 하지만 이성적으 로는 지금 랑그람을 그곳으로 보낼 수는 없었다. 이번 공격만 성공하면 가이라가 왕국의 케르디온 왕의 숨통을 끊어 버릴 수 있는 찬스였다. 제대로 된 무장이 없는 다이러스 제국으로서는 랑그람의 무장의 능력은 이번 공격에서 꼭 필요했다. 그렇게 감정과 이성 사이에서 갈등하던 유 크로드에게 랑그람은 부드럽게 말을 걸었다. "유크로드 우리의 꿈은 알고 있겠지?" 유크로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굳이 대답하지 않더라도 유크로 드가 랑그람과 함께 꾸었던 꿈을 잊을 리가 없었다. "그 꿈은 레이르가 없으면 이룰 수가 없는 꿈이야. 그렇기 때문에 나는 레이르를 데려 오겠다." 확고한 의지가 담긴 말이였다. 유크로드로서는 더 이상 랑그람을 말릴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알겠습니다. 우리들의 주군이시여. 부디 꼭 레이르 왕녀님을 데려오기 를 빌겠습니다." "고맙다. 그리고 뒤를 부탁한다." "예!" 랑그람은 1만의 병사를 이끌고 이브람 산으로 출발했다. 그 곳에 레이 르가 있기를 빌면서... 그런 랑그람을 보내는 유크로드는 진심으로 마음을 담아서 기도했다. 평소에 신을 믿지 않는 그였지만 신에게 기도 드리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신이시여! 우리들의 주군이 가는 길에 레이르 왕녀님이 계시기를... 그리고 왕녀님을 꼭 데려올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오. 우리들 다이러스 제국의 앞날을 위해....' 29화 승리와 패배 그리고 위기(1) 해조성. 다이러스 제국의 수도 다이리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되는 이 철옹성 앞에는 가이라가 왕국의 15만의 대군이 집결해 있는 중이었다. 해조성의 병력은 불과 4만. 가이라가 왕국의 군대에 반도 안 되는 병력으로 한 달간이나 적의 공 세를 잘 막아내고 있는 일은 정말 칭찬해 줄 일이었다. 그 칭찬을 한 몸에 받아야 되는 바그온 장군은 이번 전쟁도 슬슬 끝나간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다이러스에서 추가로 10만 병력을 보냈다는 소식은 들 었지만 별로 두렵지는 않았다. 그 병력은 자신이 믿고 있는 맹장 아도 니스가 알아서 해결 해 줄 것이라는 것을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이리에서 드디어 남은 군사가 출병하다는 소식을 들은 바그 온 장군은 성 바깥을 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슬슬 여기에서 끝을 내야 되겠군.” 가이라가의 15만 병력. 분명 지금 해조성의 다이러스 병사의 세배가 넘는 병력이지만 아무리 병력이 많아도 그 병력을 먹여 살릴 식량이 없으면 있으나 마나한 병력이다. 굶어 죽기 일보 직전인 15만 병력과 잘 먹고 힘이 넘치는 4만 병력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 이건 정신력 운운할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 가이라가에서 보급이 한 달째 끊어진 상태에서 남은 군량을 아끼고 아꼈지만 그것도 슬슬 바닥 을 드러내고 있는 상태였다. “왜 보급이 안 오냔 말이야!!” 가이라가 제국의 선봉 부대의 지휘관인 슈트바엔은 탁자를 걷어차며 분풀이를 했다. 대군의 지휘관으로서는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지만 부 관들 중에 누구 하나도 슈트바엔을 말릴 생각을 못했다. 부관들도 식 량부족의 문제를 절실히 느끼고 있고, 화가 날대로 난 상태이기 때문 이다. 해조성을 함락시키기 위한 몇 차례의 공격동안 많은 병사가 죽 어갔다. 그런데 최근의 문제로 그 중 과반수의 병사 중에는 굶주려서 아사로 죽은 웃지 못 할 일도 생긴 것이다. 이 정도가 될 때까지 가이라가는 왜 병력을 안 돌린 것일까? 그것은 전부 랑그람의 계획대로 그들이 놀아 난 것이다. 보급이 끊겨버리면 자연히 군대는 후퇴를 할 수밖에 없다. 제 아무리 용맹한 병사들이라도 굶주림 앞에서는 약이 없는 법이기 때문이다. 랑 그람은 처음 붉은 들소 부대를 일부러 패한척하게 만들어 부대원들에 게 각지로 흩어진 다음 가이라가의 보급로를 끊도록 만들었다. 그런데 이때 랑그람은 전 보급품을 끊는 게 아니라 일부의 보급품만을 끊도록 명령했다. 결국 가이라가의 선봉 부대는 보급이 오기는 왔지만 턱 없이 모자라거 나 간신히 쓸 정도의 보급만 받아왔다. 보급을 아예 안 받는 것도 아 니고, 전쟁을 계속하기에 모자라는 양도 아니기에 그대로 진군했지만, 모자라지 않다고 넉넉한 양은 또 아니기 때문에 이 전쟁을 6년간이나 질질 끌 정도로 더디게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힘들게 전쟁을 해서 이제 겨우 다이러스 제국의 수도를 눈앞에 둔 상태에서 보급이 완전히 끊겼다고 후퇴하기에는 여기까지 오는 동 안의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이제 조금만 한발만 더 앞으로 내딛으면 가이라가의 역사에 자신의 이름이 영웅으로 기록될 찰나에 누군가가 뒤로 질질 끌고 가는 느낌에 슈트바엔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안 절부절 이었다. 철옹성이라 불리는 해조성. 이 성은 아마도 그리노 대륙 중에서 가장 지형의 효과 덕을 많이 보는 성일 것이다. 해조성은 먼 과거 원인을 알 수 없는 지각변동에 의해 갈라진 땅위에 세워진 성이다. 성의 앞쪽 과 뒤쪽의 땅이 갈라져 있었고, 그 땅에 200년간 공사를 진행해서 거 대한 크기의 돌다리와 성을 완성시킨 것이다. 덕분에 이 해조성은 일 반적인 성과는 달리 공격할 수 있는 지역이 한정되어 있다. 바로 그 거대한 돌다리만이 공격 가능한 길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이러스 의 병사들이 아무리 많더라도 공격할 수 있는 병사들의 수는 제한되어 있다. 처음 다이러스는 병사를 여럿으로 나눠서 시간차 공격을 해봤지 만 해조성을 지키고 있는 바그온 장군은 뛰어난 전술가였다. 특히 성 의 방어와 공격에 탁월한 재능을 지닌 바그온 장군과 지형적으로 유리 한 철옹성인 해조성은 그야말로 찰떡궁합이었다. 결국 슈트바엔은 온갖 작전을 짜서 성을 공격했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패하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저 성을 놔두고 멀리 우회해 서라도 다이리 수도를 치자는 말도 나왔지만 4만의 병력을 등진 체 싸우는 짓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잘 아는 슈트바엔은 밑 빠진 독 에 물 붓기 같은 싸움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도 물이 있어야 계속 할 수 있는 법 이었다. 지금 식량이며 화살이며 다 떨어져가고 있는 상태에서는 후퇴 이외에는 별 뾰족한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다 잡은 대어를 눈앞에서 놓 치기 싫은 슈트바엔은 결국 최후의 공격이라는 방법을 선택했다. 가이 라가 왕국 선봉 부대의 남은 병력 수는 약 10만. 그들의 최후가 될지 도 모를 공격이 시작됐다. “불쌍한 인간들이여. 그대들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무 엇 때문에 이곳에 와서 서로 피를 흘리는가? 그대들도 모르고 나 역시 모른다. 하지만 인간의 삶이란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힘든 법. 그대들도 나도 그저 살기 위해서 서로의 피를 원할 뿐. 불쌍한 인간들 이여. 그대들은 어디로 갈 것인가? 나의 피를 얻어서 어디로 가는데 쓸 것인가?” “바그온 장군님.” 바그온이 하늘을 보며 시 같은 것을 읊고 있을 때 그의 부관이 한 장 의 서류를 들고 들어왔다. 바그온 장군의 집무실은 특이하게 천장이 없었다. 아니 있었지만 바그온이 이곳에 온 첫날에 ‘답답하다’라는 이유로 없애버렸다. 쌀쌀한 가을의 밤바람을 맞으며 중얼거리는 자신의 상관을 보면서 부 관은 한숨 비슷한 소리를 잠시 내뱉고는 바그온에게 서류를 전달했다. 바그온의 별명은 음유시인 장군이었다. 그 별명 그대로 시간만 나면 자작시를 쓰거나 노래를 만들었다. 그 덕분인지 아니면 원래 성격이 그런 건지 바그온 장군은 가끔 꾀자 같은 행동을 자주 했다. 그 덕분 에 능력이 있어도 출세와는 거리가 멀었던 바그온 장군은 그의 능력을 높게 평가했던 랑그람에게 모종의 제의를 받아서 그를 도왔고, 이번 전쟁에서 다이러스에 없어서는 안 되는 명장이 되어갔다. 다만 그 버릇은 여전히 고쳐지지 않아서 심할 때는 전쟁 중에 명령을 내리면서 시를 쓰기도 했다. 하지만 능력 하나만큼은 역사에 이름을 남겨도 될 정도로 뛰어났고, 부하들을 잘 챙겨주는 인격이기에 그의 부관들은 바그온의 꾀자 같은 모습에 되도록 신경 쓰지 않으려 노력했 다. 하지만 때때로 한숨이 나오는 것은 그들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 었다. 서류를 받아든 바그온은 금세 읽어버리고는 그대로 궁중에 던져버렸 다. 별들로 수놓아진 밤하늘에 하얀 종이가 나풀거리며 나는 모습을 지켜보며 바그온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내일로 드디어 끝이구나.” “내일로 끝이지만 저희들은 이제부터 바쁩니다.” “알고 있다. 자 그럼 나도 슬슬 ‘이사’ 준비를 해볼까?”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가이라가의 맹공이 시작되었다. 누가 먼저 죽을 때까지 해보자라는 식의 가이라가의 악에 뻗친 막무가내의 공격을 바 그온은 적절한 지위로 잘 막아주었다. 하지만 휴식과 공격을 반복하는 가이라가의 그 날의 맹공에 바그온 장군의 부대는 평소와는 다르게 어 딘가 부산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였다. ‘왜 저러는 거지?’ 싸움터에서 떨어진 곳에서 싸움을 지켜보는 슈트바엔의 머릿속에는 평 소와는 다른 다이러스의 모습에 의문점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의문도 접어둬야 될 지경까지 몰려 있던 슈트바엔은 곧 그 의문을 머릿속에서 삭제하고 공격에 공격을 퍼붓는 것을 잊지 않았다. 점심때가 지나서 저녁때가 다가오고, 가이라가의 병사들이 지쳐갈 때 이변이 일어났다. 시간이 지날수록 해조성의 다이러스의 병사들이 적어지다가 어느 순간 코빼기도 보이지 않은 것이다. 그 이변을 알아차린 것은 그 날의 13번 째 공격이 있던 시간이었다. 가이라가의 병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 함 성이라지만 굶주림과 피로에 힘이 빠져 있는 맥없는 외침이었다 - 달 려들 때 성안에서 소나기 같이 쏟아져야 될 화살이 쏟아지지 않았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공성전용 사다리를 성벽에 걸칠 때도 아무런 공격 이 없었다. 병사들이 사다리를 타고 성안으로 들어가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성안에는 아까 전에 자신들과 필사적으로 싸우던 병사 들이 한명도 남아 있지 않았다. “성안에 적이 없다고?” 보고를 받은 슈트바엔은 인상을 찌푸렸다. 솔직히 전황은 다이러스에 유리하면 유리했지 절대 불리한 사항은 아니었다. 그런데 갑자기 적이 성을 버리고 도망쳤다는 게 아무리 생각해도 수상했던 것이다. 무언가 이유가 있다는 생각에 슈트바엔은 해조성의 입성을 늦추고 대신에 몇 몇 뛰어난 기사들과 병사들로 수색대를 조직해서 보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난 뒤에 수색대가 가져온 정보는 성안의 건물 곳곳에 기름이 뿌려져 있고, 불이 붙기 쉬운 짚더미들이 놓여있다는 소식이었다. “화공이었구나!” 슈트바엔은 바로 들어가지 않았던 것을 천만 다행이라고 여겼다. 슈트 바엔은 다이러스가 자신의 부대가 성에 들어가 있는 동안 성에 불을 지를 작전이라고 생각했다. 만약에 의심 없이 성안에 들어갔다가는 자 칫 잘못하면 큰 타격을 입을 뻔했다는 생각이 들자 슈트바엔은 등에 식은땀까지 흘렀다. 슈트바엔은 곧바로 일부의 병사들만 들어가서 기름과 짚더미를 치우는 작업을 시켰다. 밤이 깊어서야 작업이 끝났고, 그제야 가이라가의 병 사들은 지난 몇 개월간 자신들을 괴롭혔던 해조성에서 편하게 쉴 수 있었다. 무엇보다 그들에게 기쁜 것은 식량이 남아 있다는 것이었다. 오랜만에 고기 수프에 빵을 배불리 먹을 수 있었던 가이라가의 병사들 은 이겼다는 기쁨 때문인지 오랜만의 포식 때문인지 그 날은 마음 편 하게 푹 쉬었다. 슈트바엔은 도망간 다이러스의 부대를 신경 쓰기는 했지만 역시 긴장 은 어느 정도 풀려 있었다. 그 덕분에 가이라가에게 가장 큰 타격을 입힐 작정이었던 바그온의 작전에 그대로 말려들고 말았다. 다음날 새벽 엄청난 굉음에 놀라서 잠이 깬 슈트바엔은 갑옷도 걸치지 않은 채 검만 들고 밖으로 뛰어나왔다. 이리저리 병사들이 소란을 피 우며 뛰어다니는 것을 본 슈트바엔은 아래 입술을 깨물었다. “적의 습격인가? 젠장 그렇게 경계를 게을리 하지 말라고 했는데… …. 이봐, 무슨 일인가?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하라!” 슈트바엔이 뛰어가던 병사 하나를 붙잡고 묻자 병사는 얼마나 당황했 는지 인사를 하는 것도 잊어먹고 소리쳤다. “다리가 무너졌습니다!” “다리?” 이게 무슨 뚱딴지 소리란 말인가? 라는 생각에 슈트바엔은 고개를 갸 웃거렸다. 다리. 이 해조성의 다리란 절벽을 이어온 그 커다란 돌다리 밖에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다리가 무너졌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 할 수가 없는 답변이었다. 슈트바엔이 자신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자 병사는 답답했는지 가슴을 치며 다시 설명했다. “절벽을 이어주던 돌다리가 무너졌습니다! 성벽으로 올라가 보십시오 ! 지금 난리가 아니란 말입니다!!” 병사가 한 말은 슈트바엔이 듣기에 아주 불쾌한 말이었다. 그래서 ‘ 이 녀석!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일이 어떻게 된 건지 파악이 되 고 난 뒤에 넌 사형이다!’라는 생각을 하고는 급히 성벽으로 올라가 서 그 ‘헛소리’의 실태를 파악했다. 하지만 슈트바엔이 헛소리라고 생각한 병사의 말은 사실이었다. 엄청 난 넓이와 높이를 자랑하는 이 그리노 대륙 최고 규모라고 불리던 해 조성의 돌다리는 흔적도 없이 저 깊은 골짜기에 부서진 체 흩어져 있 었다. “이.이게 대체 무슨……. 무슨 일인 거야!!” 너무나 어이없고 믿어지지 않는 광경에 슈트바엔은 그만 그 자리에 주 저앉고 말았다. 그리고 이럴 수가라는 말만 반복하면서 얼이 빠진 얼 굴로 무너진 돌다리의 잔해를 쳐다보았다. “드워프와 마법사의 합작품이라고는 하지만……. 정말 굉장하군.” “그렇군요. 설마 정말 그거 하나 뺐다고 그 거대한 다리가 저렇게 손 쉽게 무너진다니…….” 그 단단한 돌다리를 박살내서 슈트바엔의 혼을 빼놓은 장본인이 기사 들은 믿어지지 않는다는 얼굴로 자신들이 한 일의 결과를 지켜봤다. 이 돌다리는 도저히 인간의 힘으로는 만들 수 없는 건축물이었다. 그 래서 드워프와 마법사의 도움을 받아서 200년에 걸쳐서 완성한 다리였 는데 당시 최악의 전쟁상태에 대비해서 다이러스에서는 이 다리에 약 간의 장치를 가해두었다. 복잡한 건축양식과 마법을 사용한 이 돌다리 의 주축이 되는 벽돌 하나만 빼면 돌다리가 무너지는 장치를 해두었던 것이다. 거기에다가 쉽사리 그 벽돌이 빠지지 않도록 마법사들이 잠금 마법을 그 벽돌에 걸어두었고, 그 해제 론어는 대대로 다이러스의 일 급기밀 서류로 남겨진 것을 랑그람 1세가 발견한 것이다. 그 덕분에 바그온은 적을 성에 들어오게 하고 다리를 무너트려 발을 묶는다는 대담한 작전을 실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바그온의 명령으로 새벽녘에 몰래 다리를 무너트리러 왔던 기사들 중 에 입구를 맡았던 기사들은 본대에 합류하기 위해서는 꽤 먼 거리를 돌아가야 했다. “이거 아무리 적의 발을 묶기 위해서라지만 200년간에 걸쳐서 만든 저 역사 깊은 다리를 그냥 부순 것은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해조성에서 떨어져서 출발 준비를 하며 말에 오르던 한 기사가 진심으 로 아깝다는 표정으로 말을 하자 다른 젊은 기사 몇 명도 그 말에 동 의했다. “아까울 것 하나도 없어.” 그들의 상관인 기사대장이 그들의 말이 틀리다고 하자 처음 아깝다는 말을 꺼냈던 기사가 ‘왜 안 아까운거죠?’라고 물어왔다. “이번 작전이 성공함으로서 우리들은 지난 6년간 꾹 참아왔던 반격의 기회를 얻었다. 그것은 이 다이러스 제국의 미래를 얻은 것이나 마찬 가지야. 자네 같은 젊은이들과 우리들의 아이들에게 미래를 선물한다 는 것은 정말 값진 것이다. 과거의 유산 따위보다 훨씬 소중한거지.” 기사대장의 말에 아깝다는 말을 꺼냈던 기사는 납득이 간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하지만 그래도 아직 아깝다는 생각이 약간 듭니다. 이번 전쟁에서 이겨도 그동안 지리적으로 중요한 해조성이 완전히 쓸모없게 되었으니 …….” 아직도 미련을 떨쳐버리지 못한 기사의 말에 기사대장은 빙그레 웃으 며 대답했다. “대신 미래라는 것을 손에 넣었다고 했지? 그 미래에는 저 다리의 복 원도 들어가 있는 거야. 일단 나라가 살아야 저런 다리도 쓸모 있는 거지. 나라가 죽은 다음에는 아무 소용 없는 거야.” “그렇군요. ……저 이 전쟁이 끝나면 저 다리를 다시 건축하고 싶습 니다. 다시 몇 백 년이 걸리고 내가 죽기 전에 못 끝낸다 하더라도 다 시 저 다리를 다시 원래 모습으로 만드는데 힘을 쓰고 싶습니다.” “그 말은 기사단 사퇴를 뜻하는 말인가?” “그게…. 저어……. 네! 그렇습니다!” “그래? 그럼 나도 기사단 사퇴하고 공사장 감독으로 계속 자네를 관 리할까?” “아악! 그건 참아주세요!” 기겁을 하면서 손을 휘젓는 젊은 기사의 행동에 다른 기사들은 웃음을 터트렸고, 기사대장은 씁쓸한 얼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금방 그 표 정을 풀고 다른 젊은 기사들과 같이 웃었다. 서서히 반격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그들은 이번 작전으로 가이라가의 대군을 해조성에 묶어두었 다. 이 말뜻은 더 이상 지원 병력이 없는 가이라가로서는 크나큰 타격 을 입는 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때 다이러스는 생각지도 못한 위기를 맞게 될 줄은 바그온도 랑그람도 예상하지 못했다. “헉! 헉! 헉!” 아도니스는 이마에 피를 흘린 체 기절해 있었고, 그런 아도니스를 록 크가 거친 호흡을 내뱉으며 부축해서 옮기고 있었다. “어서 찾아라! 그리 멀리 못 갈을 것이다!” “여기 핏자국이 있다! 이것을 쫓아라!” 멀리서 가이라가 왕국의 병사들이 자신과 아도니스를 찾는 소리가 들 렸다. ‘살려야 돼! 어떻게든 아도니스만은 살려야 돼!’ 록크는 어떻게든 아도니스만이라도 살려야 된다는 생각에 필사적으로 그를 부축해서 안전한 장소를 찾아 도망쳤다. 용맹함으로 이름 높았던 붉은 들소는 거의 전멸이나 마찬가지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이 정도까지의 패배는 예상하지 못했던 록크로서는 오늘 패배가 너무나 충격이었지만 충격에 빠져 있을 틈도 없었다. 정 신을 잃은 아도니스를 어서 빨리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야 된다는 생각 이 먼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일이 이 정도까지 안 좋아 진 것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을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제 까지만 해도 상상도 못했던 오늘의 패배에 대해서 29화 승리와 패배 그리고 위기(2) 케르디온 왕의 본대를 남쪽 깊숙이 끌어들였던 붉은 들소 부대의 대장 아도니스는 숲이 많은 남쪽에서 바로 모습을 감춰버렸다. 지난 몇 년 간 붉은 들소 부대의 건제함을 숨기기 위해 철저하게 몸을 숨겼던 덕 분에 숨는 데는 도가 튼 그들은 그리 어렵지 않게 몸을 숨겼다. 그렇게 갑자기 사라진 붉은 들소 부대를 찾기 위해 케르디온은 그 넓 은 숲 속에 병사들을 풀었다. 수많은 병사들을 풀었으니 아무리 숲이 넓다고 해도 1만이나 되는 병력이 감쪽같이 숨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고 생각한 케르디온은 금방이라도 붉은 들소 부대를 찾을 수 있다고 계산했다. 하지만 그 방법은 오히려 붉은 들소 부대에게 각개격파의 기회를 제공한 꼴이 됐다. 아도니스는 연락을 어세신들에게 맡기고, 빠르고 은밀한 움직임으로 숫자가 적은 병력부터 쳐 나갔다. 비명 소리를 듣고 많은 가이라가 병 사들이 달려 왔을 때는 붉은 들소 부대는 이미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난 뒤였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도 거의 야생마 수준인 붉은 들소 부대의 말들 이 숲 속을 마치 평지처럼 이동해 다녔기 때문이다. 이렇게 각개격파 로 죽어가는 가이라가 병사들의 수는 적었지만 아무리 적어도 그 손해 는 조금씩 그리고 착실하게 케르디온의 본대에 피해를 주었다. 결국 케르디온 왕은 병력을 빼고 그 숲에 불을 질렀다. 물론 그렇게 할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고 있었던 아도니스는 병력을 이 미 숲 밖으로 빼놓은 상태였다. 케르디온 왕은 불길이 숲을 태우는 동 안 숲 밖에서 붉은 들소 부대가 타죽는 것을 느긋하게 기다렸지만 이 미 숲을 빠져나가 있었던 아도니스도 숲 밖에서 불이 꺼지기를 느긋하 게 기다렸다. 며칠간 숲을 태웠던 불이 마침 내리기 시작한 가을비로 어느 정도 꺼 지기 시작했을 때 케르디온 왕은 진격을 명령했다. 숲 전체를 다 태우 지는 못했지만 케르디온은 절반 가까이 탄 숲에서 숨을 때는 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이제야 말로 붉은 들소 부대를 전멸시킬 수 있 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 믿음은 숲 밖에서 건재한 모습으로 후퇴를 하 고, 후퇴하면서 ‘멍청한 쥐 대왕’이라는 피켓을 남겨 놓은 붉은 들 소 부대의 모습에 분노로 바뀌었다. 그렇게 케르디온의 본대와 붉은 들소 부대의 쫓고 쫓기는 숨바꼭질이 계속 되면서 케르디온의 본대는 확실하게 아도니스가 유도하는 대로 따라왔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되는군.” 목적지를 앞에 둔 어느 날 밤 야영을 하던 아도니스가 그렇게 중얼거 리자 옆에 있던 록크가 아도니스의 말을 이어받았다. “이 삼일 정도 더 가면 나올 거야.” “본대는?” “출발했다고 연락이 왔어. 최고 속도로 진군중이라고 했으니 일주일 정도면 도착할거야.” “일주일이라…….” 아도니스는 일주일이라는 단어를 되씹으며 생각에 잠겼다. 아마도 어 떻게 일주일동안 적을 붙잡아 둘지 고민하고 있으리라. 그렇게 생각하 는 록크의 생각은 거의 정답이었다. 지금 아도니스가 가이라가 왕국의 본대를 유인하는 곳은 버려진 저주 의 땅이라 불리는 죽음의 늪지대였다. 군데군데 늪지대중에서는 사람 이 빠져 죽을 만한 늪도 있고, 발목까지 잠기는 것에서부터 허리까지 오는 늪들이 불규칙하게 분포되어 있는 최악의 장소였다. 이런 위험한 장소로 선뜻 유인을 할 수 있는 것은 지난 몇 년 동안 어 세신들이 그 지역을 완벽하게 조사를 해두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 에 아도니스들은 어떤 길이 안전한 길인지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가 이라가가 그런 것을 알 리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가이라가의 본대를 그 곳으로 유인하고, 다이러스 제국 의 본대가 그 지역의 입구만 봉쇄하면 이 전쟁은 이긴 것이나 마찬가 지였다. “흠. 조금 더 시간을 끌다가 가야겠어. 그래야 속도를 맞출 수 있을 것 같아.” 아도니스는 그렇게 말하며 부관들을 불러들여서 자신이 생각한 작전을 말하기 시작했다. 록크는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원인 모를 불 안감에 가슴이 답답했다. 확실하지 않지만 위험하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뭐야? 왜 그래 록크. 안색이 안 좋은데 어디가 아픈 거야?” 갑작스런 아도니스의 말에 록크는 깜짝 놀라서 주위를 살폈다. 어느새 작전회의는 끝났는지 주위에는 아도니스만 록크의 곁에 있었다. “아니. 그냥 기분이 좀 안 좋아서…….” ‘눈밖에 안보일 텐데 어떻게 내 안색이 안 좋다는 것을 아는 거지?’ 록크는 겉으로는 괜찮다고 말했지만 복면으로 얼굴을 전부 가리고 눈 만 보이는데 눈만 보고 상태를 알아차린 아도니스 덕분에 다른 느낌으 로 가슴이 뛰고 답답했다. “뭐. 요 며칠간 강행군으로 지친 것일 테지. 늦은 시간까지 붙잡아 둬서 미안. 오늘은 일찍 쉬어둬. 내일부터는 또 바빠질 테니깐.” “으. 응.” 힘없이 대답하고 나가는 록크의 뒷모습을 보면서 아도니스는 생각에 잠겼다. ‘남자가 저렇게 근육도 없으니 이런 오랜 전쟁에 지쳐서 비실거리는 게 당연하지. 더구나 그들은 이번 전쟁에서 우리 이상으로 뛰어 다니 고 수고를 했는데……. 내일부터는 좀더 신경 써줘야 되겠는걸.’ 하나에서 열까지 죄다 잘 못 짚은 생각이지만 그래도 아도니스는 나름 대로 ‘친구’를 걱정해주는 마음으로 록크와 어세신들의 부담을 어떻 게 덜어줄까 고민을 했다. 자신의 개인 막사로 돌아간 록크는 짚을 깔아서 대충 만든 침대(?)에 드러누웠다. 잠시 후 막사 바깥쪽에서 기척을 느낀 록크는 말을 걸었 다. “가이라가의 현재 상황은?” 록크의 물음에 막사 바깥쪽에 있던 그림자가 아니 록크의 부하인 어세 신이 대답했다. “별다른 움직임은 없습니다.” “정말 없는가?” “네. 회의 중인 것 같았는데 오늘은 다른 때와는 달리 경비가 삼엄해 서 접근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 알았다. 수고 많았다. 이만 가서 쉬도록 해라.” “옛!” 부하 어세신이 돌아가고 난 뒤 록크는 길게 한숨을 쉬고는 누운 채로 이리저리 몸을 움직여서 가슴의 붕대와 얼굴의 복면을 풀었다. 복면 속에 숨겨졌던 회색의 머리카락이 간이침대에 흐트러졌고, 붕대로 꽉 매어져 있던 새하얀 가슴이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을 띠며 출렁거렸 다. ‘아도의 옆에 있으면……. 자꾸 내가 여자라는 것을 인식하게 돼.’ 그런 생각을 하며 록크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전에도 몇 번 아도니 스와 일을 한 적은 있지만 이처럼 오랫동안 아도니스의 곁에서 그를 도와준 적이 없었다. 그래서 록크는 아도니스의 곁에 있는 시간이 길 어질수록 자꾸만 자신이 여자라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떠올리게 됐다. ‘다 버린 줄 알았는데……. 여자라는 것은 다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 록크는 전 어세신 마스터였던 아버지에게 대를 이을 아이가 자신밖에 없었기 때문에 철이 들 때부터 남자로서 길러져 왔고, 다른 암살자들 의 비겁한 수에 목숨을 잃었던 아버지 대신에 사춘기 소녀 시절부터 자신의 길드를 힘들게 지켜왔었다. 만약에 랑그람의 지원이 아니었다 면 길드가 무너질 뻔하기도 했었다. 랑그람 덕분에 길드를 종속시킬 수 있었던 록크는 랑그람을 자신의 주군으로 정하고 그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다짐했다. 그리고 그의 곁에 있던 측근들 중에 아도니스와 만 나게 되었다. 아도니스는 자신을 알아보지도 못했고, 그 옛날 일을 기억하지도 못하 는 것 같았지만 록크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어릴 적 자신을 구해 주었던 소년이 성장한 모습의 아도니스를 첫눈에 알아 본 것이다. 그 때부터였다. 아도니스의 곁에 서면 자신이 여자로 돌아간다는 것을 느 끼기 시작한 것이다. ‘이번 전쟁이 끝나면……. 여자로… 돌아갈까? 그리고 아도니스에게 모든 것을 고백하면 그는 나를 받아줄까?’ 진지하게 고민을 하던 록크는 곧 화들짝 놀라서 고개를 저었다. ‘바보! 지금이 어느 때인데 이렇게 약한 생각을 하는 거야! 지금은… 지금은…….’ 그를 지켜야 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아직은 남자로 있어야 된 다. 그렇게 마음을 잡은 아까 전에 느낀 불안한 예감을 잠시 떠올렸다 가 곧 머릿속에서 그 불안한 예감을 떨쳐버렸다. ‘그 어떤 위험한 일이 생겨도… 그를 지킬 거야. 내 목숨을 걸고서라 도…….’ 밤이 깊어가고, 아침이 오고 여느 때와 다름없는 자연의 법칙대로 시 간이 흐르고 출발 준비로 부산하게 움직이는 붉은 들소 부대의 야영장 소에 적의 움직임을 알아보기 위해 보냈던 정찰병이 말을 타고 전속력 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정찰병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눈치 챈 아도니스는 그가 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손수 말을 타고 그에게로 달려가서 물었다. “무슨 일이냐?!” “가이라가가! 적이! 후퇴를 하고 있습니다!” “뭐야?” 아도니스는 정찰병과 나란히 야영장소로 들어오며 좀더 자세한 상황을 설명 들을 수 있었다. 정찰병의 설명에 의하면 가이라가 왕국의 병력 이 일부를 남기고 전부 수도 방향으로 출발했다는 정보였다. “일부라 병력? 수는 어느 정도 되지?” “약 1만 가량으로 보였습니다.” “1만?” “네. 1만 정도였습니다.” 계속 1만이 맞는지 물어보는 아도니스를 보며 록크는 혀를 찼다. ‘폭발하겠군.’ 록크의 예상대로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져 있던 아도니스는 어느 순간 노호성을 질렀다. “1만이라고?! 감히 우리 붉은 들소 부대를 얕보고 있는 거냐?! 1만? 하 1만? 기가 차서 말도 안나오는군.” “그런 것 치고는 말만 잘하는데.” 농담 삼아 던진 록크의 말에 아도니스는 성난 얼굴로 소리쳤다. “말이 그렇다는 거잖아!” “농담은 농담으로 받아들여.” “네가 하는 말 중에 대부분은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별이 안가!” “저기 그래서 이제부터 어쩔 실겁니까?” 록크와 아도니스의 말싸움이 장기전이 될 것 같은 양상을 보이자 아도 니스의 부관 중의 한명이 중재를 할 겸 앞으로의 할 일에 대해서 질문 했다. “당연한 거 아니야?! 우리를 얕본 대가는 전멸이다! 애들아 빨리 준 비해라! 오늘 화려하게 놀아보자!” “오오!” 아도니스의 외침에 붉은 들소 부대원들은 기운 찬 함성으로 답하며 아 까보다 배는 바쁘게 움직였다. 그 와중에 록크는 뭔가를 곰곰이 생각 하더니 자신의 부하 중에 한명을 불러서 뭔가를 지시했다. 록크의 명 령을 들은 부하 어세신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로 그 자리에서 사라졌 고, 록크의 뒤에 아도니스가 다가와서 물었다. “어디로 보낸 거야?” “지금 남은 적의 병력을 지휘하는 자를 알아보라고 보냈어.” “그럴 필요 없어! 적의 지휘관이 아무리 뛰어난 자라도 이 곳의 지리 를 이용하는 데에서는 우리가 한수 위야. 가이라가의 그 멍청한 왕에 게 자신이 무슨 실수를 했는지 톡톡히 가르쳐 주겠어!” “그것보다 이 상태라면 적을 더 이상 유인 할 수 없을 텐데 어쩔 거 야?” “이대로 남은 병력을 전멸 시키고, 적의 본대가 아군의 본대와 만나 는 시점에서 협공을 하는 수밖에 없지.” “긴밀한 연락이 필요하겠군.” “그래 그러니 잘 부탁해.” 그렇게 말하며 싱글벙글 웃는 아도니스의 얼굴에 록크는 어쩔 수 없다 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그 주제도 모르는 자식들을 처리하러 가 보실까? 좋았어! 오늘도 화려하게 놀아 보는 거야!” 여전히 전투를 시작하기 전에 아이들 같이 말하는 아도니스에게 록크 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어쩔 수 없는 사람’이라는 말을 그 날은 할 수가 없었다. 어제부터 불안한 예감과 갑작스런 적의 이상한 움직임에 자꾸 마음이 걸렸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아도는 내가 지키겠어. 지킬 거야. 그것이 내가 여자를 완전히 버리지 않았다는 증거.’ 그렇게 마음을 먹으며 록크는 자신의 말에 올라탔다. 아도니스의 붉은 들소 부대가 적의 남은 병력이 있는 곳으로 도착했을 때 적은 이미 근처 산에 포진하고 있는 중이었다. “산 중턱에 병력을 세 부대로 나눠서 포진하고 있습니다.” 아까 전에 적의 지휘관에 대해서 알아보라고 보냈던 어세신은 가이라 가 왕국의 병사들의 배치와 그 주변 지역의 특징에 대해서 대충 적은 종이를 아도니스에게 주며 말했다. 아도니스가 종이를 받아들여서 보 자 가이라가의 포진 상황과 병력 비율이 제법 자세하게 적혀 있었다. ‘이래서 어세신들이란 무서워.’ 아도니스가 그런 생각을 하며 적의 배치와 주변 지형에 대해 연구하고 있을 때 록크가 부하 어세신에게 적 지휘관에 대해서 물었다. “적의 지휘관은 원래 중대를 이끌던 기사 대장이었던 자였습니다. 특 별히 강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그렇게 허약한 지휘관도 아닌 평범한 지휘관입니다.” “그런 지휘관에게 1만의 부대를 맡길 정도로 인재가 없어졌나 보군. 그동안 록크의 어세신들이 얼마나 힘써주었는지 알 것 같아. 고마워. ” 아도니스가 서류에서 눈을 떼며 싱긋 웃으며 말하자 록크는 칭찬 받았 다는 기쁨과 약간의 부끄러운 감정에 잠시 당황했다. 하지만 그건 내 면속의 당황스러움이라서 아도니스는 알아채지 못했다. 다만 인간의 미묘한 변화에 민감한 어세신만이 자기 대장의 이상한 느낌에 고개를 갸웃 거렸다. “저기 어디 몸이 안 좋으십니까?” 록크는 급히 마음을 추스르고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부하에게 급히 아 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아도니스가 한발 빨랐다. “어제부터 몸 상태가 안 좋다고 한 것 같았어. 원만하면 오늘은 쉬지 그래? 그렇게 힘든 전투도 아니고, 암살까지 해야 될 정도로 중요한 인물도 없으니 쉬어.” “난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으니 걱정 안 해도 돼.” “그래서 오늘도 따라 올 거야?” “너는 뒤가 너무 무방비야. 그냥 혼자 내버려두면 불안해 보일 정도 로…….” “쳇! 시어머니 타입.” 볼멘 목소리로 중얼거렸지만 아도니스의 속마음은 자신을 진심으로 걱 정해 주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록크는 그런 아도니스의 투정조차 사 랑스럽게 보였다. “기분대로라면 정말 너 시어머니라도 되고 싶어. 잔소리 좀 실컷 하 게.” ‘또 기분이 좋은 것 같은데……. 방금 우리 대화 중에서 록크의 기분 을 좋게 해주는 말이 나왔었나?’ 록크의 농담에 아도니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고민하다가 어차피 지금 까지 록크가 왜 기분이 좋은지에 대해서 알아낸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고는 고민하기를 그만두고, 그르려니 하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다시 적의 배치도를 보면서 끙끙대다가 결론을 내렸다. “왼쪽이 조금 약하군. 일단 기마대가 왼쪽부터 치고 적의 뒤로 돌아 가서 중앙의 뒤쪽을 쳐서 혼란을 시키면서 남은 보병이 공격하기로 해 야 되겠어. 만약 왼쪽을 치다가 적이 움직이면 그때 보병을 움직여도 되겠지. 어느 쪽이던 간에 초반에 오른쪽에 대한 병력은 신경 끄고 왼 쪽과 중앙의 병력을 최단 시간 내에 포위하는 것을 목적으로 움직인 다.” “산 중턱인데 기마대를 앞에 세워도 될까?” “어차피 이 산은 그렇게 경사가 진 것도 아니고, 나무도 빽빽하게 자 란 곳도 아니야. 기마대가 움직이는데 는 아무 문제없어. 다만 나무가 빽빽하지 않더라도 화살에 대한 공격은 반감 될 테니 이번에는 와이번 활의 지원을 받으면서 돌격은 무리군. 조금 타격은 있겠는데…….” “그건 적측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타격이라도 해도 그렇게 크지 는 않을 것입니다.” 어느새 다가온 부관의 말에 아도니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힘차게 명령 을 내렸다. “전투 준비! 기마대는 앞으로! 보병은 약간 뒤에 따라오도록! 적의 사정거리까지 들어가면 그때부터 기마대는 마음껏 속력을 내도된다! 제일 처음 적의 왼쪽 부대에 도착하는 자는 특별 보너스로 잘 빠진 여 자를 소개시켜 주겠다!” 마지막의 아도니스의 말에 주위에 있던 기마대는 웃음을 터트렸고, 입 에서 입으로 아도니스의 명령이 전달 대면서 웃음은 붉은 들소 부대의 전체에 전해졌다. 신분에 관계없이 실력만으로 모인 자들이기에 딱딱한 격식을 차리는 다른 부대와 이런 차이가 있는 것이다. 분위기가 부드러워지자 아도니 스는 힘차게 재차 명령을 내렸다. “붉은 들소 부대 출동이다! 오늘도 신나게 놀아보자!!” 뿔피리가 아도니스의 명령을 전달하고 붉은 들소 부대의 상징적인 기 마대가 달려 나갔다. 아도니스의 뒤를 따르던 록크는 자꾸만 가슴속을 답답하게 만드는 불길한 느낌에 몸을 떨었다. ‘무언가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아. 아주 안 좋은 일이 29화 승리와 패배 그리고 위기(3) 아도니스는 부대를 지휘하는데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 그것도 뒤에서 지시하는 타입이 아닌 부하들과 같이 싸우면서 그때 상황에 따라 명령 을 내리는 수준은 일품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는 다이러스 제국 제 1의 맹장이라는 별칭이 붙 었다. 맹장이라는 별칭답게 그 날도 아도니스는 자신들의 부하들과 경 쟁을 하면서 가이라가 왕국의 좌익을 공격해 들어갔다. ‘기마대를 상대로 일반 보병 병력을 나누다니 멍청한 녀석들.’ 병력수가 같은 상황에서 보병이 기병을 상대로 병력을 나누는 것은 분 명 어리석은 일이다. 기동력 면에서 상대가 안 되기 때문이다. 기병을 상대로 병력을 나누는 것은 적에게 각개격파의 기회를 제공해 주는 꼴 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어차피 경험 없는 지휘관이니. 케르디온이라는 왕이 이정도로 멍청 할 줄이야.’ 병사들에게 최고의 행운은 사리판단이 정확한 지휘관을 상관으로 모시 고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전멸할 것을 알면서도 부하를 사지로 밀 어 넣는 것은 지휘관으로서 실격이다. 아도니스는 케르디온 왕이 부하를 사지로 밀어 넣는 무능한 지휘관이 라고 생각하며 그를 욕했다. 기병을 상대로 산 중턱에 보병을 배치시킨 것은 잘한 일이다. 일반적 인 기병들의 말은 산길을 오르는데 많은 애로사항이 있을 것이고, 말 들이 산속의 험한 지형에 속도가 느려지는 사이에 가까운 산 중턱에 배치된 다른 병력들을 움직여서 삼 방향에서 포위한다. 라는 작전은 일반 기병들에게는 분명히 통할 전술일 것이다. 하지만 붉은 들소 부대의 야생마들은 어릴 때부터 험한 산을 자기 안 방처럼 돌아다니던 말들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은 가이라가에서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리 험하지 않은 산속에 보병들을 세 군 데로 나누어서 배치한 가이라가의 모습은 아도니스로서는 ‘나 죽여주 세요! 라고 외치는 꼴로밖에 안보였다. “이얏호! 제쳤다! 잘 빠진 미녀다! 대장님 약속 지키세요!” 아도니스가 잠시 상념에 빠진 사이에 부하 중에 한명이 아도니스를 제 치며 기쁨의 비명(?)을 질렀다. “이런! 하지만 아직 적진에 도착한 것은 아니야!” 아도니스는 자신을 제친 부하를 따라잡기 위해 말고삐를 고쳐 쥐었다. 이제부터 서로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할 전투가 벌어질 판에 부하와 레 이스 경주를 벌이는 지휘관의 모습은 어찌 보면 한심하기도 하다. 더 구나 지금 아도니스는…… ‘젠장! 나도 여자가 없는데 부하들 소개시켜 줄 여자가 어디 있어?! ’ 라는 정말 지휘관답지 않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꾀자 지 휘관이기에 부하들이 더 믿고 그를 따르는 것인지도 몰랐다. 아무튼 레이스(?)는 서서히 결말을 향해 달리고 있었고, 그 증거로 골 인 지점(?)이 - 가이라가 왕국의 병사들이 있는 곳 - 아도니스의 눈에 보였다. “좋았어! 여기서 역전하겠어!” 아도니스는 검을 빼어들면서 외쳤다. “헤에! 아무리 그러셔도 이 거리 차이는 절대로 역전 시킬 수 없을… ….” “뭐?! 뭐야!!” 앞서 가던 부하의 머리가 몸과 떨어져서 허공을 날았다. 아도니스는 급히 말을 멈춰 세우며 소리쳤다. “모두 그 자리에서 멈춰!!” 하지만 아도니스 가까이 있던 자들만이 그 참극을 보고 급히 멈췄을 뿐 다른 쪽에서는 몇 십 명의 희생자를 내고 있었다. 그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앞서 달리던 동료가 목숨을 잃는 것을 보고 서둘러 멈춰 선 기병들도 뒤따라오던 다른 기병들과 부딪치고 넘어지는 바람에 붉 은 들소 부대는 일순간 혼란에 빠졌다. “우와아아아아!!” 그리고 그 타이밍에 맞춰서 가이라가 왕국의 병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공격해 들어왔다. 아까부터 붉은 들소 부대가 달려오는 것을 보고만 있던 가이라가는 붉은 들소 부대가 혼란에 빠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이 화살을 쏘아 된 것이다. “그 자리에 서 있지 마라!! 화살을 쳐내며 왼쪽으로 돌아간다!!” 아도니스의 외침에 연락병이 길게 뿔피리를 불었고, 붉은 들소는 화살 들을 쳐내며 왼쪽으로 말을 몰았다. “아도! 방금 그건 미스릴 실이야!” “알고 있어! 젠장 실수야 이런 함정이 있을 줄이야.” 아도니스는 탄식의 신음을 뱉었다. 그러나 신음을 뱉고 있을 틈도 없 었다. “대장님! 산 아래쪽에서 교전이 벌어졌습니다!” “뭐야?!” “붉은 들소의 기마대의 파괴적인 돌격은 분명히 두려운 준재입니다. 하지만 그만큼 약점은 있죠. 그 무서울 정도의 스피드 때문에 뒤쪽에 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해서는 알아차리는 게 늦습니다.” “호오. 과연 그렇군요. 저 기마대가 산에 올라가자마자 오른쪽과 정 면의 병력을 내려 보냈는데 전혀 눈치 채지 못하다니…….” 이번 가이라가 왕국의 1만의 병력을 지휘하게 된 트라크릭은 진심으로 감탄을 했다. 트라크릭이라는 남자가 1만의 병력을 지휘하는 입장이지 만 실제로는 그의 옆에 있는 푸른 갑옷을 입은 남자가 세세한 작전을 짜주고 있었다. 푸른 갑옷을 입은 남자는 얼굴까지 완벽하게 투구로 가렸고, 눈은 거의 무표정으로 표정을 읽을 수가 없는 남자였다. 트라 크릭은 푸른 갑옷의 남자가 짜주는 작전대로 병사를 움직이기만 하는 허수아비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트라크릭은 기분이 나쁘다 거나 할 이유가 없었다. 푸른 갑옷의 남자는 모든 공을 트라크릭에게 양보하기로 약속했던 것이다. 더구나 요 몇 주간 그들을 괴롭혀 온 붉은 들소 부대가 초반부터 함정 에 빠지고, 위기에 직면하는 것을 지켜 본 트라크릭은 푸른 갑옷의 남 자를 완전히 신용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가 하는 한마디 한마디의 말 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중이었다. “전술의 기본은 어떻게 해서든 상대방보다 유리한 점을 하나라도 많 이 잡은 상태를 유지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붉은 들소의 지휘관 은 좀더 적은 병력이 포진한 왼쪽을 고르는 것이 당연한 선택이죠. 그 덕분에 우리는 붉은 들소의 보병들을 많은 병력으로 상대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입니다. 그럼 트라크릭 경께서 저 붉은 들소의 지휘관 이라면 이때 무슨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그거야……. 보병들을 구하러 내려가지 않을까요? 기마병만으로는 계속되는 전투에 한계에 부딪칠 테니 지금은 보병들을 구할 것 같은데 …….” 트라크릭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신의 생각을 말하자 푸른 갑옷의 남 자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라고요?” “보통 지휘관에게는 그것이 정답인 대답일 것입니다. 하지만 붉은 들 소 부대의 지휘관인 아도니스 드 아나카르낙이라는 남자는 싸우면서 지시를 내리는 자입니다. 저 상태에서는 좀더 확실히 피해를 줄일 명 령을 내릴 것입니다.” “기마대는 계속 직진하라! 미스릴 실이 없는 장소까지 달려가서 우회 한다! 그리고 적의 좌익을 빠른 시간 내에 전멸시키자! 가장 큰 공을 세운 자에게는 진짜로 여자를 소개시켜 주겠다!” 급박한 상황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고 농담을 하는 아도니스의 옆에서 부관 한명이 농담으로 받아쳤다. “그럼 아까는 거짓말이셨습니까?” 아무리 상황이 급박해도 지휘관이 평정을 잃으면 밑에 부하들은 저절 로 불안함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아도니스는 항상 평정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지금도 자기 자신의 마음에 채찍질을 가했다. ‘당황하면 안돼. 당황하면 안돼. 정신을 차리자! 정신 차려라 아도니 스!!’ 그렇게 매섭게 자신을 몰아세우는 아도니스의 뒤에는 록크가 아도니스 의 속마음을 다 안다는 듯이 슬픈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냥 우리 좌익부대와 싸우는 것이 그들에게 피해를 줄이는 방법이 라고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그동안 그들의 보병부대는 전멸 합니다 !!” 푸른 갑옷의 남자의 설명에 트라크릭이 흥분해서 소리치자 푸른 갑옷 의 남자는 그들이 서 있는 언덕 아래쪽에서의 전투를 바라보며 말했 다. “저들도 역전의 용사들입니다. 붉은 들소는 그 기마대가 워낙에 유명 해서 붙은 별명이지만 그렇다고 그 부대의 보병들이 허약한 것은 절대 아닙니다. 아도니스란 자는 그런 자신의 부하들을 믿기에 최악의 삼면 에서 포위되는 상태를 막기 위해 좌익 부대를 전멸시키려 하는 것입니 다.” 푸른 갑옷의 남자의 말대로 아래쪽의 전투는 분명히 가이라가의 병사 들 수가 많아도 결코 유리하다고 말 할 수 없는 상태로 진행되고 있었 다. “이런……. 이럴 수가…….” “걱정 하지 마시오.” 푸른 갑옷의 남자는 초조한 듯이 입술을 깨물며 신음을 흘리는 트라크 릭을 안심시키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렇기 때문에 미스릴 실 같은 함정을 산속 곳곳에 설치 한 것입니 다. 그것으로 붉은 들소의 기마대를 전멸 시키지는 못해도 충분한 피 해를 주고 우리는 시간을 벌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말에서 내리면 미스릴 실 함정도 아무 소용없잖습니 까? 그자도 그 정도는 알고 있을 텐데요!” “물론 알고 있겠죠. 하지만 그들은 말에서 결코 내리지 않을 것입니 다.” “어떻게 단언할 수 있는 겁니까?” “예전에 제가 그에게 말을 타고 싸우기에는 정말 적합하지 않은 상황 을 맞았을 때도 말을 타고 싸울 거냐고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뭐라고 대답했죠?” “그는 ‘붉은 들소 부대의 말들은 그냥 말이 아닌 우리들의 친구입니 다. 설령 전멸을 한다 해도 우리는 친구를 버리는 짓은 하지 않을 것 입니다. 친구를 믿고 그 친구들이 자신들을 믿어주기 때문에 붉은 들 소의 기마대는 최고의 기마대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라고 말하 더군요.” “으아악!!” “앞쪽에도 함정이 있습니다!” “뒤로 돌아서 가라!” 아도니스는 열심히 마법 검을 휘두르며 미스릴 실들을 잘라냈다. 하지 만 5천의 기마대가 통과하기에는 턱없이 좁은 길이었고, 미스릴 실은 교묘한 위치로 사방팔방에 설치되어 있었다. 마치 붉은 들소 기마대가 갈 곳을 알고 있다는 듯한 위치들이었다. 그리고 적의 보병들은 악착같이 그들을 쫓아다니며 미스릴 실 건너편 에서 화살을 쏘아 됐다. “아도니스!!” “왜 그래 록크?!” “말…. 아..아니야.” “…….” 아도니스는 록크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알아차렸다. 말을 버리고 뛰어가서 적을 처치하자는 말일 것이다. 그리고 록크는 말을 하려던 도중에 붉은 들소 기마대가 말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는 것을 기억해 내고는 입을 다문 것이다. 둘은 침묵을 지키면서 아도니스는 어떻게 해서든 이 함정을 벗어나기 위해서 있는 힘을 다했고, 록크는 날아오 는 화살 속에서 아도니스를 지키기 위해서 노력했다. 아도니스가 제일 약한 부분인 그의 뒤쪽에서……. “하아? 말따위가 친구라니 이상한 놈이군요.” 트라크릭은 어느새 불안감이 사라졌는지 아도니스를 이상한 놈 취급하 며 비웃었다.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트라크릭은 아까와는 달리 애매모호한 대답을 하는 푸른 갑옷의 남자 를 잠시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봤다가 곧 서서히 균형이 무너지고 있는 전투사항에 즐거운 미소를 지었다. 종이 한 장 차이지만 균형은 확실히 가이라가 왕국 쪽으로 기울기 시 작했다. 그것을 같이 지켜보던 푸른 갑옷의 남자는 자신의 부하에게 무언가의 전달을 듣자 자신의 말에 올라탔다. “이제 가시는 겁니까?” “예. 붉은 들소 기마대를 예정된 장소로 끌어들이는데 성공했습니다. 저는 지금부터 그곳으로 가겠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럼 계속 수고해 주십시오. 다이러스 제국 루그라드 폐하시여.” 푸른 갑옷의 남자 아니 레이르의 오빠이자 제 2황태자였던 루그라드는 뒤도 안 돌아보고 말을 물고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아도니스가 이상한 자라고? 너 같은 속물에게는 그렇게 보이겠지만 그런 이상한 면이 그를 맹장이라 불리게 되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루그라드는 속으로 트라크릭을 욕하면서 말을 몰아서 그의 부대가 있 는 곳으로 돌아갔다. 루그라드의 병사들은 이미 모든 준비를 끝마치고 준비를 끝낸 상태였 다. 천천히 말을 몰아 그들 앞에 선 루그라드는 잠시 심호흡을 하고 연설을 시작했다. “들어라! 자랑스러운 다이러스 제국의 병사들이여! 나는 배신자 랑그 람에게 내 소중한 여동생의 왕위를 빼앗기고, 나라를 빼앗겼다. 그리 고 내 소중한 여동생이자 그대들에게 사랑받던 레이르 왕녀도 살아있 는지 죽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난 내 동생이 살아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난 살아 있을 레이르에게 나라를 되찾아 주고 싶 다! 그것 때문에 가이라가 왕국과 손을 잡은 것을 후세 역사가들은 힘 없는 자라고 욕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배신자 집안 이었던 저 로 헨타이 가에게 나라를 빼앗기는 것보다는 낮다고 생각한다! 그런 내 생각에 동조하는 자들만 이번 전투에 따라오기 바란다! 이 전투는 다 이러스 제국의 전통 계승자인 레드포머 왕가의 반격이 되는 첫 전투이 다! 이 영광스런 성전에 참여할 용감한 다이러스 제국의 병사들은 내 물음에 대답해주기 바란다! 나를 따라 오겠는가?!” “와아아아아아!” 루그라드의 마지막 질문에 모든 병사들이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루그 라드는 그 함성에 답하듯 손을 들었고, 점차 함성이 작아지다가 완전 히 함성이 사라지자 손을 내리며 외쳤다. “그럼 진격이다!” “와아아아아아!” 루그라드의 명령에 레드포머 왕가를 따르던 약 이천 명의 기사들과 병 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달려갔다. 그들의 목표는 붉은 들소의 기마대였 다. 29화 승리와 패배 그리고 위기(4) 저녁나절이 되어서 전투는 끝이 났다. 결과는 붉은 들소 부대의 처절 한 패배였다. 미스릴 실의 함정과 가이라가 왕국의 공격으로 점점 좁 은 공터로 몰려간 붉은 들소의 기마대는 미리 대기하고 있던 루그라드 의 병력에게 공격당했다. 그리고 함정으로 몰아넣던 가이라가 왕국의 병사들이 협공까지 받아서 완전하게 무너졌다. 아도니스는 다이러스 제국의 문장을 단 기사들의 공격을 받는 순간 사 태는 뒤집을 수 없다는 판단을 하고는 전 병력에게 후퇴를 명령했다. 그리고 자신은 손수 포위망을 뚫기 위해 맨 앞에 서서 싸웠고, 그런 대장의 용맹에 지지 않겠다는 듯이 다른 붉은 들소 기마대도 죽자 살 자로 덤벼들어서 간신히 포위망을 뚫고 도망을 칠 수가 있었다. 하지만 보병들은 거의다가 전멸이었고, 와이번 활은 전부 가이라가 왕 국의 손에 넘어갔다. 전쟁이 시작되고 난 뒤 붉은 들소 부대의 첫 패 배였다. 전투가 끝나고, 패잔병들의 회수와 부상병들의 치료로 시끄러운 가이 라가 왕국의 야영지에 소란스런 소리를 내며 붉은 들소 기마대를 쫓던 부대가 돌아왔다. “루그라드님! 적은 추격을 뿌리치기 위해서인지 흩어져서 도주하였습 니다!” 루그라드의 직속부대의 대장이 가져온 보고에 루그라드는 고개를 끄떡 였다. “그게 최선의 방법일 테지. 하지만 그 덕분에 붉은 들소 부대는 다시 재정비하기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 정도만 타격을 주면 충분한 성과다. 그리고 너무 깊숙이 쫓으면 우리 쪽도 병력의 손실을 가져올 수 있으니 적절한 후퇴 잘해 주었다.” “하지만 가이라가 쪽에서는…….” “아아. 알고 있다. 그쪽은 그쪽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아까 말했다. ” 밤이 깊어지자 추격대를 돌리는 루그라드에게 트라크릭은 은근슬쩍 ‘ 겁이 나서 병력을 후퇴 시키느냐?’는 식의 말을 하면서 자신의 추격 대는 계속 붉은 들소 부대의 뒤를 쫓도록 명령을 내렸었다. 루그라드 는 그런 도발에 일일이 응할 생각은커녕 응할 가치도 없다는 생각에 아무 대꾸도 하지는 않았다. ‘만용과 용기도 구별 못 하는 멍청한 자식.’ 다만 그렇게 속으로 한번 씹어주고 트라크릭의 천막에서 나와서 자신 의 진지로 돌아왔었다. 루그라드에게는 오늘의 승리보다 앞으로 다이러스 제국의 해방전쟁을 위해서 해야 될 일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었다. 그런 중요한 시간을 그 런 멍청이의 말에 신경 쓸 필요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역시 이건 확실히 해둬야 되겠는데…….’ 루그라드는 아도니스가 마음에 걸렸다. 가이라가 왕국에 인재가 없기 는 하지만 그것은 다이러스 제국도 마찬 가지였다. 그나마 가이라가 왕국처럼 실속도 없는 허풍쟁이들이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아예 없는 것이 천만다행이라면 천만 다행이지만 그래도 좋은 인재에 대한 굶주림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루그라드에게 아도니스의 존 재는 무척이나 컸다. 가능하면 그를 한편으로 끌어들이고 싶다는 욕망 을 억제 할 수가 없었다. 잠시 고민을 하던 루그라드는 결국 마음을 잡았다. “낮의 전투에 관한 보고 중에서 아도니스 장군이 상처를 입었다는 게 정말인가?” “예. 부하들의 도주로를 확보하기 위해서 제일 앞에서 싸웠고, 도주 할 때도 맨 뒤에서 시간을 버는 싸움을 했기 때문에 당시 아도니스 장 군과 싸우던 기사들은 죄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도니스 장군은 자신 의 말은 죽고 어깨와 허벅지에 화살을 맞은 상태에서도 끝까지 우리들 의 기사들과 싸우다가 옆에 있던 어세신으로 보이는 자에게 끌려 가다 시피해서 도주했다고 합니다.” “그래? 그럼 아도니스 장군은 그리 멀리 도주하지 못했을 수도 있겠 군.” “그 상처를 보아서는 아마도 그럴지도……. 서..설마 루그라드님?!” 루그라드의 질문에 대답을 하다가 무언가를 느낀 부관의 놀란 목소리 에 루그라드의 얼음장 같은 얼굴에 피식하고 미소가 지어졌다. “그 설마가 맞네.” “하지만 그 대쪽같은 자가 쉽사리 들어올까요?” “지금은 적이지만 그나 우리나 같은 다이러스 제국의 사람이고, 다이 러스 제국을 사랑하고 지키는 자이다. 지금은 그가 랑그람을 주군으로 모시고 있지만 랑그람이 죽고 난 뒤에는 섬겨야 될 주군이 없어진다. 섬겨야 될 자가 없어져도 나라가 있다면 그는 힘을 빌려줄 것이다. 아 도니스라는 남자는 그런 남자다.” 루그라드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밖으로 걸어 나갔다. 부관도 그 뒤를 따랐고, 부관이 나오자 어두운 밤하늘을 보고 있던 루그라드가 자조적 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자와 우리는 다이러스 제국을 사랑하고 지키려는 목적은 같다. 하 지만 그는 우리 가문의 원수와 붙어서 우리 가문을 배신했고, 우리는 가문의 부흥을 위해 다이러스 제국의 적인 가이라가와 붙었다. 행운의 여신은 어느 배신자에게 미소를 지어줄까? 아니면 둘 다 여신에게 버 림 받는 것은 아닐까?” 질문이라기보다는 혼잣말에 가까운 루그라드의 독백에 부관이 조심스 럽게 말했다. “루그라드님 병력의 대부분이 배신자 랑그람에게 넘어간 시점에서 저 희들의 최선의 선택은 다이러스 제국을 공격한 가이라가 왕국이 위기 에 빠졌을 때 도와줌으로서 국가의 존속을 보장받는 약속을 얻어내는 것이 최선책이었습니다. 설령 전쟁이 끝난 뒤 가이라가 왕국을 도운 루그라드님을 욕하는 자가 있더라도 저와 여기 모인 기사들과 병사들 은 모두 루그라드님의 편입니다. 부디 너무 자신을 자책하는 짓은 그 만 둬 주십시오.” “후후후후. 이렇게라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더 슬프구나. 더구나 가이라가 왕국이 약속을 지킬지도 의문이고…….” “그렇기 때문에 카나리아 작전이 있지 않습니까? 그것이라면…….” “그래. 그것이라면 가이라가 왕국도 약속은 지킬 것이다. 이 전쟁이 끝나면 다이러스 제국은 보장된 평화를 얻게 되겠지. 하지만…….” 루그라드는 더 말을 잇지 못하고 하늘을 쳐다봤다. “레이르. 제발 무사히 살아 있어다오. 제발…….” 이번 루그라드의 독백에는 부관도 아무 대답을 할 수없었다. 그도 루 그라드의 심정과 같았기 때문이다. 레이르의 안전을 비는 마음. “여기 핏자국이 있다!” “여기도 있어!!” “흩어져서 핏자국을 쫓아라! 한 놈도 놓치면 안 된다!!” 그 날은 달도 뜨지 않은 칠흑처럼 어두운 밤이었다. 하지만 지금 숲에 서는 대낮같이 주위를 밝히는 횃불들로 주위가 환한 상태였다. 갑작스 런 수백 명의 사람들의 방문과 그 소란스러움으로 낮에 활동해야 될 동물들과 새들이 놀라서 지르는 소리들로 조용한 숲 속의 밤이라는 단 어를 쓰기가 무색할 정도로 주위는 시끄러웠다. 땅속에 숨어 있던 록크는 그 모습을 보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주위가 시끄럽고 소란스러울수록 자신과 아도니스가 숨은 이 곳을 발 견할 확률은 낮아진다. 더구나 지금 가이라가 병사들은 록크가 동물들 을 잡아서 상처를 내고 놓아준 핏자국을 보고 착각에 빠져 있었다. 이 정도면 얼마 안 있어 주위의 병사들은 사라질 것이다. ‘제발 빨리 사라져 주었으면…….’ 어세신들에게 초조함은 절대 금물이었다. 하지만 지금 록크는 자신의 상태보다 아도니스의 상태 때문에 초조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여기까 지 용케 도망쳐서 대강 응급처치는 했지만 아도니스는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위험한 상태였다. 한시라도 빨리 제대로 된 치료를 하지 않으 면 목숨이 위험할지도 모를 상태기 때문에 록크는 자연히 마음이 초조 하고 급해졌다. “걱정 마. 난 죽으려면 아직 멀었으니깐.” “아도!” 안절부절 못하는 록크의 팔을 잡고 아도니스가 낮은 목소리로 말하자 록크는 자신도 모르게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록크는 금방 입을 막고는 실수했다는 표정으로 바깥의 동정을 살폈다. 이런 야간에는 횃 불은 어쩔 수 없더라도 조용하게 수색을 해야 되는데 시장바닥인 듯 소리를 지르는 가이라가 병사들 덕분에 록크의 목소리는 그들에게 들 리지 않았다. 들키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록크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 아도니 스의 안부를 물었다. “몸은 괜찮아?” “죽을 정도는 아니니깐 너무 걱정하지 마.” 그렇게 말하는 아도니스의 얼굴은 금방이라고 죽을 듯이 보였다. 어둠 속에서도 사물을 분간할 줄 아는 록크의 눈에는 얼굴이 새하얘진 아도 니스의 얼굴이 똑똑히 보였다. “바보. 이럴 때는 잘난 척도 강한 척도 안 해도 되는데.” “척하는 게 아니라 정말 괜찮으니 걱정하지 마. 너야말로 날 감싸다 다쳤잖아. 아프지 않아?” “난 괜찮으니 네 걱정이나 먼저 해. 나보다 아도가 상태가 더 안 좋 아.” “난 남자니깐 괜찮아.” “으이그 고집불통.” 록크는 그렇게 쏘아주고는 곧 방금 전 아도니스의 발언에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알아차린 거야?” 록크는 떨리는 목소리로 아도니스를 슬쩍 떠보는 식의 질문을 했다. 방금 전 아도니스의 말인 ‘자신은 남자니깐 괜찮다’는 말뜻은 록크 가 여자이기 때문에 더 걱정이라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잠시 사이를 두고 아도니스의 한숨 소리가 들리나 싶더니 대답이 돌아왔다. “그게.. 미안.” “언제 알아차린 거야? 에? 그러고 보니 뭐가 미안하다는 거야?” “네가 날 부축해서 여기로 올 때 완전히 정신을 잃은 게 아니었어. 그래서 에……. 뭐라고 해야 되나? 저기 그거에 얼굴이 닿아서…….” “그거?” “그러니깐 그거 있잖아. 여자한테만 있는 말랑말랑한 거.” “여자한테만 있는…말랑말랑한 거라니……. 서..설마?!” 록크는 급히 자신의 가슴을 확인했다. 너무나 정신이 없어서 잊어먹고 있었는데 록크는 여기로 오다가 적의 검에 등을 약간 베였었다. 그렇 게 큰 상처도 아니었고, 바로 적을 죽이고 도망치느라 신경을 쓸 틈이 없었는데 그때 베인 것 때문에 가슴을 가리던 붕대가 잘라졌던 것이 다. “으으으.” 록크는 새삼스럽게 가슴을 껴안으며 신음을 흘렸다. 기분 같아서는 마 음껏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지를 수도 없는 형편이 너무나 저주 스러웠다. “아..알고 있었다면 그때 왜 얘기 안 한거야?!” 간신히 비명을 지르고 싶은 것을 참고 묻자 아도니스는 얼굴을 붉히며 변명했다. “오해하지 말아줘. 그때는 그걸 말할 시간도 정신도 없었다고.” “치한.” “자..잠깐만 불가항력이었다니깐! 그런데 치한이란 건 너무 심하잖 아.” “어째든 마음껏 감촉을 즐겼잖아. 치한.” “누가 들으면 오해할 만한 발언은 제발 참아주라.” “치한.” “에구구.”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다는 생각에 아도니스는 차라리 입을 다무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입을 다물어 버렸다. 아도니스가 입을 다물자 록크도 조용해졌다. 하지만 그렇게 침묵 속에 가만히 있으려니 아도니스는 답 답한 기분에 입을 열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이름이 뭐야?” “내 이름 잊어버린 거야?” “록크는 남자 이름이잖아. 원래 여자일 때 쓰는 이름 없어?” “진짜 잊어버렸구나.” “무슨 소리야?” 아도니스에게는 뜻 모를 소리였지만 록크에게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 었다. 그렇다고 그 이유를 설명해주기는 싫었던 록크는 자신의 본명만 짤막하게 말해주었다. “에리나.” “예쁜 이름이네. 그런데 아까 진짜 잊어버렸다는 건 무슨 뜻이야? 내 가 언제 너 여자였을 때 에리나라는 이름으로 만난 적이 있다는 거야? ” 아도니스는 록크의 아니 이제는 본명을 알게 된 에리나의 방금 전 말 이 신경 쓰여서 물었지만 에리나는 대답이 없었다. 그렇다고 그냥 물 러서기에는 저돌적인 돌격의 명수 아도니스의 이름이 울기(?) 때문에 끈질기게 물었고, 결국 에리나는 ‘스스로 생각해. 잊어버린 벌이야! ’라는 말로 아도니스의 질문을 원천 봉쇄 해버렸다. 그렇게 대화가 끊기자 다시 침묵이 찾아왔고, 한 참후에 그 침묵이 지 겨워진 아도니스는 다시 말을 걸었다. “불편하지 않아?” 아도니스의 눈이 어느 정도 어둠에 익숙해져서 사물을 분간할 정도가 되자 좁은 구멍 안에 자신을 눕혀놓고 그 옆에 불편하게 쪼그린 에리 나의 모습이 걱정이 돼서 물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에리나의 대답은 무뚝뚝했다. “난 괜찮으니 아도나 푹 자고 체력 회복이나 해둬. 넌 무거워서 힘드 니 내일은 네 발로 걸으란 말이야.” “걱정해 준건데. 도대체 누가 고집불통인지.” “걱정할 필요 없어. 우리 어세신들은 이것보다 더 불편한 상황에서도 수면만 잘 취하니 아도나 푹 쉬어둬. 그리고 내가 고집불통이면 아도 는 치한이잖아.” “으으 아직도 그 일 갖고 따지기야? 그건 정말 불가항력……. 가만. ” 다신 치한이라는 발언에 대해서 변명을 하던 아도니스는 한 가지 생각 이 났고, 그 생각을 바로 실천에 옮겼다. 바로 에리나의 손을 잡고 자 신에게 끌어당긴 것이다. “아악?! 뭐..뭐하는 거야?!” 불의의 기습을 당한 에리나는 저항 한번 못해보고 아도니스의 가슴에 안겼다. “쉿! 큰소리 내면 들킬지도 몰라. 그대로는 보는 내가 불편해서 편히 못 쉬니깐. 이대로 있어.” “이거 안 놔? 이 치한?!” “치한이니 못 놓겠다. 치한 취급은 얼마든지 받아 줄 테니 지금은 너 도 몸을 회복할 생각만 해둬.” 아도니스가 필사적으로 바동거리는 에리나를 꽉 잡으며 힘주어 말하자 에리나의 반항이 멈췄다. 반항을 멈춘 에리나는 조금 머뭇거리다가 살 며시 아도니스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며 말했다. “바보.” “나 원 참. 치한 다음에는 바보냐? 뭐 어째든 얌전해졌으니 상관없지 만…….” “바보.” “그만하고 좀 쉬어. 나도 체력 회복을 위해서 자둘 생각이니깐.” “응.”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아도니스는 숨을 규칙적으로 쉬면서 잠들었 다. 하지만 에리나는 잠들 수가 없었다. 몇 번 아니 몇 십 몇 백번으 로 꾸었던 꿈이다. 자신이 여자로서 사랑하는 남자의 품에 안겨 있는 꿈을……. 그 꿈이 이루어지자 지금 상황도 다 잊어버리고 마냥 부끄럽고도 행복 한 에리나였다. 그리고 약간 더 욕심이 생긴 에리나는 아도니스가 완 전히 잠들었는지 확인하고는 살며시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꺅! 꺅! 난 몰라! 결국 해버렸어!’ 키스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 짧은 순식간에 입만 맞추고 떨어진 거지 만 여자의 생활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해 왔던 에리나에게는 그 정도 도 엄청나게 용기를 내서 실행한 행동이었다. 에리나는 화끈거리는 얼굴을 진정시키며 아도니스의 심장소리를 들었 다. ‘이 소리는 이 사람이 살아 있다는 증거. 지킬 거야. 이 증거를……. 내 목숨을 걸고…….’ 상황은 굉장히 안 좋은 상태지만 지금 에리나는 세상 그 어떤 여자도 부럽지 않은 기분이었다. 이대로 시간이 멈추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지금 그녀는 행복했다. 29화 승리와 패배 그리고 위기(5) “제임스.” 카렌의 걱정스런 표정을 보면서 제임스는 괜찮다는 뜻으로 손을 들어 보였다. 하지만 상황은 전혀 괜찮지가 않았다. 엄청난 수의 대군이었다. 제임스는 설마 전쟁 중에 이정도의 대군을 끌고 올 줄은 상상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조금 방심했던 것을 후회했 다. 제임스는 군대의 맨 앞에 선 자를 보고는 후회감은 잠시 접어두고 천천히 걸어 나갔다. 익히 잘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랑그람 로헨타이. 성에서 신세를 질 때 카렌이 레이르를 돌봐줄 때 같 이 돌봐주었던 아이중의 한명이었다. “오랜만입니다. 제임스 아저씨.” 랑그람의 얼굴 모양은 거의 변한 게 없었다. 하지만 어린시절의 순진 무구한 얼굴표정은 이미 찾아 볼 수 없었다. 그의 얼굴은 야망을 가진 남자의 얼굴이었다. 그것도 야망을 위해서라면 수단을 가리지 않겠다는 집념의 얼굴이었 다. “그래. 오랜만이구나. 랑그람. 이곳에는 무슨 일이냐? 아니 어떻게 우리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안거지?” 제임스는 시간을 끌어봐야 불리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는 간단한 인사 와 함께 바로 용건부터 물었다. “레이르를 찾기 위해서 수색대를 전국에 풀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 “그런데?” “수색대중 하나가 이곳에서 실종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 제임스는 잠자코 듣기로 했다. 어차피 그 수색대는 전원 제임스의 손 에 죽었다. 그러니 괜히 둘러대려다가 다른 말을 꺼냈다가 랑그람이 수상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는 판단에 조용히 랑그람의 말을 듣고 있었 다. ‘물어보는 질문에만 대답하자. 그것이 최선책이다.’ 제임스가 그렇게 마음먹은 사이에 랑그람의 말은 계속 되고 있었다. “전쟁 중이기 때문에 몬스터에 대한 치안이 약해서 몬스터에게 당했 나 하는 생각에 이번에는 좀더 많은 병력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들 도 소식이 없더군요.” “......그 몬스터가 강한 몬스터인가 보구나.” “네 그렇겠죠. 혹시 뭐 아시는 거 없으신가요?” “내가 아는 거라고는 이 산 뒤편에 오우거들이 산다는 것 정도뿐이 다.” 제임스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랑그람은 제임스의 대답을 듣고는 싱글 벙글 웃으며 물었다. “그럼 수색대를 만나신적은 없으신가요?” “만난 적이 없다.” “바로 그 대답을 듣고 싶었습니다. 그 말로 제임스 아저씨는 스스로 범인이라는 것을 밝힌 꼴이 된 것입니다.” “뭐라고?!” 제임스는 뭔가 대답을 잘못 했다는 것을 느꼈다. 방금 전까지 웃고 있 던 랑그람은 어느새 싸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제임스는 등에 식은 땀(?)이 흐르는 느낌이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냐?” 제임스는 애써 태연을 가장하며 물었고, 랑그람은 조용히 손을 들었 다. 그것이 신호인 냥 뒤편에서 병사 두 명이 한 초라한 몰골의 남자 를 끌고 나왔다. “이 자의 이름은 케프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 자가 뭐란 말이냐?” “이 자는 첫 번째로 행방불명된 수색대를 찾기 위해서 보낸 두 번째 수색대의 대장이었습니다. 부하들을 싸움에 밀어놓고 멀리서 구경하다 가 위험해지자 재빨리 줄행랑을 친 비겁자 오노 같은 인간입니다.” 랑그람의 설명에 제임스는 그제야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다. 랑그 람의 말이 사실이라면 아까 전에 수색대를 만나지 않았다는 자신의 말 은 거짓말이 된 것이고, 왜 거짓말을 했는지에 대해서 설명하지 않으 면 안 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랑그람의 함정에 빠진 제임스는 밋밋하 게 몸을 떨며 동요했다. 그 동요를 놓칠 리가 없는 랑그람은 계속해서 날카로운 말을 퍼부었다. “저와 제임스 아저씨 그리고 저기 계신 카렌 아줌마가 모르는 사이도 아닙니다. 비록 현재 다이러스 제국이 전쟁 중이고 여러 가지 안 좋은 일이 생기기는 했지만 두 분은 그 일과는 전혀 무관한 분들입니다. 그 렇기 때문에 우리 수색대와 마주치셨더라도 수색대에게 잘 이야기하고 저에게 말을 전달만하게 하셨어도 제가 두 분에게 해를 입히지 않을 것입니다. 그건 무엇보다 두 분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 굳이 저희 수색대와 싸운 이유가 뭘까요? 무엇을 저한테 숨기고 싶었 을까요? 그럼 그 숨기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 제임스는 랑그람의 쉴 새 없는 질문에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아 니 랑그람의 말이 전부다 옭은 말이기 때문에 할 말도 없었다. “제임스 아저씨와 카렌 아줌마는 레이르를 숨겨주고 계셨기 때문이라 는 것이 제 추리입니다. 제 추리에 틀린 점이 있나요? 있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듣고 싶군요.” 틀린 점이 하나도 없는 완벽한 추리였다. 그래도 제임스에게도 할말은 있었다. “너 추리 소설 좋아하는 점은 고쳐지지 않았나 보구나.” “......말 돌리지 마세요. 시간 때우기는 통하지 않습니다. 이 산은 나의 병사들로 물샐 틈 없이 포위된 상태입니다. 섣부른 짓 할 생각은 하지 마세요.” “제일 좋아했던 소설은 명탐정 헬록 쇼옴즈였던가?” “요즘은 괴도 라르센 우팡도 보고 있습니다. 그것도 재미있더군요. 그리고 또 다음으로 읽고 싶은 것은……. 이 아니잖습니까! 말 돌리지 마세요!!” (작가 주 : 명탐정 헬록 쇼옴즈란 괴도 루팡의 작가 모리스 엔 로블랑 이 자신의 루팡 단편에 홈즈를 출연 시킨 걸로 당시 홈즈의 작가 코난 도일에게 항의를 받아서 영문의 앞 이니셜 위치를 바꿔서 헬록 쇼옴즈 라는 이름으로 책을 펴냈다. 이로 인해 코난 도일도 더 이상 항의를 할 수가 없었고, 당시 최고의 명탐정이라 불리던 셜록 홈즈는 헬록 쇼 옴즈라는 이름으로 모리스 엔 로블랑의 장편 [명탐정 대 괴도]라는 장 편에 출연할 수 있었다. 라르센 우팡은 작가가 그때 당시 모리스 엔 로블랑이 했던 영문 앞 이니셜 이름 바꾸기를 해 본 것이다. 원래 정 확한 이름은 아르센 루팡. 천의 얼굴과 목소리를 가지고 오직 미술품 만 노렸던 희대의 괴도 신사로 재미있는 점은 루팡의 이름은 도중에 뤼팽으로 바뀌었다. 루팡의 이름은 당시 실제 있었던 **로 자신의 이 름을 괴도로 썼다는 항의에 의해 뤼팽으로 바뀐 것이다. 하지만 본 작 가는 뤼팽보다는 루팡이 훨씬 더 친근감이 들기 때문에 바뀌기 전 이 름 루팡으로 사용했다. 솔직히 고백하면 뤼팽보다는 루팡이 발음하기 가 쉽다는 이유도…….) ‘추리소설 이야기만 나오면 열 올리는 점도 변하지는 않았군. 하지만 옛날에는 훨씬 더 순수한 눈을 가지고 있었는데…….’ 제임스가 랑그람의 어린 시절을 생각하고 있을 때 열을 올리던 랑그람 은 간신히 화를 삭이고는 싸늘하게 말을 뱉었다. “더 이상 말장난으로 시간 끌기는 할 생각 마세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레이르를 데려가겠습니다.” “레이르는 여기에 없다.” “제가 그 말을 믿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정말 레이르는 여기에 없어요.” 뒤에서 잠자코 둘의 대화를 지켜보던 카렌이 대화에 끼어들며 말했다. 랑그람은 레이르가 없다는 말에 카렌의 얼굴을 한참동안 쳐다보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카렌 아줌마가 없다면……. 정말 없다는 거군요.” “잠깐! 내가 없다고 했을 때는 안 믿으면서 카렌의 단 한마디를 믿는 이유는 뭐냐?” 제임스가 떨떠름한 목소리로 말하자 랑그람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어 깨를 으쓱하며 간단히 대답했다. “사소한 문제는 넘어가죠.” ‘어째서 그게 사소한 문제냐아!!!’ 제임스는 굉장히 마음에 안 들지만 마음속으로 비명을 지르는 걸로 참 고 넘어가기로 했다.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 다. 바로 랑그람의 눈은 아직 포기하지 않은 광기를 띠고 있었기 때문 이다. 랑그람은 다시 손을 들었고, 그 명령에 맞춰 주위 병사들이 제임스와 카렌 그리고 아이들의 주위를 재빠르게 포위했다. 그 기세에 놀린 아 이들이 겁에 질려서 울음을 터트리자 제임스가 분노하며 소리쳤다. “무슨 짓을 할 셈이냐?!” “여기에 레이르가 없는 걸 안 이상 내가 선택해야 될 일은 하나뿐이 군요. 두 분께서 같이 가주셔야겠습니다.” “뭐라고? 우릴 인질로 할 생각이냐?” 제임스는 주먹을 쥐며 금방이라도 달려들 태세를 갖추며 물었다. 대답 여하에 따라서는 덤벼들겠다는 분위기였다. “레이르가 여기에 없지만 여기에 살았던 것은 정말이겠죠? 그렇다면 두 분을 인질로 삼으면 마음착한 레이르는 반드시 다이리로 돌아오겠 죠.” “이 자식! 그런 짓까지 할 정도로 썩은 거냐?!” 제임스는 그야말로 번개같이 랑그람에게 달려들어서 멱살을 쥐었다. 주위 병사들의 비명이 울려 퍼졌고, 제임스는 금방이라도 주먹을 날릴 살기등등한 기세로 랑그람을 노려봤다. 하지만 랑그람은 전혀 겁먹지 않은 얼굴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진정하세요. 두 분께 해를 끼치지는 않겠습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두 분과 아이들의 안전은 제가 보장하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싸움을 벌이시면 전 더 이상 카렌 아줌마와 아이들의 신변을 보장해 드릴 수 없습니다.” “지금 내가 널 인질로 삼고 있다. 그러니 병사들을 내려가게 해!” 랑그람은 제임스의 협박에도 고개를 흔들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곳에 온 자들은 제가 가장 믿고 있는 제 직속 병사들입니다. 그리 고 그들은 저의 뜻을 잘 압니다. 저의 목적 성공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하는 병사들입니다. 설령……. 그래요 설령 내가 이 자리에서 죽는다 하더라도…….” “뭐야?!” 제임스는 곁눈질로 병사들을 살펴보았다. 병사들은 하나같이 굳은 얼 굴로 손에 든 검을 카렌과 아이들에게 겨눈 체 내려놓을 생각을 안 하 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제임스가 랑그람에게 덤벼들었을 때도 짧은 비명만 터트렸을 뿐 누구하나 그 자세 그대로 움직일 생각은 하 지 않았었다. 병사들의 표정에서 랑그람이 한 말이 거짓이 아니란 사 실을 발견한 제임스는 랑그람의 멱살을 잡은 손을 힘없이 내려놓았다. “제 뜻을 알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랑그람.” “네.” 카렌이 랑그람을 부르자 랑그람은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대답했다. 그 리고 카렌이 무엇을 물어보던 솔직하게 대답하겠다고 마음먹고 카렌의 질문을 기다렸다. 그렇게 마음을 먹은 랑그람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 본 카렌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유를 말해 줄 생각을 했다는 게 다행이군요.” “어차피 카렌 아줌마에게는 숨길 수 있는 일은 없으니깐요. 그리고 다른 사람 마음을 읽기 싫어하는 카렌 아줌마에게 제 마음을 읽으시게 하는 수고를 끼쳐 드릴 수는 없습니다. 여기서 말하기는 뭐하니 궁에 돌아가면 전부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랑그람의 약속을 받아낸 카렌이 결국 승낙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랑그람의 딱딱하게 굳어있던 표정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활짝 펴졌다. 그리고 병사들에게 짐 싸는 일을 도우라고 명령하고는 아직 무서워서 울먹이는 아이들에게 과자를 주면서 - 언제 과자를 챙겨 둔 것일까? - 커다란 성 구경을 시켜준다며 달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경계를 하던 아이들도 점차 경계를 풀더니 카렌과 제임스가 병사들과 짐을 다 싸고 나왔을 때는 활짝 미소를 지으며 랑그람과 깔깔거리며 놀고 있었다. 그리고 랑그람의 부탁대로 얌전하게 병사들의 말에 올라타고 기대에( ?) 찬 눈을 반짝거렸다. “너희들 꼬마 신사, 숙녀 분들을 조심해서 모셔야 된다. 나중에 저분 들에게서 불편했다는 소리가 나오면 그 분을 태운 녀석은 일주일간 야 근을 시킬 거야!” 랑그람의 농담으로 병사들 사이에서 한바탕 웃음이 지나갔고, 분위기 는 처음과는 달리 많이 부드러워졌다. 랑그람은 싱글벙글 웃으며 제임 스와 카렌에게 말을 권하다가 ‘아차’하는 표정을 지었다. 튼튼한 여 분의 말을 준비하기는 했지만 저 거대한(?) 제임스의 무게를 견딜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걱정 말아라. 말은 타지 않아도 괜찮다.” 제임스가 손을 저으며 말을 거절하자 랑그람이 곤란한 얼굴로 카렌을 쳐다봤다. “아니 제임스 아저씨야 괜찮지만 카렌 아줌마는……. 생각해보니 카 렌 아줌마 말을 못 타시죠? 어떡할까요? 저랑 같이 타고 가실래요? 산 아래에 마차를 대기시켜 놨으니 거기까지 제가 모시겠습니다.” “후후후. 거절하겠어요. 이이는 무뚝뚝하게 보여도 질투심이 대단하 거든요. 이이에게 안겨서 내려가면 되요.” “누가 질투심이 강하다는 거야?” 제임스는 곤혹스런 목소리로 말하면서도 몸은 알아서 카렌을 팔위에 앉혀서 들었다. 그 모습을 쳐다보며 랑그람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제 어릴 적 기억에도 두 분은 뜨거웠던 것 같은데 지금도 뜨거우시 군요.” “앞으로도 뜨거울 거예요.” 솔직하고 화끈한(?) 카렌의 답변에 처음에 농담을 했던 랑그람의 얼굴 이 벌게졌다. 랑그람은 주위에서 킥킥거리며 웃는 병사들을 째려보며 자신의 말에 올라탔다. 그리고 전군에게 출발 명령을 내리며 제임스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럼 내려가시죠. 오두막에는 경비를 붙여둬서 함부로 아무나 들어 오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으..응. 알았다.” 제임스는 건성으로 대답하며 서둘러 아이들을 태운 말 뒤를 따라서 내 려갔다. “......방금 제임스 아저씨 갑옷이 분홍빛으로 보인 것 같았는데… …. 혹시 부끄러워서 저런 색이 된 건가? 아니면 다크 나이트의 갑옷 색이 감정에 따라서 변하는 건가? 그것도 아니면 내 눈의 착각?”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랑그람은 결국 ‘실버 드래곤이 준 특별한 다 크 나이트라서 그렇겠지’라는 결론을 내렸다. 하긴 의지를 가졌다는 것 자체가 다크 나이트로서는 특이한 존재였으니깐. 랑그람은 잠시 제임스와 카렌의 오두막을 돌아보았다. 그곳에서 레이 르가 살았었다. 랑그람은 그것만으로도 레이르의 체취와 향기가 그곳 에 남아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하지만 금방 고개를 저으며 말을 몰아서 천천히 산 아래로 향했다. ‘이제 조금만…. 조금만 더 있으면 레이르의 체취만이 아닌 진짜 레 이르를 다시 볼 수 있다. 6년 얼마나 길었던가……. 어떻게 변해 있을 까? 레이르 너를 빨리 다시 만나고 싶구나. 가만…….’ 자신의 추억속의 레이르를 떠올리던 랑그람은 문득 이곳에 레이르가 있었고, 어디론가 떠났다는 사실을 기억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제임스와 카렌은 레이를 혼자서만 보낼 위인들이 아니었다. 그렇다는 것은 누군가가 함께 레이르랑 이곳을 떠났다는 것이다. ‘혹시……. 남자?’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랑그람은 정신없이 제임스와 카렌의 이름을 부르며 앞서 걸어간 제임스의 뒤를 쫓아갔다. “무슨 일이냐?” 제임스가 그 자리에 서서 뒤돌아보며 묻자 랑그람은 서론 본론 다 빼 먹고 바로 결론부터 물었다. “레이르와 같이 떠난 남자가 누굽니까?!” 그 결론이란 게 랑그람 혼자 멋대로 지은 결론이라서 약간(?)의 문제 긴 했지만 어째든 랑그람의 걱정이 전해졌는지 황당해서 말이 안나온 다는 제임스 대신에 카렌이 대답해줬다. “네. 남자 두 명이랑 같이 떠났어요. 랑그람은 옛날부터 감이 좋네 요. 어떻게 아셨어요?” “그 남자들 어떤 남자들입니까?” 떨리는 목소리가 지금 랑그람이 얼마나 당황하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 주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몸까지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 카렌은 잠시 골똘히 생각하더니 손을 탁 치면서 대답했다. “여기서 말하기는 뭐하니 성에 돌아가면 말해 줄게요. 그럼 됐죠? 자 제임스 어서 가요. 이러다가 애들과 떨어지겠어요.” “아니. 저기 카렌 아줌마!” “랑그람도 빨리 내려오세요.” “카렌 아줌마아!!” 랑그람의 피를 토하는 절규를 뒤로하고 제임스는 묵묵히 걸어갈 수밖 에 없었다. 걸어가면서 제임스는 슬쩍 카렌에게 물었다. “티아님도 같이 있으니 여자도 함께 있는 거잖아. 왜 그건 말 안했어 ?” “어머나! 전 랑그람의 질문에 충실하게 대답 해준걸요. 랑그람은 분 명 같이 간 남자가 누구냐고 물었지 같이 간 여자가 누구냐 고는 안 물었잖아요.” ‘역시 화났군.’ 카렌은 아까부터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제임스는 느낄 수 있었다. 이 유야 어찌됐던 한바탕 소동을 벌이고 아이들을 울린 것에 대해서 화가 나 있었던 것이다. 카렌은 오랜 세월을 살면서 옛날같이 화나면 엄청 난 소리를 지르는 버릇은 없어졌다. 하지만 대신에 화가 나도 늘 생글 생글 웃으며 따지는 버릇이 생겼다. 소리 지르며 화내는 것보다는 낮 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제임스의 말을 빌리면 웃으면서 화내는 그 무서움은 안 당해본 사람은 절대 모를 무시무시함이 있다. ‘티아님이랑 같이 있었던 시절은 긴 시간은 아니었는데 어쩌다가 영 향을 받게 된 건지…….’ 제임스는 그런 생각을 하며 한숨을 쉬었다. “당했다. 완벽히 당했어.” 그리고 랑그람은 내내 당했다는 말을 중얼거리며 한숨을 쉬었다. 이제 랑그람에게 남은 선택은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성으로 돌아가는 방법 뿐이었다. 이런 사태가 되게 된 이유를 따지자면 역시 카렌이 화나면 무섭다는 사실을 깜박해버린 랑그람의 죄라고 해야 될까? 아무튼 사소한(?) 일이니 그 일은 이제 넘어가고, 카렌과 제임스가 랑 그람을 따라 성으로 가고 난 뒤에 점령당하지 않은 다이러스 제국의 곳곳에 한 장의 포스터가 붙었다. [레이르에게 제임스 아저씨와 카렌 아줌마 그리고 아이들은 성에서 보호하고 있다. 이 분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다이리 수도 성으로 돌아오길 바란다. 랑그람 로헨타이 1세] 30화 시이터의 정체(1) 우리는 산을 넘어서 프론트 연합국으로 가기 위해서 진로를 북서쪽으 로 잡았다. 시이터의 설명에 의하면 이대로 계속 서쪽으로 가봐야 나 오는 곳은 바다이기 때문에 몰래 넘어가는 게 힘들다는 설명이었고, 지도에도 몰래 국경을 넘을 수 있을 정도의 깊은 산은 북쪽에 있기 때 문이었다. 덕분에 우리는 전쟁의 손톱이 한번 활키고 간 도시에 들어 서게 됐다. 적막. 우리가 이 도시에 와서 느낀 것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저 것 이외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아니 이미 도시라고 부를 수조차 없는 곳이었다. 여기저기 불탄 집과 간신히 불타버리진 않았더라도 그을음 이 곳곳에 남아 있는 이곳은 인간들이 모인 곳에는 꼭 있어야 될 활기 가 없었다. 이런 도시는 처음이었던 나는 기가 질린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렸고, 누나 역시 무뚝뚝한 얼굴이었지만 그리 좋은 기분이 아니라는 것을 느 낄 수 있었다. 그나마 나랑 누나는 나은 편이었다. 원래 이 나라의 왕 녀인 레이르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땅만 쳐다보며 걷고 있었다. 도시 모양도 모양이지만 더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것은 길거리 곳곳 에 거적을 뒤집어쓰고 누워 있는 난민들 때문이었다. “심하네요.” “지금까지 우리가 지나왔던 마을들은 후방에 떨어져 있는 마을들이라 못 느낀 것뿐이야. 전쟁이 나게 되면 이 정도는 당연한 일이 되어 버 리지.” 내가 솔직하게 감상을 말하자 시이터가 입맛 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용병이라서 그런지 역시나 전쟁에 대해서 잘 아시네요. 하긴 당신도 이런 불행을 만드는데 한몫하고 다니셨겠죠?” 누나의 비꼬는 말투에 시이터는 쓴웃음을 지었다. “내가 용병이기는 하지만 이런 전쟁에는 참여 안 해. 몬스터 퇴치나 유적 탐험의 보디가드정도만 할뿐이야.” “그 말을 어떻게 믿어요. 앗! 뭐.뭐하는 거예요?! 얼굴 치워요!!” 누나의 비명소리에 깜짝 놀라서 돌아보자 시이터는 누나의 얼굴에 자 기 얼굴을 가까이 대고 있었다. 키스 하려고 하는 자세 같군. “내 눈을 똑바로 봐. 내 눈이 거짓말 하는 눈인가? 나도 일반 평민들 만 고통 받는 전쟁을 혐오하는 사람이라고. 그러니 그런 기분 나쁜 오 해는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아.알았으니 제발 얼굴 좀 치워요!! 남들 보면 오해할 만한 행동은 자제해달라고요.” 누나는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면서 울 것 같은 얼굴로 애원을 했다. 정 말 저 사람이랑 같이 다니고 나서부터는 누나의 여러 가지 모습을 많 이 구경할 수 있군. 그런데……. 왜 짜증이 나는 거지? “오빠 동생 사이에 무슨 오해? 그러고 보니 오빠라고 불러주기로 한 약속 왜 안 지켜? 아까 전에도 당신이라고 불렀지? 거참 혹시 나랑 부 부가 되고 싶은 거야?” “이.이…….” “이 뭐?” “입 닥쳐! 이 바람둥이 같은 놈아!!” “이크크! recall(소환)!” 내 허리에 차여져 있던 멋있는 마법검은 어느새 시이터의 손에 가서 누나가 시전하는 마법들을 막아내고 있었다. 하아 정말이지 이 마을에 들어오기 전에 레이르를 생각해서라도 눈에 띠는 행동은 하지 말자고 했으면서 솔선수범해서 주위의 이목을 끄는 저 누나의 행동을 뭐라고 설명해야 될까? 아무튼 누나와 시이터 사이의 행동패턴도 대충 알게 됐다. 시이터가 진지한 얼굴로 말을 할 때는 아무 짓도 못하고 쩔쩔매면서 조금이라도 시이터가 농담을 하면 성질을 내면서 덤벼들었다. 뭐 항상 누나가 지쳐서 자동적으로 싸움이 그치긴 했지만……. 어라? 내 팔을 꼭 붙드는 감촉에 돌아보니 레이르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레이르의 머리는 이곳에 오기 전에 누나가 마법 으로 파랗게 물들인 상태였다. 그래서인지 파란색 머리에 새파랗게 질 린 얼굴이……. 처녀 귀신같다고 솔직히 말하면 혼나겠지? “레이르 왜 그래?” “테이님. 저기요.” 레이르가 가리킨 곳은 난민들이 누워 있는 곳이었다. 그 중 유독 눈길 을 끄는 것은 먼지를 풀풀 뒤집어쓴 조막만한 갓난아기가 엄마의 젖을 물고 있는 모습이었다. 엄마가 아기 젖먹이는 모습 때문에 눈길을 끈 것이 아니다.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엄마는 온 몸이 말라서 뼈가 앙상 하게 보일 정도였다. 저런 상태에서 젖이 나올 리가 없다. 아마도 배 고파서 우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서 그냥 물려 놓은 상태겠지. “우리가 도와줄 수 없을까요? 네? 테이님.” 쩝 레이르 그렇게 내 팔을 붙잡고 눈물이 그렁그렁 거리는 눈으로 바 라보면 내가 어떻게 ‘못 도와줘’라는 말을 할 수 있겠어? 하긴 못 도와 줄 일도 아니고 해서 나는 허리에 찬 지갑에서 은화 몇 닢을 꺼 냈다. 그리고 그 엄마에게 건네주었다. “그걸로 영양가 있는 음식이라도 드세요. 엄마가 건강해야……. 그. 그……. 아.아무튼 저.젖이 에또 아.아무튼 아기가 건강하게 크잖아 요. 그.그럼.” 거참. 멋있게 말하려고 했는데 막상 젖 잘나온다는 말을 하려고 하니 깐 엄청나게 부끄럽고 창피해서 말을 더듬어 버렸다. 젠장! 스타일 다 구겼다! 아무튼 은화는 50센짜리로 그거 몇 개면 며칠은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을 것이다. 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는 아기엄마에게 미소를 지 으며 돌아섰다. 훗 간만에 착한 일을 했더니 기분이 좋군. 그런데 그 좋은 기분은 시이터의 외침에 와장창 부서졌다. “테이군! 이 바보! 무슨 짓을 한거야?!” 바보라니? 착한 일하는 사람이 왜 바보냐?! 저 인간을 그냥 콱! 음 역 시 여기서 저 놈을 누나랑 같이 합동으로 처리하고 검을 내가 쓱싹할 까? 에구구 무슨 나쁜 생각을……. 정의의 용사 드래곤이 할 생각이 아니지. 라고 혼자 생각하는데……. 뭐야? 이 압박감은? “기사님 저에게도 자비를!” “저에게도 자비를!” “우리 애도 굶고 있어요! 제발 도와주세요!” “저는 다리를 다쳐서 걷지도 못합니다!” 내 주위에는 어느새 난민들이 빽빽이 둘러싸고는 저마다 손을 내밀며 자비를 외치고 있었다. “뭐. 뭐야? 이게?!” “꺄악?!!” “레이르?” 레이르의 비명소리에 깜짝 놀라서 그쪽을 바라봤지만 때에 더러워진 난민들의 얼굴밖에 안 보였다. 젠장! 키 좀 크게 폴리모프 할 걸!! “레이르 무슨 일이야?!” “테이님! 티아님! 도와주세요!! 아악! 이러지 마세요!! 전 돈 없어요 !!” 레이르의 비명으로 대충 레이르가 어떤 상태인지 알 것 같았다. 나랑 똑같이 난민들에게 둘러싸여 있겠지. “비켜! 비키라고!!” 내 성난 외침에 난민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절망에 힘 이 없던 그들의 눈은 광기로 번쩍거리고 있었다. 단 하나 잡은 살아갈 희망을 절대 놓칠 수 없다는 것 같은 광기어린 난민들의 눈에 난 소리 를 지르는 것 이외에 그 어떤 제지도 할 수 없었다. “돈이라면 여기 있다!” 시이터의 외침과 동시에 내 머리 위로 반짝이는 동전들이 날아갔다. “으아아아!” “돈! 돈!” “내꺼야!” “내가 먼저야!!” 많은 수의 난민들이 동전이 날아간 방향으로 뛰어갔고, 내 주위에는 거동이 불편해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몇몇 난민만이 내 바짓가랑이 를 붙들고 있었다. “꺄악! 뭐하는 짓이야?!” “테이군 받아!!” 누나의 비명과 동시에 시이터의 외침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누 나가 날아서(?) 나에게 오고 있었다. 난 얼떨결에 날아오는 누나를 정 확히 내 팔에 받으며 외쳤다. “나이스 캐치!” “엄마야!” “됐어! 테이군 그대로 뛰어!!” 이번에는 레이르의 비명소리와 시이터의 외침이 들렸다. 시이터가 레 이르를 안아서 달리는 것을 보고는 나도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누나를 안고 달렸다. 달려가면서 잘 들리는 귀가 원망스러웠다. 내 뒤쪽에서 울부짖는 난민들의 소리는 지옥에 떨어져서 울부짖는 망자들의 외침 같아서 소름이 끼쳤기 때문이다. “하아. 하아.” “허억! 허억!” 시이터와 나는 좁은 골목길을 누비며 간신히 난민들을 따돌리고는 거 친 숨을 몰아쉬었다. 심장이 터질 듯이 뛰고 있었다. 하긴 전력으로 그것도 누나를 안고 달렸으니 당연한 거겠지. 그런데 나한테 편안하게 안겨왔던 누나는 왜 이렇게 심장이 쿵쾅거리 며 뛰고 있는 거야? 내가 여기까지 편하게 안고 왔는데……. “그거야 네가 내 가슴에 얼굴 파묻고 있으니깐 그렇지!!” 아 그랬구나. 어쩐지 푹신하고(?) 심장 소리가 잘 들린다 싶었지. 그 나저나 누나는 내 얼굴 안보고도 내 마음을 족집게같이 읽어버리네. 정말 신기하단 말이야. 란 소리를 할 때가 아니잖아!! “으아악! 미안해 누나!!” “아야야!!” 이런 당황해서 누나를 그냥 놓아 버리는 바람에 누나는 그대로 땅에 추락해서 멋지게 엉덩방아를 찍었다. 누나는 아픈 듯 이마를 찡그리며 날 노려보았다. “너어! 일부러 그랬지?” “아니. 아니야! 당황해서 그런 거야!!” “쳇! 네가 내 가슴 만진 게 어디 한두 번이냐? 새삼스럽게 뭐가 당황 이야?” “남들 들으면 오해할 만한 말은 하지 말랬잖아!!” “감히 누나한테 큰소리치기냐?!” “자자. 둘 다 그만 거기까지.” 시이터가 우리 둘을 말렸고, 말린다고 들을 누나가 아니라는 내 생각 과는 달리 누나는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 가만 생각해보니 열 이 좀 받네. 동생 말은 죽어라 안 들어주면서 시이터의 말 한마디에 얌전해지곤 했잖아. 왠지 웃으면서 누나를 달래는 시이터의 얼굴이 열 받게 보이는 기분이 었다. “아까 내가 그만두라고 소리 친 이유를 알겠지?” 시이터가 누나를 다 달랬는지(?) 나에게 시선을 주면서 물었다. 하지 만 난 그 질문에 대답할 기분이 나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열이 받아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내가 대답이 없자 시이터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더 이상 물어보지 않고 는 레이르의 상태를 물어봤다. “저.저기 어떻게 된 거죠? 방금 전에 그 사람들 도대체…….” 레이르가 얼굴을 붉게 물들이면서 더듬더듬 물어보자 시이터는 한숨을 쉬면서 설명해줬다. “난민들이 왜 난민들이겠습니까? 저들은 이제 돌아갈 집도 먹을 음식 도 잘 곳도 없는 상태입니다. 한마디로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것 없는 자들이란 말입니다. 그런 자들에게 자신이 보기에 가장 불쌍하다고 생 각되는 사람만 도와주면 방금 전처럼 큰 화를 당하게 되는 겁니다. 그 들에게는 어차피 굶어죽던 아니면 칼에 맞아 죽던 죽는 것은 매 한가 지니 그렇게 악착같이 달라붙는 거죠.” “그런……. 그럴 수가……. 난 단지 아까 그 아줌마를 도와주고 싶었 을 뿐인데…….” “......왕녀님 당신의 기분은 잘 알고 있습니다. 저런 불쌍한 사람들 이 많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들이 일일이 저 사람들을 도와줄 수는 없습니다. 계속 그런 식으로 가는 곳마다 도와줬다가는 우리가 저 꼴 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잔인한 이야기지만 못 본 척 지 나가는 것이 최선책입니다. 보고도 그들이 거기에 없다고 생각해야 됩 니다.” “하지만…….” “잠깐만요! 말이 너무 심하잖아요! 그렇게까지 잔인하게 말할 필요 있어요?” 누나가 레이르를 감싸며 시이터에게 화를 냈다. 물론 시이터는 내 누 나가 화를 내던 말든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오히려 누나에게 얼굴 을 가까이 대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리 심하더라도 아무리 잔인한 말이더라도 어쩔 수 없는 거야. 이게 전쟁이 일어난 나라의 현실이야. 그래서 난 전쟁을 싫어하고 아 무리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전쟁에는 뛰어들지 않는 용병이 된 거야. ” “자.잠깐만 얼굴 너무 가까이 대지 말아요!!” 그러니깐 왜 누나는 시이터가 무게를 잡으면 힘 하나 못쓰는 걸까? 흠. 혹시 누나는 무게 잡는 남자에게 약한 스타일? 나도 다음에 무게 잡아볼까? “아까 전에도 말했듯이 전쟁에 힘을 빌려주지 않는 것이 내 유일한 자존심이야. 그런데 티아양은 아까 내 자존심을 건드렸지? 그건 아무 리 티아양이라도 용서 못할 일이야.” “아.알았어요! 미안해요! 사과 할 테니 얼굴 치워요!” 저기서 시이터가 고개를 조금만 숙이면 누나랑 키스도 할 수 있을 정 도로 둘의 얼굴은 가까워져 있었다. 레이르는 언제 무서워서 떨었느냐 는 듯이 얼굴을 붉게 물들 인체 둘의 모습을 슬쩍슬쩍 훔쳐보고 있었 다. ‘......어쩐지 열 받는다.’ 왜 열 받는지 이유를 모르겠지만 어째든 요즘 들어서 저런 둘의 모습 을 보고 있자면 슬며시 화가 나곤 했다. 가만 이번 기회에 누나한테 점수 좀 따둘까? 내가 시이터를 치워주면 누나도 나를 다시 볼지도 모 를 텐데. 그리고 좀 멋있게 ‘우리 누나 괴롭히지 말아요.’라고 하면 누나도 그동안 날 괴롭힌 걸 반성하겠지? 괜찮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에 난 시이터의 등을 붙잡아서 누나한테 떨 어트려 놓기로 했다. 마침 누나는 ‘오빠라고 부를게요! 제발 떨어져요!!’라고 소리치고 있는 중이었다. ‘이때 도와주면 점수 좀 많이 받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손을 뻗치는데 하필이면 그때 시이터가 ‘좋아. 앞으 로는 계속 오빠라고 부르기다.’라고 말하면서 등을 펴버렸다. 덕분에 시이터의 등을 잡을 생각으로 뻗친 내 손은 시이터를 밀어버렸다. “이크크!” “꺄악!” 시이터의 당황한 외침과 누나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시이터는 내 손에 의해서 누나를 덮치면서(?) 앞으로 쓰러졌다. 난 손을 뻗은 체 허망하게 서 있었고, 레이르는 어쩐지 즐겁게 들리는 비명을 지르 면서 눈을 크게 떴다. 시이터와 누나는 그대로 넘어지면서 입을 맞. 춘. 것. 이. 다. 시이터는 눈에 보이지 않을 속도로 일어나서 벽으로 뒷걸음질 쳤다. “아.아니야!! 난 그럴 생각은 없었어! 이건 실수야! 그.그래 테이가 밀어서!!” “나야말로 오해야!! 난 단지 시이터 씨를 붙잡아서 누나한테 떨어트 리려고 했던 것뿐이야!!” 나와 시이터가 필사적으로 손과 발을 흔들며(?) 변명을 늘어 놓을 때 누나는 그 자리에 멍하니 누워 있었다. “어? 티아양 왜 그래? 넘어지면서 머리라도 부딪친 거야?” “누나? 괜찮아 누나?” 나와 시이터가 조심스럽게 누나의 안색을 살폈고, 나는 순간 가슴이 털컹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 누나는 그 상태에서 조용히 눈물을 흘 리면서 울고 있었다. ‘찌.찔린다. 이건 내가 잘못한거야. 그것도 엄청나게 잘 못 한거야?! !’ 시이터도 같은 생각인지 어쩔 줄 몰라 하다가 결국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고, 나도 옆에서 무릎 꿇고 빌었다. 하지만 우리가 빌면 빌수록 조용히 눈물만 흘리던 누나는 흐느끼는 소리를 내다가 결국에는 대성 통곡을 했다. 도대체 여자들은 울지 말라고 달래면 더 크게 우는 것은 무슨 심보일 까? “우와아아앙! 키스가!! 내 키스가아!! 아아앙!!” “누나 진짜 미안해! 실수였어!! 사고였다고!! 대신에 앞으로 누나 말 은 뭐든지 들을게!!” “나도 정말 미안하다! 방금 건 사고야!! 사고로 한 키스는 키스가 아 니니깐 미친개한테 물렸다고 생각하고 잊어버리렴. 아 그렇다고 내가 미친개는 아니지만…….” “아아앙! 몰라! 몰라! 테이도 오빠도 다 미워!!!” 결국 마지막은 누나의 본성(?)대로 주먹이 날아왔고, 나와 시이터는 누나의 주먹에 저 멀리 날아가서 쓰레기통과의 화려한 만남의 기회를 가졌다. 누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다시 큰 소리로 울었고, 이번에는 레이 르가 열심히 누나를 달랬다. “시이터씨.” “왜?” “방금 펀치. 시이터 씨라면 피할 수 있었을 텐데 왜 안 피했어요?” “나도 양심이 있지 그걸 피할 만큼 못된 놈 아니야. 이번에는 맞을 짓을 한거잖아. 그러는 너야말로 내가 피하는 방법 가르쳐 줬잖아. 왜 안 피했어?” “저도 같은 이유입니다.” “아야야. 티아양 펀치 꽤나 위력이 좋은걸. 이거 턱이 부서지는 것 같은 느낌이야. 하지만 처음으로 티아양이 오빠라고 불러줬으니 기분 은 좋은걸.” 쓰레기통에 쓰러져 있으면서도 티아 누나가 시이터를 순간적으로 오빠 라고 불러준 것이 꽤나 기분 좋은지 싱글벙글 웃었다. ‘어쩐지 정말 열 받는데……. 왜 열이 받는지 이유를 모르겠단 말이 야.’ 나는 누나가 결국 시이터를 오빠라고 부른 일과 그것 때문에 누나한테 맞아 놓고도 싱글벙글거리는 시이터에게 화가 났다. 왜 화가 나는지는 모르겠지만……. 30화 시이터의 정체(2) 간신히 울음을 그치고 약간 훌쩍거리는 누나를 데리고 여관으로 왔을 때는 해가 지고 난 뒤였다. 여관이 남아 있다는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 했지만 곧 여관에서 제시하는 천문학적 여관비에 비명이 나오려는 것 을 참아야 됐다. ‘이거 한바탕 난리 나겠군.’ 시이터의 가격경쟁력(?)에 대해서 이가 갈리도록 경험했던 나는 한숨 부터 쉬었지만 내 걱정과는 달리 시이터는 순순히 돈을 냈다. “뭐해? 어서 올라가자. 자 티아도 이제 그만 눈물 닦아.” “훌쩍. 네.” 시이터가 건네준 손수건으로 내내 흐르는 눈물을 훔치던 누나는 아까 너무 울어서인지 목소리가 잠겨 있었다. 그건 좋은데 말이야. 왜 아까 부터 누나는 시이터의 손을 잡고 있는 거지? 레이르의 필사적인 달래기 덕분에 어느 정도 울음을 그친 누나를 시이 터가 손을 잡아서 일으켜 준 다음에 내내 손을 잡고 왔기 때문이긴 하 지만 내가 아는 평소 누나라면 손잡은 것만으로도 마법 연발을 날리고 남았을 누나이다. 아무리 시이터와 여행하는 동안 변해간다고는 하지만 아까 그 일(?)이 있고 난 뒤부터 누나의 변화는 파격적이었다. 덕분에 난 이유 없는 분 노를 계속 느껴야 됐다. “귀신같이 물건 값을 깎던 짠돌이 시이터 씨답지 않네요. 아까는 왜 물건 값을 안 깎았어요?” 결국 분노는 내 이성을 마비시켜서 내 마음과는 정 반대로 시이터를 비꼬는 말을 내뱉었다. 내 투정에 시이터는 화를 내기는커녕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해 줬다. “여기는 전쟁 때문에 피해를 입은 지역이야. 그러니 그 정도 여관비 도 어떻게 생각하면 싼 거야. 아무튼 먼저 방에 들어가서 쉬어라. 난 잠시 쓸만한 정보가 있는지 알아보고 올 테니.” 시이터는 나에게 방 열쇠를 건네주고는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 어쩐지 쓸쓸해 보이는 시이터의 표정에 괜히 짜증을 부렸던 내 자신이 싫어졌 다. 나도 모르겠다. 내가 요즘 왜 이러는지……. 누나와 레이르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누나는 정령을 불러서 얼굴을 씻더니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말끔한 얼굴로 눈을 빛냈다. 저건 저거대로 대단한 변화다. 평소 모습으로 돌아온 누나의 정신없는 변신에 내가 혀를 내두르고 있 을 때 누나가 날카로운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말했다. “테이야. 그 인간이 준 검 이리 줘봐.” “에?” 그 인간? 시이터를 말하는 건가? 시이터가 준 검이라면……. 아니 정 확히 표현하면 빌려준 검이지. 난 아름답고 너무나 - 수식어가 점점 더 붙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 멋진 마법검을 꺼내서 누나에게 건네 줬다. 마법검을 받아든 누나는 검을 꼼꼼히 관찰하는가 싶더니 무언가 마법 을 검에 걸기도 하는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마치 검을 조사하 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뭐하는 거야?” “역시 그 인간 수상해. 아무리 생각해도 수상하다 싶었는데……. 아 까 전의 일로 확실히 느꼈어. 그 인간은 무언가 숨기고 있단 말이야. 그리고 이 검도……. 이건 인간이 만들 수 있는 검이 아니야.” “아까 전? 아아 키스한거 말이야?” “직설적으로 말하지 마!! 난 잊어버리고 싶은 악몽이란 말이야!!” 누나가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소리를 질렀다. 보통 때라면 이런 패 턴이라면 나는 찍 소리도 못하고 몸을 움츠렸을 것이다. 그런데 그 때 는 틀렸다. “헤에? 악몽? 그렇게 부르기 싫어하던 오빠라는 호칭으로 불러놓고는 뭐가 악몽이라는 거야?” “테이 너 왜 그래?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누나가 손에 마력을 모으면서 살기를 내뿜었다. 하지만 난 눈 하나 깜 빡하지 않았다. 아니 겁먹기는커녕 더욱더 누나에게 대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 누가 나 좀 말려 줘!! - “무슨 말을 하고 싶을 것 같아? 나도 모르겠는걸! 내가 아는 거라고 는 시이터의 손 붙잡고 졸래졸래 걸어가던 누나 모습이 참 보기 좋았 다는 것뿐이야!!” “웃기지마!! 붙잡고 싶어서 잡은 건 아니야!! 뿌려 치고 싶은 것을 꾹 참았던 거란 말이야!! 왜인지 줄 알아? 그 녀석의 진짜 정체를 알 고 싶어서야!!” “진짜 정체? 시이터의 진짜 정체가 뭔데?” “나도 그걸 모르겠단 말이야! 아까 전에 키……. 아. 아무튼 그걸 당 했을 때 분명 이상한 느낌이었어!! 그런데 손을 잡고 확인해보니 인간 이 확실했단 말이야!!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단 하나 확실한 것은 그 인간은 무언가 숨기는 게 있어!!” “그 인간 정체라면 나도 알 것 같은데!!” “뭔데?” “누나의 새 애인!! 이상한 느낌이라는 것도 분명 사랑의 예감이겠지! ! 하 이래서 여자들이란……. 좋으면 그냥 좋다고 하지. 그런 쓸데없 는 자존심 때문에 인정하기 싫다고 진짜 정체니 뭐니…….” -철썩 “꺄악! 티아님! 테이님!” “어?” 난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내 눈에 보이는 것 은 눈물을 흘리며 손바닥을 치켜둔 누나의 모습만이 흐릿하게 보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난 정신이 번쩍 들었다. 누나한테 뺨을 맞은 것이 다. 지금까지 누나한테 많이 맞았었다. 하지만 손바닥으로 뺨을 맞은 것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날 때린 누나가 울고 있는 것도 처음이었고 ……. 우리 남매 사이에서 어쩔 줄 모르는 레이르와 울고 있는 누나의 모습 을 보면서 난 주먹을 꾹 쥐었다. “나 바람이나 쐬고 올께!!”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던 나는 문으로 나가서 내려가는 시간도 아까워서 창문을 열고 뛰어 내렸다. “테이님!” 놀란 레이르가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고, 밑에 지나다니던 사람들이 내가 뛰어 내리는 것을 보고 비명을 질렀지만 난 신경을 끊고 달렸다. 추악한 마음이 날 지배하는 것 같은 느낌에 참을 수가 없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계속 달렸다. 주위의 풍경이 쏜살같이 내 뒤로 사라져 갔다. 사라져 갔는데……. 어째 아까부터 주위 풍경이 정지해 있는 것 같고 몸이 공중에 뜬 느낌 이 든다. “너 지금 어디 가는 거냐?” “시이터씨?!” 언제 나타났는지 시이터가 내 뒷덜미를 붙잡아서 날 통제로 들고 쳐다 보고 있었다. “이거 놔요!!” “내 질문에 먼저 대답해. 어디 가는 거냐?” “......바람 쐬려고요.” “호오 바람이라.” 시이터는 손으로 턱을 만지면서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고 있었 다. 평소 보던 미소였지만 지금은 시이터의 얼굴조차 보기 싫어서 난 시이터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다. “이거 놔요!!” “나도 마침 바람 쐬러 가는 길이니 같이 가자고.” “난 혼자 있고 싶다고요!!” “그럴 수야 없지. 자자 저기 마을밖에 경치 좋은 언덕이 있던데 거기 로 가자고.” “알았어요! 같이 갈게요! 그러니 이것부터 놔줘요!!” 지금 시이터는 날 옆구리에 끼고 그대로 걷고 있었다. 덕분에 주위에 서 ‘전사 양반이 귀여운 여자를 납치해 간다.’는 말들이 들렸다. ‘난 남자야!!’ 나는 다음에는 반드시 키 크고 멋있게 폴리모프할거야 라는 다짐을 다 시금 하면서 필사적으로 발버둥쳤다. 이 인간 왜 이렇게 힘이 센 거야 ? 아니 내가 너무 가벼운 건가? “이거 놔 달라고요!!” “테이군.” “에?” “얌전히 안 있으면……. 키스한다.” “헉!!” 난 키스라는 소리에 손으로 입을 재빨리 막고 얌전히 있었다. 주위에 서 ‘역시 강제로 납치해 가는가 봐요. 어떡해요?’ ‘눈 마주치면 안 돼. 우리도 잡아갈지도 몰라.’라는 수군거림을 들으며 난 한숨을 내 쉬었다. ‘난 남자란 말이야! 근육은 없지만 머리도 짧은데 왜 날 남자로 안 봐주는 거야! 더구나 바지 입었잖아!!!’ 테이가 뛰쳐나가고 - 아니 떨어지고 라고 해야 되나? - 난 뒤에 자리 에 주저앉아서 울먹이는 티아를 달래면서 레이르는 혼이 빠지는 기분 이었다. 여기까지 오면서 무언가 위태로운 유리 길을 걸어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지만 그 유리 길이 이렇게도 쉽게 부서질 줄은 몰랐다. 아직 티아와 테이 그리고 시이터의 사이에 대해서 완벽하게 파악하지 못한 레이르는 그저 시이터가 티아에게 마음이 있고, 티아는 그런 시 이터를 싫어하고 테이는 티아를 무서워한다고 멋대로 결론지은 상태였 다. ‘설마 테이님한테 시스터 콤플렉스가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어.’ 나름대로 지금의 사태에 대해서 고민한 레이르의 결론은 여전히 잘 못 짚고 있었다. 그렇다고 레이르를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레이르 는 티아의 마음을 모르고 있는 상태이니깐. “흑흑흑. 때렸어. 내가 테이를 때려버렸어. 아앙! 내가 테이를 때려 버렸어!! 어떡해?! 아아앙!!” ‘매일 패는 게 일이었잖아요!’ 라고 소리 지르고 싶은 것을 레이르는 간신히 참으며 계속 티아를 달 랬다. 지금까지 마법이나 주먹으로 패던 때와는 달리 여자가 남자를 손바닥 으로 뺨을 때린다는 것은 의미가 컸다. 그 의미는 ‘너 따위는 정말 꼴도 보기 싫어’라는 여자들만의 무언의 행동. 불행히도 남녀 사이에 관해서는 아직 서투른 레이르는 그 사실을 모르 기 때문에 테이를 때렸다고 우는 티아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저 울 고 있는 티아가 안쓰러워서 어떡해서든 울음을 그치게 만들려고 노력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울고 있는 상대가 왜 우는지 그 이유를 정 확히 알아야 달래도 효과가 있는 법. 불행히도 티아가 우는 정확한 이 유를 모르는 레이르가 아무리 애를 써봐야 아무 소용없었다. 결국 달래다 지친 레이르는 충격 요법을 쓰기로 했다. “티아님 그만 우세요. 이번 일은 테이님도 잘 못 한거잖아요. 티아님 한테 애인 좀 생긴 것 같고, 그렇게 삐진 건 테이님이 잘 못한 거예 요.” “훌쩍. 내 애인이라니?” “시이터 씨요.” “그 인간은 내 애인 아니야!!!” ‘효과 만점~.’ 레이르의 생각대로 티아는 단번에 울음을 그치고 화를 냈다. 레이르는 우는 사람 달래기는 역시 급격한 감정 변화를 주는 거라는 생각을 하 며 이번에는 티아의 화를 가라앉히기 위해 물었다. “그런가요? 하지만 테이님 말씀에도 일리는 있다고 생각해요. 아까 전에 두 분이서 손을 잡고 나란히 걷는 것을 뒤에서 보던 저는 가슴이 두근거렸는걸요. 아 참 사이좋은 커플이라는 느낌을 받았는걸요.” “아까 전에도 말했지만 그건 그 인간한테 이상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 이야!” “키스했을 때요?” “키스라는 말은 하지 마!!” “네. 네 알겠어요. 그런데 무슨 느낌을 받으신 건데요?” 레이르의 마지막 질문에 티아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너무나 급격하 게 얼굴이 굳으면서 심각해지는 티아를 보면서 레이르도 뭔가 이상하 다는 것을 눈치 채고 긴장을 하면서 다시 물었다. “뭐를 느끼셨어요? 뭔가 안 좋은 느낌이라도…….” 레이르의 재촉에 티아의 입이 간신히 열렸다. “그게 확실하지 않지만 그 시이터라는 인간……. 마력이 이상해.” “네?” “음 먼저 이것부터 설명해야겠구나. 보통 인간은 미약하게 마력의 힘 이 있어. 그 힘은 수업을 쌓는데 따라서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하 지. 육체를 주로 연마하는 전사는 마력이 거의 제로고 마법사는 마력 이 많다. 이 정도는 알고 있지?” 레이르도 그 정도는 수업을 해서 잘 알고 있었다. 레이르가 고개를 끄 떡이자 티아는 잘 됐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따로 더 설명할 필요 없구나. 아까 순간적이긴 했지만 그 인간 과 키……. 아무튼 그걸 당했을 때 그 자에게서 마력을 느꼈어.” “에? 전사라도 마력이 남아 있을 수도 있잖아요.” “그런 마력이 아니야. 뭐랄까? 그래 깊이가 있다고 표현할 수 있겠 다.” “깊이?” “그래 깊이. 얕은지 깊은지 알 수 없는 호수 같은 느낌의 마력이었단 말이야!” “그럼……. 시이터 씨는 인간이 아니란 말인가요? 혹시 드래곤?” “나도 그런 생각을 했어. 그래서 내내 시이터가 잡은 손을 뿌리치지 않고 조사했던 거야. 그런데 더 이상한건 아무리 조사해도 그 인간에 게서는 마력이 느껴지지 않아. 평범한 전사의 전형적인 마력. 즉 마력 이 몸 안에 하나도 없어.” “티아님이 잘 못 느끼신 것 아닌가요? 키스…가 아니고요! 아무튼 그 거 때문에 충격을 받아서 잘 못 느낀 거라던가 뭐 그런 거 아닐까요? ” 레이르는 키스라는 말을 하다가 티아가 도끼눈을 뜨고 노려보자 급히 키스라는 단어를 얼버무렸다. 레이르가 속으로 ‘역시 티아님이 화내 면 무서워.’하고 울상을 지을 동안 티아는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그때 내가 느낀 것은 마력이었어. 그리고 또 하나 이상한 점.” “뭔데요?” “테이가 받은 이 검은 아무리 생각해도 인간이 만들 수 있는 검이 아 니야.” “그거 고대인이 만든 검이라면서. 고대인은 지금 우리보다 마법이 더 발달해 있던 건 아닐까요?” “만약에 그렇다면 고대인들은 우리 드래곤보다 마법을 더 잘 쓴다는 소리야. 아무리 인간들의 마법이 발달해 있는 시대가 있었다고 하더라 도 이 마법은 우리가 쓰는 마법과 상당한 차이가 있고, 검이 내포한 마법의 크기도 커. 마치 드래곤의 마력을 품은 검이야. 그런 검을 과 연 인간들이 만들 수 있을까?” 티아의 설명에 레이르는 침을 삼키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역시……. 시이터 씨는 드래곤?” 레이르의 설명에 티아는 고개를 저었다. “나도 그런 생각을 해봤어. 하지만 시이터 그 자는 분명히 인간이 맞 아. 그래서 더욱 수상한거야.”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이대로 모른 척 하고 시이터 씨와 계속 다니실 건가요?” 티아는 마법검을 검집에 넣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이대로 계속 다니기에는 시이터의 정체가 무엇이든 간에 위험해. 그 인간이 돌아오면 확실하게 물어봐야지. 경우에 따라서는 우리 남매가 드래곤인 것을 밝히는 한이 있더라도…….” 티아는 마법검을 테이의 침대에 올려놓으며 문뜩 방안의 배치에서 이 상한 점을 발견했다. “레이르.” “네?” “그 인간 분명 방을 하나만 잡았지?” “네? 아 그게 방 값이 비싸기 때문이라고…….” “그럼 왜 방에 침대가 두개뿐이지? 우린 넷이잖아.” “이거 더블베드에요.” “더블베드?” 더블베드. 주로 신혼부부들을 위한 두 사람이 누워도 넉넉한 크기가 남는 침대를 뜻하는 말이다. 라고 사전 검색을 끝낸 티아는 얼굴을 붉 히며 화부터 냈다. “그럼. 테이가 그 정체 모를 녀석이랑 같이 자야 된단 말이야? 그건 절대로 싫어!” “그럼 테이님은 어디서 재우게요?” “그거야 침대 크기가 셋이 누워도 조금 남을 정도니……. 테이를 우 리가 데리고 자자.” “에에?! 남자랑 같이 자야 된다고요?! 싫어요!!” “걱정 마. 걱정 마. 테이는 엄청난 순동이라서 이상한 짓 할 용기도 없는 녀석이니 안심해도 돼.” “그래도.” “그럼 귀여운 봉제 인형 안고 잔다는 생각하면 되잖아.” 레이르는 잠시 티아와 닮은 하지만 예쁘다는 말보다는 귀엽다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테이의 얼굴을 생각하면서 고민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생각하니 같이 자도 문제없을 것 같네요.” 테이가 들었다면 문제가 엄청나게 많을 발언이었다. “그렇지? 그럼 오늘 밤은 그렇게 하기다.” “네.” 시원스런 레이르의 대답을 들으면서 이제 완전히 기분이 풀어진 티아 는 레이르와 수다를 떨면서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테이가 돌아오면 정식으로 사과해야지. 진심을 담아서……. 그리고 이번에는 절대 중간에 화내면서 주먹 날리지 말고 똑바로 사과할 거 야.’ 티아가 진심으로 더구나 어떠한 경우라도 주먹을 날리지 않겠다고 다 짐을 하고 있는 것은 테이에게 잘 된 일일 것이다. 하지만 티아에게 여전히 수면용 봉제 인형 취급을 당하는 것도 모자라서 레이르에게까 지 문제없음 판정(?)을 받은 것은 과연 잘된 일일까? 30화 시이터의 정체(3) 불에 그슬린 잔디밭에는 정체 모를 검은 얼룩(?)이 곳곳에 남아 있고, 여기저기 부러진 칼과 화살들이 굴러다니는 곳을 바라보고 있자니 내 입에서는 절로 성난 외침이 터져 나왔다. “도대체 여기가 어떻게 전망이 좋은 곳입니까?!!” 내 성난 외침에 시이터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씩하고 웃으며 변명을 늘 어놓기 시작했다. “그게 보통 이런 도시에서 마을 어귀가 보이는 언덕은 전망이 좋은 곳이거든. 난 그것만 생각하고 온 거였어. 전쟁이 휩쓸고 지나갔다는 것은 깜박했다.” “내가 왜 이런 기분 나쁜 곳에 와야 되는 거죠? 전 가겠어요!”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르고 그 자리를 뜨기 위해 걸음을 옮길 때 시이터 의 말이 날 붙잡았다. “이게 전쟁의 상처란 거다. 우리가 가는 길에는 싫어도 이런 곳을 많 이 보게 될 거야.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전쟁의 공허함을…….” “시이터씨?” 시이터는 어느새 예의 그 알 수 없는 진지한 표정으로 아니 약간은 슬 퍼 보이는 표정으로 주위를 돌아보며 말하고 있었다. 난 무언가에 묶 인 것처럼 그 자리에서 서서 시이터의 표정에 시선을 두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인간이란 존재는 항상 이렇게 살아왔어. 마치 싸움이 없는 시간은 견딜 수 없다는 듯이 항상 싸움과 함께 살아왔지. 정말 언제쯤이면 깨 달을까? 싸움으로서는 아무것도 얻는 게 없다는 것을…….” “.......” 내가 아무 대답도 못하고 그저 시이터의 말을 듣고만 있을 때 시이터 가 나에게 서서히 다가왔다. 그 압박감에 난 숨조차 제대로 못 쉬는 듯한 느낌이었다. 시이터는 내 얼굴을 그윽한 시선으로 - 아주 부담감 이 넘치는 시선이었다 - 쳐다보며 물었다. “그래. 왜 누나랑 싸운 거냐?” “에?” 압박감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시이터는 어느새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이 놈의 인간은 정말 사람 헷갈리게 하는 성격을 가졌다니깐!! 이러니 누나가 이상하다느니 정체를 모르겠다느니 하는 소리를 해대는 거겠 지. 그나저나 이 인간 누나랑 내가 싸웠다는 것을 어떻게 안거야? 부업으 로 점술가라도 했었나? “싸운 적 없어요! 지례 짐작 하지 마요!!” 난 시이터에게 사실대로 말하기 싫어서 둘러댔다. 하지만 시이터는 싱 긋 웃으며 똑같은 질문을 다시 했다. “왜 누나랑 싸운 거냐?” “싸. 운. 적 없어요!” “그래? 그럼 왜 울린 거냐?” “울리고 싶어서 울린 게 아니에요! 누나가 멋대로 울었던 거라고요!! 헉?!” “역시 싸우다 울렸었군.” 이..이 능구렁이 같은 인간! 그제야 난 시이터의 넘겨짚은 말에 걸렸 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난 이왕 이렇게 된 거 솔직하게 인정하고 어떻 게 그 사실을 알았는지 물어 봤다. “어떻게 내가 울린 것이란 걸 안거죠?” “간단해. 첫째. 보통 너희 남매가 싸우면 항상 넌 죽도록 맞았는데 아까는 멀쩡하게 도망쳐왔잖아. 보통 때 같은 장난 싸움이 아니라는 것을 느낀 거지.” 장난 싸움이라니? 나한테는 목숨이 왔다 갔다 하던 싸움도 아닌 일방 적인 구타를 당했었는데. 그걸 장난 싸움으로 치부해도 되는 거야?! “둘째. 이게 가장 중요한 이유인데. 바로 너 뺨에 손자국. 보통 너희 남매가 싸울 때는 티아양은 항상 주먹 아니면 마법이야. 그런데 그 손 자국을 보면 뺨을 맞았군.” “흥! 어차피 평소 맞던 주먹보다 별로 아프지도 않았어요.” “하지만 손으로 뺨을 맞은 건 처음이니 충격 좀 받았겠지.” “.......” 난 점점 시이터가 틀림없이 족집게 점술가로 부업을 했을 거라고 굳게 믿게 됐다. “하지만 내가 뺨을 맞아서 충격 받은 거랑 누나가 울었던 게 무슨 상 관인데요? 아무 상관없잖아요! 혹시 몰래 와서 보고 있던 거 아니었어 요?” “너만 충격 받았을 것 같아?” “에?” 순간 시이터의 말을 이해 못한 내가 반문하자 시이터는 가만히 내 머 리를 두드리며 말했다. “여자가 남자 뺨을 때리는 것은 여자에게도 굉장히 충격적인 일이야. 여자가 손바닥으로 남자 뺨을 때리는 것은 ‘너 따위는 두 번 다시 보 기 싫어’라는 절교의 의미가 담겨 있거든. 그런데 네가 무슨 짓을 했 는지는 몰라도 티아양이 엄청나게 화가 나서 너 뺨을 때린 거야. 충동 적이었겠지. 그렇게 충동적으로 저지르고 난 여자는 후회하면서 울기 마련이야. 특히 티아양같이 마음이 여린 소녀는 더하지.” “누..누나가 마음이 여리다고요?! 시이터씨 눈 나쁘세요?” 내 어이없어하는 말이 뭐가 우스운지 시이터는 갑자기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이 인간 정말 콱 밟아버릴까? 카렌의 오두막에서 떠나고 난 뒤부터는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한군데도 없어. “너는 아직 모르는 것 같구나. 티아양은 겉으로는 강해 보여도 속은 한없이 여려. 깨지기 쉬운 유리 같은 마음이란다.” “못 믿겠어요.” 그런 약한 여자가 동생을 뭐(?) 패듯이 패는 이유는 대체 뭐야? “아마도 넌 지금까지 당해왔던 것 때문에 못 느끼는 거겠지. 아니 오 히려 너한테 필요 이상으로 강한 척 하는 것은 너한테만큼은 약한 모 습을 보이기 싫어서일지도 모르겠다.” “그 이유가 아주 궁금하군요.” 그 이유만 알면 앞으로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넘나들지 않아도 되겠 지. “글쎄다. 마치 너한테 뭔가를 들키기 싫어하는 것 같던데. 뭐 그게 뭐든 간에 중요한 것은 어째든 남자가 여자를 울리면 안돼.” “그건 알아요!! 나도! ……나도 후회하고 있단 말이에요. 그러니 시 이터씨가 말 안 해도 안다고요. 어떡해야 될지는…….” “어떡해야 되는데?” “.......” 꿀 먹은 벙어리가 된 나에게 시이터는 끊임없이 ‘어떻게 할 건데?’ 라며 노래를 불렀고 결국 항복한 나는 소리를 질렀다. “사과하러 갈 겁니다!!” “언제?” “지금 당장! 은 무리고……. 조금 있다가요.” 시이터는 쿡하고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잘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곳에서 시간 때우기는 무리겠지?” 나는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은 벌판을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시 이터의 말에 동의했다. 우리 둘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마을의 주점 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곳에서 맥주를 시켜서 조용히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술을 마셨다. “시이터씨 진짜 정체가 뭐죠?” 보통 때라면 하기 어려운 질문이지만 술 몇 잔이 들어가자 얼큰한 것 이 기분이 좋아진 난 아무 생각 없이 물어보았다. 그런데 반응이 정말 가관이었다. 시이터는 마시던 술잔을 쾅하고 소리 나게 탁자위에 내려 놓으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떨리는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그..그걸 어떻게 안거냐? 지금까지 잘 숨겨 왔는데…….” 시이터의 방금 전 행동은 누나가 완전히 잘 못 짚은 게 아니라는 생각 을 들게 만들었다. 덕분에 난 완벽하게 누나한테 잘 못했다는 것을 재 확인하는 꼴이 된 것이다. 아무튼 그 건은 남자답게 화끈하게 사과하기로 했으니 - 실은 말할 용 기가 없어서 술 마시는 중이지만 - 넘어가고, 그것보다 어쩌다 우연히 맞춘 거지만 시이터의 입으로 실토한 그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되도 록 날카롭게 다시 물었다. “어느 정도는 눈치 채고 있었습니다. 말하세요. 당신의 진짜 정체를 …….” 내 진지한 눈을 정면으로 쳐다보던 시이터는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결 국 항복의 한숨을 내 쉬었다. 오오! 이거 생각지도 못하게 중요한 일 한건 처리한 느낌이다. “테이군이 다 알고 있다면 티아양도 눈치 챘겠지. 그래 솔직히 말하 마. 내 정체는…….” “시이터씨의 정체는?” “내 정체는 사랑과 정의를 지키는 시이터맨~~ 이다!!” “.......” 저거 웃자고 한 농담이겠지? 분명 웃자고 한 농담일 거야. 그런데 난 왜 이렇게 추운 걸까? “장난 하자는 겁니까?!” “장난이라니 난 진지해.” “손을 위 아래로 흔들다가 제자리에서 뱅글뱅글 돌면서 시이터맨~~ 이라니?! 그게 어딜 봐서 진지한 겁니까?!!” “나한테는 이게 진지한건데.” 하아 말을 말자. 정말이지 시이터 이 인간은 은근슬쩍 넘어가는 것에 는 누나보다 더 고단수 같다. 결국 시이터한테 아무것도 건진 게 없는 나는 화를 삯이면서 새로 나온 술잔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근데 이거 아까보다 더 쓴 것 같은데 착각인가? 시이터가 ‘내 헬파이 어!’라고 소리치는 걸 봐서는 이거 시이터 술인가 보네. 뭐 어때 쓰 지만 맛있으니 계속 마시자. 그렇게 헬파이어란 술을 한잔을 다 비울 때 누군가가 내 뒤에서 시비를 걸어왔다. “어이! 거기 자네 미성년자 아니야?” 후후후. 이거 오늘따라 일이 꼬이려니 확실히 팍팍 꼬이는구나. 오늘 따라 왜 이렇게 시비 거는 놈들이 많은 거야?! “이 얼굴 어딜 봐서 미성년자로 보이냐?!” 내 성난 외침에 날 보고 미성년자 운운하던 남자가 유심히 내 얼굴을 관찰하더니 말했다. “미성년자 맞네. 미성년자 음주는 금지다. 아무리 나라가 혼란스럽더 라도 지킬 건 지켜야지! 그게 진정한 다이러스 제국의 젊은이다. 알겠 나?” “미안하지만 난 성년이고 그리고 다이러스 제국 사람도 아니야!!” “어? 그럼 도대체 어느 나라? 설마 가이라가 왕국의 첩자?! 이봐! 수 상한 놈이다!” 어라? 이제 보니 나한테 어린 것이 어쩌고 하던 인간은 다이러스 제국 병사들이었다. 저기요, 저기 전방에서 전쟁이 한창일 텐데 왜 여기 오 셨나요? 그렇게 물어 볼 상황이 아니었기에 난 이것들 다 쓰러트리고 확 튀어 버릴까? 아니면 그냥 얌전히 잡혀주고 적당히 둘러댈까? 하는 고민을 했다. 그런데 평소라면 금방 후자를 선택했을 나였지만 그때는 이상하 게 전자를 선택하고 싶은 욕망이 내 가슴속에서 무럭무럭 커갔다. 이 것도 술의 힘인가? 이 기회에 술김이라고 말하고 깽판이나 치면서 스 트레스나 풀어? 시이터는 검을 뽑을까 말까하는 내 생각을 눈치 챘는지 내 손을 잡으 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일어나서 병사들에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오해가 있는 것 같군요. 여기 제 파트너는 얼굴은 동안이지만 분명 한 성인입니다. 자주 오해를 받아서 스트레스가 쌓여서인지 애 취급하 면 금방 울컥하니 이해해주십시오. 그리고 저희들은 오리하곤에서 온 용병들입니다. 여기 신분증명서입니다.” 시이터가 품속에서 종이 한 장을 - 저게 신분증명서인가? - 꺼내서 병 사들에게 건네주자 병사들은 신분증명서를 유심히 살펴보더니 곧바로 탄성을 질렀다. “초특급 용병 앤드?! 오직 몬스터 퇴치와 보디가드만 맡고, 그 실력 은 데스타 제국조차 혀를 내두르며 천문학적 돈으로 기사로 끌어들이 려고 했던 그 앤드란 말이요?” “그렇습니다.” ‘앤드?’ 어라 시이터가 앤드라니. 그럼 앤드가 시이터고, 앤드는 초특급 용병 이라고 했으니 시이터는 초특급 용병이고 초특급 용병은 앤드인가? ‘내가 지금 뭐라고 중얼거리는 거야? 술이 좀 많이 들어갔나? 아! 그 러고 보니 나 술은 오늘 처음 마시는 거였지. ……헤헤헤 술이란 좋은 거구나.’ 그렇게 술맛(?)을 알아버린 내가 오락가락하는 정신에 몸을 맡기고 즐 거워(?)할 때 시이터와 병사들이 몇 마디를 나누더니 병사들이 좋은 일거리가 있다며 어떤 종이를 시이터에게 건네줬다. 병사들이 가고 난 뒤 난 술 때문인지 자꾸 졸음이 오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물었다. “그게 무어에요?” 어라? 그게 뭐예요? 라고 물어보려고 했는데 말이 이상하게 나간다. 아아! 술이란 신기한 것이구나. “이걸 봐라. 큰일 났다.” “무기레 크일이 나아닸구 흐끅. 나니에요?” 여전히 내가 들어도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힘든 말을 내뱉으며 시이터 가 건네주는 종이를 받아 들면서 물었다. “그데 애드라는 이르므은 또 무어에요? 우헤헤헤헤 이사하안 이르므. ” “이 녀석아 정신 좀 차리고 그거나 빨리 읽어봐! 카렌씨와 제임스씨 가 큰일이 났어!” “에?!” 카렌이라는 이름에 내 머릿속에서 순식간에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소리 를 듣는 듯한 착각을 느끼면서 내 정신은 재빠르게 원상 복귀했다. 그 리고 시이터가 준 종이를 맨 정신으로 읽었다. [레이르에게 제임스 아저씨와 카렌 아줌마 그리고 아이들은 성에서 보호하고 있다. 이 분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다이리 수도 성으로 돌아오길 바란다. 랑그람 로헨타이 1세] 마치 가출한 딸내미 돌아오라 라고 하는 듯한 센스 없는 문구는 제쳐 두고라도 카렌을 보호하고 있다는 글에 겨우 제정신이 돌아온 내 정신 은 빠르게 빠져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온 세상이 백지화가 된 듯한 착각에 빠졌다. 내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어느새 마을 밖에 나와 있었고 내 뒤에 서 시이터가 날 붙잡으며 필사적으로 소리치고 있었다. “테이군! 제발 정신 좀 차려!! 젠장 아까는 잘만 들리던데 이번에는 왜 이리 힘이 센 거야? 멈춰! 테이군! 제발 좀 멈춰!!” “이거 놔요!” “어딜 가려고 그래?” “구하러 갈 겁니다! 구하러 가는게 당연하잖아요!!” “혼자서 가서 무얼 하겠다고?! 일단 레이르와 티아양에게도 이 사실 을 알려야 돼!!” “혼자가도 충분해요!” “혼자 가서 어쩌려고? 브레스로 성 하나 아작 내면서 그들을 구할 생 각이냐?!” “성 하나 뿐입니까? 그 도시를 개 박살내는 한이 있더라도! 어?” “휴 겨우 멈췄군.” 멈출 수밖에 없었다. 시이터는 방금 브레스라는 단어를 내뱉었다. 내 가 브레스를 쓸 수 있다는 것 즉 내가 드래곤이라는 것을 시이터는 알 고 있었던 것이다. “다..당신 진짜 정체가 뭐야?! 이번에는 장난 칠 생각 하지 마! 진짜 정체를 말해!!” 난 급히 검을 빼 들어서 시이터를 겨누며 소리쳤다. 시이터는 ‘아직 밝힐 생각 없었는데. 어쩔 수 없군.’ 이라는 말을 뱉으며 얼굴 표정 을 굳혔다. “정식으로 소개를 하지. 내 이름은 블랙시터. 카이저 블랙 드래곤 블 랙시터이다.” “카..이..저..드..래..곤?” 내가 미쳐 놀랄 틈도 안주고 갑자기 시이터의 표정이 급격히 변했다. 언제나 싱글벙글 웃는 이제는 시이터의 트레이드 마크 같은 표정으로 변한 것이다. “그리고 내 이름은 시이터. 폴 네임은 시이터 세도우 인스테랄. 흑룡 블랙시터님의 그림자이지.” “블랙시터님? 그림자? 카이저 드래곤? 시이터?” “테이군?” “도대체 뭐야!! 당신 정체가 진짜 뭐냔 말이야!!!” 30화 시이터의 정체(4) 지금 우리 앞에는 정체불명의 남자가 싱글벙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자신의 폴네임이 시이터 세도우 인스테랄이라고 밝힌 이 인간은 아까 전에 자신의 이름을 신룡님들 중에 하나이신 흑룡 블랙시터님이라고 했다. 물론 나는 그 거짓말을 믿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그가 블랙시터 님의 이름을 말했을 때 나는 생전 처음 느껴보는 압박감에 몸이 떨렸 었다. “그럼 내가 설명하도록 하지.” 방금 전까지 싱글벙글 웃던 시이터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그리 고 아까 전에 시이터에게서 느꼈던 압박감을 다시 느꼈다. 나만 그런 게 아닌지 누나와 레이르도 몸을 경직한 체 움직일 줄 몰랐다. “아 실례. 역시 힘을 개방하면 안 되겠군.” 시이터가 - 블랙시터님? - 또 다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고는 잠 시 눈을 감았다가 뜨자 압박감은 사라졌다. 겨우 편하게 숨을 쉴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압박감이 사라졌다고 해서 위압감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이것이 가장 신에 가깝다는 신룡님들의 존재감인가?’ 과거 로드님들에게서도 엄청난 위압감을 받았지만 신룡님의 위압감에 비하면 뭐 그 정도쯤이야 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물어보고 싶은 것은 많았지만 무엇을 물어야 될지 감은커녕 입을 열 생각도 들지 않 았다.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는데 신룡님이라고 말하시는 당신 정체는 도대체 뭐죠? 아무리 이리저리 뜯어봐도 인간 같은데요.” 역시 우리 누나답다고 해야 되나? 저런 위압감 속에서도 꿋꿋하게 질 문을 던지는 것도 모자라서 버릇없는 말투라니. 하지만 그런 누나를 황당한 눈으로 바라보던 나는 곧 누나의 몸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는 것을 보았다. 그것만이 아니라 이마에도 약간의 땀이 맺혔고, 얼굴도 약간 상기되어 있었다. ‘우리 누나야 말로 더 퀸 오브 자존심녀의 호칭을 부여해도 되겠다. ’ 그런데도 신룡님 앞에서 의연한 자세를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누나를 보면서 내가 혀를 내두르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블랙시터님의 - 시이터? - 본격적인 설명이 시작됐다. “일단 티아양의 말대로 이 몸의 주인인 시이터는 인간이란다. 이 자 는 대대로 우리 신룡들의 그림자 역할을 하는 가문의 인간이란다.” “그림자 역할이라고요?” “그래. 우리를 대신하는 자들이라고나 할까? 세도우 인스테랄이라는 가문은 우리 프론트 연합국의 여섯 나라마다 하나씩 다 있단다. 그들 가문은 옛날부터 우리가 자리를 비우는 사이에 우리를 대신하는 역할 을 수행했지. 또는 다른 나라에 갈일이 생기면 우리 자신이 직접 가는 것보다는 이들을 보내고는 했단다.” “저기 그럼 지금 말씀하시고 계시는 블랙시터님은 지금 프론트 연합 에 계신건가요? 지금 말씀하시고 계신 것은 마법으로 말씀하시는 거죠 ?” 누나 다음으로 레이르가 용기를 냈는지 조심스러운 말투로 궁금한 것 을 물어봤다. 블랙시터님은 - 지금은 시이터가 아닌 거겠지? -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절반만 맞았구나. 내 몸은 프론트 연합국에 있는 것이 맞다만 지금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은 마법이 아니란다. 공존이라고 말하면 알아듣겠 니?” “공존이요?” 이번에는 내가 용기를 내서 반문했다. “그래 공존. 내 영혼의 일부를 시이터의 영혼에게 동의를 구해서 그 의 몸에 내 영혼을 집어넣은 것이지. 그렇게 이 시이터의 몸에는 그의 영혼과 나의 영혼이 같이 공존하고 있는 거란다. 지금 너희들에게 설 명을 해주고 있는 것은 시이터의 몸속에 들어가 있는 내 영혼의 일부 란다.” 블랙시터님의 설명에 우리 셋은 떡하니 입을 벌리며 놀랐다. 세상에나 일부라고는 하지만 신룡님의 영혼을 가진 인간이라니……. “그..그게 가능한거에요?” 의연한 태도를 유지하던 누나도 지금만큼은 평정심을 잃고 당황하며 물었다. 그런데 누나가 질문을 하자마자 블랙시터님에게서 뿜어져 나 오던 위압감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가능해. 난 조금 특이한 인간이거든. 아니 정확히는 우리 가문이 특 이하다고 말하는 게 맞는 말이겠다.” 우리 셋은 잠시 침묵을 유지하고는 누나가 대표로 입을 열었다. “지금 당신은 시이터씨?” “앗! 너무해 시이터 오빠라고 부르기로 했잖아! 자 저번에 부른 대로 불러봐. 시이터 오빠라고 다정하게 말이야.” “이..이…….” “이? 이가 뭔데?” “입 닥쳐! 이 바람둥이 인간아!!” “recall(소환)!” 얼음의 화살들이 누나에 의해 소환되고 시이터는 - 지금은 블랙시터님 이 아닌 것 같다 - 그 멋있는 마법검을 소환해서 누나의 마법들을 막 았다. 하지만 누나는 금방 얌전해졌다. “저기 하던 이야기를 계속 해도 될까?” “블랙시터님?!” 시이터의 인격 대신 어느새 블랙시터님의 용격(?)이 나와 있었다. 누 나는 급히 남은 아이스 미사일들을 소멸시키고 블랙시터님은 - 블랙시 터님이 맞겠지? 헷갈린다 - 검을 거두었다. “미안하군. 티아양.” “아..아니에요. 잘못은 그 시이터라는 인간이 했는걸요. 블랙시터님 이 사과를 하시다니 당치도 않아요. 오히려 제가 추태를 보여드려서 죄송합니다.” 드물게 얌전한 모습의 누나를 보면서 아무리 누나라도 역시 신룡님 앞 에서는 어쩔 수 없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됐다. ‘결국 누나보다 강한 자는 존재했었구나.’ 라는 당연한 이치를 이제야 깨달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조금 불만은 생겼다. 누나는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고.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배배 꼬는 둥 어쩔 줄 몰라 하는 행동을 하고 있었다. 마치 좋아하는 오빠에게 고백 하려고 쩔쩔매는 소녀 같은 누나의 모습에 난 배알이 뒤틀리는 느낌을 받았다. 참다 참다 못 참은 나는 누나를 확 끌어 당겼다. - 누가 제발 나 좀 말려줘!! 몸이 말을 안 들어!! - 갑작스럽게 잡아 당겨서인지 누나는 균형을 못 잡고 내 품에 쓰러지듯이 안기며 짧은 비명을 질렀 다. “꺅!” “하던 이야기 계속하죠.” 나에게도 이렇게 뻔뻔스러움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불순한 말투였다. 신룡님 앞에서 게기는 어린 드래곤이라……. 나도 드디어 미쳤군. 아니 그만큼 누나의 뻔뻔함에 전염된 건가? “호오. 누나 생각이 대단하다니깐. 보세요! 블랙시터님 제 말대로 테 이군은 시스터 콤플렉스 끼가 좀 있죠?” “어? 시이터씨?” 어느새 시이터 씨의 인격이 나와 있었던 거지? 아니 그것보다는 시스 터 어쩌고 하는 소리에 나는 화들짝 놀라서 누나를 안은 손을 풀었다. 인정 못해. 시스터 콤플렉스라니 절대 인정 못해! 하지만 아직도 얼굴 을 빨갛게 물들이고 있는 누나를 보자 여전히 열 받는 느낌이 계속 드 는데……. 혹시 나 진짜로 시스터 콤플렉스인가? “자..잠깐만 시이터! 내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 “어머?! 이번에는 블랙시터님?” 다시금 위압감이 우리를 짓눌렸다. 아까는 잘도 이 위압감 앞에서 당 당하게 떠들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아까전의 내 행동을 나도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입이 근질거려서 참을 수 없는 걸요. 가끔 가다가 끼어들기 만……. 그러니깐 내 말이 끝날 때까지만 얌전히 있어다오……. 우우, 블랙시터님은 너무해……. 자꾸 이러면 아이들이 정신을 못 차릴 것 아닌가!!” 인간과 신룡이 몸 하나를 놓고 주도권 싸움을 보면서 나와 누나는 동 시에 대답했다. “이미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게 됐어요.” 31화 카나리아(1) 둘의 싸움이 블랙시터님의 승리로 결정되고 난 뒤에야 겨우 제대로 된 이야기를 다시 나눌 수 있게 됐다. 위압감은 여전했지만 아까 전에 위 압감을 느꼈다 못 느꼈다를 반복했더니 몸이 익숙해진 것 같다. 아까 만큼 답답한 느낌은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기 원래 세도우 인스테랄 가문 사람들은 다 이런가요?” “아니 시이터가 조금 특이한 것이란다. 그는 다른 세도우 인스테랄 가문 사람과는 달리 굉장히 자유로운 의지를 가진 자지. 근데 그 자유 로움이 너무 심해서 이렇게 내 의지에 상관없이 자기 하고 싶은 말을 내 뱉는 경우가 좀 많단다.” “한마디로 자기 하고 싶은 것은 다 해야 속이 시원하다는 성격이군 요.” “뭐. 나쁘게 말하면 그렇게 표현할 수 하지만 그래도 그는 다른 이에 게 폐를 끼치는 행동은 안한단다.” 블랙시터님이 시이터를 두둔하자 누나는 불만이 가득한 얼굴을 옆으로 돌리며 ‘그럼 날 울린 것은 대체 뭐야?’ 라는 소리를 중얼거렸고, 덕분에 블랙시터님은 땀을 삐질, 삐질 흘리시며 헛웃음을 흘리셨다. “지금은 조용하네요. 안 나오기로 합의 보신건가요?” 내 질문에 블랙시터님은 조금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저으셨다. “그게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아서 조금 미안하지만 그의 정신체는 묶 어뒀단다. 한동안은 조용할거야.” “.......묶어 두셨다고요?” “그렇단다.” 난 정신체가 묶인 모습을 되도록이면 상상 안하기로 노력했다. 하나의 몸에 두개의 정신체가 말싸움을 하다가 한 쪽을 묶어버리는 모습이라 니……. 지금까지 내가 상상하던 신룡님들의 이미지가 완전히 망가지 는 기분이다. ‘아악! 생각하지 말자고 마음먹었는데 왜 생각한거야!! 이미지가! 이 미지가아! 아 생각해보니 누나가 카이저 드래곤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부터 내 마음속의 신룡님들 이미지가 깨진지 오래였지. 그렇게 충격 먹을 일은 아니구나.’ 나는 현실도피를 하면서 충격을 간신히 완화시키고는 궁금한 것을 물 었다. “저기 왜 우리한테 오신 거죠? 어차피 저희들이 찾아 갈 생각이었는 데요.” “당연한 것을 묻는구나. 너희들이 빨리 보고 싶어서 내가 대표로 온 거야. 이상하게 좀 늦게 온다 싶어서 상황을 보러 온 거였지.” “그럼. 배고파서 쓰러 진 것은…….” 난 시이터와 처음 만났을 때를 생각하며 땀을 삐질 흘리며 물었다. “그건 시이터의 실수였어. 시이터는 방향치거든. 내가 찾아 가겠다고 했는데 자신이 찾아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다가 그렇게 된 거였지.” “하하하.” 들으면 들을수록 시이터라는 인간이 정말 웃긴 인간이라는 생각을 갖 게 됐다. 그리고 그런 시이터의 몸속에 들어가 계신 블랙시터님이 한 없이 측은하게 느껴졌다. 어쩌다가 그런 그림자를 가지시게 된 건지… …. “그것보다 테이군 이건 어떻게 할 거냐?” “네?” 블랙시터님이 한 장의 종이를 꺼내자 난 깜빡 잊고 있었던 일이 기억 났다. “아아악!! 깜빡했다. 카렌!! 지금 구하러 갈께!” 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바로 밖으로 달려 나갔다. 하지만 그전에 누나에게 뒷덜미를 잡혀서 제지당했다. “무슨 소리야? 카렌이 뭐 어쨌는데?” “누나 나중에 설명할게 이것 좀 놔줘! 비상사태란 말이야!!” “비상사태?” “티아님! 이것 보세요!!” 블랙시터님에게 종이를 받아든 레이르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누나에 게 종이를 넘겼다. 그리고 종이를 받아 든 누나 역시 표정이 딱딱해지 더니 이를 갈았다. “이 놈의 로헨타이가 놈. 그냥 넘어가주려고 했건만 스스로 싸움을 걸었다 이거지? 두고 보자!” “그러니깐 이것 좀 놔줘! 구하러 가게!!” “혼자서?” “누나도 가게?” “당연한 것을 물어보면 맞는다.” “잠깐만 테이군. 그리고 티아양. 잠시 진정하고 내 말부터 들어주겠 나?” 블랙시터님이 지금 당장이라도 성에 쳐들어갈 태세를 잡고 있는 나와 누나를 말렸다. “아직 할 말이 있으신가요? 나중에 하면 안 될까요?” “자네들 지금 가서 그 카렌이라는 하프엘프를 어떻게 구할 작정이지? ” “브레스로 성을 아작 내고 빼돌리죠.” 블랙시터님의 질문에 나와 누나는 똑같이 대답하고는 똑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블랙시터님은 한숨을 쉬시면서 다시 물었다. “지금 이 나라가 전쟁 중인 것은 알겠지? 자네들이 그 인간을 싫어하 는 것은 알겠는데 그가 죽으면 이 나라는 전쟁에 지게 되는 것은 자명 한 사실이네. 그럼 레이르는 자신의 조국이 없어지는데 그래도 그 자 를 죽일 건가?” 블랙시터님의 질문에 곰곰이 생각하던 누나와 나는 손을 탁 치며 말했 다. “지금 쳐들어온 가이라가 왕국 놈들도 싹 쓸어버릴게요. 그러면 되죠 ?” 블랙시터님은 우리의 멋진 아이디어에 싱긋 미소를 지으셨다. 그 미소 에 답하기 위해 우리도 미소를 지을 때 무시무시한 불호령이 떨어졌 다. “이 바보 녀석들아!!” “으아악!!” “꺄아악!!” 누나와 나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갔고, 블랙시터님의 불호령은 계 속됐다. “생명을 그렇게 하찮게 여기면 안 되는 것을 모르느냐? 너희들의 아 버지인 오스타인이 분명히 가르쳤을 텐데! 그리고 그 가르침은 곧 너 희 친할아버지인 카이저 레드 드래곤 가디락스의 가르침이자 우리 여 섯 카이저 드래곤의 가르침이다!! 그런데 그런 가르침을 받고 컸을 너 희들이 생명을 하찮게 여기다니 무엇을 배운 것이냐?!” 확실히 어릴 때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아빠와 엄마에게 배웠었다. 생명을 소중히 하라고……. 자연의 법칙에 따라 먹을 것을 구할 때 이외에는 재미로 생명들을 해 치면 안 된다고 배웠다. 하지만 그대로 지고 있을 내가 아니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됐는지는 모르지만 지금만큼은 언제나 누나 뒤에서 벌벌 떨 나는 없어지고, 용 기를 내서 블랙시터님에게 따졌다. “하지만 카렌은 저와 누나에게 소중한 하프엘프입니다. 소중한 이가 위험에 빠졌는데 모른 척 하는 것도 정의에 어긋나지 않나요?! 저는 저의 정의를 위해서 카렌을 구하러 가겠습니다.” “테..테이야.” 한마디도 못하고 꿀 먹은 벙어리같이 떨고만 있던 누나가 나를 놀란 눈을 쳐다봤다. 동생의 극적인 변화에 놀란 거겠지. 흠, 이것으로 누 나도 날 다시 봤겠지? “너 그렇게 죽고 싶어서 환장했었니?” “........” “어떻게 신룡님에게 바락바락 대들 생각을 다 했니? 어쩔 수 없구나. 누나 된 도리로 뼈는 잘 챙겨줄게.” 누나의 농담이라고 생각하고 싶은 말을 듣고 난 몸을 떨었다. 누나의 말이 농담인지 아닌지는 제쳐두고라도 내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누 나 말을 듣고 깨달은 것이다. 분노하고 계신 신룡님에게 바락바락 대 들다니……. 이 무슨 미친 짓이란 말인가?! “테이군.” “네? 넷!” 블랙시터님의 부르는 소리에 난 저절로 동작 그만의 차렷 자세를 취했 다. 아아! 이것으로 내 불행한 인생도 여기서 종착이구나. 안녕 정든 내 레어. 안녕 내가 수집한 마법검들이여. 안녕 내 보물들……. 그러나 내 걱정과는 달리 블랙시터님은 내 머리를 다독거려주며 부드 럽게 말했다. “소중한 자를 구하고 싶고, 지키고 싶다는 마음은 잘 못 된 마음이 아니란다. 그것이 너의 정의라면 정말 착하고 고운 마음을 가졌다고 몇 십번을 칭찬해도 모자라겠구나. 하지만 방법 선택이 틀렸단다. 그 렇게 막 나가지 않더라도 잘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단다.” “저기 어떤 방법이죠? 가르쳐 주세요.” 잠자코 듣고 있던 누나가 조심스럽게 물어보자 블랙시터님의 표정에 일순간 장난기가 흘러넘쳤다. “이렇게 하자구나.” “어떻게요?” 어쩐지 불안한 마음은 들었지만 그래도 묻지 않을 수없기에 물어보자 블랙시터님은 간단히 대답했다. “숙제로 하자구나.” “숙...제요?” “그래 숙제. 이 문제는 처음부터 너희 둘이 해결하려고 했으니 이제 부터는 둘 만의 힘으로 이 나라를 도와보렴. 나는 이제부터는 일절 너 희들의 일에 간섭하지 않으마. 하지만 시이터는 그대로 너희들을 도와 줄 생각이니 그와 함께 이 일을 멋지게 해결해 보렴.” “시이터는 끼어들지 못하게 해주시면 안 될까요?” 누나의 부탁에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시이터와 같이 한다는 것이 아무리 생각해도 불안했기 때문이다. “흠. 그건 시이터와 상의해보렴. 그럼 다음에 만날 때는 프론트 연합 국에서 내 본모습으로 너희 둘을 만날 날을 기대하고 있겠다. 아 그리 고 이건 자그마한 선물이란다.” 블랙시터님이 공중에 손을 휘젓자 목걸이가 나타났다. 새하얀 보석이 박힌 목걸이를 블랙시터님이 손수 누나에게 달아주면서 목걸이에 대해 서 설명했다. “마법의 효과를 증폭시켜 주는 역할을 하는 목걸이란다. 어차피 보통 드래곤보다 마력이 강한 티아양에게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목 걸이지만 예쁜 장신구라 생각하고 걸고 다니렴.” “아……. 가..감사합니다.” 누나가 뺨을 살짝 물들이며 감사의 인사를 할 때 나는 뒤쪽에서 혹시 난 아무것도 없는 건가 하는 불안한 생각에 빠졌다. 하긴 신룡님들이 만나고 싶어 하는 드래곤은 누나이지 난 아니었으니깐. 어차피 이 여 행도 누나의 반강제적인……. 아니지 말은 똑바로 하라고 했는데 똑바 로 해야지. 누나의 강제적인 협박에 의해 같이 하게 된 여행이니 신룡 님들에게 있어 나는 부록정도의 수준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한숨쉴 때 블랙시터님은 검을 하나 빼 들어서 나에게 건네줬다. “어? 이것은? 저..저 주시는 거예요?!” “그렇단다. 지금 네가 가지고 다니는 마법검의 이름은 엘리멘탈 소드 라는 우리 신룡들에게는 중요한 검이란다. 그래서 너에게 줄 수는 없 지만 대신 엘리멘탈 소드에 걸려 있는 마법과 똑같은 마법이 걸려 있 는 이 마법검을 너에게 주마. 이 검의 이름은 마무루의 검. 고대어로 지킨다는 의미를 담은 검이란다. 이 검으로 티아군의 정의를 지키는데 사용했으면 좋겠구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난 검을 받아들고 몇 번이고 허리를 숙이며 감사의 인사를 했다. 블랙 시터님은 마지막으로 인자한 미소를 지으시며 우리들을 하나하나 보시 고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블랙시터님이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블랙시터님도 너무하셔 묶는 것도 모자라서 입까지 막으실 필요는 없었잖아. 그렇게 생각 안 해 티아양, 테이군?” “시이터 씨군요.” “응 어쩐지 너무 오랜만에 보는 기분이구나. 너희들한테 할 말도 많 았는데 말 한마디 못하게 해서 얼마나 답답했던지……. 자자 우리 같 이 식사나 하면서 앞으로 해야 될 일에 대해서 진지하게 토론을 해 나 가자고. 아아, 배고프다. 시터님이 내 몸을 사용하고 나서는 꼭 배 가 고파 죽겠다니 깐. 여어 티아양 역시 그 목걸이 너무 예쁜걸. 하긴 티아양이 예쁘니 뭘 달아도 어울리는 게 당연하지. 티아군도 좋은 마 법검을 얻었으니 기분이 좋겠어.” 쉬지도 않고 놀리는 시이터의 수다에 그가 얼마나 말하고 싶은 것을 참았는지 설명 안 해줘도 잘 알 것 같은 기분이었다. ‘블랙시터님은 정말 이 인간을 자신을 대신하는 그림자로 하셔도 괜 찮으신 걸까?’ 라는 의문을 느끼며 평소대로 시이터가 자아내는 분위기에 휘말려서 그가 이끄는 대로 식당으로 끌려갈 때 누나가 시이터의 손을 ‘탁’소 리가 나도록 쳤다. “내 몸에 손대지 마! 네가 이미 인간인 것을 안 이상 더 이상 너에게 존댓말 쓸 이유도 없어! 그리고 이 일은 나와 테이가 알아서 해결할 생각이니 더 이상 참견하지 말아 줬으면 좋겠어!” 누나의 쌀쌀한 말투에 - 그 동안 쌓인 것이 많으니 당연한 거겠지? - 시이터는 약간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가 곧 그 특유의 싱글벙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티아양은 나보다 약하잖아.” “뭐가 어쩌고 어째? 해보자는 거야?! 그 동안은 블랙시터님의 힘으로 잘 막아낸 것 같다만 블랙시터님은 더 이상 참견하지 않는다고 약속 하셨어! 그러니 지금 너는 날 이기기는커녕 자기 목숨 부지할 걱정을 하는 게 나을 거다!” “너무하네. 나한테 반해 놓고는 그렇게 말하는 게 어디 있어?” 그 말에 난 갑자기 울컥하는 기분을 또 느꼈다. 하긴 그동안 누나가 시이터를 대한 것을 생각하면 시이터의 말은 사실일 거라는 생각이 들 었다. 그렇게 도도하고 강한 누나가 인간한테 반하다니……. 쳇 환상 이 또 하나 깨지는군. 누나라면 강하고 자존심 강한 드래곤이 짝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웃기지마!! 반하긴 누가 반해!! 아까 블랙시터님과 이야기하면서 확 실히 알았어!! 너 몸속에서 가끔 나오는 블랙시터님의 힘에 내 드래곤 하트가 반응을 했던 것뿐이야! 아마도 나 역시 신룡이니 일종의 동조 를 느낀 거겠지. 나도 한때나마 그걸 좋아한다는 감정으로 착각했었다 는 것을 생각하면 치가 떨려!! 내 억울함을 너 같은 인간이 알기나 하 겠어?!” 어? 방금 누나 말이 사실이라면 시이터에게 누나가 반한 게 아닌 건가 ? ‘......하긴 그렇겠지 딴 드래곤도 아니고 내 누나인데 인간한테 반 할 리가 없지. 뭐야. 나 혼자서 오해하고 열 받은 거였잖아. 괜히 열 받았네.’ 라고 생각하며 안심한 나는 문득 내가 왜 혼자 열 받다가 방금 누나 말을 듣고 안심한 이유가 뭐지? 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 해답을 알 수 없는 의문에 내가 고민할 때 시이터와 누나의 말싸움 은 결국 실력행사까지 발전하고 있었다. “그럼 티아양이 나한테 반했다고 혼자 착각했던 거란 말이지?” “그래! 생각하면 할수록 열 받아!!” “그런 거라면 걱정 마. 착각 때문에 시작한 사랑 이야기도 얼마든지 있는걸. 우리 둘도 그것을 발전 시켜서 사랑으로 만들어 가자고.” “이 인간이 진짜 죽고 싶어서 환장을 하나?” “그럼 이렇게 하자. 이번에도 티아양이 나한테 지면 다시 존댓말에 오빠라고 부르기 어때?” “흥! 원한다면 애인이라도 되어주지.” 누나의 마지막 말에 난 깜짝 놀라서 누나를 필사적으로 말렸다. “누나 잠깐만! 그렇게 울컥해서 결정해도 되는 거야?! 생각해봐. 시 이터에게는 아직 저 검이 있다고 지금까지 그것으로 누나의 마법을 막 은 거잖아! 승산이 없어!!” “걱정 마. 승산은 있어. 블랙시터님이 주신 이 목걸이가 마법을 증폭 시켜주면 내 마법은 더 세질 거야. 어디 그 잘난 검으로 한번 막아 보 시지!” 휴. 역시 누나도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에 저렇게 당당했던 거구나. 하지만 여전히 좀 불안하기는 한데……. ‘가만 저 목걸이 때문에 누나의 마력이 더 강해진다면……. 설마 앞 으로 내가 맞을 때도 평소보다 강한 마력으로 얻어맞는다는……. 소리 겠지?’ 갑자기 가득이나 암울한 내 인생이 더 암울해지는 예감을 받았다. 블 랙시터님! 지금까지 내가 누나한테 당하던 것을 보셨으면서도 절 죽일 작정입니까? 저런 악마 같은 아이템을 누나에게 주신 이유가 대체 뭡 니까?! 내가 암울한 내 인생에 대해서 한탄하며 블랙시터님에게 하소연할 때 - 들으실 리는 없지만 - 싸움이 시작됐다. 시이터는 그 엘리멘탈 소드 라고 불리는 검을 뽑아들었고, 누나는 특기 마법인 아이스 미사일을 소환했다. 그 무시무시한 굵기의 아이스 미사일이 배는 굵어진다는 생각에 보기 도 전에 눈물이 나왔다. 이런 눈물 때문에 시야가 흐릿해서인지 누나 의 아이스 미사일이 너무나 작아 보인다. “뭐야? 이거?!” 누나의 경악의 외침에 난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누나의 얇은 팔 보다 더 얇은 아이스 미사일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법이 더 강해지기는커녕 더 약해진 것 같은 느낌인데.’ 내 느낌대로 누나가 소환한 아이스 미사일은 아주 약해져 있었다. 시 이터는 누나가 당황한 틈을 타서 손쉽게 소환된 아이스 미사일을 부수 고는 재빠르게 누나의 목덜미에 검을 들이댔다. “체크 메이트~.” 시이터는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체스 용어인 장군이라는 말을 하면서 승리를 확실히 다지자 누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어..어떻게. 어떻게 이럴 수가…….” 누나의 눈에서 순식간에 생기가 빠져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시이 터는 자신의 예상보다 누나의 충격이 심한 것 같이 보였는지 미안한 어투로 조심스럽게 아까의 상황을 설명해줬다. “미안. 실은 그 목걸이 마력 증폭장치가 아니라 반대로 약화시키는 목걸이야. 블랙시터님께서 티아양이 너무나 왈가닥이니깐 이 기회에 좀 얌전해지라는 뜻에서 그 목걸이를 걸어 주신거야. 저기 티아양? 내 말 듣고 있어 티아양?” 누나는 대답이 없었고, 걱정이 됐는지 레이르가 누나의 어깨를 조심스 럽게 흔들었다. 하지만 누나는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결국 레이르와 시이터의 시선은 나에게로 집중됐다. 나보고 뭘 어쩌라고? 하지만 둘의 무언의 시선을 견딜 수 없었던 나는 일단 정신적인 충격 요법으로 누나의 정신을 돌리기로 마음먹었다. “누나는 폭력녀! 마녀 누나! 성격 무지 나쁜 여자! 누나는 귀여운 구 석이 하나도 없어!!” 그리고 재빨리 방어 자세. “테이님 소용없어요.” “에?” 그럴 수가? 이정도 폭언이라면 난 벌써 대 여섯 번은 죽었을 텐데. 난 열심히 누나를 흔들어도 보고 눈앞에서 손을 휘저어 보기도 하고, 비 장의(?) 치마 들추기를 시도해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어? 아니다. 반응이 생겼다. 그런데……. “흑…….흑……. 우와아앙!” 요즘 들어서 참 자주 우는 티아누나였다. 아니 이번에는 울기만 하는 정도가 아니었다. “아아앙! 저런 인간의 애인이 될 바에야 이대로 죽어 버릴 거야!!” 누나는 어느새 아이스 미사일을 소환해서 그것을 양손에 쥐고 목을 찌 를 태세를 잡았다. 그 모습에 기겁을 한 우리 셋은 필사적으로 누나를 말렸다. “누나! 제발 참아!!” “이거 놔!! 죽을 거야! 콱 죽어 버릴 거야!!” “티아님 제발 정신 좀 차리세요!! 이러시면 안돼요!!” “티아양! 아까 그 말은 없었던 걸로 하자! 난 오빠로도 충분해! 그러 니 제발 그 흉기(?) 좀 치워!!” “싫어!! 죽을 거야!! 말리지마!!” 결국 누나를 진정시킨 것은 야심한 밤이 되어서야 겨우 진정을 시킬 수 있었다. 진정이 되고 시험을 해서 알게 된 건데 그 마력 약화 목걸 이는 무슨 주문이 걸려 있는지 벗길 수가 없었다. 그 것만이 아니라 약화된 누나의 마법은 일반적인 성인 드래곤의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 었다. 정말 엄청난 위력의 목걸이였다. 간신히 죽겠다는 말은 안하게 된 누나는 ‘블랙시터님 나오시라고 해! 이대로는 나 못 살아!’라며 시이터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지만 블랙시 터님께서는 나오시지 않았다. 결국 누나는 신룡님들을 만나기 전까지 는 계속 그 목걸이를 차고, 즉 마력이 약화된 수준으로 다녀야 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하아. 누나가 나보다 힘이 약했으면 하고 빌었지만 막상 닥치고 나 니 기쁘다기보다는 귀찮게 됐다.’ 진심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누나는 잘 때도 정말 서럽다는 듯 눈물을 훌쩍이며 내 가슴에 얼굴을 파묻은 체 가련하게 자고 있었다. 왜 누나 랑 같이 자냐고? 왜인지 모르겠지만 누나가 죽어도 나를 시이터와 재 우지 않겠다고 강경하게 나왔고, 내가 힘 약해진 누나의 말 따위는 들 을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자 서럽게 울기 시작해서 별수 없이 레이르 와 같이 셋이서 한 침대에 자게 됐다. 그러고 보니 누나는 날 수면용 봉제 인형 취급을 했었는데 지금 입장 이 역전되자 누나의 기분을 어느 정도 이해 할 수 있었다. 작고 귀엽 고 그리고 가녀린 누나를 안고 있자 나도 모르게 편안하게 잠이 들었 다. 아주 편안하게……. 31화 카나리아(2) 깊은 밤. 그 날 너무나 많은 일들이 순식간에 일어났고, 한바탕 소동 덕분에 정신없이 곯아떨어져서 자고 있는 티아와 테이 곁에서 하나의 그림자가 조용히 움직였다. 그림자는 조용히 짐을 챙기더니 곧 밖으로 나갔다. 그림자의 정체는 레이르였다. 몰래 방에서 빠져나온 레이르는 아래층 까지 조심스럽게 내려와서 카운터에 누가 있는지를 조심스럽게 살폈 다. 다행이도 카운터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레이르는 재빨리 밖으로 나가서 달렸다. 하지만 레이르는 숨이 턱에 차기도 전에 멈춰서야 됐다. 검은 그림자 가 그녀를 막아섰기 때문이다. “누..누구.” 레이르는 품속에 숨긴 단검을 꼭 쥐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 한 밤중에 어디 가시는 겁니까?” 레이르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검은 그림자의 주인공은 시이터였다. 하지만 안심하는 것도 잠시였고 레이르는 지금 이 상황을 뭐라고 설명 해야 될지가 막막했다. “혼자 모든 걸 떠맡으시겠다는 생각이십니까?” 다행히도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시이터가 알아서 레이르의 마음을 짚 어 준 덕분에 레이르는 고개만 끄덕이면 됐다. “더 이상 티아님과 테이님에게 폐를 끼칠 수는 없어요. 더구나 카렌 아줌마와 제임스 아저씨까지 저 때문에 힘든 일을 당하셨잖아요. 그리 고 아이들까지……. 더 이상 도망치는 것은 질렸어요. 저를 도망치게 하기 위해서 수많은 생명이 사라졌어요. 저 때문에 사람들이 희생 되 는 것은 이제 싫어요.” 레이르는 말을 하던 중에 감정이 격해졌는지 결국에는 흐느끼면서 겨 우 말을 다 마쳤다. 시이터는 그런 레이르를 조용히 쳐다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마음이 진정된 레이르가 무미건조 한 목소리로 시이터에게 물었다. “절 잡으실 건가요?” 시이터는 레이르의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저는 티아양과 테이군의 여행에 중간에 끼어든 불청객입니다. 그리 고 그 둘과 당신과 어떤 사이인지 왜 도와주려고 하는지도 제대로 듣 지 못한 상태에서 섣불리 끼어들 수는 없죠. 왕녀님께서 결정하신 일 에 뭐라 말할 자격이 없는 겁니다.” “그럼 잘 됐군요. 티아님과 테이님에게 잘 좀 말해주세요.” “제가 말하면 당장에 성을 부수러 달려갈 텐데요.” “그러니 잘 말해 달라는 거예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같이 여행해서 즐거웠다고 전해주세요.” 레이르는 시이터를 지나쳐서 가버렸고, 혼자 남은 시이터는 한숨을 쉬 면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내가 잘 말한다고 잘 들을 둘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 텐데. 하아. 결국 욕먹는 것은 나란 말이야. 난 정말 손해 보면서 사는 성격이라니 깐.” 혼자 중얼거리던 시이터는 뒷일이야 어떻게 되든 오늘은 일단 쉬어두 자는 생각을 하고는 여관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레이르는 그대로 도시 의 치안유지대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누구냐?” 레이르가 치안 유지대 건물로 들어서려고 하자 보초를 서던 병사 둘이 창으로 막아섰다. “이 곳은 아무나 함부로 출입하는 곳이 아니다. 돌아가라!” “오라고 할 때는 언제고 돌아가라는 것이냐?!” “에?” 너무나 당당한 레이르의 말에 병사들은 순간 당황했고 레이르는 종이 를 던지면서 소리쳤다. “랑그람 폐하께서 오라고 말한 대로 지금 당장 다이리 수도로 돌아가 겠다. 지금 당장 마차를 준비시켜라!” “레..레이르 왕녀님? 하지만 레이르 왕녀님은 분명히 금발인데……. ” 때마침 병사 중에 한명이 레이르의 얼굴을 알고 있는 자였다. 레이르 는 티아가 마법으로 물들여준 푸른색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너희들의 눈을 속이기 위해 염색을 한거란 것도 못 알아채는 것이냐 ? 더 이상 길게 말하기 싫구나. 이 문장을 보고도 빨리 움직이지 않으 면 너희들은 랑그람 폐하께 말씀드려서 전부 최전방으로 보내버리겠다 !” 레이르는 입고 있던 로브를 벗어서 다이러스 제국의 왕가들만이 지니 는 특수한 실과 금속으로 만들어진 왕가의 문장을 보여줬다. 혹시라도 필요할 때가 있지 않을까 해서 챙겼던 덕을 이렇게 보게 될 줄은 상상 도 못했던 레이르는 왕가의 문장을 보여주면서 쓴웃음이 나왔다. 아무튼 문장을 보여준 효과는 아주 컸다. 얼마 기다리지도 않았는데 특급마차가 도착했고, 경비대중 일부가 호위병으로 따라붙었다. 하지 만 스스로 도망쳐 나왔던 왕국으로 돌아가는 레이르에게는 그 호위병 이 마치 자신을 도망 못 가게 따라붙은 간수들 같은 느낌이 들었다. 카렌은 자신이 몇 십년간 사용했었던 별궁의 거실에 앉아서 차를 마시 며 랑그람을 기다렸다. 그 옆에는 평소대로 제임스가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그렇게 있자니 이곳에서 살던 옛날이 생각났다. ‘금방이라도 저 문을 열고 어린 시절의 레이르와 랑그람 그리고 유크 가 들어올 것 같은데.’ 하지만 감상은 어디까지나 감상. 현실은 달랐다. 문을 열고 들어 온 것은 이미 훤칠한 청년이 된 랑그람과 유크로드였다. “오랜만이구나. 유크.” “안녕하세요? 카렌 아줌마. 다시 만나 뵙게 반갑습니다.” 변함없이 총명하고 예의바른 아이였다. 어린 시절 레이르와 랑그람이 트러블 메이커였다면 그 뒤에서 항상 둘의 치다꺼리를 도맡아 해주던 유크로드의 모습은 지금도 변함이 없었다. “자 그럼 설명을 해야겠죠?” 자리에 앉은 랑그람이 말을 꺼내자 카렌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 다. “난 오해를 하고 있었던 것 같구나.” “......전 아직 아무 말도 안했는데요.”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난 지금까지 너도 유크도 변했을 거라는 생각 을 했단다. 하지만 변함없이 예의 바르고 총명한 눈을 가진 유크와 성 질 급한 장난꾸러기였던 랑그람이 변하지 않았다는 걸 확인한 기분이 라서 그렇게 말 한거야.” “제가 그 정도로 장난을 쳤던가요?” “어린 시절 제 기억으로는 랑그람님과 레이르님은 어떻게든 서로를 괴롭히려고 항상 새로운 장난을 생각하고 실행했었죠. 제가 기억하고 있는 것만 해도…….” 랑그람이 카렌이 말에 어이없다는 얼굴로 반문하자 옆에서 차를 따르 던 유크로드가 지나가는 말투로 옛 추억을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랑그람은 급히 유크로드의 입을 틀어막으며 ‘이제 와서 까마득하게 지난 일은 이야기 하지 마!’라고 소리를 지르며 윽박질렀다. 그 둘의 모습에 카렌은 쿡하고 웃음을 터트렸다가 곧 정색을 하며 얼굴을 굳혔 다. “너희 둘이 어린 시절과 변함이 없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그래도 완전히 변하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 특히 랑그람은 무슨 생각 으로 반란을 일으킨 것인지 그 이유를 꼭 듣고 싶구나. 설명해 줄 수 있겠지?” 카렌의 질문에 랑그람도 유크로드도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고 한 동 안 침묵을 지켰다. 잠시 후 유크로드가 입을 열려고 하는 것을 랑그람 이 눈치 채고 막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내가 설명하겠다.” “알겠습니다.” 유크로드는 입을 다물고 잠자코 있었고, 랑그람은 한숨을 쉬며 그 어 떤 일을 기억해 냈는지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카렌과 제임스는 조용 히 랑그람이 입을 열기를 기다렸고, 랑그람은 마음의 준비라도 다 됐 는지 설명을 시작했다. “제가 왕실에서 몰래 준비하던 어떤 작전을 알게 된 것은 크라우드 전하께서 붕어하신 뒤 몇 달 후의 일이었습니다. 전 우연히 루그라드 님과 그 분의 심복들이 무언가 안 좋은 일을 꾸민다는 정보를 입수하 고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당시 제 휘하에 있던 어세신들을 시켜서 정 보를 모아오게 했습니다. 그리고 루그라드님이 계획하던 음모에 대해 서 알게 됐습니다.” “음모라고?” 제임스가 팔짱을 풀고는 궁금한 표정으로 물어보자 랑그람은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고 짧게 대답했다. “당시 작전명 카나리아라고 불리던 계획이었습니다.” 어두운 밤 숲 속에서 아주 조용히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 렸다. 그 소리를 내고 있는 장본인은 아도니스와 록크 아니 에리나였 다. 아도니스도 록크 아니 에리나도 마음이 급했다. 루그라드가 가이라가 왕국과 동맹을 맺은 것에 대해서 하루라도 빨리 랑그람에게 알리고 싶 은 심정이었으나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주요 길목에는 항 상 보초병들이 삼삼오오 떼를 지어서 지키고 있었다. 덕분에 낮에는 땅을 파고 그 속에 숨어 있고, 밤에만 조용히 움직이고 있는 실정이었다. “하아…. 하아….” 되도록 조용히 움직이려고 했지만 아도니스의 몸 상태는 아직도 좋은 상태는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금방 지쳐서 숨소리가 거칠어지곤 했 다. “괜찮아? 여기서 쉬었다 가자.” 에리나는 들키지 않을만한 풀숲에 아도니스를 데리고 가서 숨었다. 그 리고 아도니스의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주면서 아주 극진하게 간호 를 했다. 요 며칠간 내내 이런 상태였다. “제발 부탁이니 너 먼저 가주면 안 되냐?” “아직도 그 소리야? 너를 두고는 절대로 아무데도 갈 수 없어.” “이봐! 사태가 심각한 것은 잘 알고 있잖아. 이대로 부상자인 나를 데리고는 수도에 도착하기 전에 전쟁이 끝나 버릴걸. 그러니 제발 부 탁이야. 너라도 먼저 수도에 가줘. 그리고 랑그람님에게 이 사실을 빨 리 전해줘.” “난 이봐도 아니고 너도 아닌 에리나야. 몇 번 말해줘야 알겠어.” 아도니스의 필사적인 부탁에도 에리나는 딴청으로 그의 부탁을 묵살해 버렸다. 지금 아도니스의 상태는 결코 좋은 상태가 아니었다. 옆구리 를 너무 깊숙이 다친 아도니스는 아무리 응급치료를 잘했다고는 해도 혼자서 걷기에는 불편이 따랐다. 그리고 기마대인 아도니스는 말도 없 이 이런 숲 속만을 걸어서 멀쩡히 도망칠 실력이 없었다. 지금까지도 에리나가 안 들킬만한 길만 골라서 이동했고, 낮에도 그녀의 완벽한 위장 땅굴의 능력덕분에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면서 도망쳤기 때문에 이 정도까지 올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아도니스의 옆에 에리나가 없었다면 아도니스는 벌써 죽었다고 해도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아도니스는 그런 생명의 은 인인 에리나에게 단 한마디의 고맙다는 말을 하지도 않고 항상 기회만 되면 혼자서 도망치라고 닦달이었다. 물론 에리나는 그런 아도니스의 말을 듣지 않고 고집으로 여기까지 끌고 왔고, 앞으로도 들을 생각이 없었다. “제발 조용히 하고 이럴 때 몸을 좀 쉬어둬. 이 포위망만 뚫고 마을 까지만 들어가면 거기서 어떡해서든 말이나 마차를 구하면 수도까지는 빠르게 갈 수 있어!” “쳇! 이런 어수선한 전쟁 중에 어떻게 말과 마차를 구한단 말이야? 더구나 이 앞쪽은 가이라가에게 거의 점령당했을 텐데.” “우리 어세신들에게는 어세신들의 방법이 있으니 염려 놓아도 돼.” 결국 더 할말이 없어진 아도니스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아도니스가 얌전해지자 에리나는 앞에 적이 있는지 알아보겠다며 조용히 하고 있 으라고 당부를 하고는 곧 사라졌다. “여자에게 보호받는 붉은 들소 기마대 대장이라……. 꼴불견도 이런 꼴불견은 또 없을 거야.” 아도니스는 에리나가 사라지자 혼자 중얼거리며 투덜거렸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부상자인 아도니스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얌전히 에리나가 시키는 대로 행동하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되도록이 면 그녀의 방해가 되지 않는 것뿐. 어쩔 수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자신의 한심함 에 한숨만 나왔다. “옛날에 내가 지켜주겠다고 약속을 해 놓고는 지금은 거꾸로 보호당 하는 쪽……. 가만…. 옛날? 약속?” 아무 생각 없이 불만을 토하던 아도니스는 옛날 일이 갑자기 떠올랐 다. 나무위에서 울고 있던 조그마한 꼬마 여자애를 구해준적이 있었다. 그 때는 자신도 꼬마였기는 하지만 어떻게 나무에 올라가 있는가는 제쳐 두고라도 울고 있는 여자애를 그냥 보고 지나칠 수가 없어서 도와준 적이 있었다. ‘괜찮아! 뛰어내려 내가 받아줄게!’ ‘싫어! 무서워! 난 못해!’ ‘날 믿어! 내가 지켜줄게!’ 결국 여자애는 아도니스의 설득에 용기를 내서 뛰어내렸고, 아도니스 는 그 여자애를 받다가 실수로 팔을 심하게 다쳤었다. ‘어떡해?! 피가나! 아앙 미안해! 나 때문에……. 미안해! 미안해!’ 끊임없이 미안하다면서 울던 회색 머리칼의 조그만 여자애. 꼬마였던 아도니스가 높은데서 떨어지는 여자애를 안전하게 받을 리가 없었다. 그 여자애도 몸 여기저기 찰과상을 입어서 피가 나고 있었지만 그것은 신경 안 쓰고 아도니스의 크게 다친 팔에 엉엉 울어줬다. ‘이까짓 것은 침 발라 두면 나아. 네가 안 울어도 돼.’ 거짓말이었다. 아파서 죽을 것만 같았다. 큰 소리로 목 놓아 울고 싶 었다. 하지만 자신의 몸에도 상처가 났는데도 아도니스를 걱정하며 우 는 여자애 앞에서 도저히 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를 악물고 아픈 것을 참으며 밝게 웃어보였다. ‘너야말로 상처가 났는데 괜찮아?’ ‘이거? 으응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하지만 난 남자고 넌 여자잖아. 미안 여자 몸에 상처를 내면 안 된 다고 우리 엄마가 그랬는데……. 아 맞다. 내가 널 책임져 줄게.’ ‘책임?’ ‘응! 옆집 형한테 들었는데 여자 몸에 상처를 낸 남자는 그 여자를 평생 책임 져야 된다고 했어. 그러니 내가 널 책임질게.’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어이없는 약속이었다. 책임진다는 말의 의미도 몰랐을 꼬맹이들이 책임이 어쩌니 했었다니……. 옛 추억을 생각하던 아도니스의 입에서 절로 쿡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책임을 어떻게 지는 건데?’ ‘에……. 그러니깐. 같이 데리고 산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럼 날 데리고 살 거야?’ ‘응! 어른이 되면 내가 책임지고 널 데리고 살게. 아! 맞다. 앞으로 같이 살 거니깐 이름을 알려줘. 난 아도니스야. 너는?’ ‘나는…….’ “아도 뭐해? 혼자서 실실거리면서 웃는 거는 보기 안 좋아.” 갑작스런 에리나의 목소리에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던 아도니스는 깜짝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이제 복면은 하지 않은 에리나의 긴 회색 머리 가 바람에 살랑거리며 흔들리고 있었다. 아도니스는 에리나의 얼굴을 보면서 싱긋 웃으며 일어났다. “아니 그냥 옛날 생각이 나서…….” “무슨 옛날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상황에서 실실거리며 웃다니 ……. 아주 황당한 추억이었나 보지?” “그래 아주 황당했지. 생각해보니 나는 결혼을 약속한 여자가 있었지 뭐야.” “아 그렇구나. 뭐..뭐야?!” 에리나는 별거 아니려니 생각하다가 아도의 대답을 듣고는 놀라서 소 리쳤다. 그리고는 금방 입을 막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두운 숲 속 에서는 조그만 소리도 멀리까지 퍼져나간다. 그래서 항상 조심하고 또 조심했는데 순간적으로 감정이 격해져서 소리를 질러버린 에리나는 이 자리에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다. “이제 걸을 수 있지? 미안해 소리를 질러서. 빨리 이 자리에서 벗어 나야겠어. 미안해. 미안해 아도.” 에리나는 급히 아도니스의 손을 잡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하지만 빨 리 도망쳐야 된다는 급한 마음에도 아까 아도니스가 말한 결혼 약속을 한 여자라는 말에 신경이 쓰였다. 에리나의 기억으로는 그런 약속을 한 여자는 아도니스에게는 없었다. 아니 한명 있기는 있었다. 그 한명의 여자가 누군지 잘 아는 에리나는 얼굴이 화끈거렸고, 아도니스를 붙잡은 손이 떨렸다. 그런 에리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도니스는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너무나 귀여운 여자였어.” “아 그래? 잘됐네.” “그렇게 남 말 하듯이 해도 돼?” “한번도 만난 적이 없으니 나한테는 남이야. 관심도 없고.” “자기 자신을 남이라고도 칭할 수 있나?” 에리나는 자리에 멈췄다. 그리고 붉게 물든 얼굴로 조심스럽게 아도니 스의 얼굴을 훔쳐보며 물었다. “생각……. 난거야?” “아주 똑똑하게 생각났어.” “아!” 아도니스는 아직 자신의 손을 잡고 있던 에리나의 손을 잡아 당겨서 품에 안아서 그녀의 귀에 살며시 속삭였다. “미안 늦게 생각나서.” “......으응. 괜찮아. 기억해준 것만으로도 기뻐.” “그리고 그때의 약속 아직 유효한지 알고 싶은데…….” “어? 하지만. 그것은 철없는 애들 약속이잖아.” “바보. 철없는 애들 약속으로 치고 없었던 일로 해버리면 내가 억울 해서 죽을지도 몰라. 이런 미인을 놓치는 것을 말이야.” 에리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얼굴을 붉혔다. “자..잠깐! 난 그렇게 예쁜 얼굴도 아닌걸! 거기다가 키는 멀대같이 크고! 또 몸에 상처가 많아서 예쁘지도 않아! 피부는 또 얼마나 거친 데!!” “나한테는 충분히 예쁜 여자야. 그러니 내 질문에 먼저 대답해. 그 약속 아직 유효해?” 에리나는 고개를 푹 숙여서 아도니스의 가슴에 파묻고는 조그맣게 ‘ 응’이라고 대답했다. 에리나는 그 대답만으로는 아도니스에게 제대로 전달 된 것 같아서 지금 자신이 정말 행복하다는 뜻을 듬뿍 담아서 다 시 한번 더 대답했다. “고마워. 나 정말 행복해.” 아도니스는 미소를 지으며 에리나의 머릿결을 쓰다듬으며 그녀의 귀에 나직하게 속삭였다. “에리나. 지금 나 에리나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 들어줄래?” “응? 아?!” 에리나는 아도니스의 부탁이라는 말에 깜짝 놀라서 얼굴을 들었다가 아도니스의 그윽한(?) 눈과 마주치고는 사람의 얼굴이 어디까지 붉어 질까라는 실험정신(?)을 자극할 정도로 붉게 물들었다. 그리고 조심스 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에리나의 허락이 떨어지자 아도니스는 굳은 얼굴을 서서히 에리나에게 로 가져갔고, 에리나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더니 이내 눈을 꼭 감았 다. “부탁인데 지금 빨리 혼자서 도망가라.” “에?!” 에리나는 놀라서 눈을 팍 떴고, 심각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아도 니스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 한 번 더 말해 달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깐. 제발 부탁이니 먼저 도망쳐서 다이리 수도에 정보를 가져 다줘. 난 무슨 짓을 하더라도 살아남을게. 부탁이야 먼저 가.” “......이..이.” “에리나?” “이 바보야!!!” 그 순간 에리나의 머릿속에서는 적들에게 들키고 자시고의 걱정거리가 삭하고 사라졌다. 있는 대로 사람 가슴 두근거리게 해 놓고 딴 소리 하는 아도니스에게 화를 안 내고는 배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31화 카나리아(3) 에리나와 아도니스는 커다란 나무위에서 숨을 죽였다. 아래쪽에서 웅 성거리던 병사들은 별 소득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다른 곳으로 이동 중 이었다. 그들이 다 지나가고 난 뒤에 둘은 길게 한 숨을 쉬었다. 긴장 감 때문에 온 몸이 땀범벅이 되서 끈적거리는 것이 기분 나빴다. “우! 땀범벅이 됐어. 힝. 땀 냄새가 몸에 베이면 어떡하지?” 에리나가 긴장이 풀렸는지 옷을 펄럭이며 불만을 내뱉었다. 아도니스 는 어두워서 잘 보이지도 않았지만 옷을 펄럭이는 소리에 괜스레 얼굴 이 화끈거리는 느낌이었다. “누구 때문인데 이렇게 된 건데?” 아도니스는 그대로 가만히 있기에는 어색해서 한마디를 한다는 것이 어쩌다가 마음에도 없는 비꼬는 말이 나와 버렸다. 아도니스의 실수 한 발언에 대한 대답은 바로 돌아왔다. 엄청난 짜증과 함께……. “나 때문이라는 거야? 이렇게 된 원인을 따지면 먼저 아도가 잘 못한 거잖아.” “내가 무슨 잘 못을 했다고 소리를 지르고 때린 건데?” 