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 제길. 요새는 왜 이렇게 하는 거 없이 졸리지. 음. 그런데 이제 슬슬 글 쓰기도 지겨워지는게 잠시 충전기간을 가져야 할 듯. 아주 잠시! *********************************************************************** 레이펜테나 연대기 제 1 부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제 26 화 : 朔風#10 ------------------------------------------------------------------------ 팔마력 1548년 10월 9일 "젠장!" 나는 윈드워커의 부츠에 드로우 파워를 걸고 최대 출력으로 먼저 지상에 내려왔다. 무릎이 삐걱거리는 게 착지한 것 만으로도 엄청난 미친 짓이었 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순간 몸을 반전시키며 쉐도우 아머 어그레시브를 걸고 떨어지는 디모나를 받아내었다. 역시 무릎이 끊 어질 것 같지만 그렇게 못 참을 정도는 아니다. 나는 힘겹게 디모나를 받 아내고 위를 올려다 보았다. 그곳에는 고사천사처럼 눈부신 날개를 펼치 고 빗속에 서있는 보디발 왕자가 있었다. "흐음. 그 높이에서 이렇게 화끈하게 반전하다니 대단하군 역시. 이 정도 로는 각성을 하지 않는 건가? 컨슘 하기에는 여전히 상태가 안 좋군 그 래. 내 동생." "...세상 어느 형제가 서로서로 잡아먹으려고 난리냐?" 내가 그렇게 물어보자 그는 자신을 가리켰다. "나." "에...." 이 패턴 전에 한번 비슷한 게 있지 않았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서 디모 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러나 그녀는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좋아. 그러면 그 디모나를 죽여보기로 하지. 혹시 각성할지도 모르잖아? 형제?" 보디발 왕자는 그렇게 말하고 잔인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 보았다. 만약 각성이 '저런 것'으로 변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나는 절대로 각성하고 싶 지 않다. 이전부터 무의식중에 거부해오던 각성, 역시 더럽고 찜찜한 일 이었다. "이런 젠장! 내가 그렇게 쉽게 당할 줄 알아!?" 나는 그렇게 외쳤지만 그때 병사들이 몰려왔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쉐도 우 아머 어그레시브를 건 상태이다. 병사들이 아무리 용감하다 하더라도 나에게 쉽게 다가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 보디발 왕자가 움직였 다. "하긴 일단은 디모나부터 잡아볼까?" "그만둬!" 나는 그렇게 외치고 날아오는 보디발 왕자를 향해 손을 휘둘렀다. 그러나 보디발 왕자는 마치 제비가 물을 차는 것처럼 가볍게 피하며 날개를 휘둘 렀다. 그러자 내 팔이 거의 반정도 잘려나가며 피를 뿜어내었다. "으아아아악!" 나는 엉겁결에 디모나를 놓쳐버렸고 그 순간 그는 디모나를 잡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좋아. 이 정도 높이면 충분하겠지? 던진다?" 그는 그렇게 나에게 일일이 확인시켜주고 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서 병사 들을 뛰어넘어 그녀가 떨어질 곳을 미리 확보하려 했지만 기사가 마상에 서 단창을 휘두르며 내가 지나가는 것을 방해했다. "이, 이자식들 비켜!" 나는 쉐도우 아머의 꼬리를 휘두르면서 병사들을 좌우로 쳐 날렸다. 원래 는 사람들을 안 죽이려고 했지만 이렇게 되면 죽여서라도 치워버리겠다! "꺼지지 않으면 죽인다!" 나는 그렇게 외치고 앞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보디발 왕자는 그렇게 내가 달려가는 것을 보고는 히죽 웃더니 반대쪽 방향으로 디모나를 집어던졌 다. "안돼!" 하지만 내 비명에도 아랑곳없이 보디발 왕자는 가볍게 디모나를 집어던졌 다. 디모나는 보디발 왕자에게 던져져서 성벽에 충돌한 뒤 떨어지기 시작 했다. 병사들이 있어서 나는 그쪽으로 다가가지 못한다. 그런데 그때 성 벽 위의 누군가가 손을 뻗어서 벽에 충돌했다 튕겨나간 펠리시아 공주를 잡았다. "위험하군. 이런걸 던지면 안돼." 성벽 위에는 한 명의 엘프가 서있었다. 나는 그를 올려다보고 깜짝 놀라 서 뒤로 물러났다. 디모나의 스승이며 윈드워커 가문의 후원자, 그리고 전생의 나를 죽였던 장본인 캐스윈드 사이크리드가 성벽 위에서서 디모나 를 잡고 있는 것이다. 그는 비바람 속에서 긴 머리칼을 흩날리면서 보디 발 왕자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디모나는 꽤 심한 타격을 입은 상태에서도 캐스윈드를 보고 기쁜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캐스윈드!" "...." 그녀가 기뻐하는 목소리만으로도 질투심이 울컥 치밀어 올랐다고 한다면, 나를 치졸하다고 생각할까? 유치하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나는 솔직하 게 질투를 느꼈다. 나에게는 눈길도 돌리지 않은 디모나가, 솔직히 내가 목숨도 여러번 구해줬던 디모나가, 나에게는 한번도 표현한 적 없는 저 정도의 감동과 감격을 드러내다니. 단지 이름 한마디를 부른 것만으로도 이런 감정에 휩싸이다니. 키스라도 했다면 상심으로 죽어버렸겠군. 제기 랄! "아... 다 당신은?" 그 순간 보디발 왕자도 멍청히 굳어서 캐스윈드를 바라보았다. 그 역시 캐스윈드에게 당한 기억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그러지 않으면 저렇게 놀 랄 이유가 없으니까. "이거 참 질긴 악연이군." 보디발 왕자, 아니 삭풍의 라파엘은 애써 침착한 척 하면서 그렇게 말했 다. 그의 날개가 크게 펼쳐지며 계속 방전을 시작했다. 그러자 캐스윈드 는 시큰둥 하게 물어보았다. "뭐야. 각성했나. 멍청이 왕자? 난 또 뭔가 강력한 힘이 해방되길래 이노 그말고 다른 놈이라도 튀어나왔나 놀랐잖아." 캐스윈드는 그렇게 말하고 디모나를 끌어올려서 마치 아이를 안 듯 품에 안았다. 그 자세가 너무 자연스러워서 마치 딸을 안은 아버지 같아 보였 다. 그는 그렇게 디모나를 끌어안은 채 보디발 왕자 못지 않게 도도하게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인간이군. 죽이지 않을테니까 잠시 머리나 식 히고 있어. 난 또 무슨 일인가 했군." "...." 우와, 저 보디발 왕자의 힘은 보통 강한 게 아닌데 저렇게 여유 부려도 되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놀라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때 보디 발 왕자가 피식 웃었다. "네놈도 지금에 와선 그다지 대단하진 않을 것 같은데? 일단 2억 4천만 발의 라이트닝 볼트를 먹어봐라." "해봐." 캐스윈드는 그렇게 말하고 디모나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그러자 정말 보디발 왕자의 몸에서 엄청난 수의 마법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죽어라! Lightning Executer!" "...." 과연 2억 4천만 발인지 어떤지 모르지만 무수한 수의 번개줄기가 캐스윈 드를 향해 날아갔다. 그러나 캐스윈드가 손을 하늘로 들자 벼락이 다들 방향이 꺾이면서 하늘로 날아올랐다. 마치 새하얀 폭포가 역류해서 하늘 로 올라가는 것 같은 장관이었다. 보디발 왕자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무수 한 번개가 하늘로 치솟아 올라 구름에 맞고 흩어지기 시작했다. -쿠쿠쿠쿠쿠쿠쿠쿠! 팽창된 공기가 돌풍을 불러 일으켰다. 가을밤의 구름이 흩어지고 돌풍은 거센 바람의 파도가 되어 성을 덮쳤다. "으아아아아악!" 병사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바람에 밀려나는 병사들, 마치 물결에 쓸 리는 두꺼비 떼 같다. 정원수가 뽑혀 쓰러지고 빗살이 지면에 수평으로 날리고 있었다. 나 역시 돌풍을 피하기 위해 지면에 손을 박고 바람을 이 겨내고 서있었다. 그러나 그 폭풍 속에서 캐스윈드는 태연히 기절한 디모 나를 끌어안고 서있었다. "이, 이런 제기랄! 도대체 네놈의 정체는 뭐냐?!" "그것까지는 알 거 없고. 자!" 캐스윈드는 갑자기 디모나를 나에게 집어던졌다. 나는 깜짝 놀라서 디모 나를 받으려 했지만 그녀는 마치 깃털처럼 공중을 팔랑거리며 천천히 내 려왔다. "아...." 나는 디모나를 받아 들고 그를 바라보았다. 캐스윈드는 나에게 손짓했다. "내가 시간을 버는 사이에 달아나라." "그, 그렇지만?" 그때 보디발 왕자가 날아들어서 캐스윈드를 향해 돌격했다. 하지만 그순 간 캐스윈드는 보디발 왕자와 같은 속력으로 뒤로 물러났다. 그가 물러난 공간만큼 무지개 빛이 일렁거리며 보디발 왕자가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아악!" 폭발이 일어나며 보디발 왕자가 튕겨나갔다. 캐스윈드는 일단 그렇게 보 디발 왕자를 튕겨내고 나에게 손짓했다. "자 그럼 가라!" "하지만, 페, 펠리시아 공주도 구출해야 하는데?" 나는 그렇게 말하고 탑 위를 올려다보았다. 어차피 각도 때문에 보이지도 않지만 펠리시아 공주는 기절에서 깨어나지 못한 것 같았다. 뭐 이대로라 면 보디발 왕자, 아니 삭풍의 라파엘에게 죽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펠리 시아 공주는 살아남을수 있지 않을까? 나는 보디발 왕자의 상태를 생각하 고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은 탈출하자. "그럼!" 나는 그렇게 말하고 디모나를 안은채로 앞으로 달렸다. 그리고 병사들 사 이를 뛰어넘었다. 왕성수비대는 그제서야 놀라서 나를 추격하려 했지만 쉐도우 아머 어그레시브는 블랙스톰이나 스텔라보다도 빨랐다. 밤의 거리 가 좌우로 달리며 시선의 밖으로 사라져 간다. 나는 내 팔에 안긴채 실신 해 버린 디모나를 바라보았다. 어째서 캐스윈드가 구조할 때는 딱 눈을 뜨고 그를 알아보더니 이제는 안심하고 혼절해버리냐. 좀 내가 구해줘도 감격하고 감동하고 그런거 없냐? 난 너무 억울하다고! "잡아!" 그때 맞은 편에서 병사들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빗속에서 들려오는 병사 들의 발소리는 마치 물놀이를 하는 아이들의 발소리처럼 찰박거린다. 그 러나 결코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발소리는 아니다. 쇳소리가 섞여있으니 까. 나는 큼직한 칸델라로 밝혀지고 있는 거리에서 뛰어 올라 3층 정도의 석조건물 위에 단숨에 올라섰다. 빗속에서 빛은 희뿌옇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건물의 옥상 가에 서서 한발을 걸치고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히익! 저 건 뭐야?!" "포메이션을 짜!" 병사들은 단숨에 성벽을 뛰어올라간 나를 보고, 아니 나의 쉐도우 아머 어그레시브를 보고 겁을 집어먹고 있었다. 뭐 이런 병사들에게 잡힐 내가 아니지. 그러나 병사들이 많이 깔릴 경우는 아무리 나라고 하더라도 곤란 하다. 과연. 나는 주위를 둘러보곤 혀를 찼다, 여기저기 횃불이 움직이는 게 보인다. 라이언즈 캐슬의 내성 밖, 시가도 이미 무수한 수의 병력들이 풀린 것이다. 뭐 쉐도우 아머의 힘으로 달아나는 건 일도 아니지만 이 경 우, 메이파 일행과 합류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때 나를 부르는 목소리 가 들려왔다. "여기다! 로그마스터!" 과연 도적 몇 명들이 후드를 두르고 나를 부르고 있었다. 역시 좀 내가 늦기는 했지만 문 댄서는 약속을 지켰다. 나는 그들이 있는 곳으로 내려 섰다. 그러자 그들은 즉시 골목길로 나를 안내하며 물어보았다. "어떻게 되었소?" "안 좋게 흘러가요. 괴물이 나타났으니까." 나는 그렇게 말하고 성을 바라보았다. 성의 위에는 여전히 검은 구름이 휘 감기고 있고 돌풍이 이따금씩 일어나고 있었다. 결국 보디발 왕자는 삭풍의 라파엘에게 잠식되고 말았다. 그로서는 힘을 얻기 위해, 각성을 한 것이겠지만 결과적으로 보디발이란 인간은 죽어버린 것이다. "제기랄! 일단은 달아납시다." "아 예." 그들은 그렇게 말하고 왠 집의 뒷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 뒤를 따라가지 그들은 좌측으로 돌아서 수로로, 또 꼬불꼬불한 길로 나를 안내했다. 이 런건 확실히 아무리 벨키서스 레인저건 로그마스터건 간에 소용없는 미로 다. 여기를 본거지로 살아온 도적들이나 익숙한 곳이겠지. 나는 그렇게 그들의 뒤를 따라서 겨우 라이언즈 캐슬을 벗어날 수 있었다. < 다음 화에 계속 > -------------------------------------------------------------------- 다음화 예고 드디어 각성한 보디발 왕자. 그를 피해서 달아난 우리들, 그러나... 더 이상 나는 디모나의 곁에 머물면서 상처받을 수 없다! 광기의 달, 미칠 수 있다면 차라리 행복하려만, 나는 내 슬픔이 부르는 광기로부터 나를 지켜야 하리라. 레이펜테나 연대기 제 1 부 The Rogue 제 27 화 Insane 미칠 것 같아..... *********************************************************************** 대 오타. 자자 가자구. *********************************************************************** 레이펜테나 연대기 제 1 부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제 27 화 : Insane#1 ------------------------------------------------------------------------ 광기가 나를 잠식하려 한다. 미칠 수 있다면 차라리 행복하련만. 나를 지켜야 하리. 내 슬픔이 부르는 광기로부터. 슬픔이란 이름의 도피로부터 나를 지켜야 하리. 팔마력 1548년 10월 9일 보디발 왕자는 레오나 공주의 죽음으로 마침내 각성해 버렸다. 그의 각성 과 동시에 인간 보디발의 인격은 강력한 존재인, 삭풍의 라파엘에게 침식 당해버렸다. 완전히 라파엘로 바뀐 것인지 아니면 보디발 왕자의 인격에 숨겨져 있던 것이 밖으로 표출된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 한 것은 우리가 처한 상태가 더 안 좋아졌다는 것이다. 에스페란자 공국 의 공안요원들, 그 에밀리오라고 했던가? 그들의 목적은 레오나 공주의 구출에 있는 게 아니라 그저 린드버그 백작을 견제하려고 한 것 뿐이었으 리라. 음. "어쨌거나 이거 일이 커졌는데.... 이놈들, 레오나 공주를 구하려고 한게 아니라 그저 린드버그를 견제하려고 한 거로군. 젠장." 나는 디모나를 오른쪽 어깨에 얹은 뒤 쉐도우 아머로 붕대를 감으며 그렇 게 투덜거렸다. 보디발 왕자에게 베인 팔은 상태가 꽤 심각했다. 쉐도우 아머 어그레시브를 걸었을 때는 움직였지만 그걸 풀자 팔이 움직이지 않 는게 아닌가? 젠장. 어쨌거나 그 에스페란자 공국의 놈들, 정말 자국의 공주를, 즉 자기 누나 도 아낌없이 버려버렸군. 일개 병사에게 목숨을 바치라고 요구한다면 그 게 왕족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까지 해야 하는 걸까? 나라를 위해서 가족도 다 희생시킬 수 있다고 그것이 고결한 희생 일까? 결국 나라와 나라의 싸움이라고 해도 인간끼리의 싸움일 뿐 아닌 가? 적어도 그런 쪽으로는 숭고한 희생이란 건 존재할 수 없다. 더구나 사랑하는 사람을 이용하고 버려가면서 까지 해야 한다면 더더욱.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디모나를 업은 채로 헛간으로 숨어들었다. 밖에 는 번개와 천둥이 치고 있고 비가 헛간의 지붕을 마구 때리고 있었다. 아 직도 멀찍이 보이는 라이언즈 캐슬에서는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아아~ 가을 태풍이군. 좀 늦은데." "이상하지 않아요? 어째서, 이 시기의 태풍은 원래 남에서 올라오는 거잖 아요." "우리가 무슨 재주가 있어서 바람의 방향을 좌우하겠느냐? 그저 불어오면 불어오는대로 쓸려가는 거지. 원래 민초라는 말은 그래서 나온게 아니겠 느냐?" 창문 안쪽에서는 가족간의 대화가 들려오고 있었다. 때아닌, 폭풍에 놀란 사람들은 농가 안에 틀어박혀서 겁에 질려있었다. 나는 처마를 따라 걸어 서 헛간의 입구에 도착했다. 이 헛간도 그다지 손을 많이 안본 탓인지 천 장의 너와가 썩어서 빗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는 그 빗방울을 피하고 디모나를 건초들 사이에 눕혔다. 그러자 안에서 자고 있던 일행들이 깨어 났다. "빛이여." 메이파의 나직한 목소리와 함께 푸르스름한 빛이 헛간 안을 밝혔다. 다른 일행들은 다들 졸린 눈을 하고 나에게 물어보았다. "카이레스!" "무, 무슨일이야? 갑자기 날씨가 미쳤나. 어이. 어떻게 되었어?" 잭과 렉스, 시노이는 그렇게 들어온 나를 보고 다들 날씨에 관한 것부터 물어보았다. 메이파는 눈을 비비면서 나를 바라보고 물어보았다. "그런데 펠리시아 공주님이랑 보디발 왕자님은요?" "공주님은 기절, 왕자님은 지금 이 폭풍의 원흉." 나는 그렇게 간단히 대답하고 디모나를 살펴보았다. 이러저러한 타격을 받았건만 그녀는 새근새근 숨을 편안히 내쉬고 있었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것 같다. 그러자 잭과 렉스가 동시에 물어보았다. "원흉?!" "아아. 그런 게 있어. 말하자면 굉장히 길어. 너희들은 됐으니까 얼른 달 아나. 데일라잇도 갖다 줘야 할거 아냐?" 나는 그렇게 말하고 천에 싸인 데일라잇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잭은 당황 하면서 물어보았다. "다, 달아나자니. 잠깐만? 뭐에 놀라서 달아나자는 거지?" "보디발 왕자로부터. 지금의 그에게 놀라서 달아난다면 어느 누구도 겁쟁 이라고 놀릴 일은 없을 거야. 어쨌거나 타겟은 내가 될 테니까 우리들은 여기서 헤어지자. 당신들도 들불에 타죽는 들쥐꼴이 되고 싶지는 않겠 지?" 나는 잭에게 그렇게 말해주었다. 그러자 다들 놀라서 에엑 하고 비명을 질렀다. 으음. 일단 디모나를 눕혀놓긴 했지만 곧 다시 이동해야 한다. 이곳은 그 공주가 조르트란 사람을 협박해서 얻은 장소인 것이다. 보디발 왕자도 알고 있는 곳이니 만약 우리를 추격하려 한다면 이곳도 생각해보 지 않겠는가? 이래저래 생각해야 할 것이 많았다. 보디발 왕자는 나를 섭 취해서 자신의 힘을 보강하려고 하고 있다. 내 기억에 의하면, 옛날에는 분명 천사의 알에서 태어난 형제들의 사이는 돈독했다. 인간들을 죽이는 데 일치 단결 해있었다. 그런 것이 어째서 보디발 왕자는 나를 죽여서 먹 으려 하는 것일까? 그만큼 힘이 필요한 것일까? 아니, 만약 내가 각성하 더라도 그처럼, 힘을 탐내서 보디발 왕자의 목숨을 취하려 했을까? 알수 없다. 어쨌거나 이제 그 삭풍의 라파엘이라는 새로운 적이 등장했으니 그 의 행동이 어떻게 될지 고려해야 한다. 과연 자신의 힘을 먼저 회복하기 위해서 나를 잡으려 들 것인가 아니면 에스페란자 왕국을 칠 것인가? "잠깐만요. 카이레스 오빠. 무슨 일이 있는지 모르지만 도움이 될 수 있 을 거에요. 저희들은 그런데...." "도움 안돼." "예?" "절대로 도움 안 되니까 위험한데 머리 드밀지마! 지금의 보디발 왕자는 린드버그 백작도 삽시간에 찢어 죽였다고!" 나는 그렇게 메이파를 윽박질렀다. 그러자 메이파는 눈을 둥그렇게 뜨고 놀라서 나를 쳐다보았다. "오, 오빠?" 음 또 이러니까 찔리는 군. 괜히 성질 내는 건가? 나는 헛기침을 몇 번하 고 말했다. "보디발 왕자가 인간이 아니란 건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겠지? 원래 그 는 '삭풍의 라파엘'이라고 해. 린드버그는 그를 각성시켜서 그 힘을 빼앗 으려 했던 거지. 결과적으로 잠자고 있는 용의 성질만 건드린 셈이 되었 지만." "...." 일행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서 내 말을 듣고 있었다. 하긴 갑자기 이 런 이야기 들으면 좀 황당하겠지? "어쨌거나 보디발 왕자가 노리는 것은 나니까 나와 함께 다녀보아야 위험 해질 뿐이야. 여기서 헤어지자. 추격자들이 언제 올지 모르니까 얼른 피 해." "그래? 그렇지?" 시노이는 그렇게 말하고 짐을 싸기 시작했다. 렉스나 잭도 아무런 생각없 이 짐을 싸는 게 아닌가? 물론 내가 직접 가라고 말한 거긴 하지만 정말 가려고 한다니 상당히 황당하다. 이 인간들이 걱정도 안 해주냐? 하지만 메이파 만은 걱정스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괜찮겠어요? 디모나 씨는 어쩌죠?" "뭐 잠시 전기 충격을 받고 내던져져서 기절한 것 뿐이니까 정신을 차리 겠지." 나는 그렇게 말하고 메이파를 내려다 보았다. 그러자 메이파는 디모나를 아무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모습은 기절했다기 보단 마치 편안히 잠자고 있는 것 같아 요." "그렇지?" "정말, 미인이군요. 그녀는...." 메이파는 그렇게 말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나에게 자기도 저렇게 미인이었다면 자신을 선택했을 거냐는 말과 겹쳐 생각하자 왠지 뜨끔했 다. 아 양심이 찔리는 구나. "자 일단은 얼른 이동하자. 이 장소는 보디발 왕자도 알고 있단 말야. 게 다가 녀석들이 나를 잡기 위해 너희들을 인질로 이용할지도 몰라. 알겠 어? 만약 너희들 잡혀서 뭐 이 녀석들 목을 베기 전에 나와라~ 라고 한다 고 하면 난 절대 안나간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다시 디모나를 업었다. 그러자 그걸 보던 렉스가 물 어보았다. "그럴 거면 뭐 하러 눕혀놓은 거야? 응?" "상태를 좀 확인하려 했을 뿐이야." 나는 그렇게 말하고 다시 디모나를 업었다. 그런데 마침 그 순간 밖이 소 란스러워 지기 시작했다. 물을 튀기며 달려오는 예닐곱 명의 발소리가 들 린 것이다. "이크! 병사들이다! 튀자!" 그러자 시노이는 즉시 그 짧은 다리를 교차하며 달리기 시작했다. "좋아! 달아나자!" 우리들도 그 뒤를 따라서 빗속으로 달려나갔다. 그러자 뒤에서 우리를 발 견한 병사들이 추격을 해오기 시작했다. "이 자식들!" "다 누워!" 나는 따라오는 병사들에게 그렇게 외치고 머리높이로 인피니티 로프를 휘 둘렀다. 그러자 내 말을 듣지 않은 병사 한 명에 로프에 맞고 비명을 질 렀다. 그냥 로프라면 모르지만 끝에 갈고리를 달았으니 만만치 않을 것이 다. "우악!" 맞은 병사가 고꾸라지며 길을 막았다. 나는 그렇게 해서 뒤에서 추격해오 는 병사들의 시선을 끌었다. "이크!" "자 이 사이에 달아나라!" 나는 일행들에게 그렇게 외쳤다. 그러자 다들 놀라서 나를 바라보았다. "오빠! 그 몸으로 괜찮겠어요?" "괜찮아. 잡병 따위 내 적이 못된다! 더구나 요새는 계속 강해지고 있다 는 느낌이 들어서!" 나는 그렇게 외치고 드로우 파워를 건 인피니티 로프를 병사들에게 날렸 다. "아잇!" 병사들은 즉시 검과 창을 휘둘렀지만 그렇게 검과 창을 휘둘러서 느슨한 로프를 자르는 건 보통 실력가지곤 어림도 없는 일이다. 팽팽히 장력이 걸려있으면 누구나 끊을 수 있겠지만. "우아아아악!" 나는 병사들이 로프에 감겨 비명을 지르는 사이 륭센의 수갑에 드로우 파 워를 걸고 잡았다. "너희 왕자님에게 배운 거다!" -빠지지직! 좀 약한가? 그러나 병사들은 비명을 질러주었다. 나는 그렇게 병사들의 진형을 흐트러뜨렸다. "자 어서가!" "우웃. 우리가 없다고 기절한 디모나 양에게 이상한 짓 하면 안돼!" "헤에, 히히히힛, 그런 일 없어. 헤헤헷. 거, 걱정하지마!" 내가 그렇게 답하자 그들은 달아나다 말고 멈춰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 다. "...." "저 녀석 침흘리고 있어!" "위험한 녀석!" "아니 이건 단순한 빗물이야! 얼른 가!" 나는 그들에게 그렇게 말하고 그들과 달리 왼쪽으로 틀어져서 달리기 시 작했다. 비록 디모나를 업고 있지만 병사들에게 추적당할 정도로 무르지 않다고! 나는 그렇게 병사들을 따돌려 버렸다. 10월 10일. 결국 나는 병사들을 피해서 밤새 달려야 했다. 나는 밤새 비를 맞으며 어 두운 평야와 강가를 달려야 했다. 