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조각사 NO.15 1.드워프들의 선물 2.미발견 던전 3.길드라스의 이상한 책자 4.보여 주는 능력 5.순백의 미녀 6.노예 데이트 7.스미스의 궁금증 8.니폴하임 제국의 재건 9.지옥의 조각사 10.황소를 탄 조각사 11.통곡의 강에 세워진 조각품 ---------------------------- ▷드워프의 선물 "이제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위드가 쿠르소를 떠난다고 하자, 드워프들은 아쉬워했다. 퀘스트나 조각품으로 친해진 사이였기 때문이다. "정말 가야 되는가?" 헤르만이 안타까운 듯이 물었다. "이대로 쿠르소에서 계속 조각품을 만들어도 되지 않겠는가." 대장장이들은 쿠르소에 정착하면 다른 지역으로 잘 떠나지 않는다. 대장장이들을 위한 모든 시설과 재료들이 있 었으므로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는 것. 위드는 고개를 저었다. "저는 조각사입니다. 조각사는 넓은 세상을 여행하고 견문을 쌓지 않으면 어렵습니다. 쿠르소에서의 목적을 달성했으니 이제는 떠나야지요." 조각술의 비기 획득! 조각사 마스터가 어딘가 숨겨졌을 목조품은 찾지 못했지만, 스스로 조각술의 비기를 깨쳤으니 이것으로 되었다. 정령들을 창조하느라 300이 넘게 소모된 예술 스탯도 노가다 끝에 전부 복구한 뒤였다. 결국 드워프의 왕국 쿠르소에는 처절한 노가다의 기억만을 남겨 두고 떠나게 되었다. 물론, 호수에 숨겨져 있던 켈델레브의 물의 조각상등을 복원하였던 짜릿한 기억들도 있었지만. 헤르만이 씁쓸한듯이 이야기했다. "결국 떠날 모양이로군." "예. 죄송합니다." "그럼 드워프식의 환송식을 열어 줘야겠어." "꼭 그러실 필요까지는 없는데요." "쿠르소의 전통이네." 전통이라고 해도 위드는 부담스러워서 사양을 하려고했다. 그런 그의 마음을 짐작이라도 한 듯이 헤르만이 설명 했다. "쿠르소에 정착한 드워프들이 모두 나와서 함께 술을 마시고 즐기는 행사지. 대장장이 기술을 연마 하다 보면 밖으로 잘 나오지도 않는데, 모든 대장장이가 참석해서 환송식을 벌여 준다네. 그리고 떠나는 드워프에게 한 가지씩의 선물을 주지." "환송식을 꼭 해야겠군요." 선물이라는 말에 위드의 마음이 돌아섰다. 어쨌든 두둑하게 배도 채우고, 선물도 받아 가면 행복한 일이 될 테니까. 헤르만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아마도 이 드워프식의 환송식은 자네가 마지막이 될 것 같아." "예? 왜죠?" "자네가 복원한 조각품이 화제가 되어서 쿠르소에 오는 드워프들이 정말 많이 늘었거든. 그리고 자네만큼 전투 계열이나 장인 계열 모두와 친한 드워프도 없었으니 말일세." 장인들 사이의 경쟁 심리, 자기보다 더 뛰어난 장인에게는 심한 질투를 느낀다. 하지만 조각사의 경우에는 장인이 아니라서 경쟁자로 여기 지 않아 모두가 편하게 생각했다. 헤르만을 비롯한 쿠르소의 5대 장인들과 골고루 교분을 다질 수 있었던 것도 그러한 이유가 크게 차지했다. "마지막 환송식이 될지도 모를 이 행사를 성대하게 치러야지. 내 아는 드워프들에게 아껴 놓았던 물건들을 확실하게 내놓으라고 하겠네." "고맙습니다." "여행을 떠나는 드워프에게는 필요한 것이 많을 테니 이번 기회에 제대로 장만해보게나. 허허허." "하하하. 그러겠습니다." 위드가 유쾌하게 웃었다. 생일 선물처럼 언젠가 되돌려 주어야 될 것도 아니고, 떠나는 환송식에 받는 선물이란 기쁘게 챙기면 그만이다. 선물을 받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사를 해 주면 된다. 위드는 드워프들이 뜻밖에도 낭만적인 종족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저 조그맣고 고집불통인 종족인 줄로만 알았는데 괜찮은 전통도 있었군.' 위드가 조각품을 구상한다고 호수로 떠나자, 헤르만에게 핀이 물었다. "할아버지." "응?" "근데 환송식에 대해 말씀해 주지 않으신 게 있잖아요." "뭔데?" "술값요." 헤르만은 빙긋 웃을 뿐이었다. "말했다면 환송식을 하려고 하겠느냐?" "그야 그렇지만......" "즐겁게 환송식을 하려면 모르고 있는 편이 낫지. 우리 드워프들이 먹고 마셔 봐야 얼마나 나오겠느냐?" 헤르만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한 가지 사실을 알려 주지 않았을 뿐이다. 환송식 날 마시는 술값은, 떠나는 드워프가 내는 것이 관례라는 것을. "축하하네." "넓은 대륙으로 가서 드워프의 꿈을 마음껏 펼치게나. 건배!" "건배!" "위하여!" 쿠르소의 1,000여 명의 드워프들이 호숫가 옆 광장에 모여 맥주를 들이켰다. "캬아. 좋다." "이 맛이구나!" 호수에서는 물로 만들어진 오리 조각품이 수면에 파문을 일으키며 유유히 움직이고 있었다. 물 밑에서 대형 고 래 조각품이 튀어 오르고, 무지개는 두 발을 움직이면서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켄델레브의 조각상들이 보여 주는 동화 같은 풍경에, 지하 왕국에서 마시는 맥주! 드워프들은 통에서 맥주를 따라 마시기 바빴다. "쿠르소가 제일 좋은 이유에는 뭐니 뭐니 해도 맥주 맛을 빼놓을 수가 없지." "맥주 맛 때문이라도 나는 쿠르소를 떠나지 못할 것 같아." 기분 탓도 있겠지만, 쿠르소의 맥주 맛은 실제로 기가 막힐 정도다. 맥주 장인! 드워프들이 우러러볼 수밖에 없는 존재가 쿠르소에 있어서, 그가 만들어 준 맥주는 최상의 맛을 자랑한다. 맥주를 마시고 기분 좋게 취하는 것이야말로 드워프들의 행복. 드워프들은 맥주를 좋아하는 종족적인 특성도 가졌다. 맥주를 마시면 집중력이나 여러 스탯, 스킬 들이 향상된다. 고주망태가 되어 하루를 푹 쉬고 일어나면 그다음 날에는 최상의 상태가 되어 물건을 만들 수 있었다. 철을 두들길 때마다 일어나는 긍정적인 변화들을 보면 드워프로서의 보람을 느꼈다. "아트핸드, 이쪽으로 와!" "자, 여기도 한 잔 해야지." 위드는 자리를 옮겨 다니며 권하는 술을 마셔 주기 바빴다. 환송식의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그였으니 빠질 수가 없다. "그때의 퀘스트는 정말 대단했는데." "드워프들이 동굴에서 싸우는 전투법을 자네가 창조하지 않았던가." 전사나 워리어 들도 위드를 칭찬했다. 술을 마신 드워프가 곤란한 것은 예전에 했던 말을 하고 또 한다는 점! 자리마다 돌아다녀야 했으니 같은 말을 수없이 들어야 했지만 위드는 꿋꿋하게 참아 냈다. '공짜 선물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의 지루함쯤이야... 얼마든 견딜 수 있지.' 드워프들은 소검이나 가죽 배낭, 유혹의 먹이 같은 것을 선물로 주었다. 유혹의 먹이는 굉장히 좋은 향을 낼뿐더러, 몬스터들을 잠에 빠지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생명체의 몬스터들에게만 해당이 되고, 의심이 많은 몬스터들은 잘 먹지 않는 단점도 있다. 몸집이 큰 몬스터들 은 정말 많은 먹이를 먹어야만 효력이 생기고, 이 먹이 때문에 오히려 몬스터들이 모여드는 경우도 생긴다. 하지만 그런 단점들을 감안하더라도 효과가 큰 편이라서 비싼 가격에 판매되는 요리의 종류였다. 솜씨 있는 요리사가 훌륭한 재료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수량 자체가 많지 않았다. "이 먹이가 자네의 생명을 구해 줄 수 있었으면 좋겠군. 대륙에는 위험한 것들이 참 많으니 항상 조심하게. 그리고 드워프들이 많은 곳들만 다니도록 해." "잘 쓰겠습니다." "이 드워프야, 아트핸드가 초보도 아니고 굳이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있겠나. 아트핸드, 어디에 가 든 멋진 조각품을 많이 만들어 주게. 이 쿠르소도 자네 덕분에 참 살기 좋은 곳이 되었어. 물의 조각품들도 있고......" 훈훈한 분위기에서 위드는 선물들을 받아서 챙겼다. 그런데 덕담을 해 주던 드워프가 갑자기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자네가 데스핸드와의 승부에서 만들었던 날개 있지 않나. 그게 갑자기 어디로 갔지?" "......" "무척 신비로운 날개였는데 갑자기 사라져 버렸어. 그 날개가 어떻게 되었지?" 생명을 부여해서 따로 챙긴 빛의 날개에 대해 드워프들이 궁금해하는 것이었다. 위드는 대충 둘러대기로 했다. "빛으로 만든 것이지 않습니까? 촛불도 오래 켜 놓으면 어떻게 되죠?" "꺼지지." "그런 겁니다." "아! 그런 거였군." "난 또 뭐라고. 껄껄!" 맥주를 마시며 의문이 풀렸다는 듯이 환하게 웃는 드워프들! 술을 마신 드워프가 상대라서 얼버무리기 더욱 좋았다. 『-취기가 올라오고 있습니다.』 위드도 권하는 맥주를 받아 마시며 제법 거나하게 취했다. "아트핸드, 우리가 주는 술도 마셔야지!" "여기네, 여기!" 걸음걸이도 비틀거리는 정도였지만 위드는 걸어가서 맥주가 가득 담긴 잔을 받았다. "한 번에 쭈욱 마시게." 드워프들은 끊어서 마시는 걸 싫어하는 종족. 위드는 호쾌하게 한 번에 들이마셨다. "캬아!" "역시 사내로군, 자, 여기 안주도 닭 다리 하나 물게." 안주를 먹으면서 다니다 보니, 엑버린의 술까지 마시게 되었다. 5대 장인 중의 하나로, 쿠르소에 처음 오자마자 이름을 들었던 명창을 만든 장인이다. 위드의 환송식을 위한 자리에는 5대 장인들도 모두 나와 있었다. "아트핸드." "예, 어르신." "언젠가 난 꼭 드래곤도 잡을 수 있는 창을 만들고 말 거야. 끅." "어르신이라면 꼭 만드실 거라고 확신합니다." 취중에도 엑버린의 기분을 맞춰 주려고 노력했다. 이것이야말로 사회생활의 일부가 아니겠는가! "꺼억. 취한다. 아무튼 여기 자네를 위한 창을 하나 만들어 놨으니 가지고 가." 『-장인 엑버린이 만든 불렌서의 창을 획득하셨습니다.』 슬쩍 확인해 보니 공격력이 78이 넘는 굉장히 우수한 창이었따. "나 엑버린의 이름이 담긴 창이니, 아무에게나 주지 말게. 클클." "예. 그럼 한 잔 더 하시죠." "자, 따르게!" 위드는 엑버린과 세 잔을 마셔 주고 자리를 옮겼다. 다시 선물들을 충분히 거두는 동안, 쿠르소의 환송식은 완 연히 무르익었다. "마시게, 마셔!" "통째로 마셔 보자. 가장 드워프다움을 보여 주는 게야." "멧돼지 통구이, 어디 갔어! 요리사, 여기 멧돼지 통구이 5마리 더!" 드어프들이 왁자지껄 떠들고 있었다. 헤르만과 핀도 몇몇 드워프와 함께 맥주를 마시던 도중에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할아버지, 괜찮겠어요?" "그러게 말이다. 이렇게 많은 드워프들이 나올 줄은 나도 몰랐는데. 이것 참." "술값이 엄청 나오겠는데요." "적당히 마시고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으니, 최고의 환송식이 될 것 같긴 하구나. 이 드워프들이 죄다 할 일이 엇었던 거야. 아니면 위드가 어느새 이렇게 유명해졌던 거야?" 헤르만이 혀를 찰 정도로, 쿠르소의 드워프들 거의 전부가 이 환송식에 참여하였다. 마지막 환송식이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드워프들도 느끼고 있었고, 위드와 약간씩이라도 관계를 가진 드워프 들이 많았다. 최고의 조각사가 될지도 모르는 위드, 그와 인맥을 쌓고 싶어 나온 드워프들도 많다. 자정이 넘었는데도 환송식은 끝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위드는 5대 장인 중 파비오의 술잔도 받았다. 파비오는 40대 중반 정도의 나이에, 어깨가 넓고 눈매가 날카로웠다. 직접 만나는 것은 처음이라도 방송이나 동영상을 통해서 많이 접한 얼굴이었다. 가장 유명한 장인 드워프, 엄청난 재력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추측되며 대장장이 스킬도 뛰어난 드워프이다. "받게." "예, 감사합니다." 위드는 고주망태가 되기 일보 직전의 상황이었다. 『-취기가 심하게 올라오고 있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일시적으로 감소합니다.』 음주로 인해 현기증이 일어나고 손이 부들부들 떨렸지만 정신력으로 참아 냈다. '이 정도 술기운에 져서는 안 돼.' 검치에게 배웠던 정신 수련, 거기에 비한다면 이 정도 술은 견딜 수 있다. 위드는 억지로 바른 자세를 취히며, 손이 떨리는데도 한 방울의 술도 흘리지 않고 잔에 받아 냈다. 파비오의 눈빛이 더욱 깊어졌다. "딸아이로부터 이야기는 들었다. 퀘스트를 할 때 내가 호의로 내준 방어구를 거절하였다고." "......" "당돌한 녀석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위험천만한 퀘스트라서 실패할 것이라고 여겼는데 넌 보란 듯이 성공을 해냈다. 그리고 한동안 쿠르소에서는 네 이야기가 화제가 되었지." "과찬이십니다." "능력이 있다면 건방져도 괜찮다. 내가 맡긴 방어그들도 제법 훌륭하게 세공을 해 주었더군." 파비오가 맥주를 쭉 들이켜자, 위드도 따라서 마셨따. 2개의 맥주잔이 텅 비고. 둘은 서로의 잔을 채워 주었다. "넌 보통의 드워프가 아닌 것 같군." 파비오의 말에 위드는 시선을 들었다. 둘의 눈빛이 강하게 마주쳤다. 위드의 눈동자는 술기운으로 인해 붉게 충혈되어 있었지만 깊고 선명했다. "아까부터 네가 자리를 옮겨 다니며 술을 마시는 걸 지켜보았다. 보통의 드워프라면 그 정도 술을 마시고도 또렷한 정신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나도 드워프이니 잘 알고 있는 편이다." "제가 술이 좀 센 편입니다." "그럴까. 하지만 내가 보기에 넌 적어도 보통의 조각사는 아닌 것 같구나." 파비오의 눈빛이 더욱 강렬해졌다. 위드를 탐색하기 위한 눈빛이 아니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안목이 생기고, 기질이 강해진다. 인상에 따라서 첫 만남만으로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 어 떤 기질을 가지고 있는지 대략 짐작이 가능하다. 파비오의 기질은 투박하고 두꺼운 강철을 닮았다. 강하고, 잘 부러지지 않는다. 평범한 유저들은 파비오를 만나는 것만으로도 위축되었다. 하지만 위드는 조금도 위축되는 감이 없다. 강철을 다루고 사용하는 검의 길을 위드는 걷고 있었다. 진검을 제 몸처럼 다루며 끝없이 정진한다. 강철 같은 파비오의 느낌도, 위드 앞에서는 태풍 앞의 등불처럼 사그라졌다. 파비오는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나보다 강한 성격을 가졌다. 그리고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보다도 더 겁이 없는 놈이다.' 파비오는 상대가 조각사란 판단을 버리고, 그가 로열 로드를 하면서 직접 만나서 놀란 몇 안 되는 인물인 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로 했다. "선물로 받고 싶은 것을 말해라." 선물을 고를 수 있는 선택권도 주기로 했다. 그가 만든 대부분의 방어구들은 위드의 손을 거쳤다. 이미 알고 있을 테니 필요한 것을 고르라는 배려! '어느 정도의 배포를 가지고 있는지도 알 수 있을 터!' 파비오는 방어구를 만들지만, 결국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위드는 눈을 빛냈다. "철륜의 어깨 보호대를 주시지요." "철륜의 어깨 보호대? 그건 방어구임에도 공격적인 성향이 심한 물건인데... 아니, 그것을 떠나서 레벨 제한이나 직업 때문에 자네는 사용이 불가능할 터인데?" 파비오는 반문을 하던 도중에 스스로 답을 찾아낸 듯한 표정이었다. "아니. 사용할 수 있는 거군." "그렇습니다." "알았다. 주지." 파비오는 위드에 대한 평가를 달리했다. 대장장이 스킬이 상당한 그리고 레벨도 꽤 높은 유저이리라는 것을. '감히 그것을 달라고 하다니 배짱도 두둑한 놈이군. 염치도 없고. 괜히 뭐든 말하라고 했어.' 속으로 구시렁거리면서 욕도 제법 했다. 철륜의 어깨 보호대는 그가 만든 방어구들 중에서도 수위에 꼽히는 작 품이었기 때문이다. 위드는 선물들을 수거하면서 헤르만에게까지 이르렀따. 몸을 비틀거리면서 가누지 못했다. "많이 취했군." "아닙니다." "내 맥주도 받아 주겠는가." "얼마든지요." 위드는 맥주를 쭉 들이켰다. 그러자 헤르만은 한 쌍의 귀걸이를 꺼냈다. "마령의 귀걸이. 마나를 증폭시켜 주는 효과가 있는 물건이라네." 상급 액세서리로, 마나를 이용한 공격의 효과를 중대시켜주기 때문에 마법사뿐만 아니라 그 누구에게라도 무척 귀한 물건이다. 적어도 3만 골드는 하는 물건. "감사합니다." "아니야. 그보다 내가 묻고 싶은 것이 있는데......" 위드의 머리가 꾸벅 아래로 떨어지다가 정신이 든 듯이 번쩍 치켜들렸다. "무, 무엇이지요?" 평상시의 위드에게서는 볼 수 없는 늘어진 모습. 억지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는 것이 눈에 훤히 보였다. 헤르만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별로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닌데, 조각사의 사명에 대해서 어찌 생각하는가?" "사명요?" "나는 대장장이로서 어떤 사명을 가지고 있다네. 그 때문에 특별한 하나의 검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있는데 쉽지가 않아. 자네도 조각사인 이상 아마도 어떠한 사명을 가지고... 이런!" 헤르만은 말을 하던 도중에 혀를 찼다. 위드의 머리가 꾸벅꾸벅 숙여지더니 완전히 앞으로 고꾸라졌기 때문이다. "이보게!" "음냐." 위드는 깊은 잠에 빠진 듯이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헤르만이 주변을 둘러보니 드워프들은 여전히 거나하게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취해서 짧은 두 팔과 두 다리를 쫙 펴고 잠든 드워프들도 많이 보였다. '하기야 저 드워프들에게 한 잔씩 받아 마셨을 테니 말 다 한 셈이지.' 헤르만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핀, 좀 도와주겠나? 그쪽을 좀 잡아 줘." "네." "자, 옮기자." 그리고 핀과 함께 위드를 구석에 눕혀 놓았다. 술자리는 밤새도록 이어질 것 같았고, 헤르만에게도 술잔을 들고 찾아오는 드워프들이 많았으므로 대화에 푹 빠 졌다. 그러던 어느 순간, 옆을 돌아보니 무언가 허전했다. 취해서 쓰러져 잠들어 있던 위드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 "어라, 이 친구가 어디로 갔지?" 헤르만이 서둘러서 찾아보았다. "누구 아트핸드를 본 드워프 없는가?" 드워프 1명이 지상으로 향하는 출구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까 저곳으로 나가던데요." "이런!" 헤르만은 술긷운이 확 날아갔다. 그리고 급하게 위드에게 귓속말을 걸었다. @이보게! @...... @이보게! 몇 번을 부르고 나서야 위드의 대답이 전해져 왔다. @예, 헤르만 할아버지. @험험! 술은 깼는가? @아니요, 아직. 속이 울렁거려 죽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많이 마셨으니 힘들겠지. 그래, 언제 돌아오려고 하나. @시원한 바깥바람을 쐬러 지상으로 나가려고 하는데요. 위드는 대답을 하는 도중에도 탄광을 달려서 빠르게 빠져 나가고 있었다. 막대한 술값! 딱 눈치를 보아하니 드워프들은 술을 마시면서 돈을 낼 기미가 안 보였다. '이런 돈은 당사자가 내야 되기 마련이지.' 술을 마시면서도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 그리고 절묘한 시기를 이용한 도주! @이보게, 이대로 가 버리면 어떻게 하는가? @왜요. 환송식은 다 끝난 걸로 아는데요. @그게... 술값을 내야 하지 않나. @뭐라고요? 그 돈을 제가 내야 하는 것이었습니까? 위드는 기가 막힌다는 말투로 귓속말을 보냈다. 그리고 헤르만이 당황할 찰나. 다시 말을 전했다. @진작 말씀을 해 주지 그러셨어요. 그랬으면 술값을 내고 나왔을 텐데. @큼. 지금이라도 돌아와서 내고 가면 어떻겠는가. 술값이... 어디 보자, 3,500골드가 좀 넘는군. 맥주를 3,000골드 넘게 마시다니, 드워프들의 무지 막대한 주량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일. @장부가 한번 길을 떠났는데 어찌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일단 헤르만 할아버지가 지불을 해 주시지요. 다음에 제가 갚아 드 리면 되는 거죠. @그, 그럴까. @예. @그렇게 하면 되겠군. 알았네. 나중에 꼭 갚아 줘야 되네. @걱정 마십시오. 제가 누굽니까? 하하하! @하, 하하. 위드는 쿠르소 왕국을 나와서 퀘스트 보고를 위해 아이언 핸드 마을에 도착했다. 왕국을 나올 때에는 조각사로서 작품 1개를 의무적으로 바쳐야 했는데, 평소에 깎아서 갖고 다니던 앵무새 조각 품을 내주었다. 조각사 위드의 명성에 비한다면 정말 약소한 물건! 위드가 만든 조각품으로 쿠르소에 남겠지만, 그런 명예에는 관심이 없었다. "들었어? 부활의 군대가 드디어 페놈프 지역까지 점령했다더군." "허어. 정말 지독한 일이로군." "누가 그들을 막을 수 있을까? 이대로라면 베르사 대륙을 점령하는 것도 머지않았을 것 같아." 아이언핸드 마을에 있는 드워프들의 대화가 위드에게도 들렸다. 데이몬드가 이끄는 강성한 마물의 군단이 베르사 대륙을 위협하고 있었다. 일찍이 몬스터 떼의 침공이나 가뭄, 홍수 등의 피해도 있어 왔지만, 이번 데이몬드의 침공이야말로 베르사 대륙 에 가장 큰 파장을 미치고 있다. 드워프들이 속삭였다. "왕국들이 드디어 움직이기로 했다고 해." "연맹을 결성하여 부활의 군대를 저지하겠다더군." "자기들의 땅까지 넘어오려고 하니 안달이 난 거겠지." "데이몬드의 목에 60만 골드의 현상금까지 걸렸다니까 말 다한 셈이지." 다크 게이머 길드에서도 이 이야기로 화제였다. 60만 골드라면 굉장한 금액. 일확천금을 노리고 데이몬드의 암살을 추진할 만도 하다. 하지만 마물들의 이목을 속이고 잠입하기도 아렵고, 앞으로 데이몬드의 몸값이 더욱 오를 것이라고 예상하고 자 제하란 이야기들도 많이 나오는 중이었다. '어느 정도 안정적인 수입이 이어지기 위해서는 너무 급격한 혼란은 좋지 않은데......' 위드는 조각사 길드로 들어갔다. 대륙에 어떤 위기가 찾아오든 조각사 길드는 여전했다. "재료가 아깝군. 그런 식으로 깎는 게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나!" "자넨 드워프의 수치야, 수치!" 교관에게 갈굼당하면서 서럽게 조각술을 익히고 있는 드워프들! 그들은 문이 열리고 들어온 위드의 얼굴을 알아봤다. "그때 의뢰를 받아 갔던 드워프잖아." "켄델레브의 흔적을 찾아오라던 그 의뢰 말이야?" "아무도 해결하지 못하던 의뢰를 당당하게 받아 갔던 드워프지." "쯧쯧. 저 드워프도 결국 하다 하다 안 되니 포기하러 온 모양이로군." 드워프들은 내심 고소해했다. 위드가 의뢰를 받을 때만 하더라도 혹시나 하는 걱정을 했는데, 저렇게 먼지투성이로 힘없이 돌아온 것을 보니 실패했으리라 여겼다. 이미 켄델레브의 조각품이 발견되어 로열 로드에 동영상까지 유포되었지만, 아무래도 이들은 소식이 깜깜한 드 워프 같았다. 위드는 교관을 향해 걸어갔다. "퀘스트의 결과를 보고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조각술 교관 조르비드가 정중하게 물었다. "고생이 많았네. 우리 드워프 조각사의 전설은 사실이었는가?" "그렇습니다 드워프 종족에도 조각사는 있었고, 그의 조각품은 아름다웠습니다." "과연! 나는 그럴 것이라고 믿고 있었지. 내게 켄델레브의 흔적을 보여 줄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위드는 배낭을 열고 손을 넣었다. 배낭 안에 들어 있는 물건들을 뒤적거리다가 무언가를 잡았다. 그리고 두 손으로 감싼 채로 꺼냈다. "여기, 켄델레브의 조각품입니다." 위드가 두 손을 벌리자, 갇혀 있던 물로 된 새가 날아올랐다. 새가 맑은 물소리를 내면서 조각사 길드를 빙빙 돌았다. "아! 이것이 우리의 선조가 만들어 낸 조각품!" 조각술 교관 조르비드는 감격을 금치 못했다. 익살스러운 참새 모양을 하고 있는 조각품은, 드워프들 사이를 헤집고도 다녔다. 드워프들은 새로운 세상을 본 것같이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맥주를 벌컥벌컥 마실 때에도 이토록 크게 입을 벌 리지는 않았으리라. "이게 조각품이라니! 어떻게 이게 조각품이야?" "이건 정령이나 마법으로 만든 물건이잖아!" "조각품은 깎거나 만들어야 되는 건데, 이건 사기야." 한편으로 드워프들은 이 새로운 조각품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그들이 가진 고정관념으로는, 물로 된 새가 날아다니는데 그것이 조각품이라고 하는 것이 납득되지 않았던 것! 위드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생각으로는 평생 조각술을 대성하기 어려울걸.' 조각술은 입체적인 미술이다. 조각사가 만든 것이라면 그리고 눈으로 보이거나 공간을 지배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새로운 시도가 될 수 있다. '왜 꼭 나무나 돌을 깎아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군.' 위드는 조각술을 무시하던 얼마 전까지의 자신의 모습을 기억하지 못한 채, 근엄한 표정을 유지했다. 드워프 교관이 손을 잡았다. "고맙다. 이제 조각술에 대해 그 어떤 종족도 우리 드워프들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띠링! 『조각술 교관 조르비드의 부탁 완료 전설적인 드워프 조각사 켄델레브의 조각품들은 쿠르소에 있었다. 그의 조각품이 알려진 이후, 인간과 엘프는 현명한 장인이며 예술가인 드워프들을 더 이상 비난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 『-명성이 130 올랐습니다.』 『-조각사 길드에서의 평가치가 향상됩니다.』 『-종족 간 위신에서 드워프들에 대한 존경심이 3 증가하였습니다.』 『-토르 왕국 드워프들과의 우호도가 82가 되었습니다. 드워프들은 만들고 있던 곡괭이 정도는 내던지고 당신의 일을 도와줄 것입니다. 』 『-레벨이 오르셨습니다.』 『-레벨이 오르셨습니다.』 그리고 조각술 교관은 한 쌍의 검은색 장갑을 내밀었다. 사실 위드도 레벨이나 명성보다는 보상품을 더 크게 기대하고 있었다. '토르 왕국의 퀘스트가 좋은 이유지.' 엘프들은 퀘스트를 통해 주로 우호도나 정령과의 친화력이 증가한다. 인간의 경우에는 명성이나 보상, 혹은 특 별한 지위나 직업을 가질 수 있다. 드워프들, 특히 토르 왕국의 경우에는 퀘스트를 통해 좋은 아이템을 주었는데, 위드의 구미에는 꼭 맞았다. "여기 자네가 써 주었으면 하는 장갑이라네. 켄델레브 님은 아니지만, 매우 뛰어난 장인 드워프가 착용하던 장갑이야." "감사합니다." 『-의뢰에 대한 보상으로 아이템을 습득하셨습니다.』 검은색 광택이 은은하게 흐르는 장갑. "감정!" 『숙련된 제작자의 장갑:내구력 45/45. 방어력 13. 토르 왕국의 일곱 번째 대장장이, 스핀달이 직접 만들어 사용하던 장갑. 대장장이 일을 하면서도 모험을 하여 오크들을 때려잡는 데 조금의 불편함도 없도록,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만들었다. 대장장이용으로 제작되었지만 폭넓은 용도로 쓰일 수 있음. 제한:중급 손재주 이상. 레벨 150. 』 『옵션:착용 시 대장장이 스킬 +1. 조각술 스킬 +1. 손재주 스킬의 효과 +5%. 공격력 7% 증가. 원거리 무기 사용 시 연사 속도 향상.』 기대했던 대로 최상급 아이템이었다. 레벨 제한은 낮아도, 중급 손재주라면 아무나 착용할 수도 없는 물건. 조각술 교관이 이어서 말했다. "켄델레브 님의 흔적이 우리 토르 왕국의 어딘가에 더 남아 있을 것으로 믿네. 그 흔적을 더 찾아 보겠는가?" 띠링! 『켄델레브의 숨겨진 조각품들 재능 많은 드워프 조각사의 유물은 아직도 어딘가에 남아 있으리라고 추측되고 있다. 켄델레브가 토르 왕국에 남긴 조각품들을 추가로 찾아서 복원하라. 난이도:드워프 종족 조각사 퀘스트. 보상:드워프들의 영광. 퀘스트 제한:드워프, 조각사 한정. 』 아직 끝나지 않은 켄델레브의 퀘스트! 하지만 위드는 고개를 저었다. "저는 모험의 길을 떠나야 합니다. 드워프들의 위대함은 인간과 엘프에게 충분히 알렸을 테니, 다른 드워프에게 대신 맡기고 싶습니다." 위드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고, 조각품 찾기는 이것으로 그만두고 싶었다. 조각술 교관은 아쉬운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제 이 일은 자네가 아니더라도 다른 평범한 드워프들도 할 수 있겠지." 『-퀘스트를 거부하셨습니다. 조각술 교관 조르비드와의 친밀도가 약간 하락합니다.』 친밀도가 조금은 떨어졌지만 조각술 교관은 여전히 위드를 좋아했다. "자네처럼 훌륭한 조각사를 보게 되어 나에게도 영광이라네. 이제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동료들을 만나기 위하여 데일 왕국으로 가야 될 것 같습니다." "자네가 만드는 물건에 축복이 있기를. 언제든 다시 돌아와서 우리 아이언핸드 마을을 위한 조각 품을 만들어 주게." "제 발걸음이 닿는 곳에서 본 수많은 것들,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면 꼭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미발견 던전 안현도는 깨끗한 헝겊으로 검을 닦았다. 철의 가장 순수한 부분까지 제련을 해서 장인의 혼으로 완성시킨 명검. 대대로 유명한 검사들이 사용해 오며 검의 이름값은 더 커졌다. "인간이 검을 통해 하늘로 오를 수 있게 만든다는... 검이지." 안현도는 많은 명검들을 보유하고 있지만 비연검은 함부로 꺼내지 않았다. 큰 결심을 앞두었을 때에만 비연검을 닦으며 젊을 때의 각오를 되새겼다. "세상에 무서운 것이 없던 시절. 싸움에만 급급하여 나를 돌아보지 못했던 시절. 그때에 내게 과분한 비연검을 얻었다. 검의 날에는 의미가 없다고 하나, 결국은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 닫게 해 준 검이지." 안현도는 거울처럼 잘 닦인 비연검을 보았다. 관장실의 창문을 통해 비치는 푸른 하늘이, 검신에도 있었다. 구름이 떠가는 것과 햇빛이 눈이 부실 지경이다. "검술은 검을 사용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검도의 끝이 그저 강한 검술이라면 어찌 배울 가치가 있겠는가?" 사람을 키우는 검. 거친 황야의 잡초가 생명력이 왕성하듯이, 인간도 결국은 단련을 거쳐야 한다. 좁은 도장이 아닌, 넓은 세상에서 배울 필요가 있다. "진정한 공포와, 삶에 대한 욕구... 그리고 자기 자신을 검을 통해 배울 수 있을 터." 안현도는 검은 검집에 갈무리하고 관장실을 나갔다. "율민아." 도장에서 비서 일을 해 주는 그의 조가의 이름이 율민이었다. "네, 작은아버지." "막내 제자에게 검을 보는 법을 가르쳐 줄 때가 된 모양이다." "벌써 그렇게나 되었네요. 그럼 표를 두 장 예매해 놓을게요. 출발 일정은 언제쯤으로 잡을까요?" "지금은 학교를 다녀야 하니... 여름쯤이 괜찮겠구나." "준비가 모자란 듯한데... 너무 서두르는 게 아닐까요?"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더 큰 걸 얻을 수 있겠지." 검술은 누구든 익힐 수 있다. 남보다 빠른 검을 위해서는 반복적인 노력과 학습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런 빠른 검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승부에서 이기는 건 아니다. 더 무거운 검, 근력을 발달시킨다고 승부에서 이기는 것도 아니다. 검을 배우는 이유는 자신을 바로 보기 위함이었다. 안현도의 생각에 요즘의 젊은이들은 나약했다.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고, 취업 준비를 하고... 그렇게 십 몇 년을 보내다 보면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채로 사회에 뛰어들어 버리지." 사회에서도 자기를 돌아볼 기회는 없다. 직장에서, 가게에서 일을 하고 돈을 벌다 보면 소중한 시간들이 다 지나가 버린다. 시간은 절대 다시 되돌아오지 않는다. 시간을 거스를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것은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일. 검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진검 승부를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었다. 자신과 상대에 대한 관찰! 서로의 그릇을 비교하면서 더 높은 경지를 갈망하게 된다. 자신을 바로 보고, 발전에 대한 욕구를 가지고 검사 들은 싸웠다. "정말 강한 검. 왜 검을 배워야 되고, 진짜 검사가 무엇인지를... 여행을 통해 보여 줄 수 있겠지." 한국 대학교의 축제가 이 주일도 남지 않게 되면서 이현의 학교생활도 바빠졌다. "주점을 준비하는 인원. 우린 안주에 승부를 걸어야 하니 절대 소홀히 하지 마!" 주점에서 내놓을 안주를 위한 급성 요리사 과정! 이현은 요리에 대해서는 통달한 편이라서 따로 배울 필요가 없었지만, 다른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므로 쉴 틈이 없었다. "이현 오빠, 계란은 어떻게 깨요?" "수세미로 사과 닦아도 되는 거죠. 맞죠?" "그릇 씻을 때 퐁퐁 대신 세숫비누 쓰면 안 되나요?" 질문들이 나올 때마다 이현은 크게 탄식했다. 요즘에는 인스턴트 그리고 배달 음식이 너무 잘되어 있다. 공부만 하도록 길들여진 아이들은 대학교에 올 때까 지 밥도 한 번 지어 보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근데 밥은 누가 하기로 했어?" "밥은 쿠쿠가 하잖아요." "......" 이런 식의 대화들! 이현은 꾹 눌러 참으면서 학생들에게 요리의 기본을 가르쳤다. "계란 프라이를 할 때는 팬에 식용유부터 두르고 하는 거야. 식용유가 아니라 올리브유를 쓴다면 더 좋겠지." "사과는 껍질부터 깎고, 그다음에 자르면 편해. 파인애플은 과도로 썰지 마!" "바나나는 깎는 게 아니라 그냥 벗겨 내기만 하면......" 사실 학생들은 이현이 당황해서 설명하는 것을 즐기느라 아는 것도 일부러 물어보고 있었다. "근데 밀가루로 밥하면 안 돼요?" "찌개는 원래 이것저것 재료 넣고 라면 수프로 끓이는 거라던데......" 이현의 인내심이 바닥을 기었다. 그나마 요리를 빠르게 배우는 편이 서윤이었다. 부침개를 시커멓게 태우기는 했지만 요령을 알려 주니 다음 시 도에는 꽤 보기 좋게 부쳤다. 서윤은 젓가락으로 그녀가 부친 김치전 한 점을 이현에게 내밀었다. "먹어 보라고?" 이현이 불안한 듯이 물었을 때, 서윤도 비슷하게 불안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김치전을 향한 이현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재료, 밀가루, 김치, 김치국물, 계란, 파, 오징어 등 약간. 재료상으로는 이상이 없다.' 정상적인 재료를 사용해서 부친 김치전이다. '불그스름하게 잘 구워진 걸 보면 조리 과정에서도 특별한 문제는 없었을 텐데......' 의심들을 해결하고 나서야 서윤이 주는 김치전을 받아먹었다. 김치전이 입속에 들어가고, 가득 퍼지는 풍부한 김치의 아로마! '향긋하다. 역시 토종 김치의 맛이지. 동네 텃밭에서 기른 배추에 젓갈, 고춧가루 들이 잘 버무 려진... 그리고 전으로 재탄생하면서 일어나는 어울림, 조화! 잘 만들어진 김치전이다.' 김치전에 대한 평가는 금방 끝났지만, 이현의 입속은 불에 덴 것처럼 뜨거웠다. 방금 전까지 부치던 전을 바로 떼어 주었으니 뜨겁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역시 더 의심해 봐야 됐어.' 이현의 눈빛이 더 날카로워졌다. 살기가 폭사되는 눈빛! 그러면서도 맛에 대해서는 엄지손가락을 들어 주었다. "맛있어. 이대로 계속 만들어." "......" 대답은 없었지만, 서윤의 눈매가 조금이나마 웃고 있는 듯 했다. '웃을 줄도 알았나?' 너무 순간적으로 스쳐 가 버린 표정이었다. 