아도니스는 에리나의 짜증에 지지 않고 받아쳤다. 아도니스는 정말 억 울했기 때문이었다. “여자의 마음도 모르는 바보!” “누가 바보야? 누가?” “실컷 두근거리게 만들어 놓고 한다는 소리가 기껏 도망가라라는 말 한마디밖에 못 해주는 거야? 난 아도에게 그 정도 여자밖에 안 되는 거야?!” “어? 아아 그것 때문에 화난거야? 하지만 이제 조그만 더 가면 마을 이 나오잖아. 난 그 마을에서 부랑자로 변장해서 몸을 숨기면 되니깐 더 이상 걱정 안 해줘도 돼.” 아도니스는 적들이 완전히 없어진 것을 확인하고는 조심스럽게 나무에 서 내려가면서 말했다. “누가 그것 때문에 화가 났데?” 그렇다. 에리나가 화가 난 이유는 도망가라는 말 때문이 아니었다. 순 진한 여자라면 누구나 그런(?) 순간이 되면 부끄럽고 겁이 나는 법이 었다. 하지만 아도니스를 정말로 사랑하기 때문에 부끄러운 것도 꾹 참고 용기를 낸 건데 막상 분위기 다 잡아놓고도 남자는 키스해 줄 생 각이 전혀 없었으니 얼마나 황당하고 창피했는지는 도저히 말로 설명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에리나가 화를 내는 것은 정. 당. 한 행동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불행히도 여자 친구 없는 경력 28년의 아도니스로서는 에리나의 정당한 행동이 이해 할 수가 없는 행동이란 게 문제였다. “그럼 뭐 때문에 화가 난거야? 이유를 말해줘. 사과할 테니.” “그걸 어떻게 여자 입으로 말하라는 거야?!” “말 못하는 이유가 뭔데?” “......이 바보!” “아까부터 왜 자꾸 바보라는 말밖에 안하는데?” “바보니깐 바보라고 부르는 거야!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난 이제 아도 곁에서 떨어지지 않을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안 떨어질 거야! 아도가 날 필요로 할 때까지!” 나무에서 내려온 에리나는 아도니스의 팔짱을 끼며 절대 떨어지지 않 겠다는 뜻을 강하게 내 비쳤다. 일이 이쯤 되자 아도니스도 결국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알았어. 이제 네 말대로 할 테니 화 좀 그만 내. 그리고 화내는 이 유도 좀 말해주고.”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내 입으로는 죽어도 말 못해! 아까 전 상황을 떠올려서 스스로 생각하고 반성해!” 죽어도 말 못하겠다는 에리나의 강경한 대처에 아도니스는 아까 전에 자신이 했던 말 중에 어떤 말이 에리나의 마음을 상하게 했는지 고민 에 고민을 거듭했다. 그리고 에리나가 자신이 말을 하려고 할 때 눈을 감았다는 것을 기억해 내고는 설마 하는 심정으로 조심스럽게 물어봤 다. “혹시 아까 전에 내가 너에게 키스 한다고 생각 했던 거야? 그래서 눈을 감았던 거고?” 그 질문을 하자마자 자신을 부축해서 걷던 에리나의 몸이 급속도로 경 직되는 것을 보아서 아도니스는 자신의 추측이 맞았다는 것을 느꼈다. “역시 그랬던 거구나. 미안 난 그럴 생각이 없었는데……. 아니 키스 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는 뜻은 아니고 키스는 하고 싶지만……. 지금 은 좀……. 아니 지금이라도 에리나가 허락해준다면…….”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자기 자신이 생각해도 알아들을 수 없는 횡설수설을 하던 아도니스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에리나를 자신의 앞에 세우고, 한 손은 그녀의 어깨에 나머지 한손은 그녀의 뺨에 살짝 얹었다. 이것으로 준비(?)는 다 된 것이었다. 남은 것은 실행뿐. 아도니스는 가슴 속에서 끓어오르 는 그 무언가를 - 욕망? - 진정시키며 얼굴을 붉히고 있는 에리나에게 로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하지만 아도니스의 입술은 에리나의 입술에 닿기도 전에 그녀의 손가 락에 제지를 당해서 접근금지상태가 되 버렸다. “손님 이미 마차는 지나갔어요. 기회를 못 잡은 것은 손님 탓이니 절 원망할 생각은 하지 마세요.” “에? 왜? 왜 지금은 안 된다는 거야? 아까 일은 내가 사과할게!” “여자의 마음이란 복잡한거야. 그러니 될 때와 안 될 때가 있어. 기 회를 못 잡는 남자한테 그렇게 쉽게 허락할 마음이 없네요.” 에리나는 혀를 낼름 내밀며 아도니스를 약 올렸다. 아도니스는 그런 에리나의 모습에 화가 난다기보다는 오히려 그녀가 더 귀여워져서 견 딜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포기하는 것은 붉은 들소의 돌격 대장으로서 내 이 름이 울지. 그러니 포기 못해!” “에? 무슨 소리? 꺄악! 읍! 읍읍읍!” 과연 저돌적인 돌격의 명수(?)답게 아도니스는 에리나의 허리를 강하 게 부둥켜안으며 키스를 해버렸다. 갑작스런 아도니스의 키스에 놀란 에리나가 주먹으로 아도니스를 치면서 그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남자의 힘을 당할 수는 없었다. 더구나 몰래 했던 도둑뽀뽀가 아닌 사랑하는 남자의 진짜 키스에 에리 나의 머릿속은 멍해지면서 주먹에 들어간 힘이 서서히 빠져갔다. 둘 다 처음이라 어색하기만 한 첫 키스가 끝나고 아도니스가 에리나를 놓 아주자 에리나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아버렸다. “어? 에리나 괜찮아? 왜 그래?” “아니. 다리에 힘이 없어.” “어? 원래 키스하면 다리에 힘이 없어지는 거야?” “나도 몰라!! 그런 창피한 애긴 여자한테 묻는 게 아니잖아!!” “미..미안!” “미안할 짓을 왜 억지로 했는데?!” “내가 하고 싶었으니깐.” “바보.” 에리나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여버렸고 아도니스는 무슨 말을 해 야 될지 몰라서 당황하다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에리나에게 잠시만 기 다리라고 말 하고는 에리나의 대답도 듣지 않고 어딘가로 가버렸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돌아온 아도니스는 에리나의 손을 잡 아서 조그마한 꽃반지를 끼어주며 말했다. “미안. 잘 찾아 봤는데도 이런 작은 꽃밖에 없더라. 전쟁이 끝나면 더 좋은 반지를 선물해 줄 테니 지금은 이걸로 참아줘.” “아도……. 이거 혹시 정식으로 청혼……. 하는 거야?” “으응. 상황이 이런 상황이다 보니 좋은걸 못해줘서 미안.” 에리나는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이것만으로도 충분해. 고마워 나 정말 기뻐.” “자..잠깐! 왜 울어? 정말 기쁜 거야? 아 혹시나 싫어서…….” “바보! 기쁠 때도 눈물이 나올 때가 있어! 나 지금 눈물이 나올 정도 로 기쁘단 말이야. 그래서 우는 거야.” 에리나는 방금 한 말이 거짓이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아도니스의 가슴에 뛰어들어 안겼다. 얼떨결에 에리나를 안은 아도니 스는 피식 웃으며 계속 눈물을 흘리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귓가에 대고 속사였다. “이 전쟁이 언제 끝날지는 모르겠지만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오면 행 복하게 해줄게. 우리 같이 행복해 지자.” “으응.” “난 이제 어디에도 가지 않을게. 약속할 테니 이제 그만 울어.” “응!” 대답은 씩씩하게 한 에리나지만 울음이 쉽게 그치지는 않았다. 일곱 살 때부터 여자를 버리고 살아왔던 에리나는 지금 그 순간 남자로서 살아 왔던 17년을 한꺼번에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이 행복한 시간이 언제까지 계속되기를 신께 진심으로 빌었다. 하지만……. “행복한 시간에 불청객이 끼어들게 되서 정말 미안하지만 잠시 시간 좀 내 줄 수 있을까? 급한 용무이니 이해를 바라네.” “누구냐?!” 아도니스는 잽싸게 검을 빼들고 소리가 난 방향으로 검을 휘둘렀다. 금속성의 소음이 한번 울려 퍼지고 아도니스도 불청객(?)도 재빨리 뒤 로 물러섰다. “누구냐고 물었다면 상대방이 이름을 말해 줄 시간은 주는 것이 예의 아닌가?” 자신을 불청객이라 칭한 루그라드는 아도니스의 공격을 막았던 검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루그라드 왕자?” 아도니스도 에리나도 눈앞에 나타난 루그라드의 모습에 깜짝 놀라서 순간적으로 방심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 짧은 순간 루그라드의 호위 기사가 재빨리 둘을 에워쌌다. “어..어떻게 우리를 찾은 거지?” 아도니스가 이를 갈면서 루그라드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며 외쳤다. 그런 아도니스의 분노를 정면으로 맞으면서 루그라드는 별거 아니라는 얼굴로 자기 옆에 있는 푸른 복면을 한 남자를 소개했다. “어세신들을 이용하는 자는 랑그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나도 어세신 을 부하로 두고 있고, 그 어세신이 자네들을 찾은 거다. ‘어세신을 찾을 수 있는 자는 어세신뿐이다’ 라는 이자의 말이 맞았군. 소개하 지 스라드 길드 어세신의 지란이라는 자다.” “스라드 길드 어세신?! 더구나 지란이라면 길드 마스터!!” 에리나는 루그라드가 방금 소개한 남자의 정체를 듣고 비명을 질렀다. “그럴 수가! 지란은 내 손에 죽었어! 그 날 우리 토라스 길드와의 마 지막 전면전에서 내 손에 죽었었단 말이야! 내 손으로 아버지의 원수 를 갚았단 말이야!! 그럴 리가 없어! 이 가짜! 정체를 밝혀!!” “에리나 진정해!” 아도니스는 흥분해서 금방이라도 검을 빼서 푸른 복면의 남자 지란에 게 덤벼드려는 에리나를 뒤에 붙잡았다. 그리고 그 지란이라는 자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나야 말로 너의 정체가 궁금하군. 그 날 스라드 길드를 칠 때 나도 그 자리에 있었다. 비겁한 술수로 에리나의 아버지를 암살하고 토라스 길드를 없애 버리려고 했던 너희 길드와의 싸움에 이 나도 있었다. 나 를 기억하는가?” 지란은 루그라드에게 ‘밝혀도 되겠습니까?’라고 물었고, 루그라드는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말을 했다. 지란은 루그라드의 허락이 떨어지 자 한발 앞으로 나서서 복면을 벗었다. 복면 속의 지란의 얼굴을 본 에리나는 놀라움에 의해 눈이 커졌다. 그 는 에리나가 알고 있던 그 지란이었다. “지란……?! 진짜 살아 있었던 건가? 아니면 내가 죽였던 지란은 가 짜?” 믿어지지가 않는지 에리나의 말에는 공허함이 맴돌았다. 그렇게 힘들 게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 이제는 과거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던 에리 나로서는 지란이 멀쩡하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괜찮아. 내가 옆에 있어.” 아도니스는 그런 에리나의 어깨를 다정하게 감싸 안으며 속삭였다. “이번에도 도와줄게. 에리나가 과거를 청산 할 수 있도록 몇 번이라 도 도와줄게. 같이 행복하지기로 했잖아. 같이 걸어가자. 장애물이 있 으면 같이 극복하자.” “으응. 고마워.” 아도니스의 격려에 힘을 얻은 에리나는 숨을 한번 크게 들이쉬고 검을 빼들고 자세를 취했다. 완전히 포위된 위험한 상태지만 사랑하는 남자 가 옆에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에리나는 이상할리만치 침착해졌다. 에 리나는 아도니스의 곁에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 은 아도니스도 똑같았다. ‘적당한 간격의 좋은 포위망이야. 큰 희생을 감수하지 않으면 뚫기가 어려운……. 아니 뚫을 엄두조차 내기 힘든 어려운 상황이군. 그런 상 황인데도 이렇게나 마음이 편안하고 침착한 이유는 역시 에리나 때문 일까? 그녀가 내 곁에 있는 게 다행이야.’ 둘이 침착하게 지란을 노려보며 이 포위망을 뚫을 고민을 한때 잠자코 둘의 말을 듣던 지란이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라는 인사보다는 처음 만나서 반갑다는 인사를 해야 되겠 군. 난 자네들이 알고 있는 지란이 아니네.” “그럼 역시 가짜?” 에리나의 질문에 지란은 고개를 저었다. “난 진짜 지란이다. 그대들이 없앴던 지란은 내 동생 크란이야. 나와 얼굴이 비슷해서 자주 헷갈렸었는데, 동생은 그 점을 이용해서 원래 내가 물려받아야 할 스라드 어세신 길드를 계승했다. 진짜 지란인 나 를 아무도 몰래 가둬 놓고, 가짜 행세를 했던 것이다.” “그 거짓말을 우리보고 믿으라고? 네가 자신의 동생 크란이라고 우기 는 자는 온갖 더러운 술수를 쓰고 에리나의 토라스 길드를 없애려고 했던 악질적인 자다. 그런 자가 하나의 길드를 자신의 손에 넣기 위해 널 그냥 가둬두기만 했을까? 내가 그 자라면 널 진작 죽여 버렸을 거 다. 그게 더 확실히 길드를 손에 넣을 방법일 테니.” 잠시 생각하던 아도니스의 반격에 지란은 고개를 저었다. “동생은 나를 없애지는 못한다. 그것은 길드 마스터의 증표를 내가 숨겨놓았기 때문이다. 그게 없으면 크란이 아무리 나와 닮았다고는 해 도 주위에서 그를 마스터로 믿지 못하지. 그래서 그는 날 살려두고 기 회만 되면 고문을 하면서 마스터의 증표를 찾으려고 했고, 자신의 측 근들 이외에 다른 어세신들의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토라스 길드와 싸움을 벌였다. 하지만 그 싸움은 크란에게 오히려 독이 되서 스라드 길드는 궤멸되고, 나는 간신히 목숨을 건져서 떠도는 중에 루 그라드님을 만나서 스라드 길드를 재건할 수 있었다. 에리나라고 했던 가? 자네는 분명 원수를 갚았으니 그 점은 염려 놓지 않아도 된다.” “아도니스 드 아나카르낙. 오랜만이구나.” “루그라드.” 루그라드는 지란의 말이 끝나자 앞으로 나오며 아도니스의 얼굴을 바 라보았다. 아도니스는 그런 루그라드를 바라보며 나직이 이를 갈았다. “변함없이 급한 성격. 고치지 않았구나. 그것만 고쳤더라면 자네는 더 큰 인물이 됐을 텐데.” “미안하군. 이건 천성이다.” “버릇없는 점도 여전하군.” “그것도 천성이다! 그리고 이제 와서 당신을 왕자 취급할 생각도 없 어!” 금방이라도 덤벼 들것처럼 소리를 지르는 아도니스의 시퍼런 서술에 주위를 포위한 기사들은 긴장을 했다. 기사들은 루그라드에게 포위만 하고 공격은 절대 하지 말라고 미리 주위를 듣기는 했지만 만약에 경 우에는 아도니스를 죽이겠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아도니스는 그런 기사들의 살기를 느끼긴 했지만 지금 루그라드가 앞 에 있다는 분노 때문에 두렵다는 감정은 들지 않았다. 두렵기는커녕 자신이 지금 이 자리에서 죽더라도 루그라드를 죽이겠다는 의지를 불 태웠다.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긴장감 속에서 루그라드와 아도니스는 대화를 시작했다. “이제는 완전히 랑그람의 개가 된 것 같구나.” “당신 같은 더러운 사람에게 개라는 소리를 듣게 될 줄은 꿈에도 생 각 못했군.” “더럽다고? 이 내가 말인가?” “모른다고 할 셈이냐?! 카나리아 작전! 그것을 모른다고 잡아떼진 않 겠지?!!” 아도니스가 위협용으로 검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루그라드는 그 위협 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한숨을 쉬었다. “역시…….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랑그람이 배신을 한 것은 그 이 유였나? 그리고 자네와 몇몇 젊은 인재들이 랑그람을 도와 준 것도 그 게 문제였나?” “당연한 것을 묻는구나! 랑그람님이 배신자라고 했나? 그럼 당신은 뭐지? 이 나라의 왕자이자 레이르 여왕님의 오빠이면서 가이라가 왕국 에 나라를 팔려고 했던 당신은 대체 뭐지?!” 지금까지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던 루그라드는 이번만큼은 이마에 핏줄 을 세우며 눈을 부라렸다. “내가 나라를 팔려고 했다니. 오해가 심하구나! 난 나라를 위해서, 국민들을 위해서 최선의 방법을 선택한 것뿐이다!” “웃기지마! 그 최선의 방법이 레이르 여왕님을 다 늙어빠진 가이라가 왕에게 바치는 것이냐?! 그것이 진정 나라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었단 말이냐?!!” 아도니스는 참고 참았던 울분을 토했다. 루그라드를 놓치고 난 뒤 그 를 다시 보게 되면 퍼부어 주겠다고 다짐하고 다짐하던 울분을 한꺼번 에 토해내서 그런지 감정이 격해진 아도니스는 맑은 눈물까지 흘렸다. 루그라드는 아도니스의 분노를 정면으로 받으며 씁쓸한 한숨을 내 쉬 었다. 31화 카나리아(4) 레이르가 티아와 테이의 곁을 떠나서 수도 다이리로 가는 마차에 올랐 을 때 랑그람은 카렌과 제임스에게 카나리아 작전에 대해서 설명해주 고 있었다. “정략결혼?” 카렌은 얼굴을 찌푸리며 카나리아 작전에 대해서 설명해준 랑그람에게 반문했다. 랑그람은 좀더 자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말이 좋아서 정략결혼이지. 그것은 강제 결혼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루그라드는 레이르의 의사 따위는 들어 볼 생각도 안하고 멋대로 이야 기를 진행시켜 나갈 생각이었습니다. 기간은 레이르가 왕녀에 오르고 난 뒤 가이라가 왕국에 서찰을 전달할 때 루그라드 본인이 직접 가서 그 결혼에 대한 의논을 할 생각이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반란을 일으켰단 말이냐? 좋아하는 여자를 늙은 왕에게 뺏기기 싫은 네 마음은 이해하겠지만 그래도 반란까지 일으키기보다는 레이르에게 사실을 말해주고 좀더 좋은 방법으로 해결할 수도 있지 않 았을까?” 제임스의 지적에 랑그람은 고개를 저었고, 유크로드가 그 부분에 대해 서 대신 설명을 했다. “처음 저희도 그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보를 모와서 그 카 나리아라는 작전에 대해서 좀더 세부 사항을 수집했고, 랑그람님은 기 회를 봐서 레이르 왕녀님이 충격을 받지 않도록 잘 설명해 줄 생각이 었습니다. 하지만 정보를 모으면 모을수록 점점 더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 것입니다.” “어려움? 루그라드가 어떤 방법으로 그 결혼을 성사시킬 생각이었기 에 어려웠다는 거죠?” 카렌의 질문에 유크로드는 한 장의 서류를 꺼내서 카렌에게 건네주고 는 계속 설명을 해나갔다. “당시 루그라드가 임시로 왕을 맡으며 있었던 인사이동에 관한 서류 와 쿠데타 성공 이후로 얻게 된 카나리아 작전에 대한 원본 서류입니 다. 인사이동으로 새로 국정을 맡게 된 인물들은 루그라드를 따르는 자로서 특히 외교담당에 관계된 자들은 100% 루그라드의 측근들이 도 맡게 됐습니다. 계획서를 보시면 자세한 진행사항도 적혀 있는데 간단 히 정리를 해드리자면 레이르 왕녀님이 왕위를 이어 받은 그날에 이웃 나라에 서찰을 보낼 때 루그라드 본인이 직접 케르디온 왕을 만나 비 밀리에 카나리아에 대해서 설명하고, 이웃나라들과의 동맹에 대한 공 식 회의를 우리 다이러스 제국에서 열어서 여러 나라 왕들이 모인 공 식 석상에서 둘의 약혼에 대해서 발표를 할 계획입니다. 레이르 왕녀 님이 결혼에 대해서 눈치를 챌 때는 이미 공식으로 인정받고 난 뒤라 는 이야기죠. 더구나 랑그람님은…….” “그 부분은 내가 말할게.” 유크로드의 계속되는 설명은 막은 랑그람은 자신에 관한 이야기는 직 접 설명했다. “당시 우리가 조용히 카나리아에 대해서 캐고 다닌다는 사실을 눈치 챈 루그라드는 저를 최전방으로 보내서 레이르에게 접근할 기회를 주 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레이르와 만나지 못하게 되고, 카나리아에 대 해서 사실을 알려줄 사람은 레이르의 곁에서 없어졌죠.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된 건데 루그라드는 나와 레이르의 사이를 인정한다는 뜻을 슬쩍 레이르에게 내 비치면서 이번 파견에서 공을 세워서 돌아오면 승진을 검토하고 있다고 레이르에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 뜻을 우리 둘의 결 혼이라고 착각한 레이르는 내가 전방에 있는 동안 아주 기쁜 듯이 공 을 세워서 빨리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아무것도 모 르고 기뻐하고 있었을 레이르를 생각하면 지금도 미칠 것만 같았습니 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내가 간 곳에는 아도니스와 바그온이 있 었습니다. 평소 엉뚱한 짓 때문에 최전방에서 쫓겨난 그들을 알게 됐 고, 레이르를 정말로 좋아하고 레이르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말하던 그 둘의 진실한 충성심을 보고 저는 결심한 것입니 다.” “그 결심이 쿠데타였군.” 랑그람은 제임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랑그람이 그 때를 다시 생각하면 아직도 울분이 솟아 날 것 같았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레이르가 그 늙은 왕에게 빼앗기는 날을 그냥 바라볼 수밖에 없었 던 지옥 같던 생활. 몇 십 아니 몇 백번이나 레이르가 울면서 왜 지켜 주지 않았냐고 자신을 원망하는 악몽을 꾸었다. 그리고 그 악몽은 항 상 마지막에 레이르가 작별 인사를 하면서 자살을 하는 것으로 끝났 다. 그런 악조건에서 아도니스와 바그온을 만난 것은 랑그람에게는 그야말 로 기적이었다. 그리고 기적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근처 도시에서 벌 어진 살인 사건을 조사하던 중에 어세신 길드의 존재를 알게 되고, 믿 을 만한 어세신 길드라고 판단한 토라스 길드를 도와준 대가로 당시 길드 마스터였던 록크와 - 랑그람은 지금도 에리나가 남자인 줄 알고 있다 - 그의 토라스 어세신 길드를 같은 편으로 끌어들이고 난 뒤에는 행정처리 능력덕분에 수도에 남을 수 있었던 유크로드와 드디어 연락 을 취할 수 있게 됐다. 그 뒤부터 랑그람은 아도니스와 바그온과 같이 비밀리에 병사들을 모 았고, 유크로드는 어세신들과 같이 정보조작과 요인 암살을 했었다. 그리고 능력이 없어서 출세를 못했던 귀족들에게 나라를 뺏은 후 높은 관직을 주겠다는 유혹으로 한편으로 끌어 들여서 그 귀족의 휘하 병력 들을 모았다. 너무나 힘든 날들이었지만 실패는 절대 용납 할 수 없었 던 랑그람은 조용히 그러나 치밀하게 계획을 세웠었다. 하지만 그 계획은 절반만 성공했다. 레이르를 놓쳤던 것이다. 랑그람 은 그날 레이르가 자신을 두려운 눈으로 쳐다보고 도망을 쳤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팠다. “루그라드가 무엇 때문에 그런 계획을 세웠는지는 알아냈나요?” 루그라드의 어린 시절도 잘 알고 있는 카렌이 상념에 잠겨 있는 랑그 람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녀가 기억하는 루그라드는 총명하고 똑 똑한 아이였다. 조금 외곬수적인 면이 있었지만 동생인 레이르를 진심 으로 챙겨줬다. 카렌은 그런 루그라드가 설마 나라가 탐이 나서 동생 을 그렇게 배신할 짓을 했다고는 믿고 싶지 않았다. “아뇨. 그 자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계획을 세웠는지는 이제 중요하 지도 않습니다. 알고 싶지도 않아요! 저는 저의 방식대로 레이르와 이 나라를 지켜 나갈 것입니다.” “그럼 전쟁은 왜 일으킨 거냐? 우리가 데리고 있는 아이들에 대해서 눈치 챘겠지? 그 애들은 전쟁고아들이다. 그 불쌍한 아이들을 왜 만든 것이냐?!” 제임스는 랑그람이 나라를 지킬 것이라고 외친 대목에서 분노하면서 왜 전쟁을 일으켰는지 따졌다. 랑그람은 이마를 찡그리며 한숨부터 쉬 었다. “그것은 우리가 일으킨 전쟁이 아니었습니다.” 잠시 사이를 두고 랑그람이 짧게 말을 뱉자 유크로드가 급히 옆에서 거들었다. “이것은 일반인들은 모르고 있던 사실인데 실은 전쟁의 불씨가 된 사 건이 있었습니다. 우리 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던 가이라가 왕국의 한 변방의 마을이 어떤 집단에 습격을 받았는데 가이라가 측의 수비대 와 붙어서 대부분이 사망 또는 포로로 잡혀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집 단은 바로 우리 다이러스 제국의 문장을 단 기사들이라는 게 그들의 주장으로 그것 때문에 우리가 먼저 전쟁을 일으켰다는 오해로 인해서 이 전쟁이 시작 된 것입니다.” “그래? 그렇단 말이군. 짐작 가는 데는 있는가?” 제임스는 조금 진정이 됐는지 한결 누그러진 말투로 다시 물었다. “그 사건이 가이라가의 조작극인지 아니면 도망친 루그라드의 계획인 지는 지금에 와서는 알 방법이 없습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해 서든 이 전쟁을 빨리 끝내는 것이 최우선 상황이니깐 요. 그런데 저희 들의 말을 믿어 주시는 겁니까?” 랑그람이 조심스런 말투로 설명과 질문을 하자 제임스는 고개를 끄덕 였다. “난 처음에 네가 썩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랑그람 네가 레이르를 지키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게 됐고, 너는 옛날과 변함이 없다는 사실 도 알게 됐다. 그러니 나는 너를 믿는다.” “감사합니다. 제임스 아저씨. 그리고 고맙습니다. 카렌 아줌마.” 랑그람은 이야기를 들어주고 자신을 믿고 이해를 해준 제임스와 카렌 에게 고개를 숙이며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감사의 인사를 했다. 그리고 고개를 든 랑그람은 조금 걱정하는 표정으로 질문했다. “저기 카렌 아줌마. 이제 그 약속을…….” 랑그람이 말을 끝내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것을 보고 카렌은 풋 하고 웃으며 그가 하고 싶은 질문이 무엇인지 알겠다는 뜻으로 대답해줬다. “레이르는 지금 프론트 연합국으로 가는 중이에요. 레이르와 같이 있 는 남자는 저와 친한 분들이고 그 둘은 레이르에게 연애 감정은 안 갖고 있어요. 더구나 실은 여자도 한분 같이 계시니 걱정 안 해도 되 요.” “그..그렇습니까? 저기 그럼 그 남자들……. 미남인가요?” 랑그람의 솔직한 걱정에 제임스도 카렌도 배를 잡고 웃었고, 유크로드 까지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슬쩍 고개를 돌려버렸다. “너무하네요. 사랑하는 여자가 남자와 같이 다닌다는데 신경 안 쓰일 남자가 어디 있겠어요? 그걸 꼭 웃어야 됩니까?” “호호호호. 미안해요. 하지만 너무 어이없는 질문이라서……. 아니 하긴 신경이 쓰이겠네요. 일단 대답부터 먼저 하면 두 분 다 멋진 분 이세요.” “그..그래요? 그 사람들 정체가 뭐죠? 뭐하는 사람들이죠?” 지금 랑그람의 모습을 비유하면 옆집 여자 짝사랑하다가 용기를 내서 고백했더니 ‘나 남자친구 있어요’ 라는 그녀의 대답에 절박한 심정 으로 질문을 하는 남자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 모습에 다시 웃음이 터져 나오려던 카렌은 간신히 참으면서 대답을 해주기 위해 입 을 열었다. 랑그람에게는 티아와 테이의 정체에 대해서 말해줘도 상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솔직하게 다 말해 주기로 했다. “이야기 하자면 좀 긴데. 내가 그 분들을 만난 것은…….” “큰일 났습니다!!” 카렌이 막 이야기를 시작할 때 밖에서 대기하던 호위병의 다급한 목소 리가 들려왔고, 유크로드는 잠시 양해를 구하고 밖으로 나갔다. 하지 만 얼마 지나지도 않아서 딱딱한 얼굴로 다시 들어왔다. “무슨 일이야?” 랑그람은 유크로드의 표정에서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았다. “좋은 소식 하나와 나쁜 소식이 두 가지입니다. 어떤 소식부터 들으 시겠습니까?” “좋은 소식.” 고민 할 것도 없이 좋은 소식부터 듣겠다는 랑그람의 말에 유크로드는 짧게 대답했다. “레이르님을 엘데스 도시에서 찾았다는 소식이 왔습니다. 지금 마차 로 이동중이라고 합니다.” “엘데스? 마법 수정구가 있는 도시라서 다행이군. 좋은 소식을 빨리 듣게 됐으니……. 그럼 나쁜 소식은?” 레이르가 돌아오게 된 것은 랑그람으로서는 뛸 듯이 기뻐해야 됐다. 하지만 나쁜 소식이 한 가지도 아닌 두 가지라는 것이 마음에 걸려서 마음 것 기뻐할 수가 없었다. “하나는 해조성에 갇힌 적측 병사들을 감시하고 있던 우리 병력들이 공격당했다는 소식입니다. 살아남은 연락병의 말에 의하면 우리 다이 러스 제국의 문장을 단 자라고 합니다.” “루그라드인가?” “그것은 아직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건 아직 확인 되지 않은 정보 인데……. 붉은 들소부대가 괴멸되었다는 소식입니다.” “뭐라고?!!” 랑그람은 깜짝 놀라서 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재차 물었다. “확인 안 되었다는 것은 아직 확실하지 않다는 말이겠지?” “그렇긴 하지만……. 정기적인 연락이 오지 않은 것으로 보아서 무언 가 그쪽에서 일이 틀어지긴 한 것 같습니다. 최악의 경우는 붉은 들소 부대의 패배라고 생각을 할 수도…….” “젠장! 아도니스가 그렇게 쉽게 당할 인물이 아니야! 지금 이동하고 있는 우리 병력의 주력들의 위치는 어떻게 되나?!” “지금 출발 하실 생각이십니까?” 유크로드가 말리고 싶은 심정을 담아 질문했지만 랑그람의 성격을 그 누구보다도 철저하게 잘 알고 있는 자는 바로 유크로드였다. 그렇기 때문에 말려봤자 소용없을 것이라고 반쯤은 포기하고 있었고, 유크로 드의 생각대로 랑그람은 바로 주력 병력이 있는 곳으로 출발 준비를 하라고 닦달을 했다. “지금 당장 출발하겠다! 지금 당장! 그럼 카렌 아줌마. 그리고 제임 스 아저씨. 이야기는 갖다 와서 듣겠습니다. 나중에 레이르가 도착하 면 충격 받지 않도록 잘 설명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유크로드는 할 수 없이 출발 준비를 위해 밖으로 나가고, 랑그람도 준 비를 위해서 나가야 되기 때문에 카렌에게 레이르에 대한 일을 부탁하 고 나가려고 할 때 제임스가 그 앞을 막아섰다. “왜 이러세요?” “지원이 필요하지 않나?” “네?! 도와주시려고요?” 랑그람은 제임스의 말뜻을 알아차렸고, 제임스는 잠시 카렌을 쳐다보 았다. ‘괜찮지?’ ‘저는 상관없어요. 하지만 당신이야 말로 괜찮으신가요? 다시 전쟁에 뛰어 들어도…….’ ‘내 힘이 저주받은 힘이 아닌 누군가를 지킬 수 있는 힘이라는 사실 을 가르쳐 준 것은 카렌이야. 그런 소중한 카렌과 내 주위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난 이 전쟁에 힘을 사용하고 싶어. 그러니 난 괜찮아. ’ ‘그렇다면 아무 걱정 말고 갖다 오세요. 그리고 우리들을 지켜주세 요. 당신의 힘으로…….’ 카렌과의 눈 대화를 마친 제임스는 랑그람에게 힘 있게 대답했다. “도와주겠다. 최강의 다크 나이트라 불리는 의지를 가진 이 내가 너 를 위해서 힘을 빌려 주겠다.” 이것은 랑그람에게 크나큰 힘이 또 하나 생긴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기뻐해도 모자랄 판에 랑그람은 어쩐지 뚱한 표정으로 카렌과 제임스 를 번갈아서 쳐다보고만 있었다. “왜 그러냐?” “방금 눈으로 카렌 아줌마와 대화를 나누셨죠?” “으응?! 그..그렇긴 한데 그게 왜?” “어떻게 하면 눈으로만 대화가 가능한거죠? 사랑의 힘인가요?” “무..무슨 소리냐?! 이건 단지 다크 나이트의 계약으로서 내 마스터 격인 카렌과는 대화가 가능한 것뿐이야!!” 제임스는 흐를 리가 없는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끼며 필사적으로 변 명했다. 하지만 카렌은 그런 제임스의 노력을 간단하게 뭉개줬다. “어머! 그런 능력도 있었나요? 난 오늘 처음 알았네요.” ‘어? 갑옷 색깔이 핑크색?! 그때 내가 헛것을 본건 아니었군. 제임스 아저씨의 갑옷은 감정에 따라서 색깔이 변하는 건가?’ 또 다시 핑크색 갑옷으로 바뀐 제임스를 보며 랑그람은 괜히 놀렸다는 생각을 했다. 핑크빛 갑옷은 도저히 봐 줄만한 색깔이 아니었다. 여자 라면 괜찮은 색깔일지 몰라도 남자라면 빈 말이라도 ‘어울리는 색입 니다’ 라고는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렌은 생각이 달랐던 것 같다. “역시나 그 색깔의 당신은 귀여워요.” “무..무슨 소리를! 랑그람 급하다고 했지?! 얼른 가자!” 제임스는 랑그람을 아예 번쩍 들어서 옆구리에 끼고는 급히 그 자리를 벗어났다. ‘두 번 다시 이 부부를 놀리지 말아야겠어. 재미있기는커녕 배만 아 프잖아.’ 랑그람은 제임스에게 들려(?)가면서 다짐에 다짐을 했고, 혼자 남은 카렌은 한숨을 쉬며 중얼 거렸다. “이제 그만 저 수줍어하는 버릇 좀 고치셔도 될 텐데. 아직도 나를 부부로서 대해 주는 것이 그렇게도 어려우신건가? 아니면 아직도 살아 있지 못한 몸이라는 것을 신경 쓰시고 계신건가? 제발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으셨으면 좋겠는데.” 카렌은 우울한 기분을 느끼면서 레이르가 돌아오면 신세 한탄이나 해 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랑그람이 자신을 배신한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기뻐할 레이르의 모습을 상상하며 레이르가 어서 빨 리 도착하기를 빌었다. 하지만.... ‘루그라드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해야 될까?’ 카렌은 탁자위에 놓인 카나리아 작전의 원본 서류를 보면서 한숨쉬었 다. 여기 나오는 카나리아란 틀림없이 레이르를 칭하는 말일 것이다. 카렌은 누가 지었는지 모르지만 여러 사람에게 보호받고 있는 레이르 를 표현한 가장 적당한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랑그람이 새로운 동료를 얻게 된 그 시각에 다른 곳에서는 그의 소중 한 동료 한명이 위험에 빠져 있었다. 그의 이름은 아도니스 드 아나카 르낙이었다. 31화 카나리아(5) 아도니스는 검을 빼어 들고 루그라드를 노려보았다. 그의 앞에는 루 그라드도 검을 손에 들고 서 있었다. 이것은 아도니스가 제의한 결투 였고, 루그라드도 그 제안에 합의해서 주위 기사들에게 절대 손을 대 지 말라는 명령을 내려놓았다. “한꺼번에 덤벼들지 않아 줘서 고맙군.” “꼭 이래야 되나? 난 너의 실력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다이러스 제 국의 앞날을 위해 그리고 레이르를 위해 힘을 빌려 주지 않겠나?” “레이르 왕녀님을 위해서라고?! 난 그런 말도 안 되는 정략결혼 따 위가 레이르님을 위한 생각 따위는 안 해!” “왜지? 랑그람 때문인가?” “잘 알고 있다면 더 이상 설득이 통하지 않겠다는 것을 알겠지? 하 압!” 아도니스는 기합을 외치며 힘차게 검을 휘둘렀고 루그라드는 아주 손 쉽게 검을 막아냈다. “힘이 안 들어가 있군. 역시 부상 탓인가?” “너 하나 죽일 힘은 아직 남아 있다!!” 아도니스는 재빨리 몸을 반회전하면서 검을 크게 휘둘렀다. 루그라드 는 검을 옆으로 세워서 막은 다음 아도니스가 검을 거두자 검을 아래 로 내리그었다. 하지만 속도가 나지 않은 공격이라 아도니스는 쉽게 막을 수 있었다. “흥! 부상자라 봐준 다인가? 쓸데없는 짓 하지마라!” “그게 아니다. 이렇게 해야 자네와 제대로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 아서이다.” 루그라드의 말대로 아도니스가 검을 쉽게 막은 덕분에 검을 마주친 상태로 교착상태에 들어갔다. 그 상태에서 루그라드는 허리부상 때문 에 힘이 없는 아도니스의 밀어내기를 적당한 힘으로 버티면서 입을 열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난 이 다이러스 제국을 넘겨 줄 생각은 없었 다. 모든 것은 전부 이 다이러스 제국을 위해서다!” “허..헛소리!” “헛소리가 아니다! 너도 알고 있을 것이다. 가이라가 왕국에서 군사 를 모으고 전쟁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묻겠는데 그거와 레이르 왕녀님이 무슨 상관이 있냔 말 이다!!” 아도니스는 젖 먹던 힘까지 짜내서 루그라드를 간신히 밀어냈다. 아 도니스는 힘들게 숨을 헐떡이면서도 검을 잡은 손에 더욱더 힘을 주 며 외쳤다. “나 같은 평민 출신 장군은 직위를 얻고 귀족가 성을 부여받아도 무 시받기 일수였다! 하지만 레이르님은 달랐다! 나를 아니... 모든 사 람을 지위에 맞게 대하는 것이 아닌 그 사람 그 자체로서 대해주셨다 ! 그런 레이르님에게 나는 영원한 충성을 맹세했다!! 레이르님에게 위해를 가하는 자가 있다면 지옥 끝까지라도 찾아가서 사지를 절단내 버리겠다고!! 그로 인해 설사 내 몸이 부서지더라도 말이다!!” 루그라드는 한숨을 내쉬며 검을 잡은 손을 늘어트리며 슬픈 눈으로 아도니스를 바라보았다. “자네가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레이르는 왕녀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를 위해 국민을 위해 해야 될 역할이라 는 것이 있다.” “난 그게 말도 안 되는 정략결혼이라고 생각 안 해! 말이 좋아 정략 결혼이지 그것은 노예를 이웃나라에 바치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이 냐?!” “다르다. 난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레이르를 가이라가에 보내면 우 리 다이러스는 틀림없이 완전한 평화를 얻을 수 있다. 아니 더 나아 가서 가이라가를 손에 넣을 수도 있다.” “뭐라고?” “아도!! 피..피가!!” 에리나는 아도니스의 허리에 흐르는 피를 발견하고 비명을 질렀다. 역시 상처가 완전히 낫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를 했기 때문이었다. 에 리나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아도니스와 루그라드를 번갈아서 쳐다 봤다. “괜찮다. 치료해 줘라.” 에리나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알아차린 루그라드는 고개를 끄덕 이며 허락을 내비쳤고, 에리나는 급히 아도니스의 곁에 다가가서 비 상용 구급약을 꺼냈다. “하지 마! 이것은 결투다! 결투 도중에 치료를 받는 것은 기사가 할 짓이 아니야!!” “그런 것으로 치자면 부상당한 자와 싸우는 것도 정식 기사가 할 짓 은 아니다. 그러니 치료를 받도록 하게.” 아도니스가 화를 내자 루그라드는 고개를 저으며 그를 말렸고, 에리 나는 눈에 핏대를 세우며 화를 냈다. “정식 기사 같은 짓은 죽어라고 안 하는 주제에 이럴 때만 고집 좀 세우지 마!!” “뭐라고?!” “뭐야? 왜 눈을 부라리고 있는 거야? 때릴 거야? 때리려면 때려! 하 지만 치료는 받아! 나를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약속을 했으면 날 불행 하게 만들지 말아야 될 것 아니야!! 우우.” “아..알았어! 치료 받을 테니 울지 마!!” 아도니스는 악을 질러대는 에리나의 커다란 회색 눈동자에 눈물이 맺 히는 것을 보고는 급히 사과를 했다. 여자의 눈물을 보는 것은 그리 좋은 기분이 아니었다는 것을 처음 느낀 아도니스는 두 번 다시 에리 나가 우는 것을 보기가 싫었기 때문이다. 에리나는 눈을 쓱쓱 문질러 눈물을 닦아 버리고는 피 묻은 붕대를 익 숙한 솜씨로 풀어서 칼에 베인 상처에 잘 듣는 약을 발라주었다. 그 렇게 에리나가 치료를 하는 동안 루그라드는 잠자코 방금 전에 하던 말을 계속했다. “치료를 하는 동안 잘 듣기 바란다. 나는 가이라가 왕국이 전쟁 준 비를 한다는 사실을 눈치 채고는 우리 제국의 국력을 재정비하기 시 작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임시 방편 책에 불과한 것 지금 전쟁에서 이겨도 전쟁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기던 지던 전쟁이 일어 나면 고통 받는 것은 국민들이다. 진정으로 국민들을 생각하는 왕이 라면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진짜 왕이다. 그 래서 나는 레이르를 가이라가에 보내기로 결정한 것이다. 자네도 알 다시피 지금 가이라가 왕은 왕이라 할 수 없는 썩어빠진 자이다. 항 상 간신배의 사탕발림에만 넘어가고 색을 밝히는 인간쓰레기다. 그런 자에게 레이르를 보내는 것은 나 역시 가슴 아프지만 레이르는 총명 하고 똑똑한 아이이니 썩어빠진 가이라가를 바로 세울 수 있을 것이 다. 색을 밝히는 케르디온이라면 자신보다 20살 아래의 연하에다가 이웃나라의 왕녀라는 고귀한 신분의 레이르는 엄청난 선물이고, 그만 큼 레이르를 애지중지 해줄 것이다. 아마도 레이르가 해 달라는 말은 뭐든지 들어 줄 것이니 레이르의 판단에 따라 간신배들을 처리하고 제대로 된 자들을 관직에 올려주면 그 자들은 레이르에게 충성을 맹 세할 것이고, 레이르가 왕자라도 낳게 되면 그 왕자를 황태자로 추대 할 것이다. 그렇게만 되서 레이르의 왕자가 가이라가의 왕이 되면 우 리 다이러스 제국이 그렇게나 염원하던 영원한 평화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제법 긴 이야기를 쉬지 않고 말 한 루그라드는 잠시 숨을 고르고 아 도니스를 쳐다보며 물었다. “이것이 내가 생각했던 카나리아 작전의 진짜 계획이다. 무엇이 진 정으로 이 나라를 위한 일인지는 자네도 이제 이해할 것이라 생각한 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묻겠다. 이 나라를 위해 국민들을 위해 힘을 빌려줄 수 있는가?” 아도니스는 잠자코 루그라드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질문이 들 어오자 고민할 것도 없이 바로 일어서서 대답했다. “거절한다.” “어째 서지?” 루그라드는 처음으로 조금 화가 난 음성으로 물었다. 아도니스는 치 료를 완전히 끝내고도 옆에서 머뭇거리는 에리나에게 떨어져 있어 달 라고 하고는 검을 고쳐 쥐며 말했다. “아까도 말했듯이 내가 충성을 맹세한 인물은 레이르 왕녀님이다. 만약 왕녀님을 울리는 자는 그 누구라도 용서 안하겠다고 마음먹었 다. 지금은 랑그람님의 밑에 있지만 만약 랑그람님이 레이르님을 배 신한다면 난 주저 없이 그 분에게도 검을 들이 댈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전쟁은 반드시 일어났을 것이다! 지금 도 우리 다이러스는 전쟁 때문에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고 있는지 모 른단 말이냐?!!” “전쟁이니 뭐니! 피해니 뭐니! 그건 내 알바가 아니야!! 난 레이르 님에 대한 충성심에 최선을 다한다! 그 어떤 일이 있더라도 레이르님 이 불행해지는 것은 원치 않아!! 하나만 물어보자! 카나리아 작전으 로 나라가 평화로워 지더라도 레이르님이 불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자 신 할 수 있는가?! 케르디온에게 반강제로 시집가면 그 분은 그 순간 행복하실까?!!” “.......행복하지 못하겠지.” 루그라드는 힘겹게 말을 뱉으며 고통스런 표정을 지었다. 아도니스는 그것 바라라는 표정을 지으며 검을 머리 위로 들며 말했다. “알고 있다면 내 결정도 무엇인지 알겠지? 우리는 결코 타협할 수가 없다.” 아도니스의 강경한 말투에 루그라드는 더 이상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느끼며 검을 들었다. 아도니스는 긴장감을 풀지 않고 노려보다가 문 득 뒤에서 슬픈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을 에리나의 생각에 검을 내렸다. “실컷 당신에 대해서 폭언을 쏟아놓고 이런 부탁을 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래도 부탁하나 하고 싶다. 내 뒤에 있 는 에리나는 내가 이기든 지든 안전하게 보내줄 수 있다고 약속해 줄 수 없나? 이것은……. 당신 신하였던 적이 있는 아도니스로서 마지막 부탁입니다. 루그라드 왕자님.”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난 싫어! 만약에 아도가 죽으면 나도 이 자 리에서 죽어 버릴 거야!!”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죽는다는 소리는 절대 하지 말란 말이야! ” “행복하게 해준다고 해놓고 죽을 걱정하는 남자가 어디 있어? 당신 이 죽고 내가 살면 내가 사랑하는 남자가 날 지켜 주고 죽었으니 아! 난 행복해라는 말이 나올 것 같아?! 당신이 죽으면 그 순간 나도 불 행해지는 거야!!” 아도니스는 검을 내리고는 울먹이는 에리나에게 다가가서 에리나를 강하게 끌어당겨서 가슴에 안았다. 울먹이는 에리나는 아도니스가 안 아주자 크게 울음을 터트렸고, 아도니스는 에리나의 등을 토닥이며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미안해. 그동안 제멋대로인 남자를 좋아하는 라고 고생이 많았지? 하지만 이제 그것도 곧 어떤 결말이 되던지 끝이 날거야. 부탁이야. 제발 내 앞에서 죽겠다는 소리는 하지 말아줘. 어떤 일이 있더라도 살아줘. 내 몫까지…….” “어엉! 몰라! 바보야 난 몰라! 엉엉엉! 죽지 마! 죽지 않겠다고 약 속해. 제발! 엉엉엉!” “미안…….” 아도니스는 매몰차게 에리나는 떼어 놓으며 루그라드의 앞에 섰다. 아도니스가 떨어지자 에리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으며 손을 뻗쳤다. 눈물 때문인지 흐릿하게 보이는 아도니스가 그대로 사라질 것만 같았 다. “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 에리나는 무사히 보내 주십시오.” “......내 이름을 걸고 약속하겠다.” “감사합니다. 그럼…….” 아도니스가 검을 고쳐 쥐었다. 그리고 루그라드도 그에 맞춰서 검을 쥐고 자세를 잡았다. 서로의 목숨을 건 결투전인데도 아도니스는 이 상하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것은 루그라드도 마찬가지였다. “표정을 보니 저와 똑같은 생각을 하시는 것 같군요.” “역시 자네도 그 생각을 하고 있었나? 우리가 검술 연습을 하던 때 를…….” “네.” 아도니스가 붉은 들소 기마대로서 아직 지휘관의 자리에 오르기 전 일반 기마병 시절부터 둘은 같이 결투를 한 적이 있었다. 루그라드는 처음에 검술 연습장에서 혼자 연습하는 아도니스를 보고 그의 거칠지 만 절도 있는 검술에 흥미를 느끼고 신분을 속이고 연습 겸 결투를 했었다. 결과는 루그라드의 승리였으나 루그라드는 그렇게 힘들게 이 겨 본적은 처음이었다. 그때 이후로 루그라드는 계속 아도니스와 검술을 연습하며 은근슬쩍 정통 검술을 가르치면서 그를 단련 시켰고, 아도니스는 스펀지에 물 을 빨아들이듯이 루그라드의 정통 검술을 자기 것으로 흡수해 갔다. 그리고 결국 지휘관의 자리까지 오른 아도니스는 수여식 날 왕의 옆 에 앉아 있는 레이르 공주와 루그라드 왕자를 보고 그의 정체를 알아 차렸다. 하지만 그 후에도 변함없이 둘의 검술 연습은 계속 됐었다. 그런 추 억에 잠기면서 둘은 검을 마주쳤다. 검광이 횃불의 불빛을 받아 아름다운 빛을 머금고 환상적이고 힘 있 게 허공을 가로질렀다. 검 부딪치는 소리는 둘의 검술을 보는 이로 하여금 아름다운 음악 소리를 듣는 듯한 착각마저 갖게 만들 정도였 다. 어느새 주위의 모든 사람들은 둘이 펼쳐내는 아름다우면서도 힘 이 넘치는 결투를 말을 잃고 쳐다봤다. 아도니스는 더 이상 허리의 상처가 아프지 않았다. 아니 느껴지지가 않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이다. 상처 따위는 이제 아무래도 좋았 다. 팔이 알아서 검을 휘둘렀다. 몸이 알아서 움직였다. 아도니스는 어느새 검을 휘두르고 겨루는 것에 푹 빠져 있었다. 옛날에 루그라드 와 자주 검술 연습을 하던 때로 완전히 돌아간 상태였던 것이다. 그 리고 그것은 루그라드도 마찬가지였다. 둘은 지금 검을 겨루는 것을 진심으로 즐. 기. 고 있었다.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 같던 둘의 검무도 슬슬 마지막으로 치닫고 있 었다. 미묘하게 아도니스가 앞서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부터 루그라 드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채앵! 맑은 쇳소리가 올리면서 루그라드의 검이 허공을 날았고, 아도니스의 검이 루그라드의 목에 닿았다. 조금만 힘을 주면 루그라드의 목을 뚫 을 수가 있었다. 루그라드는 숨을 헐떡이며 말을 내뱉었다. “강해졌구나. 하긴 너는 이것보다 더 강해질 수가 있다.” “지금까지 가르침 고맙습니다. 하지만…….” “난 정정당당한 결투에 진 남자다. 내 목숨은 이제 네 것이다. 네가 이대로 나의 목숨을 가져가도 나는 후회하지… 뭐하는 짓이냐? 지란! ! 그만둬!!!” 갑작스런 루그라드의 비명에 아도니스는 순간적으로 뒤를 돌아봤다. 그의 눈에 비친 것은 회색빛 머리카락의 물결이었다. “에리나?” 아도니스가 멍하게 에리나의 이름을 부르며 쓰러지는 에리나에게로 손을 뻗쳤다. 마치 몸이 자신의 몸이 아닌 것처럼 말을 듣지 않았다. ‘왜 이러지? 난 에리나를 받아줘야 돼. 팔을… 팔을 뻗어서……. 그 녀를…….’ 힘겹게 에리나를 받은 아도니스는 검을 떨어트리며 에리나를 감싸 앉 으며 그 자리에 쓰러지듯이 주저앉았다. “지란! 무슨 짓을 한거냐?! 넌 내 정정당당한 결투에 먹칠을 할 셈 인가?!” “루그라드님 진정해 주십시오.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루그 라드님은 이 자리에서 죽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불초 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듣기 싫다! 너희들 뭐하는 거냐? 어서 저 여인을 치료해라!! 빨리! ” “루그라드님 죄송합니다. 이미 늦었습니다. 설마 저 여자가 끼어 들 줄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저 여자는 급소를 찔려서 이제는…….” “듣기 싫다! 빨리 치료하지 못할까?!” 루그라드의 성난 음성도 지란의 쩔쩔매는 변명도 주위 기사의 웅성거 림도 아도니스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아도니스는 멍한 눈빛으로 가슴에 단검이 찔린 상태로 숨을 헐떡이는 에리나를 쳐다봤다. “아…….” 에리나의 뺨을 살며시 쓰다듬으며 그녀의 이름을 부르려고 했지만 목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아직 따뜻해. 에리나는 아직 살아 있어. 아직 살아 있어. 아직 살 아 있어. 살아 있어.’ 아도니스가 마음속으로 수 없이 에리나가 살아 있다는 말을 강조할 때 에리나가 힘겹게 눈을 뜨고 아도니스를 바라보았다. “헤헤. 나 약속 지켰네.” 힘겹게 웃으며 약속을 지켰다는 에리나의 말에 아도니스는 울컥 화가 났다. 살아 달라고 했는데 이 지경이 됐으면서 약속을 지켰다니……. 아도니스는 뭐라고 화를 내고 싶지만 말이 입에서 나오지를 않아서 답답했다. “내 자신에게 약속을 했거든. 뒤가 약한……. 쿨럭! 헉헉. 아도니스 의 등 뒤는…….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겠다고……. 나 약속 을 지켰어.” ‘사랑해. 죽지 마. 제발 죽지 마. 아직 난 널 행복하게 해주지도 못 했어. 제발…….’ 뭐라도 말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도니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 아아’라는 말밖에 나오지가 않았다. 그래도 아도니스의 눈을 보고도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눈치를 채고 있던 에리나는 미소를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말을 계속했다. “나 아도가 날 여자로 봐줘서 기뻤어. 정말 행복했어. 하아…. 하아 …. 아니 지금도 행복해. 그러니 울지 마. 그리고 아까 아도가 한 말 ……. 그대로 돌려줄게. 살아줘. 내 대신……. 나중에라도 아도가 결 혼하고… 딸을 낳게 되면… 에리나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그리고 아주 예쁘고 착한 여자로 길러주… 읍!” 에리나는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아도니스가 입맞춤으로 입을 막아버렸기 때문이다. 그의 의도를 알아챈 에리나는 눈물을 흘리며 아도니스의 목을 감싸 안고 그의 마지막 키스를 받아들였다. ‘바보. 정말 바보. 당신 같이 고집 센 남자를 왜 좋아하게 된 걸까? 하지만 후회는 안 해. 사랑해 아도. 지금도… 앞으로도……. 계속 사 랑해.’ 서로의 영혼까지 빨아들일 기세의 깊은 키스를 나누던 에리나의 뺨을 흐르던 눈물 한 방울이 땅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녀의 팔도 아도니스의 목에서 떨어졌다. 루그라드의 닦달에 에리나를 치료하기 위해 주위에 모여든 기사들은 누구하나 아도니스에게 그녀를 치료해 주겠다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지금 그 순간만큼은 절대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기사들의 행동을 막았던 것이다. 루그라드는 기사들을 헤치며 아도니스에게 다가갔다. 아도니스는 에 리나를 땅에다 살며시 눕히고 손을 가슴에 모아주고 있었다. 이때만 큼은 루그라드도 무슨 말을 해줘야 될지 알 수 없었다. “아도니스…….” 루그라드가 간신히 아도니스의 이름을 불렀을 때 아도니스는 옆에 떨 어져 있던 자신의 검을 번개같이 붙잡았다. “루그라드님! 위험합니다!!” 몇 명의 기사가 검을 들고 루그라드의 앞을 막아섰고, 몇 명의 기사 들이 아도니스에게 검을 휘둘렀다. “자..잠깐!!” 루그라드가 말리기에는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는 처음 부터 아도니스에게 살기가 없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 증거로 아도니스는 검은 바로 앞에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기사들도 그 사실 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아도니스의 몸에 검을 박아 넣고 난 뒤였 다. 둔탁한 소리를 내며 아도니스의 검은 땅에 떨어졌고, 아도니스는 그 자리에서 쓰러지며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의 손은 에리나에게 닿지 않았다. ‘미안. 난 고집불통이라서 에리나의 부탁을 들어 줄 수가 없었어. 그건 에리나도 잘 알고 있지? 항상 고집을 부리는 내 곁에서 남자로 행세하며 얼마나 힘들었니? 더구나 네가 여자라는 것을 알고 네 마음 을 알아도 그 보상으로 행복하게도 못해준 이런 바보 같은 남자가 너 는 어디가 좋았을까? 그래도 이런 날 사랑해준다고 말해줘서 너무 고 맙고, 기쁘다. 그렇기 때문에 널 혼자 두지 않을게. 약속했지? 함께 가자고. 어디를 가든지 나는 항상 너와 함께야. 항상…….’ 아도니스는 흐려지는 눈동자를 부릅뜨고, 떨리는 팔에 젖 먹던 힘까 지 주며 필사적으로 에리나에게 뻗었다. 그때 기사들 중 몇 명이 아 도니스의 몸을 들어서 에리나의 옆으로 옮겨 주었다. 그리고 루그라 드는 아도니스의 손을 에리나의 손과 마주 잡게 해줬다. 이제는 말도 나오지 않던 아도니스는 눈으로 루그라드에게 감사의 인 사를 전하고 힘겹게 고개를 돌려 미소를 지으며 잠들어 있는 에리나 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아도니스의 눈도 감겼다. 에 리나와 똑같이 미소를 지으며……. 아도니스의 죽음을 끝까지 지켜본 루그라드는 한숨을 쉬고 일어나서 주위 기사들에게 둘을 같이 묻어 주라고 명령하고는 천천히 산을 내 려갔다. 그 뒤를 지란이 묵묵히 뒤따랐다. “주제넘게 끼어들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정정당당한 결투에 더러운 짓으로 끼어둔 소인의 죄 이 자리에서 저의 목을 치신다 해도 변명할 말이 없습니다.” “이제 그만 됐다. 난 더 이상 인재를 잃기 싫다. 그리고…….” 루그라드는 잠시 그 자리에 서서 먼동이 터오는 하늘을 바라보며 나 직하게 중얼거렸다. “내가 선택한 이 길은 가장 더러운 진흙탕이다. 이런 더러운 내가 이제 와서 정정당당이라니……. 난 아도니스와 정정당당히 검을 겨룰 자격 따위는 처음부터 없었어.” 계속 ---------------------------------------------------------------- 이번편은 할 말이 없습니다. 이 둘을 좋아하셨던 분들은 저에게 온갖 욕을 퍼부우셔도 저는 할 말이 없습니다. 이야기 진행을 위해서라고는 하나... 살아 움직인다는 느낌을 받은 마음에 드는 캐릭터의 죽음은 항상 마음을 무겁게 만들더군요. 휴...빨리 떨쳐 버리고 다음편 32화 남매의 숙제편에서 뵙겠습니다. 아도니스와 에리나에게 미안하다. 이 말밖에는 해 줄 말이 없어서.... 미안. 32화 남매의 숙제(1) 아침에 일어나서 레이르가 없어진 것을 제일 먼저 발견 한 것은 티아 누나였다. “테이야! 테이야! 레이르가 없어졌어!!” “응? 아함. 화장실이라도 갔겠지.” 잠에 취한 나는 호들갑을 떠는 누나를 못 마땅한 눈으로 째려봐주고 그대로 다시 누워서 잤다. 아 편안해. 그런데 그 편안함은 금방 깨졌 다. “여자가 화장실 간다는 말은 남자가 하면 안돼!!” 누나는 그렇게 소리를 지르며 나를 되게 걷어 찬 것이다. 난 침대에서 굴러 떨어져서 코를 부딪쳤고, 코피가 나버렸다. 아침부터 피 본 것이 다. “뭐하는 짓이야?! 이 폭력 누나야!!” “그런 부끄러운 말은 남자가 하면 안돼!!” “젠장! 뭐가 부끄러운 말인데?! 막말로 인간들은 몸속에 섭취한 영양 분을 완전히 분해 할 수 없는 위장을 가졌기 때문에 배설을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야! 그 당연한 일을 말했을 뿐인데 그게 왜 부끄러운 일이 대야 하는데?! 왜 그게 내가 아침부터 피를 보게 만드는 원인이 되냐 고?!!” 내가 많이 커서 이렇게 달려드는 것이 아니다. 방금 전 누나의 발차기 에서도 느꼈지만 누나의 힘은 정말 약해져 있었다. 옛날이라면……. 아니 벌써 옛날이라는 말을 쓸 정도는 아니고 바로 어제만 하더라도 누나가 발로 차면 난 벽을 뚫고 옆방으로 날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겨우 침대에서 떨어진 정도로 끝나서 나는 의기양양하게 덤벼 들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흑. 으엥! 테이 바보! 엉엉! 바보! 바보! 바보! 남자가 뭐 저래?!” 왜 우는 거냐고?! 내가 천하의 나쁜 놈 같잖아! 정말이지 여자가 남자 올리는 것은 해도 된다고 남자가 여자를 울리면 나쁜 놈 되는 이런 빌 어먹을 세상이 또 어디 있겠는가? “테이 네가 잘 못 했어.” “어째서요?!” 시이터가 누나 편을 들어주는 발언을 한 덕분에 내 분노(?)는 바로 시 이터에게로 쏟아졌다. 하지만 시이터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무덤덤한 표정으로 내 분노를 받아 넘기며 말했다. “남자와 여자란 것은 아무리 종족 특성을 따진다 하더라도 기본적으 로 남자가 여자에게 해서는 안 될 말이란 게 있는 거야. 이번 꽃 따러 간다는 말도 그렇고.” “꽃…이라고요?” “여자들이 쓰는 화장실 간다는 말의 은어. 기억해둬라. 나중에 애인 생겨서 괜히 울리거나 차이지 않도록 말이야.” “그렇게 일일이 따지는 여자는 내 쪽에서 사양입니다.” “너무해! 엉엉! 정말 너무해에!” “그만 좀 울어!!” 아 정말이지 짜증나는 일로 아침을 시작해야 되다니……. 오늘 하루는 아무리 생각해도 조용히 넘어가기는 틀린 것 같아. “그리고 레이르가 떠난 것은 사실이야.” 저것 봐. 벌써부터 골치 아픈 소리가 나오잖아. 젠장! 레이르가 떠났 다니 골치가 더 아파지는 것 같다. 어라? “뭐라고요?!!” 어느새 울음을 뚝 그친 누나와 간신히 제 정신으로 돌아온 내가 합창 으로 소리를 지르자 시이터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서며 우물쭈물 대답했 다. “그게……. 왕녀임께서 더 이상 자기 일 때문에 사람들이 고생하고, 희생되는 게 싫다며 어젯밤에 스스로 다이리 수도로 가셨다고. 분명히 말하겠는데 난 죄 없어!” 마지막의 시이터의 외침은 내 귀에는 ‘찔리는 게 많아서 변명합니다 ’라고밖에 안 들렸다. “시이터씨. 어떻게 그걸 알고 있죠?” 난 화가 나서 절로 목소리가 음산해졌다. “어제 몰래 밖으로 나가는 왕녀님의 뒤를 내가 밟아서 따라갔었거든. 거기서 들은 거야. 분명히 말해두겠는데 난 분명 말렸어! 필사적으로 말렸다고!!” “시이터 씨가 레이르를 부추긴 것은 아니고요?” 이번에는 누나가 음산한 목소리로 시이터에게 대답을 강요했다. “난 그런 적 없어!! 절대로 말렸었다고!!” “그럼 왜 가게 내버려 둔거죠?” “맞아! 억지로라도 못 가게 막았어야지.” 오랜만에 호흡이 척척 맞는 나와 누나의 협공에 시이터는 점점 궁지에 몰린 쥐 꼴이 되서 벽으로 밀려났다. 시이터는 보기에도 불쌍할 정도 로 얼굴이 식은땀으로 범벅이 됐지만 그것은 딴 사람이 봤을 때나 불 쌍해 보일 뿐이지. 우리 남매에게는 그 어떤 동정심도 들지 않았다. “빨리 진실을 말해요.” “이대로 뼈까지 아작 내기 전에.” “사, 사, 사람 살려!!!” 시이터의 공포에 찬 비명을 시작으로 바쁜 하루가 시작됐다. 아침 식탁에서 떠들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식사를 방으로 가 져와서 밥을 먹기로 했다. 그렇게 밥을 먹으며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 의논하기로 했는데……. “브레스 몇 방이면 성을 박살낼 수 있을까?” “누나…….” “티아양…….” “내가 뭐 잘 못 말했어?” 여전히 정신 못 차린 누나의 강경책에 더 이상 신경을 끊기로 하고, 나는 카렌들을 구하면서 이번 기회에 레이르를 확실히 왕위에 앉힐 계 획을 생각했다. 일단은……. “그 랑그람이라는 자가 왜 그렇게 레이르를 못 데려와서 안달일까?” 내 궁금증에 시이터가 명쾌하게 답변을 해 줬다. “레이르 왕녀의 시체라도 발견 되지 않는 한은 이 나라 국민들에게 전통 왕위는 레이르 왕녀라는 인식이 박혀 있어. 그리고 그 인식은 현 체제에 불만을 가진 무리들의 반란을 의미하는 거고. 그것도 다 레이 르 왕녀라는 희망이 국민들에게 남아 있기 때문이야. 그래서 보통 쿠 데타가 일어나면 그 당시의 왕족은 완전하게 씨를 말리는 것이 관례 같은 거지.” “인간들이란 동족을……. 죽이는 게 무슨 관례라고……?” “그 말에 대해서는 나도 할 말 없다. 아니 한마디만 하자면 꼭 그런 인간들만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 그나마 위안거리지.” 누나가 인간들의 욕을 하는 것을 듣고도 같은 인간인 시이터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동의하는 말을 내 뱉었다. 같은 인간에게조차 욕을 먹는 종족이고, 또 욕을 들어 먹어도 싼 종족이지만……. 하지만 안 그런 인간도 있다는 말은 나도 공감하는 바였다. 지금 우리가 도와주려고 하는 레이르도 인간이니깐. 일단 내 생각에는 다이리 수도로 가보고 난 뒤에 결정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레이르에 대한 로헨타이가의 집착이 단순히 왕좌 때문만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그것을 확인 해보 기 위해서라도 다이리 수도로 가서 정보를 얻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 다. 그런 내 생각을 누나와 시이터에게 말하자 둘 다 고개를 끄덕이며 동 조해줬고, 어떻게 최대한 빨리 다이리 수도로 가는가라는 문제를 고민 했다. 아마도 레이르는 마차 같은 것을 타고 떠났을 테니 걸어가면 너 무 늦어버릴 지도 모르고……. “내 전용 마차를 타고 가는 수밖에 없겠다.” “왜 전용 마차라는 말을 하면서 날 가리키는데?” 천연덕스럽게 손으로 날 가리키며 전용마차 어쩌고 하는 누나의 행동 에 울컥 화를 내자 누나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울먹였다. “왜 화부터 내는데……. 훌쩍. 테이 무서워. 누나가 힘이 약해졌다고 이제 누나 취급을 할 필요도 없다는 거지? 너무해! 잉잉.” 분명히 저건 연기다. 100% 연기다! 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남자와 여 자가 같이 있는데 여자가 울고 있으면 항상 나쁜 놈 되는 것은 남자 다. 결국 사과를 해야 되는 것도 남자 몫인 것이다. - 참으로 불합리 한 세상이다. - “미안.” “훌쩍. 그럼 태우고 갈 수 있지?” “그건 죽어도 싫어!!” “아앙! 너무해! 누나를 태우고 가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이야?!” “제발 울지 좀 마!” “너희들 혹시 다이리에 간적 없냐?”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뚱한 표정의 시이터가 우리 둘의 말다툼을 말리 면서 물었다. “가 본적 있는데요.” 내 대답에 시이터는 한 숨 쉬며 ‘그럼 왜 워프 마법을 쓸 생각은 안 하는 거냐?’ 라고 물었다. 그 질문에 나도 누나도 할 말을 잃고 침묵 을 지켰다. 왜 깜박 해버린 걸가? “호호호. 맞네. 워프 쓰면 되잖아. 워프 쓰면 레이르보다 빨리 다이 리에 도착할 테니 그동안 정보도 모으고 여차하면 다이리 수도에 도착 하기 전에 레이르를 빼돌릴 수도 있고…….” “마, 맞아. 정말 간단한 방법이잖아. 하하하.” 간신히 누나가 정신을 차렸는지 무안함을 감추려고 헛웃음을 지으며 말하자, 나도 재빨리 누나 말에 장단을 맞추며 웃었다. “워프 쓰면 아무 문제가 없지. 정말 간단하지? 하하하.” 시이터도 웃으면서 우리 남매 말에 동의했고, 식탁은 웃음이 흘러넘치 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변했다. 하지만……. “역시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구나.” 라는 시이터의 중얼거림에 식탁은 일순간 눈보라가 사정없이 휘몰아치 는 허허벌판 분위기로 변해버렸다. 젠장! 저 인간은 그냥 넘어가도 될 것을……. 그 후 어찌어찌해서 간신히 식사를 마친 우리는 짐을 챙겨서 여관을 나와 도시 밖으로 나갔다. 사람 눈에 안 띨만한 장소를 찾을 필요는 없었다. 전쟁의 상처가 남아 있는 밖은 낮인데도 어두운 분위기를 한 껏 머금고, 마치 인간들의 발길을 거부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덕분에 도시에서 멀리 나오지 않아서도 워프를 시전할 수 있었다. “테이야 워프 써.” “어 누나가 안 쓰고?” 평소라면 누나가 앞장서서 워프를 쓰고 우리 보고 따라 오라고 할 텐 데 나보고 워프를 쓰라는 누나의 행동에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 다. 그러자 누나는 바로 눈을 그렁거리며 말했다. “누나가 워프 좀 써 달라는 게 그렇게 싫어? 테이는 너무해. 테이는 누나를 곤란하게 만드는 악취미가 있나봐.” “제발 울기부터 하지 말란 말이야!! 그리고 누나가 나를 항상 곤란하 게 했잖아!!” “아앙! 이제는 누나한테 큰 소리까지 지르다니! 테이 미워!!” “알았어! 내가 공간의 문 열 테니 제발 울지 좀 마!!” 어제부터 심심하면 울기부터 하는 누나한테 이제 진절머리가 날 지경 이었다. 그것도 진심으로 우는 거라면 내가 아무 말이나 안하지. 전부 거짓 울음이잖아. 거짓 울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넘어갈 수밖에 없는 내 성격도 문제지만……. 가만……. ‘곤란? 워프를 시전하는 게 왜 곤란하다고 한걸까?’ 거짓울음을 터트리며 한 누나의 말 중에서 곤란이라는 단어가 내 마음 에 걸려서 워프를 시전하는 중에 슬쩍 누나를 쳐다봤다. 풀 죽은 누나 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나는 마음속으로 ‘아!’하고 탄성을 질렀다. 아 니 정확히는 누나의 목에 걸린 제어 목걸이를 보고 알아차린 것이다. 그 목걸이 덕분에 누나의 마력은 보통 드래곤의 절반이나 낮아져 있었 다. 그런데 나와 누나는 이제 성인 드래곤이 됐다. 그런 우리의 힘이 절반이나 낮아진다는 것은 지금 누나의 힘은 겨우 250살 난 해츨링정 도의 마력이라는 소리였다. ‘그래서 워프를 못 쓰니 나보고 쓰라고 한 거구나.’ 평소라면 앞장서서 활발하게 움직일 누나였는데 그 정도까지 제약을 받으니 오죽이나 답답했을까? 지금도 풀 죽은 누나의 얼굴을 보고 있 으려니 조금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들기 시작했는데……. 누나가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쳐다봤다. “왜? 왜 그래?” 누나 걱정을 하면서 훔쳐보던 나는 누나가 갑자기 날 쳐다보자 놀라서 말을 더듬거리며 물었다. 누나는 내 질문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도리어 질문을 해왔다. “너야말로 왜 그러니? 왜 워프 시전 안 해? 설마 다이리가 기억 안 나는 거야?” “어? 아! 아니야 금방 만들 거야!” 이런 나 지금 워프를 시전하던 중이었지? 누나를 쳐다보느라 깜박했 다. “그 느림보 성격은 어떻게 고쳐 질 생각을 안 하냐?” 누나의 그 한마디 덕분에 내 마음속에 자리 잡던 누나를 측은하게 여 기던 마음은 그대로 공중분해가 돼버렸다. ‘드래곤이 말이야! 걱정 해주고 있는 것 정도는 알아차려 달라고!’ 속으로 ‘누나 둔팅. 누나 바보. 누나 마녀’라는 말들로 누나를 씹으 며 난 워프를 시전했고, 곧 공간의 문이 열렸다. “자 빨리 가자. 이렇게 머뭇거리다가 해 지겠다.” 퉁명스럽게 말을 뱉은 나는 공간의 문 안으로 들어갔고, 뒤이어 시이 터가 ‘아직 점심때도 안됐는데…….’라고 중얼거리며 내 뒤를 따라 들어왔다. 테이와 시이터가 먼저 공간의 문으로 들어가고 뒤에 혼자 남은 티아는 한숨을 푹 쉬었다. “바보. 약해졌다고 너한테 동정 받기는 싫단 말이야. 너하고는 동등 한 위치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싶었는데……. 블랙시터님도 그냥 카이 저 드래곤의 힘만 봉인해 주시면 나도 불만 없었을 텐데…….” 한숨을 쉬며 지난 일을 후회해봐야 지금은 이미 어쩔 수 없는 일. 티 아는 힘이 쭉 빠진 걸음으로 공간의 문에 들어섰다. 어둠 속에 한발 내딛는 순간 눈앞에 새하얀 빛에 절로 눈이 감기고 빛이 사라지고 난 뒤 티아가 눈을 떴을 때 본 것은 낯이 익은 방안의 풍경이었다. “여기가 어디야?” “으아악! 죄, 죄송합니다!!” 티아가 그 곳이 어딘지 알아보기도 전에 테이의 비명에 급히 그쪽을 쳐다봤다. 그곳에는 놀랐는지 눈이 동그랗게 커진 모르는 금발의 여자 가 금방이라도 크게 비명을 지를 것처럼 입을 벌리며 테이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 사고뭉치!! 어디 엉뚱한 곳으로 워프한거야?!!’ “사이레스!” 속으로 테이를 가볍게 한번 씹어 준 티아는 급히 침묵마법을 시전했 다. 전처럼 무식하게 공간을 덮어버릴 힘은 없었지만 방하나 정도는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을 정도로 침묵의 결계가 펼쳐졌다. “꺄아아아아아악!” 그리고 타이밍 좋게 티아가 마법을 건 순간 금발여자의 비명이 아주 크게 울려 퍼졌다. 하지만 그 비명은 티아의 마법 덕분에 밖으로 새어 나가지는 않았다. “자..잠깐만요! 저희는 수상한 사람이 아니에요!” 너무 경향이 없어서인지 티아가 마법을 건 것을 눈치 채지 못한 테이 는 여자가 비명을 지르자 급히 손으로 그녀의 입을 틀어막으며 변명의 말들을 늘어놓았다. “테이군. 모르는 여자의 집에 강제로 침입해서 다짜고짜 입부터 막는 남자는 어디를 봐도 충분히 수상한데.” “도와주지 않을 거면 초치는 말이라도 하지 말아요!!” 테이는 심드렁하게 말투로 지금 현재 상황을 날카롭게(?) 정리해주는 시이터에게 눈을 부라릴 때 티아가 고개를 저으며 둘의 옆에 와서 말 했다. “일단 침묵결계 마법을 쳤으니 말이 밖으로 새어나갈 일은 없어. 그 러니 테이야 강도 같은 짓은 이제 그만 멈춰라.” “누나, 누나마저…….” 테이는 티아의 배신(?)에 울 것 같은 얼굴로 여자의 입에서 손을 치우 고 구석으로 가서 쭈그리고 앉아서 어두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런 테이의 모습을 한두 번 본 것이 아닌 티아는 신경 끊고 테이가 손을 치웠는데도 더 비명을 안 지르는 금발여자에게 정중하게 허리를 숙이 며 말했다. “갑작스런 방문에 놀라게 해서 죄송합니다. 저희는 수상한 사람들이 아니라 마법으로 이동 중에 무언가 문제가 생겨 이렇게 부인에게 폐를 끼치게 된 것입니다. 저의 이름은 티아루아라고 합니다. 실례가 안 된 다면 부인의 성함과 이곳이 어디인지 물어봐도 될까요?” 정중한 티아의 사죄에 금발여자는 한결 누그러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 이다 곧 무엇에 놀랐는지 곧 눈을 동그랗게 떴다. “티아루아라고요? 그건 저희 고모할머니 성함이신데…….” “예?” “혹시 저기 어두운 분은 테이루아라는 성함이신가요?” 금발여자는 구석에서 누나에게까지 배신당한 인생을 한탄하고 있는 테 이를 가리키며 물었고, 티아는 그녀의 말이 이해가 안 간 얼떨떨한 얼 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나! 역시나! 은발의 머리카락과 똑같은 얼굴! 그리고 티아루아 님과 테이루아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쌍둥이! 두 분 드래곤이시죠? 저 희 레드포머가의 은인이라던 드래곤 티아루아님과 테이루아님이 맞죠? ” “저희… 레드포머가라고요?” 티아는 굳이 그 옛날 레이나가 둘에게 남긴 편지에서 쌍둥이 남매를 낳아서 자신들의 이름을 붙였다는 문구를 기억해 내지 않아도 됐다. 금발의 여자는 레이나를 잘 아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라도 금방 알아차 릴, 거부할 수 없는(?) 반짝거리는 눈동자로 티아를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티아는 설마 하는 생각으로 질문했다. “저기 혹시… 레이나 언니의 자식이라던 쌍둥이 남매의… 손녀이신가 요?” “네! 저는 테이루아 할아버지의 손녀 크리스나 슬라드. 결혼 전의 성 은 크리스나 드 레드포머라고 합니다. 전설이라 생각하던 두 분을 뵙 게 되어 영광이에요.” “하하하하.” 티아는 헛웃음을 흘리며 어둠의 분위기를 마감(?)하고 어느새 옆에 와 서 자신과 똑같은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테이를 바라보며 물 었다. “테이야 너 혹시… 워프 말이야. 옛날 레이나 언니의 집으로 워프한 거니?” “응. 아까 시이터의 말을 듣고 옛날 레이나 누나의 집은 빈집이 되어 있지 않을까 해서……. 그래서 워프를 이 곳으로 한건데…….” 티아의 질문에 테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리고 티아와 같이 시이터를 노려봤다. “시이터씨. 아까 왕족은 씨를 말린다고 말했었죠?” “그, 그거야…….” “그럼 여기 이 아가씨가 살아 있는 이유는 도대체 뭐죠?” “아니 내가 말했던 게 일반적이기는 한데……. 저기 이건 나도 뭐가 뭔지…….” 시이터가 쌍둥이 남매의 추궁에 위기에 빠져 있을 때 갑자기 방문이 벌컥 열리며 검은 머리의 학교로 따진다면 모범생 스타일의 남자가 들 어왔다. “크리스 어제 못 들어와서 미안했어. 다, 당신들 누구야?!” 남자는 부인에게 변명하는 남편들의 대사를 내 뱉다가 티아와 테이 그 리고 시이터를 보고는 놀란 목소리로 셋의 정체를 물었다. “아! 여보 걱정하지 마세요. 수상한 분들은 아니에요.” “크리스! 어서 이쪽으로 와! 그리고 당신들 정체를 밝히시오! 도대체 누구고 여긴 어떻게 들어온 거요?!” 크리스나는 남편의 다그침에 ‘정말이지 내 말 좀 믿어줘요’라며 불 만 섞인 목소리로 말했고, 티아와 테이는 서로의 눈치를 보다가 테이 가 대표로 앞에 서서 크리스나의 남편에게 자신의 소개를 했다. “저의 이름은 테이루아. 실버 드래곤 세이르아의 두 번째 자식인 테 이루아라고 합니다. 그리고 저기 저와 닮은 얼굴의 여자는 실버 드래 곤 세이르아의 첫 번째 자식이자 저의 누나인 티아루아이고, 그 옆에 인간은 신경 안 써도 되는 인간이니 신경 쓰지 마세요.” 드래곤들의 자신의 소개를 하는 방법으로 소개를 마친 테이에게 ‘신 경 안 써도 되는 인간이라니 너무하잖아!’라고 시이터가 불만을 말했 지만 테이는 그 말에 신경을 쓰지 않았고, 티아도 잘했어 라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테이루아? 티아루아? 설마 카렌 아줌마가 해주셨던 실버 드래곤 이 야기속의 주인공들?” “거봐요! 내 말이 맞죠? 당신은 가끔 내 말 좀 믿어 줘요.” “아무리 그래도 너무 갑작스런 일이라. 이걸 믿어야 될지 말아야 될 지……. 헉?!” 아직 티아와 테이의 정체를 놓고 믿어야 될지 말아야 될지를 고민하는 크리스나의 남편은 테이가 어느새 풀어버린 드래곤 아이를 보고 몸이 굳어버렸다. 테이는 ‘이정도면 되겠지?’라고 생각하며 드래곤 아이 를 풀었고, 크리스나의 남편을 쳐다보며 물었다. “이제 믿으시겠습니까?” 드래곤 아이가 사라지자 크리스나의 남편은 불과 몇 초 사이의 공포 때문에 땀에 흠뻑 젖은 자신의 몸을 바라보며 침을 삼켰다. 그가 수상 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정체는 드래곤이 분명했다. 크리스나의 남편은 잠시 무언가를 고민하다가 곧 결심을 굳혔는지 정중하게 허리 를 숙이며 말했다. “한때나마 의심해서 죄송합니다. 위대한 드래곤들이시여. 미천한 인 간인 저의 이름은 유크로드 슬라드라고 합니다.” ‘어쩌면 이 두 분은 우리 다이러스에 희망의 빛이 될지도 모른다. 아 니 내가 이분들을 반드시 희망의 빛으로 만들고 말리라. 랑그람님을 위해. 레이르님을 위해. 그리고 이 다이러스를 위해.’ 유크로드 슬라드, 유크로드는 앞날이 불투명한 다이러스를 위해 신이 남매 드래곤을 이곳으로 보냈다고 굳게 믿으며 그 둘을 정중하게 환영 했다. “어째 난 완전히 들러리가 된 기분인데……. 이런 취급 받으면서 이 둘을 계속 따라다녀야 되나?” 구세주 취급을 당하고 있는 티아와 테이 뒤쪽에서 시이터가 한스러운 중얼거림을 뱉었지만 누구도 신경 쓰는 사람은 - 드래곤도 - 없었다. 계속 ----------------------------------------------------------------- 카나리아(1)의 기적이 깨지는 순간입니다. 최고로 긴편은 남매의 숙제 (1)이 되었네요.^^;; (원고 수정할때 적당히 끊어 맞출 생각이긴 하지만... 이걸 어디서 끊 어야 될지... ??;) 곧이어 다음편 남매의 숙제(2)가 올라갑니다. 32화 남매의 숙제(2) 유크로드의 안내로 티아와 테이 그리고 들러리(?) 시이터는 카렌과 다 시 재회하게 됐다. 재회의 기쁨을 나누는 것도 잠시였고, 전날 밤샘으 로 일을 처리한 유크로드는 전혀 지친 기색이 안 보이는 얼굴로 이번 쿠데타의 진실과 카나리아 작전 그리고 랑그람의 진의에 대해서 셋에 게 설명했다. 꽤 오랜 시간을 걸쳐서 설명과 질문 그리고 답변을 통해 완벽한 진실 을 알게 된 남매 드래곤들은 잠시 고민의 시간을 가졌다. “역시나 레이르의 말을 들었을 때부터 랑그람이라는 인간이 그냥 핏 줄(?) 때문에 일을 터트린 것은 아닐 거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이 건 내 예상을 뛰어 넘는 진실이네.” “그러게. 우리가 로헨타이 가에 당했던 생각만으로 이 성을 날려버렸 다면 정말 큰일 날 뻔 했어. 그나저나 이 랑그람이라는 인간. 정말 그 변태 보스의 자손일까?” “이게 교육의 힘이라는 거겠지. 그나저나 어쩐다 뭐다 하기 전에 레 이르부터 먼저 데려오고 봐야겠는걸. 지금 레이르는 어디쯤 와 있는지 알 수 있나요?” 유크로드는 천연덕스러운 남매의 듣기에 따라서는 잔인한 말들을 식은 땀을 흘리며 듣다가 티아의 질문에 지도를 펼쳐서 보여주며 설명했다. “레이르님께서는 어제 밤늦게 출발하셨으니 지금 이 도시에 도착해 있을 것입니다. 이 곳에서 하루를 쉬고 다시 출발할 예정인데 지금 전 쟁 지역을 피해서 이곳 다이리로 모시려면 해안가를 따라 쭉 돌아와야 되기 때문에 적어도 이주일 이상은 걸릴 예정입니다.” “너무 늦다.” “워프로 데려올까?” 테이의 말에 티아는 고개를 저었다. “너나 나나 이 곳에는 가본 적이 없잖아. 이건 텔레포트로 갈 수밖에 없겠어.” “그럼 혼자서 데리러 가야겠네.” “그래 그러니 잘 부탁한다. 테이야.” “알았어.” 테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유크로드에게 다음으로 레이르가 들릴 마을을 물었고, 그 마을을 지도에서 찾아서 좌표설정을 한 다음에 텔레포트를 시전했다. 그 날 저녁에 레이르 왕녀를 데려가던 호위대는 갑자기 나타난 은발의 남자에게 레이르 왕녀를 강제로 뺏기고는 혼란에 빠져버렸다. 다들 죽 은 목숨이라 생각하며 자결할 각오까지 한 기사와 병사의 보고를 들은 유크로드는 후에 ‘드래곤이란 인간이 생각하는 영역을 벗어나는 행동 을 하기 때문에 드래곤이라 부르는 것 같다’라는 의미 있는 명언(?) 을 남겼다고 한다. 아무튼 아무 설명도 없이 강제로 테이에게 납치당한(?) 레이르는 테이 가 수도 다이리 왕성으로 자신을 데려온 것에 깜짝 놀랐고, 또 그 왕 성에 유크로드와 카렌 그리고 티아, 테이와 시이터가 친하게 차를 마 시는 광경에 다시 한번 놀랐다. 물론 그 놀라움을 다 합해도 이번 쿠데타에서부터 모든 진실을 알게 된 놀라움의 반도 안됐지만……. “그런… 믿을 수 없어요! 루드 오빠가 그런 짓을 계획 할 리가 없다 고요!! 오빠는… 루드 오빠는 언제나 다정하고, 그리고 국민들을 아끼 고 이 나라를 진심으로 사랑하던 오빠였는데……. 그랬는데…….” 사랑하는 남자에 대한 배신의 오해가 풀리자 이번에는 혈육의 배신에 충격을 받은 레이르는 결국 참지 못하고 카렌의 품에 안겨서 울음을 터트렸다. 카렌은 울고 있는 레이르를 다정하게 다독여주며 위로를 해 주면서 조용히 꾸짖었다. “레이르의 지금 마음이 어떤지는 잘 알겠어요. 하지만 레이르는 이 나라의 왕녀에요. 지금은 실컷 울어두세요. 하지만 나중에는 왕녀로서 의 일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그리고 지지마세요.” “카렌 너무 심한 거 아니야? 레이르는 충격에 정신도 없는데…….” “테이님. 아무리 지금 레이르가 충격을 받았다 하더라도 그녀가 해야 만 되고 그녀밖에 할 수 없는 일은 따로 있어요. 이제는 사실을 전부 알았으니 몰랐을 때처럼 도망만 다니고 있을 수는 없어요.” “하지만…….” “아니에요. 카렌씨 말이 맞아요.” 레이르는 흐르는 눈물 때문에 엉망이 된 얼굴을 들며 말했다. “유크로드 오빠. 아니 유크로드 경.” “네!” “랑그랑 경은 나를 정식적인 절차를 밟아서 여왕의 자리에 앉힐 계획 이었죠?” “그렇습니다.” 어느새 정중하게 한쪽 무릎을 꿇고 대답하는 유크로드에게 레이르는 힘 있는 목소리로 명령했다. “그럼 현재 이 전쟁의 상황에 대한 설명과 대처 방안에 대해서 설명 해주세요. 그 준비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나요?”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습니다.” “그래요? 그럼 그 시간동안만 저를 혼자 있게 해주시겠습니까?” “......네.” 유크로드는 고개를 숙이고 나가고, 티아는 테이의 옆구리를 찌르며 시 이터의 목덜미를 움켜잡고는 밖으로 끌고 나갔다. 테이도 그 뒤를 따 라 나가면서 눈물에 젖은 레이르의 얼굴을 슬쩍 쳐다보고는 한숨을 쉬 었다. 모두들 다 나가고 난 뒤에도 카렌은 자리에 계속 앉아 있었다. “카렌씨?” “혼자 슬픔을 짊어지는 것보다는 나누는 게 덜 슬픈 거야. 아무 걱정 말고 속이 풀릴 때까지 울렴. 옆에 있어줄게.” 카렌은 어느새 어릴 적 레이르에게 대하던 말투로 돌아와 있었다. “카렌씨……. 아니 카렌 아줌마. 저, 저는……. 저는… 아앙!!” 아련한 추억속의 카렌의 말투 때문인지 아까 한바탕 울고 난 뒤에도 눈물샘이 다 마르지 않았던 레이르는 카렌에게 달려들어서 안겨 울고 또 울었다. 카렌은 레이르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으며 조용히 속삭 였다. “아주 잘했어. 레이르. 넌 잘 한거야. 잘 참았구나. 지금은 실컷 울어 도 돼. 나중에는 울고 싶어도 바빠서 울 수 없을지도 모르니……. 지 금 실컷 울어두렴.” “아아앙! 카렌 아줌마!!” 울고 있는 레이르를 다독거려 주던 카렌은 옛 추억이 생각났다. 이제 걸음마를 떼기 시작하면서부터 자신을 졸졸 따라다니던 금발의 꼬마 여자애의 추억이었다. 꼬마 여자애는 울 일이 생겨도 엄마를 부르기보다는 자신의 이름을 부 르면서 안겨 울곤 했었다. “어쩜. 너는 변한 게 없구나. 어릴 때나 지금이나…….” 카렌은 어린 시절 자신의 품에서 안겨 울던 조그맣고 귀여웠던 레이르 를 달래던 방법대로 레이르의 머리를 안고 부드럽게 그리고 상냥하게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었다. 레이르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실컷 울만큼 울고 난 레이르는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 완벽 한 여왕의 모습으로 유크로드에게 현재 전쟁의 전황을 설명 들었다. 그 옆에서는 티아와 테이 그리고 시이터와 카렌도 같이 하고 있었다. “해조성에 가두어 뒀던 적의 주력 병력은 거의 탈출했다고 보고 있습 니다. 현재 본대와 합류하기로 했던 바그온 장군의 부대는 수도 앞쪽 에 진을 치고 방어태세를 갖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랑그람님의 본대는 적의 케르디온 왕이 이끄는 추가병력을 막기 위해 출동한 상태로 진군 속도로 계산하면 도플 평원쯤에서 부딪칠 것 같습니다.” 잠자코 유크로드의 설명을 듣던 레이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것은 시이터도 마찬가지여서 궁금한 테이가 ‘뭐 잘 못 된 거 있어요?’라 고 물어보자 시이터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해줬다. “그게 지금 전력상으로 말하자면 냉정히 따져서 다이러스 제국이 불 리해. 그런 불리한 상태에서 없는 군사를 나누는 것은 위험한 도박이 지. 군사를 나눌 때는 적보다 병력이 압도적일 때 이야기지 지금은 두 곳 중 어느 한곳도 적보다 병력이 많지 않아. 그러니 이상할 수밖에… ….” 시이터의 설명에 테이는 이해가 간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레이 르도 그 점을 지적했다. “제가 생각해도 현재 병력을 나눈 것은 이해가 안가요. 랑그람 오빠 ……. 아니 랑그람경이 이런 실수를 할 리가 없는데……. 유크로드경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그것은…….” 주저하던 유크로드는 레이르가 재차 물어보자 어쩔 수 없다는 뜻으로 한숨을 쉬고 붉은 들소부대가 연락이 끊긴 것에 대해서 설명했다. “아도니스경 말이군요. 분명 아도니스경은 우리 다이러스 제국의 중 요한 장군 중에 한명 하지만 그것 때문에 이런 위험한 상황에서 친히 군대를 이끌고 나갔다는 것으로는 이유로 부족합니다. 또 다른 것을 숨기고 있죠? 숨길 생각 하지 말고 말해주세요.” “......네 여왕님의 상상대로입니다. 실은 루그라드님에 대한 정보도 있었습니다.” “오빠의?!” 지금 일이 이 지경까지 된 직접적인 원인이라고도 할 수 있는 루그라 드에 아니 레이르의 오빠에 관한 정보라는 말에 레이르는 마음속으로 내심 당황했지만 억지로 마음을 추스르며 자세한 상황을 물었다. “루그라드님에 대한 정보도 붉은 들소부대가 패했다는 정보도 둘 다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만약에 붉은 들소가 패배를 했다면 아도니 스 장군정도의 명장을 쉽게 무너트릴 인물은 지금 가이라가 왕국에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더구나 해조성에 가둬둔 적 병력을 빼 낸 것도 지형을 잘 알고 있는… 즉 국내의 사정에 대해서 잘 알고 있 는 인물이 아니면 그들을 구해 줄 수가 없었을 겁니다. 그 모든 가정 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떠오르는 인물은 단 하나뿐입니다.” “오빠가… 오빠가 가이라가 왕국을 도와주고 있다는 말인가요?!” 다그치듯이 물어보는 레이르의 기세에 유크로드는 주저하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렇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럴 수가…….” 망연자실해서 말을 잃어버린 레이르 덕분에 방안은 순식간에 침묵에 휩싸였다. “자 그럼. 우리가 할 일을 정해볼까?” 침묵을 먼저 깬 것은 티아였다. 티아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지도를 쭉 한번 흩어보고는 아직까지 말이 없는 유크로드에게 물었다. “일단 가장 시급한 것은 이 수도로 오고 있을 적 병력을 막아내는 것 이 제일 급한 일이겠지?” “네. 그렇습니다.” “그럼 이 곳은 테이와 시이터 씨에게 맡기면 되겠네.” “어! 내가?” 멍하니 있다가 갑작스럽게 지적돼서인지 테이는 다소 황당한 목소리로 자신을 가리키며 되물었다. 그 물음에 티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 다. “내가 아까 우리들이라고 했잖아. 지금의 난 힘이 약해졌으니 대군의 상대는 네가 해.” “잠깐만! 아무리 나하고 시이터 씨가 검술 실력이 좋다고 해도 한계 가 있지 10만이 넘을지도 모른다는 병력을 어떻게 상대하라고?!” 테이가 다급하게 못한다는 말을 하자 티아는 한심하다는 어조로 말했 다. “누가 검 갖고 싸우래? 중요한 것은 이 병력을 수도에만 못 오게 하 면 되는 거잖아. 공갈 협박이라도 하란 말이야.” “공갈… 협박? 설마 본 모습으로?” “바로 맞았어.” “인간 세계에서 본 모습으로 난리를 쳐도 되려나?” 걱정하는 테이의 말에 티아는 지도에 바그온 장군이 포진한 곳을 나타 내는 표식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수도에 오려면 이 산을 넘는 게 빠르잖아. 아마 그들도 이곳을 넘어오려고 하겠지. 그래서 그 바뭐라는 장군이 이곳에다 수비진을 편 거겠지?” 확실히 티아 말대로 바그온 장군은 그 산의 중턱에 병력을 집결시키고 수비를 준비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니 넌 이 산에 가서 적이 오면 이곳은 네 영역이니 죽기 싫으면 들어오지 말라고 으름장이나 놔주란 말이야. 안되면 브레스 한방 쏴서 겁 좀 주고……. 그러면 적어도 인간은 죽이지 않고 막을 수 있을 거 야.” 티아의 조리 있는 작전에 테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하고는 자신 있 는 얼굴로 맡겨만 달라고 소리쳤다. 티아가 ‘역시 말은 잘 들어’라 고 생각하며 테이를 흐뭇한 눈으로 쳐다볼 때 시이터가 가만히 있다가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나는 뭐하라고?” “네? 시이터 씨요? 웅. 생각 안 해났는데……. 아 떨거지로 따라간 셈 치죠.” 거의 반 장난삼아 한 티아의 말에 대한 답변은 매섭게 돌아왔다. “난 떨거지가 아니야!!” 라는 시이터의 성난 목소리에 티아는 겁먹기는커녕 생긋 웃으며 물었 다. “그럼 그 곳에 따라가서 우리 남매가 인간 안 죽이고 적당한 선에서 전쟁 끝내려는 일을 도울 수 있으세요?” “아니……. 그건 불가능 하지만…….” “불가능하니 떨거지 맞잖아요.” 털썩. 시이터는 그 자리에 쓰러져서 눈물을 흘리며 ‘그래도 난 떨거지 아니 야’라고 중얼거렸다. 하지만 티아에 의해서 시이터는 거의 이번 전쟁 에서 떨거지 신세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것은 아마도 티아식 시이터에 대한 복수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럼 누나는 뭘 할 건데? 랑그람한테 가서 그쪽에서도 드래곤 모습 으로 적들 쫓아낼 거야?” “나도 그러고 싶은데……. 이 놈의 목걸이가 어떻게 된 건지 내 본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조차 막고 있단 말이야!!” “에에? 그 정도였어?!” “오늘 아침에 혹시 본 모습으로 돌아가면 부서지지 않을까 해서 시험 해봤는데……. 안되더라고…….” 풀죽은 티아의 모습에 테이는 당황했다. 또 금방이라도 티아가 울 것 같은 포즈였기 때문이다. “누나 괜찮아! 신룡님들에게 가면 틀림없이 그 목걸이 벗겨 주실 거 야! 그리고 또 내가 있잖아!” 절대 티아의 우는 모습을, 아니 여자가 우는 모습은 보기가 싫었던 테 이는 필사적으로 티아를 달랬고, 그런 테이의 모습에 티아는 눈을 동 그랗게 뜨고 놀랐다. “너 왜 그렇게 필사적이니? 그리고 이 누나가 언제 운다고 했었니? 왜 지레 겁 먹은 거야?” “거짓말! 방금 울려고 했던 거 못 알아차릴 줄 알아?! 아무튼 난 그, 저기 누나가 우는 모습 보기 싫으니 제발 울지 마!” “쿡! 그래서 내가 있다는 말까지 한거야?” “아니…. 그 말은 그냥 어쩌다가…….” “고마워. 걱정 마 울려고 했던 것은 정말 아니었어. 단지 답답했던 것뿐이야.” “저기 티아님.” 다정한(?) 남매의 대화에 레이르는 힘겹게 겨우 말을 꺼냈다. 레이르 는 본능적으로 지금 둘 사이에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는 느낌을 받았지 만 그래도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티아에게 말을 걸었다. “응? 왜?” “티아님은 랑그람경에게 가실 거라 하셨죠?” “그런데. 왜 따라오려고?” “아니 그것보다……. 혹시 사람을 찾는 마법 같은 것은 없나요?” “사람을 찾는 마법?” “레이르 여왕님 설마?!” 티아가 고개를 갸웃거릴 때 레이르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질문을 했는 지 알아차린 유크로드가 놀라서 소리를 치고는 레이르의 앞에 서서 단 호하게 말을 꺼냈다. “그만 둬 주세요! 지금 루그라드님이 정말 가이라가 왕국에 힘을 빌 려주고 있는지 없는지도 확인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설사 루그라드 님이 가이라가 왕국에 있다고 치면 그 분을 만난다는 것은 가이라가 왕국의 본진에 들어간다는 말과 같습니다!” “알고 있어요. 하지만 위험을 감수해서라도 전 꼭 오빠를 만나봐야 됩니다.” “레이르님 하지만…….” 유크로드는 필사적으로 레이르를 말리기 위해 만류했지만 레이르의 의 지는 단호했다. “잠깐만. 잠깐만.” 티아가 둘의 말을 자르며 레이르에게 확실한 어조로 물었다. “레이르 그것은 이 남자 말대로 정말 위험한 일이 될지도 몰라. 알고 서 하는 말이지?” “예.” “그렇다는 것은 그만큼의 각오가 되었다는 뜻이겠지?” “예.” “그럼 묻겠어. 만약에 네 오빠가 혹시나 왕위가 탐나서라던 지 아니 면 다른 나쁜 목적 때문에 너를 가이라가 왕국에 시집보내려고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넌 어쩔 건데.” 티아의 질문에 레이르는 잠시 심호흡을 고르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 다. “저는 이 다이러스 제국의 왕녀로서 우리 제국에 해를 끼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면 설사 오빠라 하더라도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그것이 잘 못하면 네 오빠를 죽일지도 모를 텐데도?” “아니요. 용서는 할 수 없더라도 오빠는 오빠. 저의 하나분인 친 혈 육인걸요. 죽인다는 것은 애초에 생각도 안했어요. 저 역시 제 소중한 사람들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이 전쟁을 해결하고 싶어요. 비록 불가능한 어린아이의 꿈같은 소망이지만 그래도 노력을 해보고 싶어 요. 이상한가요?” 티아는 레이르의 이상하냐는 질문에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어떻게 보면 그게 가장 어려운 선택이야. 불가능에 도전하겠 다는 너의 의지 잘 알았어. 그 불가능이 가능하게 되도록 최선을 다해 서 도와줄게.” “감사합니다. 티아님. 그리고 테이님과 시이터씨도 고맙습니다.” “아니 제가 한 게 뭘 있다고……. 왕녀님께서 감사까지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 맞아. 레이르 테이에게는 고마워해도 되지만 그냥 떨거지로 따 라가는 시이터 씨한테는 안 고마워해도 돼.” “너무해!!” 티아의 독설에 시이터는 질린 얼굴로 비명을 질렀고, 덕분에 모두들 한바탕 웃음을 터트렸다. 이제부터는 그들에게는 웃음을 터트릴 여유 가 없을 것이다. 다들 웃고 있는 와중에도 그것을 확실히 느끼고 있었 다. 당분간은 웃을 일도 없을 거라는 것을……. 계속 ----------------------------------------------------------------- 제목을 [역습의 티아루아]라고 지어도 될 정도로 티아의 시이터에 대 한 반격이 시작됐습니다^^;; 그동안 무조건적으로 폭력만으로 일을 해결하려고 했던 티아에 대한 신룡들의 배려라고나 할까요? 블랙시터가 티아의 힘을 봉인 한 것은 그런 이유였습니다. 힘이 아니더라도 해결 할 수 있다. 라는 어떻게 생각하면 무게있는 주 제가 겨우 시이터에게 복수하는 목적으로만 사용한다는게... 좀 문제 지만요.^^;; 요즘 멜 답장을 못써서 죄송합니다. 오늘 이내로 남은 10페이지를 마 저 쓸 생각이기 때문에 답장은 모든 것이 끝나고 난 뒤에 여유를 갖고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동안 이리저리 고민했던 이 이야기의 라스트씬은 총 4번이 수정됐습 니다. 이제는 마지막으로 수정한 스토리대로 밀고 나가는 것만이 남았 기 때문에 속도는 빨라졌습니다. 그리고 보시는 바와 같이 양도 많아 졌습니다. 부디 이것으로 용서를 비는 바입니다. _(_ _)_ 그리고 지금 팔이 한계 상황이 와서 좀 쉬었다가 내일 새벽까지 나머 지 남매의 숙제 남은 분량을 마저 다 올리겠습니다. 그리고 끝났다는 기쁨을... 만끽하기도 전에 작은 사랑도 써야 되고.. . 드래곤 남매 6권 분량 작업 바로 들어가야 되고... 쉴 시간도 없구나 ??(자기 무덤을 판 결과.) 늘 즐거운 시간 되세요 ^^;;; 32화 남매의 숙제(3) 티아는 병력이 집중되어 있을만한 곳을 골라서 텔레포트를 실행했다. 워프를 쓸 수는 없었지만 그나마 텔레포트와 상위 마법들은 인간도 쓸 수 있는 마법인데다가 아무리 마력이 약해져 있다 하더라도 드래곤은 드래곤. 티아의 힘은 인간들의 마도사에 버금가는 수준의 마력이 있기 때문에 아직은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레이르를 데리고 적진에 뛰어드는 것에 망설임은 없었다. 유크로드가 끝까지 말리기는 했지만 두 여자의 고집에는 이길 수 없어 서 결국 유서를 쓰는 심정으로 적이 현재 포진하고 있을 만한 장소를 집어주었고, 티아는 그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텔레포트 했던 것 이다. “아 저기에 불빛이 많이 보인다.” 이동하고 난 뒤에 바로 부유마법으로 공중에 떠서 주위를 바라보던 티 아는 어둠 속에서 많은 불빛들이 보이는 곳을 발견하고는 땅으로 내려 왔다. 밑에서 기다리던 레이르는 티아가 내려오자 곁에 다가가서 물었 다. “찾았어요?” “응. 이런 외지에 그 정도로 많은 불빛이 있다는 것은 틀림없이 가이 라가 왕국의 병사들이 있는 곳이겠지?” “아마 그럴 거예요. 이 근처에는 우리 제국병사는 없으니깐 요.” “그래 제대로 왔네. 그런데 정말 괜찮아? 랑그람의 얼굴정도는 보고 와도 될 텐데.” 티아가 아쉽다는 뜻으로 한 말에 레이르는 고개를 저으며 쓸쓸한 미소 를 지었다. “지금 랑그람 오빠를 만나면……. 약해질 것 같아서요. 그래서 루드 오빠를 먼저 만나고 싶은 거예요. 모든 일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 ” “그래…? 뭐 그렇다면 더 말해봐야 별수 없지. 어서 가자.” “네.” 티아는 레이르의 손을 잡고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겼다. 티아는 이런 어둠 속에서 아무 제약 없이 사물을 볼 수 있기 때문에 걷는 데는 지 장이 없었다. 하지만 레이르는 이런 어둠 속에서는 한 발짝도 떼기 어 려웠다. 횃불을 피우면 간단한 일이지만 바로 앞에 적들이 우글우글 거리는 곳에서 불을 피우는 바보짓을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티아는 장애물 같은 것이 있으면 레이르에게 주의를 주면서 조 심스럽게 걸은 것이다. 어느덧 가이라가 왕국의 진지가 있는 곳에 가까이 왔는지 서서히 주위 가 밝아져서 레이르가 티아의 도움이 없어도 걸을 수 있을 정도로 와 서는 나무그늘에 몸을 숨겨 조용히 주위를 살폈다. 그녀들의 예상대로 그곳은 가이라가 왕국의 진지가 맞았다. 곳곳에 가 이라가 왕국의 황금사자 깃발이 걸려 있는 것을 보던 레이르는 걱정스 러운 어투로 티아에게 물었다. “이제 어떻게 저기서 루드 오빠를 찾죠?” “문제없어. 현재 내가 쓸 수 있는 마법 중에서 리렌드프라는 마법이 있는데 인간들이 던전 같은데서 동료들과 떨어졌을 때 동료들 곁으로 가는 마법이지.” “잠깐만요! 리렌드프라면 나도 아는데 그 마법은 성직자들이 신을 힘 을 빌어서 쓰는 거잖아요. 마법사들의 마력과는 관계없는 신성력을 써 야 되는 마법이라고 들었는데…….” “그게 난 신성력 마법도 되더라고. 처음에는 이유도 몰랐고, 별로 알 고 싶지도 않았는데 나중에 내가 카이저 드래곤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난 뒤에는 알 수 있을 것 같더라. 가장 신에 가깝다는 존재니 어떻게 생각하면 신성력 마법을 쓸 수 있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수도 있 어.” “대단하시네요.” “그 대단함 덕분에 난 누구와는 점점 멀어지는 기분이야.” 씁쓸한 티아의 말투 때문에 레이르는 그 누군가가 누군지를 물어 볼 수가 없었다. 아니 하나 짚이는 데가 있기는 했다. ‘인간과 드래곤의 사랑이라……. 힘드시겠다.’ 레이르는 시이터를 떠올리며 아주 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티 아가 알아차렸다면 레이르의 목숨도 보장 못할 아주 큰 착각을……. 티아에게 카렌의 마음 읽기 능력이 없었다는 게 레이르로서는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었다. 아무튼 티아는 레이르에게 눈을 감고, 보고 싶은 사람을 떠올리라고 하고는 그녀의 머리위에 손을 얹고 신성력을 발동 시켰다. 티아가 걸고 있는 목걸이는 힘만 약화시킨 것뿐이었기 때문에 조금 약 해져 있기는 하지만 신성력을 쓰는 데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결국 티 아의 본질인 카이저 드래곤을 완벽하게 지우는 목걸이는 아니었던 것 이다. 레이르는 눈을 감고 어릴 적에 엄하기는 했지만 상냥했던 루그라드를 생각했다. 그리고 진심으로 기원했다. ‘루드 오빠를 만나고 싶어.’ 그 기원은 티아의 마음에도 와 닿았고, 티아는 레이르의 마음에 공조 하면서 신성력 마법을 쓰기위한 신성어를 말했다. “리렌드프.” 둘의 모습은 눈 깜짝할 사이에 새하얀 빛에 휩싸였다가 사라졌다. 루그라드의 직속 기사들 덕분에 가이라가 왕국 슈트바엔의 10만 대군 은 간신히 해조성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해조성에는 딱 하루 치의 식량만 남아 있었기 때문에 거의 아사직전까지 내몰렸던 부대는 루그라드가 지원해주는 식량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도 바로 앞에 다이리 수도가 있기 때문에 후퇴는 할 수 없었기 때 문에 사냥과 채집, 낚시를 병행해서 간신히 입에 풀칠을 칠하면서 전 진했다. 그리고 산 하나만 넘으면 다이리 수도로 진격할 수 있을 위치에서 야 영을 했는데, 그날 밤 그들은 신을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자, 장군님!!” 배가 고파서 짜증이 나 있던 슈트바엔은 부관이 공포에 질린 얼굴로 숙소에 뛰어 들어오자 전황에 대해 보고를 듣기 보다는 짜증부터 먼저 났다. “젠장! 뭐야? 적의 습격이냐?” “드, 드, 드, 드…….” “장난하나? 똑바로 말하지 못해?!” 슈트바엔은 답답해서 말을 더듬는 부관을 주먹으로 후려치며 다그쳤 다. 덕분에 어느 정도 정신을 차렸는지 부관은 더듬더듬 말을 내뱉었 다. “드, 드래곤입니다. 아주 큰……. 정말 큰 드래곤이…….” “드래곤? 이것들이 배가 고파서 이제 헛것까지 보이냐?!” 슈트바엔은 굶주린 배를 움켜쥐며 천막의 휘장을 거칠게 열어젖히며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하하하. 신이여. 당신은 정녕 저희들을 버리실 생각입니까? 굶주림 에 아사직전 다음에는 드래곤입니까?! 다음은 뭐란 말입니까?!! 으허 허허. 으허허허허!!” 부하가 헛소리한다고 잔뜩 욕을 했던 슈트바엔은 거대한 은색의 드래 곤을 올려다보며 신을 찾으며 울부짖었다. 인간들이 비명을 지르면서 우왕좌왕하는 것을 내려다보던 은색의 드래 곤 테이는 이 부대의 대장이 누군가를 천천히 찾아다녔다. 횃불과 모 닥불로 주위가 환했던 진지에서 눈이 좋은 테이가 제법 큰 천막을 찾 는 것은 그리 어렵지가 않았다. ‘저곳이 이 군대의 대장이 있는 곳이겠지? 뭐 아니면 나오라고 으름 장 좀 놓으면 되겠지.’ 테이는 천막밖에 나와서 허망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좀 요란한 갑 옷을 입은 남자를 찾아내고는 그에게로 고개를 숙였다. 슈트바엔은 거대한 드래곤의 머리가 자신을 향하는 것을 보고는 그 자 리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뒤에서 도망치자는 부관의 비명이 들렸지 만 슈트바엔의 귀에는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눈앞에서 황금 색 눈을 가늘게 뜨며 자신을 노려보는 드래곤의 거대한 얼굴과 언제라 도 자신을 삼킬 것 같은 커다란 입만이 클로즈업돼서 보였다. 테이는 주위에서 ‘장군님 피하십시오!’라고 소리를 지르는 인간들 덕분에 자신의 얼굴 앞에 주저앉은 인간이 이 부대를 이끄는 대장이라 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테이는 잠시 겁을 주기 위해서 몇 번 으르렁거리고 난 다음에 입을 열 었다. [인간들이여! 이 곳에는 무슨 일인가?] “이 곳…? 이 곳을 넘어서 적의 수도를 치기 위해서…. 그래서……. ” 이미 제 정신이 아닌 슈트바엔은 허망한 목소리로 간신히 띄엄띄엄 말 을 꺼냈다. 테이는 그 모습을 보고 이 자는 이미 제 정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래도 말을 꺼낸 이상 할 말은 해야 되기 때문에 위압감을 유지하면서 계속 말을 꺼냈다. 주위에서 소란스럽게 굴던 인간들은 테이가 말을 꺼내자 일순가 조용 해졌기 때문에 테이의 목소리는 구석구석에 있는 인간들에게까지 전달 됐다. [인간들의 전쟁인가? 인간들이란 왜 그렇게 쓸데없는 짓을 하는지 모 르겠군. 인간들의 전쟁은 내 알바가 아니지만 그래도 이곳은 내 영역 이다. 내 집에 인간들이 돌아다니는 것은 나로서는 썩 좋은 기분이 아 니다. 그러니 우매한 인간들이여 내일 동이 트기 전까지 시간을 주겠 다. 그 안에 이곳에서 떠나지 않을 때에는…….] 테이는 머리를 들어서 숨을 크게 들이 쉬었다. 그리고 인간들이 없는 곳을 목표로 삼아 약하게 브레스를 뿜었다. 차갑고 날카로운 얼음의 브레스는 테이가 약하게 뿜어도 지켜보는 인간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 었다. 가이라가의 병사들은 브레스에 직격당한 땅과 식물들이 얼어붙은 것을 지켜보면서 침을 꿀떡 삼켰다. 분위기상 저 드래곤이 살 기회를 줄 것 같았기에 기회를 준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놓치지 않겠다고 마음먹으 며 테이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너희들도 저 꼴로 만들어 버리겠다. 내가 성질 급한 레드 일족이 아 닌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어서 이 자리를 떠나라. 기억해라 내일 동 트기 직전까지이다.] 말을 다 마친 테이는 천천히 날갯짓을 하면서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 거대한 날개의 날갯짓에 천막이 날아가고 일부 사람들이 날아갔지 만 테이는 죽을 정도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 리고 공중에 날아 오른 테이는 크게 날갯짓을 해서 산 너머로 날아갔 다. 어둠 속에서도 그 거대한 모습이 확실히 보이는 테이의 모습이 산 너 머로 사라지자 공포감에 몸이 얼어 있던 인간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 고는 짐을 챙기면서 도망칠 준비를 했다. 그 중에는 무기고 뭐고 다 버리고 도망치는 이들도 있었고, 지휘관급은 그런 부하들을 질책하면 서 질서를 유지하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이미 굶주림과 공포감에 정 신이 마비된 수만 명의 일반 병사들을 진정시키기에는 제 정신인 지휘 관의 수는 너무나 적었다. 그리고 지휘관중에서도 제 정신이 아닌 자는 있었다. “뭐야? 왜 방해하는 거야? 내가 역사에 이름을 남기겠다는데……. 왜 아무도 안 도와주는 거야? 왜? 왜? 왜? 왜? 왜?” 슈트바엔은 끊임없이 왜라는 소리를 하면서 허리에서 단검을 빼들었 다. 이미 초점이 흐릿해진 슈트바엔의 눈에는 산 건너편의 적의 수도 가 손에 잡힐 듯이 보이는 환상에 빠졌다. 그리고 마지막 힘을 내서 단검으로 자신의 목덜미를 그었다. 그리고 천천히 쓰러지는 슈트바엔 은 자신이 꿈꾸던 국가의 영웅으로 추대 받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며 어둠 속에 몸을 맡겼다. 산 너머로 모습을 감춘 테이는 인간의 모습으로 다시 변했고, 그런 테 이 곁으로 시이터가 다가오며 수고했다는 말을 건넸다. “뭐 한 거라고는 겁을 준 것밖에 없는데요.” “겁을 준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적들이 도망치지 않더라도 이 곳을 지나쳐서 다이리로 오려면 상당히 돌아와야 되는데 이미 물자가 남아 있지 않은 적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덕분에 저는 한시름 놓았습 니다.” 시이터의 뒤에는 바그온 장군이 종이에 뭔가를 쓰다가 테이 곁에 오면 서 감사의 말을 전했다. 테이는 바그온 장군의 칭찬을 받고는 얼굴을 붉히며 머리를 긁적이다가 바그온 장군의 손에 들린 종이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건 뭐죠? 군사 작전 계획서 같은 건가요?” “아! 이거요? 이건 시입니다.” “......시라고요?” “네. 제 자작시죠. 아까 테이루아님의 본 모습을 보고 난 뒤에 갑자 기 시상이 떠올라서 적기 시작했습니다. 제목은 [은색의 구세주]라는 제목인데 조금만 더 쓰면 완성이니 나중에 들려 드리겠습니다.” “아, 아뇨 죄송하지만 급히 누나에게 가봐야 되기 때문에…….” 테이는 은색의 어쩌고 하는 닭살 돋는 제목에 기겁을 하며 손을 저으 며 거절했다. 테이가 거절하자 바그온은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며 자신 들도 다이리로 돌아가겠다는 말을 남기고는 뒤에 부관들에게 출발 준 비를 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들을 뒤로하고 산 정상으로 향하는 테이에게 시이터가 은근슬쩍 질 문을 했다. “네 자작시인데 왜 거절한거야? 티아양에게는 가이라가 병사들의 움 직임을 확인하고 가기로 했잖아. 한번 들어보지.” “그런 것 딱 질색이에요. 갑자기 나를 보고 자작시를 지었다니……. 더구나 바로 적을 앞에 두고 시를 지을 정신이 있다니 믿어지지가 않 아요. 저 인간은 어떻게 장군의 지위까지 오른 걸까요?” “그것보다는 너의 본 모습을 보고도 태연한 것을 더 궁금해야 되지 않냐? 다른 병사들은 네가 아군이라는 것을 알고서도 겁을 집어먹었는 데 그 장군은 너의 본 모습을 보자마자 뭐에 흘린 듯이 종이와 펜을 꺼내더니 뭔가를 쓰기 시작하더라. 뭔가 싶었는데 네 자작시라니 재미 있는 사람이야.” “그러니깐 난 저 재미있는 인간이 왜 장군이 되었는지 궁금하다고요. ” “철벽방어 바그온 장군은 우리나라에서도 꽤 유명해. 공성전의 방어 력에서는 따를 자가 없는 자. 그 어떤 약한 성을 갖고서도 몇 년간은 방어를 할 수 있는 방어에 있어서는 천재라 불리는 인물이거든.” “실력이 있다는 말인데……. 실력이 있으면서 왜 저런 꾀자가 된 거 죠?” “인간 중에는 천재라고 불리는 인간은 다른 인간들에 비해 좀 특이한 면이 많은 천재가 많더라고, 무엇보다 나를 보더라도 특이하잖아.” 테이는 시이터의 마지막 말에 걸음을 멈추고는 어이없는 얼굴로 시이 터를 바라보며 물었다. “방금 말뜻은 시이터 씨가 천재라는 말인가요?” “당연하지! 인간 중에 카이저 드래곤을 몇 번이나 울린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그, 그것 가지고도 인간은 천재라고 치는 겁니까?” “아마 그러지 않을까?” “잠깐 그러면 시이터 씨의 어디가 특이하다는 말씀이시죠?” “난 방향치잖아. 그러니 특이한 천재 맞지.” “......” 테이는 더 말하기를 포기하고 한숨만 푹푹 쉬면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리고 산 정상으로 올라가서 아래를 내려다본 테이는 눈을 부릅뜨고 발아래에서 펼쳐지는 아비규환을 바라보았다. “저, 저 바보들 뭐하는 거야?!” 테이의 분노에 찬 외침에 시이터는 뭔가 싶어서 같이 쳐다봤지만 인간 인 그의 눈에는 그저 큰불이 난 것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테이 에게 상황을 물어보자 테이는 몸을 덜덜 떨면서 간신히 말을 뱉었다. “죽이고… 있어요. 서로를 죽이고 있어요. 미친 듯이 울부짖으며 도 망치려는 인간을 다른 인간이 도망 못 치도록 죽이고, 도망치고 싶은 인간들은……, 다른 인간들을 죽이고……, 천막에 불이 붙어서 불이 났는데도 누구 하나 끌려고 하질 않아요. 불 때문에 동료가 죽어가고 있는데도 누구하나 신경 쓰지를 않고 있어요. 다들… 다들……. 크윽! 저 인간들 전부 미쳐 있다고요!!” 결국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며 주저앉아 버린 테이를 시이터는 가 만히 쳐다보았다. 테이는 자신의 잘 보이는 눈과 잘 들리는 귀가 원망 스러웠다. 지옥이 있다면 저런 모습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테이는 울부짖었다. “나 때문인가요?! 내가 겁을 주어서 그런 건가요?! 난 그들에게 도망 치라고 했어요! 내일 아침까지는 시간도 충분했고요!! 그런데 왜?! 왜 ?!!!” “됐어. 네 잘못이 아니야! 그만해! 잘못이 있다면 거대한 공포를 감 당 못하는 인간의 연약한 마음에 있는 거야!!” “흑흑흑. 엄마와 아빠에게 항상 인간을 함부로 죽이지 말라고 들으면 서 살아 왔어요. 그리고 엄마 아빠덕분에 인간들이 좋아졌어요. 나쁜 인간들도 많았지만……. 죽이기 싫었어요. 그런데 내가…, 내가 인간 들을 죽여 버렸어요. 내가!!” “그만해!!!” 짝 테이는 볼에 화끈한 열을 느끼면서 빠르게 제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자기 뺨을 때린 시이터를 멍한 눈으로 쳐다봤다. 시이터는 평소의 넉 넉한 미소가 사라진 굳은 얼굴로 테이를 안아주며 나직이 속삭였다. “넌 잘못한 것 없어. 이렇게 안했다면 전투가 벌어지고 더 많은 인간 들이 죽었을 거야. 넌 최소한의 피해로 막은 거야.” “하지만……. 하지만…….” “테이야. 모든 사람들을 죽이지 않고 끝나는 전쟁이란 없는 거야. 그 게 인간들의 전쟁이야. 전쟁이란 인간들의 소설 속의 영웅들의 이야기 처럼 멋있고, 달콤한 이야기가 있는 게 아니야. 지금 네가 본 것이 인 간들이 벌이는 전쟁의 한 일면이야. 추악하고 더러운…….” “그럼 랑그람과 레이르가 벌일 전쟁도 추악하고 더러운 전쟁인가요? 나랑 누나는 그런 추악한 전쟁에 힘을 빌려준 거란 말인가요? 그럴 생 각은 없었어요. 나도 누나도 그냥 어린 시절에 신세를 진 레이나 누나 에게 보답하고 싶어서……. 그래서 레이르를 도와주고 싶었을 뿐인데 …….” “그래. 전쟁이란 그 자체는 추악하고 더러운 거야. 하지만 그 둘이 하려는 전쟁은 가이라가가 일으킨 정복을 위한 전쟁이 아닌 지키려는 전쟁이야. 너희 남매는 잘 못한 것이 없어. 그러니 울지 마. 넌 잘 한 거야.” “흑. 으흑…. 윽! 우욱!” 억지로나마 울음을 삼키려는 테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시이터는 생각 했다. 드래곤의 나이는 인간보다 많다. 티아와 테이도 자신이 산 인생의 10 배 아니 20배를 살아왔을 것이다. 하지만 드래곤은 드래곤의 사회 속 에서 인간과 단절된 생활을 했기 때문에 아무리 나이를 많이 먹었어도 인간들의 기준으로 따지면 둘의 정신연령을 따지면 아직 둘은 어려도 한참 어렸다. 그런 이유로 시이터는 둘을 아직도 애들 취급을 하고 있 었던 것이다. 하지만 테이는 오늘 인간들의 어두운 면 중에 하나인 광기라는 면을 보았다. 그리고 충격을 받았다. ‘이 충격으로 테이는 조금은 생각이 달라지겠지? 조금은 변하겠지. 그리고 그렇게 변하면서 어른이 되어가는 거야. 인. 간. 처럼…….’ 시이터의 생각대로 테이는 그 날 조금은 어른이 되었다. 인간들이 말 하는 어. 른. 으로 조금 성장한 것이다. 계속 ----------------------------------------------------------------- 슬슬 끝을 치닫기 때문에 내용이 진지해지자 여기저기서 원성이 들리 는 듯하네요. ^.^;;; 드래곤 남매의 애독자 중에서 초등학생도 있다는 메일을 받고 놀랐습 니다. "초등학생이 이런 것을 보고 재미를 느낀단 말이야?!" 라고 놀랐죠. ??; 하긴 생각해보니 드래곤 남매의 구성 중 1, 2, 3권 부분은 인간으로 치면 티아와 테이의 유아기와 청소년기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아직 생각이 어린 둘이기 때문에 그 둘의 시끄러운 삶에 재미를 느낄 수도 있겠다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내용은 이제 갓 성인의 길로 들어서는 둘의 이야기입니 다. 성인이라 함은 즐거운 일만 잔뜩 있는게 아니니 조금 이야기가 어 두워 지는 법이죠. (현재 사건 자체도 결코 즐거운 일이 아니고요.) 하지만 드래곤 남매는 둘의 성장 소설입니다. 언제까지나 즐거운 생활 만 하고 있을수는 없는 법이죠. 슬픔을 알고, 아픔을 알고, 다른 존재 를 이해해야 둘은 성장을 할 수 있는 법입니다. 저는 그런 둘의 성장과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쌍둥이 드래곤으로서 의 서로의 존재에 대해서 써 나가고 싶었습니다. 물론 이 이야기가 끝나서 둘이 조금 성장하더라도 티아와 테이의 본질 은 변하지 않을 겁니다. 인간을 좋아하고, 마음씨 착한 둘의 모습은 결코 변하지 않을것이라는 것을 약속드립니다. 테이의 성장 다음에는 티아 차례겠죠? 다음편 남매의 숙제(4)로 5권 분량은 끝이 납니다. 쓰고 싶은 것을 다 쓰는 관계로 양이 결국 늘어 났지만 그렇다고 짜를 수도 없으니 최대한 빨리 끝내겠다는 마음만 잊 지 않고 둘의 이야기를 쓰고 싶으만큼 쓸 생각입니다. (라고는 해도 10권 이하로 끝이 나겠지만요. ^^;;;) 남매의 숙제(4)는 지금 절반정도 쓰고 있는 중이니 오늘내로 올라갈 예정입니다. 그리고 다음화가 이 전쟁의 최종화가 됩니다. 최종화 제목은 33화 생명의 드래곤. 남매의 숙제편을 얼른 마치고 원고 넘기고 바로 33화 들어가겠습니다. ^.^ 늘 즐거운 시간들 되세요. ^^ 32화 남매의 숙제(4) 그때쯤 루그라드는 앞으로 맞게 될 랑그람의 본대와 벌일 전투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비록 가이라가 왕국에 힘을 빌려주고 있기는 하지만 너무 일방적으 로 이겨버리면 그만큼 다이러스 제국의 국력은 약해지기 때문에 적당 한 선에서 이겨야 된다. 가이라가도 다이러스도 국력을 회복하는데 시 간이 걸릴 정도로 적당히……. 아니야! 이왕이면 이기더라도 가이라가 에게도 큰 타격을 주는 방법을 써야 되는데…….’ 지기 위한 방법을 생각하기는 쉽다. 하지만 아군도 적군도 같이 타격 을 받으면서 승리라는 것은 너무 어려웠다. 차라리 일방적인 승리를 위한 작전을 짜는 게 훨씬 쉬운 일이었다. 이번 붉은 들소부대의 격파로 기분이 좋아진 가이라가의 케르디온 왕 은 이번 대군의 지휘권을 루그라드에게 위임했다. 물론 다른 가이라가 의 장군들의 반대가 있었지만 지난 몇 주 동안 붉은 들소에게 질질 끌 려 다니기만 했던 그들에게는 발언권이 있을 리가 없었다. 더구나 카나리아 작전. 즉 레이르와의 정략결혼을 무기로 가지고 있는 루그라드는 너무나 손쉽게 지휘권을 따냈다. 그리고 그 대가로 얻은 것은 두 나라간의 휴전협상이었다. 모든 것은 루그라드의 계략대로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아도니스……. 너라면 지금 나의 모습을 보고 뭐라고 할까?’ 잠시 아도니스의 생각을 하던 루그라드는 쓴 웃음을 지었다. 뭐라고 생각하다니 그건 생각할 것도 없었다. ‘레이님이 행복하지 않다면 이 나라가 행복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라고 외쳤던 아도니스였 다. 그런 아도니스이기에 지금 적당히 이기기 위해 머리가 아픈 루그라드 에게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다이러스로 돌아오십시오. 우리는 이길 수 있습니다’라고……. ‘아니 돌아가기에는 너무 늦었어. 돌아가기에는 내가 벌려 놓은 일이 너무 커. 이제 나에게 남은 것은 내 식대로 이 일의 마무리를 짓는 것 뿐.’ 눈을 감고 관자놀이를 어루만지던 루그라드는 새하얀 빛이 눈앞에 비 치는 것 같은 착각을 느끼고는 눈을 떴다. 빛은 한순간에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빛 대신에 정말 거짓말 같은 일이 일어났다. “루드 오빠.” “레이르? 환상인가?”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더욱 성장한 레이르가 슬픈 얼굴로 고개를 저 으며 루그라드의 얼굴을 살며시 쓰다듬었다. 환상이 아니었다. “어떻게?” 이곳을 알고 왔느냐? 어떻게 들어왔느냐? 묻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차 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질문을 꺼내면 레이르가 금방이라도 어딘가 로 가버릴 것 같았다. 레이르는 뒤를 돌아보며 은발의 미인을 소개했 다. 차가운 인상이지만 어딘가 따뜻해 보이는 그 여성은 루그라드에게 가볍게 고개를 까딱했고, 레이르는 그녀를 티아루아님이라고 소개해 줬다. ‘티아루아?’ 루그라드가 그 이름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기도 전에 레이르는 다그치 듯이 물었다. “루드 오빠 전 알고 싶은 게 많아요. 특히 카나리아에 대해서 숨길 생각 말고 사실대로 말해주세요.” 레이르의 질문에 루그라드는 랑그람의 얼굴을 떠올리고는 어떻게 알았 는지 묻지 않았다. ‘그런가? 결국 랑그람 그대가 먼저 레이르를 찾아 낸 것인가? 하지만 …, 신은 아직 날 버리지 않았나 보구나. 레이르가 나에게 와 줬으니 말이야.’ 루그라드는 티아가 눈치 채지 못하게 목에 건 목걸이의 보석을 만지작 거리며 중얼거렸다. 루그라드는 제 발로 찾아온 레이르를 이용해서 랑 그람에게 항복을 요구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하면 양측 다 피해 없이 이 전쟁을 끝낼 수가 있었다. ‘하지만 티아루아라는 이름이 걸린다. 레이나 증조할머니가 도움을 받았다던 실버 해츨링……. 지금은 성룡인 드래곤이 된 것인가? 아무 튼 이 초 고대 마법 병기가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도박에 걸어야 되겠 군.’ 루그라드는 티아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레이르에게 카나리아에 대 해서 자신의 진심을 말해주기 위해 입을 열었고, 티아는 나직하게 [사 이레스]를 외우며 천막에 침묵의 결계를 쳤다. 아도니스에게도 설명을 해줬던 카나리아 작전에 대한 진실. 그 진실을 알게 된 레이르는 얼굴이 파랗게 질려서 부들부들 떨었다. “너무해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왜 그런 생각을……?!” “나라를 위해서다. 너만 잘 해준다면 우리 다이러스 제국은 그렇게나 염원하던 평화를 얻을 수 있다.” “그럼 나는 뭐죠?! 나라를 위해서 왕족이 희생된다는 잘 알고 있어요 !! 하지만 꼭 그렇게 안하더라도 국력을 강화 시키면 되잖아요!! 가이 라가가 침범 할 생각도 못 할 정도로 강해지면 되잖아요!! 과거 레이 나 여왕님이 하셨던 것처럼!!” “그렇게 하기에는 시간이 없어! 당시 내가 입수한 정보로는 가이라가 는 언제라도 전쟁을 터트릴 수 있도록 준비가 다 끝난 상태였다. 더구 나 이번 전쟁이 시작된 원인을 아느냐? 그것은 가이라가 왕국의 함정 이었다. 다이러스 제국에게 죄를 덮어 씌어서 자신들이 일으킨 전쟁을 피해자인척 한 것이란 말이다! 이미 전쟁은 일어났고 정작 피해자인 우리들은 동맹국에도 버림 받았다. 그런 상황에서 뭘 어떻게 해야 이 나라를 지킬 수 있겠느냐?!” “그걸 알고 있다면 왜 가이라가를 돕고 있는 거죠? 더러운 수법을 쓰 는 가이라가를 오빠가 도와야 될 이유가 없잖아요!!” “......어차피 나도 더러워 진 몸. 너를 가이라가에 팔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난 진흙길을 걸을 각오를 한 몸이다. 그리고 이유야 어찌 됐 던 나라를 빼앗아간 랑그람을 난 용서할 수 없다. 이유는 그 뿐이다. ” 잠자코 남매가 언성을 높이는 것을 보면서 티아는 사이레스를 쓰길 잘 했다고 중얼거리며 한숨을 쉬었다. 놔두면 계속 싸울 것 같아서 티아 는 중재를 하기로 마음먹고,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잠깐만 싸움 하시는 중에 죄송하지만 좀 끼어들게요. 루그라드라고 하셨죠? 당신 정말 이유가 랑그람을 용서 못하겠다는 이유 하나뿐인가 요?” “정말 그 뿐입니다. 위대한 드래곤 티아루아님이시여.” 티아의 존재가 자꾸 신경이 거슬리던 루그라드는 티아가 먼저 말을 걸 어오자 기회라는 생각에 슬쩍 티아의 정체를 떠 보았다. 티아는 그런 루그라드의 의중을 알아채고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행동했다. 아니 루 그라드가 티아의 정체를 눈치 채는 것은 정말로 티아에게 별 큰일은 아니었다. “내 정체를 알았다면 이야기가 빠르겠군요.” “무슨 이야기 말씀이시죠? 이건 저희 집안 문제나 마찬가지입니다. 위대한 존재께서 끼어 들 문제가 아닙니다.” “오빠! 말이 심해요! 티아님은 우리나라를 도와주시기 위해서…….” “그만 레이르. 잠깐만 저쪽으로 가있어. 난 네 오빠랑 긴히 할 이야 기가 생겼으니 끼어들지 마.” “하지만…….” “레이르!” 약간 성이 난 티아의 호통에 레이르는 약간 겁을 집어먹고 티아와 루 그라드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고는 구석으로 가버렸다. 레이르가 자리를 비키자 티아는 루그라드에게만 들릴 정도의 작은 소 리로 말했다. “나라 사랑이 어떠니 해도 결국은 질투군요. 그런 질투 때문에 나라 일을 망쳐도 되는 건가요? 손에 넣을 수 없다고 멀리 보내면 당신 마 음은 편해지나요?” “......무슨 소리를 하시는지 전 모르겠습니다.” “속일 생각은 말아요. 나도 당신과 똑같은 상황이기 때문에 느낄 수 있어요. 그나마 내가 다행이라는 것은 드래곤들 세계에서는 동생을 사 랑하는 것이 그리 큰 죄악은 아니죠. 하지만 인간 세상에서는 큰 죄악 이라고 한다죠?” 루그라드는 마음 속 깊이 숨겨왔던 마음이 들키자 크게 놀라버렸다. “어떻게?!” 티아는 비명을 지르는 루그라드의 입을 틀어막으며 레이르를 돌아보았 다. 다행히 레이르는 끼어들지 말라는 티아의 말을 잘 지키고 있어서 루그라드의 외침에 궁금한 표정으로 이쪽을 쳐다봤지만 가까이 오거나 묻거나 하지는 않았다. “쉿! 목소리 낮춰요. 설마 레이르에게 들키고 싶은 것은 아니죠? 그 리고 아까 말했잖아요. 난 당신과 비슷한 처지라 느낄 수 있었다고요. ” “......그런가요? 그러고 보니 당신에게 동생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기억나는 군요. 쌍둥이 드래곤이라던가? 하하하하 이거 당신은 정말 위대하군요. 그 어느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고 나 역시 억지로 밀어 넣었던 내 더러운 마음을 눈치 채다니.” 자학적으로 웃고 있는 루그라드를 씁쓸한 표정으로 쳐다보던 티아는 고개를 저었다. “더러운 마음이라고요? 좋아한다는 감정은 결코 더럽지 않아요. 하지 만 인간들에게는 해서는 안 될 사랑도 있다고 하죠? 한때나마 나도 그 것 때문에 고민을 했던 적은 있어요. 신이 허락했지만 유래 없는 쌍둥 이의 탄생이라 태어나면서부터 같이 살아 온 동생을 좋아하는 나의 마 음도 허락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고민을 많이 했죠.” “고민을 했던 적이 있다는 말은 지금은 고민을 안 한다는 말이군요. ” “그래요. 더 이상은 고민하지 않기로 했어요. 좋아한다는 감정은 결 코 더러운 게 아니니 난 내 마음에 솔직해지기로 했어요.” “부럽군요. 하지만 난 안됩니다. 아시겠습니까?! 난 인간입니다. 인 간의 관습에 매인 나는 당신 같은 드래곤처럼 솔직해 질수 없단 말입 니다!” 루그라드가 소리를 질렀지만 티아는 더 이상 그를 제지하지 않았다. 레이르는 뒤에서 안절부절 못하면서 어떡하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점점 상황이 험악하게 돌아가자 레이르는 둘을 말려야 된다는 생각을 했지만 누구를 말려야 될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티아도 더 이상 조용히 말하기를 포기하고는 매서운 눈을 뜨고 루그라 드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그래서 레이르를 멀리 보낼 생각이었나요?! 레이르의 보장된 행복을 ……. 다른 남자와 같이 사는 행복을 옆에서 보기가 두려워서, 그래서 레이르에게 불행이 될지도 모를 일을 계획한건가요?! 좋아하는 마음은 더러운 게 아니에요. 하지만 그것을 솔직하게 인정하지 못하고, 아니 인정은커녕 오히려 자신의 마음의 위안을 위해서 카나리아인지 종달새 인지 이상한 생각이나 하고! 겁쟁이나 마찬가지인 자신의 마음을 숨기 기 위해 그럴 듯하게 국가를 위해서라는 말로 포장을 한 것이 잘 한 일이라 생각하나요? 당신은 이미 국민을 위한다는 말을 할 자격도 없 는 도망자일 뿐이에요!” 매서운 티아의 질타에 루그라드는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의 속마음과 겁쟁이라는 티아의 질책이 하나, 하나 비수가 되어서 그의 가슴에 꽂혔다. “당신에게는 이미 레이르를 좋아할 자격조차 남아 있지 않아요! 당신 은 더럽지 않은 감정을 스스로의 손으로 더럽힌 거예요!!” 그리고 티아의 마지막 외침에 루그라드는 그 자리에 털썩하고 주저앉 아 버렸다. 할 말 다하고 난 뒤에 개운한 표정을 지은 티아는 더 이상 할 말도 없었기에 돌아갈 생각으로 몸을 돌렸다가 ‘아차!’하는 탄성 을 내 뱉었다. 너무 흥분해서 레이르에 대해서 깜박 잊어버린 것이다. 레이르는 눈에 보일 정도로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방금 티아가 지른 소리로 인해 대강이나마 눈치를 챈 것이다. 티아는 한숨을 쉬고는 레 이르에게 다가가서 어깨를 두드리며 다정하게 속삭였다. “미안. 방금 전 일은 꿈이라고 생각하렴. 레이르는 나쁜 꿈을 꾼 거 야.” “티아님. 저는…….” 티아는 무언가 말을 하고 싶어 하는 레이르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가리 며 고개를 저었다. “생각하려 하지 마. 부탁이니 잊어버려. 그리고 앞으로의 일을 생각 해. 랑그람부터 만나러 가자. 그리고 힘을 합해서 이 전쟁을 끝내자. 그 뒤에도 전쟁의 피해를 복구하려면 정신없이 힘들게 지내야 될 거 야. 하지만 앞으로 네 곁에는 랑그람이 있을 테니 괜찮지? 바쁘더라도 좋아하는 사람의 미소를 보면 힘이 날거야. 그러다 보면 방금 일은 잊 게 될 거야. 정말 나쁜 꿈을 꾼 것처럼…….” “티아님. 티아님! 흑, 흑흑…….” 티아는 울부짖는 레이르의 어깨를 다정하게 감싸며 등을 다독거려 주 었다. ‘좋아하는 감정은 뭘까? 왜 좋아하는 감정은 여러 가지로 변하는 걸 까? 처음에는 아름답고 깨끗한 감정도 질투와 시기와 독점욕으로 얼룩 져 가는 이상한 감정. 그런데도 이성을 좋아하는 이 감정은 결코 사라 지지 않아. 더 많이 곁에 있고 싶고, 더 많이 그가 나를 봐줬으면 좋 겠어. 더 많이…….’ 티아는 테이를 생각하면서 울고 싶은 기분을 억눌렀다. 지금은 레이르 때문이라도 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정말 해야 될 일도 잔뜩 있었기 때문에 아직은 울 때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며 울고 싶은 기분을 마음 속 깊이 밀어 넣었다. ‘나중에 테이 품에서 속이 풀릴 때까지 울고 싶다. 나중에…….’ 티아가 조용히 텔레포트의 좌표를 설정할 때 티아에게 안겨 있던 레이 르가 비명을 질렀다. “티아님!! 위험!!” 미쳐 레이르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티아는 이상한 이질적인 마력의 기운에 몸을 돌렸다. 이질적이기는 했지만 친숙한 느낌의 마력이었다. “미안하지만 둘 다 보내 줄 수가 없다! restraint(속박)!!” 루그라드는 목에 걸고 있던 목걸이를 꺼내며 소리쳤다. 목걸이에 걸려 있던 붉은 구슬에서 기이한 빛들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튀어 나와서 티아에게 달려들었다. “초 고대어 마법?! 어떻게?!!” 티아는 약해진 마력이나마 총 동원해서 초 고대 마법에서 벗어나려 했 지만 티아의 원래 힘으로도 어쩔 수 없었던 초 고대 마법은 티아를 간 단하게 속박했다. “꺄아악!” “티아님!!” 티아의 비명이 천막 안에 울려 퍼졌고, 완벽하게 속박을 당한 덕분에 티아가 건 사이레스의 효과가 떨어졌다. 덕분에 티아의 비명과 레이르 의 외침을 들은 루그라드의 호위병들이 천막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미안하지만 너희 둘은 인질이 되어 줘야겠다. 이 전쟁을 끝내기 위 해서라도…….” 소란스러운 가운데 쓰러진 티아의 곁에 루그라드가 무표정한 얼굴로 다가와서 나직하게 속삭였다. 티아는 처음으로 절망이라는 감정을 느 꼈다. 지금 상태로서는 레이르를 도와주기는커녕 자신의 몸조차 지킬 수 없을지도 몰랐다. ‘테이야. 테이야.’ 나중에 테이에게 안겨서 펑펑 울겠다고 마음먹었던 티아는 눈물을 흘 리며 테이를 찾았다. 하지만 그때 테이의 마음 역시 슬픔에 잠겨 있었 다. 처음으로 자신의 마음을 테이에게 열고 티아가 보낸 두려움과 슬 픔은 테이로 하여금 그것이 누구의 두려움이고, 슬픔인지 분간을 못 차릴 지경으로 충격을 먹고 있는 상태였다. 결국 티아의 구조 요청은 테이에게 닿지 않았다. 계속 ----------------------------------------------------------------- 음 이번편은 [티아의 대 위기]라고 제목을 붙여도... 퍽! 안녕하세요? 평화주의 입니다.^^;;; 드디어 이번편으로 그동안 난리를 피웠던 5권 분량이 끝이 났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그동안 게으름 피운 댓가로 "마감 끝났다! 놀자!!" 놀자판을 실행할 수 없다는게 울고 싶습니다. ?? (이것이 자기 무덤...?? 잠시 머리도 식힐겸 작은 사랑 집필에도 들어가고... 아 그리고 드래곤 남매의 힌트가 되었던 내 단편인 [트윈즈]를 슬하님의 드래곤 남패 팬홈피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홈피 주소 아시죠? 에 모르신다고요? ?? http://tiantei.this.ac/ 놀러와서 한번씩 봐주세요. 좀 고칠까했지만 그 때 썼던 내용 그대로 올리기로 했습니다. 97년도에 썼던 단편으로 지금 보면 울고 싶을 정 도로 허접하지만... 트윈즈가 있었기에 드래곤 남매가 탄생했으니... 감개무량한 작품이죠 ^^;; 일단 올릴때가 없어서 ETC란의 Parody란에 올리겠습니다. 그럼 다음편 33화 생명의 드래곤편에서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마감 끝났다! 놀자!! 게임을 할까? 소설책을 볼까? 아 애니도 밀린게 많지! 즐거워라!!" <------- 정신 못 차린 평화 ??; 늘 즐거운 시간 되세요. ^^;; 33화 생명의 드래곤(1) 테이의 활약에 의해서 슈트바엔의 10만 대군은 너무나 간단하게 무너 졌다. 그들은 살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자신들의 나라로 도망가거나 혹 은 굶주림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굶어 죽는 인간들이 있었다. 그리 고 농가를 습격하고 쫓겨 다니다가 산적이 되는 인간들도 많았다. 특히 산적이 되어버린 가이라가 병사들은 전쟁이 끝나고 난 뒤의 다이 러스 제국에 새로운 골칫거리가 되었다. 그렇게 만든 장본인격인 테이는 멍하니 폐허가 된 가이라가 진지를 바 라보다가 아침 해가 뜨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봐서는 아직 제 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나이는 먹을 만큼 먹은 것 같은데……. 역시 정신적으로 약한 건가? 아니면 너무나 순수해서일까? 어느 쪽이든 이번 일로 테이군이 나쁘게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시이터는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자신은 이미 충고를 할 만큼 해준 상 태였기 때문에 더 어떻게 해줄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런 시이 터의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테이는 공허한 눈동자로 금방이라도 쓰 러질 듯이 걸어갔다. ‘누나를……. 누나를 만나야 해. 누나라면……. 티아 누나라면……. ’ 테이는 무섭지만 그래도 믿음직했던 티아를 떠올리며 계속 걸었다. 티 아라면 지금 자신의 아픈 마음을 아무렇지 않게 치료해 줄 것이라고 테이는 믿고 있었다. “어디 가는 거냐?” 시이터는 조용히 테이의 뒤를 따라가다가 테이가 이제는 길이라고 부 를 수도 없는 숲길로 들어서자 걱정이 되서 물었다. 하지만 테이는 대 답을 하지 않고 그냥 계속 숲으로 들어갔다. 참지 못한 시이터가 테이 의 어깨를 붙잡으며 다시 한번 물었다. “테이야 지금 어디 가는 거냐? 여기는 길이 아니야!” “누나…….” “응?” “누나한테 가야 되요.” 중얼거리듯이 말을 뱉은 테이는 시이터의 손을 뿌리치고 다시 숲 안으 로 걸어갔다. “이거 상태가 위험한데……. 더 이상 방관만 하고 있을 수는 없겠어. ” 테이의 정신 상태가 자신의 생각보다 더 위험하다는 생각에 시이터는 조금 거칠긴 하지만 테이를 기절시켜서 데려가기로 마음먹었다. 마음 을 잡은 시이터는 조심스럽게 테이의 뒤로 돌아가서 손날로 테이의 목 덜미를 세게 내리쳤다. 털썩 “뭐야? 너무 싱겁잖아.” 시이터는 조금 반항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테이가 너무나 간단하게 쓰러지자 ‘너무 세게 친 건가?’라는 걱정까지 들었다. ‘아니. 그 정도로 테이군이 무방비 상태였다는 거겠지. 하아. 블랙시 터님께서 둘이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 두고 도와달라고 할 때만 도와주라고는 했지만……. 세상의 더러움을 본적이 없는 이런 아이들 에게 무슨 생각으로 인간들의 전쟁을 해결해 보라고 하신건지…….’ 정확히 말하면 테이의 나이는 시이터의 약 스무 배는 먹었지만 시이터 에게 있어서 둘은 사춘기 소년, 소녀 같은 느낌밖에 안 들었다. 시이터는 테이를 짊어지고 주머니를 뒤적거려서 밝은 하늘색의 유리구 슬 하나를 꺼냈다. “이 구슬이 맞겠지? 아니면 엿 되는데……. 에이 맞겠지! 텔레포트 계열은 하늘색이라고 블랙시터님이 말하셨던 것 같으니……. 텔레포트 !” 시이터는 하늘색 구슬을 땅에다가 던지면서 이동 마법의 시동주문 이 름을 외쳤다. 그 푸른색 구슬은 마법을 담은 구슬로 구슬에 담겨진 주 문의 이름을 외우며 약간의 충격을 주면 해당 마법이 발동하는 마법 아이템으로 신룡들이 만들어 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이터가 던진 구슬에서 텔레포트의 빛이 퍼져 나와서 시이터와 테이의 몸을 감싸야 되는데……. “.......이 구슬이 아닌가봐. 이상하다 분명 하늘색이라고 들었는데 …….” 그렇게 시이터가 제대로 된 텔레포트 구슬을 찾은 것은 10여개의 구슬 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난 뒤였다. 겨우 제대로 된 구슬을 찾아서 텔레포트를 발동시킨 시이터는 보람 찬(?) 미소를 지으며 텔레포트의 빛 속에 몸을 맡기고 다이리 수도의 좌표를 머릿속에 그렸다. 이제 남은 것은 텔레포트가 다이리 수도로 둘을 옮겨주기를 기다리는 것 뿐. 그런데……. “아뿔싸!! 구슬 안 챙겼다아!!!” 아까 자신이 던진 10개의 구슬을 땅바닥에 내버려둔 채 텔레포트를 발 동시켜버린 시이터는 아까움에 비명을 지르며 하나라도 주우려고 손을 뻗었다. 하지만 이미 새하얀 빛이 시야를 가린 상태였고, 시이터와 테 이의 몸은 차원의 공간 속에 들어 가버리고 난 뒤였다. “아악! 저거 한 개가 천 골드는 넘는 데에!! 아까워!!” 눈 깜작할 새에 다이리 수도로 이동한 시이터의 허무한 외침에 지나다 니는 사람들이 미친 사람 취급하는 눈동자로 시이터를 쳐다보며 피해 다녔다. 그 시선을 눈치 채고 있는 시이터였지만 거의 일만 골드 이상 의 마법 아이템을 땅에 버리고 왔다는 충격이 더 큰 나머지 신경을 쓰 지 못했다. 그는 그저 시간 날 때 그곳에 가 봐야 되겠다는 다짐과 함 께 제발 아무도 주워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하지만 마법 구슬들은 이미 반짝이는 것을 모으는 새들이 주워가고 있 는 중이었다. 나중에 그것을 알게 될 시이터가 얼마나 속이 쓰릴지는 안 봐도 뻔했다. 살림(?) 꾸려나가는데 있어서는 현역 주부들도 울고 가는 솜씨를 자랑하는 시이터였으니 말이다. 축 늘어진 시이터가 테이를 업고 카렌이 기거하고 있는 별궁에 들어왔 을 때는 마침 유크로드와 그의 아내이자 레이나의 사촌인 크리스나가 담소를 나누고 있던 중이었다. 그때 시이터가 기절한 테이를 업고 들 어오자 다들 놀란 얼굴로 무슨 일이 생겼는지를 물었다. 그리고 시이터에게 자초지종을 들은 셋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표정 이 어두워졌다. 특히 유크로드는 굶주림과 계속된 패배로 정신이 약해 진 가이라가 왕국의 군대가 테이의 출현에 공황을 일으킬 것이라는 것 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설마 테이의 마음이 그 정도에 무너질 정도로 약할 것이라는 생각을 못했기 때문에 유크로드의 표정 은 다른 이들보다 더 어두웠다. “제 실수입니다. 드래곤이라는 존재는 인간이 이해할 수가 없는 존재 라고 생각했지만……. 설마 인간들이 죽는 것에 이렇게 충격을 받으실 줄 몰랐습니다. 테이루아님이 이렇게 되신 책임은 저한테 있습니다.” “거기까지만 해 두세요. 지금은 누구의 잘못을 따질 때도 아니고 테 이가 이렇게 된 것은 유크로드씨의 잘못은 더더욱 아닙니다.” 시이터가 유크로드를 위로하기 위해 그의 잘못이 아니라고 했지만 유 크로드는 납득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유크 이제 그만하세요.” 카렌은 그런 유크로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를 진정시켰다. 마치 어 린 아이 달래는 행동이었지만 레이르와 랑그람을 포함해서 셋이 태어 난 그 순간부터 셋을 돌보았던 카렌의 손길은 떨고 있는 유크로드에게 마음의 안정을 가져왔다. “테이님이 이렇게 되실 거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 했어요. 그러니 혼자만의 책임이라는 생각은 하지 마세요. 그리고 지금 책임을 느낀다 면 자책을 하기보다는 테이님을 도와드릴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보세 요.” 카렌 덕분에 마음이 안정되었는지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유크로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카렌 옆에서 물수건을 테이 머리위에 올려 주 던 크리스나는 얼굴이 파랗게 질려서 카렌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크리스 왜 그래요?” 자신을 부르는 크리스나를 쳐다보던 카렌은 크리스나가 놀란 이유를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게 됐다. 아까전만해도 편안하게 잠들어 있던 테이가 온 몸에 식은땀을 흘리면서 헛소리를 하고 있었다. “어떡하죠? 악몽을 꾸고 계신가 봐요.” 크리스나가 울 것 같은 얼굴로 테이의 땀을 손수건으로 훔쳐 주었지만 비 오듯이 흐르는 땀을 다 닦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카렌은 그런 테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손을 잡고는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카렌의 마음 읽기 능력과는 또 다른 능력인 자신의 마음을 상 대방에게 전달하는 방법으로 테이의 마음을 안정시킬 생각이었다. ‘테이님 기운 내세요. 테이님의 잘 못이 아니에요. 자신을 너무 탓하 지 않으셔도 돼요. 테이님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모여 있어요. 그러니 겁먹지 마시고……. 응?’ 테이의 마음을 다독여 주던 카렌은 이맛살을 찌푸리며 숙이고 있던 고 개를 들었다. “왜 그러시죠?” 잠자코 지켜보던 시이터가 카렌의 모습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 고는 조심스레 물어보자 카렌은 몇 번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급히 유크 로드에게 물었다. “티아님과 레이르는 돌아왔나요?” “아니요. 티아님과 레이르님은 루그라드님을 찾아서 만나고 난 뒤에 곧바로 랑그람님께 가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무슨 문제가 생 겼습니까?” 유크로드는 설마 하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물었고, 카렌은 유크로드 의 질문에는 답하지 않고 다른 질문을 했다. “그럼 혹시 루그라드가 자주 입는 갑옷 색깔이 푸른색 아닌가요?” “어떻게 그걸 아셨습니까? 루그라드님이 입는 푸른 갑옷 덕분에 창공 의 황태자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로 푸른 갑옷을 즐겨 입는 것은 카 렌 아줌마와 제임스 아저씨가 나가시고 난 뒤에 일인데…….” 유크로드는 루그라드가 입는 갑옷 색깔을 맞춘 카렌을 놀란 표정으로 쳐다보다가 혹시 하는 생각에 급히 물었다. “혹시 테이님이 루그라드님과 만나신걸까요? 설마 그 아수라장에 루 그라드님이?” 카렌은 고개를 저어 유크로드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고는 계 속해서 땀을 흘리는 테이의 이마를 만지며 말했다. “이건 테이님이 격고 계시는 공포가 아니에요. 이건……. 티아님의 공포예요.” “티아님이라고요?” “그게 무슨…….” 루그라드도 시이터도 카렌의 말이 이해가 안 간다는 뜻으로 반문했고, 카렌은 그 질문에 다시 한번 힘주어서 설명했다. “테이님은 모르시고 계시지만 티아님과 테이님은 서로의 마음을 공유 하실 수 있으세요. 그런데 지금 티아님이라고 생각되는 마음이 공포에 질려 있어요. 필사적으로 테이님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어요.” “설마……. 그 티아양이요?” 시이터는 카렌의 설명을 듣고도 믿어지지 않는 다는 투로 물었다. 둘 의 마음이 통한다고 하는 말보다 티아가 겁을 먹고 있다는 말이 더 믿 어지지 않는 시이터였다. 카렌은 그런 시이터의 의문이 당연하다는 생 각을 하면서 - 어째서? - 한 번 더 말해줬다. “저도 이유는 모르겠지만 지금 티아님은 무서워하고 있어요. 푸른 갑 옷의 금발의 남자 때문에……. 그래요. 그 남자가 틀림없이 루그라드 일거에요.” “가만……. 그렇다면 레이르님께 서는요?! 틀림없이 같이 있을 텐데! 레이르님은 어떻게 되신 겁니까?!” 유크로드는 비명에 가까운 외침에 테이를 간호하던 크리스나가 눈살을 찌푸리며 조용히 하라고 주의를 줬다. 하지만 그런다고 유크로드가 얌 전하게 있을 수는 없었다. 만약에 티아가 무언가 잘 못됐다면 같이 갔 던 레이르의 신변도 보장받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이걸 어떻게 하지? 일단 랑그람님에게 알려야……. 아니야. 그 분이 라면 이 소식을 들으면 앞뒤 안 가리고 쳐들어갈게 뻔해. 일단 바그온 장군과 합류할 때까지는 비밀에 부쳐야……. 하지만 그랬다가 레이르 님에게 만에 하나 잘못이 생기면…….” 초조한 얼굴로 왔다갔다 거리며 가끔 머리를 쥐어뜯는 유크로드는 평 상시의 날카롭고 냉정한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테이 가 깰까봐 시끄럽다고 구박을 주던 크리스나도 남편의 당황하는 모습 을 두고 볼 수 없었는지 유크로드를 억지로 붙잡아 소파에 앉혔다. “당신 제발 진정해요. 그렇게 안달한다고 해서 일이 해결 되는 건 아 니잖아요. 우리 다이러스 제국의 제 일의 냉철한 사무처리 능력을 자 랑하는 모습으로 돌아오세요. 그게 내 자랑스러운 남편의 모습이지 지 금의 모습은 그냥 두고 보기가 안쓰럽다고요.” “하지만 조그마한 균형 하나에도 대세가 기우는 이때에 레이르님께서 적의 손에 붙잡혔다는 것은 우리 제국의 멸망이나 마찬가지란 말이요! ! 더구나 레이르님을 구하러 갈 사람도 없고…….” “아니요. 구하러 갈 사람은 여기 있습니다.” “시이터님?!” 절망적 때문에 얼굴이 낯빛이 된 유크로드는 시이터를 잠시 쳐다보고 는 고개를 저었다. “안됩니다. 드래곤이신 티아님도 붙잡히신 마당에 인간 전사 한명이 가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죽을게 뻔한 사지로 시이터님을 보낼 수는 없습니다.” 시이터는 유크로드의 걱정에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티아양과 테이군이 날 떨거지라고 해서 걱정이 되시는 것 같은데 걱 정 안하셔도 됩니다. 저는 보통 인간은 아니거든요. 저는 신룡 블랙시 터님의 그림자입니다.” “그림자라고요? 블랙시터님의?” 시이터의 말뜻을 알아듣지 못한 유크로드의 반문에 시이터는 고개를 끄덕이며 검을 빼들며 설명했다. “그림자에 대해서는 국가 기밀이기 때문에 더 말해드릴 수 없지만. 저는 신룡님들이 직접 만든 정령의 검 엘리멘탈 소드를 지니고 있고, 그 분들의 마력이 담긴 마법 구슬 아이템도 있습니다. 몇 개 써버리는 바람에 얼마 남지 않았지만 여자 두 명 구출해 오는 것은 쉽습니다.” ‘정확히는 버린 거나 마찬 가지지만……. 으 다시 생각하니 아까워 죽겠다.’ 시이터는 아까 전에 산에다가 버리고 온 것이나 마찬가지인 각종 마법 구슬을 떠올리자 다시 속이 쓰린 느낌에 얼굴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곧 미련을 떨치고 놀라운 눈으로 정령의 검 엘리멘탈 소드를 바라보고 있는 유크로드에게 말했다. “걱정 마시고 저에게 맡겨 주세요.” “........신검 엘리멘탈 소드. 그 검이 실제로 있었단 말입니까? 그 저 뜬소문인 줄 알았는데…….” 신검 엘리멘탈 소드는 신룡들이 만들었다는 최강의 마법검이라는 전설 이 있었다. 하지만 워낙에 오래된 전설이고, 정작 엘리멘탈 소드를 만 들었다는 신룡들은 그 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아서 확인 이 불가능하다는 전설속의 검. 유크로드는 그 전설의 검이 자신의 눈앞에 있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 다. 하지만 검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도 느낄 수 있는 범상치 않은 기운을 내뿜는 검과 자신만만한 시이터의 태도는 거짓말 같지가 않은 느낌을 주었다. 그 덕분에 유크로드는 시이터에게 모든 것을 맡길 결 심을 했다. “그럼 염치 불구하고 부탁하겠습니다. 레이르님을 반드시 구해주십시 오. 원하시는 보상은 그 어떤 것이라도 보답해드리겠습니다.” “보답을 바라고 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티아양은 같이 여행을 한 동료입니다. 레이르 왕녀님은 같이 동행한 지는 얼마 안 되지만 왕녀 님도 소중한 여행 동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동료를 구하러 가겠다는 것뿐입니다.” 시이터는 검을 허리에 차고는 곧바로 물건들을 챙기며 바로 출발 준비 를 시작했다. 유크로드는 옆에서 필요한 물건이 없는지 물어보고는 병 사들에게 물품을 가져오라고 명령을 내리며 부산하게 움직였다. 그런 와중에 카렌이 시이터의 곁에 가서 당부의 말을 했다. “조심하세요. 루그라드가 무슨 힘을 쓴 건지 모르겠지만 자존심 높은 티아님이 겁에 질려서 테이님에게 구조를 요청할 정도라면 보통 큰일 이 아니에요.” “아아. 그 일이라면 대충 짐작이 가는대가 있습니다.” “무슨?” 카렌의 반문에 시이터는 혀를 차며 말을 내뱉었다. “티아양을 꼼짝 못하게 할 힘이라면 틀림없이 초 고대 문명의 힘입니 다. 젠장! 세월이 가면 갈수록 인간들의 유적 탐사 수준이 높아져서 쓰여서는 안 되는 힘이 너무나 쉽게 인간들 손에 넘어가는군요.” “초 고대 문명이라고요?” 초 고대 문명은 카렌이 알기로는 지금 인간들의 생활수준을 훨씬 뛰어 넘는 물건들이 가끔 발견되는 문명이었다. 하지만 그 문명이 언제 만 들어졌고, 무엇 때문에 땅속에 묻히게 되었는지는 아직도 밝혀지지가 않은 수수게끼가 많은 문명. 카렌은 그 문명에 대해서 시이터가 잘 알고 있는 것 같아서 조금 놀라 기는 했지만 곧 시이터가 말한 신룡님의 그림자라는 것과 관계가 있다 는 생각에 더 물어보기를 관두기로 했다. 궁금한 점은 많았지만 물어본다고 시이터가 대답해 줄 것 같지도 않았 기 때문이다. 그리고 카렌의 생각대로 더 설명 해줄 생각이 없는 시이터는 준비를 끝내고 주머니 속에서 새하얀 구슬을 꺼냈다. ‘하아. 처음부터 이 구슬이 이동 마법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그 아까 운 구슬들 다 안 버리고 와도 됐을 텐데…….’ 끝까지 마법 구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시이터는 아까워 죽겠다 는 표정을 지으며 이동하려고 할 때 카렌이 마지막으로 물었다. “혹시 그 마법 구슬 여분이 있나요?” “네? 아 이동 구슬은 넉넉하게 여유분이 있습니다.” “그럼 제 남편과 같이 가세요. 만약을 위해서 한 명 정도는 더 따라 가는 게 낮지 않을까요?” 카렌의 제안에 시이터는 잠시 생각해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혼 자서 몰래 숨어 들어가기보다는 누군가 주의를 끌어주는 사이에 숨어 들어가기가 훨씬 편했다. 더구나 카렌의 남편인 제임스가 의지를 가진 다크 나이트라는 것은 진작 눈치체고 있었던 시이터로서는 제임스의 도움을 받는 편이 낫다는 쪽으로 결심을 굳혔다. 그렇게 결정한 시이터는 유크로드에게 다이러스 제국의 본대가 있는 지역을 알아내서 그 곳으로 텔레포트를 실행했다. ‘좌표는 생각했고, 이제 출발이다! 기다려 티아양! 이 오빠가 간다!! ’ “텔레포트!” 그러나 구슬은 탁탁 소리를 내며 바닥을 굴렀고 기도하는 심정으로 시 이터를 쳐다보던 이들은 일제히 맥이 풀려버린 얼굴로 시이터를 쳐다 봤다. 시이터는 식은땀을 삐질 흘리며 급히 변명을 늘어놓으며 주머니에서 다른 구슬을 꺼냈다. “하하하. 이 구슬이 아니네요. 이상하다 아까는 분명 흰색이 맞는 것 같았는데……. 아 맞다! 투명한 구슬이었지. 그럼 정말 다녀오겠습니 다. 텔레포트!” 이번에는 제대로 찾았는지 새하얀 빛이 시이터를 감쌌다. 그런데……. “아악! 또 구슬 안 챙겼다!! 흰색은 분명히 하나밖에 없는 워프 구슬 인…….” 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시이터가 사라지자 멍하니 바라보던 셋 은 불안한 생각을 그대로 얼굴에 내보이며 한숨을 쉬었다. 계속 ----------------------------------------------------------------- 33화 생명의 드래곤(2) 초 고대 마법 유물 때문에 완벽하게 힘이 봉인당한 티아는 레이르와 다른 천막에 갇혔다. 하지만 지금의 티아는 레이르의 걱정을 할 틈도 없었다. 생전 처음 힘없는 소녀가 되어버린 티아가 할 수 있는 일은 울면서 테 이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일 뿐이었다. 하지만 정신을 잃은 테이가 티 아의 부름에 응답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테이가 정신을 잃은 것 은 티아도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부르는 일 외에는 티아가 할 수 있는 다른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한참동안 울면서 테이를 부르던 티아는 바깥에서 웅성거리는 소리에 겨우 정신을 차렸다. 밖에서는 루그라드와 티아를 감시하던 병 사들의 말싸움이 한참이었다. “혼자서 들어가신단 말입니까? 아까 왕자님의 말씀대로 몸수색을 안 했기 때문에 무기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걱정하지마라. 그녀는 무기 같은 것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다.” “하오나…….” “그만하고 길을 열어라. 그리고 이야기가 끝나면 다시 부를 테니 이 곳으로 사람들이 못 지나가도록 해라.” “그래도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한 명 정도는 곁에 있겠습니다.” “필요 없다고 했지 않느냐! 시간이 없으니 어서 길을 비켜라!” “예.” 한참을 옥신각신하던 병사들은 결국 루그라드의 명에 걱정스런 표정을 지으며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안에서 그들의 말을 듣던 티아는 급히 옷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병사들이 멀어지자 루그라드는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에 천막 안으로 들어갔고, 사나운 눈으로 자신을 째려보는 티아를 만나 볼 수 있었다. “상당히 미움 받고 있는 것 같군요.” “이유는 당신이 더 잘 알고 있잖아!” 표독스러운 티아의 말투. 하지만 아무리 억제를 해도 목소리가 떨리는 것을 완벽하게 막을 수는 없었다. 루그라드는 그것을 눈치 챘다. 그리 고 티아의 얼굴에 눈물 자욱이 남아 있는 것을 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당신에게 해를 끼칠 생각은 없으니 걱정 마십시오. 위대한 드래곤이 시여.” “해를 끼칠 생각이 없다면 이 이상한 마법부터 풀어!” 티아는 자신이 겁을 먹고 있었다는 것을 루그라드가 눈치 챘다는 것에 상당히 자존심이 상해서 벌컥 화를 냈다. 티아가 말한 마법이란 티아 의 몸을 감싸고 있는 초 고대 마법의 끈이었다. 그 마법의 끈 덕분에 티아의 마력은 완전 봉쇄가 돼서 힘을 쓸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니 마력뿐만이 아니라 힘과 운동능력까지 봉인했는지 몸에 힘이 하나도 없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상 최강의 생물이라 불리던 드래곤의 힘이 완전히 봉인 당한 티아는 불안한 마음에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래도 자존심까지는 봉인 당하지 않았던 티아는 처음에 겁을 집어먹었던 것과는 달리 루그라드 가 해를 끼칠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서서히 진짜 모습을 되찾 아가기 시작했다. “그것을 풀어 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랬다가는 이곳을 발칵 뒤집으시 고 레이르를 찾아서 데려가시겠죠? 그렇게 놔둘 수는 없습니다.” “내가 뒤집지 않더라도 내 동생 테이가 뒤집어 버릴걸. 미안하지만 이렇게 마력을 봉인해도 테이와 나의 교감은 끊을 수 없어! 그러니 테 이가 오기 전에 날 풀어주는 게 몸에 좋을걸!” “드래곤의 쌍둥이는 마음까지 함께 하는 것입니까? 하지만 그렇기 때 문에라도 당신을 더더욱 풀어드릴 수가 없습니다. 레이르는 이 전쟁의 항복을 받아내기 위한 미끼로……. 그리고 당신은 당신의 동생 분께서 허튼 짓을 못하도록 방패가 돼 주셔야 됩니다.” 자신을 인질로 한다는 루그라드의 설명에 티아는 코웃음을 치며 당당 하게 말했다. “흥! 인질이라 좋은 생각이군. 그런데 어쩌나? 난 테이를 너무 괴롭 혀서 인질 가치가 없을지도 모르는데……. 테이라면 누나가 어떻게 되 든 말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할걸. 가만 진짜 그럴지도 모르겠네 ……. 힝.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이라도 상냥하게 대해 줄걸.” 처음에 당당하게 말하던 티아는 인질가치 어쩌고 라는 말을 한 다음에 그렇게 될 가능성이 짙다는 생각에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힘 없이 중얼거렸다. ‘자기가 한 말에 상처를 받은 건가? 어째서?’ 티아와 테이의 평소 생활상을 알 리가 없는 루그라드는 티아가 자신이 동생에게 인질 가치가 없다는 말을 당당하게 하는 모습과 곧 이어 상 처(?)를 받고는 힘없이 중얼거리는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덕분 에 잠시 혼란스런 마음에 할 말을 잊어버린 루그라드는 머리를 두어 번 흔들어 정신을 차리고 나서야 용건을 말할 수 있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해를 입힐 생각은 없습니다. 어차피 힘을 다 봉인 당했으니 도망칠 생각은 하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당신과 레 이르에 관한 일을 아직 가이라가 왕국의 왕에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괜히 소란 피웠다가 당신이 가이라가의 왕에게 들키기라도 했다가는 저도 도와드릴 수 없으니 그 점을 염두에 두셨으면 합니다.” 굉장히 공손하고 긴 말이었지만 요약하면 색을 밝히는 케르디온 왕에 게 널 보였다가는 절대 무사하지 못할 테니 자신의 몸을 지키고 싶으 면 알아서 얌전하게 내 말을 들어라. 라는 뜻이었다. 그런 루그라드의 속뜻을 알아차린 티아는 벌컥 화를 내면서 소리쳤다. “어차피 레이르를 그 왕에게 바칠 거면서 무슨 보호를 해주겠다는 거 야?! 동생의 행복을 빌어주지는 못할망정 망치려고 작정한 주제에 여 자를 걱정해주는 척 하지 마!!!” “말이 심하시군요.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저는 티아님에게 위해를 끼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그리고 레이르는 총명한 아이이니 제 뜻을 잘 알아 줄 것입니다.” “흥! 보아하니 레이르에게 먼저 가지 않은 것 같은데 왜 먼저 가서 설득을 하지 않은 거지? 원칙대로라면 레이르를 먼저 납득시켜야 되는 게 순서 아니야?” “.......” 티아의 지적이 맞았는지 루그라드는 침묵을 지켰다. 그런 루그라드의 모습에 용기를 얻은 티아는 더 거세게 루그라드를 밀어 붙였다. “당신이 하려는 짓은 그 어떤 허울 좋은 말로 포장을 해도 레이르에 게 불행이 될 짓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변함없어!! 당신은 오빠로서도 한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로서도 실격이야!! 정말 레이르를 좋아하고 있는지조차도 의심스러워!!” “당신이…….” “응?” 실컷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난 티아는 개운한 표정을 짓다가 루그라드 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고는 깜짝 놀라버렸다. 어쩐지 분위기가 심 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큰일 났다!!’ 티아는 화가 나서 앞뒤 생각 없이 하고 싶은 말을 다 해버린 것을 후 회했다. 지금 루그라드가 마음을 바꿔서 자신을 변태보스 왕에게 - 티 아는 케르디온을 그렇게 상상하고 있었다 - 갖다 바칠 수도 있었기 때 문이다. “저기……. 루그라드씨? 저 내 말 듣고 있어?” 그런 위험한 상태에 건드려서는 안 될 것을 건드린 티아는 늦은 후회 를 하면서 어떡해서든 음침하게 중얼거리는 루그라드를 달래보려고 생 각했지만 쉽게 말이 나오지를 않았다. “당신이 내 마음을 어떻게 알아!!” “꺄아악!” 티아가 무언가 말을 하기도 전에 루그라드는 티아의 멱살을 쥐며 소리 쳤다. “그럼 나보고 어떡하란 말이야! 레이르가 너무 사랑스러워!! 날이 가 면 갈수록 여자가 되어가는……. 결코 손에 넣을 수 없는 여자를 지켜 보던 내 마음이 얼마나 아픈지 당신이 알 수 있겠어?!” “자, 잠깐 이건 놓고…….” “할 수만 있다면 나도 레이르에게 속마음을 다 털어 놓고 싶었어!! 내 안타까웠던 그 마음을 다 고백해버리고 싶었단 말이야!! 그리고… …. 그리고…….” “아악!! 뭐, 뭐하는 짓이야!!” 어느 순간부터 루그라드의 눈에서 초점이 사라졌다고 생각한 순간 루 그라드는 붙잡고 있던 티아의 옷을 찢어버렸다. 티아는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주저앉아 가슴을 가린 채 덜덜 떨었다. 하지만 곧 루그라드 에게 팔을 잡혀서 강제로 바닥에 눕혀졌다. “이거 놔! 제발 부탁이니 이거 놔줘!!” “나는……. 나는……. 레이르를……. 나는…….” 티아는 필사적으로 몸부림을 치면서 루그라드에게 애원을 했지만 루그 라드는 무엇에 흘린 것처럼 티아를 내려다보았다. 루그라드는 한손으 로 티아의 양팔을 단단하게 붙잡고 다른 한손으로 턱을 붙잡아 움직이 지 못하게 하고 강제로 키스했다. 티아의 동공이 순간적으로 커지면서 눈물이 비 오듯이 흘러내렸다. 강제로 티아의 입술을 점령한 루그라드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티아의 남은 옷을 찢어버렸다. 이제 티아의 몸을 가려주던 것은 몇 개의 천 조각을 제외하고는 사라졌다. 아니 남은 천 조각마저 벗겨진 것은 금 방이었다. “싫어!!!” 겨우 루그라드의 입술이 치워지자 티아는 있는 힘껏 비명을 질렀지만 루그라드의 행동은 멈추지 않았다. “레이르. 레이르. 나는 레이르를…….” 루그라드는 백옥 같은 티아의 나신을 쓰다듬으며 흘린 듯이 레이르의 이름을 불렀다. “나는! 나는 레이르가 아니야!! 당신은 지금 레이르를 안고 있는 것 이 아니란 말이야!!” 티아의 마지막에 가까운 필사적인 외침에 루그라드는 전기에라도 감전 된 듯이 몸을 부르르 떨고는 티아의 몸에서 떨어졌다. 루그라드의 눈은 어느새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하지만 방금 전에 자신이 무슨 짓을 하려고 했는지 깨달은 루그라드는 또 다른 충격에 멍한 눈으로 티아를 바라보며 더듬더듬 말을 뱉었다. “나는……. 내가 도대체 무슨…….” 티아는 울면서 자신의 주위에 떨어진 천 조각으로 몸을 가리며 뒤로 물러났다. “난 레이르가 아니야. 흑 당신이 안고 싶어 하는 레이르가 아니란 말 이야. 훌쩍 가까이 오지 마. 난 레이르가 아니야. 난…….” 아직도 티아의 눈에서 눈물은 멈출지 모르며 흘러내리고 있었고, 겁에 질린 티아의 떨리는 목소리가 루그라드의 가슴에 비수가 되어 꽂혔다. “내가 레이르를 이렇게 하고 싶었다는 말? 아니야! 나는 이렇게 하고 싶었던 게 아니야! 나는……. 나는…….” “그럼 왜 날 레이르라고 부른 거야?! 이유가 뭐야?! 왜 나한테 이런 짓을 한거야?! 아아앙!!” 티아는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참았던 울음을 터트렸다. 한참동안 티아의 흐느끼는 소리만이 천막 안에 맴돌았고, 루그라드는 주먹을 꾹 쥔 채 움직이지를 않았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티아 의 흐느끼는 소리가 잦아들자 루그라드는 천천히 망토를 벗어서 티아 에게로 다가갔다. “뭐야?! 오지 마!! 내 몸에 손대면 가만 안 둘 거야!!” 조금 진정이 되나 싶던 티아는 루그라드가 다가오자 비명을 지르며 다 시 울기 시작했다. 루그라드가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루그라드는 씁쓸 하게 웃으며 티아의 맨몸에 자신의 망토를 덮어주고는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드래곤님. 잠시 제가 정신이 나갔었던 것 같습니다.” “할 짓 다 해놓고 사과하면 끝인 줄 알아?! 당신은 테이가 오면 뼈도 못 챙길 거야!!” “하지만 드래곤님도 해서는 안 될 말을 했으니 비긴 걸로 치죠.” “비긴 거라니?! 내가 더 손해 봤어!!” “손해라……. 그런 걸로 따질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굳이 따지시 겠다면……. 사람들의 마음에는 누구나 건드려서는 안 되는 아킬레스 건과 같은 곳이 있는 법입니다. 드래곤님은 저의 건드려서는 안 될 부 분을 처음으로 건드렸으니 당신의 몸을 처음 건드린 거와 비긴 걸로 쳐도 충분하지 않을까요?” “아니야! 난 정신과 육체 둘 다 더럽혀졌으니 내가 더 손해야!!” 그 상황에서도 지지 않으려는 티아의 자존심에 루그라드는 한숨을 쉬 면서 나직하게 속삭였다. “아직 상황이 잘 이해가 안 되시나 본데…….” “무, 무슨?” “더럽혀졌다고요? 진짜로 더럽혀 드릴까요? 지금 당신은 힘없는 소녀 입니다. 제가 마음만 먹으면…….” “싫어!!” 티아는 루그라드의 손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는 비명을 지르며 눈을 질 끈 감고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티아의 걱정과는 달리 루그라드는 눈 물만 손으로 훔쳐 주고는 일어섰다. “지금 당신은 아무 힘없는 소녀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쓸데없는 일 을 할 생각은 하지 마세요. 얌전히만 있어주신다면 당신에게 해가 될 일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일이 다 해결되면 풀어드릴 테니 그 후 에는 저를 구워먹던 삶아먹던 마음대로 하셔도 됩니다.” “흑. 흑. 훌쩍.” 루그라드가 무슨 말을 하던 티아는 몸을 웅크리며 울기만 할 뿐이었 다. 루그라드는 더 말해봐야 소용없다는 생각에 그만 나가기로 생각했 다. 그리고 지금 티아의 상태를 봐서는 무슨 짓을 꾸밀 생각도 못 할 거라는 생각에 그냥 놔두어도 상관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음은 레이르에게 가야 되나?’ 루그라드는 천막을 나서면서 그렇게 생각은 했지만 방금 전에 티아의 몇 마디 때문에 간단하게 이성이 무너지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레이르 에게 갈 용기가 생겨나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일이 틀어지기 시작했을까? 어디서부터 망가진 걸까? 그 래 어쩌면 어린시절 내 동생이 생겼다는 말과 함께 레이르를 처음 안 아봤던 그 순간부터 내 마음은 멈출 수 없었던 걸지도 몰라. 그리고 지금은 멈추기에는 너무 늦었다. 앞에 무엇이 날 기다리던 간에 계속 전진할 수밖에 없다. 계속…….’ 루그라드가 나가고 난 뒤 한참 후에야 울음을 그친 티아는 멍하니 바 닥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까 전에 일어났던 한순간의 일이 현실성 없 는 악몽 같았다. 하지만 바닥에 널린 자신의 옷이었던 천 조각이 방금 전에 일어났던 일이 꿈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사고로 당한 키스와……. 억지로 당한 키스의 차이가 이것인가?’ 시이터와의 사고 때문에 겪은 키스는 단지 분해 죽겠다는 울분이 들었 었다. 하지만 아까 전에 당한 키스는 울분보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무 언가 깨져나가는 것 같은 기분 나쁜 오한. “흑……. 흐흑……. 테이야. 부탁이야. 빨리 와줘. 무서워. 무섭단 말이야. 아앙.” 티아는 다시 테이의 이름을 부르며 마음속으로 불렀지만 여전히 테이 의 응답은 없었다. 하지만 루그라드의 말대로 힘없는 소녀가 된 티아 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었다. 계속 ----------------------------------------------------------------- 33화 생명의 드래곤(3) “저 곳이 가이라가 왕국의 주둔지군요.” 거대한 은빛의 갑옷을 입은 사내가 수많은 천막들이 들어선 장소를 언 덕의 수풀 속에 몸을 숨겨서 바라보고 있었다. 은빛의 다크 나이트 제 임스의 옆에서 검은 머리의 청년 시이터가 고개를 끄덕이며 제임스의 말을 받았다. “찾은 것은 좋지만 이제 어떻게 저 안에서 레이르님과 티아양을 찾아 야 되느냐가 문제군요.” “고민하고 있을 틈이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이러고 있는 사이에도 레이르에게 어떤 위험이 있을지……. 한시라도 빨리 찾아내야 됩니다. ” 그렇게 말한 이는 바로 랑그람이었다. 시이터는 카렌의 충고대로 제임스의 도움을 요청하러 랑그람의 주둔지 에 갔지만 그 덕분에 랑그람에게 대강의 사정을 설명해야 됐다. 유크로드는 그렇게 되면 틀림없이 랑그람이 따라나서겠다고 할 게 뻔 했기 때문에 미리 시이터에게 [제발 냉정하게 판단하셔서 그 분들을 따라가는 일은 하지 말아 주십시오.]라는 내용의 서찰을 전해 주면서 절대 같이 데려가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었다. 하지만 랑그람은 그 서 찰을 간단하게 씹어버리고 둘을 억지로 따라온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둘만 보내는 척 하다가 시이터가 텔레포트를 발동시키자 잽 싸게 제임스를 붙잡아서 딸려 온 것이다. “이럴 때 어세신들이라도 있었다면…….” 랑그람은 어세신들의 잠입 능력을 생각하며 탄식을 내뱉었다. 지금은 정말 한명의 어세신이라도 아쉬운 판국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어세 신들은 마스터인 록크(에리나)를 따라갔고 중요 연락책으로 한명만이 다이리 수도에 남아 있을 뿐이었다. “뭐 별수 없죠. 없으면 없는 대로 그리고 지금 있는 사람들끼리 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서 둘을 구출해야죠.” “방법이 있는 겁니까?!” 랑그람은 눈을 빛내며 시이터를 바라봤다. 방금 시이터의 말은 방법이 있다는 뜻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알아차린 랑그람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시이터를 쳐다본 것이다. “일단 둘이 어디에 갇혀 있는지 알아낸 다음 제임스씨가 난동 좀 부 려주는 틈에 둘을 구출해서 재빨리 마법 구술로 이동해버리는 것입니 다.” “하지만 둘이 어디에 갇혀 있는지 우리가 어떻게 확인합니까? 지금 그게 문제 아닌가요?” 무언가 특별하고, 성공 가능성 높은 방법을 원했던 랑그람이 실망의 말을 내뱉었지만 지금 랑그람이 잡은 지푸라기(?)는 큼직한 지푸라기 였다. “이들에게 찾아 달라고 하면 됩니다.” 시이터는 엘리멘탈 소드를 꺼내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검에게 말입니까?” 랑그람은 여전히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곧 그 표정은 놀란 표 정으로 바뀌었다. 시이터가 엘리멘탈 소드의 손잡이에 손을 대고 론어 를 외우자 손잡이 장식의 육망성의 각 구슬들에게서 정령들이 나왔던 것이다. “레이르님과 티아양이 어디 갇혔는지 알아보고 와라. 한시라도 빨리 찾아야 된다.” 시이터의 명령에 정령들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 사방으로 흩어졌다. 정령들이 다 사라지자 랑그람과 제임스는 그제야 시이터에게 질문을 퍼부었다. “당신 정령 검사였습니까?” “당신에게서 정령의 기운은 느끼지 못했는데 어떻게 정령을 부린 겁 니까?” 랑그람과 제임스가 번갈아서 질문을 하자 가만히 듣고 있던 시이터는 싱긋 웃으며 엘리멘탈 소드를 들어 보였다. “이 검은 정령의 검 엘리멘탈 소드입니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전설의 신검이라 불린다죠? 하지만 이 검의 정확한 명칭은 정령의 검 엘리멘 탈 소드입니다.” “정령의 검? 하지만 난 그 검에게서도 정령의 기운은 느끼지 못했는 데요.” 제임스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다시 한번 검을 살펴봤지만 여전히 엘 리멘탈 소드에서는 이상한 기운만 느껴질 뿐이지 정령의 기운은 느껴 지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이 검에 정령이 깃들어 있는 게 아니라 검 손잡이 부분의 여섯 개의 구슬이 정령과의 교신 역할을 하는 것입니 다. 구슬은 각각의 색깔별로 대지, 바람, 물, 불, 빛과 어둠의 정령들 을 부릴 수 있는 거죠.” “흠. 분명 신기한 마법검이지만 신룡님들이 만들었다는 전설에 비해 서는 그렇게 놀라운 위력이 아니군요.” 랑그람의 지적대로 확실히 가장 신에 가까운 자들이 만들었다는 전설 의 검치고는 무언가 허전한 느낌이 드는 능력이었다. “정령은 이 검이 가진 능력의 일부분일 뿐입니다. 진짜 능력은 제가 이 검의 주인이 아니기 때문에 쓸 수 없어요.” “검의 주인이라고요? 그럼 진짜 주인이 쓰면 무슨 대단한 능력이 있 는 겁니까?” “죄송하지만 그건 비밀입니다.” “그런가요. 뭐 국가 기밀 차원의 비밀 같으니 궁금하지만 더 묻지 않 겠습니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때까지 잠자코 랑그람과 시이터의 대화를 듣던 제임스는 둘의 대화 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고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시이터씨. 검의 주인이 아니라면서 어떻게 그 검을 가지고 다니는 거죠?” 랑그람도 제임스의 말을 듣고 보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비밀인가요?” 이것만큼은 알고 싶다는 랑그람의 질문에 시이터는 별거 아니라는 투 로 말했다. “아아. 그건 제가 졸랐거든요. 엘리멘탈 소드를 들고 가게 해 달라 고.” “조, 졸랐다고요?” “신룡님들한테 말입니까?” 제임스와 랑그람은 신에 가까운 자들 앞에서 신검을 빌려달라고 조르 는 시이터의 모습을 상상해봤지만 쉽게 상상이 가지 않았다. 제임스와 랑그람이 황당함에 말을 잃은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이터 는 그 둘에게 더욱 혼란을 가져오는 발언을 해버렸다. “설득시키느라 고생 좀 했죠. 나중에는 울고불고 떼를 쓸까라는 생각 까지 했는걸요.” 혼란에 극을 달리던 제임스와 랑그람은 시이터가 정말 범상치 않은 인 간이라는 것으로 결론 내리기로 했다. 그렇게라도 안하면 지금까지 상 상해왔던 존재들에 대한 환상이 깨질 것 같은 두려운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 정령들이 오네요. 찾은 모양이에요.” 시이터는 둘이 혼란을 격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건 지 아니면 정말 모르는 건지 해맑게 웃으며 돌아오는 정령들을 맞이했 다. 정령들이 가져온 정보는 티아와 레이르가 따로따로 떨어져서 갇혀있다 는 것과 경비가 삼엄하다는 것 그리고……. “역시 우리 제국의 일부 기사들과 병사들이 가이라가를 돕고 있었군 요.” 바로 그 둘이 갇힌 장소에는 다이러스 제국의 문장을 단 자들이 감시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시이터는 그래도 혹시 하는 마음에 정령들에게 랑그람의 갑옷에 새겨진 다이러스 제국의 문장을 가리키며 이것과 똑 같은 무늬가 맞는지를 몇 번이나 물었다. 그 때마다 정령들은 그 물음 에 고개를 끄덕이며 맞는다고 대답했다. “더 물을 것 없습니다. 가이라가 왕국 놈들이 우리가 오는 것을 어떻 게 알고, 혼란을 주려고 다이러스 제국 문장을 달고 다니겠습니다. 더 구나 티아루아님과 레이르는 루그라드를 만나러 간다고 했었죠? 그럼 볼 것도 없이 그곳에는 루그라드가 있을 것입니다.” 랑그람은 검 손잡이를 잡은 손에 힘을 불끈 쥐며 이를 갈았다. 오랜 숙원이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타국에 팔려고 했던 자를 직접 처리하는 것. 하지만 제임스가 이제야 숙원을 풀 때가 왔다고 생각하는 랑그람의 어 깨에 손을 얹으며 그를 말렸다. “성급한 짓을 할 생각은 말아라. 우리는 어디까지나 아가씨들을 구출 하러 온 것이지 싸우러 온 것이 아니다.” “알고 있습니다. 알고는 있지만…….” “만약에 일을 그르칠 생각이라면 난 이 자리에서 너를 기절시킬 것이 다. 방해를 하러 따라 온 게 아니라면 지금은 구출만을 생각해라.” 제임스는 자신의 말이 농담이 아니라는 뜻으로 주먹을 쥐어 보였다. 그 무시무시한 크기의 주먹에 맞았다가는 기절이 아니라 더 한 것(?) 을 당할 것 같은 느낌에 랑그람은 별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 이제 어떤 작전으로 두 아가씨들을 구출할지 작전을 짜도 될까 요?” 시이터는 둘을 중재시킬 셈으로 현재 상황에 대해서 환기시켜주었고, 덕분에 정신을 차린 둘은 시이터와 머리를 맞대고 둘을 안전하게 구출 할 작전을 고민했다. 새카만 어둠. 나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하염없이 걸어 가고 있었다. 아니 몸이 둥실둥실 떠 있는 느낌이니 날아간다는 표현 이 맞으려나? ‘여기는 어딜까? 왜 이렇게 슬프고 두려운 걸까?’ 그런 의문을 간직하며 난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흑. 훌쩍. 흑흑흑.’ ‘누구?’ 누군가가 앞에서 울고 있었다. 여자 같았지만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누구지? 왜 울고 있는 거야?’ ‘무서워.’ ‘무엇이 무서워? 왜 무서운 거야?’ 여자의 목소리는 너무나 작아서 신경을 쓰지 않으면 잘 들리지가 않았 다. ‘무서워. 무서워. 싫어. 누가 좀 도와줘.’ 무슨 일을 당한 걸까? 무서운 일을 당한 것 같은데……. 아니 그것보 다 여기는 어디지? 난 분명 숲길을 걷다가……. 그래 티아 누나를 만 나기 위해서 걸어가다가……. 정신을 잃었던 걸까? ‘도와줘. 부탁이야 도와줘. …야.’ ‘누구? 누구한테 도와 달라고 하는 거야? 나라도 도와주고 싶지만… …. 미안. 나도 무서워. 내가 인간들을 죽였어. 나쁜 사람이라면 상관 없겠지만……. 그 들이 나쁜지 안 나쁜지도 모르는데 내가 죽게 만들 었어.’ ‘도와줘. 제발 도와줘. …야.’ 처음에 개미 소리만큼 들리던 여자의 목소리는 천천히 커져갔다. 그와 동시에 두려움과 슬픔의 감정이 내 속에서도 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하나 알아 낸 것은 내가 무슨 말을 해도 그 여자는 반응하지 않았 다. 그저 계속해서 누군가를 찾으며 울 뿐이었다. ‘내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 것일까?’ ‘아앙. …야! 제발 좀 도와줘. 나 무서워. 이대로 여기 있다가는 무 슨 일을 당할 것만 같아! 제발 도와줘!’ 문득 난 그 목소리가 낯이 익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투는 상당히 변했 고, 목소리는 울음 때문에 잠겨 있었지만 누군가를 닮았다. 아주 오랫 동안 나와 함께 한……. ‘티아 누나?’ ‘도와줘! 테이야! 제발 도와줘!!’ ‘누나? 무슨 일이야?! 거기 어디야! 내 말 들려?!’ 이제 확실히 여자의 아니 누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평소의 누 나가 아니었다. 너무나 절박한 음성의……. 지금까지 한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겁에 질린 목소리였다. 덕분에 여기가 어디고 아까 전에 인 간들이 죽은 일들은 내 머릿속에서 깨끗이 사라졌다. 난 필사적으로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내 말이 들리지가 않는지 누나 는 계속 무섭다면서 울기만 했다. ‘젠장 거기가 어디냐고?! 내가 갈께! 가서 구해 줄 테니 어디인지 말 하란 말이야!! 티아 누나! 누나!!’ “누나!!” “앗! 깜짝이야! 요란하게 깨시네요.” 난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본적이 있는 방이었 다. ‘여긴 다이리 성의 거실? 언제 이 곳으로 옮겨 진거지? 아니야!’ 지금은 그런데 신경을 쓸 시간이 없었다. 내 옆에는 크리스나가 날 간 호했었는지 내 안색을 살펴보며 안부를 물어왔다. “난 괜찮아요. 그것보다. 누나는? 티아 누나는 어디 있죠?!” “그게…….” 내 질문에 크리스나는 무척이나 곤란한 얼굴로 대답을 주저했다. 그 모습에 난 아까의 꿈이 생각나서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붙잡혀 있으신 것 같아요.” “카렌?” 내 질문에 대답해 준 것은 카렌이었다. 더구나 내가 생각했던 가장 최 악의 대답이었다. “우리 누나가?” 내가 상상했던 최악의 대답이지만 역시나 그냥 곧이곧대로 믿을 수가 없었다. 내 누가가 어떤 누나인데 인간에게 잡혔단 말인가? “믿지 못하시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만 틀림없어요. 티아님과 레이 르는 위험에 처해 있어요.” “농담이겠지? 농담이라고 해줘!” 내가 화를 벌컥 내며 소리치자 카렌은 고개를 저으며 내 가슴에 손을 얹고 말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티아님과 레이르는 위험에 처해 있어요. 루 그라드에게 붙잡힌 것 같아서 그것을 확인하고, 구하기 위해서 시이터 씨와 제임스가 그곳으로 갔어요. 시이터씨는 아마도 초 고대 문명의 힘 때문 인 것 같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제 말이 거짓말인지 아닌지는 테이님이 더 잘 알고 계시잖아요.” “내가?” “테이님의 마음에 물어 보세요. 그럼 금방 해답이 나올 거예요.” 굳이 카렌이 그렇게 말하지 않더라도 나는 이미 누나가 위험하다는 사 실을 인정하고 있었다. 마음 한 구석에서 두려움과 슬픔의 감정이 마 구 뒤엉켜서 복잡했지만 그것이 내 마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 다. 