이럴 때는 정말 레이퍼라도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하게 한다니까. 하지만 레이퍼는 한센의 경비대 에 맡겨 버렸다. 그리고 그걸 다시 찾으러 가는 것도 상당한 미친 짓이 다. 보디발 왕자는 우리랑 함께 행동하던 동료였다. 그런 것쯤 다 알고 있을 테니까. 괜히 익숙한 곳으로 이동하다가는 들켜버리고 마는 것이다. 뭐 그 스크라잉인가 하는 걸 보디발 왕자도 할수 있다면 소용없겠지만. 아, 그런데 할수 있는게 정상 아닐까? "휴우. 배고프다." 밤새 내리던 비는 해가 뜰 무렵부터 걷히기 시작했다. 나는 터벅터벅 걸 어가서 가까운 마을로 향했다. "정지!" 마을의 경비병들은 비에 홀딱 젖은 새앙쥐 꼴이 되어있는 나를 보고 수상 하다고 여겼는지 창을 교차해 길을 막았다. 어차피 길이 그렇게 좁지도 않다만. "당신, 그 꼴이 뭔가?" "아 이건.... 괴, 괴물에게 습격을 당해서." 내가 생각해도 어이없는 변명이로군. 그러나 그들은 내가 뒤에 여자를 업 고 있는 것을 보고 수긍하는 눈치였다. 마침 부상도 입고 있고. "그렇다 하더라도 지나치게 과도한 무장이군." "저, 대단히 죄송합니다만. 으윽." 나는 통증을 호소하면서 주저앉았다. 그러자 병사들은 더 말하다 말고 자 기들끼리 쳐다보았다. "아 아 좋아. 통행세만 내고 들어가게." "예. 가, 감사." 나는 그렇게 말하고 은화를 낸 뒤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도시는 붉은 벽 돌을 쌓아서 만든 석조건물들로 이루어 져있었다. 2층, 내기 3층 집들이 정렬해서 길가를 메우고 있는 걸 보니 꽤 살기 좋은 곳 같군. 나는 옆을 둘러봐서 도시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여관을 찾았다. 그런데 그때 한 사 람이 나에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응?" "아! 실례! 혹시 당신이 그 카이레스 님 아니십니까?" "...그런데?" 어떻게 나를 알고 있지? 나는 경계를 단단히 하고 그 남자를 바라보았다. 후드를 둘러쓰고 있는 게 영락없는 좀도둑이다. 음. 이런 자가 왜? "실은 왠 분이 거, 이런 편지를 전해주라 하셨소이다." "그래?" 나는 로그마스터의 모험일지에도 나와있는, 편지로 중독시키는 등의 암기 를 유의하면서 조심스럽게 편지를 받아들었다. 물론 나에게는 쉐도우 아 머가 있기 때문에 편지를 전해주며 나를 찌른다던가 하는 것도 방어할 수 있다. 이럴 때는 아무도 믿지 못하겠어서. 주의한다고 해서 나쁠 건 없 지. "으음." 나는 편지를 보곤 눈살을 찌푸렸다. 공안요원들이, 아니 정확히는 에밀리 오 에스페란드 왕자가 보낸 편지였던 것이다. '일단 린드버그 백작을 막아 준 것에 대해서 대단히 감사하고 있습니다. 레오나 누님을 죽게 한 것은 확실히 맘에 안 들지만 불가항력이었겠지요. 그런데 소문에 듣자하니 누님이 한 분 더 계시다는데, 그분을 설득해 주 실 수 있겠습니까? 이스턴 웰에서 누님을 발견했다는 보고가 있으니 빨리 움직이면 그 근방에서 만날 수 있을 것 같군요.' 으음. 이게 보자보자 하니까 내가 자기 하수인인줄 아나? 계속 부려먹게? 나는 기가 막혀서 편지를 전해준 놈을 노려보았다. 그러자 그 남자는 웃 으면서 말했다. "자 그럼 저는 분명히 전해드렸습니다! 이만!" "쳇." 나는 편지를 구겨 버린 뒤 일단 여관으로 향했다. 어쨌거나 니나가 에스 페란자의 공주인 건 확실한 모양이지? "어서오십시오." "방을 두 개 주세요. 그리고 아침 식사 되죠? 방으로 올려보내 주세요." "예. 선불을 받고 있습니다만." 그는 비맞아서 꾀죄죄한 내 몰골을 보고 그렇게 말했다. 원래 선불을 받 는 건지, 아니면 내가 돈이 없어 보여서 그러는 건지는 모르겠다. 나는 선금을 치루고 디모나를 방으로 올렸다. 여관 방은 이런 곳의 여관치고는 무려 새하얀 커텐이 달려있었고 침대는 느티나무로 만들어진 튼튼해 보이 는 침대였다. 게다가 그 새하얀 시트 한가운데에 놓여있는 수건은 도대체 뭘 어쩌라는 건지? 으음. 역시 서비스 업종이라는 건가. 이런 것도 다 준 비해놓고. "아 젠장. 하지만 이렇게 기절을 오래해도 되는 거야?" 나는 디모나를 침대 위에 눕히곤 그렇게 투덜거렸다. "그렇지?" "...." 디모나는 언제 기절해 있었냐는 듯 눈을 뜨고 빙긋 웃고 있었다. 나는 황 당해서 그녀를 바라보곤 물어보았다. "언제 깨어났어?" "두시간 전쯤?" 디모나는 그렇게 말하고 기지개를 폈다. 세, 세상에. 원래 죽은 척이나 기절한 척 하는 건 힘들다. 그냥 자고 있으면 모를까 업고 있는데 몸이 흔들리기 마련 아닌가? 완전히 전신에서 힘을 빼고 축 늘어져 있어야 하 는데, 그게 꽤 힘들다. 균형이 흐트러지거나 흔들리면 무의식중에 힘이 들어가기 마련인 것이다. 그런데 디모나는 무려 두시간 동안 의도적으로 전신의 힘을 풀고 나를 속였단 말야? 왜 그런 고생을 했지? 나는 그런 그 녀를 보고 황당해서 다시 물어봐야 했다. "왜?" "아 카이레스. 힘 세더라. 물론 내가 가볍긴 하지만 업고 잘도 달리던 데." "...." 내가 말이냐! 나는 기가 막혀서 디모나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겉 옷을 벗고 침대 옆에 대더니 물을 짜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추웠어. 계속 비를 맞는 것도." "미, 미안해서 죽고 싶구나. 정말." "아 나도 미안해. 그나저나 캐스윈드는 괜찮을까? 그 삭풍의 라파엘을 상 대로?" "괜찮고도 남을걸. 옛날에는 이보다 훨씬 더 강했는데 네 명을 상대로 다 죽였거든." 나는 왠지 퉁명스러워 지는 말투로 그렇게 말하고 등을 돌렸다. "어쨌거나 다친 게 아니라면 다행이네. 나는 괜히 걱정했잖아." "어머. 나를 걱정해 준거야?" "...." 그런거는 꼭 집어서 이야기하지 않아도 돼.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뭐 여기서 더 말해봐야 내가 말발에서 디모나를 눌러본 적도 없고. 괜히 놀림받는 기분만 드니까. 그만두자. 나는 목욕과 식사를 끝마치고 방에 드러누워 잠을 청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있건 간에 일단은 휴식을 취해야 겠다. 보디발 왕자가 어찌되었건, 캐스윈드가 뭐건, 디모나가 캐스윈드를 좋아하건 말건. 쳇. 평생 짝사랑 이나 하고 있어라! 10월 10일 "으으윽!" 나는 깜짝 놀라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은땀이 정수리부터 온몸을 타고 흘러내린다. 해는 이미 떨어졌는지 어두운 공기가 주위를 억누르고 있었 다. 나는 어둠 속에서 손을 들어서 내 몸을 살펴보았다. 큰 이상은 없군. 정신이 들어서 그런지 보디발 왕자에게 베인 팔의 통증도 되살아났다. "뭐, 뭐지. 뭔가 무서운 꿈이라도 꾼 것 같았는데?" 그렇다. 분명히 잠들었을 때 뭔가 무서운 것에 놀라서 깨기는 깼는데 깨 고나니 기억이 없다. 으음. 어찌되었건 무언가가 나를 부르는 느낌이랄 까? 나는 아직도 두근거리는 심장을 가라앉히며 생각에 잠겼다. "어쩌면, 보디발 왕자가 각성한 것과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군. 지나친 생 각이라면 좋겠는데." 문제는 저렇게 해서 지나친 적이 없었다는 거지. 내가 천사의 알에서 태 어났네 어쩌네 하는 것도 차라리 내 공상이었으면 좋았을 것을. 결국 진 짜임이 밝혀지지 않았던가? 무슨 음모의 가락을 잡게 되었을 때도 그냥 이게 내가 좀 생각이 앞서나간 거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렇게 생각해 도 항상 내 예상이나 생각대로였다니까. 뭐 내가 잘나서 다 예견했다기 보다는 나에게 다가오는 일들이 그만큼 강렬했달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 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이곳도 역시 너무 가까워. 라이언즈 캐 슬에서 보디발 왕자가 날아오기라도 한다면 하루도 걸리지 않으리라. 하 루는 무슨. 내가 오는데 하루가 걸리지 않았는데.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고 옷을 다시 입고 자리를 나왔다. 디모나가 있는 방문을 노크했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설마 나가기라도 했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밑으로 내려갔다. 여관의 1층은 식당을 겸하고 있 는 지라 둥근 테이블들이 넓은 공간에 놓여져 있었고 사람들은 저녁 무렵 이 되어서 그런지 많이 모여있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유달리 돋보이는 테이블이 있었으니, 바로 디모나와 캐스윈드가 앉아있는 테이블이었다. 캐스윈드가 엘프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모두들 다 그쪽 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레이펜테나에선 엘프나, 드워프, 노움들은 정말 귀한 종족이니까. 옆의 드워프인 그림스위그는 계속 여급들에게 희 롱이나 걸고 있는 게 별로 귀하게 보이진 않지만. "캐스윈드?" "으음...." 그러나 캐스윈드는 머리를 긁고 있었다. 역시 내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디모나가 내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여기야 카이레스!" "응." 나는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는 것을 느끼면서 테이블로 다가갔 다. < 계 속 > -------------------------------------------------------------------- <휘긴경 대극장> 휘: 으음. 설마 휘긴랜드에 좀 떠벌인 걸 여기저기로 다 퍼 나르다니... 쿨럭일세. 펠: 우는 소리 하니까 그렇잖아. 바보녀석. 아 그나저나 캐스윈드랑 나랑 누가 더 세냐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누가 더 세? 카: ....내 직감이긴 하지만 선배가 질 거야. 펠: 오호라! 그러셔? 그놈의 직감 참 정치적으로 움직인다? 카: 정치적이란게 아니라 원래. 훗. 이란 거지. 펠: 그러니까 그 '훗' 의 의미가 뭔데? (둘이 이마를 맞대고 한치도 물러 서지 않는다.) 휘: 너희 둘이 사귀냐? 카&펠: ..... 휘: 뭐 캐릭터 강약이야 원래 작가가 떠벌이는게 아냐. 훗. 카&펠: 당신이 그런말 할 처지야!!!!!!? < 계 속 이라면 계속 된다!> *********************************************************************** 에잉...내가 잘못했수다. 근데 도체, 부도체를 따지기 보단 라이트닝 볼트를 원하는 목적지로 날려보내는게 더 대단한 마법인데.^^; *********************************************************************** 레이펜테나 연대기 제 1 부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제 27 화 : Insane#2 ------------------------------------------------------------------------ 팔마력 1548년 10월 10일 "으음. 캐스윈드. 그는 어쨌어요?" 나는 주위 사람들의 귀를 의식해서 그렇게 물어보았다. 보디발 왕자를 어 쨌냐고 물으면 확실히 문제가 일어날 테니까. 캐스윈드는 나를 바라보고 말했다. "그라면, 삭풍의 라파엘, 보디발 왕자를 말하는 것인가? 죽이지는 않았 다. 잠시 머리를 식히게 하느라 좀 방황하게 만들었지.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그에게 통용될지는 모르나 적어도 시간이란 벌면 벌수록 이득인 건 확실하니까. 왜?" "...." 내가 아무리 입을 단속해도 소용없군. 그러나 주위사람들은 모두들 듣지 못했는지 자기 앞에 놓인 식사를 하는데 열중하고 있었다. "아 저기요. 여기 식사를, 디너 1번 코스로 주세요." 나는 그림스위그가 희롱하고 있는 여급에게 그렇게 말하곤 그림스위그의 앞을 다리로 막았다. 그러자 여급의 엉덩이로 손을 가져가던 그림스위그 가 헛기침을 하면서 손을 뺐다. "이 무슨 짓인가. 늙은 드워프의 청춘사업을 이렇게 방해하다니!" "늙은 줄 알았으면 청춘사업같은 짓은 하지 마시지? 게다가 그게 청춘사 업이면 강간은 개척사업이겠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그림스위그를 째려보았다. 그러자 그림스위그가 손을 비비면서 입맛을 다시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오늘부터 나를 개척자 그림스위그라고 불러주게! 개척사업에 열중할 생각이거든." "...." 정말 할 생각이냐! 나는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고 의사를 타전 했다. 그런데 그때 디모나가 캐스윈드에게 물어보았다. "보디발 왕자는 굉장히 강력하던데 괜찮았어요?" "으음. 그래도 옛날 보다 많이 약해진 거란다. 게다가 시간의 철퇴라는 것은 우주의 어떤 것보다 강력한 법이라, 설사 신이라 하더라도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단다." 캐스윈드가 그렇게 말하자 디모나는 정말 꽃이 피어나는 것처럼 활짝 웃 었다. 너무나 밝고 순수한 웃음이라서 내가 놀랄 정도다. 디모나가 나에 게 보여준 웃음은 언제나 비웃거나, 능글맞게 웃는 것이라서, 전혀 열 여 덟 꽃다운 나이의 소녀로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 역시 디모나도 어리긴 어리구나. "역시 캐스윈드. 그런데 어떻게 우리는 찾아낸 거에요?" "네 자이로 스코프에 지시, 탐색의 마법을 걸어준 것은 바로 나잖냐. 무 수한 시간이 지나고 거리가 아무리 떨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우주 전체적 으로 보면 이 거리란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정도의 공간이란다. 사실 의미라는 것은 의지가 부여하는 것이니, 그러한 공간 속에서 한 사람을 찾아내는 건, 의지가 있다면 일도 아니지. 오히려 내 경우는 이름을 기억 해내는 게 더 어렵다니까. 필멸자들의 이름은 좀 많니?" 캐스윈드는 디모나에게 그렇게 말하고 나를 바라보았다. 으음, 마치 나를 꿰뚫어보는 눈동자다. 아마도 삭풍의 라파엘이 각성한 이상 환염의 미카 엘도 공명각성을 일으키는지 알기 위한 것 같았다. 어쨌거나 한가지 확실 한 것은 어찌된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보디발 왕자를 죽이지 않았다는 것 이다. 캐스윈드는 정명한 존재를 죽이지 않는 다고 말했는데, 그러면 각 성한 보디발 왕자, 즉 삭풍의 라파엘도 정명한 존재란 말인가? "그나저나 카이레스. 당신은 아직 각성하지 않은 것 같군? 그대가 갈수록 힘을 일깨우고 있다는 것은 느껴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성이란 것을 겪지 않은 것은, 그대의 내면의 소리가 약했기 때문인가? 아니면 스스로 의 의지로 거부하고 있는 것인가?" "...내가 사양하고 싶은데. 저런 게 각성이라면." 나는 캐스윈드에게 그렇게 말했다. 솔직한 심정이다. 저런 것은 인간, 카 이레스는 죽고 단지 인간도 신도 아닌 어정쩡한 존재, 환염의 미카엘만 남지 않겠는가? 그러자 캐스윈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마음가짐이다. 그 각오, 잊지 않도록." "...." 뭔가 의미심장한 말이군. 각오를 잊으면 죽이기라도 하겠단 건가? 나는 흔들거리는 램프 불빛 아래에서 내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실물인 난 가만 히 있건만 그림자는 제 멋대로 이리저리 흔들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디모나가 물어보았다. "저기 캐스윈드. 혹시 마커스라고 알아요?" "아 마커스? 으음. 잠깐만." 캐스윈드는 그렇게 하고 명상을 하는 건지, 자는 건지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다. "아아. 그 마법사? 에전에 병으로 죽었잖아?" "...." "예전에 병으로 죽어?" 그러면 지금 움직이고 있는 그 녀석은 뭐냐? 역시. 녀석은 가짜였나? 나 는 그러한 생각에 미치곤 손톱을 깨물었다. 어쩐지 하는 태도나 그런 게 수상하더니. 세상을 다 비관적으로 보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지금은 주위 에서 너무 음모가 많이 벌어지고 있어서 정신이 없을 지경이다. 게다가 꼭 나는 직, 간접적으로 그 음모에 얽히다니. 이건 누군가의 농간같다. "그렇다면 룬 드레드는 뭐지? 이노그도 심한 타격을 입었는데?" "룬 드레드? 그것은 꽤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주문이지, 언령과 룬 문자를 적당한 순서로 배치하면 발휘되는 마법으로, 음 확실히 심볼 (Symbol) 주문 세 개, 권능언령 살(權能言靈 殺: Power Word Kill), 임플 로션 (Implosion), 밴시의 통곡(Wail of Vanshee) 등의 주문을 써야 발휘 되는 주문일거다. 쓸데없는 낭비지." 캐스윈드는 그렇게 말하고 나에게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쓸데없는 낭비 라곤 하지만 저 이름들만 들어봐도 왠지 강한 주문일 것 같다. 나는 그래 서 놀라서 물어보았다. "그렇게 엄청난 주문입니까?" "뭐 지금의 인간들 중에서 쓸수 있는 자는 없겠지. 왜? 자신을 마커스라 고 한 자가 이런 주문을 썼나?" "예." "으음. 다른 건 몰라도 임플로션은 일반적인 마법사가 쓸 수 있는 주문은 아니지. 아마 성직자이기도 할거야." 캐스윈드는 그렇게 단정지었다. 에? 성직자라면? 그순간 나는 이 사건의 일련을 관통하는 뭔가를 깨달았다. "혹시 바포우메트의 대사교 디롤이라고 알아요?" 기왕 물어보는 거 대마법사의 의견을 들어볼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고 캐스윈드에게 물어보았다. 그러자 캐스윈드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모르겠다. 만나본 일이 있어야지. 뭐 그런 잔챙이는 내 체크 대상 이 아니다. 악에 대한 광신자는 바닷가의 모래알만큼 많은 법이며, 그 모 래알 중에 유달리 큰 바위가 있다 하더라도 지도의 해안선을 보고 바위를 찾아내는 것 또한 어불성설이지. 나는 시간을 떠도는 방랑자, 운명을 가 지지 못한 자가 정명(定命)한 자들의 사석(沙石)을 가릴 수는 없는 법이 다." "자, 잔챙이...." 나는 질려서 캐스윈드를 바라보았다. 바포우메트의 대사교 디롤이 잔챙이 라고? 나는 혹시 해서 물어보았다. "그러면 윌카스트는?" "윌카스트? 먹을건가? 주문이라면 하도록 하게 내가 지불하도록 하지. 뭐 먹고 싶은 게 있다면 먹어두는 게 좋지. 몸이 꽤 허해진 것 같은데." 캐스윈드는 그렇게 반문해서 나를 어이없게 만들었다. 디모나는 그런 캐 스윈드 앞에서 방실방실 웃으면서 쳐다보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상당히 열 받는데 하는 말은 더더욱 속을 긁는다. "캐스윈드. 혹시 할 일 없으면 우리들이랑 같이 다닐 생각 없어요? 그 보 디발 왕자가 우리들을 노릴 것 같은데. 캐스윈드가 있으면 안심할 수 있 잖아" "내 적은 보디발 왕자보다도... 절대로 강하다. 나랑 함께 있어서 너희들 이 이득 볼 건 없어. 물론 그들이 나타날 지는 의문이지만 적어도 그들은 악마보다 잔혹한 자들이다. 만약 나타나서 너희들에게 손을 뻗는 다면 현 생에서의 죽음이, 지옥에서의 고통이 차라리 자비라는 걸 알 것이다. 그 러고 싶으냐?" 캐스윈드는 그렇게 단정지어서 말했다. 마치 어설픈 헛소리 하지 말고 정 신차리라는 소리 같았다. 하지만 보디발 왕자도 상대가 안되는 적이라니? 대체 그건 뭐지? 나는 기가 막혀서 캐스윈드를 바라보았다. 물론 농담으 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캐스윈드의 말투 어디에 농담이 섞여있단 말이 냐? 그러자 디모나는 좀 놀란 표정을 짓더니 금새 우회공격을 펼 방법을 생각하고 있는 게 보였다. 마침 그때 급사가 식사를 들고 왔다. 코스 요 리라곤 해도 제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곳에서는 맨 처음에 전채, 그리고 주로 나오는 음식, 마지막으로 후식이 나오게 되어있지만 이곳은 그런 제 국식을 좋아하지 않는지 커다란 쟁반에 대부분의 요리를 다 담아왔다. "야채 볶음과 스프, 소고기 마늘조림, 튀긴 연어살이에요. 코스 A맞죠?" "그걸 나에게 물으면 어쩌자는 거에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여급의 허리로 손을 가져가는 그림스위그를 발로 차 버렸다. 그러자 벌러덩 하고 그림스위그가 나가 떨어졌다. "자 그럼 난 먼저 올라갈게. 카이레스. 식사 맛있게 해. 캐스윈드, 저 올 라가서 쉴 께요." "응? 너는? 식사했어?" "먼저 했어." 디모나는 그렇게 말하고 먼저 올라갔다. 그러자 그림스위그가 의자를 세 우고 일어나더니 나를 노려보았다. "이 자식! 감히 이 형님의 개척사업을 방해하다니!" "...정말 할 생각이에요?" 내가 그렇게 물어보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사나이는 무릇 칼을 뽑으면 무라도 베라고 했어!" "...남의 말에 인생 좌우명을 갈아치우면 그게 무슨 사나이야?" 나는 그렇게 투덜거리곤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캐스윈드가 수첩 에 내 말을 적기 시작했다. "남의 말에 인생 좌우명을 갈아치우면 그게 무슨 사나이인가...음 좋은 말이다. 카이레스. 나중에 이말 좀 써도 될까?" "...예 좋을 대로." "고마워. 으음. 잊어먹지 않는다면 언젠가 쓸 날이 오겠지. 기나긴 방랑 에서 얻을 것은 지혜인지라. 그대의 가르침이 나에게 무게를 더할 수 있 다면 어찌 기꺼이 배우지 않을까?" 캐스윈드는 그렇게 말하고 수첩을 품에 넣었다. 왜 그런 말을 적어놓는 데. 이거 나중에 내 말도 무슨 명언록에 나오지 않을까? 그런데 그때 그 림스위그가 캐스윈드에게 물어보았다. "그런데 저 저거 아무래도 못 봐 주겠는데 말해도 될까요?" "아 뭐? 소드 블래스터?" "예. 그때는 디모나 양이 눈치를 줘서 말 안 했는데." "음. 나는 일단 디모나에게 가볼 테니까 말할 거면 말해." 캐스윈드는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무슨 소리를 하는 건 가 하고 캐스윈드와 그림스위그를 번갈아 바라보며 야채볶음을 접시 째로 든 뒤 스푼으로 닥닥 긁어서 입에 털어 넣었다. 미식가들이 보면 음식을 음미할 줄 모르는 놈이라고 떠들겠지만 나는 인생의 다른 부분에 신경 쓸 게 많아서 음식을 음미하고 자시고 할 시간에 다른걸 하겠다. 뭐 벨키서 스 레인저 때부터 버릇이 들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나는 그렇 게 식사를 마치고 그림스위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뭔데요?" "아니 지금 소드블래스터 말야." "예?" "날이 거꾸로 되어있어?" 그림스위그는 그렇게 말하곤 피식 웃었다. 나는 의아해서 소드 블래스터 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날을 뽑지 않고 가죽 칼집 째 올려놓았지만 그래도 주제에 명검이라고 자루부터 광택이 틀렸다. 흐릿한 여관의 불빛 에서도 은은하게 빛나고 있는 소드 블래스터, 확실히 보통 디자인부터 광 택까지 보통 검은 아니다. 그런데 지금 뭔 소리야? "거꾸로 되어있다니요?" "아 이터니움 웨이퍼 말일세, 날이 거꾸로 끼워져 있더라고. 디모나가 이 야기 해주지 말라고 해서. 흠 이 내가 또 미인의 부탁에 약하잖나?" "어차피 몸 줄 여자도 아닌데 부탁한다고 들어줄건 또 뭐에요! 아니 그런 데 이거 잘 베이는데? 면도도 할 수 있고 보석도 자르는데 칼날 뒤쪽이란 말이에요? 여, 역날 검이었나?" "그야 원래 얇지 않나. 칼날 자체가, 게다가 날 부분이라고 해서 더 예리 하다는 게 아니고 마법효과가 있기 때문일세." 그림스위그는 그렇게 설명했다. 그런 이야기를 듣자 보니까 디모나가 의 도적으로 나에게 이 사실을 숨겼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아니 도대체 이 애가 무슨 생각이지?" 나는 화가 나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물론 그녀로서는 단순한 장난일 지 모르지만, 그리고 지금까지 무사해서 다행이지만 만약 소드블래스터의 성능을 발휘해서 싸움의 승패가 갈릴 일이라도 있었다면 그 책임을 묻지 않을수 없다! 