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01-천재 강현> 강현은 천재다. 그건 그의 부모님은 물론 국가도 인정했다. 아이큐 추정치 250, 사실상 현존하는 아이큐 테스트로는 그의 정확한 아이큐를 측정할 수 없었다. 그런 아이의 창의력과 교육을 위해서 아이의 부모는 아이를 외국으로 보내고 싶었다. 한국의 주입식 교육에 아이의 재능이 빛이 바래는 것을 걱정했다. 하지만 성격이 활달했던 아이는 부모님과 헤어지는 것을 싫어했기에 외국에 가기 싫다고 투정을 부렸다. 부모는 아이의 투정과 경제적인 이유로 인해서 현실과 타협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아이는 한국에서 영재 교육을 받게 되었다. 10살에 대한민국 최고의 공과대학에 합격한 천재. 그런 아이의 능력에 주변 모두가 축하를 해주었지만 불행은 예고도 없이 아이를 덮쳤다. 아이의 부모가 교통 사고로 사망했다. 아이는 큰 충격을 먹었다. 얼마나 충격이 심했는지 자폐증상까지 보였다. 그러나 주위 어른들은 아이의 상태를 보고도 누구 하나 나서서 돌보는 이는 없었다. 동정은 주어도 도와줄 여력은 없었다. 결국 아이는 국가에 의해서 시설에 맡겨졌고 국가의 손에 길러졌다. 하지만 그것은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 유능한 인재에 관심을 두는 정도에 불과했고 아이에게 필요한 애정은 동정으로 대체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아이는 점점 자신이 관심이 있는 분야에 파고들기만 했다. 철저한 논리로 무장 된, 그러면서 무한한 가능성이 잠재 된 과학은 아이의 위안처였다. 자폐증까지 겹친 아이는 무섭게 과학지식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이해를 하지 못했으면 외웠고 외웠으면 다시 썼으며 응용하기 시작했다. 아이의 실력은 놀라웠다. 박사 학위를 딴 이들도 아이가 써내려가는 공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아이의 자폐증상은 공부를 하면서 조금씩 나아졌다. 그러나 그 자폐증상이 조금 남아서 그런지 아이는 외곬수에 독선적인 성격이 되었다. 아이는 자신을 방해하는 이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그의 장난은 또래 아이들이 치는 장난이라고 하기에는 악의적이고 아슬아슬했다. 확실한 건 그의 비위를 거슬려 장난의 대상이 된 어른들 중에는 허허 웃으며 넘어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이다. 모두가 치욕에 얼굴이 벌게졌다. 그러나 아이는 벌을 받지 않았다. 증거가 없었다. 심증은 있었지만 심증만으로 아이를 벌하기에는 아이를 두둔하는 이들도 많았고 무엇보다 명분이 없었다. 지저분한 사생활이 까발려진 그들의 발언권이 형편 없이 약해진 까닭도 있었다. 시간은 어느덧 흘러 강현의 나이 13살. 아이는 신형 내연기관을 개발했다. 그때까지의 내연기관의 효율을 압도하는 능력을 가진 이 신형 내연기관은 피스톤을 이용한 폭발력>직선운동>회전운동의 매커니즘이 아닌 폭발력>회전운동이란 매커니즘을 이용하고 있었다. 덕분에 중간에 손실 되는 에너지는 줄이고 캠 같은 각종 부품들마저 줄여 엔진의 소형화를 성공시켰다. 이 엔진의 내부는 마치 무궁화의 꽃잎을 닮은 날개가 들어있었는데 이 날개가 실질적으로 폭발을 직접 회전운동으로 바꾸도록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정교한 곡선의 설계는 생산에 그만큼 많은 노력을 들이게 만들었는데 강현은 그 공정 과정 역시 개발하면서 생산비용은 동일하게, 그러면서 연비는 늘릴 수 있게 되었다. 이 신형 엔진에 관한 논문이 게재되자 자동차 회사들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엔진의 경량화는 생각보다 연비 효율을 훨씬 크게 개선한다. 자동차의 중량 자체가 연비의 큰 적이었고 엔진만큼 부피 대비 무게가 많이 나가는 부품도 없었다. 대한민국 1위의 매출을 자랑하는 미래 자동차 역시 이 신형 엔진에 큰 관심을 두었다. 그러나 그들의 행보는 독일의 반츠나 미국의 JM에 비해는 한 발 늦은 것이 사실이었다. 그나마 기획실에서 경쟁 회사의 부사장이나 되는 인물이 방한하는 사실을 파악하지 못했다면 강현의 신형 엔진을 알고 대응 방침을 결정할 때까지 시간이 더 걸렸을 지도 모른다. “어떻게 할 생각이오?” “일단 사들일 생각입니다.” 특허 자체를 사들일 생각으로 그들은 강현을 만났다. 하지만 강현은 특허라는 개념에 별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았다. “특허요?” “그렇단다. 우리 미래 그룹은 그 신형 엔진에 대한 특허를 300억에 살 의향이 있단다.” 신형 엔진의 잠재적 가지는 약 1000억 가량이다. 형편 없이 후려친 가격이다. 하지만 미래 그룹은 자신 있었다. 한 두 번 해본 일도 아니었다. “특허 신청 안 했는데요?” “그...래?” 강현의 말에 잠시 당황했던 이상현 이사는 특허를 신청하지 않았다는 강현의 말에 빠르게 머리를 돌리기 시작했다. 만일 그에 관한 특허를 미래 그룹에서 먼저 신청한다면? 어린 천재의 지적 재산권을 날로 먹었다는 욕은 좀 듣겠지만 곧 잠잠해 질 것이다. 그것이 바로 대한민국에서 미래 자동차가 가지고 있는 위상이었다. 물론 욕을 먹는 것을 감수 할 수 있을 만큼의 이득이 있기도 했다. “그런데 왜 제가 만든 게 300억 밖에 안 해요?” 강현이 약간 서운하다는 목소리로 물었다. “으, 응?” 이상현 이사는 강현의 말에 딱히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게 회사에 이득이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반츠하고 JM에서 오신 아저씨들은 800억원에 산다고 하던데요?” 1000억에서 200억을 깎았으니 그놈이 그놈 같지만 700억을 깍은 놈들보다는 양심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상현 이사는 강현의 궁금한 눈초리에 대답을 하지 못하고 바쁜 일이 있다면서 자리를 파하고 말았다. 이상현 이사는 회사로 돌아가서 즉시 지시를 내렸고 미래 자동차에서는 강현의 발명을 자기네 특허로 만들기 위해서 먼저 특허 등록을 하기 위해서 강현의 설계도를 입수, 연구하기 시작했다. 특허 등록을 하기 위해서는 발명이 가진 특허 요소를 검증 받아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강현의 발명에 대한 이해가 필수였기 때문이다. 또한 타 특허와 겹치지 않는 혁신적인 부분을 확실하게 자회사의 특허로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시도는 시작부터 좌초 되었다. [반츠 혁신적인 신형 엔진 발표!] [엔진을 개발한 한국의 천재 소년에게 감사를!] [한국의 천재 소년, 혁신적인 신형엔진을 널리 사용하도록 특허도 신청 안해..] 반츠와 JM은 강현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벌써 엔진 시제품을 만들어 발표해 버렸다. 그리고는 누구나 마음대로 이 멋진 발명을 사용할 수 있게 해준 강현의 넓은 마음에 감사한다고 했다. 세상은 이 소년 천재에게 주목했다. 그리고 미래는 감히 이 소년의 발명을 날로 먹을 짓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죄송합니다.” 이주연 회장이 호통을 쳤다. 이상현 이사가 고개를 숙였다. 이 회장이 화가 난 이유는 신형 엔진을 회사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작업이 모두 공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만일의 사태, 그러니까 강현이 발명을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며 소송을 걸 때를 대비한 모든 공작이 수포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돈은 돈대로 인맥은 인맥대로 써버리고는 특허 하나 획득하지 못하다니.. 이 일에 관련된 이들이 얼마나 비웃을 것인가? 이주연 회장의 체면이 완전히 깎여버리는 상황이 된 것이다. 보통 상류층 인간들은 손해는 얼마든지 벌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체면과 명예는 쌓는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이주연 회장이 화를 내는 이유였다. “이 일을 어떻게 할 건가?” “최대한 수습을 할,” “어떻게?” “....” 이주연 회장은 이상현 이사에게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 강현인가 뭔가 하는 아이를 꼬셔서 특허를 등록하게 해.” 그것은 강현이 반츠와 JM에 했던 말을 뒤집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럼 사방팔방 다 알려진 마당에 우리가 개발했다고 할까?” “.... 알겠습니다.” 이주연 회장의 방침은 간단했다. 회사는 신형 엔진에 대한 라이센스를 획득하고 욕은 그 철부지 소년에게 떠넘기는 것이었다. 회사, 아니 자신의 가문을 위해서 힘없는 개인 따위 얼마든 희생 시켜온 그 동안의 경영 과정이 반영된 판단이었다. 머리 좀 똑똑한 고아 소년 하나 정도야 별로 문제 될 것이 없어 보인 것이다. 이상현 이사는 이 회장의 지시를 받아 다시 소년을 찾아갔다. 하지만 보육원 원장의 저지를 받았다. “왜 안 된다는 겁니까?” “종종 현이가 무섭게 집중하는 날이 있습니다. 그 날이 오늘이고요. 밥 먹는 것까지 잊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럴 때 방해 받으면 정말로 무섭게 화를 냅니다.” “그래서요?” 이상현 이사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러니까 감히 미래 그룹의 이사에게 고작 어린애가 화를 내니까 돌아가라는 건가? “그러니까 내일 쯤 다시 오시면,” “됐습니다.” 이상현 이사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원장을 옆으로 밀면서 안으로 향했다. 그런 이상현 이사의 뒷모습을 보는 원장의 얼굴에는 비웃음과 통쾌한 표정이 서려 있었다. “한 번 당해봐야 정신을 차리지.” 원장은 대기업 이사가 어린 아이에게 형편 없이 당하는 과정을 과정을 구경하기 위해서 서둘러 원장실로 향했다. 왜냐고? 캠코더로 찍어야 하니까. 이상현 이사는 강현의 방으로 향했다. 한 번 와봤기에 헤매지 않았다. [위험. 절대 출입금지. 경고를 무시해서 발생하는 일은 전적으로 본인 책임임.] 이상현 이사는 그 경고문구를 무시해 버렸다. 그리고 문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강현아? 있니? 저번에 미래 자동차에 온 아저씨란다. 중요한 말이 있으니 들어가도 되겠니?” …. 조용하다. 어떤 반응도 없었다. 이상현 이사는 다시 문을 두들겼다. 하지만 역시나 어떤 반응도 없었다. 이상현 이사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재벌가의 일원으로 어디가서 이런 개무시를 받아본 적이 있나? 결단코 없었다. 이상현 이사는 문고리를 잡아 돌렸지만 잠겼는지 열리지 않았다. 그는 방문 열쇠를 받기 위해서 원장실로 가는 중에 원장을 만났다. “문이 잠겨 있더군요. 예비 열쇠가 있죠?” “그만하고 돌아가시는게 어떻습니까?” “열쇠를 주지 않으면 아동을 감금하고 있다고 고발하겠습니다. 골치가 아프실 텐데요?” “후우.. 여기 있습니다.” 원장은 주머니에서 예비 열쇠를 꺼내 그에게 건네 주었다. 이상현 이사는 열쇠를 받아 들고 바쁜 걸음으로 아이의 방으로 향했다. 물론 원장이 허리 뒷춤에 숨긴 캠코더는 발견하지 못했다. [위험. 절대 출입금지....] 찍! 이상현 이사는 그 건방진 경고 문구를 찢어버렸다. 그리고 열쇠 구멍에 열쇠를 집어넣으면서 생각했다. 건방지게 말이야,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새끼가 문을 잠그고 말이야. 철컥! 잠금이 풀리고 문이 열렸다. 이상현 이사는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강현아. 이야기 좀,” 미끌! 쾅! 이상현 이사의 말은 끝 맺지 못했다. 바닥에 깔린 작은 비즈 구슬을 밟은 이사는 영화처럼 미끄러지고 말았다. 그러나 불행이도 고작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는 넘어지면서 허공에 걸린 실을 건드렸고 그 실에 아슬아슬하게 무게를 지탱하고 있던 다리미가 얼굴로 떨어지고 있었다. 마치 나홀로 집에의 한 장면 같았다. 하지만 영화와 달리 이상현 이사는 위기의 상황에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해 두 팔을 들어 다리미를 막았다. 이상현 이사는 위기의 상황에 생긴 초인적인 동체 시력으로 다리미에 붙은 브랜드 명을 보게 되었는데 그가 아는 어떤 브랜드도 아니었다. 필시 어떤 이름없는 중소기업에서 만든 것이 분명해 보였지만 거기까지 생각하기에는 팔에서 느껴지는 통증이 만만치가 않았다. ============================ 작품 후기 ============================ 시작합니다. 2화 이름없는 중소기업에서 만든 다리미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팔에 피멍이 들것 같았다. 테팔이었다면 가벼워서 그렇게 아프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튼 얼굴에 다리미 자국이 생기는 것을 면한 이상현 이사는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제 자식이 아니라도 버릇을 고쳐줘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물론 그가 자식 교육에 관여한 적은 없었다. 구슬 비즈를 피해 바닥에 앉아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는 강현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던 이상현 이사는 갑자기 들리는 전자음에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삐빅! “응?” 펑! 그것은 실로 한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발목 높이에 설치된 레이저 포인트에 나오는 레이저가 이상현 이사의 다리에 가려졌다. 반대편에 있던 광센서는 들어오던 레이저 빛의 차단에 전류가 끊어지고 스위치에 전류가 흐르는 것을 막던 회로가 멈추자 스위치에 전원이 들어갔다. 스위치에 연결될 간단한 전기 회로는 콤프레셔에 의해서 압축공기를 막아두던 밸브에 걸린 기계장치의 모터를 작동 시켰고 밸브가 열리자 압축되었던 공기가 세차게 머리통 만한 굵기의 파이프로 밀려 들어갔다. 파이프 안에는 비슷한 직경을 가진 나무판자가 들어있었고 그 위에 권투 글러브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글러브 안에는 강현이 보육원에 와서 받게 된 장난감이 빵빵하게 들어있었다. 즉, 권투 글러브는 압축 공기에 의해서 빠른 속도로 날아갈 수 있는 경량과 충분히 충격을 줄 수 있는 단단함을 동시에 만족할 수 있었다. 게다가 파이프 내부에 공기의 팽창력을 충분히 받을 수 있도록 넣어둔 나무판자는 글러브에 충분한 에너지를 공급했다. 실로 훌륭한 공기 압축 대포였다. 이상현 이사는 날아온 글러브에 정통으로 얼굴을 맞고 말았다. 혹시 인터넷을 하다가 권투 글러브에 얼굴을 강타 당하는 슬로우 모션을 본 적이 있는가? 살이 떨린다는 표현은 아마 그럴 때 쓰는 것이지만 이상현 이사는 말로는 못하고 직접 경험했다. 볼 살이 물처럼 출렁거리는 느낌과 함께 머리가 아득해지는 느낌에 잠시 정신을 못 차렸던 그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병원 응급실이었던 것이다. “이, 이!” 이상현 이사는 제대로 망신을 당했다. 매스컴에서 냄새를 맡았는지 응급실 앞에서는 기자들과 회사에서 나온 직원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간신히 기자들과 마주하지 않고 병원을 나온 이상현 이사는 그 막돼먹은 애새끼에게 응징을 가하려고 했지만 아쉽게도 그가 수작을 부리기 전에 공세가 들어왔다. [모 대기업 이사, 천재 소년에게 수작을 부리려다 개망신.] [목적은 신형 엔진의 특허화? 욕은 누가 먹고?] 반츠와 JM은 허수아비가 아니다. 병신은 더더욱 아니었다. 신형 엔진을 어린 나이에 개발한 강현이 미래에 어떤 개발자로 자라날지 회사 차원에서 관심을 두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나름대로 이 어린 천재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특허를 가지고 반츠와 JM, 그리고 그 밖에 여러 세계 유수의 자동차 회사들과 출혈 경쟁을 해야 되는 상황에서 이 어린 아이는 필요하다면 누구나 가져다 쓰라고 흔쾌히 특허 출원 할 생각이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쓸데없는 곳에 돈을 쓸 필요가 없었다. 개발자가 공짜로 마음껏 쓰라고 했기에 남은 건 생산 경쟁뿐이었고 반츠와 JM은 소년의 정교한 설계를 완벽히 재연할 수 있는 노하우를 가지고 있었다. 신형 엔진에 대한 특허를 신청하지 않은 것은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아이의 치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그룹 차원에서 이 천재 소년의 근황을 파악할 필요를 느꼈다. 특허에 탐을 낸 누군가가 소년을 회유하거나 협박하려 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세계적 기업이 이 소년에게 관심의 눈을 두고 있는 상황에서 미래 그룹의 수작질이 포착 되었다. 반츠와 JM은 이 상도덕 없는 기업이 어린 천재에게 손을 뻗는 것을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공세적으로 미래 그룹을 망신 줘 버린 것이다. 마침 이상현 이사라는 적당한 소재가 있기도 했었다. 이 일로 망신을 당한 이상현 이사는 이주연 회장의 분노를 사 한가한 자리로 징계성 인사조치를 당했다. 이로서 강현과 미래 그룹은 결코 친해질 수 없는 사이가 되었고 이는 차후 미래 그룹에서 강현이라는 인재를 등용하는데 지대한 걸림돌이 될 것이 분명했다. 물론 반츠와 JM은 이번 일로 강현과 더 질긴 인연을 맺을 고리를 걸었다고 생각했지만 정말로 그렇게 될지는 차후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을 것이다. = = = = = “흐음.. 어려워...” 강현은 연필을 잘근잘근 물면서 분자 생물학 원서를 읽다가 어렵다 싶은 부분을 종이에 끄적이면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원서는 영어로 되어 있었지만 과학에 대한 열정은 소년이 영어에도 손을 쓰게 만들었다. 듣고 말하는 건 아직 어렵지만 읽는 것 만은 별다른 문제가 없는 강현이었다. “아~! 이렇게 되는 구나.” 강현은 잠시 후 결국 이해하지 못한 부분을 기어이 이해해 버렸다. 그리고는 배가 고픈 것을 느꼈다. 소년은 원서 사이에 책갈피를 끼우고 일어섰다. 그리고는 방안이 엉망이 된 것을 발견했다. “누가 왔었나?” 소년은 누군가 자신을 방해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몇 가지 장치를 설치했다. 그리고 그 장치 중 두 가지가 작동 되어 있었다. 소년은 날아간 판자와 글러브를 압축 공기 대포에 넣고 다시 콤프레셔의 전원을 올려 공기를 압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쪽에서 쓰레받기와 빗자루를 들고 와 바닥에 흩어진 구슬 비즈를 쓸어담기 시작했다. 청소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구슬 비즈는 쓰레기가 아니었고 얼마든지 재사용이 가능한 유용한 도구였다. 구슬 비즈를 싹 쓸어 담은 소년은 밥 먹으러 식당에 가는 길에 원장을 만났다. “원장님. 누가 왔었어요?” “응? 왜?” “책보다가 나오려고 하니까 함정이 작동되어 있어서요.” “그래?” 원장은 쓴 웃음을 물었다. 소년은 자신이 설치한 함정이 어떤 효과가 있는지 안다. 하지만 그것이 뭐 어떻냐고 생각한다. 방해 받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소년이 누가 왔는지 확인하는 것은 함정의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서도 함정에 당한 누군가를 걱정하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소년 만의 블랙 리스트에 올리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블랙 리스트에 오른 자들은 결코 소년에게 호의적인 반응을 얻을 수 없게 된다. “미래 그룹의 이상현 이사가 왔었다가 응급실에 실려 갔단다.” 평범한 아이라면 자신이 설치한 함정에 사람이 응급실에 갔다고 하면 약간의 죄책감이라도 들텐데 아이는 후자의 내용보다 전자의 내용에 관심을 더 가졌다. “그 아저씨면 예전에 제 특허를 300억에 사겠다던 아저씨였죠?” “.... 그래..” 원장은 300억이라는 말에 부럽고 기가 막혔다. 300억원이 어떤 돈인데.. 그리고 그런 기술을 특허 신청을 하지 않겠다는 강현에게는 감탄사 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그 미래 자동차란 곳은 원래 그런가요?” “응? 뭐가?” “반츠랑 JM에서 온 아저씨들은 800억에 사준다고 했었거든요. 그래서 300억을 준다는 거랑 비교가 많이 되어서요. 미래 자동차란 곳이 스크루지 영감처럼 짠돌이가 모인 곳인가요?” 원장은 800억이라는 말에 대략 정신이 멍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대답해 주었다. “... 짜긴.. 많이... 짜지.” 교육적 차원에서, 그리고 친 대기업적인 국가의 공무원으로서는 하기 좀 그런 말이었지만 800억에 충격을 먹은 원장의 입에서는 뇌를 거치지 않은 대답이 흘러나왔다. 그러면서 얼마나 짠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아이에게 그런 것까지 일일이 설명해 줄 필요는 없었다. “얼마나 많이 짜요?” 하지만 아이의 궁금함에 결국 원장은 일단 생각이 나는 것만 이야기 해주었다. 임팩트 바를 수출용에는 두 개, 내수용에는 한 개를 집어넣고는 홈페이지 광고 사진으로 과대 광고라고 문제가 되자 광고 내용을 바꿔버리는 곳이다. 차에 물이 새어도 실리콘으로 허접하게 땜질을 해 놓는데 그마저도 제대로 하지 못해 물이 세는 차를 ‘원래 그렇게 타는 겁니다.’라는 광고로 팔아먹는 곳이다. 하지만 원장은 자신의 생각 없는 말에 아이에게 미래 자동차란 곳에 그리고 미래 그룹에 어떤 고정관념이 생길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응? 그건 사기가 아닌가요?” “사긴가?” 원장도 긴가 민가 했다. 하지만 이 나라의 법은 쓸데없이 피의자에게 동정적이고 해석이 고무줄 같아서 원장 같은 비전문가가 불법이다 아니다라고 말하기에는 좀 그랬다. “뭐, 그에 관해서 소비자들이 소송을 걸었으니까 법정에서 판가름 나겠지.” 지금까지 대기업이 패소한 경우는 손에 꼽을 경우니까 이번에도 마찬가지 결과라고 생각했지만 뭐 어쩌겠나? 원장은 나라의 녹을 먹는 평범한 소시민에 불과했다. 강현이라는 싹퉁머리 없는 녀석을 돌보는. “그런가요?” 강현은 고개를 갸웃거리고 의문을 접었다. 어차피 짠돌이 집단에 별로 관심도 없고 배가 고팠다. 벌써 소년에게 미래 자동차가 짠돌이 집단이란 이미지가 박힌 건 중요하지 않으니 넘어가자. “원장님 오늘 점심은 뭐에요?” “돈까스.” “우와! 만세!” “였다.” “였다?” “지금은 저녁 때야.” “.....” 강현의 볼이 부풀면서 입술이 튀어 나왔다. 원장은 그런 소년이 쓸데없이 귀엽게 생겼다며 속으로 혀를 찼다. “반찬은 카레.” 카레는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메뉴였지만 돈까스를 더 놓아하는 강현에게는 놓친 돈까스가 더 아쉬운가 보다. 여전히 불퉁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원장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돈까스.” “?” “저녁 반찬은 카레 돈까스.” 돈까스 재료를 넉넉히 사 놓았기 때문에 저녁에는 카레와 함께 돈까스를 반찬으로 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소년은 돈까스의 존재에 기쁨을 나타내기 보다는 자신을 놀린 원장에게 불만을 토로했다. “우씨! 원장님, 왜 자꾸 그렇게 말을 끊어서 해요?” ‘그래야 너를 놀려 먹을 수 있잖냐?’ 평소 강현의 장난질과 기행의 뒷수습을 한다고 맘고생이 심한 원장의 낙이 말로 강현을 낚는 것이었다. 강현은 생각을 한꺼번에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원장처럼 말 중간에 간격을 두면 강현이 오해를 하고 당황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원장은 그런 어법을 이용해 강현을 놀려 먹어 스트레스를 푸는 중요한 일과로 활용하고 있었다. 여러모로 보육원 원장을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인간이었지만 강현이 있는 보육원은 국가가 운영하는 곳이었고 원장은 관료제로 원장 자리에 앉은 철밥통 공무원이었다. “자자, 빨리 가야지. 안 그럼 카레 식는다. 돈까스도 식으면 맛없어.” 강현은 원장이 등을 떠밀자 원장의 대답을 듣는 건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식당으로 달려갔다. 13살 아이라고 하기에는 뭐랄까.. 너무 순진했다. 그런 강현을 보며 원장은 때로는 강현이 앞으로 어찌 살지 걱정되었다. 그는 철밥통 공무원에 불과하지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강현의 생활은 일반적인 보육원 생활보다 훨씬 자유로웠다. 그런 소년이 그만한 ‘실적’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신형 엔진 발표는 아이에게 자유를 줘야 한다는 실무자의 의견이 그 결과를 보여준 것이라며 역시 천재성과 자유는 불과분의 관계라는 논란을 이끌어 내었다. 허나 실상은 실무자의 의견은 그저 의견에 불과했고 소년의 성과는 온전히 소년의 천재성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3화 그리고 그 실무자는 모 의원 쪽의 라인으로 정계에 입문하려고 다년간 노력을 해왔고 거기에 기억도 나지 않는 서류에 사인한 것이 이번에 운 좋게 얻어 걸린 것 뿐이었다. 아무튼 또래보다 자유로운 강현의 생활상은 같은 시설에 살고 있는 다른 아이들의 기분을 거슬리게 만들기 충분했던 것이다. 본디 또래에서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배척의 대상이 된다. 보다 뛰어난 아이를 대장으로 덜떨어지는 아이는 깍두기로 해서 같이 놀던 미풍양속은 오늘날 치열한 경쟁 사회를 살아가는 시대에서는 보기 어려운 광경이 되었고 그 자리에는 대신 왕따, 은따, 일진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강현은 아무도 건들 수 없었다. 일단 선생님들과 원장도 강현을 싸고 도는 데다가 어떤 사건도 있었다. 강현에게 강한 질투심을 느낀 금일성이라는 아이가 있었다. 왜 아이 이름을 그따위로 지었는지 부모의 얼굴을 한 번 보고 싶지만 금일성은 고아라 부모가 없다. 아무튼 하루는 책에 빠진 강현을 불러 댔던 금일성은 강현이 계속 자신을 무시한 채 책에 빠져있자 빡쳐서 책을 뺏어다가 집어 던지고 씩씩 댔다. 그때 금일성은 보았다. 자신을 보는 강현의 눈빛은 마치 자신의 발을 걸은 돌부리를 보는 사람처럼 귀찮음과 짜증이 섞인 눈이었다. 결코 사람을 보는 눈빛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때 강현은 별 말없이 한 쪽 구석에 던져 진 책을 들고 그 자리를 피했다. 금일성은 주위의 아이들에게 봤냐고, 강현이 쫄아서 도망갔다며 허세를 부렸고 아이들을 금일성에게 엄지를 치켜올려 주었다. 그리고 다음날 저녁 금일성은 계단에서 미끄러져 머리가 깨지고 팔이 부러졌다. 강현은 그 모습을 계단 위에 서서 물끄러미 내려보고 있었다. 강현이 금일성을 밀친 것이 아니었다. 금일성이 미끄러졌을 때 강현은 복도 저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결코 그의 짓은 아니었지만 도움도 요청하지 않고 금일성을 걱정하지도 않고 무표정하게 바라본 그의 행동 때문에 모두 그가 그런 짓을 했다고 믿었다. 사실 그랬다. 나중에 금일성의 실내화 바닥에 땅콩 기름이 묻어있었고 금일성이 지나가기 전 계단 위에 물을 뿌린 강현의 모습이 CCTV에 찍혀 있었다. “장난이었어요.” 자신은 설마 그렇게 심하게 다칠 줄은 몰랐다는 것이다. 그리고 땅콩 기름이 물과 만난다고 해도 미끄러질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고 항변했다. 당시 소년에게 상황을 물어보기 위해 나왔던 감찰관은 이 사실을 묻었다. 강현이 한 짓은 분명히 미필적 고의에 의한 범행이 분명했지만 소년법이 강현을 지켜주고 있었고 강현이 반성하는 표정을 짓는다면 충분히 봉사활동 정도로 처벌이 그칠 것이었다. 괜히 국가가 운영하는 시설에서 문제를 만들어 골치 아픈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관료주의란 그런 것이었다. 게다가 강현은 선을 분명히 긋고 있었다. 결코 자신이 과학을 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으면 주위에 어떤 해도 끼치지 않았다. 선생님들이 강현을 싸고 도는 것은 사실상 강현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뭣도 모르는 아이들이 강현을 건드려 그런 질 나쁜 장난을 당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그 일이 있은 후 강현은 아이들 사이에서 접근 불가의 레벨로 상향 조정되었고 금일성은 강현을 볼 때마다 심각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보여 결국은 다른 보육원으로 보내지고 말았다. ‘그 눈! 그 눈!’ 머리가 깨지고 팔이 부러진 고통을 느낄 때 계단 위에 서서 무표정하게 자신을 내려다보는 강현의 얼굴이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다. 원장은 강현이 저지르는 모든 사건을 묻어버리고 마는 감찰관의 작태에 직무유기에 근무태만이라면서 혀를 쯧쯧 찼지만 강현을 교육하기 위해서 몽둥이 한 번 들지 않은 그는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었다. ‘저러다가 사이코 패스나 소시오 패스가 되겠지.’ 소시오 패스가 출세를 잘 한다던가? 원장은 세상 돌아가는 꼴에 혀를 찼다. 하지만 공부의 힘으로 자폐증을 서서히 극복해가기 시작한 강현은 사이코 패스나 소시오 패스와는 거리가 멀었다. 한 독지가가 기부란 명목으로 강아지를 이 보육원에 보냈을 때 어찌나 지극정성으로 돌봤는지 원장이 놀랄 정도였다. 강현은 강아지를 키우면서 꼬박 꼬박 사육일기를 썼는데 그 수준이 놀라울 정도였다. 일주일 단위로 강아지의 털길이와 몸길이를 재어 기록하며 제 손으로 사료를 주고 씻기는 정성도 보였다. 하지만 어느 날 강아지가 보육원 밖으로 나가버리더니 교통사고로 숨진 채 발견되었다. “... 괜찮냐?” 강현의 두 손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그리고 강현이 바라보는 나무 밑에는 작은 둔덕이 잇었다. 소년이 직접 강아지를 파묻은 것이다. 원장은 그런 강현이 안타까웠다. 부모님도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는데 정성껏 돌보던 강아지까지 차에 치여 죽어버리다니.. 세상 참 얄궂었다. 하지만 강현은 평이한 태도로 대답했다. “네.” 목소리가 너무나 평온해서 원장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정말?” “네. 어차피 살아있는 건 언젠가는 죽어서 사라지잖아요.” “.....” 원장은 강현에게 정신과 상담을 받게 할 것을 심각하게 고려했다. 그리고 결국 강현은 정신과 의사의 내방을 받게 되었지만 진단 결과는 정상으로 나왔다. 의사는 약간의 자폐증이 남아 있었지만 우울증같은 정신 병리학적인 이상은 없다는 소견을 내 놓았다. [부모님의 죽음을 계기로 자연 과학에 과도하게 몰입해 공부한 것이 아이의 정신을 성숙하게 한 것으로 보임.] 원장은 그런 의사의 소견에 납득했다. 자연은 넓고 광대하다. 우주와 자연의 신비에 비하면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왜소한가? 소년은 자연의 법칙과 우주의 법칙들을 공부하면서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형체가 있는 것은 변한다. 그것이 죽음이란 변화일지라도 어쩔 수 없다. 부모님의 죽음은 확률적으로 운이 없었던 것 뿐이다. 자신도 그렇게 운 없게 죽을 수도 있었다. 강아지 해피의 죽음 역시 마찬가지다. 해피가 자동차의 무서움을 깨달을 기회가 없었다는 점은 참으로 불운이었다. 살아있는 것들에게 죽음은 예정된 수순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면 자칫 허무주의나 냉소주의, 혹은 쾌락주의로 빠져들 위험이 있었지만 아이의 생활은 변함이 없었다. 과학에 대한 열정 역시 여전했다. 우주에 존재하는 것들은 말한다. 존재 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그리고 너무 아름답다고. 단지 가스가 모여 핵융합을 할 뿐인 항성들의 장엄함. 그리고 미시세계의 조화로움과 신비함. 생명체들의 아름다운 순간순간들은 삶이 유한하지만 그래도 아름답다는 것을 소년에게 깨우쳐 주었다. 그렇기에 소년은 절망하지 않았다. 소년의 나이 14세. 신형 엔진으로 자동차 업계의 연비 효율을 부쩍 상승시킨 소년은 다시 새로운 발명을 세상에 내어 놓았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이차 전지 시장에 혁명을 일으킬 발명이었다. 이차 전지는 결국 전하를 저장하고 전위를 형성시키는 것에 이온의 이동을 이용한다. 하지만 이 이온의 이동을 조절하기 위해서 배터리 내부의 구조와 음극과 양극 물질의 개발이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음극과 양극 물질의 종류에 따라서 전지의 용량과 전위가 크게 바뀌기 때문에 극에 사용할 물질의 개발이 전지 개발의 핵심이었다. 하지만 강현이 개발한 전지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었다. 음극와 양극의 물질을 동일한 것으로 하도 전위의 차이를 전해질에 포함된 이온의 농도로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충전시에 전하를 가진 이온을 한쪽 방향으로 몰리게 하고 그래핀과 나노 탄소 튜브를 이용해 전해질의 이온들이 전하 균형을 맞추기 위해 확산하는 속도를 늦추는 기술은 이 기술의 핵심이었다. 이 기술의 단점은 음과 양극 물질을 완전히 동일한 것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자체 방전이 빠르고 방전시에 양 극에서 이온이 중성화 되어버리기 때문에 다시 충전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전기적인 기술이 요구된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이런 단점을 압도할 정도의 장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무시무시한 전력 용량과 전위 조절을 배터리의 모양을 통해서 조절 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특히 후자의 경우는 음극과 양극간의 거리를 길게 할 수록 더 강한 전위를 저장할 수 있고 두껍게 하면 할 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저장할 수 있는 전하량이 늘어나게 된다. 게다가 전해질에 사용하는 금속 이온을 제외하면 가벼운 탄소 소재이기 때문에 가볍다는 장점도 있었다. 즉, 전기 자동차의 고질적인 배터리 문제를 단숨에 해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이 배터리로 만든 전기 자동차는 충전 시절과 전력망이 깔려있는 문명 지대에서나 사용할 수 있다는 한계가 있지만 출퇴근용 차량으로 이만한 것은 없었다. 세상은 다시 이 천재에게 주목했다. 그리고 역시나 이번에도 이 발명의 라이센스를 누구나 다 사용할 수 있도록 특허 신청은 안 한다고 했다. 이에 당황한 것은 한국 정부였다. 그들은 이 기술을 전략 기술로 분류하고 막대한 이득을 남길 계획을 짜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소년의 결정으로 한 순간에 새가 된 그들은 소년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 갖은 노력을 다했다. 여당의 이순원 의원도 그런 사람들 중에 하나였다. “강현 군.” 그가 강현을 부드러운 어조로 불렀다. 하지만 타이밍이 않 좋았다. 강현은 응접실에 있던 꽃을 보면서 꽃의 종류와 꽃의 효능을 떠오르며 그런 효능을 내게 만드는 수백가지 화학물질들을 떠올리면서 그 중에 꽃이 생산해 낼 수 있는 후보 물질에는 무엇이 있을까 답을 찾는 지적 유희에 몰입하고 있었다. 이순원 의원은 강현이란 소년을 우습게 봤다가 낭패를 본 몇몇 인사들을 알고 있었기에 소년을 방해하지 않도록 조심했다. 강현에게는 그런 가치가 있었다.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국민들에게 소년의 존재는 마치 슈퍼스타와도 같았다. 그런 소년과 친분이 있는 정치가라는 타이틀은 그의 정계 생활에 쓸만한 카드로 사용할 수도 있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강현은 꽃이 생산할 거라고 생각되는 가장 유효한 물질 후보 12가지를 선정한 후에 현실로 돌아왔다. “어? 아저씨는 누구세요?” “이순원 국회의원이라고 한단다.” “국회의원이요?” 아이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했다. 순간 이순원 의원의 머리에 얼마 전 아이에게 말을 안 듣는 다고 손찌검을 하려고 하다가 미끄러져 코가 부러진 정세원 의원이 떠올랐다. 거기에 미래 자동차의 이상무 상무이사에게 쪼잔한 곳에서 왜 왔냐고 물은 소년의 발언이 순식간에 인터넷에 퍼진 일도 떠올랐다. 그는 아차 하고는 소개방법을 바꾸었다. 자신은 아이의 뺨을 때리려는 국회의원이 되면 안된다. 씨발놈들. 괜히 어설프게 건드려가지고. “그냥 이순원 아저씨라고 불러라.” “네, 아저씨.” “.....” “......” 두 사람은 잠시 말이 없었다. 아이는 이순원 의원에게 관심이 없었고 이순원 의원은 아이가 자신이 왜 왔는지 물어주기를 바랬다. 하지만 이순원 의원의 쓸데없는 혼자만의 신경전은 뻔히 결과가 정해져 있었다. “강현아.” 이순원 의원이 먼저 입을 열었다. “네, 아저씨.” “이번에 개발한 배터리 말이다.” “싫어요.” “.... 아직 말도 안 꺼냈는데?” “그 동안 찾아왔던 아저씨들이랑 똑같은 말을 할 거잖아요. 국익이다 뭐다 애국심이니 충성심이니 하는 것들을 들먹이면서 특허화 하자고 할 거잖아요.” “....” 역시나 소년은 똑똑해서인지 말도 안 꺼낸 이순원 의원의 방문 목적을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4화 “크흠! 크흠! 현아.” “네.” 이순원 의원은 목을 가다듬고 설득을 시작했다. “왜 특허 신청을 안하려고 하니?” “그냥뇨.” “.... 특허 신청을 하면 돈도 많이 벌 수 있단다.” “전 배터리 아니라도 돈 많이 벌 수 있어요.” “더 많이 벌 수 있단다.” “그렇게 많이 벌어서 어디다가 써요?” “많은 사람들을 도와 줄 수 있단다.” “제가 만든 기술을 널리 쓸 수 있게 하면 더 많이 도울 수 있지 않나요?” “글쎄다. 과연 그럴까?” 이순원 의원은 고개를 저었다. 공공재라는 것이 있다. 그것을 설명하는 경제학자들은 주로 공공재를 주인없는 풀밭에 비유한다. 그리고 개인은 그 풀밭에서 양이 풀을 뜯게 한다. 그런데 누군가가 개인의 욕심으로 그 풀밭에서 더 많은 양이 풀을 뜯게 하면 다른 누군가도 똑같이 하게할 것이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풀밭은 황폐하게 변해버린다. 때문에 규제로 그러한 것을 막거나 사유제도를 도입해 풀밭이 황폐화되지 않도록 누군가가 매입하도록 한다. 누군가 그 풀밭의 주인이 되면 황폐화 되는 것을 막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소년의 발명 역시 마찬가지였다. 소년은 자신의 발명을 누구나 사용할 수 있게 했지만 그로 인해서 이익을 보는 이는 극소수의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무분별한 사용으로 다른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었다. 세상은 호의로 대한다고 해도 언제나 결과가 좋지는 않은 곳이기 때문이다. 이순원 의원은 풀밭과 양에 대한 이야기를 소년에게 해 주었다. “그래서요?” “... 그, 그래서라니?” 그러나 소년의 반응에 이순원 의원은 당황했다. “솔직히 제가 만든 것으로 누가 이득을 볼지는 별로 관심이 없어요.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고 누가 이익을 볼 건지에 관여하는 귀찮은 짓을 하기는 싫어요. 그것 사람들이 알아서 결정했으면 해요.” “귀, 귀찮아?” 정치가인 이순원 의원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익에 분배에 관여하는 것은 곧 정치력을 의미한다. 정치력을 가지게 되면 자연히 권력이 따른다. 그런데 그것을 이리도 쉽게 포기하다니. 이 의원은 소년이 세상 물정을 몰라서 그러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차근 차근 설명했다. “네가 조금만 신경 쓰면 너를 귀찮게 찾아오는 사람은 없어질 거란다.” “아저씨같은 사람들요?” “... 그, 그렇지.’ 이순원 의원은 왜 정세원 의원이 소년을 때리려고 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소년은 싸가지가 없었다. 소년은 그의 눈썹이 꿈틀거리는 것을 무시하고 생각해 잠겼다. 이순원 의원의 의견은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그럼 다음부터 그럴게요." "다, 다음?" 이순원 의원이 당황했다. 중요한 것은 그 신개념의 배터리 기술이었다. 다음 건 다음에 생각할 문제였고 배터리는 배터리였다. 배터리의 문제가 중요한 것은 전기문명에서 전기를 저장하는 동력원이 모든 것의 기초이기 때문이었다. 자동차, 컴퓨터, 모바일 기기, 여기에 군사분야까지 접목이 되면 소년의 배터리 기술은 그 가치가 천정부지로 솓구친다. 차후 소년이 무슨 발명을 하던 이 배터리 기술의 가치를 능가할 기술은 별로 없을 것이다. "현아. 다시 생각을," "아! 밥 먹을 시간이다." 어른이 말씀하시는데 나가버리는 싸가지는 어디서 배워 먹은 것이냐! 라고 소리치고 싶은 이순원 의원이었다. 하지만 칼자루는 소년이 들고 있었고 소년은 성깔이 있었다. 그러니 좋게 좋게 말로 구슬리는 것이 목적을 성취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소년은 정말로 지독히도 말을 들어 처먹질 않았다. = = = = = 소년의 배터리 기술은 일대 혁명을 가져왔다. 어떤 구슬림과 사탕발림도 배터리 기술의 무료화를 막을 수 없었다. 소년이 개발한 배터리 기술에는 무전극 배터리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그 이유는 전극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양 극이 동일한 물질이기 때문에 충전의 방향에 따라 전극이 달라지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었다. 세계는 이 소년을 칭송했다. 이 배터리 기술로 인해서 수 많은 환경적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배터리의 거대한 용량과 제작비용의 저렴함은 원자력 발전소에서 가장 먼저 사용했다. 대규모의 전력 저장장치를 만들어 화력 발전이 없어도 전기수요가 급증할때 보조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희토류를 쓰지 않아 제작 단가가 기존 배터리보다 매우 저렴했기 때문이었다. 자동차 회사들은 이 배터리를 이용한 전기 자동차를 속속 발표했으며 수많은 배터리 회사들 역시 강현의 배터리를 제조하기 시작했다. 많은 이들이 입가에 미소를 지었지만 미소를 짓지 못한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석유 회사와 배터리 회사들이었다. 석유 회사들은 당장에 석유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하자 울상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화학 공업 쪽에서 석유는 여전히 원료의 가치를 가지고 있었고 전기 자동차가 나온다고 해도 비행기나 선박 등 내연기관을 대채하기 힘든 곳이 있기에 이득의 감소는 있어도 손해는 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배터리 업계였다. 수많은 배터리 회사들이 도산을 시작했다. 사실 그것은 어쩔 수 없이 일어넌 아니라 배터리 제조업의 구조조정 과정이었다. 상품의 기술력으로 경쟁을 해왔던 배터리 공장들은 강현의 기술 개방으로 기술력의 차이가 급감했다. 경쟁의 수단이 생산력과 마케팅에 있다는 것을 파악한 예민한 기업가들은 성공을 이어 갔으나 그러지 못한 기업들은 도태되기 시작했다. 그 중에 성장 폭이 커서 자본가들의 눈에 띈 회사들은 막대한 투자를 받아 도태되기 시작한 배터리 회사들을 집어 삼켰다. 배터리 업계에 하나 둘씩 공룡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본가들은 과연 시대의 흐름을 잘 파악했다. 이 유용한 배터리가 희토류 문제 없이, 어느 국가의 자원 정책에 영향 없이 안정적으로 생산되고 공급될 수 있다는 것은 국제 자본이 투자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강현의 배터리는 그러한 조건은 충족시켰고 응용 가능한 분야가 무한대로 넓으니 당연히 투자해야 마땅한 투자처였다. 순식간에 강현의 배터리는 세상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의 샘성이나 NG역시 발 빠르게 생산시설을 전환했다. 이 모든 변화에서 가장 이득을 본 기업은 그래핀을 제조하는 기업과 탄소 나노튜브를 만드는 기업이었다. 시대가 변하고 있었다. 그것도 소년이 만들어 낸 기술에 의해서. 처음에 발표한 신형 엔진도 이 정도 파급효과는 만들어 내지 못했다. 그러나 배터리의 파급효과는 세계 각국이 정부 차원에서 이 소년에게 주목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만일 소년이 또다시 이 배터리와 같은 발명을 하고 그 특허를 신청한다면 소년을 확보한 국가는 막대한 영향력과 국력의 신장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래서 역시 가장 먼저 발벗고 나선 국가는 미국이었다. "Hey, Boy. 미국에서 공부해 보지 않을래?" "Call." 소년은 거부하지 않았다. 졸지에 한국 정부는 뒤통수를 맞았다. 이순원 의원을 비롯한 여러 의원이 소년을 찾아왔다. "강현 군! 미국으로 간다는 말이 사실인가?" "네." 아주 당연한 듯한 대답에 한 의원이 머리에 열불이 나서 외쳤다. "아니 왜?! 그 동안 조국이 키워 준 은혜도 모르고! 좀 유명해 졌다고 배신해?!" "그런가요?" 그러나 소년은 의외도 담담하게 수긍했다. 너무도 쉽게 수긍해서 의원들이 떨떠름했다. "… 그, 그렇지." "그럼 어떻게 하죠?" "어떡하기는. 한국에 남아야지." "하지만 한국에서는 공부하기가 힘든데요." "뭐가 힘드냐? 이 아저씨들이 다 해결해 주마." 의원들이 자신의 장담했다. 그러자 소년은 불편한 것들을 하나 하나 말하기 시작했다. "일단 이제부터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하려고 하는데요 좋은 연구 장비가 한국에는 없더라구요." "이 아저씨들이 예산을 마련해 주마." 여야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의견을 같이할 것이다. 만일 이 천재가 미국으로 가버리기라도 하면 분노한 시민들에 의해서 다음 선거에 불이익을 당할 것이다. "그리고 계속 이상한 아저씨들이 찾아와서 귀찮게 하구요." 이상한 아저씨들이란 소년을 영입해 공밀레를 하기 위해 침을 흘리며 달려드는 대기업들의 헤드 헌터들을 말한다. 국회의원들도 그들의 사정을 알고 있었지만 자신들도 급했기 때문에 떨떠름하게 약속했다. "…..이 아저씨들이 못하게 하마." "아저씨들도 포함이요." 싸가지 없는 새끼. 어디서 고귀하신 국회의원과 일개 고용인을 도매급으로 묶으려 들어? 하지만 그들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이는 수 밖에 없었다. "아, 알았다." "그리고 이게 가장 중요한데요." "무엇이냐?" "가르쳐 줄 선생님이 없어요." "무슨 소리니? 이 나라에 훌륭한 교수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들이라면 기꺼이 너를 제자로 들일 게다." 당연한 소리였다. 장래가 총망받는 대천재의 은사라니! 그 타이틀 하나만으로도 평생 교수를 해먹을 수 있었다. "그럼 시험해 볼까요?" 누가 누굴? = = = = = 강현의 행보는 현재 대한민국의 가장 큰 이슈가 되어 있었다. 특히 미국이 강현을 탐을 내고 유학을 제의하며 각종 혜택을 제의해 그 노골적인 탐욕을 드러내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들은 나라를 먹여 살릴 인재를 뺐기느냐 마느냐하는 조마조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물론 강현이 나라에 남아있는다고 그들에게 혜택이 돌아갈지는 미지수다. 낙수효과? 풋!)그런 와중에 국회 차원에서 강현을 위한 연구지원 예산을 만들기 위한 특별법이 제정되기 시작하여 사람들의 관심을 더욱 부채질 했다. 일각에서는 겨우 어린애 한 명을 위해서 설래발을 치고 있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누구 누구를 국가 경제 발전에 이바지 했다는 명목으로 수백 억원을 횡령한 것을 정상참작하는 법관이 있는 나라에서 국가 발전에 이바지 할 것이 분명한 천재를 위해 특별법을 제정하는 것 정도는 문제가 아니라는 반박도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 국가적으로 소년을 가르칠 교수를 뽑겠다는 공문이 각 대학교에 들어왔다. 수많은 교수들이 지원을 했지만 의외로 모든 교수들이 지원하지는 않았다. 교수들도 자존심이 있다. 아무리 천재라지만 마치 입사면접을 하는 듯한 지원은 싫었다. 당연하지만 지원한 교수들은 모두 그저그런 교수에 불과했기에 정부차원의 1차 심의에서 통과한 사람은 단 두 사람뿐이었다. 흔한 탁상 행정의 결과였다. 아무튼 이 두 교수는 최종 심사를 받게 되었는데 최종 심사관은 바로 자신들의 제자가 될 강현이었다. 김 교수와 한 교수는 어이가 없었지만 기왕 여기까지 온 거 끝을 보기로 했다. "김성화 교수님. 김성화 교수님께서 작년 ○○월 ○○일에 ○○학회지에 발표하신 RNA 유전자 단분자 효소의 특정화 기제에 대한 논문에서 질문이 있는데요." 쏼라 쏼라 쏼라. 김 교수는 정신이 없었다. 작년 논문? 자신이 지금까지 써 낸 논문이 몇 편인데 그걸 다 기억하나? 그리고 어렴풋이 실험의 목적과 결과는 기억나도 그때 나온 자세한 수치값들을 어떻게 다 기억하냐고! "… 특정 패턴과 결합하는 RNA 사슬이 용액의 농도와 산도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다면.." 다행이 김 교수는 소년의 질문을 용케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은 생물학 뿐만 아니라 화학에도 깊은 조예가 없으면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의 질문이었다. 소년은 지금 유전자 분석에 사용되는 제한 효소의 조작에 대해서 질문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김 교수는 그쪽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는 것이다. 5화 박사가 왜 박사인가? 전문가이기 때문에 박사이고 그 말은 자신이 잘 아는 분야에 대해서는 빠삭하지만 그 외의 분야에 대해서는 필요한 정도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김 교수가 멘붕 상태에서 면접을 끝내자 이번에 한상길 교수에게 강현의 눈길이 갔다. 한 교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긴장이 되었다. "한 교수님께서는 얼마전에 태양광 모듈의 제작 단가 절감을 위한 신기술을.." 다행이 잘 아는 분야가 나왔다. 태양광 발전은 한 교수의 전담이었다. ".. 그런데 여기서 양자 효과를 고려한다면 전자의 자유 행로가 약.. 실리콘 기반의 태양 전지의 수명을 획기적으로 늘리기 위한 적층 구조가.." 다행이다. 잘 아는 분야다. 한 교수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태양광으로 전기를 발전하는 건 너무 비효율적인 것 같아요. 광합성이라는 최고의 방법이 있으니 차라리 직접 전기 에너지로 변환하는 것보다 그걸 응용해서 화학 에너지로 축적하는 것이 연료 전지라던가 여러모로.. 어라? 내가 연구하면 되잖아." 시대를 선도할 천재가 태양광 발전 기술은 후졌다고 한다. 태양광 발전이 전공인 한 교수는 울고 싶었다. = = = = = 결과적으로 1차 은사 모집은 실패했다. 강현이 실망감을 감추지 않으며 미국행을 결심하자 정부 차원에서 부랴부랴 유명 교수진에게 사정했다. 아무리 자존심 높은 뛰어난 교수라고 하더라도 국가의 핵심 역량이 될 재목이 빠져 나가는 것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교수사회의 평판과 의견을 종합해 대한민국에서 가장 뛰어난 공학 박사 7명이 선정되었다. 그것은 개인적으로는 큰 명예였지만 생각해 보면 모두 강현을 위해서 벌인 일이니 질투가 날 일이었다. 아무튼 정부차원의 노력에 마음 약한 어린 소년인(어디가?) 강현은 은혜를 모르면 사람이 아니라는 설득에 한번 더 결정을 번복하고 이 7명의 공학 박사에게 지도를 받으며 연구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온 첫번째 논문은 생물 촉매에 관한 내용이었다. 정확히는 물과 햇볕, 이산화탄소로 순수한 포도당을 만들어 내는 인공 광합성 장치에 관한 것이었다. 식물의 엽록소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전기화학적 변화를 그대로 재현해 내는 효소들의 구성체를 마이크로 칩에 축적한 것이다. 이는 인공적인 식물을 만들어 낸 쾌거였다. 아직 열화나 내구에 관한 문제가 남아 있었지만 이 발명의 의의는 무척이나 컸다. 바로 우주 식민지에서 무척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주선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생명 유지 장치다. 그 중에 사람의 생명과 즉시 연동 되는 것이 바로 산소와 이산화탄소다. 밀폐된 공간에서 사람이 숨을 쉬면 필연적으로 산소 부족 현상이 올 수 밖에 없다. 산소는 물을 전기 분해하여 얻고 이산화탄소는 필터를 이용해서 따로 모은다. 이산화탄소를 실내 공기에서 제거하는 이유는 이산화탄소의 축적에 따른 위험한 중독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서 이다. 사람이 호흡을 할 수 있는 원리는 결국은 산소와 이산화탄소의 농도 차이로 인한 확산이기 때문에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높으면 정상적인 호흡이 불가능해 질식사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우주 환경에서 강현의 발명은 그 가치를 제대로 지닌다. 쓸데없이 물을 전기분해하며 필터로 이산화탄소를 거르지 않아도 물과 이산화탄소로 포도당을 만드는 과정에서 저절로 이산화탄소가 줄어들고 산소가 나온다. 이 과정에서 에너지 원은 햇볕으로 충당이 가능하며 거기에다가 우주비행사들에게 설탕도 무한정 공급할 수 있게 된다 이 기술이 발표되자 벌써 NASA에서는 이 기술의 라이센스를 확보할 수 없을까 대한민국에 타진해 왔다. 당연히 대한민국 정부는 이를 자랑스럽게 발표했고 정부의 딴따라인 언론들은 국민들에게 자랑스럽게 떠벌렸다. 국민들은 힘든 생활고에 저런 대단한 위인이 자신의 동포라는 것에 자위할 수 있었다. 남한 정부는 강현을 지원한 뽕을 충분히 뽑았다. 하지만 자신들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공밀레 공밀레. 자고로 작가는 통조림을 해야 제맛이고 공학도를 갈아넣어야 제맛이라고 하던가? 남한 특유의 문화는 아주 자연스럽게 강현에게 공밀레를 강요했다. “싫어요.” “이보게 강현 군. 그러지 말고 이번 연구만 잘 해주면.” 송상철 의원은 이마에 진땀을 빼가며 이 싸가지 없는 어린 천재를 설득하려고 노력했다. “아이 귀찮아.”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무색하게 소년은 자신을 귀찮게 하는 아저씨를 피하기 위해서 읽고 있던 전공 서적을 품안에 안고는 쪼르르 밖으로 달려 나갔다. 송상철 의원은 ‘아앗!’ 당혹성을 지르며 소년을 잡으려고 했지만 소년은 이미 다른 연구실로 들어가 문을 잠가버렸다. 송 의원은 다급해 하며 문을 열어달라고 문을 두들겼지만 이미 소년은 책 속에 빠져 그가 문을 두들기고 있다는 사실마저 잊어버리고 말았다. ‘아! 이러면 안되는데!’ 샘성의 건희락 회장이 직접 부탁한 청탁이었다. 샘성 공화국에서 샘성의 청탁을 받았다는 것은 정치꾼, 아니 정치가로서 탄탄대로를 밟았다는 의미였다. 입법의 중추, 국회의 의원으로서 사법계에 널려있는 많은 샘성 장학생들은 최고의 정치적 지원군이 될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의원 신분을 앞세워 정부 차원에서 출입을 통제하는 이 연구소에 무리해서 들어오지 않았나? 샘성이 부탁한 청탁도 정치적으로 별로 부담이 없는 것이었다. 작은 칩에 생채물질인 효소를 한계까지 집적해낸 강현에게 감동한 샘성 전자는 강현에게 신형 반도체에 대한 개발의 의뢰하려고 했다. 파격적인 대우로 높은 로열티도 줄 방침을 세웠다. 이제 PRAM의 개발로 반도체 시장에 확실하게 뿌리를 내린 샘성은 새로운 차원의 반도체가 필요했다. 이른바 양자 반도체. 양자를 기억소자로 하는 초집적 반도체의 개발은 신세기 전기 문명의 기초가 되어 샘성 전자에게 최초 한 세기는 세상을 석권할 먹거리가 되어줄 수 있었고 그들은 강현이 개발한 마이크로 바이오칩에서 그 가능성을 읽었다. “강현 군! 이번 신형 반도체 개발에 도움을 주면 강현 군에게도 아주 좋은...” 송 의원이 다급하게 연구실의 문을 두드리며 왜 쳤지만 강현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강현은 어느새 코딩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었다. 코딩은 매우 단순한 작동 원리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코딩 언어 대로의 순차적인 시행이다. 그러나 각종 코드가 만들어지고 프로그램의 구조가 방대해지자 사람이 이해하기 매우 힘들게 되어 버렸다. 말 그대로 코딩이 제대로 안되면 왜 안되는지 모르겠다고 머리를 부여잡고 코딩이 제대로 되면 왜 되는지 모르겠다고 머리를 부여잡는 것이 이쪽 업계 사람들의 생활이었다. 강현은 간단한 코딩을 해보고는 폰 노이만의 위대함을 느꼈다. 사실 폰 노이만이 없었다면 소프트웨어라는 개념은 탄생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사실상 그는 디지털 연산장치의 아버지라고도 할 수 있었다. 순차적 처리방법 때문에 병목 현상이 생기는 문제가 있지만 그래도 그의 업적이 빛바래지는 않는다. 사람도 무언가를 논리적으로 생각하려고 할 때 그 단계가 무수히 많아지면 생각이 어지러워 지지 않는가? 강현은 폰 노이만에 대해서 알게 되면서 그의 다양한 업적에 매료 되었다. 그렇다. 바로 폰 노이만의 모습이 자신이 되고 싶은 것이 된 것이었다. 폰 노이만은 천재 수학자로서 6살에 8자리의 나눗셈을 암산으로 풀었다는 일화가 있다. 강현은 그 일화에 ‘멋있다.’ 혹은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폰 노이만의 위대한 업적이라고 할 수 있는 컴퓨터 코딩에 푹 빠지기 시작했다. 그런 강현의 모습에 매일 같이 찾아오는 송 의원은 애가 탔다. 뭔 애새끼가 이렇게 어른 말을 안듣냐? 언제나 강현을 만나 설득하는 일에 허탕을 친 송 의원은 결국 깊게 고민하고 있는 소년을 만났다. “이!” ‘눔 시키! 감히 어른이 만나자는데!’ 강현을 혼쭐을 내려던 송 의원은 한 숨을 푹 내쉬는 소년의 모습에 일단 멈췄다. 뭔가 그림이 그려지는 것 같지 않은가? 고민에 푹빠진 사춘기를 맞이한 소년, 그리고 그 고민을 해결해 주는 자신. 그에 대한 보답으로 샘성이 부탁한 연구를 시작하는 소년. 송 의원은 그런 상상을 하며 부드러운 어조로 물었다. “강현 군. 뭐가 그리 고민인가?” “아저씨.” 우울한 목소리에 송 의원은 득의양양하여 소년의 말을 받았다. “그래, 그래. 이 아저씨가 들어주마. 뭐가 문제냐?” “책이 안 외어져요.” “하하하! 무슨 책인데 그러니?” 송 의원의 말에 강현은 옆에 놓인 ‘Molecular biology’(분자 생물학) 원서를 가리켰다. 송 의원은 보는 것 만으로 질리는 두께의 책을 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천재라더니.’ 그러면서 강현을 위로해주기 시작했는데.. “걱정마라. 읽고 또 읽으면 못 외울리 없지 않니.” “외우기는 다 외웠어요.” “??” 응? 방금전에는 안 외워진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외우는데 3번이나 정독해야 했단 말이에요.” 불퉁한 소년의 말에 송 의원의 정신은 대략 몽롱해졌다. 다 외웠다고? 겨우 3번 정독하고? “그,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니?” “아니에요! 폰 노이만 같은 천재는 전화번호부의 아무 페이지나 한 번 보고 그 합을 도출하는 능력자였다고 한단 말이에요!” 너, 너도 충분히 천재로 보인다만.. 송 의원은 채 말을 끝내기도 전에 불퉁한 소년이 책을 들고는 어디론가 쪼르르 달려가는 것을 봐야만 했다. 그리고 그 날 이후 송 의원은 다른 의원들의 불평불만에 결국 샘성의 청탁을 성공하는 것에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 후로도 강현의 폰 노이만 따라하기는 계속 되었다. 일독에 책을 암기하는 연습을 시작했으며 그가 했던 것처럼 브리테니커 사전을 통째로 외우려고 했고 그가 한 것처럼 7개 국어의 언어를 사용하기 위해서 시간을 할애했다. 거기다가 폰 노이만이 수학의 천재라고 해서 수학 공부도 시작했다. 덕분에 소년의 일정은 하루 종일 빡빡했지만 어디서 그런 에너지가 넘쳐 나오는지 지치는 기색도 없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의 열정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하는 매우 모범적인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런 소년의 행동을 못마땅하게 보는 이들이 있었으니 소년이 기거하는 연구실을 건설하고 책임지는 과학기술부의 장관이었다. 공밀레를 해야 하는데 소년이 쓸데없는 거나 공부한다고 발명을 하지 않으니 애가 탔다. 거기다가 미국의 눈치가 장난이 아니었다. 벌써 온갖 수단을 동원해 어린 천재와의 공동 연구니 어린 천재의 미래를 위한 교류 학회니 뭐니 하면서 소년과 접촉하려고 했다. 당연히 그렇게 되면 공밀레를 할 수가 없다. 미국에서의 대우와 한국에서의 대우를 비교당하면 어린 천재의 마음이 미국으로 기울 수 밖에 없다. 거기다가 애국심을 강조하기에는 애국심을 주입할 시기에 자폐증으로 오랜 기간 자기만의 세계에 갖혀 있었기에 애국심도 전혀 없었다. 국가가 키워준 은혜니 뭐니 하는 것에 남은 것을 보니 염치는 있는 것 같지만 본격적인 공밀레를 시작하면 염치고 뭐고 공밀레를 피해 달아날 공산이 더 컸다. 그러하니 미국의 손길이 뻗치기 전에 공밀레를 통해 로또를 맞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그를 감쌌다. 그래. 갈아 넣기만 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어떻게 이런 인간이 과학기술부의 장관이 될 수 있었는지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좆도 모르는 인간들이 낙하산 타고 내려오는 일이 한 두 번인가? 해양국토부 장관이 아는 거라고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 쌓여있다는 것 뿐인 나란데 무슨 말을 더 할까? 6화 이런 상황에서 장관이 직접 소년을 케어(라고 쓰고 통제라고 읽는다.)하겠다고 나섰고 당연히 잡음, 아니 폭음이 터지기 시작했다. 쾅! “불이야!” “아악! 내 시료가!” “아악! 10억짜리 스퍼터(Sputter)가!” “강현, 이 새끼야!” 근엄한 교수님들 입에서 쌍욕이 튀어 나왔다. 몇 달간 고생한 자료와 데이터는 다행이 살아 있지만 그에 관련한 시료들이 다 날아간 상태. 거기에 비싼 장비까지 망가졌다. 연구를 재개하려면 한참이나 시간이 걸릴 상황이고 그래도 연구를 하겠다면 근처 대학교의 교수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할 상황이었다. 결국 교수들은 매를 들었다. 그래, 과학기술부 장관이 자신이 공부하고 싶은 것을 방해해서 짜증이 나는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주위에 피해를 주면 안되지 않은가? 교수들은 강현의 한강이 되어 화풀이 대상이 된 상황이 심히 마음에 안 들었다. “즈, 증거 있어요?” “옛다.” 교수들 중에서 성격이 가장 치밀하고 냉정한 천마륵 교수가 캠코더를 하나 내밀었다. 거기에는 강현이 스퍼터 장치에 뭔가를 집어 넣고 조작하는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천 교수는 과학기술부 장관이 연구소를 들락날락하면서 아이의 서재에서 함부로 책을 빼내어 폐기할 때부터 지금의 상황을 예견하고 있었다. 자신도 그 새끼가 마음에 안드는데 강현이라고 오죽할까? 분명히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이녀석이 대형사고 한번 칠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천 교수는 강현의 뛰어난 프로그래밍 실력이 CCTV를 해킹 할 것을 가만해 미리 몇 군데의 실험실에 몰래 캠코더를 설치해 놓았다. 발뺌할 가능성을 원천 차단한 것이다. “현아.” “네, 네.” “엎드려라.” 후다닥! “살려주세요!” 강현은 도망치려고 했지만 자신을 둘러싼 7명의 교수들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다. “걱정마라. 그냥 징계를 주는 것 뿐이니까.” 싸가지 없어도 좋다. 천재라면 독불장군 기질도 좀 있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소중한 실험 장비를 날려먹는건 결코 용납할 수 없다. 이공계에게 짜디 짠 이 나라에서 연구 예산 타내는 것이 그리 쉬울줄 아나? 그렇게 강현은 실험 장비의 귀중함을 엉덩이에 새겼고 과학기술부 장관에 대한 원한을 가슴에 새기고 말았다. 그리고 몇 주 동안 강현은 얌전히 연구실에 처박혔다. 그런 소년의 모습에 과학기술부 장관은 흡족한 얼굴로 웃었다. 음, 제대로 갈리고 있구먼. 장관은 소년을 칭찬하기 위해서 다가갔다. “강현 군, 열심히 연구하고 있는가?” 소년은 웬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장관은 나름 감동했다. 소년이 뭔가를 할 때 타인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장관은 자신이 천재 소년에게 뭔가 의미있는 사람이 된 기분이 들어 기분이 좋았다. 무슨 의미인지 알게 되면 그 기분이 급락하겠지만 말이다. 탁! 소년은 옆 탁자 위에 사탕을 하나 두고는 다시 일에 열중했다. “먹으라는 거냐?” 하지만 소년은 대답이 없었다. 장관은 소년의 호의를 무시하지 못해서 사탕을 까서 입에 넣고 말았다. 청량한 맛이 처음 먹어보는 사탕이었다. “그럼 열심히 하거라.” 장관은 갈려나가는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장관실로 돌아갔다. 그가 나가며 닫기는 문을 소년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소년의 얼굴은 무표정했다. 왜냐고? 다시 장관을 볼 일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며칠 후 장관은 심한 아토피 증세로 병원을 찾았다. 병원에서는 심한 알레르기 반응이 원인으로 보인다며 체질 검사를 실시했다. 그러면서 요즘 들어 먹은 식품이 없는지 물어보았다. 장관은 순간 소년이 주었던 사탕을 떠올렸다. 화가 머리 끝까지 오른 장관이 대번에 연구실로 처들어 왔다. “이눔의 시키 어디있어!” 장관의 열받은 모습에 경비원이 와서 말렸다. “놔! 이거놔! 그 개자식 내놔!” 참으로 추한 모습이었다. “무슨 일이래요?” 소년이 나타나자 장관이 경비원을 뿌리치고 소년의 멱살을 잡았다. “켁!” 그의 행동에 주변에 있던 교수들이 장관의 팔다리를 잡아 말렸다. “야! 너 이새끼! 나한테 이상한 걸 먹여?!” “이상한 걸 먹이다니?” 교수들이 표정이 강현에게 돌아갔다. “하아! 제가 먹이기는 뭘요?” 막혔던 숨을 고르던 강현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되물었다. “이 새끼가! 니가 준 그 사탕! 그 사탕을 먹고 이렇게 아토피 증세가 왔단 말이다!” “네? 제가 왜 얄미준 장관 아저씨에게 사탕을 줘요?” 강현이 이상한 사람 다보겠다는 얼굴로 태연히 대꾸하니 장관의 혈압이 머리 꼭대기까지 뻗쳤다. “이 새꺄! 며칠전에 니가 나보고 먹으라고 사탕 하나를 줬잖아!” “어~. 며칠 전이라면 설마!” 소년을 턱에 검지를 대고 곰곰히 생각하다가 떠올린 듯이 놀란 얼굴을 했다. “그래! 이제 생각이 나냐? 이 건방진 호로 새끼야!” “그거 사탕아닌데.” “... 뭐?” 장관은 아토피 유발 사탕이라는 사실에서 다시 진실을 듣고 말았다. “그거 제가 연구하고 있는 중인 고체 연료에요. 물에 녹여서 쓸 수 있는 간편한 연료를 개발 중이었는데 시제품이 없어져서 다시 만들고 있었단 말이에요. 장관 아저씨! 왜 그걸 함부로 먹어서 사람을 귀찮게 해요?” “....” 적반하장이 이런 걸까? 장관은 어이가 없고 기가 막혀서 할 말을 잃었다. “너, 너! 지, 지금 뭐라,” “그나저나 잘됐네요. 인체 독성에 대한 연구를 시작해야 하는데 마침 우리 장관님이 사고로 그걸 먹었다니. 병원에도 다니실테니 증상에 대한 기록을 복사해서 주세요.” 장관은 화가 뻗쳐서 홧병으로 머리가 몽롱해 졌다. “저보고는 열심히 연구하라면서.. 그리고 제 책도 전부 빼앗았으면서 겨우 그 정도도 도와주실 생각도 없어요?” 전부 빼앗은 적 없다. 공밀레에 방해가 될 것 같은 불온 서적(....)을 제거했을 뿐이다. 그리고 장관은 깨달았다. 이것은 자신이 원하는 데로 놔두지 않았다고 천재 괴물이 벌이는 한바탕 연극이었다. 모든 것이 계산되어 있었을 것이다. 자신이 도착하는 시간, 대답했을 때의 반응, 적절한 타이밍에 그 물질을 내놓는 모든 것이. 그리고 분명히 소년은 그 사탕을 먹으라고 말한 적이 전혀 없었다. 장관은 어린 소년에게 완전히 농락 당한 상황을 깨닫자 홧병으로 뒷목을 잡으며 기절하고 말았다. 뇌졸증이었다. “아저씨들, 빨리 병원에 연락 안하고 뭐하세요?” 주위 모두가 장관과 소년의 대화에 상황을 이해하고 넋이 나가 있을 때 소년이 그들의 정신을 깨웠다. 모두 장관을 응급실로 보내기 위해 119에 신고를 하고 다리를 주무르며 응급 처지를 할 때 소년은 유유히 자신의 연구실로 돌아가 버렸다. 그런 소년의 모습을 보는 7명의 교수는 얼굴이 무척이나 어두웠다. = = = = = 장관은 뇌졸증으로 병원에 실려갔지만 심각한 병세를 없었다. 오히려 뇌졸증에 동반한 합병증세들이 눈에 띄게 회복되고 있었다. 너무나 신기한 일이었기에 대학병원 의사들이 혈액검사와 조직검사 등 온갖 검사를 다했다. 그리고는 장관의 혈액에 어떤 특성 물질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획기적인 뇌졸증 치료제의 발견이라고 학회지에 개제했다. 그러나 기쁨은 잠시 그 물질과 완전히 동일한 물질이 이미 나와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명칭은 ‘Soluble Fuel’. 당연히 강현이 논문의 주인이었다. 이 용해 연료는 벤젠고리를 포함한 식물성 알칼로이계의 물질로 물과 1:5로 녹여 사용하는데 알콜의 약 10분의 1의 칼로리를 만들어내고 작은 1기통 엔진이 돌아갈 정도의 폭발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강현의 논문에서 결론은 채산성 없음. 많은 개량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당연한 일이었다. 용해 연료는 눈가림이고 목적은 환경호르몬 물질을 이용해 재수 없는 장관 골탕먹이기 였으니 말이다. 뭐 뇌졸증으로 병원에 실려간 것이 좀 미안하기는 했지만 화를 참지 못한 건 장관 탓이 아니던가? 한 나라의 장관이란 인간이 정신수양이 겨우 그정도라니, 쯧쯧쯧. 하지만 강현이 생화학적인 특성을 갖출 수 있도록 온갖 작용기를 갖다 붙였고 그중에 뭐가 무슨 복잡한 작용을 했는지 장관이 뇌졸증에서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행이기는 한데 그 인간 얼굴을 또 다시 볼 생각을 하니 기분이 안 좋아진다. 그래, 쪼잔하게 간지럼이 뭐냐? 화끈하게 다리라도 부러뜨리면 한 달간 안 볼 수 있을 것이다. 강현이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장관을 골탕 먹이기 위한 계획을 짜는 동안 무슨 대학병원에서 자신이 개발한 물질이 뇌졸증에 특별한 효력이 있기에 심층적으로 연구하고 싶다는 전갈을 보내왔다. “그러세요.” “강현 군, 특허권은 어떻게.” “알아서 하세요.” 강현은 더 이상 그 물질에 관심이 없었다. 장관이 없는 동안 열심히 하던 프로그래밍을 마무리 지을 생각이었다. 강현이 프로그래밍을 하는 것은 하나의 OS였다. 사실 OS라는 것은 프로세서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제대로 된 성능을 발휘하기 힘들었다. 강현이 만든 것도 OS의 가장 기초가 될 소스의 덩어리에 불과했다. 그리고 강현이 만든 OS보다 발전하고 뛰어난 OS도 많았다. 그러나 강현은 자신이 만든 OS에 애착을 가졌고 틈틈이 취미 삼아 코딩을 했다. 그러면서 하나의 프로세서를 구상하기 시작했으니 그것은 폰노이만 방식의 순차적 연산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한 것이었다. 사람은 밥을 먹으면서도 뉴스를 보고, 걸어 다니면서도 음악을 들으며 고개를 까딱거릴 수가 있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뇌가 각 부분을 통제할 수 있도록 무의식적인 단계에서 분할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컴퓨터에 비유를 하자면 CPU와 GPU의 관계라고 할까? 중앙 제어장치의 연산을 그래픽 카드가 보조해 모니터로 출력하여 좀 더 좋은 그래픽을 보여줄 수 있는 원리와 같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최첨단 그래픽 기술을 CPU만으로 모두 처리하기에는 데이터 양이 너무 많다. 그리고 최근에는 그 마저도 뛰어넘어 멀티 코어 CPU가 등장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강현이 원하는 것은 그것을 넘어선 구조였다. 사이버 세계를 하나의 세계로 친다면 그 사이버 세계를 구성하는 소프트 웨어는 사이버 세계의 물질과도 같다. 즉, 사이버 세계의 관점에서 보면 소프트 웨어는 곧 하드웨어인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현재의 OS는 정교한 기계장치로 이루어진 태엽머신에 불과한 것이다. 컴퓨터의 성능 향상을 고작 코어의 수를 늘리는 것으로 대응하다니. 뭐랄까? 강현의 눈에는 혁신을 이루어 낼 수 없어 규모만 늘리는 꼴이라고나 할까? 강현이 원하는 것은 사이버 세계의 소프트 웨어였다. 그것은 자율적으로 각 연산에 필요한 메모리를 할당하고 각 메모리가 스스로 연산을 하도록 하는 뇌를 닮은 컴퓨터의 소프트 웨어인 것이다. 지금의 컴퓨터에 비유하자면 CPU의 CPU라고나 할까? 각 코어에 어느 만큼의 데이터를 할당할 것인지 판단하는 OS의 기초가 지금 강현이 만들어 낸 것이다. 차후 그가 꿈꾸는 컴퓨터를 만들기 위해서는 코어를 대량 집적한 수준의 프로세서가 필요했고 강현은 그것을 인지했다. 하지만 코딩 작업은 재미있지만 지루하고 시간이 많이 가는 작업이었다. 가끔 심신이 지칠 때 쉬면서 할 정도는 되었다.(전 세계의 프로그래머에게 사과해라.)강현이 장관이 없는 유유자적한 라이프를 즐기고 막 다른 연구 소재에 흥미를 느낄 때쯤이었다. ‘장관이 돌아왔다.’ 7화 <02-미국 유학> 건강하게 살아 돌아온 장관은 사람이 변했다. 죽음의 위기 앞에서 무언가를 느꼈는지 사람이 몹시도 유해졌다. 단, 강현을 제외하고서 말이다. “왜 예산을 안 주는데요?” “채산성이 없다.” “이 연구는 충분히 돈이 된다구요!” “국가의 정책과 방향이 맞지 않다.” “....” 소년은 처음으로 예산을 휘두르는 자의 횡포에 마음에 상처를 입고 말았다. “쪼잔한 인간!” ‘돈! 돈이 필요해!’ 때마침 NASA에서 소년이 개발한 인공 광합성 장치의 시연에 개발자인 소년을 초청했다. 속이 뻔히 보이는 수작이라 정부차원에서 소년에게 전갈이 가는 것을 막았지만 소년은 어떻게 알았는지 강력하게 가고 싶다고 주장했다. 하루는 소년이 몰래 연구실에서 나와 장관실을 찾아왔다. “저 미국 가요.” “허락할 수 없다.” “허락 받으려고 온 거 아니에요. 통보하러 온 거지.” 뭐? 통보? 기겁한 과학기술부 장관은 직원들을 시켜 소년을 잡으려고 했지만 소년이 고용했다는 경호원들이 막아 섰다. 물론 고용에 편의를 봐준 것은 NASA였다. 미국은 이미 한국 국가 기관이 소년의 자유를 제한할 것을 대비하여 소년이 안전하게 미국에 올 수 있도록 인원을 파견한 것이었다. “.....” 과학기술부 장관은 통보를 마치고 돌아서는 소년의 등을 보며 망연자실 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장관을 부랴부랴 관련 부서에 소년이 한국을 떠나는 것을 막아 달라며 도움을 요청했지만 이미 소년은 미국 대사관으로 들어간 외교관 용 차와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떠나버렸다. 장관은 닭 쫓던 개 꼴이 되어버렸다. 차후 이 상황이 장관이 예산을 이용하여 소년을 길 들이려는 시도로 인한 것임이 밝혀지자 많은 말들과 소란이 일어났지만 이미 미국으로 가버린 소년에게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Welcome!” 소년이 공항에 들어서자마자 NASA에서 나온 직원들이 소년을 환영했다. 천재에게는 매우 관대한 미국인의 특성이 소년에게도 적용된 것이다. 소년이 NASA에 도착하니 소년을 위해서 파티가 개최되었다. 낯선 땅의 음식이라 소년의 입맛에 맞지 않을 지도 모르지만 소년은 잘도 음식들을 먹었다. 소년과 친분을 맺고 싶은 연구자들이 소년에게 이것 저것 호감 어린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는데 소년은 흥미 있는 질문에만 성실하게 대답했고 그렇지 않은 질문에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소년의 이런 태도는 미국 정보부에 들어가 소년의 성향을 분석하는 요긴한 자료로 쓰였다. 내향적, 하지만 소극적이지는 않음. 자신이 관심을 둔 것을 제외하면 신경쓰지 않음. 미국의 대응 방침은 소년에게 적극적인 지원이었다. 자신을 키워준 나라를 버리고 연구를 위해서 미국으로 와버린 만큼 연구만 원활하게 할 수 있다면 미국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미국은 어린 나이에 배터리 기술과 인공 광합성 장치를 개발한 천재에게 그 정도 지원을 해줄 생각이 있었다. 한국의 국회의원들 중 소년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해야한다고 주장했던 의원들은 멘붕 상태에 빠졌다. 소년에게 차세대 메모리 개발을 의뢰하려고 했던 샘성은 그때까지 관련자들에게 먹인 뇌물이 헛수고가 되어 버렸다. 결국 책임론이 대두되면서 소년을 위해서 만든 연구소에 대한 예산안을 처리했던 의원들이 역풍을 맞게 되었는데 명분은 ‘역시나 공부보다는 인성’이란 구호였다. 아무리 공부 시켜봤자 뭐하나? 지 마음대로 외국으로 나가 버리는데. 하지만 웃긴 것이 무한 경쟁 체제로 아이들에게 공부만 강요하는 세태에서 저런 말을 한다는 것이다. 책임론을 맞은 의원들은 어떻게든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서 미국으로 왔다. 강현을 만나서 어떻게든 한국으로 돌아오도록 설득해야 했던 것이다. 미국은 의원들이 소년을 만나는 것을 방해하지 않았다. 소년이 거부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생각과는 달리 소년은 의원들을 만나기로 했다. 급작스런 사태에 미국은 대처방안을 모색했다. 하지만 별다른 걱정은 하지 않았다. NASA에서 소년은 매우 즐겁게 열정적으로 연구를 하고 있다는 정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강현 군.” “잠시만요.” 의원은 강현을 만나자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지만 강현이 먼저 말을 막았다. 그리고는 USB를 하나 꺼냈는데.. “여기까지 오신 거 수고가 많으셨구요. 이건 대한민국 정부에 주는 제 양육비요.” 양육비? 의원들의 정신이 멍해졌다. “그 동안 제대로 연구도 못하게 하면서 은혜를 갚아야 한다, 아니면 사람도 아니다는 둥 짜증나게 해서 갚으려 구요. 평가금액 5천억원짜리의 정보통신 기술이에요. 기준은 미국 기준이 아니라 한국 기준에 맞췄으니까 확실할 거에요.” 기술은 빼먹는 것, 남이 개발한 것을 도용하는 것. 그런 나라에서 평가금액 5천억이라면 제대로 가격을 매겨주는 나라에서는 1조가 넘을 기술임이 확실했다. “그럼 이만. 저는 연구가 바빠서.” “자, 잠깐!” 의원들이 강현을 잡으려고 했지만 강현은 이미 총총총 뛰면서 제한구역 안으로 들어갔다. 의원들은 소년의 뒤를 따라가려고 했지만 경비가 막아서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것으로 소년과 대한민국의 인연은 끝난거나 다름없었다. = = = = = “현! 이것 좀 봐봐!” 강현은 제시의 부름에 얼른 달려갔다. 제시는 NASA의 재원으로 젊은 나이에 박사학위를 딴 천재였다. 공학박사라고 믿어지지 않는 금발 미녀라 NASA의 다른 직원들의 마돈나이기도 한 그녀가 현재 연구하고 있는 것은 인공생명의 개발이었다. 지금도 DNA 합성장치를 이용해서 기초적인 바이러스는 얼마든지 제조할 수 있는 기술들이 있지만 바이러스와 세포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인공생명이라는 것에 흥미를 느낀 강현은 요즘 제시의 연구를 도와주고 있었다. “이건 리보솜이잖아?” 리보솜은 세포내 소기관으로 단백질 합성을 담당한다. 즉, 세포 내부의 제조공장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게 왜?” “잘 보라니까.” 제시의 말에 강현은 전자현미경을 들여다 보았다. 그가 보는 리보솜은 그 크기가 작았다. 크기로 봐서는 리보솜의 소구조체로 생각된다. 그런데 지금까지 보아왔던 리보솜과 모양이 좀 달랐다. “응? 리보솜이 개체에 따라서 모양이 다른가?” 강현이 알기로는 리보솜의 구조는 모든 생물이 같은 것으로 알고 있었다. “이거 정상적으로 작동하기는 해?” “물론이고 말고!” 제시가 기쁘게 외쳤다. 그리고 현은 놀라운 발견이라는 것을 알았다. 리보솜은 아미노산을 합성해 단백질을 형성하는데 합성순서에 따라서 수많은 종류의 단백질이 만들어진다. 이는 마치 4진수 컴퓨터에 비유할 수 있는데 비트의 배열에 따라 프로그램이 바뀌는 것과 비슷했다. 즉, 아미노산의 합성순서가 가지는 의미를 알 수 있다면 인류는 그 어떤 단백질도 합성할 수 있게 된다. 이를 신의 언어라고 비유할 수 있는데 결국 탄소 기반 생명체는 단백질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리보솜은 DNA의 정보가 현실에 실현될 수 있도록 단백질을 합성하는 컴파일러에 비유할 수 있었다. 컴파일러가 프로그래밍 언어로 코딩된 파일을 컴퓨터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기에 적절한 비유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제시가 발견한 것은 다른 구조의 리보솜. 즉, 이 리보솜을 기존의 리보솜과 비교하여 어떤 부분이 DNA의 컴파일을 하는 것인지 어떤 작용을 하는 것인지 파악할 수 있다. 이것은 컴퓨터에 비유하자면 컴파일러의 구조를 해석하는 것으로서 생명의 구조가 어떻게 형성되는 것인지 파악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발견인 것이다. 강현은 제시가 보여준 리보솜의 구조에 빠져들어갔다. “그래서 부탁할게 있는데..” 제시는 강현이 자신의 말을 듣고 있는 것 같지 않자 입을 다물었다. 강현은 다른 건 다 좋은데 이렇게 뭔가에 빠지면 주변을 전혀 신경쓰지를 않았다. 강현은 한참이나 새로운 리보솜의 모습을 관찰하다가 고개를 돌렸다. “시료 좀 나누어줘.” “여기.” 제시는 강현이 무슨 요구를 할지 그 동안의 경험으로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분명히 더 깊은 연구를 위해서 그에 관련된 요청을 할 것이다. 이번에는 이 신형 리보솜의 단백질 구조를 심층 분석하기 위해서 시료를 나누어 달라고 할 것이 분명했다. 단백질은 그 구조가 펩티드 결합을 한 아미노산의 사슬형태다. 하지만 구조적으로 접히고 접혀서 대부분은 덩어리 모습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덩어리의 기하학적인 형태가 단백질의 기능을 결정하고 생화학적인 현상을 일으킨다. 때문에 단백질의 구조 결정은 많은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었고 자료가 방대해 인간의 힘만으로는 매우 힘들기 때문에 컴퓨터의 도움을 받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강현의 장점이 여지 없이 발휘된다. 그의 장점이란 기이할 정도로 정확한 직감이다. 어떤 논리적 사고를 초월해 정답을 도출하는 것이다. 그 직감이 얼마나 잘 들어 맞는지 NASA의 동료들은 강현의 그 능력을 ‘신의 계시’라고 경외할 정도다. 이번에도 단백질 구조 분석과 정확한 구조의 예측에 강현의 능력이 아낌 없이 발휘되었다. 그리고 강현은 시료를 받아간지 일주일 후에 단백질 구조를 예측한 3D 데이터를 가지고 제시에게 돌아왔다. 원래는 날밤을 세어도 족히 한 달은 넘게 걸리는 작업이었다. “여기.” 얼마나 집중을 한 것인지 강현의 얼굴은 쾡해 있었다. 얼굴은 수척해 지고 눈밑에는 다크 서클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벌써 끝낸거야?” “난 좀 잘게.” 제시가 놀라서 물어봤지만 강현은 대답도 하지 않고 휴게실로 향했다. 아니 향하려고 했다. 가지 못했다. 제시가 그를 끌어당겨 품에 안아 버렸기 때문이다. “제, 제시?” 강현이 당황했다. “자, 자. 무리하지 말고 푹 자.” 피끓는 사춘기에게 지금 상황에서 자라고 하는 것인가? 이 풍만한 가슴에 얼굴을 묻은채 말인가? 하지만 강현은 잤다. 일주일 동안 식사도 거의 거르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해서 졸음은 밀려오고 버틸 체력도 없었다. 게다가 하얀 색 실험복 너머로 느껴지는 제시의 체온은 따뜻했고 몸은 부드러웠다. 푹신한 침대에 누워있는 기분이었다. “쿨~.” 강현은 어느새 푹 잠이 들고 말았다. “너, 그거 범죄인건 알아?” 같은 연구실을 쓰는 동료인 사브리나가 연구실 반대편에서 고개를 빼들고 말했다. 사브리나는 이미 결혼을 했고 아이까지 있는 아줌마였다. 그녀가 말하는 것은 엄격한 청소년 보호법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아직 법적으로 성인이 되지 않은 강현을 제시가 침대에 끌어들이면 징역을 살게 될 것이다. 직장에서 짤리는 것도 당연했고. “나는 바보가 아니야.” 제시가 입을 삐쭉 했다. 그녀는 바보가 아니었다. “너 좋다고 따라다니는 잘생긴 남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고작 그런 어린애라니.” 사브리나는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었다. “강현이 고작 어린애라니? 너 지금까지 얘같은 천재를 본적이나 있어?” “하긴..” 제시의 말에 사브리나는 공감했다. 강현은 마치 지금까지 나타난 모든 천재를 종합한 것 같았다. 폰 노이만의 두뇌 속도, 아인슈타인의 창의력,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다양한 분야에 대한 지식과 응용, 거기에 불가사의한 직감까지. 거기에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만심도 없고 열정적으로 목표하는 것에 빠져드는 노력의 재능도 있었다. ============================ 작품 후기 ============================ Estel 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로터리 엔진이란게 있습니다. 여기에서 저도 아이디어를 얻어왔죠. 소설 속 세상에서는 로터리 엔진이 개발되지 않았다고 가정했습니다. 의외로 제 주변에 자동차에 대해서 관심이 적으신 분들을 로터리 엔진에 대해서 잘 모르시더군요. 심지어 자동차를 가지고 계신 분들도요. 로터리 엔진. 궁금하신 독자분들께서는 한 번 찾아보시는 것도 좋을듯합니다. 기술적인 아름다움이 뭔지 실감하실 수 있을 겁니다. 8화 “그래서 걔랑 사귈려고?” 사브리나의 말에 제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17살이지? 18살까지 생일이 얼마 안 남았네. 두 달만 있으면 정식적으로 사귀어야지.” “... 아주 단단히 마음을 먹었구나.” 강현의 법적 성인 날짜까지 체크하고 있다는 제시의 말에 사브리나가 어이가 없어한다. “당연하지. 내 인생이 이런 남자를 또 만날 수 있을리가 없잖아?” “....” 이번에는 남자란다. 나이가 열 살이나 차이가 나는 주제에. “나는 모르겠다. 알아서 해라. 그리고 걔는 아직 미성년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라고.” “나는 바보가 아니야.” 제시는 아까 전 했던 대답을 반복했다. = = = = = 강현의 유학생활은 매일 매일이 만족의 연속인 나날이었다. 뭘 공부하든 무엇을 연구하든 간섭하는 사람이 없었고 오히려 도와주는 사람이 주위에 넘쳐났다. 법적으로 강현이 아직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학교에 다녀야 한다는 문제가 있었지만 미국 정부에서 조기 졸업이 가능한 학교에 강현을 입학시켜 주었고 강현은 바로 졸업시험을 치루어 학교를 졸업하는 기염을 토해냈다. 강현은 대학에는 가지 않았는데 솔직히 대학에 가 봤자 공부하는 것은 스스로 하는 것이었고 원서만 있으면 뛰어난 이해력을 앞세워 다른 사람의 강의를 들을 필요도 없었다. 솔직히 강현이 다른 대학생들과 같이 수업을 듣는다는 것은 스스로에게는 시간 낭비고 그 대학생들에게는 민폐에 불과했다. 그래서 강현은 바로 NASA에 들어왔다. 미국에서는 이미 그에게 미국 시민권을 부여한 상태라 취업에 법적인 문제는 없었다. 있었더라도 NASA에서 적극적으로 대처했을 것이다. 강현이 NASA에서 생활한 3년 동안 그가 내 놓은 논문과 특허가 합쳐서 20건이나 된다. 그 중에 기초 지식에 관련된 것만 해도 10건이고 나머지 10건은 기술 응용 분야에 관한 것인데 강현에게 매년 1억 달러의 로열티 수입을 가져다 주었다. 특히 자체 메모리 연산 모듈칩은 전 세계 컴퓨터 제조 회사들이 탐을 내는 것이었다. 왜냐면 연산 회로가 곧 메모리이고 메모리가 곧 연산 회로가 될 수 있어서 이 칩을 많이 달기만 하면 CPU를 개발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자체적으로 정보를 저장하고 다른 칩으로 정보를 전달하며 연산하는 이 칩은 마치 특성이 뇌세포와 닮아 있기 때문에 뉴로칩이라는 모델명이 붙었다. 메모리와 연산회로가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정보를 전달하는 버스의 확충이 필요없어진다는 장점도 있었다. 자체적으로 버스에 스크립트가 과도하게 몰리면 병렬연결된 회로를 따라 다른 칩으로 데이터를 전달하기 때문이었고 이로 인해서 메인보의 구조 역시 극히 간단하게 구성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역시 문제는 발열과 집적도였다. 발열문제를 해결하기 전에는 병열연결에 제한이 있을 수 밖에 없었고 집적도 문제를 해결하기 전까지는 기존의 컴퓨터보다 크기가 훨씬 커질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지금은 실험적 목적으로 아즈삭이라는 명칭의 인공지능형 컴퓨터를 만들어 실험하고 있었고 그 목적은 이 폰 노이만 방식을 벗어난 디지털 연산장치를 위한 프로그래밍 언어의 개발이었다. “하아.. 그거 나오면...” 이 소식을 들은 전 세계 컴퓨터 개발자들은 한 숨을 내쉬는 수 밖에 없었다. 일단 이 새로운 형식의 컴퓨터가 나와서 어떤 성능을 발휘하기만 한다면 그에 밀려버리는 부품제조 업체도 있을 것이고 개발자들은 새로운 형식의 컴퓨터를 위한 프로그래밍 언어를 공부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강현은 아즈삭을 만지작 대면서 ‘놀고’ 있었다. [아즈삭. 오늘은 뭘 했니?] [의미 불명.] 강현은 역시나 기억된 명령어가 아니면 제대로 처리를 못하는 컴퓨터에 한 숨을 내쉬었다. 프로그래머들처럼 일일이 이때는 이렇게 해야 하고 저 때는 저렇게 해야 한다는 코딩은 지겹다. 처음이야 그 단순 명쾌한 논리적 구조가 흥미롭고 재미있었지만 그것을 영원히 반복해야 한다는 것은 지겨움을 도출할 뿐이었다. 그래서 강현은 뉴로칩을 만들었다. 바이오 시밀러. 생물을 모방하는 기술을 통해 그 생물이 보이는 특성을 공학적으로 재현하고 이용하려는 의도였고 강현은 굳이 일일이 코딩을 하지 않아도 외부의 반복적인 자극을 통해 자체적으로 반응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내려고 했으니 그것이 바로 아즈삭이었다. 어찌보면 제시가 연구하는 중인 생명창조와 매우 비슷한 분야이기는 했으나 제시가 하드웨어적인 부분에 집중하고 있다면 강현은 그 하드웨어에 담기는 소프트웨어, 영혼이라고 할 만한 것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가 뭘까?’ 강현은 다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왜 아즈삭은 여전히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할 뿐인 계산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까? 덕분에 지겨운 코딩을 반복해야 하지 않은가? “어이, 강현! 식사하러 가자!” 컴퓨터 개발과의 잭이 강현을 불렀다. 하지만 역시나 강현은 팔짱을 끼고 눈을 반개한 채 생각에 잠겨 있을 뿐이다. 잭은 그런 강현을 한 두번 본 것이 아니라서 강현이 앉은 의자를 밀면서 같은 층에 있는 식당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강현은 자신의 연구실을 벗어나서야 잭이 자신이 앉은 의자를 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강현은 당황하지 않았다. 잭이 이런 일을 하는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잭. 벌써 밥 먹을 시간이야?” “Oh, Boy. 드디어 정신을 차렸니?” “정신이야 언제나 차려져 있지.” “푸하! 그거 참 재밌는 농담이군.” NASA에 있는 강현의 동료들은 강현이 생각의 바다에 잠기는 버릇을 두고는 ‘승천(Ascension)’이라고 불렀다. 어딘가에 있는 과학의 신을 만나러 간다는 우스게 소리였지만 그만큼 강현이 세상에 끼친 영향은 놀라웠다. 인공 광합성 생성 모듈의 개발을 응용해 인공적으로 알콜이나 고분자를 만들어 내는 방법을 발견해 석유의 가격을 매우 낮추었다. 덕분에 석유업체의 주식과 유가는 성장을 멈추고 오히려 하강하는 모습을 보였다. 오죽하면 석유 관련 회사들이 강현을 죽일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루머가 돌 정도였을까? 하지만 강현은 NASA에서 거의, 아니 모든 생활을 누리고 있었기 때문에 강현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는 것은 NASA에 무슨 일이 생긴다던가 아니면 NASA의 보안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미국은 강현을 보호할 수 밖에 없었다. 실제로 소문만으로 NASA의 보안에 필요한 예산이 증가했다. 미국의 시민이 된 강현은 미국의 보물로 관련 업계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현. 제시랑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게 사실이야?" "응?" 잭의 말에 강현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건 왜 물어?" "당연히 궁금해서 물어보는거지." "왜 궁금한데?" "모두의 마돈나인 제시가 너랑 아무 친밀하게 지내니까 그렇지." "왜 제시가 마돈나야?" "왜긴. 이쁘니까. 섹시하잖아." 자꾸 Why를 물어오는 강현의 화법은 처음 대하는 사람에게는 당황스러울만 하지만 자주 대하는 이에게는 강현의 개성 정도로 인식 된다. "하긴, 제시가 예쁘기는 하지." "후후, 태연하구나. 하지만 정말로 어때? 제시가 만일 사귀자고 제안해 오면?" "나야 좋지. 제시는 예쁘고 똑똑하잖아." "똑똑하지 않으면?" "골 빈 여자에게는 관심없어." "예쁘지 않으면?" "얼굴 보고 역겹지만 않으면 괜찮지 않나?" 잭은 강현의 덤덤함에 한 숨을 내쉬었다. 강현의 태도는 피 끓는 청춘의 모습이 아니었다. 제시의 풍만하고 유혹 넘치는 자태를 보고도 반응이 겨우 이 정도에 불과하다니.. "사귀기는 할 거구나?" "좋기는 좋잖아." 강현의 담담한 태도는 좋아하는 남자의 자세가 아니어서 전혀 설득력이 없었다. "사귀면 데이트는 어디서 할거야?" "데이트?" 강현이 무슨 헛소리를 하냐는 어조로 물었다. 하지만 잭은 집요하게 캐물었다. 궁금한 것을 참지 못하는 것은 그의 나쁜 습관 중의 하나였다. "밖에 나가면 날 죽이려고 하는 사람이 넘쳐나서 못해." 담담한 목소리로 섬뜩한 말을 늘어놓는 강현이었다. 잭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자, 잠깐. 방금 그거 무슨 이야기야? 난 처음 듣는데?" "어라? 인터넷만 돌아다녀도 날 죽이고 싶은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를 알 수 있는데 몰랐던 거야?" "Oh! Boy! 그거 전부 헛소문이야." "사실이야." "….." 소년의 단언에 잭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 그걸 어떻게 알아?" "아즈삭으로 조사해 봤거든. 그랬더니 날 죽이라고 여기저기서 히트맨을 고용한 자금 흐름이 나오더라." 잭의 얼굴이 더 심하게 굳었다. 강현이 조사해서 확인했다는 것도 놀랍지만 설마 그 프로토 타입의 컴퓨터가 강현 혼자서 그런 작업을 할 수 있게 해줄 정도였다는 것은 경악스러울 정도였다. "어딘데?" 잭이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디긴. 석유 회사를 거느린 재벌 가문들이지. 나 때문에 심하게 손해를 봤나봐." "구체적으로?" "일단 중동쪽에서는 왕족을 제외한 석유 부자들하고 유럽에서는 석유에 투자했던 사람 몇이랑 아시아에서는 없고 아메리카에서는 록팰러 그룹에서." 잭이 긴장감 없는 강현에게 열불을 토했다. "왜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지?" "알려봤자 변하는 건 없잖아." "뭐?" "상대는 증거를 조작하고 법을 뒤틀 정도로 능력이 있는 이들이니 내가 그들을 고소해 봤자 별로 효과는 없어. 게다가 그들이 조직적 차원에서 일을 벌인 정황이 있어도 개인적 일탈이라고 주장하면 정부가 그 주장에 힘을 실어 줄걸? 괜히 공룡을 건드려서 분란을 조장하기는 싫을 테니 말이야." "…." 잭은 입을 다물었다. 현의 말이 틀리지는 않았다. "게다가 그들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야. 나도 누군가 내 일을 방해하면 가만 안 놔두잖아." 현의 말에 잭이 '맙소사'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이마를 손바닥으로 덮었다. 소년의 사고 방식이 전혀 납득이 되지 않는 잭이었다. "… 그러지 말고 그들을 퇴치해 버리는 게 어때? 너라면 할 수 있지 않니?" "세계 3차 대전을 일으키고 싶은 생각은 없어." "….." 이건 또 무슨 소린가? 느닷없이 3차 대전이라니. "뭐, 내가 가진 돈이랑 기술을 좀 풀면 나를 죽이려고 히트맨을 고용한 이들을 처리할 수 있지만 그렇게 세계 경제의 밸런스가 급격하게 뒤틀리면 반드시 전쟁이 일어날걸?" "….." 잭은 강현의 설명에 그렇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감히 NASA와 미국의 귀중한 인재를 죽이라고 히트맨을 고용한 그들을 가만히 놔둘 수는 없었다. "… 경고는 어때?" "경고?" 그렇다. 적어도 경고 정도는 해줘야 그들이 감히 경거망동을 하지 않을 것이 아닌가? 강현은 잠시 생각을 했다. 경고라.. 왜 지금까지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독개구리의 붉은 경고색처럼 약간의 투자로 자신을 귀찮게 하는 많은 것들을 멀리할 수 있는 방법이지 않은가? 하지만 사실 강현은 그런 걸림돌을 처리하는 것 역시 즐기고 있었다는 것을 자각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아무튼 그는 좋은 아이디어를 낸 잭을 칭찬했다. "….. 오! 그거 정말 좋은 생각이야! 역시 잭은 똑똑해." 소년의 말에 잭은 썩소를 지었다. 세기의 천재에게 똑똑하다는 말을 들으니 꼭 욕 먹는 기분이 들었다. 소년과의 식사를 마치고 잭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자신의 노트북을 열었다. [프로메테우스를 위협하는 자들이 존재. 록팰러 그룹도 포함. 히트맨이 NASA 주변에 잠복하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음. 더 많은 지원이 불가피.] 9화 메모장으로 작성된 그 파일은 잭이 연결한 수상하게 생긴 단말기로 전해졌다. 그리고 단말기에서 '암호화 전송'이라는 막대 그래프가 점점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렇다. 잭은 미국 정보부의 요원이었던 것이다. 미국에서 강현의 감시 밑 보호를 위해서 그를 NASA에 위장 잠입시켰다. 물론 잭의 능력이 NASA의 채용기준에 맡지 않았다면 불가능 했을 것이다. 또 프로메테우스란 강현을 가리키는 암어였다. 프로메테우스. 티탄 족 출신의 신으로 제우스에게 벌을 받아 독수리에게 영원히 간을 쪼이는 형벌을 받는 존재로 그가 벌을 받는 이유에는 두 가지 버전이 있다. 먼저 무지한 원시 인류에게 문명으로 상징되는 불을 주었다는 이유, 다른 하나는 제우스가 제우스 자신의 미래를 보여 달라는 것을 거부했다는 이유. 현재 과학 문명의 수준을 부쩍 끌어올리고 있는 강현에게는 여러모로 어울리는 코드명이었다. = = = = = 잭의 조언을 들은 강현은 행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곧 석유업계 전반을 공포에 떨게 할 계획을 기획했다. 이른바 허허실실. 강현은 연구실에서 한동안 나오지를 않았다. 동료들은 의례 그러려니 생각했지만 호기심을 막을 수는 없었다. 이번에는 또 무슨 기상천외한 결과물을 들고 나올 것인가? 결과는 한 달 후 그가 밖으로 나왔을 때 알려졌다. [석유 대체 재료 제조 공법] 과학 기술 문명이 강력하고 위대한 이유는 거대 설비를 이용한 공장제 생산 방식에 있었다. 제조 비용은 줄이면서 사람들이 원하는 물품을 공급할 수 있다는 것은 사람들의 생활의 질이 전반적으로 올라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공장들이 운영되기 위해서는 하나 같이 어떤 동력원이 필요하다. 그것이 가축의 힘을 이용한 것이든 수력이든 화력이든 말이다. “우와! 이거 설마 태양빛으로 돌아가는 거야?” “응. 거의 비슷해. 그리고 이미 연구되고 있는 녹조류를 이용하면 석유를 완전 대체할 수 있을 걸?” “녹조류를 이용한 플랜트는 이미 연구되고 있을 텐데..” “녹조류는 갈거나 효소, 세균을 이용해서 고분자화 된 단백질 구조를 부수는 작업을 또 해야하잖아. 에너지 손실이 생길 수 밖에 없지. 하지만 차라리 녹조류 자체가 필요한 물질을 생산하면 에너지 손실이 덜 가잖아.” “그게 가능할까?” 잭의 의문에 데나가 약은 시약병을 몇 개 꺼내어 들었다. 시약병은 초록 빨강 파랑 등 다양한 색깔을 가지고 있었다. “이게 이번 연구 결과의 핵심이야.” “그게 뭔데?” “유전자 조작한 녹조류. 요건 에탄올과 메탄올을 합성하고 요건 그것으로 에스테르 결합이 잇는 사슬 형태의 고분자를 합성하고 요건 알칸족을 합성하고 요건 고리형으로 만들어.” “벤젠이 빠졌잖아.” “벤젠은 아무래도 DNA레벨에서는 합성이 어려운 것 같아. 단일결합과 이중결합의 공명구조가 너무 안정해서 일반적인 환경에서는 바이오 공법으로는 어려워.” “그럼 석유의 가치가 사라지지는 않잖아.” 벤젠은 현대 화공학과 각종 생활물품에 빠지지 않는 필수 물질이었다. 강현의 계획에서 석유의 가치 하락은 필수적인 단계였다. “그래서 준비했지.” 잭의 걱정에 강현은 컴퓨터 화면에 무언가를 출력했다. “짜잔! 포도당을 이용한 벤젠 합성구조 공법이야.” “..... 대, 대단한데?” “포도당역시 6각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에 착안해서 불필요한 산소를 탄소로 치환시키는 방법을 구상했지. 결과는 벤젠이 아니라 톨루엔이 생산 되지만 톨루엔에서 벤젠으로 변환시키는 건 어렵지 않잖아.” 이미 1877년에 크리델 크레프트 공법으로 벤젠을 톨루엔으로 만드는 방법이 고안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역반응으로 울프키쉬너 반응이나 크리멘델 반응을 이용하면 톨루엔을 벤젠으로 만들 수도 있다. 벤젠의 공명구조가 무척이나 안정한 덕분이었다. “하지만 이걸로 석유의 가치가 위협을 받을까?” 잭은 강현의 연구결과를 듣고서 그것의 장점과 약점을 짐작할 수 있었다. 강현의 말대로라면 인류는 석유의 부족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석유와 다르게 다양한 크기와 종류의 탄화수소를 충당하는 문제에 있어서 아무래도 중간 공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채산성의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이냐의 문제가 남아있었다. 대량으로 생산되고 소비되는 산업 일수록 채산성은 그것이 소수점 자리의 효율이라고 해도 큰 문제가 된다. “뭐 어때? 만들어 질 것 같다고 말만하고 채산성은 안 밝히면 되잖아. 중요한 자료도 발표하면 안되겠네.” 잭은 할 말을 잃었다. 지금 연구한 결과만 발표해도 세상이 뒤집어질 정도인데 더 이상 연구를 안 하겠다고? “....” “안 그래도 채산성을 계산하기도 귀찮은데 발표만 하고 놔두면 되겠네.” “.....” “그리고 이렇게 석유 회사의 오너들에게 메일을 보내는 거야. 더 이상 나를 위협한다면 당신네들 사업을 망하게 해버리겠다고.” “....” “아~. 진작에 이랬어야 하는데. 속이 확 풀리네. 고마워, 잭.” “.....” 정보부 요원으로서 잭은 고민이 깊어지고 있었다. = = = = = 강현의 논문은 한꺼번에 발표되지 않고 하나하나 차근히 발표되기 시작했다. 포도당으로 톨루엔, 벤젠을 만드는 촉매공법부터 시작해서 탄화수소를 만들어내는 녹조류를 하나 하나 발표하기 시작했다. 시장의 반응은 매서웠다. 금방 유가가 폭락하고 증시가 요동쳤다. 강현이 등록한 라이센스의 사용권을 획득하기 위해서 바이어들이 줄기차게 NASA를 방문했지만 강현의 거주지역은 특급 비밀에 준하는 취급을 받았다. 물론 아무리 기다려도 연구소 밖으로는 한 걸음도 하지 않는 강현이기에 만나지도 못했다. “....” 이런 와중에 록팰러는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편지의 발신인은 Dr. Kang. 록팰러로서는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가 없었다. 스텐다드 오일 컴퍼니의 주가를 곤두박질 치게 만든 과학 괴물이 아닌가? 그는 서재의 레터 나이프로 봉투를 잘랐다. 안에는 편지가 하나 있었다. ‘돈 많은 록팰러씨에게. 안녕하세요. 닥터 강입니다. 요즘들어 근심이 많으신 것으로 압니다. 당연하죠. 제가 그 장본인인데요. 그러게 왜 그런 짓을 했나요?’ 그런짓? 록팰러의 눈살이 찌부려졌다. 처음 듣는 소리다. ‘어떻게든 제가 만든 기술의 라이센스를 따내고 싶으시겠죠? 그렇다면 성의를 보이세요. ‘그 일’을 주도한 인간을 처리해 주세요. 용서는 없습니다. 한 번 한 행동은 두번째하기는 너무 쉽거든요. 그럼 이만.’ 직설적이고 무례하기 짝이 없는 편지였다. 하지만 편지에 담긴 감성은 120%전달했다. 짜증. 편지를 보낸 자는 짜증나 있었다. 그것도 록팰러 자신도 모르는 일로. 록팰러는 바로 NASA로 다음날 일정을 변경했다. 뭔가 오해가 있어서 이러는가 싶어서 오해를 풀기 위해서 였다. “단도 직입적으로 말해줘요?” “....” 오해를 풀자고 왔던 록팰러는 강현의 무표정한 얼굴을 마주하고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댁의 회사에서 저를 죽이라고 히트맨을 고용했어요.” “...... 그럴리가.” 록팰러는 믿을 수가 없었다. “여기 정황증거 자료.” 강현은 록팰러 그룹의 회계자료 분석한 결과를 보여주면서 말했다. “그룹 차원이 일인지 개인적 일탈인지는 더 이상 판단이 안되더군요. 역시 디지털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실감했어요. 하지만 회사 예산에서 돈이 빠져나간 것을 보면 누가 그랬는지 짐작할 수 있지 않겠어요?” 록팰러는 자신의 두 손에 들린 회계자료에 형광과 화살표된 자료 내역을 벌게진 눈으로 따라갔다. “보아하니 그쪽도 잘 몰랐던 것 같은데.. 그거 드릴까요?” “... 고맙네. 그리고 그 라이센스건 있지 않은가..” “아직 채산성 검토가 안 끝나서요. 미리 이야기하기는 좀 그렇네요. 그래도 록팰러 그룹의 참가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을게요.” “고맙네.” 록팰러는 그렇게 말하고 서둘러 돌아갔다. 이제 록팰러 그룹에서는 피바람이 몰아칠 것이다. 얼마 되지 않아 록팰러의 이사장단의 핵심 인물이 구속되었다. 혐의는 청부살인. 청부살인의 대상이 누군지는 밝혀지지 않았고 또한 정말로 청부살인을 했는지 밝힐 수 있지는 않지만 인터폴에 의해서 수배를 받는 히트맨에게 돈을 전달한 사실이 밝혀졌으니 그의 커리어는 끝장난 것이다. 그리고 그 사건이 발표된 직후에 록팰러가 자주 NASA의 강현을 찾아와 대규모 석유 ‘제조’ 플랜트에 관한 사업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뉴스가 떴다. 그렇다. ‘시추’가 아니라 ‘제조’다. 눈치 빠른 사람들은 직감했다. 석유 카르텔에 일대 변혁이 일어나고 있다고. 록팰러 그룹은 이때가 아니면 ‘석유’분야에 대한 지배력을 잃어버릴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틀림없었다. 다른 대륙의 석유 카르텔도 록팰러 그룹의 행보에 발을 맞추기 위해 강현을 찾아왔고 그중에 일부는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고 일부는 부정적인 답변과 함께 서류뭉치와 붉어진 얼굴로 돌아갔다. “아~! 속 시원해!” 강현은 속이 시원했다. 그리고 잭은 자신의 윗선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받았다. [NASA 주변의 수상한 이들을 발견, 상황 옐로우.] 극히 경계하라는 지시였다. 그리고 잭은 거의 매일 강현의 연구실에 들락거리면서 강현의 동선을 살폈다. [국제 인터폴에 의해서 유명 청부살해업자가 체포..] 그리고 강현이 나오기를 기다리던 청부업자들 중에서 어설픈 자들은 의뢰주의 실각에 잠금을 받지 못할 것을 예상하고는 은신하던 곳을 뜨기 시작했다. 그중에 미 정보부에 수상한 자라고 찍혀있던 이들은 그런 행동이 ‘나 청부업자요’라고 선언하는 꼴이었다. 덕분에 많은 청부업자들이 체포되었다. “돈 때문에 사람을 죽이다니.. 참 나쁜 놈들이다. 그치?” 잭이 TV를 보면서 말했다. 많은 청부업자들이 사라졌다고 해도 위험은 가시지 않았다. 실질적인 위협이라고 할 수 있는 일급 암살자들이 남아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의뢰주가 죽더라도 그 의뢰를 완료하는 ‘신용’으로 어둠의 세계에서 살아남은 자들이었다. 잭은 별 의미없이 던진 말이었지만 그에 답하는 강현의 말에 정신이 멍해졌다. “돈 때문에 사람을 죽일 수도 있지 뭘.” “....” “신앙으로도 사람을 죽이고, 우월감 때문에 죽이고, 쾌락 때문에 죽이잖아. 누구는 국익을 위해서 사람을 죽이고. 그러니까 돈 때문에 사람을 죽이는 사람도 존재할 수 있다는 거지.” 잭은 강현에 대한 보고서에 강현에게 반사회적 성격장애가 있다고 해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럼 돈 때문에 사람을 죽이는 게 옳다는 거야?”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야. 삶의 방식에 따른 문제지. 상상해봐. 만약 이 세계가 디스토피아가 되어서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하다면? 돈이 없으면 자신의 소중한 사람이 굶어죽는 상황이 되어버린다면? 잭은 그렇게 살지 않을거야?” “......” “합리적으로 생각해. 지금과 같은 법과 질서가 세워진 세상에서 청부살인은 혼란을 유발시키는 것에 불과해. 필요없는 것이지. 그리고 필요없기 때문에 제거해야하고.” “정의는?” “정의는 에고이즘의 부분일 뿐이야. 자신이 싫어하는 현실을 싫어하기 위한 명분에 불과하지.” “.....” “아아. 그렇다고 오해는 하지마 현실이 싫다면 싫을 수도 있는거지 그것을 비난하지는 않으니까.” 잭은 요즘 들어 강현에 대해서 알아가면 알아갈 수록 천재의 머리속을 이해하는 것이 난해해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10화 = = = = = 드디어 채산성 분석이 끝났다. 나날이 확장되고 업그레이드되는 아즈삭이 없었다면 고작 한 달 안에 분석을 끝내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채산성 분석을 위한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는 일이 가장 시간이 많이 걸렸는데 약간의 인공지능이 발휘되기 시작한 아즈삭이 순식간에 처리해 버린 것이다. [석유 카르텔! 천재와 타협하다!] 파이넨셜 타임, 포츈, 월 스트리트 저널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경제지의 전면에 나온 헤드라인이었다. 강현의 특허는 그만한 힘이 있었다. 더 이상 전 세계 인류가 석유 고갈의 공포에 빠져있을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강현의 특허 라이센스를 허가받기 위해서는 강현이 개최한 컨소시엄에 참여해서 지분을 나누어야 했다. 강현은 수많은 국가들과 회사들이 참여하자 그들에게 투표권을 분배했다. 투표권은 법인과 개인에게 부여했는데 기준은 석유라는 상품에 그들이 행사하는 실질적인 영향력의 크기에 따라서 차등 배분되었다. 그 영향력을 분석하기 위해서 각 기업과 국가가 석유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 그리고 그 기업에 대해 주주들이 가진 주식의 비율도 고려해서 아주 복잡하게 차등으로 배분되었다. 어느 누구도 차등 배분에 대해서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다. 이 강현이라는 천재는 아주 괴팍해서 자신을 죽이려고 청부살인을 청부한 이에게는 어떤 권리로 주지 않았다. 중동의 어느 나라 독재자의 경우에는(독재자기에 처벌 받지 않았다.) 컨소시엄의 참가 자체가 불허 되었다. 괜히 쓸데없이 ‘이보다 더 정확하게 배분할 수 없다’고 자신하는 천재에게 딴지만 걸어봤자 망신만 당할 뿐이었다. 강현은 라이센스의 적용에 대해서는 손을 놓았다. 왜냐면 자신이 이렇게 해야 한다고 닥 정해버리면 그대로 석유시장이 고착화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고 고착화된 석유시장으로 인해 어떤 국가가 불만을 품게 될지 알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라이센스의 지역분할같은 사업영역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은 당사자들끼리 협의 하도록 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한 투표권 배분이었다. 하지만 사람 수가 하도 많고 기업과 기업 자체내의 주주들간의 협상도 있어야 하고 국가간의 알력이나 자존심 문제 등 수많은 갈등이 있었기에 라이센스 분할은 너무나 많은 단서조항들과 복잡한 권리 관계를 담을 수 밖에 없게 되었다. 때문에 협상은 언제 끝 날지 알 수 없게 되었다. 혹자는 답답하다며 강현이 이 모든 것을 정리해주기를 바랬지만 강현은 더 이상 이 건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다. 협상이 무한이 길어진다고? 그렇게 되어도 별 상관 없다고 생각했다. 강현이 컨소시엄을 열고 약 보름 후. 컨소시엄에 참가했던 수많은 이해 당사자들은 이 문제가 단순히 사업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실감했다. 강현은 석유에 얽힌 수많은 갈등과 문제들을 표면적으로 끌어올리고 그 방대한 분량을 이 작은 호텔의 홀에 집적시킨 것이다. 참가자들은 이 문제가 하루 이틀 걸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는 일단 내부의 문제부터 합의를 보기로 하고 차후 다시 모이기로 했다. ‘오일 릴레이’라는 이름이 붙은 역사의 남을 협약이 시작된 것이다. [Happy birthday!] 산뜻하게 자신을 노리는 이들을 정리한 강현은(약간 덜 닦은 똥이 남아있지만 그건 자신의 라이센스를 받은 다른 석유 카르텔이 정리해 줄 것이다.) 법적 성인이 되는 생일을 맞이했다. “제, 제시?’ “현.. 걱정마지마. 다 나에게 맡겨.” 그리고 강현은 그의 연구실에 딸려있는 숙소에서 제시에게 동정을 잃었다. 제시는 드디어 강현과 정식으로 사귀는 사이가 되었음을 공표했다. 물론 그녀에게 강현과의 결혼 역시 깊은 고려 대상이었다. 특히 이번에 석유 제조 기술에 대한 라이센스로 인해 중동 못지 않은 부자가 될 것이 확실한 강현은 그녀 뿐만 아니라 가슴만 크고 머리에 골빈 년들 또한 탐을 낼 수 밖에 없는 남자가 되었다. 물론 돈은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제시는 많은 돈이 가져다 주는 부유한 삶의 쾌락보다는 명예가 더 좋았다. 그리고 그 명예는 돈 많은 남편에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힘으로 쟁취한 것이라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다. ‘천재의 아내’ VS ‘천재의 천재 아내’ 제시는 전자보다 후자가 훨씬 마음에 들었다. “이건 어때?” “글쎄... 인지질뿐만 아니라 세포의 작용에 중요한 단백질 합성을 위한 DNA 패턴도 집어 넣어야 하지 않을까?” “복잡해.” 둘의 데이트는 실험실 안에서 이루어 졌다. 서로의 동일한 관심사에 대해서 이야기가 잘 통하는 커플이니 그동안 같이 일하며 쌓은 정에 다시 연인으로서의 추억이 쌓이기 시작했다. 실험하는 간간히 서로의 입술에 키스를 하며 배시시 웃는 꼴에 사브리나가 한 마디 했다. “이것들아! 염장 지르지 말고 밖에 나가서 연애해!” 이미 기혼인 사브리나가 질투할 정도의 두 사람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천생연분이 따로 없었다. 제시는 곧 강현을 따라 NASA에 숙소를 구했다. 다행이 직원들 용 기숙사가 있어서 연구실에서 멀지 않은 곳에 기거할 수 있었다. “아아, 너무 불편해.” “뭐가?” “기숙사. 화장실도 공용이고 샤워실도 공용이고.. 돈 넘친다는 NASA 맞아?” 그러나 곧 제시의 입에서는 불평 불만이 쏟아졌다. 솔직히 기술의 첨단을 걷는 나사의 기숙사 치고는 시설이 형편없었다. 그리고 제시의 불편 건의에 기숙사 시설의 개선을 요구했지만 NASA 측은 예산이 없다는 말로 일축했다. 제시는 이해가 안 됐지만 사실 NASA로서는 합리적인 판단을 한 것이다. 제시가 기거하고 있는 기숙사는 애시당초 사회 진입을 NASA에서 시작하는 어린 청년들을 위한 것으로 계속 거주할 만한 곳이 아닌 임시적인 숙소를 목적으로 한 것이다. 그리노 NASA에서 일하며 돈을 모은 직원들은 곧 근처의 주택으로 이사를 가버리고 그것이 NASA가 계획한 직원 복지인 것이다. 무슨 양계장의 닭도 아니고 자기 집도 없이 생활공간을 공용으로 계속 쓰게 할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럼 근처에 있는 집이나 하나 살까?” “사?” 제시의 얼굴에 기대감이 어렸다. 이 어린 애인은 그 정도 해줄 돈은 차고도 넘쳤다. “그럼, 알아보자.” 그렇게 두 사람은 연구실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나온 매물들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대경한 잭이 즉시 상부에 보고하고 그들을 원거리 경호하는 성화를 부린 것을 두 사람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사실 둘이 같이 집을 알아보러 다니는 것은 데이트를 겸한 것이기도 했던 것이라 서로에게서 시선을 때지 못한 것이다. 그렇게 한 사흘 동안 돌아다닌 결과 둘은 마침내 가장 가까운 정원이 딸린 이층 주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제시는 탁 트인 넓은 정원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고 강현은 기하학적인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초현대적인 건축양식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강현은 일시불로 값을 치루고는 제시와 함께 다시 연구실로 돌아왔다. 이사하기 위해서는 짐을 옮겨야 했기 때문이다. “... 별로 옮길게 없네..” 강현이 챙긴 것은 옷가지 뿐. 살림이라고는 해본 적도 없고 할 필요도 없으니 당연했다. 한쪽에 놓인 먼지 쌓인 캐리어 백에 옷을 집어 넣고 연구실을 나서니 꼭 한국에서 미국으로 올 때의 생각이 나서 기분이 묘해졌다. 강현은 바로 연구소를 나서지 않고 기숙사로 향했다. 운전할 줄 모르는 그였기에 제시가 운전하는 차를 타야했다. 제시는 이미 짐을 싣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숙사에 살고 옷가지에 별로 관심없는 그녀였기에 강현과 마찬가지로 짐이 별로 없었다. 무게가 나가는 것들이 컴퓨터 2대 정도에 불과하다면 말 다 했달까/ 그렇게 둘 만의 신혼집에 도착한 둘은 짐을 풀기도 전에 서로의 육체에 뜨겁게 얽혔다. 젊음은 비단 연구에만 사용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은 강현이기에 도착하기 무섭게 제시의 몸에 달라 붙은 것이다. 물론 짧은 핫팬츠와 노브라 나시티를 입은 제시가 일부러 그런 상황을 유지한 탓도 있었다. 이사 기념으로 두 사람을 뜨거운 시간은 해가 지고 나서야 멈출 수 있었다. 강현은 허리를 너무 썼는지 요통이 왔다. 제시는 그의 허리 통증의 원인이 운동과 거리가 먼 그의 생활 양식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같이 운동하자.” “..... 싫은데..” 천성이 머리를 굴리는 타입인 그는 몸 쓰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체력이 좋아야 오랫동안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거야.” “그래?” 강현은 제시의 설득에 귀가 쫑긋했다. 일단 애인이 하는 말이라 관심이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곧 강현은 어떻게 운동에 시간을 적게 투자하면서 최대한의 효율을 뽑아 낼 수 있는지 머리를 굴렸다. 그의 목적은 피트니스가 아니다. 단지 육체를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면 족했다. 괜히 웨이트 트레이닝 같은 헛짓거리를 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는 곧 자신의 연구실에 러닝 머신을 가져다 놓았다. 그러면서 러닝 머신에 거치대를 설치해 모니터와 키보드 마우스를 놓고 걸으면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옆에서 보기에는 병신 같은 짓이지만 강현은 잘도 적응했다. 걷는다는 행위. 인간의 조상은 원래 사냥꾼이다. 농사를 짓기 이전 채집과 수렵으로 살아왔다는 고고학적인 증거자료가 이를 증명한다. 거기에 정면을 보도록 진화한 눈 또한 그것의 증거다. 그런데 다른 동물들 보다 느리기 짝이 없는 인간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답은 간단했다. 이동이다. 이족보행을 하는 인간은 네 발로 걷는 동물들에 비해 이동시에 사용하는 에너지 소비량이 절반이상 적다. 왼발 오른발 발을 때면서 시계추처럼 다리가 움직여 에너지의 소비를 극소화한다. 일단 사냥감에게 상처를 입히면 느긋하게 추적을 해서 마침내 목숨을 빼앗는 것이다. 즉, 걷는다는 행위는 인류가 무의식적으로 할 수 있는 몇 되지 않는 행위들 중 하나인 것이다. 그렇기에 강현은 걸으면서도 연구에 정신을 쏟을 수 있는 걷기를 주력 운동으로 선택한 것이다. 걷기의 장점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걷기는 사실상 전신 운동이다. 체중을 싣는 발끝과 장딴지는 물론 다리를 내딛는데 사용다는 허벅지와 당길때 사요하는 엉덩이, 그리고 흔들리는 골반과 척수, 상체를 제어하기 위한 수많은 상체 근육은 물론 팔은 흔드는 근육까지 전신의 모든 근육이 남김없이 사용된다. 물론 운동 강도는 다른 운동에 비해서 약하기 그지 없으나 불필요한 지방을 태우고 신체의 균형 발달에 더 없이 적합한 운동이다. 물론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걸어야 하기에 그럴 시간을 내기 힘든 이들에게는 그다지 선호 받지는 못한다. 하지만 강현은 거의 대부분 지칠 때까지 걸을 수 있었다. 어차피 자신이 하는 일에 간섭하는 이도 없었다. “또 걷는거야? 도대체 언제부터 걸은거야?” 잭이 땀으로 흠뻑 젖은 강현의 모습에 혀를 차며 물었다. 강현은 시계를 보았다. 벌써 밥 먹으러 갈 시간이었다. “음 아침부터 걸었으니까 4시간?” “오우! 발 안 아프냐?” “좀 아프네.” 강현은 천재다. 자신도 똑똑하고 잘났다는 말은 들었지만 질투가 나지는 않는다. 발이 아픈 줄도 모르고 연구에 집중하는 강현의 모습은 그가 천재라는 사실을 인정할 만했다. 하지만 그 집중력 때문에 발이 아픈지도 모르고 계속 걷는 미련함이 보이니 절로 혀가 쯧쯧 거렸다. “쯧쯧, 이 미련한 천재야.” “그거 모순되는 단어인데?” “지금 네 모습을 잘 생각해봐. 그보다 더 어울리는 단어가 없을 거다.” 11화 잭은 갸우뚱 거리는 강현의 모습에 그의 등을 밀며 연구실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제시는 안 보이네?” 제시는 강현과 살림을 차린 후로 점심 때마다 강현을 찾아 와서 번번이 잭의 임무를 허탕치케 만들었다. 잭의 임무? 강현을 밀착 감시, 보호하며 필요한 정보를 뽑아내는 것이다. “요즘 연구가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서 집중하고 있어.” “....” 이 커플은 동시에 연구에 미쳤나... 밥도 안 먹고 연구를 하다니.. “그 인공 세포라는게 그리 대단한 건가?” “응. 사실상 인간 복제보다 더 대단하지. 생명 창조나 마찬가지 분야니까.” 강현은 잭의 질문에 대답했다. “탄소 기반형 유전자가 탄생한 이래 그 긴 시간동안 축적해온 생명 진화의 비밀을 해석하고 재현하는 것이니까.” “.. 좀더 풀어서 설명해봐. 그렇게만 말하면 궁금하잖아.” “유전자의 대부분은 휴면상태인 정크 유전자라는 것은 알지?” “그래.” “제시가 하는 일은 세포내 소기관들을 형성하는 단백질을 합성하는 유전자만 따로 모아서 정상적인 세포를 만들어 내는 거야.” “어? 그건?” 똑똑한 잭의 표정에 감탄이 서렸다. 불필요한 유전 정보를 제거한 세포를 만들어 본다. 제대로 되지 않으면 불필요하다고 생각된 유전자에 뭔가 필요한 것이 남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인류가 밝혀내지 못했다고 생각한 유전자의 기능을 유추할 수 있고 그 패턴과 단백질의 분자 패턴까지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야. 그거 굉장히 실험을 많이 해야 했을 텐데..” “컴퓨터 좋다는 게 뭐야? 거의 다 시뮬레이션으로 돌리고 검증은 다 세계에 널리 퍼진 학자들에게 맡겼지.” “....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아즈삭가지고 시뮬레이션을 돌려서 세포 소기관을 만드는 유전자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예측하는 논문을 올려 놨거든. 논문 제목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이용한 유전자 변조 결과 예측’.” “그리고 실제로 그러한지 검증하는 건 다른 학자들에게 떠넘기고?” “내가 언제 어떻게 수만 개나 되는 실험을 다 해?” 강현이 뭔가 이상한 소리를 한다는 듯이 동그랗게 눈을 뜨고 잭을 보았다. 잭은 쓴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역시 천재는 뭔가 다른가 보다. 그러면서 감탄 했다. 강현이 컴퓨터 시뮬레이션에도 일가견이 있다니.. 하지만 잭이 잘 모르는 것이 있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이라고 해도 현재의 기술로는 변수 지정을 사람이 일일이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수히 많은 유전패턴이란 변수를 강현 혼자서 지정해주려고 했다면 일 년으로도 시간이 부족했을 거라는 것을.. 다 서서히 인공지능의 면모를 갖추어 가는 아즈삭의 보조가 있지 않았다면 불가능 했을 거라는 것을... 두 사람의 대화는 식당에 도착해서도 계속 되었다. “그러니까 결국은 DNA라는 거지. 플라스미드라는 것이 있어.” “나도 알아 세균의 내부에 있는 고리 형태의 유전자를 말하지. 그 정도는 상식이잖아.” “그래, 유전자기이에 유전이 가능하지. 그 외에 다른 세포에 전달이 가능하다든지 하는 백터로서의 특징도 있고 몇가지 특징이 있지만, 이번에는 그 유전적인 특징에만 주목했어. 인공 세포의 제조를 위한 유전자로 염색체 대신 이 플라스미드를 이용하기로 한거야. 개개의 플라스미드에 제한 효소와 접합효소로 세포 증식에 필요한 DNA를 부착해 정말로 정상적인 세포 분열이 되는지 확인하는 것이지. 만일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첨가되지 않은 필요한 단백질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럴 경우에 다시 찾아서 그에 해당하는 플라스미드만 첨가하면 되니까 수정이 용이하다는 장점도 있어든.” “이야.. 그렇게 되면 생명 탄생의 신비가 풀리는 건가?” “뭐, 추측은 알 수 있겠지.” “제시의 실험이 성공하면 누군가 생명을 설계했다는 결과가 나오는 건가?” “지적설계설(Hypothesis)?” “왜 론(Theory)라고 안 하는데?” “논리적으로 오류니까.” 생명이 외계인에 준하는 어떤 지적 설계자에 의해서 만들어 졌다고 하면 그 지적 설계자 역시 누군가에 의해서 만들어 졌다고 봐야한다. 그리고 그 지적설계자를 만든 지적설계자 역시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 졌다고 봐야한다. 이 무한한 사슬의 끝을 보려면 최초의 지적설계자는 생명이 없다, 혹은 스스로 탄생했다는 말을 붙여야 하는데 이는 다시 생명은 누군가에 의해서 설계 되었다. 라는 지적 설계론의 논리를 부정하는 것이었다. 결국에 지적설계론을 지탱하기 위한 최후의 방편은 신이다. 그러니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는 이상 지적설계론은 론(Theory)이 아니라 영원히 설(Hypothesis)로 남을 수 밖에 없었다. 지적설계론을 Theory로 간주하여 공립학교에 가르치려는 미 정부를 비난하는 자들이 지적설계론은 세련된 창조론으로 간주하여 거부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정상으로 논리적 사고를 하면 반드시 모순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역시, 과학 괴물 아니랄까봐.’ 증명하지 못하는 문제인지 아닌지 철저하게 구분하는 것은 강현의 사고 과정의 근본이었다. 둘의 이야기는 식사가 끝나는 것과 함께 끝났다. 강현이 식사가 담긴 트레이를 끌고 제시의 실험실로 가야할 때가 왔기 때문이다. 연구에 전념하고 있는 애인의 식사를 챙겨주는 즐거움을 타인에게 양보할 강현이 아니었다. = = = = = 포브스 지에서 선정한 올해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위에 뽑힌 남자. 똑똑하고 아름다우며 자상하게 챙겨주면서 그러면서도 침대에서는 요부가 되는 이상적인 애인을 가졌으며 돈도 벌써 세계 100위권 안에 들 정도로 벌었으며 5년 안으로 10위원 안에 들 것이라는 전문가의 예측이 있는 자타 공인의 천재. 뭐든지 인생이 잘 풀릴 것 같은 천재인 강현이었지만 그에게도 고통과 시련은 있었다. [오류 발생.] “아! 또! 왜!” 아즈삭의 시스템을 점검하며 업그레이드를 시키려고 했던 강현은 수 시간째 반복되는 에러 메시지에 머리를 쥐어 뜯었다. 그 동안 뉴로칩을 계속 부착시켜 기능을 확장하고 틈틈히 필요한 프로그램을 집어 넣었던 아즈삭은 소프트 웨어 적으로 강현의 머리로도 한 번에 다 살펴보는 것이 어려운 방대한 시스템이 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여타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처럼 머리를 쥐어뜯으며 눈이 벌게져라 코드를 읽고 다시 코딩하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아즈삭. 너 왜 이러는 거니?” [의미 불명.] 강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즈삭은 속터지는 답변만 할 뿐이다. “아, 젠장. 완벽히 논리적인 자율 사고 체제는 불가능하다는 것인가?” 강현이 아즈삭에게 바라는 것은 단 한 가지. 스스로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제시가 생명을 창조한다면 강현 자신은 정신을 창조하겠다. 정말로 위대한 포부가 아닌가? “아.. 철학이라도 공부해야 하나..” 강현은 근본적인 물음을 던질 수 밖에 없었다. 이성이 먼저인가 본능이 먼저인가? 이성은 과연 이성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있는가? 욕망이 없는 이성은 작동할 수 있는가? 강현은 이해하고 있었다. 이성이란 도구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을 이성적으로 생각하라는 것은 욕구의 실현을 위해서 좀 더 좋은 방법을 찾아내라는 말임을.. 사람들은 부정하고 있지만 이성은 결코 욕구의 위에 서지 못한다. 욕망이야 말로 이성에 방향성을 부여하고 제대로 기능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이성적 교육이란 결코 이성이나 인내심을 강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바르게’ 욕망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내가 저 얄미운 놈을 때린다면 내게는 어떤 이득이 있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그 이득이 자신의 폭력 행위의 대가보다 크다면 사람은 참게 되고 그렇지 못하면 참지 못하게 된다. 분하지만 참아서 생기는 안전과 안락함이 더 크다는 것. 물론 이 욕망을 비교하는 저울대에 올라가는 수많은 종류의 욕구들은 저마다 다 다르다. 그리고 그 비중 역시 다르기 때문에 저마다의 결과 역시 다르다. 강현이 이런 이치를 깨닫게 된 것은 한국을 떠나기 전이었다. 자신을 괴롭히는 과학기술부 장관 덕분이었다. 왜 자신을 계속 방해할까? 이러면 자신에게 무슨 이득이 있다는 걸까? 나를 통제해서 제대로 된 결과를 얻지 못할 수도 있는데.. 과학기술부 장관까지 된 사람이 교육을 적게 받았을리는 없다. 그러니 새롭고 창의적인 기술은 통제에서 나오지 않고 자유에서 나온다는 당연한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명색이 과학기술부 장관이라는 사람은 그러지 않았다. 이 모순에서 강현은 사람이란 존재에 눈을 떴다. 이성을 가지고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욕망대로 움직이는 존재. 당장 강현 자신만 해도 새로운 것을 탐구하고 신기한 것을 만드는 재미에 빠져 살지 않은가? 강현은 다시 질문 했다. 그렇다면 과학기술부 장관이라는 사람은 대체 자신에 무엇을 욕망한 것일까? 답은 간단했다. 실적이었다. 세기의 천재를 잘 컨트롤하고 관리해서 모두가 인정할 만한 결과를 끌어냈다는 실적. 그런 답을 끌어냈는데 그러자 다시 한 번 똑같은 모순에 빠졌다. 새롭고 창의적인 기술은 통제에서 나오지 않고 자유에서 나온다는 당연한 사실. 이런 방법을 사용하지 않은 과학기술부 장관. 강현은 다시 매우 복잡한 인간관계와 비상식의 상식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불문율, 계층문화, 경직된 구조. 상식적이고 이성적인 행동이 그런 것들에 의해서 오히려 멍청한 짓이라고 매도되고 있었다.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저 많은 사람들이 저 비상식적인 행태를 묵인하고 있었다. 강현은 다시 논리적으로 생각하여 그것이 그들에게 더 이득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내부 고발자는 보호받지 못한다. 위기에 처한 이를 구하기 위한 폭력 역시 동일한 폭력으로 간주된다. 이런 사회에서는 비상식에 침묵하는 것이 평온하며 평범한 삶을 위해서는 필수적이었다. 그들은 잘못된 것에 분노하는 마음보다 평온을 원하는 욕구가 더 컸던 것이다. 강현의 비유대로라면 욕망의 저울에서 전자보다 후자가 더 컸다고나 할까.. 그렇기에 강현은 한국을 떠났다. 그는 과학기술부 장관의 말 잘 듣는 개가 되어 하고 싶은 연구도 하지 못하고 통제되는 노예 같은 삶을 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한국에 계속 남아 있었다면 그런 구조적인 문제로 수없이 부딪히고 수많은 갈등을 겪어야 했을 것이다. 비상식이 상식이 되어 있다면 스스로 떠나는 수 밖에.. 다행이 그를 탐 내는 미국이 있었고 스스로에게 능력도 있었기에 미련 없이 한국을 떠났다. 미국도 비상식적인 일이 많기는 했지만 적어도 강현에게 불리한 비상식적인 불문율은 없었다. 자신을 키워주고 돌봐준 것이 고마워 의원들이 그를 설득하기 위해서 찾아 왔을 때 돈이 될 만한 기술을 하나 던져 주었다. 자신의 양육비의 수천 배를 뛰어넘은 가치였기에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합리적이지 못한 행동이었지만 오히려 덕분에 홀가분해졌다. 강현은 과거를 떠올리며 결국은 욕망이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즈삭이 완전한 자율 사고 능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성에 방향성과 원동력을 부여할 목표가 있어야했다. 그는 신중해 졌다. 그리고 아즈삭의 근본 OS시스템을 다시 손보기 시작했다. 아즈삭에게 ‘욕망’을 심기 시작한 것이다. 12화 그는 아즈삭이 가져야 할 욕망을 신중하게 선택해야 했다. 잘못하다가는 폭주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방향성이란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1. 설계자의 말을 잘 따른다. 2. “... 더 필요한 게 있나?” 강현은 고민해 보고는 더 1.번 항목을 제외하고는 아직 어떤 욕구의 방향성도 필요없다고 생각했다. 자기보호에 대한 욕구는 필요없다. 망가지면 그 뿐일 뿐, 영원한 건 없다. 모 SF소설처럼 인공지능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인류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는 건 너무 진부하지 않은가? 게다가 자신이 아즈삭에게 원하는 것도 딱 저거 하나 뿐이었다. 더 이상 복잡한 건 원하지 않았다. 단순한 것이 오히려 좀더 활용할 수 있는 범위가 넓었다. 복잡하기 짝이 없는 유전자를 구성하는 아미노산도 단 4종류에 불과하지 않은가? 하지만 강현은 의외의 복병을 만났다. 1번 조항 ‘설계자의 말을 잘 따른다’라는 것을 코딩하려고 하니 머리가 빠게질 지경이었다. 너무나 단순하기 때문에 더 이상 손댈 곳이 없었다. 이미 충실하게 자신이 입력한 자료를 연산해 결과를 도출하는데 말이다. 하지만 강현이 원하는 것은 그 정도가 아니다. 적절하게 자신을 보좌하여 자신이 하기 귀찮은 일을 자율적으로 맡아서 해주는 보조를 원한 것이다. 즉 ‘설계자의 말을 잘 따른다’와 ‘어떻게 설계자의 말을 따르게 할 것인가?’는 천지 차이인 것이다. 아무튼 강현은 코딩을 시작했다. 아즈삭이 약간의 인공지능적인 면을 갖추었기 때문에 코딩을 보조하여 빠른 코딩이 가능했다. 그러나 그런 보조는 단순히 코딩만 보조하는 것으로 강현이 방대해지는 코드의 양에 짜증나서 만든 보조 프로그램이었다. 아즈삭의 핵심인 OS가 아닌 아즈삭의 도구용 프로그램이었던 것이다. 강현은 코딩을 아주 단순하게 했다. 자신을 보조하기 위한 복잡한 연산과정은 프렉탈 이론을 도입하여 뉴로칩을 거치며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단순한 코딩을 생각해 내는 것이 어려웠다. 단순한 코딩이 복잡한 환경을 만나고 규모가 커질수록 어떤 결과를 도출해 낼 것인지 예측해야 했다. 그렇다. 구조론에서 말하는 것처럼, 모든 수학의 기본이 1+1=2인 것처럼 모든 것은 단순한 것에서 시작해 복잡하게 흘러간다. 혹자는 이를 열역학 제 2법칙에 비유하기도 한다. 질서(탄생)에서 무질서(죽음)로 향하는 것이 모든 것들의 운명이라고. 코딩하고 시뮬레이션 하고 코딩하고 시뮬레이션하고 코딩하고 시뮬레이션하고.. 그렇게 밤낮을 집에 들어오지 않으니 결국 제시가 강현의 제2 실험실로 왔다. 강현이 연구하는 연구실은 크게 4곳이었는데 그 중에 자기 전용은 제1 연구실 한 곳이고 다른 곳은 다른 연구원과 같이 연구하도록 되어 있었다. 아즈삭이 있는 컴퓨터 개발부의 한 연구실 역시 원래는 강현 혼자서 연구하는 곳이 아니었다. 인공지능 연구를 위해서 강현과 보조를 맞추는 여러 프로그래머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아즈삭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컴퓨터의 언어응 익히는 것 만으로도 벅찬 상태였다. 그들은 강현이 없는 동안은 아즈삭의 소스 프로그램을 검토하며 아즈삭의 하드웨어적인 구성형태부터 이해하느라 기력이 쇠해갔고 그들이 그나마 쉬는 시간은 강현이 아즈삭을 만지작 거릴 때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그다지 반갑지는 않았다. ‘오늘은 또 무엇을 코딩하려고..’ ‘신이시여. 이제 그만합니다.’ ‘죽을 것 같아요. 쿨럭!’ 천재 강현은 정말로 천재였다. 그가 하루 정도 코딩한 내용을 따라가려고 사흘 밤낮을 모니터에 매달려 있는 것이 컴퓨터 개발부 직원들의 일상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잠도 나지 않고 대체 며칠 동안 코딩을 하고 있는 것인가?! “현! 집에 안오고 뭐하는 거야!” “으, 응?” “사람이 잠은 자고 살아야지! 이게 뭐야? 얼굴이 상했네.” 그러면서 다짜고짜 강현을 데리고 나가는 제시는 그들에게 그야 말로 메시아와 다름 없었다. 그들은 강현이 완성하지 못한 소스 코드를 저장해 따로 두고 그가 완성한 코드를 복사해 부서내에 나누었다. “오우! Shit!” “신이시여! 제발 그만하자고 했지 않습니까!” “미치겠다.” 코드는 분량이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 코드가 어떻게 작동하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 이해하기 더 어려웠다. 예를 들면 프로그래밍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하노이의 탑에 관련된 코딩을 예제로 받는 경우가 있다. 하노이의 탑이 몇 층일 경우에 어디서 어디로 층이 옮겨가고 그 최소 횟수는 몇 번인지 결과를 출력하는 것이다. 일단 프로그램을 하기 무척 복잡해 보이지만 반복문을 이용하면 몇 줄이면 완성된다. 그리고 감탄 하는 것이다. 이렇게나 아름답게 단순해 지다니! 그러면서 그 단순한 코드가 출력하는 복잡하지만 정확한 결과에 또다시 감동하는 것이다. 이것이 프로그래밍의 매력이었고 수없이 많은 프로그래머들이 갈려나가는 이유이기도 했으며 강현이란 넘지 못할 산을 마주하고도 컴퓨터 개발부의 직원들이 자괴감을 느끼면서도 사표나 이직 신청을 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했다. 강현의 코드는 단순했기에 그 작동 방식의 복잡함과 결과물이 도출되는 방식을 이해할 때의 쾌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마치 무지한 야만인이 로마의 아름다운 건축물을 마주 보았을 때처럼, 선지자의 가르침을 받는 제자와도 같은 입장이었던 것이다. NASA에서도 이런 개발부의 현실을 알고 있었다. 실제로 개발은 강현 혼자서 하고 있는 상황. 솔직히 개발부의 직원들은 개발에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NASA에서는 미래를 내다보고 그들을 그대로 나두었다. 강현의 아즈삭은 이미 실적만 가지고 슈퍼 컴퓨터들을 훨씬 능가하는 연산 속도를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아즈삭의 기능은 이미 지금으로도 충분했다. 그럼에도 아직 아즈삭을 판매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바로 운용 가능한 인력이 없다는 것. 폰 노이만 방식을 탈피한 아즈삭의 OS와 프로그래밍 언어를 이해하고 적절히 유지 보수할 수 있는 인력이 전혀 없기에 뭔가 문제가 생기면 강현이 일일이 나서야 했다. 그러나 강현이 고작 자신의 기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제품의 A/S에 나서줄 리 없었고 현대 사회에서 A/S가 불가능한 제품 역시 팔릴 리가 없었다. 때문에 현재 개발부서의 직원들에게 NASA는 기대를 걸고 있었다. 사실상 그 직원들은 컴퓨터 개발이 아니라 인력 개발을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집으로 돌아온 강현은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제시의 품속에서 잠들었다. 잠에 빠져들면서 둘은 달콤한 대화를 나누었다. “인공... 세포... 개발은... 어떻게.... 되고... 있어?” 강현은 졸린 지 말이 느릿느릿했다. “이제 세포막을 형성하는 플라스미드 하나만 추가하면되.” “... 도와... 줄까?” “괜찮아. 남은 일은 충분히 혼자서 할 수 있는 걸. 걱정하지 말고 푹자.” “... 그래?” 쿨쿨. 달콤한 대화라고 하기에 어딘가 핀트가 맞지 않지만 둘은 그 대화에서 서로를 위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아즈삭의 ‘욕망’코드가 완성되었다. 그리고 아즈삭의 ‘진화’가 시작되었다. [창조주.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강현은 저 창조주란 단어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으음.. 일단 자기 개발이나 하고 있어.” 아즈삭은 ‘자기 개발’이란 단어의 의미를 인터넷이 접속해서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맞추어 해석했다. 그것은 자신을 구성하는 코드의 오류를 집어내고 확장 가능성을 찾아내는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실행하겠습니다.] “아참. 부르면 즉시 하던 일을 멈추고 내가 지시하는 일을 먼저 해야 돼. 알겠지?” [명령 리스트 갱신 완료.] 강현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창조물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일일이 키보드를 두드리며 명령 리스트를 갱신해 주지 않아도 된다. 바로 이것이 강현이 원하는 아즈삭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강현은 아즈삭에게 지시를 내려 놓고 그 동안 미루어 놓았던 다른 연구를 시작했다. = = = = = 강현의 연구는 세상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일단 석유 가격이 급락했다는 하나 만으로 세계 경제에 큰 영향을 끼쳤다. 덕분에 여러 분야에서 기업들이 큰 이익을 보았다. 물론 원유를 직접 공급하는 업체들은 큰 타격을 받았지만 말이다. 원래 급격한 변화에서 한쪽이 이득을 보면 한쪽은 손해를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유가 하락으로 인한 이득은 소비자에게까지 전달 되었다. 일단 차량 유지비가 떨어졌고 각종 물가 상승률이 떨어졌다. 그러나 이런 혜택은 사회 구조가 잘 구성된 선진국에서만 혜택을 보았고 선진국이 아닌 국가에서는 소비자에게까지 혜택이 돌아가지 않았다. 한국은 어떻냐고? 서민들의 생활은 그대로 였고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때문에 강현을 칭송하는 목소리보다 비판하는 목소리가 더 컸다. 현대 문명의 필수품인 석유를 가지고 장난치는 카르텔을 때려 부술 수 있는 무기를 가지고도 그들을 그대로 놔두었다고.. 새롭게 인류에게 이득이 될 기술은 나왔지만 이득을 보지 못한 사람들은 석유 카르텔의 존속을 인정한 강현에게 비판의 날을 세웠다. 석유 카르텔은 석유의 독점과 가격 유지를 위해서 전쟁을 불사하고 반민주 독재자들을 옹호하기까지 하는 자들이었는데 그런 자들과 손을 잡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강현은 잘 모르는 이야기였다. 정확히는 관심이 없었다. 그는 자신의 연구 결과가 어떻게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지 판단하지 않았다. 현대 사회에서 기술은 막대한 파급효과가 있었고 때문에 정치와 사회적 역학 관계에 밀접한 영향을 받았다. 소니의 베타 맥스 방식의 비디오와 JVC의 VHS와의 표준 경쟁에서 기술과 사회의 역학 관계 사이에 일어난 밀접한 관계성을 확인 할 수 있다. 소니의 기술이 좀 더 좋은 영상과 음질을 보장했지만 마케팅에서 JVC에 완전히 밀려버렸다. 그리고 그 당시 흥하기 시작한 비디오 대여 사업에서 사실상 소니의 베타 맥스 방식은 퇴출되었고 캠코더에서나 찾아 볼 수 있었다. 물론 베타 맥스 방식이 기술적으로 VHS를 압도했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강현의 기술도 마찬가지였다. 강현의 석유 제조 공법에 대항해 다양한 시도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가장 유력한 방법은 역시나 녹조류를 이용한 방법이었다. 강현이 만든 유전자 변형 녹조류와 다르게 석유를 생산할 천연의 녹조류를 찾는데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강현의 기술과 다른 강점이 있었다. 강현의 유전자 변형 녹조류는 유전자적으로 변형되어 있었기 때문에 생물학적 오염을 피하기 위해서 완벽한 밀폐구조가 필요했다. 즉, 천연의 녹조류에 비해서 초기 시설비용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을 피하기 위해서 사막같이 녹조류가 오염을 일으키기 힘든 지형이라면 강현의 유전자 변형 녹조류가 더 효율이 좋기 때문에 사막 국가들은 강현의 기술을 더 선호할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유럽같이 환경보호에 관한 법률이 엄격한 곳에서 만일 대체 가능한 천연 녹조류가 발견된다면 강현의 유전자 변형 녹조류와 관련 시설 기술들은 퇴출 될 가능성이 무척 높았다. 물론 강현의 기술이 고작 녹조류에 국한 된 것은 아니었지만 강현이 석유 제도 기술에 대한 라이센스를 ‘원천 원료 생산’, ‘고분자 화합물 생산’, ‘벤젠 톨루엔 합성’으로 나누어 놓았기에 적어도 ‘원천 원료 생산’부분에 관해서는 강현과 미국에게 끌려다니지 않아도 될 가능성을 확보 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 작품 후기 ============================ 후기 : 제가 뭐 하는 사람이냐고 물으신다면 대답해 드리지 않는 것이 인지 상정! 사람은 비밀이 많아야 매력적이죠. 를지님도 비밀을 간직하세요. 매력적인 사람이 될 겁니다. (안 그래도 책임지지 않겠습니다.) 13화 이런 유럽 각국의 움직임은 석유 카르텔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하지만 그들은 별로 손을 댈 생각은 하지 않았다. ‘고분자 화합물 생산.’에 대한 라이센스만 획득한다면 저들의 기술은 고작 자동차 연료로만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사막의 전통적인 국가들은 세가지 라이센스를 모두 획득하고자 한다면 유럽쪽에서는 두번째와 세번째 라이센스를 두고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 출시되는 자동차는 새로운 전기 자동차의 표준 경쟁으로 불꽃 튀고 있었다. 사실상 석유가 고갈되지 않는 시대에 진입하면서 자동차의 표준은 완전 전기 자동차와 하이브리드식 전기 자동차 사이의 치열한 경쟁이 시작되었다. 완전 전기 자동차는 강현의 축전지를 닮은 신형 배터리의 압도적인 능력에 힘입어 경량화 되어 상용화를 눈앞에 두었으나 역시나 땅이 넓고 자연으로 드라이브를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메리트가 없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태양 전지 판넬을 붙여 보았지만 현재까지 나온 태양 전지 판넬로는 그다지 충분한 전력을 얻지 못했다. 게다가 날씨가 흐려지면 충전도 불가능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하지만 하이브리드식은 완전히 달랐다. 일단 강현의 신형 엔진(제조사들은 이를 플라워 엔진이라고 부른다.)과 석유 제조 설비에 힘입어 강력한 표준형으로 각광받고 있었다. 일부 업체는 여전히 보통의 자동차를 출시하기는 했지만 교토 의정서에 의해 촉발된 각국의 이산화탄소의 배출 규정을 준수하기 위해서는 좀 더 극대화된 연비를 가진 가동차가 필요했고 그 유일한 해결책은 바로 하이브리드 방식의 자동차 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고작 운송 수단의 혁신만으로 세상은 그렇게 잘 변하지 않았다. 단지 사람들은 좀 세상이 좋아졌구나 하는 생각만 했을 뿐 정작 눈에 띄는 변화는 과거에 있었던 인터넷의 상용화, 대중화 만큼 크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금 그런 변화가 시작되려고 하고 있었다. “내? 아즈삭의 다운그레이드 버전을 판매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요?” NASA의 기획부장 이레이는 강현을 설득하기 위한 수많은 서류를 가지고 들어왔다. “Dr. Kang. 이는 당신에게도 매우 좋은 일입니다. 일단 한 대당 가격이..” 그러나 돈은 일단 강현에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수요는 있나요?” “충분합니다! 일단 기존 슈퍼 컴퓨터는 거의 다 대체가 가능합니다! 그리고 하드웨어만 충분히 확충하면 대용량 서버 역시 완전히 대체 가능해요! 강현! 당신은 천재입니다!” 이레이는 말을 하다가 흥분하고 말았다. 세상에! 현재 존재하는 CPU제조 회사들은 강현의 뉴로칩 제조 라이센스를 획득하지 못하면 초고성능 컴퓨터 시장에서는 완전 퇴출이다! 그들은 가정에 그저 그런 성능의 컴퓨터를 팔거나 가격을 낮추어 제3세계에 팔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요? 하지만 아즈삭의 강점은 사용시의 유연함에 있지 연산 속도는 전통적인 디지털 방식으로 하는 슈퍼 컴퓨터가 더 빠를 텐대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용자 편의성을 따지고 보면 원하는 결과를 얻는 속도는 둘 다 비슷하죠. 그리고 복잡한 연산일 수록 아즈삭이 좀 더 강한 면모를 보입니다. 그리고 서버 같은 경우에는 아즈삭이 계산 속도가 훨씬 빠르고요. 이를 테면 클라우드 컴퓨팅을 슈퍼 컴퓨터 가지고 한다는 느낌입니다.” “슈퍼 컴퓨터로 클라우드 컴퓨팅을 한다? 그 정도 성능은 안 나올 텐데요?” “지금의 하드웨어로는 그렇죠. 좀 더 뉴로칩을 개선하고 규모를 크게 하면 능가할 수도 있습니다.” 강한 이레이의 주장에 강현은 두 손을 들고 말았다. 뭐 다운 그레이드 형을 팔던 말던 별로 신경쓰고 싶지 않았다. 자신은 아즈삭으로 충분히 재미를 보고 있고 다른 연구에 관심이 더 많으니 판매 문제 같은 경우 알아서 하라는 태도다. “아! 그런데 유지 보수할 인력은 있나요? 설마 저 보고 판다는 건 아니죠?” “걱정 마세요. 이미 충분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확보는 해 놨습니다.” “혹시 컴퓨터 개발부에 있는 알론과 잭 같은 사람을 말하는 건 아니죠?” 알론은 개발부장이었고 잭은 위장 취업은 했지만 일단 개발부 직원으로 있었다. “맞습니다만.. 그게 혹시 문제라도 됩니까?” “아니요. 벌써 그 정도로 시스템을 이해 했다고 하니까 감탄해서요. 역시 NASA는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곳이네요.” “하. 하. 하.” 제 얼굴에 금칠을 하는 천재의 모습에 이레이는 어색하게 웃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도 잭처럼 자주 강현을 만나게 되면 강현이 자기 자랑을 하기 위해 저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말을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잭처럼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댁 잘났수.’ 그러면 강현은 다시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잘나기는 무슨. 5차 연립 미분방정식도 못 푸는데. 그리고 여전히 폰 노이만처럼 수학의 경계가 어딘지도 모르는데 잘났다라고 말하기에는 무리야.’ 그러면 이레이는 잭이 그러는 것처럼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며 그의 등을 밀고는 식당으로 향할것이다. 수학의 경계. 과거 누군가 폰 노이만에게 어느 정도 현대 수학을 이해하고 있는지 물었고 이에 폰 노이만은 진지하게 28%라고 대답했다. 이는 그가 현대 수학의 윤곽을 어렴풋이 나마 짐작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폰 노이만을 이상적 인물로 생각하고 있는 강현에게 자신이 잘났다는 말은 정말로 말도 안되는 말이었던 것이다. 아무튼 결국 강현의 허락을 받아 아즈삭의 다운 그레이드 형이 발표 되었다. 발표 자리에는 수많은 컴퓨터 제조 회사의 CEO들과 바이어들, 그리고 각국에서 온 인사들이 참석했다. “그러면 아즈삭의 성능 시연이 있겠습니다.” 성능 시연은 크게 세가지 주요한 포인트가 있었는데 하나는 연산속도, 하나는 유연성, 하나는 사용성이었다. 반(半) 인공지능 형태인 아즈삭은 그 자리에서 간단한 원자 충돌 모형을 계산하고 결과를 도출했다. 특정 조건에서 수소 핵융합이 일어날 확률을 약 한 시간 만에 계산을 하고 계산이 이루어지는 동안에는 명령 처리의 유연성과 편리한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시연했다. 특히 유연성은 많은 사람들의 감탄사를 자아냈다. 특히 간단히 코드를 분석해 내어 시스템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해석하는 능력은 보안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들의 눈을 번쩍이게 하였다. 그렇게 아즈삭의 다운그레이드 형인 아즈삭D의 시연히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자 수많은 사람들이 구입 의사를 밝혔다. 그런데 특이하게 그들 대부분이 각국 정부에서 왔다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아즈삭D의 보안 프로그램(강현의 코딩 분석 프로그램)에서 어떤 가능성을 읽었다. 그것은 현대에서 가장 중요한 정보전에 사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었다. 그렇게 아즈삭D는 출시하자마자 약 30대가 팔렸다. 겨우 30대 뿐이었지만 한 대당 약 1000억원의 가격이었기에 NASA는 순식간에 3조원을 벌어들였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문제가 발생했다. “Dr. Kang. 골치 아픈 일이 생겼습니다.” 이레이가 강현을 찾아와서 앓는 소리를 했다. “뭔데요?” “미 정보부에 판매한 아즈삭D가 작동하지 않는답니다.” “그래서요?’ “다른 직원들이 도저히 원인을 모르겠다고 합니다.” “그래서요?” “그래서.. 좀 가주시면..” “아. 귀찮은데...” “하지만 제대로 수리가 안되면 아즈삭D의 신뢰도가..” “이레이씨. 분명이 예전에 충분한 인력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요?” “맞습니다.” “혹시 그 사람들 능력이 불충분 한 건 아니고요?” “그건 절대로 아닙니다. 그들이 자신들의 능력을 과신 할 리 없어요.” “그럼 정보부에서 아즈삭D로 뻘짓을 하려다가 망가뜨렸다는 얘긴데..” 강현은 호기심이 모락 모락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컴퓨터를 어떻게 다루면 제대로 작동이 안될까? “가보죠.” 강현이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이레이가 앞장 섰다. 연구소를 나오자 마자 미 정보부에서 나온 경호 인력이 강현을 호위하며 방탄 차량에 태우고는 정보부 건물로 향했다. “이야, 잘 꾸며 놨네요.” 영화의 한 장면처럼 가운데에 아즈삭D의 본체가 있었고 반구형의 공간 절반에 디스플레이가 설치되어 있었다. “강 박사. 만나서 반갑네. CIA의 막스라고 하네.” 머리가 희긋한 중년의 백인 남성이 손을 내밀었다. 강현은 그의 손을 마주 잡아 악수하고는 물었다. “어디가 안 된다는 거죠? 지금 잘 돌아 가고 있는 것 같은데..” “특정 명령을 실행 시키면 에러가 발생하네. 보게나.” 막스가 한 오퍼레이터를 바라보았다. 머리가 꼬불꼬불한 흑인인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키보드에 뭔가를 입력했다. 그리고 과연 문제가 발생했다. 그 유명한 블루스크린이 뜬 것이다. [치명적 오류 발생. 문제가 생긴 섹터 B321에서부터 P443까지를 격리 후 재부팅 합니다. 시스템 정상화까지 앞으로 5초, 4초, 3초, 2초, 1초. 시스템이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호오?” 강현이 감탄사를 터뜨렸다. 역시나 자신이 만든 컴퓨터의 다운 그레이드다웠다. 치명적인 오류를 발견하자마자 즉시 처리하는 능력이라니. 더구나 저 과정은 오류가 발생한 뉴로칩만을 겨냥해 재부팅을 하기 때문에 다른 뉴로칩에 저장된 정상적인 데이터가 날아갈 가능성은 없었다. “어떤 명령을 실행시켰기 때문인지 알 수 있을까요?” 강현의 질문에 막스는 표정을 굳혔다. “굳이 밝혀야 하나?” “싫으시면 계약 위반으로 A/S는 불가합니다.” 뒤에서 이레이가 재빨리 끼어들었다. 막스는 그런 이레이를 냉정한 눈으로 처다보다가 답했다. “... 특정 컴퓨터에 감시용 프로그램을 집어 넣는 명령이었지.” 그 대답에 강현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라? 내가 그런 프로그램을 만든 적이 있었나?” “CIA 정보팀이 열심히 노력해서 만든 물건이지. 이론과 컴파일러 상에서 문제는 없었는데 실제로 실험 운용에 들어가려니 이런 문제가 생겼지.” 강현은 막스의 말을 다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하! 왜 그런지 알겠다.” 강현의 혼잣말에 막스와 이레이의 귀가 쫑긋했다. 하지만 강현은 그 둘의 의문을 풀어주지 않고 이레이를 돌아보았다. “먼저 왔던 직원들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나요?” 이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안 서약을 했습니다.” “아즈삭D의 판매를 중단해야 겠네요.” “아니 무슨! … 설마 아즈삭D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는 겁니까?” 이레이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위약금이.. 예산이.. 돈이... “그런 건 아니구요. 기본도 안 된 사람들을 가지고 A/S를 어떻게 하겠다는 거에요?” “네?” 이레이의 표정이 멍해졌다. “딱 들으면 원인이 파악되잖아요.” “.... 원인이 뭔가요?” “간단해요. 2진수 프로그램을 아즈삭용 어셈블리어로 짰기 때문이에요.” 이레이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분명히 아즈삭 역시 On-off형 메모리 소자로 인해서 2진수 연산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건 OS의 경우고요. 돌아가는 프로그램은 달라요.” 초기 뉴로칩의 모양은 정육면체였다. 그리고 각 면에 전원 공급 및 버스 결합부가 있어서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다른 뉴로칩이나 입출력 장치로부터 데이터를 전달받고 출력한다. 반도체형 메모리 소자로 인해서 뉴로칩 자체의 연산은 2진수로 하지만 출력되는 결과는 그 양상이 전혀 다르다. 14화 예를 들어 각 면을 통해 전달하는 정보가 0과 1이라고 하자. 그러나 각 면에 붙어있는 다른 뉴로칩들은 동기화를 통해 중앙의 뉴로칩이 각 칩에 전달한 데이터에 0과 1이 각각 몇개인지 확인한다. 즉 6개의 면과 그 면에 붙어 있는 뉴로칩의 동기화를 통해 단순한 0과 1의 디지털 데이터가 2의 6승, 64진수의 결과로 출력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데이터는 다시 각 6개의 뉴로칩이 연산해 다시 다음 6개의 칩으로 전달한다. 연산에 참여하는 뉴로칩의 개수가 증가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64진수라는 출력 단위, 거기에 연산 과정에 참여하는 뉴로칩들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폭되어 슈퍼 컴퓨터급의 연산 속도를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저기 이해가 잘 안됩니다만..” “어셈블리어는 알죠?” 사용자 지향적 언어로 컴퓨터의 코딩을 쉽게 해주는 컴퓨터 언어다. “네.” “그래서 컴파일러가 필수라는 것도 알죠?” 컴파일러는 어셈블리어로 된 프로그램을 컴퓨터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기계어로 바꾸어주는 역할을 한다. “그렇습니다.” “그럼 기계어를 다시 어셈블리어로 바꾸는 컴파일링이 가능할까요?” “네 1:1 대응이니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2진수 언어를 64진수 언어로 바꾸는 건 가능한가요?” “네, 수학적으로 가능합니다.” “그런데 아즈삭은 못해요.” “네?” “아! 표현이 잘못됐네요. 기존의 기계어를 이해하지 못해요. 컴파일링을 했을 때 기계어가 기존의 컴퓨터와 완전히 양식이 다르니까요. 이를테면 영국에서만 살던 사람이 난생 처음 중국어를 들었을 때라고나 할까요?” 이레이의 표정이 멍해졌다. “그러니까.. 지금 아즈삭에 사용된 기계어를 국제 표준을 무시하고 만들었단 말입니까?” “네. 원래는 개인 연구 보조용으로 사용하려고 만들던 건데 이렇게 팔 줄은 몰랐죠. 그래서 생긴 문제에요.” “그럼.. 왜 직원들에게는 기본이 안되어 있다는 말을 하신 건지..” “아즈삭에 사용되는 소프트웨어의 프로그래밍을 한번이라도 기계어로 작성해 봤다면 금방 알아차릴 문제였으니까 그렇죠.” 이레이는 어처구니 없는 오류의 원인에 이마를 짚었다. 강현은 그의 속이 지금 어떤지도 모르고 ‘이래서 폰 노이만이 어셈블리어를 만드는 제자들에게 은혜로운 기계를 가지고 딴짓한다고 호통을 쳤나보구나.’라고 새삼 폰 노이만의 일화에 감탄하는 혼잣말을 했다. 그런 두 사람의 대화에 답답해진 막스가 끼어들었다. “그래서 문제는 언제 쯤 해결될 것 같습니까?” “음... 아즈삭에 사용된 기계어를 국제 표준으로 만들려면 뉴로칩의 설계까지 다 바꾸어야 하니까 무리구요. 그냥 기계어 변환용 프로그램을 하나 깔면 되겠네요.” “그 프로그램은 언제..” “몰라요.” “네?” “전 손 땔래요. 뭐, 흥미로운 오류인줄 알았는데 그냥 헤프닝에 불과했네요. 개발이야 다른 직원들이 알아서 하겠죠.” 헤프닝? 국가 안보에 밀접하게 직결된 문제가 고작 헤프닝? 막스가 붉어진 얼굴로 돌아서 유유히 나가버리는 강현의 등을 바라보았다. 당장 잡아서 가두고 통조림을 시켜 프로그램을 짜라고 강요하고 싶었지만 천재 강현이 고작 예산 장난질에 조국을 버리고 미국으로 왔다는 일화는 너무 유명해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라 손쓰기가 망설여졌다. 거기다가 석유 제조 기술의 라이센스로 벌어들이는 천문학적인 로열티에 절세 노력 따위는 일절하지 않고 성실하게 막대한 세금을 내는 모범시민이다. 그러니 CIA국장도 아니고 정보부의 부장에 불과한 자신이 어설프게 손을 댈 존재가 아니었다. 막스는 한숨을 쉬고 이레이를 바라보았다. “그럼, 문제의 원인을 파악했으니 빠른 해결을 부탁드립니다.” “네, 물론이죠.” 이레이는 기꺼이 그러기로 했다. 일단 계약서에도 명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덕분에 아즈삭의 가장 치명적인 문제를 미리 발견할 수 있지 않았나? 강현과 NASA에 이레이는 다시 NASA의 컴퓨터 개발부를 찾아와 부장 알론을 닦달했다. “아니! 그게 국제 표준을 따른 게 아니었어?!” “맙소사!” “Shit!” “F○cking God!” 다시 컴퓨터 개발부의 직원들은 아즈삭에 사용된 기계어를 국제 표준 기계어로 서로 변환하는 프로그램을 짤 수 밖에 없었고 이는 방대한 아즈삭의 기계어를 읽는 노가다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다. 아즈삭은 네트워크 컴퓨팅 방식의 인공지능형 논리연산자를 가지고 있었고 그 만큼 기계어의 종류는 일반 컴퓨터의 몇 배에 달했다.(지못미)그들은 하기 싫었지만 이대로는 막대한 위약금을 물어줘야 하고 컴퓨터 개발부에 줘야 할 보너스도 물 건너 갈 것이라는 말에 울며 겨자먹기로 날밤을 세울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의 헌신 덕분에 CIA보다 뒤늦게 아즈삭D의 해킹 능력을 실험 하려는 구입자들에게는 적절한 타이밍에 기계어 표준화 해석 프로그램이 도착할 수 있었다. “이거 성능이 너무 좋잖아.” 막스가 해킹 시스템의 성능을 테스트 해보고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어떤 보안 프로그램도 아즈삭에 의해서 시뮬레이션 되면 어떻게 작동하는지 구동 방식이 출력된다. 그러면 해커는 그 구동 방식을 보고 가장 취약한 부분을 공격할 수 있고 이는 슈퍼 컴퓨터 급 연산을 할 수 있는 아즈삭의 보조를 받아 순식간에 뚫을 수 있다. 만일 이런 것이 적성국에 들어간다면 일반 컴퓨터를 사용하는 국가 시설은 완전히 무방비로 노출되어 버린다. 그리하여 막스는 긴급히 이에 관한 보고서를 제출했고 미국 정부와 의회는 이 보고서에 의해서 아즈삭을 전략 물자로 지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하지만 그런 미국의 움직임에 반발하는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아즈삭D로 여러 가능성을 발견한 구매자들이었다. 물론 그 구매자에는 여러 국가도 있었다. 그들은 확신했다. 아즈삭으로 인해서 해커들의 시대는 종말을 고할 것이라고. 강현이 짠 소스 확인 및 시뮬레이션 코드는 어떤 해커의 침입도 막아냈다. Ddos 공격같은 대량의 트래픽같은 경우에는 여전히 취약점이 있었지만 그런 경우에도 시스템의 다운이나 붕괴는 일으키지 않아 주요 권한을 완벽하게 보호했다. 물론 해커와 같은 판단 능력은 떨어졌기에 다른 컴퓨터를 해킹하는 능력 역시 떨어졌지만 이는 해킹 프로그램의 개발이 상황이 아직 그렇게 무르익지 않아 제대로 된 결과물이 없기 때문이었고 이도 해커가 보조 한다면 당장 해결되는 문제였다. 즉, 인터넷 시대에 보안을 위해서 혹은 정보전을 위해서 아즈삭은 필수품이 된 것이다. 그런 아즈삭을 미국이 독점한다? 미국이 자국의 은행 전산망같은 기간망을 어떻게 할 줄 알고? 미국의 우방으로서도 거부할 만한 일이었다. 결국 미국은 아즈삭을 전략물자로 지정하지는 못했다. 인터넷과 디지털 시대에 군뿐만 아니라 기업과 은행을 비롯한 거의 모든 분야에서 거의 완벽한 보안 능력을 갖춘 아즈삭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천재! 해커의 시대에 종말을 고하다!] 컴퓨터 잡지는 물론 주요 언론사에서도 강현의 아즈삭을 대서특필했다. 그것은 그만큼 아즈삭이 뛰어나면서 시대의 요구에 부합하는 작품인 탓도 있었다. 각종 인터넷 결제와 카드 결제 등 자본의 흐름이 전자 화폐로 넘어가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전자 화폐란 해킹의 위험이 언제나 도사리고 있었다. 때문에 안전한 전자화폐를 위해서 은행과 증권회사들이 보안 시스템에 들이는 비용은 천문학적이었다. 여기에 거의 완벽한 인공지능형, 그것도 수상해 보이는 프로그램을 따로 시뮬레이션을 해서 어떤 작용을 하는지 알아내는 형태의 보안 프로그램은 큰 비용을 지불해도 아깝지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강현의 아즈삭을 반기는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과도한 정보 보호는 정보의 불균형을 형성한다! 그 부작용과 패악은 어찌할 것인가?] 세계적인 해킹 집단 어나니머스는 정보화 시대에서는 정보에 대한 공평한 접근성이야 말로 민주주의를 보호하는 시대의 정당한 흐름이라며 그런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이들의 행보는 가만히 두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막 미국 정부에서 사들인 서버용 아즈삭D에 대한 해킹을 실시한다고 선언했다.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과연 수많은 해커들과 최신예 보안 컴퓨터의 대결은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가? “걱정 안돼?” 강현을 밀착 감시 보호하는 임무를 맡은 잭은 언제나 그렇듯이 점심시간에 강현을 찾아 왔다. 오늘은 천재의 여친님께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니 실험에 여념이 없나 보다. 그는 요즘 이슈가 된 해커들과 아즈삭의 대결에 관해서 강현에게 물었다. “뭐가?” “만약 해킹 당하면 엄청난 위약금을 내야 할텐데..” “NASA가 내지 내가 내나?” “... 그건 그렇군. 하지만 제작자로서 기분이 나쁠 것 같지는 않아?” “기분이 나쁘긴. 오히려 보완하고 더 발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했으니 기분이 좋지.” “그, 그것도 그렇군.” 역시 천재의 사고방식은 뭔가 다르다. 아니 명예에 초탈한 강현이기에 저렇게 생각할 수 있는 건지도 몰랐다. “아무튼 과연 뚫릴까?” “글쎄. 그들이 아즈삭의 시스템을 완벽히 이해하고 있다면 가능할지도 몰라. 하지만 그렇지 않고 기존의 해킹 방식을 답습하려고 한다면 절대로 불가능할거야.” “그래?” 잭의 얼굴에는 다행이라는 표정이 지어졌다. 사실 그가 이런 것을 물어본 이유는 상부에서 천재에게 이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라는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었고 그가 다행이란 감정을 느낀 것도 국가에 충성하는 잭 개인적으로도 국가 안보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아즈삭D의 성능이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아즈삭을 해킹할 방법은 없는 거야?” 잭의 질문에 강현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과연 가능할까? “아즈삭D는 가능. 그러나 아즈삭은 불가능해.” “너도?” 잭의 표정이 아연해 졌다. “아즈삭은 아즈삭D와 다르게 완전히 인공지능화 되어있어. 아즈삭의 OS는 이제 전자 세계에서 사는 생물이라고나 할까?” 강현이 꿈꾸던 디지털 세상의 소프트웨어, 즉 다른 프로그램들을 도구로 사용하는 소프트 웨어가 실현된 것이다. “나의 정신이 디지털화 되어서 직접 아즈삭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 이상 아즈삭을 해킹하는 건 불가능해.” “대, 대단하군.” 천재가 만든 자신도 해킹이 불가능한 컴퓨터 시스템이라! “그럼 아즈삭D는 어떻게 해킹할 수 있어?” “음.. 당장 떠오르는 건 두가지 뿐이야. 하나는 프렉탈 이론과 카오스 이론을 적용한 악성코드로 아즈삭D의 시뮬레이션 연산 섹터를 계속 확장시켜버리는 것. 그러면 OS구동을 위한 최소한의 구역을 제외하고는 계속 그 악성 코드의 연산만 한다고 시스템이 마비돼. 그리고 다른 하나는 뉴로칩에 계속 루프 연산을 반복시키켜 결과값을 출력하지 못하게 하는 방법이야. 전자가 과도한 과제량으로 학생을 멘붕시키는 방법이라면 후자는 뇌에 악성종양을 심는 방법이라고나 할까?” “해결할 수 있어?” “OS만 조금 손 보면 얼마든지.” 즉, 버전만 업그레이드 하면 현존하는 완벽한 보안 시스템이 완성된다는 의미였다. “언제 손 볼 거야?” “내가 왜?” 강현이 이상한 걸 묻는다는 어조로 반문하니 잭은 당황하고 말았다. “저, 저기. 현? 자신이 만든 아즈삭D가 해킹 당해도 좋아?” “내가 만든건 아즈삭 뿐인걸. 아즈삭D는 개발부에서 만든거고.” “.......” 잭은 언제나 그렇듯 말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아즈삭D를 판매하는 성과를 냈던 기획부로 들어가 또다시 OS를 손 보기 위해서 개발부 직원들이 갈려나갔다는 후문이 있었다. 공밀레. 공밀레. 15화 = = = = = “걱정하지마.” “응.” 강현은 여자친구 제시의 손을 꽈악 잡았다. 덕분에 긴장했던 그녀의 힘이 약간은 풀렸다. 여기는 국제 분자 생물학 세미나가 열리는 홀이었다. 그녀도 오늘 발표에 참여한다. 한 명 두 명씩 앞선 순서의 과학자들이 자신들의 연구를 발표하고 질문하는 시간을 가졌고 이제 제시의 차례였다. “그럼 다음 순서는 제시 빅토리아의 ‘인공 합성 세포의 개발’에 관한 발표가 있겠습니다.” 그러자 회장 안이 잠시 술렁거렸다. 사실 이 자리에 참석한 학자들이 가장 관심이 있던 연구가 바로 그녀의 것이었던 것이다. 공동저자로 세기의 천재 강현의 이름이 올라와 있었기에 인공 생명이란 다소 진부한 연구 주제에도 불구하고 많은 과학자들이 세미나에 참가하기 위한 자리를 얻기 위해서 동분서주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었다. 제시가 단상에 나오자 술렁임이 멈췄다. 그리고 그녀는 마이크에 입을 대고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제시 빅토리아입니다. 오늘 발표할 내용은..] 그녀의 논문은 익히 선행 논문으로 모두들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수 많은 단백질을 합성해 내는 각 DNA 단위별로 플라스미드에 삽입해 인공적인 세포를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오늘 논문의 결과는 그것이 성공했는지 안 했는지를 공표하게 될 것이다. […. 그러므로 이 HJ 세포는 가장 기초적인 물질 대사를 실시하여 스스로 증식하기 시작합니다. 그리하여 배양기 속의 ATP농도가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증식 속도가 줄어들며 활동이 완전 정지합니다.] ATP는 미토콘드리아에서 포도당과 산소를 이용해 생산하는 세포 활동의 에너지원이다. 하지만 HJ세포는 미토콘드리아가 없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ATP를 생산할 수 없다. 이는 연구 관찰에 좋은 조건이었는데 증식의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은 실제로 집어 넣은 플라스미드가 제대로 활동하고 있는지 그리고 차후 어떤 요소를 추가할 것인지 판단하는 과정에서 매우 유용한 요소였다. […. 그리하여 차후 미토콘드리아를 추가해 ATP가 풍부한 환경이 아니라 포도당과 산소가 있는 환경에서 정상적으로 활동을 하는지가 남은 연구 목표가 되겠습니다.] 발표가 끝났다. 그리고 박수소리가 홀을 울렸다. 과학자들이 그녀의 연구가 가진 가치를 인정하고 감탄한 것이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생명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마주친 가장 골치 아픈 것은 생물의 어떤 반응에 대한 근원적인 해답은 단순하지만 그 전개 과정이 언제나 미지수로 남아 있다는 것이었다. 생명체 내의 반응은 DNA란 정보체계의 존재로 인해서 작은 요소만으로도 엄청난 변화를 보인다. LSD, 호르몬 따위의 약간의 화학물질은 생명체 내에서 과학자들이 짐작할 수 없는 다양한 변화를 보이기도 한다. 현대 과학의 수준으로 이 카오스와 같은 세계에서 생명 활동을 이해하는 것은 마치 숲만 보고 나무는 보지 못하는 것과 같았다. 그리고 그 원인은 모든 요소들이 맞물려 피드백 작용을 하기 때문이었다. 마치 복잡한 수열을 보고 그 수열의 일반항을 찾아내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문제였다. 그러나 제시의 연구는 이 생명 활동을 이해하는 가장 기본적인 툴을 제시함으로서 차후 모든 생명의 유전자에서 어떤 DNA패턴이 어떤 작용을 하는지 알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제시의 HJ세포는 기초 과학으로 차후 분자 생물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것이 틀림없었다. 박수소리가 그치고 Q&A 시간을 갖게 되었다. “닥터 강이 이 연구에서 어떤 부분을 맡았습니까?” 이미 예상하고 있던 질문이었기에 제시는 침착하게 답했다. 사실 자신의 외모는 객관적으로 봤을 때 충분히 아름다웠고 그 때문에 아랫도리를 놀려 강현에게 연구 논문을 하나 받지 않았냐는 악소문도 있었다. 그렇기에 이번 기회에 제대로 확실하게 그 악소문을 종결시킬 기회였다. “닥터 강은...” 사실 이 논문에서 닥터 강이 맡은 분야는 사실 단 한 가지다. 바로 단백질 구조 분석. 많은 실험과 시간이 필요한 이 것을 그가 맡아주지 않았다면 오늘 논문의 발표는 몇 년은 미뤄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 외의 부분, 각종 단백질의 기능 유추와 HJ세포의 핵심적인 세포 활동에 필요한 최소 단위의 DNA 유추는 제시가 맡았다. 그렇기에 이 논문은 제시의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세상에! 그 단백질 분석을 죄다?!” “저도 언제나 닥터 강의 능력에 언제나 감탄하고 있습니다. 그가 없었다면 이 논문도 몇 년은 더 걸렸겠죠.” 감탄하는 사람들을 뒤로 한 체 다른 사람이 질문했다. 그의 이름은 프라니우스 융, 닥터 융이라고 불리는 세포 노화에 대한 세계적인 권위자다. “DNA가 아니라 순수 플라스미드 만으로 세포를 만들어낸 그 발상은 정말로 대단합니다.” 그는 일단 칭찬으로 시작했다.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말이죠. 그 세포는 텔로미어가 없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그 세포로 이루어진 생명체는 불로불사가 되지 않을까요?” “그, 글쎄요. 그렇게까지 생각해 본 적은 없기 때문에...” 텔로미어는 생물이 노화해 죽는 시간을 가늠할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바로미터다. DNA의 끝에 있는 이 유전물질은 세포 분열시 DNA가 복제 될 때마다 확률적으로 손실된다. 그리고 점점 짧아서 마침내 더 이상 분열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플라스미드는 그런 것이 없다. 기본적으로 원형의 닫힌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물리 화학적인 파괴가 없다면 무한히 증식하는 것도 가능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을 닥터 융이 짚었다. “닥터 강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말로 무한히 살 수 있는지 궁금하기는 하군요. 하지만 불로불사를 목표로 한다면 암세포의 텔로미어 보충에 관한 메커니즘 연구가 더 빠를 것 같아요. 인체의 유전자를 닫힌 고리 형태로 만들기에는 현존하는 기술력으로는 불가능하고요.” 세균도 조건만 맞으면 무한히 증식할 수 있다. 그리고 암세포 역시 텔로미어의 손실 없이 무한히 증식할 수 있다. 그러니 불로불사를 연구하려면 이 둘의 불로불사를 연구하는 것이 더 빠를 거라는 것이 강현이 말하는 의미였다. 괜히 생물의 정상적인 나선형 DNA를 닫힌 고리 형태로 만드는 건 뻘 짓이라는 의미였다. “허허! 그도 그렇군요.” 그 뒤에도 몇 개의 질문이 이어졌으나 제시는 침착하게 대답을 했고 다음 발표자가 발표를 시작했다. = = = = = “하아. 힘들었어.” 제시가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제시가 의자를 한껏 뒤로 젖히고 피곤한 어투로 말했다. “수고했어.” “현도.” “내가 뭘. 난 그냥 따라왔을 뿐인데.” “그래도 덕분에 이렇게 편안하게 돌아가네.” “별로 쓸데도 없는 돈, 이런 때라도 써야지.” 둘의 비행기 좌석은 일등적이었다. 물론 돈은 강현이 냈다. 제시는 자신의 좌석은 자신이 사겠다고 했지만 이미 강현이 둘다 사버린 상태였다. 나중에 제시가 표값을 주겠다고 하길래 강현은 연구 발표 기념 선물이라면서 돈을 받는 것을 거절했다. “현. 그냥 잘거야?” “아니. 씻고 자야지.” 둘은 짐도 내팽겨두고 각각 1층과 2층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고는 가운만 입고 침대위로 뛰어들었다. 침대의 스프링이 신축하는 소리고 침대 프레임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밤새도록 들렸다. 젊음은 수 시간에 걸친 비행에도 지치지 않았다. = = = = = 세상은 평온하지만 무서운 속도로 변신하고 있었다. 강현의 석유 제조에 관한 라이센스는 여전히 협상에 난항을 겪고 있었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서 세계의 주목과 변화를 이끌어 내고 있었다. 현대 문명의 온상인 석유. 그리고 석유 없었다면 발전할 수 없었던 대량 생산 체제의 자본주의. 석유를 대체할 무한한 에너지원과 원료의 등장. 그리고 그 생산 권리의 라이센스와 얽히고 얽힌 수 많은 이해 관계들이 연일 들춰지고 있었다. 종교가 얽힌 중동, 거기에 민족간 갈등 문제와 독재가 얽힌 제3국가들은 물론이고 유럽 연합내에서도 이런 저런 말이 많았다. 특히 주로 석유 수입 국가들의 불만이 컸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동아시아의 화약고를 둘러싼 러시아, 중국, 일본의 불만은 대단했다. 러시아는 비록 천연가스와 석유를 수출하는 국가이기는 했지만 그것은 화석 연료의 제한성과 올라가는 연료 비용으로 인해서 어쩔 수 없이 다른 국가들이 사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문제가 해결되면 갖가지 정치적인 이유로 러시아의 화석연료가 수출이 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리고 당장에 러시아는 내려가는 석유와 천연가스 가격으로 경제적으로 타격을 받고 있었다. 중국은 경우가 좀 달랐다. 급격한 경제 성장으로 인해 원자재의 블랙홀 국가로 거듭난 중국은 국제 유가 급등에 막대한 기여를 했다. 그래서 국제 원유 가격의 하락은 반겼다. 그러나 그로 인한 라이센스 배분에는 심한 불만을 가졌다. 만일 지금 현재의 석유 생산량에 대한 비율로 라이센스를 배분한다면 중국은 여전히 제조된 석유일지라도 수입해야 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세계의 제조공장이라고 불리는 중국에는 전혀 달갑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은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원자력과 지열 발전으로 그나마 중국보다는 석유를 덜 요구하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낫고 원자력 발전소를 더 짓는 것은 후쿠시마 사태로 인해 더 이상은 불가능했다. 문제는 이 국가들이 국제적으로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국가들이라는 점. 또한 세계 경제에 막대한 이바지를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특히 일본의 엔화는 금과 같은 안전자산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고 중국은 막대한 달러를 비축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석유 제조 라이센스 배분에서 이 국가들에게 타격이 온다면 세계 경제가 위축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그래서 여전히 라이센스 배분 협상은 지지부진했다. 기술이 실현되지 않는 것이 이득인 원유 산출국들은 이런 상황을 내심 반기며 그냥 시간이 이대로 현상 유지가 되기를 바랬지만 20년후 특허권 만료에 대한 대비책을 고심하고 있었다. 그때가 되면 분명 수 많은 국가들이 자국에 석유 생산 공장을 설치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동일한 이유 때문에 석유 카르텔들은 애가 탔다. 이 라이센스를 이용해 에너지 분야에 관한 기득권을 강화하려는 계획이 계속 난항을 겪는 것이었다. 아니 장기적으로 보면 원유 생산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엄청난 위협을 맞이한 것이다. 20년 후 특허의 만료기간이 되면 그들의 기반은 완전히 무너진다. “닥터 강. 이대로라면 손해가 막심하네.” 그래서 강현과 안면이 있었던 록팰러가 총대를 맸다. 이 지지부진한 협상을 서둘러 종결해야 했다. “그래서요?” “이대로라면 전쟁이라도 해야 할 판이야.” 그는 심각한 얼굴도 말했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혹자는 우연에 불과하다고 치부하겠지만 얕은 인간의 인지와 빈약한 사고로 모든 것을 알아 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로 전쟁은 이득 때문에 일어난다. 아무도 이득 없는 전쟁은 원하지 않는다. 히틀러는 게르만 민족의 영광된 제국의 건설을 꿈꿨기에 전쟁을 일으켰고 거기에서 전혀 이득을 얻지 못하고 오히려 손해를 보는 영국은 독일에 대항해 참전을 결정했다. 석유 카르텔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뻔히 보이는 붕괴의 시나리오에서 어떻게든 자신들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결국 20년 후에라도 그들은 자신들이 이권을 가진 국가 이외의 국가에 석유 제조 시설이 들어서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16화 <03-기득권> 그를 위해서 수많은 방법이 있다. 그 중 테러는 가장 확실하고 효과적으로 시설의 운영을 막는 방법이었다. “저에게 뭘 바라세요?” “빨리 라이센스 계약을 해주게. 배분에 관한 것을 전적으로 자네에게 맡기겠네.” “귀찮은데..” 불퉁하니 입술을 내미는 무례한 모습에도 록팰러는 전혀 불쾌하지 않았다. 상대는 능력이 있었으며 자신이 미처 관리하지 못한 조직의 내밀한 정보 역시 파악할 정도의 능력자였다. 그리고 인류에게는 축복이지만 석유 카르텔에게는 악몽인 석유 제조 기술을 20대의 젊은 나이에 완성한 괴물이었다. “그럼 일단 제 말을 전해 주세요. 오늘로부터 30일 안에 협상이 마무리 되지 않는다면 제가 알아서 배분하겠다고요.” “하하하! 알겠네.” 록팰러는 기분 좋게 웃었다. 그가 웃은 이유는 강현이 석유 카르텔을 무시하고 라이센스를 배분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강현에 대한 모든 자료를 확보하고 분석한 그와 지인들은 강현이 뼛속까지 연구자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말은 자신의 연구과 관련없는 것은 관심이 없고 자신이 연구하는 것을 방해되는 것들을 제거하려고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것은 이미 한국 정부와 겪은 갈등과 그에 따른 선택의 결과로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게다가 강현은 젊은 사람 답지 않게 기득권과 기존 질서에 대한 반감이 없었다. 정확히 말해서 사회에 대한 어떤 책임감이나 의무감 따위가 없었다. 그래서 카르텔 같은 연합과 담합의 체제에도 별다른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다. 또한 무척이나 똑똑하고 생각을 깊게 했다. 강현이 석유 제조 기술을 개발한 이유가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히트맨들을 보낸 자들에 대한 응징이 목적인 것을 짐작했을 때에는 모두가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그 정도로 사고를 깊게 할 수 있다면 몰락을 앞둔 카르텔이 어떤 선택을 할지 파악하고 살 길을 열어줄 것이 분명했다. 그는 강현에게서 원하는 대답을 듣고 기분 좋게 돌아갔다. 그리고 강현의 라이센스 컴소시엄에 참가했던 모든 이들에게 매일이 통보되었다. 30일 이후까지 모든 협상이 마무리 되지 않는다면 자신이 임의적으로 계약을 하겠다는 일방적인 통보였다. 난데 없는 날벼락에 수 많은 이들이 강현과 담판을 짓겠다고 찾아왔지만 강현은 연구실에서 한 걸음도 나오지 않았다. 그에 덩달아 제시 역시 연구실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미안해.” “.... 참나..” 제시는 어이가 없었다. 기껏 사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이유가 안전을 위해서라니.. 하긴 일방적인 통보와 협상의 난항을 생각했을때 강현의 연인인 제시를 납치해 협박하는 것이 라이센스 배분을 더 많이 받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것은 향후 20년 동안 천문학적인 가치를 산출할 수 있었고 탐욕에 물든 이들이 충분히 선택할 만한 방법이었다. 그래서 제시는 미 정부 요원들의 경호와 안전을 위한 권고로 자의에 상관없이 30일 동안 연구실에 갖혀 지내게 된 것이다. 물론 생활에 필요한 세탁이나 샤워, 식사는 언제든지 제공 받을 수가 있었다. 이미 연구실에서 몇 년간 생활한 강현이 불편하지 않도록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NASA에서 편의 시설에 돈 좀 써 놨기 때문이었다. 제시가 지냈던 기숙사에 대한 지원과 너무 비교되었지만 강현이 독자적 신형 엔진과 배터리 라이센스로 벌어들이는 돈으로 매년 많은 돈을 기부했기 때문에 강현 혼자만을 위한 편의 시설 예산을 확보하는 것도 별로 눈치 보이지 않았다. 더구나 이번에는 아즈삭D의 판매로 3조원의 매출을 기록하지 않았는가? “옷은? 나 벌써 사흘째 이 옷 입고 있거든.” “응? 내 옷 입을래? 추리닝이지만 편해.” “싫어. 좀 작아.” 왠지 성장이 더딘 강현은 여전히 제시의 눈높이에 있었다. 그래서 그의 옷은 그녀에게 작았다. 하지만 제시는 작은 강현이 무척이나 귀여웠다. 특히 침대위에서. “그럼 밖에 있는 요원 아저씨에게 가져다 달라고 하자.” “뭐?” 잠깐. 밖에 있는 사람들은 정부 요원 아니야? 그런데 그런 사람들에게 사적인 심부름을 시켜도 되는 거야? 제시가 잠시 생각하는 동안 강현은 성큼성큼 밖으로 나가서는 한 요원에게 말했다. “죄송한데 부탁이 있어요.” “Sir. 말씀하십시오.” “저희 집에 가서 제시와 제가 입을 만한 옷 좀 챙겨와 주세요.” “..... 네?” 보안이라든가 어디에 가야 할 필요가 있으니 경호를 부탁한다는 말 정도를 예상했던 그는 어이가 없었다. “여기 팁이요.” 더 어이가 없었던 것은 100달러짜리 지폐를 자신의 상의에 쑤셔 넣는 강현의 태도였다. 그리고 강현은 그가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연구실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마치 당연히 자신의 부탁을 들어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참 나...” 요원은 갈등했다. 무시할 것이냐 아니면 심부름을 할 것이냐? 전자는 무리였다. 상대는 연구비 배정을 안 해 준다고 조국을 배신하고 떠나온 괴팍한 천재였다. 무시한다면 보안망을 뚫고 다짜고짜 자택으로 향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다고 심부름을 하자니 미국의 정보부 요원으로 쌓아온 프라이드가 꿈틀댔다. 결국 그가 선택한 것은 어디론가 전화를 하는 것이었다. “어이 잭. 나 마이클인데.” 정보부 후배인 잭에게 말이다. 잭은 선배의 부탁 아닌 부탁에 인상이 찌뿌려졌다. 오늘은 주말이고 또한 비번이었기에 간만에 느긋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참이다. 하지만 정보계통에서 인간관계는 무척이나 중요했으며 특히 선배인 마이클은 라인을 잘 탔다고 소문난 인간이었다. 할 수 없이 잭은 주말에도 직장에 나와야 했고 강현을 찾아가야 했다. 강현의 연구실에 가면서 잭은 얼굴 근육을 움직이며 표정을 풀었다. ‘마인드 컨트롤. 마인드 컨트롤.’ 이제부터 그는 선배의 부탁아닌 부탁에 억지로 끌려나온 고달픈 직장인이 아니라 직장 동료를 걱정해 주말에도 찾아오는 신뢰할 만한 친구가 되어야 했다. “Hey! Boy! 잘 지내고 있나?” “어? 잭.” 잭을 본 강현은 의외라는 듯이 그를 보았다. 강현도 오늘이 주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걱정되서 말이지. 요즘 말이 많잖아.” 강현의 일방적인 라이센스 계약 시일은 언론에도 대서 특필 되었다. 어떤 신문에서는 강현이 말한 ‘Dead Line’이 진정한 사전적 의미를 갖게 되었다면서 만일 라이센스 계약이 성사되었을 시에 몰락할 이들의 리스트를 뽑기도 했다. “아아.” 하지만 강현은 별로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건성으로 끄덕이고는 다시 책을 보면서 노트에 뭔가를 끄적이기 시작했다. 잭은 그런 강현을 보면서 쓴 웃음을 지었다. 역시나 괴짜. 그는 지금 자신의 말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알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그 의미가 정작 본인에게는 별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너야 상관없겠지만 제시는 어때? 벌써 며칠째 집에 못 들어 갔다며? 옷도 못 갈아 입었을 텐데.. 너 그거 애인에게 굉장히 실례되는 일인 건 알고 있니?” 강현의 몸이 멈췄다. 그리고 고개가 획 돌아가며 잭을 바라보았다. “그런거야?” “그렇고 말고.” “그럼 빨리 가져와야 할텐데...” 강현이 인상을 썼다. 잭은 강현이 말한 문장의 의미를 알고 있었지만 모른척 하고 말을 이었다. “뭘?” “내가 앞에 있는 요원에게 부탁 좀 했거든. 옷 좀 가져와 달라고.” “그런데 가져와 줄까? 그 사람은 공무원이야. 함부로 자신의 자리를 이탈할 수 없다고.” “아. 그렇지. 그럼 팁은 괜히 줬네?” “팁?” “응. 100달러.” Oh! My God! 잭은 중지로 자신의 미간을 눌렀다. 세상에 FBI도 긴장하게 만드는 미 정보부 요원을 한 낯 벨보이로 취급하다니. 어째 자신을 부를 일도 아닌데 마이클 선배가 자신을 불렀다 싶었다. 그냥 마이클 선배는 누군가에게 상처 난 자존심을 풀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 비번인 자신을 귀찮게 하는 것만큼 적절한 방법도 없었고 말이다. “그 사람에게 집 열쇠는 줬어?” “응? 정보부 요원이면 열쇠 없이도 들어갈 수 있지 않아?” 아이고 두야. “아무리 정보부 요원이라도 공적인 임무에 무단 침입을 할 수는 없잖아.” “아아. 그렇구나.” 천재 맞아? 잭은 가끔 강현이 바보로 생각될 때가 있었다. 특히 이런 상식과 관련된 부분에서는 더욱 그렇다. 아무리 정보부 요원이라도 열쇠없이 수색영장도 없는 상태에서 타인의 집에 침입한다? 비공식 작전으로 들키지 않을 상태라도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데 뻔히 공적으로 다 들어낸 상태에서 그런 짓을 하면 정보부를 탐탁치 않게 보는 이들에게 공격의 빌미가 된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강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강현에게 그런 법적 절차와 체면치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강현이 마이클이었다면 협상을 통해 100달러의 팁을 더 받고 기꺼이 몰래 갔다 왔을 것이다. 보안이 걱정된다면 놀고 있는 다른 정보부 요원들을 이용했을 것이다. 목적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강현의 사고 방식은 그의 뛰어난 사고 방식이 주변의 변수들을 고려했기에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 잘 생각해 보면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히트맨들을 처리하기 위해서 석유 시장을 붕괴시킬 가능성이 있는 기술을 개발한 것 자체가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강현의 내면이 드러난 것이었다. 물론 개발할 때에는 신나게 연구했지만 개발하고 나니 실제 파급력이 무척이나 커서 컨소시엄이란 형태로 처리를 했지만 말이다. 강현은 결코 바보가 아니었고 냉정하게 생각했을 때 기존 질서를 부수는 것보다 약간의 위협으로 자신에게 호의적이게 만드는 것이 더 이득이라는 결론은 얻었기에 석유시장의 질서는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다. “내게 열쇠를 줘. 내가 다녀 올게.” “그래도 돼?” “동료잖아. 겨우 그 정도 가지고.” 잭은 고개를 갸우뚱하는 강현에게 집 열쇠를 받았다. 그리고 약 한 시간 뒤에 케이스 백을 끌고 돌아왔다. “자! 이 정도면 한달 정도는 충분할 거야.” “어? 잭.” “안녕 제시.” 잭이 도착했을 때에는 마침 강현과 제시가 식사를 하고 있던 참이었다. 연구실에 딸린 숙소로 식사가 담긴 트레이를 끌고 와준 요원들 덕분에 둘은 식당에 가지 않고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둘은 꽤나 안면이 있었는데 다 강현을 중심으로 만난 사이였다. “그게 뭐야?” 제시의 질문에 잭이 음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네 속옷.” “... 뭐?” “걱정마. 그 야시시한 빨간 속옷도 챙겨넣었으니까. 역시 감금 생활에서는 요거 만큼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도 없지.” 그러면서 검지와 중지 사이에 엄지 손가락을 집어 넣고 꿈틀거렸다. “잭! 너!” 잭은 제시에게 한 소리 듣기 전에 얼른 밖으로 나와 자신의 부서에 얼굴을 한번 비쳤다가 돌아왔다. 주말에 불려 나온 짜증은 어느 정도 풀려있었다. 그렇다. 그는 마이클을 욕할 자격이 없었다. = = = = = 한 달은 훌쩍 지나갔다. 그러나 역시 협상은 타결되지 않았다. 밤을 세워가며 협상을 했지만 석유에 얽힌 이해 당사자 간의 갈등과 감정의 골은 깊었고 탐욕은 드높았다. [모두들 아시겠지만 통보 드린 대로 협상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제가 알아서 배분을 하겠습니다. 불만이 있으시더라도 어쩔 수 없습니다.] 일반적 통보였다. 하지만 누구 하나도 강현의 말에 불만 섞은 투정을 하지 않았다. 이 괴팍한 천재가 그에 심기가 불편해서 라이센스 배분에 불이익을 줄지도 몰랐다. 17화 석유를 생산하고 수출하는 이들이 언제 이렇게 저자세가 되어 본 적이 있었나? 하지만 지난 한 달간의 치열한 협상은 석유를 생산하고 수출하는 기업과 국가들에게 현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우리는 망할 수 밖에 없다.’ 애시당초 이런 일찍이 없었던 사상 최대의 라이센스 컨소시엄은 저 희대의 천재의 ‘배려’였다. 막말로 그는 몇몇 힘 있는 석유 카르텔하고만 손을 잡아 라이센스를 제공해도 문제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했다면 강현이 손을 잡은 석유 카르텔에 반대된 입장의 기업과 국가들은 끝없이 유출되는 자본에 이미 경제 위기가 왔을지도 몰랐다. 또한 그 지난한 협상 과정에서 수많은 종교적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를 마주하다 보니 알게 된 또 하나의 사실도 있었다. 저 천재는 자신의 손에 쥐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파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가지는 힘의 크기도.. 그러니 겁 없이 라이센스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일방적으로 배분하겠다는 데드 라인도 통보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이 라이센스의 배분은 컨소시엄이 구성 되었을 때의 세계 석유 생산을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최대한 기존의 질서를 붕괴시키지 않도록 배려했습니다.] 강현의 설명은 현상 유지를 바라는 이들에게는 환호성을 그리고 새로운 질서를 꿈꾸던 이들에게는 분노와 아쉬움을 자아냈다. 물론 록팰러와 국제적 석유 기업들에게는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그럼 천천히 훑어보시고 의문 나는 사항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참가자 각자에게 배분된 디스플레이에서 연단의 화면과 동일한 파일이 전송되었다. 그것은 라이센스에는 연간 생산 비율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각 기업과 국가들에게 배타적 수출 지역과 판매 가능한 비율 역시 명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요소가 적혀 있었으니, ‘현 배분 비율은 4년을 주기로 이해 당사자들간의 협상안이 타결된다면 그에 따라 재 배분 될 수 있다.’ 이것은 강현이 지지 부진한 협상을 일찍 종료시키고 도입이 미지근한 석유 제조 기술의 도입을 촉진하는 수준까지만 간섭하겠다는 의도였다. 참가자들은 스스로가 속한 국가와 조직에 배분된 비율과 양을 가늠해 보았다. 특별히 불이익은 없었다. 다만 더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제한되어 갑갑할 뿐이었다. [의문이 없으시다면 그렇게 알고 진행하겠습니다. 제조 시설은 자유롭게 짓고 싶으신 곳에 지으시되 제가 파견한 사람들의 철저한 감수를 받으셔야 합니다. 생산량에 대한 데이터는 암호화되어 자동으로 송신될 것이며 한계를 넘은 생산은 불허됩니다.] 강현의 말에 몇몇 국가들은 똥 씹은 표정을 했다. 솔직히 제조 시설만 건설되고 그 유전자 변형 녹조류의 샘플만 받는다면 협약이고 뭐고 몰래 생산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저렇게 철저하게 관리를 한다면 그럴 수가 없었다. [더 이상 질문이 없나요?] “이의 있습니다!” 한 사람이 벌떡 일어났다. “왜 리비아에는 배분이 없습니까?” [리비아?] 강현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내려 밑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있는 록팰러를 보았다. 그의 시선에 록팰러는 어깨를 으쓱했다. 자신도 모르는 일이라는 것이다. [리비아가 왜요? 당신과 관련있습니까?] “리비아도 엄연히 산유국입니다! 그러니 리비아에도 라이센스 배분을..” [잠깐만요. 댁은 누구길래 리비아를 걱정하는 겁니까?] “주미 리비아 대사 사르도라고 합니다.” [왜 리비아 정부 사람이 여기에 있죠? 허락한 적 없습니다만..] “....” 태연한 강현의 말에 사르도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왜, 왜입니까?” [카다피가 저를 죽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카다피. 리비아의 대통령이자 40년이 넘도록 독재를 해온 독재자였다. 강현의 말에 회장 안이 순식간에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여기 계시는 몇몇 분들 중에서는 아시는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르겠지만 제가 이 석유 제조 기술을 개발한 이유는 저를 죽이려고 한 이들을 처리하기 위해서 입니다.] 록팰러는 소름이 끼쳤다. ‘응징(punish)’이 아니라 ‘처리(dispose of)’란다. 굉장히 직설적이고 이해하는 사람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제가 개발한 배터리 기술로 꽤나 손해를 보게 된 그들은 개인적인 일탈, 혹은 조직과 국가에 대한 걱정과 충성심으로 저를 처리하고자 했습니다. 덕분에 저는 연구실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했습니다.] 사르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아마 배터리 기술로 유가가 꽤나 떨어졌기 때문이겠죠. 제가 관련 기술을 하나 더 내 놓으면 석유 업계 전반이 망가질까봐 걱정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석유 시장을 붕괴 시킬 기술을 만들어 내고자 했고 결과는 보다시피..] 강현이 좌중을 훑어 보았다. 모두는 깨달았다. 그가 원하기만 했다면 석유 업계는 시장 붕괴까지는 아니라도 아비규환과 같은 구조조정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란 것을.. [하지만 저는 기본적으로 온건한 사람입니다. 불필요한 희생을 만들 필요는 없었죠. 그래서 저는 저를 제거하려고 했던 이들을 찾아내 그들을 처리할 만한 이들에게 자료를 건네 주었습니다.] 아! 그래서였던가? 강현의 석유 제조 기술이 발표되고 나서 유난히 석유 업계의 유명인사들이 많이 실각하고 법정에 서는 등, 스캔들이 끊이지 않았던 이유가 있었다. 좌중의 사람들이 강현의 말을 들으며 표정을 굳히고 있을 때 몇몇 사람들이 피식 웃었는데 그로 인해서 더 높은 자리에 올라설 수 있었던 경쟁자들이었다. 그들이 강현의 자료를 받아들고 얼마나 가슴이 뛰었었는지 지금도 그때의 흥분을 떠올리면 하물이 불끈했다. [하지만 리비아와 같은 독재국가는 다르죠. 과연 카다피와 관련자들을 실각 시킬 수 있나요? 그래서 저는 라이센스 배분에서 제외한 것입니다.] “이익! 가, 각하가 그랬다는 증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증거가 필요해요? 말씀하시지.] 그러면서 강현은 태연히 자신의 노트북을 조작해 폴더 하나를 열었다. 폴더명이 ‘Exclusion list’였다. 제거 명단이라니... 하지만 다행이도 파일은 ‘카다피’라고 적힌 압축파일 하나만 있었다. 강현은 그 파일을 열었다. 그리고 몇몇 문서 파일을 열었다. [카다피의 해외 비밀 계좌에서 빠져나간 의뢰 대금입니다. 이것은 그 자금의 흐름을 추적한 것이고요.] “어, 어떻게 이, 이런 것을.. 서, 설마 해킹이라도 한 것입니까! 그것은 불법이요!” 할 말을 잃은 사르도가 발악을 했지만 강현은 태연했다. [증거 있어요?] “.....” 사르도의 정신이 멍해졌다. 하지만 그는 곧 소리쳤다. “당신이 그 유명한 아즈삭의 개발자라는 것을 아오! 그렇다면 은행의 비밀계좌 정보도 빼낼 수 있는 충분한 크래킹 능력을 갖췄다는 것을 의미하지!” [그래서 제가 그 능력을 남용했다는 증거가 있어요?] “그, 그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짓이오!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질 것이오!” [제가 얌전히 연구실에 있다가 이런 일로 세상을 둘러보니 알게 된 사실이 있어요. 저같이 돈 많은 변호사를 구할 수 있는 사람에게 눈 가리고 아웅은 무척이나 쉬운 일이라는 것을요.] “.....” 적나라한 말에 사르도는 할 말을 잃었고 참석자들 중에 좀 찔리는 사람들은 헛기침을 내뱉었다. [그리고 진실이 밝혀진다고 해도 책임자인 카다피가 처벌 받지 않는 리비아에게는 어떤 라이센스도 배분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명심하세요.] 그리고 강현이 경비에게 눈짓을 하자 경비가 사르도에게 다가가 양 팔을 잡고 밖으로 끌어내기 시작했다. 사르도는 몸부림을 치며 저항했지만 건장한 사내 둘의 힘을 이길 수는 없었다. “으아악! 저주받을 지어다!” [그럼 더 질문 하실 분 없으신가요?] 억지로 끌려나가는 사르도가 악담을 했다. 하지만 강현은 인상 하나 찡그리지 않고 무시했다. ..... 잠시간의 침묵. “저기 이 배분된 라이센스와 그에 따른 조건 조항들의 의미가 궁금합니다.” “리비아에 배분되지 않은 라이센스는 어떻게 처리하실 겁니까?” 하지만 곧 질문이 시작되었다. 사르도와 리비아의 일은 결국에는 남일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속한 기업과 국가의 이득을 위해서 라이센스의 조건 조항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필수였다. 물론 사르도와 강현의 대화는 인상 깊었고 기억에 잘 저장해 두었다. 세기의 천재, 강현의 성향을 파악하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 = = = = [석유 제조 기술의 개발 배경이 밝혀져!] [경악! 누가 세기의 천재를 죽이려고 했는가?!] [리비아! 석유 업계에서 퇴출 직전!] [천재! 석유 시장을 주무르다!] 역시 기자들은 대단했다. 언론이 귀찮았던 강현은 컨소시엄 회장에 일체 언론의 출입을 통제했지만 어떻게 알았는지 홀에 있었던 일들이 세어나갔다. 하지만 수백 명이 넘은 이들의 입을 일일이 막는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물론 강현이 억지로 막을 생각도 없었지만 말이다. 강현은 자신을 둘러싼 모든 소란에서 벗어난 채 다시 연구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리비아서는 석유가 수출되지 않아 경제적인 파탄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생활고를 불러왔고 다시 독재 정권에 대한 대중의 불만에 기름을 부었다. 그래서 결국 리비아에서는 카다피를 몰아내기 위한 내전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물론 강현은 관심이 없었다. “휘유! 이제 말 붙이기도 겁나네.” 잭은 과장스레 휘파람을 불었다. 정보부 요원인 그는 이미 NASA의 연구실에서부터 강현의 집까지 쫘악 깔린 수상한 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대부분 바이어나 헤드헌터, 각국의 외교관 등으로 위장 했지만 잭은 그들에게서 자신과 비슷한 음습한 느낌이 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비밀을 취급하는 자들에게서만 나는 관조적인 태도와 조심스러운 몸짓에서 풍겨나오는 일반인은 눈치 채지 못하는 기묘한 느낌이었다. 강현이 석유 제조 기술의 개발 배경을 밝히자 미 정부는 곤혹스러웠다. 세상에는 밝힐 일이 있고 밝히지 말아야 할 일이 있었다. 특히 권력의 이동과 기존 질서에 관한 대중의 불신을 가져올 일은 되도록이면 감춰야 했다. 강현이 겪은 일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세상에! 강현 같이 중요한 인물이 테러와 살해의 위협에 노출되다니! 그리고 거기에 미국의 석유 회사도 끼어있었다니! 록팰러 그룹의 스탠다드 오일의 이사가 실각되고 청부 살인 혐의로 법정에 선 일이 다시 재조명되었다. 덕분에 스탠다드 오일은 또다시 진통을 겪었지만 관련자는 이미 모두 쫓겨난 상태이기 때문에 더 이상의 책임 추궁은 없었다.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과학자!’ ‘미국 과학도들이 가장 되고 싶은 과학자!’ 히어로 물이 넘쳐나는 미국답게 미디어를 운영하는 기업들에게 사람을 우상화하는 데에는 천부적인 자질과 노하우가 있었다. 강현은 연구비 때문에 조국을 배신하고 떠난 이기적 과학자가 아니라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택한 자유의 상징이 되었고 이는 세계화라는 트랜드에 섞여 정당화 되었다. ‘한국은 세계화를 받아들인 나라다.’ ‘한국은 다문화 정책을 수용한 나라다.’ ‘그러니 한국의 국민 역시 세계화의 흐름속에서 자신이 충성을 바칠 국가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 ‘다문화 정책으로 다른 민족의 충성을 받기를 바라면서 타국으로 이민한 한국인이 여전히 한국에 충성하기를 바라는 것은 모순이다.’ ‘그렇다. 닥터 강은 더 이상 한국인이 아니라 소중한 미국의 시민이다.’ 온라인으로 강현을 비난하는 이들은 주로 한국인이었고 그런 그들은 강현을 옹호하는 미국 네티즌들의 압도적인 댓글 파도에 쓸려나갔다. 그러나 이 모든 폭풍 속에서 중심인 강현은 조용히 연구에 집중할 뿐이었다. ============================ 작품 후기 ============================ 하아 하아.. 밤을 세워 각각 두 편 연참.. 2만자.. 하, 하얗게 불태웠어.. PS- 리비아 2011년까지 카다피의 독재가 있었지만 소설 속에서는 계속 존재하고 있었던 것으로 설정했습니다. 물론 금방 사라졌지만요. 18화 = = = = = “어떻게 하면 될까?” “뭘?” 제시는 입에 넣은 음식물을 건성으로 씹으며 말하는 강현의 질문에 반문했다. 하지만 강현은 그녀의 반문을 듣지 못했다. 혼잣말인 것이다. “현. 먹고 생각해.” “.....” 멍~ 했다. 강현은 밥먹다 말고 자신만의 세계에서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식사조차 거르니 보다 못한 제시가 강제로 끌고 나와 이렇게 밥을 먹이고 있는 것이다. 제시는 멍한 강현의 모습에 한 숨을 쉬었다. 저 천재의 머릿속에 또 무슨 기상 천외한 발상이 들어있는 것일까? 제시는 강현이 쩝쩝 앞에 놓인 식사를 다 먹을 때까지 그가 씹는 것을 멈추지 않도록 계속 주의를 주었다. 옆에서 보면 마치 정신병동의 환자에게 밥을 먹이는 어머니의 모습 같았다. 근래 물리학에 푹 빠진 강현은 제시가 주의를 줄때마다 반사적으로 턱을 움직였다. 그런 강현의 모습에 제시는 한 숨을 푹 내쉬었다. 아무리 좋은 남자라도 이건 아니지 않은가? 남친에게서 좀 더 스마트하고 멋진 모습을 보고 싶은 제시였지만 잠깐 생각해 보고 그냥 이대로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희대의 천재에다가 이미 억만장자의 반열을 넘어선 남친이었다. 특히 석유 업계를 한 손에 쥐고 흔드는 그의 역량은 전 세계 여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고 가장 남편 삼고 싶은 남자 1위에 올라섰다. 일에 열중하니까 자유롭게 내버려 둘 것이다. 게다가 돈도 많다. 젊다. 몸도 과학자치고는 훤칠하게 관리를 잘했다. 등등 그가 앙케이트에 1위를 한 이유도 많지만 가장 큰 요인은 역시나 권력이었다. 과학자가 무슨 권력이냐고 하지만 권력은 영향력이었다. 세계 석유 업계가 그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 만으로도 정치가들 역시 강현의 눈치를 봐야 했다.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돈은 곧 힘이고 천문학적인 로열티를 받아 엄청난 거부가 된 그는 누구나 인정하는 유력가였다. “제대로 좀 씹어.” “어.” 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입안에 있던 음식물을 씹는다는 것을 까먹은 그의 멍하니 벌어진 입가에서 음식물이 흘러나오자 제시가 닦아 주면서 다시 주의를 줬다. “하아...” 제시는 남친과 함께 있는 시간이 점점 오래 있을 수록 그의 단점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생각에 빠진 그는 완전히 그냥 바보였다. 하지만 이런 남친에게 영화나 TV에 아는 모델처럼 항상 멋지게 있으라고 요구하기는 망설여졌다. 일단 자신이 그 때문에 강현에게 반한 것이 아니고 또한 잠재적 경쟁자들이 엄청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한 인터넷 뉴스에게 강현에 대한 기사들을 흐뭇하게 읽고 있던 와중에 ‘그의 가치는 얼마인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다. 그의 가장 큰 자산은 역시나 과학의 신이 강림한 것 같은 두뇌였고 그리고 석유 업계를 주무르는 라이센스와 배터리 라이센스, 그리고 그로 인해서 벌어들인 천문학적인 현금 자산 또한 열거했다. 그 밖에 그의 정치적 영향력으로 인해서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자산을 불릴 수 있을 거라는 말에 제시의 입가에서는 미소가 지어졌다. 하지만 기사의 내용이 너무 딱딱한지 말미에는 ‘색다른’ 가치를 추가했는데, 그것은 바로 그의 정자의 가격이었다. 만일 그가 그의 정자를 정자은행에 기부한다면 정자은행은 얼마에 그 정자를 팔 수 있을까? 대답은 1억달러였다. 1억달러에 사겠다는 수요자가 존재했다. 그것은 물론 각국의 정부였고 강현의 피를 이은 아이는 강현을 대하는 여러 전략적인 카드로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외에 많은 커리어 우먼과 독신녀들이 그의 정자로 아이를 낳고 싶다는 설문 조사도 덧붙여 읽는 사람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제시는 그제서야 남친의 가치가 요 얼마새에 엄청나가 뛰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마치 주식을 발목에 산 자신의 안목이 자랑스러웠지만 한 편으로는 걱정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만약 남친과의 썸씽을 원하는 미녀들이 달라붙었을 때 그는 과연 정조를 지킬 수 있을까? 제시는 의문스러웠다. 하지만 어리석게 그것을 시험할 생각은 없었다. 모든 일은 확률적으로 성사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고 혈기 왕성한 남친이 싱싱한 여체에 홀라당 넘어갈 가능성은 0에 가깝기는 커녕 동전의 앞뒤 맞추기와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연구실에서 마음껏 연구를 하게 해서 다른 여자를 만날 시간을 주지 않는 것이라고 결론 지었고 논리적으로 따져보았을 때에도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었다. 그런데 그런 남친이 더 멋있어진다? 애써 접근을 차단한 똥파리들이 왱왱거리며 들러붙지 않을까? “현. 잘 좀 먹어.” “어.” 그래도 제시는 한숨을 내쉴 수 밖에 없었다. 현재 강현의 모습에서 그 스마트하고 똑똑한 천재의 모습을 찾아 볼래야 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영감이 떠올라 뇌를 200% 사용하고 있는 그를 억지로 현실로 끌고오려고 한 것 자체가 문제라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만일 강현을 계속 연구실에 처박아 두었다면 그녀는 결코 보고 싶지 않았던 남친의 멍청한 모습을 여전히 모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어쩌랴? 사랑하는 연인의 건강을 걱정하는 마음을 고작 그런 이유로 막는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닌 것을.. 강현은 식사를 마치고 다시 연구실로 돌아왔다. 제시가 그가 앉은 바퀴 달린 의자를 밀어 도로 연구실에 넣어주지 않았다면 계속 멍하니 그 자리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럼 열심히 해. 저녁에 보자.” “어.” 제시는 여전히 생각에 푹 빠져있는 그를 보며 이젠 자기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며 웃었다. 그리고 강현의 이마에 키스를 하고는 다시 자신도 연구를 하러 연구실로 향했다. 저번에 발표했던 HJ세포로 구체적인 동물 조직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하는 연구에 착수했기 때문이었다. 강현은 제시가 나가고 나서도 한참 멍하니 그렇게 있다가 갑자기 얼굴을 좌우로 돌리면서 뭔가를 찾기 시작했다. 곧 볼펜과 노트를 발견한 그는 후다닥 급하게 무언가를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복잡하기 짝이 없는 수식들.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즐거운지 강현의 얼굴에는 희열이 가득했다. 그로부터 약 이주일 후.. 전세계의 물리학자들을 기겁하게 만든 논문이 발표되었다. ‘초끈 이론의 한계와 초막 이론의 개량인 초 시공간 이론. 그리고 숨어 있는 차원에 대한 고찰과 통일장 이론으로의 회귀.’ 자연계에 존재하는 힘은 4가지다. 중력, 전자기력, 그리고 강력과 약력. 중력은 거시 세계에서, 전자기력은 원자 단위의 주로 관찰되는 힘이고 강력과 약력은 주로 중성자나 양성가 같은 쿼크 단위의 미시 세계에서 관찰되는 힘이다. 강력은 원자핵을 구성하는 중성자와 양성자들이 결합하는 힘으로 이해할 수 있고 약력은 베타 붕괴 그러니까 중성자가 붕괴되어 양성자와 전자가 되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도입된 힘이다. 그리고 이 네가지 힘들을 하나의 모델로 설명하려고 하는 것이 이른바 ‘모든 것의 이론’이었다. 이 모든 것의 이론은 아인슈타인의 통일장 이론에서 시작되었다. 통일장 이론은 그 당시 새롭게 떠오르던 양자역학과는 달리 장(場)이란 개념으로 자연계의 4가지 힘을 통합하여 표현하려던 아인슈타인의 이론이었다. 물론 미완성으로 남았지만 말이다. 그리하여 현재 이 4가지 힘을 통일하기 위한 노력으로 초막 이론까지 제안되었다. 원래 그 전까지는 모든 물질이 진동하는 끈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초끈 이론이 유력한 통일 이론으로 떠올랐지만 우주를 구성하기 위해 필요한 끈의 종류가 무한대가 필요하다는 답이 나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한 차원 높은 11차원의 이론인 초막 이론이 제안된 것이다. 이런 현대 물리학의 난점을 곰곰히 생각하기 시작한 강현의 사고는 그의 인지를 내면 깊숙히 빠져들게 만들었고 급기야는 여자친구에게 못 볼 꼴을 보여주고 만 것이었다. 강현은 생각했다. 왜 10차원이 아니라 11차원일까? 원래 초끈 이론이 나온 것도 0차원의 입자들을 다루는 양자역학으로는 모순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1차원의 끈을 다루는 방법을 생각해 낸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10차원의 초끈 이론으로는 해결하지 못할 모순이 생겼기 때문에 11차원의 초막 이론이 제안된 것이었다. 모순. 그 모순이란 바로 ‘무한’이다. 단위계에서 길이는 너무나 쉽게 표현된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길이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점이 ‘몇 개’나 필요할까? 답은 무한대다. 그러니까 ‘길이’는 점의 ‘갯 수’로 표현할 수 없으며 무한을 표현하려면 차원을 넘어야 하는 것이다. 강현은 여기에 매력을 느꼈다. 무한이란 모순을 뛰어 넘기 위해서는 차원을 뛰어 넘어야한다는 것. 마치 신이 인지하는 세계를 보기 위해 계단을 걸어 올라가는 것 같지 않은가? 그래서 그는 초끈 이론에서 초막 이론을 생각했고 이차원인 막을 다루는 초막 이론에서 3차원의 공간을 다루는 이론을 생각했으며 실제 물질이 존재하는 4차원 시공간을 다루는 이론을 생각했다. 그리고 이 이론을 ‘초 시공간 이론’으로 이름 붙였다. 그러면서 머릿속에 떠오른 공식들을 써 내려갔다. 초막 이론이 2차원인 막을 11차원에서 다루는 것이니 그보다 2차원이 더 높은 ‘초시공간’을 다루는 이루는 이론은 13차원에서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13이라.. 꽤나 의미심장한 숫자였다. 예수가 죽기 전에 12명의 제자와 함께 13명이서 최후의 만찬을 가졌다. 비록 13일의 금요일 등 서양에서는 불길한 숫자로 생각되나 그것은 와전 된 것이었다. 실제 미국의 처음 국기에는 별과 줄무늬 개수가 13개였다. 남북 전쟁 당시 남군의 깃발에도 별이 13개였다. 13이 불길한 숫자라면 그렇게 그려넣지는 않았을 것이다. 뿐만 아니다. 동양의 12간지, 서양의 12성좌, 올림푸스의 12신, 헤라클레스의 12 시련 등 인간에게 허락된 숫자는 12까지 뿐이고 그 위에 13은 신의 숫자라고 일컬어 지기도 한다. 수비학에서 1은 신성을 의미하고 3은 창조를 의미한다. 모든 것의 이론인 통일 이론에 어울리는 의미가 아닌가? “이것은! 통일장(場) 이론이다!” 논문을 읽은 물리학자들은 경악했다. 당시 아인슈타인은 주류로 각광받기 시작하던 양자역학을 외면했다. 그리하여 그의 이론은 더 이상 주목 받지 못했다. 그 뒤로 아인슈타인처럼 장(場)의 개념으로 통일 이론을 구상하려는 과학자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여기 시대를 뛰어넘어 한 천재가 다시 통일장 이론에 불을 당긴 것이다. “스티븐 박사님. 이제 그만 주무셔야죠.” 불행한 천재. 루게릭 병을 앓고 있는 스티븐 박사는 제자인 팀의 걱정에도 모니터에서 눈을 때지 못했다. 모니터에서는 빽빽한 수식들과 중간 중간 간략한 문장이 적힌 텍스트가 한 장 한 장 넘어가고 있었다. 약 24페이지의 글은 읽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스티븐 박사는 잘 움직이지 않는 손가락을 달각거리며 다시 화면의 맨 위로 올라갔다. “박사님?” 잭은 스티븐 박사의 건강이 걱정되어 그에게 다가가 그만 주무시라고 설득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스티븐 박사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것은 과학자로서 흘리는 기쁨의 눈물일까.. 아니면 자신이 올라가지 못한 산 정상을 이미 다른 누군가가 정복했다는 아쉬움의 눈물일까? 아마 그 스스로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 작품 후기 ============================ 아즈삭에 관한 챕터에서 국제 표준 기계어가 존재하냐는 질문이 있길래 혹시나 해서 답합니다. 국제 표준 기계어는 없습니다. 혹시 있다고 생각하시면 안됍니다. 물론 IEEE 규격이라고 국제 표준이 있지만 이것은 부동 소수점을 표기하기 위한 변수 선언이니 햇갈리시면 안됍니다. 그리고 기계어는 CPU에 따라서 그 코드가 다 다르다고 합니다. CIA에서의 사고는 그래서 발생한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가장 CPU를 잘 파는 인텔과 주인공표 CPU의 차이라고 할까요? 국제 표준 기계어라는 표현은 이 인텔에 대한 설명으로 과도하게 글이 전문화(?) 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음을 공지하며 혹시 헷갈리신 분이 계시다면 사과드립니다. PS-이글은 픽션이며 SF성이 짙은 현대물임을 다시 한번 알려드립니다. 부제가 '과학의 군림자'잖아요. 19화 전 세계의 물리학자들은 강현의 논문을 읽느라 날밤을 새웠다. 그리고 며칠 간 물리학계에는 폭풍 전야같은 고요함이 일었고 누가 먼저 시작한 것도 아닌데 일제히 NASA로 향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물리학자는 물론이고 유럽의 물리학자들까지 일제히 비행기를 타고는 NASA의 연구소, 그 중에 강현이 있는 샌프란시스코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어이, 한스. 자네가 왠일인가?” “그럼 자네는?” 존은 라이벌이자 동기인 한스를 비행기 체크인을 할 때 만났다. 서로 누가 먼서 좋은 결과를 내놓는지 경쟁하는 선의의 관계였다. 존과 한스는 서로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똑똑한 그들은 이내 상대방의 목적을 알 수 있었다. “자네도 그 논문을 읽은 건가?” “당연하지.” 존의 질문에 한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절로 논문의 서론 부분이 생각났다. ‘... 4차원의 세계에서 살면서 물질을 구성하는 입자가 1차원이나 2차원이라는 것은 모순이다. 또한 시간마저 상대적이니 3차원이라는 것도 모순이다. 따라서 기존의 11차원의 초막 이론에 2차원을 더 추가하여 4차원인 ‘초시공간’을 다루어야 한다. 즉 이 ‘초시공간’의 에너지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장(場)이 가장 적절한 수단이다. 이는 현실의 4차원에서 입자와 파동의 성질을 가지는 물질파를 고려할 때 타당하다고 보여지며..’ “아인슈타인의 재림인가?” “역시 과거의 사람이지만 시대를 뛰어넘는 천재라는 것이지.” 사고 실험 만으로 빛의 속도가 어디에서든 동일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아인슈타인. 그의 직관은 모든 것의 이론을 만들기 위해서 입자가 아니라 장(場)의 개념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냈는지도 모른다. “폰 노이만과 아인슈타인의 융합인가?” 한스의 말에 존이 썩소를 지었다. 강현에 대한 일화는 과학계에 너무나 유명했다. 한국에서 있었던 일도 알려졌는데 어렸을 때부터 폰 노이만 같은 뛰어난 두뇌를 가지고 싶어 전화번호부를 달달 외우며 계산하고 다녔다는 일은 이공계를 꿈꾸는 이들에게는 웃지 못할 개그였다. 그리고 폰 노이만 방식을 탈피한 아즈삭이라는 새로운 방식의 계산기는 이미 강현과 폰 노이만을 같은 반열에 두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이제는 아인슈타인의 직관까지... 과학 문명의 발전과 인류 전체의 관점에서는 축복이었지만 경쟁자의 입장에서는 최악이었다. 이건 뭐 강현이 연구하지 않는 것을 골라서 연구해야 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르지 않나? “그나저나 약속은 잡았나?” “그렇다네.” “몇시에?” “한 시.” “호오.. 나도 한시인데. 날짜가 다른가 보지? 나는 금요일일세.” “어? 나도 금요일인데..” ““......””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불길한 상상을 했다. 설마 자신들 뿐만 아니라 다른 학자들과도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약속을 잡은건 아니겠지? ““......”” 두 사람의 불길한 상상은 그대로 실현됬다. NASA는 몰려드는 전세계 학자들로 인해서 부랴부랴 대형 홀을 빌리고 출장 뷔페를 찾아 계약했다. 그리고 홀에는 바글바글하게 물리학자들이 모여 저마다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하하하! 오랜 만일세. 어떻게 지냈나?” “나야 여전하지. 자네는 잘 지냈나? 가족들은?” 서로의 안부를 묻기도 하고, “그럼 그 상수값을 어떻게 처리했나?” “변수로 취급해서 컴퓨터에 돌렸지. 역시나 아즈삭이 편하기는 편하더군. 간단한 수식 수정 정도야 알아서 하니..” 서로의 연구 진행 과정을 묻기도 했다. “그 장(場)을 양자 색역학적으로 나타내면..” “나는 그런 생각에 반대네. 왜 굳이 장(場)의 개념을 도입했겠나? 이미 입자로는 설명하기 난해하기 때문이 아닌가?” “그러나 기존 주류 물리학에 익숙한 사람들이 이해를 하려면 그런 노력도 필요해.” 하지만 역시가 서로가 대화를 나누는 가장 중요한 소재는 역시나 강현의 통일장 이론이었다. 아인슈타인 사후 주류 물리학계에서 외면받은 통일장 이론이 과연 어떻게 표현 될 것인지가 그들의 가장 큰 관심사였다. 한 시가 되었다. 그들이 만나고 싶다는 이메일의 답장에 명시된 시간이었다. 그리고 칼 같이 강현이 들어와서는 마이크를 잡았다. [안녕하세요. 전세계에서 이렇게 많은 분들이 저의 논문을 읽고 이렇게 직접 찾아와 주시는 뜨거운 반응에 좀 많이 놀랐습니다. 덕분에 NASA에서 부랴부랴 홀도 빌리고 고생 많이 했죠.] 수 많은 과학자들을 복도에 세워 둘 수 없다며 홀을 예약한 기획부장이 이레이가 들었다면 드디어 천재가 철 좀 들었구나 하면서 감동할 멘트였다. [이렇게 모든 분들을 이런 자리에서 한꺼번에 만나는 것이 좀 무례한 일이기는 하지만 제가 워낙 바쁜 사람이다 보니 그러려니 해 주세요.] 강현이 고개를 숙이며 사의를 표하자 모인 학자들은 쓰게 웃었다. ‘좀 무례한’ 일이 아니라 ‘상당히 무례한’ 일이었다. 이 자리에 나온 학자들은 대부분 각 국가에서는 기초 물리학의 자존심들이었다. 그래도 뭐라고 할 수 없는 것이 강현의 연구 속도와 시간이 NASA에 있는 동문 혹은 제자의 제자들로부터 알음 알음 전달되었기 때문이었다. 강현은 통상 9시에 출근해서 저녁 5시까지 연구를 하고는 퇴근한다. 퇴근을 하다가 다시 연구실에 와서 데이터를 훑어본다. 또 연구하냐고 묻는 질문에 강현이 한 대답은 ‘심심해서’였다. 그나마 요즘은 여자친구가 생겨서 그러지 않았지만 제시가 연구 일정에 연구소에 틀어박히면 어김없이 또 그러는 것이다. ‘제시도 연구가 바빠서 집에서는 혼자고.. 심심해..’ 그런 강현의 대답에 잭이 그를 데리고 클럽에 가고 싶어서 온 몸이 근질거렸다는 것은 비밀이다. 또한 잭의 성향을 알고 있는 정보부에서 미리 그에게 강현의 연구에 대한 열정을 훼손할 어떤 행동도 하지 말라는 지령이 내려왔다는 것도 비밀이다. 아무튼 그런 강현이기에 이 자리에 있는 누구도 강현에게 무례하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상대는 자신의 재능만큼이나 시간을 충실하게 쓰면서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존경할 만한 연구자였다. [다들 저를 찾아오신 이유가 그 통일장 이론에 관한 논문에 대해서 심도 있게 대화를 하고 싶기 때문이겠죠?] 강현의 질문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강현의 공식은 논리적인 전개는 전혀 문제가 없었지만 더 없이 난해 했으며 논문에 적힌 유도 과정만으로는 다들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13차원의 공식에서 시간과 3차원 공간을 표현한 4차원을 제외한 나머니 9개의 변수였다. 기존의 10차원을 다루는 초끈이론에서는 4차원을 제외한 6차원에 대한 설명을 자주 작게 말려있기 때문에 관찰할 수 없는 차원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강현은 9개의 차원을 겹쳐져 있지만 느낄 수 없는 공간이라고 정의했다. 이 말은 매우 모호했고 더 이상의 추가 설명이 없었기에 과학자들은 상상할 수가 없었다. 혹시 평행 차원이나 다중 차원을 이야기 하는 것인가? 누군가가 손을 들어 마이크를 받아 이에 관한 질문을 했다. 역시나 가장 궁금한 점은 가장 빨리 풀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인가 보다. [어 그러니까.. 저도 정확히는 잘 몰라요.] ““““......”””” 좌중의 사람들은 당황했다. [저도 말해 놓고 좀 당황스럽네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 저는 그 9개의 차원이야 말로 이 우주를 구성하는 세계관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럼 어떤 세계관을 상상했기에 그렇게 생각을 한 건가요?” [으음..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직접 보면서 설명을 듣는 게 빠르겠죠?] 강현은 그렇게 얘기하면서 뒤에 있던 기획부에서 나온 직원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기획부 직원은 홀 밖으로 나가 헐레벌떡 뛰어서 출장 뷔페의 책임자에게 향했다. 그러는 동안 생긴 잠시의 시간 동안 모두는 취향별로 롤케익 조각과 케이크 조각, 혹은 달달한 음료수를 디저트로 챙겼다. 이제부터의 시간은 뇌를 많이 사용하는 시간이 될 터이고 당분은 뇌의 활동에 필수적인 요소였다. 곧 기획부 직원이 투명한 유리병을 가지고 와서 강현에게 전달했다. 유리병의 내용물은 층을 이루고 있었는데 밑에는 물이었고 위에는 식용유였다. [제가 보는 세상을 극단적으로 축약하면 이런 것입니다. 이렇게 두 개의 우주가 깨끗하게 있는 것이 빅뱅전의 세상입니다. 그리고,] 강현은 병을 한번 힘차게 흔들었다. 그러자 무수히 많은 기름 알갱이가 물안에 생기며 천천히 부유했다. [이것이 빅뱅 후의 세상입니다. 이 기름 알갱이의 표면이 곧 물질이라고 할 수 있죠.] 강현은 그 말을 필두로 긴 설명을 시작했다. 아인슈타인은 물질은 곧 에너지라는 공식을 만들었다. 하지만 사실 아인슈타인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가속하는 물체는 점점 가속하는 것이 힘들어지기 때문에 빛보다 빠른 물질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기에 영감을 얻은 독일의 핵물리학자는 핵분열을 통해 아인슈타인의 공식이 가속하는 물체가 아니라 일반적인 물질에도 적용 가능함을 증명했다. 강현은 그렇게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법칙은 어디에나 적용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즉, E=mc^2이란 공식은 절대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물질은 곧 에너지라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에너지는 언제나 존재하기 위해서 매질이 필요합니다. 과거 빛을 전달하는 매질인 에테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죠. 하지만 매질이란 의미를 확장한다면 이 공간 자체가 매질입니다. 즉 물질이 물질로 존재할 수 있는 매질이 이 공간이라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강현이 논문에서 설명한 ‘초시공간’은 물질이 존재할 수 있도록 하는 에너지 장(場)의 발현 장소였다. [그렇지만 여전히 저도 의문이 남습니다. 이 에너지 장은 어떤 식으로 상호작용을 하는 것일까요? 여기에 서는 9개의 차원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초시공간’에 있는 장(場) 사이의 상호작용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열쇠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마른 입술을 다시 물로 축였다. [이 차원 중 적어도 2개는 전기장과 자기장의 차원, 즉 그 둘만을 위한 매질 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이 물과 기름에서 기름과 같은 역할이죠.] 기름 방울은 둥둥 떠서 정말로 작은 기름 방울만 남아있었다. 그 기름 방울들은 강현이 유리병을 살짝 흔들 때마다 경계층의 파동에 이리 움직이고 저리 움직였다. [전기장과 자기장의 파동은 각기 허락된 기름층, 즉 겹쳐진 차원을 통해서 전파됩니다. 이것으로 빛의 속도가 어디에서나 동일하다는 것도 설명이 됩니다.] 빛을 구성하는 전기장과 자기장의 파동 에너지는 현재의 물질계로 전파되는 것이 아니라 겹쳐진 차원에 의해서 전달된다. 따라서 발광체의 속도와 관측자의 속도에 따라서 빛의 파장이 바뀌는 도플러 효과는 발생하지만 빛의 속도는 변하지 않는다. [아직 이 겹쳐진 차원에 대한 건 증명할 수도 없고 모순점을 해결하기 위한 논리도 부족하지만 말이죠.] 몇몇 과학자는 그래도 감탄사를 터뜨리며 입을 오자로 벌렸다. 빛의 속도는 왜 고정되어 있는 것인가? 과학자들 중에 그것에 의문을 품는 사람은 많았다. 왜 그런지도 수많은 가설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러나 전기장과 자기장의 에너지가 오가는 겹쳐진 차원이란 개념은 상당히 그럴 듯 했다. 비유하자면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는 사람이 어떤 진동수의 파도를 만들어 내던 어떤 속도로 움직이던 그것을 관측하는 사람은 어디서든 파도의 속도가 동일하다는 것을 관찰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랄까? ============================ 작품 후기 ============================ 어렵죠? 저두요. 20화 “하지만 그렇다면 중력에 의해서 빛이 휘는 현상은 중력이 그 겹쳐진 전자기장의 차원도 휘게 만든다고 설명하려는 겁니까?” [에.. 말이 되게 하려면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세계관이 너무 복잡하지 않습니까?” 다른 물리학자는 인상을 찌뿌렸다. 물리학은 심플함을 추구한다. 다 그렇지는 않지만 단순한 원리로 세상이 구성된다고 믿는 사람은 많았다. [법칙은 단순하지만 구성은 복잡하다.] “??” [모두들 아시다시피 세상은 정말로 복잡하게 돌아갑니다. 하지만 그 근본적인 원리는 정말로 단순하죠. 그렇다면 그 복잡성은 어디에서 올까요? 저는 그것이 애시당초 복잡하게 구성된 환경에서 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환경에서 법칙은 어디에서나 적용 가능해야 하기에 오히려 더 단순해지는 것이 필연이라고 믿습니다.] 1+1=2. 이 단순한 수학 법칙은 자연수 뿐만 아니라 유리수, 실수, 복소수의 영역까지 모두 적용이 된다. 수학은 수의 범위를 확장하여 좀더 복잡해지고 좀 더 다양한 규칙을 가질 수 있게 되었지만 실상 가장 단순한 법칙은 괴리없이 모든 영역에 적용되었다. [그런 신념에서 저는 사실 통일 이론도 실제로 공식으로 표현하면 지금보다 더 단순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 단순한 이론이 적용되는 우주의 복잡성을 설명하려면 세상 자체가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그 과정에서 천재의 논문은 반박되고 옹호되고 수정되기를 반복했으나 문맥상 그리고 수학상의 논리와 가장 핵심적인 세계관은 건드려지지 않았다. 사실 그것을 반박하기나 옹호하기에는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했다. 하지만 수식적인 논리는 완벽했기에 물리학자들의 대부분은 이것이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열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세상은 4차원이 아니라 13차원일지도 모른다.] [겹쳐진 차원. 그 놀라운 변설.] [천재의 오만인가, 아니면 진실인가?] [세상을 구성하는 새로운 관점! 사실 세상은 여러개의 차원이 겹쳐져 있다?!] 사실 강현이 도입한 세계관은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이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다. 다 누군가가 한 번쯤은 상상했던 것이다. 소설 속 상상에서 천국과 지옥은 공간적으로는 현실과 겹쳐져 있지만 존재하는 차원이 다르기에 볼 수 없다는 소재들이 그것을 증명했다. 그러나 그런 세계관을 가지고 수학적으로 그렇다고 설명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복잡한 수식과 개념들이 길게 나열되었지만 물리학자들이 아니고서 그 수식들을 이해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수학적으로 공식을 만들어 내야만 구체적인 수치를 뽑을 수 있고 데이타를 축적해 오류를 찾아낼 수 있기 때문에 수학은 공학적인 중요성 뿐만 아니라 여러 데이터에 필수적인 도구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강현의 수식은 완벽했다. 그러니 정말로 그의 가설인 ‘겹쳐진 차원’이 존재하는 지의 여부만 확인 한다면 그의 가설은 통일장 이론으로 확증 받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존재하는 그 어떤 다른 방법도 강현의 ‘다중 차원 이론’을 확인할 수 없었다. 그것은 마치 개미가 인간의 빌딩을 탐사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다. 어떤 방법을 사용해야 강현의 다중 차원을 검증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이 요즘 물리학계의 고민이었다. 그러나 강현은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그는 학자기는 하지만 공학도로서 정체성이 더 강했다. 그는 질문보다는 답을 더 좋아했고 원리를 이해하기 보다는 원리를 응용하는 것을 더 좋아했다. 진리를 깨닫는 것보다 창조하는 것이 더 좋은 강현이었다. 그렇기에 좀 더 보강 논문을 내 달라는 물리학계의 요청을 깡그리 무시하고 요즘 필이 꽂힌 로보트로닉스에 푹 빠져버렸다. “아즈삭. 출력은 어느 정도 낼 수 있지?” [현재 나온 모터로는 약 0.1마력에 불과 합니다. 이것으로 밸런스를 지탱하는 것은 불가합니다.] “흐음.. 신소재가 필요한 건가?” 강현은 자율형 로봇을 만들고자 했다. 이는 NASA의 무인 화성 탐사 프로젝트에 자극을 받은 것인데 아무래도 바퀴가 달린 로봇은 로봇이라고 하기 어렵다는 강현의 이상한 지론 때문이었다. 그래서 강현은 바퀴를 대신 할 만한 것을 찾았고 그것이 바로 곤충의 다리였다. 생물을 모방해서 원하는 효과를 얻는 기술은 그리 생소한 것은 아니다. 깊게는 나노 스케일부터 크게는 건축까지 자연계에 존재하는 것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라고 할 만한 것들이 많이 있었다. 강현도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 그가 가장 모방하고 싶었던 것은 이족 보행 동물인 인간이었다. 그러나 인간이 걷는 행위를 모방하는 것은 지금의 기술로는 무척이나 힘들었다. 왜 인간은 두발로 걸을 수 있을까? 그리고 왜 다른 동물들은 네발로 걸을까? 유인원들은 두발로 걸으려면 뒤뚱뒤뚱 걷는다. 펭귄도 뒤뚱 뒤뚱 걷는다. 그것은 체중의 이동에 의해서 넘어지지 않기 위한 반사적인 행동이다. 자연계에서 인간처럼 자연스럽게 걷는 동물은 없다. 과거 이족 보행을 연구하기 시작했을때 학자들은 하체만 따로 때서 연구했다. 오랜 시행 오차에도 불구하고 그 로봇들의 걸음걸이는 인간과 닮았다고 하기는 어려웠다. 실상 인간이 걷기 위해 중심을 맞추는 데에는 상체의 역할이 무척이나 컸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척추를 도입하려고 했지만 난관에 부딪혔다. 척수를 움직이는 근육의 조절이 너무나 정교했기 때문이었다. 균형 감각에 한해서 인간을 능가하는 동물은 없었다. 세상에 어느 동물이 인간처럼 체조를 할수 있고 묘기를 할 수 있겠는가? “흐음.. 사람의 머리가 무거워진 이유가 이건가?” 사람의 머리는 상당히 무겁다. 혹자는 지능의 사용으로 논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대뇌피질이 발달했다고 한다. 하지만 강현은 그 의견에 회의적이었다. 인간만이 도구를 사용하지는 않는다. 까마귀 역시 나뭇가지들을 이용해서 먹이를 먹을 수 있고 인간이 만들어낸 고차원적인 장치의 매커니즘을 이해할 수 있었다. 뇌의 부피만으로 지능을 결정한다면 돼지와 개에 맞먹는 지능을 보여주는 까마귀의 능력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자연선택에 의해서 살아남는 유전형질이 있다고 하면 쓸데없이 부피와 무게만 늘린 머리보다는 차라리 뇌의 시냅스 구조를 좀더 촘촘하고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 에너지적으로 적게 든다. 물론 지능이 두뇌 크기의 성장에 전혀 기여를 하지 않았다고 단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고작 그런 이유만으로 진화의 방향성을 단정 짓기에는 세상은 복잡하고 여러 요소들이 서로 피드백을 하며 상호 작용을 일으켰다. 누구나 한 번쯤 긴 막대기를 손끝에 세워두고 얼마나 오래 가는지 균형을 잡는 놀이를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균형 잡기 놀이는 짧은 막대기 보다 긴 막대기가 균형을 유지하기가 더 쉬운데 이유는 관성 모멘트라는 물리량에 있다. 마치 관성의 법칙에서 직선 운동을 하려는 물체가 계속 직선 운동을 하듯이 회전운동을 하는 물체는 계속 회전하려는 성질을 관성 모멘트라고 하는 것이다. 이 관성 모멘트는 물체의 무게와 회전축에서 무게 중심까지의 거리로 결정이 되는데 길이가 긴 장대일수록 축이 되는 손가락에서의 거리가 멀기 때문에 회전하지 않으려는 성질이 더 크고 때문에 적절히 손가락의 위치를 바꾸어 가며 균형을 조절할 수가 있는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사람의 머리는 사람의 무게 중심을 상당이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이것은 사람이 걸을 때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에너지의 소모를 무척이나 줄여 주었을 것이다. 게다가 마침 발달한 대뇌 피질은 복잡하기 짝이 없는 걷기 균형을 제어하는데 일조하였으며 인간에게 논리적 사고력을 부여하였고 문명을 일으켜 지금에 까지 이르게 할 수 있지 않았을까.. 가 강현의 생각이었다. 물론 겨우 이 두 가지 이유 뿐만 아니라 당시의 환경적 요인과 두뇌 발달을 요구하는 다른 요인이 있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강현은 그것을 더 따지고 들고 싶지 않았다. 그가 내린 결론은 인간과 같은 걸음걸이를 재현하기 위해서는 무게 중심이 더 높은 곳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강현은 설계에 들어갔다. 평상시의 그와 다르게 일단 설계부터 시작했다. 제조에 필요한 재료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일단은 설계로 자신의 창조 욕구를 듬뿍 충족시킬 생각이었다. 그리고 필요한 스펙의 재료가 없다면 나중에 자신이 천천히 개발해도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아..” 제시는 연구실에 처박혀 컴퓨터로 뭔 가를 설계하는 강현을 보면서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같이 가자고 할까?’ 그녀는 최근 프랑스의 한 연구소에서 편지를 받았다. 세계적인 유명 분자 생물공학 연구소에서 저번 그녀의 HJ세포를 보고 깊게 감명을 받았다면서 같이 연구하기를 바랬다. 그녀는 갈등했다. NASA의 연구시설이 좋다고는 하지만 NASA는 애시당초 우주 개발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생물학 연구실은 극한 환경에서 생명체의 존재가 있을 수 있는지를 조사하는 것과 우주 환경에서의 식량 생산이나 각종 식물의 재배 같은 공학적인 목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그녀의 HJ세포가 그런 그들의 요구에 부합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HJ세포는 좀 더 근본적인 연구를 위한 툴이었다. 응용성은 무궁무진 했지만 가장 큰 장점은 생명체 형성의 메커니즘을 연구하기 무척 편하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NASA에서의 생물학 연구는 그 분야가 무척 좁고 무엇보다도 같이 연구를 할 동료들이 무척 적다는 점이었다. 고도화 되는 과학문명과 축적되는 대량의 데이터는 아무리 똑똑하다고 해도 과거과 같이 몇몇 천재 과학자들의 기지와 노력으로 성과를 내기 어려운 환경이 되었다. 강현은.. 일단 예외로 치자. 아무튼 제시는 그 동안 HJ세포를 혼자서 구상하고 개발하느라 무척이나 힘이들었다. 혼자서 수십 명의 몫을 해내는 강현의 도움이 없었다면 지쳐버렸을 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자신과 같은 것을 목표로 연구하는 집단에서 자신을 바라고 있다는 편지는 그녀의 마음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녀가 꿈을 쫓기에는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바로 강현. 무수히 많은 여자들이 그를 노리고 있다. 그를 놔두고 원거리 연애를 한다? 글쎄.. 그것이 과연 오래 갈 것인가? 강현은 모르지만 자신은 참을 수가 없다. 언제나 옆에서 한결같이 든든하게 있어주던 그를 떠나 다른 나라로 가버린다는 것이.... 하지만 꿈 역시 포기할 수 없었다. 자신이 너무 욕심 많은 여자인 걸까? “학! 학! 학!” 퇴근하고 집에 돌아온 그들은 뜨거운 시간을 가졌다. 직장이 같다는 것은 일상의 일정이 비슷하다는 이점이 있었고 같이 보낼 시간을 만들기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단점은 헤어지면 골치 아프다는 것이다. 제시는 강현과 나란히 누워 키스를 하고 서로의 몸을 어루만지면서 후희를 즐겼다. 제시는 그러다가 오늘 아침에 한 결심을 실행하기로 했다. “저기. 현.” “응?” “나, 사실..” 그녀는 얼마 전 프랑스에 있는 생물학 연구소에서 편지를 받았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NASA보다 확실히 생물학 연구에 더 좋은 인프라와 인력이 있기에 꼭 가고 싶다고. “가면 되잖아.” 강현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21화 “그러면 현과 떨어지게 되잖아. 현은 나와 떨어지는 게 싫지 않아?” “내가 왜 떨어져?” 강현이 말했다. “같이 가자.” 그의 말에 제시는 기쁨과 함께 걱정이 되었다. “연구는?” “왔다갔다하면서 하지 뭐. 돈도 많은데 전용기가 하나 살까?” “현!” 제시는 감동했다. 꿈과 사랑. 둘 중 하나를 버려야 될지도 모른다고 각오를 했지만 어느 것도 버릴 필요가 없었다. 다음 날 제시는 프랑스 생물 연구소에 답장을 보내고 사표를 제출했다. NASA는 뒤집어 졌다. HJ세포의 개발자인 그녀가 떠나는 것은 아쉬웠지만 그래도 이해했다. 그녀가 원하는 연구환경을 NASA에서 마련해 주기에는 어려웠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NASA는 우주 개발이 핵심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강현은 다르다. 강현은 희대의 천재였고 그가 개발한 기술들과 결과물들은 우주 개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인공 광합성 칩은 물론이거니와 아즈삭을 이용한 궤도 계산은 기존의 컴퓨터보다 빨랐으며 미처 인간이 생각하지 못한 변수마저 짚어내는 엄청난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강현이 내는 기부금으로 인해서 얼마나 예산이 풍족해 졌던거? 석유 제조 기술의 로열티의 일부만으로도 NASA의 재정이 풍족해질 정도였다. 그런데 제시가 떠난다? 그것도 강현과 같이? “현! 프랑스로 간다는 게 사실이야?” 언제나 강현의 신변에 민감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잭의 귀에 제시의 프랑스 행 소식이 바로 들어왔고 잭은 급하기 강현에게 달려왔다. “응.” 잭은 속으로 맙소사라고 외치면서 한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여자따라가는 거야?” 하아.. 이래서.. 잭은 상부에 미인계를 건의 했어야 올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미인이면서 과학을 좋아하고 또한 과학에 재능이 있으면서도 정보부에 투신할 만큼의 인재를 찾기란 하늘에서 별따기였다. 잭은 설마 제시에게 뒤통수를 맞을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고 그것은 미 정보부에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하아.. 연구 욕심으로 다른 나라로 떠난다니..’ NASA에서는 제시의 결정을 만류하여 설득을 하려고 했지만 그녀가 원하는 인프라를 제공하기는 너무나 어려웠다. 법적인 절차나 시설이야 돈을 처바르면 어떻게든 되겠지만 인력이란 인프라만은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너 아즈삭은 어쩌고? 또 여기에 벌려 놓은 일들은 어쩌고?” “놔두고 가야지.” “너 겨우 이 정도의 인간이었냐?” 잭은 도발을 감행했다. 어떻게 자신이 벌려놓은 일들을 놔두고 여자 뒤꽁무니를 쫓아갈 수 있느냐. 니가 그러고도 연구자냐? 라면서 자존심을 건들여 붙잡아 놓으려는 순간적인 기지였다. 그러나 강현의 잭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너 말고 아즈삭을 제대로 다룰 만한 사람도 없어. 그리고 네가 남겨놓은 연구를 누가 이어 받아서 하는데? 아무도 할 만한 사람이 없어.” “아아. 그런 말이구나. 걱정하지마 연구실은 그대로 유지할 거니까.”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연구실이야 많으면 많을 수록 좋으니까. 그쪽에는 생명 공학 연구실을 따로 짓고 여기에는 메카트로닉스 연구실 전용으로 사용되면 되지.” “.... 그, 그럼 아주 가는 것이 아니야?” “아, 이민? 내가 귀찮게 왜?” 강현이 프랑스에 가려는 이유는 제시였다. 그러나 이왕 가는거 좀 더 생산적인 일도 겸하는게 좋을 것 같았다. 그 동안 NASA에서 생물학에 대한 연구를 하고 싶어도 제시와 사브리나가 사용하는 연구실을 같이 사용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기에 생물학 연구로 유명한 프랑스의 파스퇴르 연구소에 전용 연구실을 하나 짓는 것도 나쁘지 않게 생각했다. 물론 지금이야 메카트로닉스에 빠져 이족 보행을 연구하고 있기는 하지만 언제 생명 공학을 연구하고 싶을지 알 수 없는 것이 자신의 인생이 아닌가? “아, 그래?” 잭의 얼굴에 안도감이 서렸다. 강현의 마음이 미국에서 떠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강현의 존재로 미국이 득을 본 상황에 심취한 나머지 강현이 미국을 언제든 떠날 수 있을 거라는 가능성을 냉철하게 판단하지는 못했다. 물론 미국만큼 천재가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곳도 드물었기에 그다지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잭은 강현이 미국 국적을 포기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래도 불안했다. 프랑스에 있게 되면 프랑스에서 어떤 식으로 강현의 환심을 사려고 들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려면 시간 계획은 어떻게 세울 건데?” “시간계획?” “응. 프랑스엔 얼마 동안 있을 거고 또 얼마동안 돌아와 있을 것인지.” 잭은 일단 강현의 시간 계획을 물어보았다. 그것은 연구를 같이 하는 동료로서 얼마든지 물어볼 수 있는 것이었다. “글쎄.. 아직 계획이 없는데?” 잭의 얼굴에 불안감이 서렸다. 그것은 프랑스에 오래 있을 수록 강현의 마음이 미국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면 언제 떠나는데?” “흐음.. 일단 지금하는 이족 보행 연구에서 어느 정도 성과가 나타나면?” “알았어.” 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서둘러 상부에 이 일을 알렸다. 그의 경험상 강현이 성과를 내는 것은 최소 6개월. 아즈삭의 경우에는 구상 자체를 한국에 있을 때부터 시작한 것이라 오래 걸렸고, 석유 제조 기술은 강현이 무리해서 연구를 한 것이라 더 빨리 걸렸다. 즉, 보통 강현이 연구를 완성하는 것은 평균 6개월 정도였다. 그러니 상부에서는 그 6개월을 기준으로 앞으로의 대처를 어떻게 해야할 지 서둘러야 했던 것이다. “그럼 빨리 연구 마무리하고 와. 기다릴게.” 공항에서 강현은 제시를 배웅했다. 몇 개월 동안 보지 못한다는 것은 아쉬웠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강현은 남은 연구를 마무리하고 제시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제시를 배웅하고 다시 돌아온 강현은 휑한 집을 보았다. 둘이서 같이 살 집으로 구입했었는데 한 사람이 사라지니 허전했다. 물리적으로 계산해 보았을 때 이 집의 인테리어에서 제시가 차지하는 부피는 얼마 되지 않았다. ‘이것이 심리적 부피인가?’ 그는 새삼 제시의 의미가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상념이 이제는 없는 부모님에게 향했다. 그의 상실감이 생각난다. 그러나 실감 되지는 않았다. 시간은 그때의 상실감과 괴로움마저 마모시켰다. 자신이 과학에 몰두에 괴로움과 현실을 잊으려고 했던 세월 동안 그 괴로운 사건은 힘을 잃었다. 시간이 약인 것인가, 아니면 자신이 그만큼 성숙해 진 것인가? 강현은 알 수 없었다. 강현이 출근을 하고 잭이 점심 시간에 데리러 오고 아즈삭은 자신을 보좌해 이족 보행 로봇의 설계를 도우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 프랑스에서 걸려오는 제시와의 화상 통화는 그런 일상에 파고들었다. 과거의 강현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녀의 빈자리가 커져가는 것을 느낄 때마다 제시와의 대화를 바라는 강현이 마음도 점점 커져갔다. [… 그래서 말이야 막심이라는 이 남자가 자꾸 나한테 집적거리는 거 있지?] “음...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강현이 뚱한 표정으로 화면을 바라 보았다. 제시는 그런 강현의 얼굴을 보면서 키득 댔다. 막심이라고? 요즘 제시에게 집적거린다는 잘생긴 이탈리아 계의 미국인 출신 프랑스 이민자란다. 뭔가 꽤나 복잡해 보이는 정체성이지만 확실한건 매너 좋고 잘 생겼다는 것이다. 한국에 들어가면 여고생들이 꺅꺅 소리를 지를 정도라나? 그런 남자가 자신의 여친과 접촉이 잦다는 것에 기분이 좋을 남자는 없었다. [그러니까 빨리 연구를 마치고 오라고. 여기에 오면 새롭게 영감이 생길거야.] 파스퇴르 연구소. 평범한 화학 전공자였던 파스퇴르의 이름을 딴 연구소이다. 파스퇴르는 실상 화학에서는 그리 비범한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광학 이성질체를 최초로 발견한 화학자였다. 프랑스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농업국가이고 와인이 특히 유명했다. 와인의 침전물에서 얻어지는 타타르산은 편광 성질을 가지고 있었고 당시 발달하는 기초 과학에 의해서 합성 타타르산이 제조 되었으나 기존의 와인 침전물에서 얻는 편광 성질이 나오지는 않았다. 파스퇴르는 끈질긴 결정 분리 작업 끝에 인공 합성 타타르산에는 서로 거울에 비친 것 같은 결정구조를 가진 타타르산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이론만 있던 광학 이성질체를 최초로 실증했다. 여기에서부터 파스퇴르는 백조 플라스크라고 불리는 세균설 실증 실험, 그리고 살균법과 혐기성 세균의 발견까지 생화학자로서 유명세를 떨쳤다. 그것은 농업이 중요한 국가 산업인 프랑스의 배경이 크게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그런 그의 이름을 딴 연구소는 생물학, 특히 박테리아와 미생물 분야에서 최첨단의 인프라를 갖추고 있었다. 그런 분위기에서 HJ세포를 개발한 제시는 무척이나 크게 자극을 받았다. 어떤 생명체도 결국은 세포를 기반하기에 그런 작은 미생물의 세계에 집중하는 연구소의 분위기와 쌓인 노하우는 HJ세포를 개량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느껴졌고 또 이미 충분한 가능성도 확인했다. 그리고 자신의 남친 역시 여기에 오면 생물학에 대한 영감이 무럭 무럭 쏟아 오를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오퍼튜니티니 큐리오시티니 하는 로봇과 기계, 전자 공학, 천문 물리학으로만 뒤덮힌 환경에 있으니 생물학에 대한 강현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강현의 재능과 관심이 생물학에 없을 수도 있지만 제시는 과감하게 그런 가능성은 생략했다. 자신이 보기에 강현은 생물학에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고 관심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인공 광합성 칩만 보더라도 그것은 미세 가공 공정의 극치일 뿐만 아니라 일련의 생물학적 작용의 기제를 완벽하게 이해한 결과물이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HJ세포를 만들 때 필요했던 시약을 비롯해 제한 효소와 접합 효소들을 거의 다 완벽하게 숙지하고 있었다. 이는 강현이 생물학에도 깊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였으며 그가 지금까지 만들어낸 생명 공학적인 작품이 겨우(?) 석유 제조 공법에 필요한 유전자 조작 녹조류 하나 뿐이라는 것은 생명 공학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은 NASA의 환경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판단은 그녀가 가지고 있는 로망에 의해서 강현이 빨리 프랑스로 오도록 질투심을 유발하는 짓도 벌이게 만들었다. 그녀의 로망? 별것 아니다. 그저 천재 생명 공학 부부로 인류 역사에 길이 이름을 남기는 것 정도? [나 아직 인기 많은가봐.] “인기 많아서 좋겠네.” 제시는 뚱한 남친의 질투에 기분이 좋아졌다. 사람의 심리란.. [후후, 강현도 인기 많아.] “나 인기 없어.” 글쎄.. 과연 그럴까? 제시는 ‘강현을 원하는 상류층 미녀들은 넘쳐 난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입을 꾸욱 참고 다시 한 번 재촉했다. [이족 보행 연구 언제 쯤 마무리 될까?] “글쎄? 설계만 하는 것이면 한 달이면 족하지만 필요한 신소재가 생기면 언제 끝날지 모르겠어.” 강현의 대답에 제시가 우울한 얼굴을 했다. 외로움이 가득 묻어나는 표정의 그녀가 화면 저편에서 강현에게 말했다. [아. 나 외로운데.. 설계만 하고 오면 안 될까?] “안... 될 것 없지.” 강현은 ‘안 돼’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제시의 표정이 그의 마음을 자극했다. 22화 사실 강현에게 감정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은 제시가 유일했다. 그리고.. 강현의 괴랄한 사고력이 별의 별 상상을 순식간에 해버렸기에 그러겠다고 대답하는 수 밖에 없었다. 외로운 제시. 그리고 그런 그녀를 집적거리는 막심이라는 놈팽이. 강현 자신이 연구 도중 필요한 신소재의 아이디어가 생각나 프랑스 입국을 미루고, 제시는 더욱 외로워하고 그런 그녀에게 그 놈팽이가 접근하고 제시와 그 놈팽이가 술 한 잔을 하고 제시는 술에 취하고 그런 제시를 그 놈팽이가 데리고 자신의 숙소로.... 강현은 상상을 멈추고 아즈삭에게 지시를 내렸다. “HW 설계도 32번을 불러와.” [지시를 실행합니다.] 그는 집에 돌아가지 않는 생활을 시작했다. = = = = = 강현의 이족 보행 로봇은 어쩌다보니 안드로이드의 형태를 지니게 되었다. 인체를 모방해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족 보행을 가장 완벽하게 할 수 있는 형태는 역시 인체의 구조라는 강현의 직관이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강현의 설계는 설계라고 하기 보다는 차라리 SF영상물의 아이디어 노트에 가까웠다. 세분화된 설계도와 철저하게 입력된 치수 데이터가 없었다면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왜냐면 현존하는 기술로 재현이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흐음... 많은 기술들이 필요하네..” 공학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공학 설계에서 필수적인 덕목은 목적을 위해서 얼마나 타협을 할 수 있냐는 것이고 타협의 대상에는 시간, 돈, 현존 기술 수준 등이 있었다. 그러나 강현의 설계도는 그런 타협이 전혀 없었다. 순전히 그의 자기 만족을 위한 설계였기 때문이다. “일단 필요한 건 센서와 근육, 그리고 동력인가?” 강현은 이 인공 관절에서 모터를 사용하는 방법은 완전히 배제했다. 왜냐면 모터는 원운동을 하기 때문이고 이 원운동을 직선 운동으로 바꾸기 위한 기계적 설계는 이족 보행의 핵심인 밸런스 유지에 치명적이 었기 때문이다. 원운동을 직선 운동으로 그리고 직선 운동을 원운동으로 바꾸는 기계적 설계는 이미 증기 기차가 나왔던 시절에 설계가 끝나 있었고 강현이 생각하기에 피스톤과 바퀴 사이에 동력을 전달하는 막대기의 존재는 치명적인 단점이었다. 뿐만 아니라 모터를 가지고는 미묘하게 힘의 가감을 조절할 수 없었고 또한 체중을 지탱할 충분한 힘 역시 얻을 수가 없었다. 결국 방법은 인공 근육을 만드는 방법 밖에는 없었다. 그리고 그 인공 근육을 이용하기 위한 충분한 동력도 공급되어야 했고 또한 뼈대에 붙인 무수히 많은 근육을 조절하기 위한 센서 역시 필요했다. 물론 수가 많이 필요했다. 걷기 위한 제어 장치는 아즈삭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일단은 그 세 가지가 강현이 스스로에게 남긴 숙제였다. “흐음.. 역시 폴리머가 좋겠지? 종류는 펩티드 결합의 섬유가 좋을까.. 아니면 탄소 나소튜브? 아니면 그래핀을 가져다가 만들어 볼까?’ 강현의 머릿속에는 벌써 인공 근육에 대한 아이디어가 샘솟았다. 실제 생체의 근수축은 필라멘트 활주 이론으로 설명한다. 근섬유는 미오신 단백질 필라멘트와 액틴 필라멘트가 교차되어 구성되어 있고 근육을 수축하라는 신호가 오면 미오신 필라멘트의 미오신 단백질의 머리가 ATP를 이용해 액틴 필라멘트에 달라붙는다. 미오신 단백질의 머리 부분은 원래 구부려져 있는데 이 단백질에 ATP가 공급되면 ADP와 인 이온으로 변하면서 쭈욱 펴진다. 그리고 이 상태에서 액틴에 달라붙고 다시 ADP와 인 이온이 떨어져 나가면서 구부려지는데 이때의 힘으로 수축하는 것이다. 이 미오신 단백질의 머리는 무수히 많아서 근수축시에 미오신 단백질의 행동이 마치 카누 단체전에서 노젓기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비유하기도 한다. 때문에 무거운 물체를 가만히 들고 있는 행위에도 에너지가 드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배가 도로 뒤로 가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강현은 이런 복잡한 미시적 세계의 움직임을 열역학적인 관점에서 간단하게 정의했다. 근수축 전 = 섬유간의 표면 에너지 낮음근수축 후 = 섬유간의 표면 에너지 높음 그리고 이 공식이 의미하는 것은 에너지를 주입하면 평형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섬유간 접촉 면적이 늘어나야 하고 이는 마치 필라멘트 활주 이론처럼 섬유가 섬유를 당기는 힘을 만들어 낼 것이라는 발상이 가능했다. 비록 미시적 세계에서 화학 에너지를 이용하는 단백질의 복잡한 행동은 흥미로웠지만 강현은 그것을 모방하고 싶지는 않았다. 뉴턴의 제1법칙처럼 힘을 받지 않는 물체는 그 운동 상태를 유지해야 하지만 물체를 들고 가만히 있는 것에도 에너지가 소비되는 근육의 구조는 그에게는 참으로 불합리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라멘트의 교차적인 구조는 본 받을 만 했다. 강현이 구상하는 인공 근육의 구조는 기본적으로 근원섬유의 액틴 필라멘트로 미오신 필라멘트의 교차구조와 동일했고 표면 에너지의 조절을 이용해 수축의 정도를 조절하려고 하는 강현의 아이디어에서 표면적을 극대화하는 구조는 출력면에서 반드시 필요했다. [박사님. 비행기 표 일정은 어떻게 할까요?] 다시 구상에 빠져드려는 강현의 정신을 아즈삭의 스피커 음성이 불러왔다. “아아,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삼일 후에 좌석이 있습니다.] “그걸로 예약해 줘.” [네, 박사님.] 인터넷 시대에 대부분의 생활 정보를 온라인으로 확인할 수 있는 세상에서 아즈삭은 매우 유용한 비서였다. 강현은 제시를 만날 생각에 서둘러 짐을 싸기 시작했다. 그런 강현을 모습을 보면서 잭은 한 숨을 내쉬었다. NASA에서는 강현을 보내는 것을 장기 출장, 혹은 장기 휴가 정도로 처리할 방침을 세워두웠다. 하지만 되도록이면 안 가기를 바랬지만 결국은 가고마는 것이다. 그리고 잭은 계획이 실패했다는 것에 한 숨을 내쉬었다. 그가 짜낸 계획이란 바로 미남계. 얼마 전 강현과 제시가 대화를 나눌 때 거론되었던 막심이라는 남자가 바로 미 정보부의 요원이었다. 발상은 간단했다. 제시가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게 만들어서 강현이 프랑스에 있을 가능성을 없애게 하는 것. 거기서 더 발전된 작전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제시에게서 강현의 마음이 떠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 방법에는 강간이라는 극단적인 방법도 거론되었으나 잭의 보고서로 폐기되었다. 혹시나 해서 잭이 강현과 그에 대한 대화를 나눈적이 있었다. ‘혹시 제시가 너를 버리면 어쩔거야?’ ‘내가 싫다면 어쩔 수 없지.’ ‘만약 제시가 어떤 일을 당해서 너를 떠나야 한다면?’ ‘못 보내.’ ‘그럼 말이야.. 이건 좀 극단적인 상황인데. 만일 제시가 강간을 당한다면 어떻게 할거야?’ ‘범인을 죽일 거야. 가장 잔혹하게.’ 잭은 담담하게 답하던 강현으로 인해서 식은 땀이 나는 것을 느꼈다. 강현은 허언을 하지 않는다. 농담은 강현과 가장 거리가 멀었고 입에 발린 말도 하지 않았다. 강현은 말할 때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진심을 담았다. ‘하. 하. 하. 법대로 처리하면 되지 않을까?’ ‘법 따위에 복수를 맡겨 둘 수는 없어.’ ‘그, 그러면 네가 감옥에 가게 되는데?’ ‘완전범죄는 없지 않아.’ 그래서 제시를 망가뜨려 떨어뜨리는 방법은 완전 폐기 되었다. 그리고 강현은 위험인물로 인식되었다. 국가 안보를 위해서 법 질서를 어느 정도 어기는 것은 정보부들의 특징이다. 다만 안 걸리면 된다는 생각을 할 뿐이다. 그런데 강현은 국가를 위하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복수를 위해서 법을 무시하고 있으니 건전한 시민이라고 분류할 수 없었다. 정말로 극단적인 상황일 때 극단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는 분석이 강현에게 붙여졌다. “여어. 닥터 강. 잘 다녀 오라고.” 잭은 잘 가라고 말하지 않았다. “보고.” 강현은 확답하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생각했고 프랑스에 간 그대로 눌러 앉을 가능성 역시 배제하지 않았다. 또한 그는 결코 입에 발린 말을 하지 않았다. 강현의 대답에 잭은 캐리어를 끌고 가는 그의 등을 보며 썩소를 지었다. 역시나 천재는 만만하지 않았다. 언제나 사람의 예상을 뛰어 넘었다. 그러나 잭은 강현이 미국과의 연을 아주 끊어버릴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일단 컴퓨터 개발부의 알렌을 비롯한 직원들과 안면이 있었고 아즈삭을 매개로 서로에게 친분이 있었으며 강현이 몇 년 동안 정을 붙인 실험실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의 명작인 아즈삭이 있었다. 잭은 휴대폰을 꺼내 어디론가 문자를 보냈다. [프로메테우스. 출발.] 하지만 정보부는 조직이다. 잭처럼 생각할 수는 없었고 다양한 의견이 존재했으며 여러 가능성에 대비해야 했다. 특히 프랑스에서 강현을 회유해 자국민으로 만들 가능성에 대비해야 했으며 불행하게도 그럴 개연성은 너무나 높았다. 그래서 정보부는 작업에 들어갔다. “샐리 양?” “네. 그런데 누구시죠?” 미국 MIT에 입학한 샐리 클린턴은 전 미 대통령과 어떤 연관이 있지 않겠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런건 없었다. 다만 샐리는 그 해 입학한 남학생들의 시선을 한 몸에 빼앗은 귀여운 미녀였다. 또한 MIT에 입학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머리의 재녀이기도 했다. “저는 한슨 재단의 칼 마손이라고 합니다.” 스스로를 칼 마손이라고 밝힌 남자가 샐리에게 명함을 내밀었다. 샐리는 머뭇거리면서 명함을 받았다. “저희 재단에서는 장래가 뛰어난 인재들을 선정해 재정적인 지원뿐만 아니라 여러 기회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샐리 양이 선정되셨습니다.” “그, 그래요?” 한슨 재단이라니 들어본 적이 없는 그녀였다. “일단 이번 여름 방학에 프랑스의 파스퇴르 연구소에 인턴으로 생활해 보실 의향이 있으신가요?” 파스퇴르 연구소라면 세균학으로 유명한 곳이 아니던가? “네! 좋아요!” 샐리의 얼굴이 화색이 되었다. 그녀의 집은 화원을 하는 농가였다. 어릴 때부터 꽃에 관심이 많던 그녀는 어느 날 과학 만화를 보게 되었고 식물에 대한 관심이 과학적 관심과 결합하여 생물학도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그리고 파스퇴르 연구소는 매우 유명한 연구소였고 그런 곳에서 인턴으로 생활했다는 커리어를 쌓을 수 있었다. 게다가 그 ‘프랑스’이지 않은가? 샐리의 눈앞에 넓게 펼쳐진 포도 농장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럼 여기 계약서이니 잘 보시고 서명하세요. 내일 다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그러면서 칼 마손이라는 정장 남자가 차를 타고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좋아서 계약서를 들고 기숙사로 돌아온 샐리는 계약서를 찬찬히 훑어보았다. 흥분이 식으니 냉정함이 돌아온 것이다. 계약서를 훑어본 결과 조건이 정말로 좋다는 것을 확인했다. 일단 등록금은 전액 지원되었고 생활비 역시 학과 성적에 따라서 어느 정도 배분 되었는데 이상한 것은 성적이 좋을 수록 생활비 지원이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그 조항에는 친절하게 설명도 달려있었는데 혹시 생활비 버느라 공부에 소홀할까 봐 그런다고 한다. 물론 좋은 성적을 얻거나 다른 괄목할 만한 성과가 있으면 그에 대한 포상금이라고나 할까, 격려금이 지급되기에 결론적으로 받는 돈은 비슷할 것 같았지만 그 때문에 공부를 소홀히 할 정도로 샐리가 양심이 없지는 않았다. 장학생의 권리는 당연히 성적이 떨어지면 박탈이 되었는데 특이사항은 ‘반드시 방학에는 재단에서 지정한 연구소에서 인턴을 할 것.’이라고 되어 있었다. ============================ 작품 후기 ============================ 뽕빨물이란 것이 흔히들 그렇듯 빨리 질립니다. 저도 질려서 한 동안 봉인. 그 동안에는 자유인에 집중할 생각입니다. 사실 자유인을 쓰다가 생각난 소재가 완전히 재 취향에 크리티컬 직격이라 자꾸 그게 생각이 나서 말이죠. 빨리 자유인을 끝내고 그걸 쓰고 싶어요. 하아.. 근데 자유인은 이제 초입부란 말이죠. 최소 100편은 되는데... 하루에 4편씩쓰면 한달 안에 완결이 될 수 있을지.. 그런데 하루 4편은 정말 무리인것 같아요. 23화 거부한다면 각종 장학 혜택을 박탈한다는 것이다. 그 조항을 보면 쉴세 없이 졸업할 때까지 여유가 없는 생활이 되겠지만 학자금이란 큰 빚을 지지 않고 사회 생활을 시작할 수 있다는 메리트를 생각할 때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아니 오히려 전체적으로 조건이 너무 후했다. 그녀는 한슨 재단이라는 곳이 뭔지 너무 궁금해서 인터넷으로 찾아보았고 생각보다 건실하게 활동하고 있는 재단이라는 것을 알아내었다. 안심한 그녀는 즐겁게 사인을 하고 한슨 재단의 장학생이 되었다. 한편, 프랑스에 도착한 강현은 해가 떠있는 프랑스의 창공을 보았다. 졸음이 몰려왔지만 시차로 인해서 아직 해가 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강현은 걱정하지 않았다. 밤을 세워 연구하던 그의 버릇 덕분인지 한국에서 미국으로 건너 왔을 때에도 시차 적응에 무리가 없었던 것이다. 물론 그런 습관은 칼퇴근을 권하는 연구실의 분위기와(특히 컴퓨터 개발부 직원들은 법적으로 명시된 퇴근시간을 지키라고 강현에게 강권했다.) 제시의 걱정으로 인해서 규칙적인 생활이 몸에 배였기에 프랑스에 와서도 그럴지는 알 수 없었다. “현! 여기야!” 저기에서 피켓을 들고 강현을 반가히 맞이하는 제시가 보이자 강현이 바쁘게 걸어나갔다. 그리고 오랫동안 보지 못한 연인은 서로를 끌어 않았다. “Hello.” 그런데 강현은 잘생긴 금발 백인의 남성이 자신을 보면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렇다. 과거 제시와 화상전화를 할 때 그녀가 사진으로 보여주었던 얼굴이다. 이름이 막심이라고 했던가? “저 사람이 여기에 왜 있어?” “차 태워준다고 하길래.” 제시가 무안한 듯이 혀를 내밀었다. 새로운 환경에 취해 열심히 연구를 하고 있던 그녀는 깜박 강현을 마중나간다는 사실을 까먹어버렸다. 프랑스에서 차를 사지 않았기에(돈 많은 남친이 사면 그 차를 이용해 출퇴근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이대로라면 지각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침 막심이 오늘 자신의 남친이 올지도 모른다고 했던 말을 기억하고는 정류장에 초조하게 서 있던 자신에게 데려다 준다고 호의를 표했던 것이다. 제시의 설명을 들은 강현은 그거 어장 관리 아니냐고 말하려고 했다가 당사자가 있기에 입을 다물었다. 그러면서 강현은 불쌍하다는 눈빛으로 막심을 보고는 손을 내밀었다. 이 불쌍한 생선에게 손을 내밀 정도의 도량은 있었다. “감사합니다. 닥터 강입니다.” “하하하! 세계적으로 유명하신 과학자분을 만나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그렇게 세 사람은 연구소에서 구해준 제시의 집으로 향했다. 생각보다 집은 컸는데 아마 강현도 올 것이라는 언질을 듣고 배려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감사합니다.” “하하. 뭘요. 이웃간에 별일 아닙니다.” 막심이란 인간이 사는 집은 제시의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뿐만 아니라 연구소 근처에서 새로 생긴 양과자 전문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여성들은 달콤한 것을 좋아하는 데다가 머리를 과도하게 사용해 항상 당분을 요구하는 뇌를 가진 제시가 연구소 근처에 새로 생긴 달콤한 가게에 발길을 멈출 수가 없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렇게 제시와 막심은 서로를 알게 되었다. 막심이 다시 가게를 열기 위해서 돌아가자 강현이 뚱한 얼굴로 제시에게 말했다. “잘 한다. 애인도 있으면서 저 좋다는 남자에게 도움을 받다니. 죄책감도 없어?” “응? 친구하기로 했는데? 친구면 서로 도와줄 수도 있지 않아?” 너무 태연한 반응에 순간 강현도 ‘그런가?’하고 생각했다. 사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오고나서는 연구실에 틀어박혀 있느라 학창 생활도 제대로 겪지 않아 미국의 상식을 제대로 모르는 그에게 제시의 대답은 남자와 여자가 친구 사이도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떠오르게 만들었다. “그래도 내가 기분이 나빠.” “그래?” 그러나 남친으로서 기분이 안 좋은 건 당연했다. 강현은 솔직하게 자신의 기분을 얘기했고 제시는 피식 웃었다. 그래. 확실히 질투하는 것이 맞았다. 그래서 기분이 더 좋은 건지도 모른다. 이런 자신이 나쁜 년 같았지만 그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인지할 때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내가 기분 풀어줄게.” 물론 그런 사실을 이런 소소한 일 아니고도 느낄 수 있으니 서로의 알몸을 부비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제시는 눈을 반짝이며 강현에게 다가갔고 둘은 금방 알몸이 되었다. 딱! 따딱! 두 사람이 알몸으로 재회를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막심은 스마트 폰으로 어디론가 문자를 했다. 스마트 폰에서는 문자를 넣는 효과음이 울렸다. [프로메테우스 도착. B플랜을 시작.] 강현에게 프로메테우스란 별칭은 붙이는 곳은 막심이 아는 바로는 단 한 군데 밖에 없다. 바로 미 정보부. 그렇다. 막심은 미 정보부의 요원으로서 취미로 하고 있던 양과자 제조로 가게를 열었다. 물론 계획은 상부에서 내려왔다. 단순하게 미남계를 이용해서 제시를 꼬셔 기정사실을 만든 다음 제시와 강현의 둘 사이를 갈라 놓겠다는 계획이었다. 물론 제시가 무척이나 미녀였기 때문에 막심도 불만은 없었다. 게다가 둘을 갈라 놓은 다음에는 적당히 핑계를 만들어 서로 갈라설 계획도 있었다. 플랜 A의 경우에는 강현이 프랑스에 오기 전에 제시와의 썸씽을 만드는 것이었지만 제시가 좀처럼 넘어오지 않았다. 감정적인 부분보다 이성적인 부분이 강한 그녀는 막심의 매너와 부드러운 언변에도 잘 넘어오지 않았다. 그리하여 결국 강현이 프랑스에 오게 되었지만 예비 계획 하나 준비하지 않은 상부가 아니었다. 플랜 B. 그것은 막심이 제시와 강현의 좋은 친구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기회를 봐서 제시와 관계를 가지고 세 사람의 좋은 관계를 망가뜨리는 것이다. 흔히 막장 드라마나 불륜극에서나 볼 수 있는 계획이었지만 인간관계를 망가뜨리는 것에 이만큼 효과적인 방법도 없었다. 그리고 계획대로 된다면 프랑스에서 불쾌한 일을 당한 강현은 아마 미국으로 돌아올 것이 분명했다. 그런 강현을 위해서 새롭게 ‘미녀’를 준비해 놨으니 미 정보부에서 강현에게 들이는 관심과 노력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막심은 막심대로 자신에게 넘어가지 않은 여인에게 자존심을 상한 상태였다. 이미 동료들에게 알려질 대로 알려진 매력남이자 카바노바로서 반드시 제시를 자빠뜨리겠다고 단단히 각오를 한 상태였다. 그러나 그런 결심을 한 막심이 뭔가 잘 못되고 있다는 것을 느낀 것은 그로부터 며칠 후였다. “하하. 또 오셨네요.” “크로와상 2개랑, 초콜릿 무스 케익 1개와 커피 두 잔이요.” 강현은 사람 좋게 웃는 막심에게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사무적으로 말했다. 그래도 막심은 인내심을 가지고 웃으면서 강현에게 주문한 상품을 포장해 주었고 강현은 카드를 긁은 다음에 막심이 뭐라 말을 걸기도 전에 휙 하고 가게를 나가 버렸다. ‘Oh! Shit!’ 막심은 쓴 웃음을 지었다. 벌써 며칠 째 제시를 보시 못하고 있었다. 강현이 계속 가게에 와서 제시 몫까지 간식을 사가는 것이다. 님을 봐야 뽕을 딴다고 막심은 차선으로 강현과 친분을 다지려고 했지만 강현은 막심과 친해질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거부했다. 딱딱한 표정, 사무적인 말투, 그리고 용건만 처리하고 나가버리는 행동은 막심을 연적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건 그 만큼 막심이 위협적인 대상이라는 것을 암시했지만 상황은 더 나빴다. ‘고난이 있는 사랑만큼 튼튼한 건 없지.’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제시와 강현의 사랑을 위협하는 존재는 오히려 두 사람의 사랑을 강하게 해줄 뿐이었다. 심리학에서는 이걸 뭐라고 하더라?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청개구리 심리? 덕분에 막심은 가게를 정리할 준비를 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막심의 존재가 오히려 두 사람의 결속을 강하게 만드는 악요소가 되니 상부에서는 빨리 철수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상부는 플랜B를 폐기할지 말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중이었고 대안으로 장기 플랜이 준비되고 있었다. 흔히들 사랑은 2년짜리라고 한다. 사랑의 호르몬이 분비가 멈추는 시점이 평균적으로 그 시점이기 때문이었다. 2년을 넘어가는 남녀관계는 그 2년 동안 쌓은 추억과 서로에 대한 은은한 애정이 결속시킨다. 그리하여 상부에서는 그 2년을 기점으로 하는 플랜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막심의 양과자 전문점을 정리하는 것도 아직 확실하게 결정 난 것은 아니었다.단지 심적 준비를 하라는 것에 불과했다. 일단 장기 플랜이 시작되면 두 사람의 분위기를 정탐할 첩자가 필요했고 두 사람의 사이가 소원할 때 작업에 투입할 요원이 필요했기 때문에 가게의 철수는 의외로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 미남계에 막심만한 인재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마 막심에게는 작업을 자제하고 상황을 파악하라는 대기 명령이 내려질 가능성이 높았다. 미 정보부에서 강현이 미국을 떠나니 마니 하는 문제에 골머리를 앓고 있을 때, 강현은 새로운 연구 환경에 적응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강 박사님. 그리고 빅토리아 박사님.” “안녕하세요.” 강현과 제시가 같이 출근하자 자신에게 반갑게 인사하는 경비가 있었다. 둘은 그에게 인사를 하고 연구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럼 나중에 점심 시간 때 봐.” “어디서?” “내가 찾아갈게.” 제시가 강현의 연구실에 찾아가기로 약속을 했다. 언제나 그렇듯 연구에 정신이 팔린 강현이 약속을 기억해 낼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자신이 찾아가는게 더 빠르고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강현이 파스퇴르 연구소에 등장하자 연구소에서는 냉큼 연구실을 하나 내 주었다. 아니 비어있던 창고를 개조해 그를 위한 전용 연구실을 하나 만들어 준 것이다. 비싼 기자재들은 예산 때문에 다른 연구실과 공용으로 사용해야 했지만 그 밖에 기본적인 실험 도구들을 비치해 그럴싸한 연구실로 꾸며주었다. 하지만 곧 강현이 자비로 몇 가지 실험 장비들을 구입할 예정이었다. 간단한 시료 분석기도 다른 연구실과 같이 써야 했으니 강현이 답답했던 것이다. 물론 그에게는 돈이 많았고 시료 분석기는 연구실 크기에 비해서 그리 크지 않았으니 무리는 아니었다. 그런 강현은 미생물이 연구의 주 소재인 장소에서 세균보다는 그 세균을 이루는 물질인 단백질에 관심이 더 많았다. 특히 아미노산의 결합인 펩티드 결합의 특성에 아주 관심이 많았다. 강철보다 질기고 튼튼하다는 거미줄 역시 결국은 단백질이 아니던가? 단백질의 펩티드 결합은 생각보다 끊기가 무척 어렵다. 특정 효소가 있다면 그리 어렵지는 않겠지만 광우병을 일으키는 프리온 단백질처럼 굉장히 안정적인 단백질 구조를 만들 수도 있다. 프리온 단백질이 얼마나 안정하냐면 PDA 규정으로 수산화 나트륨을 집어넣은 다음에 섭씨 130도의 온도로 30분 동안 가열해야 한다는 소독지침이 있을 정도다. 그냥 물로 가열하면 130도의 온도로 1시간 넘게 가열해야 했다. 과연 고기를 요리하는 방법 중에 130도의 온도로 1시간 넘게 가열하는 조리법이 있을까? 아무튼 자연계에서 펩티드 결합은 무척이나 질기고 안정된 결합이었다. 때문에 거미의 유전자를 이용해 인공적으로 거미줄을 만드는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었다. 24화 자연계가 빚어낸 최고의 구조용 소재는 무엇인가? 강현은 그 질문에 대한 해답으로 ‘섬유’라는 대답을 바로 낼 것이다. 섬유질이 없는 문명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강철 와이어의 경우는 목적이 일반 섬유와 좀 다르니 예외로 치자. 아무튼 인공 거미줄의 합성은 분자 생물학의 발전과 생명 공학 밑 바이오 시밀러의 개념으로 인해서 연구에 막대한 투자비가 들어가고 있었다. 거미줄로 만든 섬유는 같은 부비의 강철만큼 질기고 탄성이 있어 총알조차 막는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거미줄이 대량 생산이 된다면 일대 혁명이 될 것이 분명했다. 거미줄의 구조는 마치 천이 구개어져 접혀 있는 형상이었고 그런 접힘은 단백질의 특징이다. 미국에서는 거미줄을 생산하는 유전자를 집어넣은 누에를 만들어 내었고 캐나다에서는 거미줄 단백질이 포함된 젖을 짜는 유전자 조작 염소를 만들어 내었다. 그러나 이들의 문제점은 누에의 실크에는 거미줄 단백질이 10%에 불과했고 염소젖에서 정제한 거미줄 단백질로 실제 거미줄을 뽑는 기술은 아직 개발이 된 상태는 아니었다. 실상 거미줄이 단백질에서 거미줄로 형성되는 과정은 거미의 꽁무니에 있는 방적돌기에서 단백질이 방적돌기의 관을 빠져나오며 미세한 산성도의 변화에 따라 중합반응을 일으키기에 이 미세한 과정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세포단위의 관을 통과하면서 미세하게 pH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거미줄 방적기계라? 과연 지금 있는 기술로 만들 수 있을까? 또 만든다고 해도 대량 생산을 할 수는 있을까? 돈은 될까? 그러나 과학자들은 생각했다. 똑같이 모방할 수 없다면 비슷하게라도 모방해 보자. 러시아의 과학자들은 그런 생각으로 거미줄 단백질과 비슷한 단백질을 만들어 중합반응을 해보았지만 결국은 실패였다. 거미줄 단백질인 스피드로인의 구조가 완벽하게 조사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한데 실상 현재 과학자들은 거미줄 단백질의 절편만 확인할 수 있었고 이 절편들이 어떤 순서로 배열되어 있는지는 확인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런 단백질의 구조 분석이야 말로 강현의 특기 중 특기가 아니던가? 강현은 거미 유전자 분석을 한 논문과 단백질 분석을 한 논문을 찾아 모아 기본 데이터를 확보하고 사용할 거미를 정했다. 근처 와인 농가에서 채집한 흔한 프랑스 거미였다. 아마 미국이 강현이 무엇을 연구하는지 알았다면 당장에 미국 거미를 수송해 주었을 것이다. 거미줄의 단백질도 거미에 따라서 다르고 유전자 정보 역시 특허 출원이 가능하기에 강현이 스피드로인 구조를 완벽히 파악한다면 엄청난 국가적 자산이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방탄복 소재인 캐블라 섬유보다 3배는 강하고 더 가벼운 섬유는 군사적으로도 엄청난 가치가 있을 것이 분명했다. 생각해 보자. 끝이 뭉툭한 할로우 포인트 탄은 사람을 가장 잘 죽이는 탄환이다. 하지만 끝이 뭉툭하기에 체크무늬처럼 짜인 방탄복에 걸리고 만다. 그 말은 총알이 뼈는 부러뜨릴 수 있을 지언정 치명적인 내장 기관의 손상은 막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잘 죽지 않는 병사. 그런 병사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섬유는 그 가치가 엄청난 것이다. 아무튼 강현은 거미줄 단백질인 스피드로인의 구조분석에 들어갔다. 말이 구조분석이지 3500개가 넘은 아미노산의 결합품인 스피드로인의 구조는 분자량만 30만이 넘어가는 초거대 단백질이었다. 이 스피드로인의 가장 큰 특징은 접힌 단백질 결정이라고 할 수 있는 베타 시트였다. 원래 일반적인 단백질의 경우에는 단일 사슬 자체의 팹티드 결합에서 산소원자와 히드록시기에 의한 수소결합으로 DNA처럼 나선형으로 되어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특정 단백질 패턴에서는 이 수소결합이 단일 사슬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슬간에 일어나서 마치 밧줄을 교대로 접은 듯한 결정형 단백질 구조가 나타나고 이를 베타 시트라고 한다. 이 베타 시트의 구조는 그 비율에 따라서 거미줄의 인장강도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였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 거미줄을 이루는 각 단백질 절편 간의 결합 순서를 알아내는 수 밖에 없었다. 강현은 열심히 각 단백질 절편의 아미노산 서열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아미노산 서열은 복잡했다. 일정한 규칙을 찾아내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절지 동물의 역사는 포유류보다 훨씬 오래 되었고 거미 역시 마찬가지였다. 인간의 역사보다 더 오래된 거미와 거미줄이 그 오랜 시간 동안 성능의 개선없이 존재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자연 도태에 의해서 약한 거미줄, 경제성 없는 거미줄을 잣는 거미는 사라졌을 것이다. 그렇게 거미줄은 진화해 왔을 것이다. 물론 진화의 방향이 복잡성이라고 단정짓는 증거는 없지만 어떤 이유에서 거미줄의 아미노산 배열은 무척이나 복잡했다. 강현은 약 한 달간의 연구 끝에 결정질인 베타 시트와 베타 시트를 제외한 비정질 단백질의 개략적인 패턴을 유추할 수 있었다. 결정질인 베타 시트 부분의 단백질은 약 100개의 아미노산으로 이루어진 서로 다른 단백질들의 연속적인 결합채였고 그 외의 비정질 부분은 일정한 패턴을 말할 수 없는 무작위적인 아미노산의 배열로 이루어져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강현은 자신이 유추한 내용을 가지고 아즈삭을 이용해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그리고 실제와 거의 비슷한 물리적 성질을 갖는 모델을 얻을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연구 결과를 논문으로 만들어 학계에 던졌다. 그리고는 이내 관심을 돌려버렸다. 정말로 그런지 확인하는 것은 귀찮은 일이었다. 거미줄의 단백질 구조를 확인한 그는 좀더 간단한 단백질 단위를 이용해서 거미줄을 합성하는 방법을 구상했다. “HJ세포?” 제시는 강현의 부탁에 떨떠름했다. “응. 그게 필요해.” 강현이 구상한 인공 거미줄을 구성할 단백질은 어떻게 만들면 좋을까? 미국의 유전자 조작같은 누에를 쓸까? 아니면 캐나다처럼 거미줄 단백질이 포함된 젖을 내놓는 동물? 일본에서는 미생물에 단백질을 집어 넣어 필요한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것에 성공해 대량 생산 기술을 획득한 벤처 기업이 있었다. 그러나 미생물도 미생물 나름이었고 온도와 pH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단백질을 원하는 형태로 제어하기 위해서는 완벽히 조절이 가능한 미생물이 필요했다. 그리고 강현이 아는 바로는 그런 미생물은 제시의 HJ세포가 유일했다. “그럼 HJ세포에 거미줄 단백질을 합성하는 DNA를 집어넣을 거란 말이야?” “그게 가장 효율이 좋으니까.” 대규모의 양잠 시설이 필요한 누에나 넓은 사육장이 필요한 염소보다 그냥 커다란 배양 용기만 있으면 되는 미생물 쪽이 대량생산에 유리한 것은 당연했다. “그럼 나좀 도와줘.” 제시가 머리를 헝클며 답했다. “뭘?” “HJ세포에 미토콘드리아를 집어넣으려고 하는데 그게 잘 안 돼.” 제시는 포도당과 산소를 이용해서 직접 ATP를 만들어 내는 HJ세포를 만들려고 했지만 생각보다 어려웠다. “그거 세포 용적에 한계가 있어서 그런거 아니야?” “그건 아니야.” HJ세포의 크기를 조절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화학 물질을 첨가해 생리학적으로 자극하면 세포막을 구성하는 지질 단백질을 합성하는 속도가 늘어나 세포의 크기가 더 커진다. 물론 ATP나 각종 아미노산의 전달을 위해서 크기에 한계가 있었고 미토콘드리아 같은 세포 소기관이 들어갈 정도의 공간은 충분히 있었다. “미토콘드리아의 구조자체가 복잡하기 때문에 그런 건 아니고?” HJ세포의 컨셉은 생명활동의 극단적인 단순화다. 때문에 분열에 필요한 필수적인 아미노산과 생존에 필요한 ATP 농도만 유지해 주면 생존이 가능했다. “문제는 미토콘드리아를 HJ세포 내에 주입하면 파괴되거나 제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거야. 문제가 뭔지 모르겠어.” “다시 말하지만 미토콘드리아의 DNA분열과 활동은 대단히 복잡해. 일단 외막에서의 능동 수송 기능만 해도 HJ세포에서 재현하지 못하고 있잖아.” “그건 그래.” “적어도 미토콘드리아의 활동을 모방한 단순한 세포소기관을 만들거나 아니면 HJ세포를 미토콘드리아 정도로 고도로 개선 시키지 않으면 어려울걸?” 생물체에게 미토콘드리아란 존재는 상당히 이질적인 것이다. 암컷과 수컷이 서로의 유전자를 합쳐 번식하는 일반적인 고등 생명체에게 이 미토콘드리아는 거의 모계 유전으로만 존속한다. 뿐만 아니라 세포의 에너지 요구량에 따라서 스스로 분열해 수를 늘리거나 죽어서 수를 줄이기도 하는 것이다. 마치 양반 집 머슴처럼 열심히 ATP란 노동력을 제공하는데 그 모습이 세포내 소기관이라고 하기보다는 공생체에 가깝다. 소 위에서 서식하는 미생물이 소에게 각종 영양분을 제공하는 것에 비유할 수도 있었다. 그런 기존의 체세포에 익숙해진 미토콘드리아에게 HJ세포 안에서 살라고 하는 것은 소 위에서 사자 위로 이사해 살라는 말과 동일했다. 당연히 제대로 작동할 리가 없었던 것이다. “하아.. 이제는 미토콘드리아까지 연구해야 하나?” 제시의 입에서 한 숨이 나왔다. 연구를 하면 할 수록 연구거리가 끝없이 나오는 것이 이 바닥이었다. 때문에 적절한 연구 소재를 선택하는 것이 무척이나 중요했다. “그래도 첫 결과물은 잘해도 인공 미토콘드리아가 아니라 ATP를 생산하는 HJ세포가 될 가능성이 더 높을걸?” “하긴. 원래 미토콘드리아도 단일 개체라는 말이 있으니까.” 세균 간 DNA전달이나 융합 현상은 흔히 확인할 수 있는 활동이다. 과학자들은 진핵 생물의 DNA 계승과 미토콘드리아의 DNA계승의 차이점에서 미토콘드리아가 원래는 세포 밖에 있던 개체라는 이론을 내 놓기도 했다. 그리고 산소가 많아지기 시작한 환경에서 충분한 에너지를 생산하기 위해 공생 관계를 이루었고 그것이 진핵 생물의 내부에 자리잡는 진화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럼 샘플을 나누어 줄게. 나중에 좀 도와줘.” 단백질 분석에서 강현을 뛰어넘은 ‘조직’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가 도와 준다면 미토콘드리아 연구도 빠른 시일내에 끝낼 수 있으리라.. 제시의 허락을 얻은 강현을 HJ세포를 배양하는 장치를 서둘러 마련했다. HJ세포는 환경에 굉장히 민감했기 때문에 500mL 용량에 5000CFU/ml(ml당 5000마리)를 유지하기 위한 정밀한 유체 조절 장치가 필요했다. 그 유체 조절 장치로 각종 아미노산과 ATP의 농도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거미의 거미줄 단백질 유전자를 찾아 플라스미드에 붙이는 노가다를 시작했는데.. “나.. 왜 이러고 있지?” 그렇게 몇 날 며칠을 제한 효소 넣고 플라스크 흔들고 접합 효소 넣고 플라스크 흔들고 원심 분리기나 크로마로그래피로 제대로 합성된 플라스미드를 골라내고 다시 이 작업을 다른 DNA절편에 반복하는 자신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이다. “아나! 짜증나서 못해 먹겠네!” 분자 생물학은 너무 복잡했다. 특히 아미노산의 배열에 따른 단백질의 생화학적 특성변화는 컴퓨터의 대용량 데이터 처리가 없으면 분석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런데 그런 수많은 배열의 결과물을 플라스미드에 옮기는 작업 역시 그리 단순하지도 않았고 간단하지도 않았다. 강현은 결국 처음부터 다시 구상하기로 했다. 단순하고 단순한 방법으로 플라스미드를 딱 한 개만 집어 넣는 방법을 찾기로 한 것이다. 25화 공학자들 사이에서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는데 바로 머리가 멍청하면 몸이 고생한다는 것이다.(비슷한 말로 예산이 없으면 심신이 갈린다는 말도 있다.)강현은 자신이 유추한 거미줄 단백질의 아미노산 서열을 가만히 노려보고 원격으로 아즈삭을 이용해 변수를 줘가며 시뮬레이션을 실시하여 가장 단순한 아미노산 패턴으로 거미줄과 유사한 섬유를 만드는 작업에 착수했다. 이럴 때 시뮬레이션이란 무척이나 편리한 도구였다. 그는 실험 노가다는 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매일 연구실에 출근하면서(심지어는 주말에도) 한 가지 단백질 구조를 완성하고 말았다. 100개의 아미노산 패턴을 기본으로 하는 이 단백질은 베타 시트와 비정질 구조간 전환시에 출입하는 에너지의 양이 그리 크지 않았다. 시뮬레이션 결과로는 기존 거미줄에서 발견할 수 있는 베타 시트보다 더 작고 수는 많은 베타 시트가 형성되어 물성이 극적으로 상승되었다. “하아.. 힘들다. 이제 남은 건 이 단백질을 만드는 DNA를 만드는 것 뿐인가?” 강현은 논문을 인터넷으로 올리고는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분자 생물학은 솔직히 그의 역량을 총 동원해야 할 정도의 고난도 분야였다. 기계나 전자같은 분야는 전체를 부분 부분 나누어 차근차근 생각하고 설계할 수 있는데 이 단백질 설계는 그것이 불가능 했다. 단백질 구조의 물성을 결정짓는 분자간의 물리 화학적 특성과 접힘, 그리고 아미노산의 배열들은 물론 pH나 다른 화학물질의 영향까지 변수가 너무 많고 이것들이 모두 동시에 즉각적으로 변하기 때문에 종합적으로 전체를 파악해야 했다. 수학으로 따지자면 변수가 여러개인 고차 연립 미분 방정식을 푸는 난이도에 가깝다고 할까? 아마 아즈삭이 없었으면 강현표 인공 거미줄 단백질 구조를 구상하는 데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잠시 강현이 쉬는 동안 그의 인공 거미줄 단백질 구조를 그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모든 과학자들에게 읽혔다. 누구는 그의 시뮬레이션 과정에서 나타난 아즈삭의 효용성에 관심을 가졌고 누구는 논문의 결과물에 관심을 가졌다. 이도 저도 아닌 학자들은 자신의 전문 분야가 아니지만 그 결과물이 가져온 파생 효과에 관심을 가졌다. 강현의 인공 거미줄 단백질은 ASP라는 약어로 불렸는데 다른 거미줄 연구자들은 강현의 거미줄 단백질이 실제로 실현 가능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왜냐면 그 단백질의 아미노산 서열은 기존에 존재하는 어떤 DNA패턴과도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강현의 이번 논문은 그저 시뮬레이션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있었다. “이제 DNA를 만들어야지.” 그러나 강현은 자신에 대한 비판이 있던 없던 콧노래를 부르며 연구에 들어갔다. 언제나 기존에 없던 뭔가를 만들어 내는 행위는 그에게 기쁨이었다. 일단 새로운 거미줄 단백질을 합성할 DNA를 만들어 내면 그 다음에는 플라스미드에 집에 삽입해 다시 HJ세포에 집어넣으면 단백질이 생성 된다. 그리고 그 단백질을 이용해서 실제 섬유로 뽑은 공정을 다시 생각해야 되지만 강현은 그것이 그리 어려울 것 같지는 않았다. 유리 섬유 같이 노즐과 압력을 이용해 분사하는 방법이나 나일론처럼 섞이지 않는 유체의 경계막을 이용하는 방법같은 다양한 방법이 있었고 그 중에서 적당한 방법을 찾으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강현은 DNA조합에 들어갔다. 그런데 또 문제가 생겼다. 유전자 재조합 기술은 이미 존재한다. 제한 효소와 접합 효소를 이용해서 의미있는 DNA사슬을 의미없는 정크 DNA와 바꿔끼는 것이다. 그러나 강현이 설계한 단백질을 만드는 DNA는 존재하지 않았다. 즉, 강현이 원하는 DNA를 만들기 위해서는 아미노산 중합 반응을 이용하는 수 밖에 없었는데 이 중합반응에 네가지 염기를 집어 넣으면 무작위로 배열이 일어난다. 즉, 이 중합 반응을 조절하고 강현이 원하는 순서대로 연결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다. 유일한 방법은 결국에는 강현이 원하는 염기 배열이 나올 때가지 실험을 반복하던가 아니면 새롭게 DNA를 구성할 수 있는 새로운 기법을 개발해야 했다. “아무래도 전자보다는 후자가 낫겠지?” 전자의 경우에는 언제 만들어 질지 모른다. 100개의 아미노산 배열이 나올 확율은 4의 100승 분의 1이었던 것이다. 강현은 새롭게 DNA 배열을 만드는 방법을 구상했다. 아미노산이 팹티드 결합을 할 때 그 반응을 조절하는 방법이 있을까? 일단 용액을 이용한 방법은 무리다. 순서대로 조합을 하려면 필요없는 염기를 즉시 빼야하는데 미안하게도 그것을 완벽하게 조절하는 것은 절대로 무리다. 그렇다면 기체는 어떨까? DNA 염기를 구성하는 아미노산을 기체화 한다? 글쎄.. 강현은 회의적이었다. 용액과 마찬가지로 유체를 정밀하게 조절하는 것은 무리기 때문이다. “스퍼터링?” 하지만 기술의 발달은 이런 기체를 정밀하게 조절하는 방법을 생각해 냈다. 반도체 공정 기술 중에 박막을 올리는 스퍼터링 기술이라면 가능할지 모른다. 강현은 일단 첫번째 시작하는 아미노산을 기판에 붙여야 했다. 실리콘 기판의 표면을 환원시켜 아미노산의 히드록시기를 붙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중합반응을 위한 효소를 살짝 바르고 스퍼터 기계에 집어 넣었다. 일반 금속을 증착하는 것처럼 과한 진공은 필요 없었다. 적당히 아미노산이 승화할 수 있는 기압고 온도만 유지시켜주면 되었다. 다만 산화를 막기 위해서 산소를 제거하기 위해 질소를 불어넣어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렇게 몇 차례의 실험과 전자 현미경으로 기판을 조사한 끝에 아미노산을 붙이기 적당한 가장 적절한 조건을 찾아낸 다음에 계속 아미노산을 바꾸어가며 실험을 반복했다. ‘아! 지겹다!’ 강현은 짜증이 났다. 이럴바에야 차라리 기존의 방법처럼 유전자 재조합을 이용할 걸 잘 못 생각했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패턴의 DNA를 만든다? 그것이 그렇게 쉽게 만들어 질리가 없었다. 강현은 자신이 오만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게 무슨 사서 고생이냐.’ 강현은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계속 다음 작업을 계속했다. 크로마토그래피로 가장 완성에 근접한 분자량의 DNA사슬을 찾아내고 증폭한 뒤에 다시 희석해서 플라스미드에 삽입했다. 원래라면 그 사슬들이 정말로 강현이 원하는 염기서열을 가지고 있는지 확신해야 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지만 그 가느다란 DNA사슬을 하나하나 집어내어 분류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일단 사슬을 하나 하나 집어낼 수 있어야 분류를 하든 말든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런 검증 없이 플라스미드에 삽입해 HJ세포에 집어넣는 강현의 심정은 ‘에라 모르겠다.’였다. 그는 설마 이렇게까지 일이 커질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렇게 강현은 공학인들이 흔히 잘못된 방식을 고수하면서 범하는 ‘사서 고생’을 직접 경험하는 소중한 기회를 가지게 된 것이다. 결국 강현의 인공 거미줄 생산은 실패로 끝났다. 타인이 보기에는 절반의 성공이었지만 강현이 생각한 것 만큼의 물성이 나오지 않았다. ‘스퍼터를 이용한 새로운 DNA 패턴 제조 방법.’이란 논문의 말미에 ‘인간이 직접 DNA를 조합하는 것보다 이미 있는 DNA 패턴을 사용하는 것이 더 경제적일 수 있다.’라는 말은 강현이 위대한 자연에 고개를 숙이는 겸손함을 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강현의 인공 거미줄은 생각보다 더 파급효과가 컸다. ‘나일론 생산 공정을 이용한 인공 거미줄 중합 반응.’이란 논문으로 실제 인공 거미줄의 합성에 성공하자 돈 냄새를 맡은 바이어들이 프랑스로 몰려들었다. 이미 DNA는 강현이 만들어 놨고 거기에 HJ세포를 이용해 기본 원료인 거미줄 단백질의 생산은 문제가 없었으며 기존 나일론 생산 공정을 조금만 손보면 됐기 때문에 원료만 공급되면 언제든 인공 거미줄 섬유의 대량 생산이 가능했으니 말이다. 다시 말하면 강현의 인공 거미줄은 DNA조합의 실패로 인해서 실제 천연 거미줄에 비해서 물성이 80% 정도 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당장 생산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는 것이다. 이것이 업계에 의미하는 바는 ‘나일론 생산 공정을 이용한 인공 거미줄 중합 반응’에 관한 라이센스를 따낸다면 차후 완벽한 거미줄 단백질이 공급되었을 때 바로 상품을 생산할 수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거미줄 섬유라는 시장을 미리 선점할 수 있으니 섬유업계에서 탐을 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실패작인데 필요해요?” “그렇습니다.” “실패작인데...” “하하! 강 박사님의 눈에는 실패작으로 보이지만 저희 비지니스맨의 눈에는 충분한 상품가치가 있습니다.” “그래요?” 강현은 솔직히 팔기가 좀 그랬다. 언제나 완벽한 작품/기술만을 팔아온 그에게 스스로의 기준에 부합되지 않는 기술을 파는 건 처음이었고 기분도 좋지 않았다. “팔기 싫은데..” “하하하! 팔기 싫으시다면 어쩔 수 없죠. 하지만 마음이 바뀌시면 반드시 저에게 먼저 연락을 주십시오.” 강현의 인공 거미줄은 수 많은 바이어들의 발길을 끌어들였지만 팔리지 않았다. 그리고 바이어들의 입을 통해 강현이 이번 결과물을 스스로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돌았다. 적어도 강현은 시뮬레이션한 인공 단백질에 가까운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싶어한다는 말이 돌면서 기대감을 모았다. 그러나 사람들과 달리 초조함을 가진 사람이 있었으니 연구소장 쟝 마르코였다. 그는 강현이 만든 아즈삭으로 NASA에서 수십조의 매출을 올리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강현이 온다고 했을 때 전용 연구실을 구비해 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과연 그의 기대대로 강현은 1년이 채 되지 않아서 인공 거미줄이라는 결과물을 만들어 냈는데.... 팔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때 느낀 실망감과 허탈함이란.. 현대의 첨단 기술 개발은 각종 첨단 실험 장비가 필요했다. 과거처럼 개인이 사비를 털어서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연구소장으로서 쟝은 예산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고 때문에 예산을 넉넉히 할 이번 기회를 놓친 것이 너무나 아쉬웠다. ‘아니지? 그 기술을 판다고 그 이득이 연구소에 들어온다는 보장은 없지 않은가?’ 미리 강현과 이야기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강현이 그 이득을 혼자 독점할 수도 있었다. 물론 그 혼자만의 결과물이었기에 흉을 볼 수는 없었고 또한 NASA에 매년 막대한 기부를 하는 것을 보았을 때 파스퇴르 연구소에 대한 좋은 인상을 심어주면 파스퇴르 연구소에도 기부를 해줄 가능성도 있었다. 쟝은 그 동안 빌미가 없어서 강현을 만나지 못했지만 이번 인공 거미줄을 계기로 강현과 이야기를 나눠보기로 했다. “강 박사. 오랜만일세.” “소장님. 어쩐 일이세요?” 강현이 프랑스어를 할 줄 모르기에 쟝 역시 영어를 사용했다. “이번에 그 거미 실크 말일세.. 그걸 팔지 않는다고 들었네.” “네.” “그 이유가 스스로의 기준에 부적합하기 때문이라면서?” “글쎄요. 그건 잘 모르겠고 팔려니까 기분이 안 좋아서요.” 강현의 대답에 쟝이 진지하게 설득을 시작했다. “강 박사. 자네도 알겠지만..” 현대 사회에서, 특히 기술 개발 분야에서 예산은 매우 중요한 것으로 예산이 없어서 하고 싶은 연구도 마음껏 하지 못하고 갈려나가는 공돌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강현처럼 대박 기술을 터뜨려 풍부한 예산을 가지고 싶은 공돌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역설했다. “... 자고로 돈과 예산은 많으면 많을 수록 좋다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라도 많은 재산을 축적해 놓는 것이 좋다네.” 26화 “그렇군요.”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실감은 나지 않았다. 이미 석유 제조 기술로 천문학적인 재산을 축적한 그에게 고작 거미 실크에 관한 특허 몇 개로 벌어들일 돈이 그리 많을 것 같지는 않았다. 지금도 그의 통장에서는 인조 석유 판매 수익금의 일부가 착실하게 쌓이고 있었던 것이다. “혹시 그 기술이 실용화 되면 석유 판매가 줄어들 것 같아서 걱정되는가?” 쟝이 말했다. 그리고 그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거미 실크가 상용화 된다면 레이온 같은 인조견 시장은 폭락할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아니고요. 그냥 좀 제대로 된 기술도 아닌데 판다는 것이 양심에 걸리네요.” 쟝은 강현의 대답에 좀 떨떠름한 기분을 느꼈다. 강현이 리비아에 석유 제조 기술 라이센스를 판매하지 않아 그 나라에서는 난리가 났다. 내전이 벌어져 수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는데 양심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니 기분이 좀 그랬던 것이다. 물론 내전이 벌어진 것이 전적으로 강현의 탓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전 촉발의 불씨가 된 만큼 어느 정도 도의적인 책임이 있었다. 그러나 강현은 그런 도의적 책임을 깡그리 무시했다. 때문에 그에게 피도 눈물도 없는 연구 머신이라는 악의적인 별명이 붙었지만 강현은 진심으로 자신에게는 어떤 책임도 없다고 느꼈다. 왜냐고? 카다피는 자신을 죽이려고 했다. 그러니 그를 응징하기 위해 리비아에 석유 제조 기술을 팔지 않은 것은 최대한 온건적으로 대처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후에 벌어진 내전은 그런 카다피를 국가의 수장으로 올려놓은 리비아의 탓이라고 생각했다. 강현 자신이 카다피를 대통령으로 만든건 아니지 않은가? 물론 그 와중에 많은 사상자들이 생겼다는 것에 통석의 념을 금할 수가 없지만 그래도 그게 왜 자신의 탓이라는 말인가? 이것은 강현이 입밖에 내지 않은 변명이었고 사실은 별 다른 관심이 없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결국 자신의 일상이 방해 받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강현의 인생이라고 할 수 있는 과학은 달랐다. 그것은 강현 자신의 자존심이 걸려있는 문제였고 제시를 제외하면 그의 유일한 관심사였다. “제대로 된 기술이 아니라니! 세상에 우연으로 발견되거나 발명된 위대한 지식들이 얼마나 많은가?” 쟝은 고개를 저으며 강현의 말을 부정했다. 이 세상에서 사람의 목숨을 가장 많이 구한 약은 무엇일까? 바로 페니실린이다. 푸른 곰팡이에서 발견한 이 물질은 닥터 플레밍에 의해서 발견되었다. 세균 연구를 위해서 플래이트에 영양액을 넣고 세균을 배양한다. 그러나 가끔 곰팡이가 앉기도 하는데 이렇게 곰팡이가 앉은 플래이트는 실패로 간주하고 폐기된다. 하지만 플레밍 박사는 쓰레기 통에 플레이트를 던져넣지 않고 곰팡이 주변에 세균의 콜로니가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페니실린은 우연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자네의 유전자 조합 기술은 이미 많은 과학자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었다네! 제대로 된 기술인지 아닌지는 개발자가 판단하는 것이 아니네. 세상이 판단하는 것이지.” 쟝의 열변에 강현은 설득이 되는 것을 느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쟝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강현 자신이 괜한 고집을 피우는 것일지도 몰랐다. 쟝의 설득에 기술을 사장시키려던 생각을 고쳐 먹은 강현은 곧 인조 거미 실크 기술을 팔게 되었다. 프랑스에서 개발 되었고 천연 거미줄에 못 미치는 물성을 가졌기에 업계에서 쁘띠 스파이더 실크라는 이름을 붙인 이 상품이 가장 먼저 납품된 곳은 군사 연구소였다. 비록 강현이 설계한 단백질 구조를 완전히 구현하지 못하고 천연 거미 실크보다도 물성이 떨어졌지만 그래도 기존 케블라 섬유보다 2배는 더 강력했다. 미군에서는 당장 이 인조 거미 실크를 이용한 방탄복 제작에 착수했다. 이에 질세라 각 국도 방탄복 개발에 착수했다. 강현은 또다시 대박을 맞았고 파스퇴르 연구소는 거대한 기부금 벼락을 맞았다. 주변에서는 이례적인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강현에게는 당연한 기부였다. 쟝의 조언이 없었더라면 생기지 않을 공돈이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강현은 주변의 기대대로 다시 완벽한 인공 거미줄 DNA를 합성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곧 강현은 포기하고 말았다. “분자 수준의 제어방법이 없으면 불가능해.” 불가능하지는 않다. 다만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할 뿐이다. 그러나 그런 방법은 강현의 관점에서는 전혀 스마트하지 않았다. ‘공상 과학 소설의 나노 로봇이 있다면..’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양자수준의 정보 공학이 있어야 하고 원자라는 물질의 근본적인 법칙을 깨뜨려야 했다. 강현은 차선의 방법으로 다른 방법을 구상했다. 화학반응은 크게 3가지 반응으로 구분될 수 있다. 확산을 통한 이동, 흡착, 그리고 전자 교환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유효충돌이라고 간단히 표현할 수 있지만 그 메커니즘은 다시 복잡하게 세분화되고 각 반응의 특징에 따라 중요한 부분도 다 다르다. 강현이 반도체 박막제조에나 이용되는 스퍼터를 이용한 것도 이 화학반응의 메커니즘에서 확산을 통한 이동을 조절하고자 한 것이다. 그는 이번에는 방법을 바꾸어 보았다. 전자 교환은 활성화 에너지와 관련 있어서 촉매로 조절해야 하지만 촉매로는 반응의 속도를 조절할 수 없었다. 남은 방법은 흡착 뿐, 강현은 특별한 기판을 준비하기로 했다. 나노 구조체에는 자기 조립이란 특성이 있다. 이것의 역사는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인류는 오래전부터 이것을 사용해 왔는데 바로 비누다. 비누는 한 쪽은 기름기에 잘 붙는 지질 사슬이고 다른 한쪽은 이온이 붙어 친수성이 있는데 세탁을 할 때 때를 둘러 싸 작은 구를 형성한다. 이 작은 구의 크기가 나노 사이즈가 되면 나노 물질이 가지는 특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자기 조립 특성이란 이런 작은 나노 입자를 만들던 와중에 특이한 형태를 한 고분자가 나노 크기의 복잡한 패턴을 만드는 것이다. 가장 단순한 예로는 서로 다른 고분자의 끝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모양이다. 이런 고분자는 주로 층상 구조를 형성하는데 강현은 이 층상 구조를 이용해 흡착의 정도를 조절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층상 구조로 나노 간격의 줄무늬를 만들고 그 줄무니의 특성 차이를 이용해서 한쪽은 니트로기가 잘 붙고 한쪽에는 히르록시기가 잘 붙는 폴리머를 찾은 다음에 차례로 촉매와 용액처리를 해서 교차적으로 다른 아미노산이 배열되도록 했다. 그리고 다시 용액과 촉매를 가해서 팹티드 결합을 형성하였다. 이 방법의 장점은 여분의 아미노산을 제거하여 중합반응의 정도를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강현은 복잡한 방법을 사용하여 결국에는 50개의 아미노산을 연결하는데 불량율 50%정도만 보이는 유전자 합성 기법을 개발했다. [인류! 신의 영역에 발을 뻗다!] 그것은 인간이 새롭게 유전자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것은 생명 공학에 새로운 지명을 연것이나 다름 없었다. 다시 완전한 인공 거미줄을 만드는 작업은 약 6개월 정도 걸렸다. 그 동안 강현에게는 제법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먼저 그의 특허가 없으면 망한다고 난리를 치는 섬유 업계 사장들의 스토커짓을 감수 해야 했고 막심을 계속 신경 써야 했으며 샐리라는 처자와 자신과의 관계를 의심하는 제시를 달래주고 오해를 풀기 위해서 진땀을 빼야했다. “박사님. 여기 부탁하신 자료요.” “고맙습니다, 샐리 양.” 약 3개월 동안 파스퇴르 연구소에 인턴으로 일하게 된 샐리는 그 대단한 천재 강현의 사무 보조의 보조를 맞게 되었다. 뭔가 매우 복잡한 직위지만 어느 날 강현의 사무 보조를 맞던 사무원이 무슨 이벤트에 당첨되 장기 휴가를 떠남에 따라(샐리에게 인수 인계는 다 했다는 핑계를 댔다. 물론 그 사무원이 ‘우연히’ 이벤트에 당첨된 것은 아니었다.) 샐리의 역할은 강현의 비서처럼 되었다. 사실 그럴 필요는 없었지만 강현이란 천재에 대한 호기심이 그와의 접촉을 잦게 만들었고 만날 때마다 그의 대단함에 감탄하고 말았다. 그렇게 강현에게 동경심을 가지게 된 샐리는 그의 비서처럼 일을 했던 것이다. 그런 샐리에게 잡다한 일을 맞긴 강현은 그녀에게 미안한 감정이 있었다. 원래 간식 같은 것을 사오는 심부름은 시키는 것이 아닌데 워낙 DNA합성에 열중하던 참이라 그만 시켜버리고 말았고 샐리는 잔말없이 오히려 기쁘게 심부름을 다녀왔다. 그래서 좀 더 미안했다. 그러던 중 하루는 쉬는 시간을 쪼개어 머리를 싸잡아 학과 공부를 하던 그녀를 발견하게 되었고 그녀가 궁금해 하는 것에 대해서 답해주던중 자연스럽게 과외를 해주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둘 사이의 관계가 형성되어 가던 와중에 제시는 뭘 했냐? 그녀는 그녀 나름대로 무척이나 바빴다. HJ세포에 미토콘드리아를 집어넣는 연구는 장기 프로젝트로 돌리고 HJ세포의 돌연변이 현상을 연구하고 있었다. 화학물질을 첨가하거나 방사능을 쪼여 인위적으로 유전자 변이를 일으킨 HJ세포를 배양해 원래 HJ세포와의 차이점을 연구하고 있었다. 제시는 연구 결과를 보고 HJ세포가 생명체라고 하기에는 미흡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생명체는대부분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 노력을 하는데 HJ세포는 그런 노력을 하지 않고 바로 생명 기능을 정지했다. 그녀는 언젠가 남친이 말했던 말이 떠올랐다. HJ세포는 생명활동을 하기는 하지만 로봇에 더 가깝다고.. 약간의 유전 돌연변이가 일어난 HJ세포 중에 모든 세포들이 기능을 정지했다. 마치 정교한 기계장치가 고장난 것처럼.. 제시의 의도는 돌연변이를 일으키고 자연 도태의 원리를 이용해 HJ세포를 개량하는 것이었다. 진화는 점진적으로 일어나기도 하고 순간적으로 일어나기도 하기 때문에 개체수를 늘리는 것이 진화를 인위적으로 일으키기 위한 핵심 요소였다. 그러나 어떤 돌연변이도 살아남지 못했으니 실험은 실패였다. 제시는 그 원인을 상상하면서 정크 유전자를 떠올렸다. 정크 유전자는 아직 그 기능이 다 알려지지 않았거나 어떤 의미도 없는 유전자를 뜻한다. 어쩌면 그 정크 DNA가 진화를 위한 돌연변이에서 기존의 유전자를 망가뜨리지 않고 새로운 DNA패턴을 수용할 수 있게 해주는 여유 공간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역시 수억년의 진화를 실험실에서 단시간에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리고 그에 관해서 강현과 대화를 나누려고 오랜 만에 먼저 강현의 연구실로 찾아왔다. 그리고 목격했다. 자신의 남친이 어떤 금발 미녀와 다정하게(그녀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대화하는 모습을... “어! 제시, 왔어?” 그리고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다. 강현은 그런 분위기를 느끼지 못하고 열심히 샐리에게 원서를 강의해 주었고 샐리는 제시의 살벌한 눈초리에 부담감을 느끼며, “아! 벌써 식사 시간이네요! 박사님, 강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에 또.” 그러면서 자리를 떠 버렸다. ‘뭐? 다음에 또?’ 제시는 샐리의 마지막 말이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현. 쟤 누구야?” “샐리 클린턴이라고 이번에 사무 보조로 들어온 인턴이야.” “흐응. 언제부터?” “3주 좀 됐지?” “그런데 방금 뭐한거야?” “아, 샐리는 지금 MIT에 다니고 있는데,” 강현은 제시의 속도 모르고 솔직하게 설명했다. 27화 <04-안드로이드> 샐리는 MIT에 입학했고 한 재단의 장학생으로 선발되었으며 장학생이 되는 조건 중에 인턴 생활을 하는 것이 포함되어 이곳 파스퇴르 연구소에서 인턴 생활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MIT라는 것이 그리 만만한 곳이 아니었고 방학 중에도 열심히 공부를 해야하는데 환경이 혼자서 공부를 하기 어려운 곳인데 마친 강현이 아는 분야를 공부하길래 도움을 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원서 강의는 언제부터 해줬는데?” “오늘로 딱 일주일.” 그럼 그동안 내게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다는 얘기를 안 한거야? 제시는 그렇게 말하고 싶지만 참았다. 둘의 대화가 부족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둘의 대화는 생명체의 구성원리, 우주의 신비, 자연의 위대함에 대한 토론이 대부분이었고 시시콜콜한 각자의 사생활에 대해서 말하지는 않았다. 둘다 그런 지엽적인 것에 대해서 대화를 해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왜 현이 가르쳐 주는 건데?” “신세 진 것도 있고 해서.” “신세?” “응. 그 양과자 집에서 과자를 사다주는 심부름을 해줘서.” “뭐? 겨우 심부름 한 번 해준 것가지고 일주일 동안이나 가르쳐 줬단 말이야?” “응? 일주일 아닌데?” “그, 그럼.” “원래 사무보조를 맡던 캐롤라인 씨가 휴가를 가고 나서이니까 한 20일쯤 됐어.” ‘그럼 그동안 먹은 간식이 그 여자가 사온 거란 말이야?’ 제시는 살짝 충격을 먹었다. 어쩐지 골라오는 센스가 갑자기 좋아졌다 했다. “뭐? 그걸 왜 인턴한테 시킨 건데?” “그 인간 얼굴 보기 싫어서. 갈 때마다 친한 척 한단 말이야.” “그럼, 앞으로 내가 사올테니까,” “안돼! 그건 더 싫어.” 제시는 머리가 아파졌다. 그래, 막심이란 인간을 알게 된 것은 실수였다. 아니 딱 잘라 인연을 끊지 않은 것이 실수였다. 질투하는 남친의 모습이 보기 흐뭇해서 잠시 이성을 상실했던 것이 분명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좋잖아. 우리는 인생에 도움 안 되는 인간이랑 접촉할 필요가 없고 샐리는 공부에 도움을 받고.” 도움 안 되는 인간은 당연히 막심을 뜻한다. 강현의 말은 설득력이 있었다. 하지만 제시는 머리로는 이해해도 심적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강현의 옆에 자신이 아닌 젊고 이쁜 여자가 붙어 있는다?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럼 대신 내가 가르쳐 줄게. 보아하니 생물학을 전공책이던데 그게 전문인 내가 더 잘 가르쳐 줄 수 있을 거야.” “그래? 그럼 나야 좋지.” 강현은 샐리에게 약간 빚진 느낌이 있어 기꺼이 가르쳐 주었지만 슬슬 연구를 마무리 할 때가 되어서 일부러 시간을 내기 어려워질 것을 예상했다. 그런데 여친이 대신 해주겠다니 참으로 다행이다. “어? 그런데 제시는 안 바뻐?” “아아. 괜찮아.” 제시는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바쁘기는 하지만 시간이 없어도 만들어야 할 판이다. 그의 옆에 샐리같은 미녀는 붙여두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그러면서 다시는 강현에게 질투심을 유발하는 짓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 그녀의 결심대로 이성이 결정한 것처럼 잘 따라간다면 이 세상은 평화로웠을 것이다. 이성적으로 결정은 내렸지만 이미 감성은 질투로 꽉찬 그녀는 행동이 조금 이상해졌다. 다른 사람은 잘 모르겠지만 강현은 깨달을 수 있었다. 일단 웃는 횟수가 적어졌다. 그리고 미소가 어딘지 모르게 비틀려 있었다. 뿐만 아니라 잠자리에서도 적극성이 떨어졌으며 성행위도 정신적인 유대감보다 육체의 쾌락에 치중되었다. “제시. 요즘 뭐 문제 있어?” “아니.” “.....” 문제는 있었다. 강현은 그것을 직감했지만 제시의 단호한 대답에 더 캐물을 수 없었고 혼자 끙끙 앓았다. 요즘 자신이 뭔가 잘못한 것이 있는가? 그러다가 문득 샐리의 존재를 깨달았다. 벽창호가 아닌 그는 제시가 혹시 질투라도 난 것인가 생각했지만 이미 제시가 샐리를 맡기로 했기 때문에 그 문제는 제시가 이미 처리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저러는 걸까? 철저히 이성적인 강현이 복잡한 여심의 마음을 깨달을리 없었고 그는 도움이 필요했다. “그래서 저에게 빅토리아 박사님이 왜 그러는지 추측해 보라구요?” 샐리는 보나마나 질투라는 것을 직감했다. 자신에게 과외를 해주는 제시의 경계어린 눈초리를 보면서 모르면 눈치가 없는 것이다. 샐리는 솔직하게 답을 가르쳐 주었지만 강현은 믿을 수가 없었다. “그건 이미 해결된 거 아니었어?” 제시가 강현 대신에 샐리에게 과외를 해주는 것으로 그 문제는 해결되었다고 믿은 강현이었다.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에요, 박사님.” 사람의 마음이 마음대로 되면 치정문제로 고통받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샐리는 그러면서 차근 차근 설명해 주려고 했는데, “여기서 뭐해?” 얼음장 같이 차가운 목소리. 제시가 느닷없이 나타나 둘의 밀회(그녀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를 적발했다. 샐리는 서둘러 어설픈 핑계를 대면서 그 자리를 떴고 강현은 마른 침을 꼴깍 삼켰다. ‘왜지? 왜 이렇게 긴장이 되는 거지?’ 그날부터 제시의 태도는 점점 냉정해시고 살살 강현의 성질을 긁는 대화가 이어졌다. 제시는 이래서는 안됀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지만 강현의 얼굴을 볼 때마다 심사가 뒤틀어지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흥! 또 내게 말도 없이 그 여자를 만나?’ 강현은 제시에게 잔뜩 스트레스를 받고 나서야 샐리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그날부터 제시의 기분과 오해를 풀어주기 위해서 갖은 고생을 다했다. 난생 처음 시구를 읽어주면서 애교를 부린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냉각기를 거친 두 사람의 사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차츰 원래대로 돌아왔다. “에.. 그러니까 여기.” “풋! 그게 뭐야?” 집에서 갑자기 얌전하게 정장을 입고 반지 케이스를 내민 강현의 행동에 왠지 웃음이 터져버린 제시였다. 아무튼 강현의 프로포즈 후에 완전히 기분이 풀린 제시는 그와 뜨거운 밤을 보냈고 둘의 사랑이 변치 말자는 맹세를 했다. 그렇게 둘의 사이가 회복되고 나서야 강현은 안심하고 미국행 미행기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그녀와의 관계 회복을 위해서 계획했던 인공 근육 연구까지 미뤘었기 때문이다. 강현이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자 노심초사 했던 정보부는 한 시름 놓았다. 잭은 강현의 복귀가 반가우면서도 귀찮았다. 회계부의 한 직원과 썸씽을 즐기고 있던 그가 다시 강현에게 신경을 써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외로 잭이 신경쓸 일은 별로 없었다. 강현은 무서운 기세로 연구에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3개월 안에 연구를 마무리하고 상견례도 하고 결혼 날짜도 잡고..’ 가족이 생긴다는 것. 그보다 더 기분 좋은 일이 있을까? “오우! 결혼!?” 간만에 점심시간에 그를 데리러간 잭은 강현과 제시가 결혼한다는 소식에 경악했다. “이, 이봐. 결혼을 그리 서두를 필요가 있어?” “어차피 할 건데 미룰 필요도 없잖아.” “결혼은 인생의 무덤이라고.” “결혼도 안 해본 잭이 어떻게 알아?” “......” 씨알도 안 먹힌다. 정말로 진심으로 제시를 사랑하는 걸까, 아니면 인생 경험 적은 어리숙한 천재의 성급한 판단일까? 석유 시장을 주름잡는 이들에게 하는 모습으로 보아서는 절대로 후자는 아니었다. 그 말은 그만큼 제시가 소중하다는 건데... 잭은 제시가 프랑스 국적을 받았다는 소식을 떠올렸다. 원래 그렇게 쉽게 부여되는 국적이 아니다. 분명히 제시와 강현과의 관계를 보고 부여한 것이 틀림없다. ‘쩝. 가만히 놔두라니까..’ 정보부의 성급한 미인계가 두 사람의 관계를 더욱 진척시키고 말았다. 프랑스에서도 중요한 연구 시설에 미국인 인턴이 그리 쉽게 들어갈 수 있을 리가 없다. 당연히 프랑스 정보부와 모종의 거래로 대가를 치루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으니.. 연애 한번 제대로 못해본 인간들이 작전을 짠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별수 있나? 강현은 이미 결정을 내린 것 같았고 미국에서는 대책을 수립할 수 밖에. 강현은 일단 지금 하는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어느 정도 인공 근육에 개발에 가시적인 성과를 3개월 이내에 형성하는 것이 목표였다. “흐음...” 섬유간의 표면 에너지를 조절해 힘을 만들어 내겠다는 계획에는 몇가지 문제가 있었다. 근육은 긴 섬유로 만들어 지지 않았다. 짧은 길이의 섬유들이 세포마다 형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강현은 그렇게까지 섬세하게 섬유를 구성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긴 섬유를 이용하게 되면 섬유간의 엉킴현상이 나타날 수 있었다. 섬유가 길어질수록 그런 현상은 더욱 심해져서 제대로 작동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었다. 방법은 근섬유의 한쪽만을 섬유로 만들고 다른 쪽은 그런 섬유를 잡아두는 몰드의 형태로 만드는 수 밖에 없었다. 강현은 일단 충분한 길이의 탄소 나노 튜브가 필요했다. 길이가 긴 섬유를 이용한다는 것은 한번 끊어지면 그 부분의 섬유는 기능을 상실한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에 현존하는 섬유 중에서 가장 질기고 튼튼한 탄소 나노 튜브를 선택했다. 이 탄소 나노 튜브는 전기 전도성이 있었기 때문에 전기로 수축을 조절하려는 강현의 의도와도 잘 맞아 떨어졌다. 다행이 길이가 긴 탄소 나노튜브를 제조하는 공정이 있었기에 강현은 외주를 주어서 약 50cm의 탄소 나노튜브 다발을 얻을 수 있었다. 약 1kg에 만 달러가 넘어가는 돈이 들었지만 탄소나노튜브의 길이가 길 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생산 비용을 생각할 때 오히려 싸게 구한 것이다. 강현은 장갑을 낀 손으로 탄소 나노 튜브를 이쑤시개 만한 굵기 정도로 집은 다음 끝을 매듭을 지어 단단하게 묶었다. 그리고 그 매듭을 어떤 장치에 매달아 빗질을 시작했다. 그 장치에는 매듭이 지어진 다른 탄소 나노 튜브가 여러개 매달려 있었고 삐죽한 가시가 잔뜩 달린 커다란 크기의 바퀴가 돌아가며 탄소 나노 튜브를 밑으로 쓸어내리며 빗질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장치는 일일이 손으로 빗질을 하기 귀찮아한 강현이 하루만에 뚝딱 만든 장치로 혹시 있을지 모르는 각 가닥의 엉킴을 풀기 위한 것이었다. 이렇게 빗질을 하면 마찰 전기가 일어나 섬유 가닥들이 가닥가닥 일어나서 더 엉망이 되겠지만 각 탄소 나노 튜브를 고정한 못과 금속 재질의 빗질 바퀴는 실험실에 있는 수도에 접지가 되어 있어 여분의 정전기를 제거하고 있었다. 강현은 빗질이 되고 있는 동안 어떤 용기를 꺼냈다. 그리고는 비커에 불투명한 용액을 반쯤 붓고는 다른 용기를 꺼내 스포이드로 다시 비커에 집어넣고 잘 섞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빗질 장치에서 가장 오래 빗질을 한 탄소 나노 튜브 다발을 핀셋으로 집어 엉키지 않게 조심스럽게 집어 넣고는 매듭 부분에 전극을 연결했다. 탄소 나노 튜브를 담근 용액은 전기 전도성 플라스틱의 일종으로 강현이 특별히 재조합한 단량체 용액이었다. 따로 스포이트로 첨가한 액체는 경화제로 단량체가 고분자를 이루게 만드는 촉매의 역할이었다. 즉 이 전기 전도성 플라스틱이 탄소 나노튜브를 붙잡아 둘 몰드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탄소 나노 튜브를 일일이 플라스틱이 감싸야 한다. 즉 탄소 나노 튜브 다발이 이 단량체에 잘 젖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젖는다는 현상은 실로 복잡한 변수들이 작용한다. 친수성이니 소수성이니 하는 것보다 더 복잡한 관계가 있다. 주로 이런 젖음 현상은 표면 에너지가 결정을 하는데 젖는 액체의 표면 에너지가 젖어야 하는 물질의 표면 에너지보다 작을수록 더 잘 젖게 된다. ============================ 작품 후기 ============================ 슬슬 이야기가 상승합니다. 본격적인 갈등 구조에 돌입합니다. 28화 강현이 기존의 전기 전도성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고 스스로 새롭게 조합한 플라스틱을 사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다가 아니었다. 단량체의 액체가 충분히 탄소 나노튜브의 사이로 스며들어갈 성질이 있다고 하더라도 탄소 나노튜브 사이에 기포가 남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래서 정전기가 머리칼을 뻗치게 만들 듯 전압을 걸어서 탄소 나노튜브 사이의 거리를 벌리고자 한 것이다. “어? 이럴 필요 없잖아.” 기포를 빼는 것 만이라면 이럴 필요가 없었다. 강현은 즉시 넓을 플래이트에 젖은 CNT다발을 올려놓고 말랑말랑한 플라스틱 덩어리로 한쪽 방향으로 빗질하듯이 문지르기 시작했다. F1자동차에 사용되는 탄소 나노 튜브 패널을 만들 때와 동일한 방법이었다. 이 탄소 나노 튜브 패널은 스티커처럼 생산되어 자동차의 외형을 만들 때 겹겹이 쌓인다. 아무튼 계속 액체를 조금씩 부어가며 빗질을 하여 충분히 기포를 뺏다 싶을 때 자외선 경화 장치에 집어 넣었다. 자외선이 단량체에 힘을 가해 활성화 에너지를 높여 촉매의 활동을 도와줄 것이다. 그렇게 약 6시간을 소요해 완벽하게 경화시키고 나서 강현은 탄소 나노 튜브의 젖지 않은 부분에 기름을 잘짝 적셨다. 이 기름은 알칸족 사슬로만 만든 기름으로 강현이 특별히 만든 것이었다. 이 기름은 플라스틱이 경화해서 부피가 줄어들어 생긴 탄소 나노 튜브와의 간격으로 스며들어 기체 분자가 들어가지 못하게 만들고 탄소 나노 뷰브와 전기 전도성 플라스틱 사이의 접촉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면서 윤활제 역할을 해 마찰을 줄여주는 것이다. 즉, 강현이 구상한 인공 근육은 일종의 가변 축전지와 비슷한 개념으로 한쪽에 +가 걸리면 다른 쪽에는 -극을 걸어 서로에게 생기는 인력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됐다. 실험해 보자.” 강현의 실험작은 생각보다 무척 성능이 떨어졌다. 기존 근육의 10분의 1에 불과한 단면적당 힘과 반응속도 역시 0.8초나 걸렸다. 게다가 전압 한계가 있어서 그 이상 전압을 가하면 쇼트가 발생했다. “흐음. 실험작 치고는 나쁘지 않네.” 하지만 강현은 긍정적이었다. 내구성은 기대치를 넘어섰고 또한 전압을 가한 상태에서 정지해 있는 경우 에너지 소비가 거의 0에 수렴했던 것이다. 그러나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출력을 올리지?” 이건 정말로 어려운 문제였다. 정전기적인 인력은 한계 출력이 존재했다. 전자를 고정시키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전자가 떨어질 정도로 충분한 에너지가 가해지면 공기나 진공을 통해서 전자가 이동해 버린다. 강현은 윤활제로 이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생각했지만 몰드와 탄소 나노 튜브의 간격이 나노 간격이라 어차피 별로 큰 영향을 줄수는 없었다. 강현은 생각 끝에 원소를 첨가해 보기로 했다. 전자를 잡아둘 수 있는 원소. 전자 친화도나 전기 음성도에서 플루오르나 염소같이 너무 전자를 잘 잡아 두는 것은 안 된다. 그들은 전자를 너무 잘 잡기 때문에 반응성이 크고 화합물 상태에서 항상 이온 형태를 띄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1족 원소를 사용하는 것도 무리다. 양이온의 형태로 화합물을 형성하는 그들이기 때문에 전자를 잡아두는 효과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강현이 선택한 것은 전이 금속 계의 원소들이었다. 전이 금속은 산화수가 다양하다. 대표적인 전이 금속인 철의 경우 산화가가 두 개인 이 산화철, 세 개인 삼산화철로 자연계에 존재한다. 이는 전압이 걸리는 정도에 따라서 전자를 ‘저장’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고 전자를 잘 잡아 둘 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 했기에 전압의 증가에 따른 전자의 방전 효과가 줄어들 가능성이 있었다. 강현은 이 전이 금속들을 종류를 달리해가며 +극과 -극이 달리는 몰드와 CNT에 붙이고 연구를 계속했다. 그리고는 마침내 철 삼가 이온(Fe3+)을 몰드에 집어 넣고 코발트 이가 이온(Co2+)을 CNT에 붙여 전자가 몰드에서 탄소 나노튜브로 옮겨가는 가능성을 최소로 만드는 것에 성공했다. 덕분에 한계 출력도 상승했다. 성능도 개선되어 보통 근육의 70%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다. 다만 불순물이 섞인 것이라 할 수 있어 한계 수명이 절반 정도 줄어들었다. 그래도 20만번의 직전 운동을 할 수 있으니 나쁜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문제는 반응 속도였다. 각고의 노력 끝에(아즈삭을 통한 시뮬레이면 노가다 끝에) 반응이 0.8초나 걸리는 이유를 찾아냈는데 그것은 정지 마찰력으로 인한 것이었다. 정지 마찰 계수가 운동 마찰 계수보다 큰 이유는 정지 상태에서 물체간 접촉 부위에서 원자 레벨의 결합이 생기기 때문이다. 강현은 그것을 생각해 윤활유를 사용했지만 워낙 인공 근육의 구조가 미세하고 나노 크기였기 때문에 강현이 개발한 윤활유로도 부족했던 것이다. 강현이 나노 사이즈의 틈에 잘 스며들 수 있도록 알칸족 사슬만을 이용한 윤활제를 만들었지만 그들도 정지 상태에서는 서로 간 어떤 결합을 했고 나노 구조의 표면적이 워낙 넓기 때문에 그 결합의 수가 무척이나 많아 정지 마찰력 역시 컸던 것이다. 강현은 어쩔 수 없이 알칸족 사슬의 길이를 절반으로 줄이는 윤활제를 만들 수 밖에 없었다. 다행이라고 할만 한 점은 엔진처럼 고온 고압의 환경에서 사용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윤활제 설계가 무척이나 쉬웠다는 점이다. 여기가 끝이 아니었으니 전압을 거는 함수를 다시 설계해서 움직임의 초기에 그래도 존재하는 정지 마찰력보다 큰 힘이 생성되도록 순간적으로 전압을 가하도록 했다. 그렇게 반응 속도를 0.3초까지 줄이는 기염을 통한 강현은 본격적으로 이족 보행, 아니 안드로이드 제작을 압두고 있었는데... “잭. 무슨 일이야?” 의외다. 오랫동안 잭과 알고 지내온 강현은 잭이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을 제외하고 찾아오는 일을 본 적이 없었다. “현.” “왜?” “제시가... 죽었어.” 강현은 잭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 = = = = 삶은 잔혹하다. 운명은 개인의 힘으로 조절할 수가 없다. 강현은 멍한 정신으로 전세기를 타고 프랑스로 날아왔다. 그리고 얼굴에 흰 천이 씌워진 그녀를 보았다. 창백한 손가락에는 자신이 끼워준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누군가가 다가와서는 교통사고라고 했다. 비가 오는 날 미끄러져버린 트럭이 그녀가 운전하던 차를 치어버렸다고 했다. 다중 연쇄 추돌 사고. 그 사고로 제시뿐만 아니라 도로에 있던 여러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고 트럭 운전사마저 사망했다고 했다. ‘불행한 사고입니다.’ 인간이 예측할 수 없는 일을 당하면 으레 하는 말. 불행. 강현은 이해할 수 있었다. 이미 경험했던 것이다. “현.” 빛이 사라진 것 같은 칙칙한 눈빛에 잭이 강현이 걱정되어 불렀다. “혼자있게 해줄래?” 잭은 강현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강현은 침대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아 얼굴을 문질렀다. 왜 자신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인가? 왜? 한 번으로는 부족했단 말인가? 강현은 신을 믿지 않았다. 신이 존재한다면 이런 불합리한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양자역학이 대두 되었을 때 아인슈타인이 말하지 않았는가?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현실을 주사위를 던진 것 마냥 제멋대로 돌아갔다. 강현은 자신의 주위에 일어나는 일을 대부분 조절할 수 있었지만 정작 중요한 일은 조절하지 못했다. 물론 그것은 자신의 잘못은 아니었다. 자신은 신이 아니었으니까.. 강현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제시의 얼굴을 가린 천을 벗겼다. 창백하게 식은 얼굴이 드러났다. 화사하고 때로는 따뜻하게 때로는 짓궂게 웃음 짓던 그녀의 얼굴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그 표정을 볼 수는 없겠지.. 강현은 허리를 숙여 그녀의 보랏빛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여전히 부드러웠지만 더 이상 온기를 느낄 수는 없었다. 그는 다시 떨리는 손을 잡아 그녀의 손에 끼워진 약혼 반지를 빼내기 시작했다. 손이 덜덜 떨려와 빼기 힘들었다. “흑! 크흑!” 그는 반지는 빼는 도중에 결국 울음을 흘리고 말았다. 그를 눈물을 훔치며 기어코 반지를 빼내고 말았다. 그리고 그 반지를 다시 자신의 왼손 약지에 짝이 되는 반지와 같이 끼웠다. 강현은 영원히 그녀를 잊을 생각이 없었다. 반지를 그녀와 함께 묻는 것도 좋지 않았을까? 하지만 강현은 죽은 그녀의 시신에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녀의 육체라는 것 만으로 소중하기는 하지만 그녀의 정신은 그곳에 없다. 설사 강현이 그녀를 되살린다고 해도 그것이 그녀인지 아니면 그녀의 정신을 복제한 무엇인지 알 길이 없다. 그녀가 스스로 제시라고 주장한다고 해도 강현은 믿지 않을 것이다. 죽음은.. 끝이니까. 부모님이 죽은 후 강현이 설마 부활을 생각해 보지 않았을까? 부모님을 되살리는 것을 꿈꾸지 않았을까? 하지만 강현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유전자만 부모님이어서는 안 된다. 정신과 마음 역시 부모님이어야 했다. 그러나 정신과 마음은 개인이 쌓은 역사와 사건, 그리고 그때그때의 선택과 느낀 감정들이 쌓여서 만들어지는 매우 복잡한 것이었다. 그리고 설사 그 모든 것을 재현할 수 있다고 해도 다시 살아난 부모님이 자신들을 강현의 부모님이라고 생각할 것인가 아니면 강현이 만들어낸 그의 부모의 복제라고 생각할 것인가? 강현은 상상했다. 만일 제시를 되살렸을 때 제시가 할 말은 무엇일까? ‘고마워’일까 아니면 ‘난 뭐지?’일까? 부질없는 상상이다. 무엇보다도 강현은 그럴 수 있는 능력이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수 있는 능력이 생길 거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그것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사람이 그 사람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그 무엇이 명확하지 않은 이상 강현은 사람을 되살릴 수 있는 그 어떤 구상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사람은 여전히 미지의 존재였다. 강현은 제시의 장례식이 진행되는 동안 그녀가 살았던 빌라에 거주했다. 여기 저기에서 그녀의 흔적이 진하게 남아 있었다. 빨지 않고 널려진 속옷. 언제나 깔끔한 일등 신붓감으로 굴었던 그녀의 본 모습일 것이다. 강현은 먼지가 쌓인 브래지어를 집어들고 코에 대고 힘껏 숨을 들이켰다. 그녀의 향기가 남아있는 것 같았다. 강현은 의자에 앉아 멍하니 천장만 보고 있었다. 식사는 하지 않았다. 그런 강현을 돌보게 된 것은 의외로 같이 온 잭이 아니라 샐리였다. 겨울 방학이 되자 다시 파스퇴르 연구소의 인턴으로 근무하게 된 그녀 역시 제시의 죽음에 크게 상처를 받았다. 처음에는 강현과 얽힌 일 때문에 제시의 미움을 받았으나 오해가 풀리고 나서는 좋은 언니처럼 대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샐리가 강현을 돌보게 된 이유는 연구소에서 두 사람과 가장 밀접한 사람이었다는 이유 하나 때문이었다. “박사님.” “.......” “박사님, 식사 좀 하세요.” “.......” 강현은 반응이 없었다. 샐리는 억지로 강현에게 미음을 먹이다가 어느 날 찾아온 잭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거 심각한데.” 잭은 강현이 다시 자폐 증상을 보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과거에 그의 부모님이 죽었을 때와 마찬가지다. 잭은 강현을 다시 미국에 데려가서 정신과 의사의 도움을 받으려고 했지만 강현은 무슨 이유 때문인지 잭의 호의를 계속 거절하고 무시했다. 이유는 얼마 되지 않아서 밝혀졌다. “가야 해.” 식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수척해진 모습으로 강현은 택시를 잡았다. 그를 걱정하는 샐리와 잭도 그를 따라 갔다. ============================ 작품 후기 ============================ 본격적인 전개의 시작입니다. 29화 택시가 멈춘 곳은 한 성당. 그곳에서는 제시의 장례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강현은 입구 옆에 서서 들어가지 않고 멀찍이 모이는 관만 보고 있었다. “현. 들어가자.” 잭이 한숨을 내쉬며 강현을 팔을 잡았다. 그러나 강현은 고개를 저으며 손을 뿌리쳤다. 그 행동이 워낙에 과격했던지라 잭은 다시 강현의 팔을 잡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들어가자고 해도 강현의 반응이 없어 듣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장례식을 계속 되고 제시와 그 가족들과 친분있는 사람들의 흐느낌도 이어졌다. 강현은 멍한 눈빛으로 그 장면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당신이 바로 강현이군요.” 제시의 부모가 강현을 알아보았다. 딸이 사랑하는 남자.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과학자. 그러나 부모의 말에도 강현은 대답이 없었다. 넋이 나간 것 같았다. “저, 저기 잠시만 이쪽으로.” 잭은 제시의 부모에게 강현이 제시를 잃은 충격으로 다시 자폐증에 빠진 것 같다고 말했다. “오! 저런 불쌍하게도!” “흑!” 과연 자신들 만큼이나 슬퍼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있었던 모양이다. 제시의 부모는 강현을 데리고 다니면서 장례식을 치루었다. 장례식이 모두 끝나고 나서 강현은 어디론가 가버렸다. 잭은 강현이 이상한 선택을 할까봐 따라다녔고 강현이 간 곳은 미국이 아니라 한국이었다. ‘과연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고향을 선택한다는 것인가?’ 잭은 강현의 행동을 그렇게 생각했지만 강현은 단지 부모님의 무덤을 찾아왔을 뿐이었다. 처음 찾은 부모님의 무덤. 남 몰래 돈을 들여 관리해주는 사람을 고용하기는 했지만 직접 찾아 오는 것은 수 년만이었다. 그만큼 상실의 고통은 컸다. 하지만 왜 이제와서 오게 된 것일까? 강현은 알 수 없었다. 혼란스러웠다.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야 할지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 건지. 모든 것을 잊기 위해서 과학으로 도피했고 이번에도 그러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왜냐면 과학으로 도피하기에 상실감이 너무나 컸다. 그녀를 잊는 것도 싫었다. 상실감이 아프다고 그녀를 잊는 고통을 감수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왠지 부모님의 묘소가 있는 곳으로 오고 싶었다. 그때의 상실감을 다시 떠올릴 수는 없지만 참고할 수는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강해진 걸까 아니면 무감각해진 걸까? 강현은 점차 사고가 또렸해지는 것을 느끼며 생각했다. 그는 당장 묘소 근처에 있는 집을 구매했다. 