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감정은 누나의 감정이라는 것을 똑. 똑. 하게 느낄 수가 있었던 것이다. 난 잠자코 내 가슴에 얹어진 카렌의 손을 치우고 내 검을 찾았다. “가실건가요?” “가는 게 당연하잖아. 시끄럽게 내 마음속에서 징징 울고 있는데 안 가고 어떻게 배기겠어?” 퉁명스럽게 말은 했지만 아무래도 걱정하고 있다는 내 마음을 카렌에 게 들킨 것 같았다. 카렌은 의미 있어 보이는 웃음을 지으며 날 쳐다 보고 있었던 것이다. 하아. 나는 여자들한테 내 마음을 숨기는 게 진짜 서투른 것인가?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아아.” 카렌의 당부에 나는 손을 들어서 답하고는 텔레포트를 시전했다. 시끄 럽게 울고 있는 누나를 구하기 위해. 누나가 있는 곳으로……. 계속 ----------------------------------------------------------------- 33화 생명의 드래곤(4) 루그라드는 자신의 천막으로 돌아와서 간이침대에 쓰러지듯이 누워서 길게 한숨을 쉬었다. 요 며칠간 계속되는 전투와 아도니스의 죽음. 그 리고 레이르가 갑작스럽게 자신의 앞에 나타난 일만으로 충분하게 머 리가 혼란스러운데 실버 드래곤 티아루아라는 존재가 자신의 본심을 알아차리고 뒤흔들어 놓은 일 때문에 머리가 부서질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쓰레기라고 경멸하던 인간들이 하던 짓을 티아에게 하려고 했다는 것이 그의 마음을 더욱더 지치게 만들었다. ‘이대로 멈출 수는 없다. 멈춰서는 안돼. 적어도 내가 원한 이상향의 국가를 건설해야 된다. 모든 국민이 전쟁 걱정 없이 평화롭게 사는 국 가. 그것이라도 완성해야 내 죄에 대한 최소한의 속죄가 될 것이다.’ 아니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지금까지는 그렇게 될 것이라 믿고, 있는 힘껏 여기까지 왔지만 루그라드가 하나의 계획을 성공할 때마다 눈물을 흘리는 쪽은 자신의 나라 국민들과 소중한 이들 뿐이었 다. “후우…….” 천장을 보며 돌아누운 루그라드는 길게 한숨을 쉬며 눈을 감았다. 오 늘은 무슨 일이 생기던 간에 푹 자버릴 생각이었다. 분명 그렇게 마음 은 먹었지만 세상만사 마음대로 되는 인간은 극히 드문 법이고, 루그 라드는 불행이도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쪽이었다. “무엄하다! 어느 분의 안전이라고 길을 막느냐?!” “무슨 일이십니까? 이곳은 루그라드님의 침소로 루그라드님은 지금 막 잠자리에 드셨습니다!” “짐이 친히 왔는데 자고 있단 말인가? 상관없으니 어서 깨워라!” 케르디온 왕의 목소리였다. “젠장.” 자신의 천막 앞에서 경비병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소음에 자리에서 일어난 루그라드는 나직하게 욕지기를 뱉었다. 지금은 되도록 얼굴 맞 대기 싫은 인간이지만 루그라드 입장에서 만나기 싫다고 안 만나서는 안 될 인물이기에 별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간단한 예복을 입고는 망토를 걸치고, 아직도 실랑이 중인 밖 으로 나갔다. “앗! 루그라드님!” 밖에서 케르디온 측의 기사와 실랑이를 벌이던 병사들이 루그라드가 나오는 것을 보고 급히 고개를 조아렸다. 하지만 케르디온 측의 기사 와 병사들은 고개도 까닥 안했다. 그들이 죽음의 늪지대로 유인당하고 있었다는 것을 루그라드가 알려주 지 않았다면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었을까? 그리고 붉은 들소 부대 에게 계속 패배만 당하다가 극적인 역전극이 가능했을까? 아니 굳이 은혜를 따지지 않더라도 비록 나라를 빼앗겼지만 루그라드는 한 나라 의 황태자 신분이었다. 그런 루그라드에게 기본 예의조차 지키지 않는 자들이 왕의 주위에 있다는 것은 그 나라의 미래는 결코 밝지 않다는 말과 마찬가지였다. “이 한밤중에 어인일이오십니까?” 루그라드는 케르디온 왕의 부하들의 무례함을 애써 외면하고 케르디온 에게 예의를 지켰다. 물론 그렇게 하기 위해서 루그라드가 안면근육에 무리를 하고 있다는 것은 설명하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이번에 자네에게 감사해야 될 것 같구나.” ‘이번? 붉은 들소 부대 격파에 대한 이야기인가? 참 빨리도 말해주는 군.’ 오만한 케르디온의 말투와 철 지난 이야기를 이 오 밤중에 하러 왔나 하는 생각에 루그라드의 안면근육이 심하게 움찔거렸다. 하지만 초인 적인 자제력을 발휘해서 겨우 진정을 시키며 표정의 변화를 케르디온 측에게 보이지 않았다. “아닙니다. 소인이 해야 될 일에 최선을 다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아주 공손하고 겸허한 말투. 이 정도면 철녀 티아라 할지라도 혀를 내두를 연기였다. “아니네. 이런 멋진 선물을 준비해주었는데 당연히 감사를 해야지.” “멋진 선물? 무슨 말씀이신지요?” 루그라드는 케르디온의 능글맞은 얼굴에 무언가 일이 잘못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케르디온은 듣기에도 욕지기가 나오는 웃음을 흘 리며 옆으로 한 발짝 움직였다. 그러자……. “드래곤님?!” 티아였다. 아까 자신이 덮어준 망토 한 장으로 알몸을 간신히 가린 티 아가 겁에 질려서 떨고 있었다. 황금색의 눈에서는 금방이라도 금빛 눈물이라도 떨어질 것 같이 눈물을 머금고 있었지만 용케 울음을 참고 있는 티아였다. ‘어떻게 들킨 거지?! 설마 아까의 소동 때문에……. 하지만 일부러 가이라가 왕국의 진지와 먼 곳에 우리 진지를 지은 것인데 그 소동이 케르디온 왕에게 들릴 리는 없고……. 설마 감시당하고 있었던 것인가 ?’ “드래곤님? 특이한 이름이구나. 아니면 별명인가?” 루그라드가 티아가 케르디온의 손에 넘어간 것을 보고, 이를 갈면서 사태에 대해서 생각할 때 케르디온이 손짓을 했다. 그게 명령이었는지 케르디온의 부하들이 티아를 떠밀었고, 티아는 억지로 한 발짝 앞으로 나가서 케르디온의 옆에 섰다. 그런 티아를 케르디온은 한 손으로 허 리를 부둥켜안고는 의미(?)있는 미소를 지었다. “싫어! 이거 놔!! 싫어! 싫어! 싫어!” 결국 티아는 참고 참았던 울음을 터트리며 저항했지만 케르디온의 힘 에 당할 수는 없었는지 그의 품에서 벗어나지를 못했다. “무슨 짓이십니까? 그 분은 진짜 드래곤님이십니다!!” 루그라드는 다급한 마음에 덤벼들 것 같은 기세로 케르디온에게 대들 었지만 케르디온은 드래곤이라는 말에도 눈 하나 깜짝 안하면서 유쾌 하다는 듯이 웃었다. “푸하하하하! 드래곤이라고? 이 여자가? 내 품에서 도망도 못가는 드 래곤이라니! 그럼 난 드래곤 슬레이어가 되는 것인가? 역사상 최초의 드래곤 슬레이어 왕이겠군! 하하하하!” 케르디온의 수준 낮은 농담에 무엇이 우스운지 그들의 부하도 따라서 웃었다. 완전히 루그라드를 깔보는 웃음이었다. “지금 그 분은 우리 왕가의 비보인 초 고대 마법 유물 때문에 힘이 봉인 당하셨지만 진짜 드래곤님이 맞으십니다! 더구나 그 분에게는 형 제가 있습니다. 만약에 그 분에게 실례를 끼쳤다가는 그 분의 형제에 게 무슨 일을 당할지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호오. 초 고대 유물이 드래곤의 힘도 봉인 할 수 있단 말인가? 그건 처음 듣는 이야기군.” 케르디온은 여전히 루그라드의 말을 믿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초 고대 유물에 대한 이야기에 귀가 솔깃했다. 케르디온도 한 때 초 고대 유물에 대해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조사하도록 명했으나 들어가는 돈 에 비해 얻는 물건은 거의 쓸모가 없거나 작동원리를 알 수가 없는 유 물만 발굴돼서 중지했던 사업이었다. ‘흠. 만약에 이 놈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 동안 중지시켰던 초 고대 유물에 대한 사업을 다시 시작해 볼까? 뭐 완전히 믿기지는 않지만 그 게 사실이라면 이런 초미인인 드래곤들을 내 손에 마음껏 쥘 수 있다 는 소리군. 정말 꿈같은 이야기지만……. 가만…….’ 루그라드의 설명을 한귀로 흘려듣고는 티아만 쳐다보며 딴 생각을 하 던 케르디온은 티아의 목 언저리에 기이한 문신을 보고는 눈을 빛냈 다. 그것은 문신이라고 하기보다는 마치 빛 같았다. 케르디온은 좀더 확실히 보기 위해서 티아가 몸을 가리고 있는 루그라드의 망토를 벗겨 버렸다. “꺄아악!” “무슨 짓이십니까?!” “오오오!” 티아의 수치심이 가득 한 비명과 루그라드의 성난 외침은 다른 남자들 의 감탄사에 바로 묻혀버렸다. 하지만 감탄사는 잠시였고, 사람들은 다른 의미의 감탄사를 다시 내뱉었다. 티아의 나신을 감싸고 있는 정체불명의 기이한 빛의 밧줄. 그 신비한 초 고대 마법과 티아의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나신은 절묘하게 어우러 져서 보는 이로 하여금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마력과도 같은 아름다 움을 자아냈다. 하지만 그 마력과도 같은 아름다움에 탄성을 지른 것이 아니다. 바로 정체불명의 빛은 살아 있는 것처럼 티아의 몸을 감싸고 움직이고 있었 다. 간단한 마법조차 본 적이 없는 가이라가 왕국의 병사들은 그 기이 한 모습에 감탄사를 뱉은 것이다. “싫어! 보지 마! 보지 말란 말이야!!” 티아가 아무리 울면서 애원을 해도 고개를 돌리는 것은 루그라드와 그 의 부하들뿐이었다. 가이라가 왕국 측의 남자들은 고개를 돌리기는커녕 뚫어지게 티아의 나신을 바라봤다. 덕분에 수치심이 한계에 달한 티아는 있는 힘껏 비 명을 질렀지만 케르디온은 신경 쓰지 않고 티아의 나신. 정확히는 티 아의 나신을 감싼 투명한 빛의 끈을 자세히 관찰했다. 보면 볼수록 기이한 빛이었다. “이게 초 고대 문명의 힘이란 말인가? 하지만 이것이 초 고대 문명의 힘이고, 드래곤조차도 꼼짝 못하게 할 힘을 가지고 있다면 이 여자는 진짜 드래곤?” “진짜고 가짜고를 따질 때가 아닙니다! 그 분은 진짜 드래곤이 맞습 니다. 더구나 자신의 형제와 서로 교감을 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교감 능력은 초 고대 문명의 힘으로도 막을 수 없습니다. 지금 이 곳으로 성난 그 분의 형제 드래곤이 오고 있을지도 모르는 때에 실례 가 되는 짓은 그만 두십시오! 그 이상 그 분에게 손을 대신다면 그 뒤 에 일어날 사태는 저도 책임 질 수 없습니다. 그 분은 저희 몸을 지킬 인질입니다. 중요한 인질에 손을 대는 것은 현명한 자가 할 짓이 아닙 니다!” 루그라드는 티아를 쳐다보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케르디온의 얼굴만을 쳐다보며 소리를 쳤다. 하지만 케르디온은 루그라드의 외침에 코웃음 을 치며 말했다. “이미 그대가 한번 손을 댄 것 같은데 무슨 중요한 인질인가? 그대의 말을 듣고 있자니 마치 아까워서 못 주겠다는 투정같이 들리는데 짐의 생각이 틀렸나?” “트, 틀립니다! 전 그저 쓸데없이 도망 갈 생각을 못하게 하기 위해 서…….” “그래서 옷을 찢어서 알몸으로 만들었다고? 이런 힘 하나 없는 여자 를 도망 못 가게 하기 위해서 말인가? 이 여자가 혼자서 이 대군들 사 이를 빠져 나갈 수 있다고 믿는 건가?” 루그라드는 더 변명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티아에게 손을 대지 않 은 것은 사실이나 도망 못 가게 하기 위해서 티아를 알몸으로 만들었 다는 말은 거짓이었다. 그러니 그 점을 지적하는 케르디온의 말에 반 박을 할 말이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티아를 케르디온에게 바칠 수는 없었다. 드래 곤들의 복수에 대해서는 전설이나 이야기책으로 많이 전해져 내려왔 다. 그것을 생각하면 지금 티아가 케르디온에게 노리개가 되게 놔두었 다가는 두 나라의 보장된(?) 멸망을 모른 척 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다시 필사적으로 케르디온을 말리려고 결심을 굳힌 루그라드였 지만 케르디온의 손짓에 끌려나오는 여자를 보고는 그만 말을 잊어버 렸다. 아니 말은 나왔다. “레, 레이르.” 자신의 여동생을 부르는 허망한 소리가 루그라드의 입에서 새어 나왔 다. 레이르 역시 가이라가의 병사들의 손에 끌려 나왔다. 그리고 알몸 으로 사람들의 눈요기가 되고 있는 티아를 보고는 눈물을 흘리며 고개 를 돌렸다. 티아뿐만이 아니라 레이르까지 들켰다는 것은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모조리 가이라가에게 감시당하고 있었다는 것을 뜻했다. ‘젠장! 감시를 피하기 위해서 어세신을 고용했던 것인데……. 어째서 ? 어째서냐?!’ “루그라드여. 어차피 너는 여동생을 나에게 바치려고 했던 자인데 이 제 와서 이런 여자 한 둘쯤 같이 바친다고 뭐가 달라지겠나?” 이를 가는 루그라드에게 케르디온이 비웃는 듯한 말투로 말하자, 루그 라드는 눈에서 불똥이라도 튀어나갈 듯한 분위기로 케르디온을 사납게 노려봤다. 살기를 띤 그의 눈에 케르디온의 호위 기사들은 즉시 칼을 뽑았지만 케르디온은 손을 들어 그들을 제지했다. 그리고는 루그라드 에게 할 말이 있으면 해보라는 눈짓을 보냈다. “바친다고요?! 무언가 잘 못 알고 계시군요. 저는 제 나라를 되찾기 위해서 당신에게 협력했고, 그 후 두 나라간의 안정과 평화를 약속받 기 위해서 내 동생을 당신에게 시집보내겠다고 말했던 것이지 노예 보 내듯이 보내겠다는 약속을 한 기억이 없습니다! 만약 그 약조를 스스 로 깨실 생각이시라면 저는 더 이상 당신을 도울 이유가 없어집니다!! ” 루그라드의 성난 외침을 끝까지 들어준 케르디온은 코웃음을 치며 바 로 대답을 해줬다. “그대는 뭔가 잘 못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내가 그대의 도움을 순순히 받은 것은 어디까지나 신하의 예로 받아들인 것뿐이다. 그것을 스스로 두 나라간의 대등한 위치로 생각했다면 그것은 그대의 착각이야. 난 그대를 나와 동등한 위치로 본 적은 없어. 자네는 장기말로 치자면 퀸 이나 마찬가지이네. 최강의 말이자 단 하나뿐인 말이지만 하나뿐이라 고 아끼다가는 장기에서 이길 수 없지. 설령 나중에 적에게 잡히더라 도 잡히기 전까지 제일 모진 일을 하면서 최전선에서 적을 없애는 최 강의 말. 그대는 내 장기말의 퀸일 뿐이야.” “뭐라고요?!” 케르디온의 말은 루그라드를 완전히 이용만 해먹고 있었다고 고백한 말이나 다름없었다. 지금까지 루그라드의 명령으로 뒤에서 잠자코 대 화를 듣고만 있던 루그라드의 부하들도 검을 빼들고 성난 눈으로 케르 디온과 그의 부하들을 노려봤다. 두 나라간의……. 아니 루그라드와 케르디온과의 협상은 깨지기 일보직전이었다. 그리고 그런 위태로운 상황에 마지막 돌을 던지는 것은 케르디온이었 다. “내가 그대를 동등한 위치라고 생각 안했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는가? 하지만 만약에 내가 그대를 믿었다면 뭐 하러 어세신을 자네에게 붙여 주었겠는가?” “어세신? 설마……. 설마!” 루그라드는 얼굴이 흙빛이 돼서 신음을 뱉었다. 그런 루그라드의 눈에 케르디온의 뒤에서 나오는 한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몸에 달라붙는 특이한 모양의 검은색 옷을 입은 남자는 루그라드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미안합니다. 루그라드님.” “지란?!! 너냐? 네 놈이 나를 감시했던 것이냐?! 배신 한 것이었나? 너의 은인인 나를!!” 피를 토하는 듯한 루그라드의 외침이 지금 그가 얼마나 화가 나 있는 지 알려 주었다. 그런 루그라드의 분노를 정면으로 받는 지란은 담담 한 태도를 유지했다. “배신은 아닙니다. 저는 처음부터 가이라가 왕국 소속의 어세신입니 다. 토라스와 스라드의 파벌 싸움덕분에 저는 간신히 도망칠 수 있었 습니다. 저는 그 후 가이라가 왕국으로 건너갔었고, 어세신의 능력 덕 분에 가이라가 왕국의 직속 암살자의 자리를 얻었습니다. 가이라가 왕 국에서는 당시 한창 전쟁 준비 중으로 때 마침 일어난 다이러스 제국 의 내란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 제가 파견되었습니다. 그리고 루 그라드님의 존재를 알게 돼서 감시 역으로 당신 곁에 붙어서 감시를 했던 것입니다.” “그럼. 거의 죽어가던 그때 상황은 너의 연극이었나? 나의 신임을 얻 어서 내 곁에서 날 감시하기 위해서? 그리고 아도니스를 죽인 것은… …. 설마?” “당신이 아직 죽어서는 안 된다는 말은 진실이었습니다. 가이라가로 서는 당신의 존재가 아직 필요 했었지요.” “그걸 물어 본 것이 아니다! 아도니스는 그때 날 죽일 마음이 없었어 ! 암살자인 네가 그것을 모를 리가 없었을 텐데!!” 지란에게 소리치던 루그라드는 아도니스 생각이 나자 분노로 인해 악 귀 같은 얼굴이 되서 지란을 노려보며 대답을 요구했다. 그리고 루그 라드가 예상했던 대답이 지란의 입에서 나왔다. “예상하신대로입니다. 아도니스 장군의 존재는 추후에 가이라가 왕국 에게 걸림돌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죽였습니다. 후환을 없애기 위해서…….” “지란!!” 피를 토하는 듯한 분노의 외침을 내뱉으며 루그라드는 검을 뽑아서 지 란에게 덤벼들었다. 하지만 검이 지란에게 닫기도 전에 케르디온의 호 위 기사들에 의해 막혀버렸다. 루그라드가 지란에게 덤벼드는 것을 신호로 루그라드의 기사와 병사들 도 바로 전투에 돌입했고, 비상사태를 알리는 뿔피리 소리와 루그라드 의 부하들의 ‘적이다’라는 외침에 천막에서 쉬던 병사들과 기사들이 무기를 들고 달려 나왔다. 하지만 지금까지 같은 편에 싸웠던 가이라가 병사들과 대치된 상황을 이해 못한 이들이 멈칫했고, 때마침 가이라가 병사들과 싸우던 기사들 도 잠시 서로 떨어진 덕분에 사태는 소강상태가 됐다. “이 비겁한…….” 루그라드는 케르디온을 노려보며 이를 갈았고, 케르디온은 유쾌하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하하하하. 비겁한 다음은 뭐냐? 천하의 악당이라고 욕이라도 하고 싶은 거냐? 너는 아무래도 이 짐을 깔보고 있었던 모양인데 짐은 네 놈이 생각하는 것만큼 호락호락하지는 않다는 것을 이제 알겠느냐? 앞 으로 기억해 둬라. 악당 짓을 해먹으려면 머리도 좋아야 된다는 것을. 짐은 머리 좋은 악당에 속한다는 것을 똑똑히 기억해 두란 말이다. 하 하하하!” “닥쳐라! 정정당당한 전투에서는 아무것도 못하면서 비겁한 짓에 머 리가 잘 돌아가는 것이 자랑인가?! 동맹은 지금부로 파기다! 내 목숨 을 걸고 네 놈의 목이라도 치겠다!” “이런, 이런 머리로 피가 몰려서 지금 상황에 대해서 잘 못 생각하고 있는 가 본데. 네 놈에게 승산은 없다.” 루그라드는 아직 케르디온의 손아귀에서 울고 있는 티아와 기사들에게 붙잡혀 있는 레이르를 보고는 이를 갈았다. “인질 작전인가? 끝까지 치사하게 노는구나.” “인질은 너도 생각했던 작전 아닌가? 피차 마찬가지다. 그리고 굳이 인질까지 쓸 것도 없다. 짐이 여기에 이 정도 병력만 끌고 왔을 거라 생각하나?!” 케르디온은 마지막 말을 아주 큰소리로 질렀다. 그러자 주위 숲에서 엄청난 함성소리가 메아리쳤다. 이미 루그라드의 진지는 가이라가 병 사들에게 포위 된 것이었다. 숲을 울리던 함성소리가 잦아들자 케르디온은 분노에 몸을 떨고 있는 루그라드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알겠느냐? 너에게 승산이 없다는 것을. 아까도 말했듯이 너는 아직 짐의 중요한 말이다. 여기서 잃기는 아까우니 앞으로도 짐을 섬 겨라. 그러면 목숨 유지뿐만이 아니라 장차 우리 가이라가 왕국의 소 국이 될 다이러스 지방은 네가 통치하도록 해 주겠다. 여자 두 명 바 치고 그 정도 얻는 다는 것은 결코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닐 것이다.” 루그라드는 자신의 조국을 한순간에 지방으로 낮춰 부르는 케르디온에 게 당장에라도 달려가서 목을 치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억제했다. 그 리고 어떻게든 이 위기를 타개할 방법을 생각했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지금 드래곤님에게 걸린 마법을 해제하면 저 분 은 힘을 발휘해서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랬다가 는 가이라가 병사들뿐만 아니라 우리들도 저 분의 분노로 죽음을 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루그라드는 지금까지 티아의 행동을 생각하며 적어도 레이르만큼은 안 전하게 지켜 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100%확신은 없었다. 자신은 이미 어찌돼도 상관없지만 적어도 레이르만이라도 안전하게 피신시키 고 싶은 마음에 루그라드가 고민할 때 케르디온은 혀를 차며 말했다. “상황이 이 정도가 됐는데도 아직 결정 못한 거냐? 소심한 녀석이로 군. 그럼 그대가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짐이 도와주마.” 케르디온이 손가락을 가볍게 퉁기자 레이르를 붙잡고 있던 병사들이 레이르의 옷을 찢어버리기 시작했다. “뭐하는 짓이냐?!” “우리 병사들에게 흔치 않은 왕녀님의 스트립쇼를 구경시켜 주고 싶 은 거다. 이런 아름다운 몸매의 여자와 왕녀의 알몸은 평생가도 구경 못할 진풍경 아니겠는가? 이 정도면 우리 병사들의 사기를 올리는데도 도움이 되겠지? 더구나 앞으로의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우는 병사에게 왕녀와 이 여자 중에 한명을 하루만 품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하면 효과 만점이겠어.” “이 더러운 자식! 그만둬!” 루그라드의 피를 토하는 것 같은 외침에 케르디온은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옷이 찢겨 가고 있는 레이르를 바라보면서 음탕한 웃음을 흘렸 다. 하지만 정작 수치를 당하고 있는 레이르 본인은 눈을 꾹 감고 이 를 악물고 있었다. 그 모습에 케르디온은 감탄사를 흘리며 말했다. “호오. 왕녀라서 다르다 이건가? 신음소리 한번 내지 않는군. 왕가의 자존심은 있다고 일반 평민 여자들같이 비명을 지르지는 않겠다. 이거 군. 하지만 그것이 어디까지 가나 두고 볼까?” 루그라드는 더 고민하기를 그만 뒀다. 뒷일이야 어찌되던 간에 티아에 게 건 마법을 해제할 결심을 했다. 티아가 레이르를 구해 줄지 말지는 하늘에 맡길 생각을 하면서……. “으아아악!” “괴, 괴물이다!” 루그라드가 막 해제어를 외치려고 하는 찰나에 가이라가 왕국 병사들 쪽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처절한 비명소리에 모든 사람들은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소리가 난 방향으로 시선을 주었지만 그 들이 본 것은 엄 청난 크기의 은색 빛이 무서운 속도로 움직이고 있는 것뿐이었다. 그 빛이 지나간 자리에 있던 병사들은 하나같이 공중을 날았다가 비명을 지르며 땅에 떨어졌다. “뭐? 뭐냐?! 저것은?!!” 케르디온은 곧장 자신에게 날아(?)오는 은색 빛 덩어리에 공포에 찬 비명을 질렀다. 주위 기사들과 어세신 지란이 케르디온의 앞을 막아섰 지만 몇 초 지나지도 않아서 그 들은 허공을 날아다녀야 됐다. 그리고 빛이 잠시 케르디온의 앞에 멈춰 섰을 때 케르디온은 그 빛의 정체를 똑똑하게 볼 수 있었다. 온 몸을 은빛 갑옷으로 감싸 엄청난 덩치의 남자였다. 투구의 마스크 너머의 어두운 공간에 눈동자도 없는 성난 은색 빛의 눈이 케르디온을 노려본 순간 케르디온은 저도 모르게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덕분에 케르디온의 손에서 풀려난 티아를 은빛 갑옷의 남자 제임스가 한 팔로 껴안고는 바로 엄청난 높이로 뛰어 올랐다. 그 재빠른 행동에 사람들의 눈이 쫓아가지 못할 때 제임스는 이미 레이르 앞에 착지해서 레이르를 붙잡고 있던 병사들을 날려 버리고 레이르를 구해내서 재빠 르게 루그라드에게로 달려왔다. “은빛 갑옷……. 의지를 가진 최강의 다크 나이트. 제임스 아저씨?! ” “바로 맞혔습니다. 일이 좀 틀어지긴 했지만 레이르를 구하게 돼서 다행이군요.” 루그라드가 허망한 음성을 내 뱉을 때 뒤에서 잊을 수 없는 목소리가 루그라드에게 말을 걸었다. 루그라드는 그가 누구인지 확인 할 필요도 없었다. “랑그람 로헨타이?! 네가 어떻게 여기에?!!” “오랜만에 뵙는군요. 루그라드 전 황태자 전하.” 랑그람은 조용한 음성으로 루그라드에게 말을 건넸지만 그 말 속에 숨 긴 살기는 결코 조용하지도 얌전하지도 않았다. 한 여자를 좋아했었고, 서로 사랑 방식이 달랐기 때문에 대립 할 수밖 에 없었던 남자 둘이 이제야 만난 것이다. 계속 ----------------------------------------------------------------- 33화 생명의 드래곤(5) 수정판 루그라드와 랑그람은 잠시 지금의 상황도 잊어버리고 서로를 노려보았 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케르디온의 명령에 의해 매복해 있던 가이라 가 병사들의 공격이 시작돼서 주위는 아수라장이었지만 둘만의 공간은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조용했다. 어느 순간 랑그람이 검에 손을 가져가자 루그라드 역시 검을 빼들었고 둘의 검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지금 뭐하는 겁니까? 그럴 시간 없습니다! 어서 피해야 돼요!!” 랑그람의 바로 뒤에 있던 시이터가 소리를 질렀지만 둘은 듣고 있지 않은 것인지, 검을 맞대 체 서로를 노려보기만 할 뿐이었다. “시이터씨! 당신이라도 먼저 여자들을 데리고 피해요!!” 밀려오는 적 병사들을 한방에 한명씩 착실히 날려 버리던 제임스가 티 아와 레이르를 가리키며 외쳤다. 처음에 이 셋은 티아와 레이르가 갇 힌 장소로 이동해서 제임스가 소란을 피우는 사이에 시이터와 랑그람 이 각자 여자를 구해서 텔레포트 구슬을 이용해서 도망치기로 결정했 다. 마침 남은 구슬도 세 개였기 때문에 따로 행동하다가 도망치는 데 는 별 무리가 없었다. 하지만 중간에 케르디온이 티아와 레이르를 먼저 찾아서 데려가는 것 을 보고 조용히 뒤를 밟다가 사태가 심각해지자 뛰쳐나온 것이다. 제 임스는 랑그람과 루그라드를 쳐다보았다. 그 둘은 지금 주위의 사태보다는 레이르를 둘러 싼 둘의 감정에 결말 을 짓는 것 이외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저대로 놔뒀다가는 허무한 죽음만이 둘에게 남은 결과일 것이다. ‘죽게 할 수는 없다. 결말을 짓는 것은 나중에라도 상관없어. 누가 이기던 간에 개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놔둘 수는 없지. 하지 만....’ 제임스는 나중에라도 틈을 봐서 둘을 기절시켜서 이 자리를 피할 생각 이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지금 루그라드의 편에 붙어 있는 다이러스 제국의 기사와 병사는 몰살이다. 그것을 알고도 그들을 구할 능력은 제임스에게 없었다. ‘젠장! 또 이렇게 될 수밖에 없나?! 인간을 한계를 뛰어넘는 힘을 가 지고도 또 모두를 구할 수 없냔 말이다!!’ 그 옛날 사랑하는 여자를 지키기 위해서 죽어가면서도 힘을 갈구했고, 그 덕분에 힘을 구했지만 사랑하는 여자를 끝까지 지키지 못했던 제임 스였다. 그래서인지 자신의 눈에 띠고서도 자신이 구해주지 못하는 이 들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아픈 제임스였다. “젠장! 내가 시간을 벌겠다!! 어떻게 해서든 도망쳐라!!” 제임스는 자기 주위에서 자신과 같이 가이라가의 대군에 맞서는 다이 러스 제국의 기사와 병사들에게 외쳤지만 누구 하나도 듣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들은 갑자기 나타나서 불사신의 괴력으로 적을 물리치 는 제임스에게 ‘루그라드님을 부탁합니다!’라고 외치며 적들에게 맞 서 싸웠다. 그들은 남는 것이 죽음밖에 없는 불가능의 싸움에 기꺼이 목숨을 바쳤다. 루그라드를 위해서.... 어느새 높은 언덕으로 피신한 케르디온은 쉴 세 없이 같은 명령을 내 리고 또 내렸다. “죽여라! 죽여! 모두 죽여 버려!! 나에게 대드는 놈은 모두 죽여라!! 특히 저 은색 기사는 처참하게 죽여라!!” 케르디온은 한순간이나마 공포감을 안겨줬던 제임스를 가리키며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처참하게 당하는 쪽은 그의 병사들이었다. 다른 곳은 싸움이라 고 부를 수도 없는 일반적인 살육이 진행되면서 루그라드의 병사들을 제압해 갔지만 제임스가 지키는 지역은 도저히 제압하지를 못하고 있 었다. 그리고 자신이 찜(?)했던 여자들을 한명의 남자가 지키고 있었 는데 그 남자의 주위에는 빛 같은 것들이 남자와 여자를 보호하듯이 떠다녔다. 아니 실제로 그 빛 가까이에 다가가면 무언가 강한 충격을 받은 것처 럼 사람들이 픽픽 쓰러지거나 날아갔다. 도저히 인간 같지가 않은 능 력이었다. 거기다가 케르디온은 은발의 여자가 드래곤이라는 것은 아 직도 믿지 않지만 루그라드가 썼던 초 고대 문명의 마법이라는 것을 생각하며 이를 갈았다. “젠장!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마법사 육성에 좀 더 신경을 쓰는 건데...” 마법사 양성은 들어가는 돈에 비해서 제대로 된 마법사를 키우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나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 그런 학교는 각 지방 영주마 다 소위 말하는 돈벌이. 즉 뇌물 같은 것도 안 들어오기 때문에 기피 하는 교육기간이었다. 그래서 지금 가이라가에서는 하급귀족들에게서 일명 학교유지비 명목으로 얻는 뇌물 때문에 기사학교가 더 성황이었 다. 케르디온에게는 다른 나라는 국가 차원에서라도 마법사를 양성하지만 전쟁에 마법사의 힘 따위는 필요 없다는 논리로 -실은 돈이 안 된다는 논리지만 - 마법사를 양성하지 않은 것이 지금 뼈에 사무치게 후회감 이 들었다. “에이! 공성전 무기를 빨리 준비해라! 어떤 무기든지 좋다!! 저 놈들 을 없애 버릴 수 있는 무기는 전부 가져와라!!” 결국 숫적의 우세에도 불구하고 단 두 명의 전사 때문에 공성전 무기 인 바리스타가 동원되는 웃지 못 할 일까지 생겨 버린 것이다. 레이르는 자신의 주위를 지키며 싸우고 있는 시이터의 뒷모습을 보면 서 초조한 듯 입술을 깨물었다. 티아는 제임스가 구했을 때부터 그 자 리에 주저앉아서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몇 번 레이르가 흔들 며 정신을 차리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시간이 없어요! 어서 자리에서 피해요! 구슬 사용법은 아까 가르쳐 줬잖아요!! 빨리 피해요!!” 시이터는 정령들을 불러서 그것을 방패삼아서 달려드는 적들을 베어 나가는 중이었다. 처음에는 무턱대고 덤벼들었다가 시이터의 검에 그 리고 정령에 시체들이 쌓여가자 적들은 눈치만 살피면서 쉽게 덤벼들 지 않자 간신히 숨을 고르고 레이르에게 소리 친 것이다. 하지만 레이 르는 시이터의 외침을 듣고도 서로 싸우느라 정신없는 랑그람과 루그 라드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고만 있을 뿐이었다. 레이르는 아까부터 그만두라고 소리를 지르며 둘을 말렸지만 랑그람과 루그라드는 그저 서로를 죽이는 데만 신경을 쓰고 있었다. 이미 레이 르는 목이 쉬어서 더 소리도 나오지 않고 있었다. “젠장! 최악의 스토리구먼.” 시이터는 이를 갈고는 억지로라도 둘을 텔레포트 시키기 위해서 정령 들을 좀 더 불러서 주위의 방어를 확실히 하도록 시켰다. 그리고 시이 터는 정령들이 만들어 준 시간을 틈타 잽싸게 레이르 곁으로 가서 그 녀의 손에 들린 텔레포트 구슬을 빼앗았다. “자! 어서 가요! 텔레포트!” 시이터는 구슬을 땅바닥에 던지면서 다이리 성의 좌표를 생각했다. 곧 투명하고 신비로운 빛이 생겨나자 시이터는 레이르의 손을 잡고 빛 속 으로 집어넣으려고 했다. “싫어요!!” 레이르는 잘 나오지는 않는 쉰 목소리로 울부짖었지만 시이터는 못 들 은 척 하면서 억지로 레이르를 빛 속으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티아를 빛 속에 집어넣기 위해 티아의 어깨를 잡았을 때 엄청난 굉음과 함께 가까운 곳에 커다란 바위가 떨어졌다. 그 근처에 있던 가이라가 병사들은 비명한번 못 지르고 바위에 깔려 죽었고, 계속해서 큰 바위가 날아와서 가이라가와 다이러스의 병사들 을 상관 하지 않고 깔아뭉갰다. “이런 미친!! 아군이 있는 곳에 공성전 무기를 쓴 건가? 이 미친놈들 !!” 시이터는 곳곳에 떨어지는 바위를 피하기 위해서 비명을 지르며 도망 치는 병사들을 보면서 눈을 부라렸다. 저 언덕에서 대 공성전 무기 바 리스타들이 어느새 조립돼서 혼란스런 전투지역에 큰 바위를 마구 떨 어트리고 있었다. “나와 제임스씨 단 두 명을 잡기 위해서 수백의 아군을 희생시켜도 상관없다는 말이냐?!! 케르디온!!” 아까 숨어서 지켜봤던 케르디온이라는 왕의 인간성을 봐 왔기 때문에 시이터는 단박에 그가 노리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채고 소리를 질렀 다. 실은 시이터에게는 티아와 테이를 만나는 것 이외에 신룡들에게서 부 여받은 또 다른 임무가 하나 있었다. 바로 이번 전쟁에 너무나 의심되 는 점이 많기 때문에 한번 정황을 살펴보고 오라는 신룡들의 명령이었 다. 티아와 테이를 따라다니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잡아먹어서 케르디온에 대해서 충분히 조사 못했던 시이터는 지금 이 자리에서 케르디온과 가 이라가에 대해 보고서 몇 십장을 쓰고도 남을 정도로 알아낸 기분이었 다. “티아양! 어서 일어나! 일단 다이리 성으로 피해!! 그 곳에는 테이군 도 있어! 지금 테이군에게는 네가 필요해. 그러니 일단 가서 만나!! 어서 일어나란 말이야!!” 시이터가 티아의 팔을 억지로 붙잡아 일으키며 소리치자 티아는 시이 터의 팔을 뿌리치며 고개를 저었다. “티아양!!” 시이터는 티아와 테이를 만나고 나서 한번도 보여준 적이 없는 험악한 얼굴로 티아를 노려보았다. 티아가 어느 정도 충격을 받았는지는 아까 봐서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고집을 부리고 있을 때가 아닌데도 고집을 부리는 티아에게 화가 났다. 결국 시이터는 억지로 기절이라도 시켜서 텔레포트 안에 집어넣을 생 각에 티아의 목을 노리고 손을 들었다. 하지만 그 손을 내리치기도 전 에 티아가 공허한 눈동자로 하늘을 쳐다보며 조용히 말을 내뱉었다. “갈 것 없어요.” “뭐라고?!” “오고 있어요.” “뭐?!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티아는 시이터의 질문에 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티아의 손을 따 라 하늘을 쳐다보던 시이터는 지금 상황도 잊어먹고 너털웃음을 터트 렸다. “하하하. 이거, 이거 영웅의 등장이 따로 없군.” 어느새 소란스럽던 전장이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고, 인간들은 하나같 이 입을 헤 벌린 채 어두운 밤하늘에 은색의 빛 덩어리가 내려오는 것 을 가만히 지켜봤다. “어서와. 기다렸어 테이야.” 티아의 초점이 없던 눈동자는 어느새 생기를 되찾아서 미소를 지으며 하늘에서 내려오는 실버 드래곤을 쳐다보며 조용히 말을 건넸다. 이 세상 최강의 종족이라 불리는 드래곤. 그 중 실버 일족의 아이 테 이루아는 그렇게 조용히 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두려움과 위압을 인간 들에게 주면서 전쟁터 한 가운데로 내려섰다. 계속 ----------------------------------------------------------------- 33화 생명의 드래곤(6) 테이는 낮게 으르렁거리면서 인간들을 둘러보았다. 그의 눈은 필사적으 로 누군가를 찾는 듯이 아비규환이었던 전쟁터를 둘러보고 있었다. 인간으로 하여금 뱀 앞에 개구리처럼 만들어버리는 드래곤 아이. 테이의 황금색 눈동자와 마주친 자들은 그 누구라 할 것도 없이 무기를 땅에 떨어트리거나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한참을 전장을 두리번거리던 테이는 찾고 있는 누군가를 찾았는지 어느 한곳을 가만히 응시했다. 마침 테이가 응시하고 있던 근처에 있는 인간 들은 테이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볼 수 있었다. 미의 여신 샤이라스의 현신이다라고 말해도 될 정도의 너무나 아름다운 은색 머리카락을 가진 미녀였다. 은색 머리카락의 미녀 티아는 테이를 쳐다보며 눈물을 글썽거렸고, 테이는 티아에게 살며시 손을 뻗었다.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거대한 드래곤이 여자를 납치하려고 - 혹은 잡아 먹으려는 걸로 보였을지도... - 손을 뻗는 것으로 보였을 모습이지만 티아는 피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의 앞에 놓인 테이의 거대한 손에 얼굴을 부비며 계속 울었 다. 잠시 티아를 상냥하게 바라보던 테이는 곧 눈빛이 사나워지면서 주 위를 두리번거렸다. [가이라가의 왕이 누구냐?] 테이의 낮은 으르렁거리는 말은 곧 마법이 되어 인간들의 마음속에 울 려 퍼졌다. 그리고... “이, 이 녀석들!! 왜 나를 쳐다보는 거냐?! 고개 돌려!!” 멀리 떨어져 있는 인간들은 듣지 못할 외침을 테이는 똑똑하게 들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보기에도 ‘내가 왕입니다’라고 광고를 하는 것 같은 화려한 갑옷을 입은 남자가 식은땀을 흘리며 자신을 바라보는 부하들에 게 역정을 내고 있었다. 하지만 엄청난 공포감에 사로잡혀 있는 가이라가 왕국의 병사들에게는 더 이상 케르디온의 명령 따위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드래곤이 찾고 있는 것이 자신들의 왕이고 그로인해 자신들이 살수만 있다면 왕 따위 는 얼마든지 팔아버릴 수 있다는 병사들의 모습. 그것은 루그라드를 피신시키기 위해서 자신들의 목숨을 내 놓을 수 있 다는 모습을 보인 루그라드의 병사들과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케르디온이라는 왕의 인간성을 단번에 알게 할만한 그의 부하들 행동에 테이는 혀를 차며 케르디온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부하들에게 별로 신임을 얻고 있지 못하는 것 같구나. 불쌍한 인간의 왕이여.] “아, 아닙니다. 이 놈들이 무, 무언가 착각을 하고 있는데... 저, 저 는 왕이 아닙니다.” [거짓말은 통하지 않는다!] 비굴한 케르디온의 모습에 이런 인간에게 누나가 험한 꼴을 당했을 거 라는 생각이 겹치자 테이의 말이 거칠어졌다. [어리석은 인간이여. 지금 네가 저지른 죄를 알고 있느냐?! 감히 나에 게 하나뿐인 누나에게 이런 짓을 하다니... 이 몇 번을 씹어 먹어도 시 원찮을 인간 놈아!!!] 테이는 낮게 으르렁거리던 수준에서 벗어나 엄청나게 화를 내며 금방이 라도 케르디온을 씹어 먹어버릴 기세로 울부짖었다. 시이터는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케르디온의 말은 듣지 못했지만 산 이 진동할 정도로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는 테이를 보면서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항상 후회를 하는 인간 중에는 두 가지 인간이 있지. 하나는 그 후회 를 만회할 기회를 가진 자와 또 하나는 만회할 기회조차 없는 인간. 주 로 후자는 악당들에게 남겨진 후회인데... 케르디온 아무래도 당신은 후자 쪽 같군. 그래 어쩌면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악당에게는 죽음만 이 어울려.” 시이터는 케르디온이 들을 리가 없을 자신의 생각을 혼자 중얼거렸다. 그리고 시이터의 생각대로 케르디온은 죽음의 위협 앞에서 아까 루그라 드가 외쳤던 드래곤이라는 말을 상기시키고는 때늦은 후회를 하고 있었 다. 하지만 아무리 후회를 해봐야 그에게 남겨 진 것은 죽음뿐이었다. “아, 아닙니다! 제가 아닙니다! 위대하신 드래곤님의 누님을 그렇게 만든 것은 제가 아닙니다! 저 아래 어딘가에 있을 루그라드라는 놈이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저는 당신의 누님을... 그, 그렇습니다! 당신의 누님을 구하기 위해서 루그라드를 없애버리려고 했습니다! 정말입니다! !” 그래도 살고 싶은 마음에 케르디온은 필사적인 변명을 늘어놓았지만 테 이는 들어 줄 생각이 없었다. 이미 이곳으로 오던 중에 티아의 마음속 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게 된 테이에게는 케르디온의 말 중에 상당수 가 거짓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더 듣기 싫다. 추악한 인간이여! 내 누나를 구하기 위해서라고? 그래 서 내 누나가 있는 곳에 바위를 던졌던 거냐?! 너 같은 추악한 인간을 변명 따위는 듣고 싶지 않다!!!] 테이는 입을 벌리고 그대로 숨을 들이켰다. 케르디온의 주위에 있던 인 간들 중에 몇몇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갔지만 케르디온은 단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힘이 그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 기 때문이다. 아니 몸이 얼어붙을 것 같은 공포감 때문에 움직일 수 없 었는지도 몰랐다. 케르디온은 그저 테이의 새빨간 입안을 보면서 공포 에 눈물을 흘렸다. [죽어라!] 테이는 눈을 빛내면서 브레스를 쏘려고 했지만 갑자기 몸을 멈칫했다. 그리고 입을 다물고는 아래쪽을 쳐다봤다. 테이의 아래 정확히는 손이 있는 곳에 여전히 테이의 손에 매달려서(?) 울고 있는 티아가 있었다. 티아는 울고 있는 와중에 티아의 거대한 손을 꼭 붙들면서 고개를 젓고 있었다. ‘뭐 하는 거야? 말리는 이유가 뭐야?’ ‘울 거잖아. 나중에 인간을 죽였다고 울 거잖아.’ ‘안 울어! 누나에게 해를 끼친 인간이야. 그런 인간들 한두 명 쯤 죽 인다고 해서 울지 않아!’ ‘싫어! 그건 테이가 아니야! 내가 좋아하는 테이는 상냥한... 그래 자 신이 죽이지 않았다 하더라도 자신 때문이라고 슬퍼할 정도로 상냥하고 착한 테이야! 지금 그 상태에서 브레스를 쏘았다가는 나에게 해를 끼친 인간뿐만 아니라 그렇지 않은 인간까지 다 죽이잖아. 그런 테이는 싫어 ! 그건 내 동생 테이가 아니란 말이야!!’ 마음속으로 대화를 나누던 중에 티아는 아예 테이의 손에 얼굴을 묻고 크게 울어버렸다. 그런 티아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테이는 가만히 한숨 을 쉬면서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런 테이에게 계속해서 티아의 마음이 전해줬다. ‘나는 괜찮아. 나는 괜찮으니 제발 나중에 후회할 짓은 하지 말아줘. 제발 부탁이야. 내 귀여운 테이로 돌아와 줘.’ 티아의 말을 계속 듣고만 있던 테이는 자리에 주저앉아서 덜덜 떨고 있 던 케르디온을 쳐다보며 아주 간단하게 물었다. [죽을래? 꺼질래?] “꺼, 꺼지겠습니다!” 테이의 간단한 질문에 아주 간단한 대답이 돌아왔고, 테이는 케르디온 에게 낮게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그럼 당장 꺼져! 네 놈의 얼굴 따위는 더 이상 보기도 싫다!] “네, 네!” 전기에라도 감전된 듯이 몸을 벌떡 일으킨 케르디온은 그대로 뒤도 돌 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케르디온이 도망치는 모습을 끝까지 보기 싫었 던 테이는 조용히 눈을 감고 폴리모프를 외웠다. 곧 새하얀 빛이 테이 의 몸을 감싸 안았고, 처음에 거대했던 빛이 점점 작아지더니 인간의 모습으로 변한 테이가 나타나며 빛은 사라졌다. 테이는 천천히 눈을 뜨고 눈물에 젖어 있을 티아의 얼굴을 바라보려고 고개를 들었다. 퍼억! 아주 오랜만이라고 해야 되나? 경쾌한 타격음이 들리면서 테이의 얼굴 에 큼지막한 돌 하나가 부딪쳤고, 테이는 그대로 뒤로 쓰러졌다. “아야! 뭐하는 짓이야?!” 쓰러지자마자 바로 일어난 테이는 돌을 던진 티아에게 벌컥 화를 냈다. 하지만 돌을 던진 티아는 테이가 지른 소리보다 몇 배는 더 큰 목소리 가 테이에게 소리쳤다. “이 바보야!! 왜 이렇게 늦게 온 거야?!” “낸들 별수 있었겠어?! 나 역시 최대한 빨리 온 거야!!” “너무 늦었어! 덕분에 온갖 험한 꼴 다 당했잖아!” “그게 내 잘못이야?! 힘이 약해졌으면 얌전히 있으면 될 것 가지고 사 서 고생을 한 게 누군데?!” “너무해! 힘이 약해졌어도 레이르를 돕고 싶어서 있는 힘껏 뛰어다닌 누나에게 겨우 그런 식으로밖에 말 못하는 거야?!” 티아는 정말 너무하다는 듯이 금방이라도 울어버리겠다는 얼굴로 소리 쳤다. “난 있는 사실을 그대로 말한 것뿐이야! 우는 척 하지 마!!” “시끄러! 잔소리 말고 옷이나 벗어 줘! 아까부터 어딜 구경하는 거야? 이 치한 드래곤아!” 테이의 말대로 정말 우는 척 했었는지 티아는 쳇쳇 거리면서 손으로 알 몸을 가리며 소리쳤다. “누가 치한이야? 누가?! 오해 할만 한 발언은 하지 말라고 했잖아!!” 치한이라는 말에 테이는 펄쩍 뛰면서 부정했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하 지만 그 와중에도 착하게(?) 티아 말대로 윗옷을 벗어주는 테이의 모습 도 당연하다고 해야 될까? 마침 곁에 있어서 둘의 말다툼을 그대로 들을 수 있었던 시이터는 둘의 말다툼을 들으면서 피식 웃어버렸다. 그때 때마침 시이터의 옆에 온 제 임스가 입씨름중인 티아와 테이를 쳐다보다가 웃고 있는 시이터에게 시 선을 돌리며 물었다. “뭐가 그리 재미있습니까?” “아니요. 그냥 저 둘이 이제야 본래 모습을 되찾은 것 같아서요.” 시이터의 대답에 다시 티아와 테이를 쳐다보던 제임스의 눈이 빙그레 웃는 모습으로 변하면서 말했다. “역시 저 두 분은 같이 있어야 두 분답다고 해야 되겠죠. 아까는 너무 나 변해버린 모습에 걱정을 많이 했는데 저 모습을 보니 더 걱정할 필 요가 없겠군요.” 티아와 테이는 떨어진지 하루도 되지 않았으면서 마치 아주 오랜만에 만난 것처럼 굴고 있었다. 무엇이 그렇게 할 말이 많은지 말싸움은 그 칠 기미를 안보였다. 평소대로라면 저 상태에서 티아의 폭력으로 마무 리 되는 일이 많았지만 지금은 티아가 힘을 쓸 수 없기 때문에 말싸움 이 길어지는 것일 수도 있었다. “아무튼 저쪽은 저쪽대로 해결을 봤다면 남은 문제는 저 바보 같은 두 남자가 문제군요.” 시이터는 아직도 말싸움 중인 티아와 테이에게 시선을 돌려서 아까 전 부터 계속 결투중인 랑그람과 루그라드를 돌아봤다. 그 둘은 징하다고 해야 될까? 아무튼 주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던 간에 오로지 둘만의 싸움에 열중하고 있었다. 둘 다 숨이 많이 거칠어졌지만 결코 검을 거두지 않았다. 그리고 아까 는 시끄러워서 둘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았지만 지금은 둘의 말소리가 똑똑하게 들렸다. 아마도 처음 싸울 때부터 계속 말을 하면서 싸웠던 것 같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당신 방법은 틀렸어!” 랑그람은 상대방의 검을 날려버리려고 했지만 루그라드는 호락호락하게 검을 놓쳐주지 않았다. “내 방법 어디가 틀렸는지 네 녀석이 어떻게 알 수 있다는 거냐?!” 루그라드는 오히려 재빨리 검을 내려서 비어버린 랑그람의 허리를 날카 롭게 노렸다. 하지만 랑그람 역시 루그라드가 검을 놓치지 않자 반격을 예상하고 재빨리 두 세 걸음 물러나서 루그라드의 반격을 피했다. “당신은 한 사람의 불행으로 쌓아 올린 평화가 진정한 평화라고 말하 고 싶은 거냐?!” 루그라드는 자신의 반격이 막히자 재빨린 휘두른 검을 양손으로 잡아 크게 가로로 휘둘렀다. “그럼 무엇이 진정한 평화냐!” 거리가 떨어진 덕분에 잠시 소강상태가 된 랑그람과 루그라드는 거칠게 숨을 내뱉었다. 잠시 숨을 가다듬던 루그라드는 다시 검을 랑그람에게 겨누며 물었다. “다시 한번 묻겠다. 네가 생각하는 진정한 평화란 무엇이냐? 전쟁 걱 정을 해가면서 하루하루 마음을 졸여가면서 사는 것이 진정한 평화냐? 태평성대라는 것은 외침의 걱정이 없어야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가이라가와 피로써 맺어지는 방법을 생각해 낸 것이다.” “웃기지 마!” 루그라드의 말을 잠자코 듣던 랑그람이 거칠게 소리쳤다. “뭐가 피로써 맺어진 다는 거야?! 결국에는 가이라가의 속국이 되겠다 는 생각이나 마찬가지잖아! 자신의 조국을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는 국 민들이 평화로워봐야 얼마나 평화롭겠어?!” “적어도 전쟁에 대한 걱정은 없어진다! 그리고 난 우리 다이러스 제국 을 가이라가의 속국으로 만들 생각은 추호도 없다! 어디까지나 가이라 가와 동등한 입장에 서기 위해서 여러모로 손을 써왔단 말이다! 그것 을... 그것을 네 놈이 망친 거다!!” 랑그람이 화를 내자 루그라드도 같이 화를 내면서 소리쳤다. 서로 잡아 먹을 듯이 노려보던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동시에 공격을 시작했다. “난 싫다! 다른 나라에 굽실대면서까지 비굴하게 나라를 유지시키고 싶은 생각이 없어! 난 어느 나라에도 지지 않을 강대국으로 다이러스 제국을 발전시키겠어!” “그것은 몽상가들이 지껄이는 꿈에 지나지 않는다! 현실을 직시해라! 지금 당장 현실을 돌아보아라! 이번 전쟁 때문에 죽은 사람들을... 국 민들을 생각해보란 말이다!!” “그래서 너는 현실과 타협한 방법이 우리의 소중한 공주님을 다른 나 라에 파는 것이냐?! 살려달라고 비굴하게 굴기 위해서?! 그리고 전쟁도 네 놈이 끼어들기 전까지는 거의 다 이겨가고 있었어!!!” “그런 것이 아니라고 내가 몇 번이나 설명했지? 어디까지나 우리 제국 과 국민들에게 영원한 평화를 가져오기 위한 책략이다!! 단 한순간이 아닌 영원한 평화 말이다!!” 쉴 세 없이 검을 부딪치면서 둘은 쉴 세 없이 자신의 이상향에 대해서 말했다. 어느새 랑그람과 루그라드의 주변에는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레이르는 여전히 자리에 주저앉아서 울고 있었고, 티아와 테이도 말다툼을 끝내 고 시이터와 제임스와 같이 둘의 싸움을 구경 중이었다. “저 인간들 도대체 뭐라고 하는 거야? 레이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잖아. 난 틀림없이 레이르 때문에 싸우고 있을 거라 생 각했는데....” 티아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뭐 레이르 왕녀님은 하나의 교차점일지 몰라도 저 둘의 시작점이 틀 린 거겠지.” “그 말뜻은 무슨 뜻이죠?” 티아의 혼잣말에 시이터가 대답을 해 줬지만 난해한 설명에 티아가 좀 더 쉽게 설명해 줄 것을 요구했다. 시이터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주변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저 둘과 여기에 모인 사람들 그리고 이 나라의 국민들 모두의 공통된 바램이겠지. 나라의 평안. 나라가 평화로워야 자신들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생각과 그 나라를 평화롭게 만들기 위한 노력은 전부 하고 있을 거야. 뭐 안 그런 사람들도 일부 있겠지만....” “그래서요? 그것과 저 바보 같은 인간 둘이 싸우는 이유가 무슨 관계 가 있죠?” 이번에는 잠자코 듣고 있던 테이가 끼어들며 물었다. “저 둘의 바램은 같아. 나라의 평화라는 것 말이야. 하지만 그렇게 하 기 위해서 노력하는 출발점이 틀린 거야. 그것 때문에 충돌을 피할 수 없는 거고. 저 둘에게 레이르 왕녀님의 문제는 그 와중에 일어난 트러 블 중에 하나일 뿐 일거야. 지금 싸우면서 하고 있는 말들이 아마도 저 둘의 진짜 본심이겠지.” “이해 못해.” 티아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계속 뭔가를 생각하던 티아는 역시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난 절대 이해 못하겠어! 저 둘의 바램은 똑같잖아요! 그런데 왜 싸워 야 하죠? 무엇 때문에 상대방을 상처 입히면서까지 자신의 방법을 정당 화 시키려는 거죠?! 그럴 필요가 뭐가 있어요?! 오히려 서로에 대한 의 견을 교환하다보면 더 좋은 방법이 생각날지도 모를 텐데! 그럼 이런 소동을 안 일으키고 평화롭게 해결할 수도 있잖아요!” “확실히 그게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지.” 시이터는 씁쓸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하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둘 사이에는 레이르 왕녀님에 대한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서로의 방법을 인정할 수 없었던 거야. 서로를 인정 못 하는 것은 대립을 낳고, 대립은 전쟁을 부르는 거지.” “바보 같아! 그게 뭐예요? 하나도 득이 될 것도 없는 무의미한 싸움이 잖아요!” 티아의 입장에서는 인간들의 갈등과 대립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무 리도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이 많기 때문입니다.” “에?” 옆에서 조용히 있던 제임스의 한마디에 티아와 테이는 동시에 제임스를 돌아보며 의문을 표했다. 시이터는 고개를 끄덕이며 제임스의 말에 설 명을 보태줬다. “드래곤들 중에도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드래곤이 많잖아. 그것은 인 간도 마찬가지야. 하지만 드래곤들에게는 국가가 없지? 그것은 국가나 사회를 만들어야 될 정도로 수가 많지 않기 때문이야. 하지만 인간은 틀려. 지성을 가진 자가 많은 만큼 여러 가지 사상과 이념이 있고, 그 런 인간들이 모여서 국가를 만들고, 만들어진 국가에서도 여러 가지 생 각을 가진 인간들이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지. 하지만 그렇게 많은 사상 과 이념을 전부 인정하며 살수는 없어. 인간은 그렇게 살수가 없기 때 문에 대립이 있는 거야. 그것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는 거고...” 시이터의 설명에 어느 정도 이해를 했는지 드래곤 남매는 고개를 끄덕 이다가 랑그람과 루그라드를 바라보았다. 랑그람과 루그라드는 이미 몸 여러 군데 상처를 입었지만 둘 다 물러설 기미는 없었다. “그럼. 우리는 저 싸움을 말릴 수가 없는 거군요.” 티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시이터에게 묻자 시이터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 였다. “그런... 그런건 너무 슬프잖아요. 너무... 너무 슬퍼요.” 어느새 눈에 눈물을 그렁거리는 티아의 손을 테이가 꼭 잡아주었다. 그 리고 잠자코 서로의 이상을 걸고 결투 중인 두 인간 남자를 쳐다봤다. “난 어려운 이야기라 잘은 모르겠지만... 그래도 하나 알 수 있는 것 이 있어. 우리는 저 둘의 싸움을 끝까지 지켜 봐줘야 된다는 것. 이 나 라가 어떻게 되든 그것은 우리 남매와 상관없지만 레이르 때문에 끼어 들었으니 우리에게는 저 싸움을 끝까지 지켜봐야 될 책임이 있다는.... 왠지 그런 생각이 들어.” “그래 테이 말이 맞다. 우리는 이미 모른 척 하기에는 이 전쟁에 너무 깊숙이 발을 들여 놓았다. 그러니 우리들에게는 저 둘의 싸움을 끝까지 지켜봐줘야 될 의무가 있어.” “응.” 티아는 테이와 시이터의 위로에 눈물을 훔치며 마지막을 향해가고 있는 두 인간 남자의 싸움을 조용히 지켜봤다. 계속 ------------------------------------------------------------------ 33화 생명의 드래곤(7) 랑그람과 루그라드의 싸움은 지루하게 계속됐다. 하지만 결투를 지켜 보는 이들은 둘이 지쳐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혼신의 힘을 다한 공격이 서로의 팔을 스쳐지나가고 난 뒤 둘은 잠시 검을 멈추고 숨을 몰아쉬었다. 제임스는 랑그람과 루그라드의 상태를 보고는 다음 공격이 마지막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리고 시이터도 똑 같은 생각을 했는지 티아와 테이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다음 공격이 마지막일거야.” “누가 이길 것 같아요?” 테이도 시이터를 따라서 조용히 속삭이며 묻자 시이터는 고개를 저었 다. “그건 나도 모르겠어. 워낙에 막상막하의 실력들이라.... 마지막 공 격을 하는 순간 어느 한쪽이 실수를 하지 않는 이상은 무승부일거야. ” “무승부였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레이르가 슬퍼할 만한 일은 안 생기 잖아요.” 티아는 울고 있는 레이르를 쳐다보며 레이르를 위해서라도 둘이 비겼 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둘의 무승부를 비는 티아에게 시이터 는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이 승부에 둘 다 죽지 않는 승부는 없어.” “에?! 하지만 방금 전에 시이터 오빠가 누군가 실수를 하지 않는 한 은 무승부일거라고 했잖아요.” 티아는 깜짝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시이터를 쳐다봤다. 시이터는 한숨을 쉬면서 티아의 질문에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오빠? 흠. 성격이 많이 둥글둥글해진 건가?’ 테이는 티아의 말투가 상당히 부드러워져 있다는 것을 느끼고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곧 여러 가지 일을 겪었기 때문에 자기 자신도 조금 변해 있다고 생각하던 테이는 티아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변화를 겪었 을 거라 생각했다. 테이가 잠시 티아의 생각에 골몰해 있을 때 티아의 계속되는 질문에 한숨을 쉬던 시이터는 결국 대답을 해줬다. “두 사람의 실력이 똑같은 이런 승부에서 무승부라는 것은.... 둘 모 두의 죽음을 의미하는 거야.” “에에?!!” 티아를 생각하던 테이와 대답을 강요하던 티아는 시이터의 대답에 동 시에 놀란 소리를 질렀다. 그게 신호였을까? 랑그람과 루그라드는 크게 기합을 지르며 달려들었 다. “제발 그만 둬요!!!” 레이르는 시이터의 말을 듣지는 않았지만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피를 토할 듯이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랑그람과 루그라드는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둘의 검은 상대방의 치명상을 노리며 휘둘러졌 다. 그때 그 짧은 순간에 루그라드는 자신들의 결투를 구경하던 병사 중에 몇 명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는 것을 보았다. 그 짧은 시간동안 한눈 을 판 것 덕분에 승패는 갈렸다. 랑그람의 검이 먼저 루그라드의 갑옷 을 자르며 치명상을 입힌 것이다. 루그라드는 순간 의식이 흐려지는 것을 느끼며 반사적으로 랑그람을 붙잡고 돌아섰다. “뭐, 뭐하는 거냐?!” 갑작스런 루그라드의 이해 못할 행동에 랑그람이 소리를 질렀지만 곧 루그라드의 등에 꽂히는 화살을 보고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으아아악!” “화살 막이용 방패를 가져와라! 빨리!! 으악!” “레이르님을 지켜라!” “아아악!!!” 갑작스런 화살의 소나기에 조용하던 루그라드의 진지는 다시 소란스러 워 졌다. 병사들은 화살을 피하기 위해 뛰어다녔고, 일부는 화살을 막 을 방패를 찾았다. 그리고 레이르의 곁에 있던 병사들은 스스로 인간 방패가 되서 레이르를 막아섰다. “뭐하는 거예요?! 빨리 피하세요!!” 레이르는 입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자신의 앞을 막아선... 자신의 방패 가 되 준 병사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병사들은 레이르의 말을 듣기는커녕 고통스러울 텐데도 미소를 지으며 괜찮다는 말만 했다. “제발 피해주세요! 제발!!” “우리는 비록 가이라가와 손을 잡아서 왕녀님을 배신한 것같이 되 버 렸지만 저희들의 충성심은 어디까지나 다이러스 제국의 전통 왕녀이신 레이르님에게 바친 것입니다. 이렇게라도 왕녀님을 지킬 수 있다는 것 이 저희들에게는 크나큰 기쁨입니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병사는 치명상을 입지 않았는지 피하라고 소리치 는 레이르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눈을 부릅뜨 나 싶더니 그대로 눈을 감아버렸다. 하지만 레이르를 지키기 위해서인 지 끝까지 쓰러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는 끝까지 레이르를 지켰다고 만족했는지 미소까지 어려 있었다. “이게 도대체 뭐야?!” 티아는 제임스의 등 뒤에 서서 비명을 질렀다. 테이는 급히 주위에 물 리적 방어막을 치면서 주위를 둘러보고는 소리쳤다. “화살인거는 알겠지만 쏘는 사람이 안보여!!” “쳇! 아까 살려 보내 준 케르디온 녀석인가? 테이군 먼 곳을 보는 마 법 쓸 수 있어?!” 시이터는 급히 정령 중 바람의 정령들을 불러내서 화살을 막도록 명령 하고는 어쩔 줄 몰라서 발을 동동 구르는 테이에게 소리쳐서 물었다. “쓸 수 있어요!” “그럼 화살이 날아오는 방향으로 시전해 봐!!” “네!!” “와이번의 활인가? 이것이 가이라가의 손에 넘어갔다는 것은....” “쿨럭! 쿨럭! 네 생각 대로다. 붉은 들소 부대는 전멸했다. 쿨럭! 쿨 럭! 그리고 아도니스는 죽었다. 내가 죽였다.” 루그라드는 여전히 랑그람의 앞을 막아서서 방패가 된 채로 랑그람의 질문에 대답했다. 랑그람은 자신이 죽이려고 했고,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루그라드를 쳐다보며 물었다. “왜 날 구한거지?” 랑그람의 질문에 루그라드는 가만히 있다가 아주 짤막한 대답을 내뱉 었다. “.......네가 죽으면 레이르가 울어.” “웃기는 군. 나를 레이르에게서 떼어 놓을 때부터 울릴 생각이었던 주제에 이제야 울리기 싫다는 말이 변명이 될 거라 생각하나?” “.......뭐라고 생각해도 좋다. 난 레이르에게 오빠로서 상냥함을 한 번도 보여 준 적이 없다. 하지만 일이 이 지경까지 되고 너를 이 곳에 서 봤을 때 난 마지막으로 레이르에게 해 줘야 될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된 기분이다.” “처음부터 나에게 죽을 생각이었군.” 이번 질문에 루그라드는 대답하지 않았다. 랑그람도 대답을 듣지 않아 도 상관없었는지 루그라드에게 대답을 재촉하지 않았다. 어느새 랑그 람과 루그라드의 앞에는 병사들이 화살 막이 방패를 들고 와서 막아주 고 있었다. 그리고 병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레이르가 그 들의 곁에 다 가왔다. 하지만 레이르는 입을 가린 채 말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울고만 있었다. 침묵을 지키던 랑그람은 루그라드의 치료를 위해 병사들이 자신에게서 루그라드를 떼어내자 조용히 중얼거렸다. “당신은 거짓말이 서툴러. 내가 이미 처음부터 엿듣고 있었다는 것도 잊어먹고 아도니스를 죽였다는 거짓말을 하다니....” 혼자서 조용히 중얼거리며 치료를 받는 루그라드를 바라보던 랑그람은 이를 갈다가 외쳤다. “젠장! 젠장!! 젠장!!! 당신이 미워! 미워 죽겠다고! 그런데 왜 마지 막에 상냥한 척 하는 거야?! 왜 혼자서 덮어쓰고 죽을 생각을 한거야? ! 이대로 죽어버리면 정말 용서 안 해!! 살아!! 살란 말이야!! 살아서 죄 값을 치러!!!” 랑그람은 주위의 병사들이 말리지 않았다면 루그라드의 멱살이라도 잡 고 흔들 기색이었다. 그 모습에 조용히 울고 있던 레이르는 랑그람에 게 안기며 더 큰 소리로 울었다. “젠장!!” 랑그람은 자신의 가슴에 안겨 우는 레이르를 안아 줄 생각도 못하고 그저 젠장이라는 말만 뱉으며 루그라드를 내려다봤다. “쏴라! 쏴! 쉬지 말고 쏴라!! 화살이 다 떨어질 때까지 쉬지 마라!! ” 케르디온은 미친 듯이 명령을 내렸다. 도망치던 중에 드래곤의 몸이 하얗게 빛나는 것을 보고 죽었다고 생각한 케르디온은 뜻밖에도 인간 으로 변한 드래곤을 보고는 이때라면 죽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 했다. 그래서 자신의 진지로 돌아오자마자 대기하고 있던 궁수들에게 붉은 들소 부대에게서 빼앗은 와이번 활을 쏘도록 명령했던 것이다. 케르디온은 자신을 벌레 취급했던 드래곤에게 복수 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저 놈의 인간이!!” 멀리까지 볼 수 있는 마법으로 화살을 쏘고 있는 근원지를 살펴 본 테 이는 나직하게 이를 갈았다. 궁수부대를 지휘하는 케르디온을 발견한 것이다. “역시 케르디온 놈이냐?” 테이의 욕설을 듣고는 시이터가 물었다. 테이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 자 시이터는 역시라고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테이는 주위에서 화살에 맞아 쓰러지는 루그라드의 병사들을 쳐다보았 다. 자신이 펼친 방어막과 시이터가 부른 정령들 덕분에 죽어가는 병 사들의 수는 적어졌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리고 아직도 조금씩 죽어가고 있었다. 테이의 눈은 점차 붉어져 갔다. 티아는 처음에는 착각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착각이 아니었다. 테이 의 눈은 분명히 붉어지고 있었다. 마치 레드 드래곤처럼.... “테이야.” 티아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테이의 팔을 꼭 붙들었다. 테이가 무서운 짓을 벌일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을 받았다. 아니 정확히는 그런 테이의 마음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테이의 마음은 마치 공허한 공간같이 느낌 이 없어져 가고 있었다. “누나.... 미안.” “테이야!!” 테이는 티아의 팔을 매몰차게 뿌리치고 그대로 공중으로 올라갔다. 그 리고.... “폴리모프 해제.” 마법을 해제한 테이는 곧 눈부신 빛에 휩싸였다가 거대한 드래곤의 모 습으로 돌아 왔다. 아까와 똑같은 커다란 은색의 몸. 하지만 부드러운 황금색이었던 테이의 눈은 더 이상 부드럽지 않았다. 분노로 인해서인 지 아니면 아버지인 레드 드래곤 오스타인의 피 때문인지 불타는 듯한 붉은 색이었다. 테이의 모습을 발견한 케르디온의 진지는 바로 혼란에 빠졌다. “거, 겁먹지 마라!! 계속 화살을 쏴라! 이 화살이라면 드래곤도 쓰러 트릴 수 있을 것이다!! 계속 쏴라!!” 정작 겁먹지 말라고 외치는 케르디온의 목소리가 더 떨리고 있었고, 활을 쏘던 병사들은 명령을 듣지 않고 이리저리 도망 다니느라 바빴 다. 설사 병사들이 제 정신으로 테이를 공격했다 하더라도 소용은 없었을 것이다. 마법 무기로도 타격을 입히기 힘든 드래곤의 몸에 다른 활보 다 세배는 강하고 사정거리가 긴 활이라도 타격을 줄 수는 없었기 때 문이다. “죽어라!!” 테이는 숨을 크게 들이키고는 그대로 냉기의 브레스를 뿜었다. 첫 번 째 목표는 바로 케르디온이 있는 쪽이었다. “으, 으아아아악!!!” 케르디온은 자신을 덮쳐오는 거대한 은색의 눈보라를 보면서 비명을 질렀다. 그것이 그의 이승에서의 마지막 말이었다. 수천의 병사들은 케르디온과 함께 그 자리에서 얼어버렸다. 그리고 그 것으로 끝낼 생각이 없었던 테이는 그대로 가이라가 왕국의 진지로 날 아가서 다시 한번 브레스를 뿜으며 인간들을 죽여 나갔다. 테이는 세 번째 브레스까지 쓰고 나서는 바로 그 자리에 착륙해서 닥 치는 대로 꼬리를 휘두르며 얼어버린 인간들을 부쉈고, 거대한 아이스 미사일을 소환해서 그 주변을 파괴했다. 그리고 얼지 않은 인간들을 손에 잡히는 대로 잡아서 집어 던지고, 그 것으로도 성이 안찼는지 인간들을 밟아 죽였다. 테이의 발자국은 곧 인간들의 피로 붉은 연못이 되었고, 부서지고 남은 얼음은 붉게 물들 었다. 그리고 주위가 붉어지면 질수록 테이의 눈도 점차 붉어져 갔다. “바보야!! 제발 그만 둬! 그 정도면 충분하다 못해 도가 지나치단 말 이야!! 제발 그만해!!” 멀리서도 테이가 어떤 짓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티아는 울부짖으 며 테이를 말렸다. 하지만 테이의 마음은 더 이상 자신의 부름에 대답 하지 않았다. “이 세상은 다른 사람을 죽여야 자신이 살 수 있는 경우도 있단다. 무혈로 끝내는 전쟁이란 없지. 슬프지만 그것이 현실이야. 너무 테이 에게 화를 내지 말렴.” 시이터는 울고 있는 티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위로했지만 티아는 그 런 시이터를 사나운 눈으로 바라보며 외쳤다. “화 따위는 내지 않아요!! 테이는 저런 짓을 하고 난 뒤에 틀림없이 후회 할 거란 말이에요! 그렇게 놔 둘 수는 없어요! 테이가 울게 놔 둘 수가 없단 말이에요!! 저 녀석은 나보다 더 마음이 여려서 그래서. ... 틀림없이 이번일로 상처 받을 거란 말이에요! 저번처럼!!” “저번?” 시이터의 질문에 티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옛날 레이나 집에 신세 를 지던 때 티아는 테이를 반 장난으로 여장을 시켜서 데리고 다닌 적 이 있었다. 덕분에 테이는 도적들에게 납치를 당했었고, 나중에 테이 를 찾았을 때 테이는 무엇 때문인지 정신을 잃고 미친 듯이 인간들을 상처 입혔었다. 그 후 정신이 돌아 온 테이는 무서웠다고 레이나에게 안겨 펑펑 울었 는데, 그에게 당한 인간들 입장에서는 가증스럽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 지만 티아는 테이가 정말 무서워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때 테이 의 마음은 정말로 자신이 한 짓을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티아는 일부러 테이의 마음을 빡빡 긁는 말로 은근슬쩍 그 일 에 대해서 더 신경 못 쓰게 만들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이정도 일을 벌이고 난 다음에 테이가 제 정신을 차리면 테이의 연약한 마음에 어 떤 상처가 남을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티아가 더 말을 해주지 않고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서 울고만 있자 시이터는 더 물어 볼 생각이 없 어졌다. 하지만 나름대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너무나 순수하고 인간을 좋아하던 드래곤이 인간들을 죽인다. 그리 고 그렇게 만든 것은 바로 인간이라....’ 시이터는 자신도 그런 인간들과 같은 종족이라는 것이 부끄러웠다. 티 아는 고개를 숙이고 이를 가는 시이터를 보고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 는지 알아차렸다. 티아는 눈물을 훔치고 시이터의 손을 잡고는 간곡한 표정으로 말했다. “미안해요. 그런 뜻으로 말 한 것은 아니에요. 시이터 오빠 같은 인 간들도 있는 걸요. 레이르나 옛날에 테이를 도와주었던 레이나 언니 같은 인간도 있었고.... 제이크와 라이크씨 같은 인간과 레드포머가 같은 착한 인간들도 많았는걸요. 이번 일 때문에 인간들 전부를 싫어 하지는 않아요. 나도 테이도요. 인간을 좋아해요. 아주 많이... 아주 많이 좋아해요.” 거짓 한점 없는 아주 솔직한 말이었다. 티아의 진심이 담긴 말에 시이 터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 조그맣게 속삭였다. “고맙다. 그리고 미안하구나.” 그렇게 말한 시이터는 눈물이라도 나올 것 같아서 고개를 들 수가 없 었다. 그렇게 모진 일을 당하고 상처 받았으면서도 인간을 좋아한다고 말해 준 티아가 한 없이 고마웠다. 무의미한 파괴를 끝낸 테이는 허탈한 기분을 느끼며 그 자리에 멍하니 섰다. 테이의 주변에는 더 이상 파괴할 것도 죽일 인간도 남아 있지 않았다. 덕분에 테이의 정신이 돌아 온 것이다. 테이는 피에 물든 자 신의 몸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테이는 자신이 케르디온을 살려 보낸 것 때문에 죄 없는 인간들이 죽 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인간들을 죽인 것이다. 하지만 무슨 짓을 했 는지 기억나지가 않았다. 그저 자신이 정신을 잃은 동안 했던 결과물 을 보고는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서 예상만 할 수 있었다. ‘그럼 그들에게는 죄가 있는 것인가? 그래서 내가 그 들을 심판했단 말인가? 케르디온 같은 인간은 몇 백번을 죽여도 상관없어. 지금도 그 렇게 생각해. 하지만... 하지만 그 이외에 인간들을... 왜? 나는 왜 죽인거지? 그것도 이렇게나 잔인하게.... 도대체가 나는.....’ 티아의 예상대로 모든 것을 파괴하고 제 정신으로 돌아 온 테이는 끝 없는 후회감에 빠졌고, 정신없이 그런 짓을 저지른 자신이 두려웠다. 그런 테이의 기분을 티아는 그대로 느낄 수가 있었다. 티아는 주위에서 처음에 자신들의 방패가 돼서 죽어간 인간들을 보았 다. 그 인간들은 주위에 동료들이 화살에 맞아서 죽는 것을 보고도 기 꺼이 티아와 테이의 방패가 되서 죽어갔다. 그리고 레이르가 죽어가는 루그라드를 바라보며 울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마지막으로 자기 자신 을 두려워하며 울고 있는 테이의 마음을 느끼고는 테이의 마음에 자신 의 마음을 전했다. ‘울지 마. 울지 않아도 돼. 내가 어떻게든 해 볼게.’ ‘누나?’ ‘걱정 하지 마. 왠지 모르겠지만 나 할 수 있을 것 같아.’ ‘무슨 소리야?!’ ‘울지 마. 내... 내 사랑하는 테이야.’ “티아 누나!!” 테이는 불길한 느낌을 받으며 급히 티아에게로 날아갔다. 티아는 천천히 하늘을 바라보며 눈을 감았다. 옛날에 정령에 대한 책 을 보면서 공부를 했던 티아는 그 때 봤던 정령왕의 부분을 생각했다. 그리고 절대 부를 수가 없을 거라 생각했던 ‘존재’의 이름을 불렀 다. [리스라시르.] 그 이름을 외친 순간 티아의 몸에서 눈부신 빛이 하늘로 뻗어갔고, 동 시에 티아가 입고 있던 테이의 셔츠와 힘을 억제하던 초 고대 마법 끈 과 마력 제어 목걸이가 부서졌다. 그리고 티아의 이마에 육망성의 표 식이 나타나면서 빛은 더욱더 환하게 주위를 밝혔다. “티아 누나?!” 티아에게 날아 온 테이는 티아의 몸이 빛에 휩싸인 것을 보고 놀란 표 정을 지었다. 아니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놀라서 일제히 티아를 쳐다 봤다. “이런 멍청이!! 그만 둬! 너에게는 아직 무리다!!” 시이터는... 아니 이번 일에는 끼어들지 않겠다고 했던 블랙시터의 영 혼이 시이터의 몸을 빌려 외쳤다. 덕분에 카이저 드래곤의 위압감을 바로 옆에서 느낀 제임스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그만 둬라! 티아 네가 아직 부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제발 멈 춰라!!” 블랙시터는 주위를 신경 쓰지 않고 위압감을 한껏 드러내며 외쳤지만 티아는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이미 늦어 버렸다고 해야 될까? 티아의 부름에 응답이나 하듯이 ‘존재’가 대답을 했다. [내 이름은 생명의 정령왕 리스라시르. 날 부른 것이 그대인가? 생명 의 카이저 드래곤이여.] 계속 ----------------------------------------------------------------- 34화 기적의 날(1) 모든 이들의 머리 속에 아름다운 목소리가 들리는 동시에 하늘까지 뻗 어 있던 빛이 사라졌다. 하지만 티아의 몸에서는 여전히 빛이 나고 있 었다. 처음에는 그렇다고 생각했었지만 점차 빛에 눈이 익숙해지자 빛 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머리카락도 몸도 얼굴도 모든 것이 은색의 빛을 내고 있었기 때문에 차갑게 보였지만 아름다운 얼굴의 여자는 티아의 맨몸을 가려주려는 듯이 티아를 감싸 안고 있었다. “결국 불러 낸 것인가?” 시이터의 몸을 빌린 블랙시터가 허탈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려했던 일 이 벌어졌던 것이다. 이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티아의 마력을 제어하는 목걸이를 줬던 것인데 그것이 소용이 없었다는 사실이 믿어 지지가 않았다. 티아의 의지가 자신들 나이 많은 카이저 드래곤의 힘을 뛰어 넘은 것 이다. [나를 불러낸 어린 카이저 드래곤이여. 그대의 이름은?] “얼음과 생명의 실버 드래곤 티아루아입니다.” [나를 불러낸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는가?] “알고 있습니다. 모든 생명에게 축복을 주시는 정령왕 리스라시르여. ” 무표정한 리스라시르는 티아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특히 티아 의 눈을 자세하게 쳐다보던 리스라시르는 한숨 비슷한 것을 쉬는 표정 이 되서 티아에게 물었다. [카이저 드래곤 티아루아여. 너는 분명히 나를 불러 낼 자격이 있다. 하지만 너무 이르구나. 네가 나이를 먹고 진정한 카이저 드래곤으로서 각성을 한다면 네가 부르지 않아도 나는 너의 계약자로서 너에게 올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무리를 하면서 나를 부른 이유는 무엇이냐 ?] 리스라시르가 무리라는 말을 하지 않았더라도 티아 주변에 있던 이들 은 티아가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티아가 있는 곳으로 날아온 테이는 폴리모프로 인간으로 변해서 내려섰다. 그리고 힘에 겨 워 숨을 거칠게 몰아쉬는 티아를 보고는 걱정을 하며 안부를 물었다. “누나 괜찮아? 왜 정령왕을 불렀어? 정령왕은 신과 동격이라는 것은 누나가 더 잘 알잖아! 그만해 그러다 죽을지도 모른단 말이야!!” “테이 말이 맞다! 티아양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정령왕을 돌려보 내라. 계속하다가는 네 몸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블랙시터도 테이의 말에 동조해서 티아를 말렸지만 티아는 땀이 범벅 이 된 지친 얼굴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 왠지 알 것 같아. 지금이라면 괜찮다는 것을.... 어쩐지 그런 기 분이 들어.” “그게 무슨 뜻이야?! 뭐가 괜찮다는 거야?! 다 죽어가는 얼굴을 해 가지고 뭐가 괜찮아?! 어서 블랙시터님 말씀대로 정령왕을 돌려보내! ” “아니. 이건 어차피 정식 계약이 아니니 그렇게 무리가 없어. 제 말 이 맞죠? 리스라시르님.” 힘겨워 하면서도 끝까지 미소를 잃지 않은 티아의 얼굴을 쳐다보던 리 스라시르는 처음으로 미소를 지으며 티아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대 고 말했다. [생명의 아이야. 네 생각대로란다. 그래 너는 나를 불러낼 자격은 있 지만 아직 나와 영원의 계약을 할 자격은 없단다. 처음 불러냈으면서 그것을 알아차렸다니 내 생각보다 더 똑똑한 아이구나.] “그냥 어쩐지 그럴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생명의 아이야. 나를 불러내는 것은 위험하지 않더라도 이대 로 나의 힘을 사용할 생각이라면 그만 두기를 권하고 싶구나. 만에 하 나 네가 잘 못 될 수도 있단다.] 티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방금 전에도 말했지만 어쩐지 지금은 괜찮을 것 같아요. 제가 원하 는 일 아시죠? 부탁드려요.” [왜 그들을 위해서 목숨을 걸려고 하는 거지?] 티아는 그 질문에 고민할 것도 없다는 듯이 바로 대답했다. “사랑하는 동생을 위해서라면 이유가 안 될까요?” 티아의 망설임 없는 대답과 진심이 담긴 눈을 본 리스라시르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티아의 몸을 안았다. 그리고 티아의 귀에 가만히 속삭였다. [힘들거든... 언제라도 말 하거라. 바로 중단하겠다.] “네. 부탁드립니다.” “누나 그만 둬!!” “티아양!!” 필사적인 테이와 블랙시터의 만류에도 소용없이 생명의 정령왕은 힘을 발휘했다. 죽어가는 혹은 죽은 생명에게 다시 한번 삶의 기회를 주는 은색의 따뜻한 빛이 주변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어? 난 분명 죽었던게 아니었나?” “으으... 따, 따뜻하다.” “내, 내 팔이? 다리가? 이, 이럴 수가?!” 바위가 부서지고 바위에 깔려 죽었던 사람들이 살아나고, 테이의 브레 스에 의해 얼었던 몸이 녹고 사람들이 살아났다. 온 몸이 부서졌던 인 간들도 어느새 몸이 원상복구가 돼서 새로운 생명을 얻고 자리에서 일 어났다. -쿵 “뭐, 뭐야?! 내, 내 몸이? 몸이?!” 제임스는 갑자기 자신의 팔이었던 갑옷의 한쪽 부분이 떨어져 나가서 놀랐다. 하지만 더 놀란 것은 그 갑옷 안에 분명히 있을 리가 없는 인 간의 팔이 나타났다. 아니 팔 뿐만이 아니라 그의 죽은 몸을 대신했던 갑옷들이 저절로 벗겨지면서 사람의 몸이 생겨났다. 제임스도 살. 아. 나. 고 있었던 것이다. ‘빛? 눈부신 빛. 따뜻하다. 죽음이란 이런 것인가?’ 루그라드는 몸이 차가운 어둠에 가라앉아가는 기분을 느끼면서 죽어가 다가 바닥에서 따뜻한 은색의 빛이 자신의 몸을 감싸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온갖 잡소리가 어지럽게 휘 젖고 다녔다. ‘죽음이라는 게 원래 이렇게 편하지 않은 건가?’ 루그라드는 자신의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소음에 얼굴을 찌푸렸다. 하 지만 점차 소음의 소리가 뚜렷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빠! 오빠!’ ‘레이르?’ 루그라드는 자신을 부르는 레이르의 목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눈을 떴 다. 처음에는 빛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희미한 윤곽이 눈 에 잡혀 그것에 집중해서 보자, 점차 자신이 사랑했던 동생의 얼굴이 보였다. 레이르는 주위에 죽어 있던 사람들이 살아나자 혹시나 하는 생각에 루 그라드의 이름을 계속해서 불렀다. 이미 목이 쉬어서 목소리도 잘 안 나왔지만 멈추지 않았다. “왕녀님! 루그라드님께서 눈을... 눈을 뜨셨습니다!!” 옆에서 병사가 흥분해서 말하지 않더라도 레이르도 눈을 깜박거리는 루그라드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초점 없던 루그라드의 눈에 점차 생 기가 더해가더니 어느 순간 완전히 정신을 차려서 몸을 일으켰다. “레이르? 이게 어떻게? 내가 어떻게 살아난 거지?” 분명히 죽었다고 생각했던 루그라드는 자신이 살아났다는 것이 믿기지 가 않았다. 그만큼 자신이 입은 상처가 치명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 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분명 살아났고, 이것이 꿈이라면 깨지 않기 를 바라고 싶을 정도였다. “루그라드!!”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들은 순간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면 서 볼에 화끈한 통증이 느껴졌다. 루그라드는 병사들의 부축을 받아서 몸을 일으키다가 불시의 기습을 받은 것이다. 루그라드가 일어나자 사 정 안 봐주고 있는 힘껏 주먹을 날렸던 랑그람이 주위 병사들과 레이 르가 자신을 말리든 말든 더 덤벼들 듯한 포즈로 소리쳤다. “야! 이 멍청한 자식아! 누가 마음대로 죽으라고 했어?! 너한테는 아 직 죄 값을 치러야 하는데 감히 그냥 죽을 생각을 했단 말이야?! 분명 히 말하지만 네 죄는 죽음으로서 갚을 수 있는게 아니야!! 죽었다가 살았으니 이제부터 죄 값을 치루란 말이야!!” 흥분해서 마구잡이로 소리를 지르는 랑그람을 멍하니 쳐다보던 루그라 드는 피식하고 웃음을 흘렸다. “뭐가 우스워?!!” “넌 정말 잔인하군. 죽으라는 말보다 살면서 갚으라는 심한 형벌을 내릴 생각이었다니 말이야.” “그게 우습단 말이야?!” “아니 무서워.” “무섭다면서 웃는 이유가 뭐야?!” 루그라드는 다시 주위 병사들의 도움을 받아서 몸을 일으키며 고개를 저었다. “나도 모르겠어. 그냥 웃음이 나왔어.” “실없는 녀석. 젠장! 아무튼 또 죽겠다는 소리는 절대 하지 마. 그래 도 정 죽고 싶다면 레이르 모르게 어디 혼자 가서 조용히 죽으라고!! 난 레이르의 눈물을 보는 것은 질색이야!” “앞으로는 명심하지.” 루그라드는 여전히 웃음 지으며 대답했고, 그 모습에 배알이 꼬인 랑 그람은 자신을 말리던 레이르의 손을 뿌리치며 뒤로 돌아섰다. 그리고 주저주저하는 목소리로 루그라드에게 말했다. “......구해줘서 고마웠다.” “아아.” “쳇! 언젠가는 그 빚! 갚아버리고 말겠어! 그때까지만 죽지 마!!” “아아.” 랑그람은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더 있었지만 입안에서만 맴돌 뿐 말 은 더 나오지 않았다. 결국 쳇, 쳇 거리며 괜스레 바쁜 척 주변에 살 아나는 사람들의 상태를 돌아보고 다녔다. 루그라드는 랑그람이 가버리자 눈물을 닦고 있는 레이르를 보면서 사 과했다. “레이르. 미안하구나.” “됐어요. 살았으니 된 거잖아요. 살아야 오해도 풀고 잘못한 것을 고 칠 수도 있는 거죠. 살아나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아! 맞아! 내가 어떻게 살아난 거지? 내 상처는 치명상이었어. 도저 히 살 수 있는 상처가 아니었는데!!” 레이르는 루그라드의 질문에 손을 들어 어느 한 곳을 가리켰다. 루그 라드는 의아한 표정으로 레이르가 가리키는 곳을 쳐다봤다. 그가 본 것은 대낮같은 빛을 뿜어내고 있는 두 명의 여자였다. 한 명은 그도 잘 아는 드래곤 티아였고, 그리고 또 한 명은 도저히 이 세상 사람이 라고 할 수 없는 신비로운 여성이었다. “......여신? 드래곤님께서 여신을 부른 것인가? 그래서 기적을 일으 키고 계신 건가?” “그건 잘 모르겠어요. 제가 알고 있는 것은 티아님이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적을 일으켰고 그 덕분에 오빠가 살 수 있었던 거예요. 빚은 나중에 톡톡히 갚아야겠죠?” “아아. 하지만 이런 빚은 평생을 걸고 갚아도 모자를 것 같아서 불안 한걸.” 그렇게 말한 루그라드는 방금 말은 농담이었다는 뜻으로 씩 웃었다. 덕분에 레이르의 얼굴에도 겨우 미소가 어렸다. 살아난 인간들은 한사람, 한사람 티아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자 신들을 위해 기적을 일으키는 티아의 모습을 경의를 담아서 쳐다봤다. 그 날 다이러스 제국과 가이라가 왕국의 살아난 인간들은 그 날 겪었 던 기적을 자손에게 전해서 그리노 대륙의 전설이 되어 갔다. 은빛의 기적의 여신 티아루아라는 전설이 생겨난 것이다. 계속 ----------------------------------------------------------------- 34화 기적의 날(2) “으윽.” 인간들이 기적이라고 칭하며 티아를 경이로운 시선을 담아 쳐다보고 있을 때 티아는 고통에 찬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역시 무리가 온 것 이다. [생명의 아이야. 이쯤하면 충분하지 않니? 더 이상 했다가는 네 몸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단다. 이제 그만 하자구나.] “으응. 아직 견딜 만 해요. 그리고 아직 멀었어요. 힘을... 하아, 하 아 힘을 멈추지 마세요.” [고집이 센 아이구나.] “죄송해요.” 땀이 비 오듯이 흐른다는 표현까지 무색할 정도로 땀을 흘리고 있는 티아를 보고 있던 블랙시터는 이를 갈았다. 티아가 힘의 한계가 왔다 는 것을 똑똑히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정령왕의 힘을 제어하고 있는 이때는 끼어들기에는 너무 늦었다. ‘차라리 강제로라도 정령력을 끊었어야 하는데....’ ‘왜 그렇게 안 하신 겁니까? 블랙시터님이라면 그렇게 하실 수 있잖 아요!!’ 블랙시터는 자신이 나오는 바람에 안으로 들어간 시이터의 외침을 들 으며 쓴 입맛을 다셨다. ‘어쩌면 나 역시 티아양이 어느 정도까지 할 수 있나 확인하고 싶었 던 마음이 있었을지도 몰라. 결과는 훌륭해. 도저히 나이 어린 카이저 드래곤이라고 믿기가 힘들 정도로 정령왕의 힘을 잘 제어하고 있어. 하지만 아직 나이가 어린만큼 금방 한계에 부딪칠 거야.’ ‘멈출 수 있는 방법이 없나요?’ ‘이미 정령왕이 힘을 사용한 지금은 무슨 수를 써도 멈추기에는 늦었 다. 이제는 아무도 끼어 들 수 없어. 아무도....’ 블랙시터는 만에 하나 일이 잘 못 될 경우 가디락스에게 무엇이라 변 명해야 될지 걱정이 앞섰다. 아니 변명할 말이 있을 리가 없었다. 지 금은 그저 티아가 기적을 일으키는 만큼 기적이 일어나서 티아가 무사 하기만을 빌 수밖에 없었다. ‘블랙시터님.’ ‘응?’ ‘테이군. 끼어들려고 하는 것 같은데요.’ ‘뭐라고?! 시이터가 말해 준 덕분에 블랙시터는 티아에게 다가가는 테이를 볼 수 있었다. 블랙시터는 얼굴이 흙빛이 돼서 테이에게 소리쳤다. “테이군! 지금 뭐 하는 건가? 일단 한번 정령왕의 힘이 발동되면 아 무도 멈출 수 없어!! 안타깝지만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지켜보 는 일 뿐이야! 그러니 더 이상 접근하지 말거라!!” 블랙시터의 만류에 테이는 잠시 걸음을 멈췄지만 표정은 그만 두지 않 겠다는 표정이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왠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의 나라면 누나를 말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자네 기분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리스라시르의 영역에 들 어가선 안돼! 자칫 잘못하면 티아양뿐만이 아니라 테이군도 위험해 질 수 있어!!” “절대 그렇지는 않을 거예요. 아니 그렇게 될 거라고 믿어요.” “테이군!!” 더 이상 테이는 블랙시터의 만류를 듣지 않았다. 리스라시르가 뿜어내 고 있는 생명의 빛 앞에 선 테이는 잠시 심호흡을 하고는 거침없이 빛 속으로 들어갔다. [응?] 리스라시르는 누군가 자신의 영역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끼고 얼굴 을 찌푸렸다. 일반적인 인간이라면 정령왕이 만들어낸 영역 속에 들어 오는 것은 불가능했다. 더구나 어떻게 해서든 억지로 들어올 수 있다 쳐도, 지금 들어온다는 것은 힘을 사용하고 있는 티아에게 위험한 일 이 될 수 있었다. 아니 티아뿐만이 아니라 들어오고 있는 그 누군가도 위험해 질수 있기 때문에 리스라시르의 얼굴은 자연히 찌푸려졌다. 하 지만... [이상한 걸.] 리스라시르는 짜증을 내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의 영역으로 들 어온 누군가는 마치 처음부터 이 영역 안에 있었던 것처럼 아주 자연 스럽게 행동했다. “저럴수가...” 블랙시터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얼굴로 신음을 흘렸다. 블랙시터는 테이를 강제로 붙잡아서라도 관두게 할까 생각하다가 차라 리 직접 부딪쳐 보게 해서 영역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직접 느껴보게 할 셈으로 테이의 행동을 저지하지 않았었다. 하 지만 리스라시르의 영역에 부딪칠 것이라는 블랙시터와의 생각과는 달 리 테이는 아무런 저항 없이 영역 안에 발을 들여 놓았다. 테이는 마치 자기 집 안방 들어가듯이 리스라시르의 영역에 자연스럽 게 들어간 것이다. 리스라시르의 영역 안으로 들어간 테이는 리스라시르의 신기해하는 눈 빛을 받으며 티아에게로 걸어갔다. 중앙에 서 있는 티아는 여전히 리 스라시르에게 안겨 있었다. 리스라시르는 처음에는 티아의 알몸을 가 려주기 위해서였지만 지금은 티아를 부축하기 위해서 안고 있었다. 그 정도로 티아는 지쳐 있었던 것이다. 티아에게 다가간 테이는 손을 뻗어서 리스라시르에게서 티아를 받아서 안았다. 리스라시르는 자신의 영역에 아무 저항 없이 들어온 테이에게 흥미가 생겨서 그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 뒀다. 적어도 자신의 주인이 될 티아에게 해가 될 용물(?)은 아닐 것이라는 판단이 섰기 때 문이었다. 티아를 받아서 부축한 테이는 티아의 귀에 살며시 속삭였다. “괜찮아?” 힘에 겨워 눈을 감고 있던 티아는 테이의 속삭임에 정신이 조금 드는 지 힘겹게 눈을 뜨고 테이를 쳐다봤다. “테이? 테이구나. 응. 난 괜찮아.” “거짓말.” “.......” “무리하고 있는 것이 눈에 보이는 걸. 이제 그만해. 이 정도까지 하 면 됐어. 이 이상 누나가 힘들어하면서까지 인간들을 살릴 필요가 뭐 가 있어? 이제 그만해.” “.......” 테이의 만류에 티아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으면서 조용히 듣고만 있 었다. 그것이 답답한 테이는 조금 언성을 높여서 티아를 말렸다. “누나! 고집 좀 그만 부려! 도대체 그 놈의 고집은 누굴 닮은 거야? 이 정도까지 살렸으면 충분하잖아. 가이라가 놈들까지 다 살릴 셈이야 ? 적어도 그 놈들은 죽어도 싸! 그런데 누나가 위험을 무릅쓰고 살릴 필요가 뭐가 있어? 제발 이제 힘을 멈춰!” “......그렇게 할 수는 없어.” “왜?!” 티아는 자신의 어깨위에 올려진 테이의 손에 자신의 손을 포개고 몸을 기대며 조용히 말했다. “생명이란 소중한 거야. 처음에는 몰랐지만 지금은 알 것 같아. 인간 들이.... 아니 이성을 가진 자들이 만든 가치관 따위는 생명이란 소중 함 앞에서는 무용지물인거야. 그만큼 생명은 모두에게 평등한 거야. 아니 평등해야만 돼.” “하지만!! 누나가 위험을 무릅쓰고 구할 가치가 뭐가 있어?!! 그렇게 까지 해서 나쁜 인간들까지 살려줘야 되는 이유가 뭐냐고?!!” “너무 걱정 하지 마. 이 세계는 네가 걱정하는 것만큼 나쁜 세계가 아니야. 선한 자는 노력한 만큼의 정당한 대가를 받고, 악한 자는 그 만큼의 불이익을 받는 곳. 누구에게나 평등한 세계. 그것이 이 세계 야.” “난 못 믿겠어!! 도저히 못 믿겠단 말이야!! 난 분명히 그들에게 살 기회를 줬어! 하지만 그들은 기회를 잡지도 못하고 허둥대다가 서로를 죽였어. 그리고 이번에도 난 누나의 부탁으로 그들을 놔줬어! 하지만 그것 때문에 죄 없는 자들이 죽었어! 그런데 뭘 믿으란 거야?! 도대체 나보고 그들의 무엇을 믿으란 거야?!! 이 세계의 무엇을 믿으... 앗?! ” 티아는 절규하는 테이의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테이의 말을 도중 에 잘랐다. 그리고 부드럽게 속삭였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 흥분을 가라앉히고 잘 생각해 봐. 우 리가 만났던 인간들 전부 다가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던 인간들일까? 그들 전부다가 살아야 될 이유가 없는 자들일까? 레이나 언니와 레드 포머가 사람들, 제이크씨와 라이크씨 고블린에게 습격당했었던 마을 사람들과 부끄럼쟁이 촌장. 그리고 레이르와 랑그람. 조금 미운 구석 은 있지만 루그라드. 그리고 신룡님의 그림자 시이터 오빠. 아! 시이 터 오빠는 빼자.” 블랙시터의 영혼 덕분에 한쪽으로 밀려난 시이터의 영혼은 심각한 상 황이지만 어쩐지 귀가 가려운 느낌과 함께 재채기가 나올 것 같았다. “이 상황에서 농담이 나와?! 확실히 시이터를 빼자는 의견에는 찬성 이고, 우리가 만났던 인간들 중에 착한 인간들이 있다는 사실도 잘 알 아! 하지만 난 이런 일로 누나를 잃기가 싫어. 인간들 때문에 누나를 잃기가 싫단 말이야! 그러니 제발 그만 둬!!” “괜찮아. 문제없어. 날... 아니 네 누나를 믿어줘!” 티아의 말은 테이를 안심시키기 위한 빈말이 아닌 정말 자신감이 가득 찬 말투였다. 누구보다도 티아를 잘 아는 테이는 별수 없다는 표정으 로 고개를 끄덕였다. 믿어달라고 자신 있게 말할 때의 티아가 얼마나 믿음직스러운지는 테이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잘 알아. 누나가 믿어 달라는 말을 할 때는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것을.... 하지만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은 없을까? 지금 힘든 건 사 실이잖아. 그러니 내가 누나를 도와줄 수 있는 일은 없을까?” “있어.” “뭔데? 말해 봐.” “꼭 안아줘.” “그거면 돼?” 티아는 테이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며 속삭였다. “충분해.” 테이는 티아의 부탁대로 티아를 꼭 껴안았다. 티아는 등을 통해 전해 지는 테이의 고동소리를 들으며 편안한 기분을 느꼈다. 그렇게나 힘들 었는데도 지금은 언제 그랬느냐 듯이 편안한 얼굴로 리스라시르에게 말했다. “계속해 주세요.” “그래.” 리스라시르는 미소를 지으며 티아의 손을 잡고 다시 힘을 발휘했다. 리스라시르는 더 이상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도 그만 두자라는 제의도 하지 않았다. 리스라시르는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 문이다. 테이가 티아를 안아주기 시작했을 때부터.... 리스라시르의 영역 밖에서 지켜보던 블랙시터는 리스라시르의 힘을 제 어하는 티아의 마음이 굉장히 평온해졌다는 것을 느꼈다. 믿기지가 않 지만 그것은 테이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블랙시터님! 티아양은 괜찮은 겁니까? 안 말려도 되요? 말리러 간 테이도 실패한 것 같은데 더 이상 도와줄 방법이 없나요?’ ‘아니 이제 괜찮은 것 같구나.’ ‘예?’ ‘신께서 왜 생명을 다루는 실버 일족에게 카이저 드래곤을 내려 보냈 는지... 그리고 왜 하필 쌍둥이를 내려 보냈는지.... 이제 알 것 같구 나.’ 시이터에게는 알쏭달쏭한 말이었다. 중요한 말은 싹 다 빼먹고 혼자서 알겠다고 말하면 시이터가 무슨 수로 알 수 있겠는가? 그래서 시이터 는 귀찮겠다 싶을 정도로 블랙시터에게 질문을 했지만 블랙시터는 단 한마디만 말했다. “서로 의지하는 힘은 강하다.” 시이터로서는 알 것 같기도 하고, 전혀 모르겠다 같은 블랙시터의 대 답에 한숨을 쉬었다. 아니 쌍둥이 드래곤이 태어 난 것에 대해서는 방 금 전 대답이 답이 되지만 왜 생명을 다루는 실버 일족에게 카이저 드 래곤이 태어난 것인지에 대해서는 답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블랙시터 가 더 이상 대답해 줄 것 같지가 않아서 시이터는 일찌감치 포기하기 로 했다. 티아의 안색을 다시 한번 살펴 본 블랙시터는 힘을 써서 공중으로 날 아올라가 가이라가 왕국 쪽을 바라봤다. “자. 그럼. 우리는 우리식대로 뒷수습을 해볼까?” 가이라가 왕국을 바라보는 블랙시터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차린 시이터는 씩하니 웃으면서 말했다. ‘아직 어린 티아양과 테이군이 할 수 없는 일이니 직접 나서실 생각 이시군요. 블랙시터님도 숙제다 뭐다 하셨지만 역시나 도와주시고 싶 어서 안달이셨죠?’ “뭐. 꼭 그렇다기 보다는.... 이건 어디까지나 프론트 연합국의 외교 관계 문제니 내가 끼어들어도 이상한 것은 아니네. 그러니 지레짐작하 지 말게!” ‘예이~ 예이~.’ “대답은 한번만 하게!!” '예~~.' 끝까지 반항적인 시이터의 대답에 블랙시터는 한마디 더 해줄까 하다 가 그냥 입을 다물었다. 시이터가 이러는 것이 어디 한두 번도 아니었 고, 지금까지 몇 천년동안 그림자를 거느려 왔으니 이런 별종도 있겠 지 하고 포기한 지가 옛날인 것이다. 하지만.... “어쩌다가 자네가 내 그림자가 된 건가? 다른 카이저 드래곤 들의 그림자를 반만이라도 닮아보게!!” 라고 때때로 불평이 나오는 것은 블랙시터로서도 어쩔 수가 없는 것이 다. 물론 그 불평을 시이터가 곧이곧대로 들은 적은 단 한번도 없었 다. 케르디온은 눈을 껌벅거리며 자신의 손과 발을 열심히 확인했다. 주위 에 자신의 병사들도 살아나고 있는 것을 직접 눈으로 봤지만 그래도 자신이 살아났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이건 기적이야.” 라고 중얼거리던 케르디온은 문뜩 눈을 빛내며 소리쳤다. “그래! 이것은 신께서 내게 주신 기회인 것이다! 억울하게 죽은 나에 게 복수를 할 기회를 주신 거다!! 역시 사람은 착하게 살고 볼 일이었 어!! 하하하하!!” 억울? 착하다? 지금 케르디온은 무언가 착각해도 단단히 착각하고 있 었다. 가이라가 진지로 와서 케르디온을 찾던 블랙시터는 그가 내지르 는 소리를 듣고는 한숨이 있는 대로 나왔다. ‘저거 그냥 죽여 버리죠.’ 시이터가 그 소리를 하지 않더라도 블랙시터도 똑같은 기분이었다. 하 지만 연륜(?)의 힘으로 간신히 솟아오르는 분노를 참은 블랙시터는 미 친 듯이 웃고 있는 케르디온의 앞에 내려섰다. “아하하하하하! 뭣들 하느냐? 이번에야 말로 저 다이러스 제국 놈들 과 드래곤을 죽일 때다! 신은 이 짐과 함께하고 있으니 어서 공격준비 를 서둘러라!! 어? 넌 뭐야?!” 살아난 것을 기뻐하며 살아난 자신의 부하들에게 재차 공격준비를 시 키던 케르디온은 하늘에서 내려온 블랙시터에게 물었다. “미안하지만 신은 그대와 함께 하고 있지 않다. 이 어리석은 인간아! ” 아까 드래곤에게서 느꼈던 위압감과 똑같은 아니 그것보다 더 크고 무 거운 위압감에 케르디온은 바로 바닥에 엎드렸다. 드래곤보고 놀란 가 슴 도마뱀 보고도 놀란다는 옛 성인의 말은 하나 틀린 것이 없었다. 굳이 틀린 점을 찾자면 지금 케르디온 앞에 서 있는 인물(?)은 아까 전에 케르디온을 죽인 드래곤보다 훨씬 더 강한 드래곤이라는 것이다. 비록 지금은 인간의 몸을 빌리고 있었지만 위압감만큼은 테이보다 훨 씬 더 강했다. 아무튼 조건 반사라고 해야 될까? 블랙시터의 위압감에 고개도 들지 못하는 케르디온을 한심한 눈초리로 내려다보던 블랙시터는 나직하게 말을 내뱉었다. “가이라가 왕국의 왕이여. 나는 프론트 연합국의 모샤드국을 수호하 는 신룡 블랙시터다.” “시, 시, 신룡님?!” 케르디온은 그냥 드래곤도 모자라서 신룡까지 다이러스 제국에 무슨 일로 왔는지 궁금하고 답답했다. 이기리라 생각했던 전쟁이 몇 년이나 끈 것도 모자라서 기껏 남은 병력 다 끌고 왔더니 연신 패배만 맛보았 고, 적의 왕자 도움을 받아서 겨우 반격의 기회를 잡은 상태에서 드래 곤의 브레스 한방에 세상 하직했었다. 그런데 기적이라 생각했던 힘으 로 다시 살아서 반격을 해보나 했더니 이제는 가장 신에 가까운 자라 불리는 신룡이 자신의 앞에 서 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했 다. 더구나 기껏 프론트 연합국의 동맹 관계를 깨지 않고 다이러스 제국을 공격할 이유를 만들기 위해 아주 교묘하게 연극까지 했던 것이 신룡 앞에 서자 켕긴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 프론트 연합국이 군사를 빌려 주겠다고 했을 때도 그 제의를 거절했던 것이다. ‘모를 거야. 그래 지난 몇 년간 눈치 채지 못했는데 그게 이제 와서 들킬 리가 없어! 절대 들킬 리가 없어!’ “이번 전쟁에 우리 프론트 연합국에서 이상한 점을 하나 눈치 챘네. ” “죄송합니다아!!!”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블랙시터가 아직 어떤 이상한 점인지 말하지도 않았는데 케르디온은 지레 겁을 먹고 죄송하다는 말을 연발로 내뱉었 다. 블랙시터는 그러면 그렇지라는 표정으로 케르디온에게 말했다. “그렇게 용서를 빈다는 것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를 알겠지?” “물론입니다! 지금 당장 군사를 돌려서 본국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그것만인가?” “그리고 다이러스 제국에게 이번 전쟁에 대한 보상금을 지불하겠습니 다!!” “겨우 그것뿐인가?” “그리고 이번 전쟁에 프론트 연합국을 속인 것에 대한 보상금도 지불 하겠습니다.” “너무 약하군.” 케르디온은 이 이상 뭘 더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라는 표정으로 블 랙시터를 바라봤다. 그 얼굴에 일말의 동정심도 들지 않는 블랙시터는 코웃음을 치며 요구사항을 말했다. “앞에 네 놈이 말한 세 가지 이외에 앞으로 가이라가 왕국은 1년에 한번씩 우리 프론트 연합국과 다이러스 제국의 감찰을 받아야 된다! 병력수도 최소한의 나라 방위이외에 불필요한 병력 증가는 금한다! 전 쟁 물자도 마찬 가지다! 무엇보다도 그대는 이번 전쟁이 끝나면 모든 책임을 지고 왕 자리에서 물러나야 된다! 그리고 새로운 왕도 우리 프 론트 연합과 합의해서 뽑아야 될 것이다! 적어도 이 정도는 해야지 전 쟁을 일으킨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닌가?” 블랙시터의 요구조건을 들은 케르디온은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셨다. 블랙시터의 요구조건은 케르디온에게는 죽으라는 말보다 더 심한 말이 었던 것이다. “그, 그럴 수가?! 그럼 저는 끝장입니다!! 제발 선처를... 선처를!!! ” “그대가 저지른 일에 대한 대가다. 만약 이를 어길시에는 그때는 프 론트 연합국의 우리 신룡들까지 적으로 돌리는 것이라 간주하겠다. 인 간들의 전쟁에 특히 다른 나라를 침범하는 전쟁에 힘을 빌려주지 않겠 다는 우리 신룡들의 맹세를 깨는 한이 있더라도 너 만큼은 용서를 않 겠다.” “그렇게까지 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저는 억울합니다! 제가 무슨 잘 못을 저질렀다고 그렇게까지 하시는 겁니까?!” 아예 블랙시터의 바지를 붙들고 사정하는 케르디온을 싸늘한 눈으로 쳐다보던 블랙시터는 눈만큼이나 싸늘한 어투로 이유를 말해줬다. “네가 한 짓을 정녕 모르겠느냐? 인간들에게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는 옛 말이 있었지? 그 말이 인간들한테만 통용되는 말이라고 생각하나? 너는 우리의 아이를 건드렸다.” “우리의... 아이?! 설마?!” 케르디온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아까 전에 자신이 괴롭혔던 은발의 여자를 생각했다. 블랙시터는 케르디온이 상상하고 있는 것이 맞는다 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여전히 싸늘한 말투로 말했다. “네 죄는 백번 죽어 마땅하다. 그런데도 네 목숨을 살려준 우리의 착 한 아이에게 감사를 해라!” 그렇게 소리친 블랙시터는 케르디온을 뿌리치고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케르디온은 갑자기 십년은 늙어버린 듯한 얼굴로 떠나는 블랙시터의 뒷모습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끝났어. 다 끝났어. 나는 끝났어. 끝났어. 다 끝났어. 나는.... 다 끝났어.” 자신의 역량을 넘어선 욕심을 부린 인간의 마지막이 얼마나 비참한지 를 확실하게 느낀 케르디온은.... 아니 이미 케르디온은 그것을 느낄 수가 없을 정도로 정신이 망가졌다. 정신이상이 된 케르디온은 그대로 본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가이라 가 왕국이 후퇴를 하던 중 어느 날에 갑자기 사라져 버린 것이다. 결국 헬리오스 가문 대신에 왕위에 오른 것은 오벨라더 가문이었다. 그리고 헬리오스 가문은 가이라가 왕국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계속 ----------------------------------------------------------------- 34화 기적의 날(3) 인간들이 다 살아난 것을 느낀 리스라시르는 힘을 멈췄다. 간신히 힘 을 유지하던 티아는 리스라시르가 힘을 멈추자 그대로 축 늘어져 버렸 고, 덕분에 티아를 안고 있던 테이는 티아의 몸을 안은 채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누나?! 누나 괜찮아?! 정신 차려!! 죽으면 안돼!!” “드래곤 마음대로 죽이지 마! 난 아직 안 죽었어!!” 테이의 오해성 발언에 화가 난 티아는 힘이 하나도 없는 와중에도 소 리를 질렀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흑. 정말 다행이야.” 테이는 티아가 기운(?)을 차린 모습에 눈물까지 흘려가면서 기뻐했고, 화가 나서 소리 질렀던 티아도 그 모습에 마음이 약해졌는지 상냥하게 테이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제 그만 울어. 바보 같아.” “........누가 바보야!! 누가?!” “왜 소리부터 지르고 난리야?! 힘도 하나도 없어 죽겠는데 머리가 멍 멍거리잖아! 소리 지르지 마!!” 머리가 멍멍거린다면서 테이보다 세배는 더 큰 소리를 그것도 테이의 귀에 대고 지르는 것은 무슨 심보일까? 오히려 티아가 지른 소리에 머 리가 멍해져버린 테이가 간신히 정신을 차릴 때 티아는 무뚝뚝한 어투 로 말했다. “옷 벗어.” 그런데 그 발언이 아주 간단하고,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딱 좋은 말이 었다. “에? 오, 옷은 왜?!” “당연 한 것 묻지 마! 네가 준 셔츠는 아까 힘을 쓸 때 날아갔단 말 이야! 그럼 계속 알몸인 누나 몸을 껴안고 있을 생각이었어?!” “아, 아니.” 아직도(?) 순진한 테이는 얼굴을 뻘겋게 물들이며 급히 속 안에 있던 셔츠를 벗어서 티아에게 건네줬다. “입혀줘.” “.......농담이겠지?” “농담할 힘도 없고, 입을 힘도 없어. 그러니 얼른 입혀 달란 말이야. 아무리 너 앞이라도 창피하고 부끄럽다고!” 결국 테이는 계속 얼굴을 빨갛게 물들인 채 티아에게 셔츠를 입혀 주 었다. 마음속으로 ‘입을 힘도 없다면서 소리는 잘 지르네’ 라고 투 덜거리며... [역시 내 생각대로 재미있는 남매구나.] “아! 리스라시르님!” 리스라시르가 말을 걸어오자 평소 하던 생활상(?)대로 테이와 아옹다 옹 거리던 티아는 그제야 리스라시르를 정령계로 돌려보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죄송합니다! 실력도 없으면서 무리하게 리스라시르님의 힘을 사용하 고 더구나 정령계로 보내드린 다는 것도 깜빡하고.... 정말 죄송합니 다.” 테이의 부축을 받아서 간신히 일어난 티아가 연신 죄송하다는 말을 하 자 리스라시르는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괜찮단다. 그렇게 사과 받을 일도 아니니 너무 신경 쓰지 말거라. 그 리고 늦게 가게 된 덕분에 재미있는 구경도 했고....] “재, 재미있는 구경이라뇨.” 티아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고개를 숙여버렸다. 방금 전에 테이와 벌였 던 평소 생활상을 리스라시르가 봤다는 게 부끄러웠던 것이다. ‘신룡님 앞에서만 고분 고분하는 게 아니라 정령왕님 앞에서도 고분 고분하네.... 언제쯤이면 나한테도 저런 모습이 되려나.’ 그렇게 생각하던 테이는 곧 자신이 죽을 때가 되도 불가능 할 것이라 는 생각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자 이제 정령력을 거두 거라. 아까 그만큼의 힘을 쓰고 아직도 나를 현실계에 머무르게 하기에는 너에게 벅찰 것이다.] “네.” 속으로 내 인생의 불행의 도가니라는 소리를 중얼거리던 테이는 리스 라시르의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티아를 쳐다봤다. 아까부터 속을 빡빡 긁어 놓는 말만 해서 신경을 못섰는데 지금 티아는 팔 하나 올리 는 것도 아주 힘겨워 하고 있었다. ‘힘없어서 옷 못 입겠다는 말이 완전히 빈말이 아니었구나. 에고고 뻔하지. 그 놈의 자존심 때문에 아무렇지 않은 척 행동했던 거군. 우 리 누나를 누가 말려.’ 테이는 고개를 저으며 떨고 있는 티아의 팔목을 잡아서 들어줬다. “아?!” 티아는 갑작스럽게 테이가 팔목을 잡아서인지 짧게 비명을 지르며 테 이를 쳐다봤다. “오, 오해 하지 마! 힘들어하기에 도와 줬던 것뿐이야!” 티아가 아직 붉게 물들어 있는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자 테이는 괜스레 켕기는 기분에 급히 변명부터 해버렸다. 그런데 테이가 얼굴을 있는 대로 붉히면서 변명을 하는 바람에 티아의 얼굴은 더욱더 붉어져서 시 선을 내리 깔면서 중얼거렸다. “바보야! 왜 창피해 하고 그러는 거야?! 나까지 창피해지잖아!” “내가 뭘 했다고?! 나한테 손목 잡힌 게 어디 한 두 번이야? 새삼스 럽게 뭘 부끄러워하는 거야?!” “너야말로 오해 살 만한 발언 좀 하지 마! 아?! 죄, 죄송합니다!” 그 자리에서 테이와 하이틴 소설을 만들고 있던 티아는 리스라시르가 빙긋이 웃으면서 둘의 청춘사업(?)을 구경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화들 짝 놀라서 소리를 쳤다. “지금 즉시 정령력을 끊을게요!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실력 도 없는데 리스라시르님을 불러서 정말 죄송합니다!” [이런, 이런. 벌써 끝이니?] “예?” [재미있으니 내 눈은 신경 쓰지 말고 더 해도 돼. 보기 좋은 모습이었 단다.] ‘저는 부끄러워서 신경이 팍팍 쓰이거든요.’ 라는 말이 나올 뻔한 티아는 급히 그 말을 억지로 목구멍으로 삼켰고, 테이도 보기 좋은 모습이라는 말에 괜스레 머리를 긁적이며 시선을 다 른 곳으로 돌렸다. 그렇게 허둥지둥 대던 둘은 어느 순간 시선이 딱 마주쳐 버렸는데 바 로 얼굴을 붉히면서 고개를 돌려 버렸고, 그 모습이 귀엽게 보였는지 리스라시르는 키득키득 웃으며 말했다. [자 그럼 오랜만에 현실계에 와서 좋은 구경도 했으니 그만 돌아가겠 다. 그 전에 티아루아여.] “아? 네? 네!” 여전히 붉어진 얼굴로 바닥만 쳐다보던 티아는 리스라시르의 말에 퍼 뜩 고개를 들었다. 리스라시르는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티아에게 말했 다. [언젠가 네가 진정한 카이저 드래곤으로 각성하게 되면 그때는 내가 직접 너를 주인으로 인정하고 너의 곁으로 가겠다. 하지만 내 힘은 잘 못 쓰면 현실계에 엄청난 혼란을 가져 올수 있는 힘이란다.] “네. 아까 리스라시르님의 힘을 느끼면서 그럴 것 같은 기분이 들었 어요.” 티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자 리스라시르는 표정이 어두워지면서 티 아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티아루아여.] “네?” [아까 생명은 평등하다고 했지? 그 말을 절대 잊지 말아다오. 두 번 다시 내 힘이 악용되지 않게...] 마지막 말은 거의 중얼거림이었지만 티아와 테이는 똑똑히 들었다. 그 리고 둘은 동시에 눈을 크게 뜨며 놀랐다. 설마 정령왕의 힘을 신에 가까운 신룡들이 아니라 다른 자가 쓴 적이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바, 방금 전 말씀은... 옛날에 누군가가 리스라시르님의 힘을 사용 한 적이 있다는 말씀인가요?” 말을 더듬거리며 물어보는 티아를 리스라시르는 한없이 슬픔 눈으로 쳐다봤다.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슬퍼하는 표정에 티아는 더 물 어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저기... 기억하기 싫으시면 안 물을게요. 죄송해요. 아픈 기억을 건 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아니 괜찮단다. 상냥한 아이야. 다시 한번 부탁하고 싶구나. 생명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는 그 상냥함을 절대 잃지 말거라. 그것이 설령 너를 괴롭게 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너에게는 신이 주신 선물이 곁에 있으니 상관없겠지?] “에? 신이 주신 선물이라고요?” [자 말이 길어지는 바람에 시간을 지체 했구나. 더 시간을 끌었다가는 네가 정말 잘못 될지도 모르니 빨리 정령력을 끊거라.] 티아는 리스라시르의 경고대로 머리가 어지럽다는 느낌을 받았다. 결 국 궁금한 것은 많았지만 더 시간을 끌었다가는 위험할 것 같아서 티 아는 정령력을 끊기로 했다. “테이야 부탁해.” “응.” 테이는 티아의 손을 리스라시르의 이마에 갖다대게 도와줬고, 리스라 시르도 힘들어하는 티아가 일어나지 않아도 되게 허리를 굽혀주었다. 티아는 손이 리스라시르의 이마에 닿자 눈을 감고 조용히 정령어를 외 웠다. [정령왕과 약속의 계약이 지금 끝났기에 정령의 법칙대로 정령왕님을 돌려보냅니다.] 해제의 정령어가 끝나자 리스라시르의 몸은 은색 빛에 휩싸였다. 그리 고 아래쪽부터 빛이 사라지면서 리스라시르의 몸도 서서히 사라져갔 다. [티아루아여. 다시 너와 만날 날을 기다리겠다. 그때까지....] 리스라시르는 말을 다 끝내지 못하고 빛의 입자가 되어 공중으로 사라 졌고, 그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던 티아는 빛이 완전히 사라지고 난 뒤 에 축 늘어져 버렸다. 괜찮은 척 행동을 했지만 역시 무리를 했던 것 이다. 테이는 잠자코 지켜보고 있다가 리스라시르가 완전히 사라지자 티아를 안아서 그대로 일어섰다. “어차!” “꺄악! 뭐 하는 거야?!” “뭐 하긴? 보면 몰라? 안아 주는 거잖아. 비명은 왜 지르는데?” 티아가 비명을 지르며 몸을 버둥대자 테이가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테이에게 안긴 티아는 여전히 버둥대면서 소리를 질렀다. “놔 줘! 창피하단 말이야! 얼른 내려 놔!!” “내가 누나를 안아 본 것이 한두 번도 아닌데 새삼스럽게 뭐가 부끄 러워?” “너 아무리 순진덩어리라지만 여자한테 말 좀 가려서 쓰란 말이야!! ” 티아가 소리를 빽 지르든 말든 테이는 그대로 티아를 안고 걷기 시작 했다. 애초에 테이는 티아의 불평을 들어 줄 생각이 없었다. “시이터씨는 어디에 있는 거지? 블랙시터님을 불러서 누나의 상태 좀 봐 달라고 부탁해야 되는데....” “내려 달라고 했잖아 이 바보야!!” “아 정말 시끄럽네. 힘도 없어서 걷지도 못할게 뻔하면서 뭘 내려달 라 말라야? 그냥 얌전히 좀 있어!” “나 지금 땀을 많이 흘려서 냄새 날거란 말이야!! 그러니 제발 내려 줘!” “아 맞아. 땀 냄새가 좀 나네.” 테이는 무덤덤하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투로 말했지만 티아는 방금 전 발언을 그냥 넘겨들을 수가 없었다. 티아는 힘은 없지만 그래도 어릴 때 젖 먹던 힘.... 아니 정정하겠다. 어릴 때 오크를 뜯어먹던 힘을 다해서 필사적으로 발버둥을 쳤다. “이, 이... 이 심술쟁이! 이거 놔! 그렇게 냄새나면 얼른 내려놓으란 말이야!!” 테이는 티아가 무슨 말을 하던 무슨 짓을 하던 내려놓지 않았다. 하지 만 티아의 반항이 점점 거세지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결국 소리 질렀 다. “입 좀 닥치고 얌전히 좀 있어!!” “으윽.” 자신에게 그렇게 화를 내는 테이는 처음 본 티아는 움찔해서 바로 얌 전해졌다. 티아가 얌전해지자 테이는 ‘어쩔 수 없군’ 이라고 중얼거 리다가 티아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힘주어 말했다. “아무리 누나가 무거워도! 아무리 누나한테 땀 냄새가 나도! 난 지금 누나를 절대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 그러니 얌전히 있어! 가뜩이나 땀 때문에 미끈거려서 제대로 안고 있기가 힘들단 말이야!! 누나보다 약한 동생이지만 나도 남자야!! 이럴 때는 좀 의지해!” “으, 응.” 테이의 강경한 말에 티아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얌 전해졌다. 티아가 얌전해지자 그제야 테이는 한숨 놨다는 표정으로 티 아를 안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테이는 투덜거리는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지만 마음속으로는 티아의 상 태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마음은 티아에게 그대로 전달 됐다. 테이도 이제 티아의 마음을 느낄 수 있게 됐지만 아직 티아처럼 자신 의 마음을 완벽하게 숨기는 방법을 몰랐다. 덕분에 테이가 자신을 걱 정하고 있는 마음을 그대로 느끼던 티아는 살며시 테이의 가슴에 머리 를 기댔다. 지금 이 순간이 너무 행복해서 시간이 영원히 멈췄으면 좋 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대로 내 기분을 그대로 테이에게 전달할까?’ 티아는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도 했지만 그렇게 했다가 혹시라도 테이 가 싫어하면 어쩌나하는 걱정 때문에 용기가 나지를 않았다. ‘그래 오늘은 지금의 행복을 소중하게 간직하는 것으로 만족해야지. 하지만.... 자꾸 욕심이 생겨. 테이가 내 마음을 더 알아주었으면... 그리고 좀 더 상냥하게 대해주었으면 하는...’ 티아는 이제부터라도 자신도 테이를 상냥하게 대해줘야 되겠다는 다짐 을 했다.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하지만 티아가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면 테이는 쑥스러움을 느끼고 있 었다. 아까 전에 말로는 의지를 해보라느니 큰소리를 쳤지만 티아가 창피하다고 버둥댔을 때부터 신경이 쓰이고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티 아가 얌전해지면서 자신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오자 쿵쿵 뛰는 심장소 리를 티아가 들을 것 같아서 걱정이 됐다. 덕분에 테이는 생각 없이 말을 뱉어 버렸다. “젠장. 되게 무겁네.” ‘........참아야 되겠지? 그래 참아야지. 이렇게 행복한데 겨우 그 한 마디 정도는....’ 티아는 갑자기 치솟는 분노를 누르기 위해 애를 썼다. 하지만 거기서 꼭 한마디 더하는 게 바로 테이의 특기(?)였으니.... “여자가 말이야. 이렇게 무거워서 어디다 써 먹을라고? 좀 가볍게 폴 리모프 하지.” “무거워서 미안하구나! 이 바보 동생아!!!” 아주 오랜만에 티아의 펀치가 작렬했고, 테이는 그대로 공중으로 높이 날아가서 한참 후에야 떨어졌다. “어머나? 어라?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지금까지 힘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엄청난 힘 덕분에 정작 주먹 을 날린 티아가 더 놀라버렸다. 티아가 어리둥절 하는 사이에 날아 올라간 테이는 땅에 추락하면서 기 절해버렸고, 티아는 놀라서 테이의 이름을 외치며 테이를 붙잡고 흔들 었다. “테이야? 테이야! 정신 차려! 미안해 이렇게 세게 칠 생각은 없었어! 제발 정신 차려!” 그런데 왜 티아는 테이의 멱살을 붙잡고 흔드는 것일까? 테이가 기절 하면 여자들이 테이의 멱살을 붙잡고 흔드는 이유는 과연 무엇이란 말 인가? “그렇게 멱살 붙잡고 흔들다가는 정신 차리려는 드래곤도 도로 기절 하겠구나.” “시이터 오빠? 아니 블랙시터님?!” 티아의 뒤에는 어느새 시이터의 몸을 빌린 블랙시터가 와 있었다. 블 랙시터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티아를 쳐다보고 있었다. “벌써 기운을 차린 거냐? 정령왕의 부리는데 힘을 다 소모했을 거라 고 걱정했었는데.... 걱정 할 필요가 없어졌구나.” “그게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냥 갑자기 힘이 솟아났어요.” “그래? 어찌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다행이구나. 다행이긴 한데... 그 말괄량이 성격은 여전히 안 고쳐졌구나. 동생을 그렇게 때려서 어 쩌자는 거냐?” 블랙시터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젓자 티아는 금세 얼굴이 빨개져서 급 히 변명을 늘어놓았다. “저도 이렇게까지 할 생각 없었어요. 그냥 화가 나서 있는 딱 한대만 친 것뿐인데... 보통 때는 이 정도가 아니었어요. 갑자기 힘이라도 세 진건지...” “갑자기 힘이?!” 블랙시터는 눈을 빛내면서 티아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특히 이 마 부분을 꼼꼼하게 살펴 본 블랙시터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부터 쉬었 다. “무, 무슨 문제가 생겼나요?” 블랙시터의 행동에 불안감이 든 티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고, 블랙 시터는 여전히 한숨을 쉬며 티아의 이마를 가리키며 질문에 대답했다. “지금 네 이마에 육망성이 사라지지 않았단다. 너는 이미 카이저 드 래곤으로 각성을 해 버린 거야.” “예에?!” “물론 아직 어리니 완전 각성은 아니야. 하지만 기운이 넘치고 힘이 더 세진 것은 당연한 결과지.” “그럴 수가.... 이거 어떻게 도로 물릴 방법 없어요?! 아직은 저 각 성하고 싶은 생각 없다고요. 제발 어떻게 좀 해주세요!!” 티아의 도로 물려달라는 애원에 블랙시터는 황당한 눈으로 티아를 쳐 다봤다. 방금 티아의 말은 카이저 드래곤으로서의 각성을 물건 샀더니 마음에 안 들어서 바꿔 달라는 억지 같은 말투였으니 블랙시터의 황당 한 심정은 백분 이해가 간다. 블랙시터는 의미를 알 수 없는 한숨부터 먼저 쉬고 난 뒤 고개를 저으 며 말했다. “지금으로서는 무리란다. 아무리 내 영혼의 일부라지만 인간의 몸으 로 카이저 드래곤의 힘을 봉인하는 것은 무리야. 한시라도 빨리 프론 트 연합국으로 오너라. 그때 다시 이야기 하자구나.” “네에...”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그렇게 큰일은 아니니. 그리고 이번에 내가 낸 숙제를 잘 해결했구나. 정말 잘했다.” 블랙시터는 풀이 죽은 티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인자한 목소리로 위 로와 칭찬의 말을 건넸다. 하지만 티아는 블랙시터의 칭찬에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 혼자의 힘이 아닌걸요.” 그렇게 말하는 티아는 상냥한 시선으로 테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블 랙시터도 테이를 쳐다보고는 유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하. 이거 내가 실수했구나. 그래 칭찬은 테이가 일어나면 같 이 해줘야겠지?” “네.” 어느새 티아도 밝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그 둘이 눈치 채지 못한 게 하나 있었는데 테이는 아까 전부터 이미 정신을 차리고 있었 다는 것이다. 정신이 들면서 블랙시터와 티아의 대화를 듣게 됐고, 하필이면 자신의 이야기가 나오는 바람에 일어날 타이밍을 놓쳐버린 테이는 일어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언제까지 누워 있을 수도 없는 진퇴양난에 빠진 것이 다. ‘이거 언제 일어나야 되는 거야? 계속 이렇게 얼굴 박고 누워 있는 것도 힘든데.... 역시 난 제대로 되는 일이 없어.’ 계속 ----------------------------------------------------------------- 34화 기적의 날(4) 아무리 기다려도 테이가 일어날 기미를 안보이자 결국 티아는 테이를 업고 레이르를 찾아다녔다. 블랙시터는 ‘프론트 연합국에서 보자구나 ’라는 말을 남기고 시이터의 영혼과 교대를 했는데 시이터는 블랙시 터님이 또 묶어뒀었다며 너무하다는 불평을 늘어놓았다. 물론 티아는 시이터의 말을 철저하게 무시했다. 그리고 티아가 시이터의 말을 무시 하게 된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는데.... “기적의 여신님이다!” “여신님 감사합니다!!” “기적의 여신님 만세!!” “우리 다이러스 제국의 은인이시다!” “신이 내려주신 기적의 여신님!” 어디를 가나 티아를 본 다이러스 제국의 병사들은 기적의 여신이라고 부르면서 환호성을 하는 바람에 티아는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래서 시이터가 옆에서 뭐라고 하던 간에 신경을 쓸 겨 를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다행이도 그 함성 덕분에 레이르는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레이 르들이 직접 함성이 들리는 곳으로 찾아 왔기 때문이다. “아! 레이르! 여기야 여기!” 티아는 레이르를 발견하고는 기쁨 마음에 손을 흔들며 외쳤다. 기적의 여신이라고 불리는 것에 비하면 전혀 신비스럽지 못한 발언과 행동이 지만 티아는 레이르를 만나면 이 창피한 함성이 멎을지도 모른다는 생 각에 레이르를 발견한 것이 너무나 기뻤다. 과연 티아의 예상대로 레이르들이 티아 앞에 서자 함성이 그쳐갔고, 곧 주위는 조용해졌다. 덕분에 겨우 한시름 놓은 티아는 생긋 웃으며 레이르를 쳐다보며 말했다. “무사해서 다행이야. 그리고 일도 잘 해결 됐으니 경사가 겹쳤지?” 티아의 안부를 묻는 말에 레이르와 랑그람 그리고 루그라드는 티아 앞 에 서자마자 바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덕분에 티아의 미소 는 금방 얼굴에서 사라지고, 당혹스런 표정으로 바뀌었다. “어? 왜 그래?! 왜 이러는 거야?! 얼른 일어나!!” “아닙니다. 저희 다이러스 제국의 은인들 앞에서 불경한 행동을 할 수는 없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티아루아님과 테이루아님은 저희 다 이러스 제국의 구세주이십니다.” 랑그람의 말은 굉장히 정중했지만 그만큼 티아의 당혹감은 배가 됐다. “내, 내가 한 게 뭐 있다고... 이러지 마세요! 레이르도 얼른 일어서 ! 나 이런 건 창피하단 말이야!!” 티아는 레이르의 손을 잡고 일으키려고 했다. 그만 테이를 업고 있다 는 사실조차 깜박해버린 것이다. 아직까지 기절한 척 있던 테이는 티 아의 예상하지 못한 행동에 순간 균형을 잃고 뒤통수와 땅바닥의 친선 모임(?) 기회를 얻었다. “아야!!” “에? 꺄악! 테이야 미안! 깜박했어!!” 테이는 뒷골이 욱신거리기는 했지만 더 이상 기절한척 하지 않아도 되 는 점에 안심했다. 덕분에 평소라면 이렇게 고분고분 사과하는 티아에 게 ‘기회다’라는 생각을 하며 한마디 했을 테이였지만 지금은 아무 렇지 않게 괜찮다고 말할 수 있었다. “정말 괜찮아?” 티아는 그래도 안심이 안 되는지 조심스럽게 물어보자 테이는 조금 우 쭐한 기분이 들어서 싱긋 웃으며 다시 대답했다. “진짜 괜찮아. 이게 뭐가 대수라고. 너무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그래 잘됐구나. 그렇게 괜찮다면 뒷일을 부탁할게.” “뒷일? 어? 에에?!!” 티아는 뒷일을 부탁한다고 해 놓고서는 테이를 레이르들 앞에 세워놓 고 자신은 시이터의 뒤에 숨어버렸다. “누나! 뭐야?! 나보고 뭘 어쩌라고?!” “나 대신 감사 인사 좀 받아줘! 난 그런거 서툴단 말이야!!” “나라고 무릎 꿇고 하는 감사 인사 받는게 익숙한 줄 알아?! 이건 누 나가 받아야 될 거잖아! 나도 싫어! 그러니 얼른 누나가 받아!” “아까는 괜찮다고 했잖아! 그러니 남자라면 자신이 한 말에 책임져!! ” “치사해!!” 서로 감사 인사를 받으라는 드래곤 남매의 행동에 엄숙한 얼굴로 무릎 을 꿇었던 레이르들은 점차 얼굴이 일그러지다가 결국 참지 못하겠다 는 듯이 웃음을 터트려버렸고, 레이르들이 웃어버리자 더 창피해졌는 지 드래곤 남매의 얼굴은 홍당무가 돼버렸다. 간신히 웃음을 멈춘 레이르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티아에게 손을 내 밀며 말했다. “그럼 악수는 받아 주시겠죠. 그 정도도 부끄러워서 못하겠다는 말씀 하시기 없기에요.” “으응.” “정말 감사합니다. 티아님은 정말 저희 다이러스 제국의 기적의 여신 이에요.” 티아는 여전히 붉어진 얼굴로 머뭇거리며 손을 내밀었다. 레이르는 티 아가 내민 손을 두 손으로 꼭 잡고 진심으로 감사를 전했다. “그, 그냥 내가 하고 싶어서 한건데... 그것 갖고 기적이니 뭐니... 헤헤헤 역시 좀 쑥스럽다.” “아닙니다. 두 분의 은혜는 평생을 걸고 갚아도 다 못 갚을 은혜입니 다. 성으로 귀환하는 즉시 축제를 열죠. 아직 전쟁의 상처가 다 가시 지 않았지만 지금 축하를 하지 언제 이런 경사를 축하하겠습니까?” 랑그람이 흥분한 목소리로 거들고 나섰지만 티아는 고개를 저으며 그 제의를 거절했다. “왜요? 티아님 그 정도의 감사 인사는 하게 해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저희 마음이 불편해요. 그러니 거절하지 말아주세요.” 레이르가 굉장히 실망하며 계속 설득하자 테이가 고개를 저으며 티아 대신 설명했다. “레이르 그게 아니야. 지금 누나는 무리하게 힘을 써서 급히 신룡님 들에게 가봐야 돼. 안 그러면 어떤 후유증이 남을지 모르거든.” 테이의 설명에 레이르는 겨우 납득을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아쉬운지 나중에라도 꼭 들려달라는 당부를 했다. 하지만 티아는 테이가 한 설 명 때문에 약속보다 더 중요한 볼일이 생겨버렸다. “잠깐만. 테이 너 어떻게 블랙시터님과의 대화를 알고 있는 거야? 넌 그때 정신을 잃고 있었잖아.” 테이는 티아의 질문에 ‘아뿔싸’라는 외침이 튀어나왔고, 그 덕분에 변명할 기회마저 놓쳐버렸다. “너.... 기절한 척 한거였구나.” “트, 틀려! 그게 아니라... 엿들을 생각은 없었고, 그냥 도중에 정신 을 차렸다가 그... 저... 일어날 기회를 놓쳐서... 그래서... 그리고 설사 엿들은 게 됐다 쳐도 그렇게 문제 될 대화는 아니었잖아!!” “그래. 네 말대로 문제가 될 대화는 아니었어. 하지만 문제는 네가 계속 기절한 척 해서 내가 널 업고 다녔다는 거야.” 티아는 생글 생글 웃으며 조목조목 따지자 테이는 절로 등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주, 죽음의 예감이 든다아!!’ 하지만 그런 테이의 걱정과는 달리 티아의 폭력은 동원되지 않았다. 대신에 티아는 살짝 얼굴을 붉히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누나한테 업히고 싶었어? 나이만 먹었지 그 어리광은 변하지 않는구나.” “아니야!!!” 테이는 발끈해서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가증스럽게도 - 테이 입장에 서 - 랑그람이 티아의 말에 동의하면서 엉뚱한 말을 해버리는 것이다. “흠. 하긴 동생이라는 존재는 다 커도 여전히 어릴 적 어리광이 남는 것 같아요. 하지만 인간만 그런 것이 아니라 드래곤님들도 그렇다는 것은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랑그람 오빠 잠깐만요! 그 말을 하면서 왜 날 쳐다봐요!” 레이르는 랑그람이 자신을 쳐다보면서 동생 어쩌고 하는 말을 하자 인 상을 쓰면서 따졌다. 하지만 랑그람은 의미 있는 미소를 지으며 더욱 더 약 올리는 말만 했다. “글쎄. 왜일까?” “오빠 심술쟁이!!” 레이르가 소리를 지르자 주위 사람들은 크게 웃었고, 덕분에 동생측( ?)의 테이와 레이르는 창피함에 고개를 숙여 버렸다. ‘차라리 몇 대 맞고 말지.’ 테이는 진심으로 차라리 티아가 자신을 때리고 그냥 넘어갔으면 좋겠 다고 생각했다. 뭐 이렇게 된 것도 원인을 따지자면 일어날 타이밍 놓 쳤다고 티아에게 업혀 다닌 테이가 자초한 일인 것이다. 그러니 엉뚱 하게 휘말린 레이르의 분함은 인정되지만 테이는 사서 고생이라고 쳐 야 옳지 않을까?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 난 뒤 티아들은 시이터의 워프 구슬로 바로 프 론트 연합국으로 가기 위해 한발 먼저 다이리 성으로 돌아가기로 했 다. “이제 가야 될 시간이야.” “안녕이라는 말은 하지 마세요! 꼭! 꼭! 꼭! 다시 들려 주셔야 되요! 약속이에요!!” 레이르는 작별의 인사를 하려는 티아의 입을 막으며 레드포머가의 여 자들의 유전무기(?)인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약속을 강요하자 티아 는 레이르의 손을 치우고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으면서 약속했다. “응. 그럼 갖다 올게. 이 말이면 되겠지?” “충분해요.” 여자들끼리 이별의 말을 나누고 있을 때 테이는 시이터와 같이 남자들 과 말을 주고받았다. 그 중에는 인간으로 되살아난 제임스도 끼어 있 었다. 테이는 모르는 얼굴의 남자가 자신을 아는 척 할 때는 고개를 갸웃거 렸었다. 그리고 그 남자가 스스로 은빛의 다크 나이트 제임스라고 소 개를 하자 멍하니 입을 벌리고 쳐다보다가 비명을 지르는 덕분에 한바 탕 작은 소동이 일어났었다. “설마 누나의 힘이 몇 천 년 전에 죽은 사람까지 살릴 줄이야...” “다크 나이트였던 제임스씨가 의지를 가졌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 는 일인걸. 원래 다크 나이트는 죽은 인간으로 만든 의지가 없는 인형 이야. 그런데 제임스씨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부활 할 수 있 었던 것이 아닐까? 생명의 정령왕 리스라시르는 영혼만 부활시킨다는 불꽃과 생명의 정령왕 피닉스와는 틀리게 몸과 영혼을 같이 부활시킨 다고 들었어. 그러니 의지. 즉 영혼이 남아 있는 제임스씨는 오히려 손쉽게 살린 것이 아닐까?” 아직도 제임스가 인간이 된 게 믿기지가 않는 테이가 힘없이 중얼거리 자 시이터는 자기 나름대로 생각한 추리를 늘어놓았다.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제임스 아저씨는 더 이상 다크 나이트가 아니란 거죠. 그렇기 때문에....” 랑그람이 말을 하다 말고 제임스의 눈치를 슬쩍 살피자 제임스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안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숲에서 카렌과 아이들을 지키면서 사는 것은 더 이상 저에게 불가능한 일입니다. 랑그람 네가 하고 싶은 말도 이거지?” “네 그러니 그냥 이대로 성에 머무르세요. 그 편이 카렌 아줌마와 제 임스 아저씨 그리고 아이들에게 더 좋을 겁니다.” “글쎄다. 이것은 나 혼자 결정할 문제가 아니니 나중에 카렌과 상의 해서 결정하겠다.” “그러세요. 하지만 좋은 대답 기대 할게요. 꼭 남아 주셔야 됩니다. ” 한숨을 푹푹 쉬던 테이는 물끄러미 제임스를 바라보다가 제임스의 가 슴을 가볍게 치면서 말했다. “카렌을 울리면 다시 다크 나이트로 만들어 버린다.” 퉁명스런 말이었지만 그 말 안에는 진심으로 카렌을 부탁한다는 뜻이 담겨 있었다. 제임스는 그 뜻을 알아차리고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 덕였다. 남자대 남자끼리의 약속에서 말이 필요 없을 때가 있다. 그래 서 둘은 가볍게 주먹을 툭 치는 것으로 약속을 대신했다. 그리고 이것은 테이가 완전히 미련을 다 버렸다는 뜻도 되는 것이다. “정말 여러 가지로 죄송했습니다. 특히 드래곤님의 누님 분에게 안 좋은 짓을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뒤에서 잠자코 가만히 지켜보던 루그라드가 다른 사람과의 대화가 끝 나자 테이에게 다가가서 고개를 숙였다. 티아의 마음을 읽은 덕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는 테이는 잠자코 루그라드를 쳐다보다가 번개 같이 주먹을 날렸다. 퍽! “크윽!” 신음을 흘리며 인상을 찡그리는 루그라드에게 테이는 무뚝뚝하게 말했 다. “많이 모자라지만 그것으로 빚 같았다고 생각해! 단 이자는 많이 남 았으니 앞으로 살아가면서 갚아! 누나는 생명 평등 어쩌고 하면서 다 살려 줬지만 난 여전히 죽을 인간은 죽어도 싸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도 자신에게 해를 끼친 인간까지 다 살려준 누나에게 감사나 하라고! ” 아주 가시가 팍팍 돋친 테이의 말에 루그라드는 쓴 웃음을 지으며 몸 을 일으켰다. “제 예상보다 훨씬 싼 대가로 용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드래 곤님의 살아가면서 나머지 이자 갚으라는 말도 반드시 명심하겠습니 다.” “테이루아.” “네?” “내 이름은 드래곤님이 아니라 테이루아야.” 잠시 테이의 말뜻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루그라드는 눈만 껌벅거렸지만 곧 확실하게 이름을 강조하는 테이의 뜻을 알아차리고 고개를 끄덕이 며 다시 정식으로 사과했다. “네 알겠습니다. 테이루아님. 다시 한번 테이루아님이 소중하게 아끼 는 누님에게 폐를 끼쳐 죄송했습니다.” “잠깐만.” “네?” 루그라드는 테이의 표정이 험악해지자 자신이 무슨 말실수를 했나 생 각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방금 전에 한 말 중에 테이를 화나게 만든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유는 곧 알게 됐다. “왜 저 누나가 나한테 소중한 누나가 돼야 되는데?! 착각도 유분수라 지만 너무 심한 착각은 자제해 줬으면 좋겠어! 동생을 뭐같이 아는 폭 력 누나 따위를 뭐가 좋다고 아껴야 되는 거야?!!” “예? 예?!” 루그라드는 이유는 알게 됐어도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하긴 티아와 테이와 오래 알고 지낸 카렌조차도 아직 둘에 대해서 이해를 못하는 부분이 있는데 하물며 만난지 얼마 안 된 루그라드가 어찌 알 수 있겠 는가? 당혹감에 입을 열 수 없는 루그라드에게 테이는 자신이 누나를 아끼지 않는 101가지 이유에 대해서 열변을 토했다. 멍하니 그 말을 듣던 루 그라드는 오싹한 한기를 느끼고는 테이의 말을 막았다. “저기 테이루아님.” “뭐야? 아직 내 말 안 끝났어! 아직 92가지 이유가 남아 있단 말이야 !” “호오. 그래? 그거 다 듣고 싶네. 나도 들어도 돼?” “당연하지! 이리 와서 같이 들어! 티아 누나.... 흐끅!” 얼마나 놀라면 굉장한 소리의 딸꾹질을 낼 수 있는 것일까? 아무튼 레 이르와 이야기가 끝난 티아는 테이와 시이터를 부르러 왔다가 생각지 도 못한 테이의 말을 듣고 생글생글 웃으면서 테이에게 92가지의 이유 를 말하라고 재촉했다. “저기... 누나 그게 아니라...” “괜찮아. 괜찮아. 듣고 싶으니 얼른 이야기 해. 남은 이유가 뭐야?” “........누나 미안해!!” “뭘 미안 할 것까지야. 그냥 있다가 조용히 나 좀 보자.” 티아는 끝까지 미소를 유지하며 다정하게 말했지만 테이는 죽음의 그 림자가 자신을 덮쳐 오는 것을 똑똑히 느꼈다. 랑그람과 제임스 루그 라드는 속으로 테이의 명복을 진심으로 빌었다. 그들도 사신의 그림자 (?)를 똑똑히 느꼈던 것이다. 그렇게 드래곤 남매 티아와 테이는 다이러스 제국에 전설과 음유시인 들의 이야기꺼리를 남기고 떠나갔다. 마지막까지 아쉬운 표정으로 손 을 흔들며 둘을 배웅한 레이르는 드래곤 남매가 사라진 장소를 멍하니 쳐다보다가 곧 기지개를 있는 힘껏 폈다. “응~~차! 자 이제부터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죠?! 고마우 신 두 분이 가져다 준 평화이니 우리 손으로 꼭 지켜야죠.” “아아. 나도 옆에서 도와줄게.” 랑그람이 레이르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자 레이르는 장난을 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흠. 옆에서라... 그 말은 혹시 청혼인가요?” 옛날에 결혼 이야기만 나와도 펄쩍 뛰면서 쩔쩔매던 랑그람을 생각하 며 ‘오랜만에 그 재미있는 모습 볼 수 있겠다’라고 생각한 레이르지 만 오산이었다. “맞아.” 랑그람은 아주 간단하게 수긍을 한 것이다. 덕분에 펄쩍 뛰면서 쩔쩔 매는 쪽은 레이르 쪽이 돼버렸다. “에에에?! 오빠 농담이죠? 진담 아니죠?! 저 놀리려고 한거죠?! 그렇 다고 말해줘요!!” “농담도 아니고 진담이야. 나라를 뺏은 역적이지만 네 곁에서 평생토 록 너를 도와 줄 수 있을까?” 진지한 랑그람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던 레이르는 갑자기 눈물을 방 울방울 떨어지더니 크게 목 놓아 울어버렸다. “어? 왜 그래? 왜 우는 거야?! 아 혹시 싫어서?!” “당연히 싫어요!!” 레이르의 최 상위 공격 마법 프레아급에 해당하는 발언에 랑그람은 충 격을 먹고 몸이 굳어버렸다. 그래도 자기 딴에는 용기를 낸 것인데 싫 다는 말을 들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역시 말이란 끝까지 들 어봐야 되는 거였다. “나는 굉장히 로맨틱한 청혼을 기대했는데 뭐예요?! 이런 폐허에서 그것도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지나가는 어투로 결혼하자니!! 오빠는 정말 너무해! 싫어! 싫어! 진짜 싫어!! 엉엉엉!!” 레이르의 말을 끝까지 들은 랑그람은 빙긋이 웃으면서 울고 있는 레이 르를 와락 가슴에 안았다. “앗! 뭐 하는 거예요?! 이거 놔요!” “나 정말 싫어?!” “싫어요!!” “진짜로 싫어? 진심으로 묻는 거야. 진심으로 내가 싫어?” “......시, 심술쟁이.” 끝까지 좋아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레이르는 반항을 멈추고 랑그 람을 꼭 안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리고 그 것만으로도 랑그람 에게는 충분한 대답이 됐다. “지금 이 기적의 장소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증인으로 너에게 고백할 게. 앞으로 너만을 영원히 사랑하겠다고.... 이정도면 로맨틱하지 않 을까?” “이런 상황에서 그렇게 말하면 거절 할 수 있는 여자가 몇 명이나 되 겠어요? 정말 미워요! 밉지만... 그래도 행복해요. 이 행복을 계속 느 낄 수 있겠죠?” “당연하지. 내가 늘 곁에 있어 줄게. 그러니 레이르도 늘 내 곁에 있 어줘. 사랑해 레이르.” “사랑해요. 랑그람 오빠. 사랑해요. 정말 사랑해요.” 어린 소녀 시절부터 가슴속에서 소중하게 키워왔던 전하지 못했던 사 랑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레이르는 혹시라도 랑그람이 자신의 말을, 진심을 못 들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사랑한다는 말을 계속 반복했 다. 하지만 그것은 곧 랑그람의 입맞춤 때문에 멈춰졌다. 랑그람이 레 이르에게 키스를 하자 둘을 지켜보던 수많은 병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축복 해줬다. 그 기적의 날에 다이러스 제국은 3대째 여왕과 그녀의 부군이 탄생한 것이다. 그리고 나라의 평온을 위해 그리고 국민들과 자신들의 행복을 위해 살 것을 기적의 장소에서 약속했다. 그 축복받은 현장을 멀리서 물끄러미 지켜보던 루그라드는 말에 올라 타서 떠날 채비를 했다. 그의 곁에는 젊은 기사 다섯 명이 함께 하고 있었다. “지금부터 나는 다이러스 제국의 전국을 돌면서 어려움에 처한 백성 을 도와주러 다닐 것이다. 언제 끝날지도 모를 편한 여행길이 아니야. 그런데도 따라 오겠느냐?” 루그라드의 질문에 다섯 명의 기사들은 각자의 뜻을 솔직하게 말했다. “저는 루그라드님과 마지막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저의 젊은 혈기는 평화로워질 다이리 수도에서는 필요 없을 것입니 다. 그러니 루그라드님을 따라가겠습니다!” “저도 여행을 다니면서 많은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습니다!” “저는 아직 기사로서 모자란 부분이 많습니다. 루그라드님의 곁에서 좀 더 수업을 쌓고 싶습니다!” “저의 목숨은 처음부터 루그라드님에게 받쳤습니다. 그러니 루그라드 님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어디든지 따라가겠습니다!” 자신이 가야 할 길에 확신을 가지고 대답하는 다섯 명의 기사를 보는 루그라드에게 미소가 어렸다. “좋아! 가자!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설령 그것이 가시밭길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우리의 선택을 의심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의 정의로 힘없이 당하는 다이러스 백성들을 구하 는 것이다!” “오오옷!” 힘찬 함성과 함께 루그라드를 포함한 여섯 명의 기사들이 힘차게 말을 달렸다. 후에 이들은 다이러스 제국에서 6인의 기사라 불리며 수많은 음유시인의 노래 속에서 전설이 되어 갔다. 그리고 그 리더인 루그라드는 마음속으로 레이르에게 작별인사를 보냈 다. ‘안녕. 내 동생이자 내 첫사랑인 레이르.’ 계속 ----------------------------------------------------------------- 35화 과거가 있기에 현재가 있고, 그리고 미래가 있다.(1) 티아 일행은 레이르들과 작별하고 난 뒤 다이리 성으로 돌아왔다. 이 유는 워프 구슬 때문이다. 티아와 테이는 프론트 연합국에 한번도 가 본 적이 없기 때문에 텔레포트도 워프도 사용할 수가 없었다. 시이터 는 프론트 연합국 사람이니 문제가 없지만 문제는 시이터는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전사였다. 그렇기 때문에 워프 구슬로 시이터가 공간 의 문을 열기 위해서 다이리 성으로 돌아 온 것이다. 라는 것은 표면 적인 이유이고, 진짜 이유는 카렌과의 작별 인사 때문이었다. 레이르가 있는 곳에서 바로 텔레포트 구슬을 사용하면 프론트 연합국 으로 갈 수 있지만 그래도 카렌에게 아무 말도 없이 가버리는 것은 너무하다는 생각을 똑같이 했던 티아와 테이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 이 일단 다이리 성으로 돌아가자고 말을 꺼냈던 것이다. 시이터 역시 그런 둘의 마음을 알아차려서 다이리 성으로 돌아오는 것을 흔쾌히 받아 들였다. 라는 것은 시이터가 표면적으로 내세운 이 유고 그 실상은.... ‘차라리 써 버리는 게 덜 아깝지. 쓰지도 않은 비싼 마법 아이템을 그냥 버리고 올 수는 없는 법!’ 이라는 살림꾼(?)으로서의 자존심 때문이었다. 아마도 이 남자와 결 혼하게 될 여자는 엄청나게 편하게 살거나 - 남편이 살림 다 해주니 깐 - 아니면 엄청나게 시달릴 것이다. - 남편이 자기보다 살림을 잘 하니깐 잔소리가 심할지도.... 아무튼 다이리 성으로 돌아온 티아와 테이를 카렌은 부드러운 미소로 맞아줬다. “어서 오세요.” “다녀왔어. 카렌. 그런데 미안 금방 가봐야 되거든.” 테이의 말에 카렌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게 설명하자면 좀 길어. 미안해. 나중에 꼭 설명해 줄게. 지금은 빨리 프론트 연합국으로 가 봐야 돼.” 테이의 변명에도 카렌은 여전히 고개를 갸우뚱했다. ‘무언가 변하신 것 같네.’ 카렌은 테이의 언행이나 행동들이 의젓해졌다는 것을 느꼈다. 이전의 테이와는 확실히 틀렸다. “얼굴 안 붉히시네요.” “에?” 갑작스런 카렌의 이해할 수 없는 질문에 테이가 멍청한 얼굴로 반문 했다. 그 모습이 우스워 보였는지 카렌은 쿡쿡하고 웃다가 고개를 저 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것보다 프론트 연합국에 가셨다가 나중에라 도 다시 오실 거죠?” “응. 꼭 돌아올게. 누나도 레이르와 꼭 다시 오겠다고 약속했는걸. 그치 누나.” “응 맞아. 반드시 돌아올게.” 다시 돌아오겠다는 테이의 말에 동의하는 티아를 쳐다보던 카렌은 티 아도 분위기가 조금 변했다는 것을 느꼈다. “티아님도 좀 변하셨네요.” “에? 내가?” “네. 좀 변하셨어요. 테이님도 그렇고요. 둘 다 의젓해지셨다고 할 까요?” 카렌의 말을 듣고는 티아는 쑥스러운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그, 그런가? 그런데 테이도 의젓해졌다고? 정말?” “잠깐 누나. 그 질문의 의도는 뭐야?” “글쎄다. 의도가 뭘 까나~.” 티아의 약 올리는 말투에 화가 난 테이가 인상을 찌푸렸고, 여느 때 와 마찬가지로 입 싸움이 시작됐다. ‘많이 의젓해지셨지만 본래 성격들은 변하지 않으셨구나.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잘 됐군요. 신이시여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기 더라도 저 두 분의 본래 모습은 지금처럼 영원히 변치 않으시길...’ 티아와 테이의 모습을 미소를 지으며 지켜보던 카렌이 그렇게 생각할 때 방안을 뒤지며 워프 구슬을 찾던 시이터는 ‘찾았다!’라는 기쁨 의 환성을 질렀다. 시이터가 구슬을 찾았을 때 티아와 테이의 말싸움 도 끝나갔다. “이 바보 동생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티아의 주먹질에 의해 끝난 것이다. 하지만... “아차차! 힘 조절!!” 티아가 뒤늦은 비명을 질렀지만 테이는 이미 천장을 뚫고 날아가 버 리고 난 뒤였다. ‘신이시여. 정정하겠습니다. 티아님의 걸핏하면 주먹부터 나가는 성 격은 고쳐주세요.’ 카렌은 뚫어진 천정으로 들어오는 아침 햇살을 보며 신에게 다시 기 도했고, 시이터는 당황하는 티아를 보고는 한숨을 쉬다가 테이를 찾 으러 밖으로 나갔다. 덕분에 둘만 남게 되자 카렌은 티아에게 충고를 했다. “......힘도 세지셨네요. 변함없는 모습도 좋지만 폭력을 사용하는 버릇은 그만 고치시는 게 좋을 거예요.” “헤헤헤. 그게 나도 모르게 자꾸만....” 쑥스러운 웃음을 짓던 티아는 곧 정색을 하고 진지한 얼굴로 카렌을 쳐다보며 말했다. “저기 카렌. 제임스를 정말 사랑해.” “제 모든 것을 걸고 사랑해요.” 카렌이 바로 자신 있게 대답하자 티아는 웃으면서 다른 질문을 했다. “그럼 설령 제임스가 다른 모습이 되도 계속 사랑할거야?” “제가 사랑하는 것은 제임스의 겉모습이 아닌걸요. 설령 다른 모습 이라 해도 제임스의 영혼이 안 변하면 제 사랑도 변치 않아요. 그런 데 그걸 왜 물으시죠? 혹시 제임스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요?” “아니 그냥. 궁금해서. 헤헤헤 아무것도 아니야. 아니 아무것도 아 닌 게 아니지만... 곧 있으면 알게 돼.” 티아의 아리송한 대답에 카렌은 재차 물어보고 싶었지만 때마침 시이 터가 테이를 업고 들어오는 바람에 더 이상 물어볼 수가 없었다. “티아양. 이제 그만 가자.” 시이터는 이동할 곳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워프의 구슬을 발동시켰다. 곧바로 공간의 문이 열리고 작별의 시간이 왔다. “자 그럼 카렌. 나 잠시만 다녀올게.” 카렌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결국 티아가 물었던 이상한 질문의 뜻은 알지 못했지만 카렌은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조금 있으면 알게 된다고 티아가 말했으니 그 말을 믿기로 했다. 티아가 먼저 공간의 문으로 들어가고 시이터가 들어갈 때 테이가 겨우 정신을 차렸다. “에고고 머리야. 응? 아앗! 잠깐만요! 시이터씨!! 스톱!! 멈춰요?! ” 정신을 차린 테이는 눈앞에 보이는 공간의 문을 보고 기겁을 하며 난 리를 폈다. 시이터는 테이를 내려주고 난 뒤에 공간의 문으로 들어가 며 한마디 던졌다. “작별의 인사는 간단히 해. 공간의 문이 오래 열리지 않는 다는 것 은 잘 알고 있지? 빨리 들어와야 된다.” “알고 있어요.” 테이는 시이터가 공간의 문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카렌을 쳐다봤다. “자 그럼 나도 그만 가 볼게. 행복하게 살아야 돼. 만약에 제임스가 널 울리면 언제든지 말해. 내가 달려와서 한방 먹여 줄게.” 테이의 말에 카렌은 테이의 어느 면이 달라졌는지 눈치 챘다. 카렌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떡였다. “테이님도 꼭 행복해 지셔야 되요.” “누나만 없다면 난 충분히 행복했을 거야.” 테이가 머리에 난 혹을 어루만지며 불만 어린 소리를 했지만 카렌은 그 말이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 그럼 나도 이만 가볼게. 안녕 카렌. 다시 돌아올게.”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테이가 들어가고 난 뒤에 공간의 문이 닫혔다. 하지만 카렌은 공간의 문이 사라진 장소를 한참동안 바라봤다. 그리고 끝내 테이에게 전하 지 못한 진짜 작별 인사를 마음속으로 전했다. ‘안녕히 가세요. 내 첫사랑.’ 카렌은 테이가 자신에 대한 마음을 완전히 정리하고 방황을 끝냈다는 것을 알아 차렸던 것이다. 그래서 미안하지만 그럴수록 자신이 더 행 복해져야겠다는 생각과 테이의 앞으로 다가올 행복을 진심으로 기원 했다. 티아와 테이가 떠나고 난 뒤 이 주후에야 다이러스 제국의 본대가 수 도로 돌아왔다. 이미 전쟁에서 이겼다는 소문과 생명의 기적을 일으 킨 여신에 대한 소문은 다이러스 제국 전 국토에 퍼져 있었다. 6인의 기사들이 들리는 마을마다 소문을 내 준 덕분이었다. 그리고 정체를 숨긴 루그라드는 굳이 자신을 악역으로 만들어서 랑그람이 레이르를 도와주기 위해 반란을 일으켰었다는 소문도 내고 다녔다. 덕분에 랑그람에게 반감을 가졌던 국민들은 랑그람과 레이르가 같이 수도에 돌아왔을 때 열렬하게 ‘랑그람 만세!’를 부르짖어 줬다. 얼 마 전까지 ‘배신자 랑그람’이라고 수군거리던 과거와는 정반대의 상황에 랑그람은 당황했다. 수도 다이리로 돌아오면서 6인의 기사가 내고 다니는 소문은 접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로 국민들이 지지를 해 줄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기 때문이다. “이거 나라의 원수에서 나라의 영웅도 종이 한 장 차이인가?” 억지웃음을 짓느라 무리하게 안면 근육에 힘주는 랑그람의 얼굴에 같 은 말에 타고 있던 레이르는 킥킥대며 웃었다. “뭐가 우스워?” “속으로는 기쁘면서 불평을 늘어놓는 모습이 귀여워서요.” “귀, 귀엽다고?” 순간 랑그람의 얼굴은 구겨졌다. 하지만 레이르는 그 얼굴에 전혀 신 경을 쓰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아주 솔직하게 말했다. “네. 솔직히 칭찬 받으니 기쁘지만 한편으로는 부끄러워서 마음에도 없는 말을 투덜거리는 게 얼마나 귀여워요. 아 그리고 보니 티아님과 테이님도 그랬죠. 단지 그 분들은 아주 솔직하게 부끄러워 하셨지만 랑그람 오빠는 억지로 부끄러운 것을 숨기려 하는 점이 다르네요. 뭐 그런 랑그람 오빠 쪽이 훨씬 더 귀엽지만요.” “귀, 귀엽다고? 내가 티아님과 테이님보다 훨씬 더?” 랑그람의 얼굴은 구겨짐에 새파랗게 질리기까지 추가됐다. 마지막 싸 움에서 랑그람은 경향이 없어서 티아와 테이를 자세히 보지 못했었지 만 나중에 감사 인사를 받으면서 쩔쩔매는 둘이 나이에 어울리지 않 게 귀여운 소년 소녀를 보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런 둘보다 랑그람 이 더 귀엽다는 레이르의 발언은 사나이(?) 인생을 살아왔다고 자부 하는 랑그람의 믿음을 완전히 부정하는 말이었다. “레이르. 그 말은 정말 너무하다.” “어머! 뭐가 너무해요? 사랑하는 사람의 여러 가지 모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건데요. 그 사람의 또 다른 모습들은 오 직 사랑하는 사람만이 볼 수 있는 특권인걸요. 안 그래요?” “그, 그런가?” “그래요. 사랑하는 사람을 항상 쳐다 볼 수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의 여러 가지 면을 발견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러니 그것 가지고 너무하 다는 말을 한 랑그람 오빠가 너무해요.” 입을 삐죽이 내밀며 불만을 토로하는 레이르의 모습. 그것은 랑그람 이 가장 많이 봐왔던 레이르의 모습이었다. 어릴 적에는 레이르를 골 려줬을 때 많이 봤었고, - 물론 그에 대한 복수도 같이 받았었다 - 사춘기 시절에는 레이르의 마음을 피하느라 많이 봤던 표정이었다. 삐진 레이르의 표정은 랑그람에게 오랜만에 옛 추억을 되살려 준 것 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항상 너의 삐진 표정만 본 것 같다.” “그렇게 만든 게 누군데요.”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너의 다른 모습을 보기 위해서 노력 좀 해야 되겠어. 나도 좀 더 많은 레이르의 숨겨진 표정을 보고 싶어.” “그렇게 하려면 보통 노력으로는 부족해요. 랑그람 오라버니~.” 옛 추억을 생각하던 랑그람은 레이르의 장난스런 말에 킥킥 웃으면서 오랜만에 좀 골려줄까 하는 생각을 가졌다. 어릴 적에 서로 지기 싫 어서 말싸움부터 장난까지 다재다능하게 서로를 놀려대던 둘이었다. 그런 추억을 생각하던 랑그람에게 그 어릴 적 장난기가 다시 머리를 들고 일어선 것이다. “그런데 다 좋은데 말이야. 너는 언제까지 나를 오빠라고 부를 거냐 ?” “예?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럼 오빠를 오빠라고 안 부르고 뭐라고 불러요?” 정말로 모르겠다는 순진한 레이르의 물음에 랑그람은 슬며시 미소 지 으며 레이르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어차피 결혼 할 생각이니 이제부터라도 슬슬 여보라고 불러야 되지 않을까? 아니면 낭군님도 좋고, 아 신혼이니 둘이 있을 때는 자기라 고 부르는 게 낫겠지? 안 그래 자기.” 레이르의 얼굴이 삽시간에 잘 익은 사과가 됐다는 것은 굳이 설명 안 해도 될 것이다. 그리고 레이르도 옛날에 서로를 약 올리던 추억이 갑자기 생각나서 지금 랑그람의 말이 자신을 약 올리는 것이라는 것 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레이르에게는 아쉽게도 지금 랑그람의 말을 받아 칠 말은 생 각이 나지 않았다. 아니 하나 생각나는 것은 있었다. 지금 이 상황에 서 레이르가 수긍하고 랑그람에게 장난을 가득 담아 여보나 자기라는 말을 건네면 대려 랑그람이 당황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항상 오빠라 고 생각했던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한다는 것은 행복했지만 역시나 당 장에 자기니 여보니 하는 말은 도저히 할 용기는 없었다. ‘우우. 이번에는 졌어. 심술쟁이 랑그람 오빠. 다음에 꼭 복수할거 야.’ ‘후후후 복수하겠다고 다짐하는 얼굴이군. 내가 너랑 어릴 적부터 살아왔는데 그 표정을 모를라고? 도전은 받아주마. 하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이 오빠는 결코 만만치 않을 거다.’ 아마도 이 둘이 결혼하고 난 뒤에는 부부싸움도 참으로 재미있게 할 커플일 것이다. 그렇게 둘이 행복(?)을 확인하고 있을 때 둘은 동시 에 음침한 기운에 몸을 떨고는 뒤를 돌아 봤다. 그 곳에는 축제 분위기로 밝은 와중에도 눈에 보일 정도로 음침한 기 운을 내뱉고 있는 제임스의 모습이 보였다. “재미있어 보이는 구나. 휴우. 너희들이 부럽구나. 너무나 부러워. ” 다이리 수도로 돌아오는 내내 침울한 분위기의 제임스는 수도에 도착 하자 이제는 그 누구라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의 음침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그것은 인간으로 다시 살아 난 것은 기쁘지만 과연 인간이 된 자신을 카렌이 받아 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저기 제임스 아저씨 아직도 그 일이 걱정 되세요? 에이. 이제 그런 걱정은 그만 접으세요. 카렌 아줌마가 아저씨 걱정대로 모른 척 할 리가 없잖아요.” “랑그람 오빠 말이 맞아요. 몇 십 년... 아니지 두 분의 경우는 몇 백 년을 같이 사신 분들인데 겨우 겉모습이 변했다고 싫어하실 리가 없잖아요.” “휴우. 카렌이 그러지 않을 거라는 것은 내가 더 잘 알아. 알다시피 난 몇 천년간을 인간이지만 인간이 아닌 존재로 살았다. 그리고 그 덕분에 카렌과 아이들을 지켜줄 수 있었고... 하지만 이제 인간이 되 긴 했지만 그것은 동시에 카렌과 아이들을 지킬 힘도 잃었다는 뜻이 야. 내가 걱정하는 것은 바로 그것 때문이다.” 랑그람과 레이르는 물끄러미 제임스를 쳐다봤다. 척 봐도 원만한 전 사도 울고 갈 듬직한 체격. 그리고 제임스가 인간이었을 때 기사였으 니 검술 실력도 상당할 것이다. 그리고 수 천년동안 갈고 닦은 격투 술. 분명히 불사의 다크 나이트였을 때는 인간 같지 않은 강함을 자 랑했지만 지금 인간이 됐다 하더라도 제임스는 일반 전사와 기사를 훨씬 뛰어넘는 힘과 체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니 지금 제임스의 걱 정은.... ‘쓸데없는 것을 걱정하고 계셨군.’ 랑그람과 레이르의 생각대로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그렇게 행복과 걱정이 뒤섞인 행렬은 이윽고 성에 도착 했다. 성에 돌아오자마자 랑그람은 전쟁의 뒤처리를 위해서 유크로드와 바쁘게 움직였고, 레이르도 정식으로 성에 얼굴을 내비쳐서 장차 여왕으로서 해야 될 일들을 처리했다. 그리고 성안의 하녀들과 시종들은 저녁에 열릴 축하 파티를 준비하느라 굉장히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그 와중에 제임스는 카렌이 기거하는 별궁의 거실 문 앞에서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었다. ‘진정하자. 진정하자. 그래 전쟁에 나가는 것보다는 낫지. 이 정도 는 아무것도 아니야. 이 정도는..... 차라리 전쟁 나가는 것이 낫겠 다.’ 그렇게 한 시간을 머뭇거리던 제임스는 간신히 마음을 잡고 마지막으 로 크게 심호흡을 한 다음 거실 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하지만 제임 스가 열기도 전에 문이 열렸다. 카렌은 사람들이 다 돌아왔는데도 제임스가 돌아오지 않는 것에 걱정 이 돼서 찾으러 나선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 문 앞에 사람이 서 있는 것에 깜짝 놀랐다. 상대방도 깜짝 놀랐는지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섰 다. ‘누구지?’ 카렌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땀을 뻘뻘 흘리는 덩치 큰 남자를 쳐다봤 다. 평소 오던 시종은 아니었다. 갈색 머리에 평범한 얼굴. 그리고 제법 큰 셔츠가 작아 보일 정도의 한 덩치 하는 전사 같은 남자였지 만 의외로 피부는 아주 희었다. 마치 오랫동안 햇빛을 못 본 것처럼. ... 더욱더 이상한 점은 그 남자의 눈이었다. 아주 당혹감에 물들어 있는 갈색 눈은 처음 보지만 낯이 익은 눈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낯 선 남자를 쳐다보던 카렌은 곧 빙그레 웃었다. “어서오세요. 제임스. 성에 도착한지가 꽤 됐는데 왜 이제야 오신 거예요?” “어? 내, 내가 제임스인 줄 어떻게 알았어?” “무슨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하시는 거죠? 아내가 남편 알아보는 거 야 당연하죠. 뭐 정확히는 설마 했지만 티아님께서 멋진 선물이 조만 간 도착할 거라는 말을 들었거든요. 그리고 티아님의 기적에 대한 소 문도 들었고요. 그래서 금방 알아챈 거죠.” “서, 선물?” 카렌의 말에 제임스는 어이없는 얼굴로 한숨 섞인 말을 내뱉었다. “그럼 머리에 리본이라도 매고 올 걸 그랬군. 그렇다면 당신이 좀더 빨리 알아챘을 텐데 말이야.” “호호호. 그것도 그렇네요. 그럼 지금 한번 달아 보실래요?” 제임스의 말에 배를 잡고 웃던 카렌은 아예 주머니에서 애들 용 리본 을 꺼내서 정말로 포장(?)이라도 할 듯이 물었다. “농담이야! 농담!!” 물론 제임스는 펄쩍 뛰면서 뒤로 물러났고, 하얀 피부는 금세 핑크색 으로 변했다. “역시나. 그 색깔의 당신은 귀여워요.” “한 덩치 하는 인간이 됐는데 귀엽다는 말은 너무 심한 거 아니야? ” “걱정 마세요. 멋있다는 생각도 하고 있는 걸요.” “내 얼굴은 그리 멋있는 얼굴이 아닌데....” “내 눈에는 멋있게 보여요. 이 세상 그 어떤 남자보다도 멋있고, 그 러면서도 때로는 귀엽게 보이는 행동을 하는가 하면, 평소에는 무뚝 뚝해 보이고, 그러면서도 따뜻하고 다정다감한... 내가 사랑하는 남 자의 그 모습 그대로인걸요.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카렌....” 감격한 표정의 제임스를 올려다보며 카렌은 얼굴에 홍조를 띠며 눈을 감았다. 그 분위기에 휩쓸린 제임스는 그대로 천천히 카렌의 입술에 입을 맞추며 강하게 카렌을 끌어안았다. ‘변한 것은 단 하나. 더 이상 차갑지가 않은 따뜻한 당신의 몸. 하 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겉 모습일 뿐. 다른 모든 것은 제가 사랑한 내 남편의 모습 그대로예요. 사랑해요. 언제까지나....’ 계속 ---------------------------------------------------------------- 35화 과거가 있기에 현재가 있고, 그리고 미래가 있다.(2) 수많은 음유시인들의 밥벌이(?)를 만들어 준 티아와 테이는 프론트 연합국의 모샤니국의 수도 암츠라에 도착해서 화려한 도시의 위용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구경하기에 바빴다. 그 모습은 완벽하게 처음 도 시에 놀러 온 시골 아이들의 모습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렇게 보이더라도 티아와 테이는 이리저리 눈을 돌리며 구경 하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도시의 건물들이 화려한 것도 한몫했지 만 그보다 둘을 더 놀라게 한 것은.... “우와! 저기 오크들이 있어!” “말마라. 저쪽에는 고블린들도 어슬렁거리면서 돌아다니고 있어. 마 족이나 엘프 그리고 드워프들은 너무 많아서 오히려 자연스럽게 보이 네.” 그렇다. 둘은 수많은 종족과 덤으로 일부 약간의 이성을 가진 몬스터 들까지 아주 자연스럽게 도시를 거니는 모습에 얼이 빠진 것이다. 앞 서 걸으며 안내하던 시이터는 둘의 탄성에 우쭐해졌는지 자랑을 한 바가지로 늘어놓았다. “겨우 이정도로 놀라면 곤란하지. 이 곳은 암흑의 카이저 드래곤인 블랙시터님의 관할지니 어둠에 속한 종족들이 많은 것은 당연한 거 야. 거기다가 이 곳 대부분의 건물들은 드워프의 손에 만들어졌기 때 문에 다른 나라 건물보다 훨씬 안전하고 아름다운 건축물이 많고, 수 많은 이 종족들이 모이다보니 다양한 음식들이 생겨나서 다른 나라에 서는 결코 맛 볼 수 없는 요리도 많단다. 또 모샤니국은 프론트 연합 국의 다른 나라보다 군사가 막강하지. 그것도 다 어둠에 속한 종족들 즉 오크와 고블린으로 이루어진 군대가 있기 때문이야. 몬스터 군대 라고는 하지만 기강은 그 어떤 인간 군대에 비교해도 결코 떨어지지 가 않아. 이게 다 블랙시터님 덕분이지. 어? 애들아?” 시이터가 한참 모샤니국에 대해서 열변을 토할 때 티아와 테이는 저 쪽에서 신기하게 보이는 음식을 사 먹고 있었다. 한 마디로 시이터는 무시를 당했던 것이다. “나 완전히 미운털이 박혀버린 건가?” 그동안 시이터의 행적을 살펴보면 완전히 미운털이 박히고도 남을 일 이 참 많았다. 이런걸 뿌린 대로 거둔다고 하던가? 티아와 테이는 기다란 빵 속에 고기를 넣고 처음 보는 소스를 얹은 음식에 매료된 상태였다. “아줌마. 하나 더 주세요.” “저는 네 개 더 주세요.” 티아는 네 개를 더 시키는 테이를 못 마땅한 눈으로 바라봤다. 막 새 로 나온 빵을 입에 넣으려던 테이는 티아의 시선을 느끼고 왜 그러느 냐고 물어보자, 티아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렇게 먹다가 돼지가 돼도 난 모른다.” “걱정 마. 난 이 정도 먹어도 살 안 쪄.” “인간들 중에 그렇게 말을 하다가 어느 날 일어나보니 뱃살이 출렁 이는 경우가 많다지.” “그건 누나 이야기 아니야?” “호오~ 우리 테이 참 많이 컸구나.” 티아가 이를 갈면서 손에 마력을 모으자 테이는 남은 빵을 한 손에 다 들고 뒤로 물러서며 외쳤다. “잠깐만! 먹을 때는 오크도 안 건든다더라! 꼭 밥 먹을 때까지 한바 탕 해야 속이 시원한거야?!” “그래? 그럼 밥 먹고 나서 보자.” 티아는 손에 모은 마력을 거두고 생긋 웃으며 말했지만 테이 입장에 서 티아의 말 속에 담긴 뜻은 그냥 넘겨들을 수가 없었다. “소화도 안 되게 그렇게 겁을 줘야 속이 시원해?!!” “먼저 시작한 건 너잖아!” “누나가 먼저 살 찔거라는 말로 놀렸잖아!” “그게 놀린 거냐?! 걱정해 준거지! 놀리는 것과 걱정해 주는 것도 구별 못하냐?!” “절대 걱정해 주는 말로는 안 들렸어!!” 서로를 노려보며 언제라도 무언가를 터트릴 듯하게 폼 잡던 둘은 주 위의 이목이 자신들에게 집중 된 것을 느끼고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급히 돈을 치루고 그 자리를 빠져나갔다. “저기 티아양! 테이군! 그 쪽이 아니야!! 신전은 이쪽으로 가야 돼! 하여튼 질리지가 않는 남매야.” 그 후 티아와 테이는 가는 데마다 신기한 것이 보이면 꼭 들려서 구 경을 했고, 그런 둘을 시이터는 어르고 달래서 겨우 신전에 데려갔 다. 암츠라에 도착한 것은 이른 아침이었지만 티아와 테이 덕분에 시 간을 헛되이 허비해버리고 신전에 도착 한 것은 저녁이 다 대서였다. “지쳤다.” 시이터는 신전에 도착하자 거리에서 쇼핑을 한 물건들을 내려놓고 길 게 한 숨을 쉬었다. 티아와 테이의 손에도 쇼핑을 한 증거물들이 잔 뜩 들려 있었다. 하지만 진짜 지쳐있는 시이터와는 정 반대로 둘은 아직도 힘이 남아돈다는 얼굴들이었다. “오빠는 겨우 그거 돌아다녔다고 그렇게 지친 거예요?” “시이터씨 생각보다 허약하네요. 단련 좀 해 두세요.” 티아와 테이는 시이터를 씹을 때만큼은 손발이 척척 맞았다. 하지만 시이터도 할 말은 있었다. ‘젠장! 애들 데리고 하루 종일 쇼핑하는 게 쉬운 일인 줄 아냐?! 차 라리 하루 종일 검술 연습을 하라면 하겠다!’ 물론 그 말은 입밖에 꺼내지 않았다. 그랬다가는 지금 이상으로 더 힘든 일을 겪을게 뻔할 뻔자니.... 테이는 한숨을 푹푹 쉬는 시이터를 내버려 두고 검은 색의 신전을 올 려다봤다. 그리고 그 압도적인 크기에 절로 입이 벌어졌다. “우와! 진짜 크다.” “성만한 신전이라니 처음 봐. 데스타 제국에서 봤던 성도 이것보다 작았는데....” 티아도 놀란 눈으로 엄청난 크기의 신전을 보고 탄성을 뱉었다. 티아 와 테이가 엄청난 크기의 신전에 감동하고 있을 때 시이터는 땅에 내 려놨던 물건들을 손에 들고 별거 아니라는 표정으로 설명해 줬다. “이 정도 크기는 돼야 블랙시터님의 본 모습이 다 들어간단다. 다른 연합국의 신룡님들 신전도 전부 이 정도 크기야.” “이 정도로 신룡님들이 크단 말이죠. 굉장하다.” 어릴 적에 봤던 일족의 로드보다 배는 큰 크기에 테이는 진심으로 감 탄했다. 하지만 티아는 테이와 같이 솔직하게 감탄 할 수가 없었다. “뭐해요?! 빨리 들어가요! 신룡님들께서 기다리실텐데 얼른 들어가 자고요!” “에? 아 응.” “누나 갑자기 왜 그래?” “시끄러워! 얼른 들어가자면 빨리 들어갈 것이지 뭔 말이 많아?!” 갑자기 닦달을 하는 티아를 남자들은 이해를 할 수 없었지만 티아는 나름대로 아주 큰 이유가 있었다. ‘그럼 나도 나중에 저 정도로 커진단 말이야?! 절대 싫어! 죽어도 싫어! 결심했어! 역시 이따위 힘은 봉인할거야!!’ [이제야 아이들이 온 모양이군.] 시이터와 비슷하게 생긴 검은 머리의 남자가 입구 쪽을 보면서 말했 다. 엄청나게 크고 넓은 홀은 몇 백 명의 젊은 남녀가 춤판(?)을 벌 여도 남을 정도의 크기였다. 그 큰 공간의 중앙에 여섯 명의 사람들 이 흥분에 휩싸인 얼굴로 입구 쪽을 쳐다봤다. [거 참. 왜 이렇게 늦게 온 거지? 아침에 이 곳에 도착하지 않았었나 ?] 백발의 짧은 머리카락을 치켜세운 날카로운 인상의 남자가 투덜대자 옆에 있던 긴 녹색 머리의 청년 엘프가 쓴웃음을 지으며 백발의 남자 를 말렸다. [빙람드님은 여전히 성질이 급하시군요. 성룡이라고는 하지만 이제 막 성룡식을 치룬 아이들이니 이 곳 모샤니국이 신기해서 구경 다니 느라 늦었을 겁니다. 그 정도는 이해해줘야죠.] [흥!] 하지만 빙람드라 불리는 백발의 남자는 콧방귀를 뀌며 화가 난 표정 을 지우지 않았다. [에바로온 빙람드는 애들이 버릇없다고 화가 난 게 아니야. 몇 천 년 만에 생긴 카이저 드래곤의 귀여운 아이를 빨리 보려고 새벽부터 와 서 기다렸는데 늦으니 심통이 난거야. 그렇지 빙람드?] 푸른 머리카락이 발목까지 오는 인자한 누나 같은 느낌의 여자가 녹 색 머리의 엘프를 에바로온이라 부르며 빙람드의 머리를 쓰다듬자 머 리카락과 똑같이 흰 빙람드의 얼굴은 금방 붉어졌다. [슈아 누님! 제발 머리 좀 쓰다듬지 마세요! 제 나이가 얼마인지 아 십니까?] [음. 내 나이보다는 적다는 것은 알아.] [으윽.] 슈아라고 불린 푸른 머리의 미녀가 빙람드와 아옹다옹하고 있는 것을 웃으면서 지켜보던 검은 머리의 남자는 여섯 명 중에서 제일 안절부 절 못 하는 어깨까지 오는 붉은 머리를 가진 청년에게 말했다. [가디락스 불안해하는 그 기분은 잘 알겠지만 그만 진정하게. 조금만 있으면 자네의 귀여운 손자 손녀들이 금방 들어올게야.] 하지만 검은 머리의 남자 말이 안 들렸는지 가디락스라고 불린 붉은 머리의 청년은 계속 주위를 왔다 갔다 하면서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가디락스? 이봐 가디락스! 어이! 가디락스!!!] [네?! 네!! 아 블랙시터님 절 부르셨습니까?] 검은 머리의 남자. 아니 블랙시터는 가디락스를 한번이 아니고 정확 히 네 번을 불렀었다. 그런데 이제야 쳐다보며 한다는 말이 부르셨습 니까? 라니.... [아니 됐네. 그것보다 아까부터 무엇을 그리 중얼거리고 있는 건가?] 블랙시터의 질문에 가디락스는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 다. [그게 손자 손녀들에게 처음에 어떻게 인사를 해야 좋을지 생각하던 중이었습니다. 위엄 있게 말하는 게 좋을까요? 아니면 친근하게 인사 를 하는 것이 좋을까요? 아니 그것보다는 재미있는 할아버지라는 인 상을 주는 것도....] [........그냥 포근한 느낌을 주는 인상은 어떤가?] [포근함이라.... 그거 좋네요! 그럼 그렇게 하기로 하고.... 첫 인사 는 뭘로 하지? 역시 안녕 애들아? 아니야 그건 너무 평범하고, 내가 너희들의 친할아버지 가디락스란다. 음 이건 너무 딱딱하다.] [........] 다시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서 열심히 첫인사를 생각하는 가디락스를 보며 블랙시터는 의미를 모를 한숨을 쉬었다. 그때 제일 뒤에서 팔짱 을 끼고 잠자코 있던 황금색 머리카락의 중년 남자가 조용하지만 위 엄이 서린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들어오는 것 같군.] 그 말에 다섯 명의 열개의 눈동자가 일제히 문으로 쏠렸다. 제법 큰 마법의 문이 해제의 룬어에 의해 서서히 열리고 있었다. 동시에 약간 어두운 홀에 밖에서 흘러들어오는 빛이 들어왔고, 그 빛 의 중앙에 생명의 기운을 가득 머금은 것 같은 은색이 반짝이고 있었 다. 반짝이는 은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티아와 테이는 가장 신에 가깝 다는 카이저 드래곤의 신전에 발을 들여 놓았다. 계속 ---------------------------------------------------------------- 35화 과거가 있기에 현재가 있고, 그리고 미래가 있다.(3) 길지도 짧지도 않은 복도를 지나 커다란 문 앞에 선 티아는 뒤에 남 자들이 오기전에 먼저 들어갈 셈으로 문을 힘껏 열었다. “어라?” 하지만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거 마법이 걸린 건가?” 티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문을 살펴보고 있을 때 테이와 시이터가 겨우 티아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늦어! 왜 이렇게 늦게 오는 거야?!” “몰라서 물어?! 누나가 짐을 나한테 맡기는 바람에 앞이 보이지가 않았단 말이야! 안 넘어지고 여기까지 온 것만도 용하다는 생각은 안 해?!” 테이는 짐 옆으로 고개를 빼서 티아에게 화를 냈다. 아까 빨리 들어 가자고 닦달을 하던 티아는 짐을 테이에게 던지다 시피 맡기고 여기 까지 한달음에 뛰어 왔던 것이다. “아! 그랬지. 미안. 문이 안 열려서 짜증이 났는지 말을 좀 심하게 해버렸네. 정말 미안.” “문이 안 열려? 누나의 무식한 힘으로도 안 열린단 말이야?” 테이는 그냥 티아가 솔직하게 사과 할 때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다 면 그래도 중간은 갔을 것이다. “무식하다는 말은 좀 빼줄래?” “아야야야야!!” 티아는 그냥 콱 주먹을 날릴까 하다가 아까 테이에게 맡긴 물건 중에 깨지는 물건들도 있기 때문에 참고 뺨을 꼬집는 것으로 대신했다. 물 론 무식한 힘을 - 테이 왈 - 가득 담아서.... “자. 이제 물건은 여기 옆에 내려놓아라. 그리고 티아양 문을 열어 야 되니 뒤로 물러서 줄래.” 티아와 테이가 뒤로 물러서자 시이터는 문 앞에 다가가서 나직하게 룬어를 외웠다. [노크] 그러자 아까 티아의 힘에 꿈쩍도 하지 않던 거대한 철문이 소리 없이 스르르 열리기 시작했다. 문이 열리면서 복도보다 조금 어두운 방이 보였고, 성질 급한 티아는 문이 완전히 다 열리기 전에 방안에 발을 들여 놓았다. ‘넓다!’ 티아가 방이라고 생각했던 곳은 홀이라고 불러도 될... 아니 원만한 성의 홀보다 더 크고 넓은 장소였다. 뒤이어 테이도 홀 안으로 들어 와서 그 거대한 크기에 입을 딱 벌리고 탄성을 뱉었다. “자 난 여기까지란다. 여기까지 너희들을 데려오는 것으로 내 임무 는 끝났지. 이제 이별이구나. 즐거웠다 애들아.” “어? 시이터 오빠?” 완전히 열렸던 문은 티아와 테이가 홀의 크기에 놀라고 있을 때 소리 도 없이 닫히고 있었다. 그리고 그 건너편에서 시이터는 미소를 지으 며 손을 흔들었다. 시이터는 이 정도면 제법 멋있는 이별이라고 생각 하며 만족하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놔 둘 티아가 아니었으 니..... “시이터 오빠! 어디 가지 말고 우리 짐이나 지키고 있어요!” 순식간에 시이터를 짐꾼으로 취급 해버린 것이다. 덕분에 시이터의 얼굴은 어이 없어하는 조금 멍청한 얼굴이 돼버렸고, 그대로 문은 완 전히 닫혔다. 홀은 약간 어둡기는 했지만 티아와 테이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 넓은 홀 안에 누군가 있나 찾기 위해서 두리번거리던 티아는 정체 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저 끝에서 열심히 달려오는 것을 발견했다. “신룡님일까?” “설마 신룡님이 저렇게 경박하게 뛸라고.... 여기 안내하는 인간이 아닐까?” 하지만 테이의 예상은 멋지게 빗나갔다. “어서 오거라! 내 손주들아! 내가 너희들 친할아버지다!!” “으아악!” “꺄아악!” 무서운 속도로 한달음에 달려온 가디락스는 티아와 테이를 한꺼번에 품에 안아서 마구 볼을 비비며 반가워했다. 물론 티아와 테이로서는 전혀 반갑지 않은 인사라는 것이 문제였지만... 아까 가디락스가 그렇게나 고민했던 포근한 모습의 할아버지 모습은 티아와 테이의 모습을 본 순간 기억의 저편으로 날아갔고, 오로지 본 능(?)에 따라 행동하는 바람에 최악의 첫 대면이 돼버린 것이다. “이거 놔주세요!!” “꺄악! 아파요! 제발 놔주세요!!” 티아와 테이가 애원을 했지만 사랑스런 손자 손녀의 비명이 들리지도 않는지 가디락스는 도통 놔 줄 생각을 안했다. “가디락스 그만 애들 좀 놔주게. 그러다가 애들 잡겠어.” 녹색 머리의 엘프의 모습으로 변해 있는 에바로온이 혀를 차며 떼놓 지 않았다면 티아와 테이는 그대로 기절해버렸을 것이다. “애들아 괜찮니? 내 이름은 에바로온. 대지를 관장하는 그린 카이저 드래곤 에바로온이란다.” 겨우 정신을 차린 티아와 테이는 얼떨떨한 와중에도 급히 고개를 숙 여서 인사했다. “아, 안녕하세요? 저는 티아루아이고, 이쪽은 제 동생 테이루아입니 다.” ‘어떻게 블랙시터님의 신전에 우리 친할아버지와 그린 신룡님이 계 신거지?’ 티아가 그 의문의 해답을 찾기도 전에 이번에는 푸른 머리카락을 발 목까지 기른 미녀가 티아와 테이의 얼굴을 보고는 웃으며 인사했다. “어머나! 정말 귀여운 아이들이네. 음 역시 실버 일족의 아이들이 제일 귀여운 것 같아. 나는 물을 관장하는 블루 카이저 드래곤 바슈 티어. 그냥 슈아 이모라고 부르면 된다. 너희 친할아버지인 가디락스 보다 연장자지만 그렇다고 할머니라는 소리하면 가만 안 둔다.” ‘어쩐지 티아 누나 같은 느낌이 드는 분이다.’ 테이는 바슈티어라는 카이저 드래곤에서 어쩐지 티아와 같은 느낌을 받아서 자연스럽게 몸이 긴장을 해버렸다. “슈아 누님 애들 겁 좀 주지 마세요. 저것 봐요. 남자애가 얼었잖아 요.” “빙람드! 헛소리하면 죽어!” ‘으아악! 역시 티아 누나와 똑같은 성격이야!! 카이저 드래곤의 여 자는 원래 성격이 난폭한건가?!’ 테이는 바슈티어가 자신에게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 었지만 자신도 모르게 뒤로 한 발짝 물러서게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 정도로 바슈티어와 티아의 성격은 닮은 데가 많았다. “쯧. 걸핏하면 주먹부터 드시는 그 성질 좀 고치세요. 반갑다. 난 바람을 관장하는 화이트 카이저 드래곤 빙람드 어르신이다. 내 이름 을 똑똑히 기억해야 된다. 알았냐? 꼬맹이들.” 무뚝뚝하고 퉁명스런 빙람드의 소개에 티아와 테이는 기가 질린 얼굴 로 똑같은 생각을 했다. ‘슈아 이모랑 막상막하이신 성질이시잖아!!’ 그런데 티아와 테이는 어느새 마음속으로까지 바슈티어 즉 슈아를 이 모라고 자연스럽게 부르고 있었다. 그렇게 안 하면 어쩐지 위험해 질 것 같은 야성의(?) 감 때문에 티아와 테이의 무의식에 슈아님은 슈아 이모라는 정보가 각인 된 것이다. “빙람드님! 슈아님! 애들 겁 좀 그만 주세요! 안녕 내 티아루아와 테이루아였지? 방금 전에는 미안 짓을 해버렸구나. 너무 반가워서 그 런 것이니 이해해주겠지? 나는 너희들의 친할아버지이자 불꽃을 관장 하는 레드 카이저 드래곤 가디락스란다. 만나서 정말 반갑구나.” “아? 네. 아,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겨우 친할아버지와 손자 손녀간의 정상적인(?) 인사가 오가고 난 뒤 에 티아가 찾던 용물이 앞에 나왔다. “나는 잘 알고 있겠지? 시이터의 몸속에 있던 내 영혼의 일부로 몇 번 너희들과 이야기 했던 어둠을 관장하는 블랙 카이저 드래곤 블랙 시터이다.” 겨우 아는 얼굴이 나타나자 티아와 테이는 자신들의 친할아버지와 대 면한 것보다 더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정확히 말하면 티아와 테이는 블랙시터의 진짜 몸으로 대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시이 터의 몸속에 공존하는 블랙시터의 영혼과 몇 번 만났기 때문에 다른 카이저 드래곤보다 훨씬 친숙한 느낌에 안심을 해버린 것이다. “왜 친할아버지보다 블랙시터님을 더 반가워하는 거야? 이 할아버지 는 슬프다.” 덕분에 가디락스가 삐져버렸지만.... 그리고 마지막으로 맨 뒤에 있던 황금색 머리카락을 가진 위엄이 서 린 얼굴의 중년 남자가 둘 앞에 서서 자신을 소개했다. “반갑다. 생명의 아이여. 