나는 테이블 위에 놓았던 소드 블래스터를 잡고 휘리릭 돌 리다 허리춤의 칼집 꽂이에 꽂은 뒤 윗 층으로 올라갔다. 곧 나는 디모나 의 방 앞에 섰다. 그리고 마악 노크를 하려는 찰나 안에서 말소리가 들려 왔다. "그와 함께 있는 건 위험하다. 그는 환염의 미카엘이며... 만약 녀석들이 힘을 원할 때는 서로서로 죽여서 상대방의 힘을 섭취하려 할 테니까. 이 제 천사의 알에서 태어난 호문크루스들이 모두 깨어난다면 또 이 레이펜 테나는 전장이 되겠지. 지금 깨어난 삭풍의 라파엘이 노릴 사람도 그인 것이다. 알겠냐. 디모나. 너가 아무리 인간치고는 강하다지만 그 삭풍의 라파엘을 이길 수는 없다. 사소한 감정 때문에 그와 함께 있는 것은 네 목숨을 위협하는 일이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강요가 아닌 충고니 듣고 안 듣고는 네 의지에 달린 것이지만, 평소에 목숨을 아끼던 너라면 이제 그만 빠질 때가 되지 않았느냐? 네게 어느 날 갑자기 희생정신이, 봄날의 새싹처럼 돋아났을리는 없지 않느냐?" "그건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나는 카이레스를 그냥 놔둘 수 없는 걸 요?" "...." 나는 본의 아니게 그 자리에서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였다. 이러면 완전 히 엿듣는 거잖아. 어쨌거나 디모나가 왜 위험을 무릅쓰고 나와 함께 있 으려 하는 걸까? 나는 그녀의 다음의 말이 궁금해서 숨을 죽였다. 심장마 저 멈춰진 것 같고 귀 뒤쪽부터 뜨거워진다. 그때 디모나의 목소리가 들 려왔다. "왜냐면 카이레스의 몸에는 로그마스터의 7대 비보가 고스란히 있어요. 그걸 가지고 있는 이상 나는 카이레스를 떠나보낼 수 없어요. 설사 아무 리 위험하다고 하더라도. 우리 민족에게는...지금도 북방에서 고생하고 있는 용혈의 부족을 위해서는 로그마스터의 힘이 필요하니까요." 아.... "그렇다면 지금의 이 행동은 뭐냐? 그렇게 필요하다면서 뺏을 용기는 없 는 건가? 물론 추천하는 건 아니다만. 만약 진심으로 갈망한다면 너는 수 단을 가리지 않을 것 아니냐? 네 혼에 잠들어 있는 혼돈은 너에게 그러한 일을 부추겼을 것이다. 무엇이 네게...." "뭐 지금 카이레스가 하고 있는 일들은 옳으니까요. 적어도 누군가 일부 의 이익을 위해서 움직이는 건 아니니까.... 게다가 카이레스는 내 목숨 을 지켜주려고 노력하고 있잖아요. 귀엽게 시리. 뭐 죽이고 빼앗는 것도 아무래도 꿈자리가 뒤숭숭하니까요." 나는 거기까지 듣고는 더 듣고 있을 수 없어서 내 방으로 들어갔다. 가급 적 들리지 않도록 조용히 방문을 닫고 문에 기대어 서자 뭔가 뜨거운 것 이 바닥에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뚝.... 무슨 일이지? 나는 손을 들어서 조용히 내려다보았다. 눈에서는 나도 모 르게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손의 윤곽이 흐릿하게, 눈앞에서 일렁거 린다. "어? 헤...헤헷. 나, 울고 있나...." 나는 기가 막혀서 웃었다. 그러나 그러는 동안에도 눈물은 계속 끝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마치 몸의 어느 일부분이 고장난 것처럼.... 나는 문 에 기댄 채 눈을 감고 주저앉았다. 맨바닥에 주저앉아서 주먹을 쥐고 얼 굴을 가린 채 가만히, 정말 가만히 앉아있었다. 꼴사납게도, 눈물은 멈추 지 않고 흘러나왔다. 그래.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녀가 나와 함께 행 동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나에게 로그마스터의 유산이 있기 때문이지 나 자신은 그녀에게 있어선 방해물에 지나지 않는 다는 것쯤은.... 내가 그 녀를 좋아하게 되더라도 그녀에게는 내 마음을 받아줄 의무도 없다는 것 도. 다 알고 있다. 하지만... 안다고 모든 게 해결되는 건 아니지. 나... 나는 그 정도 밖에 안 되는 존재인가? "...." 나는 인피니티 백팩을 풀어서 안에서 쓸만한 것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마 침 작달막한 종이, 그러니까 벨키서스 산맥에서 나올 때 채권을 바꾸고 환금 영수증이 있었다. 나는 그 뒤에 목탄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직 도 어린애처럼 눈물을 흘리고 있어서 가급적 몸에서 멀리 떼어놓은 채로 한자한자 또박또박 써 내려갔다. 주제에 자존심은 있어서 울었다는 걸 알 리고 싶지 않다. '안녕. 디모나. 으음. 생각해 봤는데 말야. 나는... 아무래도 형을 근사 한 분을 두셔서, 이대로는 위험할 것 같거든? 게다가 그의 공격패턴을 보 면 알겠지만 먼저 너를 죽이려 한단 말야. 이대로는 괜한 피해만 늘어날 테니까 오늘 부로 난 로그마스터는 폐업이다. 일단 줄 수 있는 건 다 줄 테니까. 나머지, 쉐도우 아머는 어떻게 해서든 분리해서 보내주마. 그럼. 이만. 물론 그럴 리는 없겠지만 내가 너무 사랑스럽고 걱정되어서 따라오 거나 하면 나에게 마음이 있는 걸로 간주하고 덮쳐버리겠다! 카이레스 ' 그렇게 한자, 한자 정성껏 쓴 나는 지금 내 몸에 걸치고 있는 윈드워커의 부츠, 로프, 로그마스터의 목걸이, 소드 블래스터와 모험일지등을 전부 거둬서 백팩에 넣었다. 쉐도우 아머야 지금의 나로서는 분리해 줄 방법이 없지만 그것도 뭐 방법을 찾아보면 없는 게 아니겠지. 나는 그렇게 배낭 에 로그마스터의 유산들을 넣어두고 백팩 위에 그 종이를 접어 붙인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참... 이것도...." 나는 제로테이크를 들곤 실소했다. 이것도 원래는 윈터울프 디프에게서 디모나가 받은 것, 그녀가 나에게 빌려준 것이지 내게 준 것은 아니다. 나는 그것도 인피니티 백팩에 넣고 예전에 쓰던 낡은 배낭과 리피팅 보우 건, 낡은 부츠를 꺼내들었다. 이거는 왠지 벨키서스 산맥을 떠날 때의 느 낌보다 더더욱 처량하잖아. 결국... 이건 달아나는 것에 불과하다. 멋지 게 여자에게 채이고 달아나는 거란 말이다! 하지만. 내가 달아나면 적어 도 그녀가 위험을 무릅써야 할 이유는 없어지겠지. 더구나 만약에 나보고 '달아나면 안돼!' 라고 말하는 놈이 있으면 쳐버리겠다. 적어도 나는... 내가 달아날 권리를 행사하고 싶다. "그럼...다시 벨키서스 레인저로 돌아왔군." 나는 그렇게 말하고 리피팅 보우건에 입을 맞추었다. 사실 벨키서스 레인 저로 돌아간 것은 아니다. 적어도 벨키서스 레인저는 탈주자를 다시 받아 줄 만큼 물렁물렁한 조직이 아니니까. 내가 여자로 성전환 하기 전에는 그런 일없을 거다. 결국, 지금의 나는 완전히 혼자다. 원래부터 천애고아 였지만. 이렇게 나이를 먹고서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게 될 줄이야. "웃차!" 나는 2층 여관의 창문으로부터 지면으로 뛰어내린 뒤 얼른 골목길로 몸을 숨겼다. 해가 지고 있는 도시의 거리는 사람들도 한산하니 달리기 좋아보 인다. 나는 보도 블록으로 달리며 나 자신이 한심해서 키득키득 웃었다. "아하하하하하핫!" 해가 서편으로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 계 속 > -------------------------------------------------------------------- 쯔쯔쯔.... *********************************************************************** 표절을 해서 글을 써나갈 거라면 때려치는 게 낫지 않나? 게다가 좋은 생각 을 베끼다니... 저도 군에 있을 때 좋은 생각을 많이 봤죠. 감동적인 이야기 야 물론 좋죠. 하지만 그걸 넣어서 내 소설에 감동을 더하겠다는 생각은 절 대 하지 않습니다. 요즘 도둑들은 감동까지 훔쳐가나 보죠? 진짜 그럴거면 뭐 하러 글씁니까? 아 제길. 아참. 저에게 연재 허락 부탁하신 분들...사이 트 주소만 불러주시면 허용합니다. 어차피 내가 아무리 뭐라고 해봐야 불펌 을 막을 방법도 없고, 내가 아둥바둥 댄다고 책이 더 나가주는 것도 아니고 잘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마음대로 퍼가세요. 라니안만 허락해주면 다들 섭섭해 하시겠죠.-_-; 그러나 대신 레이펜테나 연대기 제 2 부 Dark Saint는 통신연재 안 합니다. 뭐 언제 쓸지는 며느리도 모르는 글이지만. *********************************************************************** 레이펜테나 연대기 제 1 부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제 27 화 : Insane#3 ------------------------------------------------------------------------ 팔마력 1548년 10월 11일 "아음... 있다가 없으니까 확실히 불편하네." 나는 배낭에서 약과 붕대를 꺼내서 팔의 상처에 감은 붕대를 갈아주곤 투덜거렸다. 방금 전 만해도 꺼내야지~ 하면서 무의식중에 그냥 배낭의 옆구리에 손을 대었던 것이다. 인피니티 백팩이라면 이것만으로도 물건을 찾아서 꺼낼 수 있었지만 이제는 일반 배낭으로 바뀐 것이다. 일일이 위 를 열어서 꺼내야 한다. 게다가 부츠도 발에 안 맞는 것 같다. 윈드워커 부츠에 비해서 착용감이 영 아니다. "흐음." 나는 길가에 털썩 주저앉아서 팔의 붕대를 갈아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 다. 청명한 가을 하늘은 새하얀 양떼구름을 몰고 느릿느릿 서쪽으로 흘러 가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저기에선 잠자리들이 어지럽게 날아다닌다. 구 름이 서쪽으로 흘러간다면 동쪽에서 바람이 불어오는 것일까. 바람의 방 향이 궁금해진 내가 손을 들자 마침 그때 서남쪽에서부터 바람이 불어왔 다. 풀꽃과 풀잎들이 흩날리고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벌레소리가 잠시동안 뚝 그쳤다. 풀과 나뭇잎 스치는 소리가 주위를 가득 메우다가 풀벌레소리 와 함께 끝났다. "으음. 왜 구름은 서쪽으로 흘러가는데 바람은 서쪽에서 부는 거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침 앞에서 다가오는 마차가 보였기 때문이다. "예! 여기요!" 나는 지나가는 마차를 보고 미친놈처럼 팔다리를 휘둘렀다. 그러자 마차 가 기겁을 하고 멈춰섰다. 한 50정도 되어보이는 남자가 입에 파이프를 물고 있다가 왼손으로 느긋하게 담뱃대를 빼들고 연기를 후욱 내뱉으며 고색창연하게 말했다. "으응? 무슨 일이오? 혹시 땅벌에라도 쏘였소?" 오 신선한 반응이군. 팔딱팔딱 뛰면서 팔다리를 흔들고 있었으니 그렇게 도 보이겠다만. 그랬다면 그렇게 느릿느릿 물어보면 안되지. "아니 저기 이스턴 웰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죠?" "여기서 북으로 쭉 올라가다 보면, 갈림길이 나오오. 거기에서 동쪽으로 꺾어서 계속 대로를 따라가면 말로 이틀거리에 이스턴 웰이 나올 것이오. 도중에 마을이 있으니까 거기 가다보면 마차를 얻어 탈수도 있을 거요. 자 그럼 나는 이만." 그는 그렇게 말하고 마차를 계속 앞으로 몰기 시작했다. 나는 그렇게 엇 갈려 지나가는 마차의 뒷모습을 한번 봐준 뒤 앞을 돌아보았다. 포장석이 깔린 길이 멀리도 펼쳐져 있었다. "이런 젠장. 말로 이틀거리라고? 뭐 좋아. 달려볼까?"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몸을 풀었다. 관절에서 삐걱삐걱 아주 좋은 소리 가 난다. 젠장. 이러다 나이 먹으면 관절염으로 고생하는 거 아냐?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앞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이스턴 웰, 에스페란자의 잊혀 진 공주, 니나 에스페란드가 모습을 드러냈었다는 곳. 뭐 일단 이제 로그 마스터를 폐업하면 이거저거 신경쓸 생각은 없다. 필요도 없고. 하지만 그렇다고 다 때려치고 어디 정착해서 놀고먹을 수는 없는 일 아니겠어? 이제 와서 그냥 정착해서 사는 것도 그렇고 모험가라면 응당 모험의 거리 를 계속 찾아다녀야지! 나는 그러한 생각을 하고 앞으로 달려나갔다. 잘 될지 모르겠다. 이것도 녀석들의 계획안에서 놀아나는 것인지. 이제는 워 낙에 음모가 많으니까 내 감정조차도 믿을 수 없는 지경이 된 것이다. 그 러나 가보지 않으면 모르는 법이다. 팔마력 1548년 10월 13일 나는 초원을 달리기 시작했다. 준비한 비상식량을 다 먹고 떨어지면 길가 에 지나가는 멍청한 도마뱀이라도 잡아다 소금구이 해먹고 물이 떨어지면 빗물 고인 웅덩이 등에서 대충 갈증을 해소하고 또 달렸다. 그렇게 달리 자 곧 왠 도시가 하나 보이기 시작했다. "아흐흠. 아침이구나." 나는 주위를 둘러보곤 히죽히죽 웃었다. 요 며칠 사이에 아무도 없는 초 원에서 혼자 잘 웃은 것 같다. 나는 마을의 입구에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 다. 별 특색없는 초원의 마을이지만 벽돌을 구워서 만든 마을 외 성이 눈 에 들어온다. 그다지 벽돌 크기가 크지 않은 걸로 봐서 방어력은 약할 것 같은데. 작은 벽돌들을 쌓아서 만들면 큼직한 바위로 쌓아 만든 것에 비 해서 옆에서 치는 힘에 약하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것 같다. "어이! 뭐냐? 들어올거면 통행세 내고 들어와!" 내가 그렇게 성문을 기웃거리자 보다 못한 경비병이 그렇게 말했다. 그래 서 나는 안에 들어가며 물어보았다. "저기 혹시 여기가 이스턴 웰이에요?" "아니 이스턴 웰은 좀 더가야 하고 여긴 새슈라는 마을이지. 왜? 이스턴 웰로 가게? 계속 대로를 따라 쭈욱 동쪽으로 가면 돼." "뭐 보급 물자가 필요하니까 일단 들리기로 하죠. 그런데 그 조금 보급하 려는데 이렇게 통행세를 내야 되겠어요?" "어쩔 수 없어! 국법이 그런데 너가 어쩔거야? 왕이라도 되면 모를까. 게 다가 지금 전시라고. 탈탈 털어서 검문을 해도 시원찮은 마당에 통행세 면제라니 말이 되냐?" 병사들은 그렇게 말하다가 자신의 경박한 입에 스스로 놀랐는지 입을 다 물었다. 만약 남이 들으면 역적모의라고 주장해도 할말이 없었다. 뭐 그 런 주장을 할만한 꼴통은 이단심문관 아니면 찾아보기 힘들겠지. 어쨌거 나 나는 그렇게 병사들의 검문을 지나가 안에 들어가서 가장 먼저 보이는 잡화상에 들어갔다. "예예. 어서오십쇼." 안은 잡화상보단 고물상에 어울릴 정도로 여러 가지 물건이 쌓여있었다. 마치 쓰레기와 잡동사니들이 스스로 자식을 낳은 것처럼, 산처럼 쌓여있 는 잡동사니들로부터 잘잘한 물건들이 삐죽삐죽 솟아 나고 있었다. 무생 물에게 생명력을 부여할 정도로 이렇게 어지럽혀져 있으면 아마 이걸 쌓 아둔 장본인 외에는 감히 꺼내지도 못할 것 같다. 하지만 이 위태로운 속 에서도 휘파람을 불고 있던 점원이 나에게 인사를 했다. "건조식량, 붕대, 지혈제랑, 뭐 로프도 약간 필요하고, 쇠로 된 고리같은 것도 있으면 주세요. 등산용 피치도 필요하구나. 음. 뭐 이 정도로 주세 요." 나는 그가 이 잡동사니들에서 어떻게 물건들을 꺼낼지 기대하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그는 잡동사니의 산에서 요령 좋게 물건들을 꺼내며 물 어보았다. "으음. 여행 중이신가요?" 말린 떡이나 과일들, 바짝 말린 뒤 튀겨 놓은 고기나 좀 수상해 보이는 녹색 얼룩이 묻은 치즈 등 보관하기 편한 식량들과 각종 물건들이 나왔 다. 내가 주문해놨던 물건들이 계산대 위에 쌓이는 걸 보니... 다른 건 몰라도 음식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된다. 저거 먹어도 괜찮은 물건일까? 아니 먹고서 살수 있을까? "예. 아참 그리고 뭐 쓸만한 무기 없습니까?" "지금은 전쟁중이라, 가게의 무기를 다 거둬가서요. 죄송합니다." 점원은 그렇게 말하고 공손히 인사를 했다. 하긴 전쟁중이니 무기로 쓸만 한 건 다 거둬갔을 것이다. 으음. 이거 참 차질이 많이 생기는데? 나는 거의 다 떨어진 쿼렐을 생각하곤 한숨을 내쉬었다. 리피팅 보우건은 다 좋은데 화살소모가 극심하다는 게 문제다. 빠르게 쏘아내는 것에 중점을 두다 보니 화살들이 남아날 리가 있나? 어쨌거나 나는 셈을 치뤘다. "얼마죠?" "으음. 1모나크 2데린입니다만. 2데린은 깎아 드리죠. 1 모나크...." "으흠. 이런 쓰레기통에서 줏어온 것 같은 치즈에도 그렇게 비싼 돈을 먹 인단 말이에요? 이 건육에는 먼지가 끼어있잖아요. 도대체 어디에 보관한 거에요? 피치도 다 녹슬었고...." "그건 좀 닦아주면 되잖습니까?" "그러면 지금 여기서 닦아서 주세요." 내가 그렇게 말하고 카운터에 장비들을 내려놓자 직원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하... 얼마를 원하십니까?" "80." 어차피 이제 로그마스터도 아니다 이거야. 깎자! "칼만 뽑으시면 제게 경비병을 부를 영광을 주실 수 있을텐데요? 요새 경 비원들과 원활한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서 언제 한번 불렀으면~하고 벼르 고 있기는 했죠." 즉 칼만 안 뽑았지 강도라 이거지? 나는 말을 꽤 돌려 말하는 그 점원을 보고 히죽 웃었다. 점원의 얼굴에는 금새 비비 원숭이의 눈꺼풀처럼 두터 운 어둠이 깔렸다. "그러면 깎아주겠다는 말로 알겠습니다." "그래도 80은 너무하니 90어때요?" "뭐 그 정도로 합의 보죠." 나는 그렇게 말하고 퍽이나 선심쓰는 것처럼 잔금을 치루고 잡화점의 밖 으로 나왔다. 그런데 그때 뭔가 사람들 속에서 거짓말 보태서 사람하나는 더큰 거한이 걷고 있는게 보였다. "에? 워로드?" 저인간들이 여긴 왜온거지?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러고 보니 저 두사람 니나를 찾고 있잖아? 이렇게 가다보면 만나는게 당 연한 건가?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한 도시에 이르는 길이 얼마나 길고 다양한데. 이런데서 만나다니. 나는 얼른 벽면에 붙어서 몸을 숨기고 워 로드를 살펴보았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걸어 다니는 걸 보니까 아무 래도 니나를 찾고 있는 중인 것 같았다. 아직 찾지 못했다는 말이로군. 나는 그렇게 판단을 내리고 조심스럽게 몸을 뺐다. 아무래도 워로드나 킷 이나 나에게는 껄끄러운 상대랄까? 전에 한번 킷에게 목숨의 위협을 받은 데다가 아직도 내 목엔 상금이 걸려있는 상태인지라 킷이 다시 덤비지 않 는다고 장담 못하는 거 아냐? 더구나 이번에는 말려줄 니나도 없다. 하지 만 아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워로드는 이쪽 방향으로 점점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젠장. 골치아프게 되었네." 나는 그렇게 투덜거리고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뒤에 서 바람소리가 들렸다. "공격?" 나는 얼른 몸을 돌리며 날아오는 것을 피했다. 그냥 평범한 자갈이 땅을 치고 지나갔다. "여기야 여기!" 그리고 골목길의 어둠속에서 한 검은 옷의 남자가 나에게 손을 흔들고 있 었다. 눈동자 위에도 새카만 안경을 걸친 것이 영락없는 공안요원이었다. 나는 깜짝 놀라서 그에게 다가갔다. "어떻게 나를 알아보는 거지?" "지령이 깔려서 다 알죠. 정보요원은 괜히 하는게 아니니까. 자 일단 내 임무는 저 둘을 감시하는 거긴 한데, 정보를 알려주겠소." 그는 그렇게 말하고 꾸깃꾸깃 접은 종이를 나에게 건네주었다. "이미 필사한 거요. 가서 읽어보도록 하시오. 그럼 나는 계속 저들을 감 시하겠소." 그는 그렇게 말하고 골목길에 숨어서 워로드와 킷을 감시하고 있었다. 나...원참! 저런 복장을 하고도 용케도 안 걸리는 군. 아무리 보아도 눈 에 확 뜨일 복장인데 말야.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바로 성문으로 돌아 나 갔다. 가을 바람은 오늘도 산뜻하게 불어오고 있었다. 맑은 공기 속에서 나는 공안요원이 건네준 메모를 살펴보았다. 그 메모에는 최근 니나가 발견된 루트가 보이고 적혀있고 그 자취를 따라 추적하는 워로드와 킷의 행적이 적혀있었다. 뭐 이걸 보고 대충 추측을 해보자면 니나는... 방황하고 있 다. 아무런 목적없이 동부지역을 헤매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 이 라이오 니아 동부지역을 헤매고 있을 때는 제국으로 빠지려는게 아닐까 생각했었 는데 그러진 않고 계속 동쪽 지역의 각 도시를 배회하는 걸 보니까 아직 마음을 단단히 잡지 못한 것 같았다. "흐음....어쨌건 지금으로선 이스턴 웰로 다시 돌아갔을 가능성이 크군. 그쪽으로 가보자고. 처음 목적지도 거기였으니까."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곤 종이를 접어서 길가에 버렸다. 원래 찢어서 먹어 버리든지 해야 하는데 그러고 싶은 생각도 없고 이 넓은 초원을 생각해보 니 별로 그럴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겠다. 나는 그렇게 종이를 바람이 실 어 보내고 다시 앞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렇게 얼마나 걸어갔을까? "아...." 나는 앞에서 달려오는 마차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 뒤에서는 놀과 고블린 라이더들이 추격을 해오는게 아닌가? "사, 사람살려!" "살려주세요!" 마차에 탄 사람들은 그렇게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다들 진한 적갈색피부 를 가진 아메리아 인들이었다. "...." 그순간 나는 얼음 칼날이 목구멍을 쑤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갑자기 숨이 막히고 말이 잘 안나오는 것이다. 왠지 충격을 많이 받은 것 같군. 의도적으로 디모나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저들을 보 니 자연히 떠올리게 된다. 그녀를 원망하고 싶지는 않은데, 이성적으로는 이해하고 있는데도 속에 이렇게 계속 앙금이 남다니 나도 속이 좁은가 보 다. 아니아니 이건 당연하지. "젠장.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곤 리피팅 보우건을 뽑았다. "엎드려!" 나는 그렇게 말하고 화살을 퍼부었다. 그러자 달려오던 고블린 라이더들 이 화살에 맞고 지면으로 떨어져 굴렀다. 용광로에 물 부었을 때처럼 엄 청난 양의 흙먼지가 하늘로 피어올랐다. 나는 그 앞을 향해 걸어가며 우 릴의 단검을 뽑았다. 소드블래스터와 제로테이크에 너무 의존하는 바람에 지금의 나에겐 장검류의 무기가 아무 것도 없다. 너무 마법검에 의존했 나. "아 고맙소!" 마차의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고 그냥 나를 휙 지나쳤다. 뭐 인사라도 한 마디 한 게 어디냐. 괜히 나중에 감사를 표하겠다고 남아있으면 그들을 지켜야 할 내가 곤란하다. 나는 리피팅 보우건의 탄창 하나를 비워 버리 고 우릴의 단검을 들고 적들의 공격을 바라보았다. 긴 창을 들고 나를 향 해 달려오는 놀이 한 놈 포착되었다. "좋아!" 나는 놀에게 달려갔다. 그 놀은 풀밭을 헤치며 달려들어서 전력을 다해 나에게 찌르기를 넣었다. 하지만 나는 종이 한 장 차이로 그 찌르기를 피 하고 녀석의 손목에 우릴의 단검을 박아넣었다. 그러자 놀의 비명이 귓청 을 때렸다. "꿰에에엑!" "쳇! 이 창 내가 받는다!" 나는 녀석의 창대를 잡은 뒤 다리를 걸어서 녀석을 넘어 뜨렸다. 그렇게 창을 빼앗자 마자 오크 두 마리가 좌우에서 도끼를 들고 협공해왔다. "카!" "으음!" 나는 앞에서 도끼를 크게 휘두르며 공격해오는 놈을 향해 창을 찌르고 몸 을 앞으로 숙이며 뒤로 발차기를 했다. 내가 오크를 창으로 찌르는 틈을 노리고 뒤에서 공격해오던 녀석은 발차기를 피하며 내 다리를 찍겠다는 건지 도끼를 휘둘러왔다. 물론 나는 다리를 접어서 피하고 오크에 꽂혀서 빠지질 않는 저급한 창 대신, 창에 찔린 오크가 떨어뜨린 도끼를 집어들 었다. "크..." "네놈들. 탈영병이냐?" 나는 꽤나 규율이 잡힌 이 휴머노이드 몬스터들을 보고 샤기투스 어로 물 어보았다. 아마도 이노그의 패배로 와해된 휴머노이드 군대에서 탈영한 놈들 같았다. 그러지 않으면 이렇게 다른 휴머노이드 종끼리 쉽게 합쳐질 리가 없으니까. 사실 물어볼 필요도 없는 질문이다. "크우우!" 