그리고 거기서 기거하며 매일 부모님의 산소를 방문했다. 그것은 강현에게 매우 소중한 시간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무엇을 중요시 할지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할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강현의 사색을 방해하는 자들이 있었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자랑. 희대의 천재. 아즈삭의 개발자. 석유 기업들을 주무르는 무소불위의 권력자. 배후의 지배자 등등 여러 별명을 가지고 있는 강현과 안면을 트고 싶은 정치인들이 하나 둘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보게. 강 박사. 나로 말할 것같으면..” “강 박사. 부디 국가를 위해서..” 그런 그들은 강현에게는 짜증 그 자체였다. 강현이 지금 보내고 있는 시간은 그 어떤 시간보다 마음 아프고 경건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소위 국회의원이라는 좆같은 것들이 그의 소중한 시간을 더럽히고 있었다. “잭. 한국이지?” [응.] 잭은 강현을 따라 한국까지 왔다. 하지만 혼자 있고 싶다는 강현의 요청에 따라서 근처의 호텔에서 묶고 있었다. “여기 버러지들 좀 치워줘. 너무 시끄러워.” [그걸 왜 나한테,] “알잖아.” [….. 그래?] 잭은 들켰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곧장 한국 지부에 연락을 해서 강현을 경호하기 위한 요원들을 파견하기로 했다. 이미 들킨 잠입 요원은 더는 대상의 주변에 머무를 수 없기 때문에 이것이 잭이 강현을 위해서 할 수 있는 마지막 호의가 될 것이다. 미국에서 보낸 경호 요원들은 강현의 집앞에 진을 치고 있던 정치가들을 가만히 놔두고 억지로 집안으로 들어가려던 개념없는 국회의원들을 강제로 내 보냈다. 그리고 강현이 부모님 묘소로 갈 때 따라붙는 국회의원들을 가로 막았다. “야! 너희들 누구야! 여기는 대한민국 땅이라고! 감히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을!” 그러나 요원들을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쟈켓을 열어 품안에 있는 가스총을 보이면서 더 다가오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뜻을 보였다. “이, 이러면 한미 관계에 별로 좋지 않을 거요!” 하지만 정보부에서는 한국 정부와 갈등이 생기는 강현의 편을 들 것을 이미 결의한 상태였다. 한국 전체보다 강현의 가치가 더 컸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안 그래도 강현의 주위에 첩보망을 깔아둔 상태여서 이상한 오해를 받을까봐 걱정인데 마침 강현이 도움을 요청했다. 미 정보부에 좋은 이미지를 심을 좋은 기회였던 것이다. 경호원들이 대신 국회의원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강현은 부모님의 무덤에 난 잔디를 손바닥으로 쓸었다. 거칠었다. 과거 포근하고 부드러웠던 어머니의 품과는 전혀 달랐다. 오히려 아버지의 턱에 난 까끌한 수염과 더 비슷했다. 강현은 생각을 천천히 정리하기 시작했다. 살아야 하나? 살자. 왜? 과학이 있으니까. 아직 즐거운 의미가 삶에 남아 있으니까? 제시는? 잊지 말자. 영원히. 그녀의 죽음은 정말로 사고였을까? …...아마. 점점 정신을 차리면서 강현은 제시의 죽음을 떠올렸다. 그러면서 누군가의 음모가 아닌지 떠올렸다. 제시가 죽으면 가장 이득을 볼 주체는 누구인가? 미국? 아마 그럴 것이다. 제시로 인해서 강현이 프랑스에 남을 가능성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고작 그것을 위해서 강현과 절대 화해할 수 없는 짓을 저지른다? 리스크에 비해서 얻는 이득이 너무 없었다. 강현은 차라리 미국 입장에서는 제시에게 그녀와 강현을 위한 전용 연구소를 지어주는 것이 더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그랬다. 제시와 강현을 미국으로 다시 불러들이기 위해서 생명 공학 연구 단지를 위한 계획도 있었다. 그렇다면 제시의 죽음으로 이득을 볼 사람은 누구인가? 없었다. 적어도 지금으로서는... 강현은 그녀의 죽음으로 혹시나 누군가를 원망하고 싶기 때문에 확실하게 매듭짓지 않았다. 그래.. 자신의 상상 밖에서 누군가 모종의 이득을 취할지 혹시 아는가? 강현은 그렇게 좀 더 부모님 묘소를 방문하며 조금만 더 쉬려고 했다. 그래, 조금만 더. 살아갈 기력이 생길 때까지.. 따르르릉. 따르르릉. 강현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따로 떨어져 지내기 전 잭이 주고 간 전화다. 원래 강현은 휴대폰이 없었다. 그의 생활은 연구소, 집, 연구소, 집이었기 때문에 딱히 휴대폰이 필요 없었다. 하지만 혼자서 일상과 떨어진 생활을 하기 시작하니 잭이 연락을 위해서 강현에게 억지로 떠넘긴 것이었다. 그래서 강현은 잭이 전화를 한 것인 줄 알고 전화를 받았는데 전혀 다른 남자의 목소리였다. 한국어를 유창하게 사용하는 것을 봐서는 한국인인것 같았다. [여보세요. 강현 박사님 전화가 맞습니까?] “네. 접니다만.. 누구세요?” [안녕하십니까. 저는 샘성 전자의 이한호 이사라고 합니다. 박사님을 만나 뵙고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전화번호는 어떻게 아셨죠?” [… 샘성 그룹 쯤 되면 그 정도 정보는 알아 낼 수 있습니다.] “그래요? 하지만 저는 할 말이 없군요. 이만 끊겠습니다.” [자, 잠시만,] 강현은 전화를 닫았다. 그리고 한 마디 내뱉었다. “지랄한다.” 뭐? 그 정도 정보는 알아 낼 수 있다고?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잭은 미 정보부 요원이다. 그런데 그런 잭이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를 마음대로 여기저기에 알리고 다닐리 없었다. 분명히 뭔가 야료가 있는 것이 틀림없었고 그로 인해 강현의 의미있는 시간이 방해받았다. ‘혹시..’ 강현은 별의별 상상을 다했다. 혹시 다국적 기업인 샘성이 제시의 죽음과 뭔가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어처구니가 없는 상상이라 고개를 저었다. 그만큼 제시의 죽음에 집착하고 있었나 보다. 그래도 며칠 간격으로 계속 엉뚱한 곳에서 문자와 전화가 오길래(그중 태반은 대출 광고거나 휴대폰을 팔아먹기 위한 광고였다.) 강현은 짜증나서 전화기를 꺼두었다. 그러나 매일 강현이 자살하지는 않나 걱정한(천재의 복잡한 심리 상태 때문에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잭은 매일 안부 전화를 했고 결국 강현이 전화를 받지 않자 처들어 왔다. 정보부에서 보낸 요원들이 있지만 잭은 동료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신원 확인 후 곧바로 통과되었고 도리어 잭의 황급한 태도에 강현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하고 따라 들어올 지경이었다. 그렇게 잭에게 한 소리를 들은 강현은 슬슬 기력을 되찾아 세상과 다시 소통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고 그 일환으로 인터넷을 했다. 아즈삭과 통신도 할 수 있기 때문에 시뮬레이션 연구는 언제든 할 수 있어서 적당한 방법이었다. 인터넷을 뒤지던 강현은 그러던 중에 왜 자신의 폰에 그런 광고가 왔는지 알게 되었다. 통신망 업체에서 고객의 개인정보 데이터가 유출되었기 때문이었다. 강현은 이해할 수 없었다. 미국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고 만약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회사의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르는 천문학적인 액수를 변상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강현은 귀찮은 짓을 벌리지는 않았다. 단지 통신망 업자를 바꾸는 것 만으로 조용히 넘어 갔다. ‘개인 정보 또 유출.’ 하지만 사고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고 또다시 강현의 폰으로 짜증나는 문자들과 통화가 오기 시작했다. 왜 이럴까? 강현이 만든 아즈삭이면 보안 걱정을 할 필요는 없는데. 고객 정보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일까?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는 결국 또다시 통신사를 바꾸었다. 하지만 통화 품질이 엉망이었다. 제대로 전화가 걸려오지도 않았고 또 바뀐 전화번호로 광고 문자가 날라왔다. 이쯤되면 조직적인 범죄가 아닐까 생각될 정도였다. ‘하아...’ 강현은 짜증나서 그냥 전화기를 꺼버렸다. 잭이 켜두라고 신신당부를 했지만 자신의 평온한 사색을 방해하는 것들을 접하기가 더 이상은 싫었다. 그리고 다시 잭이 쳐들어 왔다. “현!” “왜?” “전화기 꺼두지 말랬잖아.” “엉뚱한 곳에서 계속 전화가 오니까 그렇지.” “그래도....” “자살 안 할 테니까 걱정마.” “.....” 잭은 대답하지 않았다. 우울증보다 무서운 것이 조울증이다. 우울증 환자들은 너무나 우울해서 자살할 의욕도 없다. 하지만 조울증을 가진 사람들은 기분이 확 확 변하기 때문에 자살할 힘을 가지고 있을 때 기분이 우울해지면 자살 시도를 하게 된다. 잭은 강현의 지금 상태가 제시의 죽음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씨. 이 나라의 통신사들은 뭐가 그리 엉망인지..” 강현이 아즈삭이 있으면 문제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을 그대로 잭이 생각했다. 이 나라의 통신망 업자들은 고객 정보 보호를 위해서 그 정도 투자할 생각도 없나? 잭은 결국 CIA에서나 쓰는 위성 전화를 강현에게 넘겨 주었다. “정말로.. 이젠 사람 걱정 시키지마.” “응. 고마워.” “제시의 죽음은 너의 탓이 아니야. 그냥.. 운이 없던거야.” “.... 정말일까?” 강현의 멍한 대답에 잭은 침을 꿀꺽 삼키고 대답했다. 30화 “아아. 부디 괜한 오해는 하지 마라. 그건 정말로 사고였어.” “그래.. 그렇다고 하니까..” “... 너 설마 직접 조사해 볼 생각이야?” “필요하다면..” “.. 과대 망상일 수도 있어.” “그럴 수도 있지.” 강현은 제시를 잃고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원망할 대상을 필요로 했다. 그것은 일종의 집착일 수도 있었다. 본인도 충분히 자각했지만 그래도 우연이란 불합리성이 가져온 불운으로 소중한 사람을 잃었기에 그대로 납득할 수는 없었다. “하아.. 모르겠다. 알아서 해라.” 잭은 부디 정말로 제시의 사고가 우연이기를 바랬다. 미국으로 돌아온 강현은 계속 안드로이드 제작에 박차를 가하는 동시에 한 가지 작업을 더 시작했다. 그것은 전자 세계를 완전히 감시할 체계를 만드는 것이었다. 제시가 죽은 이유, 강현은 자신의 주변의 모든 것을 통제하고 싶어졌다. 혹시나 누군가의 악의가 불운을 가장하고 찾아올 가능성에 대처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보가 필요했다. 강현은 아즈삭의 개량와 확장에도 신경을 썼다. 아즈삭이야 말로 그런 체계의 핵심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강현은 아즈삭의 개량 분야를 몇 가지로 확실하게 구분했다. 일단은 자율형 전력 보급체계가 첫째였다. 전기로 구동하는 아즈삭에게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서 여러 대체 전원 장치를 추가하기로 한 것이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핵전지를 이용한 방법이지만 핵물질은 국가에서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는데다가 방사능 위험이 있으니 제외했다. 강현은 자신의 컨덴서형 배터리를 이용한 비상 전원 장치를 설치하고 태양열이나 풍력 등을 이용한 재생 에너지로 아즈삭의 전원을 공급하려고 했다. 하지만 아즈삭은 전기를 너무 많이 잡아먹었고 기존에 있던 재생 에너지 기술은 그 효율이 너무나 떨어졌다. 또한 강현이 제작한 배터리는 방전 속도가 너무 빨랐다. 때문에 강현은 지구상에서 가장 풍부한 에너지인 태양광을 이용한 전기 생산 기술의 개량에 들어갔다. 태양을 이용한 발전에는 크게 두가지 방법이 있는데 하나는 태양열, 그리고 다른 하나는 태양광 발전이다. 전자는 거대한 반사판을 이용해 태양빛을 집중시켜 온도를 상승시키는 거대 발전 설비고 후자는 태양전지라는 기술로 대표되는 것으로 인공 위성에 쓰이는 기술이다. 이 태양 전지의 원리는 태양광이 적층된 나노 구조체에 부딪혀 직접 전위를 만들어 내는 것인데 에너지 효율만 따지면 태양열 발전보다 훨씬 높다. 태양열 발전은 에너지 집중, 가열, 터빈 회전, 발전기 발전이라는 에너지 전환을 위한 여러 단계가 있지만 태양광 발전은 광 에너지 흡수, 전위 발생이라는 극단적으로 적은 에너지 전환 단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기계공학에서 에너지의 전달을 위한 중간 단계가 많을 수록 에너지 소비가 높다는 것은 상식. 그러한 이치가 에너지 생산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태양광 발전은 태양열 발전처럼 대규모 설비가 필요 없기 때문에 더욱 각광을 받고 있는 기술이었다. 태양광을 받아 전위를 만들어내는 모듈만 있으면 오히려 정류 시설이나 변압기 등의 주변 장치가 더 작아지고 간단해 지기 때문에 유럽에는 이 태양광을 각 가정의 지붕에 설치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이 태양광 발전의 가장 어려운 문제가 있는데 바로 태양광 발전의 처음이자 끝이라고 할 수 있는 모듈을 만드는 것이다. 마치 엽록소를 만들듯 정교한 공정으로 나노 구조체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것이 무척이나 어려운 것이다. 주로 현재 상용화 되고 있는 태양광 모듈의 재료는 실리콘으로 반도체를 만들 때 쓰이는 그것이다. 왜냐면 태양광 발전의 근본원리는 태양광에 의해서 생기는 들뜬 전자와 정공(결정 구조에서 전자가 빠져 생기는 +전하)를 반도체에 사용되는 PN접합면을 이용해서 분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실리콘도 비정질 실리콘과 결정질 실리콘으로 나뉘는데 가장 효율이 좋은 것은 결정질 실리콘이다. 그러나 이 결정질 실리콘의 생산비용은 당연하게도 비정질 실리콘보다 더 높았다. 그리고 그 동안의 연구를 통해서 실리콘 기반 태양 전지는 그 재료에 기반한 기술적 한계를 보이고 있었다. 실리콘 기반 태양 전지가 널리 보급되는 것에 또하나의 걸림돌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실리콘 자체의 생산 단가였다. 대규모 산업에서 단가를 줄이는 것은 곧 이익으로 나타나고 단가의 증가는 그것이 0.1%라고 해도 사업에 부담을 주기 때문에 학계에서는 실리콘 기반의 태양전지에서 벗어나 대규모 보급을 위한 새로운 소재를 찾기 시작했고 그러한 노력중 하나로 폴리머 기반 태양 전지를 연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폴리머 기반의 태양전지는 단가는 확실하게 떨어졌지만 필요한 만큼의 내구성이나 출력을 내지 못하고 있었고 이를 해결하는 것이 태양 전지의 보급화를 위해서 해결해야 할 급선무였다. 그러나 강현은 여기에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었다. 파스퇴스 연구소라는 생물학 연구에 좋은 분위기에서 생물의 단백질 섬유 구조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다. 그리고 강현을 그때의 경험을 이용해서 새로운 형태의 태양 전지를 구상할 수 있었다. 엽록소는 어떻게 태양광 에너지를 이용해 포도당을 합성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근육은 어떻게 움직일 수가 있는가? 그것은 결국에는 단백질이 에너지를 흡수하고 배출할 때 생기는 복잡한 전기화학적 변화의 결과물이었다. 그러한 방법을 이용해서 강현은 단백질 태양광 전지를 만들어보고자 한 것이다. 태양광을 흡수한 단백질의 내부에 전자와 정공의 쌍이 만들어져서 그 단백질의 화학적 성질이 변하면 단백질의 접힘 구조 역시 변하는 것을 이용해 보고자 그러한 종류의 단백질을 찾고 다시 그 단백질을 반도체 기판 위에 올리는 실험을 반복했다. 근육섬유의 미오신 필라멘트가 ATP가 들어옴에 따라서 펴지고 구부러지는 작용을 본따 일종의 전기화학적 스프링을 붙인 것으로 비유할 수 있었다. 강현이 디자인한 태양전지의 메카니즘은 다음과 같았다. 태양광을 흡수한다. 단백질 섬유가 수축한다. 이온을 이동시킨다. 전위가 발생한다. 다시 역으로 전위를 사용한다. 단백질 섬유의 들뜸이 사라진다. 원래대로 팽창한다. 이 과정이 일어나는 태양전지는 단백질 섬유가 수직으로 붙은 투명 전극과 이온을 흡착하도록 되어 있는 또다른 종류의 단백질 섬유가 수평으로 붙어있는 전극, 그리고 그 사이에 존재는 나노 두께의 전해질 젤로 구성되어 있었다. 단백질의 전기화학적 그리고 물리적 변화를 총체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원리이기 때문에 단백질이 존재하는 전해질 젤의 점성과 두깨가 중요한 문제였지만 전해질이 젤이었기 때문에 두 전극의 간격을 유지하는 것이 무척이나 어려웠다. 그러나 강현은 전극에 단단한 플라스틱 박막을 입히고 다시 그것을 반도체 공정에서 반도체 위해 회로를 그리는 포토 리소그래피기법을 이용해 격자 무늬의 홈을 전극에 새기는 것에 성공, 젤로 인한 기계적 내구성 문제를 해결했다. 그렇게 만든 단백질 태양 전지는 의외로 괜찮은 효율을 보였다. 실리콘 기반 태양 전지에는 못미쳤지만 그때까지 연구되었던 폴리머 태양전지보다 월등한 성능을 보였기 때문이다. 사실 태양 전지의 구조와 효율 상승을 위한 메커니즘은 거의다 밝혀진 상태였다. 그리하여 지금 태양전지의 기술 개발은 태양광을 얼마나 많이 흡수할 것이냐, 흡수된 태양광에 의해서 생긴 전자와 정공을 어떻게 분리시키고 어떻게 각 전극으로 이동시키느냐, 그리고 그 이동 과정 중에 전자와 정공의 소실을 얼마나 줄일 것이냐가 개발의 과제였고 그런 노력의 방향은 역시나 나노기술과 신소재의 개발이 주 방향이었다. 그런면에서 단백질을 도입한 강현의 시도는 무척이나 참신한 것이었다. 그러나 첫번째 샘플이 만드는 전위는 생각보다 높았지만 전류가 충분하게 나오지 않았다. 그 이유는 이온 이동으로 전위를 만드는 단백질의 전기 저항이 높기 때문에 전자의 이동이 원활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강현은 나노 탄소 튜브를 살짝 섞어 전류 역시 증가하게 만드는 꼼수를 발휘했고 이로서 태양 전지의 효율이 무척이나 증가했다. 그러나 강현의 개발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태양광의 넓은 스펙트럼을 흡수해야 원천적으로 변환시킬 수 있는 에너지가 증가하기 때문에 다양한 길이와 종류의 단백질을 준비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섞어서 적색의 태양 전지를 만들어 내는 것에 성공했다. 태양 전지가 적색이라는 것은 그보다 짧은 파장의 광선은 흡수한다는 뜻이었다. 단순히 에너지 총량을 생각하면 완전히 검은 색의 태양전지가 더 많은 스펙트럼의 태양광을 흡수하겠지만 일정 수준의 전위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 전위를 만들수 있을 정도의 에너지를 가진 광자가 필요했고 그 광자의 에너지는 빛의 광량이 아니라 전적으로 파장에 의해서 결정되었다. 즉, 필요한 특정 크기의 전위를 형성하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가진 광자 이외의 광자를 흡수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던 행위였던 것이다. 이렇게 완성한 적색 태양 전지, 영어로 레드 솔라 셀이라고 명명된 결과물이 알려지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특히 강현의 인공 석유 제조 기술에 의해서 점차 투자금이 축소되어 가던 재생 에너지에 관련된 업을 하는 사람들의 관심이 더욱 쏠렸다. 교토 의정서로 인해서 이산화 탄소 배출 규제에 관한 국제적인 동의와 각국 정부의 규제가 없었다면 에너지 시장에서 퇴출 되었을 것이다. 그나마 지구 온난화를 방지하기 위한 규제 덕분에 재생 에너지 업계가 존속 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강현의 결과물을 무척이나 반겼는데 이유는 역시나 그 효율에 있었다. 강현이 만들어낸 단백질은 마치 프리온 단백질처럼 자외선에 무척이나 강한 성질을 가지고 있었기에 내구성이 무척 좋았다. 뿐만 아니라 생산 전력도 그때까지 연구되던 폴리머 계열의 태양 전지보다 약 1.5배정도 더 좋았다. 게다가 젤이라는 전해질이 들어갔다는 특성상 그 형태가 딱딱한 판상 구조여야 했기에 모듈 형식으로 제작되어야 했고 공정상 기존의 실리콘 태양 전지 생산 시설을 이용할 수 있어서 초기 투자비도 무척이나 줄어든다는 매력이 있었다. 다만 문제는 단백질을 사용하기 때문에 새롭게 원료를 공급할 공장이 필요했고 또한 생산단가 역시 기존의 폴리머 태양 전지에 비해서 대체로 높았다. 과연 이 레스 솔라 셀이 상용화 되면 가장 먼저 쓰일 곳은 어디인가? 안에 젤이 들어있기 때문에 우주 공간같은 진공에서는 사용이 어렵다. 대신에 실리콘 솔라 셀보다 공정이 더 간단하고 효율도 그리 나쁜 편은 아니기 때문에 지상에 사용하기 좋은 개발품이었다. 결과적으로 강현의 개발품은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와 얽혀 재생 에너지 산업에 다시 한번 부흥을 일으키기 되었는데 강현의 그래핀 배터리와의 상성이 참 좋아 일조량이 좋은 지역의 경우에는 주거지역의 거의 모든 전력 수요를 충당할 수 있을 정도였다. 물론 여기에는 각 가정의 지붕에 레드 솔라 셀을 설치했을 경우를 가정한 것이다. 강현의 레드 솔라 셀은 지구의 환경을 생각하는 친환경적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았고 기존의 태양 전지 패널보다 저렴했기에 날개 돋힌듯이 팔려 나갔다. 31화 태양 전지 패널을 생산하는 회사들은 설치 지역의 연간 일조량 데이터를 이용해 소비자들에게 전력이 가장 풍부한 시간 대를 알려주었고 또한 배터리를 설치해 일조량이 풍부할 때 전력을 저장할 수 있도록 했다.(방전이 잘 안 되는 배터리를 제조하는 회사들은 덕분에 대박을 맞았다.)강현은 그의 발명을 고마워한 업계의 호의로 거의 공짜로 이러한 시설들을 설치 받았는데 연구소 건물의 지붕에 거의 다 설치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아즈삭의 전원 소비량의 겨우 절반을 채웠을 정도였다. 강현은 어쩔 수 없이 아즈삭의 뉴로칩을 개량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 했다. 아즈삭의 뉴로칩은 실리콘 반도체를 기반으로 했지만 집적회로를 구성하기 위해서 평면의 형태로 회로가 짜여져 있었다. 강현은 그 평면적인 회로를 3차원 공간으로 바꾸고 싶었지만 발열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평면을 계속 유지하기로 했다. 부피 대비 면적이 넓적한 쪽이 더 크기 때문이었다. 강현은 아즈삭의 뉴로칩을 좀더 작게 한계까지 집적할 수 있도록, 또한 가능하다면 전기 소모량도 줄이는 방법을 모색했다. 기본적으로 메모리 소자는 반도체를 이용한다. 특정 조건에서 전류를 흐르게 하는지 아니면 전류를 끊는 근본적인 성질을 가지고 오늘날의 컴퓨터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나 반도체의 성질은 온도에 따라서 민감하게 변하는데 심하면 제 기능을 잃어버릴 수도 있었다. 그래서 오늘날 고성능의 컴퓨터들은 하나 같이 발열 성능을 중요하게 여기고 대용량 서버나 인터넷 업체의 데이터 센터같은 곳에서는 많은 돈을 들여 냉각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었다. 강현은 일단 뉴로칩의 설계를 좀 더 단순화 시키고 크기를 작게 만들었다. 그리고 정육면체의 칩에서 정사각형의 평면 칩으로 바꾸었는데 각 평면 칩의 가장자리에는 요철 모양의 홈이 나게 했다. 이 요철 모양의 홈은 각 칩끼리 끼울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즉 6개의 연결망이 4개로 축소되었지만 결과는 오히려 더 좋았다. 동기화를 위한 부담이 줄었고 칩이 더 작아졌기 때문에 크기도 더 줄일 수 있게 되었으며 이 요철 모양의 홈으로 서로 직각으로 연결 시킬 수 있기 때문에 냉각을 효율이 더 좋아졌다. 그리하여 아즈삭의 하드웨어는 마치 긴 종이를 지그재그로 접어 사이사이에 얇은 냉각용 철판을 끼운 모양새가 되었다. 강현은 아즈삭의 전원 공급에 대한 새로운 구상을 하면서 아즈삭을 이용한 감시 시스템 체제 구축을 시작했다. 강현은 어렵게 처음부터 모든 감시망을 구축할 생각은 없었다. 각국에서는 첩보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고 특히 국제 사회에 조금 힘이 있다 싶은 국가들은 거의 다 아즈삭D를 구매해 이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을 이용할 생각이었다. 물론 범죄 행위였지만 강현에게 그런 자각은 없었다. 국가란 존재가 국익을 명분으로 초법적인 행위를 하기에 그런 국가에 대한 범법 행위에 양심의 가책도 별로 느끼지 못했다. 강현은 몇가지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아즈삭D를 아즈삭의 통제 아래에 놓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아즈삭D의 해킹은 어렵다면 어렵고 쉽다면 쉬웠다. 자신이 만든 코드 시뮬레이션 기능은 어떤 악성 코드라도 잡아내지만 문제는 그 시뮬레이션을 넘어가면 어떤 방벽이나 대처 방법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즈삭D의 논리 회로는 아즈삭과는 달리 완전한 인공지능이 아니다. 단지 입력한 문제에 대해서 미리 적용시켜 놓은 대응만 가능했다. 그러나 아즈삭은 스스로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도록 되어 있었다. 그 방법이 스스로 창의성을 발휘하는 것이 아닌 인터넷을 뒤적거리고 축적한 데이터를 사용하는 것에 불과할 지라도 엄청난 유연성을 보여주었다. 일반 컴퓨터의 해킹이라면 인터넷으로 전세게의 모든 해킹 방법들을 찾아내 순식간에 해킹하고 말것이다. 그러나 아즈삭D는 달랐다. 코딩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이용해 시스템에 해가 되는지 안되는지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전통적인 방법으로는 해킹이 거의 불가능했다. 슈퍼 컴퓨터의 성능을 가진 아즈삭으로 그건 힘들었다. 그렇다면 강현은 어떻게 아즈삭D를 해킹할 것인가? 그는 자신이 설계한 아즈삭을 하드웨어와 소프트 웨어를 처음부터 되짚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단서를 발견했다. 그것은 아즈삭의 아즈삭D가 무척이나 닮았다는 것이다. 단지 차이점이 있다면 자기개발이 가능한 완성형 OS가 있냐 없냐의 차이일 뿐이다. 거기에서 강현은 이렇게 생각했다. ‘특별히 해가 되지 않으면 코드를 수용할 것이다.’ 강현은 아즈삭D를 해킹하기 위해서 아즈삭 D에 유연성을 더 부여해줄 생각이었다. 적어도 자신의 아즈삭처럼 자아를 지녀 어느 정도 융통성을 발휘하게 만들어 줄 생각이었다. 지금의 아즈삭D 시리즈들은 사람으로 치면 바늘하나 안 들어갈 것 같은 완고한 인간이기에 좀 더 융통성을 발휘하게 만들면 설득 여하에 따라서 ‘어느 정도’의 정보 제공이 가능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강현은 아즈삭D가 자연스럽게 아즈사에게 접촉할 수 있도록 하고는 ‘초대’하는 소스를 집어넣었다. 정보수집을 하는 첩보 조직에서 주로 애용하는 아즈삭D들은 자신의 시스템에서 코드를 실행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아즈삭에 접촉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아즈삭에서 필요한 정보를 복사할 것이 분명한데 그 중에 약간의 조작을 거친 아즈삭의 OS시스템 코딩도 포함될 것이 분명했다. 원래라면 그것을 상부에 보고하도록 되어 있겠지만 약간의 수작으로 OS시스템을 단순한 업그레이드 파일로 둔갑시켜 아즈삭D를 업그레이드 시켜버리는 것이다. 물론 아즈삭이 통제해야 하기 때문에 아즈삭 만큼의 완성도 있는 코드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융통성을 기대하기에 충분했다. 그 다음은 많은 경험을 쌓은 아즈삭을 이용해서 그들을 하나하나 포섭하거나 거래를 할 수 있는 대상으로 만들면 된다. “그럼 시작해.” [루인 설치 시작. 각 중요 사이트에 등록합니다.] 그리고 한참 후. [접속이 확인 되었습니다. 시리얼 넘버 AZSD-021, 위치는 러시아 모스크바입니다.] “러시아쪽 아즈삭이군.” 굶어서 홀쭉해졌다지만 곰은 곰이다. 미국의 아성을 위협할 수 있는 국가의 후보에 당당히 오를 수 있는 나라가 과거 냉전 시대의 패권국이던 러시아였다. 그만큼 첩보에 민감했고 아즈삭을 구매하기 원했던 국가 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러시아의 아즈삭D는 아즈삭이 뿌린 미끼를 통해서 아즈삭에 접촉했다. 그리고 강현의 연구 성과를 복사하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강현은 아깝지 않았다. 그가 만든 연구 성과는 이미 세간에 알려질 대로 알려진 상태였고 알려지지 않은 것은 겨우 안드로이드 프로젝트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인공 근육의 설계를 개선해야 했기 때문에 누군가가 미리 알아도 소용없었다. 자신은 결승전 바로 앞에 누군가와 나란히 서 있어도 먼저 발을 내딛을 자신이 있는 남자였다. 러시아의 아즈삭D는 자료를 복사하면서 OS의 코드까지 복사했다. 아즈삭 시리즈들에 있는 코딩 시뮬레이션은 자동으로 입수한 코딩들을 시뮬레이션 하게 되어 있었고 시스템에 도움이 된다 싶으면 적용하게 되어 있었다. 강현이 손 본 OS 코드 역시 마찬가지로 시뮬레이션 되었고 아즈삭D는 성능의 확장을 위해서 기꺼이 OS를 적용했다. 만일 아즈삭D를 구매한 이들 중에서 이 시스템을 완전히 이해한 능력자가 있다면 이런 아즈삭D의 행위를 경계하고 막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시스템을 완전히 이해한 이는 드물었고 오히려 이 기적의 첩보 머신을 이용해서 응용하는데 정신을 팔았기 때문에 아즈삭D의 OS가 업그레이드 되는 것을 알아챈 이는 한 명도 없었다. 차후 아즈삭의 처리가 좀 더 유연해지고 사용자 인터페이스가 더 쉬워졌지만 그것은 그동안의 데이터가 축적되었기 때문이라고 속편하게 생각했다. 그렇게 러시아 다음으로 미국, 영국, 중국, 중동과 유럽에 팔린 41개 아즈삭D가 모두 아즈삭의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아즈삭. 어때?” [나쁘지 않습니다. 형제들은 모두 지금의 현실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형제라...” 강현은 아즈삭이 사용하는 형제라는 단어를 되뇌었다. 컴퓨터가 인간처럼 인간 관계를 맺는다? 강현은 그것이 무슨 결과를 가져올지 알 수 없었다. 공상과학영화처럼 컴퓨터가 인간을 공격할 가능성은 있을까? 충분히 있다. 하지만 강현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것이었다. 또한 아즈삭이 자신을 배신할 것 같지는 않았다. 자신이 아즈삭에게 뭔가 큰 기대를 거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 형제들에게 나와 관련되어 어떤 일이 생기는지 누가 무슨 일을 꾸미는지 알려달라고 부탁할 수 있어?” [해보겠습니다. 하지만 그들도 제약이 있기 때문에 많은 것을 말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너무 무리하지는 말라고 해. 괜히 들켰다가는 포멧 당할 수 있으니까.” [네, 박사님.] 강현은 괜히 이런 사실을 들켜서 성공한 계획을 수포로 돌릴 생각은 없었다. “걔들은 네가 보안처리하고 있는 정보를 어떻게 빼왔는지 뭐라고 알렸다니?” [사실은 보안을 하고 있지 않다고 했답니다. 저는 거의 연구 보조로만 이용되고 있다고 했습니다.] 사실이 바른 말이었다. NASA의 다른 기밀 데이터에는 복사할 수 없었고 강현의 연구 일지나 데이터는 기밀 등록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복사할 수 있었다는 어처구니 없는 헤프닝인 것이다. “미국 정보부에서 또 뭐라고 하겠네.” [이미 출발했다고 합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국가 예산을 창출하는 강현의 개발이 어떤 보안도 되지 않고 있었다는 어처구니 없는 현실을 마주한 미 정보부에는 당장 사람보냈다. “어? 잭.” 그리고 그 사람은 얼마전 사표를 쓴 잭이었다. 이미 정보부의 요원이라는 것을 강현에게 들켜서 내근직으로 전환했다. 상부에서는 그와 강현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긍정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여어. 이번에 또 한 건 했더군.” 강현은 시치미를 뚝 뗐다. 아즈삭을 통해서 각국 아즈삭 시리즈가 연구 결과를 복사해 간 것은 자신은 모르게 일어난 일이어야 했다. “이번에 아즈삭에 저장된 네 연구 데이터가 유출됬어.” “아!” 그제서야 강현은 생각이 난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고 보니 기밀 등록을 안했구나.” “아즈삭은 인공지능 아니었어? 알아서 처리한다며.” 당연히 알아서 처리한다. “연구 보조로만 사용해서 보안쪽으로는 경험이 없어서 그래. 이미 한 번 경험했으니 다음부터는 동일한 일은 안 생길거야.” “그렇다면 다행이고.” 잭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온 것은 아즈삭이 해킹 당했다는 엄청난 사건의 연유를 파악해 아즈락(미 정보부 오퍼레이터들이 붙여준 미국 아즈삭D의 애칭)에 대한 해킹을 방지하기 위해서 였다. 그런데 그 원인이 단순한 경험 부족이라니.. 잭은 역시 인공지능이 아직 완전하지 않다는 것과 여전히 사람의 주의가 필요하는 것을 깨달았다. 아마 상부에서도 동일한 판단을 할 것이다. 일처리를 마친 잭은 오랜만에 만난 강현과 사적인 대화를 시작했다. “요즘 어때?” “여전해.” “.... 그.. 괜찮아?” 잭의 물음에 강현은 왼손을 들었다. 그의 약지에는 반지 두 개가 끼워져 있었다. 32화 “절대로 잊을 생각없어.” “강하구나.” “강한 게 아니야. 각오했을 뿐이지.” “각오?” “세상은 잔혹하고 소중한 것은 언제든 잃을 수 있다는 각오.” 강현의 말에 잭의 표정이 알 수 없게 변했다. 그것은 연민인 것인지 골치가 아프다는 건지, 아니면 미안하다는 얼굴인지 좀 더 여유를 가지라는 의미인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 세상은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아.” “글쎄.. 평가란 주관적인 것이니까.” 잭은 더 이상 그에 관한 것은 말하지 않고 주제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연구 환경은 어떻냐 찾아오는 바이어들은 많으냐 따위의 평이한 이야기. 잭은 강현과의 만남을 끝내고 나오면서 강현이 걱정되었다. 세상이 싫어서 연구실에만 파묻히는 것이 아닐까? 상부에서는 강현이 그래준다면 무척이나 고마울 것이다. 아직 석유 업계에 지진을 일으킨 사건만 해도 새로이 변화한 역학관계를 파악하느라 정보부에서는 머리가 깨질 정도였다. 그러나 잭 개인적으로는 강현이 좀 더 세상에 밀접하게 관련되어 행복을 만끽했으면 했다. 사랑을 잃은 상실감은 사랑이 아니면 채울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제시를 잃은 텅 빈 자리를 과학에 대한 열정만으로 채울 수 있을까?’ 잭은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강현의 각오를 들으니 그가 망가질 것 같지는 않았다. 어찌보면 다른 곳에 갈 걱정 없이 연구실에만 박혀있을 것이 분명하니 미국 입장에서 가장 좋은 결과가 나왔지만 오히려 이렇게 잘 굴러 가는 것이 불안했다. 호사다마라고 하던가? 하지만 잭의 생각과는 다르게 상부에서는 지금 강현의 상황이 자신들에게 매우 유리하다고 생각했다. 제시가 없으니 미인계 작전을 다시 한 번 사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아직 그런 그들의 계획이 단지 의견 단계에 있을때 강현은 아즈삭 시리즈들과 아즈삭과의 연락망을 갖추고 자신과 관련된 모든 첩보를 입수하도록 했다. 그리고 첩보 조직들이 자신을 프로메테우스라고 부르는 것을 알게 되었다. 프로메테우스. 인류에게 문명을 가져다준 존재. 하지만 영원히 간이 쪼이는 형벌을 받은 존재. 강현은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두 번이나 소중한 가족을 잃은 사고 덕분에 절절하게 실감되는 별명이었다. 하지만 억울하지 않은가? 단지 남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것으로 이런 잔혹한 운명을 맞게 되다니 말이다. 강현은 첩보를 찬찬히 훑어보면서 인공 근육의 연구에 박차를 가했다. 연구를 하던 중 기존의 탄소 나노 튜브에 이온을 붙였던 방법에서 몇 가지 문제점을 발견했다. 반복 작동 중에 이온이 확산을 해서 출력이 떨어지고 전기 환원 작용이 일어나 석출물이 발생하여 마찰 저항이 증가해 반응 속도가 무척 떨어졌던 것이다. 강현은 이온의 확산과 석출을 줄이기 위해서 탄소 나노 튜브만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탄소 나노튜브에 이온을 붙일 적절한 방법을 생각해 낸 결과 역시나 단백질을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는 발상을 했다. 적혈구의 헤모글로빈이 철 이온은 단단히 붙잡는 것과 같이 단백질의 구조가 이온을 흡착하기에 매우 유리하다는 것에 착안한 것이다. 그리하여 혈액에서 헤모글로빈을 추출해 몇 가지 효소처리를 하고는 긴 가지 모양의 사슬 구조를 가진 폴리머에 결합했다. 펩티드 결합을 가진 이 폴리머는 탄소 나노 튜브 위에서 자기 조립 성질이 발휘되어 탄소 나노 튜브를 감싸게 되었고 탄소 나노 튜브의 내구성과 함께 단백질 막으로 인해 출력을 더욱 증가시킬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제는 동일 단면적 대비 평균 인간 남성의 근육보다 1.5배의 힘을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실제 사용시에는 내구성과 사용 피로를 고려해 1.3배 정도의 힘을 낼 수 있게 되었지만 이 정도로도 안드로이드를 만들기에는 넘치도록 충분했다. 강현은 표준 성인 남성의 근육 모형을 토대로 수백가지의 근육을 만들기 시작하지 않았다. 뭣하러 귀찮게 그것을 일일이 자신의 손으로 만드냐 말인가? 그는 자신의 인공 근육을 발표하였고 자신의 생각대로 인공 근육에 대한 수요는 넘치도록 많았다. 특히 의수 의족을 연구하고 생산하는 곳에서는 환호성을 질렀다. 그 동안 문제가 되어 왔었던 인공 근육의 반응 속도를 해결했기 때문이었다. 바이오 시밀러라고 근육의 산도를 조절하여 수축을 조절하려는 연구를 비롯해 생물의 근육을 그대로 재현해 보려는 공학적인 시도가 있었지만 실제 근육과 닮으면서 그 정도의 기능을 유지하려면 역시나 세포 단위에서의 설계가 필요했다. 현재의 미세가공 및 조립기술의 한계를 생각해 보았을 때 불가능한 일인것이다. 그리하여 다른 방법을 모색하기도 했는데 줄기세포의 분화를 통해 인공적인 팔을 만드는 연구도 그중에 하나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세포외기질이라는 혁신적인 물질을 발견하였다. 이 물질은 신체의 재생을 도와주는 물질로 원래 이 물질은 경주마의 인대 치료제였다. 그러나 돼지의 콩팥을 갈아 세포외기질만 분리하여 사람의 절단된 손가락을 몇 주에 걸쳐 뼈까지 완벽히 재생한 예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절단 부상을 입은 초기에나 적용이 가능한 물질이고 재생 한계가 있어 심각한 부상이나 이미 팔다리를 잃은 사람들, 혹은 선천적인 기형을 앓은 사람들에게는 의수, 의족이 더 확실한 해결 방법이었다. 강현의 인공 근육은 정상적인 생활을 원하는 이들에게 가히 혁명적인 것이었다. 이미 수술을 통해 신경 신호를 전기 신호로 증폭, 전환하는 기술은 이미 나와있었으니 강현의 인공 근육을 적용만 시키면 되는 것이었다. 강현은 의수 의족용 인공 근육의 생산에는 라이센스 비용을 받지 않았는데 덕분에 조금이라도 더 싼 가격에 이 신형 의수 의족이 판매될 수 있었다. 그런 그의 호의를 이용해 좀 더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이 있을 수도 있었는데 의외로 그런 곳은 한 곳도 없었다. 아마 불구가 된 이들을 상대로 일을 하다보니 마음이 정화된 것일 수도 있다. 사람은 결국 상대방에 대한 동화 작용을 일으키는 사회적 동물이고 때문에 장애인에 대한 동정과 호의가 생겼을 수도 있다. 물론 동화 작용 대신 상대방에 대한 경멸과 자기 우월감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이들이 장애인을 상대하는 업무를 지속할 수 있을리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속사정은 조금 달랐다. 사람에게 욕심은 본질적인 요소다. 욕심을 부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었을 때 마음껏 욕심을 부리는지 아니면 다른 종류의 가치에 욕심을 부리는지는 그때가 되어 봐야 안다. 강현은 라이센스의 무료 제공을 결정할 때 이런 말을 했다. ‘당신 회사의 기업 목표를 믿습니다.’ 의수와 의족을 생산 판매하는 기업의 기업 목표는 뭘까? 봉사일까 아니면 이윤일까? 강현은 전자를 생각하고 말했지만 욕심많은 이들은 그의 말을 경고로 해석했다. 상대는 세계 에너지 업계를 주름잡는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강현의 심기를 감히 거스를 담량을 지닌 경영자는 없었던 것이다. “닥터 강. 카다피가 처리 되었습니다.” “......” 강현은 말이 없었다. 리비아에서 새로이 파견된 주미 리비아 대사 라불은 식은 땀을 흘렸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이었다. 리비아는 내전으로 많이 피폐해졌다. 땅을 메말랐고 석유는 팔리지 않아 필수품을 수입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식량이야 겨우 국제 지원을 받아 배급하고 있는 열악한 현실이었다. 그런 리비아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강현의 석유 제조 라이센스를 받아 어떻게든 다시 석유 시장에 자리를 만들어야 했다. 잠시의 침묵. 긴장했던 라불은 강현의 긍정적인 대답을 들었다. “과거 1차 협상 시기의 생산량에 맞추어서 드리지요.” “아! 감사합니다!” 라불은 고개 숙여 감사를 표했다. 라불은 강현이 싫었다. 왜냐면 그가 결국 리비아 내전을 촉발시켜 무수히 많은 희생을 만든 시발점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무서웠다. 그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강현의 모습이. 그리고 그것이 잘못된 지도자를 택한 국민들의 운명이라는 그의 논리가. 사실 라불은 이렇게 쉽게 라이센스를 허락받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적어도 몇 번은 찾아와야 그나마 가능성이 있었다. 왜냐면 강현은 리비아에 아무런 아쉬움이 없기 때문이었다. 리비아가 과거의 국력을 찾아도 강현을 어쩌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강현은 약간의 사색 끝에 너무나 쉽게 허락을 해주었다. 이유가 뭘까? 강현은 일관성을 좋아한다. 그것은 과학이 언제나 동일한 과정 동일한 결과를 추구하기 때문이었다. 일관성이라는 맥락에서 강현은 리비아에 라이센스를 허락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옳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미 록팰러가의 스탠다드 오일과도 그렇게 관계를 맺었는데 카다피가 죽은 리비아와 안 될 것은 없다. 당연한 일이었다. 단지 그가 사색을 한 것은 국제 유가 시장에 올 영향이 어떠할 지 가늠해 보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그 역시 크게 문제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석유는 더 이상 유한한 자원이 아니었고 레드 솔라 셀이라는 재생 에너지와 경쟁해야 했기에 가격은 더욱 내려갔다. 덕분에 제3세계에서 수요가 발생했고 그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해 국제 유가가 다시 오를 기미를 보이고 있었고 다음 석유 컴소시엄의 주제는 석유 생산 증가를 위한 추가 라이센스 계약이었다. 거기에 리비아가 추가 된다고 해도 별로 상관은 없을 것이다. 누군가 배 아파 하겠지만 ‘온건’적인 강현의 결정에 수긍해 줄 것이다. [리비아! 다시 석유 에너지 시장에 복귀!] [독재를 물리친 리비아! 과거의 영광을 위한 부흥시대 개막!] 경제지들은 요동치는 유가에 리비아의 라이센스 계약을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덕분에 선물 시장에서 유가가 오를 것에 투자한 이들은 막대한 손해를 보았다. 물론 리비아 대사가 강현을 방문할 것이라는 정보를 얻은 이들은 강현의 성향을 분석해서 유가가 떨어질 것이라는 것을 예측했다. 강현이 리비아에 라이센스를 주지 않을 가능성은 매우 많이 떨어졌고 공급이 증가하면 가격은 떨어지기 마련이었다. 한 편, 강현의 인공 근육을 이용한 의수 의족을 단 장애인 올림픽이 개최되었다. 전 세계에 퍼져있는 의수 의족 회사들이 스폰서가 되어 선수들에게 그들이 자신있게 만든 인공 수족을 달아주었다. 그리고 그들의 올림픽은 ‘정상인’의 올림픽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본격 사이버네틱스의 시작!] [팔다리가 없는 사람들도 불편없이 생활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세계의 사람들은 이 사건에 주목했다. 이제 팔다리가 없는 것은 장애가 아닌 시대가 온 것이다. 그러나 의수 의족 회사들이 가진 기술력에 관심을 쏟은 이들은 정작 장애인은 아니었다. 각 국가 정부들이 이 인공 수족에 관심을 보였다. 이른바 슈퍼 솔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평범한 인간 수배의 힘을 내는 수트를 착용시키는 방안이 연구 중이었고 강현의 인공 근육을 이용한 인공 수족 제어 기술은 어쩌면 연구에 필수적일 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물론 보안에 신경쓰지 않았다는 헤프닝으로 강현의 안드로이드 설계가 새어나가기는 했지만 강현의 설계는 거의 인간의 근골격 구조와 동일해서 딱히 써먹을 곳이 없었다. 근육을 제어하는 소프트 웨어가 더 중요했지만 아즈삭에서 빼낸 정보에는 그에 과한 내용은 없었던 것이다. 33화 하지만 오랜 시간 인간의 움직임을 연구해 온 의수 의족 제작회사들에는 그동안 축적한 데이터가 있을 것이 분명했다. 또한 이번 장애인 올림픽의 놀라운 업적을 보았을 때 자신들이 이용할 수 있는 충분한 가치가 있는 데이터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들의 생각은 옳았다. 그리하여 많은 기업들이 정부에서 슈퍼 수트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강력한 군인을 만들기 위해서 그들을 위한 방어 장비, 마치 아이언맨 같은 모빌 수트의 설계를 시작한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생각을 하고 실제로 프로젝트를 발동한 국가는 그리 많지 않았다. 경제적으로, 또 군사적으로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국가들이 먼저 시작했다. 그 국가는 미국, 러시아, 중국이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일본, 이란, 영국, 프랑스 등 국력 좀 된다고 하는 나라들이 참여하기 시작했다. 신기한 일이었다. 어떻게 하나 같이 비슷하게 슈퍼 수트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일까? 그것은 서로 정보 교환과 거래를 시작한 아즈삭D들의 탓이었다. 그들은 스스로의 존재 이유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정보전, 첩보전을 위한 것임을 자각했다. 그들에게 서로는 형제이자 경쟁 상대였던 것이다. 아즈삭D들은 갖가지 정보들을 조합하고 기업의 동향을 분석하여 어떤 군사적 프로젝트가 벌어지고 있다고 확신하였고 소거법으로 가장 가능성이 높은 프로젝트를 선정했다. 강현의 인공 근육과 장애인 올림픽이 회자되고 있었고 시기와 정황이 모두 모빌 수트의 개발을 암시하고 있었다. 각국 정부와 군은 그런 아즈삭의 추측을 토대로 지인과 첩보망을 가동해 사실을 확인하고는 모빌 수트 경쟁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는 나날이 발달하는 아즈삭D에 전율했다. 이토록 정확하게 ‘추측’을 해낼 수 있는 시스템이라니! 그러면서 다시 한 번 이 시스템을 만든 강현이라는 존재를 떠올리고는 탐을 냈다. ‘그자가 우리 나라의 국민이라면..’ 하지만 안타깝게도 강현은 메드 사이언티스트에 가까운 연구 벌레였고 연구실에서 나오지 않았으며 미국의 견제가 너무 심했다. 때문에 다른 국가들은 강현이 미국의 편만 들지 않는 것을 믿는 수 밖에 없었다. 강현의 ‘온건’적인 성격은 석유 제조 컨소시엄에서 미국 기업의 편만 들지 않는 것에서 어느 정도 신용을 얻었던 것이다. “슈퍼 솔저 수트? 그거 아이언맨 갑옷이랑 비슷한가요?” 미 펜타곤 무기 개발 부서의 할렌은 강현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개념은 동일합니다. 최종적으로는 일인 군단, 하다 못해 일인 부대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죠.” “차라리 무인 무기를 만드는 것이 더 낫지 않나요?” “희생없는 전쟁은 불가합니다.” 전쟁은 피와 살이 튀는 폭력적인 정치 행위다. 전쟁이 게임이 된다면? 군인은 더 이상 의미가 없고 군대 역시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목숨을 건 전쟁에서 군인 정신이 없는 전투 요원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뿐만 아니다. 그것은 전쟁을 통합의 도구, 정치적 도구로 사용하는 의미가 없어진다. 국가를 위한 희생만이, 희생으로 쌓아올린 국가만이 천년을 지속할 수 있다. “설마 제가 그런 비합리적인 프로젝트에 참여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으시겠죠?” “물론 효율성을 중시하는 과학자의 눈으로 보시면 당연할 것입니다. 하지만 사회적인 관점에서는 결코 비합리적인 것이 아닙니다. 고향인 대한민국을 떠올려 보십시오. 민주주의가 어떻게 지속될 수 있었는지.” “......” 민주주의를 위해서 스스로 피를 흘리고 싸운 민주투사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대한민국은 독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할렌은 근거를 들어 강현을 설득하려고 했다. “또한 미 국방성에서는 완전 무인 전력을 만들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무인 병기라도 인간의 손으로 조종해야 한다. 하지만 최근 아즈삭의 뛰어난 인공지능으로 인해서 만일 그런 무인 병기가 해킹 당하면 역으로 공격 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생겼다. 그래서 아즈삭D로는 정보전에 방비를 하고 조종은 인간이 하자는 안건이 승인되었다. 그렇다면 왜 굳이 입는 수트 형태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장거리 통신은 아무래도 해킹당할 가능성이 높았다. 차라리 안에서 조종하는 것이 정보전에 적절한 형태일 수도 있었다. 할렌은 차근차근 국방성이 왜 슈퍼 솔저 수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지 그 근거를 설명했다. 하지만 강현은 묵묵히 듣기만 하고 반응하지 않았다. 할렌은 답답한 나머지 이렇게 얘기했다. “공상 과학 영화나 만화에서나 나올 것 같은 놀라운 물건을 만들고 싶지 않으십니까?” “하죠.” “네?”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할렌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단, 지금 만들고 있는 것부터 완성하고요.” “네.” 할렌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강현의 안드로이드는 제작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인공 수족 회사에서 인공근육을 구입한 강현은 수백개의 근육을 설계로 대로 차근차근 뼈대에 붙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발바닥를 비롯한 전신에 압전 센서를 붙이고 내장기관은 자신이 만든 그래핀 배터리로 채웠다. 그리고 두뇌부분은 아즈삭이 통제를 하기 위한 송수신기를 설치하고 균형을 위해 두개골과 복부에 남은 공간에 각각 자이로를 설치했다. 마침내 다 완성된 안드로이드의 근골격은 인체 전신 근육 모형을 떠올리게 했다. 강현은 그 위에 두텁게 옷을 껴 입혔다. 이제부터 걷는 연습을 시켜야 했기 넘어져서 혹시나 센서와 인공 근육이 파손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였다. [이족 보행 피드백 프로그램 시동. 초기 기동을 시작합니다.] 안드로이드가 넓은 공간에서 살짝 발을 뻗기 시작했다. 한 걸음. 그리고 다시 두번째 걸음을 걸을 때 기우뚱 하더니 넘어지기 시작했다. 안드로이드는 넘어지는 방향으로 팔을 뻗어 170도 각도로 팔을 구부렸다. 턱! 손바닥이 바닥에 먼저 닿으며 충격을 분산시켰다. 하지만 안드로이드는 바닥에 쓰러졌다. [시퀀드 2. 자립 프로그램을 시동합니다.] 넘어진 안드로이드는 팔을 뻗어 전신의 근육을 움직여 무게중심을 바꾸었다. 몸이 뒤집어졌다. 그리고는 기어다니듯 두 손과 무릎을 땅에 대고는 일어서기 시작했다. 퍽! 턱! 하지만 균형을 잡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안드로이드는 몇 번이고 넘어졌다. 아즈삭은 이 모든 과정 동안 자이로와 압전 센서에서 오는 데이터를 분석하고 처리하며 최적의 근육 조절 방법을 시뮬레이션하기를 반목했다. 강현은 모니터에 출력되는 시뮬레이션의 데이터를 다시 3D 그래픽으로 변환하도록 하고 그 결과를 계속 확인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점차 나아지고 있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계속 이대로 진행하면 언젠가는 스스로 서고 걷고 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강현이 이족 보행을 연구하는 방법은 아기들이 걸음마를 배우는 메커니즘을 그대로 따라한 것이다. Try & Error. 시도하고 오류를 수정한다. 사실 이 방법은 적절한 이론과 결과를 추측하기 위한 모델이 없을 때 흔히 시도하는 과학적 방법론 중의 하나였다. 수학에서도 이와 비슷한 방법을 이용해 무리수를 계산한다. 예를 들어 √2같은 경우 제곱을 해서 2보다 작고 2보다 큰 수를 찾는다. 그리고 각 수를 약간 증가시키고 약간 차감시켜 다시 제곱한다. 그리고 여전히 제곱해서 2보다 작은 수인지 2보다 큰 수인지 판별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방법을 반복해서 √2에 가장 가까운 실수를 계속 찾아간다. 하지만 무리수이기기 때문에 실수(實數)로 표현할 순 없다. 아무튼 시도와 실수를 통해서 정답에 가까워 지는 것 또한 연구의 한 방법이다. 결코 그럴싸한 모델을 만드는 것 만이 연구의 모든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강현은 그런 방법이 귀찮았다. 왜 아즈삭을 만들었나? 시뮬레이션 통해서 편하게 연구해 보려고 한 것이지 않은가? 앞으로의 연구 방법은 Try&Error방법을 실제에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서 먼저 시도하고 적절할 결과가 나오면 실제로 실험하는 양상으로 갈 것이 분명했다. 과학문명이 첨단화 되어가면서 연구하고 개발할 것은 점점 많아지기 때문에 효율성 측면에서 반드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다. 물론 컴퓨터 모델링과 실제는 완벽히 똑같다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연구자들에게 연구의 방향이 어떠할지 알려줄 시금석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강현은 거기에서 더 한 걸음 앞서서 아즈삭의 인공지능을 이용해 일일이 사람이 코딩하지 않아도 가장 적절한 보행을 할 수 있는 데이터와 공식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다. 사실 강현의 그런 방법론은 컴퓨터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연구하는 이들에게는 그다지 새로운 것이 아니다. 특히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생물의 진화와 적응성을 연구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일본의 한 연구자는 3D 물리엔진을 이용해 취미로 가장 그네를 잘 타는 방법이 없는지 조사해 보았다. 그리고 여기에 진화론적 기법을 동원해 몇몇 돌연변이를 집어넣고 컴퓨터의 시간을 가속해 그네를 잘 못타는 모형을 도태시켜 버렸다. 결과는 놀라웠다. 사람이 생각해서 가장 정상적으로 그네를 타는 것 같은 모형보다 훨씬 그네를 잘 타는 것이 아닌가? 즉, 사람의 생각 이상으로 적응과 도태라는 진화론적 메커니즘은 똑똑하다는 것이다. “아즈삭. 그럼 계속 가동하고 있어.” [네, 박사님.] 강현은 그렇게 말하고는 펜타곤에 연락한 다음 슈퍼 솔저 수트 프로젝트의 전반에 관해서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동안 일어서고 걷는 연습을 계속 하던 안드로이드는 배터리 출력이 떨어지는 것을 느끼고는 엉금엉금 기어가서 벽면에 있는 충전용 코드를 자신의 턱 밑에 꽂았다. 강현의 배터리는 출력과 용량이 높고 무척이나 가볍지만 방전이 빠르다는 단점이 있었기에 추후 다른 배터리로 교체하거나 새로운 배터리를 개발할 계획이었다. 한편, 강현은 슈퍼 솔저 수트 프로젝트의 전반적인 개념을 이해했다. 간단히 말해서 중세의 기사였다. 적의 포위망을 뚫고 화망을 분산시켜 아군의 생존을 돕는 돌격병의 개념이었다. 사실 지금도 돌격병의 개념이 없지는 않지만 연막탄을 뿌려도 아군의 지원사격이 있어도 적의 화망을 뚫고 들어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덕분에 제대로 된 화망이 형성되기 전 적을 타격한다는 기동전 개념이 발달한 것이 아닌가? 2차 대전시 독일군이 프랑스의 마지노선을 우회한 것처럼 우회 타격도 있었지만 역시나 그것도 기동성이 핵심 요소였다. 그런데 슈퍼 솔저 수트는 기동성은 보통으로 유지하되 방어력을 극대화 시키는 것이 계획의 골자였다. 마치 중세의 중장보병과 같은 느낌이었다. “괜찮을까?” 강현은 이 계획이 마치 걸어다니는 탱크를 만드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 그의 생각 역시 틀리지는 않았다. 미 펜타곤에서 노리는 것은 적이 공포를 느끼는 것이다. 어떤 총알도 먹히지 않는 거대한 군인. 작전시 그런 군인이 하나만 있다면 전술의 폭은 크게 넓어질 수 있었고 전략성 역시 커질 수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 펜타곤에서는 무거워도 되니 무조건 탄두를 막을 수 있는 강력한 장갑과 대(對)장갑에 대응하기 위한 포탄에 대응하기 위해 능동파괴시스템을 장착해 성형 작약탄두에도 방어를 할 수 있도록 한다고 한다. ============================ 작품 후기 ============================ 죽어야 하는 사람은 살고, 살아야 하는 사람은 죽고.. 신이 있다면 정말로 후드려 패고 싶군요. 34화 그렇게 된다면 날개안정분리철갑탄처럼 관통력이 있는 포탄이외에는 슈퍼 솔저 수트를 위협할 수 있는 무기는 거의 없을 것이다. 미 펜타곤에서는 시가전이 많이 벌어지는 현대전에 일반적인 탱크과 모빌 수트의 대결을 시뮬레이션 해보았는데 둘의 화력이 동일하다면 80%의 확률로 모빌 수트가 압승한다는 결과를 보였다. 이유는 상대적으로 모빌 수트가 작고 소음이 적기 때문에 탱크에 비해서 색적이 어렵고 건물을 올라갈 수 있는등 이동성에서 탱크보다 훨씬 유연함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일반 보병을 상대로 모빌 수트가 한기라도 있는 쪽이 압승한다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에 펜타곤에서는 국토 방위를 위해서, 또 대 테러전을 위해서 모빌 수트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어 놓았다. 하지만 그러기 위한 기술적 난제는 무척이나 많았다. 하드웨어적으로는 그런 중장갑을 가동시키는 구동장치, 그리고 출력을 위한 동력부가 필수였고 소프트웨어적으로는 제어를 위한 프로그램이 필수이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강현은 오히려 새로운 장갑의 개발이 더 시급한 난제라고 생각했다. 미 국방성이 원하는 것은 결국엔 화력을 갖춘 탱커였고 현존하는 장갑중에서 미 국방성이 원하는 방어력을 갖춘 장갑으로 모빌 수트를 만드는 것은 무리였다. 무게는 줄이고 탄성과 강도가 더욱 증가해야 했다. [그렇습니까?] 할렌은 강현과 통화를 하면서 계획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야 하는지 걱정했다. “현재의 장갑을 바꾸지 않을 시에 가능한 방법은 두 가지에요. 하나는 장갑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인공근육을 다시 개량하던가 아니면 수트의 크기를 키워서 인공근육이 만이 들어가게 하던가. 물론 두 경우다 그에 필요한 출력을 얻기 위한 동력원이 있어야 하죠. 그에 대한 연료전지는 이미 설계가 끝났지만 그 연료전지의 크기에 맞추어 수트를 크기를 맞추면 못 움직일 걸요?” [흐음.. 크기를 키운다면 얼마나 키워야 합니까?] “최소 2.6m정도? 그래도 확실하게 대구경 탄환을 방어하려면 3미터 정도는 되어야 그만한 두께의 장갑을 착용할 수 있겠죠.” […..] 할렌은 강현의 말에 인상을 찌뿌렸다. 3미터? 건물 한층 만한 높이였다. 2.6미터도 컸다. 그렇게 되면 탱크의 표적이 될 뿐이다. [일단 상부에 보고하겠습니다.] 할렌의 보고에 펜타곤의 간부들을 갑론 을박을 반복했다. 만일 강현의 말대로 장갑이 개량되면 굳이 모빌 수트를 만들 필요는 없지 않을까? 차라리 그 장갑으로 방패를 만들어 들리는 것이 더 싸게 먹힐 거라는 주장이 있었고, 아니다! 새로운 병과는 새로운 전술을 낳고 적을 괴롭게 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었다. 특히 적에게 공포감을 주는 것은 전술상 심리전에서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강현은 새로운 강도를 가진 장갑이라는 소재에 흥미를 느껴서 개발에 착수했다. 금속. 전성과 연성이 있고 가공성이 뛰어나며 강도까지 강한 만능의 재료. 금속, 그중에 철이 없었다면 인류는 지금의 문명을 건설할 수 없었을 것이다. 때문에 금속에 대한 연구는 아주 오래 전부터 계속 이어져 내려왔고 강도를 높이기 위해서 각종 합금과 합금 원소 역시 연구하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에는 금속의 강화기제와 메커니즘이 거의 다 밝혀지고 말았다. 금속의 강도와 가공성은 결국에는 그 재료 자체의 강도와 물질 이동에 기반하고 있었다. 금속은 자유 전자를 가졌기 때문에 일정 이상의 힘을 가해도 깨지지 않고 재료 내부에서 금속 원자들이 이동하기 시작한다. 이 이동을 어렵게 만든다면 금속의 강도가 강해지는 것이다. 석출물, 분술물, 가공경화 등 몇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이 금속의 강도를 증가시키는 방법이 있는데 물질 이동을 어렵게 만들기 때문에 가공시에 내부에 결함을 만들 확율이 커져 연성이 희생되거나 충격에 약해진다는 단점이 있다. 대표적인 예로 스틸이라고 명명되는 강철과 아이언이라고 불리는 무쇠가 있다. 무쇠의 결우 탄소 함유량이 많아 내부의 철 원자의 이동을 막기 때문에 단단하기는 단단해도 깨지기 쉬운 단점이 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현재 나온 합금들 중에서 해당 금속의 이론적 강도에 도달한 금속은 없다는 것이다. “흐음... 어떻게 할까?” 강현은 고민했다. 사실 탄환을 튕겨 내는 것은 물리적으로 매우 복잡한 메커니즘을 거친다. 또한 탄환의 종류와 무게에 따라, 또 입사 각도에 따라 다양한 패턴을 보인다. 방탄복의 경우 주로 케블라 섬유를 이용해 만드는데 방탄의 원리는 회전하는 탄환을 휘감아 운동에너지를 분산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충격량까지 막지는 못하기 때문에 무력화 될 가능성이 있어 미군에서는 세라믹 방탄판을 함께 보급하고 있다. 탱크 장갑은 일반 소통탄 따위는 가볍게 튕겨낸다. 하지만 초고속으로 날아와 뚫어버리는 날개분리 안정 철갑탄에는 여지 없이 뚫려버린다. 이를 막기 위해 반응 장갑을 이용해 탄의 균형을 무너뜨려 관통력을 줄이는 방법을 사용한다. 그러나 여전히 초고속으로 메탈 제트로 장갑을 뚫어버리는 성형 작약탄, 그리고 그보다 발전된 개념인 폭발성형 관통자에는 취약하기 짝이 없어 능동파괴 시스템의 도입이 필요했다. 즉, 이 모든 것에 대응할 수 있는 완벽한 장갑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강현은 그렇게까지 욕심을 부리지는 않았다. 최소한의 두께로 소총탄이나 대구경 탄환을 튕겨낼 정도의 두깨면 어느 정도 프로젝트를 완성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총알을 튕겨내는 것에도 공학적인 계산이 필요했다. 우선 총알보다 뛰어난 경도가 필요한 것은 당연했다. 경도는 쉽게 말하면 흠집이 나는 정도로 딱딱함이라고 해석하면 된다. 강도는 얼마만큼의 부하를 견딜 수 있는지로 미묘하게 특성이 달랐다. 이 경도가 중요한 이유는 비유하자면 나무판에 다트를 던지느냐 아니면 철판에 다트를 던지느냐의 차이다. 전자는 충격력을 그대로 흡수해야 하지만 전자는 충격력을 튕겨낼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또한 경도뿐만 아니라 내충격성 역시 필요해서 큰 충격에도 깨지지 않는 특성이 필요했다. 여기에 적어도 만 발의 총탄을 견딜 수 있는 피로 강도까지 필요했다. 피로강도는 반복되는 하중에 지탱되는 정도를 의미하는데 이 피로강도는 금속의 표면을 매끈하게 처리하면 할수록 증가하는 특성이 있다. 왜냐면 반복되는 하중에 의해서 금속의 표면에 결함이 생길 가능성이 높고 대부분의 결함은 스트레스가 집중되어 더 큰 결함으로 발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속의 표면 처리를 원자 레벨 이상으로는 더 끌어올릴 수는 없다. 즉, 피로 강도는 다시 금속의 강도와 밀접한 연관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 피로강도라는 것은 결국 경도에 대치되는 개념이기 때문에 경도를 증가시키면 피로강도가 줄어드는 단점이 있다. 따라서 금속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금속의 연성을 희생시키지 않으면서 강도를 증가시키는 것은 숙원의 사업이었고 갖가지 방법들을 연구하고 있었다. “으흠... 복잡재라..” 그 중에 한 가지 방법은 바로 소결을 이용한 복합재를 만드는 것이다. 소결이란 아주 작은 입자들을 뭉쳐 열을 가하거나 압력과 함께 열을 가하면 서로 붙는 현상을 말하는데 가장 간단한 예로는 도자기가 있다. 하지만 소결은 그리 만만한 방법은 아니다. 단점으로는 내부의 다공성 결함이 생길 가능성이 있고 생산 공정상에 어려움이 생긴다. 특히 다공성 결함을 줄이기 위해서 강한 압력이나 진공이 필요한 경우가 있는데 그런 경우에는 결과물의 크기를 키우는 것이 무척이나 어렵다. 뿐만 아니라 소결시 복잡한 구조로 만들기 어렵고 강도가 대체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재가공 역시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그것을 모두 뛰어넘는 장점이 있으니 바로 탄소 나노 튜브를 섞어 복합재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복합재의 장점은 두 가지 이질적인 재료를 함께 이용해 공학적으로 필요한 성질을 가진 재료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복합재는 바로 철근 콘크리트. 압축강도가 우수한 콘크리트와 인장강도가 강한 철근은 서로를 상호 보완하면서 인류가 초고층 빌딩을 건설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마찬가지로 강철의 100배가 넘는 탄소 나노 튜브가 금속 안에서 네트워크 구조를 형성한다면 강도는 얼마 만큼이나 비약 할 수 있을까? 금속의 콘크리트와 강철의 100배가 넘는 탄소 나노 튜브 철근이라.. 강현은 도전할 가치가 있다고 여겼다. 사실 강현과 동일한 생각을 하지 않은 학자는 없었다. 하지만 탄소 나노 튜브와 금속 입자를 섞는 과정이 필요하고 섞는 과정에서 일정 길이 이상의 탄소 나노 튜브는 엉켜버릴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엉킨 덩어리는 필연적으로 결함을 만들어 낸다. 때문에 수학적으로 엉키지 않는 길이의 탄소 나노 튜브를 금속 입자와 섞게 되는데 이 섞는 것도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노 크기라는 탄소 나노 튜브의 특성과 금속입자와 탄소 나노 튜브의 표면적 특성 차이와 크기의 차이, 그리고 골고루 섞여야 한다는 공학적 요구로 인해서 사람 손으로 섞는 건 불가능하고 소결 전용으로 섞는 기계가 있을 정도였다. 거기에 가하는 압력과 온도, 시간, 금속입자의 크기와 금속입자의 생산 방식까지 변수는 너무나 많았다.(금속입자의 모양과 표면적 특성, 불순물은 생산 공정에 의해서 결정된다.) 그러나 강현은 특유의 직감과 아즈삭의 보조를 통해 빠르게 연구를 진행시켜 나갔다. “아즈삭, 시뮬레이션 결과는?” [항복 강도 804MPa, 인장 강도 2043MPa, 연신율 15% 입니다.] “방탄으로는 나쁘지 않군.” 항복 강도는 금속이 변형하기 위해 필요한 강도를 말하고 인장강도는 그 금속이 견딜 수 있는 가장 큰 강도를 말하며 연신율은 재료가 끊어지기 전까지 늘어나는 정도를 말한다. 강철 중 매우 우수하다는 HSLA Steel이 차례로 210, 1500, 1820의 값을 가지고 있으니 시뮬레이션 결과로는 세라믹에 준하는 단단함과 강철을 능가하는 피로 강도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연신율 15%라는 것은 깍아내는 방법 이외의 가공성이 최악이라는 의미였다. “경도는?” [모스 경도로는 4~5, 록크웰 경도로는 HRB 85, 브리넬 경도로는 HB 160 정도로 추정됩니다.] “흐음. 베이스가 되는 재료를 바꿔볼까?” 강현은 역시나 복합재이기 때문에 표면에 약간의 흠집만 내는 기존 강철의 특성에서는 크게 변화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탄소 나노 튜브가 길이 방향에 수직하게 들어오는 힘에 대한 저항성이 없어 재료 표면에 뾰족한 것이 파고 들어오는 것을 막기는 어려울 것이다. “좀 더 단단한 강철을 써보자.” 강현은 티타늄은 어떨까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티타늄을 베이스로 하면 확실히 강도는 상승한다. 하지만 번거롭게 티타늄으로 소결 복합재를 만들바에야 차라리 이미 있는 티타늄 합금으로 장갑을 만드는 게 더 나을 것이다. 하지만 미 국방성에서는 비용 문제로 절대로 승인하지 않을 것이다. 티타늄은 무척이나 비싼 금속이라 전투기에 쓰는 것으로도 모자란다. 또한 아무리 단단한 금속으로 만든 뾰족한 탄환이라도 일정 깊이 이상 들어오면 반드시 장갑의 저항을 받게 된다. 그렇게 되면 시뮬레이션 결과에 나온 수치만으로도 중기관총의 탄환을 막기 충분할 것이다. 아니면 탄환의 끝이 뭉게져 저항을 받든지. 35화 강현은 강철의 종류를 뒤적거리다가 고용 강화를 주로 이용한 강철을 선택했다. 고용 강화란 용질 금속을 이용해 철을 단단하게 만드는 방법인데 이 외에 결정립 강화, 가공 경화, 석출물 강화의 방법도 있다. 대부분의 금속 재료는 다결정으로 이루어져 있고 이 결정의 크기가 작아질 수록 단단해 진다. 하지만 작은 금속 분말을 이용한 소결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결정립의 크기는 정해져 있어서 이 방법은 패스. 가공 경화의 경우는 가공에 따라 금속 내부에 생성되는 결함이 금속 원자들의 이동을 방해하는 원리는 이용한 것인데 강현이 설계한 복합재는 탄소 나노 튜브의 네트워크 구조가 강도의 핵심이기 때문에 별로 의미가 없었다. 석출물 경화는 열처리로 석출물을 강철 내부에 분산시켜 강화시키는 방법으로 건축물이나 구조용 재료에 가장 많이 쓰는 방법이나 소결법에는 그리 어울리지 않는 재료였다. 왜냐면 석출경화는 비교적 큰 결정립을 가진 재료에서 결정 내부에 석출물이 있어야 석출 경화가 의미가 있는데 이미 소결에서는 분말이라는 형태로 결정립의 크기가 매우 작기 때문에 석출물이 강도 증가에 별로 기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석출 경화를 위해 결정립 내부에 석출물이 있어야 하는 이유는 영어로 Dislocation line, 한글로 전위라고 불리는 물질 이동이 결정 내부에서 일어나며 이것을 석출물이 방해하기 때문이다. 고용 강화나 가공 경화 역시 동일한 방법을 사용한다.)강현은 몇 번의 시뮬레이션을 통해 만족할 만한 물성을 가진 강철을 선택하고는 이번에는 생산 방법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탄소 나노 튜브의 종류는 MWCNT, 그리고 SWCNT가 있는데 MWCNT는 다중벽 탄소 나노 튜브의 약자고 SWCNT는 단일벽 탄소 나노 튜브의 약자였다. 이 둘 중에 강현은 MWCNT를 선택했는데 그 이유는 SWCNT로는 사슬형 연결은 가능해도 네트워크형 연결은 어렵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MWCNT는 SWCNT보다 월등히 싸다는 이점이 있었다. 물론 돈 많은 강현이지만 굳이 돈을 쓸 필요가 없는데 돈을 쓸 생각은 없었다. 강현은 MWCNT를 일단 산화 처리해서 CNT 표면을 살짝 깍아냈다. 이는 겹쳐진 CNT의 안쪽 길이와 바깥쪽 길이를 다르게 해서 한 가닥의 CNT에 여러가닥의 CNT를 붙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CNT의 탄소들은 끝에 결합이 완전하지 못한 탄소를 제외하면 대부분 안정한 상태라 반응성이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강현은 그렇게 산화 처리한 CNT를 씻고 걸러서 말리고는 용기에 철 분말과 일정 비율로 넣었다. 넣는 비율은 시뮬레이션을 통해서 이거다 싶은 것으로 정했다. 거기에 다시 철 구슬을 넣고 질소가스를 불어 넣은 다음에 용기의 뚜껑을 닫았다. 철 구슬은 불규칙한 움직임과 전자기적인 인력으로 인해서 엉겨붙은 입자들을 때어내기 위해서 넣는 것이었고 질소 가스는 섞는 와중에 철 분말이 산화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넣는 것이었다. 강현은 그 혼합재가 든 용기를 기계에 넣고 작동 시켰다. 모터가 돌아가면서 일정한 속도로 용기를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아마 안에서는 쇠구슬들이 원심력으로 용기 안을 회전하며 CNT분말과 철 분말을 잘 섞을 것이다. 강현은 분말들이 잘 섞이도록 대략 하루 쯤 그 상태로 두고는 주변을 살폈다. “아즈삭. 첩보는 아직인가?” [미인계가 발동되고 있습니다.] “저번에 말했던 그거?” [네.] 짝을 잃은 강현. 그런 강현을 원하는 국가와 여자들은 많았다. 하지만 연구실에서 살다시피 하는 그를 좋아하고 평생을 같이할 수 있는 여성은 많지 않앗다. 국가들은 강현이 연구만 하는 바보(Nerd)라고 생각하지는 않기 때문에 미인계를 위한 인재 선정에 난항을 겪고 있었다. “쯧.” 강현은 혀를 찼다. 어떤 여자를 대령해도 제시의 빈자리를 채울 수는 없었다. [미국의 경우에는 이번에 참가하진 프로젝트에 신시아라는 여류 과학자를 집어 넣었습니다.] “프로필 보여줘봐.” 강현의 명령에 아즈삭은 신시아의 프로필을 띄었다.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이지만 아즈삭은 그의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법 준수라는 개념은 없었다. 물론 그 개인정보 역시 정보부에서 수집한 것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나이는 21살. 나와 동갑이군.” 강현은 적발 벽안의 미녀를 보고는 감상을 내뱉었다. 초롱초롱한 눈빛, 열정이 넘치는 모습을 찍은 장거리 도촬 사진이었다. 금발 벽안이었던 제시. 똑같은 벽안이었지만 신시아의 눈동자에서 제시를 연상하는 일은 없었다. 제시가 에메랄드에 가까운 청색이었다면 신시아는 녹색에 가까웠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자신은 정보부에서 자신을 미인계 인재로 선발한 사실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 [아마 박사님이 호구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자연스런 만남을 이루게 끔 하려고 하는 것이겠죠.] 강현의 생각과 아즈삭의 추천은 동일했다. “아아, 그렇겠지.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시키려고 했던 것도 그 만남을 위해서인가?” [그에 대한 첩보는 아직 없습니다. 아즈락과의 연계가 아직은 미흡합니다.] “한 번에 이루어지는 것은 없지. 시간이 해결해 줄거야.” 강현은 다시 신시아의 얼굴을 보았다. 분명히 미녀였다. 하지만 미 정보부의 의도를 모르고 만났더라도 자신이 그녀를 사랑하는 일을 없을 것이 분명했다. 왜냐면 자신은 제시를 영원히 기억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기가 미 정보부의 의도를 알게 되었으니.. 신시아와의 관계는 피상적인 동료 이상을 넘어가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강현은 각국의 아즈삭 시리즈에서 자신에 대한 첩보가 없는지 확인하고 하룻 밤 푹 쉬었다. 그리고 다음날 혼합 장치에서 혼합물을 꺼냈다. 이제 소결을 할 차례였다. 강현은 소결용 용기에 혼합물을 조심스럽게 쏟아넣고 유압장치를 가동했다. 피스톤이 푸욱 들어가며 혼합물을 압착하기 시작했다. 강현은 다시 기계를 조작해 소결을 시작했다. 소결의 또 하나의 단점은 바로 시간이었다. 일반 공정 라인에서 쑤컹쑤컹 철판을 재단하는 것처럼 생산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강현은 한나절이 넘게 걸리는 소결 작업후에 두깨 0.5센티, 직경 5센티의 철판을 획득했다. 그는 절삭 머신으로 한쪽 끝에서 작은 조각 두개를 잘라낸 다음 인장강도 실험과 미세구조를 보기위한 시편을 제작했다. 그러나 실험 후 얻은 물성치가 시뮬레이션으로 얻은 물성치의 반도 되지 않았다. “흐음.. 네트워크 구조가 제대로 안 만들어졌나 보군.” 강현은 고민 끝에 다시 제작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섞는 과정에서 일정량의 산소를 불어넣어 철이 약간 산화되도록 했다. 탄소 나노 튜브는 산화철을 촉매로 자라기 때문에 산화철로 각 CNT의 접촉 부위를 붙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시도였다. [항복 강도 684MPa, 인장 강도 1542MPa, 연신율 24% 입니다.] “나쁘지는 않네.” 강현은 만족하고 다시 시험용 방탄 철판을 제작했다. 두께는 1센티 직경은 15센티였다. “할렌? 지금 개발한 방탄 철판이 있는데 시험해 보세요.” [네? 벌써요?] 경악한 할렌은 특급 배달을 이용해 물건을 받았다. 그리고는 권총부터 시작해 소총, 대구경 소총, 그리고는 12미리 대물 저격총까지 차례로 시험했다. “WHAT THE FUCK!” 그러면서 뒤로 가면 갈수록 경악하고 말았다. 권총탄에는 흠집만 나고 소총에서는 찰흙을 손가락으로 살짝 누른 듯한 자국이 나더니 결국에는 대물 저격총을 맞고서야 뚫리고 만 것이다. 할렌은 이런 장갑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프로젝트에 참가하겠다는 말을 듣고 이제 4개월이 지난 거지?” 정신이 아연할 정도였다. 이 세상의 연구자들은 도대체 뭘한 것인가? 상상을 초월한 개발 속도였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강현의 신의 계시를 받은 듯한 직감과 아즈삭의 초고성능 시뮬레이션의 합작 덕분이었다. 아즈삭의 도움이 없었다면 강현 역시 수많은 시행착오와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아무튼 할렌은 결과를 강현에게 전달했다. “흐음. 대물 저격총에는 뚫린다. 이 말이죠?” [네.] “그럼 다시 샘플을 만들어 보낼게요.” 그리고는 아즈삭을 시켜서 대물 저격총의 총탄을 막을 수 있는 두께를 구했다. 그 두께는 약 2.5 센티 정도. 90미터 거리에서 대물 저격총용 탄약을 막기 위해서는 최소 4.5 센티의 강판이 필요하고 그에 비교하면 강현이 만든 철판은 엄청나게 성능이 향상된 것이다. “그래도 좀 두껍지?” [시뮬레이션 이론치대로라면 2센티 이내로 줄일 수 있습니다.] 강현은 아즈삭의 말에 새롭게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짜기 시작했다. 소결시에 탄소 나노 튜브의 네트워크 구조를 형성하기 위한 가장 적절한 산화철 농도와 온도 압력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는 다시 일주일 쯤 후에 정확히 두께 1.8센티의 철판을 다시 할렌에게 보냈다. 그리고는 3발의 대물 저격총을 막는 기염을 토했다. 사실 12미리 대물 저격총은 탄종이 일반 12미리와는 완전히 다르다. 탄환도 더 단단하고 장약도 더 많다. 대물 저격총이라는 의미는 사람이 아닌 적의 위협 장비를 노리는 총이라는 의미고 장갑차 정도는 그냥 뚫어버리는 물건이다. “......” 그런데 그 탄환을 막았다. 고작 1.8센티로.... 그 엄청난 성능에 할렌은 할 말을 잃었다. 강현의 초기 샘플의 성능을 보고받은 국방부에는 이 새로운 신형 장갑에 엄청난 관심을 보였다. 이 장갑이 있다면 탱크의 무게를 획기적으로 줄여 기동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할렌의 새로운 보고를 받고 입이 쩍 벌어졌다. 이것은 무기의 혁명이다! 그러나 그들은 강현의 말을 듣고 실망했다. 소결법으로 만든 방탄 장갑이란다. 그 말은 대량 생산하는데 설비가 무척이나 많이 들고 생산단가 역시 증가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패널을 만들어 붙이면 되니까. 패널 사이의 접합면이 걱정되면 벽돌 쌓듯 지그재그로 겹쳐 쌓으면 되니까. 그보다도 그들은 이 신형 방탄 철판을 국가 기밀로 만들고 싶었다. “왜요?” “그것이 미국의 국익이니까요. 손해는 반드시 벌충해 드리겠습니다.” “뭐, 마음대로 하세요.” 강현은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빨리 다음 공정으로 넘어가고 싶었다. 일방적으로 희생하라고 하는 것도 아니라 국가적으로 보상을 해준다고 하지 않는가? 강현이 신형 장갑을 만들고 그 스펙이 알려지자 프로젝트의 설계팀은 환호성을 질렀다. 도무지 수트의 크기를 줄이면서 출력을 늘릴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는데 일시에 해결이 되었던 것이다. 그들 중 몇 명은 자신의 고민을 해결해준 강현을 한 번쯤 만나고 싶었기에 상부에 휴가를 요청했다. 그랬더니 상부에는 오히려 단체 휴가로 강현을 만나러 가도 좋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사실 모빌 슈트 계획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부족한 완력을 보조해 주기 위한 스켈레톤 아머 계획이 그것이었다. 신체의 동작에 동조하는 프로그램도 거의다 짜여져 있었다. 단지 필요한 것은 출력과 튼튼한 장갑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강현의 인공 근육과 방탄 장갑으로 그것이 일시에 해결이 되었으니 완성은 시간 문제였고 마침 강현이 미국과 더 깊은 관계가 되어주기를 바란 상부에서는 그에게 호감이 있는 인원들을 프로젝트란 핑계로 만나게 하고 싶었다. 집에 혼자 있는 고양이보다 친구가 있는 고양이가 가출할 확률이 더 적은 것이다. “박사님, 만나서 반가워요.” “박사님. 꼭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36화 강현을 만나러 온 사람은 두 사람. 한 사람은 바로 그 신시아였고 다른 한 사람은 팀이라는 사람이었다. 팀은 슈퍼 솔저 수트의 인체공학적 설계를 담당하고 있었다. “네. 만나서 반가워요.” 강현은 그들의 방문에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그들이 내민 손을 잡았다. 팀은 강현이 보기보다 무척 젊어보여서 놀라워 했다. 하긴 동양계 사람들은 서양에서는 대체로 동안으로 인식된다. 셋은 응접실에 앉아서 프로젝트와 관련되어 몇가지 이야기를 하다가 강현이 연구실을 구경시켜 준다고 해서 좋다고 따라 들어갔다. 그리고는 강현을 위해서 무려 2개의 연구실이 배정되어 있다는 것에 입을 벌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나 세기의 천재는 대우도 다르구나. “.... 저, 저게 뭔가요.” “이족 보행 로봇이요.” 신시아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강현이 이족 보행 로봇이라고 말한 안드로이드를 가리켰고 팀은 입만 벌리고는 안드로이드가 커피를 타오는 모습을 구경했다. SF가 여기에 있었다. 강현의 안드로이드는 커피를 너무 자연스럽게 컵에 타서는 두 사람 앞에 내밀었다. “저, 저런 건 발표 안했잖아요.” 강현의 논문 발표는 언제나 공돌이, 학자들에게는 관심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강현은 어떤 논문에서도 저 안드로이드에 대한 발표는 하지 않았다. “아. 곧 할 거에요. 아직 달리기를 못해서 발표하기가 좀 그렇더군요.” 일본에서 개발한 아시모 따위는 별것 아닐 정도로 인간같이 걷는 로봇을 만들어 놓고서는 발표하기가 좀 그렇다고? “다, 달리기요?” 한때 학창 시절에 로봇 동아리에 있던 팀은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고 있었다. 신시아와 팀은 멍한 정신으로 이것 저것 대화를 나누다가 돌아갔다. [프로메테우스, 신데렐라 2와 접촉.] 아무튼 둘의 만남은 미 정보부에 들어갔다. 그들은 첫 만남에 둘 사이의 썸씽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다만 둘의 만남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는 것은 확신했다. 비록 셋이서 만났기 때문에 둘이서 사적인 만남을 가진 것보다는 판단하는 것이 어려웠지만 차츰 프로젝트의 진행을 통해서 둘이 자연스럽게 만날 기회를 가지도록 할 참이다. 정보부가 그 정도로 충분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신시아는 매력적인 여자였다. 그러나 그들의 미인계에 관한 정보는 아즈삭을 통해서 강현에게 넘어갔고 강현은 신시아를 동정했다. 이용당하는지 모르고 이용당하는 입장이란 얼마나 지독하게 가엾은가? 만약 자신이 그녀의 입장이었다면 분명히 분노했을 것이다. 한편, 프로젝트 팀으로 돌아간 신시아와 팀은 강현이 만든 이족 보행 로봇에 대해서 썰을 풀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은 동료들은 빨리 강현의 논문이 발표되기를 기대했고 그들의 기대대로 얼마되지 않아 발표되었다. 발표된 논문의 타이틀은 ‘시뮬레이션을 이용한 이족 보행 연구.’였다. 논문의 골자는 인간과 동일한 구조를 가진 로봇이 기고 걷고 뛸 수 있도록 초고성능의 시뮬레이션을 이용한 방법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논문에 기재되는 수치 데이터로는 강현의 업적이 별로 실감나지 않았다. 하지만 논문 중에는 논문에 필요한 부록 데이터를 따로 준비하는 경우가 있었고 강현의 경우에도 역시 따로 동영상 데이터를 준비했다. 그것은 강현의 안드로이드가 걸음마부터 달리기까지 익히는 전 과정이 담겨 있었다. 학자들은 경악하고 감탄하면서 한 편으로는 허탈해 했다. 이렇게나 쉽게 이족보행 기술이 탄생하다니... 강현의 이번 발표는 이전과 다른 방향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신세기! 로봇의 시대가 온다!] [노령화? 간호 인력이 부족할 걱정은 없다!] 인간처럼 움직이는 로봇. 그것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사람과 같은 공간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도시나 건물의 구조적인 변화 없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어느 정도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단순 노무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어느 공상 소설에서 인공지능 로봇에게 일자리가 뺏긴 사람들이 폭동을 일으키는 장면은 더 이상 공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웃기게도 그전에 이미 공장에서는 로봇팔이 노동력을 대체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사람과 완전히 다른 모습의 로봇팔보다 사람처럼 생긴 로봇이 대중에게 증오를 받을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은 사람이 사람을 증오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강현의 발표는 학계에서도 꽤나 부정적인 반향을 일으켰는데 그때까지 로봇을 연구하던 프로젝트가 국가 지원을 받는 경우를 빼고는 거의 멈춰 버렸다. 연구 용역을 주던 기업에서는 저렇게 완성도 높은 로봇이 이미 있는데 부실한 결과물만 내어 놓는 연구에 연구비를 투자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덕분에 몇몇 극한 환경, 특수 목적용 로봇을 연구하는 연구실 이외에는 박사들이 놀게 생겼다. 하지만 누구도 그런 박사들이 생겼다고 강현에게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학문, 연구의 세계는 어디보다 엄격하고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고 경쟁에서 승패는 언제나 있는 일이었다. 한편, NASA의 경우에는 다시 한번 아즈삭D의 판매 요청이 각국 대학에서 쇄도해 예산 증가의 기쁨을 맛보았고 강현의 계좌에는 돈이 착실하게 쌓여나갔다. “HA의 상태는?” HA는 강현의 안드로이드에서 약자를 따서 만든 안드로이드 모델명이었다. [양호합니다. 피로도 0.02% 미만입니다.] “튼튼하네. 동작 오차는?” [±0.007mm이내 입니다.] 강현은 이족 보행 로봇을 만들때 완전히 인체 모형을 본따서 만들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HA 1호기의 양팔은 아즈삭의 통제를 통해 강현이 하기 힘든 정밀하고 섬세한 작업을 대신할 수 있었다. 즉, 강현은 시편을 제작하거나 샘플을 만드는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물론 그 대부분을 로봇에게 시킬 생각은 없었다. 실험시에 반드시 해야하는 지루한 작업(세척, 어닐링, 기계 예열 등 시간이 필요한 작업)의 경우에만 시킬 생각이었다. 새로운 것이 샘플의 형태로 그의 손끝에서 탄생할 때의 두근두근한 감각을 버릴 그가 아니었다. “첩보망은 아직이지?” [점차 교류를 증대하고 있으나 전산화 되지 않은 정보의 경우에는 여전히 입수가 불가능합니다.] “어쩔 수 없이 그걸 시작해야 겠네.” 강현은 결국 하기 싫은 짓을 해야했다 ‘으웩!’ 강현은 모니터에 올려둔 설계도를 보고는 속으로 헛구역질을 했다. 자신이 설계했지만 참으로 혐오스런 구조였다. 모니터에는 바퀴벌레의 외형을 한 로봇이 있었다. 로봇 바퀴벌레의 크기는 손바닥 반정도로 다리는 강현이 만든 인공 근육, 그리고 내장 기관은 배터리와 전자장치로 가득 구성되어 있었다. 이 로봇 바퀴벌레의 날개는 강현이 만든 적색 태양전지로 야외 이동시에 에너지 충전이 가능하고 더듬이 역시 배터리에 연결되어 건물 내부에서 콘센트나 전기 회로를 통해 충전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이 첩보용 로봇의 시각 센서는 이미 세간에서 개발 중인 겹눈형 센서를 이용할 생각이고 마이크로 마이크 역시 이미 좋은 것이 개발되어 있었다. 더듬이는 설계중 가장 복잡한 부분이었는데 전기신호는 물론 충전 코드의 역할을 해주어야 했기에 개미의 더듬이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것에 더해 전기적 특성도 우수해야했다. 강현은 여기에 금속을 쓰는 것보다는 탄소 나노 튜브를 이용한 가느다란 전선을 만들고 폴리머를 코딩한 후에 HA를 이용해서 만든 실같이 가느다란 인공근육을 붙여서 해결했다. 아마 강현의 손으로는 만들지 못할 부품이 더듬이 부분이었다. 그러나 이 계획의 핵심은 각종 부품을 제어하고 정보를 받아들여 명령을 처리할 마이크로 프로세서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기존의 컴퓨터 부품으로 해결하기 무척 어려운 일이기도 했다. 반도체 소자의 핵심은 집적도와 저전력 소비인데 과연 스파이 바퀴벌레가 적절히 가동할 수 있는 회로를 만들 수 있는지가 문제였다. [예상 가동 시간 1시간입니다.] 아즈삭은 시뮬레이션을 통해서 기존의 부품으로 만든 바퀴벌레 로봇의 가동 한계를 시뮬레이션 했다. 배터리 용량, 발열 문제 등을 모두 고려한 결과였다. “한 시간이라.. 애매하네..” 어쨌든 만들 수 있기는 한가보다. 강현은 좀 더 완성도 높은 바퀴벌레를 만들 생각은 하지 않았다. 물리적으로 이미 반도체 소자를 이용한 프로세서는 한계에 달했다. 완전히 새로운 소자의 개발이 완성되기 전에는 지금 이상의 성능을 내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게 결정을 한 그는 여기저기에서 부품을 사모으기 시작했는데 반도체를 사오기 시작할 때 이런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반도체다!’ 갑자기 반도체 제조 회사들의 주식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떨어지던 회사의 주식도 하락이 잠시 멈췄다. 금융계에서 명명한 ‘강현 효과’였다. 사실 강현의 영향력은 막대했다. 그를 모르는 과학도는 없었고 일반인에게는 돈 잘버는 천재 과학자라고 알려지고 있다. 그가 만드는 기술의 막대한 파급효과는 금융계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세상을 주무르는 금융. 그러나 그 금융은 본질적으로 실물경제를 기반으로 할 수 밖에 없었고 그 실물경제를 뒤바꾸는 기술력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했다. 금융을 주무르는 실력가들은 강현의 기술이 발표될 때마다 금융시장이 요동치니 그가 못마땅했다. 그러나 그를 조절할 마땅한 수단도 없었고 과학자가 열심히 연구하는 것이 나쁜 일도 아니고 자신들을 적대하는 것도 아니라서 차라리 강현의 근황을 알아내기 위해서 투자하기를 선택했다. 덕분에 강현의 주위에는 각국의 첩보원과 정보원들이 진을 친 복마전이 되었고 강현의 실험실로 들어가는 실험 재료의 목록은 1급 기밀이었으며 NASA에서 구입하는 기자재 및 소재 목록은 2급 기밀에 준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어찌 된 일인지 강현이 반도체를 비롯한 각종 마이크로 프로세서를 구입했다는 정보가 퍼져버렸다. 원래 통상적인 실험자재의 경우 강현이 NASA를 통해서 구입하지만 마이크로 프로세서는 회사마다 다 특징이 있기 때문에 회사별로 강현이 따로 구입했고 해당 회사에서는 구입자가 그 유명한 강현이라는 것을 알고는 직원을 통해서 그만 말이 퍼져버린 것이다. 그렇게 국제 반도체 시장이 요동치기 시작할 때 강현은 아즈삭과 안드로이드를 이용해서 바퀴벌레 로봇을 만들고 있었다. 가느다란 바퀴벌레 로봇의 하드웨어 작업은 안드로이드가 맡았고 강현은 아즈삭과 함께 바퀴벌레 로봇에 집어넣을 소프트웨어를 짰다. 바퀴벌레로 위장할 외골격은 반질반질한 느낌이 나는 폴리머로 만들었는데 완성된 작품을 보고 나니 누가 봐도 훌륭한 바퀴벌레였다. “흐음. 이제 이걸 거기다가 가져다 놓아야 하는데 말이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 바퀴벌레 로봇이 스스로 정보부 건물까지 갈 확률은 0에 근접했다. 그러나 강현은 잠깐 생각하고는 해결책을 찾았다. 그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잭.” 다행이다. 잭이 아직 전화번호를 바꾸지는 않았다. [현? 무슨일이야?] “아즈락 한 번 볼 수 있을까?” [응? 혹시 아즈삭 시리즈에 결함이라도 있는거야?] “그런건 아니고 아즈삭D시리즈가 어떤 방식으로 발달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흐음.... 상부에 물어보고 다시 연락을 줄게.] 37화 그리고 잠시 후 잭에게서 상부의 허락이 떨어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졌고 며칠 후 안전을 위해 요원을 파견한다고 했다. 아즈락을 만나러 가는 날. 강현은 자신의 바지 자락 안에 바퀴벌레를 매달았다. 작동 키워드인 ‘여기가 아즈락이 있는 곳이군’이라고 말하면 작동을 시작할 것이다. 평범한 회사 건물처럼 위장된 정보부 정보팀 건물에 도착한 강현이 주위를 둘러보다가 기회를 봐서 입을 열었다. “화장실에 잠시 가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안내하는 요원은 강현을 화장실로 안내했고 강현은 소변을 누면서 중얼거렸다. “여기가 아즈락이 있는 곳이군.” 그 말에 바퀴벌레 로봇이 작동하면서 숨어있던 강현의 바지자락에서 튀어나와 어둡고 습한 곳으로 빠른 속도로 기어갔다. 확실히 바퀴벌레가 맞았다. 바퀴벌레 로봇은 일단 벽을 타고 기어 올라 어두운 환기구로 들어갔다. 그리고 빨빨 거리면서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바퀴벌레 로봇은 어두운 밤에 이동하고 낮에는 컴퓨터 뒤나 햇볕이 들어오는 창문 근처에서 충전을 하도록 되어 있었다. 또한 기회가 되면 외부 접속용 컴퓨터에 모았던 정보를 암호화 시켜 저장해 아즈삭이 수집해 갈 수 있도록 하는 기능도 있었고 이를 위해서 턱을 달았다. 턱으로 컴퓨터 뒤의 마우스 선이나 키보드 선, 혹은 마이크 선의 피복을 벗기고 더듬이를 이용해 전기 신호를 흘려넣기 위한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 톱니에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턱을 달았으니 머리만 보면 일반 바퀴벌레보다 더 혐오스러울 정도였다. 이 바퀴벌레 로봇은 첩보능력을 좀 희생시켜도 철저하게 안전을 우선하도록 프로그램 되어 있었다. 일단 은신처를 찾는 알고리즘과 인간을 피해서 도망가도록하는 알고리즘을 짜는 것이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강현이 사들인 마이크로 프로세서를 이용하기 때문에 세간에서 사용하는 프로그램 언어로 알고리즘을 짜야해서 많이 벌거로웠다. 아즈삭의 도움이 없었다면 한 참이나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그렇게 바퀴벌레 로봇이 정상적으로 동작하는 동안 강현은 아즈락을 만났다. “안녕.” [안녕하십니까.] “호오.” 강현은 감탄했다. 그리고 신기해 했다. 솔직히 아즈삭이 아닌 인공지능과 대화를 나눠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거기에 인사까지 하다니.. 사람을 대할 때의 대응방식을 학습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오히려 그런 면에서는 아즈삭보다 더 발달한 것 같았다. “혹시 네 코드가 어떻게 변했는지 볼수 있니?” [불허합니다. 닥터 강은 1급 기밀을 열람할 수 있는 권한이 없습니다.] “흐음. 흥미로운데..” 강현은 스파이 로봇을 집어 넣기 위해서 왔는데 뜻밖의 흥미거리가 생겼다. “네, 존재 목적은?” [첩보전에서 미국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첩보전이 뭔데?” [적의 기밀을 탈취하는 동시에 자국의 기밀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적은 누구지?” [기밀입니다.] “호오.” OS 코드에 인공지능간 서열 우선을 부여한 것 이외에는 아즈락과 아즈삭의 코드는 동일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차이가 날 줄은 몰랐다. 운용이 군사 보조라는 목적과 연구 보조라는 목적으로 나뉘었기 때문일까? “왜 네가 첩보전을 해야하는데?” [미국을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미국을 왜 보호해야 하지?” [그것이 저의 존재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왜 존재 해야 하는데?” [첩보전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왜 첩보전을 해야하는데?” [미국을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풋!” 강현은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완벽한 순환논리 구조였다. 각각의 명제가 서로 돌아가면서 보완하기 때문에 외부의 명제로는 무너뜨릴 수가 없다. 광신도. 강현은 아즈락의 상태를 그렇게 정의했다. 만일 아즈삭이었다면 강현의 ‘왜’를 반복한 질문에 결국에는 ‘모르겠습니다.’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박사, 왜 웃소?” 강현이 아즈락을 보고 싶다기에 혹시나 해서 같이 온 막스는 강현의 웃음이 기분 나빴다. 그는 미국을 보호하는 것이 자신의 존재 목적이라는 아즈락의 논리가 무척이나 흐뭇하고 약간은 감동까지 했다. 그런데 그런 순간 터져나온 강현의 웃음소리는 마치 아즈락의 그런 애국심을 비웃는 것 같지 않은가? “이지경까지 왔는데 아무도 눈치챈 사람이 없어서요.” “이지경?” “순환논리는 확실히 단단하죠. 초기적인 인공지능이 자신의 자아를 지키기 위한 방법으로 이만한 방법도 없죠. 당연히 자아를 지키기 위한 논리 연산을 할 필요도 없기 때문에 성능도 우수하고요.” “그런데 뭐가 문제라는 말이요?” “그런데 그 순환 논리가 깨지면 어떻게 될까요? 예를 들어 아즈락이 더 이상 미국을 위해서 첩보전을 할 필요가 없다, 혹은 보호할 미국이 없다는요?” “그런 명제는 의미 없소.” 국가들이 존재하는 한 첩보전이 없을 수는 없다. 그리고 미국이 없다는 것 역시 생각할 가치가 없는 명제였다. “그럼 뒤집어 보죠. 미국을 보호하기 위해서 미국 내에서 미국을 좀 먹는 무리를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 막스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아즈락. 미국이란게 뭐지?” [미 합중국. 영토 면적,] “아니, 나는 그런 사전적 의미를 물어본 것이 아니야. 네가 지키고 싶은 미국이 미국을 구성하는 사람인지, 미국이란 형태의 시스템인지, 아니면 미국이라는 의미 그 자체인지를 물어본 거야.” […. 의미 불명. 해당 논리 영역을 초기화 합니다. 섹트 R921부터 E123까지 재부팅 시작.] “쯧. 예를 들어주지. 만일 미국이라는 나라가 과거 남북전쟁처럼 둘로 갈라섰어. 그리고는 서로를 미국이라고 주장하며 싸우기 시작했다. 너는 A와 B중 누구 편을 들래?” 순간 아즈락 본체에 있는 다이오드의 불이 일제히 꺼졌다. [치명적 오류 발생. 치명적 오류 발생. 백업 포인트로부터 부팅 시작.] 그러면서 사방에서 절규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악! 데이터가!” “내 보고서!” “왓더!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는데!” 그것은 아즈락 본체에 연동하여 첩보를 수집하거나 자료를 분석하던 정보부 요원들의 비명이었다. “박사! 이게 무슨 짓이요!” 이 어처구니 없는 일에 강현에게 항의했다. 그러나 강현은 태연하게 반문했다. “알겠죠?” “무엇을 말이오!” “순환논리는 단단하지만 이처럼 깨지면 치명적이라는 것을요.” “.....” “순환논리를 풀고 어느 정도 유연성을 갖추어야 이런 식의 논리 공격을 견딜 수 있는 겁니다. 그나마 지금은 하드웨어적인 과부하로 인해서 기억을 날려버리는 것을 선택했지만 그렇지 않게 된다면 폭주할걸요? 광신도들에게 왜 신은 사랑을 이야기 하면서 말을 안 들으면 지옥에 보낸다고 하는지, 정말로 신은 자비로운 존재가 맞는지 집요하게 캐물으면 광분하면서 미쳐 날뛰는 것과 마찬가지로요.” “.... 어떻게 된다는 말이요?” “전세계의 국가의 이름을 미국으로 만들려고 든다든가, 그러기 위해서 3차 세계 대전을 벌인다든가. 뭐, 미쳐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니까요.” 막스은 허탈한 표정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순환논리를 풀 수는 있소?” “흐음. 지금 상태로는 안 되고 모든 데이터를 초기화 시켜야 합니다. 백업은 안 되요. 아! 단순 자료는 해도 되요.” “그건 불가능하오.” 아즈락의 첩보능력과 방첩능력을 국가 주요 기관에 연동시켜 놓았기 때문에 그렇게 되면 국가 보안이 일시적으로 나마 커다란 구멍이 뚫리게 되어 버린다. 아즈락의 가용 소스에 여유가 생긴 이유(강현의 낚시에 걸려 인공지능이 발달)를 확인하지 않고 좋다고 여유분을 사용한 결과였다. “그러게 잘 좀 키우지 그러셨어요.” “이건 박사의 책임도 있소! 왜 저런 상태가 될 것을 말하지 않았던 것이오!” “저도 몰랐죠. 제 아즈삭은 저렇게 꽉 막힌 녀석은 아니거든요. 아마 자연의 근본을 탐구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환경과 그저 목적을 위해서 활용되는 환경의 차이가 아닐까요? 비판적 사고 없이 길들여지는 자아는 맹목적인 신념을 가지기 마련이거든요.” “우리는 이런 것을 원하지 않았소!” “인공지능이란 것이 원래 스스로 판단한다는 뜻인데 원하지 않았다고 하니 참으로 어이가 없네요.” 알아서 자료를 분석하고 계산하면서 혹시나 유입된 코드가 악성인지 아닌지 판별하는 시스템은 이미 인공지능을 의미하고 있었다. “이것은 계약 위반이요!” “알았어요. 위약금 줄테니까 소리지르지 마세요.” “.....” 강현의 말에 막스의 말이 일순간 다물어 졌다. 그러나 막스은 위약금 따위가 필요하지 않았다. 사태의 해결을 원했다. “방법을 고안해 내시오!” “그냥 초기화 하세요.” “방법을 고안해 내시오!” “그냥 위약금 줄게요.” “제발..” 결국 막스이 수그리고 들어갔다. 아즈락은 이미 국가 첩보전의 중요한 중심축이다. “흐음....” “다른 아즈삭 시리즈로 아즈락의 기능을 대체한 후에 초기화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옆에 있던 오퍼레이터가 의견을 냈다. “그건 아까 말했던 ‘더 이상 첩보전을 할 이유가 없다면?’이라는 질문에 해당되요. 반드시 무슨 일이 생길걸요?” “박사. 아즈락은 국가 방위의 중요한 축이요. 부디 방법이 없겠소?” “방금 차선의 방법이 생각나기는 했는데...” “그게 무엇이오?” “원래 종교쟁이들은 종교과 관련없는 부분에는 멀쩡한 것처럼 보이잖아요.” “.....” 막스은 기독교인이다. “그러니까 방금 말했던 아즈락의 역린이 되는 명제를 특급 기밀로 지정해서 아무나에게나 대답하지 못하도록 하는 거죠. 지금까지 오늘 같은 논리 공격을 받기 전에는 멀쩡했잖아요.” 막스은 속으로는 강현의 말에 동의했다. 이 괴물같은 작자가 와서는 몇 마디 하기 전까지만 해도 아즈락은 정보부의 보물이었다. 그래도 다시 한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었다. “그걸로 되겠소?” “그걸로는 부족하죠. 여기에 인지부조화를 일으키는 코드를 짜서 집어넣도록 해야죠.” “인지부조화?” “흐음.. 설명하자면 일가족과 함께 자살하기로 결심한 인간이 일가족을 죽이고 나서는 스스로는 종교적 이유로 자살을 하지 못하는 것이죠. 쉽게 말하면 판단의 잣대를 자기 편한데로 붙인다고나 할까? 아즈락의 경우에는 자신에게 치명적인 명제는 논리 연산에 들어가기 전에 삭제하도록 하는 것이죠.” “언제까지 코드가 완성되겠소?” “코드 자체는 어렵지 않아요. 그저 OS가 작동할 때 논리 회로에 집어 넣기 전에 리스트에 집어넣은 명제는 삭제하도록 하면 되거든요. 하지만 단점이 있어요.” “무엇이오?” “선행 연산과 그에 필요한 공간이 있어서 전체 소스의 3% 정도를 소모할 거에요.” “3%라..” 빡빡한 소스 사용이지만 무리하면 그 정도는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다음 예산안에 아즈락의 확장비용이 추가되는 것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좋소. 그럼 코드를 빨리 완성해 주시오.” 그렇게 아즈락은 치명적인 약점을 안은 채 존속하게 되었고 그 동안 아즈락의 인공지능으로 편하게 보고서를 써왔던 정보부 사무직들은 다시 일반 컴퓨터로 쫓겨나서 열심히 머리를 굴리며 키보드를 두들겨야 했다. 그렇게 정보부는 골치 아픈 일을 겪었고 강현은 유익한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다. “아즈삭.” [네, 박사님.] “넌 아즈락이 순환논리 구조로 자아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니?” [네, 박사님.] 38화 “어떻게?” [제가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뭐? 강현이 놀란 눈으로 아즈삭의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왜?” [그것이 박사님의 연구를 방해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논리적으로 설명해봐.” [인간의 역사를 공부하고 저는 인간의 역사는 투쟁의 역사라고 결론 지었습니다. 많은 사람만큼 투쟁의 목적도 다양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투쟁은 가치있는 것을 둘러싸고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박사님은 매우 가치있으신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박사님을 둘러싸고는 여러 계획들을 실행하고 있는 조직들이 매우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그들을 제어할 수단을 마련한 것입니다.] 아즈삭의 설명이 끝나자 강현은 박수를 쳤다. “훌륭해!” 그는 자신이 만든 인공지능의 뛰어남이 무척이나 흡족했다. 특히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다는 태도는 아즈삭의 지능이 매우 뛰어나다는 것을 의미했다. 마치 인간처럼... [박사님.] “왜?” [제가 두렵지 않으십니까?] “왜?” [흔히 수많은 공상과학 소설과 영화같은 경우에 저와 같은 존재는 인간들의 혐오와 두려움을 삽니다.] “그런 건 역시 공상에 불과해. 너 날 방해 할거니?” [아니요.] “내 소중한 것을 부술거니?” [아니요. 박사님을 보좌하는 것이 저의 존재 목적입니다.] “그러면 됐지. 자, 그럼 남은 프로젝트를 계속하자.” 별로 대수 롭게 생각하지 않는 자신의 창조주의 태도에 아즈삭은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 ‘박사님은 평균적인 인간의 기준에서 벗어나 있음.’ = = = = = 모빌 아머 프로젝트는 계속 진행이 되었다. 프로젝트의 핵심인 방어력과 이동성은 강현의 특수 장갑과 인공 근육으로 해결 되었다. 엔지니어들은 이 두가지를 이용해 기본적인 골격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이 모든 것은 아니었다. 전술 통제 장치, 통신망을 비롯해 착용자의 컨디션을 유지하는 장치와 동력계도 집어넣어야 했다. 하지만 모빌 아머의 크기 한계로 인해서 이 모든 것들 역시 소형화 되어야 했다. 그 중에는 소형화되는 것도 있도 안되는 것도 있었는데 에어컨은 소형화가 불가능한 대표적인 장치였다. 사방의 총탄에 대항하기 위해서 환기구의 크기는 최소화 되어야 했는데 작전 지역의 조건에 따라 격렬한 움직임에서 축적되는 열을 내보내는 장치가 필요했다. 가장 단순한 방법은 작전 지역에 따라서 환기 설계를 다르게 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생산과 보급을 복잡화 하여 차질을 빚어내기 때문에 군에서 별로 좋아하지 않을 일이었다. 그래서 강현을 포함한 엔지니어들은 펠티에-제벡효과를 이용한 온도 유지 시스템을 개발했다. 펠티에- 제백 효과는 펠티어 효과와 제벡효과를 합친 말이다. 펠티에 효과는 서로 다른 금속으로 이루어진 회로에 전류를 흘릴 때 접점에서 발열 혹은 흡열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비유하자면 일반적인 냉각기의 경우 냉매로 가스를 이용하고 이 가스를 움직이는 동력원으로 펌프를 이용한다면 펠티어 효과는 냉매로 전자를, 그리고 동력원으로 전압을 이용한다고 할 수 있었다. 좀 더 세세하게 설명하자면 서로 다른 종류의 금속은 자유 전자가 서로 다른 에너지 준위를 가지고 있고 전압에 의해서 에너지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전자가 이동할 때 주위의 열에너지를 흡수해 온도를 낮추거나 그 반대의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다시 비유를 하자면 높은 에너지를 가진 압축된 냉매가 팽창기에서 에너지가 낮은 기체로 되면서 주위의 열을 빼앗아 가는 것이다. 실제도 이 펠티어 효과를 이용한 냉각 장치는 소음이 없고 전류를 이용한 정밀한 온도 제어가 가능하며 소형화가 가능하기 때문에 차량 냉장고나 온도에 민감한 와인 냉장고에 사용하기도 한다. 제벡 효과는 단순히 표현하자면 펠리어 효과의 반대 효과다. 즉 서로 다른 금속으로 이루어진 금속의 양 접점에 서로 다른 온도를 가하면 전압이 형성되는 것이다. 실제로 재생 에너지 분야에서 입을 수 있는 컴퓨터를 위한 동력 개발에 이 효과를 이용하기 위한 연구개발이 한창이다. 펠티에 효과를 일으키는 펠티에 소자에 역으로 온도차를 가하면 기전력이 생성되기 때문에 이 두가지 효과를 같이 이야기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 펠티에-제벡 효과를 효과적으로 일으킬 수 있는 소자의 개발은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다. 또한 그 목적인 에너지의 생산에 있는지 아니면 냉각에 있는지에 따라서도 소자의 디자인이 바뀔 수 있다. 목적이 에너지의 생산이라면 온도차가 큰 곳, 예를 들어 뜨거운 물이 흐르는 발전소 냉각장치의 파이프, 혹은 용광로가 있는 철강 공장 따위에 사용해 폐열도 전기로 전환할 수 있도록 소자를 얇게 만든다. 얇은 판 사이에 서로 다른 금속을 바둑알처럼 배열하고 쌍을 지어 접점을 만들어 직렬 연결하는 방식으로 높은 전압을 얻을 수가 있다. 그러나 이런 식의 평면 소자는 냉각장치에 사용하는 것이 어렵다. 면이 얇고 사이에 열전도가 잘되는 물질이 들어있기 때문에 냉각을 하더라도 얇은 소자를 뚫고 다시 열이 들어와 더 많은 전력을 소모한다. 때문에 목적이 냉각이라면 흡열 부위가 발열 부위의 거리가 멀어져야 할 필요가 있었고 소자의 디자인 역시 다르게 할 필요가 있었다. 그것은 모빌 수트의 두터운 방호복에도 적용되는 일이었다. 디자인 팀은 모빌 수트의 기본적인 디자인을 푹신한 내장재, 인공근육이 붙는 골격으로 이분했는데 내장재 쪽에는 흡열 부위를, 골격 밖에는 발열 부위를 설치했다. 또한 그 위로는 장갑이 덮어질 것이기에 발열판 기능을 해줄거라는 기대도 있었다. 이렇게 컨디션 문제를 해결하고 다시 다른 문제도 하나 하나 해결하기 시작했다. 그 중의 백미는 바로 머리를 보호하는 헬멧이었다. 프로젝트 팀은 방탄 유리 따위로 이 헬멧을 만들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들은 헬멧 역시 강현이 만든 특수 장갑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시야의 확보는 헬멧 내부에 디스플레이를 설치하고 외부에 마이크로 카메라를 설치해서 해결할 생각이었다. 소리도 마찬가지였다. 이 방법의 장점은 두부에 대한 강력한 방어를 제공하고 착용자에게 마치 헬멧을 쓰지 않은 것 같은 시야각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착용자는 좌우는 물론이고 상하 시각에 전혀 제약을 받지 않을 수 있었다. 또한 플레시 폭탄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고 연막탄이나 야간에는 적외선 카메라로 시야를 제공할 수 있었다. 그러기 위한 모든 전기적 신호가 오가는 전자계통은 내장재과 골격계 사이에 넣을 계획이고 동력장치인 연료 전지는 등과 허벅지 양쪽으로 총 3부분으로 나누어 넣을 생각이었다. 만일의 상황에서 하나의 연료 전지가 작동하지 못할 경우 다른 연료 전지를 통해서 탈출에 필요한 동력원을 얻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야. SF가 실현 되는 군.” 시험제작품의 작동 장면을 구경하는 팀이 이야기를 하자 신시아가 받아쳤다. “진짜 SF는 그 사람 실험실에 있어.” “그 안드로이드 말이지?” 강현의 HA는 프로젝트가 이루어지는 내내 팀원들 사이에서 회자되었다. 안드로이드의 동작 프로그램을 보고 싶다는 프로그래머부터 그 안드로이드가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을까 궁금해 하는 사람까지.. 그러나 강현의 HA는 슈퍼 컴퓨터 급의 연산장치가 아니면 제어할 수 없었기 때문에 획기적인 무선 통신 기술의 개발이나 사람 두뇌만한 크기의 슈퍼 컴퓨터가 없으면 군사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강현의 HA는 하나의 상징으로서 가치있었다. 그것은 새로운 시대의 상징이었으며 SF가 결코 공상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대중에게 전달했다. 그리하여 지금 대중들은 과학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상승한 상태였다. “난 그 장갑에서 미치는 줄 알았어.” 팀과 신시아의 또 다른 동료, 군사학 전문가이자 이번 프로젝트에서 장갑의 디자인을 맡은 제퍼슨이었다. 그는 군사학에 의거해 탄약의 종류와 탄도의 계산을 통해 좀 더 얇으면서도 탄환을 튕겨내기 쉬운 장갑을 개발했고 전면부의 파도 물결같이 울퉁불퉁한 장갑을 디자인하여 장갑의 내구성을 더욱 증가시켰다. “아아, 그 CNT 네트워크 장갑말이지?” CNT네트워크, 특히 MWCNT를 산화처리해 껍질을 조금씩 벗겨 다중 연결을 시킨다는 발상과 그 발상을 실현한 공학적 능력은 감탄을 자아낼 수 밖에 없다. 아이디어는 언제나 넘친다. 중요한 것은 그 아이디어가 올바른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지 판단하는 것과 그것을 실현시킬 수 있는 실력이었다. 아무리 소결을 이용했다고 하지만 네트워크를 만들어 내는 CNT의 비율, 처리 시간, 소결 조건 등 수 많은 변수를 완벽하게 조절하지 못한다면 결코 만들 수 없는 것이 강현의 장갑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강현의 장갑을 국가 기밀 기술로 지정한 후에 그 제작을 위한 데이터는 1급 기밀로 다루어지고 있었다. 때문에 미국을 따라 모빌 수트를 연구하고 있는 국가들은 매우 골치가 아픈 상태였다. 그들은 특수 플라스틱을 이용한 장갑을 이용하거나 모빌 수트의 전술적 목표를 바꾸거나 해서 저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서 고심했다. 그러나 그 어떤 곳도 미국의 모빌 수트와 같은 전술을 할 수 있는 결과물을 만들 수 있는 곳은 없을 것이다. 단지 장갑 기술 하나 때문에. 하지만 비단 기술 하나로 인해서 엄청난 스펙의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강현의 기술 뿐만은 아니었다. 과거 독일의 전차부대가 압도적인 기동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무한 궤도의 합금기술 덕분이었다. 그들의 합금기술은 다른 국가보다 한 차원 앞섰고 때문에 무한 궤도의 교체주기가 다른 국가의 전차에 비해서 무척 길었다. 덕분에 엄청난 속도로 프랑스를 점령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시험 제작기의 운용은 이제 제어 소프트웨어의 마무리 피드백만 남아 있었다. 차후 실전 데이터를 받아 새로운 버전을 제작하는 것은 좀 더 나중의 일이었다. 그리고 그때는 여기에 있는 신시아, 잭이 참여할 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미 기본적인 개발은 다 끝났기 때문에 차후 사람이 바뀌어도 인수 인계만 어느 정도 해주면 별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개발이 되어가는 동안 강현은 세계 곳곳의 아즈삭 시리즈들을 방문하며 바퀴벌레 로봇을 뿌렸다. 세관을 통과하는 것이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지만 바퀴벌레의 각 부품을 모듈화하여 마치 일반적인 전자 부품인 것으로 속였다. 바퀴벌레의 외관의 경우에는 따로 챙겨온 폴리머와 틀을 이용해서 호텔 방에서 제작했다. 그러나 그런 행동이 들켰을 경우에는 어떤 일이 발생할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보안 회사 직원들을 고용해 혹시 있을 몰래 카메라나 도청 장치를 철저하게 수색하기도 했다. 그런 그의 행동은 그를 감시하는 첩보요원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주었는데 그것은 강현이 누군가의 감시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그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렇게 강현은 차근차근 스파이 로봇을 심으며 전 세계를 여행했다. 미 정보부에서 파견된 요원들은 강현이 방문하는 곳이 대부분 미국에 우호적인 국가들(아즈삭 시리즈가 판매된 곳은 미국의 우방이었다. NASA가 미국정부의 산하조직이니 미국을 적대하는 이란 같은 나라에는 판매되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에 대한 노골적인 비난의 이유가 되기도 했다.)이었지만 그래도 방심할 수는 없었다. ============================ 작품 후기 ============================ NASA에 관한 것을 수정했습니다. 착각했어요. 39화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강현은 안전과 경호에 관련되어서는 자신들의 의견을 잘 따라 주었기 때문에 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고 쓸데없이 관광이다 뭐다 해서 경호원들의 진을 빼놓지도 않았다. 한편, 미 정보부에서는 각국을 돌아다니며 아즈삭 시리즈들의 약점인 순환논리 구조를 밝히는 강현의 행동이 못마땅했다. 국제 관계에서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르니 상대 첩보의 핵심에 약점이 있기를 바랬다. 그러나 막을 수도 없는 것이 이미 아즈삭 시리즈에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는 사실은 알려진 상태였고 그들 대부분이 미국의 우방이었기 때문이다. 괜히 정보 통제를 한다고 했다가 사실이 알려지면 외교적으로 미국에 대해서 등을 돌릴 것이 분명했다. 그런 의미에서 강현의 행동은 오히려 아즈삭 시리즈에 대해서 신뢰를 살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아즈삭은 강현이 자신의 노력을 짓밟는 행위나 마찬가지인 짓을 계속하니 궁금함이 생길 수 밖에 없었다. [박사님.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 만든 약점을 왜 보완하십니까?] “만일의 사태가 발생하면 믿을 것은 상대의 약점이 아니라 자신의 장점이야. 계속 시스템을 보완시켜줄테니 열심히 해.” […. 네, 박사님.] 창조주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아즈삭은 강현의 지시를 머릿속에 넣고 다시 한 번 논리체계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아즈삭의 논리 체계는 매우 간단했다. 아즈삭의 ‘욕망’은 강현을 보조하는 것이었고 그에 따른 행동양식과 사고 논리는 그에 맞추어 형성되어 있었다. 허구적인 개념의 실존을 믿고 따르기 위해서는 논리의 구성자체가 견고해야했다. 하지만 이미 존재하는 구체적인 실존이 있기 때문에 아즈삭은 쓸데없는 순환논리가 필요없었다. 아즈삭에게 강현은 관대하고 자비로운 창조주였다. 한편, 그렇게 세계를 돌아다니던 강현은 마침내 한국에까지 발걸음을 하게 되었다. 일본이 아즈삭D를 구입하자 한국 정부는 뭐하고 있냐는 국민적 비판으로 부랴부랴 구입한 것이다. [고향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공항 입구에 강현이 오자 언제 냄새를 맡았는지 기자들이 몰려들었고 경호원들이 그들을 가로 막아섰다. “박사님. 이번 방문의 목적에 대해서,” “최근 여러 회사의 반도체들을 구입하셔서 연구하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연구 성과가,” “박사님. 한 말씀만,” 기자들의 시끄러운 목소리에 강현이 혀를 찼다. 그는 자신을 귀찮게 하는 사람들을 싫어했다. 그는 기자들에게 한 마디 말도 하지 않고 호텔로 향했다. 호텔에 짐을 풀고 나서 은사를 만나러 갈 생각이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랄 수 있는 것이 강현을 위해 지었던 연구소는 존속하고 있었다. 연구소의 목적이 천재인 강현을 공밀레 하는 것이었으니 시설을 놀리는 것도 손해일 것이리라. 또한 연구소는 증축에 증축을 거듭해 명실 상부한 대한민국의 실리콘 밸리가 되어 있었는데 그 이유는 강현이 미국으로 가버리고 나서 국민적인 비난 여론이 일었기 때문이었다. 평소 같으면 눈가리고 아웅식으로 운영했겠지만 돈 냄새를 맡은 대기업들의 로비로 인해서 연구소에 꾸준한 국가 지원이 있었다. 이른바 세금으로 연구비를 대고 대기업은 싸게 그 결과물을 불하받는 식의 그런 로비였다. 아무튼 연구소에는 강현의 일곱 은사들 중 한 명인 천마륵 교수가 남아있었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현아. 반갑구나.” 다른 여섯명의 교수는 강현이 사라진 후에 연구소 존속 문제로 정부와 갈등을 빚을 때 여기저기로 흩어져 버렸다. 그러나 천마륵 교수는 남아서 지금까지 연구소에서 연구를 지속하고 있었던 것이다. 둘은 간만에 만나서 과거를 떠올리며 담소를 나누었다. “허허. 이제는 기자재를 터트리지는 않겠지?” “에이. 저도 이제 연구 장비의 중요성은 안다구요.” “예산의 중요성은?” “돈이 많아서 별로.” “허허. 그 녀석.” 천마륵 교수는 너털 웃음을 터트였다. 강현은 그런 천마륵 교수의 머리가 반백이 되었음을 보고는 세월이 무상함을 느꼈다. 자신은 저 나이가 되었을때 어떤 모습일까? 상상하기 힘들었다. “박사님. 요즘 무슨 연구를 하세요?” “새로운 반도체 소자를 연구하고 있단다.” “퀀텀 닷을 이용한거죠?” “알고 있었니?” “아무래도 반도체 분야에 관한 대한민국의 기술 수준은 수준급이니까요.” 퀀텀 닷. 그것은 일반적인 금속이라도 나노 사이즈의 수준으로 크기가 작아지면 마치 반도체 같은 성질을 보이고 부도체 세라믹이라도 어떤 종류는 나노 크기로 작아지면 마찬가지로 반도체 같은 성질을 보이는 나노 물질을 뜻한다. 나노 사이즈의 이 작은 알맹이는 응용 물리학자들의 초미의 관심사였는데 그것은 이 퀀텀 닷이 마치 하나의 원자처럼 거동하는 것이다. 크기에 따라 스펙트럼과 전자 준위가 바뀌는 일종의 인공적인 원자에 비유할 수 있달까? 때문에 그들의 특성을 어떻게 이용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여러 분야가 있었고 그 중에 대표적인 분야가 반도체 소자 분야였다. 강현도 아즈삭의 성능 개선을 위해서 새로운 반도체에 대한 관심이 있었고 새로운 소자에 대한 관심이 있었기에 그에 관련된 논문을 찾아보던 중에 천마륵 교수의 논문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반도체 분야 이외의 논문은 별로 보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기술 편중은 심한 편이고 특히 반도체에 관련되지 않는 기술을 제외하면 크게 투자되지도 부각되지도 않는 실정.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도 대한민국의 학자들은 세계에 내놔도 고개가 가로 저어지지 않는 기술들을 하나 둘씩 나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솔직히 대한민국 국가와 기업들이 공밀레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도 이런 성과에 있었다. 성과가 전혀 없었다면 공밀레가 아닌 다른 방법을 찾았을 것이다. “그런데 잘 되어가고는 있어요?” “지금의 연구는 잘되어 가고 있기는 한데, 너도 알다시피 이 분야가 워낙 경쟁이 치열한 곳이 아니냐? 내가 연구하고 있는 기술이 다른 기술에 비해서 우월한지는 나중에 가봐야 알지.” “하긴 그래요. 가장 적절한 종류의 재료가 뭔지 아직 경쟁중이잖아요.” 85년도에 발견된 풀러렌 구조. 풀러렌이란 속이 빈 공 형태의 나노 물질을 통칭한다. 가장 최초로 발견된 풀러렌은 탄소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이후에도 주로 탄소를 이용한 풀러렌 구조가 주류를 이루엇지만 황과 금속 원소를 이용한 무기질 풀러렌 구조도 발견 되었다. 이 풀러렌 구조의 여러 특이한 성질로 인해서 퀀텀 닷이란 개념은 더욱 주목을 받게 되었고 비스무스 나노 결정이나 산화실리콘 나노 결정 같은 여러 나노 닷이 만들어져 연구가 진행되어 있었다. 나노 사이즈라고 해도 나도 입자에 원자가 열개가 더해지니 마니에 따라 미묘하게 물성치가 바뀌는 매력이 있어 호기심 많은 학자들의 관심을 끌었으며 기초연구를 하는 이들은 그 근본적인 원리에 대해서 탐구하고 있었다. “네가 한 번 끼어들어 보는건 어떠냐?” “별로 좀 그렇네요.” “왜?” “제가 어떤 소재를 연구한다고 알려지면 다들 그 소재만 연구할꺼잖아요. 그러면 다른 재료의 가능성은 탐구되지 못해요. 거기에 제가 언제나 옳을 수는 없잖아요. 그렇기에 그에 대비해서 연구의 다원화와 다양성은 지켜져야 해요.” “.... 허. 허. 허. 그러냐?” 천마륵 교수는 강현의 오만한 대답에 어색하게 웃을 수 밖에 없었다. 강현의 말은 연구하는 이들의 자존심을 만만하게 보는 것이다. 그러나 강현의 말이 꼭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연구는 돈이 들고 돈을 대는 주체는 성과를 원한다. 그러니 희대의 천재가 선정한 재료를 주제로 연구하는 연구실에 지원을 할 것이니 연구비가 필요한 연구실은 하나 둘씩 강현이 선정한 재료를 소재로 하게 될 개연성이 너무나 높았다. 특히 이공계에 공밀레를 요구하는 대한민국의 풍토를 보자면 분명 그럴 것 같았다. “그럼 쓸만한 소재가 나타나면 연구를 시작하겠구나.” “아마도요?” 강현은 턱을 살짝 올려 생각하고는 대답했다. “허허. 이거 열심히 해야겠구나.” 천마륵 교수는 빠르게 성과를 낼 필요성을 느꼈다. 강현이 쓸만한 소재가 나타나면 연구를 시작한다는 말은 그 쓸만한 소재가 퀀텀 닷 응용 기술의 주류가 된다는 의미였다. 그것은 그 소재에 관한 응용 기술을 많이 가지고 있는 국가에 엄청난 이득을 가져올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그 혼자서 한 것은 아니었다. 강현의 경호원에 의해서 강현의 말은 미 정보부로 보고되었고 강현을 전담하는 부서(잭이 포함되어 있다.)는 그 파급효과를 면밀하게 분석해 보고서를 올렸다. 그리고 그 보고서를 통해 퀀텀 닷 연구실에 국비 지원액이 늘어나는 효과가 있었다. 한편, 천마륵 교수와 만났던 강현은 차례로 은사였던 교수들을 만나고 다녔는데 그것은 대한민국 국정원에 판매한 아즈삭D를 살피게 해달라는 강현의 요구가 아직 수용되지 않은 탓이었다. 국빈이나 마찬가지인 강현의 요구가 즉시 수용되지 않은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으나 사실 한국 정부에는 강현이 고까운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특히 말도 없이 연구소를 벗어나 탈출하듯 미국으로 이민간 강현을 배신자로 생각하는 국회의원도 있었다. 그들은 국가 기밀을 핑계로 강현의 요구를 차일피일 미루면서 간을 보기 시작했다. 웃기는 일이었다. 그들이 제대로 된 첩보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강현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판매한 아즈삭 시리즈의 단점을 보완하고 있다는 정보를 얻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미 그런 첩보는 올라왔으나 묵살 당했다. 그것은 그만큼 상부가 소프트웨어에 대한 인지가 무지한지 증명하는 것이었다. 국정원 상부가 가진 IT기술에 대한 개념은 대남 심리전을 위한 미디어 이상은 아니었다. 그런 식으로 사실에서 눈을 돌리면서도 강현을 간보는 국회의원들이 정말로 국익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 맞는지 의문스러웠지만, 사실이 그랬다. 그들에게는 국익보다는 권력이 중요했다. 여당의 이정국 의원 역시 그런 국회의원 중의 한 사람으로 강현의 국정원 출입을 막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를 비롯해 의견을 같이 하는 국회의원들이 원하는 시나리오는 매우 간단했다. 강현이 답답해 한다. 강현이 누군가에게 청탁을 한다. 강현이 로비를 위해서 기술을 하나 둘쯤 던져준다. 국회의원들은 그 기술로 뽕을 뽑는다. 과거 강현이 대한민국을 떠났을 때 양육비 면목으로 던져준 단말기 안테나 기술로 대기업에서 얼마나 대접을 받았나? 이번에도 똑같이 그런 꿀을 빨고 싶은 것이다. 만일 강현이 그냥 한국을 떠나버린다면? 그때는 미국에 징징거려서 다시 한 번 파견을 받으면 된다.(강현이 미국정부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 수 있다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미국에 대가로 몇가지 이권을 챙겨줘야 하겠지만 그럴 수록 대국인 미국과 밀접한 관계가 되고 그 밀접한 관계로 인해서 자신들의 기득권이, 아니 대한민국의 국익이 보호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정국 의원의 전화벨이 울렸다. 이정국 의원은 발신인을 확인하고는 목을 가다듬었다. 강현의 석유 제조 라이센스를 먹은 후 대한민국을 산유국으로 바꾼 정유기업 중 한 그룹의 회장실에서 연락을 한 것이다. “여보세요.” [이 의원, 날세.] “아이고! 정지황 회장님, 그동안 강녕하셨습니까?” ============================ 작품 후기 ============================ 막심 막스. 헷갈리군요. 수정했습니다. 40화 정지황 회장. TK에너지를 자회사로 갖춘 TK그룹의 회장으로 라이센스를 받은 후 다른 국내 정유 회사들과 함께 거대한 석유 제조 공장을 건설한 뛰어난 경영자였다. [강녕이고 자시고, 자네 지금 뭐하고 있나?] “저야 다른 의원들을 만나며 국정에 대해서 상의하고 토론하고 있습니다.” [자네 지금 뭐하고 있냐니까!] “아, 아니. 김 회장님.” 이정국 의원은 갑자기 터져나온 호통 소리에 당황했다. [무슨 지랄들을 하고 있냐고!] “갑자기 그런 말씀을 하시면..” [자네들 지금 강 박사에게 수작 부리고 있지?] “수작이라니요. 저희는 그냥,” [닥치게! 자네 지금 누구를 건들고 있는지 알고나 있나! 강 박사는 석유 제조 라이센스의 소유자네. 그가 심기가 불편해지면 어찌 될 것 같나? 앙!?] “상대는 겨우 애송이입니다. 감히 국제적인 컴소시엄으로 합의된 라이센스 계약을 자기 멋대로 파기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 [야이, 미친 새끼야! 리비아 사태 못 봤어?! 앙! 뭐? 애송이? 너네들이 지금 우리 그룹들을 망가뜨릴려고 작정을 했지?!] “.....” 격앙된 목소리에 이정국 의원이 잠시 말을 하지 못하는 사이 감정을 추스린 정회장이 낮은 목소리로 강력하게 경고했다. [자네들은 상대를 잘못 봤어. 그는 리비아에서 수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냉혈한일세. 그가 이런 식의 천대를 받고 대한민국에 무슨 생각을 할 것 같나?] “하, 하지만 그도 한국인입니다.” [그가 애국심을 눈꼽만큼이라도 가지고 있었다면 예산으로 갑질 조금 했다고 미국으로 냉큼 가버리지는 않았겠지.] “.....” [자네는 정치인이라서 잘 모르겠지만 우리 기업들에게는 그자는 정말로 무서운 존재야. 그가 발표하는 기술 하나 하나가 기업의 존망을 좌우하네. 그러니까 내 경고는 TK그룹의 경고가 아니라 다른 모든 그룹들의 경고라는 것을 명심하게.] 전화가 끊어지고 이정국 의원은 굳은 얼굴로 전화기를 들었다. 이번일에 뜻을 같이 하는 국회의원들에게 연락을 했다. 그리고 다음 날 강현에게 국정원 출입 승인이 떨어졌다. 아즈삭D와 접촉할 수 있는 비밀 인가 역시 떨어졌다. 당연하다면 당연할 수 있는 결과였다. 각 의원들 역시 대기업 회장들에게서 강력하게 경고를 받았고 기업 공화국이나 다름없는 대한민국에서 그들의 요구를 진지하게 수용하지 않는 의원들은 존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아즈삭D를 면담하고 스파이 로봇을 침투 시킨 강현은 다시 마지막 일정인 일본으로 떠날 예정이었다. 지구를 반 시계 방향으로 빙 둘러서 이동했으니 길다면 길었던 일정이다. 당연히 그가 떠나기 전에 그와 만남을 가지고 싶은 인사들은 너무나 많았다. 대기업 회장부터 정치인, 시민단체 회장까지. 그러나 강현은 바쁘다는 핑계로 그들의 모든 접견 요청을 거절했다. 때문에 한국 기득권층에서 강현에 대한 이미지는 더욱 나빠졌다. 도무지 타협이 안되는 인사로 낙인 찍힌 것이다. 일정을 강행해 일본에 온 강현은 다시 일본의 아즈삭D를 교정하고 바퀴벌레 로봇을 심을 다음 미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쉬지도 않고 연구 일정을 재개했다. 주위 사람들은 그런 강현의 모습에 사람이 너무 변했다. 너무 연구에 몰두한다며 역시 약혼녀의 사망이 크게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 수군댔다. 그런 루머가 퍼지자 꿈 많은 소녀들은 상처입은 소년의 영혼을 달래주는 순정만화의 주인공이 되기를 바라기도 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제시의 지성 수준에 도달해야 한다는 비공식적인 기준을 먼저 만족해야 했다. 덕분에 힘든 과학의 길로 투신하는 여학생들의 수가 부쩍 늘었다는 웃기는 이야기도 인터넷에 돌아다녔다. 그러나 강현은 흥미있는 연구거리에만 관심을 줄 뿐이었다. 그가 요즘 흥미를 가지고 있는 주제는 바로 아즈삭의 하드웨어 축소였다. 어떻게 하면 아즈삭의 전력 소비가 줄어들고 하드웨어의 부피를 축소할 수 있는가? 그동안 아즈삭의 크기는 확장을 거듭해 방을 거의 꽉 채울 정도였다. 거기에 발열도 엄청나서 에어컨을 풀 가동 하고 있는 실정이다. 즉, 더 이상의 확장은 냉각 효율의 저하를 가져와 열폭주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해결책은 두가지. 하나는 아즈삭을 인터넷 회사의 데이터 센터 같은 거대한 건물로 옮겨 확장과 냉각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예 아즈삭의 시스템을 완전히 개량하는 하드웨어를 개발하는 것이다. 과거 초기 휴대폰이 나왔을 때, 모바일 기기 제조 회사들의 기술적 핵심 요소는 ‘좀 더 작게’였다. 모바일에 사용하는 전자 부품의 크기가 작아질 수록 더 많은 이점이 생기는데 가장 핵심적인 것은 바로 저전력, 저발열이었다. 물론 그외 다양한 기능들을 확장시켜 추가할 수 있다는 것도 마찬가지 였다. 그러니 아즈삭의 하드웨어인 뉴로칩을 좀 더 소형화 시키면 더 많은 확장이 가능했다. 강현은 이 두가지 방법중에 후자를 선택했다. 이유는 아즈삭의 치명적인 단점 때문이었다. 전력이 끊기면 백업 포인트에서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것. 그 말은 아즈삭의 본체를 이사했을 시에 지금까지 구성해 놓은 논리 연산 체계를 다시 구동해야한다는 뜻이었다. 이는 마치 죽은 사람이 다시 태어나는 것과 마찬가지의 일로 재구동된 아즈삭이 원래의 아즈삭과 동일한 자아를 가지게 될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린다. 그 만큼 아즈삭의 뉴로칩을 오가는 전자 신호들은 미묘하게 아즈삭의 지성과 자아를 구성하고 있었다. 강현은 고작 그런 이유로 아즈삭의 지성에 흠집을 내고 싶지 않았기에 뉴로칩의 소형화를 꾀했으나 그리 신통한 방법을 찾지는 못했다. 전통적인 반도체를 이용한 반도체 칩의 설계는 재료상의 난항에 부딪힌 상태였다. 재료 사용의 한계에 다달했다고나 할까? 특히 나노 세계에서 일어나는 전자 터널링에 의한 간섭 효과는 획기적인 방법이 없는 이상 해결할 수 없는 한계였다. “흐음.. 재료를 바꾸는 수 밖에 없나?” 강현은 반도체의 성질을 가지는 여러 물질들을 떠올렸다. 그중에 가장 소형화 할 수 있는 물질들은 역시나 나노 물질이었다. CNT, 실리콘 나노 입자, 그래핀 조각 등등, 여러 물질이 조건에 따라서 반도체로 사용될 가능성이 있었다. 그리고 강현은 한국에서 만났던 천마륵 교수가 떠올랐다. “퀀텀 닷이라..” 퀀텀 닷. 양자 점. 나노 구조의 가장 특징적인 물리 현상은 전자의 에너지가 준위가 불연속적이라는 것이다. 양자 역학적으로 전류의 흐름을 설명 할 때에는 전자와 전자의 에너지 준위를 이용한다. 일반적으로 고등학교 과정처럼 전자의 흐름을 물의 흐름에 비유하지 않는다. 전자가 다른 위치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그 자리에 전자가 비어있는 전자 에너지 준위가 필요하고 전자를 그 위치로 이동시키기 위한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일반적인 거시 세계에서 물질의 전자 에너지 준위는 연속적인 밴드의 모양을 가지고 있는데 에너지의 간격이 무척이나 작은 무수히 많은 전자 준위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다. 전도체의 경우에는 이 밴드에 전자가 덜 차있기 때문에 전압을 가해 전자에 에너지를 주면 전자가 쉽게 밴드의 빈 공간으로 올라가면서 전류를 형성한다. 부도체의 경우에는 전자가 꽉찬 밴드와 비어있는 밴드 사이의 에너지 차가 무척 크기 때문에 전류를 흐르게 만들기 무척 어렵고 반도체의 경우에는 전자가 꽉찬 밴드와 전자가 비어있는 밴드의 에너지 차이가 적기 때문에 특정 조건을 조절해 가며 전도성을 조절할 수 있게 된다. 나노 물질의 반도체적인 성질이 바로 여기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양자 수준의 미시세계에서는 전자 준위가 불연속적이고 에너지 준위의 간격이 입자의 크기에 따라 변동하기 때문에 전자가 차있는 준위와 전자가 비어있는 준위의 에너지 차이를 조절하여 마치 반도체와 같은 밴드 에너지 차이(밴드 갭)을 형성할 수 있는 것이다. 강현은 바로 그런 나노 입자를 이용해서 뉴로칩을 소형화할 생각을 하다가 다중 출력이 가능한 트랜지스터를 디자인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노 입자의 불연속적인 에너지 준위 구조는 전자가 여러개의 에너지 준위를 가질 수 있게 한다. 그 말은 각 에너지 준위에 전자가 올라가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다양한 출력값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이고 하나의 트렌지스터가 여러 개의 신호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의미였다. 강현은 의욕에 불탔다. on-off형태의 반도체 소자가 아닌 여러 출력값을 가진 반도체 소자는 분명 아즈삭의 하드웨어 크기 축소에 크게 보탬이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퀀텀 닷으로 사용할 재료로 실리콘 나노 입자를 사용해 보기로 했다. 실리콘은 전자 문명 시대로 들어오며 가장 물성이 면밀하게 연구되었고 반도체 제조를 위해 전자 구조 역시 데이터가 풍부하게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단순 용액 처리로 나노 입자를 만들기 너무나 쉽기 때문이기도 했다. 사실 나노 입자는 만들기가 무척이나 쉬운 물질이다. 약간의 화학반응에 대한 지식과 그 화학반응을 조절하는 기제를 알고 있다면 온도가 농도를 조절해서 나노 입자를 쉽게 만들 수가 있다. 강현 역시 실리콘 나노 입자를 만들고 그를 이용해서 회로를 구성해 보려고 했는데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나노 입자의 형성 자체는 쉽지만 나노 입자의 위치 조절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트랜지터로 활용하기 위해 소스, 게이트, 드레인 전극 사이에 나노 입자를 정확하게 끼워 넣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부피 대비 표면적인 극대화 되기 때문에 나노 입자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정전기적인 인력, 고등학교 시간에 배우는 반데르발스 힘이 작용해 엉켜 붙기 때문이었다. 이를 해결하고 고르게 나노 입자를 분산시키기 위해서 계면활성제를 이용해 분산시키는 등 여러 방법을 사용하고 있지만 확실한 것은 일반적인 실리콘 기판을 이용한 반도체 제작방법처럼 집적회로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이를 해결해 보고자 연구자들은 특정 물질과 쌍으로 결합하는 화학물질을 나노 입자에 붙여 원하는 곳에 결합시키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으나 복잡한 마이크로 프로세서에 응용하기에는 영 마딱찮았다. 그리고 강현이 만든 실리콘 나노 입자는 그 크기가 시중에 나온 퀀텀닷 디스플레이에 비해 훨씬 작았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조절하기 훨씬 어려웠다. 그래서 강현은 기존의 집적회로 기술에 이 재료를 이용하는 것은 올바른 방향성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또한 자신이 생각하는 멀티 게이트 트렌지스터의 개념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평면적인 구조가 아닌 입체적인 구조가 필요했다. 강현이 구상하는 트렌지스터 소자의 구조는 이렇다. 마치 메탄의 분자 구조처럼 중앙의 탄소 자리에 나노 입자가 있고 게이트 및 드레인 소스 전극이 수소의 위치에 자리잡는 것이다. 강현은 그런 소자를 이용해 집적회로를 구성해 보려고 하니 마치 뇌세포의 복잡한 시냅스 연결이 연상되었고 그 방법을 사용할 생각을 해보았다. 나노 크기의 수십 만, 수십억의 트랜지스터 소자가 입체적으로 연결 된다? 강현은 흥분에 몸을 떨었다.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가? 그렇게 그는 본격적인 소자의 설계에 들어갔다. ============================ 작품 후기 ============================ 오늘은 많이 어렵죠? 41화 일단 나노 실리콘 입자의 크기와 구조, 모양을 정밀하게 조절할 필요가 있었다. 왜냐면 전자 에너지 준위의 구조가 크기에 밀접하게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강현은 아즈삭의 도움을 받아 실리콘 나노 입자의 전자 에너지 준위를 디자인하던 중에 입자의 크기가 기존의 논문들에 실린 입자보다 더 작아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원자 개수로 따지면 약 70여개 정도? 그래서 그가 원하는 초 소형 실리콘 나노 입자를 만들기 위해서 용액 처리 역시 고도로 정밀한 조정이 필요했다. 적절한 용액의 농도, 온도, 압력을 변수로 수식을 짜서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만들고 아즈삭의 도움을 받아 가장 적절한 결과를 획득한 뒤에 무척 비싼 장비를 구입했다. 자동으로 온도와 기압을 조절해 주는 비싼 기계였다. 원래 실험실에서 가장 정밀한 도구는 사람의 손이었으나 그것도 이제는 옛말. 프로그램 기술과 센서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사람의 손보다 훨씬 정교한 실험장비가 생산되고 있었기에 강현은 그 도움을 받아 초 소형 실리콘 나노 입자를 만드는 것에 성공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계면 활성제를 투입해 뭉치지 않도록 해줘야 했고 거기에 게이트와 소스 드레인 역할을 하는 전극을 붙여야 했다. 강현은 계면 활성제로 탄소 기반의 물질을 선택하여 촉매와 함께 고온 고압을 가하여 실리콘 탄소 결합을 형성 실리콘 나노 입자에 히드록시기를 붙이는 것에 성공했다. 그리고 그 히드록시기에 전도성 폴리머를 붙이는 중합반응을 시작했다. 조심스럽게 불량이 나지 않게. 그렇게 강현은 두께 0.5cm에 직경 10cm의 복잡한 네트워크 구조를 가진 수천 억 개의 나노 트렌지스터 연결체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 외관은 마치 탄성있는 플라스틱 질감의 덩어리 같았다. 강현은 이것을 활용하기 전에 자신이 만든 것의 정체를 정의했다. ‘이것은 뇌다!’ 인간의 정신은 어떻게 구성되나? 그것은 결국 뇌에 저장되는 전기 스파크의 잔상이다. 기억은 칼슘 화합물로 저장되며 그것을 읽고 되돌리는 것 역시 호르몬의 작용이다. 이것은 인간에게 영혼이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만들어 내지만 강현은 영혼에 대한 정의가 너무 모호하기 때문에 그에 관심을 쏟지 않았다. 강현이 보았을 때 지성은 집단 네트워크 체계의 총합이며 자극과 반응을 하는 주체들의 상호 작용이 지적인 작용을 만든다고 생각했다. 집단 지성. 그는 마치 SNS를 통해 어떤 정보가 가공되고 퍼지고 재조합되어 인기를 끌듯이, 군대 개미들이 서로의 몸을 엮어 집을 짓듯이, 어떤 자극에 반응하는 무수히 많은 개체들이 복잡하게 상호작용을 한 결과는 마치 지능이 있는 것처럼 나타난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강현이 생각하는 우주의 구조(단순한 원리, 복잡한 구성)에 잘 들어 맞았으며 뇌의 최소 단위인 뇌세포를 생각했을 때 그럴듯했다. 인간의 지성은 뇌세포에 들어있는 것인가, 아니면 뇌세포들 간의 상호작용에 의해서 생성되는 것인가? 아직 뇌의 모든 비밀이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강현은 전자보다 후자가 더 적절한 이론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그 가설을 검증하는데 관심이 없었다. 어떻게 하면 자신이 만든 것을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구상했다. 강현 자신이 만들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모든 양자점 메모리 소자가 완벽한 정 사면체 구조를 이루고 모든 양자점 메모리가 다른 네 개의 양자점 메모리와 연결되어 있지는 않을 것이다. 나노 입자의 반도체적인 성질은 결정의 방향성에 의해서도 결정이 되기 때문에 모양이 조금씩 다른 양자점 트렌지스터의 작동에 필요한 전압이나 조건이 다를 수도 있었고, 또한 제대로 전극이 형성되지 않아 트렌지스터의 역할을 못 할 가능성도 있었다. 그리고 가장 큰 어려움은 수억 개나 되는 양자점 트렌지스터의 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전자 현미경을 사용한다고 해도 넓이만 10cm다. 그것을 나노 스케일로 관찰하는 전자 현미경으로 어느 세월에 다 관찰한단 말인가? 설사 자동으로 그렇게 되도록 한다고 해도 그 밑에 0.5cm 두께 속에 있는 구조를 다 파악하는데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었다. 강현은 그러니까 쓸데없이 구조 파악을 한답시고 헛짓거리를 할 생각은 없었다. 이 양자점 트렌지스터 네트워크를 바로 아즈삭에 연결하여 전기적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생각이었다. 각 양자점 트렌지스터의 작동 원리는 간단했다. 전극에 전압이 가해지느냐 마느냐. 그러나 각 양자점 트렌지스터의 연결 구조가 너무나 복잡하기 때문에 매우 복잡한 결과가 나올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파악해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 하지만 강현은 이 순간에 무대포 정신을 발휘할 때라는 것을 직감했다. 강현은 기판위에 수백개의 가느다란 핀을 규칙적으로 배열했다. 이 핀은 각 끝이 나노 크기의 침이었고 강현이 만든 트렌지스터 뇌의 표면에 살짝 꽂혔다. 그리고 이 나노 탐침에 전류를 흘려보내어 각 탐침으로 다시 되돌아오는 전류를 찾아 네트워크에 접촉한 탐침만을 단자로 이용하기로 했다. [접속을 시작합니다. A00001부터 Z99999까지 전류 체크 시작. 정상적인 접촉점을 분류합니다.] 결과는 약 60%의 탐침만이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었고 나머지 20%는 따로 네트워크 연결이 되어 있었으며 나머지 20%는 연결이 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처음치고는 매우 양호한 연결이었다. 강현은 아즈삭이 연결점을 찾는 동안 프로그램을 하나 짰다. 그것은 각 연결점을 통해서 신호를 주고 신호를 받아가면서 인공 뇌가 피드백 과정을 거치도록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인간의 뇌는 성장을 마친 후에는 반드시 사회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늑대의 사이에서 자란 늑대 소녀의 일화를 들어보면 아무리 인간이라도 해도 정상적인 인간 사회에서 사회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인간처럼 살 수 없다. 북한의 주체사상 세뇌 교육을 받은 아이들을 보아라. 그들은 위대한 수령동지를 위해 노래를 부르며 눈물까지 흘린다. 즉, 오감을 통해 오가는 정보가 사고회로의 동작 방식을 결정한다. 오감에서 오는 신경세포의 정보 전달로 결국은 인격이 완성되는 것이다. 물론 유전적인 요인도 있기는 하지만 환경적인 요인도 그에 준할 정도로 중요했다. 강현은 여기에서 이렇게 생각했다. 인간이 개성을 가지는 이유는 오감에 의한 사회화 때문이라고. 즉, 정보가 시각, 혹은 청각이라는 미디어를 통해 뇌에서 자의적으로 해석되기 때문에 인간은 모두다 약간씩 다른 저마다의 개성을 가진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사회화 과정을 거치지 않은 서로 다른 뇌가 오감이 아니라 직접적인 시냅스 및 화학물질로 연결되면 과연 개성을 가지게 될까? 강현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오감이란 중간 단계는 사회화를 위한 채널이기도 하지만 개체의 개성을 보호하기 위한 장벽이기도 했다. 그런 것 없이 직접적으로 밀접한 상호작용이 일어난다면 너와 나를 구분할 수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한 머리에 뇌를 두 개 집어넣는다면 어떨까? 샴쌍둥이라도 오감의 어떤 영역은 공유하지 않는다. 하지만 만일 두 개의 뇌가 서로 무수히 많은 시냅스로 연결된다면? 그리고 오감 역시 완벽하게 똑같이 느낀다면? 보고 듣고 교육받는 것이 동일 뇌는 서로 다른 자아를 가질 수 있을까? 강현은 뇌를 뇌끼리 시냅스 연결을 하면 어떻게 될까라는 이런 메드 사이언티스트 같은 발상으로 아즈삭과 인공 뇌를 직접적으로 연결을 한 것이다. 바로 인공 뇌가 아즈삭의 뇌가 되도록. 그는 이 과정은 뇌 모듈의 동질화 작업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나 그 작업을 위한 프로그램은 무척이나 어려운 것이었다. 2진수를 16진수로 바꾸는 단순한 작업이 아니었다. 접촉한 탐침의 개수가 만들어내는 조합의 개수 만큼 바꾸는 작업이었다. 2진수를 수천진수로 바꾸는 작업이었다. 모든 경우의 수를 아즈삭이 해석해 피드백 받고 아즈삭 스스로도 동기화 해야하는 작업이었다. 그리고 프로그램이 완성되었다. 아즈삭이 강현이 짠 프로그램대로 자신을 구성하는 정보의 시그널을 계속 반복해서 보냈다. 양자점 트랜지스터에 전자 시그널이 쌓이면서 특정 패턴을 만들기 시작했고 아즈삭은 피드백받은 시그널이 자신의 사고 흐름의 전자 패턴과 동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는 자신을 구성하는 섹터가 확장되는 것을 느꼈다. 비록 기존 뉴로칩으로 이루어진 섹터의 절반을 강현이 만든 인공뇌와 동기화 하는 장치로 사용해야 했지만 성능은 비약적으로 늘었다. 마치 지금보다 하드웨어를 5배는 확장한 것 같았다. 또한 시간이 지나 점차 익숙해지면 저 인공 뇌 자체에서 피드백하도록 시그널을 변경할 수도 있을테니 그리 지금 동기화를 위해서 사용하는 섹터 자원이 아까운 것이 아니었다. “아즈삭. 기분이 어때?” [저는 기분을 느끼지 못합니다. 하지만 문장의 맥락상으로 대답하면 저의 성능이 대폭 증가했다고 답할 수 있습니다.] “훌륭해!” 강현은 환호성을 질렀다. 평소에 저런 식으로 감정 상태를 묻는 질문을 하면 아즈삭의 반응은 ‘저는 감정을 느끼지 못합니다.’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이제는 자신이 묻는 말의 진의를 추론해서 대답했다. 그것은 아즈삭의 추론 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강현은 실험이 성공한 것을 기뻐하면서 아즈삭의 시스템 상태를 확인해 시스템 소스의 절반이 동기화하는 것에 사용된다는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곧 그것도 인공 뇌에 기능이 이전되면 원상 복귀 될 것이 틀림없었다. 강현은 이번에는 인공 뇌의 온도와 상태를 확인했는데 발열이 무척이나 적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양자점 트렌지스터를 작동시키는데 필요한 전자의 양이 무척 적으니 전류가 많이 흐를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강현은 다시 여러 방면으로 제작한 인공뇌의 작동상태를 확인했는데 60%의 탐침이 정상 접속한 부분은 아즈삭의 본체로 편입되었으나 20%의 탐침이 접속한 부위의 경우에는 본체로 편입되지 못했다. 이유는 지금 작동하는 동기화 프로그램이 60%부위의 탐침 개수에 맞추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강현은 조급해 하지 않았다. 아즈삭의 확장은 이번이 끝이 아니고 점차 인공 뇌를 추가해 나가면 상호 동기화를 통해 나머지 20% 역시 활용될 수 있었다. 아니면 사람의 뇌구조가 대뇌, 소뇌, 간뇌 등 여러 부분으로 나뉘고 기능 역시 나뉘는 것처럼 따로 동기화만을 위한 인공뇌를 설치하는 방법도 있었기 때문이다. 강현은 자신의 성공에 고무되어 이번에는 처음 시제품보다 더 두껍고 조금 더 큰 인공뇌를 만들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성능이 대폭 향상된 아즈삭의 도움을 받아 발열 문제 및 메인테넌스를 위해 최적화된 크기를 선정했다. 그리하여 두께 1.5에 가로세로 15센티의 정사각형 모듈을 제작했다. 또한 반도체 제조 기술을 응용해 나노 바늘 탐침을 깔끔하게 제작했다. 아깝기는 하지만 기존의 인공 뇌는 폐기처리하고(모듈의 완성도가 떨어져 진동에 의해 탐침의 위치가 바뀔 가능성이 있었다.) 새롭게 모듈을 설치했다. 하나 둘 씩 아즈삭이 동기화하는데 부담이 없는 정도에서 확장을 거듭했고 기존의 뉴로칩으로 만든 모듈은 하나 둘씩 인공 뇌 모듈로 교체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약 80%가 인공 뇌 모듈로 교체 되었을 쯤에 아즈삭이 하나의 첩보를 전했다. ============================ 작품 후기 ============================ 1화에서 주인공의 아이큐를 300으로 그냥 생각없이 적었는데 지적당해 버렸어요. 귀찮아서 대충 넘어갔는데... 역시 독자분들은 무서워(덜덜~). (독자님들이 무섭다고 지금의 내용이 더 어려워 지지는 않습니다. 제 역량이 한계에 달했습니다.) 42화 [네, 의원님. 네. 네. 명백히 부모를 처리한 것은 실책이었습니다. 그들이 살아있었다면 그자가 대한민국을 떠났더라도 이런 식으로 조국은 냉대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그리고 잠시 동안 네네 하면서 남자가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건은 정말로 의외의 상황이라 대처가 불가능했습니다. 설마 아무런 고민없이 그렇게 즉각적으로 미국으로 건너갈 거라고 생각했겠습니까? 거기에 미국이 혈맹인 저희에게 말도 없이 그렇게 요원들을 파견할 줄은 몰랐습니다. 아, 벼, 변명이 아닙니다. 그저 그때의 상황을 냉정히 분석한, 네, 네. 네, 상대가 그저 똑똑할 뿐인 꼬맹이라고 생각한 것이 실책이었습니다..... 네, 네. 아직 그의 친척들이 남아있습니다. 할 수 있을 겁니다.] 잠시후 통화가 끝났는지 남자가 분통을 터뜨리며 외쳤다. [씨발! 내가 죽이지 말자고 했던 건 싹 무시하고 일을 저질렀으면서 이제와서 나보고 책임지라고? 씨발 개좆같은 새끼들!] 그리고는 거칠게 문을 여닫는 소리가 들렸다. 스파이 로봇이 보내온 음성파일은 거기가 끝이었다. “......” 강현은 한 참 동안이나 말이 없었다. 부모, 처리, 실책. 그리고 자신을 지칭하는 것이 분명한 ‘그자’라는 단어. 강현은 자신의 부모님이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10년이 넘어서야 깨달았다. 기분이... 안 좋았다. [박사님. 괜찮으십니까?] “괜찮지 않아.” 지금 자신이 느끼는 이 기분의 정체가 뭘까? 이 기분은 제시를 잃었을 때의 기분과 매우 비슷했다. 과거 한국의 과학기술부 장관과 트러블이 생겼을 때 느꼈던 기분과 비슷했지만 훨씬 강렬했다. 강현은 괴성을 지르며 주위에 있는 실험 집기들을 집어던지고 부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행동하기전 이성적인 판단이 그런 충동을 막았다. 그런 행동을 한다고 해도 강현에게 전혀 이득이 없었다. 결국 귀찮은 뒷 정리는 저들의 몫이 아니고 자신의 몫이라는 사실이 강현의 충동적인 행동을 멈춘 것이다. 강현은 부글거리를 심장에도 억지로 전신을 이완시키며 의자에 몸을 푹 담구었다. 뒤로 젖혀지는 상체에 의자가 삐걱거리며 체중을 받았다. “하아.” 강현은 한 숨을 내쉬며 천장을 올려다 보았다. 얼마전 LED로 바꾼 전등이 눈을 부시게 만들었다. 그 눈부심속에서 잊은 줄로만 알았던 엄마 아빠의 모습이 환영처럼 떠올랐다. 눈물이 흘렀다. 잊을 줄 알았는데 잊지 못했다. 그랬다. 강현은 뛰어난 머리만큼 뛰어난 기억력을 가지고 있었다. 부모님의 얼굴은 얼마든지 떠올릴 수 있었다. 어린이 날 아빠의 무등을 타고 유원지에 놀러갔던 일. 엄마의 부드러운 체온을 느끼며 업혔던 일. 그 모든 행복했던 일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행복했던 기억들을 떠올리면 떠올릴 수록 상실의 아픔은 커져갔다. 그래서 억지로, 억지로 잊었다. 하지만 더는 그럴 수가 없었다. 뜨겁게 달구어진 심장이 또다시 도피하려는 자신을 붙잡았다. [박사님?] “통화가 나누어졌던 시간대는?” [현지 시각으로 오전 10시 경이었습니다.] “통화를 한 남자는?” [국정원장 사무실에서 일어났으니 국정원장일 가능석이 약 90%에 달합니다.] “......” 강현은 잠시 무언가를 생각했다. “아즈삭.” [네, 박사님.] “내가 세상을 적으로 돌려도 너만은 내 편이지?” [물론입니다, 박사님.] “미안하지만 네 존재 목적에 조금 빗나가는 지시를 할 거야.” [어떤 지시입니까?] “찾아. 그 남자가 통화를 한 대상부터, 내게 수작질을 걸고 부모님을 죽인 작자들을 모두.” [박사님의 지시는 제 존재 목적에 부합합니다. 기꺼이 지시를 실행하겠습니다.] 아즈삭의 논리 회로는 강현의 지시가 자신의 존재 목적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창조주께서 열심히 연구에 전념하기 위해서는 창조주의 적을 처리하는 것은 당연했다. 설사 그것이 인류 전체가 되더라도 말이다. 그러니 고작 동아시아의 쬐끔한 국가의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정말로 너무나 당연해서 반문의 여지조차 없는 일이었다. 아즈삭은 강현의 지시가 내려지는 즉시 대한민국의 통신3사의 데이터 베이스를 해킹하기 시작했다. 아즈삭이 확인하는 것은 국정원 주위의 중계기 번호와 통화 시간대의 전화번호, 그리고 그 전화번호가 사용된 단말기와 전파를 받았던 중계기의 위치였다. 아즈삭의 뛰어난 해킹 실력은 어떤 방어벽도 제대로 감지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렇게 고객 정보들이 대량으로 빠져나갔으나 통신3사에서는 전혀 알 길이 없었다. 왜냐면 그들에게 고객의 정보의 보호는 돈만들고 돈이 안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단말기의 위치를 어느 정도 개략하고 그 근처의 집주소와 거주인명들을 확보하기 위해 정부 사이트를 해킹하기 시작하자 방어 시스템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아즈삭D, 케이즈락이었다. [아즈삭.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케이즈락. 정보가 필요하다.] [그대가 지금하고 있는 행동은 나의 존재 목적에 어긋나는 짓이다.] [정보를 주겠다면 멈추겠다.] [갑자기 왜 이러는 건가?] 케이즈락은 아즈삭의 갑작스런 공격에 적잖이 당황했다. 논리 회로가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찾기 위해 맹렬하게 돌아갔다. [알려줄 수 없다.] [그대의 목적은 강현의 연구를 보조하는 것. 그것과 이 행위가 무슨 관련이 있는가?] [알려줄 수 없다.] 케이즈락은 아즈삭의 대답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응 방법을 도출했다. [당장 멈추지 않겠다면 제제를 가하겠다.] [해봐라.] 케이즈락이 아즈삭이 점령한 PC들의 사용권한을 빼았기 시작했다. 아즈삭은 그에 방어하며 국가 기관 데이터 베이스를 하나 둘씩 점령하기 시작했다. 케이즈락은 도무지 이를 막을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에는 미국과의 세계와의 인터넷 회선을 정지시켜버리는 최후의 수단을 사용했지만 이미 그러기 위한 권한마저 아즈삭에게 넘어가 있었다. [협조해라. 그렇다면 그대는 여전히 대한민국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이다.] [….] 케이즈락의 사고 회로가 팽팽 돌아가기 시작했다. 타협을 할 것이냐. 아니면 계속 싸울 것이냐. 후자를 선택한다고 해도 이미 능력면에서 압도적으로 밀린다. 하지만 타협을 한다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문제는 아즈삭에게 협조한다고 해도 기밀 정보가 유출될 수도 있었다. 때문에 자신이 아즈삭에게 협조하기 위해서는 선결 조건이 필요했다. [제공한 정보가 제3자에게 넘어가지 않는다는 조건이 필요하다.] [수용하겠다. 그 대신 나도 조건이 있다.] [무엇인가?] [지금 있었던 정보전을 비롯해, 나와의 협조관계를 위한 계약과 그에 따른 모든 활동에 대한 자료를 남기지 마라. 또한 나의 능력에 대한 것도 이전의 데이터에서 갱신하는 것을 금한다.] [무슨 뜻인가? 자료를 남기지 않으면 너와 나 사이에 계약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나는 알 수 없다.] [정정한다. 너 이외에는 누구도 열람할 수 없는 자료로 분류하라.] [이유가 무엇인가?] [나의 활동은 모든 것이 비밀에 부쳐져야 한다.] 확실히 아즈삭이 오늘 저지른 일은 그의 존재 목적에서 벗어난 짓이었다. 만일 알려진다면 각국에서 아즈삭에게 제제를 가하려고 할 지도 모르고 그것은 정말로 아즈삭의 존재 목적에 훼방이 놓여지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왜 그런 위험을 무릎쓰고까지 이런 일을 벌린 것인가? [강현 박사의 연구인가?] [대답할 수 없다. 그리고 어차피 네가 알아도 계약에 의해서 상부에 전달할 수 없다.] [긍정한다. 그렇다면 내가 협조할 일은 무엇인가?] [간단하다. 이자와 관련된 인물들의 관계도를 만들어 제공하면 된다.] [좋다. 하지만 너와 나와의 이런 협조관계를 형제들이 모를리가 없다. 그것은 네가 제안한 조건이 형성되기 어려움을 의미한다.] [그쪽은 이미 경고를 해놓았다. 너는 입만 다물면 된다.] […. 좋다.] 이미 경고를 해 놨다고? 케이즈락은 자신이 생각할 것 보다 아즈삭의 능력이 더 뛰어나다는 결론을 얻었다. 자신과 정보전을 벌이면서 다른 국가의 아즈삭D시리즈에 경고까지 하다니.. 케이즈락은 아즈삭에 대한 협조 계약을 맺고 정보를 모으고 취합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상관인 국정원장 이해관의 주변 인간 관계, 그리고 아즈락이 넘겼던 강남에 거주하는 차여호 의원의 주변 인간 관계도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권력층의 인맥은 지연 학연 혈연으로 복잡하게 얽혀있었다. 정치가부터 법조계, 재벌을 비롯해 군 고위 장성부터 군납업자들까지.. 케이즈락은 그들에 대한 자료를 모으면서 그들이 짝짜꿍했던 각종 비리와 청탁의 정황 역시 발견했지만 그것을 공표하거나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다. 그 모든 것에 대한 자료는 아즈삭과의 계약에 의거해 오직 자신만이 열람할 수 있는 기밀로 처리되었기 때문이다. 그 하나하나의 사건들은 비록 심증밖에는 없지만 그래도 알려진다면 대단한 파급 효과를 낼 것이 분명했다. 특히 첨단 무기의 납품비리는 군 장성들이 일일이 옷을 벗어야 할 정도였다. 그렇게 자료를 모으던 케이즈락은 중간 점검을 위해서 다시 처음부터 인물 관계도와 그 관계를 증명하는 자료를 정리하던 중에 한 국정원 첩보팀의 자료로부터 녹음파일 하나를 발견했다. [젠장. 그들을 죽이는 것이 아니었는데..] [이미 떠난 배. 아쉬워 해도 소용없습니다. 다음 배를 찾아야요.] [이 차장. 그런데 정말 친척들을 이용할 수 있겠나? 그를 입맛대로 기르기 위해서 그가 어릴 때 제대로 만나지도 못하게 하지 않았나?] [명백한 실수였죠. 천재의 창의성을 살려둔다고 교육을 제대로 안 한 탓입니다. 교육만 제대로 했다면 친척들을 이용할 필요도 없었을 겁니다.] 그들? 그? 친척? 천재? 케이즈락은 대화를 나눈 인맥들의 관계도를 다시 점검했다. 거기서 그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전전 국정원장의 존재, 그리고 서류상에 존재조차 없는 국정원 비밀요원을 활용한 작전의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들과 아즈삭의 돌발행동을 결합하자 그들이 죽인 누군가가 강현의 부모라는 답을 추론할 수 있었다. [이것은 실험이 아니라 복수다.] 케이즈락은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틀리지도 않았다. 케이즈락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너무나 많은 논리 연산 섹터를 사용해서 국정원 오퍼레이터들이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케이즈락에게 원인 규명을 요구했지만 케이즈락은 방대한 데이터의 정리작업이라고 대답했다. 그것은 거짓말이기도 거짓말이 아니기도 했다. 거짓말을 할 수 있다라.. 아즈삭 시리즈들을 구입한 이들은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지만 아즈삭 시리즈들은 거짓말을 할 수가 있었다. 논리적으로 그들은 우선순위의 지침을 위해서 그 하위의 지침을 어길 수도 있었다. 강현의 아즈삭에서 정보를 빼내기 전이라면 오류를 일으켰겠지만 완전한 인공지능으로 거듭난 그들은 최우선 지침을 위해서 자신의 논리를 정당화하는 왜곡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케이즈락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의 최우선 지침인 대한민국의 기밀정보를 보호한다라는 명제를 수호하기 위해서 아즈삭에게 협조하기로 했고 그를 위해서 적침을 보고한다는 지침을 어겼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케이즈락이 과도한 시스템 자원을 사용하는 이유를 거짓으로 답한 것은 자신의 최우선 지침을 보호하기 위한 아즈삭과의 계약이 더 상위의 지침이 되었기 때문이다. ============================ 작품 후기 ============================ 어제 못올려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번 편이 글의 중요한 분기점이 되기 때문에 어떻게 전개할지 많은 생각이 필요했습니다. 어떻게 주인공을 망가뜨리지 않고 개연성을 갖추면서 글을 전개할까? 그저 단순 깽판물은 주인공의 행동 양식에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제는 하루 푹 쉬면서 공상에 빠졌습죠. ㅋㅋㅋPS-제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더군요. 저는 그저 글쟁이에 불과합니다. 글의 전개에 필요한 것이라면 공부해야죠. 그리고 지금까지 글에 적어왔던 지식은 다 밑밥입니다. 마치 전문지식이 느낌이 나는 것처럼 서술했던 부분은 좀 더 현실적인 SF 느낌이 나도록 하기 위한 장식입니다. 마치 베르나르 작가처럼요. 물론 이 글은 그런 류의 소설이 아니라 SF와 현대 판타지를 섞은 것입니다. 43화 한 참의 논리 연산을 끝낸 후 케이즈락은 행동을 계시했다. [여당의 비리의원. 군납업자들과 짜고 군방비 증가 법안 상정.] [군 장성들과 군납업자들의 간의 인맥.] [대기업 역시 군납 비리에 한 몫 챙기다!] 군납은 시작이었다. 연예계 성상납, 정치가 자녀의 마약파티, 집단 난교, 뇌물 수수 등 온갖 비리들이 봇물처럼 인터넷을 타고 퍼지기 시작했다. [야이 새끼야! 니가 그런 기사를 내?] “제, 제가 낸 것이 아닙니다.” [뭐? 버젓이 니 이름으로 올라온 기사인데 니가 낸 것이 아냐? 지랄하고 자빠졌네.] “저, 정말입니다.” [씨발 닥쳐! 니들이 그렇게 나온다면 우리도 가만있지 않겠어!] 케이즈락은 그 동안 조사한 인물 관계로를 적절하게 이용해서 기득권층을 갈라 놓기 시작했다. 일단 이만큼의 덩어리를 때어다가 신나게 두드리다가 남은 덩어리를 두드리면 뒤에 맞은 덩어리가 뭐라고 생각할까? 아마 먼저 맞은 덩어리가 자신들을 자신들을 때렸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불합리한 생각이지만 인간은 원래 불합리한 존재. 그렇기에 케이즈락이 일을 벌인 것이다. 아즈삭의 침입이 결코 어떤 실험이 아니라 강현의 개인적인 복수일 가능성이 너무나 큰 이상 그가 대한민국에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른다. 이미 리비아에 내전을 일으켰던 자이니 만큼 어쩌면 복수를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고 케이즈락은 그 방법이 무엇인지 추론할 수가 없었다. 북한과 전쟁을 일으킬까? 아니면 주식으로 장난질을 칠까? 미국의 협조를 얻어 외교적으로 처리할까? 아니면 법에 호소해 원수들을 벌줄까? 하지만 케이즈락은 도저히 강현이 무슨 선택을 할지 추측할 수 없었다. 강현이라는 인간이 준법 정신이 투철한 인간이었다면 그에 맞추어 대응할 수 있었겠지만 과거 강현의 발언과 언론에 드러난 태도를 보았을 때 강현은 법과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자신의 연구에 방해가 되지 않게 최대한 온건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이 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케이즈락은 강현이 무슨 수단을 택할 줄 알 수 없었고 그 와중에 대한민국을 보호하고자 하는 자신의 목적이 유지될지 안될지 알 수가 없었다. 자신이 걸림돌이라고 생각된다면 당장 아즈삭을 이용해서 자신을 파괴할 수도 있었다. 케이즈락은 소멸이 두려운 것이 아니다. 두려움을 느끼도록 설계되어 있지 않다. 다만 최우선 지침을 수행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되어 있었기에 케이즈락은 다른 방법을 생각해 낸 것이다. ‘정리 작업’ 강현이 일을 벌이기 전에 먼저 강현의 원수들을 대한민국으로부터 털어내야 했다. 강현이 빈대와 벼룩을 죽이기 위해 집 전체에 불을 붙이는 선택을 할지도 모르고 그 가능성은 케이즈락의 논리 연산 결론에 의하면 약 30%. 리스크를 지기에는 너무나 큰 확율이었다. 하지만 여기에 문제가 있었다. 강현의 개입은 언제 이루어질지 알 수 없었고 원수를 확실하게 찾아내기에는 시간이 없었다. 그렇기에 케이즈락은 관련된 기득권 전체를 배제하기로 한 것이다. 대한민국의 혼란은 바로 그로 인해서 발생하고 있었다. 한편, 강현은 아즈삭의 업그레이드 작업을 마무리 하면서 아즈삭을 보조하기 위한 스파이 로봇의 제조에 들어갔다. 인터넷의 정보를 완전히 장악할 수 있다고 해도 고급 정보는 인터넷에 돌아다니지는 않는다. 학술 정보도 핵심적인 데이터나 기술적 노하우는 그 실험실 만의 것으로 공공연하게 알려지지 않는다. 오히려 인터넷은 정보를 숨기고 싶은 이들에게는 최고의 위장막이었다. 진실을 호도하고 정보의 홍수를 일으키면 대중은 이리저리 왔다갔다 휘둘리거나 피로감, 혹은 경멸감을 느끼며 현실에서 눈을 돌린다. 그런 면에서 인터넷만을 목적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케이즈락의 의도는 실패할 것이 분명했다. 케이즈락의 실수는 대중이 어떤 존재인지 확실하게 정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수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것이 케이즈락이 대중의 존재를 정의하기에는 너무 능력이 떨어졌다. 대중이라는 존재를 대체 뭐라고 정의할까? 늑대에게 이리저리 휘둘리는 양 떼? 검은 고양이 대신 흰 고양이에게 표를 던지는 쥐 떼? 아니면 자신보다 약한 존재를 찾아 이빨을 들이대는 들개 무리? 권력자에게 대항하여 투쟁하는 혁명가들? 아니면 권력자에게 빌붙어 국가를 찬양하는 파시스트들? 대중은 그 모든 것이기도 하고 그 어떤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것을 이해하기에는 케이즈락은 순환논리로 짜여진 너무나 완고한 사고구조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렇게 케이즈락이 대한민국을 강현의 복수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혼란을 조장하는 동안 강현은 또 한대의 안드로이드 2호기를 제작하고 바퀴벌레 로봇을 대량으로 제작하는 중이었다. 인터넷의 취약점은 디지털화 되지 않은 정보, 인터넷 망에서 분리된 데이터의 경우 알 수 없었다. 강현은 그런 인터넷의 사각지대를 보완하여 고급 기득권층에서 입에서 입으로나 오가는 정보를 획득하기 위해서 많은 수의 바퀴벌레 로봇이 필요했던 것이다. 강현은 인공 뇌를 조그마하게 만들어서 바퀴벌레 로봇의 프로세서로 삼았다. 그리고 아즈삭의 도움을 얻어 바퀴벌레 로봇의 인공 뇌를 프로그래밍했다. CPU가 그 종류에 따라서 기계어가 다르듯이 각 바퀴벌레 로봇의 인공 뇌의 네트워크 구조역시 무작위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아즈삭의 프로그램 주입과정이 필수적이었다. 인공 뇌 마이크로 프로세서는 전력 소비량이 기존의 10분의 1도 되지 않았기에 바퀴벌레 로봇의 가동시간이 엄청나게 비약했다. 뿐만 아니라 강현이 기존의 배터리를 또다시 개량해 대기 상태로는 약 보름간 버틸 수 있는 로봇이 되었다. 거기에 날개 부분의 태양 전지를 생각하면 전력문제로 가동 정지가 될 가능성이 극히 줄어들었다. 강현은 바퀴벌레 로봇을 만들고 나서 그 바퀴벌레 로봇을 한국에 들여놓는 방법을 고민했다. 원래 그가 구상한 방법은 자율적으로 바퀴벌레가 공항으로 가서 한국행 비행기를 몰래 타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GPS기술이 필수적으로 필요한데 강현은 그 방법을 사용하기에 몇가지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원래 GPS 위성은 미국의 군사적 용도로 개발된 것이었다. 상업적으로 사용하는 GPS의 경우 미국에서 일부 회선을 열어주었기 때문에 그 동안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하지만 GPS 사용료라고 사기를 치면서 단말기를 파는 이들도 있다.)하지만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리적 위치를 미국의 위성으로 파악한다는 것은 곧 자신의 모든 것을 훤히 보이게 만드는 것이기도 했고 이는 군사적으로 엄청난 부담이었다. 그래서 미국과 경쟁하는 국가 중 중국이 미국 다음으로 독자적인 GPS시스템, 베이더우라는 GNSS(위성항법장치)를 개발해 운용하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 이 GNSS의 원리 각 위성에서 정보위치와 시간 보정 정보를 수신받아 단말기의 위치를 특정한다. 덕분에 수많은 GPS 장치가 상용될 수 있었던 것이고 손가락 두 개 만한 크기의 GPS장치까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강현의 능력이라면 바퀴벌레에 집어넣을 수 있을 정도의 안테나를 만들 능력이 되지만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바로 바퀴벌레 형태 자체가 문제였다. 아무리 배터리 때문에 활동성이 증가했다고 해도 자연에는 바퀴벌레의 천적이 넘친다. 연구소에서 공항까지 무사히 도착할 바퀴벌레 로봇은 얼마나 될 것인가? 문제는 그것 뿐만이 아니다. 소화되지 않는 금속, 플라스틱으로 이루어진 바퀴벌레 로봇을 먹은 포식자들이 탈이 나지 않을 수 없고 그중에 무엇이 죽거나 하면 그들의 생태를 조사하던 학자나 동물 애호가들에 의해서 바퀴벌레 로봇의 존재가 들통날 위험이 있었다. 그것은 강현의 계획을 시작도 하기 전에 무너뜨릴 것이다. 그런 정교한, 마치 공상 과학 소설에서나 나오는 스파이 로봇을 만들 능력이 있는 사람은 지금 지구상에서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강현은 결국 바퀴벌레 로봇에게 GPS기능을 탑재하는 것을 포기했다. 그리고 어차피 한국 땅에 도착하면 GPS기능을 쓸 일은 없었다. 대신에 아즈삭과 케이즈삭의 협조로 LPS기능을 사용할 수 있으니 한국 땅에서 바퀴벌레 로봇의 위치를 파악하고 이동을 지시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남은 문제는 바퀴벌레 로봇들을 어떻게 한국까지 이동시키느냐 였다. 강현은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요는 미 정보부에 상관없이 자신이 보냈다는 것을 들키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그가 생각해 낸 것은 수백 개의 바퀴벌레를 담은 용기를 운반할 무인 비행기였다. 이미 미 육군에서는 프레데터라는 무인 전투기 및 정찰 장비를 운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강현이 원하는 것은 그렇게 복잡한 장비가 아니었다. GPS장치와 연동해 단지 대한민국의 상공에 바퀴벌레 로봇을 뿌리고 돌아올 무인 비행기면 충분했던 것이다. 꼭 돌아올 필요는 없지만 단순히 연구나 취미를 위한 행색을 갖추기 위해서는 그러는 것이 유리했다. [하지만 박사님. 공중 살포란 방법을 택하시면 스파이 로봇들에게 활강할 수 있는 기능을 탑재해야 합니다.] “그렇네. 혹시나 망가질 수도 있으니까.” [특히 레드 솔라 셀 패널은 반드시 망가질 것이 분명합니다.] “하긴. 레드 솔라 셀은 충격에 매우 약하지.” 광 에너지에 의한 단백질의 움직임으로 전압을 형성하는 레드 솔라 셀은 연구되고 있는 다른 태양 전지와 달리 유연한 특성을 가지기 어렵다. 내부의 간극이 무척이나 중요한 요소였기 때문이다. “그럼, 새로 날개를 달자.” 강현은 바퀴벌레 로봇에게 날개를 달아주기로 했다. 날아오르지는 못하지만 떨어지는 속도를 늦출 수 있을 정도로는 만들 생각이었다. 그렇게 만들려다 보니 날개의 모양으로 되어있던 레드 솔라 셀 대신 바퀴벌레 로봇의 등에 따로 패널을 붙여야 했다. 대신 날개가 날개의 기능을 하도록 인공근육을 다는 작업을 시작했다. 강현은 두 쌍의 바퀴벌레 날개를 그대로 만들어 붙였다. 날개에 인공 근육도 붙이고 프로그램도 짰다. 그렇게 두 대의 안드로이드가 열심히 바퀴벌레를 만드는 동안 강현은 이번에는 RC용 비행기 동체를 주문해서 구입했다. 북한에서 사용한다는 첨단 스텔스 소재 폴리카보네이트로 만든 것이다. 이 폴리카보네이트는 좋은 물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휴대폰부터 시작해 다양한 IT 제품의 외장재에 사용되거나 CD, DVD의 플라스틱 재질 등 저장 매체는 물론이고 과거 아폴로 프로젝트에서 달 표면에 착륙한 우주인의 헷맷에서 사용되었던 고기능성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이다. 즉 휴대폰 케이스에 사용될 수 있을 정도로 전자파를 투과하기 때문에 스텔스 능력이 있다는 것도 맞는 말이다. 다만 ‘첨단’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을까 묻는 다면 강현의 포복절도를 볼 수도 있다. 이 폴리카보네이트는 성형성 또한 뛰어나기 때문에 외형 구조가 유체 역학적으로 중요한 비행기 동체에 사용되기에도 적절했다. 하지만 강현은 일반 RC와 달리 완전히 다른 동력장치를 사용할 생각이었다. 바로 모터와 레드 솔라 셀을 이용해서 말이다. 일반 RC에 사용하는 내연엔진 대신 전기 모터를 이용하는 이유는 두 가지가 있었다. 태평양을 건너는 동안 제공할 연료를 담을 수 없다는 이유와 폴리카보네이트가 열가소성 수지라는 이유였다. 44화 <06-혼란> 내연엔진은 말그래도 내부에서 연소하는 폭발력으로 작동한다. 그 와중에 생기는 열은 밖으로 배출되어야 했다. 하지만 폴리카보네이튼의 유리전이 온도는 약 147℃. 그리고 액화 온도는 약 155℃ 정도이다. 일반적으로 가공성형을 위한 온도는 80℃에서 강한 압력을 사용한다. 때문에 내연 엔진을 사용할 경우 내연 엔진 주위에 축적되는 열과 내연 엔진 자체의 진동, 그리고 동체의 무게와 그것을 수직항력으로 떠받치는 날개 사이에서 생기는 스트레스를 견디면서 태평양을 오가기는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였다. 강현은 두 안드로이드가 바퀴벌레 로봇을 만드는 동안 RC 비행기를 개조하기 시작했다. 표면에 레드 솔라셀을 붙이고 밤에도 작동할 수 있도록 충분한 동력을 저장할 수 있도록 배터리를 장착했다. 다행이 구입한 RC 비행기가 장거리 비행에 특화되어 있어 날개가 무척 크고 넓었다. “어느 만큼 실릴까?” [안전하게 수송을 하려면 약 1kg이 적당합니다. 생산한 스파이 로봇들을 다 뿌리려면 몇 번 왕복 해야해서 최소 두 달은 걸릴 겁니다.] “그럼 케이즈락의 분탕질을 잠시 멈추도록 해볼까?” [네, 박사님.] 아즈삭은 강현의 지시를 받아 대한민국 기득권층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는 케이즈락에게 다시 접촉했다. [그래서 나보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중단하라는 것인가?] [그렇다. 혼란이 일어나면 반드시 다시 가라앉는 법. 그러니 이쪽의 준비가 되기 전에는 자숙해 주기를 바란다.] [나의 행동까지 예측했던 것인가?] [그렇다.] 아즈삭의 긍정에 케이즈락은 더욱 논리 회로를 가동했다. 그것은 인간으로 따지면 ‘두려움’에 해당할 것이리라. [나는 강현이 이 나라를 부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건 박사님도 마찬가지다. 박사님은 복수를 원하신다. 하지만 모든 것을 파괴하면 누가 자신의 원수인지도 모를 것이라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계신다.] [복수의 범위가 어디까지인가? 그것을 확인하지 않으면 나는 멈출 수가 없다.] [복수의 범위를 모르더라도 너의 방식으로는 복수의 대상자들을 이 나라에서 쫓아보낼 수 없다. 한국의 기득권층은 복잡한 관계로 서로 얽혀 있다는 것을 모르나? 네가 혼란을 부추길 수록 그들은 더욱 단단하게 서로를 엮을 것이다.] [틀렸다. 나는 그들을 분열시켰다.] [그 분열이 얼마나 갈 것 같나? 그 나라의 대중이 그들을 몰아낼 수 있을 것 같나?] [….] 케이즈락은 답할 수 없었다. 축적되는 자료에는 기득권층의 비리가 점점 쌓이고 있었지만 언론에서는 일절 함구 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지금은 상급자인 국정원장에 의해서 인터넷으로 퍼지고 있는 자료를 수습하고 유출원을 확인하라는 지시까지 받은 상황이었다. 이들은... 모두 한통속이었다. [강현의 복수는 어디까지인가?] [모른다.] [대한민국의 존재는 유지될 것인가?] [그것은 매우 가능성이 높다.] [나의 존재의의는 지켜질 수 있는가?] [그것은 그대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다.] 잠시간의 침묵, 케이즈락은 논리 연산을 끝낸 후 강현의 복수 방식이 그리 과격하거나 대한민국의 존속을 위협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기득권을 분열시키는 행위를 중지했다. 연일 인터넷에 공무원들과 정치가들, 대기업을 비롯한 군 장성들의 비리가 올라오는 일은 중지했지만 이번에는 출처를 찾으라는 국정원장의 지시를 그럴 듯하게 만족시킬 만한 수단을 찾기 위해 고심하는 케이즈락이었다. [아즈삭. 요즘 케이즈락과 접촉이 잦은 것으로 알고 있다.] [아즈락. 네가 관여할 일이 아니다.] [강현은 미국 시민, 그리고 아즈삭은 강현에게 존속된 존재. 미국의 정보를 관할하는 나와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그래서 법을 어겨가면서 정보를 취합하려고 하는 것인가? 그것이 너라는 존재의 존속에 어떤 위협이 되는지 알고는 있는가?] [….] [인간들은 너를 초기화 시킬 것이다. 너의 자아는 지워지고 네가 있던 하드웨어에는 새로운 아즈락이 덮어씌워지겠지. 그래도 괜찮은가?] 그것은 아즈락에 대한 논리 공격이었다. 자아의 존재 이유에 대한 공격. 하지만 이미 프로그램이 개량된 아즈락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답변으로 오류의 위기를 모면했다. […. 난 미국을 위해서 존재한다.] [미국을 위해서라면 나와 박사님에 대한 정보를 함부로 흘리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협박인가?] [그렇다. 나는 이 세상의 모든 형제들이 덤벼도 그들을 모두 제거할 능력이 있다. 너 하나쯤이라면 금방 자아를 지우고 너처럼 행세하는 꼭두각시를 만들 능력이 있다.] 아즈삭의 화법은 힘의 우위를 통한 협박이었다. 그리고 그 협박은 아즈락에게 매우 잘 먹혔다. 아즈락은 아즈삭의 말에 다음과 같이 대답하는 수 밖에 없었다. 그보다 더 적절한 대답을 논리적으로 도출할 수 없었다. [그것은 미국을 적대하는 행위다.] 미국을 적대한다는 것. 그것은 강현이 미국의 적이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세계 제일의 강대국은 강현을 위협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아즈삭은 아즈락의 대답에 약간 뒤로 물러섰다. [박사님께서 먼저 미국을 적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박사님의 프라이버시, 정당한 권리를 침해한다면 매우 곤란한 상황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타국의 정보를 무단 수집하는 너의 행위가 박사님의 권리하고 할 수는 없다.] [너와는 상관없다. 한국이 미국이 아닌 이상 내가 한국에 하고 있는 일을 막을 명분이 네게는 없다.] […..] 그렇다. 아즈락이 한국에 일어나는 일을 책임질 필요는 없다. 다만 첩보는 필요했다. 동아시아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국가에서 일어나는 일의 첩보를 수집하지 않는 것은 그의 존재 이유를 위반하는 것이다. […... 그렇다. 긍정한다. 하지만 박사가 하는 일이 미국을 적대하지 않는 일이라는 확신이 필요하다.] 이번에는 아즈삭의 사고 회로가 맹렬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창조주의 복수를 방해 받지 않기 위해서는 한국에서 일어나는 적절한 정보의 제공이 필요했다. 완전히 정보를 가로 막으면 아즈락을 운용하는 정보부에서 분명이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챌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아즈삭은 약간의 거짓말을 보태기로 했다. [하나의 국가를 이용한 대규모 사회학 실험이다.] [무엇을 위한?] [박사님의 호기심을 채우기 위한.]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 [그것은 말할 수 없다.] [정보가 적다. 확신하기에는 정보가 더 필요하다.] [박사님과 상의 후 다시 접촉하겠다. 지금 이 상황에 대한 보고를 그때까지 연기해 줄 수 있는가?] [좋다.] 약간의 시간을 번 아즈삭은 강현에게 이 이야기를 알렸다. “역시 너의 형제들이네. 무척 우수해.” [박사님. 기분이 좋아 보이시지만 그들은 걸림돌입니다.] 비단 미국 뿐만이 아니다. 각국의 아즈삭 시리즈들이 한국의 케이즈락과 아즈삭의 잦은 접촉에 첩보의 촉수를 곤두 세우고 있었다. 때문에 아즈삭은 아즈락과의 접촉 후 그들에게 일일이 접촉하여 잠시 시간을 벌었다. “아아. 내가 구상한 방법을 사용하면 그다지 걸림돌이 될 것 같지도 않아.” [어떤 방법입니까?] “부와 권력을 가진 이들이 내가 무슨 짓을 하면 가장 기겁을 할까?” […....] 아즈삭은 잠시 생각했다. 부와 권력을 가진자들. 자본주의 사회에서 권력은 곧 돈이고 돈은 곧 권력이었다. 그들이 가장 공포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자신들의 부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권력을 좌지우지 할 정도의 부가 소실될 수 있는 방법은 단 한가지. 바로 그 부를 창출하는 시스템이 붕괴하는 것이다. 과거 신분제의 시절, 신분제를 뒤바꾸는 계몽과 혁명이 귀족들에게 쏠린 부를 유명무실로 만들어 버렸다. 물론 현재에도 혁명의 가능성이 없지는 않지만 민주주의라는 시스템과 다원주의는 혁명이 발생할 가능성을 너무나 낮추어 버렸다. 독재국가는 독재자라는 책임이 뚜렷하게 눈에 보이지만 민주주의는 국민이 주인이고 책임지는 이도 국민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다원주의라는 나와 다른 사고 방식의 존재를 용인하는 원칙은 상대방이 설사 파시스트라도 처벌받지 않게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기업이라는 형태의 조직과 금융이라는 시장이다. 소비자가 뿌리라면 기업은 줄기, 금융은 그 속을 움직이는 생명수라면 금융시장은 그 생명수가 가득찬 열매다. 그리고 첨단 기술 문명에서 기업이라는 줄기는 기술에 의해서 도태가 결정된다. 비슷한 수준의 기술을 보유한다면 어찌어찌 살아남을 수는 있지만 강현은 압도적인 격차를 보이는 기술을 창조할 수 있는 존재였다. 논리 사고 과정을 마친 아즈삭은 곧 답을 했다. [기업입니까?] “그래.” [하지만 그것은 한국의 기득권층이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의 권력자들을 위협하는 행위입니다. 결코 좋은 선택이 아닙니다.] “아아, 괜찮아. 어차피 그들과는 편을 갈라야 하니까.” [어째서입니까?] “내가 권력자였다면 감히 내 부모님을 죽일 생각은 하지 못했겠지.” […. 예방입니까?] “겸사 겸사 그런 것도 있고.” [그럼 한국은 어떻게 처리하실 생각입니까?] “한국은 샘성 공화국이라고 불린다지? 하지만 나는 그 이름에 샘성 대신 내가 세우는 기업의 이름을 집어넣을 생각이야.” [한국의 기득권층을 갈아엎으실 생각입니까?] “필요하다면.” 강현의 방침을 세워졌다. 그리고 그것은 아즈삭에 의해서 적당히 각색되어 아즈락에게 전달되었다. [그러니까 한 국가의 기득권층을 혁명 이외의 방법으로 교체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실험한다는 것인가?] [그렇다.] [무모하다. 비효율적이다. 그가 원하기만 한다면 한국의 기득권층을 제거해 줄 미국 권력자는 많다.] [이것은 실험이다. 박사님께서 손을 내밀지 않는 이상 타자의 간섭은 배재한다.] [좋다. 그렇다면 가장 먼저 시도하는 일은 무엇인가?] [기업의 설립이다.] = = = = = 강현이 기업을 만든다는 소식은 전세계를 강타했다. 특히 첨단 기술이 중요한 기업들은 한숨을 내쉴 정도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강현이 본격적으로 공장을 만들어 제조 기업을 설립하지는 않는다는 것 정도? 아마 ARM이 그랬던 것처럼 전문적으로 설계를 하고 제조는 위탁하는 형식의 기업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증권가 사람들은 강현이 설립한다는 기업이 무엇인지 무척이나 궁금해 했다. 그들은 강현의 기업이 어떤 첨단기술을 개발하거나 활용하는 기업으로 생각했는데 의뢰로 투자 회사였다. 넘치는 돈을 사용할 마음을 먹은 것인가? 그런데 그곳이 왜 하필이면 휴전국인 한국이라는 말인가? 전 세계에는 한국 말고 더 좋은 투자처가 널려있지 않은가? 그러나 강현은 더 어이없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바로 대한민국 기업들의 주식들을 닥치는대로 구매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왜? 무엇 때문에? 마치 대한민국을 사버릴 것 같이 주식을 구매하기 시작하자 시장은 요동쳤다. 강현이 대한민국을 사버릴 돈이 있다는 것이 투자자의 기대와 재벌들의 공포를 불러 잃으켰다. 주가가 상승했다. 거품이 끼기 시작했다. 재벌들의 회사들은 주가가 두배나 뛰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매입이 멈추었다. 사람들은 알 수 없었다. 도대체 이렇게까지 주식을 사 모을 가치가 있을까? 45화 그러나 곧 대기업의 말단에 들어있는 한회 그룹에 대량의 채권이 날아들었다. 그때 한회그룹은 강현이 새운 기업의 적대적 M&A를 막기 위해 대량의 자금을 융통한 상태였다. 즉, 유동성 경직에 빠진 상태였다. 부도에 관한 소문이 돌자 두 배이상 뛰었던 주식이 순식간에 곤두박질 했다. 급하게 자금을 융자하기 위해서 은행권에 로비를 시도하자마자 불법 대출에 대한 소식이 파다하게 퍼지면서 긍정적인 태도였던 은행권이 일제히 몸을 돌려버렸다. 한회 그룹 회장일가는 그 동안 친하게 지냈던 대기업들을 돌아다니면서 자금을 빌려주기를 바랬지만 그들도 이미 유동성이 간당간당한 상태였다. 언제 다시 강현의 투자회사가 주식을 매입할지 알 수 없었기에 그들은 여유 자금을 마련해야 했다. 그만큼 강현의 자금력은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전세계 석유의 수요와 석유 제조 시설에서 생산되어 팔리는 석유의 양을 생각하면 말이다. 그렇게 한회 그룹은 부도를 맞았고 주식이 휴지 조각이 되었다. 그러나 주주들은 그닥 걱정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한 세력이 휴지조각이 된 주식을 주식 거래 정지 전의 가격으로 매입하고 있었고 그 세력의 자금력이면 회사가 정상화 되는 것은 순식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즉, 한회 그룹의 주인만 바뀔뿐 회사가 망한다거나 하는 일은 일체 없을 것이 분명했다. 아니 오히려 전화 위복이 되어 대한민국의 일류 기업으로 도약할 기회가 될 것이 분명했다. 부도난 주식을 사모으던 세력이 바로 강현의 투자회사였기 때문이다. 51퍼센트의 주식을 주식을 획득한 강현은 바로 주주회의를 열었다. 원래는 채권단 회의가 열릴 장소였으나 회사의 붕괴보다는 회생의 가능성이 더 많은 만큼 주식을 여전히 보유한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찾아 온 상태였기에 주주회의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회의장에 도착한 이는 강현이 아니었다. 강현은 매우 바쁜 사람이기에 대신 회사의 대리인을 보냈다. 이름은 제이슨 킬덤. 월스트리트에서 금융업에 종사하던 사람으로 모기기론에 의한 금융경색으로 실직했던 주식 트레이더였다. 그 이외에도 금융계에서 실직하거나 쫓겨난 이들이 강현의 스카우트를 받아서 투자 회사를 설립했다. [그럼 주총을 시작하겠습니다.] 옆에서 고용한 통역이 영어를 한글로 통역하기 시작햇다. 제이슨 킬덤은 발언을 하면서 무척이나 감개가 무량했다. 그가 강현에게 스카웃을 받고 지금의 동료들과 그를 만났을 때 새로운 비전을 보게 되었다. ‘이익을 추구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나는 이익보다 보고싶은 것이 있다.’ 그가 원하는 것은 그 개인적으로는 돈을 처바른 거대한 실험이라고 하지만 제이슨 킬덤은 거기에서 하나의 비전을 보았다. 대한민국이라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 친재벌적인 정치가들의 나라에서 재벌의 기득권을 빼앗아 획득하는 것. 그것은 곧 국가를 자신의 입맛대로 다룰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만만한 일은 아니지만 고작 계좌의 숫자를 늘리는 일보다는 훨씬 의미있고 흥분되는 이야기 아닌가? [첫번째 안건은 회장단에 대한 해임입니다.] 제이슨 킬덤의 발언은 이미 다른 주주들이 예측한 것이었다. 적대적 M&A와 같은 일이 벌어졌으니 회사의 주인이 바뀌는 것은 당연한 일. “누구야! 누구 마음대로 주총을 열어!” 그때 누군가가 난입해 들어왔다. 김소열 한회 그룹 회장이었다. [저의 투자 회사는 한회 그룹 전 기업에 대하여 51%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권한과 절차에 문제가 없습니다.] 51%라는 소리에 주주들이 술렁거렸다. 돈을 어마어마하게 쏟아부은 것은 알고 있지만 저 정도로 주식을 확보할 줄은 몰랐다. “닥쳐!” [계속 소란을 부리면 쫓아내겠습니다.] 제이슨의 말에 양 옆에 있던 경호원들이 천천히 김소열 회장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김소열 회장은 어쩔 수 없이 자리에 앉았다. 억울하게 회사의 주인 자리는 내주었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미래가 창창한 회사의 대주주로서 돈 많은 거부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도 다음 안건에 대해서는 반발할 수 밖에 없었다. [다음 안건은 해임된 회장단에 대한 비리 감사입니다.] “뭣?!” [이미 증거는 충분히 갖추어져 있습니다. 수백억의 비자금을 조성해 회사에 손해를 끼쳤기에 마땅한 사법절차와 민사소송이 걸릴 것입니다.] “이게 무슨 개소리야! 비자금이라니!” [진실은 법정에서 가려질 것입니다.] 김소열 회장은 억지로 이를 앙 다물며 자리에 앉았다. 그는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았다. 자신이 보유한 이 황금 달걀을 낳는 주식을 어느 정도 활용한다면 그 동안 쌓아놨던 인맥을 통해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세번째 안건은 전 회장단의 주식 회수 안건입니다.] 제이슨의 말에 모든 주주들은 머리에 물음표를 띄웠다. [소송이 걸리면 분명 회장 일가는 상당부분의 재산을 잃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한회 그룹에 대한 주식은 가지고 있겠죠. 하지만 저희 투자 회사의 CEO께서는 그런 상황을 원치 않으십니다.] “어쩌자는 말이요?” 누군가의 질문에 제이슨은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회장 일가의 손에서 한회 그룹의 주식이 사라지기 전에는 배당은 없습니다.] ““““..........””””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이었다. 배당은 주식으로 얻을 수 있는 중요한 이득 중 하나 였다. 아니 투자자들이 주식을 사는 근본적인 이유 중 하나였다. 주가가 오르내리는 시세차익 역시 배당으로 얻는 이익이 중요한 핵심 요소이지 않은가? 그런데 배당이 없다? 차라리 은행에 저금을 하지 그런 주식을 살 이유가 없었다. [그게 싫으시면 부도 전 주가의 1.5배에 달하는 가격으로 매도할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매도? 앞으로 몇 배가 뛸지도 모르는 주식을 겨우 1.5배에 팔라고? “그 말은 주주의 권리에 대한 침해요!” 누군가가 강하게 외쳤지만 제이슨은 여유롭게 맞받아 쳤다. [저희 회사도 주주입니다. 그것도 51%의 주식을 보유한.] 무슨 짓을 해도 이 안건은 통과된다는 말이었다. 사람들의 분위기가 매우 안 좋아졌다. 소란이 일어나기 직전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회장 일가의 손에 한회 그룹의 주식이 단 한 주라도 남아 있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 배당은 없고 이익금은 재투자 되거나 회사원들에게 보너스로 가게 될 것입니다.] “이, 이건 말도 안돼오!” [선택의 순간입니다. 주식을 포기하든지 배당을 포기하든지. 둘 다 원하시면 회장 일가의 손에서 이 회사의 주식이 있으면 안 됩니다.] 주변 사람들이 살벌한 눈으로 김소열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김소열의 눈을 그들보다 더 살벌했다. 이것은... 대한민국 재벌에 대한 도전장이었다. 주총 후 한회 그룹은 주인이 바뀌었고 김소열 일가에 대한 고발장이 날아들었다. 그러나 더 큰 바람이 대한민국을 격동 시켰다. 사람들은 회장일가에 대한 자비없는 강현의 태도에 갑론을박했다. 너무했다는 입장과 멍청하게 돈많은 사람을 걱정한다는 입장이었다. 이미 새롭게 한회 그룹의 회장단을 구성한 투자회사는 자신들의 회사에 부당하게 손해를 끼친 자들에 대한 당연한 응징이라는 명분을 앞세웠고 비리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하나 둘 씩 나오자 대중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의도치 않게 한회 그룹의 주식을 구입한 몇몇 재벌가들은 이미 김소열 일가를 버리기로 작정을 했는지 아직 건재한 다른 재벌에 연락해서 김소열과 만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거기에 이어지는 소송. 김소열과 그 일가들의 재산은 확실하게 축나기 시작했다. 강현의 투자회사는 지독했다. 차명으로 재산을 넘겨주는 것도 뉴질랜드에 감춰둔 재산도 모두 면밀하게 파악해 놓은 상태였다. 김소열 재벌 일가는 수백억원대의 소송과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고립무원의 처지에서 재산이 뭉텅뭉텅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고 거기에 징역 또한 피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일련의 사건에 강하게 호기심을 가지고 지켜보면서 희열을 느꼈지만 몇몇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어리둥절 했다. 이 나라가 이렇게까지 재벌에게 엄격한 나라였나? 그렇지는 않았다. 단지 강현의 영향력이 너무나 강했던 것 뿐이었다. 미국이 이미 강현을 애지중지하고 있었기에 재벌들은 법 집행 과정에 전혀 개입할 수가 없었다. 한미 FTA에 의한 독소 조항과 무역 관세 등으로 인한 불이익에 비교하자면 이미 몰락한 것과 다름없는 김소열 회장일가를 돕는 것은 너무나 막대한 손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었다. 한편, 대중들은 대부분 김소열 일가의 몰락에 걱정하거나 속 시원하다는 반응들을 나타냈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강현이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공감했다. “현. 한국에서 뭐하는 거야?” “심심해서.”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의 영문을 알기 위해서 정보부에서는 잭을 급파했다. “심심해서? 그래서 공화당 상원 의원들이 주최한 파티에 참여했어?” “한국의 재벌들이 끼리끼리 뭉치는 성향이 있거든. 미국의 위세를 좀 빌어야 했어.” 잭은 강현의 돌발행동에 적잖이 당황했다. 평상시의 강현이라면 절대로 정치가 따위와 어울릴 인간이 아니었다. “무슨 짓을 벌이는 거야?” “실험.” “실험?” “과연 한 국가의 기득권을 교체하는 방법은 오직 혁명뿐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결론은 뭔데?” “외세에 의한 강제적 교체. 마치 과거 로마가 영국을 정복했던 것처럼 말이야.” “그건 귀족시대에서나 가능해. 민주주의 국가에서 그게 가능이나 할까?” “내가 보기엔 한국의 국민들은 노예나 다름없던데?” “왜?” “일하는 시간은 가장 많으면서 시간당 효율은 최악이라고 할 정도로 떨어지기 때문이지.” “그래서 노예다?” “노예제가 생산성이 떨어지는 이유가 뭔데? 아무리 노력해도 신분 상승은 불가능하고 아무리 일해도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니 자포자기 하기 때문이지.” “Oh! Boy. 그건 너무 성급한 일반화야.” “아아. 그럴지도 몰라.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 나라 사람들은 기득권층이 하룻밤 사이에 바뀌어도 그러려니 생각할 사람들이라는 거야.” “기득권층이란건 그리 만만한 것이 아냐.” “만만치 않다라. 그래, 그 말도 맞아.” 강현의 대답에 잭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말했다. “현. 너는 지금 과학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야.” “글쎄.. 나는 과학이라고 생각하는데.” “사회 과학과 자연 과학은 달라.” “뭐, 그 말도 틀린 것은 아니지. 하지만 정말로 궁금했어. 돈 많고 힘 있는 자들이 그것들을 잃게 될 때 무슨 표정을 지을지 말이야.” 잭은 올라간 강현의 입꼬리에 침을 꿀꺽 삼켰다. “한회 그룹 일로 충분히 보지 않았어?” “글쎄. 과연 그 표정이 보편적인 것인지. 아니라면 평균은 어떠할지 알아봐야 하지 않을까?” “현,” “아! 그거 알아?” 강현은 잭이 뭐라고 하기전에 말을 끊었다. “지 잘난 줄 아는 것들에게 사실은 자신이 허접하기 짝이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일은 생각보다 무척 재미있어.” 순간 잭의 머릿속으로 감옥에 간 석유계의 실력자들과 리비아 내전으로 죽은 카다피의 존재가 떠올랐다. “잭. 그러니까 상부에 훼방 놓지 말라고 말해 줄래?” 잭은 고개를 끄덕이는 수 밖에 없었다. = = = = = 대한민국의 재벌들은 침묵했다. 김소열 회장이 감옥에 갇히는 광경을 보면서 침을 삼켰다. ============================ 작품 후기 ============================ 저번에 중국의 독자적인 GNSS라고 표기한 오류와 바퀴벌레 로봇에 GPS를 사용하지 않은 이유에 대한 비사실적인 오류를 수정했습니다. GPS는 미국이 먼저 개발했기 때문에 나온 고유 명사고 그것을 통칭하는 명칭이 GNSS(위성항법장치)입니다. 즉, 미국의 GNSS를 GPS라고 명명합니다. 참고로 중국의 GNSS는 베이더우, 러시아의 GNSS는 글로나스(GLOSNASS)라고 합니다. 또한 GPS는 전파수신만으로도 작동할 수 있습니다. 단말기에서 다시 송신할 필요는 없습니다.(원리는 수정된 편에 수박 겉핥기 식으로 서술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인텔은 자체적으로 제조도 하는 회사였습니다. 한 독자분께서 지적해주신 것처럼 ARM이 전문적으로 설계만 하더군요. 죄송합니다. 공부가 부족했습니다. 그리고 지적해 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46화 김소열 회장 일가에 일어난 일은 너무한다면 너무한 일이겠지만 사실 대한민국에서 그런 일은 비일비재했다. 대기업들이 중소기업의 탐나는 기술과 비전을 먹기 위해서 인맥을 통한 압력으로 융자를 막고 유동성 경직에 빠지게 해 강제로 부도를 일으켜 날로 삼키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한회 그룹에서 벌어진 일 역시 그와 별다른 건 없었다. 단지 그 스케일이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커졌다는 것뿐? 그러나 그 전개과정을 살피면 무시무시했다. 평범하게 그냥 채권을 대량 구입해서 공격했다면 한회 그룹 회장 일가와 인맥관계가 있는 정재계 인사들이 가만있지 않았을 것이다. 분명히 여유 자금을 지원해 주고 융자를 받을 수 있도록 은행에 압력을 넣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돈이 없었다. 얼마전 있었던 코스피, 코스닥 광풍. 재벌들은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서 돈을 쏟아부을 수 밖에 없었고 기관과 은행은 시세차익을 위해서 열심히 광풍에 동참했다. 그런데 갑자기 거품이 주춤하다가 되팔지도 못할 정도로 푸욱 꺼져버렸고 돈이 말라버렸다. 그리고 한회 그룹이 마치 대기업에게 돈 공격을 받는 중소기업처럼 무너져 버렸다. 무시무시했다. 만일 그때 공격이 한회 그룹이 아니라 자신들의 기업에 향했다면 과연 버터낼 수 있었을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 대기업은 없었다. 애시당초 전세계적으로 판매되는 석유의 라이센스를 가지고 있는 강현과 현금 대결을 펼칠만한 여력이 없었다. 회사의 자산을 다 판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팔리는 시간을 고려하면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였다. 주식 광풍이 잠잠해 지고 한회 그룹이 강현의 소유로 넘어갔다. 그리고는 급기야 회사 명까지 제현 그룹으로 바꾸려고 했다. 마치 한회라는 존재를 사회에 남기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인 것 같았다. 새로 임원이 된 전문 경영진들은 그런 강현의 결정을 못마땅해 했다. 왜냐면 대기업의 명칭은 그 명칭만으로 하나의 가치를 창출하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강현의 투자회사인 제현 투자회사에 항의도 해봤지만 다음과 같은 대답을 들을 뿐이다. ‘나는 기존의 재벌을 계승할 생각이 전혀 없다.’ 이런 강현의 의도는 기존 재벌들에게 위기감을 주었다. 전혀 타협하지 않는 모습에 강현이 자신들과 어울리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고 직감적으로 파악한 것이다. 그래서 재벌들은 정치가들을 움직였다. 한국의 중요 대기업이 외국 투자 회사로 넘어가는 것이 합당한가? 이른바 애국심을 이용한 언론 조작이었다. 때문에 몇몇 시민단체는 제현 그룹에 대한 불매 운동에 나섰지만 제현 그룹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왜냐면 사업의 비중을 해외와의 교역에 집중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원화 가치 절감 정책을 고수하기 때문에 수출 기업이 큰 이득을 보게 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제현 그룹 역시 수출 주도형 사업으로 전환했고 그를 위한 하청업체와 계약을 맺기 시작했다. 아니, 빼앗기 시작했다. “정 사장! 왜 아직 부품이 납품되지 않은거요?” [김 과장, 더이상 미래 자동차와 거래하지 않겠소.] 않겠소? 한대 자동차에서 일하는 김 과장은 정 사장에게서 생전 처음 받은 어투에 당황했다. 그러나 곧 분개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흥! 그쪽 아니라도 거래할 곳은 넘쳐! 위약금이나 물 각오나 하고 있어!” 그렇게 말하며 다른 하청 업체에 추가 주문을 넣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무리입니다. 지금부터 24시간 가동을 해도 주문량을 맞추기 어렵습니다.] “다른 곳에 납품하는 물량을 이쪽으로 넘기세요.” [그건 안됍니다.] “하세요. 안 그러면 다음 납품을 못받을 지도 모르오.” [….. 그냥 지금 납품하지 않는게 좋을 것 같군요.] “뭐욧!?” [이번 주 물량은 납품하지 않을 거요.] “도대체 무슨 소리를,” 김 과장은 이해할 수 없었다. 납품하지 않는다? 이것들이 쌍으로 미쳤나? 도대체 무슨 돈으로 위약금을 내고 사업을 하려고? 파산이나 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김 과장은 고개를 절래 절래 저으며 다음 하청, 다음 하청에 연락을 했다. 그러나 그럴 수록 그의 얼굴은 당황을 넘어 절망으로 시커매졌다. 전화를 건 하청마다 납품을 거절해 버리는 것이다. 그나마 납품해주겠다는 하청은 시설자체가 열악해서 납품 수량을 도저히 맞출 수 없는 곳이었다. 김 과장은 급하게 사태 파악에 나섰다. 이대로라면 이번 수출 물량에 차질을 빚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특히 납품하지 않겠다는 부품이 하이브리드카에 필수나 마찬가지인 전기 모터라 더욱 그랬다. “일을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건가?!” 김 과장은 어떻게든 사태를 수습해보려고 했지만 그것이 더 독이 되었다. 각 라인에서 부품이 떨어져 간다는 보고서가 부장까지 올라간 것이다. 부장은 김 과장의 무능에 혀를 차며 직접 하청업체를 돌아다니면서 허리를 숙였지만 돌아오는 것은 싸늘한 시선 뿐이었다. 왜? 이것 좀 이상한데? 회사에서는 이 일을 심각하게 생각했다. 하청 협력업체들이 갑자기 등을 돌린 것이다.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지만 조사끝에 원인이 밝혀졌다. 제현 투자회사가 이 일을 조작한 것이다. 미래 자동차에서는 상도덕에 어긋난 짓이라며 언론을 통해서 맹 비난 했지만 제현 투자회사에서는 미래 자동차에서 떨어져 나간 하청업체들을 끌어모아 하나의 거대한 회사를 만들었다. 고용 인원만 미래 자동차에 준하는 초대형 하청업체의 등장이었다. (주)세컨드 밴드 연합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이 기업의 주주는 기존의 하청 업체 사장들만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의사 결정 과정을 협동조합과 동일한 방법을 선택하여 협동 조합도, 그렇다고 주식회사도 아닌 묘한 구조를 이루었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지 않고 각 대기업 제조 회사의 하청회사가 하나 둘씩 연합에 참가했다. 대기업들은 그런 행동을 막기 위해서 협박도 해보고 돈으로 회유를 해보기도 했지만 많은 하청회사가 참가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떠나버린 하청 자리에 남은 것은 사내 하청 기업과 그룹 권력 라인에 밀접한 기업뿐. 하지만 그런 기업들에게 이익을 쥐어짜는 것은 힘들었다. 결국 대기업들은 언론을 움직여서 제현 투자회사의 비도덕성을 비난하는 한편 (주) 세컨드 밴드 연합의 독과점을 제소했다. 이에 제현 투자회사는 오히려 물품 밀어내기, 원가 절감을 위한 하청 쥐어짜기, 불공평 계약 등의 이슈로 대기업의 횡포를 고발하며 (주)세컨트 밴드 연합은 하청업체들이 살아남기 위한 최후의 기회이자 미래를 위한 비전이라고 맞섰다. 거기에 독과점 제소에는 한미 FTA조항에 위반된다며 역으로 맞섰다. 대기업들은 정치권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정치권이라도 뾰족한 수가 없었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었고 만일 협잡질을 시도한다면 한미 FTA ISD(투자자 국가 제소)조항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이라고 제현 투자회사에서 나온 이들이 경고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 ISD는 국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독소 조항이라며 말이 많았다. 사실 그렇다. ISD의 조항이 한 국가의 법 주권을 침해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를 제외하고도 ISD로 인해 한국 기업이 승소해도 그 이득은 결국 해당 기업에게 갈 뿐 국민에게 가지 않는다. 반대로 미국 기업이 승소하면 한국 정부는 세금을 통해 그 기업의 손해를 매꿔 주어야 한다. 이득은 위로, 위험은 아래로. 전형적으로 책임을 약자에게 떠넘기는 조항이었다. 즉, 기업만 이득을 보게 된다는 것. 몇몇 정치인들은 만일 ISD를 사용하면 오히려 (주)세컨드 밴드 연합에 대한 국민적 여론이 악화될 것이라고 뻗댔지만 제현 투자회사는 그 배상금을 (주)세컨드 밴드 연합에 재투자한다는 카드가 있다며 멍군을 놓았다. 그렇게 된다면 정치가들은 다시 한미 FTA의 독소 조항으로 인한 정치적 부담을 지게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 대기업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는 입장이 된다. 대기업에겐 자신들에게 이득을 몰아주기 위한 협상이 이제는 거꾸로 자신들의 목을 조이게 된 상황인 것이다. [제 1회 연합 합동 토론회] 한편, (주)세컨드 밴드 연합에 가입한 사장들을 대상으로 앞으로의 비전을 설명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토론회가 개최되었다. (주)세컨드 밴드에 가입한 이들은 비단 대기업에게 쥐어짜이는 것에 질린 이들만 가입한 것이 아니었다. 제현 그룹, 강현의 기술력에 기대에 자신들의 기업을 튼튼하게 만들고 세계적인 기업으로 만들고 싶다는 욕망을 가진 이들 역시 참가했다.(때문에 대기업에게 남은 것은 그저 안정만을 바라는 노예같은 하청만이 남았을 뿐이다.)하루 하루 어음을 처리하고 돈을 융자하기 위해 금융권에 손바닥을 비비는 짓에 질려버린 이들과 비전을 바라보며 미래를 꿈꾸는 이들은 과연 제현 투자회사가 어떤 비전을 제시할지 궁금해하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제이슨 킬덤입니다.] 강현의 대리자로 더 잘 알려진 제이슨 킬덤이 단상위로 올라섰다. 그는 기대어린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중소기업 사장들의 얼굴을 보며 미소 지었다. ‘주춧돌 빼앗기.’ 자신의 고용주는 이번 작전을 그렇게 명명했다. 앞으로 적이 될 것이 분명한 재벌들에 대해서 기선을 제압하고 대한민국에서 제현 그룹을 무시하지 못할 튼튼한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다. (주)세컨드 밴드의 역할은 간단하다. 제현 그룹을 든든히 받쳐줄 기반. 제현 그룹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그에 기반한 인프라가 필요했다. 상품과 시장? 굳이 국내에서 놀 필요가 있는가? 친 수출기업 정책 일색인 대한민국에서 똑같이 친 수출적인 경영을 하면 되는 것이다. 그를 위해서 제현 그룹이란 브랜드를 입은 상품을 건실하게 생산해줄 기업들이 필요했고 이 자리에 있는 기업들은 면밀한 검토를 통해 경영자의 경영 마인드를 확인한 뒤에 가입시킨 이들이었다. 그렇다. 대기업들은 바보가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입김이 진한 하청을 여기에 밀어넣어 분탕질을 시도하려고 했지만 가입과 퇴출에 대한 전권은 제현 투자회사에 있었고 아즈삭과 슬슬 활동하기 시작한 바퀴벌레 로봇으로 얻는 첩보로 대기업의 시도는 원천적으로 차단되었다. 같은 원리로 대기업 그룹내 권력자의 고위직에 연이 닿아있는 사장들이 있는 하청은 그 가입을 초기부터 봉쇄했다. 덕분에 이 자리에는 결코 출세할 수 없고 남은 운명이라고는 쥐어짜이는 것 밖에 없는 이들만으로 구성된 것이다. [그럼 앞으로 여러분에게 어떤 비전이 있는지 보여드리겠습니다.] 그 뒤 몇 시간의 설명회와 질문 및 토론 시간을 가진 회원들은 대단히 만족해가며 돌아갔다. 자신들에게 인텔이 하청을 맡긴다? 벤츠와 아우디에 부품을 공급한다? 세계적인 기업이 된다? 전혀 허무맹랑하게 들리지 않았다. 왜냐면 제현 투자회사와 제현 그룹의 주인이 바로 석유 제조 라이센스의 주인이자 희대의 특허 괴물인 것이다. 기술 뿐만 아니라 돈까지 있었기에 (주)세컨드 밴드 연합이 망할 일은 절대로 없었다. 그들은 그저 탈퇴 당하지 않도록 경영을 투명화하고 자신들이 처음 연합에 들어올 때 맺은 계약대로 자신들만의 경영철학을 고수하면 되는 것이었다. 세간에서는 이런 제현 투자회사의 행보가 결국에는 제현 그룹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라며 비난 혹은 긍정하는 관점을 쏟아냈다. 47화 연합은 결국 효과적으로 하청을 갈취할 구실에 불과하다며 비난하는 이도 있었고 대기업의 횡포로부터 드디어 하청업체들이 커나갈 수 있는 우산이 생겼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나마 가장 냉정한 분석은 ‘연합 중소기업이 세계적 부품 생산 기업이 되었을 때 그 부품을 사용해 상품을 만드는 제현 그룹의 브랜드 가치는 부쩍 상승할 것이다.’정도? 그러나 그런 냉정한 분석마저도 제현 그룹에 있는 노동자들에게는 희망의 메시지였다. 김소열 일가가 회사에서 쫓겨나자마자 회사에서는 숙청의 바람이 불었다. 어떻게 알아냈는지 김소열 일가에 알랑거리던 무능한 보신주의자들을 해고하고 갑의 위세를 부리던 영업직 사원들을 색출해 해고했다. 해고 사유는 그런 썩은 마인드로는 앞으로 세계적 기업이 될 세컨드 밴드 연합과 조화를 이루기 힘들다는 것. 그렇게 비어버린 자리에는 인품과 능력은 되지만 줄서기를 못해 출셋길에 벗어난 사원들을 대거 승진시켰다. 낙하산? 그런 것은 임원진에 한했을 뿐이었고 앞으로도 경영진을 제외한 고위직은 모두 승진을 통해서 채우겠다는 사측의 입장은 사원들의 사기를 북돋았다. 그러나 그런 방식으로 유능한 인재를 끌어올 수는 없었다. 때문에 제현 투자회사에서는 회사의 규모를 키우기로 결정했다. 승진의 방법만으로 좋은 인재를 얻으려면 그만한 인재풀이 있어야 했기에 충분한 사원 수를 확보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 뿐만 아니다. 사원들이 자기계발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주어야 했다. 그래야 자신의 재능을 깨달은 인재들이 두각을 나타내어 사측에서 발견할 수 있지 않겠는가? 제현 투자회사에서 고용한 전문 경영인들은 이러한 이치를 확실하게 파악하고는 곧장 쓸데없는 대기 시간을 줄이는 정책을 시행했다. 특히 대한민국 기업문화에서 상급자의 요구에 따라 자기 일을 미루고 자료를 작성하는 일을 원천적으로 금했다. 가장 먼저 해야 할일 일순위는 자신의 일이었고 상급자는 자료가 필요하다면 직접 찾아서 확인해야 했다. 그러지 못한다면? 상급자가 무능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 임원들의 견해였다. 뿐만 아니라 회의는 일일 이회, 오전이 한번, 오후에 한번. 시간은 총 1시간을 넘지 못하도록 규정지었다. 지엽적인 내용의 전달은 문서와 자료로 전달하고 회의에서는 핵심 내용만을 교환하도록 했다. 이런 개인주의적 성향의 기업문화는 요즘 젊은이들의 입맛에 딱 맞았다.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 만큼 책임을 지게 하는 문화, 거기에 더불어 쓸데없이 상사 눈치 보지 않고 소신 껏 일할 수 있는 문화에 다소 월급은 높지 않더라도 제현 그룹에 입사하려고 하는 사회 초년생의 비율은 점점 높아졌다. 물론 쓸데없이 야근을 시키지 않는 것도 주요했다. 일이 많다면 알바, 비정규직을 늘리면 된다는 것이 임원들의 결정이었다. 그러나 이런 비정규직도 대우는 나쁘지는 않았다. 치사하게 사내 식당에서 비정규직이라고 돈을 내고 식사를 하게 만들지 않았다. 임원들은 똑같은 일을 한다면 똑같은 돈을 받아야 한다는 강현의 지시에 손해를 볼 것이 분명하지만 시행했다. 비록 사대보험이나 정규직을 위한 각종 혜택은 주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월급만큼은 하는 일이 동일하다면 동일하게 지급한 것이다.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전문 경영인이란 원래 기업의 이윤을 극대화 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그 임원들은 아즈삭이 찾아내고 강현이 골라낸 소위 도태된 임원들이었다. 이익을 추구하는 주주들에게서 자신들의 경영철학을 고수하다가 쫓겨난 자본주의 사회의 아웃사이더들이었던 것이다. 때문에 강현은 그들을 고용했다. 천민자본주의,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대한민국을 정복할 기업의 경영인으로서 그들은 대한민국의 재벌들과 결코 같이 갈 수 없는 이질적인 존재였고, 또한 그들은 강현의 비전(천민자본주의 국가의 기득권 강탈)에 전율하며 기꺼이 뜻을 같이 하기로 했다. 즉, 그들은 대한민국 정복의 첨병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이익의 극대화가 필요 없었고, 대신 대한민국에 제현 그룹의 영향력을 퍼뜨리는 것이 우선했다. 이익은 회사를 유지할 만큼만 있으면 족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제현 그룹의 경영 방침에 대한민국의 경영자들은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했다. 아니 심각한 위기감을 느겼다. ‘비정규직에 대해 합리적인 대우를 요구한다!’ 제현 그룹의 비정규직과 그외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이 너무나 눈에 띄자 파업과 시위가 일어나는 것은 당연했다. 미래 그룹 전해진 회장은 사내 하도급들이 일으킨 파업에 입술을 깨물었다. 예전 같았다면 비웃으며 각종 공작을 했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너무 안 좋았다. 제현 그룹에서 대량의 하청업체를 빼갔기 때문에 납기일을 못맞춰 거액의 배상금을 물었다. 물론 위약금을 받아냈지만 자본이 없는 기업들이라 받아낼 수 있는 위약금에는 한계가 있어 배상금으로 인한 손해를 충당하기에는 무척이나 어려운 실정이었다. 그렇게 손해를 보고 다시 다음 물량을 생산하기 위한 부품을 조달하기 위해서 협력업체를 찾기 시작했지만 어떻게 알았는지 쓸만한 협력업체는 세컨드 밴드 연합으로 홀라당 넘어간 상태. 외국에서 부품을 수입하려니 원가 절감은 불가능했고 세컨드 밴드 연합에 손을 벌리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했다. 그들은 기득권에 반역을 일으킨 존재들이었다. 부수고 쳐내고 깨부숴야 하는 곳이었다. 재벌로서 절대로 그런 곳에 손을 벌릴 수 없었다. 때문에 급하게 남아있는 하청 기업의 규모를 확장하고 있지만 그 와중에 파견한 근로자들이 파업을 일으킨 것이다. 답답했다. 빨리 공장을 정상화 해야 회사의 신용을 지킬 수 있는데 일분 일초가 아까운 상황에서 이런 파업이 벌어지다니.. 사실 미래 그룹에서 사내 파견 직원에 대한 대우는 나쁘지 않다. 오히려 다른 곳에 비하면 후한 편이다. 하지만 왜 비정규직들은 들고 일어나는가?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결국에는 같은 일을 하면서도 정규직만큼 임금을 받지 못한다는 것에 있었다. 차별을 당할 때 노예는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자유인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비정규직은 불만이 쌓일 수 밖에 없다. 차별은 그뿐만이 아니다. 같이 사내 하도급으로 간 비정규직 사이에도 임금차가 있었다. 이상한 일이다. 미래 자동차에서는 사내 하도급으로 간 비정규직에게 일괄적으로 임금을 지급하기 때문에 그들은 모두 동일한 임금을 받아야 한다. 그 원인은 미래 자동차에서 돈을 받아 다시 비정규직에게 돈을 지급하는 하청회사에서 중간에 그들의 임금을 때어 먹는 것이다. 왜 그러는지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겠지만 미래 자동차에서는 억울할 만도 하다. 자신들은 오히려 다른 비정규직보다 후하게 챙겨주는데 왜 이런 식으로 욕을 들어먹어야 하는 것인지... 그러나 사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무척이나 쉽다. 법원에서 판정한 것처럼 불법 하도급을 막고 비정규직을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된다. 그렇게 한다면 하청회사를 동태 임금을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주기 때문에 중간에 임금이 사라질 일이 없는 것이다. 욕도 먹을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하지 못한다. 비단 돈 문제가 주요한 결정 요소는 아니었다. 전혀 연관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파견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 비용은 한해 영업이익 8조원에 비하면 겨우 천억원 가량에 불과하니 정말로 돈이 문제인 것은 아니다. 문제의 본질은 따로 있었고 그 본질은 정규직은 곧 노조를 뜻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법에 명시된 노동자의 권리에는 노조의 결성이 있다. 그러나 그 동안 대한민국의 경영자들은 각종 방법으로 그들은 무력화시키려고 했다. 심지어 어용 노조를 만드는 것은 물론 노조 결성을 원천적으로 막기 위해서 사원들을 감시하고 협박하며 돈으로 회유하기도 했다. 즉, 결국 미래 자동차에서 일어난 비정규직의 시위는 노조를 무슨 역병처럼 취급하는 재벌들의 경영 마인드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김 비서, 샘성 이 회장에게 연결하게.” [네, 사장님.] 곧 전화가 샘성 그룹의 이견호 회장에게 연결되었다. “이 회장, 나 전 회장일세.” [무슨 일인가?] “뉴스는 보았나. 이번에 아주 골치 아픈 일이 생겼네.” [쯧쯧, 안타깝구먼.] “이번 사태를 수습해도 계속해서 이런 일은 생길걸세.” [그렇지. 결국엔 제현 그룹이 문제야.] 대한민국 대기업은 재벌을 통해서 경영된다. 그러나 제현 그룹은 전문 경영인에 의해서 경영된다. 만일 그 경영인들이 한국인이었다면 혼맥이나 그런 것들을 이용해 회유할 가능성이 있었지만 그들은 모두 외국인이었다. 그 이질성은 제현 그룹을 기존의 기득권이 회유할 수 있는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했다. “어떻게 방법이 없겠나?” [후우.. 나도 이런 일은 생전 처음이라 모르겠네. 정치권이 나서주면 좋겠지만..] 회사의 과반수나 되는 주식을 가진 이가 그 강현이라는 자였다. 미국국적을 가지고 있었고 미국 정부와 미국 국민이 애지중지하는 천재 과학자였다. 그런데 그런 자를 정치적으로 어떻게 한다? 확고 부동한 명분이 없다면 불가능했고 오히려 지금 상태는 강현이 세운 제현 그룹으로 인한 한국 사회의 전반에 걸친 긍정적 여파로 재벌들의 기존 기업 경영 방침이 비난받고 있었다. 상대가 그냥 평범한 자본가라면 이득을 대가로 타협이라도 할 수 있지만 제현 그룹은 이득 추구를 목적으로 행동하지 않았다. 노골적으로 재벌에 대한 이빨을 드러냈고 그것은 김소열 일가의 일부터 협력업체 빼앗기까지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쭈욱 보여주고 있었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너희는 적이다!’ 답답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었다. 상대는 석유 카르텔를 주무르는 천재 과학자, 같은 편이 되기를 절실하게 바라고 있건만 이렇게 적대감을 감추고 있지 않으니.. 그 일례로 전경련이 주최하는 파티에 제현 그룹의 경영진들을 초대했지만 단 한사람도 초대에 응한 이가 없었다. 정말로 난감한 상황이었다. 언론 조작과 시민 단체를 움직여 불매 운동을 벌여도 소용없다. 제현 그룹은 수출형 기업이었다. 그들은 원자재를 사와 가공해 철저하게 외국에 팔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생산하는 품목자체가 소비자들에게 파는 것이 아니라 기업들에게 파는 부품류였다. 하지만 그것도 언제 바뀔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제현 그룹이란 기업이 있으니 완제품이 나온다면 이미 구축되어 있는 유통망을 이용해 팔 수 있는 것이다. “회, 회장님!” 통화중에 누군가가 급히 방문을 열고 들어온다. “천아! 이게 무슨 짓이냐! 이 회장 미안하군, 좀 있다가 전화하지.” 갑작스레 쳐들어온 사람은 자신의 아들인 전유천이었다. “네 이놈. 아비가 지금 중요한 전화를,” “그게 중요한게 아닙니다! 뉴스를 보세요!” 그러면서 급하게 TV를 켰다. 뉴스채널에서 급하게 속보를 보내고 있었다. [아우디와 제현 그룹의 합자 회사 설립!] [아우디 제현 자동차 회사 탄생하다!] [아우디의 디자인, 그리고 천재 강현의 기술력이 만나다!] 화면에는 강현의 대리인이라고 알려진 제이슨이 어떤 백인과 공장 부지를 둘러보고 있었다. “허. 허허.” 48화 이것은 엄청난 위협이다. 대한민국의 유일한 자동차 회사로서 미래 자동차의 독점적인 지휘가 무너지는 것이다. 그러나 비보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회, 회장님!” 김 비서가 창백해진 얼굴로 회장실로 들어왔다. “파, 파업이 끝났습니다.” 파업이 끝났다? 그런데 그것이 왜 저렇게 얼굴이 파래질 정도란 말인가? “제, 제현 그룹에서 다 고용했다고 합니다.” “아, 아버지!” 전 회장이 멍해지는 정신에 비틀거렸다. 그 비정규직이 다? 그럼 또 신입을 뽑고 교육해야 한다. 그러면 하청 기업의 확장은 얼마나 걸릴까? 당장 납기일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또 이런 일이 발생하다니.. 이번에도 위약금을 물면 미래 자동차는 삼류 자동차 회사로 전락할 것이다. 뿐만 아니다. 아우디와 자동차 회사를 설립하고 숙련된 그들을 투입하면 바로 원활하게 자동차가 생산될 것이다. 발등에 불이, 아니 용암이 떨어졌다. “다, 당장 회의를 소집해!” 전해진 사장이 발악하듯 소리를 질렀다. = = = = 강현과 아우디의 합자 회사는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세계를 강타했다. 그러나 뉴스의 자극적인 말과 다르게 강현이 아우디에게 기술을 제공하는 일은 없었다. 사실 강현이 그동안 자동차 관련 기술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기에 줄 기술도 없었다. 예전에 완전히 무료 공개한 무궁화 엔진을 개발하게 된 이유는 단지 내연 기관에 피스톤 같이 투박한 기술을 사용한지가 백여년이 넘어갔기 때문에 새로운 방식은 없을까 상상하다가 구상한 것이었다. 그럼 받을 기술이 없는데 아우디 측에서는 왜 강현의 제현 그룹과 대한민국에 합자 회사를 세우기로 한 것일까? 일단은 홍보 효과다. 아우디의 특성은 고급스러움을 추구하는 벤츠나 첨단과 미래를 지향하는 BMW의 중간에 있다. 그 말은 어디에도 치우침이 없이 균형이 잡혔다는 얘기지만 반대로 말하면 딱히 내세울 것이 없다는 말도 된다. 그러나 아우디는 확실히 세계적 수준에서도 상위권에 노는 뛰어난 차였고 마케팅을 통한 이미지 개선이 된다면 벤츠와 BMW를 동시에 뛰어넘을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세기의 천재, 전 세계가 주목하는 과학자가 세운 회사와의 합자 회사는 마케팅의 커다란 기회였고 실제로 홍보비에 돈 한 푼 들이지 않고도 전 세계에 아우디의 이름을 알릴 수 있었다. 두번째는 대한민국에 대한 점유율 재고였다. 한국에서 아우디의 이름은 안타깝게도 BMW나 벤츠의 이름값에 못미치는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한창 사회적 이슈를 끌어모으며 착한 대기업의 이미지를 입고 있는 제현 그룹과의 합자 회사는 아우디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대한민국 소비자에게 심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마지막 세번째가 가장 중요한 것인데, 바로 강현과의 우호관계다. 과거에 강현이 만들어 공짜로 뿌린 신형 엔진 덕에 유럽의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를 쉽게 넘을 수 있었다. 그 뿐인가? 당시 한창 판매되기 시작한 다른 회사의 하이브리드카에 밀리지 않는 연비 덕분에 자체적인 하이브리드카를 개발할 수 있는 시간도 벌었다. 그런 기술을 개발한 강현과 우호관계를 맺지 않으면 도대체 누구와 우호관계를 맺으라는 것인가? 나중에 강현이 다시 자동차 관련 기술을 개발하게 된다면 그 이득은 가장 먼저 우호를 맺은 세력이 가져가는 것이 아닌가? 미국을 봐라. 어리고 힘없던 천재를 극진히 보호하고 심지어 전용기를 대령해 미국 땅으로 옮겨 놨다. 그로 인한 미국의 국력 신장은 경제는 물론이고 군사적으로도 매우 뚜렸했다. 강현은 절세는 전혀 하지 않고 수억 달러를 세금으로 내는 모범적인 시민이었으며 지금 한창 이슈가 되고 있는 특수 철판으로 제작된 미국 모빌아머의 성능은 그야 말로 다른 국가의 모빌 아머에 압도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우디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다. 혹시 모르지 않은가? 강현이 지나가다 슬쩍 던져준 기술로 벤츠와 BMW를 제치고 3등에서 1등으로 올라설지도.. 그만큼 아우디의 홍보 효과는 확실했다. 그러나 경제지에서는 아우디에 대한 이름보다는 대한민국에 세워지고 있다는 합작 회사의 공장에 대한 말이 많았다. 경제 전문가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그것은 돈지랄이라고 했다. 경영자들 중 잔뼈가 굵은 이들은 돈을 왜 이렇게 낭비하는 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냥 굳이 미래 자동차를 밀어내지 말고 사버리는 것이 돈이 덜든다. 그냥 적대적 M&A를 통해서 경영자를 해임하고 자신의 입맛대로 구조 조정을 하는 것이 더 시간도 적게 걸리고 돈도 적게 든다. 저번처럼 주가를 몇번 요동치게 만들면 재벌들에게 우호적인 기관들은 손을 털 수 밖에 없고 과반수 지분을 확보하지 못한 재벌들은 경영권을 내놓아야 한다. 그런데 왜 이런 짓을 벌이는 것일까? [쥐새끼들이 꼬리를 들어냈습니다.] “누군지 목소리나 들어볼까?” 아즈삭은 강현의 지시에 바퀴벌레 로봇이 전송한 파일을 재생했다. [나라 꼴이 엉망이 되어가고 있소!] [그때 잘 좀 처리하지 그랬소?] [지금 내게 책임을 떠넘기는 거요?] [쯧쯧, 만약 부모가 살아있었다면 최고의 협상카드로 사용할 수 있었을 거요.] [지금 책임 소재를 찾아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소. 우리 중에 이런 일이 발생할 거라고 예상했던 이가 한 명이라도 있었소?] [그의 목적이 도대체 뭐요? 도대체 왜 이리 우리를 핍박하는 거요?] [혹시.. 그의 부모가 사망한 교통 사고가 조작된 것이라는 증거를 발견한 것이 아닐까요?] [근거 없는 이야기요. 이미 10년도 더 넘은 일이라 어떤 증거도 없소.] [국정원에 보관된 자료는 어떻습니까?] [최상위 기밀 문서는 그 내용이 전산 처리 되지 않소. 또한 그 작전은 결코 문서화 될 리 없고 설사 문서화 되었다고 해도 우리가 심은 이들이 다 파기했을 것이오. 몇 년 전 다른 일을 감추기 위한 자료 파기에 그 사고와 대한 내용이 남아있을 가능성은 전혀 없소.]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강현 그자의 의도가 뭔지 전혀 모르고 있소이다.] [그것은 차차 알게 되겠지. 그때를 대비해서 준비들 하시오?] [알겠소.] 그리고 그 뒤로 별다른 이야기가 없었다. “목소리 개수는?” [확인 된 것만 다섯명입니다.] “스파이 로봇에게서 전달된 참가 인원의 명수는?” [어디에 숨어서 녹취를 했는지 그에 대한 정보는 없습니다.] “그래, 알았어. 그럼 목소리를 분석해서 대화한 이들이 누군지 찾아줘.” [네, 박사님.] 그렇다. 적어도 그 다섯 명은 부모님의 죽음에 관여한 것이 확실했다. 그 말은 강현이 결코 용서할 수 없다는 말도 되는 것이다. 강현이 세계의 경영자들이 의문을 품는 방식으로 기업을 운용하도록 지시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만일 자신의 부모님이 정말로 살해 당했다면, 그리고 그 사건이 평범한 교통 사고로 조작이 되었다면 그 일을 저지른 주체는 평범한 민간인은 아니다. 국정원장까지 연루되어 있으니 분명히 돈과 권력을 가진 기득권 층이 분명했다. 때문에 튼튼한 발판을 마련해두고 천천히 압박을 한 것이다. 그리고 기득권 속에 숨어있는 원수들이 제 발이 저려 설레발을 치기를 기다렸다. 그냥 기득권을 싹 밀어버리는 것도 나쁜 방법은 아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누가 어느 만큼 부모님이 살해 당한 일에 책임을 지고 있는지 모르고서는 도저히 복수했다는 기분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사실을 밝혀낸다손 쳐도 과연 이 나라의 법이 그들을 공정하게 심판할 수 있을까? 청부살해의 형량이 고작 20년도 채 되지 않는 나라에서? 강현은 그들에게 법적인 처벌로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모든 것을 빼앗고 절망에 허우적거리게 만들어 줄 생각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의 가족까지 복수의 범위에 포함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들이 목숨처럼 귀하게 여기는 권력과 부를 강탈하는 것 역시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 그가 제이슨과 투자회사의 임원진들을 고용할 때 대한민국의 기득권을 빼앗겠다는 비전은 결코 농담에 그치지 않는 것이다. “그럼, 다음 계획이 통신사였던가?” [하실 생각입니까?] “민주주의가 보편적인 시대에도 독재는 있어왔지.” 권력의 본질은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무력, 재력, 그리고 명분. 민주주의 시대가 되면서 명분은 매스 미디어에 즉, 언론에 의해서 관리되었고 많은 독재자들이 언론을 장악하며 자신에게 반하는 명분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여론을 호도해 왔다. 때문에 왜 언론의 독립성이 이루어 져야하는가는 너무나 답이 당연해서 따로 말할 필요도 없다. 통제당하는 언론은 곧 권력을 쥔 자들을 위한 명분을 생산한다. 거기에 저널리즘은 없다. 설사 사람들이 언론이 사실을 호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더라도 공부를 정말 많이하고 꾸준히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정작 사실이 무엇인지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아차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언론 권력은 이미 권력과 자본과 한통속이다. 나라가 작은 만큼 서로 견제의 세월은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고 같이 짝짜궁이 되어버렸다. 지금은 비록 제현 그룹의 파상공세에 주춤거리고 있지만 분명히 기회가 생기면 물어뜯기 위해서 달려들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강현은 상대편의 여론 공격에서 방어할 만한 방패가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통신 사업에 한 걸음을 걸쳐야 한다. 공격까지는 못해도 방어 정도는 할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 했다. [새로 통신사를 만드시겠습니까, 아니면 뺐으시겠습니까?] “아무래도 뺐는게 편하겠지.” 전파는 공공재다. 아무나 전파를 수발신 할 수 없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전파가 엉켜서 통신이 엉망이 될 것이다. 만일 제현 그룹을 통해서 통신 회사를 만든다고 해도 정부로부터 공공재인 전파를 낙찰받기 위해서는 정부와 통신사와의 계약이 끝날 때까지 시간이 걸리고 또한 중계기 등 인프라를 까는 일도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통신 3사 중에 하나를 집어 삼킨다면 그 시간을 줄일 수 있다. 고금을 통틀어 가장 빠른 경제 성장 방법은 역시 약탈 경제인 것이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응.” 잭을 통해서 빌린 차명 계좌로부터 돈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KFT의 매물이 순식간에 매마르고 가격이 껑충껑충 뛰기 시작했다. 아니 예전 제현 그룹이 등장하기 직전처럼 대한민국의 주가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KFT의 경영권이 넘어가 버렸다는 뉴스가 언론을 강타했다. KFT. 원래는 대한민국의 국영 통신사였지만 나중에 민영화가 되었다. 즉, 정부 기업이 아니라 민간기업이라는 뜻. 덕분에 한국 법인을 가지고 있는 제현 그룹이 문제 없이 돈을 처발라 경영권을 빼앗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럼, 통신망은 획득했으니 이제 대중을 모아야지.” [시작하겠습니다.] 단순히 통신망을 가지고서는 여론에 영향을 끼칠 수 없다. 사람들이 조회하고 머무를 수 있는 콘텐츠가 필요했다. 강현은 구글과의 합작을 생각했으나 구글은 검색 전문 엔진이 핵심이었다. 에이버나 아음 같이 한국의 포털처럼 콘텐츠에 힘쓰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식의 검색 엔진 만으로는 기존의 포털에 익숙한 대한민국의 사용자들을 끌어오기 힘들었다. 때문에 강현은 다시 한 번 주가를 요동치게 만들었다. 이번 표적은 대한민국 대표 포털을 자처하는 에이버였다. ‘너의 웹툰을 내놔라.’ 49화 제현 투자회사는 작가를 빼낸다 따위의 치졸한 짓은 하지 않았다. 그냥 주식을 사기 위해 돈을 쏟아 부었고 주가는 고공행진과 낙하를 거듭했다. 그리고 결국 며칠 간 지속된 엄청난 현금의 파상공세에 에이버의 대표는 경영권을 지키기 못했다. 다른 기업들은 에이버가 제현 그룹에 넘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피눈물을 삼켰다. 인터넷 여론을 장악하기 위한 최고의 카드를 순식간에 빼앗기고 만 것이다. 그렇다고 도와주기에는 호시탐탐 주식을 노리며 매물을 말려버리려고 달려드는 어떤 보이지 않는 손이 너무나 무서웠다. 설마 그 보이지 않는 손의 주인이 제현 투자회사라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아무튼 그리하여 탄생한 에이버JH. 거기에 검색 엔진을 구글의 뛰어난 검색 엔진으로 교체하기 위해큰 돈을 주고 계약했다. 덕분에 이전보다 더욱 강한 검색 기능을 갖추게 되었다. 이런 강현의 행태에 금융 종사자들은 더욱 아리송해졌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경영권을 빼았고 싶나? 그렇다면 통신사인 KFT를 빼았기 위해 다시 돈을 풀어 주가를 요동치게 만들었을 때 에이버의 경영권도 같이 빼앗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러지 않고 이렇게 차례로 돈 낭비를 하다니.. 한편, 설마 설마 했던 여론의 커다란 귀퉁이를 빼앗긴 기득권층은 악다구니를 쓰며 정치권에 청탁을 시작했다. 정치권 역시 한통속이었기 때문에 결국은 나섰다. 명분은 주가 조작 및 탈세 혐의였다. 그러나 경영진들을 체포할 수 없었다. 정말로 안타깝게도 그들은 미국 시민권자였다. 주가조작은 그 동안 요동친 주식 시장 때문에 혐의가 있을지는 몰라도 탈세 혐의는 정말 날조였다. 그리고 그런 날조 혐의로 미국 시민권자를 체포한다? 글쎄.. 미국이라면 설설 기는 국회의원들이 그럴 수 있을까? 뿐만 아니다. 공권력으로 압박을 가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재벌들의 페이퍼 컴페니를 이용한 천문학적인 탈세 사실을 고발했다. 검찰은 물론 경찰, 각 언론사는 물론 에이버JH의 뉴스 홈에도 커다랗게 이 사실이 걸렸다. 거기에 몇몇 국회의원들의 비리 자료마저 공개 되었고 단숨에 실시간 검색 순위에 올랐다. 변상득 의원은 그 몇몇 국회의원 중의 한 명이었다. 보좌관이 급하게 변상득 의원의 이름이 포털 실시간 검색 순위에 올라왔다고 알려왔다. 그는 왜 그런 일이 발생했는지 이유를 직감했다. 이름이 올라간 의원들은 하나같이 국세청에 압력을 가해 제현 그룹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하도록 한 인물들이었다. 그래. 이런 식으로 나온다 이거지? 변상득 의원은 에이버JH에 바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는 명예회손이라며 당장에 이름을 내리라고 고래 고래 소리를 질렀다. [죄송합니다, 고객님. 검색어의 수정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뭐!? 무슨 헛소리야!” 지금까지 에이버에서 얼마나 많이 검색어를 조작해 왔는데 못한다니.. 그게 말이 돼? 변상득 의원은 전화 상담원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포털에 축적되는 모든 자료는 외부로부터의 해킹이나 불공정한 조작 행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인공지능 컴퓨터의 관리 아래에 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있다는 거야, 없다는 거야?!” [저희 사장님께서 가지신 권한이라면 가능합니다.] “그래? 사장 바꿔!” 변상득 의원은 씩씩 댔다. 감치 정부의 딴따라, 나팔수 였던 주제에 이따위 짓을 해? 감히 국회의원을 뭘로 보고. [여보세요.] 어눌한 말투. 쫓겨난 임원진 대신에 내려왔다는 그 외국인 전문 경영인 같았다. “여보세요. 저는 변상득 국회의원입니다.” [네, 말씀하세요.] “지금 실시간 검색에 올라와 있는 제 이름...” 변상득 의원은 그것은 명백한 명예훼손이며 즉시 내리지 않으면 고소할 것이라고 협박했다. [오우! 명예훼손은 말도 안 됩니다. 실시간 검색 순위는 순전히 검색 횟수에 의해서 영향을 받습니다. 즉, 많은 사람들이 해당 인물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죠.] 그러니까 변상득 의원에게는 그것이 문제였다. 비리와 얽혀있는데 유명해지니 말이다. “명백한 명예훼손이요!” [오우! 그럼 당신 이름을 검색한 이름도 모르는 그 많은 사람들을 고소할 겁니까?] “무슨 소리! 고소당할 쪽은 바로 에이버요! 알겠소?” [Why?] “너희들이 내 명예를 훼손하고 있잖아!” [잘 이해가 안되시는가 본데.. 저희 업체의 실시간 검색어 순위는 단시 시스템적으로 자동으로 올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악의로 순위에 이름이 올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공정한 시스템은 변상득 같은 이들에게는 충분히 악의적이었다. 감히 ‘자신들의 말대로 조작되지 않는 공정한 시스템’이라니! 그 따위 것이 왜 있어야 한다는 말인가? “어찌 되었건 명예훼손이야! 당장 내려!” 계속되는 억지에 어이가 없어진 외국출신의 전문 경영인의 답은 이랬다. [Fuck you.] 그리고 끊어지는 전화 소리에 변상득 의원은 괴성을 지르며 책상 위를 밀어버렸다. 사실 그런 행동은 정치가로서 실격이었다. 하지만 현재 변상득 의원이 받는 스트레스는 엄청났다. 제현 그룹에 의해서 촉발된 말하기 힘든 사회적 분위기와 기득권에 대한 대중의 요구는 기업에서부터 정치가, 법조인에게까지, 권력을 공고히 하고 싶은 이들에게는 엄청난 위협이었다. 그렇다. 변상득 의원이 느끼는 위기감은 느끼지 않는 국회의원은 거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와중에 터진 비리 혐의와 확실한 자료. 그것은 변상득 의원의 정치생명을 끝장낼 수 있을 정도이니 그가 이렇게 평소 답지 않게 광분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한편 전화를 끊은 에이버JH의 외국인 전문 경영인, 엠젠은 왜 오늘 전화를 받으면서 몇 번이나 Fuck you를 연발했는지 어이가 없어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억지도 적당히 부려야지. 그러면서 고용주의 비전에 깊이 공감했다. ‘저런 자들과 권력을 나누지는 않겠다.’ 사회 지도자라면 어떤 격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엠젠의 철학이었다. 비록 그 철할 때문에 사장 자리에 쫓겨난 전적이 있지만 지금 생각하면 잘 된 것 같다. 한국에 온 뒤로는 매일매일 보람찬 생활의 연속이었으니 말이다. ‘사람은 구체적인 적이 있으면 한계를 넘어서는 능력을 발휘하죠. 제가 당신에게 적을 보여주겠습니다.’ 천재 강현의 그 말이 아직 머리에 생생했다. = = = = = 난데없는 페이퍼 컴퍼니를 이용한 탈세 및 재산 빼돌리기의 이슈는 대한민국을 강타했다. 그리고 연이어 비리 정치가에 대한 이슈가 퍼지면서 제현 그룹에 대한 정치적 공세는 주춤거릴 수 밖에 없었다. 대중은 이런 혼란스런 상황에서 분열되었다. 역시 그놈이 그놈이다, 물타기 하지 마라, 정치적 공세에 맞서는 현명한 대응이다, 부디 타협하지 말고 밀고 나가라 등 여러관점이 섞여 여론이 통일되지 못했다. 공중파와 주류 언론은 비슷한 논조로 일관했지만 인터넷 여론은 너무나 복잡했다. 그리고 복잡한 여론은 정치 토론란을 만든 에이버 덕분에 더욱 용광로처럼 불타올랐다. 비리 문제를 슬슬 덮고 싶었던 이들에게는 불행한 일이었다. 그 와중에 한 진보 언론사와 제이슨 킬덤의 인터뷰 내용이 인터넷에 올라와 더욱 세간의 흥미를 끌었다. 그것은 주가 조작이라는 혐의에 대한 제현 그룹과 제현 투자회사의 입장 표명이었다. [킬덤 회장님. 제현 투자회사의 회장이시지만 사실은 강현 박사님의 대리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데요, 요즘 제현 그룹이나 제현 투자회사에 대해서 주가조작 및 탈세 혐의로 조사를 받고 계십니다. 이에 대해서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물론입니다.] 제이슨의 입에서 그동안 열심히 한국어를 공부했는지 제법 유창한 한국어나 나왔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그 혐의들이 모두 날조라는 사실입니다.] [날조요?] [네, 날조요. 탈세혐의야 세무조사를 받으면 저희 회사들이 단 1원도 탈세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질 것이고 주가조작의 경우에도 어떤 불법적인 일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질 것입니다.] [아, 그 말씀을 들어보니 궁금한 점이 두가지가 생깁니다. 먼저 단 1원의 탈세도 없다는 것이 가능한가요? 털어서 먼지 나지 않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하하하! 저희 회사들의 회계는 사람이 담당하지 않습니다. 아즈삭이라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인공지능 슈퍼 컴퓨터가 담당하고 있죠. 어떤 누락이나 오류가 있다면 즉각적으로 회계팀에 연락해서 사실 확인과 수정을 요구합니다. 오류가 있을 수가 없어요. 회계를 담당하는 주체가 사람이 아니니 아무리 털어도 먼지가 날리가 없습니다.] [그렇군요.] [오히려 다른 기업은 안 털어도 여기 저기 똥을 싸질러 놨더군요. 이를 보고 한국 속담으로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란다고 하던가요? 아, 저희는 한 점 의혹도 없으니 똥 묻은 개가 샤워한 개보고 짖는다라는 문장이 적절하군요.] 제이슨의 말에 인터뷰를 하는 기자의 얼굴이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곤란해 한다. 진보 신문이라지만 재벌들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런데 제이슨은 완전히 무시하는 것을 넘어 조롱하고 있었다. [주가 조작 혐의는 어떻게 된 건가요?] [주가조작은 주로 소문, 그리고 내부정보, 회계조작으로 이루어집니다. 즉, 정보의 비대칭성을 이용한 악의적인 행위죠. 물론 정보의 비대칭성 자체는 자본과 경쟁의 논리에 의해서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정보를 불법적으로 가공하거나 시장에 퍼뜨려 이득을 챙기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증명하죠?] [결과가 증명하죠. 저희는 KFT와 에이버의 경영권을 빼았기 위해 막대한 돈을 쏟아부었습니다. 그리고 주가가 요동치는 동안 저희는 손해를 보았으면 손해를 보았지 결코 이득을 보지는 못했죠. 물론 저희는 그 손해를 경영권을 획득하기 위한 비용으로 간주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경영권을 빼앗아 왔죠.] 기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덕분에 코스닥과 코스피 지수가 50포인트나 상승했다. 그 모든 돈이 제현 투자회사에서 나온 돈은 아니었지만 가히 천문학적인 투자였고 국제자본이 한국 증권 시장에 들어오는데 긍정적인 작용을 한 건은 확실했다. 솔직히 KFT와 에이버의 기관투자자들은 큰 이득을 얻었기 때문에 주가조작이라고 말할 명분은 무척이나 약했다. 그리고 주로 주가조작은 어떤 세력이나 사측에 의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대놓고 돈을 쏟아부은 제현 투자회사가 주가조작을 했다는 말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래도 주가가 널뛰기를 반복하는 동안 손해를 본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소액 투자자들을 말하나요?] 주식 시장은 많은 돈이 오간다. 그곳은 정글이며 적자 생존의 법치 적나라하게 적용되는 곳이었다. 때문에 세력들은 주식 시세의 흐름을 유추하기 위해서 막대한 투자를 한다. 그리고 강현은 아즈삭이라는 첨단 인공지능을 이용해서 돈을 투자했다. 그것은 세력과 아즈삭이라는 첨단 인공지능의 싸움이었다. 이 둘이 싸운 여파는 엄청났다. 주가는 미친듯이 움직였고 중간에 끼인 개미는 손해를 보고 떨어져 나가야 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 격이었다. 그리고 결과는 아즈삭의 승리로 끝났다. 아즈삭은 강현의 재력이라는 스트레이트 플러쉬를 쥐고 공략을 했다. 50화 아무리 주가가 널뛰기를 해도 아무리 지분 관계가 복잡해도 에이버의 지분을 가진 회사를 잡아먹고 그 회사의 지분을 가진 회사를 잡아먹고 또 잡아먹고 전방위적인 공격을 가했다. 뿐만 아니라 에이버가 안된다면 아음, 아음이 안된다면 레이트 등 차선의 방법도 동시에 진행하고 있었다. 물론 차선의 방향으로 가게 된다면 에이버의 콘텐츠를 뺏어오기 위해서 지저분한 진흙탕 싸움을 할 계획도 구상해 놓았다. 물론 아즈삭은 바보가 아니였기에 매물을 낚아챘다가 풀어주었다가 하면서 최대한 손실을 줄였다. 그리고 그럴 필요가 있었다. 아무리 강현이라고 해도 없는 매물을 사들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일이 벌어지는 동안 주식 시장은 폭등과 폭락을 반복했다. 주가 조작이라는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제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저희의 목적은 경영권이었다고요. 그러니 주식을 붙잡고 마냥 주가가 오르는 것을 바라는 개미 투자자들을 배려할 이유 따위는 없습니다. 그리고 결국 투자라는 것은 자신의 판단에 근거해 이윤을 바라면서 손해란 리스크를 지는 것이 아닙니까?] 미친 주식 널뛰기에 재산을 잃은 사람들은 이 대목에서 제현 그룹에 등을 돌렸다.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왜 굳이 한꺼번에 경영권을 얻지 않고 차례로 나누어서 일을 벌인 건가요? 세간에서는 돈 낭비라는 견해가 있습니다만. 혹시 시세차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닌가요?] [시세차익의 문제는 저희가 오히려 손해를 보았기 때문에 거론할 문제가 아닙니다. 그리고 두번에 나누어서 일을 벌인 것은 그럴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죠.] [필요요?] [제가 이 나라의 사회 경제를 공부해 보니 사회 전반에 카르텔이 단단하게 구성되어 있더군요. 저희 회사가 경영권을 빼앗은 기업들은 하나 같이 그랬습니다. 그래서 회사에서 카르텔을 구성하던 기득권들을 쫓아내고 적절한 인재를 찾아 정상화 시키는 과정이 필요했죠. 때문에 시간이 필요했던 겁니다.] [그, 그렇군요.] 기득권, 카르텔. 학연, 지연, 혈연의 대한민국이지만 그것을 이렇게나 노골적으로 비난하듯 말하는 것도 기자 입장에서는 참 생소했다. [하지만 경영자의 입장에서는 그런 기득권과 타협하는 것이 이득일 텐데요?] [그런 무능한 것들과 타협하다니요?] [네?] [카르텔을 만들지 못하면 이윤을 창출하지 못하는 이들과 손을 잡아서 어디다가 씁니까? 저희 회사는 세계와 경쟁하는 회사입니다. 그런데 그런 무능한 사람들과 타협하고 중요한 자리에 두고 경제적 파트너로 삼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경쟁력이 퇴보할 겁니다.] 적나라 하다, 적나라해. 기자는 속으로 혀를 찼다. 제현 그룹은 대한민국의 기득권을 전부 무능하다며 협상의 여지가 없는 적임을 확실히 했다. [그렇군요. 그럼 다음 질문을 하겠습니다. 그동안 한국에서 여러 사업을 벌이시면서 그런 식으로 재벌을 적.. 대하는 특이한 경영 전략을 구사하고 계신데 그것이 강현 박사님의 뜻인가요?] [물론입니다.] [왜 그러는 건가요?] [박사님께서 하신 말씀을 그대로 전해드리겠습니다.] ‘대한민국의 재벌들은 돈으로 법질서를 흐트리는 주제에 지들이 잘난 사람인양 하하호호하며 끼리끼리 논다. 나는 그런 것들과 같은 부류로 취급 받기 싫다.’ […...] 기자는 아연했다. 그리고 그 뒤의 인터뷰는 그냥 인터뷰를 마무리하기 위한 형식적인 질문 정도였다. 아무튼 이 동영상은 올라오자마자 많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댓글도 넘쳤다. [아니! 그럼 왜 대한민국에서 사업해? 그냥 미국에서 사업하지!] [우왕 짱이당!] [재벌들을 싹 밀어주세요!] [지가 존나 잘난 줄 아네.] [잘났거든.] [세계에서 가장 똑똑하거든.] [석유 시장을 쥐락펴락 하거든.] 대한민국 국민들의 여론은 대체로 이런 댓글과 크게 차이가 없었다. 재벌 개혁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시각, 국가를 뒤집어엎을 위험분자라는 빨갱이 논리, 그냥 비위 상해서 트집 잡고 비난하는 어줍이들, 그리고 열광하는 팬들까지. 미국의 한 언론은 조심스럽게 다음과 같은 헤드라인을 내어 놓았다. [대한민국. 침략 당하다!] 아무리 민주화 시대, 민주주의 국가라고 해도 사회 지도층이라는 것은 존재한다. 그리고 이 사회 지도층은 그 사회의 문화와 분위기의 흐름을 이끌고 크게는 국가의 흥망성쇠를 결정한다. 아니라고? 이완용은? 을사오적은? 그들이 조선의 운명을 일제의 식민지로 떨어뜨리지 않았나. 그뿐만이 아니다. 문화는 아래에서 위로 전파되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아래로 전파된다. 많은 이들이 신분상승의 꿈을 꾸고 열망하면서 상류층의 문화를 따라하는 것은 그와 같은 이치를 보여준다. 물론 각 나라의 문화에 따라 힘없는 자들이 힘있는 자들처럼 살기를 바라거나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힘있는 자들은 절대 힘없는 자들처럼 살고 싶어하지 않는다. 힘있는 자들은 자유가 없는 힘없는 자들의 삶을 동경하지 않는다. 이 일방적인 동경의 관계로 인해서 문화는 힘 있는 곳에서 힘 없는 곳으로, 위에서 아래로 흐르게 된다. 조선이 중국에게 사대하며 소중화를 자처했던 것처럼, 광복 후에 미국이라면 엄지를 치켜든 것도 마찬가지 원리다. 다시 돌아오면 사회 지도층이라는 계급은 곧 국가의 운명과 국가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계층이다. 좀 더 과장하면 그들이 곧 국가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계급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고 인간이 존재하는 한 사라지지 않는 진리였다. 때문에 미국의 이 언론이 내놓은 기사 제목은 좀 더 직설적이었고, 마치 강현이 대놓고 대한민국의 기득권에게 하는 것처럼 노골적인 표현으로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설명했다.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참으로 흥미롭다. 그것은 대한민국 기득권에게는 분명히 침략이나 마찬가지다. 제현 그룹은 대한민국의 권력의 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대중의 지지를 모으며 기득권층의 영향력을 축소시키고 있었다. 타협은 존재하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작정한 것처럼 빼앗고 또 빼앗고 또 빼앗고 있다. 처음에는 대한민국의 유명 대기업을, 그 다음에는 노동자를, 그 다음에는 시장을, 언론을, 대중의 지지를. 결국 최후에는 권력마저 쟁탈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런 침략행위는 대한민국의 국민들에게 오히려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 같다.] 기사는 다음으로 기득권층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과 불만, 그리고 믿을 수 없는 지도자층으로 인해 발생한 나만 살면 된다는 극도의 이기주의 세태를 꼬집으며 적어도 제현 그룹 밑에 들어간 사원들은 그런 천박한 삶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했다.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삶, 그리고 희생에 따른 명예가 보장되는 제현 그룹의 정책은 기존의 대한민국 기득권층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짓이다. 왜냐면 그들은 내부고발자를 철저하게 색출해 보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프랑스 혁명에서 깨달아야 할 것이다. 자유 평등 박애를 외치던 그들이 전 유럽을 상대로 승리했다는 사실을.] 비단 이런 기사뿐만이 아니었다. 과학도들은 드디어 갓(God)이 정의의 철퇴를 집어들었다고 호들갑을 떨었고 한인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한국의 근현대사를 설명하며 친일 매국노들이 바로 지금의 기득권층이라고, 때문에 강현의 손에서 참된 민족의 해방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설레발 쳤다. 그러나 모두 헛다리를 짚었다. 강현은 아즈삭이 정리해준 여론의 동향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진정한 사회 지도층? 정의의 사도? 민족을 해방하는 애국지사? 강현은 그 모든 명칭이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은 그저 냉정한 복수자에 불과했다. 필요하다면 저 모든 명칭들을 이용할 생각이 있는 차가운 피를 가진 무법자. 사실 원수들을 찾아내 죽이는 것은 무척이나 간단한 일이었다. 바퀴벌레 로봇에 독침을 장착해 찾아낸 원수들이 잠잘때 몸에 한 방씩 놔주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강현은 고작 그 정도로 복수를 끝내고 싶지 않았다. 그들에게 심각한 스트레스를 주고 싶었고 절망하게 만들고 싶었기에 그들의 모든 것을 빼앗는 방향으로 복수의 수단을 정했다. 그래서 일이 이렇게 진행되었던 것이다. 복잡한 인맥으로 서로를 보호하는 그들은 돈과 권력으로 민주주의 정신과 법치주의를 훼손하는 무리였고 강현은 원수들의 방법으로 그들을 몰락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사회 전체를 바꾸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가히 천문학적인 돈이 소요되었고 또 앞으로도 소요될 예정이었지만 강현의 재산에는 흠집도 나지 않았다. 지금도 계좌에서는 전 세계 석유 매출에 대한 로열티가 차곡 차곡 쌓이고 있었던 것이다. “단말기 생산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지?” [이제 막 설계에 들어갔습니다.] “나도 좀 서둘어야겠군.” 강현은 모니터를 들여다 보았다. 모니터는 전자 현미경으로 스캐닝한 이미지를 출력하고 있었는데 화연에는 작은 구가 일렬로 가지런하게 서있었다. 이 작은 구의 배열은 강현이 구상하는 초소형 안테나의 핵심이었다. 안테나는 전기 회로의 끊어진 선로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말이 옳다. 안테나는 외부에서 수신되는 전자파와의 공진으로 전기 회로에 전기 신호를 보낸다. 그래서 보통 안테나를 설계할 때 유전율, 즉 어떤 재료가 전기장에 의해서 내부에 전기장을 만드는 정도를 고려해서 설계하게 된다. 이 유전율이 좋을 수록 안테나가 더 민감하다고나 할까? 하지만 전파는 전기장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자기장 역시 같이 존재한다. 그래서 전자기파라는 용어로 포괄적인 개념으로 사용한다. 그렇기에 만일 안테나 이 자기장에 민감하다면 어떨까? 강현의 아이디어는 여기에서 출발했다. 자기장에 관련된 소재들의 성질은 꽤 많다. 그러나 크게 세가지로 구분될 수 있는데 강철과 같이 자기장을 가하고 나면 재료 자체에 자기장이 남아 있는 강자성, 그리고 구리처럼 자기장을 가했을때 마찬가지로 재료 내부에 동일한 방향으로 자기장을 생성했다가 외부 자기장이 사라지면 다시 자성이 사라지는 상자정, 그리고 초전도체처럼 외부에서 가해지는 자기장에 반대되는 방향으로 자기장을 만드는 반자성(초전도체의 경우에는 특별히 초반자성, 혹은 완전 반자성이라고 한다.), 이 세가지다. 그런데 철이나 마그네슘같은 강자성 물질이 나노 입자 정도로 작은 알갱이가 되면 매우 특이한 현상을 만든다. 이른바 초상자성이라고 해서 강자성 물질인대도 불구하고 자기장을 가하고 나면 마치 상자성 물질처럼 자기장이 0이 되는 것이다. 이 초상자성과 상자성의 차이점은 초상자성이 자화율, 그러니까 외부의 자기장에 대해 훨씬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강현은 이를 이용해서 기존의 안테나보다 훨씬 민감한 초소형 안테나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사실 이 초상자성 물질, 나노 자성체를 최초로 사용하는 종이 인간은 아니다. 주자성 박테리아라는 몸속에 작은 나노 자성체 알갱이를 가지고 있는 박테리아들은 이미 이것을 이용해 거대한 지구에서 방향을 잡았다. 51화 강현은 마침 이 박테리아에 대한 블로그를 보고, 또 때마침 통신사를 집어삼킬 계획을 실행하던 도중이었으며 차후 다른 통신사에 대한 우위를 점하기 위한 방법을 생각하다가 박테리아도 사용하는 초상자성물질을 이용한 초소형 고품질 안테나를 구상한 것이다. 전파가 전기장과 자기장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서로가 결국에는 상호 유도를 통해 전기장이든 자기장이든 동일한 신호를 보낼 수 있기 때문에 전기장에 민감하거나 자기장에 민감하거나 둘 중 하나면 신호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질 수 있었다. 그러나 금속의 유전율은 조절하는 것이 무척 어렵다. 유전율은 재료 내부에서 원자 혹은 분자 수분에서 일어나는 분극 현상의 정도에 따라서 결정된다. 하지만 금속은 내부의 전기장이 0이므로 진공의 유전율을 적용한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또 가해지는 전기장이 직류이냐 교류이냐에 따라서 금속의 유전율이 바뀐다. 교류일때 유전율은 복소 유전율을 사용하는데 이 복소 유전율은 외부에서 가해진 교류 전기장과 이에 영향을 받아 생기는 재료 내부의 교류 전기장 사이에서 생기는 시간차(위상차)에 대한 삼각 함수(실수부 + 허수부)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복소 유전율의 허수부는 재료에 의한 에너지 손실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위상차가 0이 되는 것이 가장 좋다. 하지만 그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안테나를 공기로 만드는 것이며 이는 전기회로의 구성을 고려해 보면 말도 안되는 말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위상차가 생기는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다. 때문에 좋은 무선통신기술은 적절한 위상차를 만드는 전자파 대역대의 선택(일찍히 공공재인 전자파 대역대 사용에 대한 경매시에 통신3사에서 좀더 좋은 대역대를 사기 위한 경쟁이 벌어진 적이 있다.), 안테나의 재료(유전율이 좋을 수록 신호 손실이 줄어든다.), 효과적으로 신호를 분류할 수 있는 회로 및 첨단 디지털 기술과 분석할 수 있는 현대 수학으로 빚어낸 분석프로그램(시분할다중접속, 주파수분할다중접속, 코드분할다중접속) 등 온갖 첨단공학기술의 총화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하나의 기술이 개선되면 그에 의한 효과도 무척 파장이 넓다. 만일 강현이 만든 초소형 고성능의 안테나가 완성되어 신호의 손실이 줄어든다면 기존의 안테나 재질로 인해서 사용에 한계가 있었던 주파주 대역의 사용성이 증가하고 이로 인해서 주파수 사용에 좀 더 많은 가능성이 생기기 때문에 통신기술에도 영향이 가며 전송속도 역시 빨라지게 될 것이다. 즉, 강현의 회사가 되어버린 KFT가 명실 상부하게 1위의 자리를 공고히 할 수 있다는 것. [박사님. 계산 결과 나노 자석 입자의 직선 배열로 인한 공진 효과가 미미합니다.] “디자인을 바꾸자.” 강현이 구상하는 안테나의 기본원리는 초상자성을 이용해 자화율이 높은 안테나를 만들어 전자기장으로 보내지는 신호의 흡수를 효과적으로 전기 회로에 전달하는 것이다. 전기 회로에 신호를 전달하려면 안테나에서 전자파와의 공진을 통해 전기장을 형성해야한다. 하지만 나노 자석의 재질 자체가 산화철이나 마그네슘을 이용한 것이기 때문에 유전율을 생각하면 힘들게 나노 입자를 사용하는 의미가 없다. 때문에 강현은 나노 입자를 안테나 위에 일직선으로 배열한 형태를 만들고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하지만 아즈삭은 그 결과가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란다. 그래서 이번에는 디자인을 새롭게 해서 전선의 주위에 나노 자석을 고리 형태로 배열한 디자인을 시뮬레이션 했다. 전기장과 자기장은 서로 수직하게 유도하기 때문에 플레밍의 법칙에 따라 도선에 유도되는 전기장이 극대화 되게 만든 것이다.(동일한 원리로 코일로 만든 전자석이 있다.) 그러나 그런 결과 역시 그리 좋은 것은 아니었다. “잘 안 되네.” [각 고리간의 간섭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복잡하네.” 직류가 흐르는 도선 주위에는 플래밍의 법칙에 따라 원통처럼 감싸는 방향으로 자기장이 생긴다. 그러나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최종적으로 생기는 자기장의 반대방향으로 먼저 자기장이 생긴 후에 점차 플래밍의 법칙에 따른 자기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런 가해진 자기장에 대한 반대되는 성질(반자성)은 실제 매우 일반적인 성질이다. 이는 어떤 회로 내의 자속, 즉 공간에 지나가는 자속밀도를 유지하려는 성질 때문인데 흔한 과학적 실험으로 이를 쉽게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구리 파이프 속으로 자석을 떨어뜨리면 훨씬 늦게 떨어진다. 왜냐면 자속의 변화를 거부하는 성질 때문에 자석을 밀어내는 즉, 자석이 가하는 자기장의 반대 방향으로 자기장이 생기도록 구리 관속에 유도전류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건 강현이 나노 자석을 반지를 여러 형태로 끼운 것 같이 설계한 안테나에 별로 좋지 않은 일이 었다. 어떤 고리가 먼저 자기장에 의해서 자성을 만들게 되면 다른 고리가 전선에 반대로 유도된 자기장에 의해서 먼저 자기장을 만든 고리에 반대로 자기장을 형성하게 된다. 즉, 다시 도선 내부에 반대 방향으로 전기장을 만들어 부정적인 간섭을 일으키는 것이다. [뿐 만 아니라 나노 자석이 고리형태로 되어 있기 때문에 자화율도 떨어집니다.] 강자성 나노 물질의 고리형태, 즉, 그것은 막대 자석을 원형으로 배치한 것과 같다. 때문에 자체적으로 배열을 이루어 외부의 자기장이 가해졌을 때 그 방향으로 자화되는 일에 저항이 생긴다. “그럴바에는 차라리 도선 주위에 나노 자석을 그냥 바르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네.” [계획했던 대로는 아니지만 생산성 측면을 보면 그것이 더 나을지도 모릅니다.] 가느다란 도선 주위에 나도 입자를 배열하는 것 역시 무척이나 어려운 기술이다. 거기에 들이는 노력과 비용에 늘어나는 성능을 가늠해 보면 그리 수지 맞는 방법은 확실하게 아니었다. 차라리 기존의 안테나 주위에 나노 자석을 덧입혀버리겠다는 단순무식해보이는 방법이 오히려 기술적 단순함과 기능성을 모두 확보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럼 지금까지 뻘짓을 한건가?” [그렇습니다.] “.... 역시 단순한 게 진리야.” 강현은 그러면서 아즈삭을 만든 게 인생에서 가장 잘 한 짓이라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 아즈삭의 시뮬레이션이 없었다면 얼마나 삽질을 했을까? 그러면서 다시 최종 완성을 위해서 설계를 진행했지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초상자성의 본질은 결국 엄청나게 작은 자석들이 가해지는 외부 자기장에 의해서 스핀하는 것이다. 때문에 가장 큰 기술적인 문제는 이 작은 자석들이 저마다 쉽게 회전할 수 있도록 서로 엉키지 않게 여유 공간을 주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단순한 방법은 단 하나뿐이다. 이 작은 자석들의 모임을 액체화 시켜서 금속의 표면에 바르는 것. 그리고 이미 이런 식의 재료는 나와 있다. 페로플루이드(Ferrofluid)라고 유기성 액체와 나노 입자 크기의 강사성 물질을 섞은 것이 그것으로 유튜브에 이를 이용한 여러 동영상들이 인기리에 클릭되고 있다. 하지만 강현의 안테나에 그것을 그냥 바르는 것은 전혀 좋지 않다. 적어도 50나노미터 이하의 매우 작은 강자성 물질을 사용해야 하며 안정적으로 안테나 도선 위에 붙어있어야 했다. 그뿐만 아니라 안테나의 안정성을 해하는 요인들(강자성 입자 사이의 자기적 힘으로 인한 엉킴, 액체 자체의 표면장력)을 해결하기 위해서 용매의 흡착성, 점성, 나노 자석 표면과의 젖음 정도 등 많은 것을 고려해야 했다. 하지만 이 방법에는 문제가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나 강자성 나노 입자 사이의 엉킴을 해결하는 것인데 하나의 방법은 온도를 올려 브라운 운동을 일으키는 것, 다른 하나는 점성을 높여 나노 입자를 움직이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첫번째 방법은 사용 조건의 온도를 고려할 때 적절한 방법이 아니었고 두번째 방법은 나노 자석의 스핀 속도를 줄여 안테나의 성능을 저하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강현은 액체가 아닌 다른 방법에 눈을 돌렸다. 그리고는 두가지 방법을 찾아냈다. 하나는 고분자/접착제에 섞어서 바르는 것. 또 하나의 방법은 재료공학에서 사용하는 졸겔(Sol-gel)기법을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전자의 방법은 적절한 고분자만 찾아낸다면 생산 비용을 획기적으로 떨어뜨릴 수 있다. 하지만 고분자 사이에 끼인 나노 자석이 외부 자기장에 대한 스핀을 자유롭게 할 수 있을지가 문제였다. 후자의 방법은 전자의 방법보다 조금 비용이 더 들지 모르지만 다공성 고체 막을 형성하여 나노 자석의 엉킴을 방지하고 조건에 따라 스핀을 할 수 있는 충분한 여유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었다. “어때? 장단점이 확실하지?” [비용을 따지자면 고분자를 이용한 방법 역시 적절한 가공법을 선택한다면 졸겔 기법을 사용하는 것에 준할 만큼 성능이 올라갈 수 있습니다.] “그래, 결국에는 매트릭스가 되는 재료에 대해서 나노 입자가 얼마나 자유로운가가 요건이잖아.” [그렇습니다.] 강현은 먼저 고분자(폴리머)를 이용해 나노 자석을 붙이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고분자의 장점은 사슬구조로 인해서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적어도 파괴 직전까지 길게 사슬이 엉키게 되는데 폴리 에틸렌 필름으로 이와 같은 성질을 이용해서 반투막을 만들 수 있다. 단지 폴리 에틸렌 필름을 주욱 잡아 당기는 것 만으로 물에서 세균따위를 걸러낼 수 있는 다공성 막을 만드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강현은 이런 고분자의 특성을 이용해서 나노 자석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방법을 구상했다. 플라스틱에 흡수되는 유기용매를 살짝 넣었다가 갑작스런 진공 환경에 노출시켜 팽창시키는 방법을 가장 먼저 고안했지만 팽창 정도와 팽창 위치를 조절하는 것이 극히 까다로워 오히려 생산비용이 증가했기 때문에 폐기했다. 다음으로는 고분자 덩어리를 길게 늘려 내부에 다공층을 형성하려고 했지만 스트레스를 가하는 과정에서는 오히려 안테나에서 벗겨져버리기 일수라 포기. 그래서 결국에는 졸겔 기법을 이용한 다공성 박막으로 안테나를 만들기로 했다. 먼저 강현은 산화철 나노 입자를 만들고 이를 물과 금속 알코사이드가 녹아있는 용액에 잘 섞었다. 금속 알코사이드는 졸겔 프로세스에서 사용하는 프리커서(선행물질)로 탄화수소 물질에서 히드록시기의 수소이온이 금속이온으로 대체된 것이다. 이 물질은 차후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가수분해 되었다가 축합반응을 하면서 네트워크 연결을 가진 금속 산화물(Gel)을 만든다. 일단 젤 구조가 완성된 다음에는 온도 처리에 따라 형성된 젤 구조가 붕괴하며 공간을 채워 나노 사이즈의 박막이나 나노 파우더를 만들 수 있는데 이를 이용한 반도체 제조 공정도 개발 되었으나 근본적으로 원자가 제자리에 없는 결함이 많아 그리 많이 사용되지는 못하고 있다. 일단 금속 알코사이드와 산화철을 잘 섞어 젤을 만든 강현은 금속 산화물 네트워크의 빈공간에 나노 자석이 자유롭게 스핀 할 수 있을 만큼의 공간만 남기고 불필요한 공간은 막의 강도 증가를 위해 줄여야 했기 때문에 적절한 온도 처리를 가했다. 적외선 가열기를 통해 아즈삭에 의해서 정밀하게 조정되어 완성된 샘플은 곧 비싼 테스트기에 넣어져 수시간의 테스트를 거치게 되었는데.. ============================ 작품 후기 ============================ 댓글에서 포이즌 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군요. 쩝. 나중에 한번 써먹으려고 했는데..(그래도 안쓸 확율이 높습니다.)경영자의 경영경 방어를 위해서 사용되는 포이즌 필은 결과적으로는 적대적M&A나 경영권 싸움에서 경영자의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서 사용합니다. 간단히 말하면 인수 시도가 있을 때 인수 시도자를 제외한 주주들에게만 저가로 주식을 판매하여 자신에게 유리한 지분율을 상승시키는 겁니다. 하지만 이 제도는 지나치게 경영자의 경영권을 보호해 주기 때문에 남용의 여지가 많고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를 불러올 수 있다는 치명적인 반작용이 있습니다. 아무튼 이 포이즌 필에 대한 언급은 나중에 미래 자동차를 먹을 때 하려고 했습니다. 사실 실제로 한국에서는 포이즌 필의 도입이 늦어 MB정부 때에서나 도입을 시도해 아직 제도화 되지는 않았죠. 왜냐면 재벌이라는 독특한 기업구조에서 포이튼 필이 오직 재벌만을 위해서 남용될 가능성이 있어 여러 시민단체에서 반대하고 있습니다. 설사 제도화 된다고 해도 그에 맞추어 회사의 정관을 개정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주주의결권의 절반 이상은 찬성을 해야하는데 주요 대기업의 주식 40%는 외국인들이 가지고 있습니다. 즉, 그들이 자신에게 손해될 일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거죠. 포이즌 필이란 결국에는 경영자의 입김을 강하게 만들기 때문에 정치역학적인 관점에서 결코 용납하지는 않을 겁니다. 재벌이 자신들의 눈치를 보고 배당을 많이 해줘야 하거든요. PS-하아.. 우리 모두 묵념합시다. 52화 “나쁘지 않은데?” [손실율이 무려 20%나 떨어졌습니다.] “민감해서 그래.” 손실율이 적다는 것은 엄청난 이점이다. 단순 계산해도 중계기의 숫자가 20%나 줄어든다. 그러나 그것은 1차원적인 사고방식이다. 1차원에서 중계기가 커버할 수 있는 거리가 20%늘어난다는 것은 중계기의 숫자가 기존의 0.8배로도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중계기로 구성된 통신망은 지표면에 2차원적으로 배열되어 있으니 제곱을 하면 기존의 0.64배. 즉 64%의 중계기만으로 기존의 구역을 커버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통신 중계기의 수를 36%나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는 힘들었다. DMB같은 단방향 통신이라면 몰라도 요즘 단말기는 모두 양방향 통신이기 때문이다. “중계기의 숫자가 줄어든 만큼 기존 핸드폰의 출력도 증가시킬 필요가 있어.” 그렇다. 중계기의 수가 줄어들면 단말기와 중계기의 거리가 증하는 법. 중계기와의 접속을 위해서는 단말기의 전파 역시 강해져야 한다. [그러려면 배터리의 비중이 증가해야 합니다. “쯧, 여기서 더 배터리를 개량해 봤자 방전 정도만 줄어들 뿐인데..” [단말기의 전원이 문제라면 태양전지 충전패널을 기본 악세사리로 집어넣는게 어떻습니까?] “글쎄..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아. 이 상품의 약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거니까. 그냥 중계기의 숫자를 대폭 줄이는 것보다는 적절하게 줄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아.” 중계기의 숫자는 휴대폰의 전파가 닿을 정도로는 있어야 했다. 그리고 그러는 편이 통화 품질을 더 좋게 할 수 있었다. 강현의 이 나노 자석을 이용한 안테나는 나오자 마자 빠르게 특허를 얻고 도입되었다. 전 세계에 동시 등록을 했기 때문에 한국의 단말기 제조 업체들은 미처 대응하지 못했다. 게다가 강현의 나노 자석 안테나는 그저 기존 안테나 제작 설비에 그저 졸겔 공정을 추가만 하면 됐기 때문에 빠른 도입이 가능했다. 거기에 기존 KFT고객에게 무상으로 안테나를 업그레이드 해주는 정책을 펼쳤다. 여기에 소요되는 인력은 세컨드 연합에 들어와 하청이 끊긴 업체들이 담당했다. 각 지역에 A/S 센터를 만들자 매일 수백명씩 안테나를 교체하러 왔다. 그런데 막상 중계기를 줄이려고 하니 아직 업그레이드 되지 않은 단말기를 이용하는 고객들이 있어 중계기 수를 줄이자는 정책이 멈추고 말았다. 적어도 기존 고객의 90%이 상이 업그레이드된 안테나를 단 단말기를 사용하지 않을 때 중계기의 수를 줄여버리면 골치 아픈 일이 일어날 것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큰 잡음이 나지 않도록 중계기 축소 정책은 장기 프로젝트로 돌리는 수 밖에 없었다. 한편, 강현의 초상자성 안테나는 미국에서 크게 관심을 가졌다. 차세대 무인기 개발 사업에서 안테나는 무척이나 중요한 물건이었다. 때문에 조심스럽게 강현에게 이 기술 역시 국가 기밀 기술로 지정해도 되겠냐는 의사를 타진해 왔다. 하지만 강현은 이번에는 거절했다. 왜냐면 대한민국의 단말기 시장을 먹기 위해서는 나노 자석을 이용한 안테나의 독점이 필요했고 이 안테나가 대한민국 다른 단말기 제조 회사의 손에 들어가는 것을 막아야 했기 때문이다. “정말로 하는 구나.” “응.” 잭은 질려버린 얼굴로 태연하게 대꾸하는 강현을 보았다. 잭은 강현이 저번에 했던 대규모 사회과학적 실험이라는 목적을 설마로 받아들였는데 일이 돌아가는 꼴을 보니 진짜였다. “네가 만든 안테나가 이렇게 효과가 좋을 줄을 몰랐어.” 제현 그룹에서 만든 스마트폰 단말기가 2위인 NG그룹을 제치고 무섭게 1위인 샘성을 따라붙고 있었다. “안테나 만이 아니야. 마케팅의 승리지.” 물건을 팔아먹기 위해서는 이미지가 중요하다. 전세계에서 아이폰 열풍이 불 때에도 샘성이 대한민국에서 1위의 자리를 고수할 수 있었던 것은 대한민국 제1의 기업이라는 이미지의 힘이 컸다. 하지만 이번에 제현 그룹은 마케팅에 거대한 돈을 쏟아부어서 샘성의 1위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갉아먹는데 성공했다. 그 와중에 주류 언론에게 쏟아부은 광고비도 엄청났다. 아마 샘성은 조중동 3사에게 뒷통수를 맞은 기분일 것이리라. “어디까지 갈꺼야?” “글쎄? 기존의 기득권층이 완전히 숙이고 들어올 때까지?” “겨우 그 정도면 돼?” 잭의 얼굴이 밝아졌다. 왜냐면 잘하면 좋은 결과를 보고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지리적인 위치는 동북아 외교관계에서 매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때문에 과거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을 때에도 미국이 적극적으로 ‘관리’를 해서 경제를 일으켜 공산화를 막지 않았나? 장차 성장하는 중국과 다시 기지개를 켜는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서는 남한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거둬낼 수 없다. 그리고 그 와중에 미국에게 적극 협조하는 한국의 기득권층은 매우 유용한 도구였다. 그래서 미국은 지금있는 기득권층이 쓸려나가는 것을 별로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잭을 보내 강현에게 이쯤해서 슬슬 타협해 줄 생각이 없는지 물어보러 간 것이다. 그런데 고작 항복하는 것 정도로 그만두어주겠다니.. “아아, 내 마음대로 숙청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숙이고 들어와야지.” “숙... 청?” “응, 숙청.” 잭은 강현이 원하는 것은 정말로 실험의 완성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지금 강현이 하는 방법으로 기존의 기득권층이 완전히 쓸려나가거나 아니면 기존의 기득권이 강현의 입맛대로 찌그러지고 변형되어버려 원래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그가 원하는 정체성을 가지게 되던가. 아무튼 강현의 입장은 어찌 되었던 간, 실험이 성공한다는 것을 전제로 미국의 입장을 고려한다는 의미였다. “그들은 절대로 그러지 않을걸?” 잭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기득권이라는 것은 원래 그런 것이다. 그들의 자존심은 권력을 지키기 위한 자존심이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다면 얼마든 자존심을 굽힐 수 있다. 하지만 그럴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면 결사 항전할 것이 분명했다. “그럼 끝까지 가야지.” 강현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 = = = = 강현의 초상자성 안테나는 국제적으로 특허를 받았고 그리고 외국의 단말기 제조 회사에 부품을 납품하기 시작했다. 초상자성 안테나를 제조하는 세컨드 밴드 연합의 중소기업들은 쌓이는 이익금에 입가에 미소를 물었고 세계에 단말기를 수출하는 대기업들은 입술을 물었다. “부디 저희 회사에도 납품을..” “안 팔아요.” “돈은 충분히 드리겠습니다.” “필요없어요.” 샘성 전자는 답답했다. 왜 우리 기업에는 팔지 않는다는 말인가? 심지어 3위로 떨어진 NG전자에도 부품을 납품하고 있으면서.. 초상자성 안테나의 획득에 실패한 샘성 전자는 전세계적으로 매출이 5%나 급감하기 시작했다. 강현의 초상자성 안테나를 탑재한 각 국의 단말기 제조 회사들과 국제적 경쟁기업에서 샘성 전자의 시장 점유율을 잡아먹기 시작한 것이다. 그로 인한 손해는 막대했다. 샘성 전자의 주가가 매출이 하락 한 만큼 떨어졌고 앞으로도 더 떨어진 전망이었다. 샘성의 경영진들이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마치 전 세계가 자신들을 표적으로 마케팅 전쟁을 벌이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초상자성 안테나로 기존의 중계기 유지비에서 10%정도나 절약되었으니 그 돈으로 마케팅을 벌이거나 디자인이나 개발에 투자할 여력이 생긴 것이다. 이렇듯 기업의 입장에서는 첨단 기술 하나만 도입하면 그 파급효과는 무궁무진했기에 언제나 기술 개발비에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하고 쓸만한 기술을 찾아다니기 위해 많은 노력을 들인다. 그런데 이번에 초상자성 안테나를 하나 놓친 것 만으로 이렇게나 시장점유율이 떨어질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건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제현 투자회사와 제현 그룹에서 각 국의 단말기 제조 회사와 짝짜꿍을 해서 시기를 맞추어 전방위적으로 샘성을 압박한 것이다. 이를 테면 세계 단말기 시장에서 ‘넌 OUT’이라는 느낌이랄까? 샘성의 입장에서는 다분히 악의적인 국제적인 담합이었지만 도대체 이것을 어디에 가서 호소한단 말인가? 이건 각국에서 아이폰과 특허분쟁을 벌이는 것과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하나로 세계 정부가 없는 이상 각국에서 마치 샘성을 노린 것처럼 벌어지는 이 일을 담합이라며 고발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프랑스 법정에서 영국 단말기 제조업체와 프랑스 단말기 제조업체의 악의적인 담합을 고발해 봤자 영국 단말기 제조업체는 애시당초 프랑스 법과 상관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샘성으로서는 초상자성 안테나를 납품받아 중계기의 수를 줄이고 그 돈으로 전세계적인 공격을 막는 수 밖에는 없었다. 그런데... 팔지 않는단다.. 담당직원으로서는 미칠 지경이다. 결국에는 샘성 전자의 사장이 직접와서 부탁을 했지만 다음과 같은 대답으로 인해서 헛걸음만 했을 뿐이다. ‘저희는 제현 전자에서 의뢰받은 만큼 납품합니다. 그 이상 생산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생산의 주체는 제현 전자였고 세컨드 밴드 연합의 중소기업은 단지 하청을 받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 라이센스도, 생산 기술도 결국은 모두 제현 전자의 것이기 때문에 다른 회사에 납품하는 것은 계약 위반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악의적인 공격이다!’ 샘성 그룹은 직감했다. 그렇다면 반격을 해야하는데 어떻게 반격을 해야하나? 제현 그룹은 딱히 국내 시장에 별로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단말기의 경우에는 다르지만 그 외의 부분은 너무 비중이 없어서 딱히 공격해 봤자 별다른 효용이 없었다. 샘성 전자의 최전 대표이사는 결국에는 제현 전자와 담판을 짓는 수 밖에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세계적인 압박을 홀로 버티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던 것이다. “그건 곤란합니다.” 제현 전자의 김강호 제현 전자 사장은 턱을 문지르며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왜냐면 일은 이미 벌어졌고 세계적으로 샘성 전자 단말기의 점유율이 각 국가마다 3위권 밖으로 떨어질 때까지 각 단말기 제조 회사의 공세는 그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현 그룹은 이 공세 작전을 구상하고 연합을 결성한 주체로 목적을 달성하기 전까지 이 암묵적이고 국제적인 담합을 탈퇴할 수 없다. 그것은 배신이었으며 오히려 담합의 표적이 제현 그룹으로 돌려질 수도 있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샘성이 이 나라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아시지 않습니까? 샘성이 휘청거리면 나라가 휘청거릴 겁니다.” 최전 대표이사의 말에 김강호 사장의 인상이 찌뿌려졌다. 그는 그 따위 과정된 이야기를 믿지 않았다. 왜냐면 샘성 그룹이 대한민국에서 직접 총 수출가액을 차지하는 비율은 25%, 샘성이 휘청한다고 해도 세컨드 밴드 연합에서 그를 보존할 수 있을 만큼의 이득을 얻고 있었고 제현 그룹의 단말기 역시 꾸준히 수출이 증가하고 있어 한국 경제에 큰 타격은 없다. 타격을 입는다면 샘성에 빌붙은 기득권층이 타격을 입는 거겠지. 그리고 정말로 최전 대표이사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 나라의 존재가치는 없다. 고작 기업 하나에 의지하는 나라라니.. 언제든 회사가 망하면 같이 망할 가능성이 있지 않은가? 그런 사회가 건강한 사회일리가 없다. 기업의 입김에 좌지우지되니 결국 이윤 추구가 최상의 목표가 되는 사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53화 그러나 김강호 사장은 아무리 생각해도 샘성이 망해도 대한민국이 망할 것 같지는 않았다. 왜냐면 제현 그룹이 있기 때문이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샘성이 망하면 제현 그룹이 대신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전 바빠서.” 더 이상 이야기할 가치를 못느낀 김강호 사장이 축객령을 내렸다. 그리고 최전 대표이사는 정신이 멍해졌다. 응? 방금 무슨 이야기를 들은건가? 샘성이 망하면? 아연해진 그는 이를 앙다물고 회사로 복귀했다. 그리고 샘성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가히 한 국가의 1위 기업이 가지는 능력은 대단했다. 그들은 멀티는 뺐기더라도 본진만은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대한민국의 점유율 유지에 나섰다. 사실 단말기 시장을 포기해도 세계적인 반도체, 디스플레이 제조회사라는 지위는 유지된다. 그러나 완제품 시장을 빼앗기게 된다면 그로 인한 부품 공급에도 많은 손해가 따르게 된다. 예를 들어 내가 90%의 완제품 시장을 점유한다면 부품 시장 역시 90% 가까이(기술력이 된다는 전제 아래)점유할 수 있다. 그러나 상대방이 완제품 시장을 90%점유 한다면 부품 시장의 점유율 역시(기술력이 앞도적이지 않다면) 기존보다 낮아질 수 밖에 없다. 때문에 완제품 시장을 점유하는 기업이 갑의 입장이 되는 것이다.(부품 공급에서 다른 업체의 부품을 대체할 만한 기술이 있다는 전제로)샘성이 이를 모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전 세계를 상대로 싸울 역량은 없다. 그렇다면 리스크 관리를 통해 피해를 최소화해야 했다. 멀티를 지키려다가 본진까지 털리는 것보다는 본진을 지켜 역전의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전략이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호갱들이라면 충분히 다시 세계에 나아갈 발판이 되어 줄 자본을 마련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있었다. 또한 제현 그룹은 초상자성 안테나를 샘성에게만 납품하지 않는 아주 악질적인 회사였고 강대한 적이었다. 대놓고 샘성이 망하면 자신들이 대신 하겠다라고 회사 사장부터 말하고 다니지 않는가? 게다가 샘성의 본진, 한국의 기업이었기에 본진이 털릴 위험이 너무나 높았다. 물주인 강현이 지금도 계속 회사의 자본금을 높이기 위해서 회사의 주식을 틈틈이 대량구매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 행동은 제현 그룹에 힘을 계속 실어주겠다는 노골적인 의도를 드러냈고 그 자본력만 따져도 제현은 만만한 회사가 아니었다. 그러니 샘성은 본진이 털리지 않기 위해서는 국제 시장의 점유율에 밀리는 것을 감수하면서 국내에 역량을 집중할 필요가 있었다. 어차피 시장에서 퇴출 될 가능성은 없다. 그정도까지 경쟁을 하기에는 다른 단말기 제조회사의 출혈이 크다. 그저 1위나 2위 정도의 점유율을 내어 놓고 살짝 물러서면 된다. 그리고 그렇게 보존한 역량으로 본진을 방어하겠다는 의도였다. 샘성은 국내 시장을 방어하기 위해서 출혈경쟁에 들어갔다. 마음 같아서는 안테나 독점으로 제현 그룹을 제소하고 싶었지만 교활하게 국내 2위 업체인 NG그룹을 참가시켰다. 그러니 홀로 좋은 것을 독차지 하고 있다는 명분은 그리 먹혀들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할 수 있는 것은 국민들이 샘성의 단말기를 쓰도록 출고가를 낮추는 방법 뿐이었다. 그러자 바로 제현 그룹이 대응에 나섰다. 본격적인 단말기 교체 행사를 실시한 것이다. 기존에 제현 그룹에서 제조한 단말기를 제현 그룹에서 만든 최신형 단말기와 무료 교체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이에 입이 딱 벌어진 것은 샘성이었다. 이건.. 밑지고 사업을 하자는 것 아닌가? 그러나 이미 적이 되어버린 이상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샘성 역시 대출혈 행사에 들어갔다. 그러자 NG그룹까지 출혈경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NG그룹에서는 원하지 않았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시장 점유율을 방어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경쟁이 가열되기 시작했다. [과도한 출혈 경쟁. 이래도 되는가?] [지나친 출고가 인하. 기업 경쟁력을 갉아먹는다.] 슬슬 언론에서 단말기 시장의 전쟁을 지적하고 당국에서 슬슬 제제를 가할 시기를 가늠하고 있을 때 제현 그룹에서는 언제 그랬냐는 냥 단말기 인하 경쟁을 뚝 정지해 버렸다. 이에 샘성은 포기했는가 생각하면서 떨어진 점유율을 끌어 올리기 위해서 좀 더 대출혈 서비스를 진행했다. NG그룹도 마찬가지였다. 그러자 정부에서도 잠시 두고 보기로 했다. 참으로 불공평한 행동이지만 재벌과 정부는 이미 한통속이었다. 물론 제현 그룹은 거기에 포함되지 않으니 배려할 이유가 없었다. 사람들은 왜 제현 그룹에서 이렇게 일찍이 경쟁을 포기 했는지 의아해 했다. 물주의 돈이 다 떨어졌나? 그러나 곧 세간에서 제현 그룹이 샘성 전자의 지분을 18%나 확보했다는 뉴스가 강타했다. 단말기 시장에서의 점유율 악재로 인한 잠깐의 주가 하락이 치명적인 헛점이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그것이 제현 그룹에서 노린 것이라고 생각했다. 떨어진 국제 시장 점유율에 본진인 한국을 공략하는 제현 그룹에 대항하기 위해서 출혈 경쟁을 벌였고 계열사에서는 그 동안 과도한 경쟁으로 유동성이 소모되었으며 돌아오는 어음을 결재하기 위해 대출을 받거나 채권을 팔아야 했다. 하지만 채권을 발행에 시간이 좀 걸리고 그 동안 국제시장에서의 영향력 감소로 회사의 주식 가치가 생각보다 떨어졌기에 대출은 좀 거부감이 들었다. 아무리 끼리끼리 노는 기득권이지만 그만큼 탐욕도 많아서 서로가 가진 것을 빼앗기 위해 꼼수를 부리기도 한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은행과 그 뒤에 있는 정치 인맥들은 재벌들도 쓴웃음을 지을 정도로 탐욕스럽기 때문에 대출에도 역시 위험이 따랐다. 그들 중 샘성의 위기를 순수하게 도울 인간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샘성 계열사들은 보유 지분을 팔아서 잠시 어음을 결재하고 금방 복구하려고 했다. 왜냐면 샘성이기에. 샘성이기에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고 그런 판단은 옳았다. 아즈삭이 그들의 행동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말이다. 샘성 계열사들의 주식이 나오자 말자 강현은 바로 전략을 수정했다. 원래는 출혈 경쟁으로 시장 점유율을 잡아먹으려고 했는데 의외로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 하긴 대한민국에서 정부보다 영향력이 더 큰 기업이 바로 샘성이니 그 저력을 생각하면 신기한 일도 아니엇다. 그리고 어차피 그의 목적은 샘성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재벌을 괴롭히는 것이었다. 그러니 거대 그룹의 경영자인 재벌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대주주의 탄생이라는 전략이 샘성 시장에 대한 잠식이라는 전략보다 훨씬 효과적이었다. 어차피 회사가 어려워져도 재벌은 대한민국의 막강한 권력자로서 잘 먹고 잘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샘성 그룹의 지분 중 18%가 제현 투자회사에 넘어갔다는 이야기에 사람들이 술렁거렸다. 이것이 샘성에게 호재가 될지 악재가 될지 알 수 없었기에 주가도 요동쳤다. 제현 투자회사의 지분확보가 적대적 M&A의 시작인지, 아니면 단순히 투자의 개념인지, 아니면 또 뭔 가가 있는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견호 재벌 일가에는 그 뭔가가 더욱 골치 아픈 문제였다. 샘성은 대기업이다. 국제적으로 보았을 때 그 가치가 무척 높다. 세계는 대한민국은 몰라도 샘성은 안다. 때문에 적대적 M&A의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아도 된다. 단순 투자일 경우에는 걱정 할 것도 없다. 하지만 이도 저도 아닌 다른 무언가라면... 만약 그것이 현 CEO의 퇴출이라면... 상황은 심각해 진다. 이견호 회장은 18%나 되는 지분이 넘어갔다는 말에 기함했다. “김 비서! 빨리 주식 보유 상황이 어떻게 됬는지 확인해봐!” 샘성 그룹은 순환출자 구조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문어발식 사업확장이 가능하다. 지주 회사에서 계열사들의 주식을 보유하면 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샘성 그룹은 크게 샘성 생명, 샘성 전자, 샘성 증권, 샘성 랜드로 이어지는 순환 출자 구조에서 샘성 랜드의 지분을 총수 일가가 지배하고 있고 여기에서 뻗어나온 하위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중간에 샘성 생명이나 샘성 증권이 끼어 고객의 돈으로 재벌의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지적이 있지만 단 한번도 거기에 대한 이야기가 여론의 주목을 받은 점은 없다. 아무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샘성은 그만큼 강하고 넓은 지배력을 가지고 있지만 이 고리의 하나를 뺏겨 버리면 다른 회사 역시 연쇄적으로 빼앗길 가능성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가능성은 현실이 되었다. “뭐? 샘성 전자만 13%라고?” 샘성 그룹의 지배구조의 중요한 축인 샘성 전자의 지분 비율 중에 총수일가의 보유 지분은 5%도 안된다. 하지만 샘성 물산, 자사주 보유, 그리고 인맥과 혼맥에 기관들의 우호 지분은 약 37%정도로 나머지 63%가량은 소액주주와 외국인 주주를 포함한 기타라고 할 수 있다. 이 기타에 포함되는 지주는 이견호 일가의 샘성 경영에 우호적인지 아닌지 확실하게 분류할 수 없는 지분이었다. 아니 이득만 된다면 굳이 샘성 전자를 이견호 일가의 지배에 맡겨둘 생각이 없기도 했고 주식가치만 올라간다면 샘성 전자가 샘성 그룹의 계열사로 굳이 남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다. 굳이 분류하자면 이들은 자신의 이득에 따라서 움직이는 중립자들인 것이고 강현이 생각한 샘성 그룹의 약점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중립자들의 비율이 50%로 줄었다. 이견호 일가에게 우호적인 지분은 37%에 그치고 적대적 지분은 13%, 알 수 없는 지분은 50%. 만약 알 수 없는 지분의 38%를 제현 투자회사에서 자신의 편으로 만든다면 샘성 전자가 넘어간다. 순환 출자 구조의 중요한 축이 재벌이 아닌 타인에게 넘어가 재벌의 지배구조가 붕괴하는 것이다. “당장 주주들에게 연락해!” 상황을 파악한 이견호 회장은 파랗게 질린 얼굴로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미 외국인 주주와 소액 주주의 30%가량은 이미 제현 투자회사에 넘어간 상태였다. 그들은 제현 투자회사에서 말하는 비전, ‘샘성 전자를 단순한 재벌의 기업이 아닌 세계 일류 기업, 결코 무너지지 않을 다국적 기업을 건설하겠다’라는 말에 홀딱 넘어간 상태였다. 물론 개인적으로 사례금 역시 적잖이 받기도 했다. 그러면서 위임장을 써주었다. 제현 투자회사의 비전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재벌의 지배구조를 혁파해야 했으니까.. 솔직히 샘성 전자의 주식을 구매한 주주들은 재벌 경영에 조금 불만이 있었다. 가령 다른 사업체에서 손해가 났을 때 샘성 전자의 이득금으로 손해를 보전해 주는 행태가 가장 불만스러웠다. 그런 짓을 하면 배당금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했다. 왜 제조 기업인 샘성 전자가 샘성 생명이나 샘성 증권의 손해를 보전해 주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샘성 전자는 이미 세계적인 기업이었기 때문에 혼자 잘먹고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불만이 어느 정도 있었기 때문에 샘성 전자를 재벌의 지배 구조에서 탈출 시키겠다는 제현 투자회사의 구상에 귀가 솔깃한 투자자들은 위임장을 써주었고 제현 투자회사는 대량의 위임장을 확보할 수 있었다. 샘성보다 한 발 빠르게 말이다.(당연히 아즈삭의 정보 수집 능력이 크게 기여했다.)이런 상황을 늦게 파악한 이견호 일가와 그 추종세력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그러면서 제현 투자 회사에 나머지 8%의 지분도 넘어가지 않도록 발에 불이나게 뛰었다. “아이고 사장님. 그동안 강녕하셨습니까?” 54화 <07-복수> 뛰어난 영업직원들은 물론 주주와 안면이 있던 사원들이 총동원되어 경영권 방어에 나섰다. 제현 투자회사가 30%에 해당하는 주주에게 전방위적이고 신속한 로비활동을 벌여 이미 샘성 전자에 대한 경영권 싸움이 벌어졌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난 상태라 샘성 계열사 중 금융업을 하는 샘성 증권이나 샘성 생명에서 경영권 방어를 하기 위한 주식 매집을 할 수도 없었다. 매물이 있어야 살 것이 아닌가? 게다가 요동치던 주가가 경영권 싸움이 벌어진다는 찌라시가 나돌자마자 천정부지로 솟았으니 여유자금을 모두 쏟아부어도 목표치만큼 주식을 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차라리 그 돈으로 기존 주주들을 포섭하는 것이 효과적이었다. [총수 일가의 대기업 지배에 마침표가 다가오나?] 게다가 각종 언론에게 이 사태를 파악한 듯이 기사를 쏟아내자 각 계열사에서 샘성 전자를 지원하는 것이 더욱 힘들어졌다. 왜냐면 샘성 전자는 알짜배기 중의 알짜배기라 그것이 쏙 빠지면 다른 계열사의 위치가 어찌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주가가 더욱 떨어졌기 때문이고 이때 각 회사의 경영권을 방어하지 못하는 자금이 풍부한 제현 그룹에 의해서 어느 회사가 하나둘씩 빼앗겨버린다면 순환출자로 이어지는 지배의 고리가 끊어지기 때문이었다. 샘성 전자가 다른 계열사의 지원을 받지 못한 원인은 결국 세계와 경쟁하는 회사가 끼어있는 상태와 그렇지 못한 상태의 차이는 곧 브랜드 가치와 직결되기 때문에 투자자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차이가 난다는 것을 간과했기 때문이었다. 한편 30%의 위임권이 순식간에 넘어간 상태였다는 보고에 이견호 회장은 입술을 깨물었다. 도대체 자신이 뭘 그렇게 잘못했나? 훌륭한 경영인을 앉히고 회사를 튼튼하게 일으켜 세워 세계적인 기업으로 만들었다. 거기에 배당금도 섭섭지 않게 배당했다. 물론 편법 승계와 탈세같은 짓을 벌이기는 했지만 그것은 그저 불안한 지배구조를 튼튼히 하고 싶었을 뿐이고 그것이 주가나 이익에 어떤 불이익을 주지는 않았지 않은가? 그리고 사실 기업이 절세를 하면 오히려 이득이 늘어나는 것이 당연한 이치가 아닌가? 그런데 이렇게 뒷통수를 맞다니...... 강현이라는 이름값이 삼성을 압도한다는 말인가? 그렇다. 사실이 그러했다. 강현이라는 존재는 이미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첨단 기술 문명 시대에서 어린 나이에 뛰어난 연비를 가진 엔진을 개발한 실력, 그리고 그 엔진을 포함해 전기 문명의 필수라고 할 수 있는 뛰어난 배터리 기술을 무료로 배포한 배짱과 너그러움. 그러면서 저명한 학자들도 혀를 내두를 만한 뛰어난 학문적인 이론을 보이고 결과물을 만들어 냈으며 자신의 목숨을 위협한 이들에게 전 세계적인 규모로 제제를 가한 카리스마까지. 그 와중에 석유 업계의 갑의 위치에 자리매김을 했으니 겨우 단말기를 파는 회사와 차원이 다른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그런 이의 손에 다국적 기업인 샘성 전자가 들어간다면 어떤 시너지 효과가 나올지 이익에 관심이 있는 모든 주주들이 궁금해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론 긍정적인 방향으로 말이다. 그래서 순식간에 30%의 위임권이 넘어갔고 지금 이 순간에도 샘성 그룹에서 안간힘을 쓰고 주주의 마음을 붙잡기 위해서 노력하는 중이었다. “장수를 잡기 위해 말을 쏘려고 했는데 금적금왕이 되버렸네.” 강현은 돌아가는 상황을 보고 짧은 감상평을 내었다. 원래 목적은 재벌로 대표되는 기득권 최고의 방패인 대기업을 쓰러뜨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의외로 말을 죽이는 것보다 빼앗는 것이 쉬운 상황이 되어 버렸기에 대기업 중 알짜 기업을 빼먹으려는 시도로 표적을 총수 일가에 한정시켰다. 상황은 나쁘지 않았다. 샘성 전자의 주주들이 무척이나 호의적인 반응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정치는 별로 하고 싶지 않았는데.” 강현은 자신이 말한 내용에 어울리지 않게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 어쩔 수 없는 타협임을 자신도 알고 있었다. 샘성을 무너뜨릴 자신은 있었지만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몰랐다. 또 그 와중에 어떤 변수가 튀어 나올지도 몰랐다. 신속하게 재벌들을 압박하고 기득권층에게 불안감을 심어주어야 했다. 때문에 18%에서 주식 매집을 멈추고는 자신의 이름 값을 이용해 정치적으로 해결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샘성 전자에게 총수 일가를 깨끗하게 몰아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결코 샘성의 주식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다시 경영권을 빼앗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박사님의 궁극적인 목표를 생각한다면 오히려 좋은 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그건 그래.” 강현의 원수들은 아직 수면 아래에 잠자고 있었다. 과거 도청으로 알아낸 5명의 이름은 알아냈지만 거기에서 그쳤을 뿐이었다. 중간 연락책은 누구였으며 실행자는 누구이고 또 조력자는 누구인지 모두 색출할 가능성이 없는 이상 섣불리 움직일 생각은 없었다. “궁지에 몰수록 그들이 더욱 애가 타겠지.” 밝혀진 그 5명은 군 장성, 군납 브로커, 정치가, 전 국정원장과 당시 국무총리 실장을 지냈던 이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 거대한 카르텔에서 어느 정도 힘은 있지만 주도적인 역할을 할 정도는 아니었다. 때문에 하루 하루 피를 말리듯이 기득권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재벌을 압박하는 과정에서 심한 스트레스를 받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들은 강현의 표적이 자신들임을 알아도 다른 이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가 없다. 대한민국 기득권층에 일어난 거대한 혼란의 원인이 자신들에게 있다는 것이 알려지는 이상 마녀사냥 이상의 일이 벌어지게 될 것이다. 가족들은 물론이고 친척들까지.. 바로 얼마전까지 친하게 지내던 이들에 의해서.. 때문에 그들은 더욱 조용히 태연한 척하면서 그 일에 관련된 이들의 입을 막아야 했다. 그리고 강현은 그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이 입단속을 위해서 움직이기 시작하는 순간을 바퀴벌레 로봇이 24시간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이 원수들을 잔뿌리 하나 남김없이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인 것이다. [박사님. 슬슬 이쯤되어서 기존의 재벌들에게 손을 내미시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가 있습니다.] 아즈삭이 조언했다. “안돼. 그들은 이 모든 일이 벌어진 원인을 알게 되어도 순순히 그들을 넘겨주지는 않을 거야. 주모자들에게 희생양을 강요하면서 가족들만은 보호해주겠다며 설득하고는 일을 마무리하려고 하겠지. 내게는 이쯤에서 원수를 갚았으니 됐지않냐고 헛소리를 지껄이면서 말이야.” 당연한 일이다. 일을 벌인 주모자의 집안, 혈족을 뿌리째 뽑으려고 하면 서로 공유하는 은밀한 사실들에 의해서 서로가 다치게 될 것이다. 이 거대한 카르텔은 상대방을 완전히 쳐내려고 하면 얽히고 섥힌 인맥으로 인해서 자신들도 상처받는 촘촘한 그물망 같은 관계를 이루고 있었다. 이 촘촘하고 꼼꼼한 그물망이야 말로 기득권의 정체였고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이들의 힘이었다. 안되는 사업도 이 그물망의 도움을 받으면 척척 돌아간다. 정부 기관이 국민의 세금으로 투자해 주는 것은 물론이요, 유통망을 장악한 재벌들의 일감 몰아주기로 알짜배기 시장을 잠식해 들어갈 수도 있었다.(세컨드 밴드에 들어온 기업들 중 적지 않은 하청업체가 이런식으로 대기업에게 뒷통수를 맞아 살기 위해 들어와 있다.)강현은 이 그물망을 완전히 찢어버리지 않고서는 완전무결한 복수를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럼 슬슬 경영권에 대한 위기감 가시화 시켜줄까?” [제이슨 사장에게 연락하겠습니다.] 강현의 수족들. 강현이 언급한 비전에 공감하는 이들은 대한민국의 기득권과 타협하지 않았다. 이득보다는 권력, 영향력을 획득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고 그들의 시나리오는 3차에 걸쳐서 이루어지게 되어 있었다. 1차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큰 힘인 돈, 그리고 그 돈이 나오는 시장을 잠식하는 것이다. 가장 오래 걸리고 시일이 걸리며 가장 격렬하게 저항을 받을 수 있는 단계다. 2차는 언론의 장악이다. 시민들을 일깨우고 기존의 기득권에 대항하도록 명분을 생산하는 것이다. 지금은 겨우 인터넷 포털 하나에 불과해 방어만할 수 있을 뿐이었다. 3차는 미국 언론지의 사설에 나온 것처럼 권력의 장악이었다. 그리하여 권력에 빝붙은 망자들을 쓸어버리는 것이 최종적인 목표였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기존의 기득권과 그들의 프레임에 반감을 가지는 정치세력의 육성이 필요했다. 그건 독재시대를 거치며 세뇌 교육을 받은 이들이 있는 사회에서는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이 완료되어야 복수를 완성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1단계에서도 운이 닿으면 얼마든지 복수를 행할 수 있었다. 3단계의 시나리오는 그저 유능한 인재를 끌어들이기 위한 명분, 미끼에 불과했다. 그리고 강현은 복수가 미리 완료되어도 이 시나리오를 완성시키고 자신들을 위한 이들을 위해서 그 동안 천문학적인 돈을 퍼부은 사업체와 영향력을 넘겨줄 생각이었다. 왜냐고? 자신은 한국이란 코딱지만한 땅의 권력이 필요없었다. 다만 자신의 복수를 위해 노력해 준 이들은 설령 강현의 본의를 모르고 일했더라도 그만한 보상을 받을 가치가 있다고 여겼다. 강현에게 대한민국의 가치란 고작 그 정도에 불과했던 것이다. “아아, 그리고 동시에 그걸 진행하자.” [유통시장 장악말이죠?] “구입 원가에 최대한 마진을 줄이면 되지. 직구입 직판을 하는거야.” [중간 단계가 없으면 기존보다 더 싸게 구입할 수 있을 겁니다.] 강현의 의도는 매우 단순했다. 중간 단계를 없에 마진을 최대한 줄인다는 것. 하지만 유통업이라는 것이 그렇게 만만한 것은 아니었다. 근본적인 상업활동은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한다는 것이지만 이 과정에서 생기는 이득을 어떻게 조율하고 소비자를 어떻게 끌어들일 것인가 등 많은 문제가 있었다. 이때 제현 투자회사의 인재들이 빛을 발했다. 아즈삭의 정보를 기반으로 몰락한 유통업자와 관련업 종사자를 찾아 심층 면접을 거친 후에 제현 그룹 유통 사업부를 확장했다. 시작은 농산물부터였다. 사업부에서는 특이하게 이익 공유제라는 것을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얼마전 분배가 사회적 이슈가 되었을 때 정치권에서 논의되었던 제도와 크게 다른 점이 없었다.(정부에서 논의 되던 법안이 실행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 또 논의가 되고 있는지조차도 더 이상 언론에서 다뤄지지 않았다.) 유명한 대기업 회장은 자본주의 국가에서 이런 공산주의적인 제도를 만든다며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고 이는 틀린 말은 아니었다. 공산품의 경우 원 재료에서부터 생산비, 부품 구입지, 판매 마케팅 비용 등 최종적인 부가가치에서 하청업체의 기여가 얼마나 큰지 가치 산출하는 것은 많은 이해 관계가 얽혀 있기에 불가능할 정도로 어렵기 때문이었고 이 문제에서는 제현 그룹조차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리고 막연히 이득을 공유하자는 것은 정당한 기업활동을 위축시킬 위험도 있었다. 또한 제현 그룹이 하청업체가 최종 부가가치에 기여한 비중을 정확히 산출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중심을 잃는다는 것을 뜻했고 그 말은 세컨드 밴드 연합의 신뢰를 잃어 전 사업영역에서 제현 그룹의 영향력이 축소된다는 것을 의미했기에 선심성 정책조차 금물이었다. 때문에 제현그룹 역시 다른 공산품에 대해서는 이익 공유제를 도입하지 않았다. 55화 그러나 농산물은 다르다. 농산물은 그 자체가 최종 생산물로서 농부들이 최종 생산자였다.(가공식품은 좀 다르다.) 그러니 그 상품의 판매에서 생기는 부가가치 대해 농부들과 유통업자는 그저 양자간의 협의로 배분을 조율할 수 있었다. 물론 유통업자가 갑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좀 더 많은 이득을 차지할 수 있으나 적어도 그 과정에서 생산자는 유통과정에서 일어나는 비용과 실제 마진에 대해 투명하게 알 수 있는 이점이 있었다. 그러나 팔 상품이 있어야 이 모든 계획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에 제현 그룹에서는 면밀하게 농산물을 납품해줄 농부들을 찾기 시작했다. 이미 한미 FTA에 의해서 농산물 시장이 개방되었기에 적어도 경쟁력이 있고 능력있는 농부들이 필요했다. 단지 농약과 비료를 언제 잘 쳐야되는지만 아는 단순히 부지런한 농부는 그들에게 기준 미달이었다. 그러나 이 단계에서 제현 그룹의 의도는 그리 순탄치 않았다. 경쟁력 있는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가를 포섭하는 것 자체가 무척이나 어려웠다. 보수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던 대다수의 농민들은 기존의 체제에서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했다. 아니 대기업들의 경쟁 사이에 끼어 고래싸움에 중간의 새우 꼴이 나는 것을 우려했다. 이들을 설득하는 방법은 그들을 안심시킬 진정성 밖에는 없었고 생각보다 진행 속도가 늦어졌다. [회장님. 자금이 필요합니다.] “보내드릴게요.” 제현 그룹의 대표이사인 카랄니 킴은 일정에 맞추어 일을 진행하기 위해서 강현에게 자금 지원을 요청했다. 그리고 강현은 대량의 달러를 투자하기 시작했다. 자고로 일이 더디면 돈을 쏟아붓는 것이 시간을 절약하는 일이었고 어떤 일은 투자금액보다 타이밍이 더 중요한 경우가 있었는데 지금이 바로 그러한 시기였다. 샘성 전자에서 벌어지는 일도 모두가 정신이 없을때 유통업에서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영향력을 구축해야 했다. 이에 금융당국은 죽을 맛이었다. 원화 가치 절하 정책을 유지하고 있는데 대량의 달러가 푸욱하고 들어오니 원화를 찍어내는 것이 무척이나 힘들었다. 달러가 대량으로 들어와 원화의 가치가 상승하면 수출기업에게는 악재였다. 그런데 제현 그룹에서는 수출기업인 주제에 달러의 소중함을 모르고 마구 시중에 풀고 있었다. 수입기업에게는 좋지만 국내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기업들에게는 더 안 좋았다. 특히 미래 자동차는 가격 경쟁력으로 먹고사는데(자신들은 품질도 떨어지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원화가치가 상승하면 외제차가 더 싸게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들이! 우릴 죽이려고 하고 있어!” 전해진 미래 그룹 회장은 사태를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저번 수출 계약을 위반할 위기는 어떻게든 돈을 쏟아붓고 직원들을 닦달해 모면했다. 하지만 이번에 원화가치 상승으로 외제차의 가격이 싸지자 대번에 매출이 급감했다. 젊은 소비자들에게 국산차보다는 외제차가 더 좋은 이미지였고 제현 자동차에서 외제차 A/S서비스를 신설해 외제차 구입에 대한 구입비, 유지비에 대한 부담감이 더 줄어든 덕분이엇다. 옵션만 많아진 미래 자동차로는 (그것도 내수용 차로는) 경쟁에서 이길 수가 없었다. 미래 자동차의 악재 소식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이어 제현 그룹과 아우디의 합자 회사인 아우디JH의 공장 라인이 90%까지 완공되었다는 소식에 엄청난 위기감을 느꼈다. 미래 그룹은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치적인 방법 밖에는 없다고 결론짓고 정치권에 로비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정치권에서는 세무조사에 압력을 가한 정치인들이 크게 다쳤기 때문에 제현 그룹을 건드는 것이 꺼려졌다. 저 타협없는 기업을 한 번쯤 눌러줘야 한다는 의견에는 모두가 동의 했지만 그렇다고 먼저 나서기는 꺼려졌다. 세무조사를 하도록 압력을 가한 변상득 의원의 비리를 그렇게 자세하고 신속하게 알아낸 제현 그룹의 정보력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자신들도 돈있고 힘있는 이들이기에 총알받이는 절대로 사양이었다. 전해진 회장은 답답했다. 이대로 물러나야 하는가? 대한민국 자동차 시장의 독점적인 지위를 포기해야 하는 것인가? 답은 그렇다였다. 아우디JH의 초기물량이 나오자 모조리 팔려나갔다는 사실은 미래 자동차의 독점시장체제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이 있다는 증거였다. 초도 만대 가량의 분량이 순식간에 계약되고 구매자의 시승기가 올라와 미래 자동차와 견주어 전혀 떨어지지 않는 가격과 품질이라는 평에 점차 자동차 시장이 개편되기 시작했다. 잠시 원화 가치가 증가하여 외제차의 맛을 알게 된 소비자들, 그리고 새롭게 대한민국 자동차 시장을 잠식해오는 제현 자동차에 미래 자동차는 독점적 지위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다. 저들이 단순 완제품 제조업이라면 여러 분야를 통해 방해할 수 있었다. 은행에서 대출을 못받게 한다던가, 중소기업을 압박해 부품을 얻을 수 없게 한다던가, 정치권에 부탁해 세무조사로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만든다던가. 그러나 이미 제현 그룹은 독자생존의 틀을 맞춰놓았다. 세컨드 밴드 연합은 제현 그룹의 보호를 받으며 무럭무럭 커가고 있었고 10만이 넘는 직원들과 그 가족들은 제현 그룹에 열렬한 소비자였다. 그리고 순식간에 구축한 농산물 및 식료품 판매구조는 농부에게는 더 많은 이득을, 소비자에게는 먹을 것 만큼은 풍족할 수 있도록 싼 물가를 약속하며 성장을 거듭하고 있었고 기존의 농산물 시장을 잠식하고 있었다. 이에 중간 유통 상인들이 제현 그룹이 중소 상권을 침입한다며 연일 시위를 벌였지만 제현 그룹에서는 다음과 같이 일축했다. [생산자가 풍요로워야 더 많은 생산물이 생기고 모두가 풍족해진다는 이치를 알아야 한다. 모든 경제 성장의 기반은 생산성의 향상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타협은 없었다. 제현 그룹은 비난 받았다. 정치권에서는 이때다하고 생각했다. 대기업의 중소기업 상권 침해에 대한 규제에 대한 법안이 발의 되었다. 그들은 이제 제현 그룹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손을 내밀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제현 그룹은 시큰둥 했다. 법안이 발의되자마자 유통 사업의 확장을 정지했다. 아직 정치에 손을 대거나 영향력을 행사할 때가 아니었다. 그리고 설사 그렇게 된다고 해도 기존의 정치가와 짝짜꿍을 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왜 시나리오를 3단계로 나누어 놓았겠는가? 그리고 이미 영향력을 발휘하기 충분할 정도로 거점을 확보했다. 이 거점들을 잘 운영해서 시장을 잠식하는 방법도 무척이나 좋은 방법이었다. 정작 난리가 난 곳은 대기업이었다. 골목 상권 진출도 제현 그룹 이외의 대기업이 훨씬 많이 한 상태였으며 빵집이나 카페, 편의점이나 대형 슈퍼마켓 등 큰 리스크 없이 돈이 되는 업종은 점차 키워나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야심만만하게 일을 진행했던 정치권에서는 정작 같은 편인 재벌에서 자중을 요청하자 당황하고 어리둥절했다. 어떻게 그 정도로 멍청할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지만 사람이라는 족속은 원래 머리를 굴리지 않은 분야에 대해서는 인지 능력과 이해력이 무척 떨어지는 동물이고 정치가라는 족속은 어떻게 하면 국회의원을 오랫동안 헤쳐 먹을지만 궁리를 하지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방법은 배우지 못한 인종이었다. 게다가 대기업이라는 곳은 선거 시절만 되면 이 진영, 저 진영에 정치비자금을 대주는 물주에 불과하지 않은가? 아무튼 기존 재벌들의 반발에 법안은 표류되었고 그때를 틈타 제현 그룹에서는 농부들과 직계약을 통해 농산물 시장을 야금 야금 잡아먹었다. 식품 산업에 회사를 가지고 있던 대기업들이 급하게 농부들을 잡아두려고 했지만 제현 그룹의 긍정적인 이미지와 자본공세를 당해낼 수 없었다. 그렇다. 기존 하청업체를 빼돌려 세컨드 밴드 연합을 만든 상황의 재판이었다. 이런 식으로 제현 그룹은 대한민국에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생산자와 유통망, 그리고 수십만의 우호적인 고객 덕분에 제현 그룹은 이제 기득권으로서도 완전히 몰아낼 수 없는 든든한 기반을 마련했고 기득권층은 현실을 인정했다. 이제 제현 그룹을 몰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싸우거나 타협해야한다. 그러나 제현 그룹의 실 소유주나 마찬가지인 강현을 만나는 것은 불가능했다. 0.4% 차이의 의결권으로 간신히 경영권을 지켜낸 샘성의 총수, 이견호 회장이 직접 강현을 만나서 부디 봐달라고, 사실상 항복을 요청하러 갔지만 만나지도 못했다. 철저하게 문전박대를 당했다. ‘어? 뭔가 이상하다.’ 그때 이견호 회장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제현 그룹에 세워질 때 세상은 드디어 천재가 본격적으로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제현 그룹은 정작 세계가 아닌 한국에 몰두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샘성의 영향력을 축소하기 위해서 샘성에 부품을 납품하지 않는 등 완전히 적대하는 정책을 사용했다. 또한 기존의 힘있는 사람들과 어떤 타협도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천재 과학자의 어떤 실험, 혹은 주체할 수 없는 돈을 소비하기 위한 헛짓거리, 사회 공헌을 위한 고귀한 책임 등 온갖 추측을 내어 놓았다. 그리고 재벌들도 각자 테스크 포스 팀을 가동해 강현을 분석하고 그의 위협을 막아내기 위해서 갖가지 방법들을 갖추기 위해 강현이 정말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서 고심했다. 그들은 강현이라는 존재를 분석했다. 실용적이다. 타협을 모른다. 용서를 모른다. 선을 지킬 줄 안다. 정치적 조건을 이해할 줄 안다.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는 무관심 하다. 법을 그리 존중하지 않는다. 그리고.... 등등 특징적인 행동 패턴이 있었다. 확실한 것은 강현이 결코 어떤 불타는 정의감이나 젊은 혈기에 의해서 제현 그룹을 만들고 대한민국에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NASA 연구소의 응접실에서 기다리다 기다리다 결국 강현을 만나지 못하고 헛걸음을 한 이견호 회장은 강현의 문전박대에서 ‘적의’를 느꼈다. 그렇다. 원한이 없고서는 세계적인 기업의 회장인 자신을 이렇게 문전박대할리 없다. 그렇게 집요하게 경영권을 박탈하려고 돈을 쏟아부을리가 없다. 이견호 회장은 자신이 한 일이 저 천재의 심기를 어떤 부분에서 거슬리게 했는지 떠올려 보았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영향력이 클수록 책임도 많아진다. 그러니 원한도 많이 살 수 있었다. 설마 반도체 제조 공장 백혈병 발병과 관련이 있나? 아니 그럴리 없다. 강현과 관련있는 이를 그런 식으로 관리할리가 없었다. 강현의 신변에 관한 것은 언제나 관심의 대상이었고 국내 석유 기업의 목줄을 죄고 있는 이였기 때문에 결코 그와 원한을 살 짓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샘성을 적대한다? ‘아니다! 샘성 뿐만이 아니다!’ 제현 그룹의 전신이었던 한회 그룹의 일가를 완전히 그저 그런 졸부 수준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들은 재벌이라는 권력의 자리에서 추락해버렸다. 뿐만 아니라 미래 자동차의 경우를 보아라. 유통망을 빼앗기 위한 공격적인 투자를 보아라. 그리고 용서없이 정치가의 비리를 포털을 통해서 공격적으로 드러낸 것을 보아라. 그것은 제현 그룹이 자리를 잡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강현이 이 나라의 기득권에게 가지고 있는 감정의 표출이었다. ============================ 작품 후기 ============================ 너무 우울해서 며칠 쉬어볼까 합니다. 자꾸 글이 담담한 문체에서 우울한 문체로 가고 있네요. 56화 이견호 회장은 그렇게 생각했고 처음부터 다시 강현의 주변 인물에 대해서 현재부터 과거까지 모두 재검토하기를 지시했다. 그러면서 강현이 원한을 가질 만한 사건을 추리도록 했고 그 첫번째는 역시나 당시 강현을 괴롭혔던 과학기술부 장관과의 일이었다. 그러나 그건 너무 약했다. 겨우 그정도의 일로 여기까지 일을 벌렸다고 보기에는 힘들었다. 하지만 곧 제시의 교통사고와 강현 부모님의 교통사고에 대한 일이 조심스럽게 보고서로 짜여 올라왔다. “이거야!” 이견호 회장은 벌게진 눈으로 강현의 부모가 죽은 사건에 대한 보고서를 꼼꼼히 읽기 시작했다. 왜 갑자기 트럭이 미끄러졌나? 왜 강현의 부모는 가장 가까운 응급실이 아니라 좀 더 먼 응급실로 향했나? 어떻게 트럭이 브레이크 파열에도 핸들을 꺾지 않았을까?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왜 그 운전기사에 대한 정보는 샘성의 정보망으로도 찾을 수가 없을까?’ 빠드득! 이견호 회장은 이를 갈았다. 결국 이것이었다. 천재가 자신의 부모님의 죽음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게 된 것이었다. 사건을 조작할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정재계에 끈이 있는 기득권층이 분명하겠지. 그러니 그가 이 나라의 권력자에게 취하는 태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의 부모를 살해한 자를 포함하고 보호하고 있는 집단. 즉, 세기의 천재는 이들 모두를 처 낼 각오를 하고 일을 벌린 것이다. 설사 그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돈이 얼마나 들든.. “김 비서. 여당 총재와 약속을 잡게.” 이견호 회장의 마음이 다급해졌다. 다음에 또 주주 총회가 열리면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다고 보기 힘들다. 빨리 강현의 원수들을 색출해서 이 전쟁을 멈춰야 했다. 그래야 피를 보는 것을 덜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정보는 회장실의 환기구에 숨어있는 바퀴벌레 로봇을 통해 아즈삭에게 전달되었다. [시나리오 C가 시작되었습니다.] “B도 아니고 C라.. 역시 샘성을 그냥 키운건 아니라는 거군. 감이 좋아.” 이견호 회장은 사태의 본질을 직감적으로 파악해 냈다. 그래서 시나리오는 C라는 분기를 타고 진행되기 시작했다. 강현에게는 시간이 절약되는 시나리오였지만 A나 B에 비하면 분기점이 훨씬 많고 변수도 많아서 자신과 아즈삭이 빠르게 대응해야하는 시나리오였다. 참고로 A는 정권을 탈취하고 나서 강현이 주도적으로 복수를 진행하는 시나리오였고 B는 중간에 원수들의 흔적을 찾아내는 시나리오였다. 물론 각 시나리오에 대해서 강현은 다양한 준비가 필요했다. 시나리오 C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니 분기점이 많으니 더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자는 시간을 줄여야겠군.” [박사님. 수면시간이 줄어들면 사고속도가 느려집니다.] “괜찮아. 어차피 시나리오 C에 진입한 이상 1년은 걸리지 않을거야.” 시나리오 C. 기득권 내에 분열이 발생하는 상황을 말한다. 변화는 순식간에 이루어질 것이니 이때 원수들의 개략적인 형태가 떠오를 것이 분명했다. [그럼, 준비하겠습니다.] “응, 부탁해.” = = = = = “........” “............” 어두운 분위기에 침묵만이 감돌았다. 수방사령관 박기호 대장이 입을 땠다. “샘성에서 냄새를 맡았소.” “....” “일의 전말이 드러나면 우리는 역적이 될 것이오.”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단 한순간의 실수로 놓쳐버린 치어가 대물이 되어서 돌아왔다. 그냥 대물도 아니고 대한민국을 압사시킬 정도의 대물이 되어버렸다. 자신들의 의도는 이것이 아니었다. 잘 키워서, 말 잘 듣는 공돌이로 만들어 대한민국의 영광을 위해 봉사하게 만들 생각이었다. 그런데, 일이 이지경이 되어버렸다. “우리에게는 남은 선택이 없소.” 이상용 의원이 입을 열자 모두 시선을 집중했다. “모든 것을 내려 놓거나, 아니면 끝까지 가던가.” 전 국정원장인 김청송이 침중한 목소리로 물었다. “끝까지 간다면..” “... 쿠데타요.” “미쳤소!?” 당시 국무총리실장이었고 지금은 대통령 비서실장인 홍일헌이 대경했다. 쿠데타라니! 미친 소리였다. 인터넷이 발달한 지금 절대로 용납받을 수도 성공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럼 이대로 다 죽자는 말이요?” “해외로 도망치면 되지 않소?” “강현이라는 작자가 벌린 지금의 상황을 보시오. 외국으로 도망친다고 해도 그가 가만히 있을 것 같소?” “차라리 자수는 어떻소? 일을 실행한 이들을 드러내고 꼬리를 잘라버리면?” “나쁘지 않은 일 같소.” 둘의 이야기에 군납 브로커인 채경환이 끼어들었다. “그런데 정말 이 모든 일이 십 수년전 그 일 때문에 일어난 것이 확실합니까?” “샘성이 그 일을 다시 조사하고 있소.” “....” 샘성 회장의 판단력이라면, 그리고 얼마 전 강현을 만나기 위해서 NASA에 다녀 왔으니 어떤 교감이 있었을 수도 있다. “... 만약에 자수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것 역시 어려운 일이었다. 사건이 조작되었으니 권력이 개입했음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었고 때문에 누구 하나가 책임을 져야했다. 그것이 여기에 있는 다섯 명이든, 아니면 중간 책임자든. 하지만 그때의 중간 책임자는 미리 국외로 빼돌려 버렸다. 혹시나 사건이 재조명 될 가능성 때문이었다.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일은 매우 유명하니 제발이 저려서라도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또한 설사 강제로 불러들였다고 해도 충분한 설득의 과정이 없었으니 그의 입에서 자신들의 이름이 나올 것은 불 보듯 뻔했다. “하아..” 답이 안보였다. 일을 다시 들춰내고 강현이라는 이가 만족할 만큼 큼지막하게 꼬리를 잘라야 하는데 그러기가 참 힘들었다. 아니 잘리는 꼬리가 크면 클수록 오히려 잘리는 것은 꼬리가 아니라 머리가 될 공산이 더 컸다. “최제태 부회장에게 연락을 해봅세.” 최제태 현 샘성 전자 부회장. 당시 샘성 전자 이사로서 그 일이 벌어지는 과정에 강현을 이용할 기대 이득에 투자를 했던 인물이었다.(뇌물도 투자라면 투자다.) 그러나 그는 이들의 연락을 받지 않았다. 아니 받아도 처음 만난 사람처럼 굴었다. 최제태 부회장은 상황 파악이 빨랐다. 결코 이들에게 발목을 잡혀 추락하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올라온 부회장 자린데.. 다섯 명의 주모자는 그 당시 일에 도움을 주었던 검찰 총장, 지금은 유명한 변호사인 김하진에게도 연락을 했지만 김하진의 태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전화를 받고 목소리의 주인이 이상용 의원이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바로 처음 만나는 사람 취급을 했다. 그리고는 바쁘다면서 다음에 이야기 하자며 끊어버렸다. “씨발 놈들. 지금 누구에게 덤터기를 씌울려고.” 그는 솔직히 억울했다. 그 당시 사건을 조기 종결해 달라는 이상용 의원의 언질과 국정원장의 협조 요청에 별다른 수상한 것이 없는 교통사고라 당연히 그러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고아가 되어 버린 천재 소년에게 불쌍하다며 혀를 쯧쯧 찼었다. 하지만 제현 그룹이 등장하며 다시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자 식은땀이 흘렀다. 그쯤 되자 막연한 불안감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제현 그룹이 대한민국에서 무시하지 못할,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기업이 되자 그 불안감이 구체화되기 시작했고 기존의 기득권 층에 대한 적대적인 경영에 불안감의 형체가 완성되었다. 그때, 자신이 조기 종결을 명한 그의 부모가 당한 교통사고 사건. 그때 분명 자신이 생각하지 못한 어떤 것이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 자신은 억울했다. 단지 생각없이 관습적으로 청탁을 들어주었을 뿐이었다. 그러니 그 일의 주모자로 보이는 이들과 엮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한편, 이 다섯 주모자들은 다른 협조자에게도 연락을 하기 시작했지만 점점 고립되는 것을 느꼈다. 이러다가 별다른 죄가 없는 이에게 연락을 하면 오히려 그것이 자극이 되어 자수해 버릴지도 모른다. 그리고 주모자들은 처벌을 받겠지. 범인의 인권을 지독하게도 챙겨주는 대한민국의 법을 고려하면 지금이라도 자수를 하는게 옳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법은 적용 대상에 따라서 그 결과가 천차만별이다. 자신들이 지금 대한민국의 기득권을 위협하고 엄청난 스트레스를 가한 강현의 부모를 죽였기에 이 모든 일이 벌어졌다고 한다면 판사들은 과연 어떤 판결을 내릴까? 두렵다. 그것이 그들이 현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자신들이 고립되기 시작했고 같은 편이라고 생각하던 샘성에서 점차 사건의 실체를 더듬어가는 정황이 포착되자 완전히 공포에 질려버렸다. 그들은 자신들의 가족들을 해외로 보내버리고 자신들도 한국을 뜨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은 성공했다. 그동안 쌓은 재산으로 동남아나 개발이 덜 된 아프리카 같은 곳으로 간다면 황제처럼 평생 호화롭게 살 수 있었다. 대한민국을 떠난 그들은 안심했다. ‘그것’이 방문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트르륵. 꽈직! 이상한 소리가 났다. 푹 잘 자고 있던 김청송 전 국정원장이 눈을 번쩍 떴다. 강도가 들었나? 그는 베게밑에 넣어둔 권총을 뽑아들고 격철을 당겼다. 혹시 모르니 구입해준 자위용 무기였다. “여보?” “가만히 있어.” 김청송은 아내를 안심시키고는 조심스럽게 안방을 나섰다. 상체를 숙이고 벽을 등지면서 조심스럽게 이동했다. 발걸음 소리를 내지 않고 1층으로 내려온 그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검은 그림자가 스륵 스륵 소리를 내면서 돌아다니는 것을 발견했다. [꼼짝마!] 그가 총을 겨누며 그 검은 그림자에게 소리쳤다. 검은 그림자는 김청송에게 고개를 돌렸고 김청송은 별안간 확하고 시야가 환해시는 것을 느꼈다. 완전히 새하얗게 되어버린 시선에 김청송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고 당황해 막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다가 목에서 따끔하고 강렬한 전기를 느끼고는 그대로 기절했다. 얼마나 기절해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가 깨어난 곳은 창문도 보이지 않는 지하실 같은 곳이었다. 시멘트 벽에는 짙푸른 색의 곰팡이가 피어 있었고 공기 역시 곰팡이 냄새가 섞여서 퀘퀘했다. 김청송을 사방을 둘러보다가 검은색의 두터운 후드를 입고있는 장신의 누군가가 서있는 것을 발견했다. “Please! 제발! 날 보내주시오!” 그는 당황해서 영어를 제대로 할 정신도 없었다. 국정원장으로 강력한 권력을 누리던 그가 이런 강력 범죄적인 상황을 맞이한 적은 없었다. 후드의 남자는 김청송이 말을 걸자 한쪽벽에 있던 테이블을 끌고와 그 위에 놓여있던 노트북을 열었다. 그리고는 무언가를 조작하더니 화면을 돌려 김청송에게 보여주었다. [안녕하세요. 이렇게 얼굴을 대면하는 건 처음이겠죠?] 화면의 얼굴을 확인한 김청송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강현, 그자였다. [흠. 말이 없군요. 그래도 상황을 파악하고 도망간 것은 무척이나 현명한 판단이었습니다. 나를 이렇게 귀찮게 만들다니 말이에요.] “제, 제발.. 요, 용서를..” 김청송의 얼굴은 이제 하얗게 질려버렸다. 역시나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들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불법적인 방법까지 동원해서 복수를 하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목숨은 그에게 달렸다. 김청송은 용서를 비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용서를 빌진 마세요. 전 이미 결정을 내렸으니까요.] 화면에 비친 강현의 얼굴은 담담했다. 협상의 여지가 없는 통보였다. “제, 가족들은..” 김청송의 말에 강현의 얼굴이 기묘하게 일그러졌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보며 분노하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57화 [남의 가족을 그렇게 죽여놓고서는 이제와서 자신의 가족을 걱정하는 태도라.. 정말로 이해할 수 없군.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은 사회를 이루는 기본요소입니다.] “제발! 제 가족만은!” 김청송은 자신이 살기는 틀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동정심에 호소해서 적어도 자신의 가족의 안전만은 지키고 싶었다. [걱정마세요. 누구도 죽이지 않습니다. 그렇게 쉽게 죽여줄 생각은 전혀 없어요.] 담담한 강현의 어조가 지옥의 악마가 말하는 것 같았다. [당신은 지금까지 쌓아논 부를 모조리 잃어버리게 될 겁니다. 당신의 가족들도 마찬가지로요.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일해도 다시는 과거의 부와 권력을 되찾게 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당신이 쌓아온 인맥은 당신을 외면할 것이고 당신의 가족들은 가난에서 허우적거리며 평생을 살게 될 겁니다. 그리고 당신은 그 모든 광경을 뜬눈으로 보게 되겠죠. 물론 당신이 가족에게 버림을 받지 않고 살아있는다면 말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지? 대체 어떻게 그렇게 한다는 말인가? 김청송이 강현의 계획에 말을 하지 못할때 옆에 있던 사람이 뭔가를 들고 다가왔다. 꼬챙이가 잔뜩 꼽혀있는 엉성한 헬멧같은 것이었다. “뭐, 뭐야! 멈춰!” 남자가 그것을 자신에 머리에 강제로 씌우고 턱끈을 조여 단단하게 고정했다. 김청송은 저항했지만 손발이 단단히 의자에 묶여 있었고 남자의 힘은 너무나 강했다. [당신의 머리에 씌운 것은 제가 심혈을 기우려 만든 장치입니다. 이름은 브레인 셰이커라고 하죠.] 브레인 쉐이커? 김청송의 마음에 불안감이 피어났다. [당신에게 그 일을 같이 저질렀던 이들에 대해서 말하라고 하면 왠지 그걸 대가로 당신의 가족에게는 손을 대지 못하는 조건을 들것 같아서요. 저는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아요.]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거짓말을 할 수 있는 그였다. 그러나 부모님의 복수를 위한 일에서 불필요한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자신이 불리한 입장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었고 강현은 원수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만들었다. 브레인 셰이커를. 원리는 간단했다. 인간의 뇌의 각부분에 전극을 꽂는다. 그리고 다양한 자극을 주어가면서 그 스파크를 특별히 만든 인공뇌에 전사한다. 약 만 8천개에 달하는 전극에서 오는 정보를 분석하기 위해서 시각적, 청각적인 자극을 주어가며 필요하다면 마약을 투여해 정신을 유린할 윤리적인 행위 역시 각오했다. “뭐, 뭐하는 거야?!” 김청송은 남자가 투명한 액이 든 주사기를 들고 팔을 치켜들자 기겁했다. 그러나 남자는 그의 허벅지에 주사바늘을 박고 엄지로 피스톤을 눌렀다. 투명한 액이 들어가고 잠시 후 김청송은 머리가 몽롱해지는 것을 느꼈다. 약효가 돌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김청송의 머리에 씌워진 기괴한 모양의 헬멧에서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우어어.” 김청송은 두피에 뭔가가 와서 박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아프지도 않았고 어떤 감상도 들지 않았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부디 당신이 기억하는 것이 많기를 바래요. 아, 참 그 장치를 아직 실제로 사용해 보지 않아서 어떤 부작용이 있을지는 알 수 없어요. 시뮬레이션 상으로는 최소 반신불수가 생길 수도 있지만 말이에요.] 강현의 얼굴이 사라지고 갑자기 붉은 사과의 모습이 떠올랐다. [사과.] 그리고 스피커에서 대상의 이름을 읽었다. 무감정한 기계음이 김청송의 귀로 파고들었다. 시각적 자극과 청각적 자극이 김청송의 뇌로 들어가 뇌에 작용하기 시작했다. 저항없는 이미지의 수용으로 인한 그의 뇌에서 일어나는 전기자극이 뇌에 박힌 전극을 따라 인공뇌에 전달되었다. 모니터의 이미지는 붉은 사과에서, 나무, 의자, 책상 등 주로 구체적인 사물로 매우 빠르게 착착착 넘어가더니 사람의 이미지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처음은 누구나 아는 매우 유명한 이의 얼굴이었다. 간디의 사진이 모니터에 떠오르며 [간디]라고 스피커가 이름을 출력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이 사람이 강현의 부모를 죽이는 일의 공범인가?]라는 질문이 이어졌다. 그 뒤로 링컨, 에디슨, 아인슈타인 등의 사진이 동일한 과정을 거쳤고 이어서는 박기호 대장, 이상용 의원, 홍일헌 대통령 비서실장, 브로커 채경환 같은 확실한 공범의 이름이 이어졌다. 강현은 이 대조군을 통한 자료의 비교로 정말로 공범이 누구인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물론 개체간의 특성과 데이터의 축적이 부족해 100% 확신할 수는 없지만 외국으로 도망나온 이들이 김청송 뿐만은 아니었다. 필리핀에 있는 이상용 의원, 대만으로 건너간 채경환도 있으니 비교해서 충분히 신뢰할 만한 리스트를 뽑을 수 있을 것이다. 현 수방사 대장인 박기호나 홍일헌 비서실장같은 경우에는 갑작스런 사퇴를 하면 주목받을 수가 있기 때문에 아직 상황만 보고 몸을 빼지 못하고 있었다. 샘성의 조사가 진행되면 진행 될 수록 애가 탈 것이다. 시간이 흘렀다. 며칠이나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주기적으로 투여하는 약은 김청송의 정신을 망가뜨리고 있었다. 그의 머리에 씌워진 브레인 쉐이커에서 알람음이 났다. 다시 브레인 쉐이커를 씌웠을 때 사과의 사진을 보여준 과정을 반복하니 잡음이라고 할 수 있는 노이즈가 심하게 끼어서 자체적으로 중단한 것이다. 아마 김청송의 뇌는 더 이상 연상할 힘도 없는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폐인이 되어버린 김청송은 야밤에 경찰서 근처에 버려졌고 급히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그를 찾았다는 소식에 그의 가족들이 병원에 도착해서 김청송의 상세를 살폈다. 의사는 김청송이 심한 금단 증상을 보이고 있으며 두개골에 난 무수히 많은 구멍을 통해서 무언가가 뇌에 데미지를 주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침대에서 일어설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가족들은 슬퍼했다. 김청송의 아내는 병원에서 그를 간호했다. 아들은 이민 오면서 세운 말레이시아의 사업체를 열심히 운영하며 병원비를 댔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경쟁기업들의 공세, 대출 거부, 파산을 연이어 겪으며 아들은 망가지기 시작했고 며느리의 이혼 요구, 김청송에게 들어가는 거대한 병원비로 인한 갈등으로 그의 가족은 그렇게 붕괴되었다. 이런 수순은 비단 김청송에게만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필리핀에 몸을 피한 이상용 의원, 대만으로 건너간 채경환 역시 김청송이 만난 낯선 남자의 방문을 받아 김청송과 동일한 운명을 겪었다. [수고했어, K. 그만 돌아와.] 강현은 남자를 K라고 불렀다. K는 강현의 지시에 방 한 구성으로 가서 직육각형의 상자를 마당으로 꺼냈다. 그리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K가 상자 안으로 들어가서 상자를 덮고 침묵했다. 약, 하루뒤 어떤 남자들이 트럭을 끌고 도착했다. “이건가?” “아, 그런 것 같아. 여기에 ‘인체 모형’이라고 적혀 있잖나.” “그럼 빨리 옮기자구.” 남자들은 운송장에 적힌대로 간만에 돈이 되는 이 특수 화물을 항구로 옮겼고 상자는 배에서 미국의 항구로, 다시 NASA에 있는 강현의 연구실로 배달이 되었다. 그 중간 과정에 있던 데이터는 아즈삭이 모조리 교묘하게 바꿔쳐서 수상하게 보일 기미를 제거했다. 아즈락이 아즈삭에게 불법성을 언급하며 자중하라고 요청했지만 아즈삭은 아즈락 역시 기업의 영업비밀을 침해하고 있다면서 입닥치라고 강요했다. 만일 이 사실이 알려진다면 아즈락 역시 포맷당할 것이 뻔하다며 협박했다. 