나는 카이저 드래곤들의 연장자이자 빛을 관장하는 골든 카이저 드래곤 세이고든이다. 먼 길 오느라 수고 많았 다.” “아, 안녕하세요? 얼음과 생명의 실버 드래곤 티아루아입니다. 그리 고 제 쌍둥이 동생 테이루아입니다.” 신룡님들에 대한 이미지가 팍팍 깨지고 있던 티아는 그나마 자신이 상상하던 신룡님의 이미지와 가장 똑같은 세이고든에게 인사를 하며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 다이러스 제국의 일은 마무리가 잘 되었니?” “네. 아주 잘 마무리 짓고 왔어요.” 블랙시터가 인자한 목소리로 물어보자 티아는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 덕였다. 이 곳에 들어와서 처음 보이는 웃음이었다. 티아가 웃자 삐 져 있던 가디락스도 얼굴 한 가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호오. 웃는 모습이 너무나 귀엽구나! 역시 여자애는 웃는 게 최고 지. 암 그렇고 말고. 응? 티아야 왜 그러니?” 티아는 슬슬 뒤로 물러서더니 테이의 뒤로 숨어버렸다. “왜 그러는지 대답하기 전에 그 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티아는 언제라도 콱 껴안아 버리겠다는 준비가 된 가디락스의 손을 가리키며 물었다. 하지만 가디락스가 그 질문에 대답하기도 전에 테 이가 기겁을 하며 외쳤다. “잠깐! 그럼 누나 날 희생양으로 하려고 내 뒤에 온 거야?!” “정답.” “싫어!! 할아버지가 귀여워 해주고 싶어 하는 것은 누나잖아! 왜 날 희생양으로 하는 건데! 이 나이가 돼서 부비부비(?) 당하는 건 싫단 말이야!!” “나라고 좋은 줄 알아! 넌 남자니 좀 참으면 되잖아! 잔소리 그만하 고 할아버지에게 가서 안겨!” “절대로 싫어!” “나도 싫어!” 하지만 부비부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됐다. 서로 싫다고 소리치는 손 자 손녀의 모습에 배신감을 느낀 가디락스는 구석에 가서 훌쩍였기 때문이다. 그런 점은 테이를 꼭 닮은게 역시 핏줄이구나라는 것을 느 낄 수 있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슈아는 배를 잡고 폭소를 터트렸다. “호호호. 대단한 꼬마들이네 영원의 시간을 살아 온 자기 할아버지 에게 충격을 먹이다니 마음에 드는 걸.” “이런 분위기에 용케 활발하게 떠드는 군요. 보통 꼬맹이 드래곤이 라면 주눅이 들어서 입도 벙긋 못할 텐데 말입니다.” 빙람드가 어이없는 얼굴로 웃음을 멈추지 못하는 슈아에게 말하자 슈 아는 간신히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뭐. 혼자가 아니고 둘이라서 그런거 아닐까? 그것도 쌍둥이니 뭔가 통하는 구석이 있겠지. 아니면 서로 의지하는 방법이라던가... 아무 튼 신께서 참 재미있는 아이들을 보내주셨는걸. 이거 한 동안은 심심 하지 않을 것 같아.” ‘우리가 신룡님들 심심풀이 땅콩인가요?’ 라고 물어보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은 테이는 그래도 바른 생활 드래 곤으로서 훌쩍이고 있는 할아버지가 안돼 보였는지 옆에 가서 위로를 했다. 아니 어쩌면 동병상련 같은 것을 느끼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 다. 어째든 테이에게 할아버지를 맡긴 덕분에 티아는 아까부터 하고 싶었 던 부탁을 블랙시터에게 말할 기회를 잡았다. “저기 블랙시터님. 제 힘을 봉인하는 것에 대해서 드릴 말씀이 있거 든요.” “응? 아 깜박했구나. 그래 얼른 봉인을 해 줘야지. 그대로 놔뒀다가 는 큰 일이 날지도 모르니....” “잠깐? 힘을 봉인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인가? 설마 이 아이가 카이 저 드래곤으로 각성이라도 했단 말인가?!” 인사가 끝나고 나서 대화에는 참여 안하고 잠자코 분위기를 유지하던 세이고든은 티아의 말을 듣고는 놀라서 블랙시터에게 물었다. 그 덕 분에 내내 평정을 유지하던 세이고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세이고든 자네 생각대로야. 티아양은 내가 만든 마력 제어 목걸이 에다가 속박의 언령 힘까지 깨면서 스스로 각성을 해버렸어.” “무슨 소리입니까? 우리 티아가 각성을 했다고요?! 지금 저 나이에 말입니까?” 테이의 위로 덕분인지 방금 전 블랙시터의 말에 놀란 것인지 단숨에 기력을 되찾은 가디락스는 급히 티아의 머리카락을 들어서 이마를 살 펴보았다. 티아는 여기 오기 전에 이마의 육망성을 앞머리로 가리고 있었다. 너무 눈에 확 띠는 문장이라 약간 머리 스타일도 달리할 겸 해서 가린 것이었는데 덕분에 다른 신룡들이 티아의 각성을 눈치 채 지 못한 것이다. 아무튼 티아의 이마에 선명한 육망성의 모양을 확인한 신룡들은 블랙 시터에게 설명을 요구했고, 블랙시터는 시이터가 티아와 테이를 찾게 된 과정부터 레이르를 도와주려고 하는 둘의 이야기를 해줬다. 제법 긴 이야기를 마치고 난 뒤에 신룡들의 표정은 제 각각이었다. 믿어지지 않는 다는 가디락스와 대견하다는 표정의 에바로온, 역시 재미있는 남매라며 생글생글 웃는 슈아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의 빙람 드, 그리고.... “일이야 어찌됐던 일단 각성을 해버렸으니... 지금 그것을 이야기 해줘야 될까?” 심각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중얼거리던 세이고든이 블랙시터에게 물어 보자 블랙시터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이 아이들이라면 지금 이야기를 해줘도 상관없을 거야. 그러니 이 왕 이렇게 된 것 설명을 해주자.” “이 아이들? 동생 쪽은 카이저 드래곤이 아니잖아.” “아니. 이 아이들은 둘이면서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둘이야. 선택은 티아양이 하는 거지만 난 테이에게도 이야기를 들을 자격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흠. 뭐 자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방금 전까지 자연스럽게 행동하던 티아와 테이는 어쩐지 이야기가 심 각하게 흘러가자 조금 기가 죽어서 주위의 눈치를 살폈다. 티아와 테이가 당황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챈 슈아는 아이들을 안심 시키기 위해서 부드러운 말을 건넸다.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어려운 시험을 보는 것도 아니고, 단지 우리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뿐이란다. 그리고 너는 선택을 하는 거지.” “전 그저 이 카이저 드래곤의 힘만 봉인시켜 주시면 되는 데요. 꼭 들어야 되나요?” “원래 너희 아버지도 이 자리에서 우리들의 이야기를 듣고 카이저 드래곤과 보통 드래곤의 삶 중에서 선택을 했단다. 그런데 넌 이미 각성을 해버렸으니 어린 나이지만 이야기를 들을 자격이 있단다. 그 렇게 어려운 이야기는 아니니 너무 걱정 말거라. 우리 신룡 할아버지 들의 옛 추억의 이야기일 뿐이란다.” 에바로온이 부드럽게 웃으며 티아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말을 건네자 먼저 티아를 위로했던 슈아가 바로 인상을 구기며 에바로온을 노려봤 다. “왜 그러세요? 슈아 누님.” “왜 그러냐고? 그 신룡 할아버지에 이 나도 포함 되는 거냐? 내가 분명히 이 아이들한테도 말했잖아! 난 아이들한테 신룡 할머니가 아 니라 슈아 이모야! 그런데 감히 에바로온 네가 나를 할머니 취급하는 거냐?” “그럴 리가 없잖아요. 만약에 그랬다면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추억 이야기라고 했죠.” 에바로온이 난처한 웃음을 지으며 변명했지만 슈아는 집요했다. “호오. 그래? 그럼 왜 할아버지와 이모의 추억이라고 안했지? 난 완 전히 빼먹겠다는 뜻?” “그, 그런 뜻이 아니라...” 에바로온은 완전히 궁지에 몰렸지만 때 마침 세이고든이 티아와 테이 를 부른 덕분에 간신히 살아났다. “있다가 애기 끝나고 나서 보자.” 아니 아직 살아난 것은 아니었다. 에바로온은 나중에 슈아에게 끌려 가서 뭐라고 변명을 해야 될까 하는 고민을 하며 블랙시터가 만든 의 자에 앉았다. 블랙시터의 마법에 의해 향긋한 차가 담긴 찻잔이 각자의 앞에 놓였 고, 티아와 테이가 자리에 앉자 세이고든은 엄숙한 얼굴로 말문을 열 었다. “그럼 티아루아. 그리고 테이루아. 너희 둘은 지금부터 우리들이 하 는 이야기를 잘 들어주기를 바란다. 카이저 드래곤이 어떤 존재인지 에 대한 이야기니 티아루아는 특히 귀 담아서 들어야 된다.” “네, 네.” 티아는 긴장한 얼굴로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다른 신룡들도 세이고 든의 엄숙한 분위기에 전염됐는지 자리에 앉자마자 표정을 굳혔기 때 문에 티아는 더욱더 긴장이 된 것이다. ‘아?’ 바짝 얼어 있던 티아는 손에 따뜻한 감촉을 느끼고는 자신의 손을 쳐 다봤다. 정면을 보고 있던 테이가 슬며시 티아의 손을 잡아 준 것이 다. 마치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아까부터 신룡들에게 겁먹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들었지만 그 말들보 다도 지금 테이가 손을 잡아 준 것이 티아의 마음을 편하게 해줬다. 테이 덕분에 마음을 안정시킨 티아는 편안한 표정으로 세이고든을 쳐 다봤고, 세이고든은 티아가 이야기가 들을 준비가 됐다는 것을 느끼 고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세이고든의 첫 말에 놀란 티아와 테이는 자신도 모르게 자리 에서 벌떡 일어났다. “우리 카이저 드래곤들은 이 세계와 생명을 창조했다. 지금 이 대륙 에 가장 많은 수를 자랑하는 종족인 인간. 그래 그 인간도 우리가 만 들었단다.” 계속 ---------------------------------------------------------------- 35화 과거가 있기에 현재가 있고, 그리고 미래가 있다.(4) 이성이라는 것이 생겼을 때부터 신룡들은 그곳에 존재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 그들은 분명 존재하고 있었다. 이성이 없 기 전에는 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창조하라.] 이성이 생기고 난 뒤부터 그들의 머릿속에서 알 수 없는 의지가 가득 담긴 말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무엇엔가 홀린 듯이 한 자리에 모였 다. 골든, 블랙, 레드, 화이트, 블루, 그린 그리고 실버. 각각의 색깔은 틀렸지만 모습이 비슷한 일곱의 카이저 드래곤은 자신들의 머릿속에 서 울리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무엇을?] [너희들이 원하는 것을 창조하라. 그리고 지켜보라.] [당신은 누구십니까?] [너희들 카이저 드래곤을 창조한 이다. 내가 너희들을 만들었듯이 너 희들도 무엇인가를 만들어라. 그리고 지켜보라.] [창조를 어떻게 해야 됩니까?] [너희들에게 준 내 힘을 믿어라. 그 힘을 이용해서 창조를 하라.] 목소리는 무엇을 창조하라는 건지 확실히 말해주지 않았다. 매일같이 창조하라는 말만 하는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정확히 누구인지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거부할 수 없었다. 항상 어떻게든 무엇인 가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본능적으로 자신들의 힘을 사용해서 무 엇인가를 [창조]했다. 하지만 결과는 늘 실패였다. 그들이 창조한 것은 그리 오래 살지 못 했다. 실버 카이저 드래곤은 죽은 생명을 살릴 수 있었지만 다시 살 려놔도 얼마 안가 죽어버렸다. 그리고 그들이 실패할 때마다 목소리는 다시 들렸다. [창조하라.] 그것은 우연이었다. 만들어 놓으면 바로 죽어버리는 상황이 계속되던 어느 날 그린 카이저 드래곤이 시험 삼아 대지에 힘을 사용해 봤다. 그러자 아무것도 없던 허허벌판이 녹색의 식물들로 덮여가기 시작했 다. 그리고 다른 카이저 드래곤이 만든 생명체들이 그 식물을 영양분 삼 아 계속 살아남았다. 그들은 드디어 성공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목소 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오랜 시간 동안 카이저 드래곤들은 자신들이 만든 생명체가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생명체들은 부여받은 삶을 살아가며 먹고, 자고, 배설하고, 그리고 자식을 낳아서 종족을 계속 불려 나갔고, 자신들의 영토를 확장해 나갔다. 그렇게 평화롭게 시간이 흘렀다. 식물들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었다. 그린 카이저 드래곤이 계속 힘을 썼지만 너무나 많아진 생명체 때문에 나무와 풀은 자꾸만 사라져갔 다. 그리고 먹을 것이 떨어진 생명체들은 다시 죽어갔다. [또 실패인가?] 골든 카이저 드래곤이 탄식을 뱉을 때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창조하라.] 어느 날 레드 카이저 드래곤이 하나의 생명체를 만들었다. 지금까지 다른 카이저 드래곤들이 만든 생명체와는 달리 그 생명체는 강하고 용맹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생명체는 이전에 만들어진 생명체를 먹이로 삼아 살아갔다. 실버 카이저 드래곤은 다른 생명체를 먹고 사는 생명체를 혐오하고 없애버릴 것을 주장했지만 계속되는 실패 때문에 좀 더 지켜보자는 쪽으로 의견이 기울었다. 결국 실버 카이저 드래곤도 자신의 의견을 접고 지켜봤다. 용맹한 생명체는 식물들을 먹는 생명체를 먹음으로서 서서히 균형을 맞춰 나갔다. 처음에 만들어진 생명체가 적당한 숫자로 줄어가자 식 물들이 멸종하는 사태가 막아졌다. 그리고 용맹한 생명체는 죽어서 식물들에게 양분이 되어갔다. 그렇게 세계는 [균형]에 맞게 발전해 갔다. 다시 많은 시간이 흐른 후 용맹한 생명체의 수가 점점 많아지자 점차 식물들을 먹는 생명체의 수가 줄어갔다. 이대로 가다가는 또 세계의 균형이 무너질 것이라는 생각에 카이저 드래곤들은 대책을 세우기로 했다. 용맹한 생명체를 먹는 생명체를 만들자 라는 의견이 나왔지만 골든 카이저 드래곤은 그렇게 균형을 맞추더라도 지금처럼 언제 무너 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다른 방법을 생각하자고 했다. 하지만 좋은 방 법은 나오지 않았고, 시간만 헛되이 흘러갔다. 그런데 그 시간이 카 이저 드래곤들의 고민을 해결해 줬다. 처음에 만든 생명체들 중에서 용맹한 생명체에게 잡아먹히지 않기 위 해서 여러 가지 형태로 몸을 변형시켰다. 덕분에 용맹한 생명체 중에 서 사냥에 실패하는 생명체는 죽어갔고, 좀 더 강한 생명체만 살아남 게 됐다. 그렇게 생명체들은 자기 스스로 [적응]을 하면서 문제점을 해결해 갔 다. 세계는 진정한 균형을 맞춰 나갔다. 그리고 다시 오랜 시간이 흘 렀다. 카이저 드래곤들은 무료한 나날을 보냈다. 이제 세계는 자신들이 손 을 대지 않아도 균형을 맞춰 가며 발전해 나갔다. 그 동안 화이트 카 이저 드래곤은 바람을 타고 살아가는 생명체를 만들어서 세계에 살아 가도록 만들었고, 블루 카이저 드래곤은 물속에서 사는 생명체를 만 들어서 세계에 살아가게 만들었다. 약간의 시행착오는 있었지만 그래 도 앞서 얻은 경험으로 무리 없이 새로운 생명체가 세계에 적응해서 살아가게 만드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자신들이 만든 생명체들은 더 이상 특별한 일 없이 살아가고, 자식을 낳고, 죽어가는 일만 반복했다. [우리가 지켜보고 싶었던 생명체는 이 것들 뿐이었을까? 이 변화 없 는 생명체가 우리가 지켜봐야 될 존재란 말인가?] 어느 날 블랙 카이저 드래곤이 이 말을 꺼내면서 다른 것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성이 있는 즉 [생각할 줄 아는 존재]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의 첫 작품이 만들어졌다. 지금까지 네발로 다니는 생명체 가 아닌 두발로 걸어 다니고 자신들처럼 물건을 집을 수 있는 손이 생긴 생명체였다. 그리고 약간의 이성을 가지고 생각을 할 줄 아는 생명체들은 간단한 도구를 만들고 자신들이 살 공간을 만들며 집단생 활이라는 것을 하면서 착실하게 세력권을 넓혀 나갔다. 그리고 새로 운 생명체는 여러 가지 물건을 갖다 바치면서 카이저 드래곤들을 섬 겼다. 블랙 카이저 드래곤이 만든 생명체에 흥미를 가진 다른 카이저 드래 곤들도 이성을 가진 생명체들을 만들어 냈다. 그렇게 이성을 가진 새 로운 생명체들은 때로는 공존을, 때로는 대립을 하면서 세계에 적응 해나갔다. [우리와 비슷하게 생각할 줄 아는 생명체를 만들어요. 그리고 이번에 는 어느 한쪽의 힘이 아닌 우리 모두의 힘을 준 생명체를 만들면 어 떨까요?] 어느 날 실버 카이저 드래곤이 그런 제의를 하자 다른 카이저 드래곤 들은 재미있겠다는 생각에 해보자는 의욕에 불탔다. 단 하나 골든 카 이저 드래곤만이 예외였다. [우리 모두의 힘을 다 사용한 존재라면 최강의 종족이 될지도 모른 다. 그렇게 되면 세계는 다시 균형이 무너질지도 모른다.] [그럼 힘을 약간 약하게 해서 만들어 봐요. 틀림없이 재미있는 생명 체가 탄생할지도 모르잖아요.] 결국 실버 카이저 드래곤의 열의에 진 골든 카이저 드래곤은 힘을 약 하게 한다는 조건으로 모든 카이저 드래곤의 힘을 담은 생명체를 만 들었다. 포근한 빛과 아늑한 어둠, 용맹한 불꽃과 부드러운 물, 자유로운 바 람과 포용력의 대지, 그리고 생명을 가진 생명체가 탄생했다. 모든 카이저 드래곤의 축복을 받은 생명체에게 실버 카이저 드래곤은 처음으로 이름이라는 것을 지어주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자신들이 쓰 는 언어 중에서 [생각하는 생명체]라는 뜻의 단어 [인간]이라는 이름 을 지어줬다. 계속 ---------------------------------------------------------------- 35화 과거가 있기에 현재가 있고, 그리고 미래가 있다.(5) 처음에 인간은 너무나 약했다. 거의 드래곤들과 비슷할 정도의 지능 과 언어를 쓰기는 했지만 힘은 다른 지성을 가진 존재들보다 너무나 허약했고, 수명도 다른 지성의 생명체보다 훨씬 적었다. [역시 힘을 너무 약하게 한 것이 실패의 요인이군.] 골든 카이저 드래곤은 자신들의 모든 힘이 모인 존재는 위험할 것이 라는 생각에 힘을 약화 시킨 것을 후회했다. 반대를 했던 입장이지만 그래도 새로 창조된 생명체가 너무나 약한 것이 마음에 걸린 것이다. 그래서 좀더 강한 육체를 줄까하는 고민도 했었다. 그러나 많은 시간 이 흐른 후 카이저 드래곤들은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게 됐다. 인간들의 적응력은 그 어떤 생명체보다 뛰어났다. 울창한 숲에서도, 사막에서도, 아무리 추운 곳에서도, 그리고 높은 산에서도 그 어떠한 환경에서도 인간들은 끈질기게 살아갔다. 그리고 도구를 만드는 솜씨 도 뛰어났다. 다른 지성을 가진 생명체도 도구를 사용하기는 했지만 인간들은 그것을 뛰어넘는 도구를 만들어서 사용했다. 그리고 인간들은 카이저 드래곤과 마찬가지로 항상 새로운 것을 원했 고, 만들어갔다. 다른 그 어떤 생명체보다 빠르게 세력을 넓혀나갔 고, 결국 세계의 그 어떤 곳을 가도 인간들이 반드시 살고 있을 정도 로 세력을 넓혔다. 대부분의 생명체가 그저 먹고, 자고, 번식하는 것만을 생각하며 살아 간다면 인간들은 특별하게 살기를 원했다. 그 욕망 때문에 인간들은 예술을 만들었다. 제일 처음 음악이라는 것을 만들었다. 음악에 맞춰 서 노래가 생겨났다. 그리고 음악과 노래에 맞춰 춤이 생겨났다. 그리고 흥겹게 노는 인간들의 모습과 여러 가지 주위의 풍경 등을 그 림으로 그리는 인간들도 생겨났다. 급기야는 자신들이 쓰는 카이저 드래곤들의 언어로 글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역사라는 기록을 남겼다. 또 자유스러운 의지를 주어서인지 아니면 감정이 풍부해서인지... 같 은 종족인데도 생각이 틀린 인간들이 많아져 갔다. 그래서 같은 생각 을 가진 인간끼리 조금만 부락을 만들어서 같은 종족인데도 서로 차 이를 두면서 살아가는 인간들이 생겨났다. 덕분에 같은 종족인데도 서로 싸우는 인간들이 생겨났다. 처음으로 같은 종족끼리 영토확장의 목적이 아닌 다른 가치관에 의한 전쟁이 일어났고, 전쟁에 이기기 위 해서 계속적인 발전을 해나갔다. 발전에 따라가지 못한 부락은 무너 지고 이긴 부락에게 흡수돼서 부락의 크기는 나날이 커져갔다. 그리고 마침내 국가라는 것이 탄생했고, 왕이 생겨났다. 국가가 탄생 하자 더 이상 물물교환 형식으로 물건의 값어치를 매기는 것이 힘들 게 되자 화폐라는 것을 만들었다. 화폐가 만들어지자 인간들의 욕망 은 더욱더 커져서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인간을 죽이고 돈을 빼앗는 인간이 생겨났다. 그러자 이전부터 내려오던 인간들 사이의 규칙을 발전시켜서 법을 만들었다. 법이 만들어지자 자연스럽게 사회라는 것 이 생겨났다. 그리고 자신들을 신이라고 부르면서 추앙하는 인간들도 생겨났다. 그 때부터 카이저 드래곤들은 스스로에게 이름을 붙였고, 그 이름으로 신을 받드는 신전들이 생겨났다. 인간들은 항상 카이저 드래곤들에게 가르침을 받기를 원했고, 카이저 드래곤은 인간들에게 여러 가지를 가르쳐 주었다. 그 중 카이저 드래 곤들이 사용할 수 있는 힘의 일부를 가르쳐 주었는데 인간들은 그 힘 을 [언령]이라 부르면서 자기들 나름대로 발전 시켜갔다. 카이저 드래곤들은 정신이 없었다. 인간들의 발전 속도는 가히 놀라 울 정도였다. 하루 자고 일어나면 바뀌어 있을 정도로 인간들은 발전 을 거듭했다. 지금까지 그 어떤 생명체도 이룩하지 못했던 일들을 인 간들은 해냈다. 카이저 드래곤들은 다른 생명체를 지켜보는 일보다 인간들을 지켜보게 될 때가 많아졌다. 하지만 인간들이 발전해갈수록 심기가 불편한 카이저 드래곤이 있었다. 바로 그린 카이저 드래곤 에 바로온이었다. [인간들의 발전 속도는 눈이 부실 정도인 것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너무 배려라는 것이 없습니다. 그들은 나무를 마구 자르고 산을 마구 파헤칩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얼마 안 되서 숲과 산이 남아나질 않 을 것입니다.] 일곱의 카이저 드래곤 중에서 인간들을 제일 아끼는 생명의 실버 드 래곤인 아이나다는 항상 인간들을 두둔해줬다. 그 날도 에바로온을 말리면서 인간들 편을 들어줬다. [하지만 에바로온님 지금 인간들은 발전에 발전을 하는 시기입니다. 산과 숲을 개발 못하게 하면 인간들은 더 이상 발전하는 것이 불가능 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깊은 산에는 우리가 이전에 만든 지성을 가 진 인간보다 강한 생명체가 있기 때문에 인간들도 깊숙이 들어가지 않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인간들이 몬스터라고 분류지은 생명체 말입니까? 그 생명체들도 이 제 인간들을 당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인간들은 몸이 약하지만, 그 약한 몸을 보완하는 방법을 옛날에 개발했습니다. 이제 자연을 지킬 방패로 몬스터들을 쓸 수 없습니다. 다른 방법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아이나다는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가장 아끼는 생명체인 인간들에게 위해를 주기가 싫었다. 결국 그 일은 골든 카이저 드래곤 세이고든이 [더 강한 생명체를 조금 만들어서 깊은 숲이나 험준한 산에 풀어놓고 인간들의 접근을 막아보자.]라는 의견을 내서 그에 따르기로 결정됐 다. 그리고 카이저 드래곤들은 자신들과 똑같이 생긴 종족을 아주 적은 수로 만들어서 세계에 풀어놓았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인간 이상의 지성과 그 어떤 몬스터들보다 강한 육체, 그리고 자신들과 견주어서 조금 떨어지지만 인간이 어쩌지 못하는 존재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 생명체가 세계에 퍼진 다음부터 인간들은 카이저 드래곤들과 비슷 한 모습의 강한 생명체와 조우하게 됐고, 그 생명체의 영역에서 살아 난 인간들은 [그들은 신들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우리 인간의 손으로 어쩔 수가 없는 존재다.]라는 소문을 퍼트렸다. 결국 드래곤이라 이름 붙여지게 된 이 생명체는 인간들 사이에서 [드 래곤은 인간이 어쩌지 못하는 존재이기에 드래곤이다.]라는 속담이 만들어지게 된 계기가 됐고, 인간들은 드래곤들의 영역에 들어가지 않게 됐다. 덕분에 자연은 어느 정도 지켜졌다. 하지만 얼마 안 있어서 인간들은 영역 확장에 한계가 왔다. 드래곤 이외에도 많은 몬스터들에게 인간 은 상대가 되지 않았지만 사고로 몬스터에게 죽는 인간보다는 새로 태어나는 인간들이 더 많았다. 인간들에게 결정적인 천적이 없기 때 문이었다. [결국 인간들의 수가 너무 많아졌군요. 하긴 그들의 발전 속도와 경 이적인 영역 확장력을 보면서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것이라 예상했 습니다.] 에바로온이 한숨 섞인 탄식을 내뱉자 빙람드는 분노에 찬 음성을 내 뱉었다. [그것뿐이라면 내가 말도 안하지. 요즘 인간은 먹고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재미로 다른 생명체를 죽이고 있어! 이건 완전히 우리 가르침을 무시하는 행위가 아니고 뭐란 말이야? 언제까지 저 인간들 의 행동을 그냥 지켜봐야 되는 거지? 이쯤에서 제재가 필요해! 더 이 상 놔둘 수가 없어!] [잠깐만요! 제재라면 이미 우리의 모습을 본 딴 드래곤이 있잖아요. 이 이상 얼마나 더 인간에게 제재를 가할 작정이죠?] 여전히 인간들의 편인 아이나다가 반론을 펼쳤지만 동의하는 카이저 드래곤은 없었다. [확실히 아이나다 말대로 드래곤은 일정한 영역 안으로 인간을 들어 오지 못하게 했어. 하지만 드래곤의 수가 너무 적기 때문에 우리가 맞춰온 균형대로 인간의 균형을 맞추기에는 역부족이야. 아무래도 드 래곤의 수를 좀 더 늘리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블루 카이저 드래곤 바슈티어가 위로를 할 겸해서 부드러운 어조로 아이나다에게 설명했다. 카이저 드래곤들의 머릿속에 들렸던 그 말소리.... 카이저 드래곤들 은 그들을 창조신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의 자식으로서 많은 생 명체를 탄생시켰고, 오랜 시간을 들이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난 뒤에 인간이라는 가장 사랑스런 생명을 만들었는데 이제 와서 제재를 가해야 하다니... 아이나다는 도저히 납득을 할 수가 없었다. 어두운 표정으로 입을 다물어 버린 아이나다를 한참동안 바라보던 카 이저 드래곤들은 별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쉬었다. [조금만 더 지켜보도록 하자구나.] 좀 더 지켜보자는 세이고든의 말에 아이나다는 언제 어두웠냐는 듯이 밝은 표정으로 탄성을 뱉었다. [아! 세이고든님!] [어디까지나 조금만이다. 만약에 인간들이 우리들의 세계의 균형을 무너트릴 존재라는 판단이 서게 되면 그때는 가차 없다.] 그때가 되면 절대 사정 봐줄 수 없다는 말이었지만 뒤집어 생각해보 면 그때까지 시간을 주겠다는 세이고든의 배려에 아이나다는 눈물이 라도 나올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세이고든님!] 아이나다는 세이고든을 얼싸안으며 기뻐했고, 덕분에 세이고든은 얼 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이 녀석! 버릇없게 무슨 짓이냐?! 이럴 시간이 있으면 얼른 가서 인 간들에게 가르침이나 전파 하거라!!] [네!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세이고든 오빠~] [이 녀석 아이! 오빠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지!!] 세이고든이 화를 내든 말든 아이나다는 즐겁게 미소 지으며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아이나다가 나가고 난 뒤 남은 카이저 드래곤들의 시 선이 일제히 세이고든에게로 쏟아졌다. [뭐, 뭐냐? 왜 그런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거냐?] [세이고든 오빠~라 거기다가 아이라는 여간해서는 부르지 않는 막내 애칭을 막 부르는 세이고든 오라버니의 모습. 아 정말 샘나서 못 봐 주겠어요.] 바슈티어의 발언에 다른 카이저 드래곤들은 전부 박장대소를 터트렸 고, 세이고든은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에에이! 무슨 소리 하는 거냐?! 그 딴 말도 안 되는 소리 할 시간 있으면 나중에라도 아이... 가 아니라 아이나다가 실패했을 때 인간 들을 어떻게 할 것인지 대책이나 생각해 둬!] [네이, 네이.] [대답은 한번만 해라!] [네에~~~] [슈아!!] 끝까지 반항(?)하는 바슈티어의 모습에 열 받은 세이고든이 불같은 화를 내자 바슈티어는 잽싸게 텔레포트로 도망쳐버렸다. 바슈티어가 없어지고 난 뒤에 세이고든이 길길이 날뛰다가 밖으로 나가버렸고, 아직 자리에 남아 있던 카이저 드래곤들은 심드렁한 목소리로 이야기 를 나누었다. [아이나다와 세이고든님을 보는 것만으로도 심심하지 않아서 좋군요. ] 빙람드의 말에 블랙시터가 맞장구를 치며 웃었다. [하하하. 맞아, 맞아. 요즘 막내가 우리를 참 즐겁게 해준다니까. 슈 아도 가끔가다가 한몫 끼고 참 재미있지.] [생각해보니 이렇게 재미를 느낀다는 것도 인간들을 창조하고 난 뒤 아닌가요?] 실컷 웃던 에바로온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자 빙람드와 블랙시터, 그리고 가디락스는 얼굴에서 웃음을 지우고 생각 에 잠겼다. [확실히 우리도 감정이라는 것을 솔직하게 표현 할 수 있게 된 것도 인간에게 영향을 받은 것이 많군요.] 잠시 동안의 침묵을 깬 가디락스의 말에 빙람드는 피곤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뭐. 재미라는 것을 느끼게 된 것은 나도 좋아. 하지만 그렇다고 인 간들을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어. 막내가 인간을 아끼고 사랑한다는 것은 잘 알지만....] [공과 사는 구별해야 된다. 라고 말하고 싶은 거지?] 말을 얼버무리는 빙람드의 뒷말이 무엇인지 알아차린 블랙시터가 대 신 말해주었지만 빙람드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공과 사를 구별하라. 이것도 인간들이 만든 격언이죠. 어떻게 생각 하면 우리 막내의 회심의 역작은 정말 훌륭합니다.] 에바로온의 말대로 아까 전에 그렇게나 문제가 많으니 어쩌니 했지만 결국 카이저 드래곤들도 인간들의 삶에서 많은 부분에 영향을 받아 왔었다. [그래. 많은 것에 영향을 받았지..... 하지만 난 가끔 두려워. 인간 들의 그 말도 안 되는 성장 속도를 보고 있자면 언젠가는 우리 뒤를 잡힐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자꾸만 든단 말이야.] 빙람드의 한숨 섞인 말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는 카이저 드래곤은 없었다. 그들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하기 때문이었다. 너무나 수가 많고, 특별한 천적이 없는 인간. 그 기하급수적으로 늘 어가는 인간들의 수를 조절할 수 있는 기미는 여전히 찾아지지를 않 았다. 아이나다는 곳곳을 돌아다니며 인간들에게 다른 생명을 소중히 할 것을 가르치며 다녔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제재를 다시 생각하게 될 때 우습게도 인간들의 문제를 인간들 스스로가 해결해 버렸다. 하지만 결코 아이나다가 반가워 할 방법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인간들의 역사에 크고 작은 전쟁이 많이 일어났었다. 하지 만 그런 전쟁 규모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난 크기의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바로 영토 확장에 의한 마찰이 국가들의 문제로 번지 고 서로 연합을 하면서 아주 대판 붙어 버린 것이다. 그 전쟁에 의해서 인간들의 수는 아주 확실하게 줄어들었다. 그리고 시체들의 부패에 의한 전염병의 발생으로 2차적으로 인간들의 수가 줄어들었다. 결국 인간들의 가장 큰 천적은 같은 인간이라는 웃지 못 할 결과를 낳은 것이다. 그렇게나 생명의 소중함을 강조하며 인간들에게 가르쳤지만 그 결실 을 맺지 못한 아이나다는 절망했다. 하지만 곧 절망을 털어버린 아이 나다는 인간 스스로 벌인 전쟁으로 죽은 인간들은 자연의 법칙에 따 라 내버려두고, 원치 않은 전염병에 죽어가는 인간들을 살리기 위해 돌아 다녔다. [오늘도 나가는 거냐?] 세이고든은 밖으로 나갈 채비를 하는 아이나다를 보며 물었다. 그 말 에 이제 그만하라는 뜻이 담긴 것을 알아차린 아이나다는 조용히 고 개를 저었다. 세이고든은 자신을 지나쳐 가는 아이나다의 팔을 붙잡 았다. 아이나다의 팔은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 같이 약해져 있었다. [이렇게까지 인간을 위하는 이유가 대체 뭐냐? 네 몸의 건강을 해치 면서까지 인간들을 구하는 이유가 대체 뭐냔 말이다!!! 아무리 우리 가 무한한 삶을 살지만 이렇게 무리하다가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모르는 거냐?!!] 세이고든은 참고 참았던 분통을 터트렸다. 인간들 따위 때문에 아이 나다가 약해져 간다는 생각에 인간들 전부를 없애버리고 싶은 심정이 었다. 아이나다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인간의 모습으로....]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는 카이저 드래곤들의 힘의 원천인 용언. 그 언 어에 의해 아이나다는 은색의 긴 머리를 가진 인간의 여자로 변했다. 덕분에 아이나다는 세이고든 손에서 벗어 날 수 있었다. [아이나다!! 젠장! 인간의 모습으로!!] 세이고든도 똑같이 인간의 모습으로 변해서 아이나다를 붙잡아서 와 락 끌어안았다. [제발 그만 두어라! 부탁이니 더 이상 네 몸을 혹사시키지 말아다오! !] 세이고든의 말투는 이제 애원에 가까운 말투였다. 아이나다는 가만히 눈을 감고 세이고든에게 안긴 체 도리질을 했다. [아이!!] ‘도대체 누굴 닮아서 이렇게 고집이 센 걸까? 아니 아이나다는 우리 들을 창조한 창조신의 고집만 물려받은 것인가?’ 세이고든은 답답한 마음에 아이나다를 더욱더 강하게 끌어안았다. 절 대 놓지 않겠다는 강한 결심을 굳히고.... [세이고든 오빠.] [왜?] [이것을 인간들은 포옹이라고 부르는 거 아시죠?] 갑자기 무슨 뚱딴지같은 질문일까? 세이고든은 아이나다의 질문의 의 도를 알 수가 없었다. [우리들은 인간을 만들었지만 감정이라는 것을 인간에게 배웠어요. 그들은 우리에게 과분할 정도의 보답을 해준 거예요. 그래서 전 인간 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거예요.] [하지만... 하지만 그렇다고 네가 목숨까지 걸 필요는 없잖아!!] 어느새 세이고든은 점잖은 말투를 버렸다. 세이고든은 더 이상 아이 나다에게 카이저 드래곤의 맏이 아닌 남자로서 말을 하고 있었다. 비 록 세이고든은 무의식중에 그렇게 말투를 바꾼 것이지만 아이나다에 게는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마운 변화였다. [으응. 난 인간들에게 사랑이라는 것도 배운 걸요. 인간들 중에는 사 랑에 목숨을 거는 인간들이 많았어요. 단지 한 명의 남자로서 그리고 여자로서 상대방을 배려하고 아껴주고, 그리고...... 사랑해 주는 아 주 기분 좋은 감정이에요.] 지금 세이고든은 아이나다를 품에 안고 있어서 보지 못했다. 아이나 다의 얼굴이 붉어져 있다는 것을.... [아까 한 말 중에 실은 거짓말을 하나 한 게 있어요. 실은 나 인간을 가장 사랑하지는 않아요.] [그럼?] [아직은 비밀이에요. 아직은....] 아이나다는 고개를 들어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세이고든에게 입을 맞 췄다. 갑작스런 아이나다의 키스는 세이고든에게 처음 느껴보는 감각 을 선사했다. 온몸이 뜨거워지고 드래곤 하트가 사정없이 뛰는 느낌. ... 덕분에 세이고든은 아이나다를 붙잡은 팔에 힘이 빠졌다. 그 틈을 타 잽싸게 세이고든의 손에서 빠져 나온 아이나다는 붉어진 얼굴로 생긋 웃으면서 세이고든에게 외쳤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도 죽을 정도로 힘을 쓰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을 거예요! 왜냐하면 정말 사랑하는 이가 있으니 아직은 죽고 싶지 않아요.] [아이! 잠깐만!!] 세이고든은 급히 아이나다를 잡으려고 했지만 체 손을 잡기도 전에 아이나다는 텔레포트로 이동을 해버렸다. 허공을 휘 젖은 세이고든은 아직도 떨리는 가슴으로 손을 가져가 가슴을 움켜쥐었다. 아이나다만 큼 인간에게서 풍부한 감정을 배우지 못한 세이고든은 아이나다가 무 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알지 못했다. 지금 자신의 가슴이 왜 이렇 게 죄어들 듯이 아픈지도 알지 못했다. 그 감정을 바로 알아차리지 못한 것을 평생 후회하게 될 줄은 그 때 의 세이고든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계속 ---------------------------------------------------------------- 35화 과거가 있기에 현재가 있고, 그리고 미래가 있다.(6) 생명의 여신님. 당시 인간 모습으로 돌아다니며 전염병으로 죽은 사 람들에게 새 생명을 주는 아이나다에게 인간들이 붙인 별명이었다. 그 별명대로 아이나다는 병에 걸려서 죽어가는 인간들을 살리는 한편 인간에게 전염병을 막을 약을 만들게 했다. 바쁘고 힘든 나날이었지 만 아이나다는 눈에 보이는 인간들을 결코 지나치지 않았다. 그렇게 은혜를 입은 인간들 중에서 아이나다에게 감사하면 아이나다의 가르 침을 전파하는 인간들은 더욱더 늘어갔고, 세계는 다시 안정을 찾아 가는 것처럼 보였다. 인간들에게 발전을 하게 된 힘은 ‘조금 더’라는 욕망이었다. 조금 더 잘 하고 싶다. 조금 더 편하게 살고 싶다. 조금 더 이름을 날리고 싶다. 그 욕망이 인간들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어서 인간들은 카이저 드 래곤들이 놀랄 정도로 눈부신 발전을 해나간 것이다. 하지만 그 욕망 이 좋은 것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조금 더 살고 싶다. 조금 더... 아니 오래오래... 그래 영원히... 영원히 살고 싶다.” 그런 욕망을 가진 인간들도 많았다. 당시 가장 큰 국력을 자랑하는 유라이드 왕국의 국왕은 기적을 일으키고 다니는 생명의 여신의 소문 을 들을 때마다 영원히 살고 싶다는 욕심을 부렸다. 그리고 그 욕심 은 끝내 만들어서는 안 될 것을 만들게 했다. [우리 막내가 너무 늦군요.] 에바로온이 심심하다는 듯이 하품을 하며 말했다. 인간들이 만들어낸 여러 문명의 이기 중 하나인 시간. 그들은 낮과 밤을 하루라 하고 달 의 모양이 바뀌는 것으로 한 달이라는 시간을 만들고 하늘의 별자리 가 조금씩 변하는 것으로 일년을 만들었다. 그 인간들의 시간으로 아이나다가 나간 지 일년이 되어갈 때까지 아 이나다는 돌아오지 않았다. [뭐. 인간들이 워낙에 넓게 분포돼서 살고 있으니 시간이 많이 걸리 겠지.] 그렇게 말하는 바슈티어도 심심해 죽겠다는 얼굴이었다. [많이 걸리는 것은 알겠지만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어요.] 가디락스는 한숨을 쉬며 말했고, 블랙시터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니면 하다못해 연락이라도 해 주었으면 저 꼴 보지 않아도 되는 데....] 블랙시터의 말에 카이저 드래곤들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 다. 카이저 드래곤들이 말하는 저 꼴이란 바로 세이고든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아이나다를 말리겠다면서 아이나다의 거주지에 갔던 세이고든은 돌아 오고 난 뒤부터 내내 구석에서 혼잣말만 하고 있었다. 중얼 중얼거리 다가 한숨을 쉬다가 어느 순간 싱긋 미소를 짓다가 다시 침울한 얼굴 로 한숨을 쉬고, 그리고 가끔.... [앗! 또 얼굴이 빨개졌다.] 바슈티어가 소리치자 카이저 드래곤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서 뒤로 물러섰다. [크아악! 도대체 나한테 무슨 소리를 하고 싶었던 거냐?! 나보고 뭘 어떻게 해달라는 거냐! 아이나다!!] 카이저 드래곤들의 예상(?)대로 얼굴이 한순간 빨개졌던 세이고든은 소리를 지르면서 발광(?)을 했다. 지난 일년간 내내 저런 식이었다. 처음에 카이저 드래곤들은 실실 웃으며 그 모습을 즐겼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일년 동안 똑같은 짓만 되풀이하는 세이고든의 모습에 질려 버린 지 옛날이었다. 한동안 발광(?)하던 세이고든이 숨을 거칠게 몰아쉬더니 곧 그 자리 에 쭈그리고 앉아 다시 한숨을 푹푹 쉬었다. 세이고든이 발광을 멈추 자 카이저 드래곤들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될까?] [어떻게 해야 될지는 이미 정해져 있지 않나요?] 블랙시터의 질문에 가디락스가 세이고든을 슬쩍 쳐다보며 말했다. 그 들은 더 이상 저 꼴 보고 싶지 않다는 의견에 무언으로 합의를 본 상 태였다. 그 날 카이저 드래곤들은 세이고든 몰래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인간 의 모습으로 흩어져서 아이나다를 찾아다녔다. 아이나다가 한 일을 기적이라고 부르는 인간들 덕분에 손쉽게 아이나 다의 행적을 추적하던 카이저 드래곤들은 이상한 점에 부딪쳤다. 유 라이드 왕국에서 아이나다의 행적이 사라 진 것이다. 아이나다는 마 치 연기처럼 유라이드 왕국에서 자취를 감췄고, 그 말은 더 이상 아 이나다의 행적을 추적해서 아이나다를 찾을 수 없다는 말이었다. 결국 유라이드 왕국에서 발이 묶인 카이저 드래곤들은 어떻게든 정보 를 모우기 위해서 거리를 돌아다녔다. 인간들의 말로는 분명히 5개월 전쯤에 생명의 여신님이 이곳에 왔었다고 했다. 그런데 한 달 만에 아무 소식도 없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에 관해서는 여러 소문이 돌았지만 전부다 허무맹랑한 도움이 안 되는 소문들이었다. [이제 어떡해요?] 바슈티어가 울 것 같은 목소리로 투정을 부리자 블랙시터가 한숨을 쉬며 대안을 말했다. [첫째, 포기하고 돌아가서 그 꼴 계속 본다. 둘째, 이대로 계속 아이 나다를 찾아서 미친 듯이 세계를 돌아다닌다. 어느 걸로 하고 싶어?] [두 번째요.] 바슈티어는 조금도 고민하지 않고 바로 두 번째를 골랐다. 차라리 무 식한 방법일지라도 아무데나 돌아다니면서 아이나다를 찾는 것이 낫 지 죽어도 세이고든의 망가진 모습을 보기 싫다는 소리였다. 그때 밖 으로 나갔던 가디락스가 거칠게 문을 열면서 소리쳤다. [이상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이상한 소문?] 블랙시터와 바슈티어는 눈을 빛냈다. 제발 그 이상한 소문이 아이나 다와 관련된 소문이기를 빌면서 가디락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가 디락스가 가져온 소문은 최근 유라이드 왕국은 이웃 나라와 신경전에 가까운 소규모 전쟁이 일어났다고 한다. 자칫 잘못하면 전면전이 될 수도 있는 그 소규모 전쟁에서 이상하게 유라이드 왕국의 병사들은 죽어도 그 다음 날 멀쩡히 살아서 또 전쟁에 참가를 한다는 소문이 돌아다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소문은 왕국에서 전면으로 부정하며 그런 소문을 낸 사람을 색출해서 잡아가기 때문에 꽤나 은밀하게 퍼 지고 있었고, 가디락스도 인간들이 만든 직업 중 도적이라는 직업을 가진 인간들이 있는 곳에서 큰 돈을 주고 얻은 정보라고 말했다. 가디락스가 가져온 정보를 자세하게 들은 블랙시터는 확실히 이상하 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소문은 마치.... [아이나다의 힘 같네요.] 바슈티어의 말에 블랙시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에게 평등한 아이나다가 특정 나라를 도와준다고 생각하고 싶지 는 않아. 그렇다고 인간에게 이용당한다는 것은 생각 할 수도 없고.. . 하지만 조사해 볼 가치는 충분해. 슈아는 지금 즉시 세이고든을 데 려오고, 나머지는....] [싫어요!!!] [.........] 바슈티어는 바로 싫다고 소리치는 바람에 블랙시터는 잠시 말을 잃었 다. 하긴 블랙시터도 정상이 아닌 세이고든의 모습을 질리도록 봐서 싫다는 바슈티어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결국.... [가디락스 네가 가라.] [네.] 가디락스는 한숨을 푹 쉬며 공간의 문을 열고 가버렸다. 이래서 말 잘 듣는 막내는 불행한 인생을 산다는 말이 인간에게서 나온 건지도 몰랐다. 나머지 카이저 드래곤들은 여관에서 잠시 대기하기로 했고, 블랙시터와 빙람드가 그 날 밤 성에 몰래 숨어들어가서 소문의 진위 를 알아보기로 했다. 용언으로 모습을 감춘 블랙시터는 성 곳곳을 돌 아다니면 혹시라도 아이나다와 관계가 있을 단서를 찾아 다녔다. 한참을 허탕을 치면서 돌아다닌 블랙시터는 유라이드의 국왕으로 보 이는 자가 궁정 마법사로 보이는 인물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방을 찾 았다. 둘은 목소리를 낮춰서 말을 하고 있었지만 뒤에서 블랙시터가 조용히 쳐다보고 있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그래. 이번에 힘을 제어하는 물건을 만들었다고 들었는데 어느 정 도 효과를 보고 있나?” “아직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폐하께서 원하시는 영원한 생명은 무리 지만 부여받은 생명을 잃은 사람에게는 새로운 생명을 줄 수 있을 정 도입니다. 그리고 그 실험을 이번 소규모 전쟁에서 사용해 봤는데 그 리 나쁘지 않은 결과를 얻었습니다.” “그래? 그럼 언제 정도면 영원한 생명의 힘을 얻을 수 있겠나?” “너무 안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제 머지않아 폐하께서는 영원한 삶을 사시며 이 세계를 지배하게 되실 겁니다. 이것도 다 저 바벨탑 덕분이죠.” “그래. 정말 선조님께서 정말 멋있는 유산을 남겨 주셨지. 난 정말 복 받은 인간이야. 하하하하하. 아하하하하하!” 미친 듯이 웃는 왕의 모습을 보던 블랙시터는 왠지 모를 불안감에 가 슴이 죄어들 듯 아팠다. 그들이 말하는 생명 어쩌고 라는 말에서 아 이나다가 생각 난 것이다. 방에서 몰래 나온 블랙시터는 곧 성벽으로 이동했다. 그 들이 말하는 탑을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바벨탑.] 그 탑의 이름은 블랙시터가 들어 본적이 있는 이름이었다. 인간들에 게 모습을 보이고 가르침을 전파하던 카이저 드래곤을 기리며 신의 곁에 가까이 가고 싶다는 뜻을 담아 인간들이 만든 세계에서 가장 높 은 탑. 인간들의 선물 중에서 아이나다가 가장 좋아하는 선물이 바로 바벨탑 이었다. 하늘 높이 솟아 있는 검은 바벨탑을 지켜보는 블랙시터는 이 를 갈면서 나직하게 말을 뱉었다. [설마... 설마 저곳에 아이나다가? 아니겠지? 아니라고 믿고 싶다. 인간들이여....] 계속 ---------------------------------------------------------------- 35화 과거가 있기에 현재가 있고, 그리고 미래가 있다.(7) 카이저 드래곤들은 여관에 모여서 유라이드 왕의 말을 블랙시터에게 듣고 불길한 생각에 빠졌다. 아무리 그래도 한낱 인간 따위가 자신들 을 어쩌지 못할 것이라고 믿고 있지만 그래도 그 왕의 말과 아이나다 가 사라진 시기가 너무나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 창문에 걸터앉아서 잠자코 바벨탑을 바라보던 블랙시터가 침묵을 깨 고 말했다. [뭐 여기에서 고민하고 끙끙거리는 것보다는 직접 가서 알아보는 게 제일 빠르지. 세이고든도 갈거지?] [두 말하면 잔소리지!] 아까부터 세이고든은 초조한 표정으로 안달을 하다가 블랙시터의 제 의에 눈을 빛내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만약에 정말 인간들이 무슨 짓인가를 했다면 어쩌죠?] 바슈티어가 어두운 표정으로 한숨을 쉬며 말하자, 세이고든은 화를 벌컥 내며 소리쳤다. [당연한 질문은 하지마! 만약에 정말로 인간들이 벌인 짓이라면 인간 들은 실패작이야! 처분을 해야 돼!!] [하, 하지만 아이나다는요? 그 애는 워낙에 착해서 그래도 인간을 어 쩌지 못하게 편들어 줄게 뻔하잖아요.] 바슈티어는 세이고든이 불같은 화를 내자 목을 움츠리며 떨리는 목소 리로 변명을 늘어놓았다. [이번만큼은 아이나다가 뭐라고 한들 들어 줄 생각 없어! 일이 이 지 경까지 됐는데도 정신을 못 차린다면 엉덩이라도 때리면서 말을 듣게 만들겠어! 인간은 실패작이야! 처분해야 돼! 가자! 블랙시터!!] [아아.] 블랙시터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일어날 준비를 하는 다른 카이저 드래 곤들에게 말했다. [탑에는 나와 세이고든만 가볼게. 만약에 정말 아이나다가 저 탑에 갇혀 있다면 인간들은 우리를 구속할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는 거야. 그러니 만약을 위해서라도 너희들은 남아 있어. 그리고 빙람드는 수 고스럽겠지만 다시 한번 성에 가서 정보를 모아줘.] 그래도 세이고든에 비해서 어느 정도 이성을 유지하고 있는 블랙시터 는 자질구레한 일들을 주의시켜주고 난 뒤에 바벨탑으로 출발했다. 세이고든과 블랙시터가 나가고 난 뒤에 바슈티어는 창조신에게 기도 했다. 제발 아무 일도 안 생기기를 진심으로 바라면서..... [창조신이여 제발 우리들의 귀여운 막내에게 아무 일이 없기를..... 막내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당신이 시켜서 만든 이 세계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습니다. 제발 이번 일이 당신의 뜻이 아니기를 빕니다.] [휘유. 여기 올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정말 대단해. 이런 건축물을 인간들이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믿기지가 않아.] 블랙시터는 까마득한 바벨탑을 올려다보며 탄성을 뱉었다. 자신들을 기리며 카이저 드래곤의 곁에 더 가까이 가고 싶다는 인간들의 염원 이 담긴 바벨탑. 인간들의 시간으로 100여년에 걸쳐 쌓은 바벨탑은 아직도 미완성이었 다. 그래서 매년 조금씩 탑의 층을 쌓아 올려가는 것이 유라이드 왕 국의 전통이었고, 축제였다. 아이나다는 불가능에 도전하며 열심히 노력하는 인간들의 삶을 아끼 고 사랑하기 때문에 이 탑을 제일 좋아 했었다. 그리고 지금 세이고 든과 블랙시터는 행방불명이 된 아이나다가 이 바벨탑에 있을지도 모 른다는 정보에 탑에 와 있었다. 만약에 아이나다가 인간들에게 신변을 구속당했다면 아이나다는 자신 이 가장 좋아하는 탑에 잡혀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참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블랙시터는 그 생각을 하면서 착잡한 심정이 들었다. [들어가자.] [아아.] 세이고든과 블랙시터는 검은 바벨탑 중앙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 다. 문은 용언으로 잠겨 있었지만 그 용언을 인간들에게 가르쳐 준 둘에게는 아무 문제없이 안으로 들어 갈 수 있었다. 바벨탑 내부는 굉장히 넓었다. 그리고 안의 벽도 바깥과 마찬가지로 온통 검은 색으로 칠해져 있었고, 창문 하나 없는 탑이라 설사 낮이 라도 사물을 분간 못할 정도로 어두웠지만 블랙시터와 세이고든에게 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여기는 없는 것 같은데.....] 바벨탑의 내부를 둘러보던 블랙시터의 말에 세이고든은 위를 쳐다보 며 말했다. [위로 가보자.] [응.] 바벨탑 내부에는 기본적으로 계단이 있었다. 하지만 층수가 높아져감 에 따라 계단이 무의미 해지자 아이나다가 마법으로 오르내리는 크고 편편한 바위를 선물했었다. 물론 두 카이저 드래곤들에게 그 바위는 불필요한 물건이었다. 마법으로 공중에 몸을 띄운 둘은 위쪽으로 날아 올라갔다. [응?] 한참을 올라가던 중 블랙시터는 갑자기 공중에 멈췄다. [무슨 일이야? 블랙시터.]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먼저 올라가.] 짜증을 내는 세이고든에게 블랙시터는 먼저 올라가라고 하고는 바벨 탑의 벽을 바라보며 고개를 잠시 갸웃거렸다. [기분 탓인가?] [블랙시터! 뭐 하는 거야?! 빨리 올라와!!] [아? 응 알았어.] 다시 한번 세이고든이 재촉을 하는 바람에 블랙시터는 벽에서 떨어져 서 위로 날아올랐다. 별로 이상한 점을 발견 한 것은 아니지만 가슴 이 떨리는 느낌이 마치 몸 전신에서 경고를 내리는 기분이었다. 하지 만 아이나다의 생각에 불안감을 떨쳐버린 블랙시터는 지금은 위에 아 이나다가 있는지 없는지의 확인에만 신경 쓰기로 했다. 얼마 안 있어 바벨탑의 최상층에 올라간 둘은 척 보기에도 수상해 보 이는 방을 발견했다. 원래 이 탑은 상징적인 의미의 탑이기 때문에 방 같은 것을 만들지 않았다. 수상한 방은 최근에 만들어진 것인지 굉장히 깨끗했고, 방이 있는 층 도 새로 만들어진 것 같아 보였다. 블랙시터와 세이고든은 눈빛을 교 환하고는 방문 앞에 서서 문을 열었다. [뭐, 뭐야?! 이게?!!] [아이나다!] 블랙시터는 처음 보는 기계 장치들을 보면서 놀랐고, 세이고든은 커 다란 투명한 구체 속에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웅크린 아이나다를 발 견하고는 아이나다의 이름을 부르며 방안으로 들어갔다. “너희들은 누구냐?! 멈춰라?!” 방 안에서 바쁘게 돌아다니던 인간들이 세이고든을 발견하고는 경고 를 줬지만 멈추라고 멈출 세이고든이 아니었다. “이 버러지 같은 인간들아! 아이나다에게 무슨 짓이냐?!” 세이고든은 자신의 앞을 막아서는 인간들을 닥치는 대로 날리면서 아 이나다에게 달려갔다. “세이고든 오빠?” 구체 속에서 아이나다가 얼굴을 들고 초점 없는 눈동자로 세이고든을 쳐다봤다. “아이나다! 조금만 기다려라!!” “아아! 세이고든 오빠!!” 생기가 없던 아이나다의 눈에 생기가 돌아왔다. 그리고 바로 눈물을 흘리며 세이고든의 이름을 불렀다. “세이고든? 설마 빛의 카이저 드래곤?!” “바로 맞췄다.” 로브로 얼굴을 가린 남자가 아이나다의 말을 듣고 놀란 목소리로 외 칠 때 블랙시터가 그 자에게 다가갔다. “다, 당신은 누구?! 검은 머리? 설마 어둠의 카이저 드래곤?!” “그렇다. 내 이름은 블랙시터. 네 놈은 그 때 유라이드 왕국의 왕 옆에 있던 마법사구나.” 블랙시터는 로브를 입은 남자의 목소리를 듣고 그가 마법사라는 것을 알았다. 남자는 자신의 앞에 선 블랙시터를 쳐다보다가 구체를 부수 고 아이나다를 꺼내는 세이고든을 바라봤다. “무슨 짓을 해서 아이나다를 저렇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대가 는 지금부터 톡톡히 치러야 될 것이다. 어리석은 인간.” “후후후후후.” 블랙시터가 으름장을 놓았지만 마법사는 겁먹기는커녕 유쾌하다는 듯 이 웃음을 흘렸다. “왜 웃는 거지? 미친 건가?” “아! 실례했습니다. 크크크. 하지만 연구할 수 있는 샘플이 두개나 늘었다는 것이 기뻐서 웃음이 멈추지를 않는 군요. 킥킥킥.” 마법사의 샘플이라는 말에 블랙시터는 인상을 찡그리며 손을 들었다. “확실히 미쳤군. 곧 편안하게 해주마.” “안돼요! 블랙시터 오빠! 지금 빨리 도망쳐야 되요!!” 세이고든 덕분에 구체에서 빠져나온 아이나다가 소리를 쳤다. “그게 무슨 소리야?” “이미 늦었습니다!” 아이나다의 말을 이해 못한 블랙시터가 뒤를 돌아봄과 동시에 마법사 는 자기 뒤에 있던 기계 장치의 스위치를 눌렀다. 기계장치는 소름끼 치는 소리를 내면서 작동을 시작했고, 방 안의 벽에 [속박]이라는 언 령이 빛을 내면서 새겨졌다. 방 안 뿐만이 아니었다. 바벨탑의 전 벽 에 언령이 빛을 발했고, 효과는 즉시 나타났다. “으윽! 무, 무슨 짓을?! 무슨 짓을 한거냐?!!” 블랙시터는 몸을 짓누르는 감각에 무릎을 꿇으면서도 고개를 치켜들 고 마법사를 노려보자 마법사는 여유 있게 웃으며 벽을 가리키며 블 랙시터의 물음에 답해줬다. “저것을 봐도 모르겠습니까? 당신들이 가르쳐준 마법 중 [구속]이란 언령 마법입니다.” “언령? 구속?!”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 언령을 발동시킨 상태에서는 카이저 드 래곤님들의 힘을 뽑아 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구속의 구라는 것도 만들었는데 그 구속의 구를 저쪽 빛의 카이저 드래곤님께서 부수는 바람에 새로 만들어야겠군요. 시간이 오래 걸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앞으로 카이저 드래곤님들에게서 뽑을 수 있는 힘을 생각하면 그리 오랜 시간도 아니죠. 카이저 드래곤님들께서 언령을 가르쳐 주신 것 을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확실히 카이저 드래곤들은 무언가를 계속 갈구하며 탐구하는 인간들 에게 용언을 가르쳐 준 적이 있었다. 물론 인간들이 드래곤들의 언어 를 완벽히 쓸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인간들은 용언을 자신들이 쓰기 편하게 계량시켜 나갔고, 결국 인간들도 용언 마법과 비슷한 수준의 마법을 쓸 수 있게 된 언령 마법이라는 것을 독자적으로 개발했었다. 그것은 인간을 지켜봐 왔던 블랙시터도 잘 알고 있는 점이었다. 하지 만 일개 인간의 마법으로 하나도 아닌 셋이나 카이저 드래곤들을 구 속시켰다는 것은 믿기지가 않았다. 마법사는 세이고든의 손에 날아가지 않은 사람들에게 지금부터 구속 의 구를 만들라는 명령을 내리고는 블랙시터를 쳐다보며 웃었다. “흐흐흐. 그 눈은 지금 상황이 이해가 안 간다는 아니 믿을 수가 없 다는 모습이시군요. 뭐 별로 숨길 생각도 없으니 사실대로 전부 말하 겠습니다. 하하하하하!” 마법사는 블랙시터가 묻지도 않은 말을 대답하며 즐거운 듯이 웃어 젖혔다. 그 모습은 자신이 이루어낸 결과물을 남에게 말 하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는 모습이었다. “흥! 난 물어 보지도 않았어! 네 놈 스스로 떠들어 대고 싶은 것뿐 이잖아!” “그래서 듣기 싫으십니까? 어쩌면 내 말에서 카이저 드래곤님들이 탈출 할 수 있는 실마리를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하긴 만에 하나 라도 그럴 가능성이 없다는데 자신 있기 때문에 말을 꺼냈지만요.” “흥! 네 놈!!” 블랙시터는 이를 갈면서 몸을 움직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심연의 깊은 곳에서 몸을 옭아매는 느낌은 블랙시터를 놓아주지 않았다. 마 법사는 움직이지 못하는 카이저 드래곤들을 보며 유쾌한 듯 웃으며 말하고 싶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카이저 드래곤님들이 가르쳐 주신 언령은 정말 멋진 마법입니다. 단지 아쉬운 점은 카이저 드래곤님들과 당신들의 피조물 중 드래곤들 에게는 소용이 없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지만요. 하지만 나는 의지를 말에 담아 힘을 발휘하는 언령이 통하지 않을 상대는 없다라는 가정 하에 연구를 시작했죠. 결국 우리들의 힘이 카이저 드래곤님은커녕 드래곤들에게조차 통하지 않을 정도로 약하다는 결론을 얻었고, 좀 더 강해질 수 없을까 하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러다가 언령을 다른 물건에 새겨도 힘을 발휘한다는 점을 이용해서 그 물건을 수십 수백 개를 모아서 동시에 사용하면 어떤 결과를 낳을까 하는 연구를 했습 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지금 제가 입고 있는 이 로브가 범 상치 않은 물건이라는 것을 아시겠습니까?” 그 말에 블랙시터는 신경 쓰지 않았던 마법사의 로브에서 친숙한 느 낌을 받았다. “네 놈! 우리들의 형상을 한 우리의 자식들을 건드린 것이냐?!” “바로 맞췄습니다. 제가 입고 있는 이 로브는 드래곤의 날개를 가공 해서 만든 것이죠. 이것 뿐 만이 아니라 우리 유라이드 왕국은 세계 통일의 전쟁에 대비해서 많은 드래곤의 무기를 만들고 있습니다. 드 래곤의 몸은 버릴게 하나도 없더군요. 비늘 하나가 훌륭한 갑옷이고, 이빨 하나가 훌륭한 검이 됩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카이저 드래곤님 을 붙잡을 수 있는지 실험을 하기로 했습니다. 바로 선조가 남겨 주 신 이 바벨탑의 벽돌 하나하나에 언령 [구속]을 새긴 것이죠. 결과는 지금 느끼시는 바와 같이 성공했습니다. 수백 명의 마법사들 목숨이 담긴 이 바벨탑은 이제 최고의 병기가 된 것입니다. 카이저 드래곤을 구속시킬 수 있는 최고의 병기가 된 것이죠.” “왜 아이나다를 붙잡은 것이냐?! 너희들에게 생명을 나눠주는 아이 나다를 붙잡은 이유가 무엇이냐?! 아니 그 전에 우리는 너희들의 창 조자이다. 그런데 감히 창조자에게 해코지를 하다니 미쳤느냐?!!” 아이나다를 안은 채 언령의 구속에 붙잡힌 세이고든이 소리쳤다. 마 법사는 혀를 쯧쯧 차면서 정말 모르겠냐는 표정으로 물었다. “당신들은 왜 우리에게 생명을 조금만 주셨습니까?” “뭐라고?” “우리들은 더 오래 살고 싶습니다. 저는 오래 살면서 연구를 계속하 고 싶고, 유라이드 국왕님은 오래 살면서 이 나라를 나아가서는 세계 를 통치하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수많은 인간들이 좀 더 오래 살기 를 갈망합니다. 하지만 당신들은 우리에게 한정된 삶만을 허락했습니 다. 그리고 당신들은 영원의 삶을 삽니다. 너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안 드십니까?” “크윽....” 블랙시터와 세이고든은 입을 다물고 신음을 흘렸다. 자신들은 당연하 다고 생각했던 무한한 생명에 의문을 가지고 이렇게 불만을 말할 생 명체가 생길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블랙시 터와 세이고든은 할 말이 없었다. 차라리 인간들에게 무한한 삶을 약 속하고 이 위기를 모면할까하는 생각까지 하고 있을 때 아이나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정말 무한한 삶이 필요하다고 느끼시나요?” “오! 이제 말이 통할 것 같군요. 그렇습니다. 저희는 무한한 삶이 필요합니다. 협력해 주시겠습니까?” 아이나다는 고개를 저었고, 마법사의 얼굴은 순식간에 구겨졌다. “지난 몇 달 동안 그렇게나 설득했었건만 아직도 협력할 생각이 없 으십니까? 협력만 해 주신다면 더 이상 괴로운 일을 안 당하실텐데 고집이 보통이 아니시군요.” “괴로운 일?” 세이고든은 마법사의 말에 새삼스레 아이나다의 몸을 자세히 살펴봤 다. 얇고 소매가 없는 하얀 원피스를 입은 아이나다의 몸에서 상처와 멍이 든 곳을 발견한 세이고든은 눈이 뒤집히는 기분을 느꼈다. “이 버러지 같은 놈들!! 아이나다에게! 아이나다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이냐?!!” 세이고든은 분노의 말을 뱉으며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조금 움찔거릴 뿐 움직이지는 못했다. 아이나다는 힘겹게 손을 들어서 세 이고든의 뺨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이나다.” “조금만 참으세요. 조금만 있으면 다 잘 될 거예요.” 그렇게 세이고든을 달랜 아이나다는 마법사를 쳐다보며 물었다. “정말 인간에게... 아니 이 세계 모든 생명체에게 무한한 삶이 필요 하다고 생각하시나요?” “모든 생명체? 모든 생명에게는 필요 없죠. 그래요. 무한한 삶이 필 요 한 것은 일부 선택받은 인간들뿐입니다. 그저 주인을 위해서 일만 하는 존재들에게까지 무한한 삶은 필요 없겠죠.”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내 생각과는 다르군요. 나는 인간들의 눈부 신 발전을 바로 곁에서 지켜봐왔어요. 당신이 오래 살고 싶어 하는 욕망. 인간은 욕심이 있기 때문에 항상 노력하고 열심히 살아 왔어 요. 안 좋은 욕심도 있었지만 그런 인간보다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 하는 인간을 훨씬 더 많이 봤어요. 욕심이라는 감정으로 자식들에게 더 나은 삶을 물려주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그리고 그 자식들 은 그 삶을 받아서 더 나은 삶으로 만들어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이런 끊임없는 인간들의 삶이 지금의 인간들을 만든 것이죠. 그런 인 간들에게 언젠가 물어 본 적이 있어요. ‘더 살고 싶지 않으냐?’라 고.... 그러자 그 인간은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생명을 가진 것은 언젠가는 죽기 때문에 죽기 전까지 최선을 다한 삶을 살 수 있는 노 력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생명은 소중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라고 대답했었죠. 비록 내가 생명을 주는 역할이지만 그 생명의 소중 함은 인간들에게 배웠어요.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인간들을 아끼고 사 랑하는 것이에요.” 잠자코 아이나다의 말을 듣는 마법사는 침묵을 지켰다. 한참동안의 침목동안 언령의 구속이 내는 웅 하는 소리만이 방안을 채우고 있을 때 갑자기 마법사가 크게 웃기 시작했다. “푸하하하하하! 생명의 소중함이라고요? 언젠가는 죽을 목숨이기 때 문에 최선을 다한다고요? 크흐흐흐흐흐. 그런 것은 기회를 잡지 못한 인간의 헛소리에 몽상가들의 꿈같은 이야기일 뿐입니다.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기회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그 기회를 이용할 줄 압 니다. 진정한 인간이란 바로 저 같은 인간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니요. 당신은 인간의 소중함을 스스로 버린 불쌍한 인간일 뿐이 에요.” “웃기는 소리 하지 마십시오! 그렇다면 당신들 카이저 드래곤님들은 왜 무한한 삶을 살아가시는 겁니까? 당신들은 무한한 삶을 살아왔고, 그리고 앞으로도 살아갈 존재입니다. 그러면서 우리 보고는 조금만 살면서 열심히 살아라. 그것이 생명의 소중함이란다. 라는 하품 나는 이야기를 하실 셈입니까? 우리는 아니 나는 더 오래 살고 싶습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이용할 것입니다. 이것이 내가 생 각하는 나만의 소중한 생명입니다!!” 아이나다는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내가 이 바벨탑에 잡혀 있을 때 왜 도망치지 않았는지 아나요?” 마법사는 아이나다의 질문에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당연한 것을 물으시는 군요. 제가 새로 만든 이 바벨탑의 힘에 붙 잡혀서 도망 못 치신 것 아닙니까? 설마 도망 칠 수 있는데도 지난 몇 달간 잠자코 있었단 말입니까? 왕에게 그런 짓까지 당하면서요?” ‘그런 짓?’ 세이고든은 밀려드는 불안감에 무슨 뜻인지 묻고 싶었지만 아이나다 가 먼저 말을 꺼내는 바람에 물어 볼 수가 없었다. “내가 이 구속 장치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이미 알아차리고 있었어 요. 당신은 이 구속에 몸의 구속이 아닌 카이저 드래곤들의 내면의 힘을 구속시킨 것이죠? 그래야 좀 더 손쉽게 우리 카이저 드래곤의 힘을 뽑아 낼 수 있으니까요.” 마법사도 그럴 의도로 힘을 만들었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십수 년간 연구의 결실이죠. 훌륭하지 않습니까?” 아이나다의 말을 듣고 블랙시터는 왜 이 힘이 몸 속 깊은 곳을 옭아 매는 느낌인지 알 수 있었다. 이 힘은 그들의 내면속의 힘. 즉 이 세 계를 창조하고 유지하는 힘 자체를 구속하고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그 힘과 일심동체인 카이저 드래곤들은 몸까지 움직이지 못했던 것이 다. 아이나다는 계속해서 말했다. “훌륭하다라... 하지만 이 힘에는 결점이 있어요. 당신도 잘 알고 있겠죠? 내 스스로 창조의 힘을 포기하면 이 구속은 깨어져요. 그리 고 나는 얼마 전에 겨우 그 방법을 알아냈어요.” 아이나다의 말에 마법사는 순간적으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을 지었지만 애써 평정을 가장하며 말했다. “말도 안돼는 소리를 하시는 군요. 그럼 왜 지금까지 잠자코 있었던 것입니까? 그 힘을 포기하는 것이 아까워서 아닙니까? 그런데 이제 와서 힘을 포기할 생각입니까? 그럴 용기가 있으십니까?” “내가 지금까지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도 잠자코 있었던 것은.....” 아이나다는 잠시 말을 끊고 세이고든을 바라보았다. 세이고든은 무언 가 감이 잡힌 표정으로 아이나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이나다는 근심이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세이고든을 안심시키려는 듯이 생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랑하는 이를 한번이라도 더 보고 죽으려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 에요. 내 몸은 당신들이 계속해서 뺀 생명의 힘 때문에 망신창이였거 든요. 이 상태에서 내 창조의 힘을 포기해 버리면 확실한 죽음이 안 겨지겠죠. 그래서 그러기 전에 한번이라도.... 단 한번이라도 세이고 든 오빠가 보고 싶었어요.” “아이나다.” “하지만 이제 그 소원을 이루었으니 더 이상 미련은 없어요. 더구나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세이고든 오빠를 구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행 복해요.” “아이나다! 멈춰!!” 세이고든이 소리를 지름과 동시에 미소를 짓고 있는 아이나다의 몸에 서 은색의 빛이 퍼져 나왔다. 블랙시터가 고함을 쳤고, 마법사도 절 망에 찬 비명을 질렀지만 그 순간 아이나다의 귀에는 세이고든의 목 소리만이 똑똑하게 들렸다. 목이 터져라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멈추 라는 세이고든의 말에 아이나다는 눈물을 흘렸다. ‘미안해요. 세이고든 오빠. 미안해요. 이렇게라도 오빠를 구해야 되 요. 오빠, 언니들도 잡혀서 힘을 빼앗기면 너무 늦어버려요. 그러니 내가 희생할 수밖에 없어요. 내가....’ 아이나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은색의 빛은 어느덧 하나로 뭉쳐서 무엇인가로 변해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아이나다는 마음속으로 그 것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 현실에서는 처음 보는 내 힘의 근원. 앞으로 내가 없더라도 이 세계의 균형을 부탁할게. 내가 사랑했던 인간이 있는 세계.... 그 리고 가장 사랑하는 세이고든 오빠가 있는 이 세계를 잘 부탁해.’ 계속 ---------------------------------------------------------------- 35화 과거가 있기에 현재가 있고, 그리고 미래가 있다.(8) 아이나다의 몸에서 빠져나온 생명의 힘은 무엇인가로 변하고 나서 바 로 사라졌다. 그리고 아이나다는 마지막 힘을 써서 본체의 모습으로 변했다. 바벨탑이 무너졌다. 신의 곁에 있고 싶다는 인간들의 의지가 담겼던 탑은 욕심이 지나쳤던 인간에 의해 신을 잡아두는 탑으로 바뀌었고 그 추악한 욕망에 의해 결국 인간들의 최대 유산이 무너져 내렸다. “아이나다!!” 세이고든은 아이나다를 부르며 본 모습으로 돌아갔다. 탑이 무너져 내 리면서 구속의 힘도 풀린 것이다. [아이! 아이! 눈을 떠 아이!!] 간신히 땅에 추락하기 직전의 아이나다를 붙잡은 세이고든은 끊임없이 아이나다의 이름을 불렀다. 정신을 잃었던 아이나다는 간신히 눈을 뜨고 세이고든을 쳐다봤다. 그 리고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헤헤. 이제야 겨우 제대로 애칭으로 불러주네요. 난 세이고든 오빠가 애칭으로 불러줄 때가 정말 좋아요.] [원한다면 앞으로 계속 애칭으로 불러줄게! 그러니 제발... 제발!!!] 차마 죽지마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지금까지 계속 살아왔고, 앞으 로 사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세이고든은 눈앞에서 아이나다가 죽어간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그래서 죽지마라는 말을 할 수 없 었던 것이다. [무슨 일입니까?!] 저 멀리서 다른 카이저 드래곤들이 날아오며 외쳤다. 인간들의 도시에 서 대기하던 그들은 바벨탑이 무너지면서 안에서 아이나다와 세이고든 그리고 블랙시터가 나오는 모습을 보고 급히 날아 온 것이다. 블랙시 터가 그 들에게 사정 설명을 해주는 동안 아이나다는 세이고든에게 작 별의 말을 하고 있었다. [미안해요. 이런 방법밖에는 없었어요. 제발 울지 말아요.] [누가 울었다고 그래?! 이 바보 같은 녀석! 아이 너 건강해지면 지금 까지 애 먹였던 거 다 포함해서 나한테 혼날 줄 알아!!] 세이고든의 방금 말은 죽지 말아 달라는 말을 빙빙 돌려서 한 말이었 다. 그것을 알아차린 아이나다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 다. [미안해요.] [미안 한 줄 알면 걱정 시키지 말아 달란 말이야! 아이 제발 부탁이야 !! 부탁이니... 제발!!] 아이나다의 오빠 언니들이기도 한 다른 카이저 드래곤들이 전부 모였 지만 그 누구도 죽어가는 아이나다를 살릴 방법이 없었다. 애초에 자 신들이 만든 생명체에 생명을 불어넣는 역할은 아이나다가 했었다. 그 렇기 때문에 아이나다를 죽지 않게 하는 방법 따위는 그 들에게 없었 다. [저 하고 싶은 게 아주 많았어요. 우리가 만든 세계가 발전해가는 것 이 보고 싶어요. 그것도 세이고든 오빠 옆에서 함께.... 하지만 늦은 것 같아요.] [안 늦었어! 오늘부터 같이 보면 돼. 내일도 같이 봐줄게! 원하는 만 큼 같이 있어 줄게!! 아니 영원히 같이 있어줄게!!!] 안 운다는 세이고든의 눈에서 어느새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이 나다는 세이고든의 눈물을 닦아 줄 생각에 팔을 뻗쳤지만 드래곤의 짧 은 팔은 세이고든에게 닿지 않았다. [우리들의 몸은 참 불편해요. 이럴 때 인간의 몸이라면 오빠 눈물 닦 아 줄 수 있는데....] [무슨 바보 같은 말이야. 우리들의 몸도 충분히 훌륭해. 신이 만들어 주신 몸이잖아.] [으응. 살아가는 데는 아무 불편 없는 몸이지만 이성을 사랑하기에는 너무나 불편한 몸이에요. 얼마 전에 드래곤들이 번식률이 낮다고 탄식 을 하신 적이 있으시죠. 우리들이 아이를 만들려면 우리들이 만든 생 명체보다 배는 노력하고 각오를 해야 되잖아요. 드래곤들에게는 부모 자식간만 아니라면.... 각오만 되어 있다면 사랑하는 이성과 아이를 낳도록 해줘야겠어요. 그래야 우리를 닮은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더 태 어날 수 있을 거예요.] [그래. 아이 말이 맞아. 그렇게 할게. 그 이외에도 할 일이 많잖아. 우리가 만든 세계에 새로운 생명체도 만들어야지. 아이는 이대로 끝낼 생각이 없지? 이 세계를 그대로 내버려 둘 생각이 아니지?] 아이나다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시선을 잠시 돌려서 동이 터오고 있는 산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 세계는 훨씬 전부터 우리들의 손길이 필요하지 않게 됐어요. 이미 완성된 거예요. 아직은 불완전하지만 완벽하게 발전해 갈 수 있게 우 리가 이만큼 만든 거예요. 더 이상 세계는 만들지 않아도 돼요.] [아니야! 세계는 아직 불완전해! 아직 아이 네 힘이 필요하단 말이야! 그러니 더 이상 이상한 말 하지 마!!] 그렇게 외칠 때 갑자기 아이나다의 몸이 은색의 빛 입자가 돼서 하늘 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세이고든 오빠 미안해요. 이미 시간이 다 됐어요. 안녕....] [가... 가지마!!! 안돼! 가지마! 사랑해! 너를 잃고 싶지 않은 이 감 정이 사랑한다는 감정이겠지? 그러니 사랑한단 말이야! 그러니 가지마 !!!] 세이고든의 사랑 고백에 아이나다는 눈물에 젖은 미소를 지으며 정말 로 기뻐했다. 하지만 아이나다의 몸은 계속해서 빛으로 바뀌어 하늘로 올라갔다.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제가 가장 사랑하는 세이고든 오빠한테서 고백을 받아서 저 정말 기뻐요. 그런 오빠의 목숨을 구했으니 후회하 지 않아요. 안녕 세이고든 오빠.] [아이!!!] [마지막으로 부탁이 있어요. 내 아이들을 미워하지 말아 주세요. 부탁 이에요. 부탁....] 그 말을 마지막으로 아이나다의 몸은 완전히 빛의 입자가 돼서 하늘로 올라갔다. 세이고든은 어떻게든 그 빛을 붙잡아 두려고 했지만 빛은 세이고든의 몸을 통과해서 하늘로 올라갔다. 그렇게 아이나다는 사라졌다. 하지만 그 때 아이나다의 몸에서 빛의 입자 두개가 바슈티어에게 간 사실을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고, 바슈 티어도 슬픔에 제 정신이 아니어서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완전히 동은 트고 아침이 왔다. 세이고든은 멍하니 아이나다가 사라진 장소를 내려다 봤다. 아직 팔에 아이나다의 감촉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더 믿기지가 않았다. [미워하지 말아 달라고?] 세이고든은 아이나다의 마지막 말을 되새기며 유라이드 왕국의 도시를 쳐다봤다. [내 아이들? 인간을 말하는 것이냐? 인간들을 미워하지 말아 달라는 말이냐?] 세이고든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유라이드 왕국 쪽으로 한 발작 씩 걸어갔다. [미워하지 말아 달라고? 미워하지 말아 달라고?!! 으아아아아악!!!] 그 날 유라이드 왕국은 세계에서 사라졌다. “으차. 으차.” 여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 애가 자기 몸의 절반이 조금 안되는 바구니를 들고 열심히 걸어갔다. “로나야! 역시 무거워서 안 되겠다. 엄마가 들게.” “싫어요! 로나도 다 컸어요! 이거 제가 들고 갈 수 있어요!” 그 나이 또래의 다 컸다는 고집에 로나의 엄마는 어쩔 수 없다는 미소 를 지으며 혹시라도 넘어지지 않을까 주의를 기울이며 뒤따라갔다. ‘오늘 저녁 반찬은 이 정도면 되겠고... 내일 아침은 무엇으로 하지? ’ 로나의 엄마는 일반적인 주부의 저녁 찬거리 고민을 하며 로나의 뒤를 따라갔다. 그런데 로나가 갑자기 자리에서 멈추는 바람에 하마터면 로 나를 발로 찰 뻔했다. “어머나!” 간신히 발을 다른 쪽으로 비킨 로나의 엄마는 비틀거리는 몸의 균형을 잡고 섰다. 일단 넘어지는 것을 피한 엄마는 야단을 칠 목적으로 로나 를 불렀다. “로나야! 갑자기 멈추면 어떡하니 하마터면 다칠 뻔 했잖니!” “엄마! 엄마!! 저기 봐요! 카이저 드래곤님이에요!!” 로나는 엄마가 화를 내도 신경 쓰지 않고 들뜬 목소리로 하늘을 가리 키며 소리쳤다. 로나의 손이 가리킨 방향을 본 로나의 엄마는 자신들 의 창조주를 볼 수 있었다. 금색의 거대한 몸이 공중을 날아가는 것을 보면서 로나의 엄마도 감탄사를 뱉었다. “어머나! 이런 시골에 무슨 일이실까? 평소에는 이 곳을 잘 지나치시 지 않는데...” “엄마! 엄마! 소원 빌어도 되지?!” 로나의 말에 엄마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로나가 빌고 싶은 소원이 카이저 드래곤님에게 닿을 수 있도 록 기원하면서 기도하렴.” “네!” ‘무슨 소원을 빌려나?’ 바구니를 내려놓고 진지한 표정으로 기도하는 로나의 입에서 무슨 소 원이 나올까 하는 궁금증에 엄마는 사랑하는 딸의 입을 바라봤다. “엄마랑 아빠랑 그리고 로나랑 계속해서 많이많이 행복하게 해주세 요.” 또래의 아이들처럼 ‘과자 많이 주세요.’같은 소원을 상상했던 엄마 는 딸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대견한 소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 랐다. 그리고 ‘나 잘했죠.’라며 웃는 딸이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꼭 껴안아주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아이구 우리 착한 로나! 너무너무 잘했어요.” “엄마 숨 막혀요. 아! 엄마 저것 봐요! 너무 예뻐요!” “어머나?!” 로나가 가리킨 방향. 금색의 카이저 드래곤이 날아가던 방향에서 어느 새 번쩍거리는 금색의 빛 입자가 날아오고 있었다. 그 아름다운 색깔 에 로나도 엄마도 그리고, 지나가던 행인들도 감탄하며 쳐다봤다. 그리고 한 순간에 그 시골 마을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인간들은 무 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차리기도 전에 소멸해버린 것이다. [아직 부족해! 아직! 아이나다의 한을 풀려면 아직 부족해! 다 죽여 버리겠어! 이 따위 세계 다 부숴버리겠어!!!] 세이고든은 아이나다가 죽은 날부터 쉬지 않고 인간들의 도시들을 정 확히는 인간들을 죽이고 다녔다. 아무리 작은 마을도 산속 깊이 있는 마을도 피하지 못했다. 나중에는 죽일 수 있는 인간들이 적어지자 세이고든은 눈에 보이는 것 을 닥치는 대로 파괴했다. 세이고든은 진심으로 아이나다가 없는 세계 따위는 필요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세계를 창조하고 그만큼이나 발전시키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하지 만 닥치는 대로 파괴하는 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처음 지성을 갖고 이 땅에 섰을 때처럼 폐허로 변해버린 땅에 주저앉은 세이고든은 초점 없는 눈으로 하늘을 바라봤다. [죽지도 못하는 것인가?] 모든 것을 파괴한 세이고든은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리려고 했었다. 하 지만 자살하지 못했다. 자신의 몸에 온갖 마법을 퍼부어도 그의 몸은 꿈적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정말로 우습군. 아이는 그렇게 쉽게 죽었는데.... 왜? 왜! 나는 자살 도 못한단 말입니까? 창조신이시여! 나에게 이제 무엇이 남았다고 죽 지도 못하게 한단 말입니까?! 당신의 자식으로서 일생의 소원입니다! 저를 죽여주십시오! 나는 죽고 싶단 말입니다!!] 세이고든의 피를 토하는 듯한 외침은 공허하게 하늘에 퍼져갔다. 하지 만 자신들에게 세계를 창조하라고 했던 신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가 않았다. [젠장!] [죽고 싶다는 말 함부로 하지 마세요. 이 아기들을 위해서라도 세이고 든 오빠는 아직 죽어서는 안돼요.] 세이고든의 뒤에는 바슈티어와 다른 카이저 드래곤들이 와 있었다. [슈아구나. 무슨 일이냐? 아니 이 아기들? 그게 무슨 소리냐?!] 세이고든의 초점 없는 눈동자에 순식간에 빛이 돌아왔다. 그 눈은 광 기에 가득 찬 자의 눈이었다. 바슈티어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고 는 손바닥을 폈다. [그렇게나 파괴하고도 아직도 모자라세요? 오빠가 그러면 그럴수록 이 아기들을 남긴 아이는 더 슬퍼할 거예요.] 바슈티어의 손바닥에는 인간의 아기 두 명이 있었다. [아이가 남긴 아기?] 그 아기를 본 세이고든의 머릿속에서 내 아이들을 미워하지 말아 달라 던 아이나다의 마지막 말이 생각났다. [그래요. 아이는 죽기 전에 임신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이 아기들은 아이가 죽기 전에 마지막 힘을 써서 나에게 맡긴 아기들이에요.] 바슈티어의 말은 계속 됐지만 세이고든은 바슈티어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인간으로 변해 있던 아이가 임신을 하면 인간의 아이가 태어난다. 하지만 누구의 아기지?’ 고민하던 세이고든은 문득 인간 마법사가 했던 말이 기억났다. ‘왕에게 그런 짓까지 당하면서요?’ 그 생각이 나자 세이고든은 그제야 ‘그런 짓’이 무엇인지 알아챘다. 생명체가 자식을 낳기 위해서 행하는 지극히 당연한 생식 행위. 하지 만 인간 여자는 그 일을 억지로 당하면 수치심을 느끼고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는 것을 인간들의 감정에 익숙해진 세이고 든이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아이나다가 바로 입에 담기도 힘든 짓을 억지로 당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세이고든은 엄청난 분노에 사로 잡혔다. [그 인간을 이리 내!!] 한 참 설교 중이던 바슈티어는 갑작스런 세이고든의 외침에 깜짝 놀랐 다. 그리고 세이고든의 눈이 분노에 불타고 있는 것을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무슨 짓을 할 생각이에요?!] [당연한 것을 묻지 마라! 죽여 버리겠어! 그 인간은 아이의 수치스런 기억이야! 이 세계에서 없애 버려야 돼!!] [안 돼요!!] 바슈티어는 세이고든의 손에서 아기들을 보호하려고 몸을 돌렸고, 다 른 카이저 드래곤들이 급히 세이고든을 붙잡았다. [이것 놔!! 죽여 버려야 돼! 저 인간들을 죽여야 돼! 그것이 아이를 위한 일이야!! 그런데 왜 방해하는 거야!!] [오빠는 모르겠어요? 정말 모르겠어요?! 이 아기들이 아이의 수치스런 기억이라면 아이가 뭐 하러 마지막 힘을 써가면서 살렸겠어요?!!] [그 따위 일은 몰라! 알고 싶지도 않아! 죽여야 돼! 다 부숴 버려야 돼!!] [제발 정신 좀 차려!!] 퍽! 블랙시터는 더 참지 못하고 세이고든의 배를 후려쳤다. [크윽!] 갑작스런 공격이라 미처 방비를 못한 세이고든은 배를 움켜쥐고 그 자 리에 쓰러졌고, 블랙시터는 세이고든의 목을 움켜쥐고 소리쳤다. [이 바보 자식아! 그렇게도 아이의 마음을 몰라주는 거냐?! 왜 저 아 기들을 살렸는지 정말 모르겠냐?! 저 아기들은 아이가 남긴 희망이야! !] [저 까짓게 뭐가 희망이야?! 저건 아이의 수치스런 과거다!] 짝! 이번에는 바슈티어가 세이고든의 뺨을 후려쳤다. 그리고 울면서 외쳤 다. [왜 그렇게 밖에 생각 못해요?! 그래요. 아이는 억지로 이 아이들을 잉태한 것이나 마찬 가지에요. 그 더러운 인간의 아기에요. 하지만 이 아기들은 아이의 반쪽이기도 한 거란 말이에요!!] [아이의.... 반쪽? 아이의 반쪽....] 세이고든은 멍한 표정으로 맞은 뺨을 만지며 아이의 반쪽이라는 말만 반복했다. 바슈티어는 손위에 올려진 아기들을 세이고든에게 내밀며 말했다. [그래요. 이 아기들은 우리의 소중하고 사랑스런 막내의 반쪽이에요. 이 아기들의 어디가 더럽죠? 잘 보세요. 이 아기들... 아이를 더 많이 닮았단 말이에요. 어딜 봐도 아이에게 손을 댄 인간의 흔적 따위는 찾 아 볼 수 없어요. 아이의 아기들이에요.] [아이의 아기들....] 바슈티어는 마법으로 아기들을 세이고든의 손에 올려줬다. 세이고든은 자신의 손에 놓인 아기들을 멍하니 쳐다봤다. ‘지금이라면 없앨 수 있다. 간단하게.... 그래 간단하게 손만 쥐면 아기들은 죽는다. 아이의 반쪽? 아이의 아기? 아이가... 이 아기들은 아이가 이 세상에 살았었다는 증거. 내가 죽일 수 있을까? 아니 죽여 야 된다. 죽여야....’ 세이고든의 손이 떨렸다. 금방이라도 주먹을 쥘 듯이 손을 부르르 떨 었다. ‘내 아이들을 미워하지 말아 주세요.’ 아이나다의 마지막 당부가 떠올랐다. ‘나는... 나는.....’ ‘부탁이에요. 부탁...’ ‘아이. 나는... 나는 이 아기들을....’ ‘내 아이들을 미워하지 말아 주세요. 부탁이에요.’ [으..... 으아아악!!] 갑작스럽게 세이고든이 소리를 지르자 긴장하고 있던 카이저 드래곤들 은 깜짝 놀랐다. 바슈티어는 세이고든의 손에서 아기를 빼앗아 오려고 했고, 다른 카이저 드래곤들은 급히 세이고든을 붙잡으려고 했다. 하 지만 그들이 염려하던 일은 생기지 않았다. 세이고든은 인간의 모습으로 변해서 아이나다의 아기들을 껴안고 울었 다. 아기들은 세이고든이 너무 세게 껴안아서 아픈지 칭얼거리다가 금 세 울기 시작했다. 카이저 드래곤들은 한 시름 놨다는 표정으로 인간의 모습으로 변해서 울고 있는 세이고든의 주위에 모였다. “다시 시작하자.” 블랙시터가 그렇게 말하면서 세이고든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세이고 든은 울면서 고개를 저었다. “이미 늦었어! 내가 다 파괴했어. 내가 다 부숴버리고 다 죽였어! 아 이도 이제 없어. 설령 다시 시작한다 하더라도 생명을 줄 수 있는 존 재가 없는데 어떻게 다시 시작한단 말이야!!” “아닙니다. 세계는 죽지 않았습니다.” “뭐라고?” 세이고든은 눈물에 젖은 얼굴을 들고 가디락스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 았다. 눈물 때문에 처음에는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곧 가디락스가 가리키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챘다. “새싹?” “맞아. 아이가 죽기 전에 한 말 기억해? 우리가 만든 세계는 더 이상 우리의 손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말. 그 말대로 이 세계는 죽지 않았어. 네가 그렇게 파괴를 했지만 생명은 끈질기게 살아남아서 다시 싹을 틔우고 있어. 이 넓은 세계 어딘가에 아직도 살아남은 생명체와 종족들도 분명히 있을 거야. 이 세계는 이미 우리들이 관리하지 않아 도 되는 세계로 완성된 거야.” [지켜보아라.] 블랙시터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들에게 창조하라 라는 명령을 내렸던 창조신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아... 창조신이시여.” [지켜보아라.] 창조신은 더 이상 창조하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대신에 지켜보라는 말을 했다. 세이고든은 눈물을 닦고 일어났다. 빽빽 울던 아기들은 어 느새 울음을 그치고 세이고든의 가슴에서 옹알거리고 있었다. 그 아기 들을 바라보며 세이고든은 카이저 드래곤들에게 말했다. “지켜보자. 아이나다가 생명을 주었던 이 세계를.....” 계속 ----------------------------------------------------------------- 35화 과거가 있기에 현재가 있고, 그리고 미래가 있다.(9) “그리고 우리들은 세계가 살아나는 모습을 지켜보기 시작했단다. 과 연 블랙시터의 생각대로 세계에 살아남은 생명체들이 있었고, 세계는 더 이상 우리들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자력으로 발전해 나가기 시작 했단다. 그 후 우리들은 창조신님의 말대로 세계를 지켜보기로 했단 다. 창조신께서 왜 우리에게 이 세상을 만들게 했는지 알아내기 위해 서라는 이유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이 세계를 사랑했던 아이나다 대신에 세계를 지켜봐야 될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는 생각 때문이란 다.” 테이는 세이고든의 아니 카이저 드래곤의 과거 이야기가 너무 충격적 이었는지 물어보고 싶은 것은 산더미같이 입안에서 맴돌았지만 단 한 마디도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머릿속이 백지가 된 듯한 느낌을 받고 있던 테이는 옆에서 작게 흐느 끼는 소리에 겨우 정신을 차렸다. “누나?” 티아는 고개를 숙인 채 작게 흐느끼고 있었다. 치마를 붙잡은 손에 상당한 힘이 들어가 있는 걸로 봐서 펑펑 울어버리고 싶은 것을 억지 로 참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런, 이런. 우리 귀여운 손녀 울릴 생각은 없었는데....” 가디락스는 혀를 차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과거 이야기를 해 줬던 세이고든도 난처해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런 오스타인은 울지 않았었는데....” “오빠는! 그럼 남자랑 여자랑 같아요? 남자는 아무 때나 눈물을 보 이면 안 되지만 여자가 이런 이야기를 듣고도 눈물 흘리지 않으면 그 게 여자에요?” 바슈티어가 그것도 모르는냐는 듯이 핀잔을 주자 세이고든은 머리를 긁적이며 난처해했고, 블랙시터는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바슈티어를 보고 말했다. “그럼 슈아는 여자가 아니었구나. 그 오랜 시간동안 감쪽같이 우리 를 속였다니.... 정말 굉장한 실력이구나.” “.......” 순간 드래곤들은 방안의 시간이 얼어붙는 느낌을 받았다. 아니 그것 은 잠시였고, 금방 누구라도 알 수 있는 뜨거운 기운을 뿜으면서 바 슈티어가 이를 갈았다. “블. 랙. 시. 터 오. 빠. 방금 한 말 속에 담긴 뜻을 물어봐도 될까 요?” “설명 안 해도 슈아 너라면 잘 알잖아.” “블랙시터 오빠!!” 바슈티어는 살생결단을 내자는 표정으로 블랙시터에게 덤벼들었고, 블랙시터는 열나게 도망쳐 다녔다. 뭐 테이와 티아의 평소 모습이기 때문에 새삼스러운 느낌은 나지 않지만 한 가지 드래곤 남매와 다른 점이 있다면 블랙시터 쪽이 여유가 있다는 것이다. 테이는 자신의 생활상과 너무 차이가 나는 그 모습에 감동(?)했다. ‘저거 꼭 배워야지!’ 라는 결심까지 하게 될 정도로 블랙시터가 바슈티어의 공격을 피해 다니는 몸놀림은 예술 그 자체였다. 물론 처음 시작은 예술이란 단어 를 붙이기가 미안할 정도로 유아적인 말싸움이 시작이란 게 약간 문 제지만.... 세이고든이 둘에게 소리를 치면서 그만두라고 말렸지만 둘은 들은 척 도 안했다. 그리고 세이고든의 염장을 지르는 또 하나의 일이 있었는 데 바로 다른 카이저 드래곤들은 세이고든을 도와주기는커녕 흥미진 진한 얼굴로 한 마디씩 하면서 재미있게 구경하고 있는 것이었다. “오랜만에 보는데요. 슈아 누님과 블랙시터 형님의 한판 승부.” “지금까지 전적이 어떻게 되더라?” “제가 마지막을 샜을 때가 육만 팔천 오백 구십 삼패로 블랙시터 형 님의 일방적인 승리였어요.” 빙람드의 질문에 에바로온이 정확하게 답변했다. 빙람드는 둘의 싸움 을 세고 있었다는데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에바로온을 바라보다가 장난기가 발동했는지 싱긋 웃으면서 카이저 드래곤들에게 제의했다. “그럼 이번에는 누가 이길지 우리 내기할레?” “이 녀석들아! 말릴 생각은 안 하고 부채질만 하기냐?! 얼른 안 말 려?! 애들도 와 있는데 이게 무슨 추태야!!” 세이고든의 역정이 사태를 방광중인 다른 카이저 드래곤에게로 돌아 가자 빙람드가 투덜거리며 말했다. “저 두 분이 싸울 때 누가 말린다고 들은 적이 있어요? 어차피 말리 려고 끼어들었다가 피 보는 건 항상 우리였잖아요.” “그.. 그렇긴 하다만.... 그래도 오늘이 다른 날도 아니고 새 카이 저 드래곤인 아이가 와 있는데... 저건 좀....” “그것보다 세이고든 형님은 어디에 거실 거예요?” 가디락스는 어느새 빼어 들었는지 종이와 펜을 세이고든에게 물었다. “어? 나? 나는.... 블랙시터가 이긴다에....” “에에? 세이고든 형님까지 블랙시터 형님에게 걸면 내기가 성립이 안 되는데... 혹시 알아요? 이번에 슈아가 이길지도 모르잖아요. 슈 아에게 한번 걸어보세요.” 다른 카이저 드래곤들은 죄다 블랙시터에게 걸었다는 말이었다. “난 승산 없는 내기는 안 해! 나한테 덤터기 씌울 생각하지 마!” “아아. 결국 이번 내기도 무산 됐군.” 빙람드가 재미없다는 듯이 중얼거리자 세이고든이 한심하다는 표정으 로 말했다. “언제 슈아가 이기는 걸 봤어야 내기를 하던 뭐를 하던 하지. 뻔한 승부에 내기 따위는 할 생각을 하는 게 아니야. 그것이 살아가는데 도움이...... 이게 아니잖아!! 이 녀석들 그만 두지 못해!!!” 척 보기에도 엄청 무거워 보이는 탁자가 세이고든의 손에 의해 허공 을 날았고, 곧 큰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져서 부서졌다. 귀한 아이들 이 왔다고 평소보다 더 엄하게 체통을 지켰던 세이고든의 그 간의 노 력이 산산이 부서진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소란스럽던 방안이 조용해졌으니 일단 다행이라고 해야 되지 않을까? 물론 세이고든 본인은 전혀 다행이라는 생각을 안 하고 있었고, 그 증거로 그의 얼굴은 시뻘겋게 물들어 있었다. 누군가 쥐구멍을 마련 해 줬다면 세이고든은 미련 없이 구멍 속에 들어갔을 것이다. “킥.. 킥킥킥. 키득키득.” 정적에 휩싸인 방에 새가 웃는 것 같은 웃음소리가 작게 새어 나왔 다. 웃음소리의 근원지는 바로 티아였다. 방금 전까지 그 누구도 알 지 못했던 일곱 번째 카이저 드래곤의 이야기에 눈물을 흘렸었지만 지금 상황을 보고 도저히 참지 못하고 웃음을 흘렸던 것이다. ‘휴우. 겨우 진정이 된 것 같군. 정말이지 나는 여자가 우는 것은 딱 질색이라니까.’ 블랙시터는 어떻게든 웃음을 참으려고 노력하는 티아를 쳐다보며 미 소를 지었다. 분위기가 가라앉는 거야 저번에 오스타인 때도 그랬었 지만 그 분위기에 휩쓸려 우는 여자를 보는 것은 블랙시터에게 질색 인 일이었다. 그래서 블랙시터는 다소 망가질 결심을 하고 일부러 바슈티어를 도발 한 것이다. 그리고 도발이 성공해서 분위기가 밝아지는 것에 보람을 느낄 때.... “빈틈!” 바슈티어의 천둥 같은 고함소리와 함께 번개 같은 어퍼컷이 블랙시터 의 턱에 작렬했다. ‘이 분위기 파악 못하는 바보 동생아!!’ 지금까지 정통으로 맞아 본 적이 없는 블랙시터는 정통으로 턱을 얻 어맞으면 엄청나게 아프다는 것을 배우며 천정으로 날아 올라갔다. “슈아의 블랙시터 형님에 대한 전적이 일승 육만 팔천 오백 구십 삼 패로 변했네요.” 에바로온이 추락하는 블랙시터를 보면서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블랙시 터 대 바슈티어의 싸움 전적을 수정했다. 카이저 드래곤들의 티아 울음 뚝 그치게 하기 작전에 정신을 못 차리 던 테이는 덕분에 티아가 울음을 멈추고 웃고 있는 것을 보고 다행이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눈물에 젖은 티아 얼굴이 조 금 안돼 보여서 테이는 손수건을 꺼내서 티아에게 건네줬다. “누나. 이거.” “키득키득. 응? 아! 고마워. 킥킥킥.” 티아는 아직도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있었다. “누나 울다가 웃으면 엉덩이에 털 난다더라. 그러니 이제 그만 좀 웃어.” 테이는 순수하게 티아의 웃음을 그치게 만들 셈이었다. 그 의도는 정 말 좋았지만 단어 선택에 아주 문제가 많았다. “그게 남자가 여자한테 할 말이냐?!” 테이는 블랙시터의 뒤를 이어서 천정으로 날아 올라갔다. 세이고든은 그 모습을 보고는 절로 한숨이 나왔다. ‘어떻게 창조신님은 아이나다의 성격은 조금도 닮지 않고, 슈아의 성격을 빼다 받은 생명의 카이저 드래곤을 보내실 생각을 하셨을까? ’ 창조신의 깊은 뜻(?)을 알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분위기가 밝아졌으 니 다행이 아닐까? 물론 세이고든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간신히 소동이 정리대고 다들 자리에 앉아서 진지하게 말 할 수 있는 시간이 왔다. 그 시간을 갖게 되기까지는 실제로 단 몇 분도 안 되는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지만 세이고든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 느낌이 었다. “자. 그럼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 보려무나.” 순식간에 몇 십 년은 늙어버린 듯한 세이고든의 힘없는 목소리에 티 아는 잠시 주저하다가 질문했다. “저기요. 그 때 아이나다님의 몸에서 나왔다는 카이저 드래곤님들의 힘의 근원이라는 거 혹시.... 생명의 정령왕 리스라시르님이 아닌가 요?” “그래 정령왕이란다. 세계의 균형을 지키는 우리들의 힘의 근원이 분리 된 모습들이 바로 정령왕이지.” ‘그 때 리스라시르님이 말씀 하셨던 두 번 다시 자신의 힘이 악용되 지 않게 해달라는 말이 바로 그 과거를 두고 하는 말이었나?’ 세이고든의 과거 이야기에서 아이나다의 몸에서 분리되었다는 힘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쭉 마음속에 담아뒀던 질문이었다. 아 니 티아는 리스라시르에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혹시나 하는 의문을 품고 있었다. 설마 인간들이 창조의 힘까지 건드렸다는 것이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던 것이었는데 티아는 자신의 추측이 맞았다는 데 어떤 반응을 해야 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티아가 복잡한 마음에 끙끙거릴 때 이번에는 테이가 질문했다. “저. 그럼 지금 세계에 있는 정령들은 전부 카이저 드래곤님들이 힘 을 포기하신 결과인가요?” “그래. 정확히는 우리들이 힘을 분리시킨 것이었는데 세계를 유지하 는 정령왕들이 그 때부터 생긴 거란다. 그리고 하급 정령들은 정령왕 들이 광활한 세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스스로 만든 것이지.” 테이는 세이고든의 답변을 듣고도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는 얼굴로 고 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또 다른 궁금한 적이 있니?” “저 그게.... 이런 질문 드려서 죄송합니다. 아이나다님의 일은 안 된 일이기는 하지만요. 이미 다 끝난 일인데 왜 굳이 창조의 힘을 포 기하신 거죠?” 혹시라도 이거 물어서 카이저 드래곤님들이 기분 나빠하면 어떡할까 하는 걱정이 가득 담긴 테이의 말투에 세이고든은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해 줬다. “다 끝난 일이지만 그래도 혹시 모를 만약을 위해서란다. 그 일이 있고 난 뒤부터 인간들에게 용언을 두 번 다시 가르쳐 주지 않았기 때문에 더 이상 언령의 마법을 쓰는 인간들은 없어졌지만 그 후 인간 들은 독자적으로 몸속의 마나를 이용한 마법을 창안해 냈고, 언령에 비해서는 약하지만 그래도 무시 못 할 위력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 을 보고 만약을 대비해서 우리 힘이 악용되지 않게 분리시킨 것이란 다. 정령왕의 계약자는 바로 우리 자신이기 때문에 설령 인간들이 언 젠가는 정령왕의 영역에 손을 댈 수 있는 날이 와도 우리가 죽기 전 에는 아무도 그 힘을 사용할 수 없으니 안전하게 창조의 힘을 지킬 수가 있단다.” 세이고든의 설명에 테이가 이해가 간다는 얼굴로 끄덕일 때 끙끙대던 티아가 놀라서 소리쳤다. “창조의 힘을 지킨다고요?! 그럼 지금 카이저 드래곤님들은 정령왕 들로 힘을 분리했어도 창조를 하실 수 있다는 말인가요?” “그렇단다. 하지만 새로 창조를 해도 그 창조물에 생명을 불어 넣어 줄 수가 없기 때문에 지금 세계를 유지하는 데만 쓰이는 힘이란다. 티아루아 네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티아는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여기 오기 전까지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다. 신과 같은 창조를 자신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테이도 놀라는 중이었다. 아니 놀란 것보다는 어쩐지 허전한 느낌이 더 들었다. 지금까지 같이 자랐고, 항상 같이 있어서 어느새 당연하다고까지 생 각했던 자신의 누나가 저 멀리 손에 안 닿는 경지에 오르는 것을 지 켜보는 느낌이었다. 카이저 드래곤들은 담담한 표정으로 고민하는 티아를 가만히 쳐다봤 다. 그 들은 과연 티아가 어떤 결론을 내릴지가 궁금했다. ‘만약에 저 아이가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하고 싶다면.... 그것은 창 조신의 뜻일까? 아직도 이 세계는 무엇인가 모자란다 말인가?’ 세이고든은 아이나다를 잃고 세계를 지켜보면서 살아왔던 지난날들을 생각했다. 자신이 사랑했던 막내의 마지막 창조물은 훌륭했다. 그리고 동시에 모자란 부분이 많았다. 인간들 중에는 자신이 불완전한 존재인 것을 스스로가 자각하고, 더 높은 무엇인가의 완성된 존재를 꿈꾸며 항상 노력하는 인간을 봤었다. 아이나다를 잃었을 때처럼 욕망 때문에 주변에 피해를 주고 결국에는 자신을 파멸로 몰고 가는 어리석은 인간도 너무나 많이 봤었다. 그렇게 인간들은 흑과 백으로 나누어져서 각각의 삶을 살아왔고, 인 간의 어두운 부분이라 여겼던 부분마저 결과적으로는 인간을 발전시 키는 계기가 되어왔다. 지금 세이고든은 창조신이 창조하라고 했던 창조물이 인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생명의 실버 카이저 드래곤이 탄생했다는 말을 들었 을 때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성격이 아이나다보다 슈아를 닮았다는 사실도 충격적이고.... 아무 튼 그건 잠시 제쳐두고.... 이 아이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신은 왜 이 아이를 보낸 것일까?’ 역시나 티아의 성격이 바슈티어를 닮았다는 것이 세이고든에게 큰 충 격이었던 같다. 아무튼 세이고든의 말대로 그 이야기는 잠시 제쳐두 고.... 티아는 심각한 얼굴로 고민을 하다가 슬쩍 테이의 옆모습을 훔쳐봤 다. 테이가 복잡한 마음으로 자신을 걱정하는 생각을 읽은 것이다. ‘내가 왜 고민을 하고 있는 거지? 여기 오기 전부터 결론을 정해 놨 었는데... 그래 내가 선택한 결론은....’ 티아는 방긋 웃으면서 고개를 들었다. 방금 전까지 심각하게 고민하 던 표정은 이미 찾아 볼 수 없었다. “결론을 내렸느냐?” 세이고든은 약간 초조한 느낌을 받으며 물었다. 티아는 세이고든의 질문에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네. 저는.....” 계속 ---------------------------------------------------------------- 35화 과거가 있기에 현재가 있고, 그리고 미래가 있다.(10) 티아와 테이가 들어가고 난 뒤에 혼자 남은 시이터는 원래라면 바로 집으로 돌아가서 며칠 푹 쉬고 여행을 떠날 생각이었다. 그래서 고민 하고 고민했던 [아주 멋지게 작별하기]를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작전은 티아에 의해서 짐 지키는 짐꾼으로 변해버리는 바 람에 늦은 밤이 되도록 집에도 못 돌아가고, 처량하게 복도에 앉아서 티아와 테이의 짐을 지키는 신세가 됐다. 물론 무시하고 그냥 돌아가는 방법이 있었고, 그 생각을 했었다. ‘그랬다가 나중에 무슨 소리를 듣게 될지....’ 티아 성격에 자기 집에 쳐들어와서 깽판 부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시이터의 발목을 붙잡아서 착하게(?) 짐을 지키게 된 것이다. “근데 왜 이렇게 늦는 거야? 날 밤 샐 생각인가?” 드래곤도 제 말하면 온다고 시이터가 그 말을 꺼내자마자 크고 육중 한 문이 소리 없이 열렸다. “왜 같이 자기 싫다는 거냐?! 인간들 여관에 가지 말고 이 할아버지 랑 같이 자자꾸나!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도 해줄게!!” “싫어요!” “저도요!” 소리 없이 열리는 문에 비해서 문 여는 용물들은 굉장히 시끄러웠다. 가디락스는 사랑하는 손자 손녀가 할아버지랑 같이 자자는 제안을 매 몰차게 거절하자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어지간히도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그래도 아무리 충격을 받았다고 하지만.... “할아버지! 구석에서 눈물로 쥐를 그리실 필요까지는 없잖아요!!” 티아는 음침한 기운으로 훌쩍이는 가디락스에게 짜증을 냈고, 테이는 자신이 자주 했던 짓이라 티아 편을 들어 줄 수가 없었다. ‘별로 보기 좋은 모습이 아니군. 앞으로 자제해야지.’ “그럼 이 모샤니국에는 며칠간 머무를 생각이냐?” 블랙시터는 가디락스를 위로(?)하는 티아에게 물었다. “음. 구경할 만큼 하고 가고 싶어요. 그러니 며칠간 있게 될지는 모 르겠어요. 아 테이야! 짐은 워프로 레어에 연결해서 집어넣어.” “응.” 그런데 카이저 드래곤들과 티아와 테이가 작별인사를 하는 중에 한쪽 구석에서는 철저하게 무시당하고 있는 불쌍한 인간이 한 명 있었으 니.... “저기 티아양 테이군. 나한테 뭔가 할 말 없어?” “수고하셨어요.” 시이터의 질문에 티아는 착실히 대답해 줬다. 그것도 짐을 지켜준 데 에 대한 감사 인사였다. 문제가 하나 있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 답한 점이 시이터의 가슴에 상처를 남겼다는 것이다. “.......이봐! 티아양! 내가 그 동안 실실거리며 티아양을 괴롭히기 는 했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 삐져 있을 셈이야?! 나도 충분히 반성 을 했으니 이제 그만 화 좀 풀어!!” 그동안 꾹꾹 참다가 폭발했는지 시이터의 말투는 굉장히 거칠었다. 그 거친 외침에 티아는 생긋 웃으며 대답해줬다. “어머나! 제가 언제 삐졌다고 그러세요? 전 평소 대하는 것처럼 시 이터 오빠를 대해준 것 뿐이에요.” 미소도 말투도 굉장히 상냥했지만.... ‘삐져도 단단히 삐졌군.’ 티아의 미소 뒤에 싸늘한 냉기를 느낀 시이터는 더 이상 아무 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 “누나 짐 다 옮겼어.” “그래? 그럼 이제 가자.” 티아와 테이는 자신들을 전송 나와 준 카이저 드래곤들 앞에 섰다. “그럼 신세 많았습니다. 저희는 이만 가볼게요.” “그래. 나중에라도 꼭 후라도나국에 놀러 오너라! 내가 산악 국가에 서만 맛 볼 수 있는 명주를 대접해 주마.” 빙람드의 말투는 여전히 거칠었지만 티아와 테이는 거친 느낌은커녕 말 속에 담긴 상냥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번에 이류더국의 인간들이 무인도 여행이라는 관광 상품을 개발 했어. 10월이 되면 행사가 끝나니깐 되도록 빨리 이류더국으로 와야 된다.” 바슈티어의 제안에 티아는 크게 기뻐했지만 티아와 꼭 닮은 성격이라 는 것을 아까 확인한 테이는 바슈티어가 한마디 할 때마다 움찔거렸 다. “아유. 테이는 왜 그렇게 부끄러움이 많은 거니? 하긴 그 점이 너무 귀엽긴 하지만.” 바슈티어는 테이가 자신이 말 할 때마다 움찔거리는 테이의 행동을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숲으로 유명한 종족 엘프들의 고향 오리콘국에 꼭 놀러 와야 된다. 내가 잘 알고 지내는 엘프들도 너희들을 환영해 줄 것이다.” 조용한 성격이라 아까의 대화에서도 말을 많이 하지 않았던 에바로온 이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티아와 테이에게 꼭 놀러올 것을 당부했 다. “잠깐 에바로온! 아직 내 이야기 끝나지 않았어!!” 바슈티어는 자신의 말허리를 끊었다고 화를 내자 에바로온이 난처한 미소를 지었다. “어? 애기 다 끝난 거 아니었어요?” “테이군이 귀엽다는 말 다음에 나중에 이모랑 데이트 하자고 말 할 생각이었단 말이야!!” “아! 그러셨군요. 그럼 말씀하세요.” 에바로온은 난처한 미소를 지으며 바슈티어에게 양보했다. 하지만 이 미 말을 다 했으니 다시 할 필요가 없었던 바슈티어는 테이의 눈을 진지하게 쳐다보며 물었다. “우리 귀여운 테이군의 대답은?” “.......마, 마음만 고맙게 받으면 안 될까요?” 테이는 괜스레 티아의 눈치를 살피며 떨리는 목소리로 데이트 제의를 거절했다. “그래 너무 아쉽네. 난 채이면서 살 팔자인가 봐. 흑. 그래 내 인생 이 원래 그렇지 뭐. 흑흑흑.” “아니 그건 아니고요.” 테이는 바슈티어가 울먹이는 것이 거짓울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난 처해 할 수밖에 없었다. 여자의 눈물에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테이 니라 라고 말해야 될까? 티아는 그 모습을 쳐다보다가 카이저 드래곤 중에서 가장 착한 인상 의 에바로온을 쳐다봤다. ‘나하고 성격만 닮으신 게 아니라. 좋아하는 취향까지 닮은 건가?’ 티아는 바슈티어가 테이에게 데이트 어쩌고라는 말을 하면서도 슬쩍 슬쩍 에바로온의 눈치를 살피는 것을 봤다. 티아는 에바로온 역시 바 보같이 둔하고 착한 남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치 테이같이... 그 리고 그런 에바로온에게 바슈티어가 마음이 있다는 것을 눈치 챘다. ‘힘들지만 같이 노력해요. 슈아 이모.’ 마음속으로 바슈티어를 응원하던 티아가 생긋 미소를 지을 때 음침한 분위기를 벗어 던진 가디락스가 사생결단이라도 내겠다는 기세로 티 아에게 소리쳤다. “반드시! 꼭! 무슨 일이 있어도 화티마국에 놀러오너라! 화티마국의 명물 온천에 데려가주마!” “에?! 오, 온천이요?” 생각에 잠겨 있던 티아는 가디락스의 기세에 놀라서 더듬거리며 묻자 가디락스는 자신감에 가득 찬 말로 화티마국의 명물 온천에 대해서 설명을 늘어놓았다. “그럼! 옛날에 활화산 지대였던 화티마국은 땅속의 마그마에 의해 뜨거워진 물이 분출되는 곳이 많단다. 그리고 화티마국은 그 물을 온 천이라 부르며 관광 상품으로 개발했지. 온천은 몸의 피로를 풀어주 고, 특히 여성의 피부미용에도 탁월한 효과를 발휘하는 기적의 물이 란다.” 가디락스의 설명을 듣던 티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언가 비슷한 것을 본 적이 있었던 느낌이었다. “테이야! 뜨거운 물이란 거 혹시 아빠 레어 근처에 있지 않았었니? ” “응?! 아! 맞아! 나 아빠 레어에서 살 때 자주 그 물에 들어갔었어. 그러고 보니 아빠가 가디락스 할아버지의 나라에 이런 물이 많다고 하셨던 것 같아.” 테이는 바슈티어에게 붙잡혀서 쩔쩔매던 상황이라 티아가 말을 걸어 주자 엄청 기뻐하며 잽싸게 묻지도 않은 말까지 늘어놓았다. “잠깐만! 그런 산속에 자연적으로 생긴 온천이랑 비교하지 말거라! 화티마국은 관광 상품으로 개발하기 위해서 피나는 노력으로 온천을 개발했단 말이다! 그러니 안 오겠다는 말은 제발 하지 말거라. 아! 맞아 가족탕도 있으니 우리 같이 들어 가자구나.” 순간 티아의 몸에서 냉기가 뿜어져 나왔다. “같이.... 들어가자고요? 온천에요?” “그래.” “온천에 들어간다는 건... 목욕한다는 말이죠?” “그런데 왜?” “........내가 왜 이 나이가 돼서 할아버지랑 다 벗고 온천에 들어 가야 되는데요?! 절대로 싫어요! 그냥 테이랑 둘이 들어가세요!!” 티아가 자신을 가리키며 소리치자 테이는 기겁을 하며 외쳤다. “왜 내가 같이 들어가야 되는데?! 나도 싫어!!” “뭐가 어때서?! 남자끼린데 같이 좀 들어 가드려!” “싫어! 어쩐지 잡아먹힐 것 같은 예감이 든단 말이야!!” “너 그 뜻을 알고나 하는 말이냐?” 어느새 가디락스는 싹 무시한 채 같이 들어가라 못 들어간다라는 논 쟁 중인 남매를 보면서 빙람드는 한숨을 쉬었다. “거참. 아무렇지도 않게 할아버지 가슴에 상처 팍팍 주는 녀석들일 세.” 빙람드의 말대로 상처를 팍팍 받은 가디락스는 다시 구석에서 어두운 기운을 내뿜으며 훌쩍이고 있었다. 블랙시터는 그 모습에 피식 웃으 며 말했다. “재들이 정말로 할아버지가 싫어서 그런 것은 아닐걸. 단지 500년 만에 처음 보는 할아버지이고, 더구나 일반적인 드래곤에게는 위대한 존재인 카이저 드래곤이라서 쉽게 마음을 터놓기가 힘이 들어서 그런 거야. 말은 저렇게 해도 틀림없이 아까 전에 티아양의 대답을 생각하 면 할아버지를 좋아하고 있을걸. 그렇지 않나? 세이고든.” “아아.” 뒤에서 잠자코 있던 세이고든은 말싸움이 격해져서 티아의 실력행사 차원까지 넘어갈 남매의 싸움에 끼어들었다. “그만들 해라.” 세이고든의 중재에 절대로 말리지 못할 것 같던 티아와 테이의 싸움 은 그 즉시 끝나버렸다. “네.” “.......네.” 티아는 이때쯤이면 주먹을 날려야 되는데 못 날린 것이 아쉬운지 말 에 불만이 섞여 있었다. 세이고든은 그것을 눈치 챘지만 몇 번 헛기 침을 하며 모른 척하고는 무뚝뚝한 어투로 말했다. “세인트국은 프론트 연합국의 다른 나라와 달리 그리 볼게 없다. 중 앙에 위치해서 교통이 편리 하다는 장점만 있고, 신전이 많아서 신성 왕국이라 불리는 것 빼고는 볼 거 없으니 오던지 말던지는 마음대로 하거라.” 꼭 자기들이 사는 곳에 놀러 오라는 다른 카이저 드래곤에 비해서 정 말 냉담한 말이지만 그런 세이고든의 스타일을 이해한 티아는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꼭 갈게요!” “그, 그래? 그, 그럼 언제든지 놀러 오너라.” 세이고든은 티아의 미소를 보고는 헛기침을 하면서 고개를 돌렸고, 솔직하지 못한 세이고든의 모습에 다른 카이저 드래곤들은 킥킥거리 며 웃었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프론트 연합국의 다른 나라에 꼭 놀러갈게요.” “그래. 여행 조심해서 해야 된다. 모샤니국을 떠나기 전에 한번 들 리는 것 잊지 말고.” “네!” “네!” 마지막으로 블랙시터의 당부에 티아와 테이는 힘차게 대답하고는 시 이터와 같이 신전 밖으로 나갔다. 아이들이 밖으로 나가자 블랙시터 는 굳은 몸을 풀기 위해 팔을 쭉 뻗었다. “아아! 한가지 일이 끝났구나.” “하지만 조금 아쉬운데요. 티아양이라면 같이 세계를 재창조하는 작 업을 해도 즐거울 것 같았는데요.” 에바로온은 정말 아쉽다는 듯이 말했고, 빙람드도 같은 기분인지 에 바로온의 말에 동의했다. “뭐 나도 아쉬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같이 하자고 강요 할 수는 없는 거잖아.” “그건 그래. 그런데 오랫동안 세계를 지켜 본 우리보다 더 이 세계 를 믿고 있다니.... 우리도 반성 좀 해야 되겠어.” 블랙시터가 그렇게 말하자 세이고든이 바로 역정을 내며 소리쳤다. “그 녀석은 이 세계에 몇 번 부딪쳐 보지 않았으니 그런 소리를 하 는 거야! 우리가 창조한 세계의 불완전한 모습에 절망감을 느끼게 되 면 나중에 스스로 찾아와서 바꾸자고 할 걸! 흥 이래서 어린애들은.. ..” “아! 세이고든 오빠 그 발언 그냥 못 넘기겠는데요. 여자애한테 그 녀석이 뭐예요? 그리고 믿는게 뭐 어때서요. 믿는다는 것은 잘 못이 아니잖아요. 우리도 이 재미있는 세계를 믿어보자고요.” “맞습니다. 불완전하기 때문에 재미있는 것 일수도 있잖아요. 나쁜 일도 많았지만 그렇다고 좋은 일이 아예 없었던 것도 아니고요. 미래 를 믿어보죠.” 세이고든의 역정에 바슈티어와 가디락스가 티아 편을 들어줬고, 졸지 에 아군(?)을 잃은 세이고든은 콧방귀만 뀌며 외면했다. “자자. 그만 하라고. 세이고든 자네 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니야. 아 이나다의 힘을 이어받은 아이가 나타난 것도 심란할 테고, 이 기회에 세계의 모자란 부분을 다시 재창조하고 싶어 하는 욕심이 생겼겠지. 나도 그런 생각을 했었으니.... 하지만 나도 티아양 말대로 믿는다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아까 티아양 말에 제일 감동한 얼굴이었던 것은 세이고든 자네였잖아.” “내가 언제!!” 세이고든은 화를 벌컥 내며 외쳤지만 솔직히 블랙시터 말이 맞기 때 문에 찔려서 괜스레 화를 낸 것이다. 세이고든은 아까부터 티아가 한 말을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었던 것이다. ‘저는 카이저 드래곤의 힘을 포기할게요. 아빠처럼 사랑하는 이와 같은 시간을 살아가고 싶다는 욕심도 약간은 있어요. 또 다른 이유는 저는 이 세계를, 인간을 믿고 있어요. 신룡님들이 만드신 이 세계와 인간은 분명히 불완전하기는 해요.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잖아요. 불 완전하기 때문에 완벽해지고 싶어 하는 욕망이 세계를 움직이고 발전 시켜 왔잖아요. 그 욕망 때문에 아이나다님이 희생된 과거가 있는 것 은 정말 가슴 아파요. 하지만 그런 과거 때문에 현재의 제가 있는 것 이니 이 세계에 태어난 것을 항상 감사하며 살아야 되겠다고 생각해 요. 그리고 아이나다님이 사랑하신 이 세계의 미래를 대신 지켜보고 싶어요. 저의 생명이 다하는 그 날까지요.’ 세이고든은 창문으로 하늘을 쳐다봤다. 밤하늘에 보석이라는 별들을 바라보며 세이고든은 생각에 잠겼다. ‘창조신이시여 정말로 단지 아이나다 대신에 세계를 지켜보게 하기 위해서 저 아이를 내려 보내신 것입니까? 저희들만으로는 부족하단 말입니까? 제발 저 아이에게 어떤 짐을 지우기 위해서 내려 보낸 것 이 아니기를 빌겠습니다.’ 세이고든은 진심으로 기원했다. 제발 티아와 테이는 자신과 같은 아 픔을 겪지 않기를 기도했다. 블랙시터는 그런 세이고든의 어깨를 치 며 말했다. “오늘 밤 바로 돌아갈 건가? 오랜만에 한잔 어때?” “좋아. 오늘은 왠지 취해보고 싶어.” “호오. 평소에는 술은 적당히 마셔야 된다는 주의의 세이고든께서 취해 볼 거라고?” 블랙시터가 장난스레 물어보자 세이고든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놀리지 말게. 괜히 그러고 싶은 날도 생기는 거야.” “좋았어! 술은 인간들의 발명한 것 중 최고의 보약! 하지만 오늘만 큼은 취할 때까지 마시러 가자고! 어이! 너희들도 마시고 가기야!” “예!!!” 블랙시터의 신전에서 나온 티아와 테이는 시이터에게 자신의 집에서 자자는 제의를 받았지만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내가 그렇게 위험한 놈같이 보이냐?!” “네.” “잘 아시네요.” 여전히 독기가 서린 남매의 대답에 시이터는 화를 내는 것조차 포기 하고,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그래. 그럼 좋은 여관을 소개시켜 줄게.” 힘없이 터덜터덜 걸어가는 시이터의 뒷모습을 보고 신경이 쓰였는지 티아가 지나가는 말투로 말했다. “그냥 우리 둘만의 힘으로 여행을 시작하고 싶어서 그런 거니 너무 마음에 두지 말아요. 결코 시이터 오빠가 싫어서가 아니에요.” “그래?! 그럼 나 좋아하지?!” 참으로 회복이 빠른 인간이었다. 하지만... “아니요. 안 좋아해요.” 티아의 저 차가운 말투에는 빠른 회복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차라리 말을 꺼내지 말던가. 병 주고, 약주는 것도 아니고 도대체 뭐야?’ 다시 기가 팍 죽어버린 시이터는 문득 방금 전 티아의 말에서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생각났다. “잠깐만. 너희들 지금도 여행 중이잖아. 그런데 무슨 시작이란 말이 야?” 시이터의 질문에 티아와 테이는 서로 쳐다보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처음 여행의 목적은 신룡님들을 만나는 것이었어요. 그 목적을 이 루었으니 하나의 여행이 끝난 거잖아요.” “지금부터 새로운 여행을 시작할 셈이니 시작한다는 말을 쓰는 게 이상한 것이 아니죠.” “그렇구나.” 시이터도 납득을 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던 중에 시이터가 소 개해 주기로 한 여관에 도착했다. 약간 허름한 여관이었지만 청소는 잘 해놓고 있는지 굉장히 깔끔한 느낌이 드는 여관이었다. “이곳이야. 오래대서 좀 낡았지만 그래도 음식 맛은 끝내주는 여관 이지. 그리고 청결한 곳이니 외관 모습에 너무 신경 쓰지 마.” “감사합니다.” “뭐. 여러 가지 일이 있었지만... 그래도 마지막까지 도와 줘서 고 마워요.” 솔직하게 고맙다고 인사하는 테이와 가시가 팍팍 돋친 말이지만 나름 대로 감사를 표하는 티아. 이 둘의 스타일에 이미 익숙해진 시이터는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럼 여기서 작별이구나. 늘 즐거운 여행이 되렴. 인연이 있으면 또 보자!” “잠깐만요!” “응?” 티아는 작별인사를 하는 시이터를 붙잡아 두고는 머뭇거리다가 물었 다. “시이터 오빠. 신룡님들의 과거 이야기 알고 계세요?” “응? 아아... 그거. 당연히 알고 있지. 내가 달리 신룡님의 그림자 겠냐? 신룡님들이 그림자를 둔 것도 자리를 비워서는 안 되는 신룡님 들 대신에 세계를 둘러보며 인간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지켜보기 위 해서야. 가끔은 신룡님들 대신에 프론트 연합국을 지키는 일도 하지 만.” “그럼. 혹시.... 이건 제가 혹시나 하는 건데요. 신룡님들의 그림자 는 아이나다님이 남기신 아이들의 후손이 맞나요?” “정답. 그런데 그걸 눈치 채고 있다면 무엇이 궁금한 거지? 아니면 단순히 자신의 추리를 확인하고 싶은 것?” 시이터의 질문에 티아는 잠시 주저하다가 물었다. “시이터 오빠는 인간이니 물어보기 곤란한데요. 오빠는 인간을 어떻 게 생각하세요?” 시이터는 잠시 티아가 어떤 의도로 질문을 했는지에 대해서 고민했 다. 하지만 티아가 걱정하는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것을 보고는 피 식 미소를 지으며 티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기분 나쁜 질문 아니니 네가 걱정하지 않아도 돼.” “거, 걱정 한 적 없어요! 그리고 머리 쓰다듬지 말아요!!” “네, 네. 아무튼 질문에 대한 건데.” 시이터는 티아의 머리에서 손을 떼고 씩 웃으며 말했다. “티아양이 언젠가 이런 말을 했었지? ‘인간을 많이 좋아해요.’하 고 말 했었잖아.” “그, 그랬죠.” 그 말을 할 때 울고 있었다는 것이 생각난 티아는 얼굴을 붉히며 고 개를 끄덕였다. “난 그때 그 말을 드래곤인 너에게서 듣고서 정말 기뻤단다. 인간을 배척하는 종족이 많은 판에 인간을 믿어주는 드래곤이 있구나하는 생 각에 정말 기뻤지. 내가 인간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야. 나도 티아양 과 같은 마음이야. 이 오빠도 인간을 좋아해. 아주 많이... 그리고 티아양 같은 드래곤도 정말 좋아하고.” 그렇게 말하는 시이터는 정말로 기쁜 듯이 웃고 있었다. 티아도 덩달 아서 환한 미소를 지어줬고, 시이터가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어줬 다. “자 이제 방부터 잡자.” 시이터가 완전히 사라지자 티아는 손을 거두고 테이에게 말했다. 하 지만 테이는 뚱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렇게 헤어지기 아쉬우면 시이터씨 집에서 자도 되잖아.” “너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이야?!” “별 뜻 없네요.” 말은 그랬지만 테이의 말에는 별 뜻(?)이 아주 많이 담겨 있었다. 처 음에는 울컥했던 티아도 테이의 불만에 가득 찬 행동에서 무언가를 느끼고는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질투하는 거야?” “누가 누구한테?!!” 테이는 찔리는 게 많았는지 티아의 질문에 곧바로 매서운 반응을 보 였다. 티아는 그 모습에 킥킥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시이터 오빠는 그냥 좋은 오빠라고 생각할 뿐이야. 이 누나가 진짜 좋아하는 남자는 따로 있단다. 알고 싶니?” “벼, 별로 알고 싶지 않아. 그런 걸 내가 알아봤자 어디다 써 먹는 다고.” 티아가 굳이 테이와 연결된 마음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테이의 얼굴에 는 ‘신경 쓰인다’라는 글이 가득 써 있는 것만 같았다. 물론 티아 는 그 얼굴을 보고도 짐짓 모른 척 행동했다. “그래? 그럼 말해 줄 필요는 없구나.” “아니. 뭐 꼭 말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동생 된 도리로서 들어 두 는 것도....” 라고 말은 했지만 테이는 마음속으로 엄청 신경 쓰고 있었다. ‘혹시나! 역시나! 블랙시터님을 좋아하는 건가? 으으. 시이터씨 몸 속에 들어가 있던 블랙시터님의 영혼과 만났을 때부터 어쩐지 누나 행동이 이상했어. 으으. 열 받아! 왜 열 받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째든 열 받아!!!’ 덤으로 멋대로 오해까지 하면서.... 티아는 테이가 오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둔한 테이가 스스로 알아채기를 바라는 마음에 사실을 말해 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둔한 성격이 내 속을 애태워 놨으니 테이도 실컷 고민 좀 해보게 해야지.’ 티아는 테이 모르게 혀를 낼름 내밀고는 고민 중인 테이의 목에 팔을 감으며 외쳤다. “남자가 언제까지 끙끙거릴 거야?! 새로운 여행이 시작 됐는데 그렇 게 끙끙거리는 것은 안 좋은 버릇이에요. 자 시작하자! 우리의 새로 운 여행을!!” “아아. 그런데 결국에는 또 누나랑 나랑 여행을 시작하게 된 거네. ” 힘차게 손을 들며 외쳤던 티아는 테이의 초치는 말에 힘이 빠져버렸 다. “뭐야?! 방금 네 말은 마치 나랑 여행하기가 무척이나 싫다는 말처 럼 들린다!!” 티아가 화를 벌컥 내자 테이는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싫다고 말한 적은 없어. 어차피 내가 싫다고 해도 누나는 힘으로라 도 끌고 다닐 생각이잖아. 그러니 일찍 감치 포기한거야.” 여기까지라면 티아도 참고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누누 이 말했듯이 여기서 꼭 한마디 더 하는 것이 테이의 버릇이었으니... “누나에게 사랑받는 남자한테도 일찍 감치 포기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싶다니깐.” “이.. 이.. 이! 이 초 둔감증 환자야!!!” 그렇게 새로운 여행의 시작은 티아의 스크류 펀치로 시작됐다. 그때의 나는 티아 누나와 내가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앞 으로도 변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누나도 나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조금씩 변해가고 있었다. 변한 것을 알아차린 것은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난 뒤였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난 뒤..... 계속 ---------------------------------------------------------------- 36화 시간이 흐르고.... 웅웅웅. “또 날아다니는군.” 나는 햇볕을 쬐기 위해서 레어 밖으로 나왔다가 하늘을 날아가는 인 간들의 비공정을 보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거대한 타원형의 풍선에 마력을 동력으로 하는 프로펠러라는 것으로 추진력을 만들어서 하늘 을 날아다니는 인간들의 발명품이었다. 인간들의 눈부신 발전은 끝이 없었다. 마법뿐만이 아니라 기계에서도 상당한 발전을 이룩했고, 그 유산 중의 하나가 바로 비공정이다. 인 간들은 결코 범접할 수 없을 영역이라 생각했던 하늘을 결국 제압한 것이다. 처음 하늘에서 저것과 마주쳤을 때는 내가 모르는 몬스터인 줄 알고 엄청 놀랐었다. 하지만 그 때 그 비공정에 타고 있던 인간들은 나보 다 배는 놀라서 허둥대다가 추락했었다. 뭐 이상하게 생긴 물체 안에서 인간들의 아우성치는 소리가 들려서 반사적으로 구해줬지만... 얼마 후에 비공정은 인간들의 가장 편리하고 빠른 교통수단이 됐고, 그 덕분에 시도 때도 없이 날아다니는 비공정의 소음에 골치가 아플 지경이었다. “항상 더 빨리 가게만 만들 셈인가? 소음 문제 좀 해결하란 말이야! ” 나는 투덜대면서 레어 근처에 침묵 결계 마법 사이레스를 걸고, 따끈 따끈한 햇볕을 즐겼다. 가끔 비공정이 지나가면서 햇빛을 가리는 게 거슬리기는 했지만 못 참을 정도가 아니기 때문에 그냥 내버려뒀다. “하암. 봄이구나. 동면에서 깬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잠이 잘 오 네. 차라리 좀 더 동면에 들어갈까?” 난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방금 전 혼잣말과는 달리 난 잠을 자 지 않고 생각에 잠겼다. 그동안 많이도 세계를 돌아다녔다. 많은 인간들을 만나고 그들이 사 는 모습을 보아왔다. 가끔 드워프나 엘프, 마족들과 같이 여행하기도 했다. 인간과는 달리 오래 사는 이들 종족 중에서는 아직도 살아 있 는 친구가 많았다. 하지만 친하게 지냈던.... 목숨을 맡겨도 될만하 다고 생각했던 인간들 중에서 살아 있는 인간 친구는 단 한명도 없었 다. ‘그게 인간들이 약한 점 중에 하나지. 인간들이 만약에 엘프만큼, 아니 하다못해 드워프만큼이라도 오래 산다면 정말 드래곤처럼 강한 인간이 생길 텐데.’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죽은 것이 아까운 인간들이 많이 있었다. 착 하고 정의롭고, 그리고 자신의 신념을 위해 살았던 수많은 인간 친구 들이 못 견디게 보고 싶을 때가 들기도 했다. ‘보고 싶다고 죽은 인간들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 아니잖아. 추억을 되새기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너무 추억에 얽매여서 현재를 부정하는 짓은 하지 마라.’ 언젠가 티아 누나가 친구들을 그리워하는 나에게 해줬던 말이었다. 늘 나에게 가시 돋친 말을 하던 누나지만 그래도 나를 가장 걱정해주 고, 아껴준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내가 그것을 알아차렸을 때는 너무 늦어 버렸다. 신룡님들은 이미 이 [세계]에 없다. 엘리멘탈 소드에 봉인 된 정령왕 들 대신에 정령계에서 세계의 균형을 지키고 계셨다. 덕분에 이 [세 계]에 남아 있는 카이저 드래곤은 누나와 아버지뿐이었다. 하지만 아 버지는 두 번 다시 각성을 못할 정도로 나이를 먹었기 때문에 단지 다른 드래곤보다 힘이 조금 더 센 보통 드래곤이시다. 결국 남은 카 이저 드래곤은 누나뿐이었다. ‘난 절대로 카이저 드래곤으로 각성 안할 거야. 신이 내게 주신 생 명만큼만 살아도 나에게는 충분한 삶인걸. 그런데 뭐 하러 영원히 살 아야 되겠어? 지금 이대로도 충분해.’ 항상 입버릇처럼 각성 안 할 거야라고 말하던 누나는 결국에는 각성 을 해버리고 말았다. 바로 나 때문이었다. 나와 누나는 혼돈의 신 카오스를 없애기 위해 동료들과 여행을 다닌 적이 있었다. 그런데 내 실수로 나는 죽을 뻔 했었다. 그런 나를 위 해 누나는 ‘죽지 마!’라고 소리치며 내 생명을 살려줬다. 그리고 그 대가로 그렇게나 싫어하던 카이저 드래곤으로서 각성해버린 것이 다. ‘모든 게 나 때문이야! 내가 바보같이 머뭇거리는 바람에....’ 그 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후회가 된다. 하지만 누나는 나를 탓하 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살릴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 다. 누나는 그렇게 말할 때마다 밝게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속으로 울음 을 참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누나가 그 말을 할 때마다 나는 ‘바보같이.... 뭐가 다행이라는 거야. 울 것 같은 얼굴로 뭐가 다행 이라는 거야?!’라고 소리치고 싶은 것을 꾹꾹 참아왔다. ‘이왕 카이저 드래곤으로 각성해버렸으니 예전에 신룡님들이 했던 대로 한 나라의 신적인 존재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누나는 그렇게 말해버리고 평소 친분이 많았던 다이러스 제국을 수호 하는 존재가 됐다. 덕분에 내 레어 건너편의 누나 레어는 주인 없는 레어가 됐다. 하지 만 나는 그 레어에 다른 드래곤이 들어와서 살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언젠가 누나가 다시 돌아올지도 모를 때를 대비해서.... 누나가 다이러스 제국으로 가는 날 나는 말릴 생각으로 누나 레어로 갔었다. ‘언젠가는 돌아 올 거지?’ ‘글쎄. 이 누나가 돌아 와 줬으면 좋겠어?’ 장난스레 묻는 누나의 질문에 나는 갑자기 울컥해서 마음에도 없는 말을 뱉었었다. ‘누나가 돌아오던지 말든지 나하고는 상관없어!’ ‘아아. 그래? 그렇구나. 테이하고는 상관없는 일이지.’ 누나는 쓸쓸함이 가득 담긴 말투로 힘없이 말했다. 덕분에 나는 누나 를 가지 못하게 말리는 대신에 다른 말을 해버렸다. ‘그래! .......하지만 혹시라도 나중에 누나가 돌아 올 때를 대비해 서 누나 레어에 다른 드래곤이 살지 못하게 해 놓을게.’ ‘......고마워.’ 여전히 목소리에 힘은 없었지만 누나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줬다. 그렇게 누나가 다이러스 제국으로 가면서 누나와 내가 같이 다니던 여행은 끝이 났다. 그 후 가끔 혼자서 여행을 다니기는 했지만 가슴 한 구석이 허전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늘 곁에 있고, 같이 행동했던 존재가 옆에 없다는 것이 그렇게나 허 전할 줄은 직접 겪어보기 전까지 꿈에도 생각 못했다. 누나는 다이러스 제국으로 가 버리고 난 뒤에 여간해서는 나를 만나 러 오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각성하고 난 뒤부터 나를 피하는 느 낌이었다. 그 전에는 귀찮을 정도로 내 곁에 붙어 있었지만 지금은 허전할 정도로 나와 거리를 두고 있다. 지금 누나와 내가 걸어가는 길은... 마치.... ‘평행선 같아. 걸어가는 길은 같아도 결코 만날 수 없는.... 그리고 내 길에 끝은 있지만 누나의 길에는 끝이 없어. 영원히.....’ 많은 시간이 흘렀다. 아주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리노력 2715년. 인간들의 시간으로 2000년이 흘러갔다. 계속 ---------------------------------------------------------------- 37화 드래곤과 아기 바구니(1) 다이러스 제국 동쪽에는 샤프드 산맥이라는 아주 큰 산맥이 대륙을 나누고 있다. 그 샤프드 산맥 건너편에는 오리하곤 왕국과 오리하곤 의 형제 왕국이라 불리는 레이아스 왕국이 있었다. 이 형제 왕국과 다이러스 제국과 가이라가 왕국은 육로로의 왕래가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샤프드 산맥이 험준하고 높은 산은 최고 해발 3500미터가 넘는 산이 많은 것도 이유 중에 하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이 곳 산맥이 유명한 드래곤들의 보금자리이기 때문 이다. 조금이라도 숲이 울창하다 싶은 산은 어김없이 드래곤들이 살 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동쪽의 형제 왕국 오리하곤과 레이아스 그리고 서쪽의 가이라가와 다이러스는 암묵적으로 평화협정을 맺은 상태였다. 해로에 의한 침범을 생각해 볼 수도 있는 노릇이지만 그러기에는 동 쪽 끝의 거대 제국. 데스타 제국의 영향력 때문에 형제 왕국은 함부 로 샤프드 산맥 건너편 나라에 군대를 보낼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서쪽의 가이라가 왕국과 다이러스 제국은 해군이 너무 약했다. 이 두 나라는 지난 몇 천년간 앙숙이었다. 하지만 해로에 의한 침략 은 신룡들의 나라 프론트 연합국을 지나쳐서 가야 되기 때문에 자칫 잘 못하면 프론트 연합국의 해상에 침범을 하는 것으로 간주 될 수도 있기 때문에 해로에 의한 공격은 두 나라 모두 생각할 수도 없었다. 비록 지금은 신룡들이 없다고 하지만 신룡들에게 많은 것을 배워왔던 프론트 연합국은 최고의 기사들과 최고의 해상력으로 스스로 자국을 지킬 능력이 되기 때문에 지금까지 중립국의 위치에 있을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가이라가와 다이러스는 오로지 병사들과 기마병들의 훈련에만 치중했고, 두 나라의 지상 병력을 합치면 데스타 제국을 뛰 어 넘을 정도라는 분석을 얻을 정도로 최고의 지상병력을 지니고 있 었다. 그러나 그 덕분에 해상력은 그리노 대륙의 강대국들 중에서 가 장 약했다. 하지만 시대는 변했다. 제일 먼저 데스타 제국에서 비공정이란 것을 개발했다. 결국 인간은 하늘까지 자신의 영역으로 삼아 버린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도 앞 다투어 비공정 개발에 박차를 가했고, 시간이 흘 러 공중을 자유로이 다니는 것이 인간들에게 당연한 일이 됐다. 샤프드 산맥 중에서 중간 정도의 산 중에 이름이 없는 산이 있었다. 이 산은 재미있게도 다이러스 제국과 가이라가 왕국의 국경선으로 나 누면 딱 반반씩 나눠 갖게 되는 산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다이러스와 가이라가는 각자의 지도에 이 산의 이름을 지었다. 하지만 그리노 대륙의 전체 지도를 만드는 모임이 중립국 프론트 연 합국에서 행해졌을 때 두 나라는 이 산을 서로가 만든 이름으로 넣기 를 원했고, 자칫 잘못하면 국제 문제로 커질 수도 있기 때문에 다른 나라의 중재로 [그리노 대륙 공동지도]에는 고대어로 무명이라는 뜻 의 [네마]로 정해졌다. 하지만 이 산도 드래곤의 서식지로 판명되어 사람 손이 닿을 수 없는 산이었다. 사용하지도 못할 산을 자존심 때문에 이름 갖고 으르렁거 릴 정도로 두 나라는 사이가 나빴다. 몇 천 년 동안 지루한 자존심 싸움을 계속했던 가이라가와 다이러스지만 얼마 전부터 사정이 달라 졌다. 다이러스 제국에 예전 신룡들의 나라 프론트 연합국처럼 그 나라를 수호하는 새로운 신룡이 와 준 것이다. 신룡의 이름은 실버 카이저 드래곤 티아루아. 그 옛날 다이러스 제국의 위기 때 기적을 일으켰다는 생명의 여신이 라는 전설 속에 나오던 전설의 드래곤이었다. 다이러스 제국은 엄청난 환호를 하며 자신들의 수호신을 반겼다. 프 론트 연합국이 데스타 제국조차 건드리지 못할 명실 공히 최강의 중 립국이 된 배경에는 신룡들이 있었다는 것은 그리노 대륙의 상식이었 다. 그렇기 때문에 수호신의 등장에 다이러스 제국은 환호했고, 가이 라가 왕국은 긴장을 했다. 하지만 가이라가 왕국의 걱정과는 달리 티아루아는 다이러스 제국의 왕에게 나라를 지켜줄 테니 대신 다른 나라를 침략 하지 말라는 부탁 을 했다. 당시 다이러스 제국의 왕은 전쟁을 싫어하는 인간이여서 티 아루아의 계약 조건을 흔쾌히 받아 들였다. 그리고 다이러스 제국은 프론트 연합국에 이어 제 2의 중립국의 입장을 표한 것이 삼백 년 전 의 일이었다. 조용하다 싶을 정도로 세계는 평화로웠다. 하지만 그리노력 2715년 봄. 조용한 평화에 찬 물을 끼얹는 사건이 일어났다. 오리하곤 왕국 의 선왕 프리드크 3세가 갑작스런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프리드크 3 세에게는 왕위를 이어받을 왕자가 슬라드 왕자 한명뿐이었는데 슬라드 왕자는 작년에 태어난 젖먹이 아기였다. 결국 장녀 네반 공주의 남편 아그라느가 슬라드 왕자가 왕위를 이어 받을 수 있게 될 때까지 대리로 왕을 맡기로 결정됐다. 하지만 어느 날 슬라드 왕자가 사라졌다. 걸음도 걸을 수 없는 젖먹이니 혼자 걸 어 나가서 실종될 리가 없기 때문에 납치라는 결론에 오리하곤 왕국 은 발칵 뒤집혀졌다. 오리하곤의 형제국인 레이아스 왕국에서는 왕위 를 노린 왕자 암살의 의혹을 제기했고, 아그라느는 오해를 풀기 위해 슬라드 왕자의 수색에 엄청난 돈을 쏟아 부었다. 옛날 격동의 시절에는 이 정도 사건은 그리 큰 사건 측에도 못 끼었 지만 지난 몇 백년간 무료하다 싶을 정도로 평화롭게 살았던 다른 나 라들에게는 아주 오랜만에 일어난 사건에 큰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온 대륙이 슬라드 왕자의 이야기로 떠들썩할 때 샤프드 산맥 중 드래곤이 사는 산으로 판명 된 [네마] 산에서 인간들이 알지 못하 는 작은 사건이 일어났다. 밤의 숲은 일반적으로 조용하다. “크르르르!” “쿠루르르!” “크아르! 크아르!” 하지만 무명이란 뜻의 네마 산 속에서는 한 무리의 고블린들이 소리 를 지르며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는 바람에 조용한 숲 속의 밤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 인간 남자들의 평균키의 절반 밖에 안 되고, 거무칙칙한 피부에 커다 란 사마귀가 여기저기 나 있는 흉측한 모습인 - 인간의 관점으로 - 고블린들은 마치 무언가를 찾는 것처럼 수풀을 헤치고 다녔다. 가끔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는 고블린도 있었다. 그 고블린들이 찾고 있는 장본인은 제법 큰 나무 위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하아. 하아. 이 산만 넘으면 다이러스 제국이 코앞인데.... 하필 여기서 고블린 떼와 마주치다니....’ 몸을 숨기고 있는 여성은 오렌지 색깔의 단발 머리카락을 가진 엘프 였다. 엘프는 어두운 숲 속에서도 어느 정도 사물을 볼 수가 있었다. 그 덕분에 자신을 찾아다니는 징그러운 고블린 떼들이 똑똑히 보였 다. 엘프는 많은 수의 고블린에게 기가 질려서 숨도 제대로 못 쉴 지 경이었다. 엘프는 커다란 보자기를 소중한 듯 안고 있었는데 마치 아기를 안아 주듯이 토닥이며 조용히 흔들고 있었다. 아니 정말 아기가 들었는지 보자기 속에서는 아기의 칭얼거리는 소리가 간간히 새어 나왔다. 착한 아기는 잠을 자야 될 아주 늦은 밤이지만 밑에서 엘프를 찾느라 혈안이 된 고블린들의 소음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아기는 언제 울 음을 터트릴지 모를 상황이었다. 그것이 엘프의 마음을 더 초조하게 만들었다. 지금 아기가 울어버리면 고블린들에게 들키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아가야. 제발 조용히 있어주렴. 부탁이야. 단 10분 아니 5분만이라 도 좋아. 으! 저 놈의 나쁜 고블린들! 날 찾으려면 조용조용히 찾으 란 말이야! 그렇게 소리 지르면 찾을 것도 못 찾겠다!!’ 원래대로라면 밤중에 소리 내면서 수색을 하는 것은 생각 없는 바보 나 하는 짓이 맞다. 하지만 고블린들이 그것을 알 리가 없었고, 지금 은 오히려 그 바보 짓 덕분에 엘프는 들키기 일보 직전이었다. 아기가 칭얼거리는 소리는 시간이 지나면서 더 커져갔고, 엘프가 아 무리 달래도 소용이 없었다. 결국 엘프는 최후의 수단을 사용하기로 했다. ‘아앙! 정말 싫지만 젖을 물려야 되나? 진짜 싫은데!! 시집도 안간 내가 왜 아기한테 젖을 물려야 되는 거야?! 이게 다 저 고블린들 때 문이야! 내가 만약 시집 못 가게 되면 죄다 네 놈들 책임이야!!’ 엘프는 울상을 지으며 조심스럽게 상의를 걷어 올리고는 보자기를 조 심스럽게 풀었다. 보자기 속에서는 바구니가 나왔고, 바구니의 뚜껑 을 열자 인상을 잔뜩 찌푸린 아기의 얼굴이 보였다. 엘프의 눈에는 아기가 인상을 찌푸린 것이 마치... ‘나 울 거야! 지금 울 거야! 반드시 울어 버릴 거야!’ 라고 외치는 듯한 표정으로 보였다. 그런 아기의 표정에 엘프 처녀의 마지막 자존심(?)은 간단하게 무너졌다. ‘에휴. 그래. 일단 너랑 나랑 같이 살고 보자. 지금까지 아무한테도 보여준 적이 없는 내 가슴을 네가 처음 보는 거란 말이야! 그러니 영 광으로 알고 제발 울지만 마라.’ 엘프는 다 포기하고 아기를 조심스레 안아서 가슴에 안았다. 하지만 아주 간단하지만 처녀 엘프에게는 어려운 문제에 부딪쳤다. ‘아기한테 젖을 어떻게 먹이지?’ 자신은 남자 손 한번 잡아 본 적 없는 순수 처녀라는 발언이었다. 하 지만 베테랑(?) 아기는 친숙한 것(?)이 보이자 알아서 얼른 입에 물 었다. ‘아얏!’ 갑작스럽게 아기가 달려드는 바람에 하마터면 엘프는 비명을 지를 뻔 했다. 간신히 남은 한손으로 입을 가려서 비명을 지르는 것을 막았지 만 있는 힘껏 젖을 빠는 아기 때문에 비명이 입 밖으로 새어나갈 것 만 같았다. ‘아야야얏! 뭐야?! 원래 아기는 이렇게 엄마들을 아프게 하면서 젖 을 먹는 건가? 으으. 갑자기 아기 낳는 것이 무서워진다.’ 엘프는 그렇게 생각 했지만 아기가 말을 할 수 있다면 나름대로의 사 정설명을 했을 것이다. 처녀가 젖이 나올 리가 없는 법. 그러니 아무 리 빨아도 젖이 나오지 않자 아기는 더욱더 세게 빠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엘프 처녀에게 고통을 준 것이다. 엘프는 아프지만 그래도 이걸로 목숨을 건질 수 있다면 싸게 먹히는 거라고 생각하며 꾹 참았다. 마침 고블린들도 다른 쪽으로 이동하고 있었고, 조금만 참으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우아아아앙!” 아기는 나이 드신 분들이 들었다면 ‘그 놈 참 울음소리 한번 장군감 일세.’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큰 소리로 울어버렸다. 아무리 빨아도 젖이 나오지 않자 아기가 심통이 나버린 것이다. “아악! 왜 우는 거야! 젖 먹여 줬잖아!” 정확히는 물리기만 했었지 먹여 준적은 없었다. “크르르르!” “크아아아!” 아기의 우렁찬 울음소리 덕분에 다른 쪽으로 이동하던 고블린들은 엘 프가 숨어 있는 큰 나무쪽으로 달려왔다. 엘프는 울부짖는 아기를 바 구니에 집어넣고 가슴에 꼭 안은 다음 나무에서 뛰어 내렸다. 숲 속은 엘프들의 집이었고, 엘프들은 어릴 적부터 나무위에서 생활 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높은 나무에서 뛰 어내렸어도 상처하나 입지 않은 엘프는 바로 숨가쁘게 뛰었다. “이 심술쟁이 아기야! 젖 먹여 주면 얌전히 있기로 약속했잖아! 창 피한 것도 꾹 참고 가슴까지 보여줬건만 이렇게 배신하기냐?!” 정확히 말하면 아기는 그런 약속 한 적 없다. 엘프는 통할 리가 없는 불평을 아기에게 늘어놓으며 어두운 숲 속을 있는 힘껏 달렸다. 보통의 인간이나 몬스터는 숲 속에서 도망치는 엘프를 쫓기가 힘들 다. 하지만 고블린들은 야행성 몬스터기 때문에 어두운 숲 속이라도 잘만 쫓아왔다. “이건 불공평해! 나는 짐 덩어리 안고 도망치는데 저 놈들은 맨몸으 로 쫓아오다니! 남자들이 비겁하게 여자 혼자한테 이래도 되는 거야? !” 이번에 엘프의 불평은 고블린들에게로 향해졌다. 하지만 역시 통할 리가 없는 불평이었다. 더구나 아기는 엘프가 자신을 짐 덩어리로 취 급하는 것을 눈치라도 챘는지 사생결단을 내자는 듯이 울어댔다. “에엥! 오늘같이 불행한 날은 앞으로 평생가도 없을 거야!!” 하지만 그보다 더 불행한 일이 조금 후에 생겨버렸다. 정신없이 도망 치던 엘프는 눈앞에 펼쳐진 까마득한 벼랑에 할 말을 잃고 우두커니 멈춰 섰다. “에휴휴. 리이나가 이 아기를 나한테 맡겼을 때부터 불길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심하잖아!!” 엘프는 한숨을 푹푹 쉬며 정령어를 외웠다. [자유로운 바람의 처녀들이여! 나는 리엘리아! 숲의 딸로서 그대들의 주인이 되기를 원하니 내 명을 따라 모습을 드러내라!!] 계약의 정령어에 의해 바람의 하급정령 실프가 모습을 드러냈다. “에엑! 겨우 하나?!” 실프들(!)을 불러서 벼랑을 내려갈 생각이었던 리엘리아라는 이름의 엘프는 겨우 하나의 실프가 소환 된 것에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자 신의 실력이 겨우 이것밖에 안되나 하는 생각으로 울적해질 틈은 없 었다. “크르르르르!!” 바로 가까이서 들리는 고블린의 외침에 리엘리아는 막 계약한 실프에 게 명령을 내렸다. “이 아기를 안전한 곳으로 내려 보내! 알았지?! 안전 한 곳이다!!” 엘프 리엘리아는 일단 실프가 벼랑 아래 안전한 장소에 아기를 내려 놓는 동안 자신은 고블린들을 따돌리고 찾으러 갈 생각이었다. 리엘 리아의 실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람의 힘을 이용해서 아기가 든 바구니를 받았다. “앗! 잠깐만!” 막 벼랑 아래로 바구니를 들고 내려가려는 실프를 부른 리엘리아는 자신이 계약했던 정령 중 잠의 정령 샌드맨을 불러서 아기를 재우게 했다. 실프가 벼랑 아래 안전한 장소에 내려놓는다 하더라도 아기가 계속 울면 근처의 몬스터나 들짐승들을 끌어 들일수도 있기 때문에 재운 것이다. “자! 이제 됐어!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안전한 장소다! 알았지? 안전 한 장소에 내려놔야 돼!” 실프는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이고 아기가 든 바구니를 안고 내려갔 다. 리엘리아는 이제 본격적으로 고블린들을 따돌리기 위해서 벼랑을 따라 옆으로 뛰어갔다. 아기가 없으니 몸이 가뿐해진 기분이었다. “마을 아주머니들이 아기 낳고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라고 말한 것이 이런 느낌일까?” 그 아주머니들이 말한 느낌은 지금 리엘리아가 느끼는 기분과는 상당 히 다른 느낌일 것이다. 아무튼 착각 엘프 리엘리아는 열심히 도망가 다가 중대한 사실을 깨닫고는 비명을 질렀다. “아악! 맞다! 진작 샌드맨 불러서 아기 재우면 될 것 가지고!! 젖까 지 물릴 필요 없었잖아!! 아앙! 난 이제 시집 못 가!! 이게 다 저 놈 의 고블린들 때문이야!!” 리엘리아는 아까 전의 창피한 과거에 눈물까지 나올 정도로 분하고 억울했다. 하지만 아무리 분하다고 하더라도 그 화풀이 대상이 된 고 블린들을 혼자 어찌 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 리엘리아는 울분을 삼키 며 도망치는 것밖에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때 리엘리아에게 또 다른 불행이 찾아오고 있었는데..... 처음부터 하급 정령은 정령왕들이 오로지 세계의 자잘한 자연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만든 존재다. 그러니 복잡한 지성 같은 것은 하급 정 령에게 처음부터 있지도 않았다. 다만 정령과의 친화력이 높은 드래 곤이나 엘프들 중에 아주 오랜 시간 같은 정령을 다루게 되면 그 정 령은 어느 정도의 지식을 습득하고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 있게 된 다. 하지만 지금 막 계약을 맺은 리엘리아의 실프에게 그런 경지를 기대 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리엘리아의 실프는 오로지 명령을 받은 안전 한 장소라는 것만 머릿속에 새겨놓고 움직였다. 실프는 그 안전한 장소라는 것을 찾기 위해서는 나중에 리엘리아가 찾기 힘들게 그 벼 랑에서 한참 아래로 내려가는 것에도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그저 자신이 판단할 수 있을 정도의 안전한 장소를 찾던 실프는 계곡 을 따라 한참을 내려가서 제법 큰 동굴을 발견하고는 미련 없이 그 곳으로 들어갔다. 실프는 동굴 안쪽에 커다란 실버 드래곤이 자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 만 동면중인 드래곤은 안전하다고 제 멋대로 판단을 내리고 나중에 리엘리아가 안다면 기겁을 할 일을 결국 해버렸다. 실프는 커다란 동 굴의 입구에 바구니를 내려놓고 이 정도면 명령을 수행했다고 멋대로 판단하고 정령계로 돌아간 것이다. ‘정령인가? 이상하군. 정령사의 기운도 느껴지질 않는데.... 에이 길 잃은 정령이 헤매 다니나 보지.’ 올해 2500살의 커다란 실버 드래곤 테이루아는 미약한 정령의 기운을 느꼈지만 정령을 부른 정령사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고, 일어나기도 귀찮아서 그냥 계속 잠을 청했다.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고 계속 동면을 취하는 테이의 레어 입구에 역 시나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가 사이좋게 자는 상황이 벌어졌다. 계속 ---------------------------------------------------------------- 37화 드래곤과 아기 바구니(2) “자 아빠야. 아빠 안녕하세요 해야지.” 누나는 나를 꼭 닮은 귀여운 해츨링에게 말했다. 난 감격에 몸을 떨 면서 나와 꼭 닮은 해츨링을 쳐다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안녕. 내 귀여운 아들아.” 나와 꼭 닮은 해츨링은 멀뚱멀뚱 날 쳐다보다가 갑자기 큰 소리로 울 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앙!” “왜 애를 울리고 난리에요!” 누나는 큰소리로 목 놓아 우는 해츨링을 달래면서 눈을 흘기며 나를 질책했다. “몰라! 난 올린 적 없어! 난 단지 인사를 한 것뿐이란 말이야!!” 누나와 나는 우리 아들을 달래기 위해서 온갖 짓을 다해봤지만 아이 는 울음을 그칠 생각을 안했다. “어쩌면 이 아기는 우리 아들로 태어난 것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나 보 네요.” “그게 무슨 소리야?” “어차피 우리 아가는 나보다 먼저 죽을 것이 뻔한걸요. 자식이 부모 보다 먼저 죽는 것이 가장 큰 불효잖아요. 그래서 우리 아가는 그것 이 슬퍼서... 아니 이렇게 만든 내가 미워서 우는 건지도 몰라요.” “이봐 티아.” 무슨 말인가를 해야 된다. 해야 된다고 생각은 했지만 무슨 말을 해 야 될지 알 수 없었다. “미안해요. 역시 당신과 나는 평생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을 걸어가야 되는 운명인 것을....” “헛소리 하지 마!! 그 따위 운명 따위 개나 줘 버리라고 해! 난 행 복하단 말이야!! 그러니 어디 가지 마! 제발 내 앞에서 사라질 생각 하지 마!!” 하지만 내 필사적인 만류에도 불구하고 누나는 우리 아들을 나에게 맡기고는 천천히 하늘로 올라갔다. “안녕. 안녕 내 사랑.” “잠깐만 기다려! 가지 마! 가지 마 티아! 나는... 나는 너를!!!” “티아!!!” 난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르며 눈을 번쩍 떴다. 드래곤의 몸은 땀을 흘 리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나는 온 몸이 끈적끈적한 땀이라도 난 것 같은 불쾌한 기분에 몸을 떨었다. “꿈 한번 요란하고 이상하게 꿨군.” 한숨을 푹 내쉰 나는 문득 아들(?)의 울음소리가 계속 들린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직 꿈속인가? 얼른 일어나야지.” 꿈에서 깨어나기 위해서 나는 눈을 감고 일어나야 된다는 생각을 계 속했다. 하지만 꿈속의 아들(?) 울음소리는 계속 들려왔다. “거 되게 안 깨네. 너무 깊이 잠이 든 건가? 아니면... 혹시....” 난 살며시 눈을 뜨고 소리가 나는 근원지를 봤다. 내 눈에는 엄청나 게 작은 바구니가 입구 쪽에 있는 게 보였다. “......왜 저런데 바구니가 있는 거지? 아니 왜 저기서 아기 울음소 리가 나는 거야? 나 원 참. 진짜 이상한 꿈도 다 꿔보는 군.” 아니 솔직히 말하면 꿈이 아닐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이성은 믿어지지 않는 사건으로 인해 절대로 이것이 꿈이라고 믿 고 싶었다. 그러나 내 기대를 배반하고 울음소리는 더 커졌다. 나중에는 혹시 숨 넘어가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기가 - 라고 생각되는 그 무언가 - 울어댔다. “에휴휴. 도대체 뭐야?” 결국 이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나는 실프를 불러서 입구에 놓인 바구니를 가져오게 했다. 나무껍질을 가공해서 만든 바구니는 제법 튼튼하게 보이는 것이 꽤나 고급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뚜껑 열어 봐.” [네.] 난 실프가 바구니를 열자 안을 유심히 살펴봤다. 아니 내가 살펴보기 전에 바구니의 뚜껑을 연 실프가 행복한 비명을 지르는 바람에 뭐가 있는지 볼수가 없었다. [꺄아아아악! 너무 귀여워!! 앙 어떡해! 너무 작아! 귀여워! 인형 같 아! 현기증이 날 정도로 귀여워!!] 내 눈앞에서 온갖 탄성을 지르며 기뻐하는 - 기뻐하는 것이겠지? - 실프의 모습에 일단 한번 한 숨을 쉬고 손가락으로 실프를 톡하고 팅 겼다. [꺄악! 주인님 왜 이러세요?!!] 내 손가락에 의해 옆으로 날아간 실프는 바로 볼을 잔뜩 부풀리며 화 를 냈다. 내가 처음 계약한 실프인데... 이 녀석 여러 가지 의미로 참 많이 컸다. “시끄럽다. 나도 좀 보자. 도대체 뭐가 들었기에 그 난리를....” 실프에게 주의를 주고 바구니로 시선을 돌렸던 나는 말을 끝내지도 못하고 굳어 버렸다. 실프 녀석이 왜 그렇게 난리를 쳤는지 어느 정도 이해가 갈 것 같았 다. 내 눈 앞에는 거짓말이라도 안 귀엽다는 말을 절대 할 수 없는 귀여운 아기가 훌쩍이고 있었다. 아기는 방금 전까지 펑펑 울었다는 증거로 눈물에 젖어 있었는데 그 모습마저 사랑스럽게 보였다. 하지만 난 실프와는 달리 바로 눈앞의 귀여운 아기에게 빠지기 전에 이 현실이 진짜 현실인지에 대해서 고민부터 했다. “실프야.” [네?] “이거 아기 맞지?” [네. 그것도 아주 귀엽고 예쁘고, 착하고, 순수하고, 아름다운 천사 같은 아기에요!!] “머리 아픈 형용사 붙이지 말고 대답만 제대로 해!” [네, 네.] 내가 성질을 내자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시큰둥하게 대답한 실프를 수정 좀 해줄까 하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었지만 지금은 눈앞에 당 면한 과제부터 푸는 것이 먼저였다. “이것이 아기인 걸 알겠어. 그것도 인간의 아기.” [네! 너무나 귀엽고 예쁘고, 착하고.... ......? ...! ......!!!] 난 아예 실프에게 침묵 마법 사이레스를 걸어서 말도 못하게 만들어 놓고 아기를 천천히 살펴보았다. 아무리 요모조모 뜯어봐도 이건 인 간의 아기가 틀림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인간 아기가 내 레어 입구에 버려진 거야?” 난 실프의 의견을 들어보기 위해 실프를 쳐다봤다가 곧 실프의 불만 가득 찬 표정을 보고는 아차 했다. 그리고 실프에게 걸려진 사이레스 를 해제해주기전에 다짐을 받아 두기로 했다. “내 질문에 고개만 움직여서 대답해라. 만약에 그 골치 아픈 형용사 사용 안하겠다면 사이레스를 풀어주마. 대신에 네가 아기 안아 볼 수 있도록 물리력을 행사하게 해줄게 어때?” 내 조건이 마음에 들었는지 실프는 환하게 미소 지으면서 엄청난 속 도로 고개를 까딱 거렸다. [사이레스 해제.] [꺄악! 주인님 최고!! 우리 주인님 멋쟁이!!!] 내가 사이레스를 해제하자마자 실프는 날 비공정에 태우면서 엄청 띄 어줬다. 이놈의 실프야 속 다 보인다. “시끄러워! 잔 말 말고 넌 정령계로 돌아가서 인간 아기를 드래곤 레어에 데려 놓은 정령이 있는지 물어봐라.” [에에?] “뭐가 에에야? 얼른 갖다와! 내가 동면 중에 분명 정령의 기운을 느 꼈어. 그러니 어떤 존재가 장난을 친건지 알아보란 말이야. 갖다 오 면 아기 안을 수 있게 해 줄게.” [그게 아니고요. 주인님 한번 생각해보세요. 저처럼 지성이 풍부한 하급 정령은 주인님 같은 드래곤님들 아니면 엘프님들을 주인으로 모 신 애들 밖에 없어요. 그런데 주인님과 동격인 존재들께서 왜 인간 아기를 주인님 레어에 버렸겠어요.] 나는 실프의 성실한 대답에 화가 나서 인상을 팍 쓰며 소리쳤다. “그럼 이 아기를 인간이 와서 버린 거란 말이냐?! 드래곤의 레어에 ‘아기를 잘 부탁합니다!’라고 써서 말이냐?!!” [그럴 수도 있죠.] 뭐가 그럴 수 있다는 말인지..... 하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에 난 바 구니를 뒤져 보기로 했다. 실프에게는 약속대로 물리력을 발휘할 수 있게 마법을 걸어주고 아기 를 바구니에서 꺼내서 들고 있게 만들었다. [꺄악! 꺄악! 너무 귀여워! 아 요 보들보들한 피부!! 와 눈이 새카매 !! 앗! 손가락 꼼지락거린다! 너무 귀엽다아!!!] 신경 끄자. 신경 끄고 바구니나 뒤져보자. 마법으로 바구니를 뒤집은 나는 위 아래로 몇 번 흔들어서 안의 내용 물이 바닥에 쏟아지게 만들었다. “어디보자. 담요랑... 이건 갈아입을 아기 옷인가? 그런데 짝이 안 맞는 게 마구잡이로 넣은 흔적이 팍팍 나는 군. 하지만 옷은 고급이 네. 그리고 종이? 이게 뭐야?” 나는 다른 실프를 불러서 종이를 내 눈앞에 띄우도록 명령했다. 그런 데 이 실프는 나오자마자 실프 1호(?)가 아기를 안고 있는 것을 보고 헛소리부터 늘어놓았다. [어? 아기? 와아 주인님 축하드려요! 주인님을 쏙 빼닮으셨네요.] “......너 눈에는 저 아기가 해츨링으로 보이냐? 저건 인간 아기야! ” [어? 인간으로 폴리모프해서 낳으신 거 아니에요?] “난 남자야!” [그것도 알고 있죠. 사모님은 어디 계세요? 아! 혹시 티아루아님이 사모님? 맞죠? 제 말이 맞.....] 실프 2호(?)는 내 성난 눈빛에 얼어붙었다가 내가 처음 내린 명령을 급히 수행했다. 내가 애들을 너무 풀어줬나? 한번 시간을 가져서 정 신교육을 시켜야 되겠군. 아무튼 정신교육도 나중 문제고 나는 실프 2호가 들어 준 종이를 유 심히 살펴봤다. 종이에는 엄청나게 휘갈겨 쓴 글씨가 쓰여 있었는데 어지간히도 급한 상황에서 쓴 것 같았다. 하지만 문제는 그 글씨가 [이 아기를 잘 부탁합니다.] 라는 내용이라 는 것이다. [보세요. 인간이 갖다 놓은 것이 맞잖아요. 불쌍하게도 부모님이 얼 마나 못 살았으면 드래곤님의 레어에 너를 갖다 버렸을까?] 옆에서 같이 종이를 보던 실프 1호는 그것 보라는 듯이 한마디 했다. 하지만 아까 바구니에 들었던 내용물로 미루어 보아 이 아기는 굉장 히 잘 사는 집 아기가 분명했다. “말이 안 되는 소리는 하지 마. 이 아기는 잘 사는 집 아기일거야. 봐 아기랑 같이 바구니에 들어 있던 옷이 고급이잖아. .......어이 내 말 듣고 있냐?” [그래 너는 언젠가 커서 진짜 부모를 찾을 생각이지? 아마도 험난한 3만리의 멀고 먼 여행... 그런 너는 충직하고 착한 개 파트러스와 친 해지고, 둘이서 부모님을 찾을 돈을 벌기 위해 우유배달을 하면서 고 생할지도 몰라. 하지만 어느 키가 크신 신사가 너를 도와주기 위해서 익명으로 너를 학교에 보내 줄 거야. 학교에서 공부 열심히 해서 훌 륭한 사람이 되면 부모님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말을 하면서... 너 는 그 말을 믿고 열심히 공부하지만 고아라는 점 때문에 친구한테서 왕따를 당하고.... 파트러스는 매일 동네 깡패들에게 얻어맞는 불쌍 한 생활을 하다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학교 기숙사를 뛰쳐나와서 바 다 건너 다른 대륙에 가기로 마음먹지만 도중에 큰 고래의 습격을 받 아서 고래 배속에 삼켜지겠지? 하지만...] 저 녀석 전혀 안 듣고 있잖아!! 하지만 더 엽기적인 것은 세계 명작 동화를 마음대로 각색하는 실프 1호 옆에서 실프 2호가 눈물을 훔치 며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점이었다. 저 녀석들 정말 내 실프 맞아? ‘흑. 틀림없이 내 실프들은 어렸을 때 바꿔치기 당했을 거야. 아마 도 티아 누나가 날 괴롭히기 위해서 자기가 훈련시킨 엽기 실프와 내 착한 실프들을 바꾸고... 그리고 내 진짜 착한 실프들은 계모와 똑같 은 티아 누나 밑에서 온갖 고생을 하다가....’ 하도 허망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실프들처럼 명작 동화를 말도 안 되 게 각색할 때 느닷없이 천둥이 울려 퍼졌다. “응에!! 응에!!!” “아앗! 깜짝이야. 이 놈 울음소리 한번 되게 크네. 야! 왜 아기를 울리고 난리야?!!” [저희는 몰라요! 얌전히 손가락을 빨다가 갑자기 울기 시작한 걸요.] 실프 1호와 2호는 필사적으로 아기를 달랬지만 아기는 울음을 그칠 생각을 안 했다. 그러고 보니 처음 발견했을 때도 레어가 울릴 정도 로 울고 있었지. 혹시.... “이 아기 배가 고픈 걸까?” [아 그렇겠네요. 생명은 우리 정령과는 달리 음식을 먹어야 살 수 있 죠. 이 아기가 언제부터 버려져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꽤 오래 굶었 나 봐요. 하지만 정말 사정없이 우네요.] “그래. 진짜 내 사정도 안 봐주고 우는구나.” 아기는 정말 내 사정도 안 봐주고 울었다. 내가 어디서 인간 아기가 먹을 것을 찾아올 수 있다고 빽빽 울어대는 건지. 에휴. 차라리 해츨 링을 버리고 갔다면 나가서 오크 한 마리 잡아서 안겨 주면 끝인데.. .. ‘어떡하지? 시끄러운 것도 시끄러운 거지만 저렇게 울다가 정말 죽 겠다.’ 아니 내 머릿속에는 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이 하나 생각났다. “삼백년 만인가?” 난 폴리모프를 외워서 인간으로 변하고 실프에게서 아기를 받아 안고 는 워프를 써서 공간의 문을 열었다. 목적지는 다이러스 제국의 신룡 티아루아의 신전. 티아 누나가 신룡 으로 있는 곳이었다. 티아는 거대한 신전의 바닥에 몸을 누인 채 공허한 눈동자로 아름다 운 신전 내부를 쳐다봤다. 다이러스 제국에서 신경을 많이 써서 드워 프의 세공사들까지 불러 들여서 만든 티아의 신전은 굉장히 아름다웠 다. 하지만.... ‘차가워.’ 신전 내부는 따뜻했지만 티아에게는 차가운 느낌이었다. ‘과연 내가 선택한 행동이 욺은 것일까? 이렇게 도망을 친 것이 잘 한 일일까?’ 하루에 한번씩은 꼭 드는 의문. 하지만 해답은 결코 얻은 적이 없는 질문이었다. 한숨을 푹 쉬며 해답 없는 고민에 빠진 티아는 공간이 일그러지고 곧 검은 공간의 문이 열리는 것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응? 공간의 문? 누구지?” “누나!!” 티아의 의문에 답하기라도 하는 듯 미쳐 공간의 문을 다 빠져나오지 도 않은 테이가 티아를 불렀다. “무슨 일일까? 지난 삼백년간 코빼기도 안보이던 녀석이....” 티아는 폴리모프를 외웠고, 거대한 신의 자식인 카이저 드래곤의 모 습에서 차가워 보이지만 따뜻한 인상을 지닌 묘한 매력의 아름다운 인간 여자로 변했다. “누나!!!” 티아가 인간으로 변하자 완전히 공간의 문을 빠져나온 테이가 무서운 기세로 달려왔다. “저 녀석 왜 저래?” 잡아먹을 듯이 눈을 부릅뜨고 달려오는 테이의 모습에 조금 겁먹은 티아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조금 겁먹은 티아 곁으로 한 달 음에 달려간 테이는 무서운 눈으로 아주 크게 외쳤다. “누나!! 젖 좀 줘!!” 말이라는 것은 참으로 신기한 것이다. 서론 본론을 빼먹어도 뜻이 통 하는 말이 있는가 하면 서론 본론을 빼먹으면 원래 하고 싶은 말이 아닌 오해받기 딱 좋은 말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테이는 불행히도 후자를 선택했다. “이! 이! 이 변태야!!!” “앗! 실수다! 그게 아니고 내 말은!!” 얼굴이 새빨개진 티아는 문답무용의 가치관을 충실히 지키며 급히 변 명을 하려는 테이를 날려 버렸다. 카이저 드래곤으로 완전히 각성하 고 난 뒤 오랜만에 날린 펀치였다. 계속 ---------------------------------------------------------------- 37화 드래곤과 아기 바구니(3) “흐음. 그렇게 된 거구나.” 누나는 아기에게 젖을 물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천장에 몸이 박혔던 나를 끄집어내서 이 아기 누구 아기냐고 잡아먹을 듯이 묻던 누나는 내 사정설명에 납득을 했는지, 배고파서 울어대는 아기에게 젖을 먹 여 줬다. 천만다행이도 누나는 아기를 낳은 인간 여자 몸으로 폴리모프를 할 수 있었다. 아기는 많이 굶었는지 쉴 틈 없이 누나의 젖을 빨고 있었 다. “배가 굉장히 고팠나 보네. 천천히 먹어야지 그러다 배탈 나요.” 아기를 안고 젖을 먹이며 부드럽게 미소를 짓는 누나의 모습. 아! 누 가 말 했던가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어머니는 아름답고 위대해 보인 다는 말을.... 나는 지금 왜 그런 말이 생겼는지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하고 있 었다. 부드럽고 아름답고..... “뭘 헬렐레 하면서 쳐다보는 거야?! 이 변태 드래곤아!!” “........” 누나는 환상을 깨트리는 솜씨가 상당했다. “내가 뭐가 좋아서 누나를 헬렐레하는 얼굴로 쳐다봐야 되는데?! 난 그런 적 없어! 아기를 보고 있었던 것뿐이야!” “그런 것 치고 아까부터 누나 가슴 흘긋흘긋 쳐다보던 건 어디 사는 누구더라?” “크아아악!! 안 보면 될 거 아니야?! 안보면!!” 그렇게 소리치고 나는 뒤로 확 돌아 앉았다. 누나의 한숨 소리가 들 렸는데 마치 어쩔 수 없는 녀석 하는 것 같이 들렸다. ‘그냥 예뻐서 쳐다본 것이 무슨 큰 죄라고... 옛날에는 내가 싫다고 해도 억지로 달라붙었으면서....’ 그런데 끊임없이 투덜거리던 내 귀에 누나의 목소리가 들렸는데... “어머! 벌써 다 먹었어? 응 아직 모자라니? 자 그럼 이번에는 이쪽. ” ‘이쪽? .......뭐..뭘 신경 쓰는 거야? 그냥 아기한테 젖먹이는 것 같고....’ “꺄하하하! 간지러워! 아가야 장난치지 말고 제대로 빨아야지.” ‘장난? 어떤 장난? 아악! 신경 쓰지 말자니깐!!’ 하지만 내 마음의 외침과는 달리 내 귀는 착실하게 누나의 한마디 한 마디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 놈의 배신자! 내 귀 맞아?!’ 감각이란 것은 참으로 신기했다. 평소 보던 시각이 차단당하자 대신 에 다른 감각이 예민해지는 것은 무슨 조화란 말인가? 그리고 머릿속 에서는 나도 모르게 풍부한 상상력을 발휘해서 뒤에서 벌어지고 있을 일을 착실하게 그려갔다. ......그리면 안 되잖아!! ‘내가 왜 이러는 거야?! 정신 차리자! 여기서 지면 안돼! 여기서 지 면 난 누나 말대로 진짜 변태가 되는 거야! 지지 말자!!’ “안돼! 요 나쁜 꼬맹이! 어딜 만지니?” ‘어딜? ......시..신경 끄자. 그런데 정말 어딜 만졌을까? 신경 끄 자니깐!!’ 악마다. 누나가 침투시킨 악마가 내 마음속에서 천사와 사투를 벌이 고 있는 기분이었다. “흐음. 너도 남자긴 남자구나. 좋았어. 그럼 맘마 다 먹고 누나랑 같이 목욕하자.” 아기가 남자애였나? 그러고 보니 울음소리가 엄청 컸었지? 아니 그것 보다 같이 목욕을? 뭐..뭐를 신경 쓰는 거야. 하지만 목욕이라는데.. . ‘침착하자. 말도 못하는 젖먹이한테 신경 쓸 필요 없지. 테이루아 넌 어른이야. 어른의 여유로움으로 웃어넘기면 돼.’ “아잉~. 만지지 말라니깐. 요 나쁜 꼬맹이.” ‘......한계다. 더 이상 못 참아!! 그래 아기가 어딜 만지는 지만 확인하자. 이건 순전히 궁금해서야. 순수한 호기심으로 확인만 하는 거니깐 난 죄가 없는 거야.’ 나는 그렇게 순수한(?) 호기심으로 내 자신을 합리화 시키고 살짝 아 주 살짝 고개를 돌렸다. “으아아악!!” 누나가 있을 만한 곳으로 고개를 돌리던 나는 갑자기 눈앞에 크고 부 드러운 노란 눈동자가 깜박이는 것을 보고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 졌다. “호호호호호.” 누나의 고소해 죽겠다는 웃음소리를 듣고는 난 단번에 사태를 이해했 다. ‘당했다!!’ 그렇다. 난 또 누나의 장난에 당한 것이다. 젠장. 이걸로 지난 2500 년간 쌓아왔던 기록(?)에 또 하나의 기록을 추가했군. 누나는 이미 아기에게 젖을 다 먹였는지 아기 등을 토닥거리며 웃고 있었다. “뭐가 우스워!!” 계속해서 웃는 누나 덕분에 참담하고 창피한 기분이 들어서 벌컥 성 을 내자 누나는 눈물을 닦으며 - 눈물을 흘릴 정도로 재밌었나? - 말 했다. “호호호. 아니 그냥. 역시 테이도 남자였구나 하는 생각에....” “그럼 내가 여자야?!!” 누나는 갑자기 웃음을 멈추더니 눈을 가늘게 뜨고 날 노려봤다. 갑작 스런 누나의 표정변화에 난 움찔해서 한걸음 뒤로 물러났고, “호오~. 테이 너 많이 컸구나. 훔쳐보려고 했던 주제에 도리어 큰소 리치기냐?” “으윽. 그..그건.... 누..누나가 먼저.” “내가 뭘? 나는 아기랑 놀고 있었던 것뿐이야. 그걸 마음대로 착각 해서 훔쳐보려고 했던 것은 너잖아.” “아니 그러니깐... 누나가 먼저... 아니야. 내가 잘못했어.” 도저히 변명할 말이 없었던 나는 항복의 깃발을 들었다. 하지만 난 진짜 억울해!! “그런데 테이야.” 아기의 등을 토닥거리던 누나가 아기가 트림을 하자 나를 불렀다. “응?” “너 언제 아기 만든 거니? 엄마가 누구야?” “.......내가 아까 다 설명했잖아. 그 아기는 내 레어에 버려져 있 던 아기야.” “흐음.” 누나는 못 믿겠다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하긴 드래곤의 레 어에 인간이 아기를 버리고 갔다는 말은 확실히 설득력이 약했다. 하 지만 난 정말 억울하다. 저런 눈초리를 받아야 될 이유가 없단 말이 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 나도 알고 싶단 말이야!!” “알고 싶다고?” “그래! 나도 그 녀석 엄마가 누군지 보고 싶어!” “그럼 얼굴도 모른다는 말이네. 혹시 술 마시고 비몽사몽간에 사고 친 거니?” 방금 내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술김에라는 해석이 나오는 거야? “진짜 내 아기 아니라니깐!! 난 여기 데려오기 전까지 남자인지 여 자인지도 몰랐다고!!” “흐음.” ‘으윽. 여전히 못 믿겠다는 불신의 눈초리다. 속고만 살았나? 왜 못 믿는 거야? 아! 맞다!’ 나는 바구니를 뒤져서 아기랑 같이 들어 있었던 [이 아기를 잘 부탁 합니다.]라는 내용의 쪽지를 누나에게 보여줬다. “자! 이거 봐! 아기랑 같이 들어 있던 종이야. 이래도 못 믿겠어?” 종이쪽지를 유심히 보던 누나는 그래도 못 믿겠다는 얼굴로 말했다. “이거 네가 쓴 건 아니겠지?” “아! 진짜!! 속고만 살았어? 내 글씨체가 어떤지는 누나가 더 잘 알 잖아!!” “하긴... 급히 쓰기는 했지만 이 글씨는 여자 글씨 같네. 휴. 아무 리 세상이 각박해졌다지만 설마 드래곤 레어에 아기 버리는 인간이 생길 줄이야. 에구. 불쌍한 것. 네 부모는 도대체 어떤 인간일까?” 누나는 측은한 얼굴로 아기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기는 동그란 까만 눈으로 누나를 쳐다보다가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아꺄? 꺄하하하.” “녀석. 이제 배부르니 여유 있다 이거냐? 우는 모습도 귀여웠지만 역시 웃는 모습이 더 귀엽네. 정말 귀엽다. 그치 누나?” 내가 기분 좋게 웃고 있는 아기를 보면서 한 마디 하면서 누나를 쳐 다봤다. 난 당연히 내 말에 누나가 맞장구 쳐줄 거라 생각했는데 누 나는 멍하니 웃고 있는 아기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드는데....’ 멍한 누나의 표정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오한을 느낄 때 누나가 조 용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테이야.” “응?” “우리 이 아기 키우자.” 이번에는 내가 침묵을 지키게 됐다. 난 잠자코 방금 전 말을 다시 재 해석 해보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누나에게 확인 차 물었다. “우리? 거기에 나도 포함되는 거야?” 누나는 무슨 당연한 것을 물어보냐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싫어!! 내가 왜 이 아기를 키워야 되는데?!” “그럼 이 아기를 어떻게 할 생각이었어?” “고아원에라도 맡기면 되잖아. 그리고 그 동안 아기를 갖다 버린 인 간을 찾아서 돌려 줘야지.” “찾아? 어떻게? 전단지라도 돌릴 생각이니? [드래곤 레어에 아기 버 리신 인간 찾습니다]라고 할 거야? 그리고 고아원이라는 말 너무 쉽 게 입에 올리지 마. 고아원은 어디까지나 최후의 수단이야.” 누나가 매섭게 쏘아 붙였지만 여기서 지면 아기를 키워야 될지도 모 른다는 생각에 난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아무튼 싫어! 아! 그럼 이렇게 하자. 누나가 잠시 아기 좀 맡아줘. 그 동안 내가 무슨 짓을 해서라도 이 아기 부모를 반드시 찾아낼게. 누나도 마침 아기가 마음에 든 것 같으니 상관없지?” 그런데 누나한테는 상관이 많은 것 같았다. 누나가 눈물을 글썽거리 기 시작한 것이다. “왜 갑자기 울려고 하는 거야?! 울면 다 해결 되는 줄 알아?!!” “아앙! 그럼 나 혼자 미혼모 되서 애 키우라고? 앙앙! 너무해!! 이 렇게 만들어 놓고 책임 못 지겠다니!! 이래서 남자는 믿을 게 못 돼! !” 저건 거짓 울음이 틀림없다. 옛날에 저 거짓 울음에 참 많이도 넘어 갔지. 하지만 나도 이제 나이를 먹은 만큼 가짜 울음에 당할 생각은 없었다. “오해 살만한 발언 하지 마!!!” 내가 소리치자 누나는 ‘아빠가 우리를 버리려고 한다! 어쩌면 좋니? 아가야?’라는 말까지 하면서 더 크게 울기 시작했다. 역시 누나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하지만 나도 그냥 앉아서 당할 생각은 더 이 상 없었다. “거짓으로 울어봤자 더 이상 나한테 안 통해! 그리고 다시 한번 말 하겠는데 오해 살만한 말은 좀 하지 마!!” “너무해요!! 어쩜 그러실 수 있으세요?!” “아앗!” 누군가 뒤에서 날 힘껏 미는 바람에 하마터면 바닥에 코 박을 뻔 했 다. 간신히 균형을 잡은 나는 누가 뒤에서 밀었는지부터 확인했다. “에? 티아 누나? 누나가 둘?!! 아니. 아니야. 조금 닮긴 했지만.... 인간?” 내 뒤에는 티아 누나와 얼굴이 닮은 인간 여자가 서 있었다. 그녀는 커다란 눈에 눈물을 그렁거리며 울먹였다. “티아님의 마음이 혼란해 하시기에 급히 와봤는데... 흑. 당신 정말 너무하네요. 어쩜 그러실 수가 있어요.” “에? 뭐가 너무해요? 아니 그것보다 당신 누구죠?” 그렇게 묻는 나는 마음속으로 짚이는 게 하나 있긴 있었다. 하지만 설마.... “저는 신룡 티아루아님의 그림자 티아라 세도우 인스테랄이라고 합 니다. 그렇게 묻는 여자들의 적인 당신 이름은 뭐죠?” 내 설마하는 생각이 정답이었다. 누나와 닮은 티아라라는 여자는 누 나의 그림자였던 것이다. 그런데 여자의 적이라니? 그거 날 두고 하 는 말? “저기 티아라씨? 뭔가 오해를 하신 모양인데요. 저는...,” “아앙! 티아라!! 나 이제 어쩌면 좋아!” 내가 사정 설명을 하기도 전에 누나가 잽싸게 티아라에게 안기며 대 성통곡을 했다. “엉엉. 날 정말 좋아해주는 줄 알았는데... 그래서 신룡이지만 사랑 하는 남자의 아기를 낳고 싶어서.... 단 한 순간이라도 행복하게 살 고 싶었던 것뿐인데... 나 이제 어쩌면 좋아? 내가 잘못 생각했나봐. 우리 아기는 이제 어쩌면 좋아? 엉엉엉.” 난 황당함에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저 티아라는 인간 여자가 나를 매섭게 째려봤지만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하나의 가설을 세워보자. 혹시 누나가 티아라씨가 이 신전에 들어 온 것을 알아차리고, 그래서 타이밍 좋게 울기 시작했다고 친다면... .’ 그렇다면 나는 누나가 파놓은 함정에 빠진 것이다. 결코 벗어 날 수 없는 늪지대 같은 함정이었다. “책임지시겠죠?” 티아라는 울먹이면서 나를 쳐다봤다. 책임이라니? 무슨 책임?! 난 억 울하다고!! “엉엉엉. 불쌍한 우리 아가. 아빠 없이 커야 되다니... 엉엉. 이 엄 마를 용서해주렴.” 누구 마음대로 엄마고 아빠야?! 더구나 두 여자의 우는 소리에 아기 까지 덩달아서 울기 시작했다. 두 여자와 한 아기의 울음소리는 나에 게는 도망칠 곳은 없다는 말처럼 들렸다. 이른 아침. 비틀거리는 걸음 거리로 한 명의 엘프가 계곡 아래로 내 려가고 있었다. 오렌지 색깔의 단발머리를 한 엘프 리엘리아는 간신히 고블린 떼들을 따돌리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하지만 쉴 시간도 없이 피신시켰던 아기를 데려가기 위해서 계곡 아래로 내려가는 중이었다. “내 인생이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됐을까? 힝. 빨리 리이나가 부탁한 대로 아기를 다이러스 제국의 그 분에게 맡겨야지. 그렇게만 하면 난 해방이야. 해방!” 이제 이 산만 내려가면 다이러스 제국이 코앞이라는 생각에 리엘리아 는 젖 먹던 힘을 다해서 걸었다. 그렇게 간신히 계곡 아래로 도착한 리엘리아는 실프를 소환했다. 리엘리아의 소환에 어제 계약했던 실프가 모습을 드러냈고, 리엘리아 는 아기를 어디다가 놔뒀는지 물었다. “응? 저쪽이라고?” 별 생각 없이 실프가 안내하는 방향으로 따라 가던 리엘리아가 ‘뭔 가 이상하다’라는 것을 알아챈 것은 1시간은 걸어 내려간 다음이었 다. “도대체 너 어디까지 갔던 거야?!” 리엘리아가 왜 짜증을 내는지 모르는 실프는 그저 손으로 아기를 갖 다 놨던 방향을 가리킬 뿐이었다. ‘에휴휴. 어제 막 계약한 정령한테 많은 것을 바라는 건 무리지. 일 단 아기를 찾고 나서 거기서 조금 쉬다가 출발해야겠다. 어제 평생 사용할 불행을 다 사용했으니 더 이상 뭔 일 생길라고....’ 그렇게 마음 편하게 먹던 리엘리아는 실프가 안내한 곳에 도착해서 그대로 굳어버렸다. “뭐..뭐야?” 커다란 입구의 동굴... 더구나 자연적으로 생긴 것이 아닌 누군가가 마법으로 큰 몸이 지나다닐 수 있게 만든 입구였다. 그리고 동굴 안 에서 느껴지는 범상치 않은 이 기운.... “드..드! 드?! 드으!!” 리엘리아는 차마 그 다음 말을 뱉지도 못한 채 그 자리에서 기절했 다. 리엘리아는 어제 사용한 것으로는 자기 인생의 불행을 다 사용하 지 못 했던 것이다. 계속 ---------------------------------------------------------------- 39화 마녀와 악마 (1) “하아! 하아!” 어두운 숲 속에 반짝이는 금발의 여자가 필사적으로 달리고 있었다. 마침 보름달이라 숲 속이라고 하더라도 주변은 어느 정도 빛이 있었 다. 덕분에 여자를 추격하고 있는 자들은 손쉽게 여자의 뒤를 쫓을 수가 있었다. ‘잡히면 안돼. 여기서 잡히면 슬라드 왕자님이 살아 계신다는 것을 놈들이 알게 돼. 그렇게 되면 슬라드 왕자님을 피신시키고 있는 리엘 리아에게도 추격이 붙게 돼. 최소한... 그래 최소한....’ 금발 머리의 여자는 리엘리아에게 슬라드 왕자를 부탁했던 리이나였 다. 리이나는 리엘리아와 똑같은 큰 바구니를 안고 있었다. 다만 그 안에는 아기 즉 어린 슬라드 왕자는 없었다. 리이나는 추격자의 존재를 알고 깊은 숲 속에 몸을 숨겼다. 그리고 그대로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엘프 마을로 찾아가서 엘프 친구인 리엘 리아에게 슬라드 왕자를 다이러스 제국의 ‘그 분’에게 데려다 달라 고 부탁했던 것이다. 