오크 한녀석이 도끼를 치켜들고 달려들었다. 그러나 나는 녀석의 공격을 최후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녀석이 나에게 내리치는 순간 발을 써서 옆으 로 빠지며 들고 있던 도끼의 무게를 이용해서 비스듬히 내리찍었다. 뻑 하고 오크의 무릎이 깨지며 피가 풀들 위로 후드득 튀기 시작했다. "크악!" "흐음!" 나는 아래로 무게를 따라 내려간 도끼의 동선을 그대로 확장하면서 몸을 틀었다. 내가 생각해도 무모한, 춤사위 같은 동작과 함께 도끼가 지면에 서 튕겨오르며 오크의 목을 찍었다. 별로 날도 잘 서있지 않은 도끼건만 동선에 군더더기가 없어서 그런지 무서운 기세로 목을 자르고 지나갔다. "키익!" 그때 화살이 하나 날아왔다. 고블린들중에 단궁을 갖고 있는 놈들이 나에 게 화살을 발사한 것이다. "이런!" 화살이 아슬아슬하게 얼굴 옆으로 지나갔다. 비록 맞지는 않았지만 화살 은 여전히 위협적인 물건이다. 나는 가까이에 있는 고블린에게 도끼를 던 져서 단숨에 죽여버리고 방금 전 목을 날린 오크의 도끼를 집어들었다. 적의 무기로 적을 제압한다! 이거 참 좋은 일이지! 나는 그렇게 도끼를 쥔 뒤 풀밭으로 달려가 몸을 숨겼다. 그러자 고블린들은 화살을 쏘지 않 았다. 역시, 화살통 안에 들어가는 화살은 끽해봐야 40발이고 보통은 20 발이 한계다. 함부로 확인을 위해서 쏘기엔 아까운 거겠지? "젠장. 인피니티 로프가 있으면 편한데. 뭐 어쩔 수 없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쉐도우 디펜더를 친 뒤 도끼로 몸 옆의 풀들을 밀 고 흔들었다. 그러자 고블린들의 흥분한 소리와 함께 화살이 쏟아지기 시 작했다. 하지만 역시 활 소기란 것은 힘든 일이다. 한 열대쯤 쏘자 고블 린들이 지치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화살을 쏜다는 것도 제법 힘든 일 이거든. "좋아. 이제 그럼!" "어이! 도와줄까?" 그런데 그때 갑자기 ŠP탁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소리에 섞인 사람의 비명소리? 나는 깜짝 놀라서 자리에서 일어나 앞을 살펴보았 다. 세상에. 그 많던 고블린, 오크, 놀들이 다 정리되어있는 게 아닌가? 그리고 그 정리된 놈들의 위에는 워로드가 위풍도 당당하게 서있었다. 그 리고 마차가 서있던 길 쪽에서는 긴 은발을 살랑이며 한 명의 엘프가 걸 어오고 있었다. "젠장." 왠지 만나기 싫은 놈일수록 잘 만나게 되는 군. 내가 생각이 짧았다. 게 다가 지금 저 녀석, 킷이 들고 있는 종이 쪼가리는 어디서 분명히 본 적 있는 물건이 아닌가?! "흐음. 길거리도 아니라 평야에서 이런 재미있는 게 굴러다니더군." 킷은 그렇게 말하고 하나밖에 남지 않은 청회색 눈동자를 들어 나를 바라 보았다. 안대 밑에서 붉은 안광이 마치 화로에서 날름거리는 불꽃의 혀처 럼 흔들거렸다. 그리고 무시하지 못할 살기가 피어올랐다. 나는 피에 젖 은 도끼를 내던지고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 되냐? < 계 속 입 니 다~ > -------------------------------------------------------------------- <휘긴경 대극장> 휘: 그럼 또 오늘은 TRPG를 하는 날이군. 난 이만... 펠: 당신은 악마야. 악마. 내때도 나를 아주 박살내더니만... 휘: 나도 디모나 인기가 폭락해서 슬프다고. 열심히 만든 캐릭터인데 말 야. ?. 뭐 완성도를 위해서는 어쩔수 없는 일이지.-_-; -똑똑... 펠: 응? 무슨 일이지? 앗? 랑: 아 음. 저기. 여기가 혹시 휘긴경 대극장인가요? 휘: 아앗~ 랑켄이잖아? 벌써 오다니. 랑: 안녕하세요. 오늘은 저기 몇 가지 질문이 있어서 여쭈어보고자 왔어 요. 극작가 분이신가요? 펠: 이, 이 자가 바로 2부 주인공이야? 너, 너무 다소곳하지 않아? 게다 가 키가 165도 안될 것 같아. 남자인거지? 휘: 응. 랑: 아 안녕하세요. 페르아하브 아사인사트 씨군요. 이야기는 많이 들었 어요. 펠: 으음. 뭐 나에 대해서야 워낙 좋은 평판밖에 없으니까 좋은 이야기 밖에 못 들었겠군. 그렇지? 랑: 예? 아. 예. 그렇지요? (방긋) 펠: ... 왜 저길 보고 말하는 거지? 아! 누, 눈동자에 초점이 없잖아? 휘: 그 애 장님이거든? 괴롭히지 마. 펠: 이거 회복주문으로 안되나? 랑: 잠깐 회복되었다가 다시 안보여요. 소용이 없는 것 같아요. 아 극장 주님. 질문이 있는데. 아까 전에 표절에 대해서 대단히 안 좋은 말씀을 하셨지요? 휘: 물론! 표절할거면 뭐 하러 글을 써? 나 원참. 아주 멋진 참고서적의 활용 예라니까. 그럴 거면 키보드에 머리 박고 죽어버려! ㅗ(\o/)ㅗ 랑: 그럼 표절은 어디까지가 표절이죠? 예를 들어서 흑랑가인은 표절과 뭐가 다르죠? 그리고 이 비상하는 매나 레이펜테나 연대기는요? TRPG의 설정과 몬스터 설정을 도용한 게 아닌가요? 휘: 으으으윽. 그, 그것은... 펠: 예~이~! 정타! 클린히트! 데미지 150%! 훗, 이것은 아까까지의 타격 과는 다르군! 휘: 어이. ( -_-) 펠: 그러니까 왜 집에 다 죽어가는 드림캐스트만 있냐고. 이제 플스2 사 지 그래? (딴청모드 발동) 휘: ...으음. 그것은 말이지 하하하. 뭐랄까. 포토샵을 툴로 그림 그렸다 고 그게 포토샵 표절인 건 아니잖아? 응? 그렇지? 검과 마법이 나온다고 다 반지전쟁이나 코난사가 표절이 아니라고. 암! 랑: 하지만 그럼 표절이란 것에 대해서 굉장히 관대해지고 마는 걸요? 폭 이 매우 좁아져요. 한정된 단 몇 구절 만으로 표절이라고 어떤 작품을 몰 고가는건 시기상조 아닐까요? 휘:...그러니까 그건 말이지. 으음. 아 땀나네. 어쨌건 TRPG의 룰은 결국 사태에 대한 판정법을 정한다고 이놈이 검을 휘둘렀을 때 저놈이 맞아줄 까? 물에 빠지면 헤엄쳐 나올까 등등... 그리고 나는 이 판정은 TRPG로 하지 않고 있어. 일례로 페르아하브는 모든 내성굴림을 무조건 성공했지 어쨌건 실패확률 5%가 있는데도. 펠: 거기서 왜 내가 나오는데?-_-; 휘: 어쨌거나 그런거지. 그리고 몬스터 설정을 도용했다~라고 하는데 설 화에 나오는 몬스터나 이미지를 차용하는 것은 신화나 환상을 바탕으로 한 모든 것이 쓰는 기본적인 기법이라고. 랑: (공손히 인사한다)그렇군요. 그렇지만 사후긴이나 쿠오타 같은 어인 종들, 비홀더 등등의 몇몇 TRPG계 몬스터는 설화에 등장하지 않는 이들일 텐데요. 휘:...(삐질삐질) 에, 음. 지금이 토요일이고 하니. TR가기 전에 좀 자야 겠다. 아~ 피곤한 하루였어. 자 그럼 이만. 랑켄 바래다 줘. 펠. 펠: 어이 휘긴경? < 계속이라면 계속된다! > *********************************************************************** 으흠. 부산 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즉 내일 연재가 안되면 다 그러려니 하세 요. 후. 아 불쌍한 카이레스를 응원해주시는 분이 많군요. 하지만 곧 그분들 도 퍽 떨어져 나갈 이벤트가... 으음. 내가 네타를 하면 안 돼지. *********************************************************************** 레이펜테나 연대기 제 1 부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제 27 화 : Insane#4 ------------------------------------------------------------------------ 팔마력 1548년 10월 13일 결국 나는 킷에게 덜미가 잡혀버렸다. 킷은 워로드에게 장작들을 모으게 하더니 돌로 솥 걸이를 만들어 놓고 나에게 물어보았다. "그런데 왜 네가 이런걸 가지고 있었냐?" "아 저기 이거나 풀어주고 이야기하죠?" 나는 내 손목을 묶고 있는 밧줄을 보고 그렇게 말했다. 물론 이건 쉐도우 아머로 언제든지 끊을 수 있으니까 별로 문제될 건 아닌데 킷은 '이게 끊 어질 경우 네 목도 끊어진다!'라고 엄포를 놓았던 것이다. 게다가 저놈은 한다면 진짜로 한다. "손목을 묶으면 말을 못하는 종족이 있었나? 이해할 수가 없군." "아니 저기 대화가 편하게 되려면 몸도 편하게 해야지." 내가 그렇게 말하자 킷은 무심한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곤 누가 악당 아니라고 할까봐 냉정하게 말했다. "편하게 하고 싶은 대화가 아닌데? 굉장히 나를 껄끄러워 해주게. 어떤 가? 이제 껄끄럽게 이야기를 해볼까?" "...." 저렇게 나오면 할말이 없지. 나는 초원에서 밧줄에 묶인 채로 킷에게 사 정을 이야기했다. "그러니까 에스페란자 공국, 아니 이제 왕국인가 어쨌거나 에스페란드 왕 실에서 그녀를 원하고 있다는 거죠. 간단하죠?" "간단한 건 간단한 건데 그래서 그들은 그녀를 어떻게 하려는 거지?" "그것까진 알 도리 없지. 설마 잡아먹기야 하겠어?" 내가 그렇게 말하자 킷은 칼을 뽑더니 밧줄에 묶여있는 내 목에 갖다 대 었다. "그런 것도 모르면서 무슨 생각으로 그놈들에게 협력하려는 거지?" "그러지 마시죠. 랭카스터 경도 죽어서 아마 상금이 팍 깎였을텐데."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는 피식 웃었다. 그러더니 마치 쓰레기 통을 뒤지 는 고양이라도 본 것처럼 경멸의 눈초리로 나를 내려다 보았다. "나를 바보로 보는 거냐? 자. 어서 니나가 있는 곳을 불어봐!" "...모른다니까. 일단 이스턴 웰이나 찾아볼까 한 것 뿐이라고!" 내가 그렇게 말하자 칼날이 시원하게 내 목을 긁고 지나갔다. 꽤 깊이 베 였는지 목이 시큰거리며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그럼에 도 불구하고 완강하게 버텼다. "모르는건 모르는 거다! 적당히 해두시지! 이 자식!" "아!" 그런데 그때 마악 장작을 모아온 워로드가 달려와 나와 킷의 사이를 가로 막았다. 졸지에 나는 밧줄에 매인 채로 워로드의 엉덩이를 뚫어지게 쳐다 보는 바보가 되었다. "그만두십시오. 이자를 지금 죽여선 안됩니다!" 나는 나를 옹호해주는 워로드의 말을 듣고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지금 죽여서 안된다니. 그럼 나중에는 죽여도 된다는 거야? 그렇잖아도 자꾸 나라는 인간의 가치가 폭락하는 것 같아서 슬프구만! 디모나에게는 그저 로그마스터의 유산을 날치기한 방해꾼에 지나지 않고 이 놈들에게는 또 잡혀서 고문을 당할 처지가 되다니! "좋아. 이스턴 웰이라고? 같이 가자." 킷은 그렇게 말하고 나에게 눈짓을 했다. 로프를 풀어도 좋다는 이야기로 알아듣고 나는 스스로 로프를 풀어버렸다. 그러자 워로드가 신기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 재주도 있군요." "뭐 이건 별거아니고. 아 젠장. 이런 빌어먹을 경우를 봤나." "뭐가?"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신경쓰지 말라고. 젠장." 나는 그렇게 말하고 킷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킷은 알아듣는 건지 일부러 무시하는 건지 불을 피우기 시작했다. 뭐 저따위 녀석이 다있냐? 으음. 인간적인 면모가 전혀 없으니 원, 차라리 캐스윈드가 훨씬 인간적이다. 수 천년이 넘게 살아온, 인간인지 엘프인지 드래곤인지 감도 잡히지 않는 전설적인 사이오니스트 캐스윈드가 저 킷보다 더 인간적인 것이다. "그나저나 당신들은 니나를 찾아서 어쩌려고?" "글쎄. 그것까진 생각하지 않았다." 킷은 그렇게 대답하면서 물을 냄비에 부었다. 나는 물통의 물을 냄비에 붓는 것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지만 이상하게 물통이 냄비보다 작은데도 냄비를 물로 가득 채워버리는 것이 보였다. 저것도 인피니티 백팩처럼 그 런 종류의 물통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불을 살펴보았다. 워로드가 주어온 장작들은 하나같이 화력이 약해서 은근하게 불이 붙어 있었다. 대 체 이걸로 언제 물이 끓을까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어쨌거나 너도 그놈들 속셈을 모르면서 왜 녀석들의 뜻에 따라서 그녀를 찾으려는 거지?" "뭐 나도 특별한 이유라고 할 것 까지는...." 물론 나야 디모나에게서 달아나다 보니 할 짓도 없고 그거나 해볼까 하는 충동 때문이었지. 젠장. 나는 푸르른 하늘을 올려다보고 한숨을 내쉬었 다. 어쨌거나 일단은 마음이 진정되길 기다리자. 지금의 나는 내 정신이 아닌 것 같다. 디모나에게서 달아나는게 다른 무엇보다 우선이라니 나 스 스로도 한심하고 비참하다. 10월 14일. 자면서 눈물을 흘린 것 같다. 일어나 보니까 눈이 좀 부어있고 아프다. "아 진짜 정떨어지게...." 이러니까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비참하잖아! 나는 얼른 눈을 닦고 일 어났다. 다행이 아직 해도 뜨지 않아서 어두울 때였다. 그래도 마부는 잠 에서 일어났는지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마차는 계속 흔들리고 있었다. "...." 어둠속에서도 꽤 밝게 보이는 은발을 가진 킷은 모포를 몸에 두른채 아무 말 없이 술통 옆에서 칼을 안고 자고 있었다. 그저 눈을 감고 있는 것처 럼 편안하게,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게 자고 있다. 그에 비해서 워로드는 절제된 생활과 고된 수련을 계속하는 권술가일텐데 밀 포대를 베개 대신 베고 발라당 드러누워 자고 있었다. 저렇게 화물을 베고 자면 태워준 아 저씨에게 미안하잖아? "아 벌써 일어나 계셨군요. 정말 죄송합니다." 나는 어제 저녁 우리를 태워준 마부를 보고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그 마 부아저씨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뭘, 최근에는 이노그의 군대에 있던 괴물들이 강도로 돌변해서 하 두 뒤숭숭한지라 아무래도 무장한 인원들이 있어야 마음이 든든하거든. 이제 얼마 안가면 이스턴 웰일세." 그는 그렇게 말하고 앞을 가리켰다. 나는 마차에서 일어나 앞으로 내려왔 다. 시원한 바람이 얼굴로 달려들었다. "아... 시원하다." 나는 다시 한번 얼굴을 부비곤 그렇게 중얼거렸다. 결국 그 마차를 얻어타고 아침 무렵에 이스턴 웰에 도착했다. 이스턴 웰 은 라이오니아 동부 평원이라고 부르는 평원지대에 닿아있는 라이언즈 스 파인 산맥의 자락에 위치한 도시로 그 옛날 군대가 여기에서 보급을 받았 기 때문에 중요한 도시였다고 한다. 하지만 포장도로가 깔려버린 지금은 그저 호수 하나를 끼고 있는 작은 호반도시에 불과하다고 한다. "여긴가?" 킷은 라이언즈 스파인 산맥의 지류라고 할수 있는 언덕 위에서서 호수를 끼고 있는 이스턴 웰을 바라보며 나에게 그렇게 물어보았다. 아니 벨키서 스 산맥에 처박혀 있던 나에게 천성이 모험가인 녀석이 질문을 하면 어쩌 자는 거야? 나는 속으로 그렇게 투덜거렸지만 일단은 깨끗하게 대답했다. "아마도." 여기가 틀림없다는 식으로 말하면 틀림없이 킷 이놈이 성질을 부릴 일이 있을테지? 젠장, 나도 지금 심란해 죽겠는데 왜 이놈 성질 낼거나 걱정해 주고 있어야 한담? 나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별 도리있냐? 지금 으로서는 얌전히 녀석이 하자는 대로 따르는게 이득이다. 어쨌거나 뭐 특 별히 다른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니고. 보디발 왕자가 나를 잡으려 드는 것 만 열심히 피하면 될 테니까. 이 기회에 한번 멀리 멀리 여행이나 떠나볼 까? 어디 유명한 고적이나 명승, 경치 좋은 곳을 두루 둘러보면서 호연지 기를 키울.... 젠장. 여자에게 채여서 달아나면서 이곳저곳 관광한다고 호연지기가 잘도 길러지겠다! "그럼 이제부터 셋이 나뉘어 져서 여기저기 찾아보자고." 킷이 그렇게 말하길래 나는 반문해보았다. "어떻게? 혹시 금발 미녀 못 봤냐고 물어보고 다닐까?" "음...." 킷은 갑자기 품속에서 종이를 하나 꺼내더니 바로 펜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마치 펜으로 검술을 연마하듯 힘있게 직직 그어낸 그곳에는 왠 지 굉장히 날카로워 보이는 니나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어찌나 빨리 그렸는지 아직 잉크도 마르지 않은 것이다. 그는 그렇게 펜으로 그림을 두세 장 정도 날카롭게 그려버린 뒤 잉크병을 닫고 벨트포치에 넣었다. "우와! 잘그리는데?" "뭐 일종의 취미인 셈이지. 자. 어쨌거나 이걸 보이면 되겠지?" "...." 취미로 하는게 이정도 수준이란 말야? 아니 수준이 문제가 아니라 속도가 더 대단하다. 공원에서 사람들 얼굴을 캐리커쳐로 그려주는 거리화가래도 이렇게는 못하겠다. 하지만 문제라면 펜선이 너무 예리하고 결과적으로 날카로워 보인달까? 누가 검사 아니랄까봐 이렇게 해놓기는. 하지만 그래 도 잘 그린데다가 사람들에게 들고 물어보기에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다. '이걸로 나가도 먹고 살겠는걸?'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고 킷을 바라보았다. 전에도 그렇지만 킷은 굉장히 예리하고 날카로우면서도 자기 자신을 칭찬하는 것에 꽤 약하다. 저번에 내가 그의 칼을 보고 감탄할 때도 자기가 만들었다면서 퉁명스럽게 대꾸 했지만, 이전까지 딱딱하던 분위기가 팍 풀리던 것을 기억해 볼 때. 지금 저 헛기침하는 것도 실은 좋아서 입이 찢어지기 일보직전인 상태인 것이 다. 녀석, 의외로 파악하기 쉬운 성격이었군. "그러면 어디에서 어디로 이동할까? 셋이 지역을 미리 분할해서 탐문하 지." "좋아. 나는 호수 쪽." 내가 그렇게 정하자 킷과 워로드가 나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은 '호수 쪽에 좋은 가게가 많이 깔려있어서 놀기 좋으니까 지?' 라고 나에게 물어 보는 것 같았다. 뭐 사실이잖아. 그러나 여기서는 철판을 까는게 중요하 다. 이녀석들이 거리를 활보하면서 '인간수컷' 이라느니 그냥 인상을 쓰 기만 해도 거리의 분위기가 얼마나 가라앉을 것인가? 안좋지. 아주 안좋 아. "흠흠. 이 경우는 엘프인 킷이나 거한인 워로드보단 내가 번화가에 더 어 울리지 않을까 해서 낸 의견이라고." "그, 그렇습니까?" 워로드는 내 말을 정말로 받아들였는지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킷은 안넘 어간다. "뭐 좋다. 어차피 인간 암수가 뒤섞여 득시글거리는 축사같은 도시에서, 번화가 쪽으로 가봐야 좋은 일이 있진 않겠지. 그럼 오늘 저녁에 한번 보 기로 하고 그때까지 좋은 소식이 있길 바란다. 나는 성문 근처 쪽, 여관 거리를 찾아보지. 이런 담배도 다 떨어져 가는 군." 킷은 그렇게 투덜거리며 카타나를 등에 짊어지고 걷기 시작했다. 좋아. 그럼 니나나 찾아봐야 겠군. 왠지 찾을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왜 냐면 지금 같이 상심하고 있는 사람으로서의 동질감이랄까? 그런 면에서 보자면 지금쯤 경치 좋고 놀기 좋은 곳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유랑을 하고 있을 확률이 높단 거지. 나도 아까 전에 명승, 고적, 운치를 찾아다니며 호연지기를 기른다느니 이따위 헛생각을 했잖아? 상심을 달래주는 것은 술과 운치~ 분위기와 여자~! "아하하하하핫!" 나는 아무도 없는 언덕 위에서 웃다가 멈췄다. 남들이 보면 미친놈인줄 알겠다. 이스턴 웰은 전쟁의 불안감을 그대로 감고 있는 도시였다. 하긴 동쪽으로 조금만 가면 동부전선, 이스트 가드가 나타나는 이 도시에서 전쟁에 대한 긴장감이 없다면 그야 말로 태평성대이리라. 하지만 그래도 아직 여유는 남아있었다. 전쟁이 총력전으로 흐른 것은 아니니까. 게다가 이노그는 이 미 격파되지 않았는가? "으흠으흠." 나는 누가 알아보는 사람도 없는데 으쓱거렸다. 어쨌건 이노그의 목을 직 접 딴 것은 누가 뭐래도 바로 나! 카이레스인 것이다. 아 자랑할만한 일 이다. 아무도 안 알아 줘서 그렇지. 어쨌거나 나는 킷이 그려준 초상화를 가지고 길거리를 걸으면서 이 사람 저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 그들은 전 란의 시대에 여자얼굴이나 물어보고 다니는 나를 보고 대부분 수상한 시 선을 던졌다. 으음. 결국 나는 하다 말고 멈춰섰다. 아무래도 내 상태도 안 좋은데 이렇게 남의 여자 찾아주러 다니는 짓도 못하겠다. "에휴. 젠장." 나는 가을의 푸른 하늘을 반사하고 있는 멋진 호수를 바라보며 호수가에 앉았다. 나무로 턱을 만들어둔 부둣가에는 어디와 이어진 호수가 아니라 서 그런지 작은 보트들만 걸려있었다. 그리고 앞에는 세월을 잊은 것 같 은 노인이 한명, 낚시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으으음. 많이 잡혀요?" 나는 그렇게 말을 걸며 다가왔다. 그러자 그 노인은 투덜거리기 시작했 다. "시끄러워! 물고기 달아나잖아." "어차피 나만 떠드는 게 아닌데."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그 노인의 그물을 살펴보았다. 노인은 낚시대를 거 둬들이곤 낚시바늘에 지렁이를 끼우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물고기 새끼들, 아주 요물이 다됐구만. 어떻게 미끼만 쏙 빼먹 지?" "흐음. 저도 한 대 줘보실래요?" "뭐? 낚시대?" 그 노인은 그렇게 말하고 여벌의 낚시대를 가리켰다. 나는 그 옆의 낚시 대를 들고 미끼통에 손을 집어넣어서 꼬물거리는 지렁이를 잡았다. "줄 끊어먹으면 물어내." "뭐 물고기 잡으면 드리는 걸로 하죠." 나는 그렇게 대답하고 낚시대를 던졌다. 벨키서스 레인저는 생존 훈련을 위해서 다들 낚시쯤은 배우기 마련이다. 하지만 산의 물은 흐름이 빠르 고, 여기 물고기들은 호수라서 그런지, 조금만 줄이 움직였다 싶으면 물 지 않고 미끼만 쏙 빼물어 간다. 그러고 보면 계곡등의 격류에서는 물고 기가 물살을 헤치고 올라갈 때는 움직임이 어려워져서 바늘이 아가미에 걸리기도 하고 그러더니 여기서는 그런 게 없군. 철저히 물고기가 요물화 될 환경이랄까? "낄낄낄. 거봐라 이놈아! 쉽지 않지?" "예. 아 음." 나는 다시 미끼를 끼워놓고 낚시대를 휘둘렀다. 그러자 퐁 하는 정겨운 물소리와 함께 파문이 잔잔하게 일었다. 파아란 가을하늘이 일그러지고 새하얀 구름은 모습을 급격히 바꾼다. 나는 그 낚시대의 찌를 가만히 살 펴보며 생각해보았다. 디모나에 관해. 그리고 나에 관해서도. 사실 내가 왜 디모나를 좋아하게 된 것일까? 그녀의 웃음, 분노, 그리고 왠지 깊은 속? 사실 그 속이 깊어서 내가 빠져들고 상처입은게 아닌가. 아 생각해보 면 속만 쓰리다. 어쨌거나 그녀는 분명히 남자들을 매료시킬만큼 아름다 운 외모와 향기있는 영혼을 가지고 있었다. 문제는 그녀가 나를 선택하지 않았다는 것. 내가 메이파를 선택하지 않은 것처럼 당연한 이유 때문에 그렇다는데 내가 상처받고 그러고 할게 뭐있냐. 어차피 디모나는... 그녀 에게 있어서 나란 존재는 방해물에 지나지 않는 걸. 단지 내가 로그마스 터의 비보를 얻고 그 힘에 취해서 놓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에게서 그 모든 권리를 빼앗아 온 것이다. "...." "어이. 자네. 찌가 흔들리고 있어." "예?!" 나는 노인이 조언을 해주는 걸 듣고 깜짝 놀라서 수면을 바라보았다. 역 시! 지가 계속 아래로 흔들리더니 어느 순간 확 하고 내려가 버렸다. 나 는 즉시 낚시대를 끌어당겨 물고기를 거둬 올렸다. 역시 격류에서 사는 물고기들과 달리 큰 힘은 없구나. 그렇지만 무게가 많아서 그런지 굉장한 무게감이 낚시대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뭐 그래봤자지! 나는 가볍게 스냅 을 줘서 녀석을 수면밖으로 끌어올렸다. "오 큰데!" 노인은 그렇게 올라온 잉어를 보고 히죽 웃었다. 나는 잉어의 아가미를 잡고 낚시바늘을 뽑아서 노인에게 건네주었다. "자네! 낚시에 소질이 있는데 그래? 아니 해본 솜씨야." "아주 오래전 일이죠." 나는 그렇게 답하고 낚시대를 내려 놓았다. 이런 정적인걸 하자니까 오히 려 더 옛날 생각만 나서 안되겠다. 알몸에 가깝게 계곡을 뛰어다니며 어 린 벨키서스 레인저 수련생들과 함께 물고기를 잡던 기억이 난다. 이제는 거기로도 돌아갈 수 없는 몸인데 생각해봐야 뭐하냐? 지금의 나는 그들에 게 있어서 자랑스러운 동료다. 벨키서스 레인저를 벗어나 나 자신의 길을 당당히 걷고 있을 때에만 나는 그들의 친구일수 있다. 그렇지 않고, 좌절 하고 흔들린다면 그런 나를 친구로 받아들이는걸 벨키서스 레인저가 용납 하지 못하리라. 왜냐면 그들의 긍지는 수백년간 한번도 꺾인적이 없으니 까. 내가 돌아간다면... 그것은 가장 치욕적인 형태가 될 것이다.