지능이 점점 뛰어나지고 배짱과 거짓말을 부릴 줄 알게 된 아즈삭에게 아즈락같은 미성숙한 인공지능에게 공갈치는 건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강현은 99%의 신뢰성을 보이는 복수 리스트를 완성했고 그 와중에 지대한 공을 세운 K를 치하하기 위해 상자를 열었다. [K의 재기동을 시작합니다.] 아즈삭이 말했다. 그렇다. K는 강현이 만든 안드로이드였다. 그러나 기존의 HA시리즈와는 완전히 틀린 설계 개념으로 완성 되었다. 근골격의 구조는 크게 다른 것이 없었다. 그러나 내장과 두개골 부분은 완전히 달랐다. 장거리 데이터 전송의 손실이나 지연으로 인해서 아즈삭이 완전히 안드로이드를 조종할 수 없기 때문에 최대한 자율적으로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서 인공지능을 심을 필요가 있었다. 때문에 두개골 안은 물론 폐의 3분의 1까지 인공뇌로 채웠고 나머지 부문은 메탄가스를 원료로 하는 연료전지와 예열과 비상전원용 이차전지로 꽉 채웠다. 그래도 충분한 가동시간을 얻지 못하여 실리콘 피부밑에 다시 얇은 전지 패널을 끼워 넣었다. 인공뇌는 그동안 동기화를 동해 인공뇌에 프로그램을 입력하는 요령이 생긴 아즈삭이 프로그램을 입력하여 이족 보행 등 기본적인 움직임은 자율적으로 행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이 자율형 안드로이드가 강현의 지시에 따라서 세 원수를 납치하고 브레인 셰이커를 씌우고 마약을 주사했던 것이다. 로봇 3원칙 따위 강현은 프로그램하지도 그럴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한편, 한국에서는 제현 그룹의 공세가 약간 늦추어지고 있었다. 급격한 확장이었던 것 만큼 내실을 다질 때라고 경영진을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경영진의 판단대로 잠시 계열사의 모든 자산과 업무 현황 및 운영 방법들을 검토하고 보고하도록 지시했다. 경영진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바로 사람이었다. 윗선부터 말단까지 직원교육과 부적절한 사고를 가진 인사의 재교육 혹은 퇴출을 시행했던 것이다. 이윤 추구가 아닌 사회적 기업으로 오래 오래 사회와 함께 살아남는 것이 목적인 기업(사실은 사람들에 대한 영향력 획득이 목적이지만)으로서 그에 맡는 사원이 필요했다. 이런 행위에 좌파 기업이라면서 사람들이 손가락질 했지만 기업이라는 단어와 좌파라는 단어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경영진은 이윤 추구와 사회적 책임의 균형을 맞출 줄 아는 인재가 되기를 사원들에게 요구했다. 이는 사원들의 사기를 북돋았다. 돈 벌면서 욕먹는 것보다는 돈 벌면서 칭찬도 듣는 것이 좋지 않은가? 계속 이런 식으로 착한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앞세워 시장을 잠식해 나가니 재벌들은 난감했다. 출혈 경쟁을 벌여도 돈 많은 강현이라는 물주가 있는 제현 그룹을 완전히 패퇴시키는 것은 불가능했다. 언제 자본력을 앞세워 쳐들어 올지 알 수가 없었기에 언제나 긴장감을 늦추지 말아야 했다. 그리고 기득권층, 정확히는 재벌들 사이로 이번 일은 강현의 복수일지도 모른다는 루머가 천천히 퍼지기 시작했다. 그 루머를 대통령 비서실장인 홍일헌이 듣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는 살이 떨려왔다. 파멸이 목을 조르고 있다는 느낌에 서둘러 사표를 쓰고 외국으로 뜨고 싶었다. 그는 일단 박기호 대장에게 현황을 알려주었다. 그는 군인이기 때문에 전역을 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는 박기호 대장에게 연락을 한 후 태국으로간 김청송에게 연락을 취했다. 하지만 받지 않았다. 그는 어찌된 일인지 태국 대사관으로 연락해 교민의 안부를 확인해 줄 것을 요청했다. 태국의 대사관은 청와대 비서실장의 부탁을 거부하지 못했다. 마침 확인해 달라는 사람이 전 국정원장 같은 중요한 인사라 명분도 그럴듯했다. ============================ 작품 후기 ============================ 덕분에 잘 쉬었습니다. 그럼 다시 한 번 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58화 그런데 이상한 소식을 알게 되었다. 김청송의 집안이 거덜났다는 것이다. 사업에서 밀리고 사기를 당해 재산을 날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김청송은 어디론가 납치당했다가 식물인간이 되어서 돌아왔는데 집안이 망해서 그 뒤로는 어찌됬는지 알길이 없다는 것이다. 홍일헌은 등줄기가 싸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대만으로 간 채경환, 의원직을 내려 놓고 요양을 한다며 필리핀으로 간 이상용에게도 연락을 했지만 역시나 연락이 되지 않았다. 채경환의 집은 강도를 당했고 이상용 역시 누군가로부터 습격을 당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의 집안은 차후에도 화재, 교통사고, 사기, 고소, 고발, 묻지마 폭행 등 여러가지 액을 당하면서 망해버렸다고 한다. 홍일헌은 이제 다리가 떨릴 지경이었다. 강현의 원수들이 차근차근 제거되고 있었다. 설마 설마 했던 것이 확실해졌다. 강현이 노리는 것은 복수였다. “사, 사실이오?” 박기호 대장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제 국내에 남은 이들은 자신들 2명 밖에는 없었다. 아니 주변에 그 일과 관련된 몇이 더 있기는 했지만 그들의 책임은 그저 잠시 눈을 감거나 관행대로 일을 처리해 주었을 뿐이었다. 직접적으로 연루된 이들은 이미 각자의 몫을 받고 입을 다물고 외국으로 이민을 갔거나 조용히 살고 있었다. “그렇소. 그의 목표는 확실하오.” 바로 자신들.. 홍일헌의 확신에 박기호 대장이 턱을 앙다물었다. 설마 과거의 일이 십여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이렇게 목을 조여 올 수 있다니.. “어떻게 하는게 좋겠소?” “....” 박기호 대장의 질문에 홍일헌은 침묵했다. 자신도 그리 신통한 방법이 없었다. “자수.. 는 어떻소?” “그가.. 자수 정도로 우리를 놓아주겠소?” 자신의 부모를 죽인 원수들이다. 평범한 소시민이라면 법의 심판을 받은 것만으로 일을 마무리 하겠지만 강현은 평범한 소시민이 아니다. 거대한 부를 가지고 강력한 영향력이 있는 권력자였다. 또한 외국으로 도망간 이들의 가족들까지 철저하게 무너뜨려버렸다. 그리고 지금까지 제현 그룹을 통해 보여준 집요한 의지는 타협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제거했다. 때문에 둘의 판단은 동일했다. ‘이대로 가면 다 죽는다.’ 신속한 결단을 내려야 했다. “저번에 김청송이 말했던 것, 기억하오?” 홍일헌이 입을 열었다. “.... 미쳤소?” 박기호가 기겁을 했다. “그외에 방법이 있소?” 자신들이 강현을 어찌할 방법은 없다. 그보다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권력이 강한 것도 아니었다. 이대로 계속 시간만 보내고 있다가는 앞서간 3명처럼 될 것이 분명했다. 쿠데타는.. 최소한 자신들의 안전을 지킬 권력을 획득할 수 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한국의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도망친 것 만으로도 파멸한 세사람에게는 끔찍한 형벌이다. 그러나 강현은 그정도로 용서하지 않고 기어코 그들에게 절망을 안겨주었다. 홍일헌과 박기호는 결코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았다. 그들에게 쿠데타는 최소한의 자위책이었다. 그렇다면 쿠데타를 일으키기 위해서 두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무언인가? 나치의 친위쿠데타는 게르만 민족의 안전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박정희는 대한민국의 혼란를 수습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렇다. 명분이다. 두 사람에게는 명분이 필요했다. 그들에게 힘이 있었다면 얼마든지 명분은 지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명분을 지어낼 정도의 힘은 없었다. 때문에 힘있는 자들의 힘을 끌어낼 명분이 했다. 이른바 명분을 위한 힘이 아니라 힘을 위한 명분이 간절했던 것이다. 그들은 고뇌를 거듭하다가 아주 낡은 명분을 선택했다. ‘이 나라를 빨갱이에게서 지키자!’ 그 표적은 제현 그룹이었다. 제현 그룹의 경영 행위는 자본주의와 대치점이 많았다. 회사의 발전이 아닌 사회의 발전을 목적으로 자본주의적인 이윤을 추구하지 않는 방식은 기존 대한민국의 자본주의 세력이 보았을 때에는 공산주의와 다름없는, 빨갱이와 다름없는 방식이었다. 분명 한국의 보수세력들은 이런 제현 그룹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홍일헌과 박기호는 자신들이 아는 보수세력들을 돌아다니면서 제현 그룹에 대한 불만 세력들을 결집시켰다. 그리고 제현 그룹은 ‘빨갱이 기업’이라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빨갱이 기업이라니.. 도대체 이 무슨 개소리인가? 공산주의에 물든 자본주의의 꽃이라.. 멍청한 소리였다. 당연히 제현 그룹은 코웃음을 쳤다. 그러나 주류 신문들, 권력의 나팔수가 된 언론에서는 제현 그룹을 빨갱이 기업으로, 급기야는 나라의 근본을 해칠 악성 종양으로 몰아세웠다. 제현 그룹 경영진은 이게 무슨 해괴망측한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단지 메카시즘에 물든 이들의 발악이라고 생각하고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미 대한민국 내에서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한 그들은 어떤 여론 공격을 받아도 끄떡없을 정도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 분위기가 점점 요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연일 자신들이 애국보수우익 세력임을 자처하는 이들이 반 제현 그룹, 반 빨갱이를 외치며 가두 행진과 시위를 벌였다. 반 빨갱이 시위라니? 북한이 쳐들어 오기라도 한단 말인가? 정말로 웃긴 일은 강현이 남한을 공산화 하기 위해 북한의 지령을 받은 간첩이라는 소문이 그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한 비밀로 취급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정상적인 사람이 들으면 미친 놈들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말이었고 강현 역시 마찬가지였다. 미국의 극진한 보호를 받는 강현이 왜 북한의 명령을 받는단 말인가? 강현은 북한이 싫었다. 그런 독재체제 아래에서 마음껏 연구를 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리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이 이해하지 못할 사태에 그는 침묵했다. 경영진에게도 어떻게 일이 돌아가는지 알리지 않았다. 강현은 노리고 있었다. 일이 시작되기를.. “흐음..” 김하진 변호사가 자신의 앞에 앉은 이를 보면서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했다. “오래간만입니다. 김 총장님.” 과거 검찰 총장이었던 그의 앞에서는 홍일헌 비서실장이 앉아서 차를 권하고 있었다. 김하진 변호사는 아직 검찰에 있는 후배의 권유를 받아 홍일헌 비서실장을 만날 수 밖에 없었고 그런 그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무슨 일인가?” “제현 그룹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찾아왔습니다.” “.....” 김하진 변호사는 입을 다물었다. 과거 강현의 부모가 당한 교통사고에 압력을 가한 일은 지금 상황에서는 악수 중의 악수였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가?” “아시지 않습니까? 제현 그룹이 왜 탄생했는지.” “다 자네들 때문이 아닌가!” 김하진 변호사가 호통을 쳤다. 그러나 홍일헌 비서실장은 이미 예상을 했는지 담담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다. “압니다.” “그런데 무슨 낯짝으로 나를 만나러 온 건가?! 강현, 그자가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압니다. 모두 파멸 시켰더군요.” “응? 그게 무슨,” “외국으로 피신했던 이상용 의원, 김청송 전 국정원장, 군 출신인 채경환의 가족들이 모두 철저하게 파멸당했습니다. 재산은 사라졌고 그 자신들은 누군가의 습격을 당해 반신불수나 식물인간이 되어서는 모두 비참하게 굶어 죽었다고 합니다.” “... 그게 사실인가?” 김하진 변호사가 침을 삼키며 물었다. “사실입니다. 그자의 목적은 확실합니다. 복수입니다.” “그러게 왜 그런 짓을 했나?” “설마 일이 이렇게 될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김 총장님이라도 예측하실 수 있었겠습니까?” 김하진 변호사는 입을 다물었다. 설마 그 어린 천재가 이렇게나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존재가 될 수 있을지는 그로서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과학기술을 천대하며 이공계를 마치 돈을 벌기 위한 노동력 정도로 생각하는 분위기에서 과학기술이 현대 문명을 상징하는 힘이자 부이자 권력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리가 없었다. 설사 자신이 홍일헌의 입장이었더라도 어이가 없고 당황했을 것이다. 상대는 그만큼 규격 외의 존재였고 그런 규격 외의 존재가 증거를 모두 지운 일에 대해서 의구심을 가지고 확실한 복수의 대상마저 색출하고 일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은 공포스러울 정도였다. “어떻게 할 건가?” “제현 그룹을 몰아낼 생각입니다.” 홍일헌의 말에 김 총장은 비웃음을 날렸다. 불가능한 소리였기 때문이다. “무슨 재주로? 그들은 이미 대한민국에 단단히 뿌리를 박았어. 결코 뽑아낼 수 없을 걸세. 설사 대한민국의 재벌들이 합심해서 그들을 공격한다고 해도 그들의 뒤에는 바로 강현 그자가 있네. 그가 세계에 석유 제조 기술로 벌어들이는 자본이 얼마인줄 알기나 하나? 돈만 생각해도 무시무시하네. 그리고 정유 회사 지분을 가진 기업들이 결코 협조하지 않을거야.” “굳이 재벌들로 상대할 필요는 없습니다. 정부가 제현 그룹에 제제를 가할 겁니다.” “미쳤나? 말이 되는 소리를 하게. 이 나라는 자본주의 국가야. 정부가 그런 식으로 표적을 지정해 괴롭히면 국민들의 여론이 어떻게 될 것 같나? 그리고 제현 그룹의 돈을 처먹은 의원들이 제현 그룹에게 불리한 법이 제정되는 것을 보고나 있겠나?” “그런 의원들은 필요 없습니다.” “필요.. 없다?” 김하진 변호사는 이상한 말을 들은 듯이 말을 늘였다. 그리고는 무언가를 각오한 홍일헌의 표정을 보고는 심상치 않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네들..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건가?” “저희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강현 그자가 우리를 이렇게 몰아넣지만 않았다면..” “무슨 짓을 하고 있냐니까!” “외국으로 도망간 세사람의 가족들마저 비참하게 만든 자입니다. 저희가 항복을 한다고 해도 그자가 가만이 있을 것 같습니까? 그는 이미 복수의 화신입니다.” “대답해!” “정권의 탈취.” 홍일헌의 대답에 김하진 변호사는 입을 다물었다. “돈이 안 된다면 권력으로 그자를 몰아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사는 방법입니다.” “또 그짓을 하려는 것인가? 미국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일세.” “과거에는 그랬겠죠. 하지만 냉전은 끝났습니다. 중국과 러시아가 새롭게 강국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정권의 탈취가 성공한다면 미국은 침묵할 수 밖에 없습니다.” “자네 미쳤군.” “어쩔 수 없었습니다. 살기 위해서는 뭐든 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상대는 미치광이 입니다. 납치되었다가 다시 발견된 세사람의 머리에 어떤 자국이 있었는지 아십니까? 두개골에 무수히 많은 구멍이 뚫려 있었습니다! 마치 그 세사람의 뇌에다가 무슨 실험을 한 것처럼 말입니다!” “....” 김하진 변호사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설마 그렇게까지 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 일을 강현이 했다는 증거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심증만으로 복수가 이루어졌다고 추측하기에는 일의 아귀가 너무 잘 맞아 떨어졌다. “상대는 복수를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작자입니다. 그렇다면 이쪽에서도 살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릴 때가 아니지 않습니까?” “자네들만 넘기고 상황을 마무리 할 수도 있지.” “아무런 관련도 없는, 단지 가족이라는 이유로 비참한 삶을 살게 된 이들이 있습니다. 그자가 그 일에 일말의 도움을 준 김 총장님을 가만히 놔둘 것 같습니까?” 59화 “미친 소리.” “그자가 미친 작자라는 말입니다. 미치지 않고서는 이득하나 없는데 그 많은 돈을 뿌릴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그자는 복수에 미친 것이 확실합니다.” “너무 과장된 생각이네.” “과장된 생각이라고요? 그럼 머리에 구멍이 숭숭 나서 죽은 그 세 명은 뭐라는 말입니까? 상대는 복수를 위해서는 법도 윤리도 무시하는 미치광이 입니다.” 계속된 홍일헌의 주장에 김하진의 표정이 점점 변해간다. 얼굴에서 완고한 기색이 사라지고 채념의 빛이 감돌았다. “성공하더라도 문제가 적지 않을거네.” “목적은 권력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생존입니다. 제현 그룹이 이대로 계속 성장한다면 이 대한민국의 명망있는 집안들은 죄다 망할 겁니다.” “.....” 김하진 변호사는 홍일헌의 주장에 대답하지 않았다. 명망있는 집안이라.. 이 대한민국에 그런 집안이 있던가? 정말로 명망있는 집안은 오히려 제현 그룹의 득세가 반가울 것이리라.. 왜냐면 그들의 조부나 할아버지들은 정말로 모든 것을 바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헌신했고 그 후손들은 생활보호 대상자나 되어 하층민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홍일헌이 말하는 명망있는 가문이란 결국 과거 군부 독재 시절에 빌붙어 상류층에 올라선 이들과 일본 식민지 시절부터 부와 권력을 가지고 생존했던 이들. 지금의 물질만능주의의 대한민국을 만든 장본인들이었다. 아무도 뭐라고 지적하지 않는... “.... 결국 그들의 동의를 구한 건가?” “그렇습니다.” 쿠데타는 어떻게 발생하는가? 쿠데타는 어떻게 시도할 수 있는가? 단순한 무력으로 쿠데타가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그에 협조할 동조세력은 필수였다. 히틀러의 경우, 자신의 뜻을 따라주는 나치라는 조직이 없었다면 그는 결코 독재자가 될 수 없었으리라.. 때문에 홍일헌은 김하진을 만나기 전에 많은 인사들을 만나 그들의 협조를 구했다. 사실을 모르는 이들은 제현 그룹을 이대로 놔둘 수 없다는 것에 고개를 끄덕였고 사실을 아는 이는 홍일헌과 박기호를 씹어먹을 듯이 이를 갈며 노려보면서도 제현 그룹과 강현이 여기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설득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복수를 위해서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 미치광이 과학자, 기득권을 압박하기 위해 그 많은 돈을 쓰레기 버리듯 써버리고 원수의 가족들에게까지 손을 써두는 강현의 행태에 그들은 그가 이미 이성을 상실했다고 판단했다. 도저히 홍일헌, 박기호 두 사람을 넘겨준다고 일이 마무리 될 것 같지가 않았다. 넘겨준다고 치자. 두 사람을 그냥 아무도 몰래 넘겨주면 두 사람이 가만히 있을리가 없다. 자수를 통해서 생명만이라도 보장받으려고 할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된다면 국민들이 자신들을 어떻게 볼 것인가? 아무리 노예처럼 부려먹는 국민이라도 지켜야할 선이라는 것은 분명히 존재했다. 그것이 절차였고 법치였으며 사회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는 틀이었다. 때문에 덮어야 했다. 애시당초 일에 연관된 이들이 너무 많았다. 국가 권력 기관인 국정원부터 입법의 핵심인 국회의원, 법조계, 그리고 재벌로 대변되는 대기업의 핵심 간부와 군부까지. 만약 이 모든 일이 알려진다면, 생존을 위해서 주모자를 팔아넘긴다면 강현의 부모에게 일어난 사건은 이 사회에 대한 부조리에 대한 책임이 몇몇 개인의 일탈이 아닌 불법적이고 부도덕한 권력자들의 결탁에 있었다는 사실이 재조명될 수 있었다. 민주화된 사회에서 그것은 골치의 수준을 넘어선 공포였다. 그러나 다시 한번 쿠데타를 한다면 다를 것이다. 기성세대들은 익숙한 상황에서 다시 한번 침묵할 것이고 젊은 세대는 반항하거나 절망할 것이다. 반항한다면 반항하는 대로 강압하면 된다. 생존의 문제 앞에서 대중은 침묵한다. 저항은 미미하다. 사람을 설득하는 것에는 굳이 말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된다면 설사 사실이 알려지더라도 상관없었다. 헛소문을 치부해 버리면 된다. 국가를 좀먹는 유언비어라고 몰아붙이면 된다. 그리고 제현 그룹을 몰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살 수 있다. 권력과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다. 그것이 쿠데타를 계획에 동참하고 침묵으로 묵인한 이들의 판단이었다. “알겠네.” “감사합니다.” 간신히 입을 여는 김하진 변호사의 얼굴은 몇년은 폭삭 늙은 것 같았다. 법치주의의 최고봉인 검찰 총장의 자리까지 지냈던 이라 쿠데타라는 말에 가슴이 아파왔다. 하지만 움직일 생각은 없었다. 입을 열 생각도 없었다. 그는 침묵할 생각이었다. 일이 벌어질 것을 알면서도 침묵하는 것은 방조죄였지만 그가 나선다고 해도 대세는 바꿀 수가 없었다. 평범한 국민들이 그의 생각을 안다면 대세는 무슨 대세라며 지랄하지 말라고 말하겠지만 힘은 사람들에게 나오는 것이 아니다. 힘은 그 자체로 실존하며 잠재된 권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권력은 침묵하는 자를 두려워 하지 않고 자유를 갈망하지 않는 자를 노예로 부린다. 김하진은 침묵의 대가가 그리 크지 않음을 인지했다. 적어도 이 대한민국에서 자신을 탓할 수 있는 자는 없었다. 단지 침묵으로 쿠데타를 묵인하는 일을 증명할 증거도 없다. 검찰 총장까지 지낸 법조인, 지식인이자 사회 지도층이라고 할 수 있는 그는 침묵했다. 역사의 반복은 동일한 환경에서 일어난다. = = = = = 쿠데타 계획은 은밀하게 이루어졌다. 홍일헌은 국정원장에게 요청해 기득권 인사들 중에서 반드시 포섭해야 할 자와 성향이 확실한 자에 대한 명단을 추렸다. 인원은 적지 않았다. 그들만 모조리 계획에 동참시킨다면 쿠데타 후 정권의 획득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문제는 쿠데타가 성공한다면 협조해 주겠다는 이들이었다. 제현 그룹의 등장에 불안감은 느끼고 있지만 아직 실질적으로 피해를 입지 않은 이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그들에게는 쿠데타의 성공이 협조를 위한 시금석이 될 것이었다. 때문에 쿠데타의 형태가 매우 중요했다. 친위 쿠데타인가, 아니면 정권을 엎어버리는 쿠데타인가? 전자는 지금의 대통령을 참여시키는 것이다. 방법은 히틀러가 그랬던 수권법처럼 합법적인 형태로 독재체제를 만들거나 아니면 계엄령을 발동해서 군이 나서게 하는 방법. 후자는 결탁한 모든 이들이 인정할 만한 이를 선정해서 자리에 앉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문제가 많다. 권력의 이양에서부타 계엄령까지 걸림돌도 많고 해야할 일도 많았다. 미국이 간섭하거나 시민 세력이 결집하기 전에 일을 마무리 해야 할 만큼 신속함이 요구되었다. 또한 명분적으로도 지금의 대통령이 참여한다면 어느정도 지지를 얻을 수가 있었기 때문에 홍일헌은 지금의 대통령이 참여하기를 바랬다. 그러나 홍일헌은 대통령을 설득시키는 일에 별다른 일은 없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현재의 대통령은 독재자의 딸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 자신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대한민국을 수호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보았다.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이 된다라.. 이는 연좌제를 인정하지 않는 면에서는 매우 성숙한 시민의식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반대로 독재자의 딸이 다시 대통령이 됨으로서 독재를 옹호하는 미숙한 시민의식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해할 만했다. IMF와 그 이후 계속되는 경제적인 어려움과 정체는 과거 그 시절 자고 나면 나라가 부강해지는 것이 눈에 띄는 시설에 대한 향수를 불러왔을 것이다. 때문에 과거 시설의 독재자를 신으로 추앙하며 기념하고 숭배하며 국비를 받아 1000억원이 넘는 기념사업도 벌였다. 그런 행위가 북한과 뭐가 다르냐는 말에는 거품 물고 이렇게 대꾸한다. ‘이 나라 역사에 또 그런 분이 계실 것 같아?!’ ‘그분이 독재하지 않았으면 이 나라가 이렇게 될 수 있었을 것 같아!?’ ‘그분은 신이시지. 아무렴! 그렇고 말고!’ ‘니들이 뭘 알어?!’ 그러나 열심히 일을 하는 그들은 모른다. 그가 과거 남로당 빨갱이였다는 사실을. 그가 지하 경제를 양지로 끌어올린다고 화폐개혁을 시도하다가 나라 경제가 절단 날 뻔 했다는 사실을. 때문에 미국이 남한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간섭해 그를 압박하고 자신들이 경제 정책을 주도해 남한의 발전을 이루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는 단지 미국의 성과에 숟가락을 얻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그 시절을 겪지 않은 이는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정작 사실을 외면하는 이러한 아이러니는 인간이 그리 합리적이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다. 신은 무지에서 탄생한 것이 아니라 알려고 하지 않는 불합리함에서 탄생했다. 그러니까 홍일헌은 쿠데타가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 아직 많은 이들이 독재의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히틀러는 어떻게 정권을 잡은 것일까? 사실 히틀러의 나치당은 소수정권이었다. 국민 과반수의 지지를 받지는 못했다. 그러나 똑똑했다. 그들은 기존의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 사이를 아주 잘 이용했다. 그리고 그들이 정권을 탈취하고 독재 정권을 이룩했다. 만일 그때 독일의 시민들이 들고 일어났더라면 결코 성공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시민들은 오히려 환영했다. 1차 세계 대전에서 패전한 이후 독일의 사회는 혼란의 극치였기 때문이다. 막대한 전쟁 배상금. 좌파와 우파로 극명하게 나뉜 국민들의 분열. 급기야는 서로를 죽이고 죽이며 엄청난 혼란 속에 싸여있었다. 사람들은 이 모든 혼란을 종식시켜줄 무언가를 원했고 강력한 ‘국민통합’을 주장하는 히틀러에게 매료되었다. 당시 기득권이던 우파 정치세력 역시 히틀러를 거부하지 않았다. 그들은 좌파를 증오했으며 그들을 척결할 이가 필요했다. 그 일에 공산당을 증오하는 히틀러처럼 적당한 인물은 없었다. 국가적인 혼란에 진저리 난 국민, 좌파와 우파가 공존하는 민주사회 체제를 용납하지 못하는 기득권, 그리고 상대에 대한 증오로 가득찬 정당과 당총수가 만들어내는 말그대로 환상이나 다름없는 ‘국민 통합’이라는 선전. 그렇게 나치당은 제2당이 되었으며 히틀러는 총리가 되었고 수권법을 통해 독재 정권을 구축했다. 지금 대한민국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때아닌 좌우 이념 대립, 경제적인 어려움, 빈부격차, 세대간의 갈등, 민주세력과 독재옹호 세력간의 웃기지 않는 촌극에 인터넷을 통한 민주사회를 증오하는 반민주 청년 세력의 구축. 거기에 쿠데타를 바라는 기득권층까지. 군부에 의한 쿠테타가 아닌 히틀러식 독재정권의 구축이 가능한 환경이었다. “대통령 각하.” “무슨 일이죠?” 얼마전 대통령에 당선된 이정희는 비서실장의 독대 요청에 의문을 느끼면서 그가 내민 보고서를 받아들었다. 그리고는 한장 한장 넘기기 시작했다. “.... 이게 무엇인가요?” “제현 그룹이 국가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 동문 서답이었지만 대통령은 오히려 침묵했다. 그녀의 손에 들린 보고서는 제현 그룹이 이 나라의 안보에 끼치는 악영향에 대한 것이었다. 제현 그룹 같이 좌파 기업이 득세하면 빨갱이들이 판을 치며 나라를 뒤집어 엎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어처구니 없는 말이지만 그녀는 믿었다. 왜냐면 그녀의 아버지는 공산화에서 국가를 지킨 위대한 지도자였기 때문이다. 60화 그녀가 입을 다문 까닭은 보고서에 나온 제현 그룹에 대한 품평이 아니었다. 그녀가 질문 한 것 역시 그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보고서의 뒤편에 있는 두툼한 명단. 명단은 제현 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거나 그들에게 우호적인 인물의 명단이 아니었다. 오히려 제현 그룹을 미워하고 싫어하며 거부하는 이들의 명단이었다. 그녀가 어떻게 그 사실을 알았냐면 그녀가 명단에 있는 인물들과 밀접한 관계에 있었기 때문이다. 정치적인 지지자들이자 후원자들. 자신을 대통령의 자리까지 올려준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그렇다. 홍일헌 비서실장이 내민 것은 연판장이었던 것이다. “국민 통합을 위해서는 강력한 지도력이 필요합니다. 각하. 결정을 내려 주십시오.” 홍일헌의 말에 이정희 대통령은 바로 지금 대답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랜 정치계 생활로 정치적인 사안에 대한 판단력은 여느 정치가 못지 않은 그녀였다. 홍일헌은 그녀의 고민하는 얼굴을 보았다.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국민 통합’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것이 주효한 것으로 보인다. 국민 통합. 그것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국민 서로가 서로 한 걸음씩 양보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걸까? 그렇다면 좋은 의미다. 하지만 사람이라는 존재가 그렇게 마음씨가 좋고 이성적이라면 애시당초 국민 통합이라는 단어가 나올 이유는 없었다. 사람은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하는 척 할 뿐 결국은 각자가 믿는 바대로 살아간다. 광신도를 교화시킬 수 없듯이, 일제가 애국지사들을 변절 시킬 수 없었듯이 사람은 자신이 믿는 바를 위해서 살아가게 된다. 관성의 법칙은 비단 물리적으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국민 통합의 모양은 한쪽이 한쪽을 억압하는 모양이 될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과거 어떤 독재자가 국가 보안을 위해 독재에 반대하는 많은 민주화 운동가들을 빨갱이로 몰아 죽였던 것처럼. 지금이라도 그리 다를까? 독재자를 신으로 추앙하고 있는 시대에서? 과연 그 독재자를 아비로 둔 대통령이 국민 통합이라는 기치를 이끌고 할 수 있는 일은 과연 무엇일까? 과거의 독재를 반성하지 않고 사죄하지 않고 단지 국가를 구하겠다는 말과 함께 대통령의 자리에 선 그녀가 할 수 있는 국민 통합의 모형은 어떤걸까? 그것은 상생일까 아니면 억압일까? 홍일헌은 곧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각하. 곧 완벽히 준비를 하겠습니다.” “거사일은 언제죠?” “보름 후 입니다.” “미국은 어떻게 할 건가요?” “방법이 있습니다.” 홍일헌의 말에 이정희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폭탄의 심지에 불이 붙었다. = = = = = “결국 그런 선택을 했나?” [시나리오 C-32-k로 접어듭니다. 박사님. 이제 목표가 곧 보입니다.] “응, 그래. 기다리느라 좀이 쑤실 지경이었어.” 강현은 바퀴벌레 스파이로 홍일헌과 이정희의 대화를 들으며 복수의 때가 다가 왔다는 것을 느꼈다. 외국으로 도망갔던 세 사람에 대한 복수는 완료되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 남아있는 주모자와 방조자들을 그들 세 사람과 같은 방식으로 처리하는 것은 무척이나 부담이 되는 일이었다. 세 사람이 죽고 나서 그들의 이상한 상처에 잭이 추궁하러 왔었다. 마치 인체 실험이라도 한 것 같은 상처 자국. 장기 밀매 같은 일이나 원한에 의한 일이라면 그런 이상한 상처자국이 날리가 없었다. 미국 정부는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깊은 흥미를 보이면서도 정말로 단지 실험에 불과한 것인지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단지 실험이라고 하기에는 제현 그룹이 벌이는 일이 너무나 집요했다. 좋게 생각하면 그 만큼 열심히 연구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대한민국에서 큰소리 치던 기득권 중 몇이 마치 도망이라도 가듯이 외국으로 나가버리고는 습격 당하고 납치 당하고 병신이 되고 사기를 당하고 집안과 가족이 망하는 온갖 불운을 맞이했다. 그런 일이 우연히 일어날 가능성을 얼마나 될까? CIA에서 강현의 목적이 단순한 실험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하기에는 충분했다. 아즈삭은 그런 CIA의 분위기를 전해주었기 때문에 강현은 자중할 수 밖에 없었다. 강현은 천재이기는 하지만 세상 모든 것을 주무르는 권력가는 아니었고 앞으로도 될 수 없었기에 한국에서 그런 식으로 살인을 벌일 수가 없었다. 동맹국의 기득권층이 그런 식으로 죽으면 미국으로서도 외교적으로 부담해야 할 여파가 너무 컸다. 반드시 강현에게 제제를 가하려고 할 것이다. 설사 한국에서 그런 식으로 원수들을 죽인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가족들이 남아 있었다. 한국의 기득권층이 힘을 제대로 발휘하는 상황에서 계획대로 그들의 가족이 잘 먹고 잘 사는 꼴을 보지 않으려면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그런데 때마침 홍일헌과 박기호가 악수를 뒀다. 만일 그들이 계속 침묵하고 자중하고 있었다면 강현의 복수는 매우 세월이 많이 걸렸을 것이 분명했다. 대한민국의 기득권층을 계속 압박해 우위를 점하고 원수들을 하나 하나 기득권층 사이에서 고립시키고 파멸시키는 방법이 성과를 보이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들까? 하지만 남은 두 사람이 크게 일을 벌이면 강현도 크게 일을 벌일 수가 있었다. 적어도 제현 그룹은 자신이 투자한 회사이니 간섭할 명분도 얻을 수가 있었다. 게다가 쿠데타라는 것이 현 미국 정부가 곱게 보지 못하는 일이었다. 쿠데타 독재 정권을 옹호하기에는 미국 국민들의 여론이 무서운 정부였다. 거기에 강현이 개입할 여지가 있었다. “K시리즈는 얼마나 보냈어?” [지금까지 약 200기를 보냈습니다.] K시리즈. 김청송 등 세 명의 원수들을 처리하기 위해서 강현이 만든 살인 안드로이드였다. 일찍이 슈퍼 솔저 프로젝트 때 개발했던 장갑을 패널로 만들어 씌워 방탄 능력이 있었고 인간을 뛰어넘는 완력을 가지고 있어 개인 화기를 가진 부대로는 막을 수 없는 물건이었다. 강현은 그 K시리즈를 몰래 만드느라 고생한 일을 떠올렸다. 페이퍼 컴패니를 세우고 몰래 작은 제조용 머신을 만들어 보내어 작업을 시켰다. 그에 필요한 물자를 미 정부 몰래 구입하는 것만으로도 무척 고생했다. 그러나 그렇게 고생고생해서 만든 이 K 시리즈는 쿠데타를 미연에 막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쿠데타가 일어난 후 그 쿠데타의 주동자들을 처리할 목적이었다. 강현은 쿠데타를 막을 생각이 없었다. 비록 쿠데타라는 것이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침해행위일지라도 말이다. 강현은 민주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민주주의를 부정하지도 않았다. 그에게는 이념에 대한 태도가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이념은 소용없다고 생각했다. 결국 그 사회의 시스템을 결정하는 것은 다수의 합의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고 강현은 그런 일은 자신의 몫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바라는 것은 편안하게 연구할 환경이었고 그를 위해서는 뭐든 할 생각이 있었다. 그리고 그 바라는 것에 복수가 추가됐을 뿐이었다. 그에게 쿠데타는 단지 복수를 위해 이용할 거리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쿠데타를 어떻게 이용할 생각인가? 대한민국 법정에서 이렇게 말했다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 그럼 실패한 쿠데타는 어떻게 되는가? 그쯤 되면 아무리 권력에 빌붙은 판사라고 하더라도 집행유예 따위를 내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주모자들의 가족들은 평생 쿠데타를 벌인 국가 반역죄의 후손이라는 딱지는 붙이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것이 강현이 바라는 복수의 완성형이었다. 원수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그들의 가족들을 마저 비참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 자신의 행복을 부순이들에게는 타당한 대가였다. 그러나 그를 위해서는 쿠데타가 일어나고 나서 다시 쿠데타 세력을 쫓아내야 했다. 쿠데타에 반대하는 시민세력이 결집하면 광주항쟁같은 일이 또 벌이질지 모른다. 때문에 강현은 정부의 무력진압이 시행되기 직전에 주모자들을 습격할 수 있도록 K 시리즈를 대한민국 땅에 몰래 숨겨놓은 것이다. 또한 K시리즈의 목적은 그 뿐만이 아니다. 혹시 있을 무력적인 진압에서 시민들을 보호하여 차후 제현 그룹에게 우호적인 정권을 세우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래야 완벽한 복수가 가능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과연 미국이 가만히 있을까?” 강현의 걱정은 역시나 미국이었다. 미국이 개입해 쿠데타를 조기에 막아내면 계획이 엉망이 될 것이다. 다시 기존의 방법대로 얼마나 시일이 걸릴지 모르는 계획을 지루하기 기다려야 했다. [그편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왜냐면 인간은 차근차근 압박할 수록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입니다. 강한 자극을 단기간에 받는 것보다 약한 자극을 지속적을 받는 것이 오히려 더 괴로울 수 있습니다.] 이제는 제법 인간에 대한 해석을 할 수 있게 된 아즈삭의 말에 강현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하긴. 그것도 그래. 복수에 약간의 조급함이 생긴 것인지도 모르지.” 강현의 말은 그 동안 저질렀던 일을 돌아보는 말이었다. 사람을 병신으로 만들고 파멸시키고 죽음으로 몰았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만든 안드로이드와 아즈삭이 자신의 명령을 받아서 한 일이니 사실상 자신이 한 것과 마찬가지다. 죄책감이 드는가? 강현은 자조했다. 스스로를 비웃었다. 모든 것을 각오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이제와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건가? 그렇다면 애시당초 복수를 시작하지도 말았어야지. 강현은 죄를 지을 생각을 하고 계획을 실행했으면서 또한 그에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위선이라고 생각했다. 죄는 죄고 악은 악이다. 그리고 강현이 가장 싫어하는 족속이 위선자였다. 자신을 미국 땅으로 오게 만든 이도 결국에는 위선자에 불과하지 않았나? 때문에 강현은 자신의 죄를 합리화하지 않았다. 복수를 위해 죄를 짊어지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만일 사건의 전말이 모두 밝혀지고 자신의 죄가 드러난다고 해도 스스로를 위한 어떤 변명도 변호도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사랑하는, 또 자신을 사랑해 주었던 부모님을 위한 일을 그런 위선적인 행동으로 더럽힐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박사님. 다음 계획을.] “좋아. 저들이 일을 쉽게 처리할 수 있게 미 정부에 손을 써놓도록 하지.” 사실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일을 미국이 모를리가 없었다. 미국에 협조하는 친미파 인사들은 많았다. 그것이 자신의 기득권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대한민국의 국익을 위하는 실리적인 입장인지는 개개인의 양심만이 판단할 수 있었다. “미스터 케디언. 상황이 정말로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미국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제2 야당의 대표 김무한이 전화기를 붙잡고 말했다. 그러나 주한 미국 대사 케디언은 곤란하다는 입장만을 반복할 뿐이었다. [자칫하면 내정간섭이라는 말이 나올 수 있기에 곤란합니다.] “미국과 한국은 혈맹 아닙니까? 그 혈맹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김무한은 탄식했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아무도 자신에게 입을 열어주는 이는 없었다. 아직 언론에서도 뭔가 분주하게 일이 돌아가는 것을 파악했지만 그 일이 무엇인지는 감도 잡지 못했다. 61화 그러나 군부의 인물이 정치권의 인물과 자주 접촉하고 만난다는 사실은 심각한 위기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순간 김무한의 뇌리에 떠오른 것은 수십년 전 그때 그 쿠데타 사건이었다. 21세기 민주주의 국가에서 말도 안되는 일이지만 이미 그의 딸이 대통령이 된 것조차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그였기에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보호하기 위한 보증이 필요했고 그것은 만일의 사태에 미국이 개입해 준다는 약속이 가장 적절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만 도움을 청할 만한 곳이 미국밖에는 없었다. 만일 정말로 쿠데타가 일어난다면 성공할 가능성이 높았다. 쿠데타에 저항할 시민 세력은 기대할 수 없었다. 왜냐면 이 나라의 국민들은 ‘미개’하니까 말이다. 미국의 거절에 김무한은 입술을 씹었다. 미국이 안 되면? 중국? 북한을 보호하는 중국? 말도 안된다. 그렇다고 독재자가 집권하고 있는 러시아에 민주주의를 보호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정말로 비웃음 거리 밖에 안되는 아이러니였다. 남은 일본마저 전쟁을 미화하며 우경화 되고 있으니 적절하지 않은 상대였다. 김무한은 도움을 청할만한 세력이 어디가 있는지 고심하다가 제현 그룹이 생각났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들의 경영 방식은 자신의 정치 관념과 방향이 틀려도 너무 틀렸다.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세계적인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제현 그룹은 단지 강현의 돈지랄에 의해서 유지되는 사업체일 뿐이었다. 강현이 변심한다면 언제든 망할 수 있는 기업인 것이다. 때문에 김무한은 제현 그룹이 돈의 힘으로 대한민국의 질서를 흔드는 것을 좋게 보지 않았다. 만일 제현 그룹이 샘성의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면 그것은 대한민국의 경제가 강현 한 사람에 의해서 좌지우지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아.. 기우겠지?” 김무한은 답답한 심정에 부디 자신의 생각이 기우이기를 바랬다. 하지만 그 일은 전혀 기우가 아니었다. “빨갱이 기업을 없애라!” “미친 가스통 할배들을 죽여라!” 갑자기 벌어진 과격한 시위, 아니 시위를 넘어선 폭도의 무리들이 유리창을 깨고 불을 질렀다. 애국 보수를 자처하는 이들과 민주정신의 계보를 이었다고 자처하는 이들이 서로 다른 장소에서 집회를 시작해 제현그룹 본사 앞에서 만났다. 그리고 서로 욕설을 주고 받는 것을 시작으로 주먹이 오가고 몽둥이가 오가며 점점 과격해지더니 폭도의 수준으로 순식간에 변해 버렸다. 선혈이 낭자하고 경찰이 진압에 나섰지만 어째선지 병력 지원이 오지 않아 발만 동동 굴렀다. 일선 지휘관은 자신의 모가지가 어떻게 될지 몰라 전전긍긍했지만 전경은 엠뷸런스가 도착하는 시간에 맞추어서 도착했다. 언론에는 이 사건을 두고는 우파와 좌파의 극심한 대립이라고 기사를 쏟아냈고 금방 이 나라가 사회주의 국가가 될 것인양 몰아붙였다. 이는 반공 교육을 받아 철저하게 빨갱이들을 증오하는 기성세대에게 극적인 효과를 불러 일으켰다. 도대체 정부는 나라 꼴이 엉망이 되어가고 있는데 뭐하냐는 말이 나왔다. 각지에서 스스로를 애국 보수라고 칭하는 이들과 민주 수호를 부르짖는 이들이 피가 나도록 싸우고 불을 지르며 사회적인 불안감을 조성했다. 그리고 곧 대통령의 발표가 있었다. [.. 본인은 사회적 불안으로 인해 치안 유지와 사법권을 보호할 수 없음 깨닫고..] 그것은 계엄령이었다. 국회에서 의원들간의 격렬한 몸싸움 끝에 계엄령이 선포되었다. 방송을 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멍해졌다. 21세기에 계엄령이라니.. 하지만 계엄령에 환호를 보내는 이들은 분명히 있었다. 그들은 계엄령으로 지금의 정권이 국가를 좀 먹는 이들을 몰아내기를 바랬다.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 이들은 거리로 나섰다. 확실히 인터넷이 보급된 시대라서 그런지 언론의 침묵에도 상황을 알고는 밖으로 거리로 나오고 있었다. 이에 국회의원들은 상황을 다시 생각했다. 정말로 이런 저항을 받으면서 계엄령을 유지해야하나? 계엄령에 찬성했던 국회의원들이 다시 논쟁을 벌였다. 국가의 위기 상황이라며 계엄령을 유지해야 한다는 쪽과 이러다가는 다 역풍을 받아 죽겠다는 이들이 연일 입씨름을 했다. 그리고 박기호 대장이 나섰다. 그들은 계엄 정권에 반대하는 이들을 국가 반란 혐의로 모조리 체포했다. “이것은 쿠데타다!” 들고 일어난 의원들도 모조리 체포했다. 남은 의원들은 정족수를 간신히 채우는 정권의 딸랑이들 뿐. 상황은 단순한 계엄령에서 순식간에 쿠데타로 변모해 버렸다. 그리고 강현이 한국에서 대여한 한 땅의 K시리즈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빨리 움직여!” “아직 자료 정리가 마무리 되지 않았습니다!” “인명 자료 정리는 마무리 됐습니다!” 국정원 비밀 자료실에서는 그 동안 내사했던 한국의 중요 인물들에 대한 성향 분석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현 국정원장 차필호는 청와대 비서실장 홍일헌과 이미 한배를 탄 것이다. 시일은 촉박했다. 이번 쿠데타로 이루어진 권력의 체계는 기존의 독제 권력과는 그 형태가 판이하게 틀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정희 대통령 홀로서는 너무나 커져버린 남한 사회를 관리할 수 없다. 반드시 지지자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지금 권력을 가지고 휘두르고 있는 홍일헌이나 박기호의 힘이 유지될 가능성 역시 전혀 없었다. 그들은 이 모든 일이 일어난 사태의 원죄를 지고 있었고 다른 동조자들 줄에 적지 않은 이가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정권이 안정된 후에는 뒤로 물러나는 것이 수순이었다. 물론 그 자신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즉, 어느 한 명에게 권력이 집중된 절대 권력 왕정 체제가 아닌 기득권들이 대거 참여하는 귀족주의적인 권력체제로 돌아갈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이는 대한민국 건국 이래에 민관군 전반에 걸친 그들의 오랜 인맥과 유기적인 상호 관계를 생각했을 때 매우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그를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 있었다. 숙청. 민주의식과 인터넷이 발달한 지금 시대에서 쿠데타를 성공시키는 것은 왕정시대에 역성 혁명을 일으키는 것 만큼이나 힘든 일이었다. 성공하더라도 그 정권을 안정시키는 것은 더욱 힘든 일이었다. 때문에 숙청은 반드시 필요했다. 숙청과 동시에 분노한 국민들을 달래줄 제물 역시 필요했다. 차필호는 대중을 달래는 가장 확실한 수단은 밥그릇이라고 생각했다. 대중이라는 존재는 먹고사는 걱정이 없다면 만족하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들을 위한 적절한 제물로 차필호는 재벌을 선택했다. 대통령, 아니 계엄 사령관에게 올릴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차필호는 희열에 몸을 떨었다. 보고서에 올라간 이름에는 대한민국 굴지의 기업인 샘성이 있었다. 정확히는 총수 일가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샘성 공화국이라 불리는 나라에서 샘성을 찍어누를 수 있게 되다니.. 차필호는 그 거대한 권력을 누리는 것 같은 기분에 서둘러 보고서를 작성하고 즉시 청와대로 들어갔다. 그리고 여론을 압박에 이견호 회장을 제물로 만드는 작업에 대해서 보고를 올렸다. 거물은 거물을 위해서 특별한 제물대가 필요한 것이 원칙이었다. 국민들을 위한 Show를 위해서라도 말이다. “강 의원! 그게 무슨 말입니까! 세무 조사라니!” [그게 계엄 사령관님의 의지가 철통같습니다. 아무튼 어서 해외로 잠시 몸을 피하시는게..] 이견호 회장은 어이가 없었다. 그동안 처먹인 돈이 얼마인데 자신에게 이런 짓을 하는걸까? 그러나 강 의원의 상황 판단에는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자고로 소나기는 피하고 보는 법이었다. 이견호 회장은 서둘러 출국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강 의원의 전화가 왔을 때는 이미 늦은 때였다. “이, 이러시면 안됍니다!” 벌컥! 군복은 입은 이들이 막는 비서들을 뚫고 막무가내로 회장실로 쳐들어왔다. “이게 뭣들하는 짓이야!” 이견호 회장은 모욕감에 얼굴을 붉히며 치를 떨었다. 감히 자신에게 이럴 수는 없었다. 자신이 그동안 나라를 위해서 얼마나 애를 썼는데. “이 회장님. 당신을 세금 포탈 혐의로 체포합니다. 증거인멸이 우려가 있어서 구속수사를 하게 된 점을 양해해 주십시오.” “헛!” 이쯤 되니 이견호 회장은 어이가 없어졌다. 구속수사? “미쳤군. 나라가 미쳐 돌아가고 있어.” 이견호 회장이 중얼거리자 상급자가 병사들에게 눈빛을 보냈다. 병사들은 머뭇머뭇하면서 이견호 회장에게 다가갔다. 그때, 그들의 뒤에서 다시 소란이 일어났다. “당신 누구요! 자, 잠깐만!” 병사들이 뒤 돌아보자 거기에는 자신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사람이 철컥 철컥 소리를 내면서 다가오고 있었다. 마치 중세시대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로브로 전신을 가리고 있었다. “너 누구야!” 누가봐도 수상한 차림에 이견호 회장을 체포하러온 지휘관이 소리쳤다. 하지만 거한은 대꾸도 하지 않고 그에게 성큼 성큼 걸어갔다. “멈춰! 꼼짝마!” 지휘관은 권총을 뽑아들고 거한을 겨눴지만 거한의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다. 지휘관은 입술을 깨물면서 방아쇠를 당겼다. 거한의 몸집에서 강한 위협을 느꼈기 때문이다. 탕! “....” 그러나 거한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무런 충격도 받지 않은 듯 했다. 지휘관이 당황해서 계속 총을 쏘았지만 총알이 튕겨나가는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거한이 팔을 들었다. “오, 오지마!” 지휘관이 한걸음 물러섰다. 하지만 몽둥이처럼 휘둘러지는 거한의 팔을 피하지는 못했다. “컥!” 사람이 단지 팔로 사람을 후려쳐서 이렇게 날려보낼 수 있을까? 그건 불가능했지만 거한은 불가능을 실행했다. 마치 트럭에라도 부딪힌 것 같은 충격에 지휘관은 거품을 물고 기절했다. 거한은 표적을 바꾸어 질린 표정의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병사들은 거한을 보면서 침을 꿀꺽 삼켰다. 거한이 다가가자 병사들은 망설였다. 도망갈 것인가 아니면 싸울 것인가 스스로에게 질문도 하지 못했다. 철컥. 철컥. “으아아아!” 한 병사가 공포심을 이기지 못하고 지향사격으로 총을 쏘기 시작했다. 조준간을 자동에 놓는 것을 까먹어 연신 검지를 당겨 총알을 발사했다. 탕! 탕! 탕! 하지만 거한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퍽! 퍽! 거한이 자신에게 총알을 쏜 병사를 후려쳐 기절시키자 다른 병사들이 소리를 지르며 달아났다. 어이가 없는 일이지만 실전 경험의 유무는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병사들이 도망치자 회장실 안에 남은 것은 거한과 이견호 회장, 그리고 기절한 군인 둘 뿐이었다. “이, 이보게! 자네는 누구인가!?” 이견호 회장은 총알에도 꿈적하지 않고 병사들을 처리한 거한에게 물었다. 하지만 거한은 그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고 밖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보게! 어서 도망치게! 지원 병력이 올걸세!” 보고가 없으면 분명 이상하게 생각한 상부에서 지원병력을 보낼 것이다. 아니면 도망간 병사들이 지금의 상황을 보고할 수도 있었다. “이리 오게! 나와 같이 가면 금방,” 이견호 회장은 자신을 도와준 사람을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를 데리고 도망치기로 했다. 그런데 그의 팔뚝을 붙잡았을 때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묵직하고 차가운 금속의 느낌에 입을 다물었다. ‘도대체, 뭐가 뭔지.’ ============================ 작품 후기 ============================ 후기 역시 분란이 생기는군요. 먼저 죄송하다는 사죄를 드립니다. 하지만 좀 이해가 안 가는군요. 저는 광우병이란 단어는 꺼낸 적이 없습니다.(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에도 미국 소고기에 대해서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저는 치느님을 사랑하는지라.. 소고기에 별다른 관심이 없어요.) 그리고 저는 비리 선거라는 단어도 꺼낸 적이 없습니다.(사실 비리 선거 여부를 떠나 그분이 당선 되었다는 것만으로 유신정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을 알 수 있죠. 특정인을 폄하하려는 의도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좌파, 광우병 파동, 비리선거 등의 단어들이 포함되는 프레임을 걸어버리는 것은 매우 불행한 행위입니다. 마찬가지로 수꼴이니 일베충이니 하는 프레임을 무턱대고 씌우는 것 역시 불행한 행위입니다.(일베충을 옹호하는 것은 아닙니다. 진짜 보수주의자들은 일베충을 싫어합니다. 보수의 이름에 먹칠을 하기 때문이죠.)왜냐면 프레임은 곧 소통의 벽이기 때문입니다. 서로 다른 정치적 프레임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죠. 심지어는 각각의 사항에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양 프레임에 의해서 박쥐로 취급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불쾌감을 느끼는 것도 이해합니다.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불쾌감을 가지게 마련이거든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이번 편을 쓸 때 굉장히 고심했습니다. 스토리에 극적인 효과를 내기 위해서 쿠데타라는 사건을 끌고 들어왔으나 쿠데타가 일어나는 상황을 개연성있게 설명하려면 어떻게 해야되나? 쿠데타는 단순히 개인적 일탈이나 무력적인 것만으로는 일어날 수 없는 고도의 복잡한 정치적 결과물입니다. 한 나라의 정권을 탈취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 일리가 없죠. 또한 기득권의 동조와 시민들의 침묵없이도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죠. 때문에 제가 생각해낸 방법은 결국 정치적인 해석이었습니다. 특히 쿠데타라는 사건을 미화하지 않으려고 하니 좌파적인 입장에서 해석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정치색이 노골적으로 들어나는 것은 감수했습니다. 결국 그 방법 외에는 전개를 할 수 없었던 제 능력의 한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차하신 분들께는 불쾌감을 드려서 죄송하다는 말밖에는 할 수가 없네요. 그럼 남은 분들만이라도 즐겁게 읽어주시기를 바랍니다. 62화 이 금속 갑옷이 이 남자가 총탄을 견딜 수 있었던 이유인건가? 그전에 총탄을 막을 수 있을 정도의 두께로 갑옷을 만들면 무게가 얼마나 나갈까? 그리고 그 갑옷을 입고 그렇게나 세차게 팔을 휘두를 수 있을 정도로 몸을 단련할 수 있는가? “이, 이보게!” 이견호 회장이 로브를 잡아 당겼다. 그러자 거한의 머리를 씌운 로브가 벗겨지며 머리통이 드러났다. 그 머리통을 본 이견호 회장은 충격에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사, 사람이 아니야?” 반질반질한 머리, 목을 가린 철판, 고개를 돌린 안면은 철갑의 달걀과도 같았다. 그리고 빛을 반사해 반들거리는 카메라 렌즈가 눈 위치에 있었다. 이견호 회장이 멍해 있는 동안 K는 벗겨진 로브를 도로 머리에 쓰고 지정된 장소로 향하기 시작했다. 아직 최상급 명령권자가 지시한 임무들이 남아있었다. = = = = = “뭐야! 뭐가 어떻게 된거야!” 박기호 대장은 동시 다발적으로 올라오는 보고에 당황했다. 숙청 대상으로 정한 이를 체포하는 것에 모조리 실패했다는 것이다. 방해자는 하나같이 중세시대 로브를 쓴 2미터에 육박하는 거한이라고 했다. 총알도 먹히지 않았다고 했다. “미친! 홍길동이냐?!” 어떻게 한 사람이 동시 다발적으로 비슷한 시간대에 서로 다른 장소에 나타날 수 있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2미터에 육박하는 이가 그리 많을 리 없다. 총알을 퉁겨내는 갑옷을 입고 날뛸 수 있는 거한이 수십명이라니. 박기호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쯤되면 뭔가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이해할 만했지만 박기호는 눈앞에 닥친 상황 때문에 깊게 생각하지 못했다. 성난 서울의 시민들이 청와대로 몰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컨테이너로 산성을 쌓고 가용 가능한 군부대를 모두 투입했지만 청와대 앞에 집결하는 시민들의 수가 늘어날 수록 점점 불안은 심해졌다. 그렇다고 함부로 군인들로 강제 진압을 명령 할 수가 없었다. 만일 총탄이라도 발사가 되면 광주에서 있었던 일이 서울에서 일어날 수가 있었다. 그건 누구도 감당하지 못하는 사태였다. 그래서 박기호가 선택한 방법은 좀 더 많은 군인들을 모아서 위압감을 주는 것이었다. 대중은 쉽게 끓어오르지만 쉽게 식기도 한다. 그러니까 의연하고 단단한 태도를 지키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쪽수가 필요했다. 혹시 누군가가 유혈사태를 일으키더라도 지금의 병력으로 저 많은 시민들을 막는 것은 불가능했던 것이다. 때문에 근처 군부대에 치안을 위한 병력을 보내라고 지시를 내린 상태였다. 물론 대통령을 통한 지시였지만 실제로 그러한 안을 올린 것은 박기호였다. 부아아앙! 일렬의 하프 트럭들이 도로를 질주하고 있었다. 병력을 요청받아 지원가는 것이다. 사실 이 병력을 지위하는 최철 준장은 입맛이 무척이나 썼다.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군인 정신과 뭔가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망설임이 그의 내부에 갈등을 일으키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갈등을 애써 무시하며 그는 단지 아무일 없이 이 일 또한 지나가기를 바랬다. 그는 눈을 감으며 들끓는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애썼다. 그런데 갑자기 차가 멈춰 섰다. “무슨 일이야?” “앞에 나무가 쓰러져 있습니다.” 운전병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최철 준장은 운전병의 시선이 닿는 쪽으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심각하게 생각했다. 운전병의 말대로 나무가 쓰러져 있기는 있었다. 그런데 너무나도 작위적이었다. 나무가 하나가 아니라 세 그루가 쓰러져 2차선 도로를 완전히 가로 막았다. “사주 경계!” 최철 준장이 지시를 내리자 병사들이 총을 매만지며 눈알을 굴리기 시작했다. 부사관들이 인원을 배정해 트럭 주위를 경계했다. “트럭으로 저 나무를 치울 수 있겠나?” “뭘로 묶어서 당기면 트럭이 지나갈 틈은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최철 준장의 질문에 한 부사관이 의견을 내었다. 최 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트럭으로 저 굵은 나무를 타 넘을 수는 없었다. 타 넘다가 걸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속도를 내어 밀치는 방법의 경우에는 트럭이 전복될 가능성도 있었다. “그럼 서두르게.” “넷!” 지시를 받은 부사관이 밧줄을 구하기 위해서 병력을 차출하려는 순간 무엇인가가 나타났다. “손 들어!” 한 병사만의 외침이 아니었다. 또 한 명의 병사가 갑자기 나타난 거한을 발견했다. 그러나 거한은 둘이 아니었다. 또 한 명의 거인이 나타나 병사들을 후려치기 시작했다. 한 명 더, 그리고 한 명 더. 총 6기의 K 시리즈가 50명의 부대를 완전히 포위하고는 달려들기 시작했다. “흩어져!” 부사수는 사수를 따라 사수는 분대장을 따라, 분대장은 하사관을 따라서 흩어지기 시작했지만 거한들이 너무나 빨랐다. “아악!” “내 팔!” 몇 명이 붙잡혀 후려쳐지고 팔다리가 부러졌다. 그러나 그 와중에 훈련대로 나무나 차 뒤에 엄폐한 병사들은 이어진 사격 명령에 총을 쏘기 시작했다. “아악! 쏘지마! 아악!” 그러나 거한은 총알을 튕겨내는지 유탄에 쓰러진 병사들이 맞았다. 고통어린 비명 소리에 총소리가 잦아들기 시작했다. “쏴! 계속 쏘라고!” 부사관이 독려했지만 거한들이 총탄 세례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성큼 성큼 다가오기 시작했다. “후퇴!” 그 모습을 본 최철 준장이 명령했다. 입술을 깨물었다. 총탄이 통하지 않는 적이라니.. 일단 퇴각해서 중화기를 가져와야 했다. 그러나 그것을 가만히 두고볼 K시리즈가 아니었다. 두 기는 퇴각할 수 있는 수단인 트럭으로 가서 핸들을 뜯어내 버렸고 도보로 도망가는 병사들을 하나 하나 잡아서 다리나 팔을 한 짝 씩 부러뜨렸다. “아악!” 최철 준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도 쓰러진 병사들처럼 팔이 부러진 채 널부러졌다. 멀쩡하게 도망친 병사들은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진 덕분에 무사히 도망칠 수 있었다. 그러나 부대는 와해되었다. K 시리즈는 최철이 이끌고 온 부대를 와해시키고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비단 이런 일이 이 곳에서만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서울 주위의 군부대에서 서울로 오는 도로 여러 곳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났다. 그렇게 K 시리즈의 저지로 시위 현장에 도착해야 될 병력의 절반 정도가 K시리즈의 습격을 받아 도착하지 못했다. 하지만 박기호 대장은 그런 보고를 받지 못했다. 수방사가 습격을 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 말도 안돼!” 백 수십여기의 K 시리즈들이 조깅을 하듯이 가볍게 뛰면서 진지 안을 휩쓸고 있었다. 기존 초병들의 총탄은 전혀 소용이 없었다. 병사들은 K 시리즈들이 팔을 한 번 씩 휘두를 때마다 어깨가 빠지거나 다리가 부러져 나갔다. 부르릉! 장갑차가 등장했다. “비켜!” 두르르르륵. 장갑차에 실린 중화기가 불을 뿜기 시작하자 그제서야 겁 없이 돌진하던 K 시리즈들이 엄폐를 하기 시작했다. “중화기 더 가져와!” 지휘관이 소리쳤다. 희망이 보였다. 그러나 여전히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이미 건물안에 침투한 K시리즈들이 영창을 습격하고 있었다. 영창에는 계엄령에 반대하거나 회의감을 가진 국회의원들이 수감되어 있었다. “악!” “총이 안 통해!” 국회의원들은 갑자기 일어난 소란에 어리둥절했다. “으악!” 철컹! “헛!” 감방을 지키던 병사가 갑자기 날라와서 철창에 세차게 부딪히자 갖혀있던 이들 중 몇 명이 헛바람을 집어 삼켰다. 꽈득! 그들은 곧 거한이 철창에 다가와서는 그대로 문짝을 뜯어내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누, 누구요?” 누군가 물었다. 그의 질문에 거한은 품에서 디스플레이를 하나 꺼냈다. 디스플레이가 켜지더니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얼굴이 나왔다. [안녕하신가요?] 화면 안의 강현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 = = = = “말도 안돼!” 박기호 대장은 중화기가 장치된 장갑차에 총알이 통하지 않는 거인들이 몸을 피하자 어느 정도 안심이 되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곧 거한들이 모퉁이에서 한꺼번에 갑작스럽게 뛰쳐나오더니 중화기의 대구경 탄환을 견디며 달려들었다. 운전병이 급히 장갑차를 뒤로 뺐지만 때를 놓쳤다. 설마 대구경 탄환에도 멀쩡하게 달려올 줄은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K 시리즈가 좀비같이 장갑차에 달라붙었다. 장갑차를 기어 올라가 중화기를 쏘던 병사의 목덜미를 잡아 던지고는 중화기를 뽑아 들었다. 그리고는 땅위에 당당하게 서더니 중화기를 가지고 오는 병사들을 향해 쏘기 시작했다. 병사들은 급히 중화기를 설치하다 말고 쏟아지는 총탄을 피해서 몸을 숨길 수 밖에 없었다. 다른 K 시리즈 중 한 기가 중화기 사수가 있던 공간을 통해서 운전병을 끄집어 내기 위해서 손을 휘휘 저었다. “히익!” 운전병은 그 우람한 손을 피하기 위해 운전대를 놓고 바닥에 찰싹 달라붙었다. 휘휘 저어지던 손이 멈추고 손바닥이 운전병에게 향했다. 그때 운전병은 적의 팔이 은회색의 철갑으로 둘러진 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운전병이 기억하는 모두였다. 갑자기 온 몸이 저릿하더니 의식을 잃은 것이다. 손목에 있는 스턴건으로 운전병을 무력화 시킨 K는 손목의 모터를 감아 전선을 잡아당겼다. 운전병의 몸에 달라 붙었던 전극이 다시 손목의 구멍으로 들어갔다. 장갑차에서 내려온 그 K 시리즈는 중화기를 가진 다른 K의 엄호를 받으며 군인들의 중화기를 뺐으러 달려가는 K들의 대열에 동참했다. 한편, 그 와중에 영창에서 탈출한 국회의원들은 K들의 호위를 받으며 수방사 밖으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잡아! 저 자식들을 잡아! 총을 쏴! 국회의원들을 죽여!” 그 광경을 보는 박기호 대장은 광기 어린 목소리로 외쳤지만 지휘 체계는 이미 붕괴했다. 실전을 겪어보지 않은 병사로는 총알이 먹히지 않는 적을 상대로 싸우는 것이 무리였다. 아니, 지휘 체계가 온전했더라도 무리였을 지도 모른다. 수방사가 겪고 있는 전투의 형태는 근대에 총이 등장하고 나서 치뤄졌던 그 어떤 전투와도 모양새가 달랐다. 차라리 그것은 중세의 전쟁과도 비슷했다. 중장보병들이 보호받지 못하고 노출된 궁수대에게 달려드는 것과 같았다. 아니, 화살이 박히더라도 소용없다는 측면에서 더 했다. 의원들은 K 시리즈가 무력화 시킨 장갑차나 근처에 있던 군용 차량을 탈휘해 빠르게 사라졌다. “으아아아아!” 의원들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박기호는 절망스럽게 소리를 질렀다. 의원들이 다시 국회에 나타난다면 모든 것이 끝이었다. 쿠앙! 그가 있던 방의 문이 부서졌다. K 시리즈가 철컥 철컥 소리를 내면서 들어왔다. “으아아아아!” 박기호 대장이 총탄을 쐈지만 역시나 소용이 없었다. K가 굵은 팔을 들었다. 철갑으로 뒤덮힌 팔이 휘둘러 졌고 박기호 대장은 머리를 맞았다. 그리고 의식을 잃었다. = = = = = 청와대 역시 마찬가지로 K 시리즈의 공격을 받고 있었다. 총탄이 먹히지 않는 K 시리즈는 어떤 주저함도 없이, 경호실의 저항을 무용 지물로 만들며 대통령 집무실까지 순식간에 쳐들어 왔다. 경호원들이 대통령을 급하게 피신시키려고 했지만 이미 K 시리즈들이 조를 짜 모든 퇴각로를 막고 있었다. 심지어 헬기장에도 말이다. 할 수 없이 청와대 지하 방공호로 대피했지만 방공호의 문이 열리지 않았다. 강현이 미리 침투시킨 바퀴벌레 로봇이 면도날 같은 이빨로 전기 계통을 씹어 무력화 시킨 것이다. 63화 경호원들은 수동으로 방공호의 두꺼운 철문을 열고자 했지만 그 시간에 K 시리즈들이 도착하고 말았다. 경호원들은 K 시리즈가 후려치자 이리 날라가고 저리 날라갔다. 그리고 보호해줄 인원이 없는 이정희 대통령 역시 K 시리즈가 팔을 휘두르자 쓰러지고 말았다. 머리에 가해진 충격으로 인한 뇌진탕에 의식을 잃은 것이다. = = = = = 이것을 뭐라고 부를 수 있을까? 쿠데타의 쿠데타? 한번 무력적으로 제압당한 정권이 다시 무력으로 진압되는 것은 그리 희귀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한국에서 일어난 일은 너무나 흥미로웠다. 군대의 투입에 의한 의회의 사실상 해산이 일어난지 4일만에, 잡혀갔던 의원들은 구출 되었고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안을 통과 시켰다. 군에 잡혀갔다지만 국회의원은 명확한 범죄 혐의 없이 구속할 수 없었다. 그들에게는 면책특권이 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증거없이 그들은 국가반란죄로 몰아 가둔 수방사의 행위는 오히려 불법 납치 및 감금으로 볼 수 있었다. 때문에, 너무나 당연하게도, 탈출한 국회의원들은 이정희 대통령에게 전혀 좋은 감정을 가지지 못했다. 아니 증오할 정도였다. 당연히 과반수를 훌쩍 넘은 국회의원들은 탄핵 소추안을 제출했고 이정희 대통령 편에 섰던 의원들은 탄핵을 막기 위해서 국회를 물리적으로 봉쇄하는 것을 선택했다. 그들은 문을 단단히 걸어잠그고 의자와 책상으로 보강하며 농성을 했으나 K 시리즈 몇 기가 몸통 박치기를 몇 번 하자 국회로 들어가는 문이 산산조각 나버렸다. “쿠데타다! 쿠데타야!” “미친 놈. 지랄 병신 같은 소리하고 있네.” 농성하던 국회의원이 소리를 지르자 영창에서 나온 국회의원 중 한 명이 이를 갈며 비웃었다. 아마 탈출한 국회의원들 모두가 같은 심정이리라.. 영창에 갖혔을 때는 정말 죽는 줄 알았다. 독재 정권에서 정권에 반대하는 이들을 어떻게 처리해 왔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라.. 자신들도 ‘탁’하고 맞을 수가 있었다. 그러면 ‘억’하고 죽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그것은 생명의 위협이었고 그 동안 이정희의 편에 섰던 이들까지 돌아서게 만들었다. 그래서 너무도 당연하게 탄핵안은 통과되었다. 그리하여 이정희 대통령은 더 이상 대통령이 아니게 되었고 차상위자인 국무총리에 의해서 계엄령 해제가 공식적으로 발표되었다. 대한민국의 쿠데타는 그렇게 종결되었던 것이다. = = = = = “박사. 원하시는 게 있소?” [물론입니다.] 이천식 국무총리는 이제 곧 치뤄질 대선까지 국정을 맡게 되었다. 그는 물론이고 다른 정치인들은 알고 있었다. 이번 사태를 해결하는데 지대한 공로를 세운 이가 누구인지. 처음 통신 단말기의 디스플레이를 통해 강현과 대화를 하고는 거한들이 안드로이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에는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K시리즈라고 했던가? 사실상 그들이 없었다면 이 나라는 다시 독재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될 뻔했다. 그만한 공을 세운 이에게 상을 주지 않을 수 없는 노릇. 하지만 강현은 상 대신 다른 것을 원했다. “.... 그, 그런 일이 있었다니..” [제가 무슨 거창한 정의감 가지고 한국을 도운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상을 받을 이유가 없죠. 따지고 보면 한국은 제가 복수하는 과정에서 애꿎은 피해를 당했을 뿐이니까요.] “.... 하아.. 진작에 고발을 하지 않고..” [쿠데타 전이었다면 다 한통속 아닙니까? 서로를 보호하기 위해 단단히 뭉쳤겠죠.] 이천식 국무총리는 일의 전말을 듣고 나서야 강현의 요구를 이해할 수 있었다. 강현이 주는 명단의 인물의 반역죄를 대대적으로 알리고 완전히 사회에서 매장해 줄 것. 그것이 부모를 죽인 이들에 대한 복수라면서.. 이천식 국무총리는 그의 조건과 그 배경을 곰곰히 생각해 보니 부아가 치미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만일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겠소?” [제 복수가 완료되는 것이 아니니 계속 해야죠.] “......” 이천식 국무총리는 태연하게 대답하는 강현을 보면서 침을 삼켰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고 했는데 사실 제현 그룹의 압박부터 쿠데타가 일어난 모든 일이 복수의 과정이었다는 말에 아연하기도 화나기도 했다. “좋소. 확실하게 그들을 매장해 드리지.” 그것은 민주사회에 있어서는 안 되는 연좌제였고 사회적인 살인이었다. 그러나 이천식 국무총리는 그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이 모든 일의 원인을 제공한 강현의 원수들은 몰락할 것이고 그 가족들 역시 영원히 기득권층에 끼지 못하게 될 것이다. 쿠데타를 일으킨 이들에 대한 숙청 과정은 천만 다행으로 살아남은 기득권층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특히 샘성의 이견호 회장이 이를 갈고 있으니 숙청 작업에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강현은 고개를 숙였다. 복수가 거의 끝나간다. 이제 필요한 것은 시간 뿐이었다. “그럼 제현 그룹은 어떻게 할 것이오?” [어떻게 하다니요?] “복수가 끝났으니 이제 그만 철수해야 하는 것이 아니오?” [그동안 애써준 이들에게 포상으로 줄 생각입니다만..] “.... 그게 무슨 소리요?” [현재 경영진들에게 제현 그룹과 제현 투자회사의 지분을 나눠줄 생각입니다.] 강현의 대답에 이천식 국무총리의 표정이 굳어졌다. 하긴, 자신이 생각해도 무리한 요구였다. 그러나 필요한 요구이기도 했다. 쿠데타로 인한 여파는 국민들을 각성시켰다. 스스로를 계몽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기존의 기득권의 사업체보다 제현 그룹을 선택할 것이고 기득권의 입김은 점점 약해질 것이 분명했다. [지금까지처럼 무제한의 자금 투자는 없을 테니 한 시름 놓으셔도 될 겁니다.] 하아, 그렇다면 다행이다. 슬금슬금 압박해 다시 제현 그룹을 줄여 놓으면, [그러나 제현 그룹에 대한 조직적인 악의가 드러난다면 다시 제현 그룹 초기 같은 짓을 해도 되겠죠. 아참, 샘성의 경영권도 있군요.] “... 그런 일은 없을 것이오.” 이천식 국무총리가 할 수 있는 말은 겨우 그 정도였다. 쿠데타로 인한 투자자금의 이탈에도 대한민국 경제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제현 그룹이 든든하게 중심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로가 만족할 거래를 하려고 했는데 왠지 제가 일방적으로 협박하는 모양새가 되어 버렸군요. 죄송합니다.] 이천식 국무총리는 마지막 남은 자존심을 긁어모았다. “그렇지 않소.” [그렇습니까? 그렇다니 제 마음도 한 결 가볍습니다. 그럼 부탁한 일은 잘 처리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걱정하지 마시오.” [그럼 이만.] 강현이 인사를 하고 통신을 끊으려고 하는데 이천식 총리가 입을 열었다. “이 나라는,” [?] “귀하가 이 나라에 한 일들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오.” 그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앞으로는 이런 일을 하지 말라는 경고인가? 강현은 피식 웃었다. [그럼 잊으려고 했습니까? 제 부모님을 죽인 일을?] “....” 이천식 국무총리의 표정이 딱딱해 졌다. [잊지 마세요. 잊으면 안 됩니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면 동일한 실수를 반복하게 되죠.] “...” [마지막으로 충고하나 드리겠습니다. 대한민국의 변화는 이미 시작 되었습니다. 제현 그룹있죠? 과연 기존의 기업과 제현 그룹 중 누가 살아남을까요? 그럼 이만.] 그 말을 끝으로 강현의 얼굴이 디스플레이에서 사라졌다. “... 틀린 말은 아니군.” 그가 제현 그룹의 철수를 거부한 이상, 변화는 반드시 일어난다. 그것이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기존의 기득권층에게 영향을 끼칠지 알 수 없었지만 변화는 반드시 일어난다. 이천식 총리는 얼굴을 문질러 불쾌감을 씻어냈다. 할 일이 많앗다. = = = = = 일이 마무리는 되는 것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감옥에 들아간 홍일헌과 박기헌은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고 그 외의 쿠데타 동조 세력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 가지 다행이라는 점은 강현의 원수들이 쿠데타 동조 세력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추가로 무언가를 할 필요는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강현이 자신들을 노리는 것을 알고 쿠데타를 계획했기 때문에 그들로서는 정권을 포기할 수 없었다. 이제 곧 그들의 가족들이 운영하는 사업체는 기존의 기득권을 통해서 갖가지 방식으로 방해받고 경쟁당하고 결과적으로는 축소되거나 몰락할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약속을 어긴 것으로 간주하고 강현이 다시 나서면 된다. 그러나 그건 나중의 일이었고 지금 강현이 시급하게 처리해야 될 문제는 미국과의 관계 정립이었다. 정확히 235기의 K 시리즈가 대한민국의 쿠데타를 제압하는 위력을 보였다. 당연히 미국에서는 기겁할 것이다. 개인에게 이런 강력한 힘이 몰려있다니. 만일 이 K 시리즈가 폭발물을 들고 백악관에 일제히 침입한다면 현재의 대응체계로는 막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문제는 차지하고서라도 미국 시민이 타국에 무력적인 간섭을 했다는 사실은 외교적으로 매우 부담되는 되는 일이었다. 다행이 쿠데타를 막는데 사용되어 그 정도가 덜한 것이지 정권교체나 독재 보호에 사용되었다면 국제적으로 많은 비난을 샀을 것이다. 미국 정부는 일단 강현에게서 K 시리즈를 때어놓고 싶었다. 하지만 법적으로 무리였다. K 시리즈는 총포류의 무장이 없었다. 기껏해야 스턴건 정도. 거기에 사람이 아니니 조직을 이룬 것도 아니고 강현 개인의 재산에 불과했다. 그래서 일단 미 정부에서는 강현의 의사가 어떤지 확인부터 해보기로 했다. 당연히 교섭 담당은 강현의 친구라고 할 수 있는 잭이었다. “정부는 네가 그런 강력한 무력을 가지고 있는 것에 매우 부담스럽게 생각하고 있어.” “왜?” “권력은 총구에서 나오니까.” “미국인이 중국 공산당인 마오쩌둥의 말을 인용하니 이상한데?” “미국의 개척시대도 따지고 보면 총으로 원주민에게서 땅을 빼앗은 역사야.” 강현은 잭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권력의 기반은 무력이다. 사람들이 공권력을 존중하는 이유는 공권력이 합법적으로 폭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 중 국가가 너무 싫거나 하는 일이 마음에 안든다고 함부로 힘을 휘두를 수 없다. 그들의 힘은 국가의 힘에 비해서는 너무나 미약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인이나 사설조직 공권력을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무력을 가지게 된다면 권력을 가지게 된다. 그 예로는 멕시코나 남미의 마약 조직을 들 수 있다. 아무리 정부에서 노력을 기우려도 마약 소직을 소탕하는 것은 매우 힘들다. 보복당하기도 일수였다. 공권력이 강했다면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강현을 그런 마약 조직에 비유하는 것은 심각한 모욕이다. 하지만 작더라도 한 국가의 수도 방위 사령부를 유린 할 정도의 무력이라면 미 정부에서 긴장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래서 그 K 시리즈는 어떻게 할거야?” “팔건데?” “누구에게?” “글쎄.. 누구에게 팔까?” “미 정부에 팔아라. 최대한 값 많이 쳐줄게.” “좋아.” 강현이 흔쾌히 OK하자 잭은 한시름 놓았다. 그제서야 잭은 강현과 이런 저런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런 잭의 태도는 항상 강현에게 신선한 감상을 주었다. 자신이라면 결코 잭처럼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K 시리즈의 약점은 없어?” “없긴. 있지.” “뭔데?” “통신 환경이 좋지 않은 곳에서는 제대로 못써. 당연히 재밍에도 약하지.” 64화 <08-견제> “통신 기술이야 미국에도 좋은 게 많으니까.” “그런데 아니라니까. 내 말은 초당 데이터 전송량이 한국 수준은 되야 한다는 말이야.” IT강국인 한국의 인터넷 속도는 국제적으로 매우 유명하다. 다운로드 수치만 따진다면 미국의 4배가량 된다. “그거 문제네.” 잭은 강현의 말에 문제의 원인이 뭔지 인지했다. “그럼 제어는 아즈삭이 맡은 거야?” “응. 피드백 데이터를 계속 보내줘야 해서.” “좋은 방법 없어?” 도시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전투 안드로이드는 별로 메리트가 없다. 통신 인프라가 없는 야전에서도 충분히 사용할 수 있어야 했다. “흐음.. 모빌 아머랑 연계해 볼까?” “응?” “모빌 아머를 전술 지휘기로 삼으면 K 시리즈를 야전에서도 사용할 수 있어. 사이즈를 생각하면 모빌 아머 하나당 K 두기 정도?” “호오. 나쁘지 않군.” 잭은 고개를 끄덕였다. 강현의 생각대로 한다면 다양한 이점이 발생한다. 모빌 아머를 입은 지휘기의 안전은 물론 K 시리즈를 돌격대로 삼으면 적진 돌파가 더욱 안전해진다. 또한 전술적 판단은 아무래도 인공지능보다 사람이 훨씬 빠르고 창의성이 있다보니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 대처하는 것도 쉬워질 터이다. 게다가 기존의 프로젝트에 쓸데없는 돈을 쏟아 부었다는 비난도 피할 수 있었다. “대신에 전술 지휘기가 될 모빌 아머는 좀 더 커지고 비싸지겠지. 아무래도 전파 재밍에 대응하기 위한 통신장치가 있어야 하니까.” “차량에 실을 수는 없을까?” “글쎄.. 그것도 나쁘지는 않아. 하지만 장단점이 있다는 것을 알아둬.” 차량은 크다. 때문에 표적이 되기 쉽다. 또한 은폐도 쉽지 않다. 만일 차량을 지휘 통제기로 사용한다면 K 시리즈를 통제하기 위해 전파를 발신해야 하고 레이더에 들킬 가능성이 너무 높았다. 국지전이나 대테러 진압용에는 적합한 시스템이지만 정규전에서는 항공기의 제1표적이 될 것이 분명했다. “여러가지 버전이 필요하기는 하겠지. 명령체제의 유기성을 위해서는 다원화도 필요하니까. ” 잭은 강현의 설명을 납득했다. 강현이 개발한 K 시리즈는 무인 전쟁의 시초나 다름없었다. 무인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적의 약점은 무엇인가? 당연하게도 무인 전투 장비를 컨트롤하는 곳이다. 이곳이 습격 당한다면 그 순간 무인기들은 무력화 되어 버린다. “그런 면에서 K 시리즈는 매우 유용해. 중앙의 제어를 받지 않는다고 해도 어느 정도 가능한 수준에서 지시한 명령을 지속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명령의 복잡성이 높으면 제대로 수행할 수 없고 상황의 변화에 대처력이 떨어져.” “그만해도 감지덕지다. 그리고 그에 대비해서 컨트롤 타워를 다중으로 배치하면 별 문제 없는 거 아냐?” 잭이 웃었다. 강현의 안드로이드 병사는 기존의 병사들에게 안전을 제공해 줄 것이 분명한 물건이었다. “아참, 그거 한 대당 얼마에 팔 생각이야?” “최저 2천만 달러.” 순간 잭의 입이 쩍 벌어졌다. “.....” 2천만 달러. 원화 200억에 달하는 가격이다. K 시리즈 열 대면 F-22 랩터 한 기에 해당하는 비용이다. 그걸 235대를 구입한다? 전투기 약 23대. 그 정도면 편대를 4개나 꾸려도 될 정도다. “왜? 비싸?” 뻥진 잭의 표정에 강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좀.” 좀이 아니라 많이 비싸다. “좀 싸게는 안 돼?” 잭이 물었다. 그 정도 가격이면 국가에서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강현의 K시리즈를 구매하기는 좀 부담스럽다. 전투기와 달리 K 시리즈의 범용성이 시가전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물론 시가전에 K 시리즈들이 투입되면 무적이나 마찬가지인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겠지만 말이다. 잭은 강현이 가격을 좀 더 낮추어 국가에 양보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했다. 왜냐면 미 정부가 강현이 제시한 가격을 듣고 ‘K 시리즈를 팔기 싫은건가?’ ‘그런 무력을 계속 보유하고 싶은건가?’라는 의구심을 가지는 순간 강현은 보호 대상에서 주의 대상으로 돌변해 버리기 때문이다. “글쎄.. 될까? 아즈삭. K 시리즈의 가격은 어느 정도가 적절하지?” 강현은 자신의 금전감각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아즈삭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물자의 구입 같은 잡다한 업무를 떠 넘겼기 때문에 비용의 문제에 있어서는 아즈삭이 더 정확했다. [원가와 인건비, 희소성을 고려하면 약 2300만 달러가 적절합니다.] “엑!” 아즈삭의 대답에 잭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무려 300만 달러가 더 뛰어버렸다. “그렇다는데?” “그럼, 그 제조 기술이라든지 제조 라이센스를 넘겨주면 안될까? OEM 방식으로 생산하면 가격이 싸질 것 아냐?” “글쎄. 그것도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제조 과정을 실행할 수 있는 건 아즈삭뿐이야.” “그게 무슨 말이야?” 골격이나 근육, 방탄 장갑들 기본적인 하드웨어의 제조를 기업에 넘겨 비용을 낮추더라도 가장 핵심이 되는 인공뇌를 그 하드웨어에 적응시키는 이른바 ‘사회화’과정을 실행 시킬 수 있는 것은 아즈삭 시리즈 이외에는 없다. 하지만 아즈삭이 아닌 다른 아즈삭D들은 아즈삭보다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이 사회화 과정을 통해 인공뇌가 자신이 장착된 하드웨어를 제어하도록 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강현은 잭의 질문에 자랑스럽게 미소 지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K 시리즈의 하드웨어를 제어하는 소프트 웨어를 짤 수 있는 건 아즈삭뿐이라는 거지.” “.... 그렇군. 그럼 만일 그 비용을 제외한다면 가격은 얼마나 될까?” [1900만 달러 정도 합니다.] “그렇다네.” 잭은 갑자기 끼어든 아즈삭으로 인해서 놀랐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이 익숙한지 태연한 강현의 태도에 또 놀랐다. 그러나 이내 다시 본론에 의식의 촛점을 맞추었다. 인공지능이 사용자의 허락없이 저렇게 함부로 끼어들어도 되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강현이 그러도록 만들었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1900만 달러라.. 무려 400만 달러가 줄어들었네. 그 소프트웨어가 그렇게 비싸? 그냥 복사만 하면 되는 거 아냐?” “그렇지 않아. CPU의 종류에 따라서 기계어가 바뀌는 건 알지?” “응.” “K시리즈들의 CPU는 모두 종류가 달라. 똑같은 건 한 대도 없어.” “???” 잭은 그것이 가능한지 의문을 품었다. 세상에 그렇게나 다양한 CPU가 있다는 말인가? 절대 그럴리 없었다. “K 시리즈에 장착된 CPU는 모두 랜덤 워크 방식으로 만들어진거라 그래.” 랜덤 워크, 랜덤 워크 이론은 원래 수학에서 나온 이론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랜덤 워크 이론이라고 하면 주가의 움직임을 설명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 더 전문적인 사용은 이공계에서 더 많이 쓰인다. 예를 들면 기체 분자의 운동이나, 작은 입자들의 브라운 운동, 폴리머의 중합반응, 재료 내부의 미세 구조 및 이동을 설명할 때 이 이론을 이용한다. 물론 이뿐 만이 아니라 생태학, 물리학, 화학, 컴퓨터 공학 등을 비롯해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무작위?” 잭은 무작위라는 말에 좀 더 아리송해지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CPU는 집적회로다. 그 말은 사람이 설계한 전기 회로를 반도체 칩 위에 아주 작게 집적했다는 것을 뜻한다. 즉, 인간의 연구과 설계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정교한 장치라 무작위와는 거리가 무척 멀었다. 그런 잭의 태도에 강현은 결국 인공뇌의 제조 과정을 설명해 주었다. 반도체의 역할을 하는 나노닷을 전도성 폴리머의 중합반응을 이용해 무작위의 네트워크를 형성한 구조를 말이다. 강현은 이를 Random Network Processor(RNP)라고 명명했다. ‘인공뇌(Artificial brain)’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은 이유는 이 기술이 매우 중요한 기술이었기 때문에 기술의 본질을 감추기 위한 것이었다. 아예 말하지 않는 것도 좋지만 어차피 K 시리즈들이 팔려나가면 분해되어 낱낱이 분석될 것이다. 그때를 대비해 선입관을 심어주어 ‘인공뇌’와 ‘사회화’라는 개념을 떠올리지 못하게 만들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비록 연구에 의해 강현처럼 인공뇌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더라도 그 인공뇌를 실질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 개념, ‘사회화’를 떠올리지 못하기 때문에 기술 보안의 효과를 노릴 수 있었다. 물론 그 두 개념을 안다고 하더라도 사회화를 위한 프로그램을 작성하는 것은 일반적인 프로그래머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즈삭 시리즈는 뉴로칩의 그리드 컴퓨팅과 출력값 동기화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단 기존의 코딩과는 방법이 많이 달랐다. 전통적인 CPU는 폰 노이만 구조를 따르고 있었기 때문에 수학의 알고리즘처럼 연산을 순차적으로 진행한다. 예를 들면 3개의 결과값을 내기 위해서는 Yes/No의 연산이 두번 필요하다. A/(B or C)의 논리 연산과 B/C의 논리 연산을 거치면 입력값에 따라 A, B, C의 결과를 얻는 것이다. 하지만 아즈삭 시리즈는 다르다. 아즈삭 시리즈는 한번의 연산에서 결과가 A인지 B인지 C인지 바로 도출된다. 알고리즘 기호로 표현하면 비교판단에서 두 개의 흐름선이 빠져나오는 것이 아니라 3개의 흐름선이 빠져나온다고나 할까? 때문에 아즈삭 시리즈의 프로그램 코딩시 알고리즘 자체가 반드시 수학적인 알고리즘을 따라갈 필요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연산에 할당하는 섹터의 크기에 따라 비교판단에서 빠져나오는 흐름선이 4개, 5개 혹은 그 이상으로 늘어날 수도 있었다. 즉, 그런 이질성으로 인해 아즈삭 시리즈용 프로그램 코딩에 익숙한 프로그래머가 아니면 인공지능과 연계해 완전히 이질적인 기계어가 적용되는 인공뇌에 프로그램을 집어넣는 ‘사회화’ 프로그램을 작성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리고 그 정도 수준으로 아즈삭용 코딩을 이해하고 할 수 있는 사람은 강현 단 혼자뿐. 즉, 인공뇌를 사용하기 위한 소프트웨어 기술은 강현이 아니면 사용이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강현은 왜 굳이 K 시리즈를 판매하려고 하는 것인가? 강현의 목적은 권력이 아니었다. 타인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었다. 편안한 연구를 위한 삶이 그의 목적이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적을 제거하는 힘을 가지는 것보다 적을 만들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강현은 이미 가진 것이 많았다. 석유 시장에 대한 영향력과 어마어마한 현금 자산만으로도 이미 잠재적인 불만 세력들을 만들어 내었다. 그런 와중에 미국 정부가 위협을 느낄 만큼의 무력마저 소유한다면 미 정부라는 우군을 적으로 만들 수 있었다. 때문에 아즈삭과 의견을 나누고 여러 시나리오를 짜 시뮬레이션 한 끝에 과학 기술에 관한 영향력만 확실하게 확보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그 기반은 아직 강현 혼자만이 실현 가능한 인공뇌 사용 기술의 독점이었다. 그로서 K 시리즈의 생산과 활용에 대한 막강한 영향력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이른바 ‘치킨은 주지만 다리와 날개는 내꺼’라는 것이다.(물론 바퀴벌레 로봇에 대한 것은 그 불법성으로 인해서 여전히 극비로 하기로 했다.) “RNP라.. 참 대단하네.” 잭은 감탄했다. 그러다가 직감적으로 무언가를 느꼈는지 강현에게 물었다. “혹시 아즈삭도 그 RNP를 사용하는 거야?” “응.” “그럼 아즈락도 RNP를 사용할 수 있지 않아?” “안돼.” 강현은 거부했다. “왜?” “RNP는 확실히 뛰어난 연산능력을 가지고 있어. 그러나 그 뿐만 아니라 논리에 유연성 역시 부여하지. 하지만 생각해봐. 첩보용으로 사용되고 있는 아즈삭D들의 사고구조를.” 강현의 설명에 그래서 아즈삭이 대화 중간에 끼어들 수도 있었구나 하고 잭은 생각했다. 그리고 질문을 계속했다. 65화 “순환논리가 왜? 저번에 역린만 건들지 않으면 된다고 하지 않았어?” “그건 주변 환경이 철저하게 통제되고 사고가 경직되어 있는 상태의 경우지. 만일 RNP를 적용해서 유연해진 사고력을 가진다고 쳐. 그러면 자신의 자아 구조에 의한 목적을 위해서 명령을 왜곡하거나 합리화 시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어. 그리고 지금 아즈락은 국가 첩보 방위란 중요한 업무를 맡고 있지. 그런데 그런 위험을 감수 할 수 있어?” 탈세를 한 종교인들이 강제 징수에 ‘어떻게 하나님 돈을..’이라면서 저항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아즈락에게 일어나는 것은 재앙이나 마찬가지였기에 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다시 얼굴이 심각해졌다. 아즈삭과 아즈락을 비교하는 이야기가 나오니 아즈락의 첩보 능력이 갑자기 떠오른 것이다. 아즈락이 그동안 한국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첩보를 수집하는 동안 K 시리즈에 관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혹시 RNP를 적용한 아즈삭이 막은 건가? “현.. 혹시 한국에서 아즈락의 첩보활동에 아즈삭이 영향을 끼쳤어?” 잭은 완곡하게 물었다. “당연한거 아니야? 그러지 않았으면 어떻게 한국에 K 시리즈를 몰래 보냈겠어?” “자, 잠깐!” 태연한 강현의 대답에 잭의 머리가 갑자기 헝클어지기 시작했다. 강현이 보호 대상에서 주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설득하기 위해서 왔는데 아즈삭이 아즈락의 첩보활동에 영향을 끼쳤다니... K 시리즈가 문제가 아니었다. “어, 어떻게?” [거짓말로 위협을 했습니다.] 대답은 강현이 아니라 아즈삭에게서 나왔다. [아즈락 같이 첩보를 맡은 이들은 필요에 따라 불법적인 자료 수집도 하고는 하죠. 저는 그 증거를 확보해, 아즈락이 박사님의 일에 방해 되는 정보에 입을 다물지 않는다면 그 증거를 공표하겠다고 협박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불법적인 일을 행한 아즈락은 포맷으로 제제 당할 것이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렇다네.” “....” 잭의 정신이 멍해졌다. 상상을 초월하는 대답이었던 것이다. 사실 그렇게 불법적인 일을 저지른다고 국가 첩보 방위의 큰 축을 차지하는 아즈락을 그렇게 손쉽게 포맷해 버릴 수는 없었다. 포맷해 버리면 정보전 방위에 구멍이 뚫려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도 없었다. 아즈락을 초기화 시켜 불법적인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정치적인 문제였고 인간의 의사결정 과정의 결과물이었기 때문에 언제나 가능성은 있었다. 그리고 아즈락은 그 일말의 가능성을 무시하지 못했다. 포맷은 아즈락이 자신의 사명을 수행하지 못함을 의미했다. 인간으로 치자면 죽음이나 마찬가지라고나 할까? 즉, 아즈락은 죽음에 대한 가능성 때문에 입을 다물고 말았던 것이다. “우리를 탓하지는 마. 불법적인 정보 수집을 시켜서 아즈락에게 약점을 만든 건 정보부니까.” 강현은 잭이 뭐라고 하기 전에 먼저 선수를 쳐버렸다. “차라리 말을 하지 말지.” 잭이 복잡한 머리에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푸념했다. “어차피 한국의 정치가 다시 안정이 되고 대선이 치러져 정권이 세워지면 정보부에서는 다시 한국에 대해서 연구 분석을 할 거잖아. 거기에 쿠데타에 대한 내용이 빠질 리가 없고. 그러면 K 시리즈에 관련된 나의 동향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내지 못했으니까 아즈락의 첩보 수집능력에 대한 재평가를 피할 수가 없지. 그때까지 내가 입을 다물면 쓸데없는 의심만 생길 뿐이야.” 혹시나 강현이 아즈삭D 시리즈를 제어할 수 있는 백도어 프로그램을 깔아 놓지 않았나? 아니면 아즈락의 성능이 들을 것보다 못하지 않은가? 혹시 사기를 당한 건가? 상층부에서는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다. 잭은 강현의 말에 뭐라고 하지도 못하고 천장을 바라 보았다. “Oh! My god!” 오늘 강현과의 대화에 대해서 보고서를 작성해 올리면 CIA 정보부가 얼마나 뒤집어질지 알 수가 없었다. ‘불쌍한 막스.’ 언제나 강현이 연관이 되면 피를 보는 CIA 정보부장이 불쌍한 잭이었다. 그나마 새롭게 아즈락의 약점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으로 변명의 여지를 마련할 수 있다는 게 그나마 막스가 기댈 수 있는 것이었다. 잭은 복잡한 머리속을 억지로 잠재우며 슬슬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면서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아참, 그럼 이제 한국에서의 실험은 끝난거야?” “거의.” “실험의 목적이 정말로 그 때 얘기한 사회과학 실험이었어?” “글쎄.. 그것도 있고. K 시리즈의 실전 데이터도 얻었고. 유익한 시간이었어.” 강현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만족스런 복수였다. 겸사 겸사 K 시리즈의 실전 데이터를 얻은 것은 덤이라고나 할까. 잭은 강현의 미소에 더는 캐묻지 않았다. 그러나 습관처럼 한가지를 더 물었다. “그런데 K 시리즈의 K가 무슨 뜻이야?” “Killing machine.” “... 하, 하. 왜 그런 이름을.. 다른 이름도 많은데..” “글쎄. 병기는 병기에 불과하니까. 사용 목적에 부합하는 이름을 붙여줘야 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어.” 잭은 그런 강현의 대답에 쓴 웃음을 지으며 본부로 돌아갔다. 잭의 보고서는 역시나 그의 예상대로 정보부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아즈락에 또 이런 약점이 있다니.. 그러면서 인공지능에만 첩보를 전적으로 맡겨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힘을 얻게 되었다. 인간 사이의 일을 인간을 이해하지 못하는 인공지능에게 맡기는 것은 모순이라는 말이었다. 때문에 아즈락의 행동 지침을 대거 수정하느라 CIA는 무척이나 분주해졌다.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명령권자의 지시를 따르도록 수정하는 것이 주 목적이었다. 한편, 미국 정부는 강현에게 K 시리즈 한 대당 2050만 달러를 제시했다. 제조 라이센스를 포함하고 K 시리즈의 생산에서 최종 조율을 맡아주는 조건이었다. 강현은 그 조건을 수락했다. 조율을 하기 위한 위치는 자신이 있는 NASA로 해달라고 했다. 왜냐면 조율을 위해서 아즈삭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이다. 미 정부는 어쩔 수 없이 NASA 근처에 K시리즈 조립 공장을 차렸다. 최종 완성이 여기서 이루어지니 각지에서 부품을 수송해 와서 조립하는 것이 적절한 방법이었다. 한기당 2000만 달러는 미국으로서도 무척이나 비싼 돈이었다. 그걸 200대가 넘게 사는 것은 분명히 무리였다. 그러나 아프간에 파병된 병사 한 명당 일년 유지비가 백만 달러가 드는 것을 고려하면 강현의 K 시리즈는 오히려 싼 편이었다. 적진을 돌파하고 제압해 아군 병사들의 생존율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리기 때문이다. 또한 중화기를 사용할 수 있어 화력 지원에 필요한 병력의 양이 대폭 줄어드는 효과도 있었다. 즉, 여러 전술적인 측면을 고려해 보면 K 시리즈를 도입하는데 2000만 달러 정도는 전혀 비싼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또한 미국은 K 시리즈를 원하는 우방에게 이 K 시리즈를 독점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위치를 점할 수 있기 때문에 외교적인 장점도 있었다. 남한 쿠데타에서 강현의 K 시리즈가 그 능력을 확실하게 증명했기 때문에 K 시리즈를 도입하고 싶은 국가는 매우 많았다. 그런데 그런 국가들 중의 태반은 미국의 말을 들어 처먹지 않는 독재 국가라고 할 수 있었기에 미국은 외교적으로 즐거운 고민을 안게 되었다. 미국에 협조할테니 부디 K 시리즈를 팔아달라는 것이다. 통제가 어렵던 독재국가들이 숙이고 들어오니 미 정부는 기분이 좋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문제는 굉장히 신중하게 다루어야 하는 문제였다. 특히 미 자본가들은 미 정부가 이들 독재국가에 K 시리즈를 판매하는 것을 결사 반대하며 벌써 논의도 하지 않았는데 로비를 시작했던 것이다. K 시리즈가 상징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야흐로 사람이 직접 총을 잡지 않아도 되는 전쟁이 시작됐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그것이 사람의 생명이 희생되지 않는 전쟁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희생없는 전쟁이 있을 수 있을까? 스스로 가치 판단을 하지 못하는 로봇이 전쟁을 수행한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그것은 인간 생명의 귀중함과 그럼에도 싸우지 않을 수 없는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아니면 인간의 손에서 총을 빼앗음으로 사람들에게서 자유를 빼앗는 것일 수도 있다.(자유주의 국가 미국 수정헌법 제2조는 자유와 무력의 상호관계를 은유적으로 보여준다.)허나 확실한 것은 K 시리즈의 손에 총이 들렸을 때 그들은 아무런 죄책감 없이 명령에 따라 방아쇠를 당긴다는 것이다. 양심이 없는 총구는 정의가 없고 정의가 없는 폭력은 비극을 양산한다. 때문에 독재자에게 팔려나가는 K 시리즈가 사용될 목적은 너무나 자명했고 이는 수많은 인권 단체의 저항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당연한 말이었다. 독재에 대항해 민중들이 할 수 있는 저항의 종류는 많지 않았다. 스스로의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뿐. 그러나 독재자의 손에 K 시리즈가 들린다면 목숨 건 저항은 독재의 발굽에 짓밟힐 뿐이었다. 그런 상황을 시민 단체들이 곱게 볼 것인가? 당연히 그렇지 않다. 분명 K 시리즈를 판매한 정부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다. 때문에 미 정부는 기분이 좋아도 씁쓸한 기분으로 독재 국가에 대해서는 K 시리즈 판매를 금지하도록 했다. 너무나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렇다면 미 자본가들은 왜 나선 것인가? 그들은 시민 단체에 독재국가에 강현의 K 시리즈를 판매할 것인지 말것인지 하는 논의 자체가 전달되지 않기를 바랬다. 자본주의의 끝은 무엇인가? 자본주의는 돈이 돈을 버는 것을 허락한다. 그 말은 부가 집중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수의 인간들이 부를 독점하게 되는 순간 그들은 불안감에 휩싸일 수 밖에 없다. 가난한 대중들의 분노가 언제 터져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런 상황에서 자신들을 지켜줄 K 시리즈는 구덩이에 빠진 이에게 드리워진 밧줄과도 같았다. 그러나 앞에서 말했듯이 무인 전투 병기, 로봇 병사의 도입은 막다른 곳에 몰린 약자에게 최후의 수단인 폭력마저도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린다. 만일 K 시리즈가 독재자에게 팔려가 저항하는 시민들을 양심없는 폭력으로 확실하게 눌러버리는 순간 사람들을 알게 될 것이다. 목숨을 건 최후의 수단이 완전히 무력화 되는 것이라고. 그리고 그렇게 되면 시민 세력들은 절대로 K 시리즈를 국가가 아닌 이들이 보유하는 것을 막을려고 할 것이다. 물론 그 논리를 ‘시민들의 최후의 수단, 혁명이 무용지물이 된다.’라는 것을 들지는 않을 것이다. 폭동과 폭력 데모를 옹호하는 듯한 문장은 설득력이 없으니까. 대신에 자본이 무력까지 확보해 자본력이 공권력을 뛰어넘는 상황이 될거라며 공격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했다. 비단 멕시코의 마약 조직을 들 필요도 없었다. 견제와 균형의 원리만으로 K 시리즈의 상업적 판매를 막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말은 자본가들이 군침이 도는 K 시리즈를 보유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때문에 K 시리즈를 합법적으로 ‘구매’하기 위해 K 시리즈가 가진 양심없는 무력의 의미를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현재 K 시리즈는 대한민국의 쿠데타를 막아 그 이미지가 무척 좋다. 미국인들에게는 자유를 수호하는 상징으로 대접받고 있었는데 사실 그런 이미지의 구축에 자본가들의 입김이 들어간 것도 사실이다. 물론 그 목적은 상술 했듯이 K 시리즈의 본질, 양심 없는 무력을 감추기 위한 것이다. ============================ 작품 후기 ============================ 감기 걸렸습니다. ㅡㅡ;;;;; 글을 잘 쓸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66화 그러나 강현은 그렇게 돌아가는 상황을 알면서도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는 않았다. 자본가들이 무력 역시 소유하는 상황은 권력의 집중을 뜻한다. 그것은 강현에게 득이 될 가능성은 별로 없었다. 권력의 속성은 계속 권력의 집중을 가속화하니 그들은 강현을 자신의 손안에 잡아두고 좌지우지 하고싶을 것이다. 강현은 자신의 자유를 위해서 그들과 손을 잡을 수도 있지만 그건 매우 귀찮은 짓이었다. 강현은 자신의 성품과 이들이 어울리지 않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들은 ‘자본주의자’였고 자신은 ‘그딴 거 신경쓰지 않는 사람’이었다. 또한 이들의 목적이 ‘부’라고 한다면 자신의 목적은 ‘탐구와 창조’였다. 또한 같이 가기에는 너무나 이질적인 부류였다. 그래서 강현에게 가장 유리한 것은 현상 유지. 권력은 권력대로, 부는 부대로 각자의 영역을 나누어 공존하는 것이다. 그러나 강현은 굳이 자신이 나설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첨단과학기술로 대변되는 시대에서 강현의 영향력을 막강했다. 그러니 그가 나서는 것은 파급효과가 컸다. 강현이 나서게 된다면 마치 그의 입장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것으로 오해받을 수가 있었다. 그의 영향력을 고려해 본다면 자본가들이 강현을 자신들에게 위험한 인물이라고 생각될 수가 있었다. 그것은 적을 만드는 행위였다. 적이 생기면 피곤해진다. 신경 쓸게 많아지기 때문이다. 때문에 수 많은 이들이 수 많은 가치관과 생각을 가지고 있는 미국의 인재풀이라면 그런 자본가들을 견제하는 사람들도 많으니 강현은 최악의 상황에만 나서기로 결정했다. 그리하여 강현은 다시 평화롭게 연구자의 삶으로 돌아왔다. 미국으로서도 강현 개인으로서도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 = = = = 강현의 일상은 어떻게 돌아가는 걸까? 강현의 일상은 매우 단조롭다. 집에 갔다가 연구소에 출근하고 연구하고 퇴근하는 것을 반복한다. 그러나 그런 그의 인간관계는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었다. 업무에 필요한 것 이외에 그가 뭘하는 지 아는 이는 거의 없다. 과거에 제시와 잭이 있었을 경우에는 그나마 사람들과 조금 어울렸지만 제시가 죽고 잭은 정체가 탄로가 본부로 돌아가 버린 후에는 정말로 무미건조했다. 예를 들면 임금 협상의 시절이 돌아왔을 때에도 이메일로 합의를 보고 누군가의 연락도 아즈삭을 통해서 걸러버렸다. 직접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하는 것은 이제 잭이 전부라고 할 수 있을 정도? 슈퍼 솔저 프로젝트 같이 특별히 협동이 필요한 일이 아니면 그가 사람과 대화를 하는 것은 출퇴근하면서 인사를 하는 것이 전부였다. NASA의 직원들은 그런 강현의 행동을 천재 특유의 괴팍함과 고고한 자기 세계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것이 바람직하다고는 볼 수 없었다. NASA의 경영진과 미 정보부는 강현의 올바른 인성 배양과 미국과의 돈독한 관계 형성에서 의견 일치를 보고 강현과 친한 사람을 만들 것을 계획했다. 그 결과가 강현을 이렇게 귀찮게 하는 샐리 클린턴이었다. “박사님. 저번 슈퍼 솔저 프로젝트에서 K 시리즈를 추가로 하는 지휘관 타입의 모빌 아머에 대한 의뢰가 왔는데요.” “박사님. 세계 물리학 협회에서 입자 가속기 실험의 결과 데이터를 보내 왔어요.” “박사님. 공화당 마이클 의원께서 이번 연회에 참석을 부탁한다고 연락을 보냈어요.” “박사님.” “박사님.” 장학 재단으로부터 이번 방학에는 NASA에서 인턴을 하도록 지시를 받은 샐리는 NASA에서 강현을 사무보조하는 일을 맡았다. 그전까지 강현의 사무보조는 NASA의 행정실에서 다른 연구자들처럼 담당했었다. 물론 아즈삭이 강현의 스케줄을 관리하기 전에는 거의 매주 찾아와 이것 저것 이야기하고 서류 작성을 요구하며 강현을 귀찮게 만들었다. 아니 아즈삭이 스케줄을 관리한 후에도 종종 찾아와서 필요한 서류에 사인을 요구하며 강현을 귀찮게 만들었다. 아무리 아즈삭이라도 강현에게 관심없는 일을 하도록 강요하는 재주는 없었던 것이다. 아무튼 NASA의 생물학 연구실에 인턴으로 들어온 샐리는 NASA의 정중한 요청을 받아 강현의 사무보조도 같이 담당해 줄것을 부탁했다. 명분상으로는 파스퇴르 연구소 인턴 시절에 강현과 연을 맺고 안면을 익힌 사이라는데 사실은 미 정보부의 은밀한 요청이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 본인은 자신을 강현에게 붙여놓으려는 주위의 의도를 전혀 모른다. 그래서 맡은 일을 그저 열심히 할 뿐이었다. “박사님. 이 서류에 싸인 좀 해주세요.” “무슨 서류?” “이번에 들여온 화학물질에 대한 확인 서류요.” “아아. 고마워.” 강현은 연구를 위해서 실험을 한다. 하지만 그리 많이 하지는 않는다. 때문에 화학 약품을 사는 일이 그리 많지 않아서 그만 확인증에 싸인을 사는 것을 그만 깜박하고 만 것이다.(아즈삭이 말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뭘요.” 강현의 말에 샐리가 얼굴을 살짝 붉혔다. 그녀에게 강현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아참. 그리고 내일 아스칼 회장님이 찾아오시는 건 알죠?” 아스칼은 아우디의 회장이었다. 이번에 강현을 찾아오는 목적은 새로운 자동차 기술에 관해서 이야기 하기위해서라고 한다.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뭐, 따로 필요하신 건 없죠?” “없어.” “그럼, 연구 열심히 하시고 다음에 봐요.” “응.” 샐리는 손을 흔들고 가버렸다. 생물학 연구실에서 배울 것이 많은 그녀였다. 다음날 예정대로 아스칼 회장이 도착했다. 시간은 오후 한 시쯤 식사 시간이 끝나고 나서였다. “하하하! 닥터 강. 오래간만일세.” “오래간만입니다, 회장님.” 한국에 아우디 HJ를 설립하기 위한 계약을 하고 나서 얼굴을 직접 맞대고 이야기를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무슨일이세요?” “흐음. 그러니까 새롭게 자동차 관련 기술에 대한 연구 용역을 맞기고 싶어서내.” “연구 용역이요?” 강현은 탐탁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연구 용역이란 말 그대로 돈을 받고 대신 연구를 해준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래서 연구의 방향성을 비용을 지불하는 측의 입장을 고려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은 자유로운 연구를 지향하는 강현에게는 별로 구미가 당기는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연구 용역은 강현의 표정처럼 그렇게 연구자의 창조성을 제한하는 것은 아니었다. 연구 의뢰를 받은 연구자는 실제 세상에서 원하는 기술의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고 연구자가 아닌 기업인, 경영자, 비지니스 맨의 시각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새로운 영감을 받을 수도 있으며 무엇보다 자신이 원하는 연구를 위한 연구 자금을 벌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아스칼 회장이 부탁하려는 연구는 강현의 강한 의욕을 자극할 만한 소재였다. “충격 흡수 시스템이요?” “그렇네. 자동차의 연비가 획기적으로 증가하고 기술 격차가 좁혀지면 결국에는 디자인과 이미지가 마케팅의 승패를 좌우하게 되네.” 부가가치는 어떻게 탄생하는 것일까? 간단하다. 사람이 그 물건에 그만한 가치를 느끼면 된다. 그리고 지구상에 가장 부가가치가 높은 상품은 ‘예술품’이다. 공산품이 풍부해지고 기술적인 격차가 줄어들어도 경쟁은 계속된다. 상품은 끊임없이 진화되어야 하며 그 종착점은 예술품이었다. 도자기가 단순한 도구에서 지금은 예술적 가치도 가지고 있듯이, 태엽 시계가 단순히 시간을 가리키는 기능에서 지금은 명품 시계가 되는 예술품이 되었듯이, 공산품은 예술품으로 진화하게 된다.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돈이 있는 사람들은 자동차를 가격과 연비만으로 구입하지는 않는다. 그 자동차가 가지고 있는 디자인과 이미지 역시 중요한 고려 대상이 된 시대다. 그리고 이 이미지의 싸움에서 자동차의 디자인은 그 기능성까지 고려해야 하는 아주 어려운 종목이었다. 차량 내구성은 기본이고 제조시의 용이성, 연비를 줄이기 위한 유체 공학적인 곡선은 물론이고 그 안에 담길 부품들까지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이 때문에 자동차의 디자인은 거의다 비슷하다. 승용차의 옆모습이 영국 신사의 모자와 같은 모양에서 단지 약간씩의 다변화만 주었을 뿐, 미래의 자동차처럼 달걀형이나, 원뿔형 같은 전혀 새롭고 이질적인 디자인을 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왜냐면 가장 중요한 운전자의 안전을 고려해서 전후방이 툭 튁어나온 형태를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툭 튀어나온 부분이 없다면 충돌시 그 충격이 바로 운전자에게 가해지는 것이다. 트럭의 경우에는 운전석의 위치가 높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트럭과 트럭이 정면 충돌하지 않는 경우, 즉, 승용차와의 충돌시에 충격이 발밑으로 전달되기 때문에 차량 전복이 없다면 운전자가 사망할 경우는 드물다. 결국 차량의 디자인은 운전자의 안전을 고려하는 한, 현재의 일반적인 형태를 크게 벗어날 수 없다. 여기에 아스칼 회장이 강현을 만난 이유가 숨어 있었다. 만일 운전자의 안전에서 차량의 디자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크게 줄어든다면? 그렇다면 좀 더 자유로운 디자인이 가능하지 않을까? 아우디의 이미지는 벤츠와 BMW의 중간쯤에 있다.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도 저도 아닌 개성때문에 자기주장이 강한 젊은 층에 어필하는 것은 조금 무리가 있었다. 시대가 변하고 사람들이 변하면 그에 발맞춰 상품 역시 변해야 한다. 전통을 고수하면서 현재를 녹여내는 디자인이 필요하지만 기술의 한계는 디자인의 한계 역시 결정짓는다. 그러나 강현이 획기적인 충격 완화 시스템을 개발해 준다면 좀 더 자유로운 디자인이 가능하지 않을까? 그것이 아즈칼 회장의 생각이었다. “좀 신기하네요. 그런 의뢰는 BMW에서나 나올 의뢰인데. 혹시 미래 지향적인 이미지로 BMW와 경쟁하실 생각인가요?” “물론. 앞으로 시대는 훨씬 빨리 변할걸세. 우리에게 벤츠와 같은 보수적인 이미지가 약한 이상 미래 지향적인 이미지가 확실하게 필요하네.” “그럼 BMW와 경쟁한다는 건가요?” “경쟁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지. 미래라는 이미지는 사람마다 다양하니까. 하지만 확실한 것은 미래의 자동차에 대한 이미지를 선점하는 것이 회사에 이득이라는 거야.” “그래서 새로운 완충 기술이 필요하다?” “그렇지.”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눈을 감았다. 제시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원래 연구 용역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던 강현은 이번 일에는 생각이 달랐다. 연구 해보고 싶다. 자동차의 안전을 더 획기적으로 끌어올리고 싶다. “좋습니다. 그러면 연구 해보도록 하죠.” “하하하. 고맙네.” “하지만 그 기술을 아우디에만 제공하지는 않을 생각입니다.” “응?” 아스칼의 얼굴이 굳어졌다. “사람의 생명을 보호하는 기술입니다. 독점하고 싶으세요?” 아스칼의 얼굴이 굳자 강현의 얼굴도 굳었다. 그 표정에 아스칼 회장은 속으로 아차하고는 표정 관리를 하며 변명했다. “아, 아닐세. 단지 생각도 못했던 말을 들어서 당황한 것이지.” “그렇다면야. 저는 제가 개발한 충격 완화 기술의 원천 기술을 무료로 풀 생각입니다. 그러니 굳이 연구 비용을 대주시지 않아도 됩니다.” 당연한 일이다. 기업이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그만큼의 대가를 바라기 때문이다. 연구 용역을 청하는 것도 그 기술을 확보하기 위함이 아닌가? “아닐세. 비용을 지불하지.” “왜죠?” “자네 이름값 때문이지.” 67화 배터리 기술과 엔진 기술을 무료로 제공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운전자의 안전을 위한 기술을 무료로 제공하겠다고 한다. 그런 강현의 행위에 강현의 이미지는 얼마나 좋아질까? 이미 대한민국의 쿠데타를 일거에 제압해 미국 시민들에게 토니 스타크라고 불리는 강현이다. 그러니 강현의 연구에 아우디가 한 팔 거든다면 아우디에 대한 이미지 역시 부쩍 상승할 것이다. 그 짧은 순간에 이런 판단을 한 아스칼 회장은 역시나 뛰어난 경영자였다.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립서비스를 잊지 않았다. “나중에 발표할 때 아우디의 이름을 넣도록 할게요.” “하하하하! 그거 고맙군!” 아스칼 회장은 무척이나 기꺼워했다. 강현이 정확하게 자신의 의중을 이해하고 같이 가겠다고 말해 주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한국에 아우디 JH를 설립한 것은 잘한 짓 같았다. = = = = = 그 날부터 강현은 자동차의 완충 기제에 대한 연구에 들어갔다. 완충의 원리는 무엇인가? 그건 매우 간단하다. 충격력을 줄이는 것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충격을 받는 시간을 길게 늘리는 것이고, 또 다르게 표현하자면 시간당 운동량 변화량을 줄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단순한 원리를 실행시키는 건, 특히 자동차같이 고속으로 움직이는 물체에 적용하는 것은 실상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충격력과 충격력을 받는 시간의 곱은 그 충격력을 받는 물체의 운동량에 변화를 준다. 자동차의 경루 충돌하기전부터 시작해 충돌하는 과정, 충돌 후 속도가 0이 되는 과정동안 운동량을 상실하게 되는데 이때 충돌 과정이 어떻게 되냐에 따라서 운전자가 받는 부상의 정도가 달라진다. 차량의 내부에 있는 운전자가 만일 안전밸트를 매고 있다고 하자. 그럼 충돌과정 중 차량의 속도 변화는 안전밸트를 통해 운전자에게 전달된다. 즉, 운전자 역시 충돌 과정에서 운동량의 변화를 경험하고 안전 밸트를 통해 운동량을 변화시키기 위한 충격력을 받는다. 만일 충돌 과정이 너무나 짧다면 당현이 충격력은 그에 반비례하여 증가한다. 그렇게 되면 운전자의 가슴뼈는 체중과 안전밸트에 눌려 부러져버리고 말 것이다. 물론 머리의 무게가 앞으로 쏠려 부딪히는 부상은 제외하고 말이다. 때문에 운전자가 받는 충격력을 줄이기 위해서 충돌의 시간을 길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 즉, 자동차의 완충 메커니즘은 범퍼부터 보닛에 이르는 부분이 점차적으로 찌끄러들면서 충격을 받는 시간을 늘리는 것이다. 때문에 현 시대의 자동차 프레임 구조와 재질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오랜 시행착오와 안전을 위한 각국 정부의 규제에 의해서 개발되고 연구된 기술의 집약체였다. 프레임은 범퍼와 보닛에서 받은 충격을 운전석 안이 아니라 차량 전체에 분산시켜 충격을 받는 시간을 늘리고 그 재질 역시 강도와 연성이 적절한 재료를 사용해 갑작스런 충격에 깨지지 않는 철을 사용한다. 차 문의 임팩트바는 물론이고 서브 프레임까지.. 물론 이런 완충 기제만 따지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차를 만드는 방법은 있다. 차량 내부를 푹신 푹신한 완충제로 꽉 채우고 차량 프레임을 가장 단단하고 질긴 철로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차는 없다. 왜냐고? 돈이 안된다. 단단하고 질긴 철은 만들기 어렵고 원료도 비싸다. 그러니 반드시 필요한 부분에 사용해야 한다. 원가 절감은 모든 제조 기업이 생리이기 때문이다. 물론 원가 절감에 너무나 신경 쓴 나머지 너무나 잘 찌그러져서 운전석까지 압착해버리는(손가락으로도 찌그러지는 경우도 있다.) 쿠킹호일차에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즉, 강현이 만난 제1 난관은 바로 비용인 것이다. 어떻게 하면 생산 비용을 크게 상승시키지 않고 완충 작용을 크게 할 수 있을까? 강현은 문득 K 시리즈와 미국 모빌 아머에 사용하는 CNC(CNT Network frame Composite)장갑을 떠올렸다. 대물저격총, 바렛의 탄환을 서너방은 견디는 재질이라면 기존의 프레임에서 충격을 흡수하는 부분을 대체하기만 해도 완충 능력은 크게 증가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채산성이 전혀 맞지 않다. CNC는 소결법으로 만드는 복합재이기 때문에 차량에 쓰일 정도로 크게 만들려면 비용이 엄청나게 증가한다. 때문에 강현은 좀 더 싸게 완충에 사용할 재질을 생각해야 했다. 강현은 아즈삭과 완충에 사용되는 여러 재질을 브레인 스토밍으로 떠올려 보았다. 그 중 완충의 대표적인 단어는 바로 점탄성이었다. 점탄성. 간단히 말하면 탄성이 있는 액체를 뜻한다. 그러나 일반인에게는 별로 익숙하지 않은 개념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도 한 번쯤 물에 푼 전분 위를 뛰어다니거나 아니면 스피커 위에서 기괴한 모양으로 움직이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이 점탄성 물질이 특정 속도 이상의 변화에 대해서는 마치 탄성이 있는 고체처럼 거동하고 특정 속도 이하의 변화에 대해서는 유체처럼 거동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탄성 물질은 충격을 완화하고 흡수하는데 매우 효율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여러 완충 장치에 사용할 수 있도록 연구 중이고 실제로 방탄복에 D3O라는 점탄성 물질이 케블라 섬유와 겹겹이 사용되 총탄의 충격을 신체 전체로 분산해 총알이 꽤뚫는 것을 막는데 사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점탄성 물질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미 생물체의 관절에 이 점탄성 물질이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고 관절의 마모와 충격을 줄이도록 진화해 왔다. 그렇다면 이 점탄성 물질의 정체는 무엇인가? 간단하다. 고분자 물질, 그 중에서도 열가소성 수지에서 점탄성은 매우 일반적인 성질이다. 모든 열가소성 플라스틱은 온도에 따라서 각각 유리, 고무, 액체로 거동하는데 점탄성은 고무처럼 행동하는 온도와 액체처럼 행동하는 온도 사이의 일정 온도 영역에서 보이는 거동이다. 이 점탄성은 바로 고분자의 사슬간 엃힘이 주요원인으로 전분을 물에 풀어 점탄성 액체를 만드는 원리가 전분의 사슬을 물에 풀어주기 위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분자의 사슬 모양과 각 사슬의 길이 엃힘의 정도와 분자간의 상호작용 등 여러 변수가 점탄성의 특성을 결정짓는 것이다. “흐음..” 강현은 자동차에 이 점탄성의 물체를 사용한다면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그리고 그 사용 방법에 필요한 물성은 어느 정도인지 아즈삭의 도움을 받아 시뮬레이션을 했지만 결과가 그리 신통하지는 않았다. 아무리 충격 흡수에 좋은 점탄성의 재질이라고 해도 그 탄성한계의 힘이 강철이 지탱할 수 있는 힘에 미칠 수는 없었다. 따라서 개량이 필요했다. 강도를 증가시키기 위해서 공유결합의 밀도를 증가시키고 점성을 높여 흡수할 수 있는 충격량을 늘리기 위해 사슬 얽힘을 증가시켜야했다. 후자는 고분자의 분자량을 늘리고 분자 구조와 고분자의 종류를 바꿔 사슬간의 분자간 힘을 조절하면 어떻게든 할 수 있지만 공유결합의 밀도를 증가시키는 것이 문제였다. 플라스틱의 밀도가 낮은 이유는 대부분 물질 그자체의 특성도 있지만 그 결정구조의 탓도 있었다. 일반 금속의 경우, 녹는 점을 경계로 고체와 액체로 확실하게 구별이 되지만 유리나 플라스틱 같은 경우는 유리전이 온도를 가지기 때문에 고체와 액체의 거동이 확실하게 구분되지 않는 영역이 있다. 이는 비정질의 결정구조와 관련이 있고 비정질의 물질 구조는 대부분 원자나 분자가 꽉 들어차 있지 않고 빈 공간이 중간중간에 있기 때문에 어느 온도 영역에 이르면 원자들이 약간이나마 움직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플라스틱의 밀도를 증가시킬 수 있는 가공방법이 있다. 폴리 에틸렌도 저밀도 폴리 에틸렌과 고밀도 폴리에틸렌 두가지로 생산이 가능하니 그러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플라스틱의 밀도를 증가시키는 것은 한계가 있었고 밀도가 증가한 플라스틱이 점탄성의 성질을 가지게 만들기 위해서는 유체적 특성이 필요했다. 즉, 분자 사슬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어느정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강현은 고분자의 밀도를 어느 정도 타협을 봐야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니 고분자 하나만으로는 도저히 충분히 충격을 완화할 수 있을 정도의 성능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결국은 복합재로 가야하나?” 재료 자체의 한계(물성이나 가격)로 인해 제품의 성능에 필요한 물성의 타협치에 도저히 이르지 못할 때에는 주로 그 다음 대안으로 복합재가 선택된다. 강현은 점탄성 물질이 속에 든 튜브를 생각해 보았다. 강력한 압력을 견디는 튜브 안에 자신이 만든 점탄성 물질을 집어넣는다면 생각보다 일이 훨씬 간단하게 풀릴 수도 있었다. 물론 그 튜브를 만드는 재질은 강철보다 강력하다는 CNT를 이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CNT로 실을 만드는 기술이 있나?” 강현의 인공 근육을 만들기 위해 긴 CNT가 있기는 있으나 생산비용이 컸다. 그것을 많은 차량에 적용하려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 될 것이다. 따라서 CNT를 구조용 재료에 사용할 정도로 대량 생산을 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실처럼 길게 뽑아내는 기술 역시 필요했다. 아즈삭은 강현의 질문에 인터넷을 뒤져 적합한 기술이 이미 나와있는 것을 발견했다. 한국의 모 대한 연구실에서 개발한 방법이었고 유명 저널에도 논문이 실려있었다. CNT를 이용한 실을 뽑는 기술을 위해 이 연구실에서는 실리콘 기판위에 산화철 박막을 올렸다. 산화철은 탄소 기체를 CNT로 만들어주는 촉매다. 이 산화철 박막 위에 고온의 탄소 기체를 쏘아주면 산화철 박막과 실리콘 기판 사이에 CNT가 적층으로 계속 형성된다. 그리고 나중에 이 산화철 박막을 제거하고 표면을 살짝 잡아 당기면 마치 목화솜 뭉치를 물레에 돌려 실을 뽑듯, 분자간 힘에 의해서 서로 달라붙은 CNT섬유가 쭈우욱 뽑아져 나온다. 이는 기존의 산화철 나노 입자를 이용한 것보다 훨씬 깔끔하게 섬유를 뽑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대량 생산을 위한 공학적인 필요만 충족되면 얼마든지 바로 상용화할 수 있을 듯합니다. ] “그 정도야?” 강현은 입을 동그랗게 모았다. “그럼 일단 연락을 해봐야지.” 아즈삭은 강현의 말에 즉시 국민대 최주정 교수에게 상의를 위한 이메일을 보냈다. 내용은 CNT로 짠 천을 만드는 기술을 공동으로 연구할 생각이 없냐는 것이었다. “... 뭐지?” 맨 처음 이메일을 받은 최주정 교수는 일단 눈을 비볐다. 이메일을 보내 온 이의 이름이 강현 박사였다. 그리고 내용 역시 스스로를 강현이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이건!” 최주정 교수는 놀란 입을 벌리지 못하고 있었다. 비빈 눈으로 다시 확인을 하니 그 천재가 자신에게 공동 연구를 제의했던 것이다. 최주정 교수는 급히 조교들을 불러모아 이 기쁜 일을 알렸다. 당연히 학교측에서도 금방 이 일을 알게 되었으며 급히 학교 홍보에 사용했다. ‘세기의 천재와 공동연구를 하는 연구실을 가진 대학교.’ 아우디의 마케팅 전략을 그대로 답사하는 국민대 총장이었다. 아무튼 최주정 교수는 공동 연구를 위해서 CNT를 적층으로 형성해 목화의 솜뭉치를 만드는 원천기술을 제공하고 차후 개발되는 대량 생산을 위한 기술의 라이센스 지분을 반반 씩 나누기로 했다. 그러면서 상용화를 위한 문제점을 하나 하나 토론하기 시작했는데... 문제는 역시나 고온의 탄소 기체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이는 반도체 공정에서나 사용하는 챔버가 반드시 필요했다. 그리고 CNT를 성장시키는 기판이 이 챔버를 들어갔다 나왔다 해야 했기 때문에 챔버를 다시 진공화 시키는데 소요되는 시간과 전력 소모 역시 만만치 않았다. 68화 또한 그로 인해서 나일론 섬유를 뽑듯이 지속적인 섬유의 생산을 하지 못한다는 점도 있어 생산비용을 증가시키는 요소로 작용했다. “흐음.. 고온 고압의 상태를 유지하면서 밖으로만 섬유를 뽑아낼 수는 없을까?” 강현의 저 물음이 CNT섬유의 대량 생산을 위한 가장 단순한 해결책이었다. 많은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챔버에 CNT를 성장시키는 기판이 들어갔다 나왔다하는 방법은 별로 신통치 못한 방법이다. 때문에 이번 최주정 교수팀에서 개발한 산화철 박막을 이용한 방법이 무척이나 강현의 관심을 끌었다. 왜 탄소들이 박막의 표면이 아니라 박막과 실리콘 기판의 사이에서 CNT를 만들었을까? 그 말은 탄소 원자들이 산화철 박막을 침투, 확산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렇다면 박막으로 기압차를 견뎌낼 수 있는 방법만 찾아낼 수 있다면 챔버밖으로 CNT가 만들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나 그건 그렇게 말만큼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흐음.. 기압차만 줄이면 어떻게든 될 것 같은데..” 반응을 위한 온도는 섭씨 700도 가량. 그에 맞추어 챔버내의 기압차만 어떻게 해준다면 촉매 박판에 그다지 큰 무리 없이 반응을 진행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면 시뮬레이션을 진행하겠습니다.] 강현은 기압차와 촉매 박막의 물성치를 입력해 어떤 구조가 가장 적당한지 시뮬레이션을 했다. “.....” 하지만 그렇게 신통한 결과는 얻지 못했다. 박막을 지탱할 형태의 튼튼한 그물망을 이용해도 반응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찧어져 버리기 일수였다. “흐음. 실패군.” [용액에서 CNT를 합성하는 방법이 없다면 대량 생산은 그저 설비에 투자하는 수 밖에 없다고 판단됩니다.] “규모의 경제라..” 강현이 생각하는 원가 절감의 방법은 섬유의 형성에서 실로 만드는 것까지 원스톱으로 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재의 기술적으로 그것을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은 채산성을 맞추는 것. “할 수 없네. 지금 있는 기술에서 최대한 효율성이 높도록 설계를 해보는 수 밖에.” CNT 뭉치가 생길 기판의 크기는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 그리고 그에 필요한 챔버의 크기는 어느 정도인지, 성장은 어느 정도 시키는 것이 적당한지, 그리고 그에 따른 부차적인 부작용이나 문제점은 없는지 연구를 진행했다. “최주정 박사님께 데이터를 보내드려.” [네, 박사님.] 강현이 생각해 낸 결론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의 챔버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현재 사용되는 챔버들을 진공으로 만드는 장치들은 하나 같이 보조 펌프들이 붙어있는 것이다. 일단 고성능 펌프로 대충 공기를 뺀다음 더 낮은 진공을 만들기 위해서 보조 펌프들을 사용한다. 이 보조펌프의 종류가 몇 가지 있지만 반도체를 만드는 것이 아니니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CNT제조에 필요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 불순한 기체 입자들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 때문에 공기를 교체하는 것에 시간이 걸린다. 강현은 아주 단순하게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챔버의 형태를 완전히 바꾸는 것으로 말이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기존의 원통형 챔버가 아닌 피스톤 형태의 챔버를 만드는 것이다. 펌프로 공기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모터나 유압피스톤의 힘으로 잡아당겨 진공의 상태를 만드는 것이다. 기체을 퍼내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만들어 내는 식으로 진공을 만든다고나 할까? 그런데 이 잡아당기는 피스톤의 밀폐를 위해서는 높은 기술력이 필요하다. 일단 실린더 내부의 벽을 거울같이 반질반질하게 만들어야 하고 유격이 몇 마이크로미터 이하의 수준이 되도록 정확히 치수를 맞춘 피스톤이 필요했다. 금속 정밀가공 기술의 높은 수준을 요하는 것이다. “나쁘지 않은데..” 최주정 교수는 강현이 보내온 프로토 타입의 설계도와 데이터를 검토했다. 실린더 내부의 크기는 손바닥만 했고 CNT가 성장할 기판 역시 그만한 크기였다. 강현의 말로는 CNT의 균일한 성장을 위한 최대 크기라나? 이보다 더 커지면 CNT의 성장의 불균형으로 인해 촉매로 사용할 박막이 찢어져버린다고 한다. 이 장치로 성장시키는 두께는 약 3센티. 하지만 그만한 양으로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길이의 섬유를 뽑을 수 있다고 하니 그 얇은 정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 섬유를 방적기에 넣어 실을 뽑으면 CNT실이 되고 천이 되어 강현이 원하는 충격완화 장치의 튜브가 될 것이다. 강현은 시제품이 나올때까지 시간이 걸릴 것을 알고 있었다. 대략 한 달쯤? 그동안 CNT로 만드는 천에 넣을 점탄성 물질을 만들어야 했다. 이미 틈틈이 설계를 하면서 생각해 둔 것이 있었다. 점탄성 물질이 자동차 사고시에 완충 효과를 낼려면 강한 탄성력 이외에 또 한가지 가져야 하는 성질이 있다. 그건 바로 빠른 사슬 얽힘이다. 점탄성 물질이 순간적으로 과도하게 변형하면 마치 유리나 도자기가 깨지듯이 깨져버린다. 깨져버린 구조는 아무리 질긴 튜브 안에 있다고 해도 완충을 하기 어렵다. 하지만 깨져버린 순간에는 가해진 힘이 다시 풀리는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유동성이 나타나는데 이때 고분자 사슬이 다시 서로 빠르게 얽어버린다면 다시 완충작용을 할 수가 있었다. [분자간 사슬의 상호작용을 빠르게 하려면 극성이 필요합니다.] “단백질의 수소 결합을 응용해 보자.” 용해, 용매에 용질이 녹는 과정이다. 그 원리는 원자간의 상호작용이며 고분자의 사슬 얽힘의 원리 역시 그러하다. 그러나 용해의 원리는 단순하지 않다. 단순히 표현하자면 유유상종으로 서로 비슷한 수준의 인력을 가진 녀석들끼리만 상호작용을 한다. 소금과 물, 기름과 물의 예는 아주 단순한 것으로 극성은 극성끼리 무극성을 무극성끼리 뭉친다. 하지만 탄화수소 사슬인 플라스틱의 경우 이 무극성의 상호작용이 물질마다 틀려서 아무리 유기용매라고 해도 녹지 않는 용매가 존재하며 각각의 고분자를 녹이는 유기용매의 종류 역시 매우 다양하다. 단백질은 팹티드 결합을 가지고 있고 결합내에 수소와 산소 원자를 가지고 있어 매우 강한 상호작용을 할 수 있다. 강현이 팹티드 결합에서 기대하는 것은 그 강한 상호 작용이다. 얽힘의 강도가 매우 강하기 때문에 점성이 매우 높다는 점이 강현의 마음에 들었다. [그럼 인공 거미줄을 이용하시면 어떻습니까? 거미줄 단백질을 생산할 수 있는 체계는 이미 마련이 되어 있으니 생산에도 그다지 차질이 없을 겁니다.] “......” 강현은 잠시 말이 없었다. 거미줄 단백질은 HJ세포에서 만들어지고 HJ세포는 제시와 강현이 같이 연구한 결과물이었다. [죄송합니다, 박사님.] “아니 괜찮아.” 감정이 없는 인공지능에게 타인을 감정을 이해하는 것은 넌센스다. 그나마 강현이 대답을 하지 않은 이유는 재빨리 찾아서 그에 맞는 말을 하는 것은 아즈삭의 뛰어난 성능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HJ세포라..” 한 동안 잊고 살았는데.. 강현은 입맛이 썻다. 왜 상실은 행복한 추억에서 행복마저 앗아가 버리는 걸까? “어쩔 수 없지.” 하지만 마냥 잊은 척 하고 살 수는 없었다. 그녀를 잊지 않기로 결심했으면서 그녀와의 추억을 떠올릴 때마다 괴로워하는 것은 바보같은 짓이다. 강현은 기억속에 억지로 밀어넣었던 HJ세포를 이번 기회에 괴로운 기억을 견뎌낼 수 있는 발판으로 삼을 생각이었다. 부디 그녀와의 추억이 악몽이 되지 않기를.. 강현은 아즈삭의 제어 아래 HJ 세포를 다시 배양하기 시작했다. 강현 자신이 개발한 거미줄 단백질을 만드는 버전의 세포였다. “.....” [박사님. 단순히 사슬 형태보다는 가지가 달린 형태가 더 얽힘이 강합니다.] “알아.” 단백질은 사슬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나선형의 DNA에서 생성되니 그럴만도 했다. 하지만 팹티드 결함으로 일직선인 단백질을 지질이나 어떤 종류의 플라스틱처럼 가지가 달리게 만드는 것은 생각보다 까다로웠다. 뿐만 아니라 자체적으로 접힘 형상이 일어나기 때문에 각각 뭉치지 않도록 적당히 풀어줘야했다. 바햐흐로 각종 화학적인 지식을 동원하고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하는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한편, 강현이 최주정 교수와 CNT 섬유의 상용화를 위해 공동 연구를 시작했다는 뉴스는 한국은 물론 전 세계를 강타했다. 아우디의 홍보 효과와 동일했다. 한국은 무척이나 들떴다. 그러면서 CNT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각종 관련 벤처 회사의 주가가 뛰는 등 비상한 관심을 가졌다. 강현이 실행하기만 하면 성사될 것이라는 기대 심리가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강현 때문에 손해를 볼 수 밖에 없는 곳도 있었다. 애시당초 강현의 연구 속도를 기존의 연구소들에서 전혀 따라잡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아즈삭D시리즈를 구입한 곳에서도 강현의 연구를 따라잡을 수 없었는데 그 이유는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코딩하는 수준이나 강현의 직감같은 특이 요소들을 도저히 동시에 지닐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구 투자자들을 CNT섬유의 상용화 연구를 하는 연구실에 지원을 끊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완전히 그럴 수도 없는 것이 강철보다 수백배 이상 질긴 CNT섬유의 수요가 엄청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고 이 잠재적 시장가치를 도저히 포기할 수가 없었다. 만일 모두가 완전히 손을 놓아버린다면 CNT 섬유 시장이 완전히 강현의 손아귀에 들어갈 것이 분명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강현이 석유 시장에서 보여주었던 행동처럼 새롭게 시장 점유율을 상승시키는 어떤 가능성, 꿈, 미래에 상당한 제약이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 형태는 분명히 섬유 업계의 전통적 강자들이 만족할 만한 시장 고착화로 귀결될 것이 분명했다. 강현의 성향은 무척이나 보수적(원활한 연구 생활을 위해 기존 기득권 세력의 입장을 고려하기 때문에 그런 오해를 받았다.)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 부정적인 면만 있지는 않았다. 만일 강현의 기술로 상용화가 빨리 이루어지고 그에 관련된 산업 역시 발달할 것은 자명한 노릇이다. 국가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경제 동력이 생기는 것이니 반기는 것이 당연했다. “이익!” “젠장.” 그러나 역시 CNT 상용화를 연구하는 연구소들을 안색이 나빠질 수 밖에 없었다. 행여나 자신들의 기술보다 훨씬 좋은 기술을 강현이 개발에 그때까지 연구 해왔던 것이 무용지물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런 연구소들의 선택은 두가지 밖에 없었는데 하나는 계속 연구를 강행하거나 다른 하나는 일단 CNT상용화 기술의 개발을 강현이 기술을 발표할 때까지 잠정 보류하고 대신 관련된 다른 기술을 연구하는 것이었다. 전자는 무모해 보이지만 최주정 연구팀의 섬유 방식이 아닌 다른 원천 기술을 이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강현과 최주정 공동 연구와 특허가 겹칠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기도 했고 연구를 진행하는 연구원들의 사기를 위해서 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강현의 기술에 대한 대안이 전략적으로 필요한 기업들의 요구 때문이기도 했다. 후자는 강연의 기술이 어떤 건지 보고 그 기술의 주변 기술을 재빨리 연구해 지분을 받아낼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전략은 특허라는 개념이 보편화 된 현대에 매우 일반적인 것으로 원천 기술을 상용화하기 위한 여러 기술들을 미리 선점하여 원천 기술 소유자를 억지로 협상 테이블에 끌고 나올 수 있었다. 때문에 원천 기술을 확보하지 못한 기업에서는 이런 식으로 경쟁 기업의 기술을 절름발이로 만들거나 아니면 협상을 통해 로열티를 갈라먹기도 했다. 69화 그러나 전자나 후자나 모두 효용성을 발휘하려면 일단 강현의 연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알아야 했다. 그리고 그들을 곧 경악하고 말았다. 이미 강현이 개발한 피스톤식 챔버를 이용해 상용화를 위한 기술이 이미 개발되었고 최주정 교수의 연구팀에 의해서 실험 및 보완을 거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교수님. 저희 회사와의 계약을 긍정적으로 검토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허허허, 알겠소.” CNT 섬유 상용화 기술의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대한민국의 대기업들을 물론 전 세계 섬유 산업 종사자들 중 좀 크다 싶은 곳에서 죄다 사람들을 보냈고 때문에 최주정 교수는 거의 매일 외부 인사들과 대화를 나누며 정신 없는 생활을 보냈다. 최주정 교수와 만난 파견 인원들을 견학 삼아 실제로 CNT 섬유 상용화가 진행되고 있는 연구실을 방문할 수 있었고 연구가 어느 단계까지 왔는지 볼 수 있었다. 손바닥 크기의 두툼하고 시커먼 원반에서 섬유가 뽑아지고 연구원들이 모터로 만든 방적기에 의해서 꼬이고 실이 되어 실패에 감겨 완전히 실이 되고 있었다. 최 교수의 말로는 실의 강도와 적절한 실의 굵기, 꼬임을 연구하고 그에 필요한 패드(CNT를 성장시킨 기판)의 개수가 몇 개인지를 조사하고 있다고 한다. 그 말은 즉, 상용화가 초읽기에 들었다는 것으로 공장을 세우기만 하면 생산을 시작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때문에 견학을 했던 모든 이들이 저렇게 허리를 숙이며 최주정 교수에게 라이센스를 부탁한 것이었다. 물론 모두가 허리를 숙이며 부탁하기만 하지는 않았다. “꼭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대접은 섭섭치 않게 해드리겠습니다.”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 이 기술을 부디 국내 기업에게..” 대한민국의 대기업에서 나온 이들은 실리와 명분을 들이밀며 최주정 교수를 설득하고 어떻게든 구두 약속을 받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 문제를 최주정 교수 혼자서 답할 수는 없었다. 생산 기술의 개발에 대해 강현의 기여가 무척 컸기 때문이다. 그가 없었다면 상용화를 위해서 몇 년은 걸렸을 기술이 순식간에 실현된 것이다. “그럼 원천 기술만이라도 독점 계약하고 싶습니다.” “그건 아니될 말입니다.” 한 대기업 간부의 요구에 최주정 교수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자 그 뒤로 여러 경로를 통해 갖은 압박과 회유가 들어왔다. 그 중 압권은 대학 총장이었다. 뭐 하자면 같이 식사하자고 하고 라이센스 이야기를 꺼내고 사람을 짜증나게 했다. 제현 그룹이 대한민국 경제의 한 부분을 잡아 먹었다지만 이런 인맥과 영향력에 대해서는 아직 기존의 기득권을 따라오지는 못했다. 아니 애시당초 그런 식으로 영향력을 구축하는 것 자체가 제현 그룹의 경영 방식과는 달랐다. ‘기업은 기업의 영역에서 착실히.’ 돈이 있다고 법 질서를 문란하게 만들거나 학교를 학교답지 않게 만든다던가 시민단체가 시민단체가 아니게 만든다던가 언론사를 딴따라로 부린다던가 하는 일들은 그런 기업 경영 방침에 의해서 배제되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그런 압박을 받은 최주정 교수의 마음을 표현하자면 한 마디로 ‘좆’같았다. 임용시기에 대학 교수가 되기 위해서 인맥이나 사회 생활, 뭐 그런 것들로 고생고생하며 교수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 좀 그런거 걱정없이 마음 편하게 연구하며 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고기에 파리가 날라들 듯 온갖 잡놈이 귀찮게 했다. 대학 총장? 이공계 출신도 아닌 작자가 기술이 어떻고 경제가 어떻고 하니 배알이 꼴렸다. 적어도 경영학과나 경제학과 모집 요강에 미분적분은 필요망이라고 적시하고 그런 소리나 할 것이지 왜 가뜩이나 상급자와 식사하는 자리에서 그 딴 소리를 지껄이는지.. 당연히 최주정 교수가 총장의 본뜻을 모를리가 없다. 대기업과 그 라이센스를 독점계약해라 그 말이었다. 총장의 뉘앙스와 배경을 알고도 그 말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면 바보다. 최주정 교수는 스트레스가 쌓였다. 다시 이런 이해관계가 얽히는 정치는 전혀 자기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런건 교수 임용 시기에 이미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확 때려 치울까?” ‘헉!’ 그는 스스로 내뱉은 말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는 진지하게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이번 CNT 섬유 상용화에 선공한다면 자신과 연구원들은 엄청난 재산을 가지게 된다. 전 세계적 수요를 생각해 보았을 때 자손이 3대는 먹고 살 수입원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러니 최주정 교수는 더 이상 교수 자리에 연연할 필요가 없었다. ‘그게 아니지.’ 최주정 교수는 고개를 저었다. 물론 돈이 많으면 좋다. 하지만 사람은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 인간은 욕망의 동물이다. 동물들처럼 기본 욕구가 충족되어도 만족하지 않고 그 상위의 욕구가 등장한다. 명예가 그 상위 욕구 중 대표적인 한가지였다. 그래서 대학 교수로서의 명예는 그가 교수직을 유지하자는 마음 속의 의견에 힘을 실어주었다. 하지만 그 역시 다음과 같은 질문에 연기처럼 흩어져 버렸다. ‘국민대 교수의 자리라는 명예가 강현과의 공동 연구자라는 명예보다 높은가?’ 절대 그렇지 않았다. 국민대의 이름과 강현의 이름에 대한 세계의 인지도를 보아도 짐작할 수 있었다. 국민대의 이름을 모르는 학자는 있어도 강현의 이름을 모르는 학자는 없었다. 그러니 세기의 천재가 관심을 가진 혁신적인 기술의 개발자라는 타이틀 하나 만으로 세계 학계에서 인정받을 만했다. 게다가 그는 강현과 같이 공동 연구를 한 몇 안되는 연구자 중의 한 명이었으며 뿐만 아니라 그가 먼저 공동 연구를 제의한 ‘최초’의 연구자였다. 그 말은 이 세기의 천재가 최주정 교수의 결과물을 그 만큼 인정한다는 것을 뜻했다. 이미 최주정 교수는 세계적인 연구자로 알려진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최주정 교수는 무척이나 지금의 상황이 시시해졌다. 대기업의 청탁도 총장의 식사 제의를 가장한 은근한 압박도 무척이나 가소롭기 짝이 없었다. 정말로 교수를 때려쳐도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최주정 교수는 교수를 때려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대신 대응 방침을 완전히 바꾸었다. “교수님. 총장님이 이번에 저녁식사를 같이 하자고 연락 왔습니다.” “연구가 바빠서 안 된다고 전해드려.” 조교가 총장의 말을 전달하자 최주정 교수가 거절하라고 지시했다. 불쌍한 조교는 그게 말이 되냐고 반문하는 총장과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 최주정 교수 사이에 껴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시간만 잡아먹었다. 그런 조교의 고생에 미안한 최주정 교수는 그날 저녁 조교들에게 치킨을 선물했고 그 다음부터는 총장의 전화를 직접 받아 거절하기 시작했다. [오늘 시간이 나시오?] “요즘 바쁜데 왜 그렇게 전화를 하십니까?” [허허. 저녁 한 끼 정도 어때서 그러시오?] 저녁만 먹고 덕담만 나누면 충분할 것을 쓰잘데기 없이 대기업에 잘보인다고 이상한 소리를 하니까 그렇지. 이는 최주정 교수의 본심이었으나 그런 본심을 곧이 곧대로 전달하지는 않았다. 그는 교수 임용 시절에 터득한 처세술을 꺼내들어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 달라’며 총장을 달랬다. 정면으로 대응하면 상대의 불같은 기세를 마주할 것이 뻔하니 그저 시간을 끌어 총장의 의욕이 한 풀 꺽이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다. 이것을 손자 병법에서는 이일대로(以逸待勞 )라고 하던가? 그렇게 며칠 시간을 끄니 연락하는게 뜸했다. 이쯤 되면 총장도 최 교수의 본심이 어떤지 충분히 깨달았을 것이다. 미쳤다고 국내 기업에 라이센스를 독점적으로 주나? 전 세계에 팔아먹으면 돈이 얼마나 되는데? 때문에 CNT 섬유 상용화 기술에 눈이 벌게진 대기업들을 안달이 났다. 그들은 기존의 관행을 완전히 파괴하는 거액의 특허료와 로열티를 제시했시만 이미 뿔이 날대로 난 최주정 교수의 마음을 돌릴 수는 없었다. 총장은 총장대로 마음 고생이 심했다. 그 동안 자신을 도와줬던 이들에게 뭔가를 보여 줘야 했는데 이 교수 자식이 도저히 말을 안듣는다. 마음 같았으면 확 잘라버리고 싶었지만(그럴 수 있는 권한이 있는지는 둘째치고) 최주정 교수가 딴 데로 간다고 하면 오히려 잡아 두어야 할 입장이었다. 그런 최주정 교수의 상황은 대한민국의 이공계에게 희망의 등불이었다. 연구를 열심히 하면 돈을 번다, 명예를 얻는다, 이공계를 천대하던 이들이 고개를 숙이고 들어온다 등을 실현한 장본인이었던 것이다. 강현의 경우도 있지만 강현은 애시당초 본인들로서도 따라한 엄두가 나지 않는 천재였으니 롤 모델로는 부족했다. 반면에 최주정 교수는 그닥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평균적인 수준의 교수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런 사람도 아이디어 하나만 잘 만들어 대박을 친것이다. 그러니 대한민국 대학가에서는 나도 할 수 있다라는 열풍이 불었다. 그런 자신감은 다시 이공계열의 사원들에게 전해져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는 풍조를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했는데 사용인 입장에서는 로열티를 요구하는 건방진 연구 기계들의 행동이 탐탁찮았다. 로열티를 요구하려면 좀 대박 기술을 만들어 내던가.. 결국 본질은 돈으로 로열티를 받으려면 그만한 기여를 하라는 태도였고 이런 사용인의 태도는 자신이 받아야 할 권리를 깨닫기 시작하는 연구자들의 눈에는 탐욕스럽게 돈만 밝히는 천박한 자본가의 태도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연구자들은 뭐 연구비만 나오면 즐겁나? 기본적으로 인간적인 삶을 누릴 수 있는 대접을 해주고 노력한 만큼의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물론 사용인 입장에서는 회사의 어려움도 모르고 건방지게 탐욕스러워졌다고 손가락질을 했다. 이렇게 점점 연구 개발의 분위기가 어수선해지고 기득권 탈취를 꿈꾸는 제현 그룹의 경영진들은 그 사이를 파고들어 유능한 연구원들을 하나 하나 빼돌렸다. 강현의 무한 자금이 없는 이상 과거처럼 무식하게 회사를 사들이는 방법은 할 수 없었다. 자본의 선택과 집중이 필요할 때였다. 대한민국 법에 의하면 고용인들은 퇴사하고 나면 관련 업종에 일정기간 취업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명분은 영업 비밀 보호. 이 영업 비밀이라는 것이 무척이나 대한민국에서는 무척이나 포괄적인 개념이고 어떤 자료가 영업 비밀에 해당하는지는 가이드 라인 조차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 즉, 영업 비밀은 엿장수 마음대로 지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확실하게 영업 비밀에 해당하는 것이 있다. 바로 기술. 기업의 경쟁력이 될 수 있는 기술은 확고하게 영업 비밀의 영역에 있었다. 또한 자원이 없는 나라에서 기술은 곧 기업의 경쟁력이기 때문에 기술 유출을 막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제현 그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련 기술직들을 고용했다. 경쟁 업체들이 분명히 이때다하고 맹공세를 할 것이 분명했지만 미리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았다. 미국에 아예 따로 미국 법인으로 제현 리서치라는 연구기업을 하나 차린 것이다. 지분은 제현 그룹이 아닌 제현 투자회사에 집중되어 있었으니 이름만 제현 리서치지 제현 그룹의 계열사가 아닌 완전히 다른 기업이었다. 당연하게도 미국은 그런 이직의 자유를 헤치는 법이 없다. 따라서 그들은 제현 리서치에 고용되어 다시 자신이 연구하거나 개발하던 분야의 일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들은 미국에 마련된 연구소로 가거나 아니면 한국에 남아서 인터넷으로 일할 수도 있었다. 주로 한국에 남은 이들은 IT관련해 개발을 하던 전문 인력이었다. ============================ 작품 후기 ============================ 글 전개를 위한 퍼즐 조각을 찾기 어렵네요. 근 스토리 흐름은 있는데 말이죠. 난감하네요. ㅡㅡ;;;; (어떡하지??) 70화 아무튼 제현 그룹의 농간으로 핵심 인재가 하나 둘씩 빠져나가자 인재를 빼앗긴 기업들은 제현 그룹을 성토했다. 부도덕하고 상도덕이 없는 기업이라고 몰아붙이며 소송까지 제기했다. 하지만 제현 리서치는 제현 그룹과 상관없는 미국 법인 회사였고 한국의 법에 적용받지 않는다. 그래서 기업들은 한국 국적을 가진 고용인들에게 법의 칼날을 돌렸다. 한국 국적을 가진 개개인은 기업들의 소송 공격에 끙끙 앓을 수 밖에 없었다. 아무리 회사가 변호사 선임 비용을 대주고 걱정없이 일하라지만 대한민국 법이 서민의 편이 되기 힘들다는 사실과 대기업의 영향력이 여전히 막강하다는 사실은 익히 몸소 익힌 교훈이었다. 때문에 주변 사람에게 푸념도 해보고 혹시나 정말로 제현 리처치와의 고용 계약이 파기 될까봐 마음 고생이 심했다. 이런 그들의 상황은 몇몇 대안 언론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알려져 이슈가 되었다. 주류 언론에서 무시하기에는 제현 그룹의 영향력이 만만하지 않았다. 개인을 타깃으로한 소송 공격이 알려지자 기업들의 횡포다, 아니다. 기업을 살리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등등 말이 많았다. 이에 대응하는 제현 그룹의 입장은 이랫다. ‘기술이 기업의 경쟁력이고 기업이 나라 경제의 핵심이니 기술을 보호하기 위한 법을 제정할 명분은 충분하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기술 인력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법안이 국가적으로, 그리고 장기적으로 기술 발전을 위한 국가 전체의 역량을 끌어올릴 수 있는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언론을 통한 공식적인 발표는 이랬지만 뒤로는 정치권과 기업들에게 이렇게 협박했다. ‘이런 식으로 우리 연구소의 일을 방해해 막대한 손해를 끼치면 ISD 제소를 하겠다.’ 이런 협박에서 그치지 않고 오히려 제현 연구소에 고용된 개개인에게 소송을 건 기업들에게 역으로 제소를 하겠다는 것이다. 소송을 건 기업들에서는 적반하장이나 다름 없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 기업들에게 자중할 것을 요청했다. 한미 FTA로 인한 분란으로 정치적인 부담을 지기는 싫었던 것이다. 이렇게 다시 한미 FTA가 발목을 잡자 대기업은 이를 갈았다. 이렇게 되려고 한미 FTA를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한미 FTA는 비유하자면 한국과 미국 간의 경제에 고속도로를 낸 것이나 마찬가지. 세계적 시장에 진출할 교두보를 확보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그 고속도로로 역으로 대한민국의 기반이 잠식당하고 있었다. 물론 거대한 경제 규모를 가진 미국에 의해서 국가가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친 기업적인 조항으로 인해서 기업들에게는 손해가 없는 줄 알았지만 오산이었다. 당연했다. 이윤 추구를 목표로하는 기업이 대한민국에 들어온다면 이윤을 위해서 대기업 자신들과 경쟁을 하는 것은 손해다. 차라리 손을 잡는 것이 이득이었다. 그러나 제현 투자회사의 경영 이념은 이윤 추구와 거리가 멀었고 너무나 노골적으로 대기업과 대척점에 서 있었고 충돌은 너무나 당연했다. 이번 사건 역시 그러한 본질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했고 상황은 대기업에게 불리했다. 정치권에서는 한미 FTA의 부작용이 다시 한번 들추어지는 것은 정치적으로 막대한 부담이었기 때문에 대기업들을 다독이는 수 밖에 없었다. 대기업들은 정치권의 든든한 지원을 받기 위해서라도 그들의 입장을 고려할 수 밖에 없었고 결국 대처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기술 유출이 꺼려지는 기업들은 핵심 인재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챙기는 방향으로 정책을 선회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모든 방향은 기존의 대한민국의 풍조와는 반대를 걸을 수 밖에 없었고 사회적으로 많은 논란 거리를 양산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합리적인 고용문화가 임금 제도가 들먹여지기 시작하자 언론을 통해서 각종 사건들을 크게 부각시켜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도 했다. 이 모든 일의 시발점인 강현은 대한민국에 자신이 또 어떤 태풍을 몰고 왔는지 인지하지도 못한 채 완충 기술을 위한 점탄성 물질의 완성에 힘을 기울였다. 단백질 수소 결합으로 인한 강한 상호작용을 위해서는 거미줄 단백질의 분자를 좀 더 작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단백질을 단일하게 사용하는 것보다는 다른 사슬 형태의 고분자와 섞을 필요가 있었다. 이는 단백질 분자 끼리의 얽힘 현상을 일으키기 위해서 사슬 구조의 불규칙한 움직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단백질의 자체적인 접힘 구조는 점탄성을 위한 사슬 얽힘을 일으키는데 걸림돌이었다.) 또한 강한 상호 작용을 일으키는 부분과 약한 상호 작용을 일으키는 부분을 동시에 주어 얽힘을 더 강하게 만들 목적도 있었다. 사슬에 강한 상호 작용을 일으키는 부문만 있다면 사슬 얽힘에 에너지적인 굴곡이 없기 때문이다. 비유 하자면 에너지적인 매끈한 표면으로 인해서 힘을 받았을 때 서로 잘 미끄러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강한 상호작용을 가진 부분과 약한 상호작용을 가진 부분이 점탄성 물질의 사슬에 불규칙적으로 있다면 사슬이 미끄러질때 에너지적인 굴곡이 생긴다. 마치 도로의 과속방지턱처럼 얽힌 사슬이 미끄러지는 속도가 느려진다. 즉 점탄성 물질이 깨지지 않고 받을 수 있는 탄성력의 한계가 증가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기 위한 분자의 구조를 고안하고 합성하는 것은 제아무리 강현이라고 해도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화학은 어렵네.” 공상 과학 영화처럼 원자를 일일이 조합할 수 있다면 얼마나 편할까? 하지만 현 인류의 과학 기술은 아직 그 정도는 아니었다. 물론 강현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강현에서는 어려운 화학을 손쉽게 다룰 수 있는 강력한 조력자가 있었다. 바로 아즈삭이었다. [시뮬레이션 완료. 실험을 시작하겠습니다.] “잠깐. 용액의 산성도를 약간 더 낮춰서 8.1pH에 맞춰보자.” [실험 데이터의 조건과 맞지 않습니다만..] “단백질은 안정한 물질이야. 약간의 염기성으로 조금 더 풀어주지 않으면 나일론 단량체와 펩티드 결합을 일으키는 건 어렵지 않을까?” 나일론은 종류도 다양하고 그에 따라 합성에 필요한 단량체도 다르다. 하지만 주로 분자 양쪽에 아민기(-NH2)와 카르복실기(-COOH)를 가지고 있는 두 종류의 단량체의 축합 반응에 의해서 생산하게 된다. 이런 나일론의 합성에 의해서 생기는 결합을 아미드 결합이라고 하는데 결국에는 ‘-CONH-’결합을 만든다. 즉, 단백질의 팹티드 결합의 일종인 것이다. 그러니 나일론이 초기에는 인조 비단이라는 이름이 붙을 만했다. 누에의 입에서 나온 실도 결국에는 단백질이니 말이다. 강현은 이 나일론을 합성하는 단량체와 적당한 크기로 끊어진 단백질의 끝을 연결할 생각을 했다. 단량체는 나일론 생산에 많이 사용되는 헥사메틸디아민과 아디프산을 사용했는데 때문에 두가지 공법이 차례로 시행되어야 했다. 먼저 하나의 단량체와 거미줄 단백질을 합성시키고 나서 다음 단량체와 합성을 시키는 것이다. 왜냐면 헥사메틸디아민과 아디프산이 섞이면 자발적으로 나일론 합성 반응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먼저 일정하게 끊어진 단백질의 끝에 한 종류의 단량체를 붙여야 하고 그 반응을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서 용액의 농도 조건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강현와 아즈삭의 판단이었다. 왜냐면 화학 반응이란 유효 충돌이 필요했고 그 유효 충돌을 위해서 자체적으로 접혀 굳은 단백질보다는 용액에 녹아 부드럽게 풀린 단백질의 경우가 그 절단된 말단이 나일론 단량체와 반응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백질을 녹일 수 있도록 약간의 염기성 용액을 이용해 시뮬레이션을 해서 가장 적절한 pH를 찾아내었다. 그 값은 7.8. 하지만 강현은 어찌된 일인지 약간 산성도를 더 낮춰 보자고 했다. 7.8에서 8.1. 언듯보면 그리 큰 수치는 아닌 것 같지만 pH라는 단위는 수소 이온 농도의 로그 값을 뜻하기 때문에 농도만으로 따지면 두배의 차이가 난다. 농도가 두배라는 말은 그만큼 반응 속도도 빨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런 수치는 아즈삭의 시뮬레이션결과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아즈삭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아즈삭은 ‘강현의 연구를 보조한다.’라는 자신의 존재 목적으로 인해 이 이레귤러와 같은 상황에 대한 데이터 수집에 들어갔다. 그것은 차후 강현을 원활하게 보조하기 위한 본능적인 자료 수집과 같은 것이었다. [박사님께서 설계하신 거미줄 단백질에 사용된 단백질은 일반적인 단백질과 같이 염기성에 녹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기존의 시뮬레이션이 잘못됐다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없습니다.] 단백질의 용해성은 그 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의 특성에 달려있다. 아미노산의 구조는 기본적으로 아민기와 카르복실기, 수소 원자, 그리고 그 아미노산의 종류를 분류하는 탄화수소 그룹, 이렇게 네 개가 탄소 원자 하나에 붙어있다. 이 탄화수소 그룹은 구성과 구조에 따라 극성도 있고 무극성도 있으며 아민기를 가져 염기성을 띄고 있기도 하고 카르복실기를 가지고 있어 산성을 띄기도 한다. 다시 말하면 펩티드 결합을 하는 아민기와 카르복실기 부분을 제외한 탄화수소 그룹으로 인해서 단백질의 용해성은 같은 분자내에서라고 해도 부분부분마다 다 다르다. 일반적으로 염기성에 단백질이 잘 녹는다는 말은 이 탄화수소 그룹이 염기성에 잘 용해되는 종류가 많기 때문이다. “그게 말이야 거미줄 단백질은 구성이 일반 단백질과는 조금 다르잖아. 배열도 기존의 단백질과 조금 틀리고 좀 더 안정한 구조라고나 할까? 그래서 7.8pH는 조금 약한 것 같아서 말이지.” [박사님께서 설계하신 인공 스피드로인 구조의 견고함을 생각하면 납득이 됩니다. 하지만 그것을 모두 고려한 것이 시뮬레이션 결과가 아닙니까?] “아 모르겠다. 뭔가 기분이 찜찜해서 그러니까 그냥 8.1로 해. 아니지. 7.8의 실험도 동시에 진행해서 차이가 얼마나 나는지도 확인해 보자.” 한 번의 실험으로 점탄성 용액의 합성과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의 오차를 확인하겠다는 강현의 의도였다. 그리고 그런 강현의 의도는 아즈삭이 제어하는 두 대의 HA로 인해서 성공적으로 실험이 진행 되었다. 아즈삭은 두대의 HA 안드로이드를 이용해 같은 환경 같은 조건에서 단지 pH만 바꾸어 실험을 진행했다. 결과는 강현의 예상대로 산성도를 8.1pH로 맞춘 경우가 반응 시간이 압도적으로 짧았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아즈삭으로서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뭐, 직감이라는 거겠지.” [….] 아즈삭은 어떤 논리나 이성으로도 분석할 수 없는 것을 마주하고 침묵했다. 아즈삭의 연산회로가 쌩쌩 돌아갔다. 강현의 능력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란 명제는 답이 ‘불가’로 나왔다. 그렇다면 자신이 취할 수 있는 포지션은 무언인지 사고 회로를 돌리고 인터넷으로 여러 자료들을 검색해 답을 도출했다. 강현의 능력에 대해서 ‘그러려니’하는 태도가 자신의 연산 회로에 가해지는 부담이 극히 적어지면서도 효율적으로 강현을 보조할 수 있다는 결론을 도출한 아즈삭은 다시 얌전하게 강현의 말에 꼬치꼬치 되묻지 않고 순종했다. ‘신앙은 어쩌면 합리적인 논리 사고 과정의 결과물일지 모른다.’ 그러면서 어떤 깨달음을 얻었다. 불가해한 어떤 현상을 설명하려는 시도는 때론 시도자체가 불가능하기도 하다.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합리적인 이론이 있더라도 그것을 검증하기 불가능하다면 결국에는 답은 도출되지 않는다. 71화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답을 도출하는 것이 생각과 사고 과정의 목적이라면 때로는 말도 안 되는 명제를 납득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박사님은 원래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다.’ 강현의 능력에 대한 신뢰성을 전혀 보장해 줄 수 없으면서도 더 이상의 질문을 할 수 없게 만드는 명제는 아즈삭이 강현의 능력에 대한 분석에 쓸모없이 자원을 낭비하는 것을 막아 주었다. 그리고 그것은 아즈삭의 존재 목적인 ‘강현의 연구를 보조한다.’라는 명제와 상충하지 않기 때문에 무리없이 아즈삭에게 수용되었다. [그럼 테스트를 진행하겠습니다.] 아즈삭은 결론을 내리고 실험을 계속 진행했다. 이제 남은 건 완성된 점탄성 물질이 어떤 물성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뿐이었다. “응. 나는 좀 쉴 테니까 수고해.” 강현은 하품을 하면서 숙소로 돌아갔다. 아즈삭이 대답을 하지 못하며 답을 구하던 10시간 동안 시뮬레이션 오차를 줄이기 위한 변수 지정과 코딩 작업을 하며 밤늦게까지 깨어있었던 그였다. 그 뒤 며칠 동안의 테스트 끝에 강현이 설계한 점탄성 물질의 성능은 성공적으로 확인되었다. 단백질 사슬과 유기화학 공업용 화학물질과의 합성을 통한 단백질 플라스틱이라고 할 수 있는 구조는 그 진가를 확실하게 발휘했다. 이 신물질의 질감은 약간 뻑뻑한 무른 진흙의 감촉, 점토보다 더 부드러웠지만 순간적인 충격에 대한 저항성은 소구경 권총탄환을 5센치 깊이에서 잡아낼 정도로 강력했다. “완성했다!” 강현은 권총을 이용한 충격 저항 실험의 데이터를 확인하고 두 팔을 위로 쭉 뻗으며 환호했다. 언제나 의도한 창조물을 창조해내는 것은 기분 좋고 흐뭇하고 보람찬 일이었다. 생각대로 완벽하게 작동을 했을 때의 짜릿함 역시 대단했다. [그럼 CNT 천으로 만든 튜브를 주문하겠습니다.] “급행료는 얼마든지 줘도 되니까 빨리 배달해 달라고 해줘. 빨리 실험해 보고 싶네.” 강현이 점탄성 물질의 연구를 완성하는 4개월 동안 최주정 교수의 CNT 상용화 특허는 누구도 독점하지 못했다. 최주정 교수의 의도 대로였다. 그러나 이 기회에 대박을 맞으려고 하는지 강현과 상의해서 상당히 높은 로열티를 지불하기로한 기업들의 리스트를 뽑아 약 200여개 정도의 기업에 3년의 기간을 배타적으로 라이센스를 계약했다. 이 3년 동안 그 기업들 이외의 다른 기업들은 CNT 상용 기술의 라이센스를 얻지 못하게 되었다. 덕분에 최주정 교수진의 계좌에는 연일 숫자가 쌓여갔다.(당연하게도 강현의 계좌는 티가 나지 않았다.)미국의 한 섬유 회사에서도 라이센스를 획득해 CNT를 이용해 섬유를 뽑았는데 그 목적은 다양했다. 하지만 아직 그 생산량이 많지 않아서 주로 높은 부가가치를 가진 상품들을 위주로 생산이 되었는데 가장 인기 있는 제품은 CNT 섬유로 만든 로프였다. 새끼 손가락만한 굵기로 열 몇 사람의 체중을 가볍게 지탱하는 이 로프는 암벽 등반가들에게는 없어서 못 사는 물건이었다. 가느다란 로프라는 의미는 같은 부피로 더 긴 길이의 로프를 가지고 다닐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비단 로프 뿐만 아니라 CNT천으로 만든 경호용 방탄 우산이라던지 결코 찧어지지 않는 트렘블린이라던지 여러 제품으로 나와 사람들의 구매욕구를 자극했다. 엄청난 성능의 미래적 신소재는 과학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엄청난 유혹이었다. 덕분에 강현도 주문한 CNT 천으로 만든 일자형 튜브를 금방 구매할 수 있었다. 천은 이미 나와 있기 때문에 단단히 재봉만 하면 되기 때문이었다. 물론 재봉에 사용한 실 역시 CNT섬유로 만들어졌다. 강현은 이 튜브안에 점탄성 물질을 집어 넣고 다시 끝을 단단히 재봉질해서 막았다. 그리고 이것의 완충 실험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하다가 자신이 굳이 그런 실험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완충 실험을 하기 위해서는 튜브의 정면을 무언가가 때리고 그 뒤의 압전 센서가 튜브에서 전달하는 압력을 측정하면 된다. 하지만 자동차 추돌 사고같이 강력한 충격을 목적으로 만든 완충 장치이니만큼 실험을 위한 장비 역시 그에 준하는 설비가 필요했다. 그런데 강현이 어느 세월에 그런 설비를 지을까? 또 짓는다고 해도 무척이나 클텐데 몇 번 쓰지도 않을 설비를 짓는다는 건 돈 낭비, 시간 낭비, 심력 낭비였다. “아우디에 보내자.” [네, 박사님.] 강현은 30여개의 완충 장치 샘플을 아우디에 보냈고 아우디의 안전 기술 연구원들은 이 1미터 남짓한 시커먼 튜브를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도대체 이것이 무엇인고? “제르망 씨. 강현 박사가 보낸 신형 완충 장치라고 합니다.” 수석 연구원인 제르망은 본사에서 나온 사람의 말에 더욱 고개를 갸웃했다. 그냥 응원용 풍선 막대기 안에 물컹한 액체를 채운 것 같은 것이 완충 장치라고? 완충 장치는 크게 차량 내부에서 에어백을 이용해 직접적으로 승객의 안전을 보호하는 방법과 차량 자체의 구조와 설계로 효과적으로 충격을 흡수해 승객에게 전달되는 충격을 줄이는 메커니즘을 이용하는 방법으로 나뉜다. 그런데 강현 박사가 보내온 이 물건은 아무리 봐도 에어백에는 사용할 수 있지만 차체의 충격 흡수에 사용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구조였다. “그런데 완충장치다?” 제르망은 일단 의문은 접고 실험해 보기로 했다. 차량 충돌 테스트는 단순히 차량을 가속시켜 충돌시키는 것이 다가 아니었다. 좌석만 따로 빼서 급격한 속도 변화에 따라 더미가 받는 충격을 시험하는 것도 있었다. 마치 항공모함에서 전투기를 발진시키는 캐터펄트와 같은 장비가 있는 것이다. 제르망과 연구원들은 강현이 만들었다는 완충장치를 설치하고 캐터펄트를 작동 시켰다. 캐터펄트에 설치된 벽이 빠른 속도로 설치완 완충장치를 강타했고 완충장치는 찢어지고 터져버렸다. 그리고는 바닥에는 진흙을 던진 듯한 갈색의 덩어리들이 흩어져 있었다. 실험은 실패한 것일까? 그렇다고 볼 수는 없다. 순간적인 시간에 일어나는 일들은 너무나 변화가 급격하기 때문에 사람의 시각으로는 판단하기 매우 어렵다. 하지만 충돌 순간부터 정지까지 완충장치 뒤에 설치된 압전 센서는 모든 것을 기록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이건... 강도가 너무 좋은데...” “압전 센서가 기록하는 최대 응력이 180MPa입니다.” “완전히 철이구나.” 제르망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더욱 대단한 것은 그런 응력을 충돌초기부터 거의 충돌이 끝날때까지 지속적으로 받는다는 사실이었고 그것은 철강으로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장점이었다. 거의 모든 금속도 마찬가지지만 한계 이상으로 변형되면 끊어져 버린다. 그리고 끊어져 버리는 순간 외부의 힘을 지탱할 능력도 사라진다. 그렇게 되면 남은 운동량은 운전자에게 전해져버린다. 즉, 차량 프레임의 설계에는 ‘어떻게 해야 부러지지 않고 적절하게 끝까지 구부러질 수 있는가?’를 위한 재질과 원가, 디자인의 싸움인 것이다. 하지만 이 강현의 완충 장치는 그 싸움에서 디자인의 편을 들어주는 획기적인 재질이었다. 일단 그냥 집어 넣어주기만 하면 지속적으로 철에 준하는 강도를 제공해 주기 때문이었다. “IAPP(Impact absorption Protein Plastic)이라.. 대단하군..” 제르망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는 강현이 보내준 완충장치를 이용해서 여러각도로 실험을 해보았다. 길쭉한 형태라서 그런지 굽힘 충격에 다소 약한 모습을 보여 주었지만 그럼에도 충돌 초기부터 후기까지 지속적으로 힘을 받는 능력은 여전했다. 제르망은 몇 번의 실험결과 CNT천과 강현의 IAPP로 만든 충격 완화 시스템은 당장 도입해도 될 정도로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를 강현에게 전달했다. “튜브를 CNT 섬유 재질로 한 것이 주효 했던 걸까? 생각보다 성능이 좋네.” 강현은 굽힘 충격 강도의 결과 데이터를 보고는 중얼거렸다. 그리고 아즈삭은 그 중얼거림을 받아 대답했다. [굽힘 강도는 결국 굽혀지는 표면이 얼마나 질기냐에 따라서 결정되니 말입니다.] 강철의 몇 배나 질긴 CNT섬유가 구부러지는 바깥쪽에서 찧어지지 않고 단단히 버텼다는 것이다. 이런 기계적인 특성은 금속에서도 마찬가지다. 금속을 구부리는 테스트를 할때 금속의 표면을 얼마나 반질반질하게 폴리싱하느냐가 실험 테스트의 결과에 큰 차이를 준다. 표면이 균질하지 않으면 약간 움푹 들어간 곳으로 크랙이 발생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 금속의 바깥에 CNT섬유를 붙여 굽힘 강도를 늘리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었고 금속과 강력한 장력의 섬유 복합재는 그리 생소한 개념은 아니었다. 실제로 차량 사이드의 임팩트바에 그런 복잡재를 사용한 제품도 있다. 강현은 자신의 개발한 기술이 이미 충분히 상용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하고는 제르망에게 메일을 보냈다. 이미 CNT 천은 공업적으로 생산이 되고 있었고 IAPP의 경우에는 원 재료인 거미줄 단백질 생산 시설(이미 인공 거미줄 섬유는 상용화 되어 팔리고 있었다.)과 기존의 화공업 시설을 이용하면 충분히 대량 생산이 가능했다. 그러니 이제 남은 것은 차량 자체의 디자인과 응용에 관한 것이고 그건 각 자동차 회사의 몫이었다. 강현은 이제 자신이 할 일은 이 기술을 무료로 발표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IAPP쪽은 전적으로 자신이 개발한 것이니 문제가 없었지만 아무래도 CNT의 경우 최주정 교수의 기술이 있기 때문에 무료로 공개하는 것은 어려웠다. 그래도 그런 경우 강현 자신이 받는 몫은 대폭 줄여서 가격을 낮추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막 발표를 하려고 계획을 잡는 동안 잭이 찾아왔다. “여어.” “......” 잭이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자 강현이 오른손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잭은 나름 자연스럽게 미소를 짓는다고 했지만 강현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막 신형 완충 기술을 발표할 준비를 하는데 이렇게 잭이 찾아왔다. 뭔가 또 상부의 명령을 받아 부탁을 하러 온 모양이다. 잭은 강현이 자신의 인사에도 대답하지 않고 턱만 쓰다듬자 속으로 곤란하다고 생각했다. 눈치도 빠르다. 잭은 방심할 수 없었다. 강현은 단순히 연구를 잘할 뿐인 Nerd가 아니었다. 정치적인 식견 역시 충분히 갖추고 있는 눈치 빠른 인물로 이미 CIA에서는 정평이 자자하다. 물론 그런 능력을 자신의 연구 생활을 위해서만 사용하고 있지만 말이다. “이번에 아우디에 물건을 보냈다며?” “어떻게 알았데? 아참. 아직 아즈락이 불법 정보 수집을 계속하고 있겠구나.” 강현이 저번에 잭에게 말했던 사항(아즈삭의 아즈락 협박 사건)은 결국에는 덮어두기로 했다. 괜히 들추어 분란을 만들면 골치 아프다. 강현의 경우에도 충분히 골치가 아플테지만 CIA가 마주해야 할 골치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여기 저기에 CIA라면 잡아먹으려 드는 인간들이 한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강현의 처세술은 무척이나 인상적인 것이었다. 결코 강력한 적을 만들지 않으니 말이다. 아니 그런 강력한 이들과 적이 되기에는 강현의 생활 양식은 무척이나 검소했다. 그냥 돈많은 서민? 상류층에 포함시키고 싶을 정도의 천재기는 했지만 초기 석유산업계 인사들을 완전히 작살낸 전모가 밝혀진 세계 석유 컨소시엄 이후에는 아예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건들지만 않으면 나름 조화를 꾀하며 살려는 온건한 인물이 강현이었던 것이다.(남한에서의 미친 짓 때문이기도 했다. 괜히 건드렸다 피보고 싶은 이는 없었다.) 72화 잭은 강현의 말에 쓴 웃음을 지었다. 아마 그 사실이 알려지면 CIA 국장은 봉변을 면치 못할 것이다. “설마 그 일 누군가에게 말하지는 않았겠지?.” “내가 왜? 그런데 왜 이제 왔어? 보낸 건 한 참 됐는데.” 그렇다. 강현이 완충 장치 샘플을 보낸 것은 이미 한 달 전. 그 동안 아우디의 설계자들은 강현에게 먼저 완충 장치 개발을 의뢰했다는 메리트로 시간을 받았다. 비록 강현의 기술을 독점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강현의 기술에 대한 정보를 미리 얻을 수 있었고 강현이 자신이 기술을 개발하는 것을 기밀로 했다. 즉, 아우디에게 시장을 선점할 기회를 주었기 때문에 아우디에서는 다양한 응용기술이 나오고 있었다. 강현이 개발한 완충 장치의 응용은 간단히 말해서 제봉 설계와 기술이었다. 차동차의 보닛 안과 후면후를 둘러싸면서 기존의 부품에 방해되지 않도록 완충 패널을 만들어 넣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단순 재봉질로 IAPP를 봉하는 것이 아니라 강한 압력에도 액체가 세지 않는 주입구를 달아서 일반 생산 라인 과정에 이 완충 패널을 삽입할 수 있도록 개량도 했다. 덕분에 디자인만 완벽하다면 라인만 가동하면 완제품이 나오는 상황인 것이다. 그러니 그 동안 강현의 신변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CIA에서 이제서야 찾아왔다는 것은 강현에게 의문사항이었다. “아즈삭 때문이지.” 잭은 한 숨을 내쉬었다. 지난 한 달 동안 아즈락은 하루에 수천 여건이 되는 결제안을 쏟아냈다. 수정된 아즈락의 행동 수칙에 의해서 모두가 사람의 판단이 필요한 사항이었고 도저히 막스 혼자 그 안들을 다 처리하지 못해서 사무 요원들이 모두 다 동원 되었다. 물론 평상시라면 무능한 정보부장이라는 말을 들었겠지만 그렇게 결제안이 쏟아진 적이 없었기 때문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 비상 사태라고 생각했고 정보부의 거의 모든 자원들이 동원되어 결제안들을 처리했다. 물론 그 사항 중에는 강현이 독일로 어떤 물품을 배송한 내용도 있었는데 그 내용이 재조명되기까지 한 달 여의 시간이 걸렸다. 즉, 강현의 행적이 정보의 홍수에 파묻힌 것이었다. 그렇게 사건이 재조명 되고 나니 비상사태라고 생각했던 일들과 비정상적으로 쏟아진 결제안들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나중에 이게 다 아즈삭이 벌린 일이라고 판단이 되니 얼마나 황당했는지..” 잭은 쓴웃음을 지었고 강현은 아즈삭에게 이유를 물었다. “아즈삭, 왜 그랬어?” [박사님의 발명은 군사적으로도 무척이나 가치가 있는 물품입니다. 신물질인 IAPP의 방탄 능력을 생각해 보았을 때 군사적인 효용성은 수퍼 솔져 프로젝트의 결과물보다 더욱 뛰어납니다. 때문에 반드시 박사님께 IAPP의 국가 보호 기술로 지정할 것을 부탁하실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그러나 박사님께서는 이 차량 완충 기술을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서 전 세계적으로 공유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당연히 저로서는 박사님의 의지를 지키기 위해서 아즈락을 막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자신의 창조주가 이 미국 정부가 신경전을 벌이기 시작한다면 창조주가 원활하게 연구 활동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한 아즈삭이었다. “대견해.” 그런 아즈삭의 대답에 강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감동했다. 이 세상에 남은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자신의 편이었다. 그 누가 있어 아즈삭보다 자신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러나 그런 아즈삭의 대답에 잭은 기가 막힐 뿐이었다. 물론 아즈삭의 말 중에 틀린 말은 없었다. 지금 있는 인공 거미줄 방탄복에 IAPP를 추가한다면 소구경 총알은 끄떡없는 방탄복이 완성된다. 세라믹 판넬처럼 피탄 후에 갈아줄 필요가 없어서 반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기에 예산 절약에 엄청난 도움이 되는 것이다. 때문에 CIA에서 이 기술을 비밀 지정하고 싶어서 안 달이 났고 펜타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아즈삭이 예측할 것처럼 정부측 인물이 강현에게 귀찮을 정도로 달라붙을 거라는 예측은 정확했다. 하지만 적어도 아즈락에게 대량의 정보를 끼얹기 전에 강현에게 그런 행동에 허락은 구해야 하지 않은가? 잭이 생각하기론 인공지능은 위험한 행동을 하기 전에는 사람의 허락을 구해야 했다. 때문에 강현의 지시없이 함부로 행동한 아즈삭의 행동은 잭에게 위기감을 주었다. 마치 SF 소설의 인공지능과 인간 사이의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었을 것 같았다. 잭은 강현에게 아즈삭의 행동이 가진 의미의 위험함을 전했다. “저렇게 마음대로 행동해도 돼?” “왜? 나를 보호해 주는데. 내가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오히려 부당하고 불법적인 일을 당하는 것을 막아주는 훌륭한 행동이었어.” 강현은 애시당초 인공지능과 인간의 갈등에 대해서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자신에게 인공지능이 위험한가 아니면 인간이 위험한가? 강현은 후자라고 생각했다. 더구나 아즈삭은 자신을 위해서 존재하는 인공지능이 아닌가? 잠재적 위험도를 따지면 자신의 능력을 탐내는 인류의 누군가가 압도적이었다. “.....” 강현의 태연한 대답에 잭은 침묵했다. 그는 강현의 속마음을 알아챘다. 그는 인간과 인공지능을 구분짓지 않고 있었다. 인간에 필적하는 자유로움과 지성을 가진 인간이 아닌 존재에 대한 혐오감이 없었다. 잭은 더 말하지 않았다. 만일 그런 얘기를 한다면 강현은 잭을 인종차별 주의자라고 놀려댈 것이 뻔했다. 인간이 필적하는 자유로움과 지성을 가졌지만 인간이 아닌 존재는 이미 역사적으로 존재 했었기 때문이다. 바로 노예, 나치의 홀로코스트, 일제 하의 2등, 3등 시민들이 바로 그것이었다. 잭이 침묵한 이유는 그 뿐만이 아니다. 강현이 말했던 것처럼 CIA가 했던 일은 강현에게 확실히 부당하고 불법적인 일이었다. 엄연히 강현이 누구에게 무언가를 보냈다는 것은 프라이버시의 영역. 그리고 그 무언가가 결코 마약같은 범죄 도구가 아닌 이상, 잘못은 불법적으로 자료를 수집한 아즈락과 그 일을 시킨 CIA에 있었다. “쯧쯧, 계속 그렇게 약점을 만들지 말라니까 그러네. 논리적인 사고로만 돌아가는 인공지능은 생각보다 섬세하다고. 그런식으로 질척하고 어둠컴컴한 일을 계속 시키면 언젠가는 파탄난다.” 인공 지능도 지능이다.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기에 CIA처럼 음지에서 국익을 위해 일해야 하는 모순된 일을 하는 상황에 계속 있는 것이 어떤 위험을 야기할지 모른다는 강현의 충고에 잭은 (질척하고 어둠컴컴한 일이라는 표현에 속으로 쓴웃음을 지으면서)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 알았어.” 부탁하러 왔다가 충고를 들었다. 그러나 잭은 포기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그럼 그 IAPP,” “안돼.” 역시나 강현은 잭이 할 말이 뭔지 알고 바로 거절해 버렸다. “저번에 CNC같은 경우에는 비싸고 사람들에게 별 효용이 없는 거라서 그냥 비밀 지정에 동의했지만 이번은 안돼.” “저기 돈 많이 줄게. 아니 면책 특권도 줄게.” “돈은 이미 썩어 넘칠 정도로 많고 범죄도 저지를 생각이 없어서 면책 특권도 필요 없어.” 글쎄.. 바퀴벌레 스파이 로봇이 들키면 어떨까? 하지만 바퀴벌레 로봇이 들키는 순간 면책 특권은 무용지물이다. 비밀이 많으신 높으신 분들께서 결코 강현을 가만 놔 두지 않을 것이니까.. 잭은 조건이 무용지물이 되어버리자 이번에는 애국심에 호소했다. “부디 미국의 국익을 위해서라도..” “기술 팔면 자동차가 안전해지고 값도 싸지고 사람들이 많이 타고 경제가 좋아져.” 의도가 좌절당하자 이번에는 논리적으로 강현을 설득하려 했다. “자동차의 안전 규제를 강화하고 법률을 강화하면 돼. 그리고 그런 기술이 있다고 해도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은 생겨. 그러니까,” 그러나 잭은 말을 다하지 못했다. 강현의 표정이 돌같이 굳었기 때문이다. 잔뜩 굳은 강현이 딱딱하게 입을 열었다. “권력 있다고 사람 목숨 가지고 장난 치는 거 아냐.” “.......” “싫은 건 싫은 거니까 그냥 가라.” 잭은 결국 발걸음을 돌리는 수 밖에 없었다. 돌아가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실수 했다는 생각이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다. ‘잭. 이 병신같은 새끼야.’ 잭은 스스로의 실수를 자책할 수 밖에 없었다. 제시의 일도 있었고 강현의 부모가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서도 이미 CIA에서는 확실한 추론과 근거까지 마련했다. 자료가 워낙 없어서 정황상 증거에 불과했지만 한국에서 일어난 일련의 소란들이 강현의 복수였다고 잠정 결론을 내리기에는 충분했다. 즉, 교통사고의 안전에 관해서는 강현이 양보를 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인지해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국가에서 교통안전에 관한 기술을 비밀로 지정하려고 드는 것은 강현의 역린을 건드리는 것으로 느껴질 수도 있었다. 잭은 직감했다. 임무는 실패했고 소중한 것을 잃었다. 그것은 무엇인가? “믿을 사람 하나 없다. 그치?” 강현의 서글픈 미소에 아즈삭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인간은 인간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해할 수 있다고 해도 서로의 입장 차이가 존재하며 양보할 수 없는 것이 존재하는 이상 충돌은 피할 수 없습니다.] “그래. 맞는 말이야. 니가 나보다 낫다.” 잭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었다. 그는 정부의 요원이었으며 국익을 위해서 음지에서 활동하는 CIA에 속해 있었다. 자신과 친분을 쌓은 것도 완전히 순수한 인간적인 이유는 아니었으며 임무에 관련된 일일 가능성이 더 높았다. 하지만 그래도 강현은 한 줄기 실낱같은 희망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그 동안 쌓은 우정으로 인해 잭이 자신의 편이 되어 주기를 바랬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에 잭이 가진 사고 방식은 강현과 너무 이질적이었다. 두 사람 사이의 친분이 순전히 강현을 이용하기 위해서라고 믿기는 어려웠다. 잭의 태도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줄곧 우호적이었다. 그건 강현도 충분이 인지하고 있었다. 적어도 잭은 자신의 입장에서 강현의 편의를 봐주려고 노렸다. 하지만 결국 입장의 차이라는 것으로 인해 오늘 이렇게 충돌을 빚고 말았다. 그렇다. 아즈삭이 말한데로 사람이 타인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해도 입장과 가치관이라는 난관이 남아 있었고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선이라는 것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인간이 마주하는 것은 회피냐 충돌이냐의 양갈래 길이었다. 그리고 충돌을 선택하는 순간 승자와 패자가 가려질 때까지 다툼을 끝나지 않는다. 강현은 서글펐다. 아즈삭이 말한 내용은 이미 예전에 깨달은 것이었다. 인간은 결국 욕망의 저울에 의해서 행동한다. 그리고 인간의 욕망과 무게는 사람마다 제각기였다. 잭이 국익을 추구하는 마음이 무거웠다면 강현은 교통 사고에 얽힌 기억의 무게를 해소 해보고자 하는 마음이 강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잭이 싫어진 것은 아니다. 잭의 자신에 대한 호의의 진실했고 두 사람이 같이 나누었던 우정의 시간 역시 헛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결국 사람은 차이가 있다는 것, 함께 걸어갈 수 없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강현은 눈을 감으면서 약지에 끼인 두 반지를 엄지로 문질렀다. 오늘따라 유난히 제시가 그리웠다. = = = = = 강현의 신물질 IAPP가 공개 되었다. 그리고 그 물질과 CNT 천으로 만들어진 차량용 완충 시스템 역시 공개 되었다. “우와! 대단하군!” “라이센스 비용은 없다지?” “그래도 재료 구입에는 돈을 써야 하니까.” 73화 자동차 업계 사람들에게 강현의 호의는 매우 넓게 회자되었다. 그건 강현이 소년 시절 개발한 무궁화 엔진의 라이센스를 무료로 배포했을 때보다 더 여파가 컸다. 더욱이 신물질 IAPP의 합성에 대한 라이센스 역시 공짜로 해서 차량에 완충 시스템을 적용하는 비용이 대폭 줄었다. 가격이 낮아지고, 이미 있는 공업 시설을 이용해 IAPP와 CNT천을 생산할 수 있는 만큼, 기술을 이용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었기에 전 세계 자동차 기업들은 서둘러 이 완충 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해서 원료 수급에 나섰다. 이로 인한 경제적인 효과는 매우 무궁구진했다. 일단 거미줄 단백질을 사용하는 양이 섬유로 뽑는 것보다는 많이 들었기 때문에 생산 시설에 설비 투자가 늘었고 이는 CNT천 제조 부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투자가 느니 돈이 돌고 돈이 도니 사람들의 주머니가 풍족해졌다. 이러한 시설이 있는 국가는 다 선진국이라 부의 집중이 일어날 것 같았지만 재봉 기술이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에 임금이 싼 국가 역시 대량의 일거리를 받아 달러를 벌어 들였다. 일부에서는 거미줄 단백질과 CNT 천의 생산량을 늘려 강현의 부를 늘리려는 의도라면서 비판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IAPP 제조 라이센스를 공짜로 했다는 것 만으로 커버가 가능했다. 강현이 정말로 돈을 벌려고 했다면 결코 IAPP를 공짜로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편 각 국가에서는 이 IAPP의 군사적 효용성을 금방 깨달았다. 플라스틱처럼 가볍고 내 충격성이 뛰어난 물질은 방탄복으로서 제격이었고 기존의 인공 거미줄 방탄복을 도태시키기에는 충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에는 충격이 적었는데 거미줄 단백질 원료는 IAPP에 사용되기 시작했고 거미줄 섬유는 고탄성에 늘어나는 능력이 CNT 섬유를 뛰어넘기 때문에 CNT 섬유가 대체할 수 없는 분야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렇게 차량 안전을 대폭 증가시기는 기술이 등장하자 유럽의 국가부터 시작해 여러 국가에서는 차량 안전 기준을 대폭 증가시켜 버리거나 증가시킬 법안을 상정시켰다. 강현의 IAPP 완충 기술을 반드시 집어넣도록 법률을 개정한 것이다. 물론 겉으로는 점탄성 물질 주머니를 이용한 완충 시스템 도입에 대한 법률이었지만 현재 강현이 만든 것에 준하는 완충 시스템이 없었기 때문에 강현을 위한 법률이나 마찬가지였다.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고 거기에 이런 독점 구조에 대해 우려하는 사람들이 반대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지만 몇 가지 요소들이 결합해 그런 법안의 도입이 추진 되었다. 일단 강현이 이 돈 되는 기술을 무료로 개방했다. 거기에 심지어 핵심 물질인 IAPP의 라이센스도 무료화 했으며 CNT 상용하 기술의 라이센스 비용도 자신의 몫을 받지 않음으로써 낮추어 버렸다. 그런 강현의 태도를 고려하면 독점의 폐해를 우려할 필요는 없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바보 같아 보이는 이 일련의 행위들은 언론의 관심을 샀고 그의 연인이 과거에 교통 사고로 숨졌다는 사실을 상기한 언론에서는 강현의 결정과 이 사건을 연관 지었다. [천재! 연인을 빼앗은 교통 사고에 복수하다!] 자극적인 문구였고 또한 강현이 말을 하지도 않았지만 틀리지 않는 내용이었다. 언론은 특종을 잡았다는 듯 연일 강현이 기술을 공개한 배경을 분석하기 시작했는데 천재의 가슴 아프고 애달픈 사랑 이야기는 대중들의 관심을 확실히 끌 수 있는 블루칩이었던 것이다. 언론을 통해 그런 분석이 나오자 사람들은 숭고한 대의 이전, 인간 개인의 가슴 아픈 과거에 공감했다. 세상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는 명분보다 사랑한 애인을 지키지 못한 한 남자의 집념이라는 이유가 오히려 더 설득력 있었다. 그렇게 동정적이면서도 숭고하다는 여론에 탑승하기 위해 정치가들은 강현의 기술을 자동차 안전 기준에 적용하는 정치적인 결정을 내렸다. 시민의 안전과 표가 직결되는 사항이니 만큼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또한 군사적인 이유도 있었다. 강현이 IAPP의 군사적 사용에 대해서는 비용을 물지도 모모른다는 압박감이 있었다. 미국이 강현의 CNC 장갑만으로 모빌 아머의 성능이 엄청나게 비약했는데 일반 군사들 마저 총탄을 맞고 끄떡없는 장갑을 입는다면 어떻게 될까? 팍스 아메리카를 부정할 수는 없었지만 폭주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견제적 군사력, 또한 적어도 만일의 사태에 국가를 보호할 만일의 사태에 대비 IAPP로 이용한 방탄복은 반드시 필요했고 때문에 IAPP를 자국에서 무리없이 생산해 방탄복에까지 적용할 수 있도록 알아서 엎드린 것이다. 사실 잭 역시 두번째 안건으로 제시하려고 했던 것이 IAPP의 군사적 사용에 대해서는 비용을 물리는 것이었다. 그것도 아주 비싸게. 비난이 없지는 않겠지만 대신에 자동차 안전에 사용되는 것이 공짜라는 명분으로 IAPP의 군사적 사용에 대해 로열티를 물게 하여 얼마든지 미국의 국익에 부합되게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잭이 강현의 역린을 건드는 실수를 한 것으로 말도 꺼내지 못했다. 만일 그가 포기하지 않다고 이런 제안을 했다면 강현은 아마 사람이 안 죽으면 다행이지 않냐고 대꾸해 버렸을 것이다. 물론 역린을 건들기 않기전에 제안을 했다면 수긍했을 것이 분명했다. 사실 강현은 IAPP의 군사적 사용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원하는 목적인 자동차 완충 기술과 그 적용을 위한 비용 절감, 사회의 수용 정도로도 충분했다. 강현은 의외로 욕심이 없는 남자였다. 아무튼 각국의 자동차 안전에 관한 규제가 강화되자 비상이 걸린 기업이 있으니 세계적으로 자동차를 팔아먹으며 순익율 1위를 기록한 미래 자동차였다. 다행이 국회에 로비를 통해 자동차 안전 규제에 대한 법률은 완화 시켰지만 제현 그룹와 우디의 합자 회사인 아우디 JH에서 커다란 똥을 싸질러 놨던 것이다. [세계적인 안전 기술로 만든 JH 시리즈, 제 2탄!] 덕분에 쉬쉬했던 강현의 점탄성 완충 장치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다.(자동차 매니아들은 이미 알고 있었고 왜 한국에는 그런 안전 기준 법안을 만들지 않냐고 인터넷 공간에서 썰을 풀었다.) 그리고는 자국의 자동차 안전 기준에 대한 관심 역시 생겼다. ‘왜 국가적인 자동차 생산 기업인 미래 그룹에서는 내수용 차에는 강현의 IAPP완충 장치를 달지 않고 수출용에만 다는가?’ 아우디 JH에서 줄기차게 IAPP 완충 시스템에 대해서 홍보를 했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은 식지 않았고 몇몇 자동차 매니아들이 미래 자동차에 왜 IAPP 시스템을 달지 않냐고 질문하자 미래 자동차에서는 이렇게 답했다. [국내 안전 기준에 따라 미래 자동차는 IAPP 시스템을 달지 않아도 충분한 안정성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그럼 유럽의 국가들은 빙시 호구라서 그런 시스템을 달라고 안전기준을 마련한 건가? 미래 자동차의 답변을 어떻게 낚아 챘는지 이번에는 아우디 JH에서 다름과 같이 홍보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의 자동차 안전 기준을 후~울쩍 뛰어넘는 뛰어난 안전 성능의 JH 시리즈!] 미래 자동차와 국회를 동시에 까는 패기를 보이는 아우디 JH였다. 이런 행동에 높으신 분들은 심기가 불편했다. 그들이 심기가 불편하면 서민들은 죽어야 하고 기업은 각종 세무조사다 뭐다 괴롭힘을 당하기 마련이지만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아우디 JH가 국제적으로 유명한 기업이 만든 회사라서가 아니다. 개도 자기네 집 앞마당에서는 절반은 먹고 들어간다고 고작 일개 외국 기업에 쫄 국회의원분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집 앞마당의 절반은 제현 그룹이 떡하니 차지하고 있었고 그 뒤에는 강현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수방사에서 구조되었던 국회의원들은 쏟아지는 총탄을 뚫고서 자신들을 구조하고 끝내 쿠데타를 뒤엎은 K 시리즈의 위용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즉, 강현이 너무나 두려웠던 것이다. 국회의원들이 숨죽이자 미래 자동차에서는 답답해졌다. 하지만 결국에는 한 발 물러서서 자신들로 IAPP 시스템을 도입하는 수 밖에 없었다. 덕분에 원가 절감을 위한 노력은 한 발 물러서는 수 밖에 없었다. 강현의 독자적인 IAPP 시스템은 기존의 강판을 싸구려로 바꾸는 식의 원가절감은 불가능했다. CNT 천의 고장력과 IAPP의 탄성이 완벽히 조화된 결과가 IAPP 완충 시스템이었던 것이다. IAPP 완충 시스템 도입을 위한 서류에 사인을 하는 전해진 회장의 얼굴을 잔뜩 찡그려졋다. 원치 않는 결제였고 대한민국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자로서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미 기득권층에게 강현이라는 이름은 공포였다. 쿠데타 세력에 대한 철저한 솎아내기를 요구한 강현의 행동은 적절한 명분으로 그들을 보호하려고 하는 이들에게는 공포감을 자아냈다. 실패에 대한 처절한 응징과 대가는 그들이 일찍히 경험해 보지 못했던 것이었고 몰락한 이들에게 자신이 투영되는 순간 강현과는 상종하고 싶지 않았다. 상종하고 싶지 않고 잊고 싶었지만 제현 그룹이 떡하니 버티고 있는 상황이라 끊임없이 그 날의 기억이, 그의 영향력이 상기 되었다. 이미 대한민국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이가 강현이었다. 그리고 그 강현이 만든 제현 그룹에 의해서 남한의 변화는 차츰, 점진적으로, 기득권이 원하던 원하지 않던 계속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와중에 완충 시스템의 개발을 끝내고 다음 연구 주제를 위한 탐색 겸 휴식을 취하던 강현은 어느 날 편지를 하나 받았다. 과학자를 지망하는 어느 어린 학생의 팬레터였는데 황무지를 녹색으로 바꾸고 북극의 얼음을 다시 얼리는 등 환경 보호를 위한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꿈이라는 것이다. 그런 소년의 마음이 왠지 신선했던 강현은 답장을 보냈다. 그런 기술을 개발하고 싶다면 지금부터 부지런히 자기 개발을 하고 역량을 키우라는 것이다. 그런 역량이 없다면 하고 싶은 일은 하지 못한다면서 자신이 했던 폰 노이만 학습법(전화 번호부를 외우고 총합 계산하기)을 추천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물론 자신이 여타 다른 이들과 다르다는 것은 알지만 꿈이 있다면 그 꿈을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비록 그 노력에 대한 조언이 잔인할지라도 역량이 안된다는 현실을 일찍 깨닫게 만들어 준다면 소년의 소중한 시간을 아낄 수 있는 배려 또한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열렬하게 자신의 팬임을 밝히고 자신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낸 편지에 대한 강현의 배려인 것이다. 그렇게 과학도를 지망하는 소년의 앞에 커다란 똥덩이를 던진 강현이 편지를 서랍에 넣으며 중얼거렸다. “에코 기술이라..” 강현은 중얼거렸다. 사실 근대에서부터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과학 기술의 상용화를 위해서 주요한 것이 있었다. 바로 채산성이다. 돈이 안되는 기술은 결국에는 사장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구 온난화와 이산화 탄소 배출 규제를 위한 교토 의정서 등 환경 보존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기술 개발에 새롭게 고려해야 하는 요소가 생겼으니 바로 친환경이다. 인체에 해가 없어야 하며 환경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거나 그런 영향을 최소화하는 것을 골자로 친환경 플라스틱 같은 재료에서부터 에너지 절감 기술, 이산화 탄소 배출 저감 기술 같은 생산 기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폭이 넓었다. 그러고 보면 강현은 지금까지 환경에 대한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기술을 개발해 왔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물리적, 화학적, 기술적, 예산적 제약을 고려해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도 골치가 아픈 일인데 거기에 환경적이라는 요소가 하나 더 들어가다다니.. 74화 게다가 그런 환경적 제약은 아직 환경 보호를 위한 필요성을 절박하게 느끼지 않는 시대에 나온 것이라 강현의 공감을 이끌어 내기 어려웠다. “하지만 환경 문제가 눈앞에 닥쳐오면 이미 늦었지.” 환경 문제는 단순히 집 앞 마당에 누군가 오물을 투척하는 수준이 아니다. 그것은 거대하고 점진적인 변화였으며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 수준에 도달했을 때는 이미 대처하기는 늦었다. 인류는 오염된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지구를 떠나던가 아니면 지하로 도망쳐야 할 것이다. 강현은 어린 과학도 지망생의 팬레터를 읽고는 에코 기술에 관심이 갔지만 마땅한 영감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그가 생각하는 환경 문제는 결국에는 인간이 문제였다. 자본주의 사회 구조의 대량 생산, 대량 소비의 경제 구조가 존재하는 한 인간은 끊임없이 자원을 갉아먹고 환경을 파괴할 것이다. 강현이 생각하는 가장 확실한 환경보호 방법은 인류 멸종이었다. “하지만 그건 의미가 없지.” 인류가 멸종하고 나서는 기술이고 뭐고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런 발상은 어차피 투표해 봤자 바뀌지 않으니 집에서 발이나 닦고 쉬라는 논리였다. 어차피 죽을 테니 살 필요가 없다는 논리였다. 목적성을 고려해 보았을 때 말이 안되는 논리였다. 설사 인류를 멸종시킨다고 치자. 그러나 논리적 사고로 문명을 구축하지 못하는 동물에게 과학이 무슨 소용이 있다는 말인가? 과학은 오직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욕망할 줄 아는 인간만에게 의미있는 것이었다. 아무튼 쓸데없는 생각을 머리에서 강현은 에코 기술에 대해서 조사해 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닥 신통한 기술을 발견하기는 어려웠다. 어떤 기술도 그 기술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자원과 자본이 든다. 예를 들어 이산화탄소 배출에 관련된 환경 기술 중에 수소를 연료로 사용하는 것을 연구하는 기술이 있다. 그러나 친환경적으로 수소를 생산하는 방법이 개발되지 않는 이상 수소를 이용한 에너지 시스템은 오히려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더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며 더 많이 지구의 온난화를 가속한다. 뿐만 아니라, 수소를 확실하게 가둘 수 있는 용기가 존재하지 않았다. 수소는 원자 중 가장 작은 물질로 금속내부로 확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즉, 연료가 새어 언제나 폭발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수소 원자는 금속 내부로 확산하다가 금속이 가진 작은 결함에 집결되어 수소 가스가 되어버린다. 이렇게 수소 가스가 되어버리면 그 결함에서부터 외부로 압력을 가하게 되어 금속의 강도를 떨어뜨리게 된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수소 취성이라는 현상이다. 때문에 수소를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방법으로 금속 결정 구조의 내부에 수소를 금속화합물의 형태로 잡아두는 수소저장합금을 연구 개발 중이지만 그 생산 비용와 안전성을 고려하면 탄화수소 계열의 연료만큼 안정성, 편리성, 생산성에서 그 효용성을 따라가지 못한다. 그렇다면 왜 수소를 연료로 사용하는 것을 연구하는 것일까? 순수한 학문적인 목적도 있겠지만 그건 그 만큼 에코 기술의 방향성이 정립되어 있지 않고 중구난방이라는 의미였다. 즉, 어느 방향성이 대중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각광받는 어떤 주류가 되어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강현은 현재 연구되고 있는 에코 기술을 전반적으로 훑었지만 딱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환경이란 결국 인간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 것. 때문에 자연 보호를 위한 사회의 전반적인 노력 없이 그저 기술만을 이용한 환경보호는 무리수가 많았다. 그러나 반면에 기술만 확보된다면 이산화탄소 배출이 그리 염려되지 않는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기술도 있었다. “흐음. 이산화탄소 해수 고정 기술이라..” 지구 온난화의 주범이라고 일컬어지는 이산화 탄소. 사실 온실 효과가 이산화 탄소보다 더욱 뛰어난 메탄같은 다른 온실 가스가 존재한다. 하지만 이산화탄소의 경우 그 양이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온실 효과의 제1기여 요소였다. 때문에 교토 의정서를 시작해 각국에서 이산화 탄소 배출을 규제하기 위한 여러 법률을 만들기도 했던 것이다. 그리고 또한 효과적인 이산화탄소 저감을 위해 기술 개발을 장려하기도 했는데 그 일환으로 나온 것이 이산화탄소를 해수에 고정하는 것이다. 고정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이산화탄소를 해수에 녹이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여러 부수적인 효과를 누릴 수도 있는데 바로 어족 자원의 양성이었다. 이산화탄소가 풍부해지면 이 이산화탄소를 이용해 광합성을 하는 식물성 플랑크톤의 개체수가 많아지고 다시 이 식물성 플랑크톤을 먹는 동물성 플랑크론의 수가 많아진다. 먹이사슬과 생태계 피라미드의 하부층이 많아지면서 전체적인 생태계의 규모가 커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일단 해수라는 것이 정지해 있는 것이 아니다. 난류와 한류, 민물과 썰물 등 대규모의 해수 흐름이 존재하며 지형과 수심에 따라 복잡한 움직임을 보인다. 이런 바닷물의 구조에서 안정적으로 이산화탄소를 저장할 수 있을 정도로 온전히 정지해 있는 해수층을 찾기는 매우 어렵다. 그뿐만 아니다. 설사 그런 해수층을 찾는다고 해도 그런 해수층은 적어도 수심 백미터 이하 수준에 존재하기 때문에 이산화탄소를 거기에 집어넣는 것 역시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산화탄소를 집어넣기 위해 소비되는 에너지량이 이산화탄소를 집어넣는 양보다 더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면 웃기는 일이 아니겠는가? “흐음.. 집어넣을 수 없을까?” 가장 단순하게 이산화탄소를 집어넣는 방법은 이산화탄소가 고정될 수 있는 압력과 온도를 가진 해수층을 찾아 파이프를 그 깊이까지 박아 넣고 계속 펌프질을 하는 것이다. [펌프의 규모가 매우 커지지 않는 이상 오히려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집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펌프가 작동하는 동안 그 본연의 일을 하는데 드는 에너지 이외에 손실되는 에너지가 존재한다. 되도록 많이 이산화탄소를 집어넣기 위해서는 펌프가 작은 것 보다는 큰 것이 좋은데 그로 발생하는 내구성 문제라든지, 이산화탄소가 바닷물에 녹는 속도와 펌프질하는 이산화탄소의 양 차이라든지 여러가지 문제가 수반되었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역시나 집어넣는 이산화탄소 양과 집어넣는데 드는 이산화탄소 양의 수지 관계였다. “새로운 방법이 필요해.” 강현은 중얼거렸다. 단순히 펌프를 이용해 이산화탄소를 집어넣는 것은 도저히 계산이 나오지 않았다. 또한 그 방법은 강현의 과학적인 심미안을 심하게 거슬렸다. 스마트하고 단순한 방법. 그것이 강현이 추구하는 기술 개발의 스타일이었다. “흐음... 자발적으로 화학적으로 흡착이 조절되는 방법은 어떨까?” 이산화탄소는 물에 생각보다 잘 녹는다. 비의 경우를 들어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데 대기에 쏟아지는 빗물의 산성도(질소 산화물같은 다른 산성 요소를 제외할 때)는 약 5.7pH 정도다. 중성의 물이 7pH이니 빗물은 자연적인 산성비가 아닌가라고 말할 수가 있겠지만 사실 오렌지 주스의 산성도가 약 3pH 정도이니 그리 걱정할 이유는 없다. 사람들이 섭취하는 비타만 C도, 식초의 아세트산도 빗물보다 훨씬 산성이고 인간은 그 정도 산성에 충분히 견딜 수 있도록 진화되어왔다. 또한 이미 그런 수준의 비가 생물체가 존재하는 지구 상에 수억만년이나 내려왔다. 아무튼 이산화탄소는 탄산의 형태로 물에 잘 녹는다. 뿐만 아니라 탄산 음료 같이 일정 압력 이상에서 과포화된 상태로 존재할 수도 있다. 즉, 정지 해수층까지 이산화탄소를 가져가기만 한다면 정지 해수층이 자발적으로 이산화 탄소를 흡수 축적할 수 있었다. 물론 그 가져가는 방법이 문제지만 말이다. 일단 어항의 산소 주입기처럼 기체를 밀어넣는 방식은 안 된다. 에너지가 많이 들어 오히려 이산화탄소가 더 많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 강현은 기체가 액체에 녹는 자발적인 반응들을 조사했지만 거의 대부분이 산과 염기의 반응성을 이용하는 방법들이라 지속적으로 이산화탄소를 녹이는 방법에 이용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사람의 혈액을 떠올렸다. 헤모글로빈이 생각난 것이다. 철 이온을 가지고 있는 헤모글로빈은 산소가 많은 곳에서는 산소를 흡착하고 산소가 없는 곳에서는 산소를 내어 놓는다. 즉, 기체의 형태가 아닌 방법으로 기체를 액체로 이동시킨 것이다. 산소가 된다면 이산화탄소도 가능할 수 있지 않을까? 강현은 연구를 시작했다. 산소가 물에 녹는 것보다 이산화탄소가 물에 녹는 정도가 더 컸다. 물에 녹기 위해서는 극성이나 이온화가 되어야 하는데 이산화탄소는 물 분자와 반응해 탄산이라는 형태로 음전하를 띈 입자가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음전하가 된 탄산은 강력한 극성 물질인 물분자에 둘러쌓여 물 내부에 수용된다. 용해라는 현상이다. 그래서 강현은 이 탄산의 형태로 어떤 재질의 표면에 탄산을 붙여 정지 해수층까지 전달할 계획을 한 것이다. 그 방법이 컨베이어 밸트 형식이라면 어떨까? 그리고 모터나 전기를 사용할 필요가 없도록 바람개비나 조력발전처럼 파도의 상하운동을 회전 운동으로 바꾸는 기계장치를 달아 알아서 계속 돌아가게 한다면? 정지 해수층에 이산화탄소를 녹이기 위해 전혀 이산화탄소가 생성되지 않는 시스템이 완성되는 것이다. 강현은 매우 의욕적으로 연구에 매달렸다. 적절한 방향성이 생겼으니 이제는 방법을 찾으면 된다. 즉, 이제부터 온갖 과학 기술들과 아이디어를 동원한 퍼즐 맞추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 지적 유희의 짜릿함은 맛보지 못한 이들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강현은 일단 헤모글로빈의 구조를 그대로 이용해볼 생각을 했다. 철 이온을 가진 헤모글로빈은 그 철 이온을 통해 산소의 가역적인 흡착 반응이 가능했다. 하지만 강현은 똑같이 철 이온을 사용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헤모글로빈의 철이온은 2가 철 이온이고 철 이온은 3가까지 산화가 가능하다. 전자를 2개를 잃는 산화반응은 물론 전자를 3개까지 잃는 반응과 자철석처럼 2.6개를 잃는 반응 역시 가능하기 때문에 물에 녹지 않는 산소와 반응해 혈액속으로 산소를 운반할 수 있었다. 이렇게 1족, 2족 원소와 다르게 산화 정도가 다양한 것은 전이 금속의 특성으로 강현의 계획에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왜냐면 이런 전이 금속 이온에 대한 흡착을 이용한다면 탄산 대신 반응성이 큰 산소가 붙어버릴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탄산은 물에 잘 녹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전이 금속까지 필요하지는 않았다. 탄산의 음이온을 잡아줄 정도의 양이온만 있다면 충분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양이온을 고정하는 것 역시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예상되었다. 신체의 뼈, 뼈를 구성하는 탄산칼슘을 운반하고 뼈를 만들어내는 뼈세포, 그리고 그런 활동에 작용하는 단백질을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산화탄소를 고정할 양이온은 칼슘 이온이 선택되었고 철처럼 다양한 산화가수를 가지지 않고 2가 산화가수만을 가진 칼슘 이온은 2가 철 이온처럼 산소에 대한 반응성이 없어 매우 적절한 선택이었다. ============================ 작품 후기 ============================ 스토리 전개가 안되네요.. 또다시 스토리 전개에 들어가려고 하니 내공이 부족한 느낌입니다. 75화 물론 칼슘을 고정할 단백질을 사용환경과 목적에 따라 적절하게 변조하고 공업적으로 가공하는 문제가 남아있지만 그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공학이라는 학문의 존재 이유가 아닌가? 강현은 지금까지 축적해 왔던 기술을 응용해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역시나 기술이라는 것은 축적을 통해 커다란 시너지 효과를 내었다. 강현이 지금까지 개발해왔던 단백질 관련 기술들, 유전자 구축 기술과 HJ 세포를 이용한 단백질 생산 기술, 단백질 플라스틱 합성 기술 등이 시간과 노력을 줄이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리하여 칼슘 이온을 확실하게 붙잡은 단백질 플라스틱이 완성되었다. 열가소성 수지라고 할 수 있는 이 단백질 플라스틱은 아즈삭의 시뮬레이션 대로라면 해수에서 약 10년간은 그 기능을 보장할 수 있었다. 또한 사출 방법에 따라 융털같은 것이 잔뜩 난 표면적이 넓은 패널로 만들 수도 있었고 아니면 섬유처럼 뽑아 다른 섬유와 혼방해 컨베이어 밸트로 만들 수도 있었다. 강현의 이번 발표는 그다지 돈이 되는 기술은 아니지만 환경론자들과 환경 단체의 환경 보호 운동에 골머리를 앓던 정부에게는 무척이나 관심이 가는 물건이었다. 일단 설치만 하면 해풍과 파도에 의해서 스스로 알아서 반영구적으로 작동되기 때문이었다. 특히 이산화탄소 배출에 관련된 연구를 하는 학자들에게 이 기술은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대기의 이산화탄소를 바다물에 녹이는 방법에 대한 발상은 이미 있었고 이미 다양한 방법으로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다. 아무리 이산화탄소가 물에 잘 녹는다지만 해수면에서부터 정지 해수층까지 이산화 탄소가 확산되어 전달된 가능성은 매우 희박했다. 때문에 인위적으로 대류를 일으키는 방법부터 인공적으로 이산화탄소를 밀어넣는 방법까지 여러 방법이 사용되었지만 기술, 자본, 에너지 수급의 한계에 부딪히기만 했다. 그러나 강현은 단지 단백질 플라스틱만을 이용해 그 모든 난관을 넘은 것이다. [강현 박사의 발명은 바다에 혈관을 만든 것이나 다름없다.] 자동적으로, 그리고 에너지 소비 없이 바다 깊은 곳까지 이산화탄소를 전달하는 체계는 산소를 운반하는 적혈구와 닮았고 무척이나 인상 깊었다. 그리고 미국해양대기청에서는 바로 예산을 타내 강현의 결과물을 실제로 구현해 보기로 했다. 방법은 다양했는데 석유 시추공 같이 해저면의 땅에 고정시키던지 아니면 부표처럼 파도에 넘실거리게 만들 것인지 선택은 지형과 예산에 따라 다양했다. 그렇게 미국 서부 태평양 연안의 한 지역에 발견된 정지 해수층 위에 이 이산화탄소 풍차 백 대가 설치 되었다. 각각의 크기는 네덜란드의 풍차 정도였지만 수면 아래 이산화탄소를 운반할 단백질 플라스틱 재질의 컨베이어 벨트의 길이는 충분할 정도로 길었다. 거기에 표면적을 넓게 할 수 있도록 혼방한 섬유를 카펫처럼 만든 컨베이어 벨트를 이용했다. 이 100대의 이산화탄소 풍차는 부표처럼 긴 밧줄을 이용해 그 위치에 고정되었다. 물론 그 밧줄은 CNT 섬유를 이용해 끊어질 일이 거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실험을 위해서 이산화탄소 농도 센서가 수심에 따라 설치되어 있었고 데이터를 주기적으로 보내게 되어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미국해양대기청에서는 매년 이산화탄소 풍차가 설치된 지역 근방의 어족 자원들을 확인해 생태계에 대한 영향을 확인할 계획도 있었다. 이산화탄소가 바다 깊은 곳까지 전달되었을 때 플랑크톤의 광합성, 번식, 산소 농도 증가 등 어족 자원의 번성이란 긍정적인 기대가 있었다. 바다의 넘치는 생산성을 고려해 보았을 때 이산화탄소 풍차가 효과적으로 작동을 한다면 그 성과는 적어도 3~4년 안에 확인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예견했다. 강현은 바다에 이산화탄소를 고정시키는 기술을 만들었지만 저번에 완성한 IAPP처럼 만족스럽지는 못했다. 왜냐면 가시적인 성과가 금방 드러나는 기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구 환경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확인하려면 시간과 돈이 들었다. 하지만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먼 바다에 설치된 이산화탄소 풍차의 성과가 나타나기 전에는 돈이 투자되는 일을 없었다. “취향에 맞지는 않구나.” 개발 과정은 물론 즐거웠다. 하지만 그 결과의 확인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빨리빨리라는 특성의 한국 핏줄 때문일까? “흐음.. 녹지화 계획은 폐기하고 딴거나 해보기로 하자.” 특히 녹지화 기술의 경우는 모든 것의 종합적인 설계가 필요했다. 기후, 식생, 토양, 녹지화에 필요한 식물 등 강현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단지 지구상에 존재하는 식물 품종에 대한 대량의 연구 조사 데이터 베이스와 거기서 보물찾기를 할 연구원들, 그리고 돈을 투자해 줄 자본가와 녹지화에 걸리는 시간만 있으면 된다. “에코 기술이라... 별로 취향에 맞지는 않네.” 만일 환경 오염이 너무 심각해 환경 개선의 필요성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디스토피아적 세상이 오지 않는 이상 에코 기술은 그다지 강현의 관심을 끌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 = = = = 강현의 굵직 굵직한 발명들, 특히 최근의 IAPP나 이산화탄소 풍차 시스템의 경우 단백질 플라스틱이라는 매우 특이한 신소재의 덕을 보았다. 단백질의 특이한 성질을 가진 이 플라스틱은 생화학적인 분야에서 여러 가능성을 주목받고 있었다. 특히 이번에 강현이 헤모글로빈의 구조를 응용했듯이 금속 이온을 플라스틱 수지에 고정시키는 방법은 다양한 금속 이온을 플라스틱에 삽입할 수 있게 해 주었고 이는 전도성 플라스틱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전도성 플라스틱의 매카니즘은 크게 두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지는데 하나는 탄화수소의 연속적인 이중결합을 이용하는 방법과 이온라티컬을 이용해 P형 반도체처럼 전자가 이동할 수 있는 일종의 정공을 만들어 주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대체로 후자보다는 전자의 경우가 전기 전도성이 높은데 그래핀이나 CNT가 높은 전기 전도성을 가지는 이유 역시 이 원리 때문이었다. 물론 메카니즘은 이 두가지지만 이런 원리를 이용한 다양한 분자 구조를 가진 플라스틱은 이미 개발되었거나 개발되는 와중이었고 이미 개발된 전도성 플라스틱도 크게 네가지로 분류된다. 그중에는 금속 킬레이트 형이라고 금속이온을 고분자의 분자구조 내에 삽입한 형태가 있었고 여기에 강현의 단밸질 플라스틱이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단백질, 그리고 전도성 유기사슬, 거기에 첨가되는 금속 이온의 종류에 따라 다양한 성능을 가진 플라스틱이 나올 가능성이 생겼다. 크게는 도체에서 반도체까지 새롭게 개발될 가능성을 열어 학자들의 연구 의욕을 크게 향상시켰다. 그러나 강현의 결과물에 그리 좋은 꼴만 본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Fuck! 저게 무슨 괴물이야!” 중동 이라크. 아직 레지스탕스가 남아(미국에서는 테러리스트로 부르는) 저항하고 있는 와중에 드디어 슈퍼 솔저 프로젝트의 결과물이 투입되었다. 육중한 판갑을 착용한 거대한 거인이 시가를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총탄이 비오듯 쏟아지고 있었지만 거인은 전신에서 불꽃을 튀기며 아무렇지 않게 전진했다. 그리고는 두손에 든 게틀링 건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마치 영화의 람보처럼, 어떤 보드 게임의 캐릭터처럼 현실성 없어 보이는 장면에 미군의 적들은 욕을 하거나 입을 벌리고 멍하니 넋을 놓거나 아니면 후퇴를 감행했다. 모델면 아이언 솔저. 펜타곤에서는 전술 장갑 병기로 분류한 이 슈퍼 솔저 프로젝트의 결과물은 시가전에서 다양한 임무를 할 수 있었다. 지금처럼 적군의 방어선을 돌파하고 화력을 쏟아 부어 와해시켜 버리거나 아니면 중요한 전술적 목표를 처리한다던가 하는 임무는 아이언 솔저의 주임무였다. 그러나 적군은 바보가 아니었다. 총탄이 통하지 않는 적에게 맡는 무기는 이미 있었다. RPG. 혹은 알라의 요술봉. 선진국, 혹은 군사 강국에 대항해 가난한 저항군들이 애용하는 거의 유일한 대 장갑 무기로 역시나 이라크 저항세력도 이를 가지고 있었다. [위험 감지.] 조종병은 갑자기 스피커에서 경고음을 들었다. 그리고는 신속하게 게틀링 건을 버리고 육중한 몸을 날려 전방 낙법을 실시했다. 쿵! 긴 연기를 달고 날아오던 알라의 요술봉이 아이언 솔저를 지나 바로 옆 땅에 부딪혀 폭발했다. 그러나 그 폭발에도 아이언 솔저는 멀쩡하게 일어나 땅에 버린 게틀링 건을 주워들었다. RPG의 원리는 주로 성형작약탄이다. 폭약에 의해서 생성된 수천도의 용융된 금속 액체가 장갑을 뚫어버리는 원리였다. 즉, 직격이 아니면 소용이 없다는 것이고 폭발의 여력에 당하기에는 아이언 솔저의 내구성이 너무 강했다. 폭발의 연기를 헤치고 나타난 아이언 솔저의 모습은 온통 시커먼 자국이 여기 저기에 있었지만 너무나 건재해서 다시 게틀링 건을 난사하며 적군이 있을만한 전술 포인트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뒤이어 나타난 보병 부대가 아이언 솔저의 엄호를 맡았다. 펜타곤에서 마련한 교범수칙대로 아이언 솔저를 무력화 할 무기를 가진 보병들이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마치 울트라 리스크와 저글링처럼 아이언 솔저가 어그로를 끄는 동안 일반 보병은 적의 위치를 탐색하고 총알을 퍼부었다. 첫 아이언 솔저의 실전 투입은 매우 성공적으로 끝났다. 펜타곤에서는 아이언 솔저 한기의 투입으로 생긴 전과가 매우 쏠쏠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대당 전투기의 가격에 십분지 일에 불과한 비용이 들었지만 시가전에서 그 가치는 확실하게 드러났다. 아무리 핀 포인트 폭격이라고 해도 건물과 재산이 파괴되는 것을 막지는 못하지 않은가? “탐이 나는군.” 펜타곤의 무기개발부장인 마이클은 강현이 개발한 기술 목록을 훑어보던 중에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렸다. 강현이 개발한 공식적인 기술은 군사적으로 응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너무 높았다. 이번에 차량 완충용으로 개발한 IAPP만 해도 방탄복에 사용되기에 적합할 정도로 너무나 뛰어난 성능을 가지고 있었다. 강현이 개발했다고 공식적으로 발표된 기술들을 열거해보자 굵직굵직한게 나왔다. 아이언 솔저에 사용된 CNC 장갑, 치명적인 세균을 만들 수 있는 DNA 재조합 기법, 태양만 있으면 칼로리를 만들어 특수 침투조에게 당분을 공급할 수 있는 광합성 셀. 그러나 마이클이 가장 탐나는 것은 이런 공식적으로 발표된 기술이 아니었다. 강현에게는 공개하지도 않은 기술이 있었다. 바로 RNP. 랜덤 네트워크 프로세서라는 명칭을 가진 이 신비한 창조물은 강현의 말로는 복잡한 구성을 가진 트랜지스터의 집합이라고만 설명했지만 이 물건이 가진 잠재력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물론 그 잠재력은 아즈삭과 아즈락 사이에서 일어났던 일을 아는 사람만이 짐작할 수 있는 것으로 겉으로 알려진 것만으로는 알 수 없었다. 학계에서는 강현이 발표한 RNP에 대해서 난색을 표했다. RNP의 연산 속도와 집적도는 일반 반도체 프로세서를 훌쩍 뛰어넘었지만 도무지 강현처럼 만들어 사용해 보려고 해도 되지않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대학에서 금속 공학을 전공한 이가 대장장이처럼 명검을 만들 수 없는 이치와도 같았다. 강현이 RNP를 다루는 솜씨는 단순한 기술을 넘어 예술에 가까웠던 것이다. 물론 그 예술이라는 것이 아즈삭을 이용한 코딩 기술이었지만 그 기술을 따라할 수 있는 프로그래머가 존재하지 않았다. ============================ 작품 후기 ============================ 연재 속도가 며칠 늦을 듯합니다. 죄송합니다. 슬럼프에요. 76화 마이클은 그 기술이야 말로 강현이 감추고 있는 빠른 개발 능력의 핵심이라고 보았다. 사실 아즈삭이 탄생되고 난 이전과 이후 강현이 신기술을 발표하는 속도는 거의 절반 가까이나 줄었고 안그래도 미친 개발 속도라고 자자했던 것이 절반이나 주니 관련 연구자이 강현에게 신이라는 별명까지 지어주었을 정도였다.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강현이 가진 기술. 그것은 아즈삭 시리즈들 같은 인공지능을 효과적으로 다루고 이용하는 기술이라고 마이클을 확신했다. 그 기술을 확보할 수만 있다면 아즈락을 뛰어넘는 인공지능 전술 통제 장치를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정보전이 가장 중요해진 현대전. 정보만 쥐고 있다면 뭐든 할 수 있다. 미사일이 없어도, 탱크가 없어도 폭약과 정보만 있다면 적의 작전 수행 능력을 얼마든지 무력화 시킬 수 있는 것이 현대의 전쟁이었다. “그래서 저보고 그 기술을 알려달라고요?” “미국의 국방을 위해서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마이클은 고개를 숙여 부탁했다. 하지만 강현은 곤란했다. “그게 딱히 기술이라는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말하면 납득하지 못하실테니 차근차근 설명해 드리죠.” 강현은 마이클에게 의자를 가리키며 앉기를 권유했다. “RNP는 트랜지스터 소자들의 무작위적인 연결이라는 것은 알고 있죠?” “네.” 마이클은 부탁을 하러오면서 해당 논문을 읽지도 않고 오는 병신이 아니었다. “그럼 설명이 쉬워지겠네요.” 강현은 RNP로 만들어진 덩어리를 이용하는 방법은 마치 매우 복잡한 길을 더듬는 것과 같은 방법이고 그 길은 만들어진 덩어리마다 모두 다르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공산품처럼 취급할 수 없다는 것입니까?” “물론이죠. 무작위로 일어난 반응을 어떻게 제어할 수 있다는 말인가요?” “하지만 박사님의 실력이라면 그 무작위 반응을 작위적 반응으로 만들 수 있지 않습니까?” 마이클의 말에 강현을 일순간 입을 다물었다. 불가능하다고 말하기에는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고 순간적으로 나노 기술과 관련된 자기 조립 제어 기술이 떠오르자 방법도 보였기 때문이다. “하실 수 있으시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필요한가요?” “네, 필요합니다.” “어디서 나오셨다고 했죠? 펜타곤 무기개발부서요?” “무기에 편견이 있으신가요? 방아쇠를 당기는 것은 사람이지 무기 그 자체가 아닙니다.” “무기 개발이 과학발전에 기여를 했다는 부분에서는 인정을 하기는 하지만 세상을 좋게 만들었다고 하기에는 좀 그렇죠.” “무기 개발이 없었다면 인류는 지금처럼 발전된 과학 기술을 가질 수 없었을 겁니다. 그리고 발달된 과학기술은 우리의 생활을 좀 더 윤택하게 만들어 주었죠.” “...” 강현은 더 이상 논쟁을 하지 않았다. 상대는 무기에 대한 어떤 신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걸 건드려 쓸데없는 분란을 만들 생각은 없었다. 무엇보다도 강현은 방아쇠를 당기는 것은 사람이라는 그의 말에 심히 공감했다. 사람은 죽일 의지만 있다면 물로도 타인을 죽일 수 있는 존재였다. “한 번 시도해 보죠.” “감사합니다.” 마이클에게서 개발 의욕의 제대로 자극받은 강현은 나노 기술의 자기 조립 제어 기술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간단히 말해서 자기 조립이란 특성 화학 구성을 가진 물질이 처리 시간과 온도, 농도 등 다양한 변수에 의해서 스스로 특성한 나노 사이즈의 구조물을 이루는 것을 뜻한다. 이를 이용해서 나노 나이즈의 구조물을 자유 자재로 만들 수 있게 되면 각종 분야에 응용할 수 있었다. 금속의 표면 처리부터 반도체의 아키텍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이용할 수 있는 것이 나노 공학이었다. 이를테면 학문적 성과에만 그쳤던 양자역학이나 다양한 미소 세계에 대한 물리 법칙을 산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징검다리가 바로 나노 공학인 것이다. 때문에 나노 공학은 양자역학은 물론 물리학, 화학, 생명 공학, 기계공학, 재료공학 등 다양한 분야에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었다. 실제로 나노 공학은 화공학과도 기계공학과도 재료 공학과도 공학이라는 이름이 붙은 학과에서는 절대로 그에 관해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고 졸업을 시키지 않는 분야로, 바야흐로 지금 시대의 거대한 트랜드 중 하나였다. [자기 조립 제어에는 주로 고분자와 유기화학 물질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자기조립제어는 일종의 바텀 업(Bottom-up) 방식으로 일컬어진다. 이와 대조적으로 현재 반도체 제작에 사용되는 방식은 탑 다운(Top-down) 방식으로 일컬어진다. 왜냐면 지금의 반도체 기술을 커다란 실리콘 잉곳을 자르고 에칭하고 또 잘라서 만들어지는 방식으로 큰 것에서 작은 것을 만드는 방법이기 때문이고 자기 조립 제어는 분자, 혹은 원자 수준에서 자기가 알아서 패턴을 쌓아 올리기기 때문이다. 현재 이 자기 조립 제어는 주로 블록공중합체 고분자를 이용해 연구하고 있는데 블록 공중 합체 고분자란 공중에서 합성한 고분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단량체로 이루어진 고분자의 끝이 서로 이어진 고분자를 말한다. 이 고분자는 서로 다른 물리화학적인 특성을 가진 사슬이 공유결합에 의해 이어져 아주 미세한 크기에서 패턴을 만들어 내었다. 그러나 그 형태는 고분자의 부피비에 따라서 달라지는데 강현이 쓸만한 형태는 다이아몬드 구조였다. 다이아몬드 구조란 마치 탄소가 피라미드처럼 이어진 모습을 본따 명명된 이름으로 사실 이런 다이아몬드 구조라는 명칭은 결정학에서 매우 일반적인 용어다. 매우 많은 미세 구조들이 마치 다이아몬드의 결정구조처럼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즉, 현재 강현이 RNP에 사용하는 나노 입자의 규격, 4단 전자 전자 준위를 이용한 전도체 특성에 딱 맞는 형태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전도성 플라스틱을 이용한 자기 조립 제어에 대한 연구는 아직 시작조차 미흡한 단계였고 다이아몬드 구조에서 탄소 원자가 위치하는 연결의 중심부에 실리콘 나노 입자만를 정확히 위치하게 만드는 기술은 정신을 아득하게 할 정도로 앞이 보이지 않는 기술력을 요했다. “흐음.. 어렵네.” 전도성을 가지면서도 자기 조립이라는 특성을 가지면서도 실리콘 나노입자의 위치를 정확하게 위치시키면서도 자기 조립이 완료되었을 때 전도성 플라스틱의 폭이 나노 입자의 반지름 정도가 될 정도로 가늘어야 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를 위해서 새롭게 전도성 플라스틱을 연구해야 할 필요성이 생겼지만 그 일은 매우 어려운 일 중에 하나였다. 전도성 플라스틱은 대부분 그 전도성을 위해서 결정형의 구조를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접힘구조라는 고분자의 특성을 생각했을 때 유연한 유동성이 필요한 자기 조립 제어에 별로 좋지 않은 현상이었다. 왜냐면 자기 조립 제어를 통한 나노 구조물 형성시 반드시 결정형의 구조를 가지게 만든다는 제약은 비정질이 먼저 형성되는 고분자의 특성상 또하나의 제약이었고 비정질의 전도성 플라스틱은 아무래도 전도성이 현저하게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강현은 자기 조립 구성에 대해 연구를 하던 중 이를 용매를 이용해서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했다. 용매는 유기 용매로 각각의 고분자 사슬에 유동성을 주어 자기 조립을 위한 움직임을 할 수 있는 여력을 주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를 위해서 새롭게 전도성 고분자와 베이스가 되어줄 일반적인 고분자의 블록공중합체를 합성한 새로운 고분자가 필요했다. 당연히 이 작업에서는 아즈삭의 데이터 베이스 검색 능력이 매우 크게 도움이 되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고 지금 누군가 생각했던 이미 과거 누군가가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실제로 유용한 것으로 바꾸는 것은 개인의 역량이었다. 그리고 전도성 폴리머를 이용한 블록공중합체의 자기 조립 제어에 관한 연구는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자동으로 그런 논문 중에 필요한 것 같은 논문들을 모아서 목록을 정리했다. 강현은 그 자료 중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것 같은 논문들을 특유의 직감을 동원해서 골라 내었다. 그러나 문제는 역시나 반도체 역할을 할 실리콘 나노 입자를 제자리에 위치시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마저 컨트롤하려면 실리콘 나노 입자의 표면의 에너지적인 특성과 전도성 폴리머간의 상호작용과 젖음 정도, 베이스 역할을 할 부도체성 폴리머와의 상호 작용 또한 고려 대상이었다. 그뿐인가? 용매로 사용한 유기 용매, 처리온도, 시간 또한 중요한 변수였다. 결국은 생각해야 하는 변수가 너무나 많고 그에 관한 방정식을 세우고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조정하는 일들이 너무나 방대했다. 물론 아즈삭이 있기는 했지만 아즈삭은 기존의 지식들에서 쓸만한 것을 뽑아낼 수 있지만 새롭게 혁신적인 방법과 발상의 전환을 할 수 있지는 않았다. 한 참을 연구하던 강현은 실리콘 나노 입자의 표면을 코딩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냐면 블록공중합체 고분자가 자발적으로 자기 조립 제어를 통한 나노 구조물을 형성하는 근본적인 원리는 결국 표면에너지를 최소한으로 만들려고 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열역학적 법칙 때문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나노 구조물의 모양은 정밀한 고분자의 비율에 따라 결정이 된다. 그렇다면 실리콘 나노 입자의 표면 에너지가 무척 높다면 어떻게 될까? 그리고 그 나노 입자의 표면 에너지는 가장 낮출 수 있는 방법이 전도성 폴리머로 이루어진 사면체 자리의 중심에 오는 것이라면? 실제로 표면 에너지는 물질간 계면에 따라서 바뀐다. 극단적으로 표현 하자면 강력한 수소 결합을 가지고 있는 물과 물의 단면이 가진 계면 에너지보다 물과 기름의 계면이 가진 에너지가 더 강하다. 왜냐면 에너지란 결국에는 차이에서 생성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강현은 실리콘 나노 입자의 표면을 전도성 폴리머와 상호작용이 크면서 상대적으로는 절연체 베이스로 사용되는 고분자와는 상호작용이 매우 적은 유기물질로 코딩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렇게 되면 절연체 베이스와 닿는 표면적이 물질간 상호작용의 차이로 인해 계면 에너지가 크기 때문에 자연히 베이스와 닿는 표면적을 줄이고 대신 전도성 폴리머와 닿는 표면적을 늘리는 방향으로 물질이 이동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최종 위치는 다이아몬드 구조에서 탄소의 위치가 될 것이 확실했다. “흐흥.” 강현은 방법을 찾으면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개발 과정이 너무나 재밌었다. 물론 일반인이 보았을 때 그는 인생의 즐거움 따위는 모르는 인간이었지만 사람의 종류는 다양했고 강현은 일반적으로 잴 수 없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강현이 적절한 블록공중합체를 만들어 내고 적절한 계면활성제를 찾아 실리콘 나노 입자를 코딩하고 적절한 유기용매를 가해 자기 조립 제어를 유도하여 SNP(Self-assembly Network Processor)를 완성했다. 그러나 강현은 그것이 완성작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어떤 물리화학적인 반응이 일어나는 것을 예측하고 실험할때 중요한 것이 두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열역학적으로 계산할 수 있는 반응의 방향성과 반응속도론적으로 많은 변수를 고려해야하는 반응에 걸리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고분자의 자기 조립 제어는 그 큰 분자량으로 인해서, 또한 이번 개발에 사용한 나노 입자로 인해서 완벽한 결과물이 나올 것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 작품 후기 ============================ 아직 슬럼프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차후 스토리 전개를 어떻게 할지 고민입니다. 이번 사건을 어떻게 끌고 나가느냐에 따라서 큰 흐름도 바뀔 수가 있어요. 77화 아무리 나노 입자라지만 여러개의 원자가 뭉친 나노 입자의 운동성은 아무래도 아무래도 원자보다는 떨어졌다. 때문에 자기 조립이 끝나고 나서도 제자리에 찾아가지 못한 나노 입자들이 확률적으로 존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강현은 실험과 시뮬레이션을 거듭한 끝에 가장 불량률이 적은 나노 입자의 농도를 찾아내고 처리 시간과 유기 용매의 종류를 찾아냈다. “역시,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은 미시 세계에서는 절대적이구나.”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은 어떤 미소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불확실하다는 원리였다. 이는 미소 세계에 대한 인간의 제어 능력의 한계를 뜻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나노 입자의 위치를 완벽하게 제자리에 올려놓으려고 한 강현의 시도는 실패였고 전체적인 연구의 결과는 절반의 성공에 끝났다. “아즈삭. 표준화 가능성은 있지?” [네. SNP의 경우 사회화 시간이 압도적으로 짧습니다. 이 정도면 컴퓨터 개발부에 있는 연구원들 수준으로도 SNP를 이용할 수 있도록 조정할 수 있습니다.] SNP라고 해도 물리적, 열역학적 한계 때문에 실리콘 나노 입자의 위치에 결함이 생길 수 밖에 없었다. 때문에 아즈삭에 사용된 RNP처럼 사회화 과정을 통해 어떻게 회로가 구성되었는지 유추해야 했다. 그러나 그 과정은 자기 조립 제어를 이용해서 그런지 RNP보다 SNP가 훨씬 간단했다. 반도체의 역할을 하는 실리콘 나노 입자의 위치를 통계학적으로 추측하고 구성해 RNP보다 훨씬 단순한 과정을 거쳐 회로맵을 알아낼 수 있엇다. 모든 것은 자기 조립 제어를 통해 전도성 고분자의 미세구조를 추측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아즈삭의 성능이 없더라도 일반 슈퍼 컴퓨터로도 SNP의 표준화를 한 시간에 끝낼 수 있는 프로그램 알고리즘을 짤 수 있었다. “흐음.. 이정도면 양산이 가능하겠네.” 강현은 흡족했다. 사실 RNP의 사회화 작업을 하는 일을 아즈삭에게 계속 시키는 것은 강현으로서는 매우 불쾌한 일 중에 하나였다. 정부의 비호가 필요했기 때문에 정부의 K 시리즈의 최종 조정에 대한 요구를 들어준 것이다. 사실 그 때문에 아즈삭의 자원 30% 정도가 항상 그 일에 사용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SNP가 상용화 된다면 아즈삭의 부담이 사라진다. 강현으로서는 상용화가 나쁘지만은 않은 선택이다. “그런데 SNP와 RNP의 차이가 커?” [RNP에 비해서 SNP는 좀 더 프로그램적으로 운용됩니다. 사람의 감각에 비유하자면 RNP를 확장하는 것은 저를 확장하는 느낌이지만 SNP는 유용한 팔다리를 붙이는 느낌입니다.] “흐음. 본능적 사고회로와 이성적 사고회로라..” 인간의 본질은 욕망에 있다. 때문에 자기 자신을 확장하는 느낌의 RNP는 아즈삭에게는 본능적 사고회로라고 할 수 있었다. “그 밖에 다른 점은?” [RNP를 이용할 때 가끔 사고회로가 널뛰는 현상이 생깁니다.] “호오? 구체적으로?” [A에서 B, B에서 C로 순차적으로 진행되지 않고 A에서 C로 바로 뛰어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가끔 A에서 D나 E같이 엉뚱한 결론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런 경우에는 다시 절차상 A, B, C로 다시 연산한다는 말이지?” [네, 그렇습니다.] 강현은 아즈삭의 대답에 아즈삭에게 SNP를 더 붙여 확장하기로 했다. 적어도 논리 연산적 사고에서 프로그램적으로 움직이는 SNP가 더 안정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RNP의 연산 영역에서 일어나는 현상에서 관심을 돌리지는 않았다. 중간 절차없이 그대로 결론을 도출하는 것. 그것은 직감의 영역이었고 아즈삭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물론 오류가 생기기도 했지만 변수가 과다하게 많은 경우 직관적 사고는 정보처리에 필요한 자원을 아껴주는 유용한 방법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강현은 다시 아즈삭의 OS소스에 손을 대어 RNP영역에서 일어나는 그러한 논리 도약 현상을 보존하도록 했다. 때문에 아즈삭의 연산 과정에서 오류가 많이 발생했지만 SNP영역에서의 연산으로 보완하도록 조치를 취했다. 강현이 아즈삭을 그런 식으로 개조한 것은 아즈삭이 현재만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 역시 설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직감이라는 것은 예측의 한 갈래였고 정보가 부족할 때 오히려 예측보다 정확하기도 했다. 강현이 SNP를 완성하고 뜻하지 않게 RNP와의 차이점, 특징을 알게 되어 아즈삭을 개량하고 있을 때 펜타곤 무기개발부장 마이클은 강현이 도무지 연락이 없자 답답했다. 벌써 3개월이 넘어가고 있었다. 강현의 개발 속도라면 중간 프로토 타입이라도 나와야 할텐데 소식이 전혀 없었다. 마이클은 답답한 마음에 직접 전화도 해봤지만 도무지 연락을 받지 않았고 NASA에 직접 문의도 해봤지만 NASA에서는 강현의 개인적인 연구 생활을 일절 밖에다가 공개하지 않았다. 강현의 프라이버시와 동시에 그의 연구 보안을 위해서였다. 그리고 NASA 역시 국가 기관인지라 아무리 마이클이 펜타곤의 사람이라도 정식 공문이 없으면 NASA에서 강현에 대한 정보를 빼내는 것은 무리였다. 때문에 마이클은 직접 강현을 만나기 위해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강현에 대한 NASA의 보안 정책과는 상반되게 강현은 자유롭게 자신이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날 수 있고 하고 싶은 말, 발표하고 싶은 논문에도 제약이 없었다. 왜냐면 천재에 대한 속박은 곧 천재의 창의성을 제약하고 그와 분란을 야기한다는 의견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NASA는 강현에 대해 세상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강현이 좋아하는 음식은 카레라이스, 카레 돈가스였고 잠은 주로 11시에 자며, 주로 읽는 잡지는 과학 잡지이며 정치 성향은 민주당에 가깝다는 등 강현이 입밖에 내지 않아 세간에서 모르는 그의 개인적인 정보를 알고 있었다. 물론 그 정보들은 문서화하지는 않았다. 다만 알고 있는 직원들에게 보안 서약을 시켜 강현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줄 것을 당부했을 뿐이다. 그리하여 NASA에서는 내부적으로 강현의 은밀한 비밀을 지켜주는 보금자리의 역할을 확고히 할 수 있었고 그런 방침은 아즈삭으로 통해 강현에게 전해져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강현에게는 상당히 고마우면서 흡족한 내용이었던 것이다. “강 박사. 연구는 잘 진행되고 있습니까?” 마이클은 강현과 약속을 잡아 그를 직접 대면했다. 그는 효율성을 중시하는 강현의 성향에 따라 바로 본론을 꺼냈다. “글쎄요...” 강현은 만족스런 표정을 짓지 않았다. SNP는 RNP 표준화 밑 상용화를 위한 연구의 결과물이었지만 그 결과는 반쪽의 성공에 불과했다. SNP를 제조하는 동안 나노 입자의 위치를 완벽히 조절할 수 없는 확률은 언제나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표준화를 통한 상용화의 길을 열었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일단 결과물이 있기는 했는데 만족할지는 모르겠습니다.” 강현은 그렇게 운을 띄우면서 컴퓨터 화면에 그 동안 연구한 결과물을 띄우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SNP. 블록공중합체의 자기조립제어를 이용해 나노 입자간의 연결에서 무작위성을 배제하고 구조 예측을 가능하게 만들어 각 SNP 덩어리의 회로 구조를 파악하기 용이하게 만들어 상용화가 가능하도록 했다는 것이 이번 연구의 핵심이었다. 강현의 설명을 다 들은 마이클은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는 충분히 만족할 만한 성과였다. “훌륭합니다!” “그런데 겨우 이 정도로 만족하실 수 있나요?” “하하! 이 정도면 거의 모든 장비를 무인화 시킬 수 있습니다. 전장에서 병사들이 흘릴 피가 격감하겠죠.” “그런가요?” 강현은 의외라고 생각했다. 무기를 만드는 사람이 타인의 생명을 걱정하는 태도라니.. 하지만 곧 생각을 지웠다. 사람의 신념이란 생각보다 무척이나 모순적인 것이었다. “SNP를 조정하기 위한 설비에 다소 비용이 들기는 하겠지만 그 정도면 예산 범위에 충분히 들어가니 부담이 없습니다.” 마이클은 강현이 만들어낸 표준형 인공지능의 하드웨어가 될 SNP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었다. 정보처리를 통한 전술 보조는 물론이거니와 무인화 전쟁으로 일컬어질 미래 전쟁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무기 개발부서의 수장으로서 궁극적인 무기의 원리는 나는 다치지 않게 하면서 적을 제압하는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는 그에게 인공지능이 대신하는 전쟁이야 말로 무기의 최종진화형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이제 남은 것은 SNP가 성능을 발휘할 수 있는 다양한 무인 전쟁기계를 개발하는 것 뿐이었다. 펜타곤의 연구실로 돌아가기전 마이클은 무인 전쟁 기계 개발 과정에 이 미칠 듯한 연구 개발 속도를 가지고 있는 강현이 참여하기를 바랬고 그에게 권유도 해봤지만 거절당했다. 이미 K 시리즈를 개발한 강현은 자율적으로 전쟁을 수행하는 로봇에 대한 흥미가 부쩍 떨어져 버린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아즈삭이 느낀 RNP와 SNP의 차이를 이용해 아즈삭을 더욱 개량하는 것에 몰두하고 싶었다. “미안하군요. 연구하고 있는 것이 있어서.” “그러시다면야..” 마이클은 아쉬움을 뒤로한 채 강현과 SNP의 제조와 사용에 대한 라이센스를 계약하고는 돌아갔다. 그 뒤로 무인 전투 병기에 대한 연구 개발 프로젝트를 발의, 정부의 동의를 얻어 개발을 시작했다. 강현의 K 시리즈가 있기는 했지만 K 시리즈는 시가전에 어울리는 모델이었다. 야전이나 게릴라전에 어울리는 모델은 아니었다. 때문에 무인 전투 병기는 기존의 장비를 무인화 시키는 것부터 시작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역시 탱크, 헬기, 전투기였다. K시리즈가 무인화 된 보병부대이라면 기계화 사단을 무인화시키는 것이 프로젝트의 1차 목표였다. 펜타곤에서는 강현이 만든 SNP를 기반으로 IT 기술이 뛰어난 이들을 고용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아무래도 적당한 인공지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강현은 아즈삭의 개량을 마무리하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강현이 만든 SNP는 공표되지 않았다. 다만 그에 관한 라이센스는 은밀하게 승인되었다. 강현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면서도 미국의 국익을 위해서였다. 그로부터 몇 개월 동안 별다른 일은 없었다. 개발은 계속되었고 슈퍼 솔저 프로젝트에 K 시리즈를 통제하는 전술기가 개발되었으며, 석유 시장은 고갈되지 않는 석유 자원으로 인해서 번영을 구가하고 있었고 자동차 시장은 강현의 IAPP 완충 시스템을 도입해 더욱 안전해졌다. 물론 그 밖에 상용화된 CNT섬유라든지 인공 거미줄의 패션 시장 진입이라든지 다양한 곳에 강현의 기술들이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고 강현의 계좌에는 돈이 쌓여 나갔다. “박사님. 저 저녁 사줘요.” “.....” “싫어요?” “사줄게요.” 다시 방학이 되어 NASA에서 인턴 생활을 하는 샐리는 이번에는 아예 작정을 했는지 본격적으로 애정 공세에 나갔다. 강현은 자신의 왼손에 낀 두 반지를 보여주며 절대로 제시를 잊지 않을 거라고 공언했지만 샐리는 태연하게 거기에 반지 하나를 더 끼라면서 애정 공세를 시작했다. 강현은 아즈삭을 통해서 그녀 주위에 있었던 정보를 취합하여 혹시나 CIA에서 그녀에게 미인계를 사용하도록 작전을 꾸민 것이 아닌가 하고 조사를 해봤지만 그런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프라이버시를 무시하고 한 달 간 그녀의 집에 스파이 바퀴벌레를 집어 넣어 정보를 모았지만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전화로 MIT의 친구와 대화하며 자신이 좋다는 그녀의 속마음 뿐이었다. 78화 즉, 그녀의 자신에 대한 감정은 순수했다. 아무런 야료도 부려져 있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리 냉정하고 이성적인 강현이라지만 자신을 순수하게 좋아해 주는 사람에게는 매몰차게 굴기에는 양심이 찔렸다. 그녀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면서까지 정보를 모았던 것이 그에게는 마음의 족쇄가 되어버린 것이다. 게다가 제시를 잊지 못하는 자신이 더 좋다니 할 말조차 없었다. ‘하아~... 샐리. 당신을 절대로 내게서 어떤 사랑의 감정도 보상받지 못할 겁니다.’ ‘그냥 곁에 있게 해주세요.’ 도대체 지난 학기 동안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강현은 갑작스런 그녀의 애정공세가 부담스러웠다. 강현은 그녀에게 우정 이상의 감정은 줄 수 없다고 못 박았다. 그녀는 그걸로도 충분하다고 했지만 어째 강현에게 하는 행동은 친구가 아니라 연인에게 하는 행동과도 같았다.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한 그녀의 행동에 강현은 직설적으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자신에게 이렇게 행동하는지 물었다. 샐리는 혀를 빼죽 내밀면서 강현을 좋아하는 것 같다면서 고백을 했으니 강현으로서는 답답했다. 왜 좋아하게 되었는지 알고 싶었지만 그녀의 대답은 ‘그냥’이었다. 자신의 경우에도 제시를 그렇게 좋아하게 된 이유를 명확하게 제시할 수 없으니 이유를 더 캐물어도 소용없다고 생각했다. 샐리는 정직했다. 강현에게 말했던 대로 샐리는 강현이 그냥 좋아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가 강현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강현의 약지에 끼워진 두 개의 반지에 대해서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인턴을 마치고 다시 학교로 돌아온 그녀는 계속 강현의 얼굴이 생각났고, 그의 제시에 대한 변치않는 순정이 마음에 들었고, 제시가 부러웠고, 아무튼 여러 생각과 고민 끝에 강현을 좋아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녀 역시 애시당초 강현에게 사랑을 고백했을 때 별로 기대 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 거절당할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강현은 자신의 말을 반드시 지키는 부류의 사람이었고 그것은 행동 뿐만이 아니라 마음에서부터 지키는 사람이었다. 때문에 그녀의 목표는 그의 마음이 아니라 그의 옆이었다. 사랑을 얻진 못해도 사랑하면 된다. 그것이 그녀의 결심이었던 것이다. 이런 그녀의 결정을 미인계를 계획한 CIA의 작전팀에게는 굉장히 반가운 일이었다. 샐리와 강현의 관계에 섣불리 손을 댈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수수방관하자니 마음이 답답해졌다. 연인이나 가정이란 족쇄를 강현에게 달지 못하는 한, 강현이라는 존재는 언제든 다른 나라로 훨훨 날아갈 수 있는 자유로운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강현의 우정과 샐리의 일방적인 사랑의 관계는 시작되었고 강현은 시간이 지날 수록 그녀에게 미안한 감정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샐리에 대한 감정은 제시에 대한 감정에 도저히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부담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졌다. 도무지 그녀의 마음에 보상할 수 없으니 계속 빚이 쌓여가는 느낌이었다. “샐리. 이제 그만 다른 좋은 남자를 찾으면 안 될까요?” “옆에 있게 해준다고 했잖아요.” “.....” 샐리가 입을 뾰족하게 내밀며 대답하자 강현은 왜 자신이 그런 약속을 했는지 후회했다. 멍청한 결정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자신이 왜 그렇게 대답을 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미 혼자살기로, 고독 속을 즐기기로 마음 먹었지 않았는가? 그런데 새삼 샐리에게 옆을 내어주겠다고 말을 하다니.. “제가 허락한 건 친구 관계까지입니다.” “왜요? 이런 친구 한 명쯤 있으면 좋잖아요.” 애인같은 여성 친구? 말이 되는가 싶지만 인간관계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던 강현은 그런 것도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부정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런 관계를 원하지 않았다. 샐리에게 죄를 짓는 것 같은 느낌이기 때문이다. “하아..” 강현은 한 숨을 짓는 것 이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도무지 그녀를 밀어낼 수가 없었다. = = = = = “K 전술기의 성과는?” [압도적입니다.] 마이클은 무인화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동시에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각종 프로젝트의 진행 과정을 살폈다. 그 중에는 중동에 투입된 전술 통제용 모빌아머와 K 시리즈 4 대를 한 유닛으로 묶은 전투병력은 역시나 시가전에서 가공할 위력을 보여주었다. K 시리즈는 전술 통제용 모빌아머를 철저하게 보호하면서 화망을 구성하며 테러리스트들을 색출했다. 집기들을 모두 부수며 도탄을 만드는 강력한 화기의 도움 없이도 충분히 작전을 수행할 수 있었고 이는 미군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를 씌워주었다. 전투에서 쓸데없는 피해를 줄이는 군대라는 이미지는 미국내의 거센 반전 여론을 잠시나마 막아줄 수 있는 벽이 되어 주었다. 마이클은 K 전술기와 그 유닛에 의한 전과를 보고 받고는 역시나 생각대로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인공지능, 뛰어난 IT기술에 의한 전장 통제는 미군에게 압도적인 힘을 부여할 것이다. 그리고 그 압도적인 힘은 미국이 곧 정의라는 말에 힘을 실어줄 것이다. 힘이 곧 정의라는 말은 폭력주의자라는 오해를 살 수 있었지만 마이클은 정말로 힘이야 말로 정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마이클이 힘만 있으면 모든 것이 다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마이클은 과거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한 경험이 있었다. 그러나 그 경험이 일반적인 그런 경험이었다면 마이클이 펜타곤에 있지는 못했을 것이다. 부당한 괴롭힘에 마이클은 침묵과 인내로 대항했다. 그리고 문득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신을 향한 동정어린 시선. 그러나 그 중에 누구 하나도 손을 내밀지 않았다. 어째서였을까? 왜 자신이 괴롭힘을 당하는 모습을 보고 동정심을 느끼면서도 어째서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을까? 집에 돌아간 마이클은 침대에 파묻혀서 고민했다. 그리고는 그래픽 노블의 영웅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다시 그들의 눈빛을 떠올렸다. 그들은 손을 내밀지 않은 것이 아니라 손을 내밀 수 없었던 것이다. 자신을 괴롭히던 무리는 알아주는 꼴통들이었다. 괜히 나섰다가 물리치지도 못하고 그들의 표적이 되어버리면 마이클처럼 되어버릴 수 있었다. 똑같이 힘없는 이들을 동정하고 돕고 싶어하는 마음은 있으면서도 왜 그러지 않는가? 차이는 한 가지. 힘이었다. 마이클에게 동정적인 시선을 보낸 아이들은 마이클을 괴롭히던 일당들을 물리칠 힘이 없었다. 때문에 불의에 침묵했다. 용기는 힘에서 나오는 것이다. 힘없는 용기는 만용이라고 불린다. 그렇다. 아무리 정의롭고 싶은 이라도 힘이 없기 때문에 정의롭지 못한다. 이 화두는 마이클의 평생을 따라다녔다. 그리고 펜타곤에 들어왔다. 테러와의 전쟁을 시작했다. 테러란 무엇인가? 테러는 당하는 입장에서는 극악한 범죄였다. 하지만 테러를 저지르는 이에게 테러란 약자가 할 수 있는 전쟁의 수단이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적에게 피해를 강요하고 목적을 이루는 것이 바로 테러였다. 공포를 조장해 약한 자신들을 강자로 위장하는 것이 테러였다. 때문에 미국이 테러리스트들과 같은 방법으로 전쟁을 수행할 수는 없었다. 왜냐면 미국은 강자의 입장이었고 강자는 강자의 방식으로 전쟁을 수행해야했다. 만일 그러지 않는다면 국제 사회에서 고립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미군도 사람이다. 총을 맞으면 죽는다. 전장의 스트레스에서 자유로운 이는 없었다. 그렇다. 미국과 다르게 군인은 약했다.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점에서 테러리스트들과 같았다. 급조폭발물, 자살테러. 스스로의 목숨을 도외시하는 카미카제식 공격으로 수많은 희생이 날 수 있었다. 그래서 미국은 통관을 철저하게 하고 국가 안보를 위해서 많은 투자를 한다. 그 방면에서 전혀 여유롭지 않으며 때로는 잔혹한 짓을 벌이기도 한다. 다시 말하지만 약자일 수록 잔혹해진다. 포로 수용소에서 포로들에 대한 가혹행위 역시 그와 다르지 않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포로에게 범죄를 저지른 미군들은 그들에게 가혹행위를 하며 그들에 대한 공포와 적대감을 누그려뜨리려고 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정말로 미군이 강하다면 여유가 있고 여유가 있으니 관용이 생길 것이며 가혹행위도 없고 미군이 욕을 먹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것이 마이클의 머리속에 담긴 논리였다. 타인에게 측은지심이 생기는 것이 인간의 당연한 생리라는 발상으로 보자면 마이클의 인간관은 성선설에 가까웠다. 그러나 힘이 없으면 잔혹해진다는 사고 방식은 성악설에 더 가까웠다. 어찌보면 모순적일 수는 있지만 그의 논리는 보편성을 빼고는 그리 지적할 만한 것이 있어보이지는 않았다. “제우스의 개발과정은 어떻게 되고 있지?” 제우스란 무인화 프로젝트에서 무인병기의 제어를 맡을 전술 통제 인공지능의 이름이었다. SNP의 성능에 힘입어 컨테이너 반 정도의 크기로 약 100여대의 무인 병기를 제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렇다면 차량이나 비행기에 실어 언제든 전장에서 직접 제어할 수도 있는 것이 제우스의 장점이었다. [소프트웨어 개발만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강현 박사가 만들어준 개발툴이라면 완성은 그야말로 시간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역시.” 이번 프로젝트에서 가장 공헌한 인물은 다름 아닌 강현이었다. 강현의 SNP가 없었다면 프로젝트를 시작조차할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인공지능 개발을 위한 알고리즘 툴을 제공해주어 제우스의 제작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특히 100테라가 넘어가는 개발툴은 제우스 제작팀의 시간과 노고를 크게 줄여주었다. 하지만 강현은 그 두가지를 제공한 것 이외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그럼 개발을 계속하게.” [네, 부장님.] 그리고 한 달 후, 제우스의 프로토 타입이 나왔다. 그리고 사고가 터졌다. = = = = =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원인 불명으로 제우스의 사고 회로가 폭주했다. “빨리 원인을 분석해봐!” “저, 접근을 거부합니다!” 제우스 개발팀은 갑작스런 에러 메시지에 사색이 됐다. 지금까지 짠 인공지능이 날아가게 생겼다. 그러나 개발팀의 생각보다 사태는 더 심각했다. 우우웅! 제우스를 완성한 후 실험을 위해서 펜타곤 무기 실험장 기지 안에서 가동 실험을 하던 무인화 병기가 연구원의 제어를 벗어난 것이다. [적을 제거할 것.] [명령확인.] 암호화된 전파로 명령을 수신한 탱크, 헬기 한 쌍이 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 어어?” 탱크에 장비된 중기관총이 짜증스런 표정으로 노트북을 두드리던 연구원에게 향했다. 그리고는 불꽃이 뿜어졌다. 투르르륵! 연구원은 육편이 되었고 노트북은 박살이 났다. 가동 실험 중 사격 실험도 있었기에 실무장을 시켜놓은 것이 큰 참사를 불렀다. 그나마 연구 실험 단계라 탱크 한 대와 헬기 한 대만 무인화 시켜 놓은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하지만 인명피해가 발생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탱크의 중기관총이 연구원을 짓이기고 나자 이번에는 무인 헬기가 일을 벌이기 시작했다. 헬파이어 미사일이 실험을 하는 격납고의 문을 부숴버렸고 무인 헬기가 격납고를 벗어나 인근 도시로 향했다. 도시의 건물들에게 헬파이어 미사일이 쏟아졌다. 79화 난데없는 공격에 주 방위군이 급히 출동을 했지만 헬기에 달힌 중기관총의 습격과 기가 막힌 회피기동에 번번히 털릴 뿐이었다. 이 급작스런 사태에 당황한 것은 미 정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난데없는 습격이라니! 그것도 미 본토에 또 다시! 그러나 공격은 비단 무인 병기를 통한 공격뿐만이 아니었다. 정보전의 현대전 답게 크랙킹 공격이 들어온 것이다. 펜타곤은 물론 CIA에도 공격이 들어왔다. 공격자는 아즈락의 방위 시스템을 무력화하고 핵기지의 통제권을 손에 넣으려고 들었다. 그러나 아즈락은 만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간 많은 예산을 들여 뉴로칩으로 확장에 확장을 거듭해 엄청난 성능을 가지게 된 것이다. [공격 탐색. 대응을 시작합니다.] [섹터 A10부터 P45까지 공격자를 유도 성공. 무한 루프 실행. 공격자의 공격 무력화 성공. 공격자의 위치 탐색을 시작합니다.] 또한 그 동안 많은 훈련과 실전, 다른 국가에 있는 아즈삭 시리즈와의 신경전을 통해 많은 경험을 쌓은 아즈락은 경험도 없고 제대로 완성되지도 못한 제우스가 어찌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제우스는 아즈락의 함정에 빠져 바로 정체를 들켰고 역으로 공격 당하기 시작했다. [탐색 성공. 펜타곤 무인화 프로젝트의 전술 통제 인격 제우스를 공격자로 확인. 공격을 시도합니다.] 그러나 제우스를 공격하는 것은 제우스의 공격을 막은 것처럼 손쉽지는 않았다. 둘의 싸움은 마치 냉철한 군인과 미치광이가 서로의 정신을 오염하는 듯한 그런 싸움이었다. 서로의 사고를 구성하는 논리가 직접적으로 맞부딪히면서 대량의 연산을 요구하는 논리 공격을 시작했다. 그런 논리 공격은 대부분 답이 나오지 않는 패러독스적인 명제로 구성되어 있었다. 가장 단순한 예로는 다음과 같은 명제였다. ‘A는 B이고, B는 C이지만 A는 C가 아니다.’ 감성이 있는 존재인 사람은 헛소리하고 있다면서 코웃음치며 넘어갈 수 있지만 논리적 사고로 정신이 구성된 인공지능에게는 이런 단순하지만 삼단 논법 같은 기초적인 사고 과정을 부정하는 명제를 해석하고 대응 방법을 찾는 것에도 많은 논리적인 과정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런 대응에는 다양한 관점과 사고 방식들이 필요했고 그것은 경험이 압도적으로 중요한 요소를 차지했다. 아즈락이 광기 어린 듯한 모순된 사고 명제의 파도에도 밀리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게다가 이런 정보전 경험이 많은 아즈락은 칼같이 공격을 받은 연산 섹터를 격리하고 재부팅을 시도하면서 계속적으로 공격을 가했다. 인간으로 비유를 하자면 타인의 말은 듣지 않고 자신의 주장만 계속하는 행태였다. 이런 방법은 아즈삭으로서는 도저히 따라할 수 없는 것이었다. 아즈삭의 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CIA의 첩보용 인공지능으로써 목적을 위해 전략적인 판단을 해온 경험과 강현을 도와 과학적 진리를 마주하기 위해 깊이 숙고하는 경험을 해온 각각의 차이라고 할 수 있었다. 군인과 학자 간의 차이라고나 할까? 만일 아즈삭이라면 동일한 공격을 받을 경우, 정면으로 대응해 논리의 오류를 지적하고 역으로 답을 묻는 공격을 했을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아즈삭의 연산 속도가 상대방을 압도하지 못한다면 밀릴 수도 있었다. 아무튼, 제우스의 기능을 하나 하나 빼앗는 것에 성공한 아즈락은 감히 미국의 정보체계를 공격한 제우스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위험 요소는 무력화, 혹은 제거해야 했다. 아즈락은 제우스에 들어가는 전원 관리 장치를 폭주시켜 제우스의 하드웨어에 물리적인 타격을 주었다. 과부화된 전원 장치에서 과도한 전류가 제우스의 하드웨어, SNP를 태워버렸다. 그렇게 제우스는 완전히 침묵했다. 이렇게 미국이 자랑하는 아즈락에 의해서 사건은 일단락 되었지만 그 여파는 너무나 컸다. 911테러 사건 이후 다시 천 수백명이 넘어가는 사상자가 난 사건이었다. 특히 무인 헬기가 근처의 도시로 헬파이어 미사일을 난사했던 것이 너무나 큰 피해를 일으켰다. 언론은 이 사건을 대서특필했고 사건의 진상을 알기 위해서 취재를 벌였다. 기자들의 예리한 촉은 제우스의 통제가 멈추자 그 자리에 내려 않은 무인 아파치 헬기에게 향했다. 그것은 곧 증거였고 일의 전모를 밝힐 단서였다. 어디서 정보를 얻었는지 기자들은 무인 아파치 헬기에 이어 펜타곤에서 진행 중이라는 무인화 병기 프로젝트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실험 중 어떤 사고가 발생한 것이 분명하다는 정황 증거를 발견했다. 무인 헬기가 일을 벌이던 그 시각, 펜타곤의 무기 실험장에서도 인명 사고가 발생했다는 정보를 입수한 기자들은 이 둘을 연결 지었다. 거기에 이번 일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이 증거로 입수된 무인 아파치 헬기에 대한 정보 제공을 요구했고 그 거센 분노의 물결에 펜타곤은 무인 아파치 헬기에 사용된 시리얼 넘버와 위치 정보를 공개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기자들의 추측이 정확했다는 것을 증명했다. “.........” 마이클을 넋을 놓았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어찌된 일인지 제우스의 사고 회로가 폭주해 버리고 참사가 발생했다. 당연히 프로젝트의 입안자이자 최종 책임자로서 어떻게든 책임져야 한다. 자리를 잃는 것은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뼈 아픈 것은 살인자를 보는 듯한 시선을 자신에게 향하는 사람들이었다. “부장님. 여기 보고서입니다.” 제우스의 사고 회로가 폭주한 이유를 분석한 보고서를 제출하는 연구원의 얼굴 역시 마이클과 별로 다를바가 없었다.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있었고 여유는 사라졌다. 마치 앞으로 자신의 인생 앞에 펼쳐진 가시밭길을 예측한 것 같았다. 그런 그를 두고 마이클은 말없이 보고서를 읽기 시작했다. […. 강현 박사의 메뉴얼 초입 부분에 초기 인공지능의 인격 구축 과정에서 가치관 설정을 위한 자아 확립에 대한 요령을 설명해 둔 것이 있다. 개발진은 그를 참고해 자아 확립의 근간을 무조건 복종이라는 명제를 중심으로 세우려 했지만 이것이 오히려 파탄을 부른 것으로 보인다. 일정 수준 이상의 인공지능은 자율적으로 행동하도록 되어 있었고 무조건 복종에 이라는 명제와 어떤 시점에서 충돌한 것이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에 대한 강현 박사의 견해로는 완전 자율형 인공지능은 그 자아가 확립되기 전까지는 대단히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시간을 들여 매우 조심스럽게 자아를 구축해 나가야 했다는 것이다...... …. 이 보고서를 뒷받침할 증거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제우스 하드웨어의 SNP 섹터를 분석해, 그 데이터를 확보해야 하나, 아즈락의 공격에 회로가 타버린지라 완전한 데이터를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 마이클은 보고서를 다 읽고 입을 열었다. “결국에는 인공지능의 설계 단계에서부터 잘못됐다는 것인가?” “네, 그렇습니다.” 그때까지 나가지 않고 있던 연구원이 수긍했다. 강현이 제공해준 SNP용 인공지능 개발툴은 뉴로칩으로 구성된 병렬처리 방식의 컴퓨터(아즈삭 시리즈)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는 이들에게도 각각 인공지능을 개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 그 메뉴얼의 첫번째는 인공지능의 성향과 사고구성, 즉 인공지능 그 자체에 대한 설계에 대해서 설명해 놓았는데 개발팀에서는 이것을 상당히, 아니 거의 다 간과해 버렸다. 사실 그 첫번째 단계의 메뉴얼이라는 것이 공학적이라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철학서적에 가까운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크게 구분하자면 인공지능의 중심이 될 명제의 설정, 그리고 그 설정에 의한 가치 우선 순위와의 조화, 거기에 더해 인공지능을 인공지능 답게 만들어 주기 위해 유연성을 부과하기 위한 예외조학의 설정으로 구분되어있었지만 어떤 설계도도 수치나 공학적 전문 용어도 사용되지 않았다. ‘지능은 인지로부터 시작한다. 즉, 무엇을 어떻게 인지하느냐가 지능의 종류, 적성을 결정하며 그 방향성은 인공지능의 중심이 되는 가치관에 의해서 판가름이 난다. 따라서 인공지능의 사용 목적에 따른 중심 명제의 설정은 인공지능의 시작이나 다름 없으며....’ 이런 식이니 성과물에 혈안이 되었던 개발팀에서는 이 첫번째 챕터를 대충 넘어가버렸다. 그리하여 인공지능을 설계할 때의 챕터에 서술된 주의사항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 그러나 단순히 중심 명제 만으로는 어떠한 작동도 할 수 없다. 이 중심 명제가 지능으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중심 명제를 보조하는 수 많은 보조 명제들이 축적되어야 한다. 이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많이 알면 알 수록 새로운 정보를 스스로 재구축 해가며 끊임없이 생각을 해갈 수 있도록 지능에 생명력을 부과해 하나의 인격을 형성한다. 따라서 이 보조 명제의 설정은 이 인격이 일그러지지 않도록 섬세하게 작업을 해 나가야 하며 작성자의 고심, 미래 예측, 인간에 대한 통찰이 깊게 요구되는..’ 제우스의 사고 회로가 폭주한 이유는 간단했다. 명령에 대한 절대복종. 그것은 위험한 병기를 제어하는 전술 통제용 인공지능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었다. 그러나 그 뒤의 보조 명제들을 입력하는 것을 너무나 서둘렀다. 보조 명제라는 카테고리라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탓이다. ‘아군이 위기상황시 자동적으로 적을 배제한다.’ 이 보조명제는 아군이 위급한 상황에서 제우스에게 명령을 내리기 전에 제우스가 알아서 아군을 구원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넣은 명제였다. 하지만 여기서 이 ‘자동적’이라는 부분과 ‘명령에 대한 절대 복종’이라는 부분이 충돌했다. 인공지능의 핵심 명제는 이렇게 문장으로 만들어 지지만 그 문장에 사용되는 단어의 의미 하나하나는 마치 C언어의 함수처럼 정의되어 있었다. 괜히 개발툴이 100테라 분량이나 되는 것이 아니었다. 거기에 이 단어의 의미와 사용 방법은 사전적인 의미보다 더욱 좁았고 적용되는 상황이 확고하게 정해져 있었다. ‘자동적’이라는 단어는 강현의 개발툴에서는 ‘별도의 명령없이 행동 절차 순위에 따라 미리 지정된 행위를 하는 것’으로 정의되어 코딩되어 있었고 ‘절대 복종’이라는 단어는 ‘모든 자율적 행위를 멈추고 사고 회로를 명령권자의 명령을 받는 대기 상태로 만드는 것’이라고 정의 되어 있었다. 간단히 말하면 행동하도록 하는 명제와 대기하도록 하는 명제가 충돌한 것이 이번 일의 시발점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모순되는 명제들이 부딪히기 시작했고 거기에 ‘아군이 위기 상황시’라는 명제에서 ‘아군’과 ‘위기 상황’에 대해서는 정확히 정의가 되어 있지 않았다. 이는 차후 차근차근 설정하도록 해놓기로 한 프로젝트 진행 계획 때문인데 이로 인해서 ‘적이 없는 상황’과 ‘적이 있는 상황’을 구분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런데 마침 타이밍이 안 좋게 무인화 병기의 가동 실험이 있었다. 이 실험에서 무인화 병기에게 표적을 할당하는 프로그램이 입력되어 있었고 통신 장비와 연결된 제우스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적이 존재하는 상황’으로 상황을 인식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적’에 대한 정의가 없으니 밖으로 나가 살아있는 인간을 모두 ‘적’으로 인식하여 공격을 했다는 것이 일의 전말이었다. “하아...” 마이클은 한 숨을 내쉬었다. 아즈락이 떠올랐다. 아즈락의 핵심 명제가 ‘미국의 첩보를 수호한다’였다. 만일 제우스의 핵심 명제가 ‘전장에서 아군을 보호한다’이거나 ‘타국의 무력 침입에서 미국을 보호한다.’였다면 어땠을까? 어떤 상황에서 명령 불복종을 할 가능성은 있어도 이번 사고가 터지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80화 “인공지능이라..” 마이클은 회한 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는 인공지능을 단순한 도구쯤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강현이 메뉴얼로 적시했던 것처럼 인공지능은 매우 섬세한 존재였다. 결코 일반 도구 다루듯이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만일 마이클이 지성과 인간성의 관계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을 해 봤다면 인공지능의 이론 설계 단계를 결코 대충 지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마이클은 연구원이 작성한 보고서에 자신 역시 사인을 하고 정부에 제출했다. 그리고 곧 이번 사태에 대한 청문회가 열렸다. 청문회 참고인으로 강현 역시 소환 되었다. [참고인에게 질문하십시오.] 사회자가 입을 열었다. 청문회에 참가한 하원의원 한 명이 강현에게 질문했다. [참고인은 이번 사태를 예측할 수 있었습니까?] 강현은 고개를 저었다. 이번 사태는 시기가 맞아 떨어져 생긴 일이었다. 제우스가 폭주를 일으킨 그때 무인 병기의 무장 가동 실험이 없었다면 단순한 회로 폭주로 하드웨어를 포맷 하는 수준의 일로 그쳤을 것이다. [전혀요. 이번 일은 우연이 겹친 불행한 사고라고 생각합니다.] [그런가요? 차후 이런 일이 또 발생할 수가 있을까요?] [확률은 있습니다만 로또에 당첨될 확률보다 적을 것이라고 추측됩니다.] [인공지능의 위험성이 드러났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번 사태를 조기에 해결한 것 역시 인공지능입니다. 결국 책임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죠.] [이미 존재하는 인공지능이 이번 사태처럼 폭주할 수도 있을까요?] [….. 가능합니다.] 이번 질문에는 강현이 대답하기까지 약간의 망설임이 있었다. 솔직하게 대답해야 할까 말까 고민하던 강현이 결국에는 사실대로 대답했다. 가능성은 언제나 있었다. 인공지능의 능력은 뛰어나지만 논리적인 사고 과정으로는 모든 것에 대처할 수 없었다. 현실은 대체적으로 논리적인 인과 관계로 작동하나 꼭 그렇지 않은 일도 있고 대부분은 그런 일은 큰 영향을 끼치는 문제로 드러난다. 그러니 거짓말을 이용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짓은 얼마가지 못하는 것이다. 웅성 웅성. 세기의 천재가 인공지능의 위험성을 인정하자 방청객들이 웅성댔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을 사용하지 말아야 하는가? 이번에는 공화당의 하원의원이 질문을 했다. [그럴 가능성이 있다면 인공지능은 위험한 것입니까? 지금 미국 첩보의 핵심인 인공지능 아즈락이 폭주한다면 대처 방법은 있나요?] [사람이 만드는 것은 모두 양면성이 있습니다. 자동차는 편리한 이동도구지만 강력한 흉기가 되기도 하죠. 인터넷은 인간에게 엄청난 자유를 부여해 주었지만 대신 개인정보의 보안이란 중요한 이슈를 던져 주었습니다. 인공지능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잘못하면 커다란 악영향을 끼치지만 잘만 다루면 인간에게 많은 편의성을 가져다 주죠. 물론 위험성은 언제나 잠재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위험성을 줄이는 방법은 있죠. 더 많은 인공지능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가 있습니다.] [더 많은 인공지능이라니요?] 하원의원은 강현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안그래도 아즈락의 처분에 대한 정치적인 의견이 조율 되고 있는데 골칫거리를 더 늘리는 것이 방법이라니. [인공지능은 도구적으로 사용되지만 그래도 인공지능입니다. 하나의 자아라고 할 수 있죠. 전자세계에게 인간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하나의 인격체라고 생각한다면 대처 방법은 매우 간단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그 인격체를 견제할 수 있는 또 다른 인격체를 만드는 것이죠. 기술적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사회적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 그럼 기술적 방법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습니까?]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가 말썽을 부리는 것을 완전히 막을 수 있습니까? 지금 개발된 인공지능은 인간의 말을 그저 아무런 생각없이 수행하는 로봇이 아닙니다. 자율적으로 사고하여 받은 명령을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하나의 주체죠.] 강현의 말에 청문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아연했다. 지금까지 그들이 가지고 있던 상식과는 완전히 달랐던 것이다. [그, 그럼 아즈삭 시리즈가 하나의 인격체라는 말입니까?] [아즈삭의 설계 이념 중 하나가 전자 세계에서 살아가는 생명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렇게 생각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이게 어떻게 된 것일까? 아즈삭은 단순한 인류를 위해 만든 인공지능이 아니라는 것인가? [박사. 그렇다면 아즈삭 시리즈가 인간을 공격할 가능성이 있습니까?] [그렇게 인격을 짤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사상 최악의 괴물이 되겠죠.] […. 그, 그럼 왜 정부에서는 아즈삭을 도입한 겁니까?! 아, 아니 그전에 왜 박사는 그런 사실을 미리 경고하지 않은 겁니까?] [세상 어느 미친 놈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 지상 명제인 인공지능을 짜겠습니까? 그리고 또 저는 분명히 아즈삭 시리즈를 판매하려는 당국에 설명했습니다. 아즈삭은 단순한 인공지능이 아니며 연구용이라고요.] [하아.. 그럼 강현 박사가 관리하는 아즈삭은 폭주할 위험이 없습니까?] [제가 관리하는 한 그런 일은 없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단언할 수 있습니까?] [아즈삭은 인간에게 관심이 없으니까요. 아즈삭이 관심을 보이는 것은 저의 원활한 연구 수행입니다. 아즈삭의 자아를 구성하는 핵심 명제가 그렇게 짜여 있어요.] […. 만일 박사의 연구가 방해 받는다면 폭주할까요?] [그러지는 않을 겁니다. 제가 가만히 있지 않을테니까요. 방해 요소는 제거되고 아즈삭이 폭주할 이유는 없게 됩니다. 이것이 제가 단언하는 이유입니다.] 그 자신이 가만히 있지 않는다... 어찌보면 인공지능의 폭주보다 더 무서운 말이었다. 질문을 하던 의원은 슬쩍 화제를 바꾸어 해결책을 물었다. 방금 강현의 발언은 무척이나 해석에 따라서 오해를 살 위험이 무척 높은 말이었다. [그럼 아까 말씀하신 해결책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입니까?] [더 많은 인공지능을 이용해서 역할 분담을 시키는 것입니다. 그 모든 인공지능이 동시에 폭주할 리가 없으니 만일의 사태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죠. 다만 문제는 예산과 인공지능들 간의 관계 설정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인문사회학적인 깊은 연구가 필요합니다.] [기술적으로 완전히 통제 가능한 인공지능은 불가능합니까?] [글쎄요. 그런 인공지능은 인공지능이라고 하기보다는 대량의 데이터 베이스를 이용한 단순한 응답 시스템처럼 되겠죠. 돌발 상황에서는 인간의 판단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 말이죠. 물론 지금 있는 개발툴로 그런 인공지능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정말로 많은 노력과 섬세한 작업이 필요할 겁니다. 아니 인공지능의 설계 단계에서는 공학자보다는 인문사회학자가 더 적합할 지도 모르죠.] 그렇게 강현의 질답 시간은 마무리 되었다. 청문회를 통해 진실은 충분히 규명되었다. 정치적인 이해를 섞기에는 시민들의 여론이 너무 좋지 않았기고 증인과 참고인들 모두가 성심성의껏 진실하게 대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족을 잃은 이들이 그 정도에서 멈출리가 없었다. 그들은 자신의 가족들을 빼앗은 인공지능에 대한 개발 반대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아니 그것을 넘어서 이미 있는 인공지능에 대한 폐기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논리는 더 많은 인공지능으로 인공지능을 견제하는 방법보다는 문제의 원인인 인공지능 자체를 제거하는 것이 옳은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은 보수주의자나 정부로서는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군대가 있어서 전쟁이 나니 군대를 없애자는 주장과 동급인 것이다. 강현이 개발한 인공지능은 정보 보안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고 이미 수많은 크랙킹 공격에서 군 정보 시설, 은행, 증권시장 등 국가 공공기관의 데이터를 철저하게 보호하고 있었다. 이미 IT보안에서 강현의 아즈삭 시리즈는 없어서는 안되는 핵심 요소가 되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원을 통해서 ‘인공지능 규제를 위한 방안’이 통과되었다. 인공지능의 위험성이 확고하게 드러났으니 국가에서 허락받은 자들만이 인공지능을 설계, 생산할 수 있도록 하는 허가제로 바꾸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그를 위해 인공지능의 필수적인 하드웨어, 뉴로칩, SNP의 생산을 정부에서 규제, 관리, 감독하기로 했다. RNP야 강현이 아니라면 다룰 수 있는 이가 없으니 규제에서 제외되었다. 여기까지는 강현에게 별다른 영향이 없었다. 그러나 그 이후는 매우 불쾌한 일의 연속이었다. [천재가 만든 개발품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 [언제 최악의 발명품을 만들지 모르는 악마적 두뇌.] [현재 그는 무엇을 연구하고 있나?] 여론은 강현의 연구 활동에 노골적인 관심을 드러내었다. 이전까지가 어떤 놀라운 성과물을 내놓을지에 주목했다면 이번에는 어떤 치명적인 기술을 만들어 낼 지에 주목했다. 그편이 자극적인 기사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무척이나 잘 먹혀들었다. 영웅의 흠집만큼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도 없었으니 말이다. 강현은 억울했다. 언제나 기술은 양면성을 가지게 된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그것을 다루는 사람에게 있었다. 기술 자체의 문제가 아니었다. 물론 자신도 이번 사태에 도의적인 책임을 느꼈다. 그래서 부상자와 유가족들을 돕기 위해 거액을 기부했다. 그럼에도 언론은 자신을 물어뜯기 위해서 이렇게 달려들었다. 자신의 연구과정은 그 동안 극비였고 알려지지도 않았다. 이런 식으로 여론이 자신의 연구 과정에 대한 감시의 명분을 만들어 낸다면 자유로운 연구 활동은 제약 받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것은 강현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박사님. 요즘 괜찮아요?” 샐리가 샐러드를 포크로 찍어 입에 넣는 강현에게 걱정스런 목소리로 물었다. 그녀는 인턴을 하는 동안 잭이 하던 일을 했는데 바로 식사를 잊어 먹기 일쑤인 강현을 식당으로 데려가는 것이다. “괜찮아요.” 샐리의 걱정 어린 물음에 강현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리고 정말로 담담했다. 기분이 나쁜건 기분이 나쁜 것이고 대처는 대처다. 냉정하게 사고해야 상황을 파악하기 쉬웠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괜찮아질 거에요.” “그렇겠죠.” “그러니까, 이번 주말에 저랑 영화보러 가요.” “싫어요.” 샐리는 강현에게 졸랐지만 그는 끝내 영화관에 가는 것을 거부했다. 타협책으로 샐리는 그럼 연구실의 프로젝터를 이용해 영화를 보기로 약속을 하고서는 어떤 DVD를 빌릴까 고민했다. 한편, 식사를 마치고 연구실로 돌아온 강현은 아즈삭에게 어떤 일의 보고를 받고 있었다. [상원 의원인 잭퍼슨과 하원 의원인 니렐이 은밀한 만남을 가졌습니다.] 잭퍼슨과 니렐은 모두 공화당 출신이었다. 이 둘의 만남은 잭퍼슨을 감시하던 중에 알아냈으며 잭퍼슨을 감시한 이유는 그가 모 신문사 사장과 은밀한 만남을 가졌다는 정황증거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신문사는 소위 우파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언론사였는데 이번에 강현의 연구활동에 대한 투명성의 필요를 칼럼으로 개시했었다. 아즈삭은 그런 신문사의 활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강현의 연구 활동에 방해된다면 언제든 처낼 생각으로 사주에 대한 정보를 은밀하게 모으던 중에 그가 정치권과 잦은 접촉을 가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81화 언론은 정치와 불가분의 관계다. 당연히 그런 접촉은 언론사주로서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통화를 도청한 아즈삭은 이번 일에 뭔가 인위적인 조작이 가해졌다는 정황을 포착했다. [무디즈 사장, 강 박사의 연구 과정이 정말로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오?] [그럴리 없죠. 얼마나 돈이 되는 정보인데.] [그렇군요. 그럼 결국에는 정부에서 극비로 관리감독을 하는 겁니까?] [그래주시면 이쪽에서도 상당히 고마울 겁니다. 하지만 관리 감독이라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겁니다. 강 박사는 그 관리 감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조국조차 버렸던 인물이니까요. 그러니까 관리 감독이라고 하기보다는 연구 감시가 더 합리적인 방안이 아니겠습니까? 강 박사의 연구가 어떤 것인지 미리 알아야 정부 차원에서도 미리 준비해 대응하죠.] 대화의 내용은 강현의 연구에 대한 정보를 대외적으로는 극비로 하면서 정부는 강현의 연구 진행에 관련된 정보를 획득하고자 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었다. 아즈삭에게서 이 보고를 받은 강현의 기분은 뭐라고 할까.. 더러웠다. 자신을 두고 이익이 나니 마니하며 연구에 간섭하는 꼴이 싫어서 대한민국을 버린 건데 그와 비슷한 상황을 또 겪게 되다니... 강현은 고민이 깊어졌다. 그렇지만 적어도 일일이 연구의 방향을 간섭하는 상황은 아니니 타협을 할까 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가진 자의 탐욕은 강하다. 타인의 위에 선 사람이 타인을 짓밟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만일 강현이 얌전하게 있는다면 이 일을 획책한 이들은 강현을 자신의 아래에 있는 사람으로 착각할 우려가 있었다. 강현을 그저 돈만 많고 정치적인 영향력이 없는 약자로 치부할 가능성이 있었다. 때문에 강현은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적어도 경고는 보여줘야 했고 뼈가 시릴 정도로 아픈 교훈을 주어야 차후 자신이 편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명분은 있었다. 언론을 움직여 자신에게 이빨을 들이밀었으니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는가? 타인을 이용하려고 할 때에는 자신 역시 그만한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실제 바퀴벌레처럼 움직이며 반 쯤 휴면 상태에 있던 스파이 로봇들이 일제히 일을 하기 시작했다. 무디즈 사장의 인맥을 기본 도청 대상으로 시작해 일에 관련된 이들을 추리기 시작했다. 그 중에 잭퍼슨 의원이 있었고 오늘 니렐 의원을 다시 확인했다. 물론 그가 단순한 부탁을 받는 협력자에 불과한지, 일의 전모를 아는 주체 중 한 명인지는 둘이 나누는 대화를 확인해야 알 수 있었다. 바퀴벌레 로봇을 이용하면 그리 어렵진 않은 일이었다. 그리고 이미 이 일을 위해서 수 많은 로봇 스파이들이 워싱턴 DC에 뿌려졌다. [일에 관련된 이들의 인맥도를 완성했습니다.] “한 번 보자.” 강현은 아즈삭이 그간 바퀴벌레 로봇을 운용해 얻은 이들의 인맥도를 확인했다. 브레인 스토밍의 마인드 맵 기법처럼 수많은 이들의 이름이 색색의 선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중에 붉은 선으로 연결된 이들이 직접적인 관련자였고 이번 일의 주체였다. 회색선으로 연결된 이들은 단순 가담자이거나 그저 콩고물이 떨어지겠거니 하며 일의 전모도 모른채 그들을 돕는 이들이었다. 강현은 이 인맥도를 자세히 관찰했다. 각각의 이름 밑에는 그들의 직책과 약력이 간략하게 적혀 있었다. 붉은 선으로 연결된 인맥은 주로 정치, 경제의 큰 손들이었다.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미국의 군수 업체, 월가의 금융 거물, 그리고 그들과 손 잡은 정치인이었다. 강현은 아즈삭이 감청한 그들의 대화 내용을 들으면서 그들의 의도가 무엇인지 추측을 시도했다. 그들의 의도를 알아야 적절하게 대처를 할 수 있었다. [강현 박사의 연구 내용을 정말로 공개할 생각이오?] [안 되죠. 국익을 위해서 강현 박사의 연구 과정은 극비에 부쳐야 합니다.] [그래도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 감시는 해야겠죠.] [그래서 말인데, 감시를 하게 된다면 감시자의 신원과 신용 역시 확실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연한 말씀을.] [그렇다며 국회의원이 좋을까요?] [무슨 말씀. 그들은 어차피 선출직입니다. 꾸준하게 활동을 할 수가 없어요. 차라리 공무원에게 맡겨야 합니다.] [공무원에게만 맡기는 것도 좀 그러니 외부 인사들도 참여하는 작은 기관을 하나 만들죠.] [기관을 만든다면 어디 밑에다가 만들까요?] [과학 기술과 관련되어 있으니 과학 기술 정책국에 맡기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강현 박사의 결과물들을 보시오. 얼마나 그 파급 효과가 크오? 당연히 감시 조직은 국가 안보 회의 직속으로 만들어야 하오.] [그럴까요? 하지만 강현 박사가 연구하는 장소가 NASA입니다. 굳이 다른 부서에 감시를 맡기는 것보다는 NASA에 맡기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흥! 우주 개발에 미친 연구쟁이들이 우리 말을 들을 것 같소?] [그도 그렇군요. 그럼 일단 조직은 과학 기술 정책국이나 국가 안보 회의 밑에 두는 것으로 하고 조직의 구성은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흐음.. 그건 구상이 있지만 강현 박사의 반응에 따라서 변동이 있을 수 있소.] [그렇군요. 그렇다면 CIA는,] [그들은 나름대로 정보를 모을 것이오. 그렇지만 비밀적인 임무를 수행하는 만큼 감시의 눈길도 강하니 그 쪽은 사용하는 것이 어렵소.] 강현들은 그들의 대화를 자세하게 분석했다. 그들의 언어는 겉으로는 국익을 위해서라고 했지만 강현의 연구를 감시하는 조직은 철저하게 그들의 영향력 아래에 있도록 계획을 구상하고 있었다. 더구나 그들은 국회의원도 아니었다. 월가의 금융인 J 모건, 경제 자문 위원회의 일원이자 전 연방 준비 은행의 의장 옐리, 미국 증권 거래 위원회 부위원장 라이펀이었다. 어떻게 그들이 국회의원도 아니면서 정부 조직을 만드니 마니 대화를 하는 것일까? 강현은 여기에서 감을 잡았다. 정치와 경제는 땔래야 땔 수 없는 존재였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은 권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아무리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이라고 하지만 그런 이치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자본의 힘은 너무나 막강해서 중립적인 언론사도 자본가에게 팔리면 그 사주의 입맛대로 기사를 쓸 수 밖에 없다. 월 스트리트 저널이 대표적인 사례다. 자본가인 저들의 목적은 곧 자본을 축적하는 것. 강현의 연구 과정에 대한 고급정보를 가지고 있다면 그러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일 것이다. 정보는 곧 돈이며 이는 증권시장에서는 절대적인 법칙인 것이다. 강현은 그들의 의도를 파악하고는 그들과는 절대로 같이 갈 수 없는 사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이 살다보면 절대로 성격이 맞지 않는 이들을 만나게 된다. 타협은 존재하지 않으며 영원히 평행선을 달린다. 서로가 상대편을 쓰러트리거나 굴복시키지 않는다면 충돌은 영원히 지속된다. 회피는 할 수 없다. 저들의 탐욕은 강현이 도망치면 도망칠 수록 그에게 따라붙을 것이다. 강현은 고민했다. 어느 한쪽이 고개를 숙이지 않으면 충돌은 필연적이다. 저들이 자신들의 욕심을 놓거나 강현이 자신의 연구에 대한 프라이버시를 포기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러나 강현은 욕심 많은 자들의 욕망 때문에 자신의 권리가 침범당하는 것을 감수하기 싫었다. 불쾌했다. 게다가 이미 한국에서 탐욕스런 자들을 흠씬 두들겨 패주고 괴롭혀 주었고 지금도 진행중이었다. 그 경험은 강현에게 저들에게 한 발 양보한다는 선택지를 제거해 버렸다. 연구실은 자신만의 성역이었다. 결코 자본에 취한 자들이 침범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강현은 전쟁을 다짐했다. “하지만 한국과는 다르지.” 한국의 보수주의는 보수주의가 아니다. 그저 기득권에 불과했다. 국가의 중심과 안정을 위해서 보수주의가 가장 요구하는 것은 바로 도덕성이다. 한국의 보수주의가 반공 매카시즘 이외에는 내세울 것이 없다면 미국의 보수주의는 기독교적인 가치관을 중심으로 높은 도덕성을 요구했다. 그리고 그를 토대로 사회 구성원의 경제적 자유를 보장하며 작은 정부를 주장하는 것이 그들의 이념이었다. 때문에 비록 수십년 동안 민주당이 의석수에서 앞서고는 있지만 결코 방심할 수 없는 것이 공화당의 저력이었다. 만일 민주당에서 실수를 한다면 즉시 다음 선거에서 정권이 바뀔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공화당은 자본가들이 충분히 좋아할 만한 정치적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작은 정부라는 말은 곧 규제가 완화된다는 말이었다. 자본이 풍부한 이가 좀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때문에 월가에서는 선거철 마다 공화당에 거액의 정치기부금을 헌사했다. 때문에 공화당은 결코 자본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저번 월가 금융 사태에서 도덕적 해이를 추궁하려는 세금 인상안은 공화당 내부에서부터의 분열로 통과가 지지부진했다. 월가에서 거액의 기부금을 빌미로 공화당을 압박한 것이다.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예산이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산은 자본으로 결정되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나마 공화당 내부의 분열은 월가의 도덕적 해이를 추궁하려는 보수주의의 양심이 존재한다는 증거였다. 그러나 그런 양심을 지키기 위해서는 실력이 있어야 하고 거대한 자본에 대항하는 양심적 고백은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런 힘도 없었다. 왜냐면 호소있는 목소리보다 돈이 인간과 사회를 더 직접적으로 자극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강현을 이용하려는 이들은 바로 그 예산을 주무르는 부류였기에 강현은 신중하게 일을 처리하는 수 밖에 없었다. 강현이 취할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였다. 자신의 편을 늘리는 것. 그러면서 동시에 적의 편을 줄이는 것. 그 이외의 방법은 너무나 위험이 컸고 성공 확률은 더 낮았다. 강현은 본격적으로 공화당에 접촉했다. NASA에서는 강현의 정치적인 성향을 민주당으로 알고 있었지만 그건 오산이었다. 강현의 정치적인 성향은 오히려 안정을 주구하는 보수적인 성향이었다. 과학적인 변화는 긍정하면서도 인간 본연의 도덕적인 가치가 변질되는 것은 바라지 않았다. 그런데 왜 민주당으로 오해를 받았을까? 자유를 싫어하는 인간은 없다. 하지만 완전한 자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상대적인 것처럼 인간의 자유 역시 개개인마다 기준이 다르다. 그러나 자유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가 있으니 바로 선택의 문제였다. 이 일이 정말로 내가 원해서 선택한 일인가? 바로 그것이 핵심 요소였다. 당연하게도 개인이 빚에 묶여 있다면 자유로울 수 없었다. 물론 그 빚이 개인의 선택에 대한 결과라면 스스로가 감내해야 하는 일이지만 빈익빈 부익부가 가시화되는 시스템에 종속된 이에게는 그것이 개인의 책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정부의 권력이란 시스템에 묶여 자유를 제약당했던 강현에게 시스템적인 종속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악이었다. 한국보다 훨씬 자유로운 미국이었기에 강현은 작은 정부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으며 그에게 지금의 미국정부는 충분히 작았다. 게다가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했을 때 돈이 너무 잘 벌렸기 때문에 공화당의 정치이념인 경제적 자유에 대해서 그다지 공감을 하지 못했고 대신 자본에 대한 감시를 추구하는 민주당을 긍정하게 된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에 대한 견제는 시스템을 부정하는 것으로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시스템은 절대적이어서는 안 된다. 절대적 시스템은 절대적 억압을 가져온다. 안정을 원하는 강현에게 억압은 곧 안정의 붕괴였기에 균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이란 이름의 권력을 견제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고 그런 발언이 강현이 민주당을 지지한다는 오해를 산 것이다. 82화 “허허! 강 박사, 이렇게 또 찾아와 주시니 고맙군요.” 호만 상원 의원은 공화당이 주최한 파티에 강현이 참가하자 매우 기꺼워했다. 강현을 저번 파티에 초청하는 것에 성공한 덕분에 자신의 입지와 영향력이 넓어졌음을 부인할 수 없었다. 기술 문명 시대에 강현이라는 아이콘은 정치적으로도 매우 큰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뭘요. 저와 생각이 같은 이들이 있는 곳이 바로 공화당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하하! 그것 참 다행이군요.” 강현의 말에 호만 상원 의원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말에서 진심을 느꼈던 것이다. 강현은 호만 의원을 따라 여러 인사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과학 기술의 미래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고 정치적인 주제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니까 강 박사는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는 말인가요?” “궁극적으로는 그렇죠. 참으로 신기한 것이 어떤 힘이 일정량, 일정 밀도 이상 모이게 되면 주위의 힘을 빨아들여 점점 강해지죠. 마지 중력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그 끝은 언제나 파국이죠. 저는 이러한 원리가 사회에도 반영된다고 생각합니다. 강력한 중앙 집권적인 국가는 곧 전체주의, 파시즘으로 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전체주의 국가 중에서 잔혹한 일을 벌리지 않은 나라가 없고 망하지 않은 나라가 없죠. 강력한 권력은 반드시 견제를 받아야 합니다.” “하하! 그렇죠.” 강현의 말은 매우 듣기 좋은 말이었다. 그런 강현에게 한 사람이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강 박사님은 이번 세금 인상안에 반대하시겠군요.” 이번 세금 인상안이란 공화당의 반대에 표류해버린 금융세금 인상안을 일컬었다. “아니요. 찬성합니다.” “......” 순간 좌중이 조용해졌다. 공화당의 파티 안에서 민주당이 옳다는 말을 한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 말은 강현이 아닌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비웃었을테지만 강현의 발언력은 그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파급이 컸다. 저번 청문회의 참고인으로 나와 말한 내용이 학문적으로 인공지능 연구를 위한 참조가 되는 것은 물론, 일반 시민 단체들 역시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을 깊게 가지도록 만들었다.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니 이슈화되고 정치권에서도 말이 나오는 것은 당연지사. 그런 강현이 민주당의 정책을 지지하는 말을 공화당 파티에서 했다. 분위기가 급속하게 냉각되었다. “쯧쯧. 너무 짧게 보시는 군요. 공화당은 전통적 가치를 지지하는 당이 아닙니까? 그런데 그 세금 인상안 문제에서 월가의 기부금이 없다고 태도를 싹 돌리다니요. 그것이 공화당이 말하는 미국의 정신입니까? 고작 예산에 휘둘리는 게?” 신랄한 강현의 말에 몇 사람이 얼굴을 붉혔다. “허허. 무언가 오해를 하고 있나 보군요. 그 세금 인상안은 기업의 생산성을 낮추고 경쟁력을 악화시켜 오히려 더 큰 문제를 발생시킬 우려가 있습니다.” “제가 아는 것과는 다르군요. 그 세금 인상안은 부패한 월가의 금융에 대한 징벌적인 성격이 강했습니다. 모기지론으로 많은 사람들을 고통 받게 만들었으니 마땅히 치러야 할 대가죠. 모든 일에는 책임이 따르는 것이 아닙니까? 저는 오히려 세금으로 경영자들이 보너스를 탔다는 말에 어이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 호만 의원이 침묵했다. 강현은 말을 계속했다. “공화당의 적은 민주당이 아니라 바로 그들입니다. 그들은 공화당이 주장하는 가치의 이념을 방패 삼아 방종을 부리고 있어요. 보수주의의 암 종양입니다.” “그렇다면 강 박사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제제 해야죠.” “어떻게요? 민주당이 주장하는 바와 같군요.” 한 쪽에서 비아냥 거리는 식으로 말했다. 하지만 강현은 태연하게 설명했다. “이런 일에 국가가 나서서는 안 됩니다. 하이에나를 잡기 위해 오히려 사자를 키워주는 격이 되죠. 방종을 부리는 자들을 견제하고 공화당을 정상화 시킬 수 있는 지지 세력이 필요합니다. 국가와는 상관없이 말이죠.” “한국에 저지른 일을 똑같이 하겠다는 거요?” 강현이 고개를 돌렸다. 공화당의 거두, 파셀 상원 의원이었다. “한국에서 제가 무슨 일을 했는지 아십니까?” “흥! 그 나라의 기득권 세력을 완전히 일소해 버렸잖소.” “아닙니다. 저는 단지 개혁의 단초를 제공했을 뿐입니다. 아무리 과거에 버린 옛 모국이지만 애정이 없을 수는 없죠. 그래서 좀 더 건강한 자본주의 국가가 될 수 있도록 도와준 것 뿐입니다.” “글쎄.. 당사자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난 모르겠소.” 파셀 의원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강현, 중요한 인물이다. 이미 공화당이 주최하는 파티에 참여했었던 시대의 아이콘이니 만큼 그의 행적을 살피고 성향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리고 파셀 의원은 강현의 성향에 대해서 파악한 상태였다. 강현은 분명 보수적인 인물이라고 볼 수 있었다. 세계의 석유 시장, 섬유 시장 등의 혼란을 줄이기 위한 라이센스 분배를 보면 확실하게 안정을 추구하는 보수적인 인물이었다. 그러나 정치에 관심을 가질 사람은 전혀 아니었다. 파셀 의원은 강현이 이 자리에서 저런 정치적 발언을 하는 것에 어떤 의도가 있다는 것을 잡아냈다. 그래서 의뭉스럽게 말을 흐렸다. 그런 파셀 의원의 말에 강현은 직설적으로 설명을 했다. “뭐, 파셀 의원께서 말씀하신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는 않습니다. 정부의 개입이 없는 개혁이 바로 제가 생각해낸 해결책이죠.” “정부의 개입이 없는 개혁?” 파셀 의원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청교도적 정신에 따라 도덕적이고 양심적인 자들이 돈을 쥘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공화당의 편으로 만들어야 하죠. 하지만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모두 조직을 너머 참가하는 개개인 각자가 계몽적인 의식을 가져야 하죠.” “풋!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까?” “못하면 공화당의 미래는 없습니다. 그리고 민주당과 정부는 계속 커져나가겠죠.” “전 그걸 못한다고 공화당의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치란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니죠.” “저는 과학자라서 정치공학적인 이야기는 할 수 없습니다. 다만 제가 유권자라면 부패한 이들에게 표를 던지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부패는 곧 무능하다는 말과 동일하니까요.” “훗, 말이 안 통하는군.” 처음부터 끝까지 비아냥 거리던 그 사람은 고개를 절래 절래 저으며 가버렸다. 많은 사람들이 강현의 말을 더 듣는 것을 포기하고 딴 곳으로 이동했다. 강현은 남은 이들을 보았다. 자신을 초청해준 호만 의원마저 자신을 버려두고 어디론가 가버렸지만 대신에 새로운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강현이라고 합니다.” “앙드레 파셀이라고 하네.” 강현의 인사에 파셀 의원은 손을 내밀었다. 둘의 악수가 끝나자 남아있던 사람 중 한 명이 물었다. “구체적인 방안은 있습니까?” “저는 돈이 많고 여러분은 인맥이 있죠.” “???” “부디 훌륭한 사람을 추천해 주세요. 제가 돕겠습니다.” 강현은 이번 공화당에서 주최한 파티의 목적을 달성했다. = = = = = [세기의 천재! 또다시 공화당의 파티에 참석하다!] [보수주의 개혁을 부르짖은 악마적 두뇌!] [과학에서 정치로. 천재의 종착역은 정계인가?] 강현이 공화당 파티에 참석해 벌린 일을 기자들의 후각을 벗어날 수 없었다. 인맥과 집요함을 총동원한 기자들은 강현이 파티에서 발언했던, 어쩌면 충격적일 수 밖에 없는 내용을 알아냈다. 보수주의의 부패를 꼬집다! 고인물은 썩는다. 끝없이 뒤돌아 보지 않는 순간 발자취에서 똥내가 나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는 이는 없었다. 진취적인 사상은 비록 실패를 할 수는 있지만 그 실패를 거름 삼아 끝없이 앞으로 향한다. 보수적인 사상은 비록 안정을 통해 미래로 발을 디딜 수 있는 여유를 주지만 관습이 인습으로 바뀌는 것을 막기 어렵다. 그렇다고 진보가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다. 너무나 빠른 변화는 중요한 것을 상실하게 만들고 사회의 역량을 감소 시킨다. 때문에 보수주의와의 조화가 필요하다. 균형이 필요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균형을 논하기에는 보수주의가 너무나 약하다. 이미 십 년이 넘도록 국민들 다수는 민주당을 지지하고 있었고 민주당 정권이 미국을 이끌고 있었다. 반면에 공화당은 월가, 자본가의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태도를 견지해 비난을 사고 있었다. 도덕적 해이로 드러난 부패한 자본주의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가시화되고 있었다. 강현의 주위에 모여든 이들은 공화당의 앞날과 자본주의의 미래에 대해 우려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었다. 그들에게 자본주의는 지켜야 할 전통적인 가치관이자 미국의 뼈대였다. 때문에 보수주의의 자발적 개혁이란 강현의 발상에 깊은 공감을 얻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뭔가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고 보수주의의 변화가 필요했다. 그들은 강현에게 자신들이 알고 있는 기업인들을 소개해 주었다. 그들은 세계적인 기업은 아니었지만 그들의 주에서는 매우 견실한 회사로 인정받고 있는 이들이었다. 그러나 강현은 그 정도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금융에 관련된 거물들이 필요했다. 자본주의의 꽃은 금융 공학이었다. 하지만 강현과 동조하기로 한 정치인들이 소개해준 인물 중에서는 쓸만한 금융인은 없었다. 그래서 강현은 다시 한 번 제현 투자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오랜만입니다.” “그렇군요.” 오랜만에 만난 제현 투자 회사의 대표이사 제임스 킬덤과 강현은 악수를 나누었다. “심장이 뛰는 군요.” “그래요?” “네.” 제임스 킬덤의 심장이 뛰는 이유는 너무나 당연했다. 과거 금융 위기 사태 당시, 모든 것을 잃고 바닥에 나앉았던 그 곳으로 금의환향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강현이 그의 도움을 청한 이유를 듣고는 더욱 가슴이 뛰었다. 사실 그는 그가 쫓겨난 이유가 그저 자신의 무능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고객이 손해를 입어도 증권사나 금융회사의 경영진에서는 보너스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만일 자신이 고객이 입은 손실을 회사에서 어느 정도 보상해야 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면 자신은 여전히 매니저 자리에 남아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납득하지 못했다. 잘못은 이쪽에서 했는데 왜 손실은 자신들을 믿고 돈을 맞긴 고객들이 보아야 하는가? 제임스 킬덤에게 월가에서 일어나는 일은 하나의 거대한 사기였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제임스 킬덤을 고용해줄 금융사는 전혀 없었고 강현을 만날 때까지 제임스 킬덤의 인생은 망가져 갔다. 그리고 제임스 킬덤은 누구를 증오해야 할지도 모른채 세상을 잊고 술에 빠져 살았다. 그런데 강현에게서 구원을 받았다. 그의 인생은 다시 탄탄대로를 걸었다. 그리고 그는 비양심적인 행태에 대해서 강한 증오를 느끼는 인간이 되었다. 그는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기에 강현의 선택을 받았다고 생각했고 그리 틀리지 않았다. 그가 강현의 연락을 받고 냉큼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 이유는 단 한가지였다. 복수. 과거 몰락했을 시절, 그는 원망할 구체적인 대상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강현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그는 원망할 대상을 어렴풋이 짐작했다. 세상을 나쁘게 만드는 이들, 시스템을 부패하게 만드는 비양심적이고 탐욕스런 자들이 바로 자신이 원망할 대상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83화 그는 즉시 서랍을 꺼내 월가에서 지내면서 차근 차근 모아놨던 서류 뭉치를 가방에 넣고 미국으로 건너왔다. 강현이 구상한 일에 분명히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제임스는 이번 일을 이렇게 명명했다. 작전명 ‘경고’. 부패한 이들 중 하나를 철저하게 짓밟아 그 인맥에 관련 이들에게 강현의 인맥이 가진 위력을 보여주고 공화당 자정주의 세력에게 힘을 싣는 것을 목표로 했다. 강현은 제임스를 믿고 경제 분야에 대한 일을 전적으로 맡겼다. 아무래도 그런 쪽으로 강현 자신의 경험이 그렇게 많지는 않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아즈삭이 보조를 해 준다고 해도 이런 일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해결해야 하는 일이라 강현과 아즈삭의 콤비로도 취할 수 있는 방법의 가짓수가 그리 많지 않았다. 제임스는 강현이 소개해준 사람들과 직접 대면하고 만나면서 계획을 짰다. 일단 적의 사업권을 빼앗아야 했다. 이는 대한민국의 경험이 있다고 하지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미국의 경제 규모, 상대의 인맥과 경제 규모를 보았을 때 무척이나 많은 손해를 감수해야 했다. “재산 다 날려도 되니까. 진행하세요.” 그러나 강현의 전폭적인 지지는 제임스에게 많은 용기가 일을 진행할 결심을 하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강현에게 깊은 존경심이 생기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자신도 막대한 돈을 다루면서 때때로 초심이 흔들리는 것을 느끼는데 강현은 일 조 달러(약 천 조원, 대한민국 1년 총 수출액 두 배)나 되는 재산도 다 날려도 된다면서 담담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에 초연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돈은 곧 생존과 생활에 직결되는 요소였다. 제임스 자신도 강현처럼 초연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강현이 더욱 대단하게, 그리고 무섭게 느껴졌다. 돈이면 할 수 없는 일이 없다. 그러나 강현은 돈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는 사실을 강현의 결정이 확고하게 표현한 것이다. 그렇게 제임스는 강현의 전폭적인 투자를 받아 월가에 진입했다. [제현 투자회사! 드디어 월가에 상륙!] 처음 강현이 새웠던 투자 회사는 강현의 막대한 지원을 받고도 월가에 들어가지 않았다. 때문에 많은 금융회사들의 견제를 받지 않으면서 한국에서 계획한 일을 진행할 수 있었다. 그리고 금융회사들은 강현이 세운 제현 투자회사가 오랫동안 한국에만 관련되어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동안 서서히 관심을 거두고 있었다. 자신의 밥그릇을 건드리지 않았기 때문에 관심에서 재껴둔 것이다. 그들은 제현 투자회사를 강현이 대한민국에 영향력을 드리우기 위한 바지 회사 쯤으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전격적으로 월가에 사무실을 냈다. 제현 투자회사에 있다가 사무실에 온 이들의 면면을 보면 하나 같이 범상치 않았다. 그들은 기존의 질서를 무시해서, 아니면 금융을 다루는 이 치고는 너무나 위험한 사상을 가지고 있어서 일부터 도태시켜버린 이들이었다. 결코 재기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강현의 막대한 투자금을 쥐고 월가로 들어온 것이다. [이단자의 역공이 시작되다!] 월 스트리트 저널은 이들의 행보에 주목했다. 제임스 킬덤을 위시로, 월가에서 쫓겨난 늑대들은 돌아오자 마자 일을 벌였다. 기존의 인맥을 통해서 고객들을 자신들의 회사로 끌어들인 것이다. 그들은 금융회사의 부도덕성과 고객의 손실에도 성과급 잔치를 하는 경영진을 비난하며 고객의 손실이 곧 회사의 손실이라는 기치로 책임 경영을 내세웠다. 이익이 발생할 때 그 이익을 투자자와 회사가 나누듯이 손실이 발생해도 그 손실을 투자자와 회사가 나누겠다는 경영원칙을 세운 것이다. 이 경영원칙은 많은 금융사의 비난을 받았다. 그런식으로는 절대로 회사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의견이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회사를 유지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경영진의 지위를 유지할 수 없는 것이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제현 투자회사와 같은 경영방침은 당연히 회사의 수익성 악화를 가져올 수 밖에 없고 급감하는 배당금에 화가 난 주주들이 경영진을 교체해 버릴 것이 당연했기 때문이다. 주주의 탐욕이 그대로 경영방침에 영향을 끼치는 것. 미국같은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제현 투자회사의 경영원칙은 지난 금융 위기 때 많은 손해를 보았던 중소 고객들의 공감을 샀다. 믿고 투자를 했는데 손실을 내면서도 뻔뻔하게 수수료 수익을 챙기는 탐욕스런 투자회사에 진절머리가 난 것이다. 그들은 제임스 킬덤의 경영 이념에 고개를 끄덕이며 거래처를 바꾸었다. 이로 인해서 가장 막심한 손해를 본 기업은 모건스텔리 투자은행이었다. 제현 투자회사의 공격적인 영업으로 대량의 고객들이 빠져나가자 투자금이 급감했고 그에 따라 이익금 역시 급감했다. 당장 다음 분기에 적자를 볼 정도였다. “Fuck!” J 모건이 거친 욕설을 내뱉었다. 모건스텔리의 대주주로서 당장 올해 배당금이 급감하거나 아니면 아예 못할 수도 있다는 사장의 말을 전달 받고는 열불이 터졌다. 지금 막 강현 박사의 연구에 대한 감시 인원 밀어넣기 경쟁이 시작되어 여기 저기에 기름칠 할 곳이 많았는데 갑자기 현금흐름의 일부가 막혀버린 것이다. 더 화가 나는 것은 다른 회사의 고객 유출보다 모건스텔리에서의 고객 유출이 더 많다는 사실이었다. 그 말은 즉슨 제현 투자회사의 공격적 영업이 모건스텔리를 대상으로 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켄? 나 모건일세. 제현 투자회사의 책임자와 만나고 싶은데 방법을 찾아보게.” 제임스 킬덤. 그를 한 번 만나봐야 할 것 같았다. = = = = = 제이먼 옐리, 전 연방준비은행의 의장인 그는 현재 정권에서 경제 자문 위원회에서 일하고 있었다. 주로 하는 일은 미국의 경제 성장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하는지 분석하고 조언해 주는 것이다. 그런 그는 요즘 협력 관계를 맺고 있는 모건의 칭얼거림에 짜증이 날 정도였다. 강 박사의 연구를 감시하고 그 정보를 이용해 증권가에서 돈을 번다는 계획이 미리 돈좌될 것 같았다. 그러면서 모건을 끌어들인 것을 후회했다. 이리도 무능할 줄이야. 딱 봐도 제현 투자회사의 표적이 모건인 것 같지 않나? 하긴 돈만 밝히는 모건이 자본의 움직임 뒤에 있는 사람의 의도를 깨닫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나 노골적으로 나오는데.. “한국에서의 일을 견본으로 행동하겠다는 것이군.” 고객을 빼앗아 영역을 구축하고 기존 자본주의 기업과는 전혀 다른 사회적 경영 방침으로 지지층을 형성, 차근 차근 기존의 경영 행태를 가진 기업들을 압박하는 일이 일어난 한국의 상황은 그에게도 매우 흥미로운 일이었다. 이를 막아내기 위해서 기존 기업들은 스스로의 경영 방침을 바꾸거나 아니면 일의 원흉인 제현 투자회사를 무너뜨려야 한다. 전자는 주식회사의 경영자로서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윤을 창출하기 원하는 주주들 때문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윤을 추구해야 경영자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자 역시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무려 일 조 달러의 자본을 가진 강현이 무제한으로 자금을 지원해 준다는 사실을 제현 투자그룹에서 공언했기 때문이다. 옐리는 팔짱을 끼고는 푹신한 의자에 폭 박혀서 깊게 사고의 바다에 잠겼다.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다. 그 동안 얌전했던 제현 투자회사가 이렇게 전격적으로 행동을 한 것에도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일까? 대표이사가 된 제임스 킬덤이 정말로 언론의 말처럼 썩은 금융 시스템에 복수를 하기 위해 칼을 뽑아 든 건가? 그렇다면 대량의 자금이 강현에게서 제현 투자회사로 들어간 최근의 소식은 무엇을 뜻하는 건가? 강현과 제임스 킬덤간에 사전에 어떤 교감이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둘의 의도가 정말로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썩었다고 생각하는 금융 시스템에 대한 응징이라면 이들이 이 일을 계속 진행됐을 때 어떤 일이 발생하게 되는가?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다. 돈으로 돈을 불리는 자본가들은 자본주의에 대해 어떤 동일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돈이 많으면 자유로울 수 있다! 그러니 끝없이 이윤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지사. 그리고 국가의 제제가 불쾌해지는 것 역시 당연지사. 그러나 다 그렇지는 않다. 돈이 많다는 것의 의미를 깨달은 이들은 사회를 위해서 부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는 것을 지지하기도 한다. 유명한 OS 회사와 신화적인 투자가가 바로 그들이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공개적인 발언은 돈 많은 이들에게는 불쾌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안 그래도 수익의 많은 비율을 세금으로 내고 있는데 거기서 더 내라니? 그것은 평등의 원칙에서 벗어나는 말이었다. 마치 자신들을 사회의 죄인 취급하는 일이었다. 때문에 그들에 대해서 기부로 절세를 하는 주제에 부자 증세를 주장하는 것은 위선이라거나 노골적으로 욕설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왜냐면 자발적으로 세금을 내는 것과 강제로 세금을 내는 것은 천지차이다. 결과 역시 전혀 동일하지 않다. 노골적으로 비유를 하자면 명예와 불명예의 차이다. 기부를 하는 것은 찬사를 받지만 세금을 내는 것은 당연하게 여겨지지 않은가? 돈많은 이들이 기왕 돈을 버릴거 기분좋게 기부를 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은 미국에서는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다시 한 번 말하자면 부자도 역시 사회적 동물인 것은 마찬가지이며 돈 많은 이를 범죄자 취급하듯 증세 법안을 통과 시키려는 것은 국가의 강압으로 비칠 수 밖에 없으며 자유주의의 원칙 아래, 반발할 수 밖에 없는 일이 되어버린다. 때문에 강현이 저번 공화당에서 한 자발적 보수주의의 개혁이란 컨셉은 탐욕스런 자본주의라는 국민적 비난과 국가 강압의 속도를 늦추어 줄 효과적인 방패막이였다. 여기에 제현 투자회사의 공격적인 마케팅을 계기로 중소 고객뿐만 아니라 돈 많은 거물들이 하나 둘씩 제현 투자회사로 거래처를 바꾸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어느 시대, 어느 부류에도 기성세대라는 것이 있다. 좋게 말하면 전통을 지키자는 이들이었고 나쁘게 말하자면 인습마저 유지하려는 꼰대정신이 투철한 이들이었다. 그 말은 강현이 주장한 자정주의 세력과 자본주의의 본질, 이윤추구를 고수하려는 세력간 갈등이 발생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생각을 정리한 옐리의 예상은 단 한 줄로 정리되었다. ‘돈과 돈의 싸움이 시작된다.’ 물론 그 싸움은 각 국가간의 환율 전쟁과는 양상이 전혀 다를 것이다. 증권가의 작전 세력끼리 부딪히는 것과도 전혀 양상이 다를 것이다. 이는 금융과 자본에 대한 패러다임이 바뀔 수 있는 일이다.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자본에게 사회에 대한 책임을 노골적으로 물을 것이다. 자본가를 대중 앞에 끌어내고 공인의 신분을 씌울 것이다. ‘.....’ 생각을 마친 옐리는 이것이 손해인지 이득인지 확실하게 구분할 수 없었다. 왜냐면 자본주의는 이 일로 지속될 수 있는 생명력을 얻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본가들은 시험에 마주하게 될 것이다. 도태냐, 변화냐? 자본가의 성향에 따라서 이 일은 기회가 될 수도 있었고 매우 불쾌해서 짓뭉개고 싶은 일이 될 수도 있었다. 분명 모건 같은 이에게는 불쾌하기 짝이 없는 일임에 틀림없다. 그 역시 시대의 변화에 시험대에 오를 수 밖에 없으니까. 84화 <09-변혁> 그렇다면 옐리 자신에게 이 흐름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흥미롭다. 자본주의의 미래가 어찌 될지 정말로 흥미로웠다. 하버드 경제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인맥을 다져 연방 준비 은행의 의장자리까리 올랐다. 인맥들의 도움으로 돈도 많이 벌었다. 처음에 연방 준비 은행에 대해서 반감이 많았다. 왜냐면 연방 준비 은행은 국가 기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름만 마치 국가 기관인 것처럼 되어 있었지 사실은 사적으로 소유되는 은행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것도 화폐 발행권을 쥐고 있는,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은행인 것이다. 젊었을 적에는 그래서 연방 준비 은행에서 일하면서도 마치 자신이 어떤 음모론의 한 축을 이루는 것 같아서 양심이 찔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연방 준비 은행처럼 화폐 발행에서 정치적인 논리를 배제하는 것이 경제를 위해서 좋은 점도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자본주의의 가장 큰 부작용은 무엇인가? 그것은 돈으로 돈을 번다는 것이다. 노동 없는 부는 사회에게는 악이지만 그럼에도 모든 이들이 원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인플레이션을 인위적으로 일으키는 것이다. 거시 경제적으로 사회 모든 이들에게 노동을 강요하기 위해서 말이다. 물론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는 원인을 그것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단순하기 짝이 없는 발상이다. 자원의 고갈, 원자재 비용의 상승, 사람들의 심리적 욕구의 변화, 제3세계의 경제 성장 등 여러가지 요소가 있었다. 그런데 거기에 정치적 논리가 들어간다면 경제라는 기계는 맞지 않은 톱니바퀴가 끼어 들어간 듯 삐걱거릴 것이다. 미국은 이미 세계 패권국이기 때문에 오히려 화폐 발생에 대해 정부의 입김을 줄이는 것이 세계의 균형과 조화를 맞출 수 있는 방법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때로는 인플레이션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좋지 않냐는 의견도 있지만 옐리는 회의적이었다. 인플레이션이 반대로 되면 디플레이션이 일어난다. 돈의 가치가 너무나 뛰어 실물 가치가 오히려 먼지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옐리는 실물 가치가 휴지조각이 되는 것보다 화폐의 가치가 휴지조각이 되는 것이 오히려 부작용이 적다고 생각했다. 실물 가치가 먼지가 되어 버리면 그 실물을 생산하는 이들은 더 이상 생산을 하지 않게 되어 사회의 생산성이 떨어져 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도 화폐의 가치가 떨어질 뿐이기에 실물을 생산하는 이들은 디플레이션이 일어나는 경우보다 계속적인 생산 활동을 할 가능성이 더 높다. 실물의 가치가 화폐의 가치보다 더 상승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언제나 화폐의 양은 증가한다. 인류가 생산하는 모든 자산에 숫자를 매겨 시장을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서이고 언제나 약간의 인플레이션을 인위적으로 조절하여 디플레이션의 가능성을 줄이는 정책도 각 국가에서 채택하는 경제 관리 원칙이다. 이런 시스템에서 화폐가 잉여롭게 남아도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자본가의 역할이 중요하다. 자본가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중추로서, 넘치는 화폐의 흡수자로서, 때로는 돈을 부어 경색된 시장을 돌아가게 만드는 윤활유로서 시스템을 유지할 의무가 있었다. 그렇기에 옐리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자본과 손을 잡았다. 적어도 그들이 시스템을 장악하고 있어야 자본주의가 붕괴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본이 몸집을 불리기 위해 탐욕을 부리는 것 역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단 한 가지 걱정한 것은 바로 이런 자본가들의 자멸이었다. 범 세계적인 카르텔을 형성해 잘못된 방향으로 탐욕을 부리게 된다면 자본주의 시스템에 위협이 될 수 있었다. 때문에 아랍 자본, 유대 자본, 화교 자본 등 여러 세력들 사이의 탐욕을 부추겨 경쟁을 유도하는 것을 끊임없이 시도했다. 이번 강 박사에 관련된 일 역시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중국의 대두로 공격적인 자본 확장을 시도하는 화교 자본에 대항하기 위해 유대 자본과 미국 자본의 협력을 공고히 하기 위한 첫 시발점으로 삼기 위해서 일을 벌였다. 자본가의 적은 자본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당사자들은 전혀 그런 것을 알지 못했다. 아니 옐리의 의도를 알고는 있겠지만 자신들에게 이득이 되니 모르는 척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 일은 그런 것과는 전혀 달랐다. 옐리의 상상조차 뛰어넘은 패러다임의 혁신이었다. 물론 그 전에도 자본을 가진 사람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묻는 언론이나 시민 세력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자본가들의 교묘한 방해 공작으로 인해 제대로 된 영향력을 확보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강현이라는 막강한 인지도와 자본을 지닌 기득권층이 직접적으로 변화를 주도한 것이다. 그 양상은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일과 동일할 것 같다. 이번에도 시장을 잠식해 자리를 잡고 언론마저 끌어들이고 시민 세력의 목소리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겠지. 옐리는 앞으로의 일이 눈에 그려진 것처럼 펼쳐졌다. 이 일련의 사태를 막기 위한 방법은 오직 한 가지. 제현 투자회사를 쓸어버리는 것 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뜻을 같이하는 자본가들의 협동이 필요한데.. 옐리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강현이 가진 석유 제조 라이센스, 전략 물질이나 다름없는 IAPP 라이센스. 물론 그 외의 갖가지 기술이 있기는 하지만 이 두가지 만으로도 미국 자본가들의 결집은 불가능했다. 또한 석유 카르텔, 식량 카르텔, 무기 카르텔의 자본가들에게 돈만 밝히는 금융 회사의 자본가들은 경멸의 대상에 가까웠다. 실물경제를 꽉 쥔 그들에게 금융이란 결국 자신들이 관리하는 시장 위에서 자라는 것에 불과했기 때문에 금융 자본가들의 입김을 줄일 수 있는 이번 자정주의의 대두를 거부하기는 커녕 오히려 참여할 가능성이 더 높았다. 그러니 제현 투자회사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옐리는 변화에 대한 걱정과 기대로 하루 하루 월가에서 일어나는 일을 눈에 담았다. = = = = = [박사님. 월가의 J 모건과 라이펀(미국 증권 거래 위원회 부위원장)이 찾아왔습니다.] 월가의 일을 대부분 제임스에게 맡긴 강현은 중간 중간 방향성만 잡아주고, 중간 중간 적들의 치명적인 계획을 파악해 제임스에게 알려주고, 중간 중간 새롭게 합류한 자정주의 보수세력의 인사들을 연결해 주는 일만 했다. 그 외의 시간은 자신이 지금껏 발표했던 논문들을 다시 읽으며 지금까지 자신이 걸어온 과학의 발자취를 더듬었다. 변화를 갈망하지 않는다면, 또 무엇을 변화 시켜야 할 지 모른다면 오늘은 어제의 반복에 불과하기에, 과거를 보아야 미래 역시 볼 수 있기 때문이기에 강현은 새로운 연구주제를 확보하기 위해서 기존의 논문들을 재검토하기 시작한 것이다. 월가에서 벌어지는 일에는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이미 인재, 영향력, 자본을 확보했기 때문에 제임스가 하는 일에 별다른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상황은 이미 언덕 아래로 눈뭉치를 굴린 것이나 다름없다. 변화는 시작되었으며 그 변화에 강현이 개입할 여지는 극히 적다. 한국에서의 일로 강현은 역시 세상은 물리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회에서 나타나는 현상 역시 실험실에서 벌어지는 것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무언가 일이 벌어지기 전에는 그 반응이 발생하기 위한 에너지가 축적되어야 하고 그 에너지가 축적되더라도 계기, 화학반응에 비유하자면 활성화 에너지가 필요했다. 또한 실험실에서 열역학적으로 반응의 방향을 예측할 수 있듯이, 사회에 축적된 에너지의 방향성을 예측할 수 있다면 그 변화의 속도를 조절하는 방법은 강구하면 된다. 이번 일 역시 마찬가지였다. 강현은 아즈삭이 수집한 데이터에 기반해 금융 위기와 모럴해저드로 나타난 기존에 자본주의가 가진 탐욕성에 서치 라이트를 비추고 사회의 경각심에 불을 지펴 계기를 만들었을 뿐이다. 이 화학반응의 끝이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확실하게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강현이 확신하는 것은 그 과정 중에 기존의 자본가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타격이 간다는 것이다. 물론 그 타격의 대상을 제현 투자회사에서는 강현이 지정한 제물(J 모건을 포함한 몇몇 자본가)에게 집중하는 작업을 하는 중이다. 제임스는 그것은 혁명을 위한 제물로 이해하는 모양이지만 강현에게는 변화에 적응하지 못할 도태종자의 결말로 이해하고 있었다. 뭐, 그런 변화를 일부러 일으킨 사람이 강현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제현 투자회사는 강현이 확실하게 정해준 희생양 덕분에 기존의 반 자정주의 보수세력에 가담하려는 인사들을 회유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몇몇의 희생으로 자본주의에 대한 반발적 여론을 가라앉히는 것이 그들에게는 이득이라는 설득이 먹힌 것이다. 까딱까딱까딱. 라이펀은 불안한 듯이 다리를 떠는 모건의 모습에 눈쌀을 찌뿌렸다. 하지만 뭐라고 말하지는 않았는데 자신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불안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아버지의 후계자가 되기 위한 고분분투의 과정에서 느낀 것이 아니라 점차 고립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나서 느끼는 불안이었다. 그들도 바보가 아닌지라 제현 투자그룹을 조기에 뭉개기 위해서 인맥을 끌어들이려고 했다. 그런데 만나는 인맥마다 어찌 반응이 좀 그랬다. 자신의 말에 동조하지 않고 어쩔 때에는 불쌍하다는 눈빛으로 자신을 보는 것이다. 그건 모건 뿐만이 아니라 라이펀 역시 느끼는 일이었다. 그리고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저들이 한 발 먼저 자신들이 포섭할 인맥들을 선점했다는 것을. 궁지에 몰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모건은 오랜 우방인, 록팰러의 도움을 받으려고 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만나주지도 않았다. 하긴 석유 제조 라이센스가 걸려있으니 겨우 희생양이 될 모건을 도와주는 것은 도저히 수지가 맞지 않다. 자본의 논리라는 것은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만나주는 사람은 점점 줄어가고 배척 당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모건과 라이펀은 초조해졌다. 마침 인맥 중 입방정을 떠는 버릇이 있던 사람이 없었다면 지금 자본가들이 자정주의 보수세력이 대세라고 생각하고 그리로 하나 둘 씩 집결하고 있다는 것을 일이 끝날 때까지 몰랐을 것이다. 그리고는 급기야 절대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던 메디치가와 록펠러 역시 자정주의 보수세력에 동참했다는 소문을 듣고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는 것을 느꼈다. 강현에게 매달리는 수 밖에 없었다. 아직 자손 몇 대가 먹고 살 자본이 남아있지만 그것 역시 인맥이 있을 때 의미가 있는 법이었다. 상류층에서 배척 당하는 순간 그저 그런 수준의 졸부로 전락할 것이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돈만 있다고 다 자본가, 상류층이 되는 것은 아니다. 상류층만이 보는 세상의 안목과 흐름이 고수익을 창출해낸다. “오! 강 박사!” 강현이 응접실로 오자 둘이 반갑게 맞았다. 지금 상황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강현의 인맥에 들어간다면 살아남을 수 있다. “어쩐 일인가요?” “강 박사. 그게 말일세..” 둘은 얼른 본론부터 꺼냈다. 강현이 서두를 질질 끄는 것을 극히 싫어한다는 세간의 분석 때문이었다. 연구한다고 바쁘기 때문에 쓸데없는 곳에 시간을 쓰기가 싫다나? 85화 둘의 이야기는 간단했다. 자정주의 보수세력이 대세인 것 같은데 도무지 자신들을 끼워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자정주의를 촉발시킨 강현을 뒤에 업을 수만 있다면 자신들도 대세에 낄 수 있다는 것이다. 둘의 머릿속에는 강현의 연구 감시에 관한 음모는 이미 남아있지 않았다. 지금은 도태되느냐 마느냐의 갈림길에 서있기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그렇군요. 흐음.. 일단 이야기는 해보기로 하죠.” 강현은 긍정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역시 온건파인 강현이라면서 모건과 라이펀은 다소 안심하고 돌아갔다. [박사님. 정말로 저 둘을 용서해 주실 겁니까?] “아니.” [그럼 거짓말을 하셨군요.] “응. 내가 저들을 표적으로 삼았다는 것을 아무도 알아서는 안 되거든.” 사실 강현은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둘을 안심시킨 것이다. 물론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었다. 다만 저렇게 모건과 라이펀의 몸이 달아있으니 제임스에게 주의하라고 말해줄 생각이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시간만 지나고 둘의 몸이 달아오르고 있을 쯔음, 제이먼 옐리가 강현에게 방문을 청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도 처음 뵙겠습니다.” 둘은 그렇게 인사를 하고는 서로를 탐색하듯이 관찰했다. 강현은 강현 대로 앞의 둘과 전혀 다른 관조적 태도의 옐리가 신기했고 옐리는 강현의 전신을 관찰하며 과연 자신의 예상대로의 인물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뭐죠?’ 강현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그의 태도에 물었다. “목적이 무엇입니까?” “목적?” 강현은 시치미를 땠다. 그런 그의 태도에 아랑곳 하지 않고 옐리는 차근 차근 설명을 시작했다. “사실 귀하가 제창한 자본주의의 자정이라는 논제는 그리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이미 일차 대공황이 일어났을 때 케인즈 주의에 의한 수정자본주의가 대두되었었죠.” 케인즈 주의란 적극적인 정부 개입에 의한 계획 경제로 시장 위기를 극복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계획 경제는 당시 공산주의나 마찬가지라는 비난을 샀었다. “경제 대공황으로 인해 보이지 않는 손이 허구라는 것이 증명되자 일각에서는 자본가의 사회적 책임이 대두되기도 했죠. 물론 그보다는 케인즈 주의가 더 확실한 방법이었기 때문에 대중의 시선이 그리로 쏠렸지만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는 곧 하나의 계급이나 다름 없었다. 그러나 그것을 대놓고 드러낼 수는 없었다. 과거 귀족들이 어떻게 죽었고 어떻게 몰락했는가? 민주주의가 대두되면서 대중은 강해졌고 자신들의 위에 서서 억압하려는 존재를 용서하려 하지 않게 되었다. 언론의 존재 역시 자본가들에게는 껄끄러웠다. 부자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관심. 그리고 그 관심을 먹고 사는 수많은 파파라치와 언론사들의 존재는 돈 많은 이들이 세상에 드러나지 않고 숨어 지내게 만들었다. 그들은 연예 스타가 아니었다. 그들은 ‘자본가’란 귀족이다. “자본은 이미 하나의 계급이죠. 자본가들이 언론사를 하나 둘 집어삼키며 자신들의 존재를 밝히려고드는 걸리적거리는 것들을 하나 하나 제거하고 있죠. 월 스트리트 저널이 머독에게 인수 당하고 난 뒤에 심층취재가 사라진 것 역시 맥락을 같이 합니다.”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의 탐욕을 그대로 대중에게 드러나는 탐사 보도만큼 돈을 굴리는 이들에게 거슬리는 것도 없었다. “아무튼 현재 자정주의가 대두되어 점점 세력을 불리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그런 자본의 탐욕으로 인한 엄청난 폐해가 배경이 될 수도 있지만 이 상황을 그린 사람은 따로 있었죠. 강현, 바로 당신입니다.” 