자신 같이 힘없는 여자는 몬스터들이 득실거리는 깊은 산을 넘어서 다이러스 제국까지 갈 수 없었다. 하지만 리엘리아는 아직 어리지만 숲을 잘 아는 엘프이기 때문에 왕자님을 안전하게 다이러스 제국까지 데려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리엘리아에게 신신당부를 하며 왕자님을 맡겼던 것이다. 그리 고 왕자님의 신분은 리엘리아에게 말하지 않았다. 괜히 쓸데없는 부 담감을 주기 싫었던 것이다. ‘여기까지는 잘 됐는데... 차라리 이것도 그때 리엘리아에게 맡겼어 야 되는데....’ 리이나는 자신의 목에 걸린 오리하곤 왕국 왕가의 증표를 생각하면 후회감이 들었다. 왕자님을 몸에서 떼어 놓았으니 혼자서 어떻게든 오리하곤 왕국을 빠 져 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비공정역에서 추격자를 발견하고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리이나는 추격자가 비공정역 뿐만이 아니라 국내를 빠져나갈 수 있는 모든 곳에 감시를 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리이나는 바구니 를 하나 구해서 그 안에 왕자가 있는 것처럼 하고는 일부러 추격자들 을 유인했다. 도망칠 수 없다면 차라리 추격자들의 시선을 자신에게 돌리자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조금만 더 가면 그 곳이야. 그 곳에 도착할 때까지는 절대 잡힐 수 없어.’ 리이나가 생각하는 그 곳이란 바로 절벽이었다. 절대 뒤로 물러날 수 없는 절벽까지 몰린 리이나는 이를 갈면서 추격자들을 쳐다봤다. “술래잡기가 끝났나? 상당히 애먹이는 고양이군.” 추격자 중에 키가 가장 작은 남자가 듣기 거북한 가래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리이나는 울 것 같은 얼굴로 조금씩 뒤로 물러났다. “이런, 이런. 도망칠 곳은 없어. 얌전히 이쪽으로 오면 목숨은 살려 주마. 단 이만큼 우리들을 운동 시켰으니 조금 더 운동을 시켜줘야 될 거야. 아가씨에게는 색다른 운동이겠지.” 상당히 돌려서 말했지만 리이나는 남자의 말뜻이 무엇을 뜻하는 건지 알아차리고 욕지기가 나왔다. 물론 리이나는 그렇게 당할 생각이 죽 어도 없었다. 그들에게 잡힌다면 슬라드 왕자가 바구니에 없는 것을 보고 다른 곳으로 빼돌렸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왕가의 문장도 그 들 손에 들어가 버린다. ‘절대 그렇게 되게 할 수는 없어. 절대... 이건 그 분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일. 두렵지 않아. 두렵지 않아.’ 리이나는 그 분과의 약속을 떠올리며 이를 꽉 물었 다. “이, 이 년이 무슨 생각을?! 야! 빨리 저 년을 잡아!!” 키 작은 남자의 명령에 다른 남자들이 자신에게 달려오는 것을 보면 서 리이나는 힘껏 뒤로 뛰었다. 절벽으로 떨어지는 덕분에 남자들의 욕하는 소리는 금방 멀어졌다. 절벽으로 떨어지는 리이나는 그 분과의 약속을 떠올렸다. ‘내가 무슨 일이 생기면 이 아기를 대신 지켜 주겠니?’ ‘저는 약속을 지켰어요. 할아버지.’ 리이나는 빠른 속도로 자신에게 덮쳐오는 시커먼 강물을 바라보며 눈 을 감았다. 오리하곤 왕국에서 황태자 프리드크 슬라드가 사라진 지 일주일이 넘 어갔다. 옛날이라면 이런 소문이 대륙 끝까지 가려면 꽤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비공정 덕분에 소문은 빠르게 번져서 일주일 만에 슬라드 황태자의 실종 소식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아니 사람뿐만이 아니라 드워프들과 엘프 등 이종족들도 슬라드 황태 자의 실종 소식을 접했다. 덕분에 현재 오리하곤 왕국의 국정을 맞고 있는 아그라느는 매일 골 치를 썩고 있었다. 다음 황태자가 그것도 걷지도 못하는 젖먹이가 실 종됐으니 모든 이들의 의심 죄다 아그라느에게 향한 것이다. 어찌 보 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지만 아그라느는 정말 억울했다. 그렇기 때문에 아그라느는 슬라드 황태자의 수색에 돈을 아끼지 않았 다. 개인 재산까지 톡톡 털어서 용병과 솜씨 좋은 트래져 헌터들과 각종 어세신 길드들에게 슬라드 황태자의 수색을 요청했다. 하지만 일단 의심을 하던 사람들은 그런 아그라느의 노력조차 연극으로 보일 뿐이었다. “젠장.” 황태자가 사라진지 일주일 째 아그라느는 국정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 자마자 침대에 쓰러지듯이 누워버렸다. 아내이자 이 오리하곤 왕국의 제 1 공주 네반이 ‘옷도 안 벗고 침대에 드러눕는다!’고 잔소리를 했지만 대꾸할 힘도 없었다. “휴우.” “저기 많이 힘드시죠?” 힘들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나는 아그라느의 한숨 소리에 네반은 부드 러운 목소리로 남편을 위로했다. 하지만 아그라느는 대꾸할 힘도 없 었다. “저기. 여보.” “미안해. 네반. 난 지금 쉬고 싶어. 그러니 단 한 시간이라도 좋으 니 누가 날 찾아오더라도 깨우지 말아줘.” “네.” 네반은 근심 가득한 얼굴로 잠이 드는 남편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방 문을 닫고 나갔다. “마님.” 네반이 침실에서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하녀가 다가와서 말을 걸었 다. “뭐냐?” 네반의 질문에 하녀는 어딘가 겁을 먹은 표정으로 머뭇거리며 대답했 다. “그게 마님을 찾으시는 남자 분들이 계셔서....” “남자 분들?” 네반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싸늘해졌지만 고개를 숙이고 있는 하녀에 게는 보이지가 않았다. 이미 네반에게는 방금 전 남편에게 보였던 부 드러운 미소를 찾아 볼 수 없었다. “안내해라.” “아? 예. 예!” 하녀는 갑자기 네반을 찾아 온 이상한 남자도 남자지만 손님이 찾아 왔다는 말에 평소에는 들은 적이 없는 네반의 싸늘한 말투에 겁이 났 다. 하지만 동시에 호기심도 생겼다. ‘도대체 저 손님들과 마님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 걸까?’ 평범한 하녀들에게는 이런 의심나는 일은 짜릿한 스트레스 해소용 수 다거리였다. 그렇기 때문에 하녀는 끊임없이 네반의 표정을 흘긋 흘 긋 살폈다. 그러던 중에 어느새 수상한 손님들이 있는 방에 도착했 다. “저기... 이곳에 계십니다. 응접실로 모시려고 했는데 굳이 이렇게 사람들이 잘 안다니는 방으로 안내해 달라고 하셔서....” “알았다. 너는 이만 가 보거라. 그리고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네반은 하녀의 변명을 중간에 자르고 싸늘한 말투로 주의를 줬다. “네. 알겠습니다.” 하녀는 허리를 숙이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네반은 잠시 한 숨을 쉬 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여어. 이제 오셨습니까?” 네반이 방안으로 들어가자 얍삽하게 생긴 짧은 검은 머리의 남자가 가래 섞인 목소리로 네반을 맞았다. 평균보다 작은 키에 얼굴 곳곳에 난 사마귀가 남자의 능글맞은 웃음과 더해져서 저절로 욕지기가 나올 것 같은 표정을 연출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회색 머리를 어깨까지 기른 장발의 남자가 창 문밖의 경치를 보다가 고개를 돌려서 네반에 게 약간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호리호리한 체격에 싸늘한 표정으 로 그의 회색빛 눈동자를 보고 있자면 마치 시체의 눈을 쳐다보고 있 는 것 같은 두려운 느낌의 남자였다. 하지만 네반은 그런 범상치 않은 무서운 남자들에게 표독스런 표정을 지으며 화부터 냈다. “갑자기 무슨 일이죠? 별다른 일 없이 연락도 없이 오지 않기로 했 을 텐데요. 그것도 정문으로 당당하게 안내까지 받으면서 오다니 무 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죠?” 얍삽하게 생긴 남자는 네반이 화를 내도 무섭지 않다는 듯 키득키득 웃으며 답변을 했다. “뭐 정확히는 뒷문으로 들어오다가 아까 하녀를 만나서 안내를 부탁 한겁니다. 그리고 걱정 마십시오. 두 번 다시 말 없이 이곳에 올 일 은 없을 겁니다.” “그 말뜻은 뭐죠?” 얍삽한 남자의 마지막 말에 네반은 눈을 빛내면서 물었다. 그 질문에 대답을 해 준 것은 싸늘한 회색 눈의 남자였다. “말씀하신 일은 어제부로 완벽하게 처리했습니다.” “그래요?! 그럼 왕가의 문장은? 왕가의 문장은 어떻게 됐죠?” 네반은 초조한 듯한 음성으로 계속 물었다. 이번에 대답을 해 준 것 은 얍삽한 남자였다. “왕자와 같이 급류에 휘말렸습니다. 아마도 왕가의 문장은 다시 세 상 빛을 보기가 힘들 겁니다. 그리고 왕자도...” “뭐라고요?! 왕가의 문장을 가져오지 않았단 말인가요?!” 왕가의 문장이 급류에 휘말렸다는 말에 네반은 얍삽한 남자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벌컥 화를 냈다. “약속이 틀리잖아요! 왕가의 문장은 찾아오기로 약속하지 않았나요? ” “자자. 일단 진정부터 하시죠.” “아니!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요?!” 휘익~! “꺄악!!” 그때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네반의 귀를 스치는가 싶더니 여성의 외 마디 비명이 뒤에서 울려 퍼졌다. "흐윽!" 비명소리에 네반은 반사적으로 자신의 뒤. 즉 문이 있는 곳을 바라보 고는 헛바람을 삼키며 놀랐다. 어느새 작은 단도가 문의 열쇠구멍에 꽂혀 있었고, 그리고 그 틈으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무, 무슨!! 방금 무슨 일이?! 그리고 저 피..피는?!” “이런. 이런.” 당황하는 네반 대신에 얍삽한 남자가 문을 열어서 무슨 피 인지를 확 인했다. 그 피는 아까 네반을 안내했던 하녀의 눈이 뚫리면서 난 피 였다. 아마도 단도에 맹독이라도 칠해져 있었는지 하녀는 그 자리에 서 즉사했다. “흡!” 네반은 눈에서 피를 흘리는 하녀를 보고는 하마터면 비명이 나올 뻔 했다. 하지만 여기서 비명을 질렀다가는 다른 사람이 듣고 올지도 모 른다는 생각에 급히 입을 틀어막고 비명이 새어나가는 것을 겨우 막 았다. “호기심 많은 고양이 한 마리였군요. 뭐 별다른 일이 아니었으니 우 린 이야기나 계속할까요?” 얍삽한 남자의 말에 겨우 정신을 차린 네반은 심호흡을 몇 번 해서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다시 싸늘한 표정으로 돌아와서 두 남자에게 독설을 내뱉었다. “사람을 죽이면 어쩌자는 거죠? 나중에 일이 시끄럽게 되면 어떻게 책임 질 생각인가요?!” “하지만 우리 이야기를 들었으니 살려 둘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 런 하녀야 적당히 패물 한두 개 없애고, 도둑으로 몰면 자연히 해결 됩니다. 단 빨리 해결해야 될 겁니다.” 얍삽한 남자의 말에 네반은 왜 그 둘이 몰래 만나자는 약속을 하지 않고, 이렇게 당당하게 하녀의 안내를 받았는지 알 것 같았다. “당신들... 처음부터 왕가의 문장 일을 얼버무리려고 소동을 벌일 생각이었군요.” “쿡쿡쿡쿡.” 얍삽한 남자는 네반의 예상이 맞았는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기분 나쁜 소리로 웃었다. 네반은 대답을 듣지 않아도 그 웃음소리로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는 것을.... “알았어요. 돈은 약속한 장소에 놔 둘 테니 얼른 뒤처리를 하고 나 가줘요!” 네반이 하녀의 시체를 가리키며 소리치자 얍삽한 남자는 고개를 끄덕 이며 회색 눈의 남자에게 손짓했다. 회색 눈의 남자는 호리호리한 체 격과는 달리 힘이 센지 하녀의 시체를 힘 들이지 않고 들었다. 그리 고 방 안의 카페로 시체를 둘둘 말아서 창 밖으로 던졌다. “시체는 우리가 나가면서 들고 나가겠습니다. 물론 뒤처리도 확실히 하겠습니다. 그럼 이것으로 돈 이외에도 약속 된 것을 받을 수 있겠 죠?” 네반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소매 속에서 한 장의 종이를 꺼내서 얍삽 한 남자에게 줬다. 얍삽한 남자는 종이를 받아서 내용을 확인했다. 그리고 크게 기뻐하며 종이를 소중히 접어서 품속에 넣었다. “그런데 그런 쓸모없는 땅덩어리에 왜 그렇게 집착하는 거죠?” 네반의 이상하다는 질문에 얍삽한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마님께는 필요 없는 땅일지는 모르지만 저에게는 황금 같은 땅입니 다. 그 이유를 설명해 봤자 마님께서는 이해하실 수 없을 겁니다. 또 이해할 필요도 없지 않습니까? 이것으로 마님이 원하는 일은 이루었 습니다. 비록 왕가의 문장은 놓쳤지만 그래도 왕자가 죽었으니 문제 될 것은 아무것도 없지 않습니까?” 확실히 얍삽한 남자의 말대로 네반은 더 이상 걱정거리는 없었다. 그 렇기 때문에 남자의 말대로 쓸모없는 땅의 땅문서를 원하는 남자의 이상한 생각은 신경을 끄기로 했다. 그것보다 지금부터 네반이 해야 될 일은 아주 많았다. 왕자가 없어진 지금부터가 네반이 계획한 일을 추진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럼 이것으로 마님과 저희 도적단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겁니 다. 하지만 또 저희들이 필요한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불러주십시오. ” “두 번 다시 당신들의 힘을 빌릴 일은 없을 거요. 그러니 어서 뒤처 리를 하고 나가시오!” “네이, 네이.” 얍삽한 남자는 성의 없이 대답하고는 회색 눈의 남자를 시켜서 피를 말끔히 닦게 하고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시체를 가지고 나갔다. 네반은 그들이 뒷문으로 나가는 것을 확인하고 깊게 한 숨을 쉬었다. ‘이제 다 해결 됐어. 이제는 내 남편이 자연스럽게 왕위를 이어받게 만들면 내 염원이 이루어지는 거야. 내 오랜 염원이....’ 네반의 눈은 욕망에 불타올랐다. 오래전부터 꾸던 꿈이 드디어 이루 어진다는 흥분감. 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흥분감에 몸까지 저릿저릿 한 기분을 느꼈다. 계속 ---------------------------------------------------------------- 안녕하세요? 평화주의 입니다. 푹 쉬고 오늘부터 연재를 재게했습니다. 하지만 푹 쉬었느냐고 물으 신다면.... 에휴........ㅡㅡ;;; (쉬는 5일간 끌려다니며 술 마시기에 바빠던 평화 ㅡㅡ;;) 어째서 아는 작가들의 마감 날짜들과 끝나는 날짜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는지 이유를 모르겠네요. ㅡㅡ;; 아무튼 오랜만에 모임들이라 취소도 못하고 끌려 다녔습니다. 덕분에 하루 왠 종일 끙끙대며 쓰러졌습니다. ㅡㅡ;; 숙취에...^^;; 그 동안 사무실과 엘리멘탈 소드의 계약건과 여러가지 이야기를 했 고, 또 작가들을 만나면서 그 동안 근항을 듣는 등 바쁘게 지낸 5일 간이었습니다.(아직 엘리멘탈 소드는 100%계약을 못했지만 조만간에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안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드래곤 남매 6권은 출판이 늦어지 게 됐습니다. 자세한 상황은 아래 새로 올린 공지를 확인 해 주세요. 그럼 전 계속 드래곤 남매 7권 작업과 후속작 준비를 위해 이만 물러 가겠습니다. 늘 즐거운 시간들 되세요.~~ (6권이 늦게 나오니 즐겁지 않으실 독자님도 계시겠지만... 저도 어 쩔 수가 없네요. ㅜ.ㅜ) p.s 드래곤 남매 팬 홈피는 계정 문제로 연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새 주소를 올렸으니 이쪽 주소로 들어가세요. http://myhome.naver.com/yam63/ 슬하양에게 계정을 하나 사줘야 될 것 같습니다. 어떤 유료 계정이 좋은지 추천 부탁드립니다. “크흐흐흐흐.” 아그라느의 저택에서 나온 얍삽한 남자는 듣기 거북한 가래 섞인 웃 음을 흘리며 가슴속에 넣어둔 종이를 소중하게 만졌다. “드디어 그 땅을 손에 넣었군요. 그런데 베스크님. 정말 그 땅이 우 리들이 찾던 땅이 맞을 가요?” 회색 눈의 남자가 얍삽하게 생긴 남자 베스크란 이름의 남자에게 물 었다. 말뜻은 걱정하고 있는 뜻이지만 말투는 무뚝뚝하기 그지없는 싸늘한 말투였다. 그런 말투가 회색 눈의 남자의 원래 말투라서 그런 지 베스크는 싸늘한 그의 말투에 신경 쓰지 않았다. “틀림없어! 프라츠 이것 봐! 이 땅은 우리가 찾던 그 땅이 틀림없다 고!!” 베스크는 여전히 듣기 거북한 가래 섞인 목소리로 종이를 꺼내서 회 색 눈의 남자. 프라츠의 눈앞에서 흔들며 기쁨의 소리를 질렀다. 그 둘에게는 돈은 둘째 문제였고, 정작 진짜로 원하던 것은 그 땅이 었다. 그런데 그 땅의 소유자였던 아그라느 저택의 부인이자 이 나라의 첫 째 공주인 네반이 자신들에게 일을 의뢰하러 왔을 때는 정말 환호성 이라도 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그 일이라는 게 만만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리고 설마 이 나 라의 공주가 왕이 될 자신의 동생을 없애달라는 의뢰를 할 줄은 꿈에 도 몰랐다. 그것도 상냥한 공주로 소문 난 첫째 공주였던 그 네반 공 주라는 것이 둘을 더 놀라게 했었다. 하지만 베스크는 프라츠보다 회복이 빨랐다. 그리고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일의 의뢰를 받아들이고 네반 공주가 제시한 금액에 그 땅도 줄 것을 요청했다. 네반 공주는 필요도 없는 척박한 땅을 달라는 베스크를 이 상하게 생각 했지만 요구를 받아 들여 줬다. 그리고 둘은 부하들을 풀어서 왕자를 납치할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왕궁 안에 협력자로 네반 공주라는 든든한 백이 있었기 때문에 계획 을 짜서 실행하기까지 아무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너무 일이 쉽게 진행하는 바람에 방심을 해버렸다. 왕자를 납 치했지만 중간에 이름 모를 여자에게 빼앗겼던 것이다. 다행히 여자 가 성으로 왕자를 데려오기 전에 네반 공주의 직속 병사들이 도시에 깔려서 검문을 시작했고, 자신들도 여자를 찾아서 온 도시를 뒤졌다. 그러나 여자와 왕자를 찾을 수가 없었다. 여자는 도시 곳곳에 깔린 네반 공주의 직속 병사들을 알아보고 도망쳤을 거라는 결론에 베스크 는 자기 부하들을 비공정역과 부두에 풀어서 외국으로 도망치지 못하 게 감시했다. 그리고 모습을 감춘 지 일주일 째. 베스크의 생각대로 여자는 다이러 스 제국으로 가는 비공정 역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젖먹이 왕자 를 안고 있었다. 부하들의 연락을 받고 급히 비공정역으로 갔을 때는 여자는 이미 숲 으로 도망쳤다. 그리고 그 뒤를 끈질기게 추격해서 여자를 절벽까지 몰았지만 결국 여자와 왕자는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 뒷맛이 씁쓸한 결말이었지만 어째든 베스크는 그렇게나 원하던 땅을 손에 넣었다. 이제는 네반이 줄 돈과 자신이 모아 놓은 돈으로 그것 을 발굴해 내기만 하면 됐다. “그런데 그 땅이 우리들이 찾던 땅이 맞더라도 우리가 찾는 것이 과 연 그곳에 있을까요?” 프라츠는 여전히 걱정하는 말을 했다. 단지 표정도 말투도 싸늘해서 걱정한다는 느낌보다는 냉소적인 느낌이 더 강했지만.... “이제 그만 걱정 따위는 접어 둬! 우리가 발견했던 그 책대로라면 그것은 틀림없이 그 땅에 있을 거다. 아니 반드시 있어!” 베스크는 더 이상 불길한 말을 하지 말라는 뜻을 팍팍 담아서 프라츠 에게 쏘아줬다. 덕분에 프라츠는 한동안 입을 닫았고, 당연히 대화는 끊겨서 침묵에 잠겼다. “그나저나 솔직히 네반 공주의 모습은 정말 의외였습니다. 우리가 만난 네반 공주가 과연 우리가 알고 있던 그 네반 공주가 맞는지 의 심이 들 정도였습니다.” 묵묵히 앞만 보던 프라츠는 심심했는지 별 생각 없이 말을 내뱉었다. “그게 그 여자의 진짜 얼굴이야.” 마침 침묵이 지겨웠던지 베스크는 프라츠의 혼잣말에 대답해줬다. “그럼 평소에 국민들에게 소문 난 상냥한 얼굴의 공주는 가면이란 말입니까? 그게 정말이라면 정말 무서운 여자군요. 마녀라고 불러도 되겠습니다.” “큭큭큭. 마녀라. 그래 그 공주에게는 딱 어울리는 말일지도 모르겠 구나. 상냥한 얼굴 뒤에는 자신의 동생을 그것도 젖먹이 아기를 죽여 버리는 비정함. 그래 마녀. 딱 어울리는 말이야. 아니야. 하지만.... 하지만 말이야.” 거기까지 말을 한 베스크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잠자코 베스크가 말 을 해주기를 기다리던 프라츠는 베스크가 너무 오랫동안 입을 열지 않자 슬슬 조바심이 나서 그 다음 말을 재촉했다. “하지만 그 다음이 뭐죠?” 그래도 베스크는 잠자코 무언가를 생각하면서 간간히 혼잣말을 중얼 거릴 뿐 프라츠에게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저럴 때의 베스크는 무슨 짓을 해도 입을 열지 않는 다는 것을 잘 아는 프라츠는 별 수 없이 궁금증을 접어 두기로 했다. 어차피 베스크는 하다가 만 말은 나중에라도 다 해주기 때문에 프라 츠는 쉽게 궁금증을 접을 수 있었다. 그렇게 무료한 침묵을 유지시킨 채 걷던 둘은 어느새 자신들의 아지 트에 도착했다. 초라한 술집 겸 여관인 집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겁 모습일 뿐이고, 이 여관방은 모두 도적단들이 기거하고 있었다. “이제 오셨습니까?” 문을 열고 들어가자 술을 나르던 녹색 머리의 소년이 웃으면서 달려 왔다. 소년의 이름은 팀으로 귀가 뾰족했다. 팀은 하프엘프인 것이 다. 팀은 고아에 부랑자로 갈 곳 없이 떠돌던 것을 베스크가 데려다가 잔 심부름을 시켰다. 이것은 그 동안 잔인하고,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 한이었던 베스크가 한 일 치고는 상상 할 수 없는 착한일(?)이라서 한 때 부하들의 좋은 술안주 감이 됐었다. 이것을 두고 여러 가지 가설들이 나왔지만 프라츠는 ‘일 시킬 녀석 이 필요했던 것뿐이다!’라는 말로 부하들의 입을 다물게 했다. 그래 도 꼬치꼬치 따지려던 부하가 한 명 있었는데 베스크는 그 부하의 입 을 실로 꿰맨 다음에 바다에 수장을 시켜버렸다. 그 후로 더 이상 팀에 대해서 왈가불가 떠드는 부하는 없었고 쾌활한 성격의 팀은 어느새 도적들의 심부름꾼으로 자리 잡았다. “시원한 것부터 드릴까요?” “그래. 내 방에 있을 테니 흑맥주로 갖다 줘.” “네!” 팀은 활기차게 대답하고는 지하 술 창고로 내려갔고, 베스크는 프라 츠를 데리고 자신의 방으로 올라갔다. 지저분한 방이었지만 그래도 팀이 매일 청소를 깨끗이 하기 때문에 팀을 데려오기 전과 비교하면 도적들에게는 엄청나게 깨끗한 방이었 다. 베스크는 낡은 소파에 앉아서 파이프 담배를 물었다. 프라츠는 잠자코 부싯돌로 베스크의 담배에 불을 붙여주고 맞은편에 앉아서 이 야기를 들을 준비를 했다. 베스크가 담배를 입에 무는 것은 사람을 궁금하게 만들고, 대답을 안 하는 베스크가 말을 하겠다는 제스처였기 때문이다. 프라츠의 생각대 로 베스크는 담배를 한 모금 빨고는 연기를 내뱉으면서 아까의 이야 기를 시작했다. “그 공주의 남편과 아들들은 복 받은 것인지도 몰라.” “.......” 물론 프라츠는 베스크의 방금 전 말이 무슨 뜻인지 알지를 못했다. 하지만 잠자코 베스크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베스크는 다시 한번 담 배를 빨고는 계속해서 말했다. “생각해 봐.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저질러. 설령 그것 때문에 주위에서 나쁜 놈이라고 찍히더라도 어디까지나 자 신의 이익을 위한 일이기 때문에 욕을 먹는데 주저함이 없지. 하지만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면? 그러면 사람들은 주저해. 생각 해봐. 자신 에게 이익이 될 일도 아닌데 어느 누가 미쳤다고 욕을 들어먹는 나쁜 놈이 되기를 자처하겠어? 그런 의미에서 네반 공주는 대단하다고 해 야 될지도 몰라. 스스로 마녀가 되기를 자청했으니. 뭐 가면으로 얼 굴을 가리는 치사한 짓을 했지만....” 베스크는 꽤 긴 말을 한번에 내뱉고는 다시 담배를 길게 빨았다. 잠 자코 베스크의 말을 듣던 프라츠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뭐야? 뭐가 궁금해?” “그게.... 네반 공주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한 일 아닌가요? 왕자 가 사라지면 자신의 남편이 다음 왕이 될 것이니 따져보면 공주에게 이익이잖습니까?” “훗. 맞아.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지. 하지만 그리노 대륙의 동쪽에 있는 강대국들은 하나같이 남자가 왕이 돼야 된다는 사상에 물들어 있잖아. 저기 서쪽의 다이러스나 프론트 연합에서는 여왕도 나온다지 만 이곳은 틀려. 철저하게 남성 위주의 국가야. 그러니 네반 공주의 남편이 왕이 되어봤자 국정의 대부분이 남편 차지야. 공주는 욕먹을 나쁜 짓을 그렇게 하고도 국정에는 참가 못해. 그저 파티에 얼굴을 내미는 인형일 뿐이야. 그런데도 굳이 남편을 왕으로 만들려는 공주 가 대단하다는 생각은 안드냐? 그런 위험을 감수하지 않아도 잘 먹고 잘 살 집안의 따님이 왜 그런 짓을 했다고 생각하냐?” 베스크는 프라츠 스스로 생각해보라는 질문을 남기고 잠자코 담배를 빨았다. 잠시 후 팀이 흑맥주 두 잔을 가져와서 베스크와 프라츠의 앞에 놓았다. 프라츠는 팀이 나가기를 기다렸다가 흑맥주를 마시는 베스크에게 자 신이 결론 내린 생각을 말했다. “남편과 자식을 위해서겠죠? 자신의 손이 설령 피로 물든다 하더라 도 남편과 자식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묻힐 수 있다는... 설령 그것 이 친동생의 피라도 말이죠. 그것이 대단하다는 말씀이시죠?” “맞아.” 베스크는 마시던 흑맥주를 탁자위에 내려놓고 손으로 입가를 닦았다. “이 세상 모든 어머니라는 존재는 자식과 남편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존재들이야. 그것이 너무 지나치면 네 반 공주같이 마녀 같은 여자로 만들 수도 있어. 하지만 다 그런 건 아니야. 주위에서 칭찬이 자자한 성녀 같은 어머니도 있지. 하지만 이도저도 아닌... 쿡쿡쿡. 그래 내 어머니 같은 분들도 있지. 자식을 죽이려 드는 어머니란 존재도 있어. 크크크. 크하하하하! 아하하하하 하하!” 베스크는 미친 듯이 웃었다. 유일하게 베스크의 과거를 알고 있는 프 라츠는 베스크의 미친듯한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니 보통 사람 이었다면 정말 미쳐버릴 수도 있는 과거였다. “하지만!!” 한참을 웃던 베스크는 떨리는 손으로 가슴속에 넣어 둔 땅문서를 꺼 냈다. “이것만 있으면... 이것만 있으면 해결할 수 있어!! 내 기분 나쁜 과거를 전부 청산 할 수 있어! 전부 다!! 크크크. 이 봐 프라츠. 네 반 공주는 남편과 자식을 위한 일이라지만 보통 여자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마녀 같은 짓을 저질렀어. 아무리 상냥한 가면으로 가려도 마녀라는 호칭은 마음속으로 평생 따라붙을 거야. 하지만 왕위에 오 른 남편과 황태자가 될 아들을 보고 보람을 느끼겠지?” “.......” 프라츠는 베스크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베스크는 그에 신경 쓰 지 않고 계속 미친 듯이 지껄였다. “하지만! 우리는 뭐지?! 우리가 지금부터 할 일은 엄청난 일이야! 세상 모든 사람들이 손가락질 하겠지? 하지만 우리는 무엇을 보고 보 람을 느껴야 될까? 무엇을 보고... 아니지. 만약에 성공한다면 그런 꼴 보지도 않을 텐데 무슨 걱정이야?! 크하하하하! 우하하하하하하하 !!” 베스크의 광기어린 웃음소리는 계속됐다. 그는 지칠 때까지 웃고 또 웃었다. 프라츠는 베스크의 광기어린 웃음소리를 들으면서 그가 물었던 ‘우 리는 뭐지?’라는 질문의 답을 생각했다. ‘네반 공주가 친동생을 없애려고 한 일로 마녀라고 불린다면.... 두 목님은 악마인가? 그래. 세상 모든 사람들은 두목님을 가리켜 악마라 고 부를지도 모르겠군. ......그럼 이 계획의 모든 것을 알고도 돕고 있는 나는 뭐지? 무엇이라고 불려야 되는 거지? 같은 악마인가?’ 계속 ---------------------------------------------------------------- 안녕하세요? 평화주의 입니다~~~^.^ 뭐 항상 드래곤 남매를 쓰면서 티아와 테이가 안 나오는 화를 쓸 때 쯤 되면 '티아 테이 나오게 해요!'라는 요청을 많이 들어서인지 이제 는 별로 걱정이 안드네요. ^^;;;(강철 심장이 된 것인가? ㅡㅡ;) 아무튼 한화 한화에 재미를 원하시는 분들이라면 분명히 불만이 많을 챕터입니다. 하지만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수는 없는 법이죠. 연기가 나려면 불을 피워야 되고, 불을 피우기 위해서는 땔감이 필요 합니다. 이런 재미 없는 챕터라도 나중에 티아와 테이가 휘말리는 사건의 땔 감이 됩니다. 땔감 없이 연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겠죠? ^^ 그러니 장기적인 재미를 바라보신다면 이번 챕터는 조금만 참아 주세 요. 그냥 티아와 테이가 아기 키우다 눈 맞아서 딴딴딴~(결혼 행진곡) 스 토리는 너무 재미 없잖아요. 그럼 이 땔감들을 나중에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기다려 주세요~ 게으름 안피우고 열심히 쓰겠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한국대 플란드 전이 열리네요. ^^ 오늘 아는 작가님들과 같이 광화문으로 가서 응원하기로 했답니다. >_< 대~~한~~ 민국! 짜짝짝 짝짝! 대~~한~~ 민국! 화이팅! 벌써부터 흥분이 되네요. >_< (방금 위에서 게으름 안 피운다는 말은 이미 기억의 저편으로...) 쿨럭 쿨럭. 아, 아무튼 늘 즐거운 시간들 되세요. ^^;; 이상 평화주의 였습니다~ p.s 음 아래쪽에 리플은 제가 맞습니다.(진작 에디트 기능 쓸걸 ㅡㅡ;;) 작은 사랑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앞으로는 작은 사랑쪽도 최선의 노력을 다해서 연재 하겠습니다. 그럼 늘 즐거운 시간 되세요. 인간들이 가장 두려워하고 절대 어쩔 수가 없다고 알려진 생명체 드 래곤. 인간들은 드래곤에 대해서 범접하기 두려운 존재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두려움에 가까이 가지 않은 인간들의 오해에 서 비롯된 인식일 뿐이었다. 분명 인간을 귀찮은 벌레쯤으로 생각하거나 죽여 버려도 상관없는 생 명체라고 생각하는 드래곤도 있었다. 하지만 인간을 좋아하고 인간의 삶을 좋아하는 드래곤도 있었다. 그런 드래곤들은 인간의 모습으로 인간들과 어울리기를 즐겼다. 그런 몇 안 되는 드래곤 중에 실버 드래곤 하나가 계곡 아래에서 고기를 잡고 있었다. “앗! 또 잡았다!!” 실버 드래곤은 운디네가 잡아 오는 연어를 보고 기뻐하며 웃었다. [주인님 더 잡아야 되요?] “당연하지! 이 정도 가지고는 테이 오빠의 양에 안 찬단 말이야! 더 잡아 와!” [네에.] 운디네는 실버 드래곤의 뒤에 쌓인 엄청난 양의 고기들을 보며 한숨 을 푹 쉬고 다시 고기를 잡으러 계곡물로 들어갔다. 이제 막 해츨링 의 티를 벗어난 듯한 어린 실버 드래곤의 이름은 서니히아. 애칭은 서니로 오스타인과 세이르아의 세 번째 자식으로 티아와 테이 의 여동생이다. 그리고 요 2000년간에 새로 태어난 유일한 해츨링이 기도 했다. 해츨링 봄이 지나가고 난 뒤 드래곤들의 출산율은 또 낮아져서 한동 안 해츨링들이 태어나지 않다가 여전히 뜨거운(?) 부부인 오스타인과 세이르아의 사랑의 결실이 탄생한 것이다. 그렇게 1500년 만에 태어난 해츨링 서니는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으 면서 행복하게 무럭무럭 커서 얼마 전에 성룡이 됐다. 다만 서니는 광적이다 싶을 정도로 테이를 따랐다. 덕분에 테이는 몇 십번이나 피곤한 경험을 했었다. 해츨링 때에도 테이를 정신파탄 일 보 직전까지 몰아넣은 경력이 있던 서니가 성룡이 됐으니 과연 테이 는.... 그저 테이의 명복이나 빌어줘야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무튼 성룡이 되고 독립을 한 서니는 사랑하는 - 서니 관점으로 - 테이에게 맛있는 물고기를 갖다 줘야 되겠다는 일념으로 운디네를 혹 사시키고 있는 중이었다. 물고기를 잡으러 계곡물로 들어간 운디네는 조금 있다가 큰 것을 잡 아서 서니에게로 가져갔다. [주인님!!] “응? 와아! 이번에는 큰 거구나!! 어? 물고기가 아니네.” 서니는 지금까지 잡았던 물고기에 비해서 아주 큰 크기에 기뻐하다가 운디네가 가까이 오자 그것이 물고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운디 네가 이번에 건져 온 것은 인간이었다. 옷은 여기저기 찢어져 있고, 긴 금발은 물에 젖어 몸에 착 달라붙어 있고,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이 얼굴이 새파랬다. “인간이네? 왜 여기 있는 거지?” [모르겠어요. 물고기를 잡고 있는데 이 인간이 계곡물에 휩쓸려서 떠 내려 가길레 급히 건졌어요.] “그래? 흠. 자살을 하려고 했던 인간인가? 하지만 이 인간은 아직 죽을 운명이 아닌가 보다. 나에게 발견 됐으니 말이야. 운디네 일단 이 인간이 먹은 물부터 토하게 해.” [네!] 인간을 좋아하라고 가르침을 받고 큰 서니는 티아와 테이와 마찬가지 로 인간을 좋아했다. 그래서 서니는 운디네가 건져 온 인간에게 응급 처치를 시키고 회복마법을 써 주었다. 그리고 실프와 사라만다를 불러서 따뜻한 바람으로 옷을 말려 줄때 여자는 정신을 차렸다. “으음....” “이제 정신이 좀 드니?” “으음. 여기는 어디?” “내가 사는 곳의 계곡 아래.” 서니는 인간의 물음에 아주 간단하게 대답해줬다. 너무 간단해서 보 통 인간은 그곳이 어디인지를 알지 못할 정도의 대답이었다. 여자는 눈이 잘 보이지 않는지 멍한 눈빛으로 몇 번 눈을 깜박이다가 서니를 쳐다봤다. 정확히는 서니의 배를 쳐다봤다. “응? 벽?” 여자는 서니의 배를 벽이라고 생각하고는 자신에게 대답 해준 존재를 찾았다. “저기 저에게 말을 걸어 주신 분 어디 계세요?” “나는 여기 있어. 어딜 보는 거야?” 여자는 말소리가 위에서 들리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위를 쳐다 봤고, 그제야 여자의 눈과 서니의 눈이 마주쳤다. “꺄아아아악!!” 여자는 서니의 눈을 보자마자 보통 인간이라면 당연히 해야 될 비명 을 지르는 일과 급히 뒤로 도망치는 일을 한꺼번에 했다. 하지만 여 자의 뒤는 계곡의 급류였다. [앗! 또 떠내려가요!!] “......버릇없는 인간이군. 운디네야 주워 와라.” [네.] “콜록! 콜록!” 운디네의 힘으로 다시 서니 앞으로 옮겨진 인간 여자는 기침을 하면 서 마신 물을 토했다. “이봐. 괜찮아?” “저, 절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가요?” 여자는 물을 다 토하자 서니를 겁먹은 눈으로 쳐다보며 물었다. “특별히 뭔가 할 생각은 아니야. 그냥 내 운디네가 네가 떠내려가는 것을 주워 온 거야. 그리고 다 죽어가 길래 내가 마법으로 살린 거 고.” “절... 구해 주신 건가요?” 여자는 서니의 말을 듣고도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하긴 그것이 인간들의 당연한 반응이었다. 드래곤들과 인연이 깊은 서부지 방과는 달리 동부지방의 사람들은 드래곤과 인연이 거의 없었다. 더 구나 옛날에 데스타는 해츨링을 납치했다가 드래곤들에게 호되게 당 한 경험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동부지방 사람들에게는 드래곤에 대한 두려움이 깊게 박혀 있었다. “그럼 구해준 거지. 내가 널 죽이려는 줄 알았어?” “왜? 왜 절 구해주신 거죠?” “거참 답답한 인간이네. 생명을 구하는데 꼭 이유가 필요한 거야? 내가 모르는 곳에서 모르는 생명이 죽는 것까지 일일이 신경 쓸 수는 없지만 내 눈앞에서 죽어가는 생명이 있는데 모른 척 하는 것은 기분 이 안 좋아. 그래서 구해준 것뿐이야.” “네? 네.” 여자는 그래도 이해 못하겠다는 얼굴이었지만 그래도 긴장은 조금 풀 렸는지 한결 편안한 얼굴로 서니를 바라볼 수 있었다. 적어도 눈앞의 드래곤이 자신을 죽이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말이야. 그건 뭐냐?” “네? 뭐가요?” 서니는 여자의 꽉 쥐고 있는 오른손을 가리키며 다시 물었다. “네가 손에 꽉 쥐고 있는 것. 아까부터 쥐고 있었고, 방금 물에 빠 졌는데도 끝까지 손을 안 놓던데 중요한거야?” “에? 에! 으... 으윽!” “왜 그래?” “소..손이 안 펴져요!” 여자는 서니의 말에 자신의 오른손이 무언가를 쥐고 있다는 것을 알 았지만 손을 펼 수는 없었다. 여자는 마치 자기 손이 아닌 것처럼 말 을 듣지 않는 오른손에 당황하다가 아예 왼손으로 오른손을 억지로 펴려고 노력했다. “참네. 얼마나 중요한 거면 자기 몸인데도 말을 안 들을 정도로 꽉 쥔 거야?” “모..모르겠어요.” 여자는 간신히 한 손가락씩 펴는 노력을 해서 겨우 손안에 쥔 물건이 무엇인지 볼 수 있었다. “목걸이?” 여자가 죽을 위기에도 놓지 않았던 물건은 목걸이였다. 꽤 고급스런 작은 보석이 박혀 있고, 중앙에 큼직한 루비가 박혀 있었다. 그리고 루비의 표면에는 깨알 같은 다이아몬드로 방패 모양을 정교하게 박아 놓은 디자인의 목걸이였다. “피가 날 정도로 꽉 쥐고 있었던 걸로 봐서는 사연이 있는 목걸일 것 같네. 이런 목걸이는 인간이 만들 수 있는 물건이 아닌데... 드워 프의 작품인가? 아무튼 그거 무슨 목걸이야?” 서니의 질문에 여자는 고개를 도리질 치며 말했다. “모르겠어요?” “에?” 손에 상처가 나서 피가 흥건하게 날 정도로 쥐고 있었으면 모르겠다 는 여자의 대답에 서니는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여 자는 더 믿지 못할 질문을 서니에게 했다. “저기요. 이건 뭐죠? 제가 왜 이걸 가지고 있는 거죠? 무엇보다... 전 누구죠?” “잠깐만! 그걸 나한테 물어봐야.... 가만. 네가 누구냐니? 네가 누 구인지 내가 어떻게 알아?” “역시 드래곤님도 모르시는 군요. 그럼 전 도대체 누구에게 물어야 되는 거죠? 제가 누구인지...” “설마... 설마! 기억 상실?” 연애 이야기에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나 마찬가지인 기억 상실. 다만 지금 상황이 연애 소설과 다른 점은 기억 상실에 빠진 여주인공은 멋 진 남자가 구해줘야 되는 법칙이 적용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드래곤인 서니는 구해준 인간이 기억 상실이라는 것을 어떻게 처리해 야 될지 몰라서 혼란에 빠졌다. 애초에 서니는 인간 여자가 자살할 생각으로 몸을 던졌다면 일장 훈계를 해주고 보내 줄 생각이었다. 그 런데 무슨 일로 죽을 뻔 한건지 이유를 알기는커녕 자신의 이름조차 모르는 인간 여자를 어떻게 처리해야 될지 알 수가 없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서니는 손을 탁 치면서 여자에게 말을 걸었다. “이봐 너!” “네? 네?” 인간 여자는 정체 모를 목걸이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서니가 부르는 소리에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너 지금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누구인지 모른단 말이지?” “네? 네. 거짓말 아니에요. 정말로 제 이름조차 생각이 안 나요.” “안 믿겠다는 말이 아니니 겁먹지 않아도 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나랑 같이 여행을 다니자는 말이야.” “여..행이요?” 인간 여자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서니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서니는 싱긋이 웃으면서 여자에게 자세하게 설명해줬 다. “그래. 여행. 다행히도 너는 목걸이를 가지고 있잖아. 죽을 위기에 도 놓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히 너에게 중요한 목걸이일거야. 잘하면 그걸로 네가 누구인지 알 수 있을지도 몰라.” “그렇군요. 정말 그럴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여자는 서니의 말뜻을 알아들었지만 그래도 무언가 석연치 않은 기분 에 대답을 주저했다. 서니는 인간 여자가 주저하는 이유를 알아차리 고 웃으면서 설명해줬다. “무언가 보답을 바란다든지 꿍꿍이속이 있어서 같이 여행을 하자는 의미가 아니야. 그냥 재미있을 것 같아서 말이야.” “재미요?” [폴리모프!] 인간 여자의 질문에 서니는 인간으로 변하는 마법 주문을 외웠다. 서 니의 몸은 눈부신 은색의 빛에 휩싸이고는 어깨까지 오는 은색의 단 발머리에 발랄한 느낌의 인간 여자로 변했다. “아앗!!” 여자는 자신의 눈앞에 있던 거대한 드래곤이 인간으로 변하는 것을 보고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뭐야? 마법 처음 봐? 왜 그렇게 놀래?” “저..저어. 처음... 봤어요.” “그래? 아무튼 난 언젠가는 인간 세상에 나가보고 싶었는데 특별히 하고 싶은 일도 없어서 주저하던 참이었어. 그런데 너를 구한 김에 널 데리고 다니면서 기억을 되찾아 주는 여행을 시작하는 것이 재미 있을 것 같아서 말이야. 어때? 나랑 같이 여행을 다녀보지 않을래? 내가 반드시 너 기억을 찾아 줄게.” “아... 저기....” 여자는 서니의 제안에 아직 주저했다. 서니는 인간 여자가 곤란한 얼 굴로 머뭇거리는 것을 보고 무엇을 고민하는지 알아차렸다. “부담가지지 않아도 돼. 신세 진다는 생각 안 해도 되고. 난 그저 인간 세상을 돌아다닐 이유가 필요할 뿐이야. 목적 없이 돌아다니는 여행도 재미있다지만 첫 여행만큼은 의미를 가진 여행을 하고 싶어. 그러니 나랑 같이 가자. 아니 같이 가주라.” 서니는 상냥하게 웃으면서 인간 여자에게 같이 여행할 것을 다시 한 번 제안했다. 인간 여자는 조금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 여자가 허락하자 서니는 뛸 뜻이 기뻐하며 외쳤다. “야호! 그럼 결정 된 거다! 아! 그전에 너 부를 이름부터 지어야겠 다.” “이름... 말인가요?” “그래. 계속 너라고 부를 수는 없잖아. 웅. 나 이름은 잘 못 지으 니.... 에이. 그냥 니스나라고 부를게. 니스나. 그렇게 나쁜 이름은 아니지?” 니스나. 용들의 언어로 목걸이라는 뜻이었다. 물론 인간 여자가 용언 을 알 턱이 없었다. 아니 설사 알았다 하더라도 지금 인간 여자의 상 황은 거절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니스나. 좋은 느낌이 드는 이름이네요. 네! 지금부터 제 이름은 니 스나입니다.” “좋아! 니스나. 나는 서니히아. 애칭은 서니니깐. 그냥 서니라고 부 르면 돼.” “네 서니님!” 니스나라는 이름이 붙여진 인간 여자는 거절은커녕 이름이 마음에 들 었는지 크게 기뻐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기억을 잃은 인간 여 자의 이름은 니스나(목걸이)로 결정됐다. “좋았어! 그럼 니스나의 기억 찾기 여행의 시작이다!” 서니는 니스나가 귀찮아서 아무렇게나 붙여준 이름을 너무 좋아하는 것이 조금 마음에 걸렸지만 그래도 여행의 시작이라는 생각에 같이 기뻐해주며 외쳤다. “네!” 어느새 우울한 표정을 지운 니스나도 서니와 같이 기뻐하며 웃었다. 서니를 만나고 나서 처음으로 보이는 웃음이었다. 기억을 잃은 인간 여자 니스나와 이제 막 성룡이 된 서니의 여행. 어 쩐지 파란이 일 것 같은 이 여행은 서니의 제안으로 일단 테이의 레 어에 먼저 들리기로 했다. “테이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서니의 텔레포트 마법으로 눈 깜짝할 사이에 테이의 레어 앞으로 이 동한 니스나는 테이에 대해서 물었다. 혹시나 서니와는 달리 나쁜 드 래곤이면 어쩔까하는 걱정이 담겨 있는 질문이었다. “정말로 멋지고 상냥한 오빠야! 또 얼마나 날 좋아해준다고!! 난 계 속 꿈꿔 왔어. 오빠와 같이 로맨틱한 여행을 하는 꿈을....” “아! 서니님은 그 테이라는 분을 사랑하시는 군요.” 니스나의 말에 서니는 얼굴을 붉히고 몸을 배배 꼬며 대답했다. “아잉. 노골적으로 진실을 말하면 어떡해? 나 보기보다 부끄러움 많 이 탄단 말이야.” 테이가 들었다면 머리를 쥐어뜯으며 한숨을 푹푹 쉴 말이었다. 지난 500년 간 서니는 기회만 있으면 테이 레어로 놀러가서 테이의 속을 빡빡 긁어 놨었다. 물론 서니는 어디까지나 테이를 좋아해서 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테이에게 정신적인 피해를 준다는 사실을 전혀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서니 성격의 최대 단점이었다. “자 여기가 나의 테이 오빠 레어야. 인간을 좋아하는 상냥한 오빠니 깐 겁먹지 않아도 돼.” “네.” 하지만 서니와 니스나는 테이의 레어로 들어갈 수 없었다. 테이의 레 어에는 강력한 마법 결계가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드래곤 들 사이에서 레어를 장시간 비운다는 뜻인 마법과 물리력을 같이 차 단하는 단단한 결계였다. “어라? 어라라라?! 여행을 떠나신 건가?! 이런 말도 안돼!! 오빠가 동면하기 전에 내가 조금 있으면 성룡이 된다고 그렇게 말을 했는데! ! 왜? 왜 나한테 오지 않고 훌쩍 떠나버린 거야?!!” 서니가 테이가 없다는 것에 절규하는 동안 니스나는 곰곰이 생각하다 가 손을 탁 치면서 말했다. “저기요. 테이라는 분은 혹시 서니님이 언젠가는 여행을 떠나실 것 을 예견하고 인간 세상에서 만나자는 뜻으로 나가신 것이 아닐까요? 여행 중에 사랑하는 남녀가 극적으로 만나는 것만큼 로맨틱한 상황도 없잖아요. 서니님이 사랑하시는 남자 분께서 굉장히 상냥 하시다고 하셨죠? 그러니 첫 여행을 떠날지도 모르는 서니님에게 최고의 로맨 틱한 여행이 되도록 꾸미신게 아닐까요?” 차라리 본능이라고 해야 될까? 니스나는 절규하는 서니의 마음에 속 드는 말만 골라서 했다. “그래! 그렇구나! 아잉. 테이 오빠는 멋을 너무 따진다니깐. 하긴 그런 점에 내가 반한 거지만.” 테이는 로맨틱과는 거리가 먼 세상이 인정하는 둔감한 남자다. 하지 만 색안경이란 어떻게 끼느냐에 따라서 가끔 무서운 위력을 발휘하기 도 하는 법이다. 지금도 서니의 테이에 대한 색안경은 니스나의 잘못 짚은 상황까지 가세해서 테이를 이 세상 최고의 로맨틱한 남자로 만 들어 버렸다. “좋았어! 그럼 우리의 첫 여행은 사랑하는 나의 테이 오빠를 찾는 것과 니스나의 기억을 찾는 여행으로 수정이다!” “네! 서니님 어디든지 따라가겠습니다!” 그렇게 서니는 사랑하는 나의(?) 테이 오빠와 로맨틱한 재회라는 새 로운 목표와 니스나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기 위한 여행을 시작했다. 힘차게 앞서 걸어가는 서니의 뒤를 따르는 니스나의 목에 걸린 목걸 이. 니스나도 서니도 그 목걸이가 오리하곤 왕국의 왕임을 증명하는 왕가의 문장이라는 것을 그때까지는 알지 못했다. 계속 ---------------------------------------------------------------- 안녕하세요? 평화주의 입니다. 39화 마녀와 악마는 끝입니다. 다음부터는 40화 초보 드래곤 아빠와 엄마 편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것으로 이번 이야기에 등장할 모든 주요 등장 인물들이 다 나왔습니다. 물론 출발점은 모두 틀립니다. 크게 나누자면 티아와 테이의 육아와 착각 엘프 리엘리아의 아기 찾 아 삼만리. 그리고 사랑하는 나의(?) 오빠 찾기를 시작한 서니와 기 억을 잃은 니스나(리이나)의 여행. 이번 편의 악역이 되실 마녀 네반과 악마 베스크와 프라츠. 이 네 그룹이 각자의 길을 걷다가 하나씩 만나는 것으로 드래곤 남매 마지막 이야기의 하이라이트에 들어갑니다.^^ 흠. 이 자리를 빌어서 분명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술술 풀어나가 서 쉽게 쉽게 티아와 테이를 맺어 줄 생각은 애초에 없었습니다. 그러니 어렵게 꼬여가는 이야기가 싫으시면 주저 마시고 리스트를 누 르세요. 저는 취향에 안 맞는 이야기 억지로 봐달라고 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 니다. 이런 분위기를 좋아하시는 독자님들만 다음편을 기대해 주세요~~ 그럼 늘 즐거운 시간 되세요. ^^ 40화 초보 아빠와 엄마는 드래곤(1) 아름다운 아내와 귀여운 아들. - 비록 연극이지만...- 평온하고 행복한 나날. 나름대로 꽤 마음에 드는 생활이다. 다만.... 어째서? 어째서?!! “왜 산 속 오두막에서 살아야 되냐고?!!” 난 장작을 패다 말고 하늘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과정이야 어째든 나는 티아와 같이 아기를 키우기로 했다. 그런데 나와 티아 그리고 아기의 보금자리는 어찌된게 산속의 오두막으로 결정된 것이다. “자기 그 말 벌써 스물일곱 번째야. 원만하면 이제 그만 익숙해져도 되지 않아?” 티아는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아기에게 젖을 먹이다가 한심하다는 말투로 나에게 말했다. 요 며칠 계속 비가 내리다가 오랜만에 오늘 날씨가 좋아지자 티아는 아기와 함께 밖에서 일광욕을 즐기던 차였고, 나는 그 동안 하지 못한 장작을 패던 중이였다. “아니! 오늘은 분명히 따지고 넘어가야겠어! 왜 하필 산속의 오두막에서 살아야 되는 이유가 뭐야? 우리가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도시에서 좋은 집 사서 하인과 하녀 거느리고 떵떵거리며 살아도 되잖아! 그런데 왜 이런 궁상을 떨면서 살아야 되는 거냐고?!” 내 한이 맺힌 물음에 티아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곧 생긋 웃으며 대답해줬다. “그냥.” 하지만 티아의 대답은 내 한 맺힌 질문에 답이 되지 않았다. “그냥이 뭐야?! 그냥이!! 말 돌릴 생각하지 말고 똑바로 대답해! 난 티아가 해달라는 데로 티아의 남편 연기를 하기로 했고, 둘이서 같이 아기를 키우기로 약속도 했어. 진짜 아내처럼 대해달라는 부탁도 착실히 들어주고 있고!! 티아가 해달라는 것은 내가 다 해준 거야! 그런데 왜 도시에서 살자는 내 부탁은 씹어버리고 이런 산속의 오두막에서 살아야 되는 이유가 뭔데?” “하지만 이 편이 훨씬 더 평화스럽고 조용하잖아. 도시는 시끄러워서 싫단 말이야.” “그럼 하다못해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살아도 되잖아! 어차피 마법이 있으니 별 상관은 없지만 가까운 마을 가는데도 반나절이 걸리는 산속에서 사는 이유가 뭐냔 말이야?!!” “자기야~.” “으응?” 갑자기 티아가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나를 부르자 내 기세등등한 모습은 금방 사라졌다. 대신에 옛날 티아를 대할 때 모습인 긴장한 상태로 티아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자기의 목소리가 너무 커서 우리 아기가 맘마 먹다가 체하겠어. 조금만 조. 용. 히. 해 주겠어?” 티아는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지만 그 말속에는 뭔가 날릴 준비가 된 티아 누나의 본연의 분위기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분위기에 익숙한 나는 지금부터 내가 해야 될 일을 잘 알고 있었다. “오늘은 날씨가 좋은데. 햇살도 따뜻한게 장작이 잘 마르겠어.” 비겁하다고 욕하지 말기를 바란다. 2500년 동안 꾸준히 당하다 보면 자연스레 방어 본능이라는 것이 생기게 마련이고, 나는 그 본능에 충실할 뿐이다. “장작 패면서 아기 이름이나 좀 지어 봐.” 티아는 얌전히 장작을 패는 나에게 퉁명스런 말투로 오늘은 반드시 아기 이름을 지으라고 말했다. 티아와 티아의 그림자인 티아라 그리고 아기의 합동울음잔치(?) 덕분에 거의 반 강제로 티아와 아기를 키우게 된지도 벌써 한달이 흘렀다. 그런데 그 한 달 동안 나도 티아도 아직 아기 이름을 정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내가 짓는 이름마다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티아가 패스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억울한 건 티아는 아기 이름을 지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남자 아기는 아빠가 강하고 좋은 이름으로 지어줘야 되는 거야.’ 라는 티아의 주장 때문에 - 물론 약간의 협박을 포함해서다. - 별 수 없이 처음으로 이름이라는 것을 지어보기로 했지만.... 안 해보던 짓을 하려니 될 리가 없었다. 아니 그것보다 티아가 까다로운 것일지도.... “지금 내 말 듣고 있어?!” “아? 아! 응 드..듣고 있어. 똑똑히 듣고 있으니 걱정 하지 마.” 티아는 뾰로통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 놈의 혼자서 멍하게 생각하는 버릇 좀 고치려고 생각은 하는데 마음먹은 대로 잘 고쳐지지가 않는다. 아무튼 그건 그렇다 치고 무슨 이름을 지어야 저 까다로운 티아가 오케이 사인을 내릴까? “후아암.” “응. 우리 아기 배가 부르니 이제 졸린가 보네. 자 이제 코하자.” 아기는 배부르게 먹었는지 늘어지게 하품을 했고, 티아는 그런 아기에게 다정하게 속삭이듯이 말했다. 에휴. 저 다정함의 반만큼만 나한테 해줄 수 없는 건가? ‘아기를 상대로 무슨 질투람. 이름이나 생각하자.’ 순간적으로 아기에게 질투심이 들었던 나는 고개를 저어서 질투심을 털어내 버리고 아기에게 지어줄 이름이나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 답이 안 나온다. 어떻게 지어야 되지? 지난 한 달간 고민해도 떠오르지 않았던 답이 지금 고민한다고 갑자기 떠오를 리가 없었다. 결국 나는 장작을 전부 다 할 때까지 그럴 듯한 이름을 짓지를 못했다. 아니 가끔 생각나는 좋은 이름을 - 내 관점으로...- 말해도 티아는 여지없이 패스를 해버렸다. 결국 장작을 다 팰 때쯤 나는 짜증이 극에 달해버렸다. “나도 이제 몰라! 그냥 아기니깐 아가야라고 부르자고!!” “왜 갑자기 화를 내는데?!” 티아는 아기가 깰까봐 소리를 낮춰서 화를 냈다. 보통 때라면 이쯤에서 내가 물러나지만.... 나는 일단 한번 확 돌아버리면 앞뒤 생각 안하고 덤벼드는 성격이다.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이 성격 때문에 조용히 넘어가도 될 일을 크게 만들곤 했지. “몰라서 물어?! 정말로 몰라서 물어?! 한 달간 내가 지은 이름만 해도 벌써 몇 백 개 단위야! 도대체 까다로운 것도 정도가 있지! 여자가 그렇게 까다로워서 어디다 쓸 건데!!” “호오. 까다로워서 정말 미안하네.” 그리고 나는 언제나 티아의 싸늘한 말투를 듣고 나서야 제 정신이 든다. 물론 이 경우에는 인간들의 속담을 빌리면 엎질러진 물 상태인 것이다. 가끔 나는 나에게 학습 능력이란 것이 정말로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후회한다. 물론 항상 후회해봤자 이미 일은 터져서 늦어버리고 난 뒤지만... “저기... 티아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그게 아니고....” 나는 살아남기 위해서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으려고 해봤지만 이럴 경우 티아는 항상 문답무용을 들먹이며 변명할 기회 따위는 주지 않는다. 그 증거로 지금 티아 주변에는 보기에도 무시무시한 크기의 아이스 미사일이 소환 된 상태였다. “자..잠깐만! 아기가 지금 막 잠들었잖아! 애 깨울 생각이야?!!” “걱정하지 마. 사이레스를 아기 주변에 걸어 뒀으니 바로 옆에서 뭐가 터지던지 깨지 않아. 그러니 얌전히 그대로 죽어!! 이 불평장이 남편아!!” 티아는 철저한 연기를 위해서인지 나긋나긋한 부인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었다. 단지 지금처럼 화가 나거나 하면 바로 본래 성격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문제였다. “불평이 나오게 만든게 누구 탓인데?!!” 나는 날아오는 아이스 미사일을 보면서 필사적으로 마법 방어막을 펼쳤다. 간신히 1차 공격은 막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나의 한계였다. 티아는 2차로 아이스 미사일을 소환하며 소리쳤다. “그럼 전부 내 탓이란 거야?!” “티아 탓도 약간은 있었잖아!” 나는 방금 전 공격으로 방어막의 구실을 못하게 된 마법 방어막을 소멸시키고 날아오는 아이스 미사일을 피하면서 소리쳤다. 하지만 티아는 듣기에 억울한 말로 받아쳤다. “남자가 조잔하게 따지는게 아니야!!” “치사해!!” 도대체 자기 편할 때만 여자인 점을 내세우는 것은 무슨 심보란 말인가? “치사한 것은 티아 쪽이잖아! 자기는 언제 아기 이름 한번 생각해본 적 있어?!” “무슨 소리 나도 생각 한 것은 있다고!!” “흥! 보나마나 내가 지은 이름들보다 더 형편없는 이름이겠지! 그러니 말도 못하고 나한테 다 떠넘기는 거잖아!!” “무슨 실례의 말을 하는 거야?! 실피온(바람이 데려온 아이 라는 뜻)이라는 아주 멋진 이름을 생각했었다고!!” “실피온?” “앗! 아차!!” 티아는 실수했다는 표정으로 자기 입을 가렸지만 나는 이미 들을 것 다 들은 상태였다. 실피온이란 바람이 데려온 아이라는 우리 드래곤 족의 언어였다. 확실히 이 아기는 실프가 데려왔으니 바람이 데려왔다는 이름이 어울릴 것도 같았다. “좋은 이름인데 왜 지금까지 숨긴 거야?” “그..그건.” 내 질문에 티아는 얼굴을 붉히면서 머뭇거렸다. 설마 진짜 부끄러워하는 건가? 아니 그 전에 좋은 이름인데 왜 부끄러워하는 걸까? 티아는 내 의문을 알아차렸는지 내가 묻기도 전에 대답을 해줬다. “저기 아무리 좋은 이름이라지만 남자애한테는 아빠가 이름을 지어줘야 되는 거잖아. 그래서...” 얼굴을 붉히면서 우물쭈물 대답하는 티아의 얼굴이 그렇게 귀엽게 보일수가 없었다. ‘크윽! 저기에 성격만 상냥하다면 여한이 없겠는데....’ “실례되는 생각은 그만둬!!” 이런 또 내 생각을 읽었나 보군. 쌍둥이기 때문인지 티아와 마음이 통한다는 사실은 이제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비겁해! 티아만 내 생각을 마음대로 읽고,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은 너무 비겁하잖아!” 그렇다. 티아는 내 생각을 잘 읽지만 난 이때까지 살아오면서 티아의 마음을 느끼는 경지를 터득하지 못했다. 아니 읽어보려고 노력은 해봤다. 하지만 안개가 낀 듯한 느낌만 오는 것이 티아는 자신의 마음을 아주 훌륭하게 차단하는 법을 터득한 것 같다. “그 정도는 굳이 읽지 않더라도 자기 얼굴 표정만 보면 알 수 있어.” 내 불만에 티아는 혀를 낼름 내밀며 대답했다. 내가 그렇게도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건가? “하아. 이봐! ...아니 관두자. 말싸움은 여기서 그만두고, 아기 이름은 실피온으로 정하자.” “에? 하지만... 남자 아이인데... 아빠가 좀 더 멋있고, 강한 이름으로 지어주는 것이...” 티아는 곤란한 얼굴로 끝까지 나에게 이름을 짓기를 권했지만 난 이미 결심을 굳힌 뒤였다. 생각해보면 이 아기는 실프가 데려온 아기니 바람이 데려온 아이라는 뜻의 실피온이라는 이름을 쓰는 것이 전혀 이상할 것도 없었다. 그리고 실피온이라는 이름이 나쁜 느낌의 이름도 아니고, 오히려 내 마음에도 꼭 들었다. “아니 이 아기 이름은 실피온이야. 나도 마음에 드는 이름인걸. 아까 전에 내가 지은 이름보다 형편없을 것이라는 소리를 해서 미안해. 정말 좋은 이름이야.” “그, 그 정도까지 좋은 이름은 아닌데....” 티아는 내 칭찬이 부끄러운지 고개를 푹 숙이며 중얼거렸다. 쩝. 저럴 땐 진짜 귀여운데... “어? 왜 그러니 아가야?” 고개를 숙였던 티아는 깜짝 놀란 목소리로 이제 막 실피온이라는 이름을 가진 우리 아기에게 말했다. 무슨 일인가 궁금해진 나도 아기의 이름을 부르며 아기를 쳐다보니 실피온은 그 귀여운 볼을 잔뜩 부풀린 체 티아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뭔가 불만에 가득 찬 표정이네.” 티아는 곤혹스런 표정으로 날 쳐다보며 말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생판 처음 인간의 아기를 키우는 초보 엄마. 아빠 드래곤이 뭘 알겠는가? 우리는 실피온이 무엇이 마음에 안 드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아니 난 문득 전에 읽었던 육아 책에서 이런 사태에 대해서 본 기억이 가물가물하게 났다. 그 책에는 분명히... “우리가 싸워서 그런건가?” “아! 맞다. [아기와 첫걸음]이라는 육아 책에서 나왔었지. 아기는 부모가 싸우면 스트레스를 받는다던가...” “거 참. 그때는 아기가 뭘 알아서 스트레스냐고 웃어 넘겼는데... 그것도 아닌 가봐.” “나도 설마하고 별 신경 안 썼는데... 어쩌지?” 어쩌긴. 방법은 하나뿐이다. 우리가 싸운 것 때문에 실피온이 화가 났다면 우리의 다정한 모습을 보여주면 낫겠지. 내 생각을 말해주자 티아는 잠시 곰곰이 생각하더니 생긋 웃었다. 불안하다. 저 웃음은 나와 관련해서 재미있는 일을 발견했을 때의 바로 그 웃음이다. “그럼 우리 사이좋게 웃으면서 실피온을 달래보자. 응~ 자기야~.” “.......” 난 지금까지 끈적끈적한 분위기라는 것이 어떤 분위기인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난 끈적끈적한 분위기가 무엇인지를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느낌은 충격이 되어 내 몸을 돌처럼 굳게 만들었다. 내가 문화적(?) 충격에 의해 잠시 말을 잊은 사이에 티아는 계속 그 끈끈한 목소리를 유지하며 다정하게 - 라고 생각 된다 - 아기의 이름과 내 이름을 번갈아 부르며 애교를 떨었다. 그리고 무언으로 나에게도 동조를 하라고 신호를 보냈다. ‘죽어도 부모님 흉내는 내기 싫어!!’ 내 솔직한 마음은 이랬지만 그래도 폭력에는 어쩔 길이 없기에 별 수 없이 티아와 함께 깨소금이 쏟아지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하지만... “이상하네. 왜 아직도 기분이 안 풀릴까?” “나한테 묻지 마.” 실피온은 여전히 불만 가득한 얼굴로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우리 둘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실피온을 달랬지만 실피온은 쉽게 불만을 풀지 않았다. “아아. 지쳤다. 아기를 키우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들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나는 한숨을 푹 쉬고 항복 선언을 했지만 티아는 쉽게 포기할 생각이 없었는지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실피온을 어르고 달랬다. “자 우리 실피온. 멋진 이름도 생겼는데 왜 기분이 나쁘실까? 자 왕자님 웃어보세요. 오로로로 까꿍.” “우우. 아아아. 아우. 아우.” 실피온은 뭔가 전하고 싶은 듯 필사적으로 손가락질 하면서 티아를 보챘다. 티아는 실피온이 가리키는 것을 보고는 설마 하는 소리를 냈고, 나 역시 그것(!)을 보고 설마 하는 소리가 나왔다. 실피온이 가리킨 것은 아까 티아가 날렸던 무식한 크기의 아이스 미사일이었다. “저 실피온. 이거 보고 싶다는 말이니?” 티아는 혹시나 하는 표정으로 다시 한번 커다란 아이스 미사일을 소환했다. “아아! 아아아! 아윽! 아우!” 그제야 실피온의 표정이 풀리면서 열심히 양팔을 흔들었다. 티아는 아이스 미사일을 소환한 체 나를 쳐다봤다. 저거 설마... “이봐! 티아! 잠깐만!” “자기야. 살살 날릴 테니 잘 피해.” “자, 잠깐만!!” 티아는 주저 없이 나에게 아이스 미사일을 날렸다. “으아악!” 간신히 아이스 미사일을 피하자 실피온의 까르륵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뒤이어 티아의 기뻐하는 목소리도 들렸다. “어머나! 우리 실피온 재미있어요? 더 할까요?” “더 하긴 뭘 더해!! 나를 진짜 잡을 셈이야?!!” “잘 피하면서 무슨 불만이야? 우리 아기가 좋아하는데 그 정도는 좀 참아 봐.” ......아버지가 죽을지도 모를 상황을 좋아하는 자식이 제대로 된 자식인가? 흑흑흑 이건 내 교육이 잘 못 된 거야. “자기~~ 하나 더 받아!!” “악! 잠깐만! 인생 한탄 할 시간정도는 달란 말이야!!” “그런 거라면 끝나고 나서 실컷 해!!” “으아악!!” “까르륵!” 그 날 실피온 달래기 아이스 미사일 피하기는 실피온이 잠들기 전까지 계속 됐다. 아름다운 아내와 귀여운 아들. - 비록 연극이지만...- 이제 평온하고는 거리가 멀어 졌지만... 그래도 실피온의 맑은 웃음소리를 생각하면 나름대로 행복한 하루였다. 목숨의 위협만 없다면 더욱 더 금상천화일 텐데.... “자 그럼 다녀 올테니. 그동안 실피온 좀 잘 봐야 돼.” “걱정하지 말고 잘 다녀와. 오늘은 실피온과 둘이서 재미있게 지낼 테니!” 어느 날 티아는 다이러스 제국에 가봐야 될 일이 생겼다. 그림자를 남겨놓고 왔지만 그래도 티아 본인이 꼭 해결해야 될 일이 생길 경우가 있다고 한다. 그 날도 바로 그런 일이 생겨서 티아는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아침부터 나에게 이것저것 주의를 주는 중이였다. “우유는 갓 짜낸 신선한 우유를 줘야 돼! 절대 아침에 짠 우유를 점심때나 저녁때 주면 안 돼! 아기는 위가 약한단 말이야! 그리고 점심때는 꼭 낮잠을 재우시고, 자기 싫어서 보챈다고 안 재우면 나중에 고생한단 말이야! 아 기저귀는 바로 바로 갈아줘야 돼! 귀찮다고 나중에 한꺼번에 갈거나 하면 피부가 짓무르니 꼭 바로 갈아줘야 돼! 아기 목욕은 저녁 때 시키고 온도는 손으로 확인하지 말고 팔꿈치로 확인해서 따뜻하다 싶은 온도로 맞춰야 돼!” “잘 알았으니 제발 그만 해라!” 저 말들은 티아가 다이러스 제국에 다녀와야 될 때가 정해진 바로 그저께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주의 사항이다. 내가 아주 달달 외울 정도로 주의 사항을 말한 티아는 그래도 안심이 안 되는지 실피온을 껴안고 눈물을 흘렸다. “미안하구나! 아가야! 이 엄마가 못나서 너를 남겨두고 떠나야 되다니! 힘들겠지만 엄마가 돌아 올 때까지 몸 건강히 잘 있어야 돼!” “어이. 제발 부탁이니 적당히 좀 해 줘.” 아예 못 만나는 것도 아니고, 며칠 있다 오는 것도 아닌 내일 오는데도 티아의 행동은 완벽히 며칠간 - 혹은 영원히 - 헤어지는 엄마의 슬픈 모습 그대로였다. 그것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골치가 아파오는 느낌이다. 티아는 내 호통에도 쉽게 안심이 되지 않는지 워프의 문 안으로 들어가는 그 순간까지 걱정하는 표정으로 주의 상황을 다시 말했다. “나 원 참. 아무리 걱정이 되도 그렇지. 완전히 극성맞은 엄마가 따로 없다니깐. 그렇지 실피온? 엄마는 너무 걱정이 많아서 탈이지?” “아.” 내 말을 알아 들을리는 없지만 실피온은 자기 이름이 불리자 커다란 눈을 깜박이며 나를 쳐다봤다. 한 달 전 그렇게나 정하기 힘들었던 아기의 이름도 약간의 소동 끝에 실피온으로 결정됐다. 하지만 실피온은 그 동안 아가야라고만 불려서인지 쉽게 자기 이름을 인식하지 못했다. 그래서 한 동안은 자신의 이름보다는 아가야라는 부름에 반응하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티아와 나의 눈물나는 노력 끝에 자기 이름이 실피온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인식했는지 요즘 실피온이라고 부르면 고개를 돌아볼 정도까지 성장했다. 돌아보면 참으로 눈물나는 사투의 날들이었다. “자 그럼 실피온아 오늘 하루는 뭘 하며 놀까?” 난 실피온을 하늘 높이 들어 올려서 높다 높아를 해 줬다. “까르르륵!” 실피온은 기분이 좋은지 내가 들어올릴 때마다 맑은 목소리로 웃었다. 훗. 이것 보라지. 티아가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오늘 하루쯤은 내 사랑하는 아들과 아무 문제없이 지낼 수가 있다고! 아니 하루가 뭐야! 일주일 쯤 안 들어와도 잘 해낼 수 있어! “그렇지? 우리 귀여운 실피온! 자 높다 높아!” “까르르륵!” 그렇게 논지 한 시간 정도 쯤 지났을까? “저기 실피온아. 이제 그만 맘마 먹자.” “아우우! 아우, 아우!” 실피온은 귀엽게 도리질을 치면서 뭔가를 호소하는 얼굴로 팔을 흔들었다. 흑흑흑 이 녀석 높다 높아에 완전히 맛 들였나 봐. 적당히 할 걸. 하지만 아무리 맛을 들였다 하더라도 정도 것이라는 게 있지. 한 시간 동안 해줬는데도 모자르단 말인가? “우... 우... 우...” 실피온은 아무리 보채도 내가 높다 높아를 안 해주자 화가 났는지 볼을 잔뜩 부풀리기 시작했다. 이거 다음에는 큰 소리로 울기다. 난 실피온의 표정 변화에 깜짝 놀라서 급히 실피온을 높이 들었다. “앗! 자 자 실피온 높다 높아!” “까르르륵!” 실피온은 언제 볼을 부풀렸다는 듯이 금방 해맑게 웃기 시작했다. 에휴. 그래 힘들지만 귀여운 아들이 좋다는데 계속 해줘야지. 그렇게 생각은 했지만.... “저기 아들아. 이거 더 해야 되니?” “아! 아!” 그렇게 장장 두 시간동안 계속 해달라는 건 무슨 심보일까? 결국 실피온이 배고프다고 보챌 때까지 높다 높아는 계속됐다. 에구. 팔이야. “잘 자라 우리 아가. 앞뜰과 뒷동산에 새들도 아가양도 다들 자는데... 실피온아 제발 부탁이니 이제 그만 자라.” 실피온과 놀아 주느라 늦은 아침겸 점심을 먹이고 낮잠을 재우려고 했지만 실피온은 잘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토닥거려 주며 자장가를 수십 차례 불렀지만 그럴수록 실피온의 눈동자는 또랑또랑한 빛을 발했다. ‘죽어도 자기 싫다는 눈이군. 에휴. 어째 아침부터 제대로 되는 일이 없을 것 같더니만... 훗. 하지만 아기는 어쩔 수 없는 아기. 지칠 때까지 놀아주면 제 풀에 지쳐 잘 테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잘 되지도 않는 자장가는 접어두고, 실피온이 좋아하는 놀이를 하면서 즐겁게 놀기로 마음먹었다. 이왕이면 몸을 많이 움직이는 놀이를 해서 실피온이 졸려서 알아서 잘 때까지... 실피온이 좋아하는 놀이는 많았다. 목마를 타는 것도 좋아했고, 높이 들어올려 주는 것도 좋아했다. 그리고 장난감 중에서는 손으로 돌리는 팔랑개비가 날아가는 것을 제일 좋아했다. 그러고 보니 실피온이 좋아하는 놀이 중에서 대부분이 높은데 올라가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은데.... 나중에 높은 사람이 되려고 그러는 건가? 뭐 그 편이 더 좋기도 하지만... “나중에 무엇을 하던지 네가 행복하다면 좋지만... 그래도 다른 이들이 우러러보는 일을 했으면 하는게 부모 욕심인 것 같구나. 그래 이왕이면 용사 같은....” “아! 꺄하!” 실피온은 내 목에 타서는 푸른 하늘을 쳐다보며 웃었다. 나는 그런 실피온에게 알아들을 리가 없는 말을 하면서 미소 지었다. 지금 당장 못 알아들으면 어떤가? 자식은 부모의 등을 보고 큰다던데 나는 지금부터라도 항상 실피온에게 정직하고 열심히 사는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자식이 부모의 등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그런 모습을.... “그러기 전에 먼저 티아에게 휘둘리는 모습부터 어떻게 해결을 해야겠지.” 좀 분위기 잡고 결심을 했건만 티아에게 휘둘려 사는 내 모습이 생각나자 갑자기 실피온도 보고 배울까 겁이 났다. 만약에... 이것은 정말 만약의 일이지만... 혹시라도 실피온이 여자에게 잡혀 사는 인생을 살게 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내 책임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래! 이제부터라도 가장으로서의 위엄을 보이는 거야! 우리 실피온을 위해서 내가 정신을 차리는 거야!!” “아?” 나는 실피온을 팔에 안아서 결의에 찬 눈으로 쳐다보며 힘주어 맹세했다. “앞으로 너의 인생에 여자 때문에 괴로운 일 당하지 않도록 이 아빠는 최선을 다할게. 약속하마! 아들아!” 물론 이 결의도 실피온이 알아들을 리가 없었다. 실피온은 그저 왜 갑자기 목마를 안 태워주냐는 듯이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뭐 어차피 이 결의는 실피온에게 들려주기 위한 것이 아닌 내 자신에게 하는 약속이나 마찬가지니 별 상관없으려나. “그래. 자 실피온. 실컷 놀고 코 하자.” 나는 다시 실피온을 목마에 태워서 앞마당을 돌면서 신나게 놀아줬다. 실피온의 맑은 웃음소리는 행복이라는 단어를 어디다 써야 되는지를 알려주는 것 같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적당히 라는 것이 있는 법이다. 실피온의 맑은 웃음소리가 몇 시간째 계속 되는 동안 나는 슬슬 지치기 시작했다. 중간 중간 실피온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간식을 먹이는 약간의 시간 빼고는 실피온은 계속 목마를 태워 줄 것을 요구했다. 너무 맛 들이게 만들면 나쁜 버릇 들겠다 싶어서 억지로라도 재우려고 했지만 실피온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크게 울어버리는 통에 별수 없이 내내 목마를 태워 줄 수밖에 없었다. ‘하아. 이 떼쟁이를 티아는 그 동안 어떻게 다룬 거지?’ 정말이지 이럴 때는 여자의 손길이 간절하다. 지금까지 티아는 실피온을 먹일 때 먹이고, 재울 때 재우고, 놀아 줘야 될 때 확실히 놀아줬었다. 그 모든 것을 옆에서 쭉 지켜봐왔던 나이기에 오늘 하루 정도는 티아 못지않게 실피온을 잘 볼 수 있을 거라 자신했었다. 하지만 저녁먹일 시간이 다가 올 때까지 실피온이 자지를 않자 슬슬 자신감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하하하. 좋은 쪽으로 생각하자. 이만큼 안 잤으니 밤에는 세상모르게 자겠지. 그래 틀림없이 밤에는 조용히 잘게 분명해. 그럼 그 때 밀린 집안 일 하면 되는 거야.’ 라고 되도록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실피온을 재우기 위해서 거의 필사적으로 어루고 달랬다. 그런 내 노력을 가상히 여겼는지 실피온은 겨우 졸린 눈을 비비기 시작했다. 하지만... “왜 하필 저녁 먹어야 될 때 조는 거니? 자 부탁이니 맘마 먹고 코 하자.” 정말이지 자기 멋대로 구는 실피온 덕분에 울고 싶어질 지경이었다. 억지로라도 먹여볼까 했지만 실피온은 막무가내로 투정을 부리며 눈을 감아버렸다. 그 모습은 ‘난 무슨 일이 생겨도 지금 잘거야! 그러니 아빠는 귀찮게 하지 마!’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하아... 나도 이제 모르겠다. 그래 아기는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푹 자야 건강해지는 거겠지.” 그렇게 항복해버린 나는 실피온을 침대에 눕혔다. 하지만 곧 다른 생각이 들어서 실피온을 안고 내 침대에 같이 누웠다. 그 자세로 잠이 든 실피온을 보고 있자니 가슴 속에서 갑자기 뭉클한 생각이 들었다. “정말 작구나. 손도 발도 얼굴도...” 비록 피를 나눈 자식도 아니고 더군다나 인간의 아이였지만 아기란 존재는 그 어떤 생명체라도 보호해주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드는 것 같다. 더구나 지금 이 아기는 누가 뭐라고 해도 내 아들이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티아와 내가 소중하게 키우는 우리의 아기. “잘 자라 우리 아가. 앞뜰과 뒷동산에...” 내 입에서는 어느새 낮에 불렀던 자장가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비록 낮에는 재우기에 실패했던 서투른 자장가지만 지금 실피온은 내 자장가를 들으며 곤히 잠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나도 같이 잠들어 버렸다. 밀린 집안일이 조금 걱정이 됐지만 거부할 수 없는 잠의 정령의 힘에 그대로 내 몸을 맡기고 실피온과 같이 편안하게 숙면을 취했다. ‘나 다이러스 제국의 신룡이 될 거야.’ 그렇게 말하는 티아 누나의 얼굴은 웃는 듯 우는 듯 분간이 가지 않았다. 나는 ‘왜?’라고 물어보는 것도 잊고 멍하니 티아 누나의 얼굴만 쳐다봤다. ‘그런 표정 짓지마. 신룡님들의 뒤를 잇고 싶다는 생각은 없어. 그리고 그 분들의 전철을 밟을 생각도 없고.... 그저 나도 보고 싶을 뿐이야. 이 세계를... 신의 대리인으로 신룡님들이 만든 이 세계에 약간이나마 영향을 끼치며 보고 싶어. 인간들이 만들어 가는 세계에 내 힘으로 약간이나마 도움을 주고 싶어.’ 무언가 말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아니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조차 알 수 없었다. 말려야 되는 건가? 잘해 봐 라고 격려해야 되나? 인간들 나라나 말아먹지 말라고 농담 삼아 핀잔을 주고 싶었던 걸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찾기 위해서 머뭇거리고 있을 때 티아 누나는 슬퍼 보이는 미소를 지으면서 내 뺨을 어루만졌다. ‘가끔 놀러오렴. 그럼 안녕.’ 그 말을 마지막으로 티아 누나는 공간의 문으로 들어 가버렸다. 그리고 티아 누나가 가고 난 뒤에야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찾을 수 있었다. ‘도망치는 거야? 나에게서?’ “우에에엥!” “으아악!” 천둥 같은 울음소리 덕분에 잠이 확 깨버렸다. 예전에 자주 꾸던... 하지만 요즘 들어서 거의 꾸지 않았던 꿈을 꾸었다. 이것도 오랜만이다라고 해야 되나? “우에에에엥!!” “휴. 너는 아빠가 잠시 감상에 젖을 시간조차 주지 않는 구나.” 내 잠을 깨웠던 실피온은 내 곁에 앉아서 목 놓아 울고 있었다. 이제야 배가 고파서 우는 건가? “하여튼 넌 처음 만났을 때부터 제 멋대로구나. 아직 아기라서 어쩔 수 없는 건가?” 난 울고 있는 실피온의 아직 다 자라지 않은 머리카락을 한번 쓰다듬어 주고는 실피온이 먹을 우유를 짜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비상용(?)이라고 해야 될까? 티아가 젖이 나오지 않을 경우나 - 사실 그럴 경우는 거의 없다 - 이렇게 집을 비울 때를 대비해서 튼튼하고 건강한 암염소를 사 놓았다. 하지만 이 야밤중에 젖을 짜러 왔으니 이 녀석의 기분이 좋을 리가 없는 것 같았다. 염소는 신경질 적으로 자신의 젖을 짜지 못하게 몸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야야. 좀 봐주라. 나도 좋아서 이 오밤중에 우유 가지러 나온 거 아니야. 제 멋대로인 우리 왕자님께서 지금 배가 고프다고 하니 좀 봐줘. 안 그러면 넌 오늘 밤새도록 실피온의 울음소리 때문에 제대로 자지도 못할 걸.” 내 협박(?)이 먹혔는지 아니면 실피온의 숲이 떠나가라 우는 소리 때문인지는 몰라도 암염소는 결국에 얌전해졌다. 하지만 눈에 가득한 저 불만은 내 착각이 아니겠지? “어라? 왜 안 먹는 거지? 자 실피온 맘마 가져왔으니 맘마 먹고 다시 코 하자.” 겨우 우유를 가져왔는데 실피온은 먹지를 않았다. 인간들이 만든 인공 젖꼭지를 아무리 입에 물려줘도 바로 뱉어버리고는 사생결단을 내자는 듯이 울어댔다. “우에엥!!” “혹시 기저귀 때문인가?” 하지만 먹은 게 없어서인지 기저귀는 깨끗했다. “우에에엥!!” “놀아달라는 건가?” 열심히 어르고 달래고 실피온이 좋아하는 장난감을 흔들어 댔지만 울음은 그치지 않았다. “우에에에에엥!!” “훗. 불태웠어. 모두 새하얗게... 라고 포기할 때가 아니지.” 잠시나마 포기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어느 책에서 아기가 너무 울어대면 경기를 일으킬 경우가 있다는 문구를 기억하고는 다시 의욕을 불태워서 열심히 실피온을 달랬다. “자 우리 실피온님 무엇이 불만이십니까? 자꾸 울면 무서운 숲의 몬스터가 찾아올지도 몰라요. 그러니 이제 그만 울음을 그치세요.” 실제로는 인간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몬스터가 바로 나지만.... 아무튼 다시금 의욕을 불태운 결과는 처참했다. 울음을 그치기는커녕 정말 숨 넘어 갈 듯이 울어대는 것이다. “왜 자꾸 우는 거니? 뭐가 불만 인거야? 에휴.” 정말이지 내가 울고 싶은 기분이다. “우에에엥! ...마!” “응? 실피온. 너 방금 뭐라고 했니? 응?” “에엥! ...마! 어...마!” “어마? 설마... 설마! 엄마?! 우리 실피온 방금 엄마라고 한거니? 응 말을 한거지? 그렇지?!” 내 기세에 놀랐는지 실피온은 울음을 뚝 그쳤다. 그리고 눈물을 그렁거리면서 또렷하지는 않지만 분명히 엄마라는 말을 반복했다. 말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하하. 하하하하하. 말을... 이제야 말을 하는 구나.” 티아는 자주 실피온이 슬슬 말을 할 때가 됐는데 안한다고 걱정하는 말을 했었다. 그 때 나는 그렇게 걱정이 되면 마법을 사용하면 안되냐고 말했었다. ‘바보! 인간 아기들과 드래곤의 아기는 키우는 방식이 틀려. 처음부터 어느 정도 지성을 가지고 태어나는 해츨링을 키우는 기분으로 인간의 아기를 키우면 안돼. 인간 아기는 모든 것에 시간을 들여서 천천히 하나씩 가르쳐 가고 아기가 그것을 깨우쳐 가는 기쁨을 느껴야 되는 거야. 그래야 더욱 더 아기를 사랑하게 되고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지. 그것이 인간의 아기야.’ 그렇게 티아는 나에게 핀잔을 줬었다. 그때 은근히 화가 났던 나는 ‘ 마치 인간 아기 여럿을 키워 봤던 베테랑 인간 엄마 같군.’이라는 말을 내뱉었다. - 그 말을 한 직후에 바로 한바탕(?) 당해버렸지만.... 아무튼 그때는 티아의 말을 무시했었지만 지금 익숙하지 않은 발음으로 엄마를 찾는 실피온을 보고 있자니 티아가 했던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각각의 생명체에게는 각각의 삶이 있고, 그리고 그 삶 속에서 느끼는 행복감이 다른 것이다. 아주 간단한 이치지만 그 이치는 그 종족이 되어봐야 느낄 수 있는 법. 나는 지금 인간 아버지가 느끼는 감동이 무엇인지 똑똑하게 느꼈다. 너무나 작고 너무나 약해서 보호받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불씨가 꺼질 것 같은 작은 생명체. 그 작은 생명이 주는 새로운 기쁨이라는 것은 아주 컸다. 말로 다 표현을 못할 정도로.... 하지만.... “하아. 엄마만 찾기냐? 지금 아빠가 안아주고 달래주는데 좀 너무하다는 생각은 안 드니?” 물론 실피온의 엄마라는 말은 거의 본능이겠지. 그리고 그 엄마가 없으니 엄마를 찾는 거겠지. 그렇게 혼자 위로의 말을 건네받지만 서운한 감정은 완전히 지워지지 않았다. “어...마. 어마. 흑. 흐에에엥!!” 더듬더듬 엄마라는 말을 하던 실피온은 다시 큰 소리로 울음을 터트렸다. 덕분에 나는 말도 못할 감격도 약간 서운한 감정도 기억의 저편으로 보내고는 실피온의 울음을 어떻게 해야 그치게 할까하는 고민을 해야 됐다. 방이라고 부르기에도 그렇다고 홀이라고 부르기에도 거대한 공간. 처음 인간들이 이 신전을 짓고 나에게 주었을 때가 생각났다. 거대한 크기의 신전인데도 불구하고 신전 안은 쾌적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 나는 신전의 대리석 바닥이 너무나 차갑다는 느낌만 받았다. 세도우 인스테랄 가문을 필사적으로 찾아 다녔던 나는 좀 더 편리하게 일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자위했었지만 진짜 속마음은 차가운 대리석의 신전에 혼자 있기가 싫어서였다. 그렇지만 없어졌을 거라고 생각했던 세도우 인스테랄 가문의 인간을 기적적으로 찾아서 내 그림자로 임명한 그 날도 신전의 대리석은 차가웠다. 그래서 난 이 신전 안이 싫었다. 그렇지만 요즘은 어느새 그런 것을 느끼지 않게 됐다. 아니 오히려 요즘 들어서 이 신전안의 공기가 따스하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정확히는 테이가 실피온을 데려온 그 날부터였다. “아 피곤해.” “수고하셨습니다.” 티아라는 쟈스민 차를 따라서 나에게 내밀며 수고했다는 말을 건넸다. 신룡의 대리인인 세도우 인스테랄 가문은 프론트 연합국의 신룡들이 사라지면서 보통의 평범한 귀족 가문으로 돌아갔었다. 하지만 원래 신룡의 그림자로 역사에도 남지 않았던 가문이기에 프론트 연합국에서의 원조는 거의 끊기다시피 했던 이 가문을 내가 다시 찾아냈을 때는 가문의 이름만 남은 몰락 귀족의 꼴이 돼버리고 난 뒤였다. 그리고 신룡들의 그림자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 다른 인간의 피가 섞이지 않게 집안의 친지들끼리만 혼인을 했던 세도우 인스테랄 가문 인간들은 다른 인간과 혼인을 하게 됐고, 초대 생명의 실버 카이저 드래곤 아이나다의 피는 옅어졌다. 하지만 다행히도 내가 찾아낸 인스테랄 가문은 2000년의 세월이 지나서도 어느 정도 그 피를 이어받은 인간이 있었다. 하지만 너무 오랜 세월동안 보통 인간들의 피와 섞인 세도우 인스테랄 가문은 내 영혼의 일부를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래도 당시의 나에게는 찾아낸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었다. 뭐 덕분에 그 옛날 시이터씨를 비롯한 세도우 인스테랄 가문의 인간들처럼 자신들이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감정을 고스란히 나에게 전달하고 몸을 빌려주는 것이 불가능했고, 기껏해야 텔레파시 수준의 대화를 하거나 서로의 심리적인 상태를 알 수 있는 것이 고작이다. 덕분에 다이러스 제국에게 중대한 일 특히 내가 직접 인간들과 만나야 될 일이 생기면 직접 와야 된다는 불편한 점이 뒤따랐다. 티아라가 드래곤의 위압감을 낼 수 있는 수준이었다면 이번 일도 직접 올 필요 없었을 테고... 그랬다면 지금쯤 실피온의 재롱을 보고 있을 시간인데... ‘뭐 하긴 찾아낸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지. 솔직히 그 오랜 세월동안 아이나다님의 피를 가장 진하게 가진 인간을 찾아 낸 것도 기적에 가까우니...’ 내가 나에게 차를 건네주는 티아라의 얼굴을 보면서 지난날의 추억에 잠겨 있을 때 티아라는 얼굴을 약간 붉히며 물었다. “저... 제 얼굴에 뭐가 묻었나요?” “응? 아..아니야. 그냥 옛날 생각이 나서....” “아! 티아님께서 세도우 인스테랄 가문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던 그 때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응. 정말 그때 너 선조를 찾아 낸 것은 기적에 가까웠어. 난 완전히 사라졌다고 믿었거든. 하지만 혹시나라는게 있어서 찾아 본 것인데 역시나가 안돼서 천만 다행이야.” 나는 향긋한 쟈스민 차의 향기에 피로가 풀리는 느낌을 받았다. 티아라는 내 대답에 우물쭈물하더니 뭐가 부끄러운지 고개를 숙여버리며 말했다. “하지만 지금 인스테랄 가문은 옛날 같지 않은걸요. 이번 일도 제가 티아님의 영혼을 완벽히 받아 들였다면 굳이 오시지 않아도 될 텐데...” “그 오랜 세월동안에도 인스테랄 가문이 없어지지 않은 것만 해도 나에게는 큰 수확이었어. 하지만 이번 일은 정말이지 간이 크다고 화를 내야 될지 아니면 그 정도로 급하구나 하고 동정해야 될지...” “적어도 오리하곤에게는 급한 중대사잖아요. 오죽이나 급했으면 목숨 걸고 여기까지 찾아 왔겠어요.” “잠깐. 내가 그 인간들을 잡아먹을 거라고 생각했니? 그 인간들이 여기 오면서 목숨은 왜 걸어야 되는데?” 내가 어이없다는 말로 화를 냈지만 진심으로 화가 난 것은 아니다. 티아라가 농담으로 한 말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화가 난 표정을 바로 지우고는 풋 하고 웃어버렸고, 티아라도 날 따라서 웃어 버렸다. “아무튼 오리하곤도 정말 큰일이네요. 자칫 잘못해서 내전으로 발전하면 어떡하죠?” 실컷 웃고 난 티아라는 먼저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고는 곧바로 진지하게 물었다. 오늘 오후에 오리하곤의 사신들과 만났던 나는 그때의 심각한 문제를 떠올리고는 겨우 웃음을 멈췄다. “글쎄... 이 다이러스 제국에까지 영향이 미치지 않았으면 하는게 본 심정이지만... 그렇다고 그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노릇이고....” “티아님 성격이라면 찾아보실 생각이시죠?” “정답이야. 정말 골치 아픈 일이지만... 적어도 생사 여부 정도는 알아봐야지.” 오늘 오후에 있었던 오리하곤 왕국의 사신들이 가져 온 골치 아픈 일이란 바로 행방불명된 슬라드 황태자의 수색에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국가적인 지원 차원에서의 부탁은 아니었다. 지금 현재 오리하곤 왕국의 실지적인 황제나 다름없는 아그라느는 이번 일에 타국이 끼어드는 것을 원치 않았다. 형제국인 레이아스 왕국에서의 원조는 받아들여도 그 이외 다른 그리노 대륙의 강국이나 기타 약소국들의 도움조차 거절했다. 자국의 일을 타국의 힘을 빌어서 해결한다면 역사의 오점으로 남을 뿐만이 아니라 당장에 정치적으로 그 국가의 눈치를 봐야 될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에 다른 국가의 도움을 거절한 것이겠지... 하지만 오리하곤 왕국의 일부 전통 황제측 사람들은 그런 아그라느를 믿지 못하고, 비밀리에 다이러스 제국으로 넘어와서 바로 나에게 슬라드 왕자의 수색을 요청한 것이다. 그들은 가장 신에 가까운 힘을 가졌다는 내 소문을 듣고 왕자를 찾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한 가닥 희망을 안고 왔었다. 하지만.... “아무리 내가 신에 가까운 힘을 가졌다고는 하지만 내 힘은 만능이 아니란 말이야. 그저 다른 드래곤들보다 더 강하고 마력이 세고, 생명의 정령왕과 계약을 맺었다 뿐이고... 그리고 오래 살지. 영원히....” 나는 마지막 말을 푸념처럼 뱉어내고는 이미 식어버린 쟈스민 차를 단숨에 마셨다. 아까까지만 해도 맛있던 차 맛이 갑자기 씁쓸하게 느껴졌다. “한잔... 더 드시겠어요?” “응.” 티아라는 내 잔에 따뜻한 차를 채우고는 자리에 앉아서 물었다. “아까 그 사람들에게도 힘들다는 말을 했었죠?” “응. 얼굴이 흙빛이 돼서 돌아가더라...” “하지만 찾아는 보실 거죠?” “쳇. 남의 나라 싸움에는 관심 없지만... 그래도 갓난아기가 무슨 죄가 있겠어? 지금쯤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고... 만약에 살아 있다면 무슨 고생을 하고 있을지 모르는데.... 불쌍하잖아.” 나는 얼굴을 화끈거리는 것을 느끼고는 급히 이런 저런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런 나에게 티아라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은 일을 하시는 건데 부끄러워하실 필요는 없잖아요.” “내..내가 언제 부끄러워했다고 그래?!” “그래요? 그럼 안 그렇다고 해두죠.” “이봐! 티아라!!” “아참. 실피온님은 잘 크시고 계신가요? 테이님도 잘 계시죠?” 윽 갑자기 왜 화제를 그쪽으로 돌리는 이유가 뭐야!! 난 티아라에게 한마디 더해주고 싶었지만 여우같은 표정으로 생글거리며 웃는 티아라의 얼굴을 본 순간 말문이 탁하고 막혀 버렸다. 하긴 티아라가 저런 성격이 된 것도 따지고 보면 거의 내 교육 탓이지. 하지만 다른 사람의 연애는 이러쿵 저러쿵 참견을 잘하면서 왜 자기 일은 보는 이로 하여금 애타게 만드는지... 설마 그것마저 날 닮은 건가? 왜 그렇게 쓸데없는 것까지 다 배워 버렸담. 하지만 실피온이 화제에 오른 것은 그다지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아주 잘 크고 있어. 요즘은 재롱이 늘어서 얼마나 귀여운데! 그리고 말이야....” 실은 아까부터 티아라에게 실피온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요즘 들어서 부모님의 팔불출 성격이 몸에 베인 느낌이 들었다. 뭐 그건 그거고 지금은 본능에 충실해지자. 우리 귀여운 실피온 자랑하는 건데 남들이야 뭐라 하든 말든 이지. “헤에. 테이님은 처음에는 그렇게나 발뺌을 하더니 지금은 남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나 보죠? 제가 티아님 연극에 동참한 보람이 있네요.” 실은 그때 티아라는 테이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여우같은 티아라는 내가 미리 텔레파시로 가르쳐 준 작전대로... 아니 그 이상의 성과를 보여줬었다. 덕분에 테이와 같이 실피온을 키울 수 있게 된건데 아마도 이걸 테이가 알게 되면 억울해서 죽으려고 할까나? “응. 뭐 요즘도 가끔 불평을 내뱉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것저것 자상하게 신경을 많이 써주고 있어.” “행복해 하시는 것 같아서 다행이네요. 저 걱정 많이 했어요.” “응? 걱정? 무슨 걱정을 했었는데?” 티아라는 잠시 한숨을 쉬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니긴 뭐가 아니야? 뭔가 숨기고 있지? 무슨 걱정을 한건데? 속 시원히 털어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에요.” “흠. 그래?”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티아라를 쳐다봤고 티아라는 그런 내 눈길을 피했다. 흠 무언가 켕기는 생각을 한 것이 확실하군. 하지만 내가 누군가? 집요한 걸로 따지자면 따라올 드래곤이 없는 나이기에 대답을 요구하는 무언의 압력을 계속 보냈다. 티아라는 보기에도 안쓰러울 정도로 땀을 흘리고 있었다. 물론 보기에는 안쓰러워도 그만 둘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티아라는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인지 급히 주제를 다른 데로 돌리려고 엉뚱한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저기 티아님. 제가요 요번에 예쁜 아기 옷이 많은 가게를 알아냈거든요. 괜찮으시다면 내일 돌아가시기 전에 들렸다 가보지 않겠어요?” 제법 귀엽게 굴기는 하지만 그런 수작에 넘어갈 정도로 난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티아라에게 물었다. “티아라.” “네?” “시퀸은 잘 있지?” “왜? 왜? 왜 갑자기 시퀸 오빠 이야기가 나와야 되는데요!!” 티아라는 얼굴이 홍당무가 돼서 외쳤다. 시퀸은 티아라의 약혼자였다. 내 정식 그림자가 된 세도우 인스테랄 가문은 옛날처럼 가까운 친척간의 혼인을 시키는 관례를 부활 시켰다. 보통 사람과 피가 섞이지 않게 하기 위함인데 그래서 가까운 친지끼리 비슷한 시기에 남자애와 여자애가 태어나면 미리 혼인을 시키는 경우가 있었다. 바로 시퀸과 티아라와 같은 경우였다. 하지만 시퀸은 결혼 할 날이 다가 오자 티아라에게 ‘이런 억지 같은 결혼으로 너의 자유를 구속하고 싶지 않아’라고 하고는 티아라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약혼을 파기하겠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티아라는 부모님들끼리의 정한 약속이 아니더라도 시퀸을 좋아하고 있었고, 그 마음을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도 한심스럽게도 티아라는 뭐에 흘린 듯이 시퀸의 말에 동의를 해버려서 지금은 약혼이 파기된 상태였다. 그 날 티아라는 나에게 와서 하루 종일 펑펑 울어댔다. 그 모습이 하도 한심해서 그렇게 울거면 왜 약혼을 파기했냐고 내가 닦달을 하자 티아라는 울면서 ‘ 가만히만 있어도 오빠랑 결혼하게 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되면 내가 고백해야 되잖아요! 난 죽어도 그런 부끄러운 말 내뱉을 용기가 없어요!’ 라고 했다. 그런 점까지 날 꼭 닮아서 난 더 화낼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그저 울고 있는 티아라를 다독거려 줄 수밖에 없었다. 그 후에도 티아라는 보기에도 한심할 정도로 시퀸의 주위를 얼쩡거렸지만 이미 티아라는 시퀸에게 여동생 같은 존재가 되고 난 뒤였다. 그런 티아라의 과거를 자~~알 알고 있는 나는 생글생글 웃으면서 티아라의 대답을 기다렸다. “자..잘 계세요. 아..아주 잘 계시다고요!” “그래? 언제 한번 시퀸을 만나고 싶은데 데려와 줄 수 있어?” “왜..왜요?” “글쎄? 왜일까?” “티아님! 그만 좀 괴롭히세요!!” “난 괴롭힌 적 없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난 어느새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내 질문에 대답을 안 하던 티아라에게 작은 복수 삼아서 시작했던게 어쩌다가 이정도로 발전했는지.... 이 성격 고쳐야 된다고 항상 고민을 하면서도 고칠 생각이 안 드니.... 나도 참 문제야. “우우.” 티아라는 볼을 잔뜩 부풀리고는 불만 가득한 소리를 냈고, 그 모습을 보고 나도 모르게 쿡쿡 웃음이 나왔다. “호호호 알았어. 이제 그만할게. 그러니 볼에 바람 좀 빼라.” “두 번 다시 절 괴롭히지 않겠다고 약속하기 전에는 그만 안 둘 거예요.” “호오. 강하게 나오시는데... 티아라양 세상은 약점을 쥔 자가 강하다는 진리를 모르는건 아니겠지?” “약..약점이라면 저도 쥐고 있어요!!” 나에게 지지 않으려는 듯이 더듬대면서도 크게 소리를 지르는 티아라의 모습에 나는 절로 웃음이 나왔다. “호오. 무슨 약점인데?” “티아님은 언제까지 도망치실 생각이세요?!” 거의 발악에 가까운 티아라의 외침을 들은 순간 내 얼굴에서 웃음이 단숨에 사라졌고 티아라가 아차하며 손으로 입을 막는 것을 보았다. 난 그때서야 티아라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알아차렸다. 티아라에게는 예전에 술김에 내 본심을 딱 한번 털어 놓은 적이 있었다. “.......” “...아까.” 한동안 무겁게 짓누르는 침묵을 깨고 나는 씁쓸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아까 네가 하고 싶었던 말... 걱정했다는 말이 바로 그거구나.” “...네.” 티아라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작게 대답했다. 다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고, 이번에는 넓은 방안이 좁게 느껴질 정도로 길게 이어졌다. 안절부절 못하는 티아라를 보면서 굳이 티아라의 심리 상태를 읽지 않아도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손에 잡힐 듯이 알고 있었다. 지금 필사적으로 사죄하는 말을 찾고 있을 테지.... 하지만 티아라는 틀린 말을 하지는 않았다. “알고 있어. 내가 도망치고 있다는 것을....” 오랜 침묵을 깨고 내가 혼잣말 비슷하게 말을 내뱉자 티아라는 울 것 같은 얼굴을 푹 숙이고는 조그맣게 말했다. “죄..죄송합니다.” “네가 미안해 할 것은 없어. 내가 도망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인걸. 잘 못이 있다면 그것은 맞서 나갈 용기가 없는 나한테 있는 거야. 그를 잃고 난 뒤 내가 나로 있을 수 있는 용기가 없는... 내 잘 못이야.” 그래 겉으로는 한없이 강한 척 굴지만 속마음의 나는 언제나 겁에 질려 있다. 혹시라도 진짜로 잃어버리게 되지는 않을까 겁을 먹고 있었다. 설사 잘 된다 하더라도 나는 영원한 생명을 가진 카이저 드래곤. 언젠가 시간이 흐르고 그가 생명을 다하고 난 뒤에도 나는 영원히 살아야 된다는 사실에 또 겁을 먹었다. 그래서 나는 결국 도망치는 쪽을 선택해버렸다. 아니 도망치겠다고 결심을 했었지만 다시 그의 얼굴을 본 순간 마음이 흔들렸다. 하지만... ‘걸어가는 길은 같아도 그와 나는 영원히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의 길... 더구나 그의 길에는 끝이 있지만 나의 길에는....’ “티아님한테는 죄가 없어요!!” “에? 에?” 티아라의 갑작스런 외침에 멍하니 상념에 빠져 있던 내 정신은 빠르게 원상복귀를 했다. 티아라의 황금색 눈동자는 불이 붙었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불타고 있는 느낌이었다. “티아님이 무슨 죄가 있다고 그렇게 자책을 하시는 거죠?! 그만큼...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난 뒤가 두려울 정도로 사랑하시고 계신 건데 그게 무슨 죄예요?!” “저기 티아라야. 내가 좋아하는 건 사람이 아닌데...” “사소한 것은 따지지 마세요!!” ‘불 붙어버렸군.’ 티아라는 평소에는 활달하면서도 예의를 중시 여기는 소녀였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유일한 결점이 하나 있다면 날 닮아서 흥분을 잘 한다는 것이고 흥분을 하게 되면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모를 정도로 말을 막 하는 것이 티아라의 유일한 결점이었다. 나는 그런 티아라의 모습에 불붙었다는 표현을 사용하곤 했다. 그리고 지금 티아라는 바로 그 불붙은 상태였다. “티아님! 생각해 보세요!!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감정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지를... 한 사람을... 이성을 사랑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예요! 어느 날 갑자기 주위에 한 남자가 이성으로 느껴질 때의 그 두근거림이 얼마나 소중한 줄은 아시죠?!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한숨을 쉬면서 티아라의 열변을 조용히 경청했다. 이 지경까지 되면 티아라가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한은 주위에서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기 때문에 나는 일직감치 포기해버리는 방법을 이미 터득했던 것이다. 제 정신 차리면 또 자기혐오에 빠져서 훌쩍거리겠지? 악의가 없다는 것은 잘 알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폐 끼치는 버릇이라니깐...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티아라는 조금 진정이 됐는지 내 예상대로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훌쩍.” “됐으니 그만 울어. 네가 그러는 걸 한두 번 본 것도 아닌데 뭘 새삼스럽게 우는 거야?” “네. 하지만... 전 안 그러려고 했는데... 흑.” “울지 말라고 했지. 펑펑 울 태세 갖추라고 안했다. 됐어. 그리고 오늘은 네 말에 맞는 부분이 많았어. 덕분에 나도 반성을 하는 중이야?” 퉁명스런 내 위로가 먹혔는지 티아라는 눈물을 글썽거리면서도 눈을 빛내며 물었다. “정말요?” “아아. 정말로.” ‘뒤로 갈수록 상관없는 말이 많이 나왔지만... 이건 말하면 안 되겠지?’ 티아라는 눈물을 완전히 닦고는 다시 쾌활한 미소를 지었다. “다행이네요. 이번에도 또 쓸데없는 말만 했다면 어쩌나 걱정이 됐거든요.” “아니 가면 갈수록 핵심을 찌르는 말만 하는 걸. 이번에는 나도 정말 놀랐어. 찍소리도 못하고 티아라의 말만 들었잖아.” “헤헤헤헤.” 정말로 기쁜 듯이 웃는 티아라의 해맑은 미소에 나는 약간 양심의 가책을 느꼈지만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것은 필요악이라는 생각에 잠자코 있기로 했다. 그렇게 조금 이야기가 오가고 난 뒤에 화제는 어느새 다시 실피온의 이야기로 넘어갔다. “하아. 지금쯤 잘 있을까? 우리 실피온...” “그렇게 걱정이 되시면 오늘밤에 가셨다가 내일 다시 돌아오시면 되잖아요.” “하지만 이왕 하루 맡겨놓겠다고 테이에게 말해놨고, 또 테이도 걱정 말라고 호언장담을 했는데... 그렇게 해놓고 내가 돌아간다는 것은 테이에게 미안하잖아.” “흐음 테이라고요?” “에?” 어느새 티아라는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티아라의 가늘게 뜬 눈에 나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안을 느꼈고, 그 불안은 적중했다. “같이 사신지 꽤 되는데 설마 아직도 테이님의 이름을 부르시는 건가요? 자기라던지 여보라던지 실피온 아빠라는 말은 사용 안 하세요?” “티..티아라야.” 지금 내 얼굴 완전히 홍당무가 되어 있겠지? 티아라는 입가에 옅은 미소까지 지으며 계속 말했다. “아 혹시 제 앞이라고 그러시는 건가요? 만약 그렇다면 부담 갖지 말고 평소 애칭으로 편안하게 말하세요. 우리 둘이 남도 아니고 영혼을 공유한 사이인데 예의 따지실 필요 없잖아요.” “우..웃기지 마! 내가 왜 테이를 그런 닭살 돋는 애칭으로 불러야 되는데?! 난 그런적 없어!!” “정말요?” “정말로!” “진짜요?” “진짜로!” 나는 눈에서 불똥이라도 틸 기세로 티아라를 노려보면서 힘주어 말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내 패배를 알리는 목소리가 들렸으니... “티아!!” 갑작스런 테이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서 목소리가 나는 곳으로 시선이 돌아갔고, 내가 본 것은 테이가 막 공간의 문에서 나와서 나를 찾는 모습이었다. “아! 티아! 실피온이 울음을 멈추지 않아!” “에? 뭐야 자기?! 울리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 앗차!” 나는 화가 나서 몸을 부들부들 떨다가 무심코 말을 뱉고는 놀라서 곧바로 입을 막았다. 하지만 이미 티아라가 다 듣고 난 뒤였다. “아하. 자기라고 부르시는구나. 그 애칭도 듣기 좋네요.” 티아라는 재미있다는 듯이 생글생글 웃으면서 나에게 말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 가슴속에서 원인 모를 울화가 치밀어서 나도 모르게 다시 티아라의 약점을 건드리고 말았다. “나한테는 신경 그만 쓰고 너나 시퀸한테 여보라고 부를 날을 만들어!!” “왜 지금 시퀸 오빠 이야기가 나와야 되는데요?!” “시끄러워! 한달이다. 한 달 간 여유를 줄테니 한달 안에 웨딩드레스를 입어! 이건 명령이야!!” “치사해요!” 나와 티아라가 눈에 핏대를 세우고 떠들 동안 그 자리에 분위기 파악을 못한 테이가 끼어들었다. “이봐 티아 지금 말이야!!” 도대체 테이의 머리는 반복학습이라는 것이 없단 말인가? 옛날부터 그만큼 분위기 파악 못해서 나에게 혼이 났으면서 아직도 끼어들 때와 안 될 때를 구분 못하다니... 결국 이번에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먹이 날아가고 말았다. “이 바보 남편아!!” “커억!” 테이는 비명을 지르면서 날아갔다. 그런데 그런 테이의 손에서 무엇인가가 허공으로 날아가는 것을 보지 못했다. “앗! 티아님! 아기요!!” 티아라가 허공을 나는 물체(?)를 보고 단번에 정체를 파악하고 비명을 지른 덕분에 나는 허공을 날고 있는 실피온을 발견하고는 아슬아슬하게 마법을 사용해서 받았다. “위험하게 아기를 안고 날아가면 어쩌자는 거야?!!” “너무해. 날린게 누군데.” 테이는 코를 문지르며 일어나서 억울하다고 호소했지만 나는 들은 척도 안하고 빽빽 울어대는 실피온을 달랬다. “자 아가야. 착하지. 응 그래. 아빠가 우리 실피온 잘 못 돌봤구나. 역시 엄마가 곁에 있어줘야 되는 건데. 미안하다 우리 착한 아가야.” “무슨 소리 난 최선을 다했단 말이야!!” 내 말에 테이가 인상을 팍 구기면서 불만을 늘어놓았지만 나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우에에엥. 마.. 마.” “어? 실피온... 방금 뭐라고 했니?” 나는 순간적으로 잘 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틀림없이 실피온은 입을 웅얼거리면서 무언가 말(!)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귀에 온 신경을 집중 시켜서 단 한마디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는데 테이가 내 옆에 와서 자랑스러운 얼굴로 말하는 것이다. “아 맞다. 내가 온 이유가....” “좀 조용히 해봐! 안 들리잖아!!” “네.” 테이는 바로 찍소리도 못하고 입을 다물었고, 나는 다시 울고 있는 실피온을 달래면서 다정하게 말을 걸었다. 그리고 아까 전에 들었던 실피온의 목소리가 환청이 아니기를 빌었다. 내 기도가 통했는지 실피온은 훌쩍이면서도 입을 열고 말을 했다! “흑. 훌쩍. 마. 어마.” 비록 제대로 된 발음이 아니지만 내 귀에는 똑똑하게 엄마라는 말로 들렸다. “아아 실피온. 우리 귀여운 실피온.” 나도 모르게 눈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졌다.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티아라도 감동했는지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축하의 말을 해줬다. “훌쩍 정말 잘 됐어요. 축하해요. 티아님. 수고하셨어요. 테이님.” 티아라에게 인사를 받은 테이는 좀 쑥스러웠는지 얼굴을 붉히며 - 솔직히 그 모습을 보자니 은근슬쩍 화가 조금 났다 - 머리를 긁적거렸다. “아니 뭘.. 실피온이 말을 한 것이 내가 잘해서인 것도 아닌데요. 수고했다는 말을 들을 정도는 아니에요.” “아 그런가요? 그럼 역시 그냥 축하한다는 말만 하는게 낫겠네요.” “뭐 그렇죠.” 테이는 기분 좋게 웃다가 갑자기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저러는 거지? “저기 티아라양이라고 했죠?” “네. 그런데요? 아 그리고 말씀 낮추세요. 제가 한참 연하잖아요.” “응? 아 그렇군요. 아니 그렇군. 그런데 말이야. 저기 내가 티아라양에게 내 소개를 한 적이 있었던가?” 테이의 질문에 생긋 웃던 티아라도 눈물을 글썽거리던 나도 순식간에 표정이 굳어버렸다. 테이는 왜 저렇게 쓸데없는 일에만 날카로운 거야?! 아..아무튼 큰일 났다!! “오호호호호. 테이님 무슨 말씀 하시는 거예요? 저번에 소개했었잖아요.” 티아라는 보기에도 어색한 티를 팍팍 내면서 필사적으로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별 뾰족한 수가 없는 것이 사실이니.... “어 그런가? 아니 내가 생각하기에는....” “어머 자기도 참 그걸 벌써 잊어먹었어? 저번에 만났을 때 내가 소개했었잖아! 아직 젊은데 벌써부터 그렇게 깜박거리면 어쩌다는 거야?” “아니 하지만 내가 기억하기로는...” “자 그럼 실피온이 말을 한 기념으로 우리 파티하자 파티!! 생각보다 그리 급한 일도 아니니 남은 일은 내일 처리해도 되거든. 티아라 내일 아침 일찍 올게.” “네! 당연히 그러셔야죠!” “아니 잠깐만 내가 티아라양과 소개를 한 적이...” “벌써부터 노망낀 난거야? 자 그것보다 지금은 더 중요한 일이 있잖아! 오늘 밤은 내가 솜씨 발휘를 할게. 자 어서 가자!” 나는 테이의 대답을 기다리고 않고 바로 워프의 문을 열어서 계속 무엇인가 말을 하려는 테이를 반강제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티아라도 옆에서 필사적으로 날 거들면서 테이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아니 잠깐! 일단 이야기를 해 보...” 그것이 테이의 마지막 반항이었다.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비밀은 어둠 속에 묻을 수 있었다. 물론 집에 와서도 테이는 무언가 계속 확인을 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지만 내가 슬며시 살기를 띠면서 다정하게 대해주자 바로 입을 다물었다. 하아 나 정말은 실피온을 키우는 동안만이라도 얌전하게 지내고 싶었는데... 왜 날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고 자꾸 성질 건드리는 일만 생기는 건지. 이게 천상 내 팔자요 운명인가보다 하고 포기해야 될 것 같다. “자. 실피온 맘마 먹자.” 티아가 그렇게 말하며 실피온을 안아들자 실피온은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맘마. 저아. 꺄르르르.” 아직 제대로 된 단어는 아니었지만 티아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을 느꼈는지 입이 귀에 걸리도록 기뻐했다. “아유. 요 귀여운 것.” 참으로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행복을 느끼게 하는 광경이다. 분명히 그렇지만 왜 내 가슴 한 구석은 구멍이라도 뚫린 듯한 기분이 드는 걸까? “춥다. 엄청 춥다. 너무나 춥다.” “제발 부탁이니 찬바람 쌩쌩 부는 듯한 모습은 접어주었으면 좋겠어.” 티아는 실피온에게 이유식을 떠먹이다가 구석에서 훌쩍이는 나에게 눈을 흘기며 말했다. 하지만 내가 이러는 데는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 실피온이 말을 하게 된 후 단 한번도 아빠라는 말을 해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노력도 해보지 않고 불평만 늘어 놓는건 아니다. 나도 그 동안 실피온과 놀아주면서 시도 때도 없이 날 가리키며 아빠라고 말해봤지만 소용없었다. 아니 한 술 더 떠서 요즘 내가 안아주면 심통이 난 표정으로 엄마부터 찾았다. “이런 난 신경 쓰지 말고 티아는 실피온이랑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아.” “그렇다면 신경 쓰이게 집안 구석에서 훌쩍이지 말고 산책이나 다녀오란 말이야! 집안 분위기 어둡게 만들지 말고!” “예이. 예이.” 난 힘없이 일어나서 밖으로 나왔다. 상쾌한 바람이 불어왔지만 그것으로는 허전한 내 가슴을 달래 주지는 못했다. 실피온이 저렇게 날 안 따라주는 이유가 대체 뭘까? 내가 모르는 사이에 실피온의 기분을 거슬리게 한 적이 있었던가? “끙. 확실히 실피온이 처음 말을 하기 시작했을 때부터였던 것 같은데... 그 동안 내가 한 일이라고는....” 지금까지와 똑같이 안아주고 놀아주고 달래주고.... 아무리 생각해도 실피온이 저렇게 나를 안 따를 행동을 했던 기억은 없다. “아아. 정말이지 골치가 아프다. 인간 아기는 말을 제대로 못하니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도 없고... 이럴 때 다른 이의 마음을 읽어버리는 능력이 부럽구나.” 만약 나에게 그런 능력이 있다면 실피온의 마음을 읽어서 실피온이 무엇을 원하는지 재깍 알 수 있을 거라는 행복한 상상을 해봤다. 하지만 상상은 상상. 곧 다시 한숨을 쉬는 현실로 돌아와야 된다는 사실이 슬프다. “정말로 모르겠어. 인간의 아기는....” “정말로 모르겠어. 인간의 아기는....” 테이가 집안 분위기를 음침하게 만들 동안 실피온에게 젖을 먹이던 나는 나도 모르게 절로 한숨이 나왔다. 정말이지 이럴 때는 내가 테이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실피온의 마음도 느낄 수 있다면... 그렇다면 왜 실피온이 아빠라는 말을 안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넌 왜 그렇게 아빠를 싫어하니? 아빠가 실피온을 얼마나 이뻐하는데... 이제 그만 아빠라는 말 좀 해보지 않을래?” “어마?” 내 부탁에도 불구하고 실피온의 입에서 나온 말은 서투른 엄마라는 말이었다. 아빠라는 말을 죽어도 안하는 덕분에 요즘 테이가 힘이 없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도 그 동안 비밀리에 실피온에게 아빠라는 말을 가르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번번이 실패였다. 실피온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죽어도 아빠라는 말을 하지를 않았다. “저기 아빠라고 해봐. 아. 빠.” “맘마!” “......아니 됐다. 그래 맘마부터 마저 먹자구나.” “응! 응!” 내가 나지막히 한숨을 쉬며 말하자 실피온은 맘마라는 말에 생글생글 웃으며 대답했다. 그 모습이 너무나 귀여웠던 나는 순간적으로 현기증이 날 것 같았다. “우리 실피온이 제일 좋아!” “맘마. 조아.” 기특하게도 그렇게 받아주는 실피온의 재롱 덕분에 내 머리 속에서 테이에 대한 걱정은 새하얗게 사라졌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실은 지금까지 내내 이런 식이었다. 아마도 그 덕분에 실피온이 아빠라는 말을 익히지 못한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하지만 더듬거리며 말을 하는 실피온의 재롱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다른 생각은 하나도 나지 않았다. “아니지. 이럴 때가 아니지. 정신 차려야지.” 하지만 그 날은 테이의 모습이 너무 안돼 보인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나는 간신히 정신을 추스렸다. 그리고 정말로 독하게 마음을 먹고 실피온에게 방긋 웃으며 말했다. “오늘이야말로 너한테 아빠라는 말을 하게 만들어야겠다. 이 엄마는 한다면 하는 드래곤이란다.” 그렇게 말하면서 생글생글 웃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테이에게 장난을 치기 직전에 느끼던 기분이 슬며시 들었다. “어라? 왜 그러니 실피온?” 실피온의 몸이 잠시 굳어 진 것 같았는데... 착각이었나? 아니면 정말로 무언가 불길한 느낌이라도 받은 건가? ‘설마 아기인데 그런걸 느낄리가.... 아니 어찌됐던 테이의 아들도 되는 거니.... 설마 부전자전인건가?’ 이거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실피온이 테이를 닮았다는 말이 되는 거니 나중에 테이한테 말해주면 기뻐하려나? 어쩐지 그냥 덮어둬야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난 이 근처에서 버섯 좀 찾아 볼테니 실피온 좀 잘 보고 있어.” “응.” 그 날 오후에 티아는 갑자기 저녁에 버섯 스프를 먹자면서 버섯을 따러 가자고 말했다. 나는 당연히 버섯 따는 일은 내 일거리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조금 깊은 숲 속에 도착하자 티아는 실피온을 나에게 맡기고는 버섯을 따러 혼자 숲으로 들어갔다. 덩그러니 실피온과 같이 남은 나는 혹시나 티아가 나와 실피온이 가까워지도록 배려해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에이 설마. 딴 드래곤도 아니고 그 티아인데... 지금은 좋은 엄마 역할을 하고 있다지만 그새 속 내용물이 바뀔리 없으니... 오늘은 대체 무슨 음모를 꾸민 걸까?” 내 불안을 아는지 모르는지 실피온은 내 옆에서 애꿎은 풀을 뜯으며 놀고 있었다. “실피온 그건 지지야. 나중에 엄마한테 손 더러워 졌다고 엄마한테 혼나... 아니 네가 아니라 내가 혼나겠다. 자 그만하렴.” 난 실피온을 안아서 내 무릎에 앉히고 손수건을 꺼내서 물에 적셔 실피온의 손을 정성스레 닦아줬다. 실피온은 파란 눈동자를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난 최대한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 뭐 하면서 놀까?” “......마.” “응?” “어마.” 실피온은 불안한 눈동자로 주변을 둘러보면서 티아를 찾았다. 이런 것이 배신감이라는 걸까? 한두 번 겪어 본 것도 아니지만 겪을 때마다 울적해진다. “흑... 흐에엥.” 아무리 둘러봐도 티아가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실피온의 눈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실피온아 너 언제부터 마마보이가 된거니? 이 아버지는 슬프다.” 라고 한탄 할 시간도 없군. 저기서 조금만 내버려두면 바로 빽빽 울어대겠지? “에휴. 내 팔자야. 나와! 실프 1호! 2호!” 나의 부름에 내 전용 실프 1호와 2호가 소환되었는데, 이 녀석들은 소환되자마자 투덜거리기부터 시작했다. [주인님 너무해요. 이제 우리한테도 슬슬 제대로 된 이름 좀 붙여주세요.] [맞아요. 저희 둘은 주인님의 전용 실프들인데 다른 실프들과 차별은커녕 물건 같은 번호 매기기라니 너무하다는 생각 안 드세요?] 이것들이 머리가 커져 가는지 나날이 불평불만만 늘어가는구나. 하지만.... “내가 급한 일이 생겨서 말인데 잠시 실피온 좀 봐줄래?” 이 명령에 불평을 토로하던 실프 1호와 2호의 눈동자는 단번에 반짝거렸다. [네! 주인님의 명령인데 어찌 어길 수 있겠어요.] 속 보이는 아부로군. [주인님. 한 이 삼일 맡겨 놓으셔도 전혀 문제없어요.] 미쳤냐? 내가 너희들한테 이 삼일식이나 실피온을 맡겨놓게. 오랜 기간 주인과 함께한 정령은 의지라는 것을 가지게 되고 주인의 성격을 닮아 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 놈들은 어째 닮아도 한 가지만 집중적으로 닮아버렸는지.... 생각해보니 난 정령 복도 없는 것 같아. “하아. 잠시 동안만이야. 내가 티아를 찾아 올 동안만 실피온 좀 봐줘. 울리면 안 된다.” [물론이죠! 귀여운 도련님을 저희들이 울릴 리가 없잖아요.] ‘헤. 과연 그럴까? 어디 너희들도 고생 좀 해봐라.’ 그렇게 생각하며 난 막 울려고 폼 잡는 실피온을 실프들에게 맡기고 만약을 위해서 실피온의 주변에 결계를 쳤다. 그리고 실프들에게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게 해줬다.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게 해줬으니 실피온이 이 결계 밖으로 못 나가도록 조심해야 된다.” [걱정 마세요! 저희들이 재미있게 놀아드리면 도련님께서 밖으로 나가실 생각은 못하실 걸요.] ‘내가 못했던 일을 내 정령이 할 리가 없지.’ 그런 생각이 든 나는 최대한 빨리 티아를 찾아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몇 걸음 못 가서 그 자리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꺄르르르르!” [와! 도련님 웃으시니 너무 귀엽다!] [실피온 도련님 저 잡아 보세요!] “다아! 다아!” ‘이건 배신이야! 진짜 배신이야! 완벽한 배신이야!’ 티아한테 애교를 떠는 것은 그렇다 치고 넘어가더라도 내 정령이랑 재미있게 노는 실피온의 모습에서 나는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 젠장! 눈물까지 나오려고 하잖아. [어? 주인님 아직 안 가셨어요?] “.......너희들.” [네?] 나는 무언가 말을 하고 싶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 “너희 둘 다 미워!” 그렇게 말하고는 숲 속으로 달려갔다. 아마도 내 실프들은 황당한 표정으로 내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겠지? 그리고 자기들이 무슨 실수를 했는지 고민을 하겠지. 아무리 버릇이 없어도 실프들은 나와 계약한 내 정령들이다. 그러니 주인한테 싫어라는 말을 들었으니 고민 좀 될 것이다. 조금 치사하지만 이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복수다. ‘아니 생각해보니 조금이 아니라 많이 치사한 것 같기도...'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뭐 이미 뱉어 버린 말 주워 담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얼른 티아나 찾아보자.’ 결국 나는 그냥 넘어 가자라는 무책임한 생각으로 이번 일을 마무리 짓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나는 미쳐 티아를 찾는 일을 하기도 전에 다급한 실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주인님 큰일 났어요! 도와주세요!!] ‘뭐야? 뭔데?’ [몬스터가.... 아주 많이.... 제발 빨리 와 주세요.] 이게 무슨 소리? 나와 티아의 기운이 이 숲에 몬스터를 불러들이기는 했지만 우리 기운에 가까이 오지는 않았는데... 아니 가끔 머리가 이상해진 몬스터나 지능이 아예 없는 몬스터가 어슬렁거리는 일은 있었어도 그 정도면 내 실프 둘이 다급해 할 정도는 아닐 텐데... 무슨 일인지는 일단 가서 직접 보기로 했다. 농담으로 치고 넘어가기에는 실프의 목소리가 너무 다급했다. 아니 무엇보다도 실프는 주인에게 이런 거짓말을 할 수가 없다. 아무리 장난기 많은 정령이라도 정령들은 주인에게 해가 되는 말은 하지 않는다. “무슨 일이냐?!” 그리 멀리 가지 않았던 나는 한달음에 실피온이 있는 장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실프들이 내 물음에 답하기도 전에 사태파악을 할 수 있었다. “크어어어!” “미..미노타우르스? 얘가 왜 여기 있지?” 얼굴은 소인데 몸은 건장한 체격의 인간인 이 몬스터는 주 서식지가 깊은 동굴이거나 버려진 성 깊숙한 어둠 속에서만 산다. 그리고 길 잃은 여행자를 덮치는 이 괴물들은 가끔 밖에 나올 때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다른 살 곳을 찾아 이동할 때뿐인데 그때도 이런 낮보다는 밤에 옮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 몬스터가 이런 낮에 돌아다니다니... 아니 그것보다 더 놀란 것은 미노타우르스가 한 마리가 아니라는 점이다. 일곱 마리의 미노타우르스가 내가 쳐놓은 결계에 부딪치면서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그 녀석들의 목표는 당연히 실피온이었다. “이 나쁜 놈들!! 거기서 비키지 못해!!!” 나는 겁에 질려서 울고 있는 실피온의 모습을 보는 순간 미노타우르스가 이런 곳에서 어슬렁거리는 이유를 생각하는 것을 그만뒀다. 저 녀석들이 살 곳을 잃고 떠돌던 중이던 그냥 한번 숲을 산책하던 것이던 그게 무슨 상관인가? 눈앞에 울고 있는 실피온을 구하는 것이 먼저다. “저리 비켜!” 난 점프를 한 그대로 거대한 도끼로 내 결계를 치던 미노타우르스의 얼굴을 후려갈겼다. 그 녀석은 큰 소리를 내면서 나가 떨어졌고, 난 가볍게 그 자리에 착지해서 일어섰다. “너희들 당장 여기서 꺼져!” 지금 내 눈은 불타고 있겠지? 내 갑작스런 등장과 내 주먹에 동료 하나가 날아가자 미노타 우르스들이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그 틈에 나는 평소 쓰는 마검을 소환했다. 그 옛날 흑룡 블랙시터님에게 받았던 나의 마검이 공간을 가로질러서 나의 손에 잡혔다. “너희들 오늘 다 죽었다고 복창이나 해라!!” 나는 분노에 가득 찬 소리를 지르고는 바로 앞에 서 있는 미노타우르스를 노리고 크게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나의 마검이 미노타우르스의 거대한 도끼를 자르고 놈의 머리에 닿기 직전에 검을 멈췄다. “흑. 흐에에엥.” 실피온의 우는 소리에 나는 검을 멈춘 것이다. ‘그래. 실피온 앞에서 피를 보일 수는 없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마검을 땅에 꽂아 버리고는 미노타우르스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정말 운이 좋은 거다. 내 아들을 위해서 피를 보는 것은 참아주마. 원래라면 너희들을 네 조각으로 잘라버려도 내 화가 풀리지 않겠지만 특별히 이것으로 봐주겠다.” 그렇게 말한 나는 드래곤 아이를 해방시키고는 놈들을 지긋이 노려봤다. 나를 포위해서 공격하려고 마음먹었는지 슬금슬금 날 포위하던 미노타우르스들은 내 드래곤 아이를 보고는 얼어붙은 듯이 그 자리에서 몸이 굳어졌다. 난 간단하게 손목을 푸면서 그 녀석들에게 말했다. “앞서 너희들보고 운이 좋다고 말했는데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운이 없는 것일 수도 있겠구나. 몸 성히 돌아갈 생각은 버려라. 차라리 죽여 달라는 애원이 나오도록 두들겨 패주마. 하긴 너 희들은 말을 못하니 애원을 해도 내가 못 알아들을 테지만...” 그렇게 한 낮의 소머리 매타작은 시작됐다. 별로 자랑할 것도 아니지만 티아에게 당하면서 살 아왔던 나는 매타작은 자신 있었다. 어딜 어떻게 때려야 눈물 나오도록 아프고 고통이 오래가 는지 뼈속 깊숙이 배워둔 것이다. 내가 말을 꺼냈지만 정말 자랑할 만한 것은 못되는군. 아무튼 나는 약속대로 소머리들이 기어 서 도망가도록 만들어 놨다. 아마도 한두 마리는 평생 반불구로 살아가야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괜찮니? 우리 실피온.” 나는 드래곤 아이를 거두고는 실피온을 돌아보며 말했다. 물론 최대한 인자하고 다정한 미소를 듬뿍 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아으으.” 그런데 실피온은 여전히 겁먹은 얼굴로 눈물을 한가득 머금고 있었다. “응? 왜 그러니? 이제 무서운 것은 없어요. 아빠가 다 쫓아버렸잖니.” 나는 실피온 주위를 둘러싼 결계를 없애고는 실피온을 살며시 안아들었다. “으아아앙!!” “시, 실피온?” 실피온은 내가 안아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크게 울어대기 시작했다. 흔히 아기들이 안심 해서 운다는 것하고는 다른 울음이었다. 그것은 겁에 질린 울음이었다. 그렇게 미노타우르스 들이 무서웠나? 하긴 아직 어린 실피온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겠지. “뚝. 뚝. 우리 실피온 착하지. 무서운 것은 없다니깐. 그러니 겁먹지 않아도 돼.” “자기한테 겁먹은 거잖아!” 필사적으로 실피온을 달래는 내 뒤에서 화가 난 티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흐에엑!! 티아?! 언제 온 거야?!!” 하여튼 티아는 기척 없이 나타나서 놀래키는 수준은 이미 신의 경지에 다다른 것 같다. 아니 그것보다 실피온이 겁먹은 이유가 나 때문이라고? 이건 또 무슨 트집이지? “잠깐만 내가 왜 얘 겁을 줬다는 건데? 난 실피온에게 피를 보이기 싫어서 일부러 검도 안 썼다고!!” “그렇게 생각이 깊으면서 무의식중에 드래곤의 기운을 있는 대로 뿜 은 건 도대체 무슨 이유야!!” “에?” 나는 실피온을 지키던 실프들을 쳐다봤다. 내가 묻기도 전에 실프들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 난 분명히 드래곤 아이만 풀었다고 생각했는데... 언제 기운까지 뿜어냈던 거지? 확실히 아기에게 드래곤의 기운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무서운 기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난 실피온을 지키기 위해서였는데 ... 그런데... 그런데!!’ 그 후 티아가 못 마땅한 얼굴로 뭔가를 더 말했던 것 같지만 내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나중에야 그 미노타우르스들이 티아가 잡아와서 풀어놨다는 것을 알았다. 실피온이 날 좋아하게 만들기 위한 티아의 연극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것도 내 멍청한 행동 덕분에 오히려 역효과만 내버렸으니....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내가 너무 풀이 죽어 있었 던지 처음에는 화를 내던 티아도 풀 죽은 내 모습이 안돼 보였는지 날 위로 해줬지만 전혀 기운이 나지 않았다. “과정이야 어찌됐던 결론은 당신이 실피온을 지켜준 것은 사실이니 언젠가는 알아줄지도 모르잖아.” “그럼 그 동안은 계속 실피온이 날 무서워서 피하겠네.” “어이구.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 좀 마. 그렇게 살다가는 정말로 실피 온이 평생 자기를 무서워할지도 몰라!"” “이미 늦은 것 같은 생각이 자꾸 든단 말이야.” “이이가! 으으으. 그만 하고 밥이나 먹어!!” 티아는 계속 축 늘어져서 부정적인 말만 내 뱉는 내 모습에 화를 내고는 식사준비를 하러 부엌으로 들어갔다. 거실에 남은 나는 힘없이 의자에 앉아서 바닥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실피온의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아까의 일 때문인지 실피온은 평소 보다 더 나와 떨어진 데서 놀고 있었다. 그 얼마 안 되는 거리가 나에게는 마치 대륙 끝과 끝인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왜 일까? 내 시선이 거북한지 실피온은 계속 슬그머니 내 눈치를 살폈다. ‘이제는 쳐다보는 것도 무섭다는 거냐? 에휴. 알았다.’ 나는 고개를 돌려서 한숨을 푹 내 쉬었다. ‘이제는 쳐다보는 것조차 조심해야 되다니.... 차라리 실피온이 엄마를 더 좋아 할 때가 나았는데....’ “우우.” “응?” 가까운데서 실피온의 목소리가 들린 것 같은 느낌에 내 눈은 자연스럽게 아래로 내려갔다. 실피온은 어느 사이에 내 가까이에 와 있었다. “실피온?” “아우.” 실피온은 자신이 아끼는 장난감 하나를 손으로 들고 내 쪽으로 향했다. 그 모습은 마치 나에게 이걸 주겠다는 모습 같았다. 실피온의 눈에는 아직 겁먹은 기운이 남아 있었지만 그래도 있는 힘껏 손을 뻗쳐서 나에게 장난감을 내밀었다. “이거 아빠 주는 거야?” 나는 얼떨결에 장난감을 받으며 물었다. 내가 장난감을 받아들자 실피온은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파파. 고마...” 익숙하지 않은 어설픈 말이었지만 나는 실피온이 무슨 말을 하는지 똑똑하게 알아들었다. ‘아빠 고마워요 라고? 하하. 하하하하하.’ 마침 식사 준비가 다 됐는지 티아가 거실로 들어오다가 “어머나! 잘 됐네. 우리 실피온이 생각보다 빨리 자기 마음을 알아줬나 봐. 정말 잘됐지? 자기야? 자기야? 여보세요? 테이씨? 내 말 안 들려?” 들리긴 들렸다. 하지만 난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 날 처음 알았다. 너무 기뻐도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버린다는 사실을.... 결국 난 저녁 밥 쫄쫄 굶고 다음날 아침까지 그 자리에 앉아서 아침을 맞았다. 그리고 그 후 자식을 키운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알아버린 나에 게는 다른 욕심이 생겼다. 언젠가는 드래곤으로서 내 자식이 갖고 싶다 는.... 그리고 내 해츨링을 낳아 주었으면 하는 여자는.... 41화 각자가 찾는 것들...(1) 산. 그것은 거대하고 웅장했다. 이 세상 그 어떤 강대한 생명체도 산이라는 신의 거대한 인공물 앞에서는 초라한 존재일 뿐이다. 설사 드래곤이라 할지라도... 그리고 그리노 대 륙에서 제일 높은 산이 많기로 유명한 샤프드 산맥의 어느 산 정상에서 드래곤 한 마리가 거대하고 웅장한 산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하아. 어디 있는 거냐고!!” 올해 갓 성년식을 마치고 성룡이 된 서니는 깊게 한숨을 쉬며 멍하니 산만 쳐다봤다. “서니님 식사 준비가 다 됐어요.” 서니의 아래쪽에서 금발의 여자가 있는 대로 소리를 지르며 서니를 불렀다. 금발의 여자는 니스나로 몇 달간 서니와 같이 기억을 찾는 여행 중인 기억 상실증의 여자였다. “그냥 보통 목소리로 말해도 다 들린다고 했었잖아.” 서니는 니스나가 부르는 소리에 폴리모프를 사용해서 인간으로 변하자마자 짜증부터 부렸다. “아! 맞다. 알고 있는데도 왠지 서니님의 본 모습을 보면 자연스럽게 큰 목소리가 나와 버려요.” 그도 그럴 것이 니스나는 드래곤의 모습인 서니에게 자신의 말을 전하려면 보통 소리로는 들리지도 않을 거라는 걱정이 자꾸 들었 기 때문이다. 하지만 귀가 좋은 드래곤들은 인간들이 평소보다 작 은 목소리로 말해도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니 니스하의 걱정은 쓸 데없는 걱정이다. 뭐 인간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드래곤의 머리가 원만한 커다란 성의 높이에 있으니 자연히 목소리가 높아 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도대체 내가 몇 번을 주의를 줘야 알아듣겠니? 너랑 여행한 지도 반년이 넘어가는데 이제 좀 익숙해져라.” “죄송해요.” 니스나는 풀이 죽은 표정으로 힘없이 대답했다. 그 모습에 짜증을 부리던 서니는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실은 서니는 테이를 반년 간 찾아다녔지만 테이의 꼬리도 발견 하지 못해서 나날이 신경질이 늘어가는 중이었다. 덕분에 원래 여행의 목적이었던 니스 나의 기억 찾아주기 여행은 시작도 못했기 때문에 짜증은 배가 되서 요즘은 조그마한 일에도 신경질부터 나던 중이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니스나가 뭔 죄가 있다고 짜증을 부렸는지.’ 후회감은 들었지만 그래도 콧대 높은 서니의 자존심은 그녀에게 쉽게 미안해라는 한마디를 못하게 제동을 걸었다. 하지만.... “저..저기 식사 준비가 다 됐으니 식기 전에 얼른 드세요.” 니스나는 여전히 풀이 죽은 표정과 말투였지만 그 와중에도 철저하게 서니를 챙겼고, 그런 니스나의 헌신적인 모습은 결국 서니의 자존심에 백기를 들게 만들었다. “고마워. 그리고 아까는 짜증내서 미안.” “아뇨. 제가 실수했으니 야단을 맞아도 싼걸요. 다음부터는 주의하겠습니다.” 말투는 여전히 조심스러웠지만 니스나의 얼굴에는 어느새 활짝 미소가 피어나 있었다. 착하다면 착하고 단순하다면 단순하다고도 말할 수 있는 성격이다. “에휴. 넌 걱정이라는 것도 없냐?” “네?” “너 기억을 찾기 위한 여행을 한지도 벌써 반 년째지만 내 개인적인 용무 때문에 아무 소득도 못 올리고 이렇게 산만 헤집고 다니는데 넌 걱정도 안 되냔 말이다.” 서니는 그 점이 내내 마음에 걸려서 내친김에 푸념을 늘어놓는 척 하면서 슬쩍 니스나에게 물어봤다. 니스나는 서니의 질문에 곰곰이 생각하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기... 걱정해야 될 일인가요?” “.......” 서니는 그만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멍청한 거야. 역시나 니스나는 착하다기보다는 멍한 성격에 더 가까워!!’ 서니는 그 동안 니스나의 기억을 되찾아 준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꺼림칙한 기분에 고민했던 나날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니님 왜 그러세요? 어디 아프세요?” 니스나는 분명 서니를 걱정해서 묻는 말이었다. 하지만 서니에게는 그 말이 어떻게 작용을 했는지 지금까지 미적미적 처리하던 일을 단번에 해결하기로 마음먹게 된 계기를 마련하게 해주었으니.... “니스나야!” “네? 네?!” “내일 당장 같이 가자! 절대로 죽어도 싫었지만 더 이상은 내가 못 견디겠다. 도움을 받으러 가야 되겠어!!” 서니는 거의 자포자기 상태로 외쳤다. 니스나는 서니의 광분에 가까운 외침에 기가 죽어서 아주 조심스럽게 물었다. “절대로? 죽어도 싫으셨다고요? 도대체 누구에게 도움을 받으러 가시는 건데 그런 말이 나올 정도죠?” “누구냐고? 호호호호 누구냐고 물었지?!!” 궁금해서 질문을 했지만 서니의 생각대로 멍한 성격의 니스나는 그래도 지금 서니의 태도를 보고는 대답을 들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 네? ...아니 말씀하시기 싫으시면 말 안하셔도 되고요. 자 얼른 식사부터 하죠. 이러다 음식 다 식겠어요.” “아니 뭐 별로 말하기 싫은 분들이라서 그런게 아니야. 그래도 나를 세상에 낳아주신 부모님인걸.” 한숨에 가까운 대답이라 니스나는 자신이 잘 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저... 부모님이라고 하셨나요? 니스나님의?” “응. 우리 엄마 아빠. 정말 가기 싫지만 별 수 없지.” 이미 서니에게서 아까 광기에 가까운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부모님 이야기를 꺼내면서 한숨을 푹 쉬는 서니의 분위기는 니스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 다는 확신을 주고 있었다. “저... 죄송합니다. 혹시 서니님과 부모님 사이가 안 좋으신 건가요? 그런데도 저 때문에 가신다면 전 괜찮으니 무리하지 마세요.” “아니. 부모님은 내가 성룡이 됐지만 여전히 날 귀여워 해주셔. 막내라서 그런지 대하는 태도가 해츨링 때랑 성룡 때랑 별반 차이가 없다니깐.” “아! 그럼 서니님이 어른이 되셨는데도 아이 취급을 해서 대하기가 껄끄러우신 건가요?” “무슨 농담을... 막내라서 귀여움 독차지하는 기분이 얼마나 좋은데.” “웅... 아! 진짜 알았어요! 부모님은 서니님을 귀여워 해주시지만 두 분은 서로 사이가 안 좋으신 거죠?! 그래서 따로 떨어져 계신 부모님을 만나는게 부담스럽다던지....” “아니. 원래 드래곤들의 사회에서 성룡들은 부모 자식간이라도 다 따로 혼자서 살아. 인간이랑 다르지? 그런데도 우리 부모님들은 여전히 사이가 얼마나 좋으신데... 이혼 이랑 바람 피는 것을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다른 드래곤이랑 얼마나 차이가 나는데....” 니스나는 서니의 대답을 들을 때마다 아리송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들이 전부 아니고 오히려 부부간의 금술이 좋고 자식 사랑이 극진한 부모라면 도대체 도움을 받는 것이 무슨 문제란 말인가? 서니는 니스나가 무슨 혼란을 겪고 있는지 잘 알겠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내 입으로는 차마 설명하기가 곤란해. 직접 가서 보는 것이 이해하기 빠를 거야. 아니 보는 것도 곤란하지만.” “네?” 서니의 보충설명(?)은 답이 되기는커녕 니스나의 머리를 더 혼란스럽게만 만들었다. 그것을 눈치 챈 서니는 한숨을 쉬며 마지막 보충 설명을 달았다. “아무리 내가 지금 말로 설명해도 넌 이해 못해. 직접 보는건 곤란하지만 그래도 가서 만나보면 내가 왜 이러는지 알거다.” 그렇게 말하며 한 숨 짓는 서니의 행동은 니스나에게 별로 보고 싶지 않다라는 기분만 안겨 줬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아침이 밝아오지만 한 드래곤 레어안은 여전히 어둠에 쌓여 있었다. 하지만 아침해 가 뜸과 동시에 천장에서 마법구가 서서히 빛을 발해서 레어 안을 밝혔다. 마치 아 침이 왔다는 것을 알리는 듯이 마법구는 태양을 대신해서 따사로운 빛을 레어 안 구 석구석까지 뿜어댔다. 레어 중앙에는 커다란 원형 침대가 놓여 있었고, 몇 십 명이 누워서 딩굴만한 크기의 침대에는 두 명의 남녀가 누워 있었다. “음. 벌써 아침인가?” 남자는 점점 밝아지는 마법구의 빛에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댔다. 타는 듯한 붉은 머리를 가진 건장한 체격의 남자 옆에는 은색의 긴 머리를 침대에 흐트린 여자가 아직 잠에 취해 있었다. 남자는 몇 번 눈을 껌벅이다가 완전히 잠에서 깬 얼굴로 자기 옆에서 색색 숨소리를 내며 잠들어 있는 여자를 보고는 상냥한 미소를 지었다. “아침이야. 내 사랑 허니. 이제 그만 일어나야지.” 소근대는 작은 목소리. 그 정도 소리에 여자는 잠에서 깨어날 리가 없었다. 여자는 잠시 무언가 웅얼거리며 몸을 뒤척이다가 다시 깊은 잠에 빠졌다. 여자를 깨우는데 실패했지만 남자는 개의치 않는 표정이다. 오히려 남자의 눈동자는 잠꼬대를 하는 여자가 귀여워 죽겠다는 빛을 띠고 있었다. 처음부터 그의 목적은 그녀를 깨울 생각이 아니었던 것이다. “허니. 숲 속의 작은 새들도 아침이라고 지저귀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 깊은 드래곤의 레어 안에 새소리가 들릴 리가 없다. 남자의 달콤한(?) - 듣는 이의 관점에 따라서는 느끼한 말투로 들릴 것이다 - 소곤거림은 계속 됐고, 그때마다 여자는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며 잠꼬대 를 했다. 남자는 그런 여자가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허니. 이제 그만... 어?!” 남자가 다시 한번 여자의 귓가에 속삭이려고 할 때 갑자기 여자가 눈을 번쩍 뜨더니 기습적인 키스를 했다. “읍? 읍!” 남자는 당황한 표정으로 어쩌지도 못하고 여자의 키스를 얼떨결에 받아 드릴 수밖에 없었다. 긴 키스가 끝나고 입술이 떼어지자 여자는 생긋 웃으며 말했다. “잘 잤어요? 달링.” “언제 일어났어?” 남자는 어안이 벙벙한 목소리로 물었고, 남자의 질문에 여자는 생긋 웃으면서 대답했다. “아침이야. 내 사랑 허니부터였던 것 같아요?” 여자의 대답에 남자는 입을 쩍 벌렸다. 여자는 처음부터 깨어 있었다는 소리였고, 남자의 소곤거림에 보여준 잠꼬대는 죄다 연기였다는 소리였다. “어둠침침한 모습으로 왜 그래요?” 여자는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하다가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서 어두운 기운을 뿜어내는 남자의 모습이 어처구니없다는 목소리로 물었다. 여자의 질문에 남자는 한숨을 푹 쉬 며 이유를 말해 주었다. “처음부터 일어나 있는 줄도 모르고 바보짓을 한거나 마찬가지잖아. 여자들의 타고난 연기력이란... 정말 무서워.” 약간 울먹거리는 남자의 목소리에 여자는 피식하고 웃었다. 연기하는 여자는 무섭 다는 남자의 말도 장난기가 다분한 연기라는 것을 여자는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가 무서워요? 달링만을 사랑하는 귀여운 부인이 무섭다는 말이죠?” “아니! 너무 사랑스러워!” 남자는 여자의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이 빠르게 대답 하며 덮치듯이 덤벼들었다. 아니 그 기세는 그냥 덮쳤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남자의 기습(?)에 여자는 짧게 비명을 질렀지만 표정에서는 싫은 기색은 단 한조각도 보이지 않았다. 갓 결혼한 신혼부부도 이 두 남녀보다는 덜 따끈할 것이다. 이 따끈따끈한 남녀는 바로 역사상 최초의 쌍둥이 남매 드래곤의 부모이자 얼마 전에 드래곤은 일생동안 단 한번만 출생한다는 기록까지 깨버린 드래곤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는... 절대 신혼은 아니지만 신혼부부보다 더 신혼부부 같은 베테랑 부부 드래곤인 오스 타인과 세이르아였다. “달링 오늘은 뭘 할 거예요?” “글쎄. 일단 아침밥 먹기 전에 당신과 사랑을 나누고 아침 먹은 다음에는 쭉 침대에서 휴식을 취하다가 다시 사랑을 나누고 그리고...” “피. 결국 어제랑 똑같이 하루 종일 사랑만 나누자는 말이잖아요. 매일매일 질리지도 않아요?” “허니는 내가 벌써 질린 거야? 난 이렇게 매일 허니랑 지내는 날들이 너무나 행복한데....” 오스타인은 진심으로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이 우스웠는지 세이르아는 킥킥 웃으며 오스타인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고는 살짝 고개를 저었다. “으응. 그냥 해본 말이에요. 저도 달링과 매일 같이 지낼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한 걸요. 우리 내일도 이렇게 지낼 수 있겠죠?” “물론이지. 내일만이 아니라 모레도....” “모레도?” “응! 그리고 그 다음날도 또 다음날도 계속 허니만을 사랑할거야.” “달링.” “허니.” 천년의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따끈 거리는 이 둘의 모습을 옆에서 보고 있자면 드래곤 역사상 세 번째 출산이라는 진기록이 세워지는 날도 멀지 않았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서니는 골치 아픈 머리를 저으며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져버린 두 드래곤에게 소리를 질렀다. “아침부터 꼴사나운 짓은 제발 자제해요!!” 서니의 외침 덕분에 둘 만의 세계에서 겨우 벗어난 오스타인과 세이르아는 멍청이 자신들의 둘째 딸을 쳐다봤다. 그 눈빛은 지금 이 자리에 서니가 있을 리가 없다고 굳게 믿는 아니 있을 리가 없다고 믿고 싶어 하는 눈빛이다. 하지만 서니는 그 자 리에 분명히 서 있었고, 창피해서인지 화가 나서인지 분간이 안가는 붉게 물든 얼굴로 두 드래곤을 노려보고 있었다. 두 드래곤이 현실을 깨닫는 동시에 오스타인의 레어는 비명 소리로 잠시 들썩거렸다. “하하하. 이거 서니의 손님 앞에서 안 좋은 모습을 보여 버렸구나. 하하하하.” 겨우 상황이 정리되고 난 뒤 오스타인은 서니에게 소개 받은 니스나에게 쑥스러운 웃음으로 늦은 인사를 대신했다. “아..아뇨. 불쑥 들어와 버린 저희 잘못인걸요.” 니스나 역시 방금 전 받은 충격(?) 때문인지 아직 화끈거리는 얼굴을 숙이면서 늦은 인사를 했다. “우리라니? 그 우리의 잘못에 나도 들어가는 거니?” 서니는 니스나의 변명을 겸한 인사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퉁명스런 목소리로 따지고 물었다. “아..아뇨. 그게.... 저기 제 말 뜻은 그게 아니고...” “잠깐! 서니야! 니스나양 말이 틀린게 뭐가 있니? 솔직히 잘못을 따지면 갑자기 들이닥친 너 잘못이 크잖아!!” 딸의 손님 앞에서 못 보여줄 것을 보여준 덕분에 조금 화가 났던 세이르아는 잽싸게 니스나 편을 들면서 서니를 나무랐다. 하지만.... “갑자기라고요? 그게 잘못이라고요? 그래도 틀림없이 둘만의 세계에 빠져 있을 부모님 생각해서 엄청 큰 공간의 문을 열었고, 그리고 시간을 충분히 두고 들어왔는데도 눈치 못 챘다는 것이 너무한거 아니에요?! 도대체 아빠랑 엄마는 둘 만의 세계에 빠져 있을 때 그렇게 주위가 눈에 보이지 않는 거예요?!!” 딸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지금 상황에 그다지 어울린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방금 서니의 발언은 결론적으로는 세이르아의 패배를 결정지었다. 대꾸 할 말을 찾지 못 한 세이르아는 울먹이다가 결국에는 오스타인의 품에 안겨서 울음을 터트려 버렸다. “으아앙! 달링! 이래서 딸은 키워봤자 소용없나 봐요!” “보기 흉하니 그만 둬요!!” “서니야. 엄마에게 그렇게까지 말 할 필요는 없잖니? 이 아빠는 너를 그렇게 키운 기억은 없다.” “당연하죠! 절 키운 것은 아빠가 아니라 엄마잖아요!!” “그거야. 그렇지만.... 하지만 이 아빠도 너를 위해서!!” 니스나는 끝날 것 같지 않은 부녀지간의 전투(?)를 지켜보면서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언제쯤이면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라는 걱정을 했다. ‘웅. 하긴 당장 급한 것은 없으니깐... 뭐 괜찮으려나? 아 이 차 맛있다.’ 하지만 서니의 생각대로 멍한 성격인 니스나는 금방 걱정을 지우고는 맛있는 차를 느긋하게 즐겼다. 오리하곤 왕국에는 넓은 사막 지역이 있었다. 아주 옛날에는 그 지역도 푸른 나무가 우거진 숲이었지만 인간의 역사에는 남지 않은 어떤 사건에 의해 황폐한 사막이 되었다고 한다. 여러 역사 학자들이 그 지역을 놓고 여러 가설을 세웠던 적도 있었고, 다시 녹색의 땅으로 만들려는 노력을 한 적도 있었지만 그것은 이제 옛날 일이 돼버렸다. 그 땅이 무슨 이유로 사막이 됐는지는 제쳐두고라도 다시 녹색의 대지로 만드는 일은 불가 능했기 때문에 점차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졌고, 결국에는 아무도 찾지 않는 죽음의 사막 이 된 것이다. 그런 죽음의 사막에 언제부터인가 많은 수의 인간들이 거주하기 시작했다. 바로 베스크의 도적단들이었다. 도적단이 사막 한가운데 천막을 치고 생활 한지도 벌써 반년이 지나고 있었다. “푸하! 이 놈의 모래 바람은 도대체가 친숙해지지가 않는 군.” 도적단 중에 한명이 자신이 묵고 있는 천막의 문을 젖히고 들어오면서 입에 들어간 모래를 뱉으면서 불평을 늘어놨다. “야이 쨔샤! 침은 밖에서 뱉고 들어오면 어디가 덧나냐?!” “원래 우리가 살던 아지트도 지저분하기는 매 한가지였는데 새삼스럽게 뭘 따지냐?” 천막 안에서 휴식 중이던 다른 도적이 눈살을 찌푸리며 성질을 내자 침을 뱉었던 도적은 눈을 부라리며 성질을 냈다. “쳇. 그래도 아지트는 이렇게 덥지는 않았는데....” “그렇게 아지트가 그리우면 다음 식료품 마차가 올 때 같이 가버리면 되잖아.” “미쳤냐? 이 정도까지 고생했는데 지금 와서 포기하게? 이왕 시작한거 확실히 끝은 내고 받을 건 받아야지.” “끝이라.... 하지만 언제 끝이 날까? 이 빌어먹을 일이....” “그걸 어찌 알겠어? 지금은 솔직히 두목이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을지 그것조차 의문이다.” 둘은 어느새 말싸움을 그만두고 신세 한탄을 늘어놓았다. 반년 전 그리 어렵지 않은 큰 일 한건 해결하고 보너스를 두둑이 받을 때까지는 정말 좋았다. 그리고 두목인 베스크가 이것 보다 더 많은 보너스를 받고 싶은 사람은 이제부터 자신이 할 일을 도우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 들은 또 한몫 챙길 수 있다는 생각에 망설임 없이 하겠노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이 하는 일은 전에 했던 쉬운 일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다. 설마 그 일이란 것이 오리하곤 왕국에서 폐쇄시킨 지역인 죽음의 사막에 가는 일이라는 것 을 알지 못했고, 그 사막에서 생활하며 무엇인가를 찾아 헤매 다닌 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 못했었다. 출입금지 지역인 죽음의 사막에 들어갈 수 있는 출입증을 베스크가 무슨 수로 얻 었는지는 제쳐두고라도 도적들에게 당장 주어진 일이라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바로 사막 어딘가에 묻혀져 있는 유적을 찾아내라는 일이었다. 이름 높은 지질학자라도 광범위한 사막에서 모래 속에 파묻힌 유적을 발굴한다는 것은 기적 에 가까운 확률이다. 하지만 다행이도 도적들은 타고난 보물 사냥꾼이기도 했다. 예부터 유 명한 유적들을 발견한 사람이 학자보다는 도적 출신이 더 많다는 것만 놓고 보더라도 유적 찾기에는 도적들보다 좋은 일꾼이 없다. 그리고 두 번째로 다행인 점은 두목인 베스크는 찾 는 유적의 대략적인 위치가 적힌 책을 갖고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베스크는 부하들에게 그 책을 어디서 구했는지 말을 안했고, 부하들도 그 문제는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딱 하나 가장 큰 문제가 있다면 유적 찾기에 최적의 조건들을 갖추었는데도 지난 반년 간 유적의 돌 부스러기 하나도 발견 못했다는 점이다. 베스크를 따라온 대부분의 부하들은 보물 사냥꾼으로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들이 많았다. 그런데도 그들은 지난 반년 간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했다. 그리고 자잘한 문제점으로 서는 환경이 너무 가혹하다는 점도 들 수 있을 것이다. 지난 반년 간 크고 작은 사고로 도적들의 3분의 1이 목숨을 잃었다. 부주의로 사막의 전 갈에게 찔려 죽고, 재수 없게 만나기 힘들기로 이름 높은 사막의 몬스터 샌드윔을 만나서 죽은 도적도 있었다. 그리고 열사병에 예기치 못한 유사들이 사막 그 자체가 죽음의 신이 라도 되는 듯이 조금씩 확실히 도적들의 목숨을 가져갔다. 그런 악조건 중에서도 돌아간 도적들은 한 명도 없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지만 나름대로 이 유가 있었다. 바로 돈이었다. 베스크가 약속한 보너스는 따로 독립해서 작은 길드 하나 정 도는 만들 자금이었고, 일만 성사되면 목숨을 잃은 동료들의 몫까지 받을 수 있다는 조건까 지 나온 덕분에 베스크의 부하들은 언제 죽을지도 모를 상황인데도 아무도 돌아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좀더 동료가 죽기를 은근히 바라는 도적도 있었다. 그럼 그 만큼 자신의 몫이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천막 중앙에는 다른 천막과 비교해서 제법 크고 튼튼한 천막이 세워져 있었는데 바로 베스크와 그 오른팔인 프라츠가 거주하는 곳이다. 베스크와 프라츠는 탁자위에 온갖 지도와 책 그리고 나침반을 늘어놓은 체 유적 찾기에 매일 혈안이 돼 있었다. 금방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처음 예상과는 달리 시간이 많이 걸리고 있었지만 베스크는 결코 초조해 하지 않았다. 지금도 베스크는 느긋한 표정으로 즐거운 듯이 지도의 이곳저곳을 체크 하고 있는 중이었다. “어제 레글조의 보고로는 이 지역은 틀린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럼 카드롤조가 조사하고 있는 지역은?” 베스크는 프라츠가 보고하는 지역을 체크하며 물었고, 베스크의 질문에 프라츠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 지역도 틀린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직 더 조사를 해볼 가치는 있습니다. 오늘 다시 한번 보내 볼 생각입니다.” “그래? 그렇다면 그곳은 댔다 치고 남은 지역은....” 아주 잠깐 동안 지도에서 얼굴을 떼고 프라츠를 쳐다봤던 베스크는 다시 시선을 지도로 옮 기고는 다른 곳을 체크했다. 한순간이었지만 프라츠는 베스크의 흉측한 얼굴에서 아이처럼 즐거워하는 표정을 읽었다. “어제도 아무 성과 없이 오늘을 맞았는데 무엇이 그렇게 즐거우십니까?” 반년 간 거의 헤집다 시피 이 근처를 뒤집고 다녀도 아무성과도 못 얻었는데도 베스크가 즐거워 한다는 것을 이해 못하던 프라츠는 조심스럽게 베스크에게 이유를 물어봤다. 혹시 라도 괜한 질문이 아닐까하는 걱정이 들었지만 다행이도 베스크는 프라츠의 질문이 기분 나쁘지 않았는지 바로 대답을 해줬다. “별로 초조한 기분이 안 들거든.” “네?” “나는 늘 세상을 부수고 싶다는 생각으로 살아왔어. 지난 몇 십 년 간 하루도 빠짐없이 말이야. 지금 당장은 성과를 못 얻고 있다고 하더라도 내 빌어먹을 몇 십 년 인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 니야. 내 바람대로만 된다면 남은 인생 평생을 여기에 걸어도 좋아!” “하지만 우리가 데려온 부하들 중에는 트레져 헌터로서 내노라하는 실력을 가진 부하도 많습니다. 그런데도 반년이나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은....” 프라츠는 차마 그 다음 말인 ‘그 책이 가짜가 아닐까요?’라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굳이 베스크가 말 안 해도 다 알고 있었다. 프라츠의 과거가 어떠했는지 어떤 지옥 같은 인생을 살아왔는지.... 그래서 베스크가 그 책에 얼마나 목을 메는지 잘 알기 때문에 섣불리 부정 하는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걱정 마라. 프라츠.” “네?” “네 녀석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난 알 수 있어. 빌어먹을 인생을 사는 동안 몸에 확실히 익힌 것이 있지. 감이라는 것. 내 감은 잘 맞아. 그리고 내 감에 이하면 이 책은 이 빌어먹을 놈의 세상을 뒤집을 수 있는 힘으로 날 인도해 줄 거야. 틀림없이.” 베스크는 탁자 위에 늘어진 책 중에서 가장 낡은 책 한권을 소중하다는 듯이 쓰다듬었다. 그 책은 이제 베스크의 살아가는 이유가 된 책이다. 베스크는 죽기 위해서 숲을 헤매 다닌 적이 있었다. 더러운 몸뚱이를 짐승이나 몬스터에게 주기 위해서 위험한 숲 속을 정신없이 걷다가 조그만 동굴을 발견했다. 아주 오래전에 누군 가가 살았던 흔적이 있는 동굴 속에서 베스크는 바로 그 책을 발견 한 것이다. 그리고 그 책을 발견한 베스크는 죽으려는 생각을 그만뒀다. ‘부술 수 있어. 이 빌어먹을 세상을.... 내 손으로.... 이 내가 할 수 있어!!’ “내가 부술 수 있어! 아니 부숴 버리고 말겠어! 이 따위 세상은 부숴버리겠어!!!” 베스크는 프라츠가 옆에 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광기에 차서 끊임없이 부숴버리겠다고 외쳤다. 그것이 지금 베스크가 살아 있는 이유고 살아가는 전부였다. 사람들은 안 좋은 일이 연이어 일어나면 꼬여도 단단히 꼬였다는 말을 쓰곤 한다. 그 말대로라면 지금 리엘리아의 상태는 어떻게 풀어야 될지 모를 정도로 꼬였다는 표현으로도 모자를 것이다. 친구인 리이나가 맡긴 아기는 멍청한 실프가 드래곤 레어안에 놔두는 바람에 행방불명이 되고 - 리엘리아는 아기의 생사에 대해서는 신경 안 쓰기로 노력 중이었다. - 일단 리이나와 만나서 욕을 있는 대로 들어먹은 다음에 대책을 논의할 생각이었지만 리이나는 약속 장소에 끝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혹시나 먼저 다이러스 제국으로 가버렸나 싶어서 가는 와중에 사람 좋아 보이는 할아버지가 사는 오두막에 하루 신세를 지게 됐다. 하지만 기구한 리엘리아의 인생은 그 사람 좋아 보이는 할아버지가 실은 도적들과 한패였다는 시나리오까지 준비하기에 이르렀으니.... “흐에엥. 난 세상에서 최고로 불행한 엘프일거야. 나보다 더 불행한 엘프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없을 거야. 흐에에엥!” “아가리 닥치지 못해?! 상품에 흠집 내기 싫으니깐 주먹 올리기 전에 뚝 그쳐!!” “흐끅.” 리엘리아는 험상궂은 털보 사내가 주먹을 들자 급히 입을 가리면서 울음소리를 죽이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렇게 소리는 막아도 흐르는 눈물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털보 사내는 입을 가린 채 끅끅대며 눈물을 흘리는 리엘리아를 진짜 한대 후려칠까 하는 생 각을 잠시 했다가 곧 참기로 했다. 자신이 아까 한 말대로 상품(?)에 손을 대면 흥정할 때 가격이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리엘리아는 지금 짐마차에 태워져 있었는데 자신을 감시하는 남자가 둘 그리고 마차를 모는 남자가 둘. 도저히 도망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아까 리엘리아를 윽박질렀던 털보 사내 옆에서 약간 - 아주 약간 - 인상이 착해 보이는 남자가 그런 리엘리아가 불쌍해 보였 는지 깨끗한 손수건을 건네며 위로해줬다. 하지만.... “이봐요. 엘프 아가씨. 이왕 이렇게 된 거 포기하고 얌전히 우리 말 잘 듣는게 좋아요. 그리고 엘프는 거의 특등 상품이나 마찬가지니 좋은데 팔아 줄게요. 인간이라면 기껏해야 창녀촌이나 좀 반반해도 하급 귀족한테 밖에 못 팔지만 엘프는 좋은 집안에 팔 수 있단 말입니다. 우리가 책임지고 좋은 데 팔아 줄 테니 너무 겁먹지 말아요.” 차라리 안 하니만 못한 위로였다. 리엘리아는 하도 기가 막혀서 잠시 우는 것조차 잊어먹었다. 리엘리아가 울음을 그치자 남자는 자신의 위로(?)가 먹혔다고 생각했는지 씩 웃으면서 걱정 말 라는 말을 한번 더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리엘리아는 다시 울분이 치밀어 올랐고 이번에는 맞던 말든 상관없다는 뜻으로 크게 울어버렸다. “흐에에에엥!” 자신의 위로(?) 덕분에 엘프 처녀가 울음을 그쳤다고 좋아하던 남자는 리엘리아가 다시 울어 버리자 당황했고, 털보 남자는 겨우 좀 조용해졌나 싶었더니 왜 다시 울리고 난리냐고 나무랬 다. 아무래도 털보 남자가 착한 인상의 남자보다 높은 위치인 것 같다. “야! 이 자식아! 왜 또 울리고 난리야?!” “난 몰라요! 난 울지 말라고 위로 한 것뿐이에요!!” “위로 방법이 틀린 거 아니야?!” 털보 남자 말대로 착한 인상의 남자가 했던 말은 위로가 아닌 반 협박이었다. “그 정도면 됐지 뭘 더 어떻게 하라고요?!!” “야 이 자식아! 변태 같은 귀족보다는 얼굴 반반하게 생긴 귀족에게 팔아 주겠다는 말을 덧붙여야 될 거 아니야!” “아 그렇군요. 정말 중요한 말을 빼먹었네요. 역시 형님은 뭔가 다르십니다.” 뭔가 전혀 아니올시다였지만 털보 남자는 의기양양해서 여자를 위로하는 법(?)에 대한 일장 강의를 시작했다. 그런데 그 위로 방법이란게 리엘리아에게는 듣기에도 괴롭고 입에 담기에 는 더욱더 괴로운 위로법(?)이었다. 결국 리엘리아의 울음소리는 털보 남자의 강의 시간에 비례해서 점점 커져만 갔다. 나중에는 마부석에 있던 두목의 성난 목소리와 착한 인상의 남 자가 던진 단검이 리엘리아의 머리카락을 몇 올 자르고 나서야 리엘리아는 겨우 울음을 그칠 수 있었다. 그것이 그들 나름대로의 최대였고 최후의 위로(?)였던 것이다. 리엘리아는 떨면서 기도했다. 이 이상 자신의 인생이 더 나빠지지 않기를.... 솔직히 더 나빠질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드는 상황이지만 인생이란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법이기에 리엘리아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의 모든 진심을 담아 기도했다. 슬라드 왕자가 실종 된지도 벌써 반년이 지나고 있었다. 그 동안 오리하곤 왕국은 형제국인 레이아스 왕국의 도움을 받아 왕자의 수색에 모든 힘을 쏟아 부었으나 허사였다. 더구나 반 년이 지나가자 왕자의 죽음 쪽으로 점점 의견이 모아지기 시작했다. 결국 왕위는 제 1공주의 남편이자 지금 임시로 국정을 도맡고 있는 아그라느의 정식 즉위의 의견들이 조심스럽게 나 오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아그라느 본인은 슬라드 왕자의 수색을 포기하지 않았다. 아그라느는 이 문제에 대해서 공적인 회의에서 왕자의 시체라도 발견하지 못하는 한은 죽어도 정식 왕위를 이어받지 않겠다고 선언해버렸다. 이 선언으로 인해서 아그라느에 의한 왕자 납치설에 대한 소문은 누그러졌다. 하지만 친국왕파 일부 세력들은 여전히 아그라느를 좋게 보지 않았다. “라스크라 공작님 이제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저 역적 아그라느의 인기는 더 올라가고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그가 정식 왕위를 잇는 날도 시간문제란 말입니다.” 침묵의 탑. 국왕파들이 모이는 비밀회의 장소로 오리하곤 수도 베이드언 외곽에 버려진 탑을 마법으로 개조한 탑이다. 탑 최상층은 다 쓰러져 가는 겉모습과는 달리 깔끔하게 고쳐져 있고, 방 한가운데 놓인 의자에 친국왕파의 세력들이 모여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논의하는 중이었다. 라스크라 공작이라고 불린 50대 백발의 남자는 근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측근들이 토하는 열변들을 잠자코 경청했다. 의견의 대부분은 왕자 수색을 포기하고 차라리 아그라느를 뒷조사를 하자는 의견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이미 왕자의 생사를 포기한 것이다. 그래서 이대로 두 눈 버젓이 뜨고 역적 아그라느의 정식 즉위를 지켜 볼 바에는 아그라느에 의한 왕자 납치를 기정사실화 시켜서 반역자로 체포하자는 의견들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길지 않은 시간에 결국 회의의 초점은 아그라느의 반역 죄로 의견이 모아졌고, 이제 라스크라 공작에게 결단을 촉구했다. 라스크라 공작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측근들에게 입을 열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봅시다.” 자신들의 의견이 받아질 거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던 측근들은 잠시 동안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굳어버렸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 잠시였다. 곧바로 성난 목소리 로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목소리를 높였다. “공작님! 제발 신중하게 생각해 주십시오. 이대로라면 오리하곤 왕국의 전통이 무너지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왕국 역사상 공주의 남편이 왕위를 이어 받는 다는 것은 저희 대의 수치로 영원히 역사에 남을지도 모릅니다!” “그는 왕자 유괴 살해범의 진범일지도 모릅니다! 그런 자가 왕이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한 목소리로 오리하곤 왕국의 미래를 걱정하던 그 들이었다. 하지만 라스크라 공작이 침묵을 지킬수록 목소리는 점점 높아졌고, 서서히 본. 심. 이 나오기 시작했다. “지금 아그라느파 녀석들의 세력은 나날이 커져가고 있습니다. 그가 왕위를 이어 받는 순간 저희들은 끝장입니다!!” “더구나 네반 공주가 친국왕파를 가만히 놔둘 리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비록 국정에는 끼어들지 못한다지만 뒤에서 남편을 조종할 수도 있습니다. 여자 따위에게 나라의 일을 맡길 수는 없습니다!!” 이미 그들에게서 나라의 안전과 왕자의 생사를 걱정하는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어디까지나 자신들의 직위와 권리를 뺏길 수 없다는 모습으로 필사적인 열변을 토했다. 그것이 그들의 진심이었다. 오로지 자신의 안전만을 걱정하는 시커먼 마음. 그 마음의 외침을 바로 앞에서 듣는 라스크라 공작은 머리가 아파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네반 공주는 그 일을 잊지 않고 있을 겁니다. 어쩌면 이 모든 일은 네반 공주의... 그년의 계획일지도 모릅니다!!” “그만들 하시요!!!” 결국 참지 못한 라스크라 공작은 소리를 질렀다. 비록 목소리의 크기는 젊은 그들에게 뒤질지는 몰라도 세월의 연륜이 담긴 그 기백은 젊은이들 못지않았고, 덕분에 회의실은 정적에 잠겼다. “...여러분.” 잠시 사이를 두고 라스크라 공작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금 경들은 우리가 정말 해야 될 일을 잊어먹고 있는 것 같소. 지금 해야 될 일은 아그라스파와 싸우는 일이 아닌 하루라도 빨리 왕자를 찾는 일이요.” “그것은 알고 있지만....” 한 남자가 중간에 끼어들며 변명을 하려고 했지만 라스크라 공작의 기백이 가득 남긴 눈빛을 정면에서 대하고는 금방 입을 다물었다. 라스크라 공작은 다시 말 한마디 한 마디에 힘을 담아 말했다. “아그라스 공작의 진위가 무엇인지 그가 정말 왕자를 납치했는지 아닌지... 진실은 지금으로서는 아무도 알 수 없소. 하지만 그가 자비까지 털어가면서 왕자의 수색에 반년 간 전력을 다했다는 것은 진실이요. 그리고 현재도 그렇고 그 기세를 보자면 앞 으로도 아니 만약에 왕자님이 돌아가셨다면 그 분의 시체라도 발견하지 못하는 한은 계속 할 것이요. 우리가 진정한 국왕파이고, 진정으로 오리하곤 왕국의 미래를 걱정 한다면 반 국왕파나 마찬가지인 아그라스에게 뒤져서야 말이 되겠소? 지금 우리가 먼저 해야 될 일은... 아니 반드시 해야 될 일은 아그라스 공작보다 먼저 왕자님을 찾아내는 것이요. 그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될 국왕파로서의 최우선 상황이요.” 라스크라 공작의 말이 끝나도 아무도 입을 여는 자들은 없었다. 마음속으로 방금 전 자신들이 했던 추태를 반성하는 자들도 있었고, 끝까지 납득 못하겠다는 이도 있었다. 그리고 이도저도 결정을 못 내리고 안절부절 못하는 이들도 있었다. 라스크라 공작은 그런 사람들의 복잡한 마음들이 눈에 보이는 것만 같았다.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끈적끈적한 나쁜 기운이 회의실 가득히 찬 것 같아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었다. ‘악하다. 너무나 악하다. 아니 한편으로는 약하다. 너무나 약하다. 그래 이 약한 마음이 악한 기운을 부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약하기 때문에 쉽게 악에 기대는.... 역시 믿을 것 은 그 분 뿐이다. 강한 그 분이라면... 그 분이라면....’ 라스크라 공작은 비밀리에 슬라드 왕자의 수색을 부탁했던 존재를 떠올리며 그 분에게 부 탁했던 것을 정말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지상계의 최고 강자인 그 분이라면 틀림없이 오리하곤 왕국의 문제를 해결해 줄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리고 그 믿음이 라스크라 공작의 최대의 카드이자 최후의 카드였다. “도대체 이걸 어떻게 처리해야 되는 거람.” “네?” 티아의 푸념에 티아라는 갑자기 무슨 뜻이진 모르겠다는 얼굴로 반문했다. 오랜만에 자신의 신전으로 돌아온 티아는 그 동안 티아라에게만 맡겨놨던 서류들을 뒤적거리다가 그야말로 뜬금없이 그 말을 뱉었다. 그러니 잠자코 같이 서류 정리를 하던 티아라가 무슨 소리인지 모르는게 당연했다. 티아는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티아라의 궁금증에 답해주었다. “이거 말이야. 이것 때문에 그래.” 티아가 내민 한 장의 서류. 그것은 몇 달 전에 비밀리에 다이러스 제국에 왔던 오리하곤 왕국의 사자들이 가져온 슬라드 왕자 수색의 도움을 요청하는 내용의 서류였다. 첫 날에 티아는 그 일을 거절했지만 다음날 다시 한번 부탁하러 들린 사자들에게 도움을 줄 것을 약속했다. 역시나 티아의 성격상 그냥은 넘어갈 수 없었기에 받았던 일. 그 일은 몇 달이 지나도 전혀 진척이 없었다. 인스테랄 가문의 모든 정보력과 티아가 친 분이 있는 모든 종족들에게 이 일을 부탁했었지만 왕자를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티아는 왕자가 살아있다기보다는 죽은 쪽으로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저기... 만약 왕자가 죽었다면 어떻게 하실 거예요?” 지난 몇 달 간 여러 정보를 모아 놓은 서류를 찬찬히 읽어보는 티아에게 티아라는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티아라의 질문에 티아는 서류에 눈을 떼지 않은 채 애매한 대답을 했다. “글쎄.” “역시 힘을 사용하실 건가요?” “아니 사용 안할 거야.” “하지만 불쌍하잖아요.” 티아는 서류에서 눈을 떼고 티아라를 쳐다봤다. 티아라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티아를 쳐다보고 있었다. “하아. 이봐. 냉정한 말이라는 것은 나도 잘 알아. 하지만....” “알고 있어요. 기적을 바라고 티아님을 찾아오는 인간이 있을 때마다 입버릇처럼 말씀하신 그거죠?” “맞아. 자주 기적을 접한 인간은 자꾸 그 기적에만 의지하려 하게 되지. 그렇게 되면 인간의 최대 장점인 발전하려는 감정이 사라질지도 몰라. 그것을 잃어버리면 인간은 이미 인간이 아니게 될지도 몰라. 그래서 난 내 힘을 아무 때나 사용하지 않는 거야. 너도 잘 알고 있잖아.” 티아의 설명에 티아라는 아무 반론을 할 수 없었다. 그것이 맞는 말이라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티아라가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치만....” 하지만 머리로는 잘 알아들었다고 하더라도 티아라의 감정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오리하곤 왕국의 왕자는 아직 젖도 떼지 않은 간난 아기였기 때문이다. 그런 어린 아기가 어른들의 추악한 욕망의 싸움에 희생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못내 안타까웠던 것이다. 티아도 그런 티아라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티아도 약간 흔들 리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절대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티아라 부탁이라고 해도 안 돼. 한번 예외라는 것을 인정해버리면 그 다음부터는 엉망이야. 한번 저지르고 난 뒤에 아무리 독하게 마음을 먹는다고 해도 그 예외 때문에 난 계속 힘을 써버리게 될지도 몰라. 난....” 티아는 그 뒤에 말을... ‘난 그렇게 강하지 않아’라는 말을 차마 할 수가 없었다. 입을 굳게 다물고 침묵을 지키는 티아를 보면서 티아라는 눈에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죄..죄송합니다! 티아님이 더 괴로우실 텐데.... 그런데 저는 그것도 모르고....” 영혼을 공유하기 때문에 이 세상 그 누구보다는 티아의 마음을 잘 이해한다고 자부했던 티아 라였다. 그랬는데도 티아의 상처 받기 쉬운 마음에 상처를 줬다는 생각이 들자 더 이상 눈물 이 흐르는 것을 막지 못했다. 그저 죄송합니다라는 말밖에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침묵을 지키던 티아는 울면서 사과하는 티아라의 모습에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넌 내가 분위기만 잡으면 울면서 사과를 하는구나.” “하지만 이번 일은 제가 정말 잘 못 한거고..., 그리고 또... 저는... 저는....” “됐어. 이제 괜찮아. 난 신경 쓰지 않는 걸.” “하..하지만...” 티아는 손으로 티아라의 입을 막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이제 그만. 넌 눈물이 너무 흔한게 흠이야. 내가 괜찮다고 할 때는 정말 괜찮은 거야. 영혼을 공유하면서 그것도 모르는 거야?” “티아님.” “자 그만 뚝 그치고 얼른 눈물을 닦아. 시퀸이 보면 내가 울린 줄 알고 펄펄 날 뛰겠다.” 티아라의 눈에서는 순식간에 눈물이 사라지고 당혹스런 표정이 나타났다. 그 모습을 보고는 티아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아 드디어 울음을 그쳤네. ‘울면 몬스터가 와서 잡아간다.’라는 애들 다룰 때 쓰는 말이 이럴 때도 효과 있을 줄은 몰랐는걸.” “시퀸 오빠는 몬스터가 아니잖아요! 아니 그것보다 왜 지금 시퀸 오빠 이야기가 나와야 되는 거죠?! 그리고 전 얘가 아니에요!!” 방금 전 훌쩍이던 모습은 어딜 가고 티아라는 굉장히 열정적인 모습으로 티아에게 조목조목 따지고 들었다. 특히나 마지막 말을 아주 크게 외치는 것으로 보아서 티 아라는 자신을 얘 취급하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는 것 같았다. 티아는 이런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이 당황하지 않고 티아라의 따지는 말에 조목조목 반론을 펼쳤다. “그냥 예를 든 것뿐이지 시퀸이 몬스터란 소리는 나도 단 한마디도 안했다. 지금 시퀸 이야기를 한 것은 조금 있으면 시퀸이 이곳에 오기 때문이야. 그리고 무슨 일이든 금방 감정적이 되서 훌쩍거리는 것은 얘나 다름없잖아.” “감수성이 풍부한게 어째서 얘라는 거지요?!” “그만큼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다는 거잖아. 인간들의 인생에게 애들만큼 자신에게 솔직한 나이가 어디 있겠니? 그리고 그것보다 다른데 신경 써야 되지 않을까?”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티아님이 절 얘 취급했다는 거예요! 그걸 따지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대체 뭔데요?!” 역시나 티아라는 티아의 생각대로 자신을 얘 취급한 것에 가장 화가 많이 나 있었다. 그런데 그 말을 다르게 생각해보면 티아라는 그만큼 얘 같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는 설명도 된다. 그렇지 않고서야 카이저 드래곤인 그것도 자신과 영혼을 공유하는 주인 에게 저렇게 대 놓고 화를 낼 리가 없을 것이다. 아무튼 티아는 티아라가 화를 내던 말든 여전히 생글거리는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그 표정은 마지막 카드는 이쪽이 쥐고 있다는 여유 때문이었다. “아까도 말했는데 못 들었나보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시퀸이 조금 있으면 여기에 올거라고 했어.” “에?” 화가 나서 얼굴이 붉어져 있던 티아라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멍한 얼굴이 되서 방금 전 티아의 말을 되새겼다. 그리고 그 뜻을 알아차리자 아까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얼굴이 붉어졌다. “어..어..어....” “어째서 오느냐고 묻고 싶은 거지?” 티아라는 말도 안나오는지 답답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별거 아니야 티아라 네가 시퀸에게 중요한 할 말이 있다고 전한 것뿐이야.” “우..아..으....” 티아라는 여전히 말이 안 나오는지 아예 신음 비슷한 소리만 내뱉었다. 하지만 티아는 티아라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충분히 알겠다는 듯이 이번에도 거침없이 대답해줬다. “전에 내가 말했지. 한달 여유를 줄테니 시퀸을 위한 웨딩드레스를 입으라고. 그 날이 다음 주잖아. 그래서...” “저..전 약속한 적 없어요!!!” 간신히 말문이 트인 티아라는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어째서 티아님이 내 결혼 문제에까지 신경을 쓰셔야 되는 거예요?! 신경 안 쓰셔도 그 정도는 내가 처리할 수 있는 문제예요!” “처리라... 지난 삼 주간 네가 시퀸이랑 만난 횟수가 겨우 3번이었지.” “어..어째서 그걸....” “거기다가 만나서 한 이야기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뿐이었고, 만난 시간도 겨우 한 시간 남짓이었고... 이런데도 혼자서 처리할 수 있다는 말이야?” “어째서 거기까지 알고 계신 거예요?!!” “미행 시켰걸랑 애한테.” 티아는 그렇게 말하면서 왼손을 들어 보였다. 그 곳에는 바람의 정령 실프가 좀 쑥스러운 표정으로 헤헤 웃고 있었다. “비겁해요! 그건 사생활 침해잖아요!!” “영혼을 공유하는 사이면서 새삼스레 사생활 침해는 무슨. 그것보다 난 웨딩드레스 입으라고 명령을 내렸지 약속한 기억은 없어.” “말이 되는 명령이라면 전 언제든지 시행할 준비가 되어 있어요. 하지만 그 명령에는 따를 수가 없어요.” “그래? 그렇단 말이지?” “그. 렇. 습. 니. 다!” 티아라는 단어 한마디 한마디에 힘을 주어 말하며 죽어도 티아가 시키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내비쳤다. 그 모습은 절대로 티아의 페이스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비장미마저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시퀸 꽤 인기가 있지.” “윽.” 티아라의 결의 찬 비장한 모습은 1초 만에 무너졌다. “내가 알고 있는 여자만 해도 약 십여 명 정도였나? 더구나 슬슬 시퀸 집안 쪽에서도 장가를 보내야 되겠다는 말도 나오고 있고....” “으으윽.” 티아는 어떤 의미가 가득 담긴 미소로 티아라를 쳐다보며 물었다. “그런데도 정말 괜찮은 거지?” “그..그..그게 티아님과 무슨 상관이에요?!!” “나 원 참. 눈물까지 흘리면서 악을 쓸 정도면서 왜 자신의 기분에 솔직하지 못한 거야? 나처럼 장애가 될게 뭐가 있다고 그 모양이니? 그래 나처럼....” “아!” 티아라는 티아의 말에 깜짝 놀라서 티아를 쳐다봤다. 티아는 어느새 우울한 모습으로 한숨을 쉬고 있었다. “티아님.” 티아라는 급히 눈물을 닦으면서 티아를 불렀다. 하지만 아무 말은 나오지 않고 눈물만 흘러나왔다. 아까보다 훨씬 더 많이 흘러내렸다. “티아님.” “괜찮아. 위로해주지 않아도 돼. 위로해 달라고 꺼낸 말도 아닌 걸. 나는 다만... 다만 티아라가 나와 같은 아픔을 겪지 않았으면 해서... 맞서 나갈 용기가 없어서 포기해버리지 않았으면 해서... 그래서....” “티아님.” 티아라는 티아의 손을 꼭 잡고 그 이상은 말 하지 말라는 뜻으로 고개를 저었다.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영혼을 공유한 사이이고, 같은 여자이기 때문에 티아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왜 이렇게 하는지를 티아라는 전부다 알 수 있었다. “아까 소리 질러서 죄송해요. 저 용기를 낼게요. 그리고 시퀸 오빠한테 고백할게요. 시퀸 오빠를 세상 누구보다도 사랑한다고 고백할게요.” “정말?” “네. 정말로요. 티아님의 명령 때문이 아니라 제 진심을 오빠에게 전할 거예요.” “티아라의 진심이 이렇다는데 시퀸 너 진심은 어때?” “에?” 티아라는 잠시 티아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티아는 언제 울었냐는 듯이 생글 생글 웃으면서 티아라의 뒤쪽을 가리켰고, 티아라는 설마 설마하는 마음으로 천천히 뒤를 돌 아보았다. 뒤에는 언제 왔는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드는 남자가 있었다. 티아라는 자신과 똑같은 은색 빛 머리카락의 남자 시퀸을 보며 설마는 역시가 된다는 세상의 진리(?)를 깨우치며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그리고.... “우아아앙! 속였어! 날 속였어!! 와아앙!! 몰라요! 몰라요! 티아님도 시퀸 오빠도 다 미워!! 미워!!!” 티아는 끊임없이 미워를 반복하면서 우는 티아라를 보면서 키득키득 웃으면서 시퀸에게 말했다. “이대로 놔둘 거야?” “그게 저어...” 시퀸은 방금 전 티아라의 본심을 듣고는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항상 동생처럼 생각해오던 아이라서 설마 티아라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꿈에도 생각 못했기 때문에 무슨 말을 해야 될지 감을 못 잡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잘 이해한 티아는 고개를 설래설래 흔들면서 말했다. “여자가 먼저 고백을 한다는게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 줄 몰라서 그래? 