베인의 양자였다는 구차한 이유만이 나와 벨키서스 산맥을 이어주는 유대의 전부 다. "아 제길. 자 그럼 전 그만하죠." "벌써 가게?" 노인은 그렇게 물어보았지만 나는 손을 내젓고 호수의 물로 손을 씻었다. "할일이 생각나서요." "흥. 마악 낚시대 적셔놓고 그런 말을 하다니. 에잉. 낚시꾼 되긴 틀렸 군. 자고로 낚시꾼이라면 계집질보다 낚시질을 좋아해야 하는 법이야!" "그럼 더더욱 낚시꾼이 되면 안되겠군요. 평생 총각으로 늙고 싶지 않으 니. 자 그럼 저는 이만." 나는 노인에게 그렇게 말하고 호반을 계속 돌았다. 배가 없어서 그런지 자유도시등의 부두와는 상대도 할수 없을 정도로 초라하다. 그래도 여기 가 경치가 좋아서 그런지 꽤 많은 술집과 음식점등이 늘어서 있었다. 그 런데 그때 호반의 한 여관에서 소란이 일어나는게 보였다. "무슨 소리야! 돈이 없다니!" "말했잖아! 도박에 다 써버렸다고!" "이, 이런 미친 년을 봤나! 그럼 몸이라도 팔아서 지불해!" "아, 알았어! 하면 될거 아냐 하면! 젠장!" 그, 그런데 목소리가 많이 귀에 익다? 나는 그런생각을 하곤 설마 하고 달려가 보았다. 그러자 과연, 여관의 주인같은 큼직한 대머리 남자의 우 악스런 팔뚝에 붙들려 있는 백금발의 여성이 보였다. 그녀는 꽤나 신경질 적인 표정으로 주인의 항의에 대꾸하고 있었다. "그래. 몸은 내가 판다 치고 누가 사려고? 당신이 먼저 사기라도 하겠다 는 거야?" 왠지 내가 알고 있던 니나와는 전혀 다른 천박한 어투다. 그러고 보니 낮 부터 술을 퍼마셨는지 다가갈수록 싸구려 술냄새가 진동을 한다. "아니 이게 미쳤나!" 여관주인은 기가 막히다는 듯 주먹을 치켜들었다. 아무리 미인이라고 하 더라도 길거리에서 매춘의 흥정을 붙이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 내가 그 앞에 나서서 막았다. "자자! 그만두죠! 대체 얼마가 밀렸길래 그러는 겁니까?" "응? 당신은 누구쇼? 이 일에 상관하지 말고 비키쇼! 내 이 썩어 빠진 계 집년의 머리통을 부숴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정신을 차리게 해주겠소. 어 차피 모든 사람은 원죄를 지고 있다고 팔마님도 그렇게 강연하지 않았 소?" "...." 당신도 팔마 교도야? 하여튼! 그런데 그때 니나가 나를 알아보고 외쳤다. "앗! 카, 카이레스? 카이레스 아니에요? 당신이 왜 여길?" "그럴 사정이 있죠. 자 내가 대신 지불하면 되겠죠? 도대체 얼마요?" 나는 니나를 일단 진정시켰다. 그녀의 양팔을 잡는 것만으로 머리가 지끈 거릴 정도의 술 냄새가 코를 쑤셨다. 아 젠장. 이 냄새는, 진인가?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고 주인을 바라보았다. 주인으로서야 손해볼게 없으니 환 영이겠지. 과연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에게 말했다. "좋소. 뭐 당신이 맘에 들어서 1모나크로 해주겠소." "자 여기." 나는 그렇게 말하고 은화를 꺼내서 그에게 주었다. 그러자 여관주인은 그 걸 받아들고 물러나며 한마디 했다. "이런 쯧쯧쯧. 거 그 주정뱅이 여자 데리고 살려면 꽤 등골 빠지겠수. 젊 은이." "뭐가 어째! 어이! 돼지! 거기! 꿀꿀거리는 게 지금 너야?! 응?!" 니나는 정말 술이 취했는지 휘청거리면서도 그 여관주인에게 그렇게 말했 다. 하지만 여관주인은 발끈 하기보단 혀를 차면서 물러났다. 나는 계속 팔다리를 휘저으며 화를 내는 니나를 잡아서 말렸다. "아아 그만둬요. 자자. 괜찮아요? 뭔 낮부터 술을 이렇게 먹었어요?" "하지만 배고픈걸? 어제 저녁부터 아무 것도 못 먹었다고." "그럼 술 살 돈으로 먹을 걸 사먹었으면 되잖아." "그러면 술을 못 먹잖아. 아하하하핫. 카이레스씨도 바보. 힉!" "...." 니나는 그렇게 딸국질을 하더니 정말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얼 른 그녀를 길가 수챗구멍으로 데려갔다. "자자 괜찮아요?" "으윽... 웨엑." 니나는 과연 어제 저녁부터 아무 것도 안 먹었는지 노란 위액만 계속 토 해내었다. 나는 그런 그녀의 등을 두들기며 눈살을 찌푸렸다. 어쩌다가 사람이 망가져도 이렇게 망가진담?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그녀의 등을 두 들겨 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속의 것을 다 게워내고 겨우 숨을 돌렸다. 보니까 순전 물밖에 안토했다. 어제부터 아무것도 안먹었다는 그녀의 말 은 진담인 것 같았다. 세상에. 빈속에 진을 들이 붓다니 죽으려고 작정했 군. 하긴 그녀는 진심으로 죽으려고 했을 지도 모르겠다. "자자. 정신차려요. 니나." "으응. 아 이제 좀 속이 나아지는 것 같은데. 으음." 니나는 그렇게 말하고 휘청거렸다. 나는 얼른 그녀를 부축해주고 거리를 걸어갔다. 오후의 도심이라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 다. "아 이런 제길." 나는 사람들의 시선에 익숙치 않아서 니나를 부축한채 일단 걸어갔다. 그 러자 니나가 투덜거리며 말했다. "모, 목욕하고 싶어." "예?" "아 카이레스...씨. 미안해요. 그게." "알았어요. 목욕이죠?" 나는 그렇게 말하고 일단 가까운 여관부터 들어갔다. 그러자 카운터에서 나이프로 손톱밑의 때를 파고 있던 점원이 나를 반겼다. "이야! 어서오세요!" "...." 저 나이프를 식기에 첨부하는지 확인해봐야겠군. 어쨌거나 지금 중요한건 그게 아니지. "저기 목욕할수 있죠?" "예예~ 물론이죠. 조용하고 분위기 좋은 방이 있습죠. 이야! 손님! 벌써 부터...! 대단하시군요! 히힛." 여관의 젊은 점원은 그렇게 말하며 나에게 새끼손가락을 들어보였다. 이 놈이 그런게 아니라니깐! 에이 모르겠다 오해하건 말건. 내가 무슨 상관 이냐? "좋아요. 그럼 목욕만 할수 있어요?" "그, 그건 곤란한데요. 아직까지 그런 일이 없어서. 공중목욕탕이란 게 있었지만 장사가 안되어서 몇 개월 전에 망했죠." "알았어요. 그러면 일단 방을 '두'개 주고 목욕할 준비 시켜줘요. 아 그 리고 저녁 식사도. 알겠죠?" 나는 그렇게 말하고 카운터 위에 은화를 던져놓았다. 그러자 그걸 본 점 원은 잽싸게 은화를 챙기곤 웃는 낯으로 말했다. "예예~ 물론이죠!" 그러니까 그 웃는 낯이 맘에 안 든다고. 가뜩이나 저기압인데 확 면상을 갈겨버려? 나는 그런 폭력적인 생각을 하다가 스스로가 깜짝 놀라서 그만 뒀다. 어쨌거나 지금은 니나랑 이야기를 해봐야겠는데. 쳇. 내가 이 무슨 짓이냐. 나도 제정신이 아닌데 남 걱정으로 이렇게 바쁘다니. 하지만 그 래도 아까 전보다는 훨씬 마음이 안정이 된다. 그냥 계속 나 혼자 꽁하게 있는 것 보다는 뛰어다니는게 속이 편할지도. 그래서 모든일을 잊기 위해 서 일에 열중하는 사람이 있나보다. < 계 속 > -------------------------------------------------------------------- <휘긴경 대극장> 휘: (노란 타월을 걸치고 있다.) 자 그러면 음음. 랑켄. 지난번에는 내가 바빠서 대답을 못했다. 랑: 예. 그러셨죠. 펠: 뭐야. 그런게 아니라 달아난 거잖아. 랑켄 넌 왜 그렇게 무른... 랑: 무른건 아닌데요. 저는 휘긴님의 말씀을 존중해 드리려고 하는... 휘: 자자 그만둬. 랑켄은 페르아하브에게 찍히면 강간당할지도 몰라. 그 만두고. 펠: (고개 쳐들고 손을 가슴위에 얹는다.) 댁이 그러니까 세상사람들이 나를 변태로 오해하잖아. 나는 그저... 휘: 바이~일 뿐이지? 자자 어쨌거나 TRPG의 설정과 표절문제를 보자. 으 음.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식당을 열고...음식을 조리한다고 치자. 어떤 사람은 아예 뒤에 텃밭을 두고 농사부터 지어서 그걸 재료로 음식을 만들 수 있고 어떤 사람은 기본 식재는 시장에서 사오고 조미료나 간장 등을 직접 조려서 만들 수 있어. 그리고 다른 사람은 기본 식재는 물론 조미료 나 간장 등도 사와서 쓸 수 있어.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다된 레토르트 식 품을 전자렌지에 넣어서 띵~소리 날 때까지 돌린 뒤 팔 수도 있지. TRPG 의 설정은 결국 시장에서 파는 간장이나 그런 것과 같은 거야. 다 된 레 토르트 식품과는 천지차이가 있다고. 펠: 오 휘긴경. 준비 많이 했구나! 휘: 넌 닥쳐 좀. 랑: 그러면 제가 다시 질문하죠. 휘긴경이 말씀하신대로 그게 단계별로 차이가 있다면 그 단계는 또 누가 구별하죠? 휘: 거기부터는 독자들이 판단할 일이지. 여기서 내가 논하기엔 좀 그렇 다. 자 그럼 오늘은 이만하자. 펠: 카이레스는 채이더니만 안보이는 군. 휘: 너같으면 그럴 정신 있겠냐? < 계속이라면 계속된다. > *********************************************************************** 간장을 사는데 돈을 지불했는가라... 음 적어도 TRPG설정은 게임에 쓸 경우 돈이 들어가죠. 꽤 많이.-_-; 어쨌거나 TRPG소설은 많죠. 충분할 정도로... 아 부산은 잘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넥서룬과 미트라는 죽은 신...이라기엔 아직 숨통이 남아있는 편입니다. 아스트랄~하게 떠돌지 않는다는 거죠. *********************************************************************** 레이펜테나 연대기 제 1 부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제 27 화 : Insane#5 ------------------------------------------------------------------------ 팔마력 1548년 10월 14일 나는 니나가 목욕을 할 사이에 숫돌로 도끼의 날을 갈았다. 오크들에게서 빼앗은 도끼라서 품질이 엉망이지만 전쟁통이라 무기를 안 팔고 있으니 이런 거라도 쓸 수밖에. 그렇게 마악 도끼의 날을 갈고 이것저것 손질하 고 있는 사이 문이 열리더니 니나가 들어왔다. "으음." "아 목욕은 다 했어요?" "예. 고마워요. 이제 좀 술이 깨는 것 같네요." "설마." 벌써 깰 리가 없잖아?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녀가 주장하는 대로 지금의 그녀에게서는 방금전까지 보이던 취객의 흐 트러짐이 일절 보이지 않았다. 단지 물기에 젖은 머리칼을 늘어뜨린 여성 일 뿐이다. "으음." "아 참. 그런데 당신은 어째서 여기 있는 거에요? 그 성이 함락되었다는 건 들었는데 괜찮았아요?" "아 그전에 달아났거든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 니나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그녀가 그때 달아났던 것 은, 미스트 레어 성의 포위를 헤치고 달아난 것은 그녀가 에스페란자의 공주라는 것을 알았을 때였다. 그렇다면 지금에 와서 에스페란자의 부탁 으로 당신을 설득하려고 왔다고 하면 화내겠지? 으음. 곤란하군. 그렇다 고 킷이나 워로드가 찾아왔다는 이야기를 하기에도 시기상조인 것 같고.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고 우선 물어보았다. "당신은 왜 그때 달아났어요?" "...그건 이야기 할수 없어요." "그래요. 역시." 나는 그렇게 말하고 도끼를 침대 구석에 세워놓았다. 그러자 그녀가 배시 시 웃으며 말했다. "그보다는 배고픈데 식사나 하죠? 저는 돈이 다 떨어져서." "예, 뭐 제가 사죠. 미인에게 저녁식사를 대접하는 것은 모든 남자들이 바라 마지 않는 일 아니겠습니까?" "저녁 식사 다음에 섹스가 뒤이어 진다면,을 뺐군요." "...." 무서운 아가씨군. 나는 그렇게 생각하곤 한숨을 내쉬었다. 뭐 틀린 말은 아니지. 나는 그녀와 함께 내려가서 여관의 식당을 바라보았다. 여관에서 는 저녁이 되자 여관 앞쪽의 큼직한 판자로 만들어진 수상 가교 위에 테 이블을 놓기 시작했다. 점원들이 창고에서 테이블을 꺼내다 앞에 쌓아두 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여기저기에선 화부들이 돌아다니며 램프에 불을 밝히고 있었다. "미스트 레어같군요." 미스트 레어처럼 안개가 진하게 깔려서 등불의 빛을 뽀얗게 만들지는 않 지만 밤의 호숫가는 그 나름대로의 운치가 있었다. 여기저기에서는 풀벌 레들이 울어대고 수면은 검은 거울처럼 랜턴의 빛을 반사한다. 여기저기 에는 놀잇배가 떠서 싸구려 창부들의 웃음 소리와 음유시인의 노래소리, 술잔을 맞부딪히는 소리가 계속 들려온다. 그러고 보면 이곳은 이스트 가 드의 병사들이 휴가를 내서 놀러오는, 그런 위락지가 된 것 같았다. 벨키 서스 레인저로 말하자면 드랜자드 영지라고 할까? "우리도 나가서 먹어요. 예?" "좋죠." 나는 그렇게 말하고 호숫가의 테이블에 앉았다. 그러자 그녀는 배가 고플 텐데도 웃으면서 내 맞은편에 앉아 여유를 부렸다. "아. 배고프다. 식사는 뭐로 하실거에요?" "뭐 좋을대로 시키세요. 돈은 여유가 많으니까." "그럼. 풀 코스를 시키죠. 너무 배가 고파서 고래라도 뜯어먹을 것 같아 요. 그리고 반주로는 베르간틴있나요? 아 예. 베르간틴으로. 한병." "술은 하지 말죠?" "뭔 소리에요. 카이레스씨. 이 풀코스에는 술 가격이 포함되어있어요. 그 렇죠?"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메뉴판을 들고 있는 점원에게 물어보았다. 물론 점 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게 하죠. 메인 디쉬는 라임 풍미의 어린 소 등심 스테이크, 어 때요? 후식은 라임소다수로 하죠. 노움들이 만드는 건데 맛있어요. 개중 에 폭발하는 것도 있다지만 농담인 것 같고. 어때요??" "저도 같은 걸로." 나는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먹는 것도 먹어본 사람이 잘 하는 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니나를 바라보았다. 니나는 메뉴판을 점원에게 돌려주면서 나에게 고개를 돌렸다. "다른 일행들은, 그래 디모나 양이나 메이파 양은 어떻게 되었어요?" "...." 아픈데를 쑤시는 군. 내 표정이 어두워 지는 걸 보곤 그녀는 당황해서 나 에게 사과했다. "죄, 죄송해요. 그만, 상심이 크겠군요." "에?" "하지만, 죽은 사람을 생각하는 것보다는 저기, 아 잊으라는 말은 아닌데 그...." "아니 그런문제가 아니에요. 아무도 안죽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나는 그렇게 그녀를 안심시키곤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그녀는 놀란 눈 이 되어서 나를 바라보았다. "예? 그러면?" "아... 이야기 하자면 사정이 긴데. 아참 그것보다는... 왜 달아난 거에 요?" 나는 일단 니나에게 그것부터 물어보았다. 그러자 니나는 껄끄러워 하면 서 물어보았다. "맨정신으로 말할게 아니라고 아까 전에 말하지 않았어요?" "충분히 맨 정신이 아니라고 치죠. 자 말해봐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녀는 으음 하고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다. "그것은 킷에게서 달아난 거에요." "예?" "내가 에스페란드 왕실의 일원이라면 킷은 최소한 어떤 반응이라도 보여 줘야 했어요. 하지만 그는 언제나 그렇듯 무심해요. 아 빌어먹을." "...." "어머. '빌어먹을'은 취소. 어쨌거나 그가 나에게서 찾는 것은 결국 죽은 자신의 옛 아내일 뿐이지 나, 니나라는 인간의 존재는 그에게 있어서 아 무것도 아니란 거에요. 아, 그걸 어떻게 참을수 있겠어요." 하긴... 나도 디모나에게 있어서 내가 아무것도 아니란 걸 알았을 때 절 망을 느꼈으니, 그녀의 심정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렇지만 오늘 저녁에 킷과 워로드, 이 둘이랑 재회하기로 했는데 여기서 이러고 있어도 되나? 일단 그녀를 재워놓고 둘을 불러올까? 나는 그런식으로 속에서 머리를 굴 렸다. 그러는 사이 식사가 나오기 시작하고 우리는 먹으면서 강, 아니 호 수를 바라보았다. "밤의 호수란건 언제봐도 멋지군요." "이 안좋은 냄새만 빼면요." "쿠쿠쿡. 카이레스 씨. 그런식으로 말하면 여자에게 별로 인기 없어요. 이럴때는 무조건 분위기부터 로맨틱하게 잡고 봐야죠." "별로 로맨틱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데?" 나는 그렇게 말하고 전채인 타르고스 소스 풍의 스프를 떠먹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니나는 갑자기 스푼을 테이블에 놓고 입을 가렸다. "응? 왜요?" "아, 아뇨 빈속에 먹었더니 갑자기 올라와서요. 아 음. 이제 괜찮아요. 헤헤." "어쨌거나 킷이 당신에게서 옛 아내를 찾는다니 무슨 소리에요?"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지만, 내가 옛 아내의 전생이라고 하나 봐요. 그래 서 킷은 어린 시절부터 나를 보아왔다던가? 하지만 그 변태자식! 틀림없 이 변태일거에요! 어떻게 나같은 미인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외려 내가 보는 앞에서, 3년 목욕 안한 나보다도 덜 떨어지는 싸구려 창녀들이 랑 노닥거릴 수가 있죠? 예?! 나, 나는 내 마음은 그 사람이 갖고 놀 장 난감이 아닌데." 처음에는 포크와 나이프를 단단히 쥐고 분개했지만 종국에는 흐느낌으로 바뀌었다. 나는 괜히 물었구나 하는 생각에 가만히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고 다독였다. 이래서야 원 내 입장을 이야기 할 여유는 없겠군. 하지만 그녀의 심정은 절실히 이해가 간다. 나도 비슷한 처지니까. "뭐 무슨 사연이 있겠죠." "어, 어떤 사연이 있어서, 그럴수 있다는 거죠? 예?!" "그건 모르죠. 어쨌거나 음. 아 식사 또 나오네요." "...." 내가 그렇게 말하자 니나는 가만히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뱃속에서는 왕 성한 소화기관의 운동이 그 특유의 외침을 발하고 있었다. 사자후랄까? 나는 주위사람에게 들리지 않을까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주위를 둘러봐야 했다. 다행히도 그런 일은 없었다. 아 다행이다. "자 그러면, 흠흠. 일단 식사부터 하고."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재개 식시를 놀렸다. 나는 그런 그녀를 보곤 피식 웃었다. "자 그럼 에스페란자 왕국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요? 그쪽은 당신을 만나고 싶어하는 것 같던데." "휴. 이제와서 무슨 일이 있겠어요. 이미 안 좋을 일은 다 일어났는데."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곧 반주로 나온 술병을 따서 자기 잔에 먼저 채우고 내 잔에도 술을 부어주었다. "이 이상 악화될 수는 없을 거에요. 좋아요. 만나보도록 하죠. 한번 제 동생하고 오빠를 보고 싶거든요." "음... 그게."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레오나 공주는 죽었어요." "주, 죽어요? 왜요?" "그런, 린드버그 백작에게 심문을 받다가 투신했거든요." 나는 스스로 말하면서도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녀야 어차 피 별로 보지도 않은, 단지 피만 이어진 혈육이다. 그녀에게 이 이야기를 한다고 큰 충격으로 비치진 않을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그렇지만 보 디발 왕자에 대한 건을 생각하면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소중한 여자 하나 지키지 못했으면서 이제와서 힘을 얻어서 무슨 소용이 란 말인가? 영혼의 아픔마저 힘이 치유해 주는가? 그렇지는 않을 것 아닌 가? 나는 보디발 왕자의 그 싸늘한 태도를 기억하곤 몸서리쳤다. 힘이 마 음을 죽인다면, 그것은 힘을 얻는 것이 아니다. 힘이 영혼으로부터 몸을 강탈하는 것이지. "그런, 린드버그 백작이 아무리 왕족이라지만 타국의 왕녀를 죽이다니 에 스페란자도 참 어지간히 라이오니아에 당하는 군요. 뭐 지금 그 반격을 하고 있는 중이기는 하지만." 니나는 그렇게 말하고 다시금 술잔에 와인을 채워 넣었다. 나는 왠지 급 하게 마시기 시작하는 그녀의 행동에 놀라서 손을 내밀었다. "그만둬요. 너무 많이 마시는 것 같은데. 아까전까지만 해도 게워냈으면 서 무슨 짓이에요? 속 상해요." "뭐 괜찮아요. 어차피 천년만년 살것도 아닌데."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다시 술잔을 기울였다. 뭐 어쨌건 이걸로 그녀가 에스페란자 왕실을 만날 맘이 들었다면 이제는 킷쪽으로 몰아가 볼까? "그런데 킷 말인데요." "그보다는 당신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요. 그 뒤로 어떻게 되었어요? 카이 레스? 왠지 로그마스터의 검도 보이지 않는데." "...." 그 순간 나는 술잔에 든 술을 모두 비워 버리고 호수 쪽으로 시선을 던졌 다. 아 아픈 곳을 계속 찔리니까 이야기가 맥이 끊기잖아. 어쨌거나 내 태도에 의문을 품었는지 그녀는 조심스럽게 나에게 질문을 했다. "카이레스씨?" "아 음. 뭐 그게 그러니까. 하하하하하." "음 제가 좀 안 좋은걸 물었나요?" 그러면 적당히 스스로 눈치 채고 입다물란 말야. 젠장. 나는 속으로 그렇 게 생각하면서도 겉으로는 웃어보였다. "뭐 차였죠. 이제 그만 둬야지. 음." "차이다뇨?" "...디모나에게 채였어요." 나는 스스로 담담하게 그걸 말할 수 있다는 것에 감동했다. 아 말하고 보 니까 정말 아무 것도 아닌거잖아? 남이야 차여서 어찌되건 말건 간에 말 로 해보면 뭐든지 간단하다. 인간의 감정이란 것을 배제하면 언어는 너무 나... "미안해요." "뭘요. 다 제가 주제넘었던 거죠. 쳇. 아아. 나는 왜이렇게 멍청한 건지. 으음." "뭐 그녀의 마음도 존중해 줘야지요. 적어도 킷 처럼 아무런 영문없는 건 아니잖아요." "그럴지도. 당신도 힘들겠군요." 나는 니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와 나는 묘한 동질감에 휩싸여서 새삼스럽 게 악수를 했다. "아름다운 호수네요." 니나는 웃으면서 고개를 들어 북쪽을 바라보았다. 달이 사자의 등골을 비 추며 지나간다. 길게 늘어지는 산그늘 속에서 인간들이 밝히는 빛이 수면 에 반사되는 모습은 마치 또 하나의 밤하늘 처럼 보였다. "가까이에서 보면 좀 맑지도 않은 호수에 불과한데." "인간 세상도 그럴지 모르지."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을 하고 앞을 바라보았다. 시원한 바람이 귓가를 스 치고 지나갔다. 왠지 눈물이 나올 것 같은 광경이다. "아." 나는 술잔을 들이키곤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은 이러한 것 때문에 술을 마시는 가 보다. "좀 더 마시겠어요?" 니나는 그렇게 나에게 물어보았다. 그녀가 마시고 싶다는 뜻이겠지만 나 는 그녀의 뜻에 응했다. 어차피 지금은 맨 정신으로 있고 싶지도 않다. 그러자 그녀는 종업원에게 주문을 해서 술을 요구했다. "그런데... 니나. 킷이 당신을 찾으러 다니는 거 알아요?" "예. 전에 도시에서 나를 찾는걸 보고 깜짝 놀라서 이스턴 웰로 돌아온거 에요. 왜요? 그와 만나기라도 했나요?" "예." 나는 그렇게 말하고 니나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그녀는 별다른 동요없이 내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뭐래요?" "당신을 찾고 싶다는데?" "으음. 혹시. 뭔가 심경의 변화나 그런 게 보였나요?" "그거까지는 잘 모르겠고. 도대체 당신이 그의 옛 아내의 전생이란 황당 무계한 소리는 어떻게 나온거죠?" "그건... 저도 잘 모르죠. 건배!"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내 잔에 자기 잔을 부딪혔다. 그렇게 우리는 계속 마시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나는 취기가 잘 오르지 않는다. 마악 취할 만 하면 깨버리고 마악 취 할만 하면 또 깨버린다. 아무래도 신체 구조가 인 간과 달라서 그런 것 같은데 으음. 결국 술에 취해도 모르겠다. 니나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사랑이라는 것은 어떻게 해야 제대로 할 수 있는 것 일까? 아 이런 건 내가 어떻게 할 처지가 아닌건가? 만약 디모나가 지금 보다 아름답지 않았다면, 내가 굳이 그녀를 선택했을까? 