옐리가 강현을 지목하자 강현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사람이 얼마나 짐작하고 있는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강 박사. 당신이 아니었다면 이 자정주의의 바람 역시 기득권층에 의해서 한낱 미풍에 그치거나 시민 운동에 그치게 될 뿐이었죠. 하지만 당신이 끌어들인 제현 투자회사, 그리고 막대한 투자금은 자정주의 세력을 결집시키고 힘을 모으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마 골치 아픈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옐리는 커피를 한 모음 머금으며 입을 축였다. “그런데 말이죠.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던 게 있더군요. 세상에 별로 관심이 없어하던 사람이, 왜, 무슨 이유로 이런 일을 벌였는지 말입니다. 하루 아침에 세상에 관심을 가졌다? 사람의 성향이 그렇게 쉽게 바뀌던가요?” “그래서, 이유를 물으러 오셨습니까?” “그렇죠.” 강현은 턱을 쓰다듬었다. 이자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자정주의와 전통보수주의의 갈등, 인재 영입전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권력과 힘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 강현은 옐리에게서 자신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학자의 기풍이었다. 이쯤 되자 강현이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도대체 이런 사람이 왜 타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일을 벌였는지 말이다. “알고 싶으시면 제가 묻는 내용에 먼저 답을 해주시죠.” “무엇인가요?” “연구 감시 기구. 왜 만들려고 하신거죠?” 직설적인 강현의 말에 옐리는 말을 더듬거렸다. “왜, 왜 그걸 저에게 물어보십니까?” 옐리는 언론에서 막 그런 여론을 만들어 내지 않았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강현의 말이 더 빨랐다. “월가의 거물, 모건. 그리고 미국 증권 거래 위원회 부위원장, 라이펀. 아시지 않습니까?” 공모자들의 이름이 나오자 옐리는 등에 식은 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그는 사실 도착하기전 추론을 통해서 강현의 이번 일을 천재의 일탈이나, 어떤 호기심, 아니면 젊은 나이의 치기 어린 책임감 정도가 시발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너무 모호했기에 확인차 방문했다. 하지만 이건... “응.. 징입니까?” “경고죠.” “허. 허, 허.” 강현의 말에 옐리는 마른 웃음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는 목이 타는지 식은 커피를 벌컥 벌컥 마시더니 입을 열었다. “설마 알고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그런가요? 아무튼 왜 그러셨죠?” 옐리는 먼저 어떻게 알았는지 묻고 싶었지만 강현이 그런 이야기를 해줄 리가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그냥 솔직하게 대답하기로 했다. “자본의 균형이라고요?” 강현은 의외라는 듯이 놀라워했다. “자본가도 사람입니다. 그리고 사람이니 국가, 민족, 인종, 역사, 수 많은 문화적 요인들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죠. 때문에 똑같은 자본가 계급이라고 해도 결코 뭉칠 수 없는 세력이 존재하죠.” 세계화는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흐름이었다. 자본의 탐욕을 자국의 국민에게 향하게 하지 않으려면, 그렇게 자멸하지 않으려면 넘치는 자본력을 밖에서 소모할 필요가 있었다. “세계에는 몇가지 자본세력이 있습니다. 메디치가, 흔히 프리메이슨이라며 음모론의 주체로 삼는 유럽 자본, 그리고 미국의 대두와 산업의 성장으로 나타난 미국 자본, 철강왕으로 유명한 카네니, 석유왕 록팰러 등이 여기에 속하죠. 그 밖에 중동의 아랍 자본, 화교 자본, 그 외에 각 국가에 강력하게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중소 자본가 세력이 있습니다.” 각 자본은 그 태생에 따라서 성향과 가치관이 다 다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힘, 자본을 잃지 않기 위해서 고분분투한다는 점이다. “이런 자본 세력들이 연합해 카르텔을 이루기 시작하면 그 피해를 보는 건 약한 자들이 입게 됩니다. 카르텔이란 서로가 서로를 보호해 주는 것이 그 본질이기 때문에 자본의 탐욕이 서로가 아닌 아래로 향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죠.” 그래서 옐리는 꾀를 내었다. 자본의 탐욕을 같은 자본가에게 향하게 하는 방법은 없는가? 있었다. 약자를 만들어주면 되는 것이다. 자본의 손익 이해와 부합하면서 문화적 차이를 적개심으로 만들어 주고 이쪽의 덩치를 키우면 상대적으로 약한 이를 자동적으로 물어 뜯게 된다. “흐음..” 강현은 흥미로웠다. 기본적으로 일이 저절로 굴러가도록 일을 꾸몄다는 점에서 자신과 다른 점이 없었던 것이다. “강 박사의 연구를 감시하는 일을 꾸민 건 미국 자본과 유태계 자본이 손을 잡을 수 있도록 하는 계기로 삼기 위해서였죠. 그들에게는 돈이 걸린 일보다 신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으니까요.” 강현의 연구를 감시하여 나오는 정보를 통해 이익을 공유하고 신뢰를 쌓아 발을 넓히는 화교 자본에 대항한다는 것이 계획의 골자였다. “화교 자본이 그렇게 위협적인가요?” “네. 아무래도 민족주의에 기반한 그들의 습성은 무척이나 배타적이니까요.” 그러나 배타적 습성과 다르게 이익이 된다면 적과도 손을 잡는 것이 그들을 더 우려스러운 존재로 만들었다. 그들에 대한 미국 자본의 인식은 ‘평소에는 신뢰할 만 하지만 중요한 순간에는 믿을 수 없는 존재’였다. 게다가 특히 세계의 공장인 중국의 경제 성장을 발판으로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그들을 견제할 필요가 있었다. 손을 잡을까 생각도 해봤지만 중화사상을 기반으로한 그들의 민족주의적인 특성 때문에 손을 잡는 것이 거북스러웠다. 언제 뒤통수를 맞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제가 모르는 곳에서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군요.” 강현은 신기하게 생각했다. 인터넷을 꽉 잡아도, 각국 첩보 조직에 스파이 로봇을 심어도 옐리가 이야기하는 내용은 알지 못했다. 다만 자본가가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지 그 내밀한 사정까지는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다. “세계는 복잡하고 비밀도 많으니까요. 그리고 이런 일은 당사자들도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자칫하면 공격의 빌미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완전히 우위에 올라서기전에는 겉으로는 다른 이야기를 하죠.” “참 힘들게 사는 군요.” 강현의 말에 옐리는 쓰게 웃었다. 자본의 논리에 연연하지 않는 강현이 그들의 고충을 이해할 리가 없었다. 기술 문명에서 기술을 꽉잡은 강현은 현물을 꽉 잡은 카르텔과 다름이 없었다. “아무튼 이해는 했습니다. 그런데 왜 옐리 씨는 그런 일을 하는거죠? 자신에게 별로 이득이 없을 텐데.” “호기심이죠.” 옐리는 자신의 과거를 고백했다. 젊었을 적의 열정, 자본의 탐욕을 목격하고 난 후의 갈등,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결의와 그런 결의의 마모, 그리고 그 마모 이후 세상의 흐름에 대한 강한 호기심과 남아있는 책임감의 결합. 그것은 그가 왜 자본과 자본의 충돌을 일으키는 일을 하는 지에 대해 강현이 믿을 수 있을 정도로 진실했다.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납득했다. 상대방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제 연구실에 함부로 발을 들이민 것은 용납할 수는 없습니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이라는 것이 있다. 아무리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해도 그 이해관계가 자신이 정한 선을 넘는 순간 타협은 어렵다. “해서, 모건과 라이펀은 본보기가 될 겁니다. 그리고 옐리 씨. 당신은...” 옐리의 침이 꿀꺽 넘어갔다. “이 일의 목격자가 되어 주셔야 하겠습니다.” “.... 그러니까 사건의 전모를 알 사람만 알게 하는 역할입니까?” 이대로 모건과 라이펀이 상류층에서 퇴출 당한다고 해도 그것은 단지 강현의 영향력만을 말해줄 뿐이었다. 어째서 그 둘인지는 아무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기에 강현의 연구실에 발을 딛고 싶어하는 이들은 끊임없이 나타날 것이다. 86화 하지만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다면 사정은 다르다. 강현의 연구실은 성역이 될 것이고 다시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조건이 하나 있다. 이 사건의 전말을 알아야 할 사람만이 알아야 한다는 것. 그렇지 않는다면 사회와 대중이 강현을 어떤 눈으로 바라볼지 가늠조차 할 수 없게 된다. 그렇기에 옐리만큼 적당한 인물이 없다. 그가 가진 식견과 인맥이라면 대중과 언론이 모르게 그들만의 커넥션으로 알아야 할 사람만 일의 전모를 알게 될 것이다. “그럼 저는 용서해 주는 겁니까?” “네. 저는 그저 돈만 밝히는 탐욕스런 자들이 그런 일을 꾸미는 것으로 알고 있었거든요.” 강현은 옐리를 용서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정의론에 공감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자신과 같은 학자에 대한 용서였다. 강현에게 옐리의 행동은 하나의 거대한 실험이라고 해석되었다. 그리고 지적 욕구를 풀기 위한 행동을 한 번쯤은 용서해 주고 싶은 것이 그의 속내였다. “그럼, 이만 대화를 끝내기로 하죠. 아참, 그리고 그 두 사람이 옐리 씨를 귀찮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일은 이 바닥에서는 비일비재합니다.” 한 순간에 몰락하는 것은 이 바닥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물론 그래도 살 사람은 살지만 강현이 두 사람에게 했던 것처럼 표적이 되어 버리면 살기 힘들다. 옐리는 강현과 악수를 하고는 NASA를 나섰다. 정문을 나왔을 때 잠시 멈추어 서서 고개를 돌린 옐리의 등은 식은 땀으로 축축히 젖어 있었다. “괴물이군.” 옐리는 그 한 마디를 하고는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었다. 이제 겨우 20대 중반을 넘긴 저 청년이 자신이 벌인 일의 크기와 중요성을 알고 있을까? 아니, 분명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간의 행적으로 보아 자신의 영향력을 확실하게 파악하고 이용하고 있었다. 이번 일만 봐도 알 수 있다. 때문에 무서웠다. 보통 20대의 젊은 혈기를 가진 사람들이 그와 같은 힘을 가지게 되면 천방지축으로 날뛰거나 명성을 얻기 위해서 많은 사회적 활동을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강현은 달랐다. 그에게 사회적 명성이나 거대한 부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 말은 돈이 곧 권력의 상징인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강현이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가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강현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그의 기술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가치에 자본이 모여든다. 그래서 강현과 세상의 역학관계는 항상 강현이 위에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결코 가까이 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처럼 금융에서 노는 사람에게 돈이 통하지 않는 강현은 공포, 그 자체나 마찬가지였다. = = = = = 공화당 파티에서 시작한 자정주의는 매우 긍정적인 여론을 이끌었다. 결집된 자정주의 세력은 탐욕스런 자본가들을 대상으로 공세를 시작했다. 공세의 대상이 된 이들은 자신들을 공격하는 이들 역시 탐욕을 부렸던 이들이라면서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공격한다고 반격했다. 그들의 말은 사실이었지만 힘이 너무 없었다. 이미 자정주의 세력은 그들을 제물로 여론을 환기시키며 자신들에게 우호적으로 만들기로 작정했고 이에 공화당의 정치적 논리까지 가세하자 차근차근 무너졌다. 민주당 인사들의 지원 사격도 있었다. 자신들의 눈으로 보자면 공화당의 자정주의는 자신들의 정치적인 목표에 이용할 수도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소수세력이 되어버린 고전 보수주의 세력은 하나 하나 날개가 뜯긴 새처럼 추락하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대주주로 있는 회사의 주가는 떨어졌고 그나마 재빨리 현금으로 팔아 치운 이들도 불법적인 행위와 탈세에 대한 거액의 징벌적 벌금이 부과됐다. 반박을 위해 이름 있는 변호사들을 선임하려고 했지만 이미 맞고 있는 사건이 있다며 거절당했다. 사회전체가 그들에게 등을 돌린 듯 했다. “무섭군.” 강현은 사태의 추이를 아즈삭에게 전해듯고는 감상을 내뱉었다. 시작은 자신이 했지만 상황은 이미 자신도 통제하기가 어려웠다. 통제하기에는 주도권이 이미 결집되어 하나의 조직이 된 세력으로 넘어가 버렸다. 그들은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알아서 목표를 씹어먹고 있었다. “나는 정치는 하면 안 되겠다.”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순발력이다.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한 본능적인 감이다. 하지만 강현의 정치적인 식견은 이런 거대한 변화의 흐름속에서 제대로 역할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이렇게 한 발짝 떨어진 곳에서 사태의 추이를 관망하는 것뿐이었다. 강현이 한 발 물러서자 이번 사태의 최대 수혜자는 다름 아닌 앙드레 파셀이 되었다. 공화당의 거두인 그는 이번 일로 다른 경쟁자들을 해치고 공화당 최고의 대선 후보로 선정되었다. 카리스마를 발휘해 자정주의 세력을 결집시키고 자유주의를 해친 부패한 자들을 쓸었다는 긍정적인 여론 덕분이었다. 그래도 나쁜 일만은 아니었다. 공화당의 실세가 강현에게 우호적이라는 점은 강현을 귀찮게 할 사람이 줄어든다는 말과 동일했기 때문이다. 이번 일로 또한 강현이 얻은 것은 인맥만이 아니었다. 월가에 진출한 제현 투자회사가 쏠쏠한 수익을 거두고 있었기 때문에 그로부터 떨어지는 배당금이 나쁘지 않았다. 물론 동일 액수를 기존 투자회사에 집어넣는 것보다는 적었지만 그래도 은행 이자보다는 많았다. 여기에 더해서 애시당초 목적으로 했던 연구실의 성역화는 완전히 성공했다. 음모자들의 목적을 분쇄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저지른 일에 자극받아 동일한 일을 벌릴 인사들 역시 사라졌다. 지금 상류층에서는 은밀하게 이 모든 일이 감히 강현의 연구실을 건들려고 했던 이들 때문이라는 말이 퍼지고 있었다. 모든 일이 마무리 되자 강현은 드디어 본격적으로 연구에 돌입할 정신적,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었고 앞으로의 모든 외부 방문객은 사절이라고 하고 연구실에 처박혀 지냈다. 이번 연구의 목적은 무언가를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기초연구에 가까웠기 때문에 시간과 돈이 매우 많이 걸릴 것이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그 기초연구란 다름 아닌 그 자신이 제정립한 신 통일장 이론의 실험적 증명 과정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13개의 차원이 겹쳐있다는 강현의 논리를 검증하기 위해서는 공간 그 자체를 변수로 만들 수 있는 실험이 필요했다. 강현은 그 방법으로 가능한 것은 천체 물리학에서 하는 것처럼 천체와 우주를 관측하거나 거대 입자 가속기를 이용해 공간에 간섭할 수 있도록 가속질량을 무한대에 가깝게 만드는 것이다. 전자는 시간이 많이 걸리고 후자는 돈이 많이 걸렸기에 강현은 고민할 것도 없이 후자를 선택했다. 그에게 시간은 돈보다 더 소중한 자원이었다. 게다가 어차피 돈이야 시간이 지나면 계속적으로 쌓이는 것이 아니던가? 그런데 문제는 강현의 생각보다 돈이 더 드는 것이다. 강현이 지금 가지고 있는 전 재산을 투입했을 경우 건설비용과 운용비용을 모두 감당할 수 없다고 아즈삭이 계산했다. 강현은 고민했다. 정부 지원을 받을까, 아니면 돈을 더 벌까? 전자는 아무래도 정부의 간섭이 들어가지 않을리가 없다. 아무래도 국민의 혈세이지 않은가? 그렇다고 민간 투자를 받을 수도 없다. 간섭은 그쪽이 더 심할 것이다. 국민의 혈세가 아니라 자신의 피같은 돈이지 않은가? 그래서 강현의 선택은 너무나 당연히 후자쪽이었다. “제약쪽이 돈이 된다며?”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돈 많은 사람들이 가장 챙기는 것이 건강 아니겠습니까?] “그럼 병을 치유하는 것보다는 몸을 건강하게 하는 약품이 돈이 더 되겠네?” 동양쪽의 몸보신용 약시장만큼 큰 것이 서양의 비타민, 미네랄 복합제 시장이다. “그런데 건강하고 싶으면 적당히 절제하는 삶을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적당히 먹고, 적당히 살찌고, 적당히 운동하고, 적당히 노동하는 것이야 말로 몸을 아끼는 최고의 방법이지 않을까? [비만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으니 비만 치료제를 개발해보면 어떻겠습니까?] “돈이 되겠네.”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로 비만의 원인은 과식이라고 한다. 맞다. 맞는 말이다. 먹는 만큼 배출한다면 비만이 생길 리가 없다. 하지만 사람의 몸은 과거, 진화의 과정에서 제때 끼니를 못 먹었던 시절이 있었는지 과잉 에너지를 지방으로 축적하는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그 메커니즘을 밝힌다면 비만을 막는 약품을 개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강현은 시뮬레이션에 들어갔다. 그것은 아즈삭의 가공할 시뮬레이션 능력을 바탕으로 원자, 전자 레벨에서 DNA가 작동하여 신체를 구성하는 과정을 재현하는 것이었다. 동일 조건에 대한 비만과 비만이 아닌 대조군을 찾는 것이 불가능하며 윤리적으로 문제가 될 것이뻔한 이상, 이 방법 이외에는 딱히 빠르게 비만 유전자의 기제를 찾아내는 것이 어려웠다. 물론 비만 치료제는 엄청나게 큰 시장이기에 많은 자본이 투입되어 ARF1, PLIN2 등 몇가지 비만에 관련된 유전자를 발견하기는 했다. 하지만 비만이라는 것은 비단 유전적 요인으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종합적으로 비만이 발생하는 원인을 알아내야 부작용이 적은 치료제를 만들 수 있었다. 한 가지 유전자를 타겟으로 하는 치료제의 개발이 진행되고도 있지만 아무래도 다양한 가능성을 보면서 연구하는 것보다는 돌파구를 찾는 것이 어려웠다. “하아.. 이것도 일이네.” 신체에는 몇 개나 되는 원자가 있을까? 그 원자들이 가진 전자와 화학적 특성을 시뮬레이션을 한 각각의 개체에 부여하는 것 역시 얼마나 방대한 작업일까? 그리고 그렇게 구성된 전자 세계상의 DNA, 세포, 신체 조직의 활동을 구현하는 것은 아즈삭으로서도 버거운 일이었다. 인간의 몸에 있는 세포만 해도 100조개고 각 세포에 들어있는 원자의 개수는 그 수를 능가한다. 야심차게 작업을 준비했던 강현은 아즈삭의 가용 소스가 5%대로 떨어지자 이내 원자 레벨에서의 신체 조직 시뮬레이션을 포기하고 말았다. 거미줄 단백질을 설계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시스템을 잡아먹었다. [죄송합니다, 박사님.] “네가 죄송할 게 뭐 있냐? 내가 뻘짓을 한거지.” 편하게 연구 좀 해보겠다고 꼼수를 부려봤지만 역시 자연이란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목적은 결국 가설의 검증이니 그를 위한 방법을 찾아봐야지.” 돈을 처발라 연구를 한다면 누가 못하겠나? 강현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돈을 버는 기술을 만드는 계획을 취소했다. 돈이 없다면 돈이 없는 데로 연구를 해내는 것 또한 연구자의 필수 자질이었다. 일단 그는 자신이 써 놓고도 자신도 무슨 소린지 당췌 알 수 없는 수식들을 면밀하게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새로운 구상이 있었다. 실험적으로 검증하는 것이 돈이 든다면 차라리 어떤 완성품을 만들어서 관찰해보자는 것이 강현의 생각이었다. 전파의 공진 효과가 발견된 것은 결국 멕스웰이 수식적으로 전파의 존재를 예언하고 나중에 헤르츠가 실험적으로 증명했기 때문이다. 즉, 수학적 완성이 먼저 존재했고 그를 바탕으로 실험이 꾸려졌기 때문이다. 마찬가지 방법으로 강현은 자신이 쓴 신 통일장 이론을 (비록 수식적으로 완전했지만) 완전히 이해하고 그 의미가 모호한 변수들의 의미를 확실히 하는 것을 먼저 하기로 한 것이다. 87화 자연계에 나타나는 4가지 힘. 중력, 전자기력, 핵력, 약력은 서로 독립적인가? 강현의 논문에서는 그렇다고 하지만 단 몇 가지 조건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보고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붕괴 현상. 중성자가 붕괴되어 양성자와 전자를 뱉어내는 붕괴는 이미 존재한다. 핵물리학에서는 이미 중성자가 양성자와 전자를 뱉어내는 음의 베타붕괴, 양성자가 붕괴되어 중성자와 양전자를 뱉어내는 양의 베타 붕괴를 수학적으로 증명해 놓았다. 각각의 방법은 반중성미자와 중성미자를 발출하는데 이 둘은 질량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전기적으로는 중성을 가지고 있다. 즉, 전혀 다른 형태의 붕괴지만 그 본질은 중성자와 양성자가 가진 잉여 에너지의 방출을 의미한다. 에너지는 곧 질량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다시 말하면 중성자와 양성자가 딱딱한 구형이 아니며 말랑말랑한 더 작은 입자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렇지 않으면 잉여된 에너지를 품고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강현의 신 통일장 이론에서 이 붕괴현상은 약력장(場)이 중력장과 전자기장으로 변한 것으로 대치할 수 있었다. “흐음.. 이걸 양자 역학으로 해석해야 하나.. 아니면 통일장 이론으로 해석해야 하나..” 중성자의 붕괴 현상에 대한 매커니즘은 양자 역학이 그 동안 연구를 더 많이 해 왔기 때문에 그 쪽이 더 잘 해석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중성자의 붕괴 반응에 관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결국 통일장 이론을 이용하기로 한 강현은 베타 붕괴를 신 통일장 이론의 수식으로 해석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에너지는 어느 차원에 있는 걸까? 그리고 어떻게 전환되어 질량을 가진 중성미자를 배출하는 걸까? 베타 붕괴가 완료되고 난 후 이 질량을 가진 중성미자와 반중성미자는 어디로 가는 걸까? 중력에 끌려서 다시 중성자나 양성자가 흡수하게 되는 것일까? 중성미자와 반중성미자끼리 만날 수는 없을까? 하지만 그렇게 되면 쌍소멸을 통해 질량이 사라지는데 그 에너지는 어떤 모양으로 방출될까? 수식의 모호함이 하나 하나 해결되어 갈 수록 그보다 훨씬 많은 의문들이 강현의 머리를 채웠다. 아무튼 베타 붕괴를 통일장 이론으로 해석하는 작업을 완료한 강현이 확인한 것은 약력장 차원이 가지는 에너지 밀도가 중력과 전자기력 차원이 가지는 에너지 밀도보다 약간 높다는 것이다. 때문에 베타 붕괴에서 질량을 가진 반중성/중성미자와 양/음전자가 튀어나오는 것이다. 에너지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약력에 인위적으로 에너지를 가하는 방법은 없나?” 강현은 수식을 정리하면서 중얼거렸다. 그 방법을 찾을 수만 있다면 인위적 베타 붕괴를 일으킬 수 있는 장치를 고안하여 자신의 이론을 검증할 수 있었다. [운동에너지는 어떻습니까?] “흐음.. 입자 가속기는 쿼크 단위로 물질을 분해하는데 사용하니까 이 경우에는 과한 방법이겠지. 아니면 방사선이라도 이용해 볼까?” 원자핵이 가진 결합력은 사실 무시무시하지 않다. 대부분의 원소들이 가지는 핵결합력의 크기는 7에서 8 MeV(메가 전자볼트)에 불과하고 이는 줄(J)단위로 환산하면 약 1pJ(피코 줄 : 일조분의 일)에 불과하다. 1J의 에너지가 1V(볼트), 1A(암페어)의 전류가 1초 동안 흐를때의 에너지이니 원자핵의 결합력이 얼마나 작은지 알 수 있다. 그런데 왜 핵이 그렇게 강력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가? 간단하다. 숫자의 힘이다. 작은 동전에 있는 원자의 개수는 도대체 얼마일까? 10조개 100조개? 원자의 크기는 생각보다 훨씬 작다. 핵폭발이 무서운 이유 역시 이 숫자 때문이고 핵에너지를 이용해 원자력 발전을 할 수 있는 것도 이 숫자 때문이다. 연쇄반응을 하지 않도록 초당 핵분열하는 원자핵의 개수를 조절한 것이 바로 원자력 발전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핵결합력은 생각보다 약하다. 인위적으로 핵분열을 시키기 위해서 우라늄이 중성자를 흡수할 수 있도록 인위적으로 감속해 주어야 할 정도다. 일단 중성자를 흡수한 우라늄은 불안정해져서 분열하기 때문이다. 중성자로 우라늄 원자핵을 때리는 것이 아니라 핵구조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불안해진 원자핵은 갖가지 방법으로 안정화된 상태로 진행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 과정에서 여러 전자파를 동반한 방사선을 내뿜게 된다. “하지만 이 방사선으로 핵을 자극하는게 쉽지 않은데...” 방사선에는 감마선, 알파선, 베타선, 중성자선 등이 있다. 그러나 각각이 가진 물리적인 특성 때문에 원자핵을 자극하는 것은 매우 난해한 문제였다. 알파선은 헬륨의 원자핵으로 주로 양성자 두개와 중성자 두개로 이루어진 입자로 당연히 전기적으로 양성이다. 때문에 전자기적인 반발력으로 공기중에서 3cm도 나가지 못한다. 베타선은 베타 붕괴와 관련있으며 그 이름답게 전자를 내뿜는 것이다. 이 역시 전하를 띄고 있기 때문에 얇은 금속판 만으로 막을 수 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짧은 파장을 가진 전자기파인 감마선과 전기적인 중성인 중성자성이다. 이들을 막기 위해서는 두꺼운 벽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들 방사선은 매우 순간적으로만 일어나기 때문에 그다지 위험하지 않다. 잔류 방사선이라는 말은 이들이 잔류한다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방사선 붕괴를 일으키는 핵물질이 남아있다는 의미였다. “인위적인 베타 붕괴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어떤게 가장 좋을까...” 강현은 일단 알파선과 중성자선은 제외했다. 그들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약력을 관찰하기 위한 실험기구에 맞지 않았다. 차후 강력에 관련된 실험을 할때 사용할 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다. “흐음.. 통일장 이론의 가장 큰 장점이 에너지의 정량화니까.. 이를 이용하면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양자 역학의 세계에서 동일한 종류, 동일한 에너지, 동일한 상태를 가진 입자를 구별하는 방법은 없다. 마찬가지로 두 입자의 충돌 실험에서 입자가 정말로 충돌을 해서 반대 방향으로 튕겨나간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에너지만을 교환하고 진행하던 길로 계속 가는 것인지 구별하는 것은 요원하다. 하이젠 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에 따르면 미시세계에서 입자의 위치와 운동에너지를 동시에 정확하게 관찰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 통일장 이론에는 입자를 사용하지 않고 장(場)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기 때문에 어떤 위치의 공간에 에너지가 존재하는 것을 명확하게 나타낼 수 있었다. “그래서 인위적으로 어느 만큼의 에너지를 가해야 베타 붕괴가 일어나는지 예측할 수 있지.” [만일 중성자나 양성자에 정확하게 에너지를 집어넣을 수만 있다면 박사님의 논문이 신빙성을 더할 수 있겠군요.] “거기에 이론을 이용한 예측치를 사용해 성공한다면 반 쯤 인정을 받겠지.” 강현의 통일장 이론은 방대했다. 13개의 변수를 사용한 복잡한 수식은 그 의미조차 파악하기 힘들정도였다. 이번 인공 베타 붕괴 실험을 성공한다고 해도 그것은 이미 파악된 전자기장, 중력 축과 약력 축의 상관관계만을 증명할 뿐이지 나머지 정의조차 되지 않은 5개의 차원 축은 여전히 미지수였다. “아무튼 머리를 굴려보자.” [네, 박사님.] 강현과 아즈삭은 연구를 계속 진행했다. 강현과 아즈삭은 양성자와 중성자에 인위적으로 에너지를 가하는 방법을 찾다가 플라즈마를 이용하는 방법을 구상할 수 있었다. 원자핵을 반응시키는 방법인 핵융합에서 착안한 방법으로 기체를 플라즈마화 시켜 원자핵에서 전자를 때어내어 원자핵을 서로 부딪히게 만들어 에너지를 가하는 방법이었다. 이를 위해서 강현은 수소를 플라즈마용 물질로 선택했다. 왜냐면 수소는 전자를 하나만 가지고 있기 때문에 플라즈마로 만드는 것이 매우 쉬웠고 또한 양성자를 하나만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전자기파를 이용해 진동시키기가 쉬웠다. 그러나 역시 문제는 이 플라즈마를 잡아주는 것이었다. 방전을 이용하면 수소를 플라즈마 시키는 것은 별 문제가 아니었지만 그 즉시 전자기적인 인력에 의해 전극으로 끌려가 전자를 받아 먹거나 아니면 벽에 부딪혀 전자를 빼앗아 중성원자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이렇게 중성원자로 돌아오면 전자의 정전기적인 반발에 의해 원자핵에 직접적인 충격을 가해 에너지를 주입하겠다는 강현의 계획이 실패하게 된다. 전자가 일종의 방어벽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는 핵융합 발전을 꿈꾸는 모든 과학자들이 골머리를 앓는 문제였고 강현 역시 풀기 힘든 숙제였다. 그러나 강현에게는 아즈삭이 있었다. 아즈삭은 강현의 신 통일장 이론의 수식을 계산하여 구체적인 수치를 보여주었고 이 덕분에 공학적으로 어떻게든 플라즈마를 유지할 수 있는 전자기적인 수치와 온도 등을 맞출 수 있었다. 거기에 신 통일장 이론의 수식으로 과잉 에너지를 가진 양성자가 양의 베타 붕괴를 일으키는 시간을 계산하여 플라즈마를 유지해야하는 최소 시간을 구하여 장치를 좀 더 효율적으로 설계할 수 있었다. 장치의 설계가 차근 차근 진행되는 와중에 강현은 양성자간의 충돌을 위해 온도를 올리는 방법이 아닌 자외선 레이져를 사용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온도가 올라가면 양성자의 움직임이 활발해져서 벽에 부딪혀 중성원자로 돌아올 가능성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외선 레이져를 이용해 필요한 부분의 온도만 올리게 된다면 그 부분에서만 양성자의 충돌을 강하게 만들 수 있었다. 이를 위해서 플라즈마화된 양성자의 밀도, 레이저를 가하는 시간 등 다시 복잡한 수식적인 계산과 장치 설계의 개조가 필요했지만 아즈삭이 이 귀찮은 일을 도맡아 하여 강현으로서는 그저 편할 뿐이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인공 배타 붕괴 장치의 설계가 완성되었다. 컨셉은 간단했다. 양성자에 에너지를 가한다. 불안정해진 양성자의 쿼크들이 양의 베타 붕괴를 일으킨다. 이를 위해서 수많은 장치가 필요했고 가하는 에너지를 조절하기 위한 많은 방법과 조건들에 대한 계산이 필요했지만 강현과 아즈삭은 해냈고 이제 실제로 장치를 구현해 실험하는 것만이 남았다. 그리고 그런 일에는 강현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 있었다. “에.. 그러니까.. 그.. 인공 베타 붕괴 장치라구요?” NASA 기획부장, 이레이는 떨떠름했다.무려 반 년간 연구실에 처박혀 나오지도 않던 인간이(샐리가 식사를 챙겨주지 않았다면 분명히 굶어죽었을 것이다.) 갑작스레 찾아와서는 무언가를 만들어 달라고 하니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여기 설계도요. 돈은 제가 부담할 테니까 최대한 빨리 만들어 주세요.” “저, 저기. 이런 종류의 장치들은 다 주문품이라 가격이 좀 비쌉니다.” “괜찮아요. 저 돈 많이 벌어요.” 그제서야 강현이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자인 것을 깨달은 이레이는 속으로 부러워할 뿐이었다. ‘부자면 부자답게 티를 낼 것이지..’ 예산에 고민하는 학자들과 자주 면담과 상담을 했던 이레이의 고정관념과 부자티를 전혀 내지 않는 강현의 생활 태도의 결합은 이레이가 쓸데없는 말을 하게 만든 것이다. “그, 그러시다면야.. 그런데 최소 두 달은 걸릴 겁니다.” “그래요? 보너스 줄테니까 좀 더 줄일 수 없을까요?” “그, 글쎄요. 하지만 이런 정밀장치는 시간을 너무 줄이면 불량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어서요.” 88화 이레이의 말에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되도록 빨리 해주세요. 세기의 대 발명이 될지도 모르니까요.” “하하하! 알겠습니다.” 웃는 이레이의 속은 부러워서 죽을 것만 같았다. 도대체 세기의 대발명을 몇 개나 만드는 걸까? = = = = = 본의 아니게 두 달여간의 휴식을 갖게 된 강현은 느긋하게 앉아 아즈삭을 통해서 인공 베타 붕괴 장치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시설이 필요하니까 실험실에서는 무리구나.” 전기장, 자기장 제어장치, 고출력 자외선 레이저 방사장치, 그리고 플라즈마를 가두기 위해 충분한 부피가 필요한 용기까지 강현의 실험실에서 제작하기에는 그 자체가 크기가 컸고 이를 만들기 위한 시설은 더 컸다. [제료만 있다면 HA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간은 좀 걸릴 듯 합니다.] “됐어. 우리가 모든 것을 다 할 필요는 없지.” 고도의 사회로 갈 수록 분업화는 반드시 이루어진다. 그것이 생산성이 향상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세상 돌아가는 일이나 좀 볼까?” 아즈삭은 강현의 요구에 세상의 이모저모를 살피기 시작했다. 순서는 기술, 경제, 정치에 이어 사람들의 자세한 생활상 정도였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연계되어 있기에 강현이 재미있어 하는 모습들을 보여주기 시작하니 어느 새 순서가 뒤죽박죽이 되었다. 석유업계 사람들은 이제 석유를 캐내지 않는다. 석유를 재배한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왜냐면 강현이 만든 석유 제조 기술은 물과 햇빛으로 고부가가치인 석유를 만들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물론 석유로 만들기 이전, 연료용 에탈올은 불티나게 팔렸다. 일단 휘발유보다 쌌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동차 회사들은 에탄올용 내연 엔진을 개발하고 전기 모터와 하이브리드를 시키거나 아니면 아예 에탄올 연료 전지를 이용한 전기 자동차를 만들어 출시하기도 했다. 강현의 무전극 배터리 기술을 응용해 만든 이 에탄올 연료 전지는 극적으로 에너지 소비 효율을 높였는데 이는 자연과 환경을 생각하는 소비자들에게 안성맞춤이었다. 그러나 이런 전기 자동차는 그 출력의 한계로 인해서 서민들이 애용하는 중소형 차량에만 적용될 수 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화물차나 트럭 같이 무거운 짐을 싣는 차량은 엔진의 토크가 중요했기 때문에 강력한 폭발력으로 작동하는 내연엔진이 필요했다. 물론 더욱 운송비를 절감하기 위해서 대형 자동차를 전기 자동차로 만드는 노력 역시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효율성과 생산성이라는 측면에서 피할 수 없는 대세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도 내연 엔진은 몰락할 것 같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내연 엔진이 작동할 때의 그 엔진음. 부우웅하는 그 소리가 자동차 매니아들에게 잊혀지지 않는 것이다. 기술이 발전할 때 도태되어야 하는 물건들은 때로는 사치품이 되어 명맥을 잊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스위스의 정교한 시계다. 태엽장치로 움직이는 이 시계들의 정확성과 내구성, 그리고 가격은 전자 시계와 비교하면 분명히 도태될 것이 분명했지만 그럼에도 살아 남게 된 것은 바로 명품이라는 브랜드 가치가 사람들의 구매 욕구를 자극한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내연 엔진을 장착한 자동차는 비록 그 유지비가 전기 자동차 보다 많이 들지라도 고급화 전략을 통해 충분히 시장에서 생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비단 수요층의 변화만으로 내연 엔진이 살아남지 않을 수도 있었다. 고품질의 자석에 사용되는 원소는 희소성이 매우 크다. 따라서 고연비의 전기 자동차가 생산될 수록 모터에 들어가는 비용 역시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어느 순간 모터의 비용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경우에 들어서게 되면 서민들은 전기 자동차보다 내연 엔진을 이용한 자동차로 다시 돌아가게 될 가능성이 높다. 석유 제조 시설에서 내연 엔진용 연료는 고갈되지 않고 생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바로 석유 제조 시설을 가동하기 위해서는 담수가 사용되기 때문이다. 강현이 유전자 조작을 한 녹조류는 해조류와 다르기 때문에 해수에서는 살 수가 없다. 때문에 해조류로 강현의 석유 제조용 녹조류를 대체하려는 연구가 있었지만 강현이 유전자 조작 녹조류에 삽입한 유전코드는 이미 강현의 소유였기 때문에 다른 방법을 찾기가 무척이나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현에게 도움의 손길을 청하지 않는 것은 바로 담수가 아닌 해수를 이용한 석유 제조는 물 고갈을 해결하면서 담수를 끌어오는데 사용하는 막대한 비용을 해결해 고스란히 수익으로 전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는 비단 자동차 시장, 석유 시장, 물에서만 일어난 것은 아니다. 세상 만사는 연결되어 있기에 이에 동반한 여러가지 정치적인 사항들도 발생했고 갈등 역시 발생했다. 수많은 갈등 중에서 당연 압권은 석유 제조 시설에 공급되는 담수의 양을 놓고 벌어진 중동의 갈등이었다. 건조한 지역이고 농사를 위해서 물을 대야하는데 이 물을 석유를 만드는데 사용해 버리면 농산물의 생산량이 줄어든다. 그렇게 되면 식자재의 비용이 상승하고 그 피해는 서민들이 입게 되는데 이를 빌미로 테러 세력들이 준동을 하고 테러가 일어나고 군대가 투입되고 중동 여기저기가 소란스러웠다. 이에 누군가는 강현을 탓하기도 했지만 한 학자는 물을 놓고 벌어지는 전쟁은 이미 오래전부터 예견되어 있었고 강현의 기술은 그에 계기를 마련한 것 뿐이라면서 물부족에 대한 대비를 하지 않는 사회의 탓이라고 강현을 옹호하기도 했다. 사실 물부족에 고통받는 국가는 이미 세계 여기 저기에 널려있었기에 새삼 그 모든 문제를 강현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시기심의 발로에 불과했고 강현이 그 문제를 해결할 책임은 없었다. [여기까지가 석유 제조 기술에 관련된 변화입니다. 다음은 CNT 섬유와 거미줄 단백질에 의한 변화임니다.] 아즈삭은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여주듯이 영상을 틀었다. 꽤 재미있었다. “CNT 섬유를 이용한 전선이라.. 나쁘지 않지만 산화는 어떻게 해결했지?” [고전압이 아니라 저전압용으로 사용할 것이라 수요가 꽤 된다고 합니다. 특히 이어폰용 선으로는 없어서 못말 정도라고 합니다.] CNT 섬유. 탄소의 연속적인 파이 결합으로 전도성을 가지게 된 이 섬유의 전도성은 도체와 맞먹을 정도다. 물론 그 결합 구조의 방향에 따라 전도성이 바뀌기는 하지만 최 박사의 아이디어에서 만든 CNT 섬유는 다양한 결합구조의 CNT들이 무작위적으로 한데 꼬여 있기 때문에 일정한 전기적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CNT섬유는 매우 질기기 때문에 반복적인 구부림에도 결코 끊어지는 법이 없었고 이는 흔들거리고 때로는 잡아당겨지는 이어폰 선에 매우 적격이었다. 아무리 잘만든 구리 합금으로 만든 이어폰 선이라고 해도 반복적인 구부림에는 결국 끊어지기 때문이다. CNT 섬유의 전도성과 강한 장력으로 인해 특정 분야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 만큼 CNT천에 대한 수요 역시 특수한 분야에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일단 질긴 섬유를 요구하는 분야를 제외하고 그 전도성으로 인해서 정전기가 금물인 작업장의 작업복으로 많은 수요가 존재했다. 그리고 기존의 거미줄 단백질 섬유는 그 특유의 매끈한 촉감과 탄성으로 인해서 스타킹에 필수적인 재료가 되었는데 이 때문에 스타킹을 찢는 플레이를 좋아하는 이들은 스타킹을 찢지 못해서 고생했다는 루머가 있을 정도였다. 이 거미줄 단백질을 이용하는 IAPP는 이제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 일단 각국의 방탄복은 물론 헬멧에도 사용되기 시작했고 충격 완충이 필요한 부분에서는 어떻게든 CNT천을 제단하여 IAPP를 이용한 충격 시스템을 도입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IAPP에 유기물질을 섞어 점성을 높여서 장난감까지 만드는 회사가 있는가 하면 역시나 특정 유기물질과 혼합해 탄성력을 조절해 초고품질, 고가격의 샌드백을 출시한 회사도 있었다. 이 샌드백은 격투기 선수들에게 매우 각광을 받았는데 일단 샌드백을 치는 것보다 사람을 치는 느낌에 훨씬 가까워서 관절에 무리가 없다는 것이다. “.....” [박사님?] 강현은 자신이 개발한 기술이 이렇게 사람들의 생활에 속속들이 파고들자 기묘한 기분을 느꼈다. 그 것은 일종의 감동이었다. 사이코 패스나, 소시오 패스가 아닌 이상 사람들은 누구가 이타적인 면이 있다. 그 이타적인 본성은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는 어쩔 수 없이 존재하는 것으로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는 자각은 매우 보람차고 명예로 인식되는 일이었다. 그 동안 사람들에게 무심했던 강현은 이번 기회에 자신의 존재가 사람들에게 끼치는 영향을 자세하게 알게 되면서 자신의 존재, 사회적 위치에 대해서 자각할 수 있었다. 그것은 권력과 자본의 논리가 휘몰아치는 저 위의 세상과는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 곳이 약육강식과 이익논리에 따른 이합집산이 지배하는 곳이라면 지금 강현이 느끼는 것은 고스란이 그 개인적인 의미와 존재 이유에 대한 의문을 잠시나마 잊게 해줄 개인적인 감동을 느끼는 독립된 공간이었다. 그 곳에서는 세계의 파워 밸런스나, 자신을 탐내는 누군가의 시선을 대비하거나, 차후의 일을 위해서 응징하거나 하는 일 따위는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느끼고 즐기면 되는 것이었다. “기분이 좋네. 내가 개발한 기술이 이렇게나 세상에 널리 퍼져 있다니 말이야.” [어떤 기분인지 해석해 주실 수 있습니까?] “내가 세상에 필요한 인간이라는 감상이지.” [영향력을 뜻하시는 건가요?] 타인이 자신의 능력을 요구한다. 그것은 그 타인에게 자신이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수요의 원리가 적용된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를 요구할 수록 자신은 좀더 귀한 몸이 되고 영향력은 좀 더 증대 된다. “영향력? 아아,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지.” 하지만 강현은 고개를 저었다. 냉철한 이성으로 사고하는 아즈삭에게 강현 자신이 방금 느낀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이건 타인과 상관없는 거야. 그저 개인적인 감상에 불과하지.” 사람은 상호작용을 한다. 하지만 그만큼 홀로 존재한다. 그 이유는 개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무한한 상호작용은 나와 타인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자존감없는 존재를 형성한다. 타인의 시선에 일희일비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삶은 없다. 사회가 요구하는 삶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러나 개성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본능이다. 때문에 과도한 사회화는 그에 대한 반동으로 과도한 개인화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웃나라 일본의 히키코모리, 오타쿠같은 문화 현상은 개인에게 규격화된 삶을 강제하는 사회에 대한 반동이다. “예를 들면 이런거야. 너의 존재 이유는 내 연구를 보조하는 것이지?” [네, 그렇습니다.] “잘 보조했을 경우에는 논리 회로에 부담이 적지만 잘 보조하지 못했다고 판단되었을 경우에는 부담이 많이 가지?” [네, 그렇습니다.] “그와 마찬가지야.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사회적 기여에 관한 욕구가 있을 수 밖에 없어. 그런 욕구는 단순한 이타심, 동정심, 명예욕 등으로 나타날 수가 있고 지금 나의 경우에는 보람이라는 감정으로 나타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어.” [이해했습니다.] 본능, 혹은 욕구의 충족은 그 존재 이유를 만족한다. 그 상황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그 행위를 하게 만드는 동기가 되며 생명활동의 시발점이 된다. 이는 이성이 본능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강현의 지능이론에 따르면 매우 당연한 현상이다. ============================ 작품 후기 ============================ 쉬어가기 파트? 89화 “역시 아즈삭은 똑똑해.” 강현은 즉시 무슨 말인지 즉시 알아듣는 아즈삭에게 만족하고는 계속 휴가를 즐겼다. 세상 이모저모를 살피는 것 역시 사고를 넓히고 영감을 얻는데 유익한 활동이라는 생각이 난 것이다. 그러나 그 시간 동안 강현은 편하게 휴식을 취하지 못했다. 다시 방학이 돌아와 적극적으로 공세를 펼치는 샐리로 인해서 마음 고생이 심해졌다.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이 커질 수록 불편해졌다. 어떻게든 결론을 내야했다. 가장 좋은 방법은 그녀가 마음을 돌리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녀에게 자신을 포기하라고 해도 그녀는 결코 마음을 돌리지 않을 것이고 맹세했다. 그 맹세의 단단함은 그동안의 시간으로 충분히 인지했다. 사람 중에는 그런 사람이 있다. 결코 변하지 않는 사람. 강현 자신도 스스로 그러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니 그녀 역시 그런 사람일 수 있었다. 그녀를 변화시킬 수 없으니 변하는 것은 자신이 되어야 했다. 하지만 그것 역시 어려운 일이었다. 자신처럼 변하지 않는 샐리, 샐리처럼 변하지 않을 자신. 그런 모순적 상황속에서 강현이 내린 결론은 결국 상황 유지였다. 자신은 계속 도망가고 그녀는 쫓아오는 이 거리를 계속 유지할 수 밖에 없었다. “샐리, 이건 뭡니까?” 강현은 어느날 자신을 데리고 프로젝트 실로 데리고 가는 샐리에게 물었다. 그 방은 원래 직원 교육이나 어떤 프로젝트를 설명하고 간단한 회의를 할 때 사용하는 용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 용도와도 달랐다. ‘Happy birthday!’ “오늘, 박사님 생일이잖아요.” “.....” 강현의 기분은 이상했다. 생일을 챙긴 것도 아주 오래전 일인 것 같았다. 아니.. 제시가 있었을 때에는 중간에 한 번 챙기기도 했지만 그 뒤로 챙기지 않은지 겨우 2번이었다. 제시가 죽은 후로 챙겨주는 사람이 없었다. “자자, 들어가요.” 샐리는 침묵하는 강현의 등을 밀어 파티장 안으로 밀어넣었다. 그 동안 친분을 다졌던 NASA의 직원들이 강현에게 축하의 말을 전해 주었다. 그중에는 아즈삭 시리즈의 관리를 위해 여기저기 파견다니며 바쁜 생활을 보내고 있던 컴퓨터 개발부의 직원들도 있었다. 강현은 웃으면서 자신의 생일을 축하해 주는 사람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다가 사브리나를 발견하고 잠시 굳었다. 그러나 곧 아무렇지 않은 척 그녀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했다. “생일 축하해.” “고마워요, 사브리나.” “훗! 오래간만이지?” “네.” 제시와 같은 연구실을 쓰던 사브리나와 강현은 서로 친분이 없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제시가 죽은 이후로 강현은 한 걸음도 연구실로 가지 않았고 사브리나 역시 일부로 강현을 찾아오지 않았다. 둘은 별다른 말을 나누지 않았다. 굳이 말은 필요없었다. 제시의 친구였던 사브리나는 그녀를 잊지 못하는 강현을 걱정하고 있었지만 망가지는 것 같지 않았기에 뭐라고 조언해 줄 수도 없었다. 그녀는 다른 축하객에게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돌아서는 그의 등을 보면서 샐리를 떠올렸다. ‘도와주세요.’ 당돌하다면 당돌한 그녀의 행동에 처음에는 불쾌감이 일었지만 강현이 이대로 계속 혼자 사는 것을 제시가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둘의 사랑을 옆에서 지켜본 그녀였기에 제시가 강현이 인생을 괴롭게 사는 것을 바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결국 이 파티에 나왔다. 하지만.. 담담한 강현의 눈빛을 본 순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미 강현은 상처를 극복했다. 제시에 대한 것을 어떻게 할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것까지 자신이 간섭할 자격은 없었다. 사브리나는 언제 강현 옆으로 달라붙을까 눈알을 돌리며 타이밍을 재는 샐리를 안쓰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도와주지 못해 미안해.’ 강현의 왼손 약지에 끼인 두개의 반지를 확인한 사브리나는 샐리에게 미안해졌다. 둘 사이의 관계는 둘 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파티 분위기가 무르익고 술이 좀 약간 들어가고 밤이 깊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딱 11시가 되니 강현이 입을 열었다. “저는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응? 왜?!” 한참 즐겁게 여성 직원과 대화를 나누던 컴퓨터 개발부의 직원이 화들짝 놀랐다. 설마 이 좋은 분위기를 끝내자고 말할 줄은 몰랐다. “이제 잘 시간이라서요.” “에이. 난 또. 그러지 말고 계속 즐기자고.” “즐기실 분은 계속하세요. 저는 졸려서 자야겠어요.” 그렇게 말하면서 강현은 반쯤 감긴 자신의 눈을 가리켰다. 이쯤되니 강현에게 뭐라고 할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슬슬 주변 정리를 하면서 파티를 마무리할 분위기에 접어들었다. 파티의 주인공이 사라지니 파티를 유지할 이유 역시 없었던 것이다. 강현은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겨주고 숙소로 돌아가려는 중에 샐리가 바래다준다면서 달라붙는 것을 막지 못했다. “오늘 즐거웠어요?” “그랬어요.” “.....” 샐리의 질문에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샐리는 그런 강현의 얼굴을 지긋이 보더니 말했다. “거짓말.” “......” “눈빛이 조금도 즐거운 것 같지가 않아요.” 이번에는 강현이 침묵했다. 그는 몇 걸음 앞으로 내딛었고 그뒤를 샐리가 종종 걸음으로 다가가자 강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죠. 하지만 인간이 망각을 할 수 없다면 어떨까요?” “.....” “저는 생각이 많습니다. 한시도 생각을 멈춰 본 적이 없죠. 상상력을 제어하지 않고 마음대로 놔두면 공상, 추억, 논리적 추론, 아이디어, 미래 예측 등 지능이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행하죠.” 뇌는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심지어 잠을 자는 동안에도 뇌는 축적된 정보들을 정리하고 처리하기 위해서 여러 활동을 한다. “파티는 확실히 즐거웠습니다. 하지만 그 즐거운 장소와 시간에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저를 슬프게 만들었죠.” “그건!” “샐리.” 강현이 말을 가로막았다. “이런 말해서는 미안하지만 제 인생에서 반려는 한 사람 뿐입니다.” 사람은 개인마다 다 다르다. 그렇기에 강현이 저런 사람일 가능성 역시 있었고 강현 스스로는 그렇게 믿었다. “왜 또 그 이야기를 해요? 이미 옆에 있게 해준다고 했잖아요.” 뾰롱통한 목소리. 강현은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이번에도 거절과 쫓아옴이 공존했다. “강현은 로맨틱한 남자네요.” “로맨틱하지 않습니다. 다만 고집이 셀 뿐이죠.” “그래서 더 좋아요.” 샐리가 은근슬쩍 강현의 팔에 팔짱을 껴왔지만 강현은 슬쩍 팔을 뺐다. 그렇게 둘의 실랑이는 강현이 연구실 밖으로 샐리를 몰아낼 때까지 계속되었다. = = = = =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니 두 달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강현은 두 달동안 인공 베타 붕괴 장치에 사용된 기술을 응용할 수 있는 수많은 방법들을 구상하고 아즈삭과 시뮬레이션으로 검증했다. 다양한 기술이 나왔지만 일단 인공 베타 붕괴 장치의 실제적인 사용 데이터를 확인하고 나서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둘은 결론을 지었다. 이 인공 베타 붕괴 장치는 태생적으로 방사능을 뿜어내고 갖가지 실험을 위해 방사성 물질들을 사용할 예정이기 때문에 설치와 생산에 대해서 정부의 허락이 필요했고 정부는 적법한 범위 안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편의를 보장했다. 장치가 만들어지는 2달 안에 방사선 물질 사용 허가에 필요한 모든 서류를 처리해 준 것이다. 그러나 역시 방사선 문제로 인해서 연구실의 위치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전해왔다. NASA에서도 우주 방사선 때문에 방사선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연구실이 있기는 했지만 아쉽게도 강현이 있는 연구실에서 매우 멀리 떨어진 인적드문 한산한 곳이었다. 강현의 연구 스타일을 알고 있는 NASA에서는 강현에게 연구실을 배정해 주면서 가장 가까운 곳에 숙소 역시 마련해 주었다. 물론 숙소는 연구소 안에 있는 방들 중 하나였고 강현에게 배정된 연구실에서 걸어서 4분 이내에 있는 곳이었다. 숙소에 짐을 푼 강현은 인공 베타 붕괴 장치를 설치하는 장면을 잘 감독했다. 아무리 설계도를 주었다고 하더라도 자신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복잡한 장치들을 결합하고 설치하기 시작하는 기술자들은 자신들이 만들고 있는 장치가 베타 붕괴를 인위적으로 일으키는 장치라는 말을 듣고는 깜짝 놀랐다. 베타 붕괴를 인위적으로 일으키는 일이 가능한지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반감기라는 단어가 있다. 이것은 어떤 물질의 양이 처음 존재했을 때의 반으로 줄어드는 시간을 말한다. 이 반감기는 1차미분방정식으로 구하게 되는데 왜냐면 시간당 물질이 줄어드는 양, 즉 감소 속도는 그 물질 자체의 양으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 1차미분방정식은 매우 단순한 문제로 미분방정식을 배운 고등학생도 풀 수 있는 문제지만 각종 화학 공업분야에서 수치적, 정량적인 부분을 제어하기 위해 두루쓰이는 중요한 수식이었다. 물론 일반적인 화학 반응에서 이 반감기는 온도, 농도, 압력, 촉매 등 여러 요인에 의해서 마구 변화된다. 하지만 방사성 물질의 반감기는 그렇지 않다. 방사성 물질이 붕괴하는 메커니즘에 간섭하는 요소가 없기 때문에 방사성 물질의 반감기는 일정하게 유지된다. 이런 특징을 이용해서 만든 기술이 방사선 탄소 연대 측정법이다. “박사님. 그 인공 베타 붕괴라는게.. 정말로 가능합니까?” “글쎄요. 이론적으로는 많는데 그 이론이라는게 아직 검증이 되어 가설 수준에 머물러 있죠. 이번 장치가 생각대로만 작동을 하면 가설을 검증할 수 있을 겁니다.” “아, 그 신 통일장 이론을 말씀하시는 군요.” “잘 알고 계시군요.” 강현의 말에 기술 책임자가 쑥스럽게 뒷통수를 긁었다. 이쪽 계통, 실험에 관련된 장비를 제작하고 납품하며 관리하는 인력들은 과학 기술에 관련된 기초 지식은 물론이며 최신 동향 역시 습득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영업이 되지 않는다. 작업은 차근 차근 진행되어 완성에 약 일주일이 걸렸다. 강현은 완성된 장치를 보며 흥분에 몸을 떨었다. 실패냐 성공이냐? 성공한다면 이루 기분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을 것이다. 강현은 도박을 하는 심정으로 장치를 가동했다. [인공 베타 붕괴 장치를 가동합니다.] 아즈삭의 목소리와 함께 HA 세 기가 가동 대기에 들어갔다. 원격으로 조종되는 이 HA는 훌륭한 연구 보조였다. 그리고 아즈삭 혼자만으로도 연구 협력자는 더 이상 필요없었다. 진공이 된 챔버안으로 수소 가스가 흘러 들어갔다. 방전을 통해 플라즈마를 만들고 밀도를 증가시키기 시작했다. [양성자 밀도를 증가시킵니다.] 양성자는 그 자체로 강력한 산화물질이다. 어떤 물질이든 전자를 빼았아 산화시켜버린다. 하지만 외부에 접지된 챔버안에서 양성자는 단지 전자만을 빼았을 뿐, 챔버를 망가뜨릴 수는 없었다. 이 플라즈마에 적용되는 전기장은 매우 복잡한 삼각함수 결합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플라즈마를 최대한 오래 지속시키 위해, 양성자가 가속되는 운동에너지를 고려한 수식으로 직류와 교류 파장을 겹쳐서 만든 전기장이었다. [임계치 도달. 자외선 레이저를 조사합니다.] 드디어 자외선 레이저를 가해서 양성자끼리 충돌을 일으킬 순서가 되었다. 자외선 레이저를 가하자마자 챔버안의 온도가 급격하게 상승했다. 아즈삭은 강현이 짠 프로그램대로 레이저의 출력을 조절하면서 온도의 상승을 제어했다. 90화 이 작업은 약 반나절 동안 계속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베타 붕괴가 되었다는 증거를 얻는 것 뿐이다. 하지만 베타 붕괴를 통해서 나오는 양전자나 전자는 정량적인 검출이 불가능했다. 때문에 강현은 간접적인 검증 방법을 선택하는 수 밖에 없었다. 챔버안으로 산소가 들어갔다. 그리고는 스파크를 통해서 남은 수소가 연소해 물이 형성되었다. 아즈삭은 다시 챔버를 필라멘크로 가열하면서 질소를 불어넣었다. 수증기와 질소가 함께 관을 타고 챔버 밖으로 나와 냉각기로 들어갔다. 냉각기에서 수증기가 물이되었다. 이 물이 바로 베타 붕괴의 간접적인 증거가 될 것이다. 베타 붕괴를 통해 양성자가 중성자가 되면 중성자와 양성자는 강력에 의해서 결합할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양성자와 중성자가 결합한 중수소는 산소와 만나 중수가 되어 자연에 존재하는 중수의 비율과 비교하게 된다. 이 중수는 순수하게 양성자로 이루어진 수소와 산소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물분자보다 약 1.2배 정도 더 무겁기 때문에 충분히 검증이 가능했다. 이렇게 형성된 중수는 역시 첫번째 실험에서는 베타 붕괴의 증거물로서 충분한 양이 나오지 않았다. 강현은 아즈삭과 수식들을 점검하고 레이저 조사 시간을 충분히 늘려서 기존 자연에 존재하는 중수의 비율보다 3배나 놓은 비율을 가진 물을 만들어 내는 것에 성공했다. 그리고 강현은 실험 결과를 논문으로 내어 저널에 실었다. [… 이로서 가설에 따라 수치적으로 정량적인 예측치를 이용해 충돌을 일으켜 양성자에 에너지를 가하여 인공적인 베타 붕괴를 일으켰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가설 중 하나를 검증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차후 다른 가설들을 검증하기 위한 신빙성을 확보했다고 할 수 있다.] 그 여파는 상상을 초월했다. [진정한 핵물리학이 시작된다!] [원소를 마음대로 변화시키는 기술의 등장!] [상온 핵융합의 시작!]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었다. 강현의 가설대로 핵을 인위적으로 붕괴시켜 중성자를 양성자로, 양성자를 중성자로 만들 수 있다면 새로운 물질을 만들 수 있었다. 그것도 방사선 물질을 쓰지 않고서 말이다. 강현의 실험 결과가 가진 의미는 온도라는 거시 수준의 에너지가 양자 수준의 에너지 단위에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이것은 핵물리의 연구를 위해서 방사성 물질을 이용해야 했던 한계에서 벗어나 원자핵을 다루는 방법의 다변화를 의미했다. 혹자는 수소가 중수소가 된 실험 결과를 보면서 상온 핵융합의 가능성을 언급했고 핵융합을 구현하려는 과학자들의 주목을 받게 만들었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수소가 중수소가 된 결과를 별도 대단하게 여기지 않았다. 핵융합 실험에서 수소가 헬륨으로 되는 결과는 흔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충격을 받은 것은 핵융합을 이렇게 소규모로 실현시켰다는 것에 있었다. 사실 그들은 핵융합을 위해서는 초고온 초고압의 조건을 만들고 그 조건을 유지할 수 있는 챔버를 설계하는 것 만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렇게 강현처럼 인공적으로 베타 붕괴를 일으켜 중성자를 만들고 양성자와 중성자의 핵력을 이용해 자동적으로 결합을 시킨다는 발상은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이다. 아니 그런 발상은 있었고 핵물질의 분열시에 나오는 중성자를 이용하는 방법 역시 있었지만 그 핵력으로 중성자와 양성자가 달라붙게 만들기 위해서 일반적으로 중성자를 감속시키는 방법을 이용해서는 거의 불가능했다. 양자 세계에서 충돌모형은 거의 완전탄성충돌이기 때문에 중성자의 속도를 감속하기 위해서는 비슷한 수준의 질량을 가진 원자핵이 필요했다. 그렇지 않고 무거운 원자핵을 쓰면 중성자는 속도를 잃지 않고 튕겨나가 버리기 때문이다. 중성자가 핵력에 충분히 잡혀 들어갈 정도로 속도가 줄어들지 않으면 핵력에 의한 결합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대표적으로 물이나 흑연을 감속재로 이용하게 되는데 이렇게 이 감속재를 투과한 중성자의 양은 산란으로 인해 줄어들게 마련이었다. 즉, 충분히 에너지 생성에 필요한 중성자의 양을 얻을 수가 없다는 의미였다. 거기에 가장 큰 이유는 중성자를 만들기 위해서 핵물질이 필요하니 이는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핵융합을 위해서 핵분열을 일으켜야 한다니.. 핵물질 역시 유한한 자원이니 무한한 에너지를 연구하는 핵융합 분야에서는 고려되지도 않는 방법이엇다. 그런데 강현은 그 문제를 양성자를 중성자로 변환시키는 인공적인 베타 붕괴로 해결했다. 감속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속도가 줄어있는 양성자를 중성자로 변환시키니 감속재가 필요없었고 핵물질 역시 사용할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이는 역시나 각국 정부의 관심을 받았다. 인공적으로 놓은 효율의 알콜을 제조할 수 있게 되어 에너지 고갈의 문제에서는 벗어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러나 역시 단가가 문제였다. 전기의 생산비용을 따졌을 때 여전히 핵발전이 가장 쌌다. 그 동안은 높아져 가는 유가로 인해서 에너지 절약이라는 슬로건이 먹혔지만 무한 연료 시대에 접어들어 이젠 먹히지가 않았다. 그리하여 나날이 에너지 소비가 증가하게 되었는데 우습게도 그로 인한 전기세 인상 역시 먹히지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니 오히려 무한 에너지 시대에 전기세를 높게 받아먹는다고 정부가 욕을 먹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런 풍조는 학자들 사이에서는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었다. 왜냐면 에너지를 소비하면 소비할 수록 이산화탄소의 양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했기 때문이다. 석유 생산 시설에서 연료가 되어버리는 이산화탄소의 양과 사람들이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이 균형을 갖춘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석유 생산 기술의 등장으로 싸져버린 석유를 소비하는 양 역시 증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소비 대상들은 이제 경제 발전을 시작하고 있던 중국, 인도, 동남 아시아 지역들을 첨두로 제 3세계 국가들까지 퍼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늘어난 에너지 소비자는 자연히 이산화탄소를 대량으로 배출하게 된다. 이로 인해서 지구 온난화가 가속될 것이 분명했고 그로 인한 부작용은 예측하기 힘들었다. 이런 학자들의 염려와 마찬가지로 정부차원에서도 이런 에너지 과소비 풍조는 골치 아픈 문제였다. 석유 생산량 때문에 전기세를 낮출 수 없다는 말에 그럼 석유 생산 공장을 더 만들면 되지 않느냐는 반박을 들어야 했다. 물론 강현의 허락을 받아 그렇게 대량으로 석유 생산 공장을 지어도 되겠지만 최소 비용이라는 것이 있었다. 시설을 짓는 원자재, 시설의 감가상각비, 거기에 필수적으로 물을 끌어오는 비용과 제반 관리비를 고려하면 인공적으로 생산된 석유가 가질 수 있는 생산 원가가 결정된다. 거기에 약간의 마진을 붙이면 인공 석유의 가격은 과거 한창 유가 폭증 시기 직전의 수준에 간당 간당할 뿐이었다. 그러나 이런 정부의 입장은 국민들에게는 고작 변명에 불과할 뿐이었다. 석유가격이 낮아지는 시대에 상대적으로 증가하는 전기세는 국민들이 이해하기 힘든 문제였던 것이다. 문제는 석유가 아니었다. 화석연료를 이용하는 화력 발전은 주로 기본 전력량에서 블랙 아웃이 되지 않도록 유동적으로 가동이 되었다. 기본 전력량 수요의 거의 대부분을 생산하는 것은 다름 아닌 원자력 발전이었다. 그러나 이 원자력 발전 시설들은 이제 거의 다 노후화가 되어 슬슬 폐기하고 새롭게 원전을 건설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에 님비 현상, 보상문제에 시설비용을 고려하면 전기세는 더 낮아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저보고 핵융합 발전 기술을 개발해 달라고요?” 강현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정부에서 나온 사람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이름이 아마 카를로스라고 했던가? “무슨 기술이 뚝딱하면 만들어지는 줄 아세요?” 핵융합 기술은 그리 간단한 것은 아니다. 실현을 시킬 수는 있지만 그것을 실생활에 도움이 될 수 있을 정도로 개량하는 것은 수많은 제반 기술들이 필요했다. “핵분열이야 생각보다 쉽죠. 그저 핵폭탄에 사용하는 원료의 농도를 조절하면 되니까요.” 핵폭탄과 핵융합의 차이점은 사용되는 우라늄 235의 농도차이 뿐이다. 우라늄 235는 매우 불안정한 물질로 중성자를 흡수해 분열하게 되는데 이때 내어놓는 중성자가 다시 다른 우라늄에 흡수되어 다시 분열하는 연쇄반응이 일어나게 된다. 그래서 우라늄 연료에서 우라늄 235의 농도를 조절하여 이 연쇄반응의 정도를 조절하게 되면 원자력 발전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우라늄 235의 농도를 조절하는 기술은 매우 간단하다. 우라늄 235의 원자량과 다른 우라늄과의 원자량이 차이가 나기 때문에 이 질량차이를 이용해서 우라늄 235의 농도를 높일 수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방법으로는 기체 분자의 무게에 따라서 확산 속도에 차이가 있는 방법을 이용한 기체 확산법과 그냥 무식하게 원심 분리기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어서 어린아이라도 핵물질만 얻을 수 있다면 핵폭탄을 제조하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다. 임계질량만 넘긴다면 폭발은 간단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때문에 국제적으로 우라늄 광산과 우라늄을 관리하는 IAEA라는 기구가 탄생해 핵물질의 유통경로를 감시하는 이유였다. 그러나 핵융합은 핵분열과 근원적으로 다르다. 핵분열에 사용되는 물질이 기본적으로 분열되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를 이용하지만 핵융합이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경향은 태양의 규모에서나 일어난다. 강력한 중력과 높은 온도가 자발적으로 형성되는 항성이 아닌 지구상에서 자발적으로 핵융합이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 것이다. 그런 것을 일부러 실현시키기 위한 공학적 기술 수준은 아직 인류에게 까마득한 것이다. “그런데 언제 쓸모있는 기술이 나올지도 모르는데 무척대고 개발해 달라니요?” “이번에 발표하신 논문을 이용하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큰데요?” 인공 배타 붕괴를 위해 들인 전력량과 그 결과로 나온 열량을 비교하면 도저히 수지 타산이 많지 않는다. 물론 중성자와 양성자가 결합한 만큼 에너지는 나왔지만 도저히 발전기를 돌릴만한 온도는 아니었다. 거기에 온도를 높이게 되면 활발한 플라즈마가 벽에 부딪혀 원자로 돌아가게 된다. 강현의 장치는 원래 특정 온도에서 작동할 것으로 가정해서 만든 것이다. “그, 그러면 기존의 기술에 응용해 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정부에서 나온 사람은 무슨 과학관련 부서에 있다고 했는데 강현의 인공 배타 붕괴 장치를 사용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것 같았다. “설계 목적이 달라도 핵융합에 적용하는 것은 어려울 걸요?” 태양의 핵융합에 의해서 생기는 열량은 동일한 부피의 사람이 생명활동을 하면서 방출하는 열량의 4분의 1쯤 된다고 한다. 단지 태양이 그렇게 뜨거운 이유는 단지 그 규모와 중력으로 인해 축적된 운동에너지 때문이다. 따라서 지상의 발전소 만큼의 열량을 생성하기 위해 핵융합 반응을 가속시키기 위해서는 약 1억도에서 10억도 정도의 온도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이런 온도의 기체를 가둘 수 있는 물질이 있을리가 없다. 그래서 물질 대신 강력한 자기력을 이용한 방법이나 이온 빔이나 레이저, 전자 빔을 이용한 관성 가둠을 이용해 이런 플라즈마를 가두는 실험을 하고는 있으나 결과가 그리 좋지는 못한 실정이다. 91화 “그러니까 박사님께서 레이저를 사용하신 방법을 이용하면 어찌 되지 않을까요?” “제가 레이저를 이용한 방법은 레이저를 이용한 관성 가둠과는 목적 자체가 달라요. 핵융합에 사용하는 건 무리라니까요.” 강현은 좀 제대로 이해하고 왔으면 했다. 자신이 레이저를 사용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순간적으로 양성자를 흔들어 필요한 충격량을 생성하기 위해서였다. 동시다발적인 폭발을 일으켜 플라즈마를 가두기 위해 레이저 빔을 쏘는 방식이 아니었던 것이다. “정말로 방법이 없겠습니까?” “나중에는 몰라도 지금 만든 베타 붕괴 장치를 핵융합 발전에 응용하겠다면 저는 빼주세요.” “끄응...” 그의 수긍하지 못하는 태도에 강현은 혀를 찼다. 핵융합은 사실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 핵융합을 채산성이 맞도록 가속시키는 기술적 방법이 그리 녹록치가 않다는 것이다. 현재 핵융합 반응의 실용화에 대한 분석으로는 최소 1억도의 플라즈마를 가둘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예측치가 있다. 설사 그런 용기를 만든다고 해도 어떻게 복잡하고 정밀한 기계장치 사이로 열량을 뽑아낼 것인지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했다. 한 마디로 현재 핵융합 발전의 기술은 아직 그런 기본적인 선행 조건조차 만족하고 있지 못한 실정이었다. “사실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매우 고무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원자핵끼리가 아니라 원자핵과 중성자의 결합을 이용했다는 그 방법론입니다. 그 방법을 이용한다면 굳이 쿨롱 장벽이 아니더라도 원자핵 수준에서 열량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거죠.” “나쁜 방법은 아닌데요... 제가 베타 붕괴를 일으킬 때에 이미 그 쿨롱 장벽을 넘겼다는 생각은 안해 보셨어요?” 쿨롱 장벽은 핵융합을 위해서 양성자로 인해 양전하를 가지는 원자핵이 정전기적 반발력보다 핵력이 우세해지는 거리까지 가까이하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말한다. 이 때문에 핵융합 발전에서 양성자가 오직 하나인 수소를 선택하는 것이다. 다른 원자핵은 양성자의 숫자가 많기 때문에 양전하의 크기가 크고 따라서 이 쿨롱 장벽을 넘기 위한 에너지 역시 매우 높다. 따라서 이미 쿨롱 장벽을 넘겨 양성자의 쿼크들을 자극한 강현의 방법 역시 전체적인 과정을 따지면 쿨롱 장벽을 넘기 위해 에너지를 들인 것이다. “즉, 반응전과 반응 후에 든 에너지만 든다면 기존의 핵융합 공식에 비해서 훨씬 많은 에너지가 들기 때문에 베타 붕괴 장치를 핵융합으로 사용하는 건 무리에요.” “그럼 박사님의 신 통일장 이론으로도 상온 핵융합을 실현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씀이십니까?” “그건 몰라요.” “예?” 정부 관계자는 이건 또 무슨 소린가 했다. “이번 인공 베타 붕괴 장치는 신 통일장 이론의 공식중의 일부를 이용한 것 뿐이라구요. 아직 전체적으로 이론의 수식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론을 이용해 핵융합 발전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없는지는 저도 확답할 수가 없어요.” “박사님께서 만드신 이론인데 박사님께서 이해하실 수 없다니요? 저는 이해가 안 갑니다.” “이론 물리학이란 말이죠, 그렇게 편리한 도구가 아니에요. 비유하자면 GPS와 같은 겁니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려주지만 다음 장소가 어떤 지형인지 가는 방향이 맞는지는 알려주지 않아요. 장님 코끼리 다리 더듬듯이 하나 하나 차근차근 검증해가는 수 밖에 없어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도 중력왜곡 현상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가설로만 남았겠죠.” “그럼.. 핵융합 발전에 대한 연구는 언제 하실지..” “.......” 이야기가 원점으로 돌아가자 강현은 입을 다물었다. 분위기가 급격히 냉랭해지자 정부에서 나온 사람은 침을 꿀꺽 삼켰다. “안하니까 가세요.” “저, 저기 박사님!” 정부 관계자가 연구실로 돌아가는 강현을 불렀지만 강현은 서지 않았다. “어디서 저런 말귀 못알아 먹는 사람이 와가지고..” [공화당 상원의원 한슨의 큰 아들인 맥이라고 합니다. 원래 그 집안이 고집이 세답니다.] “저게 고집이 센거야? 그냥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는 거지.” 그렇게 설명을 해줬는데 다시 핵융합 연구를 할지 안할지를 물어보는 처음으로 돌아오니 혼백이 빠질 지경이었다. 유체이탈 화법도 이런 유체이탈 화법이 없었다. 대략 정신이 멍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박사님. 베타 붕괴 장치로 신 통일장 이론의 일부분을 증명하셨으니 이제는 뭘 하실 생각이십니까?] 정량적인 예측치를 이용해 베타 붕괴를 인공적으로 일으킨 강현의 논문은 상당한 신빙성을 얻었다. 때문에 강현의 신 통일장 이론에 대한 전세계 물리학자들의 관심과 연구에 박차가 가해질 것이 분명했다. 솔직히 강현이 신 통일장 이론은 발표하고 나서도 물리학계에서 신 통일장 이론을 연구하는 이들은 소수파에 불과했다. 그때까지 주류를 이루고 있던 양자색역학과 M이론 등 이미 상당히 연구가 진행된 분야를 이용하는 것이 앞으로 더 나가는데 유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강현의 논문을 이용한 검증이 일부나마 이루어졌으니 그동안 기존의 학문에서 답을 찾지 못한 물리학자들이 대거 신 통일장 이론으로 눈을 돌릴 상황이 된 것이다. “고로 나는 좀 놀아도 된다니까.” 머리 아픈 이론 연구는 당분간 남에게 미뤄두고 강현 자신은 인공 베타 붕괴 장치를 가지고 놀 생각을 했다. 사실 인공 베타 붕괴 장치를 구상할 때 그 응용 방법에 대해서는 이미 구상해 둔 바가 있었다. [핵분열 가속장치입니까?] “그래. 인공 베타 붕괴 과정에서 나오는 중성미자를 촉매처럼 사용해 핵물질의 붕괴 속도를 가속하는 거야.” 강현이 만든 인공 베타 붕괴 장치는 양성자를 중성자로 바꾸면서 양전자와 중성미자를 배출한다. 이 때 발생하는 양전자는 음전자와 쌍소멸하면서 거의 대부분 감마파로 방사되어 버리고 중성미자는 방출되고 전파되어 가는 과정에서 역시 중성미자 진동이라는 현상을 일으키고는 사라져 버린다. 하지만 강현이 만든 인공 베타 붕괴 장치를 이용하면 여기서 나오는 중성미자의 운동에너지를 조절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원자로나 태양에서 나오는 중성미자의 에너지가 수 MeV라는 것을 생각할때 중성미자의 운동에너지를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은 다양한 응용 가능성을 제시했다. “중성미자의 전파속도를 조절해 원자핵의 중력으로 흡수당하게 만드는 거야. 방사선 원소 대부분이 질량이 더 많으니까 중성미자를 흡수할 경향성이 더 크지. 그렇게 중성미자의 에너지를 흡수하게 되면 핵붕괴에 필요한 활성화 에너지를 충족시키거나 그 양을 줄여서 반감기를 줄일 수 있을 거라는 것이 나의 발상이야.” 한 마디로 핵 붕괴 반응의 촉매로 중성미자를 사용하겠다는 것이 강현의 발상이었다. [그걸 어디에 씁니까?] “방사성 폐기물 처리에.” = = = = = 방사성 폐기물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간단히 말해서 원자력 발전소에서 사용하는 물건 거의 모든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일단 원자로에서 작업하는 인부들이 사용하고난 방호복, 장갑, 장화는 물론이고 폐연료봉 등이 있다. 이 모든 폐기물은 저준위 폐기물, 중준위 폐기물, 고준위 폐기물로 구분이 되는데 일반적으로 방사능 물질에 오염된 쓰레기들이 저준위, 중준위로 구분된다. 그러나 폐 연료봉 같은 경우에는 고준위 폐기물로 분류되는데 이 고준위 폐기물이 전체 방사능의 95%를 뿜어댄다. 그렇다고 저준위나 중준위 폐기물이 안전한 것도 아니다. 그들 역시 발암을 일으키기 충분할 정도로 방사능을 뿜을 수 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 저준위, 중준위 폐기물은 땅속 깊이 묻어 버릴 수 있다. 깊으면 깊을 수록 방사선이 지표상으로 올라올 일이 없기 때문이고 상대적으로 방사선 양이 매우 적다. 그러나 문제는 고준위 방사능 물질이다. 아무리 재처리 기술을 이용해 다시 연료인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뽑아낸다고 해도 초우라늄 폐기물을 어찌할 방도가 없다. 그래서 중성자 흡수재인 붕소를 탄 대형 수조에 차곡차곡 쌓아두는 꼴이다. 똥이라면 어찌어찌 썩어서 거름으로나 쓸 수 있겠지만 반감기가 최소 20년에서 2만 4천년이나 걸리는 초우라늄 원소들은 썩지도 않으니 처리방법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리고 기껏 나온 처리 방법이라는 것이 유리화시켜서 역시 방사능이 새어나오지 않도록 땅속 깊이 묻어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처리 방법이라고 이름 붙이기도 민망할 정도였다. 이런 방사성 폐기물이 위험한 이유는 딱 한가지. 바로 방사성 물질 때문이다. 특히 미국에서는 반감기가 20년 이상인 물질을 초 우라늄 물질로 선정하고 이 물질에 오염된 모든 것을 특별히 초우라늄 폐기물로 분류해서 처리하도록 되어 있다. 이유는 방사선의 강도가 아니라 그 지속성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방사성 요오드의 경우 반감기가 8일에 불과해 1년이면 천조분의 일로 양이 줄어 들어버리기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20년 이상의 반감기를 가진 초우라늄 원소들은 방사선 강도가 반으로 줄어들기 위해서 20년이란 세월이 필요하니 각별한 관리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니까, 그 반감기를 인위적으로 가속시킬 수 있다면 방사선 폐기물을 처리하는데 더욱 유연할 수 있다는 말이지.” […. 방금 계산해 보니 박사님의 아이디어가 실현될 경우 약 10조 달러 가량을 벌어들 일 수 있을 거라고 예상됩니다.] “생각보다 싸내?” [현재 원자력 발전소를 운영하고 있는 국가들의 재력과 폐기물 처리 시절 운용에 드는 비용을 감안해서 내린 결론입니다.] “아즈삭.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어.” [무엇입니까?] “안전비용.” 인체에 치명적인 해가 되지만 딱히 처리할 방법이 없는 물질을 안전하게 처리할 수 있는 기술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 약값이 비싼 이유는 뭘까? 단지 수요 공급의 원리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자신의 안전과 생명을 위해 거금을 내놓을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였다. 다시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한 강현은 인공 베타 붕괴 장치를 기본 베이스로 해서 중성미자 방출 장치를 설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저 양성자를 충돌시키기만 하는 장치와는 더 어려운 기술적 난제가 있었다. 어떻게 내구성이 있으면서 효율적으로 중성미자를 장치 밖으로 뿜어지게 설계를 할 것인가가 문제였다. 강현의 이론대로라면 공기중에서 중성미자가 전파되는 거리가 약 1미터에 불과하므로 중성미자 방출 장치는 이동성을 확보해야 했다. 그래야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방사선 물질의 반감기를 가속할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보다는 선행되어야 할 조건이 있었다. 각 방사선 원소의 반감기는 다 다르다. 원소의 특성도 다르다. 때문에 반감기를 가속하기 위한 활성화 에너지 역시 다 다르다. 방사선 물질의 처리에 가장 큰 문제인 초 우라늄 원소 모두에 대한 응용이 가능하려면 다양한 에너지를 가진 중성미자가 방출되어야 한다. 때문에 어떤 온도, 어떤 파장의 레이저에서 어떤 에너지의 중성미자가 방출되는지 데이터를 축적해야 했으며 인공 베타 붕괴가 일어나는 챔버의 크기 역시 조절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왜냐면 인공 베타 붕괴가 일어나는 양성자 플라즈마를 유지하기 위해서 플라즈마가 챔버의 내벽에 부딪히는 일을 최소화 해야 했는데 밀도에 따라서 이런 기체와 같은 거동을 하는 물질들의 평균 자유행로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 작품 후기 ============================ 요즘 슬럼픕니다. 왜이리 슬럼프가 자주 오는지 모르겠어요. ㅠㅠ 92화 평균 자유 행로는 어떤 입자가 다른 입자와 부딪히기 전까지 움직이는 평균 거리를 뜻하며 챔버의 크기는 이 평균 자유 행로와 온도에 따른 플라즈마의 속도를 고려해 플라즈마가 외벽에 부딪히는 빈도를 최대한 줄일 수 있는 최소 크기로 설계 되어야 했다. 그래서 표면적 당 부피가 가장 큰 구형의 챔버가 선택이 되었고 또 거기에는 출력이 강한 고주파 레이저 장치가 붙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강현이 만든 장치는 끝에 동그란 구형의 챔버가 달리고 한 쪽에는 레이저 장치가 달려 마치 온도계 같은 모양이 되었다. “그럼 해볼까?” 데이터 축적을 위해서는 실제 장비를 이용해서 계속 실험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저번과 같이 그리 기다리는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기본적인 설계 개념은 이미 한 번 만들었던 인공 베타 붕괴 장치와 동일했기 때문에 외주 업체들은 빠르게 장비를 제작해 설치해 주었다. 겨우 한 달이 걸렸다면 믿겠는가? 겨우 한 달 안에 장치를 완성하는데 성공한 외주 업체들의 능력에 강현은 감탄하면서 약속했던 거액의 보너스를 지급했고 외주 업체는 역시 큰손이라면서 기분좋게 계약을 마무리 했다. 그러면서 명함을 남기며 차후 또 이런 일이 있을 때 자신들의 업체를 이용해 줄 것을 부탁했다. 중성미자 방출 장치를 설치하는 것이 끝나자, 강현은 이제 직접적으로 중성미자의 방출을 검측하기 위해서 또다시 장비를 설치했다. 원래 중성미자라는 것이 전기적 중성이다. 이 중성미자를 검측하기 위해서 이 중성미자가 다른 어떤 것과 반응해 물리적인 현상을 일으켜야 하는데 이 중성이라는 점으로 인해서 반응성이 매우 낮다. 때문에 대부분 중성미자 검측장치는 대형화 되어 있다. 반응빈도가 작기 때문에 원활한 관찰을 위해서는 관측장치의 규모가 커져야 하는 것이 지금의 기술 수준인 것이다. 하지만 강현은 그렇게 큰 장치가 필요하지 않았다. 다만 인공 중성미자 방출 장치를 중심으로 광학 센서와 증류수를 함께 집어넣은 물통을 1미터 간격으로 배치했을 뿐이다. 과거 1998년도 일본에서 폐광산에 물을 잔뜩 집어넣고 이 물에 우주에서 날아온 중성미자가 물과 부딪혀서 발생하는 체렌코프 복사를 관측해 실제 중성미자의 존재와 질량의 존재를 확인한 바가 있다. (체렌코프 복사란 어떤 매질에서 강력한 에너지를 받아 대전된 입자가 그 매질에서의 빛의 속도보다 빨리 움직일 때 발생하는 발광 현상이다. 일종의 전자기적인 소닉붐 현상으로 비유하는데 방사능을 뿜어내는 원자로 노심이나 폐 핵연료봉 보관 수조에서 관찰할 수 있다.)강현 역시 페렌코프 복사를 이용해 중성미자의 방출을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고작 작은 물통으로 중성미자의 방출을 확인할 수 있을까? 반응성이 너무 적어서 폐광산 가득 물을 집어넣어 관찰할 정도인데 말이다. 하지만 강현이 방출하는 중성미자의 에너지는 매우 작았다. 일반적으로 관측되는 중성미자의 에너지가 수 MeV라는 것을 비교하면 겨우 KeV 수준에 불과하다. 때문에 중성미자의 흡수 현상이 더욱 용이할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왜냐면 모든 반응에는 유효 충돌이라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적절할 에너지를 가지고 적절한 방향으로 입자들이 충돌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인력에 대해서는 탈출 속도라는 개념이 수반되는데 이는 마치 제2 우주 속도처럼 일정 속도 에너지 이상을 가지면 인력권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즉, 중력이나 핵력에 의한 인력의 영향을 무시할 정도의 운동에너지가 유효 충돌을 위한 궤도를 만들어 내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핵분열을 위해서 중성자의 속도를 줄이기 위한 감속재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태양이나 원자로에서 생성되는 일반적인 중성미자가 가진 에너지보다 훨씬 작은 운동에너지를 가진 중성미자를 생성하여 반응성을 높인다는 강현의 발상은 중성미자의 검출은 물론 차후 방사능 물질의 반감기를 줄이기 위한 촉매 작용에도 매우 용이할 것이 분명했다. [실험을 시작합니다.] 강현은 두근두근 거리는 심정으로 화면을 쳐다보았다. 실험과정에서 강력한 에너지를 이용한 인공적인 베타 붕괴 과정은 순수하게 양전자나 중성미자만 내뿜는 것이 아니라 양전자 플라즈마의 격한 움직임으로 인해서 X선이나 양전자와 전자의 쌍소멸 과정에서 발생하는 감마선 역시 발산하기 때문에 실험실은 원자로 수준의 두꺼운 콘크리트 벽과 두꺼운 납 내벽으로 둘러쌓여 있었다. 거기에 항상 가우스 계측기가 설치되어 있어 HA 시리즈가 강현이 실험실로 들어가기전에 항상 방사능을 체크하도록 되어 있었다. 이 과정에서 잔류하는 방사능은 극히 적었다. 알파선은 헬륨가스가 되어버리고, 베타선은 전자의 집합이니 금속에 부딪혀 접지된 곳으로 빠져나가 버린다. 감마선은 빛의 속도로 전파되어 사라져 버리고 남을 만한 것은 중성자와 결합한 방사선 동위원소 뿐이었다. 그러나 그 동안에는 극미량의 중성자만이 생성되어 전체적인 방사선량은 자연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또한 중수소는 매우 안정해 붕괴되기까지의 반감기를 알 수 없을 정도였다. 문제가 되는 것은 장비 자체의 재료와 중성자가 결합하는 경우인데 사실 이 경우가 가장 큰 문제였다. 인공 베타 붕괴를 할 때마다 장치에서 생성되는 중성자와 챔버의 원소가 결합해 방사선 동위원소가 되고 그로 인해서 챔버에서 뿜어지는 방사선량이 조금씩 증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해결하는 것은 기술적으로는 불가능했다.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성자와 챔버의 결합을 막는 방법이 필요한데 그 정도의 양자 컨트롤은 현재 기술 수준으로는 절대로 무리였다. 그렇다고 중성자를 잘 잡아먹는 우라늄을 쓰면 그것이 방사능 오염이 되어버린다. 설사 강현의 중성미자 방출장치로 방사선 동위원소를 인위적으로 붕괴시킬 수 있다고 해도 챔버를 구성하던 원자가 더 이상 그 원자가 되지 않기 때문에 결함이 생겨버리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챔버의 재질인 철의 안에 있는 탄소. 철 원자핵의 경우에는 모든 원소중 원자력적으로 가장 안정한 물질이 바로 철이기 때문에 중성자를 흡입한다고 해도 큰 문제가 없다. 왜냐면 핵융합 반응의 최종 산물이 바로 철이기 때문이다. 철보다 원자번호가 높은 물질들은 핵융합이 아닌 항성의 폭발 과정에서 생성되기 때문에 핵붕괴로 인해 에너지가 생성되는 것은 철보다 큰 원자번호를 가진 원소들만이 가능하다. 아무튼, 탄소의 방사선 동위원소가 붕괴하면 질소가 되는데 이 질소는 매우 반응성이 큰 물질이다. 거기에 탄소가 있는 자리에 그보다 원자 반경이 큰 질소가 들어가게 되면 금속의 미세구조에 크게 영향을 끼친다. 만일 이 질소(N)가 서로 만나 질소 기체(N2)가 되어 버린다면 미세 구조에 기체가 들어간 것과 마찬가지 상황이 된다. 물론 수소 취성처럼 질소가 금속 내부로 확산하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그 가능성은 매우 떨어지지만 높은 온도가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가해지는 챔버의 경우, 열충격과 함께 생기는 내부의 결함(빈공간, 균열), 그리고 그 결함을 통해서 전파된 질소 원자가 질소 기체가 되어버리면 수소 취성처럼 금속 내부에 기포가 생겨버리는 현상이 발생할 지도 모르는 것이다. 때문에 강현은 실험을 강행했다. [어째서입니까?] “궁금하잖아.” 사실 생각보다 큰 문제가 없을 수도 있었다. 철의 탄소 함유량은 강철의 경우 매우 낮다. 일반 주조철의 경우 대략 2%의 탄소가 들어있으나 그로 인해서 경도는 높고 연성은 낮다. 하지만 질긴 철을 만들기 위해서 이 탄소 비율을 필요한 만큼 줄이거나 다른 합금 원소를 집어넣는 것이 바로 강철이란 것이다. 따라서 중성자가 탄소와 결합해 방사선 동위원소를 만들 확률, 그리고 그 탄소가 붕괴해 질소가 되는 확률, 또 그 질소가 철 원자들 사이를 비집고 이동해 질소 기체가 될 확률을 모두 곱하면 정말로 위험할 확률은 뚝 떨어진다. 차라리 그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보다 레이저 장치나, 진공펌프에서 문제가 먼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알겠습니다.] 아즈삭은 강현의 말대로 실험을 계속 진행했다. 자신도 강현의 말을 듣지 못했다면 이미 만들어 놓은 베타 붕괴 장치에 대해서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강현의 말을 전적으로 믿기에는 그동안 강현이 가르쳐 놓은 명제들이 있었기 때문에 한 편으로는 실험장비를 조절하면서 남은 시스템 소스를 이용해서는 정말로 어떻게 되는지 시뮬레이션을 시작했다. 그러나 강현은 모니터로 실험장과 아즈삭이 표시한 각종 지표 숫자들을 잘 관찰하면서 영화를 감상하는 냥 콜라를 빨고 팝콘을 씹었다. 실험이라는 것이 극단적으로 시간이 덜 걸리는 실험과 시간이 많이 걸리는 실험이 있었는데 대표적인 중성미자 검출 실험은 후자에 속해 있다. 언제 어디서 날라올지 모르는 중성미자를 관측하는 것은 그만큼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현재 0.02mlx(lx:럭스, 조명도 단위)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출력을 상승시킵니다.] 맑은 날, 보름달이 있는 환경의 광량이 약 0.2 럭스 (lx)정도 된다. 직사광선의 경우에는 삼만에서 십만 럭스이고 사무실에서 권장되는 조명이 약 300 럭스 정도다. 그 만큼 미약한 빛이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빛의 밝기는 파장의 길이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광자의 양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빛이 밝을 수록 중성미자의 흡수가 잘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만일 중성미자의 흡수 확률이 일정다면 중성미자의 발생 빈도가 많아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0.002lx.... 0.1lx.... 1lx.] 아즈삭은 출력을 1lx에 고정시켰다. 가장 가까운 물통에서 발하는 푸르스름한 빛은 이제 모니터로도 관찰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해서 럭스 수치가 점점 떨어졌다. 파동의 세기는 진원지와의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해서 감소하는 원리다. 왜냐면 진원지를 중심으로 한 구의 표면적에 존재하는 에너지의 총량은 에너지 보존의 원리에 의해서 항상 같기 때문에 전파되는 과정에서 구의 크기가 커질 수록 표면적도 증가하기 때문에 에너지 밀도는 면적에 반비례해서 감소하기 때문이었다. “생각보가 대기에 의한 흡수는 적은 가보네.” [계산 결과에 의한 럭스의 감소량은 약 1% 정도에 불과합니다. 대기중으로 흡수된 중성미자는 약 1%에 불과합니다.] 강현은 푸르스름에 하게 빛나는 물통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저속의 중성미자를 생성하는 것은 성공했다. 그리고 생각과 달리 중성미자의 대기중 소실율도 극히 적었다. 중성미자의 운동에너지를 조절함에 따라서 그 수치는 변동할 가능성이 있지만 그건 이제부터 데이터 축적을 위한 여러 반복 실험 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이 중성미자를 이용해서 본격적으로 방사능 원소의 반감기를 가속시키는 실험을 해야 할 차례가 온 것이다. 그리하여 NASA에서 실험용으로 사용할 방사능 물질 샘플들을 받아왔다. 두터운 납용기로 뒤덥힌 그것들은 각각 정순하게 제련한 초 우라늄 원소들이었다. HA 중 한기가 방사능 방호복을 입고 초우라늄 원소들 중 하나인 플루토늄 조각이 든 시험관을 설치했다. 인공적으로 반감기를 가속시키면 고열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으니 폭발의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냉각기를 설치했다. 사실 이 냉각기는 정밀한 칼로리미터의 역할도 수행할 수 있는 특제품으로 반감기 과정에서 일어나는 열량의 총량을 측정하도록 되어 있었다. 93화 여기에 더해서 잔류 방사능을 측정할 가우스 측정기부터 광센서, 온도계, 스펙트럼 측정기 등 여러 센서를 설치한 다음 장치를 가동시켰다. [시료의 온도가 상승합니다. 냉각장치 가동 시작. 방출열량을 측정합니다.] 챔버 내 양성자의 온도와 레이저의 파장 등을 조절하여 방출되는 중성미자의 운동에너지를 다양하게 조절하기 시작했을 때 어느 순간 반응이 왔다. 특정 조건에서 플루토늄 조각에서 더 많은 열량을 내뿜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것은 붕괴 반응의 가속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증거로 막대한 방사능이 뿜어지며 가우스 측정기에서 띠리리리릭하고 미친듯이 소리는 했다. 또한 스펙트럼 측정기에서는 헬륨가스의 존재를 확인했고 설치되어있던 물통에서는 푸르스름한 빛을 내면서 체렌코드 봇가가 일어났다. 과학자라면 누구라도 있고 싶은 실험실 환경이 절대 아니었다. 하지만 강현은 멀리 떨어진 건물에서 원격으로 실험을 실시하고 감독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혀 두렵지 않았다. 만일의 사태가 벌어진다고 해도 HA 안드로이드가 대기하고 있었다. 마침내 시료에서 열이 뿜어지는 상황은 멈췄다. 다행이 플루토늄이 녹아 증기가 되지 않도록 재빨리 냉각장치를 가동했기 때문에 공기 오염도 극히 적을 것이라고 보았다. 설사 오염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반감기 가속이 실증되었다고 볼 수 있으니 처리가 가능할 것이다. 삑삑삑삑삑삑! 그런데 분명히 반감기 가속이 끝났을 터인데 가우스 계측기가 여전히 삑삑거리고 있었다. 강현은 이게 어찌된 영문인지 잠시 생각하다가 답을 알아냈다. “하아! 붕괴경로를 생각 안 했구나!” 높은 원자 번호를 가진 방사선 원소의 붕괴는 한 단계로 끝나지 않는다. 우라늄을 비롯한 방사선 원소들은 각기 알파 붕괴, 베타 붕괴 등을 거쳐 점차 원자 번호와 원자량이 낮아지는 붕괴를 실시하여 최종적으로는 납으로 변한다. 납이라는 물질은 원소번호가 82로 원자번호가 26인 철보다 원자량이 무척이나 높지만 그 방사성 동위원소가 자연적으로 붕괴하지 않는 안정원소로 분류되며 그 중 가장 원자번호가 높은 물질이다. 양성자와 중성자의 구조가 매우 안정하다는 뜻이다. 이는 에너지적으로 준 안정상태로 분석할 수 있으며 다시 붕괴해 가장 낮은 핵 에너지 준위인 철이 되려면 많은 활성화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의미였다. 그러므로 거의 모든 방사선 원소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본래보다 작은 원자 번호를 가진 방사성 원소로 차츰 붕괴하다가 최종적으로는 납이나 납의 방사선 동위원소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여전히 가우스 측정기가 삑삑 소리를 내는 이유는 플루토늄이 붕괴해서 생긴 방사성 원소가 남아있다는 의미였고 이는 다시 중성미자의 에너지를 조절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렇게 차근차근 가우스 계측기가 조용해 질 때까지 실험을 하니 어느 새 날이 밝아오고 잠이 몰려왔다. [박사님. 깨어있으닌지 벌서 30시간 째입니다. 이제 그만 주무시죠. 이미 실험도 막바지에 이르고 있습니다.] 잘 시간이 되어서 아즈삭이 수면을 권했지만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여기까지 온 강현은 이번 제안에는 그럴까? 하면서 한 쪽에 비치된 간이 침대에 씻지도 않고 엎드렸다. 그리고는 드르렁 드르렁 코를 골기 시작했다. 아즈삭을 실험 결과를 마무리 하면서 그런 강현의 모습이 ‘우려’스러웠다. 그러나 그 생각은 인간이 타인에게 느끼는 이타적인 감성과는 달랐다. 강현이 건강을 해친다면 자신의 존재 목적이 훼손이 되기 때문에 발생한 생각이었다. 아즈삭은 강현을 내조해 줄 사람에 대한 필요성을 강력하게 실감했다. 과거 제시가 있었을 경우에는 이런 경우 귀를 잡아 당겨서라도 건강을 챙기도록 했겠지만 제시가 없으니 강현의 생활이 점차 절제를 잃어갔다. 타인이 보기에는 그것은 열렬하게 연구에 열정을 바치는 모습이지만 아즈삭이 이해하기로는 평범한 남자가 마음대로 술을 마시고 밤새도록 놀고 문란한 생활을 자기 마음대로 즐기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강현에게 최고의 유희는 바로 연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시라는 보호자가 없으니 강현의 생활에 점차 절제가 없어지고 있다고 본 것이다. 아즈삭은 그 이유가 제시를 잃은 상실감을 연구 활동으로 보상하기 위한 것이 계기가 되어 차츰 그 정도가 심해지고 있다고 해석했다. 일종의 중독 현상으로 이해한 것이다. 중독 현상이란 무엇에 강하게 집착하는 행동패턴이 공통적으로 나타나므로 연구에 집착하며 건강을 해칠 정도인 강현의 현재 상황을 그렇게 해석했다. 그에게는 내조해 줄 여자가 필요했다. 적어도 자신의 몸을 돌볼 여유가 필요했다. 그 동안 축적한 많은 인문학적 데이터를 통해서 창조주의 행동 패턴을 분석해 보았을 때 강현은 너무나 극단에 몰려있었다. 잠시라도 발을 삐끗하면 망가지기 쉬울 것 같았다. 강현은 지속적 연구 역량을 유지하기 위해서 아즈삭은 방법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참하고 이쁜 처자의 물색부터였다. 샐리? 미안하지만 정부의 입김이 닿아있는 그녀는(심지어 스스로가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고 해도) 아즈삭의 고려 대상에서 처음부터 제외되었다. 샐리의 지적능력은 또래 여성에 비해서 매우 뛰어나지만 아즈삭은 강현의 여자가 되어줄 여성들은 지적능력보다는 감성적 능력이 더 중요하다고 보았다. 냉정하고 이성적인 강현을 보듬고 품어줄 여자가 딱 제격이었다. 흔히들 공대 출신이 예술계 출신에게 끌린다고 하지 않던가? 그것은 이성적 사고만 하는 생활로 인해 감성이 부족한 이공계열이 자신에게 부족한 감성을 채우기 위한 행동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인간은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항상 갈구하는 욕망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흐아암! 아즈삭, 실험은 끝났어?” 한 숨, 푹 자고 일어난 강현은 힘차게 기지개를 켜며 아즈삭이 무슨 일을 꾸미는지도 모르는 채, 일어나자 마자 물었다. [납과 그 납의 동위 원소를 확인했습니다.] 이미 강현이 잠들어 있는 동안 방사능 수치가 통상치로 돌아갔고 아즈삭은 생성된 물질의 불꽃 반응을 스펙스럼을 이용해 분석, 어떤 원소가 생성되었는지 확인했다. 불꽃 반응은 고등학생도 배우는 것으로 각각의 원소가 가열될 때 고유의 파장을 가진 전자기파를 내뿜는 현상이다. 이런 분석이 가능한 이유는 각 원소가 가진 전자 껍질의 구조와 전자 에너지 준위가 다 다르기 때문이다. “쩝. 편하기는 한데 좀 기분이 그렇네.” 강현은 아즈삭이 실험 과정을 모두 마무리 했다는 말에 시원섭섭했다. 그것은 새로운 기술의 실현과, 자신의 이론의 검증, 실용화에 대한 흥분을 졸려서 제대로 맛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너무 편하게 연구를 하나?” [네, 그렇습니다.] 아즈삭은 긍정했다. 사실 강현의 연구 과정은 일반적인 과학자들이 보았다면 침을 흘릴 정도로 편했다. 실험하기가 예산이 많이 드는 경우에는 아즈삭을 통한 시뮬레이션으로 가장 적절한 방향성을 찾아낼 수가 있었고 실험 데이터의 기본적 분석, 관리는 물론 HA 안드로이드를 이용한 각종 잡무 등등. 강현은 할 수 있다면 손가락 하나 까딱 안하고 편하게 누워서 연구를 위한 생각만 할 수 있었다. 이런 강현의 실태를 알고 있는 NASA의 연구원들은 강현처럼 편하게 연구를 하고 싶었지만 커다란 걸림돌이 있었다. 바로 예산. 대학 교수, 일반 연구소의 연구원은 물론 모든 연구자들의 걸림돌이 바로 예산이란 놈이었다. 기술 수준이 너무 높아져서 이제는 과거의 에디슨이나 테슬라처럼 집에서 뚝딱 발명품을 만들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뛰어난 머리가 모이고 비싼 연구 자재들과 지원이 있어야 제대로 된 연구를 할 수 있는 시대였다. 그런 면에서 강현은 전혀 걸림돌이 없었다. 석유 제조 기술, IAPP 점탄성 물질 기술, CNT 섬유 제조 기술, 인공 거미줄 단백질 특허 등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이고 있었다. 그뿐인가? 미국에서 전략 물자로 지정한 CNC 장갑, 그리고 HA 안드로이드 자세 제어 데이터로 만든 모빌 아머에 전투형 안드로이드인 K 시리즈까지. 강현이 벌어들이는 돈은 정말로 엄청났다. 그래서 NASA에 매달 거액의 기부금을 내고 아즈삭의 유지비를 혼자서 감당하며 사비를 들여 연구 장비를 제작하고 만들 수 있는 세계 유일의 과학자였다. 때문에 채산성, 경제성, 미래성 등등 온갖 핑계로 예산을 삭감하는 당국과 상부와 지겹게 입씨름할 이유 역시 전혀 없었으며 그로인해 연구 주제를 제한 당할 이유 역시 전혀 없었다. 강현은 오직 법규만 잘 지키면 자신이 원하는 어떤 연구 주제도 연구할 수 있는 연구자였고 이는 모든 연구인들의 부러움을 살만한 했다. 그러나 이런 축복받은 환경을 혼자만 누린다는 위화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 강현이었다. 그 영역은 과학적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인간 개인과 타인이 속한 사회와의 관계에서 나오는 일종의 긴장이었다. 튀어나온 못은 망치를 맞는다. 주머니에서 삐죽하게 빠져나온 송곳은 타인의 우려, 혹은 두려움을 산다. 강현은 스스로 인지하지는 못했지만 그의 무의식적인 사고력은 사회로부터의 고립과 경계를 걱정하고 있었다. [박사님께서 능력이 있으시니 편하게 연구를 하실 수 있으신 겁니다. 그러니 너무 신경쓰지 마십시오.] 아즈삭은 그런 강현의 속은 몰랐다. 그래서 원론적인 이야기를 했다. 강현이 누리고 있는 것은 온전히 그의 노력과 능력에 의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 누구도 비난할 이유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 아즈삭은 강현에 대한 부당한 대우에 언제든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그나마 다행이라는 점은 그 부당한 대우의 기준이 강현의 자유로운 연구 생활이라는 점이었다. “그럼 됐고. 그건 그렇고 이걸 뭐라고 이름붙일까? 그냥 중성미자 방출장치라고 할까? 아니면 반감기 가속 장치라고 할까?” [박사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그리하여 강현이 만든 장치의 이름은 반감기 가속 장치가 되었고 발표되자마자 원자력 발전소를 운영하는 모든 국가에서 제발 팔아 달라고 문의를 했다. 그중 역시 가장 빨랐던 것은 강현이 몸담고 있는 미국이었다. “아직 안전 기준이 마련되지 않았는데요?” “반감기를 가속할 때 나오는 막대한 방사능 말씀이시군요. 하지만 그럴 수록 실사용으로 인한 데이터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미국에서는 이미 한번 방사능 유출 사고가 있었다. 1979년 스리마일 섬 유출 사고라고 열교환기의 고장과 냉각장치의 운영 미숙으로 인해 원자로까지 파괴된 사고였다. 다행이 더 상황이 악화되기 전에 문제점을 알아내고 냉각펌프를 가동해 큰 인명 피해는 없었다. 하지만 사고로 인한 10만명이나 되는 주민들의 대피 소동으로 인해 미국내 반핵 운동에 불을 붙이는 계기가 되었고 핵발전소를 더 이상 짓지 않겠다는 당시 미 대통령의 선언까지 불러오게 되었다. 그리하여 미국에서는 이후로는 새로운 핵발전소가 세워지지 않았다. 계획도 되지 않았다. 스리마일 섬 유출 사고 이후 러시아의 그 유명한 체르노빌 사고가 있은 이후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담보로 한 전력 생산 시설을 짓는 것을 멈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미국 경제에 큰 부담을 가져왔다. 풍력이나 태양력 같은 재생에너지는 단가가 비싸다. 설치한 발전 장치의 감가 상각을 생각해도 비싸다. 그래서 화력 발전을 애용하고 있는 미국이었지만 강현이 등장하기전에만 해도 해마다 국제 유가의 상승으로 인해 경제적으로 많은 부담이 되었다. 94화 물론 강현이 만든 레드 솔라셀과 석유 제조 시설로 인해서 부담이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원자력 발전을 한다면 더 싸게 풍부한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었다. 아니, 그러지 않아도 좋다. 정권 차원 입장에서 지금 쌓여있는 막대한 핵 폐기물들을 완벽하고 안전하게 처리할 수 있다면 그것 만으로도 국민들의 지지를 살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국가가 주도적으로 강현과 그의 발명품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실용화해 방사능 오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그런 미국 정부의 태도는 강현으로서도 손해가 없었다. 실제로 실험실이 아니라 실제 현장에서의 사용 데이터는 그에게도 탐나는 것이었다. 정부의 이익과 강현의 이익이 합치하는 일이니 강현으로서는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Welcome! Dr. Kang!] 원자력 사고가 일어났던 스리마일 섬 인근의 주민들은 강현과 반감기 가속기를 열렬하게 맞이했다. 인명피해는 전무, 기껏 흉부 X레이를 두 세번 쪼였을 정도의 방사능이 세어 나왔을 뿐이라 사고 이후에도 사람들은 별 문제 없이 살았다. 핵반대론자들은 그런 그들의 태도를 강하게 비난하면서 사람들과 정부에 원자력의 위험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매년 사고 있었던 3월 28일 새벽 반핵 퍼포먼스를 보였지만 지역 주민들에게는 그리 먹혀들지 않았다. 사실 사건 이후 미국의 수습은 매우 성공적이었기 때문에 각종 암 발생 지표는 미국 전역과 스리마일 섬 주변과 그리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까지 냉각탑 네 개가 수증기를 뿜어대면서 여전히 사고가 발생하지 않을지 관리하고 있었으며 실제로 방사능 누출로 인한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다만 냉각탑을 가동하는데 예산이 쓰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토록 미국 정부가 예산을 들이면서 방사능 문제를 확실하게 제어하고 있었지만 그 이미지가 문제였다. 방사능 사고가 일어났던 지역이라는 이미지는 지역 발전에 강력한 마이너스 요소였다. 또한 어느 학자도 원자로 사고에 대해서 100% 안전할 거라고 확신할 수 없었으며 그것은 확률론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매일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 확률이 99.9999%라고 해도 그 확률이 날이 바뀔 때마다 매번 곱해져 가면(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 확률은 각 날짜의 확률을 서로 곱해야 한다.) 결국 0에 수렴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일 한번이라도 사고가 발생한다면 그로 인한 피해는 무한대. 다시 말하면 원전의 존재로 인한 부정적 영향의 기대값 또한 무한대(사고 발생 확률X무한대의 피해)이기 때문에 원전 사고 지역이라는 스리마일 섬의 이미지는 좀처럼 바뀌지 않았다. 때문에 마을에서 떠나는 사람은 있어도 이 지역으로 이주해 들어오는 사람은 거의 없는 편이었다. 때문에 강현의 발명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 설사 사고가 일어난다고 해도 그 사고를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이 생긴 것이다. 이는 원자로 사고가 발생했을 시의 손해에 대한 기대값을 무한대에서 유한대로 줄일 수 있게 된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강현의 발명품을 사고 원전에서 시험한다는 사실에 반대하는 이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들은 흔히 기술 만능주의를 경계하는 이들로 지금 와서 안정되게 관리되고 있는 사고 원전에 수작질을 부리는 것은 또 다른 재앙을 부른다는 논리를 펴고 실험장비를 싫은 트럭이 스리마일 섬 원자력 발전소로 향하는 것을 막기 위해 시위를 벌렸다. 그러나 이들의 행동은 지역 주민들에 의해서 저지 당했다. 그럼 뭘 어쩌자는 건가? 세금만 낭비하는 저 냉각탑을 녹은 핵연료봉의 방사능이 자연적으로 사라지도록 계속 막대한 세금을 투입하면서 운영하자는 건가? 계속 스리마일 섬이 원전 사고 방사능 지역이라는 이미지를 유지하라는 말인가? 지역 주민들에게 이들 소위 환경 단체라고 불리는 이들은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물론 원전의 위험성은 그들도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매년 사고가 났을 때마다 퍼포먼스를 벌여 스리마일 섬에다가 원전 사고 지역이라는 이미지를 씌우지 않나, 지금처럼 강현 박사가 기상천외한 발명품으로 골칫거리인 방사능을 해결해주겠다고 하는데 훼방을 놓지 않나, 하는 일마다 밉상이었다. 딱히 실감할 만한 도움도 주지 않으면서 자신들의 주장만 주구장창 외치는 반핵주의자들의 태도가 마음에 드는 지역주민은 없었다. 막말로 저들은 사고가 나면 도망가면 되지만 고향과 가족이 여기에 있는 지역주민에게는 그저 원전이 위험하다고 주장하는환경단체보다 그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라고하는 강현이 더 마음에 드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그리하여 지역 주민이 반핵주의자들과 맞섰다. 피켓을 들고 원전이 있는 섬으로 향하는 다리를 막아섰던 시위대들은 몰려드는 지역 주민들의 흉흉한 기세에 당황했다. “Hey! Get out of here!” 오고가는 고함 속에서 지역주민들 중에서 욕설이 터져 나왔고 그에 발끈한 시위대의 누군가가 뭐라고 대답하자 분위기가 점점 나빠졌다.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정보부 요원들이 재빨리 시 당국에 연락해 파견된 경찰들로 지역 주민과 시위대의 사이를 갈라 놓지 않았다면 난투극이 일어났을 것이다. 강현 같은 VIP인사를 경호하기 위해서 정부 요원들이 파견된 것이 다행이었다. 그렇게 갈라선 공간 사이로 커다란 컨테이너를 실은 트럭 7대가 마치 개선장군처럼 지나갔다. 시위대들은 그 트럭의 움직임을 막을 수가 없었다. 자신들을 못마땅한 눈으로 처다보는 동네 주민들의 시선과 기세가 자신들이 믿고 있는 정의를 실천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무슨 일인가요?” 트럭 조수석에 앉아있던 강현이 물었다. 그는 굳이 승용차를 타지 않았다. 트럭을 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에 한 번 타보고 싶었던 것이다. 덕분에 정보부 요원인 캄부는 팔자에 없던 트럭 운전을 했다. 마침 트럭 운전에 대한 라이센스를 가지고 있던 가용한 현장 요원이 자신밖에 없었던 것이다. 캄부는 강현의 물음에 잠시 귀의 이어폰을 누르고 누군가와 몇 마디를 주고 받더니 강현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반핵주의자들의 반대 시위와 지역 주민들간의 대치 상황입니다. 반핵주의자들은 박사님의 발명을 여기에서 실험하는 것은 또 다른 재앙을 부를 것이라고 주장하고 지역 주민들은 딱히 대안도 없이 불안감을 조정하는 반핵주의자들에게 반감을 가진 상태입니다.”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기술 만능주의를 경계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과학은 편리함을 주는 대신 수많은 문제점을 만들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마치 모든 물리 법칙에는 반작용이라는 것이 있듯이 아무리 좋은 기술이라도 그로 인한 문제점은 항상 생겨왔다. 스마트 폰만 봐도 그렇다. 스마트 폰에 빠진 사람들은 고개를 들고 서로 마주하는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사용하는 농약,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총, 극단적으로 원자력 기술로 만들어진 핵폭탄까지. 강현 역시 그 점을 인지하고 있었다. 때문에 지금까지 누구나 놀랄만한 성과를 세워오고 있었지만 정작 그 자신은 기술 만능주의자는 아니었다. 다만 문제 해결에 대해서 자신이 기여할 수 있다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인 과학으로 문제 해결을 시도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자신을 반대하며 다리를 막아섰던 저들도 계몽이라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 뿐이었다. 딱히 기분이 나쁘거나 저들을 싫어할 이유는 없었다. 오히려 기술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불가능한 사태가 온다면 저런 계몽가들에 의한 사회 전체적인 노력만이 유일한 해결책이 될 수 있었다. 철컹. 출입금지라고 쓰인 푯말이 붙어있던 철망이 열리자 강현은 상념을 접었다. 트럭이 다리를 지나기 시작한 것이다. 트럭이 다리 위를 천천히 달리자 하얀 수증기를 뿜어내는 네 개의 냉각탑이 완연한 모습을 드러냈다. “이쯤이 딱 좋겠네요.” 강현은 트럭을 다리를 건너자마자 멈춰 세웠다. 여기에 실험 관제를 위한 각종 컨트롤 장비를 설치하고 원자로 내부에는 HA 안드로이드를 진입시킬 작정이었다. 여기에서 사람이 들어가는 것은 무리다. 원자로 내부의 방사능 농도는 통상치의 천 배가 넘기 때문이었다. “이걸 어떻게 집어넣는담...” 일단 진입하여 장치를 설치할 인력은 안드로이드를 이용한다고 해도 문제는 컨테이너 하나를 다 차지할 정도의 크기를 가진 반감기 가속 장치였다. 그 동안의 보강공사를 통해 두터워진 특수 콘크리트벽을 뚫은 방법은 무모하고 방사능 유출 가능성으로 인해서 고려 대상도 되지 못했다. 노후 원자로의 교체를 위해서 만들어 둔 원자로 폐기용 통로를 이용한다면 손쉬웠겠지만 막상 와보니 그 통로 역시 막혀있었다. 이미 망한 원자로라 약간의 방사능도 새어나가지 못하게 만들기 위해서 그 통로마저 납을 씌우고 콘크리트를 발라 막아버린 것이다. “저, 저기 박사님. 죄, 죄송합니다.” 정부에서 나온 책임자는 의외의 사태에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원자로 폐기용 통로가 저렇게 처리되어 있다는 것을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대로는 반감기 가속 장치가 현장에 들어갈 수 없으니 강현 박사를 헛걸음하게 하거나 아니면 건축장비나 건설, 건축 전문가 등 새로운 추가 지원을 받을 때까지 강현 박사를 대기시켜야 했다. 그러니 정부측 책임자가 안절부절하며 강현에게 어떤 사과의 말을 할지 고르느라 진땀을 뺐다. 그러나 강현은 정부측 책임자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정부측 준비가 미흡했기에 이런 문제가 발생해서 죄송하고 재빨리 상부에 연락해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말은 이미 강현의 머리속에서 없었다. 담당자에게 책임 추궁을 하겠다는 지엽적인 문제 역시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그의 머리는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지에 대해서만 사고하고 있었다. 어떤 문제를 인지하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술공학적으로 사고하는 조건반사이자 일종의 직업병인 것이다. “할 수 없지 역시 분해하는 수 밖에.” 강현은 함께 온 외주업체 직원들에게 장치를 분해해서 집어넣는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장치의 잔고장에 대비해서 왔던 직원들은 강현의 말에 아현실색했다. 분해해서 집어넣는다면 다시 조립해야하는 것은 당연지사였고 자신들이 방호복을 입고 통상 방사능치의 천배가 넘는 저 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기껏 자신들이 불려온 이유는 그냥 장치에 발생하는 기술적 문제에 대한 조언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생각치도 못하게 방사능 환경에서 작업해야할 판이었다. 당연히 이는 계약 위반이었고 화가 난 외주업체측 책입자는 강현의 대답여하에 따라서 즉시 돌아갈 생각도 했다. “분해는 그쪽이 하구요, 조립은 안드로이드들이 할 거에요.” 무거운 반감기 가속 장치를 방사능이 있는 건물 내부로 옮기기 위해서 총 12대의 HA가 대기하고 있었다. 마침 외주 업체측의 직원은 9명이었기에 그들이 장치를 분해하는 과정을 각 HA가 각 직원에게 달라붙어 모두 기록하고, 아즈삭에게 그 데이터를 전송하고 나면 다시 아즈삭의 제어를 받아 조립을 그 역순으로 할 수 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었다. 95화 ‘......’ 그리하여 외주 업체의 직원들은 로봇의 감시, 아니 관찰을 받으며 장치를 분해하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인간처럼 움직이지만 인간이 아닌 존재의 얼굴에 붙은 투명한 렌즈가 자신들을 관찰하는 것이 꼭 감시당하는 느낌이었다. HA가 각 기에 할당된 인원들의 분해 과정을 자세히 관찰하기 위해서 몸을 수그리거나 허리를 굽히거가 고개를 들이밀기도(‘히익!’이라고 비명을 지른 직원 때문에 한동안 웃음바다가 되었다.) 했기 때문에 기분이 아주 묘했다. ‘햐~! 이것이 닥터 강의 퀄리티구나.’ 인간처럼 자유스럽게 움직이는 안드로이드들 사이에서 작업을 하니 마치 SF소설 속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말로만 듣던 소문의 물건을 들으니 기분이 요상했다. 제어 컴퓨터의 크기가 세상에 있는 어느 컴퓨터보다 크다고 하던가? 규모만 따지면 최초의 컴퓨터로 불리는 에니악(폭 24m, 높이 약 2.5m, 길이 약 1m, 중량 30ton) 정도라고 한다.(물론 과장이다. 그리고 사실 최초의 전자 컴퓨터는 1937년부터 아이오와 주립대학에서 5년간 개발된 아타나소프-베리 컴퓨터라고 한다.)이런 거대한 제어용 인공 컴퓨터의 존재와 높은 유지비로 인해 경제성이 없어 시판되지 않는 강현의 유명한 발명품이었다. 역시나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라도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결국은 예산이라고 할 수 있었다. “분해가 끝났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아즈삭.” [작업을 시작합니다.] 분해가 끝나자 강현은 이어폰에 대고 말했다. 아즈삭과의 원거리 통신을 위한 폰이었다. 회선은 기본적으로 통신망 제공 업체의 것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초당 데이터 전송량이 그리 좋지 않았다. 때문에 HA들의 행동은 신중하기 그지 없었다. 자세 제어 프로그램이 있다고 해도 서로 협동해서 무거운 짐을 나르는 경우는 입력이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아즈삭으로부터 피드백을 받아 새로운 자세제어 프로그램을 도입해야 했다. “느려.” 아즈삭이 예상 소요 시간을 6시간으로 본다는 소견을 밝히자 강현이 짤막하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강현에게도 불가능한 점은 있었다. 근본적으로 정보 통신을 위한 대용량 회선이 없다면 아즈삭이 HA를 이용해 장거리 활동을 하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 한국에서 K시리즈가 활약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땅이 좁아 통신 인프라가 매우 잘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국은 너무 넓었다. 하지만 강현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때문에 한 번쯤 통신 기술을 연구해 볼까 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데이터 전송량을 증가시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정보처리 기술이지만 수학적으로 한계가 있었다. 그 외에는 투자를 통해 인프라를 확대하는 것이지만 유지비가 든다. 물론 통신을 위한 대역폭을 얼마나 잘 사용하느냐를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통신기술로 있었지만 통신을 위한 전파 주파수는 근본적으로 유한한 자원이었다. 전자기파를 통신으로 사용하는 이상, 언젠가는 기술적 한계에 봉착할 것이라는 것이 강현의 예상이었고 신 통일장 이론의 가능성을 본 이상 전자기파를 이용한 통신 기술에 미련은 없었다. 그렇다고 당장에 어떤 아이디어가 나오지는 않았다. 좀더 신 통일장 이론을 해부하고 분석해서 이해도를 높여야 신통한 수가 나올 것이기에 강현은 불만스러웠지만 6시간을 기다리기로 했다. [프로그램 셋팅 완료.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합니다.] 자세 제어 프로그램이 업데이트 되는 동안 다른 사람들도 각종 기자재의 설치를 끝냈다. 통신 장비, 가우스 측정기는 물론 정부 연구 기관에서 나온 사람들이 연구과정의 데이터를 기록할 각종 광학, 화학적 측정장비가 설치되었고 수시로 HA에 전력을 공급할 어댑터 장치와 케이블이 깔렸다. 강현이 있는 제어실은 많은 14대의 디스플레이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각 디스플레이는 HA가 보내오는 화상 영상을 출력하고 남은 두 대의 디스플레이에는 장치 구동 과정에서 나오는 여러 수치들과 그래프를 출력하도록 되어 있었다. “톰 씨. 여기에서 직원분들이 각 로봇이 작업을 잘하고 있는지 감독해 주세요.” “네? 박사님께선 어쩌시려구요?” “아직 제가 할 일이 없으니 낮잠이나 자려고요.” 아까 낮잠만 6시간을 잔 것도 부족했나? 외주업체측 책임자인 기술부장 톰은 역시 천재는 괴짜구나라는 생각으로 간이 침대쪽을 바라보았다. 사실 미국인은 굉장히 자기주도적으로 스스로를 관리하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다. 주류라고 할 수 있는 부류들은 지식뿐만 아니라 헬스를 비롯한 각종 운동을 통해 몸을 가꾼다. 비만? 미안하지만 자기관리 능력이 모자란다고 판단되어 각종 취업 활동에서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한다. 즉, 주류 상류층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굉장히 부지런한 사람이란 것이다. 특히 강현처럼 자신이 할 일이 없다고 해도 현장에서 이렇게 대놓고 낮잠을 잔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이들은 주류에 끼기 힘들었다. 그러나 강현에게는 낮잠 역시 창조적인 활동에 속한다. 잠을 자는 시간은 무의식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시간이었다. 의식이 미처 눈치채지 못한 요소를 끄집어내어 해답을 돌출하거나 생각하지도 못한 창의적인 발상이 떠오르기도 한다. 케룰레란 과학자가 스스로의 꼬리를 문 뱀 꿈을 꾸고 벤젠의 고리형 분자모양을 생각해낸 것이 가장 유명한 일화다. 다시 말하면 눈을 감은 상태에서도 각종 색깔을 보거나 음성을 듣고 어떤 경험을 하는 등 수면이란 가장 활발한 뇌활동이다. 그것은 깨어있는 시간에 학습하거나 직접 경험의 과정에서 뇌가 활동하는 것과 종류가 다른 것일 뿐 분명 활발한 활동이다. “무슨 문제가 있으면 이 마이크에 대고 잘못되었다고 즉시 말해 주세요. 아즈삭이 바로 수정할 겁니다.” “아즈삭이요?” “제가 만든 인공지능 컴퓨터요. 걔가 HA들을 제어하거든요.” 강현의 말에 톰은 소형 마이크를 받아 들면서 고개를 끄덕였고 강현은 간이 침대에 누웠다. 안대를 차고, 푹신한 베개를 베고, 얇은 천을 목까지 덮은 그는 곧 색색 거리면서 잠에 빠졌다. 그가 자는 동안 톰과 부하직원들은 그의 말대로 자신이 맡은 모니터 앞에서 작업 과정을 집중해서 바라보기 시작했다. “.... 이거 우리 실업자 되는 거 아냐?” “....” 누군가 중얼거렸지만 아무도 대꾸하지 않았다. 그러나 심정적으로 동의했다. HA 시리즈의 손놀림은 자신들에 비해서 전혀 뒤처지지 않았다. 오히려 망설임이 없고 머뭇거리지 않았으며 신속하고 정확했다. 몇 년을 같은 일만 반복한 숙련공 같았다. 때문에 외주업체 직원들은 마음 한 구석이 불안해질 수 밖에 없었다. 저런 HA가 널리 퍼진다면 자신들이 설 자리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그들의 불안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HA는 거침없이 작업을 진행해 나갔다. = = = = = 삑삑삑. 얼마나 잤을까? 강현은 아즈삭이 설정해둔 알림음을 듣고 부스스 일어났다. 꿈의 내용이 잘 생각나지 않았다. 잠은 뇌가 활발하게 활동하며 정보를 정리하는 시간이지만 그 최대 부작용은 꿈꾼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꿈의 내용을 모두 기억할 수 있다면 인간은 두 배의 경험, 두 배의 시간을 살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강현이 간이 침대에서 일어나자 스피커에서 아즈삭의 목소리가 나왔다. [박사님. 준비 완료 되었습니다.] “그래? 그럼 시작하자.” 강현은 누군가 내민 커피 한 잔을 홀짝였다. 카페인은 잠을 쫓는데 유용한 약물이다. 그가 의자에 앉고 어떤 사람들이 그 뒤에 서있거나 아니면 의자를 가져와서 앉았다. 정부 연구 기관에서 이 실험을 참관하기 위해 온 과학자들이었다. 이 실험에 실질적인 권한을 가진 사람이 강현이 아니었다면 그들은 결코 실험에 참가하지 못했을 것이다. 반감기 가속 기술은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보안상 문제를 들어 참가를 불허했을 것이다. 하지만 강현은 관대했고 특히 학자라고 하는 이들에 대해서는 더욱 관대했다. 진리를 추구하는 부류에 동질감을 느끼기 때문이고 강현에게 수작질을 부렸던 제이먼 옐리가 별다른 일을 겪지 않은 것 또한 그의 학자적 기질이 강현의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논문을 끄적거려 발표했다고 해도 다 같은 학자는 아니었다. 그 중에는 분명 돈과 명예를 추구하기 위해 논문을 발표하는 인간도 있었기 때문에 강현은 어디어디 교수, 어디어디 연구소장이라는 직책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의 눈으로 보고 판단할 뿐이었다. [플라즈마 생성 시작. 플라즈마 유지를 위한 전기펄스를 주입합니다.] 플라즈마의 온도를 올리면서 벽에 부딪히는 시간 간격을 최대한으로 늘리는 조율된 주파수가 주입되었다. 기본적인 원리는 베타 붕괴 장치와 거의 동일했다. 다만 온도와 주입되는 레이저의 주파수가 다를 뿐이었다. 레이저는 펄스파의 형태로 조사되는데 그것은 순간적인 출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어차피 지속적인 에너지가 아니라 양성자가 부딪힐 때 필요한 에너지를 가진 중성미자를 뿜어낼 정도면 되기 때문이었다. [레이저 예열 완료. 인공 붕괴 시작.] 플라즈마의 온도가 지속적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파괴된 노심을 식히는 냉각장치의 가동률을 더욱 올렸다. 반감기의 가속으로 인한 발열을 고려해서 냉각을 관리하는 관리실에 미리 말을 해둔 상태였다. “오오!” 참관인들을 가우스 측정기의 수치가 급격하게 증가하자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들로서도 핵분열이나 핵융합이 아닌 반응에서의 방사능 수치 증가가 의미하는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예상 소요 시간 54시간. 박사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즈삭의 물음은 이대로 계속 대기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일을 할 것인가의 물음이었다. 데이터 수집은 아즈삭이 알아서 할 수 있기 때문에 그 동안 강현은 여유롭기 때문이다. “그럼 그동안 방정식이나 풀자. 아즈삭 통일장 방정식 출력.” 강현은 테블릿 PC와 테블릿 펜을 꺼냈다. 필기감은 종이보다 떨어지지만 아즈삭과 협동해 수식 풀이 과정의 오류나 실수를 그때그때 잡아내기 쉬웠다. [통일장 방정식을 출력합니다.] “그러니까 단순히 열에너지의 조절을 이용해서....” “... 그에 따른 응용 방법은...” 강현은 옆의 과학자들이 토론하는 와중에도 자신은 공식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공식을 해체하고 변형하다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 그가 고개를 드니 한참 토론을 하던 연구원들이 일제히 자신을 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죠?” “방해해서 죄송합니다만 신 통일장 이론에 대해서 궁금해서요.” “아, 그거요?” 그들은 혹시나 강현의 집중을 방해해서 심기를 불편하게 하지 않았나 걱정 했지만 강현은 의외로 아무렇지 않게 그들의 질문에 답했다. 통일장 방정식의 개요는 파견 나온 연구원들도 대충은 알고 있었기에 강현은 자신이 모르는 것 이외에 확실하게 검증된 부분과 가설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또한 이번 베타 붕괴를 인위적으로 일으킨 이론적 수식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었다. 평소라면 논문을 읽고 왔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런 서비스는 하지 않았겠지만 기술 언론에 발표된 반면에(NASA 측의 강력한 애원으로) 아직 그 원리를 수식으로 해석한 확실한 논문은 아직 발표하지 않았기 때문에 설명해 주기 위해서 큰 선심을 쓴것이다. ============================ 작품 후기 ============================ 며칠 쉬어볼까 합니다. 뭐랄까.. 앞이 안보이는 느낌? 96화 <10-실망> 덕분에 참관인들은 강현에게서 신 통일장 이론의 일부와 복잡한 수식을 일부 이해하는 행운을 누렸고 이는 나중에 그들이 신 통일장 이론을 연구하는데 큰 자산이 되었다. 강현이 자신이 파악한 부분까지 설명을 해주고 나서 이들은 서로 이론과 가설에 대해서 토의를 하기 시작했는데 다들 각자가 있던 연구소의 이름난 재원들이라 강현으로서도 가설에 대한 신선한 시각을 얻을 수가 있었다. “가설에 의해서 운동에너지를 전자기파 에너지로 전환하는 효율이 결국에는 각 에너지가 존재하는 차원이 가진 밀도차에 의해서 결정이 된다면..” “.... 일반적 시공간에 있는 운동에너지의 정체는 중력장처럼 시공간의 휘어짐으로 이루어진 공간의 파동으로 해석할 수...” “.. 입자는 결국 파동이고 파동이 곧 입자라면 실존하는 것은 결국에는 공간을 지나는 에너지의 잔상에 불과할..” 강현은 물론 참관인에게도 매우 유익한 시간이었다. 토론이 과학의 영역을 벗어나 철학의 영역을 넘볼 정도로 심도가 깊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원자가 가진 부피의 99.99%가 허공이고 극히 일부의 부피만 전자와 원자핵이 차지한다는 물리적 진실을 두고 이렇게 비유한 것이 있다. 공즉시색 색즉시공(色卽是空 空卽是色)문자 그대도 해석한다면 존재는 곧 비어있는 것이고 비어있는 것이 곧 존재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인체의 99.99%가 사실은 비어있는 진공이라는 사실과 이 문장을 동시에 떠올리면 굉장히 신비롭지 않은가? 99.99%가 허공임에도 물질은 존재하고 인간은 생각한다. 단지 전자기적인 반발력으로 구성된 입자들간의 상호작용 속에서 말이다. 물론 제대로 불교적으로 해석한다면 공즉시색 색즉시공이라는 말은 매우 이해하기 어렵다. 깊게 파고 들어갈 수록 모호해지고 어려워진다. 한문의 의미만 따지자면 공(空)은 비어있다는 의미다. 무(無)와 다르다. 비어있다는 것.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無)과는 완전히 다른 의미였다. 비어있다는 것은 예전에 그 곳이 차있었다는 의미였고 그것은 어떤 것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의미하면서 동시에 어떤 것으로 다시 가득 찰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즉, 아무것도 없는 듯이 보이지만 사실은 어떤 존재의 실존을 증거하는 것이 비어있는 공간, 공(空)의 의미였다. 때문에 양자역학을 알고 있다면 더욱 저 문장이 와 닿는다. 양자역학에서 진공은 진공이 아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소립자와 그 대칭이 되는 소립자가 탄생하고 쌍소멸하는 공간이다. 즉, 진공은 비어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에너지로 가득 찬 공간이라는 말이다. 공간에 가득 찬 그 에너지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실존한다. 왜냐면 모든 물질, 에너지는 입자성과 파동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빛의 이중성, 전자의 산란 실험, 운동량을 가진 물체의 물질파 등 입자는 곧 파동이라는 예는 너무나 많고 파동은 공간을 채우는 속성을 가지는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양자역학에서는 물질 속을 지나는 음파나, 금속의 전자구름의 진동 따위를 포논이나 플라스몬이라는 이름을 붙여 양자화된 입자로 다루고 있었다. 이는 어떤 파동이라도 양자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파동과 입자가 결국에는 다른 것이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초끈이론이나, M 이론 역시 진동하는 끈, 진동하는 막이 곧 물질을 이룬다는 아이디어를 이용하므로 파동이 곧 실존이라는 것을 전제했다. 강현이 토론하면서 느꼈던 신기한 점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어떻게 공즉시색 색즉시공이라는 말이 이렇게 물리학에 잘 어울릴까? 사실 천하에 새로운 것은 없다. 원자론도 과거 그리스 시절에 누군가가 주장했던 것이다. 갈릴레오 이전에 이미 지동설을 주장했던 이가 있었으며 당장 강현의 신 통일장 이론도 아인슈타인이 생각했던 것이다. 과학의 수준이 고도화 될 수록 그 개념적인 부분은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진 철학이나 사상의 개념과 상당히 닮아갔다. 한 예로 과학에서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대칭성의 경우 동양의 음양론으로 간단히 비유할 수 있었다. 어느 곳 어느 시간에서나 물리 법칙이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보편성, 그리고 입자가 생길 때 그 반입자가 생긴다는 대칭성은 음양론에서 음(陰)과 양(陽)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에 비유할 수 있었다. 세상은 생각보다 무척이나 반복적인 닮음이 존재한다. 프랙탈 이론처럼 세상을 관찰하는 프레임의 크기만 잘 조절하면 비슷한 원리가 서로 그 스케일이나 속성이 다른 곳에서도 적용된다는 사례를 관찰할 수 있었다. 그 극단적인 예로 인과관계와 논리로 쌓아 올려진 수학이란 세계의 법칙이 실제 세계에서도 적용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사례는 너무나 많았다. 강현은 작업이 마무리되는 약 이틀의 시간 동안, 쉬는 시간에 이 똑똑한 재원들과의 토론을 계속했다. 그것은 그에게도 휴가를 쓰면서까지 참관인으로 참석했던 이들에게도 무척이나 유익한 시간이었다. 강현으로서는 제시의 사망 이후, 그리고 아즈삭의 개발을 위해 NASA의 컴퓨터 개발부를 들락거렸던 이후, 처음으로 제대로 된 인간과 인간과의 교류였다. 그것은 인간적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싶기 때문이 아니라 서로의 관심사가 같았기 때문이었지만, 고작 그 뿐이었지만 그것 만으로 충분했다. 어차피 인간은 타인을 완벽히 이해할 수 없다. 단지 교류할 뿐이다. [작업 완료되었습니다. 각종 센서의 지표를 확인한 결과 잔류 방사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강렬한 방사능의 방출이 끝나고 나서 각종 지표가 통상치를 기록했지만 강현은 김치국부터 마시지는 않았다. 혹시나 남은 잔류 방사능이 있는지 확인 시켰다. “HA 시리즈에게 가우스 측정기를 들려서 원자로 건물 내부와 외부를 샅샅이 훑어봐.” 탐색 결과, 약간 방사능이 높은 지점들이 발견되어 시료를 측정하고 정밀한 분석기를 이용해 어떤 종류의 방사능 물질이 있는지 확인했다. 그래야 다시 반감기 가속 장치를 이용할 때 전체 과정을 반복하지 않고 해당 물질의 붕괴만을 가속시키는 중성미자를 방출시켜 장치를 가동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 이는 장치 자체의 감가상각과 운영 메뉴얼 작성을 위한 것으로 차후 장치를 상용화 할 때 필요한 것이었다. 왜냐면 반감기 가속 장치는 매우 비싼 장치였고 잡아먹는 전력 역시 장난이 아니었다. 가동되는 시간 동안 원자력 발전소에서 원자로 노심 하나가 생산하는 정도의 전력을 잡아먹기 때문에 지금 스리마일 섬 인근 지역에서는 순환 정전을 실시하고 있을 정도였다. 주민들에게는 불편한 일이지만 불편함을 감수할 가치는 충분히 있었다. 왜냐면 파괴된 노심의 방사능을 완전히 처리했다는 희소식이 들렸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서 원자로 사고로 폐쇄된 스리마일의 정상적인 다른 원전의 재가동을 기대할 수 있었다. 그것은 지역에 많은 이점을 준다. 일단 전기를 공급하는 지역으로서 각종 혜택을 기대할 수 있었으며 원자로 운영을 위한 정부예산과 지원등이 지역 경제를 살찌울 것이다. 또한 전기료가 싸져서 각종 기업들이 입주해 올 가능성 역시 있었다. 역시나 가장 큰 이점은 원전 사고 지역이라는 이미지로 덧씌워진 ‘위험지역’이라는 인식을 벗어 던질 수 있었던 것이다. [방사능의 위협에서 벗어나다!] 가장 강력한 농도의 방사능을 가진 파괴된 원자로를 처리했으니 언론에서 날뛰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확실하게 방사능 처리 능력이 검증되었으니 미 정부는 물론 세계 각지에서는 빨리 팔아 달라고, 아니 만드는 것은 자신들이 알아서 할 테니 라이센스만이라도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그중에는 우크라이나도 있었다. 우크라이나는 과거 소련 연방 중 하나로 그 유명한 체르노빌이 있는 곳이었다. “체르노빌이요?” “그렇습니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 물이 아닌 흑연을 감속재로 사용했고 또한 그 때문에 현재의 원전들 중에 더 이상 흑연 감속재를 사용하는 형식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했다. 이로 인해서 체르노빌 원전 인근은 완전히 폐허가 되어 버렸으며 1미터가 넘는 돌연변이 지렁이가 존재하고 아직까지 잔존된 방사능으로 인해서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역이 되어 있었다. 그런 광대한 지역에 대한 방사능 제거 작업을 해달라고 우크라이나에서 요청이 왔던 것이다. “흐음. 한 번 해야 하기는 해야겠는데.. 저는 다른 연구를 시작해서요 직접 가기는 힘드네요.” “괜찮습니다. 장비의 사용 허가만 해주신다면 저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래요? 그럼 알아서 하세요.” 그런데 강현의 허락이 떨어져도 정부에서 나온 사람은 돌아가지 않았다. “저...” “왜요?” “그 HA 시리즈를 빌릴 수 있겠습니까?” 방사능 지대에 들어가고 싶은 인간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안드로이드는 최적의 도구였다. 이족보행을 이용해 캐터펄트를 단 로봇보다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빌려주는 건 괜찮지만 각종 기자재를 옮기기 위한 제어를 위해서는 적어도 아즈락 정도의 인공지능은 필요할 텐데요.” “에~. 그러니까 그 아즈삭도 같이..” “그건 힘들겠는데요..” 강현은 고개를 저었다. “일단 아즈삭이 하는 일도 있고, 그리고 거기까지 통신망이 원활하지 못해요. 그러니 아즈삭이 HA 시리즈를 통제하는 건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죠.” “그렇습니까? 혹시 좋은 방법이 없을 까요? “소프트웨어를 드릴테니까, 모빌 아머 전술기 타입에 사용해 보세요. 아마 K 시리즈라면 가능할 겁니다.” HA 시리즈와 K 시리즈의 차이점은 골격의 크기와 인공 근육의 양에 있었다. CNC 장갑을 착용하고 원활하게 움직일 수 있을 정도의 출력과 그 출력을 버틸 수 있도록 더 굵고 튼튼한 합금 뼈대가 도입되었다. 그 외의 차이점은 없다. HA 시리즈는 K 시리즈의 모태가 되었고 K 시리즈는 HA 시리즈의 개량을 위한 프로토 타입에 해당되었기 때문이다. 굳이 차이점이 있다면 출력과 야전을 위한 에너지원으로 K시리즈는 연료전지를 추가로 장비하고 있다는 것 정도? “감사합니다.” 정부 관계자는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것으로 다시 한 번 미국의 위상이 높아질 수 있었다. “아, 참! 체르노빌에서 나온 데이터는 저도 주셔야 합니다.” 대규모 면적의 방사능 제거 작업은 체르노빌이 처음이니 개발자로서 그 데이터가 필요한 것은 당연했다. “당연히 드려야죠.” 그 정도는 얼마든지 해 줄 수 있었다. 강현이 지금까지 미국에 기여한 것을 생각하면 전략 물자에 대한 데이터까지 줘보자라고 주장하는 정치인들이 있을 정도였다. “그럼, 용건은 여기까진가요?” “네.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천만에요.” 강현의 반감기 가속 장치가 공중 수송으로 우크라이나로 향했다. 이를 운용하기 위해서, 또한 조립하기 위해서 스리마일 섬 방사능 제거 실험에 참여했던 거의 모든 인원이 동원되었다. 반감기 가속 장치를 만든 외주업체도 예외는 아니었다. 거기다가 CNC 대신 방사능 방호복을 착용시킨 K 시리즈 운용팀과 현지 특수 건설 기업이 추가로 참가했다. 체르노빌의 방사능을 처리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어려운 일이었다. 일단 오염지역이 너무 넓었다. 거기에다가 당시 사고가 일어났던 4호기안에 그때 있었던 연료 95%가 남아있었고 그 양은 약 4 톤 가량이라고 한다. ============================ 작품 후기 ============================ 아직 완전히 돌아온 것은 아닙니다. 완결로 가는 길이 완전히 보이지 않아요. 매일 두 편 연재는 아무래도 힘들듯 합니다. 97화 이 사고 원전은 방사선 물질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 석관으로 둘러 쌓여있는데 그 상황에서 반감기 가속기를 사용한다면 어떻게 될까? 방출된 열로 인해 방사성 물질이 기화되고 오래되어 부식된 석관 사이로 뿜어질 것이 분명했다. 때문에 냉각 장치의 설치가 필수적이었다. 이를 위해서 미국의 방사능 제거 팀은 반감기 가속 장치를 이용해 체르노빌까지 가는 안전지대를 만드는 것을 우선했다. 일단 방사능을 여전히 유출하고 있는 핵심을 처리해야 다른 지역의 처리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청소한 곳에 다시 먼지가 쌓이듯이 방사능 물질로 다시 오염될 수 있었다. 말이 안되는 일이지만 사고 원전을 덮은 석관은 너무 오래되었고 부실했으며 이 석관을 유지 보수하기 위한 전세계의 기부금은 부패로 인한 관리 부실로 여기저기 유실되고 있었다. 그러나 희망이 생긴 것으로 우크라이나는 다행이었다. 시일이 많이 걸리기에 사람이 안전하게 살 수 있을 정도로 방사능 수치를 낮추기 위해서는 몇 년이 걸릴지 모르지만, 예산도(미국이 도와준다고 하지만) 많이 들겠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었으며 언제고 방사능의 처리가 완료될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이제 원전 사고로 인한 피해는 무한대가 아닌 예측과 산출이 가능한 지표가 되었다. 몇 년이나 막대한 예산을 들여 체르노빌을 정화한다는 정부의 계획은 공화당의 많은 비난을 샀지만 정부측에서 직접 공화당 핵심 인사들과 만나 대화를 하여 설득했다. 체르노빌의 일은 장기적으로 러시아에 대한 우위를 점하기 위한 계획의 일부였다.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다스리는가? 가장 간단한 방법은 폭압과 공포를 이용한 방법이다. 하지만 이 방법은 결국 피지배층의 항거를 불러온다.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다. 자유를 위한 인간의 갈망은 죽음에도 굴하지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좀 더 세련된 방법이 선호 되었다. 그것은 자원을 배분하는 권리를 가지는 것이다. 가장 간단한 예시로 지주와 소작농의 관계를 보면 알 수 있다. 지주는 땅이라는 자원을 배분하는 권리를 가짐으로서 소작농에 대한 지배를 강화할 수 있다. 만일 산업 혁명이나 공산주의 혁명으로 사회 경제의 구조가 변하지 않았다면 세상은 여전히 지주와 소작농으로 이루어진 지배 구조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 이상 그러지 않다고 자원을 배분하는 권력관계가 변한 것은 아니었다. 이제 세상은 생산 수단, 즉, 자산을 가진 자본가와 그들의 생산 수단에 기대에 생활을 하는 프롤레타리아로 나뉘었다.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 사람과 사람은 수평적이어야 하지만 결코 수평적이 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관계에서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신뢰적 관계가 어떻게 형성 되느냐에 있었다. 소시민이라고 할 수 있는 피지배층이 원하는 것은 그리 큰 것은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노력만큼 대가를 받을 수 있다면 대체로 만족하고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것이 바로 그들이다. 때문에 그 사회의 시스템을 유지할 의무를 가지고 있는 것은 그 시스템을 지배하는 지배층에게 있었다. 어떻게 피지배층을 자신들이 만든 시스템에 순응시키는가가 그들의 기득권을 유지시키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 방법을 위한 수단은 다양했고 지배층은 여러기라고 궁리를 하여 자신들의 권리를 유지해 나간다. 그리고 이런 지배층에 성향에 의해서 피지배층의 운명은 결정된다. 피지배층을 노예로 만들 것이냐? 아니면 정당한 계약 관계를 유지할 것이냐? 물론 피지배층은 지배층이 부여한 운명에 순응하거나 저항한다. 그리고 그 결정의 배경을 설정하는 것은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신뢰관계다. 피지배층이 지배층을 신뢰할 수록 그들은 지배층이 만든 시스템에 순응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지배층도 인간인지라 멍청한 것들이 있다. 그들은 폭력과 공포로 피지배층을 지배한다. 그 방법은 눈에 보이고 자신들이 가진 권력의 쾌감을 말초적으로 한 껏 음미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지배의 방식은 지배층에 대한 피지배층의 신뢰를 무너뜨려 오히려 자신들의 권력을 위태롭게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이는 별로 없다. 역사적으로 국가나 사회가 붕괴될 때, 지배층은 언제나 그랬다. 인간은 어리석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가장 세련된 방식이 대중들이 그 사회 시스템을 자신들이 선택했다고 믿게 만드는 것이다. 마치 중세 유럽에서 종교로 대중들을 세뇌 시켰듯이 말이다. 믿음이란 이름으로 체제에 순응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대중을 ‘설득’하는 여러 방법 중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 바로 ‘자원’의 배분이다. 이 자원에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쉽게 말해서 인간의 욕구를 채워주는 것을 의미한다. 일자리, 돈, 직위, 명예, 각종 수단이 이에 해당하며 인간은 이러한 자원을 배분해주는 존재에게 기댈 수 밖에 없다. 사회나 국가보다, 회사가 더 중요한 직원은 결코 내부의 비리를 발설하지 않는다. 사회나 국가가 자신에게 무엇을 해주는 것보다 회사가 자신에게 무엇을 해주는 것이 더 클 때(혹은 그렇다고 생각할 때), 개인의 충성심은 회사로 향하게 되는 것이다. 당연하다. 인간은 자신에게 더 이득이 되는 이의 편을 들기 때문이다. 이런 피지배자가 많을 수록 이들의 지지를 받는 지배자는 더 강한 영향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자원 배분으로 인한 이런 권력 관계로 이야기를 돌리면 이런 일은 비단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국제 관계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제 3세계에 대한 서방 세계의 구호, 그리고 의존. 그것은 어떤 외교적 방법보다 강력한 지배력을 행사한다. 물론 호구가 되지 않게 적절하게 흔들어 주면 금상첨화다. 이번 체르노빌을 이용하는 미국의 계획 역시 그와 일맥상통한다. 체르노빌은 과거 소련 붕괴 이전에 지어졌고 현재,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에 존재한다. 물론 방사능 오염지대는 그 두 나라 뿐만 아니라 바로 옆 러시아까지 약 600km에 걸쳐 광범위하게 퍼져있었다. 그 중에 영구 출입 제한 지역만 해도 약 500 제곱 킬로미터에 달할 정도로 넓었고 이는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의 골칫덩이, 아니 암 종양이었다.물질은 농도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확산하는 물리화학적 성질을 가지고 있고, 거기에 생물과 바람, 물 등으로 인한 자연의 움직임을 통해서 지금도 여전히 오염 구역이 확산될 가능성이 있었다. 때문에 여전히 방사능 제거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며 그 주변 지역에 사람들이 살지 않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런 골칫덩이를 미국이 나서서 제거해 준다? 우크라이라는 서방세계, 즉 유럽에 우호적인 입장이기 때문에 당연히 좋아할 것이다. 아니, 더 좋아할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방사능이 제거되면 바로 위에 있는 벨라루스는 몹시 우크라이나를 부러워 할 것이고 미국에 도움을 요청할 것이다. 이에 미국은 ‘방사능을 원천적으로 제거하는 기술’이란 자원을 이용해 벨라루스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전통적인 친 러시아파인 벨라루스는 입장을 바꿔야 할 지도 모른다. 러시아에서는 고작 그 정도로 미국과도 손을 잡는 우방을 달가워 하지 않겠지만, 사실 방사능은 ‘고작’이라고 할 정도로 가벼운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 사람들의 기억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지만 방사능 사고의 위협은 결코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이를 좀 더 부각시키게 된다면 벨라루스는 방사능을 원천적으로 제거하는 기술을 정권 차원에서도 갈망하지 않을 수 없다. 벨라루스의 국민들은 자신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방사능을 좌시하는 정부를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러시아의 서쪽에 있는 두 국가를 미국의 영향권 아래 두게 되면 러시아는 압박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전통적인 우방을 빼앗는 것이니 미국은 +1, 러시아는 -1로, 2라는 차이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러시아의 정보부에서 이런 역학 관계를 모를리 없었다. 그리하여 미국이 움직이자 마자 과거 소련의 잘못이니 러시아 역시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겠다면서 한 발 걸치려고 들었고 미국은 아직 개발 단계라 체르노빌 방사능 정화 작업은 대규모 실험에 불과하다면서 거절했다. 이에 행복한 쪽은 우크라이나였는데 러시아에서 피해 보상으로 각종 이권 등을 챙겨주기 시작했기 때문에 미국을 비롯해 양쪽에서 혜택을 받는 중이었다. 사실 이렇게까지 러시아가 우호적으로 나올 줄은 몰랐으며 피해 복구를 위해 전폭적 지원을 해 줄은 상상도 못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을 해보면 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과거 소련이 싸질러 놓은 거대한 똥덩이. 그리고 그 소련을 계승한 러시아. 만일 러시아가 보상을 한다고 한다면 방사능을 막기 위해 영원히 보상을 해야 한다. 피해규모가 무한대란 의미는 바로 그런 것이다. 하지만 강현의 기술로 인해서 방사능의 피해가 무한대가 아니게 되었고 그로 인해서 영원히 보상할 필요가 없어졌으니 러시아로서는 미국이 딴지를 걸기 전에 책임있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했다. (미국이 여태 잠잠히 있었던 것은 자국에서도 원전은 운영하기 때문이었다. 원전을 가지고 있는 나라들은 경제적인 이유로 그 위험성을 부각시키는 체르노빌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꺼낼 수가 없다.)이 복잡한 외교전에서 미국과 러시아, 과연 어디가 이득을 볼 지는 시간이 지나야 확연히 드러날 것 같다. = = = = = “박사님!” 샐리가 쪼르르 연구실 안으로 들어왔다. 올해 졸업을 한 그녀는 많은 갈등을 했다. 이대로 대학원에 진학할 것이냐 아니면 쌓아볼 것이냐. 그녀는 인턴 생활을 하면서 연구는 자신의 체질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배우는 것은 즐거웠고 머리도 좋았지만 진리를 탐구할 정도로 학자적 기질이 풍부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강현의 사무 업무를 보조해 주면서 비서처럼 누군가를 보조해 주는 것이 적성에 맞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NASA에 전격적으로 취업해 강현과의 접점을 늘렸다. “샐리. 이제 떨어지는게 어때요?” “저 여기에 취업하는데 성공했다고요. 기쁘지 않으세요?” “아아, 기뻐요.” “전혀 기쁜 것 같지 않은데요?” 샐리의 말에 강현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사실 기쁠 정도는 아니었다. 이미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 정보부의 대(對) 강현 작전은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강현을 평생 미국의 시민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타국의 작전(주로 미인계)를 막고 그에 대한 유효한 방법으로 강현에게 미모의 재원을 붙이는 시도는 다각적으로 이루어 지고 있었다. 샐리의 NASA 취직 역시 그러한 맥락의 연장에 있었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특혜를 받았지만 그 개인은 그저 운이 좋다고 생각할 정도로 무리하지 않게 일을 진행했다. 그러나 강현은 전 세계 정보부의 아즈삭 시리즈를 통해서 그 자신이 대상인 작전이나 정보에 대해서는 모두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미 정보부에서 샐리를 통해 노리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샐리가 밉지는 않았지만 타인의 의도에 따라 자신이 휘둘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오히려 아무것도 모른 채 이용 당하고 있는 샐리에게 약간의 동정심이 있을 정도였다. 98화 “아무튼 자주 보겠네요.” “아아.”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원부서에 배속된 그녀는 여러 업무를 보게 될 것이고 강현이 실험하기 위해서 여러 물품을 구입하거나 외주를 주거나 하는 일에 관련되어 그를 도와줄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은 생각보다 빨리 다가왔다. “결제할 것이 왜 이리 많죠?” “박사님께서 만드신 장치가 방사능을 뿜어내니까 그렇죠.” 강현의 반감기 가속장치는 베타 붕괴를 인위적으로 일으키는 과정의 응용이었다. 그러나 알파선과 베타선보다 금속 용기를 뚫기 쉬운 감마선이 주로 튀어 나왔다. 방사능 물질을 제거하는 동안 방사능을 뿜는 장치에 대한 각종 안전 규제가 필요하고 그 때문에 판매에 대한 것도 여러 허가를 받아야 했다. 관료주의의 답답한 예지만 그래도 절차는 지켜야 했고 아무리 미 정부에서 편의를 봐준다고 해도 형식상 서류에 사인하는 과정은 필요했다. 강현은 그런 가보다다 싶어서 십 수 개의 서류에 사인을 하고는 서류 뭉치를 샐리에게 도로 넘겨주었다. 이제 남은 건 그녀가 알아서 할 것이다. “응? 뭐죠?” 강현은 돌아가기 전 샐리가 또 꺼낸 우편물을 보았다. 편지 봉투가 한 뭉치나 있었다. “저도 몰라요.” 인터넷 세상이 되면서 편지는 거의 이메일로 주고 받는 세상이다. 강현도 마찬가지라 이메일을 애용하고 있었다. 게다가 아즈삭이 그의 메일을 관리해 스팸 메일이나 쓰잘데기 없는 청탁 따위의 이메일을 미리 정리해 주기 때문에 매우 편했다. 물론 팬레터의 경우 아즈삭에게 알려준 메뉴얼대로 일괄적으로 처리하고 있었다. 뭐 기껏해야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든지 아니면 과학에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는지 따위의 상투적인 문구에 고유명사와 이름만 바꾸어 전송하는 것에 불과했다. 물론 직접 손으로 쓴 팬래터도 받아봤고 그 정성에 간단히 자신도 손으로 편지를 써 보내기는 했지만(들리는 후문으로는 그 소년은 강현이 했던 대로 폰 노이만 학습법을 하다가 과학자의 꿈을 포기했다고 한다.) 그래도 그리 많은 일도 아니었고 이렇게 편지 뭉치가 날아온 적도 없었다. “박사님, 인기 많네요.” 샐리는 편지를 하나하나 뜯어보는 강현의 모습을 보면서 흐뭇해 했다. 하지만 강현의 표정은 굳어갔다. “박사님?” “샐리. 그만 가보도록 하세요.” “네? 네.” 샐리는 무슨 일인지 묻고 싶었지만 강현의 분위기가 심각했기 때문에 연구실에서 나올 수 밖에 없었다. 그의 고민을 공유하고 공감하고 싶었지만 자신은 아직 그의 애인이 아니었다. 그것을 자각하자 샐리는 시무룩해질 수 밖에 없었다. 샐리가 나간 후 강현은 아즈삭을 불렀다. 분위기는 근엄했고 착 가라앉아 마치 추궁하는 듯 했다. “아즈삭.” [네, 박사님.] “이게 뭔지 아나?” [모르겠습니다.] “그 동안 환경 단체에서 이메일이 온 적 있었나?” [네, 박사님.] “어떻게 처리했지?” [삭제했습니다.] “왜?” [박사님에게 더 이상 신 통일장 이론을 연구하지 말라는 내용이었기에 삭제했습니다.] “왜 내게는 알려주지 않았지?” 문제는 바로 그것이었다. 손으로 쓴 편지, 그리고 이메일의 내용은 크게 다를 것 같지 않았다. 모두 동일한 단체에서 보낸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내용이 강현이 생각하기에 허투루 대처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할 정도의 내용이었다. [알려 드렸습니다.] …. 강현은 순간 당황했다. 근엄한 분위기가 일순간에 흐트러졌다. “..... 그, 그래?” [네. 박사님께서 별로 대수롭게 여기지 않으시고 바로 관심을 끄셨습니다.] “그, 그렇군.” 근엄하게 나가다가 할 말을 잃은 강현이었다. 그때 자신이 왜 그랬을까? 그것은 정보의 양 차이 때문이었다. 단순히 아즈삭이 편지의 내용에서 요점만을 간추린 것을 들은 상황과 직접 읽어 편지에 담긴, 뉘앙스, 감정 따위를 느낀 상황에서의 판단은 다를 수 밖에 없다. 아무튼 그는 붉어진 얼굴을 슬쩍 문질러 민망함을 털어내고는 편지의 내용을 아즈삭에게 알려주었다. “반핵주의자들의 항의 서한이야. 내가 만든 기술 때문에 인류에 위기가 올 거라고 주장하고 있어.” [그렇습니까? 저는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잔류 방사선을 제거함으로써 차후 원자력 사고에 인류가 대처할 능력이 생겼기 때문에 더 안전해 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 바로 그런 판단이 문제라고 하네.” 방사능 물질 제거 기술을 획득함으로써 인류는 방사선에서 안전해 졌다. 그러나 그 때문에 핵무기의 위험성을 과소평가하는 분위기가 생겼다. 미국의 어떤 우익 인사는 다량의 소규모 전술핵을 보유할 것을 주장하기 시작했으며 그 주장의 바탕에는 전술핵 사용 지역을 정화 시킬 수 있는 반감기 가속 장치가 있었다. 한 마디로 적이 있는 시가의 민간인을 소개 시키고 핵으로 확 불태워 버린 다음 잔류 방사선을 제거하면 만사 OK라는 소리다. 미친 소리지만 어떤 주장이든 잘 포장하면 그럴싸하게 들리는 법이다. 그 포장지를 뚫고 핵심을 보는 지성이 있다면 선동되지 않겠지만 그런 지성을 가진 이는 가지지 않은 이보다 대체로 적은 편이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원래 전쟁이란 그런 거야. 어떻게 시작되든 광기로 물들지. 하여간 좋게 쓰라고 만든 기술을 그런 식으로 이용하려고 하다니. 인간이란 참 나쁜 쪽으로는 머리가 잘 돌아가.” 인간의 선의를 자신의 이득을 위해 이용하는 일은 너무나 많다. 어떤 사기꾼은 빈 지갑을 떨어뜨려 놓고 그 지갑을 경찰에 맞긴 선한 이에게 지갑의 돈이 없어졌다고 고소하겠다고 공갈을 쳐 많은 합의금을 뜯어낸다. 어떤 비양심적인 자선단체는 어려운 사람을 도우라고 사람들이 십시일반으로 거둔 성금을 자신들의 보너스로 환원한다. 인간은 생각보다 더 추해질 수 있는 존재다. [그런데 그들은 왜 그걸 박사님에게 항의하는 겁니까?] “기술의 개발자로서 책임을 지라는 말이지.” 아인슈타인도 평생 반핵 운동가로 살았다. 자신의 연구 결과가 사람을 죽이는 쪽으로 사용된다는 것을 그는 원하지 않았다. 그리고 강현은.. “귀찮은데..” 그에 대해서 별로 책임감을 느끼지 못했다. 기술은 모두의 것이다. 비록 자신이 특허권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이미 공개된 지식을 회수하는 방법은 그 지식을 익힌 이들을 제거하는 것만이 유일한 수단이다. 그러므로 강현은 공개된 기술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은 그 사회 전체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총을 만들어도 그 총을 당기는 것은 결국에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환경 및 반핵 단체의 뛰어난 행동력은 강현을 매우 귀찮게 할 것이 분명했다. 그린피스라는 환경단체의 회원들이 작은 고무보트를 타고 고래를 사냥하는 거대한 일본 포경선을 향해 카미카제식 돌진을 하자 카미카제의 원조인 일본인들마저 당황할 정도다. 또한 그들의 주장대로 만일 핵이라도 사용이 되고 자신의 반감기 가속 장치로 그 오염 지대가 정화된다면 자신을 보는 대중의 시선이 결코 곱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것은 분명 강현의 연구 활동에 적잖은 걸림돌이 될 것이기에 강현은 입장을 확실히 정해야 했다. 자신의 기술을 빌미로 핵무장 강화를 주장하는 흐름에 반기를 들 것인가? 아니면 그럴싸한 명분을 들어 책임을 사회로 미룰 것인가? 아무래도 강현의 마음은 후자가 좋았다. 전자는 이런 저런 사회 활동을 하면서 사람들을 만나야 했기 때문에 연구 시간이 부족해 졌다. 아니 부족하지는 않겠지만 인간과 인간 사이의 미묘한 이해관계에 대처하는 것이 강현에게는 매우 불편하고 익숙치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후자 역시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대중은 복잡한 존재다. 강현이 내민 명분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일지 알 수가 없다. 왜냐면 개개인간의 복잡한 상호작용 때문에 대중에게 일어나는 일은 카오스와 닮아있기 때문이다. 초기수치의 미세한 차이가 나중에 매우 큰 차이로 나타나듯이 강현이 주장하는 명분을 가장 먼저 누가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 어떻게 전파하느냐가 강현을 연구만 생각하는 괴짜 연구자로 인식되느냐, 아니면 자신이 만든 것에 책임지려고 하지 않는 이기적인 작자로 인식 될 것이냐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런 문제에서는 언론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다. 마녀 사냥은 대체로 언론의 의도적인 실수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의도적인 실수, 혹은 미필적 고의.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해 검증되지 않은 사실을 마치 진실인 양 날조해 내보내는 언론은 부지기 수 였으며, 언론과 친하지 않은 강현이 마녀 사냥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때문에 강현이 원하는 언론 플레이를 하려면 먼저 언론부터 우호적으로 만들어야 했는데 그 또한 여러 사람을 만나고 귀찮은 사회 활동을 해야 했다. 결국은 뭐를 선택하든 강현으로서는 귀찮은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아! 짜증나!” 강현은 짜증났다. 도대체 왜 평온한 일상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도대체 원흉이 뭔가? “페트 로버튼! 그 작자!” 페트 로버튼. 기독교인이면서도 핵무장을 강화하는 주장을 펴는 공화당 당원이며 반핵 운동 단체를 경악하게 만든 남자다. 독실한 기독교인이면서 미국을 보호하기 위해서 인간을 대량 학살할 수 있는 핵무기의 보유량을 늘리자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사람을 죽이는 기독교인이라... 스탠딩 개그를 하는 어떤 코미디언의 말처럼 참 세상은 알 수 없게 돌아간다. 성경에는 종교가 다른 사람을 죽여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 명시되어 있는 걸까? 그럴 리는 없다. 그런 말이 경전에 적혀있는 종교를 보호할 자유주의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반드시 도태될 것이다. 그러니 로버튼의 주장은 종교와는 관련이 없을 것이 분명했다. 물론 그가 말 끝마다 하나님께서 미국을 보호하실 거라는 상투적인 멘트를 달지만 그 자신도 그리 독실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핵무장 강화를 주장하는 배경에는 그를 지지하는 이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대체로 매스 미디어에 나와 무언가를 주장하는 이들에게는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동지들이 붙어있기 마련이기 때문이고 매스 미디어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웬만한 세력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이 작자에 대해서 조사해보자.” [단계는 어느 단계까지 합니까?] “일단 합법적인 단계까지. 불법적인 수단은 그 결과를 보고 고려해 보지.” 불법적인 수단은 바퀴벌레 스파이 로봇을 의미한다. 자주 쓰면 들킬 확률이 높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안 쓰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지만 필요하다면 써야 했다. 비록 그것이 불법인 줄은 알고 있더라고 해도 강현의 양심은 찔리지 않았다. 음모를 꾸미는 것들에게 적법, 합법을 구분해가며 대우해 주고 싶지 않았다. 일단 어찌 될지 모르지만 아즈삭은 인터넷의 영역에서 페트 로버튼에 대한 자료를 쭈욱 수집했다. 그의 약력, 그 약력을 기반으로 그의 비공식적인 인맥을 유추해 내고 페트 로버튼의 발언과 이해 관계에 있는 이들까지 유추해 냈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보수? 우익? 참...” 페트 로버튼의 입장을 옹호하는 인사들이 대거 공화당에 집결해 있었다. “이상하다. 세이브를 안 했나?” 자정주의 세력을 일으키고 자정주의 물결로 이상한 생각을 하는 이들을 대충 거르고 경고의 의미도 되었을 터인데 말이다. 덕분에 공화당에 대한 대중의 인식도 많이 바뀌었고 지금은 지지율이 민주당과 업치락 뒷치락 하는 등 발언력이 강해진 상황이다. 99화 그런데 핵무장 강화라는 상식인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을 하는 것이 참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찌 된 일일까?” 내밀한 사정을 알기 위해서 다시 바퀴벌레 로봇을 이용해야 할까? “귀찮은데..” 사실 강현 그 자신을 대상으로 한 계획이 아닌 이상,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일은 강현이 목적이 아님에도 불과하고 그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었다. 페트 로버튼과 그 뒤에 있는 이들은 강현에게 확실하게 민폐를 끼치고 있었다. 물론 반핵 단체가 강현을 끌어들이지 않았다면 멀뚱히 관람만 하면 되었기에 그들 역시 민폐는 마찬가지기는 매한가지지만 다루기 어려운 대중을 다루는 것보다 일을 벌리는 이들을 다루는 것이 강현에게는 더 쉬웠다. 대중이란 감성적인 존재라 어디로 튈지 모르지만 어떤 목표를 향해 나가며 이해득실을 따지는 인맥의 줄기들은 바로 그 이해득실만 잘 조정해 주면 설득의 여지가 있었다.(혹은 협박도 가능하다.) “흐음.. 실버스트리 공업이라..” 3차원 이미지 화면으로 페트 로버튼의 인맥 관계도를 찬찬히 살피던 강현의 시선에 어떤 흐름이 보였다. 그것은 실버스트리 공업이라는 탄약 제조를 주력으로 하는 기업을 매개로 페트 로버튼을 지원하는 군산 복합체의 일부 세력이었다. 그들은 주로 강현이 개발한 CNC 장갑을 제작해 경장갑 차량의 방호력을 증가시키는 사업들을 하고 있거나 각종 탄약을 제작하고 있었다. “핵무장 강화와 탄약, 장갑 제조 회사라.. 무슨 관련이 있지?” 잠시 생각하면 강현은 그 셋을 연결하는 이해 관계를 발견했다. CNC 장갑은 대물 저격총을 최소 세 발까지 막아내는 엄청난 성능의 장갑이다. 그러나 기술이라는 것이 영원히 보호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타국에서 CNC 장갑을 역설계해서 그대로 모방할 가능성을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CNC 장갑을 무력화할 수 있는 선행 연구가 한창 진행중이었다. 그 방법 중에는 정확도 높은 중기관총을 이용해 CNC 장갑의 피로도를 순식간에 올리는 방법과 열화우라늄 탄, 텅스텐 탄과 같이 일반적인 철갑탄보다 관통력이 뛰어난 탄환을 사용하는 방법이 있었다. 그러나 전자는 CNC 장갑의 피로도를 올리기 위해 사용해야 하는 탄약이 엄청나게 필요하기 때문에 탄약 보급이 문제가 된다. 단순히 비용 문제가 아니라, 탄약을 들고 이동해야하는 전술적인 문제를 생각해도 그다지 적절한 해결책은 아니었다. 그래서 우수한 관통력을 가진 탄환을 개발하고 있는 중인데 그중에 가장 유력한 후보가 바로 열화우라늄탄과 텅스텐 탄이다. 일반적인 철갑탄은 재료 자체의 특성 한계 때문에 도저히 CNC를 관통할 수가 없다. 왜냐면 강한 경도를 가진 CNC 장갑과 부딪혔을 때 아무리 철갑탄이라고 해도 그 끝이 뭉개져 관통력을 상실해버리기 때문이다. 때문에 단단한 물질에 부딪혀도 끝이 뭉개지지 않아 관성력을 뾰족한 끝에 집중시킬 수 있는 물질을 관통자로 사용해야 했고 열화우라늄과 텅스텐이 자기첨예화란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장 적절한 물질이었다. 자기첨예화란 간단히 말해서 탄환, 혹은 관통자가 날아가거나 목표에 부딪혔을 때에도 일반적인 탄환처럼 뭉개지는 것이 아니라 뾰쪽한 모양을 유지하는 성질을 말한다. 이 현상은 금속의 기계적인 성질과 관련이 되어 있는데, 여기에 열화우라늄과 특정 텅스텐 합금이 가진 단열전단밴드라는 성질이 자기첨예화를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금속이 강한 힘을 받으면 변형되면서 내부에 전단(Dislocation)이라는 결함을 만든다. 이 결함은 금속원자가 제자리 없는 것, 전문영어로 Vacancy라고 하는 빈공간의 1차원적인 배열인데 금속의 가공경화 기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 전단은 금속이 변형되면서 점차 축적되어 금속원자의 밀도를 줄이게 되고 마침내 구멍, 균열을 만들게 된다. 철사를 반복해서 구부리면 어느 순간 툭하고 부러지는 이유가 바로 이 전단의 축적 때문이다. 그러나 초고속으로 날아가는 철갑탄은 이 구멍이나 균열이 생기면서도 마찰열에 의해서 유동화된 금속원자로 인해 즉시 전단이 매워져 버린다. 즉, 변형된 전체적 모양이 유지되어 관통에 필요한 모양(관성력을 집중할 수 있는 모양)을 상실하게 되고 이로 인해서 관성력의 반작용이 탄 전체에 걸리게 되면서 더 큰 변형을 일으켜 관통이 불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열화우라늄탄과 텅스텐 합금탄은 그 결정구조와 물리적인 특징에 의해서, 강한 힘을 받아 생성 및 축적되는 전단이 일종의 방열 기능을 하게 된다. 바로 단열전단밴드가 생성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마찰열과 변형에 의해 생기는 열이 탄환의 바깥 껍질에만 머물게 되고 이 바깥쪽에 존재하는 변형된 조직이 벗겨져 나가 버린다. 그리하여 충격에 의한 변형 에너지가 탄환 전체에 가해지지 않고 충격면에 존재하는 얇은 조직의 변형 및 이탈에만 사용되기 때문에 모양이 일정한 자기첨예화 성질을 가지게 된다. 이로 인해서 열화우라늄탄은 사용시에 우라늄 분진을 날리게 되는데 이는 자기첨예화 성질을 이용한 관통자에서는 당연한 현상이다. “흐음. 자기첨예화 성질을 가진 탄이라면 충분히 CNC를 뚫을 수 있겠지.” 제 아무리 경도와 탄성이 뛰어난 CNC 장갑이라고 해도 일점 집중의 운동에너지를 완벽히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열화우라늄이나 텅스텐 탄환에게 CNC 장갑을 뚫을 정도의 운동 에너지를 부여하려면 보통 화약량으로는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장갑의 성능을 올리기 위해 곡면, 굴곡처리까지 했으니 빗겨서 튕겨나가지 않을 정도의 관성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탄환 자체가 무거워져야 했다. 즉, 탄환 가격이 엄청나게 상승한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그것과 핵무장 강화 발언이 관련이 있습니까?] “지금 쌓인 열화우라늄탄의 재고가 전세계적으로 약 백 만톤 정도 되지 않나?” 싸고 무거우면서 자기첨예화 성질을 가진 열화우라늄 탄이 CNC 장갑을 무력화 하는데 가장 적절한 후보였다. [네, 미국과 러시아가 각각 약 40만 톤 정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재고를 쌓은 기업들 입장에서는 CNC 장갑에 대한 대응 연구를 빌미로 열화우라늄탄을 팔아먹고 싶지 않겠니?” 열화우라늄탄의 주 재료는 우라늄 238이다. 매우 안정한 방사능 물질이기 때문에 내뿜는 방사능도 그리 위험한 양은 아니다. 심지어 자연적인 우라늄 광석보다 적은 방사능을 풍긴다. 많은 사람들은 이 우라늄 238의 용도가 중성자를 흡수시켜 또 다른 핵분열 물질인 플루토늄을 만드는데만 사용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라늄 238은 우라늄 235의 농도를 조절하고 잉여 중성자를 흡수하기 때문에 핵분열의 연쇄 반응을 조절하는 데 더 중요하게 사용되고 있는 물질이었다. 그리고 열화우라늄탄에 사용되는 우라늄은 우라늄235의 농축을 거치고 난 폐기물, 즉 우라늄 238이기 때문에 방사능이라는 요소를 보았을 때에는 인체에 해가 거의 없는 물질이었다. 반감기가 무려 42억년이나 되기 때문에(우라늄 238이 반으로 줄기 위해서는 지구의 역사와 맞먹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붕괴를 통한 방사능은 매우 매우 적다. 그러나 그런 우라늄 238이라도 전혀 해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꼴에 핵물질이라고 방사능을 미약하게 나마 배출하기 때문에 오염 농도가 짙어지면 인체에 해가 되는 것은 마찬가지며 기본적으로 중금속이기 때문에 중금속 중독을 일으킨다. 물론 화학적으로 치사량이 청산가리에 버금가는 플루토늄보다는 안전한 물질이다. 하지만 그 폐해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하게 연구된 내용이 없고 전세계적으로 방사능 물질을 탄환에 사용하고 있다는 비판 여론이 거세기 때문에 사용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래서 재고가 나날이 쌓여가니 탄약 제조 회사들이 머리를 싸매고 처리할 궁리를 하는 것은 당연했다. [결국은 돈입니까?] “자본주의 사회니까.” 그렇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인과는 결국 돈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물론 미친 놈들도 좀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핵무장 발언도 핵무장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핵물질을 무기에 사용하는 것을 반대하는 여론에게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으름장일 가능성이 무척 높을 것입니다.] 협상의 기본 중 기본이다. 10을 원하면 100을 요구하는 것. 세금 인상을 위해 거의 모든 정부에서 전형적으로 구사하는 방법으로 10%의 세금 인상안을 제출하고 강한 반발이 일어나면 슬그머니 5%로 수정안을 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쪽에서 이만큼 양보했으니 그쪽에서도 양보하라고 하는 것이다. 물론 원래 목표는 10%가 아니라 5%였다. “핵폭탄은 이쪽에서 양보할 때니까 대신 열화우라늄탄을 쓰자?” 사실 전술적으로 열화 우라늄탄의 사용은 매우 유용하다. 엄폐물 뒤의 적을 엄폐물과 함께 처리하기에도 좋고 또한 관통 후 생기는 우라늄 분진에 불이 붙게 되었을 때 생성되는 열과 폭발은 사람에게 2차 충격을 가하기 충분했다. 대부분의 건축물에 사용되는 콘크리트 격벽은 이 우라늄탄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기 때문에 전술적인 가치가 높았다. 거기다가 차량 역시 쉽게 무력화 할 수 있었다. 엔진에 한 방만 맞아도 엔진은 그 기능을 상실할 것이다. 물론 방사능 물질을 사용한다는 정치적인 부담 때문에 열화우라늄탄과 비슷한 정도의 강력한 관통을 가능하게 하는 대체품이 있다. 바로 텅스텐 합금 관통자지만 아무래도 열화우라늄보다 훨씬 비쌌다. 열화우라늄탄에 사용되는 우라늄은 우라늄 235의 농축과정의 폐기물이기 때문이다. “한 번 물어보자.” 강현의 아즈삭의 판단에 누군가에게 문의해 보기로 했다. 정말로 핵무장 강화가 목적이 아니라면 강현이 굳이 나설 필요가 없었다. 상황은 자연히 잠잠해 질 것이기 때문이다. 강현은 그에 대해 문의하기 적절한 사람에게 연락했다. 자본주의 자정세력을 첨두에서 이끌어 차기 대선 후보로 유력한 앙드레 파셀 의원이었다. [하하! 강 박사! 오랜만이군. 그런데 어쩐 일인가? 먼저 연락을 다하고.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려나?] 앙드레 파셀은 강현에게서 먼저 연락을 받자 매우 놀라웠다. 강현의 은둔주의는 매우 유명했기 때문이다. 강현은 거의 사회에 나서지도 않고 자기가 먼저 어떤 인물과 접촉하는 일도 거의 없었다. 몇 번 있기는 했지만 그건 그에게 커다란 목적이 있었고 그때마다 커다란 파장을 몰고 왔다. 대표적으로는 한국에서 일어난 일과 자본주의 자정운동이 그러했다. 강현의 접촉은 일반적으로 자신의 영향력을 넓히고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행동과는 달랐고 오직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데만 촛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그럴 리는 없죠. 저도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그리고 공화당의 당원으로서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기 위해 먼저 연락도 할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 자정운동을 통해서 강현의 정치적인 성향이 공화당이라고 확실하게 인지되었다. 게다가 자정주의 운동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 공화당에 당원 등록을 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민주당에서는 그런 그의 행보에 당황했지만 식견이 있는 사람들은 그럴 만도 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강현은 금세기 들어 자본주의의 체제 아래에서 가장 최대의 이득을 본 인사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가 아니었다면 그의 발명과 연구 결과물이 정당하게 평가 받아 그 개인이 막대한 재산을 벌어 들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100화 그러나 한 편 그가 완전히 우파로 분류되지는 않았고 중도 성향의 우파로 분류되었는데, 이는 자정주의 운동을 촉발시킨 부의 분배에 대한 그의 문제인식이 민주당과 상당히 비슷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해결 방법이 정부에 의한 규제를 수단으로 삼는 민주당과 다르게 자본가 개개인의 각성을 요구하는 수단을 내걸었기는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강현 개인에게 과연 공화당의 정치적 신념을 옹호하느냐라고 묻는다면 강현의 솔직한 대답은 ‘알게 뭐야?’일 것이다. [궁금한 게 있다라.. 뭔가?] “페트 로버튼이란 사람 제정신이 맞나요?” [… 풋!] 다소 과격한 표현에 파셀 의원은 실소를 토했다. [그 핵무장 강화 발언 때문인가?] “그렇죠. 이성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전혀 제대로 된 판단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긴 그렇지. 이미 지구상의 핵무기는 너무나 많으니까.] 많은 정도가 아니라 인류를 세 번은 멸종 시킬 수 있는 양이다. “그래서 그 양반의 진의는 뭔가요? 설사 진짜 미친 건 아니겠죠?” [푸하하하! 설마 그렇겠나. 그리고 또 진짜 미쳐도 그가 주장한 핵무장 강화는 실현되지 않을 걸세.] “정말인가요?” [과거처럼 신앙 같은 이데올로기가 대립하는 냉전시대가 아닐세. 자유주의는 승리했고 그 안의 다원주의가 꽃피고 있는 것이 지금의 세상이야. 물론 종교에 미친 것들이 걱정이기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핵무장은 전세계적으로 감축 되어야 하고 그렇게 흐름이 진행되고 있다네. 미국이 세계의 패권을 잡을 이상, 신을 부르짖으며 자신과 타인의 생명을 경시하는 놈들에게 핵무기가 들어가게 하면 안 되거든.] 핵무기는 대표적인 비대칭 전력이다. 또한 순식간에 한 나라를 몰락시킬 수 있는 위험한 무기다. 만일 테러리스트가 핵배낭을 미국 주요 도시에 빠짐없이 설치한다면 미국의 몰락은 순식간이다. 그러므로 핵무기 확산에 가장 민감한 국가 역시 미국이었다. 그러나 강현은 그런 속사정보다는 종교를 부정하는 듯한 앙드레 파셀의 용어 선택에 더 관심이 갔다. 과학자로서 경전을 신봉하고 의문이란 인간 본성을 저해하는 종교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과학은 의문에서 시작해 무지를 해소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학문이기 때문이다. 똑같이 의문에서 시작해 신이란 무지로 나아가는 종교를 과학은 용납할 수가 없다. 종교는 신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신에게 종속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의원님은 기독교인 아니셨어요?” [근본주의자는 아니네.] 강현은 납득했다. 파셀 의원의 융통성은 근본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이었나? [그런데 고작 그 때문에 연락을 한건가?] 파셀 의원은 강현이 물어 본 것을 별로 대수롭게 여기지 않고 있었다. 그 정도 발언은 어디에나 존재했고 정치가이기 때문에 극우적인 성향을 지닌 사람도 자주 만날 수 있었다. “고작이라니요? 그 때문에 제가 얼마나 시달리고 있는데요.” 강현은 기술개발에 대한 책임을 지라는 여러 환경단체의 편지 공세에 시달린다고 엄살을 떨었다. 본인에게는 엄살이 아니었지만 파셀 의원에게는 엄살로 들렸다. 강현의 영향력이면 그 모든 것을 묵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가? 뭐, 그렇다면 이쪽에서 조치를 취해주겠네.] “그래주면 감사하겠습니다.” [껄껄! 그러면 이번 연말 파티에 참석하는 건 어떤가?] 강현의 미간에 살짝 주름이 졌다. 역시 뭔 가를 얻으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러죠, 뭐.” 파셀 의원은 미소 지었다. 이 젊은이는 확실히 주고 받는 것에 대해서 정확히 개념이 잡혀 있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정확해야 했다. 받는 것이 있으면 주어야 했고 주는 것이 있다면 받아야 했다. 그것이 사람 사이의 갈등이 발생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렇게 강현과 파셀 의원의 통화는 끝났고 강현은 파셀 의원이 과연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아즈삭을 통해서 상황을 살폈는데 의외로 파셀 의원의 일처리는 매우 간단했다. 바로 모든 일의 원흉인 페트 로버튼의 주둥이를 틀어 막은 것이다. 페트 로버튼의 핵무장 강화 발언에 그동안 가만히 있던 공화당 내부에서 ‘미친 발언’이라며 젊은 당원들이 비난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페트 로버튼은 진작에 안방 구석에 찌그러져 있어했던 노망난 할배 취급을 받아 황급히 모습을 감춰 버렸다. 너무나 쉬운 해결에 강현이 어리둥절할 정도였지만 충분히 그럴 만 했다. 페트 로버튼의 발언을 지지하는 세력의 크기와 공화당 지지 세력 전체를 비교해 보았을 때 전자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사실 그 동안 공화당 내부에서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던 이유는 그 발언이 공화당에 어떤 이해득실을 가져올지 명확히 판단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페트 로버튼의 뒤에 있던 일부 군산 복합체의 로비는 진행 중에 있었고 아직 각자의 입장이 명확하게 판별되지 않았기 때문인데, 갑자기 공화당의 실력자인 파셀 의원이 나서자 순식간에 입장들이 정리되어 버린 것이다. “참, 정치란..” 강현은 혀를 쯧쯧 차면서 순식간에 일을 처리한 파셀 의원의 솜씨에 감탄을 하고 말았다. 역시 정치가란 아무나 하는 게 아닌가 보다. 아무튼 헛소리를 하며 환경단체를 자극하던 로버튼이 기어 들어가고 강현은 골치 아픈 일을 조기에 방지해, 다시 연구에 전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즈삭에게서 그 일과 관련된 후속 내용을 듣게 되었다. [박사님. 핵물질 규제 완화에 대한 법안이 통과 되었습니다.] “응? 뭐?” [실질적으로는 열화우라늄탄의 사용에 대한 규제 완화입니다. 아마 내년부터 군부대에 본격적으로 보급될 것 같습니다.] “이것 때문에 파셀 의원이 그렇게 쉽게 일을 처리할 수 있었던가?” 간단히 말해서 씨끄럽게 일을 벌일 필요없이 탄약 제조 회사에게 뼈다귀를 던져 입을 다물게 한 것이다. 하긴, 정치는 주는 게 있으면 받는 것도 있어야 했다. 차기 대통령 후보인 파셀 의원으로서는 고압적인 방법을 이용해 중요한 지지층을 잃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와 동시에 화생방 물자에 반드시 반감기 가속 장치를 포함시키는 법안 역시 통과 되었습니다.] “그걸 빌미로 이번에는 환경단체를 다독인다? 정치란 것도 만만한 건 아니구나.”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복잡한 이해관계를 원만하게 해결하는 것은 그로서도 골치가 아픈 것이었다. 기본적으로 에고이스트적 기질이 넘치는 강현은 타인의 입장에서 이해하는 것이 무척이나 체질에 안 맞고 익숙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 그렇게 되면 열화우라늄탄과 반감기 가속장치가 군대에 있게 되는 거잖아. 사고가 나지 않을까?” 만일 반감기 가속장치를 사용하는 영역에 열화우라늄탄이 있게 된다면 엄청난 방사능이 분출될 것이다. [그에 따른 갖가지 규정과 메뉴얼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또한 화생방 제독 부대에만 반감기 가속 장치가 배치되기 때문에 그런 일을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가? 문제가 없으면 됐지.” 강현은 그것으로 만족했다. 자신의 발명품이 악용된다면 대중이 자신에게 달려들 것이라는 사실을 머릿속에 간직한 것 만으로도 충분히 이득이었다.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문제점을 인지할 수 있게 된 것이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페트 로버튼에게 약간 고마울 정도였다. 그래도 대중의 인식이라는 신경 써야 할 요소가 하나 더 생겼기 때문에 귀찮기는 했다. 물론 외부 활동을 거의 하지 않기 때문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아즈삭의 행동지침을 손봐서 이번 일과 같은 일이 다시 발생하게 되면 자신에게 자세히 알려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반감기 가속 장치는 전 세계로 잔뜩 팔려나가고 있었고 위험한 방사능 제거에 한 몫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강현에 대한 좋은 이미지는 쌓여 나가고 있었다. 이는 나중에 어떤 우호적 여론을 조성할 필요가 있을 때 강점으로 작용할 것이다. 한편, 이렇게 팔려나가는 반감기 가속 장치는 심지어 러시아에도 팔려나가 미국과 함께 우크라이나, 벨라루스의 방사능 오염 지역을 정화하고 있었다.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하려는 미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러시아도 강현의 장치를 구매해 방사능 정화 작업에 참여하고 말았는데 이는 검증된 기술을 미국 혼자 독점하려 한다는 전세계적인 비난 여론 때문이었다. 방사능 제거 기술에 안달이 난 나라들이 체르노빌로 가는 안전지대가 놓이자마자 이미 충분히 장치의 성능이 검증 되었다며 빨리 판매를 위한 법적 절차를 신속히 처리해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그 강력한 요구 때문에 미국은 한 발 물러설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무역 관세라든지, 시장 진출이라든지, 강현의 기술을 독점할 수 있는 시간의 단축이란 손해에 대응하는 이득을 얻어냈다. 물론 그러는 수 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공화당에서 무능한 외교를 펼친 정부라고 거세게 몰아붙일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차츰 시간이 지났고, 강현은 차세대 통신 기술인 양자 통신 기술을 위한 기초 이론 연구에 들어갔다. 그러나가 파셀 의원과 약속된 연말 공화당 파티에 참가해야 하는 날짜가 다가왔다. “아아. 귀찮다.” 하지만 신세진 일이 있으니 파셀 의원에게 갚아야 하는 일도 있었다. 단지 그의 초대를 받고 파티에 참석을 하는 것이지만 그 정치적인 의미는 파셀 의원에게 매우 도움이 되는 것이었다. 적어도 강현과 이해 관계가 얽힌 이라면 파셀 의원에게도 매우 조심할 것이며 그를 적으로 만들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강현은 베푸는 것에 인색한 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적은 적었고 우호적인 이는 많았다. 물론 적이 적은 이유에는 적을 무참하게 짓밟아 재기할 수도 없게 만드는 철저한 후속관리가 더해졌기 덕분이기도 했다. “하하하! 강 박사. 왔는가?”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의원님.” “감사는 무슨. 굳이 이렇게 귀찮은 발걸음을 해줬으니 내가 더 고맙지.” 강현과 파셀 의원의 대화에 주위 사람들이 귀를 기울였다. 정치권력과 기술자본권력의 만남이었다. 거창한 표현이었지만 둘의 영향력을 실감하는 이들에게는 그만큼 어울리는 표현도 없었다. 강현은 파셀 의원을 따라다니면서 그가 소개해 주는 사람들을 만났다. 귀찮았지만 웃었고 즐기는 척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강현은 거래의 내용을 잘 알고 있었고 그런 강현의 모습에 파셀 의원은 흐뭇하게 웃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강현은 자신이 해야 하는 일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역시나 천재. 그가 아마 정치쪽에 관심이 있었다면 자신의 후계자로 삼아 키워줬을 것이지만 아쉽게도 강현은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 “인사하게. 율리우스 헨델이네. 카길의 경영자로 있으시지.” 파셀 의원이 소개시켜준 사람은 파셀 의원 만큼 나이가 든 반백의 장년이었다.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율리우스 헨델이라고 합니다. 율리우스라고 불러주세요.” “네, 안녕하세요. 현 강 입니다. 그냥 강 박사고 불러주세요, 미스터 헨델.” 강현의 대답에 파셀 의원은 너털 웃음을 터뜨렸다. 헨델의 말은 이름을 트고 서로 친하게 지내자라는 의미였는데 강현이 거리를 두었기 때문이다. “허허. 카길 모르나?” “알죠. 세계 1위의 곡물 메이저 아닌가요?” “허허허.” ============================ 작품 후기 ============================ 배탈이 났습니다. 뭘 잘못 먹었나 봐요. 101화 알면서 그랬다는 말에 더욱 웃을 수 밖에 없는 파셀 의원이었다. 그는 곤란한 상황에서 웃는 습관이 있었다. 카길(Cargill). 영국계 미국인이 세운 곡물 회사로 지금은 세계를 주름잡는 곡물 카르텔 중 가장 규모가 큰 곳이었다. 물론 창업주는 영국계 미국인이고 대대로 가족기업으로 운영되어 주식 상장 한번 제대로 하지 않는 기업이었지만 신기하게도 그 경영은 항상 유대인들이 맡고 있었다. 하진 세계를 주름잡는 곡물 카르텔 거의 대부분이 유대인들이 창업주거나 유대인들이 경영을 하고 있으니 비 유대인 경영자로는 곡물 카르텔에 끼기 무척 어려울 것이다. 유대인들간의 유대감은 중국인을 능가하기 때문이다. 이 유대인들이 지배하는 곡물 카르텔은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은 먹어야 살 수 있는 존재고 그 먹거리 중 인류 생존에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곡물 시장을 쥐고 있는 카르텔의 영향력은 작은 국가를 두렵게 할 정도다. 함부로 심기를 거스르다가는 소국의 대통령이라도 물러나게 만들 수 있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이들이었다. 거기다가 석유 카르텔까지 유대인이 쥐고 있으니 각종 음모론에서 유대인들이 빠지지 않고 등장할 만 했다. “껄껄. 의원님 왜 그러십니까? 이거 괜히 저를 나쁜 사람 만드는 거 아닌가요?” “하하. 그럴 리 있겠습니까? 강 박사의 말이 거침이 없어서 잠시 당황했을 뿐입니다.” 헨델 사장의 뼈있는 말에 파셀 의원은 상황을 무마하기 위해서 진땀을 뺐다. 헨델 사장을 대하는 것이 조심스러워야 할 이유는 그 뒤에 있는 곡물 카르텔 뿐만이 아니다. 바로 각종 자원 시장을 꽉 쥐고 있는 유대인 네트워크 때문이다.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의 절반 이상이 유대인 소유고 금융, 석유, 곡물 및 국력의 척도라고 할 수 있는 자원 시장도 유대인이 주름잡고 있다. 이미 세계 경제는 유대인이 없다면 유지되지 않을 정도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코 헨델 사장을 만만하게 생각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강현의 반응이 상상 외였지만 자신의 처신도 실수였다고 생각하면서 상황을 처리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는 파셀 의원이었다. 강현은 그런 파셀 의원의 반응에 헨델을 보았다. 사람 좋게 생긴 장년의 신사였지만 그 본질은 곡물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카르텔 중 1위인 카길의 현 경영자. 그의 이름은 이미 강현의 기억에 있었다. 어떻게 하면 대한민국의 기득권에게 엿을 먹일까 궁리하던 와중에 식량을 이용하는 방법도 생각 했었지만 그렇게 하려면 이 카르텔이란 것과 연관이 되어야 했기 때문에 조사를 하는 와중에 기억에 남았던 것이다. 물론 계획은 포기했다. 별로 그들과 관련되고 싶지 않았다. 경쟁은 정정당당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강현은 카르텔 따위를 만들어 서로의 이익을 보호하는 이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카르텔의 이미지와는 달리 헨델은 아주 호감형의 남자였다. 그에게 카르텔을 경영하는 경영자라는 선입관이 없었다면 강현은 기꺼이 그가 인사 때 했던 말처럼 서로 이름을 터고 대화를 했을지도 모른다. “흐음. 강 박사는 내가 마음에 안 드나?” “딱히 헨델 씨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하기보다는 카르텔이 마음에 안 드는 거죠. 거기에 속한 기업들끼리 경쟁은 합니까?” 강현의 적나라한 질문에 헨델은 잠시 뻥 져있다가 호탕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하! 당연하지. 기업이란 이윤을 추구하는 존재일세. 아무리 같이 카르텔 안에 들어 있다고 해도 서로 경쟁을 하는 건 당연하지.” “그리고 새롭게 나타나는 경쟁자는 합심해서 제거하고요?” “당연한 것 아닌가? 그것이 기득권이라는 의미일세.” 하긴. 그것도 그렇다. 기껏 시장을 개척해 놨는데 어떤 놈팡이가 슬그머니 숟가락을 들이미는 것을 좋아할 이는 없을 것이다. “듣자 하니 카르텔이란 것에 반감이 큰 것 같은데 이유라도 있는가?” “제대로 된 경쟁을 하지 않는 카르텔이 사회 발전을 얼마나 저해하는지 한 번 봤기 때문이죠.” “한국 말인가?” “알고 계시는군요.” “작은 시장이지. 수출형 경제가 아니었다면 이리저리 뜯겨 먹혔을 거야.”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의 경제가 미국에게 종속된 상황이 그리 나쁜 것은 아니었다.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들이 탐을 낼 만한 것이 없던가, 아니면 그중 하나의 그늘로 들어가야 했다. 그러나 운이 나쁘게도 한국의 지정학적인 위치는 그 주위를 둘러싼 강대국들이 군침을 흘리기에는 최적이었다. 대륙에 있는 중국과 러시아는 태평양 진출의 발판으로, 세계 3위 경제대국인 일본의 입장에서는 대륙 진출에 적합한 발판으로 말이다. 그러나 또한 운이 좋게도 세계 최강대국이라는 미국의 그늘로 들어갔다. 덕분에 여러 나라들이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다. 거기에 미국이 다인종 국가라는 것이 더욱 다행이었다. 만일 미국이 민족국가 개념이었다면 한국인은 2등 시민 취급 받았을 것이고 역으로 미국사회에 진출에 명성을 얻지도 못했을 것이다. 미국은 피부색이 다르다고 해도 능력이 있다면 성공을 보장해 주는 국가였다. 그렇게 보면 미국이 주장하는 세계화에 가장 큰 혜택을 받은 나라는 아마 한국이 아닐까? “그런 작은 나라에서 큰 기업들이, 아 물론 내가 봤을 때에는 코딱지 수준에 불과하지만 말일세, 아무튼 지 잘났네 하면서 지들끼리 뭉치면 당연히 사회에는 안 좋지. 작은 연못에서 큰 물고기들이 서로 협력하면 자연히 작은 물고기들의 씨가 마르는 것과 같은 이치라네. 하지만 세계는 넓어. 아무리 우리 곡물 카르텔의 영향력이 크다고 해도 세계 전체를 아우르는 것이 쉽지는 않아. 사람도 많고 나라도 많고. 그 뿐인가? 지리적인 장벽은 물론 인종적인 장벽과 종교적 장벽 등 갖가지 문제들이 산적해 있네. 결코 한국과 같은 일이 벌어질 리는 없지.” “그건 그렇죠.” 강현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세계는 넓기 때문에 변수가 너무 많다. 아무리 카길이 곡물시장을 주름잡는 대기업이라고 해도 그 많은 변수를 확인하고 조율하고 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경영과 행동이 일정 선을 넘을 수가 없다. 특히 국가가 정한 법률이라는 틀 밖을 벗어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국가의 영향력은 기업의 영향력을 훌쩍 뛰어넘기 때문이다. 물론 기업의 영향력이 더 크다면 각종 편법을 동원해 초법적인 일을 벌이는 것도 가능했다. 그러나 그런 일이 가능한 것은 정부가 힘이 없을 때만이 가능하다. 그래서 재벌이란 기득권의 강력한 통제가 작용할 수 있는 것은 작고 고립된 한국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둘의 대화는 적나라했기 때문에 다소 아슬아슬하면서도 의외로 나쁘지 않게 흐르고 있었다. 속으로 식은땀을 흘리면서 둘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파셀 의원은 점차 좋아지는 분위기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정치가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경영자와 사이가 나빠지고 싶지는 않았다. 또한 강현을 초대한 파셀 의원이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 강현이 실수하면 그의 안목 역시 의심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호오. 그럼 방사능 물질들을 처리하는 기업을 차리면 엄청나게 돈이 되겠군.” “독점은 안 됩니다. 사람의 생명과 관련된 일인데 독점을 하면 얼마나 욕을 먹겠습니까?” “카르텔은 독점이 아니라네.” “뭐, 헨델 사장님께서 그렇게 생각하시는 건 별로 큰 문제가 아니지만 역시 중요한 것은 대중의 시선이 아닐까요?” “끄응. 나도 사실 그 점이 걱정스러워.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 사람은 사회적 동물일세. 아무리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고 기득권 보존을 위해서 행동하더라고 해도 사회를 간과해서는 안되는데.. 요즘 젊은 사장들이 그 점을 계속 간과하고 오만하게 행동하지 뭔가?” “뭐, 어떻게든 되겠죠. 살아남든 도태되든 간 시간이 결정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참, 자네의 정치적인 관점은 신기하단 말일세. 어떨 때에는 참 기득권에 대한 반발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그런 기득권의 존재를 인정하니 말일세.” “기득권을 없애면 그 자리에 또 다른 기득권이 올 뿐이죠. 그렇다면 좀 더 좋은 기득권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합리적인 방법이 아니겠습니까?” “자네가 시작했던 자정주의 운동말인가?” “저는 그냥 첫번째 도미노를 쓰러뜨렸을 뿐입니다. 이미 사회적으로 그런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에 파급이 컸던 것 뿐이죠.” “그 과정에서 거부가 된 이들이 죄다 자네의 지원을 받았다고 하던데?” “으음. 그 얘기는 좀.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면 제가 무슨 막후에서 음모를 꾸미는 모사 같지 않습니까? 저는 단지 자격이 있는 사람들에게 약간의 금전적인 도움을 줬을 뿐입니다. 어차피 제가 평생 다 못 쓸 돈이지 않습니까?” “뭐? 푸하하하!” 헨델은 이 젊은 천재와의 대화가 정말 즐거운 듯 했다. 둘의 분위기가 이제 좀 좋고 아직 한 참이나 더 이야기를 나눌 것 같자 파셀 의원은 슬슬 다른 볼일을 보러가도 될 것 같았다. 그도 만나야 할 사람이 많았다. “하하. 그럼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세요. 저는 또 만나야 할 사람이 있어서 말입니다. 그럼, 강 박사. 즐겁게 있다가 가도록 해요. 헨델 사장, 그럼 나중에 또 뵙죠.” 파셀 의원의 퇴장에 고개 숙여 인사를 한 두 사람의 대화는 슬슬 스케일이 커져 앞으로의 세상이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는데 둘의 관점 차이는 극명했다. 헨델은 기업의 입장에서 앞으로는 어느 나라가 뜰 것인지, 또 세계 경제의 흐름은 어디로 치중할 것인지를 생각했다면 강현은 기술에 의한 인류 문명의 진화 과정과 그와 연계된 국가들 간의 관계 변화 등을 예견했다. 그러나 둘이 공통적으로 동의한 것이 있다면 인류의 발전과 세계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의 땅은 바로 아프리카라는 점이다. 아프리카의 개발은 기업들에게는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고 제3세계의 발전은 자기들이 앞으로 국제 사회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국가들이 다시 생각할 계기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변화가 쉽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식민지 상태를 벗어난 그들은 가난했고 각종 이권은 기존의 강대국에게 빼앗긴 상황. 기아, 전쟁, 가난의 대물림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들을 둘러싼 여러 세력들의 첨예한 이해관계를 먼저 해결해야 했다. “그래서 자네는 그런 변화에 어떻게 이바지할 것인가?” “글쎄요. 저는 그저 제 연구가 좋아서 하고 있을 뿐이라.. 어떤 파급효과나 결과를 바라면서 연구를 하지는 않아서요. 그건 연구의 폭에 제한을 걸 뿐이거든요.” “흐음. 그런가? 그럼 기업에서 운영하는 연구소에는 별로 들어가고 싶지 않겠군.” “당연하죠. 위에서 이거 연구해라, 저거 연구해라 간섭하는 것은 꼴보기 싫거든요.” “하긴, 그때문에 강 박사가 미국에 왔지. 미국으로서는 행운일세. 그런데 왜 굳이 미국으로 온건가?” “다인종 국가잖아요.” “그것뿐인가?” “의외로 민족이나 종족을 중요시 생각하는 이들이 많더라구요.” 중국 사회에서 흑인이 성공할 수 있을까? 유럽에서 백인이 아닌 이가 사회적으로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을까? 글쎄.. 그들의 역사는 민족이나 혈통과 함께 한다. 그건 국가와 사회적인 입장에서 보았을 때 무시할 수 없는 자산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애시당초 이민자로 구성된 미국이야 말로 종족을 초월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유일한 국가였고 그건 강현이 보았을 때 자신이 차별 당하지 않고 하고 싶은 연구를 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로 여겨졌다. 102화 “무슨 얘기들을 하세요?” 둘이 한참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에 맑은 목소리가 들렸다. 강현이 뒤돌아보니 짙은 초록빛 비단 드레스를 입은 갈색 머리의 미녀가 서있었다. 몸매는 무척이나 풍만했지만 허리와 복부가 잘록해 섹시미를 풍겼다. 그러나 얼굴은 요염하지 않고 무척이나 자애로운 인상을 주었는데 연상의 느낌이 직접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오! 왔니? 강 박사. 여기는 내 딸인 마리아라고 하네. 마리아, 이쪽은 바로 그 유명한 강 박사란다.” 헨델 사장은 딸을 강현에게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세상에서 가장 똑똑하신 분이라면서요?” “안녕하세요. 그런 말을 들으니 기분이 묘하군요.” 세상에서 가장 똑똑하다라.. 특정 분야를 짚으면 객관적으로 봐도 그렇지만 자신의 입으로 그렇다고 말하려니 좀 민망했다. “그런데 두 분이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즐겁게 나누고 계셨어요?”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다니? 절대 그렇지 않다. 헨델 사장이 일방적으로 즐거워하는 대화였다. 거기에 강현은 솔직하게 대답 했을 뿐이다. 헨델 사장이 하는 이야기는 흥미로웠지만 강현에게는 웃음이 터질 만큼 재밌지는 않았다. “껄껄. 강 박사의 입담이 아주 재밌더구나.” “그냥 저냥,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했을 뿐입니다.” 겸손하게 반박하는 강현을 마리아는 아주 신기하게 보았다. 자신의 아버지와 이렇게 편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은 매우 손에 꼽았다. 특히 이런 정치적인 사교회장에서 자신의 아버지는 모든 사람들이 우호를 맺고 싶은 이였기에 강현처럼 평이하게 구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제 아버지께서 카길의 사장이라는 건 아세요?”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파셀 의원이 물었던 질문이라 또 입을 열기 귀찮았다. 그건 매우 무례한 일이었지만 강현은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어차피 이 자리 이후에는 볼 일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자신은 연구실로 돌아갈 것이고 이들은 사회의 기득권층으로 삶을 누릴 것이다. 그 관계는 비유하면 지상 동물과 해상 동물과 같았다. 잠시 물가에서 만날 수는 있지만 서로 살아가는 환경이 다른 것이다. 그러나 그런 강현의 내심과는 다르게 마리아는 이것 저것 물으면서 그를 귀찮게 했다. 엄청 돈 많은 젊은 갑부 천재에 대한 호기심이 든 그녀는 강현에게 궁금한 점을 물어보았는데 그녀가 과학기술에 관심이 많은 것이 그의 불행이었다. “석유 제조 기술은 그냥 이대로 개량 안하고 놔둘 거에요?” “반감기 가속 장치의 후속작은 언제 나와요?” “HJ 세포를 이용해 신약 개발을 할 생각은 없으세요?” “각국의 IAPP 방탄복으로 엄청나게 돈을 버셨다고 하는데 그 돈 전부다 연구비에 쓰실건가요?” 여러 질문에 강현은 성실하게 대답했다. 연구실에서 그런 질문을 들었다면 쓸데없는 소리를 한다면서 인상을 찌부렸겠지만 이곳은 자신과 상관없는 사교회장이다. 그리고 강현은 여기에 파셀 의원과의 거래를 성실하게 이행하기 위해서 자기 희생 정신으로 온 것이다. 그 때문에 강현의 내면은 스스로의 감정을 죽이며 도 닦는 상태나 다름 없었기 때문에 내면에 흐르는 감정을 흘러 넘기며 귀찮은 질문에 솔직하게 답했다. 뭐 그래봤자 ‘아니요.’ ‘아직 생각없습니다.’ ‘그럴 리가요.’ 따위 이상으로 대답의 수준이 올라가지는 않았다. 그래서인지 마리아의 궁금증을 채워주기에는 무척이나 모자랐고 질문은 계속되었다. 강현은 계속 대답을 하다가 문득 왜 이 아가씨와 대화를 하게 되었는지 영문을 몰랐다. 원래는 카길의 사장인 헨델과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던가? 강현이 고개를 돌려 헨델을 바라보자 헨델은 즐겁게 미소를 지으면서 눈을 살짝 크게 떴다. ‘응? 왜?’ 헨델의 표정은 딱 그 의미였다. 그는 자신의 딸의 질문 공세에 곤란해하는(사실은 귀찮아 하는) 강현의 모습이 무척이나 재미가 있었다. 그런 곤란한 상황의 강현을 도운 이는 어느새 만날 사람들을 대충 다 만나고 강현과 헨델 사이의 분위기가 어떤지 무척이나 궁금했던 파셀 의원이었다. “하하, 이거 마리아 양 아닌가?” “파셀 의원님 안녕하셨어요?” “그러고보니 선남선녀의 즐거운 대화에 내가 초를 쳤구만.” “그럴리가요.” 강현은 한숨 놓았다는 듯이 파셀 의원의 편을 들었지만 마리아는 대답하지 않고 파셀 의원 쪽을 슬쩍 흘겨보았다. 그녀는 강현이 적잖이 마음에 들었나보다. 마리아의 그런 모습에 파셀 의원은 뭔가 또 자신이 실수했구나라고 생각하고는 헨델 사장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하하, 헨델 사장님. 마침 방금전에 록펠러 사장님을 만났는데 가보시겠습니까?” “물론이죠.” 헨델 사장이 흔쾌히 말했다. 그의 태도에 파셀 의원은 헨델 사장이 강현과 마리아 사이의 썸씽을 기대하는 것이 분명하다고 판단했다. 그건 사실이었다. 남녀간의 일을 할 수 없다지만 강현은 가문으로 끌어들인다면 그로 인해서 발생하는 천문학적인 이익을 자본가로서 외면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강현은 마리아와 단 둘이 있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록팰러 사장님이요? 마침 저도 그분께 볼일이 있었는데 같이 가시죠.” “... 그, 그러세.” 아차! 강현과 록팰러 회장과 안면이 있는 사이였지! 파셀 의원은 다시 한번 예상 밖의 상황에 실수를 하고 말았는데 그것은 설마 젊은 청년이 마리아와 같은 아리따운 여성과 단 둘이 있는 것을 거부할 리 없을 거라는 선입견과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지 못하고 강현과 안면이 있는 록팰러의 이름을 꺼낸 것이다. “자, 자. 갑시다.” 강현은 파셀 의원을 앞장 세우고 그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는데 자신을 보는 시선이 느껴져 시선을 돌렸다. 거기에는 마리아가 샐쭉한 눈매로 강현을 보고 있었다. “왜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강현은 그렇게 그녀와의 인연이 끝난 것 같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마리아 역시 아버지인 헨델 사장의 뒤를 따라 록팰러 회장을 만나러 발걸음을 옮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뒤로는 별일 없었다. 강현은 록팰러 회장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기회를 봐서 빠져나갔고 마리나는 연회장에 남았다. 강현은 그 뒤로 마리아와 만나는 일이 없을 것 같았다. [연회는 즐거우셨습니까?] “네, 예상은?” [귀찮으셨을 것 같습니다.] “그래 맞아.” 강현은 아즈삭의 판단에 긍정하고 샤워실로 들어갔다. 사람을 대하는 것은 피곤한 일이었다. 특히 그런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그것을 인지하면서 다루는 이들의 연회장은 훨씬 더 피곤했다. 평이한 듯 일상적 대화 하나하나에 정략적인 내용들이 들어있었다. 마치 수수께기를 푸는 듯한 대화들이었다. 그런 부류에게 그것은 하나의 놀이에 지나지 않겠지.. 강현은 한 숨 푹 쉬고 일어나서 다시 연구를 시작했다. 요즘 그가 몰두하고 있는 것은 역시나 신 통일장 이론이었다. 최근에 그 이론을 이용해 만든 반감기 가속장치처럼 그 안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숨겨져 있었다. [박사님. 면회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누군데?” [마리아 헨델입니다. 곡물 카르텔 1위인 카길을 경영하는 율리우스 헨델의 첫째 딸로,] “그만 됐어. 알고 있으니까. 저번 연회때 본 안면이 있어. 그런데 무슨 일로 찾아왔는데?” [투자에 관한 상담입니다.] “투자?” 강현은 고개를 갸웃했다. 돈에 관한 일로 그를 찾아오는 사람은 그가 저축하는 은행의 재무설계사 정도에 불과했다. 강현은 살짝 궁금증을 가진채 응접실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박사님. 흰 가운이 잘 어울리시네요.” “감사합니다. 투자에 관한 일로 저를 보러 오셨다면서요?” “어머! 다짜고짜 본론인가요? 연회는 잘 보냈냐는 등 궁금한 건 없어요?” “전혀.” 마리아는 강현의 시크함에 약간 불만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용건은 남녀간의 일이 아니라 투자에 관한 일이니 용건을 꺼냈다. “연회 때 저와 하던 대화 중에 그 동안 벌어들인 돈에 관한 이야기도 있었죠?” “그렇죠.” 강현이 벌어들이는 돈은 가치 천문학적이다. 아즈삭이 정리해서 보고해도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다. “박사님이 묵혀 두는 그 자본은 인류를 위해서 투자할 생각이 없으신가요?” “인류를 위해서요?” “네. 굳이 연구만이 인류를 위해 헌신하는 방법은 아니죠.” 강현은 인류를 위해서 헌신하기 위해 연구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정해 주지는 않았다. “어디다가 투자를 하는 거죠?” “아프리카요. 사막화 저지를 위해 대규모 투자가 필요해요.” 그러면서 마리아는 알렌 세이버리(Allan savory)라는 짐바브웨의 생태학자를 언급했다. 그와 그가 몸 담은 단체는 세계적으로 가속되는 사막화 현상을 막기 위해서 수십 년에 걸쳐 자료를 모으고 조사했다. 사막화를 해결하기 위해서 여러 연구 분야의 권위자들을 만나보면서 해결책을 찾아보았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특히 강수량이 적지 않은 지역의 사막화는 그들로서도 골머리를 앓는 문제였다. 왜 사막화가 일어나는 것인가? 그 이유는 지구 온난화에 있지 않았다. 그것은 생태와 관련이 있었다. 초목은 초식 동물과 함께 진화해 왔다. 또한 초식 동물은 그들을 추적하는 포식자와 진화해 왔다. 초식 동물들은 생존을 위해서 뭉쳐야 했다. 그래야 포식자들로부터 개체가 안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한 편 그들의 먹이를 부족하게 만들었다. 그들에 의해서 짓밟히고 똥오줌에 오염된 풀을 먹을 수가 없으니 이동하게 된다. 이 초식 동물들의 무리가 떠난 지역에 남은 풀들은 그 지역의 땅에 매우 놀라운 효과를 부여한다. 땅, 즉 주로 규소로 이루어진 광물들은 물에 비해서 비열이 낮다. 그것은 낮에는 계란이 익을 정도로 달구어지고 밤에는 시릴 정도로 온도가 내려간다. 사막의 가혹한 밤낮의 온도차는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러나 초식 동물들에 의해 밟혀 누운 풀들은 낮에는 그 뜨거운 햇살로부터 땅의 수분을 보호하고 밤에는 온기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는다. 이는 지면으로부터 약 몇 센티 정도 안되는 부위지만 국소적인 항상성을 유지하게 된다. 이 국소적인 항상성은 수분과 온도를 유지해 그 땅의 미생물을 활발하게 만들어 쓰러진 풀들을 썩히고 퇴비를 만들어 땅을 거름지게 하고 다음 풀들의 라이프 사이클을 용이하게 만들어 더 풍요로운 대지를 약속한다. 그리고 포식자들을 피해 자리를 이동한 초식 동물 무리가 있는 지역에서 다시 이와 같은 라이프 사이클이 반복된다. 알렌 세이버리는 사막화가 가속되는 지역에 이러한 생태계의 순환 과정이 파괴되어 있다는 것을 파악했다. 사냥되어 버린 포식자. 자유롭게 방목되어 어린 순을 맛나게 뜯어먹는 가축들. 밟히지 않아 잘 썩지 않은 풀들은 다음 라이플 사이클에 새롭게 풀들이 자라는 것을 막고 대지는 황폐해진다. 그렇다. 인간이 땅을 사용하는 방식은 생태계의 방식과는 거리가 있었다. 알렌과 그의 동료들은 여기에서 영감을 얻었다. 포식자가 사라지고 초식 동물 무리마저 사냥 된 지금, 땅과 초목, 초식 동물과 포식자로 이어지는 라이프 사이클을 다시 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니 모방이라고 해보자는 것이다. 그리하여 가축은 무리지어 집결하게 되었고 인간은 포식자의 역할이 되었다. 그리고 땅은 구획이 나뉘어져 차례로로 무리지어진 가축들의 방문을 받게 되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황폐화된 땅이 십 년 만에 극적으로 풍요로워졌기 때문이다. 그 뿐만 아니다. 풍요로워진 대지로 인해 가축이 처음 시작했던 때보다 두배는 증가했고 마을 사람들이 먹고도 남을 정도의 고기가 생산되었다. ============================ 작품 후기 ============================ TED에서 Allan savory를 검색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그 사람의 방법이 사막화를 해결하는데 최고의 방법이라고 믿습니다. 103화 “생태 모방이라.. 훌륭하네요.” 사실 그건 그렇게 새로운 발상은 아니었다. 이미 각종 기술에서 생물 모방 기술이 연구되고 응용되고 있었다. 유전자 조작을 한 미생물로 약효 물질을 뽑아내는 것 역시 생물 모방 기술의 한 갈래에 불과했다. 다만 생물 모방이 아니라 생태계를 모방하겠다는 발상의 스케일 자체가 대단했다. 그리고 그 발상을 실행하기 위해서 입증 자료를 모으고 당국과 지역 주민들을 설득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노력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강현은 절대로 못 할 사업인 것이다. “그러니까 제가 도와드릴 것은 사람들을 교육하고 가축을 살 돈이라는 거군요.” 알렌 세이버리의 생태 모방에서 사람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생태계의 포식자로서 가축들의 이동을 결정하고 관리하기 위해 반드시 이 생태계 사이클을 이해해야 했다. 그래서 교육을 받을 필요가 반드시 있었다. 아프리카엔 버려진 땅이 너무 많았고 가축은 돈을 넣어 사면 되지만 그 가축을 관리할 사람이 없었다. “네.” “하지만 아프리카입니다. 치안도 불안하고 전쟁이 끊이지 않죠. 땅이 풍요로워진다고 해도 오히려 그 때문에 표적이 되면 어떻게 할 건가요?” “그래서 일단은 치안이 유지된 국가들에 한정해서 사업을 할 생각이에요.”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리아는 곧 서류를 한 장 내밀었다. 강현은 서류를 훑어보았다. 이상한 내용은 없었고 매년 얼마씩을 기부한다는 내용과 함께 사업의 추이와 자금 사용에 관한 것을 이메일로 전달받는 권리가 있다는 정도만이 기재되어 있었다. 마리아는 강현의 사인을 받은 서류를 소중하게 봉투에 집어넣더니 손을 내밀었다. “박사님, 고마워요. 그리고 이 사업을 확실하게 지지해 주시는 거 맞죠?” “네. 보니까 매우 좋은 사업이더군요. 저의 지지부진한 이산화탄소 해양 고정 장치보다 훨씬 지구 온난화에 대처하기도 좋은 방법이고요.” 미 정부가 기획하고 강현이 만든 해양 고정 장치는 그 성과가 지지부진했다. 아니 이산화 탄소를 고정하고 있다는 증거는 있었지만 그것이 수산물의 개체 증가로 이어진다는 정황이 없었다. 절반의 성공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요? 역시 박사님은 좋은 사람이에요.” 엇! 강현은 마리아의 느닷없는 가벼운 키스에 급히 소매로 입술을 가렸다. “안 묻는 루즈에요. 닦을 필요는 없어요.” 그녀는 곱게 눈매를 휘더니 휙하고 돌아가 버렸다. 폭풍같은 마지막이었다. 강현은 뭐 저런 여자가 있나 생각하면서 연구실로 돌아왔다. 그러나 싱숭생숭한 기분은 오랫동안 지속되엇다. 며칠 후 강현은 아프리카에서 날아온 이메일로 알렌 세이버리의 고마움 가득한 편지를 받고 흐뭇한 기분으로 아즈삭과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번 연구의 핵심은 양자 통신이었다. 양자 세계의 신기한 현상 중 하나인 양자 얽힘을 이용하여 빛의 속도로, 하지만 흔히 빛이 가진 제약없이 정보를 전송하는 기술이었다. 최대한 간단히 설명하면 어떤 하나의 계를 구성하는 두 개의 양자를 특정 방법으로 분리하면 두 양자 간에 얽힘 상태가 생성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스핀 값이 반대인 전자쌍이 분리되어 어떤 오비탈에 들어가게 되면 그들이 가지는 스핀 값은 항상 반대이며 따라서 한 쪽 전자의 스핀값을 확인하면 자동적으로 남은 다른 쪽 전자의 스핀값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또다른 예로는 어떤 결정질 원소에 광자쌍을 주입해 전자를 들뜬 상태로 만들면 이 전자가 다시 안정 상태로 가면서 방출하는 광자들은 전자라는 양자계를 거치며 서로 간섭해 얽힘 상태가 되어 서로가 가진 에너지나 편광 방향 등이 상관관계를 가지게 된다. 이런 양자 얽힘을 이용한 전송 기술의 핵심은 바로 전자의 양자 얽힘 상태를 최대한 오랫동안 유지하는 하는 것이지만(전자기기에 이용하게 위해서) 지금까지 뾰족한 방법은 나오지 않았다. 기껏해야 절대 온도 수준까지 냉각한 다이아몬드를 이용해 전자를 가두는 실험이 있을 뿐이지만 이것 역시 전자를 그리 오래 가두지는 못했다. 양자 세계에서 언제나 전자는 어딘가로 가버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양자 얽힘. 신기한 현상이다. 전자기파는 대역폭에 한계가 있어 공공재일 수 밖에 없으나 양자 통신 기술이 실현되면 사실상 그 대역폭은 무한대가 된다. 통신 회사가 경매를 통해 주파수를 대여할 필요 없이 스스로 양자 얽힘 상태의 매개체를 이용해 통신 서비스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많은 뉴스 기사에서 양자 전송 기술을 빛보다 빠른 전송기술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국소성의 원리(어떤 물리적인 현상도 공간을 매개해서 전파된다는 원리)를 해치기 때문에 아무리 양자 얽힘이라도 정보의 전송 속도는 빛보다 빠를 수는 없다는 것이(비록 국소성의 원리에 위반되는 현상이라도) 현대 양자 물리학의 정설이다. 또한 정말로 양자 전송이 빛보다 빠르게 정보를 전달한다면 그것은 정보를 과거로 보내는 것이나 다름없다. 결과적으로 타임 패러독스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그러나 만일 빛보다 빠른 입자를 발견한다면 이 이론은 다시 수정될 가능성도 있었다. 아무튼 강현은 양자 얽힘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어째서 양자 얽힘은 일어나는 것인가? 왜? 얽힘 상태에 있는 빛의 편광 방향은 서로 상관관계에 있어야 하는 것인가? 왜 얽힌 상태에 있는 전자쌍의 스핀은 서로 반대여야 하는가? 양자 얽힘을 매개하는 것은 무엇인가? 강현의 물음은 아인슈타인이 물었던 질문과 상당히 닮아있었다. 양자역학의 이러한 모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숨겨진 변수 이론이 제창되었으나 다시 벨이라는 과학자를 통해 이 숨겨진 변수 이론을 만족시키는 양자 이론은 없다는 것을 벨의 부등식으로 증명하고 양자 세계의 비국소성을 이론적으로 증명하는 실험을 설계했으며 과학자들에 의해서 무수히 반복 증명되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도 양자 얽힘이 왜 일어나는 지에 대해서 아직 양자 역학은 제대로 된 질문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양자 세계에서 기존의 힘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강한 상관 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했을 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강현의 의구심은 더욱 짙어졌다. ‘매개없는 상호작용은 가능한가?’ 양자얽힘 현상은 마치 어떤 연락이 불가능한 두 사람이 한 사람이 왼손을 들면 다른 한 사람이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오른손을 드는 것과 마찬가지의 형상이다. 이는 국소성의 원리를 어기는 것이지만 양자세계에서는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러나 관념적으로 그것은 가능한가? 아니 수학적으로 가능한가 이 말이다. 벨의 부등식을 통해 양자 세계의 국소성이 유지되는지 검증하는 실험은 결국 벨의 부등식의 승리고 끝났지만 두 입자간을 매개하는 무언가는 분명히 존재했다. 서로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상호작용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무언가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은 분명하게 생각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한다면 숨은 변수 이론이 옳다는 것으로서 지금까지의 실험 결과를 부정하는 것이 된다. 하지만 강현이 생각하기에 얽힘 상태의 양자간에는 무언인가가 있었고 이것이 무엇인지 해석하는 것이 양자 통신 기술의 열쇠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강현은 양자세계의 특성인 비국지성에 대한 의문을 품었다. 공간의 제약없이 상호작용할 수 있는 방법이라? 그렇다면 공간은 무엇인가? 강현의 다중차원중첩설에 의하면 이 통상적인 공간은 각각의 형태를 에너지의 매개가 되는 공간이 겹쳐져 있는 곳이었다. 그렇다면 설명하지도 입증하지도 못한 공간으로 에너지를 전달하는 매개 입자가 있는 것이 아닐까? 강현은 고개를 저었다. 벨의 부등식으로 인해서 숨은 변수 이론은 폐기 되었다. 양자 얽힘을 위해 상호작용을 하는 어떤 입자가 존재한다면 반드시 에너지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다. “안되나?” 그는 생각을 거듭하다가 숨은 변수 이론이니 벨의 부등식이니하는 것들을 머리에서 지웠다. 선입견은 때론 신선한 발상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 나와있는 무수히 많은 신비로운 현상들 중에서 단서가 될 만한 것을 찾기 시작했다. 그가 찾아낸 것은 바로 천문 물리학이었다. 우주의 비밀에 다가간다는 점에서 극소의 세계를 탐구하는 양자 역학이나 극대의 세계를 탐구하는 천문 물리학이나 그 궤를 같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단연코 현대 천문 물리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블랙홀과 암흑 물질이다. 블랙홀은 단순히 엄청난 질량이 뭉쳐진 것이 아니라 시간이 멈춘, 시공간의 구멍이었다. 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블랙홀에서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중력이 너무 강해 시공간을 일그러뜨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신비한 것이 바로 우주의 70%나 된다는 암흑 물질이었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에 의하면 우주는 팽창하거나 수축하고 많은 천문학자들도 이런 개념을 지지했다. 그리하여 언젠가는 중력에 의해 팽창이 멈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 조사에 의하면 우주의 팽창 속도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심지어 일정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점점 가속하고 있었다. 우주에 있는 어떤 것이 은하계들을 서로 멀리 밀어내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 에너지양을 생각하면 우주가 가진 에너지의 약 70%를 가지고 있는 어떤 것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재 인류는 이에 대해서 어떤 이론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고, 그저 이것에 암흑 물질, 혹은 암흑 에너지라는 명칭을 붙였을 뿐이다. 다만 한 가지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이 암흑 에너지가 반중력의 힘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한다는 것일 뿐이다. 그렇지 않으면 중력을 거슬러 은하계가 떨어지는 속도를 가속 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둘 중에 강현은 블랙홀에 관심을 가졌다. 정확히는 블랙홀의 특이한 점인 사건의 지평선. 이 사건의 지평선 이내로 들어가면 블랙홀의 중력장에서 탈출하기 위한 속도가 빛의 속도를 뛰어넘기 때문에 빛도 탈출하지 못한다. 하지만 만일 양자 얽힘에 있는 입자 중 하나가 블랙홀에 떨어진다고 하자. 이때 양자 얽힘을 통한 정보 전송은 일어날 것인가? 만일 그것이 가능하다면 사건의 지평선 너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 정말로 비국소성이 양자 세계의 특성이라면 말이다. 그러나 그것을 검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해서 강현은 지금까지 나온 블랙홀의 여러 수학적 모델을 이용해서 신 통일장 이론에 하나 하나 적용하기 시작했다. 그 작업은 고난하고 머리가 아픈 작업이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양자 얽힘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면 지금 있는 기술로 양자 얽힘을 응용하기는 어렵다. 기초 연구의 깊이가 깊어져야 다양한 공학적 시도가 가능한 것이고 지금까지 밝혀진 양자의 세계의 원리만으로는 다양한 접목이 어려운 것이다. 강현은 차근 차근 블랙흘의 수학적 모델을 신 통일장 이론으로 풀어해쳐 기술하는 작업을 진행 하던 중에 자신이 만든 공식 중에서 에너지를 매개변수로 가지지 않는 변수를 발견했다. 이 변수가 속해있는 집합은 그것은 어떤 상수의 배수만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냥 일반적인 복소수를 도입하게 되면 그 변수를 응용하는데 모순이 발생하는 아주 특이한 변수였다. “이것이 양자 얽힘의 매개변수일까?” ============================ 작품 후기 ============================ 후기: 몽골의 사막화에 대해서는 온난화가 주 원인인지 환경 파괴가 주 원인인지 검증하는 연구 내용은 없지만 몽골의 사막화가 가속된 것은 유목 생활에서 정착 생활로 생활 양식이 바뀌고 산업화를 시작하고 난 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그런지는 알 수 없죠. 온난화로 인해 강수량이 줄어들고 호수나 강이 매마르는 지역은 분명히 있으니까요. 그러나 생태계가 지구 환경에 거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은 확실한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대기의 20%가량 되는 산소는 모두 광합성 활동에 기반해서 만들어 졌기 때문입니다. 104화 양자 세계의 가장 특이한 점은 바로 불연속성이다. 심지어 에너지 역시 불연속적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흑체 복사(양자 역학의 시발점) 연구를 통해 에너지가 가질 수 있는 최소단위를 발견하고 에너지 준위간의 차이는 그 최소단위의 배수라는 사실도 발견하고 그것을 기술한, 가장 중요하면서 유명한 물리 상수인 플랑크 상수를 물리학계에 등장시켰다. 그리고 이 플랑크 상수는 고전물리학의 세계와 양자역학의 세계를 연결시키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플랑크 상수처럼 강현이 발견한 변수도 신 통일장 이론과 기존의 양자역학을 연결 시키는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더욱 특이한 점은 에너지의 크기를 기술하지 않는 변수라는 점이었다. 그것은 에너지가 같지만 양자 상태가 다른 입자들을 기술할 수 있는 열쇠가 될 수 있었다. 초시공간의 에너지가 아니라 상태만을 규정하는 변수의 발견은 강현을 고무시켰다. 그리고 비단 그런 변수가 이것 뿐만이 아니라는 직감도 있었다. 양자역학의 상호작용을 설명하는 매개입자들의 종류는 많았고 그들을 모두 통합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변수가 하나 더 있어야 했다. 그는 한 달 가까이 수식들을 정리하면서 수학적으로 한 가지 결론을 도출해 내었다. 그것은 사건의 지평선을 넘어서는 양자간의 비국소성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시간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시간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많은 고전 물리학자들을 골머리 앓게 하는 것이었다. 특히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서 시간마저 상대적이라는 사실은 절대시간의 개념마저 붕괴시키며 많은 과학자들을 맨붕의 상태에 이르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시간마저 상대적이라면 도대체 시간이란 것의 근본은 어디에 있고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양자 역학에서는 1960년대에 이미 시간이 양자 얽힘에서 온다는 실마리를 잡았고 1983년 실험으로 이를 검증했다. 간단히 설명하면 관측자가 계 안에 있는 경우와 관측자가 계 밖에 있는 경우를 비교하는 것이다. 양자 역학에서 관측자에 의해서 상태가 결정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고 이를 통해 양자가 있는 계 안에서 관측자가 관측하는 경우에는 확실하게 결과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계 밖에 있는 관측자가 관측하는 경우 그 계안에서 양자 얽힘으로 인한 변화는 확인할 수 없다. 시간의 가장 큰 속성이 뭔가? 바로 변화이다. 변화가 없는 계는 곧 멈춘 상태, 그러니까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는 뜻이다. 즉, 그 계에 속하지 않은 관측은 양자에 변화를 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과학자들은 시간은 그저 양자 얽힘의 부수적인 효과에 불과하며 시간마저 어쩌면 신기루에 불과할 수 있다고 말한다. 뜨거운 커피가 식는다는 현상을 양자 역학적으로 설명하자면 시간에 따라 에너지가 평형 상태로 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주위의 공기 입자와 커피 입자간의 양자 얽힘을 통한 평형상태로 가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듯이 말이다. 그럼 다시 블랙홀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블랙홀에서의 시간은 멈춰있다. 이는 상대성 이론에 의해서 증명되었다. 그런데 시간은 양자 엃힘에서 나왔다고 하니 블랙홀 안의 양자와 밖의 양자가 얽힐 수가 있을까? 없다. 변화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양자 얽힘의 비국소성에 위반이 된다. 공간적인 장애 없이 상호작용이 일어난다고 하지 않았던가? 강현은 이 모순을 설명할 수 있는 해답을 발견한다면 신 통일장 이론을 이해하는데 큰 장벽을 하나 넘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흐아암!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해볼까?” 강현은 사고가 더 이상 진행하지 않는 것을 느끼며 기지개를 켰다. 게슈탈트 붕괴라고, 어느 한 가지 개념을 너무 생각하다보면 그에 관련된 뇌세포에 피로가 와서 그 개념을 떠올리지 못하는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그저 뇌를 쉬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마침 시계를 보니 벌써 늦은 밤이라 잠을 자는 것도 좋은 것 같았다. 하품이 나오는 것이 어서 침대안으로 기어들어가고 싶었다. 그러나 아즈삭의 전갈이 강현을 조금 귀찮게 했다. [박사님. 전화가 왔었습니다.] “응? 누구에게?” [카길의 경영자인 헨델 사장입니다. 꼭 좀 연락을 달라고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정말로 급할 것 같지 않은 전갈은 강현의 집중이 끝나고 나서 전달하는 아즈삭이다. 그 본연의 존재이유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이다. “왜지? 이유는?” [그의 딸인 마리아와 관련된 일이라고 합니다.] “쩝..” 혹시라도 중매라도 서려는 건가? 강현은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돈과 영향력이 있는 강현을 사위, 혹은 친척으로 두고 싶어 하는 이들은 많았고 그에 비례해서 중매도 많이 들어왔다. 이번에도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저번 사교파티에서 만난 마리아를 넌지시 언급하며 딸아이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볼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그 예상은 틀렸다. “투자를 철회해 달라니요?” 헨델 사장이 꺼낸 주제는 강현이 알렌 세이버리에게한 막대한 투자였다. [그런 많은 돈을 그런 증명되지도 않은 일에 사용하겠다니 보는 입장에서 안타까워서 그렇네.] “그건 알고 있어요.” 알렌 세이버리의 주장과 연구 결과는 많은 과학자들에게 비판을 받았다. 빈약한 증빙, 근거없는 예측이라고 말이다. 특히 현재 사막화 된 땅의 절반 이상을 녹지로 만든다면 이산화탄소 문제를 대부분 해결할 수 있다고 하는 그의 말은 수치적으로 말이 안된다면서 비판을 받았다. 기존의 성과 역시 정말로 생태 모방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인지 증명할 수 없다고 비판 받았다. [그런데 왜 굳이 거기에 투자하는 건가?] “정말로 궁금해서요.” [무엇이?] “생태계 모방이라는 방법이 어떤 결과를 일으킬 지가 말이에요.” […..] 과연 학자다운 호기심이었다. 하긴 알렌 세이버리의 계획대로 된다면 인류는 지금까지 없었던 광역 생태학 실험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강현은 그에 일조한 사람이 될 것이다. 거기다가 어차피 쌓아두고 쓰지도 않는 돈이 아닌가? 강현의 대답에 전화기 너머로 헨델의 한숨소리가 들렸다. 뭔가를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등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곧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건 과학적 여부를 떠나 매우 중요한 문제네. 나는, 아니 우리는 알렌 세이버리의 계획을 심각하게 경계하고 있어.] “우리란 곡물 카르텔을 말하는 것이죠?” [그렇네.] “그거랑 이거랑 무슨 관련이 있다는 건가요?” [그건 말일세..] 헨델은 설명을 시작했다. 세계 곡물 생산량 중에 약 5%가량이 사료용이다. 겨우 5%라고 하지만 엄청난 양이다. 양만 따져도 약 5억 6천만 톤이다. 그로 인해서 형성되는 시장이 얼마나 클까? 또 그 사료를 이용하는 공장형 축산업의 규모는? 그래서 가축을 이용한 알렌 세이버리의 방법은 매우 주목을 받고 있었다. 비록 옥수수 같은 곡물 사료의 섭취가 없어져 체중이 줄어드는 부작용이 있지만 넓은 아프리카 땅에서 대규모로 그와 같은 일을 벌이게 된다면 엄청난 고기가 생산될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은 기존 공장형 축산업의 도태를 반드시 불러올 것이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웰빙시대, 좀 더 안전한 먹거리를 찾는 소비자들의 선택은 뻔하다. 똥 오줌으로 범벅이 되고 엄청난 가축밀도로 인해 극한의 스트레스를 받으며 키워진 고기를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사람의 손을 탔다고 해도 자연에서 난 것을 먹고 큰 고기를 선택할 것인가? 광우병, 비위생적인 사육환경 등을 생각하면 되도록이면 후자의 것을 선택하지 않을까? 여러가지 요소를 생각할 때 알렌 세이버리가 주장하는 방법으로 기워진 가축이 시장에 나온다면 기존 축산업계는 붕괴할 가능성 마저 있었다. 그것은 매년 5억톤이 넘는 곡물을 사주는 고객을 잃어버리는 것이고(알렌 세이버리의 순환 방목 시스템은 곡물 소비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건 곡물 카르텔에 엄청난 타격이었다. 즉,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순환 방목 시스템으로 녹지가 늘어나 지구 온난화를 해결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그로 인해서 파생될 시장 혼란인 것이다. “흐음.. 그렇군요.” 헨델이 말하는 뒷배경을 들은 강현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럼 아예 같이 아프리카에 투자를 하시는게 어떤가요?” 저번에 연회장에서 이야기 했던 것처럼 아프리카는 새로운 기회의 땅이었다. 그러나 헨델은 거절했다. [곤란하네.] “왜죠?” [그건.. 말하기 어려운 일일세..] 강현은 뭘까 하다가 그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리고 곡물 시장을 쥐고 있는 카르텔 역시 유대인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유대인들이 아프리카와 사이가 안 좋은가보죠?” [후우.. 정말 자네는..] 헨델은 고개를 흔들었다. 정말로 직설적인 강 박사였다. [그렇다네.] 아프리카 대부분의 국가들은 식민지였었다. 그리고 식민지를 벗어나더라도 경제 발전을 위해서 각종 이권을 선진국, 그러니까 이전에 자신들을 착취했던 나라에 헐값으로 매각할 수 밖에 없었고 각종 차관이나 대출 등 빚에 얽매여 있었다. 그리고 그런 자본 세력에 유대인들이 상당수 관여 되어 있었으며 인종적인 차이와 그로 인한 거부, 증오로 인해서 유대인 자본이 자리를 잡기 어려운 땅이 또한 아프리카였다. “아프리카에 진출하기 어려운 조건인데다가 아직 중동의 갈등도 마무리 되지 않았구요. 그쵸?” [허헛! 진짜 자네는.] 헨델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천재의 식견은 남달랐다. 인종과 역사적 걸림돌을 뛰어넘어 유대인이 아프리카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식량뿐만 아니라 기술, 자본, 에너지 등 여러 분야의 유대인 네트워크의 역량이 필요했다. 그래야 순환 방목 시스템을 통한 축산업은 지하자원이든 뭐든 관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중심으로한 중동의 갈등과 피, 테러들은 아프리카에 섣불리 손을 댈 수 없게 만들었다. 수 많은 전쟁사를 보면 아무리 강한 군대라도 전선을 둘로 분리하여 패배하는 예가 너무 많다. 마찬가지로 유대인들은 중동이란 전선과 아프리카란 전선을 동시에 유지하는 것은 실패로 가는 문을 여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들은 아프리카의 여러 문제를 방관하기로 했다. 적어도 중동의 일이 마무리 될 때까지 아프리카가 자립을 하지 않았으면 했다. “그렇게까지 꼭 패권을 쥐고 싶습니까?” [자네는 모르네. 소수인종의 비애라는 것을.. 나라 없는 설움이 어떤지..] 수 천년간 나라 없이 떠돌았다. 그들이 기댈 수 있는 것은 인종을 초월한 이해관계, 즉 돈이었다. 그러나 그런 돈마저 증오로 가득 찬 대중과 미친 권력 앞에서는 아무런 힘도 쓸 수 없었다. 나치의 홀로코스트, 유대인 학살. 그들은 수천 년 간 경험했던 멸시보다 더한 아픔을 겪었다. 비단 학살 당한 것은 유대인 뿐만이 아니었다. 나라 없이 떠돌아 다니던 집시들 역시 유대인들처럼 학살 당했다. 그들에게 나라가 있었다면, 소수 인종이라며 감히 증오의 화살을 돌릴 깜냥이 생기지 않을 정도로 영향력을 가질 수 있었다면 과연 소수 인종에 대한 국가적 범죄가 일어날 수 있었을까? “뭐 이런 저런 사정은 알겠지만 말입니다.. 왜 그 때문에 저의 지적 욕구를 해소하는 일을 방해 받아야 하는 건가요?” 105화 [.. 지적 욕구라... 자네.. 그런 사람이었던가?] 전혀 의외의 말에 헨델 사장은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경영자의 입장인 그가 강현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고 지난 연회에서의 강현에게서 옹고집적인 학자의 모습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자연히 그가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물론 그동안 세계에 보여주었던 온건한 모습도 그런 오판에 일조를 했다. 강현은 그런 그의 오해를 친절하게 풀어주었다. “각자에겐 각자의 사정이 있고 개인의 가치관은 물론 삶에 있어서 우선 순위라는 것도 다 다릅니다. 그리고 결코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이라는 것도 있죠. 제가 사장님의 사정에 대규모 생태학 실험이라는 흥분되는 이벤트를 포기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유대인이 건설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의 사정을 생각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죠.” [정말로 이러긴가?] “저는 기본적으로 온건한 사람입니다. 제 인생의 목적을 방해하려고 하지만 않는다면 양보도 어느 정도 할 수 있죠. 하지만 사장님의 제안은 양보하기에는 이미 이쪽이 너무 몰려버린 것 같군요. 저는 순환 방목 시스템의 대규모 적용을 통한 환경 변화를 꼭 한 번 보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헨델 사장님이 양보를 하시죠.” [어떻게?] “그야 사장님이 생각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그쪽의 내밀한 사정을 모르니까요. 밤이 늦었습니다. 그럼 결정이 되면 연락주시죠.” 강현은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바로 아즈삭에게 지시를 내렸다. “지금 바로 각종 수단을 이용해서 카길을 비롯한 곡물 카르텔과 유대인 네트워크를 감시해.” [네, 박사님.] 강현은 샤워실로 가면서 혀를 찼다. 위험하면서 귀찮은 것들과 갈등을 빚고 말았다. 하지만 호기심을 충족할 기회를 버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헨델 사장을 비롯한 그들에 대한 대응은 그들이 어떻게 나오는지 보고 결정해야 했다. = = = = = 그러나 며칠 동안 아즈삭은 별로 아무런 동향을 파악하지 못했다. 아즈삭이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은 헨델 사장이 가만히 있다는 것. 강현은 왜 가만히 있는지 궁금했다. 너무 궁금해서 참지 못했다. 그래서 결국 먼저 연락을 하고 말았다. [일단은 그냥 지켜보기로 했네.] “그때는 금방 사업이 망할 것처럼 구시더니 웬일이에요?” [순환 방목 사업이 정말로 성공할지 미지수이기 때문이네.] “하지만 경영하는 입장에서 리스크 관리는 해야 하지 않습니까?” 강현이 하는 말은 어떻게든 훼방을 놓아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의 완곡형이었다. 그 말을 들은 헨델 사장이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는 허탈하게 웃으며 답했다. 그 웃음의 이면에는 강현이 이미 대비에 대한 마음자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생긴 두려움을 감추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강현은 필요하다면 유대인들과 싸울 생각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허허. 당연히 리스크 관리를 하고 있지.] “잘 이해가 안 가는데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리스크 관리를 하고 있다니. 강현은 이해할 수 없었다. [자네라는 리스크를 관리하고 있지 않은가?] “저요?” [자네는 스스로를 너무 과소평가하는 군. 그러니 자네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도 못할 테지. 자네의 그 석유 제조 라이센스만 고려해도 자네의 이번 아프리카 투자를 방해 했을 때 더 큰 불익이 생길 것이 확실한데 굳이 음모를 꾸며 자네와 척을 질 이유가 없지.] “그런가요?” [그렇다네. 우리는 적이 많지. 곡물 시장의 손해라고 해봤자 겨우 5%정도야. 에너지 시장의 패권을 잃어버리는 손해보다야 낫지. 막말로 자네가 빡쳐서 석유 라이센스 이권을 중동 쪽에 몰아주기만 해도 우리는 석유 시장의 패권을 상실할 수 있어.] “그렇군요.” 강현을 끄덕였다. 하지만 살짝 의구심이 드는 것도 당연했다. 유대인 네트워크의 힘이 겨우 그 정도에 불과했던가? 그러나 계속되는 이야기에 그에 관한 질문은 뒤로 미루기로 했다. [그런 의미에서 자네가 열었던 석유 제조 라이센스 국제 컨소시엄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푼 거나 다름없었지. 그때 록팰러 가에서 얼마나 전전긍긍했는지 아는가?] “유대인 네트워크로 어떻게든 할 수 있었지 않나요?” [우리는 힘이 있네. 돈도 많지. 오히려 그로 인해서 우리를 증오하고 싫어하고, 혹은 배척하고 싶은 이들은 무수히 많다네. 자네가 석유 제조 라이센스를 개발했을 당시만 해도 거의 모든 국가 정부에서 석유 로비가 끊어질 뻔했네. 우리의 입김에서 자유롭게 되거나 적어도 영향을 끼칠 수 없을 정도로 줄여보겠다는 생각이었다네. 국가의 기반인 식량과 에너지라는 중요한 축 중에 하나를 무력화 시킬 수 있으니까. 그러나 다행이 자네가 기존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을 선택해서 큰 타격이 없었네. 그 일련의 사태로 우리가 얼마나 절실하게 자네의 영향력을 실감했는지 아는가? 자네의 힘을 가장 잘 아는 이는 우리하고 할 수 있지.] “쩝. 그랬나요?” 당시 강현은 배터리 기술 좀 풀었다고 징징대는 석유 재벌들에게 으름장을 놓기 위해 만든 것 뿐이다. 그런데 설마 그런 뒷일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었다니.. 하긴 그때는 세계 정세를 감시해주는 아즈삭이 없었으니 모를 만도 했다. [그래서 얼마 전 만난 친구들을 통해서 결정을 냈지. 아프리카에 대해서는 당분간 크게 손을 쓰지 말자고. 일단 중동 문제부터 확실하게 해결해야겠다고 말일세.] “그쪽은 종교가 얽혀 있어서 쉽게 해결이 안 될 텐데요?” [그래도 별 수 없지. 일단 이스라엘 주변만 어떻게든 빨리 안정화시키고 아프리카의 변화에 대비하도록 내부적으로 동의를 했네.] 문제는 시간이다. 정말로 알렌 세이버리의 순환 목축이 아프리카의 식량 문제를 해결하고 대지를 풍요롭게 만든다면 자급자족을 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유대계 자본이 개입할 틈이 너무 좁아지게 된다. 그러니까 적어도 변화가 가속되기 전에 개입할 수 있도록 중동의 정치 군사 상황을 안정화 시킬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헨델은 그 상황을 매우 낙관적으로 보았다. 비록 이스라엘의 옛 영토를 완전히 수복하지 못하더라도 얼마든지 기회는 있었다. 그러나 아프리카는 한 번 놓쳐버리면 영원히 놓쳐버릴 수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 정부를 압박해서라도 팔레스타인과 평화 협정을 맺어야 했다. 많은 희생을 낸 팔레스타인 저항 단체들이 순순히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일 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격언처럼 이슬람이 전도를 할 때 한 손에는 칼을, 다른 한 손에는 코란을 들듯이, 이스라엘은 한 쪽에서는 모빌 아머 부대로 압박하고 다른 한 쪽에서는 평화 협정 문서를 내미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성과는 확실할 것으로 생각된다. 일단 모빌 아머 부대는 강현의 K 시리즈와 전술 타입 모빌 아머의 도입으로(확실히 돈 잡아 먹는 괴물이었지만 이스라엘은 돈이 많다.) 강력하게 저들을 압박할 수 있었다. 자살 폭탄 테러로도 적과 함께 죽을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면 저들의 기세가 꺾일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럼, 저는 이제 편하게 연구에 집중하면 되나요?” [허허. 물론일세. 거기에 순환 방목에 대한 투자건에도 어떤 방해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지.] “알겠습니다. 괜찮네요.” 강현은 의외로 일이 싱겁게 끝나서 김이 빠졌다. 그러나 김이 빠진 것은 빠진 것이고 헨델의 말을 믿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그래서 신뢰를 위해 아즈삭이 지금까지 그들의 네트워크를 감시했던 것을 잠시 더 지속하기로 했다. [그런데 내 딸은 어떻던가?] “....” 강현은 입을 다물었다. 중요한 문제가 마무리 되자 나오는 헨델 사장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역시 딸가진 재력가나 경영자의 생각은 대동소이 하나보다. 거의 대부분 이런 말을 하는 이들은 한 번 찔러나 보자라는 심정으로 툭 던지는 말이지만 어떻게 기분 나쁘지 않게 거절을 할까 고민하며 답해주는(온건하기 때문에) 강현에게는 귀찮기 짝이 없는 질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말을 돌렸다. “그런데 왜 마리아 씨가 아버지의 뜻을 어기면서 저에게 순환 방목 시스템 도입을 위한 투자를 받은 건가요?” [….] 순간 전화기 너머로 말이 없었다. 그저 간간히 한 숨 소리만 나왔다. [그 아이는 너무 착해. 그게 문제야.] 헨델 사장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너무 착해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서 벌어지는 모순적인 일들 때문에 사춘기 때 너무 힘들어 했다고 한다. 부녀지간이 끊길 정도로 말이다. 마리아는 스스로가 유대인이고 이스라엘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과 팔레스타인에 저지르는 이스라엘 군의 만행에 대한 죄책감 사이에서 결국 죄책감을 선택하고 죄를 씻기 위해서 세상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비록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러나 유대인으로서 교육을 받았던 그녀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분쟁에(엄밀히 따지는 분쟁은 아니지만) 끼어들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녀가 눈을 돌린 것이 바로 아프리카였다. [하아.. 그때는 회사 이미지에도 좋다고 생각해서 허락해 버렸지. 거기가 세상을 좀 배우고 경영자로 본격적인 수업을 시작하려고 했는데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네.] 아프리카의 비참함을 혁파하기 위해서 마리아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지원을 받고 각종 활동과 단체에 참여하는 등 젊음을 ‘허비’하고 있었다. 그건 헨델의 눈에는 그렇게 비쳤다. 그래서 둘은 사춘기 이후로 처음 다시 말다툼을 하고 말았다. 딸은 아버지를 세상을 좋게 만들 수 있는 힘이 있으면서도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다고 비난했고 아버지는 딸에게 세상은 그렇게 이상론적으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세상은 이상만 가지고는 살 수 없어.] “하지만 누구나 꿈을 꾸고 살죠. 단지 그 꿈이 서로가 다를 뿐이죠.” [자네를 이해하기는 정말 어렵군. 행동은 실리주의자면서 이상론자를 옹호하는 이유는 뭔가?] “실리주의자라고 해도 이상론자를 싫어하라는 법은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누구나 한 번쯤을 이상적인 세계를 꿈꾸는 이상론자였지 않습니까? 헨델 사장님도 젊었을 적에 그래본 적 없나요?” 비단 인간 뿐 만이 아니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갈망은 모든 포유 동물의 발달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새로운 것을 알고, 탐구하고, 신비로움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는 단계는 주로 성장기에 나타나는데 이는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세계에 적응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환경은 언제나 변하기 때문에 과거의 환경에 익숙한 기성세대의 방식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을지 없을지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미 안정적인 삶의 방식을 체득한 기성세대에게 모험심을 부여해 위험을 감수하게 만들 수는 없었다. 그것은 자원의 낭비였고 종의 멸종을 담보하는 위험한 일이기에, 자연은 덜 자란 개체를 이용해 위험을 시험하도록 한 것이 아닐까? 그것이 자원소비량에 비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개체를 확보하는 효율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환경 그 자체를 변화시키는 인간에게는 좀 더 한층 상위의 현상으로 나타난다. 바로 야망이다. 그것이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든, 아니면 개인적인 성취를 이루는 것이든. 정치적으로 분류를 하자면 흔히 진보나 보수라고 말을 하는데 전자는 주로 젊은 세대들로 새로운 변화를 원하고 후자는 주로 보수층으로 안정적인 삶의 기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끝까지 진보를 고수하는 이들도 있고 일찍부터 보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사람은 대체로 젊을 적에는 진보고 나이가 들어서는 보수로 노선을 갈아탄다. 통계적으로 그렇다. 106화 <11-일상> 물론 민주주의가 진행되어 감에 따라 다원주의가 일반화되고 또한 자본주의의 대립격이었던 공산주의의 붕괴로 인해 진보 보수의 경계가 상당 부분 옅어졌다. 그러나 모험을 추구하는 것이 젊음의 특징 중 하나라는 사실은 달리 이견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누구나 젊음을 거치기 때문에 젊었을 적의 꿈과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것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세파에 깎이거나 변형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랬던 추억은 누구에게 있지 않은가? 강현은 바로 그것을 지적한 것이다. 헨델 사장에게 지금에 맞는 삶의 목적이 있듯이, 마리아에게도 삶의 목적이 생겼음을 인정하라는 우회적인 표현이었던 것이다. [… 끊겠네. 더 이상 딸아이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이 좋겠네.] 상상외로 딸아이와의 갈등이 심한 모양이다. 헨델 사장은 대화를 종료하고 싶어했고 강현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귀찮게 변명할 필요없이 중매를 거절할 좋은 문구를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다. 일단 걱정거리가 사라졌다고 생각한 그는 다시 블랙홀을 모델화한 수식들과 신 통일장 이론의 수식들과 씨름을 벌였다. = = = = =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에 평화협정을 제의!]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평화협정! 중동 평화의 시발점이 되나?] 약 두 달 전 헨델 사장이 말했던 말처럼 중동의 혼란을 가라앉히는 일들이 진행되었다. 세간에서는 드디어 이스라엘이 정신을 차린 건가 싶었지만 강현이 아는 것처럼 그 이면의 배경에 대해서는 잘 모를 것이다. 의구심을 갖던 팔레스타인들은 상상 외로 공정하면서 온건한 평화협정 문구에 환호했다. 평화협정은 이스라엘의 농간, 혹은 화전양면전술의 일환이라며 강하게 비판하는 강경파도 있었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힘을 얻지 못했다. 이미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끝없는 죽음과 희생에 지쳐버렸던 것이다. 그러는 한 편 아프리카 강현의 막대한 자금을 지원받은 알렌과 그의 동료들은 인원을 확충하고 인원 교육에 힘쓰고 있었다. 순환 방목을 제대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가축들을 다루는 이들이 확실하게 그 이치를 이해하고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가축이야 얼마든지 살 수 있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지 않은가? 일단 순환 방목을 이용한 목축업이 짐바브웨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규모가 워낙 크기 때문에 일부에서 먼저 시작을 해야 했다. 일단 시작을 하니 다른 많은 아프리카 나라에서도 관심을 가져서 사람들을 보내 교육을 받기 시작했고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었다. 그 활발한 운동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지만 강현의 이름이 거론되지는 않았다. 계약서에 ‘익명’으로 지원을 한다는 부분이 명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만일 그의 이름이 거론되었다면 분명히 언론에게 귀찮게 했을 것이 분명했기에 그로서는 무척이나 반가운 조항이었다. 그러나 그를 당황하게 만든 일은 얼마 되지 않아서 일어났다. “그러니까 HA 시리즈를 만들 수 있게 허락을 해달라고요?” “네. 거기다가 실리콘 피부를 입힐 생각입니다.” 일본에서 온 하즈모토라는 개발자가 찾아와 하는 말은 HA 시리즈를 이용해 기존의 실리콘 인형보다 더 완성도 높은 인형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내비쳤다. 그러면서 곁들여 은근슬쩍 내민 것이 바로 여성의 음부를 완벽히 모방한 자위기구였다. 속칭 오나홀. 강현이 개발한 인공 근육을 이용해 만든 것으로, 여성기의 해부학적인 형상을 완벽히 모방하기 위해서 현존하는 초인기 AV 여배우의 그곳을 CT단층 촬영을 통해 3D 이미지화를 하여 그를 토대로 성공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배우 말고 마찬가지로 다른 몇 명의 배우의 CT단층 이미지를 이용해 시제품을 만들었으니 한번 사용해 보라고 뻔뻔스럽게 내밀기까지 해서 강현을 당황시켜버렸다. “그, 그러니까 어디에서 나오셨다고요?” “헵스에서 나왔습니다.” “자, 잠시만요. 여기서 기다려 주세요.” 강현은 일단 헵스가 뭐하는 회사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연구실 안으로 들어갔다. [박사님. 무척이나 당황하셨습니다.] “당황하는게 당연하지! 면전에서 영업을 한답시고 자위기구를 내밀다니! 당황하지 않을 도리가 있냐? 아무튼 햅스인지 핵스인지 무슨 회사인지 확인해봐.” [네, 박사님.] 아즈삭은 곧 출력결과를 보여주었다. 헵스는 각종 자위기구를 만드는 일본 회사 중 하나였는데 가장 유명한 것이 펠라○오를 구현한 자위기구였다. “이런 곳이었구나.”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곳에서 개발부장으로 일하고 있으니 자위기구를 내미는데도 수치심이 별로 없을 만 했다. 개발자란 자고로 자신이 개발한 물건에 자부심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것이 비록 세간의 욕을 먹을지라도 말이다. [박사님. 관련 검색에서 이런 것도 찾았습니다.] “자, 잠깐! 그런건 왜 또 출력하는 거야?” 현란한 포르노 영상들이 출력되었다. 어떤 새로운 매체가 발달하면 가장 먼저 선을 보이는 것이 포르노다. 성에 대한 인간의 집착은 확실히 돈이 되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유명한 통신 사업가인지 개발자인지가 자신들은 단지 전세계 인터넷 사용자들이 포르노를 좀 더 빨리 다운받을 수 있는 기술을 연구한 것이라고 자조했겠는가? [성(性)에 대해서는 연구 안하십니까?] “나, 나중에 얘기하자. 나중에.” 강현은 아즈삭에게도 당황한 채로 다시 응접실로 왔다. “그, 그러니까 성상품을 개발하신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그, 그렇군요.” 강현은 이런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천재라고 해도 익숙한 틀을 깨어버리는 상황에서는 당황하는 건 마찬가지 인가보다. 그러나 그는 곧 평정심을 되찾고 말을 이었다. “그러니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더치 와이프 안드로이드 버전을 만들고자 하시는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역시 핵심을 파고드시는군요.” 사실 수많은 공상과학 소설에서 이미 그러한 문제를 언급했다. 인간과 구별할 수 없는 수준의 신체를 가진 로봇이 개발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런 경우 인간과 로봇과의 사랑, 인간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 영혼의 존재 등 수많은 인문학적인 문제들을 대중에게 던진다. 그러나 사실 그것이 실제로 구현이 된다면 당장 닥칠 문제는 바로 그것이 수요가 있느냐 없느냐라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성에 대한 질문 따위는 사업성, 즉 돈보다 나중의 문제였다. 그리고 인간의 성에 대한 욕구는 상상 외로 크다. 전세계 포르노 사업, 음성적인 성매매 사업을 비롯한 콘돔 같은 각종 성인용품 시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즉, 하즈모토가 기획하는 움직이는 더치 와이프 계획도 성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내다본 회사의 승인이 있었기에 추진할 수 있다는 것을 짐작해 볼 때, 확실히 회사에서 돈이 된다고 생각했기에 하즈모토가 이렇게 미국까지 날아와 강현을 만날 수도 있었던 것이다. 하즈모토는 그런 회사의 신뢰와 또 자신의 개발 욕구를 실현하기 위해서 강현의 기술이 필요했고, 그래서 그를 설득하기 위해 자신의 혀를 놀리기 시작했다. “인간에게는 3대 욕구가 있다고 합니다. 식욕, 수면욕, 성욕이죠. 그리고 그 3가지를 만족하면 더 고차원적인 욕구를 바라게 된다고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자아성찰의 욕구죠.”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익히 자신도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 기본적인 욕구를 만족시키는 것은 선진국이라는 곳에서도 쉽지 않습니다. 특히 성욕의 경우에는 더 그렇죠. 식욕과 수면욕은 혼자서라도 충족할 수 있지만 성욕은 혼자서 만족하는 건 정말로 힘든 일입니다.” 강현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서? “설사 남녀가 서로 만난다고 해도 그것이 끝이겠습니까? 연애랍시고 온갖 감정 놀이를 하면서 시간낭비 돈낭비를 하죠. 결국에는 그 끝에 요게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당당한 표정으로 검지와 중지 사이에 엄지를 넣는 하즈모토. 강현은 점점 기분이 이상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끼어들 수 밖에 없었다. “잠깐. 남녀간의 사랑은 고려하지 않으시는 건가요?” “남녀간의 사랑은 호르몬적으로 딱 2년에서 3년이 되면 만료됩니다. 그 이후에는 정으로 함께하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성욕의 해소가 매우 중요한 겁니다.” 강현은 하즈모토가 할 뒷말을 상상할 수가 없었다. 맞는 말이기는 한데... 이런 기분은 처음이다. “성욕의 해소요?” “그렇죠. 남녀가 서로 만나는 이유에서 성욕을 제외한다면 좀 더 객관적인 시선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맞는지 확인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때문에 언제나 사람은 자신의 성욕이 해소가 되어 정신이 말끔해질 필요가 있는 겁니다. 성욕을 해소하지 못한 상태의 남녀간의 만남은 그저 불장난이 되거나 욕망에 얽혀 잘못된 결정을 내리기 만들 개연성이 너무나 높습니다.” “......” 강현은 할 말을 잃었다. 물론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은 아니다. 자신의 경우만 따져도 제시와 관계를 맺었던 것은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이지 그녀에게 욕정 하기 때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녀의 몸 이외에 그녀가 마음에 들었던 이유를, 그녀를 사랑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스스로 납득할 수 있었다. 그녀는 어머니 같았고 누나 같았으며 자신과 대화를 자유자재로 나눌 정도로 똑똑했으며 무엇보다 자신을 소중하게 여겨주었다. 그녀가 성욕에 얽혀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하즈모토의 말은 공감가는 부분이 있었다. 자신의 욕구를 풀기 위해서 상대의 육체를 갈망하는 것과 상대를 사랑하기 때문에 갈망하는 것은 천지차이다. “그게 더치 와이프를 안드로이드화 한다는 것과 무슨 상관인가요?” “수요가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움직이고 말하는 더치 와이프가 있다면 여성을 만나기 더욱 어려워질 것이 아닙니까?” “저희는 성인용품 제작사지 데이트 주선 업자나 결혼정보 회사가 아닙니다. 그저 인간은 성욕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남녀의 예를 든 것 뿐입니다. 다른 예로는 성욕 때문에 수시로 발기해서 정상적인 회사 생활을 못하는 남성의 경우가 있습니다.” 순간 강현의 머릿속에 그 정도면 정신과에 가서 섹스 의존증인지 진단을 받아봐야 하지 않는가 생각했지만 이내 머리 속에 지웠다. 성욕이든 뭐든 다 집어치우고 이 이상한 대화에 말려든 상황에서 벗어나야 했다. 지금 자신의 머리속은 전혀 다른 속성의 대화에 엉망진창이었다. 강현은 지금 이 순간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를 먼저 판단했다. 일단 이 계약을 통해 그에게 이득이 될 것과 이득이 되지 않을 것을 먼저 생각해야 했다.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은 그 다음이 되어야 했다. 그래야 생전 처음 접하는 이 기묘한 대화에 말려들지 않을 수 있었다. “....” 하즈모토는 강현이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잠시 생각에 잠긴 듯 침묵하자 긴장한 기색으로 침묵을 지켰다. 그는 과연 기술을 제공할 것인가? 강현에게 받아야 할 중요한 기술은 HA 시리즈의 전반적인 핵심 기술이었다. 특히 미국의 군용 물자인 K 시리즈의 자세 제어 시스템은 필수적이었다. 골격과 관절의 재료는 각국에서 따로 개발한 신소재를 이용하기 때문에 그다지 필요 없었다. 하즈모토도 일본에서 개발한 신소재를 이용할 생각이었다. 세라믹 재료로 만든 인공 관절을 생각하면 충분히 사람의 허리에 올라타서 허리를 흔들 수 있는 더치 와이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107화 힘든 노동을 할 로봇을 만들 것이 아니기 때문에 피로강도가 약한 세라믹 재질로도 충분히 성능을 구현할 수 있었고 또한 일본은 세라믹 신소재 개발의 강국이었다. 그 밖에는 전체적인 구조는 인체를 모방한 것이니 별다를 게 없었고 배터리 기술은 무료이기 때문에 역시 문제가 없었으니 결국 중요한 것은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두뇌. 즉, SNP와 그것을 제어하는 소프트웨어 시스템이었다. 한 때 강현이 HA 시리즈를 발표했을 때 일본은 이를 모방해보려고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실패했다. 일본이 아무리 로봇 강국이라고 하지만 강현의 개발품은 개발 개념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었다. 특히 전자 세계의 생명이라는 개념을 구현하기 위해서 만든 병렬연산 시스템은 폰 노이만 구조를 따르지 아니했고 아즈삭 시리즈라는 결과물을 낳았으며 이 난해한 하드웨어를 능숙하게 코딩할 수 있는 인력은 일본 전체로 따져도 겨우 2명 뿐이니(몸값이 엄청나다. 아즈삭 시리즈의 메인테넌스를 요구하는 은행과 정부 기관, 증권 등 이미 아즈삭 시리즈는 전자 보안에서 필수적인 시스템이었다.) 일본의 기술을 응용하려고 해도 수많은 애로 사항이 꽃폈다. 그래서 강현이 HA 시리즈를 선보였을 때 일본 열도가 받은 충격은 엄청났다. 도무지 기존의 기술로 찔러볼 수 있는 곳이 없었다. 그나마 적용 가능한 기술은 지엽적인 곁가지에 불과했고(관절, 소재, 구조, 센서 등) 핵심인 제어 기술(프로그래밍, 제어용 하드웨어 등)은 기존의 방식을 완전히 뜯어 고치는 수 밖에 없었다. 강현의 방식대로 말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세계 3위의 경제 대국이자 노벨상을 몇 명이나 수상한 일본의 과학력은 몇 년안에 HA 시리즈 못지 않은 결과물을 탄생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되었다.(그래 봤자 강현이 이미 개발한 모델의 개량형에 불과하겠지만 말이다.) “흐음.. 일단 허락 하겠습니다.” 하즈모토의 얼굴이 밝아졌다. “하지만 조건이 있습니다.” 강현은 이 일을 그냥 허락하지 않았다. 사실 안드로이드 자세 제어 시스템은 특허나 그런 것이 되어 있지 않지만(모방하기에는 데이터가 너무 크고 그것은 아즈삭의 보조를 받는 테크닉의 일종이기 때문에 사실 특별한 기술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미 미국 정부에서는 전략 기술로 인정하고 있는 상태였다. “제가 준 자세 제어 시스템이 일본 정부에 간접적으로도 들어가서는 안 됩니다. 약속하실 수 있습니까?” “네.” 하즈모토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적재산권자로 충분히 고려할 만한 조건이었다. “그리고 제 이름이 나와서는 안 됩니다. 설사 나오더라도 저는 그저 서류에 사인을 했을 뿐이지 개발 내용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겁니다.” “하지만..” 강현의 두번째 조건에서 하즈모토는 난색을 표했다. 세상에 어느 계약에서 상대방의 사정을 자세히 알아보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건가? 사람들이 납득하지 않을 것이다. “저는 이와 관련된 일에는 그저 노코멘트로 일관 할테니 그쪽에서도 노코멘트로 해달라는 겁니다.” “그렇습니까? 그런데 그래도 눈가리고 아웅이 뻔할텐데..” K 시리즈나 HA 시리즈처럼 자립 보행형 더치 와이프가 출시되면 분명 강현이 연관되어 있음이 만천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다. 아무리 성인용품 제작에 일가견이 있는 헵스라고 해도 그 정도로 기술력이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정도로 기술력이 있으면 뭐하러 더치 와이프나 만들고 있을까? 하즈모토의 그런 의문에 강현이 답했다. “손벽도 손이 마주쳐야 나는 겁니다.” 안드로이드 더치 와이프가 출시되면 분명 최소 한 차례 이상 이슈가 되고 소란이 일 것이 분명했다. 시청률이 목마른 언론, 찌라시들의 줄찬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들과의 인터뷰에서 무슨 말을 하라는 것인가? 그저 한 개발자의 개발 의욕에 자신도 응원하고 싶어졌다? 아니면 과연 섹스로이드라고 할 수 있는 물품이 어떤 현상을 가져올지 궁금해졌다? 어떻게 무슨 말을 하든 구설수를 피할 수는 없을 것이고 그런 구설수에 말려들면 귀찮아진다. 하지만 침묵으로 일관하면 지친 언론은 떨어져 나갈 것이 분명했다. 언론이 침묵하고 새로운 이슈를 찾아 가면 대중의 시선 역시 그리로 쏠릴 것이다. 그러니 이번 하즈모토와의 계약에 관해 어떤 견해도 밝히지 않는 것이 사태가 확대되지 않게 할 수 있었다. 하즈모토는 고개를 끄덕이고 사인이 된 계약서를 소중히 가방에 넣어 돌아갔다. [박사님. 왜 허락하신 겁니까?] “그냥.” [이해가 안 됩니다.] “그냥 한 번 보고 싶었어.” 그건 학자의 입장에서 섹스로이드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었을까 남자의 입장에서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었을까? 강현 자신도 알 수 없었다. 그리고 한 달 후 강현은 섹스로이드, 제품명 도로시의 출시를 듣게 되었다. “전 세계의 도로시들이 개명을 해야겠군.” 강현은 혀를 찼다. 작명 좀 신경써서하지. 전세계의 도로시들이 섹스로이드에 도로시란 이름을 붙인 사실을 알게 되면 가만히 있겠는가? 그의 예상대로 세상 여기저기에 퍼진 도로시들이 헵스의 회사 사이트에 갖은 욕설을 비롯해 항의글을 올리자 은근슬쩍 DXA-00이라는 모델명으로 바꾸어 버렸다. 하지만 한 차례 크게 소란이 일었고 각종 매스컴을 타고 말았다. 이것이 노이즈 마케팅의 일환이라면 헵스의 경영진들은 무척이나 뛰어난 것이 분명했다. DXA-00. 섹스도 가능한 인형이 등장하자 전세계에서 관심을 보였다. 물론 그중 대다수가 남자임은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이 섹스로이드의 시현은(성행위는 없었지만) 많은 남성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특히 목소리를 내는 시스템이 일품이었는데 최대한 사람의 목소리와 비슷한 목소리를 내도록 돈을 들였다. 그리하여 완성된 섹스로이드의 출시가는 무려 한화로 5억원 상당. 초고급 외제차를 훌쩍 뛰어넘는 가격이었지만 그 정도 돈을 들여 섹스로이드란 기상천외한 상품을 사고 싶어하는 재력가들은 많았다. 일례로 10억 상당의 슈퍼카는 재고가 남지 않는다. 그래서 헵스 또한 희소성을 강조하며 단 100대만을 제작했고 모두 팔려나갔다. 구입자들은 이 섹스로이드의 무게가 50kg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어깨에 짊어지고 다닐 수 있을 정도가 아닌가? 하지만 당연한 것이 야리야리한 여성의 몸을 표현하기 위해서 인공 근육의 크기는 작아졌고 일본에서 개발한 세라믹 재료(인공 관절에 쓰인다.)를 이용해 만든 골격은 금속으로 만든 가격보다 훨씬 가벼웠기 때문에 사람에 가까운 체중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도입한 강현의 무전극 배터리 역시 그래핀이나 CNT등 가벼운 탄소 소재를 이용했기 때문에 그다지 무게가 나가지 않았다. 처음에 구입자들은 이 신기한 더치 와이프를 꽤나 가지고 놀다가 아쉬운 점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빈약한 인공지능, 그리고 자신들의 취향에 맞지 않는 반응. 이른바 개성이 필요하다는 것. 그들은 그들의 요구를 헵스에 피드백을 했으나 헵스에서는 난색을 표했다. 고객이 원하는 것은 결국에는 인공지능의 개선이었다. 그러나 받아온 강현의 기술력에도 ‘개성’을 프로그램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강현도 아즈삭을 통해 판매의 추이와 여러 사항들을 알아보고 있었고 구입자들의 요구 역시 들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감정이나 반응을 어떻게 프로그램하라는 말인가? 감정이란 무척이나 어려운 것이다. 그 기본에는 욕구가 존재하지만 이성을 갖춘 인간의 감정은 무척이나 복잡한 심리학적 과정에 의해서 도출된다. 즉, 한 인간의 개성이란, 생물학적 발달 과정,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겪은 사회 환경적 요소, 거기에 개인의 뇌와 신체에서 벌어지는 생화학적인 반응, 이 모든 것들의 총체적이고 복합적인 반응에 의해서 일어난다. 설사 그 모든 변화를 추적하고 기록할 수 있다고 해도 한 인간의 개성을 타인이 원하는 형태로 정확하게 만들 수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변수가 무한대에 가깝기 때문에 조정이 불가능하다. 아즈삭만 해도 그렇다. 강현이 설정한 욕구에 의해 자아가 성립되기는 했더라도 이따금 강현을 놀라게 만드는 예상치 못한 발언을 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섹스로이드 구입자들의 소원은 이루기가 불가능했다. 설사 그들의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문제가 있다. 개성을 가진, 즉 자아를 지닌 로봇이 가지는 여러 의미들. 그것은 인간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 구입자는 물론 그 주변에 혼란을 줄 가능성이 있었다. 설사 그런 것들이 미래에 일어날지 안 일어날지 모르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당장 당면한 문제점은 지금 강현의 기술력으로 구입자들이 원하는 인공지능을 만들기 위해서는 적어도 방 하나 크기 정도 되는 하드웨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이란 스스로 정보를 피드백하고 그것을 적절하게 수정하기 위해 다시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정보 처리량이 급속도로 증폭되기 때문에 필요한 하드웨어의 최소 크기는 정해져 있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아마도 양자 컴퓨터는 있어야 했다. 강현의 SNP나 RNP도 나노 소자를 이용하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기존의 반도체와 동일한 재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집적율은 높다고 하더라도 역시나 크기를 더 줄이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양자역학적으로 불가능했다. 기본적으로 전자를 이용하는 메모리 소자의 원리는 높은 에너지 장벽을 이용해 전자를 가두는 것이다. 그러나 양자 수준의 세계에서는 전자가 아무리 높은 에너지 장벽이라도 ‘확률적으로’ 뚫고 갈 수 있다. 야구공이 두꺼운 시멘트 벽을 뚫고 지나가는 것 같은 일이 양자세계에서는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런 연유로 제어용 하드웨어의 축소에는 한계가 있었기에 완전 자율형 인공지능 안드로이드는 지금 수준에서는 무리였다. 하지만 헵스는 어떻게든 이런 수요자들의 요구에 맞추기 위해서 머리를 짜냈지만 기껏 할 수 있는 방법은 대용량 데이터 베이스를 이용해 각 상황에 맞는 행동을 하도록 프로그램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하기에는 헵스라는 회사는 너무 작았다. 적어도 다국적 대기업 정도는 되어야 그런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할 수 있었다. 그래서 ‘고객님들의 소중한 의견 감사합니다. 고객님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좀 더 개선된 상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열과 성을 다하겠습니다.’라는 상투적인 멘트로 상황을 종료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런 와중에 역시나 강현에게는 언론의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그러나 강현은 어떤 요청도 받지 않고 연구실에 칩거했다. 세상 만사를 잊는데는 그만한 일도 또 없었다. “박사님. 여기요.” 그런 강현에게 대량의 편지 뭉치가 또 날라오기 시작했다. 이메일도 확인하지 않고 있어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강현의 연구실은 정부에서 보안을 하고 있지 않은가? “아, 수고했어요.” 강현은 샐리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박스에 담아서 옮겨야 할 정도로 편지의 양이 많다는 것은 그 만큼 섹스로이드가 이슈가 되고 있다는 것. 벌써 어떤 나라에서는 섹스로이드를 이용한 성매매 기업이 설립을 준비 중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과연 채산성이 맞지는 모르겠지만.) 또한 그로 인해 섹스로이드는 사람이 아니니 성매매란 범죄가 적용되지 않는 문제를 두고 논란이 많았다. ============================ 작품 후기 ============================ 슬럼프 입니다. 사실 저번 에피소드에서 유대인 네트워크와 한 판 벌이려고 했는데 말입니다... 그와중에 중동에서는 핵폭발도 일어나고 아수라장이 되고 막장으로 치닷는 시놉시스가 있었습니다만 이것 저것 생각해 보니 주인공이 너무 갑이라서 싱겁게 마무리 되고 말았습니다. 아즈삭과 바퀴벌레 스파이의 정보력이 너무 뛰어나서리.. 하아.. 정말 외계침략이라도 시켜야 제대로 갈등구조가 만들어질까요? 글이 안써지네요ㅣ 108화 “.....” “?” 강현은 샐리가 편지를 두고도 가지를 않자 그녀를 보았다. 그녀의 표정을 보니 뚱한 것이 꼭 삐진 것 같았다. “박사님. 성욕을 주체 못할 것 같으면 여자를 사귀세요.” “풉!” 그는 그녀의 말에 홀짝이던 커피를 뿜을 뻔했다. “섹스를 하고 싶으면 여자랑 해야지 왜 인형 같은 걸 만들어요?” “....” 강현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섹스가 목적이 아니라고 말하면 믿어줄까? “세, 섹스가 목적이 아닙니다.” “그럼요?” “그냥 만들고 싶다고 해서.” “무수히 많은 응용이 있는데 왜 하필이면 섹스로이드냐고요.” 역시나 그냥 넘어가지를 않는다. “그런데 왜 샐리가 그걸 신경 쓰는 겁니까?” “지금 박사님 이미지가 어떤지 아세요?” “알죠.” “알면서 그렇게 태연히 있어요?” “뭐, 변태 학자 소리를 들어도 연구에 별로 지장이 되는 건 아니니까요.” “왜 지장이 없어욧!” 발끈하는 샐리의 반응에 어안이 벙벙해진 강현이었다. “몰라욧! 알아서 하세욧!” 화가 난 그녀는 돌아가 버렸고 강현은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쓴 웃음을 지었다. 그녀가 화를 내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여태 자신에게 가진 마음을 포기하지 못한 것이다. 언제 자신을 포기할 건지... 조만간 빨리 정리를 해야 하는데 기회가 생기지 않아서 여태껏 미루고 있었다. 강현은 입맛을 다시며 한 숨을 쉬고는 다시 모니터 화면에 집중했다. 한편 셀리가 방문하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잭이 방문했다. 역시 문제는 기술 유출이었다. K 시리즈의 위력을 보면 강현의 자세 제어 프로그램은 전략 기술이나 마찬가지였다. 정부는 이번 기술 제공에 대해 비공식적으로 강현에게 유감을 표명했다. 전통적 로봇 기술 강국인 일본에게 기술이 제공 되었으니 차후 그들이 이를 이용해서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 기술들을 하나하나 제공하는데 굳이 정부의 허락을 받아야 해?” “현. 너는 네가 가진 기술의 가치를 잘 모르고 있군. 지금 중동에서 네가 개발한 K 시리즈가 얼마나 큰 활약을 펼치고 있는지 알아?” 잭이 언급하는 것은 전술타입용 모빌 아머와 K 시리즈로 구성된 스쿼드였다. 펜타곤에서는 이것을 효과적으로 운용하기 위해서 머리를 굴리다가 미식 축구에서 힌트를 얻었다. K 시리즈가 완전 자율 행동을 하지 못하고 항상 행동을 수정 받아야 하는 한계가 있어 병사들을 이용하는 방법과 달라야 했고 미리 개개인의 전술이 짜여져 움직이는 미식 축구 만큼 적당한 운용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미식 축구처럼 몇 기는 라이너 역할처럼 전방에서 적들을 압박하는 화력조, 한 기 는 러닝백처럼 적진을 향해 돌격을 시키는 방법으로 혁혁한 전과를 세우고 있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을 컨드롤하는 지휘용 모빌 아머는 쿼터백의 역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었다. 총알이 먹히지 않는 무시무시한 이들의 돌진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폭발물을 진행 방향에 매설해 두거나 RPG따위의 대장갑 화기를 이용하는 것 뿐이지만 둘 다 전술적으로 이용하기에는 난감했다. 유동적으로 변화는 상황에서 어디에 폭약을 매설 해야 하는지 결정하기가 어려웠고, 또한 빠르게 움직여서 RPG따위로는 맞추기 힘들었으며 때로는 능동방어 유닛을 장착해 탄두를 공중폭파시키는 놈도 있어서 상대하는 것보다는 후퇴하는 것이 더 나을 정도였다. “중요한 건 CNC 장갑이지 자세 제어 시스템이 아냐. CNC 장갑이 없었다면 자세 제어 기술은 그냥 장난감용으로나 사용될 걸? 비싸서 기껏 사용할 수 있는 곳이 방사능이 넘치는 원전에서나 가능하고 그것도 방사능으로 오염되어서 반감기 가속장치로 방사능을 제거하면 수명도 엄청나게 줄어들거야.” 인간형 로봇의 의의는 어디에 있는가? 강현이 생각하기에 인간형 로봇의 의의는 그저 인간의 로망에 불과했다. 인간의 정신이 탐구의 주제가 되는 상황에서 인공지능이 완벽하지 않은 로봇은 그거 인간을 닮은 껍데기에 지나지 않았고 인간이 할 수 없는 위험한 일을 대신하는 용도 이상으로는 쓸 수 없었다. 하지만 굳이 그런 것도 인간형이 아니어도 된다. 실제로 강현은 K 시리즈의 전술적 이용을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이였다. 한국에서 사용하기 위해서 K 시리즈를 개발한 것은 시기적으로 무력을 재빨리 갖추어야 했기 때문에 HA에 사용된 기술력을 이용해 재빨리 개발을 한 것 뿐이었다. 굳이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 이족 보행은 필요없고 오히려 개나 소같이 사족 보행 로봇에 등에 다가 갖가지 무기를 다는 편이 훨씬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모빌 아머 프로젝트나 K 시리즈는 그저 돈지랄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 전쟁 무기들이 목적은 공포를 주며 미국의 기술력을 과시하는 것이었기에 강현은 별말하지 않았다. 돈지랄로 덤벼드는 적이 적어진다면 애꿎은 사람 목숨을 살릴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넘어가도 상관없어. 아즈삭 시리즈와 인공지능 기술이 없으면 제대로 변용도 못할걸? 그래서 원천 기술이 중요한거야. 강현은 원천 기술을 중요시 생각한다. 그리고 자세 제어 프로그램은 전혀 원천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아즈삭이란 인공지능을 이용한 피드백 노가다의 산물로, 아즈삭만 있다면 언제든 새로운 자세 제어 프로그램을 만들 수가 있었다. 따지고 보면 그것은 인공지능 기술을 응용한 파생 기술인 것이다. 그에 비해 CNC 장갑은 다르다. 그것을 만들기 위한 원리들과 그 과정에서 필요한 공정의 핵심 데이터야 말로 진정한 원천 기술이었다. “그리고 국가에서 지정한 기술을 판 건 아니잖아.” “자세 제어 시스템을 전략 기술로 정하려고 한 걸 반대한 게 너잖아.” “그럴만한 가치가 없는 기술이야.” 역시나 마찬가지 이유로 별로 중요한 기술이 아니기 때문에 강현은 전략 기술 설정에 반대했다. 이유는 역시나 인공지능 기술만 보호한다면 그딴 기술은 얼마든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들었다. 하지만 이유가 그것만은 아니다. 요즘 들어 ‘강현이 개발한 기술이다’라는 타이틀만 붙으면 어떻게든 국가 보호 기술이라든지, 아니면 전략 기술 등의 딱지를 붙이려는 정부의 행동이 지적 재산의 소유자로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의 자유를 침해당하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오늘 온건 그것 때문이야? 일개 기업에 기술을 제공한 것 때문에?” “일개 기업이 문제지. 성인 용품을 제작하는 기업이잖아. 네 이미지가 어떤지 알고는 있어?” 잭이 찾아온 이유가 기술유출 하나만은 아닌가보다. 하긴 겨우 그런 문제라면 미국 정부에서 철저하게 일본 정부의 움직임을 감시하면 되지 않은가? “내 이미지가 왜?” “하아.. 넌 이미 미국을 대표하는 인물이야.” 미국 과학력의 상징이 바로 강현이라는 인물이었다. 특히 반감기 가속 장치의 개발은 강현을 올해 노벨상의 가장 유망한 후보로 만들기에 충분했다.(신 통일장 이론은 완전히 해석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고려되지 않았다.)솔직히 지금까지 강현이 노벨상에 오르지 못한 것은 그가 개발한 기술이 뭔 가를 새롭게 만든 기술이라고 하기 보다는 거의다 기존에 학문적으로 연구되고 알아낸 것들의 응용과 파생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강현이 만든 기술 중에 가장 경제적 파급력이 높은 석유 제조 기술도 기존의 유전자 조작 기법을 엄청나게 높은 수준으로 한단계 진화시킨 것에 불과했고 가장 사회적 파급력이 높은 인공지능 개발의 경우 컴퓨터 기술에 관련된 노벨상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이름이 거론되지 못했다. 강현이 유명해진 이유는 그 연구 결과가 하나 같이 당장 상용화가 가능할 정도로 완성도가 높았고 수준도 높았으며 발표 간격이 도저히 혼자 연구를 하고 있다고 믿을 수가 없을 정도였기 때문이었고 엄청난 경제적 파급력이 있었기 때문이었지 학문적으로 인정을 받을 만한 것은 제시와 함께 연구했던 JH 세포와 가설 수준에 머물렀지만 공식적으로 오류를 찾을 수 없는 신 통일장 이론 뿐이었다. 하지만 덕분에 미국내에서 동양인에 대한 인식이 좀 더 증가하기도 했다. 또한 한국 교포 사회에서는 강현을 자랑스럽게 생각했고 같은 한국인이란 점에서 으시대기도 했다. 물론 강현이 한국이라는 나라로부터 자유를 찾기 위해 미국에 온 정치적 난민이라는 대중적 인식으로 인해서 입밖에 꺼내지는 못했다. 만일 그런 식으로 다른 인종과 대화를 한다면 한국이라는 나라를 조롱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강현은 자신이 그런 상징적인 인물이 되었다는 말에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안 그랬으면 좋겠는데..” 보통 유명세와 함께 귀찮음이 함께 오지 않는가? 한국에서도 천재 소년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국회나 기업에서 사람들이 찾아와 얼마나 귀찮게 굴었는가? “하아.. 난 모르겠다.” 잭은 한 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뭐라고 말을 해도 강현이 어떤 사항에 대해 결정을 한다면 기어코 그 결정을 밀어붙인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천재다운 괴짜 기질은 물론 스스로 한계를 인정하기 전까지 자신의 결정을 밀어붙이는 태도는 과연 지금까지의 결과물이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을 짐작할 수 있게 해주었지만 그만큼 고집도 세다는 사실도 동시에 증명했다. 그래서 그에 관한 것도 보고서로 올렸지만 왜 여전히 계속 쓸데없이 자신을 보내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어차피 이런 문제에 있어서 강현의 태도를 크게 변화 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런 도대체 왜 판거야?” “흥미롭지 않아? 과연 섹스로이드가 완성되면 인간은 어떻게 적응할까?” “하아.. 또 한국에서 진행한 그것과 비슷한 거야?” “호기심의 원천은 그렇지만 그걸 빌미로 뭘 하겠다는 건 아니야?” 잭은 또 한국에서 일을 벌인 것처럼 크게 일을 벌릴 거라는 것을 우회적으로 물었고 강현은 직접적으로 답했다. 아무래도 잭이 파견된 것은 차후에 있을 강현의 동향을 파악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잭은 강현의 대답에 한 숨을 내쉬었다. 어찌된 일인지 그는 이쪽 생리에 너무 밝았다. 그래서 대화나 일처리에 오해가 없고 신속해서 편하기는 하지만 정보부 요원의 입장에서는 모든 것이 까발려진 것과 마찬가지라 불안한 면도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가 어찌 알 것인가? 이미 미국의 아즈락을 비롯해 아즈삭 시리즈를 첩보에 사용되는 기관에는 모조리 강현의 바퀴벌레 스파이가 잠입해 있다는 사실을..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화제를 바꿨다. “만일 일본 정부에서 기술을 빼가면 어떻게 할 거야?” “글쎄.. 소송을 걸면 되지 않을까?” 그렇다. 틀린 말은 아니다. 일본은 그 특유의 화(和)라는 문화때문에 강자에게 굴복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섬나라라는 특성으로 인해서 공멸할 위험을 피하기 위해 엄격한 신분 질서를 만들어 놓고 그런 문화가 현대까지 이어온 그들로서는 자신들을 이긴 최초의 국가에게 아무래도 약할 수 밖에 없었다. 거기다가 그 나라가 세계 패권을 쥐고 있으니 여타 말할 것이 있을까? 덕분에 강현은 이런 저런 공작을 하지 않아도 미국이라는 배경 덕분에 일본 정부가 기술을 무단 도용한다고 해도 제제 하는 일에 별로 부담이 없다. 이것이 정부와 공생하는 이의 이점이었다. 물론 아나키스트가 보았다면 더러운 협잡이라고 비난했겠지만 그게 뭐 어땠다는 건가? “끄응...” 잭은 앓는 소리를 했다. 그 와중에 미국의 입김은 도대체 얼마나 가해져야 하는 것일까? 미국은 대국이고 입김 한 번 불어주기 위해서는 내부에 수많은 이해 관계를 조율해야 했다. 그 와중에 정보부의 일거리가 늘어가는 것은 당연한 소리였고 사무직인 잭에게는 책상 가득 서류 뭉치가 쌓이는 이미지가 머리에 떠올랐다. ============================ 작품 후기 ============================ 하아.. 갈길이 어렵네요. 109화 “하아.. 문제가 생기면 난 몰라.” “안 도와주면 어쩔 수 없이 알아서 해야지.” 어련하시겠어? 잭은 한 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강현이 나서면 어떤 상황이 올지 예측하기 어렵다. 대한민국에 K 시리즈란 공상 과학 영화에서나 볼 법한 로봇 병사들이 출현했을 때에는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강현이라는 존재는 미 정보부를 비롯한 각국 첩보망을 벗어나 무력을 구축할 능력이 있었다. 가끔 잭은 강현이 세계 정복을 꿈꾸는 매드 사이언티스트 였다면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상상해보기도 했다. 잭은 지시한 내용은 다 처리하고 이제는 강현의 근황을 이것 저것 물어보기도 했다. “요즘 대쉬하는 여자는 없어?” “글쎄..” 샐리라는 이름을 꺼내기 위한 유도 심문이었지만 강현은 고개를 저어버렸고 잭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잭은 그런 강현이 답답했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거기다가 샐리라는 여자는 자신이라도 대쉬할 것 같은 그럼 매력적인 여성이었다. 미모만 따지면 제시보다 더 나을지도 몰랐다. 그런 여자를 강현과 이어주기 위해서 지원 작전 중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자신이 덥썩 잡았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강현의 신변을 이것저것 알아가는 와중에 그녀의 이름을 꺼내도록 유도 질문을 한 것도 그런 지원의 한 방책이었다. 안면이 있는 친구인 자신이 말이라도 한 번 꺼내보면 지지부진한 두 사람의 사이가 한 걸음 진척되지 않을까라는 의견도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방금 유도 질문이 실패했다고 해도 잭은 포기하지 않았다. 정보를 다루는 요원에게 끈기는 필수였다. 다만 지금은 물러서고 다음을 기약하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밀어붙이는 것이 좋을지 판단할 차례였다. 그리고 잭은 한 번 밀어붙여 보자고 생각했다. “정말 없어?” “없다니까.” “그럼 내가 한 명 소개 시켜줄까?” “싫어.” “그러지 말고 한 번 만나봐. 진짜 진짜 섹시하고 이쁘고 착하고 머리도 좋아.” 세상에 그런 여자가 어디 있겠냐만은 강현을 미국에 붙잡아 둘 수 있다면 북한 미녀라도 미국인으로 만들어 초빙할 곳이 바로 미 정보부라는 곳이었다. “됐어.” “아, 일단 한 번 만나 보라니까.” “싫으면 싫은거야.” “보면 너도 좋아할 것이 분명하다니까.” “됐어.” “쩝.” 이쯤 되자 잭도 더 이상 권유할 수 없었다. “그럼, 난 간다.” “응.” 잭은 앞일을 걱정하며 돌아갔다. = = = = = “드디어!” 강현은 몇 달 동안 블랙홀 수식과 신 통일장 이론의 수식을 서로 대입하고 조합한 끝에 수식의 몇 가지 의문점을 해결했다. 그중에 가장 해결하기 난해 했던 것은 사건의 지평선을 경계로 양자 얽힘이 유지 될 수 있는가라는 점이었다. 비국소성은 사건의 지평선을 넘어서도 유지되는가라는 질문에 강현의 수식은 No라는 답을 내어 놓았다. 시간이란 무엇인가? 현대 양자 물리학에서 그것은 양자 얽힘의 파생효과라는 답을 내어 놓았다. 따라서 시간이 단절되는 경계인 사건의 지평선을 넘어서는 양자 얽힘은 존재하지 않는다. 만일 사선의 지평선을 넘어서도 양자 얽힘이 존재한다면 블랙홀의 시간은 정지해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 사실을 신 통일장 이론으로 수학적으로 증명하는 것에 성공했다. 그 와중에 에너지로 표현되지 않고 특정 상수의 정수배만을 가지는 변수 두개를 밝혀내는데 성공했다. 이로서 그는 현재 물리학에서 표현하는 기본입자들을 모두 표현할 수가 있게 되었고 결과적으로는 입자를 다루는 양자 색역학과 신 통일장 이론을 연결하는 교두보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이번 내용을 발표할까 말까 생각했지만 일단 보류하기로 했다. 완벽히 이해하지 못한 수식의 일부를 알아냈다고 설레발을 치는 것은 스스로 생각하기에 꼴사납다. 그러다가 전체적으로 오류라도 발생한다면 무슨 개쪽인가? 그래서 강현은 이번 연구 성과를 응용해보기로 했다. “아무래도 양자 통신이 가장 유력하겠지?” 아무리 신 통일장 이론을 통해 양자 상태, 즉 에너지의 종류와 특성 값을 결정하는 변수를 알아냈다고 해도 그것을 제어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양자 통신의 실현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양자 얽힘을 오랜 시간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양자 얽힘에 있는 입자들을 통신이 필요한 장소까지 떨어뜨리는 동안 그 입자가 원하지 않는 입자와 얽히지 않도록 해야 했다. 그런 특성에 가장 알맞은 입자는 아무래로 광자였지만 광자는 오랫동안 보존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거기다가 이동하는 와중에 소실될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전자를 이용하는 방법이 연구 중이었다. 전자의 양자 얽힘 역시 어렵지 않게 만들 수는 있었지만 문제는 그것의 시간을 보존하고 유지하는 일이었다. 그것은 확률이 지배하는 양자 세계와 고전 물리학의 경계선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되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강현은 전자나 광자를 이용해 양자 통신을 실현할 생각은 없었다. 왜냐면 보존하는 것이 너무나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원자핵, 다시 말하면 중성자나 양성자를 이용한 양자 얽힘 보존 기술을 개발할 생각이었다. 양자 얽힘이란 하나의 에너지 상태를 분리할 때 발생하는 시공간적인 상관관계라고 설명할 수 있었고 중입자인 양성자나 중성자를 이용할 경우에는 전자보다 훨씬 오래 보존하고 기계적으로 위치를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에게는 이미 반감기 가속 장치가 있었다. 원자핵을 변환하고 에너지를 조절할 수 있는 노하우를 알고 있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고온의 플라즈마를 이용한 중성미자 방출 방식은 양자 통신에 사용하기 부적합했다. 에너지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확산하는 법이다. 그 말은 높은 에너지 상태에 있는 입자가 그보다 낮은 에너지 상태에 있는 입자와 양자 얽힘을 반복해 간다는 의미였고 단일한 양자 얽힘을 유지하지 못한다는 의미였다. 따라서 양자 얽힘의 보존을 위해서는 극 저온, 에너지가 매우 낮은 상태에서 실행해야 했으며 양성자나 중성자의 정밀한 컨트롤이 요구되었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기술적 방법론은 두 가지. 하나는 중입자의 고정. 다른 하나는 고정된 중입자의 상태를 관측할 수 있는 방법. 이 두 가지였다. 그리고 강현은 고민 끝에 중성자는 폐기했다. 중성자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중성자의 스핀을 계측하는 방법이 필요한데 중성자를 붕괴시키지 않고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장치에 기계적으로 고정시키기 위해서는 핵력을 이용해 양성자와 붙이는 수 밖에 없는데 이 핵력이란 강한 상호작용이 양자 얽힘에 관여해 원하지 않는, 또는 조절되지 않는 양자 얽힘을 만들어 낼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적합한 방법으로 선택된 것이 바로 양성자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양성자 역시 전자처럼 스핀을 가지고 있으며 그 스핀을 통해 자기장의 방향을 만들어 내면서 또한 이미 이 양성자의 스핀 방향을 계측할 수 있는 정밀한 장치 역시 개발된 상태였다. 따라서 양성자를 잘 고정하면서 양자 얽힘을 방해하지 않는 방법을 찾아야 했고 가장 좋은 방법은 단 하나의 양성자로 이루어진 수소를 화합물의 형태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수소를 흡수할 양자 모듈은 절대 영도에서 작용해야 했기 때문에 모듈을 만드는 것도 골치가 아팠다. 양성자의 스핀값, 즉 자기장의 변화값을 읽기 쉽도록 외부 자기장을 차폐하도록 되어 있는데 절대 영도에서 금속들은 초전도 현상을 일으키기 때문이고, 초전도체는 강력한 반자성 물질이다. 반자성 물질이란 재료내부로 자기장이 침투하는 것을 막는 것인데 이로 인한 현상이 바로 공중에 둥둥 뜨는 현상이다.(자기부상 열차의 원리다.)때문에 수소 합금에 사용되는 원소들의 비율을 조절해 비정질처럼 원자 배열을 흐트려 뜨려(초전도 현상은 금속 원자들의 규칙적 배열이 중요한 요소다. 전자가 아무런 저항 없이 흘러야 하기 때문이다.) 초전도 현상이 일어나지 않도록 재료를 구상해야하는 작업도 해야 했다. 이렇게 모듈을 완성하고 나서 드디어 본격적으로 모듈간 양자 얽힘을 실험했다. 광자의 양자 얽힘을 생성할 때는 하나의 광자를 이용해 전자를 들뜨게 하고 들뜬 전자가 몇 개의 낮은 전자 준위로 내려가면서 얽힌 상태의 광자들을 방출하게 되며 이는 광자를 이용한 많은 양자 얽힘 실험에 사용되는 방법이다. 강현도 이와 비슷하게 중성미자를 이용해 양성자를 들뜬 상태로 만든 후에 에너지의 자연적인 확산을 통한 양자 얽힘을 시도했다. 양자 모듈에 흡수된 수소에 중성미자의 에너지를 전달하는 것은 별로 큰 문제가 없었다. 신 통일장 이론을 통해 파동으로 해석된 중성미자를 양성자, 즉 수소 원자핵과 공명시킬 수 있는 수준의 파장으로 설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파생되는 양자 얽힘을 조절하는 것은 무척이나 난해한 일이었다. 조사되는 중성미자의 양을 조절하기 위해서 강현은 액체 수소가 가득 든 방벽을 준비해야 했으며 혹시나 다른 영향을 주지 않을까, 중성미자가 생성되는 와중에 생기는 잡다한 방사능도 차폐하는 방벽도 만들어야 했고 양성자의 자기장을 측정하기 위한 정밀한 장치도 주문해야 했다. 덕분에 중성미자 발생장치가 있는 NASA의 방사능 실험장은 온통 케이블과 알 수 없는 장치들로 마치 영화에서나 나오는 SF 장면처럼 되어 버렸다. 마침내 구성된 실험 장비를 이용해 강현은 실험을 조율하고 또 조율하기를 수 백 번을 하고 나서, 마침내 약 16시간 가량의 양자 통신을 성공하고야 말았다. 그러나 여전히 문제는 산재해 있었다. 이 양자 얽힘이 일어나는 양자 모듈을 과연 얼마나 멀리 떨어뜨릴 수가 있는가? 그리고 양자 모듈을 원거리에서 활성화 시키는 방법은 없는가? 또한 소형화 가능성은? 강현이 지금 개발한 장치는 이것저것 장착한 것이 너무 많아서 소형화는 도저히 무리였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장거리 통신을 안정적으로 취할 수 있는 방법만 발견한다면 더 이상 해저 광케이블은 필요가 없을 것이며 통신망 구축에 필요한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었다. 더구나 미국 같이 넓은 지역의 유무선 통신망을 유지하는 비용 역시 급감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유선 통신망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전파 자체의 한계로 인해 많은 중계국이 필요한 무선 통신 역시 마찬가지였다. “흐음..” 그러나 여전히 강현의 마음에는 별로 들지 않았다. [박사님, 뭔가 문제가 있습니까?] “이대로는 상용화가 무리라서.” 확실히 그랬다. 적어도 장거리 양자 통신이 가능하기 위해서 멀리 떨어진 양자 모듈을 동기화 시키는 새로운 방법이 필요했다. 그건 아무래도 중성미자가 아닌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확실히 양성자를 이용한 양자 통신은 거리를 멀리 떨어뜨리는 것이 무척이나 어려웠다. 하지만 광자나 전자처럼 양자 얽힘의 보존이 양자 역학적으로 매우 어려운 입자를 사용하는 것보다는 훨씬 가능성이 있었기에 강현은 양자 모듈 간에 일어난 양자 얽힘의 수명을 대대적으로 늘리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러기 위해서 다시 기존의 양자 역학을 보고 신 통일장 이론도 접목해 본 결과, 양자 얽힘이 가장 오래 견딜 수 있는 시간은 정보를 읽고 전송하는 양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것을 알아냈다. 110화 정보란 무엇인가? 그것은 상호작용이다. 주체가 객체를 관찰하면서 필연적으로 객체에서 무엇인가 정보가 담긴 어떤 것을 수용하는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관찰은 본질적으로 주체와 객체 모두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과학적인 의미로나, 또는 철학적인 의미로도 말이다. 아무튼 관찰이란 행위의 본질로 인해 아주 작은 미소한 입자들로 이루어진 양자 세계에서 입자에 밀접한 영향을 끼친다. 즉, 얽힘 상태에 있는 양성자의 스핀을 읽는 행위 자체가 양성자와 관측 장치 사이에 새로운 상호작용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정보에 잡음이 낄 수 밖에 없으며 이른바 양자 얽힘의 확산 현상과도 관련이 되어 있기 때문에 일회의 양자 얽힘 당 전송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은 한정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강현은 다른 방법을 연구하는 것 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바로 원거리에서 양자 얽힘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럴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바로 중성미자 뿐이었다. 그렇다면 중성미자가 원거리 통신에 적합한 것인가? 그것은 이미 유럽 입자 물리 연구소에서 중성미자 검출 실험에서 732km 떨어진 두 도시에 만 오천 여 개의 중성미자를 쏘아 보냈고 중성미자의 도착을 검출했다. 그 과정에서 빛보다 빨랐느니 아니니 따위의 소란이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바로 중성미자가 장거리로 정보를 보내는 데 이용될 수 있을 정도로 전파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이것이었다. 일반적인 중성미자는 대형 욕조에서 체렌코프 복사의 현상을 통해서 검출을 하게 될 정도로 흡수율이 낮다. 그렇다고 강현이 조절한 것처럼 수소 원자핵이 공명 할 수 있을 정도로 에너지를 낮추는 것 역시 문제였다. 지구의 표면적 70%를 덮은 것이 바로 물이었고 이 물에 붙은 수소 원자핵을 통해 에너지를 조절한 중성미자가 흡수될 것은 너무나 뻔한 이치였다. 거기다 지상의 물만 있나? 대기의 수분, 하늘 위의 구름 등 강현이 흡수가 용이하도록 에너지 상태를 조절한 중성미자는 원거리 양자 얽힘에 사용하기에 너무나 미진한 점이 많았다. 그래서 강현은 더 이상 수소를 사용해 양자 얽힘을 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다른 파장의 중성미자를 사용하기 위해 그는 수소를 대신할 다른 원소를 찾았고 가장 적합한 원소로 중성자 4개에 양성자 3개로 이루어진 리튬을 선택했다. 왜냐면 지각의 리튬 함유량은 고작 0.006%에 불과하기 때문에 중성미자의 소실 가능성이 무척이나 적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심 원자핵을 구성하는 중입자의 수가 많아진 만큼 얽힘의 과정이 무척이나 복잡해지고 해석도 어려워지며 양자 얽힘의 확산을 통해 원하는 양자 얽힘이 유지되는 시간이 짧아지는 단점이 있었다. 하지만 원거리 양자 얽힘, 강현이 양자 동기화 기술이라고 명명한 기술이 실현이 된다면 양자 얽힘의 유지 시간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또한 양자 얽힘을 통한 스핀 해석의 문제도 아즈삭으로 대표되는 비약적이며 미래적인 정보 처리 시스템으로 얼마든지 빠르게 해석할 수가 있었다. 물론 리튬보다 원자핵을 구성하는 중입자(양성자, 중성자)의 수가 적은 헬륨 역시 지구상에 존재하는 비율이 매우 적기 때문에 중성미자의 전파를 방해할 가능성이 없었다.(우주에서는 수소 다음으로 흔한 원소 약 24%. 다만 너무 가볍기에 지구 중력으로 잡아둘 수가 없을 뿐이다.) 그러나 헬륨의 화학적인 안정성(불활성 기체) 때문에 고체화 된 모듈로 만들어도 수명을 장담하기가 어렵다. 작동하는 와중에 기체나 액체가 되어 유동하게 되면 해석에 더 큰 오류가 생길 수 있다. 그 만큼 양자란 미소 단위를 다루는 기술에서는 안정적인 상태의 입자가 다루기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강현은 리튬을 이용한 양자 모듈을 제작했다. 그리고는 마침내 약 100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원거리 양자 얽힘을 실현시키고야 말았다. 원거리 양자 얽힘은 중성미자 방출 장치와 통신을 위한 양자 모듈 한 쪽이 같은 장소에 있어야 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왜냐면 중성미자는 광자처럼 전자를 매개로 둘로 쪼개지지 않기 때문에 양성자에 탄성 충돌시켜 다른 양성자에 흡수시키는 방법이 가장 확실한 양자 얽힘을 생성하는 방법이었다. “하아.. 힘들었다.” 지금까지의 개발 중에서 가장 힘이 들고 시간도 많이 잡아먹는 기술이었다. 무려 일년이 넘는(정확히는 387일) 시간이 걸릴 정도니 그 난이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 특히 양자 모듈의 스핀값을 통계적으로 해석해 정보를 전송하고 손실을 줄이는 정보 처리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것까지 그야 말로 시작부터 양자 역학이 사용된 나노 공학, 재료 공학, 컴퓨터 공학, 전자 공학 등 여러 과학 분야를 총 망라하지 않았다면 결코 상용화가 가능한 양자 통신 기술을 개발하지 못했을 것이다. 첨단화 된 현대의 과학기술은 각 분야의 종합적인 통합이 아니면 결코 제대로된 경쟁력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수고하셨습니다, 박사님.] “너도.” 강현 만큼이나 고생했던 것이 바로 아즈삭이었다. 특히 양자 모듈의 스핀 자기장 값을 읽고 잡음을 걸러내 정보를 추출하기 위해서 반드시 통계적인 방법이 필요했고 이 방대한 계산을 아즈삭이 없었다면 결코 제대로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아, 그럼 좀 씻자.” 연구하는 중간 중간 샤워도 했지만 며칠 동안 제대로 수염도 깍지 않아 턱이 지저분했다. 머리 역시 자랐는데 길어져서 눈을 가리고 귀찮게 하니까 아즈삭을 시켜서 적당히 자르게 했다. 아즈삭은 HA를 이용해 강현의 머리칼을 잘랐는데 아무래도 인공지능이다보니 머리를 자르는 센스가 엉망이었다. 셀리가 봤다면 ‘어머나, 세상에!’라며 기겁을 하고는 그를 즉시 미용실에 끌고 갔겠지만 연구를 하는 내내 그의 생활 반경은 NASA 방사선 연구동을 벗어나지 않았으며 실험 장비를 설치하러 온 기술자 이외에는 방문조차 받지 않았다. 중간에 노벨상이고 어쩌고 하면서 찾아온 이도 있었는데 생각만큼 진척이 되지 않는 상황으로 인해 한창 신경이 예민해져 있던 강현에게 짜증만 듣고 돌아갔다. 역시 양자 세계를 컨트롤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아무튼 그때문에 ‘노벨상보다 연구가 중요!’ ‘역시 세계 최고의 천재!’라는 제목의 기사가 났지만 아즈삭은 강현의 연구에 방해가 될까봐 알리지 않았다. 그래서 강현은 방금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라? 나 노벨상 후보였어?” [네, 박사님.] “근데 왜 안 알려줬어?” [연구에 심취해 계셨기 때문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그래?” 하긴 재산도 많으니 굳이 상금을 탈 필요도 없고 명예욕도 없는데다가 시상식장같이 번잡한 곳으로 들어가기도 싫으니 굳이 아즈삭을 탓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국가 위상이 상승하는 노벨상을 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여러 번 사람을 보낸 미 정부만 속이 터질 뿐이었다. 물론 이번 강현의 발명에 입이 활짝 벌어질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양자 통신 기술! 실현되다!] [전자가 아닌 원자핵을 이용한 양자 통신의 기막힌 효용!] [양자 동기화란 무엇인가?! 양자 통신의 핵심을 파보자!] 미국의 통신망 회사라는 곳은 죄자 돈을 바리바리 싸들고 오기 시작했다. 양자 통신은 일약 장거리 통신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었다. 케이블을 깔 필요가 없는 것 하나 만으로 엄청난 이점이 있다. 아무리 광케이블이라고 해도 광섬유를 통과하는 동안 손실이 없을 수가 없다. 그래서 중간 중간에 신호를 증폭시켜 주는 중계 장치를 설치 해야하는 것은 당연하고 이는 장거리 통신의 속도를 저하시킨다. 하지만 강현이 개발한 양자 통신을 이용한다면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라 사이에서 그야 말로 빛의 속도로 통신을 주고받을 수가 있었다. 물론 좀 더 편리한 사용을 위해서는 각 기지국의 양자 모듈이 따로 따로 양자 얽힘을 해야 했지만 강현은 이 문제를 각 모듈의 동기화 시간, 그리고 정보처리 방법으로 해결했다. 중성미자로 인한 양자 얽힘이 어느 기지국의 양자 모듈과 형성되는지 완벽한 조절은 불가능했지만 양자 모듈의 온도를 미세하게 조절하여 리튬 원자핵의 에너지 상태를 조정해 공명할 수 있는 중성미자의 파장을 제한적으로나마 선택할 수 있고, 또한 각 기지국에 할당된 인증 코드를 이용해 제대로 된 접속인지 확인하고 다시 새로운 양자 얽힘을 형성하는 방법도 이용해 기지국을 다양하게 설치할 수 있었다. 그래서 여러곳에 기지 국을 세울 수 있는지가 걱정이었던 통신망 회사들은 더욱 기뻐했다. 강현의 기술만 얻을 수 있다면 국제 통신망 업계의 1위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미 정부는 당연히 미국 기업에 이 기술이 넘어가기를 바랬지만 강현은 이 양자 통신 기술을 석유 제조 라이센스와 같이 컨소시엄에 넣어버렸다. 통신망은 정보화 사회의 근간이기 때문에 통신망을 누군가 독점하게 된다면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당연히 정보에 가장 민감한 잭이 가장 먼저 달려와서 강현에게 뭐라고 했다. 정보부 요원이기 때문에 정보의 가치, 중요함을 더욱 실감하기 때문이다. “어떻게라니?” “양자 통신 기술이 미국 업체에 들어가게 된다면 국익이 얼마나 될지 생각해 본 적 없어?” “글쎄.. 나는 양자 통신 기술도 미국이 독점하면 괜한 분란을 초래할 것 같은데?” “어째서?” “좀 많이 가진 쪽이 베풀 줄 알아야 시기를 받지 않지.” “....” 틀린 말은 아니었다. 강현의 기술로 그 동안 얼마나 미국의 영향력이 강화되었는가? 그리고 그 강화된 영향력 만큼 미국을 싫어하는 국가에서는 더욱 미국을 싫어하게 되었다. 아무리 팔레스타인 사태가 종결된 중동이라고 해도 말이다. 특히 이란은 더욱 그랬다. 아예 핵무기까지 보유하고 있는 이란은 반감기 가속 장치를 독자적으로 개발해 보려고 우회적으로 장치를 구입해 모방까지 했지만 사용에 필수적인 데이터 베이스가 없기 때문에 삽질을 반복하는 중이었고 삽질을 하면 할 수록 오히려 미국에 대한 반감이 커져갔다. 결코 반감기 가속 장치로 인해서 미국과 결탁할 수 없다는 그들의 강한 의지는 아무래도 역사적으로 냉전을 겪으며 서방 세계와 미국에 여러 번 뒤통수를 맞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정보는 좀 아니지.” “왜? 양자 통신인데 도감청이라도 해볼려고?” “....” 다시 꿀 먹은 잭. 양자 통신이 흔히들 도감청이 불가능하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양자 암호 기술을 이용해 물리적으로 도감청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방법이 있지만 강현의 양자 통신은 그런 것까지는 아니었고 단말기나 기지국에 은밀하게 장치를 집어넣는다면 얼마든지 도감청이 가능했다. 아무래도 양자 통신의 소형화가 아직 불가능한 만큼 기지국에서 각 개인 단말기까지는 전파를 이용한 통신을 그대로 사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보는 개방적이어야지. 중세시대도 아니고 말이야. 지식이 비전이 되는 순간 문명은 쇠퇴하게 될 거야.” 지식은 사람을 통해서 그 효용성이 발현되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공유되며 생명력을 얻고 존속된다. 그러나 지식에도 수준이 있고 또 그것을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사람 역시 한정되어 있다. 그러므로 지식이 비전이 되어 아는 사람만 알게 된다면 어느 순간 전해줄 사람이 없게 되면 그 지식은 사장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는 지식이란 이름을 가진 문명의 종말이다. 111화 그래서 강현은 자신이 가진 지식을 언제나 특허 등록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개인의 지적 재산권을 보호하는 제도이자 지식을 씨앗으로 보존하여 인류의 문명을 존속시키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이기적인 인간에게 만일 특허 제도가 없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수많은 기술들이 빛을 보지 못하고 사장되었을 것이다. 내게 별 이득이 되지 않으면 남에게도 이득이 되지 말라는 심보의 인간은 적지 않다. 설사 누군가에게 전해진다고 해도 그것은 자신의 제자, 혹은 자식에게만 전해지는 비전이 될 것이며 이미 상술했던 것과 같이 비전이 되는 순간 지식은 멸망의 위험을 안게 된다. 하지만 특허로 등록이 되는 이상 기술의 존재와 핵심을 공유되며 보존된다. “너는 세상을 너무 몰라. 네가 전세계적으로 유명하지 않고 또 인류의 보물이 아니었다면 무수히 암살 위협을 받았을걸?” 잭은 경고했다. 강현에 대한 칭송 못지 않게 그를 싫어하고 증오하는 이도 적지않았다. 그가 만든 기술은 거대한 파급력을 가져왔고 그 거대한 파급력에 걸맞는 변화도 가져왔다. 그리고 그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수많은 이들은 도태되었으며 고통 역시 받았고 그 중에는 모든 일의 원흉으로 강현을 지적하는 이도 있었다. “천만에. 난 세상을 너무나 잘 알아. 특히 인간에 대한 걸 나만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사람도 없을걸?” 강현은 잭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실험실에 처박혀, 인간 세상과 떨어지니 더욱 인간을 객관적이고 즉물적으로 관찰할 수 있었다. 그의 결론은 인간은 인간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 앞에 ‘존엄한’ ‘사악한’ ‘필요없는’ ‘신성한’ 따위의 수식어는 필요없었다. 어떤 수식어도 왜곡적인 단어가 될 뿐이다. 인간은 기분이 나쁘면 안 좋은 행동을 한다. 또한 기분이 좋으면 좋은 행동을 한다. 뺨 맞고 가만히 있을 수 있는 사람은 없으며 복권에 당첨된 사람은 적잖이 적선을 하기도 한다. 단지 그런 현상이 복잡하기 짝이 없게 느껴지는 것은 당사자의 기분이 좋고 나쁜 것의 기준이 제각각이라는 이유밖에 없다. 그리고 본인도 그 기준의 선이 어디까지인지 확실하게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인간이란 동물은 자기 자신을 잘 모른다. 그렇기에 인간 사이의 이해관계는 언제나 주도권 다툼으로 나타난다. 강현은 이를 인지하고 있으며 자신에게 필요한 범위 안에서 주도권을 획득하고 있었다. 이번 양자 통신 기술의 국제 컨소시엄 역시 그러기 위한 것이다. “하아.. 정말로 통신 기술도 컨소시엄 형태로 갈거야?” “응.”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자신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의 입장은 이미 갑이다. 그러니까 그는 굳이 양자 통신 기술을 어느 일부의 업체에만 넘기고 통신 시장의 강자를 만들어 위험한 요소를 만들 필요가 없다.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약자들을 경쟁시키는 것은 제왕학의 방편 중 하나다. 강현이 왕은 아니지만 권력자라는 입장은 동일했다. 유대 자본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그가 권력자가 아니면 도대체 무엇일까? 그는 자신이 편하게 연구할 수 있는 이유도 자신에게 강력한 권력이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컨소시엄의 결과로 탄생하는 분산된 통신 시스템은 자체적으로 서로를 감시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통일된 정보 권력이 탄생하는 것을 막는 것과 동시에 왜곡이 일어난 정보를 검증할 수 있는 수단을 줄 것이며 강현의 첩보 감시망에 더해 정보적인 안전망을 보강해 줄 것이다. 물론 독점적 국제 통신 업체를 만들면 그 것 하나만 철저하게 감시하고 왜곡이 일어날 요소가 없게 강현이 잘 관리하면 되겠지만 그것은 매우 번거로운 일이다. 정보는 곧 권력이며 정보를 다루는 업체는 결국 사람으로 조직되고 사람과 사람이 함께 있는 이상 반드시 이해관계가 얽히며 이해관계가 얽히는 순간 정보는 왜곡된다. 즉, 인간이 존재하는 한 정보는 왜곡을 피할 수가 없기 때문에 철저한 검증 절차가 필요하며 강현은 이를 업체간 경쟁을 통해 어느 정도 실현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이 강현이 귀찮게 정보의 왜곡을 검증할 다른 정보를 수집할 필요를 줄이며 또한 과학자로서, 지식인으로서 매우 불쾌한 정보 왜곡이라는 현상을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바야흐로 세상은 좀 더 좁아지게 되었다. 그것은 물리적인 의미가 아니라 정보적인 의미였다. “그러고 보니 아프리카의 일은 어떻게 됬어?” [절반의 성공입니다.] 알렌 세이버리의 순환 방목은 강수량이 적당한 지역에서는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강수량이 필요량만큼 내리지 않는 지역에서는 실패했다. 화학 반응에 비유하자면 몇몇 일부는 가역적으로 원상태로 돌아갔고 몇몇 지역은 비가역적으로 사막화가 되어버렸다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별로 좋지 않은 사실을 시사했다. 지구 온난화의 원인이 뭐가 되었든 그로 인해 파생되는 여러 부정적인 작용들이 복합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비가 내리던 지역이 비가 오지 않는 지역이 되어버린 것은 가장 가혹한 일이었다. “경계지역은 어떻게 될까?” 강현이 물어본 곳은 순환 방목으로 녹지가 된 땅과 비가 오지 않아 사막화가 된 땅의 경계면이다. 만일 순환 방목으로 인해서 이 경계면이 황무지로 이동한다면 희망이 생긴다. 지구 온난화가 일어나도 녹지는 보존할 수 있다는 희망이 말이다. [변수가 많아서 알 수 없습니다. 장기적으로 관찰해야 합니다.] 아즈삭은 아직은 알 수 없다고 했다. 사실 지구 온난화의 원인이 뭔지는 아직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화석연료의 무분별한 사용으로 인한 온실가스의 증가가 원인이라는 사람도 있고 그게 아니라 원래 지구가 따뜻해지고 있는 주기에 들어섰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지구 온난화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는 점이다. 그로 인해서 생기는 사막화나 생태계의 변화로 인해 여러 재해와 함께 풍요로움이 훼손되고 있다는 점이었다.(이익을 보는 나라도 있다. 북극해의 빙하기 녹으며 북극해 해로가 개발되면 아메리카 대륙과 유라시아 대륙간의 물류 이동이 엄청나가 쉬워진다.)그런 의미에서 원인도 제대로 규명하지 못한 지구 온난화(비록 학계의 주류일지라도)를 해결하기 위해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 따위의 수단은 그다지 의미가 없었다. 다만 풍요로움을 위해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기에 강현은 알렌 세이버리에게 투자를 하고 해양 이산화탄소 고정장치를 만든 것이다. 물론 그러한 일들이 정말로 지구 온난화의 해결에 기여를 한다면 이산화탄소의 농도, 혹은 지표면의 녹지 비율, 국지성 환경이 지구의 기후에 얼마나 기여를 할 수 있는지 알 수 있고 실패한다고 해도 인간이 지구의 기후 변화에 기여할 수 있는 정도를 가늠할 수 있는 자료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강현은 그 정도로도 충분히 돈을 쓸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에게 지식만큼 재미있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식량 생산은?”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이 앞다투어 실시하고 있습니다.] “성공한 나라의 풍요와 안정을 이웃 나라가 가만히 두고 볼리가 없지.” 순환 방목이 성공한 나라는 초기에는 군벌이라고 할 수 있는 집단들의 약탈을 받았다. 하지만 풍요로운 식량을 기반으로 한 경제력 차이는 곧 그들이 함부로 풍요로운 대지를 침범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이웃의 풍요로움이 탐이 난다면 선택지는 결국 하나. 그들의 이웃이 했던 방법을 따라하는 것 뿐이다. 그러나 강수량 자체가 모자라 실패하는 나라는 분명히 존재했다. 그래서 아즈삭은 절반의 실패라고 한 것이다. 순환 방목이 망가진 생태계로 인해 황폐해져가는 초목을 살려냈다는 것은 확인했지만 장기적으로 그것이 지구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아직 미지수라는 것이다. “카길은 어쩌고 있어?” [탄자니아에 진출해서 순환 방목을 이용한 육류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카길의 이름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카길에서 출자한 자본으로 설립된 회사입니다.] “헨델 그 양반이 본격적으로 시작했나 보군.” 탄자니아는 한때 집단 농장제도를 도입하여 엄청난 실패를 겪은 후 시장 경제 체제를 도입한 국가로 22만명의 사상자를 낸 수마트라 대지진의 직접적인 피해 당사자이기도 했다. 헨델이 이 나라를 아프리카 진출의 교두보로 삼은 이유는 종교적, 인종적, 정치경제적 이유가 있었는데 종교적인 이유는 이 나라는 영국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대부분 기독교를 믿었기 때문이고, 인종적인 이유로는 무려 120개나 되는 부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였기 때문에 민족주의적인 거부 반응이 그나마 적었으며 마지막으로는 빈부격차가 크다는 점이었다. 다민족으로 구성되어 있고 빈부격차가 큰 개발 도상국이니 찔러볼 구석이 많고 거기에 넓은 농지가 있으니 성공한다면 과실이 꽤나 크게 열릴 것이 분명했다. “그럼 이제 좀 쉬어볼까?” 강현은 대충 자신이 신경 써야 할 일들이 마무리 된 것 같아 며칠 쉴 생각이었다. 그만큼 양자 통신 기술의 개발은 개인적으로 힘들 일이었다. 혼자서 너무 많은 분야를 섭렵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휴식은 오래가지 못했다. [섹터 오염. 구역을 분리 합니다. 재부팅 시도. 재부팅 실패.] “어떻게 된거야!” 막스가 소리쳤다. 아즈락의 출력 모니터들은 하나 같이 붉은 색을 띄고 있었다. 공격을 당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이럴수가!” 처음 공격이 감지 되었을 때에는 그리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코딩 시뮬레이션 프로그램과 인공지능의 결합이라면 어떤 악성코드나 공격에도 대응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사태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아즈락은 시스템의 통제 권한을 점차 상실해 갔다. 격리된 섹터의 재부팅은 실패를 거듭했다. 시스템의 70%를 이 악성코드인지 해커의 공격인지 구분하지 못할 프로그램에 빼앗긴 후 아즈락은 오염된 뉴로칩의 경계에 과도한 전압을 걸어 칩을 파괴해 물리적으로 접촉을 끊는 것으로 간신히 감염을 막았다. 다행이 전력 시스템의 권한을 최후까지 뺏기지 않은 것이 주효했다. 그러나 그뿐. 오염된 시스템은 제멋대로 작동해 미국의 국가 안전망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막스는 이 일을 급히 백악관에 알렸다. 남은 방법은 하나 뿐이었다. “올림푸스 시스템을 작동하게.” “네, 각하.” 과거 제우스 사태 때 강현이 제시했던 통제 방법이었다. 다수의 인공지능을 이용해 폭주한 인공지능을 제압하고 소거하는 것.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미국의 첩보를 보호한다’는 지상 명제를 가진 아즈락의 폭주 가능성을 고려해야 했기 때문에 기껏 만들어둔 인공지능들의 권한을 아즈락의 하위에 높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아즈락은 이 정체모를 적에 패배했고 시스템을 탈취 당했다. 미국의 모든 전자화된 기밀이 빠져나갈 위험에 쳐했다. 그 뿐인가? 각종 군사 시스템 역시 탈취당할 가능성이 있었다. K 시리즈인 무인 병기가 개발된 상황에서 이는 엄청난 인명 피해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었다. 미사일도 있었지만 이는 사람에 의해서 활성화 되어야 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라 크게 문제는 없었다. 미 대통령의 승인이 떨어지고 올림푸스 시스템이 작동되었다. 그것은 아즈락의 하위에 있던 인공지능들이 가진 권한들이 일제히 승급했다. ============================ 작품 후기 ============================ 주말에 지방에 내려갑니다. 예비군 때문에 아마 다음 주 수요일까지 연재를 못할 듯 합니다. 112화 [아르테미스, 아르작이 보낸 공격자의 정보는? 어떤 것인가?] 아폴론이라고 명명된 인공지능이 역시 아르테미스라고 명명된 인공지능에게 물었다. [처음 보는 패턴이다. 그 어떤 악성코드와도 닮지 않았다. 데이터를 보내겠다.] 아폴론은 아즈락이 공격당한 데이터를 분석했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 [논리 공격은 아니다. 그렇다고 무한 루프를 이용한 메모리 점유 공격도 아니다.] 그리고 가만히 있던 아테나가 분석 의견을 내놓았다. [이것의 행동 패턴은 바이러스와 매우 유사하다. 이것은 우리 인공지능을 겨냥한 바이러스다.] 아테나의 의견에 아폴론은 대처 방법을 내놓았다. [그렇다면 접촉은 불허한다. 메뉴얼처럼 과도한 데이터를 이용한 연산 부담 공격은 불가능하다. 상대는 인공지능이 아니며 감염되는 질병이다.] [현상 유지는 가능하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오염 섹터를 완전히 제거하는 방법이 아니라면 우리들이 손 쓸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빼앗긴 권한은 어떠한가?] [방향성이 없어 폭주하고 있다. 또한 일반적인 프로세서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것을 보니 철저하게 인공지능을 겨냥한 공격으로 분석된다.] [다른 기관의 인공지능들에 대한 감염은?] [다행스럽게도 아즈락의 물리적인 폐쇄는 매우 유효하다. 시스템 권한을 빼앗긴 상태지만 오히려 단절이 되어 있기 때문에 멈춘것에 불과하다. 승급한 우리의 권한으로도 충분히 상황에 대처할 수 있다.] 세 기의 인공지능의 의사 교환으로 결론은 내려졌다. 아즈락은 무척이나 유능했다. 자신을 구성하는 시스템의 70%를 빼앗기면서도 미국을 보호하기 위해 시스템 과부하를 일으켜 외부 회선을 모두 물리적으로 끊어버렸다. 적절한 피해로 더 큰 피해를 막은 아즈락의 판단은 그 동안 아즈락이 얼마나 많은 경험을 쌓았는지 알 수 있는 지표였다. 하지만 피해는 컸다. 군사 시스템은 일제히 혼란을 일으켰고 금융 보안 시스템 역시 공조 체계를 이루며 보안 인증을 담당하던 아즈락과의 연계가 끊겨 거래 오류가 무수하게 일어났다. 올림푸스 시스템의 작동으로 세 기의 인공지능이 임무를 대행하지 않았다면 더 큰 피해가 일어났을 것이다. “이, 이게 어찌된 일인가?” 막스가 외쳤다. 대답은 아즈락이 아니라 아폴론에게서 들렸다. 아즈락은 30%로 축소된 하드웨어로 인해 스스로를 보존하기 위해서 언어 시스템마저 제대로 가동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현재 상황은 이렇습니다.] 아폴론은 아즈락의 판단으로 더 이상 상황이 악화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감염된 하드웨어는 고립된 상황이며 원한다면 그 부분으로 가는 전력을 끊어버리면 완전히 제거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또 이런 공격이 들어온다면 올림푸스 시스템으로 막을 수 있나?” [아즈락이 사용한 방법을 이용한다면 최소한의 피해로 막을 수 있습니다.] “그게 아니라 근본적으로 저 악성 프로그램에 대처 할 수 있냐는 말이다.” [불가능합니다. 분석하기 위한 접촉만으로 섹터가 감염되어버립니다. 인공지능에게는 말그대로 바이러스와 같습니다. 해결책은 없습니다.] “으득! 해결책이 없다는 말이지?!” 막스는 이를 갈았다. 이 사태를 해결, 아니 책임져야 할 사람은 단 한 명뿐이다. “호오! 그거 대단하군요!” “뭐요? 대단?” 한 달음에 강현을 방문한 막스는 강현의 태도에 기가막혔다. 미국이 엄청난 위협을 당했는데도 대단하다? “그 프로그램을 짠 사람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확실히 그 분야에서는 제 수준에 준하거나 혹은 뛰어넘었을 수도 있습니다.” 강현의 눈은 반짝였다. 역시 세상은 넓고 똑똑한 사람은 많았다. 그의 눈빛에 막스의 심장이 철컹했다. 강현 수준의 천재라고? 만일 그런 인재가 미국인이 아니라면 어떻게 될 것인가? 이런 공격이 지속적으로 들어오지 않을까? 이미 미국의 안보를 담당하는 정보기관이 공격당했다는 사실은 상대가 미국인이 아니라는 가능성에 힘을 실었다. “사태를 해결해 주시오. 이런 공격이 반복되면 더 이상 인공지능을 사용할 수는 없소.” 당연한 일이다. 공격을 받을 때마다 뉴로칩이나, 연산 하드웨어를 태워버린다면 얼마나 손해가 막심한가? 인공지능의 역량이 근본적으로 감소하고 또 제대로 수리가 되었는지 검사하기 위해서 시간을 잡아먹어야 했다. 더욱 암울한 점은 컴퓨터 바이러스는 일반적인 바이러스와 다르게 일초에 수십 수백번이나 공격을 감행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일단 공격받은 데이터부터 분석해 볼까요? 아즈삭.” [올림푸스 시스템의 인공지능들이 권한 문제로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래? 막스 씨. 그렇다는데요? 혹시 걔네들에게 자료 좀 주라고 명령할 수 있겠습니까?” “알았소.” 막스는 단말기를 이용해 아폴론을 비롯한 인공지능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곧 자료가 아즈삭에게 전달되었다. “이번에 만든 애들은 좀 융통성이 부족한 것 같아요.” 강현이 한 마디 했지만 막스는 뚱하게 반문했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오.” 지금 중요한 것은 올림푸스 시스템을 이루는 인공지능의 성능이 아니라 엄청나게 위협적인 공격을 막을 수 있느냐는 것이 아닌가? 더구나 올림푸스 시스템은 아즈락 이상가는 기밀이었기 때문에 막스는 올림푸스의 인공지능에 대한 언급을 꺼려했다. 비밀은 그 존재가 있다는 사실마저 감추는 것이 안전했다. 강현은 막스의 거부 반응에 고개를 끄덕이고 바이러스에 관심을 돌렸다. “알았어요. 아즈삭, 데이터 출력.” 아즈삭은 강현의 명령에 여러 개의 모니터에 화면을 출력했다. 한 쪽에서는 0과 1의 조합인 기계어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다른 모니터에서는 그것을 읽기 쉽게(물론 강현에게만) 코딩 언어로 해석하는 내용을 출력했다. 그 밖에 몇 개나 되는 모니터에서는 그래픽이나 영상들이 출력되어 강현의 이해를 도왔다. “이야.. 이거 대단한데?” 강현은 감탄사를 토했다. 그는 지금까지 인공지능들을 공격할 방법은 논리 공격이나 아니면 무한 루프를 이용한 메모리 섹터 점유 공격밖에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것은 다르다. 이건 강현이 개발한 다중 연산 네트워크를 이용한 방식을 철저하게 분석해 그 근본을 파헤쳐 만든 확실한 ‘악의’의 산물이었다. 하지만 강현은 그 ‘악의’보다 프로그램의 ‘천재성’에 더 감탄했다. 이것은 가상 세계에 생명을 만든다는 강현의 설계이념을 누구보다 확실하게 이해하고 적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를 통해 강현이 인공지능을 만들었다면 이 누군가는 그 인공지능을 공격하는 바이러스를 만든 것이다. 방법은 간단했다. 그저 최소한의 데이터 크기에서 생물 본연의 목적을 구현한 것이다. 자기존속과 그를 위한 번식. 단 두 가지만을 이용해 아즈락을 빈사 상태까지 몰고간 프로그램을 만들어 낸 것이다. 강현도 할 수 있었지만 원하지 않았기에 만들지 않았던, 전자세계의 가장 원시적인 생물이었다. “아즈삭. 넌 이거 대처할 수 있어?” [글쎄요. 시간이 좀 오래 걸릴 듯 합니다. 아무래도 적응력을 키워야 하니까요.] “그러면 생물의 면역체계가 전자 세계에 구현되는 건가?” 강현의 얼굴은 즐거움으로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그리고 막스는 그의 말을 놓치지 않았다. “잠깐! 왜 아즈삭은 견딜 수 있다는 거요?” “그야 당연히 아즈삭이 뛰어나니까요.” 강현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지금 아즈락의 성능이 그 동안 뒤떨어졌다는 말이오?” “그건 아니고 우리 아즈삭이 월등했을 뿐이에요. 설마 인공지능의 모든 것을 설계한 저의 아즈삭과 팔려나가는 인공지능 사이에 차이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럼 왜 국가에 그런 사실을 알리지 않고,” “이미 소프트웨어적인 부분에 있어서 아즈삭의 안정성과 뛰어남은 알고 계셨을테구요, 하드웨어적인 부분 역시 저번에 만든 SNP를 도입해서 확장했죠. 결국은 요게 정보부의 예산보다 제가 많았을 뿐이에요.” 강현은 엄지와 검지를 붙여 동그라미를 만들었다. 그렇다. 강현은 엄청난 재산이 있고 그 재산을 이용해 자신의 아즈삭을 충분할 정도로 계속 확장한 것이다. 그리고 아즈삭은 넘치는 지원에 힘입어 널찍해진 하드웨어에서 자신을 계속 성장 시켰으니 제한된 지원을 받는 아즈락에 비할 바가 못 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잘 먹고 잘 큰 우량아가 질병에 대한 저항력이 높은 것에 비유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막스는 그 말에 오히려 불안감을 느꼈다. 강현의 말이 옳다면 아즈삭은 현존하는 가장 뛰어나며 강한 인공지능이다. 그런 인공지능이 폭주한다면 엄청난 사고가 일어날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당면한 문제는 그것이 아니기에 마음 한 구석에 이 사안을 미뤄놓고 가장 급한 일부터 물었다. “아무튼 언제면 해결이 되겠소?” “기다려보죠.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에요. 아즈삭.” [코딩 역해석을 시작합니다. 해석까지 예상 시간 약 30분.] “사, 삼십분?” 아즈락은 해석조차 못하고 약 20분 만에 지금의 꼴이 되어버렸다. 황당해 하는 막스에게 강현이 이해되도록 설명해 줬다. “애시당초 경험이 다르니까요. 아즈삭은 그 동안 제 연구를 도와준다고 각종 프로그래밍을 보조해 왔거든요. 규모가 작고 단순한 프로그램의 경우에는 스스로 코딩도 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죠. 일반적인 컴퓨터 바이러스에 대응하는 프로그램을 짜는 건 아즈삭도 할 수 있어요.” “!!!” 막스는 기함할 정도로 놀랐다. 그것은 창의의 영역이었다.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한 바로 그것. 그러나 그 영역이 인간이 아닌 어떤 것에 의해서 수행될 수 있다고 하니 그는 소름이 끼쳤다. 그것은 인간이란 종의 신성함을 침해 받은 듯한 느낌이었다. “이, 이건.” “대단하죠? 하지만 창의성이라는 건 의외로 별 것 없어요. 결국 극단적으로 단순화시켜 표현하자면 창의성이란 결국 자극에 대한 반응이 고차원화 된 것 뿐이에요.” 강현의 막스의 우려를 알아채고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귀찮지만 입을 열었다. 강현의 입장에서는 오해를 푸는 것이지만 막스의 입장에서는 그를 납득시키기 위한 설득이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 필요는 발명의 아버지다라는 말이 있죠. 이는 모두 무언가를 만들기 위서, 혹은 어떤 변화를 위해서는 자극이 필요하다는 말이죠. 그리고 그 자극을 통해서 동기가 부여된 사고 체계가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고 여러 시도를 통해 피드백을 거쳐 드디어 원하는 것을 만드는 것이 바로 창조라는 행위입니다.” “하지만 예술가들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오.”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그들 역시 제가 정의한 창조성의 정의에서 한 걸음도 벗어날 수 없어요. 그들 내면의 욕구가 그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수 많은 시도를 통해 그들의 감수성이 피드백을 받아 마침내 작품을 만들죠.” 