하지만 짧은 찰나의 순간 보여 준 아름다움이야말로,처음 프레야 여신을 만들었을 때에 상상했던 그 미소이리라. 서윤은 과일 샐러드도 잘 만들었고, 그릇에 담아내는 솜씨도 일품이었다. 식품영양학과의 강의실을 빌려서 하는 조리 실습은 그렇게 끝이 나고, 주점 오픈에 대한 계획은 따로 했다. 남자 10명, 여자 7명이 주점을 위한 정원이었다. "천막 주점으로 해요. 비용도 그 편이 적게 들 테고요. 천막은 대형으로 5개 정도 마련하면 될거 같은데 어떠세요." 홍선예의 말에 남자들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축제가 하루에 끝나는 게 아니었으니 비가 오는 경우도 대비 해야 했다. "그럼 천막 5개. 설치는 축제 전날까지 끝낼 수 있겠죠?" 홍선예가 이현을 보았다. MT에서도 보았던 온갖 재료들을 이용한 건축 능력, 그 정도라면 천막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며. "충분히 가능하지." "근데 천막은 어디서 구할까요?" "대여해 주는 곳이 따로 있을 거야." "그럼 천막은 됐고......" 홍선예가 슥슥 도면을 그렸다. 주점을 설치할 장소와 천막의 크기 등을 즉석에서 도면으로 그려 구체화시킨 것이다. "테이블은 20개가 들어갈 것 같은데요." "그럼 의자는 100개 정도가 되겠군. 너무 많을까?" "손님들이 한꺼번에 몰릴 경우도 대비를 해야죠. 타 학교 학생이나 일반인도 정말 많이 오니까 손님들은 많이 모일거예요. 의자는 강의실에서 빌려 와도 되니 넉넉하게 맞춰 놔요." "축제 전날 오전에 천막과 테이블, 의자까지 세팅을 다 해 놔야겠군." "버너나 요리 재료들은......" "재료상에 주문을 하면 트럭으로 보내 줄 거야." 홍선예와 이현이 대화를 하면서 모든 작업들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남자들은 머릿수만 차지할 뿐, 실제로 주점 준비는 여학생들과 이현이 도맡아서 했다. "근데 우리 주점의 콘셉트는 뭐로 정하죠?" 홍선예가 모두에게 질문을 던졌다. 한국 대학교의 각 주점들은 자기들만의 콘셉트를 가지고 진행했다. 원활한 손님 유치를 위해 복장에서부터 차별 성을 두는 것은 필수였다. "클럽 분위기로 할까?" "여고생 분위기는 어때. 나 교복 아직도 가지고 있는데......" "교복은 나도 있어. 근데 살이 좀 쪄서......" 여학생들이 대화를 나눌 때마다 남학생들은 말이 없었다. 클럽에서 짧은 치마에, 맨어깨와 허리를 드러낸 옷을 입고 있는 서윤. 청순 무구한 여고생 복장을 하고 있는 서윤. '대박이다.' '대박이다.' '대박이다.' '대박이다.' ...... 남학생들이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었따. "무슨 콘셉트를 잡아야 될까." 여학생들의 가장 큰 고민이었다. 다른 학과 주점과의 자존심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라도 돋보이는 콘셉트를 짜야만 했다. "남자들은 일단 편한 복장으로 와요. 콘셉트는 여자들끼리 좀 더 고민하고 정해 볼게요." 여학생들의 말에 남학생들은 진지하게 대답했다. "그래. 훌륭한 콘셉트를 잡기 바라." "너무 심각하게 고민하지 말고, 좀 전에 얘기했던 것들도 아주 괜찮아." "아우. 축제가 오늘이었으면......" "......" 여학생들은 따로 모여서 토론을 했다. 클럽 걸, 여고생, 회사원 복장 등. 남자들을 흥분시킬 만한 콘셉트들이 우선 고려되었지만 모두 취소되었다. "우리가 남자들 눈요깃감이 될 순 없잖아!" 노출에 대해 부담스러워할 것이 뻔한 서윤의 입장도 고려 한 것이었다. "무슨 콘셉트를 잡아야 될까. 서빙을 하면서 사람들도 많이 보게 될 텐데 우아하면서도 고혹적인, 여성미를 살릴 수 있으면서도 절대 꿀리지 않는 거 어디 없을까?" "5월의 축제니까, 신부가 어때." "신부! 그거 괜찮다. 5월의 신부. 웨딩드레스에 면사포까지 쓴 학생 신부들이라면 발랄한 느낌이 날 것 같아." "나도 찬성!" "의견은 좋지만 드레스를 빌릴 곳이 있어?" "천이나 원단을 사서 직접 만들어 보는 거야. 패션 잡지를 보고 대충이라도 비슷하게 만들면 되지 않을까?" 여학생들은 의기투합했다. 여자를 가장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옷이 웨딩드레스라고 하지 않던가. 결혼하기 전에 먼저 웨딩드레스를 입어 볼 기회가 되기도 했다. "서윤 선배님, 선배님도 괜찮아요?" "......" 서윤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학교 과제를 위한 던전 탐험! 축제 전날까지는 탐험을 완료해야 하니 시간이 매우 촉박했다. "빨리 좀 오세요." "우린 다 모여 있었단 말이에요." 오전 수업을 마치고 조원들이 모여 있는 캡슐방으로 가자마자 원성들이 쏟아졌다. 하지만 이현에게도 변명거리는 있었다. "차가 심하게 막혔어." "거짓말. 걸어왔으면서." 조원들은 속지 않았다. "학교에서 걸어서 3분 거리인데 무슨 차를 타고 와요." "버스로 한 구간도 안 되어서 타면 더 돌아가 버리잖아요." 이현의 눈빛이 그윽하고 촉촉해졌다. 제피라는 닉네임을 쓰는 최지훈이 사형들에게 알려 준, 여자들을 달래는 비법을 사용하는 것. 이현은 손가락을 흔들며, 최대한 달콤하게 말했다. "이 앙큼한 사슴들... 지금 내 말 못 믿고 있는 거니?" "......" 순간 여학생들의 표정은 배 속의 무언가가 긴급하게 올라 오는 것 같았다. '아, 아기 때 마신 모유가......' 느글거림과 느끼함! 땅콩버터에 치즈를 섞어 라면을 끓여도 이 정도는 아닐 것이다. "아, 알았어요. 일단 어서 시작이나 해요." 요즘 이래저래 잦은 안면이 있는 홍선예가 이현의 편이 되어 주었다. 마음은 아침저녁으로 볼때기를 쥐어뜯는 삼촌을 둔 조카보다도 썩어 들어가겠지만 인내심을 발휘했다. "오빠." 캡슐에 들어가기 직전, 이유정이 말을 걸었다. "응?" "데일 왕국 근처에는 와 계시죠? 우리는 벌써 다 모여 있고, 탐험 연습도 많이 해 두었거드요." 이현은 문제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럼. 거의 다 도착했어." "네, 그러면 다행이에요. 먼저 접속해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빨리 오세요."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금방 갈게." 이현은 캡슐에 들어가서 센서들을 장착하며 생각했다. '빨리 출발해야겠군.' 쿠르소 왕국에서 만든 액세서리와 조각품 들을 상인들에게 처분하느라 아직도 네스트 왕국의 헤롬 성에 머무르 고 있었다. 데일 왕국의 네칸 성까지는 말을 타고도 닷새가 넘는 거리가 떨어져 있었던 것. '한국 표현으로 거의 다 왔어. 이제 금방이야는 아직도 꽤 걸린다는 뜻이니까, 늦어도 이해해 주겠지.' 헤롬 성! 왕국 간 접경지대에 위치하며, 중계무역을 하는 상인들로 붐비는 성이다. 세워 놓은 마차들과 물품들을 구매하는 유저들로 인하여 새벽의 시장 바닥을 연상시킬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흥정을 하며 값을 후려치는 유저들과, 한 푼도 깎아 주지 않으려는 상인들의 치열한 기 싸움도 벌어지고 있다. "아니, 아무리 돈만 밝히는 상인이라지만 이럴 수가 있소? 고생 끝에 탄생시킨 내 자식 같은 세공품을 어떻게 그 가격에 살 수 있단 말이오?" "그게 어르신. 일단 고정하고 설명을 들어 보시지요. 현재 보석 세공품들의 시세가......" "시세라니! 내가 만든 세공품이 어떻단 말이오? 어디 조그만 흠집이라도 있소? 아니면 이 루비의 질이 떨어지기라도 한단 말인가?" 작은 드워프가 길길이 날뛰고 있었다. 당연히 그의 정체는 위드! 초보 상인들에게 완고한 드워프가 되어서 가격을 후려 올리고 있었다. 보석 세공품 외에 액세서리와 조각품, 드워프들의 선물들도 판매했다. 사실 환송식에서 받은 선물들을 팔 때는 양심의 가책이 조금은 느껴졌다. '그래도 요즘 시대가 바뀌었지. 필요하지 않은 선물은 상품권을 받았다고 생각하면 돼.' 선물은 마음! 마음을 받았으니 족한 것이 아니겠냐면서 마음껏 바가지를 씌워서 판매하는 중이었다. 드워프가 판매하는 물건이라 신용도도 높고 품질도 좋았지만, 높은 가격을 고집하는 탓에 거래가 금방 이루어지 진 않고 있었다. "어휴, 언제 오는 거야." "너무 늦어지는데... 그냥 포기하고 우리끼리 가 버릴까?" "안 돼. 조원 중에서 1명이라도 빠지면 점수를 못 받는단 말이야." 네칸 성 인근의 고목 아래에서 일단의 무리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검사 둘과 도둑, 인챈터, 원소술사, 레인저로 이루어진 파티! 헤겔이 번쩍번쩍 광이 나도록 닦은 방패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늦어지는군. 모처럼 쿠드람의 방패를 꺼내 왔는데 말이야." 쿠드람의 방패. 몸 전체를 가릴 수 있는 카이트 쉴드로 방어력이 70이 넘으며, 묵직한 무게로 돌격을 저지시키는 효과가 있다. 흑사자 길드원인 최상준이 형에게 애원해서 갑옷과 방패 등을 빌려 왔던 것이다. 인챈터 라미가 방패를 보며 호기심에 찬 얼굴을 했다. "상준아, 아니 헤겔, 그 방패는 누가 인챈트해 준 거야?" "하벤 왕국 최고의 마법 부여자, 페리에 님이 해 줬지. 그 분이 흑사자 길드의 인챈터거든." "아, 그 유명한 사람이......" 파티원들의 시선이 쿠드람의 방패로 향했다. 네칸 성안에서도 뛰어난 장비를 갖춘 헤겔에게 이목이 집중되었다. 베르사 대륙에서 일반적으로 장비란 그 사람의 무력을 드러내는 수단이 된다. 검사의 공격력은 파티 전체를 수 호하는 힘이 되기도 하고, 적들을 분쇄하는 원천이기도 하다. 뛰어난 검사를 보며 부러워하는 것은 당연했다. "좋겠다, 헤겔." "진짜 부러운 장비네. 갑옷도 보통 물건 아니지?" "너희는 말해도 모를걸, 스네이크의 밴티스 갑옷 세트니까. 부츠와 어깨 보호대, 투구까지 세트 아이템이야." "밴티스 갑옷에 대해서는 들어 본 적 없는데." "당연하지, 유명한 물건은 아니지만, 아니! 너무 희귀해서 아는 사람들만 쓰는 갑옷이라서 더 알 려지지 않았지. 하지만 그 성능은 노르만의 무구들보다 뛰어난 편이야." "노르만의 무구보다도 좋아?"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지." 헤겔이 장비를 자랑하고 있을 때, 원소술사 셀시아가 눈을 빛냈다. "그런 장비라면 굳이 기다릴 필요 없잖아." "응?" "사냥은 어차피 네가 거의 다 할 거 아니야? 그럼 우리끼리 가자." "하지만 형이 안 오면 성적을 제대로 못 받을 텐데......" "우리끼리 먼저 가서 탐험을 하고 있고, 나중에 합류하면 되지 않겠어?" "그럴까?" 헤겔은 솔깃한 표정이었다. 그도 형에게 빌려 온 장비들을 빨리 사용해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검사 벨라도 입을 열었다. "어차피 조각사가 탐험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잖아. 그러니까 초반에는 없더라도 크게 눈에 띄진 않을 거야." 벨라마저 찬성을 하자 헤겔은 마음을 정했다. "좋아. 그럼 우리끼리 가자." "그런데 탐험할 던전은 어디로 정했어?" 던전에 대한 정보들을 수집하고 결정한 것은 헤겔과 나이드였다. 질문에 대한 답은 나이드가 했다. "멀지 않은 곳이야. 프레인의 붉은 영토를 지나면 말라붙은 나무들의 숲이 나오는데, 입구가 거기에 있어." "유명한 던전이야?" "아니, 발견한 사람이 우리뿐일걸." "정말?" 헤겔이 어깨를 활짝 폈다. "그럼. 나와 나이드가 왕국 도서관의 책자들을 조사해서 찾아낸 장소란 말이지. 물론 책자를 발견한 것은 나이드이긴 했지만." "아직 열린 적이 없는 던전이란 뜻이야?" "아마도 우리가 처음일걸." 미공개 던전을 발견하게 되면 명성이 오를뿐더러, 2배의 경험치를 받게 된다. "함정이 있더라도 나이드가 해체하면 되고, 전투는 내가 담당하면 돼." 인챈터 르미는 미공개 던전 탐험이란 말에 걱정이 되는 기색이었다. "위드 오빠는? 미공개 던전이라면 기다려서 같이 가야 되는 거 아니야?" "그럴 필요가 있을까? 던전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는 책자를 이 고목나무에 숨겨 두고 가면 되지. 책자를 보고 대충 던전의 입구 근처까지 찾아오라고 하자." "전투를 못하니까 못 올 수도 있잖아." "그 정도는 아닐 거야. 그럼 토르 왕국까지 여행도 갈 수 없었겠지. 그럼 어서 가자." 헤겔은 땅을 파고 책을 숨겨 두었다. 『-길드라스의 이상한 이야기 책자를 버리셨습니다.』 간단한 보급 등의 준비를 마치고, 그들은 프레인의 붉은 영토로 떠났다. 헤롬 성에서 물품들을 매각하여 3만 5천 골드나 번 자린고비 위드! "데일 왕국으로 떠나는 마차는 하루 뒤에 출발하네." "여행 비용은요?" "7골드네." 운송 마차를 타고 가려고 했지만, 기다려야 될뿐더러 가격도 비쌌다. '안 되겠군.' 위드는 헤롬 성을 나와서 인적이 드문 숲으로 들어갔다. 다람쥐처럼 작은 날짐승들이 사는 초보자의 숲! 찍찍. 도토리를 주워 먹고 있던 다람쥐들이 위드의 근처에 모였다. 근처라고 해도 인근의 나뭇가지 위에서 내려올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인간이라면 가까이 다가오지도 않았으리라. 속성상 살육을 즐기지는 않는 드워프였기에 이 정도만큼이나 다가온 것 이었다. 엘프였더라면 와서 얼굴을 비벼 주었을지도 모른다. 자연의 생명체들과의 친화력을 가지고 있는 엘프들은 어디 에서나 환영받는 존재니까. 그때였다. 가만히 서 있던 위드의 망토가 펄럭이더니 광채가 일어났다. 등에서 빛의 날개가 활짝 펼쳐진 것이다. 쌓여 있던 나뭇잎들이 휩쓸려 허공에 떠오르고, 밝은 빛에 다람쥐들이 눈을 가렸다. 위드는 숲에서 날개를 펼치고 솟아올랐다. 헤롬 성 인근을 도도하게 흐르는 베로나 강이 실개천처럼 보였다. 물품들을 판매할 때는 그렇게 북적대던 헤롬 성의 거리가 지금은 깨알처럼 작았다. 하늘을 나는 드워프라니, 전대미문의 일이었다. "빛날아, 가자!" 빛의 날개가 우아하게 펄럭였다. 미처 몸을 만들어 주지 않아, 다른 이의 육체에 기생하여서밖에 살 수 없는 빛의 날개. 날개를 본격적으로 펼치자마자 너무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균형을 잡기도 전에 탄환처럼 쏘아져 나갔다. 순간 이동이라고 표현해도 될 정도로 굉장한 가속! 『-하늘을 날고 있습니다. 빛의 날개가 낼 수 있는 최대 속도의 26%. 드워프 종족 특성으로 인하여 심한 어지러움증이 생길 수 있습니다.』 말이나 마차도 잘 타지 못하는 드워프의 습성! 하늘을 날고 있었으니 그 드워프 종족의 패널티가 여지없이 작용했다. 맥주를 마시고 고주망태가 되었을 때처럼 현기증이 심해졌다. 위드는 이 방법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을 알았다. 조각 변신술을 해제하면 된다! 하지만 위드는 아직 드워프의 몸이 마음에 들었다. 체력이 좋고, 손재주 등에 추가적인 효과가 부여되었으니 아 직까지는 해제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대충 참으면 되겠지." 위드는 천사처럼 빛의 날개를 팔락이며 서남쪽 방향을 잡고 빙글빙글 날았다. 산이나 구릉이나, 모두 높은 하늘에서 그대로 스쳐 지나가 버렸다. 가끔 절벽이나 산봉우리를 향해서 위태롭게 접근할 때도 있었다. 어지럼증, 멀미 비행으로 인한 위기! 몸에 부딪치려고 하는 독수리들을 피하기 위해 경로를 수정해야 될 정도로 압도적으로 빠른 비행이었다. 헤겔 일행은 붉은 모래의 땅을 지나서 나무들이 죽어 있는 숲을 지났다. 잎사귀 하나 없는 으스스한 느낌의 숲. 금세라도 귀신이 나와도 이상할 것 없는 숲이었다. 베르사 대륙을 돌아다녀 본 경험이 많은 도둑 나이드가 말했다. "여기는 밤에 돌아다니면 안 돼. 밤이 되면 아주 가끔씩이지만 험악한 그롤러들이 나타나서 숲을 헤집고 다니거든." 그 말에 르미가 무섭다는 표정을 지었다. 숲 사이를 헤치며 튀어나온 그롤러들이 그녀를 향해 도끼나 죽창을 내 지르는 것은 상상만 해도 두려웠던 것이다. "마주치면 도망도 못 가겠네?" "응. 밤에 그롤러들을 마주치면 목숨을 내놓는 수밖에 없지." 던전은 나무들 사이를 한참 헤매고 난 후에야 발견할 수 있었다. 입구는 흙과 돌로 가려져 있고, 동물들의 뼈들 이 함께 묻혔다. "들어가자." 헤겔이 먼저 입구로 들어가자, 잠시 머뭇거리던 다른 일행도 따라 들어갔다. ▷길드라스의 이상한 책자 한국 대학교의 총학생회에서는 축제 준비로 여념이 없었다. 학과별로 개최할 행사장 위치를 잡아 주고, 잔준비를 도와 준다. 문화제까지 동시에 개최하고, 지역 주민들을 위한 이벤트도 있었다. 무대 설치에, 가수 섭외까지 도맡아 하면서 활동적으로 움직였다. "근데 진행자는 누구를 섭외하지?" "유재돌 어때?" 진행을 위해 태어났다는 평가를 받는 MC 유재돌. 수다를 떨면 그칠 줄을 모른다. 착한 성품에 배려심도 많아서 국민 MC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 사람에게 연락을 해 봤는데, 무조건 도전을 찍느라 스케줄이 안 나온대요." "그럼 강호은에게는 연락해 봤어? 작년에도 우리 학교 축제에서 진행을 해 줬잖아." 레슬링 선수 출신 강호은! 집채만 한 체구를 가지고 있지만 때로는 순박함으로, 때로는 카리스마로 프로그램을 이끌어 간다. 큰형 같은 넉넉함과 힘과 열정이 있는 MC였다. "그 사람은 3박 4일 여행을 가서요. 이번에 참석하지 못해서 아주 아쉽다던데요." "이런... 그럼 누구를 섭외하지?" 한국 대학교의 축제에는 연극과 뮤지컬, 연주회, 콘서트들이 함께 진행된다. 공부에 지친 학생들에게 활력과 대학 문화를 만끽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지역 주민들을 위한 잔치였으니 소홀할 수 없었다. 결국 딱히 적임자를 찾지 못한 메인 쇼의 진행자는 영원한 2인자, 거성 박민수에게 돌아가기로 정해졌다. 정효린의 손가락이 피아노 건반 위에서 흐르듯이 움직이고 있었다. 맑고 서정적인 멜로디. 직접 작곡해서 새 앨범에 넣기 위한 준비 중이었다. "노래가 느낌이 참 좋은데... 가사는 어떻게 정할 거야? 유명한 작사가를 섭외해 볼까? 저번에 같이 작업했던 김태환 선생님이 같이하고 싶어 하시던데." 연습실에서 매니저가 물었을 때, 정효린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제가 직접 쓸래요." "그럴래? 효린 씨라면 작사에도 소질이 있으니까... 훌륭한 곡이 나올 거야." 정효린은 정작 어떤 느낌의 작사를 할지 마음을 정하지는 못한 상태였다. '내가 부르고 싶은 곡을 작사할 거야.' 노래가 쉽게 만들어지진 않을 것 같았다. 새 앨범을 발매하고 무대를 가지려면 시간이 한참이나 남았으니, 후회가 남지 않도록 곡을 써 보려고 했다. 피아노를 연주하던 정효린이 고개를 들었다. "매니저 오빠, 사흘 뒤부터 제 스케줄 비워 놓았죠?" "효린 씨 부탁대로 처리는 해 놨는데, 무슨 일이라도 있어?" "개인적인 사생활인데요." 사생활로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던 정효린이라 매니저는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행선지를 묻지 않을 수는 없었 다. "어딜 가려고 하는데?" "한국 대학교요. 제가 아는 사람이 그곳 학생이거든요. 친구들과 함께 가 보려고 해요." 『던전 크라마도의 최초 발견자가 되셨습니다! 혜택:명성 230 증가. 일주일간 경험치, 아이템 드랍률 2배. 첫 번째 사냥에서 해당 몬스터에게 나올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좋은 물건 아이템이 떨어집니다. 』 "아싸!" "진짜 첫 발견이다. 이 올라가는 명성 좀 봐." 던전에 들어온 파티원들이 기쁨의 환호성을 내질렀다. "이것으로 과제는 성공적으로 수행한 거네." "그래. 미공개 던전을 발견한 조는 아마 우리밖에 없을 거야." 검사 벨라가 자신 있게 말했다. 거의 안전한 사냥터들을 위주로 해 왔더니 이러한 모험이 즐겁기만 했다. 다른 조들이라고 해도, 이번 과제에 맞춰서 던전을 처음 발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나이드, 수고했어." "학점 잘 받으면 밥 살게." 나이드는 현실에서의 모습처럼, 칭찬을 받는 게 겸연쩍은 듯이 얼굴을 붉혔다. "아니야. 어쩌다 보니 운이 좋았던 것뿐이야." 헤겔도 격려를 한다면서 나이드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고생 많았다." "아니야, 우리가 같이한 거잖아." 새로운 던전 발견은 아이템이나 경험치를 얻기 위한 훌륭한 기회가 된다. 헤겔은 검을 뽑았다. "그럼 모두 전투준비!" 대상은 던전의 안쪽에서 기어 다니는 흰 도마뱀을 닮은 모스터들이었다. "쉴드 차지! 모조리 밀어붙인다앗!" 헤겔이 왼손에 쿠드람의 방패를 들고 몬스터를 향해 돌격 했다. 검사의 장점은 최상의 공격력. 쌍검술, 대검술 등으로 공격을 극대화하여 어떤 근접 전투 직업보다도 큰 피해를 줄 수 있다. "흔들려라. 뜨거워져라. 무너져라!" "트리플 소드!" "금속 강화, 화염의 축복!" 원소술사 셀시아, 검사 벨라, 인챈터 르미도 전투가 벌어지니 자기들의 몫을 다했다. 인챈터들은 물건에 특유의 힘을 영속적으로 부여할 수 있는 존재다. 사람에 적용하는 강화 마법의 효율은 성직 자나 샤먼보다 못해도, 일시적으로 병장기의 힘은 몇 배나 이끌어 낼 수 있었다. 방패 돌격을 당한 크라마노임들은 부상을 입고 여기저기 밀려나거나 뒤집어졌다. 그런 상황에서 원소술사나 검사 들의 공격을 당하니 힘없이 회색빛으로 변했다. 도둑 나이드가 은신술을 펼친 채로 크라마노임에게 접근했다. "생물 정보 확인!" 도둑이나 정찰자, 암살자, 모험가 들이 사용할 수 있는 직업 스킬. 상대방의 상세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기술이었다. 도둑 나이드가 확인한 크라마노임들에 대한 정보는 파티원들에게 공유되었다. 띠링! 『몬스터 이름:어린 크라마노임 레벨:234 오래된 던전에서 서식하는 몬스터. 매우 긴 세월 동안 던전 안에서만 지내 왔다. 시력이 퇴화되어 눈이 거의 보이지 않음. 땅의 울림이나 소리로 적들을 파악하며, 육식을 즐긴다. 4개의 발을 이용해 신속하게 기어 다닐 수 있으며, 주둥이에서는 약한 마비 독을 토해 낸다. 』 크라마노임에 대한 설명뿐만 아니라 약점으로 목 부분이 푸르스름하게 빛을 냈다. 치명적인 공격을 성공시킬 수 있는 부위들! 헤겔의 거센 공격과 벨라, 셀시아의 합공에 의해 크라마노임들이 무기력하게 회색빛으로 변했다. 지하 1층의 몬스터들은 3시간 정도의 전투로 깨끗하게 청소할 수 있었다. 인챈터 르미와 벨라의 레벨이 1개씩 오르고, 떨어진 아이템들도 상당했다. 경험치 2배 덕분에 셀시아조차도 흡족해하는 모습이었다. "최고다." "정말 좋은 던전이야. 우리 이번 과제. A는 문제없겠어." 위드가 데일 왕국에 도착했을 때에는 날이 저문 뒤였다. "고목나무라... 이 근처인가?" 짙은 갈색 흙으로 땅을 헤집은 흔적이 있는 장소에서 책자를 찾아냈다. 길드라스의 이상한 이야기 책자. 위드는 책을 읽어 보았다. 나 유쾌한 방랑자 길드라스는 어제 도르네 마을에서 새로운 처자를 사귀었다. 농사꾼의 딸인 그녀는 건강미가 넘치고... 아무튼 풍차의 밤은 무척이나 아늑했으며 분위기가 좋았다. 다음 날 도르네 마을을 나와서 어딘가로 걸었는데 나는 방향을 찾을 수 없었따. 나처럼 신발이 닳도록 돌아다닌 여행자가 방향을 잃어버리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여기에는 나무들이 수분이 빨린 채로 말라붙어 있고, 돌이켜 보니 붉은 땅을 지나온 것도 같다. 과거에는 어떤 무서운 일이 벌어졌던 걸까? 하지만 이 고목나무들은 인간에게는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 것 같다. 나 같은 여행자도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으니 말이다. 하. 하. 하. 길을 잃고 해매던 와중에, 어딘가로 향하는 입구를 보았다. 나무들 사이에 꽤나 잘 숨겨져 있었던 모양이지만 내 눈썰미를 피할 수는 없다. 굳이 그 안으로 들어가 보진 않았다. 난 마을부터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맙소사. 대체 왜 난 만날 마을은 찾지 못하면서 이런 위험한 곳들은 잘도 발견하는 것일까? 어서 빨리 사냥꾼의 숙소라도 찾아가고 싶다. 그곳에도 건강미가 넘치는 아가씨가 있으면 좋을 텐데...... 길드라스라는 여행자가 베르사 대륙을 떠돌았던 여행기의 일부였다. 음유시인들이 좋아할 이런 이야기들은 베르사 대륙에 정말 많이 돌아다닌다. 심지어는 술집에서 1시간만 죽치 고 있어도 서너 번은 들을 수 있다! 나이드는 그런 정보들을 모아서 던전을 찾아낸 것이다. 길드라스의 이상한 이야기 책자는 8개의 장으로 나뉘어 있었다. 고향을 떠나며 소꿉친구와의 뜨거운 밤 농사꾼 딸과 보냈던 풍차 속 하룻밤 동쪽 해안가에서 인어와의 흥분되었던 밤 여행 마차 안에서의 짧았던 밤 번영했던 흔적이 있는 도시의 아래에서 신기루 같은 여인과의 밤 노예 상인에게 잡혀서, 노예 수인족과의 짜릿한 밤 바바리안의 부락에서 체력의 한계를 느꼈던 밤 베르사 대륙의 모든 곳을 떠돌고 나서, 다시 소꿉친구와의 정겨운 밤 각 장들은 기독성이 가장 높을 것 같은 제목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더군다나 표지의 밑부분에는 붉은색으로 선명하게 쓰여있다. 미성년자 구독 불가! 헤겔과 나이드 들은 각자 배낭에서 빵과 과일을 꺼내어 식사를 했다. "정말 맛없다." "그래도 많이들 먹어. 체력을 아껴 놔야 하니까 말이지." "이 던전은 어디까지 이어져 있을까?" 파티원들이 헤겔과 나이드에게 시선을 주었지만, 그들도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따. "던전 안에 들어온 이상 끝에 뭐가 있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어." "나도... 도둑으로서 꽤 여러 던전을 탐험해 본 편이기는 하지만 미리 예상은 불가능해. 미안." 르미가 물었다. "그럼 보통의 던전들은 지하 몇 층까지 있는 건데?" "알 수 없어. 일반적으로는 지하 2층이나 3층. 이런 식으로 구분을 하지만 정확한 것은 아니거든. 심한 경우에는 지하 12층까지 있는 던전도 본 적이 있어." "그렇게 깊은 던전이 있어?" "지하 던전에서는 구분하기가 애매하거든. 계단을 통해서 정확하게 한 층씩 밑으로 내려가는 경우도 있지만, 갈수록 점차 지하로 연결되어 있는 던전의 경우에는 몬스터의 수준이 달라지거나 분위기가 달라졌을 때에 층을 구분하기도 해." "그럼 던전 탐험을 하다가 죽을 수도 있는 거겠네?" "가능은 하지." 헤겔은 르미와 나이드의 대화를 듣다가 이를 드러내며 씩 웃었다. "하지만 이런 정도의 몬스터들이라면 내가 죽을 일은 없을걸." 헤겔은 스스로의 방어구에 대해 큰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탁월한 세공 기술이 아니라면 만들 수 없는 물건으로, 수준 낮은 대장장이들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방어구였다. 공격에 치중하느라 약간 부족해지는 검사의 방어력을 보완해 줄 수 있는 작품! 제대로 만들어진 밴티스 갑옷 세트는 한 벌의 가격이 5만 골드를 넘어선다. 무게는 무겁지만, 보통 갑옷의 방어력을 5배, 6배 초과한다. 어지간한 공격력으로는 죽지도 않는다는 뜻. 웬만한 화살이나 검 들은 튕겨 내 버릴 정도의 방어력! 검사들의 꿈이라고 할 수 있는 게 풀 플레이트 아머이다. 헤겔이 착용한 갑옷은 마법 저항력까지 갖춘 상등급의 물건이었다. 세공이나 장식, 문양도 예술품이라고 불러도 부족함이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완벽에 가까운 최상품! 내구력도 거의 떨어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검사들이 사용하기에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물건이다. 지하 2층에는 성년 크라마노임들이 출현했다. 그런데 몸집만 조금 커졌을 뿐. 실제 공격력은 비슷했다. 성장을 해도 발전이 없는 몬스터! 다만 내뱉는 마비 독의 분량이 훨씬 많아져서, 성직자가 없는 파티로서는 고역이 아닐 수 없었다. "제기랄." 헤겔이 역겨운 마비 침을 뒤집어썼다. 누런 침을 맞으면서 싸우려니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다. 검사 벨라는 약해서, 성년 크라마노임에 의해 마비되면 금세 죽을 수밖에 없다. 다른 동료들은 근접 전투 계열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니 헤겔이 나서서 몸빵 역할을 맡는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왜 이런 더러운 몬스터들이 등장하는 거야." 헤겔의 갑옷과 방패가 침으로 뒤덮였다. 장비가 더러워지는 것은 물론이고, 역한 냄새까지 올라왔다. 마법과 독 저항력이 뛰어난 액세서리들을 착용하고 있기에 여전히 활기차게 몸을 움직이고 있었지, 다른 이들 이라면 전투력을 상실했을 것이다. "멀티플 샷!" 트위터는 화살을 소나기처럼 쏘아 댔고, 다른 이들도 마나가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공격을 퍼부었다. 도둑 나이드는 현란한 스텝을 밟으면서 크라마노임들을 유인하고, 뒤치기를 가했다. 도둑다운 재빠른 움직임으 로 그가 시선을 끌어 주지 않았더라면 크라마노임들은 다른 파티원들에게 달려갔을 것이다. 그럼에도 헤겔은 빠져나올 구석이 없이 크라마노임들에게 둘러싸였다. "젠장. 이런 곳에서 선보이고 싶지 않았는데......" 헤겔이 다른 일행의 눈치를 살짝 보더니, 사용하던 장검을 검집에 넣고 둔중한 메이스를 꺼내 쥐었다. 일반적으로 메이스는 굉장히 강한 타격력을 가진 무기이다. 검사들은 검을 전문적으로 익히지만, 동시에 창술과 둔기류의 무기 스킬도 별도로 습득한다. 기사들과의 싸움에 서는 갑옷의 방어력이 너무 대단한 탓에, 끝을 뾰족하게 세운 창이나 둔기류의 무기가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파열의 메이스! 현금 거래 시세 680만 원짜리 무기였다. 옵션으로는 맹렬한 진동을 퍼트릴 수 있으며, 방패로 막아도 파괴력이 고스란히 전달되어서 힘으로 밀어 칠 수 있다. 물론 그만큼 짧고 무거워서 다루기는 어렵지만, 생명력이 질겨 잘 죽지 않는 몬스터를 상대로 할 때에는 최고 의 방법이었다. "차압!" 무기를 바꾸어 들자 헤겔의 몸에서 강한 위압감이 뿜어져 나왔다. 메이스 자체의 특성인지, 투지가 향상되고 몬 스터들을 위축시켰다. 헤겔은 크라마노임들의 움직임이 둔해진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어스 웨이브!" 헤겔이 메이스로 땅을 강하게 후려치자, 대지가 우르르 떨렸다. 반경 7미터 안에 있는 크라마노임들의 몸이 충격파로 인해 회색빛으로 변했다. 레벨 300이 넘는 검사가 무리해서 발휘한 광역 스킬, 그 타격력! "섬광의 투혼!" 포위망을 돌파한 헤겔은 양 떼를 도륙하는 것처럼 날뛰면서 크라마노임들을 사냥했다. 다른 동료들의 도움도 있었지만 가장 많은 몬스터를 사냥한 주역이었다. 헤겔은 그걸로도 만족하지 못한 것 같았다. "젠장. 어스 웨이브의 스킬 숙련도가 조금만 더 높았더라도 한 번에 절반 정도는 전투 불가로 만들어 놓았을 텐데......" 부족한 스킬 숙련도로도 벨라나 르미 들을 얼어붙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레벨 300대의 검사는 정말 강하구나." "만날 방송에서만 봤지 실제로는 본 적이 없었어. 그런데 말 그대로 전투를 위해 태어난 것같이 굉장하네." 검사의 공격력에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잠깐의 휴식을 마치고, 지하 3층으로 향했다. "하하. 늙은 크라마노임들이 나온다면 정말 좋은 던전이겠는데." 헤겔이 자신 있게 앞장을 섰다. 하지만 지하 3층에서부터는 그들의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지긋지긋한 미로가 앞을 막았고, 함정들이 끊이 지 않았다. 독화살이 벽에서 쏘아지는 것쯤은 애교! 땅을 밟으니 발이 푹 들어가고, 독을 가득 품은 뱀들이 습격했다. 도둑 나이드가 함정을 해체하고 뱀을 사냥했 지만 시간은 많이 지체되었다. 그러한 전진도 잠시! 쿠르르르릉! 그들이 지나온 통로에서 큰 바윗덩어리가 굴러오는 것이었다. 통로를 가득 메운 채, 빠져나갈 구석도 없이 굴러오는 바윗덩어리. "뛰어!" 후방에서 굴러오는 큰 돌덩어리를 본 일행은 기겁하여 죽을힘을 다해서 던전의 안쪽으로 달렸다. "앞에 뭐가 있을지 모르잖아!" "바위에 깔려 죽는 것보단 낫지." "통로가 좁아진다!" 콰과과쾅! 통로가 점점 좁아져서 큰 바위는 벽에 끼었다. 벽들을 상당히 파괴하면서 굴러온 바위였지만 마침내 멈춰 섰다. "다행이다." "이걸로 우리도 산 거야?" 기쁨을 여유롭게 나눌 사이도 없었다. 도둑 나이드는 이런 경우에 더 큰 위기가 찾아온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나이드가 서둘러 입을 열었다. "저기, 얘들아." "응?" "나쁜 소식이 세 가지가 있는데... 아주 나쁜 소식과 덜 나쁜 소식이 있어. 그리고 한 가지는 불행한 소식이 있거든." 셀시아가 빙긋 웃었다. 만날 반복되는 지겨운 사냥만 하다가 겪게 된 이런 던전 탐험이 그녀에게는 흥미진진했던 것이다. "덜 나쁜 소식부터 말해 봐." "응. 그건 우리가 돌아갈 길이 막혔다는 거야. 그리고 아주 나쁜 소식은,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에 어떤 함정이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고." "함정이라니?" "방금 내가 함정 탐색 스킬을 써 봤는데... 여기 전체가 함정으로 푸른빛을 띠고 있어서, 참고로 움직이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 "함정 해체는 불가능해?" "응. 여기 통로 전체가 함정으로 표시가 되어 있어서...... 아마도 원래 여기는 정상적인 길이 아니라 별도로 연결된 통로일 거야. 아무래도 바위가 굴러올 때에 방향을 잘못 선택한 것 같아." "......" 르미의 안색이 파리하게 변했다. 그러나 포기하기 전에 희망을 갖고 물었다. "그럼 불행한 소식은 뭔데? 지금보다도 더 나쁜 경우는 없지 않아?" "응. 지금 우리가 있는 곳으로 오는, 도움을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위드 형이라는 거." "......" 낙담, 절망, 좌절, 실의에 빠진 파티원들! 나이드의 늘어지는 듯한 말투에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여기서 끝이다.' 던전 탐험 과제는 그럭저럭 실패로 돌아갈 것 같았다. 미발견 던전을 찾아낸 점수는 제법 높겠지만 중간에 전부 사망한다면 결국은 실패작이 될 테니까. 과제도 과제지만 죽음으로써 잃어버리는 레벨이나 스킬 숙련도도 매우 아쉬울 수밖에 없다. 그때 헤겔이 성큼 안쪽으로 걸음을 떼었다. 가만히 쉬었더니 소진되었던 체력이 회복되었던 것이다. "모두 뭘 하는 거야. 여기서 가만 앉아 있다가 죽을 거야?" "헤겔! 위험할지도 몰라." "어차피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잖아. 그럼 전진하는 거지. 그리고 크라마노임처럼 약한 몬스 터들이 나오는 던전인데... 위험이라고 해 봐야 별것은 없을걸." 헤겔의 발언은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다. 이대로 서 있을 바에야 안으로 움직인다. 이러나저러나 죽는 것은 마찬가지라면 서서 죽진 않겠다. 검사다운 행동이었지만, 불과 몇 발자국을 떼기도 전이었다. "헤겔!" "왜?" 헤겔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만 걸어가고 있었다. 파티원들은 헤겔의 허리와 어깨 등에 달라붙는 거미들을 볼 수 있었다. 벽과 바닥, 천장에서 슬금슬금 기어 나 온 주먹만 한 거미들이었다. 갑옷을 착용하고 있는 탓에 당사자만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저기, 너 지금 위험한데." "뭔데." "네 갑옷에......" "뭐라도 있어?" 헤겔이 뒤를 돌아보려고 할 때에는 이미 거미들이 거미줄을 뿜어내어 몸 전체를 꽁꽁 둘러맨 후였다. 무기를 휘두르지도 못하게 몸을 꽉 틀어쥐었다. 이른바 밀봉!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칠 때마다 거미줄은 끊어지지 않고 오히려 점점 조여들었다. "크에엑!" 