나 자신이 그 확 답을 할 수 없어서 그런다. 사랑은 아무리 대단한 것처럼 자기를 포장해 도 너무 사소한 것에서 시작하니까. 결국 감정이란 것은 인간이 다루지 못하는 야생마와 같다. 한 줌의 가죽끈을 잡고 있다고 해서 그 커다란 것 을 다룰 수 있다고 믿는 건 만용이니까. "인간은 감정이란 거대한 야생마 위에 올라탄 존재인가." 나는 그렇게 투덜거리곤 니나를 바라보았다. "자 이제 그만 두죠. 니나. 더 이상은 한 방울도 못 마시게 하겠어요." "아잉 카이레스 씨. 그러면 으음. 미워할꺼야." "뭐 당신이 미워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거는 없으니까요. 자 그럼. 어?" 나는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니나가 테이블에 머리를 처박는 걸 보았다. 이런. 역시 술이 너무 과했나? 나는 혀를 차면서 그녀에게 다 가가 보았다. 그러자 점원이 다가와서 나에게 질문을 했다. "무슨 일입니까?" "아니 술이 너무 과한 것 같아서." "오호! 그래요? 자자 얼른 방에 들어가 쉬세요. 예." 그 점원은 그렇게 말하면서 능글맞게 웃었다. 뭐냐 저 웃음의 의미는, 그 런게 아니라니깐! 나는 속으로 그렇게 외쳤지만 내가 아무리 떠들어 봐야 먹히지 않을 것 같아서 관뒀다. "나 원참." 나는 여관방의 문을 발로 차서 열고 니나를 업은 채 들어왔다. 호수가 훤 히 보이는 제법 큼직한 창문이 시원하기보단 차라리 추워 보였다. 그리고 그 호수를 희롱하듯 제법 높은 곳에서 내려보고 있는 큼지막한 만월.... 그러고 보니 오늘이 14일인가? 만월의 날이군. 나는 푸르스름하게 빛나는 달을 올려다 본 뒤 한숨을 내쉬었다. "달의 광기가 지상을 덮는다."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곤 술에 만취한 니나를 침대 위에 눕혔다. 술에 취 해서 흐트러진 그녀는 긴 백금발을 침대 밑에 깔고 한숨을 내쉬었다. "나 원참. 아아. 결국 킷이랑 그 인간들에게 연락도 못했잖아. 음 길길이 날뛰겠는데?"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창문에 다가가 만월을 노려보았다. 마치 차가운 밤의 여왕처럼 나를 내려다 보는 달. 그러고 보니 디모나와 싸울때도 달 이 밝은 밤이었던가? "젠장" 나는 창을 닫고 램프도 훅 불어서 꺼버렸다. 그리고 마악 방문을 나가려 고 하는데... -턱. "?" 나는 누군가가 뒤에서 내 손을 잡는 것을 느끼곤 뒤돌아 보았다. 그곳에 선 어둠을 등지고 서있는 니나가 고개를 늘어뜨린채 내 손을 잡고 있었 다. 그 폼이 너무나 지쳐서 쓰러지기 직전의 사람으로 보여서 나는 그녀 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니나?" "카이레스...."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내 손을 자신의 볼로 가져갔다. 나는 그 손 끝에 닿는 부드러움에 놀라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묘한 표정으 로 나를 쳐다보았다. 디모나가 웃는 것과 비슷해서 깜짝 놀랐다. 애써 닫 은 창문 틈 사이로 비치는 빛이 술에 취하고 달아올라서 묘한 향기를 뿌 리는 그녀의 윤곽을 비추어주었다. "카이레스 이거 알아요?" "뭐...뭘...." "사랑이 없어도 이런 건 할 수 있다는 거." 그 순간 나는 그녀에게 끌어당겨져 엉겁결에 그녀의 위로 포개져 버렸다. 그리고 니나는 꽤나 고혹적인 표정으로 나를 올려보고 있었다. 나는 좋 다~기 보다는 기가 막혀서 그녀에게 말했다. "...후회할 짓은 하지 않는게 좋을 텐데?" "후회라면 이미... 하고 있으니까." 니나는 그렇게 말하고 나를 끌어안았다. < 계 속 > -------------------------------------------------------------------- <휘긴경 대극장> 휘: 역시... 펠: 으음... 휘: 펠은 펠라치오의 펠.... 펠: ....갑자기 그게 무슨 개소리야!!!!! 작가 따윈 죽어버렷~!(달묘전설 필로) < 계속될까 본인도 의심스럽다 > *********************************************************************** 아 진짜 독전파가 부럽다. 아무리 노력해서 써도 잘 안되는 군요. *********************************************************************** 레이펜테나 연대기 제 1 부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제 27 화 : Insane#6 ------------------------------------------------------------------------ 팔마력 1548년 10월 14일 무슨 생각인 걸까. 그녀는. 왜 하필 나를....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기 에 앞서 나는 내 머리칼을 쓰다듬는 그녀의 손가락을 느꼈다. 술기운과 땀 냄새가 뒤섞인 묘한 체취가 느껴진다. 그리고 어느덧 내 입술사이로 파고드는 그녀의 혀가 느껴진다. 부드러운 입술과 열기를 담은 숨결, 그 리고 점성 높은 타액에 휘감긴 혀가 입안을 침범하자 별다른 생각이 나질 않았다. 그래... 이렇게 된 거 될 대로 되라. 어차피 그녀나 나나 이판사 판이다. 나는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는 한편으로,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 다. 미치겠다. 한심해서 미치겠다구!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쯔읍. 꽤나 음란한 소리와 함께 그녀의 혀가 빠져나갔다. 애써 닫은 창문 틈으 로 비쳐드는 달빛을 반사하는 투명한 타액의 끈이 가늘게 이어지다 끊어 졌다. 나는 내 어깨에 손을 걸치고 나를 올려다 보는 니나의 눈동자가 반 짝이는 것을 보았다. 방금전 까지 취기로 혼란스러워 하던 그녀는 어디로 갔는지 지금의 그녀는 마치 먹이를 노리는 고양이처럼 야성적인 자태로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울고 있는 거야? 카이레스?" "그...그런." 나는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러자 니나는 마치 새끼의 얼굴을 핥는 어미개처럼 내 눈가를 핥았다. 짠맛이 날 텐데도 아랑곳없이 그녀는 그렇 게 내 얼굴 곳곳에 키스해줬다. 비록 사랑이 없는 행동이라지만... 행동 만으로도 왠지 포근한 마음이 들어서 나는 더더욱 나 자신을 비참하다고 생각했다. 그래. 사람의 마음을 들어보여 줄 수는 없는 법이니까 결국 행 동이 중요하다. 아무리 사랑을 하는 사람이건 뭐 건 간에 그렇게 해서 결 국 할수 있는건 섹스에 불과하잖아? '젠장.' 이렇게 생각하는 게 또 비열하다. 나란 녀석. 너무 비열해. 하지만 복잡 한 생각과 달리 몸은 너무나도 단순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끌어안고 부드럽고 탄력있는 몸과 가슴을 느끼면서 천천히 옷깃을 풀어 헤쳤다. 그녀의 경우는 단추가 별로 없는 상의를 입고 있었기 때문에 들 어 올려야 했는데 내가 그런 시도를 하자 그녀 스스로 팔을 들어올려서 내 어설픈 행위에 협력해 주었다. "으음." 니나는 옷을 벗자 머리를 흔들어서 머리칼을 늘어뜨린 뒤 손가락으로 대 충 가다듬었다. 아무래도 하는 짓을 보면 이게 처음은 아닌 것 같다. 너 무 당연한 소린가? "아...." 나는 달빛을 받아 새하얗게 빛나는 나신을 보고 무의식중에 감탄했다. 그 러자 그녀도 역시 내 옷깃에 손을 대었다. 서로서로 별 말없이 옷을 벗고 벗어서 결국 알몸이 되었다. 이런걸 해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마 지막으로 바지를 벗는 때 그녀가 갑자기 나를 밀쳐서 내 위에 올라탔다. "카이레스. 처음인거야? 아니면... 킷이 두려운 거야?" "...." 그런걸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할까? 솔직히 둘 다이긴 하지만 나는 대답을 거부했다. 그러자 그녀는 조심스럽게 내 몸에 손을 대었다. 깊은 상처들 이 너무나 많은 흔적을 남겨서 그녀의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흉터라는 굴곡에 걸리는 게 느껴졌다. "대단한 상처. 이런 상처를 가지고도 용케 얼굴은 다치지 않았네? 아!" "그게. 음. 윽, 으응." 나는 내 가슴에 입을 맞추는 그녀를 보고 깜짝 놀라서 힘겹게 고개를 틀 었다. 그녀는 이노그에게 날아간 내 가슴의 흉터에 혀를 대고 부드럽게 핥았다. 전투 때 날아간 살점들이 있던 곳, 그 흔적을 따라 그녀는 집요 하게 입을 맞추고 핥았다. 나는 뭐라고 형언할 수 없는 기이한 감각에 깜 짝 놀랐다. 절로 다리에 힘이 들어가고 허벅다리 사이로 저린 감각이 느 껴진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백금발에 입을 맞추고 조심스럽게 그녀를 끌 어안았다. 그러자 그녀는 내 하나 남은 유두를 살짝 깨물고 장난기를 듬 뿍 담은 미소로 나를 쳐다보았다. "응?" "아... 아니. 뭐, 그런 건 지금 묻지 않는게." 나는 뭐라고 할말이 없어서 그녀의 머리칼을 손으로 들어보았다.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백금발이 달빛을 반사하자 사금처럼 보였다. 나는 그 녀의 머리칼에 키스를 하고 그녀를 끌어안았다. 탄력있는 젖가슴이 내 흉 곽에 밀착되고 그녀의 미끈한 다리가 허벅지 사이에 닿았다. 나는 그녀의 등을 쓸어내리 듯 조심스럽게 매만졌다. 마치 섬세하게 깎은 조각품처럼 그녀의 등은 차라리 비인간적이었다. 상처하나 없고 어디 융기라도 하나 없는 매끈한 피부, 그 등을 따라 잘록한 허리를 지나서 새하얀 힙에 이르 자 그녀의 얼굴에서 장난기가 가셨다. 나는 그녀의 모양 좋은 가슴에 손 을 대고 조심스럽게 쥐어 보았다. 분명 살덩이에 지나지 않을 텐데도 놀 랍도록 부드럽고 짜릿한 감각이 느껴진다. 나는 그녀의 가슴에 입을 맞추 고 마치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탄력 있는 배 와 늘씬한 다리가 내 허리를 조이고 부드러운 가슴과 마악 말려서 깐 것 같은 까실하고 기분 좋은 침대시트가 나를 감싼다. 그녀는 마치 뱀처럼, 내 몸 여기저기에 감기며 섬세한 손끝으로 나를 더듬고 열기 오른 입술로 입을 맞춰왔다. 그녀의 백금발이 달빛과 함께 떨어져 내 주위를 감쌌다. 나는 그대로 그녀의 젖가슴 사이에서 거친 숨과 탄식을 함께 토해내었다. "하아...." 이런게 옳지 않다는 건 내가 더 잘 안다. 지금 이건 미친 짓이다. 단지. 도피도 이런 도피는 없는 것이다. 하룻밤, 고통을 잊기 위해 훗날 더더욱 큰 후회가 될 잘못을 저지르다니. 그렇지만...일면으로는 짜릿함을 감출 수 없다. 지금의 이 행위, 이 정사가 앞으로 어떤 일을 부를지. 그걸 기 대하고 있는 광적인 내가 있었다. 지금의 이 행위를 니나는 단지 킷에 대 한 반발심만으로 하고 있는 거겠지? 나 역시 디모나에 대한 반발심으로 하고 있는 것 뿐이고. 젠장. 아주 좋군. 둘 다 이렇게 어울릴 수 없지 않 은가. 하하하하하하! 아하하핫! 빌어먹을! 이런 개 같은 경우가! "괜찮아 카이레스?" 나는 손끝으로 내 가슴을 더듬으며 나를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내려다 보 는 니나를 보았다. 또 눈물이 흐르는지 눈앞이 흐릿하다. 그러나 나는 애 써서 고개를 젓고 그녀의 아랫배, 갈라진 비부에 손을 가져갔다. 그러자 그녀는 일순간 경련을 일으켰다. 꽤 민감해진 부분을 건드린 것 같다. "괜찮아." 나와 니나의 시선이 교차되었다. 서로서로 잘 알고 있다. 이게 얼마나 바 보같은 짓인지. 하지만 망가진 인간들에게 이성을 촉구하는 것은 이미 더 러운 꼴을 당한 우리에게 결정타를 날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이 짓 역시 좋은 꼴은 보지 못하겠지만 내 최후는 내가 결정하겠다. "... 사랑스러운... 카이레스."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마치 나를 품듯 조심스럽게 받아들여 줬다. 나는 눈물이 왈칵 나는 것을 느끼며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14일... 만월 의 달빛이 창문 틈으로 침범해 들어와 우리들을 비추었다. 삐걱삐걱 비명 을 질러대는 침대의 소리. 뜨거운 숨결과 열기, 먼 곳에서 들리는 취객들 의 웃음소리, 노래소리, 모든 것이 어우러져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10월 15일 나는 무거운 눈꺼풀을 겨우겨우 들었다. 차가운 아침 공기가 방안 가득하 다. 나는 여관의 천장을 바라보곤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해버렸구나. 그 것도 으음. 네 번 했나. "...." 왜 이런 거 수를 세고 있지 나는? 으음. 어쨌거나 어제는 정말 비참한 기 분이 들었는데 아침이 되자 좀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어제 일 때문에 좀 노곤하기도 하고. 확실히 바드들이 노래를 부를 때 무슨 기사와 레이 디가 나오면 언제나 밤일은 그냥 '기사가 레이디에게 위로를 받았다.' 이 런 식으로 어영부영 넘어가던데 정말 위로가 되기는 되는 것 같았다. 위 로일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머리 비우는데는 도움이 되는군. 지금도 디모 나 일 생각하기보다는 어젯밤의 일을 생각하느라 머리 속이 복잡하다. 으 음. 역시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는 거야. 다음에는 좀더... 잘하는 방법 을 연구해야지. 농담이 아니라 그 난리를 쳐놓고도 저런 생각먼저 떠오르 는 것이다. "아... 남자들이란...." 스스로 말해놓고도 상당히 비참하군. 나는 히죽 웃고는 자리에서 일어났 다. 그러자 좀 싸한 담배연기가 코를 찔렀다. "응?" 그제서야 나는 창가에 앉아서 내 자켓을 걸치고 담배를 피고 있는 니나 를 발견했다. 그녀는 창 밖으로 연기를 뿜어내다가 내가 일어난걸 보고 깜짝 놀라서 허공에 떠다니는 연기를 휘휘 저었다. 나는 그런 그녀를 보 곤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뭘 이제 와서 숨긴다고 그런걸. 음 그나저나 담배를 폈었나? 그건 몰랐네. 왠지 그녀랑 나 사이가 굉장히 가까워 진 것 같아서 나는 웃었다. 하긴 그 일(?)을 벌였는데 안가까워지면 우리가 인간 말종인 거겠지. "괜찮아. 그런 거." "아. 아하하핫." 그녀는 그렇게 어설프게 웃으면서 나를 바라보곤 궐련을 창틀에 비벼 껐 다. 왠지 크기도 맞지 않는 벨키서스 레인저의 자켓을 걸치고 있는 그녀 가 상당히 어울린다고 생각된다. 나는 차가운 아침공기를 맨살로 느끼면 서 그녀의 뒤에 가 앉았다. 그러자 그녀는 조심스럽게 머리를 내 가슴에 기대어 왔다. "뭐...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되었는지 몰라도. 으음. 이것도 나쁘지는 않 은 것 같아." "그래?" 나는 그렇게 말하고 니나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이것도 나쁘지는 않군. 사랑하는 마음은 없지만 육체는 합할수 있고 그중에 마음이 맞는 사람도 있을 수 있는 거지. 나는 그렇게 말하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내 심장소 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니나. 그래도 에스페란자나 킷은 만나봐요. 이이상 달아나도 아 무런 의미가 없으니까. 일단 일이 어떻게 되는지는 보는게 중요하다고 생 각하는데." "알았어. 카이레스."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내게 입을 맞춰왔다. 우리는 그렇게 잠시동안 끌어 안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 -두벅뚜벅... 아침부터 나무로 된 계단을 밟고 오르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곧 문에 걸려진 빗장이 비스켓처럼 부서지며 한 명의 거한과 긴 은발을 뒤로 묶은 엘프의 청년이 나타났다. "...." "이런...." 나는 아무런 표정없이 우리를 바라보는 킷과 워로드를 보고 기가 막혀서 말을 못했다. 그러나 그때 니나가 그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킷!" "옷 입어라. 아니. 후희(後喜) 중이였다면 지금 나가서 좀 기다려 줄까?" 킷은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그렇게 말하며 궐련을 입에 물고 허리춤에 차고 있던 카타나에 손을 얹었다. 그러자 부웅 하고 칼바람이 일더니 그 가 물고 있던 궐련의 끝 부분이 살짝 잘려나갔다. 워로드가 성냥을 꺼내 어 킷에게 담배불을 붙여주었다. "...." "나는. 당신이 하는 말을 듣지 않겠어! 어차피... 어차피 나라는 건 루크 레시아라는 당신의 아내의 환생에 지나지 않잖아! 전생의 사슬로 뭘 그렇 게 얽맨다는 거지? 내가 누구와 무얼 하든 신경쓰지 마!"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나를 끌어안았다. 하지만 킷은 아무런 표정없이 말 했다. "그래. 내가 뭐라고 말이라도 했나? 왜 그러지? 아아. 그래. 에스페란자 왕국에서 너를 만나고 싶어하니까 얼른 준비해. 그렇지 않아도 여기저기 에 검은 슈트를 빼 입은 놈들이 널려있던데 알몸을 보이기 싫다면 미리미 리 준비해둬야지." "...이 개 자식!" 니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자켓을 벗고 테이블 위에 놓인 자신의 옷을 들더 니 성큼성큼, 알몸을 가릴 생각도 하지 않고 걸어갔다. 그녀의 타오르는 증오, 분노와 실망, 허탈함을 전부 받아내는 킷은 너무나 여유로워 보여 서 과연 왜 저러는지 이해하지 못할 정도였다. 나는 망연자실하게 킷과 니나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복도로 나가더니 옆방으로 들어갔다. 내가 체 크인하고 쓰지도 않은 그 방으로. "아무래도 신경 써주길 바란 것 같군." 나는 그렇게 말하고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러고 보니, 그녀는 킷의 추적 을 이미 알고 있었다. 어젯밤 그녀와의 대화에서 다 들었으니까. 그렇게 누군가에게 추적당하면서 이스턴 웰로 다시 돌아가는 짓은 도적인 그녀가 택할 선택지가 아니다. 결국 그녀는 킷의 추적권 안에 자기 몸을 둔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걸 알면서 나를 유혹했다? 그, 그렇게 생각하면 너무 피해 망상인가? 내가 정신적으로 너무 피곤해있어서 단지, 스스로 그렇게 막연히 생각하고 있는 건가? 그렇지만... 하, 하하하하하하하. 사람을 이 렇게까지 비참하게 만들다니.... 결국 나는 그냥 장난감이었나? 단지 킷 의 반응을 떠보기 위해 하룻밤 갖고 논거란 말야? "담배 한 대 줄까? 이럴 때 피면 좋지. 경험상으로 터득한 것인데." 킷은 그렇게 말하고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기가 막혀서 그를 바라보고 있다가 이를 악물었다. 눈앞이 부들부들 떨리고 이가 갈린다. 잇몸에서는 비릿한 피 냄새가 난다.... 결국 니나가 어떤 마음으로 나를 유혹했건 간 에 결과가 이렇다. 아 바보같구나. 나란 녀석은 결국 한심한 바보에 지나 지 않았어! 결국 그녀는 무심한 킷에게 화를 내고 있고, 나는 단지 욕망 에 사로잡혀 유혹에 넘어간 바보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런 나를 측은 하다는 듯이 바라보는 워로드와, 킷.... 참을수 없다고! "닥쳐! 이... 개 자식!" "그래. 그 욕 많이 들어온 것이지. 이제는 내 이름이 아닐까 싶을 정도 로." 킷은 그렇게 말하고 테이블 위에 앉았다. 나는 그런 그를 노려보며 말했 다. 화가 나서 머리 속에서 단어가 엉키고, 아무런 생각도 제대로 되지 않건만 나는 말하고 있었다. 차가운 아침 공기 속으로 분노가 언어의 형 태를 띄고 튀어나갔다. "무슨 일인지 설명해!" "응?" "대체... 당신과 그녀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하란 말야! 엉! 나, 나에게는 들을 권리가 있지 않아?! 그 정도 쯤 들을 권리가 있지 않냐고! 아니면 나 따위 남에게는 결국 해주지도 못할! 그만큼 고결하고 잘난 이 야기야? 그게 그런 성격의 것이냐고! 말해! 빨리 말해봐!" 나는 그렇게 말하고 일어났다. 그러자 킷은 카타나를 뽑지 않고 칼집 째 로 들어서 테이블 위에 있던 내 옷을 건네주었다. "일단 이걸 입고 이야기하지." "...." "확실히 너에겐 들을 자격이 있다. 카이레스. 좀 긴 이야기가 되겠지만 이야기 해주겠다. 이해나 용서를 바라는건 아니다. 단지 네 권리를 행사 할 기회를 주는 것 뿐. 그래, 들어보겠나? 아니면 지금 검이라도 들고 나 를 공격해보겠나?" 킷은 그렇게 말하고 자신의 검을 풀어서 워로드에게 던졌다. 나는 그런 그를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결국 내 잘못이다. 킷이건 니나건 디 모나건 모든 건 내 나약한 마음이 불러들인 결과! 이렇게 될건 알고 있었 잖아! 하지만! 그래도 하다못해 이야기는 들어야 겠다! "말해....말해." 나는 잠깐사이에 쉬어버린 내 목소리에 놀라며 간신히 중얼거렸다. < 다음 화에 계속 > -------------------------------------------------------------------- 다음화 예고 700년을 살아온 광기의 엘프, 킷 아슬나하. 하지만 그를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 두렵다. 상처입은 자가, 남을 상처주는가? 모든 대답은 너무나 어이 없게도 밖에서 주어진다. 그리고... 레이펜테나 연대기 제 1 부 The Rogue! 제 28 화 희생에 대한 찬탄! 나는 나 자신을 증오해! *********************************************************************** 으음...요새는 여행갈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저랑 비슷한 취미의 사람들이 주로 가는 미국, 일본이 아니라 남미나 동유럽, 그런 데를 가고 싶네요. 스 페인어 회화나 배워볼까? 그러나 그전에 지금 계약해둔 일들을 다 처리해야 겠군요. 아 피곤하다. 그리고 다크 세인트 통신연재 안 한다는 건 철회하겠 습니다. 외국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팬레터 등엔 또 약해져서요. 언제 외 국 가면 재워줍니까? -_-; *********************************************************************** 레이펜테나 연대기 제 1 부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제 28 화 : 희생에 대한 찬탄#1 ------------------------------------------------------------------------ 팔마력 1548년 10월 15일 나는 옷을 다 입고 의자에 앉아서 창틀에서 담배를 피고 있는 킷을 바라 보았다. 속에서 워낙 정신이 없어서 눈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머리 속은 어지러운 소음으로 가득 차 있고 박살난 마음의 비명과 교성이 엇갈 려 환청으로 들려온다. 하지만 무심하게도 아침은 아침, 맑은 햇살과 함 께 짹짹거리는 새소리가 들려온다. 언밸런스. 부조화. 지나친 부조화가 나를 비웃고 있었다. 아니 이 순간 세상 모두가 나를 비 웃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나는 미쳐버릴 것 같았다. 이대로 그냥 놔 둔다면 미칠 것 같다. 아니 손을 대도 그 손길을 내가 받아들일 수 있을 까? 다, 다만 나를 제어하고 있는 것은 어이없게도 힘이었다. 킷 아슬나 하. 그는 가만히 창틀에 걸터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검처럼 예리한 기도를 내뿜고 있었다. 아무리 내가 단련을 하고 이를 간다고 하더라도 결코 레 인저 마스터 커크에게 손을 대지 못할 것처럼, 그는 마치 쥐를 겁먹게 만 드는 뱀처럼 검고 혼탁한 살기를 뿜고 있었다. 그래서 더 한심하다... 