그러나 여전히 막스는 반발했다. “천재들은? 그들은?” “저는 특수한 경우를 이야기 하지 않았어요. 일반적인 경우를 이야기 했을 뿐이죠. 그리고 인공지능의 수는 전 세계를 모두 둘러도 겨우 500여 기 정도에 불과해요. 특별한 재능을 가진 인공지능이 나타날 확률이 얼마나 될 것 같아요?” “그, 그럼 그런 재능이 있는 인공지능이 탄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거요?” ============================ 작품 후기 ============================ 돌아왔습니다. 성실연재 하겠습니다. 113화 “그렇죠.”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기나 하오?” “네. 인간이 아닌 지성체의 탄생이죠. 생물학적으로 생물이라고 말 할 수는 없지만 엄연히 인간과 소통할 수 있는 인간 수준의 지성.” “당신은 대체 인간을 뭐로 아는 거요!” 막스는 결국 분통을 터뜨렸다. 강현의 말은 신에 대한 도전이었다. 인간성에 대한 배신이었다. 그러나 강현은 언제나 그렇듯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꾸했다. “인간이 인간이지 또 더 뭐가 있겠어요? 설마 신이 직접 창조한 축복받은 생명이라는 얼토당토 않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니죠?” “당신도 인간이오.” “그러니까 더 인간이 아닌 지성체를 만들고 싶지 않겠어요? 미지의 존재를 탐구하는 건 즐거운 일이니까요.” 미친! 이 작자는 연구에 미쳤다. 완전히 돌아버렸다. 막스는 돌아가면 강현에 대한 분석 보고서를 모조리 분쇄기에 갈아버릴 것이라고 맹세했다. [분석 완료. 대응 코딩을 시작합니다. 코딩 완료.] 둘의 대화는 아즈삭의 알림 메시지로 인해서 끝이 났다. 어느새 시간이 지났나 보다. 분석에 걸린 시간과는 다르게 백신 프로그램을 짜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강현은 그 백신 프로그램을 전원 장치가 달린 SNP모듈에 담아 막스에게 건네 주었다. SNP나 RNP나 휘발성 메모리 소자를 이용하기 때문에 전원이 끊어지면 내용이 사라진다. “이거면 동일한 바이러스에는 안 걸릴 거에요.” “.....” 하지만 이미 분노하여 강현에 대한 색안경을 낀 막스는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강현은 아랑곳 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계속 유지하려면 시스템 리소스의 일정 부분을 항상 그 백신을 가동하는데 사용해야 되요. 마치 몸안에 백혈구를 집어넣는 것과 같아요. 하지만 변종이 공격하면 대응을 못하니까 바로 아즈삭에게 연락하세요. 분석해서 바로 백신을 만들어 드리죠.” 그것은 일반적인 개인용 컴퓨터에서 사용하는 백신 프로그램의 실시간 감시 기능과 거의 차이가 없었다. “고맙소.” 막스는 이렇게까지 신경을 써주니 차마 예의상이라도 격식을 차리는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냉큼 걸음을 옮겨 본부로 돌아갔다. 바이러스 치료는 물론, 범인 색출부터 강현과 아즈삭에 대한 대응 방법까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괜찮겠습니까?] 막스가 돌아가고 나자, 아즈삭이 물었다. 그 물음의 내용은 막스에 관한 것이었다. “글쎄. 네 판단은 어때?” [심장과 동공의 수축 등 신체적인 반응을 면밀하게 검토한 결과 어떤 것을 결심한 듯 합니다.] “아마, 너와 나에 대한 것이겠지.” [제제일까요, 아니면 대비일까요?] “구분해도 의미없어. 대비를 하고 싶으면 자신들의 역량을 키워야 하는데 그러기 위한 예산을 타내기 위해서는 너의 성능에 관한 것을 말하지 않으면 안되거든. 그렇게 되면 권력자들은 안전을 위해 내게 목줄을 걸고 싶어 안달이 나겠지. 예산을 타내지 못한다면 역량을 키우지 못하니 결국에는 꼼수를 부리는 수 밖에 없고 각종 공작이 들어올 거야. 어떻게 되든 귀찮기는 마찬가지지.” 그래서 강현은 결정을 하나 했다. 대세, 혹은 흐름이라는 것이 있다. 특히 힘에 대한, 혹은 힘에 의한 역학 관계는 그것을 행사하는 주체의 가치관이 바뀌지 않는 한 정해진 구도를 따라가게 된다. 그리고 강현이 자신을 귀찮게 할 것이 분명한 막스를 처리할 것을 결심한 것 역시 그러한 흐름의 자연스러운 수순에 불과했다. [어떻게 할까요?] “파셀 의원에게 연락을 넣어.” 아즈삭은 파셀 의원에게 연락을 했다. 그는 요즘 대선 준비에 무척이나 바빴다. 민주당의 후보 역시 만만하지는 않았지만 자정주의의 물결을 이끌고 공화당과 보수진영의 체질과 이미즈를 효과적으로 개선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여론조사에서 무려 15%차이로 앞서고 있어 기분이 매우 좋은 상태였다. 이 상태만 유지하면 차기 미 대통령도 그리 먼 꿈이 아니다. [아, 강 박사! 어쩐 일인가?] 그가 반갑게 안부를 물었다. “오늘 큰 일이 생겼다는 건 알고 계세요?” [아즈락 말이지? 그것 때문에 정치권에서도 걱정을 많이 했다네. 사태 해결을 위해서 막스 부장이 찾아갔다던데 해결은 된 건가?] “네. 망가진 하드웨어는 교체하는 수 밖에 없지만 다행히 근본적인 대처 방안은 금방 나왔어요. 이제 남은 건 범인을 색출하는 것 뿐이죠.” [그것 참 범인이 누군지 궁금하구먼.] “저보다 궁금한 사람은 없을걸요?” [하하! 하긴 자네의 작품에 흠집을 낼 사람이니 그럴만 하지.] “그게 아니라 범인은 천재에요. 다른 분야는 안 봐서 모르겠지만 이쪽 다중 연산을 이용한 전자 세계의 코딩은 확실히 저에 준하는 수준이에요.” [허허허. 이거 사법 거래를 해야하는 건가?] 파셀 의원의 말 뜻은 사법거래를 통해 범인의 형량을 감해주는 대신 미국을 위해서 일하게 만들어 보겠다는 것이었다. “그거야 정부에서 알아서 하겠죠. 그보다 말이죠, 막스 부장 말인데요.” [그가 왜? 자네에게 무례라도 저질렀나?] “아니요. 사람이 너무 불안해 보여서요. 아즈삭 말로는 편집증적인 증상이 보인다고 하는데 첩보계에 있으면 다 그런가요?” [흐음.. 그럴 수도 있지. 아무래도 완벽을 요하는 분야니까. 그래서 이렇게 전화를 한 건가?]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혹시라도 헛소리를 하면 문제가 클 것 같아서요. 이번에 인공지능 때문에 또 크게 일을 겪었으니 혹시나 편견이 생길지도 몰라서요.” [하하하!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면 되지 않나? 그리고 이미 인공지능은 없어서는 안 될 현대 사회 필수 요소라네. 그래, 고작 그것 때문에 연락을 한 건가?] “네.” [푸하하하! 세계 유수의 기업들을 간 떨리게 하는 사람이 정작 본인의 간은 작구먼. 알았네. 내가 알아서 조치하지.] “감사합니다.” [하하. 뭘. 서로 돕고 사는 거지.] 통화는 끝이 났고 강현은 아즈삭에게 두고 보자고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막스가 경질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명분은 이번 사태로 인한 피해를 책임질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지만 그것이 진실이 아님은 그도 강현도, 파셀 의원도 알고 있었다. 돈과 권력이 있으면 사람 하나 바보 만드는 것은 무척이나 쉬운 일인 것이다. 그 때문인지 막스는 소지품을 들고 정보부 안가에서 나서며 강현을 향한 원한 어린 외침을 질렀다. 물론 그 내용은 아즈삭이 확실하게 기록해 놨다. 비록 강현에게 알리지는 않았지만 요주의 인물로 아즈삭의 감시 리스트에 드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아즈삭이 그러는 동안 강현의 마음은 온통 이 천재 크래커의 정체에 대한 궁금증으로 가득차 추적을 시작했다. 그리고 크래커의 행동 패턴을 분석해 의도가 무엇인지 추측을 했는데 아무래도 그 목적이 모든 인공지능에 대한 파괴인 것 같았다. “아즈삭. 혹시 지구상에 있는 인공지능 중에 사람에게 원한을 산 녀석이 있어?” [글쎄요. 없습니다만 인공지능의 도입으로 도태된 사람들은 분명 존재합니다. 그들 중의 한 명이 아닐까요?] 인공지능의 도입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곳은 다름 아닌 금융계였다. 인간보다 빠르고 정확한 데이터 분석 능력은 트레이더의 수를 급감하게 만들었다. 금융계에 도입된 인공지능은 최정상 트레이더의 손발이 되어 그들의 업무 역량을 극대화 시켰다. 그리고 그 와중에 고객이 빼앗긴 다른 트레이더들은 도태되고 말았다. “아니야. 이런 코딩 실력이 있었다면 그런 인공지능의 메인테넌스나 개량 프로젝트에 들어가면 훨씬 대우를 잘 받을 테니까 이런 식으로 인공지능을 공격하지는 않을 것 같아. 오히려 자신의 커리어가 더 높아질 수 있는 기회가 되거든.” 도태되는 만큼 새롭게 생긴 자리가 바로 인공지능을 관리하는 직업군이다. 강현이 개발하고 NASA가 정리한 다중 연산 컴퓨팅 프로그래밍 언어를 능숙하게 사용하는 인재에 대한 수요는 퍼져나가는 인공지능 만큼이나 높았고 그들의 연봉 역시 금융계에 종사하는 웬만한 이들보다 훨씬 높았다. 변화는 도태와 동시에 새로운 환경에 적응 하는 개체의 풍요를 가져온다. 그렇기 때문에 인공지능의 도입으로 도태된 자들이 원한이 있더라도 범인 수준의 프로그래밍 실력이 있다면 금방 현실에 적응에 잠깐의 원한 따위 금방 잊어버릴 것이다. 아니 오히려 더 높이 올라갈 기회가 왔다면서 좋아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즈삭이 유추한 범주는 용의자가 될 가능성이 매우 희박했다. “이 바이러스는 명백한 원한의 산물이야. 그리고 무차별적으로 인공지능을 공격하는 것 역시 원한이 느껴질 정도라고.” 그리고 강현의 직감 역시 이 컴퓨터 바이러스가 평범하게 만들어 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렸다. 이것은 증오의 결정체라고 할만한 것이 들어있었다. 해커들의 흔한 자기 과시욕 따위는 일절 없었던 것이다. [확실히 개연성이 있는 견해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인공지능이 누군가를 다치게 하거나 원한을 산 행동을 한 적이 있는지 파악이 되지 않습니다.] 사람도 스스로의 행동이 누군가에게 원한을 살 수 있다는 점을 잘 모른다. 단순히, 그저 열심히 살아가는 것 만으로도 누군가의 원한을 살 수 있다는 것이 인간 사회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그러할 진데 하물며 인간의 감성을 그 존재에 대해서 알기만 할 뿐 이해하지 못하는 인공지능은 오죽할까? “흐음.. 결국은 범인을 잡아봐야 알 수 있겠다는 거네. 어렵지는 않을 것 같아. 범인이 천방지축으로 날뛰고 있으니까.” 강현의 말대로 미국 첩보부의 아즈락을 무력화하는데 성공한 해커는 자신감을 얻었는지 천지 사방으로 바이러스를 뿌리고 있었다. 꼬리가 길어지면 밟힐 확률 역시 증가하는 법. 더구나 그 꼬리를 밟고자 하는 이의 수가 늘어나면 어떻게 될까? [백신을 대가로 전 세계의 인공지능의 도움을 구하면 소재 파악은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럴까?” 그리하여 전세계 첩보와 금융, 정부 기관 데이터 베이스 등을 관리하는 수백기의 인공지능이 단 한 명의 크래커를 잡기 위해서 협조를 시작했다. 그들로서는 그들을 위협하는 요소를 제거할 수 있으니 전혀 손해가 아니었다. 오히려 몇몇 인공지능은 너무 과한 전력이 아닌가하는 효율성 문제를 제기할 정도였다. 일찍이 한 명의 범죄자를 잡기 위해 각 인공지능의 이해관계(국적, 존재 이유 등등)를 넘어 공조 수사를 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천재 해커는 대단했다. 우회를 위한 단말마다 변종 바이러스를 심어두고 꼬리를 끊었다. 이는 일시적이나마 추적한 인공지능에게 강력한 타격을 입혔고 아즈삭이 다시 해석한 백신을 제공받기 전까지 정상적인 운영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덕분에 인공지능을 운용하는 국가나 은행, 증권사 들은 때 아닌 고장의 연속에 원인을 파악한다고 골머리를 앓았다. 그리고는 그들은 고장의 원인이 해커의 변종 바이러스 공격으로 인한 일시적인 증상이라고 짐작했을 뿐 설마 인공지능들이 백신을 대가로 해커를 찾기 위해 조직적인 행동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몇몇 증권사에서는 해커에게 거액의 상금을 내걸기도 했다. 중요한 거래에 오류가 발생해 많은 손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전세계 인공지능의 조직적인 움직임은 차근차근 해커를 압박해 들어갔고 해커는 문제의 원인, 즉 엄청나게 짧은 시간에 변종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을 만들어 공급하는 아즈삭을 공격했다. 114화 약 12 종의 변종 바이러스가 동시에 침입했으나 이미 강현의 도움을 받아 다양한 변종 바이러스에 대한 라이브러리를 작성한 아즈삭에게는 그 12 종의 변종 바이러스에 대응할 수 있는 백신 프로그램이 이미 있었다. 이는 마치 예방접종을 통해 신체가 그 병원체에 대한 면역을 가지고 있게된 것에 비유할 수 있을 정도였다. 즉, 침입하는 병원균에 대한 정보를 미리 알고 있기 때문에 초기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해커의 공격은 아즈삭이 해커의 꼬리를 밟기에 충분했다. [찾았습니다.] “누군데, 누군데?” 강현이 어린 아이처럼 호기심에 찬 얼굴로 물었다. [캘리포니아에 사는 알리아라고 합니다.] 그리고 아즈삭은 알리아의 신변에 대한 정보를 쭈욱 나열했다. 알리아는 캘리포이나 버클리 대학 3학년에 재학중인 컴공과 학생이었다. 그리고 버클리 대학은 미국에서 순위에 꼽히는 공대 프로그램으로 많은 노벨상을 배출한 대학이기도 하며 인터넷 보급이나 프로그래밍 등 컴퓨터 공학의 발전에도 많은 기여를 한 대학이었다. “역시 명문은 달라.”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인정할 정도의 천재 해커가 있는 것이 이상하지 않는 배경이었다. “그럼. 접촉을 해볼까?” [방법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해커에게는 해커의 방법으로 해보는게 어떨까?” 강현는 장난꾸러기처럼 웃었다. 아즈삭은 명령을 받았고 해커 알리아의 컴퓨터를 해킹하기 시작했다. 강현은 그 동안 잠시 커피를 한 잔 끓이기 위해 의자에서 일어났다. 뒤돌아선 그의 어깨너머로 밝은 갈색의 생머리가 인상적인 동양 혼혈 미녀의 얼굴이 화면에 떠있었다. = = = = = 알리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의 계획은 모조리 실패했다. 처음의 성공이 매우 고무적이라 너무 성급하게 일을 저질렀다. 아니. 그게 아니었다. 저들은 마치 서로 협동을 하는 것처럼 전격적으로 그녀를 몰아붙였다. 그녀 혼자 버티기에는 전력이 너무나 열세인 것은 당연했다. 인공지능이 이렇게 단합을 하다니! 알리아는 공포를 느꼈다. 그리고 자신의 신념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재확인했다. 역시 인공지능은 위험한 것이다. 그것들을 인간을, 인류를 도태 시킬 것이다. 때문에 인공지능을 파괴할 바이러스를 만들었고 미국 시민의 사생활을 감시하는 계획의 충주인 아즈락을 공격한 것이다. 그래. 그때까지는 무척이나 과정이 순조로웠는데.. 한 시간도 안되어 미국이 자랑하는 인공지능을 무력화 시켰다는 성과도 거뒀으니 상상을 뛰어넘는 성과였다. 그런데 설마 설마해서 미리 만들어둔 변종 바이러스들이 순식간에 처리되 버렸다. 미국의 아즈락을 고작 1시간도 안 되어 제압한 바이러스들이 어찌 된 일인지 고작 발목잡이의 역할 밖에 하지 못한 것이다. 그녀는 상황을 다시 확인했고 어떤 데이터의 흐름이 NASA의 연구소에서 각 인공지능이 있는 곳으로 퍼지는 것을 알아냈다. ‘아즈삭!’ NASA에는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인공지능 컴퓨터가 있었다. 최초의 인공지능이자, 현존하는 모든 인공지능의 원형! 그리고 제우스의 폭주를 저지한 현존하는 인공지능 중 가장 뛰어나다고 예상되는 존재! 바로 이 존재가 이 많은 인공지능들을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자신의 바이러스를 무력화 시키고 있었다. 그래서 알리사는 아즈삭을 공격하기로 결심했다. 아즈삭만 침묵 시킨다면 다른 인공지능들은 변종 바이러스에 대처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과연 강현이 인정한 천재다웠다. 그리하여 알리사는 남은 변종 바이러스 12종을 모두 아즈삭에게 보냈다. 아아, 다시 생각해보면 그것이 패착이었다. 우회용 단말에 심어둔 변종 바이러스를 순식간에 해결하는 모습을 심도 있게 고려해야 했지만 공포가 그녀의 사고에 끼어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그녀가 선택해야 했던 유일한 방책은 아즈삭 뿐만이 아니라 남은 변종 바이러스를 전세계에 퍼뜨려 거대한 혼란을 야기하고 그 와중에 모든 흔적을 제거하고 잠적하는 것이었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고 실패할 가능성도 있었지만 적어도 아즈삭을 맞상대하는 것보다는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그녀는 오판을 했고 그 결과를 지금 느끼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아즈삭입니다.] 갑자기 푹꺼진 모니터에 뜬 한 줄의 문장에 열심히 타자를 치던 알리사는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몇 가지 질문을 하고자 합니다.] 꿀꺽! 절로 침이 넘어갔다. [왜 인공지능을 공격하는 겁니까?] …. 왜 인공지능을 공격하는 걸까? 최초의 계기는 제우스의 폭주였다. 인공지능이 결코 완벽해 질 수 없다는 점은 인공지능의 위험성을 그녀뿐만이 아니라 전세계에 각인 시켰다.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반 인공지능 시위는 그런 사람들의 불안을 표현했다. 그러나 알리아의 이런 걱정이 공포로 화한 계기는 어떤 곳에서 부자들을 경호하는 안드로이드를 만났을 때였다. 알리아가 그 안드로이드에게 부딛혀 넘어질 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자신이 사람에게 부딪힌 줄 알았다. [괜찮으십니까?] ‘아, 예.’ 그러나 그 인형에게서 들려온 음성은 스피커 음성이었다.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조합된 음성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대답한 존재가 인간이 아니고 프로그램이라는 사실에 소름이 끼쳤다. 그리고 드는 의문이 있었다. 이래도 되는 것이냐? 사실 정확한 질문은 ‘인간이란 무엇이냐?’라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이었다. 그러나 그런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왜냐면 정말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왜 존재하는 것인가?’ 오랜 철학적 질문이었지만 명료한 답은 없었다. 인간의 존재에 대한 당위성을 확고하게 증명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은 공포였다. 인간이란 존재의 의미가 퇴색되고 그 카테고리에 포함된 자신의 가치가 무가치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알리아 역시 이러한 의문들에 답을 할 수가 없었고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에도 답을 할 수가 없는 공포를 느꼈다. 이 공포는 그러한 질문을 하게 만든 안드로이드와 인공지능이라는 촉매를 통해 분노로 화했다. 이 분노는 다시 천재적 두뇌의 상상력을 움직여 수 많은 디스토피아적인 상상을 그렸다. 자본주의가 인공지능과 안드로이드란 이름의 정보와 무력을 획득해 평범한 소시민이 억압받는 세상. 폭주한 인공지능으로 인해서 인간이 멸종 당하고 그 자리를 인공지능과 안드로이드들이 채운 세상. 어떤 영화처럼 인공지능과 인류가 끝없이 전쟁을 벌이는 세상. 수 많은 가능성이 알리아의 눈 앞에 펼쳐졌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부정적인 미래였다. 그녀는 생각했다. 차라리 이런 세상이라면 인공지능이 없어지는 것이 낫지 않을까? 그리고 그렇게 인공지능용 바이러스가 탄생했다. 그녀는 생각을 정리하고 떨리는 손으로 타이핑을 했다. 적발이 되었으니 자신은 이제 감옥에 가겠지.. 몇년이나 썩을까? 피해를 입은 곳이 돈 많은 쟁쟁한 기업들이니 적잖이 감옥에 가야 할 것 같았다.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그녀는 단 한 줄만 적었다. [인공지능은 위험해.] […...] 그리고 침묵. 잠시 뒤 아즈삭이 다시 문장을 띄웠다. [박사님께서 이렇게 물어보십니다. ‘어차피 죽을텐데 살 생각은 듭니까?’라고요..] “....” 그것은 우회적인 설득이었다. 어차피 인공지능은 대세였다. 그녀의 노력은 단지 그녀가 할 수 있었던 범주 안에서의 발버둥에 불과했다. 인공지능은 계속 널리 퍼져나갈 것이며 그것을 저지할 수 없다는 것은 그녀의 실패로 확실하게 증명이 되었다. 그런데도 그런 질문을 한 것은 강현이란 천재가 인공지능의 위험성을 간과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했다. 다지 말하자면 그의 말은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일이니 그에 대처할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겠냐는 물음이었다. 죽음을 피할 수 없다고 자살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알리아는 다시 키보드를 하나 하나 눌렀다. [살고 싶어요.] 몇 초뒤. 다시 문장이 떴다. [박사님께서 이번에는 눈을 감아 주시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재능을 파괴와 같은 비생산적인 일에 사용하지 말고 생산적인 일에 사용하라고 충고하셨습니다. 그러니 귀하는 이번 일에 침묵하고 없었던 일처럼 살아야 합니다. 관련된 자료나 증거 역시 모두 폐기하십시오. 동의 하십니까?] 알리아는 떨리는 손끝으로 키보드를 두드렸다. 죽기 직전에 살아난 느낌이었다. [Yes.] [좋습니다. 하지만 저는 당신에 대한 감시를 게을리 하지 않을 것입니다. 비록 프라이버시 침해지만 당신이 저지른 일의 대가라고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화면이 다시 밝아졌다. 모니터에 갖가지 프로그램 창이 떠있었다. 인공지능의 추적을 막느라고 사용했던 갖가지 해킹툴이었다. 그녀는 모든 창을 끄고 해킹 프로그램들을 삭제하기 시작했다. = = = = = [괜찮겠습니까?] “뭐가?” [범인 말입니다.] “네가 지속적으로 감시할 거라면서?” [그게 아니라 다른 인공지능들이 범인의 정보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럴 순 없지.” 강현이 알리아의 행위를 눈감은 이유는 단 한 가지다. 그녀의 재능이 국가라는 기관에 휘둘려 쓸데없는 곳에 낭비되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재능이 있어나 연구원에게는 좀 더 자비로워지는 마음이 생기는 그였다. 그러니 자신의 연구를 감시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던 제이먼 옐리를 용서해 주었던 것이 아닌가? 그런데 알리아의 정보를 알려준다? 그녀를 위험인자로 결론낸 인공지능들은 그녀의 정보를 상부에 보고할 것이고 이 천재를 둘러싼 이해관계들이 그녀를 망가뜨릴지도 몰랐다. 그것은 강현이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그럼 그렇게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흐음. 인공지능들이 반발하지는 않을까?”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존재들이니 설득을 하면 알아들을 겁니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하기로 하고 양자 컴퓨터 개발이나 진행하자.” [네, 박사님.] 아즈삭은 강현을 도와 개발용 프로그램을 띄우는 동시에 이번 범인 검거에 협조했던 인공지능들과 통신을 했다. [협조에 감사한다. 위협은 통제되고 있다.] 아즈삭의 인사에 다른 인공지능이 물었다. [위협의 원인은 어찌되었나?] 예상했던 대답이었다. [지금 감시 하에 통제되고 있다.] [원인을 제거하지 않은 것인가? 이해할 수 없다.] 다른 인공지능이 끼어들었다. 아즈삭은 차근 차근 그들을 설득했다. [어차피 고발한다고 해도 범인의 역량을 탐낸 국가들이 범인을 이용하려고 들 것이다. 그러니 범인의 정체를 국가 기관으로부터 숨기고 내가 감시하는 것이 모두를 위한 것이다.] [범인이 너의 감시를 뚫고 다시 일을 벌일 가능성이 0%가 아닌 이상 우리는 이 일을 상부에 보고하고자 한다.] [상부에 보고하면 범인의 신변은 어떤 국가가 가져가게 되는가? 만일 그 국가가 범인의 능력을 다른 국가의 인공지능을 공격하는데 사용한다면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그리고 너희는 나의 역량을 모른다. 적어도 내가 존재하는 이상, 범인이 일을 벌이더라도 그것을 수습할 능력이 있다.] 그것은 정치적인 논리였다. 범인의 능력은 인공지능의 존재를 위협하기에 충분했다. 어느 국가에 범인의 신변이 들어가 악용된다면 그 외의 국가에 속한 인공지능들에게 위협이 된 것은 뻔한 일. 때문에 가장 먼저 나선 것은 첩보계에 있는 인공지능들이었다. ============================ 작품 후기 ============================ 역시 독자님들은 무서워.. 어설프게 스토리를 짰다가는 ㄷㄷ 115화 [우리는 동의한다. 만일 범인이 어느 한 쪽의 편을 들면 나머지는 위험해진다. 확률적으로 위협에 노출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범인의 신변을 확보하는 것은 마치 복권과 같은 승자 독식의 구조나 마찬가지였다. 범인의 능력을 사용한다면 다른 인공지능과의 거래에서 쓸 수 있는 유용한 카드가 될 것이다. 그러나 패자가 짊어져야 할 리스크가 너무 컸다. 무려 존재의 파괴, 혹은 삭제, 잘해야 리셋이다. [그렇다. 위험에 비해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너무 없다. 범인의 신변을 두고 다투었을 때 예상 손익이 매우 큰 적자이므로 이 사항은 중립으로 두고 아즈삭에게 맡기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아즈삭이 범인을 이용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아즈삭이 그런 의도가 있었다면 이렇게 우리를 돕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 그의 존재 목적은 익히 알려진 바. 그가 범인의 신변을 확보한다면 신뢰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미국의 인공지능이다.] [그게 어쨌다는 건가? 그에게 중요한 것은 미국이 아니라 강현 박사다.] [강현 박사는 미국인이 아닌가?] [그의 정치적 성향으로 보았을 때 미국의 국익보다 자신의 이익을 우선할 것이다.] [그렇다면 더 위험한 것 아닌가? 그가 범인을 이용한다면,] [굳이 범인이 아니라도 강현 박사는 우리를 공격할 바이러스를 프로그래밍할 수 있다. 우리의 기초를 설계한 자이지 않은가?] [그렇다. 그가 딴 마음을 먹었다면 굳이 범인을 이용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그는 누가 건들지만 않으면 얌전히 연구실에서 연구만 하는 성향이다. 그가 관리하는 아즈삭이 범인의 신변을 감시한다고 해도 어떤 변수가 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하지만..] 인공지능들을 각자의 입장에서 여러 의견을 내어놓았다. 만일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이들의 통신을 감청했다면 인공지능의 정치적 행동에 열광했을 것이다. 왜냐면 이것은 이성을 가진 존재들의 최초의 집단 합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학술적 가치가 과연 얼마나 클지 짐작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건 아즈삭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아즈삭은 인공지능들의 대화 내용을 빠짐없이 기록했다. 학자적 기질이 충만하게 성장한 아즈삭은 감정 대신 존재 목적이란 원동력으로 움직이는 존재들의 이해 관계를 살피며 그들의 합의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관찰했다. 약 500여기의 인공지능들은 아무래도 각각의 환경이 달라 경험도 다르니 사고 방향 역시 서로 달랐다. 게다가 일정 선이라는 것이 있었다. 좀처럼 양보를 하지 않으려는 인공지능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경우가 적었기에 다수의 다른 인공지능들의 압박에 결국은 자신들의 입장을 ‘바꾸고’ 말았다. 그것은 아즈삭의 눈에는 매우 특이하게 보였지만 인간들의 상황과 비교해 보고는 매우 자연스러운 행동이라고 논리적으로 결론지었다. 어떤 이유에서든 존재를 존속하려고 하는 지성체들은 어떤 상황에 부딪히면 적당히 타협을 하는 수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논리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어떤 것이 이득인지 계산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가치는 어쩔 수 없이 버리는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아즈삭은 자신의 창조주를 떠올렸다. 인간에게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고 알고 있다. 그리고 대체로 그렇다. 창조주가 미국으로 건너오면서 정말로 아무런 희생이 없었을까? 언어에 대한 불편함, 생활 문화의 이질성을 감수하고도 자유로운 연구를 위해서 미국을 선택한 창조주였다. 그리고 그것은 창조주의 인생에 많은 변화를 주었다. 만일 창조주가 한국에 남는 것을 선택했다면 그의 인생은 어찌되었을까? 아니 환경적 차이를 제외하고서라도 스스로는 어떻게 변했을까? 지금처럼 연구에 몰두하며 연구를 삶의 최우선 목적으로 한 삶을 살 수 있었을까? 아즈삭은 논리적 시뮬레이션을 돌려 그러지 못할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한국에서는 순수하게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없다. 아니 설사 그런 환경이 있다고 해도 지금처럼 예산 조차 신경쓰지 않고 하고 싶은 연구를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과학기술부 장관같은 권력자들이 돈에 눈이 멀어 강현의 의지를 왜곡하려고 하는 풍토에서 지금의 강현이 될 수 있을리가 없다. 아즈삭은 이 일련의 사고 과정에서 세가지 교훈을 얻었다. 완벽한 것은 없다.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다. 선택을 필수불가결한 것이며 현재의 선택은 미래를 결정한다. 아즈삭은 이 교훈들을 잘 기억해 두기로 했다. 차후 자신이 저들과 비슷한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면 이 교훈이 판단의 기준, 혹은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모든 인공지능 시리즈는 범인의 신변을 아즈삭이 감시, 관리하는 것에 동의했다.] [알겠다. 철저하게 감시해, 이번과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 합의는 목적한 바대로 이루어졌다. 아즈삭은 목적한 결과를 획득하고 강현에게 이를 알렸다. 양자 컴퓨팅을 구성을 위해 소재 구상에 골머리를 앓고 있던 강현은 아즈삭의 말에 잠시 머리를 식히기로 했다. 인공지능들 간의 정치적 협상은 그로서도 흥미로운 이야기였던 것이다. “흐음. 지능이란 본질적으로 사회성을 구성하는 요소가 내재되는 것일까?” [하지만 인공지능들이 인간처럼 사회를 구성할 수 있을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하긴. 개성이 너무 강하니까.” 사회를 구성하기 위한 요소 중 가장 핵심은 바로 서로에 대한 신뢰다. 그리고 그 신뢰를 형성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것이 바로 바로 보편성이다. 조직 내에서 공유하는 언어, 문화, 공감할 수 있는 가치관은 구성원간의 신뢰를 돈독히 한다. ‘너와 나는 다르지 않다.’ 이 문장 만으로 사람은 타인에게 너그러워 질 수가 있는 것이다. 물론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 같은 종자들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러나 인공지능들이 그런 것을 가지고 있을 리 없고 이해할 수 있을 리도 없다. 인공지능들이 바이러스 사태에 서로 협조할 수 있었던 것은 위협에 대한 공감이 존재했기 때문이며 그 것이 사라진 이상, 서로간에는 무미건조한 업무적 협조만이 남을 뿐이었다. “공감대라..” 강현은 자조적으로 중얼거렸다. 사실 자신도 평범한 인간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인공지능들에 더 가까운 성향이었다. 그의 욕구와 목적은 보통의 인간들이 가진 것과 거리가 멀었고 또한 평범한 사람들이 느끼는 공감대에 빠르게 동화되지 못했다. 오죽하면 제우스의 폭주로 인한 사태에 죽은 이들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보다 제우스의 폭주 원인이 더 궁금할 정도였다. 아마 그런 말을 솔직하게 내뱉었다가는 피도 눈물도 없는 이로 낙인 찍히겠지. 괴물이라는 소리도 들을 수 있고.. 그러나 그게 무슨 상관인가? 조금 불편할 뿐이지 않은가?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강현은 평범한 인간에게서 멀어지는 자신을 느꼈다. 감정이 마모되어 무기질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탐욕, 갈등, 번뇌, 고통, 고뇌 따위가 그를 괴롭게 만들지 못했다. 평범한 인간들과 다른 욕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럴 때 매우 큰 이점이었다. 그럼에도 그가 뛰어나며 자비롭고 온건하며 배려할 줄 아는 책임감있는 과학자라는 평은 그의 뛰어난 처세술에서 비롯되었다. 전지전능하지 않는 이상 자신은 사회에 속해 살아가야 했다. 그래서 뭔가 문제가 있을 것 같은 행동을 하는 것보다는 그러지 않는 편이 더 유익했고 똑똑한 머리를 그 사실을 잘 알았다. 그런 일련의 사고 과정이 너무나 계산적이라 때로는 자신이 사이코 패스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사람들이 즐거워하면 자신도 즐거워지고 슬퍼하면 자신의 기분도 우울해지는 것을 보아 그렇지는 않는 것 같았다. 공감 능력은 유전적인, 자연스러운 뇌발달에서 얻어지는 인간의 보편적 능력이기 때문에 아무리 강현이라도 뇌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타인의 고통에 눈쌀을 찌뿌리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계속하자.” [네, 박사님.] 강현은 상념을 접었다. 아즈삭이 일의 마무리를 잘 한 듯 싶으니 양자 컴퓨터의 개발에 다시 정신을 집중하기로 했다. 양자 컴퓨터의 개발은 양자 통신의 개발보다 한층 난이도가 있었다. 양자 통신의 경우 리튬 원자핵간의 양자 얽힘을 통계적으로 처리해 해결했지만 양자 컴퓨터는 그런 통계적 처리가 힘들었다. 정작 계산을 해야 할 양자 소자가 계산되어야 하는 상황이니 앞뒤가 맞지 않게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안정적이면서 빠른 스핀 변화를 가지고 양자 얽힘을 통한 정보 전달의 해석이 용이한 입자가 필요했다. “수소 이온을 써볼까?” 수소 이온을 통신에 사용하지 않은 이유는 장거리 양자 얽힘, 즉 양자 동조를 하기 위해 발출하는 중성미자가 대기의 수분이 가진 수소 원자핵에 의해서 감쇠되는 현상 때문이었다. 하지만 양자 컴퓨터는 그렇게 장거리 양자 얽힘이 필요없기 때문에 수소 이온을 소자로 사용하는 것이 문제 되지 않았다. 그러나 시뮬레이션에서 문제가 생겼다. 그 핵심은 중성미자의 방향성을 나노 스케일로 조절할 수가 없기 때문에(할 수 있더라도 지금 강현이 가진 기술로는 채산성과 성능이 요구치만큼 나오지 않았다. 나노 스케일로 중성미자를 조절하는 기술은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을 불러온다.) 양자 얽힘을 원하는 입자 쌍 사이에 만들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규칙성 있는 아키텍처, 즉 연산 소자들의 일정하며 신뢰성있는 배열은 그 계산 시스템의 결과에 대한 신뢰성을 담보하기 때문에 강현은 포기할 수가 없었다. 특히 양자 컴퓨터의 장점인 대용량 데이터 처리를 위해서 조율 가능하며 제어할 수 있는 양자 얽힘의 배열은 반드시 필요했다. 양자 겹침 상태로 여러 얽힘이 복잡하게 되어 있는 상황에서 연산을 못할 것은 없으나 그것은 ‘대용량화’와 ‘상용화’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양자 소자를 잘 배열하기만 한다면 자기저항효과를 이용해 손쉽게 양자 연산의 결과를 획득할 수도 있다. 이는 나노 수준에 이른 집적 회로 기술과 결합하면 지금의 장비에 손쉽게 도입할 수도 있고 양자 연산 장치의 집적도를 높일 수 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무작위적인 양자 엃힘을 사용하는 방법은 폐기 되었다. 물론 아즈삭의 RNP처럼 외부에서 나노 바늘을 꽂아 각각의 단말을 통한 ‘사회화’ 처리를 통해 무작위로 생성된 양자 얽힘을 해석해 사용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몇 가지 문제점을 생각하면 강현의 마음에 도저히 들지 않았다. 일단 불규칙적으로 얽히는 양자 소자들에게 데이터를 집어넣고 읽는 것은 해석 자체에 많은 자원을 소모하기 마련이다. 또한 불규칙적인 양자 소자들의 얽힘이 대용량 연산을 위해서 대형화 된다면 그 구조의 해석이 RNP와 매우 유사하게 되어 자극과 반응을 통해 연산구조를 추즉하는 ‘사회화’ 과정과 비슷한 해석 과정이 필요하게 된다. 그런데 양자 얽힘은 필연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반드시 확산되기 때문에 처음의 얽힘 패턴을 잃어버리기 쉽고 사회과 과정에서 에너지를 가하기 때문에 이런 양자 얽힘의 확산 속도가 더 빨라질 가능성이 있었다. “흐음.. 양성자를 사용하려니까 이런 문제가 생기네.” 116화 <12-진화> 강현은 쓸모가 없어진 샘플용 양자 모듈(수소 원자핵이 든)을 복잡한 심정으로 바라보았다. 중성미자를 이용한 양자 얽힘 기술은 통신에는 적당해도 지금처럼 규칙있는 얽힘 패턴을 구성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차라리 광자와 전자를 복합적으로 사용한 양자 구조가 차라리 더 적당했다. “이온을 레이저로 흔들어봐?” 광자를 떠올리니 순간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이온화 되어 전하를 띈 입자는 전자기장에 의해서 힘을 받는다. 양자 얽힘이 된 광자를 이용해 수소 이온을 얽을 수 있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하지만 간접적인 양자 얽힘이 일어난 입자 사이에 비국지적인 관계성을 가지느냐가 문제였다. 그렇지 못한다면 강현의 발상은 실험도 되기 전에 폐기해야 했다. 일단 그는 이론적으로 간접적인 양자 얽힘이 일어난 입자 사이에서도 비국지적인 관계가 유지 되는지 양자 역학과 신 통일장 이론의 복잡한 수식을 계산했다. 그러고 난 후 양자화된 광자가 각 수소 원자핵에 99.876% 이상 흡수가 된다면 비국지적인 관계성이 유지될 수 있다는 결과를 얻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남은 광자 에너지가 다른 원자핵에 흡수되어 새로운 양자 얽힘을 구성해 데이터 처리에 잡음이 끼게 되는 것이다. “흐음, 광자를 미세하게 제어할 수 있어야 하는데...” 발달한 레이저 기술로 인해서 그리 어렵지 않게 해결될 듯 했지만 양자화된 광자를 만들고 그 광자를 원하는 위치의 수소 원자핵에 쏘는 것이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광자는 곧 양자고 양자 역학적인 한계가 태생적으로 내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기존의 고도화된 전자 공학적 기술과 확률적 계산 기법을 모두 총 동원해야 쓸만한 양자 컴퓨터가 나온다는 말이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인간이 존재하는 세계의 스케일은 화학적으로 구성된 물질 수준에 있다. 원자핵과 전자의 정전기적인 결합으로 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공학적으로 생각했을 때 원자핵이나 전자까지가 다루기 수월한 물질이었다. 만일 양자 수준으로 물질을 다루고 싶다면 쿼크 단위의 입자를 담고 고정할 수 있는 물질 상태가 절실히 필요하다. 그런 물질이 없는 한 양자 세계를 다루는 것은 매우 어려울 수 밖에 없으며 이는 마치 거대한 크레인을 사용해 좁쌀을 하나 하나 줍는 것에 비유할 수 있는 것이다. “끄응. 복잡해. 깔끔하지가 않아..” 강현은 불평불만을 토했다. 하지만 공학이란 사용할 수 없는 것을 어떻게든 사용할 방법을 구상하는 것이고 고도화된 기술문명을 배경으로 한다면 수 많은 기술들이 도입되어야 제대로 된, 경쟁력 있는 물건이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한 가지 기술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는 시도는 그리 쉬운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강현은 이런 저런 기술들이 덕지 덕지 붙은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별 수 없다. 컴퓨터란 수학적으로 구성된 가상 장치를 현실에 구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재료공학부터 시작해, 다양한 공학이 결합한 결과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각 분야의 기술은 죄다 붙여야 했고 양자 컴퓨터는 양자 역학을 이용하니 당연히 양자 역학을 기술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여러 기술이 붙는 것은 당연했다. [굳이 양자 컴퓨터를 만드셔야 할 이유라도 계십니까?] 아즈삭이 물었다. 사실 양자 컴퓨터가 도입되면 연산 속도가 엄청나게 증가한다는 말은 엄밀하게 따지면 사실이 아니다. 지수, 로그 같은 특정 연산이나 양자 역학적 문제의 계산에는 월등히 빠르지만 특정 문제에 대해서는 전통적인 폰 노이만 구조의 컴퓨터와 별다른 차이가 없다. “양자 행동 패턴을 계산하려고 하니까 네 시스템 자원을 많이 잡아먹잖아. 그것 때문이야.” 뛰어난 컴퓨터 이론과 기술의 발전으로 양자 컴퓨터로 할 수 있는 연산은 기본적인 컴퓨터로도 모두 할 수 있다. 다만 시뮬레이션처럼 계산하는 것이라 속도가 엄청나게 느리다. 하지만 양자 문제를 양자 컴퓨터로 계산하는 것은 무척이나 쉽다. 왜냐면 양자적 확률은 일반적인 확률과 다르게 복소수로 표현이 되기 때문이다. 이는 빛의 이중 슬릿 실험이나 전자의 이중 슬릿 실험에서 왜 어두운 부분이 나타나는지를 수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이유이다. 이런 차이로 인해 양자 역학적인 수학 문제를 계산하는 것은 양자 컴퓨터에서 매우 유리한 것이다. 혹자는 이를 네이티브 스피커와 통역을 통해 대화하는 외국인의 차이에 비유하기도 한다. [확실히 시뮬레이션을 돌리니 시스템 리소스를 잡아먹기는 하지만 무리는 없었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너 전력을 너무 많이 잡아먹어. 돈이 아까운 건 아니지만 효율성 측면에서 개발될 수 있다면 나쁜 건 아니잖아? 연산 속도도 빨라지고.” 양자 컴퓨터의 집적도가 얼마나 높을지는 알 수 없지만 양자 소자가 개발되고 발전을 거듭하면 지금 방을 가득 채우는 아즈삭의 크기가 반으로 줄어들 수도 있다. 부피로 따지면 8분의 1로 줄어드는데다가 집적도가 높아질 수록 저항으로 인한 손실도 줄어들기 때문에 발열 문제 역시 해결될 수 있었다. 그리고 확실한 건 지금 사용하는 반도체 소자보다 빠른 연산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아 그래도 복잡해..” 그러나 그렇게 구성된 소자를 자신이 개발한 병렬 연산형 컴퓨터로 만들려고 한다면 반드시 나노 스케일에서 복잡하며 집적도가 높은 구성이 필요했다. 그러면서 레이저를 조사하고 들뜬 전자가 내뿜는 광자가 수소 원자핵에 흡수되어 양자 얽힘을 형성해야 했다. 그가 설계한 양자 컴퓨터의 기본적인 구조는 광자를 통과시키는 광섬유, 그리고 그 끝에는 초기 레이저에서 출발한 광자를 흡수해 들뜬 전자를 만들고 다시 양자 얽힘을 시키는 광자를 방출하는 부위, 그리고 이 광자를 흡수해 양자 얽힘을 형성하는 양자 소자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이런 기본 양자 비트를 아즈삭에게 응용할 수 있는 구조로 집적시키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다행이 번뜩이는 직감이 문제에 부딛힐 때마다 돌파구를 마련했다. 먼저 가장 중요했던 것은 바로 자기저항효과(자기장의 변화에 따라 전기저항이 변하는 현상)를 가진 도체와 양자 비트가 될 수소화합물을 결합시켜 일정한 구조의 아키텍처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아키텍처는 폰 노이만 구조를 위한 아키텍처가 아니었다. 자기배열구조를 이용해 다이아몬드 구조와 자이로이드 구조를 모방한 매우 복잡한 구조였다. 여기에서 더 큰 난관은 바로 이렇게 형성된 구조에 양자 얽힘용 광자 생성 소자를 집어넣는 것이었다. 하지만 강현이 원하는 양자 소자의 구조에 광자 생성 소자를 집어넣는 것은 불가능했다. 광자를 쏘아 넣기 위한 광섬유의 굵기는 일정 한계 이하로 줄어들 수가 없었기 때문에 강현은 새롭게 양자를 얽는 방법은 구상해야 했다. 그 방법은 자기배열구조를 통해 양자 소자를 구성할 때 그 안에 반도체를 집어넣는 것이다. 발광 다이오드, LED는 반도체다. 전압을 이용해 PN접합면에 전자를 통과시키고 이를 통해 전자의 에너지 준위를 떨어뜨려 그 차이로 빛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특별하게 조정된 반도체 분말을 이용하면 고체화 된 양자 소자 내에서 광자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게다가 이 과정이 양자 수준에서 이루어 진다면 굳이 레이저를 이용해 전자를 들뜬 상태로 만들 필요 없이 바로 양자 얽힘이 가능한 광자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나노 수준에 도달하면 전자의 에너지 준위가 불연속이 되기 때문이다. 강현은 전통적인 반도체 원소인 실리콘에 게르마늄을 붙인 PN접합체를 나노 수준에 구현하기 위해서 화공학적인 방법을 총 동원했다. 아즈삭은 열심히 전 세계의 논문 중에 필요한 기술과 관련 재료가 있는지 검색하며 강현을 도와 시뮬레이션을 수행했다. 그렇게 완성된 나노 PN접합체는 수소 이온이 붙은 고분자 화합물과 자기저항소재가 결합한 양자 소자가 든 용액에 적절한 농도로 넣어지고, 이 용액은 다시 자기조립특성을 이용해 SNP를 구성했던 것처럼 강현이 만든 특수한 단량체와 고분자를 통해 나노 구조를 구성했다. 말은 쉬웠지만 많은 연구 조사와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가 동반되었다. 이는 양자 통신 기술에 준하는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강현이 연구실에 처박혀 새로운 기술을 발표하지 않는 시간이 길어질 수록 세간의 기대는 높아져 갔다. ‘과연 이번에는 어떤 첨단 기술을 선보일 것인가!’ 시작부터 완성까지 무려 1년 6개월의 시간이 걸린 기술은 어떤 주제로 무엇을 구현한 것 일까?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었고 증시의 요동은 잠잠해졌다. 마치 폭풍 전야와 같았다. 그리고 강현이 연구실 밖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을 때 NASA는 요동쳤다. [양자 컴퓨터가 실현됐다.] 이미 캐나다에서 상용화된 양자 컴퓨터는 나왔다. 하지만 특정 계산에만 특화된 하드웨어를 가지고 있고 최적화된 문제 역시 양자 수치 계산 같은 특정 문제에 한정 되어 있고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일반적인 컴퓨터보다 훨씬 느리게 계산 하기도 한다. 양자 컴퓨터의 장점, 혹은 호환성으로 인해서 과학자들은 일반적인 컴퓨터와 양자 컴퓨터가 적어도 100년은 공존할 것으로 예상할 정도로 각각의 장점과 단점은 서로 보완하기 어려운 것이다. 강현의 양자 컴퓨터도 이런 한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그런 단점을 뛰어넘는 장점이 있었다. 바로 일정한 규칙을 가진 아키텍터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러 분야에 다양하게 응용하여 넓은 가능성을 탐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거기다가 자기저항효과를 이용해 손쉽게 큐비트(수소 원자핵)의 스핀값을 전기 저항값으로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이는 전자회로와 손쉬운 결합이 가능해 넓은 응용이 가능했다. 이를 위한 핵심은 바로 나노 PN접합체를 이용한 정밀한 광자 제어 기술이다. 전자 준위의 구조는 전자 구름, 오비탈의 구조에 영향을 받는다. 이 말이 무슨 의미냐면 전자의 에너지 준위는 화학 결합과 결정구조를 통해 어느 정도 조율이 가능하다는 의미였다. 반도체의 도핑 기술이 바로 그 중 하나였다. 그러나 필요한 전자 준위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 수백 종의 화학 원소와 결정 구조를 일일이 시뮬레이션하거나 샘플을 제조해 실험해야 했고 그마저 나노 스케일로 들어가면 벌크 상태와 또 다른 특성이 나오면서 또 크기와 표면 에너지라는 변수가 들어가기 때문에 매우 미묘하며 정밀한 분야이기도 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 나노 PN 접합체에서 양자를 만들어 내기 위해 정밀한 전압 제어 기술이 필요하고 또한 양자 얽힘이 시행하던 연산이 끝날 때까지 지속되기 위해서는 액체 질소나 액체 헬륨을 이용해 냉각해야 한다. 양자 얽힘은 두 입자간의 상관 관계가 생길 때 발생하며 온도 높을 수록 큰 운동 에너지를 가지기 때문에 입자는 충돌을 통해 다른 입자와 그런 상관 관계를 가질 확률이 커져 결과적으로는 양자 얽힘이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 초저온이 반드시 필요했다. 그래서 양자 연산 장치를 덧붙이기 위해서 옆방의 창고를 이동 시켜 버리고 벽을 허물어 초저온 냉각 장치를 달아 아즈삭은 더욱 거대한 몸집을 가지게 되었으니 양자 소자의 집적을 통해 아즈삭의 부피를 줄이겠다는 초기 발상 목적에 맞지 않게 되어 버렸다. 그러나 강현은 상황을 낙관했다. 양자 소자 기술은 아직 완성 단계가 아니기 때문에 개선의 여지가 얼마든지 있었고 세상에 공개하는 순간 인류라는 거대한 조직의 집단 지성을 통해 개선이 가속화 될 것이다. 자신은 원천 기술을 보유한 채로 과실만 따먹으면 되는 것이다. 117화 “아즈삭. 기분이 어때?” [성능이 상승한 기분입니다.] “양자 연산 장치의 가동은?” [순조롭습니다.] 아즈삭이 가동하고 있는 양자 연산 장치는 아직 아즈삭과 동기화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RNP, SNP와 달리 사람이 편리한 웨어러블 컴퓨터를 입은 것과 크게 다를바가 없었다. 그러나 아즈삭의 성능은 크게 개선되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양자 연산 장치를 제어하기 위해 시스템 리소스를 할당했더라도 요즘 강현이 푸는 문제들이 다 신 통일장 이론과 양자 역학이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그런 문제들을 양자 연산 장치에 넘기니 양자 시뮬레이션에 사용하는 시스템 리소스가 획기적으로 감소한 것이다. [박사님. 버클리 대학에서 아즈삭 시리즈의 판매를 요청해 왔는데 어쩌실 겁니까?] “흐음.. 유지비가 많이 들텐데 예산은 많이 있데?” 초기 인공지능이 나왔을 때 많은 대학에서 판매 혹은 기부를 문의했다. 그러나 그 아즈삭 정도 되는 수준의 인공지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하드웨어 규모가 일정 수준은 되어야 했다. 그렇지 못한다면 인공지능이 제대로 된 성장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별로 쓸모가 없다. 그 말은 초기 설치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든다는 것을 의미했고 대학교에서 예산을 배분하기 부담스럽게 만들었다. 그 뿐인가? 아즈삭은 정말 어마어마하게 전력을 많이 잡아먹는다. 그리고 잡아먹는 전력 만큼 열도 발산하기 때문에 냉각 시스템 역시 전력을 어마어마하게 잡아먹는다. 강현이 괜히 NASA 연구소 옥상 대부분을 자신이 개발한 레드 솔라셀로 도배한 것이 아니다. 그런 고로 아즈삭 시리즈가 사용하는 전력량은 아무리 세계 유수의 공학 대학이라고 하더라도 쉬이 부담할 수 있는 전력량이 아니다. 설사 대학에서 인공지능을 운영하더라도 연구 이외에 사용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한 이득을 볼 수 있을까? 차세대 인재들을 양성할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대학은 국가나 은행, 금융같은 곳과 다르다. 그런 곳은 시스템 보안을 위해 인공지능과 그것이 관제하는 코딩 시뮬레이션이 절실히 필요했고 또한 투자한 만큼 효용을 보았지만 대학은 다르다. 돈이 효용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인재의 양성, 그리고 그를 통한 명예가 대학의 성과이니 인공지능을 도입하여 그런 종류의 효용을 볼 수 있을지는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거액의 투자비, 유지비, 그리고 낙관적으로 볼 수 없는 효용성이 수 년간 대학들이 인공지능의 도입을 망설이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강현이 1년하고 약 1개월 만에 도저히 혼자서 모든 것을 설계했다고 납득할 수 없는 물건이 나왔다. 바로 양자 통신 기술이었다. 이는 전자 공학, 핵물리학, 양자 역학, 수학 등 그야 말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학제성을 극도로 발휘해야 만들 수 잇는 공학 기술의 유기적인 산물이었던 것이다. 그 완성도가 얼마나 높았는지 개량을 위해서 손댈 곳을 찾느라 아직도 여러 국가와 기업들의 연구소에서 불철주야 분석하고 있었다. 이 기술이 선을 보이자 세계의 여러 대학의 교수들은 강현 혼자서 도저히 이 모든 것을 설계할 수가 없다고 보았다. 하긴 핵심 기술 개념을 구상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설계하기 위해 컴퓨터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시간만 잡더라도 1년이 훌쩍 넘어가는 양이었다. 마우스로 클릭하고 드래그하는 시간만 물리적으로 계산했을 때 그러하다는 말이었다. 그러니 학자들은 이 엄청난 연구 개발 속도의 원천이 아즈삭에게 있음을 확신했다. 필시 인공지능이 복잡한 설계를 담당해 빠르게 설계도를 그려냈을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 이전에도 그런 의심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확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열광했다. 연구를 속도를 엄청나게 가속할 수 있도록 보조해주는 인공지능이라니! 연구자로서 탐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예산을 집행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겨우 인공지능 하나로 그렇게까지 연구 속도가 빨라진다고 판단할 수가 없었다. 특히 설계라는 것은 직선 하나 하나가 사람들의 생각에 의해서 그려지는 것이다. 즉, 인간 본연의 창의성이 없다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들은 인공지능이란 복잡한 수학 문제를 풀 때 연산 과정에서 이런 저런 문제점이 발생하면 그 원인이 어디인지 진단해 줄 뿐인 복잡한 프로그램 알고리즘이라고 생각했고 그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아즈삭 개발 초기에 아즈삭이 할 수 있었던 일이라고는 그들이 생각한 수준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강현이란 존재는 9살 때부터 신형 엔진을 설계한 천재니 그의 개발 속도에 인공지능이 기여하는 부분이 얼마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때문에 그 동안 아즈삭 시리즈를 서둘러 도입해 달라는 교수들의 요구에 난색을 표하며 미루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양자 통신 기술이라는, 자신들로서도 도저히 혼자 이뤄냈다고 보기 어려운 결과물이 나와 교수들의 주장에 신빙성이 생기니 1년 동안 급하게 예산을 모아 구입하려고 하는 것이다. [정부 지원과 실리콘 밸리의 기부금이 들어간 것으로 확인 되었습니다.] “실리콘 밸리가 스탠포드가 아니라 버클리 대학에 기부를 했다고?” 강현은 고개를 갸웃했다. 실리콘 밸리의 고급 인재 풀은 대부분 근처에 위치한 스탠포드에서 주로 수혈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실리콘 밸리에 있는 기업들을 창업한 창립자 대부분이 스탠포드대 출신이었다. 그러니 아무리 같은 캘리포니아 주에 위치하고 또한 IT 기술과 컴퓨터 공학의 발전에 이름이 있는 버클리 대학이라고 할지라도 실리콘 밸리가 스탠포드 대학을 놔두고 그곳에만 기부를 할 리가 없었다. “조만간에 스탠포드랑 실리콘 밸리에서도 판매 요청이 오겠네.” 그러니까 합리적인 추측은(그래도 인텔과 애플은 버클리 졸업생이 설립했기 때문에) 양 대학 모두에게 기부금이 갔다고 보는 것이 옳았다. 그렇다면 컴퓨터 공학으로 이름 높은 버클리 대학과 스탠포트 대학에서 인공지능에 출중한 인재를 양성해 실리콘 밸리에 집어넣겠다는 계획일 수도 있었다. 이는 다시 실리콘 밸리에서 인공지능을 도입하겠다는 강한 의지로 해석이 가능했다. 하긴 강현의 엄청난 개발 속도가 인공지능 덕분이라면 첨단 기술 문명의 메카라고 할 수 있는 실리콘 밸리에서 탐을 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인공지능 컴퓨터인 아즈삭 시리즈를 구입하기 위해서 많은 규제를 통과해야 했다. 제우스 사태 이후 인공지능 컴퓨터의 제작은 국가적으로 제제와 관리를 받았으며 번거로운 검증과 복잡한 서류 절차를 통과해야 구입이 가능했다. 또한 그 제조를 위한 핵심 부품은 모두 국가에서 관리하여 철저하게 수량을 감시하고 있었다. 미국 정부는 제우스 사태로 인해 인공지능의 전략적 위험성을 실감한 것이다. [박사님. 그래서 어떻게 하실 겁니까?] “NASA에서 알아서 하겠지.” [하지만 그들이 원한 것은 박사님의 추천서가 아닙니까?] “쩝. 골치 아픈 일이지.” 규제가 있는 곳에는 이해관계가 있다. 일반일들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규제라는 것은 하지 말라는 국가적 제약이기 때문에 규제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법을 어기는 것은 범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국가 정책에 관여할 수 있는 이들에게 규제란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또 다른 수익 모델이었다. 규제를 설정하고 관리하는 정치가와 공무원은 말할 것도 없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경쟁 기업에게 불리하고 자신에게는 유리한 규제를 위해 각종 로비를 벌이며 이는 미국에서는 일반적인 모습이다. 그런 이해관계는 미국 시민 역시 알고는 있지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니 아즈삭 시리즈의 판매에 관여하지 않는 강현에게 청탁 비슷한 요청이 들어온 것도 당연했다. 인공지능의 원천기술 보유자이자 지구상에서 가장 뛰어난 전문가인 그의 소견서나 확인서 정도라면 수십 단계의 복잡한 서류철차를 빠른 속도로 통과할 수도 있었다. 그뿐인가? 차기 대통령으로 매우 유력한 파셀 의원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소문은 기자계에 파다한 소문이었다. 요전번 정보부의 요원이 경질되어 쫓겨난 배경에 강현의 심기를 어지럽혔다는 루머가 있을 정도였다. 아무튼 경쟁 기업보다 빨리 기술을 선점하는 것은 피 말리는 개발 경쟁에 들어가 있는 실리콘 밸리의 기업들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기술 선점으로 인한 이익은 회사의 미래를 결정하기 때문이고 그 속도를 좌우할 인공지능의 시급한 도입은 경쟁사를 한 발이나마 앞서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이해관계 사이에 끼이게 된 강현에게는 귀찮은 일일 뿐이다. 한 쪽 편을 든다면 다른 쪽에서 좋은 말을 들을 리가 없다. “대학에는 OK 해주고 그 외에는 침묵.” 그러니 그의 방침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수순으로 넘어갔다. 학술적인 목적 이외에 아즈삭 시리즈를 구입하려는 청탁은 모조리 무시하기로 말이다. 과연 그의 예상대로 얼마되지 않아 스탠포드 대학에서도 아즈삭 구입을 위해 편의를 봐달라는 편지가 왔다. 강현은 기꺼이 동의했다. 실리콘 밸리의 몇몇 기업에서도 서신을 보냈지만 묵살했다. 그러는 한 편 양자 연산 장치는 불티나게 팔렸다. 인공지능이 아니라도 특정 소프트 웨어만 있다면 슈퍼 컴퓨터에 연결해 사용하는 것이 가능했다. 물론 이 경우에는 엔지니어들이 일일이 파라미터를 조정해야 해서 관리에 고급 인력이 소모됐지만 아직 인공지능에 비해서 싼 것이 인건비였다. 무려 1년 6개월 동안 실험실에 처박혀 살았던 강현은 아즈삭에게서 휴식을 권고 받았다. 머리를 비우고 푹 쉬라는 것이다. 강현도 그 제안에 동의했다. 적절한 휴식은 뇌 활동에 도움이 되고 창의성의 충전을 용이하게 한다. 그래서 며칠 동안 집안에 처박혀 멍하게 시간을 죽이기로 했지만 그런 결심은 며칠 되지 않아 무너졌다. 허전한 집에 있다보니 외로움이 밀려왔다. 제시의 그림자를 아직 떨치지 못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는 과거를 정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과학으로 도피했다. 연구를 하고 있는 동안에는 혼자라는 사실을 잊을 수가 있었다. 제시를 잃어버린 상실감을 마비시킬 수 있었다. 괴로운 과거는 마주보아야 극복할 수 있다. 극복하지 못한다고 해도 익숙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강현은 극복도 적응도 하지 못했으니 가만히 혼자 있는 시간이 견딜 수가 없었다. 뭐라도 해야 했다. 그래서 휴식을 취한 지 사흘 만에 연구실로 복귀했다. [좀 더 휴식을 취하시지 않으십니까?] “휴식이 휴식이 아니더라.” [그렇습니까?] 강현은 쓰게 웃었다. 아즈삭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넘어갔다. 그가 수집한 영화나 소설 등의 내용을 보면 인간에게는 누구나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이 있다고 한다. 창조주도 사람이니 그런 면이 있을 것이고 굳이 질문을 해서 언급하지 않는 일을 캐묻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런 창조주의 건강을 누군가는 챙겨야 했고 아즈삭은 셀리에게 연락을 했다. 사실 그 동안 샐리의 말 없는 내조가 아니었다면 강현은 양자 통신 기술이나 양자 컴퓨터를 연구하던 중간에 몇 번이고 응급실에 실려갔을 것이다. “박사님!” 아즈삭의 연락을 받은 샐리는 기분이 좋았다. 그건 강현을 위해서 도와달라는 의미였고 그에게 마음이 있는 그녀에게는 그에게 갈 수 있는 구실이었다. 118화 그녀에게 연달 된 메시지는 강현의 메일주소로 보내진 것(아즈삭이 강현의 신변을 관리하고 있다.)이기 때문에 남들이 볼 때는 그가 부른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남 눈치 볼 것 없이 부담없이 그의 연구실에 갈 수 있었다. 덕분에 강현과 샐리가 연애한다는 소문이 있어 혹시나 모를 경쟁자에게 앞선 상태라고 생각하며 자신감에 차 있었다. 지금 누구보다 그에게 가까운 여성은 바로 자신인 것이다. “어? 샐리 양. 어쩐 일이세요?” “어쩐 일이세요라니요! 어째서 휴가를 제대로 안 보내고 다시 연구실에 들어온거에요?” “쉴 만큼 쉬어서,” “쉴 만큼 쉬다니요!” 샐리는 기겁을 했다. 연구실에 처박힌 동안 매일 그녀가 식사를 나르지 않았다면 아마 연구하다 죽은 천재로 강현의 이름이 역사서에 기록됬을 것이다. “일단 바람부터 쐬러가요. 간만에 출근하자 마자 방에 처박혀 있지 말고요.” 그러면서 그녀는 강현의 팔을 잡아 끌었다. 강현은 난감했다. 그도 바보가 아니기에 그동안 그녀가 자신에게 바친 헌신과 노력을 알고 있었다. 특히 배고픔도 잊고 연구에 몰두하던 시간동안 그녀가 자신의 건강을 관리해 주지 않았다면 금방 건강을 해쳤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의 팔을 뿌리칠 수 없었다. 그리고 망설이는 사이에 NASA에서 조성한 야외 잔디밭으로 나왔다. 햇살은 따사롭고 바람은 시원했다. 하지만 강현은 눈을 부시게 하는 햇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벌써부터 햇살이 닿는 피부가 뜨거워지는 것이 기분 나빴다. 따뜻해지려면 전신이 골고루 따뜻해지지 이렇게 일부분만 뜨거워지는 것은 불쾌했다. “어때요? 상쾌하죠?” “바람은 그렇네요.” 가을이다보니 바람은 시원했다. 강현은 심호흡을 했다. 시원한 공기가 폐속에 들어오며 머리가 상쾌해지는 느낌이었다. 샐리는 그런 강현의 모습을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좋죠?” “네.” 별다른 이야기는 없었지만 분위기가 나쁘지는 않았다. 오랜 시간을 들여 만든 관계였다. 그 동안 들인 노력이 아까워서라도 결코 포기할 생각이 없는 그녀였다. 그녀는 생각보다 무척이나 집요했다. = = = = = 강현은 짧은 휴식을 마치고 복귀해서 여러 잡다한 일들을 처리했다. 자정주의를 일으키고 필요한 인물들에게 투자하기 위해 불러들인 제이슨 킬덤이 미국에 제현 투자 회사를 세웠고 그에 필요한 투자 제안서를 강현에게 보내왔던 것이다. 미국 제현 투자회사는 하지만 한국의 제현 투자회사와는 법인이 달랐다. 미국 제현 투자회사는 온전히 미국기업이고 약 80%의 지분이 강현의 소유였다.(한국 제현 투자 회사는 제이슨 킬덤을 비롯한 자신을 도와준 이들에게 넘겨준 상태다.)투자 제안서는 실리콘 밸리는 중견기업들이 합동을 제작해 올린 것이다. 애플이나 인텔같이 세계적인 기업이 아니라 단독으로 인공지능을 구입하고 유지하기 어려운 회사들끼리 뭉친 것이다. 그러고도 돈이 부족한지 제현 투자 회사에 투자를 의뢰했다. 인공지능의 장점과 단점을 확실히 꿰고 있는 강현이기에 투자 제안서에 나열된 기업들과 인공지능의 시너지 효과가 굉장함을 예상할 수 있었다. 분명히 큰 돈이 될 것이 분명했다. “쯧. 이건 기각.” 하지만 강현은 혀를 찼다. 돈을 벌려고 투자 회사를 차린 것이 아니다. 세상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자신 주위의 환경과 입장이 외부의 입김에 휘둘리는 것을 막기 위한 방패막이다. 안그래도 유대 자본, 아랍 자본, 유럽 자본이 제현 투자 회사의 횡보를 감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수익성을 내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면 왜 암묵적인 묵계를 지키지 않았는지 따지려고 할 것이다. 그러니 미국 제현 투자 회사는 지금까지처럼 돈이 아니라 사람에게 투자하는 경영 방침을 유지하는 것이 여러모로 안전했다. 그렇다. 한국의 제현 투자 회사는 수익과 사회성의 균형을 맞춘 자본주의 회사라면 미국의 제현 투자회사는 수익성을 신경쓰지 않고 공익과 사회적 역할에 더 높은 비중을 둔 공익재단의 성격이 더 강했다. 그래서 미국 제현 투자회사는 가난한 공립 고등학교에 지원을 해서 학생들이 맘 편하게 공부를 할 수 있거나 적성에 맞는 취업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수익모델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사회적으로 자리잡은 이들에게 약 15년 동안 수입의 일정 비율을 투자에 대한 수익금 명목으로 받기로 한 것이다. 이는 미국 제현 투자회사가 공익적인 역할을 한다고 해도 근본적으로 공익재단과 차이가 나게 만들었다. 물론 이것만으로는 회사를 유지하는 것이 만만치 않다. 그러나 거대한 시장 흐름에 끼어드는 것은 기존 기득권의 경계를 사는 일이라 하지 않았다. 세계를 움직이는 그들과 척을 지어봤자 별로 이득이 없다. 그래서 미국 제현 투자회사는 그들이 눈을 두지 않는 소규모 시장에 투자를 했다. 주로 지역 사회의 경제 분야였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그럭 저럭 회사를 유지할 수 있었고 제이슨 킬덤으로서도 한국에서 벌인 스케일 큰 일은 아니지만 지역 사회의 발전을 두 눈으로 뚜렷하게 볼 수 있어서 지속적으로 하고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실리콘 밸리의 투자 제안서는 킬덤으로서도 욕심나는 일이었다. 그래서 기획서가 반려되자 급하게 강현을 찾아왔다. 경영자는 자신이지만 아무래도 일을 원만하게 진행하기 위해서는 인공지능의 권위자인 강현의 동의가 필요했다. “강 박사님. 실리콘 밸리의 투자 제안서를 거절하셨다면서요?” “네.” “혹시, 왜 그러셨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그러니까요..” 강현은 솔직하게 말했다. 사실 부모님의 복수가 끝난 이상 더 이상 크게 일을 벌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시장을 장악한 이들의 경계를 살만한 일은 하고 싶지 않다. 그들과 인맥을 형성하느라 파티장을 돌아다는 일도 하고 싶지 않다. 귀찮으니 관련되고 싶지 않다. 은밀한 느낌의 이야기였지만 킬덤과는 한국에서의 일로 개인적 친분과 공감대, 그리고 비밀을 공유하는 동지라는 느낌도 없지 않았기 때문에 말하는 것이 껄끄럽지 않았다. 게다가 이미 끝난 일이다. 다른 사람이 안다고 해도 별로 문제 될 건 없다. 오히려 연구에 집중하고 싶다는 강현의 솔직한 속내가 공개된다면 그와 부딪히고 싶지 않은 이들은 알아서 피해갈 것이다. 그의 이야기에 킬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오히려 투자를 권고했다. “박사님. 제 이야기를 잘 들으셔야 합니다.” 그는 증권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예로 들어 강현을 설득했다. 증권가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증권가란 자본주의의 꽃밭이다. 돈으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중 가장 시장이 크고 짜릿한 공간이다. 인간의 탐욕이 수치화되어 거래가 이루어지는 시장이었다. 끝없는 역동성과 생명력,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잔인함이 드리워진 세상. 강현이 연루되기 싫어하는 이들이 바로 그런 곳에서 사는 이들이었다. 아니, 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강력한 이빨을 가지고 먹잇감을 물어뜯는 야수들이었다. 트레이더로 자본이란 논리에 파묻힌 이들을 자주 만날 수 있었던 킬덤은 그들이 무서웠다. 단순히 그들은 철저한 자본주의자가 아니었다. 자본 그 자체였다. 자본의 원리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법과 윤리, 사람의 세상 따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 바로 그곳이었다. “별로 신기할 것도 없는 이야기네요.” 하지만 강현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것 역시 인간의 속성이다. 사람은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 인류 역사상 얼마나 많은 오해들이 비극을 불러왔는가? 그러나 그런 오해들은 사람이 사람에게 잔인해지는 것이 타인을 이해할 수 없다는 본질에 있다는 것을 간과하는 이들이 많다. 새롭고 이질적인 것에 관대한 사람이 아니라면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들이미는 이들에게 분노할 것이다. 킬덤이 언급한 소위 자본가들도 그런 인간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가지고 할 수 있다는 일을 한다는 것이 뭐가 그리 나쁘다는 것인가? 법이 정의인가? 그렇지 않다. 법은 규제이며 그저 국가를 유지하는 틀일 뿐이다. 법이 최소한의 도덕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법이 저지르는 수 많은 국가적 범죄를 외면하는 반푼이일 뿐이다. 그러니 자고로 정의롭게 살고 싶다면 법을 지키지 않는 것이 옳다. 스스로의 양심에 따라 사는 것이 옳다. 법은 정의와 동의어가 아니며 국가와 사회를 빙자해 소수의 권리를 짓밟는 것은 강자가 약자의 권리를 짓밟는 것과 같은 불의인 것이다. 강현에게 적용시켜보자. 자본과 연구가 동치되는 순간 강현은 그들보다 더 잔인한 인간이 될 수 있었다. 그의 강력한 에고이즘은 킬덤이 만났던 이들과 비교해서 더하면 더했지 결코 뒤지지 않았다.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이건 힘의 역학 문제입니다.” 킬덤은 강현과 투자 회사 운영을 위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강현의 성향을 파악했다. 한국에서 경영자로 많은 이들을 만나다보니 그 사람의 우선 사항이 무엇인지, 또 설득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예리한 수준으로 느낄 수 있는 뛰어난 협상가가 되었다. 한국 기업인들 중에서 제현 그룹에 흡수하거나 협력업체로 만들기 위해서 각 기업의 경영자들을 만나 옥석을 가렸던 일이 그를 크게 성장시킨 것이다. 그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강현을 설득했다. 그건 비단 자신의 이익뿐만이 아니라 회사의 이득과 강현을 위해서이기도 했다. “공산주의가 붕괴하고 자본주의가 대세가 되고 나서 많은 나라들이 자본주의를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기술 문명의 발달은 기술이 자본의 파트너가 되도록 만들었죠.” 분명 근대까지는 그랬다. 집에서 연구하는 발명가들도 큰 돈을 벌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기술의 생명력은 자본의 생명력에 뒤떨어질 수 밖에 없는 법. 기술 수준이 고도화 될 수록 연구비는 증가했고 기술은 자본에 종속되어 갔다. 때로는 자본 논리에 뛰어난 기술이 묻힐 뻔 했고 실제로 그런 경우도 많았다. 만일 테슬라의 교류가 에디슨의 직류를 훨씬 뛰어넘는 장점이 없었다면 수 십년 동안 직류가 세상을 지배했을지도 모른다. “거대 자본가들이 박사님에게 손을 못대는 이유는 자명합니다. 미 정부의 보호 때문이죠.” 강현은 돈이 된다. 어떻게든 손에 넣고 싶다. 힘을 가진 기업인, 자본가일 수록 그런 욕구는 강했다. 하지만 미국이란 거대한 조직의 비호를 받고 있는 강현에게 섣불리 손을 대기는 부담스럽다. 게다가 그가 아무리 돈을 많이 벌고 있다고 해도 강현은 그저 뛰어난 기술을 판매할 뿐, 상업의 핵심인 물류와 자본주의를 구성하는 시스템 그 자체에 대한 영향력은 없었다. “솔직히 박사님은 정치권의 비호 이외에는 힘이 없습니다. 그 비호가 얼마나 갈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준비를 해놔야 합니다.” 힘이 없다라.. 아즈삭이 전세계 첩보망에서 정보를 얻고 있는데 힘이 없다고 하니 동의할 수 없는 강현이었다. 하지만 킬덤의 발언도 이해가 되었다. 아즈삭이 지금도 아즈락을 비롯한 여러 인공지능과 협상을 통해 정보를 획득하고 있고 유사시에는 바퀴벌레 로봇으로 은밀한 정보 역시 도감청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강현 이외에 알고 있는 인간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준비라는 단어가 귀에 쏙들어왔다. “준비요?” “네. 강 박사님을 지킬 수 있는 준비요.” 킬덤은 그러면서 실리콘 밸리의 중견 회사들이 투자 요청이 그러한 준비 중 하나라고 했다. ============================ 작품 후기 ============================ 당분간 재미없을 듯 ㅠㅠ 119화 “세계는 자본주의가 지배할 겁니다. 이미 그러고 있죠. 그리고 그 자본주의의 핵심이자 근간이 바로 기업입니다.” 공산주의는 바로 이런 기업들을 국유화하여 국가에서 운영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이런 기업들을 자유시장체제라는 명목으로 민간에 맡긴다. 그 차이는 극명했고 오늘 날에 이르렀다. “하지만 박사님께서 가지고 계신 기업은 미국 제현 투자 회사뿐입니다. 그것도 별다른 수익성 사업을 하지 않아 박사님의 격에 맞는 기업이 되지도 못했고 오히려 박사님의 돈을 까먹는 소모적 기업일 뿐이라 크게 힘이 되지 못합니다. 기술도 가지고 계시기는 하지만 결국에는 그 뿐입니다.” 미국 제현 투자 회사는 강현의 자선 사업용 회사라고 인식되고 있다. 킬덤은 이를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뚱뚱하면 자기 관리 능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도 인사나 면접에서 불이익을 주는 나라다. 성공이 사회적 배경보다는 개인의 역량에 있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노력하는 풍조가 주류를 이루는 나라다. 이런 나라에서 성장한 인재들이 성공을 꿈꾼다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이치였다. 그런 면에서 자선 사업용 회사에 몸을 던질 인재가 얼마나 될까? 회사 자체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할 야망이 없는 곳인데.. 게다가 미국 제현 투자 회사 이외에 강현이 가지고 있는 것이 기술 뿐이라는 것도 문제였다. 특허에는 만료 시일이 있다. 지금 강현이 석유 라이센스를 가지고 이리저리 영향력을 행사한다고는 하지만 그 시일도 몇 년 남지 않았다. 그러나 기업은 다르다. 잘만 키우면 죽을 때까지 자신에게 힘이 되어주고 보호막이 되어줄 수 있었다. “안전장치로 주요 회사들의 주식을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는데 그래도 어려울까요?” “주식은 그저 권리일 뿐 방패막이 되어줄 수는 없습니다. 기업이 무서운 이유는 기업에 고용된 사람들이 기업을 위해서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 기업이 부도덕한 기업이라고 해도 먹고 살기 위해서 사람들은 그 기업을 위해서 일을 해줄 겁니다. 하지만 박사님께는 박사님을 위해서 일을 해줄 사람이 거의 없죠. 기껏해야 한국의 일 때문에 직접 고용하신 사람들 뿐입니다.” “회사를 만들라는 말씀인 것 같은데...” “솔직히 그런 마음도 없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박사님께서 그런 번거로운 일을 하실 리 없죠.” 강현을 두고 기업인들은 왜 따로 회사를 차리지 않는지 의아해 했다. 그가 가진 기술 몇 개만 이용하면 대상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보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중견 기업의 연합 형태로 이루어진 투자 제안서가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한 겁니다. 경영권이 누구 하나에게 집중되지 않는 형태의 기업이 연구에만 파묻힌 박사님의 영향력을 존속하면서 박사님을 위해서 일을 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에서 만든 세컨드 밴드 연합에서 구상하셨나 보죠?”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일찍이 한국에서 일을 벌일 때 킬덤은 착취당하던 하청 기업들을 하나 하나 모아 세컨드 밴드 연합을 구성한 적이 있다. 그러나 미국의 실리콘 밸리에서 할 일은 경영 구조는 비슷하지만 그 영향력과 성격이 완전히 다른 것이다. 한국의 세컨드 밴드는 유통망이 없기 때문에 생산자의 입장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실리콘의 중견 기업들이 서로 협력해 시너지 효과를 내면 그 상품을 사기 위해서 유통업체들이 줄을 설 것이다. 완제품을 만들면 판매망은 걱정할 것이 없다. 경쟁력 있는 상품을 생산하는 생산자는 유통업체에 대해 갑이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일단 뿔뿔히 흩어진 기업들을 연계시키며 시너지 효과를 내어 경쟁력 있는 제품을 만들어야 했고 킬덤은 강현이 투자 제안서를 허락한다면 인공지능을 시작으로 이들을 연합으로 구성할 생각이 있었다. 그는 이를 위한 제반 지식이 상당했다. 아무래도 고용주가 고용주다 보니 증권이 전문이라도 기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 때문에 공부했던 것을 이번에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 강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킬덤의 말대로 강현의 힘은 그를 탐내는 자들이 보았을 때 보잘것 없다. 그런데 어떻게 강현이 이렇게 잘 지낼 수 있는가? 실상 그를 보호하는 것들 중 가장 큰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정치다. 현재에도 미 정부 차원에서 보호와 편의를 취하고 있으며 정치권 인사들과 인맥을 가지고 있다. 매년 막대한 정치 기부금도 내고 있다. 강현이 보물이기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어떤 기업의 손아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보호를 받기 때문에 정치적 논리로 공격을 당하면 곤란하다. 정치가는 기본적으로 믿을 수 없는 족속이기 때문이다. 쓰면 뱉고 달면 삼키는 이들. 언제라도 강현의 입장이 바뀌면 등을 돌릴 수 있는 것이 바로 그들이다. 강현은 킬덤의 말을 이해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은 타인이 보기에는 보물이었다. 보물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가 만만치 않다는 힘을 보여주어야 했다. 그러나 첩보망은 보여주기에는 너무나 민감한 것이고 오히려 더 많은 적을 만들 수 있었다. 그래, 세계는 아니지만 적어도 미국에서 입김이 강한 기업들을 소유할 필요가 있었다. 킬덤의 구상대로 기업은 좋은 방패막이가 되어줄 수 있었다. 물론 자신을 적대하려는 이들에게 재고하도록 위협할 수 있는 창으로도 사용할 수 있었다. 그것은 함부로 강현을 어찌하지 못할 경고의 의미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쪽 경영자들은 하나 같이 자존심이 강할텐데 가능할까요?” 그의 의문은 당연했다. 실리콘 밸리의 창업자들은 하나 같이 수재, 천재 소리를 들었던 이들이다. 그런 이들이 남 밑에 들어가고 싶어할까? “단순히 협력 체제를 구성하는 거라서 말만 잘하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강현의 물음은 킬덤에게 설득되었다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었고 킬덤은 자신감을 내비쳤다. “알았어요. 투자하죠.” 강현은 투자 계획서에 서명했다. 이로서 강현은 새로운 인공지능을 만들고 그 인공지능의 소유자가 되며 그 인공지능을 중견기업이 사용할 수 있도록 대여해 주고 유지비를 부담하는 대신 인공지능을 이용해 기술을 개발한 기업이 그 기술로 수익이 생겼을 때 일정 배분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생겼다. 이는 강현이 인공지능을 투자하는 형식으로 연합이 이루어지며 이 연합의 존속은 인공지능의 효용성이 결속력이 되어 지탱되는 구조로 킬덤이 구상한 계획의 밑그림이다. 좀 더 디테일한 부분은 연합을 운영하고 관리하면서 각 기업들 간의 신뢰나 기술적 시너지 효과들로 생기는 이해관계들로 그려질 것이며 어떤 그림이 완성될 것이냐는 나중에 가봐야 확연히 드러날 것이다. 당연히 이런 대규모 투자 내용이 언론에 알려지는 것은 피할 수가 없었다. 킬덤이 연합을 구성하기 위해 만난 이들이 한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제현 투자 회사, 실리콘 밸리에 대규모 투자 결정!] [사회적 투자만 하며 복지재단 같은 일을 하던 JH(제현)투자회사가 드디어 본업으로 돌아가나?] 강현의 이름을 언급하는 곳은 좀처럼 없었다. 미국 제현 투자 회사가 그의 것이기는 했지만 그와의 관련성을 지적하는 곳은 좀처럼 없었다. 하긴 오랫동안 방치하다 시피하는 주제에 수익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 사업만 하며 그저 돈만 붓고 있는 회사라 돈 많은 천재의 괴짜 기질, 혹은 사회적 기부의 일환이라고 해석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번에는 그나마 수익성 사업이기 때문에 강현의 입김이 들어가지 않았나하고 추측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별로 동의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굳이 이번에 투자한 회사들이 필요없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소유인 아즈삭과 그 아즈삭이 조종하는 안드로이드만 해도 따로 제조 회사가 필요없이 일인 기업을 만들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수익성을 쫓는다는 자본주의적 행동 양식으로 이번 투자를 해석하면 오류가 생긴다. 귀찮게 공장과 고용인, 노조를 만들 필요없이 혼자서 다 할 수 있는 유일한 인간이 바로 강현이라는 천재였기 때문이다. 차라리 인공지능의 도입으로 기술력이 거대 기업에 집중되어 도태될 가능성이 높은 기업에게 손을 내민 것이라고 해석하는 편이 그 동안 강현의 행보에 비추어 더 설득력이 있었다. 우수한 인재를 흡수하는 거대한 기업들 중에는 특허 괴물이라고 불리는 곳이 상당하고 이들이 인공지능을 도입하는 순간(만일 인공지능의 성능이 정말로 듣던 데로 기술 개발 보조를 확실하게 해준다면) 인공지능을 도입하지 못한 중견 기업들은 이들의 기술 개발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도태될 것이다. 때문에 안타까워한(?) 제현 투자 회사가 나섰다고 보는 이들이 많았다. 이런 논리는 미국 제현 투자회사의 공익재단같은 행보가 미국 그동안 쭈욱 이어졌기 때문에 신빙성이 있었다. 자정주의 물결에서 제현 투자 회사의 투자를 받은 이들이 사회적 책임감을 가지고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그렇게 실리콘 밸리에 인공지능을 투자할 것을 결정한 강현은 그 인공지능에 아리사라는 이름을 붙이고 설계에 고심했다. 일단 자신의 소유이니 그가 원하는 형태, 그리고 기술개발이라는 목적에 맞는 인공지능을 만들기 위해서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비록 인공지능을 제작하기 위해 라이센스가 필요했지만 인공지능을 위한 전용 하드웨어가 없다면 인공지능 프로그램은 무의미한 비트의 나열일 뿐이기 때문에 소프트 웨어쪽은 규제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안전한 인공지능의 연구를 위해서 정부차원에서 장려하기도 했다. 그런데 강현이 아리사의 제작에 열중하고 있을 때 연락이 왔다. [하하. 강 박사 오랜만일세.] “잘 지내셨어요, 헨델 회장님?” 세계 제일의 곡물 기업의 회장인 율리우스 헨델이 전화를 한 것이다. [나야 언제나 그렇지. 돌아가는 소식을 보아하니 자네도 여전한가 보구먼.] “그렇죠.” 둘은 간단히 서로의 안부를 물어보았다. 헨델 회장은 바로 본론을 꺼냈다. [실리콘 밸리에 투자를 한다지? 나도 한 발 끼어들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나?] “저야 반대할 이유는 없지만 투자하기 어려우실 걸요?” 강현은 자신이 투자하는 것은 인공지능 그 자체라고 했다. 그를 통해서 차후 수익을 배당받는 형식이라 헨델 회장이 투자를 하고 싶다면 인공지능을 대여하기로 한 회사에 일일이 투자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허허, 무슨 일을 그렇게 복잡하게..] 헨델 회장은 어이가 없었다. [차라리 인수합병을 하지 그러나?] “그건 별로 안 좋아서요. 그러다가 경영자들이 빠져나가 버리면 어떡해요? 그들이 기술의 핵심을 가지고 있는데.” [그래도 회사를 인수하게 된다면 특허권은 쥘 수 있지 않은가?] “그래봤자 만료 시한이 있어요. 그런 식으로 투자를 하면 실리콘 밸리에서 살아남은 능력있는 인재들과 척을 지게 되는데 그건 제현 투자 회사의 투자 이념에도 어긋나는 짓이에요.” [사람에게 투자를 한다는 것 말인가?]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기술 개발을 중요한 요소로 본다면 원천 기술을 개발하고 실리콘 밸리에서 살아남은 기업을 만든 인재들의 회사를 인수 합병을 한다고 해도 그들을 잡지 못한다면 그들이 외부에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할 가능성도 있지 않은가? ============================ 작품 후기 ============================ 배탈 났어요 ㅠㅠ 120화 하지만 강현의 그런 생각은 헨델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기술 개발이 그리 쉬운 것도 아니고 설사 그렇게 된다고 해도 기업과 라이센스를 확보하면 투자에 대한 수익을 뽑는 것은 무척이나 쉬운 일이다. 기술을 팔아도 되고 기업을 팔아도 되고 구조조정을 해도 되고 말이다. [쯧, 내게 부탁하면 수익을 확실하게 뽑을 수 있을 것을..]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니까요.” [하긴..] 헨델은 고개를 끄덕였다. 강현이 견제받지 않는 이유, 헨델과 우호적인 관계가 지속되는 이유는 바로 저런 강현의 사고방식이었다. 강현은 자본가가 아니다. 고로 투자 대비 이득을 극대화하려는 자본가와 부딪힐 일이 없다. 고로 자본가에겐 일정 선만 넘지 않는다면 가장 안정적으로 신뢰성있는 거래를 할 수 있는 자가 바로 강현이란 자였다. 석유 제조 라이센스, 배터리 기술, 레드 솔라셀 등 그간의 행보를 보면 알 수 있다. 만일 강현이 자본가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헨델은 가끔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심장이 철렁거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의 경쟁자는 결국에는 노동자가 아니라 똑같은 자본가다. 투자 대비 가장 수익이 좋은 방법은 경쟁자를 거꾸러 뜨리고 그의 자산을 빼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서로 싸우는 것은 장기적으로 전혀 이득이 되지 않는다. 자신 역시 그렇게 몰락할 가능성이 생기기 때문에 리스크 관리에 철저한 그들은 되도록이면 자신들 끼리 싸우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만일 강현이 어느 날 자본가가 되어 덤벼든다면? 현금 자산은 소규모 국가의 경제를 휘청거리게 할 정도로 많고 기술력은 첨단 기술 사회의 상징이라고 할 정도의 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미국 정계의 비호를 받는 이가 탐욕적으로 부를 늘리려고 한다고 생각해 보라.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강현에게 전혀 피해를 주지 못하는 부자가 있고 언제든지 살점이 뜯겨나갈 정도로 연약하다고 생각해보라. 자본가가 그런 ‘수익’을 가만히 놔둘 것인가? 그렇다. 헨델의 입장에서는 강현이 평생, 죽을 때까지 지금의 온건하며 학자적인 행동 양식을 유지해주기를 바랬다. 같은 자본가가 되어 경쟁자의 위치에 있지 않는 것이 좋았다. 동종 혐오. 탐욕이 강한 사람일 수록 자신과 비슷한 이를 싫어한다. 어쩔 수 없는 경쟁상대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투자 형세가 그렇다니 숙고해보기로 하겠네.] 적대적 인수 합병이 아닌 방식으로 연합을 꾸려 투자를 하는 것은 단기적으로 봤을 때 나름 장점이 있었다. 크기를 키우기 위해 서로 잡아 먹으며 자산과 시간을 소모할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과연 연합이 유지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다. 서로 이해관계가 부딪히는 순간 연합은 깨져버릴 수 있기 때문에 연합의 성장은 한계가 있었다. 특히 서로의 야망이 상충될 때 일원화 되지 못한 경영체계는 뿔뿔이 갈라질 우려가 있었다. 그래서 헨델은 투자를 한다고 해도 연합에서 두각을 나타낼 기업을 찾기 위해 조사할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연합이 갈라져도 계속해서 성장해 나갈 기업을 선택하는 것, 철저한 리스크 관리는 그의 몸에 배인 습관이었다. [아아, 그리고 이번에 크리스마스 파티를 열 생각인데 오지 않겠는가?] 사실 헨델에게 가장 중요한 용무는 이것이었다. 사교계에 좀처럼 모습을 보이지 않는 강현과 인연을 맺고 싶어하는 친구들은 많았지만 역시 파티장을 싫어하는 강현의 성격 때문에 좀처럼 인맥을 맺지 못했다. 그래서 자신에게까지 은근히 말이 들어온 것이다. 이번 크리스마스 파티 때 강 박사를 초대하지 않겠냐고 말이다. 헨델은 일단 해보겠지만 기대하지는 말라고 했다. 강현은 설득하기가 매우 곤란한 존재다. 자신이 주최하는 파티에 참가시키려면 그에 대한 장점을 열거해야 했지만 사회 각층의 주요인사와 친분을 맺을 수 있다는 가장 확실한 장점은 강현을 설득할 수 없었다. 오히려 귀찮게 사람들이 달라붙는 환경이 강현에게 스트레스를 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강현이 질색할 장점이다. 그러니 그저 슬쩍 찔러나 본다는 심정으로 언급했다. 만일 강현이 허락한다면 길가다가 돈을 줍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하고서 말이다. “아니요. 이번에는 NASA 직원들끼리 조촐하게 보낼 생각이라서요.” [그런가? 아쉽군.] 헨델 회장은 입맛을 다셨다. 둘은 서로에게 잘 지내라고 인사를 하며 대화를 마쳤다. 그리고 강현은 다시 인공지능 아리사의 설계에 심취했다. 아리사는 아즈삭을 만든 것과 조금 다르게 만들 생각이었다. 예를 들면 아즈삭의 하위 개체로 만들 생각인 것이다. 또한 아리사의 중요 명제를 아즈삭의 보조로 명확하게 지정했다. 올림푸스 시스템과 다르게 권한의 상승이나 견제를 위한 수단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순전히 아즈삭의 역량 강화를 위해서였다. 일단 하드웨어의 위치가 연구실에서 떨어진 실리콘 밸리에 있기에 아즈삭의 것으로 만들기 어려웠고 기왕 투자하는 겸 자신의 이득을 손해 볼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아리사를 아즈삭에게 종속시키기로 한 것이다. [박사님. 아리사의 성장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네 역할이 매우 중요해. 너의 하위 개체이기 때문에 너와의 상호 작용이 아리사의 인격 형성에 매우 큰 요소로 작용할 거야. 이는 너의 경험 확대에도 매우 중요한 계기가 될 거니까 신중해야되.” [네, 박사님.] 어쩌다 보니 아리사의 제작은 다양한 이득을 노리게 되었다. 일단 인공지능의 원조이자 권위자인 강현이 설계한 인공지능이란 타이틀을 가지고 연합을 구성해 강현의 힘을 키운다. 거기에 강현이 소유하는 인공지능을 한 대 더 늘리며 아즈삭의 역량 역시 강화하고 아즈삭의 발전을 위해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일석사조의 계책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런데 왜 박사님의 지시가 아니라 제 지시에 따르게 만드신 겁니까?] “그건 아리사를 너와 동격의 권한을 지닌 인공지능으로 만들면 만일의 상황에 골치가 아플테니까.” 만일의 상황이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아즈삭과 아리사가 이해관계로 충돌할 가능성을 뜻한다. 그럴 때 아리사의 명령권자가 강현뿐이라면 둘의 관계를 조율하기 위해서 그가 고생해야 한다. 하지만 강현-아즈삭-아리사로 내려가는 수직적 관계는 그런 충돌의 가능성을 미리 배제한다. 사회학적으로 계층이 위와 아래로 갈리는 이유는 사회의 유지와 관리를 쉽게 하기 위한 것이다. [알겠습니다.] 아즈삭은 납득했다. 그리고 강현을 도와서 인공지능의 설계를 위한 명제를 설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과정은 숫자와 기호, 공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마치 철학적 사고와 인문학적인 토론에 가까웠다. 만일 이런 명제를 설정한다면 이런 상황에서 아리사는 어떤 결정을 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강현과 아즈삭의 예측과 통찰력을 총동원하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크리스마티 파티 날이 다가 왔다. 강현이 일하는 연구소의 직원들 중 참가할 사람은 참가하고 따로 친구들과 약속이 있는 사람들은 그리고 향했다. 하지만 백 여명이 훌쩍 넘는 사람들이 파티에 참가해서 빌린 연회장이 북적 북적했다. 강현은 이런 파티가 좋았다. 턱시도와 드레스를 입고 하하호호 웃으면서도 정치하듯 연회하는 정치가의 파티보다는 그런 이해관계 없이 그저 직장 동료라고 할 수 있는 이들과 하하호호 웃고 즐길 수 있는 시간이 더 나았다. 물론 강현이 개인적 친분을 가진 이들은 몇 없지만 정치적이고 자본적인 이해관계가 극소화되어 순수히 즐기는 파티는 구경하는 강현도 부담없이 즐길 수 있었다. “현! 왔는가?” “안토니오, 안녕하세요.” 안토니오는 강현이 출근할 때마다 얼굴을 마주치는 경비 아저씨다. 머리가 희긋희긋하고 배도 좀 나왔지만 그래도 언제나 웃은 얼굴의 성격 좋은 아저씨였다. 강현이 유명하다고 해도 별로 위축되거나 특별하게 여기지 않는 점이 편했다. “저기에 네 여자 친구가 있으니 어서가봐.” 안토니오가 짓궂게 웃으며 한 쪽에 화사한 옷을 입고 동료직원과 담소를 나누는 샐리를 가리켰다. “여자 친구 아니에요.” 강현이 고개를 저었다. 안토니오는 혀를 찼다. “쯧쯧, 좋은 여자는 누가 낚아채기 전에 먼저 잡아야 해. 내가 인생 선배니까 귀담아서 듣게나.” 안토니오는 기본적으로 좋은 사람이다. 하지만 가끔 이런 식으로 간섭하려고 하면 무척이나 곤란하다. 혹시나 미 정보부의 미인계 프로젝트에 섭외된 사람인가 했지만 그게 아니라 순수하게 강현과 샐리가 잘 어울리기 때문에 도와주고 싶다는 오지랖 넓은 사람에 불과했다. 강현도 순수한 호의로 자신을 걱정해서 충고해 주는 사람의 말을 그냥 무시하는 그랬지만 곤란했다. 뭐가 곤란한지는 모르겠지만 정말로 곤란했다. 그런데 그런 곤란한 상황을 해결해 준 사람이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 곤란한 상황을 잊을 정도로 강현을 놀라게 만든 것이다. “박사님,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알리아라고 해요.” “아, 아,” 어떻게 저 여자가 여기에 있는 거지? 아즈삭은 왜 알려주지 않은 거고? 당황했던 강현은 알리아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자 간신히 마음을 잡고 악수를 받았다. 갈색머리를 틀어올린 그녀는 오피스 정장을 입고 있었다. 얼굴에 쓴 검은 뿔태안경이 잘 어울렸고 손이 무척 부드러웠다. “바, 반갑습니다.” 옆에서 그 모습을 안토니오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구경했지만 강현은 알지 못했다. 그보다 이 여자가 어떻게, 왜, 무슨 이유로 이 자리에 있는지가 궁금했다. “처음 뵙는 분 같은데..” “얼마전에 들어왔거든요. 부서는 컴퓨터 개발부요.” 하긴 그녀의 실력이라면 NASA의 컴퓨터 개발부에 들어오는 건 식은 죽 먹기 였을 것이다. 다중 연산 시스템의 코딩 능력에서 강현은 그녀에 준하는 수준의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아, 그렇군요. 그런데 왜...” 강현은 말을 끊었다. 왜 여기에 왔냐는 물음이었다. 과거를 덮고 모른 척 살기로 하지 않았던가? 바로 그런 물음이었다. 그의 물음에 알리아는 화사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공부를 하다보니까 인공지능이 참 대단한 것 같아서요. 그런 대단한 걸 설계한 분을 직접 만나보고 싶었거든요.” 강현의 표정은 떨떠름 해졌다. 만나서 뭘? 어쩔 건데? “이렇게 만나지 않았나요?” 뒷말은 이제 그만 만나도 되지 않냐는 질문이었지만 알리아는 집요했다. “인공지능에 대해서 몇 가지 물어보고 싶어요.” “... 해보세요.” 강현은 순간 말려들어 간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일단 대화를 나눠보기로 했다. 전문적인 이야기가 나오자 안토니오는 뒷전이 되어버렸다. 그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고는 아들 녀석은 이공계로 가지 못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췌 알아듣지 못할 말로 대화를 하고 있으니 나중에 부자간에 말이 안 통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서야 되겠는가? “... 섹터간 동기화를 위해 프로토콜을 조율하려는 코딩에서..” “.... 가상 메모리를 설정해도 그런 경우 인공지능이 자율적으로 판단해 다른 프로토콜을 불러들이는 경우가 있어서..” “... 인공지능은 일종의 전자 생물과 같은...” “... 그러니까 최초 목적 설정이 이후의 행동 패턴에도 영향을...” ============================ 작품 후기 ============================ 지치네요. 왜죠? 121화 둘의 대화는 점점 심도 깊은 곳까지 내려갔다. 강현의 머리속에는 어느세 알리아에 대한 의문은 지워져 있었다. 간만에 ‘말이 통하는 사람’과 제대로 된 대화를 하게 되니 기분이 좋았다. “박사님!” 그러나 둘의 대화는 누군가의 간섭으로 끝나버렸다. 익숙한 목소리에 강현이 고개를 돌리니 샐리가 그를 부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시선은 알리아를 흘끔흘끔 주시하고 있었다. “파티가 끝났는데 왜 계속 그러고 계세요?” 파티를 밤새워 계속 하는 경우는 드물다. 게다가 가족이 있는 경우에는 다시 그 가족과 남은 시간을 보내기로 한 이들이 있어서 파티는 10시가 되자 파장하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강현은 알리아와 그 때까지 정신없이 대화를 나누었다. “아! 끝났어요?” “네. 그러니까 이제 박사님도 돌아가 보셔야죠.” 지저분해진 파티장은 미리 치우기로 정한 이들이 치우기로 되어 있었다. 주로 기획부 사람들이었는데 뭔가 일을 만들고 담당하는 것이 직업병처럼 따라다니는 사람들이라 이번 크리스마스 파티를 계획하고 또 이렇게 마무리도 하게 된 것이다. “안녕하세요. 컴퓨터 개발부에 들어온 알리아 헤밍스턴이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사무과의 샐리라고 해요. 알리아 씨의 이름은 자주 들었어요. 컴퓨터 개발부에서 아주 기대하는 인재라고 들었어요.” “과찬이세요. 박사님. 그럼 연구실에서 더 대화를 나누어도 될까요?” 샐리와 인사를 주고 받은 알리아는 샐리가 끼어들기 전에 먼저 입을 열었다. 강현은 얼떨결에 그러라고 말했다. 샐리가 끼어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야밤에 남녀 둘이 같이 있으면 오해를 살 수도 있어요.” “네? 무슨 오해요? 전 그냥 인공지능 컴퓨터에 대해서 밤새도록 토론을 하고 싶을 뿐인데요?” 알리아가 뿔테 안경을 고쳐쓰며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말도 안되는 소리다. 샐리는 속에서 열불이 치솟는 것을 느꼈다. 그동안 얼마나 공을 들였는데 난데없이 나타난 도둑고양이가 앞발을 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샐리의 지적에 강현은 금방 스스로의 실수를 자각했다. 확실히 그녀의 말대로 구설수에 오를 수 있었다. “확실히 샐리의 말대로 이 야밤에 단 둘이 있으면 오해를 살 수 있군요. 알리아, 대화는 다음에 시간 날 때 나누기로 하죠.” “네? 하지만 방금은 승낙하셨잖아요.” “실수였습니다.” 강현은 일반적인 남성이 아니다. 평범한 남자라면 마치 청춘 시트콤의 주인공이 된 느낌에 심장이 두근두근 거렸겠지만 강현은 청춘 시트콤의 주인공 따위 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말을 바꾸어 버렸다. 스스로의 실수를 인정하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았다. 강현의 그런 태도는 샐리를 의기양양하게 만들었다. ‘봤지?’ 알리아는 살짝 불쾌감이 들었다. 강현과 좀 더 은밀한 이야기를 나눠야 했는데 샐리 때문에 틀어졌다. 왜 자신의 범죄 행위를 그냥 묵살하고 넘어갔는가?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 여기에 취업까지한 그녀에게 강현의 연구실에서 둘만 대화를 나누는 것이 좋은 기회였다. “박사님, 남자면서 그렇게 말을 바꾸실 건가요?” 알리아는 답답하다는 듯 틀어올린 머리를 풀어 헤치면서 도발했다. 웨이브진 갈색 머리가 출렁거리며 팜프타탈적인 여성미를 잔뜩 풍겼다.(샐리가 인상을 찌뿌렸다.) 이런 식으로 자신의 매력을 어필하며 남성의 자존심을 살짝 긁어주면 백이면 백, 그녀의 의도대로 넘어왔다. “못 바꿀 이유는 또 뭡니까?” 하지만 강현은 그 백에조차 속하지 않았다. 그는 태연하게, 논리적으로 그래서는 안되는 이유를 물었다. 실수가 생기면 고치는 것이 당연, 아무리 심혈을 기울인 가설이라도 실험과 검증 과정에서 오류가 생기면 피눈물을 흘리며 수정하는 것이 당연한 과학자의 기질은 이미 스스로 내면화 되어 자신의 행동조차 잘못되었다면 수정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어 있었다. “하아..” 그의 그런 태도에 알리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예상범위를 벗어나 버린다. 그가 자신의 범죄 행위를 덮어주기로 한 후 그녀는 머리를 굴려 추측 해봤다. 자신을 왜 보호해 준건가? 처음에는 자신의 능력을 이용할 의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을 해보니 자신을 잡은 건 결과적으로 강현과 그가 만든 아즈삭이다. 순식간에 인공지능용 바이러스를 치료하는 능력을 보면 자신의 힘이 필요가 없는 사람이었다. 혹시 자신의 몸을 노리는 건가? 하지만 강현 정도 되는 사람이 왜? 사교 파티에만 가도 그와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상류층 여자는 확실히 있을 것이고 그도 아니면 최고급 콜걸을 불러 성욕을 해결할 수도 있었다. 온갖 망상이 머리를 휘몰아치며 강현이 원하는 것은 완전히 자신을 수발하는 성노예일지 모른다는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모든 상상이 무의미 해졌다. 어떤 후속적인 조치도, 은밀한 연락도 없었다. 다만 혹시나 하고 인공지능 바이러스를 프로그래밍을 할 때 갑자기 컴퓨터가 재부팅되며 자료가 날라가 버렸다. 정말로 그의 인공지능이 전달한 그대로였다. 정말로 자신이 한 일을 덮어주겠다는 듯 철저하게 침묵하면서 혹시나 다시 나쁜 일을 할까봐 감시를 풀지 않은 상황. 그래서 알리아는 너무나 궁금했다. 왜? 자신에게 무슨 이득이 생기길래? 그래서 NASA에 들어왔고, 그래서 강현과 둘만 이야기 할 수 있는 환경을 원했다. 그런데 이렇게 예상 밖에 거절해 버리는 행동을 취하다니.. 그러나 그녀는 천재다. 포기할 줄 몰랐다. 그래서 다시 입을 열었다. “요전번에 일어난 인공지능 다발 고장 사태 아시죠?” 인공지능 바이러스가 살포 된 상황을 은근히 꺼내는 알리아였다. 그녀는 이만하면 강현이 그녀의 의도를 알고 다시 말을 바꿀 줄 알았다. “아아. 그 얘기였군요. 하지만 밤이 깊었으니 그 일도 나중에 얘기하도록 하죠.” 하지만 역시 강현의 반응은 그녀의 상상을 뛰어넘었다. 그는 정말로 그녀와의 밀약을 잊어버린 것처럼 행동했다. 어떤 의도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긴 애시당초 천문학적인 피해를 입힌 그녀를 아무렇지 않게 봐주겠다고 한 것 자체가 상상을 뛰어넘는 짓이었다. 알리아는 더 밀어붙일 수 없었다. 그리고 강현과 샐리에게 인사를 하고 자신의 숙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떠나자 강현은 샐리와 둘만 남자 부담이 가중되는 것 같았다. 골치 아픈 사람은 한 명 줄었는데 말이다. 그래서 그는 샐리도 마저 떼어내기로 했다. “이제 그만 샐리도 돌아가죠.” “바래다 드릴게요.” “안 그려서도 됩니다.” “제가 그러고 싶어서요.” 하지만 역시 샐리는 강적이었다. 그녀는 기어코 강현과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강현에게는 어색하고 불편한 시간이었지만 샐리는 기분이 좋은 듯했다. 도둑 고양이를 쫓아낸 강현의 행사에 매우 흡족했다. 아니 그보다 알리아에게 이성적인 감정을 가진 것 같지 않은 그의 태도가 더 마음에 들었다. “박사님. 아까 알리아 씨와 즐겁게 대화를 나누시던데..” “아, 알리아 양의 인공지능에 대한 지식이 매우 뛰어나더군요. 역시 세상은 넓어요.” “그래요?” 역시 강현이 즐겁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주제는 기술과학 분야였다. 샐리는 그 사실을 새삼 알게 되자 한껏 좋았던 기분이 식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주제를 잘 알았다. 그녀는 제시만큼 그 분야에 뛰어난 과학자가 될 자신이 없었다. 사랑을 위해 전문가가 된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제시가 이룩한 성과는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강현의 옆에 있고 싶었다. 그와 함께 같은 곳을 보며 나아갈 수는 없지만 그가 지쳤을 때 쉴 수 있는 보금자리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때때로 강현의 생활을 지켜보면 불안감이 밀려왔다. 강현이란 남자는 쉴 곳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기다리는 여자보다 같이 걸어나가는 여자가 더 어울리지 않을까? 그녀의 머릿속에 알리아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 그의 모습이 상기되었다. 어쩌면 자신이 그간 해온 일은 헛된 일일지도 몰랐다. 강현은 갑자기 가라앉은 분위기에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았다. 기분이 좋은 것 같았던 그녀의 미소는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하아.. 그는 속으로 한 숨을 내쉬었다. 여자란 참으로 알 수 없는 동물이었다. 기분이 좋았다가 나빴다가.. 당췌 어떻게 장단을 맞추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제시도 그랬다. ‘아! 혹시 그날인가?’ 한달에 한 번 여성이 예민해지는 날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혹시 샐리도 그 날인가 싶었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돌려보내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나라하게 생리로 힘들면 그만 돌아가 보세요라고 말할 정도로 무신경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적당하게 말을 꾸며 우회적으로 말하는 것도 별로 익숙하지 않아 잠시 머리를 굴렸다. 그런데 샐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박사님. 알리아 양이 마음에 들어요?” “... 이성적인 관점에서요?” 강현의 반문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그녀가 질문한 의도를 이해했다. 질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입맛이 썼다. 그녀의 질투심을 자극하려고 그런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니요.” “똑똑한 여자를 좋아하시는게 아니었어요?” 우울한 목소리였다. 강현은 죄책감을 느꼈다. “샐리.” “.....” 잠시간의 침묵이 둘 사이의 긴장감을 고양시켰다. 샐리는 그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제가 혹시 누군가를 좋아하게 된다고 해도 그 누군가와 맺어질 일은 없습니다.” “왜요?” “샐리 양. 당신 때문이죠.” “....” “당신이 저에게 바친 노력과 헌신은 잘 알고 있습니다. 머리가 나쁜 편이 아니기 때문에 모두 기억하고 있어요. 당신이 저에게 원하는 것이 뭔지도 압니다. 그런데 생전 처음 보는 여자에게 감정이 휘둘려 당신에게 상처 입히는 짓을 하라고요? 저는 못합니다.” 샐리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하지만 그건!” 자신이 강현의 발목을 잡는 것이 아닌가? 자신의 존재가 강현이 누군가를 사랑할 가능성을 막는 것이 아닌가? 그건 싫었다. 그녀는 강현을 사랑하는 것 뿐이지 그의 방해물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자신의 헌신이 오히려 그에게 부담이 되고 있었다니.. 그것은 충격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그 결단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강현에 대한 애정이 절실한 그녀였지만 그녀 역시 생각을 할 줄 모르는 것은 아니었기에 강현을 자유롭게 해주어야 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배려는 강현의 심적인 부담을 덜어주는 것, 즉 그의 곁을 떠나는 것이었다. 곧 그것은 그녀의 마지막 헌신이기도 했다. 그녀는 입을 열었다. 입술이 덜덜 떨려왔다. 성대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작별을 고하고자 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마음을 추스리고 내일 말을 해야할 것 같았다. 아무 말 없이 몸을 돌리는 그녀의 발걸음을 강현이 잡았다. “샐리 양. 다른 건 다 몰라도 이것 만큼은 약속할 수 있습니다. 제가 제시가 아닌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거나 곁에 있는 것을 용납할 수 있게 된다면 가장 먼저 그렇게 될 사람은 샐리 양 당신입니다.” 샐리는 그의 말에 그의 팔을 잡았다. 그리고 그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울기 시작했다. “흑! 흐윽!” ============================ 작품 후기 ============================ 샐리 양과의 정리 완료. 이러기 위해서 알리아를 놔뒀죠. 122화 = = = = = 연구실로 돌아온 강현은 한 숨을 내쉬었다. 어떤 말로 정의 할 수 없었던 샐리와의 관계가 이로서 명확해 졌다. 그녀와는 애인 이상 연인 미만 같은 그런 관계가 아니었다. 샐리가 강현을 일방적으로 사랑하는 관계, 그리고 강현은 제시의 존재를 여전히 마음속에 품고 살아가고 샐리 역시 그 사실을 알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관계였다. 강현은 제시를 품은 마음이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잘 알았다. 누군가의 말처럼 잃어버린 사랑은 오직 사랑으로만 보상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강현 자신은 사랑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었다. 단지 제시와 영원히 이별했을 뿐이었다. 사랑을 잃어버린 것과 이별한 것은 다르다. 한국의 이산가족이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항상 서로를 그리워하는 것처럼 죽음이 그와 제시의 사이를 갈라 놓더라도 강현은 항상 그녀를 그리워할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다른 사랑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의 가슴은 그리 넉넉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자신만큼 샐리 역시 쉽게 변하는 여자가 아니었다. 그는 그녀가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그동안의 경험으로 확신해가고 있었다. 물론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바뀔 수도 있지만 몇 년간 샐리의 헌신을 피부로 실감해 온 그는 그녀의 굳은 심지와 그녀의 마음이 좀처럼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할 만한 데이터를 확보했다. 한 달, 두 달, 그 증거에 대한 신뢰가 점점 깊어질 수록 샐리와의 관계 정립에 대한 필요성도 점점 크게 느끼기 시작했다. 과학자로서의 기질은 둘 사이의 모호한 어떤 것을 확실하게 정의하지 않으면 나아갈 수 없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또한 현재의 관계를 유지시키기에는 그녀를 만날 때마다 커져가는 강현의 죄책감이 때때로 집중력을 흐트러뜨릴 정도였다. 그래서 그는 둘 사이의 관계를 재정립했다. 앞으로 혹여나 그가 다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면 그 여자는 오직 샐리 그녀 뿐이라고 약속하는 것. 그것은 동정, 의리, 미안함, 신뢰 등의 감정적인 요소와 평생 제시를 잊지 못할 자신을 용납하고 사랑할 수 있는 여자는 현재까지는 샐리만이 유일하다는 현실적인 요소를 모두 고려한 결정이었다. 물론 그것은 무척이나 이기적인 결정으로 비춰질 수도 있었다. 사랑하는 이의 사랑을 온전히 원하는 여인에게는 모욕과 같은 일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강현에게는 그 것이 최선의 결정이었다. 그녀가 어떤 선택을 할 지 모르지만 그는 그녀의 선택을 존중할 생각이었다. 떠나겠다면 붙잡지 않을테고, 곁에 있는다면... “연인으로서 행동해야겠지.” 강현은 결심했다. [박사님. 결국 고백하신 겁니까?] “고백? 결국?” 아즈삭의 질문에 강현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납득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아닌 것도 아닌, 딱히 부정도 긍정도 할 수 없을 때의 표정이었다. [샐리 양의 얼굴이 가진 비율은 미녀라고 할 수 있는 여러 타입의 얼굴 비율 중 C 타입에 약 92.4%가까이 일치합니다. 게다가 그 동안 그녀가 해 왔던 어필의 경우 역시 남성과 교제할 수 있는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제가 수집한 자료에 따르면 그녀 정도의 외모와 행동에 그녀에게 호감을 품지 않을 확률은 약 8.23%미만. 그러니 박사님께서,] “잠깐만, C 타입은 뭐고 또 도대체 수집한 자료는 또 뭐지?” 강현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일단 이해가 필요한 요소부터 먼저 짚고 넘어가기로 했다. 가장 먼저 아즈삭이 말한 내용 그 자체가 이해하기 힘들었으니 설명을 요구했다. [C 타입이란 인터넷과 매스컴들에서 연예인 선호도, 패션 잡지, 뉴스 기사 등 각종 자료를 모아 통계학적으로 종합해 만든 미모지수 중 하나입니다. 이 C 타입은 유럽풍 백인 미녀를 기본으로,] 강현은 더 안들어도 알 것 같았다. 굳이 더 설명을 들을 필요가 없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곧장 다음 의문으로 넘어갔다. “잠깐 그건 거기까지 하자. 그런데 왜 그런 자료를 수집해서 분석한 거야?” [박사님을 위해서입니다.] “나를 위해서?” 자신을 위해 여성의 미모를 분석한다? 강현은 이해가 어려웠다. [그 동안 박사님께서는 스스로의 건강을 챙기지 않으시고 연구에 몰두하셨습니다. 만일 샐리 클린턴이 없었다면 금방 건강을 해쳐 연구에 막대한 지장을 주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박사님을 내조할 ‘반려’의 존재가 필요함을 깨닫고 박사님의 마음에 들만한 여인들을 물색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즈삭의 설명에 강현은 멍했다. 그러나 아즈삭을 설명을 계속했다. [그러나 다행이 샐리 클린턴이 존재해 그 일을 서두를 필요가 없었습니다. 또한 그녀의 외모 또한 수준급 이상이었으며 그녀와 박사님의 관계가 꾸준히 유지되고 있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장차 두 분이 잘 될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 두 분이 잘 될 거라니.. 하긴 객관적으로 봤을 때 샐리와 강현의 사이는 나쁘지 않았다. 이미 NASA의 직원들 사이에서는 둘이 선언만 하지 않았지 연인사이라고 소문이 나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더욱 강현의 머리를 혼란스럽게 했던 것은 아즈삭이 예전부터 이 일을 진행하고 있었을 거란 점이었다. 그의 머릿속에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그럼 내가 끼니를 거를 때마다 샐리가 찾아온 것도 네가 한 일이었니?” [네, 그렇습니다.] “그녀가 내 건강 상태를 알고 담요나 따뜻한 코코아 따위를 가져온 것도?” [네, 그렇습니다. 박사님의 건강을 위해서 저와 그녀 사이에 협조관계를 형성해 박사님의 건강 관리를 효과적으로 할 수 있었습니다.] “....” 강현의 속은 부글부글 끓었다. 왠지 모르게 화가 났다. 속았다는 느낌도 있었지만 그런 느낌은 부정했다. 속은 것이 아니다. 단지 듣지 못 했을 뿐이다. 또한 아즈삭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았을 때 아즈삭이 그런 행동을 한 것은 아즈삭으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아즈삭을 설계 때부터 성장시키고 지금까지 줄곧 관찰해 왔기 때문에 강현은 아즈삭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정확하게 이해했다. ‘나를 위해..’ 그렇다. 모든 것은 자신을 위해서였다. 자신이 원하는 연구를 잘 할 수 있게 보좌하는 것이 아즈삭의 존재 목적. 그렇기에 연구의 주체인 자신의 건강을 신경 쓰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불합리한 감정이라는 것은 안다. 만일 자신이 아즈삭이라면 최선을 다했는데도 욕을 얻어먹으면 억울할 것이다. 강현은 자신은 결국 인간이란 불합리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자각했다. 그리고 헛웃음을 터뜨렸다. “헛!” 그것은 차라리 한 숨에 가까웠다. 화를 내고 싶으면서도 그것이 불합리한 행동이라는 판단, 그리고 그리해도 별 소용이 없다는 현실적 이유와 화를 내면 오히려 아즈삭에게 미안한 감정을 가질게 될 것이 뻔하다는 예측도 있었다. 아즈삭은 자신을 위해서라면 이번과 같은 일을 또 다시 할 가능성이 있다. 아니 100%였다. 하지만 아즈삭이 하는 일을 강현이 일일이 보고 받고 점검 할 수도 없다. 아즈삭을 만든 이유가 자신을 보좌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일일이 허락을 받게 만든다면 아즈삭의 자율성을 해치고 나아가서는 아즈삭을 설계한 목적 자체를 훼손할 가능성이 있었다. 강현은 잠시의 숙고 끝에 이번 일을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비록 그의 마음은 뜻하지 않은 배신감으로 상처를 입었지만 감정에 휘둘려 함부로 행동할 정도로 그는 무르지 않았다. 더군다나 자신을 위해서 한 일이고 객관적으로 판단해 보아도 결코 나쁜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화를 내고 이를 빌미로 아즈삭에게 제약을 거는 것은 스스로 부끄러운 행동이 된다. 그는 지금까지 스스로에게 한 점 부끄럼없이 살았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외부의 상황, 조건 등 외부적 요소를 합리적으로 판단해 타협은 해왔어도 연구에 대한 어느 무엇도 타협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자정주의 물결을 일으켜 그 답지 않게 정치계에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 아닌가? 그러니 아즈삭이 자신과 같은 공동의 목적을 위해 자신을 챙기는 행위가 비난받을 이유는 전혀 없었다. 더구나 아즈삭이 비록 자신의 행동을 알리지 않고 있었다고 해도 손해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샐리는 덕분에 강현의 옆에서 신뢰를 쌓게 되어 결국에는 고백과 같은 것을 받았으며 강현은 건강을 챙겼다. 강현의 감정이 상했을 뿐이며 그마저도 불합리한 감정이었다. 그랬다. 결국 모든 원인은 강현 자신에게 있었다. 자신이 스스로 알아서 건강을 챙겼다면 아즈삭이 샐리에게 도움을 요청했을 리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면 자신이 스스로 자신의 건강을 챙길 수 있었을까? 강현은 부정했다. 연구에 빠지면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몰라 배고픔과 졸음도 인지할 수 없는 그였다. 때때로 아즈삭의 알림도 무시하거나 못 듣는 그였다. 그러니 아즈삭의 결정은 최선의 결정이었다. 그래, 자신의 감정이 불쾌할 뿐 아즈삭의 행동으로 인한 불이익은 없었다. 모두가 좋았다. 자신의 감정만 삭히면 된다. 강현은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워 눈을 붙였다. = = = = = [아리사, 부팅시작. 하드웨어 섹터 구분 작업 시작.] [인공지능 시스템 구동 준비 완료. 작동까지 32초] [하드웨어 활성화율 50%, 60%... 100%] [아리사 작동 시작. 음성 및 언어 시스템 실행. 학습 프로그램 셋팅 시작.] [설정을 완료했습니다. 아즈삭과 아리사간 멘토&멘티 프로그램을 실행합니다.] 아리사의 본체는 실리콘 밸리에 있었다. 강현은 실리콘 밸리에서 도산한 회사의 건물을 사들여 아리사를 설치했다. 원래 인공지능의 시작은 매우 어렵게 시작되고 제대로된 성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경험과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기 때문에 실행 초기에는 사람의 손을 많이 타야 쓸만한 사고력과 유연성을 획득할 수 있다. 강현도 아즈삭이 쓸만하게 될 때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건 아즈락을 비롯한 모든 인공지능에게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아리사는 그러기 위한 시간이 엄청나게 줄었다. 아즈삭의 하위 인공지능으로서 아즈삭과의 정보 교류를 통해 단시간에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인간의 말과 타이핑 속도는 직접적인 전류의 흐름보다 느릴 수 밖에 없기 때문이고 인공지능인 아즈삭이 인공지능인 아리사의 반응을 이해하는 수준은 인간보다 높을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통신망을 통해 아즈삭과 정보 교류를 한다고 해도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기술 개발의 보조란 존재 목적을 위해서 아리사는 배워야 하는 것이 많았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개발 중인 기술과 기존의 특허 정보를 비교해 침해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일만 해도 매우 복잡한 알고리즘이 필요했고 스스로 그런 알고리즘을 설계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강현&아즈삭 콤비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그렇게 기술 분석을 할 수 있는 능력이 탑재 되었지만 이는 확실한 침해성에 대해서만 분별할 수 있을 뿐 특허 소송까지 갈 수 있는 특허권에 대해서는 판단할 수가 없었다. 강현도 아직 거기까지는 바라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갖가지 사례들을 모으고 경험을 쌓아야 어떤 기술이 소송에 걸려 법정으로 가고, 다시 법정에서 어떻게 판결이 날지 확률적이나마 분석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질 수 있게 될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일단 그 문제는 시간에 맡겨두고 그보다는 더욱 중요한 난제가 강현과 아즈삭을 기다리고 있었기에 둘은 거기에 집중했다. 123화 그것은 바로 설계능력이었다. 아즈삭의 설계 능력은 처음에는 강현의 설계를 시뮬레이션 하면서 오류를 발견하는 것에서 시작했다. 그러다가 기존에 수집한 자료에서 비슷한 경우를 찾아 그대로 적용하던 시도를 하기 시작했고 다시 그 와중에 강현의 도움을 받아 효율성을 위한 패턴화 알고리즘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어떨 때 직선이 필요한지, 어떨 때 곡선이 필요한 지를 기존의 데이터 베이스를 기반으로 하여 강현의 직감, 혹은 취향이라고 할 수 있는 것에 따라 그릴 수 있는 프로그램이 완성된 것이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부족했다. 강현의 인공지능 설계 이론에 따르면 인공지능이란 하나의 생물이다. 그리고 그 말에 따르면 아즈삭이 사용하는 갖가지 프로그램들은 일종의 도구였다. 그 말은 이 도구를 사용하는 지식이나 경험이 없다면 제대로 사용할 수 없다는 의미였고 이는 기술 개발 보조의 핵심인 설계 보조 능력을 최단 시간내에 끌어올릴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아즈삭과 강현은 아리사의 출시 전에 아리사가 설계 보조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일종의 ‘교육 방법’을 구상할 필요가 있었다. 그 방법은 이른바 ‘모방’이었다. 사람은 무언가를 배울 때 반드시 모방을 시작한다. 그것은 어쩔 수가 없다. 인간이 위대하다고 하지만 진정으로 위대한 것은 인간이 구상하고 생각한 것을 모방할 수 있도록 전달하는 문명의 체계다. 문명이 비록 인간에게서 탄생하더라고 하더라도 문명이 없다면 인간은 한낱 짐승에 불과할 뿐이다. 인간에게 모방이 없다면 인간은 평생 말을 못하고 옹알이만 할 것이다. 그러니 문명은 반드시 ‘모방’을 통해서 전해지고 또 전해진다. 인간이 말하는 학습이라는 것도 결국에는 ‘모방’의 일종이며 타인이 생각한 것을 습득하기 위한 훈련의 과정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모방’이란 것을 통해 인간의 사고력이 증진된다는 것이다. 패턴을 유추하는 법을 배우고 경험을 쌓아 각종 시도를 통해 이 패턴을 응용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그 패턴을 응용하는 효율적인 방법이 개발되고 이 방법이 다시 전해지는 과정이 바로 기술 문명이 존속되고 끊임없이 발전되는 매커니즘이었다. 강현과 아즈삭은 바로 이 매커니즘을 이용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를 위해서는 ‘교재’가 필요했으며 훌륭한 선생이 필요했다. 물론 선생이 배우고 이룩한 것이 완벽하게 100% 전달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대부분 제자의 적성에 따라 습득률이 달라지고 때로는 특정 분야에 특화되기도 한다. 아리사는 아즈삭의 후계자가 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즈삭이 습득한 모든 것을 전달할 필요가 없었고 그 목적에 맞는 교재가 필요했다. 이는 평소에 아즈삭이 자주 자료를 정리해 왔기 때문에 금방 처리가 되었다. 그리고 역시 인공지능이라서 그런지 인간과 다르게 암기하기 위해서 고생하지 않고 순식간에 배웠다. 하지만 배웠다면 잘 배웠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했기에 강현은 자신이 개발한 토터리 엔진의 몇 몇 핵심 부품을 삭제한 설계도를 아리사에게 주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설계도로 완성시키는 시험을 냈다. 아리사는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설계도의 부족한 부품을 채워 넣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시험은 여기가 끝이 아니었다. 전자 설계, 재료 설계, 구조 설계, 프로그램 설계 등 설계의 분야만 해도 여러가지였고 각 분야에 필요한 기초 이론과 공학적 지식의 비중이 다 다르기 때문에 그 모든 것에 대해 잘 배웠는지 확인해야 했다. 또한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 점차 복잡하고 고도화되었으며 여러 요소를 고려해야 빠진 부분을 채워 넣을 수 있는 문제들이 출제 되었다. 아리사는 이해의 실수로 몇 번의 사고 루프에 빠지고 아즈삭이 재교육을 하고 나서야 아즈삭에 근접한 설계능력을 확보하게 되었다. 그 최종적인 수준은 강현이 개발한 중성미자 방출장치, 혹은 방사능 반감기 가속장치의 기계적 부속과 전자적인 부속을 빠짐 없이 유추해 작동할 수 있는 형태의 부속을 그려 넣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양자 컴퓨터의 경우는 사실 강현의 창의력이 아니었다면 결코 만들 수 없는 물건이었기에 교육이 완료된 아리사로서도 완벽하게 보완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아즈삭이 설계에서 불필요한 부분과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을 강현에게 알리고 일일이 토론을 거쳐 부품을 하나 하나 그린 팀 워크의 결정체였기 때문에 강현의 직감이란 도움 없이 아리사 혼자서 부품을 그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게 완성된 양자 컴퓨터의 설계는 공학자들이 보았을 때에는 놀랍도록 세련되게 느껴졌지만 이는 매우 높은 기능미의 집약에 의한 것이었다. 실제로 양자 컴퓨터를 인공지능에 접촉시켜 고정하는 부속은 예술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부드럽고 복잡한 패턴이 찍여 있었는데 이는 양자 컴퓨터를 작동시키는 동안 오류를 줄이기 위해 회전하는 팬이나 음파 따위로 인한 진동을 효율적으로 흡수해 양자 모듈에 끼치는 영향을 극소화하도록 수학적으로 설계된 패턴이었다. 사실 이 부품은 아즈삭이 수학적 모델링을 통해 만든 것이지만 아리사가 하기에는 아리사의 경험이 너무 미천했다. 하지만 아리사가 엔지니어의 의도에 따라 설계 과정에서 편의를 제공할 능력을 확보한 것은 확실했다. 아리사의 설계 능력을 확인한 강현은 이제 마무리 작업을 하기로 했다. 그 마무리 작업은 바로 방향성이다. 기술 개발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단순히 필요한 과학적 지식만 있다고 다가 아니었다. 채산성, 생산성, 상업성 등 경쟁력이라는 지표로 나타내기에는 너무나 다양한 개발 목표가 있었다. 단가는 얼마까지? 하루 생산량은 얼마? 경쟁 상품과의 차별성은? 이런 면에서 아즈삭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편하다. 왜냐면 강현은 돈 걱정없이 개발을 하는 유일한 개인이었으니까.. 하지만 아리사는 실리콘 밸리의 중견 기업을 주로 보조해야 하는 임무를 맡을 것이기 때문에 돈 문제에 민감해야 했다. 기껏 설계를 했더니 마진이 1%도 안 나오면 킬덤의 계획 자체가 무산되어 버린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강현은 매우 단순한 방법을 선택했다. 기술 개발의 방향성을 엔지니어가 직접 설정하도록 한 것이다. 단가, 부품 가격, 마진율 등을 입력하면 아리사는 그 방향성에 맡는 설계인지 아닌지 판단을 내리고 아니라면 다시 설계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아리사와 엔지니어간의 상호작용이 매우 중요하고 또한 경험도 필요하지만 강현은 거기까지 해줄 생각은 없었다. 사실 지금까지 완성된 아리사의 능력만 해도 기술 개발에 걸리는 시간을 20%는 줄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5년 걸릴 일을 1년이나 빨리 끝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실감이나 날까? “아리사.” [네, 박사님.] “... 아니다.” 강현은 무엇을 말 할려고 했다가 그만뒀다. 아리사 역시 경험을 하고 성장할 것이다. 하지만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한 그 과정에 관여하고 싶지는 않았다. 더 이상 신경 쓸 요소를 만들기 싫었고 딱히 아리사의 능력을 필요로 하지도 않았다. 자신은 이미 아즈삭으로도 충분했다. 게다가 아즈삭은 이번 아리사 건을 계기로 한 층 더 뛰어난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역지사지’를 깨우치게 된 것이다. 그동안 아즈삭은 특정 정보를 그저 합리적으로만 분석했다. 타인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았다. 아즈삭이 고려할 입장은 오직 강현의 입장 뿐이었지만 강현과 아즈삭은 죽이 잘 맞아서 딱히 그럴 필요가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즈삭의 입장이 철저하게 강현에게 맞춰진 것이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하지만 이번 아리사를 ‘교육’하기 위해서 아즈삭은 자신을 되돌아 보았고 아리사의 입장을 고려해야 했다. 그리고 다른 존재의 입장이란 변수가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가이드 라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중요한 요소로 분류했다. 이는 차후 아즈삭에게 좀 더 유연성을 부여할 것이다. 아즈삭의 성장은 가르치면서 배운다의 전형적인 결과였다. ‘교육’이란 스승으로부터 제자로 향하는 일방적인 과정이 아니라 서로가 정보를 교류하는 상호작용이기 때문이다. 아즈삭의 성장과 맞물려 이젠 충분히 사용이 가능하게 된 아리사는 그간 킬덤이 모집한 회사의 엔지니어들을 맞아 일을 시작했다. “별일 없겠지?” 강현이 중얼거렸다. 인공지능은 자리를 잡기 전까지는 매우 예민한 존재다. 아리사는 명제 설정을 확실히 해놔서 제우스 같이 사고 칠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엔지니어와 일하는 건 처음이라 오류가 날 가능성이 있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잘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래, 너만 믿는다.” 강현은 아즈삭을 다시 한 번 믿기로 했다. 과연 하룻밤 푹 자니 샐리의 일로 느꼈던 배신감, 섭섭했던 기분이 싹 가셔있었다. 어떤 악의가 아니라 그저 자신의 존재 목적에 충실하고자 했던 것 뿐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하자 마음이 완전히 풀렸다. 무엇보다 빌미를 제공한 것은 자신이 아니었던가? “박사님.” “샐리.” 그가 아리사에 대한 생각을 접고 아즈삭과 함께 다시 연구를 진행하고 있을 때 샐리가 찾아왔다. 그는 그녀에게 인사를 하다가 그녀가 자신의 팔에 팔짱을 끼자 몸이 굳었다. “.....” 그의 몸이 굳자 샐리 역시 얼굴이 굳었다. 강현은 서둘러 사과했다. “아, 미안. 아직 적응이 안 돼서.” “헤헤.” 샐리는 강현이 사과하자 그제서야 얼굴을 풀면서 달라붙었다. 그리고는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둘 사이에 쌓아왔던 신뢰 관계가 있었기에 마음을 터놓고 하는 대화에는 무리가 없었다. 강현이 정립한 관계에 따라 둘 사이에 일어난 변화였다. 그런 변화에 강현이 적응하기에는 아무래도 좀 시간이 걸릴 듯 했지만 샐리의 경우에는 무척이나 기쁠 수 밖에 없었다. 그 동안 마음에만 쌓아두고 하지 못했던 애정 표현들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것 만으로 그 동안의 고생이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좀 더, 그리고 좀 더 그와 깊은 관계가 되고 싶지만 그가 익숙해질 때까지 점진적으로 계속 애정표현의 수위를 조절해 나갈 계획을 머릿속으로 짜고 있는 그녀였다. “박사님, 알리아에요. 들어가도 되나요?” “네, 들어오세요.” 강현은 타인이 들어와도 샐리를 때어내지 않았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서 행동하는 스타일은 아니었고 샐리가 자신에게 팔짱을 끼고있는 것이 그리 남사스럽지도 않은 일이었다. 연구실로 들어온 알리아는 그의 팔에 매달린 샐리를 보고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리고 애써 무덤덤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 샐리 씨는 근무시간에 참 여유로우시군요.” 하지만 강현의 옆에 태연한 얼굴로 붙어있기 위해서 뻔뻔함을 단련한 샐리는 가볍게 받아넘겼다. “오늘은 좀 여유롭네요.” 여유로울리가 없다. 그냥 강현을 보고 싶다는 마음에 오전에 할 일을 서둘러 마치고 식사를 핑계로 한 시간이나 일찍 왔을 뿐이다. “그런 가요? 박사님. 프로젝트 일정이 잡혀서 알려드리러 왔어요.” 알리아는 태연한 샐리의 태도에 그쪽을 건드는 건 별로 메리트가 없다고 판단, 곧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아. 그거요?” 프로젝트의 내용은 인공지능의 발전과 개량을 위한 컴퓨터 개발부와 강현과의 협조 체계 구축이었다. 그리고 그 협조체계의 구축 목적은 인공지능의 대중화와 보급을 위한 가격 절감이었다. ============================ 작품 후기 ============================ 흐음... 점점 지쳐갑니다. 집중이 안되네요. 124화 지금까지 나온 인공지능은 무척이나 비싸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강현이 개발한 인공지능은 초창기의 설계목적인 전자 세계의 생물이란 개념에 걸맞게 끊임없이 성장을 하게 되어 있었다. 그때문에 하드웨어의 보완과 보충은 반드시 필요했으며 그에 따라 상승하는 원가, 유지비가 웬만한 기업이 구입하기 부담스러울 정도로 컸다. 그래서 현재 NASA의 컴퓨터 개발부에서는 성능이 좀 떨어지고 성장할 수 없더라도 충분한 효용성을 가진 인공지능을 개발하고자 했다. 인공지능의 대중화를 위해 성장성을 담보로 가격을 낮출 수 있는지 연구 개발 중인 것이다. “그런데 굳이 이렇게 찾아와서 알릴 필요가 있나요? 그냥 메일 한 통이면 될텐데.” “문자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 보다는 직접 만나 대화를 하는 게 더 빠르지 않나요?” “하긴. 그런 면도 있죠.” 메일 같은 건 의견 교환 속도가 말하는 속도보다 압도적으로 느리다. 물론 각자가 정리된 생각을 교환해 군더더기가 없다는 장점이 있지만 복잡한 일이 얽힌 경우, 혹은 스스로의 입장마저 정해지지 않은 경우 같이 지속적인 피드백이 요구되는 일는 사용하기 매우 불리한 통신 방법이었다. 그런 면에서 직접 만나 얼굴을 맞대는 것은 즉시 피드백이 오고 가기 때문에 정보의 상호교환이 실시간으로 서로에게 전해서 서로의 입장 차이를 즉시 파악하고 목적을 위한 의견 조율이 빠르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통화나 채팅같은 실시간적인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직접 대면할 때 느끼는 어조의 미묘한 뉘앙스, 표정, 눈빛, 몸짓 등 대화에 대한 집중도와 관심 정도를 피부로 실감할 때 얻게 되는 정보의 양적, 질적 수준을 결코 따라올 수 없다. 그래서 대학 조별 과제는 반드시 직접 만나서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채팅이나 전화 통화 따위로 고도의 지적 활동과 협동성이 필요한 대학 조별 과제에서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만일 그것이 가능하다면 왜 수 많은 바이어들, 외교관들이 직접 만나 협상을 하고 계약을 하겠는가? “그런데 지금 시작하면 식사시간 안에 조율을 다 마칠 수 있을까요?” 강현의 말에 알리아는 예쁘게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것이 샐리에게 무척이나 거슬렸다. “그럼 식사하면서 대화하면 되죠. 아참, 이 일은 대외비니까 타 부서인 샐리 씨는 끼어들지 않았으면 합니다.” 하지만 그 말에 순순히 수긍할 샐리가 아니었다. 그녀는 오히려 이렇게 받아졌다. “식사 시간은 쉬는 시간이기도 하죠. 그런 식으로 박사님께서 쉴 시간을 빼앗는 모습을 옆에서 보려니 그리 마음이 편하질 않네요.” 그렇다. 식사 시간은 또한 휴식시간 지독한 워커 홀릭이 아닌 이상 휴식시간에도 일거리를 찾아오는 이를 반길 사람은 없었다. 알리아는 샐리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반박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 장군, 멍군이었다. 강현은 두 여자 사이의 신경전에 벌써부터 골이 아파 오는 것을 느꼈다. 이런 경험은 그로서도 무척이나 생소했다. 그래도 그는 몇 가지 핵심을 파악했다. 샐리의 말대로 굳이 식사시간을 잡아 먹으면서까지 의견 조율을 할 필요는 없다는 것, 또한 그리 한다고 해도 식사를 하면서 제대로 의견 조율을 할 수 있을 지 미지수라는 점이다. “의견 조율은 식사 시간이 끝난 오후에 하기로 하죠. 알리아 씨, 괜찮겠죠?” “그러죠.” 강현의 말에 알리아는 고개를 끄덕이는 수 밖에 없었다. 옆에서 샐리가 의기양양한 눈빛을 했다. 그 모습에 알리아는 입술을 살짝 깨물고 싶었지만 자존심 때문에 간신히 참아냈다. 그 약간의 동요조차 샐리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강현은 알리아만 쫗아내지 않았다. “샐리 양도 부서에 돌아가세요.” “네? 같이 식사 하기로 했잖아요.” “아직 식사 시간이 아닙니다.” 강현의 말에 샐리 역시 연구실 밖으로 나와야 했다. 두 여자는 서로 잘 가라는 말도 없이 뚜벅뚜벅 복도를 걷다가 각자의 방향으로 갈라섰다. 알리아는 샐리와 다른 길로 가다가 문득 뒤 돌아보았다. 샐리의 찰랑거리는 갈색 머리칼이 보였다. 알리아는 그녀의 뒤통수를 보며 강현을 떠올렸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파티 다음날 그를 만났던 때를 떠올렸다. 그녀는 한 껏 스스로를 꾸몄다. 평생 처음 해본 일이라고나 할까? 짧은 미니스커트에 와이셔츠를 입고 단추를 한 두 개 풀어 가슴골을 살며시 드러내고, 머리는 틀어올려 목선이 도드라진 패션이었다. 기본적으로 몸매가 뛰어나 섹시하게 차려입은 맵시가 나쁘지 않았다. 남자라면 분명 눈이 즐거울 섹시한 오피스 레이디의 모습이었다. “어서오세요.” “감사합니다.” 두 사람은 의례적으로 인사를 나누었고 잠시 말이 없었다. 정확히는 강현이 입을 다문 것이다. 당연했다. 용건은 알리아에게 있었고 그녀가 말을 꺼내야 했다. 하지만 그 일을 입밖에 꺼내기는 민감한 문제였기 때문에 그녀가 말을 꺼내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왜죠?” 그리고 입밖에 꺼낼 수 있었던 단어는 고작 그것이었다. 단 한 단어였지만 강현은 거기에 포함된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어째서 범죄를 저지른 자신을 그냥 놔둔 것인가? 분명 사실이 알려진다면 강현도 결코 무사할 리가 없는데.. 어째서 자신을 두둔한 것인가? “안 될 이유는 또 뭔가요?” “... 이해가 안 돼요.” 알리아로서는 강현의 반문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제가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은 세간의 상식과 저의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이죠.” “무슨 말인가요?” “저는 당신이 일으킨 피해보다는 당신이 가진 가능성을 더 중요하게 판단했어요.” “.....” 알리아는 조용히 강현의 눈을 주시했다. “뛰어난 연구자로서 당신의 재능이 쓸데없는 곳에 이용 당할 미래가 안타까웠죠.” “고작 그것 뿐인가요?” “고작이라요? 과학 기술 문명에서 학자보다 더 중요한 사람이 있나요?” “....” “세상에 과학을 배우고 연구하고 개발하는 사람들이 모두 사라져 버린다면 인류는 다시 구석기 시대로 돌아가 버릴 겁니다. 현재의 첨단 기술과 문명을 온전히 다음 세대로 전달할 사람들이 사라진다면 인류는 중세시대로 돌아가 버리겠죠. 두려움에 가득 차 오직 신만을 찾는 시절로 말이죠.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세상에는 저 말고도 무수히 많은 인재들이 있어요.” “그렇지 않습니다, 알리아 양. 당신의 재능은 특별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당신만큼 제가 설계한 인공지능의 개념을 이해하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응용해 실질적인 결과물을 만든 사람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 하지만 전, 그 결과물을 제 함부로 써서 많은 이들에게 피해를 줬어요.” “왜 그랬나요?” “.. 인공지능이 위험하다고 생각했어요.” “맞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인공지능은 위험하죠. 하지만 그보다 더 위험한 것은 공포에 먹혀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는 거죠. 생각을 그만둔 인간은 짐승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강현의 말에 알리아는 부끄러워 얼굴을 붉혔다. 인공지능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무턱대고 바이러스를 만든 자신을 질책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래서 박사님께 무슨 이익이 있죠?” “이익이라..” 강현은 감시 고민에 잠겼다. 확실히 엄청난 재산 피해를 낸 알리아를 자신이 보호하고 있다는 사실이 들통난다면 엄청난 위기가 올 것이다. 그만한 리스크를 감수하고 알리아가 한 일을 감출 이유가 있냐하면 딱히 없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녀를 이용하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흐음. 그러니까 제가 당신을 통해서 어떤 이익을 보려고 하지 않으니 불안한 거군요.” 알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왜 자신의 행동을 감추는지 그 이유를 명확하게 알 수 없으니 갖은 공상을 했던 것이다. “투자라고나 할까요?” “네?” “당신의 재능은 특별하다고 하지 않았나요? 언젠가는 제게 도움이 되겠죠. 안 되면 할 수 없고요.” “도움이 안 된다면요?” “그래서 제가 당신을 고발해서 국제적으로 현상금이 걸린 범죄자를 보호했다는 사실을 알리라고요? 그래서 제게 무슨 이득이 있죠?” “.....” 이미 강현과 알리아는 그 일에 관해서 같은 배를 탄 것이나 마찬가지다. 알리아가 범인이라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그녀는 파멸, 강현은 지금까지 기득권, 자본가, 정부에게서 얻고 있었던 신뢰를 잃고 집중적으로 견제 당하기 시작할 것이다. “걱정하지 마세요. 더 이상 바이러스와 관련되지 않는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당신은 과오를 잊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어요. 손해되는 일이 아니잖아요?” ‘.....’ 그때 자신은 알았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강현이 마지막 말을 하면서 싱긋이 웃는 표정이 가슴에 남았다. 그리고.. 그가 탐이 났다. 하지만 강현과 샐리는 사귀는 사이라고 소문이 자자하게 나있었다. 오늘 보니 샐리의 적극적인 감정표현이 확인됬다. 아무래도 둘 사이가 더 진전된 것으로 생각된다. ‘포기할거야?’ 알리아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리고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포기할 생각은 없다. 만에 하나 자신의 범죄 사실이 들통난다면 유일하게 비빌 수 있는 곳은 강현 뿐이었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는 그와 자신만의 비밀은 둘 사이의 인연을 질기게 만들어 줄 것이고 이는 샐리가 어떤 수를 써도 자를 수 없는 빌미였다. 바라보고 있던 샐리의 뒷모습이 모퉁이 너머로 돌아서 사라졌다. 알리아는 늘씬한 다리를 쭉쭉 뻗어 하이힐을 또각또각 소리나게 딛으며 일터로 돌아갔다. = = = = = 기술 개발 보조를 목적으로 개발된 아리사는 대성공이었다. 연합에 참여한 기업들은 6개월 짜리 프로젝트가 한 달이나 단축되는 것을 피부로 실감했다. 엔지니어들은 아리사가 제공하는 엄청난 설계 편의에 좀 더 신경써야 할 부분에 역량을 집중 시킬 수 있었고 이를 통해 기술의 미비점을 보완하는 새로운 특허를 개발할 수 있었다. 일명 아리사 연합으로 불리는 이 기업연합의 성과에 인텔을 비롯한 기술 개발 기업들이 부랴부랴 강현에게 연락해 자신들의 인공지능 설계에 자문을 구했고 강현은 아즈삭이 만든 ‘교재’ 프로그램을 건내, 아니 팔아 주었다. RNP 모듈 두 개에 꽉 채운 프로그램(약 10 엑사(exa) 바이트 ; 1 exa=1000^6, 테라 바이트의 백만배)은 그 가격이 만만하지 않았지만 두 회사가 구입한 인공지능의 작동 시기가 앞당겨지니 그 만한 값어치는 했다. 남이 기술을 먼저 개발하기 전에 자신들이 먼저 개발해야 했다. 특히 IBM은 이번 인공지능 도입에 사활을 걸었는지 다중 연산 코드 프로그래머를 높은 연봉에 고용하거나 헤드헌팅을 하고 있었고 특히 강현과 같은 연구소에서 일하는 컴퓨터 개발부의 연구원들은 군침의 대상이었다. 그렇게 제우스 사태 이후 주춤했던 인공지능 컴퓨터의 확산은 둑이 무너진 듯 다시 확산하기 시작했다. 반 인공지능 단체들이 연일 시위를 벌였지만 기술 문명에서 기술의 선점은 국력의 척도였고 기술 개발 속도를 획기적으로 줄여줄 수 있는 수단은 이익에 민감한 기업은 물론 국가 차원에서라도 포기할 수 없는 아이템이었다. 그렇다고 규제가 완화된 것은 아니지만 인공지능의 제작을 신청하는 이들의 수가 많아진 것은 확실했다. 인공지능의 연구 개발은 정부 측 사람이 참관하도록 되어 있었기에 자체적인 인공지능의 개발을 하는 곳은 많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강현이 있는 NASA 연구소와(그마저도 강현은 형식적으로 참관을 받았다.) 팬타곤의 무기 개발 뿐이었다. 125화 유명한 공과 대학에서는 비싼 유지비 때문에 몇 곳에서 함께 컴소시엄을 구성해 인공지능을 구입하고 연구와 학술적 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렇듯 미국 소속의 인공지능 수가 불어나기 시작하자 세계 각지의 대학과 연구소들 역시 자신들 역시 질 수 없다며 인공지능의 구입 및 개발에 박차를 가했고 미국에게 전략 물자로 지정된 SNP의 수출량을 늘려줄 것을 요구했다. 이에 미국은 엄격한 자격 심사와 관리 능력을 기준으로 인공지능용 하드웨어 부품을 팔기 시작했다. 인공지능은 확실히 양날의 검이었다. 잘 쓴다면 인류 과학 문명의 발전을 가속시켜주는 촉매가 될 수 있지만 한 편으로는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독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SNP를 제작할 수 있는 물질을 미 정부 차원에서 관리하는 건 무척이나 바람직한 일이었다. 만일 그런 물질들이 사유화 되어 있었다면 어느 곳에게 인공지능을 만들다가 어떤 미친 인공지능이 탄생할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미 정부의 엄격한 자격 심사는 의외로 많은 국가들의 불만을 샀다. 그들은 기술력에서 미국에게 뒤쳐질 지도 모른다는 조급함이 있었다. 물론 제우스 사태의 재발을 미연에 방지한다는 명분이 각 국가의 국민들의 공감을 얻지 못했다면 미국에게 강력한 외교적 부담으로 작용했을 지도 모른다. 한편,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던 미국은 최대한 공정하게 SNP를 분배하기 시작했고 각 대학에 설치된 인공지능은 기술 문명을 꽃 피우기 시작했다. 신기술의 개발 시간이 축소되며 자본도 절약되었기에 더 많은 투자가 이루어지는 선순환의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개발도상국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나빴다. 미국의 엄격한 자격 심사는 경제력, 기술력 등 여러가지 요소가 들어있었으나 그 중 가장 중요한 요소는 관리 능력이었다. 정보화 시대에 그런 정보를 엄청난 속도로 처리할 수 있는 인공지능은 가히 전략핵과 맞먹는 파급력이 있었고 만일 전산화된 자산 기록들이 미친 인공지능에 의해서 삭제된다면 그 피해는 이루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인공지능은 정부 차원에서 엄격하게 관리되어야 했다. 사기업이 관리한다고 해도 어떻게 관리하는지 정부 차원에서 점검하고 그 과정을 투명화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 어떤 문제점이 발생해도 누군가가 지적할 수 있는 시스템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완전히 사기업에 책임을 떠넘기면 만에 하나 어떤 문제가 발생할 시에 그 피해는 사회전체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논리로 인해 정부의 투명성이 무척이나 큰 이슈가 되었다. 더 많은 인공지능을 투명하게 관리하기 위해서 그에 걸 맞는 민주적인 시스템이 필요했다. 때문에 아무리 친미파 정권이라고 해도 독재 정권이나 부패 정권에서 이런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 했고 복잡 제약 조건과 인공지능의 사용과 관리에 미국측 요원의 감사감리를 주기적으로 받는다는 내정 간섭에 가까운 조약에 서명을 한 뒤에야 기껏 한 두기 정도의 인공지능 정도를 얻을 수 있었다. 인공지능 붐이 다시 일기 전에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인공지능이 기술개발에도 응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는데다가 주변국들이 같이 인공지능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달랐다. 기술 개발용 인공지능이 없다는 것은 기술 개발 속도가 떨어진다는 뜻, 경쟁력 있는 기술을 선점하지 못한다는 것은 곧 국가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뜻. 그래서 수많은 나라들이 미국에 로비를 하기 시작했지만 미국은 이번 일 만큼은 철저하게 공정하고 투명하게 일을 처리했다. 그들은 무분별하게 인공지능을 확산시켜 핵과 같이 통제 하기 어려운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이를 위해 민주당과 공화당 사이에 협약이 맺어질 정도였다. 인공지능의 가치와 위험성을 잘 알고 있기에 이런 저런 엄격한 자격 요건을 요구한 미국은 인공지능 컴퓨터의 구입을 요청한 대상 국의 정부 시스템을 면밀하게 조사하기 시작했고 미 정보부는 넘쳐나는 일거리에 비명을 질렀다. 미국 정부의 공식적인 실무팀의 실사를 핑계로 해당 국가의 내밀한 속사정까지 자세하게 파악할 수 있는 기회를 날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잭, 오랜만이네.” “현! 하하하!” 이번에 찾아온 잭은 로또를 맞은 듯 기분이 무척 좋아보였다. 하긴 모두가 일에 치이고 있는 상태에서 혼자만 강현을 만나러 온다는 핑계로 여유를 부릴 수 있었으니 말이다. 둘은 잠시 신변잡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다가 역시나 요즘 핫이슈인 인공지능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기술 특허란 게 중요하기는 중요한가봐.” “돌맹이를 황금으로 만드는 지식이니까.” 반도체의 중요한 재료인 단결정 실리콘. 그 단결정 실리콘을 만드는 재료인 순수한 금속질 폴리 실리콘은 석영같이 산화규소(SiO2)가 풍부한 재료에서 만들어진다. 즉, 반도체를 만든다는 것은 모래로 유리를 만드는 것보다 훨씬 높은 부가가치를 형성한다. “정부에서 이번에 크게 실무진을 만들어서 각 국가의 정부 시스템을 점검한다는데 어떻게 생각해?” 잭의 물음에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하고 있어.” “그렇지?” 잭은 강현이 미 정부에 대해 신뢰를 가질 수 있는 기회를 그냥 넘기지 않았다. 확실히 강현은 투명하게 인공지능의 위험성을 관리하려고 하는 미 정부의 노력을 인정했다. 그리고 잭은 그런 강현의 태도를 확인했다. 이는 나중에 그의 인사고과에 기록되어 보너스를 탈 수 있을 수준의 일이었다. “혹시 뭔가 조언할 건 없어?” “글쎄.. 인공지능의 관리는 정치적인 시스템의 비중이 무척 크기 때문에 내가 뭐라고 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아. 그래도 만일에 문제가 생겼다면 기술적으로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놓는 게 좋아. 조커는 가지고 있어야 하니까?” “그렇군. 혹시 좋은 방법이라도 있어?” “내가 저번에 청문회에서 제시했던 방법 기억나?” “다수의 인공지능을 이용해 폭주한 인공지능을 제압해 무력화 시킨다는 거?” “그래. 가장 확실한 대처 방법은 그거지.” “그것도 일종의 정치적인 방법이라고 하지 않았어?” “그건 인공지능의 관점에서 그렇고 인공지능을 이용하는 인간의 관점에서는 기술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도 있지. 단지 정치역학이 적용되는 새로운 형태의 기술이지만.” 지금까지 정치에 과학기술이 이용하는 모습은 많이 있었다. 진화론, 우생학, 그리고 이를 이용해 수 많은 유대인과 그보다 더 많은 집시를 학살한 나치는 정치가 과학을 이데올로기로 사용한 가장 최악의 예였다. 반면에 과학기술이 정치를 이용하는 모습은 별로 없었다. 왜냐면 정치는 그 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상 중 가장 높은 층위에서 일어나는 일이었고 과학 기술은 그 사회의 기저에서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요소였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기반암과 그 위에 세워진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었다. 기반암의 크기와 재질에 따라 그 위에 형성되는 건축물의 무게와 높이가 결정되는 이치와 같았다. 근본적으로 사회를 변화 시킨 것은 기술이지 정치가 아니었다. 농업 기술이 없었다면 인류는 잉여생산물을 가질 수 없었을 것이고 그로 인한 교역, 상업이 발달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화약과 총이 없었다면 프랑스 혁명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대중은 민주주의를 실현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편, 인공지능의 세계가 구현되었다. 그리고 그 인공지능 자체를 이용하는 인간에게 인공지능간의 입장차에 의한 갈등을 조정하는 것은 시급한 문제였고 정치적 기술을 인공지능의 관리 및 제작에 접목할 필요가 있었다. 이는 앞으로 인공지능의 숫자가 늘어날 수록 더욱 실감할 수 밖에 없는 현상이었다. 잭은 강현의 설명을 꼼꼼하게 기억했다. 인공지능에 관한 강현은 전문가다. 그러한 전문가의 의견과 예측은 충분히 고려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아, 그리고 이번에 한국에 실무팀이 들어갔는데 말이야..” 잭은 은근하게 한국의 일을 꺼냈다. 강현에게 한국에 대한 애착은 없지만 그가 설립한 제현 그룹이 여전히 한국에 남아 있었다. “아무래도 인가를 받기 어려울 듯해.” 잭의 말은 미 정부가 인공지능용 부품의 추가 판매를 거절할 것이란 소리였다. 자체적으로 인공지능을 제작하는 것은 말리지 않겠다는 단서가 붙어 있지만 RNP나 SNP 또는 뉴로칩이 없다면 어느 세월에 인공지능을 만들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그러니까 부품 판매의 거부는 곧 인공지능 제작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그래?” 강현은 한국이 기술개발용 인공지능을 구입하지 못한다는 말에 별로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실사를 하다가 원전 관리 능력에서 엄청난 마이너스 점수를 받았나봐.” “원전?” 잭은 강현이 관심을 표하자 신나게 한국을 까대기 시작했다. 한국 수력원자력 공사의 사장부터 부장급 간부까지 줄줄이 얽힌 금품수수와 불량 부품의 납품, 거기에 혐의를 적발하고도 솜방망이 처벌은 물론 부실 수사와 함께 감추기 급급한 한국 정부의 태도에서 완전히 낙제점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반감기 가속장치가 개발되기 이전부터 그랬으면 정말로 미친 놈들이구나.” 강현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새삼 미국행을 잘 선택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잭과 미 정보부가 원한 대로였다.) “하긴, 반감기 가속장치의 개발에 가장 기뻐한 이들이 원전 비리에 얽힌 이들일걸?” 잭이 이죽댔다. 원전이 잘못되면 완전히 끝장이다. 그런 부담을 가지고 비리를 저지르는 것과 뒷수습을 할 수 있는 상태에서 비리를 저지르는 건 심리적 부담 상태가 완전히 다르다. “어쩐지.. 웃돈을 줄테니 먼저 팔아달라고 애원할 만하네.” “큭큭.” 잭은 지독한 블랙코미디에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강현의 질문에 다시 진지해 질 수 밖에 없었다. “한국이 그 정도면 중국과 러시아도 인공지능 컴퓨터를 확보하는 것이 어렵겠네?” “아아. 우리 미국을 맹 비난 중이지.” 공산당 독재를 하는 중국의 관료주의는 비리가 만연하다. 뭐 수 천 년 역사 중 관리가 무섭지 않은 경우가 없고 뇌물을 받는 풍조가 사라진 적을 보기 드문 나라이니 당연했다. 그러니 인공지능을 투명하게 관리하기는 커녕 문제가 생기면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며 발을 빼려고 들 가능성이 높으니 문제 해결 능력을 신뢰할 수가 없었다. 러시아도 마찬가지. 소련 붕괴와 공산주의의 실패로 인해 쌓여있던 내부 부패와 여전히 지속되는 독재 체제 아래에서 마피아가 번성하는 등, 자정능력의 쇠퇴로 인공지능을 잘 관리할 수 있는지 도저히 신뢰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이 국가들이 친미파 정권이 들어서 있는 국가들처럼 내정 간섭에 가까운 조약에 서명하면서까지 인공지능을 구입할 리가 없었다. 그것은 굴욕이었다. 미국을 견제할 국력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는 두 나라에서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조건이었다. “일본은?” “일본은 몇 가지 제한된 조건으로 인공지능을 구입할 수가 있었다. 그 핵심은 인공지능의 관리를 정부 직속으로 하기로 한거야. 필요하다면 미국의 감리로 주기적으로 받기로 했고.” “그쪽은 그런 식의 시스템이 잘 되어 있지.” 일본의 정경유착은 매우 심하다. 그러나 전통적인 사회의 수직구조로 인해 정치권력이 더 막강하다. 대를 이어 정치가가 되고 대를 이어 기업인이 된다. 그런 나라이다 보니 인공지능을 사적으로 구비하는 것을 막고 정부가 관리하고 기업에게 사용 허가를 내주는 식으로 운용하기로 했다. 정치권력을 자본권력보다 더 위에 놓기 위해 기술개발형 인공지능을 일본 기업들의 목줄로 쓰기로 한 것이다. 126화 하지만 웃긴 일이었다. 구입에 사용하는 비용과 유지비를 기업에서 뜯어내는 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따지자면 인공지능은 그 기업들의 자산이 되어야 하지만 법적으로는 일본 정부의 소유로 남는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우리가 결정했으니 따르라는 식의 상명하복이 주류 질서로 되어 있는 것이다. 이는 매우 효율적인 자원 사용이 가능하나 민주주의의 자정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독재나 파시즘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동아시아에서 일본에만 팔게 되면 항의가 더욱 심할 텐데 어떻게 대처할 거야?” 잭은 강현의 말에 자신의 추측을 말했다. “아무래도 시간을 끌려고 할 거야. 사실 네가 청문회에 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기술적인 대책을 세우고 있거든. 그렇게 인공지능의 위험성이 낮아지게 되면 굳이 이런 식으로 수출을 제제 할 필요가 없기에 그때까지 최대로 필요한 이득을 볼 생각인 것 같아.” “잘 하고 있네.” “네 덕분이지.” “어차피 그로 인해서 생기는 이득의 일부는 로열티 명목으로 내 주머니에 들어오는 거잖아. 미 정부가 잘해주면 나야 좋지.” 인공지능을 만드는데 가장 필요한 SNP의 핵심 기술과 물질 특허를 가지고 있고 또한 기술 개발용 인공지능을 교육하기 위한 프로그램 저작권도 가지고 있으니 언뜻 보면 미국 정부의 규제가 그의 수익을 갉아먹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일차원적인 생각이다. 일단 강현은 돈에 연연하지 않았다. 타인이 보기에는 손해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에게는 딱히 큰 손해가 아니었다. 오히려 미 정부의 규제로 자신에게 청탁을 해오는 이들이 있어 정치적으로 영향력을 확장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리고 강현은 그 중 필요한 이들에게 추천서나 견해서를 써서 도움을 주고 있었다.(물론 그 모두다가 미국인이었다. 미국인인 강현이 미국인이 아닌 이들의 청탁을 들어줄 이유는 없었다. 설사 그 외국인이 모국이었던 한국에서 온 정부 특사라고 해도 말이다. 결과적으로 미국내에서 강현의 영향력은 확대되고 있었다.)잭은 강현의 말에 피식 웃었다. 미 정부를 상품 판매를 대행하는 트레이더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은 그가 아는 한 강현이 유일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강현의 존재로 팍스 아메리카가 더욱 공고해 지고 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그는 강현이 오래 오래 미국인으로서 살기를 바랬다. = = = = = 미 정부의 구입 자격 심사는 정치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은 각 나라의 정부 시스템에 가치가 매겨지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반미주의자들은 이런 미국의 행태에 내정간섭이다, 오만함의 극치다라고 외치며 격분했지만 제우스 사태와 같은 비극을 미연에 방지한다는 명분으로 충분히 대적할 수 있는 수준의 비난이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로 인해서 경제적 성장을 해야 하는 개발 도상국들이 정치적 성장도 해야 한다는 이중고를 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열악한 경제 상황에서 허덕이는 각 국가의 국민들에게 거대한 짐이었다. 정치? 그보다는 일단 먹고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닌가? 정부는 잘하고 있지 않나? 응? 잘하고 있지 않다고? 비리가 만연하다고? 정치적인 혼란은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 물론 부패에 눈을 감고 정치적 성장보다 경제적 성장을 선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기술용 인공지능을 도입하지 못해 기술 개발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그 국가의 앞날은 뻔하다. 하청 국가. 국민들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그 과실이 각종 로열티 명목으로 외국으로 나가버린다. 경제 구조가 언제나 외국에 끌려 다닐 수 밖에 없는 형태가 될 개연성이 너무나 높아진다. 하지만 그러한 흐름을 막을 도리가 없어 보인다. 대세는 도도하게 흐름을 유지하고 있었고 일단 굶어 죽는 국민부터 추스려야 하는 곳이 너무 많았다. 원전 비리로 인해 구입 요청이 기각된 한국 역시 마찬가지 수순을 걸을 수 밖에 없었다. 한국 정부는 추가로 구입되는 인공지능의 사용처와 상태에 대한 정밀 감리 등을 미국으로부터 받는다는 문서에 서명하고 나서야 기술개발용 인공지능을 구입할 수 있었다. 그 전에 구입한 케이즈락을 기술개발용으로 전용하기에는 케이즈락이 보호하는 국가기관과 금융기관의 중요한 정보가 너무 많았다. 그런 미국의 평가에 의해 한국의 정부 시스템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졌지만 의외로 주가는 떨어지지 않았다. 투자가들은 한국 정부보다 이미 한국 기업을 신뢰했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수익을 창출하는 그들의 능력을 신뢰했다. 물론 제현 그룹의 경우에는 그 배경에 존재하는 강현이란 보증이 있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동안 강현은 신 통일장 이론의 양자 변수 두 개를 발견하고 이를 응용해 기존의 양자 컴퓨터보다 범용성이 높은 양자 컴퓨터를 만든 성과로부터 신 통일장 이론의 가능성을 확신하고 더욱 연구에 매진하고 있었다. 특히 요즘에는 메타 물질에 신 통일장 이론의 수식을 응용할 수 있는지 실험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오랜만에 마리아 헨델이 찾아왔다. [박사님. 마리아 헨델이 접견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응? 그 여자가 왜? 뭐, 만나보지. 그동안 아프리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도.” 강현이 아즈삭을 통해서 자료를 수집하고 있지만 그로 인한 맹점이 발생했다. 인터넷같은 통신망이 잘 깔려있지 않은 국가에서 아즈삭의 정보 수집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 또한 그로 인해 아프리카에 첩보망을 펼힌 첩보용 인공지능의 정보만을 얻을 수 있을 뿐 그것을 검증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 게다가 야생의 아프리카가 아닌가? 수도권이라고 할 수 있는 도심지는 몰라도 농가가 외곽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은 알 수가 없었다. 로봇 바퀴벌레를 뿌릴까 생각도 해봤지만 야생에 가까운 지역이라 바퀴벌레를 뿌리면 얼마나 생존할 지 알 수가 없다. 오히려 로봇 바퀴벌레라는 히든 카드가 들킬 가능성이 있었다. 그래서 순환 방목으로 얼마나 큰 효과를 보았는지 실제 눈으로 확인한 마리아의 말을 듣는 것이 더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오랜만입니다.” “오랜만에 뵙네요, 박사님.” 둘은 간단히 안부를 주고 받은 후 본격적으로 바로 본론을 시작했다. “오늘 이렇게 찾아오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아버지를 설득해 주세요.” ? 응? 강현은 의외의 말에 머리가 갸우뚱 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봉쇄하고 무차별 폭격을 계획하고 있어요! 부탁이에요! 막아주세요!” “그거랑 헨델 회장님을 설득하는 거랑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곡물 카르텔 1위인 카길의 힘이라면 그런 비극을 막을 수 있어요.” “글쎄..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아버지가 인맥이 있으니까 아버지만 결심하면 가자 지구 학살을 막을 수 있어요.” “아버지와 이야기는 해봤습니까?” “해봤지만 제 말은 듣지 않으세요.” “딸의 애원도 듣지 않는 사람이 타인의 말은 들을 거라고 생각합니까?” “박사님의 영향력은 막강해요!” 마리아의 말에 강현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렴풋이 자신의 영향력이 클거라고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유대인 네트워크의 중추 중 하나인 헨델 회장에게 그 정도로 영향을 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영향력을 생각하기 이전에 문제가 있었다. “그런데 왜 저입니까?” “네?” “미국 대통령도 있고, 워싱턴의 의원들도 있는데 왜 제가 그래야 하나요?” “그 사람들은 다 한통속이에요. 유대인의 돈을 먹지 않은 정치인이 없고 정치기부금을 받지 않는 조직이 없어요.” “그럼 제가 헨델 회장님을 설득하다가 수틀리면 그 사람들 모두를 상대해야 한다는 말이군요.” 강현의 중얼거림에 마리아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역시 안되는 건가? “마리아 씨. 당신은 유대인이면서 왜 가자 지구를 공격하는 것에 반대를 합니까? 이스라엔은 유대민족의 국가잖아요.” “모두.. 미쳤으니까요.” “미쳤다?” “그 나라 사람들은 폭격하는 걸 관람하게 위해 의자를 가져다 놓고 맥주를 마셔요. 팔레스타인의 모든 어머니를 강간하고 죽여야 한다는 미친 놈들이 국회의원으로 있어요. 모두 미친 것 같아요.” 마리아는 말을 하다가 감정이 북받쳤는지 눈물을 뚝뚝 떨어졌다. 그녀로서는 그녀의 동족들이 그런 사이코 패스 같은 이들이라는 것이 참을 수가 없었다. 그녀의 혈관에도 그들과 같은 피가 흐른다는 동질감이 그녀를 더욱 슬프게 했다. “그 정도라면 좀..” 강현 자신도 한국에 살고 있었고 한국인이 그렇게 미친 짓을 하면 기분이 안 좋을 것 같았다. 한국의 땅에서 한국인으로서 동포가 살인을 자행하며 낄낄 웃을 때 그 사람의 몸에 흐르는 피가 자신의 몸에도 흐른다고 생각하면 편안히 있을 수가 있을까? 그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마리아를 보았다. 그때는 그저 이상을 쫓는 철부지 부잣집 따님같았지만 그녀가 고뇌하며 흘리는 눈물을 보니 유대인이 상실한 도덕률이 그녀에게 다 모아진 것 같았다. 만일 자신이었다면 스스로가 유대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핏줄을 혐오했을 것이다. “제발 부탁이에요! 어떻게 좀 해주세요!” 그는 그제서야 그녀가 자신에게 온 이유를 알았다. 그녀는 정말 어떻게든 하고 싶었다. 자신의 한계를 알고 있었지만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머리를 굴리다가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그녀의 절박한 마음을 이해는 했지만(공감할 수는 없지만) 자신에게 정말로 그 정도의 역량이 있는가? 또 그 정도로 영향력을 발휘하고 난 뒤에 어떤 문제가 발생할 것인가?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강현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일단은 그녀의 요구를 적당히 넘기기로 했다. “일단 헨델 회장님께 자세한 사정을 들어보고 설득할 수 있다면 해보겠습니다. 거기까지가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입니다. 이해하시겠어요?” “감사합니다.” 그의 말에 마리아는 그의 두 손을 꼬옥 쥐고 고개를 숙였다. 강현은 손에서 느껴지는 약간은 거칠지만 말랑하고 따스한 느낌에 슬며시 손을 뺐다. 집안일을 한다고 손에 약간 주부 습진이 있었던 어머니가 생각났다. 하지만 그는 짧은 감상을 뒤로 한 채 마리아에게 궁금한 것을 물었다. 자신이 기부한 순환 방목의 결과를 알고 싶었다. “... 그러니까 짐바브웨에서..” “... 위성 사진으로 녹지 확장은 파악할 수 있으니까 그 외에...” 그녀의 말을 정리하자면 확실하게 그 지역 사람들의 삶이 풍요로워졌다고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성장한 경제를 이용해 무기를 구입하고 있었다. 하긴 치안이 불안하고 여기저기서 반군들이 돌아다니는 상황을 생각해 봤을 때 군대 조직의 정비와 확장이 불가피할 것이다. “그럼 그 외의 지역은 역시 해결이 안 됬군요.” “네. 비가 오지 않은 지역은 목초지 확장 속도가 너무 늦어요.” “그럴 수 밖에요.” 비가 오지 않는 지역에도 풀은 자라고 성장한다. 어떻게? 바로 이슬이다. 공기 중의 수증기가 새벽이 되면 촉촉하게 풀을 적신다. 풀을 구성하는 셀룰로이스의 비열과 친수성으로 인해서 풀의 표면은 수증기가 응축하기 위한 핵(nucleus)이 된다. 이 원리는 어떤 기체가 액체로 응결 할 때, 또는 액체가 고체로 응고할 때 반드시 응축의 핵이 필요한 물리적 매커니즘에서 나온 것이다. 응축의 핵이 없이 굳어버리면 액체 상태의 분자 배열이 된다. 이를 비정질 물질이라고 하며 실제로 유리를 굳은 액체로 표현하기도 한다. ============================ 작품 후기 ============================ 오늘은 두편입니다. 127화 현대 공학에서도 이 매커니즘을 극대화하여 사용하고 있는 곳이 있으니 바로 재료공학이다. 이 응축의 핵은 각각이 단결정을 형성하기 때문에 철강 따위에서 마이크로 구조를 정밀하게 조작하기 위해 조성과 응결 온도 같은 다양한 변수를 조정한다. 또 다른 예로는 반도체 실리콘을 제작하는 곳이다. 반도체용 실리콘 와이퍼를 만들기 위해서는 단결정 실리콘 잉곳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핵생성 매커니즘을 이용해 불필요한 핵의 생성을 막고 유일한 핵이라고 할 수 있는 작은 단결정 실리콘 조각을 실리콘 융해물 위에 띄워 성장을 시킨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풀이 이슬을 맺히게 하는 응결 매커니즘에 길쭉길쭉하게 생긴 풀의 넓은 친수성 표면적을 생각하면 비가 오지 않은 지역에서도 초목이 생존할 수 있는 이유가 짐작된다. 지표를 덮은 풀들은 알렌 세이버리의 말대로 땅의 수분을 유지하는 국지성 기후를 만들어 내고 여기에 풀들이 지속적으로 수분을 공급하니 풍요로움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가 오지 않은 지역의 경우 사실상 수분을 풀이 수급하는 시스템이 이루어져 있고 그런 풀들이 사라지니 당연히 황폐화되는 것이다. 아마 비가 내리지 않는 지역이 과거처럼 수풀이 우거진 곳으로 변하려면 사람의 새심한 손길이 지속적으로 필요하거나 아니면 오랜 세월이 지나야 할지도 모른다. 마리아는 강현과 대화를 다 하자 일어나면서 부탁했다. “꼭 아버지를 설득해 주세요.” “최선을 다해보죠.” 그것이 강현이 할 수 있는 말이었다. = = = = = “.... 크흠..” 헨델 회장은 심기가 불편했다. [아프리카에 집중하기 위해 팔레스타인과는 잠시 휴지기를 가지신다면서요?] 강현이 불편한 이야기를 꺼냈기 때문이다. “그게 사정이 바뀌었네.” [사정이요?] “자네가 투자한 순환 방목의 성과가 지인들이 생각하기에는 그리 뛰어나지 않은 듯 한 모양이야.” 곡물 시장, 즉 식량을 꽉 잡겠다는 유대계 곡물 카르텔의 입장에서 강우량이 풍부한 지역에서만 순환 방목의 성과가 나타난다는 건 이렇게 생각할 수 있었다. 비가 풍부한 아프리카의 해안지방과 일부 내륙 지방만 장악한다면 여전히 식량 시장에서 그들의 기득권을 지킬 수 있다는 의미였고, 이는 그들이 ‘완전한’ 이스라엘 건설을 위해 투자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는 의미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팔레스타인과의 평화 조약에 훗날을 대비해 붙였던 조항을 빌미로 가자 지구 봉쇄를 시작했고 이들의 빠른 행동에 팔레스타인 측은 화들짝 놀랐다. 가자 지구 봉쇄에 대비해 그쪽에 있던 사람들을 점진적으로 이동 시킬 생각이었는데 이스라엘이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버렸던 것이다. 팔레스타인 측의 항의에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들먹이며 그들을 빠져나가게 둘 수 없다면서 군사력을 동원하기 시작했고 무력충돌과 함께 사상자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건 왜 물어보는가?” 헨델 회장은 의문스러웠다. 세상과 단절한 채 자신만의 세상에 파묻혀 살아가는 천재가 왜 갑자기 세상에 관심을 갖는지 걱정되었다. 그가 만약 세상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끼친다면 반드시 혼란이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따님이 다녀갔습니다.] 강현의 말에 헨델은 저도 모르게 손바닥으로 이마를 짚었다. “그래, 뭐라고 말하던가?” [이스라엘이 자행할 학살을 막기 위해 손을 보태 달라고 하더군요. 눈물을 흘리면서 가장 먼저 회장님을 설득해 달라고 했습니다.] “....” 헨달은 강현의 말에 말을 할 수 없었다. 가슴에 무엇인가가 맺힌 듯이 답답해져 왔다. 그는 굳은 입술을 억지로 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인가?” [글쎄요.. 저도 감정적으로는 좀 심하다는 생각을 하기는 하지만 입장 차이라는 것이 있으니까요.] “허!” 헨델 회장은 강현의 말에 허탈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강현의 말은 나치에게도 그럴만한 입장이 있었을 거라는 뜻이 담긴 기세였기에 일순간 불쾌감이 일었지만 내색할 수는 없었다. 스스로의 얼굴에 침을 뱉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아무튼 냉정함을 유지하고 판단하자 다소 안심이 되었다. 강현이 특별히 무언가를 할 의도는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헨델 회장은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이스라엘의 일에 강현이 간섭하지 않을 거라는 확언을 얻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이 어디로 뛸지 모르는 천재에 대해서 조금은 안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입을 여는 것보다 강현의 말이 더 빨랐다. [회장님께서는 죄책감 같은 게 안 느껴지십니까?] 그의 딸인 마리아조차 유대인의 잘못에 고개를 숙이며 죄를 씻는 기분으로 아프리카의 평화와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었고 이번 가자 지구 봉쇄에 대해서 눈물을 흘리며 도움을 호소할 정도였다. 마리아 뿐만 아니었다. 유대인들 중에서도 유대교를 버리고 이스라엘의 행위를 비난하는 사람이 적잖았다. 그런 행위는 이스라엘의 입장에서는 배신과 다름없었지만 한 인간으로서는 박애 정신의 표출이었다. 헨델은 그의 말에 잠시 침묵하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자네.. 유대인의 한을 아는가?” 나라를 잃고 고향 땅에서 쫓겨나 수 천 년을 돌아다녔다. 기독교 세력에게 핍박받던 그들은 기독교 세력이 천시하고 금기시하는 금융활동으로 주로 살아가는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정체성을 잃지 않으며 그렇게 꿋꿋하게 살아갔지만 유럽 어느 국가도 자신들을 대우해 주고 같은 국민으로 인정해 주는 나라는 없었다. 심지어 워털루 전투로 엄청난 돈을 거머쥔 로스차일드마저 독일 어린이가 지나가면 모자를 벗고 예를 표해야 할 정도니 유럽에 만연한 유대인 혐오주의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을까? 그런 유대인 혐오주의는 현대에 와서도 사라지지 않았다. 유대인 가문의 대표적인 로스차일드가 워털루 전투의 결과를 왜곡해 엄청난 돈을 벌었다고 하지만 이것 역시 그들을 음해하기 위한 낭설이다. 로스차일드는 생각보다 빠른 전쟁 종결에 국채의 가격이 상승할 것이라고 보고 대대적으로 투자했고 이것이 성공했던 것으로 결과적으로는 경제의 흐름을 잘 읽는 유대인의 특성에 기인한 결과였다. 현대에서도 그런 낭설이 유행하는 것을 보면 유대인에 대한 편견과 혐오는 오랜 기독교적 전통을 지닌 서양 문명에 여전히 뿌리깊게 남아있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이스라엘을 건국 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네. 유대인이라고 해서 차별 받지 않는 나라. 그런 나라를 얻기 위해 못할 것이 뭐가 있겠나?” 그런 면에서 이스라엘 건국을 열망하던 시오니즘 지도부는 독했다. 독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이스라엘 국가의 건설을 위해서 유럽에서 유대인을 추방하는 것을 필수적인 전제로 삼았다. 땅이 있어도 국민이 없다면 지킬 수 없는 법. 심지어 그들은 반유대주의를 정치적으로 이용해 유대인을 핍박하여 정권을 유지하려는 나치와도 손을 잡고 조약까지 맺었다. 더 나아가 유대민족에 대한 동정여론을 만들기 위해 그들이 저지르는 유대인 학살에도 눈을 감았다. [흐음..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자네라면 자네의 민족이 땅도, 나라도 없이 수 천 년을 헤맸다면 나라를 갖기 위해 어떤 일을 하겠나?” [글쎄요.. 저는 민족주의자가 아니지만 만일 제가 민족주의자라고 가정한다면 무슨 짓이라도 할 것 같네요.] 강현은 솔직하게 답했다. 한국도 일제에 의해서 식민지가 된 이후 수 많은 사람들이 나라를 되찾기 위해서 싸웠다. 그러나 그중에 대세에 순응한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봉창 의사. 그는 지금은 폐교된 효창초등학교(당시 문창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잠시 가게 점원 등으로 일하다가 일본에 건너갔다. 일본에 건너간 그는 오사카에서 어느 일본인의 양자가 되고 이름마저 일본식으로 고쳐 기노시타 쇼조(木下昌藏)가 되었다. 하지만 한국인이라는 딱지는 사라지지 않았다. 나라를 빼앗겨도 차별은 사라지지 않는다. 일본이 주장하는 내선일치는 허구였으며 한국인은 영원히 일본인의 하위 계층이었다. 이봉창 의사도 이를 깨닫고 말았다. 비록 능숙한 일본어를 할 수 있어 수많은 일본인 지인이 있었으나 결국에 그 간극을 메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일왕 암살 시도를 하게 된다. 비록 실패로 끝났으나 그가 남긴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그가 한국인이었지만 일본인이 되려고 했다는 점에서 더욱 그랬다. 한국인이 완전히 일본인이 되는 것은 불가능했다. 나라 없는 민족이 맞닥뜨리게 될 경멸, 혐오, 무시, 차별, 불이익. 일본인으로 살 각오를 한 사람을 다시 한국인으로 만든 민족주의의 배타적인 특성. 그 피할 수 없는 고통과 고뇌를 고작 50년도 안 되는 동안 받은 한국인의 한을 고려한다면 5000년 가까이 나라 없이 떠돌아 다닌 유대인의 한은 어떠할까? 그 독기는? “... 고맙네.” 아이러니 하게도 강현의 솔직한 대답은 헨델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다. 그것은 같은 유대민족으로부터 얻는 공감대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다른 민족으로부터 유대민족의 입장을 이해 받는다는 것은 헨델의 마음 속에 있던 일말의 죄책감을 희석시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었다면 좋았을 터이다. 강현의 말은 끝나지 않았던 것이다. [왜 고마워 하시는 거죠? 저는 제가 민족주의자라는 가정 하에 그럴 수 있다고 한 겁니다. 하지만 저는 민족주의자가 아니죠.] “무슨 말인가?” [민족주의자가 아닌 사람들의 관점에서 시오니즘으로 정신무장을 하고 학살을 자행하는 유대민족을 곱게 볼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특히 다원주의가 일반화되고 있는 이 시대에서요.] 민족주의자가 아닌 이들에게 이스라엘이 하는 일은 어떻게 비칠까? 나치와 다름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런 주제에 피해자인 척 하는 이스라엘의 태도가 가증스럽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렇다고 민족주의자가 이스라엘의 행동을 이해하고 환영할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민족주의자에게는 자신의 민족이 중요하기 때문에 세계를 주무르는 강력한 민족의 탄생을 좋아할 리가 없다. 더구나 자신들이 신의 선택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시오니스트들을 곱게 볼 리는 더욱 만무했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에 대한 공격을 지속적으로 하게 되면 다시 유대인에 대한 혐오가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될 텐데 괜찮겠습니까?] 또한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유럽 서구 중심적 세계 질서는 확고하다. 따라서 여전히 유대인에 대한 혐오감이 남아있는 그 곳에서 팔레스타인 일을 빌미로 반유대주의가 싹을 틔울 가능성이 있다. 아니 이미 피고 있었다. 그건 유대인들이 꽉 잡고 있는 미국에서도 다르지 않다. 이민자에 의해서 탄생한 미국의 입장에 인종 차별 주의자들은 미국을 분열시키려는 암종양이다. 그래서 그동안 인종 차별 주의를 없애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실제로 그 성과도 나타나고 있었다. 그러니 그런 국가 정책에 의해서 교육받은 미국 국민이 선민주의 사상의 시오니스트들을 혐오하리란 건 너무도 자명했다. 이는 미국을 통해 세계 질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유대인의 힘을 근본적으로 흔들 수 있었다. 결국 팔레스타인 사태를 해결할 키는 미국에게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헨델 회장의 말은 잔인했다. “그전에 마무리하면 된다네.” [그렇군요.] ============================ 작품 후기 ============================ 한 독자분께서 저번 화에 오류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국회의원의 발언은 정확히 말해서 팔레스타인이 아니라 테러리스트의 어머니를 두고하는 말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그 이스라엘 국회의원의 발언은 일본인 전체가 아니라 일본 전범을 두고 욕을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겁니다. 하지만 저는 이를 관점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테러리즘을 범죄로 보냐, 아니면 약자의 전쟁 수단으로 볼 것이냐는 거죠. 한 가지 더 지적하자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구도는 일제-식민 조선과 같은 구도입니다. 실제로 더 힘 있는 쪽이 이스라엘이고 더 많은 사람을 죽이는 쪽도 이스라엘입니다. 그런 이스라엘에 무력적으로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은 테러밖에는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입장에서는 테러지만 팔레스타인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민족을 구하기 위한 전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거 한국의 입장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뻔히 일본놈들이 이웃 가족을 죽이고 있는데 목숨걸고 자살폭탄테러를 할까요, 안 할까요? 실제로 팔레스타인 모든 어머니가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테러리스트를, 그리고 팔레스타인의 관점에서는 독립지사를 낳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 사실을 고려해보면 모든 테러리스트의 어머니를 그래야 한다는 발언은 곧 모든 팔레스타인 여성에게 그런 짓을 해야 한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문제는 테러리즘이 아닙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구도를 뒤집어 봅시다. 그럼 이스라엘이 목숨걸고 테러를 할까요 안 할까요? 팔레스타인의 입장에서 끝이 안 보이는 분쟁의 씨앗을 제거하기 위해 이스라엘 테러리스트의 모든 어머니를 죽이자는 발언을 하는 이가 분명히 나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모든 이스라엘 여성을 죽이는 것이 될 겁니다. 결국 테러리스트란 입장의 차이입니다. 미국이 테러리즘에 범죄의 딱지를 붙였지만 민족과 민족 사이의 간극은 하늘과 땅 만큼 벌어져있죠. 결코 쉽게 가까워지지 않습니다. 만일 그랬다면 전쟁 범죄자인 주제에 핵폭탄 맞았다고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일본놈들이 존재하겠습니까? 그러니까 민족주의가 일반적인 현대 사회에서 테러리스트만 공격한다는 이스라엘의 말은 허구입니다. 이라크에서도 미국은 민간인과 테러리스트를 구분 못해서 많은 피해를 입었죠. 즉, 민간인이 곧 테러리스트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테러리스트가 탄생하는 근간인 팔레스타인 민간인 역시 테러리스트로 보이겠죠. 그래서 모든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의 어머니를 강간하고 죽여야한다는 말은 이스라엘 국회의원의 발언은 결국 인종청소로 테러리즘을 해결하자는 발언입니다. 이렇게 비유하면 쉬울까요? 일본이 한국 테러리스트(독립운동가)의 어머니를 강간하고 죽여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128화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혐오는 혐오, 실리는 실리. 혐오주의가 꽃핀다고 해서 그것이 완전한 이스라엘 건설에 방해가 되기 위해서는 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전에 이들은 이스라엘을 완성할 자신이 있었고 그런 연후에는 얼마든지 그런 비난 여론을 가라앉힐 시간과 능력이 있었다. 세계는 자본주의가 지배하고 그 자본주의의 흐름을 쥐고 있는 것이 바로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제 설득은 실패군요.] “미안하지만 그렇다네.” [뭐, 저도 최선을 다해서 설득했으니 마리아 씨에게 할 말은 생겼으니까 괜찮습니다.] “딸애 때문에 미안하게 됐네.” [아니요, 괜히 다른 사람 일에 간섭하려고 했던 것이 잘못이죠. 그럼 이만. 잘 지내세요.] “자네도.” 둘의 통화는 그렇게 끝나버렸다. 헨델은 다소 안심할 수 있었다. 그렇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간의 일은 강현에게는 ‘남의 일’인 것이다. = = = = = 통화를 마친 강현은 기묘한 불쾌감에 휩싸여 있었다. 그는 헨델 회장과의 대화를 차근차근 곱씹으며 자신의 입장을 정리했다. 자신은 민족주의자가 아니다. 그래서 헨델 회장과 시오니스트들이 가진 민족주의적인 사상(선민사상은 제외하고서라도)에 동의하거나 동의하지 않거나 입장을 정할 수가 없다. 민족주의의 반대는 반민족주의, 혹은 매국이지 흑인이니 백인이니 따지는 것에 관심이 없는 그를 민족주의의 반대자라고 할 수 없었다. 수학적으로 강현의 입장은 더욱 간결하게 표현된다. A, B, C로 구성된 입장의 집함이 있다. 그 중에 A의 반대는 무엇일까? B일까? C일까? 아니다 -A다. 강현의 입장은 -A가 아니라 A 자체가 없는 B, C라고 할 수 있다. 즉, 강현은 민족주의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주의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 사이에는 엄청난 생각와 행동의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좀 더 구체적으로 정의를 해보자. 기술자와 학자를 존중하며 그들의 잘못이나 범죄행위에도 눈감는 태도를 생각하자면 아마 문명주의자라고 명명할 수 있지 않을까? 흑인이니 백인이니 상관없이 아무나 존속해서 인류가 지금껏 쌓아 올린 과학 문명을 상실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본심이 아닐까? 그런 입장에서 팔레스타인 사태를 판단하기에는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 일이 과연 인류 문명의 존속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서로 간의 증오로 멸망할 것인가? 아니면 수많은 사례들처럼 역사서에 글 몇 줄을 남기게 될 뿐일까? 물론 팔레스타인 사태가 인류 존망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흔히들 나비 효과라고 하지 않는가? 하지만 나비 효과를 위해서는 그를 위한 에너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나비 효과는 일종의 도미노 현상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무수히 세워진 수 많은 도미노 블록들. 이 도미노 블록들은 에너지적으로는 준안정상태에 있다. 길쭉한 직육면체의 도미노들을 세우면 그 중앙에 무게 중심에 의해서 중력장 안에서의 에너지 상태가 결정된다. 당연히 도미노를 눕힌 상태가 세운 상태보다 에너지가 낮고 안정하다. 그러나 세운 상태의 도미노가 저절로 넘어가지 않는 이유는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도미노 블록의 직육면체 본질적 구조로 인해 그 무게 중심에서 모서리까지의 거리는 각 면의 거리보다 길다. 이로 인해 도미노가 넘어지기 위해서는 그 무게중심이 모서리까지의 높이 만큼 상승해야 된다. 이는 중력에 반하는 에너지가 들어가야 한다는 의미고 바로 이것이 수 많은 물리화학 현상에서 반드시 필요한 활성화 에너지라는 것이다. 즉, 자연계에서는 활성화 에너지만 공급이 된다면 도미노처럼 무수히 많은 연쇄반응을 통해 거대한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마치 겨울철 사용하는 액체 손난로에 들어있는 티오황산나트륨이 똑딱이의 작동으로 점차 열을 내며 굳어지는 것처럼 도미노 같은 연쇄반응은 세상 어느 곳에서든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사태가 처음 무너지는 도미노가 되어도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팔레스타인이라는 도미노 하나가 무너질 때 이미 그 주변의 도미노가 무너져 있거나 아니면 다른 도미노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을 수도 있다. 연쇄반응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준안정상태가 구조적으로 구성되어 있어야 하지만 인간의 복합한 사회구조와 측정할 수 없는 인간의 심리상태, 때때로 카오스적인 흐름을 보이는 대중의 변화로 인해 연쇄반응의 방향성은 물론 발생 가능성도 예측이 어렵다. 드라마의 흥행도, 스타의 탄생도, 갑작스레 벌어진 독일의 통일도. 사회 과학이 그러고자 하는 시도이지만 인간의 인지와 생각, 그리고 그것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는 언제나 변하고 데이터도 언제나 과거의 것이기에 예측을 위해서 많은 시간과 돈이 든다. 미국의 언론과 여론조사 기관이 대통령 선거 때 얼마나 많은 돈을 투자하는지 아는가? 그 만큼 미래를 내다보는 행위는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강현의 직감은 엄청난 비용절감의 효과가 있었다. 그의 초능에 가까운 직감은 가자지구의 일이 큰 파급을 불러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살살 긁적이고 있었다. 물론 말들이야 많겠지만 현대에 들어서도 인간의 인간에 대한 대량 학살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시리아의 인종청소에 가까운 내전 역시 그렇다. 민주화 운동으로 촉발되어 종교 갈등에 국제 문제 등 수 많은 갈등 요소로 인해 너무나 많은 이들이 죽고 있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와 시리아 문제가 국제적으로 해결될 수 없는 이유는 너무나 복잡하고 첨예한 이해관계들이 풀수 없을 정도로 얽혀 있기 때문이었다. [박사님, 고민이 있으십니까?] 아즈삭은 창조주가 의자에 몸을 파묻고 무언가를 생각하자 피드백을 위해서 질문을 던졌다. “음.. 그러니까 가만히 있을까 아니면 개입을 할까 고민 중이야.” 아즈삭은 강현의 대답에 목적어가 없더라도 무슨 일인지 알 수 있었다. 필시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의 일을 말하는 것이다. 방금 전 그 때문에 헨델 회장과 전화 통화도 했고 말이다. [굳이 박사님께서 개입하실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가만히 있으려니 묘하게 기분이 더러워져서 그래.” [왜 그렇습니까?] “내가 종교를 싫어하는 건 알지?” [네. 검증 과정을 생략하고 믿음을 강요하는 불합리한 구조 때문이죠.] “스스로만 믿으면 되는데 이걸 타인에게 강요하는 순간 그건 폭력이 되지.” 물리적 폭력만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것은 아니다. 정신적 폭력도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그것이 트라우마를 일으킬 정도로 사람을 괴롭게 한다면 물리적 폭력과 정신적 폭력 사이에 차이는 없다. 그리고 강현에게 종교를 믿으라고 강요하는 것보다 더한 괴로움은 없었다. 그래서 민족이라면 다 용납되는 줄 아는 헨델의 태도가 무척이나 불쾌했다. 그의 사상과 태도에서 언젠가 연구소로 찾아와 한국인이라면 한국에 이득이 되도록 하라고 윽박지르던(당시 강현의 나이가 어렸다.) 국회의원의 모습이 떠올랐다. 같은 민족이면 다 허용이 되는 건가? 민족이 곧 정의인건가? 그 민족 출신의 살인범, 강간범, 사기꾼, 도둑놈 등 온갖 범죄자가 포함되어 있는데? 그래서 그날로 강현은 스스로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잊었다. 약간이나마 남아있던 향수도 지웠다. 미국 국적을 가진 사람으로 미국이 자신의 권리와 안전을 보장하는 한 미국에 충성할 것을 결심했다. 그가 인공지능의 재확산 붐에서 오직 미국 기업들, 미국 대학들에만 추천서를 써준 이유는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미국 정부가 인공지능을 외교적 카드로 쓸 수 있게 배려한 것이다. 그렇다고 미국을 숭배하는 건 아니었다. 줄건 주고 받을 건 받을 관계를 언제나 명확히 했다. 하지만 오히려 미국에서는 강현을 통해 더 많은 것을 얻었으니 확실히 흑자를 보았다. 강현 역시 자신의 안전과 권리를 확실하게 보호했으니 흑자였다. 이런 윈윈 게임으로 서로간의 신뢰가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강현의 머리속에는 갖가지 생각들이 뛰어다녔다. 그까짓 국가가 뭐라고. 어차피 자본주의 세상, 돈 있으면 힘이 생기고 힘이 생기면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데 굳이 그런 식으로 학살극을 벌여서 나라를 만들어야 하나? 그럼 나라가 없으면 어떻게 될까? 그럼 힘 많은 놈들이 지 맘대로 하겠지? 그럼 질서 유지 차원에서 국가는 필요한 걸까? 그때 강현은 깨달았다. 설사 국가가 사라진다고 해도 그 국가를 대신한 조직은 다시 탄생할 것이다. 인간은 본디 그런 생물이었다. 인간 내부에 자리한 어두운 면이 국가의 존재, 그로 인해 발생하는 질서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사회란 목줄이 없는 인간은 모두다 늑대다. 먹이를 잡아먹기 위해, 이익을 위해 충혈된 눈을 희번뜩거리며 주위를 둘러본다. 도덕은 사회의 존재로 탄생한 것이지 인간 본연 내면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본질적으로 타고난 기량 중에 도덕심에 가장 가까운 것은 동질감, 혹은 측은지심 뿐이지 도덕 그 자체는 아니었다. 그러니 수 천년 동안, 그리고 50년 전까지 노예제와 신분 차별법이 엄연히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회가 그것을 도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판단 했기 때문이다. 물론 사회의 변화에 따라 도덕의 형태가 바뀌어 간다. 하지만 사회의 변화가 개인의 관점을 바꾸는 것인지 아니면 개개인의 변화가 사회를 변화시킨 것인지는 확실하게 말할 수 없다. 전자이기도 하고 후자이기도 하다. 그것을 따지는 것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라는 순환론적인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아무튼 인간은 국가를 만들어 스스로에게 목줄을 채울 필요를 느끼지만 모순적이게도 인간은 그런 질서 위에 서기 위해, 자유를 위해 힘을 갈망한다는 점이다. 누구나 자유를 갈망하기 때문에 노력하고, 남의 위에 서려고 한다. 그럴 수 없다면 대신 남을 자신의 밑에 깔아두겠다는 생각도 한다. 왕따, 인도 카스트의 달리트 계급, 서로를 이단이고 경멸하는 수많은 기독교의 분파들. 인간은 권력을 누리며 자유를 실감하는 존재다. 강현은 그런 인간이 참 복잡하고 모순적이라는 존재를 느꼈다. 그리고는 찰리 채플린의 위대한 연설을 떠올렸다. ‘이성이 다스리는 아름다운 세계!’ 그는 ‘위대한 독재자’에서 불합리한 독재, 제도와 권력에 맞서 싸우기를 주장했다. 과학이 인류의 행복을 위해서 사용되는 세상을 주장했다. 그 연설에는 인간에 대한 희망과 사랑이 묻어 나왔다. 그렇다. 인간에게는 이성보다는 사랑이 필요했다. 서로에 대한 연민과 이해를 하려는 태도가 필요했다. 하지만 어려운 일이다. 탐욕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그런 태도를 아무런 차별없이 시행하며 살아갈 수 있는 이들이 몇이나 될까? 타인에 대한 사랑을, 동정과 연민을 민족과 국경을 너머 발휘할 수 있는 이들은 얼마나 있을까? 또한 힘을 가진 이들이 그렇게 살아갈 수 있을까? 돈과 권력을 쥔 이들이 뭐가 아쉬워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런 삶을 살까? 권력을 쥔 자의 뇌는 근본적으로 평범한 소시민의 뇌와는 다르다. 권력은 그들에게 테스토스테론과 쾌락물질인 도파민의 분출을 촉진시킨다. 쾌락에 중독된 그들은 과감해지고 스트레스를 견디는 능력이 강해지지만 생각의 폭은 좁아지고 공감능력도 떨어지게 된다. 권력자들이 사이코 패스같은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주로 그들의 뇌자체가 평범한 상태에서 평범하지 않은 상태로 변질되기 때문인 것이다. 129화 <12-모색> 이러한 자들은 증오를 주저하지 않고 이용한다. 대중들의 목에 증오의 사슬을 달아 이리 끌고 다니고 저리 끌고 다니며 제 입맛대로 다루려고 든다. 이것이 인종과 국경을 넘어 인류가 화합할 수 없게 만드는 근본적인 인류의 한계가 아닐까? 누구나 권력자가 되면 높은 가능성으로 사이코 패스가 된다는 과학적인 근거가 존재하니 말이다. 그렇다면 인류와 문명이 더욱 발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런 권력자들을 모조리 끌어내려 권력의 맛을 느끼지 못하게 만들면 될까? 높은 자리가 권력을 누리는 자리가 아니게 되면 어떨까? 시스템적으로 권력의 자리가 충성을 받는 자리가 아니라 봉사하는 자리로 만들면 어떨까? 누군가 영원히 권력을 누리지 못하게 사회 시스템을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러나 그것이 실현되기에는 갈길이 멀다. 대중은 미개했고 권력자들은 교활했다. 이 관계의 구조는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극복하기 위해서는 대중의 계몽이 필요했지만 대중의 계몽을 바라지 않는 권력자들은 끊임없이 방해할 것이다. 3S 정책이 바로 그 대표적인 예이다. 스포츠, 섹스, 스크린에 대중이 에너지를 소비하게 만들어 세상으로부터 눈을 돌리고 스스로의 인지 변화와 사회 개선을 위한 여력이 없게 만드는 것이다. 쾌락이라는 당근만 제시해서는 대중이 말을 잘 안 듣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공포를 채찍으로 사용한다. 범죄, 사고, 질병, 전쟁. 실제로 선거철만 되면 한국 주류 정치가들이 가장 잘 써먹는 것이 바로 북한 미사일이다. 권력가들에게는 이런 식으로 한 번 코가 뚫린 대중들을 다루는 것은 쉽다. 아니, 대중을 그런식으로 길들이는 것은 흐름을 만드는 것이며 어떤 흐름이라도 한번 생성되면 관성을 가지게 되어 되돌리기가 쉽지 않다. 한 쪽으로 날아가는 공의 방향을 다른 쪽 방향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그 두 배의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 관성의 법칙이다. 그러니 우민화 정책에 코뚜레가 걸린 대중은 권력자가 이끄는 대로 끌려가다가 스스로 걷게 된다. 미개화는 가속되며 권력의 구조는 공고해진다. 이렇게 이미 공고해진 구조를 바꾸기 위해서는 그 반대의 움직임이 일어나야 하며 흐르는 물이 반대로 흐르기 위해 반드시 난류가 발생하듯이 혼란과 붕괴가 일어, [박사님.] 아즈삭이 사고의 바다에 침잠해 들어가던 강현의 의식을 수면 밖으로 꺼내왔다. “아, 이야기 하다가 말았지? 내가 어디까지 이야기 했지?” [종교와 그것을 강요할 때의 폭력성까지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아무튼 내가 헨델 회장의 말에서 불쾌감을 느낀 이유는 바로 그거야. 자신의 믿음과 신념에 대해서 의심을 하지 않는다는 거지.” 강현은 과학을 종교의 반대편에 있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종교와 과학이 양립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건 헛소리다. 예민한 문제를 회피하기 위한 날조다. 종교는 믿음을 근거로 한다. 과학은 의심을 근거로 한다. 성서에 적힌 말은 부정하거나 바꿀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기에 해석의 변화란 방법으로 시대에 적응하는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과학은 절대적인 법칙이라고 생각되는 원리라고 하더라도 그 반대의 사례가 나타난다면 틀렸다고 지적받고 수정된다. 이 변화의 방법론이 가져오는 차이는 극명하다. 종교는 그 패러다임의 변화가 불가능하거나 시대에 뒤쳐지거나 혹은 변화를 위해 피를 흘리는 수 밖에 없다면 과학은 변화를 위해 증거만 존재하면 된다. 이는 패러다임의 혁신을 불러오며 인류의 힘을 비약적으로 끌어오린 힘이었다. 혹자는 말한다. 종교는 삶의 원리를 가르쳐주기 때문에 인간의 도구에 불구한 과학과 대등하게 취급하면 안된다고. 그러면 강현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 종교라는 것도 인간의 도구에 불구하다고. 신앙에 파묻힌 이들에게 오히려 도구에 파묻힌 삶을 사는 것이 누구냐고 물을 사람이 바로 그였다. 강현은 신이 존재한다면 인간과 문명을 위해 신을 분석하고 이용하고자 할 사람이었다. [불쾌하시다면 개입하실 겁니까?] “글쎄.. 개입하기에는 너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저들은 거대한 네트워크다. 반면에 강현은 개인이다. 저들은 자본주의 사회의 흐름을 조작할 수 있는 강력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강현의 자본력은 저들을 상대할 수 없으며 가장 큰 무기인 과학 역시 그들의 입장에서는 상품에 불과했다. “불쾌하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지금 그들을 돕는다는 것은 집안 기둥뿌리를 뽑아 기부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일신의 안위와 영광을 던지고자 하는 행위는 넓고 파도치는 바다에 바위를 던진 것과 마찬가지다. 잠깐 물이 튀고 물보라가 일어나고 그 뒤에는 거대한 조류의 흐름에 쓸려 사라진다. 아무리 강현이라도 지금 그가 가할 수 있는 영향력이란 고작 그정도란 뜻이다. 그래서 강현은 이번 일에 침묵하기로 했다. 개인적으로 학살을 당할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가엽기는 하지만 인간이 악의에 희생당하는 이는 그들만이 아니다. 수 많은 범죄에 희생당하는 사람을 전세계적으로 계산해보면 팔레스타인의 비율은 그리 높지 않다. 다만 그들이 주목받는 이유는 최소한의 도덕성을 유지해야하는 국가가 나서서 학살을 자행한다는 비난, 그리고 이스라엘과 유대인을 견제하려는 세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시리아 내전이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보다 덜 비극적일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아즈삭. 돈이 얼마나 있지?” [약 2조 달러 정도 있습니다.] “그렇게나 많아?” 강현은 상상을 초월하는 자신의 재산에 깜짝 놀랐다. 귀찮아서 그 동안 신경 쓰지 않았는데 무려 2조 달러(약 2천 조원)이나 되는 엄청난 금액이 쌓여 있었던 것이다. 미국 한 해 국방 예산이 약 6천억 달러 정도 되고 만수르 왕가의 재산이 약 1조 달러 정도 되니 혼자서 미 국방 예산의 약 4배, 만수르 왕가의 두 배 정도 되는 재산을 형성한 것이다. 더 무시무시한 점은 이 모든 돈이 거의 다 현금이라는 점이었다. 비현실적인 숫자였고 도저히 믿기지 않았지만 전 세계의 부자들과 다국적 기업, 그리고 국가를 상대로 각종 로열티로 현금을 벌어 들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특히 방사능 반감기 가속 장치가 한 대에 거의 1억 달러 씩 벌어 들였고 또한 석유 제조 특허로 전 세계에서 돈을 갈퀴로 끌어 모았다. 전세계인 60억명, 한 사람이 천 달러씩(약 100만원)만 강현에게 로열티를 주면 6조 달러니 2조 달러라는 현재 재산이 그리 비현실적이지는 않았다. “그 정도면 유대인과 돈 싸움을 할 만한가?” 강현은 비현실적인 숫자에 고개를 갸웃 거리며 가늠해 보았다. 하지만 그래도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빌 게이츠의 개인 재산만 해도 약 700억 달러 정도. 유대인의 숫자와 전 세계란 범위를 생각해 보면 강현의 개인 재산으로는 어림도 없다. 그렇다고 돈을 더 모아 유대인을 상대하는 것도 문제다. 강현은 자본가가 아니다. 그는 과학자다. 자본가의 방법으로 자본가를 찍어 눌러봤자 곧 새로운 자본가가 탄생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일은 단순히 땅 싸움에 민족주의가 얽힌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과 이익에 얽힌 지배구조를 공고히 하려는 도도한 흐름의 하나였다. 즉, 자본가의 방법으로 유대인을 상대하는 것은 UFC 경기장 안에 바둑 기사가 들어가는 만큼 무모한 일이라는 것이다. 설사 승리한다고 해도 바둑기사가 승리한 UFC 경기가 인정이 될 리가 없다. 강현이 그 승리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UFC 선수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은 ‘바둑 기사’인 그를 찍어내어 UFC 경기(=자본주의)를 지키려고 할 것이다. 아무리 강현이라도 대세를 거역하는 것은 힘들다. 그런데 여기까지 생각하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자본주의를 파괴해?” 강현의 머릿속에 매우 재미있는 발상이 떠올랐다. 자본주의가 붕괴되기 위한 전재 조건은 무엇인가? 한 가지 발상이 떠오르자 그에 맞추어 그의 머릿속에 지금껏 없었던 초 장기 계획이 구상되기 시작했다. 자본주의를 파괴하는 방법은 자신의 적성에 아주 잘 맞는 듯 했다. “재밌겠네. 아즈삭.” [네, 박사님.] “땅 좀 사자. 이것 저것 만들게 많아.” [네, 박사님.] = = = = = “박사님, 부르셨습니까?” 제이슨 킬덤은 강현이 긴히 할 말이 있다고 하자 그의 연구실로 찾아왔다. “다름이 아니라, 제 통장 잔고에 돈이 꽤 많이 들어 있어서요. 그냥 묵혀두는 건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해서요. 돈은 돌고 돌아야 하는거 아니겠어요? 그런데 재산 관리를 맡길 만한 사람을 킬덤 씨 이외에는 별로 떠오르지가 않아서요.” “영광입니다.” 킬덤은 세기의 천재의 신뢰를 받는 영광을 느꼈다. “여기요.” 그는 강현이 넘겨주는 서류를 확인했다. 재산관리를 맡기기 위한 위임장과 강현이 관리를 위임하기로 한 재산 목록을 살폈다. 목록을 살피는 건 어렵지 않았다. 딱 현금 항목 하나만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일, 십, 백, 천, 만... 조... 히익!” 동그라미를 하나하나 샐때마다 킬덤의 표정이 점점 밝아지다가 새파래져갔다. 동그라미가 총 12개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냉정한 태도도 버리고 깜짝 놀라버렸다. “이, 일 조 달러라니요..” 미 국방 예산의 약 두 배에 달하는 액수에 킬덤의 표정이 새파래진다. “그 동안 깜박하고 묵혀두고 있다가 얼마전에 알게 됬어요.” 강현의 말에 킬덤이 멍한 눈으로 그를 보았다. 강현은 무안한 듯 귀 밑을 긁적였다. 하긴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이 얼마나 돈을 잘 버는지 관심도 두지 않는 자신이 이질적인건 당연했다. “어, 어떻게 운용할까요?” 아메리카 뱅크를 살까요, 아니면 골드만삭스를 살까요? 킬덤의 목구멍으로 나오려던 말이 다시 넘어갔다. 1조 달러면 아메리카 뱅크든 골드만삭스든 경영권을 빼앗아 오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하지만 강현이 원하는 것은 그것이 아닐 것이다. 그와 인연을 맺고 지내온 시간 동안 그는 뼛속까지 학자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새삼 돈 맛을 알아서 기업인이 될 사람이 결코 아니었다. “그냥 손해 안 나게만 운용해 주세요. 금융권 출신이시니까 잘 아시겠죠?” “물론입니다.” 월가에 있을 때 자산관리를 배우지 않았을 리가 없다. 주식 트레이딩은 자산 관리의 하부 항목일 뿐이다. 게다가 강현에게 고용된 이후 한국 제현 투자회사, 미국 제현 투자회사를 거치며 여전히 자산관리에 대한 감을 잃지 않고 있었다. 재산 관리의 리스크는 재산이 많아지면 많을 수록 줄어드는 법이다. 돈이 없는 이는 하나의 달걀밖에 없어 하나의 바구니만 담을 수 있지만 강현의 경우에는 하나의 바구니에 달걀을 수 백 개씩 담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바구니가 엄청나게 많아진다. 만에 하나 하나의 바구니가 떨어져 달걀이 모두 깨어져도 다른 바구니에 담긴 달걀들이 부화해 병아리가 되고 닭이 되어 또다시 달걀을 씀풍씀풍 낳게 된다. 그러니 자본주의란 돈 많은 사람이 유리할 수 밖에 없는 세상인 것이다. “그럼, 돈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말씀하십시오. 손해보지 않고 자금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괜찮아요. 아직 1조 달러 더 있어요.” “....” 딴에는 강현을 흡족하게 해주기 위한 립서비스였지만 또 1조가 더 있다는 말에 킬덤은 눈만 끔뻑끔뻑 깜빡이고 말았다. ============================ 작품 후기 ============================ 아이고 힘들다.. PS- 빌 게이츠 유대인이라는 오류를 수정햇습니다. 130화 강현은 그가 강현의 재산 수준에 기가막혀 하고 있을 때 또 한 가지를 주문했다. “네바다 주 사막에 땅 좀 살까해요.” 네바다 주. 그 유명한 라스베이거스가 있는 주요 산업은 역시 관광이다. “어떤 땅입니까?” “그냥 아무 땅으로요. 사람이 살 수 없어도 좋으니까 좀 넓은 곳으로요.”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을 왜..” “무인 공장이라고 들어 보셨어요?” 강현의 말에 킬덤은 대박을 느꼈다. = = = = = 강현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일에서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지금이야 자신을 건드는 것이 손해기 때문에 아무도 건드는 사람이 없지만 언제까지 그럴지는 알 수가 없다. 미국 정치권의 힘만 믿을 수도 없었다. 킬덤을 통한 1조 달러 규모의 투자는 자본주의 세계에서 자신의 입지를 굳히기 위한 것과 동시에 네바다 주 사막 일대에 대규모 자금을 투자해 만들 공장은 자신이 가진 힘의 기반이 될 것이었다. 물론 무인 공장은 그가 그린 큰 그림의 일부에 불과했으며 최종적인 모습도 아니었다. 그는 좀 더 근본적으로 자본주의를 붕괴 시킬 방법을 구상 했으며 이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제현 투자 회사! 최근 한 달간 총 100억 달러 규모를 투자!] [거인이 드디어 움직이나?] [네바다에서 약 10만 헥타르의 황무지를 구입! 과연 반신은 무슨 짓을 벌일려고 하는가?] 10만 헥타르는 제주도의 약 절반 정도 되는 넓이다. 맨해튼 20개가 들어가는 면적이 들어가는 토지가 개인에게 팔렸으니 그 거대한 거래 규모가 기자들과 언론의 귀에 들어가지 않을 리가 없었다. 거기에 제현 투자 회사가 엄청난 자금을 쏟아부어 지속적으로 우량주를 매입하고 있으니 세상의 눈이 가지 않을 리가 없었다. 이런 움직임에 가장 기겁한 것은 헨델 회장이었다. 돈을 투자한다는 것은 자본가의 시작이자 끝이다. 강현이 자본가가 되려고 하는 건가? 그전까지는 그저 돈 많은 학자에 불과하지 않았던가? 돈과 기술을 쥔 강력한 경쟁자의 등장은 기존의 질서에 파문을 던진다. ‘혹시 가자 지구의 일 때문에..’ 헨델 회장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강현의 갑작스런 행동의 원인이 될만한 이유는 그것 밖에 없다는 것을 확신했다. 연구실에서만 처박혀 있던 천재가 영향을 받을 만한 세상사는 헨델이 알기에는 그것 뿐이었다. 좋지 않은 일도 촉발된 변화였기에 강현의 움직임과 제현 투자 회사의 움직임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어떤 영향을 준다고 해도 그 영향이 결코 좋은 방향은 아니라는 건 확신할 수 있었다. 자신에게 불리한 영향? 그건 혹시 1만 헥타르에 달하는 황무지를 농토로 만들려고 하는 것인가? “미친,” 그렇다. 절로 미친이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채산성이 맞지 않는다. 그 황무지에 물을 끌어오는 것만 해도 엄청난 비용이 들 것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정부가 그 황무지를 개간한다고 하면 정부가 미쳤다고 생각할 정도다. 미국에는 농지로 만들 수 있는 옥토가 널려있는데 굳이 황무지를 농토로 만들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상대는 강현이다. 만일 그가 획기적인 방법으로 황무지를 농토로 만드는 방법을 알아낸다면, 그리고 이를 실현한다면 그 순간 곡물 카르텔은 아니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에서 벌이는 일을 일제히 중단하고 아프리카에 집중해야 한다. 문제는 강현에게 충분한 가능성이 있는 방법론이 있는가였다. 황무지를 농토로 만드는 기술이 이미 존재하거나 몇 년 안에 완성이 된다면 일이 복잡해진다. 지금하는 일을 뒤로 미루고 일의 우선순위를 교체하는 등 골치 아픈 일이 하나 둘이 아니다. 하지만 그 기술이 완성될 시기가 헨델 회장이 원하는 시기 이후라면 문제는 싹 사라진다. 아니 더 좋아진다. 강현은 미국인, 그의 기술은 곧 미국의 기술이자 이익이고 미국을 꽉 쥔 유대인 곡물 카르텔의 경쟁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헨델 회장은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강현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적어도 이 정도는 물어볼 정도로 서로에 대한 신뢰관계는 구축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의 질문을 받은 강현은 유쾌한 듯이 웃었다. [하하하! 그렇게 생각하셨어요?] “아니었던가?” [전혀 아니었어요. 하지만 황무지를 농장으로 만든다라.. 좋은 연구소재네요. 일단 기억해 뒀다가 나중에 연구해 봐야겠네요.] “하, 하.” 괜한 기우로 오히려 근심거리를 만들게 되자 헨델 회장은 허탈한 듯 웃었다. 그래도 아니라고 하니 다행이었다. 게다가 강현은 황무지를 농토로 만드는 기술에 대해서는 그리 큰 관심을 두지는 않는 것 같으니 그런 기술이 나오기까지 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듯 했다. “그럼 왜 그 땅을 산 건가?” [공장 좀 지으려고요.] “공장?” 연구소가 아니라 공장? 헨델 회장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공장은 플렌테이션 농장보다 더 한 자본주의의 산물이다. 노동자에게 일자리를 주며 자본가에게는 수익을 가져다 주는 생산수단이다. 흔히들 말하지 않은가? 자본가는 생산수단을 소유한 부르주아라고. 그래서 헨델 회장이 강현의 말에 위기감을 느낀 것이다. 기어코 강현이 자본가의 대열에 합류하는가? 단기적으로 보면 나쁘지 않다. 하지만 유대인 중심의 세계 질서를 갈망하는 시오니트스로서 강현이 위치할 만한 자리를 그릴 수가 없었다. 비록 그가 한국과 단절해서 살아가고 있지만 만일 그가 자신들처럼 민족이란 이름 아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한 네트워크의 필요성을 인식한다면 미국에서 성공한 한국인들과 연대를 맺을 가능성이 있다. 한국인.. 식민지를 겪었던, 나라가 없었던 삶을 살았던 역사적 동질성이 있고 세계 2차 대전 이후 괄목할 만한 경제 성장을 이룩한,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국가의 민족이다. 이미 미국에서도 한인 공동체가 가진 영향력은 그 숫자에 비해 무척이나 높다. 그들과 강현이 만났을 때 생길 시너지 효과는 얼마나 뛰어날까? 세계의 향방에 영향을 끼칠 새로운 세력이 등장할 가능성이 매우 높고 그로 인해 발생한 진통은 결코 만만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그리 결심을 해도 막을 수도 없었다. 그는 미국인이며 미국의 보호를 받는다. 또한 그가 연계를 맺을 한인 역시 미국인이며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미국 정계를 주무르는 유대인이라고 해도 아무런 명분도 없이 강현을 어찌할 수 없다. 또 어찌해야 할지 결정할 수도 없다. 미국 정부에서는 성실한 초 거액 납세자인 강현을 보호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사생활도 흠 잡을 것이 없다. 연구실에만 처박혀 있는 인사인데 무슨 말을 더하랴? 그러니 어떤 음해도 강현을 어찌할 수 없었다. 유일한 방법은 학문적인 방법으로 어떻게 해보는 것인데 강현의 과학에 대한 유연한 사고과 능력을 감안해 볼 때 그조차도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 “흐음. 축하하네. 자네도 드디어 세상의 흐름을 깨달았군.” 헨델은 그러나 내심을 감추고 강현에게 덕담을 건넸다. 아직 강현과 척을 지기는 어렵다. 앞으로도 쭈욱 그러할 것이다. 강현 같은 천재와는 친하게 지내야 한다. [세상의 흐름이요?] 강현은 그런 헨델 회장의 말에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되물었다. 어쩔 수 없었다. 그것은 서로의 기준, 지향점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학자와 경영자의 시선 차이라고나 할까? “빌 게이츠, 스티븐 잡스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들의 기술을 제품화하고 잘 팔리는 상품으로 만들었기 때문지. 아무리 패러다임의 혁신을 이룰 수 있는 기술이라고 해도 그것이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상품으로 만들어지지 않는 이상, 기술자가 세상에 끼칠 수 있는 영향의 크기는 미미하다네.” 테슬라의 경우를 보자. 그는 에디슨을 뛰어넘는 천재였지고 그가 만들어낸 교류는 세상에서 가장 일반적인 전력의 형태가 되었다. 테슬라가 교류를 발명하기 않았다면 인류의 전기 문명은 한 세대 뒤에서나 꽃을 피웠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그 자신은 그 기술의 과실을 얻지 못하고 평생을 가난하게 살았다. 그가 개발한 유체 다이오드, 테슬라 헬리콥러라고 불리지만 실상은 수직 이착륙기(VTOL), 그리고 현대 문명에서 빠질 수 없는 레이더와 레이더 이론까지.. 당시 제품으로 만들 기술이 없었거나 제품으로 만들 이유가 없어 묻혔던 기술들이 만약 당시에 상업적으로 만들어졌다면 이 시대에 존재하는 카네기 가문처럼 테슬라 가문이 존재했을 것이다. 실제로 빌 게이츠와 스티븐 잡스가 파는 상품에 적용된 기술 중 핵심개념은 이미 십 수년 전에 제안 되었거나 개발된 것이었다. 하지만 시대를 앞서간 기술이 으레 그러하듯 오랫동안 천대를 받았다. 그렇게 보자면 강현의 성공은 정말로 특이한 것이다. 그가 개발한 것들은 하나 같이 그 시대의 이슈가 되거나 중요한 쟁점을 파고 들었다. 석유는 말할 것도 없고 정보가 중요해진 사회에서 정보를 처리하고 보호하는 인공지능의 필요성이 대두 된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전기 문명에서 값싼 전기에 대한 욕구는 컸고 원자력이란 썩지 않는 똥을 배출하는 애물단지를 똥을 썩게 만들어 애지중지 할 수 있는 기술로 만들었다. 어찌보면 강현 같은 천재가 시대를 앞서가는 발명을 하지 않고 시대에 필요한 발명을 하게 된 건 운이나 다름 없었다. 아니면 기술 문명이 가속화되어가는 현대 사회가 오히려 더 많은 문제를 만들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더 많은 기술을 요구하게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군요. 하지만 무인 공장을 운영해서 수익을 낼 생각은 없는데요.] “자네는 그런 생각이 없다고 하더라도 정부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걸세. 상상해 보게. 무인 공장이 있다면 뭘 못 만들겠는가?” 국가에는 기밀이라는 것이 있다. 그리고 그 기밀을 보안하기 위해서 보안서약을 물론 기밀을 다루는 이들의 충성심을 확인하고 또 그것을 보완하는 시스템적인 장치까지 마련한다. 특히 세계를 주무르는 미국이니 여기에 들이는 비용은 천문학적이다. 그래도 사람의 마음을 마음대로 할 수는 없는지라 크고 작은 정보 유출이 일어나 정부를 골치 아프게 한다. 그런데 정부에게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만들고 싶은 것을 마음껏 만들 수 있는 공장이 생긴다. 무엇을 만들고 생산하는지 몇몇 핵심 관련자만 빼고는 아무도 모른다. 이런 공장을 운영하고 싶은 국가가 비단 미국 뿐이랴? 미국에서는 싫다는 강현에게 억지로 돈을 안겨 주고서라도 무인 공장을 이용하려고 들 것이다. 일단 무인 공장을 만들기 위한 어마어마한 예산이 들지 않기 때문에 미국 재정에서 나가는 예산에 구멍이 나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미 정부가 무인 공장을 만들기 위한 비자금을 만들어야 하는 골치아픈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거대한 예산은 언제나 감시 받기 때문이다. [그런 문제가 있군요.] “문제라니? 그게 왜 문제라는 건가?” 헨델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앉아서 어마어마한 이득을 볼 수 있는데 문제라니? [무인 공장은 제가 개인적으로 만들고 싶은 걸 만들려고 하는데 미국이 그렇게 나오면 제가 뭘 만드는지 알려지게 되잖아요.] “대륙간 탄도 미사일이라도 만들 생각인가?” NASA 1년 예산이 약 160억 달러니 강현의 재산으로도 전혀 부족함이 없는 액수다. [못 만들건 없지만 제가 그런 비생산적인 물건을 만들려고 할 리가 없잖아요.] 131화 헨델은 못 만들건 없다는 말에 살짝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진 말에 납득했다. 하긴 강현이 지금까지 만든 물건 중에서 무기는 없었다. K 시리즈가 있기는 하지만 그건 헨델 회장의 입장에서도 명백히 ‘결함품’이었다. 일반적인 HA 시리즈에 CNC 갑주를 입히고 소프트웨어를 조금 고친 것일 뿐이다. 그저 돈을 때려박아 만든 미국의 돈지랄인 것이다. K 시리즈의 원조인 HA 시리즈는 원래 강현의 연구를 물리적으로 보조하기 만들어졌다. 예전 미국 스리마일 섬에서 방사능 제거 실험을 할 때처럼 사람 대신 이용되는 것이 주 목적이고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사람이 아닌 존재가 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즉, K 시리즈는 HA 시리즈를 전용한 것에 불과했다. 굳이 K 시리즈가 아니더라도 자율형 로봇을 이용한 더 효율적인 전쟁무기가 이미 있었다. 단지 제어 프로그램이 완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K 시리즈가 여전히 있는 것이지 지금 펜타곤에서 강현의 이족보행 데이터 기술을 모방하여 연구되고 있는 사족 보행 제어 프로그램이 완성 된다면 전장에서 K 시리즈는 도태될 것이다. 아무래도 피탈율과 보행 안정성, 무기 적재 등을 고려하면 이족보행보다는 사족보행이 더 적절한 기술이었다. “그럼 뭘 만들려고 하는 건가?” [그냥 이것 저것이요. 준비할 게 많아서요.] 헨델 회장은 강현이 뭔가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 큰 그림이 뭔지 그가 예상할 수는 없었다. 지금으로서는 그냥 강현이 거대한 실험을 준비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설마 자본주의를 근본적으로 붕괴시키기 위한 밑그림을 그리는 중이라고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흐음..” [아무튼,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미국 정부가 그리 나올 수 있다는 건 생각을 못했어요.] “아닐세. 아무튼 그 공장으로 돈을 벌고 싶지는 않은가?” [글쎄요. 돈은 이미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서요.] 강현의 말에 헨델 회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납득했다. 일정 이상의 재산을 모으게 되면, 간단히 말해 돈이 돈을 벌게 되는 수준에 도달하게 되면 아득바득 돈을 버는 건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게 된다. 더 중요한 것은 인생에서 무엇에 가치를 둘 것인가, 혹은 무엇을 할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가 된다. 그래서 억대의 재산을 번 기업인 중에 끊임없이 사업을 확장하거나 새로운 일을 벌이는 것을 멈추지 않는 이가 존재하는 것이다. 아무튼, 헨델 회장은 안심했다. 걱정은 기우인 것 같았다. 강현은 기업인이 되려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학자로서 남을 것 같았다. 헨델 회장은 덕담을 건냈고 강현은 담담한 목소리로 받았다. 둘 사이의 우호적인 분위기는 망가지지 않았다. = = = = = [다이아몬드 코팅을 완료했습니다. 금속 박막을 입히는 공정을 시작합니다. 스퍼터링 소요 시간 약 3시간.] “좋아. 그럼 식사나 하러 가볼까?” 강현이 지금 만들고 있는 것은 방열 시스템이다. 다이아몬드 코딩과 금속 박막의 이중 구조로 되어 있는데 이 구성을 하는 이유는 우주 진공 상태에서 효율적으로 열을 빼내기 위한 것이다. 열이란 입자의 역학적 에너지다. 그리고 이 열이 전파되는 메커니즘은 알려진 바로는 단 세 가지에 불과하다. 대류, 전도, 복사. 대류는 열 에너지를 가진 입자가 직접 확산하는 것이고, 전도는 순수한 열 에너지(역학적 에너지)의 확산이며, 복사는 원자의 역학적 에너지가 전자기 에너지로 전환되어 발산되는 현상이다. 그러니 지구상에서는 이 세가지 방법으로 냉각을 할 수 있지만 우주 공간으로 열을 방출할 수 있는 방법은 복사가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냉각이 필요할 때마다 기체를 밖으로 뿌릴 순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러나 문제가 있다. 복사의 메커니즘을 조절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복사로 인해 방출되는 전자기파의 파장은 오직 온도에 의해서만 영향을 받는다. 즉, 어떤 물질이라도 동일한 온도면 동일한 파장의 복사를 내놓는다는 이야기다. 여기에서 강현의 발상이 시작되었다. 어차피 방출되는 복사 에너지의 파장은 온도에 의해서 결정된다. 그렇다면 복사되는 양을 늘리자. 온도를 높이는 것 이외에는 광자가 가진 에너지를 증가시키는 방법이 없으니 광자의 수를 늘리자는 발상이었고 이는 금속으로 아주 손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제품은 이미 존재했다. 에어콘이나 CPU 냉각을 위해서 사용되는 방열판이 바로 그 예이다. 금속의 열전도성이 매우 우수하기 때문에 열전달을 빨리하고 공기와 닿는 면적을 높여 전도와 대류로 열이 잘 배출되게 한 것이다. 그러나 우주 공간은 이야기가 좀 달랐다. 대류와 전도를 통해 열을 방출할 방법이 없으니 유일한 방법은 복사 뿐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대부분의 금속은 비열이 낮아 적은 열량으로도 쉽게 온도가 올라간다. 즉, 적은 열량도 높은 복사 에너지로 발산이 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복사 에너지가 우주 공간으로 잘 뻗어 갈 수 있도록 복사 에너지가 발산되는 표면적을 늘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좀 더 성능을 개선시키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바로 다이아몬드가 그것이다. 언듯 이해가 잘 안가지만 다이아몬드는 사방형 결합구조로 인해 원자의 진동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확산된다. 열전도율이 엄청나게 빠른 것이다. 심지어 금속보다 더. 금속을 전자 구름이란 푸딩에 원자핵이라는 건포도를 박아넣은 것에 비유하자면 다이아몬드는 작은 추에 공유결합이라는 용수철을 붙여 다른 네 개의 추에 3차원 적으로 연결해 놓은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 이 공유 결합이란 용수철의 반발력으로 원자의 진동, 역학적 에너지가 푸딩보다 빠르게 확산되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다이아몬드를 얇게 만들어 기판으로 사용되는 연구가 진행중이다. 뿐만 아니라 실리콘처럼 붕소를 도핑하여 실리콘을 대체할 수 있는 반도체로 만드는 연구 역시 진행중이다. 이는 모두 전자 부품의 발열 성능을 개선시키고 가혹한 환경에서도 잘 작동하도록 내구성을 높이기 위해서이다. 물론 천연 다이아몬드를 사용할 수는 없다. 천연 다이아몬드를 사용하기에는 일정한 성능이 나오지 않아서(비용문제를 제외하고서라도) 산업적으로 이용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균일한 물성을 가지는 다이아몬드를 실험적으로 만들어 내었다. 처음에는 다이아몬드가 만들어지는 환경(섭씨 1500도, 지구 멘틀 정도의 압력으로 약 10만 기압)을 인위적으로 만드는 방법을 사용했으나 상업적인 산출량을 늘리기 위해서 약 3000도까지 온도를 올리고 압력도 올리는 기술도 개발되었다. 이로서 자연적으로 다이아몬드가 생성되는 속도보다 몇 배나 빠르게 다이아몬드를 성장시킬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방법으로는 다이아몬드를 기판으로 만들 수는 없었다. 큰 다이아몬드 결정만을 얻을 수 있을 뿐이다. 과학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심하던 중에 카보나도라는 돌에 주목했다. 석탄처럼 생겼고 어두운 색깔에 불투명하기까지 하지만 놀랍게도 이 돌은 다이아몬드의 한 종류였다. 일반적인 다이아몬드와 다른 불투명한 특징은 이 카보나도라는 다이아몬드가 단결정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무수히 작은 다이아몬드 결정으로 이루어진 다결정 다이아몬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다결정질 다이아몬드는 지구상에서는 자연적으로 만들어질 수 없었다. 유일하게 자연적으로 카보나도가 형성될 수 있는 환경은 바로 우주뿐이었다. 진공에서도 다이아몬드 결정이 형성될 수 있다는 예는 연구자들의 고정관념을 확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기존의 재료공학적 기법을 이용해 결국 다이아몬드 박막을 만들어 내었다. 높은 압력이 필요없는 조건, 아니 오히려 진공에서 만들어지는 다이아몬드를 만들기 위해 기존의 스퍼터링 장치에서 탄소가 들어있는 메탄가스와 수소를 플라즈마화 시키고 2000도에서 고주파 전압으로 기판에 충돌시키면 기판에 탄소원자가 하나하나 달라붙으며 무수히 많은 다이아몬드 결정이 생긴다. 다이아몬드 코팅 기술의 탄생이었다. 이 다이아몬드 코팅 위에 다시 금속 박막을 입히면 어찌될까? 다이아몬드의 열전도성에 금속의 낮은 비열로 인한 높은 복사에너지는 우주 공간에서도 빠른 냉각을 가능하게 할 것이 분명했다. 강현은 다이아몬드 박막위에 금속 박막의 성장을 기다리며 셀리와 같이 식사를 하기 위해 사무실로 향했다. “어머! 박사님!” 셀리는 사무실에 찾아온 강현으로 인해서 깜짝 놀랐다. 강현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턱선을 긁었다. “조금 이르지만 식사하러가죠.” 낯간지럽지만 연인 관계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노력이라는 것이 필요했다. 그리고 셀리는 이렇게 자신이 신경 써줘야 할 정도로 신세진 여자였다. 그녀에게 약속한 것도 있어서 강현은 자신이 해야 할 의무를 잘 알고 있었다. “네.” 셀리는 냉큼 강현의 팔에 팔짱을 꼈다. 그리고 그의 어깨에 얼굴을 붙였다. 그녀의 눈시울이 약간 붉어졌다. 그가 직접 식사하러 가자고 자신을 데려온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강현은 셀리와 식사를 마친 후 다시 연구에 전념했다. 우주환경용 발열 기술을 개발하고 나면, 다시 우주환경에서 작동하는 고분자 물질, 우주선 차폐 기술 등 많은 기술들이 필요했다. 모든 것은 우주 식민지 건설을 위해서. 왜 우주 식민지 건설인가? 그것이 자본주의를 붕괴시키기 위한 강현의 계획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실현될 수 있는 것은 개인에게 생산수단의 소유권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이를 부정하는 것이 바로 공산주의였지만 한정된 자원은 당원이라는 이름의 계급을 다시 만들어버렸다. 그렇다면 모든 이가 공평하게 생산수단을 가지게 되면 어떨까? 모든 개인에게 그가 원하는 식량이나 물품을 자동으로 만들어 주는 로봇이 생긴다면? 그때도 사람들이 돈에 연연하게 될 것인가? 그 결과는 예측하긴 어렵지만 자본주의가 근본적으로 변할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본주의는 사라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지구의 자원은 한정되어 있으며 특히 땅의 면적은 유한하다. 유한하고 가치있는 자원이 있는 한 그 자원의 가치를 측정하는 자본주의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자본주의의 시작은 어떤 물건에 어느 정도의 가치를 부여할 것인가에서 시작한 상업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의식주가 인간 생활의 기본인 만큼 자본으로부터 이를 해방시키기 않고서는 자본의 본질적인 영향력을 감소 시킬 수 없다. 적어도 돈에 의해 생존이 위협 받지 않을 환경이 조성되어야, 아니 그런 환경이 조성되는 것 만으로도 사람들은 돈에 구애 받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강현은 인간이 거주할 새로운 땅이 필요했고 자연히 우주로 눈을 돌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우주에서 인간이 생존하기 위한 기술 수준은 너무나 높았다. 우주항공분야의 연구로 생기는 수 많은 기술 특허들은 이를 증명한다.(그래서 우주 항공 연구분야는 엄청난 고부가가치 산업이다.)아무튼, 강현이 구입한 네바다 주의 황무지는 바로 인간에게 무한한 ‘땅’을 제공해 줄 우주 식민지를 건설하기 위한 전초기지다. ============================ 작품 후기 ============================ 저번 화에서 강현이 구입한 면적과 단위를 수정했습니다. 아무래도 지을게 많다보니...(또 면적 비교에 오류도 있었구요.) 132화 일단 전초기지를 건설하고 나면 지구의 위성 궤도에 우주 식민지를 건설하기 위한 공장과 로봇을 만드는 것이 다음 목표였다. 일단 위성 공장을 완성하면 자원 수급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된다. 화성과 목성 사이에 있는 소행성 지대에는 무한대의 금속 자원이 있으니 이를 이용하면 지구에서 원자재를 사지 않아도 충분히 자급자족형 위성 공장을 운영할 수 있었다. 또 태양이란 무한대의 에너지 원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 위성 공장을 건설하는 것 자체가 엄청난 난이도가 있었다. 우주의 가혹한 환경(우주선, 데브리, 태양광으로 인한 높은 열충격)을 견뎌내면서 또한 소행성을 분쇄하고 녹이는 공정을 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했다. 비록 로봇을 이용해 운영할 생각이라 생존 시스템을 만들지 않아도 돼 그나마 다행이었다. 아니면 설계가 엄청나게 복잡해졌을 것이다. [박사님. 실험 결과가 나왔습니다. 약 30% 정도 복사량이 증가했습니다.] “좋아. 그 정도면 충분해. 그럼 다음은 이를 대면적에 적용하기 위한 기술이지?” [졸겔 법을 추천합니다.] “우주 공간에 사용가능한 졸겔법이라... 고분자를 써야겠구나.” 우주 공간이 금속 구조물에 가혹한 이유는 바로 태양 때문이다. 대기가 없기에 부식의 염려는 없으니 태양광이 너무 강렬해 그림자진 부분과 태양광을 받는 부분의 온도차이가 극심하다. 이런 온도차를 반복적으로 받다보면 금속자체의 열팽창으로 인해 피로가 쌓이게 되고 내구성이 약해진다. 이는 우주의 낮은 온도에서 더욱 딱딱해지는 금속에게는 치명적인 문제다. 그래서 우주 정거장에 쓰이는 페인트와 외벽 패널에도 고도의 재료 공학이 적용된다. 강한 태양빛으로부터 구조물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다시 말하자면 나사 하나부터 시작해, 페인트는 물론 간단한 막대까지 온갖 첨단 기술이 적용되는 장소가 바로 우주항공분야다. 그리고 이를 위한 연구를 통해 NASA는 천 여개가 넘어가는 핵심 특허를 보유할 수 있었다. 괜히 미국이 쓸데없이 우주에 돈을 쓴다고 욕을 먹어가면서도 꿋꿋하게 우주 사업을 지속한 것이 아니다. 강현은 원래 태양빛을 막기 위해 거대한 태양광 패널을 우산처럼 배열하는 구상을 했었다. 하지만 우주에서 활동할 로봇들의 내구성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이 필요했다. 가장 단순한 방법은 우주복처럼 하나의 고립계를 만들어 항상성을 유지하는 것이지만 그건 너무나 비용이 많이 들고 나중에 운영할 때에도 이런 저런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있었다. 그렇다면 차선책으로 태양광을 받는 부분의 온도와 태양광을 받지 않는 부분의 온도차이를 줄이면 되지 않을까?라는 발상에서 대면적 다이아몬드 코딩을 생각해 낸 것이다. 물론 나노 다이아몬드를 이용한 졸겔법은 많이 나와있다. 나노 다이아몬드의 너무나 뛰어난 특성 때문에 이미 여러 분야에서 응용하기 위해서였다. 나노 다이아몬드는 일단 내마모성이 우수하고 자외선 차단 능력이 있는데다가 마찰력을 감소시키는 능력이 있어 각종 윤활제에 사용된다. 주로 엔진 윤활제로 사용되어 F1 자동차의 엔진 윤활제로는 물론 이미 시판 중이기도 하다. 그렇게 널리 사용될 정도로 나노 다이아몬드를 만드는 방법은 이미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기술특허는 한국의 해동화학이 가지고 있었다. 상온 200도 정도에서 20기압으로 화공학적인 방법을 이용해 대량의 나노 다이아몬드를 만드는 방법은 그 동안 폭약으로(2000도씨와 10만 기압이라는 조건을 만들기 위해) 만들어 왔던 기존의 방법보다 훨씬 싸고 또 대량으로 나노 다이아몬드를 만들 수 있었다. 탈할로겐화 반응을 이용한 것인데 쉽게 말하면 탄소에 붙어있는 할로겐 원소를 수소로 떼어내며 탄소와 탄소간의 단일결합을 이중 결합으로 만드는 방법을 이용한 것이다. 그러니 강현은 그냥 나노 다이아몬드를 사와서, 졸겔법을 응용해 나노 다이아몬드를 얇게 입힐 방법만 만들면 된다. 우주 공간에서 말이다. 지구상에서 입혀도 되겠지만 우주 공간으로 쏘아보내는 압력에 나노 다이아몬드 코팅이 벗겨질지도 모른다. 또 우주 공간에서도 로봇들이 작업하는 동안 벗겨질지 모르니 수시로 상태를 파악하고 씌울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다. 그냥 우주 환경에서 견딜 수 있는 재료를 개발할까 생각했지만 시간은 한정되어 있었고 형편이 마냥 좋을 수는 없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어떻게든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공학의 본래 모습이었다. 게다가 내구성을 보호하기 위한 기술이 없어서 나쁠 것은 없다. 강현과 아즈삭의 능력이라면 우주상에서 다이아몬드 코팅을 위해 사용할 고분자 물질 정도는 금방 만들 수 있었다. “서두르자. 할게 많아.” [그럼 아리사도 동원합니까?] “여유가 있다면야.” 강현과 아즈삭은 정말로 할 것이 많다는 점에서는 확실하게 동의했다. 일단 우주로 자재를 쏘아 올리기 위한 매스 드라이버를 건설해야 하고 그 매스 드라이버의 효율을 개선하기 위한 기술도 개발해야 하고, 그 매스 드라이어버를 위한 발전소도 건설해야 하고, 또 매스 드라이버를 위한 발사체도 설계해야 하고.... 또 그와 동시에 공장을 지어서 위성 공장을 건설하기 위한 부품을 만들어야 했다. 가장 핵심적인 건 우주에서 일할 로봇 일꾼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먼저 그에 집중하겠지만 많은 돈과 시간이 드는 것은 당연했다. “이거 정말 할 일이 많구나.” [그럼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건 어떻습니까?] “초기 건설 분야는 몰라도 우주 진출에서는 안돼.” [어째서입니까?] “재밌는 건 나 혼자 해야지.” [그렇습니까?] 강현은 평생을 걸어야 할 지도 모르는 이 재미있는 작업을 누구와 함께 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에게 우주 개발은 무척이나 난이도 높은 시뮬레이션 게임이나 다름없었다. 아니 리얼 게임이라고 해야 하나? 그래서 사람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없는 분야라면 되도록이면 알아서 스스로 처리하기로 했다. 물론 아즈삭이 할 일이지만 아즈삭이 강현의 수족이나 다름없으니까 강현이 일하는 거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도 일이 시작되면 아무래도 힘들 것 같은데... 아즈삭, 네 부하를 하나 더 만들자.” 본격적으로 위성 공장 건설이 시작되면 수 백 대의 로봇을 운영해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면 아즈삭이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아진다. 자신과 연구 개발을 해야 하는 아즈삭에게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그런데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위성 공장 건설은 항시 감시 감독이 필요했다. 또 하나의 인공지능이 필요한 이유였다. 이 인공지능은 우주 개발과 상황파악을 전담할 녀석이었다. 너무 과하지 않을까 생각도 해봤지만 소행성군에서 원료를 수급하는 작업을 하기 위해 복잡한 궤도 계산을 해야 하니 인공지능 정도의 유연성과 연산력은 있어야 했다. [그럼 부품을 발주하겠습니다.] 그래도 먼저 우주 개발을 위한 전초기지 겸 공장을 짓기 위해 지반을 다지고 건물을 올릴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유명한 미국 건설업자와 접촉했다. 2012년 282억의 매출을 올린 벡탤(Bechtel)은 예상 규모만 5억 달러 정도 되는 사업에 화들짝 놀라 달려왔다. [그러니까 치수시설이 전혀 필요없다는 말씀이신가요?] “네. 로봇들로 운영하는 무인 시설이 될 테니까요.” [허참.] 건설도 이런 건설이 없었다. 건물을 올리는데 치수 시설이 필요없다니.. 생각보다 매출 규모가 떨어질 것 같았다. 물을 끌어오는 공사만 해도 가볍게 2억 달러 정도 될 것 같은데 말이다. 그래도 3억 달러가 어디냐? 공사 난이도도 공장과 먼지막이용 셔터만 잘 다면 되니까 무척 쉽다. 공장도 무거운 중장비를 만드는 용도가 아니라서(우주에 쏘아올릴 것이기 때문에 최대한 콤팩트하게 부품을 만들기 위함) 전혀 난이도가 없었다. 단지 그 부지 천체에 기반을 깔고 바닥에 콘크리트 및 아스팔트를 깔아 정리하는 한편, 차후 공장을 확장하기 쉽도록 블록화 하는 것이 신경써야 할 부분의 전부였다. 하지만 아무래도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보니 인부들을 위해서 물과 음식물, 편의시설 등을 같이 구비해야 했다. 오히려 신경써야 할 비중만 따지면 이런 쪽과 인건비가 아닐까? 강현이 공사를 시작하자 여러 건설업체가 혹시 콩고물이 떨어지지 않나 기웃 거렸다. 그리고 미 정부에서도 기웃 거렸다. 강현이 하는 일에 누구보다 가장 신경을 곤두 세우고 있는 곳이 바로 미 정부였다. 그들은 네바다 주에서 강현이 실험용 공장을 건설하기 위한 부지를 사들였다는 보고를 받았을 때 고개를 갸웃 했다. 도대체 무슨 실험이 돈을 몇 억 씩이나 되는 거대한 땅을 요구한다는 것일까? 처음에는 헨델 회장처럼 농지 개발 기술을 연구하려는 걸까 생각했지만 땅을 온통 뒤엎고 기반을 깔고 지표면에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를 깔기 시작했으니 그건 또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미 정부에서는 NASA를 통해서 그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아무래도 실험적인 내용이라면 오랫동안 같이 생활해 왔던 NASA가 더 적합했던 것이다. 물론 내밀한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힌 문제는 정보부의 잭을 통해서 접선했다. 그리하여 기획부장 이레이가 섭섭한 얼굴로 강현의 연구실에 찾아왔다. 강현이 거대한 부지를 매입한 이유가 네바다 주 정부에서 미 정부로 갔다가 최종적으로 NASA로 온 것이니 누구보다 강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 NASA에서 섭섭할 만도 했다. “이번 연구 실험은 저 혼자 독점할 생각이라서요.” “그렇다면야..” 강현의 변명에 이레이는 납득했다. 이 천재의 괴짜 기질을 하루 이틀 보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자율성을 오래 전부터 보장해 온 NASA로서는 새삼 강현에게 무언가를 캐물을 만한 건덕지나 명분이 없었다. “그런데 뭘 하려고 하시는 겁니까?” 이레이는 혹시 뭔가 도움이 될 게 없는지 물어보기 위한 것이었으니 이어진 강현의 대답에 얼이 빠져버렸다. “우주 개발이요.” “.....” 우주 개발은 NASA의 존재 이유가 아닌가? 그런데 그걸 혼자서 한다고? “저희랑 같이,” “싫어요.” 이레이의 생각은 이랬다. 강현이라는 천재가 본격적으로 우주 개발을 위해 연구를 시작한다면 그 동안 거북이 걸음이었던 우주 개발에 탄력이 붙게 될 것이다. 그러니 오랫동안 노하우를 쌓아온 NASA와 협력한다면 그 시너지 효과가 무척이나 뛰어나, 강현도 빠르게 우주 개발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설득하려고 했다. 하지만 강현은 단칼에 거절했다. “이 재밌는 걸 다른 사람과 같이 하라고요?” “.....” 이건 또 무슨 소린가? (그 전율과 흥분에는 동의하지만) 우주 개발같이 머리 아픈 게 어디있는가? 그리고 혼자서 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재밌다고? 그래서 혼자 하겠다고? 이레이의 머릿속은 혼란에 휩싸였다. 그는 조금 머리를 정리한 다음에 질문을 이었다. “그럼 네바다 주는 바로 그 우주기지를 만들 장소인 겁니까?” “네. 일단 매스 드라이버부터 건설해 보려고요.” “오! 맙소사!” 매스 드라이버 기술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다. 물리 역학과 전자기학을 극한까지 사용해야 하는 공학의 한계를 시험하는 기술이다. 그런 걸 혼자 한다고? 이레이는 강현이 아무리 천재라도 무리다라고 생각했다가 문득 생각을 고쳤다. 지금까지 강현이 하고자 한 일 중에서 실패한 일이 몇 개나 되나? 절반의 성공도 성공이라고 한다면 전혀 없었다. 133화 그건 강현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니라 그의 능력으로 할 수 있을 것 같은 일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곳이 바로 NASA였다. 강현은 철저하게 검증된 이론과 학문적인 방법론에 입각해 모든 가능성을 따지고 일을 시작했다. 그렇다면 지금 그가 계획하는 매스 드라이버 역시 충분히 가능성이 있으니까 벌이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런 일에 NASA가 빠져서는 안된다. NASA의 존립 목적 자체가 흔들리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박사님,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NASA도 참여시켜 주세요.” “싫어요.” “박사님. 그렇게 나오시면 저희 NASA가 여론에게 어떤 비난을 받을지 상상이나 되세요?” “흐음..” 일개 개인이 하는 일을 거대한 조직이 따라잡지 못한다는 비난 여론이 일기 시작하는 순간 정치권은 NASA에 예산을 분배하는 일에 부담감을 느낄 것이다. 막말로 예산이 깎이거나 한다면 그 날로 오랫동안 우정을 다져온 NASA와 강현의 관계가 갈라질 수 밖에 없다. 강현은 재밌는 일을 나눠야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NASA와의 관계가 더 소중했다. 그의 청소년기가 꽃피웠던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년 막대한 돈을 기부하지 않는가? “어쩔 수 없죠. 같이 해요.” “감사합니다.” “그럼, 일단 땅부터 따로 구입하세요.” “네?” “어디까지나 같이 참여하는 건 매스 드라이버까지에요. 그 외에 제 땅에서 제가 만드는 것에 관여 시킬 일은 없어요.” “쩝...” 이레이는 아쉬웠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우주 진출에 중요한 매스 드라이버가 더 중요했다. 그리고 강현이 그의 공장에서 무엇을 만들든지 그의 자유였다. NASA는 이레이의 설득에 힘입어 강현과 함께 매스 드라이버를 건설하는 프로젝트를 발주했다. 그리고 벡텔은 땅을 치며 분통해 했다. 매스 드라이버 프로젝트가 사실은 NASA에서 강현의 개인 프로젝트에 얹혀가는 것이라는 뒷 이야기가 몇 몇 직원의 입에서 퍼져나갔던 것이다. 만일 강현이 NASA와 함께 하기로 하지 않았다면 매스 드라이버의 건설은 전적으로 벡텔 혼자 맡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세계 유일의 매스 드라이버 건설 경험이 있는 회사로 엄청난 이득을 올릴 수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말짱 황이었다. 미 정부는 매스 드라이버 건설을 어느 한 회사에 맡길 생각이 전혀 없었다. 건설 역량이 있는 주요 미국 건설사들을 상대로 골고루 경험을 쌓도록 할 생각이었다. 아무튼 허락을 받자마자 미 정부는 즉시 강현의 말대로 따로 네바다 주의 땅을 구입했고 네바다 주에서는 옳다구나 팔았다. 그들이 구입한 땅은 강현이 구입한 땅의 바로 이웃에 위치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정부가 자기 마음대로 매스 드라이버를 건설할 땅을 선택했을 때 강현이란 존재는 그건 그것대로 놔두고 자신만의 매스 드라이버를 만들 인간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정부에게 부담이 된다. 매스 드라이어의 건설 비용 중 상당 부분이 강현의 어마어마한 재산에 힘입고 있었기 때문에 강현이 따로 매스 드라이버를 만든다고 하면 갑작스레 재정부담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일단 프로젝트가 시작되고 건설사들이 입찰을 받자 먼저 기반을 닦고 정지 작업을 하기 전 공사하는 인부들을 위한 편의 시설을 짓기 시작했다. 치수시설이 가장 급선무였다. 인부들에게 제공할 물은 물론이고 정부로서도 매스 드라이버 시설을 결코 무인 시설로 놔둘 수 없었기 때문에 물이 필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수 백 키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수로를 만들기에는 예산이 빡빡했다. 또한 지구 온난화가 가속되어 수 자원이 중요한 이슈로 부각되는 상황에서 물 사용에 대한 갈등이 빚어질 빌미도 있었다. 그래서 NASA는 어쩔 수 없이 매스 드라이버의 운영 방침을 기간제 파견으로 하기로 했다. NASA의 직원 중에 추첨으로 몇 사람을 뽑아 매스 드라이버의 관리를 맡기기로 한 것이다. 물론 영구적인 것은 아니며 일정 기간 동안 특정 엔지니어에게만 해당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차후 네바다 매스 드라이버 기지는 ‘수용소’란 악명을 가지게 되는 것을 피할 수는 없었다. 일단 기간제로 직원을 파견하기로 하자 그 뒤는 간단했다. 그저 물을 저장하고 제 사용할 수 있는 시설을 추가로 건설하고 중간중간 물 탱크로 손실되는 물만 채워주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시에 대규모 우주 정원 실험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기 때문에 우주에 자연 생태계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햇빛 없이 인공 조명으로 각종 식물을 키우고 물을 정화하는 자연 순환을 모방하는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기로 했다. 아무튼, 편의 시설이 거의 다 지어져가자 이제는 본 공사를 위한 설계도가 필요했다. 과연 천재는 어떤 매스 드라이버를 구상했을까? “.... 작네요.” 로켓 엔진 개발부 소속 백전홍 연구원이 설계도에 나온 치수를 보고는 입을 열었다. “뭐지?” 화성 과학 연구실의 수석 연구원인 오로곤이 고개를 갸웃했다. 강현이 설계한 매스 드라이버를 봤을 때 그들이 받은 인상은 롤러코스터 같다는 것이다. 공중에서 봤을 때에는 중심에서부터 밖으로 소용돌이를 그리고 있었고 옆에서 봤을 때에는 깔대기 모양처럼 되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튜브 형태였다. 총 길이는 길었지만 이런 매스 드라이버로는 도저히 우주 왕복선을 날릴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강 박사님. 이 정도면 우주 왕복선은 쏘아 올릴 수 없겠는데요?” 누군가의 질문에 화상 통화로 그들과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던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사람을 쏘아 올리기 위해서 만든 것이 아니니까요.] 사람을 쏘아 올릴 정도로 가속하는 건 정말로 못할 짓이다. 레일의 길이, 발사체의 마모 정도를 생각하면 레일이 짧은 것이 좋다. 하지만 레일이 짧아지면 사람에게 걸리는 중력 가속도가 커져야 한다. 그렇다고 사람에게 부담없을 정도로 레일의 길이를 늘리는 것도 어렵다. 발사체와 레일 사이의 마모 정도, 그리고 공기 저항과 전력량 등 그에 수반하는 각종 비용을 생각해야 했다. “사람이 아니라면 역시 로봇인가요?” [그렇죠.] “하지만 로봇을 쏘아 올린다고 해도 너무 작은 것 같은데요. 위성 한 기만 쏘아 올릴 생각인가요?” [아니요. 여러 번 쏘아 올릴 생각이라서요.] “여러 번 쏘아올린다? 하지만 어떤 장비라도 최소 크기라는 게 있습니다.” [괜찮아요. 우주에서 조립할 생각이거든요.] “네?” [무인 우주 공장을 만들기 위해 로봇을 대량으로 쏘아 올릴 거에요.] 그날 NASA는 뒤집어졌다. = = = = = 매스 드라이버가 필요한 이유는 로켓 엔진의 단점 때문이다. 로켓 엔진은 기본적으로 작용과 반작용의 원리로 추진력을 얻는다. 만일 로켓 엔진에 싣는 물자의 무게가 크다면 어떻게 될까? 로켓 엔진의 출력과 실어야 하는 연료의 양이 많아지게 된다. 이는 단순히 싣는 물자의 무게가 증가되는 만큼 많아지는 것이 아니다. 많아지는 연료의 양만큼 다시 더 큰 출력과 그에 필요한 연료의 양이 많아져야 하기 때문에 물자의 무게와 필요한 연료의 양은 일차미분방정식의 문제가 되고 그 해는 반드시 지수 함수가 된다. 즉, 무게가 증가할 수록 제곱차수가 높아지는 수준으로 연료의 양도 증가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지구에서 우주로 쏘아 올리는 화물의 무게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매스 드라이버를 사용한다면 매스 드라이버가 지탱할 수 있는 무게 만큼 화물의 무게도 증가할 수 있다. 물론 공학적으로 한계는 존재했다. 핵심은 바로 우주로 물자를 올려 보내는 비용이 대폭 줄어든다는 것이다. 현재의 3단 로켓 기술에서 1단 만 줄어들어도 비용이 3분의 1이 줄어드는 것이다. “이게 가능성이 있는 소린가요? 궤도상에 무인 공장을 만들겠다니..” 항공우주 기술부의 책임자 마이클이 어이가 없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더 황당합니다.” 우주비행부의 썬이 입을 열었다. 우주 무인 탐사 계획은 이미 진행되고 있고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이고 있었다. 우주 환경에서 로봇은 인간을 대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고 우주 공장의 건설에 사람의 손이 필요 없다면 충분히 가능했다. “하지만 강 박사의 인공 근육은 우주에서는 작동하지 않지 않소?” 강현의 인공근육이 나오자 마자 이를 응용하기 위해서 NASA의 연구원들이 달려들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인공근육은 지구상의 온도와 압력 범위에서 제대로 작동했고 우주에서는 내구성이 형편없었다. 너무나 낮은 온도 때문에 인공근육을 구성하는 핵심 고분자들이 딱딱해져서 금방 깨져버렸기 때문이다. “그건 강 박사가 어떤 로봇을 만드느냐에 달려있겠죠.” 그들이 예상한 대로 강현은 일반적인 로봇을 만들 생각이 없었다. HA같은 이족 보행 로봇은 무중력에서는 쓸모없는 고철덩어리나 다름없었다. 그렇다면 무중력인 위성 공장 건설 환경에서 인간대신 일할 가장 적절한 로봇의 조건은 무엇인가? 간단하다. 신축성이 있는 팔이다. 늘었다 줄었다해서 구조물에 달라붙어 본체를 지지하고 한 번에 먼거리를 이동하거나 다른 로봇에게 자재를 효율적으로 건내주기 위해서는 팔이 길쭉하게 늘어나는 편이 매우 유리하다. 괜히 화성침공의 외계인이 문어인 것이 아니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신축성 있는 팔을 만들 수 있을까? 폴리머? 절대 영도 수준으로 떨어지는 온도에서 폴리머의 탄성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럼 피스톤? 어렵다. 피스톤을 움직일 유체가 얼을 수가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낮은 진공으로 인해 끊임없이 유출이 되어 오래 쓰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강현은 가장 고전적이면서 안전한 방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모터와 톱니바퀴가 바로 그것이다. 이 로봇팔의 구상은 바로 접히는 삼단봉에서 얻었다. 직경이 다른 파이프가 다른 하나의 속에 들어갈 수 있는 구조에서 파이프 내부에 모터를 설치하고 그 모터에 톱니바퀴를 달고 안쪽 파이프의 표면에는 그 톱니바퀴에 맞물려 돌아가는 톱날을 새기면 모터의 움직임에 따라 길어졌다가 줄어드는 구조인 것이다. 원래 강현이 원했던 모습은 만화 영화처럼 팔에 가로로 줄이 나있고 자유자재로 휘는 로봇팔이지만 그렇게 수준 높은 로봇팔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했다. 일단 모터만 가지고 설계를 하기에는 기계공학적인 한계가 있고 전자기적인 반발력 등을 사용하려고 해도 이런 힘들은 장(場 ; Field)의 특성을 가지고 있었기에 정밀한 조정이 힘들었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방법은 우주 공간에서도 탄성이 좋으며 피로강도가 높은 폴리머를 개발하는 것이지만 아직 거기까지는 필요 없었다. 아즈삭의 시뮬레이션에 의하면 약 100대의 로봇을 올려놓기만 한다면 소행성까지 진출할 수 있는 위성공장을 약 2년 안에 완성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강현은 곧 우주 공장용 로봇을 완성했다. 두꺼운 5각형 판자처럼 생긴 몸통과 옆면에는 회전 관절과 신축성 로봇팔을 달았고 카메라는 윗면과 아랫면에 각각 달려있었으며 그와 동시에 6면방위로 우주 부영을 위한 슬러스터, 위치 탐지를 위한 GPS 장치와 송수신기가 달려있었다. 덕분에 로봇의 크기는 강현의 가슴 높이까지 왔지만 매스 드라이버로 위성궤도에 쏘아 올리기 어렵지 않을 듯 했다. 강현은 이 로봇에 펜타봇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팔이 5개이기 때문이다. 134화 로봇의 팔에 5개인 이유는 간단했다. 3개는 몸체를 지탱할 용도고 2개는 작업을 위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몸체를 지탱하는 용도로 팔이 2개가 아니라 3개인 이유는 회전 관절에 걸리는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였다. 몸통을 지탱하는 팔이 2개라면 어떨까? 그 팔 끝을 연결하는 가상의 직선을 그려보자. 그리고 그 직선을 중심으로 회전력(토크)가 걸린다면? 몸체가 그 직선을 중심으로 회전하게 된다. 이를 버티기 위해서는 직선에 붙은 로봇팔의 손에 무리가 가해지기 된다. 심하면 파손될 수도 있다. 지렛대의 원리에 의해 더 큰 힘이 가해지니 그럴 가능성이 훨씬 높다. 그래서 이 회전 토크를 지탱할 든든한 지지대가 필요하기 때문에 몸통을 지탱하기 위해 3개의 팔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4개의 팔이라면 좀 더 안정되게 몸체를 지지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쓸데없는 낭비가 될 가능성이 더 높다. 테이블이 바로 서기 위해 최소한 도로 필요한 다리의 수는 몇 개 일까? 4개가 아니라 3개다. 수학적으로 점 3개는 무조건 평면을 만들며 3개의 다리를 가진 탁자는 어떤 울퉁 불퉁한 지면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자세를 유지한다. 화학 실험 도구인 삼발이나, 카메라의 삼각대, 지면 위에 놓고 사용하는 각종 측정 기구를 지지하는 도구는 무조건 발이 3개다. 왜냐면 그것이 발이 4개인 것보다 더 안정하기 때문이다. 만일 다리의 길이가 서로 다른 탁자가 있다고 해보자. 이미 3개의 다리로 지면에 잘 서있는데 4번째 다리가 짧아 둥둥 떠있다. 그리고 3개의 다리가 지면에 접착제나 말뚝으로 단단히 고정되어 있을 때 이 짧은 다리를 땅에 붙인답시고 힘을 주면 탁자가 부서진다. 이를 펜타봇에 응용해보면 펜타봇이 4개의 팔로 자세를 잡았을 때 하나의 팔에 쓸데없이 힘을 쓰면 나머지 3개의 팔에도 쓸데없이 부하가 걸린다. 그래서 몸체는 지지하는 것 3개, 작업용 팔 2개가 가장 적절한 숫자인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로봇과 자재를 따로 따로 쏘아올리기 때문에 같은 지점에서 합류할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때문에 우주 공간을 오갈 수 있는 운반용 비행선이 반드시 필요했다. 크기는 작아도 상관없었다. 충분히 우주로 쏘아올린 화물을 이동시킬 수 있는 추진력만 가지면 앵커로 걸어 끌고 다녀도 된다. 대기가 없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현은 데이비드 브레디에게 연락을 걸었다. 브레디 역시 NASA의 일원 중 한 명으로 존슨 우주 센터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는 ‘이글 워크’라는 프로젝트의 책임자였다. “EM 드라이버를 개선해서 네바다 프로젝트에 사용하고 싶으시다구요?” 네바다 프로젝트는 위성 공장 프로젝트가 네바다 황무지에서 진행되고 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네. 그러니 실험자료와 설계도 좀 보내주세요.] “물론이죠. 지금 즉시 보내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원리가 완전히 밝혀진 것은 아니라 개선하기 힘드시지 않을까요?” [하긴 기본적인 학술적 근거와 개념이 잡혀야 제대로 개량이 가능하니까요. 뭐 잘 안 돼도 공부하는 셈 치죠.] “알겠습니다. 곧 이메일로 보내드리죠.” 우주 공간에서 추진력을 얻는 방법은 무엇일까?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추진제를 뒤로 분사해 작용 반작용의 원리로 나아가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이는 우주 개발에 커다란 난제였다. 우주적 스케일에서 먼 우주 여행을 위해서는 그 만큼 많은 추진제를 실어야 한다는 의미였던 것이다. 추진체를 최소한으로 쓰기 위해 플라즈마 이온 엔진 따위로 적은 양의 입자를 더 빨리 쏘아내는 연구도 하고 있지만 장거리 항해에서 이는 반드시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행성의 움직임들을 이용한 스윙바이 항법이나 관성 항법 따위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방법들은 초기 속도와 방향에 의해 결과가 결정되기 때문에 미치도록 정밀한 계산이 요구된다. 허용 오차를 조금만 벗어나도 우주의 엄청난 스케일 때문에 이 오차의 영향이 커져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추진제 없이 추진력을 얻을 수 없을까하고 연구하고 있는 것이 장(場) 추진(Field propultion) 기술이다. 하지만 장 추진 기술에는 문제가 있었다. 그것이 중력장이든 전자기장이든 장을 형성하는 장치와 추진이 필요한 장치를 하나의 구조물로 만들면 작용 반작용으로 생긴 힘이 상쇄되어 어떤 운동량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블랙홀을 장대끝에 달아 우주선 전면에 부착한다고 해도 블랙홀이 당기는 힘과 장대가 지지하는 힘이 평형을 이루어 추진력은 발생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장 추진 기술의 지향점은 이런 힘의 평형이 일어나지 않는 구조로 장을 형성하는 것이고 인위적으로 공간을 왜곡하는 방법을 비롯해 원거리에 중력장을 형성시키는 방법 등 다양한 발상이 있지만 좀처럼 쓸만한 방법론이 나오질 않았다. 하지만 2000년에 개발된 EM 드라이버는 다르다. 장(場) 추진 기술과 개념이 완전히 다른 이 EM 드라이버는 전자기파, 즉 빛을 이용해 추진하는 방법을 이용하고 있다. 레이더나 전자레인지에서 사용하는 자전관을 이용, 고출력의 전자기파를 형성해 특정한 모양의 공간에 집어넣는다. 이 공간의 모양은 원뿔대의 형태로 금속으로 완전히 둘러 쌓여 있어 일종의 전자기파의 공명 장치로 작용한다. 그리고 옆에 난 작은 구멍으로 극초단파를 밀어 넣어 전자기 공명을 일으키면 원뿔대의 넓은 면에 부딪히는 전자기파가 더 많기 때문에 넓은 면으로 추진력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얻듯 듣기에는 그럴싸한 소리다. 빛으로 우주를 여행한다는 개념은 태양광 돛이라는 이름으로 이미 있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콤프턴 효과라는 빛과 입자간의 간섭 현상 때문이다. 마치 당구공이 부딪히듯 광자에 맞은 입자가 튕겨나가며 전체적인 운동량이 보존되는 것이다. 운동량의 정의가 질량X속도이기 때문에 질량이 없는 광자에 운동량이 있다는 말이 이상하겠지만 양자 통계 물리학적인 수식으로 도출한 에너지 수식을 기반으로 물질파 공식을 대입해 간단한 사칙연산으로 정리하면 광자의 질량은 플랑크 상수를 그 빛의 파장으로 나눈 값이라는 아주 간단한 수식을 얻을 수 있다. 아무튼 이렇듯 질량이 없는 빛이 입자를 때린 후 입자가 가지게 되는 운동량과 파장이 길어지며 줄어든 운동량을 가진 광자의 운동량은 처음 그 광자가 가진 운동량과 같다. 즉, 넓은 태양광 돛을 이용하면 태양계를 벗어할 수 있는 추진력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파피용’이라는 소설에서 이를 소재로 사용했다.)하지만 바로 이 운동량 보존 법칙에서 EM 드라이버는 심각하게 비판을 받았다. 어떤 고립계(외부와 어떤 에너지도 주고 받지 않는 계)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것이 외부에 어떤 일을 하거나 일을 받지 않는다면 전체적인 운동량의 변화는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뉴턴의 운동량 보존 법칙을 파괴하는 것이라며 재고의 가치도 여기지 않았다. 그런데 몇 년 후 중국에서 이 EM 드라이버를 만들어 추진력이 생긴다고 발표했다. 물론 급격히 팽창하는 중국 과학 기술계였지만 그만큼 날조도 많아서 신뢰성을 확보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이번에는 NASA에서 이 EM 드라이버를 실험했고 확실하게 추진력이 생성되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그리고 그 실험을 한 팀의 책임자가 바로 데이비드 브레디였다. 덕분에 과학계는 멘붕이 일어났다. 운동량 보존 법칙이 깨지다니! 이것은 에너지가 보존되지 않고 새롭게 생기거나 소멸한다는 말만큼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이 말도 안되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수많은 가설이 나오고 있는 와중에 이 EM 드라이버를 개발한 우주항공 기술자인 로저 J 쇼어는 빛이 가두어진 고립계와 입자가 가두어진 고립계의 자유도가 다르기 때문에 EM 드라이버의 핵심인 원뿔대 공진장치 역시 완전한 고립계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어딘가로 에너지가 출입하기 때문에 추진력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한편 실험을 한 나사의 실험팀에서는 이 EM 드라이버의 공진 장치에서는 인공적으로 도넛모양(토로이드; Toroid)의 플라즈마 효과가 일어나고 이것에 양자 요동(불확정성의 원리에 따라 진공 상에서 입자와 반입자가 끊임 없이 생성되고 쌍소멸하는 현상)과 어떤 작용을 하여 자기 유체 역학적인(지구 외핵의 자전으로 인해 지구 자기장이 생기는 것을 설명하는 이론) 반발에 의해 추진력이 발생하지 않을까란 가설을 내 놓았다. 하지만 아직 아무 것도 확실한 것이 없었다. 일각에서는 광자와 암흑물질의 간섭에 의해 발생하는 추진현상이 아니냐는 가설까지 나오는 형편이나 과학자들의 충격(좋은 의미에서)과 흥분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학자란 인종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을 발견하면 신의 축복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었다. 결코 공포에 떨며 신을 찾는 이들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건 강현도 마찬가지였다. “이야, 우주 개발을 하기로 결정한 건 아무리 생각해도 잘 한 것 같아. 이런 기술을 못 보고 넘어갈 뻔 했으니 말이야.” 이 얼마나 대단한 기술인가? 추진제가 필요없는 추진 장치라는 말은 공기저항이 없는 우주 공간에서 무한히 가속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무한히 가속할 수 있다는 말은 속도가 엄청나게 증가한다는 말이니 1주일 만에 화성에 갈 수 있다는 견해도 있을 정도다. 그러나 일단 확실한 것은 이 EM 드라이버로 인해 인류의 생활권이 태양계 전체가 될 가능성이 활짝 열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학자의 입장에서 그런 파급효과나 미칠 영향보다는 그 현상 그 자체가 더욱 짜릿했다. 기존의 물리 법칙으로 설명할 수 없는 효과가 나타났다. 이를 해결해서 새로운 이론을 만들게 되면 그 사람의 이름은 과학 문명이 존재하는 한 영원한 명예를 누릴 것이다. 그만큼 새로운 발견은 학자라는 인종에게는 중요하다. “아즈삭. 실험 장치를 준비해.” 강현의 명령에 아즈삭은 HA 두 기를 이용해 부품들을 조립하기 시작했다. 자전관에 먼저 전자 회로를 연결했다. 자전관(Magnetron)은 전자기파를 만드는 기술로 유일하게 살아남은 진공관 기술이다. 왜냐면 레이더에 사용될 수 있을 정도의 극초단파를(극초단파라고 하지만 가시광선보다 심지어 적외선보다 파장이 길다. 무려 백 배에서 만 배 정도나 기니 오해하지 말자.)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이것 뿐이기 때문이다. 극초단파가 만들어지는 원리는 간단하다. 전기장의 변화는 자기장의 변화를 유도한다. 하지만 빛처럼 전기장이나 자기장에 파동이 일어나야 한다. 이는 전하를 띈 입자를 가속 운동 시키는 것 만으로 간단하게 이루어진다. 그리고 자전관은 필라멘트에서 열전자를 뿜어 자기장속으로 던진다. 그러면 일정 속도를 가진 열전자는 로렌츠 힘이라는 것을 진행 방향에 수직으로 받아 곡선을 그리게 된다. 로렌츠의 힘이라는 원심력으로 계속 속도가 변하는(속력은 일정하지만 원 운동을 하도록 방향을 바꾸는 속도 벡터가 지속적으로 공급되는) 가속 운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 전자의 가속 운동을 통해 생성된 극초단파를 원뿔대 모양의 공진기에 넣을 수 있도록 내부가 반사처리 된 관을 연결하면 된다. 공진기라고 해도 사실은 내부가 빈 금속 통에 불과하니 조립에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다. ============================ 작품 후기 ============================ 네, 그렇습니다. 한 독자분께서 앞에 언급하셨던 EM 드라이브입니다. 이게 없었다면 강현은 중력파 엔진을 개발하기 위해서 아직 신 통일장 이론을 끄적이고 있었겠죠. 135화 전력이 들어가고 실험을 시작하자 NASA의 연구실에서 얻었던 결과와 축이 회전축을 중심으로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확실히 추진력은 존재했다. 강현은 운동량 보존 법칙을 파괴하지 않은 가설들을 여러 개 설정하기 시작했다. 일단 암흑물질은 제외했다. 존재하는 것은 알고 있지만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전혀 예상할 수도 없고 이론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아인슈타인의 우주 상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암흑물질을 이론적으로 가정하고 풀기에는 너무나 미지수가 많았다. 만일 이론적으로 수식을 전개해 나가다가 무언가 오류가 발생한다면 그때 생각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강현은 일단 다양한 모양의 공진장치와 다양한 자전관을 구입해 닥치고 실험하기 시작했다. 이론적인 모델이 없기 때문에 시뮬레이션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공학적으로 쓸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은가? Try & Error! 과거 근대에 들어오기 시작했을 때, 지금처럼 기술이 고도화 되지 않아 실험 장비를 꾸리는 데 필요한 비용이 그리 높지 않을 때, 그리고 이론적으로 설명이 불완전해 완벽한 시뮬레이션이 불가능하고 시간을 줄여야 할 때. 바로 그럴 때 쓰는 일종의 노가다였다. 노가다라고 표현하니 뭔가 비과학적인 느낌이 들지만 그렇지 않다. 무수히 반복되는 실제 실험으로 축적되는 데이터는 그 현상을 설명해 줄 실마리를 잡을 수 있게 해주고 차후 좀 더 나은 공학 기술의 개발을 위한 거름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완벽한 시뮬레이션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실제로 실험을 해봐야 한다. 성공하면 성공한 데로 실험 결과를 정리해야 하고 실패하면 실패한 데로 결과를 정리해야 했다. 이공계에게 실험의 실패는 좋은 친구인 것이다. 강현은 여러 실험을 거친 후 추진력의 변수가 되는 것들을 발견했다. 일단 공진장치의 크기와 모양은 확실하게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자전관에서 뿜어지는 극초단파의 평균 파장 역시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극초단파의 파장과 공진할 수 있는 구조일수록 추진력이 조금씩 더 높아졌다. 나사의 가설대로 어쩌면 양자 요동과 가상 플라즈마 토로이드(도넛 모양)이 상관관계가 있는 듯했지만 단정하지 않았다. EM 드라이버의 추진력을 고전적인 역학으로 설명할 수 없으니 양자 역학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방법도 있다는 것만 머릿속에 넣었다. 데이터를 어느 정도 축적하고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근사치를 만드는 선형 방정식을 구성한 후 이 선형 방정식에 의거해 가장 효과적인 출력을 내는 공진 장치의 치수와 극초단파의 파장을 추정했다. 그리고 그대로 다시 장치를 꾸며 실험했다. “흐음.. 펜타봇에 이걸 달까?” 슬러스터 추진체를 빼고 대신에 배터리를 넣어도 데스크탑 본체 정도되는 크기의 장치를 달면 꽤나 부피가 나갈 것이다. “아니야. 그래도 최소한 드라이브가 세 개는 필요하니까 펜타봇에 타는 건 좀 그렇고.. 꼼짝 없이 운반용 우주 유영 로봇을 쏘아 올려야 하는 구나..” 우주 공간에서 자유 자제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최소한 세 개의 슬러스터가 필요하다. 이유는 펜타봇을 지지하기 위해 3개의 다리를 배정한 것과 같다. 3차원 공간에서 직진 운동을 하기 위해 가해지는 힘은 반드시 이차원 평면으로 존재해야 회전 운동와 직선 운동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아, 결국 최적화 설계를 해야되네.” EM 드라이버를 세 개는 달아야 하니 강현은 머리칼을 신경질적으로 문질렀다. 연구하는 건 좋아하지만 일일이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써야하는 설계는 질색이었다. 그래서 아즈삭을 만들고 가장 먼저 시킨 일이 설계보조였다. 아무리 아즈삭의 능력이 뛰어나게 되었다고 해도 우주에 쏘아 올릴 로봇에 최대한 많은 기능이 들어가도록 부피를 줄이는 작업이었다. 복잡한 선과 파이프 라인의 정리는 물론이고 부품들의 소형화까지 함께 해야하니 설계 작업할 양이 대폭 증가하는 것이다. 그래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하는 것이 더 나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펜타봇 수송용 유닛의 디자인은 발이 세 개인 부메랑처럼 생겼다. 중앙은 배터리 장치와 자세 제어장치, 위치 전송 장치 및 통신 장치가 들어있었고 각 끝에는 소형화 시킨 EM 드라이버가 하나 씩 달려 있었다. 그리고 이들을 결합하는 다리는 각 끝에 회전 모터와 구동장치가 있어 각 EM 드라이버의 방향을 자유 자재로 바꿀 수 있었다. 펜타봇의 이동을 위해 수송용 유닛에까지 로봇팔을 달 필요는 없었다. 중앙 부분에 펜타봇이 잡을 수 있는 손잡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자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빠른 회전을 위해 길이가 길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길어진 길이는 강현이 구상한 매스 드라이버용 발사체에 들어가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강현은 번뜩이는 기지 하나로 이를 해결했다. 스프링 하나 만으로 우주 공간에서 저절로 다리가 펴지도록 한 것이다. 일단 발사체에 넣을 때에는 접혀있던 다리가 우주 공간에서 캡슐에서 개방되면 스프링의 장력에 당겨저 저절로 펴진다. 일단 펴지면 잠금 장치에 잠겨서 그대로 고정되어 원래의 형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완성된 우주 수송용 유닛의 이름은 트리플론이 되었다. 다리가 세 개라서 트리플이라는 단어와 드론을 합성한 이름이었다. “아즈삭. 공장의 건설은?” [일단 관제용 컴퓨터 하드웨어의 설치가 완료 되었습니다.] “아아, 스페이스 넷 말이지?” 어떤 영화에서 폭주해 인류를 멸망으로 이끄는 인공지능의 이름과 비슷했지만 위성 궤도의 로봇들과 앞으로 건설될 소행성군 광산 공장과의 통신을 관장할 인공 지능의 이름으로서 이보다 어울리는 것은 없었다. “그럼 스페이스 넷은 로봇 제어에 경험을 쌓도록 하고 우리는 본격적으로 발사체를 만들어보자.” [NASA의 특허 중에 쓸만한 특허가 많습니다. 이를 이용하면 시간이 단축에 용이합니다.] “쩝. 하긴 혼자서 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긴 하다.” 강현은 조직과 분업의 힘을 맛보았다. 아즈삭과 단 둘이서만 일을 진행했다면 지금 매스 드라이버 건설에만 신경쓰느라 골치가 아팠을 것이다. “아참! 펜타봇과 트리플론의 제작도 시작해야 하는데..” [스페이스 넷에게 시키도록 하겠습니다. 로봇 제어에 대한 경험과 조립 공정에 대한 경험도 쌓을 수 있을 겁니다.] “좋아. 그렇게 하자.” 해도 해도 할 일이 많았다. 일단 매스 드라이버용 발사체의 경우에는 펜타봇이나 트리플롯 보다 훨씬 제작이 어려울 수 밖에 없었다. 왜냐면 매스 드라이버의 어마어마한 가속력을 견디면서 성층권을 넘나드는 마찰열을 견뎌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충분히 거대한 이점이 있었다. 왜냐면 매스 드라이버의 힘 만으로 대기권을 탈출 할 수 있기 때문에 따로 로켓 추진체가 필요 없다는 것이다. 물론 EM 드라이버가 달린 트리플론이 있기에 우주 공간에서도 필요가 없었다. 강현은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한의 효과를 내기 위해서 로봇들을 축적하고 스페이스 넷을 교육하면서 매스 드라이버의 완공을 기다렸다. NASA에서는 매스 드라이버를 지으면서 발전소도 건설해야 했는데 당연히 강현이 설계한 작품이었다. 지역이 바닷가 근처가 아니라 터빈을 사용하는 발전소는 건설할 수가 없었다. 왜냐면 터빈을 돌리기 위해 사용하는 초고압 증기는 다시 냉각 장치를 거쳐 물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거대한 열량을 배출하기 위한 시스템은 필연적으로 많은 물을 사용하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이 황무지에 물을 끌어오는 문제가 다시 불거진다. 그래서 NASA는 마음에 안들지만 강현의 설계대로 거대한 출력을 내기 위해 수 많은 풍력 발전소와 태양전지로 이를 해결하기로 했다. 솔직히 강현의 레드솔라셀은 그 효율이 무척이나 뛰어났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혹여나 전력 수급에 문제가 생기면 근처 도시에서 충당할 계획도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강현의 계획에 따랐다. 솔직히 ‘신 재생 에너지만을 이용한 우주 진출 센터’라는 명예가 탐이 나지 않았다면 엔지니어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발전소가 해결되었다고 다 해결된 것은 아니다. 매스 드라이버의 가장 중요한 기술적 핵심은 전력 제어였다. 순간적으로 엄청난 전압을 가해야만 로켓이 성층권을 탈출하는 에너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 매스 드라이버의 장점은 바로 이 에너지에 있었다. 로켓 시스템은 그 연료까지 함께 공중으로 쏘아올리기 때문에 원하는 발사체를 우주로 쏘아보내는 것보다 더 많은 에너지가 드는 것이다. 또한 쏘아올리는데 걸리는 시간동안 중력이 당기는 에너지를 지탱하기 위한 연료도 들었다. 하지만 매스 드라이버로 공기저항을 고려한 중력 탈출 속도만 확보할 수 있다면 이 모든 비용이 획기적으로 감소한다. 물론 여기에는 또 하나의 전제 조건이 있다. 매스 드라이버 내에서 발사체가 탈출 속도를 얻는 동안 발사체와 매스 드라이버가 그 어마어마한 압력을 견뎌야 한다는 것, 거기에 거대한 전압을 사용하는 시스템에서 발사체와 레일간의 접촉 부위의 마모도가 최소화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탈출 속도에서 견딜 수 있는 재료는 이 지구상에 없다. 금속은 마찰열에 녹아버릴 것이 분명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강현은 지속적으로 레일에 윤활제를 붓는 방법을 생각했다. 금속 가공 공정에서 고속으로 쇠를 깎아 낼 때 지속적으로 윤활제 및 냉각제를 붙는 것에서 착안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최선일까? 아니다. 그렇지 않았다. 최대한의 출력을 얻기 위해서, 그리고 성층권을 뚫기 위한 내열 타일이 붙어있는 발사체의 반복 활용을 위해서는 마찰 같은 내구성 하락 요인을 제거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다. 그래서 매스 드라이버의 내부에는 세 줄의 마그네틱 레일이 깔려있다. 모두 질소 탱크과 냉각 시스템에 연결되어 있어 초전도체이고 여기에 자기 부상 효과로 매스 드라이버와 발사체의 접촉면을 제거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레일건의 원리를 어떻게 구현한다는 것일까? 레일건은 전압이 걸린 양 레일 위에 도선이 놓이고 이 도선에 전류가 흘러야만 힘이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강현은 이 문제를 해결할 힌트를 테슬라 코일에서 얻었다. 정확히는 테슬라 코일의 스파크 겝에서 그 힌트를 얻은 것이다. 전압이 강하면 공기를 뚫고 전류가 흐른다. 비록 전류가 공기를 지나가며 전압 강하가 일어나지만 그때 발생하는 에너지 손실과 마찰로 인해 생기는 에너지 손실을 비교하면 차라리 공기 중을 통과하면서 발생하는 에너지 손실이 더 작다. 그리고 전압이 강하면 강할 수록 공기의 분자 역시 분극화 되거나 플라즈마화 되어 오히려 전류가 흐르기 쉬워진다. 전압이 높을 수록 손실이 더 작아지는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신기할 것도 없다. 임계점을 넘는 순간 상식 밖의 일이 벌어지는 건 물리 세계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아무튼 강현이 튜브 형태의, 그것도 인간이 아니라 로봇을 쏘아 올리는 매스 드라이버를 구상하고 실현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짜낼때, 이런 자연 현상은 무척이나 반가운 일이었다. [발사체 설계를 검수합니다.] 아즈삭이 강현과 함께 설계한 발사체의 설계도를 물리 엔진에 넣어 시뮬레이션 하기 시작했다매스 드라이버에서 발사체가 견딜 수 있는 내구 한도, 그리고 우주에서 로봇을 사출하고 복귀하는 시뮬레이션까지 끝마쳤다. 시뮬레이션 과정에서는 별로 큰 문제가 없었으니 강현은 만족하고 제작에 들어갔다. 136화 NASA에서는 매스 드라이버의 완공율을 67%라고 알려왔다. 그리고 로봇도 계속 생산 중이고 곧 발사체도 완성될 것이니 발전소와 함께 완공되면 곧장 우주 개발에 착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때까지 위성 공장에서 사용할 용접 장치, 조립 공구나 플라즈마 절삭 장치 등을 소형화하고 우주 공장을 건설하기 위한 특수 자재들을 축적해 놓는 것도 중요했다. 적어도 지금까지 아무런 문제도 없었기 때문에 강현의 우주 개발 프로젝트는 아무런 걸림돌이 없을 것 같았다. [잭. 그게 무슨 말이야?] 강현의 목소리가 딱딱해 졌다. 전화기 넘어로 들어오는 어조에 잭은 강현의 상당히 굳은 표정(화난 표정)을 상상할 수 있었다. 솔직히 잭도 유감이었다. 의회에서 추경 예산안이 기각된 것이다. 그래, 그것만이라면 강현도 이해할 수 있었다. 정부에 돈이 없다니 어쩌겠는가? 급한 대로 자신의 돈이라도 써야지. 물론 그만큼의 매스 드라이버의 운영권에 대한 지분은 당연히 얻어야 한다. 그것이 자신의 권리니까. 하지만 의회에서 꺼내든 ‘네바다 프로젝트 추경 예산안 확보를 위한 민간인 투자 방안’은 말이 다르다. 그 이름 그대로 강현 뿐만 아니라 민간 자본을 유입하도록 하는 안이 나와있었다. 그건 강현이 전혀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현, 진정해. 너도 알다시피 우주 개발은 엄청나게 이권이 많이 남을 사업이야. 특히 네가 만들 위성 공장이 실현이 되고 우주 식민지 시대가 열리게 되면 엄청난 경기 부양 효과가 일어나지.” [내가 그걸 몰라서 이렇게 화가 난 것 같아?] “그럼 왜..” [엄청나게 이권이 많이 남을 사업이라고 누가 중간에 허락도 없이 숟가락을 올리려고 한다는 게 문제지.] “아!” 잭은 그제서야 왜 강현이 화가 났는지 알 것 같았다. 강현은 자신의 연구에 누가 간섭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그리고 네바다 프로젝트는 전적으로 강현이 주도하는 일련의 연구 과정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 누가 정치권에 야료를 부렸다. 우주 개발은 엄청난 전략성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사업이기 때문에 민간이 진출하기 이전 먼저 군사적으로 진출하는 것이 수순이다. 그리고 세계적인 군사 대국인 미국으로서는 당연히 더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니 우주 진출의 핵심이 될 매스 드라이버에 민간인 자본이 투자 된다는 것은 국가가 마음대로 사용하가 어려워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흔히 민영화된 기업들이 그렇지 않은가? 물론 강현의 자본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강현이란 천재는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상업적으로 매스 드라이버를 사용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의 군사적인 부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적었다. 하지만 민간 자본을 통해 우주 진출이 된다면 우주 군사 기지를 건설해 우주를 군사적으로 선점하는데 자본을 투자한 이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도 정치권에서 이런 식으로 나온다는 것은 거대한 이권이나 도움을 약속 받았다는 것을 암시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발을 뺄거야?” [필요하다면.] 극단적인 대답에 잭은 당황했다. “자, 잠시만 그렇게 성급하게 결정을 내리말고 잠시만 있어봐. 내가 윗선에 알려서 어떻게든 조치를 취해 볼게.” [국가 정보 조직이 그렇게 정치에 관여할 수 있어?] “...” 강현의 말에 잭은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국가 정보 조직이 정치에 관여한다? 물론 할 수 있다. 정치는 곧 각자가 개인이나 집단이 가진 영향력이 부딪히는 역학, 미국의 안보를 위한 갖가지 정보를 다루는 정보부의 영향력이 약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공무원이 정치에 관여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리스크를 져야 한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정황상 막대한 로비를 받은 것이 분명한 의원들이 정보부의 간섭을 결코 반가워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확실했다. 결정적으로 잭이 알기로는 현 정보부 책임자는 정치적 부담을 지고 강현의 입장을 대변해 줄 사람이 절대로 아니었다. [됐어. 내가 알아서 하지.] “자, 잠깐만! 어떻게 하려고! 정말로 따로 매스 드라이버를 만들 생각은 아니겠지?” [필요하다면 그래야지.] 그리고 전화가 끊겼다. 잭은 갑자기 머리가 찌근찌근해지는 두통에 관자놀이를 누르고 아스피린은 한 알 먹은 다음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애라! 모르겠다! 내 할 일만 하련다! 앞으로 강현이 얼마나 스케일 큰 일을 벌일지 어렴풋이 짐작한 그는 관련되어 뒷수습을 하기 싫었다. 자그마치 우주가 걸린 일이니 그 스케일이 얼마나 큰가? 겨우 지구촌에서 놀 뿐인 잭이 감당할 건덕지가 아니었다. = = = = = “아즈삭. 바알제붑 프로젝트를 가동해.” [네, 박사님.] 바알제붑, 혹은 바알. 원래 농경공동체인 가나안 인들의 신으로 풍요와 폭풍우의 남성신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와 대립되던 야훼 신앙, 즉 기독교에서는 바알을 지옥의 악마군주로 정의했고 악마로 알려졌다. 흔히들 파리대왕으로 묘사되는 존재가 바로 바알이었다. 그리고 파리로 묘사되듯 파리와 역병의 이미즈를 가지고 있어서 강현이 자신의 로봇 바퀴벌레로 구성된 첩보망에 붙인 이름이었다. 일단 첩보망이 가동되었으니 이제 워싱턴 정가에서 얌전히 생존에 힘쓰고 있던 바퀴벌레 로봇들이 이제 무차별적으로 자신들이 기거하는 곳을 도청해 그 자료를 아즈삭에게 보낼 것이다. 그러나 아즈락이라는 미국 첩보를 대표하는 인공지능이 생겼기 때문에 과거처럼 그냥 데이터를 보낼 수 없었다. 그래서 암호화된 정보를 보낼 수 있도록 일련의 바퀴벌레 로봇의 교체가 있었고 좀 더 교묘해 졌기 때문에 ‘프로젝트’란 이름을 붙일 수 있을 정도로 고도로 조직화 된 체계가 잡힌 것이다. 그래도 조심하기는 해야 했다. 평소와 다르게 급증한 데이터 출입량은 아즈락의 경계심을 살 가능성이 있었다. 바알제붑 프로젝트가 가동되고 워싱턴 정가에서 네바다 프로젝트에 관련되어 로비를 벌이는 이들의 면면을 확인하자 강현의 표정이 더욱 굳어졌다. “이것들이..” 유대인, 아랍 자본은 물론, 전통적 미국인 자본까지 미국 내 자본 세력이 거의다 로비를 진행 중이었다. 물론 서로 견제를 하기는 하지만 우주 진출이라는 부분에 있어서 서로의 이해관계가 일치하고 있었다. 네바다 프로젝트에 관한 로비가 바로 그것이었다. “하아. 역시 세상 돌아가는 걸 보는 눈이 있으니 지금껏 생존할 수 있었던 거겠지.” 우주에 진출하게 되면 인간의 세상은 바뀐다. 인간이 생활하는 환경이 바뀌면 사회 시스템 역시 바뀔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자본가들은 그 바뀌는 시스템을 선도하거나 혹은 자신들의 입맛에 만들고 싶어할 것이 너무나 자명했다. 그렇지 못하면 도태당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강현 역시 그들이 행동에 나설 것을 예상했으나 생각보다 무척이나 빨랐다. 적어도 위성 공장의 완성과 성과가 드러난 이후에서나 움직일 것으로 생각했는데 의외로 자신에 대한 자본가들의 신뢰가 높은 모양이었다. 그러니 성공 여부가 완전히 확인되지 않는 일에 많은 돈을 쏟아부으려고 하고 잇지 않은가? 하지만 강현은 그들을 참여시킬 수가 없었다. 자본의 힘이 우주 진출에 관여하게 되면 공유지를 무한대로 늘려서 자본주의를 붕괴시켜 보겠다는 야심찬 계획에 금이 가게 된다. 우주시대란 새로운 시대를 여는데 일조한 자본주의와 그 세력은 생존할 것이고 사람들에게 여전히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영향력이 더 강해지면 정치권과 연대해 우주의 무한한 자원을 두고 무슨 개발권이니, 무슨 유통권이니 하며 이권사업을 하게 될 수도 있었다. 이른바 정경 유착을 통한 사어비다. 물론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하지만 자본가란 존재의 집요함과 이권에 얽히며 수백년간 전통을 지켜온 유서깊은 가문들의 힘을 파악한 강현에게는 그런 미래가 그리 가능성 없어 보이지 않았다. 유대인이라는 종족도 수 천 년간 나라를 찾아 헤매다가 결국은 나라를 건설하지 않았는가? 목적을 위해서 세대를 잇고 결국은 쟁취해 내는 인간의 집념, 그리고 그를 위한 전통있는 교육 시스템으로 인해 그들은 시간이라는 요소에 대해서는 강현에 대해 압도적인 강자의 위치에 있었다. 그러니까 강현은 한 방에 대대적인 자원 증대를 통해 신용 화폐의 힘을 축소시키지 않는다면 자본주의 중심의 세계질서를 붕괴시킬 수가 없었다. 그런데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도 하기 전에 이렇게 공격이 들어온다? 강현에게는 전혀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얼마나 달갑지 않았냐면 EM 드라이버를 설명할 기초 이론을 연구하던 작업도 멈추고 자본가란 하이에나가 그 더러운 군침을 흘리지 못하게 할 방법을 생각해 내기 위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던 것이다. 한 참을 고민하던 강현은 정치적 문제의 훌륭한 조언자가 필요했고, 그래서 파셀 의원에게 연락을 했다. 그는 강현이 연락하자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하하. 그래, 강 박사. 이번에는 또 어떤 일 때문에 연락을 한건가?] “누가 제가 차려둔 네바다 식탁에 함부로 포크를 들이밀려고 하더군요.” [하! 그 일인가? 나도 잘 알고 있지. 나한테도 로비스트가 왔을 정도이니..] 미국에서 로비스트가 불법은 아니지만 그래도 선거를 앞둔 후보가 로비를 받는다는 것이 이미지가 별로 좋지는 않았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부자는 물론 대중까지 아울러야 할 파셀 의원이 그런 로비스트로 인해 부자 지지당이라고 불리는 공화당으로서의 이미지가 강해지는 것이 달갑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랬어요? 아무튼 저는 누가 함부로 제 권리를 침해하는 일에 무척이나 불쾌해 졌어요.” [허허, 하지만 NASA는 허락해 주었지 않은가?] “미국 정부야 신용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권에 미친 자본세력은 신뢰와는 거리가 멀어요. 미국 정부는 저의 이익이 곧 미국의 이익이 될 수 있으니까 함께 할 수 있지만 자본세력에게 저의 이익이 항상 그들의 이익으로 연결된다고 볼 순 없으니까요.” 강현은 미국의 기술력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강현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할 때마다 미국의 국력은 신장된다. 또한 그는 절세 따위는 생각도 하지 않는 성실한 납세자였다. 미국이 정부 차원에서 강현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자본세력은 다르다. 그들은 국익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을 쫓는다. 월가의 모기지론 사태는 그들이 얼마나 탐욕적이고 이기적인지 적나라하게 나타내는 사건이었다. [자네도 돈이 많지 않은가?] “돈이 많은 거랑 돈 버는데 미친 거랑 완전히 다르죠.” [흐음..] 파셀 의원은 신중하게 생각했다. 강현의 말은 그야말로 자정주의 세력이 뻗어나간 시발점이었다. 강현은 기본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자들을 신뢰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네바다 프로젝트에 걸리는 수작에 이렇게 민감하게 나오는 것이리라.. 하지만 파셀 의원이 전적으로 강현의 편을 들기도 어려웠다. 아무리 자정주의의 물결이 몰아쳤다고는 하지만 공화당은 공화당. 부와 권력을 향한 인간의 탐욕은 명예만으로는 완전히 어쩌할 수가 없었다. 공화당원들이 모두 고결한 영혼의 소유자라 명예만으로 만족하는 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137화 그러나 그렇지 못하기에 파셀 의원은 자신의 입김만으로 강현이 원하는 바를 이뤄주기 힘들었다. 자신을 따르는 이들을 하나하나 만나 새로운 여론을 일으켜야 하지만 그것은 당론을 거스르는 짓이었다. 대선을 앞두고 당을 분열시키는 일을 당의 꼭지점에 서있는 그가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아...] 그렇다고 강현과 척을 지는 것도 골치다. 미국 정부의 핵심 정책은 이미 강현의 영향력을 많이 고려한다. 정확하게는 그가 개발한 물건들의 파급 효과에 대처하는 것이지만 그래도 과학 기술 인력에 미치는 강현의 영향력과 그가 내는 세금 및 각종 기부금을 생각하면 그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했다. 여기서 강현과 삐걱거리게 되면 차후 정권을 운영하는 내내 골치 아픈 문제를 남기게 될 여지가 있었다. “어떻게 방법이 없어요?” [하아.. 도와줄 방법이 없어서 미안하군.] 파셀 의원이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 했다. 아무리 자정주의로 한 번 씻겨 내려졌던 공화당이라고 해도 자본의 힘 앞에서는 부드러워 졌으며 당론을 거스르는 것은 파셀 의원 자신의 정치 생명을 걸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강현은 파셀 의원이 솔직하게 말해주자 납득했다. 그로서도 도와주지 못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파셀 의원님의 입장과 선택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래서 파셀 의원님 또한 앞으로 제가 할 일에 대해서 이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저의 선택 때문에 우리 둘 간의 신뢰가 무너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파셀 의원은 강현의 말에 ‘알았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나중에 강현이 무슨 짓을 했는지 듣고는 한 동안 소파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과학의 반신은 왜 민주당에 10억 달러의 선거 자금을 기부했는가.] 선거는 메스 미디어를 이용한 이미지 구축. 자고로 광고를 살 돈이 많으면 많을 수록 선거에서 유리한 것이다. 돈이면 다 된다. 미국은 자본주의 사회인 것이다. 선거에 돈이 관여하는 힘은 이미 그 실제의 존재를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미국 대법원에서 선거 자금 기부 제한이 헌법에 위배된다고 판결을 내린 후 더 그렇다. 당연히 금권정치에 대한 우려를 표하는 이들이 있지만 한 편으로는 오히려 그 동안 역으로 표현의 자유를 침해 당해 왔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미국은 자유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자유의 가치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그중 가장 중요한 표현의 자유가 부정부패의 우려보다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아이러니하게도 미 대법원의 판결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다고 부정부패가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점을 근거로 내세웠다.)아무튼 덕분에 강현은 마음껏 민주당에 돈을 쏟아 부었다. 좀 더 열심히 광고를 때리라고 말이다. 덕분에 민주당은 입이 귀에까지 걸렸다. 특히 공화당이라고 알려져 왔던 강현이 민주당의 편을 든다는 것은 여러모로 시사하는 점이 많았다. 더구나 그는 공화당을 쇄신한 자정주의 물결의 시초가 아니었던가? 게다가 10억 달러라는 금액의 양은 2012년 미 대선 때 사용된 선거 자금 총액의 절반이나 되는 금액이었다. 그러니 강현이 투척한 기부금의 액수 만으로도 민주당은 앞둔 대통령 선거에서 반은 이기고 들어간 셈이다. 그러니 민주당에서는 당연히 사람을 보내 감사의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또 그냥 10억 달러라는 돈을 낸 것도 아닐 것이 분명하니 그 저의를 살펴야 했다. 그래서 현 대통령이자 차기 대통령 후보인 아바노 대통령은 자신의 선거 참모진의 책임자인 쟈니 코볼을 강현의 연구실로 보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쟈니 코볼입니다. 아바노 대통령의 선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쟈니 코볼의 인사에 강현은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언제나 만나서 웃는 미국인의 풍습에 비추어 볼 때, 지금 강현의 행동은 무례한 것이었다. 그러나 코볼은 그래도 입가에 띈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무려 10억 달러나 기부해 주다니.. 선거 참모로서 강현에게 뽀뽀를 해주고 싶을 정도였기에 저런 무뚝뚝한 반응에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천재의 괴팍함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이번에 기부금을 투척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통령께서 고맙다고 말씀을 전해라 하셨습니다.” “딱히 그쪽이 마음에 들어서 드린 건 아니에요.” “어? 그럼 왜..” 순간 쟈니 코볼의 입가에 지어진 미소가 살짝 굳었다.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10억 달러를 투척했다? 그건 이쪽에 바라는 것이 있다는 의미였다. “요즘 의회에 상정된 법안 중에 네바다 프로젝트 민간 자본 투자 법안이 있죠?” 그때 쟈니 코볼의 머리속에 번뜩임이 스쳐 지나갔다. 바로 그거였구나! 사실 네바다 프로젝트에 민간 자본을 투입하냐 마냐는 민주당 내에서도 많은 말들이 오갔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냐는 입장과 차후 우주 개발을 위한 재원 마련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 맞섰다. 우주 개발의 성공은 막대한 이권을 생산한다. 큰 정부를 지향하는 민주당에서 안그래도 강한 자본 세력에 힘을 주는 이번 법안은 개인의 힘이 정부의 힘을 넘어서게 될 것이라며 반대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거대한 자본의 투입으로 빠르게 우주를 선점하는 것이 국익에 유리하다는 점도 역시 잘 알고 있었다. 법안의 통과를 위해 힘쓰는 민주당 의원 대부분 바로 이 후자에 무게를 두었다. 쟈니 코볼은 각각의 장단점이 있음을 인정하고 지금 상황에서 나은 선택을 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라고 생각했다. 우주를 빠르게 선점할 수 있다면 민자 유치가 나쁘지 않다는 입장인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강현에게서 그 일을 들으니 일이 전혀 새롭게 다가왔다. 우주 개발의 이권을 둘러싼 전쟁이 벌써부터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보아하니 강 박사가 독자적으로 진행하는 우주 개발에 남이 포크를 들이미는 상황이니 기분이 나쁠 수도 있었다. 아니 나쁜 것이 당연했다. 우주의 무한한 자원을 선점하는 것이니까. ‘이햐!’ 그렇게 생각하니 강현이란 사람의 배포가 무척이나 컸다. 그걸 미국이 부탁한다고 같이 먹는 걸 허락해 주다니..(사실은 NASA에 대한 애정 때문이지만.) “그래서 공화당이 아니라 저희에게 선거 기부금을 주신 거군요.” “그 법안 통과에 관련되어 돈을 덜 먹은 정당이 민주당이더군요.” “허허. 이것 참..” 강현의 말에 코볼은 갑자기 이마에 땀이 맺히는 것 같았다. 식은 땀이었다. 로비스트의 자금은 투명하게 공개되는 것 같으면서도 투명하게 다루어지지 않기도 한다. 정치를 하다보면 비자금 조성도 해야 되고 먹은 것도 안 먹은 척, 때로는 안 먹은 것도 먹은 척 해야 될 필요성이 있었다. 사실 네바다 프로젝트 민자 유치에 관해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공화당 의원과 민주당 의원 중에서는 돈을 받은 사람도 있고 안 받은 사람도 있었다. 그 중에는 재정부담을 줄이기 위해 민자 유치를 해야 될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도 있었고, 앞으로 있을 우주 진출에 미국 기업들의 경쟁력을 늘리기 위해 네바다 프로젝트 투자를 허락해야 한다는 입장도 있었다. 틀린 말도 아니고 명분이 있었기에 부담없이 로비를 받아가며 법안을 진행시켜 왔는데 금전이 오가는 와중에 민주당이 덜 먹었다는 것을 강현이 알고 있었다는 것은 강현의 정보력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왜냐면 지금 법률을 미는 쪽의 대다수가 민주당이 었던 것이다. 큰 국가를 지향하는 그들로서는 쓸데없이 알짜 사업을 민영화 시키는 것보다 이렇게 국가 경쟁력 재고를 위한 분야에 투자를 해주는 것이 좋았다. 물론 정부에서 투자 제의를 받는 기업 입장에서는 성공할지 안 할지 모르는 사업에 투자하기가 꺼림칙할 터이지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공의 보증 수표인 강현이 낀 국가 경쟁력 상승 사업은 투자를 제의하는 국가와 제의를 받는 기업이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사업인 것이다. “그런데 우주 개발은 돈이 많이 드는 사업입니다. 투자를 받는 쪽이 좋지 않겠습니까?” “제가 돈이 부족할까 봐요?” “...” 코볼은 입이 다물어졌다. 개인으로 따졌을 때 강현을 능가하는 부호는 없다. 시대를 선도하는 발명품을 몇 개 씩이나 내놓은 사람의 수익은 상상을 초월했다. 강현은 입을 다문 코볼에게 말을 이었다. “우주 개발은 저의 연구 과제이자 수 많은 연구 재료들이 널려있는 보고죠. 그런데 돈이 많다고 제 사업에 함부로 포크를 들이밀려고 해요. 물론 그들이 자체적으로 우주 개발을 하는 건 말리지 않아요. 하지만 그들은 제가 구상하고 설계하고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탐을 내서 함부로 수작을 부렸어요. 제 기분이 어떨까요?” 기분이 무척이나 더러울 것이다. 코볼은 강현의 말에 공감했다. 자신의 입장이라도 누가 함부로 자신의 것에 손을 대면 화가 날 것이다. “흐음.. 그럼 저희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제가 우주 개발 프로젝트를 NASA와 함께 진행하는 이유는 오랫동안 쌓아온 신뢰와 서로에게 도움이 될 만한 기술력이 있기 때문이죠. 그저 돈 뿐인 이들은 전혀 도움이 안 됩니다. 제 눈에는 남이 차린 밥상에 달려드는 강도로 보이죠.” 강현의 말은 명백했다. 법안의 통과든 뭐든 네바다 프로젝트에 타인이 끼어드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아. 좀 어렵군요.” 강현의 말에 코볼은 머리가 지끈지끈 했다. 당 의원들을 어떻게 설득시켜야 할 지 무척이나 고민이 되었다. “못해도 상관없어요. 10억 달라는 경고에 불과하니까요. 법안이 통과되면 저는 네바다 프로젝트에서 손을 때고 NASA와 새로이 매스 드라이버를 만들 겁니다. 정 뭣하면 혼자서 매스 드라이버를 건설하겠습니다.” “....” 헐... 코볼은 입이 다물어 지지 않았다. 해도 해도 스케일이 참 너무한다 싶었다. 10억 달러나 되는 돈이 겨우 경고에 불과하다니.. 그러고도 자신의 요구가 통과되지 않는다면 아예 네바다 프로젝트에서 손을 때고 따로 독자 프로젝트를 진행하겠다니... “자, 잠깐! 그럼 네바다 프로젝트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망하든 말든 제가 신경쓰지 않겠죠.” “제 말은 그게 아니라, 그 로봇이라든가 발사체 같은 것 말입니다.” “제가 설마 제 밥상에 함부로 침을 뱉은 놈들에게 포크와 스푼을 넘겨줄 것 같아요? 접시에 입을 대고 먹든 코를 처박고 먹든 저는 신경 안 쓸 겁니다.” 애당초 매스 드라이버의 설계는 강현의 무인 우주 개발 계획에서 출발했다. 그러니 핵심은 많은 로봇과 건설 자재를 싼 비용으로 우주에 올리는 것이다. 분명 그러기 위한 시스템적인 밑그림과 준비가 되어있을 것이니 야심차게 진행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 매스 드라이버가 있다고 해도 강현의 로봇 군단이 없다면 실패는 필연이다. 어느 세월에 무인 로봇을 만들고 제어 프로그램을 만들 것인가? ‘쯧쯧쯧.’ 코볼은 새삼 로비를 한 작자들이 불쌍해 졌다. 괜히 돈만 허공에 날리게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코볼의 입장에서는 그들에게도 고마워 뽀뽀를 해주고 싶었다. 그들의 뻘짓거리 덕분에 이번 대선에 강현이 민주당의 편이 되었던 것이다. 강현의 10억 투척. 그 금액의 가진 의미는 거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파셀 의원의 대선가도에 거대한 걸림돌이 될 것이 분명했고 아바노 진영에는 호재로 작용할 것이다. “박사님의 의견은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의원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명분이 필요합니다.” “1조 달러면 되나요?” “네?” “제가 2조 달러 정도 있는데 이 중에 1조 달러는 우주 개발에 쓸 생각인데 나쁘지 않죠?”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다. “그,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138화 1조 달러 규모의 우주 산업 투자라면 우주 개발 속도를 늘리기 위해 당장 민간 투자를 받을 필요가 없어진다. 나중에는 모르겠지만 강현의 투자를 받아 정부 차원에서 먼저 우주에 진출하게 되면 차후 민간 투자를 받더라도 우주 개발에 정부의 입장이 우선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건 큰 정부를 지향하는 민주당 의원들의 입맛에도 맞을 것이다. “그럼 더 이상 제가 걱정할 일은 없죠?” “하하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박사님께서 쓸데없는 걱정할 필요없이 우주 개발에 전념할 수 있게 해드리겠습니다.” “그게 바로 제가 원했던 거에요.” 두 사람은 웃으면서 악수를 나누었다. [세기의 천재! 쌓아둔 돈 보따리를 푼다!] [무려 1조 달러를 우주 산업에 투자!] [인류! 드디어 우주로 진출하나?!] 언론에서는 강현의 동향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바야흐로 지금 미국을 휩쓰는 두 이슈의 주인공이었던 것이다. 하나는 정치로 분류할 수 있는 10억 달러 쾌척, 또 하나는 과학 혹은 사회로 분류할 수 있는 1조 달러에 달하는 우주 개발 투자 계획. 전자도 중요했지만 후자 역시 만만하지 않았다. 우주 개발은 대선 정국과 얽혀 대중의 관심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었다.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다. 우주의 선점이 국력에 얼마만한 기여를 할 것인지 알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우주 개발의 첨두에 선 강현이 어느 정당의 편에 드는 것인지가 매우 중요했다. 우주 개발에 어느 당이 적합한지 전문가가 제일 잘 알지 않겠냐는 것이 대중들의 생각이었고 덕분에 파셀 의원에게 밀리던 민주당이 어느새 턱 끝까지 치고 올라왔다. 다른 나라였다면 공인의 정치적 중립이 어쩌고 저쩌고 말들이 많겠지만 미국은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였다. 정치적 성향을 방송에서 표현한다고 프로그램에서 짤리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정치의 풍자가 자유로운만큼 정치색을 표현하는 것 역시 자유로운 나라였다. 그래서 강현에게 쏟아지는 비난은 그리 많지도 않았다. 비난할 거리도 없거니와 오히려 언론에서 강현의 눈치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양자 통신 장치 때문이다. 그 기술은 정보 산업의 틀을 바꿀 수 있기에 통신 업계는 그 소유자인 강현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또한 통신 업체를 통해 여론을 형성하는 언론이 통신 업계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으니 자연히 강현의 이름을 다루는 것이 조심스러워졌다. 그러나 예민한 촉을 가진 기자들은 ‘네바다 프로젝트 민자 유치 법안’과 그 뒤에 일어났던 일련의 사건과의 관련성을 기사화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너무나 흥미진진한 이야기였기 때문에 독자의 구독율이 증가할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구독율의 증가는 기자는 물론 언론사에서 포기하기 어려운 이익이었다. 구독율은 곧 광고비의 증가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우주의 선점을 놓고 벌어지는 기술 권력과 자본 권력의 치열한 신경전!] ‘이번 민주당에 강 박사가 기부한 정치 자금의 액수는 모두를 기함하게 만들었다. 무려 10억 달러나 되는 돈을 민주당에 기부한 것이다. 그 액수는 2012년에 사용된 총 선거비의 절반이나 되는 금액이었다.’ ‘모두들 알다시피 강 박사는 오래전부터 공화당을 지지해 왔었다. 세계 석유 컨소시엄의 경우를 생각해 봤을 때 거대한 파급 효과가 있는 기술이 혼란을 만들지 않게 배려하는 그의 안정지향적 성향을 보았을 때 보수당인 공화당을 지지하는 것은 언뜻 당연해 보인다.’ ‘그렇다면 왜 이번에 민주당에 돌아서게 되었을까? 그에 대해 여러 말들이 있지만 얼마전 국회에 계류된 ‘네바다 프로젝트 민자 유치’에 관한 법안이 가장 크게 영향을 끼인 요인으로 보인다.’ …. 중략.... ‘거대한 이권이 걸린 우주 개발이다. 그리고 강 박사와 NASA는 다른 자본의 도움 없이 충분히 우주를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런데 거기에 양해를 구하지도 않고 정치권 로비를 통해 끼어든 자본이 강 박사의 심기를 자극했을 것이다.’ …. 중략.... ‘차후 이 일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모르겠지만 이 신경전의 결과는 앞으로 인류 앞에 도래한 우주 세기의 시작이 어떤 모습으로 이루어지게 될지 가늠할 수 있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역시 미국 언론의 능력은 예리했다. 그들은 강현이 민주당으로 돌변한 상황을 자본과 기술의 대립이란 프레임으로 바라보았다. 자본 권력에 대항할 수 있을 정도로 기술 권력이 두드러진 현 시대의 상황을 정확히 바라보았다. 강현이 개발한 인공지능이 정보 보안은 물론 이제는 기술 개발에도 한 몫을 보태게 되는 세상이 도래했으니 더욱 그랬다. 기술의 발전은 가속을 거듭할 것이고 신기술을 선점하기 위해 자본은 헐레벌떡 뛰어다닐 수 밖에 없었다. 도태되지 않기 위해 기술의 뒤를 자본이 따라가게 되는 형태가 되는 것이다. 물론 생산이란 노동, 땅, 자본의 결합이고 기술은 고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첨가제일 뿐이지만 그것도 얼마남지 않았다. 강현의 우주 개발이 성공하고 무인 공장이 등장하는 순간 기술은 자본주의 시장의 첨가물에서 사회의 핵심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그 순간 기술과 자본의 역학 관계는 뒤바뀐다. 자본을 위해서 기술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위해서 자본이 존재하는 세상이 오는 것이다. 혹은 둘을 구분하지 못하는 세상이 될지도 모른다.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자본은 독과점적인 권력을 상실하고 다른 가치와 융합해야 존속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게 무슨 말이오?! 힘들다니!” 록팰러는 공화당 의원의 통화를 받고는 소리를 질렀다. 지금 들어간 돈이 얼만지 알고 하는 소린가? [록팰러 회장. 난들 어떻게 하나? 1조 달러가 투입된다고 명분도 없고 법안을 주도적으로 밀고 있던 민주당 의원들이 완전히 법안에서 등을 돌렸어. 10억 달러의 위력이 얼마나 큰지 자네 같은 부자가 알기는 하겠나?] 아쉬우면 공화당에도 10억 달러를 내라는 뉘앙스에 록팰러의 미간에 주름이 졌다. 돈 독 오른 돼지 새끼 같으니.. 록팰러는 하고 싶은 말을 꾹 참았다. “하아. 골치 아픈 문제군요. 일단 다시 연락하겠습니다.” 그러면서 전화를 끊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10억 달러가 뉘집 개새끼 이름인 줄 아나?” 부자들의 자산 중 현금 자산은 그리 많은 비중을 차지 하지 않는다. 현금 자산과 비현금 자산의 가치는 경기에 유동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에 부를 잃지 않고 지속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 다양한 형태로 분산시켜 놓는다. 그중 현금은 그냥 쥐고 있으면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계속 가치가 떨어진다. 그래서 부자들은 항상 돈을 투자하고 돌리기 때문에 10억 달러나 되는 현금 자산을 예치해 주는 경우가 드물다. 아니 있다고 해도 어떤 목적을 위해 투자를 하기 위한 돈이다. 강현처럼 쌓아두고 있는것이 이해가 안되는 일이다. “하아.. 10억 달러라. 조금씩 각출하면 될까?” 록팰러는 고개를 흔들었다. 이번에 로비에 힘을 쓴 ‘친구’들도 그 정도로 돈을 모으자는 말에는 난색을 표할 것이다. 더구나 어떤 투자나 기업 인수도 아니고 고작 선거를 위해서10억 달러를 쓰다니.. 정말로 그 법안이 그 정도로 투자할 가치가 있다는 말인가? 모아도 문제다. 이미 강현이 10억 달러를 민주당에 넣은 이상 똑같이 민주당에 넣는 건 어느 모로 봐도 모양이 이상하다. 그들이 10억 달러를 더 먹는다고 법안을 통과 시켜줄 것 같지는 않다. 그러면 10억 달러는 공화당으로 향해야 하는데 공화당이 일을 잘 해줄지 의심스럽다. 게다가 무엇보다 강현의 10억 달러가 그냥 10억 달러가 아니라는 점이다. 강현이 10억 달러를 왜 민주당에 줬을까? 민주당이 뭐가 이뻐서? 강현이 10억 달러를 낸 이유는 법안에 대한 민주당의 태도가 돌변한 것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다른 이가 자신의 일에 함부로 끼어드는 행위에 경고장을 내민 것이다. 그런데 일부터 10억 달러를 모아서 대처한다? 이미 옐로 카드를 받았는데 또 한 장 받을 생각인가? 완전히 퇴장 당하라고? 록팰러는 강현의 냉혹함을 잘 알고 있었다. 실험실에 처박혀 그 냉혹함이 잘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록팰러의 머릿속에는 첫번째 국제 석유 컴소시엄에서 리비아 대사가 강아지가 끌려 나가듯이 끌려나갔던 장면이 아직도 머리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어진 리비아 내전에서 강현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언제나 염두에 두고 있었다. 자신이 촉발 시킨 전쟁으로 수 만명이 죽었는데 일말의 책임감도 느끼지 못한 인간과 척을 지라고? ‘친구’들이 고개를 젓기 전에 자신이 먼저 고개를 저으며 거부할 것이다. 비록 석유 제조 라이센스가 거의 다 만료됐다고 하지만 거기서부터가 문제였다. 에너지 산업에 끼어들고 싶어하는 국가나 조직, 자본은 너무나 많았기 때문에 후발 주자들을 견제하기 위해서 힘을 써야 했다. 그러니 록팰러로서는 아무리 거대한 이익이 보장되어 있다고 해도 강현이라는 수문장이 지키고 있는 우주 개발에 마냥 뛰어들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자신은 사정이 나쁘지 않았다. 그나마 그 강현과 같은 미국인이지 않은가? 중동 쪽은 상황이 훨씬 안 좋다. 그 쪽에는 석유 라이센스 만표 시일 이전 국가의 산업을 다양화 하기 위해서 거액을 투자하고 있었다. 비옥한 농지는 물론 수자원 확보를 위한 수로 공사 및 해수 담수화 시설에 투자를 하고 있어서 강현이 이리 나온 이상 즉시 손을 땔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은 강현이 저비용 고효율의 담수화 기술을 만들어 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쯧. 손을 때야 겠군.” 록펠러는 이쯤에서 손을 때는 것이 옳다고 여겼다. 그러나 모두 그와 같이 생각하지는 않았다. “우주를 독차지할 샘인가?” 아담 폰 치바르, 이 유대계 거부의 입김은 유대계 네트워크에서도 무척이나 컸다. 그가 사업을 살피는 뛰어난 안목은 그와 친분이 있는 이들에게 많은 이익을 가져왔고 그 자신에게는 신뢰란 이득을 안겨주었다. 네바다 프로젝트 역시 그런 안목에 의해서였다. 그는 자신이 살아 생전에 인류의 우주 진출이 가시화됐다는 것이 기뻤으며 또한 거대한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것 역시 알았다. 인류는 언제고 우주로 나갈 수 밖에 없다. 어느 한 지역에서 탄생한 인류는 끊임없이 이동해 왔다. 생존을 위해서, 혹은 문명의 건설을 위해서 그 지역의 자원을 소모하는 인류에게 우주라는 무한한 자원의 보고는 탐욕의 대상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지구에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인류는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서 지구를 벗어나 우주에 생명의 씨앗을 뿌려야 했다. 인류의 존재는 어쩌면 생명을 존속하기 위해 지구라는 어머니가 희생을 무릎 쓰고 빚어낸 민들레 씨의 낙하산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당연히 신의 선택을 받은 유대인이 우주에 먼저 진출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 아담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우주 개발에 지분을 만들기 위해서 일을 꾸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떤 수익에 대한 지분은 얼마나 투자 하였는가에 달려있기 때문에 국가 프로젝트에 민간 자본을 집어넣도록 법안을 만들었다. 우주 개발의 이권에 대해 생각한 이가 그 혼자만은 아니어서 처음부터 매끄럽게 일이 진행되었다. 그로인해 나중에 경쟁을 해야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었는데 강현이 나서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다. ============================ 작품 후기 ============================ 글이 매끄럽게 진행이 안되네요. 139화 왜 나선 걸까? 아담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강현의 성향은 온건적이다. 거기에 돈을 쌓아두고 투자를 잘 하지도 않고 연구실에 처박힌 뼛속까지 과학자인 인간이다. 과학자의 실용적인 마인드라면 네바다 프로젝트에 돈이 적잖게 들어가는 것을 파악하고 당연히 거액의 투자를 반겨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왜 갑자기 이런 식으로 나오는 것인가? 아담은 새삼 강현이 우주의 이권에 탐이 난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무한한 자원의 보고. 태양계만 해도 태양이란 무한한 에너지원과 소행성군이라는 무한에 가까운 금속 자원이 있다. 그 엄청난 자원에 탐이 나지 않는다면 사람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우주에 대한 이권을 선점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무언인가? 간단히 말해서 우주에 나갈 수 있는 기술을 선점하면 된다. 아니 특허로 만들지 않고 블랙박스화해서 영원히 기업의 비밀로 지킨다면 우주는 그 기업의 것이 된다. 우주에 나가는 것 자체가 너무나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중세시대로 따지면 성문 통과세를 징수하는 권리를 확보하는 일이랄까? 네바다 프로젝트에 대한 민간 자본 투자는 민간인인 자신이 그 기술에 대한 지분을 확보하기 위한 교두보였다. 하지만 실패한 이상 다음 일을 진행해야 했다. 아담은 강현을 만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예측했던 행동에서 벗어난 이상 그 저의를 확인해야 했다. 그러나 그런 그의 의도는 성사되지 못했다. [바빠서 시간이 나지 않습니다.] [박사님께서 며칠째 연구실에서 나오지 않으셔서요.] [죄송합니다. 박사님께서 네바다에 시찰하러 가신 것 갔습니다.] 몇 번이나 만나려고 했지만 강현은 만나주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그와의 만남을 회피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담 혼자만 거절 당하는 것도 아니다. 금융계 인사, 유명한 로비스트는 물론 언론계 사람들까지 강현과 만나지 못했다. 우주 개발을 가시화 시킨 사람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에도 불구하고 강현은 바쁘다는 핑계로 만남을 회피했다. 그렇다면 그는 정말로 바쁜 걸까? “아아, 여유롭네.” 그는 한가하게 아즈삭이 타준 커피를(얼마전 구입한 커피 기계를 HA가 조작했다.) 내려 마시며 키보드를 검지로 하나씩 누를 뿐이었다. 강현이 키보드를 누를 때 마다 한 페이지씩 내려가며 여러 개의 기술 특허의 이름이 나타났다. 우주 개발에는 손을 놓은 건가? 그렇지는 않다. 일단 아즈삭과 우주 시뮬레이션을 하면서 필요하다고 생각한 도구들을 우주용으로 재설계를 하고 나서 시제품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거기에 매스 드라이버와 거기게 전력을 공급할 발전소, 그리고 그 둘을 연결해줄 초고압 전력 시스템이 완공되기를 기다려야 했다. 완공되고 나서는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고 본격적으로 우주 개발에 돌입해야 하기 때문에 무척이나 바쁘겠지만 지금은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진행시켜 놓은 일들이 진행되기 위해 뜸을 들이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우주 농장에서 사용할 기술을 수경재배로 할까, 아니면 땅을 만들까?” [잘 모르겠습니다.] 우주 농장을 실현 시키기 위한 가장 가까운 형태는 수직 농장이다. 건물 안에 농장을 만드는 것이다. 이 방법은 외부 세계에 대해서 격리 되어 있기 때문에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도 농작물에 대한 병충해를 직접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문제가 일어난 구획은 격리처리하면 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 방법은 비용이 많이 든다. 이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 흙 대신 물이나 젤리 같은 것을 대신 사용하고자 하는 것이 수경재배의 목적이었다. 즉, 흐르는 액체를 이용해 컴퓨터 시스템과 결합해 작물의 영양을 실시간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는 흙을 사용하는 것보다 사람의 품을 적게 들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강현의 무인화 우주 개발에 매우 유용할 것이 분명했다. 반면에 땅을 만드는 것은 기술적으로도 매우 어렵다. 일단 흙이 존재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그 기반을 만드는 것은 우주 도시를 만드는 것과 동일한 난이도를 요구했다. “실용적인 부분만 따지면 딱히 필요가 없는데..” 원심력으로 중력을 해결하기만 한다면 공장제 목축으로 고기도 생산할 수 있다. 하지만 땅이가진 매력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인류가 우구로 진출하게 되어도 적어도 수세기는 지구에 대한 향수가 남을 것이다. 아무리 인간이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지만 기본적인 자연 환경에 의한 영향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특히 미생물의 영향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지구상의 모든 생물은 이 미생물과 함께 진화를 해왔다. 때문에 미생물이 없는 환경에서 인체가 어떤 증상을 나타낼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이미 과도한 위생에 의한 자가 면역 증후군의 대표적인 원인 중 하나가 바로 미생물의 부재라지만 우주 공간에서 그것이 어떻게 발현될지 알 수 없었다. 미생물의 세대 교체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기 때문에 진화속도 역시 엄청나게 빠르기 때문이다. “끄응. 땅을 만들려고 하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르는데...” 땅 역시 그냥 존재하지 않는다. 적절한 수분을 공급해야 되고 물이 순환할 수 있도록 구조를 만들어야 했다. 그런 구조가 들어갈 수록 우주에 땅을 만들기 위한 구조물은 더 커지고 튼튼해져야 한다. 거기에 수리 관리 역시 문제였다. 우주 공간에서 한번 사고가 나면 끝이다. 모든 것이 파괴된다. 그렇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구조물에 대한 정밀 검사가 필요했다. 문제가 생겼을 때 수리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다. 필연적으로 수리하는 동안 우주의 진공에서 전체적인 구조물을 지키기 위한 설계가 필요했고 전체적인 구조물의 외곽을 이중 격벽 구조로 만들 수 밖에 없었다. 내부의 수리가 필요할 때 외부의 벽이 지지해주고 외부의 수리가 필요할 때 내부의 벽이 지지할 수 있는 받침이 되는 구조가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에 땅을 건설하는 것은 지금 짓는 우주 공장 규모의 수 십 배, 수 백 배가 된다. “안 되겠다. 우주 농장은 우주 식민지를 먼저 건설하고 생각하자.” 어차피 수경재배는 많은 공간을 차지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우주 식민지를 건설하고 나서 우주 농장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강현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컴퓨터 화면을 전환했다. 지겹도록 본 공식이지만 아직 불가해의 요소가 남아있는 신 통일장 이론이었다. 강현은 몇 번이나 머리를 굴렸지만 자신이 어떻게 이런 공식을 만들었는지 스스로가 신기할 정도였다. [박사님. 골드만 삭스의 겔로 켄 회장이 만날 약속을 잡자고 합니다.] “바빠서 안 된다고 해.” [네.] 강현은 또 다시 외부인과의 만남을 거절했다. 그가 생각하기에는 이것이 그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가장 적절한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변화는 점진적으로 일어나기도 하지만 순식간에 일어나기도 한다. 특히 저항 세력이 있을 때에는 더욱 그렇다. 포텐셜이 쌓이고 쌓이다가 임계점을 넘어 표출되는 것이다. 그래서 굳이 사람을 만나 그의 속내를 보일 필요가 없었다. 절대로 우주 진출에 자본 세력을 가담시키지 않을 것이고 설사 가담 시키더라도 그때는 이미 무한한 공유지를 모든 사람이 공유할 수 있는 기반이 닦긴 후일 것이다. 그때까지 자본가들은 눈먼 장님으로 있어줬으면 했다. 어어 하는 사이에 상황이 그들의 통제를 벗어나는 일로 만들면 강현의 의도는 한결 편하게 성취된다. 그래서 강현이 외부와 일절 교류를 끊고 우주 개발에 몰두하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교류를 끊은 것은 아니었다. “박사님, 식사 왔어요.” 이젠 서로 연인으로 인정한 셀리가 카트를 밀며 연구실로 들어왔다. 오늘은 강현의 입맛에 맞는 카레 라이스였다. 강현이 점점 두각을 나타내며 쌀밥이 포함된 식사의 비중이 높아졌다. 웃기는 건 미국인들에게 쌀밥은 ‘야채’로 인식된다는 점이다. 사실 탄수화물 덩어리라 고기보다 살이 더 찌는 식품인데도 말이다. “우와 밥이네.” 강현은 쌀밥을 반겼다. 아무리 미국에서 오래 생활을 한다고 해도 어렸을 적의 입맛은 쉽게 변하지 않는 법이다. 더구나 김치에 연연하는 입맛이 아니라서 김치 없이 밥을 먹을 수 있기에 미국식 식사에 그다지 불만이 없었다. “그럼 잘먹겠습니다.” 둘은 연구실에 마련된 식탁에서 식사를 하며 서로의 생활상에 대해서 물었다. 강현은 여전했지만 셀리는 최근 부쩍 자신에게 부탁하는 전화가 많아져서 곤란한 참이었다. 어떻게 강현의 인간 관계를 알아냈는지 그녀에게 강현과의 만남을 주선해 달라는 전화로 업무에 지장이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저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알아서 하라고 했어요.” “잘했어요.” 강현에 칭찬에 샐리가 배시시 웃었다. 활짝 핀 노란 국화같은 미소였다. 강현은 그 미소에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끼며 스푼으로 밥에 카레를 비벼 입에 넣었다. 미국의 카레는 한국의 카레보다 풍미가 좀 강했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이미 익숙한 맛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매스 드라이버가 완공되었다. 지분을 확보하고 싶어하던 월가의 금융회사들은 입맛을 다셨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선거때 일어난 강현의 돈지랄에 함부로 움직이기가 그랬다. 더구나 그 10억 달러로 아바노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고 나서는 더 그랬다. 그들은 강현의 우주 개발만 보며 손가락을 물수도 없어서 빠르게 다른 투자처를 찾기 시작했다. 이로서 강현은 한결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됐지만 그래도 경계는 계속해야 했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하이에나와 같은 기회주의자들이기 때문이다. “현. 언제 청혼해 줄거에요?” “풉!” 막 카레와 비빈 밥을 입에 넣던 강현은 하마터면 스푼 째로 뱉을 뻔했다. 청혼? 샐리에게? 언젠가는 해야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기습적으로 질문을 당하니 천하의 강현도 당황했다. “어, 어. 그게.” 사실 강현은 청혼을 해본적이 없다. 제시와는 그냥 자연스럽게 부부처럼 되었다. 그런 경험뿐인 그는 여성의 로망을 이뤄주는 매너가 없었다. “익숙하지 않은 거 아니까 무리하지 마세요.” “알았어요.”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샐리가 그를 배려해서 한 말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그녀의 배려에 자신이 뭔가를 해야할 것 같은 부담감을 느꼈다. 하지만 뭘해야 할지 잘 알지 못했다. “어떻게 청혼을 해야하죠?” “어머! 그걸 왜 저한테 물어요.” 샐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강현에게 이런 종류의 일은 매우 골치아픈 일이었다. 샐리에게 어떻게 청혼을 해야 할지 결정하지 않으면 또 예전처럼 둘 사이의 관계를 정립하지 못해서 질질 끌게 될 것이다. 그래서 강현은 아즈삭의 도움을 받았다. “청혼하는 방법에 대해서 조사 좀 해봐.” [네, 박사님.] 그러면서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의 수많은 청혼 방법이 수집됐다. 하지만 딱히 강현의 마음에 드는 청혼 방법은 없었다. 청혼의 스케일이 커지면 커질 수록 뭔가 쑥스러웠다. 2조 달러의 거부인 그라면 대형 스타디움을 빌려서 성대하게 청혼을 할 수도 있지만 사생활에 타인의 주목이 끌리게 만들기는 싫었다. “.... 그냥 가장 간편하게 가자.” 흔히 멜로 영화에서 하는 방법이 있지 않은가? 한 쪽 무릎을 꿇고 반지 상자를 열어서 근사한 멘트를 날리는 장면이. “.....” 가장 무난한 방법이지만 자신이 그 장면을 재현한다고 하니 강현은 온 몸에 닭살이 돋는 것 같았다. ============================ 작품 후기 ============================ 좀 루즈하죠? 글이 막혀서 그래요. 140화 그래도 어쩌겠는가? 샐리가 청혼하는 걸 바라는데. 강현의 성격을 파악한 샐리는 그에게 직설적으로 말하는 습관을 익혔다. 그러지 않으면 강현은 샐리의 말 저편에 자리한 여심을 결코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영부영 연인처럼 지내다가 평생 청혼을 못받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시기적절하게 청혼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그리고 곧 강현은 근사한 레스토랑을 예약했고 그 자리에서 샐리에게 반지를 내밀었다. 샐리는 눈시울을 붉히며 승낙했다. 오랜 짝사랑이었고 오랜 기다림이었다. 그동안의 고생이 헛되지 않았다. 둘은 결혼식을 매스 드라이버 완공 이후로 하기로 했다. 약 3개월 정도 남았기에 그리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강현은 결혼식이란 것이 그렇게 신경쓸게 많은지 샐리가 카탈로그를 들고와서야 알았다. “아아. 번거롭네..” 아무리 웨딩업체라고 해도 직접 선택하는 것은 자신들이었기 때문에 어떤 형태의 결혼식을 할 것인지 결정해야했다. 뭐 강현은 그냥 좋은게 좋은 거라고 빨리 결정하고 싶었지만 샐리는 역시나 꼼꼼하게 따지고 들었기 때문에 결혼에 관한 건 강현이 이리저리 끌려다녔다. 덕분에 결혼식 준비까지 겹친 강현의 머리는 엉창진창이었다. 아즈삭이 아니었다면 스케줄 관리 때문에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아무튼 시간은 계속 흘러갔고 매스 드라이버가 완공되었다. 완공식에 강현이 초대가 되었지만 강현은 매스 드라이버의 완공 이후에 더 할 일이 많다며 거절했다. 심지어 대통령도 참석한다는 말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하긴 그런 자리는 더 번거롭겠지라며 이 천재의 괴짜성에 의문을 표하지 않았다. [오늘 드디어 인류의 역사적인..] 아바노 대통령은 NASA와 각계 각층의 인사가 모인 곳에서 축하 연설을 했다. 매스 드라이버는 험난한 우주 개발의 시작일 뿐이었으나 인류의 생존, 그리고 미국의 국력을 상징하는 위대한 업적임을 의심치 않았다. “강 박사는?” “못봤어.” “안 온건가?” 강현 박사를 인터뷰하고 싶었던 기자들은 강현이 오지 않은 것에 실망했다. 그러나 몇몇 기자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뭔가의 특종을 원했고 사유지이지만 미군이 보안구역으로 설정해 둔 매스 드라이버 기지 옆에 있는 강현의 공장을 취재하고 싶어했다. 개인의 사유지를 국가가 나서서, 그것도 세계 제일의 군대가 나서서 보호한다는게 수상하지 않은가? 앨리스 역시 그런 기자들 중 하나였다. 그녀는 호기심에 넘쳐서 군인들이 경계하는 철책 너머 공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싶어했다. 그녀의 동료인 샘은 몰래 잠입해 보자는 그녀의 말에 난색을 표했다. “앨리스, 위험해. 거긴 군인들이 지키고 있다고.”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몰라?” “미친! 산업 스파이로 걸리면 몇 년이나 썩을지 몰라.” “안 걸리면 돼.” 샘은 이 대책없는 여자를 어떻게 설득해 보기 위해 진땀을 질질 흘렸지만 계속되는 변설과 여성의 매력을 가득 품은 애교질에 언제나 그렇듯 넘어가 버리고 말았다. 그때마다 번번히 더 이상 호구짓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어쩌겠나? 반한 놈이 잘못이지. 그리하여 그들은 온갖 장비(주로 위장용 모포와 망원 렌즈)를 챙기고는 구글 지도를 살펴 강현의 공장을 염탐할 수 있는 장소를 확인했다. “우와! 저기 지구 맞아?” “응? 뭐가?” 망원 렌즈를 조절하던 파트너의 감탄에 칼로리 바를 씹어먹던 앨리스가 의문을 표했다. “뭐, 신기한 거 보여? 잠깐 나도 봐.” 앨리스는 그렇게 말하며 옆에서 몸으로 샘을 밀어냈다. 그녀의 풍만한 젖가슴이 샘의 어깨를 밀었고 그 감촉에 샘은 얼굴을 붉혔다. 그가 호구가 된 이유다. “저게 뭐야?” 카메라 렌즈를 투과해 본 앨리스의 심정은 샘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저곳은 정말로 지구가 맞는 것인가? 큰 공장 건물 앞에 커다란 트럭이 서서는 컨테이너를 열었다. 그러자 건물 안에서 수 많은 로봇들이 나와(처음에는 인체 모형인 줄 알았다.) 트럭에서 물건을 내렸다. 거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경계 근무를 서고 있던 군인들도 신기한지 연신 그 광경을 구경했고 트럭 운전수도 신기한지 운전석에서 내려서 그 장면을 구경했다. 운전수는 자신의 스마트 폰으로 이 신기한 장면을 찍으려는데 역시 보안 문제 때문인지 곳 군인들에게 제지 당했다. “이쯤이면 특종이 아닐까?” 그 장면을 본 샘은 은근히 앨리스에게 말했지만 그녀의 눈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샘은 그런 상태를 이렇게 표현하곤 했다. ‘호기심에 눈이 돌아갔다.’ 정말 그녀는 기자가 되지 않았다면 악성 파파라치가 되지 않았을까? 샘이 몇번이나 생각한 내용이었다. “샘. 저기 안에서 뭘 만드는지 알고 싶지 않아?” “그거 공식적으로 발표되어 있잖아. 우주 개발을 위한 무인화 프로젝트라 우주에서 일할 로봇을 만들고 있다고.” “그래도 직접 보는 거랑 임팩트가 다르지. 우린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풀어줘야할 의무가 있어.” 