헤겔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좋은 갑옷을 입고 있었던 탓에 생명력은 크게 줄어들지 않았지만, 암만 힘 을 써봐도 거미줄은 꿈쩍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다른 파티원들도 천장과 벽, 바닥 등에서 내려온 거미줄로 인하여 모두 꽁꽁 묶였다. 통로 전체에 거미들이 가득해서 피할 공간도 없었다. 레인저 트위터의 화살은 거미들의 접근을 방해하는 데 별 다른 도움이 되지 않았고, 도둑 나이드의 단검으로도 거미줄 몇 가닥을 끊어 놓는 것이 고작이었다. "클클클." 통로의 벽에서 대형 거미를 닮은 마물이 나타났다. 엘핀 퀸 스파이더. 보스급의 마물은 파티원이 죽어 가는 것을 느긋하게 지켜 보고 있었다. "에효. 이대로 죽는구나." "그래도 재밌는 탐험이었어." 입만은 거미줄이 감싸고 있지 않아서 그나마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점 정도가 위안이었다. 위드는 말라붙은 나무들의 숲을 돌아다니며 던전의 입구를 찾고 있었다. 어둠이 짙게 내린 숲에는 을씨년스러운 기운이 흘렀다. "입구가 도대체 어디에 있다는 거야." 도둑이나 모험가라면 선행한 파티의 발자국만 보고도 쫓아갈 수 있다. 하지만 위드에게는 그런 추적 스킬이 없 을 뿐만 아니라, 마른나무의 숲 중앙까지 빛의 날개를 펼치고 날아왔기 때문에 더욱 헤매고 있었다. 후욱후욱. 어디선가 생명체의 거친 숨소리가 들리자, 풀벌레들의 울음이 잦아들었다. 적막과 살기가 흐르는 숲! 쿵쿵거리면서 나무들 사이로 둔중한 무언가가 달려오고 있었다. "침, 입, 자, 여, 죽, 으, 라!" 그롤러! 도끼를 든 몬스터들이 돌진해 왔다. 수백의 무리. 그롤러 돌격대의 출현이었다. 위드는 도망치는 대신 검을 뽑아 들었다. "이 경험치와 아이템들! 어서 와라!" 오랜만의 사냥이라 적의 등장이 반가울 뿐이었다. "콜 데스 나이트!" 연기와 함께 데스 나이트 반 호크까지 등장시켰다. "주인!" 반 호크는 금방 위드의 모습을 알아보았다. 드워프의 형태를 하고 있더라도, 과거에는 오크였던 적도 있으니 놀 라지 않았다. 하루 이틀 함께 사냥하면서 성장을 한 사이가 아닌 것. "적이다. 싸워라." "알겠다. 주인!" 반 호크가 돌아서서 대검을 휘둘렀따. 땅이 뒤집히고, 그롤러들이 밀려서 쓰러진다. 반 호크가 일단의 야만스러운 그롤러들과 싸우고 있을 때에, 나머지는 우회해서 위드를 목표로 삼았다. "달빛 조각 검술." 말라붙은 나무들의 숲에서, 위드는 빛줄기를 뿌려 대면서 전방을 향해 달렸다. 나무들을 빠른 속도로 스치듯이 지나쳤다. 말라붙은 나무들이 장애물이 되어, 뒤쫓아 오는 그롤러들이 공격할 수 있는 숫자와 시기에는 제약이 있었다. "침입자!" "산 채로 씹어 먹어 주겠다." 그롤러 2마리가 교차하듯이 뛰어올랐다. 박력이 넘치는 도끼질! 막중한 체중이 실린 공격을 그대로 받아치는 것은 무모한 짓. "칠성보!" 위드의 몸이 잔상을 일으키며 현란하게 움직였다. 관성의 법칙을 완벽하게 무시할 수 있는 스킬! 전력 질주를 하면서도 전혀 다른 반대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는 스킬! 처음 한 걸음 떼었을 때에는 몸 전체가 뒤로 향했다. 다음 한 걸음에는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그롤러의 공격권을 완전히 벗어난 뒤에 적을 통째로 가르듯이 검을 휘두른다. 전투를 해 본 게 꽤나 오랜만이지만 그쯤은 문제가 아니었다. 파바바밧! 교차하는 그롤러들을 뒤쫓으면서 난무하는 칼질! 둘의 그롤러들을 사냥했을 때에는 반 호크가 이미 다섯이나 되는 적들을 처리한 후였다. 반 호크는 제자리에 서서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그롤러들을 베어 버리고 있었다. "칠성보!" 위드는 거침없이 스킬을 시전했다. 그롤러들의 빈틈을 공격하기 위한 빠른 스킬 사용. 잡템들을 줍는 순간에도 유용한 스킬이었다. 마나와 체력이 비할 바 없이 늘어 있었으니 스킬 사용에 주저함이 없다. 그때 르미로부터 귓속말이 전해져 왔다. @위드 오빠. @응, 무슨 일이야? 정신없이 사냥을 하고, 잡템을 수거하는 와중에도 평온한 목소리! 자동차 운전을 하면서 통화를 하는 것은 불법이다. 정신을 분산시켜서 사고 확률을 높인다는 이유에서다. 로열 로드에서도 전투 중에 귓속말을 나누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라 알아서 자제를 하는 편. 하지만 위드의 집중력은 가공할 지경이었다. '경험치, 숙련도, 아이템!' 세 가지를 향한 맹목적인 추종은 날벼락이 떨어진다고 하여도 흔들림이 없을 정도이다. @여기 던전에 들어오셨어요? @아니, 아직. @오지 마세요. 우리 함정에 빠졌어요. 모두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거든요. @...... @오빠도 괜히 오셔서 죽지 말고 마을에서 쉬고 계세요. 척! 위드가 제자리에 섰다. 그리고 낮게 가라앉은 눈으로 마른나무들의 숲을 살폈다. 반 호크는 어느새 따라서 정지해 있었다. '저 성질 더러운 주인이 갑자기 무슨 꼬라지를 부리려고......' 거의 초보를 갓 벗어난 시절부터 함께해 왔던 동반자였기에 위드에 대해서 잘 알았다. 사냥을 하는 도중에는 일체의 망설임이나 흔들림이 없는 것을. 그런 위드가 멈췄다는 사실이 반 호크에게는 경악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전의를 상실한 그롤러들 또한 두려운 눈으로 위드를 살폈다. 반 호크가 폭발적인 공격력을 바탕으로 한다면 위드는 그와는 차원이 다르다. 도저히 뒤쫓을 수 없는 움직임. 귀신같은 몸놀림으로 어쩔 수가 없게 만든다. 로열 로드는 사용자가 직접 전투를 수행해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레벨과 스킬을 가지고 있더라도 전투력 의 격차는 어마어마하다. 검술을 고급까지 익혔으나 어린아이가 조종하는 캐릭터와, 진짜 검사가 조종하는 캐릭터는 하늘과 땅 차이. 위드는 스킬들을 적재적소에 이용할뿐더러 솜털 하나만큼의 빈틈도 놓칠 줄을 모른다. 전투에서 보여 주는 집중력, 몰두함으로써 보여 주는 실력은 위풍당당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일반 유저들은 비범한 몸놀림을 보며 놀랄 뿐이지만, 몬스터들도 충분히 느끼고 두려워한다. 투지, 카리스마 스탯은 그 효과를 더욱 더해 주어서, 지성이 떨어지는 몬스터라면 쉽게 공포감에 빠져들게 만들 어 버린다. 그런 위드가 전투 중에 멈췄다. "너희는 운이 참 좋구나. 내가 급한 일이 생겨서 그만 가봐야 될 것 같다." 그롤러들이 안도의 숨을 토해 냈다.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있을 수 있을까! 하지만 위드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반 호크." "말하라, 주인." "한 놈도 놓치지 말고 사냥해라. 잡템도 수거하는 거 잊지 말고." "알았다. 주인." 위드는 몬스터를 방치해 둘 인물이 아니었던 것. 반 호크에게 인수인계를 하고 나서 던전의 입구를 다시금 찾았다. 다행히 그롤러들과 싸운 장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입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위드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입구로 들어갔다. ▷보여 주는 능력 『아직 끝이 밝혀지지 않은 던전, 크라마도에 들어오셨습니다. 혜택:일주일간 경험치, 아이템 드랍율 2배(6일 11시간 남음)』 던전 크라마도의 최초 발견자 메시지를 위드는 받지 못했다. 헤겔 일행이 먼저 발견한 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시간이 지나서 몬스터 크라마노임들은 이미 되살아나 있었다. 흰 도마뱀 같은 물컹한 존재들이 기어 다니고 있다. "이런 던전을 발견하느라 나이드의 고생이 많았겠군." 로열 로드를 직업으로 삼고 있는 다크 게이머들도 추적과 조사를 하지만 그럼에도 중앙 대륙에서 새로운 던전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은 일. 나이드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엄청난 고생을 했으리란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길드라스의 이상한 이야기 책자! 그 책이 없었다면 이 던전을 찾기란 어려웠으리라. 마른나무들의 숲은 좋은 사냥터도 아니었고, 밤에는 그롤러들이 정신없이 덤벼들기 때문이었다. "역시 책이란 골고루 읽어야 돼." 문학 소설, 역사책, 위인전, 경제 서적. 이런 것들만 양서가 아닌 것이다. 특히 외국의 유명한 책들만 가치가 있다고 하는 풍토가 위드는 납득이 안 되었다. 음서! 사나이들의 가슴을 불붙게 만드는 음서야말로 은근히 배울 점이 많다. 음서만큼 집중이 잘되는 책이 또 있던가? 당연히 있을 수 없다! 책을 읽는 대로 쏙쏙 머릿속에 들어오며 그 상황이 고스란히 그려진다. 더군다나 인간의 오욕 칠정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훌륭한 스토리! 음서라고 하여 다 같은 음서가 아니다. 주인공의 고뇌와 갈등, 욕망에 충실한 전개야말로 배울 점이 참 많다. 가정교육을 야한 소설로 받은 사나이! 어릴 때에는 남아 있는 페이지가 얼마 안 되는 것을 보고 원통해하는 경험을 누구나 해 보았을 것이 아닌가. 설마 교과서가 몇 페이지 남지 않았다고 슬퍼하는 학생은 없을 것이다. 책을 소중히 하는 마음가짐을 음서를 통해 배울 수 있다. "역시 책은 소중한 것이야." 위드는 길드라스의 이야기 책자를 보며 흐뭇해했다. 다크 게이머 연합에서도 이런 책자들은 기타로 분류해서 거래된다. 의외로 이런 책들이 백과사전보다도 훨씬 비 싸게 팔렸으니, 그 가치를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위드의 망토 밑에서 빛의 날개가 활짝 펼쳐졌다. 막혀 있는 동굴 안에서 펼치는 날개였다. 하늘로 날아가는 것이 목적이 아닌, 고속 비행을 위한 날개. "달빛 조각 검술." 위드는 던전 안에서 비행하며 검을 휘둘렀다. 크라마노임들과 스쳐 지나가는 아주 짧은 순간, 놈들의 허점을 베었다. 너무나도 빨리 날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크라마노임이 멀리 보인다 싶으면 이미 코앞에 있었다. 몬스터들을 베기 위해 검을 휘두르고 또 휘둘렀다. 기사들이 좁은 동굴에서 말을 타지 않는 것처럼, 날개를 펼치고 고속으로 나는 것은 미쳤다고 할 만큼이나 무 모한 행동이다. 회피가 불가능할뿐더러, 아차 하는 짧은 순간 벽에 몸을 부딪쳐서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숫제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지 않더라도, 이렇게 좁은 곳에서 속력을 낸다는 자체가 미친 짓인 것이다. 그런데 남들이 상식으로 알고 있는 것을 위드는 당연하게 여기지 않았다. 사냥에는 고정된 방식이 있을 수 없다. 몬스터는 어떤 방식으로든 때려잡기만 하면 될 뿐! 빠르고 효과적으로 잡을 수 있기만 하면 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좁은 통로가 있는 던전에서 날개를 펼치고 초고속으로 비행을 하면서 몬스터를 벤다는 것은 위드도 고려해 본 적이 없는 방식이었다. 빛의 날개가 없기도 하였지만, 약한 크라마노임이라고 하더라도 보통은 이런 생각을 해내지 못한다. 반사 신경과 판단력이 입신의 경지에 올라 있더라도 검 그리고 몸을 제어하는 데 자신이 없다면 엄두도 못 낼 행동! 위드조차도 처음 생각하고 실천에 옮긴 것이었지만, 재미가 있었다. 잠깐의 실수로도 죽음에 이를 수 있다. 통로들이 일직선으로만 뻗어 있는 것이 아니라서, 가끔 방향을 전환해야 될 때에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공포 였다. 벽에 부딪친다면 잘 다져진 어육이 되어 버릴 수도 있으니까!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 때 피가 들끓는다. 그리고 위드는 그러한 행동을 자연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드워프의 몸이라서 현기증이 일어나는군. 역시 음주와 과속이야말로 제대로지!" 죽어 보기 전에는 정신을 못 차린다는 음주, 과속 운전! 삽시간에 크라마노임들을 베어 버리고 2층으로 향하는 길을 발견했다. 위드는 급하게 르미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괜찮아? 아직 살아 있지? @네. 근데 뭐, 서서히 죽어 가고 있긴 해요. @얼마나 죽어 가고 있는데? @55% 정도요. 한 30분 정도 있으면 완전히 죽을 것 같아요. @그래? 위드는 지하 2층으로 향하지 않고 뒤로 돌아섰다. 전멸해 있는 크라마노임들! "그럼 잠깐의 여유는 있겠군." 위드는 날개를 펼친 채로 조금 전보다 더 빠르게 방금 전에 왔던 길을 되짚어 갔다. 아이템 수거를 위한 고속 비행! 소소한 잡템이라고 할지라도 그냥 놔두고 지나갈 위드가 아니었다. 지하 2층의 성년 크라마노임들이라고 해서 다를 바가 없었다. 오히려 통로가 더욱 넓어졌기에 비행하는 속도가 더욱 빨라졌을 뿐이다. 촤롸롸롸롸롸뢋! 통로의 끝 저 멀리, 빛무리가 보인다 싶으면 이미 위드가 날아와서 관통하고 있다. 크라마노임들이 대응하기도 전에, 침을 뱉기 위하여 입을 크게 벌릴 때에 검이 그 주둥이를 찌르고 있었다. 『-치명적인 일격이 터졌습니다.』 『-속도에 의해 382%의 피해를 추가합니다.』 속도! 어떤 몬스터라고 하여도 치명적인 약점을 공격해서 일격에 죽일 수만 있다면 유용한 기술. 몬스터가 이런 공격을 버텼을 때에는 문제가 될 수 있을뿐더러, 대응도 못할 정도로 좁은 통로에서만 사용하는 것이라서 고도의 기술과 정신력이 있어야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위드는 비행을 하면서 푸념했다. "역시 난 모자란 조각사였어. 진작 날개를 조각해서 달았으면 던전에서 정말 빨리 사냥을 할 수 있었을 텐데!" 모든 던전들이 이런 구조는 아니라서 늘 쓸 수 있는 방식은 아니다. 넓은 던전에서는 자유자재로 허공을 날아 다닌다고 하여도 위험이 크다. 화살들이 쏘아진 곳으로 멋모르고 날아간다면 오히려 속도 때문에 치명상을 입는 것은 위드 쪽일 테니까! 일격에 죽지 않는 몬스터들은 스쳐 지나가면서 검을 휘두르기도 그리 쉽지만은 않으리라. 크라마도의 던전에서, 몬스터들이 모여 있는 모습을 보면서 즉흥적으로 떠오른 발상이었다. 그럼에도 무능한 자신을 자책하는 위드! 지하 2층을 넘어서 3층으로 접어들었다. 물론 잡템들을 빠뜨리지 않고 간 것은 당연한 일. 공중으로 날아가기 때문에 상당수 함정들은 그냥 지나칠 수 있었다. 마법 등으로 작동되는 함정이라고 하여도, 미처 작동되기도 전에 이미 지나치고 없는 것. 쿠르르르릉! 저 뒤쪽에서 헤겔 등에게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만들었던 바위 함정이 작동되었다. 바위가 굴러오고 있었지만 위드의 속도는 너무나도 빨랐다. 바위보다 5배 이상 빠르게 날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위드는 바위가 충분히 굴러오도록 잠깐씩 기다려야 했다. "다행히 복잡한 미로의 길을 저 바위가 찾을 수 있게 해 주겠군." 르미로부터 어떤 방식으로 함정에 빠지게 되었는지 들었다. 그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준답시고 말해 준 것이 지만 위드는 그들을 살리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것으로 들었다. 이윽고, 큰 바위가 통로의 일부를 부수고 박혀 있는 것이 보였다. "저 바위 너머에 르미가 있겠군." 위드는 날개를 파닥거리면서 심호흡을 했다. 아무리 그라고 한들, 크기가 10미터는 되어 보이는 바위를 부수기란 불가능이었다. 빠른 속도로 날아와서 부딪친다면 파괴력은 더욱 커질 것이다. 하지만 만약 부서지지 않는다면 육포가 되어 버 릴 것이 분명한 일. 인내력과 맷집으로 살아나더라도 뒤에서 굴러오는 바위에 깔린다면 압력에 의해 확실하게 사망! "그럴 수는 없지." 위드는 품속을 뒤져서 조각품을 꺼냈다. 토르 왕국에서 조각품을 만들며 따로 챙겨 놓은 걸작들. 모험가 아가씨가 방긋이 웃고 있었다. 위드는 그 조각품의 목을 가차 없이 비틀었다. "조각 파괴술! 이 모든 것들이 힘이 되어라!" 『-조각 파괴술을 사용하셨습니다. 걸작 조각상이 파괴된 고통! 슬픔! 예술 스탯이 5 영구적으로 사라집니다. 명성이 100 줄어듭니다. 예술 스탯이 일 대 사의 비율로 하루 동안 힘으로 전환됩니다. 』 명성과 예술 스탯을 소모하여 힘으로 전환! 위드의 짤막한 팔다리의 근육들이 풍선처럼 부풀었다. 가슴이 커지고, 허벅지도 굵어졌다. 근육질의 드워프, 바바리안을 능가하는 몸매였다. 단지 심하게 짧아서 모양이 나지 않을 뿐이다. "가자." 위드는 빛의 날개를 활짝 펼쳤다. 등 뒤에는 바위가 상당히 많이 굴러와 있었기 때문에 머뭇 거릴 시간이 없다. 위드는 빠른 속도로 날아서 바위를 향해 검을 내찔렀다. 긴 빛줄기는 유성이 통로를 관통하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꽈아아아앙! 일격에 바위가 절반가량이나 파괴되었다. 하지만 완전히 파괴되지는 않아, 반발력이 위드의 몸에 충격을 주었다. 충격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몸이 바위에 푹 박혔다. "젠장! 역시 난 되는 일이 없어." 생명력의 삼분의 이가 감소했다. 탄탄한 맷집과 인내력이 아니었더라면 그리고 드워프 종족의 특성이 아니었더라면 확실하게 사망! 유성처럼 빠르게 날면서 위드도 망설였다. 그도 사람이었다. '꼭 이렇게 빠른 속도로 부딪칠 필요가 있을까? 조금 더 약해도 되지 않을까?' 한순간의 망설임이 속도를 줄어들게 만들었고, 그 결과 바위가 깨진 것이 아니라 위드의 몸이 깨졌다. 마법이 있었다면 훨씬 효과적으로 박살 낼 수 있을 테지만, 그러지 못하는 이상 몸이 고생할 수밖에. 위드는 만신창이의 몸으로 다시 날개를 펼쳤다. 빛의 날개는 조금의 손상도 없어서, 바위에 파묻혀 있던 몸이 금방 빠져나왔다. "다시 한 번 간다." 뒤쪽의 바위가 상당히 많이 굴러와 있었기에 이번에는 절반의 거리밖에 두지 못했다. 하지만 그 짧은 거리에 좀 전보다 30%는 더 빠르게 가속 했다. "될 대로 돼라, 죽기만 해 봐라. 이놈의 바위들은 다 끝장이다!" 다크 게이머에게 가장 두려운 죽음. 경험치와 스킬 숙련도를 잃어버리는 아픔이 있다. 위드도 마찬가지였지만 이판사판이었다. 죽음을 거부할 수 있는 힘에 의해 되살아난다면 모조리 박살을 내 주리라 다짐하며 바위를 향해 전력 비행했다. 그리고 모든 힘과 가속력을 검의 끝에 모았다. 검 끝이 파르르 떨리고, 달빛 조각 검술로 인해 빛줄기들이 검 봉을 감싸고 있었다. 꽈아아아아앙! 절반쯤 남아 있던 바위가 단숨에 파괴되었다. "르미야, 생명력 얼마나 남았어?" "350 정도야." "곧 죽겠네. 던전 탐험이 위험하기는 하구나. 진짜 꼼짝없이 죽게 생겼네." "제길. 좁은 통로가 아니라 넓은 평원이었다면 거미줄 따위에 잡힐 일은 없을 텐데." 입만 내놓은 채로, 미라처럼 꽁꽁 거미줄로 싸여 있는 헤겔과 파티원들! 다가올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던 그들에게 벼락이 떨어지는 것처럼 엄청난 소음이 들렸다. 이윽고 통로가 크게 흔들릴 정도의 충격파가 휩쓸었다. "뭐, 무슨 일이야?" "몰라. 혹시 위드 오빠가 온 건가?" "르미야, 위드 오빠가 여기를 어떻게 알고 찾아와?" "내가 말해 줬거든." "그럼 우리랑 똑같은 함정에 빠진 거란 말이야? 지금 소리는 그 바위가 부딪치는 소리였고? 바위가 있던 방향에서 들려온 소리 같긴 했는데......" "말도 안 돼. 저렙의 조각사 따위가 이 던전을 어떻게 들어와." "내가 귓속말 보내 볼게." "헛수고야." 르미가 위드에게 귓속말을 보냈지만, 아무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때 위드는 한창 힘을 모으고 있던 도중이었기 때문. "역시 아닌가." "아닐걸." 그런데 다시금 무슨 소음이 들렸다. 귀청을 찢어 놓는 것 같은 폭음! 산산조각이 난 바위가 여기저기 튀고 통로가 뒤흔들렸다. 거미줄에 칭칭 동여매여 공중에 묶여 있던 그들의 몸 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함정으로 통로의 입구를 막았던 바윗덩어리가 파괴된 것이다. 그리고 들려오는 목소리. "제대로 찾아왔군." "위드 오빠?" "가만히 있어. 바로 구해 줄 테니까." 위드는 검을 휘둘러서 파티원들의 몸을 공중에 고정시켜 놓은 거미줄을 끊었다. 땅바닥에 나동그라진 그들이었지만, 정신을 차릴 새도 없었다. 위드가 연속적으로 검을 휘둘러서 그들의 몸에 달라붙은 거미줄 더미를 잘라 낸 것. 사람의 몸에 붙어 있는 얇디얇은 거미줄을 검을 휘둘러서 제거한다.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실제로 벌어졌다. 그들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 거미줄까지 벗겨져 나가면서 당당하게 서 있는 근육질의 드워프를 볼 수 있었다. 몸보다도 길어 보이는 검을 들고 있는 드워프였다. 드워프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동료들의 거미줄이 벗겨져 나간다. 신기에 가까운 검술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헤겔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정말 위드 형이야?" 아직 머릿속이 복잡하고 생각이 정리가 되진 않았다. 그럼에도 기가 막힌 순간에 등장해서 그들을 구해 주었으 니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때 통로 입구에 커다란 바윗덩어리가 굴러 들어왔다. 통로의 일부분을 부수고, 다시금 빠져나갈 공간을 틀어막았다. "위드 형, 저 바위는?" "내가 작동시킨 함정인가 보군." "망했다! 뭐하러 들어왔어요. 형." 구원을 받았다고 안심할 겨를도 없다. 철수했던 거미들이 천장과 벽 등의 작은 구멍들을 통해서 우르르 기어 나왔다. 동시에 거미줄들이 장막처럼 둘 러쳐지면서 완전히 주변 일대를 감쌌다. 미라처럼 몸을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드는 특유의 공격이 시작된 것. 위드는 두 팔을 내밀었다. "실타래 감기!" 중급 재봉 스킬. 부가 편 재료 획득 기술! 거미들이 토해 내는 신선한 거미줄을 감아서 실타래로 만드는 기술. 거미들이 뽑아내는 거미줄들이 둥글게 감겨서 천으로 봉인된 채 위드의 배낭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슈슈슉! 거미줄의 효과가 없자, 거미들이 위협적인 소리를 냈다. 그리고 거미줄을 타고 기어 왔다. 하지만 위드는 눈 하나 끔쩍하지 않았다. 드워프의 짧고 두꺼운 허벅지에 힘이 잔뜩 실렸다. 종아리는 터지기 직전! 거미들은 시기를 잘못 택했다. 바위를 깨느라 상처투성이였고 옷도 상당히 찢어졌지만, 문젯거리가 아니었다. "소드 댄스!" 황제무상검법의 4초식. 위드의 움직임이 흐르는 물처럼 변했다. 소드 댄스는 춤을 추는 듯한 움직임에 폭발력을 추가해 주는 스킬이었다. 검에 닿는 족족 거미들이 터져 나갔다. 면면부절. 검이 멈추지 않고 흐르니 스킬의 위력이 최대화가 되고 있었다. 거미들의 사이를 가장 격력하고 기쾌하게 움직이는 검! 짧은 다리로 스텝을 밟으며 긴 검을 휘두르는 모습이 우스꽝스럽기도 했지만, 위력을 보면서는 웃을 수 없었다. 위드가 거침없이 거미줄들 사이로 뛰어들면서 검을 휘두른다. 끈끈하고 질긴 거미줄들이 썩은 실처럼 잘려 나갔 다. "비켜. 너희 따위에게 지체할 시간이 없다!" 작은 거미들은 마비와 거미줄을 제외하면 위협적이지 않았다. 적의 방어 능력을 무너뜨리는 조각 검술. 검술의 특성으로 인하여 거미줄은 별 해를 끼칠 수 없었고, 재봉 스킬로 인하여 거미줄 수거까지 일시에 이루어 진다. 작은 거미 떼를 돌파한 위드는 엘핀 퀸 스파이더와 맞섰다. 레벨이 380대 후반에 이르는 강력한 몬스터! 12개의 다리에는 큰 털이 숭숭 돋아나 있고, 머리 부분은 무섭고 흉측하기 짝이 없다. 나이드가 정보를 확인해 보고 저항을 포기하고 절망할 수 밖에 없었던 그 보스급 몬스터였다. 하지만 위드의 달려가는 발걸음은 더욱 빨라졌다. "막지 마. 본전이 급해!" 조각 파괴술, 그것도 걸작을 부숴서 힘을 늘렸다. 평상시에도 사냥을 하면서 허튼 시간을 보내는 것을 혐오 하는 위드 였는데, 이럴 때에는 완전히 사냥에 미쳐 야 된다. 사라진 명성과 예술 스탯의 본전을 뽑기 위해서라도 망설임이 없다. 그때 엘핀 퀸 스파이더가 뒤로 돌아서더니 허둥지둥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샤샤샥. 거미라고 우습게 볼 것이 아니라, 도망치는 속도는 무섭게 빠르다. 유난히 겁을 잘 먹는 거미의 특성상 싸우는 대신 도주를 택한 것. 위드가 아닌 다른 먹잇감이 나타나더라도, 저항을 하려고 하면 일단 도망을 친다. 먹이가 완전히 힘이 빠지기를 기다린 후에야 상대하는 게 엘핀 퀸 스파이더의 방식이었다. 그러면서도 팔뚝보다 두꺼운 거미줄을 쏘아 내면서 통로의 반대편으로 움직였다. "소드 카이저!" 위드는 남아 있던 모든 마나를 사용해 가장 강한 공격력으로 환원시켰다. 엘핀 퀸 스파이더의 급소, 거미줄이 나오는 꽁무니를 거침 없이 찔렀다. 『-치명적인 일격을 가하셨습니다.』 조각 파괴술로 위력을 극대화한 소드 카이저! 마법사들의 최종 공격술인 마나 번과 맞먹는 끔찍한 파괴력. 엘핀 퀸 스파이더의 거대한 동체가 우르르 떨렸다. 콰콰쾅! 통로를 막고 있던 바위가 뚫렸을 때보다도 더 큰 폭발음과 섬광, 진동이 터졌다. 헤겔 들은 엎드려서 귀를 막는 것이 최선이었다. 하지만 폭발음과 빛은 그걸로 그치지 않았다. "소드 카이저, 소드 카이저, 소드 카이저!" 마나가 다 떨어진 이후, 생명력과 체력을 소모하면서 사용하는 최후의 초식! 소드 카이저를 연발로 사용하면서 집요하게 엘핀 퀸 스파이더를 사냥한다. 『-치명적인 일격이 터졌습니다. 29%의 피해를 추가합니다. 』 『-치명적인 일격이 터졌습니다. 47%의 피해를 추가합니다. 』 『-치명적인 일격이 터졌습니다. 82%의 피해를 추가합니다. 』 『-치명적인 일격이 터졌습니다. 114%의 피해를 추가합니다. 』 그것도 모든 공격을 한 지점에 퍼붓는 일점 공격술의 재현! 빠르게 도주하는 엘핀 퀸 스파이더를 정신없이 뒤쫓으면서 저항이 큰 스킬을 발동시켜 정확한 지점을 공격한다. 헤겔 들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기 때문에 볼 수 없었지만, 현재 위드가 발휘하는 공격력은 최강이라고 할 수 있 었다. 조각 파괴술에 소드 카이저, 검 갈기 스킬로 증가한 데미지. 이 모든 공격력을 일점 공격술로 활용한다.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드는 생명력과 늘어 가는 부상으로 엘핀 퀸 스파이더의 이동속도가 현저히 감소했다. 도망이 불가능해졌으니 힘이 있다면 저항이라도 해 볼 것 이지만, 너무나도 막강한 데미지 앞에 비실비실 몇 걸 음 앞으로 나아가다가 죽었다. 회색빛으로 변한 엘핀 퀸 스파이더의 몸에서는 오리 알만한 사파이어와 허리에 두를 수 있는 요갑, 금화들이 나 왔다. 위드는 섬전과도 같은 속도로 전리품들을 수거했다. "으으, 조각사라면서......" 헤겔은 머리를 감싸며 신음했다. 머릿속이 백치라도 된 것처럼 사고가 이어지지 않았다. 조각사라면서 무슨 거미줄을 재봉 재료로 수거해 버릴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그 활동적인 움직임은... 스킬이 아니라 진짜 검술이었어." 대부분의 유저들은 스킬에 의존해서 싸운다. 하지만 특별한 싸움꾼들은 직접 행동하고, 스킬들까지 전투에 최적 화시킬 수 있다. 이런 경우에 전투에서 보여 줄 수 있는 차이란 엄청났다. 같은 진검을 들고 일반인과 훈련된 검사가 싸운다. 승부는 해보나 마나였다. 육체와 도구가 동일하다고 하더라도 사용하는 사람의 판단력과 감각, 경험에 따라서 천양지차의 결과를 보여 줄 수 밖에 없다. 로열 로드에서도 현실에서의 전투의 달인과 일반인이 몬스터를 사냥하면 당연히 차이가 벌어진 수밖에 없다. 최적의 거리 유지, 최소한의 회피 동작, 최대한의 힘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공격 방식! 몬스터를 사냥하는 마음가짐이 다를 것이고, 기본적으로 움직이는 방식 자체가 파격적이고 완전히 다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정도의 수준에 올라 있지 않다. 초보 시절부터 점점 성장하면서 캐릭터에 익숙해지고 스킬 사용에 능숙해진다. 사냥이 반복되면서 몬스터와 싸 우는 방법도 조금씩 숙달된다. 처음 싸우는 종류의 몬스터보다, 수백 번 사냥을 해 본 몬스터를 훨씬 잘 잡을 수 있는 것이 이러한 이치! 하지만 위드에게나 검치에게는 그런 과정이 필요 없었다. "때려잡으면 될 뿐." 무식하게 몬스터를 때려잡는 모습에는 일말의 동정심조차 없다. "사냥에 성공했나 봐." "가 보자." 20여 초가 지나고 나서, 셀시아가 몸을 일으켰다. 그녀를 따라서 다른 파티원들도 위드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 다. 무언가 느껴지는 위압감. 고작 드워프에게서 위압감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 우습지만 사실이었다. 모르는 사이였다면 감히 다가갈 수조차 없었으리라. 그들이 다가갔을 때에 위드는 몸에 붕대를 감았다. 양손에 붕대를 들고 몸통과 팔, 다리, 목 등을 감아 돌리는 기술. 약초들을 덕지덕지 바르고, 눈을 감고 명상을 취했다. 붕대 감기 스킬 마스터! 유능한 워리어들도 중급에 오르면 존중받는 스킬을 전투 노가다로 마스터한 위드. 생명력과 마나가 느릿하게 회복되고 있었다. 위드에게 다가오기는 했지만 큰 부상을 입은 듯한 태도에 셀시아는 감히 방해하지 못했다. "어떻게 해. 엘핀 퀸 스파이더와 싸우느라 너무 많이 다친 것 같아." "성직자가 없으니 치료해 줄 수도 없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였다. 불과 8% 정도의 생명력이 차오르고 나서 위드가 눈을 떴다. 가늘고 옆으로 길게 찢어진 눈. 위드의 눈매가 본래 이 정도는 아니었다. 외모에서 눈이 그나마 가장 나을 정도로 눈빛이 맑고, 깨끗한 이미지 였다. 지금은 조각 변신술로 인하여 눈매가 변해 있다. 가늘고 찢어진 눈에 살기가 어렸다. "이대로 놀고 있을 겨를이 없지. 본전을 찾아야 돼!" 길게 심호흡을 한 뒤에, 비틀거리면서 엘핀 퀸 스파이더가 나왔던 통로로 걸어가는 것이었다. 전투의 와중에 부러졌는지 발목은 땅에 질질 끌렸다. 인내력과 맷집이 아니었다면 이미 전투 불능 상태에 빠져 들어서 움직이지도 못했을 부상. "부러진 발목 따위야 시간이 지나면 붙겠지." 위드는 검을 지팡이처럼 이용하면서 전진했다. 발목이나 손목이 부러져 본 경험이 백 번은 넘었으니 몸 상태는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러므로 계속 전투를 이어 가려는 것이었다. 최지훈은 이현의 동생인 이혜연과 데이트를 하고 있었다. 가전제품들을 고쳐 주고, 로열 로드에서 모르는 것들을 가르쳐 주면서 친해졌다. 아직 사귀는 사이는 아니어도 꽤 친근한 관계였다. 이혜연이 딸기 우유를 마시다가 말했다. "오빠, 내가 개인기 보여 줄까?" "개인기?" "응. 개그맨들이 자주 하는 그런 성대모사 보여 주고 싶은데." 최지훈은 상당히 기대가 되는 것을 주체할 수 없었다. "진짜 해 줄 거야?" "응. 먼저 멀리서 사람이 걸어오는 소리를 성대모사로 표현할게." 이혜연이 자두 빛의 입술에 침을 살짝 바르고 말했다. "뚜벅. 뚜벅." "......" "그다음은 자동차에 시동 거는 소리야. 부르릉!" "......" "비행기가 이륙하는 소리야. 슈우우웅!" 사진 촬영하는 소리 찰칵, 전화 오는 소리 따르릉, 북 치는 소리 둥둥둥, 강아지 울음소리 멍, 고양이 울음 소 리 야옹! 최지훈은 눈물을 흘리면서 웃었다. 성대모사는 전혀 안 비슷했지만, 청순하고 앳된 외모의 소녀가 진지하게 개그를 하는 모습이 즐거웠던 것이다. '이 아이, 매력이 있어.' 숱한 여자들을 만나 봤음에도, 이혜연과 함께할 때처럼 빠져드는 기분은 처음이었다. 평생 같이 살더라도 후회 가 없을 것 같았다. '매일 아침에 눈을 뜨면 행복하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활짝 핀 꽃들을 볼 수 있겠지' 완전히 환상에 빠져든 남자의 형태! 오히려 이혜연 쪽에서 그냥 평범한 오빠로만 여기는 게 아닌지 노심초사할 정도였다. 최지훈이 일부러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흘리듯이 물었다. "넌 이상형의 남자가 뭐야?"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면, 자신은 어떠냐며 대쉬를 해 볼 참이었다. 이혜연이 가볍게 대답했다. "키는 187 정도에 몸무게는 78킬로그램, 정장이 잘 어울렸으면 좋겠어. 발목은 가늘어야 하고, 약간 슬림한 몸매에 근육. 취미로는 요리와 청소. 연봉은 2억 정도에, 금융계 종사자. 나이는 스물여덟 살 정도면 될까?" "......" "농담이야. 가정적인 남자가 좋아. 나머지는 내 마음에만 들면 되지. 여차하면 내가 벌어서 먹여도 되고." "가정적인 남자?" "응. 나만을 보고 사랑해 줄 수 있는 남자." 최지훈은 말문이 막혔다. 능력이라면 누구보다 있다. 외모도 자신이 있었으며, 어떤 여자라도 매료시킬 수 있는 매력도 있다. 하지만 그런 조건들이 이혜연에게는 의미가 없었다. '태어날 때부터 가졌던 것들을 제외하면... 난 정말 보잘 것없는 사람이구나.' 최지훈에게는 자기 자신을 돌아볼 계기가 되었다. 그때 이혜연의 어깨 너머에서 아는 얼굴과 마주치게 되었다. 이혜연과 알고 지내고 만나면서 항상 꿈에서라도 볼까 두려워했던 인물 중 한 사람! 검치 들 중의 일인인 정일훈이었다. 차은희에게 주기 위한 선물을 사기 위해 시내에 나온 정일훈에게 딱 걸렸다. "오빠, 무슨 생각 하고 있어?" "응? 으응." "얼굴이 시퍼렇게 변했는데 괜찮아?" "조, 조명 탓이겠지." "여기엔 파란색의 조명이 없는데... 암튼 나 이제 집에 갈게." "벌써 가려고?" "응. 너무 늦으면 우리 오빠가 걱정하거든." "데려다 줄까?" 최지훈이 스스로도 기발한 아이디어라고 여기면서 말했다. '어떻게 해서든 이 자리를 벗어나야 돼.' 살기 위한 본능적인 몸부림! 이혜연이 가방을 챙겨서 일어났다. "그러지 않아도 돼. 여기서 버스로 다섯 정거장밖에 안돼. 갈아탈 필요도 없거든." "내가 택시로 바래다줄게." "돈 아껴. 왜 쓸데없는 데 돈을 써? 나 데려다 조고 다시 집에 돌아갈 때도 택시 타고 갈 거지?" 최지훈은 아니라고 거짓말은 하지 못했다. 버스를 타려고 해도 평생 타 본 적이 없으니 요금이 얼마인지도 몰랐다.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에는 기사가 리무진을 태워서 통학을 시켰다. 고등학교 때에는 오토바이를 탔다. 사고 확률이 높은 위험한 운송 수단이지만, 경호원들과 경찰차들의 호위 아 래였다. 최대로 검소하게 활용하는 게 택시. 집에 있는 그의 외제 차들은 창고에서 푹 쉬고 있었다. 어쩌다 보니 가전 업체 대리점 집 아들이 되어 버렸다. 편견이나 거부감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사 실대로 밝히지도 못했다. 겸소한 데이트를 하며 오붓하게 보내는 시간이 싫진 않았지만, 지금처럼 뼈저린 아쉬움이 느껴진 적도 없었다. "먼저 갈게. 조심해서 들어가." "혜, 혜연아." 최지훈이 그래도 데려다 주기 위하여 엉거주춤 일어날 때였다. 그는 정일훈이 손가락을 까딱까딱 흔드는 장면을 보고 말았다. 무언가를 말하고 있기도 했다. 시끄러운 입 모양은 분명했다. '도망가면 죽는다.' 이혜연을 보내고 나서, 최지훈은 정일훈에게 다가갔다. 위축된 어깨와 흔들리는 눈동자. 영락없이 죄인의 모습이다. "덥다. 좀 걷자." "예, 형." 그들은 인근의 공원으로 향했다. 뒷산으로 안 올라가는 게 최지훈으로서는 천만다행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정일훈 형에게 걸린 게 그나마 나은 거야.' 책임감 강한 첫째 사법. 본인도 연애를 하고 있으니 이해심도 남다르리라. 맑은 호수 공원에서 물고기들이 평화롭게 헤엄치고 있었다. '너희가 부럽구나.' 이 순간만은 최지훈도 물고기들이 부러웠다. 정일훈이 일그러진 얼굴로 크게 탄식했다. "네가... 혜연이를 좋아하냐?" "예, 맞습니다." 최지훈은 변명하지 않았다. 사귀는 관계는 아님에도, 자신의 마음에는 사랑하는 마음이 분명히 싹트고 있었던 것이다. "그랬구나." 