미 칠 것 같은 혼란, 혼탁함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포를 부인하지 못하다니. 나 자신이 너무나 한심하고, 억울하고 바보 같아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러나 눈물도 다 말라버렸는지 더는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담배연기를 창 밖으로 뿜으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좋아. 그러면 이야기를 하지. 어디부터 이야기를 하는 게 좋을까. 긴 이 야기. 아주 긴 시간의 이야기지만.... 네 영혼이 지루함을 참고 들을 수 있다면 해주마." 킷은 그렇게 말하고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 그것은 700년 전의 이야기. 내가 태어난 때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염 마대전으로 인해서 가장 큰 피해를 본 종족이 있다면 첫째가 일리시 드(illithid), 그리고 둘째가 우리 엘프들일 것이다. 아 우리라고 말 한다는 것은 이상하군. 지금의 나는 엘프들에게도 인간들에게도 받아 들여지지 않는 이방인에 불과하니까. 그래 나는 철저한 이방인이다. 내 동족들이 나에게 건 저주는 나를 엘프의 생명에서 멀어지게 했고 나와 루크레시아. 그녀의 운명을 끊어 놓았지. 뭐 그건 아직 이야기 한다고 해서 이해할 상황이 아니군. 일단은 어린 시절의 이야기부터 늘어놓도록 하지. 나는 어린 시절, 내 어린 시절을 기억하고 있어. 지금도 내 망막을 눈꺼풀로 덮으면 아스라이, 그때의 아름다운 세레 네탄이 눈에 들어오지. 수령이 많은, 어쩌면 레이펜테나의 역사와 그 길이를 같이할 것 같은 아름다운 황금색의 나무들과 시간의 퇴적이라 해도 합당할 포근한 낙엽들의 길. 햇빛을 흩으면 금빛의 광선을 늘어 뜨리던 손바닥만한 하늘, 비가 내리는 날이면 진한 안개가 깔리고, 그러면 나는 내 사랑하는 루크레시아와 한 모포를 두르고 따뜻한 차 를 나누어 마시며 담소를 즐겼지. 그때의 한순간은 영원히 잊지 못 할거야. 이 몸이 위대한 시간의 톱 니바퀴, 혼돈의 휴온과 질서의 타오, 그 사이에서 썩어 완전히 분해 되고, 내 영혼이 윤회전승을 끝마쳐 설사 지옥의 저편에서 봉인된다 하더라도. 그날의 세레네탄, 세레네탄에서의 그날들을 잊을 수는 없 을 거야. 왜냐면 그날들이 바로.... 내 인생에서 유일하게 빛이 있었던 날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야장이었어. 엘프들은 나무의 생명, 그들은 불과 친하지 않아. 그래서 언제나 불을 다루어야 하며 또한 마력을 부여할 줄 아는 마법 사, 그래 마력술사Enchanter여야 했어. 그리고 그러한 재능은 실반엘 프들 중에서는 대대로 아슬나하가 이어왔지. 내가 가져서는 안될 이 름 아슬나하, 나는 그것을 잇고 자랑스러워 했다. 내가 두들겨 만든 마법의 검과 방패, 아름다운 갑옷과 은의 휘장 등이 위대한 엘프들의 신, 코넬르아르에게 받아들여졌을 때. 나는 나 자신이 영광되어, 어 쩌면 신의 가호를 받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 루크레시아는 그 코 넬르아르의 신관이었고 나의 영광을 축복해 주었어. 그녀는 나의 반 신이었으며, 내 영혼의 일부였고 나의 인생, 대부분을 함께 한 친우 였지. 그리고... 내 여동생이었어. 그래. 파국이 올걸 알고 있었어. 나는 그녀를 사랑했고 그녀는 나를 사랑했어. 한 배에서 태어난! 씨마저 같은 남매가 서로서로를 사랑하 게 된다는 건, 인간들에게도 모욕이겠지만, 엘프에게는 차라리 저주 였어. 하지만 어쩌겠어?! 이미 생겨버린 감정을 그냥 거둬야 한다는 건, 너무 잔인해. 그것은 영혼의 죽음과 같아. 사회가 누군가의 영혼 을 죽일 권리가 있다면 그것은 오만이다. 지나친 오만이야. 하지만 나에겐 용기가 없었어. 그래. 지금의 나를 보면 이해하지 못 할거야. 용기라는 것은 이제는 너무나 닳아 무뎌진 내 보호본능, 나 자신의 존재가 커져갈수록, 비대해져서 이제는 어떠한 섬세함도 남지 않을수 록, 용기란 것은 길가에 채이는 자갈만도 못한 것이 되어가지. 그래. 하지만 그때의 나는 비겁자였다. 그녀는 약혼자가 내정되어있었지. 결혼의 전날, 그녀는 나에게 외쳤어. 사랑한다고. 아 이 무슨 더러운 고백인가? 사랑하는 자에게 그녀는 절규한거야. 자신의 혼이 상처받 고 있다고. 그래 그건 혼의 비명이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규율을 뛰 어넘을 용기가 없었어. 그녀가 자신의 목숨과 혼을 걸고 나를 위협하 기 전에는. '나와 피가 같기 때문에 그러나요? 이 피를 다 뽑아내면 당신과 나 사이에는 다만, 다름만이 존재하겠군요. 죽어가는 시체와 살아있는 엘프가 다르듯, 그렇다면 나는 그 다름을 취하겠어요.' 그녀는 정말 타오르는 불꽃이었어. 열정이었고. 나는, 비겁하게 그녀 의 영혼을 태우게 만든 거야. 나 자신이 짊어져야 할 짐을 그녀에게 떠넘긴 채. 만약... 내 열정의 독으로 그녀를 물들였다면 금기를 범 할 용기가 나에게 있었다면 적어도 그녀의 영혼은 지킬수 있었을텐데 말야. 하지만 아무리 겁쟁이에 비겁자라 하더라도 그녀의 열정에는 그걸 뛰어넘게할 힘이 있었지. 나는 그녀와 함께 달아났다. 기뻤다. 내 700년의 인생동안 그렇게 기쁜 적은 없었으니까 확실히 기뻤다. 그것이 나를 지금까지 살아있게 한 원동력이라면 믿겠나? 단 3일에 불과한 도주 행각이 내 700년의 인생을 지켜줬다는 것을.... 우리는 지친 몸을 서로에게 기대고 달리고 또 달렸어. 그 도주는 고작 3일째에서 끝났다. 새장을 달아난 새가 피 포획자를 피해서 살수 있는 기간과 비슷한 정도지. 나와 루크레시아는 엘프 전 사들에게 사로잡혔고 우리들은 대 장로에게 끌려갔다. 그래. 이것이 그 3일간의 도주의 끝이지. 대장로 휘하 모든 엘프들은 우리가 저지 른 죄를 비난했고, 우리들에게 꽤 강한 저주를 걸었지. 지옥을 들락 날락 거릴 만큼의 힘을 얻은 지금에도 풀지 못할 그 저주는, 우리들 에게서 숙명과 운명을 끊어버렸다. 그리고 루크레시아의 약혼자, 지 금은 얼굴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는 루크레시아를 저주했어. 두 번 다시...환생하더라도 나와는 이어지지 못할 거라고. 우리는 엘프 들의 운명에서도 끊어지고 또한 서로서로간의 유대도 끊어졌다. '너희들이 남이기를 원했다면, 진정한 남이 되게 해주마.' 멋진 말이야. 너무 멋져서 지금도 감동할 지경이라니까. 정말이야. 젠장! 지금의 내가 이런 말을 한다면 틀림없이 모두들 비웃겠지만 아 무리 크나큰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그 영혼에 세세토록 남을 저주를 건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어. 그렇게 우리가 증오스러웠단 말인가? 단지 그 알량한 엘프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다는 이유로? 어느 누 구도 얼마나 사랑했는지, 어떤 마음으로 금기를 어겼는지, 그것은 물 어보지 않았어. 결국 나와 그녀는 따로 유폐되었어. 물이 차서 다리를 썩게 만드는 수옥 속에서 나는 오로지 나로 인해서 죄악에 빠진 그녀, 루크레시아 를 떠올렸어. 나로 인해서 망가진 그 인생. 그녀를 지켜야 해. 그러 나 나에겐 그럴 힘이 없었지. 감옥에 갖혀 있어도 소문은 다가오더 군. 잔혹하고 무서운 소문은 수옥에 갖혀 썩어가던 나의 귀에도 들어 왔어. 그것은 크로매틱 원의 세력이 이 세계를 덮고 있다는 것이지. 세레네탄은 그나마 괜찮지만 케레네탄의 경우는 계속 되는 공격을 받 아 괴멸 직전이라고. 그리고 그들이 노리는 것은 코넬르아르의 신전 과 사제들의 완전파괴라는 것도. 확실히. 크로매틱 원의 힘이 강해지 면 그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저주에 휩싸이지. 천계를 누비 는 악의 여왕은 그만한 힘이 있어. 이 레이펜테나의 모든 신들을 괴 멸시킬 만큼의 힘이.... 그리고 그들의 추종자들이 세레네탄을 습격했다. 이웃 엘프들의 도시 케레네탄은 너무나 쉽게 허물어졌고 사악한 힘의 화신(化神)이라고 할만한 녀석들. 혼돈의 드레이클링들이 나타났지. 단순한 드라칸으로 오인한 엘프들은 무모하게도 그들에게 도전했고 그 결과 죽었다. 녀 석들은 하급한 용인의 형상을 하고 있었지만 그 본질은 악의 어머니, 크로매틱 원의 의지였으니까. 그들과 함께 쳐들어온 드래곤들은 엘프 들의 도시를 약탈하고 파괴했다. 기뻐하느냐고? 물론 지금의 나라면 나를 유폐한 이들이 파괴당할 때 기뻐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 역시 한때는 엘프였다. 설사 내 동족들이 죄를 이유로 들어 나를 처형하고 자 하면서도, 내가 지닌 야장의 기술과 비전들 때문에 나를 함부로 죽이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되어도. 그것 때문에 그들에 대한 신의 그 자체가 무너져 버린다고 하여도 나는 엘프였다. 대 파괴로 인해 감옥이 무너지고 내가 자유를 찾아 기어나왔을 때 본 것은 숲을 온통 물들인 사악한 드래곤의 군대들과 얼마 남지 않은 엘 프들이 광장에 모여있는 것이었어. 그들은 동족들을 하나하나 나누고 있었다. 마치 전리품처럼 말이다. 혹시 알지 모르겠지만 사악한 드래 곤들에게는 일단의 취미가 있거든? 성기사를 방부처리해서 그들의 보 금자리에 장식해둔다거나 엘프를 박제해 놓는 다거나. 그렇기에 그들 의 영역에 들어가기 위해선 많은 노력과 용기가 필요한 법이지. 나는 붕괴된 감옥을 기어나와 루크레시아를 찾았다.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 이제는 노예가 되어, 노예보다 못한 완구가 되어 드래곤과 다른 사악한 군대의 약탈품이 될 동족들 중에서 그녀를 찾았다. 마침 루크레시아는 너무도 쉽게 보일 곳에 있었지. 신전의 앞에서 그녀는 악의 군대들에게 강요받고 있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신전의 열쇠. 오직 정갈한 코넬르아르의 신관 이외에는 열수 없는 그 문이었지. 그 들의 공격에 저항하기 위해. 너무나 많은 엘프의 신관들이 전선에 나 가 죽었기 때문에 그들로서는 그녀의 목숨이 더없이 중요했을 것이 다. 적어도 내가 나서기 전에는 말야. 지금은 냉정하다고 스스로 자부하고 있지만 그때의 나는 그렇지 못했 다. 그녀가 그들에게 위협받고 있는 것을 본 나는 오크 경비병들에게 돌격해서 그들의 무기를 빼앗아들고 다른 것들을 쳐대며 미친 듯이 돌격했다. 루크레시아를 구하기 위해선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지. 그 래. 어떤 의미에서는 묘한 쾌감도 있었어. 숲의 공기는 피로 물들어 서 지독하게 달콤했고 내 사랑을 저버리고 나에게 파멸을 안겨준 세 레네탄은 사악한 드래곤들에 의해서 무릎 끓었지. 이런 곳에서, 반역 자인 내가 세레네탄을 위해서 검을 휘두른다니 얼마나 멋진 일이냐? 사로잡혀 꼼짝도 못하는 녀석들에게 이렇게 귀한 저주가 있을 수 있 을까? 나는 신이 나서 경비원들을 때려눕히고 검으로 적의 심장을 꿰 뚫어 세레네탄을 물들인 피에 근소한 양이나마 더했어. 나를 향해 꽂 히는 경멸의 시선. 그래 동족들이 보내오는 경멸의 시선과 더욱더 강 력하고 사악한 드래곤들이 보내오는 호기심의 시선, 그리고 영원한 숙적으로 여기게 된...그루자트의 시선을 받으며 나는 검으로 춤을 췄다. 조디악 나이츠들이 검의 발라드를 불렀다면 그것 역시 치졸하 나마 광기서린 윤무였다. 사실 나 자신이 격양되었으니까. 그들이 버린 죄인인 내가 그들의 도 시를 위해서 죽다니. 멋진 일이라고 생각했지. 그러나 그게 얼마나 멍청한 생각인지 아는데는 그다지 오래걸리지 않았지. 그들은 나를 붙잡았다. 그루자트의 일격은 내 손에서 단숨에 검을 빼앗고 전의 마 저 꺾어버렸다. 솔직히 지금도 느끼는 거지만 그루자트의 강대한 힘 에 비하면 나는 어린아이나 다름없었어. 녀석에게는 악의 신의 피가 흐르고 있으니까. 나는 그 놈의 강대한 힘에 질려서 놀라워하거나 두 려워할 새도 없었다. 녀석은 마치 어린아이를 찍어누르듯 내 목에 검 을 들이대고 그걸로 루크레시아를 협박했지. '나와 같은 별을 지고 태어난 엘프의 소년이여. 네 목숨을 보전하고 싶다면 그녀에게 문을 열게하라. 나는 너를 죽이고 싶지 않다. 왜냐 면 너는 오랜 예전에 잊혀진 내 영혼의 그림자이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단순한, 협박의 기본도 제대로 지키지 못한 협박이었다. 하 지만 그 알지 못할 내용은 진실했고 그 안에 담긴 무게만은 심장을 억누를 정도로 묵직했다. 왜냐고? 왜냐면 루크레시아는 나에게 있어 서 영혼이었고, 단지 내 목숨을 담보로 그녀를 위험하게 하는 것 은..., 글쎄? 내 목숨은 그다지 가치가 없다고 할까? 내 경우엔 그녀 의 영혼을 위험하게 할 정도로 내 목숨에 대한 애착이 크지 않았어. 하지만... 그녀의 경우는 내 목숨을 위험하게 할 정도로 그녀의 고결 함을 아끼지 않은 것 같더군. 결국 봉인된 코넬르아르의 신전은 열려버리고 나와 루크레시아는 동 족들의 저주를 들으며 신전의 입구를 섰다. '코넬르아르가 그들을 세세토록 저주하길!' '기나긴 윤회전승의 삶이 그들의 영혼을 누더기로 만들기를!' 그러한 동족들의 저주속에서 나는 그루자트에게 들려서 힘없이 인형 처럼 코넬르아르의 신전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그루자트에게서는 이 상한 운명같은걸 느낄수 있었어. 예견이랄까? 루크레시아는 죽음을 예견한 듯 포로로 사로잡힌 나에게 신전으로 들어가는 회향목의 거리 앞에서 입을 맞추었다. '사랑해요. 킷. 나의 오빠, 나의 연인, 나의 남편...내 영혼의 반이 자 모든 것.... 이것이 이별이 되더라도 날 잊지 말아요. 영원히.' 그것이 내 결혼식이었다. 나의 누이와 나는 금빛 찬란한 세레네탄에 서 동족들의 기이한 저주를 받으며 키스를 나눴고 곧 그녀는 내 앞에 서 그루자트의 검에 의해서 베어졌다. 너무나 깨끗한 솜씨라서 그녀 는 눈을 감지도 못했어. 그래. 신전의 문을 연순간 그녀는 쓸모없어 진다. 나는 결국 그녀의 죽음과 타락을 불렀을 뿐 어느것 하나 제대 로 한 게 없다. '육체적 고통은 없을 것이다. 영혼은 고통받을지 모르나... 저주받은 영혼에겐 그것도 의미없을 것이다.' 녀석은 말을 했어. 아니 모두들 뭐라고 말을 했지. 그러나 나는 열기 가 머리를 지배하고 있다는 걸 알았어. 내 눈앞에서 베어지는 그녀를 보았는데 나에게 온전한 정신을 유지할 힘은 남아있지 않지. 나는 뇌 가 타는 것 같은 분노를 느꼈다. 그래 나를 지배하는 그 열기는 어떤 말도 기억하지 못하게 했다. 나는 검을 들었다. 분노가 나를 지배하 여 마치 거대한 거인의 외투를 뒤집어 씌운 건 아닐까 생각될 정도였 지. 내 손에 들린 창은 내 영혼을 담아 뛰쳐나갔고 목은 쉬다쉬다 못 해서 지나친 단조로 깨어진 주철 같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이쪽 눈은 날아가 있었고 그루자트는 약간의 생채기를 입은 채 나를 내려 보았다. 그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여겨진 내가 그에게 상처를 입혔다 는 사실이 놀라운 것 같았다. 사악한 드래곤들은 더 이상 쓸모없어진 나를 죽이려 했지만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그루자트가 나를 보호해 주었다. '재미있구나 내 영혼의 그림자여. 너의 갈망이 나의 말라죽은 호기심 에 불을 지폈다. 그것이 네 삶을 이어나갈 기회를 줄 것이나, 과연 행복할지는 모르겠구나. 너에게 잃어버린 것을 찾을 힘을 주마. 내 눈을 주마. 그것은 네가 바라는 곳으로 너를 인도할 것이며 네가 찾 아내려 하는 것을 찾게 할 것이다. 다만 절실히 바라는 것만은 찾기 힘들테니... 그것은 네 저주받도록 긴 인생의 즐거움으로 알아라.' 녀석은 알아듣지 못할 말을 하고 자신의 눈을 파내어 내게 끼웠다. 녀석의 눈에는 엄청난 힘이 있었다. 환영을 꿰뚫어 진실을 보고 심지 어는 인간의 운명까지 엿보인다. 뭐, 지금의 너도 확실히 보이니까. 네게 얼마 남아있지 않은 인간의 운명과 그걸 차고 들어오는 강대한 힘이랄까. 아 안대에 현혹되지 마라. 이것은 단지 남들에게 내 눈을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차는 것 뿐이다. 용인의 눈이 외관상 별로 보 기 안좋다는 건 내 스스로가 잘 아니까. 어쨌거나 이것을 받았을 때. 나 자신이 기뻐했다는 것을 알아라. 그 래, 이것은 나에게 윤회전승을 추적할 힘을 주었으니까. 나는 루크레 시아의 내세를 찾으려고 했다. 마력술사로서의 힘은 저주로 인해 사 라져버렸고 이제는 죽음에 잠식되어가지만 나에게는 아직도 힘과 의 지가 있었어. 검술을 익히고 전장을 돌아다니며 나는 나 자신의 힘을 키웠다. 내게 시간이라면 지긋지긋하게도 많이 있었으니까. 곧 스스 로도 상당한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았지. 아 니나는 어떻냐고? 그녀는 확실히 전생의 루크레시아다. 그런데 왜, 나는 그녀를 안지 않고 지금 너를 이렇게 살려두느냐고? 그것은 아직 이야기 할 단계가 아냐. 긴 이야기라고 하지 않았나. 들어라. 그것이 너에게 대답을 줄 것이다. 어쨌거나 나는 그렇게 힘을 키워서 루크레시아를 찾아다녔다. 그리고 어이없는 사실을 알게되었지. 그녀는 레이펜테나에서 환생한 게 아니 야. 저주받은 자들이 가는 지옥의 황야, 라반테스의 울부짖는 황야에 서 환생했지. 크크큭. 혹시 에우리디케란 이야기 아나? 죽은 아내를 찾아 떠나는 음유시인의 이야기라고. 레이펜테나를 기반으로 한 이야 기는 아니지만 제법 유명한 이야기지. 차원을 이동하는 플레인 워커 들에게는 귀감이 될만한 이야기야. 나는 스스로 고무되어있었다. 이 알량한 힘과 의지를 믿고 그녀를 만나러 가겠노라고. 아 얼마나 낭만 적인가. 죽음이 갈라놓지 못하는 사랑이라니...하하하하하! 제기랄! 계속 딴 이야기로 새는 군. 그래. 나는 라반테스의 울부짖는 황야로 향했다. 지옥을 지나기 위해서 나는 몇 명의 마법사 동지로부 터 이전엔 나도 쓸 수 있던 차원의 마법을 받아서 지옥으로 내려갔 다. 내 저주받은 목숨을 노리는 망자들을 이 도검으로 베어버리고 무 수한 마족들을 몰아내면서 그루자트의 인도에 따라서 나는 그녀를 찾 을수 있었다. 그리고 나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다시한번 알게 되었지. 그녀는 래무어가 되어있었다. 래무어. 지옥에 속한 하급마족이지. 거 대한 살덩이 괴물에게서 루크레시아의 영혼을 보았을 때 내가 뭘 했 을 것 같나? 단칼에 베어버렸지. 나는 그날로 귀환의 마법을 써서 귀환했다. 그리고 제일 먼저 사창가 로 달려가 아무나 붙잡고 잤다. 알겠냐! 사랑이나 마음이란 건... 죽 음은 극복하더라도! 그 육체를 극복하지 못해! 왜냐고? 윤회전승이란 것은 결국, 아무리 전생이 어떻다 하더라도 이미 윤회된 그순간 다른 존재이기 때문이야. 모습도 생각도 행동도 다 다르지. 다만 전생의 죄를 덧씌워 나가며 현생의 불행을 인정하게 만드는 대 우주의 채무 시스템이라고. 죽음을 초월한 사랑? 하 정말 웃겨서 죽을 일이지. 그걸 나 스스로 인정하게 되었을 때. 나란 존재가 얼마나 가증스러웠 는지!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 후의 일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나는 계속 지옥에 내려가, 그녀를 끌어내 지상에서 죽였다. 적어도 지상에서 죽을 때 마족으로 서의 그녀는 완전히 죽을테니까. 그 오만한 행위를 참지 못했는지 무 수한 마족들이 나를 노리고 덤벼들었지만... 블랙로터스의 이름만 드 높아지더군. 죽이고 죽이고 또 죽였던가?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세 기도 지쳤을 때 그녀는 지옥에서 해방되어 드디어 지상으로 환생하기 시작했다. 물론 지상이라고 사정이 좋은 건 아니었지. 오크, 트롤, 오우거, 고 블린, 놀... 각종 휴머노이드로 태어나 그 짧은 생을 마감할 때까지 나는 그것들을 지켜보았다. 인간이 되어서 누군가에게 이용당할 때 도, 죽기 싫어서 시궁창을 뒤척일 때도. 나는 그걸 지켜보고 필요하 다면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녀가 죽은지 600년 동안... 나는 그녀를 수백번도 넘게 내 손으로 죽였다. 그리고 이제 그녀라고 부른다는 것 자체가 나의 욕심이란 걸 알았다. 왜냐면 그녀의 내세는 사실 남자였던 적이 더 많았고 그녀에 게 나는 세레네탄의 킷 아슬나하가 아닌 블랙로터스이기 때문이다. 나는 오만한 자다. 그녀를 지키는 것이 그 옛날 나로 인해서 타락해 윤회전승으로 내던져진 루크레시아에 대한 속죄라고 생각하고 이런 많은 짓을 멋대로 저질렀으니.... 오만한 속죄자는 죄인만 못하다. 나는, 죽은 심장의 소유자이다.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말의 전부임 을 알라. - "웃기지마!" 나는 킷의 이야기를 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에게 손가락질 하 며 외쳤다. "사랑도 없이 600년 동안 한 사람만을 따라다닌다는 게 말이나 돼?! 게다 가 당신의 그 행위가 바로 가장 깊은 상처를 주는 행위라는 걸 왜 몰라?! 이 빌어먹을 개자식아! 아무리 윤회전승하더라도 600년 전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어! 네놈은 그렇게 계속 시체나 끌어안고 자위나 하시지! 가서 창 녀들이랑 실컷 놀고 있으라고! 이 등신같은 놈!" 나는 그렇게 외치고 일어나다가 지금의 나도 그다지 크게 다를게 없다는 생각에 허탈해 졌다. "이, 이런...." 킷은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나를 보고 메마른 눈동자로 미소를 지었 다. 기다란 장도를 어깨에 걸친 그는 무척이나 쓸쓸해 보였다. "짧은 인간의 삶은 곧 끝난다. 계속 되는 윤회동안 그녀를 사랑한다는 이 유로 소유했다면 아마 그녀는 미쳐 죽을 것이다. 내게 다른 모든 것이 허 락되어도 그녀만은 허락되지 않은 게 이런 까닭이다." 미쳤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미쳤어! 스트라포트도 킷도 모두 미쳤어. 네놈들은 모두 미쳤단 말야! < 계 속 > -------------------------------------------------------------------- <휘긴경 대극장> 휘긴: 아 음... 연재가 상당히 부실해질 전망. 해야 할 일이 많으니까요. 게다가 동원소집통지서가 오다니 흐흐흑. 미국이 제발 무사했으면 좋겠어 요. 안그러면 끌려갈 판이니. 펠: 그런데 으음. 사람들이 나랑 캐스윈드랑 붙으면 어떻게 되냐고 물어 보는데? 어떻게 되는 거야? 휘긴: 글쎄. 으음. 레이펜테나 최강의 전사라면 물론 서이준, 그루자트, 베르자트, 메르페자트, 류카드 정도가 있겠지. 펠: 내 질문은 그게 아니잖아. 휘긴: ...듣고 싶냐? 펠: ? 휘긴: (고개를 돌린다) 훗...펠은 펠라치오의 펠... S.E.:퍼억! 펠: 허억~허억~ 크으... 저질러버렸다. 대우주의 의지: 안돼요. 페르아하브. 원작자를 죽이면. 펠: 그래도 저런 저질개그를 하는 원작자 따위 죽어버리느니만 못한데. 대우주의 의지: 그건 그렇지만... 휘긴 : 도, 동의하지마! < 계속될까 두렵다 > *********************************************************************** 아 진짜 바뻐 돌아가실 지경인데.... 부모님이 또 벌초를 가자고 합니다. 아 무래도 이번주는 고난주간일 듯. 연재는 쉬엄쉬엄하겠습니다. 오케이? -_-; *********************************************************************** 레이펜테나 연대기 제 1 부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제 28 화 : 희생에 대한 찬탄#2 ------------------------------------------------------------------------ 팔마력 1548년 10월 15일 나와 킷의 이야기는 끝났다. 미친 놈.... 그 말 밖에는 할 말이 없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의 말은 나에게 분노를 잠재우고 내게 씁쓸한 느낌만 주었다. 600년이나 된 깊은 상처를 품에 안 고 있는 자에게 얼마 살지도 않은 내가 뭐라 한마디 더한들 그게 어떤 의 미가 있을까? "후. 뭐 그런 거지." 킷은 그렇게 말하고 장담뱃대에 불을 붙이더니 입에 물었다. 모든 자세가 너무 여유롭고 한가해보여서 방금전까지 말한 그 저주받은 삶을 산 엘프 가 이자라는게 믿겨지지 않을정도였다. 킷의 기다란 은발은 마치 실버드 래곤들의 그것처럼 은빛으로 반짝이고 은회색의 눈동자는 엷은 비웃음을 띄고 있었다. 세상 모두를 비웃는 건지 아니면 악에 물든 본성을 가지고 도 옛 사랑을 못 잊는 자신을 비웃는 것인지. 