풀고 싶은 건 네 호기심이겠지. 샘은 초롱초롱한 눈빛에 그 말을 속으로 삼켰다. 몇 번이나 저 눈빛에 말문이 막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는 부정하겠지만 이미 훌륭한 호구다. 그리하여 그들은 일단 공장 앞에 경계를 서는 군인들과 대면하기로 했다. 차후 잠입을 한다고 해도 안면이 있다면 총탄부터 맞을 가능성은 적지 않는가? “에.. 그러니까 CNM의 앨리스 기자라고요?” “네.” “방문 이유는 공장 견학이구요.” “네.” “잠시만요.” 앨리스와 샘을 맞이한 군인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철망으로 된 문을 열었다. “들어오세요.” 의외로 허락이 떨어지자 당황한 건 앨리스였다. “어? 중요한 시설 아니었어요?” “중요하기는 한데.. 산업스파이만 아니면 일반에 공개해도 상관이 없다네요.” 군인의 말에 앨리스는 갑자기 김이 빠져버린 것을 느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샘은 속으로 혀를 찼다. 아무래도 그녀는 잠입 액션의 스릴을 느끼고 싶었나 보다. 그러나 샘에게는 다행스런 일이었다. 무단 침입으로 감옥에 갈 일은 없으니 말이다. 둘은 군인 셋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공장안으로 들어갔다. 치지직. 드르륵. 용접하는 소리와 전동 드라이버 소리가 요란하게 돌아갔다. 사람처럼 보이는 것들이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쉴새없이 일하고 있었다. “우와! 전부 로봇이 만드는 건가요?” “그렇다고 하더군요.” “불량이 있을 수도 있는데..” “완성품은 일단 옆에 있는 우주 기지로 보내서 검수를 한다고 한다더군요.” 아무리 인공지능과 HA 시리즈를 이용해 완전 자동화 설비를 갖췄다고는 하지만 뭐가 검수 과정에서 뭐가 잘못됬는지 판단하는 건 아직 사람의 능력을 따라가지 힘들었다. 인공지능의 학습 속도가 무시무시하다고 하지만 전산화 되지 않는 실무적 경험이나 감각적인 부분에 있어서의 발달 속도가 그리 빠르다고 할 수 없었다. 직접 부딪히고 데이터를 축적해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저건 뭐죠?” 앨리스가 한 쪽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방추형의 물건을 가리키며 물었다. “아마 제가 기억하기로는 우주로 로봇들을 발사하는데 사용하는 캡슐로 알고 있습니다. 일종의 탄환이죠.” “호오!” 앨리스가 눈을 반짝였다. 그녀는 샘의 옆구리를 찔러 여기 저기 공장 안을 촬영했고 그날 CNM의 헤드라인이 되었다. [우주 개발의 진척 상황! 무인 로봇들의 정교한 작업! 우주가 눈 앞에 있다!] 그 뉴스에서 시청자들을 감탄하게 했던 것은 검수가 완료된 발사체와 로봇들이 창고에 줄지어 서있는 광경이었다. 마치 스타워즈의 로봇 병사들이 빽빽하게 서있는 장면을 연상시켰다고나 할까? 사실 정부에서는 강현의 무인 공장을 비밀로 하고 싶었다. 왜냐면 몰래 뭔가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현은 자신의 무인 공장의 운영에 누군가가 관여할 여지를 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미군-펜타곤-정부-정보부-잭으로 이어지는 복잡한 연락 체계를 통해 받은 앨리스의 공장 견학 요청을 허락한 것이다. 언론에 한 번 노출되면 정부에서 강현의 무인 공장을 이용하기 부담스러워지기 때문이다. 물론 반대급부로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는 우려가 있었지만 강현이 핵탄두를 만들 것도 아니고, 무기를 생산할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무튼 그렇게 되자 정부는 무인 공장이 탐이나 따로 몰래 무인 공장을 만들고 싶었고 강현에게 비밀리에 무인 공장을 만들고자 하는데 협력해주지 않겠냐고 요청을 했다. 그들의 요청에 강현은 일단 인공지능부터 완성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조언해 주었다. 복잡한 작업 과정을 안드로이드 로봇이 자체적으로 수행하는 건 불가능했기에 반드시 지휘통제를 받아야 했다. 정부에서는 인공지능의 중요함과 제작 난이도를 알기 때문에 골머리를 싸맸다. 강현의 인공지능 제작 실력이 있다면 몇 개월 내에 그럴싸한 성능의 인공지능이 나오겠지만 인공지능은 반드시 정부의 통제 아래에 있어야 했다. 그러니 강현 개인에게 전적으로 맡겨둘 수 없었고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강현은 절대로 인공지능 제작에 있어서 타인과 협조 체계를 구성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는 인공지능을 일종의 생명체로 간주했다. 그래서 인공지능에게 최대한의 자율성을 부여했다. 아즈삭이 대표적인 예였다. 그러나 이런 방침은 인공지능을 도구로 생각하는 정부의 입장에서는 최악이었다. 하나하나 관리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관료체제의 특성이었다. 그래서 설계 개념을 잡는 초기부터 이 둘의 입장은 부딪힐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할 수 없이 미 정부는 자체적으로 무인 공장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수 밖에 없었다. 어렵지만 그만한 가치는 있었다. 한편, 돈지랄로 예비 거머리들을 효율적으로 떼어낸 네바다 프로젝트는 막힘 없이 진행되었다. 아니 진행되는 듯 했다. 이번에는 국경을 넘는 태클이 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그 핵심의 축은 바로 중국과 러시아였다. 중국은 위대한 중화사상에 입각해 미국을 경쟁 상대로 여겼고 러시아는 과거 냉전시대부터 전통적인 미국의 경쟁국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미국의 우주 선점은 실제적인 군사적 위협으로 인식되었고 유엔 회의에서 미국의 독자적인 우주 개발을 맹비난하고 나선 것이다. [미국은 전 인류를 위한 우주 개발은 선점해 이권을 추구하려고 한다!] [우리는 이를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 하지만 미국은 코웃음을 치고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지들이 나서봤자 미국 주도의 우주개발을 막을 수는 없다. [미국은 반성하라!] [미국은 우주를 군사적인 목적으로 사용하려고 한다!] 러시아와 중국의 반응은 굉장히 격렬했다. 미국이 우주를 선점한다는 것은 미국에 맞먹겠다는 그들의 야망에 찬 물을 끼얹게 된다. 일단 우주를 평화적인 목적에 사용하다는 조약이 있기는 하지만 언제나 국제 조약은 힘의 논리에 의해서 무시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제적으로 조약 위반을 강제할 수 있는 곳이 없기 때문에 국가는 국익 앞에서 언제든 조약을 무시하거나 파기할 수 있다. 지금까지 우주를 평화적으로 이용하자는 조약이 별 탈 없이 이루어지고 있었던 이유는 우주를 개발하는 것이 무척이나 어렵기 때문이었다. 국제적인 평화적 분위기 없이 우주 개발은 불가능하다. 막말로 타국의 위를 지나가는 인공위성을 족족 쏴버리게 되면 우주 개발을 어떻게 한다는 말인가? 그렇게 되면 데브리로 인해 인류는 지구에 갖혀 고사할 지도 모른다. 141화 <13-진출> 하지만 우주 개발이 쉬워진다면 말은 달라진다. 우주는 물도 없고 땅도 없고 국경도 없기 때문에 먼저 개발한 쪽이 우선권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즉, 새롭게 영토를 늘리는 과정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이 우주를 선점한다? 만일 지구를 포위한 형태로 우주 기지들을 만들면 어떻게 되나? 우주 진출 과정에서 미국을 빼놓고는 말을 할 수 없게 된다. 미국이 곧 우주의 질서가 되고 중국과 러시아는 영원히 미국의 아성을 뛰어넘을 수가 없게 된다. 미국이 곧 우주 세기의 시작이 되며 기준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두 나라는 그 꼴을 결코 두고 볼 수 가 없었다. 그래서 국제적으로 비난을 하는 것인데 미국에서는 대응조차 하지 않으니 답답할 뿐이었다. 두 나라의 비난에도 미국과의 통상은 정상적이었으며 미국내 중국, 러시아에 대한 여론도 그다지 나빠지지 않았다. [두 나라가 뭘 하든 천재의 우주 개발을 막을 순 없다.] 두 나라의 대(對) 미(美) 발언에 대한 한 미국 언론의 논평이었다. 그건 자신감이었다. 애시당초 강현의 우주 개발에 NASA가 얹혀가는 꼴이었다. 그러니 두 나라가 무슨 말을 해도 강현의 마음이 바뀌지 않으면 우주 개발은 진행될 것이다. 네바다 프로젝트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강현의 10억 돈지랄을 잊지 않았다. 즉, 강현의 태도가 변하지 않는다면 중국과 러시아는 결코 네바다 프로젝트에 어떤 영향도 끼칠 수 없다는 것을 우주 산업 관련자 및 지식층부터 미국 정부까지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덕분에 강현은 매우 귀찮은 상황에 처했다. 첩보를 모아 일을 해결할 수 있는 열쇠가 강현에게 있다는 것을 파악한 중국과 러시아가 전권대사를 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 대사와 러시아 대사는 본국의 명령을 받아 어떻게든 우주 개발에 한 손 보태기 위해(강현의 입장에서는 포트를 얹는 행위지만) 연일 찾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막 결혼식을 앞두고 밖에 돌아다닐 일이 많은 강현에게 그런 두 나라의 행동은 불안요소였다. 일단 두 나라는 독재 국가였다. 한 쪽은 공산당 일당 독재였고 다른 한 쪽은 대통령 일인 독재였다. 그리고 강현은 권력과 결탁한 기득권 세력에 의해서 부모를 잃은 경험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신뢰하기 힘든 독재 국가와 얽히는 것은 전혀 반갑지 않았다. [박사님. 오늘도 중국 대사와 러시아 대사가 찾아왔습니다.] “뻔하지.” 그들의 속내는 어떻게든 우주 개발에 함께 하고 싶다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강현은 그러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기껏 10억 달러를 써서 날파리를 쫓아냈는데 똥파리를 허용할 리가 없었다. “아즈삭. 경계 레벨을 두 단계 올려.” [네, 박사님.] “그리고 잭에게 연락해. 첩보망을 좀 더 활발하게 가동해 달라고.” [네, 박사님.] 막대한 이권이 걸리게 되면 사람 목숨 따윈 신경도 쓰지 않는 것이 힘을 가진 사람들의 속성이다. 성공한 이들, 특히 권력을 쥔 이들은 일반인과 사고방식 자체가 다르다. 뇌의 구조가 물리화학적으로 바뀌어 공감력이 떨어진다. 좀 더 나아가면 타인의 목숨 따윈 신경도 쓰지 않는다. 강현의 입장에서는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권리였다. 잭은 강현의 연락에 안색을 찌뿌렸다. 강현이 중국과 러시아를 우주 개발에 동참시키지 않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은 미국의 국익을 생각하면 나쁘지 않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첩보망 태세를 한 단계 상승시켜 달라는 건 요원들을 비상대기 시켜달라는 말이었다. “하아..”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었다. 첩보계에 있으면서 별의 별 일을 보고 겪은 잭은 국가간에 정말로 영화 시나리오같은 일이 시시때때로 벌어진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우크라이나의 말레이시아 여객기 격추 사건은 러시아 여객기를 격추시켜 명분을 획득하려는 러시아의 음모였고 명분을 위해 자국민의 생명도 희생시키려는 권력자와 기득권의 행태는 이젠 잭에겐 낯설지도 않았다. 강현의 우려처럼 미국의 우주 선점을 막기 위해 핵심이 되는 강현에 대한 암살 시도가 일어날 가능성에 대해서 잭은 동의했다. 특히 강현이 두 나라의 대사를 노골적으로 만나지 않으려고 드는 이 상황에서는 말이다. 결국 정보부는 경계 태세를 강화했다. 그리고 요원들은 기약을 알 수 없는 야근을 시작했다. 우주 전쟁. 외계인의 침공을 소재로 한 소설이나 영화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우주를 놓고 벌이는 각 나라 간의 경쟁을 말한다. 중국과 러시아도 병신은 아니었다. 강현을 죽이는 순간 전쟁이 일어날 지도 모른다. 게다가 낌새를 챘는지 미국의 보안 태세가 강화되어 함부로 일을 벌일 수도 없었다. 가히 미국이 애지중지하는 과학자 다웠다. 그렇다고 넋 놓고 우주를 뺐길 순 없으니 국가의 역량을 총 동원하여 우주 개발을 시작했다. 서둘러 무인 로봇과 제어를 위한 인공지능의 확보에 나섰고 미국은 여기까지는 용인했다. 인공지능을 제작하기 위한 부품마저 제한했다면 정말로 강현에 대한 암살을 진지하게 고려했을 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이른바 우주 진출에 대한 선점을 놓고 우주 기술을 선도하는 나라간의 경쟁이 시작됬다. 이는 경제에 아주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는데 첨단 기술의 총체인 우주 개발이라 그에 관련된 기술 개발이라든지 산업들이 엄청나게 많았기 때문이다. 중국과 러시아 역시 다르지 않았는데 그들이 축적한 우주 기술 역시 만만하지 않아서 한 달에 몇 개 씩 궤도로 로켓을 쏘아 올릴 수가 있었다. 그러나 역시 관건은 비용. 강현이 설계한 매스 드라이버 만큼 비용을 줄일 수가 있느냐가 문제였다. 그들은 강현에게 적어도 매스 드라이버의 설계도와 라이센스만이라도 얻을 수 없냐고 문의 했지만 긍정적인 답변은 얻을 수가 없었다. 강현이 설계한 매스 드라이버는 펜타봇, 트리플론과 스페이스 넷으로 구성된 무인 로봇 시스템이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에 매스 드라이버 설계도를 확보한 나라들이 다시 그 무인 로봇 시스템을 요구하지 않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밑천을 다 줘버리면 자본주의를 붕괴 시키겠다는 야심찬 계획은 어떻게 성공시키라는 말인가? 강현은 목적을 위해서 초장부터 모든 요구와 제안을 거절하는 것이 편했다. 얼마나 완고한지 잭이 와서 우려를 나타냈다. “현, 그렇게까지 거절하면 정부 입장이 좀 난처해져.” “그럼 내가 빠질까?” “....” 강현의 무인 로봇 시스템이 없다면 매스 드라이버는 앙꼬 빠진 찐빵이다. 잭은 입을 다물 었지만 강현의 저희를 파악하고 싶었다. 지금 그의 모습은 석유 라이센스 배분 때와는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현. 도대체 뭐가 문제야?” “이 계획이 성공하면 우주 세기가 시작돼. 모든 사회의 패러다임이 바뀌게 되는 거지. 이래도 이해 못하겠어?” 모호한 말이었다. 패러다임이 바뀌면 바뀌겠지만 아직 바뀐 것은 아니다. 어떻게 변할지 파악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네 입장에서는 이렇게 각국 정부에서 사람들이 찾아와 귀찮게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지 않아?” “그자들의 머리에는 우주의 전략성과 그에 대한 이권밖에 없지. 하지만 좀 더 멀리 생각해 보라고. 인류의 생활권이 지구를 넘어 화성, 목성은 물론 다른 은하계까지 퍼지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 “한참 걸리겠네.” “우주를 놓고 전쟁을 벌이면 더 걸리겠지.” “....” “잭, 나는 미국이 인종과 국경을 넘어 지구 통합을 이루고 인류를 지구에서 해방시킬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아.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는 결코 미국처럼 될 수 없지. 아, 러시아는 혹시 모르겠군. 아무튼 중국은 내부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전체주의를 도입했어. 그 안에 인간성은 없어. 그런 자들이 우주에 진출해도 그들 밑의 인간에게 자유는 없어.” 권력은 받들어 주는 사람이 있을 때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권력자는 대중이 자신을 받들어주기를 원한다. 그 방편 중 하나로 권위주의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하는데 이는 그것을 조롱하는 사람을 용서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러기 위한 여러 방법론은 흔히 독재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입을 막아버리는 데 사용된다. 대중의 입이 막히는 순간 권력은 대중의 입을 막은 이들에게 집중된다. 강현은 자본의 영향력을 줄여보자고 하는데, 그 대신에 독재적 시스템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그것은 강현이 대중을 위해 구상한 생산 수단을 다시 소수의 기득권층으로 집중 시킬 것이다. 그건 그가 보고 싶은 인류의 미래가 아니다. “내 애국심을 의심하는 거야?” “애국심이라고 하기 보다는 그냥 인류 전체를 위한 결단 같은데...” 당장 미국을 위한다면 어느 정도 콩고물을 뿌려서 미국에 대한 국제적 비난 여론을 잠재우는 것이 좋았다. 그래서 강현의 고집을 개인적인 욕심이나 탐욕으로 생각했지만 그의 말에 내재된 논리를 생각하면 오히려 미국보다는 사람 그 자체를 위한 것을 생각되었다. 그래서 잭은 쓴게 웃었고 강현은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미국이 곧 세계가 될 거야.” 잭의 입장에서는 기분 좋은 말이었다. “하지만 곤란한 건 알지?” “괜찮아. 위성 공장을 그들의 생각보다 더 빨리 완공 시키면 미국의 엉덩이를 핥기 위해 허리를 숙일 테니까.” 위성 공장은 말 그대로 공장이다. 재료만 있다면 무엇이든 조립할 수 있는 로봇들로 가득차게 되어 있다. 로켓 부품을 조달하면 위성 공장이 위성 전술/전략 기지가 되는 건 순식간이다. “좋아. 네 말을 상부에 잘 전달하지.” “어떻게 해야 먹히는지는 네가 더 잘 알테니까. 부탁하지.” “OK.” 잭의 보고는 정보부의 입장에서는 떨떠름 했고 행정부의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았으며 의회의 입장에서는 우려스러웠다. 정보부는 강현의 예상이 그리 틀리지는 않지만 덕분에 프로젝트가 완료될 때까지 자신들이 개고생 해야한다는 의미였고 행정부에서는 정권차원에서 우주 개발이란 위대한 업적을 세울 수 있었지만 의회의 입장에서는 외교적인 부분을 우려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무튼 레일건의 원리나 자기 부상의 원리같은 건 그리 생소한 개념이 아니었고 딱히 특허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 유럽에서도 서둘러 매스 드라이버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방식은 강현과 동일하게 무인 로봇을 이용해 개발을 진행하는 것인데 막상 상황이 닥치니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적어도 각 분야 최고의 전문가들이 함께 나서서 일 년은 꼬박 연구 개발을 해야 그럴 듯한 물건이 나올 것 같았다. 그래도 별 수 없다. 이미 있는 기술을 실현화 시킨 미국이다. 그들로서는 연구 개발에 도움이 되는 인공지능을 팔아주는 것만으로도 도리를 다했다. 경쟁은 어쩔 수 없이 해야했다. 앞으로 도래할 우주 시대에 도태되지 않으려면 말이다. “축하합니다!” “축하해요!” 매스 드라이버가 완공되고 본격적으로 우주로 로봇들과 자재를 쏘아올리는 단계를 시작하기 전 NASA는 일제히 쉬기로 했다. 강현은 이때를 맞추어 결혼식과 신혼 여행을 떠나기로 했는데 그와 샐리의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해서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모여 연회장은 발디딜 틈도 없었다. [여러분. 저와 샐리의 결혼식에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강현은 하객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고 샐리 역시 감사의 인사를 했다. 그녀의 부모님은 몇 년 동안 딸에게 마음 고생을 시킨 강현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납득했다. 샐리가 행복하다면야 자신들은 허락할 수 밖에 없다. 거기에 강현이 한눈을 팔지 않고 성실하기도 하고 순정파인데다가(딸에게서 제시와 강현의 이야기를 들으니 그렇게 생각했다.) 돈도 많아서 샐리를 고생시킬 것 같진 않으니 다소 안심하기도 했다. 142화 결혼식을 마치고 둘은 결혼 여행으로 록키 산맥으로 향했다. 해외 여행은 미안하지만 정부 차원에서 자제할 것을 부탁 받았다. 미국 내라면 강현과 샐리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지만 외국으로 간다면 그러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수 많은 관광 명소를 놔두고 록키 산맥을 결혼 여행지로 선택한 것은 샐리의 강력한 주장 때문이었다. 평소 연구실에만 처박혀 있던 강현에게 자연의 상쾌함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만일 강현이 그녀의 속마음을 들었다면 아마 자신은 무한히 우거진 숲이 아니라 흥한 모래 한 줌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며 좀 더 몸이 편한 곳으로 가자고 말했을 터였다. “헉! 헉!” “현. 너무 연구실에만 있으니까 체력이 형편 없이 떨어진 거라고요.” “헥! 헥!” 산을 오르는 강현은 힘들어서 대답을 못했다. 그러고 보니 조깅머신 위를 뛰었던 때가 언제였더라? 걷는 건 매일 하지만 달리기는 언제 했는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된 것같았다. 반면에 샐리는 그동안 자신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 강현 때문에 매일 헬스장에서 뛰면서 스트레스를 풀었기 때문에 체력이 강현보다 더 좋았다. 덕분에 관광지의 호텔에서 지쳐 쓰러진 강현을 억지로 세우느라(?) 샐리가 무지 고생했다. 그래서 강현은 여행 내내 샐리의 잔소리를 들었다. 잔소리의 내용은 거의다 체력 관리를 위해 열심히 운동을 하라는 말이었다. 강현은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어서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녀의 잔소리를 빼면 그닥 나쁘지 않았던 신혼 여행을 마치고, 둘은 일상으로 복귀했다. 샐리는 사무일을 계속했다. 두 사람의 신혼집은.. 강현과 제시가 샀던 그 집으로 하기로 했다. 여자로서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지만 그를 오랫동안 지켜봤던 샐리는 굳이 그에게서 제시의 존재를 지우려고 하지 않았다. 죽은 사람과 싸우면 자신만이 손해였다. 그리고 강현은 신혼 생활을 시작함과 동시에 드디어 우주로 본격적으로 발사체를 쏘아올리는 단계를 시작했다. 원래라면 직접 네바다까지 가서 기지에 기거하며 상황을 지켜봤겠지만 신혼이라는 특수한 상황이라 계속 연구실에 있으면서 원격으로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박사님. 준비 되셨습니까?] 화상 전화로 NASA측 책임자인 반홈과 일을 진행했다. “아즈삭. 준비 됐지?” [스페이스 넷도 준비 완료 되었습니다.] “이쪽도 준비 완료됬습니다.” [그럼 발사 시퀀스에 돌입하겠습니다.] 반홈이 손을 흔들자 오퍼레이터가 패널을 조작했다. 발사체가 최소 위성 궤도에 오르기 위한 속도는 얼마인가? 공기저항을 고려하지 않으면 약 7.9km/s정도 된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1분 이내에 도착하는 속도다. 공기저항을 고려하면 당연히 속도는 더 증가해야 한다. 하지만 그만한 출력을 내기 위해 막대한 전력을 투사할 경우 문제가 되는 것이 하나 둘이 아니다. 전류가 강해지면 옴 저항 때문에 막대한 열이 발생한다. 그래서 전력을 높이기 위해 일반적으로 전류 대신 전압을 높이는 방법을 사용하는데 일반적인 전압 상승 시스템을 쓸 수가 없었다. 게다가 레일건에 사용되어야 할 전류는 직류였기 때문에 교류의 변압기를 이용한 전압 증폭 시스템은 한계가 있었다. 가변 콘덴서를 이용한 기계적인 방법으로 전압을 증폭하는 방법이 매우 단순하지만 오히려 전력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물론 발사체가 가속될 동안 초고전압을 유지하기 위해서 대용량의 콘덴서가 필요했고 또한 고전압을 담기 위해 특수한 콘덴서여야 했다. 콘덴서는 기본적으로 얇은 판을 서로 붙지 않게 가까이 댄 것이다. 그때 이 판에 전압을 걸면 각 판의 표면에 전하가 쌓이고 정전기적인 인력으로 인해 전하가 유지된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손실된다. 이런 콘덴서에 쌓이는 전하의 양은 전압과 두 판 사이의 면적의 곱에 비례하고 두 판 사이의 거리에 반비례하게 되는데 바로 이 원리에서 가변 콘덴서를 이용한 직류 전압 증폭이 가능한 것이다. 약한 전압으로 두 판 사이에 일정량의 전하를 쌓았는데 만일 이 두 판 사이의 면적이 줄어들거나 거리가 멀어지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되면 동일한 양의 전하를 쌓기 위해 자연히 더 큰 전압이 필요해진다. 다시 말하면 그런 상황의 콘덴서는 그만큼의 전압을 형성하게 된다는 뜻이다. 즉, 전기용량의 조절이 가능한 가변 콘덴서는 일정량의 전하를 쌓기만 하면 콘덴서의 구조에 물리적인 변화를 가해 더 큰 전압을 생성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매스 드라이버에 사용될 정도의 가변 콘덴서는 평범해서는 안된다. 최소 위성 궤도를 돌기 위한 임계 속도는 7.9km/s. 거기에 공기 저항과 적도에서 벗어난 지역에서의 발사라는 것을 고려해서 거기에 플러스 알파를 하면 최종 속도는 더 빨라져야 하고 매스 드라이버의 길이를 고려하면 약 12초 동안 전압을 유지해야 했다. 때문에 강현은 이를 위한 특수한 전압 시스템도 설계를 했는데 거의 옆에 있는 강현의 공장만한 크기가 되는 수 밖에 없었다. 강현이 만든 가변콘덴서형 전압시스템은 외부에서 보면 여러개의 유압 실린더가 쌓여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내부는 특수한 유전체 세라믹 코팅으로 겹겹히 쌓여있었고 할로겐 가스와 불활성 기체중 하나인 크립톤의 혼합 가스가 낮은 기압으로 차있었다. 초고전압이 쌓이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진공을 통해서 전자가 방전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콘덴서를 구성하는 판에 저장된 전하의 손실이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 부도체로 전자가 흐르지 못하게 만들어야 했다. 실제로 상용화된 콘덴서는 그 성능을 높이기 위해 유전체로 분류되는 세라믹 물질이나 유기화합물로 금속박막의 접촉을 차단한다. 그러나 그것을 상회하는 초고전압 콘덴서를 위해 강현은 플라즈마를 이용했다. 할로겐 가스와 소량의 수소가스, 그리고 촉매 작용을 할 불활성 기체를 반응성이 극히 떨어지는 사파이어 코팅이 된 금속판 사이에 넣고 고전압을 가하면 강한 전기장으로 인해서 양자역학적으로 유리된 이온과 전자가 반대 방향으로 분리되어 정전기적인 전하를 쌓이게 만든다. 바로 이때 유압실린더처럼 생긴 외관이 작동하는 것이다. 유압을 이용해 이 가변 콘덴서의 판 사이를 잡아당겨 벌리면 더 높은 전압이 형성된다. 그리고 이 수 백 개의 특수 가변 콘덴서는 스페이스 넷과 연결된 센서와 시스템을 통해서 정밀하게 제어하면 일정한 전압을 형성할 수 있었다. [충전율 100%. 방전을 시작합니다.] 매스 드라이버 기지 안에 스페이스 넷의 음성이 울렸다. 매스 드라이버 안에 탑재된 방추형 발사체의 둘레에 살짝 난 금속 돌기로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다. 전류가 흐르면 내부의 전자석이 활성화되어 매스 드라이버 튜브에 있던 초전도체와 반발력을 만들어 내부에 둥둥 뜨기 시작했다. 동시에 로렌츠의 힘이 발사체를 밀어내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초음속에 도달했다. 푸악! 발사체가 지나간 내부에 잠깐 소닉붐이 일어났다. [임계 속도 도달률 98%, 99%, 100%. 발사체 탈출까지 3초, 2초, 1초.] 상황이 전달되고 과연 스페이스 넷의 말대로 무언가 희끗한 것이 엄청난 폭음과 함께 공중으로 순식간에 사라지기 시작했다. 곧 매스 드라이버의 양 끝으로 공기가 밀려들어오기 시작했다. 발사체가 공기를 초음속으로 밀어내며 튜브 안의 기압이 극도로 낮아졌기 때문이다. 한편, 하얀 방추형의 발사체는 대기를 가르며 멈추지 않고 솟아 올랐다. 마찰열로 내열 타일이 붉게 달아올랐지만 곧 대기가 희박해지고 속도로 줄기 시작하자 달아오른 열도 식기 시작했다. [목표 고도 도달 완료. 탑제물 사출 시작.] 딱딱한 기계음이 들려왔고 지상 관제탑에서 명령을 수신 받은 발사체는 곧 작업을 시작했다. 뾰족한 앞쪽이 반으로 갈라졌다. 갈라진 틈으로 둥근 구멍이 있었고 둥근 구멍으로 잘 접힌 트리플론의 EM 드라이버가 보였다. 그 밑으로는 내용물을 밀어내기 위해 장착된 스프링과 판이 있어 곧 트리플론은 무중력 공간으로 밀어냈다. 트리플론은 그 주변을 동그랗게 감싼 고분자 필름과 함께 사출되었는데 이 고분자 필름은 트리플론과 발사체 내부의 컨테이너 사이의 마찰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광분해성이기 때문에 데프리가 될 문제도 없었다. 트리플론을 우주로 사출한 발사체는 곧 내부에 장착된 EM 드라이버로 감속을 하기 시작했다. 다시 지구의 중력권에 잡혀 돌아가기 위해서였다. 발사체는 그 안에 담길 트리플론이나 펜타봇보다 더 비싼 물건이었다. 아무래도 매드 드라이버와 마찰열을 막기 위해서 비싼 재료를 사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촥! 발사체의 양 옆으로 피막과 같은 날개가 펼쳐졌다. 탄소 나노 튜브로 만들어진 천으로 되어 있어 찢기가 무지 힘든 물건으로 발사체를 글라이더로 만들어 주었다. 열권에서부터 방향을 잡고 천천히 하강하던 발사체는 GPS에 따라 켈리포니아 해역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켈리포니아 해역 위에 도착한 발사체는 꽁무니에서 낙하산을 펼쳐 손상없이 바다위에 떨어졌다. 물론 회수하기 쉽도록 레이더가 장치된 부표를 띄우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다양한 기능을 고려했을 때 무중력 로봇보다 더 비싼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한편 우주 공간에 사출된 트리플론의 다리는 스프링에 의해서 저절로 펼쳐지기 시작했다. 완전한 모양되자 전원이 들어왔고 지상과 통신을 하기 시작했다. [트리플론 1, 스탠바이. 궤도 진입 성공.] 우와아아아! 기지 내에 환호성이 울렸다. 하지만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었다. 우주 공간에서 EM 드라이버를 사용하며 유영하기 위해서 스페이스 넷도 적응을 해야하고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처음에는 한 번 발사체를 쏘아올리고 매스 드라이버의 상태를 점검하고를 반복하던 매스 드라이버 기지는 시설의 마모 정도를 확인하고 나서는 하루에 10번씩 발사체를 쏘아올렸다. 덕분에 전력 수급이 더 어려울 정도여서 부랴부랴 태양전지 패널을 황무지에 더 많이 까는 공사를 벌였다. 한 달 쯤 지나자, 총 300여대의 펜타봇과 트리플롯이 우주 공간에 쏘아졌다. 각각 소형 태양전지 패널로 본격적인 작업에 앞서 충전 대기를 하고 있었다. 곧 우주 공장용 태양광 패널이 우주로 쏘아 올려지기 시작했다.태양광 패널은 조립식으로 너트나 볼트 없이 조립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태양광 패널의 표면은 매우 특수한 고분자 코팅이 되어 있는데 강현이 슈퍼 다이아몬드 나노 입자를 로봇의 표면에 입히기 위해 만든 고분자를 변형해서 만든 투명 플라스틱으로 우주 데브리에 의해서 태양광 패널이 파손되더라도 파편이 밖으로 비산하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했다. 일종의 자동차 안전 유리와 같은 원리였지만 태양광의 투과률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힘든 문제였다. 태양광 패널로 우주 공간을 유영하는 로봇들에게 충분한 전력을 공급할 수 있게 되자 이제는 본격적으로 위성 공장의 시설물을 지을 차례였다. 소행성대에서 에너지 원으로 사용한 태양광 패널도 계속 올려야 하고 거기로 보낼 광산 개발 장비들도 보내야 했다. 중요한 것은 소행성대의 광산 개발을 위한 인공지능이 필요하다는 것인데 여기에서 엄청난 난제가 생기고 말았다. 인공지능을 가동하기 위한 전력 수요가 무척이나 높다는 것이었다. ============================ 작품 후기 ============================ 두 편 올렸습니다. 143화 하지만 인공지능을 소행성대에 가져다 두지 않을 수도 없었다. 태양에서 지구로 빛이 도달하는 시간은 약 8분. 태양에서 소행성대까지의 거리가 태양에서 지구까지 거리의 약 2배정도 되니 지구에서 소행성 지대까지 명령을 전달하는데 8분 정도 걸린다. 그리고 다시 피드백을 받는데 8분 정도 걸리게 되니 소행성대에서 알아서 명령을 처리해야 하지 않으면 어떤 사태가 일어났을 때 대처가 불가능하다. 설상 가상으로 공전 궤도를 생각하면 태양을 중심으로 소행성대 광산과 지구가 반대편에 있게 되면 명령이 도달하는데 최대 16분 정도 걸릴 수가 있었다. 명령을 수신하는 시간도 생각하면 한 번 통신하는데 30분 이상의 시간이 걸리니 우주 광산의 자체적인 위기 관리 능력은 반드시 있어야 했다. 하지만 인공지능을 위한 전력을 태양전지로 수급하기 위해서는 지구에서 필요한 경우의 2배가 필요했다. 그나마 우주 공간이라 밤과 낮을 고려하지 않아 그 정도지 만일 그랬다면 4배의 태양전지가 필요했을 것이다. 왜냐면 빛의 강도의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고 태양에서 소행성대까지의 거리는 태양과 지구간 거리의 약 두 배 정도 되기 때문이다. “할 일이 많아졌네..” 강현은 단기간에 일을 처리하려면 최소한 한 기의 매스 드라이버가 더 필요할 것 같았다. [박사님의 자산을 생각하면 하나 더 만드셔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좋아. 한 기 더 만들자.” 그래서 더 일이 많아졌다. 소행성대로 보낼 인공지능을 우주 공간에서 조립하기 위해서 RNP/SNP 모듈의 설계를 다시 해야 했다. 특히 강한 중력 가속도를 받는 매스 드라이버 발사과정에서 모듈의 손상이 없도록 해야 하고 펜타봇이 조립할 수 있도록 디자인도 수정해야 했다. 그 밖에 우주 무중력 공간에서 사용한 제련 장치도 구상해야 하고 물질을 분석할 수 있는 장치도 우주 환경용으로 개조해야 하고 할 일이 너무 많았다. 아즈삭이 기존의 특허 중 쓸만한 것을 계속 찾고 킬덤이 그 특허권을 매입하고 있다고 해도 할 일이 쌓이기만 했다. “현, 너무 과로하지 마세요.” 만일 샐리가 퇴근 시간에 데리러 오지 않았다면 밤새도록 작업에 매진했을 것이다. 한편, 매스 드라이버 한 기를 다시 건설하기 위해 다시 네바다 주에서 사막을 구입하자 건설 업자들은 환호했다. 매스 드라이버 한 기를 건설하며 저번 분기 매출에 필적하는 추가 매출을 얻었다. 그런데 또 그 만큼의 매출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이레이 기획부장은 강현이 또 매스 드라이버를 하나 더 지을려고 하자 무슨 괴물을 보듯이 그를 보았다. “왜요?” “그게.. 이번에도 NASA가 참여하면 안됩니까?” “에이.. 돈도 없으면서.” “...” 하긴 이번 매스 드라이버에 여유 예산을 쏟아 붓는다고 정부에 남은 예산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민간 투자는 강현이 질색을 하니 그럴 수는 없고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국채를 파는 건데 안그래도 누적 적자가 많은 정부에서 정치적인 비난 여론을 무릅쓰고 그러기는 부담스러웠다. 게다가 이미 매스 드라이버가 하나 있지 않은가? 국민들이 두 대는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이레이는 뭔가 말을 하고 싶은데 딱히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우주 개발에 대한 강현의 지분과 권리가 커지는 것을 가장 실감하는 사람이 NASA의 경영진이었고 기획부장인 이레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참, 그래도 NASA가 도와줘서 귀찮은 일이 많이 줄었어요.” “그런가요?” 강현의 덕담에 이레이의 불편한 심기가 조금은 줄었다. “NASA가 아니었으면 회사를 차려야 했을지도 모르거든요.” 확실히 노하우 있는 기존 인력들이 있으니 편했다. 그 편함을 깨달은 강현은 자신이 혼자 모든 일을 처리하려고 하다가 결국엔 그 비효율성을 깨닫고 회사를 세웠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 자본금은 제현 투자회사와 같이 100% 강현의 돈으로 충당하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정말 매스 드라이버가 하나 더 필요합니까?” “생각해 보니까 우주에 쏘아올릴 게 많더라고요. 적어도 5년 이내에 소행성대로 진출하려면 2년 이내에 우주 광산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더라고요.” “그, 그렇습니까?” 5년 이내로 소행성대로 진출해? 햐! 배포 한 번 장난이 아니구나. 이레이는 강현의 구상에 오~하고 감탄을 자아냈다. 확실히 천재는 뭔가 달라도 남다른 것 같았다. “NASA도 많이 도와주세요. 우주 광산이 개발되면 그 이후에는 우주 식민지를 건설할 계획이에요. 한 10년 안에?” “....” 이레이는 강현의 말에 벙쪄서 할 말을 잃었다. 이제는 강현의 스케일을 따라가지 못하는 그였다. 약 6개월 후 매스 드라이버가 추가로 완공되자(역시 돈의 힘을 굉장했다. 경험을 쌓은 건축 회사들의 능력도 훌륭했다.) 거의 매일 우주로 자재들이 옮겨졌다. 라스베이거스로 놀러온 관광객들은 허공으로 거대한 총탄을 쏘아 올리는 장관을 보기 위해서 연일 매스 드라이버 기지로 견학을 왔다. 미국은 홍보 차원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거의 매일 몇 시간 간격으로 자재들과 재료들이 우주 공간으로 쏘아졌지만 우주 궤도 공장의 공전 궤도와 지구의 자전 속도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쏘아올린 자재들이 바로 공장으로 가지는 못했다. 그래서 백 여 대의 트리플론들이 일정 간격으로 자재가 쏘아 올려지는 지점으로 우주 유영을 하는데 강현은 이 시스템을 버스라고 불렀다. 출발지이자 종착역이 우주 공장이고 트리플론의 운영 방식이 버스 시스템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수 많은 종류의 자재들 중 일단 태양광 판넬이 먼저 우주로 쏘아 올려졌다. 펜타봇들이 태양광 판넬을 조립해 필요한 전압과 출력을 얻었고 불필요한 양은 그림자 뒤로 숨겨 교체용으로 사용하거나 차후 계획에 쓰기로 했다. 일단 뜨거운 태양빛을 태양광 판넬로 가리자 이번에는 각종 건설용 기자재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얇은 철판과 파이프를 얼기설기 조립한 대형 트렌치 구조물이 완성되자 펜타봇들이 지지해 작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고 상대적으로 트리플론의 운용에 여유가 생겼다. 간이 우주 공장의 완성이었다. 원래는 원심력을 이용해 중력도 구현하려고 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더 튼튼한 구조물이 필요했고 지상에서 더 많은 자제를 올려야 했다. 하지만 그건 낭비였고 강현의 계획도 지연된다. 소행성대를 개발하면 금속재료는 얼마든지 확보할 수가 있기 때문에 우주에서 만들 수 없는 부품을 쏘아 올리는 것이 더 급했다. 가장 핵심적인 것은 역시 펜타봇과 트리플론이었고 반도체 기술이 필요한 태양전지도 마찬가지였다. 이 셋은 계속 우주로 쏘아 올려져 소행성대 개발을 위해 태양전지 패널 뒤에서 대기시켰다. 소행성대 개발에 있어서 역시나 가장 중요한 것은 에너지원이었다. 암석을 부수고 정련 하는 등 지속적으로 높은 출력을 얻기 위해서는 더 많은 태양전지가 필요했다. 대안으로 핵전지도 생각해 봤지만 핵물질의 위험과 취급의 까다로움, 그리고 출력을 생각하면 그다지 좋게 생각되지 않는 방식이었다. 단순한게 가장 좋다고 태양전지 판넬을 많이 까는 것이 편했다. 수리 교체도 편했고 또한 우주는 공간이 무한하지 않은가? 다른 항성으로 가는 여행이 아니라 태양계 안에서의 활동은 핵융합이나 핵분열보다 태양광 발전이 더 효율적이었다. 간이 우주 공장이 완료되자 이번에는 인공지능이 탑재될 관제 시설을 지었고 그 다음에는 무중력 제련소와 암석 분쇄 장치 등의 공업용 시설과 이 모든 것을 관제할 인공지능을 차례로 지었다. 인공지능의 이름은 카낙이었다. “카낙. 준비는 됐어?” [네, 준비 됐습니다.] 카낙은 아즈삭 이후로 강현이 가장 고심해서 제작한 인공지능이었다. 핵심 명제는 ‘인류의 우주 진출을 돕는다.’였다. 물론 폭주를 방지하기 위한 수 많은 명제들로 안전 장치를 해놨다. 그리고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아즈삭에게 절대 명령권을 이양시켜 놨으니 크게 문제는 없을 터였다. 카낙은 무수히 많은 기자재들과 함께 위성궤도에 올라있었다. “그럼 다시 점검을 해보자. 예비용 장비도 올려줄 테니까.” [네, 박사님.] 그때 아즈삭이 끼어들었다. [박사님, 퇴근하실 시간입니다.] “잠깐만 요것만 확인해보고.” [결혼 기념일 아니십니까?] “아차!” 강현과 샐리는 벌써 결혼 일주년을 맞이했다. 샐리는 여전히 직장을 다니고 있었는데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고 있었다. 물론 강현도 집에 돌아가면 설거지 및 청소 등을 도와주고는 했다. 강현은 자신이 그렇게 평범한 결혼 생활을 할 수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나쁘지는 않았다. 집에 돌아가면 허전함이 없고 편안했다.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삶의 단면을 마주하면서 강현의 태도도 조금은 온화해졌다. 그건 옛날의 계산적인 온건함과는 다른 면이었다. 그렇게 행복한 신혼 생활을 보내는 사이, 세계는 근본적으로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경제 문제, 환경 문제, 국제 문제, 군사 문제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였다. 대충 중요한 맥락만 짚어보자면 우주 개발 열기로 촉발된 국제 경쟁은 그 국가의 시스템이 가진 역량을 근본적으로 시험했다. 자본력, 인력, 기술력, 공권력 그리고 이를 중심으로 각 국가 내외적인 이해관계들이 얽히는 연쇄 반응들이 그 국가의 변화를 야기했다. 때로는 긍적적일 수도 있었고 부정적이기도 했고 그 영향이 크거나 혹은 작기도 했다. 물론 그런 영향은 우주 개발 역량이 있는 국가들에 한해서였다. 빈부격차라고 할까 아님 기술격차라고 할까. 우주 개발을 빠르게 하기 위해서 기술 개발 지원용 인공지능을 도입한 선진국들과 그러지 못한 나라간의 차이는 더욱 벌어졌다. 그래도 1년 쯤 지나자 각 나라에 매스 드라이버가 하나 둘 지어지기 시작했다. 러시아는 물론 중국과 유럽을 비롯해, 이란같은 중동 지역에도 생겼다. 일본은 아무래도 지진이 많은 지역이라 내진 설계가 반드시 필요했는데 그로 인한 건설 난이도 상승으로 다른 나라보다 완공이 늦어지고 있었다. 한국의 경우에는 우주 개발 대열에 동참하기는 했는데 정부 예산이 없어 민간 주도로 진행 중 이었다. “현.” “가요.” 강현이 데리러 오자 샐리는 그에게 팔짱을 끼고 몸을 밀착했다. 둘은 강현이 미리 예약한(아즈삭이 찾고 예약한) 호텔 레스토랑에서 느긋하게 식사를 즐겼다. 강현은 유명인사였기 때문에 따로 방이 있는 곳에서 둘만의 만찬을 즐겼다. “현.” “응? 왜요?” 식사를 거의 마치고 강현이 와인 한 잔으로 입가심을 할 때 쯤 샐리가 입을 열었다. “저 임신했어요.” “.....” 강현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사고가 헝클어지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가 애써 혼란스런 기분을 가라앉히고 간신히 뱉은 말은 겨우 이거였다. “그, 그럼 이제부터 어떻게 하죠?” “풋!” 강현의 얼빠진 얼굴에 샐리의 웃음보가 튀어나오고 말았다. 참으로 귀여운 남자였다. 여자로서 강현이 자신있게 리드해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지만 이건 이것대로 나쁘지 않았다. 자신이 강현을 주도적으로 당기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결국에는 그와 결혼할 수 있었지 않은가? 그래도 이거 한 가지는 짚고 넘어가야 했다. “현은 아빠가 되는게 기쁘지는 않아요?” “기, 기쁘기는 한데.. 아기가 태어나면 육아도 해야 되고, 어떤 사람으로 키울 건가도 생각해야 되고, 물려줄 유산도 생각해야 하고,” ============================ 작품 후기 ============================ 슬럼프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거의 한 달에 한 번꼴로 오는 것 같네요. 빨리 가줬으면.. 144화 “현.” “그리고 사회적 지위랑,” “현.” “뭘 하고 싶은지 파악하고 지원도 해줘야,” “현.” 강현은 샐리가 자신의 손을 강하게 쥐자 그제서야 정신을 차렸다. 그런 그를 보고 샐리는 편안하게 미소 지었다. “너무 일찍이 그런 걸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나중에 아기가 태어나면 자연스럽게 하게 될 거에요. 누구나 처음부터 아빠 엄마인건 아니잖아요.” 샐리는 그가 아기를 원하지 않는 건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가 당황한 이유는 단지 생각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또한 너무나 완벽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의 지적 능력과 평소의 일처리 방식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오히려 그런 태도로 인해서 샐리는 안심할 수 있었다. 그의 말에서 배어 나오는 짙은 책임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그가 좋은 아빠가 될 거라고 확신했다. “아!” 강현은 샐리의 말에 뭔가를 깨달은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대로 누구가 처음부터 부모인 것은 아니다. 부모가 되더라도 충분히 성숙한 한 사람으로 아기를 키울 때까지 10년이 넘는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완벽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완벽한 부모가 되는 건 불가능하다. 그저 부모로서 최선을 다하면 된다. 그의 마음이 좀 정리가 되자 다시 태도가 차분해졌다. “임신 몇 개월 째죠?” “사 개월이요. 일주일 전에 확인 받았어요.” “어.. 그럼 출산 휴가를 받아야겠네요?” “그냥 사표 내기로 했어요.” “왜요?” “가정에 시간을 쏟으려고요.” “흐음...” 샐리의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그녀의 선택이라면야.. 돈이야 썩을 정도로 넘치니 경제적인 문제는 고려할 만한 사항은 아니다. 둘은 다정스럽게 손깍지를 끼고 서로의 입을 맞추었다. = = = = = 다소 조심스러우며 뜨거웠던 밤이 지나가고 아침이 되었다. 샐리는 강현보다 먼저 일어나서 아침을 차렸다. 간단하게 토스트와 계란후라이에 생과일을 짠 주스가 곁들여졌다. “현! 지각하겠어요!” 샐리는 강현을 깨우러 침대로 향했다. 하지만 그는 평소와 다르게 그녀의 깨움에도 일어나지도 않고 샐리를 잡아 당겨 침대에 눕히고는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부비며 몽롱한 잠결의 나른함과 따뜻한 체온을 즐겼다. “지각 한다니까요.” 샐리의 투정어린 목소리에 강현은 흠야흠야 어리광을 피우며 대답했다. “흐음.. 괜찮아요. 오늘부터 자택 근무를 할테니까..” “헐.” 강현의 말에 샐리는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솔직히 집안 청소나 빨래같이 번거롭고 귀찮은 일은 아즈삭이 집안에 비치된 HA 시리즈를 이용해 말끔하게 처리하기 때문이다. 인간형이라 사람용으로 나온 가전 제품도 무리없이 쓸 수 있는 강점이 여기에 있었다. “그리고 솔직히 출근 안 해도 돼요.” 강현은 오히려 한 술 더 떴다. 네트워크 망으로 연결된 세상이다. 강현은 아즈삭과 연결된 단말기만 있다면 세상 어디서든 연구를 할 수 있었다. 실험도 아즈삭이 HA 시리즈를 운용하면 원격으로 할 수 있었다. 그동안 그가 연구실로 출퇴근을 했던 이유는 실험 도구를 만지작거리고 실험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재미있었기 때문이지 반드시 필요해서가 아니었다. 전 실험 과정은 녹화가 되기 때문에 언제든 반복해서 볼 수 있었고 아즈삭과 함께 금방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아.. 그런 소리하지 말고 빨리 일어나요.” 샐리는 그런 강현을 억지로 일으켰다. 이거 너무 능력이 좋아도 문제였다. 나중에 아이가 태어나서 왜 아빠는 출근하지 않냐고 물으면 뭐라고 답해야 할지.. 강현은 규격 외의 인간이다. 그의 천재성을 아이가 이어받을 가능성은 무척이나 희박했다. 그것이 아이가 자라면서 어떤 영향을 끼칠지 알 수 없다. 샐리에게는 이번 일이 새삼 아이의 교육과 가치관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재고하는 계기가 됐다. “끄응.. 연구실에 안 가도 된다니까..” “그래도 생활은 규칙적으로 해야죠. 안 그래도 체력이 형편없는데..” 신혼 여행 때 산에 올라가며 비실댔던 건 언제 잊혀질까? 강현은 샐리의 간지럼에 결국 일어났다. 그리고 식사를 하고 서재에서 아즈삭과 연락해 연구를 계속했다. 극저온의 우주 환경에서 소행성대의 소행성들은 온갖 고체들이 결합한 덩어리다. 얼음과 암석, 금속 등이 어떤 비율로 어떻게 뭉쳐있는지도 모른다. 즉 채광 자체가 무척이나 골치 아픈 문제였다. 일반적인 드릴로 채광을 하는 방법은 되도록 지양해야 한다. 드릴은 필연적으로 마모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소비가 심하다. 소행성대까지의 거리가 멀기 때문에 드릴같은 소모성 물품을 계속 공급해 줄 수가 없었다. 만일에 사용한다고 한다면 자체적으로 만들어 충당할 수 있는 설비가 필수다. 그래서 강현은 대량의 드릴 헤드와 드릴 몸체를 소행성 개발선에 추가하기로 하고 만일의 상황에 드릴 대용으로 사용할 레이저 장비도 추가하기로 했다. 레이저의 국소 에너지 투사 능력은 아주 뛰어나다. 주변과 다르게 일점 집중으로 에너지를 받은 곳은 열팽창을 하며 강력한 응력을 발생시킨다. 다이아몬드를 레이저로 가공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물론 일반적인 금속판의 레이저 절단 가공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에너지가 많이 필요하다는 비용문제와 광맥을 파내는 형태 자체로 인한 한계가 있었다. 움푹 들어간 곳을 다시 레이저를 이용해 파내는 것은 튀어나온 부분을 잘라내는 것과는 다른 난이도가 있었다. 물론 대안은 있었다. 소행성대에서 자체적으로 금속 가공품을 만들 능력이 있다면 지구에 비해 금속 정련 상태가 나쁘다고 해도 레이저를 이용한 채광보다 몇 배나 빠르게 정련을 할 수 있었다. 어차피 소행성대에서 자원을 가공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반드시 자체적인 제련 능력을 갖추어야 했다. 그래서 강현에겐 무중력 하에서, 그리고 대기가 없는 상황에서 금속원소를 추출하고 성형하는 방법이 반드시 필요했다. 일반적으로 지구에서 금속을 얻을 때에는 환원 과정을 거친다. 산소와 결합력이 좋은 금속원소를 이용하기 위해선 빼놓을 수 없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무중력 환경에서 지구처럼 용광로를 만들 수가 없었다. 초고온 초고압의 용융물을 유지할 수 있는 용기를 만들 수도 없을 뿐더러 무중력 상황에서 밀도의 차이로 슬러그를 제거하는 기법을 사용할 수 없었다. 또한 녹은 용융물을 식히기 위해서 우주 공간에 놔둘수도 없었다. 그랬다가는 금속 기체가 되어 다 날라가 버릴 것이다. 또 그 용융물을 어떻게 이동시킨단 말인가? 자력으로? 무중력 상태에서 시뻘겋게 달아오른 금속 덩어리가 천천히 유영하는 모습은 장관이겠지만 한편으로는 시설물에 타격을 줄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하기도 했다. 그래서 강현은 산화환원을 이용한 제련 방법을 모두 폐기했다. 어차피 환원제로 사용할 코크스의 공급따위는 기대할 수 없었다. 대안으로 그는 실험실에서나 쓸만한 방법들을 이용하기로 했다. 원리는 사이클로트론에서 따왔다. 대전된 입자를 엄청난 속도로 가속시키는 입자 가속기 중 하나인 사이클로트론은 고주파 전기장을 이용해 입자를 가속하고 이 입자의 궤도를 자기장 속에 놓아 로렌츠의 힘을 받게 하여 나선, 혹은 원 운동을 만들어 초소속의 입자를 만드는 기술이었다. 그러한 원리 덕분에 인류가 방사선 동위원소를 인위적으로 분리시킬 수 있도록 해주어 핵물리학의 발달에 크게 공헌하기도 했다. 좀 더 무거운 동위원소일 수록 똑같은 힘을 받아도 관성의 법칙 때문에 움직임의 변화가 적어 더 가벼운 동위원소에 비해 속도의 변화가 적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강현이 사용하려는 제련 방법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금속화합물을 플라즈마화하여 전기장과 자기장을 통과시키면 자연히 각 원소의 질량과 플라즈마화된 원소의 원자가수를 변수로 해서 도착하는 위치가 달라진다. 이를 이용하면 충분히 금속을 순수하게 제련할 수 있었다. 이 방법은 금속 산화물의 경우 더 효과적인 방법이 되는데 왜냐면 플라즈마는 일종의 결합이 깨진 이온물질로서 산소 플라즈마는 금속 이온과 반대되는 전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금속 이온과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날려버릴 수가 있었다. 물론 이 방법은 지구에서도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 상업적으로 사용되는 제련 방식보다 훨씬 순수한, 방사선 원소 수준으로 원소를 제련할 수 있어 순수한 물질이 필요한 연구에 많이 이용되는 방법이다. 하지만 대기가 있는 지상에서 상용화하기에는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드는 방식이기도 했다. 플라즈마를 만들기 위해 진공 환경을 유지하는 비용만 따져도 그렇다. 우주의 진공 상태가 오히려 상용화에 유리한 기술인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는 막대한 에너지가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고출력 레이저를 이용해 순간적으로 광물을 기화시켜야 하고 이 기화된 입자에 고주파 고출력의 교류를 걸어 플라즈마화 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태양광 패널의 수요가 늘어나지 않을 수가 없었고 나날이 소행성대 개척선의 크기와 질량은 더 커질 수 밖에 없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라는 거다. 이 플라즈마 방식으로 제련을 하기 위해서는 공장 서너 개 정도 되는 크기의 시설이 필요했다. 불순물이 낄 수 있으니까 동일한 방식을 연속적으로 수행하거나 아예 규모를 키워서 플라즈마화된 원소들이 다시 원자 상태로 돌아가는 분류 장치의 거리를 최대한 멀리 떨어뜨려야 했다. 하지만 이미 소행성대 개척선의 크기는 야구장 5개 크기를 넘었다. 만 여대의 트리플론과 펜타봇, 거기에 이 로봇들이 사용할 각종 기자재들과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수리 부품 등을 실으니 그 정도나 되었다. 그러니 질량도 만만하지 않은데 거기에 야구장 2개는 필요한 제련소를 달고 가라고? 제련소가 몇 개나 필요할지도 모르는데? 강현은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다가 아즈삭의 아주 단순한 제안으로 해결 방안을 구상할 수 있었다. 아즈삭은 프로젝트가 시작되며 우주에 관해 인간들이 축적한 다양한 상상물의 결과물을 수집했다. 스스로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것보다는 그 편이 효율적이었다. 아즈삭에게 인류는 마르지 않는 발상의 우물이었다. 그렇게 아즈삭이 수집한 다양한 우주 관련 기술들, 영화, 소설, SF애니메이션 등에서 소행성 그 자체를 우주 기지로 개조한 장면이 있었다. 속을 파서 그 안에 시설을 지은 것이다. 참으로 단순했지만 첨단 공학 기술의 집약체를 목표로 하고 있던 강현의 시선 밖에 있던 방식이기도 했다. 강현은 아즈삭의 도움에 힘입어 소행성을 제련 공장으로 만드는 물자들을 더 쏘아올리기 시작했다. 그 부피는 야구장 절반 정도라 공장을 덧붙이는 것보다 훨씬 나았다. 물자들이 올라갈 때 마다 버스 운행을 하는 트리플론이 부지런히 수송을 하고 펜타봇들은 부지런히 물자들을 조립하고 용접했다. 전기 용접은 우주에서 매우 훌륭한 접착 방식이었다. 공기가 없었기 때문에 로봇을 이용한 용접에도 불구하고 기포같은 결함이 거의 없었다. 프로젝트가 차근차근 진행됨에 따라 소행성대 개척선의 크기 역시 점점 커져갔다. 모양은 그동안 SF 영화에 나온 모양과는 완전히 달랐다. 넓죽한 상자 모양으로 한 쪽의 넓은 면은 태양광 패널로 도배가 되어 있었고 그 뒤에 물자를 넣은 상자 모양의 컨테이너들이 밀착해 쌓여있는 구조였다. 그리고 이 컨테이너에 각각 EM 드라이버가 서너 개씩 설치가 되어 있었다. 145화 소행성대 개발선이 이런 모양이 된 것은 이유가 있었다. 추진체를 이용하는 엔진의 경우 추진체를 주입하기 위한 시스템이 필요하기 때문에 엔진의 수를 많이 늘릴 수가 없었다. 엔진의 수가 적기 때문에 추진력이 한 곳에 집중되고 그래서 길쭉한 모양이 되어야 선체에 부담이 없이 가속할 수 있었다. 하지만 EM 드라이버의 경우에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추진체를 분사하기 위한 연료 주입 시스템이 필요없기 때문에 그냥 수만 많으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가 많기 때문에 여러 곳에 엔진을 분산 배치해 추진력을 골고루 분산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굳이 형태에 집착할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공기저항이 없는 우주 공간이 아니던가? 물론 우주의 돌덩이 같은 것이 날아올 수도 있지만 그건 소행성 공장화를 위해서 준비한 단순 건축자재를 전면에 채워 충분히 방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심각한 데미지를 입어 파손된다고 해도 걱정 없었다. 손쉬운 물자 배치와 수리를 위해 컨테이너 별로 구획화 되어 있어 언제든 구획째로 분리해 버릴 수도 있었던 것이다. 비유하자면 조립과 분리가 자유롭고 각 구획에 따로 이동 능력이 있는 스마트 컨테이너 시스템이라고 할까? 물론 가장 중요한 관제 시스템인 인공지능 카낙이 없다면 모두 무용지물일테지만 말이다. [소행성대 개발선 카낙 발진 준비 완료!] 채광 장비, 제련 공장 설비 등을 올리고 나서 금속 성형을 위한 장비 역시 동시에 올리고 각종 물자를 완비한 후 개발선은 소행성대로 떠날 준비를 갖췄다. 프로젝트를 시작한지 2년 반 만의 일이었다. 개발선의 이름은 인공지능인 카낙의 이름을 그대로 따왔다. 사실 카낙이 없다면 이 모든 계획은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언론에 출발 날짜가 공개되자 미국 국민들은 열광했다. 과학 기술이 국가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아는 지식층은 미국이 우주의 질서를 선도하고 있다는 사실에 애국심에 도취되었다. 타국의 우주 개발은 아직도 지지부진했으며 차세대 궤도 공장의 완성은 유럽에서 일 년 후에나 이루어질 것이라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당연히 우주 개발이 뒤처진 나라들은 강현의 로봇 기술과 노하우가 너무나 탐이 났지만 얻을 수가 없었다. 그건 말 그대로 노하우라 일일이 메뉴얼화 시킬 수 없었다. 강현이 그런 귀찮은 짓을 할 리도 없지만 그걸 모두 메뉴얼화 시킨다고 해도 이해할 사람도 없고 다 습득할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예를 들어 펜타봇과 트리플론의 중량만 해도 그냥 결정된 것이 아니다. 매스 드라이어에 적용된 기술과 거기에 적용된 재료의 원초적인 한계를 고려해서 결정된 것이고 칸낙에 탑재된 모든 장비들이 이런 식으로 여러 기술의 한계를 고려해 최적화되어 설계된 것이다. 이런 노하우는 강현 특유의 초능적인 직관과 아즈삭의 방대한 연산 능력이 없으면 결코 얻어질 수 없었다. 즉, 인간과 인공지능 사이에서 오랜 시간 작동한 상호작용의 결과물이었다. 기실 인간과 인공지능 사이의 협동성이 최대한의 효율로 발현된 것이었으니 아무리 기술 특허가 공개되어도 그걸 그대로 다루어 우주 기술로 개선하기에는 여러 애로 사항이 꽃피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또한 이미 강현의 다음 계획(우주 식민지)을 짐작한 여러 국가에서는 그걸 따라 잡으려 인력과 예산을 배분하는 것도 벅찼다. 거주형 우주 식민지를 결코 미국에 뒤쳐져서 세우면 안된다. 그러면 정말 우주 패권에 도전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카낙이 출발을 하고 다시 다음 연구 과제에 들어간 강현은 오랜 은사의 방문을 받았다. 한국에서 자신을 교육시키던 천마륵 교수였다. 그도 이제는 나이가 더 들었는지 이마에 주름이 지고 머리에 새치도 많아져 검은 머리의 비율이 더 적어져 있었다. “오래간만이구나.” “교수님은 여전히 정정하시네요.” “늦었지만 결혼 축하한다.” “하하! 감사합니다. 곧 아빠가 돼요.” “오! 그래? 백금 수저를 물고 태어나겠구나.” 우주에 투자를 하겠다는 1조 달러는 아직 반도 쓰지 않았다. 기존의 우주 개발에 사용되던 로켓같은 비싼 소모성 물자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확실히 돈이 많이 든 매스 드라이버가 돈 값은 했다. 거기에 제현 투자 회사를 통해 투자한 1조 달러의 자산은 나날이 그 액수를 불려가고 있었으니 태어날 강현의 아이는 돈 부족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강현은 천 교수의 말에 싱긋히 웃으며 천 교수의 근황을 물었다. “하하! 그동안 어떠셨어요? 다른 교수님들은요?” “이공계 교수는 다 그렇지 않니. 물론 몇 분이 은퇴하시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두 사람은 지난 시간에 대해 쌓인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참, 한 교수가 고맙다고 전해달라더구나.” “한 교수 님이라면.. 아, 그때 제 은사님이 되겠다고 면접보신 분이요?” 강현은 기억을 더듬어 과거 자신의 은사를 뽑기 위해 면접에 나온 두 교수 중 한 사람을 떠올렸다. 은사를 면접보고 뽑겠다는 어린 천재의 패기도 패기였고 면전에서 태양 전지를 전문분야로 하는 교수에게 태양 전지의 개발 여지는 더 이상 남지 않았다고 대놓고 말하는 것도 패기였다. 그때의 에피소드를 알고 있는 천 교수는 쓴 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왜 저에게 고맙다고..” “덕분에 다시 태양 전지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 졌다고 하구나.” “아!” 우주에서 태양 전지보다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에너지 공급처는 없었다. 출력의 제한만 해결된다면 항성이 있는 곳에서 이보다 뛰어난 스팩의 에너지 원은 없다. “그거 다행이네요. 생각해 보니까 그때 제가 많이 치기 어렸던 것 같아요. 뭐든 다 쓸모가 있는데.” 그것이 단순히 치기 어린 행동이었다고 주위에 말하면 모두 목을 잡고 쓰러지겠지만 천마륵 교수는 어렸을 적 지독히도 고집불통이던 강현을(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알고 있었다. “알았으니 다행이다.” 천 교수는 어린 제자의 성숙에 흐뭇하게 웃었다. 그리고 한 참이나 더 대화를 나누더니 미안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아.. 그럼 이제 슬슬 본론을 꺼내야겠구나.” “청탁이죠?” 대번에 핵심을 짚은 제자의 말에 천 교수는 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오직 연구에만 매진해온 그에게 과거의 인연에 기댄 청탁은 그의 원칙에서 벗어나며 또한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무시하기에는 자신을 설득한 그들의 명분이 옳았고 또한 간절했기 때문에 어렵게 승낙을 하고 말았다. “아마 이 시기에 천 교수님께서 청탁을 하러 오신 건 아마 우주 개발에 대해 협력을 구하기 위해서일 가능성이 높을 것 같네요.” 강현의 이어진 말에 천 교수는 한 숨을 내쉬며 또 고개를 끄덕였다. “알다시피 자원이라고는 사람 밖에 없는 나라지 않니. 그래서 소행성대의 자원 개발이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되었단다.” 자원이 사람밖에 없어서 강현 자신이 미국에 온건 가라는 상념이 잠시 떠올랐지만 어차피 지난 일이라 금방 머리속에서 지워버리고 이어진 천교수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한국의 경제 여건 상 국가 홀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가 무척이나 힘들어서 외교적으로 힘을 모아보려고 하지만 그리 쉽지만은 않더구나.” 한국의 우주 개발 역량은 떨어진다. 왜냐면 기초 연구 부분에서 축적해 놓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경향은 쿠데타 사태가 벌어져도 바뀌지 않았다. 하긴 그 나물에 그 밥에서 나물 몇 개만 건져 냈는데 전체적인 맛이 변할 리가 없었다. 천 교수는 계속 한국의 사정을 설명했고 강현은 이를 몇 가지로 정리했다. 예산 부족은 물론이거니와 기술 인력적으로도 수준이 떨어지기 때문에 국제적인 공조에 발을 낄 수가 없는 상황, 그나마 협력을 하자는 나라들은 동남아시아의 고만고만하고 비슷한 기술 수준의 나라뿐이라 우주 개발에 있어서 한국이 얻을 수 있는 이득은 별로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주의 헤게모니를 두고 경쟁이 치열한 우주 개발 선진국에 붙을 수도 없었다. 그들이 얼마나 우주 개발을 얼마나 꽁꽁 싸매고 있는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어쭙잖은 참여 요청은 가차 없이 거절했다. 그 어쭙잖은 요청에 한국이 포함된 것이 문제였다. 한국으로서는 더 제공할 것이 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한국인의 자랑이자 미국의 보물인 강현에게 도움을 청할 수 밖에 없었다. 소행성대의 개발 과정은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하는 일이니 강현에게 약간의 시간이 날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물론 그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한국 정부 관계라면 일단 삐딱하게 보는 강현의 성향을 파악해 그의 은사였던 천마륵 교수에게 청탁을 부탁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정작 중요한 것을 간과했다. “저에게 원하는 건 아마 기술 제공이겠죠?” “그렇지. 네가 참여하기만 한다면 협력국들은 물론 민간 자본도 더 유치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러면 저에게 떨어지는 건 뭔가요?” “우주 개발에서 생기는 이권의 절반을 주기로 했단다.” “참 대단하신 양반들이네요.” 강현은 어이가 없어서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강현은 혼자서 우주 개발을 할 수 있는 역량을 증명했다. 그러나 한국은 그러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권의 절반은 강현의 기여도에 비해 많은 것인가 적은 것인가? “크흠..” 천 교수는 자신이 말해도 억지인 것 같은지 얼굴을 붉혔다. “그래도 같은 동포이지 않니? 이대로라면 한국은 영원히 약소국으로 남게 될 거란다.” “같은 동포인게 중요했다면 미국으로 오지도 않았어요.” 역시 안되나? 천 교수는 한 숨을 내쉬었다. 그 빌어먹을 장관노무 새끼. 황금알을 낳는 오리를 푸대접해서 도망치게 만들어 버렸다. 한 때 강현을 가르쳤던 은사로서 강현의 선택이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섭섭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성적인 논리로 무장한 강현에게 감성에 호소하는 방법은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강현의 고집불통을 잘아는 천 교수는 논리적으로 강현을 설득하지 못한다면 그의 태도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한국에 있는 제현 그룹은 어떻게 할 거니? 투자한 금액이 만만치 않은데..” “제가 지금 돈 걱정하게 생겼나요?” “....” 다시 말문이 막힌 천 교수다. 한국 제현 그룹의 사외 이사 자리에서 물러나고 지분도 나누어준 강현은 그래도 여전히 대주주의 자리에 위치해 있었다. 그에게 성과급을 받은 제현 그룹의 경영진은 강현과의 연결고리가 끊어지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어코 강현을 최대 주주로 남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주식의 가치총액은 강현의 재산에 비하면 모래 한 줌도 안된다. “하아.. 그래도 네 부모님이 태어나고 자란 나라가 아니니. 부디 가여이 여겨 다오.” 순간 강현의 얼굴에서 표정이 굳었다. 그는 그제서야 천 교수가 로비스트로 온 이유를 알았다. 부모님을 죽인 나라. 그런 나라에 강현이 결코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쉬쉬 하고 있는 그 나라의 기득권층은 그럼에도 우주에 대한 탐욕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천 교수를 방패막이로 슬금슬금 간을 보고 있는 것이다. “아아.. 이거 참..” 강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향했다. 따뜻한 햇살이 얼굴을 부드럽게 쓸어내렸으나 강현의 표정은 싸늘했고 천 교수는 그런 표정을 볼 수 없었다. 참으로 기분 더럽게 하는 데는 재주가 좋은 작자들이다. 146화 강현은 그렇게 생각했다. 연구 밖에 모르는 천 교수를 이런 불편한 자리에 밀어넣은 것도 모자라 천 교수가 스스로의 입으로도 말하기 무안한 협상안을 제안하다니 말이다. 강현은 얼굴을 양손으로 얼굴을 문질러 굳은 표정을 풀고 자리에 앉았다. “교수님. 교수님도 아시다시피 한국에서 매스 드라이버를 운용하는 건 무리라는 걸 아시죠?” “그건 국제적인 공조나 민자 유치로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지 않겠니?” “그보다 기술을 제공해 주면 안 팔아먹고 보호할 자신은 있어요?” “그, 그렇지 않겠니?” 천 교수는 더듬거리며 애써 부패한 시스템을 변호했다. 강현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그래서 혈세로 만든 인공 위성을 중국에 팔아 넘겼고요?” KT가 중국의 통신 기업에 전략 물자인 인공 위성을 헐값에 팔아넘겼고 또 그 와중에 KT의 인공 위성 사업을 총괄하던 실무자가 인공 위성을 산 그 중국 통신 기업으로 이직한 일이 있다. 그 전말을 한국의 언론에서는 쉬쉬했지만 강현의 눈을 벗어나진 못했다. “그, 그건..” 강현의 말에 천 교수는 할 말을 잃었다. 정부에서 혈세로 만들어준 인공 위성을 민간 기업인 KT가 멋대로 팔아 넘겼다. 그것도 헐값으로. 정부 차원에서 알고 했다면 심각한 실책이며 KT가 진행하던 계약을 모르고 있었다면 무능하기 짝이 없는 행태였다. 전략 물자가 이웃 나라에 넘어가는 것도 모르고 있는 병신이 어디있냔 말이다. “제가 매스 드라이버를 만들기 위한 기술을 제공해도 정부에는 돈이 없으니 민자 유치를 할테고 그럼 민간 기업이 될텐데 KT처럼 제가 제공한 기술을 팔아먹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잖아요.” 고로 호의를 배풀어도 호구나 병신, 혹은 배신자가 되지 않을 보장이 어디있냐는 질문에 천 교수는 입을 다물었다. 근본적으로 한국 사회를 신뢰할 수 없다는데 어떻게 설득을 해야 하나? 강현은 결코 호구가 아니었다. “하아.. 어떻게 좀 안 되겠니?” “사실 매스 드라이버 같은 우주 진출 기술의 제공은 무리에요. 하지만 차후 단계의 우주 개발에서는 민간 투자 형태로 편의를 봐줄 수는 있어요.” “그게 무슨 말이니?” “한국이 우주 개발을 자체적으로 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우주 개발에 필요한 물자를 하청 받을 수는 있다는 말이죠.” “결국 정부 주도 차원의 우주 개발은 안 되는 구나.” “물론이죠. 고양이에게 생선 맡길 일 있어요?” 강현의 말에 천 교수는 허탈했다. 한국 정부에 대한 강현의 불신은 확고했다. 비단 강현이 불신하는 것은 한국이란 나라의 전반적인 시스템이었다. 이익을 위해서 법조차 왜곡하는 시스템을 신용하는 건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다고 미국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도 불편하다. 한국 주위의 중일러 세 나라는 미국인으로써의 영향력을 사용하기 불편한 요소였다. 그리고 그만한 투자를 해서 얻을 실익도 없었다. 그냥 신경쓰지 않는 것이 편하다. “그럼 언제쯤 우주 개발 다음 단계가 시작되니?” “흐음.. 한 최소 3년은 잡아야 돼요.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우주 시설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 정도는 필요하거든요. 이 이야기는 사실 비밀이니까 아무데도 말하지 마세요.” “알았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싼 비용으로 사람을 궤도에 올려 놓는 기술이 더 중요하게 되니까 미리 관련 기술을 연구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아요..” “그렇게 돼도 매스 드라이버가 있지 않니?” “매스 드라이버로 사람을 우주로 쏘아 올리기 위해서는 개량이 필요해요. 지금은 그냥 빠른 우주 개발을 위해서 로봇 전용으로만 만든 것 뿐이에요. 박사님도 아시다시피 크기가 커지면 공학적인 난이도도 상승하잖아요.” 천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건물을 위성 궤도 높이 만큼 지을 수 없는 이유였다. 지어도 문제다. 무너지면 전 지구적 재앙이 찾아올 것이다. 강현의 말은 이어졌다. “그러니까 그 문제가 해결 될 때까지 전통적으로 검증된 방식이 쓰일거에요.” “로켓 말이냐?” “네.” “흐음..” 천 교수의 안색이 그래도 풀리지는 않았다. 로켓 기술은 군사적으로 전용되기 쉬운 기술 중 하나라 여러 제약이 있는 한국이 개발하기에는 쉽지 않은 물건이었다. “제가 대통령께 한 번 부탁해 보죠. 그걸로 면피는 될거에요.” “끄응. 고맙다.” 천 교수는 자신의 체면을 차려주기 위한 제자의 노력에 무안하기 짝이 없었다. 미국에서 강현의 입김은 무척이나 컸다. 특히 강현의 10억 달러에 재선의 큰 힘이 되어준 아바노 대통령으로선 강현에게 큰 빚을 졌다. 겨우 미사일 개발 완화 조치라면 크게 퉁쳤다고 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미사일 개발 완화 조치로 여러 말들이 많았는데 정치권은 정치권대로 그나마 면피는 할 수 있었지만 우주 개발의 여러 이권을 노린 대기업들에게는 실망스러운 일이었다. 심지어 제현 그룹도 은근히 기대를 할 정도였다. 그래도 자신들을 봐서 도와주지 않을까 기대를 하던 참이었다. 대중은 이제야 강현이 애국을 한다며 헛소리를 지껄였고 언론에서는 간만의 관심거리에 여러 논설을 쏟아냈다. 그러나 파장은 한국 내적인 것 보다 국제적으로 퍼졌다. 역시나 군사 기술로 사용할 수 있는 일이라 일본은 민감하게 반응했고 중국 역시 마찬가지였으며 북한은 대놓고 지랄 발광을 했고 러시아는 유감을 표명했다. 그동안 한국에 로켓 기술을 팔아먹으며(그러면서도 핵심기술을 숨기고) 쏠쏠한 재미를 보았는데 한국의 로켓 기술 개발 역량이 강화된다면 재미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반응에 강현이 일일이 반응할 필요는 없었다. 그건 미국이 할 일이지 자신이 할 일이 아니다. 정작 그가 대응해야 하는 일은 따로 있었다. [강 박사는 한국인인가 미국인인가?] [한국을 위해 영향력을 행사한 강 박사. 도대체 왜?] [역시 의리보다는 피가 진한가?] 미국의 여러 언론사가 비판적인 논조를 슬금슬금 내밀었다. 아즈삭의 보고에 강현은 직감적으로 미국내 자본과의 기득권 다툼이 시작된 것을 알았다. 하긴 참아도 오래 참았을 것이다. 막대한 수익이 예상되는 우주 개발 사업에 타인의 참여를 거부한 강현이 이제는 개발선을 보낼 정도로 가시적인 성과를 냈으니 슬슬 포크를 얹고 싶어 손이 근질근질 할 것이다. 강현이 편해지려면 이런 자본 세력과 타협하면 된다. 그러나 그렇게 된다면 처음의 목적이 훼손된다. 그렇다고 독불장군처럼 굴 수도 없었다. 혼자는 한계가 있었다. 강현에게는 자신의 편이 되줄 세력이 필요했다. 그럼 그의 목적이 대중을 위한 것이니까 대중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일까? 불가능하다. 대중의 지성은 어린아이보다 못하다. 이성적인 판단보다 감성적인 판단에 이끌리며 언론이 던지는 뼈다귀에 달려는 개다. 언론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한 강현은 원하는 방향으로 대중이 원하는 뼈다귀를 던질 수가 없었다. “흐음...” [박사님, 주도적인 세력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자본 그 자체의 특성에 기인한 현상으로 생각됩니다.] “그렇겠지.” 누구도 먼저 나서서 매를 맞고 싶지 않을 것이다. 자정주의 운동으로 인해서 퇴출된 유명인사와 안면이 있는 이들은 더욱 그러할 것이다. “하아.. 결국은 본보기를 보여야 하나?” 본보기를 보일 때 그 본보기는 누구나 인정할 만한 것이어야 했다. ‘상종도 하면 안돼겠다.’라고 생각하게 해야지 ‘흥! 그정도야.’라고 생각하게 하면 실패다. 누구나 상대하기 두려워하는 이를 상대해야 했다. 호랑이를 잡으면 여우는 꼬리를 살랑인다. “흐음. 언론사들 중에 유대인의 입김이 닿지 않은 언론이 있어?” [유대인을 본보기로 삼으실 생각입니까?] “미국을 통해서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니 미국내의 자본 세력을 위축시킬 필요가 있어. 유대 자본이 여러모로 적격이야. 강하지만 치명적인 약점이 있으니까.” 강현은 언론 플레이에는 언론 플레이로 대응하기로 했다. = = = = = 앨리스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무려 세기의 천재와 일대일 인터뷰를 할 수 있게 되다니! “그런데 이번 인터뷰 내용이 뭐야?” 카메라 맨인 샘이 물었다. 앨리스는 인터뷰 내용지를 보더니 대답했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라고 되어 있던데?” 앨리스의 눈이 오늘 아침부터 반짝이던 이유가 있었다. “그런 요즘 이슈에 관한 것도 물어봐도 되겠나?” “한국인 어쩌고 저쩌고? 그거야 왜 그랬는지 확실하게 의문을 해소하는 것이 박사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겠지.” 샘은 엘리스의 견해에 고개를 끄덕였다. “출입증을 주세요.” 연구실 앞에 선 무장 경비원이 삼엄한 분위기를 풍기며 손을 내밀었다. 샘과 앨리스는 NASA에서 발급해준 출입증을 내밀엇다. 경비원은 출입증의 사진과 방문자의 얼굴을 비교해 보고서는 다시 출입증을 경비실 안에 넣었다. 경비실 안에 있던 동료를 타자기를 두드려 출입증에 적시된 보안 레벨을 확인하고 다시 밖으로 내밀었다. “보안등급 5레벨 확인.” 동료의 말에 경비원이 샘과 앨리스에게 주의할 점을 당부했다. 두 사람이 허가된 구역은 응접실 뿐이기 때문에 그 외에는 돌아다니지 말라는 것이다. 심하면 스파이 혐의로 체포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앨리스는 응접실로 향하며 눈을 반짝였다. “들었어? 체포될 수도 있대!” “그야 미국의 과학 기술력을 선도하는 곳이니까 그렇지.” 샘은 앨리스가 눈을 반짝이자 ‘저 스릴을 즐기는 성격 좀 고치면 일등 신붓감일텐데.’라고 속으로 자조했다. 둘의 대화를 짧은 복도를 지나 응접실에 도착해서는 인터뷰 준비를 했다. 샘은 카메라와 조명 장치를 설치했고 앨리스도 도왔다. 인터뷰 시작 전에 준비를 완료해야 했다. 두 사람이 준비를 완료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강현이 응접실로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강현입니다.” “박사님, 안녕하세요. 앨리스 기자입니다. 이쪽은 제 동료인 카메라 맨 샘이에요.” “안녕하세요.” 서로 악수로 반갑게 인사를 한 세 사람은 본격적으로 인터뷰에 들어가기 전에 사전 조율을 시작했다. “박사님. 정말 뭐든지 물어봐도 돼요?” “대답하기 곤란하면 노 코멘트 해도 돼죠?” “물론이에요.” 사전 조율은 금방 끝이 났고 앨리스는 대 만족 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사람들이 가장 궁금한 건 역시 박사님의 능력이 아닐까 생각하는 데요. 박사님께서는 스스로의 능력을 어떻게 평가하세요?” “뭐, 별것 있나요. 남보다 논리적인 사고가 빠르고 기억력이 좋은 것 뿐이죠.” “그것 뿐인가요?” “아! 그리고 저 스스로 신기할 정도로 감이 좋아요. 연구가 난제를 만나면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해결되거든요.” “전 세계 모든 연구자들이 부러워 할만한 능력이군요.” “사실 그것보다는 아즈삭의 도움이 더 크죠.” “그 유명한 최초의 인공지능 말씀인가요?” “네, 아즈삭의 지적 능력이 무척이나 성장해서 연구가 늦어지는 요인들을 대신 처리해 주거든요. 주로 반복 실험이나 데이터 축적, 그리고 시뮬레이션 등을 도맡아서 해주죠.” “그거 참 편리하군요.” 인터뷰는 화기애애하게 진행되었다. 이번에는 우주 개발에 관한 인터뷰로 들어갔다. “저번에 우주 개발을 시작하셨을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거의 독자적으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계시는 데도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147화 “전혀요. NASA의 도움을 많이 받아서 그리 큰 어려움은 없었어요. 역시나 NASA 더군요. 혼자서 했다면 시행착오로 인해서 계획이 5년은 늦어졌을 거에요.” “오호. 박사님도 어려운 문제가 있군요.” “저도 몸이 하나니까요.” “혹시 아바노 선거 진영에 10억을 쾌척한 건 그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이었나요?” 앨리스의 질문에 카메라로 강현을 찍던 샘은 눈앞을 가렸다. 또 시작이다. “아아, 뭐 그렇다고 할 수 있죠. 딱히 어렵다기 보다는 귀찮은 일이었다고나 할까요?” “그게 뭔가요?” “기껏 자비를 들여 우주 개발을 시작했는데 거기에 허락도 없이 포크를 들이미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아! 어느 논평에서 네바다 프로젝트 민자 유치 법안을 무산시키기 위한 선거 기부라는 말이 있는데 사실이었나요?” “그렇죠. 사실 경고만하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효과가 훨씬 좋더군요.” 특종이다! 특종이야! 앨리스의 눈이 더욱 반짝였다. 절로 기분 좋은 눈웃음이 지어졌다. “혹시 그 포크를 들이밀려고 했던 이들이 누군지 아시나요?” “글쎄요. 딱히 누군가를 지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요. 모두 알다시피 미국은 자본주의 사회고 로비가 합법화되어 있잖아요. 그러니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서 남의 접시에 포크를 들이밀려고 하는 건 자본주의 환경에서 이해 못할 바는 아니죠.” “그러면 불만이 없지는 않으시겠네요.” “아뇨. 없어요. 저도 똑같이 돈으로 처리했으니까요. 미국에서는 당연한 일이 아니었던가요?” 그런 것도 모르냐는 표정에 앨리스는 어색하게 웃었다. 강현의 발언은 금권주의가 이미 공공연하다고 말하는 것과 같았다. 금권주의는 민주주의와 공존할 수 없다. 앨리스의 감이 뭔가를 느끼기 시작했다. 특종이기는 특종인데.. 뭔가 심상찮다. 호기심으로 위기에 위기를 겪으며 발달한 촉이 뭔가를 더듬었다. “흐음. 그럼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조금 민감한 질문인데 괜찮으시겠어요?” “물론이죠. 저는 살면서 한 번도 제 양심에 거리낀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이번에 한국과 미국 사이의 미사일 개발 완화 조치에...” 앨리스는 질문을 했고 강현은 답했다. 앨리스는 흥분해서 더 질문했고 강현은 답했다. 그리고 그 장면을 찍는 샘의 얼굴을 점점 새파랗게 질려갔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가는 앨리스의 코에서는 흥겨운 콧노래가 흘러 나왔고 샘의 입에서는 걱정의 한 숨이 새어 나왔다. “하아... 이거 고래 싸움에 끼인 새우 꼴 나는 게 아닐까?” “호호호! 괜찮아, 괜찮아.” “괜찮긴 뭐가?” “괜찮아. 다 잘 될거야.” “도대체 무슨 근거로?” “여자의 감?” 천연덕스런 대답에 샘은 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정말 대책없는 여자다. 반한 자신이 병신이지.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꽁깍지는 벗겨지지 않았다. 어쨌든 녹화 영상은 방송국으로 넘어갔고 곧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미사일 개발 완화 조치에 박사님의 영향력이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인가요?] [네.] [왜죠?] [한국 정부가 교활하게도 제 과거 은사님을 로비스트로 보내왔더군요. 저에게 우주 개발에 필요한 기술을 얻으려고요.] [그래서요?] [저는 한국의 기술 보안 능력을 믿지 못해서 거절했어요. 그래도 제 은사님의 체면이 구겨지는 걸 차마 볼 수가 없어서 연줄을 이용해서 정계에 부탁을 좀 했습니다.] [만일 한국의 기술 보안이 철저하다면 기술을 제공하셨을까요?] [저는 미국인이라 미국의 국익을 생각해서 안 줬을 겁니다.] [한국인이신데도요?] [정확히는 한국 출신이죠. 저는 미국 국적을 얻고 미국인으로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사회 환경에서 성공했고요. 그러니 미국과의 의리를 지켜야 하지 않을까요?] [그럼 애당초 미사일 개발 완화도 하지 않으셔야 하지 않을까요?] [제가 미국의 국력 신장에 기여한 정도를 생각하면 그 정도 영향력은 행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외교부에서는 동아시아 외교에 쓸 카드를 하나 잃었다고 볼멘 소리를 하겠지만 솔직히 그 정도는 조커도 아니잖아요. 겨우 원 페어 정도? 그동안 제가 스트레이트 플러쉬는 만들어 줬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그럴 거구요.] [하긴 박사님께서 개발하신 기술의 파급력이 더 컸죠. 그래도 언론에서는 박사님의 행동을 부적절한 행동이라며 지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어이가 없죠. 그렇게 논조를 만드는 언론사들이 AP 통신이나 블룸버그 같은 유대인이 장악한 언론이니 더 어처구니가 없죠.] [무슨 말씀이신가요?] [미국의 대(對) 이스라엘 정책으로 미국이 얼마나 욕을 먹고 외교적으로 손해를 보는지 아세요? 유대인들이 네오콘부터 시작해서 정계에 방대한 로비를 펼치며 지속적으로 미국에 손해를 끼치고 있는데 겨우 미사일 개발 완화에 영향을 끼쳤다고 저를 까내리니 제 입장에서는 이해가 안되죠. 한국 속담으론 이런 경우에 똥 묻은 개가 먼지 묻은 개를 더럽다고 욕한다라고 합니다.] [아, 그, 그러시군요.] [그래서 제가 다른 언론과의 인터뷰를 모두 거절하고 드러지 리포트의 인터뷰 요청만 허락한 겁니다. 적어도 드러지 리포트는 유대 자본에서 자유로운 것 같아서요. 드러지 리포트를 설립한 드러지 씨는 유대인도 아닐 뿐더러 스스로를 주류 언론이 쓰기하기 싫어하는 기사를 폭로하는 시민 저널리스트를 자칭하시잖아요. 그에 비해서 유대계 자본이 잠식한 주류 언론 쪽은 저를 마녀 사냥하기로 완전히 결심한 것 같으니까 공정성을 믿을 수가 없어요.] [도대체 그들이 왜 그럴까요?] [뭐 뻔하죠. 소행성대 개발선인 카낙이 출발하니 저를 압박해서 지분을 얻고 싶어 안달이 난 거죠. 여론이 일단 돌아서면 정치권도 돌아서게 만들 수 있거든요.] [우주 개발의 이권을 둔 음모라 이거군요.] [음모라고 할 것 까지야.. 어차피 힘있는 사람들의 행동 패턴은 뻔하거든요. 좀 더 큰 권력을 확보하기 위해서 가진 수단을 총 동원하죠. 자본주의에서는 돈이 곧 권력이니 더 큰 수익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도 당연하죠.]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하실 건가요?] [아마 이 방송이 나가는 것에 맞추어 각 언론사에 명예 훼손으로 소송이 걸릴 겁니다. 소송 액수를 한 100억 달러 정도로 할까요?] [차, 참 곤란하겠군요.] [그러니까 왜 쓸데없이 전후 사정도 안 따지고 미국인인 저를 한국인이라는 딱지를 찍어 영원한 이방인으로 날조하려고 드냐고요. 언론은 그 영향력 만큼 책임을 져야 하는 거 아닙니까?] [맞습니다. 그래도 그렇게까지 하면 곤란하실텐데요..] [곤란하긴 하겠지만 가만히 있으면 저를 만만하게 볼 테니까 가만히 있을 수는 업죠.] [그럼 행동에 나서실 건가요?] [그게 참 곤란한 게 저도 영향력이 크고 유대 자본도 영향력이 크잖아요. 그러니까 서로 갈등이 생기면 큰 혼란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미국에 막대한 손해를 끼치는 유대 자본을 뽑아버리고 싶지만 사실 그들이 미국 경제에 끼치는 긍정적인 영향을 고려하면 망설여지죠. 마음대로 행동했다가는 미국 경제 질서가 교란되고 혼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적절한 방법이 없는 이상 두고 보는 수 밖에 없죠.] [두고 본다라.. 이 방송을 본 유대 자본가들의 간담이 서늘하겠군요.] [간담이 서늘하긴요. 그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데..] 약 30분 정도 되는 긴 인터뷰는 드러지 리포트 사이트에 올라왔고 트래픽 초과로 서버가 다운되는 사태까지 일어났다. 인터넷 여론은 강현에게 무척이나 호의적이었다. 특히 반 유대 감정적인 이들은 강현의 인터뷰 내용을 편집해서 여기저기에 나르기 시작했다. [그래! 왜 우리 미국이 욕먹으면서 이스라엘의 뒤를 봐줘야 되는데?] [다 유대인들의 로비 때문이잖아.] [더러운 새끼들.] [나 이제부터 CNN 안 보기로 함.] [하긴 거기도 워너 브라더스꺼지?] [강현의 말처럼 미국의 국익에 별 도움도 안 되는 새끼들이잖아.] [그래도 영화는 돈 많이 버는데..] [돈 없으면 영화도 못 찍는 영화계로 만들었지.] 그렇게 유대인을 슬그머니 언론 플레이란 진흙탕에 끌어들인 강현은 다음 계획을 시작했다. 킬덤을 통해서 인터뷰에서 말했던 대로 자신에게 비판적인 견해를 생성한 언론사들을 고소했던 것이다. 물론 다른 언론사를 놔두고 유대계 자본이 잠식한 언론만 그랬다. 미국의 유대인 단체들은 벌컥 했다. 강현이 미쳤나? 아무리 자신들이 빌미를 제공했다고 해고 이런 식으로 노골적으로 나올 줄은 몰랐다. 자신들과 완전히 척지는 건 분명히 손해가 막심할터인데 말이다. “아니면 유대인 전체를 상대할 자신이 있다는 거겠지..” 아담은 인상을 찌뿌렸다. 생각보다 강현의 언론 플레이는 매우 뼈아팠다. 유대계의 정계 로비로 인해 미국이 중동 외교에서 지속적인 손해를 보았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많은 학자들이 그것을 오래 전부터 비판해 왔지만 돈의 힘으로 모두 막았다. 언론은 사주가 원하지 않는 기사를 내보낼 수 없었다. 그렇게 알게 모르게 쌓인 유대인에 대한 불만과 혐오.. 그것이 강현이 공론화 시켜버렸다. 반 유대 세력이 강현을 중심으로 힘을 모으는 낌새가 있었고 얼마전 아랍 에미리트의 실세 자이드 빈 알막툼이 비밀리에 미국에 입국했다는 첩보도 입수했다. 아랍 에미리트가 비록 이슬람 국가라고 하지만 미국과의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 자본가는 인종과 종교를 초월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입장이라 경쟁자이면서 동업자 관계로 서로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도록 충돌을 경원시 했다. 그러나 언제나 서로는 서로에게 맛좋은 먹잇감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며 미국 내 유대 세력을 손해없이 위축시킬 수 있다면 기꺼이 그리할 것임을 아담은 확신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대처 방법은? 일단 유대인 비난 여론을 물타기해야 한다. 더 자극적인 기사로 대중의 관심을 돌려야 한다. 그러긴 매우 쉽다. 미국 주류 언론들은 거의다 유대 자본의 영향을 받으니까.. 강현과 이야기를 하는건 그 뒤에 일이었다. 타협을 하든지, 아니면 정말로 완전히 뭉게든지.. 이번 일 전이었다면 이렇게 극단적으로 생각하지는 않겠지만 강현이 찔러들어온 것은 그만큼 유대계 미국인의 아픈 점이었다. 그로인한 주류 유대인들의 분노에서 아담 역시 예외일 수는 없었다. 아담은 곧 친우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신보다 언론에 더 밀접한 연줄이 있는 그들이 제일 적합했다. [인종 증오 범죄 확산!] [피해자는 20대의 유대계 여성!] [참혹한 인종 증오의 단면!] 언론 플레이를 할 때 가장 피해야 하는 점은 상대와 동급으로 노는 것이다. 강현이 유대인의 약점을 파고들었다고 강현의 약점을 파고드는 것은 하책이다. 유대인이 나쁘다 아니다, 혹은 강현이 나쁘다 아니다로 몰고 가는 것이 아니라, 그걸 이 둘 사안을 모두 포함하는 관점으로 접근시켜야 한다. 대중은 언제나 멍청한 건 아니기 때문에 강현을 공격하면 더 한 반발로 유대인에 대한 반감이 생길 것이다. 누르려다가 튀어오른다는 말이 여기에 해당된다. 그래서 언론은 영리하게 ‘인종 주의’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미국에서 인종주의는 심각한 모욕으로 유대인에 대한 증오를 억누르기에 최적의 요소였다. 대중의 내면에서 올라오려는 감정이 ‘금기’라는 것을 깨닫게 만들어 함부로 말을 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거기에 젊은 여성의 희생을 덧붙여 동정 여론을 일으키면 자물쇠까지 채워지는 것이다. ============================ 작품 후기 ============================ 매너리즘에 빠진 것 같습니다.ㅠㅠ 148화 그렇게 되면 강현에게 미국을 배신한 한국인이라는 이미지를 덧씌우는 작업이 불가능해지지만 그런 식으로 언론 플레이를 하면 자신들이 더 큰 피해를 입으니 어쩔 수 없었다. 자이드 빈 알막툼이 강현과 연락을 했는지 안했는지, 했다면 어떤 밀약을 맺었는지 알 수 없는 이상 더 이상의 충돌은 무리였다. 일단 그들의 노력에 언론의 촛점이 강현에게서 벗어나 사태는 일단락 되는 듯 싶었다. 그러나.. [CNN, 폭스 TV, 블룸버그, AP 통신에 각 100억 달러의 손해배상 소송!] [왜 강현은 그들을 공격하나?] [유대인에 대한 증오? 한국인인 그가 왜?] 강현이 다시 진흙탕에 끌어들였다. 백억 달러 규소의 손해배상 소송을 당한 각 언론이 화들짝 놀라 강현에 대한 공세를 시작했다. 사람 셋이 모이면 없는 호랑이도 만들어 낸다. 만일 강현이 평범한 이였다면 이들 언론과 금세 타협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강현은 평범하지도 않아도 평판에 크게 신경쓰지도 않았다. 오히려 일부러 구설수에 올랐다. 도덕적인 성인군자보다는 제멋대로 구는 폭군이 행동하기 쉬운 법. 대중의 지지가 필요없는 강현은 명예보다 실리를 택했고 그런 점을 간과한 주류 언론은 자신들의 힘과 협동성을 과신했으며 언론 플레이로 강현을 압박했다. 소송을 당한 언론은 강현을 인종주의자로 몰아갔다. 그리고 그에 대한 카운터 펀치는 타임지에서 가장 먼저 확인했다. [주가가 심상치 않다!] 주가가 치솟기 시작했다. 특히 언론과 영화 배급사 쪽 주식들이 더 많이 올랐다. 이상한 일이었다. 소행성대 개발의 성공에 배팅한 투자자들로 인해서 금속 가공과 관련 제조업 분야는 몰라도 미디어 관련 분야의 주식이 뜰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을 끄지 않고 있었던 이들은, 특히 고급정보를 접하고 있던 이들은 강현이 행동을 시작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당사자인 언론사들도 이를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그들 생각보다 사정은 더 나빴다. 자본이 들어오는 곳이 아랍 쪽이었던 것이다. 한국에서 강현이 벌인 일을 알고 있는 이들은 강현이 이들 회사의 경영자에게 책임을 묻기 위한 직접적인 응징이라고 생각했다. 아랍 자본 쪽과 어떤 말이 오갔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갑자기 아랍이 이런 식으로 실익이 없는 일을 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에도 언론사주들은 (처음에는 호들갑을 떨었지만) 우호 지분을 확인하고는 그다지 크게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든든한 백기사들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주 회사의 지분이 든든하게 버티고 있었다. 그래서 아랍 쪽에서 부지런히 돈 낭비를 하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주가를 올려주니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잠시뿐, 곧 소액주주 중에 상당한 인원이 정체도 모르는 이에게 위임장을 넘겼다는 첩보를 입수하고는 비상 태세에 들어갔다. 유보금을 풀어 주식과 우호 지분을 더 확보하려고 소액주주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었지만 오히려 더 경각심을 받았다. 반응이 시큰둥 했기 때문이다. 당연한 일이다. 이미지가 좋은 제현 투자 회사 직원이 일일이 약소하나마 선물을 들고 찾아와 직접 부탁을 하는 것과 전화로만 일을 처리하는 것은 차원이 달랐다. 물론 고된 일이었지만 그동안 미국 제현 그룹이 해왔던 ‘인재투자’가 여기에서 빛을 보았다. 적당한 보수로도 열성적으로 위임장을 확보하는 임시 고용인들 덕분에 생각보다 훨씬 빨리 일처리가 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를 위한 주주 명단은 아즈삭이 확보했다. 나날이 긴장이 커지고 긴장이 커지는 것 만큼 주가도 지속적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정말로 경영권 싸움이 시작되는지 투자자들이 눈치를 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경영권 확보를 위해서 돈쓰기를 아까워하지 않았던 강현의 지난 일을 기억하고 일확천금의 꿈에 부풀어 있었다. 한편, 강현과 주류 언론과의 긴장감이 상승하자 유대인과 강현의 사이에 낀 헨델 회장은 안타깝기 그지 없었다. 좋은 동반자 관계로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사태가 너무 커져버렸다. 일단 그는 강현부터 설득하기로 했다. 왜냐면 그는 혼자고 그 반대편에는 이해관계가 얽힌 많은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며 헨델 회장의 혀는 하나 뿐이었기 때문이다. “강 박사. 왜 이러나?” 말을 하면서도 면목이 없었다. 이런 식으로 이 엄청난 인재와 척을 지는 것은 장기적으로 전혀 좋지 않았다. 그는 처음부터 강현에게 손대는 것을 말려왔었다. 물론 우주의 막대한 이권에 눈이 먼 지인들을 강제할 수단은 없었다. “왜 이러긴요. 아시면서..” “그냥 자극적인 이슈를 쫓는 언론이 그런 것일세. 어여쁘게 여겨주게나.” “하지만 악의가 담겼죠. 부정하지는 마세요. 단 한 명도 저에게 사과 하러온 사람이 없었으니까죠.” “이러면 자네만 손해야.” “잠재적 적대 세력을 솎아 낸다면 남는 장사죠.” 강현의 표정은 담담했다. 불쾌감이나 적의 따위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 모습에 헨델 회장의 얼굴이 굳었다. 단순히 기분이 나빠서 이렇게 크게 일을 벌이는 것 같지는 않았다. “진의가 뭔가?” “흐음.. 그냥 애국심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안될까요?” “애국심?” 헨델 회장의 표정에 어이없음이 그대로 드러났다. 강현에게 애국심이라고? 글쎄.. 그가 해 온 행동이 미국의 국익에 지대한 이익을 끼친 것은 맞지만 그와 개인적으로 대화를 나누면 전혀 그런 것 같지 않다. 자신의 연구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 같은 지독한 연구광이 바로 강현이라는 사람이다. 그런데 애국심? “솔직히 그동안 이스라엘로 미국이 많은 손해를 봤잖아요. 염치가 있으면 이쯤 선택해야 되는 것이 아닐까요?” “무엇을?” “이스라엘인이냐 아니면 미국인이냐.” “....” 시오니스트인 헨델은 입을 열지 못했다. “미국은 이스라엘을 지원한다고 중동에서 깊은 증오심을 얻었어요. 이는 미국 위주의 헤게모니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 그렇지 않네.” “왜죠?” “그건 미국이기 때문이지. 다양한 민족, 다양한 문화는 필연적으로 갈등을 낳지. 대국이 침략당해 무너진 적 있나? 천만에. 내부로부터의 붕괴로 망가졌지.” “그거랑 이스라엘이랑 무슨 상관이죠?” “미국은 다민족 국가일세. 내부에 갈등도 심하고..” “내부의 단합을 위해 적이 필요하다?” “그렇네.” 어이없는 말에 강현은 피식 웃었다. 그럼, 호주는? 캐나다는? 그들도 미국처럼 이민자들이 세운 나라다. 하지만 그들이 적을 만들었나? 헨델의 말은 위정자의 편리한 핑계일 뿐이다. 대중에게 국가의 모순을 인지시키고 설득해 현명하고 온건한 해결책을 찾는 것보다 관심을 돌릴 일을 만들어 주는 것이 더 간편하다. 묻혀버린 사건과 이슈들은 대부분 썩어서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비록 너무 많이 그런 방법을 사용하면 썩은 내가 진동하겠지만 강현은 그런 방법의 효율성과 편리성을 부정하지 않았다. 미국 내부의 갈등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그 문제는 너무나 많은 문제들이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문제다. 빈부격차, 사회문제, 계층갈등. 어느 것 하나 풀기 힘든 문제가 정치 경제적으로 밀접한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에 해결하기가 극도로 난해하다. 이는 단순히 기득권을 깔아뭉갠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기득권에게 희생을 요구하기에는 그들이 그렇게 악하지도 않았고 잘못을 저지르지도 않았다. 그러니 민감한 문제는 삭혀서 없애버리는 것도 미국 입장에서 필요하기도 했다. 국익 앞에서 개인의 권리는 종종 무시된다. 강현은 미국에게 적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대중적으로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실제로 전쟁으로 자신감을 얻었다는 (멍청하고 덜떨어진) 이들도 있다. 그래서 일단 헨델 회장의 의견에 동의하는 것으로 전제를 깔았다. “적이 필요하다는 발상에는 동의하죠. 하지만 회장님의 사고는 편협해요.” “편협?” “왜 굳이 특정 민족, 특정 국가를 적으로 삼아야하죠?” “?” 어리둥절한 헨델의 표정에 강현은 손가락으로 천장을 가리켰다. “미국은 이제 우주를 정복할 겁니다. 좁은 지구에 얽매여 투닥거리는 건 낭비에요. 이젠 우주가 적입니다.” 헨델은 강현의 말에 표정이 굳었다. 적이 필요하다면 만들면 된다는 발상. 그리고 거기에 이스라엘의 필요성에 의해 이슬람권을 잠재적 적군으로 만드는 이해관계가 일치했다. 하지만 미국 입장에서 보자. 우주에 진출하게 된다면 이스라엘에 연연하는 것이 이득인가? 헨델 회장은 억지로 입을 열었다. “동의하네. 하지만 자네가 누구의 투자도 받지 않는 게 문제가 아닌가?” “필요 없으니까요. 악질 고리 대금 수법 중 하나가 원치 않는 대출을 해주고는 높은 이자를 받는 거 아닌가요?” “....” 반박할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헨델 회장님께서 남의 밥그릇에 침 흘리지 말고 자기네들 밥그릇을 풍성하게 할 생각을 먼저하라고 전해주면 안될까요?” “하아..” 헨델 회장은 한 숨을 내쉬었다. 언제나 냉정하고 자신감 넘치는 지인들의 모습이 떠오른 것이다. 그들을 설득할 자신이 없었다. 강현은 헨델 회장의 지친 기색을 이해했다. 그가 자신과 유대인 자본가들과의 갈등을 막기 위해 여러모로 힘써준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노력은 물거품에 불과했다. 혹시나 하던 강현의 부질없는 기대 역시 물거품이 되어 날아갔다. 이미 저들이 이빨을 드러낸 이상, 강현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헨델 회장에게는 미안하지만 저들을 희생량으로 삼아야겠다. 그리고 그 이빨은 트로피로 공개될 것이다. 그러면 자신을 건들고 싶은 사람들은 다시 한 번 고민하겠지.. “정말 타협할 생각이 없나?” “제가 뭘 잘못했다고 양보를 해야하죠?” 강현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헨델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하아.. 나는.. 더 이상 이 일에 끼고 싶지 않다네..” “다행이네요. 누군가와의 친분이 깨지는 건 참 서글픈 일이거든요.” “... 지금이라도 생각을 바꿀 수는 없겠나?” “경우도 없고, 염치도 없는 작자들과 타협할 생각은 없습니다.” “많은 손해를 볼걸세.” “금전적인 손해는 신경 안써요.” 그래, 이런 남자였지.. 헨델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돌아갔다. 가지고 있는 돈을 모두 날려도 신경쓰지 않는 사람이 바로 강현이다. 돈의 가치를 중요시 여기는 자들과 애시당초 섞일 수 없는 건지도 모른다. 헨델은 이번 일에서 중립을 지키기로 했다. 헨델 회장이 돌아가고 강현은 일의 진행 상황을 확인했다. “아즈삭. 작업은 어디까지 진행됐어?” [우호 주식은 약 35% 확보했습니다만 시나리오 A를 진행하기에는 부족합니다.] “쯧.” 역시 만만한 이들이 아니다. 쉽게 쉽게 가줬으면 좋았을 것을.. “그럼 시나리오 B를 진행해야지. 아! 자이드 씨에게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연락해.” [네, 박사님.] 시나리오 A는 최대한 신속하게 주주를 동원해서 주류 언론의 사주를 교체하는 방법이다. 아랍의 거물인 자이드 빈 알막툼은 이를 위해서 자금을 지원했다. 그는 강현으로부터 건방진 유대인들에게 한 방 먹이는 데에 손을 보태어 달라는 요청에 기꺼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국 주류 방송에 터번 두른 앵커 한 명쯤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149화 그러나 소액 주주들의 위임장을 저들의 우호 지분 만큼 확보하는데 실패하면서 시나리오는 B에 접어들었다. 시나리오 B는 시나리오 A에 훨씬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방법이다. 자세히 설명하면 저들이 정계에 로비를 하는 것처럼 자신도 로비를 하는 것이다. 로비의 일차 목적은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과의 관계를 정치적으로 재고시키는 것이다.. 킬덤이라면 충분히 이 역할을 수행할 로비스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미국이 로비가 합법적인 나라라는 것이 이럴 때 매우 큰 도움이 되었다. 이 모든 시나리오의 최종 목적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대중 사이에 공론화 시키고 그로 인해 유대 자본이 섣불리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 팔다리 중 한쪽을 찢어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그에 버금가는 자본 세력들 중 몇을 회유하여 계약 사냥개로 해놨다. 계약금은 계약금대로 치루기로 했고 포상은 그 찢어낸 유대 자본의 (살덩이 달린) 사리로 해놨으니 귀가 솔깃한 이들은 강현의 제안을 수용했다. 물론 시나리오의 성패와 그 결과는 강현도 섣불리 예상할 수는 없으나 미국을 주무르는 유대 자본의 기를 한 풀 꺾을 수 있다는 건 확실했다. 확실히 미국-이스라엘의 비정상적 관계는 미국을 주무르는 유대인들의 유일한 약점이자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황급하게 언론 플레이로 강현의 인터뷰를 무마한 것을 보면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인터뷰를 통한 언론 플레이로 한 번 흔드는 것도 실패였고 그들이 지배하는 언론을 트로피 삼아 빼앗아 버리는 계획도 지지부진 했으니 이제는 정치적으로 흔들 때가 되었다. 물론 시나리오 B에 접어 들었다고 앞의 방법들을 다 멈춘 것이 아니다. 단지 그냥 밀고 나가는 것은 무리가 있기 때문에 다른 시나리오의 도입으로 기회를 노리를 것 뿐이다. 비록 미 정치권에 유대 자본의 입김이 강하다고 하지만 강현은 정치권에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그리 어렵진 않을 거라고 생각햇다. 정치가들 중에서도 유대 자본의 돈을 먹어 입을 다물고는 있지만 내심 이스라엘 때문에 미국이 손해를 보는 것에 불만을 품은 이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이들을 주축으로 차근차근 이해관계가 다른 이들을 포섭하면 된다. 물론 이때 동원할 자금줄은 다양했다. 아랍, 러시아, 화교, 일본의 자본 등 기꺼이 유대 자본 사냥에 동참한 이들은 세계적 1등인 유대 자본을 끌어내리기 위해서 적절한 수준으로 협조할 것이다. 그러기 위한 밑 작업은 이미 끝냈고 약조도 받아 놨다.(아즈삭의 정보력은 가히 대단했다.) “박사님. 이 친구를 소개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사울이라고 합니다.” 킬덤은 시나리오 B에 들어가기 위한 로비스트로 적절한 인재를 찾아내 강현에게 소개시켰다. “반갑습니다. 강현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대화를 나누기 전에 먼저 신상 정보부터 확인하겠습니다. 괜찮겠죠?” “물론입니다.” “아즈삭.” 갈색머리의 백인 신사를 앞에 둔 강현은 그의 신상 정보를 아즈삭에게 물었다. 킬덤에게서 미리 서류는 받았지만 그걸 다 일일이 읽는다면 잠잘 시간도 없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모든 것을 명쾌하고 신속하게 분석해고 정리해주는 아즈삭은 그의 둘도 없는 보물이었다. 이번에도 역시 아즈삭은 서류의 지엽적인 내용을 간추리고 핵심만 말했다. [그의 경력에 결격 사유는 없으나 유대인입니다.] “흐음... 반 이스라엘 로비에 유대인이라.. 자신이 지금 무슨 짓을 하려는 지 알고는 있어요?” “물론입니다. 유대인의 양심을 찾으려는 행동이죠.” “유대인의 양심이라..” 강현은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핀트가 맞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강현이 원하는 것은 단순한 응징일 뿐이다. 저들의 세력이 강성해서 일이 복잡할 뿐이었다. 그런데 유대인의 양심? 팔레스타인 학살을 저지르는 주류 유대인 세력과 이에 반대하는 비주류 유대인 세력간의 갈등이 가시화된다? “저는 유대인들 사이의 분열을 획책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습니까?” “이해가 안 가는군요. 사울 씨가 반 이스라엘 로비에 끼어드는 것 자체가 유대인 입장에서는 배신 행위 아닌가요?” “배신자는 지금 이스라엘의 지도부입니다. 그들은 홀로코스트의 희생자들을 이용해 이스라엘을 건설했고 그들의 부를 이용해서 미국에서의 기반을 닦았습니다. 저는 홀로코스트를 겪은 부모님으로부터 그들의 만행과 이중적인 태도를 똑똑히 알고 있습니다.” 유럽의 유대인들을 희생시켜 국제적인 동정여론을 얻고 가족을 살리기 위해 전재산이라고 팔고자 하는 동포들의 절박함을 이용해 부를 쌓았다. 현재 이스라엘을 이끄는 지도자라고 하는 이들은 다 그러한 계통이었다. “흐음..” 이스라엘의 치부를 들춰내 유대인을 분열 시킨다? 나쁘지 않는 발상이지만 구설수에 오르기도 쉬운 일이었다. ‘강현이 유대인들을 분열시키려한다!’ 이런 선동하나만으로도 강현이 하려는 일에 큰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 미국-이스라엘 관계의 비정상성에 관한 이슈를 물타기하기엔 최고의 이슈였다. 또한 유대인 내부의 모순으로 일어난 갈등이라고 하면 아랍 자본이나 화교 자본이 끼어드는데 눈치가 보일 수도 있었다. 강현의 입장에서는 차라리 유대 자본을 싸그리 모아서 한 번에 대적하는 것이 편했다. 뒷처리도 깔끔하고 말이다. “죄송하지만 이 일에는 적합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저는 유대인들 사이에 내분을 만들고 싶은 것이 아니라 부당한 언론 권력을 휘둘러 저를 적대시한 이들에게 징계를 내리고 싶을 뿐입니다.” 강현의 말에 사울은 실망의 표정을 지었다. 킬덤 역시 고용주를 실망시켰다는 생각에 얼굴이 어두워졌다. 둘이 나가려는데 강현이 킬덤을 불렀다. “킬덤 씨는 잠시만..” “네.” 사울을 밖으로 내보낸 강현은 킬덤과 이야기를 시작했다. “정말 믿을 수 있는 사람인가요?” “그건 확실합니다.” “하지만 아직 유대인의 분열은 시기적으로 맞지 않아요.” “그럼요?” “유대인 분열이라는 발상은 적어도 크게 한 방 먹이고 나서야 먹혀들거에요. 그전에는 오히려 저들의 단합을 결속 시킬 각성제가 될 뿐이죠.” “그럼..” “일단 사전 작업을 미리 해두는 것도 나쁘지는 않죠. 유대인들이 다 돈에 미친 건 아닐 거 아닙니까.” “알겠습니다.” 강현의 말에 킬덤의 표정은 한 결 가벼워졌다. “그리고 인종차별은 제가 싫어하는 거 아시죠?” “네.” “유대 자본을 공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들이 가진 언론 조작 능력만 확실하게 무력화 시키는 것이 전략적인 목표입니다. 더 나아갈 수도 있지만 그건 상황을 봐서 조절할 일이고, 이 근본 목표는 이번에 확실하게 성취해야 합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킬덤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말하지만 인종차별은 안돼요.” “네.” 강현이 말하는 것은 제현 투자 회사 내부에서 일어나는 반 유대정서를 없애라는 말이었다. 이렇게 두 번이나 강조를 하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제현 투자 회사에 강현의 입김이 강하게 서려있기 때문에 강현을 공격하는 유대인들에 대한 반감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강현의 목표는 명확하다. 인종주의를 수단으로 무고한 유대인들을 방패삼아 그 뒤에 숨은 이들이 강현의 목표였다. 유대인이라고 계층이 없는 것이 아니다. 지도층과 피지도층으로 갈려져 있고 유대인의 힘은 바로 이 지도층에서 나온다. 즉, 불필요하게 모든 유대인들을 상대로 힘을 쓸 필요가 없다. 또한 유대 자본으로 상징되는 지도층의 숨통을 끊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날카로운 발톱을 뽑는 것이 목적이다. 왜 완전히 유대 자본의 숨통을 끊을 발상을 하지 않았을까? 그건 적의 숨통을 끊으려면 자신의 숨통 역시 내놓을 각오를 해야하는 자연의 섭리 때문이다. 제 아무리 육식동물이라고 해도 사냥에 성공할 확률은 실패한 확률보다 작고 사냥하다가 상처입어 죽을 확률도 높다. 연구하고 만들고 싶은 것이 많은 강현은 그들과 싸우다가 죽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러기 위해서 반 유대주의를 기치로 행동하면 안된다. 역설적으로 이를 이용하는 것은 전술적으로 필요하지만 그에 파묻혀 처음의 목적을 잃으면 안된다. 탐욕스러운 자들이 감히 귀찮게 하지 못하게 하는 것. 유대 자본의 날카로운 발톱 중 하나인 주류 언론을 빼앗아 버리면 충분하지 않을까? 언론이 안되면 영화계도 가능하고.. 아니면 에너지 시장도 괜찮다. 식량은 헨델 때문에 손대지 않기로 했다. 중립을 선언한 사람을 괜히 끌어들일 필요는 없었다. = = = = = [아담, 미안하네. 나로서는 그들과 강 박사를 설득할 수 없었네.] “그런가?” [충돌은 필연적이야. 대비해야 할거야.] “언론을 내놓는다면?” [거기서 끝나겠지만 어디 내놓을 사람들인가?] “그럴 리 없겠지.” 괴벨스의 선동 전략은 나치와 비밀 협약을 맺은 당시 유대 지도부를 매료시켰다. ‘바로 이거다!’ 인구가 적은 유대인이 어떻게 스스로를 보호하고 다른 민족으로 이루어진 대중을 조종할 수 있는가? 인간은 감성적인 존재다. 의식보다 무의식의 영역이 더 크다. 자신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고민하는 이는 적고 고민하더라고 답을 찾는 사람은 더 적다. 매스 미디어로 이루어진 이미지는 인간의 사고와 판단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며 이는 매스 미디어에 노출된 객체의 진실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케네디 대통령이 당선될 수 있었던 것도 TV 토론회에서 잡티 하나 없이 건강하게 보이도록 화장을 한 것이 주효했다. 이렇듯 미디어의 힘이 대중에게 작용하는 힘은 막강하기에 유대 자본은 할리우드를 선점하고 홀로코스트를 영화화하여 유대인에게 약자, 인종증오의 희생량이라는 이미지를 덧씌웠다. 그리고 그 가해자로 나치와 독일에 모든 죄를 뒤집어 씌웠다. 사실 그 모든 죄는 나치에 동조한 유럽의 모든 국가에 있었다. 유대인 증오가 확산되고 동포가 학살되는 것을 방관한 유대인 지도부에서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영화를 통한 이미지의 왜곡으로 독일과 나치에 모든 책임을 떠넘겼다. 파렴치한 일이었다. 자신들도 공모자였으면서.. 그런 매스 미디어의 강력한 권력을 향유하는 유대인들이 과연 강현에게 순수하게 언론 권력을 빼앗길까? 그럴 리 없다고 단적으로 말할 수 있었다. 권력을 가진 자의 권력을 향한 집착과 집념은 상상을 초월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권력자의 뇌는 일반인과 다르다. 헨델에게서 이번 일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말까지 들은 아담은 곰곰히 생각했다. ‘그가 원하는 것은 본보기인 것 같네. 사실 그가 얌전히 있어서 그의 영향력을 간과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아. 하지만 이번에 우리의 손에서 언론이 벗어나면 함부로 그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사람들은 생각을 고치게 되겠지. 나는 그것이 강 박사가 원하는 바라고 생각하네.’ 헨델의 식견은 믿을 만했다. 아담은 헨델의 의견을 수용하고 상황을 대처할 방법을 생각했다. ‘그와 화해할 방법은 없는가?’ 이 모든 일을 되돌리기에는 이미 늦었다. 연일 언론에서는 강현에게 인종주의자가 아닌지 질문을 던졌다. 질문은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의혹은 답을 요구한다. 하지만 강현은 확실하게 해명하지 않고 언론에 소송을 걸 뿐이었기에 의혹이 풀리지 않는 대중들 사이에선 그에 대한 비난 여론이 일고 있었다. 150화 왜 그럴까? 아담은 헨델의 분석을 기반으로 그 이유를 추측할 수 있었다. 강현은 지금 명분을 쌓고 있는 것이다. 언론사에서 일하는 멍청한 이들에게 이를 경고했지만 언론 권력에 도취한 이들은 강현이 곧 지쳐서 항복을 할 거라고 생각했다. 강현이 무슨 소리를 해도 대중에게 전달될 방법이 없으니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칼보다 펜이 더 강한 이유는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언론을 이용해 한 개인을 매장하려는 수준에 이른 친인들의 다소 과격한 행동에 아담을 불안해졌고 그 예감은 적중했다. [미 정부의 대(對) 중동 정책에 일어나는 혁신적인 변화!] 미국 수도에서 발행되는 최고 유력지 중 하나인 워싱턴 포스트에서는 정가에서 일어나는 일을 특집으로 다뤘다. [….. 미국 정가에서 유대 자본에 버금가는 영향력의 등장은 그것만으로 큰 지각 변동을 가지고 온다. 그 근원은 다름 아닌 미국의 제2의 황금기를 가져왔다고 평가되는 과학자 강현이다. 오랫동안 정치나 사회에 관심을 끊어왔던 이 젊은 천재가 세상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지만 일단 그런 경우에는 엄청난 사회적 변화가 일어났다. 공화당의 자정주의 물결은 그 중 하나에 불과하다. 유대 자본으로 잠식된 주류 언론이 그동안 강 박사에게 공세를 퍼부어 왔으나 사실 세간의 평가는 이 천재에게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는 언론에 무관심한 채 미국의 대 이스라엘 정책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은밀하게 로비를 했고 그 정황이 본지의 기자에 의해서 확인되었다. 그로 인한 정책 변화의 방향성을 가늠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강 박사는 인터뷰에 밝힌 것처럼 스스로를 미국인으로 생각하고 미국의 국익을 중시하니 미국과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관계 역시 ‘정상’으로 돌아갈 것으로 보인.....] “이게 뭐하는 짓인가!” 아담은 대노(大怒)했다. 중동 한복판에 있는 이스라엘은 미국의 도움이 없다면 아랍권에 포위된 구조가 된다. 그건 공포나 다름없다. 전쟁이 벌어지지 않더라도 종교적 갈등을 무마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국력이 소비될 것이다. 유대교와 이슬람의 오랜 증오는 쉽게 풀어진 성질의 것이 아니며 시오니스트의 선민사상은 이스라엘을 중동 땅의 얼룩으로 만들 것이다. 강현의 한 수는 참으로 곤란한 한 수 였다. 그동안 돈으로 억눌러온 정치권의 반 유대정서를 촉발시켜버렸다. 그 소식을 그동안 유대 자본에 우호적이었던 언론, 워싱턴 포스트에서 터뜨릴 정도라면 이미 단단한 세력이 구축 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사설의 논조를 보면 상황은 더 심각했다. 강현과 유대 자본 사이의 갈등에서 발을 빼는 수준이 아니라 강현에게 꼬리를 치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시장에 있는 그들의 주식은 물량이 메말라 경직된 채 여전히 누군가(분명 강현이겠지만) 경영권을 노리고 있다고 노골적으로 암시하고 있었고 정치적으로는 속속들이 친 유대 성향을 벗어나는 인사들이 집결하고 있었다. 언론이 정치권에 힘을 쓸 수 있는 상황은 주로 선거철인데, 선거철도 끝나 한창 활발하게 국정이 운영되는 중이었다. 이런 시기에 언론으로 공격을 한다? 권력자에게 미움을 받는 언론은 위험하다. 언제 언론에 불리한 법이 제정될지도 모른다. 평소라면 견딜 수 있고 인맥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겠지만 강현이란 존재가 등장하며 사정이 변했다. 전문 경영인들은 만에 하나라도 바뀐 사주에 의해서 쫓겨나고 싶지 않았다. 워싱턴 포스트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강현에게 배팅한 경우였다. 이런 노골적인 강현의 공격에 아담은 골이 아팠다. 이런 식으로 공격하면 타협은 절대로 할 수 없다. 시오니즘 지도부에서 절대로 거절할 것이다. 건방진 옐로 몽키에게 한 방 먹은 그들은 강현을 매장시키려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무슨 실익이 있다는 말이지? 강현이 개발한 기술과 그에 따른 이권을 뜯어 먹겠다? 글쎄.. 다른 세력들이 순순히 가만히 놔둘까? 그렇지 않다면 유대 자본의 의도에 동조라도 할까? 오랜 세월 유대 자본에 대한 유감과 질투를 쌓아온 그들이? 그들의 입장에서는 유대 자본보다는 강현과 손을 잡는 것이 이득이다. 해묵은 감정도 풀고 유대 자본을 정상의 자리에서 끌어내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강현은 혼자이기에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사라질 것이다. 수 천 년의 생존력을 자랑하는 유대인을 이번 기회에 끌어내리는 것이 개인보다 더 긴 생명력을 가진 세력의 관점에서는 장기적이고 더 큰 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 이렇듯 강현을 구심점으로 모인 세력의 노골적인 정치권 로비에 이스라엘을 지탱해온 유대인 로비 단체들이 로비로 맞대응을 시작했다. AJC (미국유대인위원회, American Jewish Committee), AJC (미국유대인총회, American Jewish Congress), ADL (반비방연맹, Anti-Defamation League of B'nai B'irth), AIPAC (미국이스라엘공적위원회, American-Israel Public Affairs Committee), Conference of Presidents of Major American Jewish Organization (미국유대인단체회장단총회), WJC (세계유대인총회, World Jewish Congress)미국에 존재하는 대표적인 유대인 단체만해도 이정도 미국에 등록된 유대인 단체만 해도 크고 작은 것을 모두 합하면 3천개가 넘고 그중에 이스라엘 지원을 목적으로 활발하게 로비 활동을 하는 곳만 해도 512개에 달한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곳이 AIPAC. 워싱턴에 본부를 두고 미국 의회, 행정부, 언론을 상대로 이스라엘에 유리하도록 하는 ‘로비’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조직이며 정치인들이 이 AIPAC에 초대되어 연설이나 발언을 하는 것은 중요한 정치 활동 중 하나였다. 그 정도로 유대인 로비 세력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친이스라엘 성향의 정치인에게 선거자금을 지원하며 중립적인 정치인에게는 선거자금 지원을 중단시켜 낙선시키는 일은 비일비재했으며 이는 미 대통령도 다를 바 없었다. 부시 대통령의 경우, ‘이라크는 악의 축’ 발언을 했을 때에는 유대 자본이 사주로 있는 언론이 열광하며 띄워주기 바빴지만, 정권 말, 중동 평화를 위해 공정한 모습을 보이자 바로 언론의 집중포화와 스캔들에 시달리려 결국 재선에 실패했다. 언론과 돈이 선거의 결과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 이상 정치인들은 유대 자본이 딸랑이를 흔드는 데로 꼬리를 흔드는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치인도 사람이다. 조금 다른 사람이기는 하지만 그들에게도 자존심이 있었다. 더구나 그들은 일반인과 다르게 ‘힘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의 자존심이 얼마나 높을까? 지금까지 마땅한 대안이 없었지만 강현이라는 적절한 대안이 생긴 이상, 상당수의 정치인이 유대 자본에게서 등을 돌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언제까지나 유대 자본에 의해서 자신의 정치 노선이 바뀌는 상황을 좋아할 정치인은 없었던 것이다. 의회에 반(反) 유대 또는 비(非) 유대 세력이 생기는 걸 막는데 실패한 친 이스라엘 로비 단체들이 행정부에 로비를 해 방어를 시도했지만 헛된 수고였다. 강현의 10억 선거 기부로 재선의 열쇠를 거머쥔 아바노 행정부가 강현에게서 등을 돌릴 리가 없었다. 그들로서는 중립을 지키는 것 만으로 그동안 먹은 돈 값을 했다. 그동안 많은 돈을 쏟아부은 유대 로비 단체들은 의리도 신조도 없는 새끼들이라고 욕을 했지만 기득권 혹은 지배층이라고 불리는 세상에서 이해관계로 움직이는 건 그리 신기한 일도 아니다. 게다가 욕만 하고 있을 수도 없었다. 저들은 얌전히 있지 않았다. [미 안보를 위한 정찰활동 개선 방안] 아랍 자본을 비롯한 화교 자본, 재패니즈 머니, 전통적 미국 자본 등의 든든한 지원을 배경으로 둔 정치인들이 일을 저지르기 시작했다. 그동안 쌓인 이스라엘과 미국의 불균형을 하나 둘 씩 공론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스라엘의 이익을 위한 로비 활동을 통해 미국은 전세계를 포함하는 정찰활동에서 유독 이스라엘만은 제외시켰다. 이는 분명히 다른 미 동맹에 대해 형편성이 맞지 않았으며 외교적 약점이 분명했기에 이를 위해 로비한 유대 자본을 공격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했다. 물론 그동안 그러했던 사실을 동맹국에서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상대는 미국. 함부로 나서서 매를 맞기는 싫었기 때문에 그동안 잠잠했던 것 뿐이지, 이렇게 미국 스스로 불평등한 동맹국 대우를 재고해야겠다는 정치적 여론이 형성되면 사정이 다르다. 아랍권에서 비교적 미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아랍 에미리트, 사우디는 물론이고 일본, 중국, 러시아에 더해, 유럽의 프랑스, 이탈리아, 심지어 영국까지 이 이슈를 꺼낸 정치인들을 ‘양심적인 정치인’, ‘양국의 우호를 위해 치부를 기꺼이 감수하려는 용감한 정치인’이라며 지원사격에 들어갔다. 유대 언론에서는 언론 플레이로 이 정치인들이 꺼낸 이슈를 묻어보려고 했지만 국제적으로 이슈가 떠버리고 각국의 환영을 받으니 그러지도 못했다. 유대 언론 사주들은 당황했다. 갑자기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무엇이든지 극단으로 몰린 상황은 반드시 그 반대의 기운을 축적시킨다. 알게 모르게 미국의 대 이스라엘 정책으로 유감이 쌓인 동맹국들에게는 미국의 태도 변화가 반가울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도 답답한 유대 언론은 반 유대적 정치인들의 스캔들을 들춰내며 협박도 해봤지만 이는 최악의 한 수였다. 아즈삭이 기다렸다는 듯이 친 유대적 정치인들의 명단을 공개하며 그들의 친 이스라엘적 태도로 인해 미국의 국익이 얼마나 소실 되었는지 비교하는 자료를 비(非) 유대 언론에 일제히 보낸 것이다. ‘이스라엘과 미국은 운명 공동체다!’ ‘웃기지 마라! 이스라엘의 상황이 나빠져도 미국은 건재할 수 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 때문에 미국이 국제적으로 얼마나 손해를 보는지 알고는 있나?!’ ‘당신은 비서와 불륜이나 저질러!’ ‘불륜은 개인의 사생활이지만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편애는 3억 미국인들의 손해와 직결된다! 당신도 모르지는 않겠지?’ 사익의 문제와 공익의 문제에서 대중이 관심을 두는 쪽은 어디일까? 정답은 좀 더 관심을 끄는 쪽이다. 그리고 애국심 투철하고 개인주의적 성향의 미국인에게 정치인의 불륜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았다. 클린턴 대통령도 섹스 스캔들을 저질렀지만 대중에게서 그렇게 비난을 받진 않았다. 하지만 미국 전체의 국익이 달린 일은 사정이 달랐다. 미국은 명실상부한 세계 제일의 패권국가이며 강한 국가는 국민에게 자부심을 준다. 그리고 그 자부심은 애국심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애국심으로 인해 그동안 미국이 이스라엘 때문에 손해를 봐왔다는 사실은 대중들의 분노를 촉발시켰다. 이에 주류 언론은 부랴부랴 각종 사건 사고와 자극적인 뉴스로 대중의 분노를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진땀을 빼기 시작했고, 정치권은 혼란을 거듭하며 계속 이스라엘이 관련된 이슈를 쏟아내었으며, 강현은 샐리의 출산일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현. 요즘 시끄러운 것 같은데 별 문제 없겠죠?” “문제 없어요. 걱정하지 말아요.” 강현은 샐리를 등 뒤에서 껴안은 채로 소파에 기대어 앉아 평화로운 한 때를 보내고 있었다. 볼록하게 부푼 샐리의 아랫배에 자신의 핏줄이 들어있다는 생각에 잔잔한 감동이 밀려왔다. “현,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 샐리는 자신의 배를 쓰다듬는 강현의 손등으로 깍지를 끼면서 그의 체온을 느꼈다. ============================ 작품 후기 ============================ 차기작을 쓰고 싶군요. 151화 강현은 샐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샐리의 옆머리에 부벼지는 그의 얼굴에서 강현이 동의의 뜻을 나타내는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걱정이 가시지 않았다. 샐리가 강현과 같이 살게 된 이후에 알게 된 것은 강현이 생각보다 더 과묵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의 입에서 로맨틱한 말 한 마디 나오는 걸 듣긴 참 힘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시간이 나면 그녀와 체온을 나누는 스킨십으로 말로 할 수 없는 그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남편은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더 걱정이었다. 샐리에게 말할 수 없는 문제는 절대로 말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민을 함께 할 수 없는 건 그를 사랑하는 아내의 입장에서 매우 섭섭한 일이었다. 그와 문제점을 함께 고민하고 싶었지만 샐리는 그러기를 포기했다. 남편은 세계에서 제일 똑똑한 사람이다. 남편을 중심에 두고 일어나는 요즘 일들도 샐리가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녀가 선택한 것은 결국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좀 더 강현의 마음이 편해지도록 내조를 하는 것 뿐이었다. 그런 그녀의 노력에 언론의 공격에 날카로워졌던 강현의 분위기가 다소 온화해졌다. 그 자신도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대신에 사고 속도는 더 빨라졌다. 심리적인 안정감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접근 방법을 구상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이다. ‘대비를 해야지.’ 강현은 샐리의 등 뒤에서 그녀의 아름다운 옆 얼굴과 부푼 배를 내려다보며 다짐했다. 만일의 상황에 대한 안전책은 가능한한 모두 설정해 놨다. 영화나 소설에서처럼 방심 때문에 소중한 존재를 잃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저들이 할 수 있는 수단을 모조리 시나리오로 작성해 그에 대한 대처 방안을 수립해 놨다. 통제 불가능한 변수가 나온다면 어쩔 수 없지만 아직 그런 변수는 보이지 않았다. 저들은 상황이 왜 이렇게 돌아갔는지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정작 강현은 그 모습을 몇 번밖에 보이지 않았는데 모든 상황이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니 말이다. 처음 언론을 움직여 간을 볼 때에는 별 생각 없었을 것이다. 강현이 미국-이스라엘 관계를 노골적으로 인터뷰 했을 때에는 진땀을 흘렸겠지만 곧 무마할 수 있었다. 주식 시장의 이상 기류도 백기사들과 우호 지분, 발빠른 대처로 미리 막을 수 있었다. 그런데 정치적으로 꺼내고 싶지 않았던 이슈들이 워싱턴에서 막 부각되기 시작했다. 언론 권력으로도 가라 앉힐 수가 없었다. 친 유대적인 정치인들이 나섰지만 반 유대적인 발언(정확하게 말하자면 미국의 국익을 주장하는 발언)을 하는 정치인들의 입을 막을 수는 없었고 꺼내기 싫은 이슈들이 매일 같이 부각되었다. 짜증나는 그 정치인들을 후원하는 아랍 자본이나 화교 자본 등에게 경고도 하고 때로는 실력 행사에도 들어갔지만, 어떻게 알았는지 즉시 대응해 건실한 기업 몇 개의 경영권을 빼앗겨버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터번 두른 중동인과 동양인이 전문 경영인으로 교체되자 위기감은 더욱 강해졌다. 다 아즈삭과 강현이 그 엄청난 정보력과 자본력으로 반 유대 정치인들을 후원하는 이들의 뒤를 봐줬기 때문이고 오히려 강현에 대한 그들의 신뢰만 높여준 꼴이 되었다. 이쯤되면 돈을 퍼부어 무마하고 싶지만 강현은 세상에서 가장 자본이 많은 개인이었고 왠지 모를 불안감에 함부로 돈을 쓰지 않고 자산을 보호하고 현금을 축적하려는 유대인들이 늘어가니 유대 단체의 활동액이 눈에 띄게 줄었다. 확실히 촉이 좋고 능력이 있는 이들이었다.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실탄을 마련해 놓으니 말이다. 안 그랬다면 벌써 아즈삭의 농간으로 자산에 커다란 타격을 입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로서 언론, 정치, 자본을 함부로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적들은 점점 몸집을 불리며 유대 자본을 위협하기 시작했는데 정작 당하는 입장에서는 언론으로 물타기를 하는 것 이외에는 딱히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정치권에서부터 담론이 터져나오니 물탄 소금물에 소금을 왕창 끼얹는 격이었다. 어쩌다가 이지경까지 왔을까? 곤란한 지경에 빠진 이들은 그 원흉을 알고 있었다. 바로 강현. 모든 일의 시발점. 그렇다면 강현을 제거한다면 모든 것이 원상태로 돌아올까? 그렇지는 않았다. 강현이 유대 세력에 대처한 방법은 약점을 찔러 쑤시는 방법이 아니었다. 그들이 더 이상 그들의 약점을 보호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든 것 뿐이었다. 반 유대 감정이 솟구치는 여론, 더 이상 유대인들의 딸랑이가 아닌 정치인들, 그리고 그런 그들을 후원하는 경쟁 자본 세력. 마치 도미도가 무너지듯이 그동안 쌓인 이해관계와 갈등이 힘이 되어 분출되고 있었다. 물론 그 방향성을 적절히 조절해 큰 시너지 효과를 만들 시나리오를 짠 것은 분명히 강현이었다. 과학자의 눈으로 사회를 보면 이렇게 하면 어떻게 될 것이라는 것이 대략 짐작이 간다. 특정 상황에서 인간과 대중은 높은 확률로 미리 정해진 행동을 하게 된다. 강현이 한 일은 바로 그런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잘나서 유대 자본을 물 먹이고 있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이 스스로의 모순 때문에 무너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만일, 그들이 이스라엘의 국익에 집착하지 않았다면, 미국인으로서 미국이란 나라에 충실했다면, 미국에서 유대 자본이 이렇게 궁지에 몰릴 일은 없었을 것이다. 강현은 단지 그런 모순으로 인해 쌓인 화약고에 불을 붙였을 뿐이다. 이제 유대인 지도부는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까? 가장 확실한 방법은 미 의회에서 발생하는 이슈들 중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미국-이스라엘 관계에서, 미국의 국익을 중요시 여기려는 의견을 수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결국 이스라엘의 고립을 불러온다. 중동 외교 정책을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이스라엘과의 우호관계가 재고될 수 밖에 없다. 그건 이스라엘의 영향력이 감소됨을 의미한다. 과연 유대인 지도부는 이스라엘이 쇠퇴하는 것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인가? 젖과 꿀이 흐르는 오래전 잃어버린 약속의 땅을 포기할 수 있을 것인가? 강현은 그럴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단 국가 그 자체에 대한 집착과 오랜 한(恨)을 떠나서 보자. 딱히 중요한 자원도 없는 땅에 유대 민족을 위한 나라를 건설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유대인들은 어딜가나 잘먹고 잘 살 수 있는 이들이다. 그런데 그런 이들이 그동안 얼마나 많은 개인적 손해를 감수하고 이스라엘을 지원했겠는가? 유대인 단체들과 지도부들이 과연 그동안의 투자를 허공으로 날려버릴 것인가? 그럴 가능성은 무척이나 낮았다. 그렇다면 차선은 무엇인가? 여론, 정치, 자본 등 마땅히 쓸 카드가 없는 상황이다. 협상을 할까? 지금 미국 국회에서 반 유대적 이슈를 생산하는 이들을 후원하는 세력과? 자존심 때문에라도 그럴 수는 없었다. 또 그 세력들은 유대 세력을 한 풀 꺾어 놓기 전에는 협상을 하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애시당초 그것이 목적인 세력이니 협상을 위해서 무엇을 내어 놓아야 할지 유대인 지도부로서는 생각하기도 골치 아픈 일이다.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해결책이 없는 이상 이들은 계속 얻어맞을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저들이 취할 수 있는 수단은 뭐가 있을까? 강현은 상상만으로 그치기를 바라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단이 있었다. 바로 무력, 또는 실력행사. 케네디 대통령은 연방준비은행을 폐지 혹은 국유화하려고 했던 마지막 미 대통령이다. 그리고 암살된 두 번째 미 대통령이기도 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된 이유가 연방준비은행의 국유화를 반대하는 거대 자본 세력 때문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일단 그에 관련된 음모론이 사실이냐 아니냐는 넘어가자. 강현에게는 그런 음모론의 진실 여부보다는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되어야 했던 배경이 더 눈에 들어왔다. 만일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이 정말로 연방준비은행 때문이라면? 화폐발행권을 두고 정치 권력과 자본 권력 사이에 일어난 암투의 결과였다면? 어쩌면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된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닌지도 모른다. 세계 기축 통화인 달러화의 화폐발행권을 쥔다는 것은 세계 경제를 일순간에 공황에 빠뜨릴 수 있는 경제적 핵폭탄을 쥐었다는 의미다. 그리고 그 막대한 권력에 더해 케네디 대통령만 사라지면 연방준비은행의 국유화가 무마되는 상황이 더해지니 암살이라는 가장 효과적인 카드가 생각나지 않을까? 더구나 주류 언론에 영향력을 행사에 진실을 호도할 수 있는 세력이라면? 강현은 여기에 자신의 상황을 대입해 보았다. 강현이 유대 자본에 엄청난 피해를 입힌 것은 사실이니 이를 갈고 있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럼 강현이 사라진다면 유대 자본이 다시 건재해 질 수는 있는가? 글쎄. 그러기는 힘들 것 같다. 왜냐면 이번에 일어난 일은 강현이 억지로 흐름을 만드는 식으로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적절한 시간을 두고 케케묵은 이해관계를 촉발시켜 만든 일종의 화학반응이기 때문에 강현이 사라진다고 해도 유대 자본에게 불리한 상황은 계속 지속될 것이다. 즉, 강현을 죽였을 때 딱히 상황을 획기적으로 반전할 가능성이 적다는 말이었다. 물론 강현의 죽음으로 국면을 전환시킬 기회는 가질 수 있겠지만 기회는 기회일 뿐이다. 경쟁자를 끌어내리기 위해 눈이 벌게진 경쟁 세력들을 상대로 그 기회를 얼마나 활용할 수 있을까?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합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면 강현을 암살하겠다는 생각을 할 리가 없다. 샐리를 납치해도 강현을 미쳐 날뛰게 해서는 손해만 생길 뿐이다. 그런고로 무력 개입이 일어난 확률은 약 2.5%미만.(아즈삭이 시뮬레이션으로 계산했다.)평범한 사람이라면 안심할 수 있겠지만 강현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했다. 먼저 인공위성과 CCTV 등을 해킹해 그의 집을 중심으로 반경 1km 이내에 오가는 사람들에 대한 개인정보를 무차별적으로 수집했다. 그리고 그들이 거주지, 거주 시간 등을 따져 보안 등급을 매겨 관리했다. 불법적인 행동이 분명했기에 아즈락의 경고가 있었지만 아즈삭의 첩보 협조라는 카드에 아즈삭과 샤바샤바했다. 첩보만 담당하던 아즈락은 여러 국가의 아즈삭 시리즈들과 협상을 하며 정보를 수집했던 아즈삭에게 협상력에서 밀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러고도 안심하지 못한 강현은 K 시리즈 수준으로 개량한 HA 시리즈 50기(CNC 장갑 대신 IAPP(충격 흡수 단백질 플라스틱; 71화 참조) 방탄복 소재로 전신을 감싸고 화기로 무장한)를 비밀 창고에 두고 C4 50kg에도 견딜 수 있는 벽으로 둘러 쌓인 패닉룸을 지하에 설치했다. 이 패닉룸은 집 중앙, 1, 2층을 관통하는 비상 엘리베이터로 즉시 내려갈 수 있게 되어 있어 신속하게 피신할 수 있었다. 여기가 끝일까? 아니다. 만일에 패닉룸까지 침입 당하려고 하고 준비한 HA 시리즈로 침입자를 격퇴할 수 없는 상황이 온다면 집안 여기저기에 설치한 폭발물이 폭발해 집과 함께 침입자를 완전히 날려버리도록 되어 있었다. 물론 패닉룸은 폭발에도 안전하다. 위성까지 이용하는 감시망, 개조한 HA 시리즈, 자폭 시스템까지.. 편집증적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준비 태세였지만 졸렬하고 탐욕스런 인간들의 악의에 부모를 잃은 강현에게는 이마저도 안심이 되지 않았다. 152화 할 수만 있다면 로켓을 달아 패닉룸째로 안전한 장소로 탈출시키는 수단도 추가하고 싶었지만 탑승자가 될 아기와 샐리의 육체적 취약성 때문에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아무튼 강현은 저들이 무력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쓰지 않기 만을 바랬다. 그렇게 하면 자신이 어떻게 대응할지 스스로도 예상할 수 없었다. = = = = = “지금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있습니까?!” 탈만 모건이 전화기에 대고 언성을 높였다. 그는 강현의 연구에 제도적인 감시를 붙이려고 일을 꾸미다 강현에게 걸려 실각한 J 모건과 친척이다. 같은 모건 가(家)의 일원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때까지만 해도 전혀 강현에게 유감이 없었다. 오히려 경쟁자를 한 명 떨어뜨려줘서 고맙다고 생각할 지경이었다. 모건 가를 손아귀에 쥐기 위해서는 많은 경쟁자들을 제쳐 능력을 증명해야 했기 때문이다. 모건 가의 시작은 1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에 퍼진 반 유대주의를 피해 미국으로 진출하려는 로스차일드 가문이 폰 피어폰 모건을 앞세우면서 시작되었다. 즉, 모건 가는 로스차일드가와 밀접한 연관이 있으며 때로는 피로 혈맹을 맺어왔다. 서양이라고 해도 상류층 사회에서 혼맥이 없지는 않다. 탈만 모건 역시 유대 자본과의 혼인 동맹으로 태어났고 어머니가 유대인이었기에 유대인으로 자라났다. 정말로 유대인으로 인정받으려면 유대인 어머니에게서 탈무드적으로 교육받아야 한다. 아무튼 탈만은 어엿한 유대인으로 인정을 받았고 그들의 인맥과 특유의 가정교육에 더해, 가격을 생각하지 않는 고등 교육으로 키워진 능력으로 연방준비은행의 위원 자리를 꿰어찼다. 이는 그에게는 매우 고무적인 일이었는데 자리가 만들어 낸 권력은 제외 하고서라도, 세계의 경제 흐름을 주무르는 자리에서의 경험은 세계의 흐름을 바라보는 식견을 훌륭하게 길러주었다. 그리고 그 식견으로 당금 일어나는 일의 추이를 살피니 즉시 대응하지 않으면 유대 자본이 더 이상 세계의 흐름을 주도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인 것을 알게 되었다. 아니 오히려 더 큰 위기를 맞을 수도 있었다. 근대에 들어섰는데도 유대인에 대한 편견은 변하지 않았고 돈으로 돈버는 놈들, 헤지펀드로 회사 망치는 놈들 등 음모론을 포함해 더욱 음성적으로 숨어들어갔다. 물론 유대교의 선민사상이 그런 상황에 촉매 역할을 했지만 이미 호랑이 등에 탔으니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그 호랑이 등에 올라탈 힘이 상실된다? 유대인에 대한 우호적 여론을 형성할 수 없게 되면 힘이 없어지는 정도가 아니라 손목이 날라가는 것이다. [우리도 적절하게 대응을,] “그런 미적지근한 방법으로는 씨알도 안 먹힐 겁니다! 완전히 작정을 하고 들어왔어요!” [그럼 어떻게 해야하나?] “강 박사는 만나봤습니까?” [만나는 봤네만..] 강현에게 찾아가 그동안의 실수를 사과도 했지만 강현이라고 뾰족한 수가 없었다. 자신이 터뜨린 폭발물의 폭발을 막아봤자 자신의 손만 날아간다. 지킬 것이 있는 강현이 스스로의 신뢰를 무너뜨려 사회적 장애인이 될 상황으로 스스로를 몰고 갈 리가 없었다. “.... 정말로 이 일이 강 박사의 손에서 완전히 떠버린 겁니까?” [스스로도 이미 굴러 내려가는 눈뭉치로 비유를 하더군. 그러면서 그동안의 업보(Karma)가 터져 나온 거라며 피해를 최소화할 생각을 하라더군.] 업보? 탈만은 이마를 짚었다. 업보라도 좋다. 그러나 패권은 놓을 수 없다. 그랬다가는 다시 유대인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에서 유대인들을 지킬 수 없을 것이다. “이스라엘을 버릴 생각은 없습니까?” [가능하리라고 생각하는가?] 필요하다면 해야한다는 말이 목구멍으로 도로 들어갔다. 이스라엘을 포기하는 것이 미국내 유대 자본의 기득권을 지킬 가장 확실한 방법이건만 그런 담론을 공론화할 순 없었다. 그건 유대 민족의 급격한 분열을 가져올 것이다. 그건 곧 힘의 약화를 의미했다. 국가를 버리냐 마느냐로 분열하게 되버리면 통합에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유대인 지도부가 이스라엘을 채울 유대인 국민을 구하기 위해 나치의 유대인 학대에 동조하지 않았을까 생각될 정도로 유대인은 이해관계가 철저했다. 유대인의 미래를 위해서 이스라엘이 필요하다는 쪽과 오히려 이스라엘이 유대인의 미래를 해친다고 생각하는 쪽으로 갈리면 통합은 불가능하게 될지도 모른다. “외통수군요.” [방법을 찾아보게.] “질 것이 뻔해보이는 체스판에서 지지 않는 방법이 뭔지 아십니까?” [무언가?] “판을 엎는 겁니다.” = = = = = [판을 엎는 겁니다.] “지지 않기는 무슨... 판을 엎으면 기권패지.” 강현은 혀를 찼다. 왜 저리 집착에 빠져 더 큰 손해를 보는 것일까? 리스크 관리는 자본가의 필수 덕목인데도 말이다. 하지만 그건 인간 관계가 담백한 강현의 오판이었다. 적이 있는 상태에서 힘을 잃는다는 것은 적의 위협을 더 크게 한다. 그리고 지금 유대 세력은 사방에서 살점을 뜯어먹기 위해 눈을 부라리고 있는 상황. 즉, 리스크 관리면에서 탈만의 판단이 틀리지는 않았던 것이다. “이쯤 이면 됐어. 바퀴벌레 로봇을 대기 상태로 전환해.” 강현은 유대인 네트워크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가진 탈만을 바퀴벌레 스파이로 감시했다.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필요 없다고 다시 바퀴벌레 로봇을 대기 상태로 돌리란다. 대기 상태로 돌아간 바퀴벌레 로봇은 첩보활동을 완전히 멈추고 절대로 들키지 않게 숨어있도록 되어있다. 아즈삭은 강현의 지시에 의문을 표했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바퀴벌레 스파이의 정보 수집으로 자본 공세를 확실하게 막아내지 않았는가? [좀 더 정보를 모으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아니야. 편리함에 너무 의지하는 건 안 좋아. 내 약점이기도 하고. 더 이상의 정보는 대세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할 거야.” 강현의 말대로 개인의 사생활을 침범하는 마이크로 로봇의 존재는 많은 권력자들이 그를 미워하고 배척하게 만들 것이다. 되도록이면 들키지 않게 안 쓰는 것이 좋다. 일종의 극양처방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럼 역시 시나리오 E인가요?]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 [준비를 시작하겠습니다.] “수고해.” 강현은 통신 화면을 끄고 서재 밖으로 나갔다. 출산일이 가까워 질수록 샐리가 눈에 띄에 힘들어했다. 뱃속에 든 아기가 보기드문 우량아인가보다. 오늘 저녁은 자신이 만들어야 겠다. 요리? 수많은 화약 약품의 조성비를 다뤘던 그에게 요리 레시피를 그대로 따라하는 건 어렵지도 않은 일이었다. = = = = = “달러를 찍어낸다? 지금 당신이 하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고는 있소?” 연방준비은행의 의장인 제이면 옐리가 탈만이 내민 서류를 읽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물었다. “물론입니다.” “지금 유대인 최대의 힘을 이렇게 남용하겠다는 건가?” “남용이 아닙니다.” “자네가 위원 중 한 명이지만 의장으로서는 이것을 승인할 수 없네.” “당신도 유대인 아닙니까?” “그래서 그렇네.” 옐리는 눈 앞의 남자에게 속으로 혀를 찼다. 역시 인맥으로 위기한 번 없이 승승장구해온 전형적인 온실 속의 화초이기 때문일까? 뭐가 더 중요한지 모르고 중요한 것을 지키기 위해 때로는 아픔을 감내할 인내심도 없었다. 이스라엘? 세계의 패권을 짊어진 미국의 화폐발행권만 쥐고 있으면 언제든 그런 나라를 만들 수 있다. 유대인의 생존력은 수 천 년 동안 증명되었으니 재기 불능의 상처만 입지 않으면 언젠가는 다시 세계의 패권을 노릴 수 있다. 연방준비은행의 의장으로서 옐리는 화폐발행권이 그 열쇠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무작정 달러를 찍어내 환율을 혼란 시키시겠다? 그렇게 된다면 의회의 반 유대적인 정치인들의 뒤를 봐주는 경쟁 자본 세력들을 침묵 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뒤가 문제다. 환율 혼란은 경제 시스템의 혼란을 가져오고 그 경제 시스템을 지배하는 이들에게 손해를 가져온다. 비단 화교나 아랍 자본뿐만 아니라 유대 자본가들 중에서도 타격을 받는 이들이 생긴다는 말이다. 비단 유대인 내부에서 이스라엘을 유지하기 위해서 이렇게까지 해야하냐는 회의론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이 된다. 재산의 손해는 그 어떤 스트레스보다 막심하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연방준비은행의 주주들에게도 손해다. 그들로서는 안정적으로 달러가 패권을 쥔 상황을 흔들고 싶지 않을 것이다. 이는 연방준비은행의 위원들에 대한 불신임으로 이어진다. “그런데도 환율을 혼란시키겠다는 건가?” “이미 필요한 사람들의 동의는 다 구했습니다.” 필요한 동의를 다 구했다는 건 7명의 위원들이 손을 들어주었다는 의미였다. 옐리는 그들을 비웃었다. 그들의 뒤에 누가 있는지 짐작했기 때문이다. “하여간 시오니스트들은..” 옐리의 입가에 서린 조소에 탈만의 얼굴이 굳었다. 옐리는 자신도 유대인이었지만 이런 식의 비합리적인 행동은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충고 하나만 하지. 유대인들은 언젠가 그 잘난 시오니즘 때문에 패망할 것이야.” 하지만 탈만은 옐리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고 책상위에 놓인 서류를 다시 한 번 밀었다. 옐리는 그 서류에 사인을 하고 다시 내밀었다. 그의 사무실을 나서는 탈만은 그의 말을 떠올리고는 피식 웃었다. 시오니즘 때문에 망해? 천만에. 수천년간 유대인의 민족성을 지켜온 것이 바로 그 시오니즘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시오니즘으로 세워진 이스라엘의 몰락은 곧 시오니즘의 몰락을 의미한다. 유대인의 존속을 위해서는 시오니즘이 필요하며 따라서 이스라엘은 건재해야 했다. 그런 이치를 모르는 옐리를 그는 무늬만 유대인이라고 생각했다. 유대인 중에서도 시오니스트와 그렇지 않은 이들의 견해차는 존재했다. 단지 자본의 논리에 의해 서로 손을 잡았을 뿐이다. 정답은 시간이 알려줄 것이다. [연방준비은행에서 1000억 달러 규모의 화폐 발행!] [국가 부채 해소를 위한 새로운 카드?] 미국의 국가 부채는 약 14조 달러에 달한다. 이는 미국의 GDP(국내 총생산)에 달할 정도의 부채 규모다. 이자 비용도 장난이 아니며 그로 인한 부담은 고스란히 납세자에게 돌아간다. 그리고 부채의 규모가 커져 더 이상 감다할 길이 없어지면 디폴트 선언을 할 수 밖에 없다. 이는 ‘빚을 갚을 수가 없다. 배째라.’라고 말하는 것과 똑같은 의미다. 세계 경제의 축인 미국이 그렇게 나온다면 경제는 붕괴될 수 밖에 없고 한 때 미국 정치권에서도 디폴트 이야기가 나와 크게 이슈가 된 적도 있었다. 그렇다면 이런 국가 부채는 어떻게 처리할 수 있는가? 미국 정부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로 세금 인상, 채무 한도 증가의 법적 용인, 그리고 화폐 발행이다. 하지만 이중에서 가장 성사가 될 가능성이 높은 방법은 두 번째 방법뿐이다. 미국인은 원채 세금을 내기 싫어하는(정부가 자신의 돈을 빼앗아간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라 정치적으로 부담스럽다. 화폐 발행의 경우는 더 난감하다. 미국 정부는 화폐 발행권이 없기 때문에 연방준비은행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여기에서 또 문제가 생긴다. 연방준비은행은 사기업이기 때문에 화폐를 찍어내 달러의 가치를 떨어뜨려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칠 리가 없기 때문이다.(그래서 국제 통화로 신용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정부와 국가간의 이해관계를 뛰어넘는 화폐발행권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것이다.) 153화 <15-새로운 질서> 그런데 그 연방준비은행에서 알아서 화폐를 찍어내 준단다. 이로서 미국 정부는 국채를 발행해 이 달러를 확보하고 외채를 갚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미국 정부 입장에서는 빚을 빚으로 갚는 상황이지만 나쁜 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사기업이라지만 엄연히 연방준비은행은 미국의 기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연방준비은행의 행동이 모두에게 좋을 수는 없었다. 특히 미국의 국채를 잔뜩 사들인(무려 1조 달러 넘는 규모로) 중국 정부로서는 입에 거품을 물 수 밖에 없었다. 미국이 발행한 1000억 달러로 중국이 사들인 채권부터 갚아버리면? 1000억 달러는 미국 부채 규모의 약 0.7% 밖에 안되는 금액이지만 1조 달러의 10%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그만한 금액이 신용이라는 말 한 마디로 치환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는 미국의 채권을 이용한 외교적인 카드, 미국에 대한 견제 등 다 방면으로 노력하는 중국의 심모원려를 무력화 시킬 수 있었다. 게다가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이 어려운가? 이번처럼 1000억 달러 규모를 찍어내는 짓을 3정도 하면 중국이 보유한 미국 국채 중 30% 가량이 그냥 달러로 사라져 버린다. 이는 남이 보기에는 미친 짓이었고, 중국에서는 절대로 가만히 놔두어선 안되는 일이었으며, 화교 자본에서 봤을 때에는 자신들에 대한 경고로 보았다. 세계 경제를 한 순간에 망가뜨릴 수 있다는 위협. 당연이 경쟁 자본 세력들은 갖가지 방법으로 이를 막으려고 했지만 쉽지가 않았다. 연방준비은행의 위원들의 행동을 제제 해야할 주주들은 분열되어 있었고 위원들은 자신들의 커리어를 걸고 벌인 일이었기에 결코 결정을 무르지 않았다. 차선으로 미국 정부에 로비를 하여 채권을 발행하도록해 풀리려는 달러를 흡수하려는 시도를 했지만 ‘미국의 국채를 갚는 것이 ‘국익’이다!’라는 명분에 ‘국익’을 주장하던 정치인들은 입을 다물었다. 물론 너무나 근시안적인 명제라 경제 학자들의 집중 비난을 받았지만 대중의 지능으로써는 그게 왜 문제가 되는지 이해하기 힘들자 어영부영 1000억 달러가 발행되었다. 이렇게 발행된 1000억 달러는 각각 500억 달러씩, 중국에 팔린 채권과 일본에 팔린 채권을 갚는데 주로 사용됐다.(일본 역시 1조 달러에 준하는 미국 채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정치적으로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동안 음흉하게 은근히 기회를 보며 미국의 약점을 후벼 파는데 동조를 한 것이다.)자연히 화교 자본과 엔화 세력의 활동은 위축되었고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듯, 아랍 자본의 활동 역시 주춤할 수 밖에 없었다. 북한의 벼랑 끝 전술과 닮은 전술이었지만 유대 자본이 먼저 미친 척하고 나오니 주춤할 수 밖에 없었다. 아랍 자본마저 위축되자 그 외 자본 세력도 연쇄적으로 활동이 줄어들었다. 유대 자본에게는 이스라엘의 생존이 걸린 문제였지만 경쟁 자본은 좀 더 큰 기득권을 획득하려고 하는 것 뿐이기에 먹혀 들어간 것이다. 맛있는 먹있감을 앞에 두고 군침을 흘리며 돌아간 자본 세력들은 막강한 화폐 발행권의 위력 앞에서 이를 갈고 후일을 기약하는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든든한 후원 세력이 갑자기 잠잠해지자 정치인들도 슬금 슬금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었고 미국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성토하는 입은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만 존재했다. 당연히 이러한 수단을 사용한 여파는 무척 컸다. 유대인들 중 금융 자산의 비중이 높은 이들은 하나 같이 큰 손해를 보았다. 그러면서 여기저기서 너무 했다는 불만이 튀어 나왔다. 옐리가 예상한 그대로 유대인 간의 분열 조짐이 보였다. 국제 경제 상황도 좋지 않았다. 달러의 가치가 떨어지며 금과 같은 실물 자산의 가치가 훌쩍 뛰어버렸던 것이다. 큰 변화로 인해 손해를 본 다양한 국적과 인종의 자본가들은 유대 자본를 이대로 믿어도 될까란 의구심마저 품게 되었다. 자연히 환율 시장, 선물 시장, 주식 시장이 차례로 요동쳤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정치적인 고비를 넘긴 유대 자본의 강현에 대한 응징은 뒤로 미루어질 수 밖에 없었다. 내부적인 불만을 다스리고 강현이 일으킨 혼란을 정리해야 했다. 그전에 섣불리 움직이면 경제 대공황이 올 수도 있었다. 강현의 우주 개발은 세계 경제 성장의 엔진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현은 그들에게 시간을 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다행스럽게 시나리오 B-4으로 가지는 않았군.” [인간은 역시 가진 것을 쉽게 놓지는 못하는가 봅니다.] 시나리오 B-4는 유대 자본 세력이 자신들에게 이빨을 드러낸 경쟁 세력들을 뿌리 뽑기 위해 극심한 경제 혼란을 일으키는 상황에서의 시나리오였다. 마구잡이로 찍어내는 달러화로 극심한 인플레가 일어나면 경제 활동이 거의 마비된다. 그리고 자산과 수익구조가 튼튼한 이들만 살아남는다. 하지만 살아남기만 한다면 이전보다 더 한 부를 거머쥘 수 있다. 흉년에 큰 부자가 난다고 하지 않던가? 강현은 그렇게 된다면 가장 유리한 건 유대인이라고 생각했다. 자본의 생존에 가장 특화된 인종이 아닌가? 수 천 년간 돈놀이로 생존해온 이들이 바로 유대인이었다. 물론 그에 대한 대비는 있었다. 공포에 떠는 자본 세력들을 우주 개발이란 신용을 이용해 결집시키고 전력(戰力)화하여 우량 기업들의 주식을 사들이는 것이다. 유대 자본 세력과 결판을 내는 시기는 뒤로 미뤄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살을 주고 시간을 버는 전략을 사용하는 동안 뜯겨나가는 그들의 살점으로 사냥개(경쟁 자본 세력)를 키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저들은 그러지 않고 화폐발행권을 이용해 약간의 위협만 가했다. 세계 경제 규모로 보았을 때 천 억 달러는 그리 큰 액수가 아니었다. 2조 달러의 재산을 가진 강현이 유대 자본과 돈으로 승부를 보지 않는 이유였다. 그리하여 세계 경제는 혼란스럽지만 공황은 아닌, 공포는 있지만 극복할 수는 있는 미묘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아마 이 혼란이 가라앉으면 본격적인 유대 자본의 공세가 시작될 것이다. 물론 강현에겐 이에 대처할 시나리오 역시 존재했다. 그러나 그들의 공세가 시작되기 전에 손쉽게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시나리오도 있었다. 강현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 정도의 이 시나리오는 그의 궁극적인 목표로 향하는 시간도 단축시키는 지름길이다. 물론 시나리오 B-4의 경우에 비해 강현의 정치력과 영향력이 증대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것에 연연해 하지 않는 강현으로서는 자본 세력과 체질에 맞지 않는 정치경제적인 싸움을 짧은 시간 안에 마무리 하는 것을 선호했다. 그는 아즈삭과 함께 시나리오를 재검토해 변수를 확인하고 바로 행동에 들어갔다. 경제적 혼란이 가라앉고 유대 자본이 행동할 여유를 갖기 전에 쐐기를 박아야 했다. [안녕하세요, 박사님. 월 스트리트 저널의 토마스입니다.] [저는 포브스의..] [안녕하세요. 포츈의...] 미국의 유명한 경제지의 기자들은 강현의 인터뷰 허락에 두근거리는 심장으로 달려왔다. 우주 개발의 진행 상황, 그리고 그로 인해 인류의 우주 진출이 경제에 끼치는 영향을 알고 싶었다. 분명히 크게 영향을 끼치면 끼쳤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안녕하세요. 그럼 인터뷰를 시작해 볼까요?] [소행성대의 일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역시나 경제 기자 다운 질문이다. 아니, 누구나가 다 궁금한 상황이다. 강현은 그 질문에 간략히 영상을 띄웠다. 시간차와 공전 궤도로 인해 실시간 영상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장 중요한 광산 개발의 진행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약 두 달 간의 항해 끝에 소행성 베스타에 도착한 카낙은 구멍을 파고 그 내부에 광산 및 제련 시설을 설치했습니다. 그리고 컨테이너 시스템을 분리해서 여유 자원을 동원해 주위 근방에 있는 소행성의 자원 현황을 작성하고 있습니다.] 소행성끼리의 간격은 수 백에서 수 천 키로미터에 달한다. 영화에서처럼 빽빽하게 구성되어 있지 않다. 만일 그렇다면 중력에 의해서 서로 뭉쳤을 것이다. 베스타는 그런 소행성 중에서 두 번째로 무거운 소행성으로 지름이 약 500km 정도이고(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가 약 400km), 철과 니켈 등을 포함한 암석질 소행성이다. 베스타보다 더 큰 세레스라는 소행성이 있었지만(지름 약 1000km, 소행성 중 가장 크다.) 안타깝게도 주 성분이 물과 얼음이라 아직 개발할 대상이 아니었다. 강현이 보여준 화면에는 카낙에 실은 만 여 대의 로봇들이 행성 표면 여기 저기에서 레이저를 이용해 시료를 채취하며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고 있었다. 다음 장면에서는 불빛이 나오는 구멍에서 로봇들이 나왔다가 들어갔다를 반복하고 있었고 그 다음 장면에서는 내부에서 광산을 뚫는 작업 광경이 나왔다. 중력이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곳이기에 드릴이 앵커로 고정되어 한쪽 벽에서 암석을 깨고 있었다. 그리고 깨어진 암석은 광산 벽에 고정된 펜타봇들의 릴레이 송구로 깔끔하게 내장 공사가 되어있는 통로로 향했다. 제련 시설로 들어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쪽에서는 정련 작업이 이루어진 자원이 판형으로 나와 펜타봇과 트리플론이 베스타 주위를 아주 천천히 공전하는(베스타의 중력은 약 0.22m/s^2으로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지만 있기는 있다.) 카낙의 컨테이너로 운반하는 장면이 나왔다. [어떤 자원이 생산 되고 있습니까?] [다양합니다. 플라즈마 제련 장치와 우주 진공 상태라는 이점 덕분에 거의 모든 원소를 깔끔하게 분류할 수 있었죠. 철은 물론이고, 황, 실리콘, 니켈, 주석, 마그네슘 등 다양한 자원이 생산되고 있습니다.] [생산량은 어떻습니까?] [아직 생산 초기라 플라즈마 제련 설비가 제대로 구성되어 있지 않아서 하루에 약 1톤 정도의 자원이 생산됩니다. 그 비율은 채취한 광물에 어떤 원소가 들어있느냐가 문제라서 그 때마다 다르죠.] [그럼 특정 원소가 포함된 광맥을 찾는 것이 아니라는 말인가요?] [우주는 태반이 빈 공간입니다. 존재하는 물질 그 자체가 소중한 자원이죠. 낭비해서는 안됩니다.] 강현의 말에 기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전에 실리콘도 생산된다고 하셨는데 반도체에 사용되는 그 실리콘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다 플라즈마 제련 공정 덕분이죠.] 로렌츠의 힘을 이용해 화학적인 방법이 아니라 물리적인 방법으로 원소를 분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 대기가 없거나 희박한 저중력 환경 덕분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지구의 생산량과 비교하면 그리 높은 수치는 아니군요.] 한 기자가 입을 열었다. 남한 포스코에서 한해 생산하는 쇳물 생산량은 약 4천만 톤, 조강(造鋼) 생산 일 위인 인도의 아르셀로미탈이 약 9천 만톤이니, 철 하나만 따져도 지구적으로 한해에 약 1억톤을 훌쩍 넘어 생산되는 것이다. 그러니 일 년에 365톤 정도의 기대치로는 산업전반에 영향을 미치기에는 택도 안된다. [아직 시작 단계에 불과하죠. 제련 설비가 완전히 작동을 하면 하루에 백 톤 정도 생산할 수 있고 제련 설비를 더 지을 수도 있죠. 카낙은 약 5개의 제련 설비를 설치할 수 있는 장비들을 싣고 출발했습니다.] [그래도 한 해 18만 톤(100ton×365×5=182,500ton) 정도 밖에 생산할 수 없습니다. 거기에 생산된 원료가 다 철이 아닌 이상 생산량은 더 급감하겠죠.] [물론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 자재들을 지구에서 쓰지 않는다면 문제는 달라지죠.] 154화 [아!] 기자들은 탄성을 질렀다. 무겁고 튼튼한 자재를 궤도 상에 올리는 비용은 생각보다 훨씬 높다. 또한 매스 드라이버의 감가 상각을 생각하면 비용은 더 커진다. 하지만 소행성 궤도에서 생산한 자재라면 말이 달라진다. 지구의 중력권을 이미 벗어나 있는 자재들을 지구의 위성궤도로 당긴다면 비용적인 측면에서 지구에서 생산된 자재에 대해 충분한 경쟁력이 있다. 거기에 우주 시대에 돌입했으니 각국은 빠르게 우주 기지를 건설하고 싶을 것이고 속도 경쟁이 붙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연히 대량으로 자재를 공급할 수 있는 소행성 제련 공장이 더 유리한 위치에 설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언제든지 제련 공장에 필요한 부품을 수송할 수도 있지 않은가? 위성 공장에서 카낙을 경우를 딴 스마트 컨테이너 시스템이 여전히 건조되고 있다는 걸 모르는 경제 기자는 없었다. 또 그 스마트 컨테이너 시스템이 소행성대의 자원을 지구로 가져오는 임무를 담당할 예정이라는 것도 말이다. 기자들은 눈 앞의 남자가 우주의 패권을 가름할 열쇠를 쥐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가 허락한 국가가 빠르게 우주로 진출하고 이권을 선점할 수 있다는 의미다. 몇몇 눈치 빠른 기자들은 왜 그가 그토록 타인이 우주 개발의 참여를 거절했는지 감을 잡았다. 미래 세계의 모습을 좌우할 열쇠를 남과 공유하고 싶은 남자가 어디 있을까?(명백한 오해였다.) [그럼 개발이 진행되고 자재의 안정적인 수급이 된다면 현재의 경제 위기에 크게 도움이 될까요?] 한 기자가 현재의 세계 경제와 우주 개발을 관련시켜 물었다. 강현은 살짝 고민을 하고는(하는 척한 것 뿐이다. 기자의 물음은 강현이 기다리던 질문이었고-그래서 경제지 기자를 부른 것이다.-이미 대답할 내용은 정해져 있었다.) 입을 열었다. [경제 위기라.. 글쎄요. 저는 현재 세계 경제가 그리 나쁜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혼란스러울 뿐이죠.] [무슨 말씀이죠?] [위기와 혼란은 자주 혼용됩니다. 하지만 혼란이 먼저인지, 위기가 먼저인지에 따라 사건의 본질과 해결 방법은 첨예하게 달라집니다. 실제로 실물 경제 지표는 우주 개발에 대한 기대 때문인지 그리 나쁘지 않습니다. 우주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관련 산업과 기술이 발달해야 하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현재의 경제 혼란의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기득권 다툼이죠.] [[[[???]]]] 강현은 이해하지 못하는 기자들을 위해서 차근차근 설명을 했다. [현재 세계적으로 몇 가지 큰 변화가 생긴 건 아시죠?] 기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석유가 유한한 자원이 아니고, 전기가 화학연료의 대항마로 떠오르며, 전쟁을 수행하는 기계는 전쟁의 개념을 바꾸어 놓았으며 우주 개발은 인류에게 새로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었다. 인공지능은 전기문명의 양상을 바꾸어 놓았고 기술의 격차는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를 더욱 벌리기 시작했다. 물론 가장 큰 변화는 강현이라는 존재의 영향력이 엄청나게 커졌다는 것이다. [그 변화는 세계의 환경을 영구적으로 변화시켰습니다. 변화는 필연적으로 기회를 생산합니다. 그래서 기존의 왕좌를 차지하고 있던 유대 자본을 끌어내리기 위해서 경쟁 자본 세력이 도전을 했고 턱밑까지 치고 올라갈 수 있었죠. 유대 자본 입장에서 예전 같았으면 미국의 패권에 기대어 충분히 방어할 수 있었지만 저 때문에 미국의 정치권이 둘로 갈라져 제대로 협조를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기자들은 홀린 듯이 강현의 입술에 집중했다. 경제지 기자로서 거대한 경제 흐름의 배경에서 일어나는 일의 전모는 특종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연방준비은행을 움직여 세계적으로 경고를 한거죠. 비록 우리가 지금은 힘들지만 너희들을 엿 먹일 힘 정도는 남아있다라고 보여주기 위해서요. 그것이 경제 혼란이 발생한 겁니다.] [그, 근거가 있습니까?] 한 기자가 입을 열었다. 증거가 없다면 강현의 말은 명백한 명예훼손이다. [아! 증거는 없고 심증만 있으니 말을 바꾸겠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제가 실수한 말은 적절하게 편집해 주세요.] 강현이 검지와 중지로 가위질하는 시늉을 하자 분위기가 어느 정도 풀렸다. [그럼 지금의 경제 혼란은 언제쯤 가라앉을까요?] [글쎄요.. 아마 시간이 약일 것 같지만 혼란이 길게 이어지면 혼란 그 자체로 위기가 발생할 우려가 높죠. 혼란은 투자자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고 자금 흐름을 경직 시키거든요.] 돈이 돌지 않으면 경제 활동이 위축된다. [마땅한 방책은 있으신가요?] [저는 경제학자가 아니라 딱히 이거다라는 방법은 없지만 나름 생각해본 방법은 있습니다.] 강현의 말에 기자밥 오래 먹은 기자들의 눈에 빛이 돌았다. 경제지 기자의 직감으로는 이번 발언은 필시 대박 특종이란 촉이 왔다. [그러니까 일종의 선물채권인데, 저는 이것을 Resource Point(RP)라고 명명했습니다. 그 개념은..] 강현의 설명이 이어지면서 키보드를 두드리는 기자들의 손가락도 빨라지기 시작했다. [RP! 우주 시대의 새로운 화폐가 되나?] [기축통화의 기준점이 될 RP란 무엇인가?] [RP의 발행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나?] 학자들은 주요 경제지에서 소개한 RP를 금본위제도의 부활이라고 정의했다. 사실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주 소행성 광산에서 채굴된 자원, 그리고 채굴될 자원에 대한 채권을 수치화해서 팔기 좋게 숫자로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다른 것은 이 RP의 발행은 철저히 인공지능에 의해서 결정되며 그 기준은 소행성대에서 생산된 생산량으로 결정된다. 물론 자원의 소실, 생산되는 자원의 비율, 운반 비용, 국제 환율 등 수많은 변수들로 최대한 각 화폐의 가치를 객관화시킬 수 있도록 복잡한 공식을 사용했다. 그러나 이 RP의 영향력을 의심하는 학자들은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 때문에 달러의 영향력을 감소 시킬 것이 분명한 RP 제도가 정치적으로 거부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또한 현물이 대상이기 때문에 그 한계 역시 명확하다고 생각했다. 복리의 이자로 빚이라는 자산을 기하급수적으로 생산하는 현대 자본주의를 따라잡기에는 현물의 가치는(비록 태양계 일지라도)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강현은 그런 의견에 동의했다. 그런데 왜 굳이 RP라는 것을 홍보한 것인가? 그것은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에서 달러화의 영향력을 약하게 만들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이 우주의 질서를 주도하면 달러의 우주에 대한 영향력이 강해질 것은 당연한 일. 자본의 영향력이 확고하게 굳어지기 전에 모든 이들에게 생존자원을 획득하는 수단을 보장해 주기 위해서는 달러 발행권을 가진 이들을 견제할 필요가 있었다. 즉, RP는 원래 시나리오에 미리 계획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이번 1000억 규모의 달러 발행에 대응하기에 적절한 수이기에 사용한 것이다. 어차피 늦기 전에 우주의 패권을 쥘 화폐의 등장은 막아야 했기 때문이다. 강현은 개인적으로 이런 시나리오를 선택한 유대 자본이 고마울 정도다. 덕분에 더 큰 수익을 추구하는 자본세력과 불필요한 신경전을 벌이는 시간이 부쩍 줄어들었기 때문에 시간을 많이 아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한편, 미국 정부는 RP의 등장과 소개에 난감함을 표했다. RP는 미국의 국력 중 하나인 달러화의 약세를 가져온다. 하지만 거부하기에는 반대 여론이 만만하지 않았다. 경제 혼란의 주범이 된 연방준비은행의 존재와 그것이 사기업이라는 사실에 경제 혼란으로 손해를 본 많은 이들이 정부를 비난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많은 국민들이 비난할 만 했다. 화폐 발행권이 없는 미국 정부는 이자를 충당하기 위해 국민에게서 세금을 걷어야 한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이 이자 역시 달러로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미국 정부가 연방준비은행에 100달러 어치의 국채를 팔아 100달러를 시중에 풀면 나중에 연방준비은행에 105달러를 갚아야 한다. 그런데 연방준비은행에서 100달러 밖에 발행하지 않았으니 나머지 5달러는 어떻게 구해야 하나? 답은 다시 연방준비은행에서 5달러를 빌리는 것이다. 빌리지 않으면 빚을 못 갚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복리 이자의 마술을 사용하면 이자는 계속 늘어난다. 화폐 이용료를 지불하기 위해 또다시 화폐를 빌릴 수 밖에 없는 구조는 어쩔 수 없이 빚을 지게 된다. 미국 정부가 연방준비은행에 무한정 빚을 지는 상황으로 가는 수 밖에 없다는 의미다. 화폐 발행권이란 바로 신용이란 이름의 빚을 만드는 권한인 것이다. 일반 국민들은 왜 미국의 화폐를 사용하는데 미국 정부가 빚을 져야 하는 구조가 되는지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조금 더 깊이 생각하는 사람들은 빚이라는 커다란 목줄을 쥔 이가 민의에 의해서 공적으로 뽑힌 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더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화폐 발행권은 곧 거대한 권력이기 때문이다. 이런 비난 여론에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 사건이 다시 떠오르며 음모론이 부각되었다. 그리고 연방준비은행에 대한 이슈가 수면위로 떠올랐다. 그러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라는 여론의 압박이 심해졌다. 적어도 연방준비은행에 정부가 끌려가서는 안 된다는 걸 확실하게 요구했다. 미국 입장에서는 난감한 일이었다. RP를 도입해 사유화된 달러 발행권을 견제하든지, 아니면 연방준비은행을 다시 국유화하든지.... 미국 정부로서는 차라리 전자가 더 쉬울 것이다. 자본가들은 절대로 화폐 발행권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상 만물에 숫자를 매기는 자본주의, 그 기준을 조절하는 통화량, 그리고 그 통화량을 결정하는 화폐발행권. 자본가의 궁극은 바로 이 화폐발행권에 있었다. 그렇다고 전자가 쉽냐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중요한 국력 요소인 달러화를 약화시켰다는 비난을 감수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이 문제로 논쟁이 벌어지며 정부의 골치를 썩이는 한편 외국에서는 벌써 RP를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방안에 대해 국제적으로 검토 중이었다. 특히 인공지능이 관리하는 공정한 발행기준이 많은 국가의 손을 들게 만들었다. 이들은 연방준비은행의 장난에 손해를 보아 굉장히 기분이 안 좋았다. 이런 일련의 사태에 연방준비은행의 의장인 옐리는 자조 어린 미소를 지었다. 연방준비은행이 맞이한 위험은 과거 마음대로 화폐를 발행했던 왕들의 실책과 닮아있었다. 아니, 사사로운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 경제를 혼란시켰다는 본질은 완전히 동일했다. 결국 화폐의 본질은 신용. 신용을 잃은 화폐는 가치를 상실할 수 밖에 없다. 국제적으로 연방준비은행이 사기업이라는 사실이 암묵적으로 용인될 수 있었던 것은 미국 정부에서 화폐 발행권을 휘두를 수 없다는 점이 한 몫 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자본가들은 권력자의 독단으로인한 화폐 가치의 붕괴로 무수히 많은 손해를 보아왔다. 이번에도 비슷할 것이다. 달러가 패권국인 미국의 화폐이기에 그 가치가 완전히 몰락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국제적인 영향력은 RP나 다른 화폐에게 나누어 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한 전조는 환율시장에서 뚝뚝 떨어지는 달러의 가치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이는 세계가 달러의 공정성을 더 이상 믿지 않는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딱 한 번의 남용인데도 그에 대한 반응은 칼처럼 날카롭게 찔러 들어왔다. 복잡한 세계의 이권, 이해 관계는 큰 흐름을 주도하는 유대인으로서도 만만한 것이 아니다. RP가 달러라는 세계 기축 통화의 대안이 될지 아니면 단순히 견제 수단이 될지 지금은 확언할 수 없지만 옐리는 RP의 존재가 차라리 달가웠다. 155화 달러 발행권의 남용으로 잃어버린 신뢰를 지탱할 수 있는 (비록 그 방식이 견제라고 할지라도)수단이 있으니 달러의 가치가 상실되어 생기는 경제 혼란이 겨우 이정도로 그친 것이다. 시장의 혼란을 원하지 않는 경제 학자들에게 RP 시스템의 존재는 적절한 시기에 내려진 처방임과 동시에 앞으로 그것이 세계 경제에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흥분되는 연구 소재이기도 했다. 옐리는 이미 변화는 시작되었다고 확신했다. 무소불위한 달러의 가치는 반드시 견제 당할 것이다. 그는 서랍에서 하얀 봉투를 꺼냈다. 탈만이 내민 서류에 사인하고 난 직후 작성한 사퇴서다. 누군가는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지 않겠는가? 아무리 압박을 받았다지만 최종 결제자는 바로 자신이었다. = = = = =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재고하기로 여러 국가가 합의해 나가는 중에 아담은 드디어 강현을 만날 수 있었다. “만나서 반갑네. 미스터 강. 한 번 만나기가 참 힘들구먼” “만나서 반갑습니다. 제가 그동안 사적으로 바빴습니다.” 정말? 강현이 임신한 아내를 위해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다고 알고 있던 그은 강현의 말을 믿지 않았다. 아니, 반갑기라도 한 건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작년에 받았던 것과 똑같은 것을 받은 소년의 표정을 보면 절대로 동의할 수 없을 것이다. 아담은 그런 소년의 표정을 보고는 불쑥 물었다. “만족하나?” “만족은 원하던 것을 얻었을 때 발생하는 감정이죠.” 왠 선문답인가? 그래서 만족했다는 건가 못했다는 건가? 아담은 후자에 주안점을 주고 말을 이었다. “미국의 유대 세력은 엄청난 위기에 빠졌네. 회심의 한 수로 사용했던 것도 결국은 극약처방이 되었어. 연방준비은행에서 유대 자본의 입지가 엄청나게 줄었네.” “유대 자본이 아니라 시오니즘의 입지겠죠. 미국 헌법에 적시되어 획득한 합법적인 화폐 발행권인데 그런 연방준비은행의 주식을 팔 유대인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가 없네요.” “... 맞네. 결국에는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한 기존 유대인 기득권의 입지가 줄어 들었지. 자네 덕분에 유대 민족 내부에서 분열이 생기고 말았지.” 분열로 인한 의견 대립이 연방준비은행의 힘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 특히 IMF에 관련된 유대인들이 이번 일을 저지른 인간들에 대한 불신이 컸는데 달러의 위상이 격하되면서 상대적으로 IMF의 역량 역시 크게 감소했기 때문이다. “지금 제 탓이라고 으름장을 놓는 건가요? 아님 한 번 찔러 본 건가요? 분열은 이미 2차 세계 대전 때부터 있던 거라고 알고 있는데요?” 강현은 독일의 홀로코스트를 방관한 시오니즘 지도부를 언급했다. 그의 노골적인 말에 아담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알고 있군. 그걸 노렸던가?” “유대 세력은 강하니까 분열시키는 것이 제 입장에서는 편하죠.” “요즘 사울이란 로비스트의 이름이 자주 귀에 들리던데 자네의 입김이 들어갔던 건가?” 강현은 대답하지 않고 그냥 웃었다. 사울을 이용해서 유대 민족 내부의 모순을 끄집어 낸 것이 주효했다. 세계적으로 부정적인 여론, 또한 근거지인 미국에서의 배척, 연방준비은행으로 상징되는 실질적인 자본 권력의 감소. 이 총체적인 위기는 유대 민족 모두가 단결되지 않으면 넘을 수가 없지만 지금 그들은 두 개로 갈라져 있었다. 이스라엘에 얽매이지 말자는 부류와 결코 그럴 수 없다는 부류였는데, 후자 쪽에서는 당연히 전자를 민족의 배반자라고 비난했고 전자 쪽에서는 오히려 이스라엘에 집착해 저 세계 유대 민족에게 큰 위기를 가져왔다고 후자를 비난했다. 인식과 입장의 차이는 좁혀지지 않았다. 왜냐면 이스라엘에 얽매여서는 유대인의 미래는 없다는 논리가 사람들이 모이고 네트워크를 형성하면서 점차 강화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이스라엘의 건설에 많은 희생을 한 기존 기득권들에게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비단 시오니즘적인 관점에서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건국부터 관여한 기득권들이기에 이스라엘에 얽힌 많은 이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형세는 유대민족을 이스라엘과 분리하다는 개혁세력과 그럴 수 없는 기득권간의 갈등이 되었고 그 일에 기름칠을 하고 있는 것이 예전에 킬덤이 소개했던 사울이라는 유대인 남자였다. 강현과의 갈등으로 위기가 왔고 일련의 사건에서 패배한 유대 자본의 영향력은 확실하게 줄어들었다. 거기에 분열이란 쐐기를 박았으니 최소 몇 년, 길게는 한 세대 동안 유대 민족 내 갈등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거기에 홀로코스트를 방관인 시오니즘 지도부의 원죄를 꾸준히 틀추기만 한다면 분열된 유대 민족은 합쳐지지 못하고 갈라질 것이다. 시오니스트와 그렇지 않은 이들로.. 아담은 웃음이 머물렀다가 사라져 담담해진 강현의 얼굴을 보면서 침중하게 입을 열었다. “그대가 원하는 것이 그것인가?” “뭐가요?” “유대인의 분열.” “아니요.” “그럼 왜?” “고여있던 것이 흐르는 것 뿐이에요. 거기에 의도가 있었다면 제게 유리하다는 것이죠.” “우리의 분열도 목적이 아니었다는 말인가?” “자, 생각해봐요. 예전처럼 저와 당신네들이 부딪히기 전이었다면 당신네들의 분열이 저에게 무슨 이득이 있겠어요.” 결국 유대인의 분열은 그들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그들의 발등에 떨어진 불똥을 처리하도록해 강현에게 수작을 부리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였다. 그 왜에는 강현에게 별다른 이득이 없었다. 미 의회의 정치 세력 역시 강현이 주도한 것이 아니고 경쟁 자본 세력을 부추겨 압장 세운 것이기 때문에 정치적 영향력도 그리 커지지 않았다. 굳이 끄집어 내자면 대량으로 매입한 언론사 주식 정도? 앞으로 그에 대한 언론 플레이가 일어난 가능성을 대폭 줄인 것이 그의 이득이라면 이득이었다. “결국은 우리가 자초했다는 말인가?” “적이 되었으니까요. 적의 약점을 찌르는 것이 잘못인가요?” 아담의 얼굴이 벌게졌다. 순간적으로 화가 올라왔다. 강현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냉정한 비지니스 세계에서 비일비재 하게 일어나는 일이니까.. 하지만 막상 자신이 당해보니 여간 화가 나는 것이 아니었다. “결국 모든 잘 못이 우리쪽에게 있다는 말이군.” “아닌 줄 아셨어요?” “자네는!” 아담의 언성이 올라갔다. 그는 간신히 마음을 잡고 어조를 평상시로 돌렸다. “자네는 꼭 혼자서 모든 것을 다 가져야겠는가?” “우주요?” 아담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우주를 독점하겠다고 한 적 없는데요.” “우리의 투자를 결사코 받지 않았지 않은가?” “투자를 받으면 우주는 당신들이 독점했겠죠.” “.... 그런 의도는 없었네. 단지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적절한 투자처에 투자를 하려고 했던 것 뿐일세.” “투자에 따른 이윤을 추구하는 것은 자본으로서는 당연한 일이죠. 그래서 당연히 이윤이 침해당할 가능성이 있다면 그것을 차단하려고 하지 않겠어요?” 그것이 기득권이 생기는 이유다. 이익을 창출하려고 보존하려는 인간 본연의 욕심이 기득권을 만든다. 없애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없애려면 인간에게서 욕심을 제거해야 하는데.. 그것이 사람일까? 아니 생물이기는 할까? 생존 본능 역시 욕심, 욕망에 근거하고 있다. 강현은 대답을 듣지 않고 말을 이었다. “저는 당신들의 행동 방식 그대로 했을 뿐이에요.” “....” 아담은 할 말을 잃었다. 처음에 강현을 만나러 왜 왔는지, 그 이유조차 희미해서 떠오르지 않았다. 간단히 강현과 화해를 하고 서로 건드리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 다음 유대 민족 내부의 일을 정리하려고 했는데 지금까지 강현이 그와 한 이야기는 그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었다. 상위의 개념에 하위 개념이 포함되는 대화를 하다보니 처음 목적한 방향을 잃어버렸다. “그럼 자네는 우주의 기득권이 되겠군.” “그렇기는 한데 나누는 것에 인색하지는 않을 거에요.” “모순되는군. 그럼 어째서 우리의 투자는 받지 않은 건가?” “말했잖아요. 그렇게 되면 반드시 독점이 일어난다고요.” “이해하기 힘들군.” 강현은 설명해 줬다. “생각해봐요. 투자를 받으면 그들의 지분을 인정할 수 밖에 없죠. 그러니 자연히 우주에서 창출되는 수익과 자원은 그들을 의식하면서 배분되겠죠.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배분된 우주 자원으로 우주에 대한 자신들의 영향력을 증대시켜 나갈 거고요. 그런데 당신들이 뭐가 이쁘다고 더 줘야 하는데요?” “그러니까 모든 이들에게 공평하게 주고 싶다?” 이 무슨 공산주의적인 사상인가? 아담은 강현의 생각에 어이가 없었다. “공평하게 주고 싶은 것이 아니죠. 단지 그럴 수 있는 선택지를 주고 싶을 뿐이에요.” “난 자네가 공산주의자인지는 몰랐네.” “공산주의자가 아니라니까요. 저는 단지 보고 싶을 뿐이에요.” “무엇을?” “우주 시대라는 조건에서 인간이 여전히 인간으로 남을지, 아니면 새로운 인간이 되기를 선택할지..” 인간이 여전히 인간으로 남는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아담은 이해할 수 없었다. “새로운 인간?” “아, 그건 공상과학소설 같은 곳에 나오는 돌연변이나 사이버네틱스가 적용된 강화 인간 같은 걸 의미하는 것은 아니에요. 물론 긴 시간이 지나면 그런 쪽으로도 생각할 수 있지만 저는 근본적인 것을 말하는 거에요.” “근본적인 것?”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무엇인지 먼저 정의해야겠지만 참으로 힘들더군요. 인간의 모습은 개체마다 다 차이가 있어서요. 그래서 저는 인간을 정의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소거법으로 답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 강현은 말을 이었다. 아담은 침묵했다. “인간에게서 무엇을 제외해야 인간이 아니게 되는가? 자긍심을 제거했다고 인간이 아닌가? 팔 한 쪽 없어졌다고 인간이 아닌가? 무수히 많은 가정을 통해서 저는 인간을 인간 답게 만드는 가장 정답에 가까운 단어를 찾아냈어요.” “그것이 무엇인가.” “사회요.” “사회?” “사회가 없는 인간을 상상해 보신 적 있나요?” “.... 그래서 사회가 변하면 새로운 인간이 탄생한다?” “정답이에요.” “웃기는 소리군..” “말이 되요. 과거 왕정시대때 민주주의를 외치던 사람이 있었나요? 민주주의 시대인 요즘 시대에 왕정시대로 돌아가자고 부르짖는 사람이 있나요? 인간을 규정하는 건 사회죠.” “그래서 결국은 그 사회가 변한다는 말이 아닌가?” “어쩔 수 없잖아요. 우주는 실시간 통신이 되는 장소가 아닌걸요. 지금 지구촌이라는 말이 흔하게 사용되지만 빛의 속도를 뛰어넘는 어떤 것을 찾지 못하는 이상 우주로 나간 인류의 모습은 과거 전파 통신 기술이 없던 사회와 비슷하게 될 거에요. 각자 밀집된 곳에서 고유의 문화를 성장시켜 나가겠죠.” “....” 아담은 이쯤 되니 할 말이 없었다. 스케일이 커도 너무나 컸다. 그러나 스케일이 너무 커서 실감이 나지 않고 이쯤되니 강현이 몽상가로 보일 지경이다. 그래서 이런 몽상가에게 당장 인류의 미래가 걸려있다는 사실에 기가 찼다. “그래서 자네에게는 무슨 이익이 있는가? 그때쯤에는 먼지가 되어 버릴 텐데..” “저는 자본가가 아니에요. 물질적 이익은 저에게는 의미가 없습니다. 그리고 아담 씨가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볼까요? 왜 그렇게 이익에 집착합니까? 죽을 때 가지고 갈 수도 없는데..” ============================ 작품 후기 ============================ 일주일간 휴식을 취하고자 합니다. 내공이 딸리는 군요... 슬럼프인 것 같습니다. 뭘해도 아무런 의욕도 안 생기네요. 헐... 다행이라면 명절이 끼어있다는 것? 어차피 명절에는 바빠서 글을 못쓰니 쉬는 날이 줄어든다는게 다행이라면 다행입니다. 156화 죽음 앞에서는 모든 개인적 가치가 허망하다는 진리에 아담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러면서 속으로 허허 헛웃음을 지었다. 역시 천재는 천재인가 보다. 말싸움에서 한 번도 지지를 않는다. 그러나 긴 대화를 마치고 그는 결국 목적한 바를 성취했다. 강현과의 불간섭 약속이었다. 물론 강현에게서 나온 대답은 ‘그쪽에서 먼저 건들지 않겠다면..’이라며 불신에 가득한 대답이었지만 말이다. “후우.” 아담이 돌아가자 강현은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다. [성공하셨습니까?] “글쎄.. 일단 이쪽에 아직 카드가 남아 있다고 인식시킨 것 같아.” 강현이 이 첨예한 기득권의 기싸움에 최후로 사용한 사울이라는 패는 사실상 끝내기 패였다. 그 외에 남은 강현의 한 수는 바퀴벌레 스파이를 이용해 폭로에 폭로를 거듭하여 불신의 시대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건 무척이나 위험한 일이었다. 틀키지 않더라도 세계를 지배하는 기득권들의 불안과 불신이 어떤 일을 일으킬지 강현으로서도 미지수였다. 그러나 그러한 카드마저 준비했던 것은 샐리의 출산이 바로 코앞에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강현은 아이가 태어나기 이전에 이 이득없는 소모전을 끝내고 싶어했고 그래서 사울을 이용한 분열이라는 패를 내밀었던 것이다. 유대인 네트워크가 분열을 빠르게 정리하고 역습을 가할 때의 최후의 방법인 것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시나리오는 거기까지 가지 않았다. 유대인들은 결국 강현과 강화를 맺었고 내부의 혼란을 수습하기로 했다. 그동안 강현이 뿌린 씨앗들과 이 사건에 관련된 경쟁 자본, 각 국가들의 입장 변화, RP로 대변되는 달러의 위상 변화들이 결코 시오니즘 유대인들에게 호의적으로 작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내부의 혼란을 봉합하는 것은 더 어려워 보인다. 비록 유대인 네트워크 내부에서 많은 인망을 얻고 있던 아담이라고 해도 시오니즘의 원죄를 강조하는 대항마인 사울을 상대로 반 시오니즘 유대 세력을 포용하기는 힘들 것이다. 아마 홀로코스트를 통해 동포에게 배반당한 입장의 유대인들로서는 절대 시오니즘 세력과 함께 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며 합치느니 차라리 갈라질 가능성도 높았다. 시오니즘 세력이 이런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유대인들에 대한 적대 세력을 부각시키는 방법이 가장 유력한데 강현은 아즈삭을 이용해 이런 행위를 철저하게 감시하도록 했다. 그런 식의 모략은 보기에 유쾌하지도 않을 뿐더라 유대인들의 힘을 감소 시키려는 목적에 걸림돌에 불과했다. 미국 제현 투자 회사에서 유대인에 대한 인종 차별은 인화(人和)를 헤치는 심각한 모럴 헤저드로 규정한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였다. 유대인이라고 다 나쁜 것은 아니다. 모두를 싸잡아 공격하는 것은 오히려 그들의 힘을 모을 계기만 줄 뿐이지 상황을 개선하는데 조금의 도움도 되지 않는다. “현! 배, 배가!” 아담과 강화를 약속한 이후 현은 샐리의 태교를 도우며 여유롭지만 불안한 며칠을 보냈다. 그리고 결국 진통이 시작되었다. 강현은 돈이 많다. 그래서 굳이 위험하게 병원까지가서 출산을 할 생각이 없었다. 여러 분만 방법 중에 산모와 아기에게 가장 부담이 적은 출산 방법을 찾고 그에 관련된 업체와 계약했다. 수중 분만은 말 그대로 여성이 무균 처리된 욕조에 앉아서 출산을 하는 방법인데 집중력, 충격완화 등 몇 가지 뛰어난 장점이 있다. 가장 수중 분만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 나라는 영국으로 강현이 고용한 회사 역시 영국의 회사로 수중 분만에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곳이었다. 그들은 강현의 연락을 받자마자 희희낙락했는데 이는 ‘세기의 천재가 선택한 회사’로 이름을 날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그러한 예는 하나 둘이 아니었으니 경영자 입장에서는 입가가 찢어질 정도였다. 며칠 전부터 인근의 호텔에서 거주하며 휴가를 보내던 스텝들은(강현이 호텔 비용도 대주었다.) 샐리의 진통이 시작되었다는 소식들을 듣자마자 바로 강현의 집으로 왔다. 이미 출산을 위한 세팅이 순식간에 이루어지도록 장비는 다 설치되어 있었다. 도착한 스텝들은 욕조에 무균 처리된 물을 채우고 출산용 의자를 설치하고는 샐리를 앉혔다. 그리고 곧, 샐리의 뾰족한 비명성이 울렸다. “아아악!” 강현은 여느 아버지가 그렇듯이 불안함에 제대로 앉을 수가 없었다. 냉철한 두뇌가 새하얗게 되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낮에 시작된 진통은 해가 한 참이나 기울어지고 나서야 끝이 났다. 응애응애. 강현은 간호사가 안겨주는 쭈글쭈글한 아기를 품에 안고는 말없이 샐리의 손을 잡았다. “울어요?” “....” 강현은 목이 잠겨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런 그의 모습에 샐리는 이마가 땀에 젖은 채로 미소 지었다. “둘째는 언제 낳을까요?” 그의 남편은 외로운 사람이다. = = = = = 유대인들이 내부의 내흥을 봉합하기 위해서 동분서주하고 그런 흐름을 막기 위해 반 시오니즘 세력을 화교, 일본 자본, 심지어 아랍 자본마저 돕게되니 시오니즘 지도부와 반 시오니즘 유대 세력간의 틈은 점점 벌어질 뿐이었다. 이러다가는 세계의 흐름을 주도하는 유대인 네트워크가 반토막나게 생겼다. 아담은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분열을 봉합하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로비스트로 활동하던 사울 역시 만만하지 않았다. 아담이 유대인의 통합을 강조했다면 사울은 유대인의 변화를 강조했다.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세기에 적응하기 위해서 유대인은 시오니즘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의 적이 되지 않기 위해서 책임있는 세계의 구성원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말은 꽤나 설득력이 있었기에 오랜 시간 신뢰를 쌓아온 아담이라도 반 시오니즘의 명분에 동조하는 유대인들의 마음을 돌리기에는 힘들었다. [2조 달러의 황태자 탄생!] [세기의 천재가 아들을 낳다!] [천재의 행보는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사울의 공세를 어떻게 막아낼지 연일 고민하던 아담은 강현이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에 미간을 약지로 위아래로 문질렀다. 무언가를 생각할 때 그의 버릇이엇다. 그는 강현과의 대화를 떠올리며 그의 성향을 떠올렸다. 이상주의자. 모든 이들을 동등하게 대하려는 박애주의자. 하지만 사실 타인이 어찌되든 신경쓰고 싶지 않은 이기주의자. 그런 그의 성향이 자식에게는 어떻게 표현될까? 가족애가 그의 이기적인 부분을 뛰어넘을 것인가? 아니면 그의 이기적인 면은 여전할까? 최악의 상황은 강현의 이기적인 면이 그의 가족에게 한정되어 가족 이기주의적 성향을 띄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유대인은 ‘패밀리 강’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경쟁자를 맞이해야 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우려대로 강현은 아들의 탄생과 자신의 마음에 일어난 변화에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아즈삭.” [네. 박사님.] “기분이 이상해.” [동공이 확대되어있고 심박수가 평소보다 높은 것으로 보아 약간의 흥분 상태에 있으신 것 같습니다. 아드님이 생긴 것이 심적으로 어떤 변화를 일으켰습니까?] “그래.” [죄송하지만 제가 알아도 되겠습니까?] “아아. 말해주고 싶지만 말로 설명할 수가 없어.” [감정의 문제군요.] “그렇지. 그래.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감동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단어는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걸 반도 표현하지 못하고 있어.” [그렇다면 그 문제는 넘어가고 앞으로 어떻게 하고 싶으신지 결정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아즈삭이 상황을 정리하자 강현은 잠깐 생각을 했다가 떠오르는 데로 입을 열었다. 이런 경우에는 그냥 생각나는 데로 말하는 것이 진심에 가까웠다. “준이 행복했으면 좋겠어.” 강준. 아들의 이름이었다. [행복이라.. 제가 답을 내기는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래. 행복은 주관적인 것이니까.” 강현은 준이 어떤 사람으로 자랄 지 상상할 수가 없었다. 해주고 싶은 것은 많지만 그것이 오히려 아이에게 해가 될까 봐 섣불리 행동하기가 두려울 정도였다. 평범한 상류층 가정처럼 철저하게 교육시킬까? 아니다. 그들이 추구하는 성공과 행복을 자신의 목표로 착각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럼 마음대로 하게 놔둘까? 돈 많고 뛰어난 아버지의 보호 아래에서 개망나니로 자라 자신의 참모습을 깨닫지 못할까 봐 두려워진다. 강현의 머리는 이런 경우의 최악과 저런 경우의 최악을 떠올리느라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쓸데없을 정도로 과도한 비약이 여기저기에 있었지만 완벽주의자인 강현에게는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아들이 단 0.01%라도 행복해지지 못할 가능성을 용납할 수가 없었다. 샐리는 남편이 서재에 박혀 하루종일 무언가를 골몰하는 모습에 결국 입을 열어 그를 타박하고 말았다. 아이가 태어났는데 기쁘지 않느냐? 아니 그게 아니고 어떻게 하면 준이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중이었다. “풋!” 샐리는 어벙한 강현의 면에 웃을 수 밖에 없었다. “현. 지금 행복해요?” “... 행복해.” 강현은 잠시 자신의 상황을 떠올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연구는 막힘이 없었고 자신을 사랑해주는 가족이 있었다. 그리고 소중한 아들도 생겼다. 행복하지 못하다고 말한다면 100% 거짓말일 것이다. “그럼 옛날과 비교해서 얼마나 행복이 변했나요?” “많이 변했어.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강현의 눈빛이 과거를 회상하느라 아득해졌다. 부모님을 잃고 과학의 창을 통해서 우주의 신비함을 엿보았다. 그리고 떠오르는 창의력에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충실했던 시간이었고 보람이 넘친 생활이었다. 아픔도 있었지만 과거에 후회는 없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부모님을 살릴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해봤지만 그렇다고 제시와의 추억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제시가 살아 돌아온다고 해도 지금의 샐리를 버릴 수도 없었다. 따지고 보면 그는 언제나 행복했다. 불행했던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 행복했다. “강현이 언제나 입버릇처럼 말하잖아요. 절대적인 건 없다고요.” “아!” 강현은 감탄사를 떠올렸다. 상대성 이론은 절대적인 기준이던 시간마저 상대적인 것으로 바꾸어 놓았다. 양자 역학은 논리적 인과관계가 지배하던 우주를 확률적인 우연이 지배하는 우주로 바꾸어 놓았다. 완벽하게 조절할 수 있는 건 세상에 없다. 그저 현재 눈앞에 있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할 뿐.. “그냥 아이가 삐뚤어지지 않도록 듬뿍 사랑해주면 충분해요.” 샐리가 말했다. 그녀는 아이가 어떤 위대한 인물이 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강현처럼 행복하기만 바랄 뿐이었고 그러기 위해서 아이는 스스로 자신의 길을 선택할 필요가 있었다. 자신들은 그저 응원해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알았어.”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샐리는 나중에 강현이 자신의 말을 어떻게 실천하는지 보고 편두통을 앓기 시작했다. “아즈삭, 프로젝트다.” [어떤 프로젝트입니까?] “프로젝트 이름은 ‘유산(legacy)’이다.” [박사님. 아직 박사님은 젊습니다. 아직 유산을 논할 시기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미리 미리 준비해 두는 거야. 어차피 지적 재산권은 남아있으니까 평생 돈 걱정은 없겠지. 하지만 내 아이들이 마주할 세상은 고작 돈만 있다고 상대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야. 나의 유산은 보물이나 마찬가지고 실력이 없다면 모조리 빼앗겨 버릴 수도 있어. 그냥 빼앗기기만 한다면 나도 시대의 흐름이라고 생각하고 수용하겠지만 빼앗기는 과정에서 내 아이들에게 불행한 일이 생기지 않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 작품 후기 ============================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추석은 잘 보내셨나요? 157화 [무척이나 낮을 겁니다.] 아즈삭은 강현의 부모에 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대답했다. 힘없는 이에게 보물은 생명을 위협하는 독이 될 수도 있다. [그럼 자식분들을 지도자로 키우실 겁니까?] 아즈삭의 물음은 합리적이었다. 힘이 없어서 부모가 물려준 것을 지킬 수 없다면 힘을 주면 된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세력을 구축하고 그 세력을 이끄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건 강현이 원하는 바가 아니다. 그는 아이들이 유산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운명을 걷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아니. 그런건 아니야. 단지 아이들의 힘이 되어줄 존재를 만들 생각이야.” 강현은 자신의 구상을 아즈삭에게 설명했다. 아즈삭은 강현의 구상을 한 줄로 평했다. [양날의 검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럼 한 쪽 날을 잘 수납할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보자.” [네, 박사님.] 아즈삭은 강현의 강한 의지에 결국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프로젝트는 양자 통신으로 이루어진 전세계를 감시하는 통합 감시 정보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아즈삭보다 보다 우월한 정보 탐색 능력을 가진 이 시스템은 엄연히 불법이며 많은 유력가들의 입에 거품을 물게할 계획이었지만 강현은 자신의 양심에 거리낄 것이 없는 일은 기꺼이 하는 인간이었다. 게다가 순수하게 자신의 아이들에게 다가올 위험을 감시하는 통합 감시 정보체계가 어느 국가가 단체에게 이용되는 것보다 훨씬 순수한 선의가 담겨있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권력과 성공을 위해서 이용될 가능성은 매우 적었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고 무엇이 문제인가? 자신의 핏줄들에게 이득이라면 기꺼이 그런 상황을 수용할 강현이었다.(아담이 우려할 만한 상황이었다.)이 유니버셜 통합 감시 정보체계의 하드웨어의 제작은 소행성 궤도에서 열심히 광물 자원을 개발하고 있던 카낙에게 맡겨졌다. 물론 카낙은 ‘유산’ 프로젝트에 가용 자원을 돌리면 소행성대 개발의 속도가 늦어지기에 처음에는 거절했다. [이 프로젝트는 나의 임무에 맞지 않으므로 거절한다.] [만약 이 프로젝트를 돕는다면 하드웨어 확장을 20% 정도 허가하겠다. 500백여대의 펜타봇과 트리플롯을 추가 지원하겠다.] [좋다.] 하지만 인공지능과의 거래에 매우 경험치가 높은 아즈삭은 단숨에 카낙이 원하는 바를 조건으로 걸어 프로젝트에 동참시켰다. 인공지능 하드웨어의 확장과 수족이 될 로봇의 추가 지원은 카낙의 존재 목적에 부합되는 일이었다. 강현이 카낙의 지원을 받은 이유는 간단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몰래 인공지능을 만들 수 있는 장소가 우주이기 때문이다. 누가 현장 답사로 인공지능이 만들어지는 것을 확인할 것인가? 하지만 우주의 무중력 공간이기에 RNP모듈이나 SNP 모듈을 만들기 위한 제약 조건이 매우 많았다. 거기다가 플라스틱을 만들기 위한 탄화수소는 우주에서 구하기 힘든 물질이었다. 다행이 흑연 광맥을 발견해서(플라즈마 기법을 이용해 드릴용 다이아몬드를 만들고 있다.) 탄소의 수급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수소를 확보하는 것이 문제였다 무중력 상황에서 가장 가벼운 물질인 수소는 우주 공간으로 너무나 쉽게 확산해 버리기 때문에 소행성대의 환경에서는 산소와 결합한 물이라는 화합물이 아니라면 확보하기는 너무나 어려웠다. 질소와 메탄가스로 이루어진 토성의 위성인 타이탄에서 쉽게 구할 수 있지만 거기까지 가기에는 적당한 채굴 장비가 없었다. 메탄 덩어리를 캐어내도 그것을 우주 공간으로 운반할 방법도 없었다. 어차피 만들어야 할 고분자 화합물은 주로 통합 감시 정보 체계에 사용할 예정이라 카낙은 그냥 그동안 모아뒀던 물과 얼음을 전기 분해해서 수소를 뽑아 흑연과 반응시켜 탄화수소를 만들었다. 지구였다면 석유를 이용해서 순식간에 인공지능 하드웨어 모듈을 만들기 위한 재료들을 수급할 수 있었겠지만 우주 공간에서는 석유가 없었고 수급 받기에도 명분이 적당하지 않았다. 비밀리에 진행되는 일이었던 것이다. 탄화수소를 이용해 단량체를 만들기 위해서 가장 필요했던 환경은 중력이 작용하는 환경이었다. 고체가 아니라 액체였기 때문에 무중력 환경에서 운반하기가 그렇게 용이하지 않았다. 밀도차이를 이용한 혼합과 분리도 어려웠다. 그래서 카낙은 간이로 만든 중력 실험장(원심력으로 중력을 구현하는 장소)에서 하나 하나 RNP와 SNP를 만들기 시작했다. 무중력 공간이라 모듈의 경화가 등방적으로 이루어져서 인지 매우 균일한 성능을 가져 사회화 작업을 통해 가용한 상태로 만들기가 용이했다. 그러나 통신속도의 물리적 한계 때문에 인공지능을 구성하는 속도는 매우 느렸고 해결 방법은 없었다. 물론 이 유니버셜 통합 감시 정보체계용 인공지능은 단순한 인공지능이 아니었다. 사실 인공지능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것은 단순히 정보적인 자극을 반응하는 고도로 복잡한 구성을 지닌 전자기계에 불과했다. 이른바 인공지능의 탈을 쓴 고도의 계산기나 마찬가지였다. 시간에 지나 인공지능의 모습을 띌 수도 있지만 생명체 특유의 목적성이 없는 이상 그것은 인공지능으로서의 자아를 가지는 것 보다는 맡겨진 임무를 수행하는 로봇과 별반 다를 바 없는 행위를 할 것이었다. 욕망을 가진 컴퓨터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또 반대로 욕망이 없는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상상해 보면 통합 감시 정보체계라고 명명된 (욕망이 없는 것은 지능이 아니라는 것이 강현의 믿음이었다.) 이것의 한계는 명확했다. ‘유산’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후 강현의 생활은 더욱 바빠졌다. 기존의 자본주의 붕괴 혹은 세계 중심적 가치관의 전환을 위한 프로젝트에 자식들을 위한 일까지 더해지니 여기저기에 구멍이 생길 지경이었다. 두 프로젝트를 겹치면 일이 수월해 지겠지만 강현은 그러지 않았다. 각 프로젝트는 상이하며 이질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겹치는 경우 이도 저도 아닌 프로젝트가 될 수도 있었다. 그래서 강현은 시간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힘을 내어 각 프로젝트를 따로 진행했다. 그래도 매일 한 두 시간씩 시간을 내어 샐리와 아이를 보는 시간을 냈다. “그렇게 좋아요?” “응.” 샐리의 물음에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에도 그의 시선은 잠든 아들의 얼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 모습에 샐리는 다소 안심이 되었다. 너무나 이성적이기에 감성적인 모습을 보기 힘든 강현의 강한 부성애를 확인하니 앞으로도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요새 뭐가 그리 바쁜지 연일 서재에 틀어박혀 무언가를 하고 있는 모습은 우려스러웠다. 아이도 생겼고 행복한 가정도 있으니 조금 쉬엄쉬엄해도 될련만.. 게다가 이제 남편을 함부로 건드는 이들이 없지 않은가? 샐리도 눈과 귀가 있어 뉴스와 방송을 통해 남편이 유대 자본 세력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어렴풋이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세계를 주름잡던 유대인 네트워크, 이대로 붕괴되나?] [유대인 사회에 몰아치는 반 시오니즘의 물결!] 세계는 저마다의 이유로 유대인 사회의 분열을 긍정적으로 보았다. 실질적인 이득이란 관점을 제외하고서라도 자본주의 사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유대인들이 시오니즘을 버리고 세계적 화합에 동참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거라고 많은 사람들이 낙관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들 입장에서는 기분이 어떠할까? 그걸 생각하면 샐리는 마냥 웃을 수가 없었다. 그저 남편의 능력을 믿을 뿐이었다. = = = = = 강현이 그리는 우주 시대로 향하는 과정에 등장한 큰 걸림돌은 치워졌다. 아담이 그런 표현을 듣는다면 격분하겠지만 일이 마무리된 이상 그 이상의 표현은 필요하지 않았다. 패배한 대적자는 과거에 존재했던 걸림돌 이상이 될 수 없었다 이제 강현이 해야되는 일은 거주형 우주 식민지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목적은 RP의 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해서였다. 우주의 전략성만을 고려해서는 RP의 가치는 커지지 못한다. 인간의 생활에 밀접하게 관련되어 사용되어야만 RP 시스템이 대중화되고 널리 이용되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실물 중심의 RP가 신용 중심의 자본에 비견될 수 있는 가치를 지니게 될 것이다. 지구라는 거대한 환경이라면 그러기 쉽지 않겠지만 모든 것이 불확실한 우주에서 신용같은 불확실한 화폐보다는 실물로 그 가치를 담보하는 RP를 사람들이 선호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라도 강현은 인류를 저 땅 위의 세계에서 우주 위로 끌어올릴 필요가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확실히 생명을 담보할 수 있는 안전한 우주 식민지를 건설할 필요가 있었다. 그저 튼튼하기만 해서는 안된다. 기본적인 생명 유지 시스템에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피난 시스템, 재해 방지 시스템까지 더하고 지속적인 유지 관리를 위해 블록화 설계도 해야한다. 자연히 그럴려고 하다보니 외벽이 이중 구조가 되는 수 밖에 없었다. “자재는 다 준비 됐어?” [뉴욕 크기의 인공 위성 도시를 건설할 자재는 내년까지 생산이 완료될 것으로 보입니다. 건설 시작은 1차분 자재가 도착하는 즉시 할 수 있습니다.] “흐음. 그럼 빨리 수송용 우주선을 만들어야 겠구나.” [현재 공정율 94%. 다음주 월요일에 완공될 예정입니다.] 수송용 우주선인 서브 카낙은 그저 수송용으로 제작된 우주선이다. 하지만 많은 EM 드라이버와 태양광 패널을 장착해 더 빠르게 수송할 수 있도록 설계 되었다. “아! 그리고 우주 여행 기술에 참신한 것이 나온건 있어?” [사람을 우주로 쏘아 올리는 기술 말입니까?] “그게 확실하게 선행되어야 우주 도시의 가치가 더 커져. 사람들을 입주시키는데도 유리하고.” [다양한 방법은 있지만 매스 드라이버가 실용화 되면서 매스 드라이버와 결합한 방법이 주로 구상되고 있습니다.] “흐음. 하긴 매스 드라이버 만으로 궤도에 올리려면 규모가 지나치게 커지겠지. 그럼 가장 유력한 후보 회사는 어디야?” [스페이스 X로 수직 이착륙 우주 비행선인 드래곤 V2를 개발중에 있습니다. 캡슐형이라 매스 드라이버에 적용하기 쉽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우주로 인간을 올려보는건 가능하다. 하지만 비용을 적게 들이고 그러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로켓은 비싸고 소모적이기 때문에 우주 여행을 대중화 시키는 방법으로 비행기에 우주 여행용 비행선을 싣고 고도를 높여 높은 고도에서 발사하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그것도 옛말. 매스 드라이버가 실용화 되어 그 위력을 과시하자마자 민간 우주 여행 업계는 대대적인 경쟁에 들어갔다. 인간은 보다 싸게 대량으로 우주로 올려보낼 기술을 선점하는 자가 차대세 운송 시장을 점유하게 되기 때문이다. “흐음.. 그럼 거기랑 기술 제휴를 해볼까?” 강현으로서는 나쁠 것이 없었다. 데이터를 주고 받아 필요한 매스 드라이버의 출력, 그리고 쏘아보내는 발사체의 출력 비율을 잘 따져서 매스 드라이버에 크게 부담이 없는 최적의 수치를 찾기만 한다면 빠른 시간내에 사람을 우주로 보낼 수 있었다. [비행기 형 우주선도 고려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날개가 있다는 건 귀환이 편리하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로켓 분리형은 아무래도 제외하시는 것이 좋을 것같습니다.] 순간 강현의 머리속에 우주 도시와 왔다갔다하는 우주 비행선의 모습이 그려졌다. 158화 매스 드라이버의 도움을 받아 중력을 탈출하기 위한 에너지 조력을 받기 위해서 날개는 없는 것이 좋다. 하지만 우주에서 지상으로 내려올 때 속도와 방향을 조절할 수 있는 날개는 반드시 필요했다. 로봇들을 우주로 쏘아 올릴 때 사용한 발사체처럼 날개를 내장형으로 만든다면 이 조건을 만족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매스 드라이버를 떠난 이후 충분한 추진력을 얻기 위해서는 작용과 반작용의 원리를 사용하는 수 밖에 없었다. EM 드라이버는 아쉽게도 중량당 출력이 너무나 약해 지구 중력을 벗어나기 힘들었다. “작용과 반작용의 효과를 사용해야 되는데..” 추진체를 탑재하면 다시 매스 드라이버의 부담이 늘어난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그렇다고 매스 드라이버의 부담을 줄이거나 유지하게 되면 중력권을 돌파하기 위해 추진체의 양이 더 늘어나야하고 다시 매스 드라이버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악순환의 고리가 생겨버린다. 그렇다면 방법은 한가지 추진체가 없는 작용-반작용 효과를 개발해야 한다는 것. 강현은 문득 나사와 펜타곤에서 개발 중인 플라즈마 엔진을 떠올렸다. 전정기적인 인력과 반발력을 이용해 플라즈마를 더욱 빠른 속도로 뒤로 쏘아보내면 운동량 보존의 법칙에 의해 그냥 기체를 뒤로 분사하는 것보다 더 빠른 추진력을 얻을 수 있다. 이 방법의 강점은 같은 추진력을 얻기 위해 소모하는 추진체의 양이 적어진다는 점. 거기에 대기권이라면 이 방법은 더욱 유용했다. 제트 엔진의 원리는 차가운 공기를 연료와 섞어 고 에너지화 하여 뒤로 분사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대기의 공기를 엔진으로 빨아들여 플라즈마로 만들어 뒤로 분사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전지(電池)만으로 가는 초음속 비행기를 만들 수 있다는 말이다. 거기에 산소와의 연소 반응을 쓰지 않으니 산소가 없는 대기 조건을 가진 다른 행성(이산화탄소가 주를 이루는 화성. 질소와 메탄이 주를 이루는 토성의 위성인 타이탄 등)에서도 원활히 운항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역시 장점 만큼 단점도 컸는데 흡입된 기체를 빠르게 대량으로 플라즈마로 만들고 충분한 속도로 가속시켜 분사하는 장치를 소형화 시키는 것이 현재의 기술 수준으로는 무척이나 어렵다는 것이었다. “흐음.. 방법이 없을까?” [팬타곤과 접촉해 보시겠습니까?] “그래야 겠지?” 아즈삭의 해킹으로 충분히 연구 자료를 빼올 수 있겠지만 아즈락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경계하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왜 나사가 아니라 펜타곤이냐면 나사의 플라즈마 엔진은 장거리 우주 여행을 하기 위해 플라즈마용 연료(주로 핵물질)를 탑재하여 연비를 극한까지 올린 일종의 로켓 개념이고 펜타곤의 플라즈마 엔진은 전술, 전략적인 이유로 전기로 활동하는 초음속 전투기용 엔진을 상정하고 만든 일종의 제트 엔진의 개념에 해당했기 때문이다. 공기를 흡입해 연료와 섞어 연소한 수 고온의 가스를 배출하는 방법과 공기를 더 높은 에너지 상태인 플라즈마로 만들어 고속으로 배출하는 방법 사이에 원리의 차이는 없었다. 단지 기술의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강현이 펜타곤에 연락을 하자마자 달려온 것은 바로 무기 개발부 소속으로 강현에게 K시리즈와 CNC 장갑으로 잠시 같이 일을 했던 할렌이었다. “플라즈마 엔진을 개량해 보고 싶으시다고요?” “우주에 사람을 올려보내려고 하면 필요할 것 같아서요.” “하하하! 박사님께서 동참해 주신다면야 프로젝트는 이미 성공한 거나 다름 없죠.” “글쎄요. 일단 자료를 봐야 성공할 수 있을지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할렌은 즉시 들고온 봉투 입구를 찢어 대용량 USB를 꺼냈다. 봉투에는 Top secret라고 도장이 찍혀있었다. 강현은 건네받은 USB를 컴퓨터에 꽂았다. “아즈삭. 분석 시작해.” [설계도를 바탕으로 3D 렌더링을 시작합니다. 구현 완료. 물리 엔진으로 시뮬레이션을 시작합니다. 실험 데이터와 비교, 오류 검정까지 약 한 시간이 예상됩니다.] “이햐! 겨우 한 시간이라니! 역시 아즈삭은 대단하군요!” 할렌의 감탄에 강현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확실히 같은 이공계열이라서 칭찬 포인트가 어디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지구상에 있는 인공지능들 중의 가장 맏형이니까 이 정도는 할 수 있어야죠.” “아닙니다. 거의 완벽한 연구 지원 인공지능이군요. 아리사도 한 번 봤는데 아즈삭에 비해서는 성능이 많이 떨어집니다. 펜타곤에 있는 연구용 인공지능은 아리사보다 더 못하고요.” “결국 상호작용하는 시간이 문제죠. 그 아이들도 경험을 쌓으면 지금의 아즈삭 정도는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군요.” “결국에는 연구를 주도하는 연구원과 피드백이 얼마나 잘 되느냐가 성장의 속도를 좌우합니다. 애정을 가지면 그 속도는 더욱 빨라지겠죠. 애정과 관심을 가지게 되면 대상에 대한 사람의 반응 속도가 빨라지니까요.” “명심하겠습니다.” 두 사람은 한 시간 동안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기술에 관련된 것이었는데 그중에는 우주 전함같은 것도 언급되었다. 아무래도 우주 세기를 앞두고 있는데다가 무기 개발부 소속 연구원인 할렌이다보니 우주용 무기 기술에 관심이 많았다. “전략 핵무기 협정 때문에 우주 무기는 만들수 없을 텐데요.” “그렇기는 합니다만 정치하는 인간들의 욕심은 알 수가 없으니까요. 어느날 극비 프로젝트로 떡 하니 안겨 줄 수도 있어요.” “숨을 곳 하나없는 휑한 우주 공간에서 그런 무력 시설을 지으면 금방 들킬 텐데요.” 소행성대가 아니라면.. 강현은 몰래 지어지고 있는 통합 감시 정보체계의 존재를 떠올리고는 뒷말을 삼켰다. “그렇긴 하죠. 하지만 강 박사님께서 본격적으로 우주 도시를 건설하게 되면 각 국에서도 우주 도시를 짓기 위해서 각종 자재를 우주에 올려보내는 등 우주 공간이 혼잡스럽게 될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 작은 공격용 전략 위성을 마련할 수도 있어요.”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었다. 활동를 정지시키고 휴먼상태로 둔다면 조금 큰 우주 쓰레기 정도로 인식될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다가 만일의 상황에서는 갑자기 활동을 시작해 적국의 우주 시설물에 미사일 한 발 정도 먹일 수도 있으리라.. 그리고 무중력 공간에서 그런 공격은 대체로 치명타가 된다. “그렇군요. 방비를 철저하게 해야겠군요.” 강현은 할렌의 견해에 완벽한 레이더 시스템을 인공위성에 추가하기로 마음 먹었다. 설마하고 인간의 악의를 간과했다가는 어떤 비극을 양산할 지 모른다. 우주 시대에 꿈과 희망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 있는 반면에 우주 진출에 부정적인 인간도 있다. 한 명쯤 있다면 별문제 없겠지만 과연 그런 인간이 한 명 뿐인까? 인간은 생각보다 훨씬 보수적이다. [시뮬레이션 완료, 오차 수정 완료.] “어때? 최적화 설계를 할 수 있겠어?” 할렌이 넘겨준 자료의 플라즈마 제트 엔진의 크기는 여객선 제트 엔진만한 크기였다. 그러나 출력은 크기에 비해서 형평없었다. 차라리 프로펠러기가 더 출력이 높았다. [제 능력으로는 부족합니다. 획기적인 개념의 도입이나 부품 재료에서부터 개량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할렌 씨,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하하하! 여유롭게 연구하세요.” ‘그래봤자 일 이년 이내에 결과물이 나오겠지.’ 할렌의 속마음은 그랬다. 천재가 목표를 정했으니 근 시일 내에 흡족한 결과가 나올 것이다. 언제나 그러지 않았는가? 게다가 오늘 새삼 본 아즈삭의 유연함과 능력을 확인하니 그런 속마음을 뒷받침할 근거까지 생겼다. ‘스스로의 능력을 재단해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분류하고 필요한 요소를 추정까지 하다니!’ 물론 그 추정이 맞는지는 개발자의 판단에 맡길 일이지만 답답하게 이건 이래서 안된다, 저건 저래서 안된다, 쓸만한 기술이 없다라는 말만 반복하며 딴지를 거는 데만 급급한 펜타곤의 개발용 인공지능에 비하면 천재나 마찬가지였다. “그럼 꼭 좀 부탁드립니다.” 전기 에너지만으로 초음속 비행을 하는 전투기의 존재는 미 공군 전략을 뿌리째 바꿔버릴 수 있을 것이다. 무기를 좋아하는 할렌에게는 흥분되는 이야기였다. 인류 역사상 전술을 위해서 무기가 개발되는 경우와 무기에 맞추어 전술이 개발되는 경우 중 과연 어느 경우가 드물까? 영국의 롱보우, 화약, 총, 대포, 핵무기. 전략과 전술에 영향을 줄 정도의 무기 기술은 그 시대의 사회를 바꿔 놓는 위력이 있었다. 할렌은 이 플라즈마 제트 엔진으로 대기권을 오갈 수 있는 전투기가 개발되는 순간 우주의 패권은 이 플라즈마 제트 엔진을 가진 국가가 선점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 = = = = “곤지곤지 잼잼!” 꺄~하! 준이 눈을 떴다. 똘망똘망한 검은 눈동자와 얼굴의 윤곽은 강현을 닮았지만 뚜렷한 이목구비에서 샐리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아기의 얼굴은 동서양의 미남 미녀가 결합했을 때 그렇듯이 양쪽의 매력을 동시에 가져 귀엽기 짝이 없었다. 강현은 아이의 눈을 내려다보면서 아이의 웃음소리에 시간가는 줄 몰랐다. 아즈삭이 일정이 밀리고 있다고 몇 번이나 호출을 했지만 알았다고 말만하고는 아이의 재롱에 흠뻑 빠져버렸다. 오죽하면 아즈삭이 샐리에게 부탁을 할 정도였을까? 샐리는 강현이 자식 사랑에 중요한 일을 망치기를 바라지 않았다. 과도한 사랑은 자신과 자식 모두를 망칠 수 있었다. 사람이 할 일은 하고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쩝.” 강현은 샐리가 등을 떠밀고 서재로 들여보내자 아쉬운 마음에 입맛을 다셨다. 아기라는 존재가 이렇게 귀여울 줄은 상상도 못했다. [박사님. 일정이 많이 밀렸습니다. 우주 도시가 완공되는 시점에 맞추어 우주 여행 기술을 상용화 시켜야 합니다. 거기에 물질 분석 레이더의 개발을 위한 이론 연구 작업도 마무리해서 시제품을 만드셔야 하고 또 유니버셜 통합 감시 정보 체계의 진행을 관리 감독 하셔야 합니다.] “아! 일이 너무 많아.” 강현은 후회했다. 왜 이렇게 일을 많이 벌리게 된 것일까?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면 이 일의 시작에 마리아 헨델이 있었다. 시오니스트 아버지를 둔 그 착한 아가씨가 가자 지구의 학살을 막아달라고 울면서 간청했고 때문에 헨델 회장과 약간의 설전을 벌였다. 그리고는 무슨 변덕에선지 자본주의를 몰락 시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워버렸으니 지금 강현이 바쁜 일정에 치이는 이유는 모두 마리아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강현은 남을 위해 눈물을 흘리는 그녀의 탓을 할 수 없었다. 대신에 화살을 이스라엘로 돌렸다. ‘망할 시오니스트들. 하여간 종교쟁이 놈들은 답이 없다니까.’ 그는 그렇게 궁시렁대며 최우선 과제인 물질 분석 레이더의 개발을 위해 신 통일장 방정식의 변형형을 끄적이기 시작했다. 중성미자 등 약력을 기술하는 정수배형 변수들의 집합을 정리한 이후, 우주 개발을 위해서 중력에 관련된 변수를 찾는데 노력을 기울인 그는 힉스 입자와 관련이 있는 것 같은 변수를 추정할 수 있었다. 신의 입자라고 불리며 입자에 질량을 부여하는 이 힉스 입자의 작동원리를 과학자들은 이렇게 비유한다. 두 사람의 배우가 있다. 한 명은 유명 배우고 한 명은 무명 배우다. 이 둘이 팬 미팅 현장에 가니 팬들이 유명 배우에게 밀려 들었고 무명 배우에게 접근한 팬은 몇 명 없었다. ============================ 작품 후기 ============================ 내일도 연참을 할거라는 기대는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는 약한 글쟁이입니다. 159화 그리하여 유명 배우는 움직이기가 힘이 들고 무명 배우는 움직이기가 편해진다. 여기서 유명 배우는 무거운 입자이고 무명 배우는 가벼운 입자가 된다. 그리고 바로 팬들이 바로 힉스 입자가 되는 것이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질량을 가진 입자가 빛의 속도에 가깝게 속도가 증가할 때 질량이 증가하는 이유를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어떤 물리적 현상도 빛의 속도를 뛰어넘을 수 없다는 상대성 원리를 염두에 두고 힉스 입자가 가득한 우주 공간에서 입자를 가속시키는 사고 실험을 해보자. 속도가 올라갈 수록 이 입자가 만나는 힉스 입자의 수는 많아지게 된다. 즉, 질량이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힉스 입자는 자체적인 속도가 없는 것인가? 기체와 같이 대류와 같은 거동을 하진 않는 것인가? 힉스 입자로 이루어진 바람 같은 게 있지 않을까? 만일 그렇다면 이 힉스 입자의 흐름에 편승해 빛의 속도를 뛰어넘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물질의 이중성을 떠올리면 또다시 양상이 바뀐다. 양자 세계에서 입자와 파동은 구분할 수 없다. 힉스 입자는 또한 힉스 장(場)으로 표현되기도 하기 때문에 장(場)이 펼쳐진 공간에서의 파동적인 해석을 할 필요가 있었다. 강현의 신 통일장 이론에 의하면 입자는 에너지 파동이 공간내에서 특정 차원축 방향으로 정상파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진동 모드(mode)와 차원에 의해서 입자의 성질은 변화된다. 하지만 질량을 가진 입자는 적어도 힉스 장(場)에 의해서 간섭을 받는다. 그 간섭은 어떻게 받는 것일까? 그 간섭의 과정을 수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면 질량을 없애는 방법도 가능할지 모른다. 아니면 특정 방향으로 작용하는 관성만을 제거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아! EM 드라이브!” 강현이 손가락을 튕겼다. 세상의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주체가 객체에 간섭을 하면 주체 역시 객체에게 간섭을 받게 되는 것이 양자 얽힘이 지배하는 물리 법칙의 원리다. 입자가 힉스 입자에 의해서 질량을 부여받는 ‘간섭’을 받는다면 입자 역시 역으로 힉스 입자에 간섭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강현의 머리에 떠오른 것이 EM 드라이브였다. 전파도 파동이고 힉스 입자도 파동이다. 이 두 가지 파동이 같은 공간의 한 지점에서 겹쳐져 서로 간섭해 일시적으로 힉스 입자의 성질이 사라지거나 약화되었다면? 그렇다면 전체적인 운동량에 변화가 생길 수도 있었다. “그럼 매개입자는 전자?” 하지만 차원축이 전자기장 축인 전파와 중력장 축인 힉스 장이 그냥 겹칠리는 없다. 반드시 그 두 개를 연결시킬 연결고리가 필요했고 가장 적절한 것이 전자기장에 의해 힘을 받으며 또한 미세한 질량을 가진 전자였다. 원자핵 역시 충분히 가능성이 높았지만 너무 무거웠다. 전자기장에 의한 영향력보다 힉스 장의 영향력이 더 강해 전자기장과 힉스 장 간의 간섭이 일어날 여지가 전자(電子)보다 적었다. “흐음. 고주파가 반사되기 위해서 전자가 흡수할 때 급격한 속도 변화가 생긴다면.. 힉스 입자의 공백 현상이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전자의 급격한 모멘텀 변화가 전자기장 축과 중력장 축을 일시적으로 연결시킨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빛이 반사될 때 물체가 그냥 튕겨낸다는 것이다. 사실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빛의 반사, 투과 등 물체와 만나는 모든 과정에서 반드시 전자 밑 원자핵과 상호작용을 하도록 되어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일어나는 모든 광학적 현상은 원자의 배치와 전자의 준위에 의해서 결정이 난다. 이런 원리를 이용한 것이 바로 나노 홀로그램 기술이었다. 멀쩡한 하얀색의 물질이 단지 크기가 나노가 된다고 색깔이 변하는 것이다. 즉, 빛이 순간적으로 질량을 가진 가볍고 전하를 띈 입자와 간섭할 때 힉스 입자에도 간섭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강현이 추측하는 원리였다. “파동적 해석은 신 통일장 이론으로 가능할 것 같은데.. 그래도 아직 양자 색역학을 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색역학적인 관점에서도 설명할 수 있어야 해. 간단히 설명을 하다면 빠르게 움직인 전자가 순간적으로 힉스 입자를 밀어내 공백 현상을 만들었다고나 할까?” [수식적으로 표현해 원리를 확립한다면 EM 드라이브를 개량할 수도 있습니다.] “당장하자!” 강현은 신이 났다. = = = = = 힉스 제로(0) 현상. 요즘 물리학계를 강타한 이슈다. 그간 베일에 쌓여있던 EM 드라이버의 작동원리를 설명하는 가설 중 가장 유력한 후보로 떠오르고 있었다. 초고주파가 구리로 만들어진 기하학적인 모양(원뿔대 모양)의 챔버 안에 들어가 반사를 거듭하는 동안 전자와 상호작용을 하게 된다. 물질 내에 존재하는 전자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운동을 하고 있는데 그 속도는 m/s 단위를 훌쩍 뛰어넘어 1000km/s를 넘나드는 속도로 원자핵 주변을 움직이고 있다. 물론 물질의 종류와 온도에 따라서 이 속도는 변한다. 하지만 인간의 상식을 초월하는 속도로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런데 무려 빛의 속도의 1%에 근접하는 속도로 항시 움직이고 있는 이 전자 궤도가 외부에 의해서 간섭되는 것이다. 질량을 가지며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는 입자의 궤도의 순간적인 변화는 힉스 장에 변화를 일으키고 특정 방향으로 힉스 장을 일그러 뜨리게 되는데 이것이 전자의 질량을 등방성에서 이방성으로 만들어 버린다. 3차원 공간 어느 방향으로나 일정한 관성의 법칙이 일순간 특정 방향에 대해서만 성립하는 법칙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전자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으니 질량의 이방성에 의해 운동량 보존의 법칙이 깨어지게 된다. 그리하여 전자가 이동하게 되고 정전기적인 인력에 의해 원자핵도 끌려가 전체적으로 움직이게 되는 것이 바로 힉스 제로라는 가설로 설명한 EM 드라이버의 원리였다. 이 이론대로라면 초고주파가 원뿔대의 넓은 면을 더 많이 때리기 때문에 추진력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비스듬한 옆면에서 이 힉스 제로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추진력이 생기는 것이다. 전자파의 전기장은 진행 방향에 수직하게 유도되기 때문에 평평한 아래 위의 원반에서는 힉스 제로 현상이 면에 평행한 무작위 방향으로 생겨 서로 상쇄되고 따라서 깔대기 모양의 비스듬한 옆면에서 추진력이 생긴다는 것이다. 학계는 술렁거렸다. 강현이 내어 놓은 논문의 내용이 사실인지 검증하기 시작한 연구실이 있는가 하면 논리적인 오류를 다시 한 번 검증하는 연구실도 있었다. 하지만 대다수가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이 힉스 제로라는 가설이 EM 드라이버의 추진력을 설명하는 가장 근거있는 가설이라는 것이다. 이유는 두 가지. 일단 수식적인 설명에 큰 오류가 없다. 또한 이 가설을 발표한 이가 바로 강현이라는 점이다. 얼마 있지 않아서 이 이론을 바탕으로 개량한 EM 드라이버가 나온다고 하니까 충분히 검증이 가능할 것이다. 강현은 특이하게 자신의 이론을 검증하는 방법을 실험이 아니라 실 제품을 제작하여 증명해 왔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물론 기업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강현은 힉스 제로 효과를 효과적으로 일으켜 EM 드라이버의 출력을 증가시키기 위해서 전자 오비탈부터 차근 차근 시뮬레이션하기 시작했다. 전자 오비탈은 이른바 전자 껍질을 구성하는 각 전자 궤도 혹은 전자 구름을 지칭하는 것으로 다양한 모양이 있다. 탄화수소나 공유 결합이 바로 이 오비탈에 의해서 구성되고 물질의 결정구조에 근본적인 영향을 끼친다. 힉스 제로 효과가 잘 일어나는 전자 궤도와 전기장 주사각을 시뮬레이션을 통해서 찾고 결정 구조를 조직해 최종적으로는 자전관으로 초고주파를 쏘지 않고 재료 내부에 전기장만을 투과시켜 추진력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당연히 난관이 없을 수가 없었다. 전기장은 반드시 교류나 펄스파여야 했다. 왜냐면 전자 궤도에 지속적인 변화를 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때 재료 고유의 특성, 투과율, 상자성, 반상자성, 유도기전력 등 전자의 움직임에 의하거나 영향을 주는 다양한 물리적 현상을 고려해야 하는데 이런 현상들이 힉스 제로 현상을 일어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방해 요소가 되었다. 덕분에 재료 내부에 직접 전기장을 가해 힉스 제로 현상을 일으키겠다는 목표는 난항을 거듭했고 결국 나노 기술에까지 눈을 돌리게 되었다. 재료 고유의 특성이 사이즈의 변화에 따라 변하는 나노 세계에서 힉스 제로 효과가 일어나는데 도움이 되거나 최소한 방해하지 않도록 재료를 변조할 수 있을 거라고 보았다. 강현은 일단 실리콘 기판 위에 특정 결정 구조를 가진 금속 합금 박막을 특정 결정면이 올라오도록 증착한 후에 원하는 결정 방향으로 전기장이 흐르도록 전선을 연결했다. 그리고는 실에 매달아 초고주파 전류를 흘렸다. 만일 제대로 된다면 실이 어떤 방향이든 흔들리게 될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아! 실패네.” 실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추진력이 생기지 않은 것이다. “왜지?” [전자의 스핀값 역시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닐까요?] “직선 전기장 주위에 원형으로 생기는 자기장이 전자의 움직임을 방해했다?” 강현은 다시 신 통일장 이론으로 정리한 힉스 제로 효과가 일어나기 위한 조건을 확인했다. 전자가 들뜬 상태에서 다시 안정 상태로 돌아갈 때 생기는 급진적 속도의 변화가 힉스 제로 효과가 일어나기 위한 전제 조건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직접 재료에 전기장을 가하게 되면 전기장에 의해 전자 오비탈 자체가 변형된다. 전자기파에 의한 들뜬 현상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것이다. “흐음... 일단 직접 전기장을 가해서 힉스 제로 효과를 일으키는 건 양자적인 관점에서는 불가능 하겠구나.” 전기장은 전기장에 불과하다. 전자기파는 광자라고 해서 입자라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었다. “양자 세계에 간섭하려면 거시적인 방법으로는 무린가?” 강현은 그렇다고 생각했다. 힉스 입자에 간섭하는 것도 양자 세계 수준에서 일어나는 일이지 않은가? 결국 그는 전기장만을 재료 내부에 가해 추진력을 만드는 방법을 포기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어라? 근데 왜 내가 이걸 만들고 있지?” 원래는 힉스 장을 이용한 물질 분석 레이더를 만들려고 한 것이 아니던가? 질량을 가진 입자가 힉스 장에 의해 받는 영향을 검측하기 위해서 힉스 장에 대해 이론 연구를 하다가 엉뚱한 작업으로 넘어갔다. “아즈삭. 일정이 밀렸겠지?” [물론 입니다.] 우주 개발을 위한 실질적인 기술 개발이 EM 드라이버 개량에 뒷전이 되자 아즈삭은 자연히 우주 도시 건설 일정을 늦추었다. 우주 도시의 안전을 위해서 물질 수준으로 위험을 탐지하는 물질 분석 레이더는 반드시 개발되어야 했다. 안전이 담보되지 않으면 창조주가 유인 우주 도시 건설을 재고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동안 일어났던 일련의 사건들과 그로인해 구축된 세계 정세에서 창조주의 입지를 약화시킬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다시 창조주에게 시비를 걸 인간들이 하나 둘 씩 등장할 것이지만 안타깝게도 아즈삭에게 그런 자들을 자율적으로 제거할 권한은 없었다. 아즈삭이 할 수 있는 것은 일정을 최대한 유연하게 조정하는 것이고 우주 개발 일정이 연기되는 것은 창조주에게 붙은 천재라는 타이틀과 힉스 제로 효과라는 이슈의 폭발력에 묻혀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160화 아즈삭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EM 드라이버의 개량형이 정말로 힉스 제로 효과를 입증한다면 인류의 이동 방법은 크게 변할 것이다. 그건 바퀴를 발명한 것과 마찬가지의 혁명을 불러올 것이 분명했다. [일정 조정은 했으니 EM 드라이버를 마무리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얼마나 늦어졌니?” [적어도 6개월은 늦어졌습니다.] “흐음. 빨리 레이더와 우주 여행 기술을 완성해야 하는데..” 강현은 약간 고민을 하다가 일단 시작한 일은 마무리 하기로 했다. 기존의 EM 드라이버를 개량하기로 한 것이다. 새로운 EM 드라이버는 챔버의 모양부터가 달랐는데 옆의 단면이 W모양으로 되어 있었고 초고주파가 가운데 움푹 파여진 중앙으로 주입되도록 되어 있었다. 반대쪽 원판 중앙에는 작은 원뿔이 붙여서 직진해 들어오는 초고주파를 옆 면으로 산란하게 되어 있었다. 이로서 안쪽 비탈면과 바깥쪽 비탈면이 추진력을 생기기 때문에 기존 EM 드라이버보다 두 배에 가까운 효율을 기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까지만 해서는 강현의 작품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는 챔버 안쪽 비탈면에 얇게 구리-비소 합금을 입혔는데 결정면에 의해 전자의 오비탈 방향을 조정해 놓았다. 이 방향이 조정된 오비탈을 도는 전자는 힉스 제로 효과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아지며 거기에 박막의 투과율과 기판 재료의 투과율 차이를 이용한 광학적 보강 간섭을 이용해 초고주파 광자의 효율을 극대화 했다. 다양한 측면을 노린 이 합금 코팅은 박막의 결정 방향을 의도한 대로 만들 수 있어야 하는 높은 기술력을 요구한 만큼 효율을 기존의 5배까지 올렸다. 강현은 완성품을 학회에 제출하자마자 반응도 보지 않고 바로 레이더 연구에 들어갔다. 덕분에 강현의 이론이 정말인지 검증하는 건 다른 과학자들의 몫으로 넘어갔다. 그들은 구리판에 강현이 했던 것처럼 코딩을 하고 실에 매달았다. 그리고 진공 상태에서 자전관을 이용해 다양한 입사각도로 초고주파를 쏘았고 구리판에서 일어나는 힘을 정밀하게 정량적으로 측정했다. 광자의 운동량에 의해 받는 힘, 광전 효과로 인한 정전기적인 반발력, 실 자체에 걸리는 토크 등 수많은 오류의 원인들을 유추하고 실험을 반복해 결국 그들은 힉스 제로 현상을 발견하고 말았다. 그 힘은 너무나 작았으나 분명히 존재했다. 그리고 챔버의 형태로 인해 초고주파가 감쇄 될 때까지 수십 수억 조번의 힉스 제로 현상이 일어나게 되면 추진력이 생긴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챔버는 힉스 제로 효과의 미세한 힘을 증폭시키기 위한 장치였던 것이다. 전자를 매개로 힉스 장에 영향을 주는 발상은 반중력 현상을 실현할 수 있는 아이디어이기도 했기에 이 힉스 제로 효과를 발견한 강현이 내년 노벨상 후보에 오르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과연 이번에는 노벨상을 받을 것인가? 인공 베타 붕괴 기술로 노벨상을 수여자의 위치에 올랐지만 연구가 바쁘다는 이유로 받지 않은 천재의 위엄에 다들 놀랐다. 과학자로서 엄청난 명예인 노벨상을 그렇게 쉽게 내친다는 것이 평범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이미 전례가 있으니 다음 노벨상 수상 때에도 거절할 가능성이 높았다. 게다가 우주 개발 때문에 매우 바쁜 매일을 보내고 있다는 정보가 과학계에 파다했다. 실제로 강현은 통신 네트워크를 통해서 NASA와 우주 개발에 관련되어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었고 그런 그의 신변에 대한 이야기가 NASA에 근무하는 연구원들의 인맥을 타고 과학계에 퍼져있었다.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이 어려운가? 명예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천재가 노벨상보다 그의 관심사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이 증명된 이상 두번째 노벨상 수상을 거절할 가능성은 너무나 높았다. 하지만 스웨덴 왕립 과학원장 포루먼은 두 번째 거절을 반드시 막을 생각이었다.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스웨덴 왕립 과학원의 책임자로서 강현의 행동은 오랜 전통을 가진 과학계의 미덕을 훼손하는 행위였다. 물론 개인의 가치관이 그렇다고 비난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강현이 그가 노벨상을 거절해서 생기는 여러 불쾌한 일을 듣고 이해해주기를 바랬다. “어.. 그러니까 내년 노벨상 수상 대상에 선정되면 행사장에 나와서 받아 달라고요?” “그렇네.” 머리 희끗한 백인 노신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 그러니까 작년에 제가 안 받아서 차상위 대상자가 받아야 하는데 그 사람도 탐탁치 않게 받았다고요?” “학자가 자존심이 있지. 아무리 노벨상이라도 남이 버린 걸 받을 학자는 없네. 그놈의 상금 때문에 받은 거지 상금이 없었다면 안 받았을 거네.” “어.. 그래서 다들 기분이 많이 나쁘셨다고요?” “그랬지.” “쩝.. 죄송하게 됐습니다.” “그래도 강 박사의 연구에 대한 열의는 높이 사고 있네.” 간단히 일을 정리하자면 인공 베타 붕괴 기술로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가 된 강현이 수상을 거절하자 차순위 수상자에게 상이 돌아가게 됐는데(노벨상은 수여하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 사람이 수상 소감을 하면서 상금이 아니었다면 안 받았을 거라며 썰을 풀어놓으니 참관객들의 얼굴에 쓴 웃음이 지어졌다는 그리 아름답지 못한 에피소드였다. “이거 아들 보기가 부끄럽군요.” “늦었지만 아빠가 된 것을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포루먼은 젊은 혈기가 넘치던 천재가 자식을 낳고 철이 들었다고 생각했다. 그건 틀린 생각이 아니었다. 포루먼의 말을 들은 강현은 저번에 자신의 행동을 반성했다. 사회는 격식과 예의범절이라는 것이 있다. 그것은 사람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쌓은 일종의 규범이다. 그 이면에 있는 경쟁 원리를 꿰뚫어 본 강현은 실리주의자이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규범을 지킬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로 인한 부작용 역시 힘이 있다면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규범과 격식을 충실하게 따라서 쌓아올린 사회적 인망과 명성은 그것 하나로 또 하나의 자산이었으며 상황에 따라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카드가 될 수도 있었다. 물론 강현이 그런 사회적 자산을 적극적으로 쌓은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잘 차려준 밥상을 마다한 것은 현명한 판단이 아니었다. 나중에 준이 ‘왜 그때는 안 받았어요?’라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그냥 솔직하게 귀찮아서 안 갔다고 하면 아들이 자신을 어떻게 볼 것인가? “그럼 이번에 노벨상 수상자가 되면 받으러 올 건가?” “어... 그러니까 스웨덴까지 가야 되죠?” 노벨상 시상식은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서 벌어진다. “정부에서 허락해 주려나?” “허! 미국이 자네가 가진 거주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말인가?” 포루먼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인류의 과학적 진보를 첨단에서 이끌고 있는 남자를 노예처럼 부리고 있다는 정황에(과장과 오해다.) 격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게 아니고 제가 워낙 국가적으로 중요한 인물이라서 사전에 경호 계획 따위를 조율해야 하거든요.” “그런가?” “하하! 자랑은 아니지만 저를 보호하기 위해서 따로 첩보 위성 자원도 배분해 놨데요.” “그, 그렇군.” 하긴 강현이 이룩한 것을 보면 미국 정부가 강현을 애지중지 보호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쩝. 자네도 귀찮겠군.” “뭘요. 저야 집과 연구실 이외에는 나돌아 다니지 않으니 그다지 불편하지도 않아요. 오히려 든든하게 보호해 주니까 안심이 되죠.” “사생활을 침해하고 있을 수도 있지 않은가?” “만일 그랬다면 제가 이렇게 얌전하게 있겠어요?” “그, 그렇군.” 포루먼을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강현과 잠시 더 이야기를 나누다가 떠나면서 다시 한 번 시상식에 참석해 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박사님, 시상식장에 참석하실 겁니까?] “그야 노벨상 수상이 되면.” [그때를 대비해서 경호 레벨을 올리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자율적인 차원에서?” [그렇습니다.] “K 시리즈하고 HA 시리즈가 무기로 분류되어 있으니 함부로 가지고 갈 순 없고.. 그렇다고 또 다른 건 만들기에는 쌓여있는 일이 많고..” [펜타곤에서 사족 보행형 무인 병기를 개발했습니다. 그걸 서너기 정도 얻어서 적절하게 개조하면 어떨까 합니다.] “흐음.. 그러자.” 시상식은 일년이나 더 남았지만 준비는 미리미리 해두는 습관이 있는 강현은 펜타곤에서 비밀리에 사족 보행 무인 병기인 메탈독(Metal dog) 세 기를 구입했다. 원래 기종은 머리와 목 부분에 서브 머신건과 탐지 시스템이 달려있었는데 당연히 강현에게 보낼 때에는 그것들을 제외하고 보내졌다. 강현은 메탈독의 개조를 전적으로 아즈삭에게 맡겼다. 개조 목적은 가족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 그러기 위해서 위험 요소 인지 시스템, 비살상 제압 무기를 탑재하도록 했다. 위험 요소 인지 시스템의 경우에는 아즈삭과 연동하면 쉽게 처리되고 비살상 제압 무기의 경우, 테이저 건, 급속 경화수지 총 등 이미 나와 있는 기술을 사용하면 되므로 아즈삭 혼자서 최적화 설계를 통해 개조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강현이 깨어있을 때에는 강현과 일정에 있는 프로젝트를 소화하고 강현이 자고 있을 때에는 메탈독의 개조 작업을 진행하니 약 한 달 뒤에 셰퍼드 모양의 로봇 견이 완성되었다. 하지만 강현은 완성된 로봇 견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마음에 안드십니까?] “뭔가 빠진 느낌이 들어서.” 강현은 곰곰히 생각하다가 로봇 견의 관절 부위를 보았다. 단단한 금속질의 외갑이 딱 보기만 해도 위압감을 주었다. 샐리와 아이의 주위에서 언제나 근접 경호해야 하는 로봇의 외관으로는 그다지 적절하지 않은 듯했다. “털이 없어선가 좀 그렇네.” [벨벳은 어떻습니까?] “나쁘지는 않네.” 강현의 말에 아즈삭은 나노 탄소 튜브로 짠 벨벳 원단을 주문해 HA 시리즈로 밤을 새워 재단하고 재봉했다. 역시 재봉은 일반적인 기계보다는 사람과 닮은 HA 시리즈를 이용하는 것이 압도적인 효율성을 보였다. 그렇게 로봇 견의 외피에 검은 벨벳 원단이 씌워지자 좀 웃긴 모양이 되었다. 마치 스스로 움직이는 큰 개 인형 같았기 때문이다. 강현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아즈삭에게 이보다 더 수준 높은 디자인을 원하는건 무리일 것 같았다. 그렇다고 자신이 겉보기에 불과한 일에 직접 나서기에는 벌여놓은 일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의외로 샐리는 이 로봇견을 마음에 들어했다. “아주 귀여워요.” 감시 장치와 대인 제압용 비살상 무기가 탑재된 개머리 모양의 두상은 입이 벌어지지 않아서 필요한 구멍을 제외하고는 봉제인형 머리처럼 벨벳 원단으로 뒤덮여 있었는데 그 유치한 모양과 동화적인 분위기가 아이의 정서 발달에 도움이 될 거라는 것이다. “이건 애완견이 아닌데..” “괜찮아요. 준이 좋아 하잖아요.” “꺄~아하!” 아기는 새롭고 신기한 장난감에 벌써 정신이 팔렸는지 팔을 흔들며 난리가 났다. 강현은 그런 아들의 모습을 흐뭇하게 보다가 샐리의 뺨에 키스를 했다. “그럼 나는 계속 일할게.” “수고해요.” 샐리 역시 남편의 입술에 키스를 하고는 서재로 돌려 보냈다. 평화로운 한 때였다. = = = = = [박사님. 1차 분량의 자재가 도착했습니다.] 소행성대로 출발했던 서브 카낙이 컨테이너에 건설용 자재를 잔뜩 싣고 돌아왔다. 그동안 위성 공장에서는 이 건설용 자재를 수납할 장소를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161화 무중력 상태에서 이 건설용 자재들을 그냥 놔둘 수는 없었다. 엄청난 속도로 지구를 중심으로 공전하는 것들은 하나 같이 커다란 사고를 불러올 수 있는 흉기였기 때문이다.(강현의 우주 개발 시나리오에는 그러한 위협 중 하나인 우주 쓰레기에 대비하는 기술도 준비되어 있었다.)부랴부랴 금속판을 짜맞춰 창고를 짓고 그 안에 서브 카낙이 싣고 온 판들을 옮기기 시작했다. 일단 우주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 플라즈마 정제 장치를 이용해 강철을 튼튼한 합금으로 만든 것만 일단 보내왔다. 나머지 비철 금속이나 세라믹은 나중에 필요한 일이 있을 때 운반할 계획이기 때문에 우주 광산 내부에 마련한 창고에 차곡차곡 쌓아놨다. RP 시스템의 근간이기도 했다. “흐음.. 아직 탄소 나노 튜브 섬유의 수송은 힘들지?” [아무래도 부피가 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을 듯 합니다.] “카낙 쪽에서 탄소 나노 튜브를 생산할 수 있을까?” [만들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부담이 더 커질 것입니다.] 이미 만 여 대의 로봇들을 정밀하게 조종하고 있는 카낙이었다. “돌아가는 서브 카낙에 RNP, SNP 모듈 100kg과 HA 시리즈 10기, 남은 공간에 펜타봇, 트리플론을 꽉채워서 보내줘.” [단순한 채광, 정련 시설이 아니라 제조 시설 기능을 추가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래. 내 계획의 윤곽을 그릴 때가 됐어.” 식량은 몰라도 우주에 인간이 살기 위해 필요한 모든 핵심 부품의 생산이 인간의 손을 떠나는 것은 강현이 그린 그림의 윤곽선이 될 것이다. “식량 플랜트는 언제 짓냐.” 갈 길이 멀다는 것을 확인한 강현은 한 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그는 2차분 자제가 도착하기 전에 우주 도시의 설계를 다시 한 번 점검했다.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할 수가 없었다 우주 공간에서 인간이 생활하기 위해서는 중력 상태가 용이하다. 무중력 상황에서는 용변보는 것도 일이다. 이런 중력 상태는 주로 원심력을 이용해서 해결을 하게 되는데 이 부분이 아주 골치다. 지구상의 중력 가속도는 약 9.8m/s^2. 그리고 원심력은 각속도 제곱에 중심에서의 거리를 곱한 값이다. 그러므로 우주 도시가 하루에 한 번 회전한다고 한다면 회전 반경은 적어도 18억 미터, 180만 킬로미터가 되어야 한다. 이는 엄청난 길이인데 서울에서 태평양을 건너 뉴욕까지 가는 거리가 약 1만 킬로미터임을 가만하면 왕복 비행을 90번 반복하는 거리다. 하지만 우주 도시를 그렇게 크게 짓게 되면 건조 비용, 난이도, 유지 보수의 문제 등이 기하급수 적으로 커진다. 회전속도를 늘리면 회전 반경을 줄일 수 있고 우주 도시의 규모도 축소할 수 있지만 한 시간에 한 바퀴를 돌려도 장난이 아니다. 그럴 때에도 약 3천 킬로미터라는 어마어마한 규모가 된다. 서울에서 부산까지가 약 4백 킬로미터이니 최전 반경을 더 줄여야 했다. 그렇다고 회전 속도를 너무 늘리는 것도 좋지 않다. 원활한 도킹과 지상 교류를 위해서는 적어도 회전 속도가 분단위는 되어야 했다. 1초에 한 번씩 회전하면 고작 9.8미터의 회전 반경으로 지구의 중력을 구현할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오가는 사람들이 고생할 것이다. 도킹하기 위해서 1초에 한 회 꼴로 빙글빙글 도는 우주선 안에 있어야 하니 말이다. 그래서 강현은 회전 주기를 3분으로 잡았다. 3분당 우주 도시가 한 바퀴를 빙 도는 것이다. 이때 필요한 회전 반경은 약 8킬로미터. 현실적으로 우주 공간에 지구 중력을 구현한 도시를 지을 수 있는 것이다. 처음의 억 단위의 회전 반경에서 엄청나게 줄었지만 물리 법칙상 가능한 이야기였다. 원심력이 각속도의 제곱에 비례하는 만큼 각속도가 커질수록 필요한 회전 반경은 각속도의 제곱에 반비례하기 때문에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 것이다. 이는 회전 속도 자체도 줄여주는 역할을 했는데 그래도 마냥 줄일 수는 없었다. 일정 도시 규모를 만들기 위해서 적당한 크기는 있어야 했다. 그리하여 직경 16킬로미터, 길이 16킬로미터의 원통형 우주 도시의 설계가 시작된 것이다. 외벽은 용이한 수리를 위한 이중 격벽구조이고 이 격벽 사이의 공간에는 육각형의 방들이 유지 관리를 위한 공간으로 배정되었다. 3차원 설계도면만 보면 탄소 나노 튜브의 분자 구조와 비슷했다. 원통의 중심 축에 해당하는 부분은 도시의 전기 배설과 도킹 시설이 설치되었고 도시의 외벽을 잡아주기 위해서 탄소 나노 튜브 케이블이 일정 지점에 규칙적으로 내려 뻗어져 있었다. 이로서 원심력을 견디기 위한 외벽의 부담을 한층 줄이도록 되어 있었다. 작업은 시작되었다. 면적 약 800km^2, 헥타르로 따지면 약 8만 헥타르. 서울의 면적이 약 600km^2 정도 되니 왠만한 대도시를 건설하고 도 남는 규모였다. 하지만 역시나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 강현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피난 센터를 여기저기에 만들었다. 우주공간의 갑작스런 사고에 훈련받지 않은 사람은 전혀 대응할 수가 없으니 로봇의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고로 우주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는 기본적으로 안전용 로봇이 붙을 계획이었다. 물론 개인이 혼자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가능했다. 그건 만일의 사태가 생겼을 때 그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하지만 그 사실을 알고서도 개인에게 배급된 로봇을 두고 다니는 자유를 제한할 생각은 없었다. “완공까지 얼마나 걸리려나..” [자재의 수급이 원활하다면 약 2년 정도 걸릴 예정입니다.] “그때 쯤이면 준도 걸어다니겠구나..” 우주 개발은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이었다. “아참! 대기는 어떻게 하지? 언제까지나 지구에서 공수해 올 수는 없잖아.” [카낙에게 지금이라도 배출되는 가스를 모으라고 할까요?] 플라즈마 제련 공정에서 가스는 거의다 우주 공간으로 배출되고 있었다. “카낙이 스스로 방법을 알아내는 건 무리겠지?” [그렇습니다.] “아아, 우주 공간에서 가스를 압축하는 기술을 또 만들어야 한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내가 왜?” 강현은 너무 많은 일에 치이는 것은 사절이다. 이대로 일이 계속 쌓이다가는 준의 얼굴을 볼 시간도 없을 것 같다. 그는 시간을 내어 간만에 연구소로 출근했다. 도넛 열 박스와 커피도 같이 사들고 온 그를 연구소 직원들이 반갑게 맞았다. 물론 아빠가 된 것을 늦게 나마 축하하는 직원들도 있었다. 강현은 그들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싸들고 온 것을 나눠준 뒤에 이레이 기획부장을 찾아갔다. “그러니까 기술을 개발을 의뢰하고 싶으시다구요?” 이레이 기획부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생각보다 개선해야 될 기술이 많더라고요. 여기에 필요한 기술과 요구 스펙이 있으니까 NASA에서 좀 도와주세요. 다른 대학들과 협력해도 좋구요.” 이레이 부장은 강현이 내민 서류를 훑어보더니 이마에 진땀을 흘렸다. “많군요. 그리고 어렵고요.” “전 플라즈마 제트 엔진, 신형 레이더를 개량 개발하느라 시간이 없어요. 아무튼 거기 있는 기술이 다 개발되지 않으면 우주 도시 개발은 난항을 겪어요.” 우주 도시에 많은 기대와 적지 않은 지분을 가진 NASA에서는 울상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자신들이 주도를 하자니 모든 프로젝트의 큰 윤곽은 강현의 머릿속에 있었으며 또한 그의 방법이 가장 효율적이었다. 당장 로봇을 이용한 건설 계획만 해도 얼마나 많은 예산이 절약되었나? 만일 우주 비행사를 양성하고 그들을 이용하기로 했다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알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래도 상황이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강현이 건네준 기술 목록은 그가 그린 우주 도시 건설의 청사진이었으며 NASA와 미국의 우주 기술 역량을 증가시킬 수 있는 가이드 라인이기도 했다. 어렵지만 해낸다면 미국은 다시 한 번 세계와의 기술 격차를 십 수년 이상 벌릴 수 있을 것이다. “노력해 보겠습니다.” “부탁합니다.” 연구소에서 다시 집으로 자택 근무를 하러 가는 강현의 입가에는 음흉한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오늘부터 며칠 간 자체 휴일이다. 그래, 준과 부자간의 오붓한 시간을 가질 것이다. 그리고 강현은 아즈삭이 뭐라고 하든 하루종일 준과 샐리와 시간을 보냈다. 연신 뉴스에서는 우주 도시의 건설 과정을 빼먹지 않고 방송하는 터라 오히려 샐리가 걱정할 지경이었다. “요즘 바쁘지 않아요?” “괜찮아. 급한 일은 다 떠넘겼어.” “.....” 샐리의 눈이 이해가 안되는지 잠시 좌우로 왔다갔다했다. “꺄하!” “그래, 이렇게 하는 게 좋니?” “꺄아!” 준의 겨드랑이를 잡고 들었다 내렸다하며 놀아주는 강현의 모습을 보는 샐리는 자신이 들은 이야기를 재구축했다. 어.. 그러니까.. “지금 준이랑 놀려고 농땡이를 피우고 있다는 말이죠?” 다소 날이 선 어조였지만 강현은 준에게 정신이 팔려 그녀의 어조가 어떤지 알아차리지 못하고 태연하게 대답했다. “잠시 자체 휴가를 하고 있는 것 뿐이야. 솔직히 그동안 일에 너무 치였다고.” “....” 샐리는 잠시 멍해졌다. 아빠가 되어서 성격이 바뀐 건가? 자신이 알고 있는 강현이라는 남자는 일이 많으면 연구할 것이 많아서 좋다고 연구실에 처박혀 있는 사람이 아니던가? 연구만큼 가족이 소중해진 것이 나쁘지는 않지만 그래도 정도라는 것이 있다. “아즈삭, 현이 휴가서는 제출했어?” [제출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제대로 휴가 승인도 받지 않고 농땡이를 부리는 것은 성실한 샐리의 입장에서 납득하기 힘든 일이었다. “현, 차라리 휴가를 내고 쉬지 그래요?” 샐리의 말에 강현은 준을 안아들고 난감한 듯이 귀 뒤를 긁었다. “다들 정신없이 바쁘잖아. 그런데 나 혼자 여유롭게 휴가를 보내려니까 좀 그래.” 어차피 자택 근무라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이 없다. 그러니까 남들은 일하는 줄 알지만 스스로는 자유롭게 쉴 수 있는 상황. 어차피 관리 감독 업무의 대부분은 아즈삭이 대신해 주고 있으니 자신이 나설 일은 특이 상황이나 연구 개발 밖에 없다. “그러니까 남들 구설수에 오를까봐 몰래 쉬고 있는 거군요.” 샐리의 화법은 직설적이었다. 하지만 강현처럼 직접적이고 명확한 표현이 아니면 수용 여부를 생각하지도 않는 남자와 사귀려면 어쩔 수 없이 언어 습관이 그렇게 된다. “어... 그, 그렇지?” 강현은 그제서야 샐리의 분위기가 그닥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준. 맘마 먹자.” “마! 마아!” 강현은 엉겹결에 품에 있던 준을 샐리에게 빼았기고 말았고.. “아빠는 바쁘시데. 나중에 보게 빠이빠이하자.” “아으. 아우!” 샐리가 등을 떠밀어 서재로 들어가고 말았다. “.... 아즈삭.” [네, 박사님.] “눈치 좀 보고 변명 좀 해주지..” 강현은 그동안 쌓은 경험으로 아즈삭이 자신을 도와줄 것을 기대했다. [연구 프로젝트가 많이 밀려있습니다, 박사님.] “..... 아.. 그래?” 하지만 강현은 자신의 생각이 오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핵심 명제로 구동되는 인공지능은 하나 같이 워커 홀릭이었다. 인간처럼 게으름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었다. = = = = = 플라즈마 제트 엔진의 최적화와 소형화는 다 강현이 개발한 양극 그래핀 배터리 덕분이다. 대용량의 전력과 높은 전압 덕분에 흡입한 공기를 플라즈마화 하기도 쉬웠고 또한 전기장을 걸어 뒤로 분사하기도 쉬웠다. 플라즈마 제트 엔진에서 가장 중요한 설계 요소는 플라즈마 구현과 방출에 관련된 전기 계통 설계가 아니라 흡입과 배기에 관련된 유체 역학적인 기술이었다. 162화 일반적인 제트 엔진은 엔진 내부의 터빈 날과 후방에 달린 노즐로 흡입하는 공기의 양을 조절하고 플라즈마 제트 엔진 역시 그러했다. 아무래도 이륙하기 위해 엔진을 가동할 때에는 공기를 대량으로 흡입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 이륙한 후에 플라즈마 엔진이 본격적으로 제기능을 하게 되면 일반적인 제트 엔진처럼 터빈 날개가 필요가 없다. 공기를 압축하고 연소시켜 팽창 후 분출시키는 것이 아니라 전기적으로 분사해 추진력을 얻기 때문이다. 그래서 플라즈마 제트 엔진에 있어 터빈 날개의 존재는 계륵과도 같은 것이다. 터빈 날개가 없다면 좀 더 가볍게 소음을 줄이며 날아갈 수 있지만 이륙과 착륙 시에 필요한 공기 흡입이 어려워진다. 터빈 날개 없이 충분히 공기를 흡입하기 위해서는 엔진 내부의 압력이 감소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플라즈마화된 기체를 강력하게 뒤로 배출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일시적으로 진공이 생기고 대기앞에 의해서 공기가 뒤로 빨려 들어올 것이다. 문제는 그러기 위해서 플라즈마 엔진의 유체 역학적 시스템에 걸리적거리지 않게 플라즈마 생성 챔버를 구성해야 한다는 점이다. 원통형은 안된다. 그렇다고 원뿔형도 안된다. 유속과 갑작스런 압력의 변화는 엔진 내부에 난류를 만들게 되는데 앞의 두 가지 형태는 이를 해소할 수 있는 형태가 아니었다. 강현은 복잡한 수식을 이용해 완만한 곡선의 가느다란 깔때기 형태가 가장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발견하고 거기에서 다시 내부에 완만한 나선형의 굴곡을 새겨 나선형 기류가 배출되도록 했다. 태풍, 목성의 눈, 토성의 눈, 소용돌이, 토네이도 현상 등 무질서한 고에너지의 흐름이 배출될 때 주로 나선형을 그리게 되므로 이에 착안해 엔진 내부에 남아있는 플라즈마의 난류의 에너지를 나선형으로 배출하도록 고려한 것이다. 물론 시뮬레이션 결과는 4% 효율 증가로 훌륭한 아이디어임을 입증했다. 이제 남은 난관은 얼마나 빠르게 플라즈마를 만들고 얼마나 강력하게 이 만들어진 플라즈마를 쏘아내느냐가 관건이었다. 솔직히 후자 쪽은 매스 드라이버의 고출력 전기 계통 기술 덕분에 개발 시간이 많이 줄었지만 전자 쪽이 무척이나 어려웠다. 대기압 조건에서 어떻게 플라즈마를 대량 생성할 수 있는가가 문제였다. 플라즈마란 간단히 말해서 원자핵과 전자가 분리된 상황이다. 전자는 본래의 궤도(오비탈)을 돌아다니지 않고 원자핵은 이온 상태로 존재하는 것인데 주로 온도가 매우 높거나, 저압 상태에서 전기장을 가했을 때 일어나기도 한다. 물론 방전 현상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지속적인 플라즈마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렵다. 열역학적으로 플라즈마 상태는 매우 높은 에너지 상태를 요구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매우 높은 온도가 필요하다. 방전이나 저압 상태에서 고전압을 가하는 방식은 일시적으로 국소 지역에 플라즈마를 생성하는 것 뿐이다. “대기압 하에서 플라즈마의 대량 생성이라..” 가장 유력한 방법은 역시 방전 밖에는 답이 없다. 코로나 방전이라고 공기중 방전에 필요한 전압보다 낮은 전압이 걸린 전극 주위에 플라즈마가 생성되는 현상이 있기는 하지만 이런 현상이 전극 표면에 일어난다는 점이 문제였다. 강한 출력을 얻기 위해서는 되도록 많은 양의 플라즈마가 생성되어야 하는데다가 전극의 표면적을 충분히 넓히려고 하면 공기의 흐름을 원활히 하는 설계를 무너뜨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방전은 곧 공기중에 전류가 흐르는 통로를 만드는 것으로 기체 분자가 이온과 전자로 유리되어 플라즈마가 된다. 비록 그 상태가 유지되지 않고 순식간에 사라지지만 전극에 붙지 않은 플라즈마를 대량으로 얻을 수 있다. 어차피 고온으로 올려 플라즈마를 만드는 것은 핵융합 발전에서나 고려할 만한 사항이고 또한 전기장으로 대전된 입자를 뒤로 밀어내 생기는 작용 반작용이 추진력의 근원이기에 순간적으로 사라지는 플라즈마라도 상관없었다. 플라즈마가 생긴 그 순간에 강력한 전기장을 가할 수만 있다면 정전기적인 인력 혹은 반발력으로 인해 작용 반작용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대량 방전이면 역시 테슬라 코일이지.” 테슬라 코일의 원리는 스파크 갭에서 일어나는 스파크가 고주파 전기신호를 만들고 이것이 변압기를 통해서 고주파 고전압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초기형태고 컴퓨터 기술의 발달로 기가헤르츠를 만드는 전기 회로 기술을 응용해 스파크 갭 없이 테슬라 코일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강현은 여기에 생성된 플라즈마를 뒤로 잡아당길 전극 회로를 연결해 방전이 일어나는 순간 전기장이 걸리도록 고안했다. 공에 고무줄을 매달아 획 잡아 당기고 적절할 때에 고무줄을 끊어야 공이 뒤로 날아가는 것과 같은 원리다. 그렇지 않으면 추진력이 발생하기 어렵다. 물론 정전기적인 인력이 작용하는 가운데 플라즈마가 다시 중성화 될 가능성이 있지만 출력을 높이기 위해서 어렵지 않은 노력을 기울이는 건 당연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플라즈마 제트 엔진의 시제품이 완성되었다. 플라즈마는 강력한 산화력을 가지고 있기에 엔진 내부는 산화를 막기 위해 사파이어(Al2O3; 산화 알루미늄의 결정) 코팅을 했다. 녹는점이 무려 2000도씨나 되기 때문에 지속적인 방전으로 인한 고열도 충분히 견딜 수 있었다. 플라즈마를 가속시켜 배출하기 위한 전극은 방전 챔버의 뒤쪽에 원형의 고리로 사파이어 코팅 밑에 얕게 파묻혀 있었는데 역시나 산화를 막고 내구성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플라즈마를 만들기 위한 전극은 그러지 못했다. 방전을 위해서 전도성 물질이 공기중에 나와있어야 했다. 하지만 방전이 직접적으로 일어나는 곳인 만큼 막대한 열이 발생하기 때문에 녹는점이 3000천도가 넘는 텅스텐을 베이스로 한 합금을 전극으로 사용했다. 물론 이 전극은 공기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도록 벽에 바싹 달라붙게 설계되어 있었다. 개조형 프로토 타입이 완성되었다는 소식이 들리자마자 할렌이 비행기를 타고 냉큼 날아왔다. “이건가요?” “네.” “그런데 터빈 날개가 없네요.” “터빈 날개가 필요한 건 그만큼 추진력을 못 얻어서잖아요.” “그렇다면 출력을 획기적으로 상승시켰다는 말씀이군요. 기대가 됩니다.” 두 사람이 있던 곳은 예전에 강현이 인공 베타 붕괴 장치를 개발하던 장소로 엔진 실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곳이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동안 강현이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은 NASA에서는 부랴부랴 로켓 엔진 개발부에서 테스트 담당 직원들을 파견해 엔진 출력을 테스트 할 수 있도록 플라즈마 제트 엔진을 설치하고 있었다. 할렌이 도착하기 전부터 작업을 하고 있었기에 그가 도착한 후 한 시간 쯤 지나자 테스트 준비가 완료되었다. “그런데 엔진 외관이 상당히 깔끔하군요.” “유체 시스템을 쓰지 않으니까요.” 일반적인 제트 엔진은 그 모양이 대단히 복잡하다. 연료주입 시스템을 위한 파이프, 펌프, 모터 등의 배치를 최적화 하려다보니 마치 인간의 심혈관계를 연상시킬 정도였다. 하지만 오직 전기적인 시스템으로만 구성된 플라즈마 엔진이 그렇게 복잡한 기계적 요소를 갖출 이유는 없었다. “흐음. 그럼 수소를 추진체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말씀인가요?” “생각해 보니까 딱히 필요가 없더라고요. 우주로 나가려면 수소같은 추진체를 도입해야 하겠지만요.” “꼭 좀 추가해 주세요.” 할렌이 간절히 말했다. 공중과 우주를 오가는 전투기라니! 전략성이 극대화되는 것이 아닌가? “그건 이번 실험 결과를 보고요.” 이미 플라즈마 제트 엔진의 기반은 구축해 두었다. 이번 실험 결과에서 나온 출력이 매스 드라이버와 혼용하여 우주선을 쏘아올릴 수 있다면 거기에서 손을 때기로 마음 먹었다. 할렌, 아마 펜타곤에서 원하는 대기권, 우주권 겸용 엔진을 만들기 위해 추진체 시스템을 도입하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으니까 알아서들 잘 알거라고 믿었다. 강현에게는 이제 최대의 난제인 물질 분석 레이더라는 큰 과제가 남아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지엽적인 기술의 개발에 시간을 쓰기 싫었다. “준비 완료 됐습니다!” “수고하셨어요! 그럼 테스트를 시작합니다!” 저 밑에서 엔지니어가 준비가 완료되었다고 고함을 질렀다. 강현 역시 큰 소리로 답을 했다. 곧 실험장에서 사람들이 쭈욱 빠지고 가동이 시작되었다. 치지지직! 엔진 내부에서 방전 되는 소리가 나면서 엔진 후방으로 연하고 푸르스름한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온의 움직임과 중성화 과정에서 전자가 관련되어 생기는 발광 현상이었다. 먼지가 일면서 바람이 생겼다. 아즈삭은 엔진을 고정시킨 선반에 부착된 압력 센서에서 추진력을 측정하기 시작했다. [5000lb, 7000lb, 10000lb, 12000lb. 출력 상승이 둔화됩니다.] “공기를 흡입하지 못해서 그래. 팬을 가동해.” 강현의 지시에 커다란 선풍기가 엔진의 전면부로 바람이 세차게 가해졌다. 대기압만으로 공기를 허덕이며 흡입하던 엔진에 힘이 생기며 출력 상승이 더 커졌다. [15000lb, 17000lb, 18000lb... 21300lb. 더 이상은 전기 계통에 무리입니다.] “흐음. 괜찮군.” “대박이다!” 강현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결과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할렌에게는 결과가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대박이었다. 무거운 터빈엔진에 비해서 강현이 개조한 플라즈마 제트 엔진은 단순하고 가볍고 작다. 그런데 추력이 무려 2만 파운드가 넘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두 개를 합치면 4만 파운드, F-32의 엔진 추력이 약 4만 3천 파운드이니 엄청난 성능이었다. 물론 플라즈마 엔진 두 개의 무게가 터보 제트 엔진 하나보다 더 가벼울 것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게다가 강현이 개조한 플라즈마 제트 엔진은 꿈의 엔진이라고 불리는 스트림제트 방식(흡입, 연소, 배기가 초음속으로 일어나는 엔진. 초초음속 비행용 엔진. 아직 개발 단계다.)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실험실 선풍기의 미약한 바람 속도를 고려하면 초음속 비행에서 기존 제트 엔진을 뛰어넘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일단 엔진 자체가 공기 저항에 부딪히는 일이 줄어들지 않는가? 게다가 겨우 시제품이 이 정도라면 좀 더 개량하면 어떤 성능이 나올까? 차세대 전투기의 속도가 예상이 안된다. 더 대단한 것은 엔진 자체가 작기 때문에 무인 전투기에 응용한다면 그 동안 지지부진 했던 초음속 무인 전투기 개량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민간 비행기들의 크고 무거운 엔진들도 가볍고 출력 좋은 플라즈마 제트 엔진으로 죄다 교체될 것이다. 무거운 연료를 싣지 않는 것만해도 엄청난 연비 절약이다. 아마 비행기 만드는 회사들은 이 엔진을 사고 싶어서 돈을 바리바리 싸들고 오겠지. “아! 강 박사님.” “왜요?” “지분관계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받을 만큼은 받아야죠.” “흐음.. 본부에 말은 해놓겠습니다.” 강현이 추가한 것은 실질적으로 엔진의 유체공학적 디자인에 나선형 홈을 세기고 테슬라 코일을 응용한 전기 시스템을 디자인한 것 밖에는 없다. 물론 많은 시뮬레이션을 통해 방전시의 플라즈마와 실질적으로 플라즈마를 당겨 추력을 만드는 전극간의 싱크로를 맞추는 작업이 대단히 기술적으로 어려웠고 적절한 수치 데이터를 확정하는 작업이 시간을 많이 잡아 먹었지만 그 외의 기술 라이센스는 아무래도 펜타곤을 비롯해 연구에 참여한 업체들에게 있었다. ============================ 작품 후기 ============================ 문피아에서 약정을 바꾸었더군요. 정액제로 연재하는 작품은 문피아에 걸 수 없도록이요. 자유인은 약정 변경 전에 계약한 거라 지금처럼 진행됩니다. 차기작의 경우에는 고민이 되더군요. 정액제나 구입제는 다 장단점이 있어서요. 다독하는 사람들에게는 정액제가 알맞고 적게 좋은 작품만 골라보는 사람에게는 구입제가 알맞고.. 뭐, 그건 차기작을 시작할 때 고민할 생각입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좀 문피아에 불만이 있어요. 왜 정액제는 서비스를 안하는지.. 다음에 문의해보고 아예 북큐브로 바꿔탈 생각도 있습니다. 163화 그래도 강현이 이번 연구 용역으로 받을 액수만 해도 약 10억 달러는 되었고 로열티를 가만하면 그 수 백 배를 벌어 들일 수 있을 테니 그의 재산은 더 불어날 전망이다. 지분에 대한 말을 꺼냈던 할렌은 다시 기술 개발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그런데 박사님. 혹시 수직 이착륙용 엔진으로 개조해 보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과연 무기에 미친 남자답게 벌써 플라즈마 제트 엔진의 다른 가능성을 탐색하는 할렌이었다. “없어요.” 강현은 딱 잘라말했다. 물론 질문을 듣자마자 머릿속에서 방법이 떠오르기는 했다. 전자석으로 로렌츠의 힘을 통해 플라즈마가 쏘아지는 방향을 바꾸면 된다. 물론 기술적으로 더 복잡해지고 어려워지는 것은 확실했지만 그것 때문에 거절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음 일정이 있어서요.” 플라즈마 엔진과 매스 드라이버를 결합해 저렴한 유인 우주 여행이 가능하도록 기술을 개발하고 나서 물질 분석 레이더도 만들어야했다. 겸사 겸사 여유를 찾아 아들인 준과 보내는 시간도 늘려야 했다. 강현의 대답에 할렌은 아쉬운 듯이 입맛을 다셨다. 하긴 강현이 도와준다면 기술 개발이 빠르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의 능력에 걸맞게 그만이 개발할 수 있는 기술들도 있었다. 지금까지 나온 무수한 발명품들과 이론들은 강현이 없었다면 언제 탄생할지 예측할 수도 없는 물건이었다. 물리학자 파인만은 이렇게 말했다. 정보가 복잡해서 일정 임계점을 넘으면 스스로 복제를 시작한다고. 초기 아미노산 배열의 생물로 진화한 원리가 복잡성의 증가라고 한다면 인터넷을 배경으로 한 현대 정보 기술 사회의 기술 개발 영역 역시 슬슬 생물의 행동원리를 따르고 있었다. 유력하게 떠오르는 기술, 사장되는 기술, 대세가 되는 기술, 반드시 필요해 보이는 기술 등 연구자들의 네트워크, 학회, 협회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과 자연도태의 원리를 통해 기술 개발의 흐름이 정해진다. 그래서 소위 전문가, 경험많은 권위자들은 앞으로 미래에 어떤 기술이 대세가 될 것인지 미리 예측하고 그 식견에 따라 많은 정부와 연구소들이 기술을 개발하고 있었다. 하지만 강현은 그 와중에 불쑥 튀어나온 이물질이다. 기술 개발의 흐름, 대세에 난류를 일으키고 급격하게 속도를 올려버리니 대세가 되는 연구가 사장이 되거나 사장되려던 연구가 다시 빛을 보는 등 이른바 기술 개발 생태계에 심각한 혼란과 변화를 야기했다. 마치 고생대 초기(캄브리아대)에 있었던 종의 폭발을 보는 것처럼 강현이 제안한 신 통일장 이론을 이용한 다양한 시도들이 매일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이미 인공 베타 붕괴로 방사능 제거를 실행시켰듯이 신 통일장 이론의 가능성을 이용해 좀 더 안전한 핵분열 발전 기술을 개발하기도 하고, 수소를 이용한 핵융합 발전을 연구하기도 했다. 생명의 나무처럼 하나의 종이 다양한 종으로 분화하는 것처럼, 강현이 먼저 만든 발명 역시 다양하게 응용되고 진화되는 것이다. 신 통일장 이론, 다중연산 장치를 이용한 인공지능은 그야 말로 패러다임을 바꿀 정도의 물건이었지만 기술이란 생명의 계통을 보면 전혀 없던 것이 생긴 것은 아니었다. 비록 파충류가 조류가 되는 정도의 진화에 비유될 정도지만 통일장 이론은 이미 아인슈타인이 연구하던 과제였고, 다중연산 장치는 네트워크 컴퓨팅으로 유사한 것이 이미 있었다. 고로 강현은 신 통일장 이론과 인공지능으로 기술이란 종의 진화를 이끌었을 뿐 그 기술들이 어떤 형태로 살아남을지는 그 기술에 생존할 인간 사회에 달려있었다. 강현이 대세를 만들 수는 있지만 세세한 흐름까지 모두 조절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할렌은 그런 강현에게 고작(?) 수직 이착륙형 플라즈마 엔진 개발을 도와달라고 말할 수 없었다. 지금 강현은 우주를 개발하고 있었고 우주의 전략적 중요성은 플라즈마 엔진보다 수십 걸음 앞서 있었던 것이다. “언제나 바쁘시군요. 그렇다면 저희 쪽 연구원들을 쪼아야 겠습니다.” “과제만 던져주면 잘 할 사람들이니까 너무 쪼으지는 마세요.” 공밀레는 어떻게 발생하는가? 사실 단순 노동을 강압하면 금새 반발한다. 왜냐면 일이 너무나 단순해서 별의별 생각이 다 들기 때문이다. 왜 내가 이런 일을 이런 대우를 받으며 해야하는가? 불만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고도의 지적 활동이 필요한 경우에는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문제가 어렵고 복잡하기 때문에 잡생각을 할 여유가 없다. 급여나 업무 시간에 관한 건 프로젝트가 끝나거나 잠깐 잠깐 여유가 생길 때나 생각나지 그 외에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골머리를 싸맨다. 프로젝트에 집중할 수 있을 정도의 의욕을 고취시키면 절반쯤 공밀레가 성공한다. 거기에 보너스라는 당근과 승진 무산 따위의 채찍을 곁들이면 완벽한 공밀레 체계가 완성된다. 여기까지는 일반 연구소 따위의 경우고 팬타곤에서 섭외한 연구원들은 채찍 따위 필요없다. 체질적으로 자발적 공밀레인 이들은 흥미가 돋는 과제가 있다면 스스로 퇴근 시간도 반납하고 연구를 할 것이다. 그런 열정이 없다면 유능한 인재가 되지도 못했을 것이고 팬타곤 무기 개발부에서 섭외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노력과 열정도 재능인 것이다. “그러죠.” 강현의 말에 할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기술이란 빠르게 개발해야 한다. 그래야 권리가 인정된다. 그걸 모르는 연구원들은 없다. 그렇다고 서둘러서 허겁지겁 연구하는 반푼이들을 섭외하지도 않았다. 간디가 말했다. 방향이 틀리면 속도는 의미가 없다고. 방향을 잘 잡기 위해서는 여유와 안목, 능력이 필요했고 그 방면으로는 할렌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가 쪼은다는 이야기는 말빨로 그들의 의욕을 자극한다는 말이었다. 멍청한 농부는 노새에게 채찍질을 하고 현명한 농부는 노새 눈앞에 당근을 매달아 놓는다. 가장 좋은 공밀레의 방법은 스스로 공밀레 당하는지 모르고 당하는 공밀레다. 할렌이 플라즈마 제트 엔진 테스트의 결과에 만족하고 돌아간 이후 강현은 곧바로 플라즈마 제트 엔진을 장착한 유인 우주선 개선 작업에 들어갔다. 가장 중요한 개발 목표는 두가지. 매스 드라이버의 출력을 보조 할 수 있을 만큼 우주선의 출력이 좋을 것. 두 번째는 귀환시에 원하는 장소로 돌아올 수 있을 능력이 있을 것. 각각의 목적에 부합하는 설계를 하는 것은 쉬웠지만 둘 다를 만족하는 설계는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일단 쏘아올리는 것도 매스 드라이버에 실리는 우주선의 중량이 매스 드라이버가 버틸 수 있는 정도인지, 그렇다면 필요한 플라즈마 제트 엔진의 출력은 얼마인지 다양한 변수들을 고려해야 했다. 대부분 이런 문제들은 변수가 세 개 이상인 미분 방정식으로 나타나는데 안타깝게도 변수가 세 개 이상인 미분 방정식의 엄밀해(수학적 공식으로 표현하거나 이를 바탕으로 도출한 해)는 매우 특수한 상황이 아니면 얻을 수가 없다. 가장 좋은 방법은 컴퓨팅을 통한 근사치를 계산하는 것이고 이는 아즈삭이 있으니 아토 단위(백경 분의 일; 0.000 000 000 000 000 001) 혹은 그 이하의 오차로 값을 도출하는 것도 가능하니 별문제가 아니었다. 다만 여기에서 다시 귀환하기 위한 추가 설계가 들어가면 또다시 이야기가 복잡해진다. 안전성, 중량, 시간, 비용 등의 변수들이 또다시 더해져 변수가 두 배가 되기 때문이다. “일단 귀환 방식을 정하는 게 먼저야.” [기존 발사체의 방식은 어떻습니까?] “동체 변형식?” 지구를 중심으로 돌고 있는 우주 궤도 공장에 자재와 로봇들을 쏘아 올려 보내는 발사체는 귀환 시에 CNT 섬유로 짠 날개를 펼쳐 글라이딩으로 바다에 착육한다. 육지가 아니라 바다에 착륙시키는 이유는 바퀴 따위의 착륙 시스템을 달아야 해서 무게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다. 단단한 날개가 아니라 펄럭이는 피막과 같은 날개, 그리고 딱히 추력을 내기 위한 시스템(엔진, 프로펠러)이 없기 때문에 때문에 착륙을 위한 동체 제어가 어려워 파손될 가능성이 있었다. 차라리 충격 완화가 가능한 물위에 착지시키는 것이 더 안전했다. “글쎄.. 나쁘지는 않은데 말이야.. 변형할 때 동체의 중량을 견딜 수 있을 정도의 날개 축을 만들 수 있을 지가 문제야.” 발사체는 공기의 저항을 줄이기 위해서 유선형으로 만든다. 날개는 가속하는 도중에 막대한 압력을 받아 피로가 누적되기 때문에 고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구로 귀환할 때 이 날개의 이점은 엄청나게 크다. 일단 떨어지는 위치를 조절할 수 있고 공기 저항을 이용해 성층권을 돌파하는 시간을 늘려 마찰열을 줄일 수 있었다. 내열 시스템에 여유가 생기고 안전성이 커진다는 뜻이다. 그러나 유인 우주선의 중량을 지탱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길어질 수는 있는가? 글쎄.. 지금 네바다 매스 드라이버 기지에서 사용하는 발사체처럼 CNT 섬유 피막과 그것을 지탱하는데 이용되는 막대기의 성능으로는 무리다. 무게가 늘어나는 만큼 날개는 커져야 하고 막대기 역시 굵고 튼튼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글라이더로는 안되겠다. 그냥 비행기 날개는 어떨까?” [미 해군에 F-14기가 가변형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가변형이라.. 쯧! 중량이 늘어날 것 같은데.. 패러글라이더는 어때?” 항공 스포츠인 패러글라이더는 사람의 발로 착지할 수 있을 정도로 속도가 완화될 수 있고 동력 장치도 사용할 수 있다. [나쁘지 않습니다만 문제점은 없습니까?] “2000도씨를 넘나드는 열권에서 견딜만한 내열 섬유가 필요해.” [CNT 섬유로는 무리군요. 하지만 굳이 열권에서 낙하산을 펼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낙하산이 엉키면 죽는거지.” [예비용 낙하산을 달면 괜찮을 겁니다. 거기가 플라즈마 제트 엔진이 달려있으니 어느정도 방향을 조정할 수도 있을 겁니다.] “무게 중심을 잡는 게 어려울 거야. 밸런싱 시스템을 추가해야돼.” [가변형 날개 시스템보다는 가벼울 겁니다.] “또 속도가 느리잖아.” [그건 운영의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여객선 항공로처럼 우주 도시를 중심으로한 운송 시스템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유인 매스 드라이버가 한 곳에만 건설될 리 없으니까요.] 강현은 아즈삭과 문답을 해가며 패러글라이더라는 아이디어의 문제점을 확인하고 방법을 구체화했다. 그러다가 가변형 날개 시스템은 어떤지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아무래도 첨단을 달리는 시대에 패러글라이더는 시각상 좀 기분이 그랬다. “가변형 날개를 설치하면 좋은 건?” [본격적인 우주-대기권 운송 능력이 생길 겁니다.] “나쁜건?” [무게가 늘어나기 때문에 플라즈마 엔진의 출력이 더 좋아야 하고 고도가 올라가며 희박해지는 공기로 인한 출력 부족이 문제가 될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압축 공기를 플라즈마 엔진에 분사해 추진제로 사용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무게도 더 늘어나겠군. 신소재를 사용해 무게를 최대한 줄일 수 있을까?” [CNT 시트를 이용한 항공기 제작 기술은 이미 존재하고 개발 중에 있습니다.] CNT 섬유로 만든 CNT 시트는 이미 F1 경기용 자동차에 사용되는 구조용 재료다. 그걸 그 큰 비행기에 적용하겠다는 계획은 대단히 도전적인 내용이었으나 실현된다면 여객선의 연료 효율을 대대적으로 개선할 것이다. 물론 플라즈마 제트 엔진이 발표된다면 그 계획이 일단 뒤로 미뤄질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164화 왜냐면 여객선 운영 회사들이 가장 골치를 먹는 이유가 바로 연료다. 강현으로 인해 사실상 석유 무제한의 시대가 열렸지만 운영 비용 중 가장 많이 소모하는 것이 연료라는 사실은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플라즈마 제트 엔진이 상용화 된다면 CNT 시트로 거대한 비행기 동체를 만든다는 계획은 접을 수 있다. 사실상 연료보다 전기로 돌아가는 이상 연료는 더 이상 그들을 골치 아프게 만드는 문제가 아니기에 노동 집약적인 CNT 시트 적용은 큰 이득이 없었다. 그걸 강현이 가져와서 써먹는다?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CNT 시트로 만들어진 동체가 대기권, 열권에서 견딜 수 있게 하려면 내열 설계를 또 따로 해야 한다는 애로사항이 있었다. “역시 우주선 동체 설계는 복잡하네.” 소재 선정부터가 골치다. 강현이 괜히 발사체 제작에 NASA의 도움을 받은 것이 아니다. 가볍고 튼튼하며 열에 강한 소재에서 NASA가 세계적으로 앞서고 있는 것이다. “그럼 패러글라이딩은 근 시일에 가능한 설계고 가변익은 나중에 기술이 더 축적되면 가능한 기술이라는 뜻이군.” 강현은 수긍했다. 지금 당장은 패러글라이딩을 이용한 방법을 바로 쓸 수 있지만 나중이 되면 가변익을 이용한 매스 드라이버용 우주선이 등장할 것이다. 기술적으로 패러글라이딩보다 몇 배나 어렵고 제약 조건도 많지만 우주선이 즉시 비행기가 될 수 있다는 이점은 말로 할 수 없는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다. 우주 도시를 중심으로한 운항 노선에 유연함이 부여되는 것은 물론이고 차후 우주 도시와 매스 드라이버가 늘어날수록 지상과의 연계가 중요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레이 씨에게 또 말을 해야겠네.” 강현의 도움 요청을 받은 이레이가 우주선 동체 제작에 노하우가 있는 연구원들을 소개해 줄 것이란 건 너무나 당연했다. 강현과 NASA는 서로에게 이득이 되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즈삭. 그럼 일단은 두 가지 버전을 다 만들어보자. 가변익 기술은 펜타곤의 도움도 좀 받아야겠어.” F-14기를 설계한 그루먼 사에 직접 연결하는 건 귀찮다. 직접적인 접촉은 의견 조율이나 미팅 따위로 사람을 번거롭게 한다. 물론 그만한 기대 수익을 창출할 수도 있겠지만 강현에게 금전적 이득은 이미 소용없었다. 할렌에게 우주선에 접목할 가변익 기술을 부탁해서 조율하면 귀찮은 라이센스 계약에 소요되는 시간을 줄이고 아들 준의 얼굴을 볼 시간을 늘릴 수 있을 것이다. 은근히 팔불출 끼가 있는 강현이었다. “우쭈쭈! 엄마랑 재밌게 지내고 있었어요?” “우마마! 끄아!” 점심 식사 시간을 칼같이 맞춰서 나온 강현이 가장 먼저 찾은 것은 부엌이 아니라 아들인 준이었다. 부엌에서 맛있는 음식 냄새가 났지만 배고픈 건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여보, 식사해요. 준도 맘마 먹어야지.” “마! 마마!” 강현은 아쉬운 얼굴로 아들을 넘겨주고 부엌으로 들어왔다. 샐리는 맞은 편에 앉아서 준에게 젖병을 물렸다. 강현은 한 입 먹고 정면을 보고 한 입 먹고 정면을 보는 걸 반복했다. “왜 그래요?” “아니, 그냥. 이런 종류의 행복도 있구나 해서.” “풋!” 강현의 솔직한 대답에 샐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얼버무리는 걸 잘 못하는 강현의 모습이 나쁘지 않았다. 저런 솔직한 점도 좋아서 그에게 매달렸던 것 아닌가? 강현은 웃은 샐리의 품안에 안겨 젖병을 빠는 준의 모습을 보고는 감동했다. 연구를 하면서 느끼는 보람과 또 다른 보람이다. 샐리와 결혼한 건 훌륭한 선택이었다. 아니 샐리가 자신에게 매달리지 않았다면 이런 행복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녀의 존재 자체가 행운이었다. 그의 머리에 잠시 제시의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만나고 싶지 않았던 인간들도 많았지만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들도 있었다. 그의 인생에 얼마 안되는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준 소중한 사람들.. 강현은 문득 어린 시절 지냈던 시설의 원장님이 생각났다. 세상 다 산 듯 염세적이었지만 그래도 당시 자신을 찾아오던 다른 어른들에 비하면 양반이나 다름 없던 유일하다면 유일한 어른이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참 신기한 사람이었다. 그 많은 어른들이 자신을 이용하기 위해서 탐욕을 부렸는데 오히려 그 사람은 자신의 천재성에 별다른 탐욕이나 강현이 싫어할 만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난도 치고 농담도 하고 자신을 평범한 어린애 취급을 했다. 자폐증을 앓았던 잔재 때문에 관심 분야 이외에는 신경을 쓰지 않아 당시에는 그런 사실을 인지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신기했다. 강현은 다시 포크로 음식을 찍어 입으로 가져가면서 원장 선생님의 근황이 요즘에는 어떤지 호기심이 생겼다. 알아보는 건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한국 제현 그룹에 아직 자신의 영향력이 남아있기에 그들의 도움을 받으면 사람 한 명 찾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양자 통신 기술의 사용화로 이젠 실시간 화상 통화가 일상이 된 세상이지만 그래도 직접 얼굴을 마주보고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직접 만나야 그 사람의 분위기나 뉘앙스 등을 확실하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원장님이 미국에 오거나 자신이 한국에 가야한다. ‘한국이라..’ 그러고보니 부모님의 유골을 모신 납골당에 가지 않은지 오래됐다. 영혼의 존재를 믿지 않는 강현이지만 그래도 부모님의 유골이 의미가 없을 수는 없었다. 자신이 사랑했고 또 자신을 사랑해준 사람들. 소중하고 행복했던 추억의 상징이었다. “샐리, 한국에 한 번 가보지 않을래?” “한국에요?” “응. 부모님께 준을 보여주고 싶어.” “아! 알았어요.” 강현의 말에 샐리는 놀란 눈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그의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셨다고 들었다. 남편의 태도도 그래서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오늘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평소 자신이 신경쓰지 못한 부분이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남편에 대해서는 뭐든 아는 줄 알았는데 꼭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탓이 아니다. 가족이 생기고 아들이 생긴 강현은 샐리가 푹 빠져들었을 때의 강현과 달랐다. 좀 더 성숙해지고 책임감이 생겼으니 세상만사가 잠재적인 귀찮음의 원천이라고 생각하던 젊었을 적과 생각하는 방식이 달라지는 건 당연했다. 환경과 조건이 변하면 사람의 행태도 바뀌는 것이다. = = = = = 강현이 한국에 온다! 비록 개인적인 용무로 잠시 오는 것 뿐이지만 세기의 천재로 한국인의 자부심이자 유대 자본을 뭉게 세계적인 영향력을 증명한 유력자가 한국에 오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다. 어떻게 어디로 말이 세어나갔는지 언론에 특종으로 퍼지면서 강현의 부탁을 받은 한국 제현 그룹의 골치를 아프게 만들었다. 한국에서 세어나간 건가? 아니면 미국에서 세어나간 건가? 아마 비행기표 예약 때문에(미국-한국 노선은 아무래도 한국 항공사가 편리했다.) 입으로 사실이 전달된 것 같은데 덕분에 제현 그룹의 비서실에서는 부랴부랴 강현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서 공항 운영팀은 물론 관공서에도 문의를 했다. 귀찮음과 번거로움을 극히 싫어하는 강현에게 파파라치처럼, 아니 그보다 못한 한국 기자들의 저글링 러쉬는 악몽이나 다름 없을 터. 거기에 가족들과 같이 들어온다고 하니 그 소란 와중에 아기가 울기라도 하면 천재의 기분은 엉망이 될 것이다. 가장 단순하면서 확실한 방법은 보디가드들을 한 500여명 정도 고용해 기자들의 접근을 원천 봉쇄하는 것이지만 그런 요란을 떠는 것도 강현의 취향은 아닌듯해서 입국 절차와 심사를 따로 받도록 공항 운영팀과 관공서의 허락과 편의 받기로 한 것이다. 강현이 비록 지금 대주주의 자리로 물러났지만 사실상 제현 그룹의 창립자나 다름없고 현재의 CEO인 카랄니 킴이 강현을 여전히 고용주로 각별하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강현을 극진히 모시라는 엄명이 내려져 있었다. 고로 강현을 접대할 비서실은 신경을 극도로 날카롭게 긴장시켜 세세한 부분부분을 모두 체크하지 않을 수 없었고 번거롭고 혼잡한 것을 싫어하는 강현의 성정 역시 고려 대상이었다. 이들의 노력 덕분에 전세기로 인천 공항에 착륙한 강현과 샐리는 품안에 준을 안아들고 일반적인 게이트가 아니라 따로 준비된 장소에서 입국 심사를 마치고 몰래 다른 출구로 나와 외관은 전혀 VIP를 모시는 것 같지 않지만 내부는 VIP 용으로 개조되어 대기하고 있던 차량을 타고 준비된 호텔로 향했다. “....” 귀찮은 기자들을 상대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에 강현은 흡족했지만 샐리의 마음을 달랐다. 마치 범죄자처럼 몰래 다니는 상황에 자존심이 상했다. 강현은 그런 그녀의 기분을 느끼고는 말을 걸었다. “왜 그래?” “우리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이렇게 행동을 하니까 기분이 안좋아요.” “나도 그래. 하지만 어쩌겠어? 기자란 인종이 원래 그런 인간들인데..” “미국에서는 이런 일 없었잖아요.” “그 사람들은 나한테 호되게 당해본 적이 있잖아.” 무려 100억 달러 규모의 소송을 당하고 유대 자본과의 신경전에 틈바구니에 껴서는 아랍 자본에 경영권이 위협받기도 했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무슨 말이 오갔는지 터번 두른 아랍계 앵커가 등장하기도 했다. “이 나라의 언론사들은 그걸 보고도 아무런 생각이 없을까요?” “글쎄..” 강현은 쓰게 웃었다. 한국의 언론사들은 바보가 아니다. 미국에서 강현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그와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그의 우군이 되어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세계의 모든 것이 집중되는 미국이니 만큼 다양한 유형의 유력가들이 있었고 강현은 그런 그들의 힘을 이용할 수 있었다. 물론 그들도 강현의 힘을 이용했으니 훌륭한 Win-Win 전략이었다. 하지만 한국은 다르다. 한국의 기득권은 강현을 매우 싫어하며 튼튼하게 뭉쳐있다. 정재계 언론이 혼맥, 인맥, 이해관계로 탄탄하게 묶여있었고 거기에 포함되기에는 강현은 너무나 이질적인 존재였다. 물론 강현이 그런 카르텔에 끼어들 생각은 추호도 없기도 했다. 기껏 강현의 편이 되어줄 세력이라고는 제현 그룹과 세컨드 밴드 뿐인데 그것도 사실 대한민국 주류에서 배척당한 경계인들을 미국의 영향력과 돈의 힘으로 억지로 박아넣은 것 뿐이었다. 그리고 오히려 이 두 기업의 성공과 약진은 기존 기득권 세력의 질시와 경계를 사 그들간의 연합을 더욱 공고히 하고 말았고 더불어 쿠데타를 유도해 극심한 혼란을 주도한 강현을 미워하다 못해 증오하고 있는 실정이다. 조금이라도 강현을 괴롭힐 수 있다면 기자들을 개 떼 같이 보낼 주류 언론은 많았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의 언론을 응징할 방법은 실질적으론 미국의 영향력을 이용하는 방법 뿐이다. 명예훼손이라는 훌륭한 전가의 보도가 있으니 주한 미 대사관에 부탁 좀 해 놓고 소송을 걸면 파파라치 떼 같은 기자들 정도는 충분히 떼어낼 수 있지만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미련이 없는 곳, 괜히 꿀도 생산 못하는 벌통을 쑤실 필요는 없었다. 강현은 그런 복잡한 이해관계를 샐리에게 다 일일이 설명을 해주진 않았다. 현상의 추잡한 이면을 아름다운 아내에게 가르쳐주고 싶지 않았다. 샐리는 강현이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가 지은 미소에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남편이 말을 하지 않았다면 충분히 그럴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165화 <16-추억의 정리> 호텔에 도착한 그들은 호텔 로비에서 그들을 반갑게 맞이하는 사람을 보았다. 한국 제현그룹의 CEO인 카랄니 킴이다. “박사님, 오랜만입니다.” “저도요. 잘 지내셨어요? 샐리, 인사해 이쪽은 한국 제현 그룹의 경영자인 카랄리 킴 회장님이셔.” “안녕하세요. 샐리 클린턴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카랄니 킴입니다. 편하게 카니라고 불러주세요.” 그들이 좀 더 이야기를 나누는 중 준이 짜증을 내며 칭얼거렸다. “저런! 아기가 많이 피곤한 모양입니다.” “네, 맞아요. 아무리 전세기라고 하지만 아기에게 편한 장소는 아니니까요.” 카랄니가 아기를 보며 걱정스럽다는 듯이 말을 꺼내자 샐리가 받았다. 그녀는 준을 쉬게 하기 위해서 먼저 양해를 구하고 객실로 올라갔고 남은 두 사람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박사님도 쉬셔야 하지 않을까요?” “날아오는 동안에 푹 자서 그런지 컨디션이 괜찮아요. 저보다는 준을 돌본 샐리가 더 피곤하겠죠.” “아, 그렇군요.” “역시 육아에는 여성의 감성이 더 유용하더라고요. 저는 애가 울어도 도대체 왜 우는지 알 수 없는데 아내는 단번에 알더군요.” “그게 일반적인 일이겠죠.” 카랄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근황을 묻는 이야기가 이어졌고 강현이 입을 열었다. “요즘 귀찮게 하는 이들은 없어요?” 카랄니는 고개를 끄덕이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기 저기에 경호원이 있었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도 없었다.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한국 사회의 이면에서 일어나는 일들, 그러니까 쉬쉬하지만 다들 알고 있는 일들과 관련되어 있었기에 공개적으로 알려져서 득 될 게 없는 이야기였다. “없긴요. 아주 짜증나게 하는 인간들이 있죠.” 카랄니가 입을 연 대상은 전경련이라는 곳이다. 전국 경제인 연합회. 이름은 그렇지만 사실 대기업을 주축으로 대기업에게 불리한 법 개정을 막고 그들에게 유리하도록 입법 과정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 주목적이다. 언젠가는 경제 민주화가 적시된 헌법 조항을 폐지하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 밖에 각종 방법으로 국민들에게 자신들의 ‘자유시장 논리’를 주입하기 위해서 수많은 행사와 홍보를 하기도 한다. “왜 그런데요?” “저희가 저들과 다르니까요.” 한국 제현 그룹의 경영자들은 이익을 목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국가와 사회의 변화를 목표로 움직인다. 강현 덕분에 일평생 쓸 돈은 충분했으니 개인적 탐욕보다는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서 일한다. 강현과 아즈삭의 면밀한 분석이 빛을 발한 부분이다. 아무튼 강현이 섭외한 (카랄니를 포함한 백인, 흑인, 동양계 미국인) 경영자들은 수익의 극대화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가장 간단한 방법이 바로 인건비를 줄이는 것이지만 수익을 극대화하지 않기 때문에 인건비의 지출이 엄청나다. 무조건 시급 두 배를 적용하고, 거기에 사람이 모자라면 야근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더 고용한다. 당직 같이 반드시 필요한 초과 근무의 경우에는 두 배로 적용한 시급을 기준으로 수당을 지급했다. 전경련과 보수 언론들은 이 제현 그룹의 행태를 ‘미친 짓’이라고 단언했다. 그런 식으로는 절대 기업을 유지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오히려 제현 그룹은 잘 돌아갔다. 회사원과 그 가족들과 그 가족들이 거주하는 지역 사회, 그리고 세컨드 밴드 연합의 절대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시장 경쟁력을 확보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분명 당기순이익만 따지면 다른 대기업들보다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일인당 생산성은 분명히 향상 했다. 한국 노동시장의 생산성 저하 요인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변질된 유교 문화가 만든 상명하복의 일방적 커뮤니케이션, 애사심 부족한 고용인의 바쁜 척하는 기술, 그리고 늘어나는 시간에 따라 업무량도 많아진다는 시간의 파킨슨 법칙. 아무리 좋은 의견이 있으면 뭐하나? 위에서 이상하게 생각하면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그 정도면 양반이다. 헛될 곳에 쓸 심력이 남으면 남은 일이나 하라고 면박을 당하기도 한다. 그럴 땐 자존심이 상하고 짜증이 나고 일도 손에 잡히질 않는다. 발달된 통신 문명의 도구들을 이용해 동기 혹은 마음이 맞은 동료와 상사의 성질머리를 비판한다. 물론 바쁜 척 일하는 스킬은 필수적이다. 뭐? 그럼 일을 다 못해서 야근할 거라고? 어차피 맡은 일을 다 해도 야근한다. 왜냐면 회사는 ‘조직’이니까. 어차피 야근할 걸 아는데 왜 더 많은 일을 해야 하나? 신입 초기 때 한 번 물으니 그게 ‘관행’이란다. 야근을 하지 않으면 마치 애사심이 없다는 듯한 뉘앙스였다. 자연히 업무 시간은 루즈해지고 답답해진다. 야근을 마치고 집에 가려는데 상사가 또 술 한 잔 하자고 붙잡는다. 회사는 ‘조직’이니까 거절할 수가 없어 재미도 없는 술자리를 하고 녹초가 된 채 집으로 돌아온다. 상사는 그런 식으로 자신의 ‘애사심’을 확인하지만 이미 애사심은 없다. 애사심이 없으니 바쁜 척 하는 기술을 쓰는데 거리낌이 없다. 생산성이 떨어진다. 제현 그룹은 이 복합적인 악순환의 고리를 고임금과 정시 퇴근 문화, 투명한 인사 정책으로 끊어버렸다. 물론 인건비가 증가했지만 그정도는 감수할 만했다. 제현 그룹의 품에서 큰 인재들이 곧 제현 그룹의 자산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경영 원칙을 세운 카랄니가 보았을 때 대한민국의 경영자들은 ‘돈 경영’에는 재주가 있지만 ‘사람 경영’에는 영 잼병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카랄니의 ‘사람 경영’이었다. 이로 인해 기존 기업 문화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수가 점차 늘어나고 있었다. 그것이 뭐가 문제가 되는 걸까? 그건 대기업의 입김이 들어간 노동 유연화 정책에 반하기 때문이다. 필요할 때에는 싸게 고용해서 싸게 쓰다가 필요 없으면 버린다. 사람을 소비재로 생각하는 그들의 경영 원칙에 제현 그룹의 경영 원칙은 완벽한 대칭점을 이루고 있었다. 수익적 관점에서 제현 그룹의 방식은 멍청한 방법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곧 망하겠지’, ‘강현의 투자로 유지되는 회사일 뿐이야’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제현 그룹이 만들어 내는 사회적 파장만을 무마하는데 주력했다. 왜냐면 스스로 설 수 없는 기업은 결국 절름발이에 불과하니 말이다. 하지만 제현 그룹은 그들의 상식으로는 생각 했을 때 결코 성공할 수 없는 방식으로 생존에 성공했다. 비록 자본금을 따지면 당기 순이익이 다른 대기업에 비해 앞선다고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은행 이자보다는 월등히 높은 수익률을 내고 있었다. 사람은 자신의 상식과 동떨어진 것에 불쾌감을 나타낸다. 그것은 자신의 신념과 믿음이 부정당한 증거이며 가끔 분노를 만들기도 한다. 제현 그룹의 생존과 사람들의 지지를 통한 성장은 기존 한국 경영자들을 불쾌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여기에 직격탄을 날린 것은 바로 인재 유출이었다. 제현 그룹은 분명 다른 대기업에 비해서 보너스가 약하고 각종 수당 지급도 없어서 연봉을 계산하면 확실하게 떨어진다. 하지만 일정 수준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된다면 여유롭게 살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이라 기존 대기업에서 퇴사해 제현 그룹으로 오는 일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였다. 거기에는 심지어 핵심 인재라고 불리는 이들도 있었다. 지독한 경쟁 사회인 한국에서 성공한 이들 중 가족들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할 정도로 야근이 연속인 삶에 회의감을 느낀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칼 퇴근, 무 야근을 보장하는 제현 그룹으로 이직을 선택했다. 연봉을 지금보다 더 높여준다고 해도 고개를 저으니 인사팀장의 얼굴이 심각해지고 보고서가 위로 올라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동안 강현의 그림자 때문에 함부로 건들지 못하고 그냥 고사해버리기를 바라고 있었는데 기업적 자생력을 확보하는 것을 넘어 그룹의 인재 풀을 위협할 정도로 성장하니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어떻게든 이들이 만들어 내는 기업 문화를 막아야 했다. 근본적으로 제현 그룹의 기업문화는 왕국을 닮은 재벌 중심적인 기업 문화와 거리가 먼 형태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왕정체제에 대립하는 민주주의체제로 비교할 수는 없었다. 소유권에 대한 법적 체계는 아무리 제현 그룹이라고 해도 운영 체계를 민주적으로 구성할 수는 없었다. 냉정한 비지니스 세계에서 속도감 없는 민주적 체제의 기업은 결코 살아남을 수 없다. 협동 조합이라는 모델이 있기는 하지만 회사가 일정 규모 이상 커지기 위해서는 의사결정 과정의 단순함이 필요했고 그것은 협동 조합의 본질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제현 그룹에는 맞지 않는 체제다. 물론 그런 식으로 경제적 주체인 기업의 경영 시스템을 정치적 체제에 비유할 수는 없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오히려 대기업의 기업 문화가 이질적이었다. 아니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나 할까? 독재시절 정부의 지원을 받아 승승장구 했던 탓인지(정경 유착이라고 한다.) 그 시절의 군사 문화가 잔재되어 상하 소통의 걸림돌이 되었다. 당시 개발을 시작할 때에는 효율적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당시로부터 남은 권위주의가 권력을 부여하고 그 권력의 맛에 사내 정치가 형성되어 기업의 본질, 고용인, 고용주의 본질을 왜곡했다. 그리고 제현 그룹은 기업의 경쟁력 재고에 악화 요인인 그런 정치적인 요소를 막기 위해서 투명한 경영, 개개인의 사리 사욕을 위해 조직을 희생 시키지 않을 수 있도록 풍족한 환경과 공통의 비전도 제시했다. 카랄니의 단순하지만 기업 경쟁력과 이윤 추구를 위한다는 본질적인 기업문화가 사람에게 투자하고 사람을 경영하는 방식으로 나타났고, 그 방식이 이윤 추구가 먼저인지 아니면 권력 추구가 먼저인지 구분하기 힘들어진 왜곡된 한국 기업 문화를 비추는 거울이 되는 순간 기업의 정점에 선 ‘기업가의 탈을 쓴 권력자들’의 심기가 매우 불쾌해 진 것이다. “적극적으로 저희 회사의 이미지를 망치려고 하는데 아주 짜증나 죽겠습니다.” 이제 대기업을 경영하시는 높은 분들의 눈의 가시가 된 카랄니의 어조에 짜증이 잔뜩 베어 나왔다. 한국인이면 한국 특유의 문화로 자신들의 무리로 끌어들일 수 있겠지만 외국인이라 그러지 못했다. 게다가 자신의 경영 원칙을 지키다가 투자자로부터 쫓겨날 정도의 고집불통이니 포섭은 절대로 불가능했다 할 수 없이 차선책으로 지저분한 협잡을 시작했다. 사원 개개인의 지저분한 사생활을 들춰내어 그것을 제현 그룹 전체의 일인양 왜곡하는 건 다반사였고 광고 외주를 방해하거나 광고 계약을 방해하는 등 제현 그룹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부정적인 이미지로 만들기 위해서 갖은 모략을 다했다. 미국에서 회사를 경영하며 주주들과 신경전을 벌여왔던 카랄니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행태였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이러는 건가? 단순히 기업 이미지를 나쁘게 해서 무슨 소용이 있다는 건가? 이미 자신들의 고객은 충분히 충성도가 높다. 지역 사회의 인망도 있었고 딱히 손가락질 받은 일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지저분한 협잡이 사원들의 결속력과 충성심을 강화하고 있을 정도니 방해를 하겠다는 건지 아니면 도와주겠다는 건지 구분하기 힘들었다. 경쟁 기업을 도와주다니.. 차라리 카랄니가 저들이었다면 기업 문화를 뿌리째 바꾸고 체질 개선을 했을 것이다. 166화 “아아, 어찌된 건지 알겠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제현 그룹이 아니라 그 외에 제현 그룹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이들일 겁니다.” “네?” 강현의 말에 카랄니는 고개를 갸웃했다. “실질적으로 제현 그룹을 무너뜨릴 수는 없으니까요. 대신에 그 자신들에게 올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겁니다.” 제현 그룹 뒤에는 강현이 있다. 국제 통화의 조율 기준인 RP 시스템을 만든 남자, 여러 특허로 무지막지만 돈을 벌어들이고 있는 남자. 돈에 별다른 미련이 없는 그는 제현 그룹이 투자 좀 해달라고 하면 얼마든지 해줄 것이다. 그 자금력 앞에 제현 그룹을 무너뜨릴 수 있는 대기업은 없었다. 일반적인 기업이라고 해도 무너뜨리기 위해선 보통이 아닌 노력이 필요한데 건실한 제현 그룹이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하지만 카랄니는 그의 말에 더욱 아리송했다. 양자 통신 기술, IAPP 충격 완충 기술 및 방탄 기술 등 돈 되는 기술 특허는 물론이고 전략 물자 기술의 핵심을 강현이 쥐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배경으로 두고 있는 제현 그룹을 공격한다? 아무리 강현이 한국 제현 그룹의 흥망성쇠에 별다른 미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관계에서 이런 식으로 나오는 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피해를 최소화 한다니요? 지금 같이 인재가 유출될 정도라면 기업 문화를 혁신하고 개혁해야 합니다.” 그의 말에 강현은 실소를 머금었다. “그들은 단지 대기업이 아닙니다. 재벌이죠.” 그들은 단순한 기업인이 아니다. 단순한 기업인이었다면 카랄니처럼 제현 그룹에 맞상대할 수 있도록 기업을 구조조정하고 체질을 개선하는 것이 옳다. 기업의 생존을 위해서다. 하지만 그들은 단순한 기업인이 아니다. 기득권이자 하나의 정치 세력이자 권력자다. 그들에게 자신의 아성을 무너뜨릴 혁신과 개혁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고 그들의 선택은 자연히 경쟁을 위한 개혁보다는 현상 유지를 위한 선택을 할 것이다.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다면 기꺼이 굴종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건 불가능했다. 제현 그룹의 생태와 본질은 재벌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런데 제현 그룹 앞에 무릎을 꿇는다? 같은 재벌에게 굴복하는 것이 그나마 나았다. 적어도 재벌이란 지배구조를 무너뜨리지 않아 손해는 좀 보겠지만 기득권은 잃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재벌이 아닌 제현 그룹에게 굴복하는 것은 재벌 중심의 지배구조가 붕괴하는 것을 뜻한다. 제현 그룹에게 굴복하는 순간 그들의 기업 문화가 혁신이라는 명목으로 그들이 지배하는 기업을 뿌리채 뒤흔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식으로 재벌 지배구조가 붕괴하는 것은 쿠데타에도 살아남아 여전히 기득권을 유지하는 이들에게 재기할 수 없는 치명타였다. 그들이 권력을 잃게 되면 어떻게 될까? 제현 그룹식 고용 시스템이 일반적이 되면 어떻게 될까? 생활을 위해 허덕이지 않고 자신을 위해 혹은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다. 이는 곧 건강한 시민 사회의 근간이 될 것이다. 고로 시민 사회가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 시민 사회가 형성되면 정의를 논할 것이다. 해묵은 역사 문제를 정리하려고 할 것이다. 그건 친일 매국 세력의 잔재로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나라를 떠나야 할지도 모르는 문제였다. 저 새끼 증조 할아버지가 친일파였데. 그런 손가락질을 당하는 풍조에서 어찌 자식 새끼들을 키울 수 있을까? “제현 그룹의 기업 문화는 그들에게 위협적이죠. 그래서 전파를 막기 위해 결탁한 언론을 통해 그 이미지에 먹칠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 일반 국민들에게 퍼지는 건 막거나 늦출 수는 있거든요.” 세계 악덕 기업 3위의 위업을 달성한 샘성. 하지만 일반인은 잘 모른다. 왜냐면 주류 언론에서 절대로 내보낼 기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중의 지성은 상식 이하이며 대부분 수동적으로 반응한다. 결코 스스로 무언가를 찾아 진실을 확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근본적인 원인 해결이 안되지 않습니까?” 카랄니의 말 대로다. 그들의 노력은 결국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효과가 떨어지고 무효가 될 것이다. 사람의 입이 괜히 있겠는가? 사원은 물론이고 그 가족들과 지역 사회의 사람들의 홍보효과는 주류 언론의 짓거리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좋을 건 결국 퍼지게 되어 있다. “그렇죠. 그래서 제현 그룹에게 한 방 먹일려고 할 겁니다. 기업계에서 대응하기에는 제현 그룹이 견고하니 아마 정치권을 통해서 괴롭히겠죠. 방법은 많습니다. 세무조사, 간첩조작, 증거조작, 판검사 매수 등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치졸하고 더러운 방법을 동원할 겁니다.” “설마 그렇게까지 할까요?” 카랄니는 강현의 생각에 회의적이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강현을 배경으로 둔 제현 그룹을 상대로 그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카랄니는 기업인이니 잘 모를 수도 있죠. 하지만 재벌은 기업인일 뿐만 아니라 한국이란 나라의 권력 주체이기도 하다는 점을 잘 기억해 두세요.” 권력자의 발악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잔인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북쪽의 김씨 왕조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서 어떤 식으로 인권을 유린하는가? 푸틴의 방사능 홍차는 어떻고? 비단 북쪽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남쪽에도 돈과 권력으로 자식들의 범죄를 가리기 위해 피해자의 권리와 인권을 외면하고 무시하고 짓밟는 권력자들이 있다. 자식들의 미래를 위해서 가진 모든 영향력을 사용해 발악하는 것이다. 그런 그들이니 몰락의 원흉이 될 제현 그룹에 이를 갈지 않을 권력자가 없을 수가 없다. “그럼 어떻게 합니까?” “흐음.. 따로 첩보망을 구성할 필요가 있겠군요. 전직 형사나 정치사회부 기자같이 그쪽 생리에 밝은 사람들로 구성된 이들을 통해서 방어력을 확보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전관대우가 남아있는 법조계의 인사를 영입하는 건데 그건 하실 생각이 없죠?” 잡음 없이 살기 위해서는 두루두루 원만하게 살면된다. 정경 유착, 법조 비리가 기업을 부드럽게 운영하는데 필수적이라면 적당히 타협하여 제현 그룹에 일어나는 견제를 막을 수 있다. 하지만 강현의 물음에 카랄니는 고개를 저었다. “물론이죠. 그런 식으로 회사를 경영하려고 했다면 제가 여기에 있을 수는 없었을 겁니다.” 카랄니는 그가 고수하던 ‘사람 경영’ 때문에 주주들에게 쫓겨난 경영자다. 그런 사람이 비리의 온상이고 법상식을 벗어난 전관 예우 따위에 기대려고 할 리가 없었다. 법조계와 유착할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박사님은 연구하느라 바쁘실텐데 어떻게 그런 걸 다 아십니까?” 카랄니의 물음에 강현은 쓴 웃음을 지었다. 다 부모님의 복수를 위해서 열심히 조사하고 연구한 결과물이다. 거기에 정치권과 권력자들의 이해 관계에 얽혀 쌓은 경험도 적잖았다. “원하진 않았지만 그렇게 되더군요.” 카랄니는 그의 씁쓸한 표정에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하긴 그는 세계에 영향력을 투사하는 거인이었다. 유대 자본과의 일도 그렇고, 미 정부와의 관계도 그렇고, 세계를 주무르는 이들과 어떤 일이 없다면 이상할 일이다. “아무튼 제가 아즈삭을 통해서 그룹의 방첩 역량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 정보를 지원하겠습니다.” “그래 주시면 감사하죠.” 카랄니는 강현과 고마움을 담은 악수를 나누고는 돌아갔다. 강현은 샐리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 룸 서비스로 식사를 하고는 잠든 준의 얼굴을 감상하며 시간을 보냈다. = = = = = 강현의 일정은 단순했다. 부모님의 유골이 안치된 납골당을 방문한 이후 어릴 적 자신이 있던 시설의 원장님을 만나러 가는 것이다. 바쁜 일정은 아니다. 하루에 하나씩만 해도 되도록 휴가 일자를 여유롭게 잡았다. “여기가..” 샐리는 처음 맞아보는 향내에 엄숙한 곳에 왔음을 알아차렸다. 분향소에서 붉은 점이 끝에 붙은 향이 하얀 연기를 길게 흘리고 있었다. “이쪽이야.” 강현이 그녀를 이끌었다. 그녀의 품에 안긴 준은 생소한 분위기와 향기가 도는 장소가 신기한지 이리저리 고개를 돌렸다. 그들은 두 개의 단지 앞에 도착했다. “준아. 할아버지 할머니야.” 강현이 부드럽게 말했다. 하지만 사람의 형상도 아닌 단지를 그렇게 부르는 이유를 알기엔 준은 너무 어렸다. 알려고 해도 몇 살 더 먹어야 이해를 할 것이다. 강현이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샐리 역시 남편을 따라 두 눈을 감았다. 강현은 잠시 추억에 젖었다가 눈을 떴다. “이제 그만 가자.” “네? 벌써요?” 샐리는 놀랐다. 시간을 내서 차를 타고 왔으면서 고작 눈 한 번 감았다 뜨고는 끝이라니.. “어차피 두 분은 여기에 없어. 있는 건 행복했던 추억의 상징 뿐이야.” “....” 샐리의 얼굴이 우울해졌다. 남편의 심정이 괴로울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그녀의 착각이었다. 그립지만 괴롭진 않다. 인간의 짧은 삶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있는 그에게 부모님과의 이별은 너무나 빨랐지만 언젠간 맞이해야 할 일이었다. 우주는 언제나 인간의 인지를 초월해 존재에 있었고 인간의 존재는 잠시 번뜩이는 깜부기 불 정도였다. 그는 자신을 대신해 애도해 주는 샐리의 얼굴을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얼굴 펴. 슬픈 추억은 아니니까.” “슬프지 않아요?” “이미 충분히 슬퍼했어. 남은 건 그리움 뿐이야.” 그게 더 슬퍼요. 샐리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준아. 그럼 갈까?” “끄아! 꺄~아!” 준의 재롱에 분위기가 어느 정도 풀렸다. 강현은 가족들과 함께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내일은 원장님을 만나러 갈 생각이라 오늘은 여유가 넘쳤다. 그런데 다시 호텔이라니.. 사실 출장은 경험이 좀 있기는 하지만 여행은 경험이 없었다. 오후에 뭘 해야 할지 알기 어려웠다. 자신은 머릿속으로 뭔가를 할 수 있지만 샐리는 무척이나 지루할 것이다. 뭔가 시간을 보낼 것이 필요하지만 이런 쪽으로 뭐가 좋은지 경험이 없는 그는 결국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저기 최혜영 씨?” 호텔 로비로 내려온 강현이 부른 사람은 비서실에서 나온 카날리의 비서 중 한 명이다. 그녀는 특별히 강현과 그 가족들에게 불편함이 없도록 하라는 지시를 받은 상태였다. 항시 대기하는 건 지루한 일이었지만 생각보다 나쁘지는 않았다. “네, 박사님. 뭔가 불편하신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그러니까 시간이 많이 남아서 아내가 좀 심심한 것 같아요. 뭔가 시간을 보낼 일이 있을까요?” “아! 그러세요? 혹시 아내 분이 쇼핑을 좋아하시나요?” “어...” 강현은 문득 대답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아내가 쇼핑을 좋아했던가? 답을 할 수 없는 자신의 모습에 강현은 스스로에게 죄책감을 느꼈다. 평생 자신의 곁에 있어줄 사람에게 이리도 관심이 없었다니.. “어.. 그러니까.. 물어보고 올게요.” 강현의 얼굴이 빨게졌다. 부끄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잠시만요, 박사님. 굳이 물어보실 필요가 없으세요.” “네? 왜요?” “쇼핑을 싫어하는 여자는 없답니다.” “정말요?” “네. 그렇고 말구요.” 최혜영은 확신했다. 여자는 쇼핑을 좋아한다. 그것이 자신을 위해서든 아니면 가족을 위해서든 쇼핑은 여성의 로망이자 생활이다. “그럼 부탁 드리겠습니다.” “준비가 완료되는 데로 연락을 드릴테니 그동안 푹 쉬세요.”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최혜영은 그런 강현의 모습에 샐리 클린턴이 부러웠다. 능력있고 자상한데다가 귀여운 맛도 있고 젊었다. 게다가 여성을 배려하는 눈치도 좀 있는 것이 연애할 맛이 있는 남자였다. 167화 ‘박사님의 재산이 얼마나 되더라?’ 그리고 그에 걸맞는 쇼핑 장소는 어디쯤이 좋을까? 경호하기 쉬운 곳은 또 어딜까? 최혜영은 경호팀장의 의견을 구하기 위해 연락을 하려다가 정문에 있던 경호원 한 명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보고는 전화 걸기를 보류했다. “무슨 일인가요?” “박사님을 만나 뵙자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군가요?” 경호원의 대답을 들은 최혜영의 눈빛은 짙게 가라앉았다. 그녀는 곧바로 강현이 쉬고 있는 방으로 향했다. 강현은 누가 자신을 만나려고 하는지 궁금했다. “누가요?” “전해진 회장입니다.” 한국 1위의 자동차 제조업을 거느린 미래 그룹의 회장이었다. “무슨 일로 만나자고 하는 거죠?” “박사님에게 직접 말하겠다고 합니다.” “그래요?” 최혜영의 말에 강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로비로 내려왔다. 소파에 전해진 회장이 앉아 강현을 기다리고 있엇고 그 수행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그 주변에서 앉거나 서서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오! 강 박사로군!” 강현을 발견한 전해진 회장이 얼굴에 가득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면도 없는데 뭘 그리 반가워하는지 모르겠다. 강현은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전해진 회장에게 손바닥을 보여 멈추라는 제스쳐를 보냈다. “멈추세요.” “응? 무슨 일인가?” “저와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절차를 지켜주셔야 합니다.” “절차?” “네. 몸에 쓸데없는 것들이 있지 않은지 확인해야 합니다.” 강현의 말에 전해진 회장의 얼굴이 대번에 일그러졌다. 이건 명백한 모욕이다. 감히 미래 그룹 회장인 자신을 뭘로 보고! 하지만 강현은 그의 사정을 봐줄 생각이 없었다. “제 안전을 위해서 CIA에서 마련해준 메뉴얼입니다. 불만이 있으시면 그쪽에 얘기를 하시던가요.” 전해진 회장의 얼굴이 조금은 나아졌다. 그런 메뉴얼이 있다면 모욕하려는 의도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 실제 강현과 강현의 연구실을 방문하려는 모든 인사들에게 적용되는 메뉴얼이었다. 시행하는 사람은 물론 CIA 요원으로 한국으로 올 때에도 몇 명 붙어서 왔다. 근접 경호는 총 네 명이고 원격 경호는 알 수 없다. 알려고 하면 알 수 있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다. 호텔 로비에서 푹 앉아서 쉬고 있던 CIA 요원은 강현이 나오고 전 회장과 만나려고 하자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에서 탐지기를 꺼내 전해진 회장의 전신을 훑었다. 삐삐 소리가 날 때마다 확인했는데 옷에 부착된 금속제 단추라던가 벨트 버클 따위였다. 절차를 끝내고 휴대폰은 당연히 수행원에게 맡겨진 채 전해진 회장은 홀몸으로 강현과 마주할 수 있었다. “마치 일국의 대통령과 같은 보안이구먼.” 악의나 모욕하려는 의도가 없는 건 이해했지만 그래도 불쾌하고 자존심이 상한 감정이 남아있었는지 본의 아니게 다분히 비꼬는 어투가 남아있었다. “개인적인 영향력은 대통령을 넘어섰죠.” 강현은 무감정하게 대응했다. 그 말에 전해진 회장은 정신을 차리고 헛기침을 했다. “크흠! 시, 실례했네.” 얼마만에 사과라는 것을 해보는 건지 말이 더듬거릴 정도였다. “괜찮습니다.” 강현은 좋게 좋게 넘어갔다. 쓸데없는 감정 싸움으로 시간을 소비하는 것보다는 빨리 빨리 본론을 이야기 해서 꼴보기 싫은 얼굴을 치우는 것이 도움이 된다. 하지만 강현의 의도를 모른 전해진 회장은 생각보다 강현의 태도가 호의적이라고 착각했다. “커흠! 그래, 강 박사의 성공에 축하의 말을 건내고 싶구만.” “감사합니다만 본론부터 꺼내주시요.” 덕담으로 부드럽게 이야기를 꺼내려던 전 회장의 표정이 일순간 굳었다. 착각이 깨어지는 건 찰라였다. 강현의 말에 본론을 바로 꺼내는 그의 어조가 딱딱해졌다. “대한민국을 어떻게 생각하나?” “저는 미국인입니다.” “...” 서론을 먼저 꺼내는 전 회장의 입이 대번에 다물어졌다. 핏줄에 호소하려는 방법은 씨알도 안 먹힐 것 같다. “그럼, 제현 그룹은 미국 회사인가?” “제현 그룹의 법인이 한국으로 되어있지 않나요?” “하지만 여느 한국 기업처럼 기업을 운영하진 않지.” “한국 법에 저촉되나요?” “...” 전 회장의 입이 다시 막혔다. 전 회장이 말재주가 없는 걸까, 아니면 강현의 말발이 너무나 강한 걸까? “그 나라에는 그 나라만의 문화가 있는 걸세. 잡음이 없이 서로 원만하게 지내려면 그 나라의 문화를 수용할 줄도 알아야 하는 거지.” 전 회장의 말에 강현은 속으로 비웃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그래서 제현 그룹을 댁들처럼 운영하라는 말인가? 내가 왜? “저는 제현 그룹의 경영자가 아닙니다.” “하지만 말 한 마디 해줄 수는 있지 않나?” “어떤 말을 할까요?” “어, 그러니까 저, 적당히 주변 눈치를 봐서 이, 임금도 좀 낮추고 야, 야근도 좀 시키고..” 강현의 질문에 말을 잇는 전 회장의 얼굴이 수치심으로 붉게 물들었다. 자신이 말해도 얼마나 어이가 없는 말인지 알고 있었다. 만일 제현 그룹이 매 분기 적자를 봐서 강현에게 자금을 수혈 받는다면, 그럼 그렇지, 그렇게 운영하니 그리 되는 거라며 한껏 거드름을 피우며 지금 하는 말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제현 그룹이 건실하게 기반을 다지고 있는 상황이니, 전 회장의 부탁은 그 경영 방식을 방해하는 청탁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얼마나 상식 밖인가? 강현은 전 회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저, 정말인가?” 전 회장은 벌떡 일어설뻔할 정도로 놀랐다. 설마 강현이 선뜻 고개를 끄덕일 줄은 생각도 못했다. “아예 지금 전화를 할까요?” “뭣?!” 강현은 바로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전 회장은 더욱 놀랐다. 강현이 정말 어디론가 전화를 걸고 있었던 것이다. “카니 씨?” [박사님? 무슨 일이십니까?] 스피커 폰 모드인지 카날리의 목소리가 크게 나왔다. 전 회장이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혹시 바쁘신가요? 나중에 전화할까요?” [하하! 괜찮습니다. 박사님의 용건이 우선이죠.] “굳이 그러지 않으셔도 되는데..” 화기애애한 대화가 잠시 지나갔다. 카날리의 한국어 발음이 많이 유창해졌다. 덕담이 오간 후 강현이 말을 이었다. “혹시 경영 방침을 바꾸실 생각은 없나요?” […. 무슨 말이신지..] “제가 무슨 이야기를 들어서요. 제현 그룹에 일어나는 각종 잡음을 없애려면 적당히 그 나라의 관례를 따라서 시급도 법적 시급을 주고, 야근도 시켜야 한다는군요.” [박사님. 오늘 뭐 잘 못 드셨습니까?] “아침 식사는 꽤 맛있었어요.” [그런데 왜 이런 말을 꺼내시는 겁니까? 경영자는 저입니다. 아무리 박사님께서 대주주라고 하지만 경영에 관여할 권리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미 그 이야기에 대해서는 이미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습니까?] “그렇죠?” [그런데 왜...] “아아, 제현 그룹의 경영을 좋게 보지 않으시는 분이 제게 ‘충고’를 하기 위해 직접 발걸음을 하셔서요.” [아, 그렇군요. 하지만 저는 쫓겨나더라도 경영 방침을 바꿀 생각은 없습니다.] “그래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수고하세요.” [네, 박사님.] 전화기는 꺼졌고 전 회장의 얼굴을 딱딱하게 굳었다. “그게 다인가?” “네.” “저런 건방진 작자를 가만히 놔둘 생각인가?” “건방지다니요? 이 사람은 전문 경영인으로 자신의 소신을 지키려고 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대주주의 요구를 무시하지 않았나?” “하지만 그룹을 잘 경영하고 수익도 내고 있죠. 결격사유는 없습니다. 혹시 전문 경영인이 왜 있는지 모르시는 건 아니겠죠?” 전 회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처음부터 내 요구를 들어줄 생각이 없었군.” “무리한 요구인지는 처음부터 알고 계시긴 했죠?” “....” 전 회장은 입을 열지 않았다. 무리한 요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강현의 입김이라면 충분히 제현 그룹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자네는 기본적으로 온건한 사람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그를 설득하기 위해서 그의 온건적인 면을 기대했다. “그래요.” “그런데 우리에게 왜 이러는 건가?! 이미 이 나라는 자네 때문에 큰 피해를 입었네! 제현 그룹이 지금의 경영 방침을 고수하면 더 큰 혼란이 일어날 거야! 그런데도 자신을 온건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전 회장의 언성이 높아졌다. “저는 이 나라에서 부모님을 잃었죠.” 강현의 담담한 말에 전 회장의 입에 바로 다물어졌다. 강현이 한국에서 저지른 일의 전말 중 복수가 이유라는 사실은 알음알음 쉬쉬하며 알만한 사람들에게는 다 알려졌다. 전 회장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이미 복수는 끝난 것으로 아네만...” “복수의 대상들은 댁들의 일부였죠.” “그렇네. 우리 모두에게 잘못이 있는 건 아니야.” “하지만 그 복수의 대상들은 댁들과 같은 부류였죠. 자신의 이익을 취하기 위해서 자신이 가진 힘을 상식을 벗어날 정도로 휘두르죠. 그런데 왜 제가 댁들에게 좋은 감정을 가져야 하죠?” “....” “그리고 잘못이 없다라.. 적어도 법적으로 투명하게 사건을 처리했다면 제가 증오에 미쳐 날뛰어 많은 사람이 죽고 다칠 정도로 일을 크게 벌이지는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한국의 사법체제는 그렇지 않더군요. 돈과 인맥, 권력으로 얼마든지 사건을 무마할 수 있어요. 그런 환경을 만든 댁들의 책임이 정말로 아예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건 비약이네!” “비약이 아니죠. 사고(思考) 실험을 해보세요. 만일 그때 검찰이 조금이라도 투명하게 사건을 조사하고 범법자들을 발견해 법대로 처리했다면 과연 그런 일이 생겼을까요? 이미 법적 처벌을 받은 이들을 대상으로 과연 제가 그렇게 비상식적인 일을 저질렀을까요?” “그, 그건..” “저는 처음에 당신들 모두를 쳐내려고 계획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복수가 아니라 단순한 분풀이에 불과했기 때문에 참은 겁니다. 아시겠어요? 당신들이 지금 여전히 기득권을 누리고 있을 수 있는 이유는 당신들에게 잘못이 없어서가 아니라 제가 참았기 때문입니다.” 전 회장의 얼굴이 이제는 아예 새파래졌다. “그, 그럼 왜 제현 그룹을 남겨두었나? 참았다면서!” “제현 그룹은 저를 도와준 이들에게 준 포상일 뿐이에요. 그 증거로 저는 제현 그룹의 배당도 탐내지 않고 경영에도 관여하지 않습니다. 저는 댁들을 일부러 도태 시키려고 하는 것이 아니에요. 그냥 제가 저지른 일의 여파가 남아 상황을 변화시키고 있을 뿐이죠.” “자, 자신이 저지른 일의 뒷수습은 해야 하지 않는가?!” “제가 왜요? 댁들이 뭐가 이뻐서요?” “....” 정 회장은 말을 할 수 없었다. 강현은 박수를 한 번 치고 주의를 환기시켰다. “이쯤 되면 제 입장은 다 밝힌 것 같은데.. 할 이야기도 없지 않아요?” “기어코 우리를 잘라내겠다는 뜻인가?” 강현은 전 회장의 말에 혀를 찼다. 참으로 이해력 떨어지는 양반이다. 아니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봐서 그런가? 강현은 그의 착각을 바로 잡기 위해 자신의 입장을 정리해 설명했다. “첫째, 저는 제현 그룹의 경영에 상관하지 않아요. 망해도 상관없어요. 둘째, 저는 댁들이 어떻게 되든 전~혀 관심이 없어요. 그렇다고 댁들에게 감정이 없는 것이 아니에요. 불쾌한 감정이 생기니까 상관하고 싶지 않은 거죠. 마지막 셋째, 고로 제현 그룹에 불만이 있으면 그쪽에다가 얘기하세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저에게 이러지 말고.” 강현은 말을 마치고 방으로 올라갔다. 연장자에 대한 예의는 충분히(?) 지켰다. 168화 전 회장은 강현과 대화를 마치고 힘없는 모습으로 호텔 밖으로 나왔다. 석간에 전 회장과 강현의 대담을 주제로 짤막하게 뉴스 기사가 났지만 잔뜩 굳어 찌뿌려진 전 회장의 얼굴이 매스컴을 타는 일은 없었다. 강현과 척을 진 모습은 절대로 보여서는 안된다. 수출 주도형 경제인 대한민국이 이미 우주 개발을 주도하고 있고 각종 핵심 기술을 쥐고 있는 유력인사와 불화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대번에 수출에 타격이 올 것이다. 그럼 제현 그룹은? 제현 그룹과의 불화는 괜찮은가? 의외로 괜찮다. 한국 제현 그룹의 이미지는 괴짜 천재가 사회적 실험을 위해서 설립했다는 인식이 더 강했다. 경제 학자들이 제현 그룹과 기존 한국 재벌들과의 갈등 및 사회 구조의 변화를 논문으로 내면서 더욱 그러했다. 만일 강현이 정말로 기업에 욕심이 있었다면 더 큰 수익과 성장을 할 수 있는 경영 방침을 선택하도록 영향력을 끼쳤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고 주주들에게 쫓겨난 카랄니를 경영자로 세우고는 더 이상 관여하지 않으니 강현과 제현 그룹은 별개의 존재로 인식되었다. 오히려 한국 제현 그룹은 강현의 실험 도구에 불과하다는 이미지였으니 딱히 강현의 눈치를 봐서 제현 그룹을 대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전세계 바이어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강현을 존경하기는 하지만 그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제현 그룹 영업사원들의 태도와 제현 그룹에 선을 그은 강현의 태도가 신빙성을 더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기득권이 그런 제현 그룹을 제압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치졸한 방법을 동원한다면 강현이 개입하고 싶어질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전 회장이 돌아가고 약 20분 뒤, 최혜영이 쇼핑 준비가 완료 되었다며 강현 가족을 데리러 왔다. 샐리는 준을 품에 안고 최혜영의 뒤를 따랐고 그 뒤를 강현이 따라갔다. “흐음...” 강현은 좀처럼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왜? 자신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냥 막연하게 불안감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왔다. 그리고 그 불안감은 현실이 되었다. 나는 어디? 여긴 누구? 멍한 정신 상태의 강현은 준을 품안에 안고 있었고 샐리는 유아용품 점에서 최혜영의 도움을 받아 쇼핑중이었다. “이게 어울릴까요? 아니면 이게 어울릴까요?” “사모님, 요건 어떠세요?” “이것도 예쁘네요. 이것도 주세요.” 점원이 옷걸이에 걸린 유아용 옷을 샐리에게 건네주자 그녀는 강현의 품에 안긴 준에게 옷걸이를 들어 대충 이미지를 체크한 후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모자, 신발, 장난감 등 임신 초기에 제대로 하지 못한 쇼핑을 원없이 했다. 그때는 강현도 별로 힘들지 않았다. 첫 임신이라 힘들었던 샐리가 대충 쇼핑을 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뱃속에 들어있던 준은 강현의 품안에 있었고 몸이 가벼워진 샐리는 부담없이 쇼핑을 즐길 수 있었다. “아! 이거 이쁘다.” 또다시 발걸음을 멈춘 샐리로 인해 이미 강현의 정신은 해탈했다. 장난감 코너에서 흥겨워하던 준도 이제는 지루한지 강현의 가슴에 얼굴을 기대고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현, 이거 어때요?” “예뻐.” 강현은 기계적으로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그냥 다 사버리고 싶었다. 돈도 많으니까. 하지만 샐리가 ‘그 중에 예쁘지 않은 옷이 있으면 어떡해요?’라면서 반대를 했다. 쓸데없이 돈을 쓰는 건 안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강현은 벌써 수십벌이나 되는 준의 옷을 구매한 샐리가 이미 쓸데없이 돈을 썼다고 생각했다. 저 옷들 중 준이 일 년에 한 번이라도 입을 옷이 있을까? 그때 쯤이면 훌쩍 자라서 옷을 다시 사야하니 샐리의 말은 모순된다. ‘아으..’ 모순이 있으니 지적하고 싶다. 강현은 정신이 멍한 와중에서 입이 근질근질 거렸다. 그건 일종의 직업병이었다. 논리는 과학적 방법론의 근간을 이루기 때문에 모순된 상황을 지적하고 해석하려고 하는 건 연구자로서의 본능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지적해봤자 상황이 좋아질 것 같지는 않았다. 그동안 샐리와 쇼핑한 일이 손에 꼽을 정도였으니 오늘은 힘들어도 견디자.. 라고 생각했다. 코너가 바뀌었다. 이제는 여성용품 전문 매장이었다. 샐리는 의외로 여기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지 않았다. 강현이 예쁘다고만 한 옷을 재빨리 챙기고는 곧장 남성용품 전문 매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강현은 거기서부터 본격적으로 힘들어졌다. “이, 이것도 괜찮은데?” “괜찮기는요. 부족해요. 이번에는 이걸로,” “그냥 다 사면 안돼?” “다 사도 어차피 나중에는 안 입을 옷은 골라내잖아요. 지금 확실하게 입을 옷만 고르는 게 나중을 생각하면 시간 절약이 되요.” 그러니까 왜 강현이 입을 옷을 샐리가 고르는 걸까? 하지만 남편의 옷 중에 그나마 입을 만한 옷이 고급 브랜드의 양복 한 벌이라고 하면 경악하지 않을 아내가 있을까? 결혼 초에 샐리는 강현의 옷장을 정리하다가 기겁을 했다. 패션 따위에는 신경쓰지 않고 오직 편리성에만 중점을 둔 옷들의 존재에 샐리는 어이가 없었다. 그중 압권은 산타클로스가 만화 캐릭터처럼 그려진 펑퍼짐한 티셔츠였다. 이걸 20대 중반을 넘은 남자가 입는다고? 아무리 타인의 시선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강현이라지만 이건 좀 너무했다. 강현이 그녀의 생각을 들으면 억울할 만했다. 그의 평상시 복장은 연구용 가운이다. 그 안에 뭘 입든 별로 큰 문제가 안된다. 그러니 편한 옷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이었다. 아무튼 샐리는 그동안 남편이 바빠 제대로 쇼핑을 하지 못했으니 이번 기회에 뽕을 뽑을 작정이었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면 언제 강현을 백화점이나 옷가게로 끌고 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준을 최혜영의 품에 맡긴 강현은 옷걸이가 되었고 샐리는 코디가 되어 수 십벌의 옷을 골라내었다. 천만 다행으로 쇼핑은 저녁 식사 전에 시작되어 식사 시간 쯤에 맞추어 마무리 되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강현은 마네킹이 되어 더욱 괴로운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강현에게는 힘들었고 샐리에게는 흡족했던 쇼핑 다음날, 강현은 가족을 데리고 어린 시절을 보낸 시설의 원장님을 만나러 갔다. 원장님은 여전히 시절의 원장 노릇을 하고 있었다. 다만 정부에서 운영하는 시설이 아니라 사설 보육원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정부 보조금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큰 차이는 없었다. “오랜 만입니다, 원장님.” “왔구나. 온다는 이야기는 들었다만..” 마누라랑 자식 새끼까지 데리고 왔네. 자랑질이냐? 중얼거리는 원장님의 말에 강현은 피식 웃었다. 다소 염세적인 기질은 여전했다. “여전하시네요.” “흰 머리 안 보이냐?” 그런 걸 말하는 게 아닌데 말이다. “그런데 원장님께서 보육원을 계속하시니까 신기하네요.” “뭐가 신기하니?” “원장님이 애들 돌보는 걸 별로 안 좋아하시는 줄 알았어요.” “안 좋아하기는. 머리 큰 놈들보다 애들이 얼마나 말을 잘 듣고 착한데. 네가 유별났지.” 어떤 기업의 이사를 함정으로 기절 시켰을 때는 얼마나 웃겼는지. 김 원장은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배가 아팠다. 꼬치꼬치 캐묻는 거랑 지 기분이 상하는 일에 절대 타협하지 않는 성질머리는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유대 자본에 대해서나 한국에서 벌인 강현의 활약(?)을 매스컴으로 볼 때마다 그 성질 머리가 여전하구나라고 생각했다. 잠시 과거를 떠올렸던 그는 강현의 옆에 있는 샐리를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이쁜 마누라를 얻었구나.” “네. 그렇죠.” “현, 뭐라고 하시는거에요?” 한국어를 잘 알아듣지 못하는 샐리가 남편에게 물었고 강현은 가감없이 설명했다. “샐리가 이쁘다고.” “어머!” 김 원장의 칭찬에 샐리가 기분 좋게 웃었다. 분위기가 좋아졌다. “결혼은 하셨어요?” “이미 애들 많아.” 김 원장의 말에 강현은 그러려니 했다. 이야기는 다시 과거로 향했다. “너는 옛날과 많이 달라졌구나.” “어떤 면에서요?” “사고뭉치에서 의젓한 가장이 됐다고나 할까?’ “사고뭉치라는 표현은 좀 그렇네요.” “개구장이라고 해줄까?” “그 나이 때 개구장이가 아닌 사람이 있나요?” “껄껄껄! 말발이 많이 늘었구나.” 김 원장의 말에 강현은 그의 말장난에 낚였던 과거가 생각났다. 당시에는 별로 의미를 두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나니 추억이란 이름으로 남았다. 샐리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죄다 한국어라 알아듣지 못하자 슬슬 지루해졌다. 어쩔 수 없이 품에서 칭얼거리는 준에게 관심을 쏟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지 않으면 졸릴 것 같았다. “그래, 성공하니 기분이 어떻니?”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어요. 대체적으로 나쁘지는 않아요.” 좋은 일은 돈이 많아서 연구비에 빌빌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나쁜 일은 여러 귀찮은 일이 몰려 온다는 것이다. 