정일훈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최지훈의 사시나무 떨리듯 흔들리던 몸이 차츰 진정이 되었다. '살았다.' 무작정 두들겨 패진 않는다. 그러므로 무사히 넘어갈 것 같다는 긍정적인 예상을 조심스레 해 보았다. 잠시의 정적 후에, 최지훈이 남자답게 가슴을 폈다. "혜연이만 저를 좋아해 준다면, 정말로 진지하게 사귀어 보고 싶습니다." "결국은 네가....." "죄송합니다. 형님." "괜찮다. 나에게 미안해할 필요가 뭐 있겠느냐. 연애는 당사자들이 하는 게지. 그리고 사귀는 관계도 아니라며?" "저는 좋아하고 있습니다." 최지훈은 이혜연의 어떤 모습들이 그렇게 예뻐 보이는지 설명했다. 장장 10여 분이나 이어지는 설명. 다른 여자들과 만나 보면서 가졌던 공허한 감정들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말했 다. "저는 아직 어리지만, 평생에 다시 찾아오기 힘든 여자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지금도 그녀의 목소리가 계속 들리는 것 같습니다. 잠잘 때도 생각이 나고요." 최지훈은 말을 하면서 깨달았다. 이혜연은 다른 여자들과는 달랐다. 놓치면 다시 만날 수 없는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그녀에게 빠져 있는지도. 정일훈이 그의 어깨를 두꺼운 손으로 다독여 주었다. "그래. 그 정도의 각오라면 됐다. 남자가 구차하게 이런저런 말 하지 않아도 된다." "허락해 주시는 겁니까?" "허락은 무슨. 연애는 당사자들끼리 좋아하면 되는 거라니까." "고맙습니다. 형님!" "참, 그런데 말이다." 정일훈이 크게 인심 쓰듯이 말했다. "내일부터 너도 도장에 나와라." "네?" "남자라면 육체 단련에도 조금은 신경을 써야지. 비리비리한 몸으로 되겠냐." "비리비리하진 않은데......" 농구와 축구, 수영 등 각종 스포츠로 단련된 몸이었다. 정일훈이 엄하게 소리쳤다. "약해! 그 정도 체력으로 데이트를 하던 도중에 불량배가 3,000명쯤 덤벼들면 이겨 낼 수 있겠냐?" "3...3,000명요?" "어떤 환경에서도 여자 친구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전쟁이 벌어지고, 가뭄이 들고, 홍수가 나고, 지진, 해일이 일어나도 여자 친구는 살려야 된다. 넌 그만한 각오가 되어 있냐?" "아, 아직은요." "내가 그런 힘과 용기를 키워 주마. 너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게 이런 작은 도움밖에 안 된다니 아쉽구나." "고맙습니다." "네가 혜연이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면 사제들도 자기 일처럼 열심히 나서 줄걸. 대련 상대는 얼마든지 있을 테니 새벽 일찍 도장에 나오너라. 그래야 1명에게라도 더 가르침을 받을 수 있겠지." 사범들과 수련생 500명과의 대련! 최지훈의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도장에 나오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설마 혜연이를 좋아한다는 마음이 가짜는 아니겠지?" "진짭니다." "도망치고 싶다면 괜찮다. 도망쳐도 된다. 도장에 안 나와도 된다는 뜻이다." "정말요?" "응. 우리가 잡으러 가면 되니까." "......" ▷순백의 미녀 던전 크라마도. 크라마노임이라는 중급 몬스터들이 1, 2층에서 등장했다. 이만하면 초보자 던전은 넘는, 중수들의 사냥터. 하지만 3층에서부터는 위험천만한 함정과 300대 후반의 몬스 터까지 나왔다. 정상적인 경로를 택했다면 엘핀 퀸 스파이더는 만나지 않았겠지만, 그럼에도 숨이 막힐 정도로 위협적인 던전 이었다. 헤겔 들만이었다면 다시 돌아 나가는 방법을 택해야 할 상황! "헥헥." "천천히 좀 가요!" 하지만 지금은 던전의 깊은 곳으로 구르듯이 뛰어가야 했다. 물론 그들의 앞은 위드에 의해서 완벽하게 청소가 된 상태다. 자잘한 거미 새끼 1마리 남겨 놓지 않고 멸망이 었다. 몬스터라고는 구경조차 할 수 없었으며, 함정은 철저하게 파괴되어 있다. 위드가 나이드에게는 따로 임무를 주었던 탓이다. "나이드." "예. 형!" "앞서 가면서 함정을 해체해라." "그럼 전투는요?" "내가 알아서 할게. 무조건 앞으로 가면서 함정만 부숴. 몬스터들은 그냥 내버려 두고." "예, 형. 저한테 맡겨 주세요." 던전과 미궁 탐험을 전문적으로 하는 도둑 나이드에게 함정 해체 따위는 우스운 일! 엘핀 퀸 스파이더에게 죽을 위기도 겪었지만 그것은 도둑의 특성으로 인해 전투력이 낮기 때문이다. 장애물에 몸을 숨긴 채 기습이나 암습 따위로만 싸웠다면 이기지는 못하더라도 지지도 않는다. 바위가 굴러올 때에도 동료들만 없었떠라면 좁은 벽의 틈새로 어떻게든 탈출해서 함정에 빠져들 일도 없었겠지 만. 도둑 나이드는 자신의 특성에 적합한 임무를 맡아서 함정들을 작동 불능, 혹은 파괴시켜 놓고 지나쳤다. 그 후에 남는 몬스터는 위드의 몫이었다. @위드 형, 레벨 300대의 모론 추격자들이 앞에 상당히 있는데요. 나이드는 정찰의 임무도 해 주었다. @몇 마리나 되는데? @65마리 정도요. 이런 규모의 몬스터라면 상당히 위험할 것으로...... @3분. @네? @3분 안에 마무리 지을 테니 다른 몬스터 무리를 찾아 줘. @알겠습니다. 용건만 간단히! 전화할 때도 본론만 간략하게 하니, 전투 시에는 그보다 훨씬 간결했다. 달려가고, 싸우고, 잡아 죽이고, 아이템 수거! 식당에서 고기를 구워 먹다가 중간에 고기가 끊기면 그처럼 짜증 나는 일이 없다. 위드에게는 전투를 하는데 몬스터가 부족한 게 가장 스트레스거리였다. 다른 전장에서는 이 던전처럼 몬스터가 많이 나오지 않았다. 아껴 가면서 싸울 필요가 없으니 환영할 만한 일! 던전이 발견된 지 아직 일주일이 지나지 않아서 아이템 드랍율, 경험치도 2배가 적용되고 있다. 최초의 발견자들은 발견 명성, 몬스터로부터 가장 좋은 아이템들을 얻게 된다. 그러나 일주일 안에만 들어오면 경험치와 아이템 드랍율은 모두에게 적용이 되는 혜택이었다. 던전 안에서 등 따습고 배부르게 자란 몬스터들이 외부인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65마리라......" 위드라도 크라마노임들처럼 가볍게 해치울 수는 없었다. 규모가 제법 되기 때문에 일일이 다 베어 버리려면 시간도 걸릴 것이다. "흙꾼이, 화돌이 소환!" 위드는 직접 만든 정령들을 소환했다. 친밀도는 최상이기에 마나의 한도만 된다면 무제한으로 정령들을 부릴 수 있다. 정령을 창조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 흙꾼들은 주로 하급 정령이, 화돌이는 중급 정령들도 다수 일어났다. 천장의 일부가 무너지고, 던전이 불바다가 되었다. 아수라장! 흙꾼이들은 모론 추격자들의 등에 업혔다. "떨어져라!" 모론 추격자들이 창을 휘둘러도 꿈쩍도 안 했다. 대지의 정령들답게 거의 무한에 가까운 생명을 가졌기 때문 이다. 그들은 무거운 무게로 짓눌러 모론 추격자들을 둔하게 만들었다. 화돌이들은 모론 추격자들의 입으로 들어갔다. 입을 벌릴 때마다 활활 뿜어지는 불길! 위드가 달려갈 때마다 그 주변의 불길만 멀찌감치 물러 났다. 위드는 불에 휩싸여 있는 모론 추격자들을 일체의 스킬 사용 없이 기본 검술로만 베었다. 마나는 모아서 정령들을 불러 대규모 싸움을 하는 데 써야 했던 것이다. 인간보다 빠른 드워프의 신체 치유력, 체력 회복 속도로 인해서 기본 검술과 간간이 사용해 주는 조각 검술로 도 싸울 수 있었다. 모론 추격자 무리를 해치울 때 헤겔과 셀시아, 르미, 벨라, 트위터가 근처까지 달려왔다. 쉬지 않고 온 덕분에 거리가 좁혀진 것이다. 위드가 한 파티에 속한 덕분에 그들도 경험치를 받았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모론 추격자들을 단 일격에 사냥한 동료와 함께함으로써 명성이 1 오릅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준보스급 몬스터, 모론 대장이 동료에 의해 참살당했습니다.』 정보 창을 확인하는 게 두려울 정도로 빠른 경험치의 증가. 헤겔을 제외한 레벨 200대들에게는 짜릿하면서도 꿈인지 생시인지 믿기지 않았다. 위드는 그들이 다가올 무렵에는 다시 뛰고 있었다. 붕대 감으며 뛰기, 명상을 위해 눈 감고 뛰기, 전투 중에도 생명력을 아끼기 위해 사용하는 방어 스킬 눈 질끈 감기! 맹인이 아닌 이상, 잠을 잘 때가 아니라면 눈은 항상 뜨는게 정상. 눈을 수시로 감으면서 전투의 효율성을 올리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실제로 그런 전투법을 보고 있으면서도, 웬만큼 인간처럼 느껴져야 따라 할 것이 아닌가! "쉬지를 않아." "사람이 아닐 거야." "드워프잖아." 르미에 벨라, 트위터의 감탄을 들으며 헤겔은 화가 났다. "진짜 미칠 노릇이네." 어째서 상황이 이렇게 되었는지 도저히 납득이 안 갔다. 상식! 어릴 때부터 개념 없다는 소리는 자주 들으면서 자랐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상식은 있다. 그의 상식에 따르면 머릿속만 혼란스러워졌다. "직업이 조각사라면서......" 헤겔은 불과 8시간 전에 흑사자 길드원들에게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흑사자 길드의 채팅 채널! 헤겔은 1층의 크라마노임을 사냥한 후에 쉬는 동안 아는 사람들과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프로방스:헤겔, 너 지금 어디냐? 헤겔:아, 예. 전에 말씀드렸잖아요. 학교 친구들과 던전을 탐험 해야 된다고...... 프로방스:아, 그게 오늘이었어? 헤겔:예. 데일 왕국의 프레인 영지에 있는 던전에 와 있어요. 놀라지 마세요. 형님들. 미발견 던전을 제가 최초로 찾아냈습니다. 프로방스:정말이냐? 제크트:좀 놀라운데, 헤겔. 시엔:네가 벌써 이렇게 컸냐? 흑사자 길드는 대규모였던 만큼 헤겔에게 알은척을 하는 사람도 많았다. 미발견 던전을 찾아내는 것은 드문 일이고 또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시엔:어느 정도 수준인 던전인데? 헤겔:저렙들 던전이에요. 기대했는데 말이죠. 레벨 200대들이 와서 놀면 딱 좋을 정도죠. 뭐. 헤겔은 근처에 있는 동료들이 듣지 못하도록 작게 속삭이고 있었다. 제크트:저렙들 무시하지 마라. 저렙들도 금방 큰다. 너도 얼마전까지는 레벨 200대였잖아. 헤겔:무시 안 해요. 그냥 저렙들이 노는 던전이란 뜻이죠. 프로방스:미발견 던전을 탐험하는 맛이 쏠쏠하겠군. 뭐가 나올지 몰라 긴장도 되고...... 헤겔:아, 귀찮아요. 어차피 저렙 던전인데 뭐라도 있겠어요? 빨리 던전 탐험 끝내고 저도 길드 사냥터로 돌아가고 싶어요. 이렇게 불평을 하고 있을 때에, 묵직한 음성이 채팅방을 통해 전해졌다. 빈델:네 친구들은 강하냐? 흑사자 길드의 서열 3위 안에 드는 드워프 전사 빈델이었다. 헤겔:아니요. 약하죠. 저보다 레벨이 높은 도둑이 1명 있긴 한데요, 그 녀석 빼면 별로 볼 것 없어요. 빈델:네 레벨이 지금 300이 넘지? 레벨 300이 넘는 도둑이라... 굉장한데. 도둑은 성장시키기가 만만치 않은 직업이다. 파티에 참여하면 근접 전투를 해야 되는데 취약한 방어력으로 인해 자주 죽었다. 혼자서 탐험을 할 때의 위험 성은 파티 사냥과도 비할 바가 아니었다. 빈델:어떻게 성장시킨 도둑인데? 그리고 레벨은 얼마나 되지? 헤겔:그냥 300을 조금 넘는 정도예요. 성장은 그냥 파티 사냥을 위주로 했겠죠. 헤겔은 나이드를 치켜세워 주고 싶지 않아서 대충 얼버무리고 말았다. 전장의 꽃으로 일컬어지는 검사. 다른 직업에 대한 멸시가 어느 정도 있었고, 본인도 나이드가 보통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으므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빈델:도둑이 있다면 던전 탐험은 그나마 쉽겠군. 성직자가 없다고 앓는 소리를 하더니. 헤겔:그냥 그렇죠, 뭐. 전투는 거의 제가 도맡아서 하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아직 안 온 드워프가 1명 있어요. 빈델:호오, 드워프라. 빈델도 드워프였으므로 상당한 관심이 있는 기색이었다. 빈델:전사냐 아니면 워리어냐? 헤겔:아니요. 조각사예요. 빈델:조각사? 헤겔:네. 아는 형인데 하필이면 조각사라서...... 던전 탐험에는 그리 도움이 안 되겠지만 학교 과제를 위해서 끼워 주긴 해야겠죠. 발목이나 적당히 잡았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여기 일 대충 끝내고 어서 길드 형들이랑 사냥 가고 싶네요. 빈델:그 조각사의 레벨은 높냐? 헤겔:그게... 몰라요. 물어본 적이 없네요. 관심이 없어서요. 근데 왜 물어보세요? 빈델:얼마 전에 대단한 드워프 조각사와 함께한 적이 있거든. 헤겔:조각품을 기똥차게 만들었나 보죠? 빈델:그것도 그렇지만... 부대를 지휘하는 능력과 카리스마가 보통이 아닌 조각사였지. 나도 그의 지휘를 정신없이 따르다 보니 던전을 순식간에 뚫었더구나. 나뿐만 아니라 수십의 드워프들 이 그의 통제력에 함께 이끌렸지. 헤겔:그런 조각사가 있다니 놀라운데요. 빈델:어디 그뿐이겠냐. 요리 실력도 뛰어나서, 그가 만들어 준 요리를 먹기만 하면 전투가 우스워 질 정도였다. 잡다한 재료들도 그의 손을 거치고 나면 힘이 솟아나는 걸 느낄 수 있을 정도 의 보양 요리가 되었으니까. 헤겔:조각사가 그 정도의 요리라니...... 빈델:무기나 방어구 들이 상했을 때에 수리도 해 주니까 정말 편했지. 그 드워프가 수리해 주면 손상된 내구력 한계도 회복되었거든. 헤겔:뭐요? 한계 내구력이 회복이 돼요? 그게 무슨 소리인데요. 그런 것도 있어요? 헤겔은 내구력의 한계까지 회복시킬 수 있다는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프로방스:빈델 형님, 내구력 한계가 회복이 된단 말입니까? 제크트:다 상한 무기나 방어구 들도 멀쩡한 상태로 되돌릴 수 있다고요? 흑사자 길드원들도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명문 길드답게 흑사자 길드에도 고레벨 유저들이 상당수였지만, 한계 내구력을 수리하는 것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 했다. 애초에 무기나 방어구 들의 한계 내구력이 크게 줄어들 정도로 사냥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게다가 한계 내구력을 수리해 준다는 대장장이를 만나 본 적도 없다. 한계 내구력을 수리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중급 이상의 경지에 올라야 한다. 그 정도의 실력을 갖춘 장인이라면 무기나 방어구를 만들어서 판매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큰 돈을 벌 수 있다. 돈벌이에 크게 도움도 되지 않고 번 거롭기만 한 한계 내구력 수리를 해 주기 위해 나서는 경우는 없었던 것이다. 빈델:아무튼 그런 드워프 조각사도 있었다. 헤겔:에이, 형님! 베르사 대륙은 넓으니까 그런 드워프가 하나쯤 있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내가 아는 형은 그런 드워프는 아닐 거예요. 이렇게 길드원에게 호언장담을 했던 게 불과 8시간 전! 헤겔은 망연자실했다. "이건 빈델 형이 말한 경우보다 훨씬 더하잖아!" 이런 일이 왜 하필 자신에게 벌어지는지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넓은 지하 3층의 미로를 헤매면서 다양한 몬스터들을 사냥했다. 던전 내로 들어가서는 위험한 함정들이 있었는데, 그런 장소마다 보스급 몬스터들이 움츠리고 있었던 것이다. 위드와 나이드는 일부러 그런 함정들에 빠져서 보스급 몬스터들을 도륙했다. 몬스터의 씨를 말려 버리는 사냥 방식. 몬스터가 1마리라도 남아 있으면 뭔가 찝찝하고, 답답하고, 세수를 하면서도 이마를 안 씻은 것처럼 개운하지 못하다. 더구나 현재는 경험치가 2배로 적용되는 시점이 아닌가! 보스급 몬스터들은 위드에게도 매우 짭짤한 경험치 덩어리였고, 아이템도 쏟아졌다. 나이드는 함정들을 파괴하고, 던전을 안전하게 청소하면서 추가적인 명성과 스킬, 경험치 들을 얻었다. 따라오는 이들도 경험치와 명성 그리고 다 줍지 못한 잡템들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 도둑 나이드는 던전 3층의 지도를 완성했다. 『-던전 크라마도 지하 3층의 지도를 최초로 작성하셨습니다. 명성이 75 오릅니다. 지도 제작 스킬의 숙련도가 향상됩니다. 경험치가 증가했습니다. 』 이어진 길의 모든 종점까지 확인을 했다는 뜻. 던전 크라마도의 완벽한 점령이 끝난 셈이다. "헥헥." "이, 이 탐험이 이제야 끝이 났구나!" 헤겔이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닷새에 걸친 던전 탐험! 현실과 4배나 되는 시간 차이를 고려하더라도, 정오쯤에 캡슐방에 들어와서 거의 하루가 꼬박 지났다. 현재 밖은 해가 중천에 떠오른 한낮이리라. "정말 기나긴 하루였어." 나이드의 말에 모두 공감을 할 수 있었다. 사냥이 이렇게 무섭고 처절하게 느껴졌던 적이 없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도 생겼다. 항상 그렇듯 안전하게, 생명력을 가득 채워서 하는 게 아니라 꼬리에 불붙은 듯이 몬스터들을 찾아다닌다. 대부분의 전투는 위드가 도맡아서 했지만 다른 이들도 마나와 체력이 받쳐 줄 때마다 싸움에 참여했던 것이다. '사냥이 재밌어.' '이런 사냥을 또다시 해 볼 수 있을까.' 무서우면서도, 살 떨리는 쾌감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헤겔이 다리를 두들겼다. "모두 수고했어." 트위터가 보조개를 보이며 생긋 웃었다. "응, 너도. 던전 탐험도 끝났으니 집에 가서 푹 쉬어야겠어." 밀린 잠부터 자려고 했다. 하지만 위드는 묵묵히 검을 들고 어딘가로 걸어가고 있었다. "오빠, 어디 가요?" "사냥해야지." "더, 던전 탐험은 끝났어요." "경험치 2배의 시간이 아직 끝나지 않았어." "하지만 대낮인데요." "학교에 안 가는 토요일이야." "......" 묘하게 흐르는 분위기에 벨라가 참견했다. "하지만 오빠, 이런 식으로 하면 몸이 상해요." "몸?" "날밤 새웠으니 집에 가서 늦잠이라도 자 줘야 되잖아요. 밥도 먹어야 하고요." "밥은 아까 먹었어. 잠도 잤고." "언제요?" "새벽에. 집에 가서 동생 밥 차려 주고 2시간이나 자고 왔어." "......" 던전 탐험을 하던 도중에 일행이 휴식 시간을 갖고 쉬고 있을 때 위드는 밥 먹고, 잠도 자고 왔다는 뜻! 로열 로드를 장기간 하기 위해서 몸 관리는 필수였다. "법학과가 주최하는 가면무도회에 오세요! 신입생들은 30% 할인된 가격에 모셔요." "예쁜 누나들이 많은 미생물학과에서 노예팅합니다. 누나들보다 어린 동생들만 참여 가능해요." "사회체육학과 레크리에이션 동호회 크루에서 차력 쇼를 보입니다." "자!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 축제 기간 동안만 할 수 있는 맨손으로 물고기 잡기!" 한국 대학교의 축제 날이 되었다. 이현에게는 그렇게 싫은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결국 이날이 오고야 말았군.' 평소에는 학교 수업을 마치면 바로 자유 시간이다. 얼마든지 로열 로드를 할 수 있다. 잠을 조절하면서, 하루에 12시간 정도를 로열 로드에 투자했다. 다른 다크 게이머들보다는 적은 시간을 할 수밖 에 없기에 더욱 치열하게 시간을 아껴서 써야 했다. 레벨도 358까지 올려놓을 수 있었다. 하지만 축제 기간에는 꼼짝도 할 수 없이 학교에 있어야만 하다니! 이현에게는 감옥처럼 느껴졌다. "입시 지옥이 별게 아니야. 정말 인간이란 끊임없이 구속 받으며 살 수밖에 없는 존재란 말인가?" 존재에 대한 의문! 이현이 일생에서 최초로 해 보는 철학적인 사고였다. 다른 꼬마 아이들은 동네 강아지들과 함께 놀면서 감성을 키운다. 낮잠 자는 개들을 보며 동물들의 일상에 대 하여 사색에 잠겨 보기도 한다. 하지만 이현은 그런 삶을 살아오지 않았따. 약육강식! 만만한 개를 보면 된장부터 떠올린다. 개와 된장. 라면과 계란의 관계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연상의 과정. 뼈다귀 몇 개를 던져 주면 꼬리 치며 다가오는 개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열 살의 이현! '저 멍멍이는 육수가 잘 우러나오겠군.' 모두가 즐거워하는 축제지만, 이현은 어서 끝나기만 바랄 뿐이었다. "설거지 부대, 출동!" 이현은 주점을 총괄하는 자리에 올랐다. 동기들보다 나이도 있고, 주점을 준비할 때부터 능력을 발휘한 탓에 영향력이 커진 탓. "알았어요!" 고무장갑을 낀 학생들이 컵과 그릇 들을 닦았다. 그릇 가게에서 임대해 온 물건들이라서 사용하기 전에 철저한 설거지는 기본. "손님들은 언제부터 받을까요?" "여학생들이 준비되는 10분 후부터!" 서빙을 맡은 여학생들이 오면 바로 영업 개시였다. 안주들을 만드는 사이에도 밖에서는 음악 소리, 폭죽 소리들이 들렸다. 천막 주점의 외부에는 다수의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타학교 학생들, 외부인들이 본교 학생들보다도 훨씬 더 많았다. 이윽고,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가볍게 화장을 한 여학생들이 나타났다. 흰 면사포를 쓰고,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로 나타난 여대생들! 여대생들은 각자 친한 사람들을 향해 걸어갔다. "멍하니 있지 말고 내 면사포 벗겨 줘!" 남학생들은 면사포를 벗겨 주면서 왠지 설레었다. 여대생들이 미리 일러두었다. "별 의미는 없는 거야. 원래 남자가 벗겨 줘야 느낌이 나잖아." "알아!" 남학생들은 면사포를 뒤로 젖혔다. "이렇게 보니까 달라 보인다." "선머슴, 이렇게 보니까 우아해 보이는데." "죽을래?" 동기들끼리 격의 없이 농담을 나누기도 했다. 여학생들의 웨딩드레스는 직접 만들어서, 그리 예쁘거나 디자인이 썩 훌륭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비슷하게 흉 내는 내서, 어린 신부의 느낌이 조금은 나왔다. 여학생들이 모두 나오고, 마지막에 들어간 서윤만이 나오지 않았다. "......" 주점에 대화가 끊겼다. 주방에서 안주를 준비하던 학생들도, 테이블을 걸레로 닦고 있던 학생들도 말이 없어졌다. 무언가를 기다리면서 탈의실로 시선이 잔뜩 몰려 있었던 탓이다. 딸깍. 탈의실의 문이 조심스럽게 열리고 서윤이 걸어 나왔다. 그 순간 남자들은 넋을 놓았다. 꿈속에서나 그리던 여인이 이곳에 있었다. 이슬만, 그것도 8중 필터로 거르고 걸러서 마셔야만 유지 될 것처럼 고운 피부! 서윤은 얼굴에 살짝 화장도 했다. 남자들이 흔히 하는 착각이, 화장이 성형 수술인 줄 안다는 것이다. 화장은 얼굴과 표정에 색을 더해 준다. 서윤이 가볍게 한 화장은 그녀만의 아름다움이 더욱 느껴지게 만들었다. 평소 때의 꾸미지 않은 상태에서도 극도로 예쁜 얼굴이 지금은 오랫동안 쳐다보기도 힘들었다. 눈도, 코도, 입술도 너무나도 예쁜데, 그것들이 전체적으로 어우러져서 보여 주는 조화미. 자연 발광의 절정이 어떤 것인지 느껴지게 만들 정도의 미모가 여기에 있었다. 숨이 멎고, 이대로 죽어도 여한 이 없을 듯한 기분을 단지 얼굴만 보고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웨딩드레스의 얇은 원단은 몸매의 라인을 환상적인 자태로 자아냈다. 서윤이 걸어올 때마다 꿈결처럼 느껴졌다. 수수하게 다녀도 예쁘다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꾸민 후의 미모란 정신을 놓게 만들 지경이었던 것. 남자들은 입안이 바짝 말랐다. 수십 년을 물을 마시지 않은 사람이 물, 그것도 꿀물을 발견한 것 같은 감동! 세기의 신비가 여기에 있었다. 얇은 원단이 슬쩍슬쩍 비쳐 주는 다리에서부터 허리, 가슴, 쇄골로 이어지는 드레스의 라인이 완벽했다. 서윤이 가지고 있는 마력 같은 아름다움. 팔뚝조차도 야할 수 있는 그녀! 면사포를 쓰고 있는 더없이 아름다운 얼굴이 수줍음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서윤이 걸어올 때마다 드레스가 사륵사륵하는 소리를 냈다. 그녀는 이현을 향해 고개를 숙인 채로 걸어왔다. "여신이다." "여신이야." 주위에서 찬탄하는 소리들이 나왔다. 여학생들이 부러움에 중얼거렸다. "저 드레스, 세계적인 디자이너 마리 끌로앙의 작품이래." "우... 진짜 너무 예쁜 드레스다." 남학생들은 진심으로 공감했다. "과연 세계적인 디자이너!" "훌륭해. 훌륭해!" 디자이너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이 생겨나는 순간! 서윤은 이현에게 가서 고개를 살짝 들었다. 맑은 그녀의 눈빛이 보인다. 면사포를 벗겨 달라는 의미인 것을 누구라도 알 수 있으리라. ▷노예 데이트 이현이 면사포를 벗겨 주자마자, 천막 주점에는 손님들이 들이닥쳤다. "영업 시작할 시간이죠?" "주점 열었죠?" 미리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던 손님들에게 10분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15분을 기다려도 소식이 없으니 손님들 이 밀고 들어온 것이다. "헉!" "서, 서윤이다." 서윤은 한국 대학교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인. "주문요." 서빙을 맡은 여학생들이 드레스를 입고 뛰어다녔다. "손님, 주문해 주세요!" "주문 안 하실 거예요?" 손님들은 음식을 시키라는 재촉에도 서윤만 넋을 잃고 볼 뿐이었다. 아름다움이 주는 시각적인 충격! 주문을 하라는 여학생들의 재촉에 메뉴판을 보고 다시금 놀랐다. "산 곰장어, 자연산 우럭, 대게찜, 장어구이, 해물 자장면 등... 이거 진짜 메뉴예요? 우럭을 시키면 매운탕도 따라온다니......" "네. 오늘은 주로 해산물 위주고요, 축제 기간 내에 메인 메뉴는 매일 바뀌어요. 과일 안주나 계란말이, 파전 같은 메뉴는 늘 주문 가능하고요." "일단 산 곰장어 3인분 주세요." "여기 산곰 3인분!" 손님들의 테이블에 버너와 불판이 척척 놓였다. 그러고는 곰장어들이 살아 있는 채로 양념과 함께 요리가 되는 것. 곰장어가 꿈틀러릴 때마다 양념과 뒤섞였다. 요리가 다 된 후에는 영양가 만점의 곰장어를 토막 내어 먹는다. 이현은 기왕 주점을 할 것이라면 수익도 내고, 음식의 질도 끌어 올리고 싶었다. "아무리 축제 주점이라고 해도 대충대충은 있을 수 없지!" 손님들이 돈을 내고 사 먹는 음식이다. 어수룩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맛도 영양도 확실하게 책임져야 할 일. 우럭 등의 회를 뜨는 것은 이현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기에 가장 바빴다. 도마에서 예술적으로 움직이는 칼질! 살점을 발라낸 우럭이 살아서 눈을 끔벅였다. 신경들을 교묘하게 피해 가면서 이루어질 칼질이었기 때문이다. 오늘 자연산 우럭이나 대게, 곰장어 들은 평소 친분이 있던 시장 상인들이 납품을 해 주었다. 재료의 신선함은 물론이고, 믿을 수 있는 제품들을 염가에 받을 수 있었다. "정말 대학생이었어?" "아무튼 학생들에게 많이 홍보해 줘. 시장 상품 사 달라고 말이야." 넉넉한 인심 덕에 좋은 재료들을 쓸 수 있었지만, 장소가 학교 주점이다 보니 가격이 비쌀 수가 없다. 로열 로드에서야 사냥을 통해 너 나 할 것 없이 돈을 벌 수 있으니 바가지를 씌워도 부담이 적다. 하지만 학생 들에게 비싼 가격을 받는 건 양심의 문제였다. 결국 적당한 수준에서 양을 줄이고 가격을 높지 않게 조절했다. 그럼에도 손님들은 만족했다. "여기요." "9번 테이블에도 주문 받아 주세요." 서윤도 드레스를 입은 채로 주문을 받으러 돌아다녔다. 단지 걸어만 다닐 뿐인데도 뿜어 나오는 여신의 포스! 멍하니 쳐다보다가 손님들이 음식을 흘리는 경우가 많았다. 술을 먹다가 몇십 분씩 서윤만 바라보는 일은 다반 사로 일어난다. 서윤이 걸어 다닐 때마다 달콤한 레몬 향도 났다. 화장품은 가벼운 스킨이나 로션만을 바른다. 맨 얼굴로도 압도하는 그녀였지만 오늘은 특별히 향수를 뿌린 날이 다. 서윤이 손님들에게 메뉴판을 내밀었다. "......" 주문을 바라면서 가만히 서서 기다렸다. 주위 손님들의 눈길에 부끄럽지만 참아 내고 있었다. "과일 안주 주세요." "......" 서윤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 돌아섰다. 테이블에 안주가 상당히 남아 있던 손님들도 앞다투어 새로운 주문들을 했다. 순전히 서윤에게 말 한마디라도 해 보기 위한 욕심에서였다. "손님들이 30분이나 기다리고 있어요." "주방장, 대게찜 언제 나와요?" "금방 나가!" 이현만 초주검이었다. 요리 속도가 느린 다른 학생들 때문에 2배, 3배 일해야 했던 것이다. 축제의 첫째 날에는 폭죽도 학생들의 노래도 구경하지 못하고 아예 주방을 떠자니도 못했다. 다음 날 주점에는 더욱 많은 손님들이 일찍부터 밀려들었다. "주문 받아 주세요!" "여기 주문요!" 주방과 테이블 모두 분주했지만, 첫날보다는 한결 여유가 엿보였다. 요리들은 미리 손질을 마쳤고, 밑반찬도 충분히 준비를 해 놓았다. 술도 박스째로 쌓아 놓았으며 천막도 확장 했다. 학과에서 10명이나 되는 지원군도 보내 줘서 설거지와 테이블 청소 등 잡일을 해 주었으니 일이 줄어든 탓이다. 돈을 버는 재미로 이현은 일을 하는 보람을 느꼈다. '첫날 마진이 70만 원. 그릇 등의 닷새간 대여료를 다 포함하고도 이만큼이나 남았어.' 지금의 장사는 다 훗날의 경험! 손님을 상대하는 법이나 요리법은 아르바이트 경력 등을 통해서 이미 충분히 안다. 그럼에도 자영업이란 만만 하게 봐서는 안 될 일. '이런 특수에 대박을 치지 못한다면 앞으로 장사 쪽으로는 눈길을 돌려서는 안 돼!' 남들이 즐기고 노는 축제의 날 비장한 각오로 주방을 책임졌다. 둘째 날도 큰 규모의 수익을 내고, 셋째 날부터는 테이블에 자리가 비는 시간이 없게 되었다. 축제의 나흘째가 되었을 때도 이현은 축제 구경은 일절 불가능했다. 그 모습이 안쓰러웠던지 선배들이 대신 부엌칼을 잡았다. "이현아, 여긴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너도 가서 놀고 와." "제가 맡은 장소는 여기인데요." "지금이 무슨 신라 시대냐, 임전무퇴의 정신을 발휘하게? 축제가 무슨 전쟁터도 아니고, 가서 놀다 와. 다른 애들도 눈치껏 빠져서 놀기도 하고 그러는데, 너도 축제를 즐겨야지." 이현은 앞치마를 벗어 놓고 허리를 폈다. '축제라...... 다른 학과에서는 무슨 장사를 하는지 볼 필요성은 있겠군. 식당에서도 여러 노하우들이 필요한데. 정보란 다양할수록 좋지.' "그럼 잠시만 나갔다 오겠습니다." "오늘은 그냥 푹 쉬어. 벌써 저녁 6시다. 주점은 10시까지만 하기로 되어 있으니까 나머지는 우리가 알아서 해 볼게." 축제의 열기가 과열되지 않도록, 주점들은 10시면 문을 닫았다. "예." 이현이 천막 주점을 둘러보았다. 테이블이 손님들로 가득 차 있고, 학생들은 주문을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지난 사흘간 서윤의 인기는 단연 최고였다. 모든 손님들이 그녀에게 주문을 하기를 원했다. 덕분에 고생하던 서윤은 오늘은 휴가를 받아 주점에 나오지 않 았다. "내가 없어도 알아서 잘 돌아갈 테지." 이현은 천막 주점을 나오자마자 축제의 인파에 휩쓸렸다. 가족 단위로 나온 사람들, 타 학교 학생들, 분장을 하고 돌아다니는 한국 대학교 학생들. 조용하던 교정이 시끌벅적했다. 젊음의 열기가 느껴지는 공간! 이현은 그 열기를 들이마시기라도 할 듯이 크게 숨을 쉬었다. "아, 좋다. 돈 냄새가 물씬 풍기는구나!" 항상 도시락을 까먹던 잔디 광장에는 무대가 만들어져서 밴드들이 연주를 했다. 가상현실학과에서는 체육대회와 가요제, 연극에 몇 팀씩 참여했다. 결과는 모두 참패! 체육대회는 예선 탈락, 가요제는 라이브 도중에 고음 불가 사태, 연극에는 초등학생 관객들만 몇 명 찾아왔다 고 한다. "저 누나들 연습 안 했나 봐." 안경을 쓰고 있는 예리한 눈빛의 초등학생은 이런 말도 했다. "허술해." 초등학생들에게도 비판받는 연극! 가상현실학과의 모든 지원이 주점으로 향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다. 다른 학과들은 미리부터 많은 준비를 한 듯 다양한 행사들을 개최하고 있었다. 학과의 특성을 살려서 수의학과 쪽에서는 소고기를 판매 했다. 사회복지학과에서는 장애인들과 노약자들의 휠체어를 밀어 주며 안내를 해 주고 있었다. 인근 호텔이나 본인의 집 등에서 숙박을 시켜 주면서 직접 목욕도 시켜 주고 선물도 주는 뜻깊은 행사를 한다 고 한다. 의상디자인학과에서는 직접 만든 옷들을 염가에 판매 했다. 음대생들은 항상 인기가 좋은 편이었다. 미모의 여대생들이 연주를 하니 남자 관객들이 바글바글해 흥행 몰이 를 했다. 무대들이 이곳저곳에 세워져 있고, 소규모 행사들도 끊이지 않는다. 쓰지 않는 물건들을 처분하는 벼룩시장도 활발했다. 이현의 발길이 메인 무대의 뒤에 있는 벼룩시장 쪽으로 향할 때였다. 그의 팔을 옆에서 누군가가 잡아끌었다. "자, 여기 또 1명의 지원자가 나온 것 같습니다." 무대에서는 사회자가 노예팅을 진행 중이었다. 진행 요원들이 관중 중에서 노예팅 참여자를 선정하고 있었는데, 관중을 제치고 이현이 불쑥 튀어나왔던 것이다. 노예팅에 참가한 남학생들은 총 30명! 사회자가 마이크를 가까이 대고 외쳤다. "각자 갈고닦은 장기 자랑을 보여 줄 시간입니다. 얼마나 멋진 장기들을 보여 주느냐에 따라서 주인님이 달라질 수 있으니 노예 여러분이 최선을 다해야겠죠! 그럼 1번 참가자부터 시작입니다." 이현은 23번의 번호를 받았다. 무대에 올라서지 않고 버티려고 했지만, 관중의 야유로 인해서 부득이하게 올라왔다. '장기 자랑이라니, 오늘의 운수는 최악이구나.' 잘하는 게 대체 뭐가 있는가! 그게,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무술뿐이다. 다른 참가자들이 노래와 춤, 악기 연주, 마술, 개그 쇼 들을 보여 줄 때마다 이현의 얼굴은 점점 굳어졌다. 관중의 싸늘한 눈초리에 겁이 났던 탓! 나서는 성격도 아니고, 개인기가 있지도 않았으니 긴장이 더해졌다. 무대 공포증. 같은 학교 학생들이 보고 있으니 더욱 끔찍 했다. '춤을 추자. 국민 체조라도 할까?' 6번 참가자가 머저 국민 체조를 했다. "우우우!" "지겹다. 때려쳐!" 이현은 안도했다. '다행이야. 국민 체조는 안 해서. 그럼 노래를 부를까? 명곡인 <끝까지 사랑해요>가 좋겠군.' 14번 참가자가 먼저 그 곡을 불렀다. 웃을 수도 없어요 매번 당신의 웃음이 기억나서 울지도 못하죠 내가 슬퍼하면 당신이 아파할지도 몰라서 이현이 듣기에는 기가 막힌 가창력을 가지고 있는데도 높은 점수는 못 받았다. 이제 점수를 잘 받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넘겨야만 한다. "23번 참가자의 장기 자랑을 보겠습니다." 어느새 순서는 이현의 차례로 넘어왔다. 짧게 보여 주는 장기 자랑이었기에 느긋하게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다. "칼을 좀......" "네?" "사과 깎기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사과요. 사과 준비되겠습니까? 네, 금방 과도와 함께 준비된다고 합니다. 23번 참가자의 장기 자랑은 사과 깎기. 모두 한번 감상해 보시죠." 진행 요원들로부터 넘어온 잘 익은 사과와 과일칼! 이현은 사과를 빙글빙글 돌리며 어루만졌다. 그리고 한 순간. 사사사사사삭. 한 호흡에 과도가 사과의 껍질을 깎으며 미끄러졌다. 칼날이 스칠 때 허물 벗듯이 벗겨져 나가는 사과 껍질. 중간에 끊어짐이나 잔여물도 남아 있지 않았다. "벌써 다 깎으신 건가요?" "예." "정말 빨리 껍질을 깎았네요. 어쨌든 좋은 묘기를 보았습니다!" 사회자가 흥을 돋우기 위해서 치켜세워 줬다. 노래나 춤등의 흔한 장기 자랑만 보다가 새로운 묘기를 보았다는 생각에서였다. 관중도 적당히 박수를 쳐 주었다. '휴. 겨우 넘어갈 수 있었군.' 이현의 뒤에도 7명이 장기 자랑을 하고, 이제 노예들의 가격을 매길 시간이 되었다. 사회자가 노예들을 줄지어서 세웠다. "잘생긴 분들은 뒤쪽에! 본인이 평범하다 싶은 분들은 앞쪽에 서 주시기 바랍니다!" 이현은 사회자의 말대로 앞에 서려고 했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지.' 그런데 다른 노예들이 먼저 튀어나가서 앞쪽을 차지했다. 관중 중에 노예를 구입할 의사를 가진 사람은 일부일 뿐! 