남자도 마찬가지겠지만 여자는 남자보다는 더 한 거야. 그런데 넌 티아라의 용기에 이대로 아무런 대답도 안 해줄 생각인 거야?” “으에엥! 이게 무슨 고백이란 말이에요?! 이건 무효예요! 절대로 무효예요!! 흐에에엥!!” “다 엎질러진 물인데 웬만하면 이제 그만 포기하지 그래?” “미워요! 티아님도 밉고 시퀸 오빠도 밉고, 다 미워요!! 우에에엥!” 시퀸은 얼굴이 새빨겨져서 울음을 그칠 줄 모르는 티아라를 보고는 결심을 굳힌 얼굴로 다가갔다. 그리고 얼굴을 가리고 있는 티아라의 손을 잡고는 번쩍 들었다. “에?” 덕분에 주저앉아서 울고 있던 티아라는 그대로 들려서 시퀸에게 쏘옥 안겼다. 시퀸은 눈물을 가득 담고 있는 티아라의 금빛 눈동자를 지긋이 바라보며 속삭이듯이 말했다. “기뻐.” 짧은 단 한마디의 대답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시퀸의 모든 마음은 그대로 티아라에게 전해진 것 같았다. 티아라는 그대로 시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아까와는 다른 의미의 눈물을 쏟은 것이다. 무척이나 기쁘고 행복하다는 뜻의 울음을.... ‘잘 됐구나. 티아라.’ 티아는 아직은 서투른 둘을 보며 진심으로 잘 됐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아주 조금 이지만 용기를 내볼까 하는 마음을 먹게 됐다. ‘테이한테 저렇게 말하면 테이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곤란해 할까? 아니면 기뻐할까? 아니면....’ 42화 말괄량이가 오다!(1) 오스타인의 레어 안은 도저히 레드 드래곤의 레어라고 믿기 힘든 냉기가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오스타인과 세이르아는 레어 안에 냉기가 흐르는데도 식은땀을 흘리며 억지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러니깐 언니가 오빠랑.... 같이 살고 있다. 아기까지 키우면서.... 같이 산다 이거죠?” 레어 안에 흐르는 냉기의 원인인 서니는 목소리조차 냉기를 가득 담아서 말했다. “그..그렇단다. 얼마 전에 버려진 인간 아기를 주웠다고 당분간은 그 아기를 키우겠다고 테이가 찾아 온 적이 있단다.” 오스타인은 뺨을 타고 흐르는 땀을 닦으며 속으로 실수했다는 생각을 했다. 서니가 테이를 좋아하는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설마 이렇게 무섭게 질투할 정도로 좋아 할 줄 은 꿈에도 몰랐다. 그래서 별 생각 없이 테이의 안부를 묻는 서니에게 현재 인간 아기를 키 우면서 티아와 같이 산다고 사실대로 말하는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서니의 몸에서 풀풀 풍겨 나오는 냉기를 느끼고 속으로 아차했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지고 난 뒤였다. “그래서... 어디 있죠?” “으응?” “어디 있냐고요. 테이 오빠는.... 어디 있는 거죠?!” 결국 감정이 폭발해버린 서니는 무섭게 탁자를 내리치며 소리쳤다. 제법 단단한 탁자는 서니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쩍 소리를 내며 갈라졌고, 탁자 위에 있던 찻잔들이 큰 소리 를 내며 깨졌다. “어디 있는 거죠? 엄마 아빠는 알고 있죠? 가르쳐 줘요. 지금 테이 오빠가 어디 있는지!!” 서니의 몸에서는 냉기가 뿜어져 나오는데도 눈은 노려보는 대상을 녹여버릴 듯이 불타고 있었다. 오스타인은 서니에게 테이가 있는 장소를 가르쳐 줬다가는 절대 조용히 끝나지 않을 거라는 예감 에 고개를 저었다. “저..저기 우리들도 모른단다. 그..그렇지 허니.” “그..그렇단다. 티아와 테이는 같이 산다고만 말했지 어디 사는지는 절대 말하지 않았어. 정말이란다.” “거짓말.” 서니는 더욱더 눈을 부라리며 둘을 쏘아봤다. 보통 때라면 그렇게 노려보는 딸을 부모가 혼 내는 것이 보통이겠지만 지금은 철저히 서니가 주도권을 쥐고 있었고, 오스타인과 세이르아 는 찍소리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질투의 힘이란 그렇게 여러 가지 의미로 대단 한 것이다. “알고 계시죠?” “모..모른단다.” “알. 고. 계. 시. 죠?!” “그.. 저기....” “알. 고. 계. 시. 죠?!!” 오스타인은 더 이상은 한계라는 것을 느꼈다. 그래도 오스타인은 큰딸이 더 강하다는 것에 한 가닥 희망을 품고 어쩔 수 없이 말하기로 마음먹었다. 한편 니스나는 아까부터 세 드래곤의 대화에 끼어들지 못한 채 멍하니 차만 마시고 있었다. ‘웅. 내 기억을 되찾는 방법이란 것은 언제 듣게 되는 것일까?’ 내내 이런 생각을 하고는 있었지만 지금은 도저히 그것을 물어 볼 상황이 아니란 것을 멍한 성격의 니스나도 잘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뭐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지금 당장 급한 것도 아니고...’ 그렇게 쉽게 포기해버린 니스나는 탁자가 부서질 때 간신히 건진 자신의 찻잔에 담긴 맛있 는 차를 즐겼다. 언제 무엇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에서 조용히 차를 마시는 니스나의 모습을 제 삼자가 바라봤다면 ‘저 여자의 간은 얼마나 큰 것일까?’라는 의문이 들 것이다. 또는 ‘저 여자는 얼마나 바보인 걸까?’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아! 너무 맛있어. 저 죄송하지만 이거 한잔 더 마셔도 될까요?” 물론 정답은 후자였다. 니스나는 지금 분위기는 자신과는 관계없다는 듯이 - 실제로 관계가 없긴 없었다 - ‘맛있는 것을 먹어서 너무나 행복해’라는 표정으로 세이르아에게 차 한 잔 더 줄 것을 요구했다. 그 덕분이라고 해야 될까? 세 드래곤은 어이없다는 얼굴로 니스나를 바라봤고 차를 요구했던 니 스나는 세 드래곤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자 ‘왜 그러세요?’라는 표정으로 눈을 깜박거렸다. 뭐 덕분에 분위기는 누그러졌다. 아마도 그것이 니스나의 장점이라고 하면 장점일 수도 있었다. “자 다 됐다. 어때 실피온 기분 좋지?” “우 응.” 실피온은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방금 전 고생했던 일이 거짓말처럼 행복감으로 바뀌었다. “우리 귀여운 실피온! 아빠는 우리 실피온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힘든 일이라도 다 해줄 수 있어!! 왜냐하면 아빠는 실피온을 최고로 좋아하니깐!!” “나도 아빠 저아.” 실피온은 내가 뺨을 마구 부벼도 싫어하기는커녕 웃으면서 나를 좋다고 말해줬다. “이것이야! 이것 때문에 인간들은 고생한 보람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거야!” “겨우 애기 기저귀 하나 갈아준게 무슨 고생이야. 보람이라는 근사한 말을 사용할 정도는 아니잖아.” 티아는 어이없다는 목소리로 말했지만 나에게는 너무나 사이좋은 부자의 모습에 질투하는 목소리로 들렸다. “부러우면 부럽다고 솔직히 말하지 그래. 귀여운 실피온이 이 아빠를 따르니 부러운 거잖아.” “호오. 그러셔. 실피온 이리 와서 맘마 먹자.” “응!” 맘마 먹자는 소리에 내 무릎에서 애교를 떨던 실피온은 미련 없이 티아 쪽으로 아장아장 걸어갔다. 갑자기 허전해진 무릎이 시리도록 춥다고 느낀 순간 난 참지 못하고 티아에게 버럭 소리를 쳤다. “치사해! 여자의 무기를 사용하다니 그런게 어디 있어!!” “어머나.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건 여자의 의무야. 그걸 요즘은 무기라고 표현하는가 보지?” 으윽. 저 이겼다는 여유만만의 미소. 저것은 남자는 절대로 하지 못할 일이라는 자신감이 가득한 승리의 미소였다. 실피온은 내가 기저귀 갈아줬을 때보다 더 행복하다는 미소를 지으면서 티아의 젖을 먹고 있었고, 마치 내 패배를 결정짓는 미소 같았다. ‘인정 못해. 저 일은 나는 절대 못한다는 것은 잘 알지만 그렇다고 실피온에 대한 나의 사랑이 티아보다 못하다는 것은 인정 할 수 없어!’ 그래! 남자는 남자끼리 통하는 여자는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뜨거운(?) 세계가 있는 법! 나는 실피온을 강한 남자로 키우겠다고 마음먹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훈련을 오늘부터 시작해야 되겠다고 결심했다. “맘마 다 먹었어요? 우리 실피온 맛있었어요?” “응! 응!” “슬슬 실피온도 본격적으로 이유식을 생각해야 될 것 같구나. 뭐가 좋을까?” 그렇게 말한 티아는 서재로 가서 유아책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기회를 포착한 나는 미리 준비한 실피온용의 작은 목검을 잽싸게 실피온에게 쥐어줬다. 실피온은 자신의 손에 들린 목검을 들고 이게 뭐냐는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실피온 그것은 검이라는 거다. 우리 실피온은 남자니깐 강해지고 싶지? 모든 사람이 우 러러보는 용사가 되고 싶지?” 내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는지 실피온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긴 아직 세 살밖에 안된 아 기한테 이해를 바라는 것은 무리인가? 나는 최대한 쉽다고 생각되는 말로 실피온을 설득했다. “실피온 용사라는 것은 모든 남자들의 동경의 대상이자 남자들의 꿈이란다. 이 아빠는 결국 용사가 되지 못했지만 우리 실피온은 용사가 되었으면 좋겠단다. 이 아빠의 어린 시절의 꿈. 실피온이 이뤄주겠지?” 여..역시 아기한테는 아무리 쉽게 설명해도 무리란 말인가? 실피온은 여전히 전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젠장 이렇게 되면 용사니 꿈이니 하는 단어는 잠시 접어두자!!’ “실피온 아빠랑 같이 놀래?” 그래도 놀자는 말은 알아듣는지 실피온은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응! 파파랑 놀래.” 아이고 귀여운 것. 난 실피온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얼른 검을 쓰는 기초적인 방법을 가르쳐줬다. 실피온은 앙증맞은 손으로 서투르게나마 목검을 이리저리 휘둘렀고, 나는 가볍게 실피온의 공격을 방어했다. 처음에는 그냥 이리저리 휘두르던 실피온은 내가 맞지를 않자 심통이 났는지 마구잡이 공격을 시작했다. “이익! 이익!” ‘호오. 이거 꽤 자질이 있는 걸.’ 뭐 아기한테 천재적인 센스를 바랬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실피온의 지기 싫어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쩌면...’이라는 마음이 한구석에서 생겨났다. 그래서 처음에는 놀이로서나 마 실피온이 검술에 흥미만 갖게 하려던 당초 계획을 변경해서 조금 더 실피온의 자질을 이끌 어 낼 수 있는 연습 방식으로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크흑! 이거야. 여자는 절대로 알 수 없는 남자들의 세계! 아버지와 아들간의 끈끈한 검의 대화가 여자의 맘마에 뒤질 리가 없지!!’ 라고 감동을 해버린 것이 실수였다. 마구잡이로 검을 휘두르던 실피온의 손에서 목검이 날아 갔고, 감동에 빠져 있던 나는 미쳐 그것을 잡지 못했다. -와장창! 목검은 하필이면 티아가 가장 아끼는 꽃병으로 날아가서 박살을 내버렸다. 그리고 실피온은 꽃병이 깨지는 소리에 깜짝 놀라서 마마를 부르면서 서재로 뛰어갔다. 그리고 미쳐 내가 어떻게 대처하기도 전에 꽃병 깨지는 소리와 실피온의 비명을 들은 티아가 달려와 버렸다. “왜 이런 짓을 했는지 이유를 듣고 싶은데...” 티아는 깨진 꽃병과 바닥에 떨어진 자그마한 목검과 내 손에 들린 목검을 본 것만으로도 사태 파악 다했는지 차가운 표정으로 날 추궁했다. “아니.. 그게 사나이의 대화가... 실피온의 자질이 말이지....” “호오. 한 마디로 용사 놀이란 말? 자기가 어릴 때 못 이룬 꿈을 실피온에게 이루게 하고 싶단 말이지?” “하하하. 역시 티아는 사태 파악이 빠르네. 아 또 내 마음 읽은 거야?” “그 정도는 읽지 않아도 자기의 지난 행동 패턴을 생각해보면 금방 답이 나와.” 그렇게 말한 티아의 눈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보면서 나 역시 티아의 지난 패턴을 생각하니 뒤에 나올 말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문답무용이지?” “당연하지.” 아무래도 내 귀여운 아들 용사 만들기는 앞으로 수많은 난관에 부딪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아니 그것보다 지금 이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는 있으려나.... ‘하긴 지금까지 날 죽인 적은 없으니 그건 마음 놓아도 되겠지.’ 이런 생각을 하며 한편으로 약간 안심을 하는 내 자신이 어쩐지 밉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일상이었다. 나는 내일도 모레도 이 일상이 계속 될 거라고 믿었다. 그때까지는 믿고 있었다. “도대체 테이 머릿속은 무슨 생각으로 가득 찬지 한번 해부해 보고 싶다니깐. 아직 세살이야! 이제 막 말을 떼기 시작한 아기한테 무슨 용사 교육이란 건지.” “아. 예.” “정말 이해가 안가지? 그렇지? 우리 실피온은 지금은 교육보다는 잘 놀고 잘 먹고 건강하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니겠어?!” “그렇죠. 티아님 말씀이 맞으세요. 그런데 그 전에....” 티아라는 정말로 곤란한 표정으로 내 앞에서 쩔쩔 매고 있었다. 하긴 지금은 당장 처리할 서류가 산더미 같은데 서류는 손도 안 되고 불평만 늘어놓고 있었으니 곤란하기도 하겠지. 뭐 악의가 있어서 티아라를 곤란하게 만들 생각은 아니었기에 나는 오늘 들어왔다는 이상한 일에 관한 보고서를 집어 들었다. 내가 일을 하려고 폼을 잡아서인지 티아라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음 어쩐지 기분 나쁜데 그냥 다시 불평이나 늘어놔. 아니 그것보다 오늘은 이상하게 안절 부절 못하는 것 같네... 혹시....’ “티아라.” “네?” “오늘은 시퀸이랑 베이직 다리로 데이트 간다고 했었지?” 베이직 다리는 이곳 다이리 수도의 명물 연애 코스였다. 더구나 밤이 되면 으쓱한 장소가 많아서 혈기를 참지 못하는 젊은이들의 사고(?) 치는 코스로도 유명했다. “아..아니에요! 오늘은 시퀸 오빠의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러 가기로.... 앗!!” 역시나 내 생각대로였다. 그래도 이렇게 간단한 유도 심문에 걸려들다니.... 가끔은 티아라의 바보스러울 정도의 솔직한 점이 부럽기도 하지만 지금은 절대 아니다. “좀 부탁이니 그렇게 쉽게 걸려들지 말아 줬으면 좋겠다. 명색이 넌 카이저 드래곤의 그림자인데 이렇게 간단한 유도 심문에 걸려들어서야 쓰겠니?” “우우. 그럼 애초에 티아님께서 유도 심문 따위를 안 하면 되잖아요!!” “네가 내 불만도 듣지 못할 정도로 안절부절 못할 거면 처음부터 오늘 시퀸이랑 약속이 있어서 빨리 가봐야 된다고 솔직히 말했으면 되잖아.” “우우. 알았어요! 알았으니 어서 보고서나 봐주세요!!” “네. 네.” 티아라한테서 급한 보고서가 왔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솔직히 별거 없을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보고서에 적힌 상황은 급하지는 않았지만 이상했다. “뭐야 이거. 외곽 지역에 다량의 몬스터들이 돌아다닌다는 건 큰 사고라고 치더라도... 인명 피해가 하나도 나지 않았다니?! 이거 잘 된 거라고 해야 되는 거니?” “저한테 무슨 대답을 원하세요. 당연히 저도 몰라요. 지금까지 보고 된 것을 요약해드리면 몬스터의 대량 발생은 대략 4일전부터였습니다. 하지만 다량의 몬스터들은 마을로 들어와도 살인이나 약탈은 일체 하지 않은 채 마을만 한바퀴 돌아보고 사라졌다고 합니다. 마을 자위 대에게 공격을 받아도 반격을 일체 하지 않았다는 사례도 있습니다. 목격자들의 증언을 종합 해보면 하나의 결론이 나오는데... 몬스터는 무언가를 찾아다니고 있다고 합니다.” 서류의 증언 부분을 보자 티아라의 설명대로 몬스터들은 무엇인가 찾고 있는 모습으로 마을 곳곳을 뒤지고 다녔다는 증언들이 많았다. “무언가? 도대체 이 녀석들이 뭘 찾아다닌다는 거지?” “그것을 모르니 티아님에게까지 보고가 올라온 것입니다.” “하긴 그렇겠지. 마지막에 목격된 곳은 어디야?” “디뮤어 산 근처 마을입니다.” “디뮤어? 거기는!!!” 난 깜짝 놀라서 소리치면서 일어났다. 덕분에 손에 들고 있던 서류가 전부 바닥에 떨어졌지만 신경 쓸 틈이 없었다. 디뮤어 산은 바로 나와 테이가 살고 있는 오두막이 있는 근처였다. 순간 실피온을 떠올리고는 걱정을 했지만 곧 테이가 같이 있다는 생각이 들자 안심이 됐다. “그 근처라면 좀 더 손쉽게 몬스터들을 잡을 수 있겠네. 테이도 있으니깐.... 누가 무엇을 찾기 위해서 몬스터를 풀었는지 알아보고 알려 줄게.” “부탁드립니다. 티아님이 나선다면 이 일은 금방 해결이 되겠죠?” “아아. 염려 붙들어 매! 파팡하고 금방 해결해 줄테니깐.” 난 티아라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자신 있게 말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 정도 수의 몬스터를 다룰 수 있는 생명체는 오직 드래곤뿐이다. 그리고 그런 엉뚱한 짓을 할 드래곤이라면 생각나는 녀석은 하나뿐이었다. ‘설마 아니겠지. 그 녀석은 절대로 아닐 거야!! 라고 믿고 싶군.’ 그때는 진심으로 내 예감이 틀리기를 빌었다. 하지만 좋은 예감은 틀리고 안 좋은 예감은 잘 맞아 떨어지는 법인가 보다. 그 때의 난 행복한 우리 집이 파탄이 날 것만 같은 예감에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몬스터 박람회라는 것을 열어도 이렇게 많은 수와 여러 종류의 몬스터를 모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몬스터들이 머리를 조아린 채 벌벌 떨고 있는 모습은 인간이라면 믿기 어려운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하지만 예외인 인간도 있는 것인지 그런 모습이 별 로 신기하지 않다는 모습으로 멍하니 쳐다보는 인간이 있었다. 바로 니스나였다. “에 또.... 그러니깐 곤란하네요. 이 정도 수로도 그 분을 찾지 못했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 안하세요?” 니스나의 앞에는 각 몬스터들의 우두머리격인 몬스터가 머리를 숙이고 몸을 떨고 있었다. 겨우 인간 따위에게 라는 말을 써도 될 정도로 무력을 행사할 수 있는 몬스터가 니스나 앞 에서 이렇게 맥을 못 추는 이유는 바로 니스나 뒤에 버티고 서 있는 커다란 실버 드래곤의 존재 때문이다. “저 서니히아님께서는 아주 많이 화가 나 계신답니다. 그래도 넓은 마음으로 여러분들께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신다고 하니 앞으로 삼일. 태양이 세 번 뜰 때까지 임무를 완수해 주세요.” 니스나의 말이 떨어지자 여기저기서 안도의 한숨 소리가 새어 나왔다. “어머나. 안심하기는 일러요. 이 산맥의 크기를 봐서는 삼일도 적을 걸요. 잠 잘 시간도 없을 테니 열심히 해 주세요.” 니스나가 생긋 웃으면서 그렇게 부탁(?)하자 각 몬스터들의 우두머리들은 소리를 지르며 부하들을 닦달하기 시작했고, 몬스터가 모였던 광장이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동안이고, 몬스터들이 빠르게 빠져나가고 광장은 조용해졌다. 몬스터가 전부 사라지자 뒤에서 잠자코 폼을 잡으면서 보고 있던 서니가 어이없다는 목소 리로 말했다. “마지막 말은 내가 시킨게 아니잖아.” “네.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다들 좀 더 열심히 찾아 줄 것 같아서요. 저어 제가 너무 주제넘은 짓을 했나요?” “.......” “왜 그러세요?” “아니 그냥 어쩐지 기억을 잃기 전의 너는 생각보다 무서운 성격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어째서요?” 니스나는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설명을 요구했지만 서니에게는 그 질문에 답해 줄 대답이 없었다. 정말로 어쩐지 그런 기분이 들었고, 확인해보는 것이 무섭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어쩌면 넌 그냥 그대로 기억을 잃은 채 있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에에?! 어째서요?” “그냥 그런 생각이 갑자기 들은 것뿐이야. 골치 아프니 이 문제는 그만 넘어가자.” 니스나는 여전히 서니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지만 곧 착하게 예라고 대답했다. 그런 니스나의 모습을 볼 때마다 서니는 니스나의 본 성격이 정말로 착할지 아니면 악녀 기질이 있을지에 대해서 궁금증만 더해갔다. 물론 그것을 확인하고 싶은 생각은 요즘 들어서 점점 옅어져 가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서니에게 있었다. “호호호. 이제 곧 마귀 할멈같은 언니의 손에서 오빠를 구할 날도 멀지 않았어!” “마귀 할머니요? 서니님의 언니 되시는 분은 드래곤이 아니셨나요?” 니스나의 질문은 기껏 한껏 분위기 잡던 서니에게는 힘이 쭉 빠지는 소리였다. 서니는 요즘 들어서 니스나와 대화를 하다보면 이마에 주름살이 팍팍 느는 기분을 느꼈다. “그게 아니라 언니의 성격이 마귀 할멈같다는 소리였어. 당연히 내 언니도 드래곤이 맞아. 어둠의 일족인 마귀 할멈과는 관계없어. 관계있는 것은 성격 하나 뿐일걸.” “그렇게 성격이 나쁘신가요?” “당연하지!!!” 서니의 노란색 눈동자가 광채를 발했다. 그 모습은 마치 그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이 보였다. “도대체가 언니는 옛날부터 매일 오빠 곁에서 떨어지질 않았다고!! 해츨링이었던 내가 억지로 엄마 졸라서 오빠를 만나러 가도 오빠는 언니한테 끌려서 어디론가 가버리고 없 었지! 겨우 언니가 인간들 나라에 가버려서 오빠는 나의 것이라고 좋아했는데 언니가 무 슨 짓을 했는지 오빠는 바로 동면에 들어 가버려서 지난 백년간 얼굴도 못 봤다고!! 더구 나 옛날에는....” 끝이 있을 것 같지 않은 서니의 불평을 들으며 니스나는 물어보지 말 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니스나는 몇 시간 동안 계속되는 서니의 불평을 잠자코 경청할 수밖에 없었다. 티아의 방해로 실피온 용사 만들기가 실패했지만 난 포기하지는 않았다. 더구나 오늘은 티아는 급한 일로 자리를 비웠다. 즉 찬스가 왔다는 소리다. 난 전에 썼던 목검을 허리 뒤춤에 숨기고 애교를 잔뜩 넣은 목소리로 실피온을 불렀다. “실피온 아빠랑 같이 놀래?” 실피온은 티아가 사다준 쌓기 놀이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내가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시저. 나 이거하고 놀 거야.” 라고 내 가슴에 대못을 박는 말을 했다. ‘흑. 티아가 사준 장난감에 졌어!’ 젠장! 그렇다고 내가 물러설 것 같으냐?! 남자가 검을 뽑았으면 뭐라도 베야 되는 법! “실피온아~ 바깥 날씨도 엄청 좋은데 밖에서 아빠랑 같이 칼싸움 하자. 이번에는 아빠가 많이 맞아 줄게. 응? 응? 제발 이 아빠랑 같이 놀자.” 목검을 실피온 손에 반강제로 쥐어주면서 거의 애원하다시피 매달렸다. 한심하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때의 나는 이미 아버지의 위엄 따위는 저 멀리 날려버린 상태였다. ‘그래! 사나이는 대업을 위해서 얼마든지 쪼잔해 질 수 있는 거야!!’ 그렇게 마음속으로 위로를 했지만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서 무언가가 부서지는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도 내 노력이 결실을 맺었는지 실피온은 목검을 들고 골똘히 생각하더니 금방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미소를 보자니 역시 자존심은 일단 버리고도 볼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만이 맞아 주거지?” 실피온의 그 한마디에 내 미래가 갑자기 암울해지는 기분이다. 역시나 자식 교육을 티아에게 맡겨 뒀더니 애가 이상한 방향으로 크는 것 같다. ‘이래서는 안돼! 역시 아들 교육은 아버지인 내 손으로 해야 되는 거야! 두고 보자 티아! 실피온은 반드시 정상적(?)인 용사로 키우고 말겠어!!’ 그렇게 야망을 불태우며 난 실피온을 안아서 마당으로 나왔다. “우와아!” 밖은 아까 내가 말했던 대로 따뜻한 햇볕과 시원한 바람이 함께하는 최고의 날씨였다. 실피온도 날씨가 마음에 들었는지 무척이나 만족한 얼굴로 생글거렸다. 그 모습을 보니 역시 내 아들이 세상에서 제일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날 내가 어렸을 때는 우리 부모님의 못 말리는 팔불출 성격에 한숨지었지만 막상 내가 부모 입장이 되어보니 당시의 우리 부모님 성격이 십분 이해가 갔다. 팔불출이라고 손가 락질 받아도 좋다. 지금 내 심정은 실피온을 등에 태우고 다니며 전 세계 인간들에게 자 랑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빠빠! 몸에서 빛나!!” “어? 에에?!” 실피온의 놀란 목소리를 듣고 퍼뜩 정신을 차린 나는 폴리모프 주문의 해제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소스라치게 놀라버렸다. 급히 주문 해제를 중지했지만.... 설마 무의식이 의식을 잠재우고 내 몸을 멋대로 움직일 줄이야. 하마터면 정말 드래곤 모습으로 변해서 실피온을 등에 태우고 세계 일주를 할 뻔 했잖아!! ‘내.. 내 몸이 내가 아닌 것 같아서 두렵다.’ “빠빠 아파?” 크흑 저 커다란 눈망울로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날 걱정 해주다니.... “이 아빠는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구나.” “응?” 내 감격에 겨운 말이 너무 어려웠는지 실피온은 이해를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야. 아빠 혼자 말이야. 자 그것보다 이제부터 신나게 놀자!” “응!” 놀자라는 말에 실피온은 다시 금방 생글거리면서 웃었다. “빠빠 많이 맞아 줘야 돼!” “그..그래.” 아무래도 이건 확실히 고쳐줘야겠다는 다짐을 다시금 하게 됐다. 티아의 폭력은 어느 사이엔가 당연한 것처럼 되어 있는 상태다. 실피온까지 그 물에 들어버리면 내 인생은 지옥일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 안 맞아 주면 삐져서 바로 재미없다고 할 텐데... 그렇게 되면 실피온 용사 만들기 계획에도 차질이 생길 테고.... 나보고 도대체 뭘 어쩌라고?!!’ 진퇴양난이다. 하지만 많이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실피온의 방실방실 웃는 모습을 잠시 쳐다보고 있자니 오늘 하루정도는 마구 맞아 주자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 아기한테 맞아봤자 아플리도 없으니.... 정신 교육은 실피온이 검술 연습에 맛을 들이고 난 뒤에 해도 충분하겠지.’ 난 미래를 위해서 투자한 셈 치고 당장은 참기로 마음을 굳혔다. “빠빠 간다!” 그렇게 소리친 실피온은 귀엽게 아장거리면서 목검을 휘두르며 덤벼왔다. 그런데 실피온의 귀여운 모습에 감동하고 있을 때 갑자기 초를 치는 존재들이 나타났다. “빠..빠빠!” “고블린? 어째 서지? 지금은 낮인데!!” 마당 건너편의 숲이 조금 소란스러워진다 싶더니 곧 한 떼의 고블린들이 나왔다. 고블린을 본 실피온은 비명을 지르며 내 품에 뛰어들었고, 난 그런 실피온을 품에 앉고는 목검을 고 쳐 쥐었다. 그리고 내 입가에는 회심의 미소가 지어졌다. ‘실피온에게 멋있게 보일 수 있는 기회다!!’ 그런 생각을 한 나는 갑자기 나타난 고블린들이 그 순간만큼은 이뻐 보인다는 착각까지 들었다. “우르르.” “우르르르.” “우르우르.” “우르르르르!!” 고블린들은 나를 보더니 지네들 말로 뭐라고 속닥거리더니 한 마리가 갑자기 크게 괴성을 질렀다. ‘그래 덤벼! 어서 덤벼! 빨리 덤벼! 막 덤벼! 너희들의 희생을 절대 잊지 않으마!’ 그렇게 나는 속으로 신나하고 있었지만 고블린들은 내 생각과는 달리 덤벼들지도 약탈하지도 않고 바로 도망쳤다. 내 [실피온에게 아빠의 멋진 모습 보이기]가 너무나 어이없게 무산 되어 버린 것이다. 더구나 그 고블린 중에 하나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 신경 쓰였다. “찾았다라고? 도대체 뭘?” 어이없는 기분으로 멍하니 고블린들이 사라진 장소를 보고 있을 때 내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있던 실피온이 살며시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봤다. 징그럽게 생긴 고블린들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실피온은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빠빠 무서워. 힝. 히잉.” “어? 아아. 자 이제 괜찮아 실피온. 아빠가 무서운 괴물들 다 쫓아 버렸어.” 실은 내가 무엇을 하기도 전에 고블린들이 그냥 가버린 거지만 뭐 어차피 덤벼들었다 하더라도 내 손에 무사하지는 못했을 테니 완전 거짓말도 아니겠지. “응. 빠빠 고마워. 빠빠가 조아.” 그 한 마디에 난 온 세계를 얻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재차 확인 삼아 물었다. “저 엄마보다 아빠가 더 좋지?” “응.” 손등으로 눈물을 닦던 실피온은 내 질문에 웃으면서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 대답으로 난 온 우주를 얻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 이 얼마나 감동적인 말인가?! 엄마보다 아빠가 더 좋다는 그 말!! “나도 실피온이 최고로 좋단다!!” 조금 이상한 일이었지만 그래도 그 덕분에 이렇게 멋진 선물을 얻게 됐으니 아까 그 고블린 들에게 마음속 깊이 고맙다는 생각을 했다. 덕분에 신경 쓰이던 고블린들의 찾았다라는 말을 신경 쓰지 않는 누를 범해버렸다. 정말 실수였다. 만약에 조금만 이성이 남아 있었더라면 그 뜻을 알아차리고 피난이라도 갔을 것이다. 하지만 후회하기에는 이미 늦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저녁때 그 녀석이 찾아 왔을 때였다. 쾅! “오빠! 드디어 찾았어요!!” 그녀가 찾아 온 것은 저녁준비에 바쁜 때였다. 저녁때에도 못 돌아온다는 티아의 말을 들었기 때문에 앞치마를 두르고 저녁 준비 중이던 나는 문을 부수듯이 열고 들어온 그 녀를 보고는 손에 든 깎다 만 감자를 떨어트리고 말았다. 그리고 떨리는 손을 들어 그녀를 가리키며 역시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내뱉었다. “서..서니? 네가 어떻게 여기를....” “사랑의 힘이에요. 오빠!!” 도대체 무슨 사랑?!이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서니는 그 틈도 주지 않고 나를 와락 껴안았다. 무방비 상태였던 나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무의식적으로 손에 잡히는 무언가를 잡았는데 그 무 언가가 하필이면 보글보글 끓고 있던 슈트 냄비였다. “으아아악! 뜨거워!!!” “오빠?! 괜찮으세요?! 오빠 죽지 말아요!!” 서니는 비명을 지르며 내 목을 붙잡고 아주 열심히 흔들었다. 덕분에 이번에도 하고 싶었던 말은 목구멍에서 삼켜야만 했다. ‘넌 슈트 뒤집어쓴다고 죽는 드래곤이라도 봤냐? 도대체 여자들은 내가 쓰러지면 목부터 잡고 흔드는 이유가 대체 뭐냐고?!! 그리고 다른 의미로 전혀 괜찮지가 않아!!!’ 그렇다. 서니가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난 그 순간부터 난 전혀 괜찮지가 않았다. 그런 정신없는 와중에도 나는 잠시 후면 티아가 돌아온다는 사실을 기억하고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서니를 돌려보내야 된다는 사명감을 불태웠다. 이대로 둘을 만나게 했다가는 이 평화로운 집안이 깨지는 것은 시간문제기 때문이다. “지금 뭐하는지 물어봐도 될까?” 재수가 없으면 왜 이렇게 일이 꼬여가는 걸까? 나는 귀에 익은 여자의 목소리를 듣고는 눈물을 삼키며 행복한 내 가정에 작별 인사를 고했다. ‘안녕 그렇게 평화롭지는 않았지만 행복했던 내 가정이여....’ 저녁 늦게 온다던 티아는 어느새 왔는지 실피온을 안은 채 날 부둥켜안고 있는 서니를 보며 나에게 싸늘한 어투로 다시 한번 물었다. “지금 뭐하고 있는지 물어도 될까? 자기야.” 무슨 대답을 원하는데? 무슨 변명을 해도 결과는 문답무용일게 뻔하잖아! “호오. 자기야 라니 언니가 그렇게 부를 자격이라도 있어?” 티아의 이마의 혈관이 순간적으로 불룩하게 튀어 나온 것처럼 보인 것은 내 눈의 착각이 아닐 것이다. 그래도 여러 의미로 대단한 티아는 바로 폭발하지는 않았다. “어머 이게 누군가 했더니 우리 실피온의 이. 모가 왔구나. 귀여운 우리 실피온 보러 여기까지 와준거니?” “호호호. 누가 이모라는 거야? 언니의 가정 따위는 내 알바 아니야. 난 그저 불쌍한 우리 테이 오빠를 구하러 온 거야.” “우리 실피온의 아빠가 뭘 어쨌기에 구한다는 이해도 되지 않는 말을 하는 이유는 뭐니?” “호오. 모른 척 하시겠다 이거야? 언니가 오빠를 강제로 붙잡고 있다는 사실을 하늘도 알고 땅도 알고 있는 걸.” “너 한동안 못 보는 사이에 착각의 수준이 하늘을 찌를 경지에 이르렀구나.” “언니야 말로 남자 납치하는 솜씨가 수준급인걸? 그 솜씨로 지금까지 울린 남자가 도대체 얼마나 될지 상상하니 소름이 끼쳐.” “그거 혹시 네 이야기 아니니?” “호호호호. 무슨 농담이야?” “호호호호. 농담 아니야.” 무..무섭다. 이 상황은 정말 무섭다. 마치 폭풍 전의 고요같은... 또는 전쟁 직전의 침묵 같은 이 상황에 끼여 있는 나에게 언제 불똥이 튈지 모른다는 사실이 공포가 되서 몸이 떨렸다. 티아에게 안겨 있는 실피온도 나와 같은 불안을 느낀 건지 티아와 서니를 번갈아 보면서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아빠로서의 피가 타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 아들이 무서워하고 있는데 같이 무서워하는 것은 아빠는커녕 남자도 아니야! 여기서 물러서면 안돼! 넌 할 수 있어 테이루아!’ 그런 결심이 나로 하여금 엄청난 일을 하게 만들었다. 바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여자들 사이에 끼어 든 것이다. 내가 미쳤지. “저기 잠깐만 진정들하고....” “자기는 빠져!” “오빠는 빠져!” 으윽 역시 만만치 않구나. 평소의 나라면 여기서 네라고 대답하고 바로 빠졌겠지만 이미 결심을 굳힌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아니 물러서기는커녕 지금 생각하면 말리 는 연습 좀 할 걸이라고 땅을 치고 후회할 말을 해버린 것이다. “저기 일단 진정하고 우리 대화로 풀자. 나 때문에 그렇게 싸우니 기분이 좋기는 하지만 애 앞에서 이게 무슨 추태야. 어른답게 대화로....” 난 거기까지만 말하고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두 여자가 무서운 얼굴로 나를 쳐다봤기 때문이다. 주..죽음의 예감이 느껴진다아!! “누가....” 제일 먼저 티아가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오빠아!” 그리고 연이어 서니가 인상을 있는 대로 구겼다. “누가 자기 때문에 싸운댔어?!” “날 누구 같은 폭력녀와 똑같이 취급 하지 마!!” 그런 외침이 들림과 동시에 내 눈에서 별똥이 튀었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집 앞 마당에 쓰러져 있었다. 으.. 날아가다가 추락한 것인가? 지붕을 뚫고 날아가서 추락한 탓인지 안 쑤신 데가 없었다. 그런 내 눈 앞에 처음 보는 인간 여자가 놀란 토끼 눈으로 날 쳐 다보고 있었다. “저기 살아 있으세요?” 그 여자가 누군인지는 지금 당장 나에게 중요한 일이 아니다. 나에게 중요한 일은.... “아뇨. 주..죽을 것 같아요. 제가 도대체 무슨 잘 못을 했다고 이런 꼴을 당해야 될까요?” 누구라도 좋으니 신세 한탄을 늘어놓는 일이였다. 내 질문에 여자는 고개를 갸웃하고 곰곰이 생각을 하더니 알겠다는 듯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지붕을 뚫고 날아갈 정도로 잘못을 하신거 아닌가요?”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일말 위로의 말을 기대했던 나는 여자의 대답에 황당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일순간이지만 잠시 동안 아픈 것조차 잊어버렸다. “저기 그런데 누구시죠?” 여자의 황당한 대답 덕분에 신세 한탄할 생각이 없어진 나는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여자의 신원부터 확인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 여자는 내 질문에 대답을 할 생각이 없는지 내 뒤쪽 을 멍하니 바라보며 말했다. “저기 그것보다 저거 괜찮을까요?” “예? 뭐가요?” “집... 무너지고 있어요.” 여자가 가리키는 방향을 쳐다본 나는 굳이 여자의 설명을 듣지 않더라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각종 마법에 의해서 무너지는 오두막집의 모습은 한 마디로 처참한 참 상이었다. “집이... 가정이.... 내 행복한 가정이!!!” 내 피 맺힌 절교는 아랑곳없이 평화롭지는 않았지만 행복했던 내 가정이 서서히 무너져 갔다. 창조신이시여!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런 재앙을 내리십니까?! 전 그저 내 긴 인생 중에 단 한순간이라도 평범하게 행복한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살아 보고 싶었을 뿐이란 말입니다!! 참상이 생긴지 서너 시간 후... 졸지에 집 잃은 우리 가족은 별 수 없이 티아의 신전으로 와 있었다. 물론 골치덩어리인 말괄량이 서니와 아까 나를 잠시 황당함 속에 몰아넣었던 여자도 같이 왔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겨우 티아와 서니가 흥분을 가라앉힌 다음에야 나는 그 여자의 정체에 대해서 들을 수가 있었다. “기억 상실증?” “응. 내 레어 근처 계곡에서 죽어가던 니스나를 구한 것 까지는 좋았지만 이름도 신원도 아니 어느 나라 인간인지 조차도 모르는 실정이야.” “그렇게 된 겁니다. 잘 부탁드려요.” 그렇게 말하면서 꾸벅 고개를 숙이는 니스나를 보고 있자니 순간 정말로 기억 상실증에 걸린건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기억 상실증에 걸린 여자 치고는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지나치게 밝았다. 아니 밝은 성격이라기보다는.... “아~~ 이 차 너무 맛있네요. 한잔 더 마셔도 될까요?” ...곧 죽어도 마이 페이스라는 성격이군. “말씨를 봐서는 동쪽 국가 사람 같은데요.” 니스나의 찻잔에 차를 따라주던 티아라가 그렇게 말하자 티아가 고개를 끄떡였다. “응 확실히 말씨가 다이러스 제국을 포함한 서쪽 국가들과는 틀려. 니스나가 사용하는 어투는.... 흠. 어쩌면 오리하곤 왕국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제가 오리하곤 왕국의 사람....” 티아의 말에 니스나는 고개를 푹 숙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런 역시나 기억 상실증을 신경 쓰고 있었던 것인가? 고개를 푹 숙이고 울먹이는 니스나를 보고 있자니 아까 전에 마이 페이스 성격 어쩌고라고 멋대로 생각했던 게 미안해졌다. “저. 일단 오리하곤 왕국에서 살았다는 단서를 잡은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잖아요. 이제 곧 기억을 되찾을 수 있을테니 너무 걱정 마세요.” 내 위로가 통했는지 니스나는 고개를 들고 나를 쳐다봤다. 나는 그런 니스나에게 괜찮으니 안심하라는 의미로 웃어줬다. 그런데.... “아 죄송합니다. 방금 뭐라고 하셨죠? 너무 피곤해서 나도 모르게 깜박 졸아버렸어요.” 난 미소를 짓던 그 얼굴 그대로 멍청하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지금 내 얼굴 심하게 경련을 일으켜서 이상한 표정이겠지? “오빠 미안해. 원래 저런 건지 기억 상실증이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니스나의 성격이 좀 맹한 편이야.” “어라? 저 성격이 맹한가요? 기뻐라! 또 새로운 사실을 발견한거네요!” ‘어째서 그것이 기뻐해야 될 일이야?!’ 아마도 지금 이 자리에 모인 모두는 - 니스나와 실피온을 제외하고 - 나와 똑같은 말을 하고 싶은걸 꾹 참고 있을 거라는 예감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모두의 표정을 보니 내 생각이 틀리지도 않은 것 같았다. 고개를 설래설래 흔들던 티아는 박수를 두어 번 쳐서 분위기를 환기시키고는 말했다.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 일단 자고나서 내일 생각해보자. 피곤한 머리로는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를 것도 안 떠오를 테니 내일 아침에 앞으로 해야 될 일을 생각하자.” “동감.” “그렇게 하죠.” “이번만큼은 언니 의견에 따라주겠어.” 서니야. 조용히 좀 넘어가면 어디가 덧나니? 티아는 서니의 대답에 한번 해볼테냐는 표정으로 노려보다가 곧 표정을 풀어버렸다. 아무래도 참기로 한 것 같은데 그 짧은 시간동안 나는 마치 긴 시간이 흐른 듯한 긴 장을 느껴야 됐다. 이런 나날이 계속되다가는 나 언젠가는 노이로제에 걸릴 거야. 하아. 노이로제 걸리는 드래곤이라... 이건 이것 나름대로 드래곤 역사에 한 획을 그을지도.... ‘긋고 싶지 않아.’ 그 날 밤은 티아라의 저택에서 신세를 지기로 결정돼 있었다. 인간의 모습으로 신전같이 넓은 장소에서 자기는 좀 그렇고, 그렇다고 드래곤으로 지내자니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 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장에 나와 티아 그리고 서니까지 폴리모프를 풀어버린다면 아무 리 넓은 신전이라도 단번에 부서질 것이다. “미안해 티아라야. 오늘 밤은 신세 좀 지자.” “티아님도 무슨 신세라는 말까지 사용하세요? 그냥 자기 집이다 생각하시고 편하게 지내세요.” “고마워.” “아이 참 티아님도. 자 실피온님 티아님께 가셔야죠.” 아. 깜박하고 말 안했는데 실피온은 아까부터 티아라가 안고 있었다. “시져. 무서!” 그 이유는 실피온이 티아를 겁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긴 실피온을 안은 채 그 난리를 폈으니 겁 안 먹을 아기가 있을 리가 없다. “흐윽. 실피온아 엄마야. 아까는 미안해. 제발 엄마를 버리지 마!” 티아가 망가지는 모습은 대단히 오랜만에 보는군. 그 대단한 티아도 실피온이 자기를 피하는 것이 무척이나 충격이 컸는가 보다. “시저! 시저!” 실피온은 티아라의 가슴을 꼭 붙잡고 떨어지지 않았다. 그 모습에 눈물을 훔치는 티아의 모습이.... “이게 다 너 때문이야! 이 말괄량이야!!” 거참 동정할 틈도 안주고 부활하는 군. 어떤 의미로 정말 대단한 여자다. “내가 뭘 했다고 나한테 죄를 뒤집어씌우는데! 먼저 공격한 쪽은 언니였어!!” “네가 먼저 이 언니 속을 뒤집어 놨잖아! 아무튼 절대 용서 안 해! 실피온이 날 싫어하게 되면 그건 전부 네 잘못이야!!” “아 그렇게 된다면 걱정 안 해도 돼. 내가 언니 대신에 오빠의 상냥한 부인과 아기의 좋은 엄마가 되 줄게.” 난 그건 절대 사양하고 싶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솟아 오르는 것을 겨우 참았다. 하지만 나는 참아도 티아는 더 참을 수 없는 것 같았다. “이 말괄량이! 이번에는 용서 안 해!!” 티아의 손에 맺히는 주문을 보고 난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라버렸다. 저건 틀림없는 냉기계의 최강 마법 아이스 샤워! 진심으로 서니를 보내버릴 셈인거야?! “난 용서 받아야 될 짓을 한 기억 없어!” 서니는 티아보다 마력도 약하고 성룡이 된지 얼마 안되기 때문인지 겨우 냉기계의 중급 마법인 니들 아이스를 시전 했다. 휴 저건 안심이다. ...안심을 하면 안 되잖아!! “제발 부탁이니 둘 다 그만 둬!” “말리지마!! 말리면 테이 너부터 날려 버린다!” “오빠 말리지 마! 사랑은 싸워서 쟁취하는 거라고 책에서 봤었단 말이야! 오늘이야말로 오빠를 가져오고 말겠어!!” “내가 물건이냐?! 서니야 제발 부탁이니 이상한 책 보고 엉뚱한 것 배우는 짓 좀 그만해라!” 그 덕분에 나는 서니가 어릴 적에 참 말도 못할 여러 가지 일을 당했다. 으으. 그 추억을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골치가 아파 온다. 아무튼 내 필사적인 만류에도 불구하고 둘은 여차하면 마법을 날릴 태세를 갖추었다. 아아 이제 끝장이다. “저기요. 이 신전도 아까 오두막처럼 개 박살이 나는 건가요?” 엄청나게 기운이 팍팍 빠지는 말을 한 것은 바로 니스나였다. 그런데 그 덕분에 티아도 티아라도 할 말을 잃었다는 표정으로 니스나를 바라보는 바람에 분위기가 잠시 누그러졌다. 니스나는 자신에게 시선이 집중되자 헤헤 웃으면서 특유의 느긋한 말투로 말했다. “만약에 부서질 거라면 미리 도망치게요. 아까 테이님께서 말려들어서 다치는 걸 봤더니 무서워서요.” 저 표정 어디가 무서워하는 표정일까? 그런 심각한(?) 고민에 빠진 덕분에 나는 둘을 말려야 된다는 사실을 잠시 잊어먹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티아도 서니도 싸우는 중이 라는 것을 잊어먹은 것 같다. 둘은 어느새 손에 맺힌 마법을 풀어버린 것이다. “어라라? 안 싸우실 건가 보죠? 정말 다행이에요.” 절대 일부러 저러는 것처럼은 안보였다. 저게 천성적인 성격이라면 정말 대단한 성격이다. 뭐 덕분에 2차 참상은 면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될까? 만약에 여기서 아까 같은 싸움이 일어났다면 신전 하나 부서지는 걸로 끝나지 않았을지도 모를 노릇이니.... 하지만 어째 이제부터가 시작일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43화 리엘리아의 눈물 젖은 탈출기(1) 저의 이름은 리엘리아입니다. 저는 원래 아무 걱정 없는 숲에서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아니 실은 무의미한 하루하루를 보내던 엘프였습니다. 그런 저에게 작은 위안거리가 있다면 우연히 사귀게 된 인간 친구의 존재입니다. 친구의 이름은 리이나입니다. 저는 엘프 주제에 활도 못 쏘고 정령 마법은 서툴렀고, 달리기도 느리며 더더구나 엘프 라면 반드시 지닌다는 진실의 눈조차 없는 반쪽 엘프였습니다. 그런 저에게 어린 나이 에도 자신이 해야 될 일을 찾아서 최선을 다하는 리이나의 모습에 반했고, 저 역시 그런 리이나처럼 되고 싶었습니다. 리이나는 인간들의 나라 중 오리하곤 왕국이라는 곳에 살며 왕국의 시녀였습니다. 하지만 꽤나 높은 위치인지 굉장히 자유로워 보였습니다. 그렇다고 태만하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앞에도 말했듯이 리이나는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의 일이 아니더라도 자기의 힘을 필요로 한다면 절대 마다하지 않는 착한 인간이었습니다. 처음 리이나를 만났을 때도 리이나는 멍청하게 함정에 빠졌던 절 구해주었습니다. 그 때문 에 여기저기 상처가 났는데도 리이나는 오히려 웃으면서 나에게 다친데 없냐고 물었습니다. 그때부터 리이나는 저의 우상이 되었고, 전 리이나에게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약간의 호신 술도 배웠고, 정령마법이 서투른 날 위해서 인간들의 비싼 정령 마법책도 선물 받았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인간들의 마법책으로 정령 마법을 배워야 되는 엘프라는 상황이 달갑지 않았 지만 내 친구 리이나는 그런 나에게 과정이야 어찌됐던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 최선을 다하 는 것과 결과라고 위로해줬습니다. 그런 친구의 따뜻한 위로와 격려 덕분에 어느 정도 정령 마법의 실력도 늘었습니다. 저에게 리이나는 최고의 친구입니다. 하지만 내 인생은 왜 이리도 기구할까요? 리이나가 어느 날 갑자기 급한 일이라며 나에게 중대한 일을 맡겼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불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그래도 내가 존경하는 친 구가 당장에 날 믿고 의지한다는데 힘을 얻어서 리이나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습니다. 지금 되돌아 생각하면 내가 미쳤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실은 리이나가 부탁한 일은 간단한 일이였습니다. 자신은 지금 쫓기고 있는데 추적자를 따 돌릴 동안 아기 하나를 인간들의 나라 중 다이러스 제국으로 데려가 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추적자를 따돌리고 자신도 금방 뒤따라가겠다는 친구의 말에 불안했지만 용기를 내서 출발을 했습니다. 그것이 모든 불행의 시작이었습니다. 분명 안전한 숲의 길이라고 여겼는데 뭐가 잘못 됐는지 고블린들의 영역에 들어 가버려서 쫓겨 다녔습니다. 그 와중에 그렇게나 힘들었던 바람의 정령을 부리게 된 것이 그나마 위 안거리라고 할 수 있겠네요. - 겨우 하나만 계약을 했지만요. - 저는 아기를 실프에게 맡기고 고블린들을 따돌리기로 했습니다. 적어도 혼자라면 쉽게 도 망칠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었습니다. 그 계산대로 난 간신히 고블린들을 따돌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신이 만든 불행의 운명 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막 계약했던 그 멍청한 실프가 안전한 장소로 아기를 숨기라고 했 는데 드래곤의 레어에 아기를 갖다 놓은 것입니다. 그때는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습니다. 당신 얼마나 제 정신이 아니었으면 아기를 구출하는 드래곤 슬레이어 엘프가 되는 망상을 했을 정도입니다. - 현실도피의 도를 지나 친 거죠 - 그런데 더 미치고 팔딱 뛸 일은 그 레어에는 드래곤이 없었습니다. 더불어 아 기가 있던 바구니도 없었습니다. 아마도 드래곤이 어딘가로 데려갔던가 아니면 버렸겠죠. 먹어 버렸을 가능성도 있기는 하 지만 그 가능성은 되도록이면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중입니다. 솔직히 그 죄끄만 아기의 어디에 먹을게 있다고 드래곤이 먹었을까요? 그렇죠? 제발 그렇다고 해주세요. 그 뒤로 저는 그 금방을 샅샅이 뒤졌지만 드래곤도 아기도 발견 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저는 혼자서 찾는 것의 한계를 느끼고는.... 아니 이왕 일이 이렇게 된 것 솔직히 말하면 아기의 수색 중에 또 고블린 무리들과 부딪쳐서 도망을 치느라 별 수 없이 그 자리를 벗 어나게 됐습니다. 아무래도 혼자서는 무리일 것 같아서 리이나와 합류 후에 방법을 논의 하기로 마음먹은 것입니다. 물론 엄청나게 혼이 날것을 각오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친구이니 설마 죽이기야 하겠 냐는 생각에 리이나와 약속한 마을에 갔습니다. 전 그 마을에서 리이나만 만나면 만사가 해결 될거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재수가 지지리도 없던 저는 리이나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때는 리이나가 단순히 늦는 것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마을에서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문제에 부딪쳤습니다. 워낙에 급하게 출발을 해서 내 수중에는 인간들의 돈이 한 푼도 없었습니다. 리이나가 준 여행경비도 아기 바구니에 들어 있었기 때문에 꼼짝 없이 인간마을에서 굶어 죽을 지도 모른다는 위기가 닥쳐 온 것입니다. 그때는 이보다 더 불행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늘이 도왔는지 처량 하게 마을 광장에서 훌쩍이는 마음씨 인심 좋아 보이는 인간 할아버지가 말을 걸어왔습니다. 그리고 내가 배가 고프다는 것과 잘 곳이 없다는 것을 안 할아버지는 저를 할아버지의 집에 묵게 해주셨습니다. 기다리는 사람이 올 때까지 마음 편하게 있으라는 다정한 말도 해주셨 습니다. 정말 그때는 천사라도 만난 것 같았습니다. 리이나가 인간들 중에는 나쁜 인간도 많으니 조심하라는 충고를 들었지만 저는 운이 좋아서 리 이나같은 좋은 인간을 만났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 할아버지가 주신 음식을 먹고는 정신없이 자버렸는데 일어나보니 원 험상궂은 남자들이 저 옆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영문을 모르던 저는 두툼한 돈 주머니에 남자들에게 팔려버렸습니다. 설마 그 인상 좋던 할아버지가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습니다. 이것이 리이나에게서 말로만 듣던 인신매매... 아니 저는 엘프니깐 엘프매매겠네요. 아무튼 그 나쁜 짓을 내가 당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것은 현실이었습니다. 나에게 온갖 겁을 주던 나쁜 인간들이 절 데려간 곳은 다이러스 제국이라는 나라였습니다. 어느 커다란 도시로 끌려온 나는 지하 깊숙한 비 밀 방에서 지내다가 결국 말로만 듣던 경매라는 곳에 서게 됐습니다. 거의 인생을 포기했던 나는 그래도 날 겁주던 남자들의 ‘좋은 사람에게 팔아주겠다’는 약속을 믿었습니다.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죠. 하지만 그 마지막 지푸라기도 날 배신했습니다. 저는.... 저는.... “어이 엘프 노예. 주인님께서 부르신다.” 리엘리아는 한 맺힌 지난날들의 일대기(?)를 적는 와중에 체격이 건장한 남자가 부르자 몸을 떨었다. 하지만 몸은 리엘리아의 의지와 관계없이 알아서 빠르게 움직였다. 맞기는 싫다는 단순한 논리가 리엘리아의 의지와 관계없이 몸을 움직인 것이다. 리엘리아가 있던 방은 제법 호화로운 방으로 노예인 리엘리아에게 이런 방을 제공한 것으로 보아 두 가지를 알 수 있었다. 이 집의 주인은 엄청난 부자라는 것과 상당히 리엘리아를 아 낀다는 점이다. 물론 그 아낀다는 개념이 리엘리아에게 결코 좋지 못한 일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리엘리아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걸음으로 목적지에 겨우 도착했다. 돈을 쓸데가 없다는 뜻 같은 화려한 장식으로 범벅이 된 문 앞에서 리엘리아는 크게 심호흡을 하면서 시간을 끌었다. 하지만 부질없는 행동이었다. 리엘리아를 데려온 체격 건장한 남자가 강압적인 헛기침을 하자 리엘리아는 움찔 하면서 울 것 같은 얼굴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 한 남자가 창문 밖을 바라보다가 리엘리아가 들어오자 크게 기뻐하며 반겨줬다. “오오! 이제 왔어? 나의 귀여운 리엘. 오늘도 좋은 것을 하자구나.” 리엘리아는 토할 것 같은 감정을 간신히 참아냈다. 여기 팔려오고 난 뒤부터 몇 번이나 이방에 끌려왔지만 도저히 자신을 산 남자에게 정을 붙일 수가 없었다. 개구리 똥배같이 툭 튀어나온 배에 머리는 절반이 벗겨져있고, 얼굴에는 개기름이 번들거 리는 예의상으로도 좋은 말을 해 줄 수 없는 남자였다. 결국 얼굴 반반한 귀족에게 팔아주 겠다고 약속했던 인신매매(엘프매매?)범들은 불법 비밀 경매장에 리엘리아를 팔아치우고는 그 후의 일은 나 몰라라했던 것이다. 그리고 운이라고는 지지리도 없던 리엘리아는 못생긴 대부호 상인에게 팔려 버렸다. “아니 귀여운 리엘. 무엇 때문에 그렇게 겁먹은 얼굴을 하고 있는 거야? 하긴 그런 얼굴이 더 흥분이 되는걸. 혹시 내 취향을 알아주고 일부러 그러는 거야? 오 너무나 귀여운 리엘. 이 주인님은 정말로 기쁘구나.” 얼굴 문제는 꾹 참고 어떻게 넘어가더라도 저 숨 막힐 것 같은 느끼한 목소리에 참을 수 없는 입 냄새는 리엘리아로 하여금 주저앉아서 울어버리고 싶게 만들었다. “자 난 도저히 못 참겠어. 어서 시작하자구나. 오늘도 귀여운 리엘을 위한 특별한 선물을 마련했어. 어서 귀여운 리엘의 귀여움을 200% 업 하자구나.” 이 방에 들어온 그 순간부터 체념해버린 리엘리아는 훌쩍이면서 서서히 옷을 벗었다. 그리고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는 상인의 눈이 번득였다. “오오! 너무 대단해! 정말로 멋져! 나의 귀여운 리엘 넌 최고야!!” “흐에엥.” “자자 울면 안되지. 울면 더 괴롭혀 주고 싶어지잖아. 그리고 그 옷에는 웃는 것이 더 잘 어울려요. 어서 웃으면서 어서오세요라고 말해줘. 안 그러면 괴롭힐거야!” “어..어서오세요.” 리엘리아는 유명 레스토랑의 제복을 입은 채 손에 쟁반을 들고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했다. 하지만 얼굴은 금방이라도 크게 울음을 터트릴 듯한 표정이었다. “안되지! 미소! 미소! 미소를 지어야지! 웨이트레스의 생명은 미소야! 어서 귀여운 리엘의 귀여운 미소를 내게 보여줘 어서!!” “어서오세요!” 리엘리아는 자포자기로 방긋 웃으면서 인사를 했다. 반은 울고 있는 표정이었지만 상인은 그 표정이 더 마음에 들었는지 크게 만족한 웃음을 지으며 박수를 쳤다. 이곳에 팔려오고 난 뒤로 리엘리아는 정말 많은 옷을 입었다. 공주 드레스부터 시작해서 성직자, 아슬아슬한 여자 마법사의 옷과 여검사들의 갑옷, 관리가 입는 옷과 술집 접대부 복장, 거기다가 하녀 복장은 종류별(?)로 준비되어 있었고, 어떤 날에는 평범한 농부의 옷을 입고 빗자루를 든 적도 있었다. 그런 악조건 중에도 하나 다행인 점을 들라면 상인은 결코 리엘리아의 몸에 손대지는 않았다. 상인의 눈에 비친 리엘리아는 여자로서 보이는 것이 아닌 그저 옷 갈아입히는 살아 있는 인형일 뿐이었다. 그리고 보는 것만으로 만족해버리는 상인의 이상한 취향덕 분에 리엘리아는 지금까지 무사할 수 있었다. 물론 그것이 다행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상황이 잘 된 일이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었다. 리엘리아에게는 이상한 옷들을 매일 상인 앞에서 갈아입어야 되는 상황이 미칠 것만 같았다. 그리고 요상한 포즈를 요구하는 상인의 등살에 두통이 생겼다. ‘도망칠 거야! 반드시 도망 치고 말겠어!!’ 그렇게 리엘리아의 눈물 젖은 탈출 작전이 시작되려하고 있었다. “하아. 차라리 새가 됐으면....” 일단 도망치기로 마음을 먹었지만 리엘리아게는 별 뾰족한 탈출 수단이 없었다. 리엘리아 에게 허락된 공간은 상인 준 초호화판 방에 밤마다 가는 상인의 방뿐이었다. 그 이외에 곳은 가보기는커녕 자신의 방에서 나가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방 앞에는 보초가 24시간 감시 체재였고, 창문 밖도 각종 사냥개들과 보초들로 단 한발작 도 떼지 못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상인이 멍청한 것인지 리엘리아가 마법을 사용하리라고는 생각 못했다는 점이다. 리엘리아는 마법 제어구 같은 것이 채워져 있지 않았다. 결국 마음만 먹 으면 얼마든지 정령 마법을 사용할 수는 있었다. 다만... “좀더 정령 마법을 열심히 공부해 둘 걸!!” 조금 나쁜 말로 표현하자면 허접한 리엘리아의 정령 마법으로는 수많은 사냥개와 보초들을 때려눕히고 탈출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실프를 이용해서 날아가는 방법도 생각해봤지만 보 초들의 손에 들린 석궁을 보고는 지레 겁을 먹고 포기한지가 옛날이다. 결국 탈출하겠다는 마음만 먹었지 구체적인 방법은 아직까지 안개 속이었다. “오늘도 해가 지는구나. 오늘은 또 무슨 옷을 입어야 되려나.” 싫어도 계속 여러 가지 옷을 입다보니 익숙해지기는 했다. 하지만 상인의 얼굴과 말투와 입 냄새는 죽어도 익숙해 질 수 없었다. 더구나 지금까지는 아무 일도 없었지만 언제 상인의 마음이 변해서 자신을 덮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날이 갈수록 심해져갔다. ‘탈출하고 말겠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두드리면 열린다던가? 리엘리아의 반드신 탈출하고 말겠다는 결심을 매일 한 효과를 봤는지 그 날 생각지도 못한 찬스가 리엘리아를 기다리고 있었다. “멋있어! 정말 멋있어! 넌 최고야 리엘! 아아 나의 귀여운 리엘! 좀더 다리를 올려 힘차게! 그래 잘한다!” 오늘의 메뉴(?)는 술집 댄서였다. 리엘리아는 상인이 켜는 음정박자 다 무시하는 음악이 아닌 소음이나 마찬가지인 바이올린 소리에 맞춰서 생전 처음 춤을 췄다. 초보인 리엘리아의 춤이 멋질 리가 없지만 그래도 묘하게 상인의 마음에 들었던 것 같았다. 밤이 깊어서 자신의 방에 돌아갈 시간이 되자 상인은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아아 신은 왜 인간에게 피곤함을 주셨을까? 그것만 없었으면 우리 귀여운 리엘과 밤새도록 아니 몇날 며칠동안 계속 놀 수 있을 텐데... 리엘도 이렇게 빨리 끝나니 재미없지?” “네 그렇습니다. 주인님.” ‘미쳤냐?! 이 난쟁이 똥자루 같은 놈아! 나한테는 이 시간도 영원 같은 악몽이란 말이야!!’ 그동안 험한 일을 많이 당해서인지 리엘리아의 성격은 나날이 거칠어져 가고 있었다. 거칠 어진 성격을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순하고 연약한 성격이었던 리엘리아의 마음이 점 점 강해지고 있는 것이니 잘 됐다고 해야 되지 않을까? 아니 순진한 처녀 하나 망가져가고 있다고 표현하는게 더 맞는 표현일 수도.... “잘 가 내 귀여운 리엘. 내일도 이 시간에 재미있게 노는 거야. 내일은 스페셜로 준비해 둘게!”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겠습니다. 주인님.” ‘엿이나 처먹으라고 해! 이 변태! 내가 여기를 탈출하면 우리 마을 엘프 자경대를 데리고 와서 여기를 쑥밭으로 만들어 주고 말겠어!! 반드시! 그때는 백 배, 천 배 보복을 하고 말겠어!!’ 아무래도 후자 쪽 표현이 더 맞을 것 같은 예감이 드는 리엘리아의 험악한 생각이었다. 그렇게 리엘리아는 속으로 상인에게 이런 저런 복수를 하는 상상을 하며 이를 갈아 보지 만 자신의 방에 돌아와서 결코 탈출 할 수 없다는 현실을 깨닫고는 축 늘어져 버렸다. “흐에엥! 누가 나 좀 구해줬으면... 장로님의 옛날이야기에는 이럴 때 용사가 나타나서 위기에 처한 여주인공을 잘도 구해주던데.... 에엥! 역시 난 너무 불행해!!” 그래도 불행한 엘프 리엘리아에게 그 날은 아주 오랜만에 운이 따라주는 날이 왔다. 리엘리아가 그 운을 알아차리는 것은 잠시 후의 일이였다. 우리 가족이 티아라의 저택에서 신세를 지기 시작한지 삼일 째가 되서야 겨우 니스나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가 있었다. 그 동안은 문제 해결을 위한 회의는커녕 틈만 나면 서로 으르렁거리는 티아와 서니 덕분에 문제 해결은커녕 다른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막는 것이 최선인 나날을 보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낀 나는 허구한 날 이리 날리고 저리 날리는 생활을 겪었다. 그래도 삼일 째 되는 저녁에는 계속되는 싸움 때문에 실피온이 티아를 피하는 정도가 아닌 쳐다보지도 않으려는 것 때문에 충격을 먹은 티아가 인내의 한계를 시험하며 참 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 날 겨우 서니가 가져온 니스나의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제발 오늘만큼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일단 니스나가 오리하곤 왕국이나 그 형제국인 레이아스 왕국 사람이란 것은 알게 됐지만 정작 중요한 진짜 이름이나 무엇을 하던 사람인지 그리고 왜 급류에 떠내려가게 됐는지는 여전히 모를 일이니.... 니스나 뭐 조금이라도 생각나는 것 없어?” “죄송합니다. 전혀 생각이 나지를 않아요.” “하아. 모르겠다. 기억을 되살릴 수 있는 마법이나 아이템 같은 것이 있다면 편할 텐데....” 내 푸념에 잠자코 듣고 있던 서니가 아 하는 소리를 냈다. “무언가 알고 있는 것 있어?” “목걸이!” “에?” 내 질문에 서니는 밑도 끝도 없이 목걸이라는 말을 했다. 기억을 되살려 주는 마법 목걸이 아이템이라도 있는 건가? “웅.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이 애 처음에 목걸이를 꽉 쥐고 있었어. 그것도 손이 안 펴질 정도로!”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니... 그건 엄청나게 중요한 이야기잖아. 어째서 이제야 말을 해주는 거야?! 내 생각과 똑같은 생각을 했는지 티아는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그렇게 중요한 이야기를 이제 하다니... 하긴 그게 너 한계겠지.” “언니! 시비 거는 거야?!” “내가 언제 시비를 걸었다고 도끼눈 뜨고 노려보는 거야?! 그런 중요한 이야기를 이제야 한 너의 멍청한 점을 지적해 준 것 뿐이잖아!” “그게 시비가 아니면 도대체 어떤 말이 시비라는 거야?!” 아아 역시나 오늘도 조용히 넘어가질 못하는 것인가? 눈치 빠른 티아라는 한숨을 쉬며 일어 나서 문밖에 대기 중이던 하인에게 전원 대피 하라고 명령했다. “제발 부탁이니 둘 다 적당히 좀 해!” “너는 끼어들지 말라고 했지!” “제발 부탁이니 오빠는 끼지 좀 마!” 훌쩍 싸움 말리는게 무슨 죄라고 항상 화살이 나한테 날아오는 거야!! 하지만 오늘은 더 물러서지 않겠어! “티아! 실피온이 영원히 곁에 안 와도 좋아?!” “앗!” 티아는 실피온이 자신에게 겁먹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는 몇 번 이를 갈고는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참겠다는 뜻이었다. 하아 일단 하나는 됐고.... 다음은 티아의 기권에 의기양양해서 계속 공격을 퍼 부울 태세 를 잡는 서니 차례다. “서니야!” “왜 오빠?” “너도 정도것 안하면 영원히 내 레어에 발 하나 들여놓지 못하게 할 거야.” “에에?! 너..너무해 오빠!” 그런 속 보이는 울 것 같은 표정에 속을 줄 알고.... “대답은?!” 내 강압적인 태도에 서니는 가짜 눈물을 지우고는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예라고 대답했다. 겨우 사태 진압이 된 것이다. 가만 그러고 보니 나 처음으로 이 둘을 말린 거잖아.... ‘나도... 나도 하면 되는구나!!’ 내 주위에서 천사들이 웃으면서 축하해요라는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여자한테 한 없이 약한 드래곤이라는 오명을 드디어 벗어난 거야! 난 해냈어!! “저... 테이님께서 왜 갑자기 우는 거죠?” “티아라야 신경 쓰지 마. 알아봤자 골치만 아플 거야.” “그..그런가요?” “착각 속에 빠져 있는 테이는 냅두고, 어이 니스나. 서니가 말한 목걸이라는 것 좀 보여줘.” “내가 언제 착각에 빠져 있다고 그런 심한 말을 하는 거야?!” 기쁨에 차 있던 내 기분은 티아의 한 마디로 착 가라앉아 버렸다. 티아는 내 질문에 대답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싹 무시하고는 니스나가 건네주는 목걸이를 받아서 꼼꼼하게 살펴봤다. 그 모습에 더 화가 나서 몇 마디 더하려고 했지만 다른 이들도 날 싹 무시하는 분위기에 눌 려서 별수 없이 입을 다물었다. 젠장. 3일 천하도 아니고 겨우 3분 천하인가. “어라?!” 한숨을 쉬던 나는 티아의 놀란 외침에 속으로 투덜거리던 나는 무엇 때문인지 궁금해져서 티아의 손에 들린 목걸이를 쳐다봤다. “어? 이 문양은 분명히....” 목걸이의 중앙에 새겨진 문양을 보고는 나 역시 소스라치게 놀라버렸다. “트..틀림없어요! 잘 못 본 것이 아니에요.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티아라도 그 문양을 알아봤는지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뭐야? 도대체 뭔데 다들 그렇게 놀라는 거야?” 서니는 우리가 놀라기만 하고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는 것이 짜증났는지 입을 삐죽 내밀며 불평을 늘어놓았다. 서니 저 녀석은 정말 모르고 있는 건가? 아 맞다! 서니 저 녀석은 이제 막 성룡이 됐으니 아직 인간들의 나라를 여행해보지 못했지. 그러니 서니가 이 문장을 알 리가 없겠지. 서니의 질문에 목걸이를 들고 있던 티아는 한숨을 푹 쉬며 설명했다. “이 목걸이에 문장은 분명 오리하곤 왕국의 왕가의 문장이야.” “에? 그게 어때서?” 티아의 설명에 이해를 못하겠다는 서니의 반문에 내가 설명을 덧붙였다. “오리하곤 왕국은 대대로 왕에게 왕가의 문장이 들어간 이 목걸이를 계승하는 관습이 있어. 즉 이 목걸이를 지니고 있는 자가 오리하곤 왕국의 왕이라는 뜻이나 마찬가지야.” “에에?!” 이제야 이해가 됐는지 서니도 놀란 표정을 지으며 니스나를 돌아보았다. 나 역시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이 목걸이를 지니고 있다는 것은 설마 니스나가... “저기... 그럼 제가 오리하곤 왕국의 왕이라는 말인가요?” 니스나가 멍한 표정으로 그렇게 질문 해오자 나도 모르게 다리가 휘청거렸다. 서니 역시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다가 돌연간 벌컥 화를 내면서 니스나에게 소리쳤다. “넌 정말 바보냐?! 여자가 어떻게 왕이 되니?!” “에? 아! 음... 아 그러면 전 여왕이었겠네요?” “그래 넌 오리하곤 왕국의 여왕인거야!” “그것도 아니야!” 티아는 두통이 나는지 관자놀이를 누르며 한숨을 지었다. 저 마음 나는 이해한다. 나 역시 서니와 니스나의 대화를 듣고 있자니 머리가 아파왔다. 특히 서니는 아무리 모른다 모른다 해도 책을 조금만 읽어도 알 기본 지식조차 없다니... 도대체 무슨 쓸데없는 책만 읽고 다니는 건지... “에에? 그럼 여왕도 아니라면 왕가의 문장이 들어간 목걸이를 가지고 있는 니스나의 정체 가 뭐란 말이야?” “그건 나도 모르겠어. 그리고 분명히 말해두겠는데 오리하곤 왕국에는 여왕이라는 제도가 없어. 이곳 다이러스 제국이랑 틀리단 말이야.” “오리하곤 왕국은 대대로 남자만이 왕위를 계승해왔어. 만약 전대 왕에게 왕자가 태어나지 않으면 공주의 남편이 대신 왕이 되곤 했지. 그러니 이 목걸이는 절대 여자에게는 계승 될 수가 없어. 그러니 니스나가 어째서 이 목걸이를 가지고 있는지는....” 거기까지 설명하던 나는 입을 다물었다. 머릿속으로 갑자기 안 좋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니스나는 여자이기 때문에 절대 이 목걸이를 가지고 있을 이유가 없다. 그런데 이 목걸이를 가지고 계곡물에 떠내려갔다고 한다면 그 이유는.... ‘니스나라는 여자가 이 목걸이를 훔쳤을지도 모른다는 말인데... 하지만 왜지? 도대체 무 슨 목적으로? 이런 물건은 국가적인 차원의 문제기 때문에 팔수도 없을 텐데...’ 내 고민을 알아차렸는지 티아는 내 손을 잡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마법으로 대화를 걸어왔다. [테이 네가 고민하는 것 이상으로 더 복잡한 문제일지도 몰라.] [그게 무슨 뜻이야?] [원래 이 목걸이의 정통 계승자인 슬라드 왕자는 오리하곤 왕국에서 실종된 상태야. 몇 달 전에 내가 일 때문에 자리를 비운 적 있지. 그때 만났던 인간들이 오리하곤 왕국의 사신들이었어. 실종된 슬라드 왕자의 수색을 도와달라고 왔었지. 그리고 그때 사신들은 슬라드 왕자와 함께 이 목걸이도 같이 없어졌다고 했어.] [자..잠깐! 그럼 니스나라는 여자가 왕자의 실종과 관계있는 여자일지도 모른단 말이야?! 아니 혹시나 최악의 경우에는 납치범 본인일 수도 있다는....] 난 놀란 눈으로 니스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저런 벌레 한 마리 못 잡을 얼굴을 하고 있 는데 납치범일지도 모른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런 내 눈 앞에 갑자기 커다란 노란 눈동자가 날 뚫어지게 쳐다봤다. “으에엑! 뭐..뭐야!!” 갑자기 내 눈앞에 얼굴을 디밀었던 서니는 내가 놀라서 뒤로 짜빠지자 내 앞에 서서 화가 난 표정으로 소리쳤다. “오빠! 왜 그렇게 니스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데?! 오빠 설마 니스나를 어떻게 해보려고 마음먹은 건 아니겠지? 난 오빠가 그런 제비같은 남자가 되는 건 싫단 말이야!!” “누가 제비란 거야?! 누가!! 난 그저 니스나가 어쩌면 납...!!” 거기까지 소리친 나는 그 뒤에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갑자기 옆구리에 강한 충격을 받는 바람에 말문이 막혀버린 것이다. 아니 말문만이 아니라 숨까지 막힐 정도로 아팠다. [이 바보야! 지금 당장 그 말은 하지 말란 말이야! 아직 사태가 어떻게 됐는지조차 파악 안됐는데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 불안감을 줄 생각이냐?!] 날 걷어 찬 것은 역시 티아였다. 확실히 그 말이 맞지만... [그렇다고 꼭 폭력으로 입을 다물게 하는 방법밖에 모르는 거야?! 좀 더 상냥한 다른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잖아!!] [폭력적인 여자라서 미안하구나. 난 그것밖에 모르니 아예 불만도 못 나오게 폭력으로 해볼까?] [아니 미안 내가 잘못했어.] 흑흑 이제는 단순한 협박에도 알아서 몸도 마음도 기는 구나. 어쩌다가 내 인생이 이리 기구 해졌을까? 내가 아픈 옆구리 부여잡고 18번인 인생한탄을 하는 동안 - 이 따위 것이 18번이 돼야 되는 내 인생이란... - 티아가 날 걷어 찬 것이 화가 났는지 서니가 티아에게 뭐라뭐라 고 하는 중이었다. 에휴 못 말리는 말괄량이지만 그래도 저를 땐 이쁘게 보이네. “언니가 뭔데 나의 테이 오빠를 걷어차는 거야! 오빠를 찰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서 나 하 나뿐이란 말이야!!” 좀 이쁜 짓 좀 하나 싶었더니 서니도 티아에 비해서 하나 나을게 없는 녀석이란 것만 확인 해버렸군. 젠장! 좀 전에 이쁘다고 했던 말 취소다. 잠자코 서니의 폭언을 듣고 있던 티아는 싸늘한 어투로 입을 열었다. “서니야.” “뭐야? 할 말 있어? 어디 한번 변명이라도 해보시지!!” “난 지금까지 네가 막내라서 많이 봐준 것뿐이야. 하지만 어차피 따져보면 너는 자기 앞가 림 정도는 할 줄 아는 성룡이 됐으니 더 이상은 안 봐줘도 되겠지?” “으윽.” “진짜로 내가 화를 내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 줄까?” 하긴 지금까지 티아는 나를 대할 때에 비해서 서니를 많이 봐주고 있었다. 저렇게 정색을 하며 화를 내는 티아를 대한 적이 없었던 서니는 엄청 당황한 표정으로 안절부절 못하더니 날 쳐다보면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 “왜..왜 그래?! 왜 울어?” “에엥! 오빠야! 언니가 나 괴롭혀!!” 울면서 나한테 달려든다고 내가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잖아!! 이런 정신없는 와중에 언제 나갔었는지 티아라가 방에 들어오며 말했다. 하아 감각이 뛰어난 드래곤이 누가 나갔는 지도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니.... “저 이야기 중에 아무 말 없이 밖에 나가서 죄송합니다. 급한 일이 생겨서요.” “아니 괜찮아. 이쪽은 별로 큰일도 아닌걸. 그런데 그쪽은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니? 혹시 시퀸이 날짜 잡았다고 찾아왔니?” “그..그런 일이 아니에요! 저번부터 조사를 하던 불법 노예 시장의 위치를 알아냈다는 정보가 들어왔어요!! 이건 티아님이 직접 잡아들이겠다고 발견되면 꼭 말하라고 하셨던 일이잖아요.” “아아! 그거. 드디어 덜미를 잡았네.” 티아는 눈을 반짝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기 니스나 이야기 중에 미안. 잠시 자리를 비어야 될 것 같아. 예전부터 조사하던 악질 노예 시장을 뿌리 뽑을 수 있는 기회거든. 뭐 금방 끝내고 올테니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하자.” 호오. 티아는 그런 일도 하고 있었구나. 어쩐지 티아의 지금 모습은 내가 동경하던 인간들의 용사 같았다. 좀 부러운걸. “네. 저는 괜찮습니다. 별로 급한 일도 아닌걸요.” 자신의 정체를 알아내는 일이 별로 급하지 않다니... 물론 니스나가 예의상으로 하는 말일 수도 있지만 저 아무래도 좋다는 멍한 표정을 보고 있으면 절대 예의상 한 말이 아닌 것 같다. “그..그래 아무튼 우리도 어렴풋이 니스나의 정체가 예상이 되지만 확실하지는 않아. 하지만 꼭 너 기억을 찾도록 도와줄게.” “네 신경 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끙 저런 모습을 보고 있자면 아무리 생각해도 납치범 같지는 않은데... 도대체 저 여자의 진짜 정체는 과연 뭘까? “티아님 준비는 다 됐습니다.” “오케이! 아 테이는 실피온 좀 봐줘! 늦지는 않겠지만 혹시라도 늦게 되면 내 대신 실피온 좀 재우고... 아 그리고 혹시 실피온이 울면....” “알았어! 알았으니 잔소리 좀 그만하고 얼른 갔다 와!” “응. 자기만 믿을게.” “조심해.” “걱정 마. 그 나쁜 놈들에게 오늘 지옥을 경험시켜주고 올테니깐.” 그렇게 말하면서 V사인을 보내는 티아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조심하라는 말은 이제 곧 티아에게 당할 노예 시장의 인간들에게 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 티아 성격이라면 죽이지는 않을 테니 별 상관없겠지. ‘아니지. 어떻게 생각하면 차라리 죽는 게 편할지도....’ 티아에게 매일 당하다시피 살아왔던 내 경험에 비추어 생각해보니 인간들에게는 정말로 죽는 게 더 편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탈출. 탈출만이 살길이다! 라고 매일 속으로 노래를 부르던 리엘리아에게 찬스가 온 것 은 달이 뜨지 않는 밤이었다. 주위는 칠흑 같은 어둠에 쌓였고, 정원을 지키는 경비병들의 횃불만이 약간이나마 빛을 밝혀주고 있었다. 창문에 기대서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리엘리아는 문득 한 가지 꾀가 생각났다. 만 약에 저 횃불이 전부 다 꺼진다면……. “그렇다면 인간들은 주위를 볼 수가 없겠지. 하지만 난 볼 수가 있어! 이것은 날 불쌍히 여기신 하늘이 내려주신 기회야!!” 그렇게 생각한 리엘리아는 당장에 탈출을 실행에 옮겼다. 리엘리아는 먼저 방안의 불을 끄고 소리가 나지 않도록 신경 쓰면서 조용히 창문을 열었다. 일단 창문을 연 리엘리아는 실프를 불렀다. 혹시라도 아래에 있는 경비병이 눈치를 챌까봐 가슴이 조마조마 거렸지만 다행히도 횃불의 밝기로는 리엘리아가 있는 3층까지는 빛이 닿지 않아서 경비병이 반투명한 실프를 발견할 수는 없었다. 리엘리아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높은 방에 가둬 둔 것이 지금은 오히려 리엘리아에게 득이 된 것이다. “실수하지 말고 잘 부탁한다. 저기 인간들이 든 불을 한꺼번에 꺼야 된다.” 리엘리아는 자신의 정령 마법의 힘으로 실프가 어디까지 해 줄 수 있을지 걱정이 됐지만 그 래도 겨우 횃불 끄는 일 정도는 손쉬울 거라 믿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리엘리아의 믿음은 배 신당하지 않았다. “뭐야?!” “갑자기 무슨 바람이지?” “앗! 횃불이 꺼졌다.” 정원을 밝히던 횃불들은 실프에 의해 순식간에 꺼져 버렸다. 경비병들은 영문을 모를 사태 에 당황하면서 다시 불을 피우기 위해 부산을 떠는 통에 주위는 삽시간에 소란스러워졌다. ‘지금이다! 실프 날 들고 담 너머로 옮겨 줘!’ 리엘리아는 자신의 몸이 바람에 의해 공중에 뜨자 희열을 느꼈다. 그것은 드디어 이 지옥을 탈출할 수 있다는 기쁨이었다. “컹컹컹!” ‘아뿔싸! 저 개들을 잊어먹었다!!’ 리엘리아는 인간들의 시력만 뺏으면 만사 오케이라고 생각했지만 아직 정원에는 개들이 있었 다. 개들의 후각도 리엘리아의 눈과 마찬가지로 이런 어둠은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았던 것이다. ‘후에엥! 어떡해?! 지금이라도 도로 돌아갈까?’ 지금이라면 아직 창문에서 멀지 않은 거리기 때문에 돌아간다면 들키지는 않겠지만 겨우 잡은 기회를 놓치기는 싫었다. 그렇게 리엘리아가 결정을 못 내리고 있는 사이에 사태는 생각보다 싱겁게 해결됐다. “이 놈의 개들이 왜 이렇게 짖는 거야?! 조용히 안 해?!” 경비병들은 개들이 짖는 이유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다. 그들은 설마 리엘리아가 날아서 탈출 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기 때문에 개들이 바라보는 공중은 볼 생각도 안하고 있었다. ‘기..기회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밑에 경비병 아저씨들도 고마워요!’ 리엘리아는 신에게만이 아니라 눈치를 못 채고 있는 경비병에게까지 고맙다는 말을 하면서 실프에게 어서 담 너머로 갈 것을 명령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면....’ 결국 리엘리아의 몸은 담장 너머의 땅에 안전하게 착륙했다. 그녀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옥을 탈출 한 것이다. ‘만세!! 자유다! 자유다아! 자유! 자유!!’ 너무나 기뻤던 리엘리아는 땅에 착지하자마자 폴짝폴짝 뛰면서 기뻐했다. 물론 담 너머의 경비병에게 들키기 싫었기 때문에 소리는 내지는 않았다. ‘아니야. 아직 기뻐하기는 일러. 이곳을 완전히 빠져나가서... 웅... 아 맞다! 리이나가 인간들 사회에는 나쁜 인간을 잡아가는 경비병이란 인간이 있다고 했지! 그 인간한테 가서 여기 있는 나쁜 인간들 다 잡아가라고 해야지. 그리고 그 돼지 녀석은 내 손으로 천 배, 만 배 복수를 해줄 거야!’ 그렇게 결정한 리엘리아는 있는 힘껏 달려서 지옥과도 같은 저택에서 멀어졌다. 상인의 저택에서 소동이 가라앉고 리엘리아가 없어 진 것을 알아차린 건 한참 후의 일이었다. “하아! 하아! 경비병이라는 인간은 어디 있는 거지? 그것보다 여기는 도대체 어디야?” 리엘리아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숨을 골랐다. 도시의 외곽 지역에 있었던 상인의 저택에서 한참을 달리고 달려서 겨우 불빛을 발견하고 도시 안까지 달려온 것 까지는 좋았지만 처음 오는 인간들의 도시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무턱대고 경비병을 찾으면서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늦은 밤이라서 그런지 거리를 걷는 인간들의 수는 극히 적었다. 한참을 걸어야지 드문드문 한 두 사람을 만날 정도였다. 그렇게 가끔 가다가 만나는 인간들도 리엘리아는 빠른 걸음으로 그냥 지나쳐 다녔다. 이미 몇 번이나 인간에게 속았기 때문에 쉽사리 아무 인간한테 도움을 청할 엄두가 안 났던 것이다. “히잉. 같은 엘프나 다른 이종족은 왜 눈에 안 띄는 거야? 리이나가 큰 도시에서는 나 같은 엘프나 이종족들을 많이 봤다고 했는데....” 리엘리아는 필사적으로 이종족들을 찾아 다녔지만 허사였다. 그리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리엘리아는 점점 뒷골목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물론 리엘리아는 인간들의 뒷골목들이 얼 마나 위험한 곳인지 모르고 있었다. 그저 거리가 점점 지저분해지고, 어둑어둑하다는 것 만 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인간들은 자기네 마을 청소도 안하나? 우우 냄새가 지독해. 실프 바람을 일으켜서 냄새를 없애줘.” 리엘리아는 실프를 소환해서 바람으로 냄새를 날려 보내면서 점점 뒷골목 깊숙이 들 어갔다. 결국 리엘리아는 불행히도 인상이 안 좋은 남자와 맞다드렸다. “어이 아가씨! 어딜 그리 급하게 가는 거야?” 리엘리아는 첫눈에 보기에도 위험하다는 예감이 팍팍 드는 남자를 무시하기로 마음먹 고 그 자리를 빠르게 지나치려고 했지만 남자가 앞을 가로막고 비켜주지 않았다. “무례하군요! 어서 비켜요!” 옛날의 리엘리아라면 ‘뭐..뭐 하세요? 제발 비켜주세요.’라고 떨면서 말했겠지만 산전수전 다 겪어서 성격이 드세져버린 리엘리아는 단박에 눈을 치켜뜨고 남자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호오. 이거 꽤나 앙칼진 고양이 아가씨구만.” “난 고양이가 아니라 긍지 높은 숲의 딸인 엘프에요!” “엘프던 고양이던 그건 우리하고 상관없지.” “맞아 맞아.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아주 예쁜 여자가 우리 손에 걸려들었다는 거야.” 어느새 리엘리아의 뒤에는 두 명의 남자가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며 서 있었다. 남자가 한명이라고 세게 나가던 리엘리아는 그제야 크게 당황했다. “시..실프.” “에? 뭐라고 귀염둥이 아가씨? 안아달라고?” 리엘리아는 자기 앞을 막아선 남자가 마법을 모른다는 것을 다행이라고 여기며 실프에게 크게 명령했다. “이 인간 날려버려!!” “에? 누구한테 말하는... 으아악!!” 리엘리아의 앞을 막던 남자는 실프의 힘에 의해 멀리 날아가서 쓰레기통에 쳐 박혔다. 그 리고 리엘리아의 뒤를 막던 남자들은 갑작스런 사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멍하니 그 광경을 쳐다봤고, 리엘리아는 그 틈을 이용해서 죽어라고 달렸다. “어어? 자..잡아! 저 년 잡아!!” 리엘리아가 도망치는 것을 보고 겨우 정신을 차린 남자 둘이 소리치며 바로 쫓아갔지만 이 미 앞서 달려가는 리엘리아를 잡을 수는 없었다. 아무리 리엘리아가 자신이 살던 마을에서 둔재 엘프 소리를 듣는다 하더라도 어릴 때부터 숲 속을 뛰어다니며 살았던 리엘리아의 발 이 남자들보다 더 빨랐던 것이다. 한참을 달렸던 리엘리아는 자신을 쫓아오는 남자들의 모습이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자 멈춰 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흑. 흑. 우에엥.” 그리고 눈물을 뚝뚝 흘리다가 결국에는 크게 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아아앙! 정말 싫어! 내가 왜 이런 고생을 해야 되는 거야?! 내가 도대체 무슨 죄를 저질렀 다고 이런 꼴을 당해야 되냐고?! 훌쩍 훌쩍. 흐에엥. 싫어. 다 싫어. 나 숲에 돌아갈래. 돌아 가고 싶어!” “이봐요. 아가씨 무슨 일이죠? 괜찮아요?” “아아악!!” “에에?!” 목 놓아 울던 리엘리아는 갑자기 누군가가 자신의 어깨를 잡자 깜짝 놀라서 비명을 질렀고, 비명소리에 놀랐는지 리엘리아의 어깨를 잡았던 남자도 소리를 질렀다. 리엘리아는 벌떡 일어나서 급히 두어 걸음 떨어져서 자신에게 다가왔던 남자를 유심히 살폈 다. 허리에 검을 차고 있는 순박한 표정의 남자는 곤란하다는 듯이 볼을 긁적이며 리엘리아 에게 말했다. “저 무슨 일을 당하신 것 같은데 안심하세요. 전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그..그걸 어떻게 믿어요?” “그건 그러니깐....” “그것 봐요! 당신이 나쁜 사람인지 아닌지 증거도 없잖아요! 난 두 번 다시 안 속을 거예요! 절대로! 훌쩍. 그래요. 이 세상에는 믿을 인간 하나도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어요. 흑. 에엥 리이나! 어디 있어?! 우에엥.” 믿을 인간 하나도 없다면서 인간인 리이나를 찾으면서 목 놓아 우는 것은 무슨 심보일까? 남자는 정말로 곤란하다는 얼굴로 리엘리아를 진정시킬 생각으로 한 발짝 다가가며 말했다. “저기. 무슨 일을 당했는지는 대충 짐작이 가네요. 하지만 저는....” “다가오지 말아요!!” “아 네! 네. 네.” “다가오면 가만 안 둘 거예요! 이래 보여도 전 정령마법을 사용할 줄 알아요! 가까이 오면 날려버릴 테니 가까이 오지 말아요.” 리엘리아는 절대 빈말이 아니란 증거로 실프를 소환해서 남자를 위협했다. 남자는 여전히 난처한 웃음을 지으며 필사적으로 리엘리아를 설득했다. “저기 전 정말 나쁜 사람 아니에요. 전 이 도시 경비대원이라고요.” “경비대? 거짓말!” 리엘리아는 그렇게 찾아 헤메던 경비대라는 소리에 일순 마음이 기울었지만 너무 많이 속다 보니깐 쉽사리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거짓말 아니에요. 자 여기 경비대원이라는 증표도... 아 아가씨는 엘프니깐 봐도 모르 겠네요. 아무튼 전 정말 경비대원이 맞아요.” 남자는 목걸이를 꺼내서 보여줬다가 곧 리엘리아가 엘프라는 사실을 기억하고는 한숨을 쉬었다. “아 맞다! 이렇게 하죠. 절 따라오세요. 경비대 건물로 데려가서 보호 해줄게요.” “저..정말요?” “정말로요. 그리고 저 뒤를 따라오세요. 그렇게 하면 제가 행여나 이상한 마음먹어도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 괜찮겠죠? 자 여기는 위험한 곳이니 얼른 큰길로 나가야 되요. 제발 부탁이니 절 믿고 따라와 주세요.” 남자가 그렇게까지 말하자 리엘리아는 믿고 싶어졌다. 비록 진실의 눈은 없었지만 그래도 진지한 남자의 눈을 보고 있자니 그가 진실 된 사람인 것 같았다. “저어기... 그..그럼 부탁드릴게요.” 겨우 안심한 리엘리아는 방금 전까지 난리를 치던 자신의 모습이 갑자기 부끄러워져서 얼굴이 붉어지고, 목소리도 모기 만해졌다. 그래도 충분히 알아들은 남자는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믿어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그럼 절 따라오세요. 아가씨를 책임지고 확실히 보호해 드릴게요.” “가..감사합니다. 아 제 이름은 리엘리아예요.” “제 이름은 파디옴입니다. 그럼 리엘리아 아가씨 제 뒤에서 떨어지지 마세요.” “네.”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밝히는 거지만 리엘리아의 나이 150살. 인간으로 치자면 15살 사춘기 소녀인 리엘리아는 처음 느껴보는 두근거리는 감정을 맛보았다. 그 감정이 인간들이 말하는 사랑이라는 감정임을 순진한 리엘리아는 알지 못했다. 파디옴의 안내로 겨우 큰길로 나온 리엘리아는 활기에 가득 찬 도시의 밤거리를 보고 눈이 휘동 그래졌다. 도저히 방금까지 있었던 뒷골목과 - 그곳이 위험한 뒷골목이라는 것은 파디 옴의 설명으로 알게 됐다. - 같은 도시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파디옴의 뒤를 따라가며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도시의 모습을 구경하는 리엘리아의 모습이 꽤나 귀엽게 보였는지 길 가던 행인들은 - 거의 99%가 남자였다. -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리엘리아를 쳐다봤다. 리엘리아는 인간들이 자신을 쳐다보자 거북한 느낌이 들어서 앞서 걸 어가는 파디옴의 옷자락을 슬며시 잡아 당겼다. “왜 그러시죠?” “저어기. 저 인간들이 자꾸 절 쳐다봐서... 제가 어딘가 이상한가요?” 얼굴이 빨개져서 그렇게 묻는 리엘리아의 모습이 어디가 우스웠는지 파디옴은 피식하고 웃어버렸다. “왜? 왜 웃으세요? 파디옴씨도 제가 이상한가요?” 파디옴이 웃어버리자 정말 자신의 모습이 이상하다고 생각한 리엘리아는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 모습에 파디옴은 크게 당황하며 손을 저었다. “아니 그게 아니고요. 웃어서 정말 미안해요. 그게 사람들이 쳐다보는 이유는 리엘리아 아가씨가 너무 예뻐서 쳐다보는 겁니다. 그게 저도 리엘리아 아가씨가 너무 귀엽게 보여서....” “네? 귀엽다고요? 제가요?” 리엘리아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지금 자신을 흘끔거리며 쳐다보는 인간들의 눈길보다 바로 앞에 선 파디옴의 눈길이 훨씬 더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파디옴이 자신을 귀엽다고 말해 주는 것이 무척이나 기뻤다. “아무튼 빨리 가죠. 이제 거의 다 왔어요. 힘드시겠지만 조금만 참고 따라와 주세요.” “아..아니에요. 힘들지 않아요.” “자 그럼.” 파디옴은 다시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리엘리아도 따라 걷기 시작했는데 문득 자신이 아직 파디옴의 옷자락을 잡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리엘리아는 그 사실을 알아차려도 어쩐지 놓기 싫은 기분이 들었다. 얼굴을 붉힌 채 파디옴이 알아채지 않도록 조심스레 옷자락을 잡고 걷는 리엘리아의 모습은 제 3자가 보기에도 너무나 귀엽게 보였다. 그리고 그것은 곧 파디옴에 대한 질투로 바뀌었다. ‘도대체 뭐지? 아까부터 따끔거리는 시선이 느껴지는데....’ 파디옴은 자신의 뒤에서 독신남들이 - 일부 유부남 포함 - 부러움과 시기의 눈길을 한껏 보내고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저 오늘따라 유난히 시선이 느껴진다 싶 었지만 곧 그 시선은 자기의 뒤를 따라오는 리엘리아를 보는 시선이라고 생각하고 더 신 경 쓰지는 않았다. 그렇게 파디옴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도시에 연적(?)을 잔뜩 만들어가면서 리엘리아를 경비대 건물로 안내했다. “자 다 왔습니다. 여기가 제가 일하는 경비대의 본부입니다.” 어느새 둘은 제법 커다란 삼층 건물 앞에 도착했다. “일이 일인지라 저처럼 험상궂은 남자들이 많기는 하지만 속은 전부 착한 사람들이니 부담 느끼지 마시고 무슨 일을 당했는지 자세하게 말해주세요. 반드시 아가씨를 괴롭힌 나쁜 사람을 잡아들이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파디옴의 웃는 얼굴은 험상궂기는커녕 단숨에 리엘리아의 하트를 강탈했다. 리엘리아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고개를 푹 숙이고 중얼거렸다. “저..저어. 파디옴씨는 머..멋있으세요.” “네? 뭐라고 하셨죠?” “아..아니에요! 아무 말도 안했어요!!” 너무나 작은 소리라 파디옴은 리엘리아의 칭찬을 듣지 못했다. 리엘리아는 파디옴이 자신의 말을 듣지 못했다는 것에 안도와 실망을 동시에 느끼는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왜 이러지? 왜 이렇게 심장이 뛰는 거지? 마치 내 심장이 아닌 것 같아. 그리고 얼굴도 자꾸 화끈거리고... 무엇보다 이 인간 남자랑... 파이옴씨랑 떨어지기 싫어. 이게 도대체 뭘까?’ 그것이 인간들이 말하는 사랑이라는 거지만 엄청날 정도로 순진한 리엘리아는 사랑이란 것이 아직 뭔지 잘 모르고 있었다. 그저 파디옴 곁에서 떨어지기 싫어서 자신도 모르게 영원히 파 디옴의 곁에 있게 해달라고 신에게 빌고 있었다. “어이 파디옴! 뭐냐? 그 여자는 너 설마 일은 안하고 여자나 꼬시고 다녔던 거냐?” 굵직한 남자의 목소리에 꿈결을 헤매던 리엘리아의 정신이 겨우 현실로 돌아왔다. 리엘리아는 자신도 모르는 새에 건물에 들어오고 난 뒤였다. 그리고 리엘리아가 굵직한 목소리의 주인을 본 순간 아까 파디옴이 했던 말은 예의상 해본 말이 아니란 것을 알았다. 정말로 예의상이라도 멋있습니다라는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얼굴이 험상궂은 덩치 큰 남자가 탁자에 다리를 걸친 채 앉아 있었다. 리엘리아는 어느새 자신의 마음속에 자리 잡았던 경비대 = 멋있고 친절한 남자라는 공식이 큰소리를 내며 부서지는 듯한 착각을 받았다. “설마 그럴리가요! 전 틀림없이 제대로 일을 하고 있었다고요. 그 증거로 보세요. 엘프를 데려왔잖아요.” “엘프야 우리가 늘 데려오는 거잖아. 어찌됐건 특급 상품이니깐. 벌써 슬쩍 손 대고 데려온 것은 아니겠지?” 리엘리아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 증거로 멋있고, 친절한 경비대를 만나서 이제 안전하다고 생각했었던 리엘리아의 마음속에서 원인 모를 불안감이 커져갔다. “그럴리가요. 이 엘프는 노예로 팔렸던 엘프 같던걸요. 난 남이 침 발라 놓은 것은 전혀 관심 없어요.” 리엘리아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저건 분명히 파디옴이 아니라 다른 남자의 말이라고 믿고 싶었지만 방금 전 말은 분명히 자신의 옆에 있는 파디옴이 한 말이 확실했다. “저..저기 파디옴씨? 지금 하시는 말씀은 도대체....” 파디옴은 아까와는 정 반대의 싸늘한 눈초리로 리엘리아를 쳐다보다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에 리엘리아는 자신의 마음속에 무언가가 서서히 부서지는 것 같았다. “정말. 이렇게 바보같은 여자는 또 처음이라니깐요. 그렇게 속고도 절 믿고는 여기까지 졸졸 따라오더라고요. 아무튼 전 남이 침 발라놓은 것뿐만이 아니라 이런 바보 같은 여자 도 흥미가 없어요. 그러니 헨다씨 마음대로 하세요.” “호오 그래? 난 너랑 달라서 남이 침을 발랐건 말건 예쁘기만 하면 환영이지. 도망친 노예 라면 조만간 여기로 연락이 올테고, 그럼 그때 넘겨도 되니 그 동안 재미 좀 볼 수 있겠는걸.” “도..도대체 무슨....” “아 정말 짜증나는 계집이군! 야 잘 들어. 넌 나한테 속은 거야. 여기는 경비대 건물이 아니라 노예 시장의 중간 루트야. 아마도 넌 여기 왔을지도 모르겠구나. 지하에 갇혀보면 기억날지도 모르지.” “거..거짓말. 흑. 거짓말이죠? 그렇게 친절했는데.... 농담하시는 거죠? 저 이런 농담 무서워요. 제발....” 상황이 그 지경까지 갔는데도 리엘리아는 아직 현실이라는 것을 믿지 않았다. 아니 안 믿는 것이 아니라 못 믿는 것이라고 표현하는게 맞을 것이다. “젠장 정말 짜증나네. 어이 헨다씨 얼른 데려가서 이 계집에게 현실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세요.” “응? 아! 난 벌써 준비 중인데.” 그렇게 말하는 헨다라고 불리는 남자는 벌써 웃통을 벗고 있었다. 그걸 본 파디옴은 ‘여전히 성격 급하셔.’라고 말을 하고는 몸을 돌려 위층으로 올라갔다. “자..잠깐만요! 파디옴씨!” “어이 어딜 가는 거야? 저런 얼굴만 말쓱한 제비보다는 내 쪽이 훨씬 더 남자답다고. 조금 있으면 너 인생관도 바뀔 정도로 말이야.” 리엘리아는 헨다라는 남자가 짐승처럼 덤벼들자 겨우 깨달았다. 또 속았다는 것과 역시 믿을 수 있는 인간은 한 명도 없고, 자신은 어쩔 수 없는 불행의 별을 타고 태어난 엘프라는 것을.... 리엘리아는 너무나 극심한 충격에 자신이 지금 위험에 빠졌다는 사실조차 잠시 잊어버렸다. 콰쾅! 헨다가 막 리엘리아를 덮치기 직전에 갑자기 엄청난 굉음과 함께 건물이 순간 흔들렸다. “뭐..뭐여?! 무슨 일이야?!” “이봐요! 헨다씨 무슨 일이에요?!” “내가 그걸 어떻게 알겠어? 지진이라도 난 건가?” 콰앙! 이번에는 갑자기 무엇인가가 문을 부수고 날아왔다. 얼떨결에 그 물체에 부딪친 헨다는 물체와 같이 굴러서 벽에 부딪쳤다. “크윽. 이게 뭐... 어? 으..으아악!” 물체라고 생각했던 그 무엇인가는 거의 반 죽었다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동료였다. “이런, 이런. 정말 등잔 밑이 어둡다는 옛말이 딱 맞네. 설마 이런 더러운 곳이 당당하게 큰 도로 한 가운데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어.” 주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던 충격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서 있던 리엘리아는 너무나 당당하고 힘찬 여성의 목소리에 자연스레 그쪽으로 시선이 돌아갔다. 그곳에는 은빛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아름다운 여성이 당당하게 서 있었다. 그 여자는 가볍게 손목을 풀면서 천천히 방안으로 들어왔다. 너무나 심한 절망에 빠져 있던 리엘리아는 그 여자 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상하게 힘이 솟아나는 기분을 느꼈다. 그 여자는 리엘리아에게 신이 내려주신 진짜 마지막 희망이었다. 여자는 반은 벗은 남자의 모습과 초췌한 리엘리아를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잡혀 온 엘프인가? 호오 거기다가 나쁜 짓까지 막 하려던 참이었나 보네. 그렇지 않아도 난 노예 상인들이 싫은데 이거 현장 증거까지 보게 됐으니 참을 수가 없겠어. 원래는 반만 죽여 놓으려고 생각했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너희들 오늘 그냥 죽었다고 복창해라!!” 그렇게 소리친 여자는 재빨리 리엘리아의 앞을 막아서며 거대한 얼음 덩어리를 소환했다. 공포에 찬 노예상인들의 비명과 폭발음. 분노에 찬 여성의 기합 소리. 그리고 여기저기 부서지고 무너지는 노예상인들의 아지트. 리엘리아가 마지막으로 잡은 희망은 약간 폭력적이었다. 옛날 어린 시절 마을의 장로 할머니께 옛날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났습니다. 아주 오랜 옛날에 한 여자가 열어서는 안 되는 상자를 여는 바람에 상자 속에 갇혀 있던 온갖 나쁜 것들이 나왔다고 합니다. 여자는 무서워서 급히 상자를 도로 닫았지만 이미 나쁜 것들은 세상 모든 곳에 퍼져버렸습니다. 하지만 상자 속에는 아직 무엇인가가 남아 있었는데 그것은 여자를 설득해서 자신도 상자 속에서 겨우 나왔다고 합니다. 상자 속에서 마지막으로 나온 것은 온갖 나쁜 것에 맞서는 희망이라는 이름의 구세주였다고 합니다. 그 날 저는 그 희망의 구세주를 눈앞에서 보았습니다. 차가운 듯이 보이는 은색 머릿결은 이상하게 차갑다기보다는 따뜻하게 보였고, 황금색 눈동자는 분노에 불타고 있는 듯이 보 였지만 무섭다기보다는 박력 있게 보였습니다. 엄청난 마력과 쬐금 무식하다 싶을 정도의 힘으로 희망은 나쁜 것들을 물리치고 저를 구해줬습니다. 저는 그날 옛날이야기로만 듣던 희망의 용사를 만났습니다. 44화 진실을 마주할 용기(1) “아~~ 스트레스 해소했다.” “그..그러세요?” 티아라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거의가 아닌 완전히 무너져버린 노예상인의 아지트를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티아한테 이 일을 맡긴 이상 평범하게 넘어가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건물 하나를 완전히 박살 낼 것까지는 예상 못했었다. 저 건물 더미를 언제 파헤쳐서 건물에 묻혔을 증거나 노예상인들을 발굴(?)하란 말인가? 티아는 저지르기만 저지를 뿐 그 뒷감당은 철저히 자신의 몫인 것을 잘 아는 티아라는 그저 울고 싶을 지경이었다. “저기 티아라야. 걱정하지 마. 엄청 열 받기는 했지만 그래도 하나도 안 죽였어. 잘 파면 알아서 다 살아서 나올 거야.” 티아의 그 한마디에 티아라는 간신히 유지하던 이성의 끈이 끊어져 버렸다. “잘 파면이라고요?” 음산한 티아라의 말투에 티아는 속으로 큰일 났다고 생각했다. 티아라의 이성이 끊어진 것을 느낀 것이다. “저기 티아라야 화났어? 화내면 싫어.” “저는 지금 농담할 기분 아니에요! 애초에 병사들과 같이 들어갔으면 이 정도까지 안 해도 되잖아요!!” “하긴 같이 들어갔다면 싫어도 병사들 걱정에 나도 적당히 했겠지.” “같이 들어가고 아니고는 제쳐두고라도 저렇게까지 해야 될 이유가 도대체 뭐예요?! 티아님은 그렇게 저한테 일거리를 주고 싶으세요? 덕분에 한동안 시퀸 오빠랑 데이트도 못하잖아요! 자기 입으로 결혼하라고 명령 내렸으면 밀어주지는 못할망정 방해를 해야 속이 시원하세요?! 전 어제 겨우 정식으로 손을 잡아봤는데 티아님이 이렇게 일거리를 가져오면 언제 연인다운 데이트에 키스에 그리고 첫경험을 해보냐고요?!!” 티아라의 마지막 말은 거의 발악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 발악은 제쳐두고라도 그 내용에 티아는 입을 헤 벌리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주위에는 세도우 인스테랄 가문 직속 병사들이 많았지만 그들은 전부 방금 전 티아라의 말을 애써 못 들은 척 하기 위해 노력했다. “티아라야. 너 흥분하면 막 나가는 줄은 잘 알고 있지만 오늘은 이상하게 적나라하게 나간다고 생각 안하니?”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고 했죠?! 지금 큰 문제는 내 청춘의 귀중한 시간을 땅 파는데 써야 된다는 거예요!! 티아님은... 티아님은 항상... 흑. 아앙! 티아님은 항상 왜 이렇게 문제를 만드시는 거예요?! 와아앙!” “결국 라스트는 울어버리기니. 하아 어찌된 것이 그 패턴은 변할 생각을 안 하니?” 티아는 대성통곡을 하는 티아라는 놔두고 세도우 인스텔라 가문 병사의 대장을 조용히 불러서 구석으로 데려갔다. “뭐 이왕 일이 이렇게 된 거 다시 무를 수는 없으니 부탁할게. 최대한 티아라의 선까지 안가도록 노력해서 뒤처리를 부탁해.” “걱정 마십시오. 절대 티아라님의 애정전선에 위해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대장은 이제 은퇴 소리가 나올 정도로 나이가 많은 기사로 티아라의 어릴 적부터 가문을 지켜온 어찌 보면 티아라의 할아버지 같은 존재였다. 실제로 대장은 티아라를 정말로 친 손녀처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성통곡을 하고 있는 티아라가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 을 짓고 있었다. “아 그리고 이런 부탁까지 하기는 좀 뭐하지만....” “걱정 마세요. 부하들 입단속은 철저히 시켜서 오늘 티아라님이 한 말은 절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하겠습니다.” “눈치 빨라서 좋네.” “허허허. 눈치 빠른 것은 늙은이들의 전유물이죠. 뒤처리는 저희들이 있으니 티아님께서는 앞으로도 걱정 마시고 마음껏 저질러 주세요.” ‘하하하. 어..어쩐지 마지막 말은 가시가 많이 박혀 있는 것 같아.’ 대장의 주름살이 오늘따라 유난히 꿈틀거리는 걸로 보아서는 티아의 추측은 아예 틀린 것은 아니었다. 티아 역시 확실히 이번에는 아무리 열 받았다고는 해도 너무 심했다는 생각을 하 던 중이다. 그래서 확실히 반성해야 되겠다고 다짐은 했지만... 티아 성격에 과연 그 다짐은 얼마나 갈까? ‘자신 없다. 내가 나를 못 믿는다니.... 어떤 의미로는 최악이야.’ 그래도 하나의 악을 정리했으니 티아는 그 만족감을 위안으로 삼기로 했다. 그때 누군가가 티아의 옷자락을 잡아 당겼다. “응?” 티아가 돌아 본 곳에는 아까 노예상인 건물에서 봤던 엘프가 티아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엘프는 티아로 하여금 열이 받게 만든 원인 중에 하나였다. “무슨 일이니? 이제 넌 자유야. 네 고향으로 돌아가도 돼. 그리고 두 번 다시 잡히지 않도록 해. 인간 중에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나쁜 인간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언니.” “어..언니?!” “전 갈 때가 없어요. 용사 언니께서 절 거둬 주세요.” 그렇게 말하는 엘프의 눈동자는 진심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그 눈빛에 티아는 원인 모를 불안감이 느껴졌다. “저기 얘 그게 말이지. 나는....” “리엘리아에요. 용사 언니.” “그..그래? 내 이름은 티아루아야. 그냥 티아라고 불러도 돼. ...라고 통성명 할 때가 아니잖아! 리엘리아라고 했지? 난 워낙에 바쁜 몸이라 널 거둬 줄 수가 없어. 그리고 내가 하는 일들은 하나같이 위험한 일이야. 그러니 넌 고향으로 돌아가서 여기 일은 잊고 평화 롭게 살도록 하렴.” “싫어요! 전 언니 곁에 있고 싶어요. 궂은일은 제가 도맡아 할테니 제발 언니 곁에 머물게 해주세요.” 리엘리아라는 엘프는 거의 막무가내였다. 그리고 혹시라도 티아가 도망갈 거라고 생각했는지 아까부터 티아의 옷자락을 꼭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일이 그쯤 되자 티아는 새로운 골칫 거리에 두통이 일어날 것 같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난 널 거둬 줄 형편이 못 돼! 무엇보다 난 용사가 아니야. 난 이래 뵈도 드래곤이야. 인간들의 용사가 아니란 말이야.” “드래곤?” “그래 드래곤. 폴리모프라는 마법으로 인간으로 변해있는 것뿐이야. 그리고 사정이 있어서 이 인간 나라의 수호신 역할을 해주고 있지.” “설마 소문으로만 듣던 가장 신에 가깝다는 카이저 드래곤님?” 티아의 정체를 들은 리엘리아는 눈을 휘동 그래 뜨고 놀랐다. 티아는 그 모습을 보고 이제는 포기하고 고향에 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예상은 오판이었다. “드래곤 용사 언니!” 리엘리아는 아까보다 배는 더 빛나는 눈동자로 티아를 쳐다봤다. 그 눈동자에는 존경과 동경을 넘어선 위험하게 보이는 사상(?)까지 담겨 있는 것 같아서 티아는 등골이 오싹했다. “더 잘 됐네요. 저 언니 곁에 영원히 있을게요. 저는 이제 인간이라면 진절머리가 나요! 부탁이에요. 제발 절 거둬 주세요!!” “아악! 제발 부탁이니 고향으로 돌아가! 그리고 이 옷 놔!” “싫어요! 절 데려가 주신다고 말씀하시기 전까지는 죽어도 안 놓을 거예요!!” 두 여자의 데려가 달라 못 데려 간다의 실랑이는 주위 사람들에게 재미있는 구경거리였다. 티아라는 겨우 흥분을 가라앉히고는 그 둘의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저렇게 당황하는 티 아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티아라는 아까의 억울했던 감정이 조금이나마 풀리는 것 같았기 때문에 도와주지 않고 있었다. 아무튼 다시 한번 설명하면 리엘리아의 나이 150살 인간으로 치면 15살의 소녀 엘프는 이 시간부로 위험한 사랑(?)에 눈을 떠버렸다. 더구나 상대는 지상 최강의 생명체인 카이저 드래곤이었다. “티아님께서 많이 늦네요.” “흥 언니야 돌아오든 말든 나랑은 상관없어. 이왕이면 영원히 안 돌아와 왔으면 좋겠는데.” 나는 그 말 그대로 티아에게 말해줄까라고 말하고 싶은 것을 필사적으로 참았다. 서니는 아까가지만 해도 티아가 조금 겁을 준 것만으로도 빽빽 울어대더니 티아가 나가고 난 뒤 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평소의 말괄량이 성격으로 돌아와 있었다. 서니 녀석 몸만 성룡이지 하는 행동은 아직도 철부지 해츨링이군. “파파 졸려.” 내 무릎에 앉아 있던 실피온은 졸린 눈을 비비면서 칭얼댔다. 쩝 아까부터 재우려고 했는데 안자겠다고 투정부릴 때는 언제고.... 하긴 이런 제멋대로인 점은 아기만의 특권이겠지. 그리고 그런 특권에 휘둘리는게 부모라는 것이겠지. “자 그럼 우리 왕자님 침대에서 코할까요?” “우우.” 방금 전에 졸리다면서 자자는 소리에 억지로 눈 부릅뜨는 것은 도대체 무슨 심보냐? “오빠 저한테 맡기세요. 제가 우리 왕자님을 코 재울게요.” 서니의 말을 듣는 순간 난 불길한 느낌에 몸이 굳어 버렸다. 왜 서니가 실피온을 우리 왕자님이라고 부르는 거지? 하나 마음에 짚이는 데가 있었지만 그 가능성은 되도록이면 생각하기가 싫다. 서니는 내가 잠시 현실도피를 하는 사이에 내 손에서 실피온을 빼앗듯이 안아들고는 온화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자 실피온 왕자님. 이 새엄마랑 코하러 가요.” 서니! 네 목적이 역시 그거였냐? 난 뭐라고 한마디 하려고 했지만 너무나 황당해서 말이 입에서 나오지를 않았다. 실피온은 서니를 말똥말똥 쳐다보더니 고개를 홱 돌리면서 한마디 뱉었다. “마마 아냐?!” 장하다! 실피온 역시 내 아들이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대신해주는 실피온이 엄청나게 대견해 보였다. 하지만 그 말은 서니에게는 굉장히 밉살스런 말이다. 서니의 이마 여기, 저기에 힘줄이 돋은 걸로 봐서는 엄청 화가 난 것 같은데.... 그래도 설마 연약한 아기 상대로 한바탕 하지는 않겠지? “호호호. 우리 귀여운 왕자님께서 아직 잘 모르는 것 같은데. 이제부터 내가 엄마란다. 그러니 못된 옛날 엄마는 잊어요.” “서니 너! 그게 아기한테 할 말이냐?! 당장 취소 못 해?!” 아무리 내가 여자한테 약하다지만 저런 소리까지 듣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오빠야 말로 제가 어디가 어때서 마음에 안 든다는 거예요?! 애초에 언니한테 가지 말고 나한테 이 아기를 데려왔으면 아주 훌륭한 엄마와 아내가 돼 드렸을 텐데 오빠는 서니 마음 도 이해 못하고 너무해요!” “그렇다고 얘한테 그렇게 잔인하게 말하냐?!” “난 사실을 말했을 뿐이에요!” “흑. 마마.” 우리 둘의 논쟁은 실피온의 훌쩍거리는 소리에 멈췄다. 실피온은 필사적으로 서니의 품안에서 벗어나려고 버둥거리며 티아를 찾았다. 난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왜 실피 온이 잠을 안자고 투정을 부렸는지 알 것 같았다. 실피온은 며칠 동안 티아의 다른 면을 - 본성이라고 해야 되나? - 보고 삐져버렸지만 그래도 엄마는 티아 하나뿐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가만 있자. 이건 이용할 수 있겠는 걸.’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서니가 제 풀에 항복하게 할 꾀가 생각났다. 나는 실피온을 서니의 손에서 뺏어오려는 당초의 목적을 관두고 느긋하게 앉아서 구경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저기 서니 엄마~~ 실피온이 울려고 하는데 엄마답게 좀 달래봐.” 으으. 내가 말하고도 느끼함을 느끼다니... 하지만 이것은 전부 대의를 위한 일. 꾹 참자. 내 필사적인 희생(?)이 통했는지 서니는 크게 기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 드디어 내 마음을 알아 주셨군요!!” “그래 잘 알았으니 얼른 아기나 달래봐. 서니 엄마~~.” “호호호. 두고 보세요. 아기 달래는 일쯤이야 식은 스프 마시기에요.” 서니는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말했지만 난 믿는 구석이 있었다. 서니는 절대로 실패할 거라는 자신감. 약 1시간여의 시간이 흐른 후. 이번에는 내 믿음이 배신당하지 않았다. “부탁이니 이제 그만 좀 울렴. 힝.” 서니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아기를 달래보려고 했지만 실피온은 막무가내로 빽빽 울어 대기만 했다. 티아를 찾으면서 울어대는 실피온의 투정이 얼마나 심한지는 내가 많이 겪어봐서 잘 알지. 하지만 서니의 눈에 눈물이 핑 도는 걸 보고는 조금 안됐다 싶은 기분도 들었다. “이제 그만 포기 하렴. 실피온은 티아를 엄마라고 생각하고 있어. 그 이외에 여자는 절대로 실피온의 엄마가 될 수 없어.” “난 인정 못해요!” “하지만 실피온도 널 엄마로 인정 안하잖아.” 한 시간 동안 빽빽 울어대던 실피온은 지쳤는지 잠시 울음을 멈춘 상태였다. 하지만 얼굴에 불만이 가득한 게 체력만 회복되면 언제라도 다시 울겠다는 표정처럼 보였다. 서니도 그것을 느꼈는지 울상이 되서 실피온에게 말했다. “실피온아. 제발 말 좀 들어라. 내가 엄마가 되면 실피온이 해달라는 거 다 해줄게? 응?” “마마 어디쪄! 으아앙!” 실피온의 대답은 거절이었다. “나도 더 이상 몰라!” 내 예상대로 결국 서니는 포기해버렸다. 그건 좋지만 빽빽 울어대는 실피온은 어떻게 달랜다. 일단 실피온이 울기 시작하면 그걸 달래수 있는 것은 티아뿐인데.... ‘에고 이럴 줄 알았으면 역시 울기 전에 서니 손에서 빼앗을 걸.’ 후회해 봤자 이미 발동 걸린 실피온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쩝. 이거 또 내가 실피온 안고 티아가 있는 곳으로 가봐야 되나? 하지만 티아가 아기를 키우고 있는 것을 아는 것은 티아라뿐인데.... 이 나라 수호신인 티아가 아기를 키우고 있다는 것을 다른 인간들이 보면 소문나기 딱 좋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묵고 있는 곳도 티아라 집의 별관이고 몇몇 믿을 수 있는 하인을 제외하고는 인간의 출입을 엄격하고 금지하고 있는 판이었다. 물론 티아 실력이라면 소문이 나도 금방 잠재우고도 남겠지만 그 전에 내가 티아한테 혼날 걸 생각하면 끔찍하다. “저. 제가 달래 봐도 될까요?” 그렇게 말한 것은 지금까지 남 일인 것처럼 구경만 하고 있던 니스나였다. “마음은 고맙지만 실피온이 일단 울기 시작하면 티아밖에 달랠 수 없어요.” “음. 그런가요? 하지만 전 달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변화 없는 목소리 톤에 멍한 미소로 그렇게 말해봤자 전혀 설득력이 없는데.... 하지만 이대로 실피온이 빽빽 올게 놔두는 것보다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맡겨 보기로 했다. 적어도 서니보다는 낫겠지. “그럼 부탁드립니다.” 나는 내 품에서 티아를 찾으면서 빽빽 우는 실피온을 니스나에게 넘겼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울어대던 실피온이 울음을 그치는 것이다. “어라? 실피온은 낯가림이 무척이나 심해서 티아라조차도 울고 있는 실피온은 손도 못 됐는데!” 내가 놀라서 소리를 치자 니스나는 손가락을 입에 대고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치하고는 실피온의 등을 토닥이며 노래를 불렀다. [무엇이 무서우니? 나의 아가야. 아무것도 두려워 할 것 없단다. 언제나 아가야 곁에는 엄마가 있단다. 어둠이 무서우니? 나의 아가야. 걱정 마렴. 그 어떤 어둠도 엄마의 빛 앞에서는 약할 뿐이란다. 이 세상에서 하나뿐인 나의 아가야. 오늘도 조용히 편안하게 잘 자고 내일은 방긋방긋 웃는 얼굴을 보여주렴. 사랑하는 나의 아가야.] 놀랍게도 티아를 보지 않으면 절대 자지 않을 것만 같던 실피온이 니스나의 자장가 소리에 눈을 스르륵 감았다. 그리고 얼마 안 되서 조용히 색색거리면서 잠들었다. “어..어떻게... 나도 못한 일을....” 서니는 자신이 못했던 일을 니스나가 하는 것에 놀란 것 같다. 실피온의 등을 토닥이던 니스나는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어요. 그냥 이렇게 해주면 될 것 같아서... 그래서...” “어? 니스나 너 우는 거야?” 서니의 말에 그제야 나도 니스나가 울고 있다는 것을 알아 차렸다. 잠이 든 실피온에게 시선을 빼앗겨서 미처 보지 못했는데 니스나의 눈에는 맑은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어머. 내가 왜 눈물을.... 모르겠어요. 그냥 이러고 있으니 이상하게 마음이 아프면서도 안심이 들어요. 제가 왜 이럴까요?” “그걸 우리한테 물어봐야 알 리가 없잖아.” “내 생각에는 니스나한테 실피온 또래의 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에? 오빠 그럼 니스나가 유부녀일지도 모른다는 말이에요?” “어디까지나 가정일 뿐이지만... 저 모습을 보고 있자면 그렇게 밖에 생각이 안 들어.” 내 말에 서니도 니스나를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지금 니스나가 실피온을 안고 있는 모습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마치.... ‘니스나가 실피온의 엄마인 것 같다. 이..이런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나는 어쩐지 실피온이 멀리 떠나버릴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 예감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는 것까지는 아직 알아차리지 못했다. “여기가 용사 언니 집인가요? 너무 멋있어요!” “내 집이 아니야! 그저 잠깐 신세 지고 있을 뿐이야! 제발 부탁이니 옷 좀 놔주라!” “저 안 버리실 거죠?” “여기까지 따라왔는데 버리고 말고 할게 어디 있니?! 그러니 이제 그만 옷 좀 놔!” “네.” 아래층이 소란스러워 지는 것을 봐서는 티아가 돌아온 것 같은데... 이상 한 것은 처음 들어보는 여자의 목소리가 섞여 있었다. 그 여자는 티아가 들어오면서 볼 수 있었다. 아주 피곤한 얼굴의 티아 뒤에 처음 보는 오렌지색 머리의 엘프 여자가 쭈뼛거리며 따라 들어왔다. “어서와 티아. 그런데 뒤에 엘프는 누구야?” “노예 상인들 아지트에서 우연히 구해 준 엘프야.” “우연히 아니에요! 그건 운명이었어요!” 엘프의 그 한마디로 왜 티아가 피곤한 표정인지 약간 알 것 같았다. “고생 많이 했네.” “말도 못할 정도였어.” 그렇게 말하는 티아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난 그냥 예의상 해본 말인데 그 정도로 고생을 했단 말인가? “우에엥! 자기야!” 티아는 울면서 내 가슴에 안겼다. 도대체 얼마나 귀찮은 일을 당했으면 티아가 이리도 약한 모습을 보이는 걸까? 뭐 이유야 어찌됐던 티아가 내 앞에서 약해 보이는 모습은 자주 볼 수 없는 거라 나는 재수 좋다는 생각을 하면서 티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실은 나는 티아가 약한 모습을 하고 있을 때가 제일 좋았다. 이 때가 티아가 가장 여자답게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서니가 있으니 오래 가지 않겠군. 벌써부터 등 뒤에서 뜨거운 기운이 느껴진다.’ “무슨 짓이에요!” 앙칼진 목소리를 들으며 그럼 그렇지라고 생각했는데 나와 티아를 떼어 놓은 것은 서니가 아니라 티아가 데려온 엘프였다. “당신은 누군데 나의 티아루아님께 손을 대는 거죠?” “나의?” 나는 황당한 마음에 반문을 했지만 티아는 엘프와 입 싸움을 시작하는 바람에 내 질문에 대답해 주지 않았다. “언제부터 내가 너의 티아루아야!!” “아까부터요!” “난 인정 못해!” “하지만 절 데려와 주셨잖아요.” “넌 억지로 따라온 걸 데려와 준 것이라고 말하냐?” “흑. 너무해요. 전 단지 티아루아님의 곁에 있고 싶을 뿐인데... 단지 그것뿐인데....” “아악! 나는 그게 곤란하단 말이야!!” 티아가 폭발 일보직전까지 가서야 난 사태를 지켜보는 것을 그만 두고 말려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저기 일단 둘 다 조용히 해봐.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을 좀 해줘.” 난 간신히 둘을 떼어 놓고 티아에게 설명을 요구했다. “힝. 그게 아까 노예상인들을 박살내고 이 얘를 구해줬는데 그때부터 날 따라다니겠다고 자꾸 엉겨 붙는 거야.” 그렇게 말하면서 나한테 엉겨 붙는 것은 무슨 이유지? 그래도 아까는 진심으로 우는 것이 귀엽기나 했지. 지금은 척 봐도 가짜로 찡찡거리는 게 눈에 보였다. “언니! 혼란한 틈을 타서 뭐하는 거야? 당장 떨어져!” 이번에는 멍하니 지켜보던 서니가 끼어들어서 우리 둘을 떨어트려 놓았다. 하아 서니까지 끼어들었으니 혼란스러움은 배가 되겠군. “지금은 네가 끼어 들 때가 아니야! 서니 넌 저쪽에서 찌그러 져있어!” “그게 언니로서 귀여운 여동생에게 할 말이야?” “귀여운 구석이 있어야 귀엽게 봐줄거 아니야!” “당신은 또 뭔데 나의 티아루아님께 대드는 거예요?! 보기 싫은 남자를 티아루아님에서 떨어트리기에 좋은 인간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아주 예의 없는 인간이군요.” 보기 싫은 남자라는게 날 지칭하는 말인가? 어째서 내가 그런 취급을 받아야 되는 거지? “누가 인간이야?! 난 드래곤이야! 이 세상 최고의 미를 지닌 실버 드래곤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미녀 서니히아님이다!” “흠. 드래곤이셨나요? 그래도 미모로 치자면 티아루아님보다 한참 떨어지는데 무슨 으뜸이죠?” “호오. 리엘리아야. 그건 말 잘했다.” “뭐라고?! 너 죽고 싶어!!” 역시나 혼란의 극치구나. 내 이렇게 될 줄 알았어. 짧은 시간에 이미 아무도 말릴 수 없는 지경까지 가버리자 나는 말리는 것을 포기하고 조용히 자리에 앉아서 차나 마시 기로 결심했다. 세 여자의 말 중에서 간간히 나에 관한 말들도 나왔지만 난 애써 못 들은 척 노력했다. 그 때 실피온을 침대에 눕히려고 나갔던 니스나가 방으로 들어왔다. 니스나는 이제는 험악한 말들이 오고가는 현장을 보고는 고개를 약간 갸웃거리고는 한가하게 차를 마시는 나에게 와서 물었다. “저기 저 분들 지금 뭐 하시는 거죠?” 저 광경을 보고도 모른단 말인가? “여러 가지 의견 차이 및 견해 차이에 의한 전혀 쓸데없는 논쟁중이야.” 길게 설명하기도 귀찮고 어차피 난 논쟁의 발단을 제공한 엘프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에 짤막하게 대답해 줬다. 내 설명 아닌 설명에 니스나는 고개를 두어번 끄 덕이더니 생긋 웃으면서 말했다. “저 분들은 아주 중요한 일을 하시고 계시네요.” ‘도대체 어디가? 어디가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단 말이야!!’ 난 소리 지르고 싶은 감정을 꾹 참았다. 니스나라는 인간 여자와 대화를 하다보면 참을성 기르기 훈련을 하는 느낌이 종종 든다. 하지만 아까 실피온을 달랠 때 보여줬던 분위기는 지금 니스나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전혀 다른 인간 같았는데.... ‘혹시 그게 니스나가 기억을 읽기 전의 본 모습일까?’ 아니 그것보다는 실피온이 한번 울기 시작하면 티아 이외에는 그 누구도 달랠 수 없는 것을 니스나가 해낸 것이 더 미심쩍었다. 아 그러고 보니 이 이야기를 티아에게 해줘야 되는데.... “언니에게 이런 취미가 있는 줄은 정말 몰랐어. 잘 어울리는데.” “너 오늘 정말 날 한번 잡아 볼까?” “취미라니요?! 티아루아님과 저의 만남은 취미가 아닌 운명이었어요! 당장 그 말 취소하세요!” “복잡하니깐 제발 넌 빠져!” 오늘은 이야기를 할 상태가 아니군. ...내일 하자. 그렇게 마음먹고 진지하게 구경 중인 니스나에게 잘 자라는 인사를 건넨 후에 내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난 거실 밖으로 나가기 전에 티아에게 잡혀서 끼어들기 싫은 말싸움의 현장으로 끌려갔다. “리엘리아 분명히 말하겠는데 나한테는 남편이 있어! 바로 이 남자야!” 하아. 결국 난 이런 용도(?)밖에 안 된단 말인가? 티아의 고백에 충격을 받았는지 리엘리아 는 입을 벌린 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뭐 이것으로 조용해진다면 나로서도 불만은 없지만 문제는 서니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으니 결국 이 방법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언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오빠는 나와 운명적으로 엮어진 사이란 말이야! 당장 떨어져!!” 역시나 서니는 펄쩍 뛰면서 내 팔을 잡고 있는 티아의 손을 떼어놓으려고 했지만 티아의 힘을 당할 수는 없었다. - 덕분에 나는 팔이 좀 아팠다. - “안돼요! 티아루아님! 남자는 전부 배신자들이에요! 남자는 절대 믿을 수가 없는 생물이란 말이에요! 저처럼 상처 받기 전에 그런 남자는 버리세요!!” 저쪽 엘프는 이제 조용해질 거라는 내 예상과는 달리 정색을 하면서 티아를 말렸다. 그리고 방금 전 말로 대충 엘프가 어떤 일을 당했는지 알 것 같다. 하지만 도대체 무엇을 얼마나 배신당했기에 남자라면 저렇게 정색을 하며 싫어하는 걸까? “너 말 조심해! 테이 오빠는 너 같은 계집애가 함부로 말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야! 위대한 실버 드래곤 중에서도 으뜸으로 멋진 남자고, 으뜸의 미모를 지닌 내 운명의 남자란 말이야! 지금은 마녀 티아 언니에게 속아서 잡혀 있지만 반드시 나에게로 돌 아올 내 하나뿐인 왕자님이야!” “그쪽이야 말로 말조심 하시죠! 어째서 티아님이 마녀라는 말도 안돼는 소리를 하는 거죠? 티아님은 희망의 여신이자 저의 용사님이에요! 드래곤이라고 하면 무조건 무서워 할 줄 아는 것 같은데 배신자 남자 따위는 하나도 무섭지 않아요!” 어느새 형세는 엘프는 나의 험담을 서니는 티아의 험담을 늘어놓는 걸로 바뀌었다. 그리고 말은 갈수록 그냥 듣고 있지 못할 정도로 험악해져갔다. 인간은 참는데도 한도가 있다고들 말한다. 그리고 지금 티아와 내가 한도라는 것이 어느 정도인지 직접 경험하고 있었다. 더구나 나는 도저히 참지 못할 지경까지 갔다. “그만들 못해!! 참고 들어주는데도 한도가 있어!!!” 티아도 나와 같은 기분이었는지 나와 동시에 똑같은 말로 소리쳤다. 그리고 정말로 참지 않고 드래곤의 기운을 있는 대로 뿜어내면서 둘을 위협했다. 효과는 말할 것도 없이 잘 먹혔다. 특히 티아의 카이저 드래곤의 기운은 나를 향하는 것이 아닌 것을 알고 있어도 내 등에 식은땀이 흐를 정도이니 서니와 엘프에게는 가히 위협적이었겠지... 방금 전까지 험악하게 싸우던 서니와 엘프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두 손을 마주잡고 부들부들 떨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조금 심했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았으면 오늘 티아라의 집이 무너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생각으로 지금의 상황을 정당화 시키면서 둘에게 조용히 하지만 위압을 한껏 담아서 말했다. “제발 부탁이니 그 정도로만 해 둬. 자꾸 그러면 난 정말로 서니 널 미워하게 될지도 몰라!” “리엘리아 너도 적당히 해! 데려가 달라고 하도 부탁을 해서 데려와 줬지만 내 개인적인 사생활에까지 끼어드는 것은 절대 용납 못해!” “흑.” “훌쩍.” 서니와 엘프는 결국에는 서로 얼싸안고 크게 울어 버렸다. 나와 티아가 울린 거지만 위로해 주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렇게 혼나도 싼 일을 했으니 이건 정당한 대가다. “저기....” 그 때 뒤에서 얌전히 구경만 하던 니스나가 우리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논쟁(?)도 끝난 것 같으니 저는 이제 그만 자러 가겠습니다. 여러분들도 안녕히 주무세요.” 어떻게 해야 악의 절대 없음이라는 얼굴로 은근슬쩍 남의 속을 긁어대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정말이지 니스나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들을 때마다 니스나에 대해서 연구를 해보고 싶은 생각이 새록새록 솟아난다. “어? 리이나? 리이나 맞지? 리이나지!!” 실컷 울고 있던 엘프는 갑자기 퉁기듯이 일어나서 니스나의 손을 잡고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했다. 설마 저 엘프 니스나를 알고 있는 건가? “와아앙! 역시 리이나가 맞구나! 보고 싶었어! 나 여기까지 오는 동안 말도 못할 고생을 했단 말이야!” 엘프는 진짜로 니스나를 알고 있는 듯 했다. 하지만 정작 니스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저기 절 아세요? 죄송하지만 전 당신을 모르는데요.” “무슨 농담을 하는 거야?! 나야! 시즈트 숲의 리엘리아란 말이야! 우아앙! 겨우 겨우 만났어. 나 평생 동안 쓸 불행을 다 쓰면서 여기까지 왔어! 리이나!!” 나는 흥분해서인지 언성이 점점 높아져 가는 엘프를 일단 니스나에게서 떼어 놓기로 했다. “저기 리엘리아라고 했지? 일단 좀 진정하고 우리말부터 들어 줄래.” “내 몸에 손대지 말아요!!” “네. 네.” 티아한테 그렇게 혼나고 난 뒤지만 남자를 극도로 싫어하는 점은 변하지 않은 것 같다. 그 이유는 나중에 천천히 듣기로 하고 일단 니스나에 대해서 말을 해줘야겠지. “리엘리아. 절대로 놀라지 말고 내 말 잘 들어. 실은 니스나는 기억 상실증이야.” “니스나? 그게 누구죠?” “네가 아직도 붙잡고 있는 여자 말이야. 계곡의 급류에 떠내려가는 것을 내가 구해줬는데 기억 상실증에 걸렸더라고. 자기 이름도 기억 못해서 내가 니스나라는 이름을 붙여줬어.” 엘프 리엘리아는 서니의 설명에 아직도 손을 잡고 있던 니스나를 멍하니 쳐다봤고, 니스나는 예의 그 악의 절대 없음의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네. 저는 기억 상실증이 맞아요. 전 이름도 기억이 안 나고 아가씨에 대해서도 전혀 기억이 안나요. 죄송합니다.” 그 화사한 미소가 정말로 죄송한 사람의 표정이 맞는 거야? 아무튼 내 설명과 서니의 설명 마지막의 니스나의 굳히기 설명으로 모든 사태를 파악한 리엘리아는 멍하니 있다가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나.. 나... 나!”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도저히 이 세상 것이라고 믿기 어려운 울부짖음이 집을 뒤흔들었다. “나는 역시 세계 최고로 불행한 엘프야!! 와아아아앙!!!” 우리는 리엘리아가 진정할 때까지 멍하니 소파에 앉아 있었다. 리엘리아를 달래는 역은 티아라 혼자서 도맡아 하고 있는 중이다. 정확히는 처음에 니스나도 같이 달래고 있었으나 니스나가 한마디 할 때마다 리엘리아의 울음소리는 더 커져만 가서 도중에 얌전히 앉아 있 기로 한 것이다. “훌쩍. 훌쩍.” 리엘리아의 울음소리가 겨우 잦아들기 시작하자 가만히 지켜보던 티아가 본격적으로 리엘리아에게 질문을 했다. “진정했으면 내가 묻는 질문에 대답해줘. 알겠지?” “흑. 네.” 리엘리아는 훌쩍이면서 고개를 끄덕였고, 티아는 현재 우리가 가장 궁금한 니스나의 정체부터 물었다. “니스나의 진짜 이름과 어떤 인간인지부터 말해줄래?” “네. 진짜 이름은 리이나고요. 리이나는 오리하곤이라는 인간 나라의 궁전에서 일하는 시녀에요.” “시녀?” 난 얼굴을 찌푸렸다. 지금 니스나가 오리하곤 왕국의 왕가의 문장을 갖고 있다는 것 때문에 왕자의 납치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증거가 나오는 기분이다. ‘시녀라면 내부 사람이니 왕자를 납치할 기회가 있었겠지. 하지만....’ 니스나의 멍한 표정을 보고 있자며 아닌 것 같기도 하니.... 하지만 기억을 잃고 난 뒤에 저런 성격이 됐다면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이 아니다. ‘만약에 그녀가 정말로 납치범이라면.... 이대로 기억을 안 돌아 오는 것이 더 좋을지도 모르겠는걸.’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리엘리아는 니스나 아니 그녀가 알고 있는 리이나에 대해서 계속 설명했다. 처음 어떻게 만났는지부터 설명했는데 그걸 듣고 있자니 내 머릿속은 더 혼란에 빠졌다. 리엘리아가 설명하는 리이나는 절대 나쁜 인간 같지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굉장히 착한 인간이었다. ‘역시 왕자 납치범이 아닌건가? 그렇다면 도대체 왜 왕가의 문장을 가지고 있는 거지?’ 슬쩍 다른 사람들의 표정을 살펴보니 티아도 티아라도 복잡한 표정이다. 아마도 지금 내 마음과 같겠지. 다만 서니는 관심 없다는 표정이고, 지금 리엘리아가 이야기하는 리이나 본인은 가끔 고개를 갸웃거릴 뿐 전혀 진지하지 않은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지금 리엘리아의 이야기에 가장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될 녀석 둘이 저 모양이니.... 에구구. 어쩐지 리엘리아의 설명이 끝나도 사태가 해결될 만한 단서는 나오지 않을 것 같다. “잠깐! 방금 뭐라고 했어?!” 나는 갑작스런 티아의 고함 소리에 깜짝 놀라서 잠시 리엘리아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티아는 다시 한번 말해보라고 리엘리아를 추궁했고, 리엘리아는 내가 듣지 못했던 설명을 다시 했다. “그게 몇 달 전에 리이나가 아기를 데려와서 나에게 다이러스 제국으로 데리고 가달라고 부탁했어요.” “그 아기 혹시 리이나의 아기야?” “아닐걸요. 리이나는 거의 주에 한번 꼴로 만났지만 아기를 가졌던 적이 없어요.” 이거 완벽한 결정타 같은 걸. 이것으로 리이나 = 왕자 납치범이라는 생각이 더욱 굳어졌다. 티아도 그 생각을 했는지 어두운 표정으로 입술을 잘근 물었다. 리엘리아는 분위기가 갑자 기 무거워지자 위축이 됐는지 몸을 떨면서 나와 티아를 번갈아 쳐다봤다. 물론 서니와 리이 나는 여전히 그게 뭐 중요한 일이냐는 표정이다. 리이나는 이제 성격상 포기했다 치더라도 서니는 아까 전에 나와 티아에게 대강의 설명을 들었는데도 눈치 못 채는 건가? 하아. 도대체 누굴 닮은 건지. 서니의 앞날이 걱정된다. “그럼 그 아기는 어떻게 됐죠?” 티아라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서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난 처음에는 티아라가 저 정도로 충격을 받은 것이 이해가 안 갔지만 곧 리엘리아에게는 아기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나쁜 예감이 들었다. 리엘리아는 아기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다시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흑흑. 내 잘못이 아니에요. 숲에서 고블린 떼들을 만나서.... 그래서....” 훌쩍거리면서 더듬더듬 말을 내뱉던 리엘리아는 결국에는 크게 울어버렸다. “하아. 그래도 만에 하나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데 가능성을 걸어봤는데....” 티아는 어두운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면서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설마 우는 걸까? “티아님.” 티아라는 자신도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지만 그래도 티아를 위로하기 위해서인지 티아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하지만 그 이상 다른 위로를 건네주지 못하고 그저 눈물만 삼키는 모습이 안타까워 보였다. 침울한 분위기가 방안을 맴돌자 여전히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의 서니가 티아에게 조심 스럽게 물었다. “언니 왜 그래? 저 엘프의 실수로 죽은 아기가 아는 아기야?” “아직 죽지는 않았어요!” 울어대던 리엘리아가 서니의 말에 화를 버럭 내며 소리쳤다. 그 말에 티아도 티아라도 한 가닥 희망을 잡은 기대에 찬 표정으로 리엘리아를 바라봤다. “그럼 아기 어딨어?!” “어디 계시죠? 슬라드 왕자님께서는 지금 어디 계시죠?” 리엘리아는 그 질문에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리는 사이에 서니가 티아라의 왕자라는 말에 놀란 비명을 질렀다. “에에?! 와..왕자?! 어째서 리이나가 왕자를 이 엘프에게 맡겼다는 거야?” 으으. 저 도움이 안 되는 바보 동생!! 그 정도까지 들었으면 대강의 사태 파악은 하고 눈치껏 입 좀 다물고 있으면 어디 덧나나? 나는 급히 서니의 입을 틀어막으면서 리이나의 눈치를 살폈다. 아무리 멍한 성격이라지만 이 정도까지 들었으면 리이나도 대강 알아챘겠지. 아니 혹시 이게 충격이 되서 약간이나마 기억이 돌아올지도.... 때 마침이라고 해야 되나 리이나의 눈치를 살피던 내 눈과 리이나의 눈이 마주쳤고, 리이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저기. 제가 왜 왕자를 엘프에게 맡겼을 까요?” “.......” 저 여자는 나에게서 무슨 대답을 원하는 걸까? 아무리 멍한 성격이라도 정도가 있지! 만약에 티아가 현재 내 심정을 눈치 채고 날 잡아끌지 않았다면 소리라도 질렀을 것이다. 티아는 날 자리에 도로 앉히며 진정하라는 뜻인지 주먹을 쥐어서 보여줬다. 그 행동이 뭘 뜻하는 것인지 내 몸은 잘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화를 삭이며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 정말로 진짜로 내 인생이란.... “하아. 너 본명은 리이나라고 하니 리이나라고 부를게. 리이나 넌 이 정도까지 들었는데도 뭐 생각 나는거 없니?” 티아의 질문에 리이나는 뭔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게 아까부터 저 엘프씨가 하는 이야기는 다른 사람 이야기 같은 기분만 들었는데요.” 리이나의 대답에 티아는 한참을 리이나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리엘리아를 바라보며 물었다. “정말 네가 이야기하는 리이나가 이 여자 맞니?” “틀림없어요! 원래 리이나는 정말로 착하고 똑똑하고 상냥했는데... 그랬는데.... 흑. 아앙! 내 친구 리이나를 돌려주세요!” “여기서 돌려달라고 울어봐야 우리가 어떻게 해서 돌려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티아는 두통이 나는지 관자놀이를 만지면서 자리에 앉았다. “잠시 끊어진 이야기나 계속해보자. 그래 그 아기는 어떻게 된거야. 살아 있다고 했지? 같이 노예상인에게 붙잡힌 거니?” 티아의 질문에 이번에는 티아라가 소스라치게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 뭔가를 기도하기 시작했다. 티아라의 이상한 행동은 나중에 티아가 노예상인의 아지트를 박살냈다는 설명을 듣고는 이해 할 수 있었다. 티아라는 그 폐허에 왕자가 묻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제발 살아있기를 기도했던 것이다. 티아라에게는 다행히도 리엘리아의 대답은 아니요라는 대답이었다. “그럼 아기는 어디 있는 거야?” 티아의 재차 계속되는 질문에 리엘리아는 대답하기를 주저했다. “대답을 안 하면 모르잖아! 정말 살아 있기는 한거야?! 아님 혹시 행방불명 된 거야?” “흑. 아앙! 제 잘못이 아니에요!” “울지 말고 똑바로 대답을 해. 그런 말로는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잖아!!” 티아의 짜증이 극에 달하자 그제야 리엘리아는 울먹이며 더듬더듬 대답을 했다. “흑. 드.... 흑흑. 살아 있기를 빌지만.... 하지만 드....” “드? 드 뭐?! 드가 뭐야? 어쨌는데?!” “으에엥! 내 멍청한 실프가 아기를 드래곤 레어에 갖다 놔버렸어요.” “뭐라고?!” “에엑!” 리엘리아의 대답에 티아와 나는 비명을 질렀다. 어쩐지 어디선가 비슷한 상황을 최근에 겪은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 “어..언제? 언제 그렇게 됐는데?!” “그게... 자세한 날짜는 잘 모르겠지만.... 반년 정도쯤에....” 하하하. 어쩐지 날짜마저 비슷한 느낌이.... 공황상태에 빠진 나보다는 티아 쪽이 훨씬 회복이 빨랐다. 티아는 나를 쳐다보며 소리치며 물었다. “테이야 실피온 어디 있어?!” “저..저기 옆방에....” 티아는 내 대답을 끝까지 듣지 않고 바로 실피온이 자는 방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문을 거쳐서 오기도 귀찮았는지 벽을 박살내고 거실로 들어왔다. 그 소란에 실피온은 잠이 깨고는 투정을 부렸지만 티아는 상관 않고 실피온을 리엘리아 에게 안겨 주면서 물었다. “그..그 아기 이 아기 맞니? 아니지? 절대 아니지?!” 티아는 몸을 떨면서 리엘리아의 대답을 기다렸다. 리엘리아는 얼떨결에 실피온을 받아들고 이제 막 울어버리려고 품 잡고 있는 실피온을 찬찬히 살펴보더니 소리를 질렀다. “아앗! 내 찌찌 빨았던 아기다! 이 아기가 틀림없어요!!” 그 한마디로 사태는 해결됐다. 실피온이 슬라드 왕자라는 결정적인 증거가 된 것이다. 아니 증거는 되도 사태 해결에는 도움이 안 되는 것 같다. 티아는 넋을 잃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고, 실피온은 잠을 깬 보복으로 우렁차게 울기 시작했다. “어라? 도대체 무슨 일이야? 오빠 어떻게 된 거야! 나한테도 설명 좀 해줘!” 여전히 서니는 이해를 못하는 건지 날 붙잡고 흔들었지만 주저앉아 있는 티아의 뒷모습이 너무나 안쓰럽고 가련하게 보여서 나는 설명을 해줄 기분이 들지 않았다. 도대체 이럴 때는 무슨 말로 위로를 해줘야 되는 것일까? 이때만큼은 내 말발이 짧은 것이 정말로 저주스럽다. 나는 결국 말 대신에 티아의 어깨에 살그머니 손을 얹었다. 그러자 멍하니 있던 티아는 조용히 자기 손을 내 손에 포갰다. 떨리고 있는 티아의 손을 통해서 티아의 깊은 슬픔이 전해오는 것 같아서 가슴이 아팠다. “아앗! 뭐 하는 거야! 언니! 그 손 당장 못 놔!” 하아. 우리는 분위기도 마음대로 못 잡는 운명인가? 서니가 나와 티아의 사이에 끼어들자 티아는 평소처럼 화를 내지도 않고 그저 조용히 일어나서 리엘리아의 손에서 실피온을 받아서 안고는 조용히 자장가를 부르며 실피온을 달랬다. 실피온의 울음소리가 잦아들자 티아는 우리들을 돌아보면서 조용히 말했다. “밤이 너무 깊었어. 쌓인 이야기도 많고 확인해야 될 것도 많지만 내일 아침에 하자.” “티아.” 내가 무슨 말이라도 해보려고 티아를 불렀지만 티아는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내일 얘기해.” 그렇게 말하고 티아는 실피온을 안고 거실에서 나갔다. 이제 어떻게 되는 것일까? 실피온을 키우던 그 날들은 단순한 꿈이 되는 것일까?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수많은 상념이 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는 동안 밤은 더욱더 깊어져갔다. 계속 슬슬 끝이 보이는 군요. 드남을 아껴주시는 독자 여러분에게는 슬픈 소식이겠지만 완결을 해야 된다는 사명감에 불타는 저에게는 기쁜 일이라는.... (저기 돌들 내려놓으시고... 거기 칼 갈지 마요!) 자 다음 편 티아의 선택은 과연....(이라고 해봐야 그동안 티아 성격을 잘 파악하시는 독자님들은 감 잡으셨겠죠. ^^;;) 다음 편에 뵙겠습니다~ 늘 즐거운 시간 되세요. P.S 12월 PC겜 천랑열전 1월 데빌 메이 크라이2 3월 테일즈 오브 데스트니2 한글판 연타로 날 유혹하는 게임들입니다. 유혹에 져버리면 큰일 나는데.... 안되는데... (라고 하면서도 통장에 돈 확인하는 내 참을성이란.... 먼시선.) 너무나 많은 진실에 혼란스런 하루가 지나고 있었다. 티아가 나가고 난 뒤에 어떻게 아기가 여기 있냐고 질문하는 리엘리아와 자기 정체를 묻는 리이나 그리고 분위기 파악 못하고 같이 자자고 덤벼드는(?) 서니를 겨우 떼어놓고 나는 거실 소파에 누워서 잠을 청했다. 티아라가 준비한 내 방도 있었지만 잠시 자리에 남아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다보니 그냥 그 자리에 눕게 됐다. 하지만 나는 잠을 자지는 않았다. 여러 가지 생각과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될지 고민에 잠이 오지 않았다. 실피온이 오리하곤 왕국의 왕자임을 안 이상 역시 돌려줘야 되는 것일까? 이런 진실 따위는 알고 싶지도 않았는데.... ‘그냥 콱 모른 척 하고 계속 우리가 실피온을 키울 수는 없을까?’ 티아와 실피온을 데리고 야반도주까지 진지하게 생각하던 나는 인기척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 자고 여기서 뭐 하는 거야?” “티아.” 티아였다. 티아는 티아라 것으로 추정되는 얇은 잠옷을 입은 채로 거실로 들어오는 중이었다. “티아야 말로 안 자고 뭐 하러 여기 온 거야?” “질문은 내가 먼저 했어.” “나야 그냥 여러 가지 생각에 잠이 안와서 여기 있다 보니깐....” “나랑 똑같네. 나도 여러 가지 생각에 잠이 안 와서.” 티아는 조용히 미소 지으면서 내 옆에 와서 앉았다. “여기가 달빛이 가장 잘 비치는 곳이잖아. 그냥 오랜만에 달빛 샤워를 해보고 싶어서.” 그렇게 말하는 티아는 금방 농담이라는 뜻으로 킥킥 웃어댔다. 평소에 나라면 틀림없이 무슨 헛소리냐는 말을 생각 없이 하고는 한대 얻어맞았겠지만 지금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티아의 방금 전 말은 평소의 장난끼가 하나도 들어가지 않은 아니 오히려 담담한 말투였기 때문이다. 내가 대답 없이 묵묵히 앉아만 있자 혼자 웃던 티아는 머쓱한지 웃음을 그치고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날이 밝으면 꿈은 끝나는 거지?” 그 한마디로 티아가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알 수 있었다. 티아는 역시 실피온을 돌려줄 생각인 것이다. “돌려줄 거야? 우리 실피온을?” “이제는 실피온도 아닌걸. 슬라드 왕자야. 그리고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찾아 준 거라는 말이 맞을 걸.” “어째서 그런 슬픈 말을 하는 거야!” 나는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졌다. “쉿! 목소리 낮춰. 슬라드 왕자가 깨겠어.” 나는 끝까지 실피온을 슬라드라고 부르는 티아의 태도에 화가 났다. 그래서 티아가 뭐라고 하던 들은 척도 안하고 내가 하고 싶은 말만 뱉어 버렸다. “정말로 이대로 괜찮은 거야? 우리가 키우기로 했잖아. 바르고 착한 아이로 우리가 키우기로 약속했잖아! 티아는 어째서 그렇게 담담할 수가 있는 거야?! 실피온을 정말로 이렇게 보낼 거야?! 그래도 정말 괜찮은 거야?!” “그만해!” 티아는 내 입을 막으면서 소리쳤다. “실피온이라고 부르지 마. 실피온이라는 이름은 이제 잊어 줘. 요 반년간은 꿈이었다고 생각하고 싶단 말이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는.... 나는....” 티아는 말을 더 잊지 못하고 내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뒤이어 흐느끼는 소리와 내 셔츠가 축축해졌다. ‘젠장! 나란 놈은....’ 티아의 흐느끼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나는 겨우 깨달았다. 티아는 괜찮은 것이 아니라 괜찮은 척 했던 것이다. 티아의 약하게 보이는 징징 짜는 모습을 좋아했지만 이렇게 가슴 속 깊은 슬픔에 우는 모습은 보기 싫었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만들어 버렸다. 흥분해서 좀 더 티아의 마음 을 깊이 헤아리지 못 한 것이다. 나란 놈은 왜 이렇게 둔한 건지.... “미안해.” 난 내 입을 가리고 있던 티아의 손을 떼고는 나직막하게 속삭였다. “미안해.” 티아의 울음소리가 그칠 기미가 안보이자 나는 티아를 살며시 껴안으며 귀에 대고 다시 한번 미안하다고 속삭였다. 하지만 여전히 티아는 울음을 그칠 기미를 안보였고, 나는 그대로 티아를 안은 채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울음소리가 잦아 둔 티아는 내 가슴에서 얼굴을 떼고는 소매로 눈가를 문지르고 돌아앉았다. “미안. ...셔츠 젖어 버렸지?” “걱정 마. 비에 맞은 것보다는 적게 젖었어.” “바보.”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쿡 하는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봐서 어느 정도 기분이 풀린 것 같았다. “울다가 웃으면 어디에 털 난다고 내가 말한 적이 있을 텐데.” “바보.” 다시 한번 웃음소리가 들렸다. 어쩐지 이런 상황이 되고 보니 티아의 바보라는 말이 듣기 싫지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좀 더 그런 티아의 목소리가 더 듣고 싶었다. “지금 티아의 어디에는 털이 아주 많이 나 있겠다.” “이 바보야!” 난 눈에서 번쩍이는 별이 날아다니는 광경을 보면서 벽으로 날아갔다. 젠장. 적당히 할 걸. “나름대로 재미있는 생활이었어.” 내가 티아에게 맞은 눈에 힐링을 거는 동안 소파에 무릎을 모으고 앉아 있던 티아가 그렇게 말했다. “어째서 과거형인거야?” “내일이면 과거가 될테니깐.” “과거로 안 만들면 되잖아.” 내 자신감 넘치는 말에 티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쳐다봤다. “무슨 좋은 방법이 있는 거야?” “실피온 데리고 야반도주하자.” “.......” “노..농담이야! 농담이니 그 아이스 미사일 좀 없애줘!” 난 티아표 특제 아이스 미사일에 겁을 먹고 급히 소리치자 티아는 한심하다는 얼굴로 마법을 소멸 시켰다. 젠장! 뭐야 그 한심하다는 표정은! 난 내 나름대로 고민해서 최선책을 꺼내 놓 은 건데! 하긴 실행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래도 나는 그렇게라도 하고 싶었다. 실피온을 키우면서 재미있고 행복했던 것은 티아만이 아니다. 나 역시 그 생활이.... “하지만 정말은 그렇게라도 하고 싶어.” 한숨 섞인 티아의 말에 난 귀가 번쩍 뜨였다. “그럼 당장에 실행하자! 아무도 찾지 못하는 곳으로 가서 오순도순 사는 거야!” “알잖아. 불가능 하다는 것을....” “불가능한지 안한지는 해보면 되잖아!” 티아는 고개를 저으며 나의 얼굴을 붙잡았다. “안돼. 그렇게 할 수는 없어. 실피온에게도 가족이 있는 거잖아. 그렇게 할 수는 없는 거야.” “.......” 티아가 슬픈 눈으로 그렇게 말하자 나는 더 이상 해줄 말이 없었다. 나 역시 머리로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도 머리로는 이해해도 감정으로는 이해 할 수가 없는 일도 있는 법이다. 그리고 아무리 감정으로는 이해 할 수 없어도 현실적으로 반드시 해야 될 일이 있는 것도.... “지금이 그 일을 해야만 될 때야.” “...또 내 마음 읽은 거야?” “미안.” 티아는 내 얼굴을 붙잡은 손을 떼고는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다시 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내일이면 다시 누나 동생이 되겠네. 그 동안 날 이름으로 불렀던 것 기분 좋았지?” “쳇. 다 알고 있으면서 묻지 마.” 난 티아의 키득거리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얼굴을 붉혔다. 티아의 말대로 그 동안 티아를 이름으로만 불렀던 것이 너무나 기분이 좋았다. 잠시 동안이었지만 티아와 나의 평행선이 하나로 만났던 기분 같았다. “역시 포기 할 수 없겠어.” 나직하게 내뱉는 내 말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티아가 고개를 들고 한심하다는 눈으로 날 쳐다봤다. “원만하면 이제 남자답게 포기해. 이제 포기할 때도 됐잖아.” “아니 역시 난 포기 못하겠어. 난 티아를 계속 티아라고 부르고 싶단 말이야!” 난 티아의 손을 강하게 붙잡으면서 소리쳤다. 티아의 얼굴은 단박에 잘 익은 사과같이 붉어졌다. “무..무슨 소리야? 이거 안 놔?!” “분명히 말하겠어. 두 번 말 안 할테니 잘 들어! 생명의 실버 드래곤 티아루아에게 생명의 실버 드래곤 테이루아가 말합니다. 우리의 아이를 만듭시다!” 난 결국 터트려버렸다. 우리 드래곤 사회에서 전통적으로 쓰이는 청혼. 인간들이나 타 종족처럼 결혼식이니 뭐니 하는 복잡한 절차가 없이 남자의 이 한마디에 여자의 대답으로 부부가 된다. “무..무슨 농담을 하는 거야? 난 이런 농담 싫어.” “내 눈이 농담을 하고 있는 것 같아? 난 진심이야.” “나는... 나는....” 나는 잠자코 티아의 대답을 기다렸다. 옛날에는 내가 티아에게 쫓기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티아가 나를 멀리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쫓고 쫓기는 지루한 공방을 이 한마디로 끝낼 자신이 나에게 있었다. 더 이상 티아를 도망치게 놔두지 않을 것이다! 라고 그때는 그렇게 마음먹었다. 하지만 난 한 가지 변수를 까맣게 잊어먹고 있었다. “나는....” 티아는 어느새 울먹이면서 더듬더듬 말을 하고 있었다. ‘기뻐서 우는 걸까?’ 내 착각이었다. “몰라!” 티아의 외마디 비명과 함께 난 턱에 강렬한 충격을 느끼면서 그대로 날아갔다. 거실 창문까지 깨고 정원으로 날아간 나는 그제야 잊어먹었던 변수가 무엇인지 생각났다. ‘저 놈의 무식한 힘을 어쩌지 못하는 한은 나에게 봄은 없겠구나.’ 그래도 나에게 희망이 보이는 것이 있다면 바로 티아의 대답은 싫어가 아닌 몰라라는 것이다. “후후후. 몰라라. 아무튼 싫다는 뜻은 아니렷다. 두고 봐! 반드시 응이라는 대답을 하게 만들어 주겠어!” 나는 밤하늘의 달을 향해 주먹을 불끈 쥐면서 다짐했다. 이제부터는 나의 공격이 시작 되는 것이다! 계속 네 드디어 테이가 남자 선언을 하는 편이었습니다.^^;;; 이제부터는 둘의 관계가 역전 되겠지요.(아마도요... ^^;;;) 물론 내가 중간에 마음이 바뀐다면 원위치가 되겠지만요.(역시나 사악 작가... ^^;;) 아무튼 드디어 마의 100페이지 고지를 넘겼습니다. 이상하게 이 고지를 앞에 두면 죽어라고 안 써지다가 이 고지만 넘으면 그 다음부터는 술술이더군요. ㅡ.ㅡ;;; 하지만 일단은 여기가 제 한계입니다. 졸립고 허리 아픈 것이 한계 수치를 넘어선지 옛날.... 일단은 자고 내일 새벽녘에 다시 쓰겠습니다. 늘 즐거운 시간 되세요~~ 다음 날 아침. 티아들은 리이나와 슬라드 왕자의 문제에 대해서 논의하기 위해서 다시 거실로 모였다. 그리고 티아라는 어제 부서진 벽 이외에도 산산조각이 난 정원으로 통하는 창문을 보고는 한숨을 쉬며 티아에게 물었다. “밤새 무슨 일이 있었나요?” “몰라! 나한테 묻지마!” “네 알겠습니다. 제발 부탁드리니 다음부터는 기물 파손은 제발 참아 주세요.” 보나마나 평소와 같은 티아와 테이의 싸움이라는 것을 대충 짐작한 티아라는 이유에 대해서는 더 묻지 않고 더 집을 부수지 말라는 부탁만 했다. 그 말이 오히려 티아의 화를 부추겼는지 티아는 발끈하며 소리쳤다. “내 잘못이 아니란 말이야!” “맞아. 티아만 잘 못한게 아니야.” “꺄악!” 어느새 티아의 뒤에는 테이가 서 있었다. 티아는 다른 이들이 보기에 확실히 수상할 정도로 놀라서는 테이 곁에서 떨어졌고, 테이는 기분 나쁜 표정으로 티아에게 말했다. “내가 괴물이야? 비명을 지르다니 실례잖아.” “시..시끄러! 갑자기 내 뒤에 서진 말란 말이야!” “그게 무슨 잘못이라고 아침부터 이 난리를 치는 거야? 아무튼 티아라 미안하게 됐어. 어제 티아와 약간 말다툼을 하다 보니깐 이렇게 됐어.” 테이의 변호에 티아라는 역시 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떡였다. 하지만 지금 티아라는 그것보다 더 궁금한 점이 생겼다. 바로 테이가 뒤에서 나타나고 난 뒤부터 이상해진 티아의 행동이었다. “잘못은 테이 네가 먼저 했잖아! 그리고 이제는 연극은 끝났으니 내 이름 부르지 마!” “그럼 뭐라고 부르라고?” “당연한 거잖아! 누나라고 불러!” “싫어.” 테이는 티아의 명령을 담담한 목소리로 딱 잘라 거절했다. 평소라면 여기서 티아의 분노에 찬 소리와 함께 주먹이 날아가는게 정상적인(?) 패턴이지만 이번에 티아는 그저 분한 듯이 몸을 바르르 떨 뿐이다. 평소와는 다른 둘의 분위기에 잠자코 구경하던 티아라는 무언가를 느끼고는 손을 탁 쳤다. ‘어젯밤 무슨 일이 있으셨구나!’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을 눈치 첸 티아라는 남의 사랑 이야기를 좋아하는 소녀처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티아와 테이의 말을 엿들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어제 그 발언은 절대 무효야! 난 받아들일 생각 죽어도 없으니 그만 포기해!”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면 내가 받아들이게 만들어 주겠어.” “난 절대로 싫어!” “정말로 싫어?” 갑자기 진지하게 물어보는 테이의 눈을 티아는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티아는 고개를 돌리면서 말했다. “그..그래.” 더듬거리며 뱉어낸 말은 테이에게 하는 것이 아닌 티아 자신에게 하는 말 같았다. 테이는 시선을 피하는 티아를 보고는 한숨을 쉬고는 티아의 어깨를 강하게 붙잡으면서 다시 한번 더 물었다. “진짜로 묻는 거야. 진심으로 내가 꼴도 보기도 싫어?” “그..그건 아니고....” “그럼 나 좋아해?” “우우.” 티아의 눈에는 어젯밤처럼 방울방울 눈물이 맺혔다. 그리고.... “이 심술쟁이야!” 어제와 마찬가지로 테이는 티아의 주먹에 맞아서 정원으로 날아갔다. 덕분에 한껏 기대에 차서 구경하던 티아라는 그럼 그렇지라는 말과 함께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뭔가 진도가 있었던 것 같지만 티아님이 저래서야 나갈 진도도 후퇴를 하겠어. 어휴 남의 사랑에는 이것저것 잘 끼어드시면서 왜 자신의 사랑은 보는 사람이 답답하게 만드시는지 원. 역시 티아님을 위해서 내가 희생을 해야겠어! 테이님! 이 한 몸 다 바쳐서 티아님과의 사랑 반드시 이루어드리겠어요!’ 마음속으로 그렇게 다짐하는 티아라였지만.... 그녀는 시퀸과 맺어지기까지의 과정이 보는 이로 하여금 엄청나게 답답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이미 망각하고 있었다. 아마도 자신의 사랑은 이미 이루어졌기 때문에 생긴 여유일까? 아니면 영혼을 공유했기 때문에 닮은 것일까? 어찌 되었던 덕분에 테이에게는 든든한 아군이 생겼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늦잠을 잔 서니와 일찍 일어났지만 느긋하게 서니를 깨웠던 리이나가 거실로 들어왔다. 리엘리아는 리이나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옆에 붙어서 여러 가지 추억을 이야기 해주고 있었지만 리이나는 아직도 남의 이야기 같다는 분위기였다. “티아님 어떡해요? 어제 잠들기 직전까지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줬지만 리이나는 전혀 기억을 못해요.” 리엘리아는 티아를 보자마자 달려들어서 징징 짜는 소리부터 했다. 평소의 티아라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쉬며 잘 들어주겠지만 지금의 티아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네?” 리엘리아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 돌아오자 자신도 모르게 반문했다. 하지만 곧 엄청나게 짜증이 나 있는 티아의 표정을 보고는 잘 못 건드렸다는 생각을 하게 됐지만 이미 건드려서는 안 될 것을 건드리고 난 뒤였다. 티아는 테이의 버릇인 음침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음산한 목소리로 푸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지금 나는 요 며칠 사이에 너무 많은 일이 생겼어. 우연히 얻게된 인간의 아기를 잘 키워보겠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키웠는데 웬 방해꾼이 하나 끼어들어서 행복한 가정이 일순간에 파탄 나버렸지.” 서니는 티아가 말하는 방해꾼이 자신을 가리키는 말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어쩐지 지금 끼어들었다가는 내일의 태양을 못 볼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 못 들은 척 하기로 했다. “거기까지는 좋다 이거야. 그런데 거기에 기억 상실증의 짜증이 날 정도로 마이 페이스의 여자를 데려와서 해결해 달라고 하지를 않나. 더구나 그 정체불명의 여자는 현재 시끄러 운 옆 나라 왕가의 문장을 가지고 있지를 않나.” 이번에는 리이나의 이야기가 나왔지만 정작 본인은‘그게 누구에요’라고 서니에게 물어봤다. 서니는 그저 아무것도 아니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울 수밖에 없었다. “스트레스 해소를 하려고 악질 노예 상인 아지트를 박살냈더니 기껏 구해준 엘프는 여자를 좋아한다고 당당히 말하면서 나를 귀찮을 정도로 따라다니지.” 리엘리아는 티아가 자신을 귀찮다고 여겼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고는 엄청난 충격에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지만 지금 울어봤자 불난 집에 불의 정령 소환하는 꼴이라는 것을 느끼고는 억지로 입을 틀어막으면서 눈물을 참았다. “그런데 더 황당하고 열 받는 것은 그리 길지 않은 기간이지만 금이야 옥이야 키웠던 양자인 실피온이 옆 나라 왕자님이었단 사실이야. 차라리 몰랐다면 그냥 내 아들로 계속 키울 수 있었겠지만 여러 우연이 겹치면서 도저히 모른 척 할 수 없는 지경까지 온 거야. 거기다가 테이 녀석은 내 마음도 모르고.... 으으으.” 티아라는 어제 저녁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는 찬스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마음 편하게 그것을 듣고 있을 수는 없었다. 티아가 폭발 일보직전까지 왔다는 것이 눈에 보였기 때문에 티아라는 급히 일어나서 실피온을 안고는 하인들에게 대피 명령을 내리기 위해서 나가버렸다. “도대체 왜 날 가만히 놔두지 않는 거야?!!” 티아가 고함을 침과 동시에 특제 크기의 다연발 아이스 미사일이 사방으로 난사되기 시작했다. 세 여자... 아니 서니와 리엘리아는 그제야 비명을 지르면서 마법을 피해서 밖으로 도망쳤고, 리이나는 마법이 신기한 듯이 구경하다가 한참 후에야 위험하다는 것을 느끼고는 종종 걸음으 로 밖으로 나갔다. 한편 티아에 의해서 밖으로 날아갔던 테이가 겨우 정신을 차린 것은 마침 티아의 손에 의해서 티아라의 별관이 날아가는 중이었다. “또 무너지는 건가?” “언젠가는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은 했어요.” 테이가 무너지는 티아라의 별관을 보면서 허무한 말을 뱉자 밑에서 대답해 주는 이가 있었다. 테이의 말에 대답을 해준 것은 티아라였다. “미안해. 집이 저렇게 되서....” “테이님이 한 것도 아니잖아요. 사과하실 필요는 없어요.” “아니 하지만 나한테도 절반 정도는 책임이 있으니깐.” 자신의 사랑에는 둔감해도 남의 사랑에는 눈치가 빠른 티아라는 테이의 그 말 한마디에 알겠다는 듯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역시나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으셨군요. 제 예상이 맞죠?” “으응.” 테이는 쑥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꺄악! 역시나 키스를 하셨군요!” 어쩐지 기뻐하는 듯한 티아라의 외침에 테이는 고개를 푹 숙이며 아니라는 뜻으로 손을 저었다. “그..그건 아니고....” “어? 아니에요? 앗! 혹시... 설마 싫어하는 티아님을 억지로....”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그냥 청혼한 것뿐이야! 이상한 지레 짐작은 하지 마!!” 원래는 쑥스러워서 말할 생각이 없었던 테이는 티아라의 입에서 엄청난(?) 예상이 튀어 나올 것 같은 분위기에 급히 진실을 말해버렸다. “꺄악! 멋있어요! 드디어 해내셨군요! 축하해요.” “고마워. 하지만 축하한다는 말은 지금은 이르지 않을까?” 테이는 무너져가는 별관을 보면서 한숨을 쉬듯 말했다. 티아라 역시 그 광경을 보고는 동의하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휴. 도대체 티아님은 솔직히 기뻐하셔도 되는데.... 역시 아직도 두려우신 걸까?” 별 뜻 없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티아라는 옆에서 테이가 듣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소스라치게 놀라서 입을 막고는 테이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티아라의 걱정과는 달리 테이는 놀란 표정이나 무슨 뜻이냐고 묻지는 않았다. 그저 담담한 표정으로 씁쓸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티아라가 하는 말의 뜻은 대충 짐작 하고 있었어. 정확히는 티아가 완전한 카이저 드래곤으로서 각성을 해버린 그때부터.... 나도 알고는 있었지만 나 역시 어쩔 수 없다는 생각으로 도망치는 티아를 붙잡을 수는 없었어.” 테이는 오래전 자신의 실수로 죽음의 위기를 맞은 적이 있었다. 그때 자신을 살리기 위해서 티아는 원치 않던 완전한 카이저 드래곤으로서 각성을 했다. 그 결과 테이는 다시 살아났다. 하지만 그 대가는 티아의 영원한 생명이었다. 그리고.... ‘그때부터였지. 내 쪽에서 다가가려고 하면 티아가 항상 도망치게 된 것이.... 그리고 결국에는 인간들의 수호신이 되기로 했던 것도.... 전부 그때부터 시작이었어.’ “테이님.” 슬픈 목소리에 옛 추억에 잠겨 있던 테이는 정신을 차리고 티아라를 쳐다봤다. 티아의 영혼의 일부를 받은 티아라 역시 그 일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때의 티아의 슬픔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쓸쓸한 표정을 짓는 테이를 보자 티아라 역시 못 견디게 슬픈 기분이 들었다. 테이는 걱정 말라는 뜻으로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난 적어도 이제 도망치지는 않을 거야. 그리고 도망치는 티아를 이번에야 말로 잡고 말겠어! 반드시....” “하지만 저기 티아님이 도망치는 이유는....” “그것도 어렴풋이 눈치체고 있어. 아무리 둔한 나라도 이 오랜 시간을 살아오면서 설마 그 정도도 눈치 못 챘으려고.” “그럼 어떻게 하실 생각이죠? 영원히 남겨지게 될 티아님의 고통을 어떻게....” “몰라. 지금은 잘 모르겠어. 하지만 나 역시 영원까지는 아니더라도 오래는 살아. 시간은 많아. 그러니 천천히 생각해야지. 나 혼자가 아닌 둘이서 같이 방법을 찾아볼 거야. 그리고 반드시 찾아내고 말겠어! 행복해지는 방법을....” “테이님.” 테이의 진심이 가득 담긴 말에 감동을 받았는지 티아라는 눈물을 글썽였다. 티아의 영혼의 일부를 받기 전 아직 어린 티아라는 티아의 전 그림자였던 자신의 어머니께 들은 말이 생각났다. ‘티아님은 겉보기에는 강하고 밝고 조금은 괴팍하신 성격이시지만 그 마음속에는 많은 슬픔을 지니고 계신단다. 우리 그림자로서는 그 분의 슬픔을 달래 줄 수 없다는 것이 이 엄마는 슬프단다. 티아님이 반드시 행복해졌으면 좋겠구나.’ 지금은 돌아가시고 안계시지만 만약에 어머니가 계셨다면 티아라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엄마. 나 티아님을 도와 드릴 방법을 찾은 것 같아요. 고맙게도 테이님이 먼저 결심을 해주셨답니다. 저는 있는 힘껏 테이님을 도울게요. 그리고 제가 살아있는 동안 같이 고민해 볼래요. 티아님과 테이님이 같이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요.’ 콰쾅! 추억에 잠겨 있던 티아라는 별관이 마지막으로 굉음을 내며 무너져 가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을 고쳤다. ‘그 전에 티아님의 화내시면 앞뒤 안 가리는 성격부터 고쳐볼게요. 어렵겠지만 저 힘낼게요!’ 아마도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는 것보다 티아의 성격을 고치는 일이 테이와 티아라에게는 정말로 힘든 일이 될 것이다. 참상이 지나고 난 뒤 겨우 진정을 한 티아는 자신의 신전으로 이동해서 늦은 아침을 들었다. 보통 아침 식사는 하루의 시작을 의미하는 행사이기에 활기찬 분위기에서 먹어야 되는 법이지만.... 지금 분위기는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우울 그 자체였다. 티아는 이성의 끈이 끊어져서 날뛰어 버린 것이 우울했고, 서니는 우연히 테이와 티아라의 대화를 엿듣고는 질투심에 불탔지만 지금 티아를 잘 못 건드렸다가는 목숨 보전하기가 어려울 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우울했다. 그리고 리엘리아는 티아가 자신을 귀찮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충격에 우울증에 빠졌고, 티아라는 어떻게 해야 티아의 성격을 개조할 수 있을까라는 거대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을 수가 없어서 우울했다. 하지만 전부 우울한 것은 아니었다. 테이는 반드시 티아를 손에 넣고 말겠다는 의욕에 불타고 있었고, 실피온과 리이나는 아무 생각 없이 맛있게 아침을 먹고 있었다. 실피온은 어제부터 리이나를 무척이나 잘 따랐다. 더구나 리이나는 마치 처음부터 실피온을 잘 아는 것처럼 실피온의 투정이나 기타 여러 가지 애교들을 잘 받아줬다. 그 모습이 티아에게 또 다른 우울을 안겨줬다. 티아는 이미 납득한 이별이 기정사실화 되는 모습을 보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정말 너와 실피온 아니 슬라드 왕자의 관계는 뭐였을까?” 거북한 식사가 끝나고 난 뒤 티아가 리이나를 보면서 물었다. 물론 제대로 된 대답은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뜻밖에도 리이나의 입에서 제대로 된 대답이 나왔다. “저기 어저께 내내 그 문제에 대해서 고민해 봤는데... 저는 왕자님의 유모가 아닐까요?” 정말 드물게 리이나의 입에서 가능성 있는 대답이 나왔지만 티아는 그래도 그 답은 틀렸다고 생각했다. “너처럼 젊은 유모가 왕자를 맡는 경우도 있다니? 그냥 옆에서 거드는 하녀라면 또 몰라도....” “음.... 아 그럼 전 하녀였겠네요.” “그건 어제 리엘리아에게 들었어! 내가 궁금한 것은 도대체 어떤 하녀기에 슬라드 왕자가 널 그렇게 따르느냐 하는 거야!” “자. 자. 티아님 진정하시고요. 그리고 리이나씨 이건 그 누구도 아닌 리이나씨 자신의 문제에요. 조금은 진지하게 생각해야 되지 않을까요?” 티아라는 분위기가 험악하게 되자 티아를 말리면서 약간 엄한 목소리로 리이나를 나무랬다. “저. 제가 지금 진지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나요?” 표정 변화가 없는 여전한 멍한 얼굴에 느릿한 멍한 말투. 도대체 저 표정 어디에서 진지 함을 찾을 수 있는 것일까? 잠자코 듣고 있던 리엘리아는 또 다시 울음을 터트려 버렸다. “아아앙! 역시 내 친구 리이나가 아니야! 리이나는 똑똑하고 착하고 강한 친구였는데! 내가 유일하게 믿는 인간인데!! 내 친구를 돌려줘요!” “짜증나게 만들지 말고 제발 조용히 있어! 그리고 누가 언제 네 친구를 훔쳐갔냐? 싫어도 이게 현실이다. 지금 너 눈앞에 앉아 있는 이 멍한 여자가 그 자랑스러운 너 친구 리이나가 맞단 말이야!” 계속되는 짜증이 티아를 서서히 이성을 잃기 직전까지 몰고 갔다. 이대로 놔두면 아침에 일어났던 참사가 다시 일어난다는 생각에 티아라는 테이에게 도움의 눈빛을 보냈다. 테이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서 티아에게 다가갔다. “티아.” “뭐야?” “자꾸 화내면 키스 할 거야.” 순식간에 뜨거운 열기가 가라앉고 차가운 침묵이 신전을 가득 채웠다. “이....” “이?” “이 바보야!” 이번에도 여지없이 티아의 주먹이 날아갔다. 하지만 놀랍게도 테이는 그것을 멋지게 피했다. “이때쯤이라는 타이밍만 잡으면 티아의 공격을 피하는 것은 쉬운 일이지.” “그래? 그럼 어디 이것도 피해 보시지!!” 티아는 자신의 18번 마법인 특제 아이스 미사일을 소환해서 테이를 겨누었다. 하지만 테이는 겁먹기는커녕 고개를 설래설래 흔들면서 티아의 뒤를 가리키며 말했다. “티아. 자꾸 그렇게 짜증만 내다가는 실피온은 영원히 티아를 무서워하게 될지도 몰라. 그래도 좋아?” “아!” 테이의 지적대로 실피온은 어제만 하더라도 졸린 눈을 비비며 엄마를 기다리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겁먹은 눈동자로 티아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눈빛 때문인지 티아는 시무룩한 얼굴로 마법을 소멸시켰다. “바보. 이제 실피온이 아니라니깐.” “나한테... 아니 우리한테는 실피온은 실피온이야. 우리가 실피온을 키웠던 날들은 꿈이 아니야. 그리고 한순간의 유희도 아니야. 행복했던 현실이었고, 좋은 추억이 될거야. 그러기 위해서라도 적어도 우리 둘은 실피온의 이름을 기억해야 돼.” “테이야.” 티아는 감동을 받은 얼굴로 눈시울을 붉혔다. 티아는 설마 테이의 말에 감동을 받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었다. “미안. 나는... 나는....” 티아는 붉어진 눈을 그대로 뜨고 있으면 눈물이 흘러내릴 것 같아서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티아.” 테이는 그런 티아를 부드럽게 안아주려고 티아의 앞에 서서 팔을 살짝 벌렸다. 그런데.... 퍼억! “아앗! 오빠야!” “테이님!”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서니와 티아라의 비명소리를 들으며 테이는 뒤로 날아갔다. 티아가 테이가 가까이 오자 바로 어퍼컷을 날린 것이다. “아야야! 뭐 하는 짓이야?!” 테이가 아픈 턱을 만지면서 눈을 부라리자 티아는 쿡하고 웃으면서 혀를 낼름 내밀며 말했다. “아무리 감격했어도 아까 나한테 한 농담에 대한 대가는 치러야지.” “난 농담 아니었어!” “오빠 잠깐만! 언니에게 할 바에야 차라리 나한테 해줘!” “서니 넌 한대 맞을래? 부탁이니 얌전히 있어! 아참 그리고 테이야. 감격했다는 말은 거짓말 아니야. 고마워 덕분에 지금 내가 해야 될 일을 알았어.” 테이는 밝은 미소를 지으며 진심으로 고맙단 말을 하는 티아의 모습이 눈부시게 아름답게 보였지만 역시나 맞은데 대한 불만 때문인지‘쪼잔하게 그걸 따지고 넘어가야겠어?’라는 불평을 늘어놓으면서 다시 자리에 앉았다. 티아는 씩씩거리는 서니를 무언의 압력으로 조용히 시키고는 테이가 자리에 앉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리이나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리이나. 어제 여러 가지 이야기에 대해서 실은 나름대로 하나의 가설이 세워졌지만 그 가설이란게 너에게는 너무나 잔인한 사실이라 알려주는 것을 지금까지 미뤄왔어. 하지만 역시 속 시원히 말을 하는 것이 낫겠지. 이야기를 하기 전에 하나만 약속해줄래?” “네? 무슨 약속이시죠?” “지금 내가 말하는 가설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내 추측일 뿐이야. 진실은 나도 몰라. 하지만 내 추측이 맞던지 아니면 다른 진실이 있던지 그것에 연연하지 말고 실피온이.... 아니 너에게는 슬라드 왕자구나. 슬라드 왕자가 널 따르는 그 모습은 변하지 말아줘. 그게 내가 거는 조건이야. 약속할 수 있겠지?” “네.” 리이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고, 티아는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어이없다는 표정이 아닌 정말 믿고 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적어도 리엘리아가 말하던 기억을 잃기 전의 리이나의 이야기를 생각한다면 결코 나쁜 아이는 아닐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어제 자신이 생각했던 왕자 납치범이 리이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도 변함은 없다. 모든 상황과 증거가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대한 창조신이시여. 제발 내 예상과 다른 진실이 있기를.... 그리고 어떤 진실일지라도 리이나가 기억을 되찾게 되면 그것을 받아들일 용기가 생기기를 기도합니다.’ 티아는 천천히 어제 생각했던 왕자의 납치가 리이나와 관계있을지도 모른다는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다. 사정에 대해서 전혀 눈치를 못 챘던 서니와 리엘리아는 처음에는 경악의 표정으로 티아의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곧 성난 표정으로 변해서 모든 설명을 끝마친 티아에게 따지고 들기 시작했다. “티아님! 너무하세요! 어제 제가 설명했잖아요! 리이나는 절대 그런 짓을 할 인간이 아니에요! 나쁜 인간이 많은 세상이지만 적어도 제 첫 친구인 리이나는 틀려요! 틀 리단 말이에요. 훌쩍. 리이나가 그런 짓을.... 할 리가 없는데.... 흑. 너무해요.” “언니 눈이 삔거야? 내가 비록 리이나랑 같이 다닌 기간은 얼마 안 되지만 그래도 이건 확실히 말할 수 있어! 리이나는 절대로 그런 짓을 할 인간이 못 돼! 저 평온한 얼굴 어디에서 육아 납치범이라는 잔인한 일면을 찾을 수 있단 말이야?! 어서 빨리 사과해!” 티아는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독설에도 잠자코 가만히 있었다. 어차피 예상했던 일이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티아 역시 자신은 없었다. 그냥 리이나가 납치범이라고 하기에는 연결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니라고 하기에는 증거가 너무 많았다. 슬라드 왕자가 이곳에 있다는 것 자체가 가장 큰 증거였다. ‘분명히 이 사건에는 내막이 존재해. 하지만 리이나가 왕자 납치의 어느 쪽에 관여해 있는 지는 섣부른 판단을 할 수가 없어. 그것을 알아내려면....’ ‘직접 뛰어 들 수밖에 없겠지?’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티아는 갑작스레 마음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하지만 곧 목소리의 임자가 테이라는 것을 알고는 생긋 웃으면서 테이를 쳐다봤다. “내가 직접 행동하는 것은 몇 백 년 만이지?” “아니. 틀렸어. 우리가 같이 행동하는 거야.” 우리라는 단어를 특히 강조하는 테이의 말에 티아는 얼굴을 살짝 붉히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리엘리아와 서니는 자신들의 폭언에는 대답도 안 해주다가 서로 얼굴을 쳐다보고는 갑자기 뜻 모를 말을 나누는 티아와 테이의 모습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곧.... “뭐야?! 언니가 뭔데 나의 오빠와 비밀 이야기를 나누는 거야?! 치사해!! 언니한테는 그럴 권리가 있어?!” “당신 아까부터 보자보자하니 너무 뻔뻔한 것 아니에요? 아까 전에도 다들 보는 앞에서 키스를 한다느니 마느니 무례한 말이나 뱉고! 이래서 남자들이란!” “뻔뻔하다고? 그리고 서니는 뭐? 권리? 미안하지만 나에게는 티아와 비밀 이야기를 하는 것과 키스 하겠다고 엄포를 놓는 말을 할 권리가 있어!” 티아는 불길한 느낌을 받았다. ‘설마 테이 저 녀석 어젯밤 일을 말 하는 것은 아니겠지? 서..설마 저 순동이가 다들 보는 앞에서 그런 말을.... 할지도 모르잖아!!’ 어제부터 방금 전까지의 테이의 행동을 생각하면 분명히 이전에는 상상도 못할 짓을 하고도 남을 듯이 보였다. 티아의 예상대로 테이는 어젯밤에 말했던 청혼에 대해서 자신만만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분명히 말하지만 난 어젯밤에 티아에게...! 커억!” 티아는 가장 빠르게 테이의 말허리를 끊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인 폭력을 선택했다. 아니 티아에게는 최선이라는 말보다는 평소 하던 대로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이다. 아무튼 테이는 티아의 혼신의 힘이 담긴 주먹에 의해 제법 멀리 날아갔고, 티아는 리엘리아와 서니가 무슨 말을 꺼내기 전에 탁자를 있는 힘껏 치면서 기선을 제압했다. “영양가 없는 말들은 이제 그만해! 그리고 아까 전에도 분명히 말했지만 리이나의 왕자 납치는 어디까지나 나의 가설이야. 불행이도 지금은 그 가설을 증명할 결정적인 증거가 없어. 하지만 그렇다고 아니라고 하기에는 미심쩍은 데가 너무 많아! 그럼 어떻게 해야 될 것 같아?!” 갑작스런 강압적인 태도와 핵심을 찌르는 질문에 리엘리아도 서니도 방금 전에 일어난 사태에 대해서는 잠시 잊어버리고 멍한 눈으로 티아를 쳐다봤다. 티아는 둘의 눈길을 받으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직접 오리하곤 왕국으로 가보는 수밖에 없어. 단 왕자를 찾았다는 사실은 철저히 비밀에 붙여야 돼. 이 사건의 진상을 알아내기 전까지는.... 그리고 리이나의 기억도 고향으로 돌아가면 나을 가능성이 있을지도 몰라.” 티아는 여전히 멍하게 앉아 있는 리이나를 보면서 물었다. “아까 나랑 약속했지? 지금 그 착한 마음은 변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기억을 되찾게 되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이 아닐 수도 있어. 어쩌면 잊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괴로운 진실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라. 그래도 같이 갈 수 있겠어? 기억을 되찾기 위해서... 오리하곤 왕국으로 같이 가겠어?” 