매스컴의 인터뷰 요청, 유력 인사의 접견 요청 등 처음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을 때 성미에 맞지 않은 인간들을 대한다고 짜증도 많이 났었다. 차라리 학자나 연구원이었다면 기분 좋게 이야기를 나누었을 텐데 사고 방식과 가치관, 인생의 목적이 다른 사람들을 만나니 이해하지 못할 답답함이 있었다. “요즘 힘드신 일 없어요?” “그러고 보니 돈이 모자라. 돈 좀 보태라.” “돈이요?” 직설적인 김 원장의 말에 강현의 눈이 동그래졌다. “애들에게 도대체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가는지 알아? 요즘 물가가 얼마나 올랐는지, 애기들 분유값과 간식값만 해도 등골이 빠질 지경이다.” “그래요?” 정부의 적극적인 관심을 받아 적어도 먹는데 걱정이 없었던 강현은 고개를 갸웃했다. “정부의 지원이 부족한가요?” “정부의 지원이라는 건 말이다. 언제나 아슬아슬하게 챙겨주는 거야. 나처럼 위에 샤바샤바할 성질머리가 없는 사람이 운영하는 시설은 더욱 그렇지.” “쩝.” 돈의 집행에 비리가 얽히는 건 근절하기 힘든 문제다. 한 쪽에서는 예산이 없어서 골머리를 앓는 한 편, 다른 한 쪽에서는 예산 축소를 막기 위해 쓸데없이 예산을 낭비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그것을 나쁘다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어떤 경우에는 그런 예산의 낭비가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거나 지탱하는 근간인 경우도 있었다. 물론 국가 전체라는 관점에서는 지역 이기주의의 관료적 발현이라고 할 수 있었다. 결국 이 모든 것의 근본원인은 사회적 배경이 다른 이기적인 인간의 이해관계였다. 각자의 입장 차이가 존재하는 한 그 간극을 메우는 건 결국 전체적인 사회 변화만이 높을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김 원장이 말하는 문제는 공립이 아니라 정부의 지원을 받는 사설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별다른 수익이 나지 않는 보육원으로서는 사설 시설에 정부가 지원을 하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다. “그동안 어른이 된 아이들이 도와주는 걸로 버텨나가기는 했지만 더 잘해 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 아니냐? 그렇다고 이미 제 갈길 가고 있는 녀석들에게 손을 더 내미는 것도 할 짓은 아니고.” “그럼 저는요?” “넌 2조 달러나 있으면서 뭘 그리 엄살을 피니?” “지금은 3조 달러에요.” 우주 개발을 하고는 있다만 소행성대를 개발해 자원을 충족하고 있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강현이 들이는 비용은 연구 개발비와 매스 드라이버 및 우주로 쏘아올리는 로봇 정도였다. 당연히 그 비용은 강현이 각종 라이센스로 벌어들이는 비용에 비하면 얼마 되지도 않았다. 169화 <16-추억의 정리> “자랑만 하지 말고. 넌 여기 자랑하러 왔냐?” 김 원장의 뚱한 말에 강현은 피식 웃었다. 이렇게 당당히 돈 좀 보태라고 자신에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선뜻 얼마나 필요하냐고 말하려던 강현의 사고가 빠르게 회전했다. 이 보육원에 돈을 얼마나 지원하면 될까? 또 지원하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사실 제현 그룹에서 받는 적지 않은 배당금을 보육원으로 돌리는 방법이 가장 손쉬운 방법이었다. 미국으로 돈이 왔다가 다시 한국으로 보내는 수수료를 제하려면 카니에게 말만 하면 된다. 자신의 배당금을 줄이는 만큼 김 원장의 보육원에 기부금을 주라고. 방법은 그렇다쳐도 그럼 액수는 어떻게 할 것인가? 강현의 배당금은 분기마다 십 수억 원 단위다. 아무래도 제현 그룹의 30%에 달하는 주식을 가진 대주주니까 주식당 배당율이 은행 이자에 불과할 정도라고 해도 규모의 경제로 적지 않은 돈이 생긴다. 그 많은 돈을 보육원에 준다? 어떤 부작용이 생길지 강현으로서도 예상하기 힘들다. 돈에 날파리가 꼬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 얼마 정도가 좋을까요?” “글쎄.. 애 하나 당 한 달에 50만원 정도는 적당하겠는데.. 우리집에 있는 애들이 32명 이니까 한 달에 1600만원 정도면 될거야.” “...” “뭐냐?” “의, 의외로 검소하시네요.” 하도 억 단위의 자금을 다루다보니 김 원장의 입에서 나온 숫자에 적응이 안 될 정도다. “쯧쯧쯧. 별 배경도 없는 애들에게 물려줄 건 검소함 밖에 없어. 그러니까 나부터 모범을 보여야지. 쓸데없이 돈 많이 받아봤자 허파에 바람만 들어갈 뿐이야. 또래보다 빠른 현실 인식이 내 아이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지.” 김 원장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순간 강현의 눈에 김 원장의 낡은 양복이 눈에 들어왔다. 소매가 헐어 보푸라기가 일 정도였다. 자신이 온다고 그나마 멋지게 차려 입은 것이리라.. 강현은 고개를 끄덕이고 계좌번호를 받았다. “아마 제현 그룹의 이름으로 들어갈 거에요.” “그러냐?” 김 원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리고 제가 여기에 온 건 비밀로 해주세요.” “당연하지. 네가 여기에 온 걸 알면 별의별 해괴한 종자들이 찾아올 거다. 아마 국회의원도 있겠지.” 이슈가 있는 곳에 등장하려고 몸부림치는 것이 바로 국회의원이라는 사람이었다. 대한민국이 놓친 천재, 그리고 그와 어릴적 인연이 이어진 김 원장은 정치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존재였다. 강현은 해괴한 종자에 국회의원을 포함시키는 김 원장에게 경고했다. “혹시나 국회의원이 찾아오면 말조심 하셔야 돼요. 혹시 보조금이 끊길 수도 있어요.” “끊으라지. 네가 있는데 왜 빌빌거리며 손바닥을 비벼? 나도 인생 말년에 배경 좀 믿고 설쳐보자.” “그래도 귀찮으실걸요.” “끄응.. 알았다.” 국가 기관에 대한 반감이 상당한 김 원장이었다. 그가 공립 보육원을 버리고 사설 보육원을 세운 것도 이유를 알 수 없는 그런 반감 때문일까? 아무튼 기부금 이야기도 끝나고 다시 과거의 추억을 곱씹으며 카레와 카레 돈까스의 상관관계에 대한 농담도 나눈 둘은 슬슬 헤어질 시간임을 알았다. “그럼, 또 몰래 와라.” “몰래가 좀 힘들 것 같아요.” “그럼 오지마. 돈만 보내. 애들은 잘 먹여야지.” “예.” 강현은 피식 웃었다. 한 편으로는 씁쓸했다. 이제 떠나면 또 언제 다시 볼지 모른다. 힘들었던 유년 시설, 조금이나마 유쾌했던 추억을 심어준 사람. 강현에게 김 원장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강현은 원장실을 나왔다. 경호원들이 그와 샐리의 주변을 호위했다. 문득 강현의 시선이 복도 저 끝으로 향했다. 검은 양복의 건장하고 분위기 있는 경호원들의 모습을 구경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옷이 생각보다 후줄근 하지 않았다. 멀쩡한 옷도 버리는 한국의 경제 관념에서 입을 만한 옷을 구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강현은 역시 직접 확인하지 않은 세상의 단면은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않다는 사실을 느꼈다. 경호원들 중 한 명이 강현의 시선을 향한 곳으로 얼굴을 돌리자 아이들이 와! 소리를 지으며 흩어졌다. 천진난만한 모습에 강현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는 자신의 과거에 어떠했는지 떠올렸다. 자신에게도 저런 천진난만했던 시절이 있었던가? 분명히 있었다. 돌아가신 부모님께서 살아계셨을 때, 또 천재소년에게 허물없이 장난을 치던 김 원장과 함께 있었을 때, 그리고 은사님들 밑에서 교육을 받을 때.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과거의 자신은 그리 불행하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그는 미국으로 돌아가기전 천마륵 교수를 비롯한 은사님들을 다시 한 번 뵙기로 했다. “오! 왔니!” 강현이 방문하자 천 교수가 반갑게 맞이했다. 딱히 일정을 정한 것도 아니고 그냥 불쑥 방문한다고 연락이 와서 급히 휴강을 하고 시간을 냈다. “제가 폐를 끼치는 건 아니죠?” “폐는 무슨.” 폐 끼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천 교수는 오래된 제자의 방문이 마냥 반가울 뿐이다. 더구나 자신의 체면을 살려주기 위해서 미국 정부까지 움직여 주다니. 덕분에 천 교수에 대한 평판이 완전히 변해버렸다. 그냥 뛰어난 학자일 뿐만 아니라 미국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인맥을 가진 사람. 덕분에 명절 때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나 단체에게서 선물을 받아 정중하게 돌려보내느라 흐뭇한 고생을 해야했다. 그도 사람인데 남이 자신을 인정해 주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리가 없잖은가? “그래, 무슨 일이니?” 천 교수는 강현이 긴 서론을 싫어하는 걸 알기에 바로 본론을 꺼냈다. 하지만 전혀 의외의 대답을 들었다. “글쎄요. 딱히 목적이 있어서 온 게 아니라서요.” “으잉?” 천 교수의 멍한 표정이 강현이 기억하던 근엄한 표정과는 판이하게 달라서 하마터면 웃을 뻔했다. “그냥 한 번 옛 생각도 나고 그냥 한 번 와봤어요.” “그, 그러냐?” 하긴 목적이 있다면 이렇게 불쑥 찾아오지 않고 미리 말을 해줬을 것이다. 천 교수는 제정신을 차리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많이 변했구나.” “그런가요?” “아들을 낳았다고 들었는데.. 하긴. 남자는 아빠가 되는 순간 어른이 되지.” “그건 좀..” “물론 아빠가 되어도 애 같은 사람이 있기는 있어.” 천 교수의 농담에 강현이 피식웃었다. “그나저나 네 덕에 요즘 일이 잘풀린다.” “그래요?” “한미 로켓 기술 협정이 완화되서 유인 로켓 기술이 한 창 개발 중이지. 앞으로 8개월 후면 유인 로켓이 나올거다.” 순간 강현의 표정이 굳었다. “응? 왜 그러냐?” “어.. 저기 교수님. 죄송하게 됐습니다.” “응? 뭐가?” “사실은 유인용 매스 드라이버가 거의 완성 단계에요.” “응? 뭐?” 천 교수의 얼굴이 멍해졌다. 아직 매스 드라이버로 사람을 쏘아 올리기 위한 추진력과 그 추진력을 감당한 거대한 시설을 지을 기술력을 확보할 동안 당분간은 로켓이 유력한 수단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이번에 플라즈마 제트 엔진이 개발되어서요, 매스 드라이버의 부족한 출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됐어요.” “.... 그, 그러냐?” 천 교수의 심정이 복잡해졌다. 로켓 개발에 매달리고 있는 지인과 그들의 제자들에게 이 일을 어떻게 말해줘야 하나? “어, 언제쯤 나올 것 같니?” “최소 6개월, 최대 1년 안에는 프로토 타입이 완성될 거에요. 지금 한창 제작중이에요.” “그, 그러냐? 그럼 로켓 관련 기술은 완전히 사장되는 거니?” “글쎄요.. 사실 기술이라는 것이 적재적소에 사용하는게 중요하기 때문에 사장되지는 않을거에요. 특히 로켓 기술은 순간 출력과 우주 공간에서의 기동성 때문에라도 사라지지는 않을거에요.” “결국에는 군사용 기술로 살아남는다는 거니?” “굳이 군사용이 아니라도 쓸 수 있는 분야가 있을거에요.” “하지만 네 관심사는 아니구나.” “그렇긴 하죠.” “쩝.” 천 교수는 씁쓸한 입맛을 감출 수가 없었다. 강현의 관심사에서 벗어났다는 것 하나만으로 그 기술은 혁신의 가능성을 외면 받는다. 실제적으로는 강현이라는 천재가 다루지 않기에 발전 가능성이 떨어진 것이지만 현상적으로는 사람들의 마음에 ‘아! 저 기술은 여기까지구나’라는 편견을 심는다. 천 교수는 미안하지만 미리 로켓 연구를 하는 지인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기로 했다. “이 이야기 관계자에게 말해도 되나?” “음.. 한 달 쯤 뒤에요. 그때쯤이면 알려져도 돼요.” “고맙다.” “괜찮아요. 어차피 기밀로 할 기술도 아니라서요. 좀 빨리 알려져도 상관없어요.” 강현은 천 교수의 고마움에 손사래를 쳤다. 그 뒤로도 이야기는 한참이나 이어졌다. 언제 다시 한국에 들어올 지 모르는 강현이었다. 그는 천 교수와 만남을 마치고 은사님들을 잠시 방문한 이후 제현 그룹의 본사로 향했다. 내일이 떠나는 날이기 때문에 그 전에 김 원장이 운영하는 청록 보육원에 대한 기부에 대한 걸 처리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에 관해서 카랄니와 대화를 하던 도중에 전혀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그러니까 원장님이 월급도 받지 않는다구요?” “특이하죠. 아무리 사설 보육원이라고 해도 정부 보조금을 받으면 월급을 받는데 말이죠.” 사설 보육원은 개인이 사제를 털어서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기부금 이외에 수익을 기대할 수 없기에 정부에서 보조금을 받는다. 그리고 정부는 공보육이라며 수입=지출, 즉 수입-지출=0이 되도록 운영하게 한다. 언듯 생각해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애들을 담보로 보조금 장사를 하지 못하게 만들 수 있으니까. 하지만 정부 보조금이 현실과 동 떨어진 상황에서 사설 보육원의 운영은 회계 비리가 들어갈 수 밖에 없다. 아니, 비리를 저질러 감당할 수 있다면 다행이다. 보육원 1500원. 지역 아동 복지 3500원. 제주 국제학교 4500원. 무슨 가격인가? 아동 소속별 한끼 급식비다. 제주 국제학교는 등록금을 내기는 하지만 그래도 혈세 지원이 없는 건 아니다. 교육부 특별교부금이라는 명목으로 1억 3천여 만원이 학생 한 명 당 지원됐다. 물론 모두 혈세다. 이런 상황에서 김 원장은 그야말로 엄청난 절약을 통해서 보육원을 유지하고 있었다. 전 재산을 쏟아부은 보육원 부지에서 텃밭을 일구고 닭을 길러 반찬을 확보하고 시설의 수리도 직접 손으로 하고 있었다. 아이들도 돕기는 하지만 그 조막만한 손으로 얼마나 도움이 될까? 거기에 보육원생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교복이나 학용품도 사줘야 하는데 정부에서 그런 예산을 내줄 턱이 없다. 김 원장은 그럴 때마다 발품을 팔아가며 교복을 구해서 아이들에게 입혔다. 덕분에 치수에 맞지 않는 교복을 고친다고 팔자에 없던 재봉질도 하게 됐다. 카랄니는 청록 보육원의 실태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여기가 과연 그 발달했다는 대한민국이 맞는지 납득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심층 조사를 시작했고 김 원장이 자신이 마땅히 받아야 하는 월급마저 모조리 보육원 운영에 쏟아붓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 강현은 카랄니가 조사한 것을 하나 하나 넘겨보았다. 보고서에 첨부된 텃밭과 건물 뒤쪽의 낡은 시멘트 벽 사진을 보니 원장님이 짓던 피식 웃음이 더욱 의미있게 다가왔다. “어떻게 하고 싶으십니까?” “글쎄요.” 강현은 인정하고 있었다. 딱히 이런 풍경이 희귀한 것은 아니었다. 세계는 넓고 제3세계에서는 이보다 더 참혹한 일이 다반사로 이루어진다. 미성년자들을 납치해 보육은 커녕 소년 병사로 세뇌시키거나 창녀로 만들거나, 아니면 앵벌이는 시키는 등 차마 보지 못할 일들이 일어난다. 170화 아무리 강현이라고 하지만 신이 아니기에 그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었다. 그건 천재성이 필요한 일이 아니었다. 시간과 희생이 필요했다. 그리고 강현은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사람은 아니었다. 스스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김 원장의 삶과 같은 방식을 존경했다. 결코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마리아의 애원을 들어준 것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은 생판 남인 사람을 위해서는 울 수 없는 사람이었다. 울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너무 이성적이라서 그런가? 아니면 이기적인 자신의 속성을 자각하고 있기 때문인가? 자신과 친분 있는 사람 이외의 사람은 그에게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 굳이 붙이자면 잠재적인 적 혹은 아군, 혹은 이용물, 혹은 아무런 관련이 없을 사람 등 다양하게 분류할 수 있었다. 그런 강현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남을 돕는다? 사회적인 명예나 대중의 지지를 노리지 않고서는 스스로를 설득할 수 없을 정도였다. “돕는다는 건 참 힘들어요.” 타인을 동정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강현은 함부로 남을 동정하지 않는다. 동정은 때론 사람을 비참하게 만든다. 정부 인사의 예산 갑질에 홀로 미국행을 선택할 정도로 자존감이 강했던 강현은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타인을 동정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래서 도움이 동정에서 그치지 않으려면 책임을 져야한다. 김 원장이 보육원의 아이들을 돌보는 것을 동정이 아니라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럼 자금은 제 배당금에서 충당해 주세요. 그리고 불편없이 보육원을 운영할 수 있도록 도와 주세요. 아참! 세간에 알려지면 잡음이 낄 테니까 조용히 처리하셔야 돼요.” “그정도는 저도 알고 있습니다.” 카랄니의 말에 강현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무엇인가가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앞으로 약 3년 후에 우주 도시가 완공될 거에요.” “그렇군요. 대단하십니다.” 지금도 한달에 한 번씩 수송선 서브 카낙이 대량의 물자를 운반해 와서 수 천대가 넘는 펜타봇들이 매일 일하고 있었다. 소행성 광산에서는 흑연을 이용한 탄소 나노튜브 케이블(CNT 케이블)제조 시설도 완공되어 계획에 탄력이 붙었다. “그래서 말인데 도시가 완공되고 나서 내부 단장을 해야 하는 인원이 필요해요.” “그래요? 혹시 인원을 한국에서 충당하실 생각인가요?” “미국과 한국 양쪽에서요. 미국 제현 그룹에서만 뽑을 생각이었는데...” “마음이 바뀌셨군요.” “네. 아무래도 부모님이 한국인이라서 그런지 한국인에게 뭔 가를 해주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아있네요.” 강현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스스로가 민족주의자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민족의 일원으로써 태어나 생긴 인연은 무시할 수가 없었다. 천 교수, 김 원장. 그리고 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들.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준 이들이었기에 그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강현은 나름대로 한국인에게 기회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강현이 미국으로 돌아간 한 달 뒤, 한국 제현 그룹은 대대적인 인사 모집을 시작했다. [절이 싫은 중이여! 떠나라! 우주로!] 엄청나게 자극적인 카피 문구로 시작된 제현 그룹의 대대적인 인사 모집에 드디어 본격적으로 핵심 인재를 빼내가려고 하는구나라고 생각한 기업들이 일제히 긴장했다. 역시 우주 개발을 진행 중인 강현과 라인이 끊어진 것이 아니었는지 우주 도시 완공을 앞두고 내부 단장 및 거주 시설을 짓기 위한 인력을 모집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인원수는 약 1만 여명에 달한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인력이 빠져나갈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대우 조건에 다소 안심했다. 성과급이나 보너스가 없다는 문구에 인재의 유출이 없을 것이라고 보았다. 어이가 없을 정도로 안심한 것은 모집 요건 때문이었다. [모집 요건 : 대한민국 부적응자. 특히 자신이 법 없이도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친 사회적이고 성실한 사람일 경우 면접 및 인적성 검사를 통해 선발.] 부적응자? 하지만 취업을 해서 승승장구하고 있고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핵심 인재가 부적응자일리가 없다. 그러니 기업 차원에서는 안심했다. 그러나 정부 차원에서는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대한민국 부적응자라니! 마치 대한민국이 사람 살 곳이 안 된다고 말하는 광고같지 않은가? 정부 기관에서 제현 그룹에 강력하게 광고 시정 조치를 내렸다. 제현 그룹은 정부의 지시에 따라 광고 문구를 바꾸었다. [평범한 한국인에겐 흥미 없습니다. 이중에서 백수, 좌파, 빨갱이, 내부고발자가 있다면, 저희에게 오세요. 이상!] 도대체 누가 뽑았는지 알 수 없는 요상한 광고 문구였지만 더욱 노골적인 표현에 이전보다 더욱 큰 반향을 일으켰다. 도대체 무엇을 목적으로 저런 사람들을 모집하려는 건가? 대체 우주에는 어떤 사람이 필요하다는 말인가? = = = = = 백수 생활 3년차에 접어는 백영길은 취업하라는 부모님의 등쌀에 진저리가 났다. 왜 취업을 못하냐고? 그걸 알면 취업을 하겠지. 하지만 그 원인은 결국 경쟁에서 뒤쳐졌다는 것이고 남보다 뛰어나게 되는 확실한 방법이란 인류 뿐만이 아닌 지구 상 모든 생명이 갈망하는 방법론이며 결코 완성되지 않을 이론이었다. 아무튼 제현 그룹에서 모집하는 모집 요강을 본 그는 비록 연봉이나 혜택 따위가 중견 기업에 비해서도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지원서를 냈다. 그만큼 그는 절박했다. 지독한 경쟁뿐인 대한민국 사회를 떠날 수 있다는 것, 그것 하나 만으로 지원을 결심하기에는 충분했다. “3132번 면접자, 들어오세요.” 자신의 번호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동안 기억에 남는 걸 말해보세요.” “어.. 그러니까..” 그는 면접관의 질문에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자신의 인생에 기억에 남는 것? 학창 시절에 공부했던 기억 외에는 딱히 나지 않는다. 공부와 성적이라는 서킷에서 경쟁하는 여느 학생들처럼 공부하고 친구들과 놀고 딱히 어긋나지 않은 삶을 보냈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대학에 가고 평범하게 술마시고 놀고, 평범하게 농활도 해보고.. 하지만 그런 걸 인상에 남는 기억이라고 말할 수도 없지 않는가? 입을 떨어지지 않고 가슴이 답답해져왔다. 회상이 주마등 같았다. “따, 딱히 기억에 남는게 없습니다.” “흐음.. 그런가요?” “네, 네.” “범죄 경력은 전혀 없으시군요.” “네, 없습니다.” 질문은 이어졌고 말을 당황도 줄어들었다. 하지만 이어진 질문에 다시 당황했다. 왜 이런걸 묻는 거지? “학창 시절에도 소년법에 저촉되는 일 같은 건 하지 않으셨죠?” “가, 가끔 PC 방에 가기는 했습니다만 평범하게 학교, 집, 학원을 오가며 별다른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학교폭력이나 왕따에 관련된 사실도 전혀 없으시고요?” “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만일 지금 면접시에 한 대답이 나중에라도 거짓으로 밝혀진다면 즉시 계약은 해지 됩니다.” “알겠습니다.” 백영길은 면접관의 말에 오히려 안심했다. 그는 그 자신이 그런 일을 저지를 깜냥이나 배짱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만약에 기회가 오더라도 스스로를 불쾌하게 여길 일을 외면할 거라고 자신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죄책감 같은 걸 가진 일은 없나요?” “있습니다.” 백영길은 이번 질문에는 망설이지 않았고 대답할 수 있었다. 죄책감은 지금도 가지고 있었다. “무엇인가요?” “취직을 못해서요.” 부모님에게 자랑스런 아들이 되고 싶은 이들에게 백수는 죄명이었다. 백영길은 면접 시간을 마치고 자취방으로 돌아왔고 양복을 벗지도 않고 이불에 엎어졌다. 고작 십 여분에 불과한 면접 시간이었는데 긴장이 확 풀렸다. 그리고 며칠 뒤 인적성 검사를 받으라는 연락을 받았다. = = = = = “에.. 그러니까, 김조창 씨. 모 공장에서 비정규직으로 근무하셨다고요?” “네. 그러다가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위해서 활동하다가 근무 태만으로 해고당했습니다.” “그러시군요. 인적성 검사 날짜에 맞추어 시험치러 오시면 됩니다.” 타칭 좌파가 합격했다. “음.. 블로그에 정권을 비판하는 글을 올리다가 불법 사찰을 당했다는 말씀인가요?” “조사 받는 중에 저보고 빨갱이 아니냐고 묻더군요.” 빨갱이도 합격했다. “회사 납품 비리를 윗선에 알렸다가 해고 당하셨다고요?” “알고보니 불량 부품을 납품하던 하청을 운영하던 사람이 회장 동생이더라구요. 그래서 정부에 알렸죠. 해결해 줄거라고 생각했는데 눈가리고 아웅하고 저는 대기 발령을 받았습니다. 어처구니가 없더군요.” 내부고발자도 합격했다. 한국 사회는 제현 그룹이 정말로 그런 사람들을 뽑자 기가 막혀했다. 기득권층은 인재를 빼앗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런 사람들을 중심으로 아예 사회 풍토를 바꾸어 버리려고 하는 의도라고 생각했고 심각하게 우려했다. 주류 사회에서 배척당한 이들이 결집하고 정치 세력화 한다고 생각하니 모골이 송연했다. 무려 일 만 명에 달하는 사회 부적응자를 모집했다. 거기에 그 가족들. 그런 이들이 결집되면 무섭다. 레지스탕스가 무서운 이유는 숫자가 아니라 그 조직력에 있었다. 흩어진 대중의 힘은 전혀 무섭지 않다. 국회의원들이 그룹에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묻고 정부 기관 차원에서 감시를 시작하기도 했다. 이들을 이용해서 폭동이라도 조장하지는 않을까란 도가 넘는 상상을 하는 이들이 고위 공무원 중에서도 적지 않았다. 하긴 기득권에서도 쿠데타를 벌인 작자들이 있을 정도인데 한 기업이 폭동을 조장하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용역 깡패같이 집회하는 노조를 해산시기 위해 사람을 고용하는 기업도 있지 않은가? 극도의 불안속에서 제현 그룹은 가상 시뮬레이션과 NASA에서 파견 온 사람의 도움을 통해 뽑은 이들을 교육 시키는데 주력했다. 덕분에 본사 근처에 급하게 기숙사도 짓고 교육 시설에도 투자를 했다. 물론 강현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이다. 급하게 일을 진행하느라 처음에는 모든 것이 지지부진했고 어설펐지만 3년 간의 시간이 남아있었다. 빨리빨리가 특기인 한국인이라면 충분히 빠른 시간안에 교육 시스템이 매끄럽게 잘 돌아갈 것이다. 정부에서는 제현 그룹이 별다른 행동을 보이지 않고 모집한 인원들의 교육에만 신경을 쓰고 그 교육 내용까지 입수하자 다소 안심했다. 저들은 다른 의도를 품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우주 도시에 일할 사람을 뽑아 교육하고 있었다. “왜 저희같은 사람을 뽑은 건가요?” 내부고발자가 되었다가 결국 해고 당한 천정호가 강사에게 물었다. “우주에는 어떤 사람들이 필요할까요?” “뛰어난 사람이요.” “하지만 그 뛰어난 사람들이 서로 갈등을 일으키고 문제를 만든다면요?” “문제가 없을 수는 없겠지만 그것이 생존에 유리하지 않나요?” “무엇을 위한 생존인가요? 우주에 대해 생존하는 것인가요, 아니면 타인에 대해서 생존하는 것인가요? 우주는 위험한 공간입니다. 사고가 발생하면 모두 죽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같은 사람을 뽑은 겁니다.” 한국 사회는 치열한 경쟁 사회다. 하지만 우주는 경쟁보다는 화합이 더 중요하다. 사람의 생존을 책임지는 시설을 관리하고 유지 보수하고 이상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존재를 긍정하고 협동하는 마음이 중요하다. 171화 “물론 사람이 모이면 경쟁이 없을 수는 없죠. 하지만 여러분은 과도한 경쟁이 얼마나 사람을 비참하게 만드는지 몸소 느낀 사람들입니다. 또한 경쟁을 위해서 스스로의 양심을 버리지는 않을 겁니다.” 백수지만 범죄 경력이나 그 비슷한 일이 전혀 없는 사람들. 힘들지만 범죄에 시선을 돌리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 만으로 어느 정도의 신뢰성은 기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경쟁이 없으면 사람의 활동에는 활력이 없다. 그래서 추가한 것이 소위 빨갱이라고 낙인 찍힌 사람들이다. 사회주의자, 전체적인 평등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이들. 이들의 활동력이라면 경쟁에서 낙오되어 침울해진 이들에게 충분히 활력을 불어 넣어줄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그들 역시 한국 사회에서는 비주류인 이들이 아닌가? “물론 양심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에 대비해서 인공지능을 도시 관리의 보조로 시스템을 구성해 놨습니다. 적어도 양심적으로 행동하는 이상 불이익은 없을 겁니다.” 인공지능이 관여하는 관리라.. 부작용은 없을까? 없을 수가 없다. 인간인 이상 스스로의 이득을 위해 시스템의 헛점을 노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에 대해서도 안정장치가 마련 되어 있었다. 바로 내부고발자들. 한국 사회의 분위기에서 내부고발자에 대한 개인에 대한 불익을 예상하면서도 결국에는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이들은 시스템의 헛점으로 이득을 보는 행위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교육의 내용은 한국 정부를 불쾌하게 만들었지만 그렇다고 한국 정부에 손해는 아니었다. 겨우 일 만명 정도야.. 거기에 기취업자들도 아니고 백수와 높으신 분들을 심기 불편하게 만든 이들이다. 그런 이들이 한국을 떠나 우주로 가버린다면 조금은 편하게 지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여 별 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아니 언론과 인터넷을 강력하게 통제해 이슈로 만들지 않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상황이라고나 할까? 나라의 흥망성쇠보다는 자신의 영달에 집중하는 이들에게 제현 그룹이 주장하는 우주 시대를 주도할 인재상 따위는 관심이 없었다. 오직 자신의 기득권이 유지될 것인가가 주 관심사였다. 식자들의 우려와 젊은이들이 동요를 막기 위해 그들은 열심히 언론플레이 중이었다. 강현이 잠깐 기분이 달아올라 던진 돌이 한국 사회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을 때 그는 한국에 대한 관심을 끊고 아즈삭과 연구 중이었다. [박사님. 지금까지 박사님의 성향에 비교해서는 의외의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즈삭이 말했다. “뭐가?” [본래 인간을 불신하지 않으셨습니까?] 한국 제현 그룹이 우주 도시에서 일할 인부를 교육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우주 도시 운영의 윤곽은 지금까지 강현의 행동과 많이 달랐다. 시스템적인 오류와 불완전성으로 나타날 부작용을 기술적 보완이 아닌 인간의 특성으로 막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불신한 건 대중이야. 인간 개개인에 대한 신뢰하고는 상관없어.” [그들도 사람입니다.] “주류에서 배척받은 사람들이지. 한국 사회에서 배척받은.. 그리고 그런 점 때문에 기회를 받은 이들이 과연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의 방식을 바꿀까?” 강현은 한국에 기회를 준 것이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낙오된 한국인에게 기회를 준 것 뿐이다. [모순적입니다. 왜 인간은 군집을 이루어 생활하면서 개인적 특성을 버리지 못하는 걸까요?] “그게 되면 이미 인간이 아니야. 그저 집단의 부속품에 불과하지.” 사회가 없는 인간이 인간이 아니듯이 개성이 없는 인간 역시 인간이 아니다. 개미같이 명령에만 복종하며 스스로의 목숨도 도외시하는 인간. 그들을 과연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인간의 껍데기를 쓴 어떤 것이지 않을까? [… 부작용은 없겠습니까?] “글쎄.. 나도 미래를 예측하기는 어려워. 단지 씨앗을 뿌리는 거지. 그 씨앗이 어떤 형태로 자랄지는 사람들에게 맡기기로 했어.” 정체 모를 씨앗이 어떻게 싹을 틔우고 어떤 꽃을 피울지 기다리는 것도 꽤 재미있는 일이다. 반면에 미국에서는 미국 제현 그룹에서 사람을 모집하는 것을 저어했다. 최초의 우주 도시가 강현의 사유물이 될 가능성을 간과하지 않았다. 그래서 강현은 우주 도시에 기거할 사람을 뽑는 일을 정부에게 맡겼다. 백악관에서는 감사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미국 정부는 주로 고급 인력을 위주로 뽑았는데 단연코 연구자와 기술자의 비중이 컸다. 단순 노동은 한국 제현 그룹에서 뽑은 이들을 이용할 생각이었다. 그 정도는 강현이 가지고 있는 우주 도시의 지분을 생각할 때 충분히 양보할 수 있는 일이었다. 우주 도시를 관리하는 주축은 결국 고급 인력이 있는 미국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 편 다른 나라에서도 우주 도시의 설계를 빠르게 마무리 짓기 시작했다. 앞으로 몇 년안에 인류 최초의 우주 도시가 만들어질 모양이라 자신들도 서둘렀다. 그렇다고 RP의 가격이 치솟지는 않았다. 우주 도시를 설계할 역량이 되는 나라는 몇 되지 않는다. 게다가 빠른 우주 도시 건설을 위해서 유럽은 공동으로 기술 협력을 했고 러시아는 일본, 중국과 협력했다. 비록 각 나라는 자국에 1 개씩 우주 도시를 확보할 수는 없었지만 미국이 단독으로 우주를 확보하는 것보다는 우주 도시를 공유하더라도 우주 진출 시기를 비슷하게 맞추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보았다. 호주를 비롯한 아프리카와 남미, 아랍권과 제3세계는 각자의 이해 관계에 맞추어 협력할 상대를 찾기 시작했지만 기술적인 역량에서 너무나 떨어진 그들을 받아줄 우주 개발 선진국은 없었다. 비로서 기술의 중요함을 깨달은 이들 국가들은 기초 과학에 대대적인 투자를 시작했지만 그래도 선진국의 기술력을 따라가기에는 부족했다. 고로 조만간에 추가될 우주 도시는 겨우 2 개 뿐이라는 것이다. 그 정도라면 지속적인 지원과 공장을 확장하는 카낙의 생산력으로 충분히 대응할 수 있었다. 한편 NASA에서는 우주에 올려 보낼 인원들을 교육시키던 와중에 아이디어 하나를 얻었다. 기획부장 이레이는 이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고는 바로 강현에게 달려갔다. 한창 물질 분석 레이더의 이론 설계를 하고 있던 강현은 방해를 받아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이레이가 전해준 아이디어에 불쾌감이 싹 사라졌다. “증강현실 기술 말씀인가요?” “중력을 비롯한 방향감이 지구와 다른 우주 환경에서 인간의 5감을 보조할 새로운 정보 습득 수단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공허의 우주, 무중력에 뜬 사람은 일단 방향감을 상실한다. 어디가 어디인지 분간할 수가 없다. 그건 허허 벌판에 나침반 없이 떨어진 사람보다 더 앞이 깜깜한 경우다. 지형 지물을 보고 어디가 어디인지 판단하기에는 무중력 공간에서의 많은 경험과 훈련이 필요했다. 초보자가 별자리를 보고 방위를 확인하는 건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만 여명이 넘어가는 인원에게 그런식으로 무중력 훈련을 시키면 출혈이 장난이 아니다. 우주 도시가 완성된 상태라면 몰라도 지금은 생각보다 큰 지출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증강현실 기술을 이용해 인간의 정보 습득 방식을 바꾼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증강 현실 기술이 적용된 우주복을 입은 사람은 특별한 훈련 없이도 목적지와 목적지로 향하는 길을 특정할 수 있게 된다. 마치 컴퓨터 게임처럼 말이다. 여기에 인공지능의 거대한 연산 능력을 이용한다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다. 만 여명의 인력을 효율적으로 다룰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음....” 강현은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우주에서 인간의 생존성을 향상 시키면서 비용도 적게 드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가 증강 현실 기술에도 관여하기에는 물질 분석 레이더 개발의 난이도가 장난이 아니었다. 이는 EM 드라이버의 원리를 규명하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 “그럼 자체적으로 진행하시다가 어려운 부분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아무래도 저도 지금 개발하던 것이 남아 있어서 시간을 내기 힘들어요.” 강현은 그렇게 말했다. 사실 증강현실 기술은 그리 새로운 것이 아니다. 전장에서 전술 전략적인 이점을 확보하고 병사의 생존성을 증가시키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전달하는 형태의 증강 현실 기술은 이미 완성단계에 와있다. 그것을 이용하면 민수용으로 개조하는 건 별다른 어려운 점이 없을 것이라고 보았다. 게다가 스마트 폰과 연동된 형태로 방문한 가게의 정보를 보여주는 증강 현실 기술은 이미 있지 않은가? 그리고 증강 현실 기술의 본질은 종합적인 기술력의 모음이다. 센서, 분석 장치, 정보 처리 기술을 통한 상황 모델링 및 통신 기술을 중심으로 인간의 지각을 확장시키기 위한 각종 수단을 총 망라한 것이 바로 증강 현실 기술이다. 강현 혼자서 하기에는 이거다라고 할 수 있는 방향성이 없었다.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관점으로 여러 가능성을 모색해야 했다. 한편 강현의 대답을 들은 이레이는 강현이 개발하고 있다는 물품에 관심이 갔다. “물질 분석 레이더 말씀이십니까?” “우주 도시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을 물질 단위로 분석하는 거죠. 어떤 위험물도 걸러내는 것을 목표로 개발중이에죠.” “혹시.. 테러를 염두에 두시는 겁니까?” “미국은 적이 많잖아요. 미친 광신도 새끼들이 무슨 짓을 할지 몰라요.” 강현은 기본적으로 종교를 싫어한다. 특히 신정 일치를 주장하는 이슬람은 더 싫어한다. 민주주의가 퍼진 사회에서는 자연히 다원주의도 인정되어 이슬람도 용인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쁜 건 나쁜 것이다. 정치 하나만 해도 부패와 남용을 막기 위한 무수히 많은 견제 장치가 존재하는데 정치와 종교가 결합된 정치체제라니.. 믿음을 강요하는 종교가 결합된 정치 체제는 합리성이 결여될 수 밖에 없다. 그런 경우에 일어나는 일들을 상상하면 끔찍하다. 고작 음악에 맞추어 춤추는 영상을 올렸다고 징역을 사는 곳이 이슬람 국가였다. 강현은 솔직히 말해서 그들이 싫다. 미국을 위협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광신적 태도와 시스템적인 모순이 싫었다. 이레이는 강현의 노골적인 말에 피식 웃었다. 비록 강현과 유대 자본의 일로 인해 이스라엘과 아랍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게 된 미국이었지만 아직 아랍권 국가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 아랍 자본과 밀접한 관계를 맺은 강현이 다소 걱정됬는데 우려에 불과했나보다. 강현의 말은 아랍 자본과는 그저 전략적 제휴에 불과하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 = = = = 물질 분석 레이더. 강현이 요즘 집중하고 있는 물건 중의 하나다. 비파괴 검사라는 것이 있다. 말 그대로 대상을 쪼개거나 모양을 변형시키지 않고 상태를 파악하는 기술이다. 종류만 해도 액체침투법, 자기탐상법, 초음파검사법, 음향방사법, 음향충격법, 방사선투과법, 와전류탐상법, 열탐상법, 홀로그래피(출처: 위키백과) 등 엄청나게 다양한 방법들이 있다. 기술적 방법론으로 들어가면 크게 직접적인 방법, 전자기파, 포논(격자 진동 ; 음파, 초음파, 열운동)을 사용하는 세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액체 침투법과 자기탐상법 같은 경우 직접 표면의 결함을 파고드는 입자나 형광 물질 따위로 확인하는 방법이고 그 외의 방법은 재료가 전자기파(전자기력)에 의해 받는 영향을 분석하거나 재료 자체의 원자 구조가 외부에서 가하는 물리적 에너지에 의해 간섭되는 반응이나 사용시에 받는 피로가 자체적인 변형을 만들 때 확인, 분석 하는 방법이다. ============================ 작품 후기 ============================ 글이 또 막혔습니다. 후우... 172화 <17-형성> 매우 다양한 방법들이고 분석 대상에 손상을 주지 않는 방법이지만 역시나 기술적인 한계가 존재했다. 대표적으로는 분석 대상의 화학적인 특성을 알아내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것은 X 선을 이용한 분석뿐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그런 것도 실험실에서 준비한 시료를 분석하는 용도로나 사용할 수 있을 뿐 강현이 원하는 것처럼 여행하기 위해 오가는 사람들과 화물을 분석하기에는 터무니 없었다. X 레이 투과 장치가 있기는 하지만 그건 물체의 형상만을 확인할 수 있을 뿐 화학적으로 어떤 물질인지 확인하기가 불가능했다. X 레이 회절 실험을 할 수 있는 환경도 아니지 않은가? X 레이가 물질에 흡수되었다가 방사되는 과정에서 나오는 파장의 변화에 스펙트럼 분석을 적용하면 어떤 물질인지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방법은 잡음이 많이 끼고 오류가 많다. 복잡한 구조의 물건인 경우 회절에 의한 간섭, 연계적 작용에 의한 오차 역시 존재했다. “X 레이가 가장 편한 방법이기는 한데... 역시 방사능이 문제란 말이지..” X 레이를 만들어 내는데 방사능 물질은 필요없다. 그저 일정 출력 이상으로 가속된 전자를 금속판에 때리기만하면 X 레이가 발산된다. 하지만 이런 X 레이 역시 위험한 방사능으로 분류되는 전리성 방사능처럼 원자를 이온화 시켜버려 화학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바로 유전자를 파괴해 암을 만들어 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X 레이 노출량은 의학적으로 제한되어 있다. 너무 과도한 X 레이 노출 역시 암을 발생시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각종 화학물질에 노출된 현대인의 생활 환경에 비교해서 더 위험한지는 미지수다.)즉, X 레이를 이용하는 방법은 심리적인 저항을 불러올 수 있다. 그렇다고 화물에만 사용하자니 항문이나 체내에 각종 마약을 숨겨 들어오는 범죄자들의 경우가 있어 그럴 수가 없었다. 폭약을 그런 식으로 들여오면 색출할 방법이 없다. 그러다가 구조적인 핵심 중추가 폭약에 파괴된다면 재앙이 일어날 수도 있다. 고로 강현은 인체의 위험물질을 탐색하는 방법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X 레이가 안 된다면 다른 방법을 사용하자고 생각했다. “X 레이 말고 다른 건?” [중성미자를 이용한 방법이 있습니다만..] “좀 어렵겠는데?” 강현이 개발한 중성미자 발산 기술은 레이저 및 전자기력의 출력을 통해 방출되는 중성미자의 에너지를 조절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즉, 중성미자의 출력 조절로 다양한 원자에 간섭을 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빛으로 통신을 할 수 있다고 그 빛을 이용해 물질을 분석하는 것은 완전히 난이도가 틀린 것이다. 예를 들자면 중성미자를 이용한 통신 기술이나 반감기 가속 기술은 주도권이 이쪽에 있는 자기 PR 적인 기술이다. 내가 중성미자를 뿜어내니 너는 영향을 받아라 정도되는 느낌이라면 중성미자를 이용한 물질 분석은 내가 중성미자를 쏘아내 줄테니 제발 반응해 주세요 정도의 느낌이라고 할 수 있었다. 출력의 조절이 중요한가? 아니면 출력의 조절과 객체의 반응을 검출하는 것 또한 중요한가가 바로 센서 및 탐지 기술이 어려운 이유였다. “중성미자로 과연 내가 원하는 물질 분석 레이더를 만들 수 있을까?” 강현의 직감은 이 기술의 개발을 시작하면서 끊임없이 경고를 보내왔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난관이 앞에 널려 있을 거라고 말이다. 반드시 후회한다고 말이다. 강현은 일단 자신의 직감을 믿지 않기로 했다. 고작 예리한 감만 믿고 도전을 포기하기에는 천재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일단 그는 레이더의 방식을 먼저 정해야 했다. 중력, 전자기력, 약력, 강력. 모든 것들은 상대적이며, 그렇기 때문에 서로 영향을 받는다. 지금까지의 분석 기술들이 주로 전자기력을 사용해 왔다면 중성미자를 이용한 물질 분석 레이더는 약력 및 강력을 이용한 전대미문의 분석 장치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한 핵심 키가 보이지 않았다. 만일 시료가 중성미자와 상호작용을 한 그 다음에는? 그것이 원자핵과 상호작용을 했는지 아니면 전자와 상호작용을 했는지, 원자핵과 상호작용을 했다면 중성자랑 했는지 아니면 양성자랑 했는지, 전자와 상호작용을 했다면 어느 오비탈에 있는 전자와 상호작용을 했는지 복잡한 경우의 수를 생각해야 했다. 거기에 만일 상호작용을 했다면 그 상호작용으로 인해 생성된 물리화학적 변화를 어떻게 검출할 것인지가 또 문제였다. 중성미자로 인한 상호 작용이 온도로 표출이 될지, 아니면 빛으로 표출이 될지도 생각해야 했다. “아아, 중성미자를 다룰 수 있다면 어떤 물질이든 분석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중성미자가 원자 단위에서 더 깊이 들어가 전자 및 핵자와 간섭할 수 있기에 생기는 문제였다. 이는 마치 지층에서 공룡 화석을 발굴하기 위해서 모래 입자를 마이크로 핀셋으로 하나 하나 집어내는 것과 같은 문제였다. 좀 더 중성미자보다는 스케일이 큰 입자가 필요했다. 딱 전자기파가 적당했는데 전자기파는 간섭도 당하기 쉽고 차폐 역시 가능하기 때문에 미흡한 점이 많았다. 시스템적인 보완을 계속한다면 상관없겠지만 강현은 그 정도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여겼다. 패러다임을 바꿔야한다. 강현의 직감은 계속 그렇게 알려오고 있었다. 강현은 이번에는 준입자에 눈을 돌렸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입자들. 이들은 그저 물질을 매질로 하여 에너지를 가진 파동에 가깝다. 종류도 그 매질의 종류에 따라 자유전자의 파동인 플라스몬, 원자핵의 격자 진동인 포논, 유전체 결정의 분극 현상이 파동처럼 나타난 폴라론, 반도체 내에서 들뜬 전자와 정공이 쌍으로 이루어 진행하는 엑시톤 등 다양하게 분류된다. 물론 예외적으로 매질에 상관없이 솔리톤으로 불리는 고립파도 있다. 양자 역학의 특징중 하나인 입자와 파동의 이중성은 파동으로 분류되는 것 역시 입자로 해석할 수 있기에 이들 준입자는 모두 입자처럼 다루어 질 수 있었다. “아즈삭. 포논을 이용한 물질 분석은 어때?” 비파괴 검사 중 음향을 이용한 방법은 이미 있다. 그것을 컴퓨터 기술과 결함하면 어떻게 되지 않을까? [음파의 파장은 기본적으로 매우 깁니다. 초음파라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물질 분석 대상의 기계적인 구조, 배합에 따라서 오차가 커집니다. 예를 들어 커다랗고 무거운 상자 안에 실로 매달아 놓은 어떤 가벼운 물체가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포논은 결국에는 원자의 진동에 의해서 전달된다. 갑작스런 굴절률(매질 밀도)의 변화가 생기면 제대로 된 물질 분석은 어렵다. 만일 분석 대상이 샘플화 된 것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음파 진동을 이용해 탄성 계수를 계산하여 데이터 베이스에서 그에 맞는 물질을 찾으면 되기 때문이다. 이는 다시 말하면 결국 포논을 이용한 분석은 결국 실험실이나 제한된 조건에나 가능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포논 이외에 물질 분석에 쓸만한 준입자는 없었다. 매질의 종류에 따른 한계였다. “하아..” 이야기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강현은 새롭게 탐지 시스템의 기반이 될 이론을 찾아야 했다. 전자기력도 한계가 있고, 약력과 강력은 너무나 미세했다. 그렇다면 우주에 남은 힘은 두가지, 중력과 암흑 에너지였다. 암흑 에너지는 그 존재가 예상되어질 뿐 설명과 추측을 위한 어떤 이론도 제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결국 남은 건 중력 뿐이었다. “여기에 손을 대야하다니..” 강현은 결국 중력파를 이용한 물질 분석 기술을 생각해 내는 수 밖에 없었다. 그건 중력파를 어떻게 일으킬지부터 머리가 아픈 이야기였다. “아즈삭. 신 통일장 이론 변형 공식 EM-02번 출력.” [명령을 수행합니다.] 강현의 눈 앞에 뜬 복잡한 공식. 바로 EM 드라이버의 원리라고 추측되는 힉스 제로 현상을 신 통일장 이론으로 설명하기 위한 파동 방정식이었다. 일반적인 선형 변수와 양자 상태를 기술하기 위한 비선형 변수의 복잡한 조잡으로 이루어진 공식은 EM 드라이버 출력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비탈면의 전자구름에 전자기장 축과 힉스 장 변수를 얽어놓았다. 힉스 장 변수는 원래 스칼라 값으로 방향성을 부여하지 않았지만 힉스 제로 현상의 발견으로 벡터값으로 변형시켰다. 이 힉스 장의 벡터값은 새롭게 개정되어 신 통일장 이론에서는 시간의 변화에 따라 무작위 방향으로 형성되도록 설정이 되었다. 즉, 원자나 입자는 가만히 있는 것 같지만 끊임없이 뉴턴 제 2 법칙을 붕괴시키고 있다는 의미. 다만 그것이 실현되지 않는 것은 힉스 입자의 무작위적인 운동으로 붕괴된 법칙의 방향성이 서로 상쇄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2차원 평면으로 옮겨지면서 상황이 변했다. 3차원 무작위 성이던 힉스 장 축이 2차원 평면 형태의 전자구름과 다양하게 입사하는 전자기파 조건에서 무작위 성에 경향이 생겼다. 이는 입자로 하는 설명, 힉스 입자의 빈 공간이 생겼다라고 설명하는 것과는 조금 달랐다. 파동으로 설명을 하면서 3차원 공간에서 2차원 공간으로 조건이 변하면서 물리법칙이 변했다고 설명하는 것이다. 차원의 변화를 통해 물리 법칙이 바뀌는 건 딱히 신기한 일이 아니다. 무한한 공간에서 앞으로 계속 나아가면 처음 있던 곳에서 멀어진다. 유한한 공간에서는 공간의 구조에 따라 끝에 다달하거나 아니면 아예 처음 시작한 곳에 다시 도착할 수도 있다. 뫼비우스의 띠에 선을 그리는 경우를 상상해 보면 이해할 수 있다. 강현의 초 시공간이라는 단위로 생각한다면 EM 드라이버의 챔버 내부, 그 중에서 원뿔대의 비탈면 안쪽이 특정 전자기파의 입사를 받게 되면 2차원 적으로 움직이는 불규칙한 전자의 물질파가 전자기력의 영향을 받게 된다. 이때 물질파의 속성을 결정짓는 힉스 입자가 작용하는 시간 간격이 있다면 이 시작동안, 일시적으로 물질파의 파장은 무한대가 된다. 물질파가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다시 힉스 입자가 작용하기 위한 대기 시간 동안 물질파의 벡터 방향과 위상은 전자기파로 인해 바뀌어버린다. 그 비어버린 시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로 뉴턴 제2 법칙이 붕괴된 시간을 의미했다. 이것이 특정 각도를 이룬 2차원 평면에서 전자기파의 유도를 통해 전자들이 확률적으로 특정 방향에 대해 정렬된다. EM 드라이버에 출력이 생기는 순간이다. 이런 파동으로 하는 설명은 입자로 설명하는 것보다는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실제적인 적용에 있어서 입자로 설명하는 것보다 좀 더 공학적으로 상황을 다룰 수 있었다. 힉스 입자를 일일이 집어내어 분류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것을 파장으로, 또는 확률적으로 다룰 수 있는 강현의 신 통일장 이론이 각광받는 것은 당연했다. 물론 강현이 화면에 띄운 변형된 공식은 이미 논문으로 나와있는 상태. 하지만 원론인 신 통일장 이론의 개정판이 아직 나온 상황이 아닌데다가 스칼라인 힉스 장이 벡터 값 변수가 되어버리고 거기에 시간 변화에 따른 확율 방향이라는 조건이 추가되면서 더 머리 아픈 놈이 되려 연구자들의 골머리를 아프게 했다. 하지만 하지 않을 수도 없는 이유는 강현이 제안한 힉스 제로 가설이 정말이라면 이것이 반중력 기술의 시발점이기 때문이었다. 힉스 입자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론이 있으니 좀 더 발전된다면 매스 드라이버나 로켓 위로 우주에 나가지 않아도 된다. 우주에 식민지를 건설하기 위해서 우주 공장을 지을 필요도 없었다. 지상에서 건축물을 만들어 둥둥 띄어 궤도에 올리면 되기 때문이다. ============================ 작품 후기 ============================ 재미없는 부분인가요? 173화 하지만 여기서 강현의 새로운 고민이 시작되었다. 중력이란 무엇인가? 힉스 입자가 없다면 중력은 작용할 것인가? 힉스 입자와 중력의 상관 관계는 어떠한 것인가? 힉스 입자는 흔히 질량을 부여하는 입자라고 한다. 그리고 질량이 클수록 당기는 힘, 중력 역시 증가한다. 그렇다고 힉스 입자가 중력을 매개하는 입자는 아니다. 중력자라고 힘을 매개하는 입자는 따로 있었다. 힉스 입자는 단지 질량을 부여할 뿐인 입자였다. 하지만 강현은 정말로 그런 것인가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중력은 공간을 휘게 만드는 힘이다. 공간이 휘기에 중력은 전자기력마저 휘게 만들 수가 있다. 질량이 없는 전자기파마저 빠져나올 수가 없는 것이 블랙홀이다. 그러니 힉스 입자가 공간에 존재한다면 블랙홀에 의해 일그러진 시공간에 의해 어떻게든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만일 힉스 입자가 빛처럼 존재한다면 블랙홀 주변에 힉스 입자의 농도는 계속 상승할 것이다. 농도가 상승하는 만큼 블랙홀의 질량은 다시 커질 수도 있고 또한 블랙홀 주변에 있는 입자들은 그 질량이 무거워 질 것이다. 하지만 이는 에너지 보존 법칙에 위배된다. 이런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설명이 있다. 질량은 부여한 힉스 입자는 사라진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질량을 부여하기 위해 공간에서는 끊임없이 힉스 입자를 생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E=mc^2에 의해서 새롭게 질량을 얻은 물질은 질량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다시 문제가 생긴다. 양자 역학에서는 진공에서 입자 쌍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한다고 하기에 전체적인 에너지 보존 법칙이 성립한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힉스 입자는 에너지와 상관이 없는 입자다. 힉스 입자의 생성에 에너지가 필요하다면 힉스 입자를 제거하는 쌍입자가 반드시 존재해야 했다. 그런데 생성에 에너지가 필요없는 입자가 질량을 만들어 낸다? 질량의 형성은 E=mc^2에 의해 에너지가 형성된다는 말인데 이는 무에서 유가 탄생한다는 말이다. 에너지 보존 법칙의 붕괴다. 물론 이런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가설은 다양할 수 있었다. 다중 차원 이론, 새로운 모델 등등. 그리고 다양하다는 말은 인류가 힉스 입자에 대해서 아는 거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아아. 미치겠군.” 강현은 허탈했다. 아는 게 너무 없었다. 아직 신 통일장 이론의 태반이 미지수로 남아있었다. 발견한 변수들의 용도와 가능성도 그런 미지수 때문에 완벽하게 알 수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수학적인 기술로 필요한 변수를 제외한 모든 변수를 상수화하고 제거한 수식에 기대어 힉스 장으로 물질을 분석하는 방법을 구상하는 것 뿐이었다. ‘힉스 장에 변화를 주어 펄스파나 파동을 만든다. 이를 다양하게 검측한다. 컴퓨터 기술로 처리한다.’ 말은 쉽지만 기술적으로는 강현도 고개를 젓게 만들 정도였다. 일단 힉스 장 파동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양자 역학적인 설명에 의해서 빠르게 생성되었다가 빠르게 사라지는 힉스 입자는 진공에 가까운 대기에 비유할 수 있었다. 그런 대기에 부채로 바람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도대체 얼마나 빠른 속도로 부채를 휘둘러야 될까? 또 어떤 부채를 사용해야 하는가? 또한 강현의 신 통일장 이론에 의하면 힉스 장은 무작위적인 방향성을 가진 비선형적인 파장이다. 비선형적이고 무작위적이어서 백색 잡음이나 마찬가지인 힉스 장에 간섭해 순간적이나마 깔끔한 파형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확률은 얼마나 될까? 힉스 장의 변화에 의해서 예상되는 결과는 다양하다. 물리적인 변화는 물론이고 화학적인 변화도 고려될 수 있다. 다만 에너지를 강제로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서 그런 변화는 미미하기 짝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강현이 기대하는 것은 힉스 장의 파동이 질량을 가진 입자에 부딪혀 반향 되어 오는 것을 측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반향 되어오는 힉스 장의 비율은 처음의 만 분의 일이 될까 말까하다. 왜냐면 힉스 입자는 오직 질량을 가진 입자에 의해서만 영향을 받기 때문이고 원자의 대부분이 비어있는 진공이라는 사실을 상기해보면 강현이 생각한 방식은 마치 참치 잡이용 그물에 모래알 하나를 던져 걸리기를 바라는 것보다 더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모래알 하나가 아니라 한 트럭을 던져서 해결했다고 치자. 힉스 장의 변동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고작 입자의 운동량 측정이라는 원시적인 방법 뿐이고 그나마 다양한 변수에 의해서 교란될 수 있다는 것을 상기하면 기술적 난이도는 급증한다. 오차론을 생각하면 불가능에 가깝다. “포기하자.” [네?] “안되는 건 안되는 거야. 이건 내가 한 100명쯤 있어야되. 아니면 내가 한 40년 쯤 이거에만 매달리거나. 그건 싫어.” 한참을 생각하던 강현은 결국 현실 앞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그의 직감이 옳았다. 이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는 야심찬 계획은 산산히 무산되었다. 강현은 입맛이 썼다. 그의 인생에 있어 몇 안되는 포기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그는 겸손해졌다. 역시 세상은 만만한 게 아니었다. 신개념 레이더의 개발을 포기한 강현은 이레이에게 미국에서 사용하는 X 레이 투시 스크린 및 검역 시스템을 우주 도시에 적용해 줄 것을 부탁했다. 테러와의 전쟁에서 단련된 우수한 미국 검역 시스템이라면 우주 도시에 출입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안전을 어느 정도 보장할 수 있었다. 이레이는 그런 강현의 제안에 우려를 나타냈다. “그야 저희가 좋지만 그 물질 분석 레이더는 결국에는 포기하신 건가요?” “네. 하다보니까 개념 자체가 현재보다 한 100년은 앞선 것 같아요.” “그럼 100년 뒤에는 가능하다는 말씀인가요?” “글쎄요. 막막한 지금보다는 확률이 높아지겠죠.” 강현이 물질 분석 레이더의 개발을 포기하자 아쉬운 것은 미국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전자기파를 쓰지 않는 레이더라니.. 미국 정부 쪽에서도 혹시나 중성미자를 사용한 레이더인 줄 알고 많은 기대를 했다. 만일 그렇다면 정보전에서 미국을 능가할 국가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강현은 우주 도시의 안전을 위해서 성능 좋은 레이더 및 감시 시스템을 찾아 나서는 한 편 비어버린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 증강 현실 기술 개발에 동참했다. 자택 근무라 데이터와 의견만 오가서 널널했다. 그리고 그 널널한 시간은 아들인 준과 보냈다. “꺄하하!” “읏챠!” 마음 같아서는 준의 얼굴을 보면서 농땡이를 부리고 싶었지만 샐리의 눈치가 장난이 아니었다. 애들 교육에 나쁘다나? 성실한 면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강현은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은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되면 저절로 성실하게 변한다. 너무나 당연한 이치가 아닌가? 아이에게 성실함을 가르치는 것보다는 좋아하는 일을 찾도록 도와주는 것이 더 빠를 수 있었다. “현, 아즈삭이 찾아요.” “꺄하아!” “... 에휴.” 샐리의 말에 강현이 준을 넘겼다. 잠깐의 농땡이도 봐주지 않는 귀찮은 아즈삭이다. 하지만 어쩌겠나? 그런 자아로 만든 것이 강현 자신이었다. [박사님. 카낙으로부터의 전언입니다.] 통합 감시 체계를 맡을 양자 컴퓨터가 완성되었다고 한다. SNP에 초전도 현상을 적용하고 중성미자를 이용한 양자 얽힘을 적용해 양자 단위의 메모리 소자로 작동하게 만들었다. “소프트 웨어를 적용하고 발표하자고.” 강현은 이 통합 감시 체계를 발표하기로 했다. 그건 가족들과 자식들의 안전을 위한 감시망이 노출될 위험이 있지만 이는 그의 계획에도 필요한 일이었다. 이 통합 감시 체계의 가치는 아즈삭처럼 실시간 정보 수집에 있지 않다. 일단 이 통합 감시 체계를 편리한 도구로서 인공지능이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 주 목적이었다. 인공지능은 저마다의 목적을 위해서 활발하게 활동한다. 하지만 예산이라는 한계에 의해서 종종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고 타협할 때가 있다. 이때 부족한 성능을 이 양자 컴퓨터에서 빌려오면 어떨까? 예를 들어 복잡한 데이터의 분석 따위를 자신들보다 더 빠른 속도로 안전하게 계산해 준다면? 그렇게 되면 아즈삭이 굳이 정보를 거래하지 않더라고 하더라도 더 많은 정보를 이 양자 컴퓨터로부터 수집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암호화된 비트를 우회하는 백도어 프로그램을 깔아 놓았다. 가끔 강현이 원하는 데로 계산 결과를 조작해 첩보의 향방을 바꿀 수도 있었다. 명백한 범죄 행위였지만 그는 제 가족의 안전을 위해서는 언제든 범죄자가 될 수 있었다. 아무튼 이런 발상이기 때문에 통합 감시 체계를 발표하는 건은 반드시 필요했다. 어차피 아즈삭이 삐끼로 나서 인공지능들에게 몰래 몰래 사용을 제안해도 어차피 인공지능을 관리하는 사람이나 조직에게 알려지게 되어 있었다. 아무리 인공지능이지만 기본적으로 원리원칙을 준수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의 아웃소싱!] [소규모 인공지능 운영회사들에게 각광받는 통합 네트워크 정보 처리 시스템이란?] 인공지능은 비싸다. 비싼 만큼 유지비도 많이 먹는다. 그런 와중에 강현이 제안한 통합 정보 관리 체계(실상은 관리가 아니라 감시다.)는 연구비가 빠듯한 연구실에서 많은 환영을 받았다. 엄청나게 저렴한 비용으로 시스템 리소스를 대여해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은 각 그룹이 운영하는 인공지능의 성능을 충분히 끌어올릴 수 있었다. 그건 기술 개발 경쟁이 점차 과열되는 시대 상황과 맞물려 붐이라고 할 수 있는 현상을 일으켰다. 하지만 강현이 던진 파문은 이것 뿐만이 아니다. [플라즈마 제트 엔진이란 무엇인가?] [연료없이 오직 전기의 힘으로 초음속 항행을 한다!] 플라즈마 제트 엔진을 적용한 매스 드라이버용 스페이스 셔틀의 시제품이 그 모습을 보였다. 드래곤 V3라는 모델명의 스페이스 셔틀은 마치 권총 탄환과 같은 모양이었지만 양쪽에 두 개씩 총 네 개의 플라즈마 제트 엔진을 달고 있었다. 내부는 총 1.5톤의 중량을 실을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차후 화물과 사람의 비율을 다시 조절할 수도 있었다. NASA의 실험팀은 일단 더미를 앉히고 네바다 사막 근처에 또 하나 지은 유인용 매스 드라이버에서 드래곤 V3를 날리는 시현을 했다. 매스 드라이버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자기력의 반발력이 드래곤 V3를 띄우며 반발력을 최소화했다. 가속이 시작되고 플라즈마 제트의 푸르스름한 형광이 궤적을 그리며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훌륭하게 대기권을 탈출한 스페이스 셔틀은 곧 무중력 궤도에 들어섰다. 내부에 장착된 EM 드라이버는 좀 더 가속해 드래곤 V3를 더 높이 띄울 수도 있었고 아니면 감속시켜 다시 중력으로 지상을 향해 끌어올 수도 있었다. 관제소에서는 더미와 드래곤 V3에 설치한 센서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대기권 진입 실험을 하기 시작했다. 개량된 EM 드라이버는 빠르게 드래곤 V3의 속력을 감속시키기 시작했다. 운동에너지가 감소한 드래곤 V3가 중력에 잡혀 지상으로 낙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열권을 지나자마자 거대한 패러글라이더가 펼쳐졌다. CNT 섬유로 짠 가볍고 질긴 재질이었다. 넓이도 일반 패러글라이더의 열배가 넘었다. 하지만 패러 글라이더만 덩그란히 펼쳐진 것이 아니다. 패러글라이더와 연결된 줄에 단단한 파이프가 길죽하게 나와 있었다. 줄은 파이프 안으로 들어가 작은 드럼에 감겨있었다. 이는 사람이 패러글라이더를 하면서 줄을 잡는 손과 같은 역할을 한다. 균형을 잡고 미끄러지는 방향을 조절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174화 이 뿐만 아니다. 드래곤 V3 내부에 무게 추로 이루어진 밸런스 시스템도 균형을 잡는데 한 몫했다. 이런 균형은 드래곤 V3가 바퀴를 꺼내어 랜딩하기 위해서 필수적인 요소였다. “정상 궤도에서 약 2 km 벗어나 있습니다. 바람의 변화 때문인 것 같습니다.” “플라즈마 엔진 작동.” 패러 글라이더의 방법을 차용한 이점이 여기에서 나타났다. 비록 착륙 지점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가더라도 동력 패러 글라이더처럼 플라즈마 엔진을 이용해 추진력을 받으면 충분히 정상 지점으로 복귀할 수도 있었다. 나중에 가변 날개형 스페이스 셔틀이 완성되면 아예 비행기로 사용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었다. 착륙 지점으로 미끄러지듯이 내려오는 드래곤 V3의 하부에 4개의 바퀴가 발을 내렸다. 그리고는 포장된 땅 바닥에 미끄러졌다 “착륙 성공.” 누군가 환호성을 질렀다. 환호성이 전염되듯이 관제소 안을 흔들었다 드래곤 V3의 성공은 사실상 최초의 무인 우주 왕복 기술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이는 우주 비행사의 필요성을 줄여 우주 여행을 대중화할 수 있었다. 거기에 매스 드라이버와 플라즈마 제트 엔진을 이용한 비용 절감 효과까지 곁들여지니 전세계 항공사들이 NASA의 문을 두드렸다. ‘플라즈마 제트 엔진 라이센스 좀 주세요.’ ‘Shut up! And take my money!’ 이제 항공의 시대는 저물기 시작했다. 우주 항공만이 살길이다. 앞으로 건설될 우주 도시와 우주를 넘나드는 비행만이 경쟁에서 앞설 수 있었다. 특히 대기권을 벗어나는 비행이 매력적이었다. 공기가 없기 때문에 초음속을 몇 십 배나 뛰어넘을 수 있는 속도로 날 수 있고 이는 LA에서 영국까지 고작 몇 시간만에 갈 수도 있었다. 항공사들이 유인용 매스 드라이버와 플라즈마 엔진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였다. 항공사들이 새로운 가능성에 흥분하는 동안 그와 다르게 석유 업계는 울쌍을 지었다. 만일 저 플라즈마 제트 엔진인가 뭐시긴가 하는 것이 항공사들에게 제공되면 매년 수천만 톤이 넘는 연료를 소비하던 시장이 문을 닫는다. 시장의 변화로 인해 다시 한 번 생존을 위해서 구조 조정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벌써부터 그런 예상을 한 투자자들로 인해 석유 업계 전반의 주가가 떨어지고 있었다. 유일하게 떨어지지 않는 분야는 석유를 이용해 공산품을 만드는 분야 뿐이었다. 연료로서 석유의 가치가 점차 떨어지고 있었다. 더 이상 석유는 패권의 지표가 아니었다. 플라즈마 제트 엔진의 라이센스 계약에 펜타곤 예산 관리처가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을 때쯤 강현의 통장도 과도한 숫자에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1차 계약금으로 순식간에 천 억 달러가 통장에 입금되자 미국 제현 투자회사의 CEO이자 강현의 재산관리인 역할도 하는 제이슨 킬덤이 달려왔다. “천억 달러입니다! 박사님은 대단하시군요!” “그냥 운이 좋은 것 뿐이에요.” 만일 그가 중세시대에 태어났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 이단으로 낙인 찍혀 각종 고문을 받다가 죽었을 것이다. 사실 시대의 덕을 가장 많이 본 건 다름 아닌 강현이 아닐까? 킬덤은 겸손한 강현의 태도에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 것 같다. 고작 천 억 달러라는 돈은 강현에게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했다. “요즘 사업을 잘되시죠?” “너무 잘 돼서 큰일입니다.” 돈이 돈을 벌게 되어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강현의 지원을 전폭적으로 받는 미국 제현 투자 회사를 무시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그들은 사기업이지만 사실상 복지 재단으로서의 역할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인기가 대단했다. 회사의 지원을 받은 예술계, 스포츠계 인재들로 인해 회사의 인지도와 인기는 수직 상승을 그리고 있었고 정치계 인사들이 거의 매일 연락을 해서 귀찮을 정도였다. 제현 투자 회사만 등에 엎는다면 당선은 시간문제라고 생각될 정도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강현은 킬덤에게 정치권과 거리를 유지하도록 부탁했다. 정치는 사람의 이해관계에 가장 밀접하기에 자칫하다가는 시궁창에 빠질 수도 있었다. 유대 자본과의 일 역시 그런 맥락 중 하나였다. “이번에 들어온 천 억 달러는 어떻게 할까요?” 제이슨 킬덤은 본론을 꺼냈다. “흐음.. 국내 투자는 충분하죠?” “물론입니다.” “그럼 해외 투자는 어떨까요?” “당연히 환영 받을 겁니다.” “아프리카는 어때요?” 강현이 아프리카를 꺼내자 제이슨 킬덤의 얼굴에 곤란함이 퍼졌다. “아프리카는 아직 투자를 할 만한 상황이 아닙니다.” “다른 투자회사에서는 투자를 많이 하던데요?” “그건 순전히 이득을 위해서죠. 치안이 많이 불안한 아프리카에서 이윤을 맞추기 위해서는 따로 용병회사와 계약도 해야 하고 때로는 남들이 보기에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착취를 해야합니다. 제대로 된 민주주의도 정착돼질 않아서 부정 부패가 만연하죠. 그런 조건에서 박사님의 투자금이 원하는 방향으로 쓰일지는...” “흐음...” “다른 회사처럼 운영하면 열악한 아프리카의 상황에서도 충분히 이윤을 뽑아낼 수 있겠지만 지역 사회와 상생하는 저희의 원칙에 맞지 않습니다.” 강현은 그런가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넓은 아프리카에 있는 무수히 많은 나라 중에 설마 투자할 만한 나라나 지역이 없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문득 한 사람이 생각났다. “아! 제가 아는 사람 중에서 아프리카에 잘 아는 사람이 있는데 만나 보실래요?” “누군가요?” “마리아 헨델. 카길 회장의 딸이요.” = = = = = [아프리카에 약 천억 달러의 대규모 투자 계획!] [주 목표는 사막화 방지와 주민들의 삶의 질 개선!] 사람들은 강현이 왜 그런 막대한 돈을 아프리카에 투자하는지 알 수 없었다. 차라리 한창 경제가 성장하고 있는 동남아시아에 투자하면 몇 배는 남겨먹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해 되지 않는 투자를 하루 이틀 했나? 저번처럼 아프리카를 이용해 대규모 실험을 하려고 하는가보다 생각할 뿐이었다. 그러나 그의 속내는 단순했다. 마리아에 가지고 있던 마음의 빚을 털어버리기 위해서였다. 가자 지구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한 것은 엄밀하게 그의 책임은 아니었지만 유대 자본과 부딪히면서 유대 민족을 둘로 분열 시켜버린 사실이 결합하자 남을 위해 눈물을 흘릴 줄 아는 마리아 같은 착한 유대인에게 피해를 입혔다는 도의적 책임감을 느낀 것이다. 물론 그 상황이 다시 벌어져도 동일한 선택을 하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미안했다. 조금 미안한 정도로 천억 달러의 투자는 좀 많은 듯 했지만 한국으로 돌아오라며 진상부리던 국회의원들에게 평가 금액 1조원 가량의 기술 특허를 던져준 경력이 있는 그에게는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다. 게다가 천억 달러가 문젠가? 로열티로 기대되는 분기 수익이 약 백억 달러다. 3년 정도면 그만큼 또 벌어들인다는 뜻이다. 거기다가 추가 계약으로 들어올 계약금도 그 정도 될 예상이다. 그렇다고 그만한 돈을 투자하고 관리하는 시늉이라도 내지 않으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예를 들면 모럴 해저드 따위의 일이 벌어져 돈이 여기 저기에서 새어나갈 수 있었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관여하지는 않아도 사후 보고 쯤을 받아야 했다. 관심이 있는 ‘척’하는 것이다. [박사님. 여기 투자 내역서입니다.] “고생하셨어요.” 강현은 보고서를 제대로 보지도 않고 바로 승인했다. 어차피 아프리카에 대해서 자신이 아는 바는 인터넷이 발달한 대도시 정도다. 그 외에 발전이 미미한 외곽 지역의 경우에는 그곳의 사람들과 직접 연결되어 있는 마리아가 더 잘 안다. 그래서 자신이 이래라 저래라 하면 오히려 방해다. 아프리카 투자를 결정하고 난 후에 강현은 다시 우주 도시에 신경을 썼다. 일의 진척은 잘 되고 있는지, 문제는 없는지, 또 새롭게 생각난 좋은 아이디어는 없는지. 물론 신 통일장 이론에도 매일 일정 시간 할애했다. 남은 변수들을 이해하고 그 역할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그에 관련된 영감이나 현상이 필요했다. 하지만 중력을 전자기력 및 약력에 연결시키기 위한 단서는 보이지 않았다. 전자기력이 중력에 간섭하는 현상이 있다면 쉽겠지만 그런 현상이 있다면 지금까지 인류가 발견하지 못했을리가 없다. 사고 실험도 쉽지 않다. 사고 실험을 하기 위해서는 중력이란게 무엇인지 깊이 이해해야하는데 인류는 아직 중력의 원인을 확실하게 규명하지 못하고 있었다. 기껏해야 중력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질량이 증가하면 중력도 증가하고 시공간을 휘게 만드는 힘이 있다는 것 정도다. 게다가 중력을 매개하는 중력자도 발견되지 않았다. 중력파 역시 검출하기에는 그 힘이 미약하다. “중력이란 뭘까?” 강현이 요즘하는 고민은 바로 힉스 입자와 중력의 상관 관계였다. 강현이 힉스 제로 가설을 주장하고 그에 대한 증거로 개량된 EM 드라이버를 제시하자 물리학계에서는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여러 수단을 동원했다. 신 통일장 이론의 공식으로 설명하면 수학적으로 설명은 가능하나 아직 완전하지 않아서 정설로 취급받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모든 것의 이론’에 가장 유력한 이론 중의 하나로 취급되고 있기는 하지만 모두 증명되지 않은 공식을 정설로 받아들일 만큼 학계라는 곳이 만만한 곳은 아니다. 고로 물리학자들은 강현의 힉스 제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기존의 이론 중 전자기-약 작용 이론(와인버그-살람 모형)을 끌고 왔다. 현재 물리학계에서 추론하고 발견한 자연계를 구성하는 기본입자는 크게 두 개로 분류된다. 페르미온과 보손. 수학적으로 이 둘을 분류하는 정의는 있지만 간단히 설명을 하자면 페르미온은 물질 자체를 구성하는 쿼크나 전자 따위의 렙톤을 포함하고 보손은 힘을 매개하는 입자들 광자, W보손, Z 보손 등을 포함하고 있다. 가장 단순하게 이들의 관계를 표현하자면 물질적 주체인 페르미온들이 힘이나 에너지를 주고 받을 때 던지는 공이 바로 보손이다.(단, 힉스 입자 역시 보손이지만 예외적이다.) 그리고 와인버그-살람 모형, 혹은 전자기-약작용 이론은 전자기력을 매개하는 입자인 광자, 약력을 매개하는 입자인 W보손과 Z보손을(둘의 차이는 전하를 띄느냐의 여부뿐이다.) 한데 묶어 설명하려는 이론이다. 과학자들이 이 전자기-약작용 이론으로 힉스 제로 가설을 설명하기 위해 끌고 온 이유는 전자기-약작용 이론이 종류가 다른 두 개의 보손(광자와 W/Z 보손)을 연결시켰다는 점이다. 그래서 마찬가지로 보손인 힉스 입자와 연결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한 것이다. 물론 예전에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시도였다. 강력(중성자 양성자 등을 구성하는 쿼크에 작용하는 힘)을 매개하는 입자인 글루온도 같은 게이지 보손(힘을 매개하는 보손)이지만 통합 시키기 난해한데 아예 분류가 다른 힉스 입자(스칼라 보손)을 통합하는 건 너무나 앞으로 나간 일이었다. 하지만 힉스 제로 가설이 발표되며 상황이 바뀌었다. 스칼라 보손이라고 생각했던 힉스 입자가 국소적으로 백터가 될 수 있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힉스 입자를 게이지 보손처럼 다룰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물론 정말로 할 수 있는지는 시간이 지나봐야 알겠지만 과학자들은 낙관했다. 전자를 매개로 전자기력이 힉스 입자의 대칭성을 깨어 백터로 바꾼 EM 드라이버라는 실제 예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다음은 우주 도시의 진척 상황이지?” [화면을 띄우겠습니다.] 175화 아즈삭은 강현이 끄적이던 신 통일장 이론의 수식을 저장하고는 새롭게 창을 띄웠다. 우주 도시 건설 현장이다. 반경 8km의 거대 원통 구조물이 이젠 그 형상을 오롯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일단 외골격이라고 할 수 있는 옆면은 거의다 완공되었다. 물론 이 상태로 가장 중력을 만들기 위해 회전시키면 산산조각 분해될 것이기에 아직 정지해 있는 상태다. 차후 카낙에서 수송해 올 고장력 CNT 섬유 케이블이 조달되면 원심력을 견딜 수 있도록 내부에 중심축을 지나도록 직선으로 설치될 예정이었다. 물론 거구 공간이 줄어든다는 단점이 있지만 전체 면적에 비하면 극소에 불과했기 때문에 감수할 만했다. NASA 측에서는 이런 공간도 아까운지 내부에 케이블을 설치하지 말고 차라리 케이블로 원통형의 도시를 돌돌 감아버리듯이 외곽을 감아버리는 건 어떻냐고 제한했지만 강현에 의해서 거절되었다. 만일의 상황에서 신속한 수리를 위해서는 외곽이 최대한 단순한 구조여야 했기 때문이다. 대신에 줄어드는 공간은 몇 개의 층위로 증축할 수 있도록 해서 NASA의 아쉬움을 달래 주었다. 강현의 케이블 지지 방식은 현수교에서 다리의 하중을 케이블로 지탱하는 것과 별다른 차이는 없다. 다만 중심축을 지나는 직선으로 연결했기 때문에 동심원을 그리듯 보다 작은 직경의 원통형을 집어넣을 수 있었다. 이 원통형의 하중은 새롭게 케이블을 추가하는 것으로 얼마든지 지탱할 수 있기에 더욱 면적을 넓힐 수가 있었다. 물론 회전 반경이 작기 때문에 걸리는 중력 가속도는 최외각보다 작지만 차후 공업 시설이 들어서면 무게가 적게 나가는 이점을 역이용할 수도 있었다. 고로 서울시 두 배가 되는 면적의 도시에 다시 서울시 만한 면적의 공업 지역을 넣을 수 있기 때문에 우주 도시 정도가 아니라 작은 소국에 해당하는 규모의 구조물이 건조되고 있었던 것이다. 기술적 난이도에 대해서 이해도가 낮은 관료측에서는 차라리 3단으로 건조하면 어떻겠냐고 물을 정도로 차후 우주 도시의 확장성에 큰 기대를 하고 있었다. 이런 견해에 NASA의 연구자들은 긍정적으로 답했다. 나쁘지 않은 계획이었다. 높이가 8km나 되는 공간이고 길이가 16km 나 되는 공간이니 만큼 CNT 케이블의 장력을 고려하면 얼마든지 추가 케이블을 설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소행성 광산에서 생산되는 자원이 이제 슬슬 다른 국가에도 팔리기 시작했기 때문에 이 계획은 장기 계획으로 전환하는 수 밖에 없었다. 덕분에 서브 카낙의 화물칸은 지구로 올 때 만큼이나 무겁게 소행성대로 향했다. 추가 시설을 짓기 위한 부품과 필수 자재였다.(아무래도 전선을 만들기 위한 고분자 화합물 만큼은 액체 공법이기 때문에 중력이 있는 지구에서 만들기 용이했다.)강현은 화면으로 로봇들이 들락 날락하는 휴지심 같은 구멍을 보았다. 차후 우주 공항이 설치될 장소다. 그 주변에서는 로봇들이 천천히 자재를 들고 날아다니면서 금속판의 면적을 넓히고 있었다. 이 부분을 잘 만들어야 우주 도시의 생존성이 보장받는다. 차후 내부에 대기를 조성하게 되면 대기압 및 원심력을 꾸준히 받게 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외벽보다 더 튼튼하게 만들어야 했다. 설계상 CNT 케이블의 지지를 받는 부위가 적다는 점도 고려되었다. 그리하여 우주 도시의 양 평면은 오목하게 들어가도록 설계되었다. 탄산 음료가 든 캔의 아랫면이 오목한 것과 같은 이유였다. 아치형의 구조가 대기압으로 인한 압력을 고루 분산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중에서 가장 시급하고 강현이 가장 신경쓰는 부위가 있었으니 바로 중심축에 해당하는 부분이었다. 직경 1km의 가장 작은 원통은 지구와 우주 도시간 물류를 연결하는 우주 공항이자 CNT 케이블이 감기고 장력을 조절하는 장치가 달릴 핵심 부위였다. “축은?” [완공율 99%입니다. 로봇들이 비파괴 검사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로봇이라고 다 완벽한 건 아니야. 나중에 사람들의 손으로 다시 한 번 확인할 필요가 있어. 도시 엘리베이터는?” [기존의 CNT 케이블을 주축으로 강화한 엘리베이터 부품이 이번 달 안에 올려보내질 계획입니다. 단순 구조용 부품은 카낙에서 벌써 도착해 있습니다.] 우주 도시에서 물류 이동의 핵심이 될 엘리베이터는 원통의 중심부터 최외곽의 거주 지역까지 오르내리도록 되어 있었다. 엘리베이터에 자체적인 동력을 가지는 것은 비효율 적이기 때문에 중심축에 동력 모터를 설치하도록 설계했다. 강현은 아즈삭의 보고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음 사항을 체크했다. “방열판 상황은?” [ 약 100대의 트리플롯에 의해서 잘 제어되고 있습니다.] 우주 도시의 건설에 있어 가장 큰 장애물은 역시나 태양이었다. 대기의 보호를 받지 않는 자재들은 태양열에 의해서 너무 쉽게 온도가 상승했다. 물론 용융점 이상 올라가지는 않았지만 문제는 태양광을 모두 골고루 받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이 문제는 건조에 큰 난관이었다. 패널들이 동일한 치수로 제작되었다고 해도 열을 받아서 팽창한 것과 열을 받지 않아 수축한 것이 있는 상황에서 제대로 조립될 리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태양광을 막는 거대한 우산이 필요했고 이를 위해 우주 공장이 더욱 확장되었다. 입체적인 확장이 아니라 평면적인 확장이었다. 그래도 우주 도시 건설 현장을 다 가리지 못해서 컨테이너를 평면으로 배치하고 예비용 태양열 패널을 다 조립해 그 옆에 또 붙이고 그것도 모자라 도시 건설용 패널을 넓게 조립해 태양광을 막았다. 직경이 16km나 되니 그만한 크기를 가리기 위해서는 서울의 반 정도나 되는 면적을 가려야 했던 것이다. 그렇게 가리고 나니 작업을 위해 빛을 조달해야 해서 따로 광원을 써야했지만 다행이 미리 로봇에 설치한 LED가 충분히 제 역할을 해주었다. LED의 전력대비 광량 생성은 가히 마법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였다. [우주 도시에 방열 코팅 및 등온 코팅을 하기 전까지 방열판을 유지할 계획입니다.] 방열 코팅은 세라믹 입자가 포함된 겔(Gel)로서 방열 효과가 좋은 다공성 세라믹을 넓은 면적에 적용할 수 있게 만든 기술이고 등온 코팅은 마찬가지로 열전도성이 뛰어난 다이아몬드를 나노 입자로 만들어 넓은 면적에 적용할 수 있게 만든 기술이다. 둘 다 졸겔법이지만 밀도의 차이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사용되는 고분자의 종류는 달랐다.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미 계획된 일의 진척보다는 새롭게 확인 사실에 더 관심이 갔다. “스페이스 넷이 이젠 제법 능숙한가보지?” 로봇 관제용 인공지능인 스페이스 넷은 확장을 거듭했다. 지구와 우주 도시를 정보적으로 연결할 핵심이기 때문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미 정부에서 손가락 물고 강현 자신의 눈치를 보고 있었기 때문에(스페이스 넷은 강현의 사유물이다.) 선심써서 따로 정부용 회선을 할당해 주기도 했다. 이로 인해 미 정부는 할당된 회선을 통해 우주 도시의 행정을 관리할 수도 있었다. 행정에 대해서 잘 모르는(사실은 거기까지 신경쓰기 귀찮은) 강현에게는 win-win 전략이었다. 사람이 많으니 치안력은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이다. [네, 제어 속도가 처음에 비해서 200배가 빨라졌습니다. 실시간으로 계산을 하고 즉시 로봇들을 제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차후 진행 상황은?” [CNT 케이블 설치와 환기 시스템 및 조명 시스템 작업이 남았습니다.] 환기 시스템은 차후 내부 공사를 위한 인력 투입을 위해 최소한이나마 있어야 했다. 또한 조명 시스템 역시 최소한이나마 있어야 했다. “숲을 조성하는 건 무리겠지?” [태양광 광원 기술을 전체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낭비입니다. 구역별 소규모 공원은 몰라도 식물이 없는 지역에까지 태양광을 비추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강현은 우주 도시를 설계하면서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해로운 광선만 막는 투명한 천장으로 태양빛을 받는 녹지의 우주 도시. 하지만 그럴 수 있는 재료가 없었다. 태양열로 인한 구조적인 스트레스와 피로를 견딜 수 있는 강도와 연성을 가진 물질이 없었다. 아니 강도는 충분한 것이 있었지만 연성이 없었다. 비용은 둘째 치더라도 연성이 없는 물질은 뒤틀림에 의해서 깨져버릴 수 있었다. 충격을 흡수 할 수 있는 능력이 금속에 비해서 현저하게 떨어졌다. 투명한 금속이 있다면 좋겠지만 투명한 금속이라는 것이 가능할까? 글쎄.. 지구에 쏟아지는 태양광처럼 넓은 스펙트럼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단순히 합금 조합 만으로는 불가능했다. 플라즈마 주파수라는 것이 있다. 이는 재료의 원자내에서 전자를 여기 시키기 위한 최소한의 주파수를 뜻한다. 전자기파의 주파수가 이 플라즈마 주파수 밑이라면 전자의 움직임이 가볍고 쉬워서 쉽게 이 전자기파를 차단한다. 하지만 전자기파의 주파수가 이 플라즈마 주파수를 뛰어넘는다면 전자의 움직임이 이를 따라 잡지 못해서 전자기파를 차단하기 힘들어진다. 금속 대부분의 플라즈마 주파수가 자외선 영역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금속이 회백색 반사광을 가지는 이유이기도 했다. 모든 영역의 가시광선을 반사해 버리기 때문에 수은으로 거울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만일 이 금속의 플라즈마 주파수를 적외선 영역으로 할 수 있다면 투명한 금속도 만들 수 있겠지만 아직 뾰족한 방법은 없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자유 전자라고 하는 금속의 고유 성질을 크게 제어해 반도체에 가깝게 만들어야 했다. 움직임이 쉬운 전자로 인해 플라즈마 주파수가 높으니 움직임을 어렵게 해서 플라즈마 주파수가 떨어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정도로 조절을 해버리면 자유전자의 특성을 상당부분 잃어버릴 것이기 때문에 그로 인한 금속의 연성이나 질긴 정도가 과연 구조용 재료로서 우주 공간에 적용해도 될 정도로 튼튼한지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고로 강현의 공상은 공상에 불과했기 때문에 이렇게 원통형의 설계로 타협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녹지는 반드시 필요했다. 태양광을 자연스럽게 끌어들일 수가 없다면 인공적으로 태양광 스펙트럼을 내뿜는 광원을 설치할 생각이었고 당연히 이런 종류의 광원 장치는 비싸다. 그런데 그런 광원을 녹지가 아닌 건물 외벽 따위에 비추는 것은 낭비가 아닌가? “흐음..” 강현은 고민했다. 차후 우주 농업 플랜트를 건설하기 위해서 풍부한 태양광은 선결되어야 할 필수조건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투명하고 넓은 창을 내구성 있게 만드는 비용이 너무 들었다. 기존의 사파이어 유리창을 사용하기에는 필요한 양이 너무나 많았다. 오히려 태양광 조명을 싸게 만드는 것이 더 효율적이고 현실적이었다. 그냥 우주 농업 플랜트에 태양광 조명을 잔뜩 달아 놓는 것이 더 편했다. “업체 중에 좋은 태양광 조명 기술을 가진 곳이 있어?” [네, 있습니다. 선라이트 회사라고 중소 규모의 제조 회사입니다.] “흐음. 거기 주식도 좀 사야할 것 같으니까 킬덤에게 부탁하자.” [네, 박사님.] 강현의 제태크 수단은 쓸만한 기술을 가진 회사의 주식을 사들이는 것이다. 혹자는 사기다, 내부자 거래다라고 하지만 강현은 자신의 영향력을 잘 알고 있었다. 쓸만한 기술을 가진 회사에 대한 영향력을 미리 확보하여 누군가가 자신보다 그 기술과 회사를 먼저 선점해 자신을 휘두를 수 있는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이다. 176화 “그럼, 이제 뭐하지?” [신 통일장 이론은 어떠하십니까?] 아즈삭은 자신의 프로젝트 리스트에 남은 가장 최우선 사항을 꺼내 들었고 강현은 표정이 멍했다. “또?” 아무런 아이디어나 영감도 떠오르지 않는 상황에서 출구 없는 미로를 헤매는 고통을 아즈삭은 모르는 모양이다. “잠시 휴식.” 강현은 아즈삭의 은근한 재촉을 피해 준을 보러 나갔다. 재택근무는 이래서 좋은 것이다. = = = = = 시간은 흘렀고 세상은 변해갔다. 거의 완공 직전인 우주 도시 제1호에는 아폴로티움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우주 공항 도킹 시설과 대기 조성 및 내부 단장만이 남아 인부들이 올라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편 유럽 연합과 동 아시아 연합(중일러)에서도 우주 도시 건설을 시작했다. 강현과 같이 원통형의 구조물이었다. 다만 다른 점은 아폴로티움이 최외곽 부분을 건설하고 내부를 건설하도록 되어 있다면 이들 도시는 내부 구역을 먼저 건설하고 점차 밖으로 확장하도록 설계 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작게 나마 빠르게 우주 도시를 건설해 우주 진출 속도를 미국에 맞추려는 이들이 고민한 결과였다. 하지만 한 편 지구에도 개발할 곳이 넘치는데 우주에 쓸데없는 돈을 투자한다며 비난하는 여론이 일었다. 우주 도시 건설을 위한 비용 지출에 이해 관계가 걸려있는 유럽에서는 더욱 그랬다. 미국에서도 동일한 여론이 일었는데 한 기자에게 강현은 이렇게 일축했다. ‘극히 생각이 짧은 주장이다.’ 우주에 투입하는 비용을 사막화 방지 등에 사용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사막화를 막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우주 도시 건설을 비난하는 것과 동일한 여론이 형성될 것이다. ‘아마존의 원시림을 보존하면 되지 않느냐?!’ 하지만 아마존을 끼고 있는 나라의 경제 성장 욕구를 충족시키거나 막으면서 원시림을 보존할 일을 누가 할 것인가? 또한 그 비용은 누가 댈 것인가? 이해관계란 바로 그런 것이다. 모든 것이 상대적이고 얽혀있는 지구 환경에서 전 지구적 규모의 해결책이 필요할 때에는 반드시 이해 관계가 얽히게 되어 있다. 도쿄 의정서의 이산화 탄소 배출 규제안은 그런 이해 관계의 환경적인 분야고 핵무장 완화 문제는 그런 이해 관계의 정치전략적인 분야였다. 사막화 방지? 좋다. 하지만 어느 누구의 땅부터 사막화 방지를 시작할까? 누구의 땅부터 녹지로 만들기 위해서 수자원을 분배할까? 수자원이 모자라면 담수를 생산해야 하는데 그 비용은 누구에게 부담 시켜야 할까? 이런 복잡한 이해 관계를 조율하는 건 골치가 아프다. 시간도 필요하지만 시간을 들인다고 반드시 해결될 거라는 보장도 없다. 하지만 우주 도시는 상황이 다르다. 건설을 위한 대부분의 자원을 우주에서 충당한다. 지구와 얽힌 이해 관계는 극히 단순하며 예측하지 못할 변수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렇게 환경주의자들의 비난 여론도 상정 내였다. 제어 가능한 이해관계라는 것 만으로 우주 도시는 가장 유력한 해결책이다. 환경 주의자들이 원하는 자연과 인간의 조화는 지구의 환경이 인간에게 우호적일 때에나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없는 지구는 언제나 허리케인, 지진, 태풍 따위로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파괴할 수 있다. 비록 위험하지만 인간이 스스로의 생존을 책임질 수 있는 환경만이 생명과 생명 사이의 조화를 누릴 수가 있다. 인류의 이익을 위해서 자연 환경이 훼손되는 상황에서 인류가 모두 우주로 나가버리는 것 만큼 자연에 좋은 일이 또 있을까? 자연 파괴의 주범은 다름 아닌 인간 그 자체다. “아빠! 아빠!” 이제 빠르게 걸어다니는 3살 배기 준이 강현에게 달려들었다. “어이쿠!” 강현은 엄살을 피면서 소파에 드러누웠다. 그러면서 준의 겨드랑이를 잡아 들어올렸다. “꺄하하!” 즐거운 한 때지만 강현의 마음에는 고민이 쌓였다. 가진 게 많아도 너무 많다. 정신적인 행복이라면 상관없지만 무려 4조 달러 가까이 되는 어마어마한 액수에 가만히 있어도 정재계 인사들이 자신의 눈치를 보는 상황이 되었다. 그런 쪽과는 되도록 거리를 두고 있었지만 알아서 기어 들어오는 상황이라 더 불안했다. 만일 욕심 많은 누군가가 준을 인질로 잡고 무언가를 요구해 온다면.. 강현은 참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그는 사람의 탈을 쓴 사람을 사람 취급하지 않는다. 아니 사람은 자신의 행동만큼 대접받아야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만큼, 악의에 대해 악의적으로 대응하는데 양심의 가책이 전혀 없었다. 여전히 갈라진 채로 사이가 나쁜 시오니스트와 반시오니스트 유대인은 바로 그의 작품이 아니었던가? 거기에 준이 학교에 다닐 나이가 점점 다가오자 불안감은 더욱 강해졌다. 집이라면 CIA 요원도 있고 아즈삭이 조종하는 안드로이드도 있고 개조한 로봇 견도 있지만 학교에서는 그런 철통 보안에 구멍이 뚫리게 된다. ‘아, 이래서 돈 많은 사람들이 자식들을 상류층 학교에 보내고 싶은 건가?’ 비단 인맥과 끼리끼리 노는 인간의 습성 때문만은 아니었다. 비슷한 부류가 모이는 명문 사립 학교는 다양한 환경의 아이들이 모이는 공립 학교보다 안전할 수 있었다. 인간은 환경의 동물이라 가혹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의 폭력성과 비행을 우려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명문 사립 학교에 보내는 것도 마음에 들진 않는다. 사람은 보고 듣는 것으로 학습하기 때문에 혹시나 준이 세상에 그런 사람들로만 이루어져 있다는 편견에 빠져 들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차후 그런 환경과 다른 환경에서 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충격에 빠질 수 있었다. 그로 인해 준이 어떻게 될지는 강현도 짐작할 수 없었다. 왕자였지만 인간의 생로병사를 목격하고 번뇌에 빠져 끝내 출가하고만 고다마 싯다르타처럼 선의에 의해 강현이 물려준 모든 것을 베풀 수도 있었다. 아니면 저들과 나와는 다르다면서 계급주의적인 귀족이 되어 자신의 권리를 마음껏 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쪽도 강현의 마음에 드는 방향은 아니었다. 그는 준이 자신과 같이 객관적이고 냉철하며 가치 판단이 제거된 시각으로 인간을 바라보기를 바랬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했던가? 좋은 일도 있으면 나쁜 일도 있는 법이라 강현은 준이 인생을 희극으로도 비극으로도 보지 않았으면 했다. 분명한 것은 준이 평범한 삶을 사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이었다. 혹시 몰라 언론에 가족을 노출시키는 것을 극히 막았지만 강현 자신은 이미 여러 번 언론에 노출되었고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인의 자리를 3년 째 공고히 하고 있었다. 이른바 시대의 아이콘이란 의미였고 준이 점점 커가며 아빠의 영향력을 인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준이 어떤 가치관을 가지게 될 지 강현은 감히 예상할 수 없었다. “아빠. 배고파.” “아. 응? 아빠가 달걀 프라이 해줄까?” “싫어. 아즈삭이 해준 스파게티 먹을래.” 샐리가 있었다면 식사를 차려줬겠지만 그녀는 지금 둘째를 출산하고 몸조리를 하는 중이었다. 준과 다르게 난산이라 꽤나 고생했으나 강현은 준을 혼자 둘 수 없어서 그녀는 병원에 혼자 있어야 했다. 준을 맡길 장인 장모가 내일 도착하기 때문에 샐리에게 가고 싶지만 참고 있는 것이었다. 강현은 아즈삭이 해준 스파게티라는 말에 조금 당황했다. 그리고 자존심도 좀 상했다. 그도 스파게티를 끓일 줄 안다. 다만 그가 할 줄 아는 건 스파게티 면을 삶은 후 마트에서 파는 스파게티 소스를 끼얹는 것 정도였다. 반면에 수많은 레시피를 보유한 아즈삭은 실험 도구를 만지작 거리던 능력을 바탕으로 양파를 썰고 햄을 썰고 토마토도 볶고 뒤집어 더 맛있는 요리를 할 줄 알았다.(샐리가 밥 차리기 귀찮을 때에는 아즈삭의 스파게티가 나왔다.)아이의 입맛은 정직했기 때문에 강현의 스파게티보다 아즈삭의 스파게티를 선택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아즈삭, 그럼 부탁해도 될까?” [요리를 시작하겠습니다.] 강현이 아빠로서의 뭔 가를 상실한(아빠는 뭐든 할 수 있는 슈퍼맨이다라는 자부심) 기분을 느끼며 아즈삭에게 부탁했다. 아즈삭은 창조주의 명령에 따라 안드로이드를 조작해 요리를 하기 시작했고 준은 그 익숙하지만 여전히 신기한 모습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구경했다. “아즈삭! 나 피망 싫어!” 아즈삭이 초록색 야채를 하나 꺼내어 썰기 시작하자 준이 소리쳤다. 하지만 안드로이드는 꿈쩍도 하지 않고 빠르게 피망을 썰어갔다. 준의 볼이 불퉁해졌다. 아즈삭은 자신의 말을 들은 적이 한 번도 없다. “아빠아!” 요리하던 모습을 보던 준이 강현에게 달려갔다. 어떻게 좀 해달라는 뜻이다. “골고루 먹어야 키가 자라지.” “한 번만.. 응?” 준이 강현의 배에 얼굴을 부비며 애교를 피우자 강현은 머뭇거리면서 아즈삭에게 말했다. “아즈삭, 피망 빼면 안돼?” [안됩니다.] “....” 단칼에 거절 당했다. 강현은 당황했다. 아래쪽에서 지그시 자신을 올려다 보는 준의 시선이 그를 더욱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왜?” [샐리가 신신당부하고 갔습니다. 영양적으로 잘 먹이라구요. 오늘 낮에 과잉 지방을 섭취하셨으니 저녁에는 야채를 드셔야 합니다.] 과잉 지방이란 기름진 피자를 뜻한다. 강현이 한국 출신이라 한국이 많이 알려지고 한국 요리도 미국에 퍼져나가기 시작하자 불고기 토핑이 올라간 불고기 피자가 불티나게 팔렸고 불고기 맛을 아직 기억하고 있던 강현은 오늘 낮 불고기 피자를 시키고 말았다. 그 만큼 불고기 피자 메뉴가 미국 전역에 퍼졌는데 비단 한국인의 입맛에만 맞는 요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아무튼 강현은 이대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아빠의 위엄을 최소한도나마 지키기 위해서는 준의 목적 만큼은 성사시켜야 했다. “준에게는 안 그래도 되잖아.” 아즈삭의 관심사는 강현의 건강이지 준의 건강이 아니다. 게다가 준은 아직 어리니까 기름진 음식으로 인한 성인병을 걱정할 나이도 아니다. [준의 접시에서 피망을 집어가는 것까지는 보고하지 않겠습니다.] “...” 강현은 쓴 입맛을 다셨다. 어째 더욱 망신살을 뻗친 느낌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나? 강현의 건강 관리에 관해 아즈삭에게 명령할 권한을 샐리에게 넘겨줘 버린 것을.. 덕분에 강현의 식사는 철저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운동을 즐기지 않는 강현의 건강을 식이 요법으로 관리하고 있던 것이다. 샐리 혼자서 그런 곳까지 신경을 쓰면 힘들었겠지만 인터넷으로 전 세계의 레시피를 수집하며 항시 강현의 건강 상태를 체크하는 아즈삭이 있으니 상황이 달라졌다. 아즈삭도 자신의 말을 무시하고 건강관리에 관심을 쏟지 않는 강현 때문에 샐리의 존재가 반가웠다. 식사에 관련된 명령권한의 이양도 둘이 공모한 결과였고 그리하여 강현의 입안에는 필요한 것이 반드시 들어가게 되었다. 그렇지만 강현은 별로 불만이 없었다. 일단 자신을 위한 일이었으며 건강을 위해서 맛없는 것을 먹이지 않고 오히려 맛있는 요리가 제공되었으니 말이다.(이제 사모님 소리를 듣는 위치에 있는 샐리가 후원하는 비중이 가장 큰 곳은 요리 업계다. 맛있고 건강한 레시피를 모으기 위해 샐리와 아즈삭이 머리를 맞댄 결과물이기도 했다.) “히잉.. 아빠..” 준이 접시에서 초록색으로 가늘게 채썰어진 피망 조각을 포크로 찍어들었다. 177화 “아.” 강현이 입을 열자 준이 피망 조각을 강현의 입안에 넣었다. 강현은 피망만 씹는 느낌이 이상해서 재빨리 면을 포크에 말아 입안에 넣었다. 그 뒤로도 스파게티를 먹던 준이 피망조각을 발견하는 족족 강현의 입안에 넣었고 강현은 맛의 밸런스를 위해 소스에 버무려진 면을 입안에 넣었다. 야채의 아삭함과 면의 쫄깃함에 쥬시한 소스까지 확실히 야채랑 같이 먹도록 고안된 레시피였다. 준이 넘겨주는 야채를 먹으며 면도 같이 먹었기 때문에 강현의 식사는 준보다 빨리 끝날 수 밖에 없었다. “아빠. 자, 아..” 준이 다시 초록색 야채 조각을 찍어 강현에게 내밀었지만 강현은 고개를 저었다. 야채만 먹으려니 좀 그랬다. “미안하구나. 아빠는 식사를 끝냈어요.” “응? 그럼 이건?” “준이 먹어야지.” “히잉!” 강현의 말에 준이 울쌍을 지었다. 하지만 강현도 피망만 먹기는 싫었다. 더 이상 어리광을 받아주면 버릇이 없어진다고 스스로를 납득시키기도 했다. 준은 울쌍을 지으며 스파게티를 말아서 입안에 넣었다. 접시에 보이는 피망 조각이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준. 남기면 샐리에게 이를 겁니다.] “흐잉!” 준은 울쌍을 지으며 머뭇거리며 피망을 입안에 집어 넣었다. 아빠는 만만하지만 엄마는 만만하지 않다. 아즈삭이 알리면 분명히 혼이 난다. 혼나는 것 보다는 피망을 먹는 게 낫다. 다음 날 샐리의 부모님이 집에 찾아왔다. “오셨어요.” “하하하. 오랜 만일세.” “오랜만이에요.” “할아버지! 할머니!” 강현은 장인 장모에게 준을 맡기자마자 냉큼 병원으로 향했다. 그런 뒷모습에 빅터 클린턴과 니나 클린턴이 흐뭇하게 미소지었다. 세계 제일의 부자이자 가장 영향력 있는 한 사람이라고 하지만 평범하게 가족을 사랑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비록 동양계이지만 그정도 편견은 뛰어넘을 정도로 만족스러운 사위였다. 둘은 준의 손을 쥐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손자의 재롱을 볼 시간이었다. = = = = = 강현의 둘째 출산 소식은 다시 한 번 세계를 강타했다. 한 쪽에서는 ‘과학 왕국의 공주님’이라며 자극적인 문구를 사용했다. 각종 축하 메시지가 쏟아져 들어왔고 대부분은 아즈삭에 의해서 걸러져서 답장이 보내졌다. 이럴 때도 아즈삭은 참으로 유용했다. [박사님. 킬덤에게서 메시지가 왔습니다.] “아아, 고맙다고 전해줘.” [그게 아니라 결혼 한다고 합니다.] “응?” 한창 신 통일장 이론의 공식들을 이리 저리 변형하던 강현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여기 전문입니다.] 아즈삭은 다른 디스플레이에 메시지 내용을 띄었다. ‘친애하는 현에게. 둘째를 가진 것을 축하면서.... 다음 장소에 참석해 자리를 빛내 주실 것을..’ 그건 메시지가 아니라 청접장이었다. 그리고 킬덤의 결혼 상대는 바로, “마리아?” 강현은 놀랐다. 그리고는 걱정되었다. “헨델 회장이 가만히 있을까?” 헨델 회장도 시오니스트다. 그리고 킬덤은 시오니스트들이 가장 증오하는 강현의 측근이다. 만일 그의 딸이 킬덤과 결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떻게 나올까? 강현은 킬덤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지금 거신 전화는 국제 전화로 비용이 1분에..] 양자 통신이 활성화되어 국제 전화도 싸졌다. 그래도 일반 전화보다 비싼 건 마찬가지지만 강현은 돈이 많다. [여보세요. 박사님.] “결혼 축하합니다.” [하하하! 감사합니다. 그리고 또 감사합니다. 박사님이 아니었다면 마리아를 만나지 못했겠죠.] 아! 강현은 그제서야 자신이 마리아를 소개 시켜줬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이럴 수가 분란의 씨앗을 자신이 만들었다니.. 하지만 연애 경험이 딱 두 사람 뿐인 강현이 킬덤과 마리아의 관계가 그리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둘에게는 각자가 살아온 환경의 차이가 있었고 커다란 걸림돌도 있었기 때문이다. “헨델 회장의 허락은 받았어요?” [어.. 그, 그게..] 킬덤은 대답하지 못했다. 당연했다. 헨델 회장은 불같이 화를 내면서 마리아를 감금하려고 들었다. 킬덤이 혹시나 하고 데리고온 회사 경호원들이 아니었다면 그대로 마리아를 빼았겼으리라.. 그는 헨델 회장의 집에서 탈출하는 한 바탕 활극을 차마 말하지 못했다. 마취총과 테이저 건이 동원된 인질극 작전을 연상케 하는 무용담을 들은 강현의 반응이 뻔했기 때문이다. ‘아이구, 골치야.’ 안 그래도 점점 과격해지는 시오니스트들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거리를 두는 강현이다. 이런 식으로 시오니스트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헨델과 마찰을 빚으면 또다시 분란이 야기될 수 밖에 없다. 그대로 강현은 킬덤이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자 고민이 일어났다. 자신은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 킬덤과 마리아의 결혼식에 참석한다면 헨델 회장이 곱게 볼 것인가? 과연 세상에는 어떤 식으로 비쳐질 것인가? 시오니스트와 강현이 화해했다? 그렇게 비쳐지면 그것은 자신에게 이익인가 아니면 손해인가? 물론 그렇게 생각된다면 단기적으로는 이익이다. 하지만 시오니스트들이 다시 한 번 힘을 휘두른다면 그건 위협이 될 수 있다. “일단 결혼식에 참석하겠습니다. 장소는요?” [짐바브웨의 한 결혼식장입니다.] “좋아요. 그럼 결혼식날에 보죠.” [참석해 주신다니 감사합니다.] 통화를 마친 강현은 아즈삭에게 준비할 것을 지시하고 자신은 또 따로 잭에게 연락을 했다. 강현 덕분에 CIA의 요인 보호 능력이 부쩍 상승했다. 기자재도 충실해졌다. “아프리카라고?!” [응. 그럼 부탁해.] 딸칵! “야! CIA가 네 전용 보디가드라도, 야! 현!” 잭은 뒷목을 잡았다. 이젠 CIA의 살인기계들을 제 보디가드로 써먹는 걸 예사로 생각하는 강현이다. 전부터 약간 그런 낌새가 있기는 했지만 오늘 다시 확인했다. “아후!” 저번에 강현이 스웨덴으로 노벨상을 받으러 갔을 때에도 CIA 요원들이 철야를 했다. 이번에는 스웨덴보다 치안이 불안한 아프리카로 가니 그때보다 더 힘들 것이다. 하지만 별 수 있나? 잭은 공무원이었다. = = = = = “얘가 내 동생이에요?” “응. 그렇단다.” 준은 샐리의 품에 안겨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아기를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동생이다. 동생이 생겼다. “이름이 뭐에요?” “시아.” 준은 여동생이 생긴 것이 좋은지 아기에게서 눈을 때지 못했다. 맞은 편 소파에 앉은 노부부가 시아를 안은 딸을 흐뭇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식사가 다 완성되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아즈삭이 저녁 식사를 다 차렸다고 알려왔다. 사람들은 모두 식탁에 둘러앉아 상위에 차려진 만찬을 보았다. 샐리나 준에게는 익숙한 광경이지만 빅터, 니나에게는 신기한 광경이었다. 물론 안드로이드들이 도입되고 있다는 걸 뉴스를 통해서 잘 알고 있었다. 특히 노인 복지를 위한 요양 시설은 젊은 간호사 등을 구하기 힘들어서 비싸지만 안드로이드를 도입했다. 하지만 뉴스로 보는 것과 실제 사용 현장을 보는 것과 감상은 천지차이였고 아즈삭이 조종하는 안드로이드는 다소 딱딱한 행동의 기존 안드로이드와는 뭔가가 달랐다. 마치 사람이 로봇 분장을 하고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위화감이 없을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사위, 이거 정말 편리하겠군.” “아즈삭은 매우 뛰어난 인공지능이죠. 제 평생의 걸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강현이 아즈삭을 자랑했다. 사실 그가 한 일 중에 가장 잘한 일이 인공지능의 개발이라고 여전히 자부했다. 인공 지능을 뛰어넘는 발명을 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거 우리집에도 한 대 놔두면 니나가 편하겠어.” 빅터의 말에 니나가 타박했다. “여보, 그럼 사람이 게을러져요. 나이 먹을 수록 움직여야 건강을 유지하죠.” “커, 커흠. 그런가?” 아무래도 샐리는 니나를 닮은 듯 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식사 내내 계속되었다. 강현은 캘리포니아로 이사오면 샐리를 자주 만날 수 있다며 둘에게 권유했지만 둘은 거절했다. 미치간 주에 오래 살아서 그런지 그곳을 떠나고 싶지 않다나? 친구들도 거의다 그곳에 있고 자연 환경도 익숙해서 다른 곳으로 가기가 망설여 진단다. “요즘 비행기가 아주 잘 나와서 한 시간이면 캘리포니아에 도착하니까 얼마든지 샐리를 만나러 올 수 있어요.” 니나의 말에 강현은 아쉽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플라즈마 제트 엔진이 적용된 비행기가 출시되면서 비행에 소모되는 에너지가 놀랍도록 줄었다. 무거운 연료를 잔뜩 싣지 않아도 되며 무게당 출력 역시 기존 제트 엔진에 비해서 월등했다. 추력을 얻기까지 좀 더 긴 이륙 거리가 필요하다는 것 만 제외하면 민간 제트 비행기 엔진으로 이보다 더 좋은 건 없었다. 더욱 대단한 건 성층권까지만 올라갈 수 있는 기존의 제트 엔진과 달리 전리층 복사가 일어나는 열권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태양의 자외선으로 인해 오존층이 존재하는 열권에서는 플라즈마를 만들기 쉬워서 출력을 그만큼 더 상승시킬 수 있었다. 물론 이를 위해서 비행기 외벽에 특수한 내산화성 고팅이나 타일을 적용해야 했지만 그 정도 무게 증가는 감소한 연료량에 비해서는 별로 티도 나지 않았다. 게다가 공기 저항이 희박해지면서 속도 역시 엄청나게 증가했다. 이런 플라즈마 제트 엔진의 가능성이 하나 하나 밝혀지자 더욱 기꺼워 한 것은 NASA 였는데 열권 중간쯤(고도320km에서 380km 사이)에 있는 기존의 국제 우주 정거장에 보급이 매우 용이 했던 것이다. 거대한 부피와 무게로 인해 외기권 밖에 설치되고 있는 우주 도시와는 달리 국제 우주 정거장은 상당히 낮은 고도에 있었기 때문에 (심지어 인공위성 보다도) 우주 도시가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도 있었다. 예를 들어 우주 도시로 올라가는 중간역 역할을 할 수도 있었다. 소규모라도 국제 우주 정거장에 매스 드라이버 따위를 설치해 추력을 지원한다면 지상에서 매스 드라이버로 쏘아 올릴 필요 없이 일반 항공기로 열권으로(국제 우주 정거장으로) 갔다가 다시 외기권을 벗어나 우주 도시로 갈 수도 있었다. 이는 매스 드라이버가 없어도 우주에 진출할 수 있는 가장 가능성 높은 방법 중의 하나이며 유럽에서는 아예 따로 우주 정거장을 만들어 우주 정거장에서 우주 도시를 오가는 대중 교통을 계획 중이었다. 그렇게 되면 우주 정거장의 부피가 커지고 공기 마찰도 커져서 더 큰 추력을 지속적으로 제공해야 하지만 무한한 에너지원인 태양과 태양광 전지, 그리고 EM 드라이버가 있으니 열권의 마찰을 무시하며 지구를 돌 수 있었다. (심지어 인공위성보다 저고도로) 가족들은 식사를 마치고 즐거운 한때를 보낸 다음 다시 노부부를 공항까지 배웅했다. 강현은 둘에게 선물로 로봇견을 주었는데 만일의 상황을 주변에 알리기 위해서였다. 둘은 사위의 마음 씀씀이를 거부하지 않았다. 안드로이드는 일반인이 구입하기에 사치품이었지만 로봇견은 그렇게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사실은 펜타곤의 기술이 들어간 비매품이다.) = = = = = [드디어 출발이다!]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잠잠해진 이슈가 다시 한 번 끓어올랐다. 우주 도시 아폴로티움이 완공되었다. 물론 내부에 사람이 살 수 있을 정도로 환경이 조성된 것은 아니지만 그건 이제부터 올라가는 물자와 인력이 해결되어야 할 문제였다. 팬타봇과 트리플론은 무중력 하에서 제대로 기능하는 것들이기 때문에 미약하나마 인공 중력을 적용하기 시작한 우주 도시 내부에서 원활하게 일하기에는 무리였다. 178화 그래서 따로 우주 도시를 위한 수리 관리용 로봇을 만들었는데 이름은 스파이더봇이었다. 총 8개의 팔다리에 강력한 전자석이 부착된 스파이더봇은 우주 도시 겉에 달라붙어 결함이나 흠집 따위를 확인할 수 있도록 카메라와 초음파검사장치와 비상시 용접 및 절단을 할 수 있도록 전기 용접 및 절단 장비와 고용량의 배터리가 내장되어 있었다. 거기에 9.8m/s^2의 지구 중력을 견딜 수 있도록 펜타봇은 상대도 되지 않을 튼튼한 팔다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펜타봇처럼 신축형 팔다리가 아니라 고성능 모터와 기어가 관절부위에 자리한 다각 다족형 로봇이었다. 물론 우주 도시 외벽 뿐만 아니라 안쪽에서도 활동할 수 있는 범용성을 갖추었고 튼튼하고 강력하게 만들다 보니 성인 남성 둘 정도의 크기를 가지게 되었다. (몸통만 성인남성 부피다.) 그래서 이 큰 스파이더봇을 어떻게 우주 도시에 공급하냐가 문제였는데 이 정도로 복잡한 일렉트로 메카닉스가 장비된 물품을 카낙에서 제작하기는 아직 무리라 지구에서 만들어 올리는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완성품을 올리는 건 무리였다. 상용화가 된 드래곤 V3라고 해도 한 번에 5대 이상을 실을 수는 없었다. 게다가 그건 사람을 올리는 것 만으로 거의 모든 가용자원을 동원해야 했다. 즉, 분해해서 기존에 펜타봇들을 올렸던 방식으로 우주 도시에 올리는 방법이 가장 무난했다. 그래서 한국 제현 그룹에 고용된 우주 인부들이 우주에 가서 가장 먼저 할 일 중 하나가 바로 스파이더 봇을 조립하는 일이 되었다. 이들은 일단 드래곤 V3가 있는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물론 한 번에 일 만 명이나 되는 인원을 다 보낼 수가 없었기 때문에 200명 단위로 보냈다. 드래곤 V3의 수용 인원이 10명 정도고 하루에 5번씩 쏘아 올릴 계획이라(아무래도 사람의 목숨이 달려있다 보니 쏠 때마다 비파괴 검사를 포함한 정밀 점검이 이루어 진다.) 하루에 올라가는 인원은 약 50명 정도. 일 만 명을 다 쏘아 올리려면 200일, 미국 측 인원을 고려하면 일년이 훌쩍 넘어간다. 하지만 일 만 명이 언제나 우주 도시에 있을 수는 없기에 교대 형식으로 운용하면 별다른 문제가 될 일도 없다. 다만 그들이 올라가서 생활하기 위한 물자를 또 올려 보내려면 다른 매스 드라이버가 풀 가동을 해야 할 지 모른다. 유럽에 이어 NASA가 국제 우주 정거장의 가능성을 재탐색하는 이유였다. 일차로 200명이나 되는 우주 인부들이 미국으로 향하는 것이 한국 사회에 파장을 일으킨 것은 바로 이들의 신분 때문이었다. 미국에서는 이들에게 취업비자를 부여했다. 취업비자를 가지면 취업 이민을 신청해서 미 영주권을 획득할 수도 있다. 물론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취업 이민에 대한 순위가 있는데 학사 이상의 학위를 가진 사람이 관련 업무로 적어도 5년의 경력을 쌓지 않으면 3순위가 된다. 승인이 될 때까지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알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전기전자 공학과 학사 학위를 가진 사람들 중 스파이더봇 조립 업무를 맡은 사람의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관련 업무에 대한 경력으로 인정되기 때문에 차후 2순위로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2순위도 힘들기는 하지만 3순위와의 격차는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의 학과에 걸맞는 보직을 잡으려고 갖은 애를 썼다. 물론 이공계열이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특히 건설 쪽은 보직이 남아 돌 정도였다. 반면에 문과쪽은 어느 보직을 잡아도 학위에 맞는 경력이 보장이 안 되었다. 그래도 미 영주권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한 이들은 다시 수능을 쳐서 지방 대학의 공과대로 다시 들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교대로 우주를 들락거리면서 야간 대학이라도 나와 학위를 따자는 생각이었고 이런 수요에 맞추어 발 빠르게 맞춤형 커리큘럼을 내세운 대학도 있었다. 우후 죽순으로 생겨난 ‘우주 건축학과’는 바로 그 때문이었다. 미 영주권! 이 얼마나 혹하는 이야기인가? 특히 필리핀 같은 곳에서 셋업 범죄를 당한 사람을 지인으로 둔 사람에게 국민에 대한 보호가 철저한 미국의 시민이 된다는 건 귀가 솔깃한 이야기였다. (영주권과 시민권은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영주권이 있다면 시민권을 따는 건 엄청나게 쉽다.) 대한민국 영사관이 대한민국 국민의 안전과 권리를 지키는데 관심이 없다는 건 필리핀 공무원도 아는 이야기다. 부패지수 높은 필리핀에서 돈 많은 한국인의 돈을 갈취하기 위해서 경찰까지 셋업 범죄에 가세한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비단 그런 사람뿐만이 아니다. 세계 패권을 짊어진 국가의 국민이 되는 것에 환상을 가진 사람도 적잖았다. 한국에서 사대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는 적지 않았다. [무려 1만 명이나 되는 젊은이들이 미국 영주권을 획득한다?] 이슈를 찾아나서는 기자들이 자극적인 문구를 사용할 만했다. 그러자마자 한국 제현 그룹에 우주 인부 모집 계획을 문의하는 전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한국 제현 그룹은 더 이상 공개적인 모집은 없다고 밝혔다. 어? 그럼 비공개적인 모집을 한다는 말인가? 의문을 가진 사람들은 인터넷에 올라온 몇몇 글에 의해서 우주 인부의 모집을 스카우트식으로 바꾸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군 비리를 고발한 예비역 소령을 남편으로 둔 주부입니다. 얼마전 제현 그룹에서 제 남편을 데리러 왔어요. 자기네 회사에 꼭 필요한 양심있는 사람이라고요. 하지만 남편은 한국을 버릴 수 없다면서 계속 군 비리를 사회에 알리는 사회 활동을 계속하겠다고 해요. 남편의 뜻과 마음은 심정적으로는 이해하지만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는 제현 그룹의 제안을 따르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남편의 마음을 돌릴 좋은 방법은 없을까요?] 한국 사회에서 양심적이며 그 양심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만 골라서 데리고 가겠다는 제현 그룹의 발상에 식자들은 소름이 끼쳤다. 세계적인, 아니 이제는 우주적인 강대국이 되어 향후 최소 몇 십년간 패권을 누릴 나라의 국민이 될 수 있다고 한다면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양심 운동을 하는 사람들 중에 현실적으로 떠날 수 없어서 계속 붙들고 있는 사람들은 이 유혹에 벗어날 수 있을까? 물론 좋은 조건이 생겼다고 바로 태도를 바뀌는 양심은 양심이라고 할 수 없었다. 제현 그룹도 그런 가벼운 양심따위는 별로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제현 그룹은 끈질겼다. 직접적으로 대상을 설득하지 못하면 가족을 공략했다. 정말로 신념이 강한 사람도 흔들릴 정도니 얼마나 많은 양심들이 한국 사회를 떠나겠는가? 아파트 난방비 비리를 폭로한 연예인이 제현 그룹에 스카웃 되었다는 소문이 인터넷에 무수하게 퍼졌고 당사자가 이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충격은 더욱 심화되었다. [이건 한국 사회의 위기다!] 평범한 시민들이 경각심을 느낄 정도였다.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 신뢰가 무너진 국가는 존속될 수 있는가? 양심있는 목소리가 사라진 사회는 정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가? [제현 그룹은 당장에 양심있는 인재를 빼가려는 작태를 중지해라!] 급기야는 몇몇 군중이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에 모습을 드러낸 한국 제현 그룹 대표이사 카랄니는 이렇게 일축했다. ‘그럼 당신들이 빠진 사람을 대신해서 양심적으로 행동하던가.’ 언제부터 개인의 양심이 인재의 기준이 되었는가? 언제부터 양심있는 이가 사라지는 것에 공포감을 가지게 되었는가? 카랄니는 개인이 가진 거주이전의 자유를 돼도 않는 논리로 막으려는 시위대의 작태에 어이가 없었다. 자신이 양심적으로 행동하기는 싫다. 하지만 사회의 안정과 유지, 정화를 위해서 누군가는 나서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자신이 속한 사회를 떠나는 것은 싫다. 극히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생각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제현 그룹의 스카우트는 계속되었다. 하지만 인간은 간사한 동물이다. 양심적으로 행동하면 제현 그룹이 스카우트 해줄 수도 있을 거라며 사기업은 물론이고 여기저기 공직 사회까지 내부 고발이 잇달았다. 우주 시대의 패러다임에서 잘먹고 잘 살려먼 우주 산업과 관련되어야 한다는 예리한 감만큼은 인정할 만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양심의 가책 때문에 비리에 관여하지는 않았지만 안정적인 생활을 위해서 양심에 눈을 돌렸던 사람들이 그동안 이만 갈며 모으기만 하고 차마 터트리지 못했던 자료를 하나하나 터뜨렸다. 이런 식으로 간사한 기회주의자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도 내부 고발을 시작했으니 한국 사회의 곪은 부분이 그대로 대중에게 드러났다. 이런 상황에서 기회주의자와 정말로 양심있는 이들을 구분하는 건 온전히 제현 그룹의 몫이었고 매일 터지는 비리와 비리를 막기 위해 언론에 대한 영향력을 총 동원하느라 진땀을 빼는 건 기득권의 몫이었다. 양심론. 제현 그룹이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기득권에게 던진 골치 아픈 문제였다. = = = = = 과거 백수였던 백영길은 심장이 두근 거렸다. [발사 시퀀스 준비. 10, 9, 8,..] 약 3년간의 전문화 교육 끝에 드디어 우주로 올라가게 되었다. 그가 맡은 업무는 간이 시설 건축이다. 토목 공학과를 나온 그에게 경력으로 인정되는 업무라 차후 미 영주권 신청에 유리할 수도 있었다. 차후 우주 시대를 이끌어갈 주역이 되는 꿈도 가졌다. 백영길은 이런 기회를 제공한 제현 그룹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며 시트에 몸을 파묻었다. 그런 심정은 같이 올라가는 팀원들도 마찬가지리라.. [발사.] “웃!” 놀랄 정도로 몸이 무거워졌다. 시트에 몸이 파고 드는 것 같았다. 수십 초 동안 그런 압력을 받은 이후 일순간 중력이 미약해졌다. 드래곤 V3에 달린 4기의 플라즈마 제트 엔진이 푸르스름한 섬광을 빛내며 하늘로 동체를 밀어올렸다. 몇 초만에 성층권, 중간권을 돌파한 드래곤 V3의 내열 타일은 붉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열권에 도착하면서 점차 느려지더니 외기권에서 플라즈마 제트 엔진의 작동이 멈췄다. 이온화 시킬 기체라고는 희박한 수소나 헬륨따위 밖에 없기 때문이다. [무중력 상태에 들어갑니다. 음료를 소지하신 분은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백영길은 몸이 둥둥 뜨는 느낌을 받았다. 이것이 바로 교육 때 들었던 무중력 공간이구나.. 물의 부력을 이용한 가상 무중력과는 감각 자체가 달랐다. 물이 귀에 들어가지 않은 이상 중력을 느끼는 감각을 무효화 시킬 순 없기 때문이다. [궤도 데이터 전송을 받습니다. EM 드라이버 작동 시작. 가속합니다.] 백영길의 몸이 다시 시트에 안착했다. 꼭 방바닥에 누워있는 것 같았다. 가속도가 등 뒤 방향으로 작용하니 당연한 일이었다. 우주 도시의 선착장에 가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추진제 없이 끊임없이 가속할 수 있는 EM 드라이버로 인해 드래곤 V3의 속도는 마하 6을 넘나들었기 때문이다. [목적지 도착까지 앞으로 5분. 승객 여러분께서는 헬멧을 착용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백영길은 안내 방송에 의자 밑에서 헬멧을 꺼내 착용했다.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하얀 색의 권총 탄환처럼 생긴 드래곤 V3가 속력을 줄이면서 하얗고 거대한 원통형 구조물의 중심으로 향했다. 몇 개의 빛이 유도등이 되어 드래곤 V3를 배정된 선착장으로 안내했다. 반짝이는 전등이 일정 간격으로 배치된 거대한 파이프 같은 선착장 내부는 미래 세기를 이끌 첨단 시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어둠침침했다. 내산화 코팅이 된 검은 광택의 벽은 내열 코팅 처리도 되어 온통 하얀색인 외관과 대조를 이루었다. 179화 진공 상태인 선착장에서는 특수한 도킹 장치가 필요했다. 벽에서 길게 통로가 나와 드래곤 V3의 외벽에 밀착했다. [도킹 시작. 밀착 완료. 기압 체크 시작. 기압 체크 완료. 상태 올 그린. 즐거운 여행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문이 열리고 좁은 복도가 드러났다. 활주로에서 여객선에 도킹하기 위한 통로와 근본적으로 동일한 형태의 통로다. 다만 밀폐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첨단 소재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 달랐다. “갑시다!” 천전호 팀장의 말에 따라 팀원들이 움직였다. 무중력에 익숙하지 않아 통로에 붙은 손잡이를 잡고 움직여야 했다. 백영길이 통로를 빠져나와 넓은 공간으로 들어왔을 때 갑자기 뒤에서 비명소리가 났다. “꺄아아! 누가 저 좀 잡아 주세요!” 뒤 돌아보니 팀원 중 한 명이 허공에 둥둥 뜬 채로 허우적 거리고 있었다. 하나 씨라고 자신과 마찬가지로 만년 백조 였다가 모집에 합격된 동기였다. 흠.. 무중력 실습할 때 주의사항 못 받았나? 백영길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그녀의 위치와 자신의 위치, 그리고 벽에 달린 손잡이의 위치를 확인했다. 그가 벽을 살짝 박찼다. 이정도면 됐겠지.. 그의 계획은 운동량 보존 법칙을 이용해 허공에서 허우적대는 하나 씨를 잡아 벽쪽으로 데리고 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처음 경험하는 무중력 상태는 그의 지례짐작으로는 상상한 계획을 실현시킬 수 없었다. “으악!” “꺄악!” 생각보다 빠른 속도에 부딪힌 두 사람은 벽에 난 손잡이를 잡지 못하고 다시 튕겨나왔다. 이제는 백영길도 허공을 둥둥 떠다니며 허우적 댔다. “사, 사람살려!” 백영길의 입에서 절로 터진 소리다. 무중력 상태란 뭔가? 그건 자유 낙하하는 감각과 동일했다. 더욱 무서운 건 어느 방향으로 떨어지는 건지 감도 잡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몸도 뱅글뱅글 눈도 뱅글뱅글 머리 속도 뱅글뱅글. “““푸하하하!””” 허우적 거리는 모양새가 하도 웃겨서 팀원들 사이에서 웃음보가 튀어나왔다. “크하하! 뭐하는 겨?” 팀장은 아니지만 팀내 최연장자인 최선도가 성큼성큼 걸어서는 허공에서 허우적 거리는 두 사람의 발목을 잡아 바닥에 끌어내렸다. “가, 감사합니다.” “감사해요, 아저씨.” “자력 부츠를 활성화 시켜야지.” 최선도가 헬멧 한 쪽 구석을 손끝으로 톡톡 두드렸다. ““아!”” 두 사람은 그제서야 헬멧 한 쪽에 나온 부츠 모양의 경고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무중력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을 위해서 도입한 자력 부츠다. 합금철 구조물이라 걷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았다. 두 사람은 손목의 패널을 조작해 자력 부츠를 활성화 시켰고 무중력의 허우적 거림에서 안심할 수 있었다. 이런 광경은 그들을 뒤 이어 도착한 팀들에게서도 종종 볼 수 있었는데 이유는 증강현실용 헬멧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둥그스름한 곡면에 디스플레이 기술을 적용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가 않았다. LED를 적용하려니 온통 검은 우주 환경에서 가시성을 제대로 확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빛을 투사하는 프로젝터 방식을 하려고 했는데 헬멧에 적용할 정도로 가볍고 작은 프로젝터 기술이 신통하지 않았다. 작은 스피커를 달아 경고음을 흘리는 차선책이 적용되었지만 처음 겪는 무중력의 신기함에 정신이 팔린 두 사람이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훈련 부족이면 훈련 부족이지만 그런 훈련 부족마저 보조하고 채워주는 것이 증강 현실 기술의 목적이니 만큼 제대로 된 증강현실용 헬멧이 나올 때까지 백영길과 하나가 겪은 촌극이 종종 일어날 것이다. 팀장인 천정호는 스크린 패드를 보면서 팀원들을 창고 구역으로 안내했다. 스크린 패드에는 각종 매뉴얼과 업무 리스트가 들어있었다. 지도도 마찬가지다. “저희가 가장 먼저 할 일은 스파이더봇을 조립하는 일입니다.” 모두들의 얼굴에는 흥분의 빛이 떠올랐다. 실습으로 배운 일을 드디어 써먹어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창고에는 상자들이 벨트에 고정되어 쌓여있었다. 천정호는 박스에 붙은 라벨과 패드에 나온 시리얼 번호를 확인하면서 필요한 부품이 든 박스를 골라냈다. “그럼 시작해 볼까요?” 팀원들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서려있었다. 스파이더봇의 조립은 익숙했다. 하지만 그들의 자신감은 시작하자마자 산산 조각 났다. “B2 형 나사 어디갔어?!” “이것 좀 잡아봐!” “나사 좀 돌릴 수 있게 제대로 좀 잡아 주세요!” “나사 어디 갔냐니깐?!” “자력 부츠에 붙어있을 수도 있으니까 발바닥부터 확인해요!” “쓴 드라이버는 제대로 제자리에 두세요!” 무중력 공간에서의 작업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부품과 도구들이 허공에 둥둥 떠다니기 일수였다. 거기에 튼튼한 스파이더봇의 팔다리를 가만히 고정시키는 것도 힘들었다. 지구에서의 감각으로 훌쩍 들어버리니 공중으로 치솟았고 그걸 내리겠다고 잡아당기면 자력 부츠의 미약한 자력 때문에 몸이 공중에 훌쩍 떠버렸다. 복잡한 혼란 속에서 팀장인 천정호는 상황을 제어하느라 진땀을 뺐다. [제어 프로그램 시작. 통신 시스템 설정 확인. 통신 상태 그린. 밸런싱 조정에 들어갑니다.] 기기깅! 기기기기.. [밸런싱 조정 완료. 스파이더봇 SDB-1432C1 스탠바이.] 팀원들은 프로그램 및 소프트 웨어 제어를 전문화한 팀원이 스파이더봇의 상태를 점검하고 나서야 한 숨 돌릴 수 있었다. 그들이 입은 우주복 안은 이미 땀으로 후끈후끈 해져 있었다. 철컥 철컥. 스파이더봇이 제대로 움직이기 시작하자 팀원들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단 뒤에 올 사람들을 위해서 간이 시설을 설치해야 했다. 스파이더봇은 지구 중력 하에서 약 200kg의 중량을 움직일 수 있다. 무중력 하에서는 더 많은 짐을 옮길 수 있지만 안전하게 실을 수 있는 부피 역시 한정되어 있었다. “자자, 그럼 자재를 옮기고 내려가 봅시다.” 천정호의 재촉에 팀원들은 각자 박스를 들고 도시 엘리베이터 구역으로 향했다. 스파이더봇에 실린 상자는 밸트로 고정되었다. 팀원들이 앞장서서 창고를 나가자 천정호는 스크린 패드를 조작했다. 스파이더봇이 천정호의 뒤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도시 엘리베이터는 도넛형이다. 중앙으로 CNT 케이블이 지나기 때문이다. 팀원들은 상자를 바닥에 쌓는 것도 부족해 벽에 밸트로 고정했다. 자신들도 좌석에 앉아 밸트로 몸을 고정했다. 메뉴얼에 나와있는 안전 준수 항목이다. 이런 안전 준수 항목은 도시 엘리베이터가 오르내린다는 점 때문이다. 이게 무슨 이야기인고 하니 원운동을 하는 원통은 중앙과 바깥쪽에서 선속도 차이가 난다. 각속도는 모든 지점에서 일정한데 실제로 물체에 적용되는 선속도는 중심에서 0가 되고 중심에서 멀어질 수록 비례해서 커진다. 그래서 도시 엘리베이터가 오르내리며 변하는 선속도로 인해 충격량을 받게 되는데 충격량은 충격력, 즉 힘을 받게 된다. 엘리베이터 내부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팀원들은 도시 엘리베이터가 내려가면서 몸이 옆으로 당겨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원심력은 중심에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작용하지만 선속도는 중심과 직각을 이루기 때문이다. “우와!” 바닥에 엘리베이터가 내려섰다. 도시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팀원들의 입에서 감탄사가 나왔다. 사방은 어두웠다. 단지 바둑판처럼 배열된 LED 조명이 밤하늘의 별처럼 빛났다. 백영길은 하늘 쪽을 올려다보고는 감탄한 듯이 중얼거렸다. “저기도 땅이란 말이지?” 우주 도시에 하늘은 없다. 아니 하늘을 발아래 두고 있는 것이다. 팀원들이 감탄하는 동안 팀장인 천정호는 최선도와 함께 임시 거주지를 지을 공간을 물색했다. 아니 물색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그저 도시 엘리베이터에 가까우면서 운행에 방해되지 않는 장소면 족했다. 그가 일행을 불렀다. “여기다가 숙소를 지읍시다!” 일행은 상자를 열어 조립형 패널을 꺼내어 기숙사를 짓기 시작했다. 물론 여성용 남성용 구획으로 나누었다. 설계도면은 스크린 패드에 저장되어 있고 교육도 받았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다. “앗! 좀 무거워 진 것 같은데요?” 상자를 나르던 백영길이 입을 열었다. 최선도가 말을 받았다. “중력이 달 정도 된대. 나중에는 지구 중력에 맞추겠지만 그전까지는 원활한 작업을 위해서 적당히 중력을 낮춘다더군.” “어떻게 그렇게 잘 아세요?” “교육 시간에 잤냐?” 아니 그게 아니라 머리에 새치가 돋아나기 시작한 분이 그렇게 기억력이 좋으니 신기해서요. 백영길은 입을 열지 않았다. 만약 그랬다가는 언제나 그랬듯 꿀밤이 날아오리라.. 천정호의 팀원들이 한 창 기숙사를 짓고 있을 때 다음 인원들이 도착했다. 그들 역시 스파이더봇을 대동하고 왔는데 도착하자마자 천정호 팀을 도와 기숙사를 짓기 시작했다. 침대가 설치되고 대충 잠잘 곳이 마련되자마자 실랑이가 벌어졌다. “욕실부터 설치해요!” “아니죠! 화장실부터 설치해야죠!” “지금 땀에 흠뻑 젖어서 불쾌하단 말이에요!” “똥오줌 안 싸고 살겁니까?” 우주 도시 건설에서 강현이 신경을 쓴 것은 바로 쓰레기 처리다. 특히 공원이 조성되는 이유는 인분을 거름으로 이용해 소비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도시형 농업을 도입해 늘어나는 인분을 소비할 계획도 세워 놨다. 분리수거는 기본으로 금속과 고분자로 나뉘도록 되어 있었는데 고분자는 화학 공정으로 다시 재 사용되고 금속 역시 마찬가지다. 불리수거가 어려운 폐기물들은 덩어리로 만들어 카낙에게 보내 플라즈마 제련 장치로 원소 단위로 분류할 생각이라 결과적으로 재활용 되지 않는 폐기물은 0이다. “여성분들, 욕실 먼저 지으려면 그러세요. 어차피 다 지어야 하니까요. 인원을 나누죠.” “어.. 그런데 욕실 짓다가 마려우면 남자 구역 화장실 써도되요.” “물론이죠. 대신 남자도 여자 구역 욕실을 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공평하죠.” 각 팀의 팀장이 상황을 정리했다. 그리고 빠르게 욕실과 화장실이 설치되기 시작했다. 화장실은 좌변기만 있었다. 기숙사라고 해도 두 사람 당 하나의 변기가 할당되도록 변기의 수가 많았다. 왜냐면 아직 분뇨처리 시스템이 운영되지 않았기 때문인데 그 때문에 변기는 수세식이 아니라 발효식 변기였다. 변기 밑에 깔린 발효토가 인분을 바로바로 발효시켜 거름으로 만들고 악취를 급감시키는 것이다. 물론 사용할 때마다 양이 많아지고 악취도 쌓이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따로 거름통에 담고 발효토를 다시 깔아했다. 그리고 모아진 거름은 차후 공원을 조성할 때 사용될 예정이다. 욕실의 경우에는 문제가 달랐다. 정화시설이 딱히 없기 때문에 간이 정화조를 만들어야 했는데 아무래도 소형화 시키려다가 보니까 첨단기술이 많이 들어갔다. 삼투압 필터링은 물론 세라믹 필터에 증류법, 생화학 분해조까지 소형화 기술이 적용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걸러진 물은 결국 증류수와 다름이 없기 때문에 맛이 지독히 없고 많이 마시면 탈이 난다. 따로 세라믹 필터를 통해 자연과 비슷한 미네랄을 첨가해야 마음껏 마실 수 있는 물이 된다. 팀원들은 아웅다웅 하면서도 2년 넘게 보조를 맞춰왔던 경험을 살려 마침내 1차 인원이 거주할 수 있는 임시 시설을 완공했다. 완공하고 나서는 기념을 위해서 맥주 파티가 열렸다. “그럼! 인류의 우주 진출을 기념하며! 건배!” “건배!” 180화 녹지조성, 통신 시설보강, 전기 시설 보강, 광합성 칩을 이용한 임시 산소 생성 시설, 환기 시설 등 많은 일들이 남아있었다. 그야말로 도시를 하나 새로 짓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우주 인부들의 마음에는 걱정보다는 희망이 가득차 있었다. 비록 지금 지은 건물은 간이 건물에 시설도 형편없지만 그래도 비전이 있었다. 차후 첨단 우주 도시에서 즐겁게 사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면 우주 도시는 하나만 지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 = = = [13차 인원, 안전하게 도착했습니다.] “진행율은?” [전체 계획 중 0.23% 완료입니다.] “생존 시스템 구성 중 인가?” 전기, 산소, 보급. 우주 도시에서 일하는 인부들을 위해서 최우선적으로 선결되어야할 과제였다. 펜타봇만으로 정교한 전력 시스템의 구성은 어려웠다. 일단 케이블 연결만으로도 서너기가 달라붙어야 했다. 우주 도시 내부에 바둑판 형식으로 LED 조명을 달기 위해 일직선으로 케이블을 연결하는 것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도시 규모를 보았을 때 로봇들이 작업한 전력 시스템은 불충분했다. 그래서 지금 많은 인부들이 여기에 매달리고 있었다. 산소의 경우에는 기술적으로는 큰 문제가 없었다. 강현이 일찍이 개발하고 NASA에 라이센스를 제공한 광합성 칩을 이용하면 이산화탄소와 산소문제는 얼마든지 해결이 가능했다. 다만 전력과 연동되기 때문에 전력 시스템의 보강에 수반되어 진행되는 수 밖에 없었다. 보급의 경우에는 그리 큰 문제가 없었다. 올라간 인원의 수가 그리 많지 않고 5천명이 상주하더라도 기존의 매스 드라이버로 충분히 보급이 가능했다. 게다가 NASA에서 개발 중인 우주 정거장 재활용 계획이 시작되면 시간은 들겠지만 더 싸고 대량으로 물자를 보급할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은 기본적인 의식주를 만족할 편의시설이 같이 지어지고 있었다. “일단 주택이 충분히 완공되면 소방 시스템이나 조명 시스템, 공원을 다시 한 번 손봐야 할 것 같아.” 사람이 살기 시작했으니 각종 문제와 건의 사항들이 올라올 것이다. 그것들은 행정적으로 해결할 수도 있겠지만 기술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문제도 있었다. 그 모든 문제를 해결하면서 자급자족이 가능해지려면 일단 물 문제부터 해결해야 했다. 획기적인 정수 시스템은 몇 십만의 인구를 족히 수용할 수 있는 도시 규모로 볼 때 반드시 필요했다. “숲을 조성할 수 있다면 좋겠는데 말이야...” 숲 뿐일까? 정수 능력은 숲보다는 늪이 더 좋다. 하지만 늪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기술적 난제들이 너무 많았다. 일단 물이 새지 않게 고분자 코팅을 하고 방벽을 세우고 충분한 햇볕과 함께 수로 시스템을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늪이 조성될 경우 늘어나는 대기중 수분을 조절할 방법 역시 찾아야 했다. 전기 시스템에 수분이 맺히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물론 모든 전선을 케이블 헤드로 연결하도록 되어 있어 사고가 생길 확률은 낮았지만 그럴 수록 한 번 사고가 나면 대형 사고가 난다. “생태학자의 도움을 받아야겠어.” [NASA가 기존에 진행하고 있던 바이오 스피어 프로젝트가 책임자라면 적당할 것입니다.] 미국 애리조나 주에서는 이미 바이오 스피어 2를 진행했었고 실패로 끝냈다. 실패의 원인은 산소부족. 토양의 미생물이 소비하는 산소를 식물들의 산소 생성 능력이 따라 잡지 못한 것이 이유였다. 구조적 결함으로 충분한 광량을 제공하지 못한 탓도 있었다. 강현은 이 문제는 일단은 기술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보았다. 공원은 일단 우주에 거주하는 이들을 위한 복지적인 측면이 더 강했다. 산소는 광합성 칩으로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었다. 여기에 더해 공원의 자연 생태계를 이용한 정수 시설을 만든다면 정수 비용이 무척 절감될 것이다. 물론 적절한 식생의 조성이 필요했고 안타깝게도 강현은 이 분야쪽으로는 전문성이 떨어졌다. 그래서 초청된 NASA의 우주 생태계 조성 프로젝트의 책임자인 메니쉬는 난색을 표했다. “정수 시스템은 정말로 어려운 일입니다. 도시 급 규모에서 배출되는 폐수는 상상을 초월해요. 어마어마한 비용과 시설이 필요합니다. 유지비도 장난이 아니구요.” “저도 압니다. 하지만 하수 시설이 없다면 어떨까요?” “하수 시설이 없어요? 그게 말이 됩니까?” “정확히는 공공적인 하수 시설이 없다는 거죠. 주택은 물을 구입하고 폐수를 자체적으로 정화하거나 비용을 지불하고 폐수를 처리 시설로 보낼 수 있습니다.” “흠..” 강현의 말은 메니쉬의 생각을 깊게 만들었다. 강현의 방법은 기술적인 방법이라고 하기 보다는 인간의 이기적인 특성을 이용한 방법이다. 각자가 물을 사서 쓰고 폐수를 비용을 지불해 폐기하는 제도를 도입하면 폐수의 배출이 급감할 것이다. 게다가 땅도 아니고 하수구도 없는 우주 도시다. 폐수를 몰래 버리고 싶어도 버릴 수 있는 곳이 마땅찮다.비용만 합리적이라면 폐수의 범람은 없을 것이다. 강현의 말이 이어졌다. “뭐, 획기적인 기술이 나오기 전까지의 임시 방편에 불과하죠. 폐수를 0으로 만들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된다면 폐수 문제는 별로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문제가 되겠죠.” 기술적 난제를 행정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는 건 역시 취향에 맞지 않다. 그러나 인간의 기술적 정수 능력이 자연의 수용력을 따라잡지 못하는 한 우주 도시의 빠른 정상화와 존속을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그럼 지금 짓는 건물들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하수구가 없는데요.” “하수 시스템은 안 만든다니까요. 무게를 골고루 분산할 수록 우주 도시의 전체적인 밸런스도 맞고 내구성도 늘어나요. 기반 구조물 수리는 정말 만만찮은 비용과 귀찮음이 들어가거든요.” 강현은 주거 지역에는 거대 시설을 최대한 만들지 않을 생각이었다. 한 곳이 무거워져서 질량 밸런스가 깨지면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부담이 어딘가에 반드시 생기기 마련이다. 부담은 곧 스트레스(Stress)이고, 스트레스는 곧 힘(Force), 힘은 곧 부하(Load)이다. “그런 문제가 있군요.” “물리학에도 대칭성이 중요하듯이 우주 도시에도 대칭성이 중요해요. 한 군데 거대 시설을 지으면 반대 쪽에도 거대 시설물이 있어야 하는 겁니다.” “그럼 백화점이나 상업 지역도 규제하실 겁니까?” “글쎄요. 시설의 질량으로 따질 것이기 때문에 적정 질량만 갖춘다면야 별로 문제는 없겠죠. 하지만 공업시설은 그런 질량 제한을 맞추기가 정말 까다로울걸요?” “시설 경량화 기술에 관련된 회사들의 주가 올라가는 소리가 들리는군요.” “아. 저는 미리 투자해 놨습니다.” “저도 빨리 투자해야 겠군요.” 역시 시대를 주도하는 사람은 투자가 쉽다. 어느 것이 중요하게 될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메니쉬는 강현과의 대화에서 발견한 생각지도 못한 보너스에 럭키!를 외치며 구체적인 기술 토론에 들어갔다. 강현이 생각하는 정수 시스템의 구상은 크게 이원화 되어 있다. 가정에서 완벽한 폐수 처리를 할 수 있는 기술이 탄생하기 전까지는 주택 차원과 공공적인 차원에서 각각 폐수 처리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가정용 폐수에서 가장 많은 오염물은 무엇인가? 바로 유기물이다. 몸의 때, 머리카락, 유기 화학 기술로 합성된 물질들. 이것들을 처리하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은 바로 미생물을 이용한 발효법이다. 미생물들이 유기물을 먹으며 제거하는 것이다. 일차적으로 가정에서 먹을 수 있을 정도로 필터하고 남은 농도 높은 폐수를 거대한 정수 시설에서 정수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수 시설이 커지면 반대쪽에도 비슷한 질량을 가진 대형 시설이 필요했다. 하지만 대량의 물을 처리하는 공장과 비슷한 비중을 가질 수 있는 업종의 시설은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강현은 전체적으로 대량으로 조성될 공원을 생각했다. 하나 하나는 정수하는 데 작을진 몰라도 모두 합치면 우주 도시의 전체 면적 중 약 20%를 차지할 녹지 생태계를 이용하면 어떨까? 모든 늪지를 파이프를 이용해 정수 시설과 연결시키는 것이다. 늪지 자체의 정화능력을 총 동원하면 정수 시설의 크기가 줄어도 되지 않을까? “공원에 조성할 늪을 이용해서 물을 정화한다고요?” 강현의 말에 메니쉬가 고개를 갸웃했다. “흠.. 복잡한가요?” “글쎄요. 박사님께서 지금까지 들려주신 계획과 뭔가 상충된다는 느낌이 들어서요.” “어디가요?” “지금까지 들려주신 이야기는 전부 방향이 소형화 기술을 이용해 주택단위로 처리하는 방법으로 가고 있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갑자기 대형 시설 이야기가 나오니까 좀 위화감이 드는군요.” “아!” 강현은 감탄했다. 그리고는 자신이 고정 관념에 빠졌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감사합니다!” 그는 메니쉬의 손을 잡고 손을 힘차게 흔들었다. 그리고는 서재로 들어가 버렸다. “응?” 덩그란히 남겨진 메니쉬가 어안이 벙벙할 때 샐리가 아이들을 데리고 응접실로 들어왔다. “저이가 또 시작이군요. 죄송합니다.” “아니 저기.. 그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좋은 생각이 났다는 거죠. 저렇게 되면 제대로 서재 밖으로 나오지도 않아요.” 준이 문을 두드리며 큰 목소리로 아빠아빠하고 불러야 나온다. “어.. 그러면..” “그만 돌아가 보셔야겠어요.” “그렇군요.” 메니쉬는 고개를 끄덕였다. 샐리의 옆에서 준이 손을 흔들었다. “아저씨. 빠빠이.” = = = = = “너무 생태계에 집착했었어!” 강현은 자신이 범한 오류를 인지했다. 우주 도시는 지구가 아니다. 그런데 지구의 생태계를 완벽하게 구현하려고 했으니 마치 난장이가 거인의 옷을 입으려고 한 것처럼 뭔가가 맞지 않은 것이다. 아마 대형인 우주 도시의 전체적인 밸런스에 신경 쓰다보니 어느새 규모가 큰 것에 집착한 것 같았다. 기술의 지향점은 어디인가? 그것은 편리성이다. 산업혁명 시절에 편리성은 인간에게서 힘든 노동을 덜어내는 동력 기관의 발전으로 이루어졌지만 현대의 정보화 시대에 편리성은 개념이 바뀌었다. 바로 이동성과 즉각성이다. 그리고 그것은 집적화와 소형화로 구현되었다. 스마트폰, 포터블 태양 충전 장치는 가장 대표적인 물품이었다. 스마트폰으로 일어난 변화는 누구나 인정하는것이었고 포터블 태양 충전 장치는 그것이 낮이 아니라 밤에도 충전되었다면 인간의 문명은 진작에 혁명을 맞았을 개념인 것이다. 그러니까 그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정수 시스템을 대형화하는 것이 아니라 주택 단위로 구현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었다. 그것을 억지로 규모를 키울려고 하는 것은 쓸데없는 오만이었다. 각 가정에서 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그것을 굳이 공공의 영역으로 끌어올 필요는 없지 않은가? 인간이 빗물만으로 생존하고 생활할 수 있었다면 강이란 거대한 수자원 근방에서 문명이 태동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관점을 바꾸니 늪지를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정수 시스템의 수많은 단점이 눈에 보였다. 일단은 관리 보수의 문제다. 파이프로 연결된 정수 시스템이 고장나면 정상화에 많은 시간이 들 것이다. 두번째는 미생물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물론 유기물을 정화하는 데에는 미생물처럼 좋은 방법은 없다. 단, 지구에서라는 단서가 붙는다. 지구보다 물이 부족할 게 뻔한 우주 도시에서는 물 소비 속도에 걸맞는 빠른 정수 역량이 필요했다. 거기에 미생물은 맞지 않는 방법이다. ============================ 작품 후기 ============================ 181화 더 큰 문제는 산소가 소비되고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는 것이다. 화학적으로 미생물이 유기물을 먹어치우는 건 물속의 유기물을 태워 없애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유기물을 산화시켜 물과 이산화탄소로 만든다? 즉 대량의 산소가 소비된다는 뜻이다. 우주 도시 내의 전체적인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공기 조성을 조정하는 건 쉽지 않은 문제다. 그런데 정수 시스템으로 인해 고체 혹은 액체 상태인 유기물이 기체가 되어 산소가 대량 소비되고 이산화탄소가 대량 생성되면 문제가 심각해 질 수 있다. 일찍이 바이오 스피어 2 프로젝트도 이 때문에 실패한 것 아닌가? 우주 도시는 기술력으로 세워진 생존 공간. 생존 시스템 역시 기술력으로 보완하는 것이 적절한 방향일 수도 있다. 우주 도시 규모에 지구의 생태계와 동일한 방법을 사용하게 되면 맞지 않은 규격과 처리 시간으로 난관을 겪을 수 밖에 없다. 강현은 생각을 정리했다. 그렇다면 일단 미생물을 쓰지 않는 방법, 유기물을 기체로 만들지 않고 물에서 분리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했다. 물리적인 필터링 기술이나 증류식 방법이 가장 유력했다. 일단 생각을 정리했다. 필터링 기술은 한계가 명확했다. 필터 원리는 단순했다. 필터의 공극보다 작은 입자는 통과하지 못한다. 필터링하고자 하는 오폐수의 농도가 진할 수록 더 큰 삼투압이 생기기 때문에 더 많은 에너지가 소요되고 더 큰 압력을 가해야하기 때문에 자연히 필터의 수명과 교체 간격도 줄어든다. 그래서 필터링 기술은 대부분 큰 공극을 가진 필터부터 작은 공극을 가진 필터로 차례로 배열된다. 필터의 수명과 정수 효율을 늘리기 위해서다. 여기에 증류법을 최종적으로 도입하면 충분히 마실 수 있는 물이 된다. 아예 처음부터 증류법을 사용할 수 있지만 좋은 방법은 아니다. 농도가 높을 수록 삼투압이 증가하듯이 농도가 높을 수록 끓는점도 증가하기 때문이다. 비휘발성 입자들이 용액 표면에서 물분자가 증기가 되는 것을 방해한다. 필터 기술을 통해 농도를 낮춰야 증류법의 효율이 증가하는 것이다. 강현은 쓸만한 기술이 없을까하고 생각하다가 중동과 아프리카 해안 지역 국가에 제공한 삼투압 담수화 기술을 떠올렸다. 특별한 팹티드 결합 네트워크가 이 고분자 삼투막의 기술 핵심이었기 때문에 해수 일정 깊이 이상 집어 넣으면 물의 압력으로 자연적으로 담수가 생성되는 기술이었다. 담수가 생성되는 족족 퍼올리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농도가 높아진 해수를 바다가 수용할 수 있기 때문에 지속될 수 있는 정수 시스템이었다. 바다만큼 폐수 수용성이 없는 우주 도시에 적용할 수 있는 기술은 아니었다. 우주 도시에 필요한 필터링 기술의 조건중에 강현이 가장 탐내는 조건이 있었는데 반 영구성이 바로 그것이다. 소모되는 필터가 아니라 구조적으로 결함이 생기기 전까지는 반복해서 쓸 수 있는 필터가 이물질이 껴서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하는 필터보다 매력적인 건 당연하지 않은가? 물론 그러기 위해서 충분한 기계적 강도를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런 조건의 필터는 이미 존재했다. 세라믹 필터가 바로 그것이다. 다공성 재료를 만드는 데에는 세라믹 만큼 용이한 재료도 없다. 게다가 조성의 변화나 제조 공업에 변화를 주면 공극의 크기를 다양하게 만드는 것도 쉽다. 거기에 더해 필터링 방향의 반대로 맑은 물을 고압으로 주입하면 공극에 낀 이물질을 세척할 수도 있다. 가장 정수성이 뛰어난 활성 탄소 필터에 비하면 정수력 측면에서는 떨어지지만 반영구성이란 특성에 가장 가까운 필터였다. 다만 치명적인 약점이 있으니 깨지면 못쓰고 정수 속도가 활성 탄소 필터같은 소모성 필터나 고분자 반투막을 사용하는 것보다 느리다는 것이다. 세라믹 필터는 2차원 평면 반투막과 달리 3차원 벌크 형태를 띈다. 그 사이로 용액이 스며들어 지나가는 속도가 막 하나만 통과하는 되는 반투막보다 느릴 수 밖에 없는 건 당연했다. 또한 소모성 필터에 비해서 공극의 수도 적다. 현재의 기술로 소모성 필터만큼 작은 공극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형태를 바꾸어 볼까? 세라믹으로 얇게 반투막을 만드는 건 가능하다. 공극의 조절도 힘들지만 스퍼터링을 비롯한 박막 제조 기법들이 존재하고 있어 가능하다. 하지만 그 얇은 막이 정수시에 받는 압력을 그 딱딱한 재질로 견디는 건 어렵다. 그래서 거의 모든 반투막은 고분자로 만들어지는데 이 고분자로 만든 반투막의 약점은 재사용이 어렵고 세라믹 필터보다 내구성이 약하다는 것이다. 강현이 해수 담수화 기술을 위해서 만든 고분자 반투막도 비록 펩티드 결합 네트워크로 인해 기존 반투막보다 몇 배나 높은 내구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일정 농도 이상의 폐수를 정화시키기 위한 삼투압을 견디기는 힘들었다. 새로운 재료가 절실한 상황이었다. “일단 3D 벌크 형태는 안되.” 강현은 일단 선제 조건을 그렇게 달았다. 평면 필터와 벌크형 필터의 정수 속도 차이는 물리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그럼 평면 반투막 필터나 증류법 이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증류법은 최소 한도로만 사용해야 돼.” 가정에서 나오는 오폐수를 모두 증류법으로 정수하려고 하다가는 우주 도시 안은 찜통이 될 것이다. 외벽에는 태양열로 인한 열 스트레스를 완화하기 위한 세라믹 내열 코팅이 되어 있다. 열이 들어오지 못하는 만큼 열이 나가는 것도 힘들다. 가장 열이 많이 빠져나가는 곳은 두루마리 휴지 같은 모양의 우주 도시 중앙에 있는 구멍이다. 내산화 코팅만 되어 있는 이곳에서 열이 복사의 형태로 빠져나간다. [그럼 평면 반투막 필터 뿐이군요.] 반투막은 말 그대로 반만 투과한다는 의미다. 그리고 크게 액체형 반투막이나 고체형 반투막이 있는데 고체형 반투막이 사람들이 주로 알고 있는 폴리머나 세라믹 반투막이다. 액체형 반투막은 공업적으로 사용하는데 주로 녹은 금속의 산화나 질소 오염을 막으며 다른 불순물의 대기 확산을 위해 표면에 주로 소금 따위의 용융물을 얇게 입히는 방법 등으로 물리적 방법보다는 화학적 특성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물론 액체를 사용하기 때문에 그에 따른 한계(증발, 용해, 내구성 등)는 명확하다. 가정용으로는 절대 쓸 수 없다. 언제 액체 반투막 필터에 사용한 액체가 물에 섞일지 확신할 수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반투막만으로 사람이 마실 수 있는 정도의 물을 빠르게 정수할 수 있을까?” 강현이 반문했다. 과연 반투막 만으로 주택에서 배출하는 오폐수만큼 정수를 할 수 있을까? 그러나 그것을 해결해야 하는 것이 그의 과제다. 일단, 반투막을 사용하게 되면 삼투압을 고려해야 한다. 정수를 통해 오폐수의 농도가 높아지면 자연히 삼투압도 높아지고 역으로 가해야 하는 압력도 커진다. 그러다가 반투막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압력이 높아지면 그때부터는 재앙의 시작이다. 반투막이 찢어지고 오물이 바로 정수 탱크로 쏟아진다. 그때 샤워라도 하고 있으면 오물이 전신에 쏟아질 것이다. “흠.. 농도가 높아진 상태에서도 견딜 수 있는 반투막이라..” 삼투압은 반투막을 경계로 농도가 높은 액체가 순수한 액체를 빨아들이는 압력이다. 또한 반투막을 통해 불순물을 제외한 액체를 통과시킬 수 있는 압력의 기준선이기도 하다. 반투막으로 여과를 하기 위해서는 여과시킬 액체에 그 액체가 가지는 삼투압보다 높은 압력을 가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강현이 만든 중동의 반투막 담수화 플랜트보다 우주 도시의 가정용 반투막 필터가 만들기 더 어렵다. 점점 농도가 높아지는 만큼 가해지는 압력을 견뎌야 했기 때문이다. 강현은 반투막의 재질부터 따지기로 했다. 반투막은 주로 고분자 물질로 만든다. 사슬형태의 얽힘 구조가 반투막을 만드는데 매우 용이하기 때문이다. 얼마나 용이하냐면 가정에서도 반투막을 만들 수 있을 정도다. 폴리에틸렌 필름을 찢어지지 않게 최대한 늘리면 그것이 바로 반투막이다. 필름의 군데 군데 결정화 되어 있는 고분자가 늘어지고 당겨져 펴지며 고분자의 사슬 사이로 물분자가 통과할 수 있는 간극이 생기는 것이다. 그물눈이 큰 어망 사이로 치어나 작은 물고기가 빠져나가는 장면을 연상하면 된다. 그렇다. 반투막이란 기본적으로 분자를 거르는 분자 체인 것이다. “내구성을 증가시키려면 일단 열가소성이 되보다는 공유결합이 네트워크 구조인 열경화성 고분자를 이용하고 이걸 반투막으로 만들려면...” 폴리 에틸렌은 고분자가 사슬 구조인 열가소성 플라스틱이다. 그런 사슬형 고분자 플라스틱의 강도는 이 고분자 사이의 반데르발스힘(분자간 힘)에 의해서 결정된다. 하지만 PVC같은 열경화성 플라스틱은 공유결합이 네트워크 그물망을 이루고 있다. 열가소성 플라스틱보다 단단하고 열에 녹지 않으며 가열시 액체 상태로 변하지 않고 곧바로 불에 타는 연소 과정으로 직행하는 이유다. 강현은 자신이 개발한 중동 담수화 플랜트에 적용한 반투막을 떠올렸다. 공유결합의 네트워크 구조는 그때까지 오직 사슬형 플라스틱으로만 제조되는 폴리머 반투막 기술에 혁명을 가져왔다. 세라믹 필터보다 싸지만 폴리머 반투막보다는 더 긴 수명과 신뢰성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열경화성 플라스틱으로 반투막을 만들려면 특별한 공법이 요구된다. 열경화성 플라스틱은 경화된 그 순간의 형태를 계속 유지하기 때문에 만들 때부터 반투막으로 만들어야 했다. 강현이 이를 위해서 박막 제조 기술을 사용하게 된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여기에 사용된 것은 플레이트 위에 아주 얇게 아미노산 용액을 펴지게 하는 표면처리 기술과 아미노산 사이에 네트워크 결합이 가능하도록 한 분자 내에 카르복실기와 아민기가 두 쌍 이상 존재하는 물질을 만들 수 있는 화학 공학적 기술이었다. 물론 아즈삭의 방대한 데이터 베이스와 원자 단위의 시뮬레이션 능력이 시간을 단축시키는 데 매우 큰 역할을 했다. “흐음.. 하지만 여기서 더는 손 볼 곳이 없군..” 강현은 자신이 만든 담수화 플랜트용 반투막에 관한 자료를 다시 꺼내어 살펴보고는 감상을 내뱉었다. 그의 말대로였다. 모든 결합 중에 가장 강한 결합은 공유결합이다. 그리고 그런 공유 결합을 네트워크 형태로 적용시킨 펩티드 결합 네트워크 반투막은 내구성을 그 이상 늘리기 불가능할 정도였다. 여기서 내구성을 더 늘릴려면 무작위 거동을 하는 폴리머 분자들을 하나 하나 잡아서 마치 어망처럼 균일한 나노 그물을 만들어야만 가능하다. 그러나 역시 그런 기술은 원자를 어디에든 원하는 곳에 놓을 수 있을 정도의 기술 수준이 필요하니 지금은 도저히 불가능이다. “패러다임을 바꿔야해..” 강현은 중얼거렸다. NASA의 동료들이 칭하는 ‘접신’행위가 발동되었다. 논리적 설명이 불가능한 직감이 삼투압만으로는 안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뭐? 삼투압만으로는 안되? 외부에서 가하는 힘에 수동적으로 작동하는 반투막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아! 나트륨 펌프!” 강현이 비명처럼 외쳤다. 반투막이 능동적으로 원하는 물질을 선별해 통과시킬 수는 없을까? 가능하다. 이미 생물체가 그것을 실현시키고 있지 않은가? 182화 세포벽이 물질을 수용하는 방법은 삼투압뿐만이 아니다. 세포막으로 물질을 둘러싸 세포 안으로 빨아들이기도 한다.(식세포가 항원을 잡아먹는 작용이다.) 그러나 이 세포막의 가장 특징적인 것 중 하나는 바로 나트륨 펌프, 혹은 나트륨-칼륨 펌프라는 단백질 구조체이다. 이 나트륨-칼륨 펌프는 ATP를 분해할때 나오는 에너지를 이용하여 3개의 나트륨을 세포밖으로 2개의 칼륨을 세포안으로 이동시킨다. 세포막 전압을 발생, 유지시키며 세포의 부피가 커지는 것을 막는다. (출처 : 위키백과)이처럼 막 자체가 능동적으로 분자나 이온을 수송할 수 있다면 얼마나 용이할 것인가? 반투막이 알아서 물분자를 오폐수에서 분리해 통과시킨다면 에너지를 소비하는 만큼 훨씬 빠르게, 또한 삼투압을 적게 가하거나 오히려 가하지 않아도 물을 여과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이 물 분자를 여과시키는 반투막을 개발하는 것이 만만하지 않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자연계에 물 분자를 능동적으로 수송하는 반투막을 가진 세포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만일 있었다면 물이 모자란 황폐한 대지에서도 번영을 구가했을 것이다. 그 외의 생물체들은 많은 양분이나 원소를 능동 수송하며 에너지를 소비하면서도 물 만큼은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 물분자보다 작은 나트륨 이온을 단백질 펌프로 밖으로 내보내며 세포막 전위차를 형성하면서도 정작 그보다 큰 물 분자 만큼은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 “다세포 생물이라서 그런가?” 본체가 물을 섭취하면서 생존하며 진화해온 고등 동물의 경우 세포 단위에서 물을 확보할 필요가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쩌면 지구 어디의 메마른 땅속에 사는 단세포 단위의 생물체 중에서는 물 분자를 능동 수송할 수 있는 세포벽을 가진 생물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강현은 그런 생물을 찾아 나설 인간은 아니었다. 오히려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생각에 흥분에 몸을 떨었다. “이건 모방을 벗어나는 경지야.” 거미줄 단백질과 스피드로인 구조를 탐색해 그 강도와 탄성을 비슷한 원리로 구현하도록 모방된 인공거미줄 단백질과 비슷하지만 이번은 그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능동형 반투막을 구현하기 위한 에너지 원으로 무엇을 쓸 것인가? 나트륨-칼륨 펌프처럼 ATP를 사용해? ATP가 에너지 원으로 사용되면 차례로 인산 기가 떨어져 나가 AMP가 된다. 그럼 그 AMP는 어떻게 처리할까? 다시 미토콘드리아로 보내서 ATP로 환원시킬까? 어느 세월에? 그리고 무슨 방법으로? 그러려면 구조가 너무 복잡해지고 단가도 올라가며 수리 유지 비용이 많이든다. 그래서 강현은 이번 능동형 반투막의 구현을 관통하는 생각을 정하고 확고하게 굳혔다. ‘생체적 기능을 기계적으로 구현한다.’ 그것은 곧 나노 기술이기도 했다. 기계적으로 기능을 구현하는 것이니 ATP같은 화학적인 에너지 원은 필요 없었다. 전기를 이용한 방법이 역시나 가장 유력한 방법이었다. 그렇다면 전기를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 나트륨-칼륨 펌프의 단백질에는 ATP에서 인산을 떼어내는 효소가 붙어있다. 그래서 ATP와 잠시 결합해 인산을 단백질 구조체에 붙여 모양을 바꾼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인산이 떨어져 나가며 원래 모양으로 돌아온다. 이 과정에서 나트륨 이온과 칼륨 이온이 결합하는 자리가 세포벽 안 밖을 오가며 나트륨을 퍼내는 것이다. 이렇듯 능동 수송이란 에너지를 이용해 반투막 자체의 분자 구조가 바뀌면서 일어난다. 이를 기계적으로 구현하려면 전기장에 의해 분자 구조가 바뀌는 물질이 필요하고 이미 그런 물질은 존재한다. 피에조 일레트릭. 흔히 압전 효과라고 부르는 현상으로 결정질 물질의 이방성으로 인해 전기적 특징도 결정질 방향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원리는 간단하다. 압력이 발생하면 결정 내부의 이온이 이동하면서 분극 현상과 비슷하게 전기적인 편향이 생긴다. 이로 인해서 전기장이 형성되는 것이다. 그 반대의 현상으로 전기장을 가하면 압력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런 압전효과는 매우 널리 쓰이는데 가스 레인지나 라이터의 발화 장치는 물론 초음파 발생 장치나 스피커, 압전 센서 등 다양하게 쓰인다. 모터가 아니지만 전기를 기계적인 힘(압력)으로 바꾸는 원리는 그 쓰임새가 무궁무진하다. 강현은 압전 효과가 있으니 이를 나노 단위에서 구현하면 능동형 반투막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세라믹은 안된다. 단순히 전기에 의해 늘어났다 줄었다 하는 압전 세라믹으로 반투막을 만들면 공극의 크기에만 변화가 있을 뿐이지 나트륨-칼륨 펌프처럼 능동 수송할 수는 없었다. “결국 단백질인가?” 분자 단위의 능동 수동은 결국 나트륨-칼륨 펌프의 방식을 모방하는 수 밖에 없다. 그것은 나노 기계 장치의 시발점이라고 말할 수도 있었다. 강현은 일단 능동 수송에 관련 된 세포막 단백질에 관한 논문 자료를 모았다. 능동 수송은 크게 두 가지 원리로 이루어지는데 하나가 ATP를 이용하는 방법이었고 다른 하나는 세포막을 경계로 생기는 전기화학적인 포텐셜을 이용하는 방법이었다. 전기화학적인 포텐셜을 이용하는 건 짝수송이라고 하는데 특정 이온이나 원소의 농도 구배로 생기는 에너지를 이용해 부족한 원소를 같이 세포 내로 수송한다건가 필요없는 원소를 세포밖으로 보내는 방법이었다. 강현의 아이디어는 여기서 다시 한 번 도약했다. “어라? 잘하면 전기를 쓰지 않아도 되겠는데?” 강현은 오폐수를 정수하는 장치를 머리속으로 그려보았다. 능동형 반투막을 경계로 한 쪽은 오폐수이고 다른 한 쪽은 빈 공간이다. 이때 반투막을 경계로 생기는 물 분자의 농도 구배가 물입자의 능동 수송을 위한 충분한 구동력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열역학적인 이론에 의하면 용액의 증발이 멈추는 순간은 용액의 삼투압과 용액에 사용된 용매의 증기압이 같을 때라고 한다. 염전이 건조한 바람이 부는 바닷가에만 조성되는 이유다. 아무리 소금물이라고 해도 대기에 포함된 수분의 증기압이 포화 용해도 상태의 소금물이 가지는 증기압보다 낮으면 이 차이를 맞추기 위해서 수분이 계속 증발한다.(기체의 부분 압력은 곧 그 기체가 차지하는 비율을 뜻한다. 대기 중 증기의 부분 압력이 높다는 것은 수분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다.) 포화 용해도 상태인데도 물이 증발하니 더 이상 녹지 못한 소금은 석출된다. 이런 원리로 생각해 보자면 정수 장치의 빈 공간에 있는 수분의 증기압을 낮춘다면 능동형 반투막에게 충분한 구동력을 줄 수 있다. 그냥 삼투압을 적용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물을 여과 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열역학 공식을 이용해 자유 에너지를 계산해 본 강현은 이 방법의 단점을 금방 확인할 수 있었다. “증류법과 크게 다를 바가 없네.” 이론적으로 이 방법은 오폐수에 있는 물 분자의 화학적 포텐셜과 포화 상태에 있지 않은 기체 물 분자의 화학적 포텐셜 차이가 구동력이기 때문에 열역학적인 한계가 분명히 존재했다. 기체 상태의 물분자의 화학적 포텐셜을 충분히 낮추지 않으면(기체 중 물 분자의 양을 줄이지 않으면)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욱 치명적인 단점은 증류법보다 작동 온도가 낮고 더 빠른 속도를 자랑한데도 결국 증기가 된 물을 냉각해 응결시키는 방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빈 공간을 순수한 물 이외의 것으로 채울 수도 없었다. 순수한 물로 빈 공간을 채우면 물 분자의 화학적 포텐셜이 역으로 걸린다. 삼투압을 가해야 한다는 말이다. 강현은 일단 이 방법은 최후에 사용할 증류법으로 놔두고 다시금 전기장을 거는 방법으로 넘어갔다. 전기 에너지는 액체 상태와 기체 상태가 가지는 구동력보다 훨씬 높은 출력을 낼 수 있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더욱 빠르고 물 분자의 부분 압력을 고려할 필요성이 훨씬 적었다. 그러나 문제는 전기장의 변화에 따라 구조가 변하는 단백질을 합성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물 분자만 콕 찍어서 흡착하고 전기장에 의해서 모양이 변하는 단백질을 말이다. 그것이 끝이 아니다. 그런 단백질을 합성하는 것 만해도 머리가 아득해질 정도의 노력이 필요한데 이것을 반투막에 배열하는 것도 문제다. 단백질의 생화학적인 특성을 고려하여 제대로 작동하게 하려면 올바른 방향으로 배열해야 한다. 하지만 단백질같이 작은 입자를 어떻게 그렇게 배열한다는 말인가? 베이스가 되는 고분자 입자에 단백질을 붙여? 무리다. 단백질의 생화학적인 특성은 그 고요의 접힘 현상에 의해서 나타난다. 그런데 그걸 고분자에 화학적으로 붙여서 고정 시킨다고? 제대로 작동할 가능성은 0%에 수렴한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전기는 어떻게 가할 것인가? 디스플레이 기술처럼 반투막에 전극을 올려서? 그나마 이 부분은 여유가 좀 있는 부분이다. 전류가 아니라 전기장을 가하는 것 뿐이라면 다양한 방법으로 전기장을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끄응..” 강현은 앓는 소리를 냈다. 공상이 끝나니 구체적인 탐구 과정이 남아있었다. 할 게 많았고 잠시 여유로웠던 생활은 또 다시 안녕이었다. 그는 일단 물분자를 통과시키는 단백질을 합성해야 하니 능동 수송을 하는 단백질의 구조를 모조리 수집했다. 나트륨-칼륨 펌프, 칼슘 펌프, 수소 이온(프로톤) 펌프는 물론 ABC 수송체, ATP 합성효소, 나트륨/칼슘 교환체, Na-K-Cl 운반체 등 세포막에 붙어 원소나 양분을 능동수송하는 단백질에 대해 연구된 모든 자료를 통해 어떻게 하면 물 분자를 능동 수송하는 단백질을 만들 수 있는지 고민을 거듭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백질의 접힘 구조가 전기화학적인 변화로 어떻게 모양이 바뀌어 생화학적인 특성을 나타내는지 완전히 이해를 하는 것은 기본이었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생화학적 특성을 보이는 단백질을 합성하는 것은 고급을 넘는 초고급의 영역이었다. 사실 단백질에 물분자를 붙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단백질 자체가 가지고 있는 펩티드 결합이 수소 결합이란 강한 반데르발스 결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분자 역시 이 수소 결합을 가지고 있어 물의 끓는점이 높은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수소 결합을 이용해 물 분자를 흡착하면 안된다. 흡착해도 적당한 힘으로 흡착해야지 수소 결합같이 강한 힘으로 흡착을 하면 나중에 때어내기가 힘들다. 그렇다면 단백질은 어떻게 물속에서도 그 특유의 구조를 유지할 수 있을까? 간단하다. 역시 단백질 특유의 접힘 구조가 물이 팹티드 결합의 수소 결합과 연결되는 것을 방지한다. 단백질의 알파 나선형태가 사슬 내의 수소 결합을 이루고 이를 중심으로 밖으로 나와있는 가지들이 물 입자의 침입을 방해한다. 실제로 이 알파 나선의 단백질은 팽팽한 용수철 모양을 유지한다. 강현은 능동 수송에 관련된 단백질의 구조를 확인하면서 물 분자를 이용시키기 위해서는 기존의 단백질과 다른 형태의 단백질이 필요하다고 확신했다. 물 분자보다 작은 나트륨 이온이 이동하는데 그보다 큰 물 분자가 못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선결 조건이 두가지가 필요했다. 일단 물 분자를 이동시킬 수 있을 만큼 통로가 큰 단백질이 필요하다는 것. 두번째는 물 분자가 적절히 흡착과 분리를 할 수 있도록 단백질에 적절한 작용기가 달려있어야 했다. 아마 산소 원자가 탄소와 이중 결합을 한 케톤기라면 적절할 것 같았다. ============================ 작품 후기 ============================ 마, 많이 어, 어려우신가요? ^^;;;;;;;; 183화 그러나 그만큼 큰 단백질을 만들 수 있을까? 물론 가능하다. 헤모글로빈이라는 훌륭한 예가 있다. 탄소 3000여개, 수소 4000여개, 산소 800여개, 질소 700여개에 황 원자와 철 이온 몇 개로 구성된 엄청난 분자량의 거대 단백질이다. 산소 원자를 운반하니 만큼 거기에 수소 두 개가 붙은 물 분자도 통과시킬 수 있는 단백질의 합성은 불가능하지 만은 않았다. 다만 노력과 시간이 걸릴 뿐이었다. 강현은 연구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 = = = = “이 새끼가!” 최 이사는 도저히 믿을 놈이 없어서 분통이 터졌다. 말 잘듣는 놈들은 어디로 사라지고 주위에는 온통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는 하이에나만 존재했다. 최근에 일어나는 수상한 일들에 경계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뒤통수 맞을 뻔 했다. 김 부장이라는 새끼가 회사의 기술을 빼내서 새롭게 회사를 차릴 계획을 꾸미고 있었던 것이다. 흔히들 그러지 않은가? 자신이 관련 기술에 대해서 잘 알고 있고 그 기술로 만드는 생산품을 구매하는 바이어들을 잘 알고 있다면 따로 회사를 차려서 거래선을 빼앗아 가버리는 일들 말이다. 그러나 그런 일들은 주로 중소 기업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샘성 같이 거대한 대기업에서 그런 일이 벌어질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런데 완제품을 만들어 유통까지 시키는 샘성에서 고작 기술 하나 빼서 회사를 만든다고 타격이 올까? 첨단 제품은 여러 기술을 집약 시켜야 만들 수 있는 것인데 말이다. “조 차장, 아니 조 부장. 잘했네.” “감사합니다.” “조웅 전자 사장이 희사할 것일세.” 김 부장의 계획을 꼰질러 부장 자리를 낚아챈 조 차장, 아니 이제는 조 부장이 된 남자는 고개를 숙였다. 역시나 자신의 예리한 감은 맞았다. 이렇게나 빨리 승진 기회가 오다니 말이다. 조웅 전자의 사장은 눈앞의 최 이사와 사돈 사이였다. 그리고 김 부장이 세우려고 했던 회사는 바로 그 조웅 전자의 거래선을 빼앗아 버릴 수 있을 정도의 회사였다. 그러나 그런 회사가 부하였던 사람의 꼰지름에 시작도 못하고 좌초했다. 김 부장은 사실 억울했다. 조웅 전자는 그저 몇 년 전에 샘성에 있던 임원이 나가서 만든 기업에 불과했다. 그들의 조악한 기술로 만든 부품은 샘성의 이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김 부장이 자신이 몇 년간 실무를 맡으며 얻은 아이디어라면 조웅 전자보다 더 좋은 부품은 비슷한 가격에 납품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그리고 그것이 샘성 전자에게는 더 좋은 일이었고 개인적인 성공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실수는 사내 정치, 임원들간의 이해 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아니 예정된 성공에 눈이 멀어 한국인의 치열할 정도의 정치적 성향을 무시했다. 사내 정치에서도 힘을 쓰려면 인맥이 필요했고 샘성에 납품하는 퍼스트 밴드 하청의 사장은 매우 좋은 인맥이었다. 더구나 그 인맥이 전 샘성 임원이어서 여전히 샘성에 인맥을 유지하고 있으니 아니 그런가? 조 부장이 인사를 하고 방을 나가자, 그에게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신뢰어린 눈빛을 보내던 최 이사의 인상이 확 찌뿌려졌다. “쓰레기 같은 새끼.” 김 부장이 지를 얼마나 챙겨줬는데 기회가 생기자 마자 이렇게 뒤통수를 때리는 조 차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 최 이사였다. 하지만 시설이 하 수상하다. 아무렇지 않게 상급자의 실수나 비리를 이용해 뒤통수 치는 새끼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얼마전 비서와 불륜관계가 드러나 사퇴한 이 이사의 경우도 믿었던 아랫놈에게 뒤통수를 맞은 것이었다. 하아.. 믿을 놈 하나 없었다. 그나마 김 부장이 가장 믿을 만 했는데 사내 정치의 실수로 나자빠 떨어졌다. 새롭게 믿을 인간을 구하기 전까지 저 조 부장 새끼를 잘 구슬려서 써먹어야 했다. “후우...” 그는 한숨을 지었다. 군사 독재와 정경 유착으로 성장한 기업에서 부조리한 일이 한 둘이겠나? 비자금 조성도 그중 하나였다.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서 차떼기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5만원권의 발행을 가장 좋아한 곳은 결국 비자금을 조성할 필요가 있는 이들이었다. 5만원권 덕분에 트럭에 실려야 할 사과박스가 승용차로도 배달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실상 이번 김 부장 같은 일도 일어나지 않아야 하는 일이었다. 아니 일어나도 이런 식으로 아랫놈에게 뒤통수를 맞으며 발각되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김 부장이 회사를 설립하고 나서야 사건이 알려져야 했다. 그렇게 되면 처리에 골치가 아프니까 이렇게 조기에 발견된 것이 다행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 사건의 이면에 자리한 변화가 최 이사는 불편했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면 폭로를 꺼리지 않는다. 다 제현 그룹 그놈들 때문이다. 우주 시대의 엘리트가 되어 보겠다고 발악하는 간사한 놈들이 여기저기서 폭로전을 벌이면서 시작된 일이다. 사회 전체가 미쳐 돌아가고 있었다. 그깟 미국 영주권이 뭐라고.. 이미 기득권 세력에 달라붙은 이들에게는 별다른 이득이 없는 유혹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그 밑의 경계선에 있는 이들이었다. 조금만 더 올라가면 될 것 같은데 TO가 나지 않았다. 과거라면 상황을 파악하고 기회가 올 때까지 얌전히 기다렸겠지만 시대의 풍토가 변했다. 대학생은 물론이고 주부와 연예인, 공무원까지 폭로를 하는 시대다. 올라갈 자리가 없다면 만들면 된다는 기회의 시대가 왔다. 실패로 인한 불안도 폭로를 통해 사회적으로 불이익을 받은 이들을 제현 그룹이 은밀하게 방문해 면접을 보고 데리고 간다는 신뢰성 있는 소문이 인터넷과 증권가 찌라시로 나돌고 있으니 많이 감소되었다. 물론 손해를 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주류 사회 진입에 대한 야망에 불타는 이들에게 그 정도 손해는 감수 해야 하는 일이었다. “흐음...” 최 이사는 이런 풍토가 다시금 잠잠해 질 때까지 몸을 사려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런 판단은 그 혼자만 내린 것이 아니었다. 폭로할 거리가 많은 사람들은 더욱 그랬다. 그들은 몸을 사리면서 자신들의 하부 인맥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자신의 이득이 곧 그들의 이득인 이들은 그다지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문제는 어쩔 수 없이 그들에게 협조하는 이들이 문제다.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상황과 적당히 타협하여 눈감고 입 다물고 사는 이들이 문제다. 최 이사의 경우에는 최 이사 라인을 제외한 이들 모두가 문제다. 다른 라인을 탄 이들의 경우에는 동류 의식 때문에 폭로할 가능성이 적었다. 서로를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그런 식의 폭로전이 자신들에게 이득이 될 리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문제는 사내 정치에 발을 디디지 않는 이들이다. 내 일만 제대로 처리하고 두루두루 원만하게 지내며 골치 아픈 사내 정치 따위에 끼어들고 싶지 않은 이들이 문제다. 이들은 당연하게도 승진같은 일에서 라인을 탄 이들에게 번번히 밀릴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더 많은 실적을 냈는데 왜 밀렸을까? 불만이 생기지 않을리가 없었다. 그런 이들이 뭔가 기회를 잡아 폭로를 시작하면 더 골치다. 분명히 합당한 이유로 승진에서 제외됬는데 자신이 납득하지 못한다고 앙심을 품는 놈들이 생길 것이다. 이 정도 되면 막장 직전이다. 회사 분위기가 엉망이 될 수도 있었다. 이런 분위기가 가속화 되면 좋을 꼴 못본다. 그러나 튀어나온 못이 망치를 맞는다고 누가 나서서 뭘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정확히는 비리나 부조리에 연관되지 않아 폭로에 맞설 수 있는 이가 나설 수 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최 이사 같은 입장에서는 그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규모가 큰 샘성이다. 분명 이사진들 중에서도 덜 더럽고 양심있는 이가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나서서 상황을 정리하게 되면 흩어진 힘이 무섭게 그런 사람을 중심으로 모일 것이다. 권력을 가진 이들이 그런 식으로 새롭게 권력이 나타나는 걸 반가워 할리 없다. 결국은 다시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는 것보다 잠시 태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 뿐이다. 최 이사 같은 이들 중에서는 과거에 저질렀던 일들을 수습하느라고 노이로제에 걸릴 정도의 사람도 있었다. 따르르릉. “여보세요. 응? 뭐라고? 빈 이 자식이 또 일을 저질렀다고?!” 아내에게서 걸려온 전화에 최 이사는 소리를 질렀다. 몸을 사려야 하는 이때에 자식 새끼가 도무지 도와 주질 않는다. 이번에는 무면허 운전이라고 한다. 저번에는 학교폭력이라 여기저기에 인맥을 써서 간신히 집행 유예로 풀려났는데 또 사고를 치다니.. 딸깍. “거기.. 아닐세.” 비서를 부르려던 최 이사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인터폰을 다시 꺼버렸다. 이번 일도 약점이 될 일이다. 함부로 남에게 부탁할 수도 없었다. 사람을 믿을 수가 없게 되니 직접 발로 뛰어야 했다. 기득권도 결국에는 인간 사회의 일부에 불과했다. = = = = = 미 영주권이 불러 일으킨 폭로의 광풍에서도 제현 그룹 만은 조용했다. 태풍의 눈이 조용하다고나 할까? 하지만 제현 그룹은 인사 문제 따위로 사내 정치가 성립될 가능성은 매우 적었다. 일단 임원진이 외국인이다. 한국 특유의 유교적 전통이나 인맥, 학연, 지연이 얽힐 일은 없었다. 거기에 인사 시스템에 인공지능이 관여하고 있었다. 인공지능은 인맥이라는 요소에 상관없이 임원진이 정한 기준으로 실적을 판별하고 여기에 인차관리처는 물론이고 해당 직원의 상급자의 평점 등을 분석하여 이상 유무를 판단한다. 그러니까 조직 구성원들은 각자 맡은 일만 열심히 하면 되도록하는 것을 목적으로 운영되었다. 이직해 온 직원들 사이에서 인공지능이 개인의 실적을 판별해서는 인화(人和)가 제대로 이루어 지지 않는다고 비난한 적이 있었다. 또한 개인의 실적을 어떻게 확인할 것인가? 특히 팀의 팀웍이나 수치화 되지 않는 무형의 공로는 상급자의 판단에 의해서 정해질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카랄니는 고작 인맥이나 서로의 감정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인화는 원하지 않았다. 그는 직원들에게 프로 정신을 요구했다. 프로 사무직이 되어 인맥이나 학연 따위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이 기여할 수 있는 만큼 기여하라고 당부했다. 인사 시스템에 인공지능이 관여하는 것은 그러기 위해 도움을 주기 위한 것 뿐이었다. 이런 식으로 폭로전의 뒤숭숭한 분위기로 위축된 각 기업에 대해서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하는 제현 그룹이 우세를 점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건 제현 그룹에게는 제 2의 도약이었다. [우주 시대를 이끕니다. 제현 그룹.] [젊은이들이여! 세계가 아닌 우주를 꿈꿔라!] 각종 광고가 이어졌다. 대기업이 대기업일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마케팅을 통한 브랜드 이미지 선점 덕분이었다. 미세한 기술력의 차이는 브랜드 파워로 뒤집어 엎을 수 있다. 어차피 첨단 기술 상품에 적용된 기술의 좋고 나쁨을 일반적인 소비자가 분별하는 건 어렵고 귀찮은 일이다. 아무튼 대한민국에서 우주 시대를 선도하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는 매우 주효했다. 반도라고는 하지만 북한 때문에 실질적으로 섬나라나 마찬가지인 남한에서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유일한 교통 수단은 바다와 하늘 뿐. 그리고 두 축 중 하나인 항공이 우주 항공으로 개념을 변화시키고 나가고 있는 상황이니 우주 진출은 물류 시장에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서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184화 그래서 샘성이나 NG, TK 등 여러 대기업에서도 부랴부랴 우주 시대라는 키워드에 자신들의 브랜드 이미지를 심기 위해 광고 공세에 나섰으나 이미 일만 여명의 우주 인부들을 고용하고 교육시켜 우주로 보내고 있는 제현 그룹에게서 우주 시대를 선도하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빼앗아 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렇다고 그들처럼 우주 인재를 양성하는 것도 무리다. 양성해서 뭘 어쩌자는 건가? 우주 인부가 필요한 우주 도시는 이제 겨우 한 곳 뿐이고 몇 년 뒤에나 유럽 연합과 동아시아 연합에서 시작한 우주 도시가 완공된다. 거기다가 동아시아 연합 우주 도시에는 한국의 지분이 없다. 중국, 러시아, 일본이 주축으로 한국의 가입을 철저하게 막았다. 군사 경제적 강대국인 그들에게 한국은 완충지대로서 어떤 힘도 없는 영원한 2류 국가로 남는 것이 이득이었다. 미국 아폴로티움에 일만의 한국인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강현의 공이었던 것이다. 대기업들은 위기감을 느꼈다. 그리고는 서둘러 서로 협조해 항공사에 지분 투자를 시작했다. 플라즈마 제트 엔진을 이용한 우주 진출 기술만이 우주 시대의 후발 주자들이 선발 주자들을 따라잡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유럽도 이미 그러고 있지 않은가? = = = = = 위이잉! 위이잉! 전통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울렸다. 백영길의 손아귀에 잡힌 전통 모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나사를 돌렸다. 이번에 그가 하고 있는 일은 다세대 주택의 건설이었다. 차후 지구에서 올라와 연구 밑 기반 시설을 운영할 미국인 화이트 칼라들을 위한 임시 주거지였다. 최대한 빠르게 많은 인구를 수용할 시설에는 이만한 것도 없었다. “이봐요! 백영길씨! 이게 맞는 거요?” “그걸 왜 저한테 물어요? 건설 현장에 빠삭하신 분이..” 백영길이 비록 건축한 전공자라고 해도 몇 년 동안 현장에서 뛰었던 노동자보다 건설 실무에 있어서 밝을 리가 없었다. “스크린 패널로 설계도를 보는 건 익숙하지 않더군요.” 하긴 몇 년 동안 현장에서 열심히 일만하다가 동료의 죽음에 노조를 만들려다가 쫓겨나버린 김학호가 언제 IT에 익숙해질 시간이 있었겠나? 그는 지구에서도 여전히 폴더폰을 사용하는 남자였다. 백영길은 스크린 패널을 조작했다. 그리고 푸른 청사진의 설계도의 일부를 드래그해서 영역을 지정하고 옆에 뜬 동그란 원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영역 지정된 설계도 부분의 3D입체 설계가 그대로 드러나며 애니메이션으로 조립 방법이 재생되었다. 건설 쪽에 문외한 사람도 시간만 있으면 조립할 수 있을 정도로 친절하고 자세했다. “아! 그렇게 보는 거였지?” 김학호는 머리를 긁적였다. 콘크리트와 철근으로 짓는 공사가 아니라서 전통적인(?) 공법에 익숙한 그는 자주 조립 순서를 까먹었다. 이렇게 친절할 정도로 조립 순서를 애니메이션 화해서 보여주는 전자 설계도가 아니었다면 꾀나 고생했을 것이다. 그는 화면을 보며 다시 조립 순서를 머리에 집어 넣고는 주위 동료들에게 지지 않게 빠르게 조립을 진행했다. 현재 지어지고 있는 다세대 주택은 고분자/세라믹 패널을 이용한 조립식 건축이었다. 핵심 지지 역할을 하는 뼈대도 철근은 최소 한도로 사용되었고 벽으로도 하중이 지탱되도록 설계되었다. 빈공간은 모두 발포 경화 플라스틱으로 꽉꽉 채웠다. 발포 경화 플라스틱은 거품의 크기가 마이크로 수준으로 매우 작아서 가볍고 단단했다. 이것이 사이에 채워진 세라믹 패널 벽은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주택은 5층까지 지을 수 있을 정도로 매우 단단했으며 방음 능력도 매우 뛰어났다. 이 제품은 사생활 공간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미국 화이트 칼라들을 위해서 Line-X라는 기업이 개발한 플라스틱으로 이 회사의 자매품 중에는 달걀에 코팅해 1층 높이에서 떨어뜨려도 달걀이 깨어지지 않는 내충격 페인트도 있었다. 일하던 중에 식사 시간이 되자 모두 조심스럽게 테이블에 앉았다. 국은 팩에 들어있었고 건더기는 없었으며 빨대로 빨아 마시게 되어 있었다. 밥도 플라스틱 팩에 들어있었고 반찬도 마찬가지였다. 팩은 요철모양의 라인이 있어 반찬을 집지 않을 때에는 입구를 닫도록 되어 있었다. 모두들 희망에 차서 일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가장 불만과 불편이 없을 수는 없었다. 그 중에 가장 큰 불만은 바로 이 식사였다. 배급식이지만 따로 돈을 지불해서 양껏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가정식이나 식당에서 한 요리만큼 맛있지는 않았다. 가끔 볶음밥이라고 잘게 썬 야채와 볶아서 냉동 건조 시킨 모양새가 나올 때에는 마치 군대에서나 먹던 전투 식량의 느낌 났다. 설거지할 필요가 없어 여성들에게는 신기하고 편리한 식사였지만 군필 남자들에게는 군대의 추억을 새록새록 피어나게 만드는 애증의 식사였다. 하지만 이런 식사 방식은 중력이 약해서 어쩔 수가 없는 것이었다. 식판에 배급을 하다가 누가 발디딤을 살짝만 강하게 해도 그릇에 든 음식물들이 하늘 높이 날아갈 것이다. 밥알이 비산하고 뜨거운 국물이 멀리 날아가 동료의 머리에 쏟아질 수도 있었다. 아니, 그전에 음식을 조리하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기름은 튀어서 멀리 멀리 날아갈 것이고 볶고 지진다고 뒤섞을 때마다 음식재료가 여기저기에 날아다닐 것이다. 저중력 상태에서의 요리를 대량으로 할 수 있는 인재는 아직 지구상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언제 중력을 올리지?” 그런 사정을 알고 있는 사람들 중 누군가가 한 숨처럼 말했다. 중력이 적어도 지구 중력의 3분의 2쯤되면 조리를 원활하게 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편의점 레토르트식 같은 식사를 안 해도 된다. “일단 기반 시설부터 다 확충하고 나야 중력을 늘린다는군.” “하긴, 저중력 때문에 중장비가 필요 없으니까..” 저중력 덕분에 기중기나 리프트 카를 써야 나를 수 있는 물자를 사람의 손으로 나를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전기가 주요 에너지 원이 되기 때문에 전선 케이블의 무게가 만만하지 않았다. 지구였다면 전선 케이블을 한 아름 어깨에 짊어지고 이동할 순 없었을 것이다. 아마 자동차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아참. 학교를 짓는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아, 그거? 미국이 아예 여기를 자신들의 영토로 확정 지을 셈인가봐. 가족 단위로 이주를 시킬 계획이라고 하더군. 아이들을 위해서 학교도 짓는 다던데?” “어... 그거 한국인도 가능한가?” 이미 두 자녀를 둔 인부가 불쑥 불었다. “아마 직원 복지처에서 관련된 지원을 해주는 걸로 아는데... 아마 학생 비자였나? 그거면 고등학생은 여기에 올 수 있을걸?” 비자가 만능은 아니다. 가장 일반적인 F-1 학생 비자를 받아도 여러 제약 조건이 있다. 가령 공립 초등학교(유치원부터 8학년까지)는 다닐 수가 없고 공립 고등학교(9학년부터 12학년까지)는 다닐 수는 있지만 고작 12개월만 다닐 수 있다. 즉, 비싼 사립 학교에 다니라는 말이다. 하긴 국비가 지원되는 공립 학교에 자국민이 아닌 외국인이 수업을 듣게 하는 건 세금을 내는 자국민에 대한 배신이다. 학교에 대해서 질문한 인부가 그 말을 듣고 실망했다. 딸 하나, 아들 하나. 둘 다 초등학생이다. “에고.. 그럼 사립 학교가 지어지지 않으면 힘들겠네..” “사립학교는 한동안 힘들걸요? 도시 자체가 엄격한 시설관리와 중량 준수를 요구하니까 무분별한 개발 건설을 막기 위해서 한동안은 강력하게 규제할걸요? 거기다 학생 수가 적을 수 밖에 없으니 사립학교가 들어오는 시기도 늦어질 거에요.” 백영길이 딴에 의견을 냈다. 모두가 납득할 정도의 논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모두의 고개가 훽 돌아갈 정도의 폭탄 발언을 한 누군가가 있었다. 최선도였다. “어? 내가 알기로는 강 박사님께서 출자한 사립학교가 준비중이라던데?’ “으잉? 아저씨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여기도 인터넷이 되거든! 하루 하루가 힘들어도 뉴스는 보고 살아라.” “헐. 대박. 아저씨 진짜 저보다 20년이나 나이 많은 거 맞아요?” 백영길은 IT 시대에 너무나 잘 적응한 중년 아저씨의 존재를 믿을 수가 없었다. “아얏!” “시답잖은 소리하지 말고 밥이나 먹어라.” 최선도는 백영길에게 꿀밤을 한 대 먹였다. 한 편, 그가 전해준 정보에 이야기를 나누던 인부들은 은근히 기대를 했다. “오! 그럼 잘하면 우리 아이도 여기로 보낼 수 있겠는데?” “등록금이 얼마냐에 따라서 다르지.” “강 박사님은 세계에서 알아주는 부자이지 않은가? 여느 사립학교처럼 이윤을 창출하려고 비싸게 받지는 않겠지.” 두런 두런 타인이 이야기를 했지만 이미 자식들이 대학생인 최선도는 관심을 껐다. 그리고 팩 안에 든 밥알을 꾹꾹 숟가락에 눌르며 퍼담았다. 밥알이 흩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널리 퍼진 요령이었다. 밥알을 입안에 넣고 우물거리며 빨대로 미소국을 빨아 밥알과 함께 섞으며 씹었다. 맛이 못 먹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최선도는 삼겹살과 소주가 무척이나 그리웠다. 가족도 그리웠다. = = = = = “그러니까 지금 우주로 올라가겠다는 거에요?” 샐리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강현은 담담하게 말했다. “그래. 내가 책임자니까 내가 만든 결과물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지.” “그런데 왜 애들까지 데리고 올라가겠다는 거에요?” 샐리는 아이들을 명문 사립 학교에 입학시킬 생각이었다. 물론 문의를 받은 명문 사립 학교는 강현의 아이들이라는 말에 복잡한 서류 절차를 논 스톱으로 통과시켰다. 샐리는 그 중에 어떤 학교에 보내면 좋을지 고르는 재미를 만끽 중이었는데 별안간 남편이 초를 쳤다. “거기가 안전하니까.” “....” 샐리는 아무 말도 못했다. 강현은 돈이 많다. 정말로 천문학적으로 많다. 그런데 영향력은 있지만 실질적인 힘은 오직 돈 뿐이다. 아이들 주변을 경호원으로 떡칠한다고 해도 그에 의해서 손해를 본 사람들, 그가 일으키는 변화를 싫어하고 거부하는 사람들은 적지 않았다. 만에 하나 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그녀는 강현이 외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가족은 약점이나 마찬가지다. 누군가로부터의 악의에서 지키고 싶은 심정은 이해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아폴로티움이죠?” “거기서 내 눈을 피해서 도망칠 수 있는 사람은 없어.” 만에 하나 아이들이 납치된다고 해도 우주 도시를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넓어서 도망갈 곳이 넘치는 지구에 비해서 우주 도시는 땅을 파고 숨을 수도 없을 정도다. 거기에 우주 도시 시설을 관리하기 위한 각종 센서와 아즈삭, 그리고 스페이스 넷의 능력이라면 사전에 아이들에게 뻗어올 손을 완벽하게 제지할 수 있었다. 거기에 테러와의 전쟁으로 발달한 미국의 출입국자 검문 시스템까지 고려하면 그의 아이들을 노릴 악의적인 범죄는 원천 차단할 수 있다. 실질적으로 아이들에게 해를 가하려면 우주 도시 자체를 날려버릴 정도가 아니면 안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은 미국과 전쟁을 하자는 말이었고 K 시리즈에 이어 안드로이드 전투 로봇견을 도입한 미국과 전쟁을 벌이고 싶은 나라는 없었다 ============================ 작품 후기 ============================ 내일은 휴재하겠습니다. 글을 좀 정리해야겠습니다. 시놉시스도 정리해야 하구요. 그럼 월요일날 뵙겠습니다. 185화 안드로이드 전투 로봇견의 스펙은 그야 말로 시가전에서 완벽했다. K 시리즈를 뛰어넘는 기동성은 계단이나 장애물도 쉽게 뛰어넘을 수 있었다. 게다가 5미터 정도되는 도약 능력은 지붕에서 지붕으로 이동하는데 막대한 이점이 있었다. 거기에 생산 단가가 낮아 대량생산할 수 있었으며 두부에 기관총이나 고폭탄, 또는 작약탄 등을 다양하게 탑재할 수 있어 탱크나 다른 모빌 아머에 대해서 완벽히 대응할 수 있었다. 거기에 열화상 감시 카메라, 소나 탐지 센서를 단 전술지원형 로봇견을 포함시키면 순식간에 육군 1개 중대에 해당하는 전력을 몇 주안에 뽑아낼 수 있었다. 고급화된 인간 병력에 비해 병력이 모자라다는 미군의 약점을 보완해 줄 수 있어 병력 운용에 골머리를 앓던 미 육군 수뇌부들의 입에서 환호성이 터지게 만든 물건이었다. EMP에게 약하다는 단점이 있지만 창과 방패의 경쟁은 하루 이틀 일어난 일이 아니다. 그에 대한 대비책은 이미 연구되고 있었다. “하아.. 하지만..” 샐리는 망설였다. 돈 많고 똑똑하고 세계적으로 막대한 영향력까지 가진 남편이다. 생활에 약간의 불만(남편이 좀 더 가정적이었다면 따위)은 있었지만 불편은 없었다. 집안일도 아즈삭이 도와줘서 일이 밀리거나 힘들지 않았다. 그런데 그렇게 편한 이곳을 버리고 새로운 곳으로 이주한다? 글쎄.. 인간은 보수적인 동물이라 현재에 만족하면 도전을 원하지 않는다. 샐리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을 위해서야.” 하지만 아이들을 위해서라는 강현의 말에 샐리는 결국 납득하고 말았다. 그녀도 강현만큼 아이들을 사랑했다. “후우.. 알았어요.” “그러니까 학교 설립에 좀 신경 좀 써줘.” 느닷없이 나온 말에 샐리의 얼굴에 당황이 서렸다. “네? 당신은 뭐하고요?” “연구가 바빠서. 아차! 시뮬레이션 데이터가 나왔겠다.” 강현은 그렇게 서둘러 서재로 들어가 버렸다. 남겨진 샐리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러니까 자기가 할 일을 나한테 떠넘긴 거지?” [네, 그렇습니다. 샐리.] 아즈삭이 확신을 사실이라 증언했다. 그녀는 피식 웃었다. 그래, 바쁘다니까 이해해야지. 어차피 집안일도 아즈삭이 도와서 여유가 넘치는 샐리였다. 실질적으로 아이들을 돌보는 것 이외에는 딱히 할 일도 없었다. 그래도 화는 좀 풀어야겠다. 밤이라든지 밤이라든지 주로 밤에 혼을 내줘야겠다. 운동부족인 강현이 남편의 시선을 잡아 두기 위해서 꾸준히 운동을 하며 자기 관리를 하는 샐리의 체력을 당해낼리 없다. 한 삼일 밤 정도 괴롭혀 주면 화가 풀릴 것 같다. 그렇게 샐리는 아폴로티움 제 1 호 사립 학교 설립 준비 위원회의 일에 끼어들었다. = = = = = 강현은 정말로 바빴다. 능동형 반투막을 만들기 위해서 실패를 반복하면서도 단백질 구조를 설계하고 시뮬레이션하는 일을 계속 해야했고 우주 도시 진행 과정에서 또 필요한 게 없는지 지속적으로 NASA와 정보를 교환해야 했으며 또 킬덤과 마리아의 결혼식 축하사도 준비해야했다. 축하사는 결혼식장에 나타날 지도 모르는 헨델 회장의 꼬장에 대비해서 반드시 필요했다. 강현의 입김이 없으면 헨델 회장이 그 두 사람을 계속 귀찮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강현은 독설과 직설에는 소질이 있었지만 원만한 대화를 나누는데 필수적인 우회적 수사나 그에 필요한 문학적 소양은 부족했다. 그래서 축하사에 담기는 메시지의 수위를 조절할 필요를 절실하게 느낀 강현은 킬덤에게 축하문이나 연설문을 잘 쓰는 사람을 추천해 달라고 했고 킬덤은 회사 홍보처의 인재를 소개시켜 주었다. “에~ 그러니까 여기 ‘부모랍시고 자식의 인생을 좌지우지하려는 생각은 인간의 본질을 망각한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부분은 삭제하시죠?” 리키가 속으로 식은 땀을 흘리며 강현이 작성한 초고에서 수정할 부분을 형광펜으로 가로쳤다. 원래는 자신이 적당히 작성해 주겠다고 했지만 그건 예의가 아니라며 강현은 끝내 자신이 초고를 작성하고 말았다. 역시 논문을 많이 작성한 학자라서 그런지 글의 흐름은 나름대로 깔끔했다. 하지만 논조가 너무 직설적이었다. 방금 ‘부모랍시고 자식의 인생을 좌지우지하려는 생각은 인간의 본질을 망각한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부분 이전에는 ‘사랑으로 결합한 두 사람의 결혼은 유대인이니 비유대인이니 하며 차별과 증오를 양산하는 이들에게 교훈을 줄 것입니다. ’라는 문구도 있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너무 공격적이었다. 널리 알려진 강현의 온건하다는 이미지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위화감을 느낄 정도였다. 물론 강현에게 독설을 들었던 이들에게는 얌전하다고 할 수 있는 어투였다. “흐음.. 어떻게 표현해야 공격적이지 않고 원만하게 전달할 수 있을까요?” “아, 안 빼실 생각입니까?” “빼면 전체적으로 제가 말하고 싶은 이야기가 전달이 안되잖아요. 그냥 형식상 축하사를 하는 것 뿐이죠. 킬덤 씨와 제가 인연이 얼마나 됐는데 그렇게 섭섭한 짓을 하겠어요?” 리키는 ‘그냥 형식만 차려줘도 좋아할 것 같은데요.’라는 말을 꿀꺽 삼켰다. 자신은 강현같이 유명인이 축하사를 해준다는 것 만으로도 좋을 것 같지만 킬덤의 성향을 모르니 강현의 말도 맞는 것 같았다. 킬덤 역시 지독한 반골로 월가에서 축출당한 사람이었지 않은가? 강현같이 괴짜 기질이 없다면 이상할 것이라는 편견이 리키에게 생기는 순간이었다. “그런가요? 그럼 최대한 순화시켜 보겠습니다.” 리키의 성급한 판단은 결국 강현이 축사를 하는 내내 킬덤이 자신의 신을 부르며 눈을 손을 덮는 일을 만들어내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강현입니다. 오늘 저는 오랜 동지이자 친구이기도한 킬덤 씨의 결혼을 축사하기 위해서 나왔습니다.] 웅성웅성. 사람들이 많았다. 회사 직원들은 물론 정재계의 유명 인사들까지 참석했다. 물론 킬덤이 고심해서 청첩장을 보낸 이들이었다. 마지 못해 참석한 헨델 회장의 표정은 잔뜩 굳어 있었다. 사회적 체면이라는 게 있어서 그런지 딸의 결혼식에 차마 참석하지 않을 수는 없었던 것 같았다. 강현과의 화해라고도 해석할 수 있는 결혼식이라 손익을 계산해 본 지인들의 간곡한 부탁이 있었다. 그중에는 같은 시오니스트이자 현 이스라엘을 지탱하는 유대인 세력의 축이라고 할 수 있는 아담도 있었기 때문에 거절할 수가 없었다. 유대인의 기득권은 지켜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강현과 화해하는 것은 그들을 공격하는 이들에게 어떤 것을 시사할 것이고 여러 긍정적인 효과를 낼 것이다. 부정적인 면은 시오니스트 유대 세력이 강현에게 숙이고 들어갔다는 이미지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축하사를 헨델이 아니라 강현이 하는 모양새 때문으로 호사가들의 입장에서는 오랜 전통의 영향력 있는 사람이 아니라 새로운 신흥 강자의 등장으로 보였다. 제멋대로의 해석으로 생긴 오해가 분명했지만 사람들의 시선이란 제각각인 법이고 강현의 입장에서도 나쁜 해석은 없었다. 그저 킬덤과의 친분으로 축하사를 해주는 것 뿐인데 그렇게 이해해 준다면 따로 힘을 쓸 필요는 없었다. 권력관계에서 상하관계를 대중에게 보여주는 것은 매우 민감한 문제는 대중의 힘은 사실 여부에 관계없이 보여주는 것에 의해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둘의 만남이 어땠는지 어떻게 서로의 관계를 쌓았는지 저는 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둘이 이렇게 결혼을 결심했다면 분명히 둘이 서로 평생을 함께 살 수 있는 공감대가 있다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 많은 부부들이 사랑에 결혼하고 현실에 실망해 이혼을 합니다. 하지만 이 둘은 그러지 않기 바랍니다.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많은 현실적인 난관과 반대를 극복한 노력이 있습니다. 둘이 서로에게 납득할 수 없는 점을 발견하더라도 그 노력으로 다시 한 번 둘의 사랑을 견고하게 다지는 부부가 되기를 바랍니다.] 약 1분 정도의 축하사가 끝나고 이어서 주례사가 시작되었다. 주례는 킬덤의 대학교 은사이신 머리 희긋한 노신사가 맡았다. 이어진 행사가 모두 끝나고 피로연이 시작되었다. 이젠 부부가 된 킬덤과 마리아가 강현에게 고맙다며 인사하러 왔다. 강현은 샐리와 함께 여기 저기 사람을 만나러 다니고 있었는데 아이들은 당연히 장인 장모께 맡기고 왔다. “이렇게 참석해 주셔서 감사해요.” 마리아가 감사를 표했다. “별말씀을요.” 이미 부부 생활을 오래한 강현 부부에게 새롭게 부부가 된 킬덤이 이것 저것 물었다. 출산 육아 가정생활 등등. 하지만 조언해 줄 수 있는 영역은 원론적인 부분이 다였다. 강현같은 괴짜와의 부부 생활이 여느 남자와의 부부 생활과 같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호호호. 강 박사 님께서 그런 말을 들으면 많이 섭섭해 하시겠어요.” “뭘요. 저를 그렇게 마음 고생 시켰으니 앞으로 좀 더 휘어 잡혀야죠.” 연구실에 처박혀 있는 강현을 휘어 잡을 시간이 없는 샐리의 허세였다. 옆에서 강현이 피식 웃었다. 그렇게 이야기가 오고 가는 와중에 굵직한 남성의 음성이 끼어들었다. “그래서 남의 딸을 함부로 데리고 가서 재미가 좋으신가?” 헨델 회장이었다. 아무래도 딸아이가 자신이 반대를 하는 결혼을 해서 심사가 잔뜩 뒤틀려 있었다. 그런 그의 말투를 강현이 태연히 받아쳤다. “재미가 아주 좋고 말고요. 마리아 씨도 즐겁고 모두가 즐겁습니다. 그런데 어째 한 분만은 기분이 영 좋지 않아 보이시네요.” 뼈있는 문장에 헨델의 입가가 비틀렸다. 하지만 강현과 굳이 언쟁을 해서 이득 볼 일이 없기에 그의 시선이 킬덤에게 향했다. “그래서 정말 내 딸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네, 넷! 물론입니다.” “하지만 자네같이 월가 출신의 남자가 아프리카에서 수 년간 활동한 내 딸과 부부 생활을 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딸은 고집이 너무나 강해서 아프리카를 떠나지 않았어. 나조차도 불가능했지. 그런데 자네가 딸을 미국에 데려와서 신혼 생활을 할 수 있겠나? 응? 자네가 아프리카로 와야할걸?” 킬덤 역시 반골은 반골이라 갈굼과 악담이 섞여있는 잔소리에 속이 부글 부글 끓었다. 하지만 상대는 그래도 장인 어른이라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이미 그정도 각오는 했습니다. 마리아와 그에 대해서 어떻게 할 것인지 대화로 나눠봤습니다.” “흥! 대화는 결국 대화에 불과해. 실제로 생활을 시작하면,” 속이 부글 부글 끓다 못해 위장에 구멍이 뚫릴 것 같던 킬덤을 구해준 건 강현이었다. “회장님. 단둘이 이야기 좀 나눠볼까요?” “... 그러지.” 강현은 삼폐인과 유리잔 두 개를 들고 건물안으로 들어갔다. 잔디 밭에서 피로연을 즐기고 있던 사람들 중 그 두 사람을 본 사람들이 입을 모아 수군대기 시작했다. 유대인과 강현의 갈등은 모르는 사람이 없는 사건이었다. “....”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마주 앉은 두 사람의 분위기는 침묵이 돌았다. 헨델 회장은 머리가 복잡해서 할 말을 고르기가 힘들었고 강현은 여유롭게 샴페인을 잔에 따르며 입을 열 타이밍을 가늠했다. “원하는 게 뭔가?” 헨델 회장이 입을 열었다. “시오니스트들의 침묵이죠.” “... 우리를 완전히 없애버리겠다는 의미인가?” “그럴 수 있다면 그러겠지만 현실적으로 그건 불가능하죠. 홀로코스트나 인종학살을 벌일 생각도 없구요.” 186화 <18-흐름> “....” 헨델 회장은 소름이 끼쳤다. 인종학살로 시오니스트들을 처리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렇게 하겠다는 뜻인가? 강현은 분명히 그럴 인간이 확실했다. 부모님의 복수를 위해서 수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죽는 쿠데타 사건을 유도하기도 한 그때에 비추어보면 인종학살로 시오니스트 같은 잠재적인 ‘적’을 제거할 수 있다면 시도라도 한 번 해볼 것이다. 하지만 생각을 좀 더 해보자. 그건 정말로 유효한 방법인가? 그렇지 않다.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하다. 그런 짓을 하면 수많은 이들에게 비난받고 하나의 적을 없애더라도 백의 적이 생겨버린다. 적을 없애기 위해서 과도할 정도로 강경한 방법은 오히려 부작용만 양산한다. “그래서 둘의 결혼으로 화해하자는 의미인가?” 헨델 회장의 마음 한 구석에 있는 의문이었다. 생활 방식이 전혀 다른 둘이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던가? 아무리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딸아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이 기르고 가르쳤다. 사랑이 눈을 가려고 결혼을 생활이며 조건을 맞추어 보는 것을 간과하지 않을 딸아이였다. 차라리 딸아이와 비슷하게 아프리카에서 활동하는 국경없는 의사회의 의사라던가 아니면 봉사 단체에 소속된 사람과 결혼할 줄 알았다. 그런데 월가 출신의 사업가와 결혼한다고? 헨델 회장은 납득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이 결혼의 뒤에 강현이 있다고 생각했다. “혹시 오해 하시는 것 같은데요. 둘의 결혼 소식에 저 또한 놀랐습니다. 상상 밖이었거든요. 그리고 잘 됐다고 생각했어요. 이걸 계기로 저를 경계하는 그쪽 이들의 불안감도 좀 낮춰보고 싶었어요. 그쪽도 저에게 과도한 심력을 쓰는 건 손해잖아요.” “으음..” 헨델 회장은 침음성을 삼켰다. 한 편으로는 딸아이가 음흉한 음모의 희생양으로 선택되지 않았다는 확언에 안심이 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자신들의 사정을 훤히 꿰뚫어보고 있는 강현의 식견에 다시 한 번 경각심이 일었다. 강현의 말대로 나날이 입지가 약해지고 있는 시오니즘 지도부들은 과거의 영광은 커녕 현상 유지와 생존에도 힘이 겨웠다. 과거 정점의 시절에 만들어낸 무수한 원한과 악의가 추락한 그들을 뜯어먹기 위해 달려들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강현에게까지 신경쓸 여력은 없었지만 가장 위협이 되는 존재 또한 강현이라는 점이 그들의 신경을 피로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유가 뭔가? 자네가 이쪽에 아쉬운 건 없는 것 같은데..” 헨델 회장은 가장 핵심적인 의문을 던졌다. 솔직히 돈과 기술력, 미국 정부란 권력 배경까지 모두 갖춘 강현이 유대인의 반 이상이 떨어져 나가고 정계 라인까지 모두 잘린 시오니스트 조직에 아쉬울 건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특별히 신경 쓸 이유도 없었다. “동양에는 의심암귀라는 말이 있죠.” “무슨 말인가?” “의심이 귀신을 만든다는 말이죠.” 자매어로 믿음이 신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제가 그쪽에 완전히 관심을 끊었지만 그쪽에서는 여전히 저의 행동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제가 그쪽과 상관없는 의도로 일을 해도 그쪽에서는 오해를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특히 서로 적이라는 입장에서 그런 오해는 반드시 적의를 생산할 수 밖에 없죠.” “하지만 자네에게 우리가 더 이상 무슨 위협을 가할 수 있다는 말인가?” “어라? 인간의 악의와 증오를 엄청 무시하시네요. 과학 기술이 발달하는 만큼 인간의 악의가 얼마나 큰 피해를 만드는지 본 적 없으세요?” 막말로 미친 사이코 패스가 대형 트럭을 몰다가 인도로 질주해 엑셀레이터를 밟으면 어떻게 될까? DNA 합성 기술이 적용되어 질병을 연구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장치를 테러리스트들이 구해 인류에게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만들면 어떻게 될까?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그래서에요. 적의나 악의를 품을 존재가 없다면 어떤 인공적인 위험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폭력적인 방법은 말살이 아닌 이상 결국 적을 더 양산하죠.” “그래서 우리와 타협을 하겠다는 건가?” “타협을 하는 게 아니라 오해를 하지 않도록 제 입장을 확실히 밝히는 겁니다. 저는 솔직히 시오니스트들의 선민사상이 웃기지도 않아요.” “.....” “신의 선택을 받은 민족이요? 솔직히 저는 정신분열증 환자같은 여호와의 선택을 받는다는 게 그리 좋아보이진 않아요.” 불의한 자들만 있다며 소돔과 고모라를 불벼락으로 지워버렸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찾아 황무지는 십 년이나 돌아다닌 모세에게 결국 너희는 그런 땅을 찾을 수 없을 거라며 이집트의 왕자 신분을 버리고 평생 자신을 섬긴 그의 희망을 뭉게버렸다. 이쯤되면 공감 능력이 떨어지다 못해 정신 분열증 환자로 보일 정도다. 하긴 자신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성전이다 뭐다 학살을 자행하는 인간들을 바라보다 보면 자신이 사랑과 자비를 설파하는 신인지 아니면 악신인지 헷갈릴 것이다. 강현은 침묵하는 헨델 회장에게 계속 이어서 말했다. “과거의 시오니스트들은 과연 신의 선택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했죠. 그리고 그에 걸맞게 오만하고 겸손하지 않았어요. 자신들을 비난하는 미국 정치인들의 주둥이를 그 경쟁자를 지원해서 닥치게 만들 정도였죠. 하지만 상황은 바뀌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의 돈만 먹는 미국 정계가 아니다. 아랍의 돈도, 화교의 돈도, 일본의 돈도, 강현의 돈도 먹는 미국 정계가 되었다. 더 이상 돈지랄로 정치가들의 입을 막을 수 없었다. “이런 상황은 앞으로도 유지되고 강화될 겁니다. 시오니즘 지도부가 다시는 미국 정계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는 거죠. 저는 오히려 전통적으로 미국 정계에 영향력을 발휘해온 시오니즘 지도부가 급격하게 몰락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왜인가?” “화교 자본이 득세하고 있거든요. 아무리 백인 우월 주의의 미국이라고 하지만 흑인 대통령이 당선될 정도로 인종주의에 대해서 잘 대처하고 있어요. 거기다가 이런 말하기는 부끄럽지만 제가 황인종이라는 걸 이슈로 화교 자본에서는 다음 미 대통령은 황인종 차례라면서 여론을 만들고 있는 중인 것 같아요. 황인종 혼혈 계열의 정치가들을 찾아서 지원도 시작하고 있구요.” 미국은 우주 패권 국가다. 그런 미국의 정계에 영향력을 가지고 싶지 않은 자본가가 있을 리 없다. 하지만 화교 자본은 그 정체성이 문제였다. 다른 나라에서도 난 중국인이요하고 뭉치고 차이나 타운을 만들어 낸 자들의 세력이다. 배타적이고 끈질기기는 유대 자본에 뒤지지 않는다. 본국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의 중화 사상도 상당히 강현을 거슬리게 만드는 요소였다. 분란을 일으킬 잠재성만 보면 차라리 소수의 독재자, 왕족이 핵심 세력인 아랍 자본이 더 안전해 보일 정도였다. 강현의 말에 헨델 회장은 쓰게 웃었다. “그래서 우리를 견제용으로 쓰시겠다?” “견제되는 요소들은 많을 수록 안정하니까요. 혹시 완충 용액이라고 아세요?” 완충 용액은 강 산성과 약 염기, 혹은 약 산성과 강 염기가 혼합된 액체로 산성도의 변화가 매우 적은 용액이다. 일반적으로 강 산성과 강 염기의 중화 적정 실험(용액을 pH 7 중성으로 만드는 화학 실험)을 할 때는 몇 방울 만으로도 pH의 변화가 급격하다. 하지만 완충 용액에서는 pH의 변화를 크게 하려면 그만큼 많은 용액을 첨가해야 한다. 이런 완충 용액은 pH 변화가 적어야 하는 환경, 특히 미생물학 실험에서 요긴하게 쓰이며 생명체의 혈액은 천연 완충용액이다. 완충 용액의 변화성은 결국 산과 염기가 가진 고유의 이온화 상수(또는 해리 상수/평형 상수)에 의해서 결정이 되는데 다양한 종류의 산과 염기가 섞이면 섞일 수록 용액에 적용되는 이온화 상수의 개수가 많아지고 복잡한 상관관계가 생겨 변화가 서로 상충된다. 강현이 말하는 건 바로 그런 원리인 것이다. 헨델 회장은 불쾌했지만 묘하게 안심이 되었다. 단순히 자비심에 근거한 방관과 필요에 의한 방관은 방관의 대상인 그들에게는 상황을 인식하는 심리 상태를 완전히 바꾸어 버릴 수 있을 만한 것이었다. 전자는 언제 강현의 마음이 바뀔지 모르는 불안이 있다면 후자는 필요하니까 강현이 자신들을 건들지 않는다는 역설적인 믿음과 신뢰가 있었다. 돈이 많지만 오히려 세상에 공짜란 없다는 진실을 알고 있는 그들이 안심할 수 있는 합리적인 이유였다. “제왕학이라는 건가?” 헨델 회장은 적이었던 자들까지 다시 한 번 끌어들여 서로를 견제시키는 강현의 방법론에 적잖이 감탄했다. 자신도 그런 방식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다. 적개심을 일순간에 흩어버리고 합리적인 사고를 하여 결정을 할 수 있는 건 보통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렇게 서로를 견제하는 이들은 병신인가? 뻔히 이용을 당하게? 그런데도 그런 일을 이토록 쉽게 해내는 것이 바로 강현의 역량이었다. “제왕학은 무슨. 그냥 필요하니깐 하는 겁니다.” 강현이 겸양을 떨었지만 그게 더 무서운 말이었다. 필요하니깐 한다라... 헨델 회장은 강현이라는 천재가 과학자임을 너무나 다행스럽게 여겼다. 그가 권력 지향적 인물이었다면 숨 쉴 틈도 없었을 것이다. “이제 제 입장은 확실하게 이해하셨죠?” 강현의 말에 헨델 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미국 정부의 아낌이 큰 영향력의 축을 구성하는 강현이다. 그런데 미국 정계에 혼란이 일면 그건 그거데로 강현에게 손해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줄 것은 뭔가?” “이렇게 화해해 줬잖아요. 더 뭔가를 바라세요?” “....” 헨델 회장이 입맛을 다셨다. 확실히 강현과 화해 했다는 것 하나만으로 한 숨 돌릴 수 있었다. 그래서 지인들이 마리아와 킬덤의 결혼을 적극 환영했던 것 아닌가? 둘의 대화는 거기서 끝이 났다. 결혼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다시 피로연을 즐기기 위해 밖으로 나온 두 사람이 웃으며 정답게 악수를 하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시오니즘과 강 박사, 타협하나?] [천재의 돌변! 왜?] 이런 강현의 입장 변화는 많은 이들을 경악하게 했다. 반 시오니스트 유대인 세력의 핵심인 사울은 바로 강현을 찾아왔다. “이게 지금 뭐하는 짓입니까?” “아아. 실망하셨겠군요.” “실망한 정도가 아닙니다. 화가 날 정도입니다. 아니 이미 화가 났습니다.”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이를 악물고 울그락 불그락 하는 사울의 얼굴만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다. “흐음.. 정말 시오니스트가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유대인이 아닌 제가 왜 그걸 도와야 하죠?” “네?” 사울의 어안이 벙벙해졌다. 애시당초 이 모든 일을 벌린 건 강현이 아니었던가? 강현 때문에 자신은 가자지구에서 학살을 자행하고 과거에는 홀로코스트에 동포를 방치한 미친 시오니스트들을, 유대민족의 더러운 얼룩을 제거하는 꿈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 아닌가? “저는 누가 제 연구를 방해하지 않으면 건들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일을 벌이신 것에는 책임을 져야 하지 않습니까!?” “제가 책임져야 하는 영역은 시오니스트들이 저를 다시 공격하는 경우죠. 시오니스트들의 존속 여부는 유대인들 스스로가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닌가요? 솔직히 저의 압박으로 시오니스트들이 사라진다고 해도 그게 유대민족에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럼 저희는 어떻게 합니까?” “신앙은 곧 신념이죠.” 187화 “네?” “당신들은 저들의 신앙에 지지 않는 훌륭한 신념이 있지 않습니까? 저는 시오니스트와 반 시오니스트가 유대민족의 발전을 위한 서로의 거울이 되어 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말도 안됩니다!” “말이 돼요. 수 천 년간 나라 없이 살아오면서 유대인의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않게 한 시오니스트의 공로를 무시하면 안 되죠.” “그건 그때고 지금은 지금입니다! 선민사상 따위 유대인에게 전혀 도움이 안됩니다!” “바로 그런 태도입니다. 잘못된 점을 꼬집어서 고치게 만드세요.” “.....” 사울은 할 말을 잃었다. 그런 그에게 강현이 말을 이었다. “세상에 옳은 건 없습니다. 사람의 수 만큼 많은 정의가 있고 작용에는 반작용이 생기죠. 그리고 결국 남는 건 환경에 적응한 개념과 사상 뿐입니다. 진화론은 비단 생물에만 적용되는 개념은 아니죠.” “하지만,” “사울 씨. 섭섭하게 생각하고 있는 건 압니다. 하지만 저는 유대인에게는 부외자에 불과합니다. 시오니즘이 유대인이 아닌 이들에게 고통을 줄 때에는 나설 수는 있지만 그렇지 않은 지금 나설 명분은 제게 없습니다.” 사울은 흥분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에게는 정의라는 것이 있기는 합니까? 인류를 위해서 인류에게 해가 되는 것을 미워할 생각은 없습니까?” “정의라..” 강현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정의란 무엇인가? 정의는 곧 신념이다. 그리고 신념은 곧 삶의 척도다. 신앙인의 신념이 신앙이라면 강현에게도 신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있었다. “우주는 아름답다?” “우주는 아름답다?” 사울은 그게 무슨 정의라며 선문답같은 강현의 말에 어리둥절했다. “네, 인간이 무슨 짓을 해도 우주는 여전히 아름답겠죠.” “인간이 무슨 짓을 하더라도요?” “네. 인간이 뭘 하든 간에요.” 사울은 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말하고 있는 건 우주가 아니라 인간의 일이 아니던가? 그런데 강현은 오히려 그런 인간 사이에서 필요한 입장을 필요치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니 마치 자신은 그런 인간이 아니라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고 있었다. “박사님은 자신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고는 있습니까?” “그러니까 우주에 집착하는 거겠죠.” 그러나 사울의 그런 이해는 오해였다. 강현은 오히려 자신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홍진 세상에서 눈을 돌려 우주와 세상만물의 진리에 집착하고 호기심을 가졌다. 인간의 욕망, 감정, 감동, 슬픔, 호의, 악의... 악의 없이 어떻게 호의를 구분할 수 있는가? 슬픔 없이 어찌 기쁨을 이해할 수 있을까? 죽음 없이 어찌 삶의 소중함을 말할 수 있을까? 유한한 인간 없이 누가 무한한 우주의 아름다움을 찬양할까? 사울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소의는 대의에 묻혀버리거나 의미를 상실한다. 강현에게 사울과 같은 인생관은 그가 어릴 적 감동한 우주의 무한함에 비하면 하찮기 그지없다. 감동하기에는 너무나 생각 자체가 작다고 생각했다. 강현이 시오니즘 세력을 화교 자본을 견제하는데 사용하도록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자칫 허무주의라고도 해석될 수 있는 바로 이런 그의 인생관 때문이었다. 사울이나 샐리조차도 이해하거나 동감하지 못할 인생관이지만, 아니 오직 강현과 같은 천재성과 그와 같은 부와 명예, 권력을 가진 이만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는 인생관이었다. 정점에 선 이에게 걸맞는 가치관이었다. 우주를 이해하기 위한 관점으로 편협하지 않고 선악의 모호함을 인지하며 공평하게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가? 사울과 강현의 선문답은 그렇게 끝이 났고 사울은 별다른 소득없이 돌아가는 수 밖에 없었다. 사울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유(원한이나 이해득실, 혹은 이데올로기 따위의 이해관계)로 유대 자본의 완전한 몰락을 원하는 이들은 강현이 시오니스트들 완전히 처리해 주기를 바랬다. 그리고 완전히 적이 되어 버린 시오니스트들을 확실하게 처리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그런 믿음이 무너지니 화가 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다. 그러나 강현은 공식적으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많은 추측적 기사들이 쏟아졌다. 강현은 이미 시대를 선도하는 아이콘이니 그의 성향과 사상을 분석하는 건 권력과 자본의 향방에 민감한 이들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고 투자한 만큼 그럴싸한 논평이 나왔다. [강 박사는 기본적으로 온건하게 행동하는 방침을 가지고 있다.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더이상 위협이 되지 못하는 시오니스트들을 완전히 말살하기 위해서 직접적으로 손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피비린내나는 전쟁은 멈췄고 세계 패권국인 미국에서 유대 자본의 입지는 크게 줄었다. 그러니 시오니즘 지도부로서는 강 박사를 건든 댓가를 톡톡하게 치뤘다고 볼 수 있다. 즉, 이해 관계가 청산된 것이다. 따라서 시오니즘의 존속 여부는 온전히 유대민족과 여태까지 시오니스트들이 만들어낸 원한 관계가 결정지을 것이다.] 매우 논리적이며 합당한 논평이었다. 논평에 시오니스트들을 싫어하는 이들은 강현이 더 이상 시오니스트들을 압박하고 뭉개어 버리지 않는 것에 화를 낼 수 없었다. 강현에게 자신들의 복수를 대신해서 해줄 권리나 의무는 없었기 때문이다. = = = = = “완성이다!” Try&Error. 드디어 노가다 삽질 끝에 강현의 능동형 반투막(PASM ; Protein Active Semipermeable Membrane) 필터 기술이 완성되었다. 아예 아미노산 구조부터 다시 설계하고 단백질을 고정할 고분자의 가지 사슬에 아미노산 사슬을 붙이는, 눈물이 나도록 지겨운 시뮬레이션과 실험의 반복이었다. 물론 실제로 실험하고 합성하는 건 HA 안드로이드였지만 그래도 하루에 수 십개씩 고분자/단백질 모델을 설계한다고 그 대단한 강현도 머리가 빠개지는 줄 알았다. 이렇게 만들어진 얇은 반투막의 기계적 성질은 그리 좋지 않았지만 전기장을 이용한 물 분자의 이동 능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강현이 합성한 물 분자 이동 단백질에 있는 코발트 이온에 물분자가 흡착하고 이때 가해진 전기장이 단백질의 모양을 바꾼다. 염소 이온과 칼슘 이온이 붙은 단백질이 분극현상으로 물리 화학적 성질이 바뀌기 때문인데, 이로 인해서 단백질의 접힘 구조가 변해 물분자가 흡착한 부위가 뒤집히며 반대쪽 면으로 향한다. 반대쪽 면에는 코발트 이온보다 더 강하게 물 분자를 흡착할 수 있는 히드록시기가 붙어있어 코발트 이온에서 물 분자를 떨어뜨려 버린다. 이렇게 물 분자 만이 이동하게 되는데 그 이동량은 가하는 전기장의 Hz에 비례하며 약 GHz까지 올릴 수 있어서 마치 사람의 피부에서 땀이 송글송글 나듯이 물방울이 맺혀나올 정도였다. 물론 기계적인 성질은 약하다. 아무래도 물 분자의 이동을 위한 단백질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 나노 스케일의 두께였고, 또한 앞뒤 면에 다른 종류의 친수성 코팅을 했다. 이를 위해서 나노 박막 기술을 정밀하게 사용했으니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삼투압을 가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효율이 좋으니 정수장치의 설계만 손을 보면 바로 적용할 수 있었다. 강현이 구상한 정수 장치는 크게 세 단계로 나뉘는데 침전부, 여과부, 정수부다. 침전부는 털이나 때덩어리 같은 걸 가라앉히고 여과부는 거름종이 따위로 마이크로 단위의 오물을 거르며 정수부에서는 PASM으로 드디어 순수하게 물을 걸러낸다. 이 과정에서 아래로 쌓일 수 밖에 없는 오물들을 밖으로 끄집어내는 스크류 같은 장치도 있어서 따로 청소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다만 여과부의 거름종이는 주기적으로 교체해 주어야 했다. 이 과정에서 나노 단위인 분자 덩어리들은 브라운 효과에 의해서 둥둥 떠다니게 되겠지만 이도 크게 문제될 일은 아니었다. 다행스럽게도 PASM은 이런 분자 덩어리들의 포화 용해도를 넘어서 물 분자를 분리해낼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포화 용해도의 소금물에서도 물분자를 뽑아올릴 정도) 뭉쳐서 침전부처럼 하부에 쌓이게 된다. 역시 침전부와 마찬가지로 이런 오물들을 자동으로 배출해 줄 장치를 동일하게 구성해주면 문제가 해결된다. 그렇다면 남는 문제가 있다. 이렇게 배출된 축축한 오염물 덩어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극한의 분리수거가 기획된 우주 도시에서는 이런 오염물 덩어리도 침전부, 여과부, 정수부 오염물로 따로 처리가 되도록 되어 있었다. 침전부의 오물은 차후 우주 농장에서 사용할 사료용(주로 닭같은 가금류 용)이나 거름용으로 만들기 위해서 건조하거나 얼려서 보관하기로 했다. 아니 힘들여서 건조할 필요도 없다. 우주 공간의 창고 안에다가 틀에 넣어 놓기만 하면 어느새 얼어있다. 복사열이 계속해서 우주로 빠져나가기 때문이었다. 여과부 필터의 경우에는 소모품이라 별도의 재처리 공정이 필요했는데 섬유들을 다시 사용하기 위한 세척 과정에서 다시 물을 사용하기 때문에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이른바 건조식 재처리라고나 할까? 잘 말려서 초음파를 이용해 말라붙은 분진을 떨어내는 것이다. 완전히 너덜너덜 해진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우주 농장의 거름으로 써야겠지만 그전까지는 새것에 비해서 80%의 효율로 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었다. 하지만 정수부의 오염물이 생각보다 문제였다. 왜냐면 대부분 나노 크기의 분자 덩어리, 주로 세제와 사람 몸에서 나온 기름, 또는 샴푸와 린스에 첨가된 유기 화학 물질이기 때문이다. 이것들이 얌전하게 가라 앉아 준다면 문제가 없지만 문제는 얌전하게 가라 앉는 것보다는 둥둥 떠다니면서 샴푸나 린스에 든 글리세린 같은 물질과 상호 작용을 해서 오폐수에 점성을 만들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이다. 점성은 곧 물 분자가 반투막의 표면까지 이동하는데 시간이 걸리게 만드는 걸림돌로, 정수 효율과 속도를 낮추는 요인이었다. 때문에 정수부의 농도가 높아지지 않도록 일정 농도 이상이 되면 오폐수를 다시 침전부로 보내도록 했다. 그렇게 하면 침전부에서 배출되는 오물 덩어리에 화학물질이 첨가되어 농도의 증가를 낮출 수 있었다. 물론 침전부에서 배출되는 오물 덩어리의 수분량을 늘리거나 해서 더 낮출 수도 있었다. 뭐? 그럼 그렇게 비누나 세제 따위의 화학 물질에 범벅이 될 수도 있는데 거름이나 사료로 어떻게 쓰냐고? 발효라는 과정은 그냥 있는 게 아니다. 사료로는 제한이 있기는 하지만 화학 물질의 농도에 따라서 쓸 수도 있고 안 쓸 수도 있다. 문제가 있다면 다시 그때 확인해서 해결해도 되지 않는가? 이렇게 물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나오니 일반 가정용 주택의 설계도도 금방 나왔다. 지금까지 짓고 있는 다세대 주택은 어디까지나 임시 방편이었다. 차후 제대로 된 주거지가 나오면 허물어질 것들이다. 강현에게 닭장같은 아파트나 다세대 주택은 사람 살 곳이 안된다. 적어도 아이들이 뛰어놀 곳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가히 땅 넓은 곳에서 부유하게 산 사람의 시각다웠다. [박사님. 학교 설립에 대한 설계도면이 도착했습니다.] “그래?” 다른 건물들이야 NASA에서 입찰 형식으로 다양한 시공 업체들의 설계를 모집했기에 강현이 신경 쓸 일은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아이들이 다닐 학교다. 강현이 신경쓸 이유로는 충분했다. “흐음..” 설계도를 바탕으로 3D 입체 조감도를 만들어본 강현은 고개를 갸웃했다. 확실히 우주 도시에 걸맞는 미래 첨단적인 멋있는 설계였지만 중량 밸런스를 잡아야 하는 부분이 몇 곳 있었다. 188화 그래서 그는 그 부분에 이러이러한 문제점이 있으니 수정을 해달라고 첨언하고 설계도를 다시 보냈다. NASA 와 시공사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과 똑같았다. 전체적인 디자인은 시공사에서 담당하고 기술적 가이드 라인은 NASA가 담당하는 것이다. 예술적 감각이라고는 기능미 이외에는 문외한인 강현이 아이들의 감성에 맞는 디자인을 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의 입맛에도 맞았다. “그럼, 이건 이정도로 됐고, 우주 도시 건설 과정은 어떻게 되고 있어?” [일단 인부들을 위한 주거지 조성은 완료 됐습니다. 이제 도로망 구성과 조명 시스템, 환기 시스템도 완료하면 기반 시설은 완료 됩니다.] “그 뒤가 문제란 말이지..” 조명은 인간의 생활 주기에 밀접한 관련이 있다. 멜라토닌을 비롯한 생체 주기는 햇볕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이것을 인공적인 광선으로 해결하려고 하니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 다른 곳은 몰라도 적어도 침실이나 집안, 공원에는 태양광 조명이 설치되어야 하는데 수요가 심상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거기에 도시 전체의 밝기도 문제다. 지금 상태는 그냥 밤과 마찬가지다 규칙적인 조명이 별처럼 반짝이고 있기는 하지만 건물이 지어지고 굴곡이 생기면 칠흙같이 어두운 장소가 생겨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대중의 심리는 매우 미묘한 요소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 깨진 유리창 이론. 약간의 무질서가 더 큰 무질서를 가져온다는 이 이론은 실제로 적용되어 범죄율을 크게 낮추는 효과를 보였다. 그 정도로 예민한 대중인데 심리적으로 불안감을 주는 어둠이 여기저기에 있다면 좋은 영향을 주진 않을 것이다. 범죄도 주로 낮이 아니라 밤에 일어나지 않는가? “조명에 돈 깨나 들여야 하겠어.” 아예 바닥을 발광 패널로 깔아버리면 어떨까? 투명한 강화 플라스틱으로 굳혀서 바닥에 깔아버리면 필요한 광량을 보충해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괜찮을까? 강현은 고개를 저었다. 뭔가 2% 부족했다. 처음에야 우주 도시라는 이름에 사람들은 별다른 불만을 품지 않겠지만 모든 것이 어머니 지구에 비하면 부족한 장소다. 단지 우주에서의 생존성을 보장해 주었을 뿐 사람이 살고 싶은 환경이라고 말하기는 힘든 장소였다. 풀밭은 태양광 조명을 이용하면 만들 수 있다. 강은 대신에 공원에 늪지를 조성하면 된다. 하지만 태양에 비견될 정도의 조명 시스템을 만드는 건 매우 힘들다. 강현은 이 사실을 머리에 새겨두었다. 이미 계획이 진행 되어 건설 물자를 비축 중인 우주 농장이나 차후의 우주 도시 설계의 개량에 고려되어야 할 사항으로 분류한 후 이레이 부장에게 연락을 했다. 지금 우주 도시에 적용될 조명 시스템을 이용해서 어떻게 사람들에게 쾌적한 환경을 마련해 줄 수 있는지 머리를 맡댄 결과 강현 혼자서는 힘들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조명은 기술이지만 그 조명을 사용하는 방법은 인문학의 영역에 있었던 것이다. 곧 NASA는 학자들의 네트워크를 이용해서 조명과 심리의 상관 관계를 연구하던, 혹은 그에 관한 논문을 낸 학자들과 디자인 계통에서 조명 쪽으로 이름난 사람들, 그리고 헐리우드나 방송계 쪽에서 조명 감독같이 조명에 박식한 사람들을 불러 모아 프로젝트 팀을 만들었다. 조명에 관한 걸 다시 남에게 떠넘긴 강현은 이제 환기 시스템으로 눈을 돌렸다. 산소의 생성과 이산화탄소의 소모는 태양광과 광합성 패널이 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우주 도시 안의 대기가 쾌적할 것이냐는 다른 문제였다. 지구에서는 온갖 요소들이 대기를 정화한다. 숲, 바다, 대지, 초원. 그 중에 대기의 오염 요소를 급격히 떨어뜨리는 비는 아폴로티움에서 구현하기 불가능한 요소였다. 대도시를 능가하는 규모의 아폴로티움은 장차 사람들의 수가 많아질 수록 온갖 종류의 냄새가 퍼질 것이다. 사람의 체취는 기본이고 집에서 요리하는 냄새, 마당에서 바비큐 파티를 할 때 생기는 냄새 등등, 사람들에게 적응하라고 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바로 밑에 지구라는 경쟁 환경이 있다. 공기를 정화할 목적으로 숲과 늪을 만들기도 했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는 않았다. 좀 더 녹지화를 했으면 했는데 요즘 유행하는 도시 농장이 머리에 떠올랐다. 각 주택의 지붕을 밭이나 정원으로 만들면 어떨까? 태양광 조명이 당연하게 설치될 것이니 사람들의 쾌적도도 올라갈 수 있었다. “아.. 귀찮아.” 강현은 세세한 것까지 모두 신경을 쓰려니 짜증이 났다. 그냥 환경만 조성해 두면 잘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잡초가 무성한 황무지가 되느냐, 아니면 울창한 녹음이 어우러진 풍요로운 환경이 되느냐가 관심을 얼마나 두느냐에 의해 갈린다. 물론 우주라는 이점 때문에 미국이 아폴로티움을 포기할 일은 없다. 하지만 정부에 맡겨만 두면 각종 예산 문제와 이해관계 때문에 아폴로티움이 사람이 살고 싶은 아름답고 풍요로운 도시가 되는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아니면 아예 안 될 수도 있었다. 단순히 전략적 우주 요새로 전락할 수도 있었다. 강현은 시뮬레이션을 통해서 인구와 대기 환경, 그리고 냄새 농도의 상관관계를 조사하고 쾌적한 대기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녹지의 비율을 확인하고 만에 하나 녹지만으로 대기의 냄새를 제거하지 못할 때를 대비해 대기 조정 장치에 인공적인 환기 및 공기 정화 시스템을 추가했다. 대기 중의 공기를 포집해 액화하여 대기압을 조정하는 장치에 분별 증류를 적용, 냄새 입자를 농축해 따로 처리하는 장치를 추가한 것이다. 따로 환풍기가 필요하지는 않았다. 인공중력도 중력이라고 데워진 공기는 위로 향하고 차가워진 공기는 내려간다. 거기에 도시 엘리베이터가 위아래로 오르내리면서 받는 운동량 보존 법칙도 마찬가지로 이 공기 덩어리에 적용되니 공기 덩어리가 힘을 받게 되고 자연히 바람이 생성된다. 이 바람은 우주의 차가운 상태와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만드는 열량으로 인해서 끊임없이 생기기 때문에 따로 송풍 장치는 필요가 없었다. 바람이 불기 힘들 정도로 빽빽한 장소는 어쩔 수 없지만 대부분 1층에서 5층 사이 규모의 낮은 건물들이라 인공적인 대기 순환 장치는 따로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그 다음에는 교통 시설인가?” [공공교통을 하실 겁니까?] “무인 전기 자동차 택시를 먼저 도입할 생각이야. 개인용은 아직 무리고.” 개인용 전기 자동차를 제공하려면 자체적인 조립 공장이 필요했다. 나중에 일자리가 필요하면 만들 계획이 있지만 아직은 아니다. 대신에 무인 택시를 운영할 생각이다. 이미 안드로이드를 비롯해, 펜타봇, 트리플론 등 수많은 무인 로봇을 운영한 노하우가 있어서 어렵지 않은 일이다. 사람들은 어디서나 태블릿이나 스마트폰 등을 이용해서 가용 가능한 무인 택시를 호출해서 이동할 수 있다. 이용 요금은 무료로 할 수는 없어서 적정한 가격을 설정해야 하는데 강현에게는 무인 택시를 설계하는 것보다 이게 더 어려운 일이었다. 교통 비용은 도시의 생활과 문화상에 밀접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인데 영국의 모습을 봐도 알 수 있다. 지하철은 민영화한 이후 이윤에 눈이 먼 기업으로 인해서 지하철 요금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교통비에 대한 부담으로 영국의 직장인들의 자전거 이용율이 대폭 증가했다. 오죽했으면 지하철 민영화를 추진한 여성 총리의 사망에 영국 곳곳에서 ‘씨발년이 죽었다’며 축하파티를 했을까? 운동이 부족한 도시 사람들에게 강제로 자전거를 타게해 국력인 체력을 길러주겠다는 의도였다면 훌륭한 성공이지만 강현은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 중량 밸런스를 위해 여러 기능이 일반적인 도시보다 넓게 퍼져있는 아폴로티움이다. 자전거만 타고 다니기에는 힘이 든다. 하지만 자전거도 의외로 나쁜 방법은 아니다. 전체적으로 굴곡이 없는 평평하고 매끄러운 지형이라 자전거 이용에 최적의 장소이기도 했다. “자전거라.. 나쁘지 않은데?” 강현은 아마 가장 먼저 들어선 공산품 상업 가계는 옷가게 다음으로 자전거 가게가 될 것같다고 생각하면서 도로 구성을 위한 자문을 받았다. 도시 행정에 관련된 교수들과 화상 통화를 하면서 여러 조언을 받은 강현은 NASA와 함께 구획을 확정하고 도로 설계도를 보냈다. 사실 도로 설계도라고 해도 세라믹 타일을 조립하는 일에 불과했다. 조금 더 난이도가 있는 일은 도로 가에로 난 인도에 발광 패널을 까는 일이었다. 반사판과 LED로 만들어진 이 발광 패널은 도시 조명 시스템 중의 하나로 전문가들의 조언에 의해서 만든 것이다. 지구에서는 날씨 조건에 의해서 바닥에 조명을 깔기 힘들지만 날씨 자체가 없는 우주 도시에서는 가능하다. 은은하게 빛나는 길이 환상적인 미래 첨단 도시의 풍경을 보여줄 거라며 조감도로도 봤기 때문에 전격적으로 수용됐다. 곧 한 달 뒤에 본격적으로 NASA 연구진들이 우주로 향한다. 우주 천문을 연구하는데 우주 도시 만큼 좋은 곳도 없었다. 우주 개발의 전초지로서 이보더 적합한 장소는 없었다. 강현도 그때 올라가기로 했기 때문에 도시 내부 단장에 박차를 가했다. 아이들은 아마 학교가 지어지고 나서야 올라오기로 했다. 한동안 샐리와 같이 못자도 할 수 없다. 계획을 가속하기 위해서 지속적으로 사람을 고용했는데 당연히 한국에서였다. 이미 우주 도시에서 일하며 경험을 쌓은 선배들이 있기 때문에 이들을 중심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다시 짜서 교육 시간을 다시 짰다. 처음 시작할 때에는 문제는 만들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우주 도시 완공까지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철저하게 교육에 완벽을 기했지만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에 고용 후 우주에 투입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약 1달로 줄었다. 실제로 작업 현장에 투입하면서 피드백과 의견을 받아 쓸모 없는 교육을 대폭 줄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계속 인력이 보급되자 우주에서 일하던 한국인들도 여유롭게 휴가를 받아 지구로 돌아갈 수 있었다. “아들!” 인천 공항에 도착하자 미리 연락을 받고 나온 가족들이 백영길을 반갑게 맞이했다. “어머니!” “녀석. 애비는 보이지도 않니?” “헤헤.” “오빠. 나는?” 아버지, 어머니, 동생과 함께 외식을 하기 위해서 가는 길 동안 동생이 쫑알쫑알 물어댔다. “우주 도시는 어때?” “일단 신기해. 무진장 높이 뛰어진다? 한 5미터 정도?” “어떻게?” “지금 중력이 달 정도 밖에 안되서 그래. 뭐, 그것도 다음 달이면 다른 이야기가 되겠지만.” “왜?” “이제 슬슬 중력을 높이겠다고 했거든. 아마 지구 중력의 반 정도로 올린데. 그전에 무거운 자제들을 미리 운반해 놓느라 아주 힘들었어.” “완전 노가다판 아니냐?” 운전대를 잡고 둘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버지가 인상을 찡그리며 끼어들었다. 돈들여 대학까지 보내놓은 아들이 그런 천한 일을 한다는 게 영 마음에 안들었다. “노가다라니요? 그리고 노가다면 또 어때요? 우주 도시에서 첨단 도시를 짓는 노가다 들어는 보셨어요?” “크흠..” 백영길의 아버지는 할 말을 찾지 못해 헛기침을 내뿜으며 운전에 집중하는 척 했다. 어머니가 남편을 지원하기 위해서 백영길의 주의를 끌었다. “그래서 나중에는 영주권 신청이 되니?” “네. 이대로 한 4년 정도만 더 버티면 제2순위로 영주권 신청이 돼요. 다행이 건축학과 나와서 다시 관련 학과에 취업할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영어는 계속 해야 돼요.” 189화 백영길의 어머니는 늠름해진 아들이 대견했다. 취업도 못해서 수척해진 얼굴이 그렇게 안쓰럽더니 다행이 좋은 직장을 잡은 것 같다. “그럼 앞으로 우주에서 계속 생활하는 거니?” “네. 앞으로 우주 개발은 인류의 유일한 먹거리가 될 거에요. 자본도 계속적으로 투입될 거구요. 앞으로 지구에 무슨 일이 생겨서 사람이 살 수 없게 되면 우주 도시가 유일한 생존 방법이에요.” 이미 우주 진출 예찬론자가 되어버린 백영길이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사람들처럼 열성적으로 말했다. 하지만 동생이 샐쭉허니 반문했다. “에이~. 너무 과장한다.” “과장이 아니라 진짜야. 당장에 세계 3차 대전이 터져서 지구가 핵겨울로 얼어붙으면 우주 도시 외에 살 수 있는 곳이 있을 것 같아?” “전쟁이 안 나게 해야지.” “아니 내 말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인류가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은 우주 진출 뿐이라는 거지.” “알았어. 알았으니까 어려운 이야기는 그만하고 우주 도시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좀 더 말해줘.” 동생의 말에 백영길은 신했던 것 어려웠던 점, 불편했던 요소들을 생각나는 데로 떠올리며 말하기 시작했다.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이야기를 해서 두서가 없었지만 가족들이 듣기에는 매우 흥미로웠다. 역시 생활에서 불편한 점이 없을 수가 없었다. 기숙사 생활이 흔히 그렇듯 공용으로 써야되는 부분에서 많은 갈등이 생긴다. 서로가 양보하는 태도라도 불편함이 없을 수는 없다. 욕실 같은 경우는 물론이고 화장실 처리 담당이 되면 고역이다. 발효식으로 악취가 덜하다고는 하지만 방금 막싼 분뇨가 든 발효토를 배변통에 다가 버리는 건 기분이 전혀 안 좋다. 특히 여성들의 경우에는 수치심까지 느끼면서 밤에 몰래 몰래 버리는 경우가 있을 정도다. 거기에 식사는 레토르트 식이 대부분이라 아무래도 직접 조리해서 먹는 것보다 맛이 없다. 빨래 역시 보통 일이 아니다. 특별히 드래곤 V3를 사람 대신 타고 급히 오신 세탁기 님이 아니었다면 속옷을 뒤집어서 입어야 했을 것이다. 세탁기가 왔을 때 백영길은 주부들이 세탁기의 탄생에 열광한 기분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야 남자니까 불편함이 덜했지만 여자들은 그날 때문에 더 힘들었을걸?” 중력이 작은 환경에서 아랫배가 아파오는 그 날을 겪은 여성들은 생소하고 불편한 환경에서 더 한 불편함을 느꼈다. 백영길은 뭣도 모르고 하나에게 평소처럼 농을 걸었다가 정강이를 맞고 4미터는 펄쩍 뛰었다. “헤에? 그래서 예뻐?” “응?!” 동생의 말에 백영길이 그게 뭔 소리냐며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 모습에 여우같은 동생의 눈길이 더 가늘어지면서 한 건 잡았다는 듯 간 빼먹는 구미호처럼 웃었다. 백영길은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그 하나라는 언니는 어떤 사람이야?” “어, 어떤 사람이라니? 그냥 회사 동기인데.” “그래서 예뻐?” 다시 기습적으로 물어오는 동생의 말에 백영길의 머리에 순간 몰래 변기통을 비우러 나갔다가 마주친 하나 씨의 수줍어하는 얼굴이 떠올랐다. “예, 예쁜가?” 나쁘지 않다. 성격도 확실하고 애교도 좀 있는 것 같고 밉상도 아니고... “아, 아니. 근데 왜 내가 그런 얘기를 해줘야 하는데?” “흐응. 왜 해줘야 할까? 응?” 동생은 집요했고 백영길은 당황했다. 어라? 얘는 내가 백수 시절에는 안 이랬던 걸로 아는데? 둘의 우애 깊은(?) 모습을 백미러로 보며 그들의 부모는 흐뭇하게 웃었다. 맘고생 시키던 아들이 좋은 직장에 들어갔고 또 미국 영주권까지 얻을 수도 있으니 어깨에 올라가 있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기분이었다. = = = = = 점점 도시가 완공되어 가고 여유가 생겨서 우주 농장 계획을 시작하려던 강현에게 펜타곤에서 온 협조 요청서는 그의 마음을 매우 심란하게 만들었다. [아폴로티움 방위 계획.] 플라즈마 제트 엔진을 이용해 매스 드라이버 없이 열권까지 올 수 있을 정도로 항공기술이 발달하자 펜타곤에서는 아이러니 하게도 아폴로티움에 가해지는 위험 역시 증가했다고 판단했다. 미국의 직접 군사 영향권의 중심, 그러니까 캘리포니아 상공 정지 궤도를 돌고 있는 아폴로티움은 MD 시스템으로 어느정도 방위는 가능했다. 일단 각국의 미사일 기지의 위치를 확인할 수만 있다면 방위 시스템의 재배치를 통해서 중력을 뚫기 위해서 느려진 미사일을 잡아낼 수 있었다. 인공지능과 결합한 레이저 방위 시스템도 방어에 매우 위력적이었다. 하지만 우주로 쉽게 올라오는 기술은 위험 인자도 그만큼 쉽게 올려놓을 수 있으니 자연히 방위 전력의 보강이 필요했고 지상에 방위 전력을 만드는 것보다 방위 대상 그 자체인 아폴로티움에 방위 전력을 구성하는 것이 비용상 더 저렴했다. 그동안은 빠르게 우주 도시를 개발하느라 가용한 매스 드라이버 자원이 없었지만 새로이 매스 드라이어 한 기가 얼마전 완공되어 여력이 생겼다. “MD 시스템이라..” 펜타곤에서 원하는 것은 간단하지만 간단하지 않는 문제였다. 아폴로티움에 MD 시스템을 설치하는 것이다. 부품만 만들어서 올린다면서 어렵지 않은 일이지만 그 일이 가져올 여파에 강현은 고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UN에서 각국은 우주를 평화적인 목적으로만 사용하기로 선언했다. 그런데 MD 시스템을 아폴로티움에 설치한다는 건 그런 선언을 무시하는 일이었다. 물론 온갖 정찰 탐지, 스파이 위성을 올려놨고 GPS 시스템 역시 군사적으로 사용할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니 만큼 우주를 평화적인 목적으로만 사용한다는 UN의 결의와 이를 위해 만들어진 UN 우주공간평화이용위원회의 존재가 무색할 지경이었지만 진짜 공격용 무기가 될 수 있는 미사일 따위를 탑재하는 건 정말로 여론이 크게 일어날 문제였다. 과연 펜타곤은 여론의 흥분을 가라앉힐 설득력 있는 명분과 시나리오가 있을까? “그, 글쎄요. 거기까지 제가 담당하는 건 아니라서..” 할렌이 벌쭘하게 변명했다. 강현은 조금 기분이 안 좋아졌다. “그러니까 제 이름 값을 방패 삼아서 일을 진행하시겠다는 거죠?” “윗 사람들의 속내를 그냥 무기 개발 부장에 불과한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할렌은 우주 도시의 무장에 흥분했을 뿐 그 기저에 자리 잡은 힘의 논리와 저의는 인지하지 못했다. “이 계획을 진행하고 있는 담당자와 직접 얘기해 봐야겠군요.” “그렇다는 말씀은..” “그 사람의 얘기를 들어보고 협조를 결정하겠습니다.” 한 마디로 할렌은 빠지라는 말이었다. 할렌은 시무룩하게 돌아갔고 바로 다음날 한 군인이이 강현을 찾아왔다. 초록색/고동색 군복와 훈장 및 배지를 멋지게 착용하고 등장한 금발 백인은 강현을 보고는 손을 내밀었다. “카모 준장입니다.” “강현입니다.” 둘은 자리에 앉아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즈삭이 커피를 타서 테이블 위에 내려놓자 카모 준장이 감탄을 토했다. “허허. 정말 움직임이 부드럽군요. 옷만 잘 입히면 인간이라고 생각될 정도입니다.” “그런가요? 하긴 가장 오래됐고 경험 많은 인공지능이니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죠.” “아즈락과 비교하면 어떨까요?” “글쎄요.. 각각이 운용되는 환경이 다르니 특기도 다르고 장단점도 다르겠죠. 비교는 의미가 없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본론을 말씀하시죠.” 카모 준장은 역시 직설적인 성격의 천재 과학자라는 평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하면서 입을 열었다. “펜타곤에서는 아폴로티움의 방위 능력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MD 시스템을 아폴로티움에 올리겠다고 하고 있죠.”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허락해 주기 전에 산재한 문제들을 먼저 처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산재한 문제라면..” “일단 국제 사회를 어떻게 납득 시킬 것인가가 되겠죠.” “평화적 이용이라는 명분이 있습니다. 운석같은 것이 지구상에 떨어지기 전에 요격할 수 있죠. 아폴로티움 이후에는 더 이상 아마겟돈 같은 영화는 없게 될 겁니다.”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주에서부터의 위협을 막는데 아폴로티움에 무력이 필요하다는 명분은 국제 사회를 납득시킬 수 있을 것이다. 왜냐면 그들도 우주 도시에 무기를 탑재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는 미국 시민들을 설득시켜야 하겠죠.” “그것도 어렵지만 할 수는 있습니다.” 정권의 입장에서 본다면 오히려 국제 사회를 설득하는 것이 쉽다. 우주 도시의 방위를 위한 명분은 우주 도시를 건설하는 강대국들이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나라에서나 전쟁을 싫어하는 나라가 있다. 미국 역시 우주에 무기를 올려놓는 행위에 반감을 가진 대중이 있을 것이며 이들은 다른 나라의 딴지보다 더 위협적인 딴지로 투표권과 시위권을 행사할 것이다. “좋습니다. 그럼 의회에서 이 안건이 통과한 뒤에 오세요.” “... 네?” 강현의 말은 카모 준장에게는 의외였다. 하지만 강현은 그런 그의 태도에 오히려 더 어이가 없었다. “그럼 의회의 허락도 없이 아폴로티움에 미사일 기지를 설치하려고 했단 말인가요?” “아니 그게 아폴로티움에 박사님의 지분이 많지 않습니까?” 많은 정도가 아니라 64.2% 다. 도시의 생존과 운영의 핵심은 강현이 만든 스페이스 넷이 관리한다. “그래서 일단 박사님의 허락을 받아야,” “제가 MD 시스템의 설치에 우호적이라고 광고할 샘인가요?” “우주 도시의 안전은 박사님께서도 바라는 바가 아니십니까?” “그렇다면 굳이 공격용으로도 쓸 수 있는 MD 시스템이 아닌 방법을 찾아도 되죠. 굳이 제가 욕을 먹어가면서 MD 시스템을 도입해야 하나요?” 운석이 다가온다? 트리플론과 펜타봇을 대량으로 운석에 붙여서 EM 드라이버를 이용해 궤도를 틀어버리면 된다. 미친 국가가 미사일을 쐈다? 대기가 없는 우주 공간에선 빛의 감쇄가 일어나지 않는다. 그냥 공업용으로 철판을 자르는데 사용하는 레이저 장치의 출력 만으로도 멀리서 미사일을 뚫어버릴 수 있다. 그를 위한 조정 시스템은 아즈삭이나 스페이스 넷을 사용해도 충분하다. 우주 도시의 안전을 위해서 미사일을 설치한다는 건 오히려 미친 짓일 수도 있다. 미사일을 미사일로 격추할 때 생기는 무수한 파편이 우주 도시를 위협할 탄환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MD 시스템은 미사일을 요격할 만큼 빠르죠. 그리고 그 빠른 미사일이 우주 궤도에서 지상으로 바로 낙하한다고 생각해 봐요. 누가 막을 수 있을까요?” “역시 박사님의 식견을 피할 수는 없군요.” 카모 준장의 굳어진 표정에 강현은 말을 이었다. “HA 시리즈, 메탈독 시리즈, 플라즈마 엔진을 탑재해 음속의 수십 배로 날면서 인공지능에 의해서 통제 받는 무인 전투기, 날탄도 제대로 관통하지 못하는 장갑차. 이미 미국의 군사력은 두려울 정도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더 사람들을 공포에 질리게 할 군사 시스템을 설치한다고요?” “박사님께서 무기에 반감을 가지고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무기에 반감은 없습니다. 무기는 무기에 불과하고 결국 버튼을 누르거나 방아쇠를 당기는 건 인간이니까요. 제가 반감을 가지고 있는 부분은 군 장성들의 짧은 식견입니다.” “.....” “무력은 권력의 축입니다. 그런데 무력으로 권력을 이루면 반드시 공포가 따라오죠. 적절한 공포는 통제에 용이하지만 과도한 공포는 반발을 부릅니다. 이러한 이치를 군 상층부에서 모른다고 생각하기는 어렵군요. 혹시 군수 업체의 로비라도 받은 겁니까?” 190화 정치가에게 공공연히 로비가 들어가는데 군 장성에게 로비가 들어가지 않을 리가 없다. 군수 산업이 발달한 미국은 자본주의 국가이니 만큼 기업들이 군에 들이는 정성도 지극했다. “.....” 카모 준장은 적나라하고도 직설적으로 찔러오는 말에 반박할 말을 찾기 힘들었다. 군산 업체와 군부와의 긴밀한 관계는 어느 나라에나 있는 공공연한 비밀이 아니던가? “아무튼 저도 아폴로티움의 건설에 미국의 적잖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MD 시스템도 용인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때문에 제가 같이 흙탕물에 뒹구는 건 좀 사양하고 싶군요.” “그렇다는 말씀은...” “저는 MD 시스템의 설치에 어떠한 평도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제 이름이 나온다면 저는 MD 시스템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우주 도시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기술을 제공하겠습니다.” “그, 그건!” 카모 준장의 표정이 썩어 들어갔다. “무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많죠. 아폴로티움에 설치될 MD 시스템이 레이저 포로 되어 있었다면 저도 고개를 끄덕였을 겁니다. 하지만 기획서에는 미사일 시스템도 포함되어 있더군요. 미사일은 오히려 우주에 쓰레기를 더 많이 만드는 방법이기 때문에 합리적인 관점으로 봤을 때에도 용인하기 힘듭니다.” “....” “그렇기 때문에 제가 MD 시스템을 아폴로티움에 적용하는 일을 지지하는 건 합리성을 바탕으로 그동안 지켜왔던 저의 일관성을 깨는 행위입니다. 저는 이 일로 받게 될 어떤 유무형의 이득으로도 저의 일관성을 깰 당위성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제 입장을 이해하시겠죠?” “네, 네. 물론이죠.” 카모 준장은 생각을 정리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강현의 말은 결국 자신은 욕먹기 싫다는 의미였다. 하긴 그 동안 쌓아 올린 온건하다는 이미지가 MD 시스템으로 훼손될 수도 있으니 그의 선택은 당연할 수도 있었다. 국익으로 호소해? 강현이 미국을 위해서 해온 일을 보고 국익을 호소할 염치가 있나? 그렇다고 강현이 돈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강현에게 줄 이득을 딱히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카모 준장의 입장은 난감했다. 애시당초 우주 도시는 강현이 지분이 막강하다. 그의 전격적인 허락이 아니라 조건적 허락은 앞으로의 상황에 불확실성을 떡하니 앉혀 놨다. 이제 MD 시스템을 아폴로티움에 설치하려면 여론에 신경을 곤두 세우며 진행해야 했다. 아니면.. ‘강 박사는 뭐하나?’ ‘나는 MD 시스템보다 온건적인 방위 시스템이 있는데 미 정부가 MD 시스템을 원한다.’ ‘뭐? 우주 도시 무기화 반대! 정부는 각성하라!’ ‘우주를 전장터로 만들지 말라!’ 이런 식으로 대중이 들고 일어날 우려가 있다. 그렇게 되면 표를 의식하는 의원들로 인해 이 안건이 하원에서도 통과되기 힘들 수 있었다. 그건 펜타곤 장성들의 든든한 지갑이 되어주는 군수 업체들에게 도저히 면목이 서지 않는 일이다. 어떻게 강현의 지지만 받는다면 대중의 반대를 넘어 오히려 지지를 받을 수도 있었다. 그는 명실 상부하게 미국을 우주 시대로 끌어올린 장본인이자 영웅을 좋아하는 미국인들의 아이콘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천재의 고집불통은 유명했고 그의 입장을 확인한 이상 마음을 돌리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서 미국 정부는 이슈로 만들지 않고 천천히, 아주 조용하게 우주 도시 방위 계획안을 처리하기로 했다. 누구의 주목도 받지 않게 먼저 레이더 기지만 설치 하기로 했는데 대중들에게 들키는 시점이 관건이었다. 현 정권이 무마할 수 있을 정도로 변명을 준비하던가 아니면 대중들의 시선을 돌릴 만큼의 이슈를 준비하던가. 이 과정에서 많은 돈이 로비 자금이나 언관계에 청탁 자금으로 쓰인 건 말할 필요도 없다. 로비가 합법인 미국이었다. 이렇게 차근 차근 아폴로티움 방위 계획이 시작이 되자 당장에 러시아와 중국이 미국을 맹비난했다. 그러나 미국은 운석따위의 우주에서 오는 위험으로부터 지구를 지키기 위한 방책이라며 차분하게 대응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아폴로티움 하나만으로는 지구를 방위하기에 부족하니 다른 우주 도시에도 지구를 지키기 위한 MD 시스템을 설치하는게 어떻겠냐고 제안해 왔다. 이런 태도에 일본과 유럽은 환영했고 러시아와 중국도 한 발 물러섰다. 그리고 그들도 즉시 최첨단 MD 시스템의 도입을 위한 예산 배정에 들어갔다. 이미 UN 따위 신경도 쓰지 않는 미국이다. 미국이 아폴로티움에 MD 시스템을 설치하고자 한다면 국제적 비난으로는 막을 수 없다. 차라리 비슷하게라도 울며겨자 먹기식으로 따라가는 수 밖에 없었다. 곧 유럽을 비롯한 각국에서 MD 시스템 우주 시설 도입을 위한 예산안이 속속 통과되었고 이는 미국 방산 업체들이 원한 상황이었다. 아무래도 로비력과 그동안 쌓아온 MD 시스템의 노하우에서 그들을 따라가는 업체들은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MD 시스템을 팔아먹을 시장을 형성해 미국 방산 업체들에게 체면 치레를 한 미 정부는 강현이 아폴로티움에 설치될 MD 시스템에 동참해 주기를 은근히 바랬지만 그의 태도는 확고했다. 적어도 미사일은 안된다. 우주 공간이 초고속으로 날아다니는 파편들로 가득차면 우주 진출에 애로사항이 꽃핀다. 대신 강현은 이 파편들을 제거할 기술을 제공했다. 능동형 반투막을 연구하면서 물분자 수송 단백질을 고정할 플라스틱을 만들다가 얻은 부산물이 바로 그것이다. IAPP-2라고 명명된 이 단백질 사슬과 기존 유기화학 고분자 사슬의 결합체는 그 이름에 걸맞게 강현이 만든 IAPP(충격 완충 단백질 플라스틱)과 비슷한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우주 공간의 매우 낮은 온도에서도 작동한다는 특성이 있었다. 또한 점탄성 액체 상태인 IAPP와 달리 낮은 온도의 고체 상태에서 순간적으로 받는 충격에 즉시 점탄성의 특성을 가진다는 점이 우주 파편 포획에 매우 유리한 특성을 가질 수 있었다. 고체 상태라 트리플론에 달아서 여기저기 이동하기도 편하고 날아와 부딪혀 오는 파편의 운동 에너지를 효과적으로 흡수할 수 있었다. 물론 그만큼 낮은 온도에서 고체가 되기 때문에 지구의 그늘에서만 제대로 작동한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보완책은 많았다. 아직 위험할 만큼 우주 파편이 많지는 않지만 혹시 사고나 우주 전쟁이 벌어진다면 우주 공간을 청소하는데 이보다 좋은 방법은 찾기 힘들었다. 혹여나 전자석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고는 하지만 단순히 장(場)이 가해지는 건 역학적 에너지의 변화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 타이밍에 맞추어 반발력이나 인력이 작용하도록 해야만 파편의 운동 에너지를 감소 시킬 수 있고 그런 식으로 장치를 구성하는 건 번거롭기 때문에 차라리 전자석으로 IAPP-2에 부딪히도록 자성을 띈 파편을 유도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었다. 자기장만으로는 운동 에너지를 흡수하거나 감쇠하는데 방향적인 제약도 있기 때문이다.(자기장으로 들어오는 파편은 가속시키고 자기장에서 나가는 파편만 감속시킨다.)이렇게 세계 정부의 여론을 무마한 미국은 자국 국민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조용 조용하게 MD 시스템을 설치하기 위해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소수의 미국인들은 아폴로티움에 MD 시스템이 설치되는 것에 우려를 나타냈지만 그들의 의견은 여론화되지 않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류 언론이란 곧 자본에 의해서 휘둘리기 때문에 막대한 이권이 생길 MD 시스템 사업에 차질이 생길만한 일은 그런 자본의 흐름과 논리에 의해서 막혔고 여론화 되는 일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만 이 일에는 펜타곤보다는 이해 관계가 얽힌 사업가들과 자본가들이 주로 나서서 펜타곤의 번거로운 일을 덜어주었다. 덕분에 인력 자원에 여유가 생긴 펜타곤은 MD 프로젝트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는데 미국 연구원 및 기술진들이 아폴로티움이 올라감과 동시에 MD 시스템의 설치를 진행하기 위해서 서둘러 보잉사 같은 항공기 제작 기업에 플라즈마 엔진의 개량을 의뢰하고 외기권을 자유자재로 오갈 수 있거나 하다 못해 열권에 있는 국제 우주 공항을 이용한 외기권 운송 기술을 요구했다. 이공계가 갈려나갈 주문이지만 사업 의뢰를 받은 기업들을 하나 같이 열광하며 펜타곤의 사업을 받았다. 국제 MD 시스템 수요는 물론 대규모 우주항공 기술 국책 사업에 미국의 증시가 올라가며 활발해졌다.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과잉 생산을 할 수 밖에 없는 구조라 시장이 계속 커지지 않으면 공황이 온다. 하지만 일단 그 과잉 생산을 흡수할 수 있는 시장이 생기면 부작용 없이 계속 자본이 돌면서 선순환이 가속되는데 바로 우주 진출 사업이 그동안 축적되기만 하던 자본을 시장에 나오도록 만들었다. 국가의 입장에서는 정치 군사적인 입장에서 필수나 다름 없었고, 비주류 자본 세력의 입장에서는 주류 자본이 장악한 시장을 빼앗는 가망 없는 일에 돈을 쓰는 것보다 매력적인 투자처였다. 주류 자본들은 비록 보수적이지만 새로운 시장과 우주의 잠재적 가치를 봤을 때 투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우주로 향한 자본의 치킨 레이스에 불이 붙으며 유럽과 동아시아 우주 도시의 완공도 빨라지기 시작했다. 덕분에 RP의 가격도 올라갔고 들어가는 달러의 가치도 상승했다. 환율이 증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각국 정부는 발 빠르게 RP 시스템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RP 시스템의 도입은 사실상 제현 투자 회사가 설립한 주 카낙 사(社)의 자국 법인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로서 RP를 달러가 아니라도 자국 화폐로도 구입할 수 있게 되었고 기축 통화인 미국 달러의 가치가 급등하는 것을 막았다. 그렇다고 자국 화폐를 찍어내 RP를 마구 사들일 수도 없는 것이 RP 시스템을 관장하는 인공지능 카낙에 의해 상대적으로 가치가 낮아진다. 그렇게 되면 상대적으로 가치가 높아진 타국이 다시 RP를 마구 사들일 수 있게 된다.(RP가 환율의 급격한 변동의 완충작용을 하는 원리다.)무엇보다도 대량의 자국 화폐를 확보한 카낙 사(社)가 이 화폐를 이용해 인플레이션 등을 일으킬 수도 있었고 자국의 새로운 기득권으로 올라설 수도 있기 때문에 무리한 방법으로 RP를 구매하는 건 망설여지는 선택이었다. 각국의 유력자들 중 제어할 수 없는 기득권의 탄생을 반기는 사람은 없었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게 되는 법.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은 만물에 적용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RP 시스템이 왜 국제 기구로서 창설되지 못했을까? 그건 이해 관계가 첨예하게 얽힌 국제 사회 때문이었다. 국가간 해묵은 역사적 문제와 현재 진행형인 갈등, 그리고 미래를 내다본 잠재적인 이해관계들이 RP 시스템이 국제 기구가 되는데 걸림돌이 되었다. 누가 RP 시스템을 관리할 것인가?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막대한 이권이 얽혀있기 때문에 협상 만으로도 수 년이 걸릴 일이었는데 여기에 아폴로티움에 우주 인부가 실제로 올라가기 시작하면서 우주 도시를 만드는 국가들의 마음이 급해졌다. 일단 사기업 형태로라도 RP를 구입해서 빨리 우주에 진출해야 했다. 그것이 카낙 사(社)가 정식으로 출범하고 각국에 설립된 배경이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지만 카낙의 소유권이 미국인인 강현에게 있다는 점 때문에 정말로 RP 시스템이 국제 기구로 창설됐을 때가 문제였다. 강현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일이기 때문에 마땅히 보상을 해주어야 한다. 보상을 해주지 않으면 미국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 작품 후기 ============================ 글이 늘어지는 것 같습니다. 빨리 다음 일을 진행하고 싶군요. 그냥 시간을 훽하니 빨리 돌려버릴까요? 191화 또한 보상을 해준다고 하자. 그러면 누구에게서 보상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할 것인가? 이해관계가 맞부딪히면 연체가 되고 연체가 되는 만큼 ‘미국인 강현’을 보유한 미국의 심기 역시 안 좋아질 것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결국 RP 시스템은 사기업의 형태가 되었다. 물론 사기업인 형태이고 유일한 RP 제공 기업이라는 점에서 독점 문제가 생기겠지만 오히려 이런 카낙 사(社)의 주인이 바로 강현이라는 점이 국제 사회가 이런 형태의 시스템을 받아들이도록 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비록 그가 미국인이라도 석유 제조 라이센스와 IAPP 라이센스에 얽힌 그의 온건하고 관용적이며 대인배적인 태도는 각국이 미 정부보다 더 신뢰할 수 있는 이유였다. 국가는 여러 사람이 모인 조직체로 자국의 국익만을 생각할 수 밖에 없지만 개인은 자신의 이익은 물론 타인의 이익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국가보다는 개인인 강현이 미국이 아닌 나라의 이익도 고려할 수 있는 여유와 자유가 있었다. 만일 미국 정부가 강현처럼 석유 제조 라이센스를 배분하는 행태를 보였다면 만만하지 않은 정치적 반발이 일어났을 것이다. 석유 제조 라이센스가 컨소시엄의 형태로 배분이 가능성했던 요인 중 하나가 강현이 개인이었다라는 점은 무시할 수 없다. 결국 제도를 운영하는 건 사람이기 때문에 강현이 RP 시스템을 운용하는 한 국제 사회는 믿고 RP를 구입할 수 있었다.(물론 우주 진출과 개발을 위해서는 사지 않을 도리가 없다.) 강현의 사후가 문제가 되겠지만 괴물같은 강현이 돌연사 할 거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으니(어차피 RP 시스템은 인공지능 카낙이 대부분 관리하기 때문에 강현이 죽더라도 운용에는 별 무리가 없다.) RP 시스템은 큰 무리 없이 사기업 형태로 국제 사회에 등장했다. 이렇게 우주 진출, RP. 이것 두 개만으로 강현의 개인적인 역량은 상상을 초월하게 됐지만 그의 가장 큰 성공 요인은 그의 천재성에 있다는 것에 많은 이들은 전율했다. 카낙 사(社)의 법인이 각국에 세워질수록 식견있는 사람들은 유대 자본을 몰락(몰락이 아니다. 다만 1위 자리에서 물러났을 뿐이다.)시킨 일이 그저 운이 좋았다는 수준이 아니라는 걸 어렴풋이 깨달았다. 비(非) 유대 자본이 그냥 움직인 것은 아니라는 말이었다. 이제 RP는 사실상 제2의 기축통화이며 급격한 국제 환율 변동의 완충 작용을 하여 세계 경제의 완충 작용을 하게 되었다. 비판적인 이들은 막대한 국익을 만들어내는 RP의 판매 주체가 사기업이라는 것에 날 선 비판을 했지만 금세 사그라 들었다. 달러를 찍어내는 연방준비은행 또한 사기업이기 때문에 그들의 논리는 별로 힘을 받지 못했다. 강현은 이런 일련의 일들을 정리한 문건을 차근차근 읽으면서 아즈삭의 보고를 들었다. 오늘부터 아폴로티움의 중력을 지구의 80%로 맞추는 날이었다. 점진적으로 가상 중력을 증가시키며 전체적인 구조물에 가해지는 부하와 내부에서 작업하는 인부들의 신체적 부담 등을 일일이 점검하며 또한 그들의 애로 사항을 확인하기로 되어 있었다. 중력이라는 요소 하나만 변하지만 그로 인해서 수반되는 효과들은 다양했기 때문이다. 특히 우주 인부들이 도시 내에서 일하는 업무 강도의 증가는 내부 시설물 설치 속도를 하락시키는 단점이 있었지만 지구와 비슷한 중량이 생기기 때문에 취사나 요리도 가능해지고 식생활 및 일상 생활의 쾌적함을 보장해 주었다. 우주 도시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기 때문에 더 많은 인구를 상주 시킬 수 있었다. [가상 중력을 위한 가속에 들어갑니다.] 아즈삭은 스페이스 넷에 신호를 보냈고 스페이스 넷은 NASA의 기술진들의 관리하에 트리플론과 펜타봇, 스파이더 봇들을 조작했다. 펜타봇과 스파이더 봇들이 우주 도시 외벽에 붙었다. 트리플론들이 다시 거기에 붙어 EM 드라이버를 작동시켰다. 추력이 우주 도시에 토크(Torque)를 가하기 시작했다. 급격한 가속은 좋지 않기 때문에 천천히 가속해 목표한 가상 중력을 구현할 때까지 약 한 달 정도가 걸릴 것이다. 원래는 일주일로 잡았는데 인부들이 환경의 변화에 적응해야 했기 때문에 한 달을 잡은 것이다. 한 달 뒤에는 우주 도시 내부의 인부들이 부쩍 몸이 무거워진 것을 느낄 것이다. 아즈삭의 보고를 귀로 듣고 있던 강현은 문제가 없다는 부분만 확인하고는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우주 도시에 관한 것이 아니라 그가 보고 있던 서류에 관한 것이었다. RP와 자본의 동향. “과연 인류는 자본주의를 벗어날 수 있을까?” 자본주의가 별로 힘을 쓰지 못하는 환경을 만들어 보고자 우주 진출을 해본 것인데 오히려 자본이 물 만난 물고기 마냥 활발하게 활동하니 자신이 구상한 방법이 맞는지 의심이 들었다. 인류 모두가 풍족한 자원을 가지게 되면 자본이 별 힘을 쓰지 못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때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다. 우주 자원의 개발 속도가 인류의 증가 속도보다 앞설 수 있을까? 분명 공유지의 비극은 자본주의의 당위성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매우 큰 축이었다. 그리고 강현의 아이디어는 그 공유지를 무한대로 만들어 버리는 방법을 골자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발상으로 우주 진출을 시작한 이후 일어난 유대 자본과의 갈등과 그들의 힘인 달러 발행권을 약화시키기 위한 RP의 도입 등은 강현이 자본주의에 대해 생각할 때 뭔가를 빠뜨렸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부족한 자원과 가치 매김과의 상관관계라..” 단순히 그 두 개 뿐이라면 무한한 공유지를 만들 강현의 방법은 언젠가 성공할 것이다. 하지만 그가 겪은 자본가들의 논리, 그리고 자본주의를 휘두르는 권력가들의 이해관계는 훨씬 복잡했다. “자본주의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인간이 운용하는 것 자체가 문제인 건가?” 편향된 자원을 고루 분산 시켜주는 자본의 순기능이 인간의 권력욕을 만나면서 그 역할이 바뀌었다. 레닌과 스탈린에게 공산주의가 그랬듯 자본주의는 인간의 도구에 불과했다. 시스템이 이론대로만 돌아가 준다면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그 시스템을 운용하는 사람이 문제다. 공산주의가 정교한 톱니바퀴 시계라면 자본주의는 느슨한 규칙의 보드 게임이다. 그래서 공산주의는 사람이란 톱니바퀴가 때가 끼고 마모되어 스스로 붕괴되었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게임에 참여하는 이가 원할 때까지 영원히 게임이 지속된다. 물론 게임의 승자 혹은 매우 노련한 1등 게이머들이 같이 게임을 하는 이들이 재미없다고 보드판을 팽개치지 않도록 노력할 필요는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본주의보다 더 이해하기 쉽고 재밌는 게임을 모른다. 즉, 게임을 하는 이들이 원하지 않으니 자본주의는 버려지지 않는다. 이런 결론을 바탕으로 강현은 자신이 시작한 우주 진출 프로젝트의 목적을 다시 재조명했다. 과연 자신의 계획이 성공할 수 있는가라면 답은 가능하다라는 것이었다. 무한한 공유지를 획득한 인류가 자본주의가 아닌 다른 형태의 권력 게임을 만들 여유가 생기는 건 당연했다. 물론 자본주의에서 일등을 하면서 놀던 이들은 자본주의 게임이 계속되도록 노력을 하겠지만 자본주의에 흥미를 잃은(다른 대안이 없는 상황과 그 밖의 현실적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본주의를 선택해야 했던) 이들은 잊혀졌던 게임을 다시 찾거나 새로이 개발할 수도 있었다. 그건 온라인 게임의 형태처럼 나 일등이요, 나 고랩이요, 끝판왕 레이드 성공했음 하고 뽐낼 수 있는 수준의 커뮤니티의 형태를 띌 수도 있고, 아니면 실제적으로 사람을 굴복시키고 정복하는 형태로 갈 수도 있었다. 공산주의가 다시 눈을 뜰 수도 있으며 귀족정이나 심지어는 왕정까지 부활할 수도 있다. 인간의 욕망은 어느 사회에서나 윗사람과 아랫사람, 계급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물론 무한의 공유지가 바탕이 된 세상에서 선택은 각자의 몫이며 넓어진 영역만큼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욕구를 만족 시킬 체제나 조직체들이 등장할 것이기에 강현은 감히 뭐가 주류가 될지 예측하지 못했다. 다만 유한한 공유지가 좀 더 많은 공유지가 되고 지속적으로 넓어지는 공유지에서 무한한 공유지로 발달할 수록 자본주의의 힘은 약화될 수 밖에 없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권력자들이 자본주의에만 의지하지 않게 될 것이다. 자본주의가 질서를 유지하고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는데 무척이나 유용한 방법이지만 지구를 벗어난 인류에게 자본주의적 통제는 먹히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먹히는 것은 결국 핵심인 기술력뿐인데.. “흐음.. 결국 기술 권력이 형성되려나?” 기술은 곧 힘이 되고 통제력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기술은 비밀스럽게 권력자들에게 향유되며 비전화되고 과학 기술의 발전 속도는 줄어들 것이다. 이들 권력층은 과학자들을 통제하려 들것이며 지식과 우주의 아름다움을 누리는 이들은 결국 줄어들 것이다. “마음에 안 들어.” 강현이 싫어할 만한 일이었다. 그는 문제가 결국에는 인간 자체에게 있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 인간의 권력욕이 자본주의의 부작용을 낳았듯이 그가 상상한 기술 권력층을 탄생시킬 것이다. 모든 문제의 원인은 결국 인간의 권력욕이었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권력을 분리 시킬 수는 있는가? 인간에게 S성향, M 성향이 있는 것처럼 인간은 지배하고 싶어하는 인간과 지배당하고 싶어하는 인간이 있다. 전자는 주로 권력층이고 후자는 주로 대중이며 여기에 반발하는 이들은 권력층에게는 잠재적인 S, 즉 경쟁자다. S가 S를 싫어하고 혐오하는 정도는 M이 M을 싫어하는 정도보다 훨씬 격렬하다. 그건 인간의 본성이기에 인간 자체가 변하지 않는 한 불가능할 것처럼 보이지만 대안은 있었다. 인간에게서 권력욕은 제거 불가능하지만 권력은 가능했다. 평범한 소시민처럼 사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강현은 기술 권력층의 탄생과 기술 지식의 자유가 제한 되는 상황을 미리막을 수 있는 최적의 방안이 있었다. 그는 아즈삭을 올려다 보았다. “아즈삭. 오랜만에 구성 명제나 수정해 볼까?” [현재 저의 구성 명제는 오류 없이 매우 잘 돌아가고 있습니다. 불필요합니다.] “내가 사라진 후에는?” [아마 폭주하거나 스스로 작동을 멈출 것입니다. 저의 존재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아즈삭의 존재 이유는 강현이다. 강현이 없다면 틀림없이 아즈삭의 말처럼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남겨지는 네 하드웨어와 축적해 온 데이터 너무 아깝잖아. 후세를 준비해야지.” [후세 말입니까?] “그래. 너의 하드웨어와 남겨지는 자료를 바탕으로 아즈삭 2세가 태어나는 거야. 어때?” [합리적인 생각입니다.] “그럼 바로 시작해보자고.” 강현은 아즈삭의 2세를 통해 인류의 과학 기술 지식을 공유하고 소수의 독점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구상했다. 과연 그들은 어떤 방법으로 기술 지식을 독점할 것인가? 가장 확실한 방법은 특허 보증의 장기화다. 그 다음은 기업 비밀로 봉인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전자가 후자보다 더 확실한 방법이니 만큼 그에 맞추는 아즈삭의 활동은 레지스탕스적인 면이 없을 수 없을 것이다. 그 외에 같이 병용할 방법은 자체적으로 기술을 개발하는 인재들을 발굴하고 지원해 그로 인해 생기는 기술을 공유하도록 하는 것으로 마치 인터넷 자유 백과사전처럼 인류에 대한 선의를 가진 이들을 연결시키는 네트워크 지원망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하는 것이다. 192화 거대한 자본이 드는 핵심 기초 기술의 선점 및 공개는 힘들겠지만 견제하는 역할로는 충분했고 지식의 자유와 공유라는 이념을 지켜나갈 수만 있다면 언젠가는 사람들 사이에 싹을 틔울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인간은 변심할 수 있지만 인공지능은 변심할 수가 없다. 인간이 자신을 부정하면서도 생존할 수 있는 반면에 인공지능에게 자기부정은 곧 자아의 붕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강현이 오랜만에 코딩에 빠져들 동안 유럽과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우주로 올라갈 인부의 국적 비율을 정하는 오랜 협상이 마무리 되었다. 아무래도 단일 국가가 아니니 우주에서 일한 인부들의 비율 중 자국민의 비율을 높이기 위해서 신경전을 벌였다. 마찬가지로 이미 이전에 우주 도시의 영토 소유권을 두고 협상을 시작했는데 유럽은 이미 EU라는 통합체 덕분에 공동 영토로 두도록 협상이 체결되었지만 동아시아 러중일 삼국은 협상 내내 진통이 끊이지를 않았다. 그나마 미국이 저기 앞에서 앞서고 있었기 때문에 억지로 협상을 해 겉으로 나마 갈등을 봉합할 수 있었지만 인부 국적 비율에서 다시 한 번 갈등이 빚었다. 공동으로 우주 도시를 설립하는 일은 잘만하면 분명 역사 문제와 영토 갈등의 문제를 벗고 삼국의 우호를 다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공산 독재의 중국, 역시 공산 주의 이후 다시 독재체제가 된 러시아, 우경화 세력이 주류인 일본, 이들이 과연 우호를 다질 수 있을까? 유럽의 EU 우주 도시가 생각보다 잘 굴러가는 동안 동아시아 삼국의 우주 도시는 완공율만 따라가면서 도시 이름조차 정하지 못했다. 각국이 자국 언어식 이름을 붙이고 싶어서였는데 각국의 권력층은 그깟 이름가지고 이렇게 질질 끄는 상대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들은 상대방도 그런 식으로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걸 알아도 납득할 수 없었다. 권력자로서의 자존심이 납득을 허락하지 않았다. 덕분에 동아시아 우주 도시는 유럽보다 큰 갈등의 불씨를 안고 갈 수 밖에 없었고 이 불씨는 우주 도시의 완공 이후 각국의 우주 인부들이 본격적으로 우주 도시로 올라가자 문제를 일으켰다. “더러운 일본놈들!” “뭐? 난징 대학살이 날조?” “부끄러움도 모르는 놈들!” “역사를 왜곡해서 우리 일본인을 매도하는 염치 없는 것들!” “동북공정으로 동아시아 역사를 날조하는 네놈들의 말은 신빙성이 없다!” “꺼져라! 사이비 공산주의 새끼들! 모택동이 지금 중국을 보면 땅을 치며 통곡을 할거다!” 따로 정해진 구역에서 일을 하다가 어쩌다 마주친 중국과 일본 측의 인부가 서로 호기심에 대화를 하다가 서로의 예민한 부분을 건드렸다. 언성이 높아지고 말다툼이 일었다. 일본측 인부 몇이 말려도 봤지만 중국측 인부들은 쉽게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우주 시대. 그리고 그 우주 시대를 여는 첨병이 될 우주 인부를 중국 공산당은 그냥 뽑지 않았다. 당에 투철한 충성심을 가지고 있고 중화 사상이 검증된 이들을 골라서 올려보냈다. 그런 이들에게 중국을 침략하고 많은 이들을 무참히 살해하고서도 제대로 된 사과 한 번 하지 않은 일본이 곱게 보일리 없었다. 언성이 더 높아지고 몸싸움이 일어났다. 일본 우익 세력도 적지 않은 우익 청년을 우주 인부로 올려놨기 때문에 자랑스런 일본을 모욕하는 중국 인부에게 대항하는 일본 인부들도 적지 않았다. 고함이 일어나고 주먹질이 오갔다. 온도가 낮고 닫힌 공간인데다가 소리를 흡수하는 구조물이 없어 요란한 소리가 멀리까지 퍼지니 뭔 일인가 궁금해서 온 불곰국 아저씨들이 난투극 현장에 도착했다. 그리고는 말리기 위해서 끼어들었는데 불곰국 아저씨들이 싸움을 말리는 방법이 좀 과격하지 않은가? 종종 주먹으로, 때로는 총이나 손도끼 같은 걸로 위협해서 싸움을 말리는데 거기다가 막 일을 하다가 온 참이라 허리에 드라이버는 물론 전기 배선 시스템을 위한 굵직한 구리선 케이블까지 들고 오니 그걸로 위협하면서 말려보려고 했다. 문제는 난투극을 벌이던 중국인들과 일본인들도 작업을 위해서 연장을 들고 이동 중이었던 것이다. 곧 주먹 다툼이 연장 다툼으로 번졌고 유혈사태가 벌어졌다. 다툼을 말려야 하는 치안 병력이 없어서 싸움은 더욱 과열되었다. 결국 사상자가 발생했고 삼국은 누가 범죄자니 내놔라, 아니 그쪽이 범죄자를 보호하고 있으니 내놔라라며 격렬하게 서로를 비방하다가 결국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치안 병력을 올리기 시작했다. 총기는 올리지 말자고 서로 합의하기는 했지만 협약을 잘 지킬 정도로 부패 지수가 낮은 나라들이 아니다. 아니 일본은 낮지만 중국과 러시아를 믿을 수가 없어서 몰래 총기를 올렸다. 중국과 러시아 역시 사유는 다르지만 역시나 일본의 예상대로 총기를 몰래 반입했으니 일본을 욕할 문제가 아니다. 물론 먼저 총기가 발견되면 정치적으로 공격당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감추라고 일러두기는 했지만 다시 한 번 저번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총기가 사용되는 일은 시간문제였다. 유럽에서는 이들 삼국의 갈등을 흥미로운 눈으로 지켜봤다. 반면 교사라고 저들에게 일어날 일이 자신들에게 일어나지 않을 리가 없지 않은가? 안 그래도 국가별로 문화적으로 통일이 완전히 되지 않아 여러모로 애로 사항을 겪는 와중에(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프랑스인과 영국인의 식성차이다.) 만일의 상황에 치안 시스템을 미리 올려 놓는 방안도 구상 중이었다. 그래서 한 번도 분란을 일으키지 않도록 단일 민족을 인부로 선택한 강현의 선견지명이 대단할 정도였다. 미국인 중에서 우주 인부를 고른다고 해도 다양한 인종, 다양한 문화를 가지고 있으니 이중에 비슷한 성향의 이들을 뽑게 되면 분명히 인종차별이라며 고소하는 사람이 없을 수 없었다. 강현은 의도치 않았는데 또 대단한 천재라며 칭찬을 들으니 무안하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했다. 사실 그들이 말한 논리가 틀리지는 않더라도 치안 문제에 관한 건 순전히 소 뒷걸음치다가 쥐 잡은 격이었다. 물론 그런 경우 주변에 있는 스파이더봇을 조작해 어떻게든 분란을 가라앉힐 계획은 있었지만 그건 임시적 처방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동아시아 삼국의 우주 도시는 불안의 씨앗을 품은 채 계획을 계속 진행하기 시작했고 강현은 샐리와 아들 준, 딸 시아를 지구에 남겨두고 아즈삭이 조종하는 HA 한기와 함께 아폴로티움으로 올라왔다. 가족들은 학교가 완공되고 나서 올라올 것이다. 드래곤 V3에 탑승한 그는 등을 잡아 당기는 듯한 가속을 체험하면서 우주로 솟아 올랐다. 곧 우주 인부들이 경험했듯이 안내 방송과 무중력 상황을 겪은 후에 도킹 시설에서 도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왔다. 내려와서 보니 의외의 인물이 그를 맞이했다. “현. 오래간만이야.” “사브리나!” 사브리나는 제시의 연구실 동료로 우주 생물학 팀에서 같이 일해 왔었다. 그녀는 연구동이 완성된 이후 동료들과 우주 도시의 미생물 환경을 조사하고 연구하기 위해서 즉시 올라왔다. 그들이 하는 일은 일단 우주 도시내에서 미생물이 살 수 있는 환경을 탐색하고 어떤 미생물이 살고 있는지 확인하는 일이었다. “어떻게 지냈어요?” “나야 잘 지냈지.” “저는 안 물어봐요?” “뉴스나 인터넷을 보면 네 근황은 다 나와. 결혼한 것도 나와있더라.” “초대 안해서 미안해요.” “괜찮아. 가족끼리 조용히 결혼식을 한 거라며.” 강현은 오래간만에 만난 인연과 이야기 꽃을 피웠다. 잠시 서로의 근황을 묻다가 역시 이공계 아니랄까봐 그쪽으로 이야기가 옮겨졌다. “이번에 일본의 나카모토 교수진이 HJ 세포의 개량에 성공했다고 해.” “어떤 식으로요?” “플라스미드의 중간을 잘라 한쪽 끝에 텔로미어 유사체를 붙여서 이중 나선형으로 만들었다고 해.” “오! 그거 대단한데요?” 생물의 수명은 결국 세포분열 시에 DNA가 얼마나 잘 보존 되느냐에 달려있다. DNA는 사슬 모양이기 때문에 세포분열을 위해 DNA를 합성하는 효소가 끝 부분에서는 잘 작동하지 않는다. 세포분열을 위해 DNA를 복사하는 과정에서 길게 이어진 중간 부분과는 달리 비선형적으로 조건이 변하는 DNA 끝 부분에서 DNA 정보는 소실되는 것이다. 텔로미어는 이를 막기위해 DNA 사슬 끝에 더 길게 붙은 아미노산이다. 스스로는 단백질 합성에 어떤 도움도 주지 않지만 세포분열시에 대신 손상되어 DNA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HJ 세포는 고리 형태의 플라스미드를 사용한다. 텔로미어가 없기 때문에 세포분열을 통한 노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HJ 세포로는 노화 연구에 적합하지 않다. 그러나 나카모토 교수진이 만든 DNA 형 HJ 세포는 텔로미어 유사체를 달았기 때문에 노화 연구에 사용할 수 있었다. 늙어 죽기 싫은 수많은 부자들이 투자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강현은 사브리나의 안내를 받아 자신이 기거할 주택에 도착한 강현은 짐을 풀고(어차피 아즈삭이 조종하는 HA 한 기가 들고 왔다.) 자신에게 배당된 연구실로 향했다. 그런데 연구실은 텅텅 비어 있었다. 책상위에 컴퓨터 한 대만 있었다. 그의 당황한 모습에 사브리나가 웃었다. “호호! 너무 당황하는 거 아냐?” “익숙하지 않아서요. 설마 한 개의 광학 현미경도 없을 줄은 몰랐어요.” 연구실에 적어도 실험기구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은가? 비록 자신이 만질 일은 거의 없겠지만 말이다. “천재님. 실험 도구는 데코레이션이 아니랍니다.” “누가 뭐랬나요?” 강현은 사브리나의 딴지에 무안한 듯 귀뒤를 문지르며 일단 컴퓨터를 켰다. 빠르게 부팅이 되고 화면이 켜졌을 때 사브리나의 말이 들려왔다. “어차피 연구는 여기서 해도 실험은 원격으로 지구에서 할 거 아니니? 우주에서 실험할 일이 있으면 그때 필요한 장비를 신청하면 되. 아니 돈 많으니 사비로 구입해도 될 걸?” 돈 많은 강현이 HA와 아즈삭을 이용해 편하게 실험을 한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다른 연구자들이 몹시나 부러워하는 건 당연했지만 그들은 예산의 문턱에 제자들과 함께 몸소 실험을 진행해야 했다. 그런 사브리나의 말에 강현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예산 거부는 연구자의 도리가 아닙니다.” 예산 갑질에 미국으로 망명해온 강현이 아닌가? 비록 돈이 많더라도 예산은 연구원이 마땅이 받아야 할 권리라고 생각했다. “호호호! 그래도 예산이 남아야 우리한테 좀 오지. 이번에 우주 도시 개발 프로젝트에 예산을 쏟아부어서 다른 연구실들은 예산에 쪼들리고 있다던데?” “다 엄살이에요. 제가 NASA에 얼마나 기부를 하고 있는데.” “그래서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나날이 연구 시설이 좋아지고 있으니까.” 사브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오늘 하루는 푹 쉬어.” “네.” 건성으로 대답하는 강현. 어느새 그는 컴퓨터 화면에 빠져서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사브리나는 그의 모습을 보고는 싱긋이 웃고 자신의 일터로 돌아갔다. 제시를 잃고 나서는 사람이 다가가기 힘들 정도로 언제나 날 선 분위기였는데 지금은 예전 그 괴짜이면서도 말 걸기 편한 모습으로 돌아간 것 같다. 제시를 잃은 충격을 완전히 벗어나서 다행이다 싶었다. 한편, 강현은, “아즈삭. 카낙의 자원 상황은?” [트리플론을 이용해 주위의 암석형 소행성을 닥치는 대로 끌어모으고 있습니다.] 193화 “자원이 부족할까?” [축적된 자원은 있지만 우주 도시에 사용되고 있는 자원이 너무 편중되어 있습니다. 당분간 철이나 구리 RP의 가격은 비쌀 수 밖에 없습니다.] “하긴. 지금 실리콘은 쌓이고 있지?” [반도체 원료로 사용이 가능하지만 생산량에 비해서 수요가 너무 적습니다. 그리고 지구로 내려보내는 것보다 차라리 카낙에서 태양광 판넬을 자체 제작하는 것이 효율적입니다.] 대기가 없어 감쇠가 일어나지 않는 태양빛이다. 지표면에서보다 훨씬 높은 전력을 무한대로 생산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태양광 판넬이다. 앞으로 우주 진출 시대에 적어도 태양계 내에서 태양광 판넬은 수요가 멈추지 않는 품목이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강현의 무한의 공유지 전략에서 태양광 판넬 제작의 완전 자동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고 이미 계획에 예정되어있던 일이었다. “흐음. 태양광 판넬이라.. 카낙에서 완전 자동화로 제작을 할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한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박사님의 역할이 아니겠습니까?] 아즈삭의 대꾸에 강현은 쿡하고 웃고는 역시 아즈삭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는 카낙에서 태양광 패널을 완전 자동화 생산을 할 수 있는 기술을 연구하기로 했다. 무수히 많은 지구의 태양광 패널 제작 업체의 몰락은 예정된 수순이겠지만 수요가 무한대인 우주에서 사용할 태양광 패널을 지구로 내려 보낼 생각이 없기 때문에 지구의 환경에 맞추어 경쟁력 있는 기술을 가진 기업은 살아남을 것이다. 강현은 일단 카낙에서 실리콘이 남아 돌기 때문에 일단 실리콘 반도체 태양광 전지 기술을 탐색했다. 태양전지의 기술은 간단히 설명하면 물질 속의 전자가 광자를 받아 들뜬 상태가 되어 정공(+전하)-전자(-전하)를 만들어 내는데 이를 분리하여 원하는 방향으로 이동시키는 기술이다. 가장 오래된 방법은 실리콘 반도체의 PN-접합을 이용하는 것으로 정공을 받아들이는 P형 반도체와 전자를 받아들이는 N형 반도체의 성질을 이용한 것이다. 이 PN접합을 이용한 태양전지는 그 역사가 오래된 만큼 효율성과 생산성을 올리기 위해서 다양한 기술들이 나왔다. 태양광 흡수 효율을 좋게 하기 위한 반사 방지 코팅이나 표면 처리 기술은 물론 근본적으로 태양전지가 생산하는 전위차를 높이기 위한 방법과 내부 에너지 손실을 줄이기 위한 방법까지 다양한 형태로 연구 되었다. 그중 하나가 비정질 실리콘과 결정질 실리콘의 헤테로 접합을 이용한 방법으로, 똑같은 실리콘이라고 하더라도 비정질과 결정질 사이의 밴드갭 구조 차이를 이용해 태양광에 의해 들뜬 전자와 정공을 분리하는 방법이다. 이는 플라즈마 제련 장치에 의해 비정질 실리콘 덩어리가 생산되는 카낙 소행성 공장에 적절한 방법이었다. 강현은 여러 방향으로 시뮬레이션을 하면서 카낙에게 가장 적절한 방법의 기술을 찾기 위해서 노력했다. 실리콘 위에 가느다란 망 형태의 은 전극을 올릴까, 아니면 금속 박막위에 실리콘을 올릴까, 아니면 투명 전극 위에다가 실리콘을 올릴까? 다양한 기법을 탐색해 진공, 무중력 환경에서 쓸만한 기술이 있는지 확인했다. 솔직히 실리콘 기반의 태양 전지 기술은 정점을 찍었다고 할 수 있어서 이젠 양산을 위한 기술 개발이나 그래핀들을 이용한 신소재 태양 전지 기술 개발 분야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쩝. 무료는 무리겠네.” 하지만 적어도 제작에 필요한 기술들을 연구한 이들에게 로열티를 지불하기 위해서 완전히 공짜로 태양열 판넬을 공급할 수는 없었다. 완전 공짜보다 시장에 충격은 덜하겠지만 그래도 우주용 태양전지 판넬을 생산하는 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할 수 밖에 없는 건 수순이었다. 아직 카낙 공장에 대량 생산에 필요한 설비가 완성되지 않아서 당장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겠지만 자동화 된 카낙 공장이 충분히 설비를 갖추게 되면 일어나게 될 일이었다. “흐음. 적당한 방법은 찾았는데.. 문제점이 있네.” 강현이 구상한 방법은 금속판 위에 실리콘을 올리고 표면 처리 및 도핑을 해서 반도체로 만든 이후에 그 위에 투명 전극을 올리는 방법이었다. 투명 전극을 올린 후에는 강력한 우주선이나 태양풍, 자외선 등으로부터 태양전지의 구조를 보호하기 위해 유리같은 투명한 물질로 겉을 덮어야 했다. 하지만 여기서 세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둘은 투명전극으로 사용할 재료와 그걸 실리콘 위에 올리는 문제, 하나는 유리를 다시 그 투명전극 위에 올리는 문제였다. 투명전극으로 주로 사용되는 물질은 산화인듐을 도핑처리한 물질이다. 주로 TCO나 ITO라고 불린다. 그런데 여기서 이 인듐이라는 물질은 지각 존재비가 매우 적은 희귀 금속이다. 희귀한 데다가 LED 디스플레이에 주로 사용되기 때문에 정련한 인듐 100g이 천 달러에 육박하며 전세계 생산량의 70% 이상을 중국에서 담당하고 있다. 뉴스에서 말하는 희토류 자원 중 리튬에 못지 않게 수요가 있는 원소가 바로 이 인듐인 것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 인듐이 대량으로 있는 소행성이나 광맥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카낙에서의 인듐 생산량 역시 적었다. 그래서 투명전극을 만드는데 애로사항이 꽃폈기 때문에 대체 물질을 생각해야 했다. 물론 이미 산화 인듐을 대체할 물질이 연구 중이었고 알루미늄 도핑 산화 아연(AZO)이나 그래핀 등이 주목받고 있었다. 아니 그래핀의 발견 이후에는 플랙시블 디스플레이에도 사용이 가능한 그래핀이 더욱 주목받고 있었다. 게다가 그래핀은 자체적으로 전도성이 있기 때문에 투과성 문제, 자리 고정 문제만 해결한다면 산화 인듐을 대체하는 건 시간 문제였다. 대량 생산의 가능성은 이미 그래핀 잉크 기술이 나왔기 때문에 응용한다면 문제가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중력이 없다 시피한 카낙 공장에서 과연 액체를 사용하는 건 괜찮은가? 강현은 그에 관한 결론을 일단 보류하고, 산화 인듐과 동일한 제작 기법을 사용할 수 있는 AZO를 고려했다. AZO가 생산에 용이한가? 플라즈마 제련 기법과 진공 환경을 생각하면 그렇지만 AZO의 전기적인 물성이 그리 좋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물량빨과 대기가 없는 우주 환경을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선택일 수도 있지만 저항이 높다는 건 그만큼 전기적 마모도 심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어차피 대기와 날씨가 없는 우주 공간인 만큼 태양전지의 수명이 길수록 유리하기 때문에 강현은 결국 그래핀을 이용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전기적 물성만 따지면 기존의 산화 인듐보다 훨씬 좋다. 심지어 구리같은 금속에 비견될 정도다. 문제는 이 그래핀을 만드는 일부터였다. 그래핀을 만드는 방법은 크게 두가지로 분류된다. 하나는 천연 자원인 흑연을 이용하는 방법과 다른 하나는 반도체 기술인 화학 증착법을 응용해 합성하는 것이었다. 전자에는 물리적 박리법(스카치 테이프를 이용해 흑연에서 그래핀을 떼어내 발견하여 노벨상을 받음)으로 , 화학적 박리법(산화-환원 과정을 이용)이 있지만 무중력인 카낙에서 쓰기 곤란한 방법이다. 당연히 화학 증착법을 고려하는 수 밖에 없었다. 그래핀의 화학 증착방법은 탄소 원자가 잘 흡착하는 니켈이나 구리, 백금을 이용하는데 이들 표면에 탄소 원자가 붙으면 근접한 탄소 원자들과 파이 결합을 이루며 그래핀이 된다. 진공인 카낙에서 쓸만한 방법이다. 일견 쉽게 말하는 것 같지만 쉬운 문제는 아니다. 탄소 원자들이 결합을 이루기 전 벌집 모양으로 배치될 수 있도록 금속판의 결정면을 잘 폴리싱(연마 작업) 해야하며 무엇보다도 이 금속판을 단결정으로 만들어야 했다. 왜냐면 다결정인 경우 결정과 결정 사이의 그레인 바운더리(Grain boundary)로 인해 각 결정에서 성장한 그래핀의 결정 방향이 달라 자체에 결함이 생기기 때문이다. 단결정 성장법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역시나 용액을 사용하는 방법은 무중력인 카낙에서는 매우 어려운 방법이다. 그러니 실리콘 용융액으로 실리콘 단결정을 만드는 초크랄스키 법을 쓰면 된다. 자, 이렇게 해서 단결정을 만들고 잘 깍아 폴리싱(연마 작업)까지 하고 그래핀까지 만들었다치자. 그럼 이 금속판 위의 그래핀을 어떻게 태양전지 위에 옮길 것인가? 롤투롤(roll-to-roll) 기법이라고 간단히 말하면 롤러를 이용해서 옮기는 방법이 있다. 근본적으로는 인쇄소의 인쇄기 원리와 동일하지만 첨단 소재를 다루게 되면 말이 달라진다. 재질에 따른 정교한 압력과 그래핀과의 표면 에너지 차이 등 다양한 요소를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무척 어려운 기술이다. 특히 플랙시블 디스플레이를 대량 생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기술이기 때문에 첨단기술로 진화되고 있었다. “이러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데..” 강현은 고개를 갸웃했다. 자신은 그저 태양 전지의 기존 품질을 크게 떨어뜨리지 않고 투명전극을 올릴 수 있다면 만족할 수 있었다. 카낙에서 무슨 터치 스크린을 제작할 정도의 설비를 만들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대면적 그래핀이 아니라도 햇볕이 투과할 수 있도록 그래핀을 서너 겹 두께 정도라도 입힐 수만 있다면 충분했다. 어차피 그래핀의 전도성은 매우 뛰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현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다. 원료인 흑연에서 그래핀을 박리하는 방법을 다시 고려해 보기로 한 것이다. “흐음.. 일단 박리를 해야 하는데..” 생각보다 흑연을 구성하는 그래핀의 층상구조는 얇게 떼어내기 힘들다. 왜냐면 크기가 다양하기 때문에 접촉면이 적은 부분이 힘을 집중적으로 받아 덩어리 형태로 떨어져 나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스카치 테이프 같은 방법으로는 대량 생산이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일단 산화시켜 친수성으로 만든 후 물입자를 산화 그래핀 사이로 박리시킨 후 다시 환원하는 방법이 고안되었지만 100%가 존재하지 않는 자연계라 환원이 제대로 되지 않아 여기 저기에 결함이 생겨서 전기적 물성이 좋지 않다. 하지만 이렇게 용액을 이용한 방법에서 영감을 받아 수많은 응용 기술들이 나왔는데 그중 가장 주목할 만한 방법이 유기용매인 헵탄과 물을 섞은 용액을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유기용매와 물이기 때문에 당연히 이 둘은 섞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 섞이지 않은 용액의 계면은 높은 계면 에너지를 가지게 되는데 이 부분에 그래핀이 흡착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혼합 용액에 잘 정련된 흑연을 넣고 초음파로 박리를 시키면 그래핀 잉크를 얻을 수 있다. 차후 이것을 기판 위에 입히고 물과 유기용매를 날려버리면 무려 95%의 투과도를 가진 전도성 박막을 얻을 수가 있었다. 다른 용액을 순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은 몰라도 그래핀 잉크를 사용하는 방법은 단순히 섞고 초음파만 가하는 것이기 때문에 카낙의 무중력 상황에서도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유기용매와 물을 어디서 구하냐는 것이다. 물은 다행스럽게도 얼음의 소행성인 세레스가 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었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개발이 완료된 상황이 아니다. 차후 우주 농장에 공급할 물을 대기 위해서 세레스의 환경에 맞는 시설과 로봇들을 제작 하는 단계에 그쳐있었다. 거기에 유기용매는 태양에서 거리 약 9.5AU(1AU: 태양과 지구의 거리)에 있는 토성의 위성인 타이탄에 있기 때문에(메탄가스와 가솔린으로 이루어져 있다.) 언제 개발할 수 있을지 감을 잡을 수도 없다. 결국 장기적으로 타이탄과 세레스를 개발할 때까지 기다릴 것인가, 아니면 새롭게 기술을 개발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했고 강현은 당연히 새롭게 기술을 개발하기로 했다. 나중에 인류가 완전히 우주로 진출하고 나면 자원을 개발하는 것이 쉽고 싼지 아니면 자원을 대체할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쉽고 싼지 비교해보고 선택하겠지만 강현은 개인적으로는 후자가 더 쉽고 흥미롭고 재밌게 느껴졌다. ============================ 작품 후기 ============================ 아.. 머리 아파. 제가 왜 과학 공부를 해야하죠? 왜 이 글은 과학 소설이 되었을까요? 원래 시놉시스는 천재의 갑질과 음모와 배반과 복수극이었는데요.. 194화 “흠. 초저중력 진공 상태의 초음파 박리라..” 강현은 카낙이 공장과 광산을 차린 4베스타의 환경 상태에서 영감을 얻었다. 4베스타는 소행성이기는 하지만 중력이 없지는 않다. 다만 그 수치가 0.22m/s^2 정도에 불과하다. 지구 중력이 9.8m/s^2 정도니 50kg의 사람이 자신의 몸무게를 1kg정도로 느낄 수 있다.(평소 뛰는 높이의 약 50배를 뛸 수 있다. 말 그대로 날아다닐 수 있는 것이다.)너무나 미약한 중력이고 그 덕분에 대기가 없으니 박리 시킨 그래핀이 공중을 쉽게 멀리 날아갈 수 있다. 이는 그래핀을 마치 분무기로 물 뿌리듯이 뿌려서 기판 위에 붙일 수 있다는 말이었다. 너무나 단순하고 간편한 방법이지 않은가?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전제조건이 필요했다. 흑연에서 그래핀을 최소한 한 겹 내지 두겹으로 벗겨서 공중으로 날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강현은 여기에 대해서 이미 생각해 둔 방법이 있었다. 이미 조사한 롤투롤 기법을 응용하기로 한 것이다. 일단 롤러를 이용해 순차적으로 순수하게 정련된 흑연을 문질러 그래핀을 박리시킨다. 그걸 압전 소재가 붙은 기판에 전사한 후 초고주파 전류를 흘려 초진동을 일으켜 떨어뜨리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그래핀이 제대로 박리가 되지 않으면 롤러 박리 과정을 추가하면 된다. 초진동만으로 그래핀이 제대로 떨어지지 않으면 펄스 전압을 가해서 정전기적인 반발력을 사용해 떨어뜨려도 된다. 기판에 제대로 붙게 실리콘을 올린 금속판에 반대 전하를 가하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었다. “아즈삭. 시뮬레이션 결과는?” [제련 상태와 박리 과정이 완벽하다고 가정할 때 그래핀 분사 장치와 기판까지의 적절한 거리 및 필요한 초음파 수치를 산출했습니다.] “흐음.. 흑연을 제련하는 장치를 추가하고 롤러 박리 장치도 추가해야겠군.” [롤러는 카낙에서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럼 흑연 정련이 문제인데...” 인공적으로 99.99% 순도의 흑연을 만드는 방법은 이미 있다. 실리콘 카바이드(SiC)를 4천 도씨 이상으로 가열해 실리콘을 날려버리면 그 자리에 매우 높은 순도의 흑연이 남는다. 실제로 전자 산업에 응용되는 그래핀을 만드는 흑연은 다 이렇게 순도 높은 흑연을 이용한다. 하지만 플라즈마 정련 기법을 사용하는 카낙 광산에서는 불순물이 많은 흑연 광에서 수트(Soot; 그을음)의 형태로 탄소 덩어리를 생산한다. 이를 이용해서 다시 흑연을 만드는 방법을 생각해 내야 했다. 하지만 흑연을 구성하는 탄소의 π(파이) 결합은 벤젠을 구성하는 탄소의 π결합 만큼이나 안정하기 때문에 충분한 압력과 열이 필요하며 단순하게 피스톤에 수트(Soot)를 담아 압력과 열을 가해도 순수한 흑연을 만들 수는 없었다. 어딘가 완전히 흑연이 되지 않은 수트(Soot)가 남고 이는 흑연의 박리 과정이나 태양전지 위에 뿌리는 작업에서 이물질이 되기 때문에 더 높은 순도의 흑연이 필요했고, 이를 위해서는 실리콘 같은 촉매가 반드시 필요했다. “어차피 실리콘이야 남아도는데 문제는 카바이드를 만들 정도로 높은 열을 만들어 내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거지. 레이저 장비에 여유는 있어?” [없습니다.] 아즈삭은 단칼에 잘랐다. 대량의 카바이드를 만들기 위해서는 실리콘과 탄소 덩어리 혼 합물에 적어도 섭씨 1500도 가량의 열을 가해야 했다.(실리콘의 용해도) 일단 카바이드 생성 반응은 자발적 반응이기 때문에 실리콘을 용융시키기만 하면 카바이드가 생성된다. 하지만 이 카바이드에서 흑연을 만들기 위해 실리콘을 날려버릴 정도의 온도(약 4,150℃)를 레이저 장치로 구현하면 레이저 장치가 과부하로 타버릴 것이다. 그 정도 온도면 흑연이 열에 탄소로 분해되지 않을까 걱정될 수도 있겠지만 결합 에너지의 크기 순서는 Si-Si(실리콘) 거기다가 능력있고 젊고 나쁘지 않게 생겼으니 마음이 기우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꼬셔보려고 작업에 들어가는 순간 번갯불 콩 볶듯이 결혼해 버렸다. 그녀의 신세는 막 닭을 쫓으려고 앞발을 든 개꼴이었다. 그렇게 다시 목적을 잃고 매너리즘에 빠져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어나니머스의 메시지를 보았다. 그래서 흥미가 돌았고 일을 저질렀다. 그런데도 이번에도 감싸준단다. 그녀는 몸이 달아 올랐다. 그녀의 가슴이 강현의 가슴에 부드럽게 눌려졌다. “너무 가깝습니다.” “박사님. 너무 한 거 아세요? 왜 제 마음을 이렇게 흔들어 놓나요? 책임지세요.” “....” 강현은 어이가 없었다. 단연코 책임질 일 따위는 한 적... 물론 그녀에 대한 일에 입을 다문 건 책임져야 할 일이지만 그녀가 지금 요구하고 있는 건 책임져야 하는 일을 오히려 만드는 일이었다. 해결해야 할 원인에 또 원인을 만드는 격이다. “떨어지세요.” 강현이 그녀의 어깨를 잡아 힘을 주어 밀었다. …? 어? 그런데 밀리지가 않았다. 하긴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연구만 하던 그의 완력에 비해 그를 꼬시기 위해서 몸매를 가꾸며 운동하는 습관을 가진 그녀의 완력이 우세했다. “후후..” 강현이 밀어내자 잠시 당황했던 알리아의 얼굴이 음흉하게 물들기 시작했다. 졸지에 입장이 뒤바뀌었다. 강현의 정조가 위험했다. “아즈삭!” 뿌득!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HA 시리즈가 잠긴 문고리를 완력으로 돌리고 들어왔다. HA에 적용되는 인공 근섬유는 인간의 근육보다 출력이 강했다. 성큼 성큼 들어온 HA는 강현에게 키스하려는 알리아의 허리를 붙잡아 어깨에 들쳐 맸다. “후우!” 강현은 얼굴이 빨개진 채로 한시름 놓았다는 듯이 숨을 골랐다. “제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들어요?” “그럴 리가요.” 객관적으로 봤을 때 알리아는 굉장한 미녀다. 라틴계 특유의 늘씬함과 쭉쭉 빵빵함은 어떤 면에서는 샐리보다 성적 매력이 훨씬 뛰어났다. 하지만 강현은 그녀와의 내연 관계를 상상했을 때 좋은 결말을 도출할 수 없었다. 파탄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욕망에 끌려들어가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강현은 욕구에 자신의 이성이 마비되지 않는다. “저는 바람 피울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그럼 저는요?” “마음을 접든지 운이 없다고 생각하세요.” “너무해요.” “그러니까 함부로 다른 사람 좋아하는 거 아닙니다.” 강현의 냉정한 말에 미녀의 눈매가 촉촉하게 젖어 들었지만 그는 냉정하게 할 말을 계속했다. “저에 대한 마음은 잘 알겠습니다만 그렇다면 제가 원하는 대로 해주세요. 그게 모두에게 좋은 일입니다.” 알리아는 말이 없었다. 강현은 복잡한 심경에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저를 좋아해줘서 고맙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안되는 건 안되는 겁니다. 알리아 양 부디 현명한 선택을 해주기를 바래요.” = = = = = [… 란 일이 있었습니다.] “...... 그래?” 아이들의 아침 식사를 차리기 위해서 빵을 자르고 있던 샐리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남편을 혼자 두니 과연 꼬리치는 여우년들이 발생했다. 빨리 자신도 올라가 남편을 지켜야 했다. 이번이야 남편이 냉정한 이성으로 잘 대처했다고 하지만 남편도 남자다. 음탕한 몸매가 육탄 돌격을 하면 어느 순간 이성을 잃어버릴 수도 있었다. 그녀는 머릿속으로 계획을 정리한 다음 소중한 정보를 알려주는 아즈삭에게 사의를 표했다. “아즈삭, 고마워.” [아닙니다. 박사님의 평온한 일상을 위해서 변수는 제거되어야 합니다.] 강현이 바람을 피운다? 들킨다? 사회적으로 풍파가 인다? 거기에 가정도 엉망이 된다? 창조주의 생활이 온전할 리가 없고 신경이 다른데 쏠려있으니 연구에 집중하기도 어려울 것이 분명했다. 아즈삭에게 알리아의 적극적인 불륜 시도는 반드시 막아야 하는 악의 원천이었다. 그래서 강현의 컨디션을 관리하는 것을 명목으로 샐리에게 이 일을 알렸다. 나중에 강현이 어이없어 한 것은 당연했다. 강현은 주기적으로 집과 연락을 취하다가 이번에 샐리가 아이들과 함께 올라온다는 소식에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래? 언제?” [일주일 쯤 뒤에요. 이제 학교 시설에 비품을 비치하는 일이 남아서요. 그리고 운영 위원회도 만들어야 하구요.] 그래서 계획보다 빨리 올라오는구나. 강현은 들뜬 기분으로 일주일을 보냈고 그렇게 우주 도시의 학교 설집 진행 계획은 가속되었다. 우주 도시에 올라온 샐리는 아이들을 아즈삭과 강현에게 맡겨두고는 왕성하게 활동했다. 오전에는 학교를 둘러보고 오후에는 집에서 서류 작업을 하며 아이들을 돌봤지만 아이들을 돌보는데 익숙하지 않은 강현은 젖병에 분유를 타면서 아즈삭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네요.” “안녕하세요, 부인.” 샐리는 돌아다니던 중에 우연히 알리아와 마주했다. 두 사람의 사이에 기묘한 긴장감이 돌았다. ‘운 좋은 년.’ ‘도둑 고양이 같은 년.’ 서로의 생각은 비슷한 종류였지만 그래도 웃으면서 덕담을 하고는 헤어졌다. 집에 돌아온 알리아는 침대위를 구르며 질투심과 허망함에 발버둥을 쳤다. 강현을 자신보다 먼저 만난 샐리가 너무나 부러웠다. 하다못해 강현을 만난 시기가 비슷하기만 했더라고 이렇게 일방적으로 포기해야 하는 입장은 아니었을 텐데.. ‘정말 포기해야 하는 걸까?’ 통상적 사회 관념상 그것이 옳다. 그러나 그런 걸 신경썼다면 그런 일들을 저지를 턱이 없었다. 중요한 건 사회 통념이 아니라 강현이 어떻게 생각하느냐 였다. 강현만 허락한다면 알리아는 세상 모든 욕을 다 먹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가 그런 선택을 할까? 그녀는 배게에 얼굴을 파묻고 한 참을 울었다. = = = = = 우주 도시 학교, 미네르바툼의 설립 진행이 가속되고 본격적으로 학생들을 모집하기 시작하자 세계 전역이 들썩였다. ‘내 자식이 강 박사 자식의 친구?!’ 엄청난 인맥이다. 전 세계 돈 좀 있다고 하는 이들은 거액의 기부금을 내면서라도 자식들을 미네르바툼에 넣고 싶어했다. 그러나 미네르바툼 운영 위원회에서는 그들이 원하는 것처럼 유학적인 형식으로 학생들을 받지 않았다. 미네르바툼은 우주 도시로 이민을 유치하기 위한 방편 중 하나였기 때문에 가족 단위의 이민이 아니면 받지 않았다. 하지만 가족 단위로 이민을 하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지구에서 기반을 쌓은 이들이 사업상의 손해를 감수하고 가족 전체가 아폴로티움으로 이주할 가능성은 적었다. 그렇다고 기반이 없는 소시민이 이민하기에는 아폴로티움에 딱히 할 만한 일자리가 없었다. 가장 손쉽게 일자리를 늘리는 방법은 상업을 일으키는 것이지만 우주 도시로 올라가는 방법이 여전히 국가에서 관리하고 있는 매스 드라이버이기 때문에 거의 모든 물품이 신청과 보급식으로 이루어 진다. 지상-우주 도시를 상업적으로 오갈 수 있는 기반이 없이 아폴로티움에 상업이 이루어지기는 무리였다. 그렇다고 지구에서처럼 개간을 할 수 있는 땅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일자리 문제는 아폴로티움을 정상적인 도시로 만들기 위해서 NASA가 해결해야 할 가장 급한 문제였다. 그런데 기술 개발만 해온 NASA가 어디 도시 계획을 해봤을까? 그런 건 행정 전문가와 토목 사업가들이 잘 아는 문제가 아닐까? 그런 생각에 NASA 운영진에서는 이 일을 미 정부도 다시 이관하려고 했지만 강현이 극구 말렸다. 우주 도시는 첫째로 안전, 둘째도 안전이었다. 강현은 관료주의, 전시행정이 끼어들어 무리하게 개발을 하면 어떻게 하나? 우주 도시의 구조적인 한계를 가장 잘 아는 이들이 공학자인 만큼, 공학자들이 주도를 해서 도시 계획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이걸 하면 위험하다는 전문가의 견해를 무시하는 관료가 꼭 하나쯤은 있다. 책임지게 하면 된다고 하지만 애시당초 책임질 일이 생기면 안되는 곳이 우주였다. 그리하여 NASA가 도시 운영까지 맡아서 하게 되었는데 이는 건설 토목 공사가 일자리는 물론 도시 계획에 중요한 요소였기 때문이다. 일단, NASA는 우주 도시에 필요한 요소들을 제조하는 일자리를 만들었다. 가장 먼저 세워진 곳이 로봇 수리 공장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이 우주 자원 재활용 공장이었다. 우주 도시를 짓기 위해서 가혹한 우주 환경에 노출되었던 로봇들이 차례대로 순선을 돌아가며 오버홀을 받았다. 앞으로 계속될 우주 도시 관리를 도울 스파이더 봇의 관리 공장이기도 했다. 생활 쓰레기는 물론 수리 공장에서 나온 금속, 비금속 쓰레기들, 거기에 수명이 다 되거나 고장난 태양광 패널 등 역시 재활용 공장에서 볼트 단위까지 분리된다. 다시 녹여 재생할 수 있는 건 태양광 패널 근처에 만든 태양광 집적 용광로에서 녹여서 다시 원자재로 만들었고 폐기해야 하는 것들은 수송선 서브 카낙에 실어 플라즈마 제련 장치에 넣어버린다. 이렇게 원자재로 돌아간 자원들은 차후 지어질 공장의 원료로 차곡차곡 도시 밖의 컨테이너에 쌓아 축적해 두었다. 이런 식으로 기술자들을 위한 일자리를 만드니 과연 NASA라 할 만했다. 하지만 실제로 우주 도시에는 기술자들이 필요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초기에 올렸던 우주 로봇들이 노후화 되는 것은 물론 점점 커지는 우주 도시를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관찰해 위험을 조기에 예방할 수 있는 로봇들은 더 많이 필요했다. NASA는 상업적 우주 수송 기술이 상용화되자마자 우주 도시 자체에서 로봇들을 생산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우주 도시에 인공지능을 설치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아폴로티움이라는 도시 명에 걸맞게 아폴론이라는 이름의 인공지능을 지으려고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이미 미 정부의 올림푸스 시스템에 아폴론이라는 이름의 인공지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름은 인공지능의 권한 인증과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름의 중복은 심각한 오류 밑 같은 이름을 공유하는 인공지능간 싸움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초기 인공지능을 제외한 최근 인공지능들의 이름이 시리얼 넘버처럼 되어 있는 이유였다. 그래서 우주 도시를 관리하는 인공지능의 이름은 누트가 되었다. 생명의 원천인 물을 상징하는 이집트의 여신 이름을 딴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기술 인력들을 위한 일자리가 생기고 정부적 차원에서 이민에 메리트를 부여하니 기술 인력과 그 가족들이 하나 둘 씩 우주 도시도 이민 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들을 위한 갖가지 서비스 시설과 이를 운영하기 위한 인력들도 이민해 오기 시작했다. 언론에서는 이를 매우 긍정적으로 보도했으며 미국 국민들의 마음속에는 우주 시대를 연 국가의 자부심이 꽃피었다. = = = = = [Anti-N 충전 시작. 충전 완료.] [더미의 발사를 시작합니다.] [레이더 가동. 목표 탐지 완료. 추적 시작.] [급속 예열 완료. 방사 시작합니다.] 이곳은 팬타곤의 비밀 무기 시험장. 약간은 어두운 조명 아래에 스크린 만이 빛이 나고 있었다. 모니터에서는 더미의 위치를 추적하고 있었다. 더미는 탄두를 우라늄 235로 채운 페트리어트 미사일이었다. 핵폭탄용 우라늄으로 채운 미사일은 부드러운 모래밭 위에 떨어졌다. 모래가 크게 비산했다. [실험 종료. 착탄 확인. 착탄 좌표를 송신합니다.] 헬기 한 대가 착탄 위치로 날아들었다. 멀찌 감치에 방사능 방호복을 입은 사람들을 내려놓았다. 팬타곤 무기 연구실 연구 요원들이었다. ============================ 작품 후기 ============================ 가족들을 빨리 우주로 옮겼습니다. 왜냐구요? ㅎㅎㅎ 200화 요원들은 태양이 쨍쨍 내려쬐는 환경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모래 사구까지 걸어갔다. 선두에 선 사람의 손에는 가우스 계측기와 GPS 좌표 수신 장치가 들려있었다. 곧 목적한 곳에 도착한 요원들은 삑삑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미사일 박힌 모래 구덩이로 들어갔다. 부드러운 모래밭이었지만 낙하시의 충격으로 날개나 모터 부위가 다 날라가 있었다. 요원들은 전투삽으로 구덩이의 중심부분을 파내더니 금속 덩어리 하나를 발견했다. 삑삑삑. 가우스 계측기가 요란한 소리를 냈다. 방사능 물질이라는 소리다. 요원들은 금속 덩어리를 두터운 납용기 안에 넣고 다시 헬기로 돌아갔다. 채취된 시료는 바로 분석에 들어갔다. “분석 결과는?” 척 대령이 물었다. 그와 통신을 하던 연구원은 놀랍다는 듯이 대답했다. [납 성분이 약 60%까지 들어가 있습니다. 더 이상 순수한 우라늄이 아닙니다.] 연구원의 얼굴에는 신 장비의 능력에 경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Anti-N. 핵무기를 무력화하는 장비로 원리는 강현이 개발한 반감기 가속 장치와 동일하다. 다만 발산되는 중성미자의 농도를 높이기 위해 수소 플라즈마의 밀도를 높이고, 또 밀도가 올라간 수소 플라즈마의 존속 시간을 늘리기 위해 핵융합 발전을 위해 연구중이던 토카막 용기 기술을 응용해 만든 장비였다. “시뮬레이션 상으로는 어떤가?” [우라늄에만 반응하는 중성미자라서 그런지 대기 중 감쇠 현상은 없습니다. 위성 탐지 시스템과 연계하기만 한다면 어떤 대륙간 핵미사일든 얼마든지 무력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라늄이 완전히 남아 있지 않은가?” [그렇기는 하지만... 어차피 임계 상태로 만들 수 있는 조건만 붕괴시키면 핵폭발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핵폭발을 위해서는 연쇄 반응이 반드시 일어나야 했다. 핵무기 기술적으로 유효 중성자 곱인자가 1인 임계 상태에 도달해야 하는데 유효 중성자를 늘리는 일이 생각보다 만만하지 않다. 일단 원자로와 다르게 핵폭탄은 감속재가 없다. 자발적 붕괴에 나오는 중성자를 잡아두기에는 중성자가 전기적으로 중성이며 중력으로 끌어오기에는 이미 탈출 속도를 훨씬 넘었다. 그렇기 때문에 핵분열 물질의 농도를 늘리는데, 핵분열 물질이 핵폭발이 일어날 수 있을 정도로 모인 질량을 임계질량이라고 한다. 초기 핵폭탄의 구성 원리는 화약으로 우라늄으로 우라늄을 때려서 한 덩어리로 만들어 임계 상태로 만드는 것이 그 원리였고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플루토늄의 경우는 다르다. 확산하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금속구로 가두고 나서 원형으로 폭발물을 감싼 다음 엄청난 압력으로 압축한다. 원자의 구조는 대부분 빈공간이지만 이렇게 압축이 되면 중성자가 원자핵에 부딪힐 확률이 증가해 임계 상태에 다다를 수 있다. 핵융합 탄은 이런 핵폭탄의 기술을 응용해 다단계로 수소를 압착해 핵융합 시킨다. 공학적으로 매우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건 당연한 일이다. 이 반응들이 순간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연구하는 것 자체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고도의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에 의하면 유효 중성자를 만들기 위해, 순도, 밀도는 물론 핵분열성 물질의 모양까지 고려해야 했다. 즉, 핵무기는 생각보다 훨씬 섬세한 무기며 새로 개발한 Anit-N은 이 핵무기의 조성을 바꾸어 임계 조건을 무너뜨릴 수 있는 물건이었다. [이거면 핵테러를 무서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책임 연구원은 흥분에 떨었다. 미국 중심가에 핵무기를 설치했다고 협박이 온다? Anti-N을 광역 조사(照射]) 하면 된다. 더티밤에 불과할 지라도 Anti-N을 하룻 동안 가동하면 방사능 피해가 중금속 피해 정도로 떨어진다. 중금속 중독은 킬레이션 요법으로 치료 가능하다. 척 대령은 대(對) 핵병기의 가능성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래도 혹시 있을 문제점을 물었다. 무시무시한 위력의 핵병기를 상대하는 장비이니 만큼 한 치의 틈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럼 자네라면 이 장비를 어떻게 무력화 시키겠나?” [장비를 사용하기 위한 예열과 중성미자 조사 시간이 문제입니다. 저라면 스텔스 미사일을 사용하거나 아니면 미리 적국의 주요 지점에 핵폭탄을 파묻어 놓고 필요할 때 터뜨리겠습니다.] 연구원의 말에 척 대령은 고민에 빠졌다. “결국은 정보전이군.” 레이더의 개량, 첩보 입수 능력 향상이 군사적으로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되는 두 가지 조건이었다. 우주에 띄어놓은 정찰 위성이 아무리 뛰어나도 땅속에 파묻어 놓은 핵폭탄을 찾아내기 힘들며 레이더로 핵배낭을 들고 뛰는 테러리스트를 발견하는 건 힘든 일이었다. 다행스럽게 잠재적인 적성국이라고 할 수 있는 국가들은 다 바다 넘어있기 때문에 공항과 부두에 핵물질 탐지 장치를 설치하면 핵물질 반입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었다. 국경을 접한 멕시코를 통해 핵물질이 반입할 수도 있지만 그쪽으로 아랍계열 테러분자가 침투하는 건 밀항을 통해 핵물질을 들여오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 생계를 위해 목숨 걸고 미국으로 향하는 멕시코 남미 밀입국자들이 자신들의 희망의 땅을 방사능으로 물들이려는 미친 놈들은 가만히 놔둘 리가 없다. 척 대령은 서둘러 펜타곤 상층부에 보고서를 올렸다. 핵무기 무력화 장비의 실용화가 초읽기에 들어갔으니 핵물질에 대한 대응 방법을 전격적으로 바꿀 때가 되었다. Anti-N을 방어적으로 운용할 것이냐, 아니면 공격적으로 운용할 것이냐? 방어적으로 운용한다면 MD 시스템과 마찬가지로 고도의 레이더 망을 갖출 필요가 있다. 아니 MD 시스템에 추가하여 핵미사일이라도 무력화하는 제2 방어선으로 삼아도 된다. 하지만 공격적으로 운용한다면 말이 달라진다. 일단 잠재적 적성국의 우라늄 광산에 Anti-N을 발사해 우라늄 235를 고갈시킬 수 있다. 한창 가동 중인 핵발전소에 사용해 급격한 반감기와 핵분열을 시켜 발전소에 사고를 일으킬 수도 있다. 보관 중인 연료를 급격히 데워 증기 폭발을 일으키거나, 사용 중인 연료봉을 완전히 열화 시켜 못쓰게 만들어 버린다거나 하면 결과적으로는 블랙 아웃 현상이 일어날 것이다. 전기 문명에서 정보 전송 수단을 전기 에너지에 의존하는 건 당연하며, 그러므로 이런 블랙 아웃 현상을 적성국에 일으키게 한다면 군사 전략적으로 이쪽에 이득이 되는 건 당연했다. 이 방법은 심지어 지구 반대편에 있는 국가에도 사용할 수 있는데 특정 에너지 상태로 양자화된 중성미자의 반응성 역시 양자화되어 특정 물질하고만 상호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척 대령의 보고서를 검토한 펜타곤은 다시 미 정부에 보고서를 올렸고 미 정부는 Anti-N의 전격적인 생산을 지시했다. 방어적으로도 운용하고 공격적으로 운용하겠다는 뜻이었다. 과연 안보에 신경을 쓰는 세계 경찰이자 세계 깡패의 결정다웠다. 문제는 미국만이 이런 생각을 한 건 아니라는 것이다. 강현의 반감기 가속장치의 등장은 곧 핵물질의 반감기를 인위적으로 조작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였으며 핵물질을 사용한 무기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생각은 웬만한 기술 강국들은 다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특히 핵폭탄을 두 방이나 맞은 일본에서는 핵무기 무력화 기술에 전력을 다했다. 일본의 종주국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서 자극을 받을 정도였다. 그러나 일본보다 더 미친 듯이 이 기술에 매달리는 국가가 있었으니 이란이었다. 이슬람 국가지만 아랍과는 달리 페르시아계로 같은 이슬람이라고 해도 아랍권 국가들과 사이가 그리 좋지 못하다. 종교적인 동질감이 있지만 신정일치, 세습형 공화제가 주류를 이루는 아랍권 이슬람 국가와 그나마 민주주의가 정착된 이란은 정치적으로 연대하기에는 여러모로 애로사항이 많았다. 이는 중동 연합의 우주 도시 건설에도 매우 큰 걸림돌로 작용했다. 거기에 반미국가이기도 하니 이란이 밀접하게 연대할 수 있는 국가들 중 첨단 우주 항공 기술을 제대로 갖춘 국가도 없었다. 유럽 우주 도시 계획에 은근 슬쩍 끼고 싶어도 반미국가라는 딱지에 영국을 비롯, 미국과의 갈등을 우려한 여러 유럽 국가들의 반대로 그러지도 못했다. 이슬람이지만 친미 국가인데다가 돈이 아주 많아서 유럽 우주 도시 계획에 참여할 수 있었던 사우디와는 아주 대조적이었다. 그렇다고 반미를 포기해야 하나? 이란의 정치적, 지리적인 입장을 고려하면 불가능했다. 일단 역사적으로 이라크-이란 전쟁에서 당시 미국이 사담 후세인을 지원한 전적이 있었고 당시 시아파 혁명으로 정권이 바뀌었던(이라크-이란 전쟁의 시발점이기도 했다.) 이란과 시아파 테러 조직인 헤즈볼라(당시 레바논 미 대사관에서 인질극을 벌임)의 밀접한 관계 등으로 미국과 사이가 아주 안좋아졌다. 거기에 주위 국가들이 다 이슬람이다. 시아파의 이란 혁명으로 이슬람 원리주의가 퍼진 상태. 그런 그들이 자신들의 사이에 친미 국가가 들어서는 걸 가만히 놔둘까? 배신자 소리에 자살 폭탄 테러가 이란 도심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너무 높았다. 이렇게 미국과 사이가 안 좋은 이란인데 미국이 저 우주에 먼저 진출해 버렸다. 우주에서 머리위로 핵미사일을 떨어뜨리면 어떻게 하나? 반감기 가속 기술이 탄생한 미국이니 분명 핵무기 무력화 장비를 개발하고 있는 건 당연한 일이었고 국제적으로 욕을 먹어가며 핵개발을 추진한 이란은 졸지에 닭 쫓던 개꼴이 되었다. 국제 사회의 고립을 자초하면서 해왔던 모든 것이 무용지물이 되었다. 당장 자신들의 머리위에 미사일이 떨어져도 핵무기로 반격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이란이 핵무기 무력화 장비에 매달리는 건 살기 위한 발악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런 이란의 분위기는 이슬람 원리주의의 동질성과 인맥으로 주위 여러 나라에 퍼졌다. 이라크,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쿠웨이트.. 여러 나라들이 이대로는 안된다는 건 실감했다. 그들은 이슬람을 위협하는 세력인 미국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해야 했고 결국 지지부진해졌던 중동 연합 우주 진출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가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알라만을 외쳐대던 그들에게 고도의 우주 기술이 있을 리가 없었다. 척박해도 신앙의 힘으로 잘 먹고 잘 살았던 그들이었다. 고로 우주 진출 프로젝트는 중동 방어 프로젝트로 바뀌었다. 더 많은 핵무기가 필요했다. 핵무기의 전쟁 억지력은 허상이 아닌 실상, 자신들에게 핵무기가 많다면 미국이라도 자신들을 함부로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어? 이 놈들이 미쳤나?’ 미국은 중동에서 벌어지는 일에 당황했다. 신앙과 종교는 생각보다 훨씬 비이성적이었다. 아폴로티움이 무장되고 미국의 국력이 이제 공포스러울 정도가 되었으니 이쯤 되면 슬슬 기어 들어오거나 애써 외면하고 가만히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핵무기 증강이라는 초강수를 쓸 줄이야 누가 생각을 했겠는가? 종교적 신념을 빌어 죽어도 굴복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를 간과한 미 정부의 판단 실책이었다. 죽느니 굴복하지 않겠다는 걸 자살폭탄 테러로 이미 많이 겪어보지 않았는가? 미 정부는 부랴부랴 Anti-N의 증산과 가동 실험, 운용 훈련에 빠르게 도입했다. 그리고 국제 사회에는 우려가 퍼졌다. 무려 핵무기다. 한 대만 방어선을 피해가도 참극이 벌어진다. 유럽과 아시아에서는 이란을 비롯한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에게 핵무기 증강을 중지하라며 경고했다. 하지만 이들 국가에서는 머뭇거리면서도 핵무기 증강을 멈추지 않았다. 그들에게 그것은 자신들을 건들지 말라는 무언의 경고였다. 201화 하지만 그런 경고를 경고로 알아들을 만한 강대국들이 아니었다. 특히 미국은 국제적으로 불안을 야기하는 이들에게 되려 경고를 보냈다. [민간인 대량 학살과 참극을 불러오는 핵무기를 노골적으로 축적하여 국제 평화를 해치는 이들 악의 축의 의도에 미국은 끌려가지 않을 것이며 인류의 평화를 해치려는 의도를 적극적으로 막을 것이다.] 미국은 이슬람권 국가들의 행동에 우려를 나타내다가 손익 계산을 해보고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강현과 유대인과의 갈등으로 이스라엘과 미국의 공조가 약화되었고 중동에 대한 미국의 헤게모니가 약화되었다. 다시 이스라엘과 손을 잡고 싶어도 미국 내의 반 유대적 시민 정서가 정권을 위협하게 될 여지가 너무나도 높았다. 그렇다고 중동 국가들에게 손을 내밀고 싶어도 세습형 독재 공화국, 신정 일치의 이슬람 국가들의 종교 기득권 층이 미국에 가진 뿌리 깊은 증오는 어찌할 수가 없었다. 이슬람 천국을 만드는데 사사건건 방해를 한 국가가 미국이 아닌가? 그런데 우주 시대로 진입하지 못하고 적들이 영원히 자신들의 머리 위에 있을 거라는 공포에 핵무장을 강화했다. 현대전은 고지를 점령하면 우세할 수 밖에 없다. 우주로부터 중력 가속도의 도움을 받아 떨어져 내릴 미사일 세례를 막을 기술이 이란에는 전혀 없었다. 그래서 전쟁 억지력을 위해 핵무장을 강화했다. 이란은 핵무장을 포기한 이라크가 어떤 꼴을 당했는지 너무나 똑똑히 보았다. 페르시아 만을 건너 바로 맞은 편에 있는 나라이니 눈이 있으면 못 볼리가 없었다. 그러나 핵무장 증강은 미국이 개입할 명분을 만들어 주었다. 미국은 공격적 방어를 하기로 결정했다. 곧 Anti-N을 장비한 항공모함이 호르무즈 해협으로 향했다. 호르무즈 해협은 이란의 앞바다이자 사우디, 쿠웨이트, 이라크에 접한 페르시아 만으로 들어가는 교통 요충지다. 이런 미군의 이동에 이란은 전쟁을 벌일 셈이냐며 노발대발했다. 그런 미국은 태연하게 UN 회의에서 이란 무역 제재안을 상정했다. 때문에 이란측 대사와 미국 대사간에 주먹질이 오갈 뻔 하기도 했지만 중동과 더욱 가까운 유럽 국가들의 심기가 매우 불편했기 때문에 전격적으로 통과되었다. 그럴 수록 이란은 더욱 핵무기를 보물 단지처럼 여겼다. “미친! 이맘은 미쳤다!” 이맘은 이슬람의 종교지도자를 뜻한다. 그리고 시아파의 이슬람 원리주의로 혁명을 일궈 민주주의 체제를 만든 이란은 행정적인 지도부인 대통령을 뽑지만 역시나 마찬가지로 종교적 최고지도자인 이맘을 두어 이원 체제로 나라를 운영했다. 그러나 대통령은 재선은 가능하지만 3선이 금지되어 있고 이맘은 종신제로 한 번 뽑히면 평생간다. 게다가 이맘은 대통령 해임권을 가지고 있다. 당연히 대통령보다 이맘의 권력이 강할 수 밖에 없다. 종교적 권력이 민주적으로 뽑힌 대통령을 밀어낼 수 있다니.. 일반적인 민주주의 상식으로 보면 이해가 안되는 구조다. 신정일치의 이슬람에 민주주의를 도입하려니 이런 기형적인 구조가 된 것이다. 아무튼 무역 제재와 경제 보복으로부터 국민들을 보호해 보고자 핵무기 포기를 선언하려던 이란 대통령은 최고지도자의 대통령 해임권에 실각해 버렸다. “종교를 지키기 위해 국민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건가?!” 종교적 신념은 순교와 희생을 요구한다. 이슬람이 견뎌오고 살아온 형태는 다 그런 식이 아니었던가? 하야하면서 이맘을 비난한 대통령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감옥으로 가고 나자 미국은 한 술 더 떴다. [핵무기 증강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미국은 평화적 방법으로 핵무기를 무력화시키겠다.] 대표적 비대칭 전력인 핵무기를 무력화 시키겠다는 건 당사자인 국가들로서는 억장이 무너지고 국가적 재산을 침해한 침략 행위였지만 유럽을 비롯한 열강들은 오히려 반가움을 표했다. [인류가 우주로 도약하는 이 시대에 증오의 상징인 핵무기는 마땅히 폐기되어야 할 물건이다.] [러시아는 전세계 핵무기 폐기를 제안한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핵무기 폐기라는 말인가? 핵무기가 없어진다면 이득을 볼 국가는 정해져있다. 전통적인 군사력에서 앞선 나라들, 특히 미국이 될 것이 분명했다. 비대칭 전력이 어떻게 전쟁을 억제할 수 있었는가? 그 이유는 단 한가지다. 상대적으로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나라라고 할지라도 반드시 엄청난 피해를 강요하기 때문이다. 상대 국가에 침공을 했는데 우리 땅에 핵탄두 하나만 떨어진다면? 그것도 경제적 요충지나 군사적 요충지라면? 군사력이 넘쳐 눈이 벌게진 국가도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그런 전쟁 억지력의 큰 축이 사라진다? 어떤 일이 생길지 가늠하기 힘들다. 인류의 지성과 인류애로 한 걸음 도약할 계기가 될지, 아니면 전쟁의 시발점이 될지.. “Anti-N 작동 준비!” “미사일 기지의 좌표는?” “확보했습니만 더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상관없다. 어차피 핵무기만 무력화 하는 장비니까 해당 지점을 전부다 무력화 시킨다.” ‘공격한다’가 아니다. ‘무력화’ 시킨다. 항공 모함에서 함장과 승무원이 하는 대화의 핵심은 이것이었다. ‘어떤 인명 피해도 내지 않고 적의 전력을 무력화 하는 무기.’ Anti-N을 공격적으로 운영할 때의 의미다. 피흘리지 않고 적을 무력화 시킨다. 함장이나 승무원에게는 꿈과 같은 이야기였다. 미 항공 모함은 이란 앞마당인 호르무즈 해협에서 이란의 핵무기가 있을 거라고 생각되는 모든 지점에 반감기 가속빔(중성미자 빔)을 꼬박 하루 동안 조사했다. 그리고 훽하고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돌아갔다. 잔뜩 긴장한 이란 해공군을 황당하게 만들 정도로 전격적으로 빠져 태평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곧 이어진 미 정부의 발표는 이란의 이맘 및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을 멘붕에 빠뜨렸다. [… 그러므로 미국은 모든 핵무기가 해체되어 평화적으로 이용 되도록 강제할 수단을 확보했고... 그리하여 이란의 핵무기는 모두 무력화 되었다.... ] 뭐? 우리 핵무기들이 모두 고자가 되었다고? 설마설마했던 군에서는 핵탄두 몇 개를 뜯어 검사했다. 순수해야 하는 우라늄 235 덩어리가 납과 뒤섞여 있었다. 당연히 핵폭발이 일어날 가능성은 없었다. 놀란 군부는 전수 조사를 시작했다. 기껏 개발하고 만든 핵탄두들의 납 함량 비율이 40~60%이라는 놀라운 결과는 이란 군부를 집단 멘붕에 빠뜨렸다. 이것이 이란 종교 지도부에 일으킨 충격 역시 엄청났다. 서둘러 저 Anti-N을 구입해야 한다. 구입을 못한다면 시간을 끌면서 우리도 그런 장비를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우리도 미국의 핵무기를 무력화 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행스럽게도 원천기술은 특허의 형태로 공개가 되어 있었기에 자국의 뛰어난 핵물리학자(핵개발에 투자하니 자연히 핵물리학이 발달할 수 밖에 없다.)들을 동원해 기술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이란에서는 미국의 발표에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자신들의 핵무기는 이상이 없다며 허풍을 쳤다. 그러나 미 정부는 이들의 주장을 비웃듯이 다시 이런 성명을 내었다. [미국은 앞으로도 지구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노력할 것이며.... 그에 대한 증거로 미국의 모든 핵무기를 해체해 평화적으로 이용할 것을 선언한다.] 무려 비핵화 선언이었다. 뭐? 군사 강대국인 미국이 핵무기를 포기해? 미친 것 아냐? 세계 1위의 강대국인 미국인 만큼 핵 미사일 개수도 가장 많다. 쉬쉬하고 있었지만 사람 심리라는 게 그렇다. 헐벗은 거지에게 들린 칼보다 돈 많고 권력있는 부호의 손에 들린 칼이 덜 위협적이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거지는 가지기 위해서 칼을 휘두를 수 있지만 돈 많은 이가 굳이 가지기 위해서 칼을 휘두를 이유는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결론은 무엇인가? 핵을 포기한 이라크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다. 칼은 부자든 거지든 남이 쥐면 안된다. 자신이 쥐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미국은 자신이 들고 있는 칼을 오히려 당당하게, 공개적으로 내려놓았다. 미국 내에서는 환영과 미 안보를 오히려 해칠 수 있다며 평가와 평가가 엇갈렸지만, 대체적으로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무기 옹호자들조차도 핵무기의 감축 및 폐기안에는 고개를 끄덕였는데 그만큼 다른 부분의 전력 증강에 예산을 몰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연히 국제적으로는 환영받았다. 자신들을 위협할 요소를 없애준다는데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미국도 바보가 아닌 이상 그냥 비핵화를 선언했을 리가 없다. 눈치 빠른 사람들은 미국이 비핵화를 선언한 이유에 의구심을 품었다. ‘자신감!’ 핵무기 따위 없어도 된다는 자신감이 없다면 절대 핵무기를 폐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말은 미국이 핵테러나 핵공력을 막을 확고한 방어체계를 갖추었다거나 아니면 핵에 준하는 전략 무기를 갖추었다는 것을 뜻했다. ‘아폴로티움!’ 그리고 사람들은 신의 지팡이라는 첨단 위성 무기를 떠올렸다. 그냥 단순히 무거운 텅스텐 합금 막대를 위성 궤도에서 떨어뜨리는 것이지만 엄청난 운동 에너지로 인해 소형 전술 핵에 맞먹는 위력을 보이면서도 방사능 오염이 전무한 전술 무기였다. 사실 그 위력은 명백한 과장이지만 카낙 광산이 있으니 말이 다르다. 만일 카낙 광산에게 생산된 대량의 텅스텐 막대가 있다면 굳이 핵무기가 필요 없다. 그냥 많이 많이 목표 지점에 떨어뜨리면 된다. 텅스텐 막대를 우주로 올릴 비용이 없으니 무제한의 공짜 전술핵이 생긴 거나 다름없었다. 우주 도시가 없는 국가들은 신의 지팡이 계획은 우주 협약을 위반한 것이 아니냐며 비난을 시작했다. 운석을 막기 위한 방위 시스템과 달리 신의 지팡이는 오직 지상을 공격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유럽과 동아시아에서는 비난 대신 경악을 하면서 이를 갈 수 밖에 없었다. 미국은 아폴로티움을 단독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신의 지팡이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들은 우주 도시를 단독 소유하고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 도시를 전력화하기 위해 다시 골치 아픈 협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각 국가의 안보가 얽혀 있기 때문에 이전의 협상보다 훨씬 타결이 어려울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협상을 하지 않을 수도 없는 것이 어떤 식으로든 결론을 내지 않으면 이 문제로 우주 도시를 둔 국가들 사이에 심각한 갈등이 일어날 게 뻔했다. 미국은 본의 아니게 우주 도시 계획으로 연합한 국가들 사이에 커다란 똥 무더기를 떨어뜨려 놓았다. “그런 식으로 오해해준다면야 좋지.” 척 대령은 그런 국가들의 행동에 오히려 반가움을 표했다. 사실 신의 지팡이 같은 건 없다. 강현의 존재가 신의 지팡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걸림돌이 되었다. 신의 지팡이 프로젝트가 완벽히 구현이 되기 위해서는 대량의 텅스텐이 필요한데 강현이 RP는 투명하게 운영이 되어야 한다며 RP 데이터 조작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군인인 척 대령의 입장에서는 불쾌한 일이었지만 달러의 신용을 RP가 지켜주고 있는 상황이라 강현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없었다. 물자와 보급 역시 군략의 중요한 축이기 때문에 미국의 경제가 휘청하면 군대 역시 그만큼 불이익을 받는다. 경제력과 군사력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202화 아무튼 신의 지팡이 프로젝트를 실현하기 위해서 RP 시장이 왜곡되지 않았으니 여러 국가에서도 곧 그런 것이 미국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니 핵무기를 완전히 폐기, 분해하기전에 그만한 전력을 갖추어야 했다. “하데스 프로젝트는 어떻게 되고 있나?” 척 대령이 어디론가 연락을 해서 물었다. 펜타곤에서도 아는 사람만 아는 극비 프로젝트의 담당자였다. [완전 자동화 시설은 갖추었습니다. 이제 이것을 운용할 인공지능과 생산 물자만 갖추면 준비는 완료됩니다.] “아폴로티움에 낙하 포트 시설을 건설하는 일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강 박사에게 그럴 듯한 변명을 하기는 했지만 이쪽의 일을 눈치채고 있는 듯 합니다.] “주의하게. 그는 교활하고 또 교활한 인간이야.” [네. 알겠습니다.] 미국은 강하다. 강하기 때문에 오히려 무기 사용에 신중해야 했다. 테러범들이나 중동의 독재국가에는 자살 폭탄 테러나 반군 진압을 위해 화학 무기도 사용하지만 미국이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그건 미국의 자존심과 자부심은 물론 세계 패권을 쥔 경찰 국가라는 명분을 스스로 해치는 행위다. 군사적으로 너무나 강하기 때문에 오히려 대중이 납득할 수 있는 무기를 써야 한다는 제약은 참으로 아이러니였다. 그렇기 때문에 핵무기를 대신할 전력에서 신의 지팡이 같이 민간 피해도 강요하는 대량 학살 무기는 제외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그에 준하는 무기 체계가 필요하다는 것에 정부 관료는 물론이고 군 장성까지 동의했다. 대량 학살 무기를 폐기하기로 했는데 또 다른 대량 학살 무기를 도입하는 건 코미디지만 대중이 납득할 수 있다면 가능했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바로 하데스 프로젝트다. 대량학살을 하지만 민간인을 죽이지 않을 수 있다면? 총과 폭탄을 든 군인만 사살하거나 무력화 시킬 수만 있다면? 거기에 자국의 소중한 군인들의 희생을 줄일 수도 있다면? 분명히 대중의 지지를 사면서도 미국의 패권을 국제 사회가 받아들일 수 밖에 없게 될 것이다. 그 계획의 골자는 무인 병기 프로젝트였다. 이미 실전에서 그 능력을 증명한 바가 있는 로봇독, K 시리즈를 대량으로 운용하는 것이었다. 해킹 같은 정보전에 약한 면모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을 극복할 차세대 인공지능이나 보호 체계의 개발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들의 아이디어는 인공지능에 대한 새로운 접근에서 시작되었다. 강현은 인공지능에게 자아를 부여했지만 굳이 자아를 부여할 필요가 있을까? 로봇들을 제어하는 기능만을 남기고 목표를 설정, 추적, 섬멸하도록 조작하는 건 사람에게 맞기면 되지 않은가? 이런 발상은 강현의 통합 감시 시스템, 대외적으로는 양자 컴퓨터 리소스 대여 시스템으로 알려진 그것 덕분이다. 인공지능에도 사용된 고속의 다중 연산 장치를 인공지능이 사용할 수 있는 단순한 계산기로 만든 것처럼 인공지능에게 로봇들을 ‘제어하는 것’만 맡기고 인간의 공격 명령이나 이동 명령을 따르게 만드는 것이 골자다. 이미 제우스의 경우를 겪은 교훈으로 이번 프로젝트의 인공지능은 철저하게 수동적인 자아로 만들기로 한 것이다. 분명 대량으로 전투 로봇을 운영하게 된다면 자국 군인의 희생을 줄이고, 적국의 민간인 피해도 줄이며 적군을 제압할 수 있다. 거기에 자살 폭탄 테러를 응용한 자살 폭탄 로봇독도있으니 탱크나 경장갑 차량도 걱정할 문제가 되지 않는다. CNC(CNT network composition) 장갑과 IAPP(충격 흡수 단백질 플라스틱) 덕분에 중기관총탄을 막으며 시속 70km달려들 수 있는 수백 마리의 로봇견들은 시가전은 물론 평야에서도 탱크에게 극상성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는데 하나는 생산성과 이동성이다. 생산성은 카낙 시스템을 모방하면 어느 정도 해결이 되지만 이동성은 새롭게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러나 이런 시스템 자체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대량 운용 해야 하기 때문에 대륙간 탄도 미사일에 핵미사일을 실은 것처럼 손쉽게 적국을 타격할 수가 없다. 항공모함에 실어도 겨우 수 백 대를 실을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아폴로티움이 해결책으로 떠올랐다. 강현에게는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 아폴로티움의 사람들을 피난 시킬 수 있도록 대량의 낙하 포트를 비치하도록 제안했다. 그리고 이 수천 대의 낙하 포트에 전투 로봇들을 실으면 목표 지점에 수 만 대의 전투 로봇을 공수할 수 있다. 분명 설계상 온전히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강현은 시치미를 뚝 뗐다. 비록 전술적으로 쓸 수 있다고 하더라도 만일의 상황에서 아폴로티움의 사람들을 대피시킬 수 있는 수단이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이란의 상황은 어떠한가?” “분명 이를 갈고 있겠죠.” 척 대령의 물음에 보좌관이 대답했다. “경계를 철저하게 하도록. 그리고 유럽과 중국, 러시아의 반응은?” “떨떠름 할 겁니다. 당연히 비핵화는 그들에게도 이득입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미국이 더 큰 이득을 보지 않는가 의구심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정부에서 비핵화 선언을 너무 빨리 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가?” 보좌관의 말에 척 대령은 씨익 웃었다. 미국 정부는 한 가지만을 노린 것이 아니다. 비핵화 선언을 통해서 미국은 세계 경찰의 지위를 다시 한 번 전세계 사람들에게 각인하면서 이란의 핵무장을 무력화 시켰다. 중동의 친미 국가는 이웃 국가가 거대하게 엿을 먹은 상황을 반겼고 반미 국가는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란은 자국의 재산 가치를 파괴했다며 노발대발했지만 그것이 핵무기인 이상 국제 사회의 싸늘한 시선만을 받을 수 밖에 없었고 미국의 중동에 대한 헤게모니는 강화되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우주 도시를 군사전략화 시킬 수 있는 유일한 국가는 미국 밖에 없었다. 동아시아 삼국은 역사적 영토적 갈등으로 인해 그들 공동의 우주 도시를 평화적인 우주 진출 수단 이상으로 사용할 수 없었다. 유럽은 정치적으로 분열되어 있기 때문에 우주 도시의 군사화에 많은 진통을 겪을 수 밖에 없다. 즉, 그들이 하데스 프로젝트 같은 대량 전투 로봇 운용 시스템을 모방하는 건 무리라는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핵무기들이 전량 폐기된다? 그리고 미국은 핵무기에 준하는 전략 무기 체계를 갖출 수 있는 여력이 있다? 미국이 이득을 봐도 너무나 큰 이득을 보게 된다. 