구입해 줄 친분 있는 사람들을 미리 섭외해 놓은 마당이었으니 앞에 서려고 했다. 무대책으로 나온 사람은 이현과 몇 명뿐이었다. "30,000 원에 팔렸습니다." "15,000 원에 팔렸습니다." "이번 노예는 꽤 고가로군요. 48,000 원! 구매하실 분의 말씀으로는 오늘 하루 제대로 부려 먹어서 본전을 뽑을 생각이랍니다!" 이현의 차례도 돌아왔다. 사회자는 이현을 살피더니 크게 낙담한 듯이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이번 노예에 대해 말씀드릴 것 같으면... 힘은 좋아 보입니다. 가격 포기합니다. 10 원부터 시작합니다." 노예의 가격 10 원! 다른 노예들은 최소 몇백 원, 혹은 천 원에서 시작했는데...... 장난인 줄 알면서도 이현은 비참함을 느꼈다. 그런데 10 원에도 손을 드는 사람이 없는 것이었다. "여기요. 20 원!" 관중 중에서 아이를 업고 있는 아줌마가, 딱해 보였는지 손을 들었다. 그러자 다른 쪽에서도 손을 들었다. "20 원 받고 10 원 더!" 소리친 곳을 쳐다보니 여동생 이혜연이 있었다. 30 원까지 불러 주는 감격적인 가족의 정! 사회자가 소리쳤다. "자, 30 원까지 나왔습니다. 40 원 부르실 분 없습니까?" "40 원!" "55 원!" "80 원!" 어차피 싼 가격이다 보니 마구 부르는 사람들이 나왔다. "175 원." "199 원!" "390 원!" "390 원! 390 원을 끝으로 더 이상 부르는 사람이 없으면 이대로 낙찰됩니다. 열을 세겠습니다. 열. 아홉... 일곱......" 비참한 가격 390 원! 더 이상 높은 가격을 부르는 사람이 등장하지 않자 사회자는 낙찰을 시키려고 했다. 숫자를 둘까지 세었을 때였다. 청바지에 야구 점퍼, 모자를 깊숙이 눌러쓰고 있는 여자가 손을 들었따. "2백만 원!" "2백만 원! 2백만 원 나왔습니다. 정말 2백만 원을 부르셨습니까?" 사회자가 흥분해서 소리쳤다. 관중의 시선도 일제히 그 여자에게로 향했다. 너무나도 당연히 장난일 줄로 안 것이다. 하지만 그 여자가 야구 점퍼와 선글라스를 벗자 찬탄의 소리들이 나왔다. "정효린이다!" "정효린이 우리 학교 축제에 왔다." 세계적인 무대 위의 노래하는 요정이라는 정효린이 노예팅에서 2백만 원을 부른 것이다. 이현은 그렇게 정효린에게 낙찰되었다. "노예, 팔짱!" "넷." 이현은 서둘러서 정효린과 팔짱을 끼었다. 고혹적인 향기가 맡아질 정도로 밀착된 거리. 팔짱을 끼고 사람들을 헤치며 다른 장소로 향했다. 정효린을 구경하려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고, 이목이 집중되어 있었다. 정효린이 생글생글 웃었다. "저, 축제 구경시켜 줄 거죠?" "나도 잘 모르는데......" "괜찮아요. 같이 돌아다니면서 이것저것 해 보는 게 재밌는 거잖아요. 저도 대학생이기는 해도 학교에는 거의 못 가봤거든요. 축제 구경도 처음이에요. 축제에서 노래를 부른 적은 많아도요." "그냥 다른 사람이랑 돌아다니시죠. 전 바쁜 몸이라서......" "노예, 반품한다?" "......" 노골적인 반품의 협박! 노예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다시 무대에 오르거나, 혹은 2백만 원을 물어 줄 수도 없다. "축제를 안내해 드리죠." "진작 그러시지." 정효린은 이현을 잘 파악하고 다루는 법에 익숙해졌다. '협박이 가장 잘 먹혀!' 정효린은 이현의 팔을 꼭 끌어안았다. 이현은 걸을 때마다 그녀의 몸을 느낄 수 있었다. 군살 한점 없는 몸매와 포근한 가슴이 팔에 자꾸 부딪쳤다. "저기, 주인님. 연예인이 이래도 됩니까?" "뭘요?" "팔짱 끼고 돌아다니면 오해를 살 수가 있지요." "어떤 오해를 사는데요?" "무릇 남자와 여자가 이렇게 붙어 있다 보면......" 사람들이 하는 말소리가 들렸다. "정효린 씨, 진짜 착해." "불우이웃돕기 노예팅에 2백만 원도 기부했다잖아." 노예팅의 수익금은 전액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쓰이게 되어 있었다. "팔짱 낀 것 좀 봐." "쉿! 팬 관리야. 팬 관리." "역시 착한 정효린이라서 저런 남자에게도 애인처럼 잘해 주는구나." "팔리지도 않던 노예 주제에 완전 행운을 잡은 거지, 뭘." 한국 대학교 축제에는 기자들도 있었지만, 가볍게 스쳐 지나갔다. "첫 앨범부터 떠서 데뷔 초반 이후로는 대학교 축제와는 담쌓고 지낸 줄 알았는데 정효린 씨가 이런 곳에 오다니... 의외인걸." "세계적인 요정답지 않게 정말 착해." 화사한 매력을 한껏 발산하고 있는 그녀였다. 주점에서 일하다가 나온 이현과는 안 어울려도 너무 안 어울린다. 할리우드의 유명 남자 배우들의 고백까지도 무시해 버린 전력이 있었기에 더욱 다른 생각을 하지 못했다. 스캔 들이나 남자관계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깨끗했던 정효린이었다. 노래만을 사랑한 그녀였던 것이다. "남자랑 팔짱 껴 보니까 살짝 설레네. 다들 이런 기분으로 팔짱을 낄까." "예?" "그냥 혼잣말이에요." 이현은 그녀가 한 말을 들었다. '나도 여자와 팔짱을 끼어 본 건 처음인데......' 스물두 살이 넘도록 여성과의 접촉은 거의 여동생이 유일했다. 어린애일 때 업고 다니고, 기저귀를 갈아 주고, 목욕을 시켜 주던 아득한 시절의 접촉이 전부였던 인생! "우리 인간 두더지 잡을래요?" "싫은데......" "2,000원이래요." "......" 이현의 호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지폐 두 장이 나왔다. '역시 여자와의 데이트에는 돈이 드는구나.' 2,000원이나 쓰다니, 평생 잊을 수 없는 날이 될 것 같았다. 늙어 죽는 순간에도 떠오르게 될지 모를 일. 정효린은 팔짱을 풀지 않은 채로 왼손으로 뿅망치를 들었다. "얏! 얏!" 이현은 방관하려고 했지만 자꾸만 빗나가는 그녀의 뿅망치를 보면서 집중이 되는 자신을 어쩌지 못했다. "좀 더 왼쪽!" "알았어요." "오른쪽에 지금 나오려고 해!" "봤어요!" "위쪽에서 두 번째! 지금 안 들어가고 있다. 빨리 잡아!" "내가 알아서 할 거라니까요!" 두 남녀의 승부욕이 불타올랐다. "우씨, 12마리나 놓쳤어." "더 빨리 움직였어야지." "옆에서 자꾸 말 시켜서 그렇다니까요. 말만 안 시켰어도 안 놓쳤어요." "다시 해 봐." "진짜 다 잡을 거예요." 정효린은 아까보다 과격하게 뿅망치를 휘두르면서도 팔짱을 풀지 않았다. 불편하겠다는 생각에 슬며시 팔을 풀려고 하다가, 이현의 손이 그녀의 손을 살짝 스쳤다. 그러자 정효린이 이현 의 손을 꼭 붙잡는 것이었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리고 친밀하게 이루어져 버린 일이었다. "쳇! 3마리 놓쳤네." "그래도 잘한 편이야." "다음엔 뭘 하고 놀까요?" 두더지를 잡으면서 친해진 남녀! 이현도 편안함을 느낀 탓인지 말을 놓았다. "비비탄 권총 쏴서 인형 뽑기 할래?" "좋아요." 한 발에 300원! 이현은 가격대를 보고 나름 저렴한 놀이를 골랐다. "아저씨, 각자 열 발씩 총알 장전해 주세요." 정효린은 이번에는 자신이 지갑을 꺼내 계산했다. 이현에게 큰 감동을 주는 행위였다. '좋은 여자구나......' 정효린이 한 손으로 권총을 들었다. "제가 먼저 쏠게요." "응." 정효린이 쏘는 총알들은 절묘하게 인형들을 빗나갔다. 어쩌다가 인형이 맞더라도 쓰러지지 않았다. 원래 이 바닥이 다 그렇다. 함부로 인형을 넘보려고 하는 손님들고 주인 간의 전쟁! 정효린의 실패 후에, 이현은 큰 인형은 노리지 않았다. '중형 인형 무게 대략 780그램. 인형 눈을 붙일 때에 수없이 느껴 봤던 무게다. 비비탄으로는 정확히 쓰러뜨리기 쉽지 않아.' 인형의 중심을 맞히더라도 타격력이 크지 않다. 연발로 쏴야만 가능하리라. 한 발에 300원씩 내던지는 셈이라서 이현은 작은 참새 인형만을 신중히 노려서 떨어뜨렸다. '성공이다.' 이현은 참새 인형을 여동생에게 줄 작정이었다. '올해 생일 선물은 이걸로 때우면 되겠군.' 그런데 정효린이 인형을 가로챘다. "이거 저 주는 거예요?" "......" 눈을 반짝이며 달라고 하는 예쁜 표정에 차마 거부할 수가 없다. "가, 가져도 돼." "고마워요." 장효린은 소중한 듯이 인형을 품에 안았다. 둘은 회전목마도 타고, 대학생들의 연극도 관람했다. 한국 대학교의 본관 옥상에서는 축제와 도시의 야경을 보는 기회도 가졌다. 폭죽이 하늘을 수놓고 있을 때에도 정효린은 이현의 손을 놓지 않았다. 좋아하는 감정을 고백하지 않고, 느낄 수 있도록 전하는 그녀의 방식이었다. 이현은 생각했다. '손잡는 거 참 좋아하는구나.' 호숫가의 작은 무대에 정효린이 올랐다. 청중도 몇 명 되지 않는 초라한 무대. 악기로는 피아노 한 대가 있을 뿐이었다. "우리 노래 부를래요?" 정효린이 피아노 의자에 앉아서 물었다. 여전히 손을 잡은 채라서 이현도 옆에 앉아 있었다. "어떤 노래?" "아무 노래라도... 원하는 곡을 말씀해 보세요. 어떤 노래라도 좋지만 행복한 곡이었으면 좋겠어요. 지금이 너무 행복하고, 기분이 좋아요." 정효린은 콘서트를 위해 세계 각국을 돌아다녀야 했다. 마력적인 음성으로 콘서트에서 6만 명을 열광시키고, 어느 사회주의국가에서는 광장에서 수십만 명의 청중에게 음악의 자유로움을 만끽하게 했다. 노래를 부르면서 더없이 빛이 나던 매력적인 그녀였지만, 무대를 마치고 나면 외로운 호텔 방에서 혼자 잠이 들 었다. 음악만이 유일한 벗이었고, 허전함과 고독을 달래 주는 수단이었다. 행복을 노래하지만, 정작 노래를 부른 후의 그녀는 너무도 외로웠다. 이현과 함께 있으면 진심으로 행복한 노래를 부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눈빛 대화>를 들려줄래?" 정효린의 데뷔 곡 <눈빛 대화>. 이현의 여동생이 가장 좋아하는 곡이기도 하다. 정효린이 열여섯 살 고등학생일 때 발표한 것으로, 이 곡이 전 세계적인 히트를 치면서 그녀는 스타가 되었다. 후속 곡들이 대중의 더 큰 사랑을 받았지만, 앳된 소녀가 부르던 <눈빛 대화>를 잊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다. "불러 줄게요. 대신... 한 손으로만 연주할게요." 이유는 손을 놓고 싶지 않아서였다. 이 세상에 언어는 없어요. 단지 우리는 의미 없는 웅얼거림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죠. 그대가 하고 싶은 말을 하세요. 저는 듣지 못하고 있으니. 정효린의 목소리는 마법처럼 퍼졌다. 한 손으로 연주하는 약간 부족한 피아노의 멜로디를 감싸 안기에 충분할 만큼 곱고 아름답다. 어떤 몸짓도 허용되지 않아요. 대화는 존재하지도 않아요. 오로지 할 수 있는 것은 눈빛뿐. 당신의 눈빛을 내게 보여주세요. 간절함, 안타까움, 애절함, 분노, 실망, 염원, 친근함, 사랑. 이 모든 감정을 눈빛으로 표현해 주세요. 음악에 이끌린 청중이 무대로 걸어오고 있었다. 조그마한 소란도 일으키지 않도록 조용히 좌석을 찾아 앉았다. 그리고 휴대폰을 꺼내 친구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호수 공연 무대에서 정효린 노래 중. 빨리 와!' 밥을 먹을 때에는 무엇을 고를지. 맛있게 먹었는지, 그다음에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두 눈빛으로 말해 주세요. 서로의 눈을 마주 보며 마음을 읽어 나가죠. 어떤 오해와 왜곡도 없는 세상. 그대의 눈빛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마음을 볼 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 해요. 그래도 우린 서로의 마음을 완전히 알 수는 없죠. 당신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보이더라도 저는 받아들일 수 있어요. 저 또한 그럴지도 모르니까요. 눈빛을 본다는 건 정확하지 않은 모호함. 감동 없는 말이 아니라, 행복을 비춰 주세요. 그대의 눈동자에 내가 보이도록. 잠시라도 내 얼굴에서 눈을 떼지 말아요. 눈빛 한 번에 마음 한 번 그렇게 마음을 비춰 주세요 당신의 빛나는 눈동자가 가깝다면 더욱 좋겠네요. 여전히 신비로운 목소리. 앳된 고등학생이던 그녀는 없지만, 이제 막 사랑을 알아가는 여인이 있었다. 신비로운 목소리로 슬픔과 비통함이 아니라 사랑을 가르쳐 달라고 흐느끼고 있다. 딱딱한 말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지 못한다면. 그때 저는 눈빛으로 말하고 싶어요. 눈빛이야말로 고막을 통해 들리는 음성보다도 훨씬 당신의 가슴에 깊이 파고 들어갈 테니까요. 말로는 전하지 못하는 무엇을 전할 수 있을 거예요. 눈빛으로 말하기. 저는 당신의 눈빛을 보고 싶네요. 정효린은 피아노를 보지 않았다. 바로 옆에 앉아 있는 이현을 보면서, 흑요석 같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노래했다. ▷스미스의 궁금증 위드는 누렇게 뜬 얼굴로 네칸 성으로 귀환했다. 던전 크라마도에서의 쉴 새 없는 사냥! 레벨과 아이템은 상당수 얻을 수 있었지만 그 대신 과로에 걸려서 죽을 위기에 빠진 것이다. 현재의 체력과 스 탯 들은 정상이었을 때의 3할에도 미치지 못했다. 위드는 한 보따리의 땅콩과 마늘과 양파를 구입한 후에 선술집에 들어갔다. "여기 흑맥주 한 반!" 맥주를 주문해서 들이켰다. 『-체력이 소량 회복됩니다. 중증 과로에 빠져 있습니다.』 이제 조금이나마 살 것 같았다. '사냥뿐만 아니라 축제도 지긋지긋했지.' 대학 시절에 처음 맞이하는 청춘의 축제가 그에게는 지겨운 일! '돈을 벌어야 될 시간에 남들처럼 여유를 부릴 수는 없지. 남들처럼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놀고 싶은거 다 놀고,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언제 돈을 모을 수 있겠어?' 요즘은 시대가 꼬마 애들도 빈부 격차에 대해서 알 정도였다. 위드의 시각에 따르면 부모가 운전하는 외제 차를 타고 유치원에 온 아이는 자신감에 차 있고 당당하다. 하지만 통학버스를 타고 온 아이는 어딘가 위축되어 있다. "너......" "응?" "모나미 볼펜 쓰는구나." "우리 엄마가 실직을 해서...... 다음 달에는 일제 볼펜으로 바꿀게." 위드의 꿈에 나왔던 유치원생들의 대화였다. 실제로 돈의 유무는 사소한 구석에서도 차이가 났다. 식판에 있는 음식을 먹을 때, 잘사는 집 아이는 소시지부터 케첩에 찍어 먹는다. 하지만 못사는 집 아이들은 콩나물이나 나물부터 먹는다. 소시지는 아껴 두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이현은 본인에게 자격지심이 있음을 인정했다. '흰 우유만 마시고 자란 아이와, 딸기 우유를 마시고 자란 애들이 서로 같을 수는 없지.' 심금을 울리는 딸기 우유 이론! 위드는 맥주를 마시며 축제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정효린의 라이브 무대는 새벽까지 이어졌다. 앙코르가 계속되고, 이현은 손을 잡고 함께 있어야만 했다. '어디 그것뿐이야?' 그 정도에서 멈췄다면 체력이 이처럼 심하게 고갈될 일은 없었을 것이다. 축제의 마지막 날. 선배들은 서윤에게 말했다. "서윤아, 너도 축제를 즐겨야지. 여기서 일만 할 거니?" 주점 손님들의 90%는 서윤을 보기 위해서 온 것이지만, 선배들은 그녀에게도 자유를 주었다. "나가서 구경이라도 하고 와. 축제는 다 같이 참여해야지. 혹시 누구 같이 나가서 놀고 싶은 사람 이라도 있니?" 선배들의 호의에 서윤은 반사적으로 이현을 쳐다보았다. 이현은 곧바로 환한 웃음을 지어 주었다. "그래. 주점은 걱정하지 말고 축제 구경 잘하고 와." 주점은 성공적이었고, 주문을 잘해서 요리 재료도 거의 남지 않을 것 같았다. 저녁 8시 정도에 조기 마감을 한 다면 집에 가서 로열 로드에 접속할 수 있다. 2시간의 여유라면 서윤과의 데이트도 거절해 버리는 게 이현이었다. "이현아." 군대까지 다녀온 예비역들은 그런 미묘한 부분을 놓치지 않았다. "예. 선배." "믿기진 않는다만 서윤이가 너를 원하나 보다. 네가 축제를 안내해 줘라." 예비역 선배들의 말까지 거부할 수 없어서 이현은 부득이하게 축제를 안내시켜 주는 역할을 맡아야 했다. "크으, 부럽다." "아, 나도 잘 안내해 줄 수 있는데......" 선배들과 손님들의 부러움 속에서, 이현은 서윤과 함께 주점을 나섰다. 웨딩드레스는 가벼운 옷으로 갈아입은 후였지만, 축제를 구경 온 남자들의 눈이 튀어나오게 만들 정도로 예쁘다. 그들을 지나쳐 간 남자들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다시 뒤를 돌아보더니 다른 장소로 떠나지를 않았다. "갈까?" 이현은 덥석 서윤의 손을 잡았다. 정효린이 손을 잡고 놓지 않을 정도로 좋아했으니 서윤도 별로 싫어하지는 않으리라 믿으면서 먼저 손을 잡은 것이다. 남자로서의 용기가 아니라, 축제의 인파가 워낙 많아서 손이라도 잡지 않으면 놓쳐 버릴 것 같다는 이유 도 있었다. "......" 부드럽고 여린 손. 의외로 따뜻하다. 서윤은 손을 잡히자 몸 전체가 경직된 느낌이었지만, 금방 풀렸다. "하고 싶은 거 있어?" 이현이 물었을 때에 서윤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막상 말을 해야 될 때면 말문이 막혀 오기도 했지만 대학 축제를 구경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 내가 안내할게." 이현은 서윤과 함께 두더지를 잡으러 갔다. 가격도 만만하고, 정효린과 함께했을 때 반응이 상당히 좋았기 때문이다. 이현을 본 두더지 행사장의 학생들은 분개했다. "크윽......" "어제 그놈이다." "선배! 어제 효린 씨와 왔던 그놈이... 오늘은 서윤 양과 함께 왔습니다." 두더지들은 심한 질투를 감추지 못했다. 어제의 정효린으로 모자라서 오늘은 서윤이다. 더구나 이현의 행동이 무척이나 가증스럽기 짝이 없었다. '어제는 수줍은 듯이 정효린의 팔짱을 낀 채로 따라오더니... 오늘은 서윤 양의 손을 적극적 으로 잡고 있잖아.' '가식적인 놈.' '선수 중의 선수구나.' 두더지들은 화가 솟구칠 대로 숫구쳤다. "이 뿅망치를 잡고 때리면 되는 거야." 이현의 조언 아래 서윤이 뿅망치를 들었다. 뾱뾱뾱뾱뾱뾱! 어설프던 정효린과는 굉장히 달랐다. 이현과의 손을 잡은 채로도 1마리의 두더지도 놓치지 않고 타격하는 재빠름. 숙맥 같은 성격에 비해 운동신경이 보통이 아니다. 뿅망치에 맞을 때마다 두더지들은 비통함과 서글픔을 동시에 느꼈다. '얼굴이 잘생겼거나 돈이 무진장 많은 놈이라면 이토록 억울하진 않을 텐데.' '저런 평범한 놈이 무슨 매력이 있어서......' 인형을 뽑을 때에도 어제의 경험이 있어서 쉽게 작은 당근과 키위 인형을 쏠 수 있었다. "선물." 이현은 당근 인형을 선물로 주었다. "다른 건 내 여동생에게 선물로 줘야 되니까, 1개만 받아." "......" 서윤은 당근 인형을 손에 꼭 쥐었다. 축제의 마지막 날이라서 밤늦도록 행사들이 이어졌고, 이현은 서윤을 데리고 축제를 구경했다. 행사장들을 돌아다니면서 눈으로 보는 정도에 불과하였지만, 신기한 일투성이였다. 서윤은 환한 웃음을 터트리지는 않았지만, 붉게 상기된 얼굴을 했다. 이현이 이끄는 대로 따라다니면서, 복잡 한 장소를 지나칠 때에는 손을 꼭 잡기도 했다. "춤출래?" 메인 무대가 있는 잔디 광장에서 조명들이 환하게 켜졌다. 부드러운 연주 곡이 흘러나오고, 커플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그래서 이현도 서윤에게 춤을 청한 것이다. 서윤은 얼굴을 살짝 붉게 물들인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현은 그녀의 손을 잡고 가까이 달라붙었다. 음악과 함께 자연스럽게 몸을 움직인다. 과격하지 않은 춤이었지만 둘은 서툴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상대의 발을 번갈아 밟고 있었다. "......" "......" 이현은 서윤이 언제 폭발할지 몰라서 조마조마할 뿐이었다. "지겨운 축제가 끝났어. 이제야 평소의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겠군." 맥주를 마시니 늘어져라 하품이 나온다. 과로 상태에서는 휴식이 보약이다. 드워프의 몸을 하면서는 맥주를 마시고 쉬는 편이 효과가 컸다. '몸이 정상으로 돌아오면 조각 변신술을 해제할 때도 되었군.' 각 종족별로 장단점이 있다. 드워프는 체력과 지구력에서 장점이 있다. 하지만 팔다리가 짧아서 정작 전투에서는 상당히 불리한 편이다. 빨 리 적응하지 못한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훨씬 어렵게 전투를 해야 한다. 바바리안들은 육체적인 능력은 최고조에 달해 있다. 훨씬 큰 키와 근육질의 몸은 전사로 자라기에 최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마나를 사용하지 못하고, 주술 들에 잘 현혹되는 부작용을 가졌다. 인간은 딱 중립이라고 할 수 있었다. 신성력이나 마법을 사용하기도 좋고, 파티 사냥 시에는 부족한 점을 서로 보완 해 준다. 오크나 엘프, 요정, 홉고블린처럼 특수 종족도 각광 받고는 있지만, 역시 가장 흔히 선택하는 종 족이 인간이다. 중앙 대륙에서 가장 큰 왕국들을 차지하고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도 했다. "데이몬드가 이끄는 마물의 군대가 오데인에서 연합군 세력과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고 하더구만." "오데인 요새가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겠지?" "암! 난공불락으로 소문난 요새 아닌가. 암만 거대 마물들이라고 하더라도 오데인 요새의 방어선을 뚫기란 어려울 거야." 베르사 대륙이 혼란에 빠지자 데이몬드와 마물들을 저지하기 위하여 연합군이 오데인 요새로 모였다. 10만이 넘는 연합군이 한 장소에 모일 수 있고, 또 그 이상의 지원부대가 후방에서 결집 중이다. 마물들이 돌격을 해 올 때마다 오데인 요새에서 시전되는 1만여 개의 공격 마법은 장관 그 자체! "영웅이여, 오데인 요새로 오라!" "마법사들의 참전을 환영합니다." 오데인 요새에 있는 제국의번영 길드에서는 용병들까지 모았다. 오데인 요새가 마물에게 뚫리면 자신들의 터전 이 빼앗기기 때문에 필사적이었다. 이름 없는 고레벨 유저들. 용병들이 대거 참여하면서 베르사 대륙의 이목이 오데인에 집중되었다. 오데인 요새의 성벽을 사이에 두고 매일 벌어지는 압도적인 전투들은 섣불리 승부를 예측하기 힘들 정도였다. 마물들이 성벽 위로 올랐을 때에는 연합군의 패배가 예상되기도 했다. 그러나 용병들, 전사들, 기사들의 기적 적인 투혼으로 마물들을 간신히 몰아냈다. 연합군이 부활의 군대를 밀어붙일 때도 있었지만, 곧 추가로 마물들이 가세하면서 다시 오데인 요새 안으로 퇴 각해야 했다. 각국의 정규군이 원정대로 파병되어 부활의 군대가 장악한 지역을 탈환하기 위한 전투도 벌였다. 다크 게이머들은 검 한 자루를 차고 오데인 요새로 뛰어들었고, 무기와 방어구, 전투 물자의 시세도 폭등하고 있다. 거의 최초라고 할 수 있는 대규모 전쟁의 여파로 베르사 대륙 전역이 시끌벅적했다. 위드는 품에서 죽음의 상을 꺼냈다. 쿠르소에서 데스핸드를 물리치고 얻은 전리품. 더불어 다른 퀘스트와의 연관 관계가 있으리라고 짐작되는 물건 이었다. "부활의 군대와 관련이 있는 퀘스트는 아니겠지?" 데스핸드를 상대로 승부할 때의 난이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빛의 조각품을 만들지 않고 나무나 바위를 평 범하게 조각했더라면 승리를 자신할 수 없었다. "낫을 들고 있는 마수의 조각품이라......" 조각품의 생김새에 따르면 상당한 의혹이 생겼다. 부활의 군대가 최초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모라타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장소였다. 탐험가들이 원래 부활의 교단 이 있던 장소들을 발견하면서 그들의 상징물의 형태가 드러났다. 위드가 들고 있는 조각품과 똑같이 생겼다. 부활의 군대와 진짜 연관이 있다면 위드에게는 심각한 일! 10만의 연합군과 싸우고 있는 부활의 군대와 맞서라는 퀘스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그런 황당한 퀘스트는 아닐 테고......" 위드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사실 힘들고 황당한 퀘스트를 어디 한두 번 해 본 게 아니었기 때문. 누렇게 얼굴이 뜬 드워프가 진지하게 표정을 굳힌다고 해도 처량함만 더할 뿐이었다. 종업원이 다가왔다. "손님." "예?" "저쪽의 상인 분들이 드시라고 맥주 한 통을 보내셨습니다." "......" 동정심까지 일으키는 청승맞은 태도! 귄위와 카리스마, 영웅들이 갖춰야 할 덕목과는 거리가 먼 위드였다. 위드는 손을 흔들어서 고마움에 대한 답례를 한 뒤에 맥주를 마셨다. 『-몸이 노곤해집니다. 낮잠을 자면 피로 회복 속도가 더욱 빨라집니다.』 과로로 혹사당한 몸은 계속 휴식을 요구하고 있었다. 위드는 심사숙고 끝에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어려운 의뢰라고 해서 다 피해 버린다면 더 크게 성장하지 못해. 따지고 보면 프레야 교단의 의뢰들을 성공시켰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거야." 뱀파이어 로드 토리도, 데스 나이트 반 호크와의 인연이나 리치 샤이어와의 전투, 모라타의 영주가 되었던 인연 들도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가 수행했던 퀘스트들과 관련이 있다. 천공의 도시 라비아스에서 헤레인의 잔을 찾지 못했다면 사냥만 할 줄 아는 그저 그런 다크 게이머가 되었으리 라. 그보다도 훨씬 전 현자 로드리아스의 의뢰를 받지 않았더라면 검사나 기사가 되어서 평범하게 성장하였으리라. 철은 두드릴수록 강해진다. 조각사가 되어 남들보다 빠르게 명성이 늘어난 것이나, 조각술의 비기들을 획득하면서 얻은 힘들도 따지고 보면 소중한 인연이다. 어떤 의뢰도 피하고 싶지 않았다. '진짜 어려운 일이라도 부딪쳐 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피하기만 하다 보면 이도 저도 아니게 되어 버릴 거야.' 위드는 비장한 각오로 스킬을 시전했다. "감정!" 띠링! 『-실패하셨습니다. 집중력이 저하되어 있으므로 감정에 실패했습니다.』 "......" 맥이 탁 풀렸다. 과로에 술기운이 올라와 있어서 스킬 사용이 실패한 것이다. "감정!" 띠링! 『-실패하셨습니다.』 "감정!" 띠링! 『-실패하셨습니다.』 "감정!" 띠링! 『장난감 목상 손때가 많이 묻어 있는 장난감. 적당한 크기에 가지고 놀기 좋을 것 같다. 예술적 가치:거론하기 창피함. 특수 옵션:우는 아이들을 그치게 할 수 있다.』 일곱 살쯤 되는 어린아이가 사탕을 입에 물고 담 밑에 장난감을 숨겨 두었다. "절대 형에게 들키지 않아야 돼. 형이 또 장난감을 뺏어가면 안 되니까 말이야. 게른 형은 만날 내 장난감을 가지고 가서는 다 망가뜨려 놓아. 정말 나쁜 형이야." 어린 꼬마가 형에 대한 악담을 퍼부으며 장난감을 숨겨 놓는다. 가족애가 물씬 느껴지는 훈훈한 광경이었다. 목상도 그렇게 해서 담 아래에 있는 가시덤불 사이에 눈에 잘 띄지 않게 숨겨 놓았다. 그리고 지나가던 데스핸드가 장난감을 보고 주워 들었다. "이건... 쓸 만한 목상이야." 『잃어버린 장난감 수르 왕국 하겐 마을의 소년 브레이브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 브레이브에게 돌려주면 아끼는 사탕을 1개쯤 받을 수 있을 듯하다. 난이도:F 보상:브레이브의 사탕 퀘스트 제한:돌려주지 않고 가지고 놀다가 꼬마 아이들에게 걸리면 엄청난 악명이 쌓이고 호칭 장난감 강탈자를 얻게 됨. 』 "커헉!" 술기운이 확 달아날 정도의 충격이었다. 비장한 각오로 감정한 조각품이 기껏 F급의 난이도라니 이처럼 허탈한 일이 또 있을까. "하필이면 수르 왕국까지 가야 되다니... 골치 아프군." 사소한 의뢰를 해결하기 위해 찾아가기에는 귀찮았다. "사탕이라니......" 위드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귀찮고 흔한 의뢰들은 소문이 나서 알아서 피하는 편이지만, 쿠르소 왕국의 희귀한 의뢰가 난이도 F급의 의뢰 일 줄이야. "그래도 날아가면 빨리 갈 수 있을 테니... 좀 낫겠군." 비행도 과로를 해결해야 가능했다. 과로에 과음을 하고 하늘을 날다가 마나의 흐름이 끊겨서 추락하기라도 한다면 그땐 정말 사망이니까. 위드는 맥주를 마시면서 일단은 푹 쉬기로 했다. "지금까지 마신 맥주 값이... 커험." 땅콩을 까고, 마늘과 양파를 벗기면서 맥주를 마셨다. 어떻게 해서든 사치와 향락은 있을 수 없다. 선술집에서 맥주를 마시면서도 본전은 뽑기 위함이었다. 제빵으로 유명한 하겐 마을! 마을의 주력 생산물은 사탕수수와 밀가루, 호두, 포도, 옥수수 등이었다. 농작물의 좋은 품질은 요리사들을 모 이게 만들었고 현재는 수제 케이크와 쿠키, 달콤한 스위트 와인이 잘 팔렸다. 커플들이 일부러 찾아와서 낭만적인 분위기를 만끽하는 마을이었다. "오빠, 많이 먹어!" "자기야, 자기도 많이 먹어야 돼. 내가 먹여 줄까?" 도처에 널려 있는 바퀴벌레 커플들! 위드는 그들을 무시하고 어깨를 펴고 걸었다. 마치 애인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여자 친구에게 줄 케이크를 사기 위해 온 남자처럼. "케이크 좀 보고 가세요!" 행상인들이 파는 물건들을 곁눈질하는 행동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아주머니들을 만나면 말을 꺼냈다. "혹시 브레이브란 아이에 대해서 알고 계십니까?" 아저씨들은 동네 아이들의 이름 따위는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가지고 있을 아줌마들에 게 물어보면 알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에서였다. "브레이브? 에휴, 걔가 또 무슨 잘못이라도 했수?" "예?" "마을에서 지독한 악동에 장난꾸러기라우. 어른들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지. 우리 애가 그 애랑 놀지 말아야 될 텐데......" "브레이브는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요? 그 애에게 돌려줘야 할 장난감이 있는데요." "지금이 아직 초저녁이니 집에 가도 만나기 어려울 테고... 뒷골목이나 놀이터에 가면 볼 수 있을 거라오." 작은 마을이었지만 브레이브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아줌마들이 권하는 장소를 모두 찾아가 봤음에도 불구하고 행적을 찾을 수 없었던 까닭이다. 결국 빵 가게 뒤의 창고에서 브레이브를 찾아냈다. 녀석은 입가에 생크림과 빵가루를 잔뜩 묻혀 가며 빵을 훔 쳐 먹고 있던 도중이었다. '찾았다.' 위드는 반갑게 말했다. "꼬마야, 이 조각품이 네가 잃어버린 장난감이 맞지?" "어? 드워프다. 드워프가 말을 하네." "형이 네 장난감을 찾아왔거든." "콧수염이 진짜 웃기다. 다리도 나보다 짧은가?" "이 조각품이 네 거 맞지?" 브레이브는 위드가 내민 조각품을 받았다. 띠링! 『잃어버린 장난감 완료 하겐 마을의 소년 브레이브에게 장난감을 찾아 주었다. 퀘스트 보상:브레이브의 기분이 좋으면 사탕을 1개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귀찮았던 퀘스트 완료. 위드는 사탕을 받기 위해 묵묵히 기다렸다. '인건비도 안 나오는 의뢰였지만, 사탕도 상점에 팔면 3쿠퍼 정도는 받을 수 있을 테니까.' 브레이브는 사탕 대신 조각품을 돌려주었다. "내 거 맞네. 우리 형이 훔쳐 간 줄 알았는데...... 근데 이거 필요 없는데요." "......" "난 꼬마가 아니거든. 여덟 살이거든. 장난감 따위 가지고 놀 나이는 지나서 말이죠. 아저씨나 갖고 놀아요." 빠득! 위드의 입에서 이가 갈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인내, 또 인내했다. 베르사 대륙의 주민들과는 가능한 돈독한 관계를 유지할수록 이득이 크다. 서비스 정신의 기본은 친절과 봉사, 헌신. 화가 나도 참고, 억울한 일이 있어도 드러내어서는 안 된다. 다크 게이머의 서러운 철칙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도 일단 이 장난감은 네가 받아야지. 네 장난감이잖아. 찾아온 내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말이야. 그리고 내게 사탕을 줘야 하지 않겠어?" "안 가지고 논다니까요!" 브레이브는 소리를 버럭 질렀다. "아저씨, 그렇게 내 사탕이 갖고 싶은 거예요? 내 계피 맛 사탕이 맛있는 건 어떻게 알고......" "크흠." "아무튼 난 사탕 안 줄 거니까, 그 장난감이나 나 대신 갖고 놀아요. 아 참, 그 장난감을 갖고 싶어 하던 주정뱅이 스미스 아저씨한테 줘 보세요." "스미스 아저씨?" "별 볼일 없이 나이만 먹은 늙은 아저씨죠. 하기야 뭐, 그래 봤자 아이의 사탕이나 노리는 드워프 아저씨보다야 낫겠지만 말이에요." 띠링! 『주정뱅이 노인 스미스가 원하는 장난감 하겐 마을의 주정뱅이 스미스가 필요로 하는 장난감. 주점에서 고주망태가 되도록 술을 마시는 그는 브레이브의 장난감을 가지고 싶어한다. 난이도:F 보상:없을지도 모름. 퀘스트 제한:포기해도 불이익은 없음. 』 브레이브가 히죽 웃으며 덧붙였다. "만날 술값이 밀리는 무능한 늙은 아저씨죠. 가족도 없고요. 난 절대 그렇게 쓸모없이 나이를 먹진 말아야지. 킥킥!" 위드는 한숨을 푹 쉬었다. 난이도 F급의 연계 퀘스트. 주점은 가까운 곳에 있었으니 스미스를 보러 하번은 가 봐야 될 것 같았다. "알았다. 꼬마야. 그럼 나중에 보자." "꼬마가 아니라니까. 그리고 더 이상 아저씨를 볼 일은 없을 걸요. 혹시 내가 갖고 싶어 하는 철검을 가져다주면 또 모르지만." 위드는 조용히 조각품을 품속에 넣고 사라졌다. 브레이브는 창고에서 다시 신선한 빵을 훔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위드가 사라졌던 곳에서 흉악한 오크가 튀어나왔다. 오크 카리취! 얼굴과 몸매로 흉악범까지도 순한 양으로 만들어 버리는 강력한 존재. "크에엑, 오크다!" "취이익! 뒤졌다. 인간 꼬마!" 위드는 여러 말 하지 않았다. 일단 패고 봤다. 어른에 대한 공경심이 뼛속까지 새겨지도록 말이다. 주점의 주정뱅이 스미스에게 조각품을 보여 주었을 때, 그의 게슴츠레한 눈에 총기가 돌았다. "이 조각품 어디서 구했나?" "브레이브란 꼬마 애가 가지고 놀던 조각품이었습니다." "그 아이의 조각품을 내가 가지고 싶어 했는데... 혹시 그애에게서 자네가 뺏은 건가?" 위드는 고개를 저었다. 오크 카리취로 변신한 이후로, 완전히 조각 변신술을 해제하고 인간으로 돌아온 상태였다. "아닙니다. 잃어버린 장난감을 어렵게 찾아다 주었더니 더 이상 가지고 놀고 싶지 않다고 하더군요. 브레이브가 어르신이 이 장난감, 아니 조각품을 가지고 싶어 한다고 해서 가지 고 왔습니다." "그랬었나. 그 조각품을 나에게 좀 줘 보겠나? 브레이브가 가지고 있을 때에 보고 싶었는 데 나에게는 아주 잠깐밖에 보여 주지 않았지." "여기 있습니다. 가지셔도 됩니다." 띠링! 『주정뱅이 노인 스미스가 원하는 장난감 완료 주정뱅이 스미스는 원하는 조각품을 손에 얻었다. 아직 한낮이긴 하지만 그에게 술을 얻어 마실 수도 있을 것이다. 퀘스트 보상:주정뱅이 스미스에게 직접 받으십이오. 』 『-명성이 1 올랐습니다.』 스미스는 조각품을 조심스럽게 매만졌다. "이 조각품은... 내가 젊어서 여행을 하며 보았던 적이 있어." "예?" "조각품이 어디서 난 건지 브레이브가 말해 주지 않던가." "말하지 않았습니다." "20년 전 이야기라네. 용병으로 대륙을 떠돌던 시절... 케헴! 그땐 나도 무진장 잘나가던 용병이었다네. 믿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용병대도 거느리고 있었지." 물론 위드는 믿지 않았다. 술꾼들은 하나같이 과거에 대상인이나 일급 용병이 아니었떤 자들이 없다. 그들의 허풍이 어디 하루 이틀이 아 니었으니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여왕 폐하의 명령을 받아 국왕군과 함께 역적 사보이도 백작은 처단하였지. 그 사보이도 백작의 창고에 이것과 똑같이 생긴 조각품이 있었다네." "그랬군요." "아쉽지만 이 조각품이 어떤 물건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군. 미심쩍은 바가 없는 건 아니지만...... 혹시 이곳의 도서관에 가면 이것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있을까?" 