티아의 질문에 리이나는 이번에는 정말로 진지한 얼굴로 잠시 고민을 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난 뒤에 정리가 됐는지 고개를 들고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깜박했어요. 티아님과 약속을 하기 전에 전 서니님과 먼저 약속을 했었어요.” “어? 무..무슨 약속? 서니 너 무슨 약속을 한거야?” “서니님의 첫 여행의 목적은 첫째로 테이님을 찾는 것이고, 두 번째는 저의 기억을 되찾아 주겠다는 약속입니다. 저는 그 약속대로 서니님이 가시겠다면 반드시 가겠습니다. 아니 저 역시 제가 누구인지 알고 싶어요. 특히나 왕자님을 보고 있노라면 저... 굉장히 소중하고 중요 한 것을 잊은 것 같거든요. 그래서 전 제 기억을 찾을 수 있다면 어디라도 가겠습니다.” 티아의 질문에 서니보다 한발 먼저 리이나가 약속에 대해서 설명했다. 그리고 덧붙여서 현재의 솔직한 심정도.... 티아는 리이나의 본심을 지금에야 와서 처음 듣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언제 들었는가는 제쳐두고 그 결심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티아는 고개를 끄떡이며 리이나에게 당부했다. “이제부터 네가 알게 될 진실에 절대 겁먹지 마렴. 적어도 지금 너의 곁에는 든든한 아군이 많다는 것을 잊지 말고 계속 용기를 가져줘. 나도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으로 도울게.” “네. 감사합니다. 티아님” “서니 넌 어쩔 거야?” “당연한 것을 묻지 마. 리이나와 처음 같이 여행을 약속했던 것도 나고 리이나를 이곳까지 데려 온 것도 나야. 당연히 끝까지 함께 하겠어! 이봐 자칭 리이나 친구인 엘프 여자. 너는 어쩔 거야?” 티아의 질문에 서니는 코웃음을 치며 대답하고는 리엘리아를 쳐다보며 물었다. “저에게도 당연한 일이에요. 반드시 리이나에 대한 오해를 풀기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할 거예요! 그리고 전 자칭이 아니라 리엘리아에요!” “흥. 이름이 뭐가 중요하다고? 정 이름으로 불러 달라고 한다면 앞으로 리리라고 불러줄게. 됐지?” “아악! 왜 남의 귀한 이름을 마음대로 줄여서 부르는 거예요?!” “부르기 쉬우니깐.” ‘의외로 좋은 콤비가 되겠는데....’ 티아는 토닥토닥 말싸움을 시작하는 서니와 리엘리아를 보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싸우면서 드는 정도 일단은 정이니.... 티아는 둘에게서 시선을 거둬서 티아라를 쳐다보면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말을 하지 않더라도 티아라는 티아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슬라드 왕자님은 제가 보살피고 있겠습니다. 그리고 세도우 인스테랄 가문의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고 투자하겠습니다. 부디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도하고 있을게요.’ 마음속으로 전해오는 티아라의 말에 티아는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처음에는 그저 아주 잠깐이나마 행복해지고 싶어서 아기를 키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갑작스레 들이닥친 서니와 리이나의 문제에 골치가 아팠고, 리엘리아 덕분에 짜증이 나는 하루였다. 하지만 지금은 해야 될 일을 찾았다. 티아는 아주 오랜만에 짜릿한 흥분을 느꼈다. 요 몇 백 년 동안 단지 도망치기 위해서 다이러스 제국의 수호룡 역할을 하던 때와는 틀렸다. ‘이런 흥분 정말 오랜만이야. 어쩐지 살아 있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테이에게 진심으로 고맙다고 해야겠어. ...아뿔싸! 테이를 잊어먹었다!’ 티아가 그제야 날려버렸던 테이에 대해서 생각해 냈을 때 저 멀리 날아갔던 테이는 힘겹게 자기 몸에 힐링을 걸고 있었다. 그리고... “절대 포기 못해. 반드시 내 아기를 낳는다는 약속을 받아 내고야 말겠어! 윽. 너무 아프다. 젠장. 내 팔자란.... 어쩌다 저렇게 무식하게 힘만 센 여자를 좋아하게 된 것일까?” 좋아지는데 이유란 없다. 아주 조그만 변화에도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보면 좋아하게 되어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 일단 한번 불이 붙기 시작하면 어떤 장애가 있더라도 굴하지 않게 되는 법. 하지만 테이의 앞에 놓인 장애는 여러 가지 의미로 참으로 큰 장애였다. 드래곤 남매 완결 45화 진실에 다가갈 때(1) 오리하곤 왕국. 대륙력 시절 형제국인 레이아스 왕국과 동시에 데스타 제국에서 독립한 나라로서 그리노 대륙의 중앙에 위치한 나라이다. 지난 몇 백년간 큰 사건 없이 평온한 나날을 보냈지만 최근에 슬라드 왕자가 실종되고 난 뒤 몇 달 후부터 여러 사람들이 실종되는 사건이 연달아 일어났다. 이 일련의 실종 사건들은 민심의 불안을 키웠고, 오리하곤 왕국은 그 상태로 건국일을 맞게 됐다. 보통 때의 건국일 전날에는 수도인 라이케얼 도시는 축제 준비로 골목 구석구석까지 소란스러웠겠지만 이번 건국일은 그렇지 못했다. 축제가 아예 취소된 것은 아니지만 간단히 신과 조상에게 예를 올리는 약식으로 치르기로 결정된 것이다. 그렇다고 아예 바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마을에서는 집집마다 음식 준비와 축제 준비가 한참이었고 왕국에서는 내일 있을 건국일에 쓸 물자들이 줄줄이 들어왔다. 왕국의 하인들과 시녀들은 그 물자를 나르느라 정신을 챙길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한명의 하인이 새로 들어온 시녀에게 수작을 걸고 있었다. “예전 같지 않겠지만 그래도 건국일 전야잖아. 오늘 밤에 외출 시간 맞춰서 우리 같이 나가자니깐. 내가 이 수도의 구석구석까지 안내해줄게.” “미안하지만 사양하겠습니다.” 긴 은발의 머리칼을 가진 시녀는 하인에게 차갑게 대꾸했다. 힘을 써야 하는 일들은 이미 남자들이 다 끝내고 난 뒤라서 하인들은 잠시 휴식시간을 가지는 중이었고, 여자들은 뒷정리를 하던 중이었다. 은발의 시녀는 물자를 나르면서 더러워진 왕국의 뒷문 쪽을 청소하던 중에 귀찮다는 표현을 써야 될 정도로 남자 하인이 따라 붙은 것이다. 시녀는 벌써 몇 번째나 거절을 표했지만 남자 쪽은 끈질겼다. 그도 그럴 것이 시녀라고는 하지만 은발의 여자는 아주 미인이었다. 만약에 신분이 귀족이었다면 왕의 후궁으로 들어가도 될 미모다. 아니 후궁까지는 아니더라도 색을 밝히는 귀족 남자가 봤다면 당장 첩으로 데려가고도 남을 정도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 하인이 그렇게 끈질기게 달라붙는 것이다. ‘내 평생 이런 미인과 사고(?) 칠 날이 언제 올지 모르는데 절대 놓칠 수는 없지!’ 이런 사명감(?)에 불타는 하인은 거절을 당해도 물러서지 않았다. 아니 한 술 더 떠서 빗자루질이 힘들어 보인다고 대신 해주겠다면서 팔을 걷어붙이는 지경까지 갔다. “일하는데 방해되니 제발 좀 저리 가세요! 나도 얼른 여기를 치우고 쉬고 싶다고요! 오후부터는 또 바빠질 텐데 그때까지 여기를 못 치워서 시녀장님에게 야단맞으면 당신이 책임 질건 가요?!” 결국 화가 머리끝까지 난 은발의 시녀는 소리를 빽 질렀다. 덕분에 조금씩 떨어져서 일하던 다른 시녀들의 시선이 전부 두 사람에게로 향했고, 그 시선에 부담감을 느낀 하인은 일단 물러 서자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럼 말이야. 일 끝나고 휴식 시간에 다시 이야기하자. 오늘 밤에 꼭 같이 나가는 거야.” 물론 끝까지 수작을 걸어두는 것은 잊지 않았다. 하인이 가고 난 뒤에 은발의 시녀는 한숨을 푹 쉬고는 다시 빗자루질을 시작했고, 재미있는 구경거리라고 생각하고 쳐다보던 다른 시녀들도 김샜다는 표정으로 다시 일을 시작했다. 조금씩 떨어져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시녀들은 은발의 시녀가 끊임없이 ‘내가 왜?’라고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은발의 시녀. 정확히는 폴리모프로 여자로 변한 테이는 끊임없이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며 한탄했다. 그래도 손은 알아서 청소를 계속하고 있는 것은 시녀로서의 책임감 때문일까? 아니면 티아 덕분에 뼈 속까지 몸에 박힌 노예근성 때문일까? ‘젠장! 내가 왜!!’ 테이는 차라리 큰 소리를 지르며 발광하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았다. 일이 이 지경까지 된 것은 바로 일주일 전.... “에에?! 나보고 여장을 하라고?!!” 테이가 기겁을 하며 비명을 지르던 말든 티아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테이에게 딱 부러지게 말했다. “그래 마침 왕궁에서 시녀를 모집한다고 하니 테이 네가 여장을 하고 들어가.” “잠깐 왜 하필 내가 여장을 해야 되는데?!” “내가 아까도 말했고 방금도 말했지. 왕궁에서 하.녀.를 모집한다고.” 티아는 그것도 못 알아 듣냐는 듯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핀잔을 줬다. 그렇지만 테이로서는 ‘예 알겠습니다.’라고 수긍할 만한 일이 아니다. “나 역시 아까도 말했고 방금도 말했어. 왜 하필 나냐고?! 티아가 하면 되잖아!!” “미안하지만 난 따로 해야 될 일이 있으니 안돼.” “그럼 리이나가 하면 되잖아!” 테이는 옆에서 지금의 논쟁이 남의 일인냥 - 남에 일이 절대 아닌데도 - 여유롭게 차를 마시는 리이나를 가리켰다. 하지만 이번에도 돌아오는 것은 한심하다는 핀잔이었다. “바보냐. 리이나는 이미 거기서 일한 적이 있어서 얼굴이 알려져 있잖아. 그리고 설사 마법으로 얼굴을 바꾼다고 치자! 기억을 잃기 전의 리이나는 프로 뺨치는 일등급 시녀였을지 모르지만 지금 기억을 잃은 리이나한테 뭘 바라니?!” 확실히 티아의 주장은 일리가 있었다. 지금의 리이나 성격이라면 악의가 절대 없더라도 제대로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아니 아예 시녀 선발에서 뽑힐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다. “그..그럼 저 리엘리아는?!” “엘프가 인간 왕궁에 시녀로 취직하러 오는 것을 세상 인간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아니 그것보다 왕국 시녀라면 추근거리는 하인에 질 나쁜 귀족에라도 걸리면 어떻게 될까? 남자 싫어하는 리엘리아는 당장에 발악을 할테고 바로 짤리겠지.” “그럼 서니를 시키면 되잖아!!” “오빠 시녀는 무슨 일을 하면 돼?” “......아니다. 오빠가 잘못 했어.” 서니는 이제 처음 인간 세상에 나온 초보 드래곤이다. 물론 책으로 얻은 지식이야 조금은 있겠지만 그래도 보내봤자 하루도 안돼서 돌아 온다에 테이는 전 재산을 다 걸어도 좋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성 안에서 폴리모프를 풀고 본 모습으로 난동이나 안 부리면 다행이리라. 테이는 그래도 최후의 최후까지 발버둥을 쳤다. 아니 치려고 했다가 정답이다. 왜냐하면 더 이상은 대신 희생물이 되 줄 존재는 없었기 때문이다. 테이의 패배가 확정되자 티아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예의 그 장난끼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테이에게 한걸음 다가갔다. 물론 테이는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자 테이야. 이제 여자가 될 시간이다. 내가 아주 예쁘게 만들어 줄게.” “자..잠깐. 티아 제발 참아줘!” “다시 누나라고 부르면 참아줄게.” “치사해!!” 티아의 그 말로 테이는 패배 확정이다. 부끄러운 말까지 해 놓고 남자의 맹세를 했던 테이가 티아를 다시 누나로 대할 수는 없었다. 결국 테이의 절대로 두 번 다시 여장을 안 하겠다는 맹세는 깨졌다. 원래 왕궁 시녀는 선별하는데 까다로운 조건에 여러 가지 제약이 따르지만 신상정보는 티아가 몰래 손을 써서 무사통과였고, 일에 관해서는 테이의 부지런함 덕분에 아주 간단하게 합격을 했다. 그렇게 테이가 여장을 하고 왕궁의 시녀로 들어 간지 일주일이 되는 날. 테이가 하인에게 열심히 헌팅을 당하고 있을 때 티아는 오리하곤 왕국의 수도 라이케얼 도시의 여관에서 한숨을 짓고 있었다. “귀가 근질 근질한게 테이 이 녀석 내 욕을 엄청 하고 있는가 보군.” “어라? 테이님이 돌아오셨나요? 어디 계시죠?” 리이나는 창밖을 구경하다가 티아의 말에 두리번거리며 있을 리가 없는 테이의 모습을 찾았다. 티아는 그런 리이나의 행동에 이미 익숙해졌지만 그래도 한숨이 새어나오는 것까지 막지는 못했다. “에휴. 부탁이니 리이나는 얌전히 있어 주지 않겠어? 지금 나는 생각보다 일이 잘 안 풀려서 골치가 아프거든.” 리이나는 잠시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부탁이라는 말에 착한 리이나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창밖의 풍경으로 시선을 돌렸다. 리이나가 조용해지자 티아는 앞에 높인 산더미 같은 서류로 눈을 돌렸다. 일주일동안 티아라가 조사해서 보내준 자료와 테이가 성안에서 일주일동안 보고 들은 보고서들이다. 티아는 그 중에서 테이가 보내준 자료들을 찬찬히 읽었다. 어느 정도 읽던 티아는 다시금 한숨을 내뱉었다. ‘도대체 시키는 일은 제대로 못하면서 불만은 왜 그렇게도 많은 거람.’ 그만큼 테이가 보내준 자료들은 거의다가 쓸데없는 정보이거나 심할 때면 하인들의 추근거림에 죽겠다는 하소연들로 채워져 있었다. 결론을 짓자면.... “누가 너 하소연거리 만들라고 거기 침투 시킨 줄 알아?!” 티아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쳐 버렸다. 그 소리에 리이나가 깜짝 놀란 얼굴로 잠시 티아를 쳐다봤지만 별다른 말을 묻지는 않고 곧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지난 일주일간 티아는 테이가 보내온 보고서 같지도 않은 보고서를 볼 때 마다 꼭 한마디씩 소리쳤기 때문에 익숙해져버린 것이다. ‘끙.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내가 들어갈 걸. 하지만 나 역시 따로 해야 될 일이 있으니 그럴 수도 없고....... 어떻게 해야 이 녀석에게 제대로 일을 시킬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에 잠긴 티아는 곧 한 가지 꾀가 떠올랐다. 하지만....... ‘자존심까지 접으면서 꼭 그렇게 해야 될까? 효과는 확실할 테지만....... 그래도 역시 좀....... 에이 모르겠다! 나중에 모른 척 잡아떼지 뭐!’ 모종의 결심을 굳힌 티아는 테이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편지의 첫 머리에는 사랑하는 테이에게 라고 써져 있었다. 편지를 쓰고 있는 티아의 표정은 엄청 힘든 일을 참고 있는 고뇌의 표정이 떠올랐다. 오리하곤 왕국에서는 건국일 전날 저녁에 왕궁에서 일하는 하인들과 시녀들에게 특별 외출을 허락했다. 건국일 당일 날은 너무나 바쁜 하인 시녀들을 위한 왕국의 배려다. 물론 전원 다 비우는 것은 아니다. 재수가 없으면 당번에 걸리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당번들은 나이 많은 베테랑 시녀들이 서주곤 했다. 한창 놀고 싶은 젊은이들을 배려해 준 것이다. 시녀로 위장 잠입한 테이에게도 외출허가가 떨어졌다. 원래는 한참 신참인 테이에게 당번은 당연한 것이지만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담당 시녀장의 마음에 들어서 외출이 허락 된 것이다. 테이는 외출만 나가면 티아가 묶고 있는 여관으로 쳐들어가서 더 이상 죽어도 못하겠다고 깽판을 칠 셈으로 이 날만을 기다려왔다. 하지만 외출을 나가기 직전에 실프가 가져다 준 티아의 편지를 받아 본 테이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이거 아무리 뜯어봐도 거짓말 같은데....... 하지만 거짓말이라고 치기에는 조금....... 아니야! 그 동안 티아한테 당해왔던 것을 생각하면 이것은 틀림없는 함정이야!! 하지만.......’ 눈앞에 놓인 덫이 뻔히 보이는데도 미끼를 포기할 수 없는 동물의 심리라고 해야 될까? 테이는 티아의 편지에 쓰인 어느 한 문구를 반복해서 읽으면서 마음이 점차 기울어져 갔다. 그리고 결국 미끼를 물어버렸다. 테이는 사복을 벗어 던지고 다시 시녀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방에서 나와서 빠르게 걸었다. 때마침 아침부터 테이에게 수작을 걸던 하인이 테이를 발견하고는 웃으면서 말을 걸어왔다. “여어! 어디 있나 싶었더니 여기 있었구나. 역시 아름다운 여자는 준비하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 자 같이 나가자. 내가 끝내주게 재미있는 곳으로 안내해줄게.” “죄송하지만 할일이 남아 있어서 전 성에 남아요. 그러니 혼.자.서 재미있게 놀다 오세요.” 테이는 오래 상대하기 귀찮아서 빠르게 말하고는 상대방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더 빠른 걸음으로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남겨진 하인은 멍청하게 테이가 사라진 복도를 쳐다보다가 중얼거렸다. “남는다고? 남는단 말이지? 훗. 뭐 좋아 조용한 왕궁에서 불장난(?) 치는 것도 재미니깐.” 그렇게 중얼거리는 남자는 어느새 음흉하게 웃고 있었다. 남자 하인에게서 벗어난 테이는 곧 시녀장을 찾았고, 그녀에게 오늘은 성에 남겠다고 말했다. 그 말에 시녀장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어차피 오늘은 준비가 다 끝났으니 굳이 네가 남지 않아도 된단다. 어차피 내일은 바빠질테고, 축제가 끝나고 나서는 뒷정리로 정신이 없을 텐데 정말 안 쉬어도 되니?” 예상했던 질문에 테이는 숨을 들이쉬고 미리 준비한 대답을 했다. “저는 어차피 수도에 온지 얼마 안 되서 아는 곳도 별로 없고, 혼자서 돌아다니기도 불편하고 불안해서요. 그리고 아직 성에서 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으니 오늘은 남아서 시녀장님께 좀더 배우고 싶어요. 그러니 오늘은 저도 성에 남겠습니다.” 그 말에 시녀장은 크게 감동을 받은 얼굴로 테이의 두 손을 꼭 잡았다. “요즘 젊은 애들은 농땡이 피울 생각이나 하는 애들뿐인 줄 알았는데 너 같이 착실한 애도 남아 있었구나. 좋아. 오늘은 내 30년 시녀 인생동안 배운 모든 것을 다 가르쳐 주마.” 테이는 순진한 시녀장을 속이는 것에 약간 양심에 가책을 느꼈지만 이것도 다 대의를 위한 희생이라는 생각으로 자위했다. ‘그래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것도 있는 걸.’ 하지만 그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것을 하는 테이에게는 다른 꿍꿍이가 있으니....... 선의라는 말을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랐다. 테이로 하여금 이렇게 안면물수하고 거짓말을 하게 된 동기인 티아의 편지는 지금 테이의 주머니 속에 있었다.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랑하는 테이에게. 네가 그 동안 보내 준 보고서는 잘 읽었어. 하지만 정작 내가 원하는 정보는 없더구나. 물론 남자 중의 남자인 테이가 여장을 해야 된다는 고통은 나도 잘 알고 있어. 하지만 이것은 우리 귀여운 실피온을 위한 일이기도 하니 조금만 참으면 안 될까? 비록 이 일이 끝나면 실피온과 이별을 해야 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너와 함께 실피온의 부모노릇을 하는 동안 난 정말 행복했었어. 그리고 요즘은 그 행복이 계속 되기를 바라고 있단다. 만약에 이번 일을 잘 처리해 준다면 나는 너를 다시 보게 될지도 몰라. 부디 너를 그 곳에 잠입시킨 나의 깊은 뜻을 헤아려서 좋은 결과를 기대하고 있을게. 추신. 좋은 정보를 알아봐 준다면....... 키스 해 줄게. 아잉 부끄러워.] 지금까지 티아가 했던 행동 및 성격을 생각한다면 그 말은 분명히 거짓일 가능성이 높다. 테이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키스 해준다는 미끼가 너무 컸다. 그렇게 알면서도 속는다는 말처럼 테이는 꼭두각시 인형처럼 움직였다. 45화 진실에 다가갈 때(2) “라스크라 공작이라....” 티아는 수많은 서류 더미에서 라스크라 공작에 대한 보고서를 유심히 읽었다. 이 정보는 전부 티아라가 모아온 정보들이다. 테이에게는 정말 미안한 말이지만 지금 티아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티아라가 모아다 주는 정보들이다. 즉 테이는 현재 티아에게 전혀 도움이 안 되고 있었다. 아무튼 라스크라 공작은 오리하곤 왕국 제 1왕비인 라즈하 왕비의 오빠다. 그리고 슬라드 왕자는 바로 라즈하 왕비의 아들로 라스크라 공작의 조카이기도 했다. ‘어쩐지 그 때 나에게 도움을 요청해 올 때 필사적이더라니......’ 티아는 그때 라스크라 공작에게 힘들겠다는 말을 했을 때의 절망감이 가득한 얼굴을 기억해내고는 기분이 잡착해졌다. 설마 그때 라스크라 공작이 애타게 찾던 슬라드 왕자를 자신이 키우고 있었다니....... 이 일을 라스크라 공작이 알게 되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하는 궁금증도 들었다. ‘아무리 봐도 실피온 아니지. 슬라드 왕자가 죽으면 가장 이득을 보는 것은 아그라느야.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아그라느에게 독이 되면 됐지 이득은 안 되지. 슬라드 왕자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모든 누명을 다 덮어써야 되니깐. 더구나......’ 슬라드 왕자가 실종되고 난 뒤 아그라느가 왕자의 수색에 자비까지 털어가면서 열심히 했던 것은 티아도 잘 알고 있었다. 물론 그것도 사람 눈을 속이기 위한 자작극일 수도 있다. 하지만 티아는 한 장의 서류를 집어 들고는 한숨을 쉬었다. 그 서류는 정확히는 편지로 아그라느가 다이러스 제국의 수호룡인 티아루아에게 보내는 비밀 서신이다. 원래 아그라느는 타국의 도움은 결단코 받지 않겠다고 공언했지만 그렇게 수색을 했는데도 왕자의 생사조차 알지 못하게 되자 티아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슬라드 왕자의 실종 후 나라의 혼란을 걱정하며 국가와 국가간의 사이가 아닌 미천한 인간이 위대한 존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내용의 아그라느의 편지는 아무리 봐도 연극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 편지 덕분에 티아는 아그라느는 이번 슬라드 왕자의 유괴에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확신했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아그라느가 무죄 확정이 되자 슬라드 왕자의 유괴 사건은 다시 오리무중에 빠졌다. 티아는 한숨을 쉬며 서류에서 눈을 떼서 시선을 돌렸다. 티아의 시선에 닿은 것은 리이나였다. “네가 기억을 찾는다면 이 골치 아픈 사건의 전말을 바로 알 수 있을 텐데 말이다.” 한숨 섞인 티아의 말에 창밖을 구경하던 리이나는 티아를 쳐다보고는 방안을 두리번거리면서 무언가를 찾는 시늉을 했다. 그 모습에 티아는 리이나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예상했다. “저어....... 저한테 하신 말씀이신가요?” 예상했던 대답이 나왔지만 티아는 맞춰서 기쁘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오히려 골치가 지끈지끈 아팠다. “그럼 지금 여기에 너랑 나랑 둘 밖에 없는데 내가 누구한테 하는 말이겠니?!” 가뜩이나 이리저리 일이 꼬여서 스트레스를 받던 티아는 은근히 말소리가 커져갔다. “음. 아 그렇네요. 그런데 저에게 무슨 말을 하셨죠?” 하지만 리이나는 티아의 스트레스를 전혀 이해를 못했는지 특유의 잠시 생각하다가 느릿느릿 말하는 말투로 티아의 속을 더 긁어 놓을 뿐이다. 한두 번 당해 본 것이 아니기에 그냥 그르려니 하고 넘어 갈수도 있지만 지금 티아는 스트레스가 한계에 도달해서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네가 기억을 찾는다면 훨씬 일이 쉬워질꺼라고 말을 했다! 도대체가 넌 고향에 돌아왔는데 아무런 기억도 나지 않는 거야?! 무언가 작은 것이라도 좋아! 제발 부탁이니 기억 좀 해봐!!” 거의 악에 가까운 티아의 외침에도 리이나는 전혀 위축되지 않은 얼굴로 잠시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생각났다는 얼굴로 손을 탁 쳤다. “무언가 생각나는 것이라도 생겼니?” 그러나 그런 질문을 하는 티아의 표정은 기대를 안 하는 표정이다. “큰 마을 치고는 생각보다 사람이 적다는 것이 생각났어요.” “에휴휴. 기대하지 않기를 잘했다.” “저어....... 제가 무슨 실수를 했나요?” “그만 두자. 너는 그대로 계속 바깥이나 구경해. 그러다보면 뭔가 생각이 나겠지. 아마도......” “네.” 리이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고는 다시 바깥경치를 구경했다. 리엘리아는 근처 숲으로 정보를 모으기 위해서 보낸 상태였다. 왕자가 실종된 전후의 일을 혹시나 숲에 사는 엘프나 몬스터들이 목격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서니랑 같이 보낸 것이다. 하지만... ‘그쪽도 기대 안 해.’ 그렇다. 티아의 본심은 그저 시끄러운 두 녀석을 조금이나마 자기 곁에서 떨어트려 놓기 위해서 숲으로 보내버린 것뿐이다. 애초에 그 둘에게 기대 따위는 갖지도 않았다. 티아는 불현듯 세상에 자기 혼자만 남겨진 것 같은 참담한 기분을 느꼈다. ‘차라리 티아라를 데리고 올걸. 하지만 그렇게 되면 슬라드 왕자를 맡겨야 될 사람이 없어지니 그렇게 할 수도 없고....... 이렇게나 내 주위에 인재가 없다니 난 정말로 불행의 별을 타고 난 드래곤이야. 히잉.’ 남매라서 그런지 생전 처음 신세 한탄하는 티아의 모습은 테이의 그 모습과 빼닮았다. “티아님!!” 그때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면서 리엘리아와 서니가 기쁜 표정으로 방으로 들어왔고, 그 소란에 밖을 보던 리이나도 불행의 별(?)을 세고 있던 티아도 깜짝 놀라서 둘을 쳐다봤다. 둘은 급히 달려왔는지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지만 그렇다고 피곤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기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에 티아는 설마하는 기대감에 차 물었다. “무언가 알아 낸 거야?” “응! 슬라드 왕자가 사라진 날쯤 밤에 인간들이 숲 속에서 잔뜩 돌아다니는 걸 본 고블린들이 있었어!!” 티아는 서니의 보고에 가슴 벅찬 감동을 느끼면서 아까 전에 시끄러운 녀석들이니 기대도 안한다느니 하는 생각들을 저 멀리 날려 버렸다. 단지 티아는 그런 감사의 표현을 하는 말이 조금 서투른 게 조금 문제였다. “잘했어! 역시 내 동생이야! 정말로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었구나!” 아니 많이 서툴렀다. “뭐라고?! 언니! 지금까지 날 굼벵이 취급 했던 거야?!” “아 미안 그럼 애벌래로 바꿔 줄게.” “그게 그거잖아!!” 그렇게 몇 차인지 세기도 지겨운 자매간의 싸움이 시작되는 것을 말리는 일은 원래 테이 몫이다. 하지만 테이가 없는 관계로 이 일은 리엘리아가 도맡았다. 실은 지금까지 이 라이케얼 수도에 머무르면서 드래곤 자매는 몇 번이나 한바탕 할 뻔했지만 그때마다 리엘리아가 말린 것이다. 하지만 그 진상은.... “자자. 티아님 참으세요. 서니님은 어차피 티아님에게 이기지도 못 하면서 자존심 세우는 거 그만하시고요.” “뭐라고?!” “으에엥! 티아님 서니님이 드래곤 아이로 절 째려봐요!!” 말렸다기보다는 스스로 화살의 과녁이 되서 얼렁뚱딴 넘겨버렸던 게 진상이다. 뭐 덕분에 자매 싸움으로까지는 번지지 않았으니 모로 가도 말린 것은 말린 것이다. “아무튼 너는 좀 끼어들어야 될 때와 안 될 때를 분간하란 말이야!!” “자자 거기까지만 하렴. 그래 그 고블린들은 어디 있어? 당장 가서 만나보자?” 마지막에 사태를 수습하는 것도 언제나 테이의 몫이지만 지금은 티아의 몫이 됐다. 다만 차이점 하나 들자면 테이는 항상 이 싸움을 말리느라 진땀을 빼거나 티아까지 끼어 든 상태에서는 목숨까지 걸었지만 티아는 조용히 카이저 드래곤의 기운을 둘에게 흘려보내는 것으로 간단하게 해결했다. “쳇. 너 언니 덕분에 산 줄 알아.” “흥! 제가 할 소리네요.” “뭐야?!” “또 겁주실 생각이세요? 그랬다간 저의 티아님이 가만히 안 있을 걸요!” “제발 부탁이니 1절만 해라! 그것보다 얼른 그 고블린들이 있는 곳으로 안내나 하란 말이야!!” 티아의 짜증 섞인 외침에 서로 으르렁거리던 리엘리아와 서니는 동시에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티아를 쳐다봤다. “어? 안내라니?” “천한 몬스터들 만나는데 티아님이 직접 가실 필요가 없잖아요.” 둘의 천연덕스러운 대답에 티아는 뒷통수를 망치로 얻어맞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러고 보니 둘의 말다툼 덕분에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창밖이 아까부터 소란스웠다. 티아는 설마 설마를 중얼거리면서 창가 근처에 있는 리이나를 불렀다. “리이나.” “네?” “지금 창 밑에....... 뭐가 보여?” 티아의 질문에 창가를 흘끗 쳐다본 리이나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티아에게 창밖의 상황을 말해줬다. “검은 난쟁이들이 여관 입구에 잔뜩 모여 있어요. 그런데 이상하네요. 주위에 무장한 아저씨들도 잔뜩 모여 있어요. 싸움하려는 것 같은데 왜 싸우려고 하는 걸까요?” 정말로 몰라서 묻는 순진한(?) 리이나의 질문에 티아는 대답을 해 줄 시간이 없었다. 지금 티아가 가장 먼저 해야 될 일은....... “이 멍청이들아!! 너희 둘을 믿은 내가 바보다!!!” 사태 원인의 두 명에게 실컷 화풀이부터 하는게 먼저였다. 티아가 밖에서 생고생을 하고 있을 동안 테이는 성에서 나름대로 정보를 얻기 위해서 처절한 고생을 하고 있었다. “요즘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말이야.” 테이는 시녀장의 요즘 젊은이들로 시작된 수다를 끝없이 듣고 있는 중이다. 시녀장과 같이 다니던 일은 벌써 끝나고 둘은 시녀장의 방에서 간단한 군것질을 하고 있는 중이였다. 축제전야의 준비가 끝난 성에는 별로 할 일이 없다. 그저 내일 있을 파티에 만전에 만전을 기하기 위해서 최종점검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테이가 속으로 품고 있는 다른 뜻을 알리 없는 시녀장은 테이의 열심히 배우려는 자세가 완전히 마음에 들었다. 덕분에 시녀장은 어느새 테이를 다음 시녀장으로 키우겠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되도록 세세하게 일을 가르치다보니 그 짧은 시간에 정이 많이 들었다. 바로 그것이 테이가 노리는 바였다. 시녀장과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진다면 많은 정보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시녀장이 누군가? 오랜 생활 왕궁에서 생활해왔고 음지에서 왕궁의 모든 일을 처리해온 왕궁에 관한 일은 그 누구보다도 바싹한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다. 보통 젊은 시녀들에게서 들을 수 있는 것은 확인 되지 않은 단순한 시간 때우기 수다용 소문이 대부분이지만 시녀장에서 들을 수 있는 왕국에 관한 말은 하나, 하나가 굵직한 정보였다. 지금 테이의 눈에 비친 시녀장은 정보의 바다로 보일 뿐이다. 이 차이는 테이도 진작에 알고 있었다. 단지 그 동안은 의욕이 없을 뿐이었지만 티아의 확인 불가능의 약속덕분에 테이는 그 지루한 옛 이야기를 꾸준히 잘 듣고 있었다. ‘아직.., 아직이야. 섣부르게 본론을 물어보면 경계심을 유발시키거나 얼버무릴 수가 있어. 어디까지나 자연스럽게 원하는 대답을 이끌어내야 돼.’ 아마도 테이의 이런 모습은 참으로 보기 드물 것이다. 테이는 인내심을 최대한 살려서 자신이 원하는 말이 나오기를 꾹 참고 기다리고 기다렸다. “정말 옛날은 이것보다 더 화려했단다. 어쩔 때 다른 나라의 왕자나 공주가 축하의 뜻으로 내방이라도 하는 날에는 오늘같이 쉴 시간은 꿈도 못 꿨지.” ‘지금이다!’ 드디어 목표를 포착했다는 뜻으로 빛나는 테이의 눈은 사냥감을 포착한 짐승의 눈빛 바로 그것이다. 본래 마음이 착하고 순진한 테이는 이렇게 치밀하게 남을 속일 수 있을 재목이 못되지만 사랑에 눈이 먼 남자는 사랑에 인생을 거는 여자랑 별반 다를 게 없이 무서워지는 법이다. “그런가요? 전 이 나라에 온지 얼마 안돼서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건국 축제 치고는 조금 조촐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승부다. 만약에 잘 되면 바로 내가 원하는 본론이 나올 것이고, 잘 못되면 어디서 살았냐는 질문이 나오겠지. 만약에 후자가 된다고 하더라도 초조해질 필요는 없어. 단지 조금 돌아갈 뿐이야. 반드시 내가 원하는 말은 다시 돌아온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사랑에 눈이 먼 남자는 무서운 법이다. “그래. 레아양은 - 테이의 여장용 이름이다 - 이 나라에 온지 얼마 안됐구나. 그래도 소식 정도는 들었겠지. 하도 떠들썩해서 그리노 대륙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테니.” 테이는 속으로 빙고를 외쳤다. 바로 원하는 대답이 나온 것이다. “역시 슬라드 왕자님의 실종 때문인가요?” 조심스런 어투로 되물어 오는 테이에게 시녀장은 깊은 한숨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리고 잠시 동안의 침묵 후에 시녀장은 옛날이야기를 하듯 천천히 말을 꺼냈다. “한때는 건국 축제도 취소될 뻔했단다. 그래도 요즘 나라 분위기가 너무 가라앉아서 조금이라도 어수선해하는 백성들을 위해서 무리하게 건국제를 치루게 됐으니 조출한 것은 문제도 아니지. 아니 오히려 지금 이 시기에 건국 축제를 무리해서 열어야 되는지조차 모르겠단다. 하지만 요즘 젊은 애들은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원. 너도 같은 방에 동료들을 봐서 알겠지? 그래도 놀러 나간다니 들떠서 꽃단장이다 뭐다. 휴우 어쩌다가 나라꼴이 이렇게 됐을까? 정말이지 우리 왕자님들은 전생에 무슨 죄를 졌다고 전부 고생들을 하다가 가시는 건지....... 에구 아니지. 슬라드 왕자님께서는 아직 어떻게 됐다고 정해진 것도 아닌데 이 놈의 방정맞은 입이......” 테이는 시녀장의 왕자님들이라는 말을 놓치지 않았고, 동시에 약간의 혼란을 느꼈다. ‘왕자님들? 내가 아는 바로는 오리하곤 왕국의 전통 왕위 계승자는 우리 실피온....... 아니 슬라드 왕자 하나 뿐이야. 그런데 들이라니....... 형제가 있었단 말인가?’ 테이는 혼란스런 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겉으로는 평정을 가장한 체 슬쩍 확인 질문을 던졌다. “저어. 제가 잘 못 들었다면 죄송합니다만....... 슬라드 왕자님께 형제가 있으셨나요?” “그, 그건.” 시녀장은 눈에 뻔히 보일 정도로 당황했다. ‘말하기를 꺼리는 걸로 봐서는 분명히 무언가 있었군. 침착하자. 섣부르게 접근하면 안돼.’ “죄, 죄송합니다. 물어봐서는 안 되는 것이군요. 방금 들었던 이야기도 잊어버리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니 레아양이 그렇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나이를 먹다보니 자꾸 이야기를 하고 싶어지는 이 늙은이 잘못인걸.” ‘쳇. 너무 물러섰나?’ 테이는 성급하게 묻기보다는 한발 뒤로 물러서서 이야기를 끌어낼 심사였지만 너무 물러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그 부분에 대해서 묻기에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 ‘이런 겨우 찬스를 잡았는데... 별 수 없이 나무의 정령 드리아드를 써야 되나?’ 나무의 정령이자 매혹의 정령인 드리아드는 테이의 최후의 카드였다. 뜬구름 잡는 식의 정보 모으기에 써봐야 별 효과를 못 보지만 시녀장의 입에서 나온 왕자님들이라는 말을 키워드로 삼는다면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어차피 시녀장은 더 말할 생각도 없는 것 같아서 테이는 망설임 없이 드리아드를 소환했다. ‘매혹의 처녀 드리아드여. 너의 주인으로서 명하노니 내 앞에 앉은 여자에게 매혹의 환상을 보여다오.’ [네. 주인님.] 섹시함이 듬뿍 묻어 있는 음성이 테이의 머릿속에서 울려 퍼지고는 테이의 맞은편에서 과자를 집던 시녀장의 손이 멈췄다. 그리고 눈의 초점이 흐려지면서 멍한 상태가 됐다. 드리아드의 매혹에 걸린 것이다. 시녀장이 완전히 최면에 걸린 것을 확인한 테이는 조용히 자신이 알고 싶은 질문부터 먼저 던졌다. “알고 싶은 것이 있다. 슬라드 왕자에게 형제가 있나?” 멍하니 앉아 있던 시녀장은 테이의 질문에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있었습니다.” ‘있었다? 그럼 지금은 없다는 뜻인데....... 죽은 것인가? 하지만 이상하군. 내가 알기로는 현재 오리하곤 왕국의 정통 왕위 계승자는 슬라드 한명뿐인 것으로 아는데....... 혹시.’ 테이는 그 왕자가 어쩌면 슬라드의 배다른 형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일부다처제가 상식인 왕가에서 배다른 형제는 상식이니 쉽게 추리를 할 수 있었다. “그럼 그 왕자의 이름은? 그리고 슬라드 왕자와의 구체적인 관계는?” “레그다트 왕자님. 슬라드 왕자님과는 배 다른 형제분이셨습니다.” 테이는 예상했던 대답이 나오자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나 슬라드와는 어머니가 다른 배 다른 형제. 거기다가 공식석상에서 단 한번도 언급이 된 적이 없이 사라진 왕자라는 점만 생각하더라도 이번 슬라드 왕자의 유괴와 무관하지 않다는 냄새가 났다. ‘서서히 윤곽이 잡혀가는 군. 레그다트 왕자에 대해서 좀 더 조사해보면 이번 슬라드 왕자의 유괴사건의 배후를 잡을 수 있겠지.’ 그렇게 마음을 굳힌 테이는 본격적으로 레그다트 왕자에 대해서 물어보기 시작했다. 한편 테이가 조금씩 진실에 접근할 동안 티아쪽도 조금씩 진실에 한걸음씩 다가가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한명. 이번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리이나에게도 변화가 찾아오고 있었다. 45화 진실에 다가갈 때(3) 서니와 리엘리아가 고블린들을 몽땅 마을로 데려온 덕분에 한바탕 소동이 일어날 뻔한 여관 앞에서는 도시 경비대들이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서 있었다. 수많은 고블린들이 새하얀 빛에 휩싸이더니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버린 것이다. 경비병들은 단체로 꿈을 꾼 것 치고는 스케일 큰 악몽을 꾸는 기분들을 느꼈다. 고블린들을 한순간에 없애 버린 것은 티아였다. 정확히는 고블린들을 일순간에 순간이동 시켜버린 것이다. 수도가 내려다보이는 산 중턱으로 이동한 티아는 또 한번 한숨이 있는 대로 나왔다. 티아는 애초에 이정도의 고블린들을 무슨 수로 도시로 끌고 들어왔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겼지만 급한 상태라 일단 고블린들을 옮겨놓고 보자는 생각에 마법을 사용했었다. 그리고 이 장소로 와서 무심코 수도 라이케얼 쪽을 바라보고는 서니와 리엘리아가 무슨 수로 고블린들을 도시 안으로 들어가게 만들었는지 알게 됐다. “저거 너희들이 한 짓이지?” 티아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며 무너져버린 성문을 가리키며 물었다. 티아의 질문에 서니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히죽 웃었다. “응. 저기 지키고 있던 인간들이 통과를 시켜주기는커녕 나한테 창을 들이대잖아. 그래서 팍하고 날려버렸지. 아 하지만 부모님 말씀대로 하나도 죽이지는 않았다. 나 잘했지?” 티아는 속으로 서니가 남동생이 아닌 것을 저주했다. 차라리 남자애였다면 테이처럼 반죽을 정도로 때릴 수나 있지. 여자애를 있는 힘껏 때릴 수도 없는 노릇이라 티아는 이를 갈면서 간신히 화를 참았다. 하지만 테이도 그렇듯이 서니도 꼭 거기서 한마디 더 하는 버릇을 가지고 있었으니....... “그나저나 힘들게 끌고 와줬는데 왜 이리로 옮긴 거야? 언니는 성격도 괴팍하다니깐.” 그 덕분에 티아를 간신히 지탱해주던 이성이 끊긴 것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서니 너!” “응?” “머리나 식히면서 뭘 잘못했는지 생각해!!” 티아는 그렇게 소리치며 서니에게 마법을 걸었다. 서니가 미쳐 뭐라고 하기도 전에 서니의 몸을 새하얀 빛이 감싸더니 순식간에 빛과 함께 서니가 사라졌다. “앗?! 사, 사라졌다?! 어, 어디로 간거죠?” “이 대륙의 끝! 지금 서니의 마력으로는 자력으로 다시 워프해서 이곳에 오기 힘든 곳으로 날려버렸다! 만약에 너도 내 성질 건드리면 노예제도가 합법적인 데스타 제국으로 날려버릴 줄 알아!!” 리엘리아가 놀라서 소리치는 물음에 티아는 싸늘하게 대답하며 으름장을 놓았다. 덕분에 겁에 질린 리엘리아는 얌전해졌고, 티아는 잠시 심호흡을 해서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혔다. 그리고 어느 정도 마음이 안정이 되자 겁에 질린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고블린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자 그럼 너희들 뭘 본건지 똑바로 아주 상세하게 말해라. 만약에 대답이 시원찮거나 마음에 안 들면 내가 잘 아는 성질 포악한 블랙 드래곤 레어로 날려 버릴 줄 알아!” 아무래도 티아는 마음의 안정이 잘 안된 것 같다. 티아의 스트레스성 협박에 고블린들은 그 자리에서 바짝 엎드리면서 말을 마구 하기 시작했다. 본래 고블린들이 쓰는 언어는 아무리 드래곤이라고 하더라도 알아듣기가 까다로웠다. 그런데 마구잡이로 여러 마리가 한번에 말을 해대니 티아는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다. “순서 정해서 한명씩 말 안하면 날린다.” 그렇게 말하는 티아는 속으로 또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슬라드 - 실피온 - 왕자를 키울 때는 성질 많이 죽었다고 아니 나름대로 부드러운 성격이 됐다고 생각했다. - 어디까지나 티아의 개인적인 느낌일 뿐이다 - 요즘 들어서 옛날보다 더 성질이 나빠지는 것 같아서 속이 상했다. 하지만 누구를 탓하리요. 이게 다 이 일에 관여하게 된 탓이니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되도록 성질을 죽이려고 노력하면서 고블린들이 한명씩 돌아가면서 말하는 내용에 귀를 기울였다. 고블린들이 말하는 내용을 간추리면 대충 다음과 같았다. 원래 이 고블린들은 여기서 먼 서쪽 즉 오리하곤 왕국의 국경 근처 산에 사는 녀석들이었는데 어느 날 밤에 수많은 인간들이 숲에 들어와서 소란을 떨었다고 한다. 처음에 고블린들은 인간들을 습격할 생각이었는데 그 인간들이 엄청나게 발이 빨랐고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여서 도중에 포기했다고 한다. ‘빠른 발? 고블린들이 추격을 포기할 정도로 기민한 움직임과 빠른 발이라면... 도적인가? 그것도 뜨내기 도적이 아닌 꽤나 수준 높은 도적길드 녀석들이겠군.’ 티아가 도적이라는 추리를 할 때 한 마리의 고블린이 그들에게 쫓기는 인간 여자를 얼핏 봤다는 말을 했다. 때마침 생각에 잠겨 있던 티아는 처음에는 그 말을 제대로 못 듣고 그냥 넘겼다가 곧 그 고블린의 말뜻을 알아듣고는 자기 뒤에서 도시 풍경을 감상하는 리이나를 들어다가 그 고블린 앞에 앉히고 질문했다. [네가 봤다는 여자가 혹시 이 여자냐?] 티아의 질문에 리이나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던 고블린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대답했다. [그게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인간들은 다들 비슷비슷하게 생겨서 잘 모르겠습니다. 더구나 워낙에 순식간에 본거라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 인간 여자가 커다란 물건을 안고 달리고 있었다는 것뿐입니다.] 인간들이 보기에는 고블린들의 모습은 다 비슷비슷하게 보인다. 그런데 그걸 거꾸로 생각하면 고블린들 역시 인간들의 신체적인 특징을 꼭 집어서 뭐가 같다 다르다를 제대로 말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커다란 물건을 안고 달리고 있었다는 대답은 큰 수확이었다. 이것으로 티아는 이 고블린들이 봤다는 도적들이 왕자 실종과 어느 정도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확신을 얻은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부족해. 뭔가 결정적인.... 그래 리이나의 기억이 돌아오면 확실해질 텐데....’ 리이나는 지금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티아를 쳐다보고 있었다. 티아도 리이나를 마주 쳐다보다가 지푸라기라도 잡아보자는 심정으로 결심을 굳혔다. [너희들 그때 사건이 일어난 곳으로 날 안내해라.] [저, 저희들이 사는 곳 말씀이십니까?] [그래. 바로 거기.] [하지만 올 때야 드래곤님의 마법으로 금방 왔지만 걸어가려면 며칠은 걸립니다.] [바보. 누가 걸어간데? 나도 순간 이동은 사용할 수 있어. 그리고 서니같은 애랑은 차원이 틀릴 정도로 마력도 뛰어나지. 아마도 서니 녀석 너희들을 이곳으로 옮기느라 꽤나 힘들어했겠지?] [네? 네. 확실히 저희들을 옮기고 나서는 힘들어 죽겠다고 어찌나 짜증을 부리시던지 불똥이 튈까 무서웠습니다.] 고블린이 그렇게 말하자 짜증이 나 있던 티아의 마음이 우월감에 의해 어느 정도 풀어졌다. 덕분에 티아는 고블린들이 오고 나서 처음으로 미소 지을 수 있었고, 고블린들은 그제야 생명의 위협에 대한 걱정을 덜 수 있었다. [걱정 붙들어 매둬. 나는 서니 녀석과 달라서 아주 간단하게 이동할 수 있으니깐. 자 그럼 이야기는 그 곳에 가서 마저 하기로....... 아니 가만.] 말을 하던 티아의 표정이 갑자기 굳어지기 시작했고, 안심하던 고블린들은 원인모를 압박에 다시 초긴장 상태로 들어갔다. 티아는 그 상태로 심각하게 무언가를 고민하면서 조용히 고블린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내가 너희들 사는 곳에 가 본적이 없지?] 고블린들은 티아가 무슨 의도로 저런 질문을 했는지 알 수가 없어서 대답을 못하고 우물쭈물 거렸다. 뭐 굳이 고블린들의 대답을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이미 티아는 그 답을 알고 있었다. 답은 가본 적 없다! 갑자기 생각난 너무나 당연한 사실에 티아는 화가 난 상태에서 어떤 실수를 했는지 깨달아서 자신도 모르게 답을 알고 있는 질문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상태였다. 그 실수란 다름 아닌 서니를 그리노 대륙 끝으로 날려버린 것이다. 서니가 있다면 서니에게 약간의 마력을 빌려줘서 고블린들이 사는 곳으로 손쉽게 워프가 가능하겠지만 서니를 날려버린 지금은 오히려 티아가 자력으로 고블린들이 있는 곳으로 갈 수가 없었다. 아니 갈 수는 있다. 단지 며칠을 걸어가던가 아니면 본모습으로 돌아가서 고블린들을 태우고 가는 방법이다. 전자는 시간이 아쉬우니 실행 불가. 그리고 후자는 아무리 급하더라도 고블린들을 정확히는 남성(!)을 자기 등에 태우기는 죽었다 깨어나도 싫었다. “아악!! 내가 이런 실수를 하다니! 그냥 몇 대 쥐어 패고 놔둘걸!!” 상항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는 리이나와 리엘리아 그리고 고블린들은 티아의 절규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그리고 리이나를 빼고는 다들 불똥이 자신들에게 튀지 않기를 열심히 빌었다. 혼자서 한참동안 절규하던 티아는 겨우 안정을 찾고는 고블린들에게 말했다. [나는 지금 내 동생을 데리고 올테니 너희들은 이곳에서 꼼짝 말고 대기하도록 해! 알겠어?!] [네?! 네!] “그리고 리엘리아! 리이나! 너희 둘도 여기서 기다려! 아마도 서니 녀석은 처음 가본 장소라 어쩌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을 테니 금방 갖다 올 수 있을 거야. 빨리 갖다 올테니 여기서 꼼짝 말고 있어!” “네.” “에? 에! 하지만 티아님!” 리이나는 착하게 대답했지만 리엘리아는 티아가 간다는 말에 놀라서 소리쳤다. 하지만 티아는 리엘리아의 대답을 느긋하게 들어 줄 시간이 없었다. “나 간다!” 그렇게 간단한 말을 남기고 티아는 마법을 시전해서 워프했다. “앗! 티아님!! 고블린들과 저희 둘만 같이 남겨두면 어쩌자는 거예요?!” 뒤늦게 리엘리아의 외침이 터져 나왔지만 이미 티아는 사라지고 난 뒤였다. 리엘리아는 고블린들에게 쫓겨 다녔던 끔찍한 추억이 있는 터라 고블린들과 함께 그 자리에 기다려야 된다는 것이 너무나 무서웠던 것이다. 물론 고블린들이 드래곤의 동료인 리엘리아와 리이나를 어떻게 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하는 일이다. 조금만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금방 알 수 있는 답이지만 공포심에 의해 리엘리아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겁에 질려서 고블린들의 눈치를 보면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리엘리아와는 대조적으로 리이나는 차분한 표정으로 언덕에서 저녁놀에 붉게 물들어가는 수도 라이케얼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리이나는 바람에 흩날리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살며시 쓸어내리면서 중얼거렸다. “예전에도 이렇게 보고 있었던 것 같아.” 아마도 그 중얼거림을 티아가 들었다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보고 있었냐고 닦달을 했을 것이다. ‘내 잃어버린 기억이 그렇게나 중요한 걸까? 내 잃어버린 기억. 실은 그다지 되찾고 싶지가 않아. 그냥 이대로 지낼 수는 없는 걸까? 이대로도 마냥 행복하고 즐거운데......’ 철저한 마이포커 페이스인 리이나의 표정으로 어떻게 즐거움을 표현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은 잠시 제쳐두도록 하자. 아무튼 리이나는 어쩐지 자신의 기억을 찾는 것이 싫었다. 아니 정확히는 ‘두려웠다’. “도대체 어디로 간거야?! 이 급한 순간에!” 테이는 편지 심부름을 보냈던 실프에게 짜증을 냈다. 티아에게 보냈던 것으로 보이는 편지를 손에 든 실프 1호는 울 것 같은 얼굴로 테이의 얼굴을 쳐다보며 변명을 늘어놨다. [그렇게 저한테 화를 내셔도 안 계신 걸 어떻게 하라고요.] “그냥 혼자 짜증을 낸거야. 너한테 화를 낸 건 아니니깐 울지마. 그것보다 언제 돌아온다던지 그런 메모 없었냐?” [네. 아무것도 없었어요. 급히 나가셨는지 방안이 좀 엉망진창이었고요.] “언제 돌아올지도 모른다니....... 젠장! 급하다고 한건 티아였으면서 중요한 순간에 없어지면 어쩌자는 거야?! 별수 없다. 일단 혼자서라도 더 조사해봐야겠다. 아 그리고 편지 이리 줘봐.” 테이는 실프에게서 편지를 받아 들고는 펜으로 무언가를 적더니 다시 실프에게 돌려줬다. “너는 다시 여관으로 가서 티아 방에 편지를 놓고 와. 그리고 그 자리에서 티아가 올 때까지 대기하고 있다가 이후로는 티아의 명령을 들어. 아마도 이 편지에 대한 답장을 주겠지.” [네.] “앗! 아니다!” 편지를 갖고 나가려는 실프를 테이는 급히 붙잡았다. 실프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테이를 돌아다봤다. “티아 성격이라면 바로 여기로 오겠지. 넌 그냥 편지만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놔두고 돌아가도 좋아.” [네 알겠습니다.] 실프가 날아가고 난 뒤 테이는 조용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테이는 지금까지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나름대로 추리를 해봤다 그 결과 가장 의심스러운 것은.... ‘네반 공주. 어릴 적에 죽었다는 레그다트 왕자의 친누나. 아니다 라고 믿고 싶지만 지금으로서는 그녀가 슬라드 왕자의 유괴사건과 관계가 깊어.’ 만약 테이의 생각이 맞다면 이번 유괴 사건은 한 여자의 복수심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레그다트 왕자의 죽음은 아마도 왕궁 내부의 알력 다툼에 의한 희생물일 가능성이 컸다. 그 사실을 네반 공주가 알게 됐다면 이번 슬라드 왕자의 유괴 사건이 일어나게 된 배경과 이유가 너무나 잘 맞아 떨어진다. 하지만....... ‘친 동생의 복수를 위해 배다른 동생을 납치해서 죽이려고 했다. 가장 가능성이 높아. 하지만.......’ 테이는 사람들이 없는 어둠이 깔리는 왕궁 복도를 바라보며 입술을 잘끈 깨물었다. ‘어째서 인간들은 권력을 위해 가장 슬픈 방법들을 선택하는 거지? 옛날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그럴 것인가? 어째서......’ 좋아하고 믿기 때문에 그 존재의 어두운 일면을 보는 것은 그리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테이는 머리를 두어번 흔들면서 잡념을 털어냈다. ‘믿기로 결심했잖아. 그때부터 맹세를 했어. 어떤 일이 있더라도 믿기로....... 그러니 믿어야 돼. 어떤 결과가 기다리더라도 용기를 잃지 말고 믿고 나아가야 돼.’ 그렇게 마음을 잡은 테이는 천천히 어두운 복도로 걸어갔다. 이를 악물고 마음을 굳힌 테이는 사나이다운 표정이 슬쩍 보였다. 지금 입고 있는 옷이 하녀 옷에 여장만 안했다면 꽤나 멋있었을 것이다. 그렇다 하녀 옷만 아니었다면........ 45화 진실에 다가갈 때(4) 티아는 생각보다 조금 늦게 서니를 데리고 나타났다. 정확히는 기절한 서니를 짊어지고 왔다는 말이 정답이다. 티아는 서니를 날려 보낸 그 자리에 어쩌지도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을 서니의 모습을 기대하고 갔었지만 서니는 필사적으로 워프가 가능한 지역까지 날아가던 중이었다. 당황하지 않고 자신이 해야 될 최선의 방법을 찾아서 행동으로 옮긴 일은 대견한 일이지만 마음이 급한 티아에게는 귀찮은 행동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다행히도 갓 성룡이 된 서니의 날아가는 속도는 그다지 빠르지 않아서 금방 따라 잡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서니가 자신을 날려버린 걸로 언니에게 짜증을 내기 전에 머리를 때려 기절시키고는 그대로 워프로 이 자리로 돌아왔다. “티아님! 무서웠어요!!” 워프로 돌아온 티아를 제일 처음 맞은 것은 눈물범벅이 된 리엘리아였다. “뭐야? 내가 없는 새에 무슨 일이 있었어?” “저, 저 고블린들이.......” 리엘리아는 떨리는 손으로 고블린들을 가리키며 말을 잇지 못했다. 고블린들은 리엘리아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분위기상 자신들에게 결코 좋지 않은 소리를 하는 중이라는 걸 깨닫고는 필사적으로 고개와 손을 휘저었다. “에?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재들은 내가 무서워서 아무 짓도 안 했을 텐데.”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라?” “같이 있으면 무섭잖아요.” 울면서 달려든 이유가 겨우 그것이라는 것에 티아는 맥이 빠졌다. 평소 같으면 뭐라고 면박이나 주겠지만 지금은 그런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을 시간은 없다. 티아는 울고 있는 리엘리아를 간단하게 떼어내고 서니의 뺨을 때렸다. 가벼운 마찰 소리가 몇 번 울리고 서니는 신음소리를 내면서 눈을 떴다. “으음. 티아 언...니? 여기는 어디?” 아직 정신이 몽롱한 서니는 사태 파악을 못한 멍한 말을 내뱉다가 곧 정신을 차리고는 눈을 부룻 떴다.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자~~알 알고 있어. 하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내 용건이 더 급하거든 니 말은 내 용건이 끝나고 난 뒤에 아주 친절하게 들어 줄테니 지금은 내 말부터 들어.” 티아는 정말로 친절한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음성과 눈빛은 전혀 친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말 안 들으면 지금 바로 패버리겠다는 살기가 아주 듬뿍 담겨 있다. 테이에 비해서 티아에게 구타를 당한 경험이 아주 적은 서니였지만 그래도 타고난 방어본능이 작동했는지 겁에 질린 얼굴로 쉴 사이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 잘 생각했어. 난 말 잘 듣는 동생이 제일 귀엽더라.” 티아는 아직도 징징 짜는 리엘리아에게 리이나를 데려오라고 시키고는 서니에게 마력을 보내줬다. 티아의 입장에서는 손톱만큼의 마력만을 건네 준거지만 그 정도로도 수십명을 장거리 워프를 시키기에 충분했다. 대충 준비가 끝났을 때 리엘리아가 리이나를 데리고 왔다. 문득 리이나의 얼굴을 본 티아는 놀라운 장면을 목격했다. 표정을 읽을 수가 있었다. 평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종잡을 수 없었던 멍한 마이포커 페이스의 리이나의 얼굴에 희미하지만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불안이라 부르는 표정이....... “후우. 뭔가 무서워?” 티아는 대충 짐작은 하고 있지만 그래도 묻지 않을 수는 없었다. “저기......” 정말로 드물게 불안한 표정에 어울리는 불안한 음성으로 리이나는 입을 열었다. 하지만 단지 그 뿐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후우. 종잡을 수 없는 거에 비해서는 좀 발전한 셈이지만 그렇게 어두워서야 차라리 마이포커 페이스 쪽이 더 낫겠구나.” “........” “무슨 생각을 하는지 대충 알겠어. 미안하지만 그래도 이쪽도 입장이라는게 있고, 지금 열쇠를 쥔 것은 리이나 너 하나뿐이야. 부탁이니 도와줄 수 없을까?” “.......저 밖에 할 수 없는 일인가요?” “응 너 밖에 할 수가 없어. 언제까지 기억을 잃은 체 생활 할 수도 없잖아. 이건 널 위한 일이기도 해.” “날 위한 일.” 리이나는 고개를 숙였다. “정말로 저를 위한다면 그냥 내버려 두시면 안 될까요?” “그건 안돼.” 티아는 생각해볼 것도 없다는 듯이 딱 잘라 거절했다. “그건 진정한 의미에서 위하는게 아니야. 도망치는 것을 도와주는 것일 뿐. 그래서는 아무것도 해결이.......” “전!” 리이나는 소리를 지르면서 티아의 말을 중간에 잘랐다. “전 도망치고 싶어요! 기억을 찾는게 무서워요! 몸이 거부한단 말이에요! 어쩌면 전 정말로 나쁜 인간일지도 몰라요! 그런데 그런 기억을 찾는다니....... 지금의 내가 부서질 것 같아서 무서워요!!” 그렇게 소리치며 리이나는 오열했다. 지금의 리이나는 처음 만났을 때와 달리 감정의 표현이 풍부했다. 마치 그동안 억지로 눌러온 감정을 한꺼번에 내뱉듯이 오열하는 리이나를 보며 티아는 작은 한숨을 쉬었다. 장거리 워프 준비를 하던 서니가 울고 있는 리이나를 감싸며 티아를 올려다봤다. “언니! 나도 부탁할게! 그냥 놔둬도 되지 않아? 이래서는 리이나가 불쌍하잖아! 리이나가 기억을 안 찾아도 될 만큼 내가 열심히 할게!!” 티아는 고개를 저었다. “설령 지금은 덮어둔다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가 사건의 핵심에 다가가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진실은 들어나. 어차피 들어날 진실이라면 본인 스스로가 먼저 깨닫는 게 더 좋을 거야.” “하지만!” “서니야. 난 리이나를 괴롭히려는 게 아니야. 도와주고 싶은 거야. 이 마음은 진심이야.” “나도 도와주고 싶어.” 잠자코 듣고 있던 리엘리아도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난 리이나가 무슨 일을 하는지 자세히는 몰라. 하지만 이거 하나는 자신 할 수 있어. 내 인간 친구 리이나는 정말로 착했어. 저어어어얼대로 유아 납치 따위를 할 나쁜 인간은 아니야! 난 믿어!” “리엘리아씨.” 리이나는 눈물에 젖은 얼굴로 리엘리아를 올려다봤다. “나도 믿어. 처음 만난 날. 리이나는 물에서 건져줬더니 내 모습 보고 놀라서 다시 물속으로 뛰어 들던 겁쟁이인걸. 그런데 그렇게 대담한 범죄를 저지를 리가 없지. 암 틀림없고, 말고. 내 첫 인간 친구인 리이나는 틀림없이 착한 인간이야. 난 믿어.” “서니님.” “실피온은 널 봤을 때 무척이나 너를 잘 따랐어. 테이는 말이야 처음 실피온을 따르게 하는데도 엄청 고생을 했어. 그렇게 낯을 가리는 실피온이 너를 잘 따랐는걸. 키운 시간은 짧지만 난 내 아들을 믿어. 틀림없이 좋은 사람이니 실피온이 따랐을 거라고 믿어.” “티아님.” 리이나는 손등으로 눈가를 쓱쓱 비볐다. 그리고 한결 개운해진 얼굴로 고개를 끄떡였다. “알았어요. 저 갈게요. 그리고 반드시 기억해낼게요.” “그래. 고마워.” 티아는 미소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리이나도 티아에게 지지 않을 정도로 환하게 미소 지으며 손을 맞잡았다. 기억을 잃고 난 뒤 처음으로 짓는 리이나의 진짜 미소는 노을 받으며 아름답게 빛이 났다. 같은 시간 테이는 왕궁의 어느 복도에 서 있었다. 그 복도 저편에는 왕실 가족이 사는 곳이다. 그리고 테이는 아직 그 곳까지 들어가는 것이 허락 안 된 견습 하녀라 망설이고 있는 중이다. 입구에는 보초병 두 명이 서 있었지만 솔직히 테이에게는 별 문제가 안됐다. 그런데도 테이가 주저하는 것은 보초 두 명을 재운 것이 들통 났을 때 일어날 소동 때문이다. ‘역시 한 밤중에 다시 올까? 하지만.......’ 테이는 낮에 받았던 편지의 글귀가 떠올랐다. [좋은 정보를 알아낸다면........ 키스해줄게.] 라는 미끼는 확실하게 테이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으음. 그래도 이대로 소동을 일으키면 일을 그르칠 경우도 있는데....... 하지만 티아 쪽도 움직이고 있으니 만약에 티아 쪽이 먼저 사건의 전말을 알아버린다면 그 약속은 당연히 무효. 티아가 여관에 없다는 것은 무언가 실마리를 잡았기 때문일지도 모르니....... 으음.’ 라는 이유에 테이의 우유부단한 성격이 겹쳐버리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시간만 헛되이 잡아먹었다. 덕분에 뒤에서 누가 다가오는 것조차 테이는 알아채지 못했다. “여기서 뭐해?” “꺄악!” 자신의 본분에 충실하다고 해야 될까? 아니면 아주 익숙해져버렸다고 해야 될까? 테이는 여성스런 비명을 지르며 뒤를 돌아봤다. 그 곳에는 낮부터 자신에게 끈덕지게 치근대던 하인이 능글맞게 웃으며 서 있다. “거기 누구냐?” 테이의 귀여운(?) 비명 덕분에 이쪽을 눈치 첸 경비병들이 다가왔다. 앞에는 능글맞은 하인 뒤에는 경비병. ‘젠장.’ 테이는 속으로 욕지기가 나왔다. 이윽고 가까이 다가온 경비병들은 테이와 하인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며 물었다. “뭐냐? 너희들은 외출 허가가 안 떨어진 거냐? 왜 이 곳에 있는 거지?” ‘흐흐흐. 됐다. 이 위기에서 구해주면 빚을 하나 지우게 되는 거다.’ 하인은 복도를 걷는 테이를 발견하고는 조용히 뒤를 쫓다가 이곳을 유심히 관찰하는 테이의 모습을 보고는 수상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욕망이 더 앞선 하인은 이걸 기회로 도와주고는 빚을 지게 할 생각이다. 혹시라도 그녀가 나쁜 마음으로 이곳저곳을 정탐한다면 그것을 도와줄 생각까지 했다. 이런 멋진 미인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범죄자가 된다고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 만의 착각이다. 테이는 같은 남자로서 하인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미 예측하고 있었다. 테이는 그냥 확 다 날려버리고 싶은 생각을 꾹 참으며 눈물을 그렁거렸다. 그리고 하인이 말을 꺼내기 전에 먼저 말을 꺼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지금 막 테이의 남자의 자존심을 버린 일생일대의 연기가 시작됐다. 저무는 노을빛 덕분에 분위기가 한층 더 업 된 테이의 아름다운(?) 얼굴에 눈물이 맺히자 경비병들의 험상궂은 표정이 자연스럽게 풀렸다. “전 들어 온지 얼마 안 되서 외출 명령은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시녀장님의 시킨 일을 하러 가던 중에....... 성이 넓어서 바보같이 길을 잃었는데 마침 경비병님들이 보여서 도움을 청하려고 했는데.......” “해, 했는데? 왜 도움을 안 청했지?” 어느새 경비병들의 표정이 한결 누그러졌다. 나쁜 마음으로 테이를 곤경에 빠트린 하인은 테이의 평소 짜증만 내던 모습만 봐온 터라 처음 보는 애절하고 아름다운 모습에 입을 헤 벌리고 그저 구경만 하고 있었다. “그게 너무 굳은 표정으로 지키고 계셔서 혹시 저 같은 미천한 하녀가 오면 안 되는 곳 같아서 겁이 나서 어쩔 줄 모르고 있는데 이 분이 오셔서 제 등을 치는 바람에 그만 비명을 질렀습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 흑흑.” 마무리로 말을 더 잇지 못하고 흐느껴 울기. 한마디로 ‘완벽한 연기’였다. 지금 테이는 완벽하게 마음이 여린 소녀의 모습을 연기한 것이다. 그리고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그럼 아가씨는 그렇다 치고 너는 이곳에 무슨 일이지? 너도 들어 온지 얼마 안 되는 하인인가?” 경비병들의 수상하는 눈길이 하인에게로 집중 된 것이다. “아, 아니 저는.......” 곤란한 상황에 몰아넣으려다가 대려 곤란한 상황에 빠진 하인은 기겁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저는 그냥 아는 하녀가 이곳에 있기에 무슨 일인가 싶어서 말을 건겁니다. 여기는 출입이 제한 된 곳이기도 해서.......” “그러니깐 출입 제한이 있는 이곳에 길 잃은 아가씨는 그렇다 쳐도 왜 네 놈이 와 있냐는 거다.” “아, 아니에요. 저 사람은 전부터 온지 얼마 안 된 저를 걱정하고 도와주셨어요. 수상한 사람이 아니에요.” 테이는 경비병의 팔을 붙잡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마도 성에 남는 제가 걱정이 되서 남았다가 저를 도와 줄 셈으로 따라오신 걸 거에요. 틀림없어요.” 안면 몰수. 병 주고 약주기. 거기에다가 써먹을 수 있는 무기. 설령 그 무기가 미인계라 할지라도 최대한 다 써먹는 방법까지........ 테이는 어느새 티아를 닮아가고 있다. “흐음.” 테이의 변명에 경비병들은 덜덜 떨고 있는 하인을 유심히 관찰했다. 테이의 변명을 그들은 믿지 않았다. 경비병들은 하인을 어여쁜 하녀를 어떻게 해보려고 따라다니는 질 나쁜 남자라고 결론 내렸다. 동시에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변명을 해주는 테이의 순수함(?)과 착한 마음(?)에 감동까지 하고 있었다. ‘이런 나쁜 놈의 손에 착하고 순진한 아가씨를 맡길 수는 없지.’ 이런 상황에서 기사도 정신 발휘 안하는 남자는 전 세계 남자 중에서 얼마나 될까? 모르긴 몰라도 그 수는 극소수일 것이다. 그리고 경비병은 그 극소수의 남자에 해당 안하는 정상적으로 기사도를 발휘하는 쪽이다. 경비병 중에 하나가 하인에게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아가씨를 도와주겠다. 그러니 너는 그만 가 봐도 좋아.” 지극히 사무적인 말투지만 말속에는 협박이 다분히 섞여 있었다. 상황이 이쯤 되다 보니 하인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물러나기 아까운 하인은 못 먹는 감 찔러보자는 심정으로 외쳤다. “아, 아닙니다. 실은 이 하녀가 수상한 행동을 하고 있어서 잠시 뒤를 밟았던 것입니다. 여기를 훔쳐보던 때도 아주 수상한 눈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타국의 스파이일지도 모릅니다!” ‘쳇. 그냥 포기하고 잠자코 돌아갈 것이지. 저렇게 상황 판단이 안 되나?’ 속으로 혀를 찬 테이는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고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런.... 전 진짜로 길을 잃어서.... 전 나쁜 생각 같은 것 한 적 없어요. 흑. 정말이에요.” “아닙니다! 저 여자는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원래 성격은 엄청나게 신경질 적인 여자입니다! 저건 저 여자의 연기입니다!” 아름다운 두 눈에 눈물을 가득 머금은 아름다운 미녀(?)와 기름끼가 번들거리는 얼굴에 척 보기에도 인상 나쁜 남자의 항변. 하지만 심사위원은 기사도 정신(약간의 흑심이 들어간.)에 불타는 남자 둘이라는 것 때문에 애초부터 게임이 될 수가 없다. 테이 생각대로 하인은 테이의 가증스런 거짓 연기에 흥분해서 상황 판단을 못하고 있었다. “너 이 여자를 이용해서 무슨 일을 벌일 생각이냐?” “네?” 경비병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하인이 멍청하게 반문하자 경비병들은 더욱 더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말했다. “무슨 목적으로 순진한 여자에게 억지로 죄를 덮어씌우려는 거지?” “네? 네?! 그게 아닙니다! 저 여자는 진짜 성질머리 나쁜 여자입니다! 지금 저것도 연기입니다! 틀림없이 나쁜 목적으로 이 성에 잠입한게 틀림없습니다!” 하인이 핏대를 세우며 외치자 테이는 겁먹은 표정으로 아예 경비병 한사람의 뒤에 숨어서 오들오들 떨었다. 아름다운 여자(?)가 자신의 등 뒤에 붙어서 떨고 있자 경비병은 쾌재를 부르는 동시에 지금 갑옷을 입고 있다는 아쉬움이 섞인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선택받지 못한 경비병은 부러움과 질투가 섞인 복잡한 표정으로 엉뚱한 하인에게 화풀이를 시작했다. “너 아까는 아는 하녀가 이쪽으로 오는 걸 보고 따라왔을 뿐이라고 했잖아! 그런데 갑자기 무슨 수상하다는 둥의 말을 하는 거지? 정말 너 말대로 수상해 보였다면 처음부터 하녀가 수상해서 따라왔다고 말했어야 정상 아니야?!” 여러 가지 의미로 성난 경비병의 말에 하인은 말문이 탁 막혔다. 그렇다고 지금 처음부터 하녀에게 흑심을 품고 따라왔었다는 말이나 수상해 보이는 하녀의 행동에 이걸 빌미로 어떻게 해보려고 했다는 둥의 변명 따위를 할 수는 없다. 그런 변명을 해봐야 자신에게 좋을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드디어 깨달은 것이다. “그, 그게.....” 더 이상 그 어떤 고자질도 변명도 할 수 없는 하인이 우물거리자 테이에게 선택 받은(?) 경비병이 동료 경비병에게 말했다. “오히려 이 놈이 더 수상하잖아. 어이 케드 이 놈 심문실로 끌고 가봐야겠어.” “아 그래야 될 것 같군. 보브 멍청이 있지 말고 이 놈 끌고 가봐.” 순간 두 경비병은 눈이 마주치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씩하고 웃었다. 물론 그 웃음 속에서 남자의 우정 따위는 찾아 볼 수가 없다. “잠깐만요! 전 억울합니다!” 필사적으로 무죄를 외치는 하인을 싹 무시하고 두 경비병은 진지하게 주먹을 들고 가위, 바위, 보를 시작했다. 그 소란스런 틈바구니에 낀 테이는 속으로 길게 한숨을 쉬었다. ‘도대체 남자들이란 왜 이렇게 단순한걸까?’ 테이는 자기 자신도 알맹이는 남자라는 것을 잠시 잊고 진심으로 그렇게 고민했다. 진실에 다가갈 때(5) -여기부터 stseed쥔장이 직!접! 타자친거 -_-;; "이곳이 사건이 시작된 곳인가? 어쩐지 일의 크기에 비해서 조용한 숲이네." 티아는 울창한 숲을 둘러보며 솔직한 감상을 말했다. 티아의 감상대로 조용하고 울창한, 별 특징 없는 숲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이번 사건의 모든 것이 시작된 곳이기도 했다. 숲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진 뒤라 주위가 어둠에 싸여 티아와 서니가 불러낸 빛의 정령들로 주위를 밝혀야 했다. 티아는 숲 속을 걷다가 리이나를 흘금 쳐다보았다. 리이나는 특유의 멍한 표정을 지으며 잠자코 걷고 있었다. 고블린들이 봤다는 장소에 도착하고 목적 없이 무작정 걷기 시작한 지 한 시간, 리이나의 표정에는 아직 이렇다 할 변화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일행을 끌고 다니는 것은 리이나였다. 정확히는 티아들이 리이나의 뒤를 따라 걷고 있는거지만...... 아무튼 리이나는 처음에는 머뭇거리며 조금씩 이동했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거침없이 걷기 시작했다. '몸이 기억하고 있는걸까?' 티아는 거침없이 숲을 헤치고 걷는 리이나의 뒤를 따르며 생각했다. "언니, 물소리가 들려." 티아의 바로 옆에서 서니가 나지막하게 티아를 부르며 말했다. 티아도 알고 있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일행 중에 제일 귀가 좋은 드래곤인 두 자매는 저 멀리 계곡의 물소리를 들은 것이다. 그리고 리이나는 그 방향으로 걷고 있었다. "아무래도 제대로 찾아가고 있는 것 같은데." 티아의 말에 서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티아의 뒤를 바싹 따라서 걷던 리엘리아는 아직 물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며 때때로 귀를 기울이는 행동을 하며 뒤를 쫓았다. 엘프인 리엘리아가 듣지 못할 정도의 거리라면 아직 한참을 걸어가야 될 것이다. 앞서 걸어가고 있는 리이나는 때때로 주위를 둘러보다가 곧 거침없이 발걸음을 옮기며 착실하게 계곡 쪽으로 걸어갔다. 리이나는 아직 기억 못하고 있지만 이곳은 확실히 리이나가 도적들에게 쫓기던 장소가 맞았다. 그리고 티아의 예상대로 거의 본능적으로, 그날 쫓겨다니던 길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변화는 그것만이 아니다. 티아는 미처 눈치 채지 못했지만-리이나가 표정을 겉으로 도러내지 않기 때문이다-지금 리이나의 머릿속에서는 때때로 어떤 장면과 말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아직 리이나는 깨닫지 못했지만 그것은 그녀의 예 기억들 이었다. 흰 수염을 길게 기른 온화하게 생긴 할아버지가 리이나를 쳐다보며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미안하구나. 괜한 싸움은 피하고 싶었는데 오히려 그것이 너에게 불행이 될 줄은 몰랐단다.' 마음씨 좋아 보이는 통통한 아줌마가 고개를 젓고 있었다. 어째서인지 한참 어린 리이나에게 존댓말을 사용하고 있었다. '어째서 하필 시녀가 되실 생각을 하셨습닊? 굳이 그렇게 안 해도 편하게 사실 수 있습니다. 제발 마음을 돌리세요.' '정말? 그럼 오늘부터 우리는 친구인 거지? 나 인간 친구는 처음이야.... 라기보다는, 헤헤헤. 실은 리이나는 나의 첫 친구야.' 주황색 머리카락을 가진 귀가 뾰족한 엘프가 환한 미소릴 지으며 말하고 있었다. 바로 리엘리아였다. 그리고... '어째서 저 애가 왕이 되는 거지? 어째서 내 .....은 죽었는데 저 애가 왕이 될 수가 있는거야!!' 아직 얼굴이 기억나지 않지만 슬픔과 분노로 절규하는 외침. 그것을 떠올린 리이나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슬픔을 느꼈다. '아니야! 죽지 않았어요. 죽은게 아니에요!!' 리이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내가? 누구에게? 그리고 왜?' 스스로에게 물어봐도 돌아오지 않는 대답. 리이나의 표정은 변함없이 멍했지만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쭉 뒤에서 지켜보던 티아는 리이나의 눈물을 눈치 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눈물은 아마도 기억을 찾아가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것은 티아의 예상을 뛰어넘는 성과였지만 티아는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아직 기억이 확실히 돌아온 것 같지도 않은데 저절로 눈물이 날 정도로 슬픈 거니? 리이나 너의 과거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아픈 기억을 억지로 들추어내는 것이지만 여기까지 와서 멈출 수는 없다. 이것은 늦든 빠르든 어차피 리이나가 찾아야 될 기억이다. 리이나의 걸음이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다. 아니, 거의 뛰다시피해서 도착한 곳은 예전에 도적들에게 쫓기던 리이나가 떨어졌던 바로 그 절벽이다. 리이나는 그 자리에 가만히 멈춰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이미 날은 어두워서 절벽 아래 계곡의 급류는 보이지 않았지만 거친 물소리는 마치 눈앞에 거친 물살이 이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여기는?" 리엘리아는 살그머니 리이나의 옆으로 다가가서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고는 기겁을 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여, 여기에 뭐가 있다고 이런 곳으로 온 거야? 보기만 해도 현기증이 다 나잖아." 리엘리아는 질린다는 표정으로 절벽에서 멀리 떨어졌지만 티아와 서니는 그 정도는 별거 아니라는 표정으로 리이나 옆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하긴 드래곤인 그 둘에게는 정말 별거 아닌 절벽이었다. "우와, 높다." "아래는 계곡인 것 같지만 물살이 정말 거친걸. 이곳에서 인간이 떨어진다면 목숨 부지하는 건 기적이겠다. 아니, 거의 100%인생 끝이겠네." 서니의 감탄에 이어 티아의 솔직한 상황 설명을 들으며 리엘리아는 질린 표정으로 물었다. "저기, 안 무서우세요? 전 보기만 해도 현기증이 나던데." "이 정도가 뭘 어때서?" "우우, 두 분이 드래곤이라는 건 알지만 그대로 저는 걿게 위태로운 장소에 서 있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불안해진단 말이에요. 아무래도 길을 잘못 든 것 같은데 그만 다른 곳으로 가요." 리엘리아의 애원에 티아는 이해를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길을 잘못 들다니? 어째서?" "어째서라뇨? 방금 티아님 입으로 말씀하셨잖아요, 인간이 떨어지면 목숨을 잃을 거라고. 그렇다면 리이나가 이곳에서 떨어졌을 리가 없잖아요." 티아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에? 에?! 그럼 리이나가 이런 곳에서 떨어졌단 말이에요? 그래서 기억을 잃었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그게... 이 급류를 따라 내려가면 서니의 레어 근처에 있는 강으로 통하거든. 서니야, 맞지?" "응. 맞아. 여기서 하루 정도 걸린 곳에 내 레어가 있어. 아, 하루라는 것은 내가 날아갔을 때 걸리는 시간. 인간의 걸음으로 가자면 나흘 정도 걸리려나?" "아니, 길 험한 것까지 계산하면 좀더 걸릴걸." 리엘리아는 한가하게 거리 계산을 하고 있는 티아와 서니를 보고 있자니 기가 막혔다. 그 둘은 완전히 리이나가 여기서 떨어졌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잠깐만요!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리이나가 여기서 떨어져서 기억을 잃다면...... 저기, 그게......" 리엘리아는 리이나를 앞에 두고 차마 '어떻게 살아날 수 있었던 거죠?'라는 질문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굳이 그 질문을 하지 않더라도 티아와 서니도 그것을 궁금해하고 있던 참이었다. "리엘리아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 잘 알겠어. 우리 역시 그게 제일 궁금해. 리이나는 이 숲에 도착하고 나서 거의 본능적으로 이곳으로 왔으니, 이 절벽에서 떨어졌을 가능성이 커. 아니, 이 계곡이 서니가 리이나를 처음 구한 강과 연결된 것만 생각하면 이곳이 틀림없겠지." "나도 그렇게 생각은 하지만.... 그래도 언니, 만약에 리이나가 여기서 떨어져서 그 순간 목숨을 건졌다고 해도 이 앞쪽으로 크고 작은 폭포들이 있단 말이야. 보통 인간이라면 살아남기 힘들 텐데." 티아와 서니는 도저히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마주보며 한숨을 쉬었다. 리이나는 내내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며 침묵하고 있었다. 일단 몸이 기억한 본능으로 이곳까지 왔고, 이곳에 오는 동안 몇 가지 기억이 살아났지만 거의 마구잡이로 뒤섞여 있어서 아직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기억을 되찾기 싫다는 마음은 없어졌다. 오히려 지금은 절실하게 기억을 되찾고 싶었다. 아니, 반드시 되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 오고 나서 여러 사람들 얼굴이 생각나면서, 잊어버린 진짜 자신이 기억을 찾아야 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리이나는 각오를 굳히기 위해 숨을 고르고는 절벽을 등진 채로 일행을 돌아보았다. "저기, 저 좋은 방법이 생각났어요." "응? 좋은 방법?" 티아는 리이나 쪽을 마주봤지만 서니는 관심이 없는 표정으로 여전히 절벽 아래를 쳐다보며 '어떻게 해야 살 수 있는 거지?' 라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무슨 방법이 생각났다는 거야?" "그때와 똑같은 상황을 재현해보면 될 것 같아요." "똑같은 상황? 설마 여기서 떨어져보겠단 소리야?" 그제야 서니도 리이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서니의 질문에 리이나는 조금 난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그대로 사라졌다. 아니, 스스로 절벽 아래로 뛰어들어서 티아와 서니의 시야에서 사라진 것처럼 보인 것이다. "앗! 리이나!"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상황판단이 안 된 서니는 티아의 비명에 가까운 외침을 듣고는 거의 반사적으로 절벽 아래로 뛰었다.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이 바보!! 어서 내 손을 잡아!!" 서니는 있는 힘껏 외치면서 떨어져가는 리이나에게 손을 뻗었다. 하지만 먼저 떨어진 리이나와의 거리는 크게 벌어져 있어서 손이 닿지를 않았다. "너 반드시 리이나를 잡도록 해!" "에?" 어느새 뛰어내렸는지 티아는 서니 옆에서 손을 뻗어서 마법을 걸었다. "베이데트!" 중력마법 베이데트 덕분에 위에서 아래로 짓눌리는 힘에 의해 서니는 가속을 받으면서 아래로 떨어졌다. 덕분에 떨어지는 리이나를 따라잡아서 간신히 붇잡을 수 있었다. 서니는 리이나의 손을 잡고는 실프를 불러서 간신히 공중에서 멈출 수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리이나는 거센 급류에 휘말리기 일보직전이었다. 그야말로 간발의 차였다. "휴우. 어떻게든 붙잡은 것 같구나. 근데 넌 왜 같이 뛰어든 거야?" 그 위 공중에서. 티아는 서니가 리이나를 붙잡은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곧 자신의 팔에 매달린 리엘리아를 쏘아보며 물었다. 리엘리아는 리이나의 뒤를 따라서 서니와 티아가 절벽으로 뛰어들자 같이 뛰어든 것이다. "에... 그게, 두 분이 뛰어드는 것을 보고 나도 모르게....." "너는 바보 엘프냐?! 아니면 우리 둘의 진짜 모습을 잊고 있는거야?! 당연히 괜찮으니 뛰어드는 거잖아! 그리고 넌 엘프잖아! 뛰어들고 난 다음에 실프라도 부를 것이지. 비명만 질러대면 살 수 있다니?!" "우우, 갑작스런 일이라 그럴 경황이 없었단 말이에요." "으이그, 울지 마! 뭐 아무튼 의문 중에 하나는 풀렸군." "훌쩍. 의문이라뇨?" "리이나가 이곳에 떨어지고도 살아남은 이유." "네에?! 그럼 리이나가 여기서 떨어진 게 맞단 말이세요?" 티아의 말에 훌쩍거리던 리엘리아가 놀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티아는 리엘리아의 믿지 못하겠다는 눈을 바라보며 확신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충격요법으로 리이나의 기억이 돌아온다면 확실해지겠지. 뭐, 일단 올라가서 이야기하자." -짝! 떨어지던 충격 때문인지 잠시 정신을 잃었던 리이나가 눈을 뜨고 제일 먼저 느낀 것은 뺨에 와 닿은 화끈한 아픔이었다. 서니가 리이나의 뺨을 때린 것이다. 서니는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 언제 흘러내릴지 모를 상황을 필사적으로 참으면서 리이나에게 화를 냈다. "너 도대체 생각이 있는 거야?! 만약에 조금이라도 내가 널 늦게 붙잡았다면 어쩔 뻔했어! 아무리 멍한 성격이라지만 목숨에 관계된 일이잖아! 목숨에 관계된 일은 생각 좀 하고 살란 말이야!!" 리이나는 아픔 표정으로 맞은 뺨을 만지다가 서니의 말을 듣고 정말로 미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면 다야?! 내가 얼마나 놀란 줄 알아! 모르겠지?! 난 리이나가 떨어지는 걸 보고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다고!!" 티아는 좀더 때릴 듯한 기세로 외치는 서니를 붙잡으며 말렸다. "그만, 거기까지. 그 정도면 네가 리이나를 얼마나 걱정하는지는 충분히 전해졌을 거야. 그러니 그만 해." 티아의 만류에 서니는 얼굴이 확 붉어지면서 고개를 들렸다. "나, 난 그다지 걱정 같은 거 한 적 없어!" "그래? 리이나는 서니가 처음으로 사귄 친구잖아. 그러니 걱정을 만히 해서 그렇게 화내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 언니 생각이 틀렸나보구나." "윽!" 서니는 정곡을 찔렸는지 몸이 움찔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리이나에게 달려들어 꼭 껴안으며 울음을 터뜨렸다. "으아앙! 리이나! 무사해서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엉엉!" 리이나의 무식한 기억 찾기 방법과, 그래도 무사한 것에 분노반 기쁨 반의 울음을 터뜨리는 동생을 보고 있자니 티아는 쓴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솔직하지 못하고 고집 센 점은 나를 꼭 닮았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테이를 더 많이 닮은 걸까? 나보다는 감정 표현이 솔직하네. 나보다 훨씬 더.' 티아는 잠시 나라면 저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해보다가 곧 관뒀다. 그런 생각을 한다고 자신의 성격이 당장 변할 것도 아니기에..... 자신의 품에서 우는 서니에게 내내 미안한표정을 짓고 있던 리이나는 서니가 진정할 때까지 내버려두기로 했는지 그녀의 머리를 살짝 껴안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티아를 바라보며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표정으로 입술을 우물거렸다. 그것을 눈치 챈 티아가 선수를 쳐서 먼저 물었다. "기억 돌아온 거니?" "그게, 저어... 확실하지는 않지만 대강 여러 가지가 기억이 납니다. 아직 혼란스럽긴 합니다만." "그렇다고 다시 절벽에 뛰어들면 안 돼!" 서니는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들며 소리쳤다. 리이나는 난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걱정 마세요. 더 이상 위험한 짓은 안 할 거예요." 서니는 그 말을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리이나의 허리를 끌어안은 손에 힘을 주었다. "서니야, 그렇게 힘주어서 안고 있다가 리이나의 허리 부술 생각이니?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다. 리이나 지금 표정이랑 말투가 변했어." 티아의 말에 서니는 리이나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리이나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정말로 괜찮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흑. 언니, 리이나가 이상해졌어!" "에?" "리이나가 이렇게 부드러운 표정 지으면서 진심으로 미소 지을 리가 없잖아!" 티아는 한숨을 푹 쉬면서 고개를 저었다. "하아아. 네 머리는 리이나의 기억이 돌아왔다는 생각은 못하는 거니?" "하지만! 어쩐지 이상한걸. 처음 봤을 때 리이나는 내 모습 봤을 때 비명 지른 것 빼고는 이런 표정 지은 적이 없는걸." "그러니 기억이 돌아왔다고 생각하면 되잖아! 넌 설마 친구가 좀 변했다고 친구가 아니라고 말할 참이냐? 하아, 이렇게 박정한 녀석이 내 동생이라니......" "뭐야?! 박정하다니! 난 전혀 박정하지 않아! 그냥 좀 놀란 것 뿐이야!!" 서니는 언제 울었냐는 듯이 볼을 잔뜩 부풀리며 티아에게 화를 냈다. "호오. 그렇다면 아무 문제 없는 거지? 너의 첫 친구인 리이나가 변했다고 해도 말이야." '우우. 다, 당연하지. 그렇지, 리이나?" 서니는 겉으로는 강한 척하고 있었지만 실은 아까부터 그 점이 신경 쓰였는지 자신 없는 말투로 리이나에게 물었다. 리이나의 기억이 다시 돌아온 대신 그동안 자신과 같이 여행했던 기억이 사라졌을 수도 있기 때문에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리이나는 미소 지으며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서니님." "다행이다. 나 리이나의 첫 친구로 남을 수 있구나." "잠깐만요! 누가 누구의 첫 친구라는 거죠?!" 서니가 크게 안심한 표정으로 가슴을 쓸어 내릴 때 뒤에서 잠자코 쳐다보던 리엘리아가 더 이상 못 들어주겠다는 듯이 화를 내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지금 분명히 물해두겠는데 리이나의 첫 친구는 바로 나예요!" "어머나~ 이게 누구야? 친구를 구한답시고 뛰어들어 놓고는 아무것도 못하고 꺅~꺅~ 비명만 지르던 반쪽 엘프 아니신가? 넌 상당히 재미있는 농담을 하는구나." "누, 누가 반쪽 엘프예요?! 그리고 농담 아니에요! 리이나의 첫 친구는 바로 이 숲의 축복 받은 딸 리엘리아에요!" "축복? 저주가 아니고?" "으으! 당신이란 드래곤, 정말 싫어요!" "나도 너라는 엘프가 정말 싫어!" 티아는 뒤에서 벌어지고 잇는 애들 말싸움을 말릴 생각이 없었다. 아니, 말리기 지쳤다는게 솔직한 심정이다. 티아는 뒤쪽의 소음은 싹 무시한 채 리이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아마 리이나가 기억을 잃을 때, 즉 여기서 처음 떨어졌을 때도 그게 너의 목숨을 구해준 것 같구나. 내 말 맞지?" "아! 네, 맞습니다." 티아가 가리키고 있는 것은 리이나의 목에 걸린 오리하곤 왕국의 문장이 새겨진 목걸이다. 처음 서니가 리이나를 발견했을 때도 손에 피가 나도록 꽉 쥐고 있었던 왕가의 문장. 티아는 방금 전 리이나가 떨어질 때 그녀의 몸이 희미한 마법의 기운으로 감싸지는 것을 느꼈다. 일종의 방어마법과 비슷한 느낌의 힘이었는데 그 마법의 힘은 바로 리이나의 목에 걸린 왕가의 문장에서 나온 힘이었다. 리이나는 자신의 목에 걸린 왕가의 문장을 손에 꼭 쥔 채 티아에게 설명했다. "이것은 아주 옛날에 우수한 마법사들이 보호의 마법을 걸어 만든 마법 아이템입니다. 오리하곤 왕가의 피에만 반응해서 착용자의 몸을 갑작스런 사고에서 보호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이것 덕분에 우리 오리하곤 왕국은 그 오랜 세월 동안 정통 왕가의 피를 그대로 지켜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 어이! 잠깐 기다려! 오리하곤 왕가의 피에만 반응한다고?! 그, 그렇다면 리이나 너는?!!" 티아의 놀란 외침에 서니와 리엘리아는 말싸움을 멈추고 무슨일인가 궁금해하는 표정으로 티아와 리이나를 쳐다보았다. 티아는 고개를 몇번 흔든 후 리이나를 추궁하듯이 물었다. "리이나! 너 정체가 뭐야? 그 정도는 기억해냈지?" "네. 제가 기억해낸 것 중에 이번 사건의 내막, 제가 기억을 하고 있는 것만이라도 전부 말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저의 진짜 이름도요. 리이나가 아닌 리이나가 되기 전의 저의 이름, 한때 오리하곤 왕궁의 제1황태자 레그다트 왕자. 레그다트, 그것이 저의 진짜 이름이었습니다." 순간 티아 일행은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잠시 후 놀란 세 여자의 외침이 어두운 숲 속에 울려 퍼졌다. 진실에 다가갈 때(6) -흑.. 타자치기 힘들어요 ㅠ.ㅠ -stseed 테이는 투덜거림을 멈추지 않고 계속 걸었다. 아까의 일을 생각하면 정말이지 아직도 소름이 끼쳤다. 무슨 일이냐 하면 이곳으로 잠입하려다가 잠시 일어난 해프닝에서 테이를 두고 두 경비병이 신경전을 벌이는 것에 저도 모르게 '남자들이란 왜 이럴까?' 라고 생각한 것이다. 명색이... 비록 지금 여장을 했다지만 명색이 테이는 분명 남자인데 '남자들이란...' 따위의 생각을 하다니...... 테이는 순간적으로나마 자신의 정체성에 커다란 의문을 느끼며 정신적 타격을 받았다. 아무튼 테이는 경비병 중 한 명이 하인을 끌고 가지 바로 남은 경비병에게 매혹의 정령 드리아드의 환상을 보여주고,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테이의 마음속은 어서 빨리 이 빌어먹을 임무를 마치고 남자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꽉 차 있었다. 덕분이라고 할까? 지금 테이는 그 우유부단한 성격에 조금도 영향을 받지 않고 거침없이 걸어나가고 있었다. 이미 어떻게 할지 전부 정해둔 것이다. 테이는 독하게 마음먹은 그대로 행동했다. 먼저 실프들을 보내서 방들을 조사하게 만들고 싶프가 찾은 네반 공주의 방을 찾아서 그대로 문을 확 열어젖히고 들어간 것이다. "넌 누구냐? 무례하구나!" 책을 읽고 있었는지 네반 공작부인은 손에 든 책을 내려놓으며 불청객처럼 쳐들어온 테이를 향해 눈을 치켜뜨며 화를 냈다. 하지만 테이는 아무런 거리낌없이 방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며 말했다. "내가 누구냐고? 내 이름은 레아...가 아니라 테이루아다! 인간들이 드래곤이라고 부르는 존재이지." 테이는 막말로 막 나가자 전법을 선택한 것이다. 물론 테이는 충분한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그 자신감 이전에 빨리 남자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뒷일을 생각 안 하고 막 나가는 것이다. "드래곤?" 네반은 이제 분노의 표정이 아닌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긴 보통 시녀 차림의 여자가 무례하게 공작부인의 방으로 쳐들어와서 갑자기 '나 드래곤이다'라고 하는데 황당하지 않을 리가 없다. 네반의 황당함은 바로 분노로 바뀌어서 무어라고 소리치려고 했지만 테이 쪽이 먼저였다. "슬라드 왕자, 알고 있겠지?" 한순간이지만 네반은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빠르게 평정을 되찾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내가 내 동생의 이름을 모를 거라 생각하나? 그것보다 너는 뭐 하는 놈이기에 이렇게 무례하게 구는 거지? 당장 사람들을 부르겠다." 테이는 훗 하고 웃으며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동생이라. 그 동생을 죽이려고 한 것이 어디 사는 누구시더라?" 테이는 그렇게 말하며 네반의 안색을 살폈지만 그녀의 표정은 아무런 변함이 없이 철저하게 냉철한 시선으로 자신을 쏘아보고 있었다. 그녀도 자신의 표정을 숨기는 데 상당한 실력가였다. 테이는 보통 방법으로 안 되겠다고 생각을 하고는 강하게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럼 당신의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이야. 누구냐고 물었지? 아까도 대답했지만 난 인간들이 드래곤이라 부르는 존재이다." 테이는 그렇게 말하며 드래곤 아이의 봉인을 살짝 풀었다. 테이의 인간 같던 눈동자는 순식간에 드래곤의 눈동자로 변했다. 변한 테이의 눈은 인간이 거부하지 못할 마력을 흘리며 네반을 쏘아보았다. 네반은 난생처음 느껴보는 공포감에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떨다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하지만 차자 테이의 눈을 피하지는 못했다. 고개를 돌리는 순간 무서운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눈동자 그것이 상대방에게 극도의 공포를 심어주는 드래곤 아이의 위력이다. 테이는 실프들에게 명해서 방문을 닫도록 하고는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방 안 전체에 마법을 걸었다. 그리고 네반을 향해 천천히, 그리고 고압적으로 말했다. "자, 그럼 이번에는 내가 묻지. 아까와 같은 질문이야. 슬라드 왕자에 대해서 알고 있겠지?" 테이는 네반의 떨리는 입술을 보며 해결했어! 라고 생각했다. 테이의 자존심 추락과 정체성 혼란 덕분에 이렇게 된 것이지만 지금 그가 쓰는 방식은 티아가 자주 쓰는 '정면으로 치고 나가서 힘으로 누르면 장땡'이라는 방식과 똑같았다. 테이는 원하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티아를 닮아가고 있었다. 아직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리이나를 쳐다보던 여자 세 명중에 리엘리아가 제일 먼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저, 저기, 리이나." "응?" "리이나는 그거 달린 남자였어?" -따악 경쾌한 소리와 함께 리엘리아는 머리를 감싸 쥐고 신음을 흘렸다. 그리고 자신의 머리를 때린 이가 누군지를 알아보고는 그자리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우와아앙! 티아님이 때렸어." "시끄러워! 너도 여자라면 부끄러움이라는 것 좀 알아라! 그리고 바보냐?! 리이나가 어딜 봐서 남자로 보여?!" "흐에엥.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이고 자시고, 좀더 상황에 맞는 질문을 하란 말이야!" 티아의 외침에 잠자코 고민을 하던 서니가 손을 들면서 말했다. "저기, 그럼 내 질문!" "네, 서니님." 리엘리아의 질문 덕분에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당황하던 리이나가 서니를 바라보았다. 서니는 얼굴 가득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저기, 인간들이 말하는 수술이란 걸 한 거야?" -따악! 역시 아니나다를까. 리엘리아 때보다 더 큰 타격음이 울리고, 서니는 머리를 감싸 쥐며 그 자리에서 뒹굴었다. "평생에 도움이 안 되는 것들 같으니라고." 티아는 주먹을 쥐며 이를 갈았고 리이나는 얼굴을 더욱 붉히며 난처한 웃음을 흘렸다. 티아는 곧 진지한 표정으로 리이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그럼 일단 먼저 확인부터 해볼게." "에? 에?" 이미 두 번이나 당한 터라 리이나는 어떤 질문이 올까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아무리 엽기녀인 티아라 할지라도 이런 때까지 장난을 칠 만큼 막돼먹지는 않았고, 서니와 리엘리아처럼 바보도 아니었다. "대충 짐작은 가지만 확인 차 물어보는 거야. 넌 무슨 이유로 왕자로 길러진 거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리이나로 이름을 바꾸고 왕국의 시녀로 살아온 이유가 뭐지?" 정상적인 질문에 리이나는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진지한 얼굴로 표정을 굳히고 입을 열었다. "이것은 제가 태어났을 때 이야기로, 제 유모한테서 들은 17년전의 저의 어린 시절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비숫한 시각, 테이 역시 ㄴ반의 입을 통해 비숫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17년 전 비밀에 붙여진 오리하곤 왕국의 제1황태자 프리드크레그다트 왕자의 이야기. 모든 일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17년 전 오리하곤 왕궁에는 정통 왕위를 이을 왕자가 없었다. 당시 오리하곤 왕국의 왕 프리드크 4세에게는 왕비 이외에도 수많은 부인이 있었지만 왕비에게는 첫째 딸인 네반 공주와 그리고 후궁에서 태어난 다섯 명의 공주가 더 있을 뿐이었다. 이에 프리드크 가문은 프리드크의 대가 끊이지 않게 하기 위해 네반 공주와 팔촌의 관계에 있는 한 남자와 정략혼인을 추진하고 있었다. 그 이외에도 다른 이름 있는 가문의 귀족들은 앞다투어 네반 공주와의 혼인을 하기 위해서 기를 썼다. 하지만 당시 왕인 프리드크 4세는 네반에게 정말로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을 하기를 권했다. 프리드크 4세는 가문의 이름을 이어가는 것보다 사랑하는 딸들이 행복한 삶을 살기를 진심으로 바랐던 것이다. 하지만 프리드크 4세의 바람과는 달리 네반 공주와의 혼인을 노리는 가문들의 눈치싸움은 점점 위험한 선까지 치닫게 되었다. 그런 와중에 싸움을 종결시키는 사건이 일어났다. 왕비가 임신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1년 후 그렇게도 기다리던 오리하곤 왕국의 정통 후계자인 프리드크 레그다트 황태자가 태어났다. 하지만 실상 태어난 것은 공주였다. 하지만 험악해진 왕위 쟁탈전을 종결시키기 위해 프리드크 4세는 태어난 공주를 왕자로 속인 것이고, 그 레그다트 왕자가 지금의 리이나였다. 어찌 되었든 레그다트 황태자의 탄생으로 왕위 쟁탈 싸움은 일단락 지어졌다. 하지만 겉으로만 그렇게 보였을 뿐 손에 거의 넣었다고 생각한 왕위를 목전에 두고 잠자코 물러나지 않은 것이 한 군데 있었다. "제가 아기일 때 일어난 일이라 기억에는 없습니다. 지금 와서 새삼스럽게 알고 싶은 기분도 없고요. 하지만 나중에 절 키워준 유모에게 들은 바로는 독살을 당할 뻔했다고 했습니다. 그 때문에 저의 아버지인 프리드크4세는 절 죽은 것으로 위장하고 몸을 숨기게 한 것입니다." "독살?" 티아는 이마를 찌푸렸다. 오래 살아오면서 인간들의 여러면을 봤고, 나쁜 면도 수없이 봐왔다. 하지만 아무리 많이 봤다고 해도 죄 없는 아이를 죽이는 것은 도저히 용납하기 힘들었다. "그놈들 어떤 놈들이야?" 티아는 이를 갈면서 주먹을 풀었다. 지금 리이나가 그 가문의 이름을 말하면 아마도 오늘 내로 그 가문은 지상에서 사라지리라. 험악한 분위기를 눈치 챈 리이나가 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방금 전에도 말했지만 지금 와서 새삼스럽게 복수 같은 걸 할 생각은 없습니다. 더구나 그 가문은 금방 잡혀서 죗값을 치렀는걸요. 결과적으로 제가 남자로 크는 것을 면했으니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왜 소설 같은 거 보면 남장여자가 가슴에 붕대 같은 걸 감아서 남자인 척하잖아요. 한번 흉내 내봤는데 엄청 답답한거 있죠. 전 겉으로는 말라보이지만 의외로 가슴이 큰 편이거든요. 그런데 붕대 감고 생활해야 될지도 몰랐다고 생각하면 정말 끔찍해요." 리이나는 정말로 진지한 얼굴로 남장여자의 불편함을 설명했다. 덕분에 티아는 '그, 그라냐?'라고 반문했고, 분노는 사그라져가싿. 어쩌면 기억을 잃었을 때의 마이페이스 성격도 원래 기억을 잃기 전의 리이나의 성격 중 하나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런데 리이나느 어째서 왕궁의 시녀로 들어간 거야?"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던 리엘리아가 잠시 이야기가 끊긴 틈을 타서 묻자, 서니도 같은 것이 궁금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아무리 정체를 숨겨야 된다고 해도 명색이 왕자. 아니 공주잖아. 남부럽지 않게 살 정도로 신경을 써주지 않았던 거야?" "아니요, 저의 아버지인 황제께서는 시골에 작은 별장을 마련해주셨고, 병 때문에 요양을 하는 귀족가문의 아가씨로 자라게 해주셨어요. 생활에 불편함은 없었고요." "그런데 굳이 성의 시녀로 들어간 이유가 뭐야/ 왜 사서 고생을 했던 거야?" "...보고 싶었어요." "응? 뭐를?" "저의 가족들을...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언니와 어머니와 아버지를 보고 싶었어요." 리이나의 한숨 섞인 대답에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 태어나서 제대로 말도 배우기 전에 왕위 쟁탈전의 희생양이 된 리이나의 빼앗긴 어린 시절. 리이나는 조금이라도 그 시간을 찾고 싶다는 일념으로 성의 시녀로 들어갔고, 왕족을 가까이에서 보좌하는 신분이 되기 위해서 누구보다도 열심이 일했다. "그리고 다행히 저는 4년 만에 성에서 왕족들이 사는 곳을 담당하는 시녀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만났어요." 리이나는 꽃을 좋아해서 어릴 때 살던 별장에서도 꽃밭을 가꿨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왕족 전용 시녀가 된 리이나의 아침일과는 정원의 꽃반ㅌ에서 꽃을 따 방을 장식하는 일로 시작되었다. 왕족들의 전용 시녀가 된 지 한 달째,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정원에서 꽃을 따던 리이나는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를 만났다. 그는 프리드크 4세. 바로 리이나의 친아버지였다. 리이나는 그때를 회상하며 말했다. 이미 노년의 나이가 되어가는, 아버지라가보다는 할아버지 같은 느낌이 먼저 들었다고. 리이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왕에게 고개를 숙였다. 시녀로서 당연한 일이었지만 리이나의 인사는 조금 달랐다. 리이나는 왕에게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에게 인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누가 그 비밀을 알아챌 수 있을까? "꽃이 예쁘구나." "아! 네." "요즘 화병에 꽃을 장식해주는 것이 바로 너구나." "네. 그렇습니다." 왕은 리이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가만히 쳐다보고 있을 뿐인데도, 리이나는 얼굴이 화끈거리고 가슴이 쿵쾅거리는 것을 느꼈다. 이분이 내 아버지라고 생각하니 긴장감에 가벼운 현기증까지 일었다. "짐은 공주가 아주 많단다." "에?" 갑작스런 왕의 말에 리이나는 저도 모르게 무례하게 묻고 말았다. 리이나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허리 깊숙이 숙여 사과했다. "죄, 죄송합니다. 감히 천한 몸으로 폐하께 불경한 말을 해버렸습니다. 제발 용서해주십시오." "그렇게 신경 쓸 것 없단다." 왕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리이나를 일으켜 세우고 말했다. "나랑 같이 잠시 산책을 즐기지 않겠느냐?" "아, 아닙니다. 제가 어찌 폐하와 같이 산책을......" "상관없단다. 짐은 이야기 상대가 필요한 거야. 다 늙어서 딸 같은 아가씨에게 이야기 상대를 해달라니 노망났다고 생각 들지도 모르겠구나." 리이나는 왕의 딸 같은 이라는 말에 왠지 모를 감동을 느꼈다. 같은 것이 아니라 리이나는 눈앞의 프리드크 4세의 딸임에 확실했다. 하지만 그것을 밝힐 수 없는 서글픔과 기쁨. 복잡한 기분을 느끼며 리이나는 고개를 조아렸다. "폐하의 명에 따르겠습니다." 왕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앞서 걸었다. 그리고 리이나는 그 뒤를 조심스럽게 따랐다. 한참을 걷다가, 왕은 커다란 나무가 심어져 있는 동산에 올라 성 쪽을 바라보았다. "휴. 이 나이가 되니 이곳까지 오는 것도 힘이 드는구나. 예전에는 한가할 때 자주 와서 이렇게 성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지." "네." "아까 하던 이야기의 계속인데, 짐에는 공주가 굉장히 많단다. 왕자는 한 명도 없지." "하, 하지만 딱 한 분 계셨다고.....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리아나는 예산 ㄹ자신의 위장했던 왕자 레그다트를 떠올리며 무심코 말하다가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레그다트 왕자의 이야기는 왕국 내에서 금기시되고 있는 상황이다. 함부로 입에 올려서는 안 되는데도 친아버지의 곁에 있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생각없이 말해버린 것이다. 아마도 자신의 정체를 말하고 싶은 은근한 마음에 무의식중에 말해버렸는지도 몰랐다. 왕은 리이나에게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레그다트 왕자. 그 애는 죽지 않았단다. 아주 훌륭하게 자라고 있단다. 왕이라는 입장 때문에 가까이서 보지는 못했지만 몇번 멀리서나마 지켜봤단다." "예?! 아! 아!" 리이나는 놀라서 소리쳤다. 레그다크 왕자의 정체를 아는 것은 극히 소수. 왕과, 아기를 받은 유모 두 명밖에 모르는 사실이다. 그런데 왕은 리이나에게 레그다트 왕자가 살아 있을 뿐만 아니라 멀리서 지켜보고 있다고까지 했다. 그 말은 프리드크 4세가 리이나를 알고 있다는 말과 다름 아니었다. "아! 저, 저는......" 리이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왕은 잠자코 주름투성이의 손을 들어 딸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다정하게 말했다. "미안하구나. 너에게 이런 고생을 시켜서. 정말로 미안하구나." "아, 아닙니다. 저는......"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리이나의 머리는 텅 빈 것처럼 아무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미안하구나. 괜한 싸움을 피하고 싶었는데 오히려 그것이 너에게 불행이 될 줄은 몰랐단다." "저, 저는 괜찮습니다. 불행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럼 어째서 우는 거냐?" "그, 그건 기뻐서입니다. 아... 폐하께서 절 알고 계시고, 또 지켜봐 주셨다는 사실이 너무 기뻐서입니다." 리이나는 두 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왕은 살짝 리이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말했다. "아버지라고 불러도 된단다." "아!" 리이나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왕을 쳐다보았다. 왕은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괜찮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아.. 아..." 얼마나 이 순간을 꿈꿔왔는지 셀 수가 없다. 지금 이 상황이 평소 꾸던 꿈인 것 같았다. 하지만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 손의 감촉이 지금 이 순간이 현실이라고 가르쳐주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렇게나 하고 싶었던 말이 나오지 않았다. 왕은 조용히 말했다. "내가 원하는 일이란다. 사랑하는 딸에게서 아버지란 소리를 듣고 싶구나. 늙은 아비의 소원을 들어줄 수 없겠느냐?" 리이나는 도리질을 치며 왕의 품에 안겼다.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으아아앙!" 리이나는 그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아버지를 불렀다. 눈에서는 끊임없이 눈물을 흘러내렸다. 추억을 회상하며 리이나는 눈물을 훔쳤다. 티아도 눈시울을 붉혔고, 서니와 리엘리아는 아예 눈물을 펑펑 흘리며 훌쩍였다. 리이나는 소매로 눈가를 닦고는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그 후 아버지가 어러 가지 편의를 봐주셨는지 저는 꽤나 높은 직책의 시녀로서 일을 할 수 있었고 자유로운 시간도 많이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 만난 친구가 리엘리아였지요. 비록 아버지만이 진짜 저를 알아주셨지만 아버지는 정말로 저를 사랑해주셨습니다. 벌써 2년이나 흘렀네요." 리엘리아는 눈물을 닦고 그것 봐요라는 표정으로 서니를 처다보며 의기양양해했다. 자신이 리엘리아의 첫 친구라는 자신에 찬 표정. 서니의 배알이 뒤틀렸다는 것은 굳이 설명 안 해도 될 것이다. "너 지금 표정 굉장히 마...!" 서니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말을 끝까지 할 수 없었다. 티아의 펀치에 산뜻하게 기절을 해버린 것이다. "이야기가 진지해지는데 소란을 피우면 너도 던져버릴꺼야." 티아는 리엘리아에게 주의를 주고 리이나에게 물었다. "그럼 슬슬 말해줘야겠지?" 리이나는 티아가 묻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해드려야죠. 슬라드 왕자의 일을......" 46화 오해는 비극만을 부르는가?(1) "그놈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치가 떨립니다. 가문의 이름을 왕위에 남길 수 있다는 욕심에 그들은 아직 어린 황태자를..... 내 친동생 레그다트 왕자를 독살한 놈들......" 피를 토하는 듯한 네반의 외침. 테이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곳에 오기 전에 대충 예상은 했었지만, 막상 자신의 예상했던 일이 네반의 입에서 나오자 할 말이 없었다. 아니,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힘내라고? 안됐다고? 그 어떤 위로의 말도 그녀의 상처를 치유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하지만 그렇다고 슬라드 왕자가 무슨 죄가 있지? 결국 당신이 한 짓이나 그 인간들이 한 짓과 다를 바가 없잖아!! 더구나 슬라드 왕자도 너의 배다른 동생이야!!" 그렇다. 친동생을 잃은 네반의 마음은 백분 이해를 한다고 쳐도 슬라드 왕자가, 그 어린 아기가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더구나 슬라드 왕자도 배만 다를 뿐 네반의 동생이다. 때묻지 않은 슬라드의 미소를 생각하니 네반이 겪은 고통을 이해해도 그녀가 지은 죄를 용서할 수 는 없었다. 테이의 분노한 외침에 네반은 허무한 웃음을 흘렸다. "하하하하. 슬라드가 내 동생이라고요? 그렇죠. 저의 동생이죠. 배다른 저의 동생. 겉으로는 말입니다." "무, 무슨 뜻이냐?!" 테이는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설마? "슬라드 왕자는 배가 다르든 같든 내 진짜 동생이 아닙니다. 저의 아바마마인 프리드크 4세의 연세를 아십니까? 슬라드 왕자가 태어났을 때 70살이셨습니다. 제 동생 레그다트가 태어난 뒤 17년 동안 자식이 없으셨던 아바마마께 어떻게 갑자기 자식이 생겼을까요?" 네반의 질문에 테이는 대답할 수 없었다. 답은 이미 나와 있지만 그 답은 너무나 최악의 것이였다. "슬라드 왕자는 정통 왕가의 피를 이어받은 아이가 아닙니다! 이대로라면 제 남편이 왕이 된다는위기감에 정통 왕가를 지지하는 라스크라 가문에서 준비한 가짜 황태자입니다!" 테이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예상했던 최악의 진실이다. "더구나 그들은 비밀 유지를 위해서 아바마마까지 독살했습니다! 저의 마음을 아시겠습니까? 자신의 가문 이름을 왕위에 남기려는 옥심 때문에 친동생을 잃고, 그까짓 정통 왕가의 이름을 이어야 된다는 이유 때문에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왕위라는 것 때문에 전 소중한 가족을 두 사람이나 잃었습니다!" "알겠어. 네가 얼마나 고통을 받았는지 알겠다. 그래도 슬라드 왕자는 갓난아기야! 말도 못하는 그 아기는 죄가 없잖아! 어째서 슬라드 왕자를 죽이려고 한 거냐?! 그 정도까지 알고 있다면 슬라드 왕자의 정체에 대한 증거도 가지고 있을 텐데! 차라리 슬라드 왕자의 정체를 밝히고 라스크라 가문을 몰락시켜도 아버지의 복수로는 충분했잖아!" 네반은 지친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정말로 지쳤는지 더 이상 소리도 지르지 않고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알아차렸을 때는 그들은 이미 증거를 없애버렸습니다. 더구나 라스크라 가문은 슬라드 왕자를 낳은 것으로 위조된 후궁의 집안. 그 때문에 이미 많은 실권이 라스크라 가문 쪽으로 넘어갔습니다. 복수를 위해서는 실권이... 강력한 왕권이 필요했습니다. 남편이 실권을 갖게 되면 라스크라 공작에게 복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래서 저는....." 네반은 말을 잇지 못하고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테이는 울고 있는 네반을 보며 더이상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네반도 왕위 싸움 때문에 손을 더립힌 희생자였다. '도대체 어찌하여 인간은 한낱 높은 자리 때문에 소중한 것을 스스로 버리는 것일까? 인간이 인간다움을 버리고 얻는 높은 자리가 그렇게나 가치 있단 말인가? 피로 물든 손으로 얻은 자리에 무슨 가치 따위가 있다고....' 테이는 참을 수 없는 가슴의 답답함을 느끼며 창가로 걸어갔다. 창문을 열어젖히자 시원한 밤바람이 테이의 몸을 어루만졌다. 하지만 마음속의 답답함까지 날려버릴 수는 없었다. "네반, 슬라드 왕자는 살아 있다." "......" 네반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테이가 슬라드 왕자에 대해 물었을 때부터 이미 살아 있을 거라고 예상을 하고 있었다. "네반, 너는 어떻게 하고 싶으냐?" 테으는 네반에게 슬라드 왕자의 치리를 맡길 생각에 물었다. 하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하긴, 그녀가 이제 와서 무엇을 어쩐단 말인가? "우대하다고 칭찬 받는 드래곤이시여. 드래곤님께서는 어떻게 하고 싶으십니까?" 비꼬는 듯한 네반의 말에 테이는 화도 나지 않았다. 그저 피식, 임없는 웃음이 새어 나올 뿐이었다. "난 위대하다고 칭송받을 정도로 머리가 좋지 않다. 지난 몇개월간 슬라드 왕자를 친아들처럼 키우면서 나는 인간의 자식을 사랑하는 기쁨을 배웠다. 가능하면 그 기쁨을 계속 맛보고 싶어. 하지만... 슬라드 왕자의 정체를 안 이상 그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슬라드 왕자에게는 진짜 가족이 따로 있으니까. 더구나 슬라드는 인간이니까." 테이가 네반을 돌아보며 물었다. "네반, 너는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 "죄송하지만 그것도 모르겠습니다." "그래, 후후후. 우리는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구나. 어린 아기 하나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는 한심한 점이....." "......" "내가 아는 인간 친구들은 이럴 때 생각을 한다고 했었다. 모든 주위 상황 따위는 다 잊어버리고 진정으로 마음이 원하는 것만 생각을 하면 답은 나올 거라고 하더군. 그래서 난 이제부터 생각을 해볼 것이다." "...저도 생각하겠습니다." 테은 ㄴ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다시 오마. 그때는 오늘처럼 소란을 피우지 않고 미리 연락하고 조용히 오겠다." "그때는 저도 오늘처럼 흉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정중하게 맞겠습니다." 네반도 테이처럼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테이는 창문으로 뛰어내려 곧바로 비상마법으로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폴리모프의 마법을 해제했다. 눈부신 은색의 빛이 테이의 몸을 감싸고 곧 커지더니 어느 순간 빛이 사라졌다. "크아아악!" 빛이 사라지고 남은 자리에 커다란 실버 드래곤이 포효했다. 실버 드래곤 테이루아는 가슴속의 답답함을 뱉어버리려는 듯이 크게 포효하며,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테이루아가 사라지고 난 뒤 성은 당연히 소란에 빠졌다. "여보!" 아그라느가 아내인 네반을 부르며 거칠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그라느는 창가에 서 있는 네반을 발견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지으며 곁으로 달려갔다. "무사해서 다행이야. 아무 일 없었지?" "네." "갑자기 성 하늘에 드래곤이 나타나다니... 우리 왕국의 개국이래 최대의 사건이 되겠군. 이것이 오리하곤 왕국에 길이 될지, 아니면 흉이 될지......" 아그라느는 아내의 어깨에 손을 얹고는 걱정하는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미 실버 드래곤이ㅡ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으가라느는 아직도 흥분감에 살짝 몸을 떨고 있었다. 네반의 몸도 떨리고 있었는데 아그라느는 아내도 자신과 같이 약간의 두려움과 흥분에 몸을 떨고 있는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네반의 떨림은 다른 것이다. 슬라드 왕자가 살아 있다는 소식에 네반은 새삼 자신이 얼마나 엄청난 잘못을 저질렀는지 깨달은 것이다. 물론 아버지를 독살하고, 가짜 황태자를 내세운 라스크라 공작 쪽이 잘못이 더 크다. 하지만 그래도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될 죄를 저지른 사실이 변하지는 않는다. '나는 어떻해야 되는 걸까?' 네반을 출구 없는 미로에 떨어진 것 같은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실피온이 보고 싶구나." 테이는 높은 하늘에서 실피온(슬라드 왕자)을 생각하며 날았다. 지금은 티아를 찾아서 알아낸 사실을 알려줘야 하는 일이 먼저지만 실피온을 만나지 않고는 답답한 마음이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워프를 사용하면 금방이니까 잠시만 만나서 목소리를 들을까?" 테이가 실피온의 귀엽게 웃는 모습을 생각하며 어떻게 할지 고민할 때... "마마, 파파!" 실피온에 대해 집중해서 생각했기 때문일까? 테이의 귀에 실피온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이런, 이런. 이렇게 환청까지 들릴 정도라면 역시 실피온을 한번 보고 오는게 좋겠군." "마마! 파파!" "그래. 그래. 실피온, 아빠가 금방 보러 갈 테니 환청은 이제 그만... 얼레?" 테이는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고는 주위를 둘러봤다. 환청 같은 게 아니다. 진짜 실피온의 목소리가 들렸다. 테이는 다시 한번 실피온을 떠올리며 귀에 힘을 줬다. "마마! 파파! 으아앙!" 이번에는 똑똑하게 들렸다. 드래곤은 청력이 굉장히 좋지만 그 때문에 인간의 마을에서는 쓸데없는 시끄러운 소리를 너무 많이 듣기 때문에 일부러 인간 정도의 청력을 유지시켰다. 하지만 방금 전에 테이는 무의식중에 실피온을 생각하다가 우연찮게 바람에 실려온 여러 소리 중에서 실피온의 소리만을 엄청난 청력으로 잡아서 들은 것이다. "저쪽인가?!" 테이는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먼 곳을 볼 수 있는 마법을 사용했다. 축제 전야제로 시끌시끌한 라이케얼 도시의 어둡고 더러운 뒷골목. 그곳에서는 실피온을 안은 티아라가 험상궂은 인간들과 싸우고 있었다. "이런! 저자식들이 감히!!" 어째서 저곳에 실피온과 티아라가 있는가는 지금 당장 문제가 되지 않았다. 테이에게 최우선 문제는 실피온이 위험하다는 것이다. "폴리모프!" 테이는 주문을 외워서 인간의 모습으로 변함과 동시에 자신의 레어 깊숙한 곳에 보관되어 있는 성검 엘리멘탈 소드를 불렀다. 주인이 부르면 워프해서 날아오는 성검 엘리멘탈 소드는 곧바로 테이의 손에 들렸고, 테이는 빠른 속도로 실피온이 -지금 테이의 눈에는 티아라는 보이지 않았다.-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한편 티아라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티아라의 검술이 떨어지는 편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싸움에 숙련된 많은 수의 남자들을 상대로 실피온을 안고 이긴다는 것은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방어에 치중하며 간신히 버티면서 큰길로 나가려고 했지만 티아라는 이곳 지리를 몰랐다. 더구나 남자들은 솜씨 좋게 티아라를 점점 인적이 드문 곳으로 몰아갔다. 이대로는 도움은커녕 도망칠 수조차 없었다. '젠장! 내 몸에 카이저 드래곤의 피가 더 많이 흐르고 있었다면... 티아님의 영혼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면 이런 놈들은 문제 없었을 텐데' 그 옛날 드래곤의 피를 이어받은 인스테랄 가문의 인간은 카이저 드래곤의 그림자로서 막강한 힘을 가질 수 있었다고 티아에게 들었다. 그 피를 보존하기 위해 인스테랄 가문의 사람끼리만 혼인을 해야 했던 제도는 카이저 드래곤들이 사라지면서 같이 사라졌다. 그래서 다른 인간들의 피가 섞여버린 지금의 인스테랄 가문의 인간인 티아라는 티아의 영혼을 완전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티아는 그 점을 개의치 않아했지만 지금 위기에 빠진 티아라는 티아의 영혼을 완전히 받아들일 수 없는 자신의 피를 원망했다. "아!" 티아라는 어느새 막다른 벽에 부딪쳤다. 더 이상 후퇴할 곳도 없었다. "흐흐흐. 꽤나 애를 먹였지만 이제 이걸로 끝이군." "드디어 어린이 아홉 명을 채울 수 있게 됐어. 거기에 아리따운 여자 하나까지. 우리 팀은 운이 좋은걸." '이런이 아홉명? 이런! 이녀석들 처음부터 실피온님이 목적이었더!!' 티아라는 만약에 지게 되면 자신의 몸을 담보로 실피온만이라도 놓아달라고 말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남자들은 처음부터 실피온이 목적이었고, 티아라는 그저 덤일 뿐이다. '어떡하지? 어떠해야 되지?" 실피온을 무사히 도망치게 할 수 없다는 사실에 티아라는 울고 싶었다. 그래도 자신의 품에서 울고 있는 실피온을 보며 이를 악물고 검을 쥐었다. 설령 죽는 한이 있어도 실피온을 반드시 도망치게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되도록 상처 입히지 말고 붙잡아!" 우두머리 격으로 보이는 남자의 명령에 다른 남자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티아라에게 덤벼들었다. 그때 갑자기 티아라의 앞에서 빛이 번쩍였다. 갑작스런 빛에 덤벼들던 남자들은 발을 멈췄고, 그 사이에 빛은 서서히 사라졌다. "네놈들! 용서하지 않겠다!" 그리고 빛이 사라진 그 자리에 은발에 황금색 눈동자를 가진 남자가 분노에 찬 말을 내뱉었다. "테이님!" 티아라는 눈앞에 나타난 테이를 보자, 긴장이 풀리면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파파! 히잉, 파파!" 티아라가 힘을 뺀 덕분에 티아라의 품에서 벗어난 실피온이 아장아장 걸어가서 테이의 다리를 꼭 안고 칭얼거렸다. 0 테이는 잠시 미소를 지으며 실피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실피온, 잠시만 티아라 누나 곁에 있어. 금방 끝내고 아빠가 안아줄게." 테이는 실피온을 티아라에게 맡기며 부탁했다. "티아라. 혹시 싸움이 시작되면 실피온의 눈을 가려줘." "네, 테이님. 위험할 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연히 해야 될 일이야. 감사는 실피온을 필사적으로 지키려고 했던 티아라에게 내가 해야 되잖아." "실피온님을 지키는 것은 저의 할 일인걸요. 저도 감사 받을 일을 한 건 아닙니다." "그, 그런가?" 긴장이 풀려서 자리에 주저앉았지만 그래도 야무지게 대답하는 티아라의 말에 테이는 다행이라는 듯 미소 지었다. "이, 이것이 우리를 무시하는 거냐?!" 철저히 무시당한 남자들이 벌컥 성을 내자 테이가 천천히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무시라니? 내가 네놈들을 무시해야 할 이유는 없어. 실피온과 티아라를 위험에 빠뜨린 죗값을 확실하게 치르게 해주마." 테이는 손에 들린 엘리멘탈 소드를 남자들을 향해 고쳐 잡았다. 척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마법검. 거기에 빛과 함께 갑자기 나타난 테이의 능력은 남자들에게 압박감으로 다가왔다. 남자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테이의 주위를 돌기만 할 뿐누구 하나 먼저 덤벼들지 못했다. "네놈들이 안 오겠다면 내가 먼저 가겠다!" 테이는 몸을 살짝 숙여 돌격 자세를 취하며 소리쳤다. 그 외침을 신호로 남자들은 일제히 꼬랑지 빠지게 도망치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아주 현명한 선택이다. 다만 상대의 진짜 정체는 실버 드래곤. 애초에 도망칠 수는 없었다. "놓칠 줄 알아?!" 테이는 일단 엘리멘탈 소드를 검집에 집어넣고, 빠른 속도로 남자들을 쫓으며 주먹으로 하나씩 착실하게 날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테이의 주위에는 기절한 남자들이 널브러졌다. "못된 놈들. 나중에 정신을 차리면 실피온을 겁먹헤 한 죗값을 확실하게 받아낸 후 감옥으로 보내주마." 싸움이 끝나자 티아라가 실피온을 안고 테이의 곁으로 다가왔다. "파파!" 실피온이 고사리 같은 작은 손을 한껏 뻗치며 테이를 불렀다. "그래, 그래. 우리 실피온. 많이 무서웠지? 하지만 이제 괜찮아." 테이는 티아라의 손에서 실피온을 받아서 약속한대로 꼭 안아줬다. 테이는 펑펑 울면서 자신을 부르는 실피온을 보고 있자니 티아라가 오리하곤 왕국에 있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실피온이 엄청나게 울어댔나 보지?" "말도 마세요. 며칠 동안은 괜찮았는데 티아님과 테이님이 너무 늦자 사흘 전부터 어찌나 울어대던지." 티아라는 울다 지쳐 잠들고, 배고푸면 먹고 나서 울던 실피온을 떠올리며 울상을 지었다. 그래서 급히 오리하곤 왕국행 급행 비공정을 타고 온 것까지는 좋았는데 하필 축제 전날이라 거리가 복잡해서 지름질로 티아의 숙소로 가려다가 질 나쁜 남자들과 부딪친 것이다. "이런, 이런. 미안해, 티아라. 하지만 이제 거의 해결됐어." "네? 그렇다면?!" "응. 실피온을, 아니 슬라드 왕자를 죽이려고 했던 자를 만났어. 하지만......" 테이는 아까 네반과 만나서 했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뒷말을 흐렸다. '정말 어떡해야 좋은 것인가?" 테이가 다시 고민에 빠져 있을 때 티아라가 무언가 생각났다는 표정으로 손뼉을 딱 치며 말했다. "아, 참! 아까 이녀석들이 이상한 말을 했어요." "이상한 말?" "네. 난 처음에 이녀석들이 나를 노리는 줄 알았어요. 하마터면 시집가기 전에 나쁜 일 당하는 줄 알고 엄청 무서웠어요." "그, 그래? 내가 정말 적당한 때 도착한 것 같구나." 테이는 젊은 처녀가 남자에게 할 말은 아닌 말을 들은 것 같아서 얼굴이 붉어졌다. 하지만 티아라는 별로 개의치 않은 표정으로 계속 이야기했다. "네. 당연하죠 진짜 위기일발이었어요. 아! 이 이야기는 잠시 제쳐두고, 아무튼 이녀석들의 처음 목표는 내가 아니라 실피온님이었어요." "실피온을? 왜?" "그건 모르겠어요. 실피온님을 보고 이것으로 어린이가 아홉명재라는 이상한 말을 했어요." "어린이가 아홉 명째." 테이는 심각한 표정으로 남자들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설마... 하지만 이 나라에는 그곳이 있으니... 그래도 설마 어떻게 이녀석들이?" 테이는 잠시 동안 그대로 고민하다가 실피온을 티아라에게 맡기고, 남자들을 한곳에 모았다. 그리고 워프게이트를 열고 남자들을 집어넣었다. "어디로 보내세요?" "내 레어. 당분간 그곳에 가뒀다가 나중에 심문을 해봐야겠어." "저기, 안 좋은 일인가요?" "설마라고 생각하지만......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아직 활실한 건 아니니까. 나중에 확인해보고 말해줄게. 하지만 정말 별일 아닐거야." 테이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티아라는 무슨 일인지 궁급했지만 테이가 말해주지 않는 이상 무리하게 물을 생각은 없었다. 남자들을 전부 워프게이트를 통해 자신의 레어로 집어넣은 테이는 다시 실피온을 받아들고 말했다. "그럼 티아에게로 가자. 일단 내가 알아낸 배후를 보고해야 되거든." "네. 알겠습니다." 한편, 티아는 기억이 돌아온 리이나에게 이미 테이가 알아낸 네반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더구나 테이도 네반도 모르는 감춰진 진실까지 들었다. "그럴수가.... 그건 완전히 오해잖아!" 티아는 놀람과 슬픔이 뒤섞인 표정을 지었다. "네. 저는 어떡해서든 이 사실을 알려야 했습니다. 하지만 당장에 제가 레그다트 왕자였다는 증거도 없었기 때문에 급한 대로 슬라드 왕자를 데리고 도망친 것입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다이러스 제국의 신룡이신 티아님을 찾아갈 생각이었습니다. 비록 저는 실패했지만 슬라드 왕자님이 티아님에게 무사하게 도착한 것은 아마도 신의 인도겠죠?" "미안하지만 우리 신은 그렇게 자상하시지 않아. 신이 자상했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도 않았을걸." 가장 신에 가까운 존재라 불리는... 어찌 보면 신의 딸이라고도 할 수 있는 티아는 거침없이 신을 부정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신룡이라 불리는 티아가 신은 자상하지 않다고 딱 잘라 말하자 리이나는 난처한 미소를 지었다. "에... 아, 아무튼 지금까지 말한 것이 제가 아는 이 사건의 모든 것입니다." 리이나의 이야기를 끝까지 다 들은 서니는 한숨을 쉬었다. "휴. 오해는 결국 비극밖에 안 부르는 존재일까? 이건 처음부터 끝까지 오해 때문에 일어난 일아잖아." 서니의 푸념에 티아는 고개를 저었다. "확실히 이번 오해는 비극을 불렀지만 그래도 오해는 비극만을 부르지는 않아. 이번 일은 그저 불행한 우연과 오해가 부른 비극이야." "그래도......" "괜찮아. 오해만 푼다면 원만하게 해결될 거야. 그리고......" 티아는 그 다음 말을 삼켰다. 오해가 풀린다고 해도 이번 일로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아픈 마음의 상처를 얻었다. 오해가 풀린 다고 마음의 상처까지 전부 치유될까? 티아는 그것만틈은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문제라 생각했다. 약간의 조인으로 도움을 줄 수 있어도 결국 마지막에는 갖가의 마음에 달린 일이다. 46화 오해는 비극만을 부르는가?(2) 숙소로 돌아온 티아 일행을, 예상치 못한 반가운 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꺄악! 실피온!!" "마마!" 실피온은 아장아장 걸어서 티아의 다리를 붙잡고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에 티아는 쌓였던 피로와 스트레스가 한 번에 녹는 것 같았다. "죄송합니다. 잘 돌보겠다고 약속했는데 힘에 부쳤어요." 티아라가 미안한 표정으로 티아에게 사과했다. 티아는 고개를 저으며 괜찮다는 미소를 지었다. "아니, 오히려 고마워. 그렇지 않아도 나도 실피온의 얼굴이 보고 싶었거든." "티아!" "에? 응?" 평소에 보기 힘든 테이의 박력에 가득 찬 얼굴. 아니, 박력이라가보다는 뭔지 모를 핑크색 오오라가 테이의 몸 주변에서 떠돌고 있었다. 테이는 한장의 종이를 티아의 눈앞에 들이댔다. 그 종이는 티아가 테이에게 보냈던 편지였다. "약속 지키는 거지?" 자신만만한 태도에 반론은 절대 용납 못한다는 강경한 의지가 담긴 한 마디다. 티아의 등에서 식은땀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 '이 묘하게 자신만만한 태도. 엄청난 것을 알아냈단 말인가?' "약속이란 반드시 지켜야 되는 거야! 그렇지?" 테이는 티아의 다짐을 받기 위해 다시 한번 물었다. 물론 반론은 절대 용납 못한다는 의지가 담긴... "그, 그래. 그렇지." "좋았어. 그럼 내가 알아온 사실을 지금부터 말해주지." 테이는 자신감 가득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놀라지 마. 실피온을 해하려고 했던 인간은 네반 공작부인이었어!" "....." 아무 말도 못하고 입을 헤 벌리고 있는 티아를 보며 주먹을 쥐고 마음속으로 '됐어!'를 외쳤다. 하지만 그건 테이의 오산이었다. "그래서?" "에?" "그래서 그게 왜? 설마 알아온 것이 겨우 그것뿐이야?" 티아는 분명히 '겨우'라고 말했다. 테이가 고생해서 알아놨는데. 더구나 사건의 핵심 인물을 알아왔는데 티아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단지 '겨우'라고 말을 한 것이다. 테이는 이건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으며 다음 말을 했다. "저, 저기 그럼 이거 알아? 실피온이 말이야. 실은....." "정통 왕가의 왕자가 아니었다는 거?" "헉?! 그걸 어떻게?! 잠깐, 그럼 이건 어때?!" "혹시 그 일을 꾸민 것이 라스크라 공작이라는 것을 말하려고 하는 거야? 설마 알아온 것이 정말 그것뿐이었어?" 더 이상 말을 해봐야 소용없다. 테이의 완벽한 패배였다. "어, 어떻게... 내가 고생해서 알아온 것을......" 티아는 별거 아니란 듯이 리이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리이나가 기억을 되찾았거든. 네가 알아온 사실 이외에도 다른 것도 전부 말해주더라. 전부....." 테이는 힘없이 어깨를 늘어뜨린 채 구석으로 가서 암울한 분위기로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또 그거야? 웬만하면 그만 좀 해라! 실피온이 따라 할까봐 무섭다고." 티아는 한심하다는 얼굴로 테이를 야단쳤다. "놔둬. 난 어치피 쓸모없는 남자인걸. 남자의 자존심을 전부 팽개치고 얻어온 정보가 죄다 쓸모없는 것이라니...... 그래, 쓸모없는 남자는 어차피 무러 해도 쓸모가 없지. 그게 세상의 진리인걸." "어째 평소보다 궁상의 강도가 높네요. 왜 저러실까요?" 티아라가 티아에게 소곤거리며 물었다. 티아는 테이가 왜 저러는지 알고 있지만 말하고 싶지 않았다. 키스라는 보상이 걸려있어서 열심히 노력했는데 말짱 꽝이라 평소보다 궁상의 강도가 높다는 설명은 남들에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티아는 테이를 싹 무시하고 말했다. "자, 그럼 이번 일은 속공으로 사사삭 하고 해결해버리자." "속공으로? 언니. 뭘 할 생각이야?" "뭐, 굳이 비유하면 삼자대면이라고 해야 되려나." "삼자대면이요?" 리이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이번 사건의 핵심 인물은 세 명이야. 네반 공작부인. 라스크라 공작, 그리고 바로 리아나 너야." "에? 그럼 혹시 대면이라는 것이......" "그래. 너를 포함해서 세 명을 한자리에 모이게 해서 각자의 오해를 풀어줘야지." "그렇군요. 그 방법이 제일 좋을지도....." 리이나는 납득하겠다는 말을 했지만 표정은 어두웠다. "친언니인 네반 공작보인을 만나는 것이 두려워?" 리이나는 살짝 몸을 떨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죽이려고 했던 슬라드 왕자를 도망치게 만든 사라밍 리이나고, 더구나 네반 공작부인은 네가 레그다트 왕자였다는 사실을 모를 테니. 하지만 방법은 이것뿐이야. 괜스레 다른 사람들이 나서서 오해를 풀어준다 하다보면 더 꼬일 수도 있어. 약하지지 말고 마음 단단히 먹어야 돼." 티아의 위로에 리이나는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네. 알겠습니다." 티아는 미소를 지으며 리이나의 어깨를 두드려주고는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자, 그럼 오늘은 내일을 대비해서 푹 쉬자. 결행은 내일 밤이다." "잠깐만! 언니, 질문!" 그때 서니가 손을 들며 말했다. "응? 뭐야? 쓸데없는 질문이면 가만 안 둔다." "아니, 쓸데없는 건 아니고. 내일 나머지 두 명을 어떻게 한자리에 모이게 할 거야?" "그거야 산뜻하게 납치해야지." 티아는 방금 한 말이 농담이 아니라는 뜻으로 산뜻하게 웃으며 말했다. 티아의 산뜻한(?)발언에 서니는 '그렇구나'라고 납득했고, 리이나와 리엘리아는 '그래도 돼요?라는 표정으로 다른 이들을 돌아봤다. "하아아아. 티아님이 속공으로 해결하자고 할 때부터 대충 예상은 했어요." "뭐, 가장 단순 무식한 길이 가장 빠른 길이라고 했으니......" 티아라는 한숨을 쉬며 납득했고, 테이 역시 그럴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리이나도 처음에는 조금 고민하는 듯했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거 이외에는 다른 방법도 없을 것 같고, 다른 방법 생각할 시간도 없네요." "자, 잠깐! 난 엘프라서 인간 사회에 대해 잘 모르지만 그래도 갑자기 납치라니?! 그래도 되는 겁니까? 정말 그래도 되는 거냐고요?!" 납치라는 안 좋은 경험을 당해봤던 리엘리아는 절대 납득 못하겠다고 소리쳤다. 그런 리엘리아의 어깨를 두드리며 티아가 말했다. "리엘리아야. 인간 세상에는 다수결이라는 공정한 방법이 있거든. 이미 정해진 상황헤 혼자 불만 자기면 안 돼요." "하,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다짜고짜 납치라뇨?!" 리엘리아는 끝까지 항전했지만 이미 다른 이들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어디로 납치를 할 것이냐는 것을 의논하기 시작했다. 인간 사회를 잘 모르는 리엘리아지만 그래도 다수결이라는 방법은 절대 공정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해도 힘없는 엘프 혼자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리엘리아는 그날 어쩐지 인간 사회의 부조리함을 배운 기분이었다. 그리고 세상이 부조리해도 밤이 가고 다음날 아침이 밝는 것은 정해진 이치. 결행의 시간이 되면 각자 어젯밤 의논한 대로 움직이기로 하고, 일단은 따로따로 추겢부터 즐기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잠시후 티아는 이를 갈면서 소리쳤다. "그래서 찢어지기로 했잖아. 그런데 어째서? 어째서 전부 날 따라오는 거야?!" "나는 티아와 실피온을 따라가는 건데." 이건 테이다. "나야 테이 오빠가 가니까." 이건 서니. "서는 서니님을 따라왔는데요." 이건 리이나. "저는 티아님과 리이나의 뒤를 따라온 것뿐이에요." 이건 리엘리아. "저, 저기. 죄송합니다. 하지만 혼자 돌아다니는 것은 좀......" 마지막으로 티아라. 이렇게 해서 가뜩이나 혼잡한 거리에 일곱 명이서 뭉쳐서 다니는 결과를 낳게 됐다. "잠깐만! 거리도 복잡한데 일곱 명이서 우르르 몰려다니면 어쩌자교?! 나는 실피온을 데리고 다닐 테니 적당히 두세 명씩 짝지어서 다녀!" "티아, 나무해! 나도 실피온이랑 같이 다니고 싶단 말이야! 실피온 너도 아빠가 같이 다니면 좋지?" "아! 응, 응. 파파 조아." 실피온은 착하게도 활짝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실피온에 아빠라니?! 가짜 부모 놀이는 끝났다고 분명히 말했잖아!" "하지만 티아도 아까 나오기 전에 '엄마랑 재미있게 놀자'라고 했잖아." "윽 그, 그건......" "그러니까 오늘 하루는 부모로서 실피온가 같이 다니자고.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잖아." 정말 간만에 테이는 티아의 약점을 파고들었다. 티아는 테이의 말을 이해하고, 또 납득도 하지만 그렇다고 바로 '응'이라고 대답하기에는 자존심이 상했다. 그리고 다른 네 명은 도저히 물러설 기미가 안 보였다. "자, 그럼 티아라와 리엘리아 그리고 리이나가 같이 다녀. 난 오빠한테 붙을게." "잠깐만요! 저는 티아님의 그림자에요! 3대 4로 나누다면 당연히 제가 티아님을 따라가야 된다고요!" "에? 저는 서니님과 같이 다니고 싶은데 어떻게 안 될까요?" "잠깐만! 리이나, 서니님은 빼ㅣ버리고 티아님과 실피온 도련님 그리고 나랑 네가 같이 다니면 딱 좋잖아." 리엘리아의 발언에 서니의 이마에 힘줄이 돋아났다 "뭐야? 그 말은 인정 못해!" "어머나? 어째서요? 테이님을 넣어드렸잔하요." "나랑 오빠를 물건 취급 하는 말투를 인정 못하겠다는 뜻이야! 나랑 테이 오빠 그리고 실피온과 리이나를 데려갈 테너 너는 티아 언니랑 티아라를 데려가. 어때? 꽤나 좋지?" "뭐예요?! 그 시비 거는 말투는?! 그리고 리이나는 양보 못해요! 리이나의 친구는 저예요!" "시비는 네가 먼저 걸었잖아! 그리고 리이나의 친구는 바로 나야!" 평소처럼 서니와 리엘리아의 말싸움은 리이나의 친구 소유권(?) 주장으로 변해갔다. 티아는 두통이 나는 듯 이마를 찌푸리며 실피온의 주위에 마법을 결계를 쳤다. 그리고 숨을 크게 들이 쉬고 살기를 가득 담아 소리쳤다. "전부 동작 그만!!" 티아의 목소리가 너무 커서일까? 아니면 말속에 담긴 살기가 너무 커서일까? 한참 논쟁을 벌이는 티아라들뿐만 아니라 주위를 걷던 행인들도 얼어붙은 듯 발을 멈췄다. 티아는 반론은 절대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주먹을 쥐어 보이며 말했다. "나와 테이 그리고 실피온이 같이 다니고 나머지 너희 네 명이 같이 다닌다! 이상." 보통 때라면 당장이라도 불만이 튀어나올 테지만 반경 50미터 내외에 있는 인간 전부를 동작 그만 시킨 티아의 살기에 불만을 뱉을 수 있을 만큼 간이 큰 자는 없다. 티아는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기 때문에 실피온을 안아들고 테이의 손을 잡아서 인파를 헤치며 사라졌다. 남은 네 여자는 그제야 공포에서 벗어난 얼굴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저기. 일단 어디부터 가죠?" 제일 먼저 회복을 한 것은 리이나였다. "일단 아무 곳이라도 좋으니 이 자리부터 벗어나요." 티아라는 사람들이 자신들을 빤히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서니와 리엘리아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자. 네 여자는 빠르게 인파를 헤치며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티아는 한참을 걷다가 슬그머니 테이의 손을 놓았다. 테이는 티아에게 끌려가느라 미처 보지 못했지만 지금 티아의 얼굴은 조금 붉게 물들어 있었다. "아야야. 정말이. 무식하게 잡아끌지는 말라고." 기회를 못 잡는 자요. 그대 이름은 테이이니라. 테이의 생각없는 말 덕분에 붉게 물들었던 티아의 뺨은 빠르게도 원상태로 돌아갔다. "그래서, 뭐 불만이야?" "자, 잠깐! 왜 갑자기 화부터 내는데?!" "화 안냈어!" "화났잖아." "너 진짜 나를 화나게 하고 싶은 거야? 기대에 응해줄까?" 테이는 티아가 주먹을 불끈 쥐는 것을 보고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으으." 실피온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한 표정으로 둘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에 티아와 테이는 화들짝 놀라서 생긋생긋 웃었다. "으응. 아무것도 아니에요. 암마 아빠는 싸우는 것아니에요." "응. 맞아, 맞아. 아빠랑 엄마는 사이가 정말 좋단다." 그러나 실피온의 눈빛에는 못 믿겠다는 불신이 가득했다. 티아와 테이는 실피온을 달래기 위해 필사적으로 다정한 여러가지 상황을 연출했다. 일부 애인 없는 많은 수의 행인들로 하여금 피눈물을 흘리게 할 상황을 어러번 연출하고 나서야 실피온의 표정이 겨우 풀렸다. "하아. 힘들구나." "실피온은 한 번 삐치면 걷잡을 수 없잖아. 고생이긴 하지만 조기에 풀어줘야지, 나중이 편해." 티아는 생긋 웃으며 말했다. 실피온을 달래려고 노력하다가 어느새 화났던 것까지 잊어버린 것이다. 테이는 생각났다는 듯한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큭. 그러고 보니 부모 노릇 그만뒀다고 하지 않았었나?" "에? 아 그, 그랬지." "하지만 아까 티아가 먼저 엄마 아빠라고 말했지?" "그, 그치만 실피온이 울어버릴 것 같아서......" 티아의 볼이 화끈 하고 달아올랐다. 덕분에 주도권은 테이에게로 넘어갔다. "하지만 다시 해보니 좋았는데...... 티아도 나쁜 기분은 아니었지." "으응." 수줍은 듯 나긋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티아. 테이는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젠장. 폭력만 안 쓴다면 정말 귀여운데.' "실례되는 생각은 하지 말라고 했지." 테이는 정말 빠르게도 티아의 성질을 건드렸다. 이것도 어찌 보면 재능이다. 전혀 필요 없는 재닝이지만.... "아, 아니 그게... 제, 제발 부탁이니 함부로 남에 마음 읽지, 말라고!" "넌 표정으로 다 드러나. 내가 굳이 ㅇㄺ을 필요도 없다고 수도 없이 말했을 텐데." "으윽." 3분 천하. 주도권은 어느새 다시 티아귀 쥐게 됐다. "뭐, 네 말대로 나쁜 기분은 아니었으니까 남은 시간 동안만 계속할까? 부부 연극." "연극인 거야?" 티아는 얼굴을 붉히며 테이의 팔을 살짝 팔짱을 끼며 말했다. "응, 연극이야." '저, 정말 연극일까?' 하지만 테이는 차마 물을 수가 없었다. 괜히 물었다가는 이 꿈같은 시간마저 날아가 버릴 겉 같기 때문에...... 이번에는 정말로 테이의 마음을 읽어비린 것일까? 티아는 살짝 미소 지으며 테이의 생각에 대답했다. "꿈이란 언젠가는 깨게 되어 있어. 그렇기 때문에 꿈을 꿀 때가 좋아. 아무리 슬픈 이별을 해도, 꿈에서 깨어나면 없었던 일이 되니까. 잠시 동안이이잠 우리도 꿈을 꾸자." "티아." '납득하지 않겠다면 바로 날려버리겠다는 경고성 마력 정도는 치우고 말해줘!' 하지만 이 말 역시 차마 입 밖으로 낼 수 없었다. 그리고 굳이 말로 내뱉어서 지금의 꿈을 깨고 싶지는 않았다. 테이는 티아의 손을 꼭 잡았다. 절대로 꿈으로만 끝나지 않게 노력하겠다는 마음을 살짝 담아서...... 46화 오해는 비극만을 부르는가(3) -흑.. 아직 반도 못쳤네요... 왜이리 많어 ㅠ.ㅠ -stseed 지난 몇 달간 티아와 테이는 실피온을 키우며 있었던 여러 가지 일들을 생전 처음으로 경험했다. 새로운 경험에 기뻐하고, 약간은 당황하고, 울고 웃고 지냈던 시간. 이제 그 시간은 꿈으로 끝낼 시간이 다가왔다. 마지막으로 즐겁게 놀았던 시간은 끝나고 테이는 실피온의 아빠인 테이가 아니라 실버 드래곤인 테이로서 할 일을 하기 위해 몰래 성으로 숨어들었다. 전에 한 번 와봤던 장소라 목표로 하는 방까지 쉽게 갈 수 있었다. 네반 공작부인의 방. 네반은 책을 읽다가 살며시 창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창문 곁에는 막 방안으로 들어온 테이가 서 있었다. 오늘은 테이가 여장을 풀고 남자의 모습으로 들어왔지만 네반은 그가 저번의 드래곤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네반은 책을 덮고 일어나서 살짝 허리를 숙여 테이에게 인사 했다. 그리고 힘없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당하게 문을 부술 듯이 들어오시던 모습관느 대조적이네요." "그때 일은 잊어줘. 잠시 열 받는 일이 있어서 나도 모르게 실례를 범했어." "창문으로 몰래 들어오는 일도 실례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럼 지금 이 일도 잊어줘." "큭." 네반은 테이의 앞에서 처음으로 진심을 담아서 웃었다. 처음 만났을 때 공포에 떨고, 악을 쓰던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에 테이는 뭔가를 느꼈다. "벌써 마음의 정리를 다 한 것인가?" "벌써라고 할 것도 없습니다. 그전부터 쭉 스스로에게 물어왔었습니다. 다만 결정적으로 마음을 잡게 된 것은 드래곤님 덕분입니다. "테이라고 부르면 돼. 내 애칭이지." "어머나? 드래곤님들에게도 애칭이라는 것이 있나요?" 네반은 정말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테이는 그리노 대륙의 동부지방 사람들의 드래곤에 대한 이상한 선입견을 떠올리고는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역사적으로 드래곤과 인연이 많은 서부지방 나라와는 달리 동부지방의 사람들은 드래곤과 관계된 사건에 연루된 적이 거의 없었다. 예외가 있다면 유일하게 동부지방의 초강 군사국가 데스타 제국만이 해츨링을 납치하는 바람에 하마터면 성난 드래곤들에게 멸망당할 뻔한 적이있다. 하지만 그 사건은 드래곤들의 친근함보다는 공포감만을 동부지방 사람들에게 심어줬다. 그러니 예의에 신경 쓰고, 애칭이 있다는 테이의 말에 네반이 놀라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뭐, 시간이 나면 서부지방으로 놀러 와봐. 운이 좋으면 인간들 틈에 섞어 노는 드래곤들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될 거야. 물론 대놓고 정체를 밝히지는 않지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놀랍고 즐거운 경험이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나에게는 그럴 기회는 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자수라도 할 생각인 거야?" "적어도 남편과 라스크라 공작에게는 사실을 전부 털어놓을 생각입니다. 그리고 어떤 결과가 나오든 받아들일 생각입니다." "그래? 그렇게까지 결심을 했다면 당신 남편도 데려가야겠군." "데려가신다고요? 어디로 데려가실 참이죠?" "그건 지금 당장 알 필요는 없어. 단지 오해를 풀러 가는 것이라고만 알아둬." "오해요?" 네반은 테이의 말을 이해 못하겠다느 ㄴ표정을 지어 보였다. 테이는 미소를 지으며 설명을 덧붙였다. "너와 만나봐야 될 사람이 있다. 슬라드 왕자만이 아닌 다른 사람도 지금 널 기다리고 있어. 아마도 너를 굉장히 놀라게 할 인물이겠지." 하지만 테이의 보충설명은 네반에게 궁금증만 더해주었다. 한편 같은 시각. 라스크라 공작은 자신의 서재에서 놀라운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시, 신룡님이시요!" 딱 한 번 다이러스 제국에서 봤을 뿐이지만 라스크라 공작은 티아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었다. 긴 은발에 아름다운 얼굴. 언뜻 차가운 듯이 보이는 인상이지만 이상할 정도로 따뜻하게 느껴지는 은발은 가진 지상 최고의 생명체가 라스크라 공작의 눈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입에서 나온말은 그 존재가 갑자기 이곳에 나타난 것보다 더 큰 충격을 줬다. "슬라드 왕자는 내가 데리고 있다." "......!" 말도 제대로 안나오는 모습으로 입을 벌리고 놀라고 있는 라스크라 공작에게 티아가 말했다. "지금 당정 너를 슬라드 왕자가 있는 곳으로 데려가고 싶지만 그전에 한 가지 확인해야 될 것이 있다." "무, 무엇입니까? 아니, 그전에 정말로? 정말로 왕자가 무사한 것입니까?" "같은 말을 두 번 하게 만들지 마라. 슬라드 왕자는 분명히 내가 데리고 있다. 그전에 먼저 내 질문에 대답부터 해라." "아 예, 예, 알겠습니다. 위대하신 존재여. 순간이나마 의심을 했던 죄, 부디 용서를 부탁드립니다." 티아는 몸에서 솟아로르는 닭살을 대패로 멀어버리고 싶은 심정을 꾹 참아싿. "간단하게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다. 슬라드 왕자는 프리드크4세의 피를 이어받지 않았지?" "헉!" 티아의 질문에 라스크라 공작은 크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서둘러 안정을 찾아서 티아의 질문에 부정하려고 했다. "거짓은 통하지 않는다. 솔직히 이 질문은 단순한 확인 차 물어보는 것일 뿐디ㅏ." 티아는 라스크라 공작의 의중을 빠르게 파악하고 헛된 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미리 못을 박았다. 라스크라 공작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어떻게 티아가 그 사실을 알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저렇게까지 확신에 차서 말한다면 그 어떤 거짓말도 통하지 않을 것이다. 라스크라 공작은 결심을 굳히고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위대하신 존재요, 신룡님의 질문은 사실입니다. 슬라드 왕자는 실은 저의 먼 친척뻘 되는 아이입니다. 하지만 신룡이시여! 이렇게 된 것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절대로 나쁜 의도는 아닙니다. 부디 벌을 주실 생각이라면 그 아이는... 아무것도 모르는 갓난아기인 슬라드 왕자에게는 해를 끼치기 말아주십시오. 모든 죄는 이 늙은이가 다 감당하겠습니다." 티아의 닭살은 슬슬 한계 상황까지 다다르고 있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이딴 말투 싫어!'라고 소리친 후 막 나가고 싶은 것을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해서 간신치 참았다. "나를 무엇으로 보는 것이냐?! 단순한 지능 없는 몬스터와 동급 취급하는 것이냐? 나 역시 아무것도 모르는 갓난아기에게 죄를 물을 생각 따위는 없었다." "죄, 죄송합니다." 라스크라 공작은 이제 아예 바닥에 엎드려서 용서를 빌고 있었다. 티아는 땀을 훔치며 라스크라 공작에게 말했다. "아무튼 너는 지금 당장 나를 따라와야 된다. 그것에는 슬라드 왕자가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너를 기다리고 있는 또 다른 인물이 있다." "저를 기다리는 인물? 그것이 누구입니까?" "가보면 알게 된다." 지금 티아의 속마음을 그대로 내뱉는다면 '이런 말투 못참겠으니 토 달지 말고 그냥 후딱 따라와!'이다. 아무튼 경이적인 인내심을 발휘해서 겨우 막 나가려는 성질을 꾹 참은 티아는 워프게이트를 열었다. "따라와라." "네,네!" 이런 마법 통로는 처음 들어가 보는 라스크라 공작은 워프게이트에 한 발을 넣는 순간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잠시 후 감은 눈으로 희미하게 빛이 들어오자 라스크라 공작은 살짝 눈을 떴다. 라스크라 조앚ㄱ은 어느새 엄청나게 넓은 고간으로 이동해 있었다. 타이러스 제국의 티아의 신전과 맞먹을 정도의 크기에 라스크라 공작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티아는 그런 라스크라 공작을 내버려두고 바로 중앙으로 걸어갔다. 라스크라 공작은 티아가 멀어지자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서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넓은 공간의 중앙에는 사람들이-실은 두 명만 인긴이다-몇 명 있엇다. "테이는 아직 안 왔어?" "네. 조금 늦으시네요." 티아라는 무언가 기분이 나쁜 일이 있는지 표정이 별로 좋지 않았다. "왜 그래?" 티아라의 이상한 표정을 눈치 챈 티아가 원인을 묻자 티아라는 손으로 한쪽 구석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몇 명의 험상궂은 남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얼굴갑도 못할 정도로 불쌍하게 떨고 있었다. "쟤들은 뭐야? 왜 모르는 인간이 무더기로 테이의 레어에 있는 거냐?" "아! 그러고 보니 어제 바빠서 설명을 못했네요. 저녀석들, 어제 저랑 실피온님을 납치하려고 했던 놈들이에요." "뭐?! 그런 일이 있었어?" "네. 때마침 테이님이 구해주시지 않았다면 큰일 날 뻔했다고요. 저녀석들이 이상한 말을 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고 테이님이 이곳에 감금했거든요. 그런데 이곳에 먼저 도착한 저와 서니님들을 보고 이녀석들이 갑자기 인질이 되어 줘야겠다는 말을 하면서 또 덤벼들잖아요." "하하하. 그래서 화가 난 거야?" "아뇨! 어제 실피온님을 지키느라 제대로 싸우지 못한 복수를 하려고 했는데 서니님의 마법 한 방에 꼬리 내리고 도망친게 화나간 거예요! 제대로 싸우면 저 정도 녀석들에게 꿀릴 이유가 없잖아요!!" "그건 그렇지." "아직도 그 소리야? 그래서 내가 미안하다고 했고, 지금이라도 복수하라고 했잖아. 겁만 줘서 상처 하나 없으니 때릴 곳은 맣다고." "제가 뭐가 아쉬워서 꼬리 말고 벌벌 떠는 녀석들을 구타해야 되는데요?!" "왜긴? 재밌잖아." "하긴 재미있지." 두 엽기 자매의 발언에 티아라는 골치가 아프다는 표정을 지었다. 방금 전 티아와 서니의 발언은 진심이라는 점이, 어찌 생각하면 무시무시했다. "저, 저기 위대한 신룡님이시여." 라스크라 공작이 얼이 빠진 표정으로 티아를 불렀다. "응? 뭐냐?" "아니, 그게. 저기......" 라스크라 공작은 실례라는 것을 알면서도 말을 더듬을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라스크라 공작은 위대한 존재라고 생각했던 티아의 본성을 바로 옆에서 생방송으로 지켜보았다. 방금 전까지 예의와 격식을 차리며 대화했던 티아의 모습과 지금 티아의 본성은 볓 발자국을 양보해도 동일인물이라 생각할 수가 없었다. 라스크라 공작이 차마 '아까 저랑 대화하던 분이 맞으십니까?'라는 의문을 제기하지 못하고 답답해하고 있자 티아는 그 모습을 자기 멋대로 해석해서 대답했다. "아! 만나봐야 될 사람은 조금만 기다리면 만나게 될 거야. 아직 와야 될 손님이 더 있거든." "네? 아, 아니. 그게 아니오라......" "응? 아아, 슬라드 왕자? 저기 있어. 그런데 지금 자고 있네." 티아는 리이나가 안고 잇는 실피온(슬라드 왕자)을 가리키며 말했다. 의도한 바야 어쨌든 슬라드의 무사함을 확인한 라스크라 공작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심했다. 그리고 방금 전 티아의 엽기적인 모습을 잠시 잊었다. 하지만 곧바로 더 강한 충격이 제2타로 날아올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때 타이밍 좋게도 실피온이 주위의 소란에 잔뜩 볼을 부풀린 채 잠에서 깼다. 수면을 방해받아서 기분이 안 좋은 것이다. 하지만 티아를 발견하고는 해맑게 웃으며 티아를 불렀다. "마마!" 순간 라스크라 공작의 머릿속은 극도의 혼란에 빠졌다. 이미 티아의 본성이 어쩌고 하는 문제 따위는 다른 차원으로 날아갈 정도로 충격을 먹은 것이다. "마, 마마?!" 체통도 잊고 소리를 지르는 라스크라 공작을 보며 티아는 수줍은 듯 뺨을 긁적이며 말했다. "여기에는 조그만 사정이 있거든. 나중에 다 말해줄 테니 일단 진정하도록 해." "지, 진정이라고요? 어째서 슬라드 왕자가 신룡님에게.... 마, 마, 마, 마마?! 마마라고요!! 엄마라니요?! 도대체 이,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그러니까 사정이 좀 있다니까. 좀 진정해. 올사람이 다 오면 차근차근 설명을 해 줄테니. 아! 지금 도착했네." 티아는 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라스크라 공작의 뒤쪽을 손짓으로 가리켰다. 라스크라 공작은 아직 정리 안 되는 혼란을 그대로 간직한 채 뒤를 돌아보았다. 가의 뒤엔느 처음 보는 은발의 남자와 그리고 자주 보던 아그라느 광작과 네반 공작보인이 있었다. 이런 장소에서 아그라느 공작과 네반 공작바인을 만나게 된 것은 라스크라 공작에게는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이미 더 놀라운 일을 연타로 얻어맞은 라스크라 공작은 무덤덤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반갑습니다. 아그라느 경 그리고 공장 부인." "아?! 네. 아, 죄, 죄송합니다. 지금 갑작스럽게 이곳을 ㅗ와서 뭐가 뭔지." 네반과는 달리 아그라느는 혼란스런 울굴로 얼떨결에 라스크라의 인사를 받았다. "저는 이미 놀라운 일을 많이 겪었습니다. 평생 놀라야 될 것을 지금 여기서 한 번에 다 놀란 기분입니다." 마침 리이나에게서 실피온을 받아 안던 티아는 라스크라의 말을 듣고 한심하다는 목소리로 셋에게 말했다. "이봐들, 벌써부터 그렇게 놀라면 지금부터 소개할 사람을 보고는 기절이라도 하겠어." 티아가 리이나에게 살짝 눈짓을 하자. 리이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는 살짝 숨을 고른 후 자신의 소개를 했다. "안녕하세요. 제이름은 리이나. 17년 전에는 레그다트 왕자라고 불렸던 적이 있습니다." 순간 라스크라들은 동시에 '무슨 농담이지?'라는 표정을 지었다. 티아는 한숨을 쉬며 리이나의 소개에 설명을 덧붙였다. "믿지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만. 리이나의 정체는 17년전 독살됐다고 알려졌던 레그다트 왕자가 맞아. 카이저 드래곤으로서 창조신의 이름을 걸어도 좋아." 티아의 설명이 끝나자마자 테이의 레어에는 세 인간의 '뭐라고요?'라는 비명소리가 퍼졌다. 하지만 티아의 걱정대로 기절까지 안 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46화 오해는 비극만을 부르는가?(4) -흑흑.. 팔목도 아프고... ㅜ.ㅜ -stseed 티아는 슬라드 왕자, 지금 이름은 실피온인 아기를 맡게 된 가정과 리이나와의 만남 그리고 리이나의 기억을 찾아주다가 그녀의 정체를 알게 된 과정까지를 전부 설명했다. 테이는 이 자리에 끼지 않고 어제 잡아온 남자들을 심문을 하겠다며 자리를 피했다. 그래서 테이를 뺀 나머지 이들은 진지하게 티아의 설명을 경청했다. 그러나 티아의 설명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네반과 아그라느, 라스크라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우지를 못했다. "하아. 웬만하면 좀 믿어라. 카이저 드래곤인 내가 창조신의 이름까지 걸었는데 못 믿겠다는 그표정들은 뭐야? 이해하기 쉽게 설명까지 해줬잖아." "그, 그래도......" 네반은 리이나를 흘깃 쳐다보며 말을 삼켰다. 네반은 필사적으로 리이나의 얼굴에서 아기였던 레그다트 왕자의 모습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자신과 조금 닮았다는 점만 찾아냈을 뿐. 지금 리이나의 얼굴에는 17년 남자로 키워지던 레그다트 왕자의 모습은 단 한점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하긴,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17년이란 세월도 세월이지만 지금까지 남동생이라고 믿어왔던 아기가 지금은 과년한 처녀가 되어서 눈앞에 서 있으니 어떻게 동일인물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그 심정은 리이나도 가슴 아플 정도로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리이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네반에게 말했다. "저는 네반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가 레그다트 왕자였다는 사실은 믿어주지 않읏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지금부터 말하는 슬라드 왕자의 이야기는 꼭 믿어주세요." "슬라드 오아자의 이야기?" 네반은 티아의 품에 안겨서 잠들어 있는 실피온을 바랄보았다. 그 모습은 때묻지 않는 천사같이 귀여웠다. 저런 어린 아기를 한때나마 죽이려고 했던 자신의 과거가 생각나서 괴로웠다. "왜 그래? 당신 안색이 안 좋아." 아그라느가 네반의 안색을 살피며 물었다. 아직 티아는 납치 사건의 주범이 네반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모든 일에는 순서라는게 있는 법이야. 당신들이 궁금해하는 것이 산더미처럼 많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일단은 이야기부터 다 듣고 나서 질문을 해줬으면 좋겠어. q그리고 네반 당신도 너무 오두운 표정을 짓지 않아도 돼. 과정이야 어찌 됐든 결과적으로는 모든 일이 다 잘 풀리게 된 것일 수도 있으니까." 티아는 네반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던지며 리이나에게 눈짓을 했다. 리이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숲에서 티아에게 했던 이번 사건의 진싱릉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먼저 네반님과 라스크라님은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슬라드 왕자는 프르드크 왕 4세의 아들이 아닙니다." "뭐라고?!" 아그라느는 두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랐다. 갑자기 자리를 바갗고 일어나서인지 균형을 잃은 의자가 바닥에 쓰러지며 큰 소리를 냈다. "질문은 나중이라고 했다. 일단은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 그대로 놔두면 아그라느가 리이나에게 꼬치꼬치 캐물을 것 같은 기세라 티아가 주위를 줬다. 아그라느는 지금이라도 당장 그게 무슨 소리냐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카이저 드래곤인 티아의 앞에서 더 이상 추태를 부릴 수 없다고 생각하며 쓰러진 의자를 세워서 얌전히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의외로 네반과 라스크라가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는는 것이 놀라웠다. '도대체 내가 모르는 사이에 무슨 일이 었었던 거지?' 아그라느는 자신이 과연 무엇을 모르고 있었는지 꼭 알아야겠다는 표정으로 리이나의 말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잠시 말이 끊겼던 리이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말을 시작했다. "슬라드 왕자는 프리드크 4세 전하의 자식이 아닙니다. 슬라드 왕자의 정체는 저기 계신 라스크라 공작님의 먼 친척이 되는 갓난아기였습니다." 이번에는 라스크라 공작의 표정이 ㅜㄷ어졌다. 리이나가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 것이다. 하지만 아까 아그라나의 경우도 있기 때문에 묻고 싶은 것을 꾹 참았고, 그러는 사이에 리이나의 설명은 계속됐다. "마침 친척 중에 임신을 한 여성이 있어서 라스크라 공작은 앞으로 태어날 그 아기를 프리드크 4세의 후계자로 삼기 위해 라스크라 공작의 동생이신 제2왕비 라즈하 왕비가 임신했다는 소문을 퍼뜨리며 물밑작업을 했습니다. 그리고 아기가 태어나자 마치 라즈하 왕비가 ㅓ낳은 것처럼 발표했습니다. 그 아기가 바로 슬라드 왕자입니다. 하지만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은 라스크라 공작의 계획을 뒤에서 사주했던 분이 프리드크 4세였기 때문입니다. "헉!" 네반은 의외의 사실에 헛바람을 삼켰다. 그렇지 않아도 그런대 사기극은 제2왕비의 오빠라는 지위만으로 왕국 내에서 쉽게 실행할 수 없는 일이다. 슬라드 왕자가 태어나고 프리드크 4세는 얼마 동안 살아 있었다. 그럼 왜 프리드크 4세는 슬라드 왕자가 자신의 자식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도 가만히 있었던 것일까? 네반은 내내 그 점이 마음에 걸렸지만 이미 라스크라 공작 쪽에서 약물이나 마법 같은 것으로 왕을 홀린 상태라고 결론 짓고 있었다. 그런데 설마 슬라드 왕자의 황태자 만들기를 뒤에서 사주한 사람이 자신의 아버지인 프리드크 4세였다니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네반은 진실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라스크라를 쳐다봤다. 아니, 네반뿐만이 아니라 아그라느도 이미 라스크라를 쳐다보며 대답을 요구하고 있었다. 라스크라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자, 그럼 그 부분에 대해서는 리스크라 공작의 말을 들어볼까?" 티아는 리이나에게 잠시 가만히 있으라고 손짓을 하고는 라스크라에게 말했다. 라스크라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비통한표정으로 말했다. "처음 프리드크 4세 전하계서 그 계획을 말했을 때 저는 전하의 전의를 듣고는 무슨 일이 있어도 도와드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전하는 전부 네반님, 당신을 위해서 이 일을 계획한 것입니다." "저를 위해서라고요? 그게 무슨 소리죠?!" "황태자가 없는 이상 새로운 왕은 네반님의 남편인 아그라느님이 뒤를 잇게 되겠죠. 그러나 그렇게 되면 정통 왕가 프리드크의 이름을 이어야 된다고 주장하는 친국왕파와의 분쟁은 피할 수가 없습니다. 프리드크 4세 전하는 그 점을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가짜라도 좋으니 왕자를 만들어서 프리드크의 이름을 이어가는 것을 생각하신 겁니다. 아그라느님은 왕위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기에 프리드크의 이름을 이어갈 왕자만 있다면 분쟁이 일어날 리 없고, 그렇게 되면 네반님은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전하께서 생각하신 겁니다. 아그라느님, 당신은 왕위에 관심이 없으시죠?" 라스크라의 질문에 아그라느는 다소 거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저는 왕위 따위는 관심 없습니다. 아내인 네반의 행복만이 제 삶의 보람입니다. 그래서 슬라드 왕자가 태어났을 때 진심으로 기뻐했던 겁니다. 그런데 도대체 누가 무슨 목적으로 슬라드 왕자를 해하려고 했던 겁니까? 도대체 누가......" 아그라느는 말을 하다 말고 네반을 바라보았다. 네반은 얼굴이 새하얗게 변해서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아그라느는 테이의 레어에 왔을 때부터 들었던 이질적인 느낌을 떠올리며 안색이 변했다. 왜 나와 네반이 이곳에 온 것일까? 왜 네반까지 슬라드 왕자의 진실과 납치사건의 전말을 들어야 된까? 이야기를 듣던 내내 아그라느를 괴롭혀왔던 질문이 다시금 그의 머릿속에서 떠올라싿. 글리고 지금 네반의 모습을 보자 설마하며 지웠던 최악의 결과가 생각났다. "설마... 당신? 아니지? 아니지?!" "여보, 죄, 죄송해요. 실은 저예요. 제가 슬라드 왕자의 암살을....... 으흑." 네반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울음을 터뜨렸다. 데반은 나름대로 죗값을 치르기 위해, 모든 것을 밝히기 위해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었다. 하지만 막상 고백을 해야 되는 시간이 다가오자 겁이 났다. 네반은 아그라느에게 자신의 죄를 용서받을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 생각이 들자 네반은 참을 수 없는 두려움에 죄를 인정하는 동시에 울음을 터뜨렸다. "그런... 그럴수가......" 아그라느는 힘없이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슬라드 왕자의 수색을 위해서 그렇게 고생을 했었는데 그 모든 원인이 자신의 아내였다니...... "죄송해요. 저는 아바마마의 원수가 라스크라 공작아리고 생각했어요. 흑흑, 슬라드 왕자를 왕위에 세우기 위해 라스크라 공작이 아바마마를 독살했다고 생각해서... 그래서 그만....." "아니에요! 전하는... 아버지는 독살 같은거 당하시지 않았습니다!" 리이나가 거칠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어느새 리이나의 눈에서도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아버지는 몇 년 전부터 지병을 앓아오셨습니다. 하지만 저의 독살 사건의 경우도 있고 해서 네반님의... 언니의 행복을 위해서 필사적으로 버티셨어요! 아버지의 지병은 아무도 몰랐을 거예요. 저도 우연히 아버지가 피를 토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면 몰랐을 거예요. 아버지는 언제나 늘 저와 언니 그리고 저희 자매들을 걱정하셨어요. 왕자가 태어났더라면 이런 고생은 시키지 않았을 거라고... 그래서 슬라드 왕자를 만들었고, 안심을 하신 아버지는... 저에게만 살짝, 슬라드 왕자를... 가짜이긴 하지만 나의 남동생을 잘 부탁하신다고 말씀하시고......" 리아나는 말을 더 잇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펑펑 울었다. 리이나의 말을 듣고 네반도 그 때 상황을 생각했다. 공석에서 갑자기 피를 토하고 죽었던 아버지의 모습. 그러나 돌아가셨을 때의 표정은 평온했다. 왕이기 이전에 딸들의 행복을 늘 바라왔던 프리드크 4세는 슬라드 왕자른 존재를 만든 것으로 안심하고 죽었던 것이다. "아, 아바마마. 아바마마!" 그때 생각이 난 네반은 더 큰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네반과 리이나 두 자매의 슬픈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티아는 조용히 말했다. "내가 처음 리이나에게 이 사건의 전말을 들었을 때 참 기가 막혔지. 누군가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일을 진행시킨 것은 좋았지만 그래도 너무 숨긴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뭐, 당신네들 왕국을 유지시키려면 비밀 엄수가 필수였겠지만... 그래도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더라. 조금이라도 좋으니 진실을 말했다면 이런 슬픈 일이 생겼을까 하는......" "티아님! 하지만 아버지는... 아버지는... 으흑." "알아. 리이나 네가 ㅁㄹ하지 않아도 프리드크 4세가 너희들을 사랑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 잘 알고 있어. 그렇기 때문에 새삼 이제 와서 과거의 실수를 지적해봐야 아무 소용이 벗겠지.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티아가 아그라느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그라느는 잠시 티아의 말뜻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티아가 눈짓으로 울고 있는 네반 공주를 가리키자 그녀의 뜻을 알아차렸다. 티아는 과거의 실수야 어찌 됐든 나쁜 뜻이 없었기 때문에 이제 와서 그것을 걸고 따져봤자 소용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네반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티아가 등을 떠밀어 준 덕분에 아그라느의 혼란스러웠던 머리는 정리가 되고 당장 해야 될 일이 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아그라느는 아내의 어깨를 다정하게 감싸며 말했다. "그동안 많이 괴로웠지?" "흑. 여보?" "미안, 당신의 괴로움을 진작 알아채지 못해서 미안해." "왜? 왜 당신이 사과를 하시는 거죠? 잘못은 전부 저한테 있어요. 제가 이 두 손을 씨을 수 없는 피로 물들였단 말이에요! 저는, 저는 이제 당신의 아내로 있을 수 있는 자격 따위는......." "그런 자격은 누가 정하는 건데?!" 티아는 약간 화가 난 말투로 날카롭게 네반에게 물었다. "네?" "옆에 있어야 되고, 있을 수 없다는 자격 따위는 누가 정하는 거지? 그런 것은 남들이 정해주는 게 아니야. 자기 자신이 정해야 되는 문제야. 네반 당신의 본심에 물어봐. 당신은 진심으로 남편의 곁을 떠날 건가? 당신의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은 겨우 그 정도였나?" "그,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네반, 내가 처음에 말했지 과정이야 어찌 됐든 결론적으로는 잘 해결됐다고. 네가 분명히 슬라드 왕자를 해하려고 했던 것은 사실이야.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슬라드 왕자는 이렇게 살아 있어. 그리고 덕분이라고 ㅐ야 될까? 원래라면 죽을 때까지 밝혀지지 않았을 레그다트 왕자가 살아 있다는 사실도 밝혀지게 됐잖아. 뭐, 진짜 정체는 어여쁜 공주님이었지만 말이야." "그, 그런. 어여쁜 공주님이라뇨? 저는 그, 그다지 예쁘지 않아요." 리아나는 얼굴을 화악 붉히며 말을 더듬거렸다. 하지만 눈물에 젖은 얼굴에 뺨을 붉게 물든 리이나는 티아의 말대로 정말로 어여쁜 공주님의 모습이다. 네반은 티아의 말에 어느 정도 진정을 한 표정으로 눈물을 훔쳤다. 그리고 리이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저기, 아까 아바마마를 아버지라고 불렀지?" "그, 그건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감정에 복받쳐서..... 아버지, 아니 전하께서 두 사람만 있을 때는 아버지라고 불러도 좋다고 허락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역시 이런 공식석상에서는 해서는 안될 말인데....." "아니, 이런 자리는 공식석상이라고 부르기도 뭐한걸. 그리고 아바마마는 너의 아버지이기도 하니까 해서는 안 될 말은 아니야." "예?" 네반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리이나 곁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주저하는 리이나의 손을 살짝 잡으며 물었다. "정말레 네가 레그다트 왕자가 맞지? 내가 남동생이라고 생각했던 그때 그 아기가 정말레 네가 맞는 거겠지?" "네에." 네반은 살며시 리이나의 뺨을 쓰다듬으며 그 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를 살짝 껴안으며 속삭였다. "다행이야. 살아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네반의 다행이라는 말은 리이나가 자신의 여동생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는 말이다. "흑. 네, 네반님." "언니라고 불러도 돼. 아니, 그렇게 불러줘. 이건 부탁이야." "으응. 언니. 네반 언니." 서로를 자매롤 인정한 두 사람의 대화는 다른 사람들의 눈시울을 붉히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알아주는구나. 알아줘서 다행이야.' 티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이렇게 정말로 잘 풀릴까 하는 걱정을 내내 하고 있었다. 