그에 비해서 나는 얼마나 어리숙하고 약한 존재란 말인가. 물론 세상 모든 사람이 강해져야 할건 아니지만. 나 자신은 스트라포트나 킷에 비하면 여전히 한심하고 아직은 어린아이라는 걸 알았다. 남자들끼리 이야기를 주고 받을 때는 여자랑 자 고 안자고가 어른의 척도인 것처럼 말하지만 실제로 한 인간을 어른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그 영혼이지 육체가 아니다. "왜 이 이야기를 나에게 해주는 거지?" "글쎄? 왜일까?" 킷은 내 질문을 받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왠지 음흉한 생각을 하고 있 는 듯 그의 목소리가 어둡고 음침하게 들렸다. "원래의 당신이라면 이런거 해명할 것 없이 나를 베어버려야 정상 아냐?" "그럴지도. 아니 확실히 그럴 거다. 하지만 너를 베는 것은, 나 자신을 베는 것과 같아서. 할 수 없었다." "?" "네 운명은 나와 같이 될 거야. 그걸 느꼈다. 처음엔 어렴풋했지만 지금 의 너는 마치, 거울을 보는 것 같을 정도야. 그래 너는 나의 다른 모습이 다. 너에게 투영되는 내 모습을 보았을 때, 내가 그걸 베어낸다면 이렇게 상처받으며 살지도 않았을테지. 그정도로 과단성이 있었다면 600년동안 이렇게 바보같이 살지도 않았을 것이다." 킷은 그렇게 말하고 나를 가리켰다. 뭐야! 저번에는 나의 목에 걸린 현상 금을 노리고 공격까지 해온 주제에 이제와서 그런말을 하면 믿을 것 같 아?! 나는 속으로 그렇게 말했지만 그때 킷의 손가락 끝에서부터 은은한 백색의 빛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순간 주위는 어두워지고 그 손가락 끝의 빛과 킷, 그리고 나만이 남았다.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돌릴 필요도 없었다. 나는 마치 창에 수직으로 관통이라도 당한 것처럼 그것을 바라보 았다. '나와 같이 될 거야.' 킷이 내뱉은 그 말이 귓가를 맴돌고 있었다. 그래. 그것은 마치 계시와도 같았다. "정말.... 끝내주는 저주로군." 그런건 아무래도 사양하고 싶은데. 지금도 궁상맞기 그지 없는데 킷과 같 이 된다면 그야말로 처참하다. 하지만 처참하면서도 나름대로의 비장미가 있었다. 그런데 그때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 고 뒤를 돌아보았다. 여관이다. 워로드가 문을 박차고 들어와서 빗장은 부러지고 문도 빠져서 입구를 막기 위해 그냥 비스듬히 세워놓았는데 그 것을 노크한 것이다. "주인님. 그들이... 주인님을 뵙고 싶어합니다." 워로드는 문 너머에서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킷이 나에게 질문을 던졌 다. "그들이라면 공안요원들이겠지? 에스페란자의 개들이 이래저래 냄새를 맡 고 다녔으니까." "아마도." 참 빨리도 오는군. 어쩌면 녀석들이 숨어서 계속 나를 추격했을지도 모르 겠다. 니나랑 같이 자는 것도 다 봤을지도 모르겠고. 아 젠장. 정말 비참 하네. "그럼 같이 만나보겠나?" "그러지." 나는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문밖으로 걸어나왔다. 과연 문의 앞 에서는 공안요원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 중 일부는 나를 알아 보고 눈살을 찌푸렸지만 나는 그런 그들에게 오히려 웃어주었다. 물론 녀 석들은 적으로 치고 받던 나를 곱게 볼 리가 없지. "그분께서 보고 싶어하십니다만... 따라오시겠습니까?" "그분이라면 역시 에밀리오 왕자인가?"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들의 상관인 에밀리오의 이름을 함부로 불렀다고 그러는 것 같았다. 에밀리오 왕자가 그렇게 충성 의 대상이란 말인가? 아무리 왕자라 하더라도 고작해야 소년. 국왕을 여 러차례 섬기며 자신의 위치를 돈독히 해나간 정보조직으로서는 특이하다 고 할 정도의 충성심이다. 벨키서스 레인저가 국왕에게 그다지 충성하지 않는 것에 비하면 말이다. "일단 따라오시죠. 아 니나 공주님도 같이 가주셨으면 하는데 괜찮겠습니 까?" "그건 그녀가 정할 일이다. 물론 그녀는 마음을 정한 것 같다만." 킷이 그렇게 말하자 방문이 열리고 니나가 걸어나왔다. 그녀는 킷과 나를 보더니 얼굴을 들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으음. 미안해하는 건가? 하긴 하룻밤 사이에 정말 이런저런 일이 있었다. 어쨌거나 나는 그녀를 원망하 고 싶은 생각이 없다. 나를 이용하겠다는 생각은 꽤 오래전부터 한 것 같 은데...으음 그러고보니 옛날부터 살갑게군게 의도적인 접근이었나? 하지 만 그건 결국 충동적인 거였고 내 마음이 디모나에게 가 있었으니까. '....' 생각하면 할수록 나란 놈은 바보다! 아아아악! 이건 그냥 잊자. 이 건에 대해서 생각하면 나만 추해진다. "자 그럼 갑시다." 나는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벌써 킷은 뚜벅뚜벅 걸어내려가고 있었다. 여관의 입구에는 언제 준비했는지 큼직한 마차가 있었다. 세상에. 아무리 첩보력이 뛰어나고 적진에 조직을 파묻어 놓았다고 하더라도 전시의 적국 인데 이런 짓을 떳떳하게 하다니. 나는 놀라서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러 고 보면 정말 눈에 띄는 의상인데 잘도 이런걸 입고 다니네. 지금의 그들 도 모두 다 검은 슈트를 걸치고 있었다. 게다가 그놈의 검은 안경도 다 걸쳤다. 정말 이렇게 눈에 확 띄는 복장을 하고도 정보원을 한다면 진짜 실력파라고 볼 수 있겠다. 아니면 주변 사람들의 눈깔이 다 삐어서 타박 상과 근육통을 호소하고 있던지. 어쨌건 내 이러한 의견은 입밖으로 낼 수가 없었다. 공안요원들 역시 자부심으로 가득차있을 테니까 그런 말은 하지 않는게 좋겠지. "자 타시죠." "눈가리개 같은 거 안 하나?" 나는 그렇게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들은 서로서로를 쳐다보더니 히죽 웃 었다. 마치 '녀석, 어디서 그런건 봐 가지고.'라고 비웃는 것 같았다. 나 는 머쓱해져서 머리를 긁었다. 이놈들! 니들 복장이 가장 큰 문제인데 어 디 남을 비웃을 건수가 되냐? "안 합니다. 어차피 우리가 있는 장소를 보고 신고하면 이미 우리는 없을 겁니다. 우린 빠르기로 승부하니까요." "흐음." 대단한 자부심이군. 게다가 그말 자체가 너희들에 대한 정보를 상당수 알 려준다는 걸 모르나? 그들은 우리가 이곳을 기억해봐야 아무소용없다는 식으로 말했지만 그건 뒤집어 생각해보면 공안요원들의 아지트는 시시 때 때로 옮겨다닌다는 정보가 된다. 하지만 그정도쯤 무마할 실력이 없으면 이런 옷을 입고 다니지도 못 할 테지. 전부 검은 슈트를 입고 다니는 정 보요원들이라니. 아주 단체로 유니폼이나 하나 맞추지? 나는 그렇게 속으 로 비웃으면서 그들의 마차에 올라탔다. "좋아. 그럼 어디로 가는 거야?" "창고를 하나 빌려놨습니다. 가시죠." 그들은 그렇게 말하고 우리들을 태우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킷은 마차의 옆에 기대어서 창 밖을 바라보고 웃고 있었다. "재미있군. 앞으로 어떻게 될지." "으음. 재미있을까?" 아무리 그래도 이놈들은 신뢰할 수 없는 적이고 적진으로 들어가는 셈인 데. 하긴 뭐 킷은 지옥도 들락날락 할 괴물이라니까 내버려두자. 문제는 나다. 만약 니나를 녀석들이 받아들일 경우 당연히 그녀와 관계가 있던 이들을 죽여서 입을 막고 싶어할게 아닌가?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고 주위 를 둘러보았다. 확실히 검은 옷의 녀석들이 마차 주위를 둘러싸고 우리를 포위한채 마차와 같은 속력으로 달리고 있었다. 물론 마차가 그렇게 엄청 나게 빠른 건 아니지만 거리의 폭이 좁은 것을 이놈들은 인파를 헤치고 달리는 것이다. 무지 빠른거다! 게다가 마차는 좋은 타겟이니까 녀석들이 마음먹을 경우 그냥 가는 길에 공격해서 해칠 수 있는 것이다. 니나가 있 는 이상 그런 일을 할 리는 없지만 따지고 보면 녀석들이 니나를 원하는 이유도 모르지 않는가? 어쩌면 니나를 죽이기 위해서 우리들을 통해 불러 낸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고 조심스럽게 옆구리에 차고 있던 리피팅 보우건을 만졌다. "겁먹은 개처럼 설설기지마 카이레스. 녀석들이 무슨 일을 저지르면 다 죽일테니까." "...." 네놈은 더 걱정이야! 나는 사람 수백명은 우습게 죽일 것처럼 냉혹한 웃 음을 짓고 있는 킷을 바라보고 그렇게 생각했다. 킷은 언제든지 발검할것 처럼 살기를 뿜어대었다. 잘하면 이 도시에 길이길이 남을 대 참극이 벌 어지겠군. 그러나 그때 마차가 멈춰섰다. 강가에 서있는 창고거리의 한구 석에 멈춰선 것이다. 원래 사람이 없는 곳인지 일부러 사람들을 제거한 것인지 이곳은 쥐새끼 그림자도 하나 없이 고요했다. "일국의 왕자님이 묵을 곳은 아니군." "일국의 왕자님이 참가할 싸움도 아니죠." "그렇긴 하지만." 나는 내 말에 토를 다는 공안요원을 보고 피식 웃었다. 그들의 왕자에 대 한 충성심이 어느 정도인지 잘 알 것 같았다. 나는 그들의 인도에 따라 들어올려진 창고의 문을 향해 걸어갔다. 안에는 썩은 생선의 냄새, 곰팡 이냄새가 어우러져 이루 말로 못할 악취를 풍기고 있었다. 나는 눈살을 찌푸리고 걸어가면서 물어보았다. "으음. 인원은 총 얼마나 되지? 공안요원들 말야. 벨키서스 레인저는 200 명정도 되는데 말야. 당신들 실력이 별로더라고. 좀 많이 뽑나 보지? 하 긴 그 목잘려도 죽지 않는 수를 쓰면 뭐 실력이 문제가 되지 않겠더만." "우리의 인원이야 당연히 알려줄 사항이 못됩니다. 그리고 저희의 인내심 도 슬슬 한계에 치닫는군요. 더 이상 입을 열면 독가루라도 뿌려서 입을 다물게 해드리죠." 그렇게 말하면 또 할말이 없지. 나는 입을 다물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창 고안은 넓고 어두웠다. 빌렸다고 하는데도 아직 몇몇 화물은 그대로인지 온통 검은 궤짝들로 가득하다. 그 창고의 2층이라고 해야되나 나무 궤짝 이 잔뜩 쌓여 마치 단상처럼 보이는 곳에서 작은 키의 소년이 우리를 내 려다 보고 있었다. 어깨 위를 살짝 덮은 단정한 백금발이 어둠속에서도 돋보인다. 저 자가 바로 에스페란자 공국에서는 그 순하고 얌전하고 착해 보이는 미소년 왕자. 에밀리오 에스페란드였다. 풍문에 의하면 변태노인 네건 중년 변태건 어린애를 유달리 좋아하는 아줌마건 할것없이 미소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다들 침을 흘릴 정도라는데 확실히 미소년이긴 미 소년이다. 여자인지 남자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니까. 그러나 그 소 년이 지금은 우리를 꽤나 냉정한 표정으로 내려다 보고 있었다. 사람 생 살을 씹는 흉악한 악당들도 저 소년의 살기를 따라갈지 의심스러울 정도 다. 하지만 저 백금발과 녹색눈은 아무리 보아도 니나와 닮았다. 니나와 의 혈연관계를 부인하지 못할 정도로. "수고하셨습니다. 카이레스씨. 누님은?" "...." 이렇게 말하니까 마치 내가 니나를 팔러 온 것 같잖아? 그런데 그때 니나 가 나서서 에밀리오 왕자를 올려다보았다. "내가 니나야. 딩산의 누나인지는 모르겠지만." "...누님이 맞군요. 흠. 좋아요. 카이레스씨. 이걸 드리겠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 나에게 왠 작은 상자갑을 던졌다. 나는 그걸 받고 혹 시 함정이 아닌가 하고 조심스럽게 그걸 열어보았다. 안에는 이전에 보았 던 앰플과 비슷하게 생긴 것이 있었다. "뭐지?" "해독혈청입니다. 좀 늦었으니까 얼른 가지 않으면 그녀의 목숨이 위급 할...." "뭐라고?!" 나는 기가 막혀서 그를 올려다보았다. 해, 해독혈청이라니. 그 순간 디모 나가 주사한 그 주사제가 떠올랐다. 이 녀석들! 그 안에 독을 섞었단 말 야? 그러고 보니까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이놈들이 자선사업하려는 것도 아닐텐데 그걸 주사함으로서 우리들을 조종하려 했음이 틀림없다! "이야기 안 했었나?" 에밀리오 왕자는 내가 화를 내자 당황해서 옆의 보좌관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당혹해 하는 표정이 너무나 무성의해서 더더욱 화가 난다. 마 치 봄날, 길가다 개구리를 밟아놓고 당혹해 하는 표정이었다. 디모나가 죽게 되건 말건 단지 자기가 한 일이 계획과 달리 약간 틀어진 것에 놀라 는 모습이랄까? 나는 이를 갈면서도 화를 삭였다. 여기서 내가 화를 내봐 야 개죽음만 당할 거이다. 아무리 공안요원들이 벨키서스 레인저보다 약 하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골치아픈 존재다. 소드블래스터도 없는 지금의 나로서는 이길 수 있는 적들이 아니다. 어쨌거나 지금으로선 이 일을 수 습하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내가 왜 나를 찬 여자 목숨을 걱정하는 거 지? 죽어도 상관없어...같이 말할 수 있는 놈이라면 채이지도 않았겠지? 나는 그렇게 야멸찬 사람이 아니라서. "말 한 마리를 빌리자! 자 그럼 킷, 나는 먼저 가겠소. 인연이 있으면 다 시 만나도록 합시다!" "...좋을대로." 킷은 그렇게 말하고 나에게 손을 들어보였다. 한명의 공안요원이 내 뒤로 달려나가서 나보고 따라오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하프엘프의 여자 였다. "아 당신이군." "그래. 카이레스. 말이 필요하다면 따라와라."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앞서서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를 따라서 나갔 다. 그녀는 창고 앞에 쌓인 상자와 궤짝들을 날렵하게 뛰어넘고 앞으로 달려나갔다. 그러자 곧 창고 뒤쪽에 있던 짐말들이 보였다. 나는 작달막 한 말들을 보고 어이가 없어서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뭐야? 저 말은? 나는 빨리 가야 하는데! 저러면 내가 뛰어가는 것만 못 할걸?"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여기 이 말들은 서러브레드는 울고 갈 옌 그레이 다. 한 마리당 150모나크나 한다고! 자! 가!" 옌 그레이라. 옌제국의 말인건가? 원래 옛날부터 옌제국의 말은 무시무시 한 체력 때문에 잘 알려져 있었다. 인간만 해도 전력 질주를 3분이상 지 속하기가 힘들다. 어지간히 단련된 사람이라면 전력질주의 임계점이 높아 지지 그 지구력이 강화되는건 아니니까. 하지만 옌제국의 저 말, 옌 그레 이는 전력질주를 하는 상태로 무려 한시간을 달릴 수 있었다. "그럼 가서 그 여자를 구해보라고! 로그마스터!"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나에게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였다. 응원해주는 건 가? 나는 그녀를 보고 씨익 웃었다. "그러지!" 나는 사람들로 복잡한 길의 한가운데를 달리며 계속 박차를 가했다. 아마 지금쯤 디모나는 한센으로 향했을 것이다. 적들에게 추격을 받아도 결코 버리지 않던 마차를 한센에 두고 왔으니 틀림없을 것이다. 그녀가 간다면 그쪽이지 않을까? 물론 나를 찾아서 내 뒤를 추격했을 수도 있지만...그 건 정말 처량한 생각이다. 나는 자기자신에게 쓸데없는 기대를 걸지 않기로 했다. "이럇!" 10월 17일 2일 간을 꼬박 달리자 아무리 건장한 옌 그레이라고 하더라도 탈진하기 시작했다. 광야를 내달리며 쉬지않고 채찍질한 결과였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나는 마침내 저 멀리에서 이리드 강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보았다. 황갈색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넓은 지평선, 그 너머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은백색의 강과 그 강에 매달린 무수한 건물들. 나는 그것을 보 고 말의 등자를 밟은 뒤 오른쪽 발을 빼내어서 뛰어내렸다. 말도 지치고 나도 지쳤다. 그러나 말보다는 내가 아직 여력이 있다. "자! 넌 쉬고 있어라! 간다!" 나는 그렇게 외치고 앞으로 달려갔다. 공안요원들에게는 말을 빌린다고 했었는데 이렇게 되면 그냥 말을 풀어주는 거 아냐? 하지만 뭐 녀석들이 랑 나랑 다음 번에 만날 때도 이렇게 온화하게 만날 것 같지는 않으니 말 을 돌려주는 방법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자. 사실 돌려줄 생각도 없지 만.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고 길게 자란 풀대를 달리면서 발로 걷어찼다. 민들레가 피어있었는지 여기저기 민들레 홀씨가 날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샛노란 밀잠자리들이 눈앞도 어지럽게 날아올랐다. 가을은 가을이로구나. 내가 벨키서스 산맥을 떠난게 봄. 얼마 지나지도 않았지만 참 여러 가지 일이 있었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웃었다. "하하하하!" 그래. 만족스럽다. 여자에게 채이고 안채이고 동정을 떼고 안떼고 그런 문제가 아니다. 삶을 사는 것 같아. 산 속에서 처박혀서 아무런 일도 없 이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이렇게 슬퍼하고 분노하고 화내고 좋아하면서 살아간다는 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세상은 지금처럼 내게 열린 총 천연 빛의 가을들판같이, 풍성하고 다양하다. 그것이면 족하지 무엇을 더 바라 겠는가? "여자." 나는 스스로 그렇게 중얼거리고 깜짝 놀라 멈춰선 뒤 주위를 둘러보았다. 누구들은 사람 없지? 아 나는 쓸데없는 데에서 솔직해서 탈이란 말야. 어 쨌거나 시간을 지체할 여유가 없군. 디모나의 목숨이 위험할지도 모른다. 에휴. 하여튼 디모나는 남자보는 눈 하나 없군. 나처럼 채여도 지 목숨 걱정해줘서 이렇게 천리길도 마다 않고 달려오는 남자를 무시하다니. 뭐 바람은 좀 피울지 모르지만. 흠흠. -휘이이잉~ 초원을 바람이 훑고 지나가자 밀잠자리들은 놀란 송사리 떼처럼 이리저리 흩어진다. 자유도시 한센은 여전히 북적거렸다. 전쟁 때문에 소란해져도 오히려 수 운을 많이 이용해야 하기 때문인지 자유도시로서는 전시 하에서도 그다지 큰 불편을 겪지 못하는가 보다. 더구나 깡패나 불한당 같은 이들은 다들 징집해버려서 남부전선으로 보내는 모양이다. 죄수들에게 죄를 사해주는 대가로 병사로 만드는 경우도 있다고 하던데 그것까지는 모르겠지만 어째 거리가 꽤 깨끗해지고 통제가 심해진 것 같다. 저 거리가 깨끗해지기 위 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눈물을 흘려야 했는지는 모르겠다. 거지들 을 잡아가고 건달들을 입대시켜서 도시를 깨끗하게 만들다니. 남은 사람 들도 그다지 좋은 인상은 아니군. 어쨌거나 그건 지금 내가 신경쓸게 아 니고 어서 빨리 마차와 말을 맡긴 곳으로 가봐야 겠다. 분명히 이 도시 경비대에게 맡겼겠다? 나는 마침 도시의 어귀를 지키고 서있는 병사를 보 고 그에게 달려갔다. "아 무슨 일이야! 응?! 너도 끌려가고 싶어? 앙?!" 병사들은 내가 다가가자 그렇게 으름장을 놓았다. 역시 분위기가 험악해 진 탓인지 병사들의 반응도 날, 내 영혼이 윤회전승을 끝마쳐 설사 지옥의 저편에서 봉인된다 하더라도. 그날의 세레네탄, 세레네탄에서의 그날들을 잊을 수는 없 을 거야. 왜냐면 그날들이 바로.... 내 인생에서 유일하게 빛이 있었던 날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야장이었어. 엘프들은 나무의 생명, 그들은 불과 친하지 않아. 그래서 언제나 불을 다루어야 하며 또한 마력을 부여할 줄 아는 마법 사, 그래 마력술사Enchanter여야 했어. 그리고 그러한 재능은 실반엘 프들 중에서는 대대로 아슬나하가 이어왔지. 내가 가져서는 안될 이 름 아슬나하, 나는 그것을 잇고 자랑스러워 했다. 내가 두들겨 만든 마법의 검과 방패, 아름다운 갑옷과 은의 휘장 등이 위대한 엘프들의 신, 코넬르아르에게 받아들여졌을 때. 나는 나 자신이 영광되어, 어 쩌면 신의 가호를 받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 루크레시아는 그 코 넬르아르의 신관이었고 나의 영광을 축복해 주었어. 그녀는 나의 반 신이었으며, 내 영혼의 일부였고 나의 인생, 대부분을 함께 한 친우 였지. 그리고... 내 여동생이었어. 그래. 파국이 올걸 알고 있었어. 나는 그녀를 사랑했고 그녀는 나를 사랑했어. 한 배에서 태어난! 씨마저 같은 남매가 서로서로를 사랑하 게 된다는 건, 인간들에게도 모욕이겠지만, 엘프에게는 차라리 저주 였어. 하지만 어쩌겠어?! 이미 생겨버린 감정을 그냥 거둬야 한다는 건, 너무 잔인해. 그것은 영혼의 죽음과 같아. 사회가 누군가의 영혼 을 죽일 권리가 있다면 그것은 오만이다. 지나친 오만이야. 하지만 나에겐 용기가 없었어. 그래. 지금의 나를 보면 이해하지 못 할거야. 용기라는 것은 이제는 너무나 닳아 무뎌진 내 보호본능, 나 자신의 존재가 커져갈수록, 비대해져서 이제는 어떠한 섬세함도 남지 않을수 록, 용기란 것은 길가에 채이는 자갈만도 못한 것이 되어가지. 그래. 하지만 그때의 나는 비겁자였다. 그녀는 약혼자가 내정되어있었지. 결혼의 전날, 그녀는 나에게 외쳤어. 사랑한다고. 아 이 무슨 더러운 고백인가? 사랑하는 자에게 그녀는 절규한거야. 자신의 혼이 상처받 고 있다고. 그래 그건 혼의 비명이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규율을 뛰 어넘을 용기가 없었어. 그녀가 자신의 목숨과 혼을 걸고 나를 위협하 기 전에는. '나와 피가 같기 때문에 그러나요? 이 피를 다 뽑아내면 당신과 나 사이에는 다만, 다름만이 존재하겠군요. 죽어가는 시체와 살아있는 엘프가 다르듯, 그렇다면 나는 그 다름을 취하겠어요.' 그녀는 정말 타오르는 불꽃이었어. 열정이었고. 나는, 비겁하게 그녀 의 영혼을 태우게 만든 거야. 나 자신이 짊어져야 할 짐을 그녀에게 떠넘긴 채. 만약... 내 열정의 독으로 그녀를 물들였다면 금기를 범 할 용기가 나에게 있었다면 적어도 그녀의 영혼은 지킬수 있었을텐데 말야. 하지만 아무리 겁쟁이에 비겁자라 하더라도 그녀의 열정에는 그걸 뛰어넘게할 힘이 있었지. 나는 그녀와 함께 달아났다. 기뻤다. 내 700년의 인생동안 그렇게 기쁜 적은 없었으니까 확실히 기뻤다. 그것이 나를 지금까지 살아있게 한 원동력이라면 믿겠나? 단 3일에 불과한 도주 행각이 내 700년의 인생을 지켜줬다는 것을.... 우리는 지친 몸을 서로에게 기대고 달리고 또 달렸어. 그 도주는 고작 3일째에서 끝났다. 새장을 달아난 새가 피 포획자를 피해서 살수 있는 기간과 비슷한 정도지. 나와 루크레시아는 엘프 전 사들에게 사로잡혔고 우리들은 대 장로에게 끌려갔다. 그래. 이것이 그 3일간의 도주의 끝이지. 대장로 휘하 모든 엘프들은 우리가 저지 른 죄를 비난했고, 우리들에게 꽤 강한 저주를 걸었지. 지옥을 들락 날락 거릴 만큼의 힘을 얻은 지금에도 풀지 못할 그 저주는, 우리들 에게서 숙명과 운명을 끊어버렸다. 그리고 루크레시아의 약혼자, 지 금은 얼굴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는 루크레시아를 저주했어. 두 번 다시...환생하더라도 나와는 이어지지 못할 거라고. 우리는 엘프 들의 운명에서도 끊어지고 또한 서로서로간의 유대도 끊어졌다. '너희들이 남이기를 원했다면, 진정한 남이 되게 해주마.' 멋진 말이야. 너무 멋져서 지금도 감동할 지경이라니까. 정말이야. 젠장! 지금의 내가 이런 말을 한다면 틀림없이 모두들 비웃겠지만 아 무리 크나큰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그 영혼에 세세토록 남을 저주를 건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어. 그렇게 우리가 증오스러웠단 말인가? 단지 그 알량한 엘프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다는 이유로? 어느 누 구도 얼마나 사랑했는지, 어떤 마음으로 금기를 어겼는지, 그것은 물 어보지 않았어. 결국 나와 그녀는 따로 유폐되었어. 물이 차서 다리를 썩게 만드는 수옥 속에서 나는 오로지 나로 인해서 죄악에 빠진 그녀, 루크레시아 를 떠올렸어. 나로 인해서 망가진 그 인생. 그녀를 지켜야 해. 그러 나 나에겐 그럴 힘이 없었지. 감옥에 갖혀 있어도 소문은 다가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