위드는 왠지 퀘스트가 이대로 끝날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자네가 나를 위해 좀 알아봐 주지 않겠나? 그러면 내가 용병 시절에 있었던 이야기들을 들려주지." 띠링! 『노인 스미스의 궁금증 용병 출신인 스미스는 젊었을 때 봤던 조각품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다. 조각품에 대한 정보를 모아다 주면, 자신이 알고 있는 이야기를 해 줄 것 같다. 난이도:D 보상:스미스의 이야기. 퀘스트 제한:없음. 』 ▷니플하임 제국의 재건 벌써 3단계로 이어지는 연계 퀘스트. 일이 꼬였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위드는 왕국 도서관으로 갔다. 베르사 대륙 전반에 대한 역사는 상당 부분 가지고 있었지만 개별적인 역사에 대한 정보들은 직접 찾아봐야 했다. 사보이도 백작(수르 제국력 436년~479년) 17세에 기사 서임을 받음. 20세에 기사 수행을 다녀옴. 36세에 영지를 물려받음. 검술과 기마술에 탁월한 재능을 가졌음. 43세에 반란을 일으켜 참수됨. 인물 편에는 간단한 정보밖에는 나와 있지 않았다. 역사 편이나 전쟁 편도 보았지만, 사보이도 백작에 대한 부분들은 누군가 일부러 지우기라도 한 것처럼 누락되 어 있었다. "찾았다." "어디야?" "이 근처에 숨겨진 보물이 있대." 도서관에서 책을 읽던 모험가들과 마법사들이 서둘러 나갔다. 도서관에는 위드처럼 정보를 얻기 위해 온 유저들이 20명 가량 있었던 것이다. 대박도 어딘가에 숨겨져 있지만,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 하고 본전을 건지기도 어려운 게 도서관에서 정보 찾기 였다. 하물며 이토록 기본적인 정보들이 부족한 상황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이대로는 찾기 어렵겠는데.' 위드는 고심에 잠겼다. 경험 많은 모험가들도 서적을 통해 단서를 찾기란 어려운데 조각사인 자신이 정보를 모으기란 정말 쉽지 않을 것 같았던 것. '내 접근 방법이 잘못되었던 걸까? 그래. 난 조각사니까, 어쩌면 조각서부터 봐야 하는 거였 을지도 몰라.' 위드는 예술 계열의 서적들을 뒤적였다. 《기념물의 역사》, 《발굴된 조각물》, 《수르 왕국의 자랑스러운 조각품》. 여러 권의 책을 읽던 와중에 《고대의 조각품》이란 제목의 책을 보았다. 거기에 이름은 달라도 현재 가지고 있는 조각품에 대하여 나와 있었다. 안식의 상:종교의 상징물. 망자들을 인도해 주는 마탈로스트 신을 따르는 신도들의 상징물이다. 그들은 깃발이나 문양을 사용하지 않고 조각품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유명했다. 마탈로스트 교단의 사제들은 강한 신성력을 가지고 망자들을 인도할 수 있었다. 마탈로스트 교단은 대륙 공용어가 탄생한 이후로 신의 이름을 내세우는 대신 부활의 교단이라 고 불리기도 했다. 죽음과 가까이 하고 그에 대한 연구를 하기 때문에 세간의 평판은 극히 좋지 않아서 상징물을 조각품으로 간직하는 건 주로 몰래 보관하기 위한 용도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마탈로스트교 신물들의 일부는 특별한 성물로, 평범한 조각품과는 다르다는 이야기가 있다. 『-퀘스트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입수하셨습니다.』 조금 헤매기는 했지만 퀘스트 성공. 위드는 선술집으로 가서 스미스에게 보고했다. "이 조각품은 마탈로스트교의 상징물이라고 합니다." "뭐야?" "고대 종교의 상징물이라고 합니다. 어쩌면 성물일지도 모르고요." 띠링! 『노인 스미스의 궁금증 완료 용병 출신인 스미스는 젋었을 때 봤던 조각품에 대한 의문을 풀었다. 이제 그는 자신이 아는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 『-조각술 스킬의 숙련도가 0.4% 향상되었습니다.』 『-신앙 스탯이 1 오릅니다.』 의뢰를 완수하면서도 조각술 스킬의 숙련도를 올릴 수 있다니, 이런 퀘스트도 나쁘지는 않았다. 여기저기 돌아 다니라는 말 때문에 시간을 과하게 잡아먹고는 있었지만 말이다. "역시 그랬단 말이지. 딸꾹!" 주정뱅이 노인 스미스는 만취해 있었다. "약속대로 젊으셨을 때 보고 들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시지요." "암! 나는 말이지이, 정말 착실하고 예의 바른 용, 벼엉이었어. 돈도 많이 벌었지. 대부분 술과 여자를 사는 데 쓰이긴 했지만." 스미스는 혀가 풀린 말투로 어떻게 용병단에 들게 되었는지, 자유 용병으로 의뢰들을 수행하며 돌아다녔는지를 이야기했다. 위드는 물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주정뱅이의 말을 일일이 다 들어 주다가는 한도 끝도 없었으니까. 스미스는 얼마 되지 않아서 본론을 말했다. "이 조각품 말이지이, 그때 백작은 이 조각품을 가지고 성의 지하실로 도망가려고 했어. 크으 취한다." "왜 그랬을까요?" "나도 모르지. 아무튼 참 정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딸꾸욱. 술이 입안에 쩍쩍 달라붙는구나. 근데 우리가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더라." 스미스는 헷갈려하는 모습을 보이며 엉뚱한 이야기를 한참 쏟아 냈다. 용병 일에 대한 자랑과, 대륙의 술들에 대한 주정뱅이의 설교! 스미스의 시선이 다시 조각품을 향하더니 정신을 차린 듯이 물었다. "그 뒤로 이 조각품을 본 적은 없었는데...... 자네 한가하지?" "한가하진 않습니다만." "나를 데리고 가서 이 의문을 해결해 줄 수 있을까?" 스미스는 품에서 녹슨 열쇠를 꺼냈다. "기억이... 아마 그때 이후로 지하실은 봉인이 되어서 이 열쇠가 있어야만 들어갈 수 있을 거야. 이번에 나를 데리고 가서 의문을 해결해 줄 수 있겠나?" 띠링! 『노인 스미스의 두 번째 궁금증 주정뱅이 노인 스미스는 사보이도 백작의 마지막 모습에 의문을 가졌다. 그의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백작의 저택을 수색하여 지하실을 찾아내고 비밀을 파헤쳐라. 연계 퀘스트, 망자들을 인도하는 마탈로스트 교단의 숙원과 니플하임 제국의 재건으로 이어짐. 난이도:A 보상:스미스의 술 한 잔. 퀘스트 제한:조각사 한정. 스미스의 사망 시에는 퀘스트 실패. 』 니플하임 제국이라면, 그가 영주로 있는 모라타가 있는 북부에 수십 년 전까지 존재했던 대제국! 어둠의 숲에서 내려온 본 드래곤과 몬스터들로 인해 성과 마을 들이 불타올랐다. 황제는 세르비안의 구슬을 이용하여 그들을 봉인하려고 했지만, 북부 전체가 얼어붙는 비운의 결과만을 낳았다. 추위와 몬스터들의 습 격, 분열 등으로 인해 제국은 붕괴했다. 지금 니플하임 제국이 재건된다면, 북부의 안정도 반석 위에 올려진 것과 같으리라. 부활의 교단과 연관된 조각품에서 이런 퀘스트가 나온 게 약간은 의외였지만 크게 놀랍지는 않았다. 부활의 교단, 마탈로스트교도 원래는 북부에 있던 교단이었다. 용병 스미스의 의문을 해결한다면 그다음에는 니플하임 제국의 재건과 관련된 퀘스트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모라타를 더 비싼 가격에 팔아먹을 수 있겠군.' 위드는 안주로 닭 다리를 뜯어 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의문을 해결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퀘스트를 수락했습니다.』 사보이도 백작령은 거대한 사냥터가 되어 있었다. 수르 왕국에서도 레벨 150에서 200 정도의 몬스터들이 들끓 어서 사냥 중인 파티들도 상당수였다. "저택 사냥하실 분 모집합니다. 용기 있는 분, 경험자 우대합니다." 사보이도 백작 저택은 지역의 대표급 던전이었다. 몬스터들의 최대 레벨은 282. 기사와 병사 들의 유령에서부터 심지어는 하녀의 유령들까지 나온다. 위드는 주정뱅이 용병 스미스와 함께 저택으로 들어갔다. "끄억. 속이 쓰려서 죽겠군." 스미스는 투덜대며 따라오고 있었다. "술 한 병만 주겠나?" "없습니다." 위드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물론 술은 배낭에 많이 있었다. 산 나무 열매, 밀 등을 볼 때마다 브랜디나 위스키를 만들었기 때문. 요리 중에 술만큼 잘 팔리고 보관이 용이한 품목도 드물다. 기가 막힌 맛에, 감염 방지, 생명력 회복 속도까지 올려 주니 술은 기호품 중에서 가장 각광을 받았다. 잘 빚어낸 술은 비싼 가격을 받을 수 있으니 현금이나 다름없는 셈이었다. 위드는 틈틈이 요리 스킬을 발휘해서 술들을 빚어 놓고 있었지만 최대한 아꼈다. 검치나 다른 사형들이 아니라 면 위드에게 술을 달라는 말도 하지 못할 정도였다. "크음, 입안이 칼칼하군." 스미스가 구시렁대며 따라왔다. 오래된 저택에는 먼지가 두껍게 쌓였고, 가구들은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벽화는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 되었고, 샹들리에는 땅에 떨어져서 부서져 있다. "파이어 볼!" "콜드 스트라이트!" 다른 파티들이 많이 보였는데, 유령체의 몬스터들을 사냥 하는 중이었다. 위드는 저택을 조금 둘러보다가 포기했다. 거의 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넓은 장소였다. 토둠에서 뱀파이어의 성들을 정말 많이 돌아다녀 봤지만 그것과는 또 다르다. 상당한 권력가였던 백작의 저택 은 방의 개수만 해도 어마어마했기 때문. 위드가 물었다. "지하실이 어디에 있죠?" 스미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뿐이었다. "오래된 일이라서 기억이 안 나. 술이라도 한 병 마시면 기억이 날지도 모르겠는데....." 위드는 인상을 썼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술꾼, 주정뱅이!" 다른 사냥 파티들도 사보이도 백작 저택에서 사냥을 많이 했다. 그들이 발견하지 못한 지하실이라면 꼼꼼하게 숨겨져 있거나, 아니면 기상천외한 장소여야 한다. '발견하고도 공개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지하실을 찾아냈더라도 열쇠가 없으면 들어가지 못한다. 남 좋은 일은 하고 싶지 않은 건 인간의 본능. 지하실의 입구를 발견했더라도 공개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위드는 스미스와 함께 찾아봐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다. 위드는 배낭을 열고 맥주를 한 병 꺼냈다. "그러고 보니 술이 있군요." "허엇. 나에게 주게!" "지하실......" "... 기억이 나는군. 아마 계단 아래쪽일 걸세." 스미스가 가리킨 장소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아랫부분이었다. 위드는 나무로 이어진 계단의 뒤로 돌아가 보았다. 아무것도 없이 먼지만 두껍게 쌓여 있었다. 하지만 손으로 만져 보니 미세하게 틈이 벌어진 게 느껴졌다. '여기로군.' 위드는 먼지를 치우고 작은 열쇠 구멍을 찾아냈다. 그리고 스미스에게서 받은 열쇠를 넣고 돌렸다. 그그그긍! 오래된 문은 힘껏 밀어야 간신히 열렸다. 위드는 스미스와 함께 지하실로 들어가고 나서 문을 닫았다. 열쇠를 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저택에서 사냥하는 다른 파티에게 언제 발견될지 모르니까! 다 된 밥에 코를 빠뜨리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는 위드였다. 『-사보이도 백작의 지하실을 발견하셨습니다. 명성이 50 오릅니다. 모험으로 인해 경험치가 소량 증가했습니다.』 "꺼억! 여기가 백작의 지하실이로군." 스미스는 어느새 맥주 한 병을 비우고 나서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쩍쩍 다셨다. "기왕이면 위스키로 주지 그랬나?" "위스키는 절대 없습니다." 맥주는 그나마 흔하고 가격도 싸지만, 괜찮은 위스키는 최소한 몇 골드이니 내줄 턱이 없다. 위드는 지하실을 둘러보았다. 아마도 백작이 비밀 서재로 썼던 것 같은 장소에는 책들이 다수 꽂혀 있었다. 《화염계 기본 마법의 정의》 《바람의 정령과의 친화력에 대한 고찰》 《정령사들이 알아 두면 좋을 것 같은 열 가지 아부법》 《베르사 대륙을 걸어서 여행하라》 《돈 버는 기회》 《위치, 책 읽어 주는 마녀》 제목들만 봐도 다양한 책들이 서가를 장식하고 있다. 위드는 책들을 남김없이 배낭에 넣었다. '골동품이나 고서점에 팔면 돈이 되겠군.' 퀘스트의 연결 고리가 되기도 했으니 깨끗하게 챙겼다. 백작의 책상도 조사했다. 서랍에는 금화가 300골드가량 들어 있었으며, 조각용 칼도 나왔다. 자하브의 조각칼을 가지고 있는 위드에게는 필요 없는 물건이었다. '이것도 팔아야지.' 다양한 종류의 아이템 가격을 즉석에서 외우는 위드였다. 대형 마트의 자동 계산 시스템이 고장 나더라도, 만약 위드의 가게였다면 걱정할 까닭이 조금도 없다. 왜냐면 공장으로부터의 매입 가격에서 판매 가격, 부가세, 심지어 마케팅으로 1개를 사면 1개를 더 주는 것까지도 철 저하게 기억하고 있을 테니까. 금화 365개 곱하기 금화 12개는 4,380개! 눈 깜짝할 사이에 계산이 이루어질 정도였다. 돈 계산만큼은 수학 영재들을 압도할 지경! 위드는 책상에 펼쳐져 있는 책을 보았다. 《마탈로스트교의 기원과 역사》 대충 읽어 보기로 했다. 고대에 마탈로스트교의 교세는 가장 컸다. 그것은 죽음을 신성시하는 사람들의 의식에서 기인하였다. 죽음을 곧 신의 품으로 돌아간다는 것으로 여기고 있었으므로... 마탈로스트교는 왕국의 국교로 신봉 되었으며, 전사들은 싸움에 나가기 전 교단에 경의를 표시하였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마탈로스트교에 대한 인식은 바뀌었다. 이종족들 간의 전쟁이 줄어들고, 성을 지어 몬스터들의 침입에 대비하면서 평화가 정착되었다. 죽음을 두렵게 여기면서 마탈로스트교를 기피하게 되었다. 아르펜 제국의 대륙 통합 전쟁에서도 각 왕국들은 경쟁적으로 자국의 영토에 위치한 교단들을 우대 하였다. 특별히 전쟁과 관련된 교단들이 존경을 받고, 마탈로스트 교단은 죽음으로 이끄는 인도자로 불리었다. 패잔병들이 마지막으로 부르짖는 이름이 되어, 세간에서는 이름을 떠올리는 것조차도 혐오스럽게 변 했다. 마탈로스트 교단의 사제 지망생들은 갈수록 줄어들었고, 그 자리는 다른 교단들이 차지하게 되었다. 번영의 프레야나 투사들의 신 브레커스의 교단이 많아졌다. ... 마탈로스트 교단은 위세를 잃고 각 왕국들의 지원도 끊어졌다. 음지로 숨어든 그들은 점점 힘에 대한 갈망을 버리지 못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죽음으로 인도하는 힘! 막강한 신성력을 바탕으로 복수를 꿈꾸었으리라. 구체적으로 그들이 어떤 복수를 이루려고 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띠링! 『마탈로스트교에 대한 고급 정보를 읽음으로써 지식과 지혜가 5씩 늘었습니다.』 『-부활의 교단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였습니다.』 위드는 책상에서 다른 물건도 찾아냈다. 부활의 교단 사제들이 입는 로브였다. 마탈로스트 교단. 현재로써는 부활의 교단으로 더 많이 불리고 있으니 아무렇게나 이야기해도 상관이 없으리라. "사보이도 백작이 부활의 교단의 사제였겠군." 위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부활의 교단의 상징물이 되는 죽음의 상을 가지고 있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도 짐작할 수 있었다. "허어, 여기 좀 보게!" 그때 스미스가 넓은 방을 발견해 냈다. 그 방에는 마법진이 그려져 있고, 중앙에 비석처럼 생긴 물체 위에는 무언가를 올려놓을 수 있는 그릇이 있었다. 그 그릇에 죽음의 상이 그려져 있었다. "아무래도 이것을 올려놓으라는 뜻인가?" 위드는 품에서 조각품을 꺼냈다. 드워프들의 지하 왕국 쿠르소에서 데스핸드와의 결투 끝에 획득한 죽음의 상! 니플하임 제국의 재건과 마탈로스트교의 재림. 베르사 대륙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모르지만, 퀘스트의 내용을 떠올린다면 여기서 끝날 리가 없었던 것이다. 위드가 그릇 위에 조각품을 올려놓았다. 그러자 마치 생명을 부여한 것처럼, 낫을 든 마수가 눈을 번쩍 떴다. 콰르르릉! 저택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음습한 안개가 지하실을 가득 메우고, 제단 위에 검은색의 소용돌이가 생겼다. 다른 장소로 향하는 게이트가 열린 것이다. 스미스는 놀람에 뒤로 주춤주춤 물러섰다. 흑색 게이트. 어디서도 이런 색깔의 게이트는 본 적이 없었을뿐더러, 낫을 든 마수가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섬뜩하기 짝이 없는 연출. 그러나 위드는 겁먹지 않았다. 비어 있는 통장 잔고만큼 무서운 건 없다. 오죽하면 꿈에서도 마이너스 이자가 붙는 가위에 눌릴까! 『-통곡의 강으로 가는 게이트가 열렸습니다. 일반 유저들은 출입이 불가능합니다. 통곡의 강에서 퀘스트가 진행됩니다. 퀘스트의 실패 여부에 따라 부활의 군대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베르사 대륙에 있는 모든 유저들에게 메시지 창이 떴다. 위드가 성큼 게이트로 다가가자 흑색의 소용돌이가 잡아 먹을 것처럼 출렁였다. 하지만 스미스가 서둘러 손을 저었다. "이보게." "예?" "내 의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나도 따라가야 되지 않겠나?" "물론이죠." 위드는 스미스를 이곳에 버려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데려가야만 했다. "조건이 있네. 저 안으로 들어가면 내게 매일 다섯 병씩의 술을 마시게 해 줘야 돼." "......"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거든." 위드는 고개를 끄덕여서 허락했다. "알겠습니다." 항상 스미스를 보살펴 줄 수만은 없다. 술을 마셔서라도 재우는 편이 이득일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용병을 영입하게." "네?" "자네는 허약한 조각사이지 않은가?" 위드가 허약하다면 워리어나 검사 들의 대부분은 걸을 힘도 없어서 땅바닥을 기어 다닐 것이다. 스미스의 말이 이어졌다. "자네만으로는 안심이 되지 않아. 그리고 저 게이트를 통과하면 어디에 도착할지도 모르는데, 용병 1명을 데려오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띠링! 『-퀘스트를 함께 진행할 용병을 1명 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조각사 한정 퀘스트에, 용병 영입! 실질적인 전투가 필요하다는 뜻도 되었다. '적어도 난이도 A급의 퀘스트인데......' 니플하임 제국의 재건이나 마탈로스트교의 재림으로 이어지는 연계 퀘스트까지 감안한다면 실질적인 난이도는 훨씬 높아질 수 있다. 연계 퀘스트의 끝이 아니라는 점이 부담이었다. 어디까지든 믿고 함께해 줄 사람을 찾아야 했다. 위드는 곧바로 귓속말을 보냈다. @페일 님. @네. 페일의 대답이 금방 돌아왔다. @퀘스트를 진행하는데 1명의 용병이 필요합니다. @그래요? 어디신데요? @수르 왕국의 하겐 마을입니다. @어떻게 하죠? 북부에서 그곳까지 가려면 최소한 이십 일은 걸릴 텐데. @중앙 대륙에 있는 다른 사람은 없을까요? @마판 님은 로자임 왕국 쪽으로 무역을 떠났고요, 다른 분들은 전부 여기에 모여 있어요. 마판은 용병으로 데려오기에는 전투력이 부족하니 조금 가깝다고 해도 애초에 제외였다. @지금 저희도 고대 흉갑의 제조 비법이라는 퀘스트를 진행하고 있거든요. @어렵겠군요. 알겠습니다. 위드는 깨끗이 포기했다. 페일만 오라고 하면 메이런이 서운해할 터였다. 이리엔은 성직자로서 많은 도움이 되겠지만, 지켜 줘야 할 때도 많다. 로뮤나도 그런 점에서는 비슷한 처지. 수르카는 어리고 심약한 편이라서 어려운 퀘스트의 던전 등에서 단둘이 함께 수십 일을 동고동락하기에는 부담 스럽다. 화령의 댄스 스킬은 능력치 상승이나 몬스터를 재우는 데 좋다. 그렇게 활용도는 뛰어나지만 결정적인 공격력 이 약해서 위험하다. 일반 사냥에는 좋아도, 어떤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를 전투에 데려오기는 껄끄러운 존재. 제피는 애초에 제외했다. 생명력도 강하고 맷집도 좋으며, 광역 공격 스킬까지도 가지고 있지만 말이다. "내 여동생과 친하게 지내고 있기 때문은 절대 아니지." 위드는 제피의 존재를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다. 어떻게 키운 동생인데 바람둥이에게 준단 말인가. 하늘이 무너지더라도 있을 수 없는 일. "그냥 만나는 거라니까 두고 봐야지. 내 동생이 사람 보는 눈은 있으니까." 여동생의 행동이나 태도에 변화가 없어서 일단은 마음이 놓였다. 딸이 짧은 치마를 입고 남자 친구와 데이트를 나갈 때 아버지의 찢어지는 가슴! 위드도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남자는 다 늑대고, 도둑놈이야. 남자가 여자한테 죽었으면 무죄야. 왜냐면 분명 죽어도 마땅한 짓을 저질렀거나, 혹은 저지르고 싶어 했을 테니까!" 그렇다고 유린을 데려갈 수도 없는 노릇. 검치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스승님. @...... @스승님. @커험! 무슨 일이냐! @지금 뭘 하고 계세요? @나, 나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따. 절대 다크 엘프 아가씨에게 말을 걸고 있지 않았다. 제자야. 그냥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던 게야. @스승님...... 검치의 솔직한 대답이 한참 뒤에 돌아왔다. @나도 장가는 가야 되지 않겠냐? 어렵지만 늦장가라도 시도해 봐야지. @다른 사형들도 바쁘죠? @응. 오크 마을에도 있고, 다크 엘프의 마을에도 많이 있다. 다크 엘프들은 까무잡잡한 피부에 건강해서, 아주 좋아해. @유로키나 산맥은 어떻습니까? @몬스터가 아주 많구나. 싸워 볼 만한 몬스터들이 많아서 괜찮아. 오크들과 함께 파티를 맺고 사냥을 해 보는 것도 재미가 있구나. 검치나 다른 사형들도 로열 로드를 즐기고 있었다. 약한 오크들을 보호해 주며 든든한 남성미를 과시하는 것. @스승님, 다크 엘프들도 꽃을 좋아합니다. @오, 그러냐? 알았다. 너도 수고해라. 언제든 도움이 필요 하면 부르고. @예, 스승님! 위드는 검치와도 귓속말을 마쳤다. '누굴 데려가야 하지?' 황야의여행자 길드! 아르멘 왕국의 소수 정예. 알려지지 않은 고레벨 유저들이 다수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길드. 위드도 속해 있는 길드였지만, 한동안은 길드 채팅 창도 안 보고 있었다. 길드원들끼리 수다를 자주 떨어서 아예 꺼 버린 상태! 황야의여행자 길드원 중에서 1명을 초대하기에는 아직 서로 잘 모르는 사이라는 점이 부담이었다. 그때 페일에게서 귓속말이 왔다. @위드 님, 용병 1명 구한다고 하셨죠? 혹시 샤먼 1명 데려 가실래요? @어떤 샤먼인데요? @스킬의 숙련도나 활용도가 기가 막힐 정도인데요. 모라타에서 가장 유명한 샤먼입니다. 같이 파티 사냥을 하면서도 정말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방금 위드 님에 대한 말을 했더니 본인 이 꼭 가 보고 싶다고 하는데요. 위드는 로열 로드를 한 지 얼마 안 되었던 초보 시절을 떠올렸다. '천공의 도시 라비아스에서도 샤먼과 파티 사냥을 했지.' 잊을 수 없는 이름. 다인. 딱 이상형의 여자였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들었는지 말하기는 어렵지만, 함께 있던 시간이 즐거웠 다. 단 둘이 던전 사냥을 하며 이야기도 많이 했고, 사냥을 할 때도 손발이 잘 맞았다. '수술을 한다며 떠났는데... 지금쯤 잘 지내고 있을까?' 연락이 없으니 잘 지내고 있기를 바랄 뿐. 위드는 과거의 상념을 털어 버리고 말했다. @샤먼이 오기에는 너무 위험한 장소 같습니다. 기본적으로 사제형의 직업은 파티 사냥에는 큰 도움이 되지만 본인 스스로를 지키지 못한다. @같이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전해 주세요. @아닙니다. 어쩔 수 없죠. 헤겔을 불러올 수도 없다. 그를 불러온다면 흑사자 길드를 통해서 금방 소문이 쫙 퍼지고 말 테니까. 도둑 나이드도 대안이 될 수 없었다. '도둑은 던전에서나 쓸모가 많은 직업이지.' 도둑이나 어쌔신은 일반적인 정면 승부에서는 취약하다는 고정관념! 전투를 도와줄 용병을 구하고 있으니 은신, 암습형의 직업은 적합하지 않다. '내가 아는 가장 강한 사람이라면 그녀밖에 없는데......' 위드의 머릿속에 서윤이 떠올랐다. 웬만한 몬스터들은 달칼에 썰어 버리던 그녀! 전투가 지속 될수록 강해지는 광전사. 무지막지한 레벨을 가지고 있고, 스킬의 활용도 재빠르다. 광전사 서윤! 그녀가 있다면 가장 든든할 것이다. 하지만 위드는 고개를 저었다. 서윤에 대한 신뢰가 조금은 싹트고 있었지만, 그녀에게 전혀 관련 없는 위험한 퀘스트를 도와 달라고 요청하기 는 무리였다. '더구나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여기까지 오려면 시간도 매우 많이 걸릴 거야.' 수르 왕국 주변에서 아는 사람을 구할 수는 없다. 위드의 선택은 내려졌다. "콜 데스 나이트!" 연기와 함께 데스 나이트 반 호크가 등장했다. 오랫동안 함께해서 데스 나이트의 흉포한 눈빛마저도 익숙했다. "불렀는가, 주인." "그래. 일감이 생겼다." "어떤 놈이든 때려잡겠다." 든든한 데스 나이트의 외침이었다. 위드는 고개를 돌려 스미스를 보았다. "데스 나이트면 따로 용병이 필요하지 않을 겁니다." 스미스는 데스 나이트가 등장했는데도 별로 놀라지 않았다. "데스 나이트라면 우리를 지켜 줄 수 있겠군. 그런데 술은?" 위드는 배낭을 잠깐 열어서 맥주를 몇 병 꺼냈다. 맥주만 해도 수십 병에, 위스키와 와인 들이 상당했다. 따로 술을 구입할 필요도 없고, 급하면 언제든 술을 빚으면 되는 것이다. 항상 모험을 떠날 수 있도록 숫돌이나 붕대, 약초 등도 충분히 구비하고 있다. 출발할 준비는 언제라도 끝이 나 있었다. "가시죠." "알겠네." 위드가 먼저 앞장을 서고, 스미스가 뒤를 따랐다. 둘의 몸은 흑색 게이트와 함께 감쪽같이 사라졌다. 쿠르르르릉! 게이트가 사라지면서 사보이도 백작의 저택의 진동도 서서히 그쳐 가고 있었다. 흩어져 있는 몬스터들의 사체! 서윤이 대검을 휘두를 때마다 몬스터들의 파편이 떨어졌다. 땅속에 숨어 암습을 하거나, 나무 위에서 떨어져서 기습을 하는 몬스터들! 서윤은 그저 검을 휘두를 뿐이었다. 검광이 번뜩일 때마다 몬스터들이 회색빛으로 변한다. 과거에는 모든 것을 잊기 위하여 싸웠다. 흠뻑 땀을 흘리면서 싸울 수 있으면 충분했으므로 몬스터 무리를 향 해 무작정 덤볐다. 피를 흘릴수록 강해지는 광전사의 운명! '여기는 너무 약해.' 광전사에게는 적과 몬스터들을 끌어들이는 특성이 있다. 서윤이 있는 장소로 일대의 몬스터들이 몰려들었다. 점점 강한 몬스터들이 있는 장소로 발길이 저절로 이끌린다. 피와 전투를 찾는 광전사의 절대 감각. 광전사가 있는 장소는 절규가 끊이지 않는 전장으로 변해 버린다. 북부에서도 손꼽히는 고레벨 사냥터, 마반의 숲! 서윤이 있는 장소로 몬스터들이 대거 달려오고 있었다. '누구도 날 사랑하지 않아.' 과거를 떠올리지 않기 위해 전투를 벌이던 그녀였지만, 지금은 그때처럼 마음이 아파 오지 않았다. '친구......' 그녀에게 있는 친구를 떠올릴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따듯해졌다. 로열 로드에서 함께했던 모험의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현실에서도 만날 수 있었으므로. '내가 지켜 주고 싶어.' 본 드래곤의 브레스에 금방 죽어 버리던 모습. 연약한 위드를 위해 사냥을 하며 경험치와 스킬 숙련도를 쌓고 있었다. 그녀의 레벨은 422! 서윤은 더 강한 몬스터들이 있는 장소로 들어갔다. ▷지옥의 조각사 위드와 스미스가 흑색 게이트를 타고 이동한 장소는 나무 한 그루 자라지 않는 시커먼 바위산이었다. 보통의 바위산은 분명히 아닐 것이다. 바위는 칠흑처럼 시커먾고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으며, 주변에는 강이 흐르고 있다. -크에에에. -우리를 살려 줘. 살려 줘. -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줘. 강이 울었다. 귀신처럼 울부짖고 있는 것이다. '여기가 통곡의 강인가?' 바위산에는 굉장히 많은 조각품들도 있었다. 흉신 악살. 악귀 들을 떠올릴 정도로 섬뜩한 조각품들! 아이를 품고 있는 어미의 목은 잘려 있었다. 인간이 아닌 오크 모녀였다. 트롤들은 서로를 창으로 찌르고 있 고, 인간들은 집단으로 전쟁을 벌이고 있다. 한 마을을 약탈하고 방화하는 장면들도 조각품으로 표현되어 있다. 강이 흐르는 장소를 따라서, 그런 조각품의 무리가 끝을 모르고 이어져 있는 것이다. "크흠." 위드조차도 눈살을 찌푸릴 정도였다. 어떤 조각품도 긍정적이지 않은, 부정적인 모습들만을 그려 놓았다. 정상인이라면 당연히 거부감을 느낄 수준. 그나마 마음에 들고 이해가 가는 조각품은 얄밉게 상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깡마른 아이들을 두고 혼자만 맛있게 스테이크를 썰고 있다. 노예로 보이는 아이들은 기껏 보리 빵을 먹고 있 는데. "돈이 없으면 굶어야지! 보리 빵이면 얼마나 잘 대우해 주는 것인데......" 위드의 공감을 100% 자아내는 조각품! 아마 악덕 상인에 의해 부림을 받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될지도 모른다. 위드였다면 피죽 한 그릇 안 쑤어 주 었을지도 모르니까! 통곡의 강을 따라서 조각품의 행렬이 끊임없이 이어져 있고, 강물은 하류로 흐를수록 거칠고 탁한 신음 소리를 내었다. -끄어어어. -죽여 줘. 죽여 줘. 강물로 다가가서 보니 보통의 물이 아니었다. 강물 깊은 곳에서는 온갖 몬스터나 인간의 원혼들이 그대로 흘러 내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납량 특집, 귀신의 집에서도 보기 어려운 괴로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스미스가 다가와서 말했다. "조각품의 영향이 아닐까?" "예?" "예술품들 말일세. 예술품들의 기본은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게야. 이 조각품들이 강을 울게 만들고 있어." 위드도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조각사가 만드는 조각품에는 만든 사람의 감정이 묻어 나온다. 다 똑같은 조각품 같지만 실상은 매우 달랐다. 막 잠에서 일어난 사람이 초췌해 보이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막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백을 받은 여자에 게서 전해지는 느낌이 초췌할 리는 없으리라. 열망과 희망. 애정으로 충만한 느낌! 대상이 같더라도 어떤 느낌으로 조각하느냐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기분을 전해 준다. 시인들이 쓰는 시나 작가들의 글도 느낌에 따라 다르게 전해지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 예술품들은 감정을 움직일 수 있다. 우중충한 그림이나 조각품 들이 집 안에 가득하다면 당연히 기분도 위축되고 의욕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부정 적인 조각품들로 집이 가득하다면, 아침에 일어나기도 싫을 것이다. 일시적인 충동이나 기분일지도 모르지만 그게 몇 년, 몇십 년이 된다면 충분히 사람도 바뀌게 만들 수 있다. "풍수지리로군요." "응?" "한강을 조망할 수 있는 아파트가 더 비싼 것과 비슷한 이치라고 할까." "무슨 소리야?" "전망이 좋을수록 아파트 값이 비싸다. 뭐 그런 게 있습니다." 위드는 알 것 같았다. 예술품이 감정을 전해 준다면, 악념만을 가지고 만들어 낸 조각품들이 강에 좋은 영향을 주었다고 보기는 어렵 다. 풍수지리를 만드는 조각품! 위드는 살다 살다 별꼴을 다 경험하고 있었다. "자고로 아파트 시세만큼 정확한 게 없죠. 그보다 여기가 어딘지 알아봐야겠군요." 그때였다. 띠링! 『-지옥의 입구. 통곡의 강에 진입하셨습니다. 살아 있는 생명이 숨을 쉴 수 있는 대륙의 끝. 마탈로스트 교단의 인도자들이 죽은 이들을 지옥으로 이끄는 장소입니다.』 "오호라." 스미스가 어깨를 으쓱했다. "여기가 인간 대륙의 끝이로군. 용병질을 하면서도 여기까지 와 보지는 못했는데...... 술이나 한 병 주게. 술자리에서 친구 녀석들에게 해 줄 자랑거리가 늘었지 않은가. 껄껄!" 스미스는 술을 먹으며 즐거워했다. 위드는 한숨을 푹 쉬었다.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더니 이제 지옥의 입구까지 오게 되었다. 그것도 주정뱅이와 함께 말이다. '어쩐지 주위의 모습이 많이 이상하더라니......' 토둠에 막 갔을 때와 약간은 비슷한 으스스한 분위기! 인간의 흔적이라고는 느껴지지 않고, 적막하기 짝이 없고 을씨년스러웠다. 나침반을 꺼내 봤지만 바늘이 핑글핑글 돌면서 고정되지 않았다. 하늘에는 별자리도 관찰되지 않았다. '이래서는 돌아갈 수도 없을 텐데......' 위드는 스미스와 함께 통곡의 강을 따라서 걸었다. 강가에는 수천 점 이상의 조각품들이 주제별로 모여 있었다. 긍정적인 조각품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예쁘고 깜찍한 소녀의 조각품을 보고 의아해서 다가가면 충격적인 장면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귀여운 소녀가 침을 뱉고 있는 것! 손에는 개구리를 쥐고 있기도 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정서적인 충격에 빠지게 하는 장면이다. 근육질의 여자들이 축구를 하는 끔찍한 장면도 있었다. 물론 축구공은 오우거의 머리통! 위드는 조각품들의 정보를 확인해 보기 위해 감정했다. "감정!" 띠링! 『오우거들의 수치스러운 조각품 이름이 거의 알려지지 않은 조각사의 작품. 오우거들은 숲과 산의 제왕이다. 영역에 대한 자부심으로 침입자들에 대해 흉포한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마탈로스트 교단의 제작 의뢰를 받아 일부러 이런 식으로 만들었다. 오우거들이 이 조각품을 본다면 매우 큰 분노와 원한을 갖게 될 것이다. 예술적 가치:전혀 없음. 특수 옵션:오우거들의 슬픔을 자극함. 』 -끄흐흐흐흐. 통곡의 강의 신음 소리는 갈수록 커져만 갔다. 위드는 이틀째 통곡의 강에 머물면서 유적을 찾아냈다. 마탈로스트 교단의 신전! 대륙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으로 알려진 교단의 신전이 여기에 있었다. 대리석으로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은 완전히 폐허나 다름이 없었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위태롭 게 만들어져서, 들어가는 것조차 고민하게 만든다. "콜 데스 나이트!" 연기와 함께 등장한 데스 나이트가 검을 들었다. "불렀는가. 주인." "너, 저기 들어가 봐라. 살아 있는 사람이나 몬스터가 있다면 즉각 나와서 보고해다." "알겠다." 데스 나이트의 친밀도가 약간은 하락했겠지만, 함께한 시간이 길다 보니 끈끈한 미운 정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데스 나이트는 신전 내부를 샅샅이 뒤지고 밖으로 나왔다. "안에는 아무도 없다. 주인." "그래?" 위드도 신전 안으로 들어갔다. 거대한 신전의 입구가 무색하게, 내부에는 신을 모시는 석상들만이 있을 뿐이다. "신전은 남아 있지만, 사제들은 모두 떠나 버리고 난 후로군." 위드는 금방 마탈로스트교의 신전을 나왔다. 사제실에도 물건 하나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전 안에서는 옷에 먼지만 잔뜩 묻혔다. 