아무리 잘 설명해도 상대방이 이해해주지 않는다면 말짱 도루묵인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네반과 아그라느는 잘 이해해 준 것 같았다. '과정은 오해로 비롯된 비극의 연속이었지만 그래도 결과는 결코 나쁘지 않으니 앞으로는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미래가 달라질 거야. 이들이 좋은 미래를 맞을 수 있도록, 그리고......' 티아는 자신의 품에서 잠들어 있는 실피온을 보며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너와도 이별이구나. 안녕.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더 부를게. 잘 가렴. 내 아들 실피온.' 티아는 실피온의 이름을 가졌던 자신의 아들에게 마음속으로 이별의 인사를 건네며 라스크라에게 말했다. "그럼 이제 슬라드 왕자를 데려가야지. 좋은 왕으로 키워야 돼." "아? 예? 하, 하지만......." 라스크라는 얼떨결에 손을 뻗으며 주저하는 대답을 했다. 하지만 티아는 슬라드 왕자를 라스크라에게 넘길 수가 없었다. 슬라드 왕자가 티아의 옷자락을 꽉 쥔 채로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후후후. 내가 좀 어리광을 많이 받아주면서 키웠나보네. 미안 금방 데어놓을게." 티아는 슬라드 왕자가 깨지 않게 조심하면서 옷자락을 쥐고 있는 작은 손을 떼었다. 그녀의 손이 자신도 모르게 살짝 떨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라스크라는 뻗었던 손을 거두며 말했다. "신룡님, 부탁이 있습니다." "응?" "부탁이니 슬라드 왕자를 이대로 키워주시지 않겠습니까?" "그거 무슨 뜻? 나보고 슬라드 왕자의 대리모가 돼서 오리하곤 왕국의 수호룡이라도 돼달라는 뜻이야?" "그런 뜻이 아닙니다. 이미 슬라드 왕자는 신룡님을 어머니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억지로 떼어놓은 것은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합니다." 티아는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슬라드 왕자의 기억은 마법으로 지울 거야." "하지만 그러면 신룡님은... 신룡님께서 괴립지 않습니까?!" "맞아요! 티아님은 슬라드 왕자를 친아들처럼 사랑하셨잖아요!" 리이나가 라스크라의 말을 거들면서 티아에게 생각을 바꿀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티아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오리하곤 왕국은 슬라드 왕자가 실종돼서 뒤숭숭한 상태잖아 그런데도 내가 슬라드 왕자를 그대로 키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일이야." "괜찮습니다.! 그건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입니다. 저는 더 이상 프리드크 전하의 이름을 이어나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굳이 다시 슬라드 왕자를 왕위에 앉힐 생각이 없습니다." "신룡님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저는 왕위를 이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계속 남에게 미뤄서 그로 인해 누군가가 상처를 받게 된다면 차라리 제가 왕위를 이어받을 생각입니다. 그리고 두 번 다시 왕위 계승 때문에 싸움이 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그라느는 꼭 해내고야 말겠다는 자신의 굳은 결심을 말했다. "좋은 결심이구나. 그렇다면 더욱더 나는 슬라드 왕자를 키울 수가 없어." "어째서입니까?!" 라스크라의 질문에 티아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슬라드 왕자의 생모는? 생모는 살아 있겠지?" "아!" "말해줘. 생모는 살이 있지?" "...네, 살아 있습니다." 라스크라의 대답에 티아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생모가 살아 있는데 내가 가짜 엄마 노릇을 계속할 수는 없잖아. 슬라드를 왕으로 만들 생각이 없다면 생모에게 돌려주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 방법이야." "으흑.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신룡님께서 이런 괴로움을...... 정말 죄송합니다. "아, 아닙니다. 제가 슬라드 왕자를 해하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잘못은 저에게 있습니다." 라스크라와 네반은 서로 자기 잘못이라며 티아에게 용서를 빌었다. 하지만 티아는 괜찮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난 긴 세월을 살아왔어.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에 가까운 긴 세월을 살아야 돼. 이번 일로 난 평생 맛보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좋은 꿈을 꿨어. 오히려 난 너희들에게 감사하고 있어. 고마워. 좋은 꿈을 꾸게 해줘서." 티아는 슬라드 왕자의 마지막 손가락을 옷자락에 떼어 라스크라 공작에게 내밀었다. 라스크라 공작은 주름 진 눈가에 끊임 없이 눈물을 흘리며 슬라드 왕자를 받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젠장! 이봐!!" 그때 테이가 레어가 울릴 정도로 큰 소리를 지르며 뛰어왔다. 덕분에 슬라드 왕자가 잠에서 깬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으에에엥!" 슬라드 왕자는 크게 울음을 터뜨리며 티아의 품으로 파고들었고, 티아의 이마에서는 한줄기 힘줄이 돋아났다. "내가 진지하게 슬픔을 참고 아름답게 마지막을 장식 중인데, 저놈의 바보 드래곤이!!!" "물어볼 게 있다!" 테이가 네반을 향해서 소리쳤다. 하지만 테이는 네반에게 질문하지 못했고, 네반은 대답하지 못했다. 엄청난 수의 얼음덩어리가 테이를 덮쳤기 때문이다. "이 바보야! 죽어! 그냥 나가 죽어!!" "으아아악! 갑자기 뭐 하는 짓이야?!" "시끄러워. 이 바보 드래곤아! 그냥 죽어버려!!" 침울한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단번에 날아갔고, 오랜만에 실시되는 티아의 테이 반 죽이기가-오늘은 정말 죽일 것 같은 기세다-시작됐다. "전부터 궁급했던 건데. 저분들 엤날부터 저래왔었나요?" 리이나의 질문에 서니는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응.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저렇게 살았다더라." "테이님이 용케 살아남으셨다는 생각이 들어요." 리엘리아의 말에 서니는 한숨을 쉬며 동의했다. 티아라는 골치가 아프다는 표정으로 라스크라들을 쳐다보며 부탁했다. "보시다시피 저것이 저히 티아님의 본성입니다. 제발 부탁이니 저희 다이러스 제국의 수호룡의 본성(!)은 비밀로 해주셨으면 합니다. 본성이 소문나면 타이러스 제국과 저분의 그림자인 제가 곤란해요." 티아라의 눈물 어린 부탁에 라스크라들은 얼빠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이제 더 이상 놀랄 힘도 없었다. 그리고 앞으로 살아가면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 이보다 놀라운 일은 없을 것 같았다. 47화 세상이 버린 남자(1) -이제 반 쳤습니다. ㅠ.ㅠ 왜이리 책장이 안넘어가는지... 훌쩍... ㅠ.ㅠ -stseed "뭐라고?! 왜 그 이야기를 이제 하는 거야?!" "켁. 티...아가... 켁켁! 언...제.... 켁! 말... 할 시간을.... 켁켁! 준 적이나.... 켁! 있어?" 티아에게 목을 졸리면서도 힘들게 할 말 다 하는 테이에게 다른 이들은 마음속으로 박수를 보냈다. 구타가 끝나고 난 뒤 티아는 평소처럼 테이에게 회복마법을 걸어주고 이유를 물었다. 그리고 테이가 한 말에 티아는 놀라서 그의 멱살을 쥐고 다그치고 있는 상화이다. 테이가 네반에 물으려고 했던 것은 죽음의 사막에 누군가를 들어갈 수 있게 해준 것이냐는 질문이다. 네반은 슬라드 왕자를 납치해서 죽이기 위해 의뢰했던 도적길드를 떠올리며 두목이 요구했던 것이 죽음의 사막 출입증이라는 말을 했고, 필요 없는 땅이기에 그냥 땅문서째로 줬다고 대답했다. 네반의 말을 들은 테이의 표정이 어두워졌고, 티아 역시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더니 테이를 닦달하기 시작한 것이다. "저기. 그 땅이 중요한 곳인가요?" 네반은 혹시나 자기가 큰 실수를 했나 싶어서 겁먹은 말투로 물었다. 덕분에 티아는 테이의 멱살을 잡았던 손을 놓았고 테이는 겨우 풀려날 수 있었다. "하아, 맑은 공기. 너를 다시 만나서 너무나 기쁘구나." 테이는 멱살이 놓이자 힘껏 숨을 쉬며 진심으로 기뻐했다. 티아는 궁상을 떠는 테이를 주먹으로 날려버리고 네반을 쳐다보아싿. 지금 티아는 화가 나도 단단히 나 있어서 조금만 성질 건드려도 바로 폭발을 해버릴 상태였다. "그곳은 위험한 지역이야. 단지 죽음의 사막이라는 이름이 붙은 지역아라서 위험하다는 것이 아니야. 그곳이 왜 죽음의 사막이라고 불렸는지 알아? 사막에서 사는 인간들도 많은데 유독 그 곳에만 사람들이 살지 못하는 이유를 알아?" "그건 위험한 몬스터가 많기 대문이 아닙니까?" 아그라느의 대답에 티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답. 자, 그럼 다시 문제. 왜 유독 그곳에만 위험한 몬스터가 잔뜩 있을까? 그 이유는 알아?" "그, 글쎄요." "후, 인간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옛날 여섯 카이저 드래곤의 입에서 드래곤들에게만 전해지는 전설이 있어. 아직 인간이 없고 드래곤도 없고 카이저 드래곤조차 없었던 멀고 먼 옛날, 지금우리의 창조신은 시파크나라는 거인 마신과 지상의 패권을 다퉜다고 했어. 그 싸움의 승리자는 당연히 지금의 창조신이라 불리는 존재지 그리고 싸움에 패한 시파크나는 지하의 깊숙한 곳에 봉인됐어. 비록 싸움에 이겼지만 창조신은 시피크나를 완전하게 죽일 수가 없었던 거야. 그 정도로 시파크나의 생명력은 질기고, 창조신과 맞먹는 힘과 마력을 지닌 마물이었어. 그리고 그 시파크나가 봉인된 장소가 바로 그 죽음의 사막이야. 왜 유독 그 사막에만 위험한 몬스터가 많냐고? 그건 봉인됐다고는 해도 시파크나의 악한 마력이 지능이 없는 난폭한 몬스터를 불러 모으기 때문이야." "그, 그런. 그럴 수가?! 그게 진자입니까? 단순한 전설이 아닌겁니까?" "아쉽게도 카이저 드래곤에게 전해 내려오는 전설은 단순한 전설이 아니야. 그건 진짜 있었던 옛날이야기야." 티아의 말에 드래곤을 제외한 나머지 인간들은 충격을 받았다. 특히 오리하곤 왕국 사람인 네반들의 충격은 엄청났다. 그런 위험한 장소가 자기네 영토에 있었다고 생각하니 온몸이 떨렸다. "아무튼 이건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니야. 그 인간들이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니, 그 장소에 있다는 것으로 대충 짐작은 가. 믿고 싶지는 않지만 봉인을 풀 생각이겠지. 절대로 그냥 놔둘 수 없어!" "하지만, 티아님 그거 창조신님께서 직접 하신 봉인 아닌가요? 그런게 인간들 힘으로 쉽게 풀릴가요?" 티아라의 지적은 엃았다. 분명히 창조신 정도 되는 존재가 건 봉인이라면 솜씨 좋은 마법사 몇천 명이 들러붙는다 해도 풀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티아는 분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인간의 힘으로는 분명히 그 봉인은 풀 수 없어. 하지만 시파크나의 마력은 몬스터에게만 반응하는게 아니야. 인간의 악한 마음도 끌어들이고, 자신이 스스로 봉인을 깰 수 있도록 이용하는 경우가 있지. 인간이 봉인을 깨는 것이 아니야! 인간을 조종해서 시파크나 스스로가 봉인을 깨고 나오는 거야!" "어제 잡은 놈들을 심문하니 어린아이를 잡으려던 이유를 말해주더군. 두목이라는 작자가 잡아오라고 시켰다는데 어린아이 아홉명. 청년 아홉 명. 순결한 처녀 아홉 명. 노인 아홉명. 악한 마음을 가진 자 아홉명. 요정족 아홉 명을 잡아오라고 했대. 아마도 제물로 쓰려고 했던 것이겠지. 제물은 봉인된 시파크나에게 힘을 주는 역할을 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결국 시파크나는 스스로 봉인을 풀고 나오게 되는 거야." 티아의 주먹에 날아갔던 테이가 아픈 턱을 문지르며 티아의 말에 설명을 덧붙였다. "자세하게 아시네요." 리이나의 말에 티아와 테이는 동시에얼굴을 찌푸렸다. "과거에 그 미친 짓을 하려고 했던 놈이 있었거든." "결국에는 나랑 테이 그리고 동료들의 힘으로 저지하기는 했지만......" 티아는 그때 일을 회상하는지 분노에 찬 표정으로 몸을 떨었다. 그 일 때문에 티아는 카이저 드래곤으로서 힘을 각성해버렸다. 테이 역시 잊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티아는 자신을 살리기 위해서 카이저 드래곤으로서의 힘을 각성했던 것이다. 결국 각성한 티아의 힘과 당시 엘리멘탈 소드의 주인이었던 인간 친구의 힘에 의해 시파크나의 부활은 저지되었다. 그러나 그 싸움 때문에 티아는 유한의 삶 대신 무한의 삶을 얻게 됐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하는 유한의 삶이 아닌, 사랑하는 이가 ㅣ죽어도 무한의 삶을 살아야 된다는 공포. 이제 다시는 되 찾을 수 없는 소중한 것을 잃었던 사건이었다. "아무튼 난 지금 당장 죽음의 사막으로 가겠어. 리이나, 슬라드를 부탁한다." "네? 네!" "테이야. 엘리멘탈 소드는?" "준비됐어." 테이는 엘리멘탈 소드 이.외에 또 한자루의 검을 허리에 차면서 말했다. "좋아. 서니 너는 리아나들을 오리하곤 왕국으로 데려가. 나와 테이는 바로 죽음의 사막으로 가겠다." "두 분만 가도 괜찮겠습니까?" 티아라가 걱정스런 얼굴로 물었다. "아직 봉인이 풀리지는 않았을 거야. 풀렸다면 지금쯤 온 세계가 쑥대밭이 됐을걸. 지금은 인간이 상대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티아. 워프 열었어." "응. 그럼 갔다 올게. 뒷일을 잘 부탁해." 티아는 걱정 말라는 뜻으로 미소를 지으며 워프의 문으로 사라졌다. 티아라는 그 모습을 보자 왠지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되돌릴 수 없는 무언가가 터질 것 같은 불길한 예감. '부탁입니다. 제발 무사히 돌아와 주세요.' 그 옛날 티아와 테이는 동료들과 함께 시파크나 부활을 저지하기 위한 싸움을 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때 마지막 싸움 장소가 바로 죽음의 사막이었다. 정확히는 죽음의 사막 속에 있는 시파크나의 봉인 신전. 온통 검은색으로 칠해진 신전은 절반이 모래에 파묻힌 상태로 불길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좀더 모래를 잔뜩 쌓아둘걸. 완전히 다 드러났군." 티아는 모래에 묻힌 검은색의 불길한 신전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렇다. 실은 원래 모래에 절반 정도 파묻힌 상태가 아니라, 티아의 손에 붇힌 것이 누군가의 힘으로 파헤쳐진 것이다. "어쩔 수 없지. 봉인됐다고는 해도 시파크나의 마력은 살아 있잖아. 그 힘으로 조금씩 모래를 치웠겠지. 뭐, 그래도 최근에는 인간 손에 의해 파헤쳐진 것 같지만." 테이는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삽이나 곡괭이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튼 빨리 들어가자. 불길한 마력이 풍겨 나오는 양이 장난아니야." "응." 테이와 티아는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모래를 전부 다 파내지 않았기 때문에 열려진 문틈으로 모래가 안으로 흘러 들어가 신전 문 입구에는 작은 모래 언덕이 쌓여 있었다. 미끄러지듯이 안으로 들어간 테이와 티아는 익숙한 발걸음으로 목적지를 향해 걸었다. 딱 한 번 들어와 본 곳이지만 이곳 지리는 잊을 수가 없었다. "크윽!" 앞서 걷던 테이가 시체 썩는 악취에 코를 막았다. 티아는 냄새가 나는 방향을 슬쩍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인간 시체군. 아마도 도적들이겠지?" "누가 죽였는지는 생각 안해도 되겠지?" 테이는 엘리멘탈 소드를 검집에서 뽑으며 말했다. 엘리멘탈 소드의 빛나는 광채 때문에 어두운 복도가 희미하게 밝혀졌다. 그리고 기이한 그림자들이 슬금슬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테이는 이를 갈며 그림자를 노려보았다. "시파크나의 불길한 마력으로 태어난 이형(異形)의 몬스터. 정말 오랜만에 보는군. 하지만 반가운 생각은 하나도 안 들어." "아직 농담할 여유가 있는 거야? 이것들이 이미 나왔다면 의식은 거의 끝을 향해가고 있는 거라고!" "쳇! 별거 아닌 도적집단이라고 생각했는데... 벌써 상당수의 제물을 바쳤단 소리잖아! 이자식들!!" 테이는 제물로 바쳐졌을 죄 없는 인간들을 생각하니 화가 치밀었다. 테이의 외침에 기이한 그림자들이 쇳소리를 내며 덤벼 들었다. 어린아이들이 찰흙으로 만들었어도 더 잘 만들겠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몬스터들이 모습은 제멋대로였다. 맨 앞에서 달려오는 몬스터가 다섯 개의 낫같이 생긴 다리로 빠른 속도로 테이에게 덤벼들었다. 몸은 게를 닮은 모양인데 울퉁불퉁한 몸에 눈조차 없어서 어디가 앞이고 뒤인지 구별이 가지 않아싿. "끼이익!" 모습만큼이나 소리도 괴상하게 지르며 몬스터는 낫같이 생긴, 다리라고 생각되는 물체를 휘두르며 테이에게 덤벼들었다. "크윽!" 테이는 몬스터의 공격을 검으로 막고는 손을 뻗어서 아이스 미사일을 몬스터에게 날렸다. "키익!" 테이의 공격을 받은 몬스터는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고는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뒤를 이어 또 다른 몬스터가 낫을 휘두르며 덤버들었다. "니들 아이스!" 티아의 외침과 함께 대기의 수증기가 송곡과 같은모양으로 얼어서 테이를 공격하던 몬스터에게로 떨어져싿. 하지만 몸에 무수한 얼음송곳이 꽂혔는데도 몬스터는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역시 사막이라 수분이 모자라! 얼음마법은 안 되겠어!" 테이가 몬스터의 공격을 막으면서 티아에게 소리쳤다. 그러자 티아는 코웃음을 치고 손을 하늘로 쳐들면서 외쳤다. "뼛속까지 얼려주마! 아이스 샤워!" 빙계 최강이라 불리는 마법이 발동되는 순간 몬스터의 발아래서부터 냉기가 치솟아 올랐다. 천장까지 닿은 냉기는 드래도 얼음그둥이 되고, 몬스터몬스터는 그 안에 갇혔다. 티아이ㅡ 말대로 뼛속까지 그대로 얼어버린 것이다. "호호호. 누군가와 수준 차가 나는 마법으로는 모자란 수분이 신경 쓰이겠지만 이 몸은 아무렇지도 안핟네." "쳇, 누가 여유 부리는 지 모르겠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잖아." "알아. 하지만 말이야. 좀 많다." 세 마리였던 이형의 몬스터들이 어느새 늘어나 수십 마리가 되어 티아와 테이를 둘러싸고 있었다. "별수 없지. 엘리멘탈 소드를 사용할게." "아니, 만약을 위해서 검의 마력은 아껴둬. 어차피 장소는 알고 있으니 내 마법으로 강행돌파다!" "잘 부탁드립니다." "내 꽁무니 졸졸 따라올 생각은 하지 말고 너도 거들어!" "네, 네. 자 그럼." "간다!" 티아의 외침을 신호로 테이는 달려가면서 바로 앞이ㅡ 몬스터의 다리를 갈랐다. 몬스터의 고통에 찬 비명과 함께 티아의 수백개의 아이스 미사일이 테이 쪽으로 덤벼드는 몬스터의 움직임을 저지했고, 그 틈에 테이는 몬스터들의 다리를 자르며 길을 텄다. 몬스터의 포위망을 떨쳐내 버린 둘은 있는 힘껏 지하로 통하는 복도로 달려갔고, 몬스터들이 그 뒤를 쫓았다. "봉인의 문까지 걸리는 시간이 얼마였더라?" "지금 속도라면 5분" 있는 힘껏 달려가면서 묻는 테이의 질문에 티아가 대답했다. "따라 잡히겠군." "쟤들은 다리가 비정상인데도 이상하게 빠르잖아." "별수 없어. 검으로 결계 칠게!" "뭐, 그 정도는 써도 되겠지." 티아의 허락이 떨어지자 테이는 얼리멘탈 소드의 여섯 개의 구슬이 박힌 손잡이 부분을 몬스터 쪽으로 들이밀며 소리쳤다. "엘리멘탈 소드여! 검에 머문 정령이여! 주인의 이름으로 명한다. 자유로운 바람! 재생의 불꽃 순결한 물! 포근한 대지! 안식의 어둠! 따뜻한 빛! 내 명에 따라서 나를 해하려는 자를 막는 방패가 되어라!" 엘리멘탈 소드가 테이의 주문에 반응하자 정령의 힘이 담긴 구슬들이 빛을 발하였다. 그러자 검에서 뻗어나간 각각의 빛이 서로 연결되어 허공에 육망성의 마법진을 만들었다. "키에에엑!" 티아의 말대로 이형의 몬스터는 다리가 이상한데도 굉장히 빨랐다. 어느새 테이의 바로 앞까지 달려온 것이다. 하지만 테이의 앞 허공에 그려진 육망성에 부딪치더니 뒤로 날아가 버렸다. "됐어! 여섯 정령의 걸계! 깨려면 고생 좀 할거다." "테이야. 빨리!" "응!" 테이는 벌써 저만치 달려간 티아의 뒤를 쫓아갔다. "아앗!" 그런데 갑자기 앞쪽에서 달려가던 티아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훌쩍 뛰어서 물러났다. "왜 그래? 티아!" 테이는 서둘리 티아 곁으로 달려갔다. 티아의 앞에는 회색 머리를 어깨까지 기른 장발의 남자가 서 있었다. 남자는 날이 구부러진 쿠크리(단검의 일종)를 들고 있엇다. 하지만 겨우 그 정도에 카이저 드래곤인 티아가 뒤로 물러날 리가 없다. 테이는 남자의 회색 눈동자에 기묘한 빛을 목격했다. 테이는 설마라는 생각을 하며 남자에게 물었다. "넌 누구냐?!" 테이의 질문에 남자는 입을 열었다. "나? 난 프라츠" 마치 쇳소리 같은 듣기 거복한 소리. 거기다가 그 어떤 감정조차 느껴지지 않는 딱딱한 말투. "이놈, 시파크나의 마력을 직법 쐰 녀석이군." "응. 저녁석 단검에서 불길한 마력이 느껴져." "크윽." 테이는 통로 뒤편을 흘낏 쳐다봤다. 정령의 결계는 길어봐야 30분 이상은 못 버틸 것이다. 그리고 앞을 막아서 프라츠라는 남자. 비록 인간이지만 시파크나의 마력을 쬔 이상 만만한 상대는 아닐 것이다. 테이는 입술을 깨물고는 티아의 손에 엘리멘탈 소드를 건네주었다. "에? 뭐 하는 거야? 나보고 싸우라고?" "아니. 티아는 엘리멘탈 소드를 들고 먼저 가. 여기는 내가 막을게." "너 미쳤니?" 티아의 한심해하는 목소리에 테이는 힘이 쭉 빠지는 기분을 맛봤다. "저기 말이야, 모처럼 진지한데 꼭 그렇게 힘 빠지는 말을 해야겠어?" "둘이 힘을 합쳐 파팡 하고 해결하고 가는 것이 더 낫잖아. 어울리지도 않게 뭐? 먼저 가? 웃기지마! 난 절대로 혼자서 안 가!" "이미 마력을 쐰 하수인까지 생겼어. 여기서 둘 다 시간을 잡아먹을 수는 없잖아! 그건 티아 네가 더 잘 알 텐데!" 물론 티아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위험한 것을 뻔히 알면서도 테이를 내버려두고 갈 수는 없다. 티아는 손을 뻗어서 마법을 쓸 자세를 취했다. "절대 혼자서는 안 갈거야! 내고집 알잖아!" "너무나 잘 알지." '그래서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되는지도 잘 알고......' 테이는 티아의 손을 잡아서 자신 쪽으로 잡아당겼다. "에에?" 티아의 몸이 이쪽으로 돌아서자, 테이는 순간 무방비가 된 티아의 입술에 키스했다. "!!!" 순식간에 당한 일이라 티아는 비명도 나오지 않았다. 테이의 입술이 떨어지자 티아는 눈을 크게 뜨고, 손으로 입을 가리며 뒤로 몰라났다 테이는 별로 어울리지도 않은 능글맞은 웃음을 흘리며 장난스레 티아에게 말했다. "부탁할 테니 먼저 가주세요 누.나." "아, 이, 이, 이! 이 바보 드래곤아!!! 아제 몰라! 너 같은 건 그냥 죽어버려!!!" 티아는 잔뜩 화나 나서 악을 ㅆ며 소리쳤지만 그래도 주먹까지 날라가지는 않았다. 만약 티아에게 실컷 얻어터진 상태로 프라츠와 싸웠다가는 테이는 100% 패할 것이 분명했다. 티아는 엄청난 분노로 제정신이 아니었지만 무의식중에 그 점을 간파하고 차마 테이를 때리지 않은 것이다. 대신...... "너 반드시 내 손으로 죽여버릴 거야! 이런 데서 멋대로 죽어도 내가 다시 살려서 죽여버릴 거야!" 티아는 무시무시한 악담을 퍼붓는 것을 잊지 않고 달려갔다. 티아가 프라츠의 옆을 지나쳐서 달려가자 프라츠는 티아를 저지하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챙! 날카로운 금속음이 울리면서 프라츠는 두어 걸음 뒤로 물러섰다. "미안하지만 네 상대는 나야. 티아 누나는 못 건드려." 테이가 허리에 찼던 또 한 자루의 마법검으로 프라츠의 검을 친것이다. 엘리멘탈 소드에 비하면 위력이 한참 떨어지는 검이지만 그래도 경량화마법과 강화마법이 곱빼기로 걸린 강한 검이다. 프라츠는 표정 없는 얼굴로 테이에게 단검을 겨눴다. '젠장. 티아의 이름만 부르게 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다시 누나로 돌아갔군. 이게 모두... 모두!' "너 때문이야!!" 프라츠가 제정신아라도 이해 못할 말을 외치며 테이는 검을 휘둘렀다. 47화 세상이 버린 남자(2) 화가 나서 무작정 달려갔던 티아지만 막상 분노가 가라앉자 불현듯 테이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젠장! 바보! 바보! 바보! 바보!' 테이에게 하는 말인지 아니면 테이의 수법에 간단하게 걸려버린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어느 쪽에게 하는 말인지도 모른 채 티아는 끊임없이 마음속으로 바보라는 단어를 외쳤다. 이미 다시 돌아가기에는 너무 늦었고, 다시 돌아가는 것은 테이의 배려를 무시하는 행동이다. 그렇기 때문에 티아는 서둘러 앞으로 달려갔다. 조금이라도 빨리 의식을 중단시키면 시파크나의 마력은 끊기고 테이의 안전은 확보된다. 그것이 지금 테이를 도와줄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있는 힘껏 달려가는 타아의 눈앞에 드디어 봉인의 문이 보였다. 문에는 시파크나의 마력으로 결계가 쳐져 있었지만 그 정도는 티아에게 문제 될 것이 없었다. "꺼져버려!" 티아는 자신의 마력을 엘리멘탈 소드에 주입해서 있는 힘껏 휘둘렸다. 여섯 정령의 힘과 티아와 계약한 생명의 정령왕 리스라시르의 힘까지 담긴 마력이 굉음을 내며 봉인의 문을 박살 냈다. 티아는 바로 문 안으로 뛰어들어갔지만 몇 걸음 걷지도 못하고 비틀거렸다. 방 안 가득히 차 있는 시체 썩는 냄새와 피 냄새. 그리고 잊어 버리고 싶은 불길한 마력. 티아는 현기증이 날 것 같은 기분을 간신히 참으며 방 안을 둘러보았다. 2000년 전과 달라진 것이 전혀 없다. 기분 나쁜 도형들이 잔뜩 그려진 방 중앙에는 커다란 육망성이 그려져 있었고, 그 중앙에 작은 키에 커다란 사마귀가 잔뜩 난 볼품없는 사내가 서 있었다. 사내의 이름은 베스크. 프라츠와 도적단의 도목이었던 남자다. 티아는 베스크의 붉어진 눈을 보며 이를 갈았다. "오랜만이야, 시파크나. 카오스가 널 부활시키려고 했을 때 처음보고 벌써 2000년이 흘렀구나. 되도록이면 네놈과는 두 번 다시 마주치기 싫었는데 말이야." 주모자로 보이는 베스크의 정신은 이미 시파크나에게 먹혔다고 생각한 티아가 말을 걸었다. 베스크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물끄러미 티아를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런, 뭐야? 그 처음 본다는 표정은? 설마 2000년이 흘렀다고 내 얼굴을 잊어버린 거야? 봉인이 해제되기 직전에 너를 다시 봉인했던 카이저 드래곤 티아루아를 잊어버렸다는 말은 안 하겠지? 그때 너는 기억해두겠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었잖아." 티아는 엘리멘탈 소드래 보스크를 겨누며 슬쩍 방 안을 살폈다. 방 안에는 시체들이 여기저기 굴러다니고 있었지만 살아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이 말은 더 이상 바칠 제물이 없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바칠 제물이 없는데도 봉인이 풀리지 않았다는 것은 제물을 확보하는데 실패했다는 말이 된다. 티아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2000년 전 상황과 모든 것이 똑같았다. 이 상태로도 봉인은 풀수 있지만 불안정하게 풀린다. 그럼 2000년 전과 마찬가지로 엘리멘탈 소드에 봉인된 여섯 정령왕의 힘과 자신의 생명의 정령와의 힘을 사용하면 다시 봉인시킬 수가 있다. "안타깝게도 이번에도 실패했구나. 시파크나. 역시 너한테는 깊은 지하의 어둠이 가장 잘 어울려. 이번에는 두 번 다시 나오지 못하게 봉인을 이중 삼중으로 걸어주마!" "킥." 붉은 눈의 베스크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처음으로 연 입에서 나온 소리는 웃음이었다. "킥킥킥킥킥. 킥킥킥킥킥"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는 베스크를 쳐다보며 티아는 얼굴을 찌푸렸다. 꼭 집어서 말할 수 없는 이질감이 느껴졌다. 확실히 저 베스크에게서 풍겨 나오는 마력은 시파크나의 마력이다. 하지만...... "킥킥킥. 그렇군. 네가 시파크나님이 말씀하시던 원수구나." 베스크의 가래 끓는 말소리가 거슬렸지만 티아는 그것보다 베스크의 시파크나님이라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그 말뜻은 저 베스크의 정신은 아직 시파크나에게 지배되지 않고 있다는 뜻이었다. "무슨 농담이지? 불안정하지만 일단 의식이 시작된 이상 시파크나의 마력에 정신이 지배되지 않을 리가 없는데......" "내가 간청했거든. 아니, 교환을 했다고 해야 되려나. 시파크나님을 풀어주는 대신에 나를 정신이 박혀 있는 채로 살려달라고 간청했지. 시파크나님은 내 소원을 들어주시더군." "이런 미친! 제정신이 박혀 있으면서도 시파크나의 부활 의식을 치르고 있단 말이야?! 제정신인 인간이 그딴 짓을 하다니! 시파크나가 세계정복아라도 도와주는 줄 알아?! 시파크나가 원하는 것은 이 지상의 완전 소멸이야! 아무것도 남지 않는 세계에 살아남아서 무러 할 생각인 거야?! 뭘 할 수 있을 것 같아?!" 티아의 외침에 베스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무것도 안 할 생각이다. 그냥 세계가 멸망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충분해. 그것이 내 소원이야. 기껏 세계가 멸망하는데 내가 제장신이 아니면 구경을 못하잖아." "미쳤군!"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더군. 남은 내 부하들은 굉장힌 힘이라도 얻는 줄 알고 좋아하다가 시파크나님의 진심을 알게 되자 날 미친놈이라 욕하며 배신을 하더군. 뭐, 결국 덕분에 악한 마음을 가진 제물은 넘칠 정도로 얻었으니 나한테는 이익이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왜 멸망을 원하는 거야?!" "방금 네 입으로 말했잖아. 미쳤다고. 그 말대로 난 미쳤거든." 티아는 이를 바득 갈았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에 저놈을 날려 버리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불안정하기는 하지만 봉인은 이제 저 베스크가 한마디만 하면 풀려버린다 그때 마법진 위에 서 있으면 타격을 받기 때문에 티아는 섣불리 접근을 못하는 것다. :그래. 넌 미쳤어. 하지만 네놈의 미친 짓도 이것으로 끗이야. 불안정한 봉인 따위는 내가 다시 봉해버리면 돼! 시파크나가 나를 원수라고 말했다며. 그럼 알겠지? 내 정체와 힘을!" "그래. 그렇지. 잘 알고 있지. 그래서 시파크나님께서 말하고 계신다. 너를 죽이라고." "죽일 수 있으면 죽여보시지! 영원의 삶을 사는 카이저 드래곤의 힘! 똑똑히 보여주겠어!" 티아는 손을 뻗으며 아이스 미사일을 다연발로 날렸다. 하지만 베스크는 재빠른 동작으로 옆으로 피하고는 속도를 떨어뜨리지 않고 티아에게 달려들었다. "쳇!" 티아는 일단 공중으로 몸을 피했다. 엘리멘탈 소드를 들고 있지만 검술에는 전혀 조예가 없는 티아에게 검은 쓸모가 없다. 티아는 최대한 거리를 둬서 장기인 마법으로 베스크를 묶어두려고 생각했다. "앗!" 그런데 공중으로 올라가서 안심하는 티아에게 단검이 날아왔다. 티아가 간신히 몸을 비틀어 그것을 피하자 아래쪽에서 계속해서 단검이 날아왔다. "쳇! 실드!" 티아는 마력으로 물리적 공격을 막는 실드를 쳤다. 그러나 그것은 실수였다. "꺄아아악!" 티아는 그것이 마법 단검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은 단검을 닮은 마력덩어리였다. 그러니 물리적 공격을 막는 실드로는 방어할 수 없었다. "크윽. 룬실드!" 티아는 손바닥에 타는 듯한 아픔을 느끼며 서둘러 마력을 막는 방어실드를 펼쳤다. 티아의 손바닥에 꽂힌 마력 덩어리는 당연히 시파크나의 마력이었다. 시파크나의 마력은 지상에서 쓰이는 마력과는 전혀 다른 성질을 가졌기 때문에 아무리 키이저드래곤의 마력을 가진 티아라 해도 손쉽게 치료할 수가 없었다. 티아가 손의 상처에 신경을 쓰고 있던 그때, 싸늘한 감각을 느낀 그녀는 급히 고개를 옆으로 숙였다. 티아의 은발 머리카락을 스치며 단검이 날아갔다. 베스크는 마력과 단검을 적절하게 섞어서 던지고 있었다. "젠장! 이렇게 된거 공격이 최대의 방어다! 아이스 샤워!" 티아는 막 나가자 전법으로 실드를 치우고 빙계 최강 마법을 썼다. 하지만 자신의 발아래서 냉기의 마력을 느낀 베스크는 믿어지지 않는 속도로 옆으로 피했다. "저녀석! 정신이 박혀 있지만 이미 시파크나의 마력을 이어받았잖아!" "정답이야. 도마뱀 아가씨!" "너 이자식!" 놀리는 말에 화가 난 티아가 연속으로 아이스 샤워를 시전했지만 베스크는 그때마다 잘도 피해 다녔다. '이대로는 안돼! 좀더 범위가 넓은 거!' 티아는 마력을 모아서 냉기계 중급 마법 아이스 니들을 광범위한 공간에 소환했다. 날카로운 얼음의 송곳을 보며 베스크는 헛 하고 신음을 뱉었다. "도망칠 곳 따위는 어디에도 없어!" 어느 정도 도망치던 베스크는 걸음을 멈추고 티아를 올려다보았다. "이제 포기했냐?!" 하지만 티아의 외침과 함께 날아간 아이스 니들은 공중에서 부서졌다. "앗! 마법진?!" 베스크는 어느새 마법진 안으로 도망친 것이다. 시파크나의 봉인을 푸는 마법진이 그려진 공간에 마법은 통하지 않았다. 이렇게 되면 티아도 마법진 안으로 들어가서 싸워야 되겠지만 검을 쓸 줄 모르는 티아에게 육박전은 불리했다. 그리고 티아가 마법진에 들어갔을 때 베스크가 같이 죽을 각오로 봉인을 풀 수도 있다. 그때 생기는 마력의 충격파는 티아에게 치명상이 될 수 있다. 티아는 이를 갈며 공중에서 내려왔다. "호오, 포기하셨나?" 가래 섞인 말투로 능글맞은 말을 하는 베스크를 보며, 티아는 욕지거리가 나오는 것을 꾹 참았다. 지금 상태로 계속 싸워봐야 서로 결정타를 날리지는 못한다. '그렇다면.' 티아는 슬쩍 손에 든 엘리멘탈 소드를 바라보았다. '이 방법밖에 없어!' 티아는 엘리멘탈 소드를 치켜들고 외쳤다. "부탁이야! 힘을 빌려줘!!" 티아의 외침에반응하듯 엘리멘탈 소드 손잡이의 구슬들이 일제히 빛을 냈다. 아까 테이가 결계를 칠 때 뿐어 나왔던 빛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강한 빛이었다. 티아는 엘리멘탈 소드 안에 있는 여섯 정령왕의 힘을 불러낸 것이다. 테이는 신전이 떨리면서 봉인의 문 쪽에서 정령왕의 기운이 느껴지자 놀랐다. '누나가 정령왕의 힘을 개방했어. 쳇, 도대체 아래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거야?' 테이는 초조한 마음으로 프라츠에게 검을 휘둘렀다. 프라츠는 아까부터 철저하게 방어만 하고 있었다. 테이는 열심히 검술과 마법을 연계해서 공격했다. 하지만 시파크나의 마력을 받은 프리츠에게 마법은 결정타가 되지 못했고, 검술은 테이와 막상막하의 수준이다. 덕분에 승부는 쉽게 판가름 자이 낳고 있었다. 하지만 뒤쪽에 쳐놓은 결계가 언제 부서지고 이형 몬스터들이 달려올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테이가 불리했다. '별수 없군. 여간해서는 비겁해서 사용하기 싫지만 지금은 그런거 따질 때가 아니지.' 테이는 프라츠에게 위협 삼이 검을 휘두르고는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정신을 집중해서 외쳤다. "나와라. 실프!" 테이의 외침에 실프 다섯이 소환됐다. 테이는 소환된 실프에게 공격을 명령하면서 마법을 준비했다. "람 아이스!" 테이가 바닥에 손을 대고 주문을 외우자 그의 손에서 뻗어나온 냉기가 바닥으로 퍼지면서 순식간에 바닥이 빙판으로 변했다. 빙판은 넓게 퍼져 프라츠의 발밑까지 꽁꽁 얼려버렸다. "실프, 지금이다!" 테이의 명령에 실프는 각자 최대한의 힘으로 바람을 날렸다. 빙판 위에서 실프 다섯의 바람을 견딜 수 있는 자는 없다. 프라츠는 단검을 바닥에 곶아 간신히 미끄러지려는 것을 버텼다. 순간, 테이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하아압!" 빙판의 미끄러짐을 이용해서 빠르게 프라츠에게 접근한 테이는 단검으로 간신히 균형을 잡은 프라츠의 팔을 단번에 잘랐다. 팔아 잘리는 큰 상처를 입고도 프라츠는 비명조차 지르지 않고 무표정한 얼굴로 그 자리에 쓰러졌다. "이겼다." 테이는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깔린 마법을 제거했다. 곧바로 빙판은 사라지고, 테이는 검을 고쳐 쥐고 프라츠에게 다가갔다. "시파크나의 마력에 지배당한 자여. 어차피 더 이상 인간이라고도 부를 수 없는 가련한 존재. 너를 시파크나의 마력에서 해방시키는 것이 내 최소한의 인정이다." 그렇게 말하며 테이는 떨리는 손으로 검을 머리 위로 들었다. ".......다." "응?" 테이는 프라츠의 들리지 않는 말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방금 순간적이기는 하지만 프라츠의 말에는 감정이 담겨 있었다. "소용없다." 테이가 놀라서 잠시 머뭇거리자 프라츠는 이번에는 똑똑하게 감정이 담긴 말을 내뱉었다. "너 시파크나의 마력에서 벗어난 거냐? 그럴 리가! 한 번 시파크나의 마력에 지배당하면 죽지 않는 한은 풀리지 않을 텐데!" "처음부터 나는 나였다. 지배 같은 거 당하지 않았다." 프라츠의 말에 티이는 문득 시파크나의 마력이 프라츠의 손에 들린 단검에서만 느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프라츠는 애초에 마력의 지배를 받지 않은 채, 시파크나의 마력이 깃든 단검만을 사용해서 싸웠던 것이다. "크윽! 그럼 물어보자! 어째서 이런 말도 안되는 딧을 한 거야?! 시파크나의 목적은 이 지상의 멸망이야! 그걸 알면서도 저지른 거냐?! 인간인 네가!" "인가/ 그래. 겉으로 보면 인간이겠지." "무슨 뜻이야?" "난... 나와 두목은 부적격자다." "뭐라고?!" 부적격자. 타종족 사이에서 태어나는 아이 중에서 만분의 일 확률로 태어나는 저주받은 아이. 타종족 사이에서 태어나는 혼혈 아이들 중에서는 신기한 능력을 갖고 태어나는 아이도 있고, 비정상적인 마력이나 어느 한쪽 종족의 모습이 아닌 양쪽 모두의 특징을 가진 전혀 새로운 모습을 가진 아이도 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부적격자라 불리는, 극악한 확률로 저주받은 능력을 갖고 태어나는 아이가 있다. 그중에는 겉모습이 추악한 괴물 같은 아이도 있고, 신가하기보다는 괴상한 능력을 가진 아이도 있다. 어느 쪽이든 간에 부적격자인 아이의 삶은 지옥 그 자체인 경우가 많았다. 양쪽 부모의 어느 면도 닮지 않고, 괴상한 능력까지 가진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부모 손에 죽거나 버려지기 때문이다. 테이는 눈앞의 남자가 부적격자라는 말에 검을 치켜든 손이 순간적으로 떨리는 것을 느꼈다. "크윽!" 프아츠는 그 짧은 순간을 놓치지 않고 반격했다. 팔이 잘린 그가 반격에 사용한 무기는 잘린 팔에서 솟아 나온 뼈였다. 몸 안의 뼈를 마음먹은 대로 조종해서 무기로 만드는 것이 프라츠의 저주받은 능력이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드래곤이여! 소용이 없다고 했지! 미안하지만 난 아픔을 느끼지 않아. 아니, 느낄 수가 없어!" 프라츠가 잘린 양판에서 뻗어나온 날카로운 뼈를 쉴 새 없이 휘두르며 외쳤다. 통징이 있다면 절대 제정신으로 할 수 없는 행동이다. 테이는 첫 번째 받은 공격으로 허벅지에 깊은 상처를 얻어서 프라츠의 공격을 전부 피훌 수가 없었다. 그래도 간신히 치명상은 피하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통증이 없다면 테이가 아무리 상처를 입혀도 소용이 없다. 팔을 잘라도 다리를 잘라도 뼈가 계속 자라서 프라츠를 지탱해줄 것이다. 프라츠를 멈출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뿐이었다. "이 멍청아!!" 테이는 거의 울부짖는 외침을 내뱉으며 검을 휘둘렀다. 비록 뼈가 무기가 된다고는 하지만 마법이 걸린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테이의 마법검에 프라츠의 뼈는 너무나 간단하게 잘렸다. 그리고 뼈를 자른 마법검은 프라츠의 가슴을 깊숙이 베었다. 프라츠를 멈추는 방법은 딱 하나. 바로 그의 죽음이었다. "드래곤이여. 소용없다. 어차피 이제 지상은 멸망한다. 날 버린 세상이 멸망하는... 쿨럭쿨럭! 멸망하는 모습을... 볼 수 없는 것이......" 프라츠는 피를 토하며 바닥에 쓰러졌다. 테이는 죽어가는 프라츠에게 조용히 말했다. "세상이 널 버린 것이 아니다. 네가 세상을 버린 거야." "웃...기...는...소...리." 죽어가면서도 프라츠는 힘겹게 말을 내뱉었다. 테이는 분한 마음에 눈물을 흘리며 프라츠를 향해 말했다. "내 옛날 동료 중에도 부적격자가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세사을 원망하지 않았어! 언제나 즐겁게 살려고 노력했어. 아무리 힘들고 배척을 당해도 그녀는 결코 원망하지 않았다. 자신의 모자람을 탓하며 정말 있는 힘껏 살려고 노력했던 여자야." "그...여...자...는...어...떻...게...됐...나?" "그런 그녀의 삶을 사랑하는 남자를 만났지. 그리고 행복을 손에 넣었어. 그녀 자신의 힘으로." "훗. 운...이...좋...은...여....자군." "아니. 그건 운 따위 가이냐. 열심히 산 그녀에게 당연히 얻어진 행복이야!" "그...게....운....이...라...는...거...다." 프라츠는 끝까지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은 채 숨을 거뒀다. "젠장! 네 마음대로 죽지 마! 아직 내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어! 너는 노력이라도 해봤어?! 아무도 원망하지 않고, 운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열심히 살려고 노력해본 적이나 있냐고!!" 프라츠는 이미 죽었지만 그 시신에게라도 소리 지르지 않고는 견딜 수 가 없었다. "젠장! 시파크나 놈! 어째서 그놈의 부활에는 항상 부적격자가 얽히는 거야?! 젠장! 젠장!!" 테이는 2000년 전 시파크나의 부활을 저지하기 위해서 자신을 혼돈의 신이라칭하던 카오스와 싸웠던 일이 생각났다. 그때도 부적격자였던 존재가 얽혀 있었다. 테이는 봉인의 문 쪽으로 걸어가며 회복마법을 걸었다. "시파크나! 오늘이야말로 이 악연을 끊어버리겠다! 절대로!!" 테이는 누구를 위해서 흘리는지 알 수 없는 눈물을 끊임없이 흘리면서 악연을 끊어버리기 위해 전진했다. 47화 세상이 버린 남자(3) 베스크는 이를 갈며 주위를 쉴 새 엇이 둘러보았다. 티아의 부름에 응답하여 엘리멘탈 소드에서 나온 여섯 정령왕들은 마법진 주위를 포위하듯이 둘러싸고 있었다. "뭘 할 생각이냐?" "봉인할 거다." 베스크의 성난 외침에 티아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한마디로 받아쳤다. "뭐, 뭐라고?" 베스크가 황당한 표정을 짓자 티아는 아까 전에 놀림을 당했던 복수를 한 것 같아서 속이 시원해졌다. "시파크나님이라며, 그렇게 그놈이 좋거든 같이 봉인해줄 테니 사이좋게 지내봐." "크윽! 그런 일이 가능할 리가 없어!" "미안하지만 가능해. 봉인이 불안정하게 풀린 지금이라면 너하나 포함해서 다시 봉인하는 것은 나에게 일도 아니야." "젠장!" 베스크는 단검을 티아에게로 던졌다. 하지만 단건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무언가에 부딪친 듯 땅으로 떨어졌다. "소용없어. 이미 정령왕들의 결계가 작동했거든. 이제 남은 것은 내 마력으로 다시 봉인을 하는 것뿐이야. 당신이 진 거야." "내가 진다고?" 분노한 베스크의 빨간 눈이 불꽃이 타오르듯이 더욱 붉어졌다. "누나!" 그때 티아를 부르며 테이가 달려왔다. 테이는 정령왕들을 보고는 입을 떡하니 벌렸다. "뭐 하는 거야?! 지금 봉인할 생각이야?! 마법진 위에 봉인을 했다가 충격파가 발생하면 어쩌려고? 그냥 그대로 다 맞을 작정이야?" "어쩔 수 없었어. 저녀석이 방해를 하는 바람에 느긋하게 마법진을 지우고 봉인할 수가 없었단 말이야." 테이는 티아가 가리키는 베스크를 흘긋 쳐다보았다. 추악한 외모. 아마도 부적격자 중에서도 최악의 불행을 타고 태어난 듯 했다. 그런데 지금 테이를 어이없게 만드는 것은 베스크는 정령왕들의 한가운데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시파크나와 같이 봉인될 처지에 놓여 있었다. "쟤는 왜 저기에 있는데?" 테이는 뭊지 않아도 상황을 알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묻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응. 같이 봉인하려고." 테이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안 봐도 뻔했다. 티아는 무식한 힘의 마력을 가진 반면 일 대 일 육탄전에는 도통 재능이 없었다-다만 이상하게 테이를 때릴 때만은 펄펄 날아다닌다-. 아마도 베스크와의 싸움 중에 불리하게 되자 그냥 속 편하게 무식하게 밀어붙이는 방법을 채택한 것이리라. "...봉인하는 거 잠시만 기다려줘." "왜? 충격파가 위험하긴 하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충격은 감소시킬 수 있어." "아니, 저 자와 이야기를 해보려고." "뭐 하러? 저녀석 완전히 제정신이 박혀 있는데도 지상을 멸망시키려는 시파크나를 풀어주려고 했다고! 에? 가만! 이야기를 한다고? 테이 너 저녀석이 의식을 지배당하지 않았다는 거 알고 있었어?" "응. 아까 나와 싸웠던 녀석도 의식을 지배당하지 않았거든. 이녀석들은 부적격자야." "에? 에?! 부적격자?!" 티아도 부적격자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확실히 베스크의 생김새는 추악한 편에 속했지만 그래도 인간 같은 얼굴이었기 때문에 설마 부적격자였다고는 생각 못했던 것이다. 테이는 티아에게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다시 한번 부탁했다. "으응. 그렇다면야, 뭐. 근데, 설득할 자신 있어?" 티아는 베스크가 듣지 못하도록 테이의 귀에 속삭이며 물었다. "몰라. 솔직히 아까 나랑 싸운 녀석도 끝까지 성격이 꼬인 채 죽었거든. 그래도 이대로 그냥 봉인시켜서 죽이기는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리고 일이 잘되면, 부탁인데......" 테이가 부탁이 뭔지 말 못하고 머뭇거리자 티아는 알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응. 리스라시르님의 힘을 써줄게." "미안. 그리고 고마워." "그 말은 잘 해결하고 나서 해." "응." 테이는 베스크의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티아가 쳐 놓은 정령왕의 결계 앞에 서서 베스크를 쳐다봤다.. "당신이 부적격자라는 것은 들었다." "흥. 그래서 뭐가 어떻다고? 동정아라도 해줄 셈인가? 위대하신 존재의 동정을 받을 수 있다니 감개무량하구만." 테이는 본격적인 대화를 하기도 전에 골치가 아파오는 것 같았다. 베스크도 아까 상대했던 프라츠처럼 성격이 꼬여도 단단히 꼬여 있었다. "나는 오래 살면서 당신 같은 부적격자를 여러 명 봤어. 그 중 동료로서 같이 행동했던 자도 있었지. 당신은 부적격자 중에서도 최악이라 할 수 있는 외모의 불행을 갖고 태어난 자.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는 굳이 안 들어도 알 것 같아. 하지만 난 동정은 하지 않아. 그리고 당신의 입장이 돼본 적이 없으니 당신의 아픔을 이해할 수도 없어.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알고 있어. 지금 당신히 하려고 하는 일은 잘못된 일이야." 잠자코 테이의 말을 듣던 베스크는 코웃음을 쳤다. "흥. 뭐라고 말하나 조금 기대를 했더니만 결국 편안하게 살아온 도련님의 탁상공론인가? 그 따위 말은 지겹게 들었어. 하지만 난 잘못했다고 생각 안 해. 세상은 미쳐 있어. 미쳐 있기 때문에 내가 태어난 거고. 그렇기 때문에 난 세상을 청소하기 위해서 시파크나님을 해방시키려고 하는 거야. 탁상공론 따위는 자라나는 새싹들 앞에서나 떠들어! 지금 이곳에서 필요한 이론은 내가 이기느냐. 너희가 이기느냐 이것뿐이야!" "아니야! 그까짓 흑백이론으로는 아무도 행복하지지 않아! 전부 불행해질 뿐이야! 너는 내가 편하게 살았다고 말했지?! 너야 말로 나에 대해서 뭘 알고 있지? 내가 살았던 2500년 동안 나 역시 수많은 아픔을 겪었어! 하지만 아픔이란 아무리 똑같은 아픔이라도 받아들이는 쪽에 따라 무게가 달라지는 거야! 네가 겪었다는 아픔은 내가 알고 있던 부적격자도 똑같이 겪었어! 하지만 그들은 지지 않았어! 너는 지금 자신에게 이겨낼 힘이 없는 것을 괜히 세상 탓으로만 돌리고 있는 것밖에 안돼!" "내가 약하다고?" 베스크는 입을 다문 채 잠자코 고개를 숙였다. 한참 동안 긴 침묵이 이어졌다. "마음을 바꿀 생각 없나?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다시 시작 할 수 있어." "다시 시작이라고?" "그래. 다시 시작할 수 있어." 테이는 진심이다. 진심으로 베스크와 프라츠를 도와주고 싶었다. 하지만...... "미안하군. 난 네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어." "무슨 말이라니? 그래. 지금 와서 다시 시작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고 있어. 하지만 난 널 돕고 싶다. 동정이 아니야. 시파크나 때문에 불행해지는 사람을 이제 더 이상 보기 싫어. 그렇기 때문에 돕고 싶은 거다." "크, 크크크큭, 크크크크." 베스크는 무언가 쥐어 짜내듯이 웃었다. 웃는다기보다는 마치 슬픔을 억지로 짜내 버리는 것 같았다. "이봐?" "미안하군. 도련님치고는 아주 멋진 설득이었다. 네가 드래곤만 아니었다면 난 마음을 돌렸을지도 몰라." "무, 무슨 뜻이지?" "난 태어날 때부터 지성을 가지고 있었다. 갓 태어난 아기가 지성을 가지고 있는 경우는 내가 아는 한은 이 세상에서 딱 하나의 종족뿐이지. 너도 잘 아는 종족이지?" 베스크의 말에 테이는 뒤통수를 얻어맞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잠자코 뒤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티아도 경악했다. 확실히 갓 태어난 아기가 지성을 갖고 태어나는 종족은 단 하나뿐이다. 그 종족의 이름은 드래곤. "그래, 맞아. 너희들이 생각하는 그 종족. 바로 너희와 같은 드래곤이지. 내 아버지는 누군지도 모르는 드래곤이었어. 내 어머니였던 작자가 그 남자랑 어떻게 만났는지 난 몰라. 드래곤은 절세의 미남으로 가벼운 마음으로 인간 세상에 와서 노는 경우가 많지 않나? 아마도 얼굴에 넘어갔겠지. 한 번뿐인 인연이지만 사랑했던 사람의 아기. 여자는 무척이나 기대를 하고 날 낳았겠지. 그런데 낳아놓고 보니 아기의 얼굴이 흉측하게 못생겼던 거야. 크크크크. 어머니라는 여자는 아주 발광을 하더군.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 내 아기가 아니야라고 절규하며 미친 듯이 울부짖던 그 표정." 베스크는 천천히 걸으면서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그 뒤 어떻게 됐을 것 같아? 그 여자는 어느 날 밤에 날 죽이려고 했어. 지성이 있는 나는 당연히 그걸 피했지. 태어난 지 일주일밖에 안 도니 아기가 걸어서 피하니까 아예 악마라고 소리치며 덤벼들더군. 난 살고 싶었어. 그래서 나도 모르게 손에 잡힌 가위를 던졌어. 그런데 무의식중에 던진 그 가위가 그 여자의 목에 꽂혀버린 거야. 난 뭘 던지는 데 재능이 있었나봐. 한 방에 죽여 버린 거지. 그리고 그 뒤는 말할 것도 없지. 비록 지성은 있어도 갓난아기가 혼자 살아가기에는 세상은 너무나 잔인했어. 더구나 아버지라는 쪽이 드래곤이라서 그런지 오래도 살더군. 난 벌써 150년을 살았어. 하지만 더 살겠지?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 이 저주받은 죄를 짊어지고 말이야." "이봐. 잠깐만!" "내 말은 아직 안 끝났어!" "큭" 베스크의 사나운 기세에 테이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베스크는 테이가 입을 다물자 유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크크크. 도련님께서는 부적격자들을 많이 봐왔다고 했지? 그럼 혹시 나 같은 부적격자도 있었던가? 태어난 지 일주일도 안 돼서 친어머니를 죽인 부적격자를 말이야." "......" 테이는 대답할 수 없었다. 아무리 드래곤의 피를 이은 부적격자라고는 하지만 태어나면서 지성을 가진 아기라는 것도 처음 듣는 이야기다. 하물며 태어난 지 얼마 안 돼서 친엄마를 죽인사례는 더욱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래, 본 적이 없겠지. 내가 생각해도 나는 특이한 놈이야. 이런 저주받4은 삶을 얻은 부적격자는 또 없을 거야." "잠깐만 기다려! 하지만!" "이제 됐어. 도련님. 아까 내가 말했지? 지금 여기서는 흑 아니면 백이야. 그리고 이왕 질 싸움이라면 난 끝까지 흑으로서 너희들을 방해하겠다. 그것이 내 의지다." "뭐라고?" "테이야! 저녀석 재물을 바치는 곳에 서 있어!" 티아의 외침대로 베스크는 어느새 마법진에서 재물을 바치는 자리에 서 있었다. 이미 많은 재물의 피가 굳어서 거무튀튀해진 바닥에 선 베스크는 단검을 손에 들었다. "너 뭘 할 생각이야?!" 테이가 악을 쓰며 외치자 베스크는 웃으면서 말했다. "말했잖아. 난 흑으로서 너희들을 끝까지 방해하겠다고. 남은 제물은 어린애 한 명이다. 그런데 말이야. 아까 내가 오래 살았다고 했지?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인간으로서 오래 산 거야. 하지만 너희들 드래곤 쪽에서 보면 난 어떻지? 아직 어린아이 수준이겠지?"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그만둬!!" "말했잖아. 난 인간으로서 너무 오래 살았어. 지금도 밤이면 항상 그 여자가 꿈에 나와. 목에서 피를 흘리며 죽던 마지막 모습으로 '왜 너는 아직 살아 있는 거냐?'라고 묻더군. 그래, 이제 슬슬 끝내고 싶어. 그리고 이왕 끝낼 거면 적어도 도련님과 결판을 내고 싶어. 이건 내 목숨으로 세계가 멸망하는지 안 하는지에 대한 내기야." "테이야. 뒤로 물러나! 더 이상은 안 돼! 지금 봉인을 해야 돼!" "하, 하지만... 이봐, 부탁이니 제발 멈춰! 목숨을 함부로 버리지 말란 말이야!!" "내 목숨은 내 거야. 내 걸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 것뿐이야. 도련님한테 하지 말라는 소리 들을 이유는 없어. 그리고 내 이름은 '이봐'가 아니라 베스크다. 이 도박에서 내가 지고 도련님이 이겨서 살아남는다면 기억해달라고." 말이 끝나자 마자 베스크는 단검으로 자신의 심장을 아주 힘껏 찔렀다. 순간 극심한 고통이 느껴졌지만 그것은 한순간이었다. 곧 베스크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아쉬운 것이 두 가지 있군. 저 도련님의 이름을 안 물어봤다는 것과 내기의 결말을 내 눈으로 지켜보지 못한다는 것. 하지만 도련님. 네가 했던 말 중에서 한 가지는 맞았어. 난 겁쟁이야. 죽을 용기는 있어도 다시 시작할 용기가 없는 겁쟁이야." 베스크는 죽으면서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테이는 듣지 못했다. 베스크가 흘린 피가 바닥으로 떨어지자 탁한 붉은 빛이 마법진 전체에서 뿜어져 나왔다. "이, 이런! 봉인이 풀린다?! 테이야, 어서 피해! 봉인을 걸게! 아직은 늦지 않았을 거야!" 티아의 필사적인 외침에도 테이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움직이지 못했다. 반드시 구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짐심이 전해지지 않은 것이다. "크흑." 테이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테이야! 부탁이니 어서 피해! 봉인을 다시 걸 때 나오는 충격파는 위험하단 말이야!" 추역ㄱ파라는 소리에 테이는 바로 정신을 차렸다. 지금은 주저 앉아 있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에 테이는 빠르게 움직였다. 하지만 도망치기 위해 움직인 것이 아니다. "너 뭐하는 거야?! " 테이는 티아 곁에 서서 마력을 있는 힘껏 끌어 모아서 방어벽을 쳤다. "봉인을 걸 때 누나는 거의 무방비야. 누나 마력보다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을걸." "봉인을 건 다음에 방어벽을 치면 돼!" "그럼 그냥 얼른 봉인을 해! 그렇게 할 거라면 내가 옆에 있어도 별 상관 없잖아." "그. 그래도!" ":만약을 위해서야. 턱없이 약한 마력이라도 혼자 막는 것보다는 도움이 될 거야! 어차피 전부를 지키고 도와줄 수 없다면, 적어도 내 힘닿는 곳에 있는 소중한 사람을 지키는 데 전력을 다할 거야!" 티아는 가슴 한 구석이 찡하니 아려왔다. 테이가 말하는 소중한 사람이란 티아를 지칭하는 말이다. 테이와 마음이 이어진 티아는 테이의 따뜻한 진심을 너무나 잘 느낄 수가 있었다. "응. 그럼 부탁할게." "그래. 오크 뜯어 먹던 힘까지 다할 테니 걱정 말고 봉인해!" "응!" 티아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마력을 집중했다. 티아의 마력에 반응해서 정령왕들이 각자 힘을 발휘할 때 바닥이 크게 흔들렸다. "크윽?!" 테이는 다리에 힘을 줘서 균형을 유지하는 한편 균형을 잃고 넘어지려는 티아의 허리를 안았다. 마법진은 미친 듯이 탁한 붉은빛을 내 뿜으며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그리고 마법진 위에 쓰러져 있던 베스크의 시체는 무너지는 바닥과 함께 탁한 붉은 빛을 내뿜는 지하로 떨어졌다. "느, 늦었나? 바닥이 무너진다는 것은...?" 테이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면서 그 다음 말도 같이 삼켰다. "아니야! 아직은 아니야!" 티아는 몸의 균형을 잃으면서 흐트러진 마력을 다시 모으며 외쳤다. 아직은 괜찮다. 아직은 시간이 있다. 티아는 자기 자신에게 암시를 걸면서 필사적으로 마력을 끌어 모았다. "세계를 유지하는 여섯 정령왕이여! 창조신의 딸 카이저 드래곤 티아루아의 이름을 걸고 당신들에게 명하노니! 부정한 자를 막는 방패가 되고, 부정한 자를 깊은 어둠의 나락에 잠들게 하라!" 티아의 명령에 여섯 정령왕들이 자신들의 힘을 한계까지 끌어 모았다. 그리고 드디어 마지막 단계. 티아가 계약한 생명의 정령왕 리스라시르를 불러서 마지막 봉인을 하면 시파크나는 다시 영원한 어둠 속으로 떨어지게 된다. "키이이익!" "위험해!" 티아가 리스라시르르 부르려고 하는 순간 테이는 티아를 감싸안고 옆으로 굴렀다. 아까 통로를 막은 정령의 결계가 깨지고 이형의 몬스터가 봉인의 방으로 쳐들어온 것이다. "크윽!" "테, 테이야!" 이형의 몬스터의 공격에서 티아를 감싼 테이는 어깨에 깊은 상처를 얻었다. "난 괜찮으니 어서 봉인을!" 테이는 아픔을 참으며 검을 빼들고 외쳤다. "하지만 그 상처...!" 크크크 긴 세월이었다.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역겨움이 느껴지는 소리가 방 안에 울려 펴졌다. 테이와 티아는 소리의 진원지로 고개를 돌렸다. 소리가 들려온 것은 마법진이 그려져 있던 곳. 지금은 바닥이 무너지고 뚫린 터널로 막 커다란 붉은 얼굴을 가진 마신이 나오고 있었다. 크크크 지상에 올라온 것이 얼마 만인가? 기억도 나지 않는 아득한 세월. 드디어 이 저주스런 봉인이 불렸구나. 이제 겨우 시파크나의 얼굴 일부분만이 나왔을 뿐이지만 커다란 구멍이 가득 메워졌다. 시파크나는 눈동자가 없는 탁한 붉은 눈으로 티아와 테이를 노려보았다. 저주스런 코크마 놈의 자식인가? 그래. 확실히 기억나는군. 예전에 부활할 뻔했던 나를 다시 어둠 속으로 밀어 넣었던 너. 티아루아라는 이름이었지? 잊을 수 없는 이름이다. 겨우 봉인이 풀렸다고 생각했는데 네놈 때문에 난 어두운 지하에 갇혔지. 그 긴 시간 동안 너를 생각할 때마다 화가 났고, 분노했다. 그때의 내 분노, 너에게 똑똑히 보여주마. 지금당장! 시파크나의 머리가 점점 구멍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동시에 지면은 갈라지고, 구멍은 커졌다. "누나! 망설이지 마! 어서 지금이라도 봉인을! 아직 늦지 않았어!!" 테이는 티아를 공격하려는 몬스터들의 공격을 필사적으로 저지하며 소리쳤다. 티아는 눈을 질끈 감으며 리스라시르를 불렀다. 모든 생명을 관장하는 생명의 정령왕 리스라시르가 티아의 부름에 응답해서 나타났다. 은색의 생명의 빛이 주위에 퍼지면서 티아는 있는 힘껏 소리치며 리스라시르의 힘을 사용했다. "나와 계약한 생명의 힘이여! 지금 여기서 계약에 따라 힘을 빌리노라! 나 티아루아의 이름을 걸고!" 티아의 명에 따라 리스라시르는 2000년 전 시파크나를 봉인했던 힘을 사용했다. 그리고 눈부신 빛과 함께 엄청난 충격을 느끼며 테이는 기절했다. 죽음이란 어떤 것일까? 드래곤과는 달리 수명이 짧은 인간과 함께 다니면서 인간 동료의 죽음을 맞이할 때마다 테이는 생각했다. 2000년 전 테이는 한 번 죽음을 경험했다. 모든 것이 추락하는 듯한 느낌. 모든 것을 잃는 듯한 고통. 그러나 테이는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을 받으며 살아났다. 테이를 살리기 위해서 티아는 카이저 드래곤으로 각성하고 생명의 정령왕 리스라시르의 힘을 사용해서 동생을 살렸다. 테이는 그때 느꼈던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을 받으며 눈을 떴다. "일어났구나." 테이의 눈앞에 상처아ㅗ 그을음으로 만신창이가 된 티아의 얼굴이 보였다. "누나?" "응." "또 리스라시르님의 힘을 사용해서 날 살린거야?" "바보. 그 힘을 그렇게 자주 사용하면 악용하는 게 되게. 처음부터 넌 죽지도 않았어." 티아의 말에 테이는 안심한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그렇구나. 나 어떻게든 살았구나. 그 폭발에서 용케......" 거기까지 말하던 테이는 눈을 번쩍 뜨고 몸을 일으켰다. "아야야야!" "앗! 아직 일어나면 안 돼! 회복이 덜 됐단 말이야." 티아가 말하지 않더라도 테이는 온몸이 찢어지는 것 같은 고통에 다시 누울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일어나서 보니 테이는 방금 전까지 티아의 무플을 베고 누워 있었다. 아까의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의 정체는 바로 티아의 체온이었다. 테이는 다시 티아의 무릎을 베고 눕는 것도 쑥수럽고, 무엇보다 지금 알아야 할 것이 있기 때문에 다시 눕지를 않았다. "시파크나는?!" 테이의 질문에 티아는 슬픈 눈으로 고개를 저었다. "무슨 뜻이야?! 봉인 못한 거야?!" 테이가 다그치듯이 묻자 티아는 대답 대신에 손으로 어느 방향을 가리켰다. 티아가 가리킨 방향에는 커다란 육망성이 허공에 그려져 있었다. 그것은 정령왕들의 힘으로 쳐진 결계였다. 테이는 더 이상 듣지 않아도 상황을 알 것 같았다. 봉인은 실패했고, 정령왕의 결계는 시간 벌이용으로 쳐둔 것이라는 것을....... "젠장!" 테이는 사막의 모래를 움켜쥐며 분해했다. 내기는 베스크가 이겼다. 시파크나는 부활한 것이다. 티아는 테이의 어깨에 손을 얹고 회복마법을 쓰면서 조용히 말했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 "응?" "봉인은 완벽하게 풀린게 아니야. 베스크라는 자의 피는 제물로서 부족했던 것 같아. 확실히 시파크나는 풀려났지만 정령왕들의 결계로 시간을 벌 수 있다는 것은 힘이 완전히 돌아온 것은 아니란 뜻이야. 힘이 완전히 돌아온 시파크나라면 저런 결계는 시간 벌이용도 안 돼." "그렇다는 말은?" "반격의 기회는 있어." 티아는 눈을 빛내며 자신감이 가득 담긴 말을 했다. 단 한 마디의 말이었지만 테이는 어쩐지 안심이 되는 것 같았다. 테이도 마음을 강하게 먹었다. 곧 다가올 반격의 기회를 위해. 48화 슬픈 반격의 기회 (1) -티아랑 테이 바보같네요 -_-+++ 말할시간있으면 봉인이나 하지... 바보들.. -STSEED "데스타 제국의 슬링커 황제 폐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아그라느는 긴장한 표정으로 비공정에서 내려오는 손님들을 맞았다. 데스타 제국은 과거 조상님들이 국가의 사활을 걸고 싸웠던 적이 있기도 한 나라다. 하지만 꼭 그것이 아니더라도 데스타 제국은 군사력에서 뚤째가라면 서러워할 군사국가이다. 그런 나라의 황제를 맞이하러 나온 것이니 아그라느는 온몸으로 긴장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비곤정에서 먼저 내린 기사들이 양쪽으로 쭉 늘어섰고, 잠시 후 고급 재단의 실크 망토와 약식 왕관을 쓴 실링커 황제가 비공정에서 내렸다. 올해 나이 서른 살의 젊은 황제 슬링커는 갈색 머리를 올백으로 넘긴, 나이에 비해 조금 젊어 보이는 남자였다. "슬링커 황제 폐하, 어서 오십시오. 먼 길을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든 진짜 나이가 어리든 그것은 별 상관 없었다. 아그라느는 이 대단한 손님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도록 조심하며 정중히 인사했다. "훗. 그분의 호출이니 설령 이 세상 끝으로 오라고 해도 얼른 달여와야죠. 이렇게까지 신경 쓰시지 않아도 됩니다." 슬링커 황태자는 소문대로 소탈한 성격이었다. 첫인산은 딱딱했지만 저렇게 소탈하게 웃으며 농담을 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아그라느는 긴장이 약간 풀리는 것 같았다. "그런데 제가 제일 늦은 거 아닌가요? 제일 먼 거리라 최대한 서둘러서 출발하긴 했지만 다른 나라 국왕들은 이미 와 있겠죠?" "아, 네. 하지만 걱정 마십시오. 다른 분들도 다들 조금 전에 도착하셨습니다. "호오. 그렇다면 안심이군요. 제각 늦어서 그분의 아름다운 얼굴에 주름이라도 생기지 않을까 걱정했거든요." 슬링커가 말하는 그분이란 당연하다시피 티아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슬링커님께서는 신룡님을 직접 만나신 적이 있으시죠." "물론이죠. 내가 막 황제에 죽위할 때 직접 가서 축복을 부탁드린 적이 있습니다." 물론 아그라느도 잘 알고 있었다. 비록 티아가 신룡이라는 지상 최고의 위대한 생명이라 칭송받긴 하지만 데스타 제국의 황제인 자가 직접 타국의 수호신에게 축북을 받으러 갔다는 일화는 유명한 이야기다. 물론 신룡이라는 존재의 이름은 그만큼의 값어치를 한다. 하지만 타국의 수호신에게 축복을 부탁했다는 것으느 그 나라ㅏ에 고개를 숙이는 것이나 마찬가지 일이다. 슬링커는 인간 사회에서 최고의 군사력을 가진 강대국 황제로서 감히 상상도 못할 행동을 해버린 것이다. 덕분에 슬링커는 한동안 괴짜 황제로 통했다. 아니, 지금도 괴짜였다. "아아. 그분의 아름다움과 상냥한 목소리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그라느는 순간 휘청거렸다. "아, 아, 아름다움이라고요? 그리고 상냥함?!" "왜 그러시죠? 제가 틀린 말을 했습니까?" "아뇨. 확실히 신룡님이 아름답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호, 혹시 슬링커님은 신룡님을......" 아그라느는 차마 물을 수가 없었다. 좋아하고 있으시냐는 그 질문을...... 다행인지 불행인지 슬링커는 아그라느의 마음을 알아차린 것 같았다. "네, 전 그분을 깊이 사모하고 있습니다." 순간 아그라느와 오리하곤 왕국 사람들은 얼어버렸다. "하, 하, 하지만 신룡님은 그, 저... 인간과는 다른 존재로......" 간신히 제정신을 차린 아그라느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입장으로서 타국의 황제 앞에서 예의가 없는 행동이지만 슬링키는 이해한다는 얼굴로 말했다. "하하하. 제 말에 충격 받으셨군요. 이해합니다. 하지만 제가 말하는 사모란 인간을 사랑하는 감정과는 다릅니다. 뭐라고 할까요. 절대로 손이 닿지 않는 절벽에 핀 한 송이 가련한 꽃을 사모하는 마음이라고나 할까요. 아름답고 향기롭지만 온갖 비바람에도 지지 않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티아루아님은 절벽위의 아름다운 꽃인 겁니다." 마치 시를 낭독하는 듯한 목소리로 티아를 찬양하는 슬링커를 보며 아그라느는 가슴속 깊숙한 곳에서 치솟아 오르는 말을 간신히 참았다. 아그라느는 슬링커가 절벽 위의 가련한 꽃이라고 칭하는 자의 본성(?)을 바로 옆에서 지켜봤던 사람이다. 만약 티아라의 눈물 섞인 간곡한 부탁이 없었다면 아그라느는 참지 못하고, 다 불어버렸을지도 몰랐다. 아그라느의 처절한 마음도 모르는 채 슬링커는 티아를 만난다는 사실에 마냥 기쁜 표정을 지으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오리하곤 왕국 회의실 옆의 작은 방. 그곳에는 테이가 뚱한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다른 나라에서 속속들이 도착하는 인간들이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심기가 불편한 것은 아니다. 첫째로 지금 테이가 잆고 있는 옷이다. 새하얀 정장에 금색 실로 자수를 놓은 굉장히 휘황찬란한 옷을 입고 있었다. 그것은 티아가 권한 옷이다. 드래곤의 대표로서 각국의 왕과 만나는 자리이게에 티아는 옷차림에 신경을 써야 된다며 강제로 이 옷을 입혔다. 어릴 적에는 어머니 세이르아가 입혀주는 휘황찬란한 옷이 그리 싫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멋진 옷보다는 활동성 중시의 옷을 많이 입다보니 지금 이런 멋지기만 한 옷은 굉장히 불편했다. "무슨 불만이 그렇게 많은 거야?" 그리고 테이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두 번째가 옆에 서며 물었다. 아름답다. 이 한 마디 외에는 지금 티아의 모습을 함축시켜 한번에 설명할 수 있는 단어는 없을 것이다. 좀더 자세히 묘사를 하자면... 머리색과 같은 은빛에, 테이와 똑같이 금색 실로 자수를 놓은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치마는 풍성하고 앞에는 새하얀 레이스가 계단 형식으로 곱게 장식되어 있었다. 가느다란 허리에는 금색의 허리때를 뎄는데 왼쪽 허리에서 리본 형태로 묶어서 다소 귀엽다는 느낌도 들었다. 하지만 봉긋 솟은 가슴과 그 부근을 살짝 드러내주는 약간 파인 부분이 천박스럽지 않을 정도의 섹시함을 강조해주고 있다. 긴 은발은 말아 올려서 옅은 초록색의 리본으로 묶여 잇었다. 노출된 새하얀 목덜미를 리본의 남은 끈이 살짝 가려주니 이 역시 은은한 섹시함을 과시하고 있었다. 목에는 금색의 가느다란 목걸이를 하고 있었고, 거기에는 화려한 보석이 아닌 수수한 비취색 동그란 보석이 달려 있다. 귀걸이도 요란하게 큰 것이 아닌 목걸이와 똑같은 크기의 보석을 사용했다. 얼굴에는 옅은 화장을 하고 있었고, 핑크색 입술연지를 살짝 바른 모습이 결혼식 전 새 신부 같은 순결한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청순함과 섹시함이 적절하게 조화된 아름다운 모습이다. 이상이 현재 티아의 모습에 대한 간단한(?) 묘사다. 여하튼 그렇게 아름답고 여성다운 매력을 한껏 과시하는 티아가 옆에 서자 테이는 자연스레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오, 옷이 불편해서 그래." "옷만 불편해?" 무슨 뜻으로 물은 것일까? 테이는 무슨 뜻으로 물었는지 대충 짐작은 했지만 애써 모른 척했다. 하지만 여기서 그냥 모른 척 넘어가 주면 티아가 아니다. "테이야." "왜?" "등 지퍼가 내려갔어. 좀 올려줘." 티아는 그렇게 말하며 돌아섰다. 덕분에, 얼떨결에 티아의 새하얀 등을 본 테이의 얼굴이 화악하고 붉어졌다. "으응~ 얼른 지퍼좀 올려줘. 이대로는 창피하단 말이야~." 티아는일부러 코맹맹이 소리로 말했다. 이건 절대로 일부러 하는 행동이다. '아, 악마!' "저, 정령을 불러서 해달라고 해!" 테이는 빽 소리를 지르며 창밖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옆에서 작게'쳇'하는 소리가 나면서 지퍼 올리는 소리가 들렸다. 테이는 순간 아깝다고 생각해버린 스스로에게 놀랐다. "자, 그럼... 왜 그렇게 불편해하는 거야? 이런 옷 제법 많이 업어봤잖아." 지퍼를 손수 올린 티아가 다시 테이에게 물었다. "그거야 2000년 전 이야기지. 이제 이런 옷은 영 불편해서 답답하단 말이야." 테이는 목에 맨 실크 스카프를 만지작거리며 퉁명스레 말했다. "흠. 그래도 좀 참아봐. 난 너보다 심하면 심했지 결코 덜한 복장이 아닌걸. 그래도 잘 참고 있잖아." 티아는 참고 있다기보다는 확실하게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테이는 반론을 펼칠 생각은 없었다. 괜히 반론을 펼쳤다가 본전도 못 찾은 경험은 이미 한두 번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을 옛날에 넘기고 있었다. "이런 점은 정말 귀찮다니까. 어째서 인간들은 편해야 될 옷차림에까지 형식에 구애받는 건지." 대신 옷에 불평을 하며 투덜거렸다. '얼굴을 새빨개져서 애써 딴말 하기는......' 티아는 테이가 눈치 채지 못하게 작은 소리로 쿡쿡거리며 웃었다. 그때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티아루아님." 문을 두드린 사람은 아그라느였다. "응?" 티아루아님, 데스타 제국의 황제이신 슬링커 느아르 세리단테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알았어. 금방 나갈게." "아니. 저 그것이... 슬링커 황제께서 회의 전에 티아루아님을 뵙고 싶다고 하십니다." 아그라느는 조금 주저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알았어. 만나볼게." 티아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문밖에 서 있는 아그라느가 굉장히 걱정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는 것을 방에 있는 티아와 아그라느의 뒤편에 서 있는 슬링커는 알지 못했다. 허락이 떨어지자 슬링커는 손수 방문을 열고 성큼성큼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감탄사를 뱉었다. "오오오오오오!" 아니, 감탄사라기보다는 발정 난 늑대 울음소리를 연상시켰다. 순간 테이는 어쩐지 방 안으로 들어온 인간 남자에게 적개심이 들었다. "오랜만이군. 데스타 제국의 슬링커 황제여." 티아는 방금 전 슬잉커의 감탄사(?)를 못 들은 척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슬링커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는 인간?" 테이가 티아에게만 들릴 정도로 살짝 물었다. "예전에 한 번 나를 찾아온 적이 있어. 좀 괴짜라고나 할까." "어쩐지 금방 납즉이 되는데." 티아가 괴짜라 칭한 슬링커는 어느새 티아의 앞으로 다가가서 한쪽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여전히 여신의 아름다움을 방불케 하시는 군요. 아니, 티아루아님이야말로 그리노 대륙의 여신이십니다. 오늘은 특히 아름다움에 더욱더 빛이 나는 것 같습니다. 똑바로 쳐다보고 있다가는 눈이 멀지나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입니다." 테이는 순간 욕지거리가 나오는 것을 꾹 참았다. 반면 티아는 기쁜 듯한 미소릴 살짝 지으며 볼에 홍조를 띠었다. 물론 이것은 서비스(어떤?) 차원에서 해준 것이다. 티아의 투철한 서비스 정신을 알 리 없는 실링커는 그녀의 기쁜 표정ㅇㄹ 어떤 식으로 해석했는지 다짜고짜 티아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아름다우신 그리노 대륙의 여신이시여. 이렇게 건강한 모습을 다시 뵙게 돼서 소인 정말로 기쁩니다. 저는 그날 이후로 티아루아님이라는 여신을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사정은 대충 들었지만 티아루아님이 겪었을 아픔과 고통을 소인은 도저히 상상할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고통을 나눌 수가 있다면 그 어떠한 고통이라도 제가 대신 짊어지고 싶습니다." "그럴 필요는 없다. 내가 겪은 고통은 인간에게는 너무나 큰 것. 인간이 짊어질 수 있을 정도로 만만한 고통이 아니다." "아아, 어째서 신은 저를 가녀린 여신이 겪는 고통조차 덜어줄 수 없는 남자로 만들었는지 원망스럽기만 합니다." 테이는 보는 눈만 없다면 벽을 박박 긁어대고 싶었다. 아그라느도 비슷한 심정인지 표정이 편하지 않았다. 오직 티아만이 슬링커의 장단을 적절하게 맞춰주고 있었다. "티아루아님의 고통을 전부 짊어질 수 없다면 제가 짊어질 수 있는 만큼의 고통이라도 가져가고 싶습니다. 하지마 어떻게 가져갈 수 있는지 소인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문제로군요. 만약 이 입맞춤으로 여신의 고통을 나눠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슬링커는 그렇게 말하며 티아의 손에 입을 맞추려고 했다. 테이는 더 참을 수 없었다. "헉!" 슬링커는 자신의 목에 와 닿은 싸늘한 감촉을 느끼고는 얼른 뒤로 물러났다. 슬링커가 느낀 싸늘한 감촉은 테이가 검으로 슬링커의 목을 겨눴기 때문이었다. 슬링커가 재빨리 뒤로 물러나자, 황제 직속 호위기사들이 검을 배들고 황제의 앞을 막아섰다. 사태는 갑자기 험악한 방향으로 흘렀다. "당신은?" 슬링커는 싸늘한 검의 감촉에 순간 놀랐지만 금방 평정을 되찾고 기사들을 물리면서 테이의 정체를 물었다. 사실 물을 것도 없었다. 티아와 너무나도 닮은 얼굴. "그는 내 동생 테이루아. 나와 같은 카이저의 칭호를 받은 드래곤은 아니지만 어쟀든 지상 최강의 생명체인 드래곤이다." '어쨌든은 빼줘!' 테이의 마음의 외침이 들렸지만 티아는 무시했다. "호오." 슬링커는 티아를 향한 것과는 다른 감탄사를 내뱉었다. 테이는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이거 실례했습니다. 하마터면 여신님의 동생 분 앞에서 추대를 부릴 뻔했군요. 그런데 동생 분이라고는 하지만 굉장히 닮으셨군요. 다른 여신의 질투로 남자로 태어난 것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슬링커는 굉징히 뱅뱅 돌려서 말한 것인데 직역하면 '여자였다면 좋았을 텐데'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뭐, 뭐라고?!" 여자 취급당하는 것을 정말 싫어하는 테이에게 방금 실링커의 말은 찬사가 아니라 욕이다. 티아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이대로 나두면 슬링커는 오늘 어디 몸 한 군데가 성하지 않게 박살이 날 것이다. "잠깐만 테이야." "누나! 말리지 마! 더 못 참아!" "아니, 네가 참을 필요 없어 내가 참게 만들어 줄 테니." "에?" 테이가 티아의 말뜻을 파악하기 전에 한 발 빠르게 주먹이 날아왔다. 티아가 펀치를 가볍게 날려버린 것이다. 보기에는 가벼운 편치지만 위력은 가볍이 않아서 테이는 벽을 뚫고 다른 방으로 날아가 버렸다. 아그라느는 그 순간 슬링커가 보여준 얼빠진 모습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슬링커의 여신(?) 티아는 우아하게 몸에 묻은 먼지를 털고는 손으로 입을 살짝 가리며 웃었다. "호호호. 작은 소동 때문에 옷이 흐트러졌구나.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갈테니 회의실에서 보자꾸나." 그렇게 말한 후 티아는 치맛자락을 살짝 들고 우아하게 걸어서 방을 나갔다. 문으로 나온 티아의 귀에 슬링커의 '나의 여신이! 나의 꿈이! 나의 희망이!'라는 절규가 들렸지만 무시했다. 48화 슬픈 반격의 기회(2) -흑... 또 손목이 아파오네요.... ㅠ.ㅠ -stseed 다이러스 제국의 황제 채트가드 필터 브라운 2세. 프론트 연합국 대표 세인트 국의 국왕 클라드 폰 레트라임 1세. 가이라가 왕국의 국왕 에드먼드 안토니 아그나스 4세. 오리하곤 왕국의 형제의 나라레이아스 왕국의 맥크리스탈 글레인2세. 오리하곤 왕국 대표 아그라느 드 케이스 공작. 그리고 현재 인간계 최고의 군사제국 데스타 제국의 황제 슬링커 느라으 세리단테 1세. 엘프들의 대표 하이엘프 에세르난. 드워프들의 대표 탈보드. 마족들의 왕국 이에소드의 마족의 왕 랜슬롯. 드래곤의 대표 카이저 드래곤 티아루아와 그의 동생 테이루아. 그리노 대륙의 인간족, 엘프족, 드워프족, 마족, 드래곤족의 모든 대표가 한자리에 모인 꿈같은 광경이 펼쳐졌 있었다. 아마도 이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는 것만으로도 역사에 길이 남겨질 대사건이다. 하지만 그런 대사건이 무색해질 만큼 이들이 모이게 된 사건의 규모는 너무나 컸다. "이것이 마신 시파크나가 부활하게 된 경위다." 티아는 슬라드 왕자와 관계된 이야기는 빼고, 베스크가 시파크나를 부활시키려고 한 의도와 그와 싸웠던 일, 그리고 실패해서 시파크나가 부활한 경위를 모인 이들에게 설명했다. 설명이 진행되는 동안은 침묵을 지키던 이들이 티아가 설명을 끝내자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현재 지상 최강의 생명이라 불리는 카이저 드래곤조차 어쩌지 못하는 마신이 부활했다니 어쩐지 거짓말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설명을 한 티아는 바로 그 최강의 생명체인 카이저 드래곤 본인이다. 믿기도 힘들고, 무시하기도 힘든 현실, 하지만 지금 현재 상황은 분명히 현실이다. 시파크나를 막지 못하면 이 지상은 멸망한다. "우리가 힘을 모으면 과연 시파크나를 죽일수 있습니까?" 카이라가 왕국의 왕이 걱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타아에게 물었다. 티아는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덕분에 회의실의 소란은 한층 더 심해졌다. "조용히!" 티아는 탁자를 손으로 두들겨 소란을 잠재우고 말했다. "나의 또 다른 아버지 찯ㅇ조신님조차 봉인을 시킨 것이 고작이었다. 나는 창조신님의 힘을 받은 딸이지만 시파크나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이것은 분명한 현실이야. 하지만 난 창조신님께서 하셨듯이 그를 봉인시킬 수는 있어. 물론 나 혼자의 힘으로는 무리이기 때문에 너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가 위해 이 자리에 모이게 한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마신입니다. 인간들과 이종족의 군사력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가이라가 왕이 여전히 근심이 가득한 말을 했다. 다른 이들도 가이라가 왕과 같은 심정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저 마신과 싸우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단 말인가? "이제부터 그것을 설명할 거야." 티아가 옆에 앉은 테이에게 눈짓을 하자, 테이는 허리에 찬 엘리멘탈 소드를 풀어서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아름다운 무늬가 새겨진 검집과, 검의 손잡이에는 신비한 빛을 띤 여섯 개의 구슬이 박힌 성검 엘리멘탈 소드. 이 검은 이미 인간 세계에서는 전설의 검으로 통했다. "이 검의 이름은 엘리멘탈 소드. 과거 창조신의 자식이자 나와 같은 여섯 카이저 드래곤님이 남기신 최고의 유산이다. 지금 부활한 시파크나는 이 검의 힘으로 잠시 결계 속에 같힌 상태다 다행히 시파크나의 부활은 완전하지 않았다. 그러니 이검의 힘을 이용하면 시파크나를 다시 봉인할 수 있어." 하지만 사람들의 얼굴에서 불안감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겨우 검 한자루가 마신을 물리칠 수 있을까? 사람들의 표정에서 불안을 읽은 티아는 잠시 멈췄던 말을 계속했다. "물론 너희들의 불안한 마음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내 말에는 한 점의 거짓도 없다. 창조신님의 이름을 걸어도 좋아. 이 검이라면 분명히 불완전하게 부활한 시파크나를 다시 봉인시킬 수 있다." "그럼 그 검을 쓰는 것은 누구입니까?" 하이엘프 에세르난은 누가 그 검을 사용할지 대충 예상을 하고 있었다. 단지 확인 차 물어보는 질문이었다. 티아는 에세르난의 질문에 자신의 옆에 앉은 테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현재 검의 주인은 내 동생 테이루아이다. 당연히 검을 사용하는 것도 내 동생이다." "그럼 저희들의 역할은 이 분을 지원하는 것이군요." 과연 현명한 엘프들 중에서도 가장 높은 위치에 서 있는 하이엘프다웠다. 에세르난은 단번에 자신들이 이곳에 온 이유와 해야 될 일을 맞혔다. "그래. 지금 시파크나의 곁에는 시파크나의 마력에서 태어난 이형의 몬스터들이 셀 수 없이 많다. 아무리 성검이라 해도 그것을 사용하는 자가 드래곤이라 해도 셀 수조차 없는 숫자의 이형 몬스터들까지 상대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 다. 그래서 너희들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그제야 다른 이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티아가 자신들을 부른 이유를 납득했다. "그럼 엘리멘탈 소드로 마신을 찌르면 봉인이 되는 겁니까?" 프론트 연합국 대표 세인트 국 왕의 질무넹 티아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2000년 전 엘리멘탈 소드에 깃든 여섯 정령왕의 힘에 내가 계약한 생명의 정령왕의 힘을 사용해서 부활 직전의 시파크나를 봉인한 적이 있다. 이 일은 비밀에 부쳐졌던 것이라 인간ㄷ들의 역사에는 기록되지 않았지. 지금은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시파크나는 이미 부활했다.그렇지 때문에 과거처럼 단순히 정령왕들로 결계를 치고 봉인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검으로 직접 타격을 주고, 모든 정령왕들의 마력을 시파크나의 내부로 흘려 보내면 시파크나를 다시 봉인시킬 수가 있다." 티아의 설명 중에 갑자기 큰 소리가 울려 퍼졌다. 덕분에 설명에 조용히 귀를 기울이던 사람들은 깜짝 놀라서 소리의 진원지를 찾았다. 그것은 바로 테이가 갑자기 일어나는 바람에 의자가 뒤로 쓰러지면서 낸 소리였다. 테이는 굉장히 놀란 얼굴로 티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누나, 잠깐만." "쉿. 너야말로 조용히 해. 지금은 중요한 회의 중이야." "지금 내 용건이 더 중요해! 내 질문에 대답부터 해줘!" "나중에 해줄게." "지금 당장 해! 테이가 눈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티아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나와 테이는 잠시 자리를 비우겠다. 아그라느." "네!" "그래가 중심이 돼서 테이를 지원할 병력과 시파크나를 교한 시킬 병력을 짜는 일을 대신 해주었으면 한다." "예, 알겠습니다." "그럼. 미안하지만 잠시 후에 다시 오겠다." 티아는 그렇게 말하고 테이를 데리고 회의장 밖으로 나갔다. 티아와 테이가 회의실 밖으로 나가자마자 사람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귀가 밝은 티아는 밖으로 나와도 사람들이 불안해하는 말들을 들을 수 있었다. "하아. 뭐 하는 짓이야? 지금 저들에게는 불안감을 안겨주면 안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게 급선무야. 그런데 네가 이러면 불안만 더 커지잖아." "부탁인데 내 불안부터 풀어줬으면 좋겠어. 내가 묻는 말에 대답을 해! 얼버무릴 생각 하지마! 거짓을 말할 생각도 하지마!" 테이는 묻기 전에 티아가 딴말을 못하도록 약속을 요구했다. 티아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약속 했다. "좋았어! 그럼 질문. 엘리멘탈 소드에 생명의 정령오아을 봉인할 생각은 아니겠지?!" "미안. 그럴 건데." "미쳤어?!!" 테이는 성이 떠나갈 듯 소리쳤고, 티아는 급히 테이의 입을 막았다. "읍! 읍! 읍!" 발버둥을 치든 말든 티아는 힘으로 테이의 입을 막은 채 말했다. "바보야! 목소리가 너무 커! 안에 있는 사람들이 들으면 어쩌려고 그래?!" "읍읍! 읍! 읍읍! 읍읍읍읍!" "무슨 소리인지는 잘 알고 있어. 하지만 정말로 방법은 이것뿐이야 이해해줬으면 좋겠어." "읍읍! 읍! 읍!!" "네가 이해해 주지 않아도 난 이렇게 할 수 밖에 없어. 정말로 이 방법밖에 안 남았단 말이야." 티아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처럼 눈이 젖어 있었다. 보통 이런 눈을 보게 되면 테이의 마음이 약해져서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두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랐다 "읍! 읍! 읍읍!" 테이는 티아의 손을 붙잡아서 자신의 입에서 치우려고 했다. 하지만 테이가 티아의 힘을 이길 수는 없었다. 좋아하는 여자보다 힘이 약하다는 사실이 이때만큼 저주스러웠던 때는 없었다. "미안." 티아는 그렇게 말하며 테이의 입에서 소능 ㄹ뗐다. 겨우 폴려난 테이는 티아의 어깨를 잡고 있는 힘껏 소리를 치려고 했다. 하지만 테이의 입은 다시 티아에 의해서 다물어졌다. 단 이번에는 손이 아닌 입술로 막혔다. 테이의 눈동자가 커졌고, 티아의 어깨를 잡으려던 손은 어디를 잡아야 될 지 몰라서 허공에서 파닥거렸다. 비록 자신의 입을 막기 위한 입마춤이었지만 부드럽고 촉촉한 입술 사이로 티아의 따스한 마음이 느껴졌다. 어느새 테이의 놀란 눈동자는 원상태로 돌아왔고, 조금씩 눈꺼풀이 감겼다. 그리고 어느 순간 완전히 눈을 감고 티아의 입맞춤을 진심으로 받아들였다. 길고 긴 입맞춤이 끝나고 티아가 입술을 떼자 테이는 벽에 기댄채 바닥에 주저앉았다. 티아가 입맞춤을 하면서 테이에게 수면마법을 걸었던 것이다. 한번에 걸지 않고 고금씩 조금씩, 테이가 눈치 채지 못하게 입으로 마력을 흘려 넣었기 때문에 테이는 저항다운 저항 한번 못해보고 잠이 든 것이다. 물론 테이기 저항하려고 생각했어도 티아의 마력에 저항할 수 는 없었겠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그렇게 잠들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쩌면 티아에게 이것은 마지막 입뭊춤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거기, 보고 있는 거 다 알아." 티아가 복도 끝 꺾어지는 부분을 쳐다보며 말했다. 티아의 부르는 소리에 리이나와 리엘리아가 부끄러워하는 표정과 분해하는 표정으로 나타났다. "에... 호호호. 저기 멋진 키수였어요...가 아니라 그러니까... 보려고 했던 게 아니라 차를 준비했는 고함소리가 들려서... 그런데 두분이 갑자기, 너무 갑작스러워서 눈을 가릴 시간도 없었고, 에. 그리고 저기..." 리이나는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 횡성수설 했다. 아마도 지금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인식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너무해요! 저라는 여자가 있는데 티아님은, 티아님은... 어떻게 저런 남자랑......"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리엘리아의 표정을 보면서 티아는 한숨을 푹 쉬었다. 리엘리아의 옷은 이리저리 늘어나 있었고, 입술연지는 엉망진창이었다. 아마도 티아와 테이의 키스 장면을 보고 눈이 뒤집혀서 뛰쳐나오려는 것을 리이나가 필사적으로 뜯어 말린 흔적일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키스 장면을 본 것이 서니가 아니라는 점이다. 아마도 서니가 봤다면 그 자리에서 당장 마법을 난사해서 성이 엉망이 됐을 것이다. "뭐, 됐어. 다 봤다면 어쩔 수 없지. 굳이 숨기고 싶은 마음도 없고." "티아님! 두 번 다시 저를 두고 이런 짓 하시면 안 돼요!!" "너 말이야. 이제 슬슬 정신 차리고 남자를 좋아하도록 노력을 해보면 안 되겠니?" "남자 따위는 싫어요!!" "그래, 그래. 아무튼 이제 이런 짓 두 번 하라고 해도 다시는 못해." "정말요?!" "에?" 리엘리아는 티아의 말을 철석같이 믿으며 철없이 좋아했지만, 리이나는 순간적으로 티아의 얼굴에 드리워진 그늘을 발견했다. "저, 티아님." "응?" 하지만 리이나가 부른 소리에 돌아본 티아의 표정은 여느때와 다름이 없었다. "저기......" 잘못 본 것일까? 리이나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을 못할 때 티아가 말했다. "아무튼 마침 잘 됐다. 이녀석, 방으로 데려가서 눕혀놔. 아마도 일주일은 일어나지 못할 거야." "예, 예?!" 리이나는 뒤의 말을 잘 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일주일 동안 못 일어날 거라고 했어. 저번 싸움에 입은 상처는 회복마법으로도 전부 치료가 안 됐거든. 테이는 이번 싸움의 히든카드니까 억지로라도 쉬게 해야 돼. 그러니 일주일간 테이를 잘 돌봐줘. 부탁해." "예." 리이나는 티아가 무언가 숨기고 있다는 느낌을 팍팍 받았다. 하지만 물어볼 수가 없었다. 물어서는 안 된다는 느낌도 받았다. "자, 그럼 부탁한다." 그렇게 말한 후 티아는 생긋 웃으며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회의실에서는 각 나라의 군사들의 배치와 제 1선에 세울 강한 기사의 배치 문제 그리고 물자 보급 등에 대한 이야기가 한창이었다. 하지만 티아가 들어오지 아내 잠잠해졌고, 모두의 시선이 티아를 향했다. "테이는 마지막 싸움을 위해서 쉬고 있어. 저번에 입은 상처는 회복마법으로도 완전히 낫은 상처가 아니라서 좀 억지로 재웠거든." 억지로 재웠다는 말에 아그라느와 슬링커가 약간 반응했다. 물론 그 둘 이외에는 다른 사람들은 억지로? 어떻게? 라고 궁금해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티아는 숨을 크게 들이쉰 후 결의에 찬 얼굴로 말했다. "일주일 하면 정령왕의 결계가 깨질 거야. 그러니 반격은 일주일 후다! 장소는 죽음의 사막. 일주일 후 거기서 이 대륙과 지상에 사는 모든 생멸들의 목숨을 건 사투가 시작될 거야. 준비에 만전을 기하도록! 창조신의 이름을 걸고 여기에서 맹새한다! 우리는 반드시 이긴다! 반드시!" 힘을 담은 말 함마디가 사람들에게 이상하게 힘을 줬다. 그도 그럴 것이, 티아가 말속에 마음을 안정시키는 효과를 넣은 것이다. 요정족과 마족은 말속에 담긴 마법을 눈치 챘지만 지금 필요한 것이 할 수 있다는 용기를 가지는 것이라는 걸 알기에 티아의 마법을 모르는 척했다. 아무튼 티아의 결의에 회의실에 모인 사람들과 요정족, 그리고 마족은 할 수 있다는 전의를 불태웠다. 그리노 대륙 사상 역사에 길이 남을 전설의 싸움은 앞으로 일주일 남았다. 48화 슬픈 반격의 기회(3) '다행이야. 테이가 살아나서 정말 다행이야.' 뭐가 다행이라는 걸까? '난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아.' 거짓말.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이다. 하지만 억지로 미소 짓고 있다. 그 슾른 미소가 바로 자신 때문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테이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나도 가까이에서 인간들의 삶을 지켜보고 싶어.' 도망치는 거야? 내 옆에 있기가 싫은 거야? 묻고 싶은 말도 많았고, 잡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다. 하지만 모든 것이 자기 탓 같았기에 테이는 아무 말도 못하고 잡지도 못했다. 그냥 떠나는 티아의 뒷모습을 멍청하게 바라 볼 수 밖에 없었다. "으아악!" 테이는 큰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앗! 깜짝 놀랐어요." 여성의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려싿. "티아 누나?!" 하지만 테이의 기대와는 달리 테이의 옆에 서 있는 사람은 리이나였다. 리이나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테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괜찮으세요? 악몽을 꾸시던 것 같던데." "악몽?" 그제야 테이는 꿈을 꾸고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요즘 티아와 같이 다니면서 꾸지 않게 된 꿈. 정확히는 과거의 기억. 지금 다시 그때의 기억을 꿈으로 꾸게 되자, 참을 수 없는 불안감이 온몸을 잠식해갔다. "누나는? 티아 누나는?!" "티아님은 한발 먼저 죽음의 사막에 가시겠다고, 테이님이 일어나면 얼른 오라고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죽음의 사막?! 왜 벌써 간거야?!" "그, 그게......" 대답하기 곤란해하는 리이나의 모습에 테이는 한층 더 불안해 졌다. "오늘 며칠이야?! 내가 얼마나 잔 거야?!" "오, 오늘로 딱 일주일째에요. 테이님이 지난번 싸움에서 얻은 상처가 나으려면 그 정도는 푹 쉬어야 된다면서....." "젠장!!" 테이는 사나운 기세로 이불을 젖히고 일어났다. 그리고 리이나가 눈앞에서 보고 있다는 사실도 잊어버리고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리이나는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서 얼른 고개를 돌렸다. "검은?! 엘리멘탈 소드는 어디있지?!" "저, 저기요." 리이나는 여전히 고개를 돌린 채 탁자 위에 놓은 엘리멘탈 소드를 가리켰다. 테이는 난폭하게 검을 잡고 워프게이트를 열었다. "저, 저도 같이 가도 될까요?" "응?" "그, 그게, 저도 가도 될까요?" "거기는 위험해. 이제 곧 엄청난 싸움이 시작될 거야. 솔직히 이길 수 있다고 장담할 수도 없어." "그래도 상관없어요! 어차피 못 이긴다면 이 지상 어디에도 살 수 있는 곳 따위는 없잖아요!" 리이나는 필사적이었다. 전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때 티아가 테이를 잠들게 한 것은 단순한 체력 회복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을 늘 받았다. 그리고 오늘 테이의 과민할 정도로 신경질적인 반응. 리이나는 어쩐지 무서운 일이 얼어날 것 같아서 가만히 기다릴 수가 없었다. "마음대로 해." -방해될걸 뻔히 알면서도 간다는 리이나나... 그걸알고도 데리고 가는 테이나... 똑같은 녀석들!! 이구.. 답답해.- stseed 테이는 퉁명스럽게 말하고는 워프게이트 안으로 들어갔고, 리이나도 서둘러 따라 들어갔다.이제는 리이나에게도 익숙한 어두운 공간을 지나자 순식간에 황금색 모래가 펼쳐진 사막에 도착할 수 있었다. 원래를 죽음의 사마이라 인간이 거의 없는 이곳에는 지금 수백만의 인간과 요정족과 마족들이 다가오는 결전에 대비하고 있었다. 테이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곧 어느 한곳으로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고, 리아나는 그 뒤를 서둘러 따라갔다. 인간 병사들과 기사들은 어떤 명령을 받았는지 테이를 보고는 알아서 길일 비켜주었다. 그들은 이미, 잠시 후 은발의 남자가 오면 깅릉 비켜드리라는 명령을 받은 상태였다. 덕분에 테이는 길을 비키라는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곧 도착한 곳에서 그렇게 찾고 있던 이를 찾을 수 있었다. "누나." "좀 늦었구나." 티아는 생극 미소를 지으며 테이를 맞았다. 똑같았다. 티아는 그 옛날 억지로 짓던 미소와 똑같은 미소를 지으며 테이를 맞이했다. 반ㅁㄴ 테이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티아의 주위에는 인간들의 왕과 요정적과 마족의 대표들이 서 있었다. 그들은 테이를 보자 알아서 슬쩍 옆으로 비켜섰다. 테이는 티아의 바로 앞에서서 약간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 "당장 그만둬." "여기까지 와서 무슨 말이야? 각오라면 예산ㄹ에 해둿어." "난 하지 않았어." "네가 각오를 할 필요는 없어." "무슨 각오? 죽을 각오?!" "죽는 건 아니야." "비슷한 거야! 이 세상에서... 물질계에서 사라지는 거잖아!!" 테이의 목소리가 분노로 커졌다. 하지만 테이는 그 분노가 누구를 향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소리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화를 내지 않고는 참을 수 없었다. "엘리멘탈 소드에 정령왕의 힘을 불어넣는다는 것은 정령왕의 계약자가 그를 대신해서 새로운 정령왕이 되는 것! 그것이 엘리멘탈 소드의 봉인을 푸는 진실! 그것 때문에 카이저 드래곤님들은 새로운 정령왕이 돼서 정령계로 가버렸어! 누나까지 가버릴거야? 그게 카이저 드래곤의 의무야?! 그런 의무 따위는 개나 줘버려!!" 테이의 외침은 절규에 가까웠다. 리이나는 렝리멘탈 소드의 숨겨진 진실을 듣고 크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제야 왜 그렇게 테이가 불안해하고 초조해하는지 알것 같았다. 리이나는 테이와 같이 티아를 말리려고 했다. 하지만 티아 곁으로 가려는 리이나를 누군가 붙잡았다. "아?!" 리이나를 붙잡은 사람은 아그라느 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티아라와 서니도 있었다. "왜 이러세요? 이거 놔주세요! 이대로라면 티아님은!" "저희도 말릴 만큼 말려봤어요." 티아라가 울먹이는 표정으로 말했다. "예?!" 티아라뿐만이 아니었다. 서니도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고, 아그라느와 다른 인간 왕들과 요정족과 마족이 대표들도 비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들은 진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티아는 테이가 잠든 동안 이들에게 모든 것을 말해준 것이다. "뭐가 말릴 만큼 말렸다는 거예요?! 티아님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으면서 무슨 말릴 만큼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거죠? 전 말릴거예요! 아그라느님, 제발 이 팔좀 놔주세요!" 리아나는 아그라느에게 잡힐 팔을 빼기 위해 몸부림쳤다. 아그라나는 비통한 목소리로 리이나에게 말했다. "만약 다른 방법이 있었다면 티아님은 그 방법을 선택하셨을 거야. 그렇지만 다른 방법이 업ㄳ기 때문에 티아님은 소중한 이와이 지상을 지키기 위한 결심을 하신 거야. 지금 가장 슬픈 것은 티아님이야." "우, 우흑! 흑, 으흑." 리이나도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갑자기 닥친 일이라 현실로 받아들일 수 없었을 뿐. 서니는 바닥에 주저앉아서 울음을 터뜨리는 리이나를 위로하기 이해서 살짝 껴안아주었다. 하지만 서니도 얼마 안 가 리이나와 마찬가지로 울음을 터뜨렸다. 비통함과 슬픔의 감정들이 뒤섞인 가운데 테이는 티아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만약에 티아가 실행하려고 하면 온 힘을 다해서 막겠다고 마음먹었다. 티아는 테이의 외침에 내내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의무 같은 건 아니야. 그것이 단지 의무였다면 내가 먼저 던져버렸을 거야. 이건 의무가 아니야. 난 지키고 싶을 뿐이야." "지금이라도 찾아보자! 다른 방법이 있을 거야!" "이미 부활한 시파크나를 다시 봉인하려면 일곱 정령왕의 마력을 한 번에 몸속으로 침투시켜야 돼." "그럼 누나가 엘리멘탈 소드로 공격하면 되잖아! 내가 지켜줄게!" 티아는 고개를 저었다. "너도 알잖아. 나를 통해서 검을 2차 매개체로 쓰는 것보다 검 자체에 봉인된 정령왕의 힘이 더 강하다는 것을......." "그럼 일단 이 방법부터 먼저 실행해 보자. 그래도 안 됀다면 누나 말을 따를게." "그것도 패스. 이제 시간은 없어. 기회는 단 한 번뿐이야. 실험해볼 기회 따위는 이미 없어." "젠장. 젠장. 젠장!!" 테이는 모래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참고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제야 테이는 무엇 때문에 분노하고 있는지 알았다. 테이는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나 있었다. 그때 베스크를 죽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것이 너무나 화가났다. 옛날과 너무나 똑같았다. 옛날에도 테이는 주저하다가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그 때문에 티아는 그렇게도 싫어하는 카이저 드래곤의 힘을 각성해서 테이의 목숨을 살렸다. 이번에도 주저하는 바람에, 반드시 설득이 통할 거라 믿었기 때문에 기회를 놓쳤다. 그리고 이번 대가는 너무나 무거웠다. -둘이 대화한다고 시간만 안끌었어도 성공했다네... -stseed "미안." 테이는 쥐어짜재는 듯한 음성으로 간신히 말을 뱉었다. "미안, 미안해, 누나. 미안해." "티아라고 불러도 돼." 티아는 상냥하게 웃으면서 주저앉아 있는 테이의 머리를 감싸안았다. "너 자신을 탓하지 않아도 돼. 난 테이의 어수룩할 정도의 그 착한 마음씨를 좋아하는걸. 그렇기 때문에 테이 탓을 하지 않아. 내가 좋아하기 때문에 테이에게 맡겼던 거야. 그리고 운이 없었던 것뿐이야. 단지 그것뿐이야." "아니야. 내가. 내가 독한 마음만 먹었다면, 그랬다면......" "독한 마음을 먹었다면 그 순간부터 난 너를 미워했을 거야. 그건 테이가 아니니까." "지금 이렇게 상냔ㅇ한 것도 티아가 아닌걸." "쿡. 그렇긴 하구나. 하지만 마지막인걸. 이정도는 음 그래 서비스야. 서~비~스." "마지막이라는 말 싫어." "나도 좋아하지는 않아. 하지만 언젠가는 마지막이 와. 하지만 나에게는 이 지상에서 마지막은 없었어. 어쩌면 카이저 드래곤님들도 마지막을 원했던 것인지도 몰라. 마지막으로 소중했던 것들을 지키고, 최후를 맞이하고 싶었을 거야." "정령왕으로서 정령계에서 영원히 살아야 되잖아! 그게 무슨 마지막이야?! 결국 또 다른 속박이잖아!!" "거기서는 사는게 아니야. 그냥 보는 거야. 그러니까 나도 이제 지켜볼게. 영원히 지켜볼게. 테이가 마지막을 맞이하는 그 순간까지......" 티아는 테이의 머리를 놓고 일어섰다. 티아의 눈에서는 언제부터 흘러내렸는지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때 저 멀리 보이는 정령왕들의 결계가 조금씩 불길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미안. 마지막 인사는 웃으면서 하고 싶었는데, 하하하. 나답지 않지? 미안. 그리고 안녕. 이제 갈 시간이야." "잠깐! 티아! 난!" 테이는 티아를 잡기 위해 손을 뻗쳤다. 하지만 티아의 온몬에서 빛이 나면서 결계가 생겼다. 덕분에 테이는 티아를 잡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안녕." 티아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밝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티아!" 티아는 빛 속에서 생명의 정령와 리스라시르를 소환했다. 은색의 여성체인 리스라시르는 슬픈 표정으로 티아의 소환에 응했다. 다른 방법이 정말 없겠느냐? "리스라시르님까지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오히려 리스라시르님이 더 잘 알고 계시잖아요." 티아 "지금까지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네요." 나에게 마지막이라는 말은 의미가 없다. "하하하 생각해보니 그렇네요. 어쩐지 나만 마지막에 목내는 것 같아요." 괜찮겠느냐? "괜찮으니 실행해주세요." 리스라시르는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티아는 서서히 손을 들어 주문을 외웠다. 계약 파기의 주문을. 그리고 정령왕의 힘을 엘리멘탈 소드에 봉인하는 주문을...... 주문은 곧 완성되었다. 리스라시르는 결계를 뚤고 들어오려는 테이에게 말했다. 나의 힘. 나의 존재를 검에게 주겠다. 나는 평소에는 검에 잠들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힘이 필요할 때는 검을 통하여 너에게 힘이 될 것이다. "싫습니다! 그것보다 티아를... 티아를 돌려주세요!!" 하지만 리스라시르는 이미 은색의 구체가 되어 엘리멘탈 소드의 손잡이로 들어오고 있었다. 엘리멘탈 소드 손잡이의 여섯개의 구슬 중앙에 커다란 은색의 구슬이 새로 생겼다. 그리고 티아는...... 티아는 작게 손을 흔들며 미소 지었다. 그리고 은색의 빛의 입자가 되어 서서히 사라져갔다. "티아!!" 테이는 티아를 부르면서 달려갔다. 이미 결계는 풀렸다. 이미 소용없겠지만 그래도 테이는 있는 힘껏 티아를 껴안았다. 티아는 미소 지으면서 테이의 귀에 속삭였다. "사랑해. 꼭 살아야 돼." 그 말을 마지막으로 티아는 테이의 품 안에서 사라졌다. "으아아아악!!" 테이는 절규하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노력 2715년. 역사에 길이 남은 마신과의 전투 전에 있었던 카이저 드래곤의 희생은 역사에 기록되지는 않았다. 49화 모든 지상의 생명들이여(1) 크아아악 불길환 괴성이 울려 퍼졌다. 마지막 싸움을 알고 있는 정령왕들은 결계가 깨지기 직전 스스로 결계를 풀고 엘리멘탈 소드로 돌아왔다. 동시에 시파크나의 커다란 붉은 몸이 죽음의 사막 한가운데 나타났다. 시파크나의 커다란 붉은 몸이 타나나자 죽음의 사막에는 이름 그대로 정말 죽음이 드리워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크으으윽. 버러지 같은 놈. 감히 이 몸을 잡아두다니. 흥, 하지만 상관없어. 이보다 더 오랜 시간을 지하에서 복수를 꿈꿨다. 그때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앞으로 다가올 즐거움의 여흥으로 생각해두지. 날 즐겁게 해주려는 준비까지 한 것 같으니 말이야 시파크나는 눈동자가 없는 붉은 눈으로 자신을 에워싼 수백만의 인간들을 보며 입술을 실룩거렸다. 자, 그럼 나를 얼마나 즐겁게 해줄 거냐? 어디 구경이나 해볼까? 시파크나가 손을 들자 불길한 탁한 마력이 응축되면서 그곳에서 자신의 몬스터와는 확연히 다른 이형의 몬스터들이 태어났다. 이형의 몬스터들은 쇳소리 같은 비명을 지르며 인간들에게로 달려들었다. "시작이다! 모두 물러설 생각 하지마라! 우리가 물러서면 이 지상은 끝장이다!" 회의에 통해 이번 싸움의 총사련관을 맡은 슬링커 황제의 명령이 북소리로 병사들에게 전해졌다. 그리고 병사들과 가시들 요정족들과 마족들이 각자 무기를 들고 마법을 준비하며, 달려오는 이형의 몬스터들을 겨눴다. "마법사들과 궁수들 공격 개시!" 슬링커의 명령에 따라 주로 엘르포 구성된 궁수들의 무수한 화살과, 마족과 인간의 마법사들의 마법들이 맨 앞에서 달려오는 이형 몬스터들에게 쏟아져싿. 하지만 몬스터들은 두려음을 모르는 듯 동료들의 시체를 밟고 부수면서 계속 전진했다. 티아에게 들었지만 몬스터들의 속도는 정말 빨랐다. "마법사와 궁수부대는 뒤편으로 물러나라! 병사들과 기사는 앞으로! 궁수부대는 뒤쳔에서 멀리 있는 몬스터를 계속 노려라! 마법사는 욱탄전에 들어가는 병사와 기사들의 보조를 해라!" 슬링커의 재빠른 대응 덕분에 몬스터들이 본진에 도착했을 때쯤에는 이미 진형이 새롭게 변해 있었다. 각 나라에서 뽑은 최정예 부대들은 있는 힘을 다해서 이형 몬스터들과 맞서 싸우고 있었다. "싸움이 시작됐어! 너는 안전한 곳으로 피하거라!" 아그라느가 허리에 찬 검을 확인하며 리이나에게 말했다. 리이나는 아직까지도 울고 있었다. 각 나라의 대표들은 벌써 각자의 진지로 빠르게 이동해 있었다. 슬링커가 아무리 동솔을 잘해도 이곳에 모은 부대는 이미 한 국가의 군대 레벨은 가볍게 뛰어넘었기 때문에 각 나라의 왕가 장수들도 적절하게 부대를 지휘해주어야 했다. 아그라느도 그런 지휘관 중의 하나였다. 하자민 아그라느는 도중에 발을 멈췄다. 그가 발을 멈춘 앞에는 테이가 넋이 나간 표저응로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뭘 하시는 겁니까?" "......" 아그라느의 질문에 테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그라느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실례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테이의 뺨에 주먹을 발렸다. "크윽." 인간에게 맞은 거지만 테이는 무방비 상태라 충격이 컸다. 맥없이 떨어져 나가는 테이의 앞을 서니가 막아서며 소리쳐싿. "무슨 짓 하는 거야?! 감히 인간 따위가!" "인간이기 때문에 넋 나간 테이님의 모습을 그냥 두고 불 수가 없는 겁니다." "뭐라고?!" "싸움은 이미 시작됐습니다. 우리가 지면 티아님의 의지를 배신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그리고 지금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테이님입니다. 테이님이 정신을 차리시지 않으면 지상은 멸망합니다!" "그, 그렇지만......" 서니는 겨우 인간에게 야단맞고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사실 서니도 지금 슬픈 것을 꾹 참고 있었다. 그런데 아그라느가 티아의 이야기를 꺼내자 참았던 슬픔이 복받쳐 오른 것이다. "서니, 인간 따위라는 표현은 좋지 않아." "오빠!" 테이는 입술에서 흘러내린 피를 닦으며 아그라느를 바라보았다. "펀치가 쓸 만한걸. 정신이 확 들었어." "티아님 정도는 아닙니다." "하긴. 벌써부터 그리워질 것 같아." "그리워하는 것은 나중에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너 생각보다 장닌한 놈이로군." "이쪽은 사랑하는 아내와아름다운 처제의 목숨이 걸려 있으니까 필사적일 수 밖에 없는 겁니다." -거참.. 여유롭네.... -stseed 아그라느는 흘깃 리이나를 쳐다보았다. 테이도 울고 있는 리이나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가 가는군. 하지만방금 전 펀치의 답례는 해주곘다. 이 싸움에서 이기고." "물론입니다. 드래곤님에게 주먹을 들이대고 무사히 넘어갈 생각은 애초에 없었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이야기가 빠르군 나중에 한 방 먹여줄 테니 반드시 살아남아!" "알겠습니다." 테이와 아그라느는 시선을 교환하며 피식 하고 웃었다. 테이는 바닥에 떨어진 성검 엘리멘탈 소드를 들어싿. 생명의 정령왕 리스라시르의 힘이 들어간 엘리멘탈 소드는 전보다 더욱더 강한 마력이 넘치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티아의 따스한 느낌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하긴 리스라시르님의 마력은 티아의 마력이기도 했으니까.' 테이는 검을 고쳐 쥐고 저 멀리서 팔짱을 끼고 구경하는 시파크나를 노려보았다. "끝장을 내주마. 지상을 위해. 모든 생명을 위해. 그리고 나에게 뒤를 맡긴 티아를 위해서!" 아그라느는 돌격하려는 테이의 앞을 막아섰다. "무슨 짓이야?" "아직은 때가 아닙니다." "때?" "아직 시파크나의 주위가 완전히 저희 쪽으로 돌아서지 않았습니다. 시파크나의 주의가 완전히 저희에게 쏠렸을 때 공중에서 지상 최강의 공격이 쏟아질 겁니다. 그때가 기회입니다." "지상 최강의 공격? 설마!" 테이의 설마는 정답니다. 시파크나가 눈치 채지 못하는 저 높은 하늘에는 수백의 드래곤들이 기회를 기다리고 잇었다. 바로 테이가 최후의 일격을 먹이는 것을 도와주기 위해 공격을 준비하고 잇었다. 어쩐지 지상 모든 종족이 모인 것 치고, 드래곤들이 보이지 않아서 테이는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헤헤헤. 그리고 내가 그 공격을 개시하는 타이밍을 가르쳐주기 위한 신호역이야." 서니는 어느새 울음을 그치고 손가락으로 브이자를 그리며 말했다. "너무 위험해! 아무리 주위를 끈 상태에서 공격을 한다고 해도 몇 명은 당할지도 몰라!" "이 싸움에서 희생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모두 테이님이 최대한 안전하게 공격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그렇지만!" "이렇게 해야 됩니다. 그러니 기회가 오면 절대로 실패하지 말아주십시오. 저는 테이님을 믿습니다." "나도 오빠를 믿어." "으응." 테이는 또다시 눈물이 나왔다. 평생 흘릴 눈물을 오늘 다 흘리는 것 같았다. 한편 잠자코 팔짱을 끼고 구경하던 시파크나는 자신의 몸에서 태어난 이형 몬스터들이 당하자 눈을 꿈틀거렸다. 약간 화가 난 것이다. 흠. 뭐야 제법 저항을 하잖아? 코크마 녀석. 제법 괜찮은 생명체를 만들어낸 것 같군. 하지만 역시 마음에 안 들어. 역시 이 지상은 예전 내가 있을 때처럼 생명이 없는 죽음의 대륙일 때가 훨씬 더 멋졌어. 재미없기는 하지만 너희들을 필요 없다. 이 지상은 나와 내 마력 생명체의 것이다! 시파크나는 인간들을 향해서 손을 뻗었다. 그의 손에 불길한 마력이 모이기 시작해쏙, 곧 검붉은 마력의 구체는 인간들을 향해 쏜살같이 날아갔다. 거대한 폭발과 함께 그곳에서 이형 몬스터들과 싸우던 수천의 인간드링 전멸했다. 인간들과 함께 이형 몬스터들고 죽었지만 시파크나에게는 별로 상관없는 문제였다. 이형 몬스터는 자신의 마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장난감이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제2타, 제3타의 공격이 인간들과 요정족, 마족의 방어라인으로 쏟아져 갔다. 그리고 폭발로 뚫린 길로 폭발에서 살아남은 이형 몬스터들이 쳐들어가기 시작했다. 생명체의 죽음이 느껴지자 시파크나는 즐거운 듯이 크게 웃어젖혔다. 시파크나는 하늘을 쳐다보며 외쳤다. 크하하하하하! 유쾌해! 정말 유쾌해! 어이, 코크마! 창존신이라고 뽐내는 자여. 너의 지상 세계는 이제 조금 있음녀 끝장이다! 이 지상은 나의 것이야! 쓸데없이 창조신이랍시고 이상한 것을 만든 너에게는 이미 나를 다시 막을 힘은 없을 것이다! 이것으로 너는 쓸모없는 짓을 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 보인 것이다. 그곳에서 후회하는 것이 좋아. 너를 위해 내가 내로를 들려주마! 너의 소중한 생명체의 비명으로 만들어진 환상의 노래를!! 시파크나의 외침을 들으며 테이는 이를 악물었다. "절대로 아니야. 창조신님이 만든 이 지상은 절대로 쓸모없는 곳이 아니야! 네가 틀렸다는 것을 가르쳐주마!" "오빠!" 서니는 혹시나 테이가 못 참고 뛰쳐나갈까봐 테이의 팔을 꼭 잡았다. "괜찮아. 분하지만 참을 수 있어. 참고 참았다가 기회가 오면 모든 분노를 실어서 저놈의 이마에 꽂아주겠어. 저놈이 깔보는 생명체의 힘을 보여주겠어!" "으응." 인간들과 요정족과 마족들은 필사적으로 싸웠다. 시파크나가 흩뿌린 서너 번의 공격에 밀리기는 했지만 포기하지는 않았다. 그륻리 해야 할 일은 어떻게든 시파크나의 주위를 지상에 잡아두는 것이다. 설령 그것으로 인해 목숨을 잃게 된다고 해도. "좌측은 뭐 하고 있나?! 공격이 약하다!" "우측은 몬스터가 적다! 최대한 빨리 처리하고 좌측을 공격하는 몬스터들을 뒤에서 쳐라!" "날아오는 마법 공격에 당황하지 마라! 우리가 물러서면 지상은 끝이다!" "드워프의 힘이 인간에게 밀려서야 쓰나?! 보여줘라! 우리 드워프들의 힘을!!" "화살을 그냥 쓰지 마라! 항상 정령마법과 같이 쓰는 것을 잊지 마라!" "공격마법보다는 지금은 인간 기사들에게 보조마법을 걸어주는 것에 신경 써라!" 시파크나가 깔보던 지상의 생명체들은 절대로 물러서지 않았다. 죽음으로 인해 더 이상 싸우지 못하게 된 데 대한 한탄의 비명은 질렀지만 공포의 비명은 지르지 않았다. 그들은 지상의 내일을 위해 지금 하나가 됐다. "너무 불리해. 이대로는 시파크나의 주위를 끄는 것은 고사하고 불리한 소모전만 될 뿐이야." "어떡해. 오빠? 그냥 지금 공격을 할까?" 서니는 불리해지는 전황을 보며 초조한 듯 공중을 쳐다보았다. 지금 드래곤들이 공격을 한다면 불리한 전황을 잠시 호전시킬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결정타를 먹일 수 있을 정도로 타격을 줄 수 있을지는 자신 없었다. "젠장. 어떡해야 되지? 어떡해야 되는 거냐교?!" 테이는 답답한 마음에 울부짖는 음성으로 소리쳤다. 그때, 이변이 생겼다. "으아악! 몬스터다!" "뒤에서 몬스터가 나타났습니다!" 보고를 받은 슬링커의 안색이 파랗게 변했다. 지금 뒤쪽에서 기습을 당하면 끝장이다 지상은 멸망하는 것이다. 뒤에서 나타난 몬스터들의 수는 앞에서 상대하고 있는 이형 몬스터들 숫자의 배 이상은 되어 보였다. 고블린, 오크, 미노타우르스, 트롤, 히드라, 버그베어, 오우거, 코볼트 등 종류도 여러가지였다. 그러나 뒤에서 나타난 몬스터들은 인간들을 무시하고 지나쳤다. 공격 의사가 없는 몬스터들의 행동에 검을 들었던 인간들은 얼떨결에 길을 비켰다. 그리고 인간들을 지나쳐간 몬스터들은 그대로 이형 몬스터들에게 덤벼들었다. "키에에엑!" 하늘에서도 수 많은 몬스터들이 날아와싿. 날 수 있는 모든 몬스터들은 다 날아온 듯 그대로 이형 몬스터와 시파크나에게 덤벼들었다. 시파크나는 조금 놀란 듯 소리쳤다. 크윽, 뭐냐?! 이것들은?! 놀란 것은 시파크나뿐만이 아니다. 테이도 믿어지지 않는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지능이 어느 정도 있는 몬스터라면 인간들을 도와서 시파크나에게 덤비는 것이 이해된다. 하지만 지능이 없는 몬스터들까지 안간과 다른 몬스터에게 덤비지 않았다. 오직 시파크나와 시파크나의 마력에서 태어난 이형의 몬스터에게만 덤벼들도 있었다. "아아, 그렇군." 테이는 겨우 이해를 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이녀석들도, 이녀석들도 결국 이 지상의 '생명체'야! 이 녀석들에게도 지상은 지켜야 될 곳인 거야!!" 테이의 생각대로, 지능이 없는 몬스터들은 본능에 의해 이곳까지 달려온 것이었다. 자신들이 사는 곳을 지키려는 본능에 따라...... 사는 곳을 지키려는 마음은 똑같은 것이다. 인간이나, 몬스터나...... "서니님!" 그때 리엘리아가 서니를 부르면서 뛰어왔다. 보인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리엘리아의 활솜씨나 정령마법으로는 이 싸움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엘리아도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아주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서 이 싸움에 참가했던 것이다. 리엥리아는 숨을 헐떡이며 달려와서 서니에게 말했다. "신호가 왔어요. 지금 시파크나의 주위는 완전히 지상에 쏠려 있어요. 기회는 지금이에요." 리엘리아가 가져온 전언에 서니는 활짝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았어! 오래 기다렸다고! 자, 그럼 테이 오빠!" "응." 테이는 고개를 그덕이며 엘리멘탈 소드를 들었다. "그럼 서니야, 부탁한다." "응!" 테이는 쏜살같이 전장을 달려갔다. 그리고 서니도 공중으로 날아오를 채비를 했다. "서니님." "응?" 리엘리아는 약간 주저하는 모습을 서니를 쳐다보다가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돌렸다. "아직 누가 리이나의 진짜 친구인지 판가름 안 난 거 아시죠?" "아, 그거? 당연히 내가 진짜 친구잖아." 리엘리아의 표정의 단번에 구겨졌다. "으으! 당신이란 드래곤 정말 싫어요!!" "나도 너라는 엘프가 정말 싫어." "아악! 당신 죽지 말아요! 몇 년, 아니 몇백 년이 지나더라도 제 손으로 직접 죽여드렜어요! 이 기회에 드래곤 슬레이어 엘프가 되겠어요!!" "호오. 네가? 그렇다면 얼마든지 기다려주마. 몇백 년이라도 기다려 줄테니 오늘 당장 죽니자 마." "당연히 안 죽어요!" 리엘리아와 서니는 서로에게 우정 비슷한 묘한 감정을 느끼며 미소를 지었다. 곧 서니는 하늘라 날아올랐다. 49화 모든 자싱의 생명들이여(2) -우.. 빡셔 빡셔.. ㅠ.ㅠ-stseed 테이는 엘리멘탈 소드로 주위세서 덤벼드는 이형의 몬스터들을 베어나갔다. 그리고 그의 주변에는 테이를 보호하기 위해 각 나라에서 뽑은 최강의 기사들이 그를 돕고 있었다. 그렇게 티이는 도움을 받으면서 조금씩 전진해나갔다. 공중에서의 공격이 시작됨과 동시에 한번에 달려나갈 수 있는 위치까지 반드시 가야 된다. '절대로 실수하지 않겠어. 모두가 만들어준 기회로 반드시 성공시켜 보이겠어.' 테이는 조금씩 가까워져가는 시파크나를 노려보았다. 놈을 엘리멘탈 소드로 힘껏 찌르기만 하면 끝난다. 모든 것이. 한편 서니는 공중에서 폴리모프를 풀고 드래곤의 모습으로 돌아와 공중 높이 날아올라싿. 한참을 올라가자 하늘을 뒤덮은 수 백의 드래곤들이 서니를 맞아주었다. "서니야!" "엄마!" 서니를 제일 먼저 맞아준 것은 세이르아와 오스타인이었다. "네가 올라왔다는 것은 시파크나의 시선이 지상에 묶였다는 뜻이구나." "응. 기회는 지금이야." 서니의 말에 드래곤들이 웅성거려싿. 솔직히 인간들이 그 정도까지는 못할 거라고 반신반의하던 드래곤도 많았던 것이다. "테이는?" "오빠도 잘하고 있어요." "그래, 다행이구나." 그렇게 말하는 세이르아의 표정은 어두웠다. 솔직히 세이르아와 오스타인도 티아를 말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다. 하지만 결국 지상의 파괴를 막기 위해서는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테이 쪽이 걱정되어싿. 테이가 얼마나 충격을 받았을지 쉽게 상상이 가지 않았다. "걱정 마세요." "어?" "오빠는 괜찮아요. 반드시 괜찮아요. 내가 옆에 있잖아요. 슬퍼할 틈도 없이 마구 부려먹어 줄테니까 절대로 괜찮아요." 하지만 밝은 목소리와는 대조적으로 서니의 몸은 살짝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눈은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듯이..... "서니야." 세이르아가 부르는 소리에 서니는 얼른 고개를 흔들어서 눈에맺힌 눈물을 털었다. "뭐 하는 거예요? 기회는 지금이라고 했잖아요. 겨우 잡은 기회를 이렇게 놓치면 티아 언니가 뭐라고 하겠어요?" "그, 그렇구나." "그럼 먼저 갑니다." 서니는 그렇게 말하며 쏜살같이 지상으로 급강하했다. 서니의 눈에서 더 이상 슬픔은 비치지 않아싿. 대신 이렇게 된 원흉 시파크나를 용서하지 않겠다는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온다!" 테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동족들의 기척을 느끼고는 긴장감에 검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다행히 시파크나는 눈앞에 신경을 건드리는 몬스터들 때문에 눈치를 못 채고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공격을 하면 몬스터들까지 말려드는데.' 테이는 어떻게든 몬스터들이 말려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평소라면 몬스터들이야 죽든지 말든지겠지만 지금 삶의 터진인 지상을 지키기 위해서 싸우는 못느터들을 죽게 내버려두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몬스터들도 삶의 터전인 지상을 지키는 같은 동지이다. "별수 없군. 이봐!" 테이는 자신의 옆에서 싸우고 있는 기사 중에 한 명을 불렀다. 처음 이백을 넘던 최고의 기사들도 지금은 절반 이상이나 줄어 있었다. 그 정도로 테이가 있는 쪽의 싸움은 격력했던 것이다. 테이의 부름에 기사는 얼른 달려왔다. 기사는 이형의 몬스터의 피로 목욕을 하다시피 했고, 여기저기 자잘한 상처를 많았지만 큰 상처는 없었다. "잠시 검을 여기 꽂아놓겠다. 이형 몬스터들이 검에 가까이 가지 못하게 해라." "에? 왜 하필 지금 그런 명령을 내리십니까? 조금 있으면 공중에서 공격이 시작될 텐데요." "저녀석들까지 죽게 내버려둘 수는 없잖아." -또 주저한다 -_-+ 저러다 또 실패하지... 쯪쯪... -stseed "테이가 기리키는 지상의 몬스터들을 보고는 기사는 복잡한 표정을 지어싿. 하지만 금방 표정을 바꾸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현재 지상 몬스터들 역시 자신의 동료라는 사실을 그도 인정한 것이다. "그럼 부탁한다."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몬스터들에게 말이 통할까요?" "통하는 놈들도 있겠지만 안 통하는 놈들이 태반이야. 그저 경고를 줘서 잠시 쫓아버릴 수 밖에...." "경고요?" "그래. 이렇게 할 거야." 테이는 하늘 높이 날아올라서 폴리모프를 해제했다. 테이는 본모습인 드래곤으로 돌아와서 시파크나의 앞에 대치했다. 시파크나는 날파리 같이 달려드는 몬스터들을 귀찮다는 표정으로 죽이다가 테이를 발견했다. 호오 왜 드래곤이란 것들은 하나도 없나 싶었는데 이제 나타난거냐? 그러고 보니 넌 좀 낯이 익은 모습이군. "기억해주니 영광이군. 구역질 날 정도로 말이야." 테이의 악담을 듣고는 시파크나는 큭큭거리며 웃었다. 그래, 기억났다. 그 건방진 드래곤과 같이 있던 드래곤이구나. 동생이라고 했던가? 맞아 내 봉인을 풀려던 인간을 상대로 일장연설을 늘어 놓던 바로 그녀석이었어. 이렇게 만나니 정말 반갑군. 네 덕분에 나는 지상으로 다시 나올 수 있었다. "그때를 갱각하면 아직도 후회가 된다." 그 인간을 바로 죽일 걸 그랬다고 후회하는 거야? 이미 늦었어. "아니. 그때 내가 했던 행동은 절대 후회 안 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내가 그때 좀다 잘 말했다면, 녀석의 아픔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면 네가 이 지상으로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 거야." 시파크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테이를 노려보았다. 일이 이렇게 됐는데도 그 알량한 자존심을 못 버리는 거냐? 타인을 이해하려고 노려개야 된다고 했던가? 네놈들의 창조신이라는 놈과 비슷한 생각이군. 구역질이 나는 생각이야. 내가 보기에는 날 부활시키려고 했던 놈의 말이 맞아. 이 지상에 필요한 것은 이해하려는 마음 따위가 아니야. 이 내가 옛날의 죽음의 대지로 바꿔버리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평화다. "헛로리 집어치워! 아무것도 없다명 애초에 존재할 의미도 없어! 베스크가 했던 말 중에서 지금 내가 동의하는 말은 흑과 백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필요한 것은... 그래, 너라는 흑을 완전히 없애버리는 것! 그것이 이지상을 위한 일이다!" 테이는 숨을 길게 들이쉬었다. 드래곤 브레스를 뿜기 위함이다. 시파크나는 티이의 입에 마력이 모아지는 것을 느끼고는 불길한 마력을 손에 모았다. 흥! 너야말로 무슨 헛소리냐?! 네놈들의 창조신이라는 코크마 녀석이 만든 이세계가 똑바로 되어 있다면 어째서 나를 부활시키려는 녀석이 생기는 것이지? 테이는 대답 대신에 브레스를 뿜었다. 테이의 얼음 브레스가 시파크나의 얼굴을 노리고 뿜어져 나갔다. 하지만 그 속도는 느렸다. 그 때문에 시파크나를 끈질기게 공격하던 몬스터들은 브레스를 피해서 멀찍이 떨어졌다. 뭐냐?! 그 한숨 나는 공격은! 시파크나는 손에 모은 마력을 던지지 않고 자신의 얼굴을 노리고 천천히 날아오는 브레스를 막는데 썼다. 흥. 이 지경까지 와서 동정심이라는 것을 발휘하는 것이냐? 저런 벌레정도는 무시하고 공격해도 되지 않나? "너랑 똑같이 취급하지마! 네 말대로 이 세계는 완벽한 것이 아닐지도 몰라. 세계는 아직 발전하고 있는 과정이니까. 어쩌면 창조신조차도 이 세계가 어떻게 변할지 모르고 계실걸. 네놈이 부활한 것은 발전 과정에서 생긴 조그마한 트러블에 불과해. 그리고 트러블은 해결하면 된다. 그것이 지상에서 살아가는 생명체로서의 의무다." 웃기는 소리. 네놈이 무얼 할 수 있다는 것이냐? 정령의 힘을 이용하는 무기는 이미 나에게 통하지 않아. 테이는 시파크나와 이야기하면서 내내 공중을 신경쓰고 있었다. 동족들이 이제 아주 가까운 거리까지 날아온 것이 느껴졌다. 테이는 이제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시파크나를 노려보며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통한다. 검을 네 몸에 곶아서 직접 정령왕의 마력을 쏟아부으면 돼!" 호오, 그래? 그럼 어떻게 내 몸에 꽂을 거지? 내가 시험 삼아 꽂아보라는 말이라도 할 줄 알았나? 테이는 잠자코 폴리모프를 시전했다.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변한 테이는 손을 드고 외쳤다. "소환(Recall)" 엘리멘탈 소드는 테이의 부름에 응답해서 단숨에 테이의 손으로 이동했다. 테이는 엘리멘탈 소드를 시파카나를 향해 겨누며 말했다. "아까 네가 물었지? 왜 드래곤들은 아무도 안 오ㅑㅆ나교? 미안하지만 이미 와 있다. 싸움이 시작되기 한참 전부터." 뭐라고? 갑자기 강대한 마력의 브레스가 시파크나의 버리위로 쏭아졌다. 드래곤들의 혼신의 힘을 다한 공격이 시작된 것이다. 크아아아아악! 수많은 드래곤들의 브레스는 시파크나에게 엄청난 타격을 힙혔다. 그리고 한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드래곤들은 모든 마력을 지금 다 짜내겠다는 기세로 두 번, 세번 연속해서 브레스를 뿜어댔다. 브레스와 브레스가 합쳐져서 어느새 강대한 마력의 빛이 되고 폭풍과도 같은 모습으로 시파크나에게 쏟아져싿. 시파크나의 마력에 영향을 받은 이형 몬스터는 마력의 원천지인 시파크나가 엄청난 타격을 받자 공격을 멈추고 괴로운 듯이 몸을 떨었다. 덕분에 잠시 싸움은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아름답다." 리엘리아는 화살을 날리던 손을 감시 멈추고 거대한 빛의 폭풍을 바라보았다. 다른 인간들도 잠시 동안 엄청나게 아름답고 강대한 빛의 폭풍에 넋을 빼앗겼다. 아마도 앞으로 몇천년이 흘러도 다시는 구경하지 못할 광경일 것이다. 크아아악! 이놈들!! 시파크나는 고통과 분노의 외침을 내뱉으며 마구잡이로 마력의 덩어리를 주위로 날렸다. "크윽!" "크아악!" "젠장!" 몇몇 운이 없는 드래곤들이 시파크나의 마력을 맞고 땅으로 추락했다. 드래곤이 땅으로 추락하며 생긴 커다란 소리에 빛의 폭풍에 시선을 뺏겼던 인간들의 정신이 돌아왔다. "지금이 기회다! 움직이지 못하는 이형 몬스터들을 제거하라! 그리고 성직자들은 부상자와 드래곤님들의 치료를 서둘러라!" 슬링커가 힘차게 명령을 내리자, 정적에 휩싸였던 싸움터가 다시 시끄러워졌다. 크아악! 죽어라! 이자식들, 죽어! 브레스를 전부 다 쓴 드래곤들은 각종 마법과 그 거대한 몸을 이용한 육탄공격으로 시파크나에게 덤벼들었다. 그리고 테이의 경고석 브레스에 물러났던 몬스터들도 다시 공격을 시작했다. 시파크나는 생각보다 타격이 큰 것에 분노했다. 덕분에 아주 잠시동안 테이에 관한 일을 잊고 덤벼드는 몬스터와 드래곤들을 상대하는 데만 정신이 팔렸다. 그 짧은 시간이 승패를 갈랐다. "우리 지상 생명체들의 승리다!" 시파크나는 등 뒤에서 들려오는 외침에 오싹한 공포를 느꼈다. 테이는 드래곤들의 브레스 공격이 끝나자 바로 시파크나의 뒤로 이동해 있었다. 네, 네놈! '티아, 부탁이야. 지금 이 한순간이면 되니까 티아의 힘을 빌려줘!' "쳇, 네 놈의 미간에 꼽지 못하는 것이 한이구나. 티아가 지상에서 생명을 포기한 대가로 얻은 힘! 똑똑히 맛보아라!!" 테이는 있는 힘껏 엘리멘탈 소드를 시파크나의 등에 꽂아 넣었다. 크아아아아아악! 시파크나는 지금까지 질렀던 비명 중에서 제일 큰 비명을 지르며 발광했다. 손을 뻗어도 엘리멘탈 소드가 박힌 등에는 닿지 않았다. "엘리멘탈 소드여! 검에 잠든 일곱의 정령왕들이여! 검의 주인으로서 테이루아의 이름을 걸고 명한다! 부정한 마신에게 심판의 힘을! 다시는 올라오지 못할 깊은 지하로 추방시켜라!" 테이의 명령에 엘리멘탈 소드의 손잡이에 박힌 일곱 개의 구슬들이 각각의 빛을 내며 시파크나의 몸속으로 정령왕의 마력을 마구 흘려보냈다. 크아아아아악! 치, 치워! 검을 치워! "아까 네놈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평화라고 했지? 그렇다면 지하에서 마음껏 평화를 누려라. 이 지상에는 네놈이 바라는 평화는 필요하지 않아!" 아, 아니야! 지하에는, 지하에는 태양이 없단 말이야!! 싫어! 두 번다시 태양이 없는 지하에서 아무것도 없이 사는 것은 싫어!!! 부활한 이후 내내 자신감과 탐욕과 욕심으로 가득 찼던 시파크나는 지금 울부짖고 있었다. 테이는 어쩐지 지금에 와서야 진짜 시파크나의 속마음을 들은 듯했다. "네놈에게 태양은 아까워." 태양 아래... 태양 아래 아무것도 없는 붉은 대지를 좋아한 것뿐이야! 그것이 뭐가 잘못이야?! 아무것도 없으면 고통도 슬픔 따위도 생기지 않잖아!! "아무것도 없다는 것 자체가 이미 고통이고 슬픔이야. 너 역시 태양을 원했잖아. 너 역시 원하는 것이 있잖아!" 요, 용서해줘! 마음을 바꾸겠다. 그러니 용서해줘! 봉인되는 것은 싫어! "이미 늦었다." 테이는 엘리멘탈 소드를 쥐고 마지막 주문을 외쳤다. "봉인(Sealing)" 테이의 주문에 시파크나의 몸속 구석구석까지 침투한 정령왕의 마력이 발동했다. 크아아아아아악!! 싫어!! 싫어!!!! 정령왕의 마력은 시파크나의 몸을 완전히 구속해서 시파크나는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시파크나의 발밑에 육망성의 마법진이 생기고 마법진 아래의 땅이 사라지면서 시파크나의 몸은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제발 용서해줘! 너에게는 동정심이라는게 있잖아! 왜 날 동정하지 않는거지? 나도 피해자야!! "네놈은 동정할 가치조차 없는 놈이야! 두 번 다시 우리 지상으로 올라오지 말고 영원히 지하 깊숙한 곳에서 살거라. 영원히." 크아아악! 네놈! 네놈!! 시파크나의 몸은 어느새 절반 이상이 마법진 속으로 가라앉았다. 테이는 공포와 분노로 일그러진 시파크나의 눈을 보며 외쳤다. "내 이름은 네놈 따위가 아니다. 나는 테이루아. 지상을 좋아하고, 이곳에서 살아가는 실버 드래곤 테이루아다." 테이루아! 너를 잊지 않겠다! 나는 반드시 다시 돌아오겠다! 반드시 다시 지상으로 돌아오겠다! 너를 죽이기 위해서!! 시파크나는 이윽고 얼굴까지 서서히 마법진 안으로 가라앉으며 마지막 힘을 다해 테이에게 악담을 퍼부었다. 마지막으로 시파크나의 얼굴이 사라지기 직전 시파크나의 몸에 꽂혔던 엘리멘탈 소드가 테이에게로 날아왔다. 테이는 엘리멘탈 소드를 손에 쥐머 이미 마법진 안으로 사라진 시파크나에게 말했다. "너는 영원히 지상으로 올라오지 못해. 설사 올라온다 하더라도 다시 봉인될 뿐이다. 지상을 사랑하는 자들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은......" 시파크나가 사라지자 몸을 떨며 괴로워하던 이형의 몬스터들이 하나둘 쓰러지면서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노 대룩에 역사적으로 남을 마신전쟁이 지금 막 끝났다. 49 모든 지상의 생명들이여(3) -흑... 아직도 멀었네.. ㅠ.ㅠ -stseed 누구에게서부터 시작된 함성인지 알 수는 없다. 아니,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는 이미 중요하지 않다. 인간들과 요정조들과 마족들 그리고 몬스터들까지 지상에 사는 모든 생명체들은 환호하고 외쳤다. 절대 불가능할 것 같던 마신의 봉인은 성공했다. 다들 하나같이 입 모아서 테이의 이름의 이름을 외쳤다. 하지만 그 중앙에 선 테이의 얼굴을 기쁜 표정이 아니었다. "테이님." 아그라느가 테이를 부르며 달려왔다. 그 뒤로 슬링커를 위사한 각국 왕과 종족의 대표들이 달려와싿. 그리고 리이나와 리엘리아와 티아라들이 달려왔고, 뒤를 이이서 서니와 세이르아와 오스타인이 공중에서 내려왔다. 테이는 그들은 본체만체하며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을 나는 몬스터들이 기쁨에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들이 기뻐하는 마음은 잘 알겠지만 그래도 파란하늘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이 테이는 조금 불만이다. "오빠!" "테이야!" 서니와 세이르아가 부른 소리에 테이는 겨우 주위에 모인 이들을 돌아보았다. 테이는 힘없는 미소를 싱긋 지으며 말했다. "이겼어요." 금방 울음이라도 터뜨릴 듯한 힘없는 미소에 보는 이들은 가슴이 아팠다. "이겼는데......" 테이는 손에 들린 엘리멘탈 소드의 은색 구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상해요. 이겼는데 전혀 기쁘지가 않아요." "오빠!" 서니가 와락 테이에게 안기며 외쳤다. "울지 마! 오빠, 울지마!" "울어? 내가?" 멍한 목소리로 말하며 테이는 자신의 얼굴을 만졌다. 자기 자신도 모르는 새에 맑은 눈물이 볼을 적시며 흐르고 있었다. 테이는 오늘 몇 번재인지 모르는 눈물을 또 흘리고 있었다. "그래, 울고 있구나. 내가 울고 있었구나. 으, 으흑." 테이는 검을 바닥에 꽂으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울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참을 수 었는 슬픔이 밀려왔다. "으흑. 티아. 티아. 티아. 티아" 테이는 끊임없이 티아의 이름을 부르며 울었다. 이겼지만 테이에게는 너무나 큰 희생을 치른 싸움이다. 이제 두 번 다시 티아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참을 수 없는 아픔으로 다가왔다. "젠장! 바보! 바보! 이 바보 티아!!" "누가 바보야?! 누가?!" 갑자기 테이의 등 뒤에서 익숙한 외침이 들렸다. 슬픔에 젖어서 고개를 돌리거나 바닥을 보며 눈물을 흘리던 이들이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들이 본 것은 티아의 펀치에 하늘 높이 날아 올라가는 테이의 모습이었다. "참 내. 이 한 몸 희생한 누나를 바보라고 부른 동생이 어디 있냐고?!" 티아는 그렇게 말하면서 떨어지는 테이에게 재차 주먹을 날렸다. 테이는 떨어지던 중에 뒤로 날아가서 모래바닥에 뭍혔다. "이것으로 끝났다고 생각하지 마! 버릇없는 동생 버를 고쳐주는 것은 누나로서 최소한의 의무다! 그러니 죽지 않을 정도로만 패주마!" 그렇게 말하며 티아는 평소에 테이의 전용 구타(?) 마법인 아이스 미사일이 아닌 중급마법 아이스 니들 수백 개를 만들었다. 저정도 양이면 죽지 않을 정도가 아니라, 아마도 확실히 죽을지도 모른다. 테이의 위기를 알아차린이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티아를 뜯어말리기 시작했다. 지금은 그것보다 더 급한 일이 있지만 일단은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일이 먼저였다. "티아님, 참으세요! 그러다가 테이님 진짜 죽어요!" "딸아! 제발 부탁이니 근친살인만은! 드래곤 역사에 오점을 남길 짓은 하지 말아다오!" "언니! 나의 오빠를 죽일 생각이야?!" 그렇게 간신히 티아를 뜯어말린 이들은 겨우 한숨을 돌리고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눈으로 티아를 바라보았다. "뭐야. 그 표정들은? 뭐 발만 있어?" "아니요, 불만이라기보다는......" "저기, 언니. 어떻게 살아난거야?" 모두 주저하는 질문을 서니는 스스럼없이 물어봤다. 물론 그 대가는 주먹이였다. "아야야야!" 서니는 머리를 감싸 쥐고 바닥을 둥굴었다. "죽긴 누가 죽어?! 단지 정령화 돼서 검에 봉인되는 정령와대신에 정신이 정령계로 가는 것뿐이야!" "아, 그럼 저기... 어떻게 다시 이곳에 돌아오셨죠? 그것도 육체까지 재생돼서...." 티아라의 질문에 티아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게... 나도 몰라." "모, 모른다고요?" 도대체 본인이 모른다면 누가 안단 말인가? 어이없어하는 이들의 모습에 티아는 심통이 난 표정으로 소리쳤다. "왜들 그래?! 뭐야. 그 한심하다는 눈은?! 나도 정말 이유를 모르겠단 말이야! 정신을 차려보니 눈아펭 테이가 있는데 이놈이 갑자기 바보라고 소리치잖아. 그래서 화가 나서 있는 힘껏 날려버린거야!!" 티아는 테이를 삿대질하며 외쳤다. 그러나 그곳에 박혀 있던 테이는 어느새 일어나서 티아에게로 달려오고 있었다. 티아는 달려오는 테이를 노려보며 전투태세를 취했다. 뭐야?! 설마 누나와 해조자는 거야?!" "티아!" 테이는 티아의 이름을 부르며 그녀를 부둥켜안았다. "에? 에? 에에?" 티아의 얼굴이 화악 하고 붉어진 것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뭐, 뭐 하는 거야?! 이거 나! 안 놔? 안 놓으면 주먹 날릴거야?!" "돌아왔어! 정말 돌아온 거지?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테이는 진심으로 기뻐하며 티아의 협박에 굴하지 않고, 꼭 안은 손을 풀지 않았다. "테, 테이야." 진심으로 기뻐하며 울고 있는 테이를 보고 있자니 티아는 조금 마음이 누그러지는 것 같았다. "저기, 난 괜찮으니까 이제 놓아줘." "싫어 잠시만, 잠시만 더 이렇게 있어줘, 잠시만......" 테이에게 다른 뜻은 없었다. 단지 이 믿어지지 않은 일이 꿈이 아니길 빌며 티아의 온기를 느끼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티아에게 테이의 행공은 기쁘지만 굉장히 곤란한 것이었다. 정확히는 의미 잇는 웃음을 짓는 부모님과 볼을 잔뜩 부풀리며 화를 내는 서니와 리엥리아. 그리고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돌리는 인간들. 이 모든 상황이 티아에게 곤란했다. "저기 말이야. 이제 그만 놔주면 안 될까?" "싫어! 손을 놓으면 사라질 것 같아!" "아니, 안 사라질 거야. 아마도." "그걸 어떻게 믿어?! 티아도 어떻게 돌아온 건지 모른다면서!" "그, 그렇긴 하지만......" -그건 내가 설명해 주마. 갑자기 티아와 테이의 머리 위에서 포근한 음성이 들려왔다. "리, 리스라시르님?!" 티아는 공중에서 흐뭇한 표정으로 자신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생명의 정령 리스라시르를 보고는 깜짝 놀라서 테이를 밀쳐 버렸다. -어머? 벌써 그만두는 거니? 보기 좋은 모습이니 더 해도 된다. 원하면 그 상태로 설명해주마. "아, 아니에요! 이제 충분해요! 충분! 네, 충분합니다. 그치 테이야?" "아니, 난 아직 부족한데." 테이는 정직하게 말했다. 그리고 정직의 대가로 얻은 것은 언제나 똑같은 티아의 주먹이다. "헉헉! 이자식! 갑자기 징그러워졌어!!" 있는 힘껏 테이를 이리저리 패대기친 티아는 숨을 몰아쉬며 이마의 땀을 닦았다. 테이는 만신창이가 돼서 티아의 발 아래 뻗었다. -거 참. 너희 둘은 어떻게 된 게 진보라는 것이 없구나. 리스라시르는 티아의 옆에 살짝 내려와서 테이의 모습을 보고,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 그런 진보는 필요 없어요." -그래? 뭐, 그건 그렇다 치고 넘어가자꾸나. 리스라시르는 굳이 따지지 않겠다는 듯 의미 있느 미소를 지었다. 티아는 얼굴이 홍당무가 돼서 무언가 변명거리를 찾았지만 할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리스라시르는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주위에 모은 이들을 둘러 보며 설명을 시작했다. -일단, 지상의 생명들이여. 어려운 고비를 잘 넘겼구나. 이 지상을 지킨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너희 생명체들이다. 너희들에게 생명을 주는 역할 하는 나로서는 그 점이 무엇보다도 자랑스럽고, 고맙구나. 리스라시르의 말에, 주위에 모인 이들은 티아와 테이의 러브코미디(?) 덕분에 잠시 잊고 있었던 승리의 기쁨을 다시 상기시켰다. 하지마 이제와서 다시 승리의 환호성으 ㄹ지르기는 조금 찜찜했다. 무엇보다 발로 테이를 밟아대고 있는 티아를 보고 있자니 소리를 지르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티아는 아까부터 리스라시르의 말은 듣지 않고 '너 때문에 창피당했잖아'등등의 말을 하며 테이를 지그시 밟아주고 있었던 것이다. "일단 저쪽 바보 커플을 제쳐두고 설명을 해주세요. 어떻게 티아님이 물질계로 돌아오신 거죠? 한번 정령왕을 엘리멘탈 소드에 봉인하고 그 자리를 대신하면 두 번다시 불질계로 올 수 없다고 들었거든요." 티아라의 말에 티아가 '누가 바보 커플이야'라고 소리 질렀으나 티아의 말에 귀 기울이는 이는 아무도 ㅇ벗었다. -음. 그것은 보는 바와 같이 티아의 성격상 생명의 정령왕의 직책을 맡길 수가 없기 때문이란ㄷ. "과연." "과연은 뭐가 과연이야?! 걱, 다들 납득했다는 표정 짖지 마!" 티아는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지만 티아라들은 모든 의문이 풀렸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아악! 그게 아니라니까! 아무리 성격이 어떻고 한들 한 번 맺은 맹약을 깰 종도의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리스라시르님, 제대로 설명해주세요!" -어머나? 이 설명으로는 역시 부족한가? 농담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설득력 있다고 생각했는데. "확실히 설득력은 있네요." 티아라의 말에 티아는 더 이상 못 참겠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시퀸한테 너 다섯 살 때부터 여섯 살 때까지 있었던 일 다 이야기할까?" "리스라시르님. 진지하게 설명해주세요!!" 티아라는 금세 울 것 같은 얼굴로 리스라시르에게 애원했다. 리스라시르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제대로 설명해주마. 솔직히 나도 이렇게 잘 될 거라고는 생각 못했단다. "잘되다니요? 엘리멘탈 소드에 리스라시르님의 힘을 불어넣는 방법이요?" 티아의 질문에 리스라시르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운래 엘리멘탈 소드는 여섯 정령의 힘만 봉인할 수 있게 만들어진 것이란다. 애초에 엘리맨탈 소드에 내가 들어갈 자리는 없었던 거야. 그것은 너도 알고 있겠지? "아 그건...... 하지만 엘리멘탈 소드에는 만약을 위해 무녀가 제어하는 중앙의 구슬이 있잖아요. 전 그곳이라면 충분히 힘을 봉인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요." -물론 일시적으로는 들어갈 수 있었단다. 하지만 오래 머물러 있을 수는 없더구나. 봉인의 힘을 쓴 순간 나는 엘리멘탈 소드에서 튕겨 나와서 강제로 정령계로 이동했지. 그래서 정령계에서 새롭게 정령으로 재 탄생하던 너를 밀어낸 것이란다. 마신 스파크나를 봉인하고 튕겨 나온 것은 어찌 보면 기적에 가까은 확률이었단다. "그렇군요." "잠깐만요! 그럼 티아는 완전히 돌아온 거죠? 다시 정령계로 가버리거나 그런 건 아니죠?!" 티아의 발아래 뻗은 상태에서 이야기를 듣던 테이가 벌떡 일어나서 물었다. 리스라시르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단다. 티아는 계속 물질계에 남아 있을 수가 있어. "하하. 하하하! 만세! 만세에!" 테이는 아픔도 잊은 듯 티아를 번쩍 들어서 빙글빙글 돌리며 기뻐했다. "꺄악! 뭐 하는 거야?! 내려놔!" 티아가 얼굴이 새빨개져서 발버둥을 쳤지만 테이는 내려놓을 생각이 없었다. -이럴 때는 솔직하게 기뻐하는 테이의 마음을 받아들이렴. 리스라시르가 산양하게 충고해줬지만 티아는 부끄러운 마음에 솔지갛게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싫어요! 야, 빨리 내려놔! 그리고 누가 이름을 부르래?! 누나 라고 불러!" "티아가 이름으로 부르라고 했잖아." "그건 그때 사정이고!" "키스한 감촉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 "얼른 잊어버려!!" 주위 사람들은 둘의 평소와 다름없는 말다툼을 보면서 실감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리스라시르는 좀더 둘의 다정한(?)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티아의 부름이 없이 무리를 해서 물질계로 온 용건을 말하기 위해 테이에게 잠시 멈출 것을 요구했다. 테이는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티아를 내려놓았다. -그럼 티아여. 어떻게 하겠느냐? "예 뭘요?" 이런. 이런. 아직 못 느끼고 있는 것이니? 너와 나의 교감은 끊어졌단다. "예?" 티아는 리스라시르의 말을 듣고서야 느낄 수 있었다. 평소 자신의 몸 안에서 느껴지던 리스라시르의 마력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그 마력은 리스라시르와 티아의 계약의 증거였다. 결국, 그게 없어졌다는 소리는...... "정령왕의 계약이 파기됐어?!" 티아는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리스라시르가 사실이라는 것을 일개워주며 말했다. -그렇단다. 날 검에 봉인할 때 파기의 주문을 외웠지? 그것 때문에 계약이 깨진 것이다. "그렇군요. 그럼 곧 재계약을 하겠습니다." -그래도 되겠느냐? "예?" 티아는 리스라시르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다. 리스라시르는 생극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금 나와 재계약을 하겠다는 뜻은 네가 다시 카이저 드래곤으로 각성하겠다는 뜻이 된단다. "네? 네에?!" -이런, 그것도 못 느끼고 있었구나. 너의 육체는 일단 물질계에서 한번 사라졌었다. 그리고 다시 생겨나면서 카이저 드래곤으로서 각성이 안 된 육체로 재생된 것이다. 카이저 드래곤의 육체는 쉽게 재생이 되지 않는 것이란다. "그, 그럼.... 그럼 저는?" 티아는 도지허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다가 이마를 가린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고 테이에게 물었다. "테이야! 내 이마에 육망성이 표시 있어?" "어, 없어." 카이저 드래곤이라는 표식인 육망성의 표시도 없어졌다. 티아는 보통 드래곤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약간 힘이 센 예날이 보통 드래곤으로...... -그럼. 재 계약을 하겠느냐? "안 할래요!" 티아는 고민할 것도 없다는 듯이 바로 대답했다. 다소 예의 없는 대답일 수도 있겠지만 리스라시르는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티아의 오랜 짐이 덜어진 것 같아서 기쁘기까지 했다. -그럼 이것으로 이별이구나. 하지만 역시 약간은 아쉽고, 쓸쓸한 니낌도 들었다. "아! 리스라시르님." 리스라시르의 아쉬운 표정을 본 티아는 무슨 말이라도 해야 되겠다는 생각에 리스라시르를 불렀다. 하지만 리스라시르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네가 선택한 길이란다. 그리고 나 역시 너의 선택이 옳다고 생각한단다. 잠시 동안 나와 함께 했던 신의 딸이여. 그동안 정말 지미있었다. "리스라시르님." 전 싸움 전에 테이에게 말했지. 정령계에서는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이라고 맞는 말이란다. 그러니 이별은 아니란다. 나는 영원히 지켜볼 것이다. 나와 함께했던 상냥한 드래곤을. 그리고 이 지상에 사는 모든 생명을...... 리스라시르의 몸이 서서히 투명해지면서 빛의 입자들로 변해갔다. "리스라시르님!!" -지상의 생명들이여. 생명의 소중함을 잊지 않기를 항상 기도하며 지켜보겠다. 티아여. 지상에서 생명을 다하고 다시 내 곁으로 돌아올 때를 기다리고 있겠다. 그때까지 소중한 이와 함께...... 리스라시르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완전히 사라져싿. 티아는 맑은 눈물을 흘리며 사라져가는 빛의 입자들을 비켜보았다. 오랬동안 함께했던. 자신의 또 다른 분신 같았던 생명의 정령왕에게 마음속으로 작별을 고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언젠가 반드시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겠습니다.' 티아는 누군가 자신의 손을 잡는 것을 느껴싿. 하지만 누군지 알기 때문에 굳이 돌아보지는 않았다. 티아는 자신의 손을 잡은 테이의 따스한 온기를 느끼며 살짝 눈을 감았다. 그 옛날 티아는 유한의 삶을 잃고, 무한의 삶을 손에 넣었다. 하지만 오늘 티아는 잃어버린 유한의 삶을 다시 얻고, 사랑하는 이의 따스한 마음을 같이 손에 넣었다. 대신에 무한의 삶과 오랫동안 함께했던 정령왕을 잃었지만 무한의 삶에는 미련이 없었다. 그리고 생명의 정령왕은 반드시 다시 만날 수 있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생명이 다할 때까지 살아가면 언젠가는 반드시...... 종장 그리고 새로운 미래로 - 후아... 이제 거의 다 쳤네요... 에구... 힘들어.. -stseed 마신전쟁 이후. 각 나라들은 각자 대대적으로 승리를 축하하는 축제를 열었다. 축제는 짧게 2주에서 길게는 한 달간 계속됐다. 마신전쟁에 참가해서 살ㅇ남은 사람들은 살아 있는 전설로 통했고, 입에서 입으로 무용담이 전해졌다. 물론 무용담의 주 내용은 테이의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테이는 마신전쟁에서 영웅 대접을 받고 있었다. 테이가 그렇게나 갈망하던 용사로서의 전설을 드디어 이룩한 것이다. 다만 그 주역인 테이는 현재 볼을 부풀리며 불만의 늪에 빠져 있었다. "대륙의 영웅 얼굴이 그게 뭐야?" 티아는 테이의 불만 가득한 표정에 핀잔을 부며 말했다. 그러나 테이가 이렇게 화가 난 원인을 따지자면 바로 티아에게 있었다. "인정할 수 없어." "무엇을?" "어째서 아이를 낳자는 내 청혼을 거절하는 거야?!" "싫으니까." 티아는 너무나도 냉정하고 깨끗하게 거절했다. 그것이 테이의 분노를 더욱 부추겼다. "그러니까 자세한 이유가 뭐냐고?! 이제 와서 뺄 거 없잖아!!" "내가 뭘 뺀다는 거야? 그 이야기라면 저번에 확실히 거절했었잖아." "아니, 저번 일은 저번 일이고! 우리 둘 이번 싸움에서......" 테이는 확실히 마음이 통하지 않았냐고 묻고 싶은 말을 꿀꺽 하고 삼켰다. 티아는 테이의 말에 곰곰히 생각하는 표정을 짓다가 생각났다는 듯이 손을 탁 하고 쳤다. "아, 혹시 내가 이름으로 불러도 된다고 했던 그 때 말하는 거야?" "그, 그래. 그것도 이유 중에 하나고......." "서비스라고 했잖아." 테이는 입을 쩍 벌린 채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그때 그 애절한 대화와 감정이 단순히 서비스라는 단어 하나로 설명될 수 있단 말인가? "더구나 내가 돌아왔으니 그때의 서비스는 취소해도 상관없지만, 그래도 네 얼굴 봐서 계속 부르게 해주잖아. 고마워하지는 못할망정 불만이라니 너무 뻔뻔하다고 생각 안해?" '뻐, 뻔뻔한 것은 티아잖아!' 라고 소리치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테이는 호흡을 고르면서 필사적으로 안정을 찾았다. 여기서 흥분하면 진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테이도 많이 성장(?)했다. "저기. 그럼 왜 나가 꼭 안았을 때 뿌리치지 않았던 거야?! 티아도 싫지는 않았지?" "응. 싫지 않았어." "그럼 좋아하는 거지?" "응. 좋아해." 테이는 기쁨에 겨워 환호성이라도 지를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럼 우리 아이를 만드는 거지?!" "싫어." 테이는 순식간에 지옥의 밑바닥에 떨어진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거참, 표정이 펴졌다가 우울해졌다가 참 바쁘구나." "누구 탓인데!! 도대체 뭐야?! 내가 좋다면서!!" "응. 좋아해." "그럼 우리 아이를 만드는 거지?!" "싫어." "으아아악! 도대체 그게 뭐냐고오!!" 티아는 혀를 날름 내밀면서 말했다. "스스로 생각해보렴." 그렇게 말한 ㅎ후 티아는 한껏 여유를 잡으면서 돌아섰다. 그 행동마저도 테이를 약 올리는 것 같았다. 덕분에 테이의 발광은 한층 더 심해졌다. 발광하는 테이를 남겨두고 티아는 걸어가면서 살짝 얼굴을 붉혔다. '바보. 겨우 정상으로 돌아왔는데 다짜고짜 아기 타령부터 하니. 조금쯤은 여유를 갖고 행복을 느긋하게 느껴도 되잖아. 잃어버린 2000년의 시간을 약간이라도 보상받기 위해서 말이야.' 티아가 솔직하게 그 말을 했다면 테이가 '여자는 이해 못하겠어!'라고 발광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하지만 티아는 대놓고 그렇게 말하기가 아직은 많이 부끄러웠다. 아마도 이 둘이 제대로 된 연애라는 것을 하려면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티아들은 아직 오리하곤 왕국에 남아 있었다. 오리하곤 왕구의 축제는 대륙에서 제일 빨리 끝나싿. 실종된 걸로 알려진 슬라드 오아자가 이번 마신전쟁의 제물로 바쳐졌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에 오리하곤 왕국은 일찌감치 축제를 끝내고 대신에 황태자의 추모식을 거행했던 것이다. 물론 슬라드는 죽지 않았다. 이것은 아그라느 공작과 라스크라 공작이 꾸민 일이다. 티아의 말대로 슬라드를 생모에게 돌려주기 위해 꾸민 일이었다. 그리고 아그라느는 정식으로 오리하곤 왕국의 국왕으로 즉위하게 됐다. 슬라드 오아자가 죽은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지금 당장이 아니라 추모식이 끝나고 난 뒤 나라의 소란이 어느정도 가라앉으면 실행될 예정이다. 일부 정통 국왕파들의 반발이 있었지만 그들 사이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라스크라 공작이 아그라느를 지지했기 때문에 내전이 일어날 염려는 절대 없었다. 혹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그때는 티아가 나서서 손을 봐주리고 했으니 안심인 것이다. ...아니, 오히려 그렇게 되면 조금 불안할지다..... "티아님." "응?" 아직 오리하곤 왕국에 남아 있던 티아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느는 네반 공작부인과 자신을 부른리이나가 서 있었다. "호오. 리이나. 그렇게 차려 입으니 정말 공주 같다." "노, 놀리지 마세요. 이런 옷은 영 불편하고 부끄럽단 말이에요." 노란색 드레스를 곱게 차려입고 아름다운 금발을 틀어 올린 리아나는 정말로 기품 있는 공주 같았다. 아니, 이제는 진짜로 공주다. 슬라드 왕자는 죽은 것으로 처리됐지만 대신에 어릴 적에 죽은 것으로 알려진 레그다트 왕자의 귀환 소식. 더구나 레그다트 왕자가 실제 공주임에도 왕자로 키워졌던 과거와 독살을 당할 뻔해서 정체를 감추고 숨어 있었다는 사실 등이 알려졌다. 물론 처음에는 믿지 않았지만 왕족의 피만을 지키는 오리하곤 문장의 보호마법이 리이나에게 반응하는 증거로 겨우 납득시킬수 있었다. 그리고 리이나의 귀환으로 숨겨져왔던 왕국의 부끄러운 과거가 만천하에 드러나면서 관련 귀족들은 기를 못 펴게 됐다. 이것도 전부 아그라느의 왕위 계승에 든든한 밑거름이 되어주었다. "무슨 소리니? 오리하곤 왕국의 귀여운 막내 공주가 됐는데 당연히 이 정도는 입어야지. 아니, 오히려 너무 수수해. 다음에 언니가 드레스를 맞춰줄게. 코디도 안심하고 다 몉겨둬." "사, 사양하며 안 도리까요?" "절대로 안돼." "하아아아아." 리이나는 있는 힘껏 한숨을 쉬었다. 처음에 이 제의를 받았을 때는 거절했었다. 하지만 동생이 살아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은 네반의 마음과 왕국에 고인 나쁜 피를 약간의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뽑아내야 된다는 아그라느와 라스크라의 강력한 설득 때문에 결국 허락했다. 그 결과 불편한 펄러거리는 옷을 입고 무도회에서 기사들과 귀족들에게 미소를 지어야 된다는 것이었고, 그것은 리이나에게 고역이었다. "티아님." 리이나는 무언가 간절히 원하는 눈으로 티아를 바라보았다. "그런 눈으로 봐봤자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그리고 내가 덜 공주 자리에서 도망치게 해줬다가는 뒤에 서 있는 네 언니한테 무슨 저주를 받을지 모른다고." "저는 마녀가 아니에요!" 네반이 얼굴을 확 붉히면서 꽥 소리를 질렀다. "말이 그렇다는 거야, 말이." 티아는 방금 전 한 말이 농담이라는 뜻으로 웃으며 리이나에게 말했다. "그래도 말이야, 다른 공주와는 달리 너는 굉장히 여유가 많은 편이잖아. 이미 형부가 왕이겠다. 언니는 여왕이니 그렇게 힘들게 생각할 필요 없잖아." "그렇긴 해도......." 리이나가 원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바로 티아 일행과 같이 다녔던 때처럼 다시 한번 자유롭게 세상을 여행하는 것. 물론 지금 리이나에게는 이루어질 수 없는 소원이다. 하지만...... -좋은거 가르쳐줄게. 티아는 실프를 이용해서 리이나에게만 말이 들리도록 했다. -서니가 조만간에 뭔가를 할 모양이야. 아마도 어느 나라의 공주를 납치해서 끌고 다닐 거라지? 리이나는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곧이어 놀라움은 기쁨으로 변했다. "응? 리이나, 왜 그러니?" "에? 아, 아뇨. 아무것도, 저번에 티아님이 입었던 드레스 말인데요. 그거 내가 입으면 어울릴까 잠시 상상해봤어요. 음, 어울리지 않더라도 무척이나 예쁜드레스라 입으면 비분이 좋을 것 같아요." 리이나는 당황해서 드레스를 제물 삼아 거짓말을 했다. "무슨 소리니?! 당연히 어울리지! 좋아. 다음에는 순결하고 신비로운 흰색으로 해줄게." 엄청나게 수상한 변명이지만 동생 사랑에 불타는 네반을 잘속여넘긴 것 같다.리이나는 속으로 '언니 미안'이라고 중얼거리고는 티아를 쳐다보았다. 리이나는 입술만 달싹거려서 티아에게 말을 전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알아들을 수 없겠지만 티아는 똑똑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서니님에게 납치당하기를 기대한다고 전해주세요. 납치당할 준비 철저히 해둘게요.' '아니, 납치당하는데 준비씩이야.' 티아는 어이없는 웃음을 지으며 식은땀을 흘렸다. 그 후, '죄송합니다. 잠시 납치당하고 오겠습니다'라는 쪽지를 남기고 리이나가 사라지는 것은 1년 후의 이야기이다. 티아라는 밀린 서류더미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티아를 오리하곤 왕국에 남겨두고 온 후 축제르르 마음껏 즐긴 결과물이 책상 가득히 쌓인 것이다. "너무해! 이걸 나 혼자 다 어쩌라고?! 티아님. 어서 돌아와 주세요!!" 티아라는 울먹이며 외쳤지만 마음속 한구석에서는 이미 체념을 하고 있었다. 티아는 이제 수호룡을 그만둘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긴 나라도 그만두겠지. 하아아아아. 카이저 드래곤의 그림자역이 내 대에서 끝나는구나." 티아라는 서류를 정리하면서 아쉬움과 슬픔이 교차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문이 열렸다. "티아님?!" 체념은 하고 있엇지만 그렇다고 기대를 아예 안 한 것은 아니다. 혹시라도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티아라는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을 보고 실망의 한숨을 쉬었다. "뭐야? 시퀸 오빠잖아." "이봐. 이봐. 그래도 약혼자한테 '뭐야'라는 말을 하면 안되지." 시퀸은 쓴 웃음을 짓고는 방안으로 들어와서 책상에 쌓인 서류더미를 보며 낮게 휘파람을 불었다. "휘유. 이게 인간이 할 수 있는 양인 거야? 과연 그림자는 대단하군." "난 장난칠 기분이 아니에요! 방해를 하실 생각이라면 나가주시고 도와주실 거라면 빨리 도와줘요!!" "티아라는 어느 쪽을 원하는데?" "도와줘요." 시퀸은 울먹이는 티아라의 얼굴을 보며 미소 지었다. 그는 티아라의 어렸을 때부터 봐왔지만 지금도 저렇게 어리광을 부리는 모습을 볼 때면 참을 수 없는 귀여움을 느꼈다. 시퀸은 의자를 가져와서 티아라의 맞은 편에 앉아 일부의 서류를 자신의 앞으로 가져갔다. 시퀸의 행동으로 도와주겠다는 의사표시를 해 보이자 티아라는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참, 이거 티아님 편지." 시퀸은 서류를 훑어보기 전에 품속에서 하얀 봉투를 꺼내서 티아라 앞에 놓았다. "티, 티아님 편지요?" "응. 왜 그래? 전혀 반갑지 않다는 표정이네." "그거야......." 혹시라도 '안녕. 잘있어'라는 내용의 편지라면 울어버릴 것 같아서 쉽게 손을 댈 수가 없다. "내가 읽어줄까?" "아, 아니. 나한테 온 편지인걸. 역시 직접 읽을게요." "응. 역시 그게 좋지." "하지만 그전에 마음의 준비부터 하고." 티아라는 위험한 물건이라도 개봉하는 듯한 표정으로 손을 떨며 티아의 편지를 들고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단숨에 편지를 개봉해서 편지지를 손에 들었다. 내용은 티아답다면 다운 짧은 내용이었다. -좀 이곳저곳 많이 돌아디니게 되겠지만 수호룡을 그만두지는 않을 거야. -가끔 들를 테니 내가 없는 동안 뒷일을 부탁해 -추신. 시퀸과 결혼하게 되면 꼭 참석할게 그때 할 수 있다면 요령껏 날 붙잡아두렴. 짧은 내용의 편지를 단숨에 읽은 티아라는 눈을 빛냈다. "뭇느 내용이야?" "오빠!" "으, 응?" 마치 벼락과도 같은 티아라의 기세에 시퀸은 저절로 긴장부터 했다. 저 귀여운 입에서 어떤 말이 나와서 날 당황하게 해줄까? "지금 당장 견혼해!" 하지만 티아라의 말은 시퀸의 예상을 가볍게 뛰어 넘어서 당황스러운 정도가 아니라 황당했다. "지, 지금?" "지.금!" 티아라는 주먹을 꾹 쥐고 외쳤다. "절대로 이 일거리에 티아님도 동참시키겠어! 혼자서만 떠맡는것은 더이상 싫단 말이야!!" 시퀸은 자신과의 결혼이 일에 밀렸다는 사실에 약간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저런 면도 귀엽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점이. 자신의 아내는 티아라가 아니면 안 된다는 점을 확인시켜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둘이 결혼하는 것은 조금 더 후의 일이다. 그리고 티아는 약속대로 자리에 참석해서 둘을 축복해줬다. 티아라가 티아를 붙잡아두기 위해 약간의 소동(?)을 일으키긴 했지만...... 높은 산 정상의 큰 바위 위에서 서니는 한숨을 쉬었다. "서니님. 밥 다 됐어요." 약간 아래에서 리엥리아가 서니를 불렀다. 서니는 당장 울고 싶어졌다. "서니님! 뭐 하세요?! 식사하라니깐요." 리엘리아는 서니가 안 내려오자 약간 짜증이 난 목소리로 다시 불렀다. "너 말이야." 서니는 바위에서 단숨에 뛰어내려서 리엘리아의 앞에 섰다. "이번에는 맛을 제대로 본 거지?" "음. 아마도요." "아마도가 뭐야?! 아마도가?!" 리엘리아는 뽀로통한 표정으로 서니를 쳐다보며 말했다. "하지만 난 인간들 음식을 잘 할 줄 모른단 말이에요. 그래서 그냥 엘프 식대로 먹자고 했잖아요." "무조건 과일만 먹으면 엘프 식이냐?!" 물론 절대 아니다. 엘프들은 독자적인 음식 문화를 발전시켜왔다. 물론 대부분이 자연산 식물과 과일들로 이루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맛있는 음식은 인간 사회에서도 인가가 좋았다. 하지만 리엘리아의 엘프 식 음식은 그냥 과일을 따다가 차려놓은 수준이었다. 즉, 쉽게 말하자면 리엘리아는 요리를 못했다. 특히 인간의 요리는 거이ㅡ 독극물 수준의 효롸(?)를 자랑했다. 지금도 리에리아가 차려놓은 음식은 냄새는 좋았지만 모양이 참으로 제멋대로였다. 아무리 사흘을 굶는다 해도 절대 손대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너 말이야, 식중독으로 날 죽여서 드래곤 슬레이어가 될 생각 인거지?"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는 거예요? 힘들게 차려놨는데, 정성을 생각해서 어서 드세요." 서니는 침을 꿀꺽 삼키면서 리엘리아의 음식이라는 정체불명의 물체를 쳐다보았다. 맛있을 것 같아서 삼키는 침이 아니다. 긴장에 의해 마른침을 삼킨 것이다. 하지만 리엘리아는 그것을 맛있을 것 같다는 의미로 받아들인 것 같았다. "헤헤헤. 그렇게 맛있어 보이세요? 자자, 걱정말고 드세요. 이작 많이 있어요." 서니는 리엘리아가 접시에 담아주는 물체(?)를 들고 고민했다. 그때 킁킁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멧돼지 한 마리가 수풀 속을 헤치며 가는 것이 보였다. 리엥리아는 스푼으로 물체(?)를 떠서 멧돼지에게 던졌다. "앗! 뭐하는 거예요?!" "쉿!" 서니는 멧돼지가 겁먹고 도망치지 못하도록 리엘리아의 입을 막고 조용히 메돼지를 지켜보았다. 멧돼지는 자신의 앞에 떨어진 물체(?)의 냄새를 맡다가 곧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분 후, 멧돼지는 입에 게거품을 물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 "어. 어라? 왜 저럴까요?" "너, 너! 역시 독으로 날 죽일 생각이지?!" "아니라고 했잖아요! 이렇게 맛있는데 너무해요." 리엘리아는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자신이 만든 음식을 먹어싿. 그리고 시간이 흘러도 쓰러지지 않았다. "보세요. 아무렇지도 않잖아요!" "하아. 부탁이니 네 이상한 위장을 기준으로 음식을 만들지 말아줘." "그게 열심히 만든 사람한네 할 소리예요?!" "젠장! 얼른 리이나를 납치하든지 해야지! 이대로는 여행중에 줆어 주겠어!" "딴소리 그만 하고 일단 먹어보라고요!!" 그래도 덕분이라고 해야 될까? 서니는 그날 멧돼지를 바비큐로 만들어 식사는 제대로 마칠 수 있었다. 그 후 서니는 리엘리아의 음식을, 먹기보다는 동물을 잡는 덫 용도로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리엘리아와의 말다툼으로 하루를 보내며 여행을 다녀싿. 이러니저러니 해도 둘은 의외로 보기 좋은 한 팀으로 나중에 참가하게 되는 리이나와 함께 꽤나 오랬동안 여행을 다녔다. 티아는 슬라드를 안아서 젊은 여자의 앞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슬라드의 진짜 생모로, 태어나자마자 헤어진 아들을 다시 만나서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고 있어싿. "아우? 마마? 우러?" 슬라드는 티아의 슬픈 얼굴을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티아는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엇지만 슬라드에게는 완전히 숨길 수는 없었던 것 같았다. "으응. 울지 않아. 엄마는 괜찮아." 티아는 슬라드의 뺨에 자신의 뺨을 갖다 대고 살며시 속삭였다. 잠을 재우는 주문과 그리고 기억을 조작하는 주문. "마...마." 무언가를 느낀 것일까? 슬라드의 어린 뺨에 눈물이 한줄기 흘러내리면서 조용히 잠들었다. 그리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티아의 옷자락을 꼭 붙잡았다. 헤어지기 싫다는 어린아이의 몸부림 같았다. 티아는 당장이라도 울고 싶었지만 바로 눈앞에서는 슬라드의 생모가 올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티아는 울 수 없었다. 티아는 슬라드의 손을 옷자락에서 떼어내고는 생모에게 슬라드를 넘겼다. 자상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여자였다. '그래. 이게 슬라드를 위한 일이야.' "그럼 건강하고... 착하게 키우세요." 티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상냥하게 웃으며 돌아섰다. 그때 슬라드의 생모가 티아를 불렀다. "저기!" "예?" 티아는 뒤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이 아기는 태어날 때 제가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습니다. 혹시 드래곤님께서 따로 지어주신 이름이 있으신가요?" 티아는 눈물을 참기 위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때마침 불어온 산들바람이 티아의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져줬다. "......실피온. 바람이 데려온 아이라는 뜻의 드래곤들의 언어랍니다."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이 아이의 이름은 실피온으로 정하겠습니다." "하, 하지만." "아니요. 이 아이의 이름은 실피온 이외에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부디 실피온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돌 ㄱ허락해주세요." 허락 따위는 필요 없다. 오히려 티아가 부탁하고 싶었던 일이다. 티아는 눈물이 나요려는 것을 필사적으로 참았다. "사용해주시면 이름을 지은 제가 보람을 느낍니다. 고마워요." "그리고 꼭 실피온을 만나러 와주세요. 폐가 되지 않으시다면 언제라도 좋으니 꼭 들러주세요." 폐가 될 리가 없다. 가끔 멀리서라도 지켜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고마워요. 당신은 좋은 엄마가 되겠네요. 실피온을 잘 부탁드립니다." 티아는 후다닥 뛰어서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 자리에 더 있다가는 정말 울어버릴 것 같았다. 지금 티아는 안심하고 울 장소가 필요했다. "티아"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테이가 달려오는 티아를 맞았다. 티아는 더 생각할 것도 없이 테이의 가슴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참고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그곳이 바로 티아가 안심하고 울 수 있는 장소였다. "흑, 흑흑흑." 테이는 흐느끼는 티아의 머리를 상냥하게 쓰다듬어주었다. "우리 아이를 만들자." 드래곤들의 청혼. 테이는 이미 몇번이나 했던 그 말을 다시 티아에게 청했다. "응." "그래, 역시 아직은 안 되는구나...가 아니라! 허, 허락하는 거야?!" "응." 티아는 다시 한번 또렷하게 허락의 말을 했다. 테이는 기쁜 표정을 지으며 티아르 꼭 껴안았다. "고마워. 정말 고마워." "언젠가는 꼭." "에?" 티아는 테이의 가슴을 손으로 밀쳐내고 떨어졌다. 티아는 어느새 울음을 멈추고는 소매로 눈물자국을 닦아냈다. "자, 잠깐! 언젠가 꼭이라니! 무슨 뜻이야?!" "말 그대로의 뜻." 방금 전까지 울고 있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평소와같은 표정으로 돌아온 티아가 생극 미소 지었다. 티아는 얼이 빠져 있는 테이에게 다시 한번 강조를 넣어서 말해싿. "언젠가는 꼭 낳아줄게." "뭐, 뭐, 뭐, 뭐, 뭐야?! 그게!!" "말 그대로의 뜻." "치사해!!" "무슨 소리야? 그래도 상냥하게 위로해준 것이 고마워서 한발 양보해줬는데, 도로 물릴까?" 물릴게 뭐가 있다고 물린다는 말일까? "한 발이라니?! 그럼 골인 지점까지 도대체 얼마나 남았다는 거야?? "너 하기 나름." 티아는 생긋 웃으며 테이의 곁을 지나쳐서 걷기 시작했다. "치사해!" "자자. 그러지 말고. 아왕 이렇게 된 거 여행이나 하자. 이번에는 데스타 제국 쪽으로 가보자고." "너무해!" "남자가 대범하고 여유를 가져야지. 안 그러면 있는 여자도 떨어져 나갈걸." "시끄러워! 심술쟁이 못생긴 마녀!" -빠직 "아." 무언가가 끊어지는 소리에 테이는 ㅅㄴ간 자신의 실수를 후회했다. 물론 때늦은 후회다. 티아는 아이스 미사일을 소환해서 테이를 노려보았다. 티아는 비록 카이저 드래곤의힘은 없어졌지만 여전히 마력과 힘에서는 테이보다 월등하게 앞섰다. "저, 저기. 티아, 방금 저 말은 우리의 새 출발을 기념하며 아름다운 저녁놀에 날려버리자." "그전에 너부터 날려줄게." 티아는 이마에 힘줄이 돋은 채 생긋 미소 지었다. 아주 화가나서 폭발 직전이라는 전형적인 표정이다. "자, 자, 잠깐! 타임!" "시끄러워! 이 바보 드래곤아!!" 테이의 인생 골인 지금은 그 순간 아주 멀리, 멀리 날아갔다. 하지만 이둘은 괜찮을 것이다. 앞으로 많은 시간을 함께 살아갈 것이고, 같은 공간과 시간을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둘은 이제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으아악! 제발 용서해줘! 실수였다니까! 아아악!" "시끄러워! 도망치지 말고 얌전히 맞아! 죽지 않을 만ㅌ큼 패주겠어!" .......아마도 문제 없을 것이다. -에필로그- -고지가 눈앞에 보인다. 드디어.... -stseed 인간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깊은 산속. 그리고 산의 절벽 아래 계곡에는 큰 동굴의 입구가 보인다. 인간들이 드래곤이라 부르며 경외하고 두려워하는 존재가 사는 곳. 이곳은 드래곤의 레어가 있는 곳이다. 커다란 성 하나는 들어갈 법한 넓은 공간에 은빛을 발하는 실버 드래곤이 누워 있었다. 드래곤은 황금색 눈을 가늘게 뜨며 어느 한 지점을 보고 있었다. 그곳에는 드래곤의 손 크기 정도 되는 둥근 알이 하나 있었다. 알이 있다는 것은 이 드래곤이 여성이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매끈한 비늘과 상냥한 황금색 눈동자는 어쩐지 여성이라는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슬슬 태어날 때가 됐네." 드래곤은 기대에 가득 찬 눈으로 알을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간이ㅡ 시간이 흐르자 알이 움찔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드래곤은 방금 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기대감이 가득한 눈으로 그것을 지켜보았다. 알은 이리저리 흔들리더니 곧 팔 하나가 껍질을 깨고 뻗어 나왔다. 먼저 나온 팔은 알껍지릉 ㄹ벗어내려는 듯 필사적으로 허공을 저었다. 그것이 여의치 않자 작전을 바꿨는지 알 밑동이 흔들렸다. 잠시후 알을 깨고 다리가 하나 나왔다. 계속해서 두 번째 다리. 이제 두 다리로 엉거주춤 서서 몸을 이리저리 흔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리에 힘이 없는지 두 다리는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막 엄마가 된 드래곤은 도와줄 생각은 않고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괜찮아. 넌 할 수 있어. 넌 할 수 있어.' 엄마 드래곤의 마음의 소리가 통한 것일까? 드리더 머리가 알을 깨고 나왔다. 그리고 곧이어 나머지 한쪽 팔도 나오고 완전히 자유가 된 두 팔로 알을 부숴나갔다. 얼마 후 세상에 갓 태어난 해츨링은 힘들었다는 듯 그 자리에 주저앉아 길게 한숨을 쉬었다. 날개를 펼 힘조차 남아 있지 않은지 작은 날개는 축 늘어져 있었다. 하지만 눈동자는 빛나고 있었다. 해츨링은 호기심에 가득한 눈으로 레어 안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엄마 드래곤은 언제쯤 자신을 발견할까? 라는 기대감에 잠자코 있었다. 잠시 후 해츨링은 엄마 드래곤의 얼굴을 발견했다. 해츨링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엄마 드래곤을 쳐다보았다. 그건 마치 '누구세요?'라고 말하는 것 같은 행동이다. 엄마 드래곤은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해츨링에게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해츨링은 주저하지 않고 작은 손을 뻗어서 엄마 드래곤의 얼굴을 만지작거렸다. 호기심이 꽤나 강한 해츨링이었다. 엄마 드래곤은 해츨링이 놀라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안녕. 내 귀여운 아가야." 작가아님 -_- : 끄아~~ 끝났다.~~ 드디어 타자를 다 쳤습니다. 흑흑... 정말 힘들었다는... 쿨럭... 뒤에 외전도 하나 있지만... 이건 별로 길지 않으니... 책방가서 서서보세요 -_-;;;;; 그럼 이만... -stse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