통곡의 강에서 사흘째! 신전과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장소에서 100명이 넘는 사제들과 암흑 기사들을 발견했다. "엠비뉴 교단!" 위드의 입에서 신음 같은 소리가 나왔다. 본 드래곤이 있던 지역에서도 엠비뉴 교단의 흔적을 발견했다. 원정대와 서윤, 알베론 등의 도움을 받아서 퇴 치하였던 기억이 있다. 위드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었다. "이번에도 엠비뉴 교단이 개입되어 있었나!" 니플하임 제국의 몰락에도 영향을 주었던 엠비뉴 교단인데 여기서도 발견하다니, 심상치 않은 상황이었다. 위드는 일단 몸을 숨겼다. 엠비뉴 교단의 사제와 성기사 들이 있는 부근에는 1,000마리도 넘는 마물들이 몰려 있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막강한 전력! 더구나 그들은 심상치 않은 의식을 펼쳤다. "크에에에. 떠나지 말지어다. 너희를 이렇게 만든 자들에게 복수를 하라!" "괴롭고 고통스러운 마음. 절망이 무엇인지를 깨우쳐 주어라." "다시 되돌아와서 너희의 복수를 하라." 통곡의 강 하류에서 살육의 의식을 벌인다. 어린양이나 사슴 등의 제물을 바칠 때마다 강물이 출렁거렸다. 분수처럼 높이 솟구치기도 하고, 때로는 바로 다가올것처럼 넘실거렸다. 엠비뉴 교단의 사제들은 그럴 때마다 강물을 피하기 위하여 야단법석이었다. "원통한 마음, 끊이지 않는 애잔함, 끓어오르는 화를 폭발 시켜라!" 신관들이 어린양의 심장을 바쳤을 때였다. 촤아아아아! 강물들이 역류할 것처럼 출렁거렸다. 그리고 10미터는 높이 솟구쳤다. 더럽고 탁한 구정물! 강물에서 원혼들이 잔뜩 일그러진 표정을 지은 채 신음 소리를 냈다. "뭔가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데스 나이트." "말하라. 주인." "이 자리에서 스미스를 지켜라." "알겠다." 스미스와 데스 나이트를 남겨 놓고 혼자 잠입해 볼 작정이었다. 스미스가 나섰다. "헐, 아니야. 내가 도와주지. 자네 같은 풋내기 조각사에게 정찰 임무라니 가당치도 않아." "......" "초일급 용병인 나를 남겨 두고 어디를 간단 말인가. 나를 믿어 보게." 위드는 반쯤 남은 위스키를 미련 없이 던져 주었다. "허억! 고급 위스키! 과연 입안에 쩍쩍 달라붙는구나." 스미스는 술을 마시느라 정찰에 따라나서려는 생각은 깨끗이 지웠다. 위드는 이렇게 짐 덩어리를 해결하고, 혼자 엠비뉴 교단의 지역으로 잠입했다. 말이 거창해서 잠입이었다. 실제로는 바위산을 오르며 야금야금 접근하는 정도! 조금씩 움직일 때마다 돌 부스러기들이 아래로 떨어진다. 엠비뉴의 사제들이나 암흑 기사들이 눈을 돌리려고 하면 재빨리 엎드려서 숨었다. 바위의 구멍 난 틈으로도 바람이 불어서 으스스한 귀곡성까지 들렸다. 위드는 엠비뉴 교단과 가장 근접한 바위산의 정상에까지 올랐다. 사제들의 행동이나 대화를 엿들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보초를 서고 있는 암흑 기사들이 하는 말 정도는 들을 수 있었다. "... 했는가?" "오늘은... 마리를 했다는 보고를... 같군." "조각품을 활용... 계획은 탁월해." "베르사 대륙이 도탄에... 우리의 목적." 단편적으로 들리는 말들! 바람 소리 때문에 부분 부분 끊어져서 들렸다. 위드는 대화 내용을 조합해 보았다. 눈치로 먹고산 인생이었다. 사장의 표정만 보아도 월급이 무사히 나올지, 혹은 떼어먹힐지를 간파할 수 있었다. '마리를 했다. 뭔지는 몰라도 통곡의 강에 있는 원혼들을 어떻게 했다는 것 같은데, ... 조각품을 활용한다. 통곡의 강에 있는 원혼들에게 나쁜 힘을 작용시키는 데 쓰고 있겠군.' 조각품의 다른 이유란 없어 보였다. 통곡의 강 하류로 갈수록 강물이 탁해지고, 원혼들이 괴로워하고 있다. 조각품이 주는 부정적인 힘이 개입한다 고 봐야 했다. "... 시간이 이렇게." "교체... 휴식을 취해." "신선한 양의 피를......" 암흑 기사들의 경계 임무가 교체되었다. 위드는 그다음 암흑 기사들이 보초를 설 때에도 묵묵히 기다렸다. "바람이 강해." "날씨가 나쁘... 케르탑들이 출현......" 1시간에 한두 마디를 할 정도! 그것도 사제들이 펼치는 의식과는 무관한 이야기만 한다. 위드는 일단 스미스와 데스 나이트가 숨어 있는 장소로 철수했다. 그리고 죽음의 상을 꺼내 보니 언제부터인지 마수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설마... 감정!" 말을 닮은 마수. 마탈로스트교의 신물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 늙은 노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라. 이것은 죽은 자들을 인도하는 마탈로스트교의 역사이다. 마탈로스트교는 다른 교단의 견제에 힘을 잃었다. 그때 복수를 꿈꾸면서 엠비뉴 교단과 손을 잡았다. 엠비뉴 교단은 증오밖에 모르는 악신들을 숭배하는 무리. "너희가 가진 권능을 이용하라. 칼칼!" "베르사 대륙이 마탈로스트 교단을 숭배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라." "우리가 원하는 바는 오로지 파괴일 뿐. 도와주겠다." 마탈로스트교는 타락했다. 죽은 자들을 인도하는 임무를 방치한 채로 엠비뉴 교단의 열한 번째 지파가 되었다. 마물들을 양성하여, 베르사 대륙을 짓밟는 악의 군대가 되었다. 그들의 힘의 원천인 통곡의 강을 정화하라. 통곡의 강이 정화되면 마물들도 힘을 잃게 되리라. 띠링! 『엠비뉴 교단과의 싸움 대륙을 악으로 물들이려는 엠비뉴 교단의 행위를 저지하라. 엠비뉴 교단의 의식이 진행될수록 베르사 대륙은 혼란에 빠지고 말것이다. 그들의 의식이 진행되지 못하도록 통곡의 강 유역에 있는 조각품들을 바꾸어 놓아라. 단, 조각품들을 파괴하면 암흑 기사들의 추적을 받게 됨. 연계 퀘스트 마탈로스트 교단의 포로 구출, 엠비뉴 교단 11지파의 파멸, 마탈로스트 교단 의 숙원과 이어짐. 난이도:조각사 한정 퀘스트 보상:조각술의 대업적으로 기록됨. 엠비뉴 교단을 제외한 베르사 대륙의 모든 교단과의 선호도 상승. 명예로운 칭호. 퀘스트 제한:부활의 군대와 엠비뉴 교단이 베르사 연합군에 의해 전멸하면 퀘스트는 자동 적으로 취소됨. 』 위드의 눈이 빛났다. "이건 또 다른 연계 퀘스트의 시작과도 같군." 조각사 퀘스트! 죽음의 상을 가지고 따라온 의뢰였다. 만약 이 의뢰를 받아들여서 성공시킨다면, 엠비뉴 교단의 의식을 방해하고 파멸시키는 등의 연속 퀘스트와 이어 지게 된다. 진짜 퀘스트의 출발점과 같다는 뜻이었다. 위드는 도전을 거부하지 않았다. "해 보겠습니다." 『-퀘스트를 수락했습니다.』 통곡의 강 유역! 강가를 조금만 벗어나더라도 몬스터와 마물 들로 넘쳐 났다. 최악의 사냥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깡말라서 뼈밖에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마른 체구, 짙은 암청색의 피부에서 전기를 발산하는 몬스터들! 지옥의 몬스터들이 대거 돌아다니고 있었다. 몬스터와 마물 들이 싸움을 벌이고 있었기에 위드도 안전한 강가를 벗어나지 못했다. "몬스터들의 레벨이 최소한 300대 후반이란 이야기인데......" 강 유역의 가장 약한 몬스터들의 레벨이 그 정도였다. 날씨가 칙칙하고, 대기 중에 습기가 차 있으면 놈들이 발사하는 전기의 위력이 가공스러울 정도다. 위드는 실험도 해 보았다. "데스 나이트, 공격!" "알았다. 주인!" 데스 나이트가 두셋의 합공에 10분도 버티지 못하고 죽어 버리는 것으로 이미 증명이 되었던 바! 통곡의 강 부근을 벗어나지 못하니 더 움직이면 어떤 몬스터들이 출현할지 짐작조차 불가능했다. 데스 나이트는 죽음의 기사였기에 계속 되살아나지만, 당분간은 심하게 약화되었다. 위드는 얌전히 조각칼을 들었다. "한 걸음씩 차분히 해야지." 아이를 안고 있는 채로 목이 잘린 어미 오크부터 작업에 들어갔다. 어미 오크의 머리통을 제작하여 정밀하게 붙여 주는 작업! 통곡의 강 유역에 수천 점이나 되는 조각품들을 긍정적으로 바꾸어야 했으니 위드에게도 대역사라고 할 수 있다. 어미 오크가 따사롭게 웃고 있는 머리통을 만들고 있을 때였다. 오크의 눈초리는 쭉 찢어졌고, 아이를 내려다보는 눈길에는 식욕이 가득 찼다. 자기 아이까지 잡아먹을 듯한 눈빛! 새끼 오크가 젖을 먹다가 심장마비로 죽어 버릴 것처럼 보이는 머리통이었다. 오크 카리취로 독특한 미적감각이 충분히 증명되었지만, 지금은 잡념까지 가득해서 조각품들이 마음먹은 대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위드는 조각칼을 놓았다. 수천 점이나 되는 통곡의 강 유역의 조각품을 바꾸어 놓을 엄두가 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강물 속의 원혼들이 귀곡성을 터트리고, 안개 낀 강가의 조각품들이 무섭게 보이기 때문도 아니었다. 몬스터들! 엠비뉴 교단의 사제들과 암흑 기사들을 방치해 둔 채로 조각품만 만들 수는 없다. 이건 마치 한창 성장할 초등 학생에게 고기반찬은 절대로 먹지 말고 나물만 먹으라고 강요하는 꼴이 아닌가. 경험치와 아이템에 대한 욕구. 위드의 속이 부글부글 끓다가 참을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넘쳐 나는 강한 몬스터와 아이템들. 이것들을 내버려 두고 오크 머리통이나 만들 수가 없는 것이다. 폭발적으로 일어나는 갈증에 위드는 다시 조각칼을 들었다. 통곡의 강 유역에 있는 조각품을 수정하는 게 아닌, 온전히 새로운 조각품을 만들려는 목적에서였다. 서걱서걱! 흑암을 잘라서 조각품을 만든다. 바위를 이용한 대형 조각품은 익숙한 방식이었다. 의외로 무르고 구멍이 숭숭 뚫린 바위는 조각칼로 쉽게 자를 수 있었다. "탈것부터 만들어야 해." 위드는 스켈레톤 나이트가 되었던 때를 떠올렸다. 해골 기사 자체로는 영웅의 탑 관문에서의 전투는 그럭저럭이었다. 역사적인 팔랑카 전투, 대평원에서 말을 타고 보여 주던 폭발적인 가속력! 기사의 질주에 장애물은 없었다. 몬스터들을 가르고 나아가던 돌격. 기사에게 말이 주어지면 그 전력은 3배, 4배 이상이 된다. "조각사라도 질주는 할 수 있지." 기사처럼 특별한 스킬, 말과 사람이 일체화되는 스킬 등은 없어도 질주는 가능하다. 용병들도 웬만큼 성장하면 자기 말 정도는 갖는 게 보통이었다. "그렇다고 구태여 말을 조각할 필요는 없어." 위드는 나약한 말 따위는 원하지 않았다. 말은 빠르지만 지구력은 그다지 높지 않다. 흉맹한 기세에서도 달린다. 불이나 번개, 귀신 등 무서워하는 것도 많다. 어차피 기사로서 말에 대해 특화된 것도 아닌 마당이었다. "역시 탈것의 최고라면 바로 그거지." 위드는 대한국민이었다. 수없이 길고 굴곡진 역사 속에서 민족과 함께 아픔을 달래 주었던 가축! 강하고 굳건하며, 가족처럼 친근한 데다 엄청난 근력을 가진 가축이 있는데 말을 조각할 까닭이 없다. 우리 소. 한우! 위드는 암석의 특성상 시커먼 흑우를 조각했다. 다리는 굵고 탄탄했다. 허벅지의 근육은 섬세하기 짝이 없었으며, 몸통도 완전한 근육질이었다. 보통 사료를 먹고 자란 소들이 육질을 위해 지방을 줄줄이 달고 있다면, 지금 조각하고 있는 소는 달랐다. 가히 베르사 대륙 미스터 황소 올림피아에 나가도 될 정도! 육체미를 좋아하는 암소들이 본다면 곧바로 짧은 꼬랑지를 흔들며 엎드리리라. "무턱대고 근육만 키워서는 안 돼." 위드는 절제의 미덕까지 발휘했다. 근육질의 몸은 순간적으로 내는 힘은 강할지 몰라도 지구력이나 민첩성에는 둔한 약점을 지닌다. "불필요한 근육들은 최소화하고, 근력과 지구력의 최적화를 이루어야지." 위드는 황소의 조형미까지 신경 썼다. 데스핸드와 조각술 승부를 겨루기 전에, 얕보이기 위해 일부러 실패작 황소를 만들었다. 명성의 손해까지 감수 하며 쌓았던 경험이 있다. 황소를 조각하는 데 훨씬 능숙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뿔은 30센티 정도에 끝은 철판도 뚫을 정도로 뾰족하게 만들고, 얼굴은 넓적하게 했다. 근육질의 황소임에도 엉덩이는 질펀했다. "한우의 얼굴은 넓적해야 돼. 엉덩이는 클수록 좋아. 눈은 동그래야 해." 소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 위드가 조각품을 완성했다. 『-만드신 조각품의 이름을 정해 주십시오.』 "누렁이." 『-누렁이가 맞습니까?』 지금은 검은색 소지만 차후 누런색으로 염색을 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위압감과 공포감까지 느껴질 정도의 5미터 거구의 흑우를 보며 위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소는 누렁이가 딱이지." 띠링! 『역사적인 조각품, 황소의 전설 누렁이를 완성하셨습니다! 조각술계의 전설! 그가 조각한 모든 것들은 베르사 대륙의 역사가 된다. 고귀한 재능과 풍부한 예술성,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섬세한 재주로 다시금 경탄할 수밖에 없는 작품을 창조했다. 소의 근엄한 매력과 역동성이 느껴지는 작품. 색다른 해석과 관점으로 가축계의 전설적인 조각품이 될 것이다. 예술적 가치:거장 조각사 위드의 작품. 6,124 특수 옵션:누렁이를 본 이들은 생명력과 마나 회복 속도가 하루 동안 15% 증가 한다. 누렁이를 본 이들은 사냥 시 고기 계열 식료품을 획득할 확률이 하 루 동안 49% 증가한다. 힘 80 상승. 인내력 25% 증가. 생산 계열 작업 능률 5% 향상. 암컷 소들의 번식 능력 38% 증가. 소들의 체중 증가가 빨라짐. 일대에 소들을 위협하는 몬스터들의 활동을 억제함. 다른 조각품과 중복 적용되지 않음. 지금까지 완성한 역사적인 조각품의 숫자:1 』 『-조각술 스킬의 숙련도가 향상되었습니다.』 『-손재주 스킬의 숙련도가 향상되었습니다.』 『-명성이 412 올랐습니다.』 『-예술 스탯이 70 상승하셨습니다.』 『-힘이 3 상승하셨습니다.』 『-인내력이 10 상승하셨습니다.』 『-소에 대한 역사적인 조각품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소에 대한 친밀도가 높아지고, 넓은 초지를 소유하고 있다면 저절로 모여들게 될 것입니다. 재능 있는 조각사들이 이 조각 품을 본다면 조각술을 수련하는 데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입니다. 』 『-역사적인 조각품을 만든 대가로 전 스탯이 2씩 추가로 상승합니다.』 위드는 역시 만족했다. "소만큼 우리 민족을 잘 이해하고 보답해 주는 가축도 없어." 소에 대한 고마움! 과거에 소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농사를 짓기도 어려웠을테고, 많은 이들이 기아에 허덕여야 했을지도 모른다. 농기계가 발달하기 전까지 한국인들의 식량 산업에 무궁한 도움을 주었던 소. 위드는 곧바로 보은을 내리기로 했다. 이토록 훌륭한 조각품을 단지 감상만 하기에는 아까웠다. 게다가 여기는 일반인들이 올 수도 없는 장소이지 않은가! "조각품에 생명 부여!" 『-조각품에 생명을 부여하셨습니다. 조각품의 능력은 현재 설정된 예술 스탯 1,316에 따라 레벨에 맞춰 422로 변환됩니다. 역사적인 조각품의 효과로 인해서 15%의 레벨이 추가되어 485로 늘어납니다. 바위의 재질이 약하여, 20%의 레벨이 패널티로 줄어듭니다. 생명체에 세 가지의 속성이 부여됩니다. 조각품의 모양과 수준에 따라 부여되는 속성의 수준과 능력치가 다릅니다. 인내의 속성(100%), 땅의 속성(100%), 충직함의 속성(100%). 인내는 어떠한 일에도 참을성을 키워 줍니다. 방어력이 증대하며, 독이나 마법 공격에도 쉽게 쓰러지지 않습니다. 땅의 속성은 약간의 방어력과 무거움을 더해 줍니다. 대지와의 친밀도로 인하여 특별한 도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충직함은 주인의 말을 잘 따르게 합니다. 쉽게 주인을 택하지는 않지만, 주인 에 대한 인식이 생기면 죽는 순간까지 충심을 바칠 것입니다. 역사적인 조각품이기에 특수한 능력이 부여됩니다. 소들에 대한 지배력을 갖습니다. 누렁이를 본 수소들은 머리를 숙이고 복종할 것이며, 암소들은 안도하며 새끼를 낳을 것입니다. 광란의 폭동. 누렁이는 온순하며 충직한 성품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간해서는 화를 내지 않 지만 굴욕, 어린 소에 대한 학대, 주인의 죽음을 목격하면 미쳐서 날뛸 수 있 습니다. 마나가 5,000 사용되었습니다. 스킬의 효율이 증가해서 생명을 부여할 때 소모되는 레벨과 스탯의 양이 20% 감소합니다. 예술 스탯이 6. 영구적으로 줄어듭니다. 줄어든 스탯은 조각품이나 다른 예술 과 관련된 활동을 통해 보충할 수 있습니다. 레벨이 1 하락합니다. 레벨 하락에 따라서 보유하고 있는 스탯이 5 줄어듭니다. 줄어든 스탯은 레벨을 올리게 되면 다시 부여할 수 있습니다. 생명이 부여된 조각품을 소중히 다루어 주십시오. 목숨을 잃으면 다시 생명을 부여해야 합니다. 완전히 파괴되었을 경우에는 되살릴 수 없습니다. 』 누렁이! 시커먼 눈동자에 빛이 어렸다. 뒷발로 땅을 긁으며 소 머리를 쳐들었다. 음머어어어! 누렁이의 듬직한 울음 소리였다. 위드도 매우 만족스러웠다. 바위의 재질이 좋았더라면 더할 나위 없었겠지만 탈것으로는 최상급! "누렁아." 누렁이가 순박한 눈을 끔벅였다. 근육질의 거대 황소였지만 눈빛만은 선했다. 누렁이가 입을 열었다. 그러자 뜻이 전해졌다. "누렁이가 내 이름인가?" "그래." 황소가 마음으로 의사소통을 한다. 그리 놀랄 일도 아니었다. 조각품으로 만들면 빙룡도, 와이번도 말을 했으 니까. 위드와는 정신적인 교감으로 엮여 있기 때문에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다른 사람들의 말도 알아들을 수는 있지 만 무시하거나, 자신들의 의사를 표현할 수 없는 경우도 많았다. 빙룡이나 금인이처럼 지성이 뛰어난 경우가 아니라면 인간이나 엘프 등과의 의사소통은 불가능했다. "이름이 썩 좋은 것 같지 않다. 거친 나의 행동과 어울린다고 생각하나?" 누렁이가 뒷발로 땅을 심하게 파헤쳤다. 땅이 바스라지면서 자갈들이 뒤로 튀었다. 과연 힘이 좋은 황소! "누렁이가 얼마나 정감이 있고 좋은 이름인데. 앞으로 네 이름은 누렁이다."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 주인이군." 누렁이는 까칠하게 나왔다. 충직한 소였지만, 초반에는 경계심을 품고 있는 모습이었다. 겁 많은 새끼 송아지들처럼 위드에 대해 살피고 있다. 위드의 차후 행동을 보고 태도를 결정하려는 느낌이 전해졌다. "앞으로 나와 무엇을 할 생각인가. 나는 넓은 초지에서 풀을 뜯어 먹으며, 어여쁜 암소를 만나 송아지를 낳고 평화롭게 살고 싶다." 자유 방목을 꿈꾸는 누렁이의 욕망! 위드는 고개를 저었다. "너 타고 몬스터 사냥할 건데." "......" 누렁이의 미간이 심하게 찌푸려졌다. 사냥이나 전투에 대해서는 소의 습성상 거부감을 갖고 있는 모습이었다. 위드는 이 순진한 소에게 세상에 대해 가르쳐 줘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자유가 그렇게 쉽게 얻어지는 줄 알아? 너 돈 있어?" "없다." "초지라고 했는데, 넓은 초지에 니 땅이 있어?" "없다." "돈 없고, 땅 없고, 예쁜 암소가 널 좋아해 줄 줄 알아? 쯧쯧. 요즘 암소가 얼마나 영악하기 짝이 없는데." "......" "새끼 소는 어떻게 기를 거야. 니 새끼가 평생 잡초만 뜯어 먹고 살게 하고 싶어? 영양분 가득한 건초라도 먹이려면 뭐라도 있어야 될 게 아냐." 사회의 쓴맛을 소에게 알려 주는 위드! 누렁이의 기세가 꺾이고 온순해졌다. "생활에는 돈이 필요하겠군. 몬스터를 사냥해야 한다는 이유를 이해한다." 누렁이는 금방 설득당했다. 위드가 주인이기 때문에 일단 복종심을 가지고 있는 것도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누렁이는 자신의 몸을 돌아보더니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완벽한 근육질의 몸통의 옆구리에 한 뼘 정도 씩의 군살이 붙어 있었기 때문. 네발로 걸을 때마다 군살들이 출렁거렸다. "주인, 여기는 뭔가?" "거긴 꽃등심." "......" 꽃등심과 아롱사태 들을 중요하게 여기는 위드! 누렁이는 노골적으로 불만인 듯이 뒷발로 땅을 파헤쳤다. 무력시위를 하는 것이다. 씨알도 안 먹힐 행동. 위드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누렁아, 보자 하니 너의 오만방자함이 끝이 없구나." "흥." "내일부터 코 꿰서 끌고 다닌다." "......" "밭일 시킨다. 농사지을래? 황무지 개간하고 싶어?" "......" "도축해서 냠냠 꿀꺽한다. 소에는 된장도 안 바르는 거 알지? 육회로 그냥......" "어떻게 그런 심한 말을......!" "난 사골에 소꼬리까지 안 남기는 사람이야." 협박을 하라고 하면 2박 3일도 가능한 위드였다. 누렁이가 어느새부터인가 슬그머니 고개를 숙였다. 순종! 이것으로 누렁이의 운명은 결정된 것이다. 위드는 누렁이만으로는 부족함을 느끼고 조각품을 더 만들었다. 빛을 이용한 조각품. 빛의 날개를 만든 이후로 숙련도를 더하고, 고심으로 시도한 조각이었다. 타오르는 듯한 선명한 붉은색. 화염을 형상화한 것처럼 농도가 짙었다. 거대한 새를 만들었다. 빛을 이용한 조각품이기에, 작은 형태를 만들기가 훨씬 더 어렵다. 기술적으로 완전하지 않기에 세밀함 대신 크기로 승부하는 것이다. 불사조! 붉은빛에 화염의 성질을 더한 조각품을 만들고 생명을 부여했다. 조각품은 빛의 대작이 아닌 명작이 나왔지만, 그 자체로도 나쁘지 않은 성공작이었다. 불사조의 특성은 특히 훌륭했다. 『꺼지지 않는 불의 속성 체력이 완전히 다 사라지더라도 작은 불길만 있으면 되살아납니다. 되살아날 때에는 최대 생명력과 마나의 50%씩을 보유합니다. 』 불사조다운 훌륭한 면모! 위드가 만들어 내는 조각품들은 강함도 중요하지만, 생명력의 지속성이 무엇보다 소중했다. 네크로맨서야 약간의 마나와 사체만 있으면 꾸준히 언데드들을 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위드는 조각품에 생명 을 부여할 때마다 레벨과 예술 스탯을 소모한다. 애써 조각품을 깎아서 언데드보다 더 강한 놈들을 만들더라도, 죽으면 그걸로 끝! 조각품들은 독립된 개체로서 충성을 다한다. 그들이 전멸당하면 위드의 손실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가늘고 길게. 생명을 부여한 조각품들은 소모품이 아니라, 단점을 보완해 주며 함께 성장해야 할 가족이었다. "불사조가 괜찮군." 위드는 불사조를 총 5마리 만들었다. 모양이 같은 조각품들이라 다시 만들 때에는 걸작들밖에 나오지 않았다. 최종적인 레벨도 400이 간신히 되었다. "너희의 이름은 불사조 오형제다!" "알겠습니다. 주인님." 불사조들이 날개를 접고 고개를 숙였다. 위드는 누렁이에 탄 채로 불사조들의 인사를 받았다. ▷황소를 탄 조각사 프로암 연합 용병 길드. 블랙소드 용병단은 최상급 용병대 자격을 획득했다. "크흐. 여기까지 오느라 정말 힘들었군." 블랙소드의 단장 미헬이 말했다. 무려 백여든아홉 가지의 의뢰. 그 의뢰들을 모두 성공시키면서 오른 자리였다. 베르사 대륙 전체에 지점을 내고 있는 프로암 연합 용병 길드 내에서 인정을 받은 것. 블랙소드는 성과 마을까지 소유한, 명실상부한 최고의 용병단이 되었다. 수천의 용병들이 가입된 길드. 전사와 마법사 들을 보유하고, 귀족들과의 관계도 이어져 있다. 블랙소드 용병단의 상의에는 그들만의 독특한 표시인 시커먼 검이 교차로 장식되어 있는데, 그것을 본 다른 용 병들은 경의를 표하곤 했다. 블랙소드 용병단의 일원인 것만으로도 일반 유저들 사이에서는 굉장한 추앙을 받을 정도였다. 미헬은 프로암 연합 용병 길드의 기록을 열람할 권한도 획득했다. "미완수 의뢰들. 이것들을 우리가 해낼 수만 있다면 용병단은 더욱 강해질 것이다." 미헬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스스로의 레벨도 431이나 되었을뿐더러, 용병대 내에 소속된 상위 랭커들도 상당수. 방송 출연도 하는 유명인이고, 다른 길드들과의 관계도 원만하다. 충돌이 생길 때도 간혹 있었지만 힘으로 찍 어 눌러버리면 군소리가 안 나왔다. 베르사 대륙에는 약하고, 위험에 빠진 이들이 많다. 블랙소드 용병단이 가진 무력을 원하는 사람들은 부지기수 라서 영향력은 갈수록 늘어났다. 미헬은 프로암 연합 용병 길드의 기록을 읽던 도중에 눈에 띄는 부분을 발견했다. "전대 용병 길드장 스미스. 프로암 연합 용병 길드를 베르사에서 최고로 만든 인물. 퇴직한 후에는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끼에에엑! 우히힛! 인간의 군대와 마물들 간의 혈투. 오데인의 성벽으로 마물들이 대진군을 하고 있었다. 다리가 짧고, 길고, 비틀거리면서 쓰러질 듯이 진군하는 마물들은 좀비를 연상시켰다. "쏴라!" 성벽에서부터 화살의 비가 내렸다. 궁수들은 화살을 아끼지 않고 쏟아부었다. 부활의 교단 사제들이 지팡이를 흔들었다. "레고르, 선두로 나서라!" "달려라. 오데인을 짓밟아라." 대형 코끼리, 혹은 메머드를 닮은 것처럼 보이는 마물들이 앞으로 내달렸다. 레고르의 진로에 있던 작은 마물들이 발길질에 치여 허공으로 날아다녔지만 신경도 쓰지 않고 내달렸다. 꾸오오오오! 체구가 작은 마물들이 뿔피리를 부르고 괴성을 내질렀다. 발을 구르기도 했다. "궁수들은 뭘 하나. 쏴라!" "저 레고르를 막앗!" 오데인에서는 악몽 같은 마물이었다. 평원의 대회전에서 레고르에 의해 밟혀 죽은 인간 유저들이 무지하게 많았던 것이다. 슈슈슉! 오데인의 성벽에서 하늘을 덮을 정도의 화살이 쏟아졌다. 레고르라고 불린 마물들은 화살들을 두꺼운 회색 피부로 튕겨 버렸다. 쿠엣쿠엣! 퀘에에에에! 중형 마물들은 레고르의 배 밑과 엉덩이 뒤에 숨어서 계속 돌진했다. 입을 찢어져라 벌리고 괴성을 터트리며, 침을 뚝뚝 흘렸다. 오데인 성벽까지는 불과 200여 미터만을 남겨 놓고 있을뿐이었다. 지긋지긋하게 싸워 온 마물들이니 그 정도의 거리는 단숨에 다가올 수 있다는 사실을, 오데인을 지키는 기사들 은 알고 있었다. "화살을 더 쏴라!" "마법사 군단은 뭘 하고 있어?" "우린 명상을 통해 마나를 보충하고 있네." 오데인 요새 마법사들의 대표이며, 번영의날개 길드의 마법사인 키암이 대답했다. "이 와중에 명상은 무슨 명상! 성벽이 부서지면 마법을 쓸 수 있는 기회조차도 사라진다는 걸 모르나? 어서 있는 마나를 다 써서라도 놈들을 막앗!" 오데인 요새의 성벽에서 마법사들의 마법이 시전되었다. 콰과과과과광! 땅이 뒤집히고, 천둥 벼락이 내려쳤다. 화염과 폭풍, 물, 마법 화살 들이 마물들을 향해 작렬하는 굉음! 지형이 뒤바뀌고 일대가 초토화될 정도의 위력이었다. 레고르를 포함한 마물들도 살아남지 못했다. 마법이 휩쓸고 간 자리에 남아 있는 것은 잡템뿐! "크으... 주우러 갈 수도 없고." "죽겠네. 성벽만 지키고 있으려니 소득이 없잖아." 성벽에 있는 용병들이 불만으로 구시렁거렸다. 잡템들 중에는 분명 좋은 아이템들도 많이 있으리라. 욕심이 일었지만 성벽 아래로 내려간다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었으니 참아야 했다. 마물의 진격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마법이 선두를 초토화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마물들의 대군은 줄어든 기미가 안 보였다. 갈수록 거세지는 마물 의 공세에 의해, 오데인 요새는 바람 앞의 등불과도 같았다. 데이몬드가 본 스태프를 흔들었다. "너희의 저항도 여기까지일 것이다." 수반이 따라서 웃었다. "드디어 오늘이로군." "음. 일부러 그동안 공세를 자제하며 힘을 모은 보람이 있었어. 오늘이야말로 오데인 요새를 뚫는다." 오데인 요새만 넘으면 아이데른 왕국을 점령하는 것은 시간문제. 넓은 곡창지대와 무기고만 장악한다면 마물의 군대를 더 배불리 먹이고, 무장시킬 수 있다. 연합군이 결성되었다고는 하지만, 마물의 군대를 직접 상대해 본 이들이 아니라면 아직까지 심각성을 인지하 지 못했다. 다른 왕국에서 출진했다는 원정군도 도착하려면 시간이 한참이나 걸린다. 높은 세율과 군대 양성! 명문 길드와 영주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부활의 군대가 침공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국지적인 공성전 외에 각 왕국들은 평화로웠고, 몬스터들만이 유일 한 적이었다. 오데인 요새의 성벽이 그들을 지켜 줄 것이라는 환상! 어느새 성내에 독한 전염병이 퍼졌다. 괴로움과 공포를 느낀 연합군은 와해되고 있었다. 데이몬드가 본 스태프로 성을 가리켰다. "계속 공격해라!" 더 많은 레고르들이 오데인 요새를 향해 달렸다. 레고르의 등에는 고블린들이 타고 있었다. 미약한 무력을 가진 고블린들은 회유에 약했다. 돈과 마물의 군대를 미끼로, 중간 지휘관으로 영입을 한 것이다. 고블린들을 끌어들이면서 마물들의 전투력은 훨씬 강화되었다. 고블린들이 레고르 위에서 조악한 창을 치켜들고 춤을 추고 있었다. 부활의 군대를 이끌고 베르사 대륙을 침공하고 있는 데이몬드의 별명은 마왕의 군주. 베르사 대륙을 마물들로 물들이려는 혼돈의 존재였다. 정장에 넥타이를 매고 있는 제퍼슨은 회의실로 걸어가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오늘도 쉽지 않겠군." "안녕하세요. 제퍼슨 씨." "요한나 씨도 오랜만이야." 제퍼슨은 지나가는 여자들이 인사를 할 때마다 친절하게 받아 주었다. 하지만 그녀들이 지나가고 나면 먹구름 이 잔뜩 낀 얼굴로 돌아왔다. 그가 근무하는 회사는 뉴욕에 위치한 세계적인 J.K.I. 금융 그룹! 미국의 대표적인 투기 자본으로, 그들의 좌우명은 하나였다. '돈이 되는 곳에 투자한다.' 자원, 인물, 기업, 국가. 투자에 어떤 제약도 존재하지 않았다. 끝없는 탐욕으로 파생 상품에서 큰 손실을 입고 한동안은 잠잠했지만, 최근에는 다시 자본을 늘리고 있었다. 아시아 담당 전무 제퍼슨은 그들에게 자산을 맡긴 대주주들을 상대로 설명회를 주재했다. 미국과 유럽의 인프라 회사에 투자한 실적은 꽤 좋은 편이었다. 이집트의 유전에 한 투자도 슬슬 실적을 내고 있었고, 환경 기술에 대한 투자들도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었다. 문제는 아시아에 있었다. 수익률이 너무 높았기 때문에 대주주들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현재 유니콘에 참여한 우리의 지분율은 대략 7.2% 현재의 시세대로라면 168억 달러가량 됩니다." "투자수익률이 백 배는 넘겠군." 미국의 부통령까지 역임했던 벤자민 챈들러가 말했다. "네. 투자수익률은 130배를 넘고 있습니다. 현재 본 회사에서 가장 높은 수익률입니다." "왜 사전에 유니콘에 더 많은 금액을 투자하지 않았지?" 130배의 투자 수익! 그러나 챈들러는 그것으로도 모자라서 더 큰 욕심을 내고 있다. 다른 이사와 대주주들도 제퍼슨의 잘못을 질타 했다. "돈을 벌 기회를 놓치다니. 기회가 곧 돈이라는 사실을 잊은 건가?" "유니콘이 이토록 성장할 때까지 우리 회사에서 무방비 상태로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군." 제퍼슨은 변명하기 급급했다. "저희도 나름대로 대응을 하려고 했습니다만 주식 가치가 너무 갑자기 뛰었습니다." "주가가 130배가 올랐어. 초창기에 더 많은 투자를 했어야 하지 않나!" "기술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사업이었습니다. 언론이나 미국의 학계에서도 부정적으로만 다루어서 더 이상의 투자는 어려웠지 않습니까." "유니콘 사의 외국계 지분이 얼마나 되지?" "19.4% 정도입니다." J.K.I. 금융 그룹과 캘리포니아 공무원 연금 공단이나, 다른 투자 회사들까지 합친 지분은 19.4%에 육박했다. "연합해서 더 이상 크기 전에 유니콘 사를 인수 합병하는건 어떻겠나?" 천문학적인 자금을 바탕으로 한 경영권 장악! 챈들러가 아니라면 엄두도 못 낼 발언이었다. 제퍼슨이 입고 있는 셔츠의 등에 땀이 흥건하게 차올랐다. "의사를 타진해 봐야 알겠지만 매우 어려운 시도가 될 것 같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끌어오도록 하겠네." "돈이 있다고 해도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로열 로드가 초대박을 터트리면서 유니콘은 믿을 수 없는 성장을 하는 중이었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주가 폭등! 주식시장이 열리자마자 상한가로 치솟았다. 거래도 없었다. 주식을 가지고 있는 쪽에서는 무조건 오른다는 확신이 있으니 팔려고 하지를 않았다. 매년 배당만 받아도 평생 먹고 살 돈을 벌 수 있었던 것이다. 반대로 주식을 사려는 사람은 어떤 값이라도 지불하려고 했다. 전 세계 주식거래자들은 유니콘의 주식 한 주라도 사 모으려고 했지만 거래가 안 되어서 분통을 터트렸다. "무슨 이런 주식이 다 있어?" 챈들러는 속이 뒤집어질 것 같다고 느꼈다. 유니콘의 주식은 지금도 천장을 모르고 치솟는 중이고, 현재 주당 가격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주식이 되었 다. "높은 가격을 걸더라도 거래가 이루어지질 않습니다. 그리고 만약 인수 합병을 한다는 소문이 퍼진다면 간혈적으로 이루어지는 거래마저도 위축될 것입니다." 제퍼슨은 대주주들에게 안 좋은 소식만을 알려 주고 있어서 미안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더구나 유니콘 사에서는 막대한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 실제로 몇몇 금융회사들이 연합해서 유니콘에 대한 적대적인 의도를 암암리에 보인 적이 있었다. 언론과 신용 평가회사 등을 통해 흔들고, 주식을 매입하려고 했던 것. 그런 조치들에 대한 유니콘의 대응은 과감했다. 넘치는 현금을 이용하여 역으로 외국 언론사와 금융회사에 대한 지분을 대폭 늘려 버렸다. 경영권에 간섭하고 이사진을 강제로 물갈이할 수준에 이르자 손을 떼어야 했다. 유니콘 사에서 보유한 현금에 파생 상품 등으로 큰 손실을 입은 외국 금융회사들이 휘둘리는 꼴이었다. 외국계 투자은행의 최대 주주가 유니콘 사인 경우마저 있을 정도였다. 한 달 이용료 20만 원! 매달 천문학적인 현금을 벌어들이고 있는 유니콘 사였기에 가능한 일이다. J.K.I. 금융 그룹의 회의는 아무 결론 없이 끝이 났다. 대주주들이 육중한 몸을 일으켰다. "집에 가서 쉬어야겠군." "아비게일, 오늘도 로열 로드에 접속할 작정이오?" "물론이지. 바다 근처에 별장도 구입했다오." "레벨이 몇입니까, 챈들러 씨." "290이야. 같이 사냥하겠나?" "좋지요. 좀 키워 주세요. 레벨이 200을 넘고 나니 사냥이 정말 어렵더군요." "요령이 없으면 힘들 수밖에 없지." 대주주들도 로열 로드의 유저들이었다. 현실 세계에서 부와 권력을 쌓은 그들. 베르사 대륙에서는 새로운 모험과 삶을 살 수 있으니 마다할 까닭이 없다. 좀 더 젋고, 핸섬한 몸으로 새 인생을 산다. "다음 회의에 뵙겠습니다." 제퍼슨이 현관에 대기하고 있는 고급 차까지 정중하게 배웅을 했다. 그도 로열 로드의 유저였다. 투자회사의 중역답게 그가 택한 직업은 상인이었다. 무역으로 큰돈을 벌어서 수도에 투자하여 작위를 획득, 귀족으로 영지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중이었다. 로열 로드는 누구라도 빠져들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현실이었으니까. 음메에에에! 누렁이가 무겁게 울었다. 고된 쟁기질이라도 하루 종일 한 것처럼 피로한 모습! 전투에 도움이 될 거라며 이상한 스텝을 익히느라 고생을 한 덕분이었다. 위드는 검을 뽑았다. "달려라. 누렁아!" 음모오오오오! 누렁이가 뒷발을 박차고 내달렸다. 황소의 거친 돌진. 가파른 바위산을 거칠 것 없이 달려 내려오면서 점점 빨라졌다. 위드의 망토가 바람을 타고 심하게 펄럭거렸다. "역시 이 느낌이지." 빠르게 달릴 때 휘날리는 망토만큼 멋들어진 게 없다. 위드는 최고의 장비들로 완전무장한 상태였다. 검은 토둠에서 획득한 데몬 소드. 칼라모르 왕국의 명예로운 기사 콜드림의 애병이었다. 빛을 흡수하는 탈로크의 갑옷에 고귀한 기품의 검은 헬멧, 뱀파이어의 망토와 검은 부츠. 고대의 방패까지 착용했다. 황야를 달리는 야생마를 타더라도 더없이 멋지게 보일 모습. "남자는 역시 옷이 날개야." 누렁이를 타고 있는 부분이 어색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위드는 자신의 모습에 만족했다. "꾸미지 않아서 그렇지 조금만 신경 쓰고 다녔으면 영화배우들이 별거겠어?" 헤어스타일과 옷만 바꾸면 영화배우도 따라잡을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 고전적이며 우아한 갑옷을 입고 5미터가 넘는 황소에 타고 있는 기사! 전력 질주에서 엄청난 박력이 느껴졌다. "달려라. 더 빨리 달려!" "이미 최고 속도다. 주인." "이랴. 이럇!" 위드는 입으로 박차를 가하는 것처럼 소리도 냈다. 안장도 고삐도 없는 황소를 타고 있지만 할 건 다 해야 하는 것. 바위산 아래에 있던 케르탑들이 멀리서부터 누렁이가 달려오는 것을 알아차렸다. "소다." "인간. 어떻게 인간이 여기를." "엠비뉴 교단의 기사인가? 협약에 의해 그들은 건드릴 수 없다." "아니다. 갑옷에 그들의 문장이 없다. 죽여!" 케르탑 5마리는 태도를 결정했다. 더듬이를 방전시켜서 뇌전을 일으켜 쏟아 냈다. 콰르르르릉! 천둥 벼락이 치는 소리와 함께 뇌전 줄기들이 쏟아졌다. 음메에에에에에에에! 누렁이가 놀람에 길게 울부짖으면서 옆으로 뛰었다. 속도를 줄이면서 방향 전환까지 한 것이다. 뇌전들이 위드와 누렁이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바위산과 지면을 타격한 뇌전들이 땅을 폭발시켰다. 부서진 바위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과연 우리 소!" 위드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말보다도 훨씬 민첩한 움직임과 월등한 체력이었다. 따로 지시를 내리지 않았는데도 본능적으로 피한 것이다. 찰나의 순간에 다가온 뇌전을 피할 줄이야! 기대 이상이었다. "다시 달려라!" 음메에에. "무섭다. 싫다. 싸움은 체질에 맞지 않는 것 같다." 누렁이가 머리를 저었다. 순박한 소에게 전투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위드는 칭찬으로 의욕을 일으키는 대신에 더 강한 협박을 동원했다. 전투란 일말의 망설임이 없어야 하는 것! "무서우면 저놈들을 향해 달려라. 차돌박이, 육회, 갈비탕, 왕갈비, 갈빗살, 샤브샤브, 꼬리곰탕, 우족, 소머리 국밥!" 음메에에에에에! 누렁이가 네발로 힘껏 뛰었다. 묵직한 체중을 가졌음에도 힘과 체력이 너무 좋아서 다시금 절정의 속도를 냈다. 케르탑들과의 거리가 100미터 이내로 가까워졌다. "라이트닝 스피어!" 다시금 발사된 뇌전 공격! 위드는 고대의 방패를 들었다. 거리가 가까워서 누렁이의 순발력이라고 하여도 완전히 피할 수가 없다. 피하더라도 속도가 느려지면 공격력이 약화되니 바라는 바가 아니었던 것이다. 뇌전의 공격들은 고대의 방패에 막혔다. 방패의 부드러운 기운이 감싸서 다른 방향으로 흘려 버렸다. 위드는 커다란 저항감을 느꼈지만 참아 내고 검을 휘둘렀다. 케르탑과의 거리는 이미 지척이었다. "달빛 조각 검술!" 누렁이가 케르탑들 사이로 달려 나가는 순간, 데몬 소드가 케르탑들을 베고 지나갔다. 오른쪽의 케르탑을 빠르게 내려치고, 검 자루를 역으로 잡고 쳐올리며 다시 벤다. 손아귀에서 자유자재로 노니는 데몬 소드! 위드의 동작은 끝나지 않았다. 왼손으로 누렁이의 뿔을 강하게 잡고 몸을 뒤틀었다. 음메에! 다리와 엉덩이가 살짝 떠오른다. 검을 회수하는 원심력을 이용해 몸을 뒤튼다. 누렁이 위에서 한 바퀴 돌며 왼쪽 케르탑의 목을 갈랐다. "퀘엑!" 케르탑들의 자세가 허물어졌다. 기사의 질주가 아니라고 해도 엄청난 가속도가 붙은 검격이라서 피해가 컸다. 케르탑들은 생명력이 많은 축에 드는 몬스터도 아니었다. 마르고 단단한 피부의 방어력으로 막아 내는데, 달빛 조각 검술은 상대방의 방어력을 무시해 버리는 효과가 있 다. 2마리를 처치하고 케르탑 사이를 내달리고 있을 때였다. 휘청! 누렁이의 앞발이 지그재그로 꼬여서 움직인다. 속도가 많이 느려진 상황에서 스텝을 밟으면서 뭉쳐 있는 케르탑들에게 접근했다. 기사의 마상 돌격술이 가진 최대의 단점! 평원에서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지만 몬스터들을 스쳐지나가 버리면 다시 돌아오기가 너무도 힘들다. 원거리 공격이라도 할 줄 아는 몬스터에게는 오히려 약점이 되었다. 그런데 누렁이는 말이 아니었다. 옆걸음, 뒷걸음질에. 방향 전환까지 원활한 소! 급격하게 속도를 줄여서 방향 전환을 하며 케르탑들을 스쳐 지나간다. 위드가 검을 휘두르기 딱 좋은 간격까지 맞췄다. 충직하고, 효율이 좋으며, 맡은 일은 성실히 하는 소답게 처음 하는 일에도 실수조차 없는 모습이었다. 케르탑들이 일 검씩 맞고 죽진 않았지만 전투력을 심하게 상실했으니 나중에 확실히 숨통을 끊어 놓으면 된다. 마지막 남은 1마리의 케르탑은 누렁이의 전면에 있었다. 위드가 누렁이의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누렁아, 받아 버려!" "싫다. 어찌 그런 험악한 행동을 할 수가 있나." 여전히 전투에 대한 거부감을 버리지 못한 모습! 위드는 채찍과 당근을 적절히 이용할 줄 알았다. 협박과 공포 분위기만 조성한다면 충직한 소라고 해도 반발심 을 줄 수 있다. "받아 버리면 1쿠퍼 준다. 완전히 죽이면 2쿠퍼 준다." 전투에 따른 인센티브! 누렁이에게 1쿠퍼란 무지막지한 거금이었다. '1쿠퍼로 할 수 있는 일은... 영양가 높은 건초 한 줌. 냉수 열 바가지!' 아끼고 아껴서 10쿠퍼를 모으면 손바닥만 한 땅도 살 수 있다고 했다. 땅에 잡초라도 심으면, 허기질 때 맛 있게 뜯어 먹을 수 있으리라. 10골드쯤 모으면 허름한 축사도 건조할 수 있다고 하는데, 누렁이에게는 인생의 희망이었다. 내 집 마련의 꿈! 음메에에에! 힘이 넘치는 누렁이의 가속! 고랑이 깊게 파일 정도로 튀어나가더니 뾰족한 뿔로 케르탑을 받아 버렸다. 케르탑이 비참하게 울부짖으며 수십 미터나 나가떨어질 정도의 충격이었다. 위드는 케르탑들을 사냥하고 짭짤한 경험치와 잡템들, 거무튀튀한 철판, 울부짖는 식물의 씨앗, 푸른 구슬 등 을 획득 했다. "구슬은 어디에 쓰는지 아직은 모르겠지만, 챙겨 두면 다 팔 곳이 있겠지." 위드는 소득을 확인하고 흐뭇하게 웃었다. 대장장이 물품이나 씨앗을 제외하고도 경험치가 짭짤했기 때문이다. "역시 사냥은 이런 맛이지." 케르탑과 적대 관계인 마물들! 부활의 군대의 마물들과 상당히 흡사하게 생긴 마물들이 통곡의 강을 따라서 분포되어 있었다. 통곡의 강에서 물을 마신 짐승들이 주로 마물로 변하는 모습이었다. 위드는 이 마물들과 케르탑을 위주로 사냥했다. "불사조 오형제. 투입!" 불사조들도 전투에 참여시켰다. 불사조 오형제의 위용! 뿌옇게 끼어 있던 안개들이 다숨에 증발해 버렸다. 땅이 이글이글 달구어지고 불까지 붙었다. 물기가 사라지자 케르탑의 뇌전 공격이 약화되었다. 불사조들은 먼 거리도 단숨에 날아서 머리통을 쪼아 댔다. 거의 무한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놈들이라, 여간한 공격은 그냥 몸으로 맞아 주었다. 생명력이 크게 하락하더라도 자가 회복! 금방 다시 차올랐다. 죽기 직전이라고 해도 화염 약간만 있으면 되살아나는 불사조들의 투입은 전투를 편리하게 만들어 주었다. "후후훗." 위드가 음침하게 웃었다. 그가 생명을 부여한 조각품들이 매우 훌륭하게 싸우는 걸 보면서 유쾌한 기분이 들었다. 불사조들이 강할수록 더 많은 아이템과 잡템을 얻을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싸워라. 강해져라. 세상을 너희의 불로 뒤덮어라!" 불사조 5마리와 누렁이! 그들은 위드의 강력한 원군이 되었다. 통곡의 강을 따라서 몬스터들을 사냥하며 점점 활동 영역을 넓혀 갔다. 아직 강가를 벗어나 넓은 지역을 돌아다닐 수는 없었다.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케르탑은 10마리라고 해도 불사조만으로도 사냥이 가능했다. 아주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할 뿐. ▷통곡의 강에 세워진 조각품 위드는 다시 조각칼을 들었다. 통곡의 강 유역의 부정적인 조각품들을 긍정적으로 바꾸어 놓는 대사업의 착수. 강물의 원혼들이 울어 대는 소리가 이제는 귀에 익숙해졌다. 메아리치듯이 밀려드는 그 소리는, 다리에 힘이 풀리고 소름이 돋게 한다. "새끼 오크를 보며 지을 수 있는 다정한 표정은 대체 어떤거야?" 첫 번째 조각 시도에 실패하고 두 번째였다. 유로키나 산맥에서 오크 카리취로 행세할 때, 오크들은 꽤나 많이 봐 왔다. 하지만 약한 새끼 오크들은 관심사가 아니었다. 마을에서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모습을 보았다고 해도 사냥감이 아닌 이상 지나치면 금방 잊어버리기 마련이다. 오크들의 새끼 시기는 잠깐이었고, 매우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새끼 오크를 보는 암컷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어머니의 입장이 되어 봐야 알 수 있는 표정이리라. 위드는 생각을 다르게 했다. 탐욕스러운 오크 암컷들. 그들이 고기를 발견했다. 군침을 다실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배가 부르다면? "더없이 평화로운 표정이 나와 주겠군!" 위드는 암컷 오크의 머리를 만들었다. 입가에는 찢어질 것처럼 만족스러운 미소, 눈은 초승달처럼 웃고 있었다. 표정이 그리 썩 밝지는 않았지만 그 래도 오크 암컷치고는 꽤나 예쁜 편. 최소한 머리통도 없이 아이를 안았을 때처럼 비통한 느낌은 없었다. 『-마탈로스트 교단의 조각품, 절망적인 새끼 오크 모녀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통곡의 강 조각품 1개를 정화하셨습니다. 통곡의 강의 정화도:-100% 』 『-손재주 스킬의 숙련도가 향상되었습니다.』 겨우 1개. 첫발자국은 뗀 셈이었지만 위드가 가야 할 길은 아주 험난했다. 조각품 1개를 긍정적으로 만든 정도로는 통곡의 강에서 원혼들이 원통하게 우는 소리가 줄어들지 않는다. 통곡의 강 유역에 깔려 있는 조각품들을 보니 막막하기만 할 지경. 다음 조각품은 트롤들이었다. 창으로 상대를 찌르면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트롤들. 위드는 명쾌하게 정의 했다. "창만 없애면 되겠군!" 창을 망가뜨리고 대신에 밥그릇을 들게 했다. 음식을 선물하는 트롤들. 『-마탈로스트 교단의 조각품, 살육전을 펼치는 트롤들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통곡의 강 조각품 2개를 정화하셨습니다. 통곡의 강의 정화도:-100% 』 『-조각술 스킬의 숙련도가 향상되었습니다.』 조각술이나 손재주 스킬의 숙련도는 거의 미미할 지경이었다. "남의 조각품을 약간 수정하는 정도로는 숙련도가 오르지도 않는군." 위드의 어깨에 힘이 쭉 빠졌다. 그래도 하루 동안에 10개의 조각품을 바꾸어 놓았다. 하지만 통곡의 강의 수치는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떨어진 레벨부터 복구해야지." 조각품에 생명 부여를 하며 줄어든 레벨 복구를 위한 처절한 사냥! 매일 13개씩의 조각품을 수선하고, 누렁이와 불사조 오형제를 이끌고 전투를 수행했다. 통곡의 강에서 너무 멀리 떨어지면 몬스터들의 수준이 대폭 뛰었다. 지옥의 멧돼지. 블랙 와일드보어들은 레벨이 400대 약간 미치지 못할 것으로 추측되었던 것이다. 이 사실은 물론 데스 나이트를 통해 알 수 있었다. "데스 나이트와 박빙으로 싸울 정도라. 상당히 맛있는 사냥감이로군." 케르탑들은 더 이상 눈에 차지도 않았다. 더 강한 몬스터, 경험치와 아이템 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케르탑들은 불사조 오형제에게 맡겨야겠어. 불사조들." "예. 주인님." "케르탑들을 사냥해라. 아이템 녹이지 않도록 조심해." "예. 주인님. 알겠습니다." 불사조들은 여러모로 관리하기가 편했다. 군대에 입대한 신병이 받게 되는 군기 교육! 이 교육을 얼마나 제대로 수행하느냐에 따라서 군 생활에 막대한 영향을 준다. 조각품들도 태어난 직후에 위계질서를 세워 주는 편이 좋았는데, 이 정신 교육을 따로 시킬 필요가 없었다. 불사조들은 누렁이를 보면서 깨달았던 것이다. '아, 우린 정말 더러운 주인에게 걸렸구나.' '재수도 더럽게 없지.' 지성도 제법 뛰어난 불사조들은 고분고분해졌다. 잘 안 죽고, 질기기 짝이 없는 불사조들! 케르탑들이 전기 공격을 하면 불사조들은 날개를 활짝 펼친 채 급강하해서 피한다. 그리고 뿜어내는 화염 공격! 공격력은 약해도, 넓은 지역에 화염을 뿌려 댈 수 있다. 바위산이 녹아내릴 정도는 아니었지만 제법 뜨겁게 달 궈질 수준은 됐다. 광역 공격 스킬에 죽지도 않고, 지상의 몬스터들은 도망칠수도 없을 만큼 빠르다. 케르탑들이 떨어뜨린 잡템들을 불로 태우지 않게 주의만 시키면 사냥에 문제는 없었다. 불사조들을 통해서 케르탑을 사냥하고, 위드는 누렁이와 함께 블랙 와일드보어들을 처치했다. 평탄하지 않은 바위산을 내달리는 와일드보어들! 음메에에에! 위드는 누렁이를 타고 놈들을 사냥했다. 누렁이와의 합공으로 와일드보어들을 하나씩 처리한다. 위드의 달빛 조각 검술, 검술 스킬의 숙련도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었다. "이런 방식의 전투도 나쁘지 않군." 사냥의 소득이 괜찮아서 위드는 흡족해했다. 누렁이 덕분에 체력 소모도 줄어들고, 공격력도 배가된다. 검술이란 검을 휘두른다고 일률적으로 숙련도가 쌓이지는 않는다. 자신보다 강한 몬스터를 연속해서 사냥할 때 숙련도가 잘 올랐다. 현재 위드의 검술 스킬은 중급 8레벨! 검치 들과는 비할 바가 아니지만, 일반 유저들보다는 훨씬 높은 수준이었다. 통곡의 강에 있는 조각품들도 262개를 수정했다. 『-마탈로스트 교단의 조각품, 배 뒤집고 죽은 가물치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통곡의 강 조각품 262개를 정화하셨습니다. 통곡의 강의 정화도:-98% 』 절망적인 정화도 수치! 차근차근 수치를 줄이고는 있지만 언제 정상화를 시킬 수 있을지 아득한 수준. "이런 식으로 끝낼 수 있는 방법이 아닐지도 모르겠군." 위드의 생각이 깊어졌다. 현실 시간으로 일주일간 사냥을 하며 레벨을 2개 올렸다. 나쁘지 않은 사냥터란 증거였다. 위드보다 센 몬스터들이 널려 있어서, 따로 찾아다닐 필요도 없다. 누렁이나 불사조들을 성장시키기에도 최적의 사냥터! 조각품들을 수선하는 시간까지 감안한다면 매우 빠른 성장을 하고 있었다. 조각품에 생명을 부여하느라 레벨이 자주 떨어졌다. 전투 계열의 숙련도는 그대로이기 때문에 점점 누적되고도 있었다. "문제는 통곡의 강을 정화시키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거라는 점인데......" 위기 상황일 때마다 나오는 번뜩이는 판단력! 평상시라면 보다 일찍 나왔을 테지만, 그 대상이 노가다라서 훨씬 늦어졌다. 스탯만, 스킬만 확실히 올라준다면 백 일간도 같은 노가다를 반복할 수 있었다. 남들은 고등학교를 다닐 때 벽돌을 지고 20층에도 올라갔던 경험. "공사판만큼 임금이 정확한 바닥도 없으니까!" 저녁에 집에 돌아갈 때에는 빳빳한 현찰을 일당으로 받았다. "노가다는 거짓말을 안 했어!" 인형 눈 붙이기도, 수염 붙이기도 개당으로 계산을 했다. 정해진 일만큼의 확실한 수입을 주었다. 노가다는 일이 지겹고 힘들 뿐. 보상만큼은 철저한 특징을 가졌다. 수십 가지 노가다에 단련이 된 위드였지만 이번 일만큼은 정말 막막했다. "적어도 만 개 이상의 조각품이다. 이렇게 1개씩 해서는 답이 안 나와. 언제 끝날지도 모를 막막한 일이야." 위드는 바꾸어야 할 조각품들을 미리 잘 관찰했다. 어떤 식으로 얼마나 수정을 가해야 할지! 크기와 질량은 어느 정도나 되는지, 몸과의 밸런스는 얼마나 맞춰야 할지를 면밀하게 조사해서 기록했다. 그리고 전투를 하며 쉬는 시간마다 필요한 조각품들을 만들었다. 별도로 만든 조각품을 가져다 붙이는 분업의 방식! 방식이 개선되면서 하루에 17개씩의 조각품들을 수정할 수 있었다. 평균 4개씩의 조각품들을 더 고쳐 놓을 수 있었으며, 사냥에 집중하는 시간도 많아졌다. 그러나 정화도 수치는 여전히 느리게 바뀌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 위드는 통곡의 강 주변의 지형을 조사하던 중에 늪지대를 발견했다. 점토와 약간의 나무들이 있었다. "이거로구나!" 점토들을 이용하면서 조각품을 만드는 시간이 대거 단축 되었다. 하루에 45개 정도의 조각품을 수정하는 게 가능해졌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 노가다의 화신처럼 작업 능률을 높여 가는 위드! 『-조각술의 대업적, 통곡의 강 유역을 조각품으로 정화하는 작업이 11% 진행되었습니다. 』 대업적을 이루기 위해서 위드는 고군분투했다. 그러던 와중에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이 조각품들을 전부 바꾸어 놓는다면 정말 굉장한 업적이겠지.' 조각사에게는 보상이 정말 큰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명성이나 각 교단의 공헌도 등은 매우 얻기 어려운 것들이기 때문이다. 교단이나 왕국의 공헌도는 원하는 대로 쓰기 나름이다. 무기나 아이템을 얻을 수도 있지만, 군대나 성기사단을 출진시키는 것도 가능했다. '꼭 조각품 수정에만 매달릴 필요가 있을까?' 위드의 수준으로 본다면, 통곡의 강 유역에 있는 조각품들은 굉장하지 않았다. 중급 조각술 스킬! 혹은 그 이하의 조각술로 완성되었으리라 추정되었고, 마무리도 세밀하지 못했다. 걸작들도 간혹 몇 개 보일 뿐 전체적으로는 평범한 조각품들에 불과했다. "차라리 여기에 조각품을 만든다면 어떨까?" 위드는 생각이 떠오르는 즉시 행동으로 옮겼다. 오크 대가족의 식사! 점토로 만들어진, 20마리가 넘는 오크들이 밥을 먹고 있다. 오크들에게는 행복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리라. 『-통곡의 강에 조각품을 만드셨습니다. 오크들의 만찬. 통곡의 강에 조각품 1개를 만드셨습니다. 통곡의 강의 정화도:-82% 』 조각품을 만들어도 정화도를 낮출 수 있었다. 부정적인 조각품의 효과를 압도할 수 있는 조각품! "해결 방법이 나왔군!" 위드의 조각칼이 빠르게 움직였다. 조각품을 개선시키는 작업도, 구상을 해야 하니 상당히 어렵다. 그럴 바에야 주변에 있는 조각품들을 압도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면 되는 것. "희망의 조각품을 만들어야 돼." 통곡의 강에 널려 있는 안 좋은 조각품들을 대신해서 희망적인 조각품들이 만들어졌다. 학살당하던 각 종족들이 풍요로움에 웃고 있었다. 점토로 만든 돈과 무기, 식량 들이 창고에 잔뜩 쌓였다. -우우우우우우우우우! 걸작 조각품의 탄생! 정화도가 3%나 떨어졌다. 통곡의 강에서 원혼들이 우는 소리도 이제는 확연하게 줄어들었다. 소리도 크지 않았고, 비통함도 적었다. 하지만 위드가 만든 조각품이 있는 주변이 아닌 장소에서는 아직도 비명 소리처럼 들려오고 있었다. "이번에는 인간들을 위로하는 조각품을 만들어야지." 통곡의 강 유역에는 귀족이나 군대에 의해 핍박받는 인간들의 조각품이 유별나게 많았다. 단두대에 매달린 아버지, 채찍질당하는 어머니! 아이들은 병사들의 손에 묶여서 전쟁터로 끌려 나가는 것 같은 조각품들도 있다. 위드는 그들을 모습만 슬쩍 바꾸어서 새로 조각했다. 귀족들과 왕족, 병사들이 어린아이에게 채찍질을 당하고 단두대에 매달렸다. 평화롭거나 우아한 조각품은 아니었다. 예술성 따위는 매우 적다. 하지만 이런 극단적인 조각품들은 억울하게 당하고만 살았던 이들에게 큰 기쁨이 될 수도 있으리라. 해학과 풍자를 다루는 조각품! 어린아이들은 환하게 웃고 있으며, 귀족들과 병사들은 죽을상이었다. 걸작 조각품이 완성되면서 정화도가 4% 감소했다. 『-통곡의 강에 조각품을 만드셨습니다. 위대한 왕. 통곡의 강에 조각품 43개를 만드셨습니다. 통곡의 강의 정화도:0% 』 명작 2개. 걸작 17개. 그 외에 잡다한 조각품들! 위드는 수선이 편한 조각품은 약간씩 바꾸고, 나머지는 새로 만들어 버렸다. 위대한 왕은 인간들을 이끄는 왕에 대한 조각품! 값비싼 보석으로 치장하고, 배가 볼록 나온 왕의 조각품이 명작이 되었다. 그 덕에 불과 이 주일 만에 통곡의 강을 정화할 수 있었다. -아아아아아...... 통곡의 강에서 신음 소리가 걷혀 갔다. 비통한 울부짖음이 사라지고 고요하게 물 흐르는 소리만 들렸다. 강물은 여전히 더럽기 짝이 없었지만, 원혼들 은 훨씬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띠링! 『엠비뉴 교단과의 싸움 완료 원혼들을 불러일으켜 대륙을 마물로 채우려는 엠비뉴 교단의 음모는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의로운 조각사에 의하여 저지되었다. 엠비뉴 교단의 계획에는 상당한 차질이 생기게 되었지만 그들은 사른 음모를 꾸미게 되리라. 또한 마탈로스트 교단을 둘러싼 암운도 아직 걷히지 않았다. 』 『-명성이 720 올랐습니다.』 『-조각술의 대업적을 달성하셨습니다. 엠비뉴 교단의 음모를 물리치면서 베르사 대륙의 모든 교단과의 친밀도가 20 올라갑니다. 베르사 대륙의 모든 교단에서의 공헌도가 300 증가합니다. 조각술의 대업적으로 '세상을 바꾸는 조각사' 칭호를 획득하셨습니다. 왕과 귀족들은 이름난 명사를 대하듯이 신중해질 것입니다. 』 『-레벨이 오르셨습니다.』 『-레벨이 오르셨습니다.』 『-레벨이 오르셨습니다.』 조각품에 생명을 부여했던 것을 완전히 만회하고도 2개의 레벨이 더 올랐다. 현재 위드의 레벨은 딱 360! "이제 됐군." 위드는 마탈로스트 교단의 신물인 죽음의 상을 꺼냈다. 낫을 든 마수가 눈을 떴다. 그리고 말했다. -시련은 아직 끝이 나지 않았다. 엠비뉴 교단의 계획은 어긋났지만, 그들은 더 강력한 새로운 의식을 꾸미게 될 것이다. 그들의 의식이 재개되지 않도록 하라. 『엠비뉴 교단의 의식 방해 엠비뉴 교단은 통곡의 강에 대한 간섭을 그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제단과 의식에 필요한 물품들을 빼앗아 의식이 완전히 중단될 수 있도 록 하라. 죽음을 인도하는 마탈로스트 교단의 수호 기사들이 그대의 임무를 도울 것이다. 연계 퀘스트, 마탈로스트 교단의 포로 구출, 엠비뉴 교단 11지파의 파멸 마탈로스트 교단의 숙원과 이어짐. 난이도:A 보상:마탈로스트 교단의 성물. 퀘스트 제한:엠비뉴 교단에 의해 패배할 시에는 관련된 모든 연계 퀘스트 중단.』 퀘스트에 실패하게 되면 포로 구출이나 엠비뉴 교단 11지파의 파멸 등의 퀘스트들도 모두 끝난다는 것이었다. 위드의 눈은 이미 보상에서 초롱초롱해져 있었다. "베르사 대륙을 여행하는 정의로운 모험가로서, 엠비뉴 교단의 악행을 방관할 수 없습니다. 마탈로스트 교단을 위해서라도 그들의 의식이 영원히 중단되도록 하겠습니다." 『-퀘스트를 수락했습니다.』 죽음의 상에서 시커먼 연기가 뿜어져 나오더니 통곡의 강이 범람했다. 물길이 강가로 파도치듯이 밀려오고, 얼 마 후, 강물에서 걸어 나오는 기사들이 있었다. 유령! 흐릿하게 존재하는 100명의 수호 기사들이 위드의 원군이었다. 위드는 수호 기사들과 불사조 오형제, 누렁이를 그 자리에 대기시켜 놓고 엠비뉴 교단이 있던 장소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엠비뉴의 사제들과 암흑 기사들은 살육의 의식을 중단하고 혼란에 빠져 있었다. 그들을 지키던 1,000여 마리의 마물들도 왠지 약화된 모습. 눈빛이 약해지고, 걸음걸이도 힘이 빠져 있었다. '통곡의 강을 정화시킨 효과가 있군.' 위드는 암흑 기사들의 경계가 느슨해진 틈을 타서 가까이 접근했다. 엠비뉴 교단의 사제 로브에는 피처럼 붉은 해골과 관이 그려져 있었다. 까마귀가 그려져 있는 사제들은 10명도 되지 않았다.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통곡의 강이 우리의 의식에 반응하지 않는다." "더 많은 제물들을 바쳐라." 까마귀가 그려져 있는 사제들이 말단인 듯, 양과 사슴의 심장들을 바치며 의식을 치렀다. 통곡의 강이 범람할 정도로 격한 반응을 보이던 의식! 바위를 부식시킬 정도로 지독한 독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원혼들이 막 튀어나왔었다. 위드도 조마조마해서 의식을 지켜보았지만, 강물은 유유히 흐를 뿐이었다. 로브를 뒤집어써 얼굴이 거의 보이지 않는 사제들이 의식을 중단하고 말했다. "영혼들의 힘이 줄어들었다." "지상에 보냈던 마물들은?" "그들도 점점 약화될 것이다." "추가적으로 마물들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의식이 계속 되어야 하는데...... 마탈로스트 교단의 포로들을 데려와서 이유를 물어봐야겠다." 마탈로스트 교단의 생존자들! 아마도 그들이 포로가 되어서 엠비뉴 교단에 억류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포로들을 데려오려면 먼저 대신관님께 보고해야 한다." "대신관님이라면 우리들을 이끌어 주시리라. 일단은 신전으로 돌아가자." 엠비뉴의 사제들과 암흑 기사들은 절반 정도의 병력을 남겨 두고 강의 하류로 움직였다. 위드도 아직 정찰을 해 보지 못한 장소였다. 그들의 뒤를 몰래 2시간 정도 따라가니 금과 보석으로 만들어진 화려한 요새가 나타났다. 마탈로스트 교단의 다 망해 가는 신전과는 차원이 다른 고품격 신전! 바위산들로 이루어진 천혜의 지형에 축성을 하고 신전을 건설했다. 돌로 만들어진 두꺼운 성문, 해자, 발리스터, 궁스들의 배치 등 방어 시설까지 완비되어 있었다. "너희는 이곳을 지켜라." 우어어어어! 엠비뉴의 사제들의 명령에, 마물들이 요새를 철통처럼 호위했다. 위드는 요새 안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의식이 벌어지던 장소로 되돌아왔다. "놈들이 되돌아오려면 아마도 하루, 혹은 이틀 정도의 여유만이 있을 뿐!" 위드가 완전히 무장한 채로 누렁이의 등에 탔다. 기품이 느껴지는 갑옷과 장비들! 망토를 펄럭이면서 수호 기사들의 앞에 섰다. 결전의 순간이었다. 위드가 검을 높이 추어올리고 사자후를 터트렸다. "수호 기사들이여, 공격하라!" 60명의 수호 기사들이 일제히 달려 나갔다. 60명밖에 안 되는 인원으로 500이 넘는 마물과 엠비뉴 교단의 사제, 암흑 기사들을 향해 돌진! 무모하기 짝이 없어 보였지만 사실 겉보기와는 크게 달랐다. 죽음을 인도하는 수호 기사들은 살아 있는 생명체가 아니었다. 마탈로스트 교단의 저사들로, 유령이나 다름없 다.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결코 죽지 않으며, 고위 사제의 신성력이나 암흑 기사들의 흑마법 등에 의해서만 타 격을 받는다. "마탈로스트 교단의 잔당이다." "놈들을 막아라!" 30의 암흑 기사들과 500여 마리의 마물들이 앞을 막았지만, 수호 기사들은 그대로 돌파했다. 크헬? "쳐라!" 암흑 기사들이 뒤돌아서서 수호 기사들을 쫓았다. 수호 기사들의 목적은 오로지 하나. 엠비뉴 교단 사제들의 척결! 위드가 명령한 대로 그들은 사제들을 향해 일직선으로 달려갔다. 엠비뉴의 사제들이 주문을 외웠다. "추악하고 어두운 힘이여, 무자비한 징벌을 내려라. 다크 소드!" 축복 마법! 사제들을 호위하던 암흑 기사들의 검에 신성력이 어렸다. 쿠엣! "마탈로스트 교단의 잔당들을 쓸어버려라." 수호 기사들이 암흑 기사들에게 가로막혔다. 마물들이 겹겹이 둘러싸고 있으니 완전히 독 안에 든 신세. 척! 위드가 손을 들었다. 그러자 불사조들이 날개를 활짝 폈다. 불사조들이 전장을 날며 지상을 향해 화염을 내뿜었다. 마물들이 불에 타고, 암흑 기사들도 불에 휩싸였다. "데스 애로우!" "워터 블래스터!" 사제들이 불사조들에게 마법 공격을 가했다. 공중으로 치솟는 장대한 마법들! 불사조들은 격하게 몸을 틀면서 마법들을 피했다. 수호 기사들이 불사조의 몸에 탑승한 채로 웅크리고 있었다. "지금이다!" 위드가 정확한 시기에 사자후를 터트렸다. 화염으로 이루어진 불사조의 몸에서 뛰어내리는 인영들! 수호 기사들 40명이 지상으로 낙하하고 있었다. "가자. 누렁아!" 위드는 누렁이의 몸에 박차를 가했다. 음모오오오! 누렁이가 시원하게 울며 네발로 뛰었다. 위드는 약화된 마물들을 단숨에 베어 버리고 전진했고, 불사조들은 하늘을 장악했다. 허공에서 마물들을 향해 화염을 내뿜는다. 마물들이 모여 있는 장소마다 불길들이 뿜어지면서 사방이 불바다가 되었다. 불바다 속에서 날뛰는 수호 기사들과 위드! 20명도 안 되는 사제들은 혼전의 와중에 가장 먼저 도륙당했다. "수호 기사들은 마탈로스트 교단의 성물을 지켜라, 암흑 기사를 상대하고 마물들은 내버려 두어라! 포위망을 구축해서 1마리의 적도 빠져나가게 해서는 안 된다!" 위드가 사자후를 터트리며 전장을 지휘했다. 다 이긴 싸움이었다. 사제들이 없는 이상 불사조들만 동원하더라도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 '내 먹이들을 넘겨줄 수 없지!' 불사조는 아직 약했다. 수호 기사들로 주위를 둘러싸게 한 후에 불사조의 광역 화염 공격으로 마물과 암흑 기사 들을 사냥했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 위드는 불길 사이로 걸어갔다. "화돌이, 흙꾼!" 불과 흙의 정령들이 그를 보호하고 있었다. 무한한 친밀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령술 능력이 모자라다고 해도 마나만 되면 얼마든 불러들일 수 있다. 정령을 창조한 혜택. 위드가 걸어가는 지역에서는 땅이 갈라지고, 불길이 옆으로 퍼졌다. 엠비뉴 교단의 의식이 벌어지던 장소에 도착했다. 위드는 탐욕스럽게 물건을 주워 담았다. 『-마탈로스트 교단의 성물, 인식의 동판을 획득하셨습니다.』 『-마탈로스트 교단의 성물, 약속의 지팡이를 획득하셨습니다.』 두 개의 성물! 제물로 바쳐졌던 상당히 많은 양의 식료품들! 불사조들의 화염 공격에 의해 잘 구워져 있었다. 와삭! 위드는 구운 사과를 먹었다. 육즙을 마시면서 아직도 싸우고 있는 장소를 돌아보았다. 암흑 기사들이 마물들이 불에 타서 쓰러지고 있었다. 띠링! 『엠비뉴 교단의 의식 방해 완료 마탈로스트 교단의 성물들이 의로운 이에게 넘어갔다. 엠비뉴 교단의 의식은 이제 재개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엠비뉴 교단의 주력은 아직 건재하다. 11지파의 수장인 페이로드는 이 굴욕을 되갚기 위해 수배령을 내리게 되리라. 절대로 엠비뉴 교단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 그들에게 대항하기 위하여, 죽음의 인도자들이 체결한 약속의 동맹을 부활시켜야 하리라. 』 『-명성이 220 오르셨습니다.』 『-통솔력과 카리스마 스탯이 10 올랐습니다.』 『-신앙 스탯이 10 오릅니다.』 『-레벨이 오르셨습니다.』 퀘스트 성공! 위드는 겨우 한숨을 돌렸다. 하지만 연계 퀘스트들은 여전히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좀 더 멀리 떨어진 장소로 가 봐야겠군." 위드는 의식 중단 퀘스트를 마치고 시간을 내어 불사조들과 누렁이를 데리고 더 먼 지역으로 탐험을 나섰다. 위험한 일이 생기더라도 불사조들은 빠르게 몸을 뺄 수 있으리라는 계산! 위드도 누렁이를 타고 도망칠 수 있다. "최악의 경우에라도 누렁이는 살려야지." 음모오오오! 고마움에, 누렁이의 순박한 눈동자에 물기가 고였다. 그렇게 안 봤는데, 자신을 살리기 위해서 주인이 스스로를 희생하겠다는 것이다. 누렁이가 감동으로 벅차 있을 때, 위드는 냉정하게 계산을 마쳤다. 누렁이가 죽으면 아쉬운 건 자신이다. 다른 조각품을 또 만들어서 생명을 부여한다면 피해가 크다. 물론 위드가 죽기 전에 데스 나이트부터 먼저 던져 줄 것이지만. "내가 있으니 안심해라, 누렁아." 음메에에에! 위드는 누렁이와 불사조와 함께 통곡의 강을 넘어 평야 지대로 이동했다. 몬스터 군단들! 이름도 알 수 없는 몬스터 군단들이 떼를 지어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마 짐승류의 일종이겠지만 지옥의 입구였기에 어떤 몬스터라도 방심할 수 없다. 위드는 몬스터들의 떼가 보이면 멀리 돌아서 움직였다. "음냐, 여기는 어디야?" 고주망태가 되어서 잠이 들었던 스미스가 눈을 떴다. 위드의 등 뒤에 함께 누렁이를 타고 있었다. 어떤 경우에라도 누렁이를 살려야 하는 이유 중의 하나! "탐험을 하고 있습니다." "꺼억. 그렇구만." 스미스는 술이 깨지 않아서 흐릿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위드도 그가 원래는 정말로 대단한 용병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베르사 대륙의 곳곳을 모험했던 이야기들은 상당히 뛰어난 실력의 용병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술에 취해서 살아가는 전직 용병일 뿐! 그래도 함정이나 지형, 몬스터들의 습성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큰 도움이 되었다. 술을 조금 주면, 조각품들을 만드는 동안 보초도 잘 섰다. 검술 실력은 줄어들었겠지만 쓸모는 상당히 많았다. 몬스터들을 잠깐만 보아도 습성을 파악하는 관찰력! 마셔도 괜찮은 물이나 풀을 구분하는 능력도 탁월하다. 어쨌든 나름대로 많은 도움이 되고 있었다. 스미스가 주변을 돌아보더니 신중하게 말했다. "여긴 너무 위험한 것 같군." "예?" "몬스터들의 수준이 너무 높아. 불사조나 누렁이가 보호 하더라도 조각사가 올 수 있는 장소가 아니네." 사냥을 하는 동안에는 술을 줘서 데스 나이트의 호위 아래에 재웠다. 그래서인지 스미스는 여전히 위드를 과소 평가하고 있었다. "그렇군요." 위드는 건성으로 그의 말을 들었다. "어쨌든 돌아가죠." 탐험의 목적은 몬스터들의 확인과 지형 파악이었다. 통곡의 강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곳까지 가는 건 지극히 위험한데다 의미도 없으므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런데 그들을 향해서 허연 무언가가 하늘을 날아오고 있었다. 일직선으로 하늘을 꿰뚫어 버릴 듯 날아오는 몬스터의 위용! "크롸롸롸롸롸롸롸!" 몬스터가 포효하니 일대의 대지가 뒤흔들렸다. 멀리 있던 짐승류의 몬스터들도 겁에 질린 듯 땅에 못 박힌 것처럼 서 있는 것. "보스급 몬스터구나!" 이 근방을 장악하고 있는 보스급 몬스터의 등장이었다. 하늘을 날아오는 몬스터의 크기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상당한 거리가 남아 있었음에도 손바닥보다도 훨씬 크게 보였다. 점점 거리를 단축할수록 대책 없이 커지는 몸뚱아리! 가히 수백미터는 될 듯한 거체였다. 차가운 한기를 온 사방에 뿌리면서 가공할 속도로 육박해오는 몬스터. 스미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아이스 드래곤이다. 아이스 드래곤이야!" 위드의 위에서 호위하듯이 공중을 빙글빙글 돌던 불사조들마저도 위협을 느끼고 흩어질 정도였다. "어서 도망치세!" 스미스의 재촉에도 위드는 가만히 있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 점점 커지는 아이스 드래곤의 몸을 볼 뿐이었다. 사나운 눈매와 찢어진 주둥이, 기다란 수염. 두꺼운 상체와 빈약한 하체! 몸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넓은 날개까지! 어디선가 많이 봤던 모습이다. "크롸롸롸라라라라라라!" 사지를 저릿저릿하게 울리는 드래곤 피어! 그 투지에 누렁이가 주저앉고, 불사조들이 날개를 접었다. 아이스 드래곤은 감히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인간과 불사조들을 단숨에 해치워 버리기 위하여 엄청난 위세로 날아오고 있었다. 그 아이스 드래곤의 큼지막한 눈동자가 위드와 누렁이 들을 훑고 지나갔다. "감히 나의 영역에서......" 갑자기 끊긴 말! 아이스 드래곤의 눈가에 미미한 경련이 일었다. 그리고 휘둥그레 뜨인 눈으로 위드를 다시 살피더니 날개를 활 짝 펼쳤다. 파닥파닥파닥. 아이스 드래곤이 더 빨리 가속하더니, 믿기지 않는 민첩성을 발휘해서 반원을 그리며 선회했다. 왔던 방향으로 빠르게 돌아가려는 것. 위드가 무심코 말했다. "혹시 빙룡?" 아이스 드래곤의 몸뚱이가 큰 충격을 받은 듯 허공에서 휘청거렸다. "너 빙룡 맞지?" "절대 아니다." 아이스 드래곤은 머리까지 저으며 열심히 날개를 퍼덕거렸다. 필사적인 도주를 감행하려는 동작! 애타는 마음에도 불구하고 막 선회를 한 직후라서 가속이 잘 안 붙었다. "날갯짓 한 번에 5억 대." 아이스 드래곤의 날개가 딱 정지했다. 부력에 의해 떠 있기는 했어도 어쩔 줄 몰라 하는 태도. "와이번들 보고 싶지? 와삼이가 너 잘 있느냐고 묻더라." "와삼이! 와삼이는 잘 지내고 있나, 주인?" "거봐. 너 빙룡 맞잖아." "......"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