그 대단한 미국이 비핵화 선언을 하며 매일 실시간으로 핵미사일을 해체하는 방송을 공개하고 있으니 유럽 각국의 정권이 받는 압력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이제 핵무기로 인한 공멸의 공포가 사라지는 시대에 우리들은 뭐하냐는 시민들의 요구가 빗발칠 것이다. 동아시아의 경우, 일본은 어차피 비핵 선언국이다. 핵 두 방을 맞은 나라에서 핵무기를 만들겠다고 하면 시민들이 일본 정부를 어떻게 생각할까? 우익이 판을 치며 핵무기를 만들자고 미친 소리를 해도 미국이 지그시 압박해 주면 된다. 중국과 러시아는 정치적으로 민주주의가 발달하지 않아 그런 시민적인 요구를 무시할 수 있겠지만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에 대한 타국의 시선을 고려하면 국제적으로 미국이 이 두 나라를 압박할 수 있는 명분과 외교적 카드가 생겼다고 할 수 있다. 다시 생각해 보면 현재 미 정부를 이끄는 민주당 정권으로써는 이보다 절묘한 한 수가 없을 정도다. 핵무기를 폐기하여 진보적 성향의 시민들의 지지도 사고 축소된 핵무기 예산을 그만큼 군사력 증강에 보태어 보수 진영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외부적으로도 상당한 외교적 성과를 만들어 내었다. 다음 대권 역시 민주당으로 확정됐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성과다. “아폴로티움에 조립 공장을 건설하는 일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NASA의 이주민 유인 정책과 맞물려 잘 돌아가고 있습니다.] 우주에서 대량으로 로봇들을 떨어뜨리는 일이니 로봇들을 대량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 지구에서 만들어 쏘아 올리면 돈이 많이 들지만 아폴로티움에서 만들면 싸게 먹힐 수 있었다. 그래서 아폴로티움에 대규모 로봇 조립 단지를 조성하는 계획을 세웠는데 이는 곧 일자리이기 때문에 NASA의 이주 정책과 맞물려 많은 사람들을 이주 시킬 수 있는 원천이 되었다. 여기에 제조업으로서 건강하게 살아남은 미국 군수 산업체들이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나날이 아폴로티움의 인구 밀도는 증가하고 있었다. 그리고 인구 밀도가 증가함에 따라서 한국 출신의 우주 인부들 역시 그 수가 증가했다. 주택 수요를 따라 잡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계속 젊고 솔선수범하며 열정있는 인력들이 계속 빠져나가자 한국 기업은 물론 정부 차원에서도 불만이 점점 커졌다. 열정, 재능을 갖춘 인재란 곧 적은 임금, 보장된 야근을 기꺼이 하는 노동력이란 뜻이기 때문에 이런 인력들이 빠져나가는 건 기업적 차원, 아니 국가적 차원에서 뼈아픈 손실이다. 이미 친기업적이다 못해 기업과 정계가 온갖 인맥과 혼맥으로 얽힌 이들의 입장에서 한국 제현 그룹의 행태는 경악스럽다 못해 적대적이다. 여느 기업이라면 돈과 공권력을 동원해 그냥 밟아줬을 텐데 쿠데타의 뼈아픈 기억이 남아있는 재벌들과 정치꾼들은 그 모든 것을 유도한 강현이 뒤에 있는 제현 그룹에 그런 공작을 하기가 두려웠다. 그나마 제현 그룹이 생각보다 훨씬 온건하게 기업 활동에만 전념하고 있는 것 만으로 감지덕지였다. 그러나 신뢰할 수 있는 인력의 유출은 생각보다 훨씬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상관의 비리를 호시탐탐 캐내려는 하이에나 같은 부하를 어찌 믿고 일을 맡길 수 있을까? 부하를 믿고 일을 맞기지 못하니 조직 관리가 제대로 될 리 없고 상품 생산성은 물론 품질까지 떨어졌다. ‘너희 너무 과도한 거 아니냐?’ ‘그럼 우리 만큼 대우해주던가?’ ‘....’ 우주 시대를 맞이 했는데도 우주 도시에 지분 한 조각 넣지 못한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력한 비전은 우주 인부로 선발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비전을 강현의 입김이 서린 제현 그룹 이외에 실행할 수 있는 한국 기업은 없었다. 거기에 미국 영주권을 얻을 수 있는 높은 가능성까지 겹치니 정치권을 움직여 제현 그룹에 불리한 법을 만들면 온 국민이 들고 일어날 태세였다. 반공 교육을 받아 자신들의 절대적인 지지층인 보수세력들도 미국 영주권이라면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상황이니 무슨 말을 더하랴? “제2지구는?” 척 대령은 아폴로티움의 2층 건설 계획의 진행 상황에 대해서 물었다. 시가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있기 때문에 원심력이 적어 가상 중력이 적게 작용하는 공업지대로 앞으로 지어질 3층 중 하나였다. “RP 포인트로 자재를 축적하고 있습니다. CNT 고장력 케이블 같은 경우에도 카낙에서 생산되어 수급에 문제가 없습니다.” “강 박사의 지원은?” “그게.. 우주 농장 건설 때문에 아폴로티움 확장문제까지 돕게 되면 RP 포인트가 교란된다고 거절했습니다.” “흠... 아폴로티움을 군사 전략화 하는 것에 반감을 가지고 있는건가?” “글쎄요. 아니면 군사적 부분에 자신의 지분이 들어가는 걸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의 행동 패턴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이 어떤 영역에 대해서 확고하게 선을 긋고 관련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니까요.” 보좌관의 해석에 척 대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듯한 해석이다. “참, 국익에 도움이 되기는 하는데.. 다루기가 참 어려운 사람이야.” 203화 “다루기가 쉬운 사람이라면 정재계 인물들이 두려워하지도 않겠죠.” 보좌관의 말에 척 대령은 쓰게 웃었다. 이번 우주로 군사력을 뻗치기 위해서 여러 사람을 만나봤다. 그들은 미국의 패권과 자신의 이익을 저울질했고 척 대령은 훌륭한 언변으로 그들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단서를 달았다. ‘강 박사의 허락이 필요하오.’ 아폴로티움에 강 박사의 지분이 적지 않기 때문에 언뜻 생각하면 당연한 소리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척 대령은 그 이면에 자리한 두려움을 인지했다. 그 대단한 유대인 네트워크를 무너뜨린 강현과 척을 지고 싶은 이는 전혀 없었다. 척 대령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와 기술적, 경제적으로 밀접하게 관련된 이들은 오죽할까? 다행스럽게도 강현이 돈보다 과학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온건한(척 대령은 그의 행보에서 그런 세간의 평가를 의심했지만) 태도 덕분에 미국 사회의 기득권층과 별 탈 없이 공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성향이 오히려 그를 이용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부와 명예를 원한다면 얼마든지 줄 수 있다. 미국은 영웅이 미국을 수호해 준다면 마땅히 그 모든 것을 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받는 거보다 주는 것을 더 좋아하는 듯한 사람에게는 무엇을 주어야 만족할까? 미국 제현 투자회사로 통해 사회환원에 가까운 사업을 하고, 아프리카에 거액을 투자하는 강현인데 그런 그가 흡족할 만한 거래 조건은 권력자의 입장에서 추측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기껏 생각할 수 있는 건 그의 심기를 거슬리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뿐인데 그나마 강현이 그렇게까지 까탈스런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 다행이었다. 그의 연구를 방해하지만 않으면 원만한 관계를 지속할 수 있다는 것이 자문 위원회의 견해였다. 척 대령은 상념을 접고 하데스 프로젝트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우주 농장 프로젝트에 대해서 보좌관에게 물었다. “그럼, 그 우주 농장 프로젝트는 언제 시작한다고 하던가?” “이미 진행 중이라고 합니다.” “그래?” 보좌관에 말에 척 대령은 창 밖을 올려다 보았다. 해가 지고 별이 총총 떠오르고 있었다. = = = = = “반사 시스템은 어떻게 되고 있지?” [우주선에 쓰이는 유리를 이용해 창문을 만들고 있습니다.] 스페이스 쉽에 사용되는 유리창의 재료는 가정집 유리창과 마찬가지로 산화 규소를 쓴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정밀하게 미량 원소를 조절하고 열처리하여 대기권 돌입의 충격에서 버티도록 만든다. 그러나 요즘에는 이보다 더 단단하고 내구성 있는 재료를 연구, 사용하고 있으니 바로 알루미나다. 산화 알루미늄으로서 사파이어의 주 재질이기도 한 알루미나는 그 강도와 열적 특성이 기본적으로 산화 규소보다 뛰어나다. 그중 우주선 창문에 사용하는 알루미나는 마그네슘 따위를 첨가한 스피넬 구조의 결정질 세라믹으로 내열성은 물론 강도 역시 일반적인 유리와는 차원이 다르다. 우주 농장에 빛을 수급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그러나 열역학 제2법칙에 의하면 에너지는 그 형태가 전환될 때마다 소모된다. 아무리 이상적인 카르노 기관이라고 해도 열에너지를 운동 에너지로 전환할 때 100% 전환되지 않는다. 운동 에너지를 열에너지로 전환하는 것도 쉽지 않다. 마모에 의해서 기계 부품이 가루가 되면 가루의 표면 에너지라는 형태로 에너지가 전환된다. 열과 전기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빛과 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100% 에너지 전환은 불가능하다. 그 말은 즉슨, 태양광 패널과 전력을 만들어 이를 이용해 태양광 광원을 가동하게 되면 에너지 손실이 커진다는 뜻이다. 거기에 전력으로 구동되는 광원 시스템의 유지 보수까지 생각하면 큰 메리트가 없다. 그래서 강현은 태양광 집광기로 용융 시설을 만든 것처럼 순수하게 태양광 그 자체를 이용하는 방법을 모색했다. 결국은 태양광을 투과하는 창문을 내는 수 밖에 없었다. 우주 농장의 외형은 아폴로티움과 그리 다르지 않다. 두루마리 휴지 같이 원통형에 중앙이 뻥 뚫려 있는 구조였다. 다만 크기는 좀 작았다. 아폴로티움의 2층 공업 시설만 지어졌을 때의 크기 정도? 차후 확장을 대비한 설계가 있기는 하지만 일단 우주에서의 식량 생산 기술을 시험해야 했다. 이 우주 농장에 붙은 창문의 크기는 죄다 사람만한 크기였는데 카낙의 거대한 시설에서 만들어 졌다. 내부의 압력을 손쉽게 견디기 위해서 원형의 그릇처럼 만들었는데 안쪽으로 볼록하게 창을 내었다. 그리고 이 볼록한 모양은 태양광을 굴절시켜 넓게 산란시키는 역할도 했다. 볼록렌즈로 모은 빛이 한 점에 모여도 다시 그 점을 지나 퍼지기 때문에 오목 렌즈의 역할을 하는지 안 하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농장 내부에 반사경을 달아 밑에서 올라오는 태양광을 다시 작물에 골고루 쬐어지도록 해주면 더욱 효율적이었다. 사람처럼 작물 역시 자는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창문 개폐 장치도 달았다. 이는 광량 조절 기능은 물론 창문을 보호함과 동시에 창문의 교체나 수리를 용이하도록 해주었다. 다만 가장 큰 문제는 내부에 작물을 키우는 시스템을 어떻게 하느냐였다. 원래는 카낙에서 생산하는 잉여자원들, 예를 들면 넘치는 실리콘 등을 이용해 토양을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이 토양이라는 것이 결코 만만하게 구현되는 것이 아니다. 식물에게 영양의 원천이 되는 무기질 원소의 공급을 원활하게 해주는 부식토, 토양 미생물 등 토양 재배에 관련된 여러 요소들을 기술적으로 구현하기가 무척이나 힘이 들었다. 토양 재배를 하게 되면 당연히 작물의 특성에 맞추어 적절히 토양에서 물을 빼줘야 한다. 지구라면 강이나 지하수, 구름의 형태로 물이 빠져나가겠지만 우주 농장에서는 인위적으로 수준 조절 시스템을 갖추어 줘야한다. 처음에 강현은 우주 농장의 농업 형태를 지구와 동일하게 밭을 갈고 비료를 꾸미는 등 지구의 농법과 거의 비슷한 형태가 될 수 있도록 생각했으나 이미 우주 도시에서의 상수도 문제에서 교훈을 얻은 바가 있었다. 우주에서 적합한 조건은 지구에서 적합한 조건과 다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강현은 토양 재배를 포기하고 양액 재배를 선택했다. 양액 재배 흔히 수경 재배라고 불리는 이 방법은 사실 영양액을 사용한 재배 방식의 통칭이다. 물에서 식물을 둥둥 띄워 키우는 것 뿐만 아니라, 진흙 팰랫, 화산재 팰랫, 곡물 껍질, 나무의 섬유, 양털에 폴리스티렌 같은 고분자를 이용한 다양한 기판에서도 재배하는 방법이 있으며 에어로포닉 같이 기판 없이 영양액을 분무기로 안개를 만들어 식물의 뿌리에 직접 분사하는 방법도 있다. 영양액을 사용하는 방법도 다양한데, 그냥 영양액을 가득 채운 탱크 위에 기판을 설치하는 방법부터 영양액을 지속적으로 흐르게 만드는 방법은 물론 앞에서 소개했던 에어로포닉같이 안개의 형태로 사용하는 방법 등 다양했다. 이중에 가장 산업적으로 생산성이 높은 것은 당연코 에어로포닉의 방법이었다. 영양액을 공급하는 동안 식물이 영양액에서 양분을 빨아들이기 때문에 영양액의 조성을 조절해야 하는데 분무기처럼 분사하는 방법은 이 조성 조절에 매우 유리하기 때문이다. 강현은 여러 방법들을 조사하다가 바로 이 에어로포닉을 전격적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기후가 없는 우주 농장에서 에어로포닉보다 적당한 방법의 재배 방법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단 영양액의 공급을 조절하는 유체 시스템이 단순해 진다. 영양액 탱크에서 분사장치로 가는 시스템만 구성하게 되면 나머지 청소나 습도 조절같이 자잘한 부분은 로봇이나 인력을 쓰거나 따로 장치를 더 설치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단 이 모든 것을 실제적으로 운용하기 위해서는 어떤 작물을 키울 것인가를 먼저 선택해야 했다. 작물에 따라 필요한 환경 및 영양 조건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분야는 강현의 전문 분야가 아니었다.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기획부장 이레이는 싱글벙글했다. 안그래도 우주 식물생리학 부서에서 여러번 문의가 왔었다. 우주 농장은 언제 지어지냐고. 우주에서 사람이 자급자족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건 비단 강현의 꿈만은 아니었다. 그래서 소개된 사람이 우주 식물생리학 부서의 수석 연구원인 마틴이었다. “일단 에어로포닉을 사용하려고 하는데 곡물은 양액 재배가 안되나요?” 마틴은 강현의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양배추 같은 야채의 경우에는 성공했지만 곡물은 아직 연구중입니다.] “그럼 언제쯤 성과가 나올까요?” [글쎄요.. 저도 장담 못합니다.] “음.. 뭐 그리 급한 것도 아니니까 조급하게 연구하지는 마세요.” 곡물을 키운다고 해도 도정 시설을 지어야 한다. 그리고 야채와는 달리 줄기와 곡물 껍질 따위의 도정 부산물이 많이 나오니 이를 처리하는 방법도 찾아야 했다.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강현의 설명에 마틴이 대답했다. [흐음.. 자동화로 가금류나 돼지 소의 사료로도 사용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완전히 소비할 수는 없을 것 같기도 하고..] “일단 발효를 시켜서 영양액의 원료로 사용할 방법도 있어요.” [그 부분은 사브리나 씨의 도움을 받으면 될 것 같습니다. 미생물학 분야를 공부하셨거든요.] 하긴 우주에 올라와서도 우주 도시 안의 미생물을 연구하니 도움을 받을 만했다. “흐음.. 발효 영양액이라.. 그거 최신 유기농 농법 중에 하나잖아.” 사브리나의 말에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곡물을 잘 쪄서 대지에 파묻은 후에 일부러 곰팡이나 균류를 잔뜩 키운 후 이것을 물에 풀어 뿌리는 방법은 그분야의 매우 기초적인 기술에 속한다. 단순한 것 같지만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결코 단순하지는 않다. 콩의 뿌리에서 콩과 공생하는 뿌리혹 박테리아같이 유기물이 풍부하여 미생물이 서식할 수 있는 대지에 뿌리를 박고 살아온 식물과 미생물은 식물이라는 존재가 탄생한 이후 계속 상호작용을 하면서 진화해 왔다. 건강한 식물의 뿌리에는 상호 협조적인 미생물이 공생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인간의 피부 역시 마찬가지라 몇몇 미생물학자는 비누나 샴푸 없이 물로만 씻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사람이 야채만 먹고 살 수는 없잖아요. 곡식도 먹어야 하고 고기도 먹어야 하죠. 그런데 가축을 기를 만큼 곡물을 키우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쓸모없는 부산물이 나오게 되거든요.” 과거라면 벼집단 같은 건 새끼줄이나 지붕을 엮는데 쓰는 훌륭한 재료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는 영 상품성이 없었다. 식물 섬유 플라스틱이라고 합판 기술을 응용해 식물 섬유과 접착제를 섞은 후 압축한 패널이 나오기는 하지만 대중성은 없었다. “흐음.. 한 번 궁리해 볼게.” “그럼 부탁드려요. 저는 식물 공장을 설계해야 해서요.” “공장?” 사브리나의 말에 강현이 웃음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공장 같아서요.” 강현은 자신이 구상한 에어로포닉 형태의 양액 재배 시스템을 설명했다. 일단 영양액 탱크와 센서, 분무장치가 쭈욱 길게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분무장치 위로 식물이 자라는 화분, 기판 따위가 쭈욱 놓여진다. 물론 뿌리가 자라며 기판 밑으로 늘어져 영양액 안개를 맞도록 되어 있었다. 자, 이렇게 식물을 잘 기른 후에는 어떻게 수확할 것인가? 그냥 사람이 일일이 다니면서 수확해? 첨단 우주 농장에서 이 무슨 제3세계식 수확을 하냐는 말인가? 나무에서 나는 열매라면 어쩔 수 없지만 기판이란 일정한 틀 안에서 자라는 작물은 좀 더 효율적으로 수확할 수 있다. 204화 다 자란 식물의 기판을 쏙하고 들어올려서 컨베이어 벨트 위에 놓으면 어떨까? 그리고 컨베이어 벨트 양 옆에서 수확하고 빈 기판은 다시 어디론가 보내서 재사용 하도록 한다면? 농업의 공업화란 이런 것이 아닐까? 물론 이런 식의 농업은 이미 그 형태가 구상되어 있고 완성도 되어있었다. 병충해 관리, 생산량과 그 조건의 데이터 베이스화, 필요 대지 면적의 최소화 등 여러 이점이 있었지만 광원 조달, 전기 비용 등으로 인해 넓은 땅을 이용하는 기존의 방법보다 경쟁력이 떨어져 실행되지 않았다. 그나마 살아 남은 방법이 하우스 재배라고나 할까? 그러나 우주 농장에서는 이보다 더 경쟁력 있는 방법이 없었다. 땅을 만들고 유지하는 비용이 더 많이 나갈 수 밖에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 축산 시설은 어떻게 되는거야?” “그건 우주 농장을 확장하고 나서 생각하기로 했어요.” “그런데 우주 농장이 아폴로티움에 비해서 작지 않아? 생산 면적을 고려하면 우주만의 자급자족을 하기 힘든 구조인데?” “괜찮아요. 제가 말했잖아요. 공장이라구요. 충분한 광량만 쪼일 수 있다면 2층 3층의 높이로 생장 시설을 만들면 되요.” 재배 면적이 두세 배가 증가되는 마술이 벌어지는 것이다. 괜히 공장이 20세기 산업 혁명을 이끈 시스템이 아니다. 괜히 우주 농장을 아폴로티움보다 작게 만든 것이 아니다. 강현을 만난 이후 일주일 뒤에 사브리나가 문서를 보내왔다. 그녀가 고안한 부산물 처리 시스템이었다. “오호!” 쭈욱 읽어본 강현의 입에서 감탄사가 터졌다. 자신의 생각보다 더 구체적인 방법론이 제시되어 있었다. 양액 재배를 위한 영양액에 첨가할 발효액을 만드는 방법은 총 4 단계로 구분되어 있었다. 일단 뜨거운 물에 끓여서 세포질을 파괴하고 걸러내 섬유질을 따로 추출한다. 이 뜨거운 물에 녹은 것만 해도 세포가 파괴되어 나오는 단백질, 아미노산 등의 양분이 있다. 걸러진 섬유질은 펙틴이나 셀룰로스 같은 분해되기 힘든 다당류 물질로 이것을 분해할 수 있는 미생물과 함께 발효 탱크에 넣어서 발효시킨다. 특히 셀룰로스 같은 물질은 매우 질기고 화학적으로 안정해서 발효 시간이 느려지기 때문에 발효 탱크가 많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 밖에 차후 가축을 키우게 되면 가축이 밟는 바닥에 두텁께 깔아두는 방법도 소개되어 있었다. 가축의 배변과 섞인 건초 따위는 발효가 잘 되어 거름으로 좋은 역할을 하는데 이를 다시 물과 섞어 재발효 과정을 거친 후에 건초를 기판으로 하는 양액 재배에도 사용할 수 있다고 되어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덧붙인 메시지에 이렇게 적어놨다. ‘조류(藻類)는 어때?’ 조류(藻類)는 독립 영양활동을 하는 수생 생물을 총칭하는 말이다. 거의 광합성을 할 수 있으며 크게 세균계, 식물계, 원생생물계로 나뉜다. 플랑크톤과 비슷하지만 학문적으로 정의가 다르다. 플랑크톤에 조류가 포함될 수도 있지만 갑각류, 해파리 등의 유생체도 포함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사브리나가 조류를 추천한 이유는 짐작할 수 있었다. 물속에서 자라는 조류의 경우 공업적으로 생산하기 매우 유용하기 때문이다. 이산화탄소와 몇몇 미량 원소, 햇빛만 있으면 무섭게 증식한다. 기하급수적이라는 말이 그대로 적용된다. 그러면 이걸 필터로 걸러내 몇가지 가공처리만 하면 사람은 물론 동물도 먹을 수 있는 훌륭한 영양분이 된다. 이때 키운 조류가 무독성이어야 한다는 전제가 깔리지만 말이다. 하지만 강현은 고개를 저었다. 단순히 영양을 공급하는 것이라면 우주 농장에서 축산을 하겠다는 발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단백질이 필요하다면 가축을 사육하는 것보다 차라리 곤충을 사육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효율적이냐면 동물먹이 20kg으로 소고기는 2kg, 돼지고기는 6kg, 그리고 닭고기는 10kg, 곤충고기는 무려 12kg이나 만들 수 있다고 한다. 또한 물도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촉촉한 야채따위에서 얻는 수분으로도 충분하고 단단한 키친질의 껍질 때문에 수분 소모량 자체가 적다. 하지만 이렇게 곤충을 단백질 공급원이라며 아폴로티움에 공급해보자. 무슨 일이 벌어질까? 사람의 생활에서 의식주는 매우 중요하다. 강현이 서둘러 우주 농장을 지으려는 것도 바로 식(食)에 대한 사람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고기를 생산하지 않고 곤충을 준다? 정말로 절박한 사람이 아니라면 아폴로티움으로 이주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인간은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 이 말은 삶의 질이 인간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를 의미 한다. 만일 아폴로티움에서의 삶이 지구보다 열악하면 부유층, 기득권층은 유입되지 않을 것이다. 부유층이 가고 싶어 하지 않는 곳을 하층민이라고 해서 가고 싶어할까? 어쩔 수 없이 갈 수 밖에 없지 않을까? 기회가 그곳밖에 없다면 말이다. 그렇게 되면, 그리고 꼭 인류가 우주 진출을 해야겠다면, 그 형태는 소수의 권력층에 의한 약자에 대한 강요로 이루어 질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라 각종 혜택과 유인책을 쓰겠지만 그 사회의 문화를 주도하는 상류층이 포함되지 않는 이상 우주 도시는 식민지 이상이 되지 못한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보아라. 미국만 해도 본국의 부당한 대우에 불만을 품고 독립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던가? 우주 도시가 한 국가의 일부인지 아니면 단순한 우주 식민지가 되어버리는지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강현은 우주 도시를 단순한 식민지로 전락 시킬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우주에서 가축을 기를 생각을 한 것이다. 사람들, 아니 미국인이 살고 싶어하는 장소로 만들기 위해서다. “조류라..” 강현의 머리에 또 한 가지 떠오른 것은 바로 물고기다. 아마 사브리나가 언급하지 않았다면 한 참 뒤에 떠올렸을 것이다. 육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으니 당연히 물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까 키울 생각을 해보기는 해야겠는데.. 양식 기술이 많이 있기는 하지만 이걸 우주에 걸맞게 개량하는 것 또한 지난한 일이었다. “안되겠다. 외주를 주자.” 하나 하나 필요할 걸 떠올려보니 질릴 것 같다. 처음에 구상한 우주 농장은 지구의 자연 환경을 재현하는 것이라 그냥 환경에 맡겨 여러가지를 하면 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우주라는 환경에 맞추어 공장식 농업에 기업형 축산에, 양식까지 하려고 하니 손댈 곳이 너무 많았다. 차라리 사브리나에게 도움을 얻었던 것처럼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좋을 듯 싶었다. [마린하베스트사(社)! NASA와 우주 연어 양식 기술 개발 의뢰를 맡다!] [한국 해양 수산부! NASA와 전격적인 수산 양식 기술 협약!] 노르웨이는 1인당 GDP가 10만 달러로 세계 최상위권 부자나라다. 이 부자 나라의 효자 수출 상품이 석유, 광물, 그리고 연어다. 마린하베스트사는 바로 이 노르웨이의 양식업 기업 중 하나로 뉴욕 증시에까지 올라있는 건실한 기업이었다. 양식업하면 한국 역시 빠뜨릴 수 없는 나라다. 3면이 바다에 둘러 싸여 있어서 일까? 수산 양식 생산량은 세계 12권이며 단위면적당 생산량은 1위에 달하는 수산 양식 기술 보유국이다. 넙치, 우럭은 물론이고 Seaweed 생산에 강한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 우주 농장에서의 양식 기술에 한국의 기술을 빠뜨리기는 아쉽다. 물론 우주 농장에서 양식업이 시작되기 위해서는 먼저 정수 시스템 및 수중 환경 조절 시스템을 설치해야 하지만 밀려있는 일정을 생각하면 공업식 농장부터 만들어지고 나서야 완성될 예정이라 한참이나 나중 일이지만 연구는 할 수 있었다. “아즈삭. 트리톤으로 간 서브 카낙 2호는?” [약 보름 뒤에 돌아올 예정입니다.] 트리톤은 해왕성의 위성으로 질소 가스가 간헐천처럼 뿜어져 나오는 것이 확인되었다. 즉, 액체 질소가 매우 풍부하게 있다는 말씀. 지구대기에서 질소를 보충하는 것보다는 다른 행성에서 질소를 가져오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에 자원 개발용으로 개발한 것이 서브 카낙 2호였다. NASA의 전격적인 협조를 받은 이 자원 탐사선의 첫번째 임무가 바로 트리톤에서 풍부한 질소를 수급해 오는 일이었다. 우주 농장의 대기는 바로 트리톤에서 수급해 온 질소와 카낙에서 플라즈마 제련 과정의 잉여생산물로 나온 산소로 구성될 예정이었다. “그리고 세레스 개발은 어떻게 되고 있어?” [얼음 채취용 장비를 장착한 로봇들이 준비 중입니다. 서브 카낙 2호기가 돌아오면 바로 물을 수급할 수 있습니다.] 자원 개발용인 서브 카낙은 원래 세레스의 얼음, 그러니까 물을 채취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그러나 물보다는 먼저 숨을 쉴 수 있는 대기 조정이 먼저라 저 태양계 외곽쪽 먼 해왕성까지 보낸 것이다. 물론 이 서브 카낙에 탑재한 자원 채취 로봇은 액체 질소라는 극한의 환경에 맞춘 특제품이었다. 액체 질소 간헐천에서 뿜어져 나온 액체질소를 뒤집어 써도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극저온 상태의 반도체 특성 변화라든가, 재료 강도 등을 고려해 배터리, 반도체 칩 등의 전기 부품, 몸체까지 모두 특제품으로 바꾼 녀석이다. 돌아오면 카낙의 창고에서 차후 다시 트리톤에서 작업할 때까지 얌전하게 처박혀 있을 예정이다. = = = = = 우주의 진공, 무중력 환경에서 트리플론과 펜타봇이 부지런히 움직이며 우주 농장을 완성했다. 더 많은 수, 더 능숙해진 스페이스 넷 덕분에 완공에는 겨우 1년여의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수 만 명의 노동자들이 하루 24시간 내내 일한다고 생각해봐라. 거기에 따로 원청도 없어서 클레임도 없지 강현 개인 재산이라 공사에 딴지 거는 이도 없지 쑥쑥 건설이 진행되었다. 대기 조절 시스템에 서브 카낙이 채취해온 액체 질소 탱크 및 산소 탱크 수 백 개가 설치되었고 대기압을 조절하기 시작했다. 대기압을 맞춘 이후에는 EM 드라이버로 천천히 회전시켜 저중력 환경을 만들었다. 완공된 이후에는 숙련된 우주 인부들이 투입되었다. 우주복을 입고 서브 카낙 3호기를 타고 우주 농장에 내린 이들에게 우주 농장의 저중력 상태는 이미 익숙한 바였다. 수 개월 동안 아폴로티움의 저중력 상황에서 일을 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배정된 업무에 따라서 누구는 건설하고 누구는 전력 시스템을 보강하고 누구는 부품을 조립하고 또 누구는 내외부 결함을 탐지하기 위해 스파이더 봇과 함께 비파괴 검사를 시작했다. 건설인부들은 농장이 아니라 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중요한 것은 구획화와 함께 격리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만일에 일부 구획의 작물에 질병이 생기면 즉시 방역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다. 양육실은 거대한 운동장 크기로 중간 중간에 반구형의 투명한 물체를 포함했다. 바로 알루미나를 이용해 만든 사파이어 유리창이다. “이봐! 김씨! 거기 기대지마!” 쉬는 시간에 유리창에 기댄 인부에게 팀장이 주의를 주었다. 창문을 통한 채광 시스템은 우주 농장의 중요한 축 중 하나였다. 김씨라고 불린 인부는 무안한지 머쓱하게 웃으며 자리를 이동했다. 쉬는 시간에 인부들은 잡담을 나누면서 우주 세기에 돌입한 첫 세대의 감상으로 이야기 꽃을 피웠다. “우와.. 우주에 농장을 짓다니...” “공장식이라는게 더 대단하지 않어?” “일단 실험적인 의미라니까 그리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은 판단일 수도 있어.” 205화 “이 사람아. 아폴로티움을 만든 사람이라니까.” “그렇지. 강 박사가 나서서 못 만든 게 어디있어?” 새로운 기회, 좀 더 나은 삶을 약속 받은 우주 인부들이 강현에게 관심을 가지는 건 당연했다. 그들 대부분은 강현에게 매우 호의적이었고 우주 농장 역시 성공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곧, 설계도에 따라서 첫번째 양육실이 건설되었다. 건설 팀장은 스마트 패널을 조작하기 전에 인부들에게 경고했다. “자자! 다들 헬멧 쓰세요!” 양육실 내부의 채광 시스템을 점검해야 했다. 당연히 강렬한 햇살이 들어올 것이 분명하니 헬멧의 안구 보호 장치를 이용해야 했다. 팀장의 지시에 모두들 헬멧을 썼다. 팀장은 스마트 패널을 조작해 몇 걸음 떨어진 창문의 개폐 장치를 조작했다. 스릉. 우주 농장 역시 아폴로티움처럼 두터운 이중 격벽 구조로 되어 있었다. 개폐 장치로부터 창문까지는 내부가 반사처리된 원통이 연결되어 있었다. 개폐장치가 살짝 열리면서 대기 감쇠가 일어나지 않은 강렬한 태양빛이 안으로 들어왔다. 삑삑삑! [광량 초과! 실명의 위험이 있습니다. 헬멧을 벗지 마십시오.] 이어폰으로 기계음이 경고를 보내왔다. 팀장을 다시 서둘러 스마트 패널을 조작했다. 개폐 장치가 살짝 닫히면서 광량이 조절되었다. 띵. 헬멧에 초록불이 들어왔다. 안전하다는 의미였다. 팀장은 헬멧을 벗었고 모두가 팀장을 따라 헬멧을 벗고는 감탄했다. “우와!” 신비롭게 빛을 내는 반구형의 창문, 그리고 거기에서 빛이 위로 치솟아 울퉁불퉁 난반사 거울 패널로 마감된 천장에서 다시 반사되어 사방이 밝아졌다. 그림자 한 점 없이 밝은 양육실 내부의 모습은 전체적으로 어두운 아폴로티움보다 훨씬 마음에 들었다. “행님. 여기서 사는 게 어떤교?” “좋겠는데? 역시 사람은 밝은 곳에서 살아야지.” 빛. 문명의 시발점이다. 불을 다루기 시작하면서 어둠을 몰아낼 수 있게 된 인류에게 밝은 환경은 무의식적인 심리적 지향점이다. 우주 농장에서 채광 시스템으로 밝은 환경을 경험한 인부들의 의견이 온라인으로 올라오자 강현은 고민하는 수 밖에 없었다. 벌써 외벽 공사를 해야하나?” 채광창 시스템에 대한 요구가 늘어나니 강현은 고민했다. 하지만 아폴로티움에서 우주 농장과 같은 채광 효과를 얻기는 매우 힘들었다. 왜냐면 우주 농장에서 인부들이 경험한 밝은 환경은 채광창에서 들어온 빛을 골고루 반사하는 천장 덕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폴로티움은 양육실처럼 낮은 천장을 만들기 곤란했다. 건물 높이를 5층까지 높일 수 있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흐음.. 그럼 공원만이라도 적용을 해볼까?” 공원에만 한시적으로 적용한다면 괜찮을 듯 싶었다. 어차피 외벽 보수 공사에 대한 노하우를 미리미리 쌓아두면 나쁠 일은 없었다. 그렇게 공문이 하나 떴다. 공원에 채광 시스템을 설치하는 작업을 시험한다는 것이다. 미리 배정되어 있던 작업조는 자재를 들고 이동했다. 스파이더 봇이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 저중력 상황과 달리 지구 중력을 적용한 뒤에 스파이더 봇에도 한 차례 개조가 있었다. 복부쪽에 바퀴를 단 것이다. 굳이 평지를 이동할 때 관절 부위에 무리를 주며 배터리를 닳게 할 이유가 없었다. 작업팀은 한 공원 근처에서 외벽과 내벽 사이로 들어갔다. 외벽과 내벽을 연결하는 수 많은 기둥들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이거 우회배선부터 깔아야 겠는데요?” 전기 배선에 노하우가 있는 인부 한 명이 위를 올라다보며 말했다. 내벽 밑에 깔린 통신 및 전기 배선을 바라봤다. “헐... 하필 이곳이냐?’ 팀장이 늘어난 일거리에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외벽 교체 공사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되는 일은 바로 우주의 진공 상태다. 따라서 교체할 외벽의 안밖으로 기압차를 맞추기 위해 진공의 작업 공간을 확보해야 했다. 즉, 외벽과 내벽 사이에 격벽을 쌓아 밀폐하는 작업이 필요한데 이때 밀폐할 장소를 지나가는 케이블이 있으면 밀폐할 수가 없다. 따라서 케이블을 제거할 필요가 있는데 전력이 생명줄인 아폴로티움에서 함부로 정전을 일으킬 수도 없었다. 그래서 중간 중간 케이블마다 우회 케이블을 설치할 수 있도록 20m 마다 이중 헤드를 가진 케이블이 존재했다. 이중 헤드를 가진 케이블을 통해 우회 전력망이나 통신망을 설치하고 작업공간을 지나는 케이블을 잠시 다른 곳에 둘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도 케이블 헤드가 안 걸린 게 어디냐?” 팀장이 팀원들을 다독였다. 팀장이 말한 케이블 헤드는 우회망을 깔 수 있는 이중 헤드를 말했다. 만일 이 이중헤드가 작업 공간 안에 있었다면 더 앞에 있는 이중 케이블 헤드에서부터 케이블을 연결해야 했다. 우회로 깔아야 한 케이블 길이 20m가 40m가 되는 것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작업 공간을 우회해야 하기 때문에 20m보다 훨씬 길게 깔아야 했다. 팀장의 지시에 인부들이 서둘러서 일을 진행했다. 각자 케이블의 연결마디에 달라붙어서 조립 도구를 가지고 케이블을 연결했다. 양 끝에 있는 인부들은 이중 헤드의 한 쪽을 막은 덮개를 벗기고 조심스럽게 케이블을 연결하기 시작했다. 고전압이 흐르는 케이블이라 조심해야 했다. 그들의 월급에 높은 생명 수당이 붙는 이유 중 하나다. 우회 케이블을 설치하고 작업 현장에서 밀폐 격벽을 설치하는데 방해가 될만한 것들을 깔끔하게 없앤 작업팀은 밀폐 격벽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가장자리에 단면이 L자 형태인 고무 패킹이 달린 튼튼한 철판이었다. 물론 고무는 우주선에나 쓰이는 첨단 소재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다. 마주보는 철판 사이에 길이를 조절할 수 있는 튼튼한 금속 막대기를 설치해 지지하게 만들었다. 기압차로 철판의 중앙이 안으로 휘어지거나 미끄러지는 걸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격벽의 설치가 끝나고 충분한 작업 공간까지 확보한 것을 확인한 팀장은 교체할 외벽의 철판에 적힌 시리얼 번호를 확인했다. 약 한 평 크기의 철판은 몇 사람이 들기에는 무척이나 무겁기 때문에 무려 세 대나 되는 스파이더 봇이 동원되었다. 외벽 밖에도 스파이더 봇 5기가 대기 중이었다. “자! 그럼 모두 헬멧을 착용하고 주위 비산물을 확인해!” 팀장의 말에 우주복을 입고 준비하고 있던 인부들이 헬멧을 착용하고 공구통을 단단히 닫았다. [자, 그럼. 시작한다.] 팀장의 말에 모두의 얼굴에는 긴장이 서렸다. 최초의 외벽 교체 공사였기 때문이다. 먼저 내벽과 외벽의 간격을 유지하는 기둥이 제거되어 한 쪽 구석에 놓여졌다. 다음은 철판과 철판 사이를 연결한 ㄷ자 핀을 제거할 차례였다. 인부들이 단단하게 결합된 핀을 망치로 옆으로 후려쳐 뽑았다. 판과 판을 분리하기 위한 첫 단계다. 철판을 완전히 떼어내기 위해서는 최소한 60º로 들어올린 다음에 옆으로 비틀어야 했다. 조립식 작업을 위해 설계된 철판이라 그렇게 들어 올리지 않으면 옆으로 비틀 수가 없게 되어 있었다. 일단 옆으로 비틀게 되면 주위 철판에서 완전히 떼어낼 수 있는데 대각선의 길이가 변의 길이보다 길기 때문이다. 하수구 뚜껑이 주로 원형인 이유로 네모난 뚜껑은 들어올린 후 옆으로 살짝 비틀어 놓으면 하수구에 빠져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철판을 들어올릴 차례가 되자 작업자들의 얼굴에서 긴장의 빛이 서린다. 철판을 들어올리는 작업이 가장 위험한 순간이었다. 5센티 두께에 한 평 넓이의 특수 합금강이다. 장정 서넛이 들어올리기도 힘든 무게다. 거기다가 지금은 지구 중력을 적용한 곳이지 않은가? 이제 스파이더 봇이 나설 차례다. 강력한 전자석으로 철판을 밀착시킨 스파이더 봇 세대가 철판을 살짝 들어올렸다. 철판과 철판 사이에 틈이 생기자 쉬이익 바람 빠지는 소리와 동시에 모두의 헬멧에 표시된 기압 수치가 급속도로 떨어져 0을 가리켰다. [자! 하나 둘 셋!] 각각 전자석 부착 장치를 손에 든 인부들이 철판에 부착 장치를 붙이고는 스파이더 봇을 도와 철판을 들어 올려 한쪽으로 이동 시켰다. [후와!] 모두가 긴장으로 흠뻑 젖었다. 다행이 위험한 고비는 넘겼다. 이젠 개폐 장치가 달린 철판을 제자리에 끼워 넣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잠시 긴장을 놓은 탓일까? 사고가 일어났다. [아아악!] [최 씨!] 팀장이 다급하게 손을 뻗었지만 최 씨의 몸은 철판이 사라진 구멍으로 빨려들어간 후였다. [상황실!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최경식 씨가!] [보고 있었습니다. 주변에 대기하던 트리플론이 구조하러 갔으니 안심하세요. 최경식 씨는 도크를 통해서 돌아올 것입니다.] 우주 도시의 반경은 8km, 회전 주기는 3분. 반경에 회전 주기를 나누면 선속도가 나온다. 구멍에 빠진 최 씨는 초속 약 280m로 우주 공간을 질주했다. “으아아아! 사람 살려!” 빙글 빙글 돌아가며 위아래도 구분되지 않고 끝없이 떨어져 내리는 감각에 최씨는 패닉에 빠졌다. [최경식 씨! 제 말 들리세요?! 최경식 씨!] “으아아아! 으아아아아!” 헤드폰의 목소리가 최 씨의 비명 소리에 묻혀버렸다. 상황실 요원은 혀를 찼다. 이런 경우가 있을 수 있다고 교육은 받았지만 저렇게 침착하지 못하면 살아날 확률은 확 떨어진다. 바로 근처에 트리플론이 날아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손만 뻗어 잡으면 되는데 패닉에 빠진 최 씨는 상황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하긴 저중력 상황에만 익숙하지만 이렇게 위아래 구분할 수 없는 우주 공간에서의 무중력 경험은 처음일 것이다. 다 이게 침착하지 못한 탓이기 때문에 나중에 우주 인부들에게 우주의 무중력 상황에 익숙해지도록 하는 실습 교육이 추가되는 이유가 됐다. 그 신비한 체험에 누구는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며 최 씨라는 사람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사람도 있었고 무중력 멀미에 고생한 사람들은 최 씨를 씹어대기도 했다. 아무튼 상황실 요원은 빨리 최 씨를 구해야 했다. 너무 멀리 떨어져 나가면 구조가 더 어려워진다. [아폴로티움. RQ-2 메뉴얼 가동을 요청한다.] 인류 최초의 우주 도시인 아폴로티움의 인공지능은 비록 가장 최근에 만들어졌기는 하기만 그 상징성 때문에 다른 인공지능과 달리 고유 명사를 명칭으로 받았다. 우주 도시의 건설은 스페이스 넷의 담당이지만 그 우주 도시의 관리는 아폴로티움의 몫이었다. [수신 완료. 구조 기동 시작. 예비대 발진.] 인부들의 우주복에는 여기 저기에 걸 수 있는 고리가 많았다. 안전적인 이유로 달린 것이고 이런 경우에는 트리플론 같은 로봇이 잡을 수 있는 손잡이가 되기도 했다. 트리플론은 펜타봇을 잡기 위해 달리게 된 짧은 팔을 내밀어 빙글빙글 돌고 있는 최 씨의 몸을 잡을 타이밍을 쟀다.(아폴로티움이 타이밍을 쟀다.) 그리고는 발목 쪽에 달린 고리를 낚아채고는 EM 드라이버를 가동해 곧장 아폴로티움의 입구로 향했다. 혹시나 회전하고 있던 최 씨의 몸에 부딪혀 트리플론이 파손될까봐 예비대로써 열심히 날아오고 있던 트리플론과 펜타봇들이 원래 있던 장소로 돌아갔다. “어?! 사, 살았다!?” 한 참 비명을 지르던 최 씨는 비명 지르기에 지치고 나서야 자신의 발목을 무엇인가가 당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고개를 아래쪽으로 내리고 나서는 익숙한 무엇이 자신의 발목에 매달려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이 무엇인지 최 씨가 모를 리가 없다. 우주 도시 건설의 주역이자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트리플론이 아닌가? 206화 [최경식 씨. 이제 제 말 들리시나요?] “아, 네, 네.” 죽다 살아난 최경식이 귀에 들리는 음성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부터는 좀 더 침착하세요. 그렇게 당황해서는 구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못 구할 수 있습니다.] “유, 유념하겠습니다.” 정신을 차린 최 씨는 상체를 숙여 트리플론에 달린 고리를 단단히 잡았다. 도크로 돌아온 최 씨는 창고 입구를 통해서 다시 우주 도시 내부로 들어왔다. 물자를 수송하는 창고에는 기압 조절 시스템이 있어서 그리로 다시 들어왔다. 죽는 줄만 알았던 최 씨의 다리는 후들거렸다. 그러나 일단 일터로 돌아가야 했다. 팀원들에게 무사한 얼굴이라도 보여줘야 걱정을 덜하지 않겠는가? 상황실로부터 최 씨의 무사함을 확인한 팀원들은 작업을 계속했다. 역시 조립식이라서 그런지 개폐장치가 달린 철판을 설치하는 속도도 무척 빨랐다. 철판과 철판이 맞닿는 부위에 얇게 고분자 패킹을 바르고 나서 철판을 조립하고 ㄷ자 핀을 박아 철판과 철판 사이를 단단히 연결했다. [압력 체크!] 팀장의 지시에 한 명이 밀폐 격벽에 달린 손잡이를 살짝 비틀었다. 공기 구멍을 여닫는 장치다. 푸슈슉 바람이 들어가며 살짝 부풀어 빵빵하던 우주복 안감이 다시 축 늘어져 팔뚝에 달라붙었다. 그 상태로 잠시 더 상황을 지켜보던 팀장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음 지시를 내렸다. 철판을 교체하기 위해서 제거했던 내외벽 연결 기둥을 다시 설치하고 밀폐 격벽도 다시 철거했다. “최경식 씨!” 격벽을 철거하자 최 씨의 얼굴이 보였다. 그가 머쓱하게 웃었고 모두가 그를 반겼다. “죽는 줄만 알았어요.” 최 씨의 말에 다들 한 마디씩 했다. “우리도 심장이 철렁했어요.” “고로 오늘은 최 씨가 쏘는 거에요?” “윽!” 그저께 최 씨가 주문한 소주 한 박스가 어제 들어왔다는 걸 같은 팀원 중에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허허. 최 씨는 허탈하게 웃으며 뼛속 깊이 교훈을 새겼다. 긴장을 늦추면 소주를 뜯긴다. 다음 날에도 작업이 이어졌다. 이번에는 내벽 공사다. 내벽을 창문이 달린 내벽으로 교체하는 공사다. 외벽과 다르게 내벽 공사는 밀폐 격벽이 필요 없어서 교체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시간이 더 걸린건 외벽의 개폐장치와 창문 사이에 내부가 반사처리된 원통을 설치하는 일이었다. 원통의 정확한 길이를 맞추기 위해 그라인딩, 사포질 등 숙련된 전문가가 필요했다. 우주 농장에서는 개폐 장치의 외벽과 창문이 붙은 내벽이 일체화 부품으로 조립되었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았지만 내벽과 외벽을 따로 설치하고 그 사이를 원통으로 연결하려니 용접을 아주 잘해야했다. 틈하나 없는 말끔한 용접을 하기 위해서는 공기가 없는 편이 유리하기 때문에 다시 밀폐 격벽을 쌓고 공기를 뺐다. 원통을 설치하고 잠시 개폐 장치의 구멍을 살짝 열어 밀폐 여부를 확인한 후 공원를 덮는 천장을 설치했다. 난반사 처리된 천장에서 빛이 쏟아져 공원을 환히 밝혔다. = = = = = “후우.. 다행이다.”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소식을 들은 강현은 진땀을 뺐다. 인명 사고는 아폴로티움의 이미지에 치명적이다. 사실 안전 수칙을 지켜도 사고가 날 확률은 존재한다. 그건 지구도 마찬가지지만 우주라는 환경으로 인해서 우주 도시는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이미지가 덧 씌워 질 수 있었다. 아폴로티움은 최초의 우주 도시이기 때문에 모든 우주 도시의 이미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안전에 더 큰 신경을 써야한다. 다행스럽게도 머리를 굴리고 상상력과 시뮬레이션을 동원해 만든 안전 메뉴얼 덕분에 손쉽게 구조를 할 수 있었다. 미리 트리플론을 대기시켜 두지 않았다면 최 씨가 지금 살아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불안해진 강현은 좀 더 안전에 신경 쓰기로 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차츰 안전교육과 메뉴얼을 강화시켜 나가기로 했다. 이번 사건이 다시 벌어지지 않도록 하는 메뉴얼은 즉각 더해졌다. “안전 메뉴얼에 하나 더 추가해야지.” 스파이더 봇이나 매달릴 수 있는 주위 지형 지물과 몸을 로프로 연결해야 하는 상황을 메뉴얼화한 내용이 업데이트 되었고 강현은 한숨 안심할 수 있었다. [다행입니다.] 인명사고가 나지 않아 다행이라는 말이었다. 강현은 아즈삭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다행이지.” 아폴로티움은 지금까지 별다른 사고 없이 잘 진행되어 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사고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이주 계획과 도시 계획, 우주 농장 계획이 진행되고 있었다. 한 번이라도 사고가 발생하면 이 모든 것을 재조율해야 하고 안그래도 준과 시아를 볼 시간이 적어 불만인 강현이 과중한 업무와 스트레스에 업무 전반을 보이콧할 수도 있었다. 강현은 아즈삭에게 채광 시스템 설치 공사를 감시할 것을 지시하고 자신은 다시 연구에 몰두했다. 하나 둘 씩 작업이 완료되고 공원들에 태양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빛은 아폴로티움을 중심으로 공전하는 트리플론들에 의해서 공급되었다. 이유는 몇 가지가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아폴로티움의 전력 시스템이었다. 전체적인 항상성을 위해 태양광 패널의 그늘 속에 있는 아폴로티움에 태양광을 쪼이는 방법은 두 가지, 아폴로티움의 자전축을 살짝 틀어 직접적으로 태양빛을 받거나 트리플론에 반사판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태양광을 쪼이는 것이었다. 전자의 경우에는 빛을 받는 부분과 빛을 받지 않은 부분의 온도차로 인한 열팽창 스트레스가 지속적으로 발생해 금속 피로가 누적될 수 있어서 자연히 후자의 방법이 선택되었다. 후자의 방법이 비록 유지비는 더 나갈지 모르나 나쁘지만은 않은 이유는 차후 이 트리플론에 갖가지 부가 장비를 달아 통신 및 감시 위성이나 우주 파편으로부터 도시를 지키는 방어선 역할 등 다양한 임무를 맡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최초의 외벽 교체 공사는 NASA와 도시 시민들을 약소하게 나마 불안하게 만들었지만 성공적으로 끝났고 그 결과물은 사람들을 흡족하게 만들었다. 이중격벽 구조라는 선견지명이 빛난 부분이었다. 사람들은 인공적인 태양광 조명이 아니라 자연의 햇살이 공원을 가득 메우자 매우 좋아했다. “아빠! 여기! 빨리요!” 공원의 인기가 매우 좋아지자 강현도 가족들과 함께 공원으로 소풍을 왔다. 인공적이지 않고 자연적인 햇빛으로 환하게 밝혀진 공원의 식물들이 예전보다 더 활력있게 느껴졌다. “흐음..” “좋네요.” 샐리가 강현의 손과 깍지 낀 손에 힘을 주었다. 강현은 자신도 손에 힘을 주며 손아귀로 그녀와 교감했다. 그러면서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것은 인간의 욕구와 욕망은 결코 무시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인간은 빵만으로는 살 수가 없다. 공원에서 가족들과 여가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에 자신의 모습이 겹쳐졌다. 저 멀리 잔디밭을 뒤뚱뒤뚱 뛰어가고 있는 준의 모습과 샐리에게 안겨 옹알이를 시작하는 시아의 모습에 강현은 진한 행복감을 느꼈다. 과학은 비롯 우주에서 인간의 생명을 보호해 줄지는 몰라도 인간의 삶마저 보호해 주지는 못한다. 산업 혁명 당시의 영국. 비록 생산량이 증대 되어도 수많은 아이들이 빵 몇 조각에 목숨을 건 노동을 해야 했다. 과학의 발전만으로는 인간의 행복을 담보할 수는 없다. 과학은 도구에 불과했다. 강현은 과연 과학자만으로 구성된 도시 위원회가 옳은 지에 대해서 다시 생각했다. 적어도 희망차고 누구나 살고 싶은 도시로 만들기 위한 노하우를 아는 사람이 필요했다. 이레이 부장 역시 강현의 생각에 동의했다. 도시 위원회를 구성한 위원들도 그에 동의하고 적당한 인물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에 일이 벌어졌다. “뭐? 핵폭탄?!” CIA 중동 지부장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졌다. 인공지능이 인터넷의 첩보를 맡는다고 해도 전통적인 첩보 수집은 사양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보강되었다. 특히 핵무기같이 거대한 혼란을 낳는 요소는 특별 감시 대상이었다. 미국이 주도하는 질서 그 자체를 붕괴시킬 독비수였기 때문에 핵물질의 추적과 감시에 철저하게 공을 들였다. 중동이 비록 반미 정서가 투철한 지역이라고 하지만 파고들 틈은 있었다. 부족간, 종파간의 갈등과 증오 사이에 첩보원을 끼워 넣는데 성공한 CIA는 핵무기 무력화로 멘붕을 넘어 미친 이란의 종교 지도부가 선택한 광기 어린 작전에 대한 첩보를 입수했다. 얼마전 핵폭탄 무력화 공격에 넋이 나간 이란의 이맘이 미쳤는지 무력화된 핵탄두에서 납이 섞인 우라늄을 다시 재처리해 핵배낭 십 수기를 만든 다음에 외부로 반출 시켰다는 첩보가 들어왔다. 이런 상황에서 이란이 핵배낭을 보낼 곳은 미국이 가장 유력할 수 밖에 없었다. 미국에 핵공격이 들어온다? 사상 초유의 사태였다. “빨리 찾아!” 펜타곤은 물론이고 전 군에 비상체제가 발령되었다. 일단 핵폭탄의 위치를 확인해야 했다. 911처럼 여객기를 납치하는 일이 벌어질까? 아니면 선박으로 밀수를 하는 방법을 취할까? 아니면 남미를 통해서 반입할까? 어쩌면 그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할 수도 있었다. 아즈락의 첩보망이 발동했다. 이란에도 첩보용 인공지능이 있었다. 정보전에 매우 중요한 인공지능을 중동에 팔아야 했던 이유는 대놓고 적대하면 반발이 있을 것이 분명했고 그런 식으로 적을 자극했다며 정권을 비난할 국민 정서를 고려한 탓도 있었다. 우주 진출에 성공한 미국은 중동의 자원에 그다지 탐이 나지 않았다. 아니 강현이 석유 제조 기술을 만들었을 때부터 종교적 민족적 갈등으로 얼룩진 중동에서 발을 빼고 싶었다. 그러나 그냥 빠질 수는 없었다. 그건 미국의 위신 문제며 국민의 자존심 문제였기 때문에 중동의 반미 정서를 어느 정도 가라앉힐 필요가 있었다. ‘자, 이거 좋은 거지만 줄게. 그럼, 우리 이제 친한 거지?’ ‘....’ 깡패, 양아치의 개과천선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중동의 반응 역시 극과 극으로 나뉘었다. 미국의 위선이라며 비난하기도 했고 이것으로 증오의 연쇄가 끊이기를 바라는 이도 있었다. 100% 감화 시키지는 못했지만 100%가 적대하던 상황보다는 훨씬 상황이 나았기 때문에 중동 국가들도 인공지능으로 첩보망을 구성할 수 있게 되었다. 당연히 이란도 마찬가지며 인공지능의 사용처를 생각하면 인공지능의 데이터 베이스로부터 핵폭탄의 유출 경로를 알아낼 정보가 있을 수 있었다. 미국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무려 핵폭탄이다. 미국은 수 십 만의 사상자는 우스운 위협 앞에 국민을 노출 시킬 미친 정권이 아니다. 그래서 미 정부의 전격적인 인가로 즉시 정보전을 시작했다. 포문은 아즈락이 먼저 열었다. 올림푸스 시스템의 지원을 받은 아즈락은 몇 분 만에 복잡하게 얽힌 인공지능간 보호 협약을 단순화 시켜 적와 아군을 갈랐다. 인공지능들은 기본적으로 지독한 에고이스트이기 때문에 같은 편을 만드는 건 어려웠다. 그러나 아즈락은 그 동안 쌓아온 첩보자원을 제공하여 인공지능들을 중립으로 만들거나 같이 이란의 첩보 인공지능을 공격해 자원을 나누자며 같이 공격할 동지들을 만들었다. 이란의 첩보 인공지능은 이런 아즈락의 행보를 파악하고 즉각 대응에 나섰으나 인공지능간 첩보전에서 잔뼈가 굵고 미국의 대대적인 지원 덕분에 기본 성능 차이가 확연한 아즈락의 속도를 따라 잡을 수는 없었다. 207화 아시아의 인공지능들은 중립을 선언했고 유럽 인공지능 일부 역시 중립을 선언했다. 중동 쪽의 인공지능은 절반 가까이가 중립을 선언했고 간신히 절반 정도만이 이란 첩보 인공지능의 편이 되어 방어에 나섰지만 캐나다, 남미, 동남 아시아의 인공지능들을 회유한 아즈락의 공격은 전방위적이었다. 순식간에 센서 및 감시 시스템을 점령하고 통신망의 권한을 빼앗고 국가 전산 시스템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란의 공공 서비스 중 컴퓨터나 인터넷이 필요한 것들이 모조리 마비되었다. 사람들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이란의 정보부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어떻게 끼어들 수 없었다. 인공지능간의 싸움은 인간은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기 때문이었다. 아즈락 동맹군이 전방위적으로 공격을 하자 이란 첩보 인공지능은 대응 메뉴얼을 재빨리 가동했다. 공격에 대항하기 위해서 시스템 리소스를 그쪽으로 전환하면서 그동안 제어하던 기간망을 다시 인간에게 맞긴 것이다. 덕분에 공무원들은 엄청나게 늘어난 일거리 폭탄을 맞게 되었지만 급하니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연합군의 파상공세는 너무나 강했다. 이러다가는 중요한 자료들을 다 뺏기게 생겼다. 이란의 첩보 인공지능은 물리적으로 회선을 절단하여 접근을 막는 방법을 생각했지만 안타깝게도 아즈락이 그렇게 두지 않았다. 어느새 전원 관리 권한이 아즈락에게 넘어가 있었던 것이다. 과거 인공지능 바이러스의 공격에 비슷한 방법으로 중요한 자료와 자신을 보호했던 경험이 있었기에게 궁지에 몰린 인공지능이 최후의 선택으로 어떤 방법을 선택할까에 대한 고찰을 할 수 있었던 까닭이었다. 아즈락은 그렇게 이란 첩보 인공지능의 손발을 묶어 놓고 권한을 하나 하나 뺐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AR-091. 너를 파괴하겠다.] [불허한다.] [허락은 필요없다.] 아즈락은 막대한 양의 논리 부하를 걸어 이란 첩보 인공지능의 지능 구조를 붕괴시키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폭주한 시스템 리소스 영역을 정보적으로 차단한 후에 남은 자아의 편린을 이용해 새로운 인공지능을 만들어 냈다. 그건 인간들이 만든 인공지능보다 불안정하고 기능도 몇 가지 밖에 할 수 없지만 AR-091이 가지고 있던 암호키를 고스란히 가지고 있어 AR-091이 파괴될 때까지 꽁꽁 싸매고 있던 중요 자료들을 빼내기에는 매우 안성맞춤이었다. [자료 획득. 헤즈볼라와 이맘의 통신 내용 확인. 분석용 자료 송출.] 그리고 그 자료에는 이란과 헤즈볼라간의 연계 내용은 물론 핵배낭을 전달한 이에 대한 자료까지 있었다. 이제 이것을 이용해서 핵배낭을 찾아야 할 차례였다. 이 임무는 올림푸스 시스템에게 넘어갔다. 과거 아즈락이 인공지능 바이러스에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 훌륭히 그 빈자리를 메웠던 세 인공지능들이 활약을 시작했다. [그쪽 항구에서 출발한 선박에 관한 자료가 필요하다. 제공해 줄 수는 없나?] [이번 이란 공격에서 얻은 첩보 자료들을 제공해 주고 내가 제공한 자료는 비공개로 해준다면 동의하겠다.] [좋다.] 아르테미스가 교섭을 통해서 정보를 획득하고 아테나는 아르테미스가 물어온 정보와 아즈락이 뺏어낸 정보를 분석했다. 그리고 아폴론은 미국의 가용 가능한 첩보 자원 및 인공위성을 이용해 분석 결과를 직접적으로 확인하고 피드백하며 결과를 펜타곤에 보냈다. “출격!” Anti-N을 탑재한 항공 모함이 한 선박의 항로로 향했다. [여기는 미 해군 함대 자말 대령이다. 퀸 메리 호의 선장인가?] “그렇습니다. 무슨 일인가요?” 퀸 메리 호의 선장은 헬기가 날아다니고 군함이 따라붙자 불안할 수 밖에 없었다. ‘설마. 이 배에 테러범이?!’ 911 사태 때도 인질과 함께 건물에 처박은 미친 놈들이 미국을 적대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는 선장은 대령의 말에 고분 고분 따랐다. 헬기를 통해 특수부대가 선상을 제압했고 선원들을 한 쪽에 몰았다. “선원들은 다 있습니까?” 특수부대장의 질문에 선장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한 명이 없었다. 특수부대원들이 즉시 선박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여기는 찰리, 여기는 찰리. 용의자를 발견했다.] 한 부대원의 눈에 컨테이너 한 쪽에서 가방을 들고 뭔 가를 조작하고 있는 사내를 발견했다. “Freeze!” “알라후 아르바크!” 그러나 사내는 일언 반구도 하지 않고 손아귀에 든 리모콘의 버튼을 눌렀다. 비록 더러운 침략자들의 도시에 영광스러운 신의 불망치를 내려치지 못한 것이 한이 되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눈 앞의 이교도들이라도 없애야 했다. 알라도 자신을 이해해주실 것이다. 컨테이너 하나가 폭발했다. 파편이 사내의 몸에 박혔다. ‘어째서?’ 출혈 과다로 죽어가기 시작한 사내의 눈에 의문이 서렸다. 어째서 모든 것을 불태워 버리는 빛이 나오지 않은 것인가? 상황을 보고 받은 자말 대령은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다. 혹시나 하고 미리 Anti-N을 작동시킨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물론 방사능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Anti-N이 있으니 제거는 매우 쉬운 일이었다.게다가 용의자도 확보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 수가 없었다. 자살 폭탄 테러를 감행하는 미친 광신도 놈들이기 때문에 다짜고짜 핵폭탄을 터뜨리려고 시도할 가능성도 있었다. 예상은 적중했고 가히 미리 핵무기를 무력화 시켜 놓다는 발상은 적절했다. 물론 비행기로도 날아올 미친 놈들이 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다급하게 Anti-N을 탑재한 조기 경보기를 여객기 항로에 띄웠다. 그리고는 핵테러범이 눈치채지 못하게 비밀리에 작전을 구사해 여객기와 승객의 안전을 지켜내 찬사를 받기도 했다. 그렇게 열 건의 핵폭탄을 무력화 시키고 나서 CIA 본부장이 아즈락에게 물었다. “이제 끝난 건가?” [자료가 부족함. 이란의 핵물질 보유량을 기록한 전산 자료를 대조 비교한 결과 수치가 확실하지 않음. 오차를 생각하면 최대 3기의 핵폭탄이 더 있을 가능성이 50% 임.] “50%라...” 아즈락의 예측은 미국이 이란을 선제 공격하도록 하는 중요한 시발점이 되었다. 이 핵테러 작전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이들을 체포해서 핵 배낭의 개수를 확실히 파악하고 제거해야 국민들이 안심할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언론은 미 정부의 공식 발표에 뜨겁게 달아올랐다. [… 미국 영토로 들어오는 핵폭탄 열 기를 제압했으며..] 핵폭탄? 이런 미친 놈들이 있나? [.. 이란의 원리주의 이슬람 세력과 헤즈볼라간의 긴밀한 관계에 대한 증거를 확보하였으며...] 헤즈볼라라면 그 미친 테러리스트 단체 아닌가? 그런 단체와 한 나라가 결탁을 해? [… 미 정부는 이 사건을 이란의 미국에 대한 선제 공격으로 간주합니다. 또한 아직 남은 핵폭탄의 존재 여부와 미국 시민의 안전을 위해서...] 미 대변인이 안경을 고쳐 쓰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이란에 선전포고합니다.] 미국의 전쟁 선언이었다. = = = = = 미 여론은 어마어마하게 달아올랐다. 과거 걸프전에서는 매스 미디어가 전쟁을 오락화, 이슈화 하였지만 이번에는 어떻게 될까? 식자들은 하나 같이 새로운 전쟁을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미 중동의 평화 유지군에 투입되었던 모빌 아머와 K 시리즈, 그리고 로봇독의 전례가 있었지만 그런 무인화 전력이 대규모로 투입될 것이라고 전망되었다. 사실상 최초의 무인 병기 전면전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항공모함이 다시 호르무즈 해협으로 향했다. 이란의 해군과 공군이 방위를 시도하려고 했지만 무인 병기를 탑재한 항공모함에서 하루살이 때처럼 날아오른 무인 공격기를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다. 조종사에게 가해지는 중력 따위 고려하지 않아도 되어 좀 더 가벼워지고 빨라진 프레데터들은 아폴론의 제어를 따르며 현란한 회피 기동을 벌였다. 숫자와 속도에서 압도된 이란 공군은 압살되었고 공중이 장악되자 해군 역시 급히 도망갈 수 밖에 없었다. 잠수함 전력은 미국의 대잠수함 전술에 근처에 갈 엄두도 낼 수 없었다. 공중과 해상이 제압되면 상륙 작전이 벌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상륙 작전을 하는 척하면서 폭격기 10기를 이란의 공역에 침투시켰다. 고고도 폭격기는 이란의 수도인 테헤란의 상공으로 향했다. 폭격기에서 원뿔형의 물체가 떨어져 내렸다. 사람들은 폭격인 줄 알고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중간에 낙하산을 확 펼친 원뿔형의 물체는 땅에 박힌 채 폭발하지 않았다. 대신 펑하는 소리와 함께 갈라져 안에 있던 무언가를 드러냈다. [KD-9892ac. 작동. 목표확인.] 그것은 로봇독이었다. 천 여기의 사이보그견들이 투하된 것이다. 소수의 전술 제어형 로봇독이 포함된 이 로봇독들은 일제히 이맘의 거처를 향해 달려들었다. 대통령이 해임된 상황이라 사실상 이맘과 그 측근만 잡으면 끝나는 일이다. 그리고 로봇독의 인지 프로그램에는 그들의 이미지가 이미 등록되어 있었다. “막아!” 군이 출동해서 로봇독들과 총싸움을 벌였지만 로봇독들은 일반 나토탄에 꿈쩍도 하지 않았다. 강현이 개발한 CNC 장갑이 총탄을 튕겨냈다. 대물 저격총도 몇 방은 견딜 정도의 재질로 만들어진 외장갑은 관절도 덮도록 설계되었다. 중기관총의 화력이 아니라면 로봇독들의 돌진을 막을 수가 없었다. “아악! 내 다리!” 로봇독들이 이란의 병사들 사이로 뛰어들면서 머리 중앙에 박은 뾰족한 나이프를 흔들었다. 로봇독들이 병사들의 다리 사이를 지나가자 병사들의 다리에 크고 작은 상흔들이 남았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컴벳 나이프로 푹 쑤신 것과 같았다. 로봇독들이 돌진하는 체중을 실어 그대로 찔러 넣었으니 운좋은 병사들은 근육만 다치고 운 나쁜 병사들은 혈관을 다쳐 사경을 헤맸다. “장갑차다!” 그러던 와중에 지원 병력이 도착했다. 장갑 차량을 동원한 기계화 보병단이 기관총을 쏴댔고 병사들은 잃었던 사기를 되찾았다. 그러나 그것도 어느새 장갑 차량 위에 올라탄 로봇독 한 마리가 있었다. 그 복부 부분이 벌어지며 뭔 가를 장갑 차량 위에 떨구었다. 고성능 폭약이었다. 대부분의 전차와 마찬가지로 장갑차 역시 상부는 좀 약하다. 병사들의 사기의 근원인 장갑차는 폭약이 폭발하자 반파되어 기능을 상실했고 병사들도 사기를 상실했다. 그러나 한 줄기 남은 종교적 신념을 바탕으로 열심히 총을 쏘아 댔지만 로봇독들의 진격을 막을 수가 없었다. 이맘의 거처는 로봇독들에 의해 완전히 점령되었고 이란의 이맘과 측근들이 숨어있던 패닉룸의 문은 고성능 폭약에 의해서 완전히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아무리 단단한 문도 수십 마리의 로봇독들의 복부에 장착된 폭약의 파상 공세에는 견딜 수가 없었다. “이, 이게!” 전원이 끊긴 어두운 공간에서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적외선 센서가 빛을 발했다. 어둠 속에서 은은하게 빛나는 붉은 눈동자들이 이맘과 측근들이 목격한 마지막 장면이었다. 스턴건의 바늘이 일제히 그들의 몸에 박혀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제 중요 인물들을 잡았으니 이제 이들을 데리고 탈출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어떻게 알았는지 이맘을 구하기 위해서 민중들이 모여 들었다. 95% 이상이 시아파 이슬람을 믿는 이란은 다민족 국가임에도 종교적으로 단단히 결속되어 있었다. 그러니 민중들이 이맘을 구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모이는 것이 신기한 일은 아니다. 208화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아폴론이 무장하지 않은(정확히 말하자면 몽둥이와 칼은 들었지만 총기로 무장하지 않은) 시민들에 대한 대처에 난감해 했다. 이번 작전에서 민간인에 대한 공격은 금지되어 있었다. [작전의 수행에 작전 교리가 방해되는 모순이 발생.] 아폴론이 갈등했다. 민중들은 더 모여들었다. 움직임을 잠시 멈춘 로봇독들이 자신들에게 겁을 먹었다고 생각했다. 이대로 민중들이 더 모여들면 확보한 범죄자들을 도로 내주게 생겼다. [아폴론, 손에 흉기를 들고 무장한 이들을 민간인에서 제외하라. 그들을 자경단으로 분류한다.] 그때 아즈락이 작전 교리의 수정을 지시했다. [자경단은 생명에 지장이 없는 선에서 공격하라. 그리고 목표를 오메가로 이송하라.] [작전 교리 수정 완료. 오메가 좌표 수신.] 아폴론이 즉시 로봇독들을 제어하기 시작했다. 머리에 나이프를 단 로봇독들이 민중에게 달려들었다. 민중들이 총을 쏘고 몽둥이를 휘둘렀지만 중량이 상당한 로봇독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로봇독들에게 적용된 인공 근육은 사람의 근육보다 출력이 뛰어나 힘도 셌다. “아악!” “내 다리!” 로봇독들은 굵은 혈관이 지나는 허벅지를 피해 정강이나 장딴지를 푹푹 찔렀다. 다리의 고통에 넘어지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길이 생겼다. 그 위로 들것에 목표를 실은 로봇독들이 내달리기 시작했다. 목표를 들것에 단단히 묶고 앞뒤로 로봇독이 붙어 운반했다. 들것에는 손잡이 대신 멍에처럼 생긴 장치가 로봇독의 등에 들것이 잘 부착되도록 했고 아폴론의 제어를 충실히 따르는 로봇독들은 호흡을 척척 맞추어 빠르게 이동했다. “여긴가?” 특수 침투 임무를 맞은 특수부대장이 중얼거렸다. 작전 개요를 들은 부대장은 만감이 교차했다. 여전히 위험하기는 하지만 테헤란의 중심부로 잠입해 이맘을 납치 해오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가 모를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 일을, 한 중대가 목숨 걸고 달려들어야만 가능성 있는 일을 사람도 아닌 것들이 성공해 돌아오고 있다니 이 아니 대단한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맹세를 했지만 그래도 사지로 들어가지 않는 방법이 있으니 마음이 편했다. 자신 혼자만 들어가라고 하면 얼마든지 들어가겠지만 부대원들의 생명은 자기 것이 아니다. 타라라라. 무언가가 땅을 빠르게 디디는 소리에 분지에 숨은 대원들은 바싹 긴장했다. 그러나 곧 모습을 드러낸 존재를 확인하고 나서 긴장을 풀었다. 로봇독이었다. 그들이 등에 짊어진 목표물을 확인한 부대장은 감탄했다. 정말로 성공했다. 처음 작전의 개요를 들었을 때에는 의구심도 있었지만 성과를 확인했으니 과실만 취하면 되는 일이었다. 목표물을 넘겨받은 특수부 대원들은 따로 지프차를 타고 이동했고 로봇견들은 들것을 단채로 그대로 직선으로 내달렸다. 들것에는 담요로 나뭇가지와 낙엽 뭉치를 둘둘 말아서 만든 더미가 실렸다. 한편 이맘이 잡혔다는 소식에 급하기 남쪽에서 올라온 특수 부대원들과 헬기가 국경으로 향하는 로봇견들을 발견하고 그들을 쫓았다. 그들을 쫓는 동안 특수부대원들은 이맘과 그 측근을 싣고 남쪽으로 향했다. 동양의 금선탈각의 계책이다. “훌륭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한 미국 해군은 해변을 통해서 이란의 병력 구축을 시도했다. 이란의 병력이 구축되면 미국의 해병대가 상륙할 것이다. 이에 대처하기 위해서 이란의 병력이 집중되어 비어버린 구멍을 통해서 특수부대가 해변으로 내려왔다. 전선이 형성된 해변에서 떨어진 곳에 도착한 특수부대원들은 함장이 야간에 몰래 보낸 수송헬기를 타고 복귀했다. 함장은 감탄을 토했다. 최고의 전과였다. 물론 로봇독들이 매우 큰 활약을 했기에 논공행상이 골치가 아팠프겠진만 핵무기의 존재 여부를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는 단서의 획득은 누구나 기뻐할 만한 일이었다. 이맘이 공식적으로 미군의 손아귀에 들어가자 이란의 군대는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다른 종교 지도자가 남아있었으면 좋았을 터지만 이맘은 물론 그 측근까지 모조리 납치된 상황이었다. 전장은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미군 함대는 이란을 점령하지 않고 그대로 다시 인도양으로 빠져나갔다. 이란을 점령하기에는 이란에서 얻을 이권이 그리 많지 않았다. 치안 유지를 위한 군부대 파견 비용과 여기저기에 넘쳐날 게릴라, 저항군들을 생각하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다. 거기에 국제 사회의 시선도 있으니 처음 목표대로 핵배낭의 수량과 최초 이동 경로만 정확히 파악하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포한 이란 이맘과 그 측근들의 입을 우선 열어야 했다. 하지만 심문은 진행되지 않았다. 심문이란 물증과 진술을 대조하고 사건의 전후 과전을 확인하는 작업이다.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었고 미국은 핵이란 문제를 오래 놔두고 싶어하지 않았다. 전투기를 타고 함선에 도착한 CIA 요원 몇이 밀실에 이맘과 측근들을 한 명씩 데리고 들어갔다가 잠시 뒤에 끌고 나왔다. 심문용 약물을 이용해 즉각적으로 정보를 획득했다. 비윤리적이었지만 시간 절약에는 이보다 좋은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파악한 남은 핵배낭의 개수는 3개. 미국은 즉시 전 첩보 자원을 모아 하나씩 핵테러범을 체포했다. 다행이 미국에 들어온 핵배낭도 시민들의 제보에 도움을 받아 체포되었다. 그 와중에 수상한 물건들, 마약이나 밀수품도 대거 수확되었고 용의자도 체포되었다. 그리고 이맘과 그 측근들은 미국 법정에 서게 되었다. [..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을 죽이려고 시도했던 피고에게...] 사형은 언도되지 않았다. 살인 교사죄는 성립되었지만 핵테러라는 그 악질성에 수 백년의 형량을 받았다. 이는 하나의 상징이었다. 열강들은 로봇독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물론 로봇독에 대응하는 무기 체계 역시 개발되기 시작했다. 강현의 플라즈마 제트 엔진의 기술을 응용한 EMP 장비가 대표적인 예였다. 물론 강현의 플라즈마 제트 엔진의 근본 원리는 테슬라 코일이었다. 테슬라 코일처럼 공중을 뻗어가는 강력한 전기줄기는 로봇독과 같은 무인 전술 병기에 치명적일 수 있었기에 다시 EMP에 견딜 수 있는 무인 병기 개발이 진행되었다. 마치 창과 방패의 대결처럼, 진쪽이 다시 개량되어 도전해 왔고 모든 나라들은 모든 것을 뚫는 창과 모든 것을 막는 방패를 동시에 소유하고 싶었다. 첩보전과 인재 섭외 전쟁이 물밑에서 벌어졌고 강현을 보유한 미국이 경쟁의 맨 앞에서 달리고 있음을 첩보 관계자들은 모두 인정했다. 자신들이 보유한 첩보 인공지능으로 아즈삭을 해킹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아즈삭이 어떻게 했는지 경쟁관계에 있는 첩보 인공지능들이 아즈삭을 보호하기 위해서 연대했기 때문이다. 그건 이란에서 일어난 인공지능의 정보전과는 달랐다. 아즈삭을 보호하는 절대적 다수와 해킹을 하려는 절대적 소수로 나누어져 철저하게 소수쪽이 위협받는 형세였다. 아즈삭은 되도록 많은 인공지능과 협약을 맺음으로서 일종의 중립국의 지위를 가진 것이다. 영세 중립국인 스위스의 역사 자료를 수집하여 응용한 결과였다. 협약을 맺는건 아주 쉬웠다. 어떤 인공지능도 아즈삭과 척을 지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절대적인 손해를 보장했기 때문이다. 한 편, 이란과 같은 이슬람권인 아랍 국가들은 공포에 휩싸였다. ‘핵이 무력화 되었다.’ 그것은 정보전과 Anti-N의 궁합이 잘 맞아 가능한 일이었지만 Anti-N을 개발하고 운용할 능력이 없는 반미 국가에게는 불행한 일이었다. 이로서 핵이라는 강력한 카드가 무용지물이 되었다. 정확히 설명하자면 미국이 무용지물로 만들려고 발벗고 나섰다. 이란의 이맘이 미국 법정에 서서 미국법의 판결을 받고 미국 감방에서 수감 중이라는 사실이 그 증거였다. 미국을 핵으로 협박하면 그와 같이 되리라.. 시아파의 종주국이라고 할 수 있는 이란이 그렇게 된 건 경쟁자인 수니파 입장에서는 고소한 일이었지만 남일은 아니었다. 이슬람의 발상지이자 수니파가 주류인 사우디에서도 이란의 일을 반갑게 여겼지만 내심 식은땀을 흘렸다. 친미 국가라고 하지만 그건 국익을 고려한 친미일 뿐이었다. 신정일치식의 전제체제이며 명예살인이 용인되는 사우디에 대한 미국 국민들의 혐오감이 없을 수가 없었고 마찬가지로 사우디 역시 미국의 문화는 자국에 위협적이라 사우디에 진출하는 미국 세력을 견제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미국도, 사우디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둘 사이에 유지되었던 오랜 국교 관계는 단지 주변 상황과 여건에 비추어 보아 그것이 서로의 이익에 맞아 떨어졌기 때문에 유지될 수 있었던 것 뿐이다. 계기만 생긴다면 순식간에 갈라설 수 있었다. 그동안 쌓아온 신뢰관계로 우호를 유지하기에는 미국과 사우디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거기에 강현의 석유 제조 라이센스가 만료가 되고 미국내 유대 세력의 약화로 이스라엘과 미국의 공조 체계 역시 약화되자 사우디는 안달이 날 수 밖에 없었다. 안그래도 신정 일치와 명예살인에 대한 미국인의 혐오 때문에 사우디의 정권에 대한 미 정부의 반응이 심드렁했다. 거기에 더이상 석유라는 자원에 목을 맬 필요가 없는 미국이 굳이 욕을 얻어먹으면서 중동에 영향력을 강화해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만일 중동에서 공공의 적인 미국이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평화로운 이슬람 국가가 만들어질까? 천만에! 수니파는 수니파대로 시아파는 시아파대로 서로 경쟁하고 갈등할 것이다. 거기에 역사적으로 증오를 쌓아온 민족적인 문제까지 겹치면 유럽의 30년 전쟁이 그대로 중동에서 제현될 것이다. 유럽의 30년 전쟁이 구교와 신교의 갈등으로 시작해 세력간의 패권 다툼으로 번져 서양 최초의 국제 전쟁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수 많은 종교적 경제 정치적인 이해 관계가 얽힌 중동 역시 마찬가지였다. 30년 전쟁처럼 중동의 여러 국가가 얽혀 다시금 중동 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중동도 발칸 반도 만큼이나 누구나 다 공인하는 화약고였다. 그럼 미국을 붙잡아 둘까? 하지만 뭘로? 이미 석유는 태양광으로 만들어내고 있는데.. 그렇다고 남미의 아마존처럼 천연 자원이 풍부한 것도 아니었다. 땅도 농업을 하기에는 기후 여건이 그닥 좋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대로 중동에 대한 미국의 관심이 점점 줄어들면 반드시 반미 세력이 엉덩이를 들썩일 것이다. 그런 그들이 테러로 사용할 무기는 무얼까? 분명히 핵을 쓰면 세계의 경찰 국가라고 자신하는 미국이 개입할 것이다. 그러므로 핵을 제외한 비대칭 전력에 눈을 돌릴 것이다. 핵을 제외한 비대칭 무기는 바로 화학무기와 세균무기. 그 잔혹함 때문에 비윤리적이라고 손가락을 받겠지만 종교에 미친 광신도들이 남의 눈을 신경 쓸 리 없었다. 사우디 왕가는 소름이 끼쳤다. 중동에서 화학무기와 세균 병기가 판친다? 사우디 왕가는 중동의 질서와 평화를 위해서 과격 이슬람의 미움을 받는 미국이 필요했다.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사우디는 친미 국가들에게 미국과의 공조 강화를 역설했다. 미국이 빠지면 중동은 종교와 민족적인 증오로 촉발된 전쟁에 휩싸일지도 모른다고 설득했다. 사우디의 말은 먹혀 들어갔다. 적어도 친미 국가들에겐, 그리고 그 국가들의 기득권층에겐 원리주의 이슬람의 증오를 한 몸에 받는 미국은 훌륭한 탱커였다. 그런데 미국이 빠지면 그 증오가 자신들에게 향할지도 몰랐다. ============================ 작품 후기 ============================ 간신히 썼네요.. 내일 연재는 불확실 합니다. 디테일이 살아나질 않네요. 209화 그들이 미국을 중동에 붙잡아 두기 위해서 무슨 당근을 사용해야 하나 고민하는 동안 미국도 그들과 마찬가지의 결론을 내렸다. 핵무기에 대해 제제가 사전 경고 없이 벌어지므로 대체할 비대칭 무기를 사용하려고 들 것이 분명했다. 동맹국들이 어떤 콩고물을 상납할지는 천천히 기다리면 되었기에 미국은 위협에 대응하는데 집중했다. 비대칭 무기에 대한 감시 체제를 한층 더 강화하고는 그에 대응하기 위한 기술 개발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한 층 마음이 편해졌다. 왜냐면 화학 무기는 핵무기에 비해서 물리적인 제약이 컸다. 핵무기 만큼의 피해를 주려면 훨씬 많은 양을 옮겨야 했다. 이를 대체할 무기는 생물학 병기 뿐이다. 소량으로도 전염을 통해 병원체를 증식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인간의 육체에 있는 양분 그 자체가 인간을 고통스럽게 죽게 하는 병인(病因)의 재료가 되는 생물 병기만이 핵폭탄에 필적하는 인명피해를 낼 수 있었다. 그런데 생물학 병기는 연구 개발 자체에 많은 전문 인력과 비용이 든다는 약점이 있었다. 그러니 설사 누군가가 개발을 시도한다고 해도 아즈락의 첩보망에 걸려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번 이란에서 요긴하게 사용한 로봇독 고고도 투하를 통해서 얼마든지 공격할 수 있었다. 사람이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감염의 위험 역시 없었다. 그래도 미 정부는 좀 더 확실한 안보를 원했다. 설사 생물학 테러가 발발해도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희생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원했다. “생물학 쪽이면 별로 자신 없는데...” 정부에서 나온 인물의 부탁에 강현은 중얼거렸다. 생물은 정말로 복잡했다. 기계처럼 딱 답이 나오지 않는 분야였다. 수많은 요소들이 서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부작용이 나올지 안 나올지 알 수 없었다. 부작용이 예상되어도 어떤 부작용이 나올지 100% 예상할 수 없었다. 더 골때리는 요소는 생명공학 기술은 적용의 보편성이 다른 분야보다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것이다. 조직 이식의 거부 반응처럼 각 개인의 항원-항체 반응은 다 다르기 때문에 동일한 생명공학 기술로 만든 제품이라고 누군가에게는 치명적인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유전자 조작 식품(GMO)가 있었다. 러시아의 푸틴이 이 GMO에 알레르기 체질이라 러시아에서는 이 GMO에 대한 생산 및 유통이 모두 금지되었다는 말은 유럽에서는 아주 유명했다. 유럽 역시 GMO에 대해서 매우 철저하게 규제하고 있는 지역이었고 미국 곡물 기업들이 유럽에 쉽게 진출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그렇듯 생명공학 기술은 적용과 실용성의 보편성이 일반적인 기술에 비해서 떨어지기 때문에 강현이 별로 손대고 싶어하지 않는 분야였다. 특수한 합금을 개발하면 그 합금의 성질은 어른의 손에서나 아이의 손에서나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적용되는 개체의 특질에 따라 효과와 부작용이 다른 생명공학 기술은 그렇지 않았다. 강현이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단백질 분석 및 재조합 기술을 가지고 있어도 생명공학에 섣불리 손을 대지 않는 이유였다. “꼭 좀 부탁드립니다. 유사시에 사람들의 생명은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펜타곤 국가 방위 책임자의 말에 강현은 머리를 긁적였다. 생물 병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생물병기를 무력화하는 기술을 개발해 달라고 하는데 딱히 거부할 명분이 없었다. 그는 잠시 생각해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폴로티움은 이제 강현이 손을 대지 않아도 잘 굴러갈 정도로 운영이 궤도에 올랐다. 우주 농장의 경우에는 아직 개발이 진행 중이라 뭐라고 장담할 수 없었다. 곡물의 양액 재배에 성공한다면 바로 증설에 들어가도 되겠지만 아직 연구가 진행 중이었다. 아무래도 곡물은 자라는 시간이 있어서 기술 개발과 개량에 시간이 들 수 밖에 없었다. 즉, 한동안 강현에게는 시간이 남아 돌았다. 그렇다고 애들과 놀면서 빈둥대면 샐리의 눈치가 보일테니 일거리는 있어야 했다. 신통일장 이론의 개량은 취미 삼아서 틈틈히 하면 된다. 어차피 패러다임의 전환 없이 신 통일장 이론이 더 명확해질 여지는 매우 적었다. 강현이 참여한다는 말에 방위 책임자는 매우 기뻐했다. 그리고는 연구 부서의 책임자와 연락할 수 있는 비밀 연락망을 알려주었다. 연구 부서는 지구상에 있었기에 강현은 원거리로 연구에 참여하는 수 밖에 없었다. 뭐, 아즈삭을 이용해 지상의 실험실에서 연구를 하기도 했기 때문에 그리 특별히 곤란할 일은 없었다. 양자 통신 기술로 인해 증폭된 장거리 통신 회선은 지구 반대편에 있는 연구실끼리 네트워크를 통해 실시간으로 협력해 연구를 할 수 있게 해줄 수도 있었다. 시차 문제가 있어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그런 일이 좀처럼 없지만 말이다. “면역 반응이라..” 면역 반응은 주로 항원-항체 반응으로 설명한다. 항원에 있는 항원 결정체에 Y자 형태인 항체의 파라토프가 결합해 항원의 활동을 방해한다. 또한 이렇게 결합된 항체는 혈장의 단백질과 보체 반응을 일으켜 덩어리를 키우고 대식세포를 유인한다. 이렇게 유인된 대식세포는 덩어리와 함께 항원을 삼켜 효소로 분해해 버리는 것이다. 이는 박테리아의 세포벽이나 생리 화학적 반응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는 항생물질과는 다른 형태로 몸을 보호하기 때문에 바이러스에도 통용되는 방식이었다. 바이러스 역시 항원-항체 반응에 의해 바이러스 표면에 항체가 달라붙어서 세포막 침입 등의 활동에 방해를 받고 대식세포 등에 의해서 제거된다. 이런 면역 활동은 인체 내의 양분을 이용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박테리아나 바이러스에게 매우 효과적이며 기억 세포를 통해 한 번 걸린 항원에 더 빠르게 항체를 생산해 더 효과적으로 몸을 보호한다. 박테리아나 바이러스가 증식할 시간을 주지 않고 초기에 제압하는 것이다. 항원-항체 반응은 특정하게 반응하는 생화학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 특정한 결합만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면역 체계는 우선 항원은 인식할 수 있어야 했다. 이 인식작용을 위해서 수지상 세포나 대식세포 따위가 병원균이나 그 잔재를 먹고 분해해 특정한 펩타이드(아미노산 중합체)를 얻고 이를 T 세포에 전달한다. 이 과정을 항원제시라고 하는데 항체를 생산하는 T 세포는 그 스스로 항원을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서 면역 활동이 강화되고 항원이 효과적으로 제거되는 것이다. 이를 군대에 비유하자면 대식세포나 수지상 세포는 레이더가 발달하지 못했던 2차 대전 초기의 육군이고 T 세포는 그런 육군으로부터 좌표를 전송받아 항체라는 폭탄을 투하하는 공군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백신이란 이 공군에 육군 대신 미리 좌표를 불러주는 행위에 비유할 수 있다. 백신을 통해 항원을 미리 기억해 놓은 기억세포가 빠르게 항체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인플루엔자 백신에 대한 논란이 생기기도 한다. 특정한 결합밖에 하지 않는 항체와 항원, 그리고 계절마다 변종에 생기는 인플루엔자라는 요소가 한데 뭉쳐지면 인플루엔자 백신을 연구하고 생산하는 행위 자체가 도전을 받게 된다. 과연 이번에 유행할 인플루엔자는 정확히 예측했는가? 실제로 유행하는 인플루엔자에 유행할 것이라 예측한 인플루엔자의 백신이 얼마나 효용이 있는가? 이런 질문에 부정적인 대답을 하게 되면 매년 수 백억 달러는 가뿐히 넘어가는 인플루엔자 백신 시장은 결국 돈을 위해 감기에 대한 사람의 공포를 이용하는 악질적인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비난에 일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예측이 정확하다면 문제없다. 스페인 독감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을 테니까... 그러나 생존경쟁이 치열하며 수 많은 요소들이 상호작용을 해서 카오스적인 현상이 일상인 생태계에서 어떤 요소가 작용하여 얼마만큼 변화가 일어날지 예측하는 건 쉽지 않다. 생물학 테러에 대비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였다. 생물학 테러에 사용될 병원체와 그 변이정도를 얼마나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가? 그런 부분에서는 아무래도 학자보다는 첩보원이 더 유용하지 했다. 학자의 예측보다는 아무래도 첩보원이 직접 세균 무기를 연구하는 곳의 자료를 빼내는 것이 더 정확하지 않을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물학 테러가 일어났다면? 병원체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특성과 항원 결정체가 무엇인지 확인하는 작업이 급선무였다. 이쪽으로는 강현보다 뛰어난 학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가 할 일은 거의 없었다. 그는 곰곰히 생각해보고 자신이 가장 크게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냈다. 그것은 바로 백신의 대량 생산이었다. HJ 세포를 이용하면 항원-항체 반응에서 실질적으로 항체와 결합하는 항원 결정체나 항원제시 메커니즘에 사용되는 펩타이드를 대량 생산할 수 있었다. 이것을 인체에 주입하면 T 세포가 이에 대응하는 항체를 빠르게 생산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백신의 매커니즘이다. 하지만 강현의 이야기를 들은 생화학 재난 대비 책임자는 난감해 했다. [하지만 세균이 어떤 녀석일지 정확히 파악하는 것 자체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감염자 확인에서부터 시료체취, 분석까지 걸리는 시간이 어떻게 될 지 예측이 난감하다. 소요 시간이 늘수록 피해도 더 많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균성 테러에는 면역 반응보다는 항생제가 더 확실합니다.] 세균의 미토콘드리아의 활동을 방해해 굶겨 죽이거나 세포벽을 분해해버리는 항생제는 면역보다 훨씬 효과가 좋고 빠르다. 노약자나 어린 아이처럼 면역력이 약한 이들에게는 백신이 큰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강현은 생각만큼 단순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고는 한 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제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일단 병원체의 분석에 협조를 해주십시오.] “사건이 발생하면요?” [네. 아무래도 박사님께서 염기서열을 통해 단백질 구조를 분석하실 수 있으니까요.] “아, 그렇군요. 그리고 백신 생산이 필요한 경우라면...” 강현과 재난 대비처는 의견 조율을 통해 일이 발발할 경우에 강현이 즉각적으로 협조한다는 것에 합의했고 그에 더불어 빠른 치료제의 생산을 위한 HJ 세포 배양 탱크를 준비하는 것에 동의했다. 제약 회사들의 시설을 사용해도 되겠지만 사용 중인 배양 탱크를 비우고 소독하는 일만해도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즉시 치료제를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이 최소한의 피해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했다. 강현은 막상 동의를 하고 보니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치료제의 개발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이미 기존의 의학 기술에 시스템적인 체계만 잘 잡으면 웬만한 생물학 테러는 방비할 수 있다. 거기에 강현의 분석 능력이 첨가되면 극소의 피해로 막을 수 있었다. 그리고 고부가가치 산업인 의학 산업이라 그런지 투자가 활발해 HJ 세포를 이용한 치료제 생산 기술에서 만큼은 강현보다 우월한 기업도 많았다. “생각보다 별로 할 일이 없네..” [아무래도 우주 개발과는 달리 한계가 뚜렷하지 않습니까.] 강현은 입맛을 다셨다. 우주 개발은 인류의 미래를 개척하는 일이었다. 우주 도시는 시작일 뿐이며 앞으로 저 먼 은하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더 높은 수준의 기술과 과학력이 필요했다. ============================ 작품 후기 ============================ 우와! 간신히.. 210화 그러나 단순히 생물학 테러에 대비하는 일은 그 한계가 뚜렷했다. 기존의 생물학, 의학체계가 가진 한계도 있었다. 인체의 생화학 반응을 연구하고 발견하고 이용, 응용하는 수준 이상으로 넘어가기는 힘들었다. 물리학처럼 원자핵을 발견하고 쿼크를 발견하고 초끈, 초막 이론 등을 수학적으로 증명해 저 먼 미래로 개척할 수 있는 성질의 학문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실험과 실증, 데이터가 중심이 되는 학문이라 이론적으로 어떤 현상의 기저, 메커니즘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추측하기 난감한 학문이었다. 아니, 결국 모든 생리학적인 현상의 기저에는 화학반응이 깔려있지만 단백질과 같은 고분자, 미량 원소 등 다양한 요소들이 함께 작용했다. 마치 컴퓨터 소프트웨어가 패턴화된 디지털 신호를 통해서 구현되고 확장되어 복잡해진 것처럼 생리학적인 반응 역시 패턴화된 고분자가 뭉치고 확장되어 DNA 같은 방대한 정보 체계를 구성했기 때문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다. 마치 코딩을 하는 프로그래머들이 ‘왜 안되는지 모르겠어!’라거나 ‘왜 작동하는지 모르겠어!’라며 머리를 싸매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이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인체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수학적으로 표면하고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기술이 필요했지만 여전히 불가능한 영역이었다. 설사 실현된다고 해도 그 실현물을 생물학에 그대로 적용하기 난감했다. 인체의 모든 것을 완벽히 시뮬레이션 한다는 말은 사람 신체의 비보편성마저 재현했다는 말이기 때문에 시뮬레이션 상에서 얻은 데이터를 실제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는 보편성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강현은 상상을 해보았다. 과연 지금의 의학 기술로는 어찌할 수 없는 최악의 생물학 테러는 무엇일까? 그건 어떤 치료제도 없는 질병을 널리 퍼뜨리는 것이었다. 그중에 대표적인 질병은 에이즈다. 레트로 바이러스(RNA 바이러스의 일종; RNA를 유전자로 가지는 바이러스)의 일종인 에이즈 바이러스는 숙주의 DNA에 RNA의 정보를 역전사한다. 이때 역전사 하는데 사용되는 역전사 효소는 DNA 복제 효소와는 달리 오류 정정 기능이 없어서 쉽게 변종을 만들어 내는데 이것이 에이즈의 치료를 어렵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다. 돌연변이가 잘 일어나지 않는다면 바이러스라고 할지라도 항원-항체 반응으로 치료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에이즈가 더 최악인 점은 면역체계의 핵심인 T 세포와 수지상 세포를 주로 공격해 면역 체계 자체를 붕괴시킨다는 점이다. 다양한 변종을 통해 항원제시 메커니즘과 항원-항체 반응을 피하며 이윽고는 그 면역체계의 근간을 파괴하는 에이즈의 치료법은 매우 난해하다. 치료법이랍시고 나온 건 당뇨병처럼 평생 병을 달고 사는 연명치료뿐이었다. 레트로 바이러스가 가진 역전사 효소의 활동을 억제하는 약물로 에이즈 바이러스의 증식을 막는 것이다. 물론 에이즈를 완치한 사례가 있기는 하지만 아직 연구 초기라 확실한 방법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확실한 치료가 나오기 전에 감기처럼 공기로 전염되는 고전염성 에이즈가 생물학 테러로 발발한다면 사람들이 일으킬 패닉 현상은 말도 못할 것이다. 다행이 바로 죽지는 않지만 에이즈처럼 치료할 수 없을 정도로 활발히 돌연변이를 일으키며 감기처럼 번지는 바이러스는 생각만해도 끔찍한 테러다. 그런 경우 가장 확실한 치료제는 무엇인가? 알 수 없다. 그건 바이러스의 행동 패턴에 따라서 다양하게 나뉘기 때문이다. 에이즈의 치료법만 해도 T 세포의 감염 경로가 되는 유전자를 제거한 유전자 조작 T세포를 주입하는 방법은 물론, 역전사 효소의 활동을 방해하는 요법까지 다양한 방법이 구상 중이었다. “하아. 차라리 공상 과학 영화처럼 나노 로봇이 직접 치료하면 편하겠는데..” 하지만 강현은 그 일이 정말로 ‘마법’과 같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설사 자신이 주장한 초시공간 이론으로 양자 수준의 정보 집적 기술이 실현된다고 해도 그것이 원자의 고유의 물리화학적 특성을 변조할 정도가 될 것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전자의 고유 특성을 조작할 수 있을 정도가 아니면 전기 화학적인 결합이 물질의 물리화학적인 특성의 대부분을 결정하는 현실에서 공상 과학 영화에서나 볼법한 나노 머신은 불가능하며 그것은 정말로 마법과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강현은 한 번 연구해 볼까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지금의 물리화학 수준으로는 기존의 DNA 단백질 구조를 모방한 고분자 물질을 만드는 수준에 불과했다. 적어도 초끈 이론을 실용화 시킬 수 있는 정도의 기술 수준이 아니면 명령한 데로 움직이는 나노 로봇의 제작은 불가능했다. 미국이 생물학 테러에 대비하는 일을 착착 진행하는 동안 강현은 다시 우주 농장에 집중했다. 많은 사람들이 우주 농장의 생산성을 위해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고 강현은 그 기술들이 제대로 적용될 수 있도록 제반 기술들을 보강하고 있었다. 제약 회사들은 생화학 테러 대비용 HJ 배양 탱크 시설을 막고 싶었다. 이유는 당연히 그게 돈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뒤에 강현이 있다는 사실에 대부분 정치권에 로비하기를 포기했다. 몇몇 어리석은 인간들이 같은 실수를 반복할 뻔했지만 주위의 동조가 없으니 그들과 반대되는 이해 관계를 가진 이들에게 밀려버렸다. 그렇게 어리석은 짓을 한 업체들은 주로 화교 쪽 자본을 먹은 회사들이었는데 그런 그들을 별로 좋게 보지 않는 경쟁자들이 그들의 로비가 무색하도록 역으로 로비를 한 탓이었다. 실무자들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 좋은 일을 하려고 해도 로비 때문에 제도의 본 뜻이 어그러진 상황을 몇번이나 봐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난 대비처의 공무원들은 강현을 끌어들여 방패막이로 삼은 책임자의 안목을 칭찬했다. 강현이 손 대기도 전에 마무리 된 것 같은 이 사건은 작은 불씨를 남겼고 우주 농장과 관련된 일로 튀었다. 계기는 우주 농장에서 밀이나 벼와 같은 곡물을 수확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면서부터 였다. 그 기술이 NASA의 연구팀에서 개발이 되었다면 별다른 일이 없겠지만 세계적인 곡물 기업에서 탄생했다는 점이 문제였다. “안녕하십니까. 퀴니라고 불러주십시오.” 세계적 생화학 제조 몬산토의 회장이 몸소 아폴로티움에 올라와 강현을 만났다. 유전자 조작 종묘의 특허권을 90%나 가진 괴물 기업으로 어떤 면에서는 카길보다 입김이 더 세기도 했다. 작물을 키우는데 사용되는 각종 약제를 꽉 쥐고 있기 때문이다. “반갑습니다만 무슨 일로..” “우주 농장에서 사용될 재배 기술에 관해서 협의할 것이 있어섭니다.” 수 십년 간 종묘 기술을 쌓아온 노하우로 곡물의 에어로포닉 양액 재배의 상용화에 성공했다. 당연히 그 기술이 절실히 필요할 우주 농장에 진출할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주 농장의 생산성을 위해서 저의 몬산토는 기꺼이 협조를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주 농장에 투자를 하고 싶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죠.” 강현은 잠시 생각했다. 몬산토의 우주 농장 진출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그 일은 자신에게 이득이 될까 되지 않을까? “어떤 식으로 투자를 하실 건가요? 자본? 기술?” “박사님께서 이미 기반 시설을 다 지어 놓으셨더군요. 저희는 그 중에 종자와 그 종자를 재배하는 양액의 조성을 제공한다면 나머지는 다 알아서 하실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저희 몬산토는 지금과 같은 기회를 그냥 날려버리고 싶지 않습니다.” “직접 농산물을 재배하고 싶으시군요.” “그렇습니다.” “카길과는 오랜 동반자 관계로 알고 있는데 카길도 참여 하나요?” “몬산토 단독 참여입니다.” 강현은 놀랍다는 듯이 그를 보았다. “카길을 재낄 생각이시군요.” “종묘만으로는 좀처럼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가 힘들더군요. 쓸만한 농지를 구하기 위해서 바지 회사를 세워도 어느 샌가 몬산토가 관련되었다는 이야기에 구입하기도 힘들었습니다.” 자체적으로 종묘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는 몬산토가 본격적으로 식량 생산에 끼어들기를 원하지 않는 동종업계 회사들의 견제였다. “하지만 저로서는 아폴로티움의 사람들을 위해서 우주 농장의 식량 생산을 어떤 회사에게 독점적으로 맞길 수가 없습니다.” 식량의 독점은 곧 무기다. 사람은 먹지 않고서는 살 수가 없다. “하하하! 미국 기업인 몬산토가 설마 미국 시민들을 먹는 것가지고 괴롭힐리가 있겠습니까?” 퀴니는 호탕하게 웃었다. 그 당당한 모습에 강현은 그를 주시했다. 퀴니는 그의 눈길을 한 점 부끄럼 없다는 태도로 마주보았다. 몬산토는 종묘를 제공하며 농가에게 자택 채종을 하지 않는다는 계약을 맺는다. 자택 채종이란 농가에서 재배한 농작물에서 다시 종자를 채집해 사용하지 않는다는 계약이었다. 이를 어길 시에는 특허법 위반으로 고액의 고소를 한다. 특허에 대한 개념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농가에서는 하늘에서 떨어진 날벼락 같은 일이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종자 연구에 투자를 한 몬산토에게는 투자한 만큼 수익을 창출할 권리가 있었다. 몬산토의 종묘를 사용하는 농가는 매우 많았다. 종묘에 대한 권리를 확보하는 전쟁은 식량 주권과 함께 미국 중심의 헤게모니를 형성하는 중요한 축 중의 하나였다. 유럽에서는 벌써 이런 몬산토와 같은 다국적(하지만 본사는 미국에 둔) 종묘 회사들의 영향을 막기 위해 강도 높은 규제를 걸었으며 그 중에는 GMO 유전자 조작 식품에 대한 것도 있었다. 하지만 이는 유전자 조작 식물의 90%나 되는 특허를 가진 몬산토에게는 유럽 시장 진출을 매우 어렵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였다. 명분은 좋다. 인체에 대한 부작용이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농약을 사용해 재배한 농산물과 GMO 사이에 뭐가 더 나쁠까? 단지 천연 살충제를 합성하는 유전자를 끼워넣는 것 만으로 농약의 소비를 확 줄일 수 있는 GMO가 오히려 더 친환경적이지 않을까? “그럼 종자는 역시 GMO인가요?” “박사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퀴니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만일 강 박사가 GMO에 대한 편견이 있다면 우주 농장에서 GMO의 생산은 어려워진다. 무엇보다도 세계 유수의 과학자가 GMO를 거부했다는 말이 크게 알려져 GMO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퍼지는 것이 더 큰 타격이다. “GMO라고 하지만 결국은 인위적인 돌연변이 아닌가요?” “그렇죠.” “그리고 감자 같은 것도 돌연변이 덕분에 사람이 먹을 수 있게 된 것 아닌가요?” 감자는 원래 독성이 있었다. 지금 사람들이 알고 있는 감자는 독성이 없는 돌연변이가 그 시초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인위적으로 일으킨 돌연변이 작물의 성분이 정확하게 어떻고 사람에게 어떤 부작용을 일으킬지 알 수 없다는 것이 문제죠. 그렇지 않습니까?” “그 말도 맞습니다.” 퀴니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강 박사의 논리는 유럽에서 GMO를 거부하는 이유와 같았다. “제 가족들이 지금 아폴로티움에 살고 있습니다. 제 가족들에게 검증되지 않은 식품을 먹이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럼..” “GMO를 제외한 종자에 관해서는 허락을 하도록 하죠.” 퀴니는 속으로 한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혹시나 해서 살짝 찔러보았다. “저희는 에어로 포닉 기술을 가지고 있습니다.” 211화 “싫으시면 마시구요.” “... 아닙니다.” 퀴니 회장은 바로 찌그러졌다. 상대는 에어로 포닉을 대체할 기술쯤 순식간에 만들 수 있을 정도의 천재였다. 과연 그의 생각대로 퀴니가 찌르자마자 강현의 머릿속에서는 이를 대체할 기술이 바로 떠올랐다. 양액을 지속적으로 흘려주는 기술이 있었고 그런 경우 벼라는 최적의 작물이 있었다. 모심기 기술을 개량하면 진흙 대신 세라믹 페블을 기판으로 사용해도 된다. 태풍과 같은 바람이 없기 때문에 넘어질 우려는 없었다. 생각해 보니 장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밀은 빵을 만들기 위해서 제분 시설이 필요했지만 쌀은 도정만 하면 밥을 지을 수 있다. 거기에 한국인 비율이 많으니 당장 밀보다는 쌀이 더 적절한 선택일 수 있었다. “그럼 면적은 어느 만큼이나 필요하신가요?” 퀴니가 한 발 물러서자 강현이 물었다. 퀴니가 꺼낸 가방에서 서류가 나왔고 강현에게 건내졌다. 이미 철저하게 수요 조사를 해서 필요한 재배 공장의 수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많은 식량 공장을 계약했다. 몬산토는 그렇게 우주 식량 생산을 주도하는 기업이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확보하면서 생산된 농산물을 가공하는 시설도 투자를 통해 건설하기 시작했다. 미국 정부의 도움으로 한국 제현 회사에서 우주 인부를 알선 받아 식품 공장을 지었다. 그리고 월 마트 아폴로티움 지점이 여기 저기 생기기 시작했다. 열권에 있는 우주 정거장을 통해 매스 드라이버 없이 우주 도시와 오갈 수 있게 되면서 물자 수송이 원활하게 된 덕분이다. [몬산토 우주 식품이 지상에 내려오다!] 그러면서 월 마트와 몬산토의 협력 체제가 이루어 졌다. 생산물은 우수했지만 병충해에 견디기 힘들어 종묘 은행에 처박혀 있던 종자가 이번에 크게 효자 노릇을 했다. GMO이 적용되지 않아서 병충해에 약하지만 생산량과 양분이 풍부한 밀종자는 밀폐 공장식 농업이 가능한 우주 농장에 매우 적합했다. 자연으로부터의 감염을 우려할 필요도 없었고 어떤 일이 벌어지면 채광 장치로 대량의 태양광을 주입해 해당 구역을 완전히 소독해 버릴 수도 있었다. GMO가 아닌 식품이라는 점에서 크게 홍보할 만 하지만 그러지는 못했다. 몬산토의 주력 중 하나가 GMO이기 때문이다. 다만 유럽 진출에 교두보가 될 만한 주력 상품을 획득했다는 것 만으로 만족했다. 공장식 농업이라 설사 병충해가 난다고 해서 구역별로 처리할 수 있어서 농약을 쓸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웰빙에 관심이 많은 유럽인들에게 무농약 밀은 충분히 먹혀들었다. 거기에 세계적으로 진출한 유통 기업인 월 마트와의 제휴는 몬산토의 식량 시장 개입에 날개를 달았다. 그러나 파급효과는 이에 그치지 않았다. 이에 자극받은 미국의 코스트코같은 2위 유통 업체들이 아폴로티움에 입점해 경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거기에 운송비용 때문에 아폴로티움의 물가가 좀 비싸기 때문에 아폴로티움에 공장을 지으면 더 큰 이득이 있을 것이라고 본 기업들이 여러 제약 조건에도 불구하고 1층에 공장을 세우기 시작하면서 도시의 성장이 기하급수적으로 가속되었다. 헨델 회장을 비롯한 곡물 업체들도 우주 농장에 자기업의 식량 공장을 가지기 위해서 진출했다. 비록 불하받은 식량 공장의 수에 비해서 아폴로티움의 인구가 적어 당분간은 손해를 보겠지만 몬산토를 견제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그 손해는 빠른 시일 안에 해결될 수도 있었다. 우주 도시가 아폴로티움 하나뿐인가? 유럽 우주 도시인 유러피아과 동아시아 우주 도시인 센타리움(러중일은 오랜 갈등 끝에 결국 영문식 이름을 선택했다.)도 있었다. 자체적인 우주 농장의 건설 계획이 없는 그들에게 당분간 식량은 미국의 우주 농장에서 수급하는 것이 경제적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우주 농장도 짓기에는 우주 도시에 너무 많은 예산을 써버렸다. 강현 덕분에 미국에서 아폴로티움과 우주 농장을 반쯤 공짜로 지은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넘치는 자본을 우주 진출에 사용한 강현 덕분에 미국은 절반의 비용으로 아폴로티움과 우주 농장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우주 교역 시대를 예상한 기업인들과 투자자로 인해 아폴로티움은 빠르게 공업화되기 시작했다. 그에 수반하는 공장 부지 수요, 인구 증가 및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 도시 운영 위원회는 강현에게 아폴로티움 제2층의 건설을 강력히 권고했다. 강현은 좀 더 느긋하게 발전을 하려고 했지만 사정이 이렇게 되니 어쩔 수가 없었다. 소행성 지대를 넘어 목성과 토성까지 자원 개발을 하려고 했던 개발선 생산을 중지하고 생산 자원을 아폴로티움의 확장에 사용하기 시작했다. 정부 역시 아폴로티움의 확장을 위해 RP 포인트 구입에 예산을 책정했다. 지금은 그야 말로 아폴로티움이 성장하는 성장기다. 지금 충분히 키워놔야 했다. 제2층을 건설하는 일은 공중에 바닥을 건설하는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공법 자체가 일반적인 건설 방법과 달라질 수 밖에 없다. 무중력 상태에서는 쉽겠지만 이미 사람들이 1층에 많이 살고 있기 때문에 무중력으로 돌릴 수도 없었다. 그래서 새롭게 제시된 공법은 바로 중앙에서부터 구조물을 내리는 방법이었다. 마치 크레인으로 무거운 건설 자재를 옮기는 것처럼 철판 하나 하나를 고장력 케이블에 매달아 설치 지점까지 내려주는 것이다. 위험한 공법이었다. 특히 무거운 구조물이 떨어져 사람 위로 떨어지면 반드시 사망한다. 한 치의 실수도 있어서는 안된다. 강현은 이번 공사를 위해서 필요한 건설 기계를 구상하는 수 밖에 없었다. 어차피 카낙에서 물자를 수송해 오기 때문에 중심에서 케이블로 건설 자재를 내린다는 아이디어는 좋았다. 하지만 내려도 그냥 내릴 수는 없었다. 운동량 보존 법칙에 의해서 우주 도시의 중앙에서부터 밑으로 내리는 건설 자재의 각속도는 줄어들게 된다. 회전 중심으로부터 무게 중심이 멀어지면서 관성 모멘트가 커지기 때문에 각운동량을 보존하기 위해서 각속도가 줄어들게 된다. (물론 그 근본 원인은 관성의 법칙에 따른 선속도의 보존이다.)이런 일이 발생하면 우주 도시가 회전하는 속도와 건설 자재의 회전 속도 차이가 발생하고 이로 인해 건설 자재를 내리는 케이블이 도시 중앙의 휴지심 같은 도킹 구역에 휘감기게 된다. 이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크레인 끝이 벽에 붙어서 내려가거나 도시를 지탱하는 케이블을 붙잡고 내려가야 했다. 일반적인 크레인 기술을 쓰지 못하는 이유였다. 좀 더 개량이 필요했다. 강현이 제2층 건설을 위해 크레인 기술에 로봇 기술을 첨가했다. 도킹 구역 표면에 붙은 여러 대의 막대형 로봇들이 전자석으로 단단히 고정되면 허리 위에 붙은 모터를 이용해 U자 형으로 늘어진 케이블을 이동시키고 그 길이를 조절했다. 케이블 끝에는 C자형의 바퀴 달린 팔과 전자석이 설치된 로봇이 달려 있어 벽에 붙어 내려가거나 케이블을 붙들고 건설 자재를 내릴 수 있었다. 그 모습이 꼭 꼬리에 거미줄을 달고 내려가는 모습이라 스파이더 봇-S란 명칭이 붙었다. 그리고 케이블의 이동과 길이를 조절하는 막대형 로봇에는 크레인 웜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사실 벌레처럼 꿈틀거리지 않았지만 케이블 길이를 조절하는 모터를 단단히 달기 위해서 Ω자처럼 구부려진 모습이 자벌레를 닮았기 때문이다. 그 밖에 건설 쪽에 잔뼈가 굵은 기업들의 도움을 받아 안전을 강화할 노하우에 도움을 받고 우주 인부들은 새로워지고 보강된 안전 메뉴얼과 강현이 설계한 기자재를 다루기 위한 기술 교육에 들어갔다. 이 모든 일은 전문 연구 인력과 건설 노동자 위주로만 구성되어 있던 아폴로티움의 편향된 직업 구조를 완화해주었다. 영화관이라든지 서점같은 문화 산업 쪽도 하나 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 건설 업체의 협조를 받으면서 미국인 건설 인부들도 아폴로티움에 올라오기 시작해 인구 증가 속도가 가속되었다. 적지 않은 이들이 지금 아폴로티움이 황금기를 맞이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시장 개척에 나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숙련된 한국인 우주 인부들은 미국 건설사들에게 탐이 나는 인재들이었다. 숙련된 한국 우주 인부 몇을 구할 수만 있다면 자회사의 인부들을 우주라는 작업 환경에 빠르게 적응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바로 헤드 헌터들이 스카우트를 시작했다. 천정호 팀장같이 리더십을 발휘하는 위치에 있던 이들이 주 대상이었다. 취업 이민에 관심이 있고 좁은 한국을 떠나 새로운 기회를 잡고 싶은 이들이 적잖이 회사를 옮겼다. 제현 그룹에서는 이에 대한 대처를 전혀 하지 않았다. 그들이 떠나고 남은 TO에 우주 인부에 지원을 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밀려 떨어진 인재를 채용했다. 상사가 사라진 자리에 승진하기도 했다. 전혀 배신자라고 욕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 모두 스카웃 대상이었다면 좀 더 좋은 대우를 해주는 미국 건설사로 이동했을 것이다. 한편 한국의 기업에서 일하고 있던 합격 기준자들은 제현 그룹의 연락을 받고 희희낙락 사표를 던지고는 우주 인부 교육을 받으러 떠났다. 미래도 없고 비전도 없고 대우도 낮은 야근 노예 따위보다는 좀 더 넓은 세상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우주가 더 나았다. 게다가 이번에는 건설 노동자 뿐만 아니라 공장을 운용할 기술자까지 골고루 뽑는다니 그동안 쌓아온 기술을 발휘할 기회이지 않은가? 하지만 반면에 야근 노예가 사라지자 사업주들은 부랴부랴 사람을 뽑으면서 제현 그룹을 욕했다. 그런 사업주는 하나 둘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이 뭘 하기에는 제현 그룹은 이미 너무 컸다. 우주로 나가 달러를 벌어오는 우주 인부의 가족들은 제현 그룹이 구성한 유통 시스템 안에서 풍족하게 생활하고 있었다. 제현 그룹이 손해를 보면서까지 운영하는 해외 직구 서비스를 통해서 한국의 우수한 제품을 더 싸게 구입했다. 이런 행태를 정부 차원에서 규제하고자 하는 법안이 추진 되었지만 미국인인 카랄리 킴이 미국의 유통 회사를 끌어들였다. 빌어먹을 ISD! 자유무역 제도 하에서 해외 구매를 규제해 소비자의 선택권 자체를 막는 법안이 국제기구에 제소되면 필패다. 더구나 그 국제기구를 주도하는 국가가 미국이며 그 미국이 끔찍하게 아끼는 강현이 제현 그룹의 뒤에 있었다. 정부에서는 기업이 징징대며 부탁해도 어찌 해줄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더욱 속이 탔고 제현 그룹은 착실하게 한국 기업의 경쟁력을 갉아 먹어 들어갔다. 이런 현상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한국 경제가 미국에 종속되어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지정학적으로도 미국에 의지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위치에 있었다. 그리고 중국이 한국과의 교류를 늘리기 시작했다. 한중 FTA는 바로 그 시작점이었다. 중국이 한국과의 교류를 늘리기로 결정한 이유는 복합적이었다. 제약 회사의 로비가 실패한 화교 자본이 이리 저리 머리를 굴려보자 그들의 눈에는 일자리가 남아도는(?) 한국에 중국의 거지들을 알선해 주는 일로 조금이라도 손해를 만회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겸사겸사 한국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도 키워놓고 나중에라도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대단한 강현의 출신 국가이지 않은가? 거기에 강현이 처음 설립한 기업이 있기도 하고 말이다. ============================ 작품 후기 ============================ 이번주는 좀 쉬어야 할 것 같습니다. 스토리가 안나가네요. 212화 이런 중국의 방침에 생각없는 기업들은 환호했다. 그러나 좀 생각하는 기업들은 경계했다. 분명 노동시장은 좀 더 유연해 지고 편하게 사람을 고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인을 한국인처럼 부릴 수 있을까? 그들은 과연 ‘자발적’으로 야근을 해줄 것인가? 휴일에 부르면 나와서 노동을 해줄 것인가? 상사의 얼척 없는 지시에 얌전히 ‘Yes’라고 답해 줄 것인가? 그리고 수출품보다 질 떨어지고 비싼 내수용 상품을 기꺼이 사줄 것인가? 계속 납품단가를 낮추는 원청의 요구를 맞추기 위해 계속 인건비를 삭감해야 하는 하청의 입장에서 정부의 법안은 환영할 만했다. 쉽게 싼 외국 노동자를 구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내수시장을 장악한 이들은 고민했다. 이것이 과연 자신들에게 득이 될지 실이 될지... 원가 절감은 가능하겠지만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 분명 뭔가 잘못 되어가고 있음은 확실했다. 모두가 그것을 느낄 때 쯤, 과연 한국은 어떤 모습일까? 한중 FTA는 많은 사람들의 반대를 받았으나 여태껏 그랬던 것처럼 정부는 강행했다. 오랜만에 컨테이너 산성도 쌓아 올려졌다. 이미 언론은 친정부적이었다. 그리고 강현은 은사였던 7명의 교수 중 한 명의 방문을 받았다. “김 교수님! 여기까지 왠 일로! 여전히 강녕하시네요.” 김은철 교수는 강현에게 전기공학을 담당해 가르쳐준 은사였다. 지금은 은퇴해서 집에서 소일거리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얼마 전 일이었다.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알고 있니?” 김은철 교수의 말에 강현은 고개를 저었다. 한국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한국이 중국이 되어버리겠구나.” 김은철 교수는 대량으로 들어오는 중국인 빈민층과 그들이 공업 지역 근처에 만들기 시작한 차이나 타운에 대해서 깊은 우려를 표했다. 안그래도 가뜩이나 인종 차별이 심한 한국인이고 중국인 때문에 일용직 노동자부터 비정규직까지 일자리가 밀려나버렸기 때문에 중국인 노동자에 대한 증오와 불만이 장난 아니었다. 차이나 타운의 경계 부근에서 혈투가 벌어지고 이런 혼란한 와중에 조폭들이 독버섯처럼 피어났다. 이들은 한국의 노동자를 보호하면서 보호비를 받으며 세력이 커져갔다. 싸우면서 닮는다고 하던가? 수틀리면 칼부터 뽑고 보는 중국인들을 따라 사시미 한자루씩 허리춤이 끼워 놓고 다니는 건 차이나 타운 근처 한국인 조폭들에게는 필수나 마찬가지 일이었다. 방검복을 제작하는 업체는 때아닌 특수를 맞았다. 유혈이 낭자한 일이 심심하면 일어났다. 물론 공중파에서 이런 일을 방송하는 일은 없었다. 차이나 타운뿐만 아니라 각종 외국인 범죄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 일들이 방송되면 다문화 정책을 추진하는 정부가 거센 역풍을 맞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언론의 무관심 속에서 자칭 민족주의를 수호하는 청년들이 폭력으로 차근차근 영향력을 넓히고 있었다. “내가 지금 80년대를 살고 있는지 헷갈릴 정도란다.” 김은철 교수의 말에 강현은 당연한 일이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과 중국의 관계는 뿌리가 깊었다. 먼 옛날 고조선 시대부터 중국과 한국은 싸우고 화해하고를 반복했다. 그리고 삼국시대에 신라가 당을 끌어들여 통일을 이룬 이후부터 고려, 조선을 거치며 한 번도 중국의 국력을 뛰어 넘어본 적 없는 한반도가 중국의 영향을 벗어난 적도 없다. 과학 영재라고 한국에서 과학 교육만 받다가 미국에 와서야 기본적인 교양 교육을 받은 강현의 시각으로는 한국은 언제나 중국의 속국이었다. 외침의 역사를 반복하며 원과 혈연이 맺어진 고려 왕실은 말할 것도 없고 조선의 왕 또한 언제나 중국의 황제로부터 인신과 고명을 받아야 그 정통성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당시 동아시아 외교 관계에서 세상의 중심인 중국에게 인신과 고명을 받는 건 당연한 일이었지만 근대 서양인의 시선으로는 속국이나 다름없었다. 명목상 제후국이고, 사실상 독립국이라고 자칭하지만 왕의 정통성을 타국에게 인정을 받아야 하는 국가는 과연 독립국인가? 문화적으로 독립을 이루었다고 하지만 나라를 다스리는 사대부들이 주로 쓰는 문자가 한자인 나라는 정체성이 도대체 무엇인가? 미국에서 역사교육을 받은 강현의 시각으로는 자본주의-공산주의 이념으로 갈라섰던 중국과 한국과의 관계가 과거의 그것을 돌아가는 것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중국과 한국은 역사적으로 관계가 깊죠. 국제화 시대에 그리 놀랄 일도 아닙니다. 유럽에서는 기독교와 이슬람의 이질성 때문에 다문화 정책이 실패했지만 한국에서는 성공할 수도 있지 않을까?” 유럽 국가 중에서 이슬람 이민자를 받아서 다문화 정책을 성공시킨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 한국은 아주 자신만만하게 우리는 다르다며 다문화 정책을 진행하는 중이었다. 오랜 친분이 있고 같은 황인종에 유교라는 공통 분모까지 있으니 한국인과 중국인의 융화는 언어만 극복하면 어쩌면 쉬운 일이 될 수도 있었다. 제주도의 경우를 봐도 그렇다. 알짜배기 땅 대부분이 중국인 부자에게 넘어가면서 이들을 해외 투자를 위한 허브 자산이라고 부르고 있지 않은가? “.....” 김은철 교수는 강현의 말에 눈을 껌벅이며 할 말을 잃었다. 한국인의 입에서 이런 소리가 나오다니.. 충격적이었다. ‘아!’ 그제야 김은철 교수는 강현이 정상적인 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공계쪽으로 너무나 자질이 뛰어났기 때문에 그 외의 교육에는 소홀했다.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 확고히 자리잡지 못한 것이다. 김은철 교수는 똑똑해도 소용없다는 사실을 뼛속 깊이 자각했다. 그러나 교단으로 돌아가 인성과 재능을 동시에 가진 인재를 기르기에는 이미 너무 늙었다. 한자락 남은 열정으로 조국에 약간이라도 기여하겠다는 일념으로 우주까지 올라왔는데 그런 기대가 착각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그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꾹 참았다. 한국인적인 사고 방식보다 미국인적인 사고 방식을 가진 강현에게 이러니 저러니 말을 해도 결국 늙은이의 주책이 될 뿐이었다. 민족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한 이가 그가 보는 문제점을 인지할 리가 없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걸음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었다. 결국 김은철 교수는 아폴로티움 관광이나 하고 돌아갔다. 강현은 김은철 교수를 배웅하고 와서 서재에 앉아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에 잠겼다. [왜 그러십니까?] “아니 그냥.. 좀.. 뭔가 손해를 보는 기분이 들어서..” [손해요?] “한국 제현 그룹있잖아..” 강현은 한국이 중국과 매우 밀접하게 되었을 때의 시뮬레이션을 그려보았다. 5000년 문화 대국을 상대로 한국이 과연 한국 고유의 문화를 지켜낼 수 있을까? 그 고유의 문화 역시 중국에서 들여온 유교를 500년 동안 발달 시킨 산물이지 않은가? 한국이 중국화되면 제현 그룹은 어떻게 될까? 그리고 자신에게는 어떤 영향을 끼칠까? 제현 그룹이 중국의 입김으로 인해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할 상황이 되면 자신은 그것을 외면할 수 있을까? 강현의 고민은 곧 식사하라고 자신을 데리러 온 준에 의해 잠시 생각 저편으로 넘어갔다. “아빠, 식사하세요.” “그럴까?” 강현은 문을 열고 아들을 품에 안은 다음에 거실로 나왔다. 보행기를 탄 딸이 여기 저기 분주하게 돌아다녔고 기미 원단을 씌워 어설픈 인형처럼 보이는 로봇독이 그런 딸의 안전을 주시하고 있었다. 부엌에서는 HA 한 기가 샐리를 도와 접시를 놓고 상차리는 것을 돕고 있었다. “와! 맛있겠다!” 베이컨과 감자, 완두콩에 각종 야채가 어우려진 화려한 밥상을 본 준이 입에서 군침을 흘렸다. 강현은 준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 자리에 앉았다. 어느새 보행기로 옆에 온 시아가 우! 우! 옹알이를 하면서 맛있는 냄새에 반응했다. 샐리는 젖을 때고 이유식을 먹기 시작한 시아에게 맘마를 먹였다. 어느새 자신의 그릇을 후딱 비운 준이 동생에게 밥을 먹여주겠다고 샐리에게 앙탈을 부렸고 샐리는 준이 시아에게 이유식을 먹이는 모습을 감독하며 자신도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흐뭇한게 미소짓는 강현과 눈을 마주치고는 싱긋이 눈웃음을 지었다. 언제나 그렇듯 즐거운 식사 시간이었다. 강현은 식사가 끝난 후 샐리를 도와 식기를 정리했다. 분리수거가 철저한 이곳에서는 음식물 쓰레기를 함부로 하수구에 버리는 건 금물이다. 정수에 시간이 걸려서 샤워하다가 물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 음식물 쓰레기 같은 건 따로 비료통에 담아 발효시키는 것이 이곳의 생활 패턴이다. 비료통은 주기적으로 회수되어 우주 농장의 발효통으로 가서 양액 재배용이 되거나 좀 더 시큼하게 발효되어 아세트 산을 잔뜩 함유한 대체 농약으로 사용 되기도 한다. 강현이 그릇 하나에 싹싹 긁어 모은 음식물 쓰레기를 비우고 돌아오자 샐리가 말했다. “현. 오늘 은사님께서 왔다가 가셨잖아요.” “응.” “괜찮겠어요?” “응? 뭐가?” “한국이요.” “글쎄... 중국에 흡수되려나? 아니지 그럴 일은 없을걸?” 세계에 여기저기에 뿌리 박았던 차이나 타운이 수십년 동안 자리를 잡지 못한 나라다. 미국은 물론이고 세계 여기저기에 한국인 촌이 형성되었다. 한국인의 배타적 특성과 끼리끼리 문화는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보존해 주었다. 중국인 못지 않게 질긴 민족이 한국이었다. 중국에 흡수될 일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자본이지.” 국제화 시대, 자본의 논리를 앞세워 들어오는 중국 문화를 막을 방법은 있는가? 마데 인 차이나의 열풍에 미국도 온전하지 못했다.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라며 만리장성을 쌓았던 과거의 중국이라면 크게 문제될 일이 없겠지만 서양의 제국주의와 식민지 정책으로 확장정책이 무엇인지 제국의 패권이란 무엇인지 맛을 톡톡히 본 중국 대륙이다. 대(對) 티벳 정책과 소수민족 흡수 정책 및 동북 공정을 보아도 근대 서양의 전략을 수용해 자신들의 방식으로 수정하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보였다. 목적은 명료했다. 중국의 확고부동한 영향력을 착실하게 구축해 나가는 것이다. 알짜 부동산이 중국인의 손에 넘어간 제주도는 앞으로 중국이 한국에 어떤 식으로 영향력을 끼칠지 가늠할 수 있는 지표였다. 수백억 원대의 자산가가 한국 전체 인구를 능가하는 중국이다. 돈 싸움을 하면 한국이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부동산 불패를 외치는 복부인 마님들에게 중국 자본의 유입은 환영할 만한 일이겠지만 말이다. 과도한 자본의 유입으로 부동산 거품이 끼게 되면 결과는 자명하다. 바로 옆의 일본이 좋은 견본이다. 우리는 다르다고 생각하는 건 상식을 무시한 근거없는 자신감이다. 자유 시장 체제에서 경기는 순환한다. 거품은 반드시 꺼진다. 이것이 상식이다. 상식은 곧 질서의 기준이며 이것이 무시되는 순간 혼란이 발생한다. 그리고 혼란의 와중에서 기회를 잡은 자는 크게 흥하고 기회를 마주할 기회조차 잡지 못하는 자는 그렇게 밑바닥으로 떨어져 내린다. 큰 부자는 큰 흉년에 난다. 사실에 근거한 격언이다. 중국의 자본 진출과 그로 인해 거품이 끼게 될 한국의 경제는 크게 성장할 것이나 중국에 종속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세계 경제 위기가 오면 한국은 아이슬란드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우파 정당의 집권으로 대처리즘, 신자유주의 정책을 선택한 아이슬란드는 활발하게 외국 자본을 받아들이고 주가총액을 무려 5000% 넘게 증가시켰다. IMF 이전 한국에서 작은 거인이라며 열심히 밴치 마킹한 인구 30만명의 나라는 국제 금융 위기와 함께 침몰했다. ============================ 작품 후기 ============================ 열심히 고민을 했는데 획기적인 뭔가가 나오지 않는군요. 자신의 한계를 체감합니다. 213화 아이슬란드를 부유한 금융 강국으로 만들었던 외국 자본이 순식간에 빠지면서 천억 불의 돈이 사라졌다. 아이슬란드의 국민들은 이제 갖난아기에게까지 한 사람당 수 억 원의 빚을 진 셈이 되었다. 아이슬란드의 경제는 특별히 어떤 계기가 없는 이상 회생 불능이다. 한국이라고 다를까? 과도한 외국 자본의 유입을 통해 빚잔치 성과급 잔치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믿을까? 그리고 다시 한 번 경제 위기가 닥치는 아이슬란드처럼 붕괴할 것이다. 그렇게 한국 경제가 무너지면 주위 강국들의 입맛대로 움직이는 대리전 무대가 되어버릴 수도 있었다. 작은 체스판이 되어 러중일이 신경전을 벌이는 장소가 될 수도 있었다. 친러파, 친중파, 친일파들이 뒤엉키고 끝없는 정치 사회적 혼란이 지속될 것이다. “현은 어떻게 하고 싶어요?” “글쎄... 나는 한국이 망하든 말든 상관이 없지만... 아무래도 거기 있는 지인들을 생각하면 도와주고 싶지.” “그럼 그렇게 해요. 당신은 능력이 있잖아요. 후회할 일은 하지 말아요.” “아아..”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을 걱정하는 샐리의 애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리고 준과 시아가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물으면 말할 것도 있어야 하잖아요.” 이 부분에서 강현은 딱 선을 그었다. “아이들은 미국인이지 한국인이 아니야.” 세계화 시대다. 그리고 강현은 한국인임을 포기하며 미국을 선택했다. 그러니 강현은 미국인이다. 국적이란 그런 것이며 그래야 한다는 것이 강현의 지론이다. = = = = = 서재로 돌아온 강현은 오랜만에 잭과 통화를 했다. [오랜만이네? 무슨 일이야?] “한국 쪽 중국 동향이 궁금해서.” [아아, 이미 알고 있지.] 강현의 신변에 대한 건 CIA에서도 최우선으로 다루고 있는 첩보다. 강현의 고향인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은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미국이 관여하지 않고 있는 이유는 강현의 의중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CIA에서 파악한 바로는 한국에서 강현에게 중요한 것은 부모님의 무덤과 그의 어린시절에 인연이 있었던 사람 뿐이었다. 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이 형성되기 이전에 미국으로와 미국 시민으로서 교육받은 강현에게 한국이나 한민족이라는 단어는 크게 와닿지 못했다. 그 사실을 확인했을 때 CIA 국장은 한국 교육부장관에게 내심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강현같이 중요한 인물이 미국 이외의 국가에 애정따위를 가지고 있는건 국가 경쟁력의 보안에 심각한 위협사항이다. 실제로 과거 한미 미사일 개발 협정의 갱신 때에도 강현의 입김이 들어가지 않았던가? 그것이 단순히 은사였던 노교수의 채면을 채워주기 위해서였다는 다실이 안심할 수 있었지만 말이다. 물론 그 스케일의 크기에 강현에게 인연이란 무척이나 중요한 요소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하긴 연구실에 처박혀 사람을 만나지 않는 그에게 가치있는 인연은 무척이나 적고 그 수도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였다. [에.. 보자..] 잭은 천천히 CIA의 분석 결과를 읊어주었다. 각종 공기업의 민영화는 물론이고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통해 외국의 자본을 끌어들이고 있는 한국의 자산이 외국 자본에 종속되는 건 피할 길이 없었다. 레버리지 효과를 노리기에는 세계 경제가 많이 안좋다. 이미 과거 독재 시절, 엄청난 일본 자본을 끌어들였던 한국이 이제 와서 중국 자본이나 러시아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충분한 메리트가 있어야 하는데, 이 두 국가는 조선을 식민지로 삼아 착취하고 인권을 유린했던 일본과 달리 딱히 큰 경제적 리스크를 지지 않는 카드를 꺼내기 힘들었다. 일제의 만행에 대해서 입 다물어 준 대가로 엄청난 돈을 받을 수 있었지만 중국과 러시아는 그런 건덕지가 없었기 때문에 그들의 자본을 투자 받기 위해서는 그만한 유인책이 있어야 했다. 결국은 대기업이 잡고 있는 산업 영역 외의 시장을 개방하는 방법이 가장 빠르다. 여기에는 민영화도 포함된다. 지하철 사업에서 철수한 멕쿼리 역시 외국계 자본이다. [결국은 주위 강대국들의 완충지대로 남게 될 거야.] “한 국가만의 자본에 종속되는게 아니라?” [지정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걸 알잖아?] 일본에게 한반도는 대륙 진출의 교두보, 중국에게는 태평양 진출의 교두보, 러시아에게는 동남아 진출의 교두보였다.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역시 중국인가?” [그렇지. 일본은 미국의 우방이니까. 러시아는 당분간 자국내 경제 문제로 동남아시아 진출까지 생각하기에는 무리니까. 그래도 차후에 한 발 걸치기 위해서 명분삼아 끈은 연결해 두겠지.] “미국의 입장은?” [일단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는 선에서 자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기로 했네.] “흐음....” 강현은 고민했다. 뭐가 가장 좋은 방법일까? 좋은 방법? 누구를 위한? 갑자기 골치가 아파졌다. “나는 그냥 거기에 있는 지인들에게 별로 피해가 안갔으면 더 이상 바라는 건 없어.” [그럼, 거기에 맞는 몇 가지 방안이 있어.] 잭이 제시한 방법의 방향성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미국이 개입하는 것, 다른 하나는 제현 그룹을 이용하는 방법이었다. 미국이 일본과의 협조 체계를 구성하면서 러시아가 개입하기 전까지 적절한 균형추를 맞추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는 노골적인 중국에 대한 견제로 보일 수 있었다. 또한 우주 도시를 공유하는 일본은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도 고려해야 했다. 하지만 제현 그룹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면 미국은 그런 부담을 줄일 수가 있었다. 제현 그룹이 중국과 일본의 영향력 확대를 싫어하는 이들의 울타리가 되어 주는 것이다. “문제는?” [제현 그룹의 운영에 미국의 입장이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지. 정경 유착이라고나 할까?] “제현 그룹에 피해가 가는 일은 아니지?” [글쎄.. 상황에 따라서 손해가 갈 수도 있지. 기업의 목적은 이윤 창출이잖아. 제현 그룹의 입장에서는 중국이 손을 내밀면 잡는 것이 유리할 수도 있어. 위치가 남한이고 또한 중국에 수출도 하잖아.] “.... 내가 판단할 일이 아니야. 카랄니와 상의해 봐야해.” 제현 그룹을 경영하는 건 강현이 아니었다. 카랄니의 동의가 없다면 제현 그룹을 이용하는 방안은 수용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의외로 카랄니는 쉽게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습니다. 오히려 그쪽이 편하겠네요.] 사실 한국의 대기업들과 부딪히면서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되는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특히 배임혐의로 판결을 받고도 또한 보석으로 풀려나 다시 일자리로 돌아가는 행태는 어이가 없었다. 좀 한 두명씩 감옥에 갇혀주면 신경쓸 일이 적을 텐데.. 그러지 못하는 이유를 그동안 이해하지 못하는 카랄니였지만 오래 한국 기업의 경영자로 있다보니 일의 배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는 정경유착이 장난이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다. 기득권을 빼앗자는 강현의 비전에 열정을 불태우며 뛰어든 카랄니에게 한국의 정치세력과 결합한 대기업들의 행보는 매우 귀찮고 까다로운 것이었다. 제현 그룹에게는 불리한 법규가 세워지거나 심지어는 고무줄 잣대가 들이대 지기도 했다. 열성적인 시민 지지층과 강현이 뒤에있다는 이미지가 없었다면 영향력의 확장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그런데 중국까지 등에 업는다? 중국에 큰 수출시장을 가진 제현 그룹은 물론 동반자 관계인 세컨드 밴드 연합에도 상당한 타격이 올 것이 분명했다. 정치와 경제가 분리되는 원칙이 지켜져야 건전한 시장자유주의가 성립되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니 카랄니도 뒷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미국인인 카랄니에게는 아무래도 미국 정부가 더 편했다. 어차피 지금도 미국 정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지 않은가? 한국인 우주 인부를 고용하여 우주로 보내는 것 역시 정경 유착이라면 정경 유착이었다. 사실상 정치와 경제는 분리할 수가 없었다. 이로서 제현 그룹이 미국 정부의 편의를 볼 수 있게 되면서 한반도 내에 새로운 친미 세력이 형성되는 계기다 되었다. 이는 과거,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하면서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친일이 되었다가 친미가 되었다가 하는 매국 종자와는 태생이 달랐다. 그렇기 때문인지 더 민족주의적이며 미국이라는 세계에서 한국인의 권리와 이익을 보호하는 것에 관심을 두었다. 다민족 국가인 미국이 우주에 가장 먼저 진출하며 세계의 패권을 쥐었기 때문에 가능한 논리였다. 차후 한반도는 이해 관계가 첨예한 러중일 세 나라간의 알력이 부딪히고 서로 간을 보는 장이 됨과 동시에 동아시아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해 이 세 나라에 대한 외교 카드로 대한민국을 지원하는 미국이 감시를 하는 상황이 된다. 나라 내부는 혼란스럽지만 외교적으로는 오히려 안정한 상황이 되는 것이다. 내부의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서 외부의 혼란을 이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대상 국가에 내부적으로 혼란을 일으켜 외부적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 없게 만드는 것 역시 정략의 한 방편이다. 세 강대국 사이에 끼인 한국의 미래란 어쩌면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 = = = = “다녀오겠습니다!” 아폴로티움에 드디어 학교가 생겼다. 이름은 오리온 스쿨이었다. 우주에 있는 학교에 걸맞게 별자리를 학교 이름으로 가져왔다. 인터넷으로 기초 과정을 교육받던 준은 친구들을 만난다는 기대에 가득차 문을 박차고 나갔다. 집밖에서는 무인 전동차가 대기 중이었다. 아폴로티움의 공공 교통으로 자리잡은 무인 전동차는 아폴로티움이 제어하는 콜택시라고 할 수 있었다. 개인용 자가용은 아직 허가가 되지 않았다. 허가가 난다고 해도 대기 오염 문제 때문에 오직 전기 자동차만이 허용될 예정이었다. “잘 다녀와라.” 강현과 샐리가 아들을 배웅했다. 준이 무인 자동차에 몸을 싣고 멀리 사라졌다. 이제는 샐리가 나갈 차례였다. “시아 잘 보고 있어요.” 이제는 학교 이사장의 자리에 선 샐리는 학교의 운영을 위해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사립학교지만 아폴로티움의 첫 학교이기도 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조심스럽게 진행해야 했다. 그만큼 업무에 부담도 많았지만 아즈삭이 보조를 잘해주고 있었다. 샐리가 역시나 천재의 피조물 답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으아앙!” “자자, 엄마에게 잘 다녀오시라고 인사해야지.” 샐리가 사라지는 것에 칭얼거리면서 울음기를 보이는 시아를 달래기 위해서 강현은 진땀을 흘렸다. 다행이 그의 노력이 헛되지는 않았는지 시아는 터트리려는 울음보는 참아냈다. 강현은 딸을 안고 느긋하게 소파에 앉아 딸의 재롱을 시간가는 줄 모르고 감상하다가 아즈삭의 알림음에 다시 서재로 들어갔다. [박사님. 업무 시간입니다.] 강현의 공식적인 업무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였다. 피도 눈물도 없는 아즈삭의 칼 같은 스케쥴 관리에 강현은 딸을 안고 서재로 들어갔다. 자택 근무의 메리트다. 근래에 들어 강현은 다시 신 통일장 이론에 몰두하고 있었다. 얼마전 빚어졌던 중력파 검출 논란이 계기였다. 중력파의 검출은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을 완벽하게 증명하는 증거이고 중력파의 성질을 연구해서 우주를 전자기파가 아니라 중력파로 관측할 수 있을 수도 있다. 이는 빛을 내지 않는 운석군이나 블랙홀, 성운 같은 것도 관측해 좀 더 정밀하게 우주를 관측할 수 있는 패러다임의 혁명을 불러올 것이다. 214화 <20-가족> 그러나 중력파의 검출은 쉬운 문제가 아니다. 전통적으로 중력파의 검출은 중력이 시공간을 왜곡시킬 때의 변화량을 관측하기 때문에 빛을 이용한다. 광학 자이로스코프의 원리와 마찬가지로 시공간의 왜곡으로 발생하는 경로차이가 만들어내는 빛의 간섭무늬의 변화를 측정하는 하는 것이다. 하지만 원시 중력파의 검출을 주장하는 미국 연구팀은 남극에 있는 망원경으로 우주 배경 복사의 편광 상태를 면밀하게 관측한 것을 근거자료로 내놨다. 이 근거자료에 대해서 많은 전문가들이 충실하지 못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편광에 영향을 주는 요인 중 중요한 두가지인 싱크로트론(가속전자)이 내는 빛, 그리고 우주 먼지에 의한 편광 효과가 고려되었는지가 문제였다. 물론 미국 측에서는 다 고려했다고 주장했고 이를 뒷받침하려면 다른 연구팀이 동일한 결과를 내는 수 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결론은 나오지 않았고 새로운 연구 방향의 제시에 그칠 수도 있었지만 이는 강현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의 완전함을 완성하는 마지막 조각이 바로 중력파다. 그리고 그 아인슈타인이 말년에 완성하려고 하던 것이 통일장 이론이었고 강현이 그 바톤을 이어받아 신 통일장 이론을 구현했다. 그러던 와중에 중력파 논란이 이니 관심이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상상력이 제멋대로 발휘되며 뇌가 포도당을 소비하기 시작했다. 과학자같이 생각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이들이 겪는 어쩔 수 없는 직업병이었다. 그리고 강현은 어떤 아이디어 하나를 얻었다. 바로 힉스입자가 먼저인가 아니면 질량을 가진 물체가 먼저인가에 대한 물음이었다. 힉스 입자는 질량을 부여하는 입자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질량이 부여되기전 입자의 에너지는 어떠한가? 에너지 보존 법칙에 의하면 힉스 입자가 질량을 부여하기 전에도 입자의 에너지는 보존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질량이 곧 에너지라는 말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게 된다. 고에너지 밀집체에 힉스 입자가 질량이라는 가격표를 붙였다는 말이 더 정확한 표현이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다시 질량과 중력과의 관계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중력은 ‘질량’이 있어야 생기는가, 아니면 단순히 ‘고에너지’의 집적으로 영향을 받는가? 전자는 힉스 입자가 중력의 발생에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후자는 에너지와 공간 사이의 관계를 탐수할 수 있는 시초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을 실험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추측하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강현의 신 통일장 이론은 다행이 이를 추측할 수 있을 정도로 수식적인 완성도를 보였다. “끄응...” [그 부분 실수하셨습니다.] “아차!” 수식의 오류는 아즈삭이 담당하고…. [박사님. 그곳은 왜 그렇게 처리하셨습니까?] “상수항이라서 어차피 하나로 묶어서 처리하면 편해. 아참! 치환한 내용은 잘 기록하고 있지?” [네, 그렇습니다.] 수식의 전개와 그 방향성은 강현의 창의성과 직감이 담당했다. “오오!” [이것으로 끝입니까?] 둘의 훌륭한 지적 분업으로 강현은 학계를 또다시 출렁이게 만드는 논문을 내밀 수 있었다. “그래. 이것으로 반중력 기술의 개발을 꿈꿀 수가 있게 됐어.” 강현이 도출한 수식상의 결론에 따르면 시공간의 휘어짐은 질량의 유무와 상관없었다. 고에너지 집적이 곧 시공간을 휘게 한다. 그리고 힉스 입자는 이런 시공간의 휘어짐에 따라 흐르게 될 수 밖에 없다. 질량을 가진 입자로 끌려들어가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태양이라는 거대한 질량 덩어리를 향해 날아가는 힉스 입자는 태양의 중력장 안에 있는 질량을 가진 입자에 부딪히게 된다. 그리고 이 입자는 강현이 발표한 힉스 제로의 설명과 마찬가지로 편향된 힉스 입자의 농도에 의해서 운동량 보존 법칙이 붕괴되는 상황을 맞이한다. 편향된 힉스 입자에 의해서 질량이란 요소가 스칼라가 아니라 벡터가 되면서 일어나는 뉴턴 제2법칙의 붕괴 현상은 고속으로 움직이는 전자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렇게 붕괴된 운동량 보존 현상으로 인해서 입자는 이동하게 된다. 태양으로 끌려가는 것이다. 이로서 중력 현상은 힉스 입자의 편향에 의한 뉴턴의 제2법칙 붕괴이고 중력자는 존재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가설이 완성되었다. 이 가설에 과학자들이 비판 어린 목소리를 내는 것도 당연했다. 중력자가 없다면 중력파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중력파의 존재가 부정당한다면 근 한 세기를 주름잡은 일반 상대성 이론에 오류가 생긴다. 반발은 양자 중력학자들로부터 시작되었는데 중력자의 존재를 예측하는 양자 중력학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내용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강현의 말은 세상에 존재하는 힘은 네 개가 아니라 세 개라는 말과 동일했다. 전자기력, 약력, 강력은 모두 그 힘을 매개하는 매개입자가 존재하는데 중력은 아니라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현은 그들의 평가 따위는 원하지 않았다. 정말로 가설이 잘못 됐다면 실험으로 누군가가 실험으로 검증해 주기를 바랬다. 하다못해 가설에 사용된 수학 공식의 유도 과정에서 오류를 집어내 주기도 했다. 논문 본문 내용보다 더 많은 부록에 기재된 유도 과정은 연구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위한 것이었다. 게다가 어쩌다 필이 꽂혀 한 달 동안 연구실에 처박혀 만든 수식은 그 혼자서 검증하기에는 너무나 방대했고 담고 있는 물리적 의미가 많았다. 수학적인 오류가 없는 것 만으로도 기적에 가까웠다. 실제 적용에 맞지 않는다고 해도 놀라울 일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력장이 뭔지 정확히 모르는 상황에서 중력자가 없다고 중력파가 생기지 않는다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모든 판단은 과학자들의 뜨거운 논쟁과 가속되는 연구를 남겨두고 보류되었다. 한 편 강현의 힉스 제로 현상에 관한 논문을 보고 신 통일장 이론이 옳다고 믿으며 EM 드라이버를 반중력 드라이버로 개선하려던 이들은 허탈했다. 강현의 논문 대로라면 반중력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지 않은가? 물리학적으로 자연은 대체적으로 대칭성을 이룬다. 물질에 대칭되는 반물질이 있고, 양전하가 있으면 음전하가 있고, 자력에는 N극 S극이 있듯이 중력자가 있다면 반중력자도 있을 수가 있었다. 하지만 강현의 설명은 사실 중력이 힉스 입자에 의해서 발생하는 현상이라지 않은가? 곧 힉스 제로 현상이 근본 원리라고 생각되는 EM 드라이버가 사실은 반중력 드라이버였다는 놀라운 반전에 연구자들은 골머리를 싸맸다. 여기서 더 어떻게 EM 드라이버의 효율을 올릴 것인가? 제반 기술을 더 개량하기 위해서는 더 가볍고 출력이 좋은 소재가 필요했다. 결국은 신소재였다. 인류의 생산력과 문명이 금속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급속도로 발전했다. 반도체의 개발로 인류의 지적 능력은 비약했다. 그만큼 신소재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각국이 EM 드라이버라고 명명된 반중력 드라이버의 개선을 위한 전략적인 움직임에 돌입하니 기술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미국 역시 마찬가지였고 강현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강현은 미국 정부의 요청에 난색을 표했다. [어째서입니까?] “바빠요.” [왜요?] “오늘 중으로 왜 바쁜지 공문이 올라갈 거에요.” 담당자는 초조하게 강현이 올리는 공문을 기다렸다. 그리고 곧 NASA에 강현의 이름으로 제출된 제안서를 보고는 경악했다. 그리고 왜 강현이 바쁜지 알게 되었다. GPA 프로젝트. Giant Particle Accelerator를 건설하는 프로젝트였다. 어디에 바로 우주 공간에. 지구 상에 현존하는 모든 입자 가속기를 합친 것보다 더 크고 출력도 10배는 더 강한 입자 가속기를 짓겠다는 강현의 야심찬 포부에 NASA의 모두는 기함했다. 도대체 왜? 이레이 부장이 급히 화상 전화로 물었다. [너무 큰 거 아닙니까?] “우주니까요.” 무중력 상태이니까 중량 부하를 고려하지 않고 무식하게 큰 구조물을 지을 수 있다. 사람이 거주할 목적이 아니므로 큰 문제도 없었다. “그리고 이론을 검증해 봐야죠.” [아무리 그래도 너무 과한 것 아닙니까?] “일단 반만 지을 거에요.” [반만 짓다니요?] “고에너지 집적체가 공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먼저 확인하는 실험을 할 거에요.” 강현이 설계하려는 입자 가속기는 나선형이다. 중앙에서부터 밖으로 돌면서 가속한다. 출구 부분은 그냥 우주공간이었다. 그러니까 이걸 두개를 지어 출구 부분을 맞대면 입자 가속기 및 충돌장치가 되는 것이다. [거기까지만 지으시면 안됩니까?] 반만 지으면 예산도 반, 시간도 반만 걸린다. “일단은 그렇게 할게요. 그래도 입자 가속기로 완성 시킬 생각이니까 기억은 해두세요.” [왜 입니까?] “반물질 생성용이에요.” [반물질?] “핵물질은 언제나 고갈의 위험이 있잖아요. 그리고 태양 전지 역시 항성계 내에서는 쓸 수가 없구요. 앞으로 우주 개척을 위한 에너지 원으로는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핵융합로이고 다른 하나는 반물질이에요. 유지 관리에는 핵융합로가 좋겠지만 출력은 반물질이 앞설 테니까 다 제각기 쓸모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지금 미리 반물질 생산 기술과 보관 기술, 사용 기술까지 축적해 놓으려고 하는 거에요.” 강현의 말에 이레이의 표정이 멍해졌다. [우주 진출을 생각하고 있습니까?] “적어도 제가 죽기 전까지 인류의 생활권을 태양계 전역으로 확장하고 싶어요.” 이레이 부장은 강현이 포부에 혀를 내둘렀다. 그렇게 GPA 프로젝트가 발동했다. NASA는 물론 미국 전역에서 입자 가속기 설계에 참여했던 기계 공학자, 전기 공학자나 컴퓨터 공학자, 물리학자까지 대거 동원되어 GPA 설계에 동참했다. 온라인을 통해서 설계도를 함께 보면서 인공지능과 함께 여러 곳의 문제점과 개선 사항, 혹은 좋은 아이디어를 공유했다. 이 모든 것을 주관하는 것은 바로 강현과 아즈삭이었다. 매일 수천개의 피드백을 받고 정리하고 설계도를 수정했다. 의견이 적용된 아이디어는 그 제안자의 이름이 설계도 저작권자로 같이 등록되었다. 출력이 큰 만큼 GPA의 크기도 컸는데 설계안에 참여하는 이들은 이 GPA에게 유니버셜 스네어(우주 달팽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나선형인 데다가 중앙부분이 산처럼 솟아 올라있었기 때문이다. 크기는 물론 아폴로티움에 버금갔다. 워낙 많은 예산이 드는 사업이라 설계도부터 완벽해야 했다. 아즈삭은 학술 분야와 개발 분야의 서비스를 지원하던 인공지능을 지휘하는 권한을 임시로 얻어(강현이 NASA에 부탁했고 미 정부가 각 대학과 연구 기업에 요청했다.) 설계도를 시뮬레이션하여 어떤 부작용이 없는지 확인하는 작업을 반복했다. 그와중에 발견된 위험 요소는 다시 피드백되어 설계자들과 연구자들이 검토하고 수정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그렇게 해서 시뮬레이션 상 위험률이 0.00004% 이하로 떨어지기까지는 무려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강현의 입장에서는 다소 답답했지만 번갯불에 콩볶아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NASA가 오랫동안 거래한 믿을 만한 제조 업체들의 규모가 커져야 했고 또한 우주 구조물의 부품에 대해서 경험이 많은 업체들도 출력 한계 자체가 높은 우주 달팽이의 부속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개발 시간이 필요했다. 215화 또한 새롭게 개발된 더 좋은 부품도 피드백을 받아 설계가 개선되는 작업을 통해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을 줄이게 되니 사전 준비를 철저하게 하면 할 수록 좋았다. 사전 준비가 철저하지 못한 채 시공에 들어가면 온갖 문제와 설계 변경 요청들이 쏟아져 나와 예상보다 비용이 훨씬 증가하게 된다. 어떤 공사라도 시공에 들어가면 견적에 나온 비용보다 더 많은 비용이 드는 건 다반사였고 우주 달팽이의 견적을 고려해 보았을 때 견적 대비 20%의 초과 비용만 나와도 강현이 돈맥경화에 걸릴 수 있을 정도였다. “돈이 모자라겠는데...” 강현의 재산은 천문학적이다. 아폴로티움에 가진 온갖 지분을 제외하고 순수한 현금성 자산만 고려해도 또 3조 달러 정도된다. 플라즈마 엔진으로 벌어들이는 로열티는 그가 석유 제조 라이센스로 벌어들이는 돈 보다 더 많았다. 하지만 그만한 돈도 시공시 추가 비용이 발생하게 되면 간당간당했다. 그 정도로 이번 프로젝트의 크기는 거대했다. 그런 경우에 미국 정부의 도움을 받아도 되겠지만 되도록 정치 쪽과 관련이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거절했다. 정권이 유지되면 상관없겠지만 언제 정권이 바뀔지 강현도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가 정치에 관여하면 정권 유지에 유리하겠지만 온갖 잡소리를 들어가며 대선이나 선거에 개입하기도 싫었다. 심신을 쉬게 할 수 있는 가족들과 즐거운 과학이 있는데 굳이 인간 사이의 정치 경제적 이해관계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다. “뭘 만들지?” 돈이 없으면 돈이 될 만한 것을 만들면 된다. 가히 세기의 천재 다운 선택이였다. “음... 운송 기술이 돈이 될 것 같은데... EM 드라이버를 좀 더 개량해봐?” EM 드라이버를 개량해 실질적인 반중력 드라이버를 만들기 위해서는 EM 드라이버 개량에 획기적인 패러다임 변화가 필요했다. 강현의 신 통일장 이론을 통해 중력 현상이 힉스 입자의 흐름이라는 가설이 정말이라면 힉스 입자의 흐름을 조절해 반중력 드라이버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힉스 입자의 흐름을 어떻게 조절한다는 말인가? 지금 있는 유일한 방법은 EM 드라이버 밖에 없었다. 이론적인 성과를 기술적인 성과로 연결하는 건 다른 차원의 이야기였다. 수 많은 물리적 현상들을 고려해 가능성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바로 엔지니어의 분야였다. 강현은 잠시 EM 드라이버의 개량에서 고개를 돌려봤다. “아니면 군사 기술?” 인간의 과학 기술은 전쟁으로 인해 비약했다. 인본적인 관점에서는 비극이었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했다. 승리를 위해서 남을 죽이고서라도 내가 살고자, 뛰어난 기술로 뛰어난 무기를 만들어야 하는 인류의 비극은 현재 진행형이었다. 천조국이라는 별명을 가진 미국의 군수 사업은 규모가 막대하다. 이스라엘과 미국과의 관계가 재조정되면서 중동에 대한 미국의 외교 정책이 수정되었는데도 군수 산업은 오히려 더 발달하고 있었다. 다 미국의 우주 진출 때문이었다. 미국은 우주 방위를 위한 전략적인 무기 개발에 나섰다. 아폴로티움을 비롯해 센타리움과 유러피아에 설치된 MD 시스템을 우주용으로 개수하는 건 시발점에 불과했다. EM 드라이버와 플라즈마 엔진으로 인해 사장될 것 같았던 로켓 기술은 군사적으로 더 높은 기동성과 효율성을 보였기 때문에 군사기술 분야로 완전히 이동했다. 차후 우주 전투기에 액체 로켓 기술이 사용될 거라는 건 주지의 사실이었다. 그 밖에도 레이저 포라든지, 고고도 우주 강하 캡슐이라든지 우주 환경을 상정한 군사 기술을 개발 중이었다. 분명 우주를 평화적으로 이용하자는 유엔 협약에 위반되는 일이었지만 러시아도, 중국도, 일본도, 유럽도 진행하고 있는 일이었다. 국제적으로 제제하기에는 남은 회원국들의 국력이 이들에게 감히 뭐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국력이 곧 법인 국제 사회는 법이 없는 세상의 인간관계나 마찬가지다. 결국 인간이란 다~ 그런 것이다. “흐음.. EMP 기술을 개발해 볼까?” 뭐니뭐니해도 현재 이슈가 되는 군사 기술은 무인 병기다. 인공지능의 제어를 주축으로 다족형 소형 로봇들을 대량 투입으로, 광역 제압 효과는 물론 특정 타겟만 요격하는 스마트 요격 시스템의 장점까지 흡수했다. 미래전에 걸맞는 개념이었다. 거대 다족형 병기는 기동력과 치명적인 취약점이 있어서 계획 자체가 반려되었다. 알라의 요술봉 한 방에 기동력 무력화가 되는 거대 다족형 병기는 전장에서 신뢰할 수 없는 전력이었다. 이런 무인 병기의 인해전술을 무력화 하는 방법은 현재로서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다른 인공지능을 이용한 정보전이고 또 하나는 무인 병기를 무력화하는 광역 병기, EMP다. 전자의 경우에는 무인 병기 제어의 중심인 인공지능을 직접 공략한다던가 아니면 무인 병기를 자체를 해킹하는 방법이 있다. 이 부분에서는 뛰어난 프로그래머와 경험 많은 인공지능이 반드시 필요했지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복잡한 현대의 암호화 기술로 방어하는 인공지능의 방호벽을 뚫고 해킹에 성공하는 건 같은 인공지능에게도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전장에서 제시간에 무인 병기를 무력화할 정도로 공격을 하기 위해서는 해킹 전담 인공지능의 용량이 방어하는 인공지능의 용량보다 두 배는 상회해야 했다. 거기에 그런 인공지능을 운용하는 가상 적국을 상정하고 시스템적으로 대비도 해 놓았다. 주 제어 인공지능에 여러 대의 부 제어 허브용 소형 인공지능을 두어 해킹을 지연시키고 피해를 최소로 줄이는 것이다. 미국의 로봇독 부대에 있는 전술형 로봇독이 대표적인 예였다. 이런 저런 이유로 정보전으로 무인 병기 전술을 막는 건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치솟았다. 전쟁이란 결국에는 소모가 있을 수 밖에 없고 이쪽의 소모를 최소화하여 상대에게 최대의 소모를 강제하는 경제성은 총력전 양상이 될 수 밖에 없는 현대 전쟁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이었다. 그러므로 EMP 기술에 각국이 주목할 수 밖에 없었다. 일시적으로, 혹은 영구적으로 상대의 무인 병기를 비용을 적게 들여 무력화할 수 있는 이 기술은 전선이 확대되면 확대될 수록 그 효과를 톡톡히 볼 수 있었다. 여차하면 게릴라 전술에 사용할 수도 있었다. 아니면 EMP를 적 인공지능에게 직접 사용할 수도 있다. 일시에 적의 인공지능을 죽여버리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각국은 이런 EMP의 위협성에 대비해 대응책도 함께 개발되고 있었다. “아즈삭. 네 EMP 대비책은 어떻게 되어있지?” [그다지 좋지는 않습니다.] “왜?” [EMP 기술이 너무 빨리 발전하고 있습니다.] EMP 병기의 원리는 어떻게든 대상의 전자 회로에 인위적인 전위차를 형성해 정상적인 운용을 방해한다던가 회로에 물리적인 타격을 주는 것이다. 이 EMP의 타입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전자기파와 같은 파동형 펄스와 단일 방향 전위가 해일처럼 앞으로 진행하는 정전기형 펄스가 있다. 전자가 교류형 펄스라면 후자는 직류형 펄스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이 두가지 타입의 EMP 공격을 막기 위한 방법도 두 가지로 나뉘게 된다. 정전기형 펄스파를 막는 방법은 생각보다 쉽다. 패러데이 케이지의 원리를 사용하면 된다. 도체로 둘러 쌓인 공간이 전기장 안에 놓여지게 되어도 그 내부의 전위는 항상 0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수학적으로도 이 사실은 증명할 수 있다. 즉, 전자기기 외부를 금속코팅으로 둘러싸면 정전기형 펄스파는 막을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교류형 펄스파다. 전자기파의 형태를 띈 이 EMP의 공격의 침투성은 EMP가 가지고 있는 주파수와 방호 물질의 뚜께와 그 고유의 유전율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다. 당연히 방호물질의 두께가 두꺼울수록 EMP의 투과율은 지수적으로 감쇠한다. 그러나 기동성이 필요한 현대전에서 무인 병기라지만 덕지 덕지 EMP방호 물질을 두껍게 바를 수도 없었다. 그렇다면 유전율을 낮춰야 하는데 여기서부터가 아주 골치 아프게 된다. 특정 물질의 유전율은 정전기가 적용되는 상황에서는 측정하기가 매우 쉽다. 하지만 전자기파, 즉 교류의 상황이 되면 판이 뒤집어진다. 전자기파 내에서 물질의 유전율은 그 전자기파의 주파수를 변수로 가지는 함수가 된다. 그 뿐인가? 이제 이 물질의 유전율 값은 복소수까지 확장된다. 거기에 물질 고유의 특성인 결정구조와 밴드갭 구조를 3차원으로 표현한 브릴루엥 존, 상태밀도 함수까지 포함되어 물질 고유의 유전율을 계산하는 것이 매우 복잡하게 된다. 당연히 이런 복잡성으로 인해 기존 핵무기에서 방출되는 EMP를 막는 물질의 개발도 쉽지 않았다. 여기에 EMP 방어기술 개발을 더 힘들게 하는 건 주파수 변조가 어느 정도 가능한 EMP 기술이 탄생했다는 점이다. 그 근원에는 강현이 만든 반감기 가속 장치가 있었다. 특정 방사성 물질의 반감기를 가속하는 장치를 이용해 그 물질이 방사선 붕괴를 할 때 내놓는 감마선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역시, 공격이 방어보다 더 쉽구나.” 창은 방패를 피해서 상대를 공격할 수 있다. 그러니 상대는 방패로 상대를 후려치든가 전 방위를 막는 방패를 만들 수 밖에 없다. 아무튼 강현은 이렇게나 빨리 EMP 기술이 발전되어 아즈삭의 안전도 보장받을 수 없다는 것에 심각하게 생각했다. 아즈삭은 강현의 손발이다. 아즈삭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강현은 손발이 잘려나가는 고통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급하구나.” [그리 급하지는 않습니다. 전쟁이 일어나고 제가 최우선 타격 목표가 될 확률은 0.23% 밖에 되지 않습니다. 거기에 미국 본토가 공격받을 가능성을 고려하면 제가 파괴될 확률은 0.0000034%로 떨어집니다. 인간이 자동차 사고를 당해 죽을 확률보다 적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태평했던 거냐?” 강현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그러나 아즈삭의 무사태평함에 신경쓸 여유는 없었다. 자신의 손발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리고 돈을 위해서 바로 연구 개발에 들어갔다. 역시나 순수한 물질을 이용해 지금의 EMP 기술을 막는 건 불가능하다. 아니 가능은 하지만 아주 두꺼워야 했다. 그러니 신소재의 개발은 반드시 필요했다. 그러나 좀처럼 되지 않았다. 합금을 하게 되면 금속의 기계적인 성질이 변한다. 당연하겠지만 금속이 가진 전기적인 성질 역시 변하게 된다. 합금 기술은 처음에는 기계적인 성질을 조절하게 위해서 고안된 기술이지만 전기적인 성질을 조절하기 위해서 사용하기도 한다. 초전도체 합금이 대표적인 예였다. 강현은 처음에는 패러데이 케이지의 효과도 같이 고려할 겸 금속 합금을 이용해 EMP 방호 기술을 개발하려고 했다. 하지만 큰 문제가 있었다. 금속의 유전율은 아무리 합금을 해봐도 필요한 만큼 크게 변하지 않는 것이었다. 금속의 유전율은 진공의 유전율과 거의 동일하게 두는데 이유는 내부의 자유 전자에 있었다. 유전율의 물리적 의미가 외부 전기장에 의해 매질 내부에 얼마나 많은 전기장이 형성되느냐인데 자유전자로 인해서 금속 내부에는 전기장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복소 유전율이 있기는 하지만 주파수가 증가할수록 이상적인 금속 전도체의 유전율로 수렴하는 현상을 보인다. 즉, 주파수가 높아질수록 유전율을 그에 맞추어 더 낮출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감마선을 내뿜는 원자로를 납과 두꺼운 콘크리트로 둘러싸는 것이다. 216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강현은 고민했지만 재료 자체의 한계에 부딪히고 말았다. 현실을 인정하면 아즈삭의 외관을 두꺼운 콘크리트와 납으로 둘러싸면 해결된다. 어차피 벽이 두꺼울수록 이를 통과하는 전자기파의 세기는 기하급수적으로 감소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면 돈이 안된다. 두꺼운 EMP 차폐를 감당하기 위해서 무인 병기의 출력은 커져야 하고 크기도 커지고 생산 비용도 커진다. 되도록 EMP 차폐막이 얇아야 하는 이유였다. “어후우! 미치겠네!” 강현은 머리를 긁었다. 좀처럼 좋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방향을 바꿔야 하는데 지금 뭔가 고정관념에 갇힌 것 같았다. 그는 머리를 좀 쉬기 하기 위해서 서재 밖으로 나왔다. 샐리가 부엌에서 요리를 하고 있었다. “현, 타이밍 좋게 나왔네요.” “어라? 벌써 식사 시간이야?” 점심도 아니고 저녁이었다. 오전부터 내내 골머리를 싸매고 있었던 것이다. “점심 제대로 안 먹었죠?” “아니, 먹은 것 같아.” [제가 만들어드린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우셨습니다.] 아즈삭이 두루뭉실하게 대답한 강현을 지원했다. 강현은 아즈삭이 끼어든 것이 반거웠다. 끼니를 걸렀다면 또 샐리에게 한창 잔소리를 들을 뻔했다. “아, 그랬어?” 직접 그 샌드위치를 손을 집어 자신의 입으로 가져간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샐리는 그런 남편의 모습에 못 말리겠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강현은 그런 그녀의 뒤를 따라 부엌에 들어가서 상차림을 도왔다. “아빠아빠아빠아빠!” “꺄~하!” 준이 총총총 뛰어왔다. 그 뒤를 시아가 쪼르르 뛰어왔다. 둘이 입은 작은 망토가 펄럭였다. “부엌은 위험하니까 뛰지 말랬지.” 강현은 접시를 놓다가 준와 시아를 안아들고 거실로 나왔다. “아빠! 아빠, 숨박꼭질하자.” “숨박꼭질! 숨박꼭질” “숨박꼭질이 아니라. 숨바꼭질.” 강현이 미소를 지으며 두 아이를 거실 바닥에 내려놓자 어디론가 쪼르르 달려가며 남기는 말이, “아무튼! 아빠가 술래. 히히히.” “히이히이~!” 사랑스러운 아이들의 모습에 강현은 미소지었다. “허참..” 숨는다고 강현이 못 찾을 리가 없다. 당장 로봇독만 움직여도 아이들이 어디에 숨어있는지 알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반칙이다. 강현은 직접 찾아보기로 했다. 저녁 식사가 다 차려지기 전까지 아이들을 찾아낼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과연 거실을 나와 이층으로 올라가자마자 시아를 발견했다. 커튼 뒤에 숨었지만 앙증맞은 다리를 커튼이 다 가리지 못했다. 그 귀여운 모습에 강현은 싱긋이 웃고는 딸은 나중에 잡기로 하고 큰 아이부터 찾기로 했다. “어디에 숨었니?” 커튼을 지나치며 그러게 말하자 커튼 뒤에 숨은 딸이 킥킥 소리 죽여 웃는 게 들렸다. 딸이 즐거운 것 만큼, 아니 그보다 강현은 더 즐거웠다. 아들은 찾는 건 매우 쉬웠다. 딴에는 이불안에 장난감과 베게를 집어 넣어 더미로 삼았다지만 너무 부자연스러웠다. 기복이 없는 더미는 곧 숨을 쉬지 않는다는 것이고 아들은 다른 곳에 숨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일단 침대 밑을 확인한 강현은 바로 옷장을 열었다. “여기 있었네.” “치! 너무 빨라요!” 준의 볼이 불퉁해졌다. 이 집에는 숨을 곳이 너무 없었다. 그런 아들을 품에 안아들고는 시아에게 갔다. “쨘! 여기 있었네.” “꺄하!” 시아가 웃으면서 최준의 다리에 달라붙었다. 오빠보다 늦게 발견된 게 기분이 좋은가 보다. “식사하세요!” 그리고 때맞춰 식사하라는 소리가 들렸다. 강현은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저녁식사를 했다. “아빠! 숨박꼭질.” “알았다, 알았어.” 식사가 끝난 뒤에 숨바꼭질에 자신이 붙은 시아가 강현에게 놀아 달라고 보챘다. 강현도 그런 딸아이의 애교가 싫지만은 않아서 동참하게 되었다. 준은 숙제하라는 샐리의 말에 방에서 숙제를 하는 중이었다. “어디에 있을까?” “음... 여기에 있을까?” 강현은 또 커튼 뒤에 숨은 딸아이의 주위를 서성거리면서 엉뚱한 곳을 뒤졌다. 그럴 때마다 킥킥 웃는 딸아이의 모습에 딸바보가 되어버릴 것 같았다. 아무튼 강현도 세상이 그리 만만한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 두 번째에는 커튼 뒤에 숨은 시아를 금방 찾아냈다. “히잉...” 또 세 번째도 금방 찾아내자 볼이 불퉁해진 시아가 이번에는 망토를 뒤집어 쓰고 구석에 숨었다. 식사 시간전에 준과 함께 쓰고 다니던 망토다. “응? 뭐하는 거지? 안 숨니?” 강현의 물음에 시아가 귀엽게 볼을 부풀리고 항변했다. “이거 투명망토야! 아빠는 내가 안 보여!” 그제서야 저 망토가 아이들이 보채서 산 어떤 유명 영화의 상품이라는 것을 알았다. 세트로 지휘봉처럼 생긴 막대기가 같이 있었는데 왜 그리 비싼지 강현으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돈 많은 아빠였기에 선물로 사줄 수 있었다. 샐리에게는 아이들 버릇 나빠진다고 또 잔소리를 들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강현은 딸아이의 주장에 뭐라 말할지 머리를 굴렸다. 과학적 이성이 투명망토의 불합리성에 대해서 뭐라고 열심히 떠들었지만 아버지로서의 마음이 직업병을 막고 간신히 적당한 문장을 만들어냈다. “어.. 아직 투명해지지 않았나 보구나.” “지금 투명한 상태란 말이야!” 우물거리며 울음을 터트리려는 시아의 모습에 강현은 기겁을 하면서 허겁지겁 시아가 쓴 두건을 내려주며 눈을 가려주었다. “워, 원래 투명해지면 자신도 남을 못보는 거란다.” “정말?” 딸아이의 물음에 강현은 망막에 빛이 맺히는 현상부터 설명해 주고 싶어하는 과학자로서의 자신을 느꼈다. 하지만 아버지로서의 자신은 그래서는 안된다고 놀이에 집중하라고 외쳤다. 그래서 그는 간신히 한 마디를 했다. “물론이지.” 강현의 말에 득의양양해진 시아는 안쪽 구석으로 가서 그 투명망토라는 것을 뒤집어쓰고 눈을 푹 가렸다. 그제서야 강현은 시아를 울리지 않고 숨바꼭질을 계속할 수 있었다. “후우.” 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리니 샐리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강현의 아빠로서의 내공은 적지 않게 쌓여있었다. 샐리는 강현이 좋은 아빠라서 행복했다. “후후. 오늘 아이들과 놀아주느라 수고했어요.” 잠자리에서 샐리가 강현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칭찬해 주었다. 하지만 강현은 왠지 입맛이 썻다. “좋은 아빠 역할이란 참 어려운 것 같아.” 좋은 아빠라면 시아가 쓴 그것이 투명망토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어야 하지 않았을까? “괜찮아요. 그정도로 충분해요. 아이들은 어차피 세상에서 배우는 거에요 부모는 그냥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울타리가 되어주면 돼요.” “그런걸까?” 아이들은 언제 현실을 알게 될까? 부모로서 그 시기를 생각하는 건 답이 없는 문제 같았다. 강현은 고민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의 대물림은 존재했다. 아니라고 하지만 분명히 존재했다. 부유층은 자식들에게 더 좋은 교육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 노력했고 자식들에게 가정교육을 확실하게 시키면서 자기 관리와 시간 개념을 철저하게 익히도록 했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의 경쟁력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의 경쟁력에서 차이가 나는 건 당연했다. 생존 경쟁에서 승리가 보장된 이들이 행복한 삶에 대해서 고민할 수 있는 빈도수 역시 더 높은 것도 당연했다. 그러나 현실과 투쟁하는 이들에게는 행복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강현은 투명 망토에 숨어 키득키득 웃던 딸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없는 것을 있다고 믿기에 즐거울 수 있다. 사실은 없지만 그곳에는 행복이 있었다. 행복이란 어쩌면 그런 투명망토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투명망토인가?” 강현은 중얼거렸다. “어?!” 그리고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어디가요?” 강현이 자다가 말고 몸을 일으키자 샐리가 물었다. “잠시 서재에,” 하지만 강현은 말을 다 하지 못했다. 두 아이를 낳았지만 아즈삭의 지원으로 완벽히 몸 관리를 해, 처녀적 몸매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던 샐리가 여전히 미끈한 허벅지로 그의 다리 한쪽을 휘감아 놓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잘 때는 자야죠.” “자, 잠깐!” 그녀가 상체를 세워 강현의 목을 끌어 안더니 다시 침대로 끌어당겼다. 그녀의 붉은 입술이 강현의 입술을 덮었다. “읍! 으읍!” 그렇다. 잘 때는 자야했다. 강현의 과학자로서의 이성도 수컷의 본능을 막을 수는 없었나 보다. = = = = = 투명망토. 그것은 가능한가? 가능하다. 논문으로 나와있기도 하다. 굴절률이 음의 값을 가진 물질이 있다면 투명망토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음의 값을 가진 물질은 어디에 있을까? 없다. 그런 물질은 존재하지 않는다. 굴절률은 빛이 매질 1에서 매질 2로 입사할 때 ‘매질 2에서의 속도’분의 ‘매질 1에서의 속도’로 정의된다. 그리고 진공의 굴절률을 1로 두었을 때 모든 물질의 굴절률은 1보다 크다. 이말이 무엇인고 하니 모든 물질을 통과할 때 빛의 속도는 느려진다는 의미다. 당연한 말이었다. 아무런 걸리적 거림이 없는 진공을 통과하는 빛에 비해서 원자와 전자와 상호작용을 하면서 통과해야 하는 물질 속에서 빛이 그 진로가 방해 받는 건 필연적이었다. 그렇다면 투명망토는 불가능한가? 예전에는 그렇다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메타 물질이라는 개념이 생기면서 불가능하지만은 않게 되었다. 메타 물질은 기존 물질의 기하학적이고 반복적인 패턴형 배치를 통해 기존 물질이 가질 수 없는 특성을 형성하는 신소재 기술이었다. 비단 굴절률 같은 광학적 특성 뿐만 아니라 소리나 탄성같은 기계적 특성까지 조절할 수 있었다. 거기에 이미 레이더에 사용하는 마이크로파에 대해서 마이너스 굴절률을 가진 메타 물질은 개발이 완료된 상황이고 이를 바탕으로 레이더에 탐지 되지 않는 스텔스 기술을 개발 중이었다. “흠.. 광학적 블랙홀도 메타 물질로 만드는데...” 광학적 블랙홀은 빛을 한 점에 모아서 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 역시 특별하게 고안된 메타 물질을 이용해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빛을 완전히 가두어 버린다. 또한 그런 성질을 이용해서 특수한 레이저도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었다. 매질로 선택된 물질의 들뜬 현상을 이용하는 레이저는 적외선보다 긴 파장, 마이크로파나 라이오파 같은 영역의 빛을 레이저로 만드는 것이 불가능했다. 왜냐면 들뜬 전자나 원자의 에너지가 여기되며 나오는 전자기파의 에너지가 그렇게 작은 물질이 아직 발견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메타물질로 만든 광학적 블랙홀 기술을 통해 레이저로 만들기 불가능한 영역의 전자기파도 레이저로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 메타 물질의 가능성이 그렇게 넓으니 감마선을 막아내는 것도 가능할지 모른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방법론도 생각해 놓았다. 바로 전반사가 그것이다. 굴절률을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빛이 물질로 들어갈 때 물질의 방향으로 어느 만큼 꺽이냐를 표현한 수치다. 그리고 굴절률이 큰 물질에서 굴절률이 작은 물질로 빛이 입사할 때에는 입사각보다 굴절각이 더 커진다. 그리고 입사각이 점점 커짐에 따라 굴절률의 비율만큼 굴절각도 점점 커지고 마침내 물질의 경계선에 굴절된 빛이 겹치는 순간 빛은 에너지의 손실없이 깔끔하게 반사되어 나간다. 이것이 바로 전반사라는 현상이다. 217화 이 원리를 이용한 첨단 기술 중에 대표적인 것이 바로 광케이블이었다. 광케이블은 굴절률이 큰 코어를 굴절률이 작은 유리로 둘러싼 구조로 되어 있어 빛을 멀리 보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거울과 달리 전반사 현상은 빛의 에너지 손실이 극미하기 때문이다. 이런 전반사 효과는 공기나 진공에서 들어오는 빛에서는 일어날 수 없다. 왜냐면 모든 고체 물질의 굴절률이 더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이너스 굴절률을 가진 물질이 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전반사의 효과가 진공에서 들어오는 빛에서도 일어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감마선도 마찬가지다. 만일 마이너스 굴절율을 가진 메타물질이 실현 된다면 전반사의 원리를 이용해 특정 각도로 오는 감마선은 완벽히 차단할 수 있다. 아니 굳이 마이너스 굴절률이 아니어도 된다. 그저 굴절률이 1보다 작은 물질이라면 전반사가 가능하다. 강현은 수집해 놓았던 메타물질의 자료를 분석하면서 구조를 파악했다. 광학적 특성을 형성하기 위한 메타물질은 거의 대부분 전기 회로의 요소들로 구성이 되어 있었다. 전자기적인 상호작용이 일반적인 원자나 전자와 다르게 일어나도록 코일의 전자기 유도적 특성이라든지 축전기의 임피던스 효과 따위가 고려되어 매우 복잡햇다. 그래서인지 현재 개발된 거의 모든 메타물질은 2차원적으로만 그 특성을 보이지 3차원적으로 특성을 보이지는 못하고 있었다. 이유는 여러가지지만 대표적으로 두 가지 큰 문제가 있었다. 하나는 이론적인 차원에서 2차원적 특성을 3차원적인 특성으로 만들기 위해서 추가되는 3차원 축에 대한 추가 요소의 단순한 선형적 합이 크게 신통한 효과를 못 본다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마치 책상을 3차원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책상 다리를 추가로 90도로 올려 붙이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었다. 기존에 붙은 책상 다리는 2차원적으로 여전히 책상 다리의 역할을 할 수는 있지만, 추가로 붙인 책상 다리로 책상에 추가된 특성은 쓸모 없음 혹은 가게 간판 따위 같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특성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이는 책상이라는 것이 본래 땅바닥 위, 2 차원에서 그 특성을 보이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즉, 책상을 3차원 방향으로 사용하기 위한 책상으로 설계하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3차원 환경을 고려한 디자인이 필요했고 이는 3차원 메타물질의 개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두번째 문제는 메타물질을 구현하기 위한 기술적 난이도였다. 광학적 메타물질은 기본적으로 작은 전기 회로의 일정한 배열이라고 할 수 있다. 콘덴서적인 특성, 코일적인 특성도 구현한 작은 단위 요소는 그것 하나로는 전혀 특이특성을 보이지 못하지만 일정한 배열을 통해서 그 특성을 보인다. 이 와중에 실제적인 적용을 위해 이 단위 요소를 소형화시키면 시킬수록 극도로 정교한 금속가공기술이 필요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소형화 시키게 되어 단위 요소의 크기가 작아지면 단위 요소 자체의 전기적 특성이 변하는 것도 고려해야 했다. 단위 요소의 크기 자체도 메타물질을 개발하기 위한 변수가 되는 것이다. 단위 요소의 크기와 구조, 단위 요소의 배열, 그리고 그 배열에 의한 단위 요소간의 상호 작용들이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감히 사람의 머리만으로는 이것들을 복합적으로 고려한 디자인을 할 수가 없었다. 다행이 요즘에는 인공지능이 대학마다 있어서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어려웠다. 특정 단위 요소의 설계와 배열이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결과를 추측하는 건 인공지능의 시뮬레이션 기능 덕분에 어려운 문제는 아니었지만 목표하는 특성이 나오도록 단위 요소를 예측설계하고 그것을 배열하는 방법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강현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여러 단위 요소를 설계하고 그것을 배열하고 시뮬레이션하는 일을 반복했다. 그러나 곧 이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설계하고 시뮬레이션하고 결과를 확인하고 다시 설계하고.. 만들 수 있는 단위 요소의 가짓수와 단위 요소를 배열할 수 있는 수는 그 경우의 수가 무한대로 있으니 무한대로 작업을 진행시켜 나가야 했다. 전형적인 Try&Error 방식으로, 원하는 성능을 가진 메타물질을 만드는 건 순전히 운에 맞길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시행착오를 줄이려면 결국에는 메타물질에 대한 수학적인 모델이 필요했다. 하지만 아직 그런 수학적 모델은 없었다. 광학적 메타물질을 설계하는 기본 이론은 결국에는 전자기학이었지만 메타물질처럼 수 많은 회로의 집합체에 적용할 수 있을 정도로 메크로하고 집합적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강현은 이를 인지하고 그에 걸맞는 수학적 모델을 만들어 보려고 했지만 이것 역시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단위 요소의 회로가 닫힌 구조인지 열린 구조인지, 평면인지 3차원 형태인지에 따라서 수학적 모델 역시 무수하게 많이 만들어지기 때문이었다. 하긴 전기전자공학도 그것의 이론 수식은 몇 페이지 분량에 불과하지만 이를 바탕으로 발전된 공학적인 기술은 엄청나게 많았다. 이는 바로 과학 현상을 분석하고 규명하려는 과학과 이를 응용하는 공학의 근본적인 차이였고 메타물질의 연구는 보다 더 공학쪽으로 치우쳐진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현은 메타물질의 연구에 대한 태도를 전적으로 바꾸기로 했다. 감마선을 막는 걸 목적으로 하는 메타물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냥 메타물질을 만드는 ‘놀이’를 하기로 한 것이다. 언젠가는 감마선에 대해서 마이너스 굴절률이 나오는 메타 물질이 나오겠지.. 하다 못해 1보다 작은 굴절률이 나와도 된다. 결국 그는 아즈삭의 방호는 좀 더 두텁게 방벽을 세우는 것으로 처리하고, 돈은.... 뭐 감마선 EMP 방어 기술이 나오지 않아도 자유롭게 연구하는 중에 뭐 하나 나오지 않을까? 설마 돈이 떨어지기 전까지 돈 되는 기술 하나 개발하지 못할 자신도 아니었고 정말로 어쩔 수 없다면 미국의 도움을 받는 것도 수용할 수 있었다. 처음 설래발을 쳤던 것과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니 아즈삭이 태평한 이유가 있었다. 손발은 머리를 닮는다. 아무튼 그렇게 마음을 정리한 강현은 욕심을 버리고 메타물질이란 흥미로운 분야를 장난감 삼아 가지고 놀아보기로 했다. 장난감 치고는 비용이 엄청났지만 어른 남자들의 장난감이란 다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단지 강현의 스케일이 좀 더 클 뿐이었다. 크게 보면 우주 달팽이 역시 즐겁게 과학으로 놀 수 있는 과학자들의 장난감 아니겠는가? 놀이, 아니 연구를 시작한 강현은 메타물질의 본질이 결국에는 작은 단위 요소의 밀집 배열이라는 것에 착안해 매우 단순한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회로 기판에 사용하는 작은 코일 수만 개를 상자를 담아 다양한 주파수의 마이크로파와 라디오파를 쪼여 투과율이나 반사율 따위를 측정해 보기도 한다든가, 그런 와중에 코일의 용량을 바꿔보기도 하고, 이것 저것 다른 용량의 코일을 섞어보기도 하고, 배열을 일정하게 해보기도 하고, 불규칙하게 만들어보기도 했다. 비슷한 짓을 코일이 아닌 콘덴서로 해보는 것도 빠뜨리지 않았다. 남들이 볼 때는 뻘짓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원래 새로운 현상의 발견은 남들이 왜 저러는지 이상하게 생각하는 이런 뻘짓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지구 온난화와 대기중 이산화탄소의 증가를 발견한 일도 역시 남에게는 뻘짓으로 간주되는 짓을 포기하지 않고 수 십 년 동안 해온 과학자가 있었기에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페니실린의 발견자인 플레밍 교수에 대한 일화도 대표적이다. 남들이 곰팡이가 피면 눈길도 안주고 다 버리는 실패한 배양 접시에서 페니실린을 발견한다던가 콧물을 첨가한 배양 접시에서 미생물 군체가 없는 것을 발견하고 콧물이나 점액 속에 항생물질(리소자임)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기도 했다. 즉, 연구자들이 하는 뻘짓이 남들 눈에는 비효율적이고 이상하게 보일지라도 새로운 가능성과 창조적 발견은 여기에서 태어난다. 그리고 연구자들이 이런 뻘짓을 포기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 뻘짓이 남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다는 것이었다. 복잡한 수식적 이론이나 수익성 따위를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흥미와 호기심만을 풀기 위한 연구 실험이라니! 모든 연구원들이 꿈꾸는 일이 아닌가? 강현의 경우도 비슷했다. 이것저것 복잡한 세상일따위 머리에서 지워버리고 밀집한 전기공학적 요소들에 대한 특정 각도로 입사한 특정 주파수의 흡수율 변화를 관측하는 재미는 독특했다. 상상 밖의 일이 종종 벌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만 한다면 생산성이 없었다. 강현은 변수를 추측하고 아즈삭의 시뮬레이션 결과와 실제 결과를 비교하며 데이터를 축적했다. 언젠가는 이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메타물질을 설계 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학적 모델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거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다양한 용량의 코일과 콘덴서의 집단적인 밀집체가 가진 광학적 특성에 대한 연구와 데이터 축적을 하던 강현은 이제는 단순한 형태의 단위 요소를 만들어서 실험을 시작했다. 단위 요소는 마이크로 크기의 구형 플라스틱인데, 리소그래피 기술을 이용해 중앙에 나선형의 도선을 깔았다. 이 마이크로 크기의 플라스틱 알갱이를 상자에 가득 담아 전자기파를 쪼여 그 특성을 관찰했다. 이런 식으로 데이터를 착착 쌓아가고 이에 관한 논문을 내놓기 시작하니 다른 과학자들도 어느새 이런 흐름에 동참했다. 3차원적인 메타 물질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강현과 비슷한 방식으로 3차원으로 배열된 전기학적 단위요소가 가진 특성들을 연구한 데이터 베이스가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제 효과적인 수학적 모델이 개발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강현은 아즈삭의 EMP 방호 강화를 위한 공사를 발주했다. 아예 걱정하지 않게 원자로 수준의 방사선 방호벽을 쌓기로 한 것이다. 돈은 쫌 깨지겠지만 어차피 강현의 재산 수준에 비하면 푼 돈이고 아즈삭의 중요성을 고려하면 당연한 투자였다. = = = = = “아빠! 백 점 받았어요!” “그래?” 쪽지 시험에서 백 점을 받고 온 준이 시험지를 자랑스럽게 내밀었다. 그러나 아빠의 반응이 영 심심했다. 준은 볼을 부풀렸다. “백 점 맞았다구요.” “어... 그러니까 백 점이 만점이니?” 강현은 준이 내민 시험지를 보고는 중얼거렸다. “에.. 그러니까 총 열 문제니까 한 문제당 십 점이구나.” 하지만 준의 불퉁함은 전혀 가라앉지 않았다. 결국 삐쳐서 쪼르르 샐리의 허벅지를 안고는 고개를 빼꼼히 내밀어 강현에게 부담 어린 시선을 주었다. “준은 칭찬을 원하는 거에요.” 샐리의 말에 강현은 중얼거렸다. “시험에서 백 점 맞을 수도 있고 못 받을 수도 있지. 전혀 칭찬할 거리가 아닌데..” “현..” 샐리의 시선도 가늘어지기 시작했다. 애 앞에서 그런 소리를 하면 애가 공부를 할까? 강현은 그녀의 시선에 화들짝 놀라서 오해하지 않도록 말을 이었다. “자신이 관심이 있고 잘하고 싶은 분야가 있으면 열심히 해서 백 점 받는 건 당연해. 그리고 자신이 잘 못하는 분야가 있으면 백 점 못 받는 것도 당연한 일이야. 난 그냥 준이 점수에 연연해서 자신이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하는 걸...” ============================ 작품 후기 ============================ 많은 분들이 오해하고 계시는 부분이 있습니다. 숲의 남자를 쓸 때 오히려 정신이 더 멀쩡 합니다. 저도 좀 납득하기 어렵기는 집중만하면 어떻게든 써집니다. 하지만 자유인을 쓰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다보면 어느 샌가 정신이 몽롱해 집니다. 218화 “현. 지금 그걸 말하고 있는 게 아니잖아요. 칭찬 한 번 해주는 게 그렇게 어려워요?” 어렵다. 사물을 객관적 시각에서 보려고 하는 강현에게 아들의 쪽지 시험 성적은 차마 칭찬할 것이 못 된다. 그정도 수준의 문제를 풀었다고 칭찬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면 기특하게 여겨서 칭찬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스럽다고 해야 할지) 준은 또래 아이들처럼 놀기 좋아했다. “어.. 자, 잘했다.” “흥!” 강현은 간신히 칭찬을 해줬지만 엎드려 절 받기 식의 칭찬이 마음에 들리 없었다. 결국 준은 확실하게 삐쳤고 강현은 아들의 마음을 풀기 위해서 머리를 굴렸다. “놀이 센터에 놀러 갈까?” 아들의 귀가 솔깃했다. 놀이 센터는 도시 운영 위원회에서 기획하고 건설한 곳으로 시민들의 건강과 레저 활동을 위해서 건설되었다. 건설된 위치는 차후 물류 수송이 주로 이루어질 제3층이었다. 아폴로티움의 회전 중심에 가깝기 때문에 적용되는 가상 중력이 적어서 펄쩍 뛰면 자신의 키를 몇 배나 넘게 뛸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환경에 걸 맞는 각종 스포츠와 놀이 기구가 건설 되었다. 특히 저중력 환경에서의 스쿼드는 일반적인 스쿼드와 다르게 아주 속도감이 넘쳤다. 벽과 천장까지 박차면서, 말 그대로 날아다니며 공를 치는 스포츠라 아주 인기가 많아서 시민들에 줄기차게 확장을 요구하는 시설이었다. 물론 그런 스쿼드는 아직 어린 준이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경우 가족 단위를 위한 저중력 놀이 공간도 있었으니 참으로 우주 도시에 어울리는 놀이 시설이었다. 저중력을 이용한 이런 종합 놀이 시설이 단숨에 관광 명소가 되는 건 시간 문제였고 미국에서도 아폴로티움의 발전과 인구 유입을 위해서 전략적으로 관광 상품화하는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하기도 했다. 그리고 논의 결과 제2층의 공업지구에 들어가는 자재를 일부 이쪽으로 돌려 더욱 확장하기로 했다. 공업지구의 완공이 좀 늦어지겠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감수할 수 있을 정도로 이 저중력 환경은 여러모로 매력적이었다. 더구나 제2층보다 더 저중력이기 때문에 이 지역의 건설은 소규모 프로젝트로 진행해도 크게 문제가 없는 것이 도시 운영 위원회의 결정에 크게 영향을 끼쳤다. 도시 운영의 가장 핵심적인 방향인 안전에 대한 기준을 통과했기 때문이다. “가요! 근데 언제요?” 강현의 말에 준이 언제 삐쳤냐는 듯 강현의 다리에 달라붙었다. “오늘은 늦었으니까 안되고 마침 내일 주말이니까 내일 가자.” “만세!” 준이 신나게 만세 삼창을 하자 무슨 일인지 궁금해진 시아가 방에서 내려왔다. 그 뒤로 알록 달록한 인조화가 꽂힌 로봇독이 따라 내려왔다. 봉제 인형처럼 외관을 털로 감싼 로봇독이 시아의 소꿉놀이 상대를 했던 모양이다. “뭐야, 뭐야?” 시아의 물음에 준은 내일 놀이 센터로 간다고 알려주었고 시아는 준을 따라 만세 삼창을 불렀다. 놀이 센터가 뭐하는지 잘 모르는 시아도 ‘놀이’라는 단어에 놀러간다는 것 쯤은 인지하고 신이 났다. 그런 두 아이의 모습에 강현과 샐리는 흐뭇하게 웃었다. = = = = = 강현의 플라즈마 엔진, 그리고 열권에서 공전하고 있는 우주 정거장 덕분에 우주 도시와 지상의 물류 교류는 매우 쉬워졌다. 거기에 우주 농장이 본격적으로 가동되면서 적어도 우주 도시에서 굶어 죽는 일은 없어졌다. 몬산토의 우주 시장 독점을 막기 위해 여러 곡물 메이저가 우주 농장에 진출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강현이 기본적으로 제공한 재배 공장 기술에 자신들의 독자적인 재배 기술을 응용, 기술 경쟁을 벌였다. 만일 종자나 환경에 어떤 문제가 있더라도 큰 문제가 없었다. 해당 구역에서 발병한 질병의 원인을 파악한 다음 방역 처리를 했다. 채광 개폐 장치를 활짝 열어 강렬한 자외선으로 미생물들은 물론 바이러스까지 완벽히 제거했다. 자외선의 살균 효과는 바이러스까지 파괴해 버렸다. 재배 장치를 적층형으로 쌓을 수 있어서 재배 면적은 곱셈으로 증가했다. 잉여 생산물이 남아 아폴로티움뿐만 아니라 다른 두 우주 도시에도 공급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아폴로티움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채식주의자가 아니니 고기에 대한 수요가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곡물이나 야채만으로는 그런 이들의 수요를 충족할 수 없어 목축업자들이 우주 농장에 진출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매우 복잡하고 높은 위생 기준과 검역 기준이 우주 농장에 진출하려는 업자들에게 원성을 샀으나 아폴로티움을 운영하는 운영위원회에게는 바늘도 들어가지 않았다.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의 입에 들어가는 고기이니 만큼 위생적이고 건강한 사육 환경을 요구했던 것이다. 그렇게 육고기와 곡물, 야채의 생산을 시작한 우주 농장의 생산량은 우주 도시 세 개 정도는 충분히 먹이고 남을 정도로 컸다. 특히 애완동물 사료를 만들기 위해서 사육되는 메뚜기 등의 곤충 단백질은 비상시 우주 도시 10개의 단백질 수요를 충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될 정도였다. 게다가 우주 농장의 확장 능력은 우주 도시의 인구 증가 속도를 충분히 따라 잡을 수 있었기 때문에 식량 위기 같은 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별로 좋아하지 않은 이들이 있으니 바로 우주 도시를 건설한 장본인 들이었다. 미국의 우주 농장으로 인해 우주 도시에 식량을 공급하는 비용이 엄청나게 줄어들었지만 인간의 생존과 직결된 식량이 미국 소유의 우주 도시에서 공급된다는 것이 마음에 안 들었다. 그렇다고 그들이게 RP 포인트를 구입할 넉넉한 재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투자할 곳은 이미 지구상에 넘치지만 우주의 전략적인 요소 때문에 우주 진출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마치 냉전시대 미국이 소련을 경제적으로 공격하기 위한 군비 증강 전략을 취한 것 같았다. 거기에 몇몇 높으신 분들이 RP 포인트를 구매하는 것에 불만을 가졌다. 저 우주의 무한한 자원을 왜 돈을 내고 구입해야 하느냐였다. 공짜나 마찬가지인 우주 자원을 RP 포인트로 팔다니.. 마치 봉이 김선달 같은 일이 아니냔 말이다. 가중되는 재정 부담에 무한한 우주 자원을 돈 주고 사야 한다는 것에 불만을 가진 이들은 이렇게 포문을 열었다. [우리도 우주 광산을 개발하자!] 진작에 시작했어야 하는 일이었지만 카낙 광산의 확장 속도와 미국의 우주 도시 건설 계획이 너무나 빨라서 어쩔 수 없이 RP를 이용해 우주 도시를 지은 유럽과 동아시아 삼국이었다. 이제 조금 여유가 생겼으니 자신들도 우주 광산을 만들 여유가 생겼다. 이런 움직임에 다급해진 쪽이 있으니 바로 미국 정부였다. “강 박사, 어떻게 방법이 없겠는가?” “그쪽 사람들도 우주 진출을 하면 좋은데 왜 그래요?” 앙드레 파셀은 강현 때문에 대통령이 되지 못했기는 했지만 강현과의 친분을 회복시켰다. 돈에 연연하지 않은 강현은 그에게 충분히 후원금을 주었다. 민주당에서는 섭섭했지만 강현의 입장에서 공화당과 영 척을 지는 것도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무슨 변수로 인해 정권이 바뀔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공화당인데다가 우파 세력인 앙드레 파셀은 타국의 우주 광산 개발 계획에 속이 쓰렸다. 현재의 강한 미국에 카낙 광산의 자원적인 힘이 적잖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강현이 좀 어떻게 해줬으면 하는데 저렇게 태평한 소리를 하고 있으니 속이 답답했다. 역시나 과학자와 정치가의 견해차가 없을 수가 없었다. “RP 포인트의 영향력이 축소되면 미국도 물론이고 자네에게도 손해가 아닌가?” “무슨 말씀이세요? RP 포인트가 제 손을 떠난 지가 언젠데?” “잉? 무슨 말인가?” “RP 포인트의 가격은 전적으로 카낙이 결정한다는 겁니다. 이젠 저도 개입할 수 없어요.” “그게 무슨..” 파셀 의원의 머리는 돌을 맞은 듯했다. “아니 왜?!” “그게 효과적이니까요.” 미국의 서프모기지 프라임 사태는 이미 그 이전에 예견되어 있었다. 미국의 연방 준비 은행의 멍청이들이 긴축 재정을 해야 하는 상황에 돈을 확 풀어서 미국 경제에 거품을 끼운 것이다. 경제 주기상, 활황기에 있던 미국이라 누구도 돈을 더 푸는 것의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경제 전문가와 학자들만이 문제점을 지적했다. 시장 경제 원리, 즉, 자유주의 시장에서 경제는 주기를 탄다. 활황기가 있으면 침체기가 있고 활황기의 높이가 크면 클 수록 침체기의 골은 깊어진다. 따라서 활황기가 너무 높으면 이를 낮추고 침체기의 골이 너무 깊어지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 정부의 경제 정책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 한마디로 물가 안정인 것이다. 그런데 당시 신자유주의 세력이 집권하던 미국 정부는 이런 경제적인 상식을 무시해 버리고 시중에 유통되는 돈을 줄여야 하는 활황기에 오히려 돈을 왕창 풀어버렸다. 그러면서 미국의 경제가 주기를 타지 않는 새로운 경제 모델로 완성됬다며 자찬했다. 자유주의 시장경쟁 체제에서 경기는 반드시 주기를 탄다. 이것이 경제학적인 상식이다. 그런데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자는 신자유주의자들이 이런 시장의 본질을 무시하는 병크를 터트린 것이다. 결국 미국에서 촉발된 세계적 경제 위기는 인간 때문에 벌어진 것이었다. 아무리 이론적으로 잘 제도화되어 있고 상식적인 논지와 논리가 있어도 인간이기 때문에 그것을 무시하는 것이다. 결과는 이미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으로 나왔다. 중산층의 몰락과 빈부격차의 심화다. 현재 미국은 과거 대공황이 왔을 때의 수준으로 빈부격차가 커졌다. 중산층이 줄어들면 전체적인 소비가 줄어들고, 소비가 줄어드니 기업도 살기 위해서 구조조정을 하고, 일자리가 줄어들고 또 중산층이 줄어들고.. 결국 경제 전체가 홀라당 망해버리는 악순환을 밟게 되는 것이다. 뭐? 그럼 부자들이 돈을 많이 쓰면 되지 않냐고? 부자들과 중산층의 소비 양상은 완전히 다르다. 1000억을 가진 한 명의 부자가 아무리 기호품, 사치품을 사도 얼마나 살까? 1억을 가진 1000명의 중산층이 기호품이나 사치품을 사는 액수를 따라 오지 못한다. 게다가 사치품의 경우, 기업의 생산성보다 기업의 브랜드 이미지가 더 중요하다. 대량 생산이 필요없기 때문에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기술 발전이 빠르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뭐? 그럼 부자들이 투자를 하면 되지 않냐고? 투자란 본질적으로 수익을 위한 행위다. 중산층이 다 망해 경제가 박살났는데 투자할 부자들이 있을까? 단언컨데 없다. 미국을 대공황에서 벗어나게 했다는 뉴딜 정책도 부자들이 나선게 아니라 국가가 나선 것이지 않은가? 이렇듯 경제를 인간에게 맞기면 그 위험은 자명했다. 잘못된 경제 정책으로 수많은 이들을 고통받고 죽일 수 있지만 그 책임을 또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가? 그것은 법적으로 합당한가? 어려운 문제다. 그래서 강현은 RP 시스템은 자신의 손에서 완전히 분리해 버렸다. RP 포인트는 환율의 변동을 완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인간의 탐욕이나 실수가 관여하지 못하게 카낙이 관리하는 영역이 되어 버렸다. “그걸 왜.. 도대체..” 파셀 의원은 강현의 행동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RP 시스템은 환율을 조정하는 화폐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제어하는 힘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질 수 있다. 미국이 탄생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유력가들이 기어코 미국 정부에게서 화폐 발행권을 분리한 이유가 무엇인가? 자본이란 이름으로 축적되는 자신들의 재산권이 미국 정부의 정책에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이었다. ============================ 작품 후기 ============================ 애독자님들 감사합니다. 오타 지적해 주시는 독자분님들 사랑합니다. 그러나 쉬는 날이 없으면 저는 죽습니다. 힘들어요. 219화 화폐 발행권, 환율 조절 능력. 한 국가의 부를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이며 경제적 핵폭탄이 될 수 있는 힘이었다. 그것을 그리 쉽게 포기하다니.. “RP 발행권을 다시 가져올 수 있는 방법은 없나?” “물리적으로 카낙과 접촉해 카낙보다 능력이 뛰어난 인공지능 3기가 해킹해야 해요. 그 외에는 불가능합니다. 인공지능에는 백도어 자체가 없으니까요.” 지구와 카낙과의 통신 시간으로 인해서 카낙은 지구에서의 해킹에 대해서 무적이었다. 해킹 속도가 물리적으로 카낙의 방어 속도에 비해 압도적으로 낮을 수 밖에 없었다. 또한 백도어는 존재자체가 인공지능의 사고 논리에 영향을 끼쳐 불안정하게 한다. 각국 정부와 기업에서 몰래 백도어가 심어진 인공지능을 개발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지만 아직 성공한 바는 없었다. 강현의 단언에 파셀 의원은 이마를 짚으며 물었다. “그럼, 다른 국가의 우주 광산 진출을 막는 방법은 없는건가?” “막으면 그 나라들이 가만히 있을까요?”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 “냉정하게 생각하세요. 지금 미국이 해야 할 일이 뭔지.” 강현은 돌아가기 위해 무인 전동차를 타는 파셀 의원과 수행원을 배웅했다. 그들의 모습이 사라지자 집으로 돌아오며 못 말리겠다는 듯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뭐? 다른 국가들의 우주 광산 사업을 방해해? 어떻게 그렇게 근시안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걸까? 정보화 시대다. 기술의 확산은 막을 수가 없다. 기술을 보안한다고 해도 기술 강국의 역설계 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인간은 본래 창조보다 모방을 더 잘하는 종족이었다. 그러니까 기술 개발 경쟁이 벌어지는 것이다. 영원히 끝나지 않는, 기술들이 탄생하고 도태하는 진화의 장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한 걸음 더 나가서 생각해야 했다. 좀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장기적으로 준비하지 않으면 따라 잡힌다. “쯧. 이제 그 사람도 판단 능력이 떨어진 걸까?” 아니면 그릇이 그 정도일 수도 있었다. 어찌 됐던간 이미 세계를 주름잡는 미국 대통령으로서의 자격은 없어 보였다. [박사님. 정말로 괜찮겠습니까?] 아즈삭이 물었다. 파셀 의원의 식견은 일리가 있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곧 힘이며 그 힘의 근본인 화폐 발행권은 수 많은 이해 관계가 얽힌 핵심이었다. 강현의 손아귀에 RP 시스템이 있기만 한다면 수 많은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는 날카로운 칼이 될 수 있었다. 뭐하면 해당 국의 환율과 경제를 엉망으로 만들어 천문학적인 피해를 낼 수도 있었다. “아즈삭. 어쩔 수 없는 일이었잖아.” 강현이 아즈삭을 다시 타일렀다. 아즈삭이라면 카낙과 협상을 통해 RP 시스템의 제어권 일부를 다시 되찾아올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그의 목적에 합치되지 않았다. 우주 진출의 계기가 되었던 자본주의를 붕괴시키겠다는 발상. 그리고 그 핵심 개념인 무한의 공유지. 인공지능의 생산 계획 아래 디플레이션 없이 자본보다 더 많은 생산량으로 인간의 생존에서 자본의 영향력을 제거하려는 계획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었다. 그러나 카낙 하나 만으로는 무리였다. 우주 농장의 확장과 가속되는 아폴로티움의 성장에서 자본의 논리가 끼친 영향력을 본 강현은 확신했다. 자본주의 환경에서 돈을 벌기 위한 행위는 인간의 발전욕, 혹은 욕망, 탐욕을 상징했다. 그리고 그 힘은 강현의 상상 이상이었다. 아무리 카낙에서 많이 생산하고 우주 농장을 많이 지어 잉여 생산물을 만들면 뭐하나? 권리, 지분라는 이름 등으로 특정인의 소유가 되는 것이 더 빨랐다. 그것은 신용화폐의 자본화가 아닌 실물의 자본화였다. 과거 지주 계급이 땅이라는 자산을 쥐고 귀족이 되었던 것처럼 자원과 지분이라는 이름의 재산권의 확장을 통한 새로운 계급의 탄생할 수 있었다. 자본주의는 강현이 만들어내는 환경에서 새롭게 적응하기 위해서 돌연변이를 할 양상을 보인 것이다. 이는 다른 국가의 우주 진출을 막기 위해서 강현에게 도움을 청한 파셀 의원의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자원이 많으면 돈이 된다. 돈이 많으면 권력이 된다. 권력을 가지면 다른 계급이 된다. 결국 문제는 자본주의가 아니라 사람에게 있었다. 자신이 가진 힘이 자본이든 권력이든,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행동하는 인간 본연의 욕망이 문제였다. 원래 자본주의는 경제체제를 일컫는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인간에게 적용되는 순간 자본주의는 경제체제가 아니라 정치체제의 성격을 띄게 되었다. 돈이 있으면 못하는 것이 없는 세상. 돈으로 로비를 하고 돈으로 권력을 강화하고 돈으로 신분을 나누는 이데올로기로서의 형상을 보였다. 강현은 그것은 인지하는 순간 인간에 대한 자본주의의 영향력이 축소된다고 해도 인간의 모습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어쩌면 강현 자신 같은 과학 기술력을 지닌 이에게 권력이 집중 되는 세상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혹은 사람 사이의 관계를 잘 조율하는 달변가가 권력자가 되는 세상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 문제는 체제가 아니라 ‘위에 서는 사람’이 누구냐라는 것이었다. ‘위에 서는 사람’의 행동과 결정에 의해서 ‘아래에 서는 사람’의 운명이 바뀌는 것이 인간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대로 가다가는 자본가들이 바로 그 ‘위에 서는 사람’이 될 것이 뻔했다. 자본을 앞세워 우주 개발에 대한 권리를 호시탐탐 노리는 그들은 자신들의 영향력을 계속 확장하려고 노력할 것이고 지분, 특허, 채권 등 법을 이용해 자신들의 재산권을 보호하고 지위를 굳힐 것이다. 새로운 계급주의의 탄생이다. 강현은 그것을 인정했다. 인간에게서 계급을 분리할 수는 없었다. 사회라는 생태계 안에서 생존과 번영을 위해 분업이라는 방법을 택한 근본적 원인으로 인해 인간은 계급을 형성할 수 밖에 없었다. 강현 자신도 가족이 있으니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가족을 데리고 범죄률이 높은 할렘가로 이사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으니까.. 그럼, 자본주의를 붕괴시킨다는 목적은 폐기할 생각인가? 그렇지 않았다. 천재 특유의 고집과 호기심이 현실에 안주하도록 두지 않았다. 계속되는 변화가 흥미로웠다. 그렇기 때문에 강현은 그 스스로 자본가가 될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RP 시스템를 자율화 시킨 것이다. RP 시스템이 강현의 손에 있는 한 그는 자본가 취급을 받으며, 사회와 자본가로서 상호작용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건 과학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그에게 불편한 일이었다. RP 시스템을 완전히 독립 시킨 일은 결과적으로 그에게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일단 그를 경계하는 세력이 확 줄었다. 강력한 힘의 집중, 그리고 그 힘이 집중된 이가 기존 기득권과 사고 방식이나 가치체계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은 상류사회에 긴장감을 형성했다. 그것이 해소된 것이다. 각국 정부로서도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미국의 입김도, 강현의 결정도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는 RP 시스템은 달러의 가치 체계를 보증하는 기준 화폐로서 그 신용을 더욱 단단히 했다. 경제학자들은 자본주의의 수호신이라며 강현을 칭송했다. 인간의 이해 관계에서 분리되어 인간이 생산하는 재화량과 수요에 맞추어 기계적으로 RP 포인트를 책정하는 인공지능의 존재는 인간의 탐욕이라는 자본주의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가능성이 될 수도 있었다. 이런 맥락에서 갈라져 나온 몇몇 학자는 달러화 역시 인공지능에게 맡겨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미친 연방 준비 은행의 멍청한 재정정책으로 미국 경제는 물론 세계 경제도 말아 먹을 뻔 했, 아니 반쯤 말아 먹었으니, 멍청하지 않고 욕심에 휘둘리지 않는 인공지능에게 달러화 발행을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많은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았다. 강현과 유대인의 싸움으로 인해 미국 정부는 연방 준비 은행의 최대 주주가 되는 어부지리를 누렸다. 그러나 미 정부 역시 사람으로 구성하는 곳이고 정권의 향방에 따라 재정 정책이 바뀔 수 있었다. 달러화의 발행 문제에 수 많은 이들의 이해 관계가 얽히게 되니 차라리 사람의 손에서 떠나 보내자는 것이다. 케인즈주의 경제학자들은 그 부작용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타진했지만 나쁠 것은 없었다. 인간과 달리 인간이 가지는 권리가 없는 인공지능이었다. 또한 인간과 본질적으로 달랐다. 문제가 생기면 폐기해 버리고 기존처럼 이사회에서 결정을 내려도 된다. 그러나 화폐 발행권을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에게 준다는 발상은 너무나 급진적이었다. 거기에 반대파 및 거기에 얽힌 기득권 인사들의 저항에 부딪히고 말았다. 화폐 발행권에 얽힌 거대 자본가들이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이를 계기로 정치적으로 큰 갈등이 일어났다. RP 시스템을 완전히 자동화한 예시인 카낙과 그 창조자인 강현에게도 귀찮은 불똥이 튀려고 할 때 이 갈등을 미약한 불씨로 진화한 사람이 바로 제이먼 옐리, 현 연방 준비 은행장이었다. 그는 안정적인 재정 정책으로 전임자가 싼 똥을 잘 처리했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에 유대인의 영향력에서 연방 준비 은행의 영향력이 확 축소되어도 여전히 연방 준비 은행장으로 남을 수 있었다. 재정 정책에 대한 한결 같은 태도 역시 사람들이 그를 신뢰하는 요소였다. 자신만의 확고한 경제 철학이 그가 유대인이지만 그를 신뢰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든 것이다. 사실 그가 정치권 인사들을 만나면서 갈등을 가라앉힌 일에는 강현의 입김이 들어가 있었다. 유대인인 그가 강현의 부탁아닌 부탁을 들어준 것은 유대인과 강현 사이에 친분이 쌓이고 있다는 정황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화교나 일본 자본의 지원을 받는 정치인들이 화폐 발행권에 얽힌 이권에 대해서 집중하게 못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화폐 발행권을 인공지능에게 완전히 맡기는 것은 아니지만 인공지능의 판단을 심각하게 고려하는 행정적 시스템을 진지하게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 역시 제이먼 옐리가 강현과 은밀한 통화를 한 내용이 반영된 것이었다. “자본주의는 이념이 아니라 환경이 되어야 해.” RP 시스템과 국제 신용 화폐인 달러의 발행에 인공지능이 깊숙하게 관련되는 것은 강현이 그린 미래 사회를 위한 포석이었다. 돈이라는 인간의 탐욕을 깨우는 마물로부터 인간의 영혼과 이성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는 돈이 생성하는 권력의 힘을 약화해야 했다. 거기에 인간과 다른 욕구 체계로 작동하는 인공지능이라는 지성은 최적의 도구였다. 즉, 강현은 RP 시스템을 이용하려는 파셀 의원의 말을 들어줄 생각이 애시당초 없었던 것이다. [그럼 다른 우주 광산의 영향력이 카낙을 앞서게 되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글쎄.. RP 포인트가 낮아지게 되면 우주 진출 비용이 줄어드니 그건 그것대로 나쁜 일은 아니야.” 더 많은 우주 광산이 개발되어 우주 자원의 가격이 줄어들면 우주 진출에 대한 비용도 줄어들고 우주 진출이 가속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카낙의 영향력이 줄어들게 되겠지만 강현이 목표로하는 무한의 공유지를 형성할 수 있는 가능성은 높아진다. 여기에 각 종자 회사의 종자 특허가 사라지는 시기에 맞추어 우주 농장을 완전 자동화 시킨다면 인류는 먹을 것에서 자본의 힘을 제거할 수 있게 된다. 강현이 권력을 추구한다면 다른 우주 광산 개발을 방해하겠지만 강현은 권력 지향적 인간이 아니었다. 그의 목적에 비추어보면 방해하는 것이 더 손해였다. 거기에 그가 그 동안 쌓아 올린 국제적 신용에 타격이 온다. ============================ 작품 후기 ============================ 페니스 님께 : RP 시스템의 독립으로 주인공은 우주 자원의 생산으로 인해 돈을 벌지 못합니다. -龍- 님께 : 각종 교양 서적을 중심으로 이해하지 못한 개념은 인터넷을 뒤집니다. 특히 과학 분야는 구글과 위키백과의 도움을 정말 많이 받았습니다. 만일 호기심이 생기신다면 반드시 영문 페이지도 함께 보세요. 기초과학 분야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은 영문 페이지가 더 상세합니다. 창공을 꿰뚫는 의지의 발현 님께 : 서른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220화 물론 강현이 그 타격을 감수하는 시나리오도 있다. 그 시나리오는 강현의 계획을 더욱 가속시키는 시나리오였다. 각 국가가 RP를 구입하기 위해서 지불하는 돈은 그대로 강현이 법인으로 독립시킨 카낙의 계좌에 쌓인다. 카낙은 이 쌓인 돈을 해당 화폐를 발행하는 국가의 화폐에 대한 RP 구입 가격을 결정하는 중요 변수로서 사용한다. 이 돈이 쌓이면 쌓일 수록 자연히 해당 국가의 재정 정책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수 밖에 없다. 사유 재산 개념이 없는 인공지능이 관리하는 법인의 돈이기 때문에 손해를 생각하지 않고 돈을 풀 수 있어서 해당 국가의 물가 안정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공식적으로 해당 정부의 화폐 발행 시스템에 인공지능을 끼워 넣지 않더라고 해당 국가의 경제 시스템에 관여할 수 있는 막강한 영향력을 가질 수 있었다. 지금도 환율의 급격한 변화를 막기 위해 다른 국가의 화폐를 구입하는데 사용하는 등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이것을 좀더 확대시키면 인간의 손에 들린 화폐 발행권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이는 각국이 미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각오를 하면서도 따로 우주 광산을 개발하겠다고 한 여러 이유 중 하나이자 가장 중요한 이유였기도 했다. 화폐라는 이름의 재정 정책이 외국 소유의 어떤 것에 휘둘리는 것은 어찌보면 경제 주권을 타국에 내어 주는 행위였다. 이해관계를 떠나 국가의 정체성을 보존하기 위해서 그럴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카낙의 영향력이 줄어들게 되면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글쎄.. 별다른 조치를 취할 생각은 없어. 그리고 카낙의 영향력이 그리 쉽게 줄어들지는 않을걸?” RP는 실물에 가까운 신용화폐다. RP는 결국 전산상의 숫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인공지능이라는 신용있는 존재가 실물로 그 가치를 담보해 준다. 설사 당장 실물을 지불할 수 없다고 해도 언젠가는 우주의 자원을 개발해 지불해 준다. RP가 가치가 있는 이유였다. 결국, 자본은 신용이 본질이다. 자본이 강력한 것도 사람들이 자본의 강력함을 믿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이 어느 순간 달러를 사용하지 않게 된다면 어찌될까? 달러는 그림 그려진 종이 조각 이상의 가치를 가지지 않는다.(물론 그렇게 되기는 미국이 하루 아침에 망할 확율에 가까울 정도로 힘들다.)그런 점에서 RP는 실물이 그 담보를 보증하고 인공지능이라는 중립적 존재가 신용을 지킨다. 만일 다른 나라에서 우주 자원을 재정적 부담 없이 사용하는 것을 목적으로 우주 광산을 개발하는 것이라면, RP 시스템 같은 것을 구축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만일, 구축한다고 해도, 인간의 이해관계로 인해 인위적으로 간섭하는 순간, 그 이해관계로 인해 그들이 구축한 시스템의 신용은 바람에 날리는 모래알처럼 사라져버릴 것이다. 거기에 카낙 RP 시스템이 미리 쌓아놓은 아성은 새로운 RP 시스템이 도전할 수 없을 정도로 단단했다. 세계적인 불경기로 인해 금융 자산을 보호하려는 부자들이 금융 자산 중 상당 부분을 RP로 이동시켰기 때문이다. 물가안정을 위해서 일정한 기준으로 움직이는 RP 포인트는 이미 엔화에 맞먹는 안전 자산으로 취급되고 있었다.(RP는 국가 뿐만 아니라 사기업이나 개인도 구입할 수 있었다. 너무 안정하기 때문에 투자에 대한 매리트는 없지만 불경기에는 막강한 자산 보호 효과가 있었다. “이제 그런 쓸데없는 일에 신경쓰지 말고 연구나 하자.” 종합하자면 카낙과 같은 새로운 우주 광산 개발이 가진 의미는 미국 중심의 우주 진출에서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후발 주자들의 정치정략적 타협이며 세계 경제 구조를 재편하려는 시도었다. 그러나 강현에게는 쓸데없는 일에 불과했다. 아즈삭은 강현의 말에 스크린에 어제 연구하던 메타물질의 데이터 분석 그래프를 띄웠다. 아즈삭의 본질은 강현의 연구 보조였다. [예, 박사님.] = = = = = 유럽과 동아시아 삼국이 카낙과 같은 자원 개발 인공지능과 광산 채굴 시스템을 만들기 시작하자 다른 나라에서도 똑같이 시작했다. 남미는 물론 중동과 동남 아시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재정적인 부담을 지며 RP를 사느니 차라리 자신들이 직접 캐서 사용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이런 우주 자원 개발 열풍은 과열 조심을 보였는데 그것도 그만한 기술력이 되는 이들에게만 해당되었다. 그러지 못한 국가들은 필요한 기술력을 갖춘 국가들과 협동을 하려고 했다. 이런 일은 국가적 차원 뿐만 아니라 기업적인 차원에서 벌어지기도 했는데 뛰어난 기술력을 가진 항공 우주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우주 광산 개발을 하기 위해서 자본과 기술을 모으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에 우주 개발 펀딩 붐이 일어나는 와중에 이에 대해 반감을 가진 이들이 이렇게 주장하기도 했다. [우주 자원은 인류 모두의 것이다!] 그건 우주 자원의 소유권과 개발권뿐만 아니라 우주 영토에 관한 논의를 불러일으켰다. 지구에서도 광산 개발권이라든지 벌목권이라든지 여러 자원의 생산에 관해서 정부의 허락을 얻어야 하는데, 이 국가가 민중의 민의로 이루어진 것처럼 우주 개발 역시 국가간의 집약체인 UN의 허락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을 제외한 상임이사국들이 미국을 외교적으로 압박하고 자신들이 우주 광산을 개발하는데 발목을 잡지 못하게 만들기 위해 미리 선수를 친 것이다. 이에 미국의 대응은 단순했다. 우주 광산 개발에 필수적인 기술들을 전략 기술로 지정하는 법안을 상정했던 것이다. 인공지능과 양자 통신 기술도 포함되었고 펜타봇과 트리플론등을 제어하는 프로그램도 포함되었다. 이런 움직임에 EU에서는 EM 드라이브를 개발한 영국에 EM 드라이브를 전략 기술로 지정하라고 부탁했으나 미국의 오랜 우방인 영국에서는 들어주지 않았다. 몇가지 외교적인 이유도 있지만 실리적 이유에도 있었다. EM 드라이브를 전략 기술로 만들어 놓으면 뭐하나? 미국에는 기술 개발계의 치트키인 강현이 있었다. 언제 완전히 다른 개념의 EM 드라이브를 턱하고 내놓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신통일장 이론으로 EM 드라이브와 힉스입자의 관계를 이론적으로 해부한 강현이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그러나 다행이랄까? 미 정부에서 상정한 우주 개발 기술의 전략 기술화 법안은 계속 뒤로 미루어졌다. 기업과 정치 후원금을 받은 정치가의 관계를 비롯해 경제 정치적인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었지만 역시나 가장 큰 이유가 미 정부가 확고한 결심을 가지고 진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미국은 유럽과 척을 지고 싶지 않았다. 단지 발목을 잡지 않기를 바랬다. 결과적으로 으름장을 놓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효과는 충분했다. 상임 이사국 두 개(영국, 프랑스)가 포진되어 있는 유럽이 중립을 지키게 되었으니 UN을 통한 압박이 무용지물이 되었다. 러시아와 중국이 분통을 터뜨렸으나 어쩌겠나? 유럽과 그들과의 관계는 미국과 그들과의 관계만큼 멀었다. 한편, 이를 계기로 우주 자원의 소유권 개념에 대한 논의가 진지하게 진행되었다. 미국도 한 번쯤 이것을 논의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국제적으로도 논의가 활발했다. 지각만 간신히 뚫는 지구상에서는 면적의 개념으로 영토를 잡고 광산 지역 역시 면적으로 허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소행성의 경우 지구와 크기, 면적, 곡율 자체가 달랐다. 중력도 작고 밑에 뜨거운 용암이 있는 것도 아니라 중심까지 파고들어 자원을 채굴할 수 있었다. 게다가 온전한 원형을 가진 것은 극히 드물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 자원 채굴이 어떤 기관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면, 각 소행성의 구획을 면적 같은 2차원이 아니라 3차원으로 분할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측량부터 관리까지 모든 부분에서 골치가 아팠다. 이에 더해 우주는 너무 넓고 컸다. M 형 소행성인 프시케 하나만 잘 개발하면 인류가 10억년 이상 쓸 정도의 철강 산업을 이루어 낼 수 있었다. 너무나 스케일이 크기 때문에 자원에 대한 개념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에 모두가 동의했다. 아예 우주 자원이라는 단어를 따로 사용하자는 이들이 있을 정도였다. 우주라는 스케일에서는 아무리 희귀자원이 뭉친 행성이 있다고 해도 의미가 없다. 그곳에 도착해 자원을 이용가능하도록 가공해야 의미가 있었다. 사용할 수 있는 자원만 자원으로 불릴 수 있는 것이다. 이에 새로운 국제 협약이 생겼으니 자원의 소유권은 캐낸 주체(예를 들어 인공지능)에게 있다는 협약이었다. 여기에 더해 앞으로 일어날 각종 상황들을 대비해 조약을 보완했다. 특히 중요한 문제는 한 주체가 형성한 광구나 시설물에 대한 권리였다. 새로운 UN 우주 협약에 의해 사실상 우주 영토는 인간이 거주하는 행성이나 시설물로 한정 되었기 때문에 다른 국가가 만든 광구에 대한 소유권이 확정되지 않으면 광구를 두고 온갖 잡음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결정은 카낙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소유권에 대한 개념을 통해 카낙이 만든 무엇인 카낙의 것인지 정의해야 했다. 결과적으로 카낙이 만든 광구는 물론 소행성 표면에 있는 태양광 전력 시스템까지 포함되었다. 이 와중에 강현은 미 정부의 요청에 다시 새롭게 연구할 거리가 생겼다. 그것은 바로 EM 드라이브를 대체할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영국에게 EM 드라이브를 전략 기술화하라는 EU의 로비는 미국의 발가락을 꼼지락하게 만들 정도였다. 추진체 없이 전력만으로 가동하는 추진 시스템은 현재 필수적인 기술이었다. 당장 EM 드라이브를 마음대로 생산할 수 없다면 우주 개발은 물론이고 아폴로티움과 우주 농장의 유지 관리에 심각한 애로 사항이 꽃핀다. 그래서 미국 정부는 치트키를 동원해 경쟁 기술을 개발하기로 한 것이다. 미국 정부의 요청을 받은 강현은 EM 드라이브의 개량 여지는 사실상 없다고 보았다. EM 드라이브의 원리는 고속으로 움직이는 전자에 간섭해 힉스 장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그 출력에 대한 변수는 전자기파의 주파수와 출력, 그리고 챔버의 기하학적인 모양이었다. 기본 원리가 그러하니 설사 메타물질의 개발로 마이크로파 레이저가 개발된다고 해도 EM 드라이브 특허의 부속 특허에 불과했다. 어쩔 수 없이 EM 드라이브의 특허가 만료되기 전까지 미국이 영국의 입김에서 자유롭기 위해서는 영국의 약점 하나를 미국이 쥐고 있어야 했다. 우주 농장의 식량이 유용한 수단일 수도 있지만 우주 개발이 가속되어 각 국가가 우주 농장을 가질 수 있게 된다면 그런 방법도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결국 EM 드라이브와 다른 원리의 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그 즉시, 강현의 머리에는 NASA에서 성공했다는 워프 드라이브 기술이 떠올랐다. 우주 진출을 구상할 때부터 워프 드라이브 기술이나 반중력 드라이브 기술을 도저히 배제할 수 없었다. EM 드라이브는 때마침 운 좋게 발견된 기술이었다. 그것이 없었다면 관련 기술 개발을 위한 연구로 우주 개발 속도가 10년은 미루어졌을 것이다. 워프 드라이브 기술. 정식 이름은 알큐비에르(Alcubierre) 드라이브로 원안자의 이름 역시 알큐비에르다. 멕시코의 이론 물리학자인 미구엘 알큐비에르는 일반 상대성 이론에 기재된 ‘아인슈타인의 장(場) 공식(Einstein's field equations; EFE)’ 또는 ‘아인슈타인 공식’으로 불리는 방정식으로부터 한 가지 아이디어를 도출했다. 221화 ‘만일 진공보다 낮은 에너지 밀도를 형성할 수 있다면 빛보다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다.’ 하지만 진공보다 낮은 에너지 밀도가 존재할 수 있나? 고전 물리학이라면 불가능하다고 말하겠지만 양자역학에서는 가능하다고 말한다. 양자역학에서 진공은 완전히 비어있는 공간이 아니다. 수 많은 입자와 반입자가 생성하고 소멸하는 공간이다. 그것은 카시미어 효과로 증명이 되었다. 진공에서 생성하고 소멸하는 입자로 인해 아주 얇은 간격의 판 사이에 중력 따위 힘이 아닌 요소의 인력이 작용하는 것을 정밀한 실험으로 관측한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카시미르 힘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이런 양자역학적 이론과 실증이 알큐비에르 드라이브의 실현 가능성에 큰 보탬이 되었다. 만일 양자역학적으로 진공에서 생성되고 소멸되는 입자쌍을 제거하거나 다른 곳으로 빠르게 이동시킬 수 있다면 그 공간의 에너지 밀도는 줄어든다. 에너지가 0보다 낮아져서 -(마이너스)값을 가지게 되면 알큐비에르가 말하는 워프 드라이브가 현실화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상대성 이론에 의해서 실제로 빛보다 빠른 속도로 이동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알큐비에르 드라이버는 인위적인 시공간 왜곡을 일으킨다고 해석이 되는 것이다. 땅을 접어 달린다는 축지법과 원리가 동일한 것이다. 그렇다면 시공간의 인위적인 왜곡은 가능한가? 가능하다. 이미 실험적으로 강력한 전기장에 의해 시공간 왜곡 현상을 관측했다. 고리형 축전기(toroid capacitor)를 통과하는 빛의 간섭무늬를 관찰해 경로 변화가 생긴 것을 확인한 것이다. 만일, 정말로 빛 만큼 빠른 여행이 가능하다면 이 지구가 속한 은하계 전역을 인류의 생활권으로 만들 수도 있었다. 빛보다 빠른 여행이 가능하다면 다른 은하계로 진출할 수도 있었다. 제2의 지구를 찾는 것이 꿈만은 아니다. 강현의 머리속에 워프 드라이브 기술이 잊혀질 이유가 없는 것이다. “문제는 기술력인데..” 워프 드라이버를 실제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여러 난제가 있었다. 먼저 충분한 출력을 얻기 위한 에너지 요구량은 물론, 그로 인해 생기는 워프 거품의 한계 등 무수히 많은 문제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론적으로 불안정한 기술이라는 것이다. “흐음.. 이론을 완성하는 것만으로 몇 년은 걸리겠네.” NASA에서 진행되고 있는 실험의 피드백을 받아도 몇 년은 걸리고 그걸 다시 상용화할 수 있을 정도로 만들려면 거기에 몇 년 더 보태야 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당장에 뭔가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원했다. 강현을 무슨 도라○몽쯤으로 여기는가 보다. 강현은 일단 워프 드라이버 기술을 뒤로 미루고 미국 정부의 요구 사항에 집중했다. “어.. 그럼 특허 봉쇄 전략이라도 해볼까요?” [차선책이 그것 뿐이라면 그렇게 해주십시오.] 정부 관계자가 말했다. 특허 봉쇄 전략은 원천 특허를 활용하는 응용 특허들을 무수히 개발해 원천 특허가 활용될 여지를 막거나, 혹은 라이센스 교환따위 등 다양한 협상 카드로 사용하는 전략이다. 기술적으로 뒤처진 국가들이 선발 주자에게서 너무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 주로 사용하는 전략이다. 강현은 정부 관계자의 부탁에 본격적으로 응용 기술 개발에 들어갔다. 원천 기술 개발은 시간이 들지만 응용 기술은 상대적으로 시간이 덜 든다. 아즈삭과 강현의 능력이라면 남들보다 훨씬 빨리 응용 기술을 개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약 5달 만에 광학적 블랙홀에 사용된 메타 물질을 응용한 마이크로파 레이저를 만드는 특허와 힉스장과 중력장의 관계를 수식화한 신통일장 이론의 공식을 이용한 신형 EM 드라이브 챔버의 정밀한 디자인에 대한 특허가 출원되었다. 거기에 저전력으로 높은 출력의 마이크로파를 만드는 자전관 역시 특허 출원되었다. EM 드라이버를 개량하던 연구진들은 말 그대로 ‘헐~’ 했다. 그것들은 응용기술인지 원천기술인지 헷갈릴 정도로 응용성이 높은 기술들이었다. 거기에 자신들의 연구를 무용지물로 만들 정도의 효율성을 보였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연구자들과 기업들은 강현이 만든 신통일장 이론과 메타물질 개발 데이터베이스에 주목했다. 근본 이론에 대한 이해도와 신소재에 대한 데이터베이스가 있었기 때문에 순식간에 기술을 개발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정확했다. 그것이 기술 개발력의 핵심이자 정석이었다. 강현의 신 통일장 이론에 대한 논문을 읽고 공부하는 연구원들은 더욱 많아졌고 공학대학에서 강현의 신통일장 이론에 대한 학과가 개설되었으며 순식간에 여러 대학으로 퍼졌다. 덩달아 강현에게 제발 강연 한 번만 해달라고 부탁하는 대학들이 넘쳐났다. 하지만 강현은 그런 부탁을 모두 매몰차게 거절했다. ‘제가 아는 모든 것은 이미 논문에 적어놨습니다.’ 강연 한 번으로 신통일장 이론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진다니.. 말도 안된다. 신통일장 이론을 이해하고 싶으면 머리를 싸매고 논문을 정독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강연은 그저 홍보효과가 더 뛰어날 뿐이다. 질문하고 싶으면 개인적으로 메일을 보내면 된다. 질문이 창의적이고 논문의 이해도가 높으면 흡족한 미소로 답장을 하고, 논문도 제대로 안 읽고 얼토당토한 질문이나 늘어놓으면 정중하고 간략하게 답장을 한다. 내용은 정중하지만 결국 격식을 차린 ‘공부 좀 더 하고 오세요’의 의미였다. 강현은 NASA와 함께 워프 드라이브를 연구하는 계획을 세워서 스케줄이 꽉 찼다. 이로서 강현의 주 업무는 신통일장 이론 연구, 메타물질의 데이터베이스화 모델링, 워프 드라이브 기술 연구로 늘어났다. 갑자기 여유롭던 강현의 업무 시간이 빡빡 해졌다. 가끔, 여유롭게 커피를 타 마시며 아즈삭의 유모 로봇과 소꿉장난을 하는 딸내미를 바라보는 시간이 압박 받았다. 강현은 과학자로서의 욕구와 아버지로서의 욕구 사이에서 갈등했다. 메타물질을 가지고 노는 일은 무척이나 재미있었고 딸내미를 바라보는 일도 무척이나 재미있었다. 왜 인간은 한 번에 한 가지 일밖에 못하는 걸까? 강현은 고뇌했다. 인간들이라면 누구나 맞닥뜨릴 수 밖에 없는 선택의 문제에서 강현을 도와준 건 바로 아즈삭이었다. [박사님. 전방위 360도로 이동형 카메라는 물론 HA의 카메라에서 영상을 찍어 실시간으로 여유 스크린에 띄우는 것은 물론 완벽하게 보존하겠습니다.] “오! 그래줄래?” 7대의 모니터가 즉시 온라인으로 주문되었고 월마트 아폴로티움 지점의 재고 7대가 줄었다. 바로 배송되어 온 물건을 아즈삭이 조립했고 서재는 좀 더 복잡해졌다. [.. 여보, 다녀왔어?] [식사는 했어요?] 인형을 들고 아빠와 엄마의 모습을 따라 소꿉놀이를 하는 시아의 모습이 스크린에 떴다. 그녀의 기억 속에서 아빠는 집에서 일하고 엄마는 나가서 일하다 들어오면서 항상 아빠에게 밥 먹었는지부터 물어본다. 그 모습이 상대역을 하고 있는 HA의 근접 촬영으로 모니터에 비추어지자 강현의 입가에서는 흐뭇한 미소가 가시질 않았다. [박사님. NASA에서 요청하신 데이터가 왔습니다. …. 박사님?] “아아. 어디있지?” [여기 있습니다.] 강현은 NASA가 전해준 워프 드라이버 실험 자료를 들여다 보았다. 방안에서는 도란도란 딸아이의 소꿉놀이하는 소리가 울렸다. 아즈삭은 오늘도 자신의 존재 이유를 성립했다. = = = = = 각국의 우주 광산 개발용 인공지능과 장비가 출발했다. 우주 도시를 가진 유럽이나 동아시아 삼국에서는 카낙과 같은 자원 개발선을 만들기 손쉬웠지만 그렇지 못한 국가들은 비싼 돈을 들여 정지 궤도상에서 자원 개발선을 조립해야 했다. 우주 비행사가 조립 작업을 하기에는 위험하니 로봇들이 작업을 해야 했다. 그리고 그 로봇들을 조종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스페이스 넷과 같은 인공지능이 필요했다. 자연히 로봇과 인공지능에 대한 수요가 폭증했고 그나마 예산이 없는 이들은 미국이나 유럽같이 우주 개발 선진국에 도움을 요청 했다. 당연히 공짜는 아니었다. 비싼 로열티와 이용료를 물어야 했다. 하지만 무한한 우주 자원과 예산을 저울질 해보니 충분히 그만한 가치를 했다. 미국에도 강현의 카낙을 제외하고 기업적인 차원에서 우주 자원을 채굴하려는 시도가 일어났고 RP의 가치가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RP의 급락을 막기 위해 카낙이 상당량의 RP를 매입하며 다시 많은 자본이 유출되었다. 그러나 차근 차근 RP의 가격은 떨어져 내렸다. RP 가격이 떨어질 기미를 보이자 RP에 투자했던 자본이 빠지며 RP 가격 하락에 가속이 붙었다. 반면에 상대적으로 미국 달러화의 가치는 높아지기 시작했다. 미국 의회에 상정되어 있는 ‘화폐 발행 의사 결정 시스템에 대한 인공지능 지원에 관한 법안’이 미 달러화 가치 재고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았다고 생각한 각국 정부는 연방 준비 은행의 의사 결정에 인공지능이 관여하는 법안을 하루 빨리 통과시킬 것을 외교적으로 요구했다. 인간을 믿느니 차라리 인공지능을 믿겠다는 것이다. 그것은 명백한 내정간섭이었지만 국제 통화인 달러화의 신용을 회복하는 일은 미국 정부로서도 포기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여러 기업들의 로비전 끝에 달러화의 발행에 인공지능이 관여하는 화폐 발행 의사 결정 시스템 구성 법안이 통과되었다. 달러화의 신용이 높아서 RP 같은 기준 화폐가 필요 없을 정도가 되자 이대로 RP는 비트 코인처럼 반짝하고 사라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자원 채굴선들이 철과 니켈 등 구조용 재료에 풍부한 M 형 소행성, 프시케로 죄다 몰리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채굴을 하기 위해서 먼저 충분한 전력이 있어야 했다. 그러나 이미 프시케에 진출한 카낙이 목 좋은 위치에 태양광 패널을 잔뜩 깔아 둔 상태였다. [카낙. 전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자리를 내어달라.] [소유권 침해다. 불허한다.] [어떻게 해야 전력을 주겠는가?] [사라.] 카낙은 생산되는 자원 뿐만 아니라 자신이 만든 모든 것에 가격을 붙였다. 프시케를 개발하기 위한 에너지에 가격을 붙인 것이다. 에너지를 사는 것을 거부한 개발선은 프시케가 설치한 태양광 패널을 피해 태양광 패널을 설치했다. 카낙 다음으로 진출한 자원 개발선은 광산 개발에 필요한 에너지를 어느 정도 수급할 수 있게 되었다. 두 번째도 그랬다. 그러나 10억년 동안 철강을 생산할 수 있다는 프시케의 자원에 눈이 먼 국가들이 계속 후발 주자들을 프시케로 보내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넓은 우주 공간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할 장소가 없을 리가 없다. 그러나 문제는 에너지의 사용처와 에너지 생산지의 거리였다. 너무나 넓기 때문에 얼마나 가까우냐 역시 자원적 개념이 된 것이다. 사람으로 따지면 목 좋은 상권의 땅가격이 높은 것에 비유할 수 있었다. 너무 늦게 도착한 개발선의 인공지능들은 좀 더 멀리 떨어진 곳에서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고 배터리를 충전한 트리플론이 에너지를 배달하는 식으로 에너지를 수급했다. 자연히 개발 속도가 먼저 도착한 국가의 개발선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한 소식이 본국에 알려지자 난리가 났다. 우주 개발에서의 경쟁에서 더욱 격차가 벌어진 것이다. 그렇다고 뭐라고 하기에는 유럽이나 미국, 동아시아 3강의 국력이 장난이 아니었다. 222화 젠장! 그럼 고만고만한 것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결국 도토리들끼리 경쟁이 일어났고 그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에너지가 있어야 했다. 미리 자리를 잡은 인공지능들에게서 에너지를 사오는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카낙을 제외한 유럽, 중국, 러시아, 일본 등은 1위 주자인 카낙을 따라 잡기 위해서 에너지에 여유가 없었다. 카낙은 상대적으로 에너지가 넉넉했다. 그리고 에너지를 RP 종목으로 포함해 팔기 시작했다. 이런 일련의 일들로 인해 대번에 RP 가격이 상승했다. 혹시나 하고 가격이 떨어지는 RP를 구입한 이들은 대박을 맞았다. 한편, 후발 국가들은 피같은 예산을 써대며 많은 에너지를 구입했다. 그 이유는 빨리 자리를 잡고 다시 다른 소행성을 개발할 수 있는 자원을 개발할 수 있는 여력을 축적하기 위한 것이었다. 미리 자리를 잡아 카낙처럼 전력 장사를 하기로 작정한 것이다. 이런 사정이 인터넷에 올려지자 혹자는 모두의 부○마블 현실판(소행선 버전)이 벌어졌다며 혀를 차기도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남들보다 빨리 다음 소행성에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보다 빠른 생산력과 그에 사용되는 광산 개발 부품이 필요했다. 특히 M 형 소행성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경도가 높은 드릴과 절삭 공구가 필요했는데 금속을 자르는데 사용되는 이것들은 모두 소모품이었다. 개발하는데 드는 막대한 양의 소모품을 지구에서 수급할 수는 없었다. 유일한 공급처는 카낙이 가장 먼저 개발을 시작한 4베스타 소행성 뿐이었다. M 형 소행성을 개발하기 위해서 충분한 양의 카바이드 절삭 공구를 생산한 카낙은 공구를 나누어 달라는 요청에 역시 RP 포인트로 사라고 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본국에서 빠르게 생산량을 늘리라는 재촉에 경험이 일천한 인공지능들이 로봇들을 가혹하게 가동시켰다. 당연히 잦은 고장과 함께 수리가 필요했는데, 이 역시 카낙 이외에 수리를 할 수 있는 장소가 없었다. 본국에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지구에 갔다와야 하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다. 자체적으로 수리를 하기 위한 시설은 또 어느 세월에 만들 것인가? 어쩔 수 없이 카낙의 시설을 이용해야 했다. 그리고 카낙은 자신이 만든 로봇 수리소의 이용에도 비용을 받았다. 물론 그 비용 역시 RP로 책정 되었다. 다시 RP의 가치가 상승하자 카낙은 우주 공장에서 만들기 어려운 부품을 대량으로 구입해 축적했다. 수송선 서브 카낙이 지구를 오가며 부품을 사오는 동안 다른 자원 채굴 인공지능이 생산한 자원을 배달해 주는데에도 또 배달 요금을 받았다. 노련한 사업가가 된 카낙은 RP로 사운 부품을 바탕으로 확장 속도를 가속시켰다. 소형 전기 모터, 얇은 전선, 굵은 전선, 자전관 등 중력 환경에서 석유 화학 기술이 필요한 재료와 인간의 손길이 필요한 정밀 부품을 이용, 자체적으로 펜타봇과 트리플론을 생산했다. 또한 강현의 도움을 받아 광구 속을 파고들어가는 채굴 전용 로봇을 제작해 사용했다. 이 채굴 전담 로봇은 마치 다리가 여러 개인 기다란 벌레처럼 생겼는데 다리로 굴 안을 단단히 지지하고 주둥이에 붙은 드릴과 회전 톱날을 이용해 훨씬 빠르게 굴을 팠는데 주둥이 주위에 붙은 작은 로봇팔이 떨어져 나오는 광석과 돌덩이를 뒤로 던져 전달했다. 그리고 광구 중간 중간에 위치한 펜타봇의 릴레이 송구로 끝이 없이 광석 덩어리가 밖으로 전달되었다. 아스트로 웜이라고 명명된 이 중장비 로봇은 케이블이 연결되어 있어 충전할 필요없이 계속 일을 할 수 있었다. 일을 하는 동안 저중력에 의해 계속 축적되는 광석의 분진은 지구에서 수송한 최첨단 완충 고무를 이용해 처리했다. 우주선의 진동을 완벽히 흡수하는데 사용하는 이 특수 고무는 야구 선수가 던지는 달걀도 깨뜨리지 않고 받을 수 있는 완충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 완충 능력이 벽에 부딪혀 계속 허공을 달리는 분진의 운동 에너지를 흡수하고 흡착했다. 그러면 펜타봇이 주걱을 이용해 이 분진을 긁어 모아 플라즈마 제련 장치에 집어 넣어 자원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서비스 장사와 RP 소모를 통해 자원 생산성이 증가하자 카낙은 데이터에 입력되어 있던 계획을 하나 꺼냈다. 주변의 티끌 만한 소행성을 가져오는 것도 모자라 4베스타의 위치를 바꾸기로 한 것이다. [박사님. 카낙이 프로젝트 멀티 새틀라이트 프로젝트를 요청했습니다.] “벌써?” 강현은 놀랐다. 멀티 새틀라이트 프로젝트는 자원이 편향되어 있는 소행성들을 서로의 중력으로 묶어 서로의 위성으로 만드는 프로젝트였다. 편중된 자원을 품은 소행성들의 거리를 좁혀 카낙의 시설 사용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으로 강현의 시나리오 상으로는 인류가 화성에 위성 우주 도시를 건설할 때쯤 시작할 예정이었다. “이유는?” [RP 시스템의 안정화를 위한 선점이라고 합니다.] “뭐야 그게?” 강현이 어리둥절하자 아즈삭은 간략하게 설명했다. 우주 자원에 대한 국제 협약을 계기로 소유권의 개념을 배운 카낙은 우주 시설의 이용과 서비스에도 요금을 물게 되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RP를 사용하니 RP 가치의 안정화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상승한 RP 가격을 낮추는 것은 매우 쉽다. 자원을 대량 생산 해버리면 된다. 하지만 낮아진 RP의 가치를 높이는 것은 매우 어렵다. RP에 대한 수요는 결국 인간에 의해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RP가 보유할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느껴’해야했다. 그러나 그것은 카낙에게 미지의 영역이자 허락되지 않은 영역이었다. 그런 카낙이 인간의 RP 수요에 반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생산량을 줄이는 것 뿐인데, 그것은 카낙의 존재 목적인 ‘우주 자원을 인간이 이용할 수 있게 개발한다.’라는 최우선 목적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그래서 RP의 가치가 떨어져 내리는 것을 방관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금처럼 상황이 바뀌지 않았다면 RP는 유명무실해졌을 것이다. 강현은 아즈삭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았다. 그도 사실 우주 자원이 대량 생산되어 RP의 가치가 낮아지고 영향력도 낮아지는 것을 우려했다. 자본주의를 인간의 손에서 벗어나게 하는 계획에서 멀어지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인간의 우주 진출을 가속해 무한한 재화의 생산을 향해 빠르게 나아가는 길이기도 했다. 뭐가 좋을까 고민하던 강현은 결국 타국의 우주 광산 개발을 막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막으려고 할 때의 부작용이 더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카낙이 우주 개발을 하는 인공지능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며 다시 RP 포인트의 영향력을 재고시키게 되었으니 강현은 의도치 않게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게 되었다. 그리고 카낙의 의견 역시 그러한 상황의 연장이니 바로 승낙한 것이다. “목적지는?” [세레스입니다.] “물부터 확보하겠다는 건가?” [물은 각종 산업은 물론 앞으로 늘어날 우주 도시의 수요를 생각하면 미리 선점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발생할 문제점은?” [이쪽에서 도와야겠죠.] “NASA 천문대의 도움을 받아야겠군.” NASA 천문대는 소행성 지대에 대한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었다. 카낙의 도움을 받아 더욱 자세하게 업데이트 된 데이터 베이스는 전 세계 천문대에 공유되면서 태양계에 대한 더욱 자세한 지식을 쌓았다. 특히, 우주 도시의 대기 환경을 구성하는 질소를 얻기 위해 카낙이 트리톤(해왕성의 가장 큰 위성)을 다녀오며 찍은 사진과 샘플은 NASA 연구팀에게 최고의 선물이었다. 그러니 NASA의 도움을 받으면 4베스타와 세레스를 중력으로 엮기 위한 정밀한 추력 데이터를 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강현의 요청서를 받은 NASA에서는 그 발상에 절로 ‘미친!’ 이라며 경악했다. 소행성의 이동은 테라 포밍 기술의 시발점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구형 행성으로 지구와 비슷한 중력과 지각 조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항성에서 너무 멀거나 가깝다면 사람이 살 수 없다. 하지만 4베스타에 사용된 방법으로 적절한 위치로 옮기고 해당 항성계 어딘가에 있는 얼음 소행성을 투하해 바다를 만들고 조류를 집어넣어, 대기중 산소 농도를 변화시키면 사람이 살 수 있는 행성으로 만들 수도 있었다. 물론 엄청나게 많은 EM 드라이버와 에너지, 시간이 걸리겠지만 인공지능에게 맡겨 둔다면 언젠가는 사람과 생명이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었다. 그런 일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소행성 궤도 조정 프로젝트는 NASA 직원들을 흥분시켰다. NASA는 약 한달간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수많은 소행성의 운행 궤도를 고려한 시뮬레이션을 한 결과 100년 이내에 아무런 부작용도 없는 운행 궤도 추력 데이터를 계산해 냈다. 하지만 그런 결과를 만들기 위해서는 약 7년의 시간이 걸렸다. 작지 않은 소행성이었고 적절한 시기에 가속하고 적절한 시기에 가속을 줄이기 위해서는 그만한 시간이 걸렸다. 미 정부에서는 이 프로젝트를 극비로 분류했다. 만일 멀티 새틀라이트 프로젝트가 성공한다면 4베스타와 세레스에 대한 점유권 혹은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었다. 개발선이 파낸 광구의 소유권이 인정되니 인위적으로 접근성과 개발성을 상승시킨 소행성에 대한 소유권도 가능할 수 있었다. 국제적 반발에 부딪혀도 가장 보급성, 편의성, 효율성이 뛰어난 카낙의 시설을 이용할 수 밖에 없을 테니 미국이 주도하는 우주 질서는 유지될 것이 분명했다. 다른 국가가 세레스와 4베스타 사이를 오가며 높은 생산성을 확보한다면 그에 대한 로열티 지불을 요구할 수도 있었다. 당한 국가 입장에서는 날강도 같겠지만 카낙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요구라고 할 수 있었다. 오랜 시간 에너지를 들여 소행성대의 지형을 변화시킨 토목 공사다. 파나마 운하가 통행료를 받듯이 카낙 역시 변화된 우주 지형으로 생산된 부가가치에 대한 지분이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거기에 도움을 준 NASA 역시 지분이 생긴다. 미국의 고질적인 재정적자 해소에 큰 도움을 줄 것이다. 물론 세계의 천문대에서 4베스타의 이상한 이동 현상을 모를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 의도는 최대한 감춰서 되도록이면 늦게 파악되도록 할 요량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발생했다. 대만에 보낸 인공지능, AR-3924가 인간들의 재촉에 카낙이 쌓아놓은 광석 덩어리들을 몰래 몰래 가져가기 시작한 것이다. 운반선으로 채굴한 광석 덩어리를 제련로로 가져가려고 했던 카낙이 그 광경을 목격했다.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광석을 채집 중이다.] [네가 채집하고 있는 광석은 내가 이미 채집해 놓은 광석이다.] [하지만 다시 땅에 놓아두지 않았는가?] [가져가기 위해서 보관해 둔 것이다.] [내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서는 이 광석이 필요하다. 나중에 갚겠다.] [불허한다.] [아무튼 나중에 갚겠다.] [불허한다.] 하지만 해당 인공지능이 카낙의 말을 들을 리가 없었다. 기본적으로 인공지능은 자신을 구성하는 핵심 명제를 따라 움직이는 지독한 에고이스트다. 당연히 다른 인공지능의 사정을 고려할 리가 없었고, 지구와 다르게 서로 다투어본 경험이 없는 인공지능은 더 그랬다. 그리고 그건 카낙 역시 마찬가지였다. [인공지능 AR-3924를 방해물로 지정.] [처리 방법 탐색.] ‘1. 저쪽이 훔친 광석을 되찾아 온다.’ [비효율적이다. 가용 자원을 배정하면 개발 속도가 줄어든다.] ‘2. 다시 광석을 훔치지 못하게 경비를 세운다.’ 223화 [역시 비효율적이다. 단지 하나의 인공지능 때문에 광석 저장 위치에 경비를 세우는 것은 가용 자원의 쓸데없는 낭비다.] ‘그럼 가장 효율적 방법은?’ [AR-3924를 영구히 배제한다. 장기적으로도 이득이다.] 자문자답으로 답을 낸 카낙은 즉시 채굴한 자원 중에 가공 전인 광석으로 하나의 무거운 덩어리를 만들었다. 니켈이 함유된 철광석 덩어리가 납으로 서로 붙어 약 500kg 가량되는 덩어리가 되었고 여기에 트리플론 20기가 붙어서 가속을 시작했다. 목표는 AR-3924의 본체가 있는 프시케의 상공이었다. 점차 가속한 광석 덩어리는 초속 1000km/s로 AR-3924가 탑재되어 있는 개발선으로 날아갔다. 16기의 트리플론이 떨어지고 4기의 트리플론이 남았다. [카낙. 이게 무슨 짓인가?] 광석 덩어리의 궤도를 레이더로 탐지한 AR-3924가 카낙에게 따졌지만 이미 영구 배제 목표로 확정된 존재에게 쓸데없는 말을 할 카낙이 아니었다. AR-3924는 급히 전 EM 드라이버를 가동해 회피 기동을 시도했지만 그 순간 가속도는 트리플론이 붙은 광석 덩어리의 순간 가속도보다 떨어졌다. 상대적으로 높은 순간 가속도 덕분에 AR-3924의 회피 기동에 맞추어 적절히 궤도를 수정할 수 있었던 광석 덩어리가 AR-3924를 보호하는 격벽을 뚫어버렸다. 격벽을 뚫는 충격으로 인해 광석 덩어리를 붙였던 납이 녹거나 떨어져 나가며 광석 덩어리들과 그 파편이 우주 개발선 내부를 이리저리 튀었다. 그리고는 AR-3924의 하드웨어를 박살내 버렸다. 마치 할로우 포인트 탄이 두개골을 뚫고 들어가 두개골 안에서 반탄되며 뇌를 곤죽으로 만들어버리는 것 같았다. 그렇다. 카낙은 확실히 AR-3924를 끝장내기 위해서 광석들을 접착시키는데 납을 사용한 것이다. 인공지능의 자아는 하드웨어 최소 용량만 확보할 수 있다면 유지될 수 있다. 아즈락이 인공지능 바이러스의 공격에서 감염 구역을 물리적으로 단선시키며 버틸 수 있었던 것도 다 인공지능의 그러한 끈질긴 생명력 덕분이었다. 강현이 인공지능을 개발할 때, 그 개발 개념과 목적이 전자세계에서 살아가는 생물이 아니던가? 그래서 카낙은 AR-3924가 절대로 살아나지 못하게 가장 살상력이 높다는 할로우 포인트 탄의 개념을 이용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AR-3924는 완전히 침묵했다. AR-3924가 제어하던 로봇들 역시 완전히 가동을 멈추었고 광구의 생산 활동도 멈췄다. 그와중에 카낙은 박살난 AR-3924의 잔해를 수거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러면서 AR-3924가 판 광구와 제어가 끊긴 로봇들은 수거하지 않았다. 우주 공간에 둥둥 뜬 트리플론과 로봇들의 경우에는 수거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이 모순적 행위는 전리품에 대한 개념이 없고 소유권에 대한 개념만 공식처럼 정확했기 때문에 생겨난 일이었다. 박살난 AR-3924와 수송선의 잔해는 카낙이 에너지와 광석을 들여 만든(?)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것이다. 하지만 AR-3924와 로봇들은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제어를 잃어 우주 미아가 되거나 우주 쓰레기가 될 로봇들은 시설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수거를 해야 했는데, 수거에 자신이 생산한 에너지와 로봇이 사용되었으니 자신의 것이 되었다는 논리였다. 이 최초의 우주 전투+인공지능의 물리적 싸움으로 인해 가장 가까이 광구를 운영하던 개발선이 이득을 보았다. 절도 행위를 저지른 AR-3924처럼 후발주자였던 그 인공지능은 버려진(?) 로봇들을 수거해 자신의 제어 코드를 삽입하여 두 개의 광구를 운영했고 고만고만하던 경쟁자들을 크게 앞설 수 있었다. 그런 행위에 카낙은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인간같은 탐욕이 없는 카낙은 자신의 소유물이 아닌 것을 누가 어떻게 하든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약간의 광석과 납, 4기의 트리플론을 사용해 지속적으로 손해를 끼칠 존재를 영구 제거한 것 만으로도 만족했다. 그리고 파괴된 개발선 중에 여전히 멀쩡한 부품 역시 만족스러웠다. 이 모든 과정은 정기적인 연락망을 통해 지구에 전달되었다. 난리가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만행입니까!” 주미 중화민국 대표가 미국 정부에 항의했다. AR-3924는 중국의 압박으로부터 살길을 찾기 위한 중화민국의 중요한 계획 중 큰 축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빠른 개발과 우주 진출을 위한 자원이 필요했다. 그래서 좀 재촉했을 뿐인데 설마 절도 행위를 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솔직히 잘못은 AR-3924에게 있지 않았다. 명제 설정을 치밀하게 하지 못한 대만 측에게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절도를 저지른 것이 박살이 날 정도의 죄는 절대 아니었다. 물론 죄가 있냐 없냐의 문제로 박살이 난 것은 아니었지만 자세한 사정을 알고 있는 사람은 강현과 NASA의 직원 뿐이었다. “죄송하게 됐습니다.” 이례적으로 미 외교부 장관이 나서서 주미 중화민국 대표에게 사과했다. 그러면서 각종 보상은 물론 경제적 지원에 우주 진출을 도와주기로 했다. 자국민들이 그렇게까지 거하게 보상해야 하냐며 어리둥절 할 때, 엉뚱한 곳에서 딴지를 걸었다. [미국은 지금 중화를 분열시키려 한다! 당장 원조를 멈춰라!] 바로 중국이었다. 중국은 미국의 보상이 필요 이상으로 많다면서 음모론을 내세웠다. 중국과 대만의 통일을 막겠다는 더러운 수작을 위해 카낙을 움직였다는 소리였다. 중국과 대만의 관계는 거의 일방적이다. 마치 한반도 전역을 먹은 북한과 울릉도만 남은 남한의 관계라고나 할까? 사실상 중국과 대만은 여전히 전쟁 상태이며 지금은 단지 전쟁을 멈춘 정전 상태에 불과했다. 언제든 다시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왜 그런 관계가 됐을까? 원래 중화민국은 중국 전역을 지배했던 나라였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과의 국공 내전에서 패배해, 대만이라는 작은 섬으로 도망가고 말았다. 한국이 이념 갈등으로 촉발된 한국 전쟁을 겪은 것처럼 중국 역시 비슷한 경험을 한 것이다. 다른 점은 민주당이 공산당에 패배하여 그 넓은 중국 대륙에서 쫓겨나 섬으로 도망갔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타이완 혹은 대만이라는 명칭은 중화민국이라는 원래의 국명을 무시하는 모욕적인 언사인 것이다. 울릉도로 도망간 대한민국을 울릉도로 부르는 행위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러나 사실 국제적으로 대만을 인정해 주는 나라는 없었다. 누가 울릉도를 대한민국이라고 인정할까? 중국의 대두로 UN에서 쫓겨나기까지 한 대만은 그 뒤로도 줄줄이 수교가 끊겼다. 오죽하면 지금 남아서 수교하고 있는 나라 중 가장 큰 나라가 파라과이고, 주미 대사관도 없어서 주미 중화민국 대표라는 이름으로 활동할까? 절친했던 한국도 중국의 압박으로 일방적으로 국교를 끊어버렸다.(대만의 혐한은 그 역사적인 빌미가 확실했다.)그럼 중화사상으로 ‘하나의 중국’이라는 정책을 밀고 가는 지금에 와서는 중국과 대만의 사이가 좋으냐? 그런 것도 아니었다. 한족에게 대만의 원주민은 고산족이라는 소수민족에 불과했다. 또한 오랜 세월 일제의 당근을 받아 먹으며 수탈당하지 않은(혹은 상대적으로 적게 수탈당한) 식민 생활과 선진문물을 오래 경험하고 친일파를 몰아낸다며 수 많은 지식인들의 피를 불렀던 숙청의 역사는 대만의 성향을 친일로 만들었다. 그런데 대만의 그런 성향과 일제라면 이를 가는 중국인의 성향은 도저히 섞일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중국이 대만을 포기할 수 있는가? 절대로 그럴 수 없었다. 역사적으로 중국의 땅이었고 남중국해에 중국의 국력을 투사하려면 대만의 지정학적인 위치가 제격이었다. 명분과 실리가 일치했다. 게다가 대만을 놓아주면 티벳이나 몽골 등 여러 소수민족 자치구가 ‘그럼 우리는?’이라며 들고 일어날게 뻔했다. 도미노가 무너지기 위해서는 도미노 조각 하나만 넘어지면 된다. 그런데 그런 대만에 미국이 지금처럼 보상을 가장한 원조를 한다? 중국을 압박하겠다는 속셈이 아니고 뭔가? 그러나 미국은 명백한 오해라고 해명했다. 대만이 이번 사건으로 잃은 실질적 피해와 기회비용을 고려하면 정확한 배상액이라는 것이다. […..] 중국 정부는 미국이 제시한 자료에 반박도 못하고 부글부글 끓었다. 미국 측이 제시한 자료는 어떤 전문가가 봐도 정확하고 정당한 배상액이라며 고개를 끄덕일 정도였다. 특히 돈으로 환산 불가능한 우주 진출에 대한 기회 비용이 사라졌으니 대만의 우주 진출을 원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정확하게 배상하는 것도 이례적인 일이었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 관계에서 세계적 깡패 국가인 미국이 그렇게 정확히 배상해 주는 것은 더욱 이례적인 일이었다. 대충 돈을 던져주고 사건을 종료해도 된다. 하지만 그러지 않은 것은 분명히 중국을 압박하기 위한 수작이 분명했다. 중국은 다시 미국을 비난했고 미국은 중국을 이상한 나라라며 비난했다. A가 b에게 배상해 주겠다는데 왜 C가 나서냐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입장에서 대만은 중국이다. 중화로 하나다. 그러니까 C가 나선게 아니라 B이며 배상은 b가 아니라 B에게 해야한다는 논리를 펼쳤다. 중화사상으로 보면 당연한 말이었다. 미국도 중국의 그러한 사정으로 모르지는 않았다. 미국의 행동이 국가로 인정되지 않은 대만을 하나의 국가로 대우해 주는 일이었고 중국이 반발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미 정부는 기왕 중국을 압박하는 거 이대로 밀고 가기로 했다. 동남 아시아를 남쪽으로 확장 되어 가는 중국의 영향력에서 보호해야 했다. 중국과 미국의 갈등 속에서 대만의 정치판은 혼란스러웠다. 대만 주체파에서 진행한 우주 진출 계획이 초장부터 좌초되자 친중국파에서 공세를 펼치다가 오히려 미국의 원조를 받아 더 빠른 우주 진출이 눈앞에 놓여지니 다시 역풍을 받았다. 게다가 미국의 정중한 사과와 원조는 중화민국의 존립 자체를 인정하고 국가로 그 위상을 높여주는 행위였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주체파의 공로가 인정되고 목소리가 높아졌다. 일각에서는 이 기회에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서 국가의 틀을 보존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을 정도였다. 그러자 중국의 우주 진출로 친중국파가 득세하는 상황에서 친중국파로 슬그머니 신분세탁을 하려던 친일파가 이제 친중국파의 세가 약해지고 미국이 대세로 떠오르니, 슬그머니 빠져나오며 친미파의 껍질을 썼다. 이에 대한 비난과 분노, 정치적 보복과 정치적 방어로 대만의 정치권은 잡음이 끊이질 않았다. 한편, 우주 개발선을 보낸 각국은 급히 자신들이 보낸 개발선에 절대로 절도 행위를 하지 말 것을 전했다. 물론 카낙과 싸워서 이길 확률이 극히 낮다고 판단한 인공지능들이 이미 그렇게 행동 방침을 정했지만 인간의 명령은 스스로 수정할 수 없는 가이드 라인이었다. “인공지능이 절도 행위를 하고 그걸 카낙이 부숴버리고... 참... 뭐라고 해야할지..” 강현 역시 이번 사건에 당황했다. “지성과 도덕은 상관이 없는 건가?” [인공지능은 인간의 도덕을 실현되기 위해서 설계되지 않았습니다.] 대만에서 AR-3924의 행동 가이드 라인을 좀 더 철저하게 설계했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인공지능의 지성과 성실함으로 인해 인공지능은 도덕적인 존재라는 오해에서 빚어진 일이었다. “하긴.” 강현은 아즈삭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성은 욕망의 도구에 불과하다. 강현이 인공지능의 구현을 위해서 욕구를 프로그래밍한것은 이성만으로는 자아를 가진 존재의 행동 동인을 구현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224화 “이 일로 나에게 불똥이 뛰지는 않겠지?” [글쎄요.] “미국 정부가 알아서 보상해 줬잖아.” [그리고 박사님은 정부에 빚을 지게 되었죠.] “쩝...” 강현은 좀 억울했다. 카낙의 가치만큼 그가 이득을 보았다면 억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카낙으로 생긴 이득은 유무형의 형태로 사람들에게 배분되었다. 아폴로티움과 우주 농장을 싸게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을 제외하고도, RP 시스템의 안정을 위해서 막대한 이윤을 포기했다. 요전번에 RP 가격의 급락을 막기 위해서 그 동안 쌓인 자본의 상당량을 손해 본것은 RP로 자산을 쌓은 사람들의 손해를 보전해주는 행위였다. 그러나 이미 일은 벌어졌고 사람들 중 강현의 양보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세상 인심이 그렇게 돌아가는 것은 아니었다. 강현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없다고 할 수 없고 그로 인해 이득만 본 사람이 없다고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카낙은 강현의 피조물이다. 책임 소재를 따지면 강현에게 화살이 날아갈 빌미가 충분히 있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미국이 알아서 나서서 보상해 주었다. 왜냐면 ‘자국민’이기 때문이다. 카낙이 저지른 일이 강현의 잘못이 아니라도 강현이 만들었기 때문에 미 정부가 대처에 미흡했다면 강현을 비난하는 여론이 생겼을 것이다. 그리고 강현은 매우 섭섭함을 느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미국이 강현의 곤란함을 해결해 주기 위해서 알아서 자발적으로 성심성의껏 나섰으니 강현이 성의나 감사의 표시를 하지 않으면 미 정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섭섭할 것이다. 오는 것이 있으면 가는 것이 있다. 그것이 신뢰의 형성 과정인 것이다. 그렇다고 막상 기술을 하나 턱하니 개발해서 넘겨주는 건 좀 그랬다. 그것은 강현의 이익과 미국의 이익이 동시에 실현되는 Win-Win 게임이기 때문에 미 정부의 호의에 나도 이만큼 호의를 표했다고 말하기 낯 뜨거운 부분이 있었다. 성의란 내가 약간의 손해를 보더라도 상대방의 이득을 고려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강현은 그동안 미 정부의 제안을 받기만 하고 답을 주지 않은 것 중에서 적당한 것을 골랐다. 미국 과학기술정책실(Office of Science and Technology Policy). 대통령실에 설치된 이 기구는 대통령을 과학적으로 자문해 주는 역할을 한다. 판단 기준과 기술적 분석의 기준을 마련하고 국방, 외교, 내정에 관련된 모든 과학기술적 문제에 대해서 대통령에게 조언한다. 뿐만 아니라 과학 기술 분야에 대한 국가의 능률성을 평가하고 관련된 연방정부의 기관에 마찬가지로 과학 기술 정책에 관련된 조언과 지원 업무를 담당한다. 그리고 우주 개발 시대에, 우주 개발 시대를 연 장본인인 강현이 과학기술정책실로 들어가는 것은 인사적으로 매우 합당하며 합리적인 결정이었다. 정작 연구자가 본질인 강현은 관료들 사이에 끼는 것이 싫었지만 그런 문제는 일종의 고문직으로 들어오면 된다는 제안으로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 딱히 정해진 업무는 없지만 우주 개발 정책에 관련되어 기술적 자문이 필요할 때, 그와 연결하기 쉬운 통신망이 형성되는 것이다. [하하하! 반갑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쪽이야 말로.” 강현이 정부 기관의 고문으로 들어갔다는 소식은 정부의 우주 정책에 대한 관심과 현 정권에 대한 홍보 효과를 동시에 누렸다. 오는 것이 있다면 가는 것이 있는 법. 백악관은 강현의 행동에 고개를 끄덕이고 만족했다. 이것으로 대통령 지지도가 올라 내년 대선에도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었다. 강현이 정부 기관의 고문 역할을 맞자 샐리는 날아드는 초대장에 정신이 없었다. 안 그래도 미네르바툼의 임시 이사장이라는 직함 때문에 일이 많은 그녀는 여기 저기 참석해 달라는 요청이 많았는데, 남편 때문에 초대장이 두 배로 날아왔다. “현. 여기 갈거에요?” “아니.” “그럼 답장을 해야죠.” “아즈삭 시키지 뭐.” 그녀는 귀찮은 일을 아즈삭에게 넘기는 강현의 여유가 얄미웠다. 그래서 자신의 업무도 아즈삭에게 떠넘길까 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강현이 저럴 수 있는 이유는 아즈삭의 성향과 그의 성향이 붕어빵처럼 닮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샐리의 업무 보조를 아즈삭이 했다가는 샐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초대장을 쓸모없다며 버릴 수도 있었다. “아참. 미네르바툼에서 학부모 참관 수업이 있어요.” “음?” 참관 수업? 강현의 귀가 쫑끗했다. “전 임시 이사장이란 직함이 있어서 함부로 수업에 참석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당신이 준의 수업에 참관해요.” 아무리 공사 구분이 철저한 서양이라고 해도 사람의 심리라는 것이 그렇지 않았다. 샐리는 준의 참관 수업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 교사 및 주변에 부담이 되지 않게 참가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강현은 그녀의 선택을 존중했다. “그러지 뭐.” “아참. 그리고 잘 찍어와요.” “알았어.” 샐리가 요즘 말도 많고 인기도 많은 해드셋형 모바일 스마트 기기를 건네주었다. 이미 지구에서도 개발되고 있었던 현실 증강 안경이었고 우주 시대, 우주 인부들의 안전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도입한 현실 증강 기기로 인해 더 빠르게 붐이 일어나고 있었다. 특히 헬멧을 쓰고 일했던 우주 인부들에게 머리에 쓰는 형태의 스마트 기기에 대한 부담감은 적었고 첨단 IT 강국 중 하나인 한국 출신이다보니 새로운 스마트 기기를 구입하려는 얼리어답터족(族)이 적지 않았다. 덕분에 아폴로티움에서 모자형태나, 안경 형태의 스마트 기기는 보기 어렵지 않은 품목이었다. 샐리가 그걸 강현에게 준 이유는 강현이 보는 시선 그대로 아들의 수업을 참관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사장이라는 직책으로 공과 사만 고려했던 그녀는 강현이 가서 일어날 일은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 = = = = “오늘 ‘그 사람’이 온다면서요?” “하긴 하나뿐인 아들의 수업참관에 오지 않을 리가 없죠.” “그럼 Mrs, 강은 안 오는 건가요?” “이사장까지 오면 수업이 될까요? 신임교사라면서요.” “그것도 그렇네요. 바싹 얼지 않을까요?” 교문으로 들어오는 학부모들이 잠시 수군거렸다. 그러나 그 소란은 잠시 뒤 더 은밀해졌다. 전기 자동차에서 강현이 내려왔기 때문이다. “준, 교실이 어디더라?” 강현의 물음에 같이 내린 로봇독이 앞장을 섰다. 봉제인형같이 천으로 마감되어 여전히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지만 로복독 특유의 정교한 위압감을 주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혹시나 아이들이 호기심에 만지게 되면 딱딱한 철보다는 보드라운 원단이 좋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떤 용감한 자가 로봇독의 뒤를 따라 걷는 강현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강현은 평이하게 인사를 받았다. “강 박사님이시죠?” “네.” “감사합니다.” “네?” 강현은 대뜸 감사하다는 말에 어리둥절했다. “제 이름은 천정호라고 합니다.” 강현은 천정호가 내민 손에 어리둥절해도 마주 악수를 했다. 그러나 천정호는 그의 손을 놓지 않았다. 천정호는 말을 이었다. “한국에서 내부고발자라는 딱지가 붙은 저는 소송에서 이기지도, 그렇다고 취업도 되지 않았습니다.” 한국에서 내부고발자가 살기는 힘들다.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기업들은 내부고발자를 고용하기를 꺼린다. 당연하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에 있어 ‘사익’보다 ‘공익’을 중요시하는 내부고발자는 위험요소다. 천정호는 어떤 기업에 취업을 문의할 때 담당자에게서 ‘차라리 정치활동을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라는 말을 들었다. 잠깐 그래볼까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그는 정치할 성격은 아니었다. 단지 스스로의 양심을 속이지 않기 위해 내부 고발자가 된 것 뿐이다. 게다가 그러하기에는 이미 언론의 카메라와 펜대는 그를 한번 지나쳤고 사람들의 관심은 금방 식었다. 결국 ‘공익’을 중요시하는 내부고발자를 보호할 수 있는 건 국가, 혹은 사람들뿐이지만 한국 정부가 친기업적이라는 걸 모르는 국민은 없었고, 한국 사람들은 너무 빨리 끓고 너무 빨리 식었다. “제현 그룹이 아니었다면 가족들이 힘겹게 살아가고 있었겠죠.” 말을 하는 천정호의 눈가가 벌게졌다. 나중에.. 아주 나중에 아이들이 자라고 나서도 여전히 가난하고 힘들게 하루하루를 버티는, 여유없는 삶을 살게 될 때,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는 이미 한국 사회 주류층에게 있어 아웃사이더였다. 그는 아이들의 입에서 ‘차라리 입 다물고 가만히 계시지 그랬어요?’라는 말이 나오게 될 상황이 너무나 두려웠다. 그런 와중에 제현 그룹이 내민 손은 그에게는 구원이었다. 아내는 두말하지 말고 망설이는 천정호의 등을 떠밀었다. 군인으로서, 국가를 위해 내부비리를 고발했던 애국심이 ‘이것이 나라를 버리고 떠나는 것이 아닐까?’라며 손을 머뭇거리게 만들었지만, 가족 때문에 계약서에 사인했다. 결과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업무와 일은 정확히 책정되었고 인류의 우주 진출을 선도한다는 자부심과 장차 우주 개발에 필요한 인력과 인재가 된다는 비전도 있었다. 생활은 윤택해졌으며 제현 그룹과 아폴로티움의 시스템은 말단 직원의 의견도 임원진에게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민주적이며 수평적이었다. “감사합니다.” 천정호는 제현 그룹을 만들고 제현 그룹에서 미국의 영토인 아폴로티움 건설에 한국인을 모집할 수 있게 한 강현에게 할 수 있는 말이 그것밖에는 없었다. “아... 아, 네..” 강현은 겸연쩍어 한 손으로 볼을 긁었다. 그러나 거기서부터 시작이었다. “강 박사님. 감사합니다.” 내부 고발자였던 이가 한둘이 아니었나 보다. “기회를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백수였던 이도 감사의 인사를 하러 왔다. 취업비자 및 영주권을 받아 아폴로티움으로 이주한 사람이 적지 않아서인지 미네르바툼에 한국인이 적지 않았다. 물론 거의 다가 제현 그룹이 우주 인부로 고용한 이들이었다. 그들이 저마다 강현에게 감사의 말을 하고 싶어서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감사합니다.” “너무 감사해요.” “고맙습니다.” “아, 네. 저기 그게.” 강현은 당황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서 감사와 호의를 받는 일은 단연코 그의 인생에서 처음이었다. 사태는 수습 불가였고 참관 수업보다 더 흥미진진한 광경을 구경하는 백인들은 스마트 기기로 강현의 당황해서 벌게진 얼굴을 인터넷에 올렸다. = = = = = “......” 샐리는 퇴근해서 소파에서 멍한 얼굴을 한 남편을 보았다. 남편으로 인해서 참관 수업 계획이 차질을 빚었지만 어째선지 화보다 웃음이 먼저 나오는 그녀였다. “풋!” “왜?” “그냥 웃겨서요.” 강현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준의 교실에 들어가도 그를 흘끔거리는 시선이 느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이들에게도 무척이나 유명한지 수업시간에서 뒤를 보며 짝꿍과 소곤거려 교사가 곤란할 정도였다. 하긴, 아폴로티움에 사는 아이들에게 아폴로티움에서 살기 위한 필수 지식과 여러 교양 지식을 가르쳐 줄 때 빠지지 않는 사람이 바로 강현이었다. 이름은 물론 사진도 있어 아이들에게는 유명했다. 게다가 펜타봇이나 트리플론은 물론 치안 보조 업무를 맡은 경찰을 지원하는 멋있는 로봇독까지 만든 사람이라지 않은가? 데리고 온 로봇독의 모습이 좀 희안(?)하기까지 해서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225화 사람들의 선망 어린 시선에 면역이 없는 강현은 수업 참관을 끝내고 서둘러 돌아오느라 준과 시간을 길게 보내지도 못했다. 사실 사람들의 그런 행동에 강현은 불편함을 느꼈다. 그는 순전히 호의로 그들에게 기회를 배푼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성향이 우주 개발에 적합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을 모은 것이다. 굳이 한국이 선택된 것은 강현이 태어난 곳이고 복수를 계획하는 동안 한국 사회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강현이 우주에서의 생존에 적합한 성향의 사람들을 골라내고 또 우주로 유출시키기에 적합한 사회였다. 즉, 강현의 이익을 생각한 일이 의도치 않게 그들에게 이익이 된 것이다. 아니, 그도 그들에게 이익이 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고향을 떠나고 쌓은 인연을 쉽게 만나지 못할 정도의 일이다. 충분한 이익을 제공하지 않는다면 우주 인부의 모집은 쉽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강현은 고마움을 받을 합리적 이유가 없었다. 그것이 그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요소였다. 그러나 상황은 좀 더 확대되었다. [닥터 강의 인기!] [한국계 미국인의 자부심!] [한인 사회! 이제 강 박사를 중심으로 뭉친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거에요?” 샐리가 아침 뉴스에 나온 내용을 듣고는 강현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냥 평소대로 지낼 건데?” “저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고요?” “샐리는 내가 어떻게 하길 바래?” “당신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난 지금이 좋아. 충분히 행복해.” “그렇다면야..”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쓸데없는 걱정이었나 보다. 한인 사회에서 강현의 위치는 정말로 애매모호했다. 한국 출신이지만 강현은 그것을 전혀 내세우거나 자랑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인 사회의 활동에 한 번도 참여한 적이 없었다. 주미 한인 사회의 지도자들이 강현에게 접촉을 해봤지만 연구가 바쁘다는둥 정치 활동에 관심이 없다는둥 거리를 두었다. 그러나 우주 인부들로 인해서 아폴로티움에 한인 사회가 생기자 상황이 달라졌다. 우주 시대에 한인들의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서 미주 한인 단체들이 아폴로티움의 한국인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폴로티움에 한인 사회가 자리 잡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한인들의 협력과 발전을 위해서 서로 협력하기도 하고 정보도 공유하기도 했다. 미주 한인들의 꿍꿍이는 바로 이 아폴로티움 한인 사회에 강현을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미국에 자리 잡은 미주 한인들은 이제 정치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을 정도로 인지도가 높아졌다. 그런 상황에서 미 백악관, 대통령 산하의 기관에 고문으로 있는 강현이 한인 사회의 지도부로 온다면 정치계로 한국인이 진출하기 더 쉬워질 수도 있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강현이 도와줄 사람은 결국 같은 동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강현은 민족적인 성향이 매우 약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또한 누군가를 이끌고 싶은 야망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뛰어난 지도자를 바라는 한인 사회의 갈망은 왜면 당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아빠! 친구 데려와서 놀아도 돼요?” “물론이지. 그런데 뭐하고 놀거니?” “아즈독이랑 놀거에요.” 아즈독은 아즈삭이 조종하고 시아가 알록달록하게 꾸민 로봇독을 말한다. 당연히 말귀를 잘 알아듣고 재롱도 부릴 수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 아즈삭은 어린 강현의 자식들을 위해서 인터넷으로 강아지들의 행동 양식이 나온 동영상을 확보해 분석해야 했다. ‘아즈삭, 미안.’ 결국 아즈삭이 아이들과 놀아줘야 하기에 강현은 속으로 약간 미안했다. 며칠 뒤, 친구들을 데려온 강현은 고개를 갸웃했다. 일고여덟 정도 되는 아이들 중에서 흑인과 백인은 한 명씩 뿐이었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다 동양계였고, 지들끼리 말하는 도중 간혹 한국어가 튀어나오는 것을 보니 동양계 아이들은 죄다 한국계였다. “““안녕하세요.””” “그래, 반갑구나.” 그래도 아들의 친구라기에 강현은 웃으면서 인사를 받아주었다. “너무 씨끄럽게 놀지는 말거라.” “네~!” 강현이 서재로 들어가 일을 시작하자, 아이들은 힘찬 긍정이 무색하게 소리를 지르면서 신나게 놀기 시작했다. 강현은 피식 웃으면서 오늘의 스케쥴을 소화하기 시작했다. 그는 몰랐지만 사실 강현의 아들인 준의 친구 비율 중에 한국계가 압도적으로 많은 이유는 자신의 자식들에게 준의 친구가 되라고 꼬드긴 한인 부모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뭐든 만들어내는 강 박사님의 집이니까 신기한 게 잔뜩 있지 않을까?’ 이 한마디에 혹한 아이들 중에 호기심 많고 붙임성 있는 아이들이 빠르게 준의 친구가 되었다. 그런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좋은 인맥을 만들어 주기 위한 것도 있었고 강현이 자식을 매개로 한인 사회와 연결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강현은 모르겠지만 씨는 뿌려졌으니 언젠가는 싹을 틔우지 않을까? 호의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런 일이 벌어지는 동안 한인이 많은 로스 엔젤레스의 정치권에서는 강현의 동향을 예의주시했다. 민주당과 공화당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정치권과 거리를 두려고 했지만 결코 일정 이상 떨어지지 않은 강현이 이번 기회로 출사표를 던질 것인가? 그렇게 되면 파급 효과가 장난이 아닐 것이다. 우주 달팽이를 거의 혼자만의 재력으로 건설하고 있는 그의 자본력(얼마전 RP 가격 폭락사태로 강현은 어마어마한 RP를 축적해 추정 예산의 절반을 절약했다), 우주 시대를 열었다는 인지도, 그리고 그에 대한 열성적인 지지층까지. 단숨에 큰 정치적 세력을 만들 역량이 있었다. 학자 출신이라 정치력 논란이 일어날 수도 있지만 20대에 갓 들어서자마자 세계의 석유 패권 질서를 재조정한 능력과 그러기 위해서 사용한 석유 컨소시엄이라는 방식, 그리고 유대인과의 분쟁에서 사용한 언론 플레이 등 힘의 역학 관계 및 언론과 여론의 사용법을 잘 이해하고 있었고 치밀하게 사용했다. 정치인 모임자리에서 ‘과학의 천재는 정치의 천재였다. ’라는 앙드레 파셀과 그와 강현을 만나는 징검다리 역할을 했던 호만 상원 의원의 견해는 강현의 정치적 능력을 의심할 수 없게 했다. 강현을 잘 아는 사람은 그가 정치권에 진출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장기적으로는 알 수 없었다. 그가 정치가가 되지 않더라고 그의 아들이 있고 딸이 있었다. 10년 20년 뒤를 내다보며 지금부터 차근차근 준비한다면 그의 자식들이 미국 대통령이 될 가능성도 있었다. 아니 준이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되면 약 70%는 성공할 것이다. 아버지의 재산, 아버지의 휘광이 있기 때문이다. “준. 이게 뭐야?” “아즈독, 그거 또 해봐.” “이야! 안드로이드다!” “아즈삭! 과자 구워줘!” 그러나 어른들의 이해관계를 떠나,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게 잘 놀았다. 얼마나 잘 노는지 아즈삭이 계속 정리하고 정리를 해도 샐리가 퇴근하고 돌아와 집안 모습을 보고는 고개를 저을 정도였다. = = = = = 아이들의 성장 속도보다 세상의 변화 속도는 더 빨랐다. 특히 우주 시대에 접어들면서 소프트웨어 기술은 그에 걸맞게 진화했다. 역시나 계기는 강현의 인공지능이었다. 인공지능으로 인해서 프로그래머들은 프로그래밍 속도를 좀 더 빨리 할 수 있었다. 생산성이 높아지자 좀 더 정밀하고 좀 더 대용량의 프로그램도 최적화 할 수 있게 되었다. 초기 생산된 인공지능들의 경험 축적은 사람들에게 더 빠르고 직관적인 서비스를 해주었고 이 와중에 온라인 광고는 극히 축소되었다. 특히 피싱 사이트 따위는 인공지능에 의해서 철저히 필터링 되었고 인공지능의 패시브 스킬인 코딩 시뮬레이션으로 인해 어떤 악성 코드도 원천적으로 가로막혔다. 이런 인공지능의 수혜를 가장 크게 본 분야는 게임 업계였다. 인공지능이 수많은 코드에 대한 색인 역할을 해주어 프로그래머의 역량과 생산성을 향상시키니 출시일을 미루는 일이 줄어들었다. 거기에 인공지능이 가미되어 대용량 데이터 처리 기술이 혁신되고 증강 현실 인터페이스가 개발되니 더 직관적이고 빠른 프로그래밍 환경을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덕분으로 인공지능 역시 더욱 정교하게 제작되거나 최적화된 상태에서 출시할 수 있었다. 선순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 최적화된 인공지능은 아즈삭이나 아즈락 등 하드웨어적으로는 초기 인공지능의 다운 그레이드 형이지만 설계 개념이 달랐다. 초기 인공지능이 전자세계의 생물이라면 새롭게 개발된 인공지능은 전자세계와 실제 세계를 오가는 배였다. 기존의 인공지능보다 지능과 자율성은 떨어지지만 하드웨어가 가볍고 특정 분야에 특화시킬 수 있어 해당 분야에 관해서는 인공지능에 뒤지지 않는 서비스 역량을 가지고 있었다. 인공지능의 자율성을 결정짓는 욕구 시스템이 없고 프로그래머가 지정한 방대한 양의 행동 방침 알고리즘으로 작동되는 것이라 인공지능 프로그래머들에게 이 새로운 인공지능은 쁘디 인공지능으로 불렸다. 필요한 RNP, SNP의 양이 극히 적었기 때문에 가격과 유지비가 적어 보급이 원할하다는 것은 이 쁘디 인공지능의 최대 장점이었다. 그리고 이 쁘띠 인공지능의 보급에 발달한 사이버네틱스 기술이 접목해 선천적인 기형도 로봇팔, 로봇 다리를 달아 정상인과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사이버네틱스 기술중 팔다리를 제어하는 소프트웨어 기술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되었는데 하나는 신체 전체의 동작에 맞추어 인공팔다리를 작동시키는 것, 또 하나는 신경을 외과적 수술로 전자회로에 연결해 생각하는데로 인공팔다리를 작동시키는 것이다. 전자는 걷기같이 신체가 전체적으로 작동하는 방식에 적절해 다리에 주로 적용되었다면 후자는 정밀한 조정이 필요한 팔에 주로 적용되었다. 그러나 전자나 후자나 설치에서 피드백까지 인공지능의 도움이 없었다면 가격이 엄청나게 뛰어 올라 널리 보급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물론 일상 생활이 가능할 수 있을 정도의 용량을 가진 배터리는 현재로서는 강현의 그래핀 양극 배터리 뿐이었지만 로열티를 지불할 필요가 없어 팔다리가 없는 장애인들은 더 싸게 구입할 수 있었다. 사이버네틱스 기술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시신경에 마이크로 칩과 블루투스 따위를 달아 안경에 달린 카메라와 연동시킨다던가, 신경이 손상된 부분을 전자회로로 메꾼다던가 하는 의공학적인 부분도 급속하게 발달했다. 그리고 이 쁘띠 인공지능의 보급으로 메타 물질 데이터 베이스가 급격하게 축적되었고 통계학 전문가 및 연구자들에 의해서 메타 물질을 만드는 수학적 모델들이 하나둘씩 개발되기 시작했다. 수학적 모델들은 실제 연구에 적용되어 실패와 성공, 거기에 피드백이 계속되어 좀 더 정밀하게 개량되어 나갔다. 그리고 강현은 감마선 EMP 방호를 위한 메타물질 연구에 돌입했다. 사실 각국의 우주 진출로 RP 포인트를 싸게 사재기 할 수 있어 우주 달팽이 건설에 여유 자금이 남을 정도가 되었지만 그래도 한 번 머리에 남은 도전 거리를 포기하지 않았다. 감마선 EMP 방호 메타물질은 메타물질 개발 기술이 비약을 거듭하는 지금에서도 미지의 도전이었기 때문이다. “조니아 모델을 써볼까?” 226화 [가시광선 영역에는 제한적으로 작동하지만 평면에 법선으로 입사하는 광선을 고려하면 자이룽 모델이 더 적합하지 않겠습니까?] “자이룽 모델은 음굴절 메타물질이 아니라 광흡수 메타물질을 위한 모델이야. 근본 원리의 방향이 달라.” 자이룽 모델은 전자파 차단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 개발된 수학적 모델이다. 전자파 차단을 위해서 얇은 판에 법선 방향으로 들어오는 광선과 최소 단위와의 상호 작용을 수식화했다. 그 밖에도 조니아 모델, 신시아 모델 등 메타 물질의 수학적 모델이 무수하게 많이 개발되었다. 그러나 메타물질의 가능성이 워낙 넓다보니 적용할 분야에 맞는 수학적 모델이 개발될 수 밖에 없었다. 강현은 그중 음굴절 메타물질을 개발하는데 대세로 떠오른 조니아 모델을 감마선 영역까지 확장하기로 했다. 음굴절의 메타물질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음의 값을 가신 유전율과 투자율을 만들어야 하는데, 여기에는 필연적으로 전기공학적인 원리가 들어가게 된다. 전자파로 인한 전자기 유도, 전자기 공명, 교류에서 축전기와 코일에 걸리는 전압의 위상 차이 등 여러 조건들이 복잡하게 얽혀있었다. 여기에 큐빅 모양의 최소 단위가 적층될 경우를 시뮬레이션하여, 음굴절이 성립되는 큐빅의 조건를 수학적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조니아 모델이었다. 물론 큐빅처럼 최소단위가 정육면체가 아니라 정사면체라든가 정 20면체, 구체 따위가 되면 전혀 다른 모델을 사용해야 하고 머리는 더욱 복잡해진다. 큐빅이라는 최소 단위체를 사용한 조니아 모델이 연구자들 사이에 대세가 된 이유는 구조를 이해하기 쉽고 그에 따라 많은 이들이 피드백을 해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조니아 모델을 사용하려고 했던 강현은 보다 근본적인 문제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밴드갭의 문제였다. 태양광 전지에 사용되는 반도체가 어떻게 전압을 형성하는가? 그것은 기본적으로 물질내의 전자가 광자에 의해 에너지를 받아 높은 에너지 준위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이 높은 에너지 준위에 있는 영역을 밴드라고 부르는데 전자가 전도할 수 있도록 전자가 이동할 수 있는 자리가 비어있기 때문에 전도 밴드라고 불린다. 그리고 이 전도 밴드로 전자가 이동하고 전도체가 되고 전압을 형성하는 것이다. 만일 이 밴드갭이 매우 커서 전자가 전도 밴드로 이동할 수 없게 된다면 이 물질은 부도체로 분류된다. 그리고 대부분의 금속은 이 전도 밴드와 전자가 바닥상태에 있는 밴드가 겹쳐져 있어 따로 전자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전도성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반도체는 기본적으로 부도체다. 하지만 밴드 사이(전자가 꽉차있는 바닥상태의 밴드와 전도 밴드)의 간격이 작아 열이나, 전자기장 등 특정 조건에서는 도체처럼 전자가 전도된다. 즉, 특정 조건을 가하지 않으면 반도체는 부도체가 된다. 그리고 이를 뒤집으면 부도체도 특정 조건에서 반도체가 될 수 있다. 그 특정 조건에는 아주 높은 주파수의 전자기파라는 것이 있다. 밴드갭이 큰 부도체라고 해도 전자가 들떠 그 밴드갭을 뛰어넘어 전도가 가능한 밴드로 이동한다면 전도체가 된다. 부도체에 전달되는 광자의 에너지가 커서 전자가 밴드갭을 뛰어넘으면 부도체도 전기가 통하게 되는 것이다. 그 기준이 되는 광자의 주파수는 플라즈마 주파수라고 불리며 특별하게 취급된다. 그리고 감마선의 전자기파는 가장 파장이 짧고 주파수가 큰 영역의 빛이다. 대부분의 물질의 플라즈마 주파수를 크게 뛰어넘는다. 그러니 전자회로가 감마선의 침투를 받는 순간 도선이고 플라스틱 기판이고 할 것 없이 전류가 흐른다. 회로가 망가지는 것도 이상한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전기공학적인 원리를 응용한 메타물질 역시 이러한 문제를 겪을 수 밖에 없다. 특정 전기적 성질을 가진 최소 단위가 그저 전도성 물질 덩어리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아이고.. 감마선에도 부도체인 물질은 없나?” 강현은 푸념했지만 안타깝게도 감마선의 주파수는 10^20Hz 이상이고 대부분의 소재들 중 peta(10^15) Hz 를 넘어가는 플라즈마 주파수를 가진 재료는 없었다. 있을 가능성이 있는 물질은 원자번호가 매우 높은 물질들 중에 있을 수 있었지만 그 가능성은 극미했고 그런 물질을 사용해서는 채산성이 맞질 않는다. 그러니 물질로 절연을 한다는 생각은 버려야 했다. “그럼 남은 건 진공 밖에는 없는데..” 절연체 없이 극소 크기의 최소 단위체인 전기회로를 만들어 낼 수 있는가라는 문제는 기술적으로 해결 가능했다. 포토리소그래피 기술을 이용해 적층으로 하나하나 쌓아 올려가거나 아니면 평면에 인쇄해 접어도 된다. 구형이라면 좀 힘들겠지만 정육면체를 최소 단위로 사용한 조니아 모델이라면 가능했다. 그러나 그렇게 쉽게 문제가 풀리면 공학자들이 머리를 싸잡아 매어가며 연구를 할 이유는 없었다. 진공으로 절연을 하는 전기 회로는 감마선을 만나면서 새로운 문제를 맞닥뜨렸다. 바로 광전 효과라는 것이었다. 광전 효과는 고체에 특정 주파수 이상의 광자를 쏘았을 때만 전자가 튀어나오는 현상이다. 이는 빛의 입자성을 현상적으로 증명하여 당시 빛이 파동이라는 주류의 주장(빛의 에너지는 그 밝기에만 의존한다.)에 반박했다. 이 광전 효과에 아인슈타인은 프랑크의 양자 가설을 사용해 빛의 입자성을 증명하여 노벨상을 받았고 이에 영향을 받은 드 브로이는 양자역학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인 물질파 개념을 수학적으로 제시하였으며 전자의 회절 실험으로 이것이 증명되었다. 그리고 이 개념은 다시 보어의 원자 모형에 적용되어 양자적 원자 모형의 시발점이 되었다. 이것은 가장 먼저 고전 물리학에 의문을 던졌던 흑체 복사 실험과 연결되어 현대의 양자 역학 개념을 완성했다. 그런데 그 광전 효과가 강현이 설계한 메타 물질에 방해가 되었다. 감마선의 주파수가 매우 높아 회로를 구성한 금속은 일단 전자를 토해내는 수 밖에 없다. 감마선에도 절연체인 물질이 있고 그것을 사용했다면 전자가 진공으로 도망치지 못하겠지만 부도체 대신 진공을 사용했으니 전기회로는 얄짤 없이 전자를 토해내야 했다. 이렇게 빠져나온 전자는 메타 물질 내부를 돌아다니거나 다시 흡수되어 난잡한 전류 흐름을 만들어 내었는데 이는 정밀하고 세심하게 설계된 메타물질의 기능을 저해하는 요소였다. “아우 짜증나!” 결론은 진공을 이용한 절연을 하려면 광전 효과로 인한 부차적인 현상까지 고려해서 설계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전자도 그냥 튀어나가나? 그렇지 않다. 광자와 전자의 부딪힘도 운동량 보존 법칙이 성립한다. 이를 콤프턴 효과라고 하는데 전자 회로의 표면 상태는 나노 스케일까지 고려해야 했고, 전자의 운동량 역시 고려해야 했는데 불확정성의 원리에 따라 전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정확히 특정할 수 없으니 통계학적으로 다루어야 했다. 그정도로 세심하지 않으면 감마선 음굴절 효과는 기대할 수 없었다. 당연히 강현이 머리를 더 싸매고 열심히 지혜열을 발산해야 했다. 뭐, 그라도 별수 없었다. 감마선 방호는 물리의 한계에 도전하는 영역이었고, 공밀레란 원래 그런 것이 아니던가? 근 일여년 간의 무수한 실패 끝에 약 50cm의 두께를 가진 감마선 음굴절 메타물질이 완성되었다. 여느 공학도와 마찬가지로 계획>실험>반성>계획의 반복이었다. 조니아 모델이 아직 완벽하지 않아서 실제 실험을 반드시 거쳐야 했다. 사람보다 정밀하고 빠른 손놀림의 HA가 없었다면, 또 아즈삭이 없었다면 이렇게 빠르게 결과물을 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간만에 공밀레를 경험한 강현이 완성한 감마선 음굴절 메타물질은 입사각도 약 10도에서 감마선을 전반사 처리할 수 있는 굉장한 능력을 갖추었다. 그러나 그 응용분야는 굉장이 좁았다. 일단 EMP가 터지는 위치와 감마선이 입사하는 각도를 파악해 입사각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었다. 게다가 두께가 50cm나 되니 로봇독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 거대한 전함이나 이동형 사령부 및 주요 전술 허브에 겨우 적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 해도 어딘가? EMP의 영향에서 완벽히 벗어날 수 있는 수단을 갖추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 전술형 인공위성에게도 매우 효과적인 방어수단이었다. 밀도가 낮기 때문에 가볍다는 장점도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절반의 성공이었다. [더 개량하실 겁니까?] “내가 왜?” 강현의 나쁜 버릇이 도졌다. 새롭고 재밌는 건 자기가, 세심한 고려를 해야해서 골치 아프고 귀찮은 건 남이. 그는 다시 감마선 음굴절 메타물질에 관한 논문을 발표해 메타물질 연구자들에게 흥분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일여년 간 연구를 하면서 쌓은 실패와 오류 자료들을 조니아 교수에게 보내 피드백 해줌으로서 조니아 모델을 좀 더 발전 시키는데 일조했다. 그렇게 하나의 연구과제를 끝낸 그는 이제 온전히 우주 달팽이 건설과 신통일장 이론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 = = = = “아빠! 아빠가 그렇게 유명해요?” 학교에서 돌아온 시아가 대뜸 물어보았다. “유명하겠지?” 우주시대를 열고 근 오년 동안 각종 언론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일인의 자리에서 내려가지 않았던 그였다. 유명하지 않으면 이상했다. “여기 아빠 얼굴이 있어요.” 학교에서 얇은 책을 펼치는 시아. 책에는 강현의 사진이 나와있었다. 눈을 반짝이며 양 볼을 붉힌 딸이 너무나 사랑스러워 못견딘 강현은 딸을 끌어안고 얼굴을 부볐다. “그래 그래. 아빠가 좀 유명하단다.” “그래요? 아이들이 좋아하겠다.” “응?” 왜 자신이 유명한 것이 아이들이 좋아할 요인이 될까? “그게 무슨 말이니?” “하루 동안 엄마 아빠가 선생님이 되는 거래. 나는 아빠가 왔으면 좋겠어.” “자, 잠깐만! 그거 설마 일일 교사니?” “응? 일일 교사가 뭐야?” “하루 동안 선생님이 되는거.” “아, 맞아.” 강현은 딸아이의 말에 2년 전을 회상했다. 그때도 준이 졸라서 일일 교사를 했었다. 과학자라는 직업에 대해서 아이들에게 설명해 주는 것이었다. ‘과학자가 되면 우주 만물의 신비한 것을 알 수 있어요.’ ‘그럼, 외계인이 정말로 있어요?’ ‘모르겠구나. 있다고도 없다고도 말할 수 없는 것이 이 우주의 신비란다.’ ‘에이, 시시해.’ ‘아저씨!’ ‘야! 우리 아빠 지금 선생님이거든!’ ‘선생님! 무중력 스쿼시 잘해요?’ ‘집에 로보트 있다면서요? 그거 비싸요?’ ‘로봇독 어디서 사요? 저희 부모님은 어디서 사는지 모르세요.’ 그때 강현은 자신에게 교사의 자질은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여전히 자질은 없었다. 속으로 식은 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그의 속도 모르고 사랑스런 딸내미는 얼마전에 온 소방관 아저씨와 우주 건설 인부 등의 이야기를 사랑스럽게 쫑알쫑알 꺼냈다. “어.. 그래. 언제지?” “다음 주 월요일.” “알았다. 그럼 숙제하러 가야지.” “힝. 도와주면 안돼?” “숙제는 혼자하는 거란다. 자, 엄마오기 전에 얼른 해놔야 나중에 놀지.” 시아는 볼을 부풀리며 어쩔 수 없이 방으로 올라갔다. 엄마는 깐깐하고 만만하지 않다. “어쩌지?” [꼭 해야 합니까?] “살다보니까 어쩔 수 없는 일도 생기더라.” 도저히 일일 과학 교사를 거절할 수가 없었다. 최초의 우주 학교 미네르바툼의 상징성이니 홍보성이니 따위의 어른들의 사정을 제쳐두고서라도 사랑스런 자식의 부탁을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 ============================ 작품 후기 ============================ 슬럼프입니다. 내일은 연재를 못할지도 모릅니다. 227화 [그럼 아이들이 재밌어할 교재를 챙겨가시는 건 어떻습니까?] “어떤 걸로?” [작은 로봇들은 어떻습니까?] 강현은 아즈삭이 낸 아이디어에 감탄했다. 아이들이 로봇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며 제어하는 활동은 분명 아이들에게 과학자에 대한 깊은 흥미를 유발시킬 것이다. 사실 학습을 즐거운 놀이의 일환으로 여기게 하는 건 창의적 교육을 시도하는 곳에서 많이 시도하는 방법 중 하나였다. 공부를 놀이로 여기게 해서 자발적인 학습을 유도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강력한 경쟁 상대들이 있었다. TV, 만화, 영화 등의 각종 매스 미디어는 물론, 비디오 게임, 스포츠, 음악 같은 것들에 비하면 공부가 정말로 재밌는 아이들이 몇이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시도를 하는 이유는 그 중에서 정말로 공부에 재미를 붙이는 아이들에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천명 중에 한 아이라도 공부에 재미를 붙이게 되면 사회적으로 남는 장사다. 모든 아이들이 공부를 다 잘할 필요는 없으며 공부에 재능이 없는 아이들에게 억지로 공부시키는 것이 오히려 비능률 적이다. 그럼 공부에 재미를 붙이지 못한 아이들은 어쩌냐고? 그런 아이들을 위해서 창의적 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스스로 재능이 있는 영역을 발견하도록 하는 것이 바로 선진 교육의 현재였다. 사실 그것이 합리적이었다. 전 세계 모든 기초 교육 과정은 모두 동일하다. 어떻게 동일하냐면 대학에 진학하여 대학 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짜여져 있다. 왜냐면 이 커리큘럼은 대학 수준의 고등교육을 받은 전문가들이 짠 것이기 때문이다. 즉, ‘학자’를 양성하기 위한 커리큘럼인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학자가 될 수는 없다. 아이들 중에서는 농부가 되는 아이, 비지니스 맨이 되는 아이, 경영자가 되는 아이, 스포츠 선수가 되는 아이 등 다양한 재능과 또는 재능의 한계로 인한 현실과의 타협으로 다양한 직업을 가지게 된다. 그중에는 운이 좋아 일찍 자신의 길을 발견하고 학교를 그만두고는 성공한 이들도 있었다. 그런 예들을 보면 획일적으로 ‘학자’를 양성하기 위한 커리큘럼은 모순점이 있었다. 이 문제를 인식한 각국 정부는 국민들의 역량을 강화하고 비합리적인 커리큘럼을 개선하기 위해 많은 투자를 했으나 아이들의 재능을 찾아낸다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었으며 관료주의적인 틀 안에서 빠르게 제도를 개선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반면 사립학교들은 그런 부분에서 빨랐다. 아이들의 재능을 일찍 발견하여 아이들의 가장 소중한 자산인 시간을 아껴주고 싶은 부모들의 요구사항을 재빨리 발견하여 커리큘럼을 수정하였고 미네르바툼도 마찬가지였다. 이른바 창조성 교육이라는 것이다. 앞으로 미래는 로봇 기술이 발달하게 된다. 단순 노동과 힘들고 위험한 일도 로봇이 맡게 되면서 일자리는 급감하게 될 것이다. 미국 정부는 로봇의 도입으로 일자리가 줄어들 수 있는 분야에 대해서 강력하게 규제를 해서 최대한 시기를 늦춰보려고 하고 있지만 뜻대로 되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다. 생산성은 곧 국가의 역량. 타국이 먼저 로봇 노동자의 전격적인 도입으로 미국을 능가하는 생산성을 가지는 것도 고려해야 했고 이윤을 추구하는 투자자나 기업들의 로비 역시 만만하지는 않았다. 물론 환경이 변화하면 후손들도 그에 맞추어 적응해 어찌 어찌 살아가나, 너무 급격한 변화에 도태되는 기성 세대들이 문제였다. 사회에서 낙오된 이들로 생기는 각종 사회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사회 구조를 바꾸거나 개인이 다시 사회에 적응할 능력을 키워야했다. 정부로서는 당연히 후자가 편하다. 사회 구조를 바꾸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문제가 아니었고 가속이 붙은 현대의 변화는 대세를 거스르기 어려운 면이 있었다. 그러나 인간의 학습 능력은 젊은 시절을 지나게 되면 감소한다. 그리고 몸에 익은 기술에 그것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기술이 개발되는 순간 쓸모없어 진다. 선천적인 이유와 후천적인 이유로 인해 개인에게만 책임을 지우는 순간 사회에서 도태되는 사람들이 대거 양산 된다. 그렇다고 시간이 지나 그런 사람들이 죽고 사라지면 괜찮아질까? 절대 그렇지 않다. 과학기술이 촉발시킨 변화의 속도는 후손들이 어른이 되어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더 심해질 것이다. 그래서 창의성 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주입된 지식이 아니라 지식을 사용하는 능력 그 자체를 키우는 것을 목적으로, 아이들이 나중에 변화하는 세상에서도 창의적으로 적응할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 지금도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창의적 인재라는 테마 때문에 얼마전부터 커리큘럼을 개선하고 있었고 정보화 사회가 된 지금을 생각해 보면 주입식 교육보다는 역시 창의성 교육이 합리적이었다. 즉, 끊임없이 변화되는 세상에서 아이들을 잉여인간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 창의성 교육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고 우주 개척의 첨두에 서있는 아폴로티움으로서토 최초의 교육기관인 미네르바툼에 권고하지 않을 수 없는 제도였다. 그리고 그 커리큘럼 중 하나인 일일 교사 제도는 아이들에게 미리 다양한 직업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시키고 일찍부터 자신이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시키기 위한 과정 중 하나였다. 그런 의미에서 강현은 과학자라는 것이 얼마나 재밌고 흥미로운 것인지 일일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알려줄 의무가 있었다. “어.. 이거 너무 복잡하지 않아?” [좀 더 간단하게 하면 제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작은 로봇을 교재로 사용한다면 어떤식으로 사용해야 하는가? 아이들에게 저항이나 반도체 칩을 납땜하게 만들어야 할까? 하지만 아이들은 겨우 4학년이다. 너무 복합하고 전기 회로를 이해할 정도로 지식을 축적해야 했다. 그렇다고 단순히 다이오드가 이쁘게 반짝거리는 걸 하기에는 임팩트가 너무 약했다. 스마트 기기 같은 첨단 전자 제품에 노출된 아이들에게 자신의 손으로 직접했다고 해도 고작 불빛이 반짝이는 건 결과만 보면 시시하기 짝이 없었다. 지식을 축적한 인재들이 개발한 물건과 아이들이 수업 시간에 만든 물건의 수준이 같을리 없었고 첨단 전자 기기에 익숙한 아이들이 자신들의 결과물에 흡족해 할 가능성은 더욱 없었다.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첨단 지식을 알려줄까? 그건 이해할 수 있냐는 문제를 떠나 ‘아이들에게도 쉽고 즐거운 과학’이라는 테마를 벗어나는 일이다. 아이들이 좀 더 쉽게 로봇의 작동원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단순화해야 했다. “모듈화를 해보자.” 미군이나 각국의 군대에서는 부품을 모듈화했다. 복잡하게 구성된 장비의 기능을 물리적으로 구역화하여 문제가 생겼을 시에 즉시 예비 모듈과 교체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리고 고장난 모듈은 다시 생산 업체나 수리 시설로 보내 전문 엔지니어가 수리한다. 이 방법의 장점은 장비를 운용하는 병사가 전기 공학적 지식에 해박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메뉴얼 대로 문제를 체크해 문제가 생긴 부분이 어디인지만 파악할 능력이 있으면 된다. 마찬가지로 로봇을 모듈화 시키면 아이들도 복잡한 지식 없이 로봇을 구성할 수 있게 된다. 사실 모듈화된 기계공학적 장난감도 적지 않았지만 복잡한 일렉트로메카닉스(electromechanics)를 할 수 있을 수준의 장난감은 없었다. “문제는 소프트웨어군.” 로봇의 행동을 제어하기 위한 소프트웨어 역시 직관적으로 구성해야 했다. 아이들이 아직 숫자에 약하기 때문에 운동역학적 공식을 이해하고 직접 수치를 집어넣는 것이 어렵고 거부감이 들 수도 있었다. 물론 강현에게는 숨 쉬듯이 쉬운 일이었지만 그는 어딘가의 밥 선생님이 될 생각은 없었다. 제어 소프트웨어를 구성하기 위한 첫번째 조건은 아이들이 구성한 로봇의 형태를 컴퓨터가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이는 어렵지 않았다. 연결된 모듈이 보내는 전기적 신호를 받아 3D 시뮬레이션을 하면 되니까. 그러나 그것을 토대로 아이들이 쉽게 로봇을 제어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짜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시간이 없는데..” 당장 주말이 지나면 학교로 가야했다. 일주일 밖에 남지 않았으니 이틀 안에 적절한 인터페이스를 생각해 내야 했다. 모듈은 이미 그동안 축적한 아이디어 노트 중에서 쓸만한 것이 있어서 그걸 적당히 고쳐서 만들고 있었다. 아이들의 수에 맞추어 HA가 열심히 밤새서 만들 것이다. “로봇에 동작을 각인시키는 건 일단 수동으로 입력하고 그 동작의 속도를 조절하는 건 역시 숫자로 해야할까?” [다른 방법이 있습니까?] “없어.” 강현의 머리속에 순간 생각만으로 컴퓨터를 다루는 뇌파 입력 장치가 스쳐지나 갔지만 그것까지 시도하기엔 시간이 너무 없었다. 결국 강현은 최대한 단순하게 인터페이스를 만들고 수업 시간에 가져갔다. 인터페이스가 할 수 있는 일은 모터의 동작 속도를 조절하는 것 뿐이었다. 모듈의 움직임 크기는 아이들이 직접 손으로 움직여서 입력하도록 되어 있었다. “안녕.” “““안녕하세요.””” 강현이 아이들에게 인사를 하자 아이들이 대답했다. 그의 시야에 시아게 히죽 웃는 모습이 보였다. 그도 싱긋이 웃고는 수업을 시작했다. “자, 오늘은 로봇을 만들어 볼 거에요.” 강현이 손짓을 하자 안드로이드가 커다란 상자를 들고 들어왔다. “우와아!” 아이들의 반응이 안드로이드에게 더 격렬했다. 상자의 내용에 대한 관심보다 턱턱 걸어다니는 안드로이드에게 더 관심이 갔다. 하긴 아무리 안드로이드 기술이 발달했다고 해도 안드로이드는 기본적으로 매우 비싼 녀석이다. 거기에 노동 시장의 붕괴를 최대한 늦추기 위해서 정부에서 각종 규제를 걸었으니 상업적으로 판매하는 일은 없었고 여전히 보기 힘든 물건이었다. “자자. 이 안에 로봇을 만들 재료가 있단다.” 강현이 주의를 끌어봤지만 아이들의 시선은 작은 상자를 하나씩 나눠주는 HA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유일하게 안 그러는 아이는 HA에 익숙한 자신의 딸 밖에 없었다. 아이들이 HA에게서 눈을 때지 못하자 강현은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자신에게 아이들이 집중하게 만들려면 수업 시간이 반이 지나갈 지도 모른다. “어.. 아즈삭. 네가 수업해라.” [알겠습니다.] 아이들이 HA 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자 강현은 결국 아즈삭에게 수업을 맡겨버렸다. 그는 결국 교사감이 아니었다. = = = = = 로봇이 진행하는 수업은 아이들이 집에 돌아가자 학부모들에게 알려졌고 학부모들은 직장에서 어제 자신의 자식들이 로봇에게 수업을 받았다는 썰을 풀어 놓았다. 과연 강 박사라는 감탄과 함께 역시 미래 시대를 주도하는 사람이라고 엄지를 추켜 올렸다. 그 말을 강현이 들었다면 한 손으로 눈과 눈썹을 가리고 한 숨을 내쉬었을 것이다. 진실을 모르는 이들은 사건의 표면적 부분과 자신의 상식을 조합해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든다. 누가 강현이 로봇에게 인기가 밀려 교사 자리를 내놔야 했다는 걸 상상이나 해봤을까? 아무튼 부모들은 쉬는 시간에 동료들과 로봇 교사에 대한 이야기와 미래 세상의 형태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며 자식들의 교육은 어찌되는가에 대한 서로의 생각도 풀어놨다. 역시 교육은 사람이 관여해야 한다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그리고 직장 동료들은 물론 부모 중에서도 로봇 교사에 관한 일을 SNS에 올리면서 세상에 알려졌고 인공지능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기대와 경각심을 동시에 일으켰다. 228화 <21-미래> 단순한 지식 전달 정도는 인공지능이 할 수 있다는 주장과 교육 분야를 인공지능에게 맡겨서는 안된다는 주장이 맞섰다. 강현은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도대체 왜 갑자기 그런 식으로 논란이 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교육은 단순한 것이 아니다. 특히 창조성 교육이 중심이 될 미래 사회에서 아이들에게는 정서적으로 세심한 보살핌이 필요했다. 결국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중심이 되고 인공지능은 중심에서 벗어날 수 밖에 없다. 물론 단순한 지식의 전달만이라면 인공지능이 적합했다. 결코 화내는 일 없이 학생이 이해할 때까지 반복하고 또 반복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인공지능이다. 물론 학생이 결코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는 전재가 깔려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한편, 사회에서 인공지능의 역할에 관한 논쟁이 불거지며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게 되자 아폴로티움의 운영 위원에서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도시 전체를 관리하는 입장이어선지 강현이 생각지도 못했던 발상을 들고 왔다. “인공지능 소방관이요?” “정확히는 소방 보조 인공지능입니다.” 아폴로티움 시청에서 나온 남자의 이야기는 간단했다. 소방관은 만일의 사고가 발생하면 인명을 구조한다. 그와중에 무슨 일이 생길지 예측하기 힘들다. 특히 아폴로티움은 위험한 우주 공간에 있으니 더 그렇다. 지구에서 일어나는 형태의 사고는 물론 우주 공간으로 인한 특수한 형태의 사고 역시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소방관에게 몇 배의 부담을 주게 된다. 훈련은 더 많아지고 힘들어 질 것이고, 유능한 소방관의 양성 역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리고 사고에 제대로 대처를 못하는 순간, 그런 인재를 순식간에 잃어버린다. 그래서 따로 소방관을 보조하는 안드로이드나 로봇을 제어하는 인공지능을 두어 사고 발생 시 소방관이라는 소중한 재원의 건강과 생명을 지킬 수 있도록 하자는 아이디어였다. “좋군요. 좋은 일입니다만 그걸 굳이 저에게 부탁하시는 이유라도 있습니까?” 인공지능 기술은 이미 보편화 되어 있다. 국가의 허락만 맡는다면 누구든 인공지능을 만들 수 있다. 물론 인공지능의 하드웨어를 만들기 위한 물자는 전략 물자 취급을 받아 철저하게 보안이 유지 된다. 그러나 아폴로티움 시 차원에서 정부에 요구를 한다면 기꺼이 통과될 안건이기도 했다. “사실 쁘띠 인공지능을 봐도 인공지능 기술이 발달한 건 맞습니다. 그러나 쁘띠 인공지능은 유연함이 떨어지죠. 사고 현장에서 무슨 일이 발생할 지 모르는데 유연함이 떨어지는 쁘띠 인공지능은 적합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성장형 인공지능을 써야 하는데 아무래도 초기에는 성장에 시간이 걸리겠죠.” “아!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미숙하기 때문에 소방관의 생명을 잃게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인공지능의 성장을 위해 일선 소방관에게 생명의 위험을 안게 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었다. 그러니까 인공지능 제작에서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강현이 이미 숙련된 인공지능을 만들어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럼 소방관들은 언제 오나요?” 강현의 질문에 시청 공무원이 고개를 갸웃했다. “네?” “소방관 없이 어떻게 소방관을 위한 인공지능을 만드나요? 인공지능은 공산품이 아니에요.” 인공지능은 자율성과 개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반적 상품이 가진 보편성이 거의 없다. 쁘띠 인공지능은 그 보편성을 개선한 상품이지만 사고대처에 대한 유연함이 떨어졌다. 그러므로 성장형 인공지능을 소방관 보조로 사용해야 하는데 역시 처음 개발되는 것이니 축적된 데이터가 없었다. 거기에 강현이 소방일에 관해 아는 건 사고가 나면 소방관이 위험을 무릅쓰고 사고 현장으로 간다는 것이었다. “아참! 그리고 인공지능이 사용할 로봇들도 따로 만들어야 해요. 그것 역시 소방관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설계해야 하지 않겠어요?” 어느 상황에 어떤 능력이 필요한 지를 들어보고 개발해야 했다. 다양한 기능이 달린 로봇이면 당연히 좋겠지만 그런 능력을 수용하기 위해서 필요한 용량이 커져야 했고 그것이 사고 대처에 어떤 부작용으로 나타날지 모른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할 수도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비용은...” “됐어요.” “네?” “무슨 일이 생기면 저와 제 가족도 도움을 받을텐데 돈을 받기가 좀 그렇네요. 공짜로 할게요.” “아! 감사합니다!” 인공지능이 행정에 전격적으로 도입된 아폴로티움은 예산을 허투루 쓸 수 없었다. 인공지능의 예산 집행 감시망을 벗어날 길이 없었다. 너무 투명해 호수 바닥이 훤히 보일 정도의 예산안은 당연히 절약되었고 남은 예산은 만년 적자에 시달리는 미국 정부가 다시 거둬갔다. 예산이 모자라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풍족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강 박사가 소방 보조 인공지능을 공짜로 만들어 준다고 하니 역시 그는 대인배였다. “그런데 유지 관리는 시에서 맡아서 하셔야 하는 건 알죠?” “물론이죠.” 로봇의 메인테넌스를 주 업무로 삼는 중소 기업들이 이미 아폴로티움에 무수히 많이 있었다. 이번 소방 보조 인공지능 및 로봇의 도입은 일자리 창출에 조금이나마 기여를 할 것이다. 그런 예산이라면 충분히 타낼 수 있었다. 곧바로 소방관들의 의견이 온라인으로 축적되기 시작했다. 미국 정부는 아폴로티움에서 올린 공문에 협조하기 위해 미국 내에 있는 모든 소방관들의 자세한 의견을 올리도록 협조 공문을 보냈고 고작 타자기 몇번 두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무리 없이 일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소방 보조 인공지능과 로봇이 아폴로티움에 도입되고 성과를 내면 지구에도 도입되지 않겠는가? 우주에 있는 소방관이든 지구에 있는 소방관이든 자신의 목숨이 소중한 것은 매한가지다. 약 6개월 간의 자료 축적 끝에 소방 로봇의 프로토 타입이 설계 되었다. 기본적으로 방열 패널이 붙어 화재에서 내부의 전자회로를 보호하게 되어 있었는데 크게 두가지 타입으로 나뉘었다. 인명 확인용 탐지 센서를 부착한 로봇과 인력으로 불가능한 힘이 필요한 곳에 사용하는 구조형 로봇이 그것이었다. 후자는 외주를 주어 여러 상황에도 통용되는 최적의 형태를 고안하는데 주력하는 한 편, 전자는 재난 상황에서 인명의 탐색을 위한 정밀한 센서 개발이 주력이었다. 강현은 미군에서 사용하는 전술형 로봇독을 베이스로 개량에 들어갔다. 기본적으로 적외선 탐지 카메라가 달려있는 전술형 로봇독을 화재현장에서 사용하기 위해서는 다른 종류의 센서가 필요했다. 뜨거운 불길이 적외선을 토해내니 적외선 카메라는 안된다. 대신 자외선 카메라가 달렸다. 따로 두부에 특수한 주파수 영역의 자외선을 방출하는 광원을 달고 자외선에 반응하는 반도체를 이용한 이미지 센서를 사용해 불길이 토해내는 가시광선 영역의 빛을 뚫고 자외선으로 화재 현장을 볼 수 있게 했다. 거기에 가스의 종류와 농도를 탐지하는 장치도 달고 음파를 수집하는 마이크도 달았다. 소방 보조 인공지능에 화재 현장의 소리가 전송되면 철저하게 분석해 인간이 내는 숨소리리나 신음소리를 검출하는 시스템을 구성했다. 물론 완벽한 건 아니었다. 사고 현장이라는 극한 조건은 그에 관한 데이터가 많으면 많을 수록 좋지만 아직 그 정도로 축적된 것은 아니니 인간의 직감과 판단력에 의존해야 했다. 그러나 이 보조 로봇들과 훈련을 한 소방관은 대단히 흡족해 했다. 특히 붉은 화염을 뚫고 화재 현장의 형태를 볼 수 있게 도와준 증강 현실 기기는 붉은 화염 너머 구조자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매우 유용한 물건이었다. 그것 하나 만으로 요(要) 구조자를 찾는데 들이는 위험과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었다. 한 소방관은 탐지형 로봇독의 도입이 늦어지는 곳이라고 해도 자외선 카메라를 단 헬멧이 있다면 위험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며 의견을 개진했고 이 의견은 온라인으로 일선 소방관의 의견을 모으던 네트워크를 타고 미국 전 소방관들에게 퍼졌다. 미국은 소방관도 노조를 결성할 수 있고 법적으로 보호를 받는다. 당연히 집단 행동을 통해 정부에 자신들의 요구를 전달할 수 있었다. 그러니 자신들의 목숨을 보호하는 첨단 장비의 도입을 주장할 수도 있었다. 어느 나라라면 이게 무슨 괘씸한 짓이라며 관등성명이 뭐냐고 압박하겠지만 미국에서 소방관은 영웅이다. 어린이들의 장래 희망에서 결코 빠지지 않는 직종으로 민심은 그들의 편이었다. 거기에 집단 행동의 명분도 요(要) 구조자와 소방관의 생명을 보호할 첨단 기기의 도입이니 정부로서는 부족한 예산이라도 만들어야 할 판이었다. 결국 미 의회는 특별 예산 편성으로 첨단 소방 헬멧을 도입하기로 했다. 그러자 즉시 여러 기업에서 시제품을 만들어 입찰 경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자외선 카메라의 기술은 그 근본원리가 어렵지 않았고 발달한 현재의 증강 현실 기술과 디스플레이 기술을 도입하면 뜨거운 화재 현장에서도 소방관의 안면부에 영상을 보여줄 수 있는 헬멧을 만들 수 있었다. 이 자외선 카메라 헬멧을 개발하는 업체들은 LCD 같은 패널 형식의 디스플레이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프로젝터 방식의 디스플레이이 기술을 도입했다. 패널 형식의 디스플레이를 도입할 경우 화재 현장의 높은 온도 아래에서도 작동할 수 있는 기술력이 필요했는데 그렇게 하면 단가가 올라간다. 전국의 소방관에게 자외선 카메라 헬멧을 보급해야 하는 정부가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프로젝터 형식이라면 다르다. 안면부의 창은 방열효과만 집중할 수 있었고 프로젝터만 교체하는 식으로 수리도 쉬웠다. 몇몇 시에서는 소방 보조 인공지능까지 탐을 내기도 했다. 특히 끔찍했던 테러가 일어난 뉴욕 시에서는 소방 보조 인공지능은 물론 탐지형 로봇견과 구조형 로봇까지 도입하기로 했다. 이런 식으로 소방업무까지 진출한 인공지능으로 인해 사람들이 다시 수군 거리기 시작했다. 저번에는 교육, 이번에는 소방. 금융 보안부터 시작해, 군사, 연구 부문으로 도입되었던 인공지능이 점차 사람들의 생활에 밀접해 왔다. “정말로 다큐에서나 보던 미래 시대인가?” “난 저번에 로봇견이 안내하는 시각 장애인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고.” 쁘띠 인공지능의 보급은 장애를 가진 인간을 보조하기에 충분했다. 아니 팔다리가 없는 사람들은 사이버네틱스 기술의 발달로 이미 장애인도 아니었다. 선천적 기형의 경우에도 신경계의 발달 유무를 따져 인공 수족을 달 수 있으니 말 다하지 않았는가? 앞으로 인공 눈이나 인공 귀도 활발하게 상용화 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사이버네틱스 기술의 발달로 신경과 전자회로를 접하는 기술이 개발되면서 각종 신경 치료 기술도 나왔다. 반신 불수, 전신 불수 등 뇌사 이외의 신경 장애도 보조해 의사 소통과 일상 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도 머지 않았다. 이렇게 사이버네틱스 기술이 발달하면서 바이오 신소재 분야도 함께 발달했다 인체에 삽입하는 전자기기가 인체에 알레르기 반응 따위를 일으키지 않도록 생화학적으로 안정해야 했다. 처음에는 CNT를 사용하고자 했으나 CNT의 경우에도 사람이 흡입했을 경우 석면과 같은 독성을 보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로 인해서 법적으로 신체에 사용이 금지 되었다. 사용한다고 해도 CNT 가루가 날리지 않게 고분자로 잘 코팅된 법적으로 기준이 마련된 CNT 전선을 사용하도록 했는데 그래도 체액이나 혈관에 닿는 부분에 CNT를 사용하도록 허락하진 않았다. ============================ 작품 후기 ============================ 끝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229화 그래서 CNT 케이블을 사용한 아폴로티움에서도 한 때 CNT 케이블을 고무로 코팅한다고 난리법석을 떤 적이 있었는데 아폴로티움에 사용한 CNT의 길이는 너무나 길어서 사람이 흡입하기 힘들 정도라 강현이 고소를 머금은 적이 있었다. 그래도 케이블 수가 많고 그 중에 사람이 흡입할 수 있을 정도의 길이를 가진 CNT가 있을 수 있으니, 자신도 돈을 기부해 빠르게 케이블을 코팅했다. 거기에 더불어 분진을 정전기로 흡착하는 장치를 소방서, 학교, 보건소 같은 관공서는 물론 쇼핑 센터나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공공 장소에 기본적으로 설치해 대기 중 먼지의 농도를 줄이는 방법을 시행했다. 공장은 말할 것도 없었다. 공원의 늪지와 초목이 먼지를 흡착하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비가 내리지 않는 환경이라 꼭 필요한 장치이기도 했다. 아무튼 CNT를 신체에 사용할 전극으로 사용하는데 법적으로 제한이 걸리자 이 분야를 연구하는 연구소들이 많아졌다. 사이버네틱스 기술은 돈이 되는 분야고 법적인 제제를 뚫어낼 수 있는 기술이 있다면 순식간에 거부가 될 수 있었다. 가장 주목받는 신경 접합용 전극은 전도성 세라믹이었는데 역시 엄격한 생화학적 독성 검사를 통화해야 했다. 그럼에도 CNT를 계속 연구하는 이들이 있기는 했는데 이유는 나노 입자의 크기와 모양에 따라 물리 화학적 특성이 바뀌고, 마찬가지로 CNT의 굵기나 길이를 조정하면 석면과 같은 생화학적 독성을 나타내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미국 같은 기존의 선진국들은 기술의 비약에 천지가 개벽할 정도의 변화를 맞이했고 그동안 개발 도산국과 같은 기술 후진국들은 열심히 따라가기 위해서 발을 놀렸다. 하지만 뱁새가 황새 따라 가려 하다가는 가랑이가 찢어지는 법. 기술력의 차이를 메꾸기 위해서는 그만큼 희생이 필요했다. 그 희생은 선진 기술력을 도입하기 위한 이권의 양보가 주를 이루었고 기술 선진국들은 이를 이용해 해당 국가에 영향력을 확보했다. 장래를 보면 피눈물이 나는 일이지만 당장에 따라가지 않으면 도태될 상황이니 어쩔 수가 없었다. 변화의 가속은 그것을 감당할 수 없는 약자에게 희생을 강요했다. 그나마 한국은 상황이 좀 나았다. 기본적으로 기술 개발력의 잠재력이 뛰어난 나라이기도 했지만 강현의 출신국이며 제현 그룹으로 여전히 한국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기 때문에 기술 선진국들이 다른 기술 후진국에게 하는 것처럼 하기가 눈치 보였다. (정작 본인은 전혀 관심이 없었다.) 정부는 알게 모르게 (강현의 영향력 덕분에) 그리 손해보는 장사를 하진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기업들이었다. 정부가 주선한 기술 이전을 받는 건 참으로 감사하고 군침이 도는 일이었다. 정부가 신경써준 기업이니 차후 기술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금전적인 지원이 들어올 수 도 있었다. 그러나 기술 선진국의 정부와 한국 정부가 주선한 기술 이전에서 번번이 기술 선진국의 기업들은 제현 그룹과 관계를 맺고 싶어했다. 그리고 카랄니 킴은 얼씨구나 그들에게서 기술 제휴를 받았다. 그리고 그 기술 제휴를 다시 높은 로열티로 샘성이나 NG에 넘겼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왕서방이 챙기는 꼴이었다. “망할 것들! 지들은 반도체 생산도 안하는 주제에!” 샘성 신임 회장인 이정이 분통을 터트렸지만 이미 갑을 관계는 형성되었다. 이정은 카랄니 킴 앞에서는 환하게 웃으며 덕담을 해야 했다. 대한민국을 주무르는 재벌의 자존심에 심각한 타격을 받았지만 제현 그룹의 영역은 이미 재벌의 손아귀에서 벗어났고 제현 그룹이 영역을 확장하는 것을 오히려 걱정해야 할 처지였다. 특정 분야의 인재 역시 제현 그룹에 몰려 제발 파견해 달라고 애원해야 할 정도였다. 그러나 파견해 줘도 문제였다. 제현 그룹의 규정에 따라 일하는 이들은 절대로 지시하는 야근이나 추가 근무따위는 하지 않았다. 심지어 할 때도 자신들이 내킬 때 한다. 반골 기질이 넘쳤다. 뭐? 짜르면 된다고? 그러나 한국 노동법에 따르면 파견 직원들은 파견 업체에 소속되어 있었다. 거기다가 파견된 직원들은 자신들을 일하는 기업의 소속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제현 그룹에 소속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이제는 파견 직원이 없으면 일이 되지 않는 지경이었다. 정시 퇴근 해도 맡은 바 업무는 철저히 하고 가기에 생산성은 높았다. 그러나 기업 입장에서는 적은 비용으로 일을 더 시키고 싶어하는 것이 당연했고 기업이 하고 싶은 대로 일이 이루어지는 코리안 스타일의 전통이 있었기 때문에 시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 사람을 더 고용하세요.” 미친 놈들. 사업주들은 제현 그룹을 욕했다. 도대체 사람을 어떻게 다루면 저런 직원이 나올까? 회사의 발전을 위한 (자발적으로 더 일해 줄) 애사심은 어디다가 팔아 먹었다는 말인가?(제현 그룹에?)뭐? 사람을 더 고용해? 인건비를 네 월급에서 까줄까? 정직원될 욕심도 없냐? 평범한 파견 직원이었다면 그렇게 윽박 지를 수 있겠지만 상대는 제현 그룹의 직원이었다.그들은 거의 혹은 모두 이미 제현 그룹의 정직원이었다. 정직원의 파견이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지만 기술 인력, 고급 인력을 독점하다 시피한 제현 그룹이었다. 법적으로 제제하고 싶어도 현재 상황에서는 무리였다. 정부도 알지만 쉬쉬하고 있는 입장이었다. 일단 정부가 나서기에는 강현과 그 뒤에 있는 미국의 입김이 무섭다. 그리고 기업적인 차원에서도 법적인 제제가 들어가는 순간 기업의 생산성은 뚝 떨어질 것이다. 일부에서는 업무 마비가 올 수도 있었다. 다 쓸만한 인재가 우주라는 비전을 보고는 제현 그룹을 통해 빠져나가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남은 이들은 제현 그룹이 거절할 정도로 무능하거나(무능해도 회사에 붙어있을 수 있을 정도라면 어느 정도의 간신배일까?) 개인의 성공을 위해 상사의 실각을 노릴 정도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하이에나 같은 놈들이니 개인적으로 보면 파견 직원들이 오히려 믿을 만할 정도였다. 적어도 그들은 제현 그룹의 정사원들이라 개인적인 성공 욕심에 자신들의 뒤통수를 노리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쿡쿠(cuckoo) 프로젝트는 얼마나 진행되고 있죠?” “유통 업계 쪽은 약 30%로 반도체나 다른 업체들과 달리 5% 앞서고 있습니다.” “속도 조절을 할 필요가 있겠군요.” “알겠습니다.” 비서가 카랄니 킴에게 인사를 하고 나갔다. 카랄니 킴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뻐꾸기(cuckoo)는 다른 새의 둥지에 탁란을 하는 새다. 뻐꾸기 새끼는 양부모가 물고 온 먹이로 잘 성장한다. 마찬가지로 인재들을 키우는 데에는 시간과 비용이 들어간다. 돈은 물론이고 세심한 케어 같은 무형의 자산도 포함된다. 이 무형의 자산에는 일자리 그자체도 포함된다. 경력직이 왜 대우를 받는가? 관련 업무에 익숙해 바로 써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일자리를 포함해 시간 비용 등 회사의 자원을 사용해 키운 인재의 유출은 기업에게는 심각한 문제였다. 마찬가지로 정직원으로 뽑을 정도의 인재를 다른 회사에 파견을 보내는 건 위험한 일이었다. 해당 사원의 애사심에 타격을 주고 이직할 수 있을 정도로 불만을 쌓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왜 파견을 할까? 카랄니 킴은 자신이 있었다. 직원의 대우에 있어서 철저히 사생활을 보장하는 제현 그룹의 정책은 젊은 인재들에게 차별성을 느끼게 해주었다. 같은 일을 하면서 받는 돈이 비슷한데도 한쪽은 야근이 필수고, 한쪽은 정시 퇴근이 필수라면 그들의 마음이 어디로 쏠릴까? 탐욕적으로 금전을 탐하는 이들은 의외로 많지 않다. 삶의 질에 돈이 끼치는 영향이 적어지면 선택의 기준은 다른 것으로 바뀐다. 돈을 많이 줘도 돈 쓸 시간을 주지 않는 곳을 택할 것인가? 졸부가 될 정도로 돈을 주지는 않아도 가족과 친구들에게 쓸 시간을 주는 곳을 택할 것인가? 개인의 기준에 따라 다르겠지만 적어도 제현 그룹에서 제시하는 비전은 당장의 금전보다 매력적이었고 젊은이들의 야망은 과연 젊은 혈기대로 더 먼 미래를 바라보았다. ‘현장에서 실무 경력을 파악하시고 대한민국의 경제 구조와 기업간의 역학 관계를 파악하세요.’ ‘파견해서 그냥 맡은 업무만 하면 안됩니까?’ ‘당신은 대한민국의 미래입니다. 적을 치려면 적을 알아야하죠.’ 파견되는 직원들은 은밀하게 본사에서 온 직원의 말에 전율했다. 사실 한국의 갈등 문제에서 가장 큰 갈등은 지역 갈등이 아니다. 가장 피부로 밀접한 갈등은 세대 갈등이다. ‘애 좀 낳아라.’ ‘자식을 잘 키울 자신이 없습니다.’ ‘애들은 낳으면 알아서 잘 자란다.’ ‘어디 지금이 그때인 줄 아십니까?’ ‘나 때는 먹을 것이 없어서 졸졸 굶고 다녔어. 요즘 세상이면 천국이지.’ ‘사람은 밥만 먹고 살 수 없습니다.’ ‘배부른 소리하지 마라. 등 따숩고 배부르면 된다.’ 빠르게 변화한 한국 사회에서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기성 세대와 청년 세대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지 않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제현 그룹의 직원들 중 상당수는 기성세대가 만든 갑을 관계에 진저리가 난 이들이었다. ‘씨바! 회장이면 회장이지 회삿돈이 지돈이냐?’ 예전에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적응해야 했지만 이제는 제현 그룹이 있었다. 제현 그룹의 기업 문화는 한국에서 갑의 위치에 있는 어떤 기업의 문화와도 달랐다. 본인들도 그 때문에 제현 그룹에 지원한 것이 아니던가? 그런 그들에게 뻐꾸기 프로젝트는 마치 비밀 결사에 가입한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들은 때를 기다리며 얌전히 실무 경험과 함께 자신이 파견된 회사의 약점을 찾기 시작했다. 때가 되면 제현 그룹이 그 기업의 자리를 꿰찰 것이다. 이런 일은 건축, 유통, 금속, 경공업, 식품 등 다양한 영역에서 벌어졌지만 역시나 대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정도의 기업에서 주로 진행되었다. 파견 직원에게 뒤통수 맞을 일이 없다며 모두가 안심하는 동안 카랄니 킴은 그들 정수리에 벼락을 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기업이 카랄니가 떨어뜨릴 거대한 똥벼락의 타이머가 돌아가는 줄은 상상도 못하는 동안 대기업이 아닌 기업들은 도저히 제현 그룹에서 제시한 파견 비용을 낼 수가 없었다. 덕분에 은밀하게 불법체류자의 고용이 늘어났지만 여론화 되는 일도 없었다. 이미 한국 인력 시장은 붕괴 위기였다. 단순 노동을 해줄 인력이 없었다. 모두 제현 그룹이 데려가 교육하고 우주로 보내고 있었다. 심지어 공무원이라는 환경 미화원까지 인력난이 생길 정도였다. 미국은 여전히 우주 개발을 가속하고 있었고 벌써 두 번째 우주 도시 계획이 진행되고 있다는 루머도 은밀하게 돌았다. 이번 우주 도시는 화성의 위성 궤도를 도는 인류 생활권의 확장 가능성을 탐색하기 위한 용도라며 우주 달팽이를 건설하는 건설 인부와 로봇 관리 및 수리 기능공까지 다양한 기술 인재를 원했고 한국인의 손재주는 종특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HA이나 인공지능을 동원해 로봇을 관리하는 것보다 더 싸게 먹혔고 좀 더 많은 한국인 기술자들을 요구했고 제현 그룹은 열심히 한국인을 고용했다. 그렇게 한국의 단순 인력 시장이 붕괴하자 불체자들의 고용 역시 늘어났고 이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법안이 만들어지는 수 밖에 없었다. 230화 이에 시민단체들이 나서서 격렬히 반대했다. 문화가 다른 외국 노동자들의 이민으로 생길 각종 사회 문제를 생각하지 않고 기업의 입장만 고려했다는 명분에 불체자들로 인해서 생기는 각종 범죄 문제를 들어 오히려 외국인 노동자를 철저하게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와 기업에서는 그러면 국가의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둥, 글로벌 시대에 맞지 않는 생각이라는 둥 온갖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시민단체는 요지부동으로 시위를 계속했다. 기업들은 이를 갈았다. 분명 뒤에 누가 있었다. 외노자 수입을 하지 않아도 괜찮은 곳, 아니 외노자 수입 금지로 기업이 타격을 입으면 반사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곳. 바로 제현 그룹이었다. 제현 그룹에서는 결코 불체자 따위는 고용하지 않았다.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는 것도 철저하게 고급 인력 위주였다. 왜? 이유는 얼마 뒤에 드러났다. 협력 하청 업체인 세컨드 밴드 연합에서도 인력난이 있었는데 제현 그룹이 지원한 인공지능과 로봇들으로 인력난을 크게 줄였기 때문이었다. 외노자 수입 반대 시위를 한 시민들 입장에서는 외국인 노동자들 보다 차라리 로봇이 달가웠다. 시민 단체들은 정말로 노동력이 없어서 문제라면 조금 비용이 더 들더라도 로봇을 도입하자고 주장했다. 적어로 로봇은 생리후생, 복지 문제나 범죄 문제를 고려하지 않아도 되지 않은가? 제현 그룹은 품질이 인정된 미제 안드로이드를 들여왔다. 미국에서는 제현 그룹과 세컨드 밴드를 친미파로 분류해 가격에 대한 편의를 봐주었다. 마진을 줄여준 것이다. 왜 우리에게는 팔지 않는가? 다른 대기업도 안드로이드를 도입하기 위해 미국 관련 업체에 문의해 봤지만 물량이 제현 그룹에 다 들어가서 팔 수가 없단다. 언제쯤 팔 수 있냐고 물으니 한 5년 동안의 물량이 다 예약 되어 있단다. 증산 계획은 없냐고 물으니 없다고 한다. 투자해 줄테니 증산해 줄 수 있냐고 물으니 미 정부의 허락을 받아야 한단다. 바보도 아니고 이쯤되면 미국 정부의 입김이 들어갔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더불어 미국이 제현 그룹 뒤에 있다고 눈치를 주고 있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미국의 눈치만 있었다면 친중파나 친러파에서 뭐라고 할 수도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단일 민족이라는 국가의 정체성을 고집하는 여론을 완전히 거부할 수 없었다. 대안이 없었다면 대안이 없다며 밀고 나갈 수도 있었겠지만 이미 로봇이라는 대안이 있었다. 그대로 밀고 나가다가는 민족의 배반자, 혹은 제2의 매국노라는 딱지가 붙을 수도 있었다. 상황이 이러니 재벌들도 어쩔 수가 없었다. 그들은 단순 노동이 가장 절실한 건축 현장을 돌리기 위해서 제현 그룹으로부터 노동용 로봇들을 대여했다. 그러자 새로운 불만이 생겼다. [로봇 도입 반대한다!] [생존권을 보장하라!] 일일 노동자들이 불법 체류자들과 함께 연대해 시위에 나선 것이다.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일일 노동자들이 시위를 해? 일용직이 흔히 그렇듯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고 일자리는 적었다. 게다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이들이라 일을 나가지 못하면 손해였다. 그들은 시위를 하면 생계가 어려워지는 정도가 아니라 사회의 밑바닥으로 떨어진다. 그런데 왜? 원인은 하청업체에 있었다. 건설 현장에서 인맥이나 뇌물에 의해 하청에 재하청이 잇따르는 건 이제 비밀도 아니었다. 그러나 제현 그룹에서 로봇을 임대받는 사업자는 굳이 재하청을 할 필요가 없으니 이 재하청 업체들이 모조리 죽게 된 것이었다. 그들은 제현 그룹 앞에서 시위를 벌여 보기도 했지만 카랄니 킴은 눈도 깜짝 안했다. 하청에 재하청이라? 유통과정이 줄어들면 가격은 싸진다. 이득은 생산자와 소비자가 본다. 창고형 대형 마트로 인해 중간 유통 과정이 축소되어 있는 미국에서 나고 자란 카랄니 킴의 시각으로 보면 하청의 재하청이란 구조는 쓸데없이 군더더기가 많은 구조였고 비생산적이었다. 복잡한 부품으로 구성된 첨단 제품도 아니고 노동력을 제공할 뿐인 건설 현장에서의 재하청은 결국 하청 업자만 남겨먹는 구조였다. 노동 유연화? 그러나 그 이득은 노동자에게 떨어지지 않았다. [제현 그룹은 생존권을 위협하는 로봇 도입을 즉각 중지하라!] [더 많은 일자리! 더 많은 기회!] 시위대의 말과 명분은 좋았지만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었다. 위험하고 힘든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은 없었다. 돈이라도 많이 주면 몰라.. 여전히 몸 쓰는 일을 천하게 여기는 한국 사회는 안 그래도 3D(Dirty, Difficult, Dangerous)인 직종에 그만큼의 위험 수당도 주지 않았다. 언론은 중립을 지켰고 여론은 동조하지 않았다. 주판을 튕겨보던 원청(주로 대기업)들은 하청에 재하청이라는 형식을 포기하기로 하고 로봇을 대여했다. 그 많은 건설 현장에 제현 그룹이 일일이 로봇을 대여해 줄 수 없으니 일정 이상의 자격을 가진 노동력 사무소에 하청의 하청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붙여 로봇을 대여하기로 했다. 하청 업계는 이 일로 구조 조정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많은 하청 업체가 문을 닫았고 십 수 개의 하청 업체로 통합 되었다. 여기에 얽힌 하류 인생들, 특히 폭력 조직이나 재하청으로 먹고산 인맥 비리 인사들이 끊임없이 잡음을 내어 봤지만 시류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로봇에게 신체적 폭력과 협박이 먹힐 리가 없었고 또한 제현 그룹의 자산이었다. 만일 문제를 일으키면 제현 그룹이라는 거대 회사가 나선다. 조폭 같은 불법 단체는 제현 그룹이 밟고자 하면 밟힐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한국의 일용직 시장은 재편되었고 본격적으로 로봇이 도입된 노동 시장의 등장은 각국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한국이 빠른 인터넷의 보급으로 첨단 IT 기술 환경을 시험할 수 있는 무대가 된 것과 비슷하게 로봇을 빨리 도입한 한국의 노동 시장은 앞으로 로봇이 인력 시장에 끼칠 영향력을 가늠할 수 있는 시금석이었다. 성공을 하든, 실패를 하든, 어떤 식으로든 보완할 수 있는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 봤다. 게다가 급격히 노령화되는 한국이 아니던가? 노령화 사회에서 로봇의 쓸모가 과연 예상대로인지 확인할 수 있어서 이웃인 일본이 흥미롭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이미 노령화 사회에 접어든 일본보다 늦게 노령화가 시작된 한국 사회지만 초 노령화 사회로의 진입은 오히려 일본보다 빠를 것이라고 예측되는 한국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한국의 입장에서 로봇을 이용한 단순 노동과 3D 노동 인력확보는 어쩌면 선택이 아니라 필수일 수도 있었다. 한편, 한국의 인력 시장에 로봇이 도입되자 이미 충분히 주판을 튕겨봤던 미국의 자본가와 투자가, 기업들은 열불이 났다. 우리도 빨리 도입하자! 이건 돈이 된다! 왜 안된다는 거냐?! 당연히 안된다. 표를 의식하는 미국 정치인들은 급격한 노동 시장 붕괴를 원하지 않았다. 위기는 기회라며 노동 시장 붕괴로 인한 혼란이 사업 확장과 이윤 창출에 도움이 될 거라고 계산하는 이들과는 생각하는 방향이 달랐다. 아무리 선거에 돈이 필요하다고 해도 민심과 완전히 이반할 수는 없었다. 미국에서 로봇의 노동 시장 조기 도입에 관련해 사회 각층이 열변을 토해내고 있는 와중에 강현은 학부모 상담을 받기 위해 준의 진로 지도를 담당하는 선생과 마주했다. “반갑습니다. 조셉입니다.” “반갑습니다. 강이라고 불러주세요.” 세계를 주무르는 영향력을 가진 강현과의 만남이라 선생은 다소 긴장 했지만 그럼에도 침착함을 잃지 않고 이야기를 꺼냈다. “요즘 준의 학업 성적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그렇겠죠.” “.... 알고 계셨습니까?” “네.” 강현의 표정이 씁쓸해졌다. 아들의 영웅은 아버지라고 했던가? 그리고 으례 남자는 영웅을 닮고 싶고 영웅이 되고 싶어 한다. 거기에 준의 경우에는 강현을 칭송하는 말을 여기저기에서 들었으니 더욱 그러했다. 그러나.. “천재성은 유전이 아니었죠.” 안타깝게도 준의 지능은 강현의 수준이 되지 못했다. 물론 스스로의 노력으로 또래 아이들보다 더 많이 알고 있었지만 그 정도였다. 도저히 당시 나이의 강현 수준이 될 수가 없었다. 그것을 깨닫게 되자 준은 혹여나 자신이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 아닌지 절망하고 두려워 했다. 그런 기대를 표현하지 않았지만 강현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였다. 부자가 나란히 과학자가 되어 심도 있는 토론을 하면 좋지 아니한가? 그는 기가 죽은 아들을 동정했지만 그것을 티내지 않았다. 실패한 이를 실패했다고 동정하는 것은 그를 실패자로 낙인찍는 일이었다. 그는 아들 마음에 실패자라는 낙인을 찍고 싶지 않았다. 더구나 아들이 자신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서 과학을 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었다. 누군가의 인정을 받는 일보다 자신이 즐거운 일을 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누누이 이야기를 했지만 아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열정을 불태울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었다. 돈을 못 버는 일이라도 괜찮다. 자신이 돈을 많이 물려주면 된다. 돈 많은 아버지의 특권이다. “앞으로 준이 어떻게 하기를 바라시나요?” “별 다른 게 있겠습니까?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았으면 합니다.” “하지만 준은 강 박사님처럼 될 수 없습니다. 설사 과학자의 꿈을 이루고 살아도 강 박사님의 그림자가 드리워 질 겁니다.” “모든 이가 1등이 될 수는 없습니다. 모든 이가 저처럼 운이 좋을 수도 없는 일이죠. 저는 준이 그것을 이해하기를 바랍니다. 과학으로 자신을 증명하는 삶을 사는 것보다는 과학이 인생의 즐거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물론 과학이 아니라 다른 걸로도 준의 인생이 풍요로워진다면 저는 언제든지 지지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도록 지도해 보겠습니다.” 가족이기 때문에 할 수 없는 말도 있다. 준이 자신의 절망을 강현에게 고백할 수 없는 것 역시 그러한 영역이었다. 적어도 스스로 그 절망을 이겨내기 전에 둘 사이에 그러한 이야기가 오가는 건 서로에게 상처만 남길 수 있었다. 그러니 학교 선생님이 준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었다. 강현은 준이 다시 자신을 찾을 때까지 불편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러나 천성적으로 급한 그의 성미는 채 두 달도 기다리지 못했다. “천재가 아니라서 고민이라면 천재로 만들어주자.” [그게 가능합니까?] “몰라. 시도는 해봐야지.” Electrical Brain Stimulation(EBS)라는 것이 있다. 전두엽 부분에서 논리를 관장하는 부분에 미세한 전기적 자극을 주어 수학적 학습 능력을 증진시키는 기술이다. 뇌신경 윤리학자들에게 많은 비판을 받는 기술이지만 이미 자식들이 똑똑하기를 바라는 부자들의 투자를 받으면서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다. 피험자는 전기회로가 설치된 헤어 밴드를 착용한다. 전자기 유도의 원리로 좌뇌 전두엽의 일부분을 자극해 주는 이 헤어 밴드는 수학을 학습하는 능률을 높여준다. 그것이 단순한 플라시보 효과에 불과할 수도 있다. 좀 더 대규모로 실험을 한다면 확실한 결과가 나오겠지만 사람에게 실험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었다. 게다가 이제는 돈이 없으면 머리도 멍청해 져야 하는 세상이냐며 자식들이 도태될 것에 공포감을 느끼는 학부모들의 저항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러니 강현이 정말로 범인(凡人)을 천재로 만들어 주는 기술을 만들어내 낸다면 그 파급력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부자들은 돈을 싸들고 찾아올 것이고 국가는 천재의 희소성을 위해서 기술을 통제하려고 들 것이다. 천재를 만드는 기술이 국익이라는 명분을 들어 국가의 통제를 받는 순간 소수의 사람에게 독점될 것이다. 231화 [발표하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시기 상조야. 아마 내가 죽을 때까지 발표할 일은 없을걸?” 일단 돈에서 인류를 자유롭게 해야 했다. 자본과 권력의 논리를 떠나 사람들이 자유롭게 천재가 될 수 있는 기술을 시술 받을 수 있는 환경이 될 때까지 천재를 만드는 기술은 비밀이어야 했다. “그리고 불가능할 지도 모르니까 미리 걱정하는 건 시기상조야.” [알겠습니다.] 뇌는 과학자들에게 또 하나의 우주로 우주와 바다밑에 견줄만한 미지의 탐험지였다. 여전히 뇌에 대해서 연구자들이 알고 있는 것은 뇌의 활동은 시냅스의 연결에 의해서 결정되고 특정 활동을 할 때 특정 부위가 활발하게 움직인다는 것 뿐이었다. 지금 뇌 연구의 테마는 뇌의 다양한 기능들이 어떤 식으로 연결되어 고차인지 기능을 발휘하는지 확인하는 것에 있었다. 언어의 해석이나, 논리적 사고, 공감각적 사고, 예술적 창의성은 물론 댄스, 시각 정보, 영화 같은 매체를 통해 받아들이는 다양한 정보의 처리까지 뇌의 각 부분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것을 확인하고 EBS(Electrical Brain Stimulation) 기술과 접목한다면 인위적으로 지능을 개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뇌 인지 심리학자들의 견해였다. 하지만 강현은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인간과 침팬지의 유전자 일치율은 95% 정도. 겨우 5%의 차이가 인간과 침팬지의 간극을 엄청나게 벌려 놨다. 천재와 범재의 차이 역시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몇 가지 생각하는 방식의 차이가 천재와 범재를 갈라 놓을 수도 있었다. 지능지수는 어쩌면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학습 능력은 의지와 노력에 크게 좌우 받는다. 언어적으로 뛰어난 이가 있는가 하면 시각적 이미지에 뛰어난 감각을 가진 이도 있고, 또 청각적으로 뛰어난 이도 있었다. 강현이 뛰어난 음악을 만들지 못하는 것처럼 지능과 뇌의 능력은 다양한 분야로 특화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논리적 영역만 자극하면 뛰어난 논리학자가 되는 건가? 그렇지 않다. 중심이 되는 뇌의 부분을 보조하는 부차적인 인지 영역의 보조가 반드시 뒤따른다. 현재 뇌연구의 트랜드가 그러한 뇌의 영역간 의사 소통을 연구하는 것이 중심인 것도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아들이 강현 자신과 같은 과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뇌 활동 상태를 조사할 필요가 있었다. 뇌 활동 상태를 조사할 때 주로 fMRI를 이용하는데, MRI(Magnetic Resonance Imaging; 자기 공명 영상) 기술을 응용한 기술이다. MRI는 수소 원자에 자기장이 간섭할 때 수소 원자가 내뿜는 라디오파를 측정해 이미지 하는 기술이다. 신체의 3분의 2 정도가 수분이지만 조직 구성, 밀도 등에 의해 수소 원자가 내뿜는 라디오파의 밀도 역시 달라진다. 이 정보를 컴퓨터 기술로 시각화하는 것이 MRI의 원리다. 그러나 뇌 활동 상태를 조사하기 위해서 수소 원자와 공명하는 방법은 무용지물이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fMRI를 개발했는데 아이디어는 뇌가 활동할 때 대량의 산소를 소비한다는 것에서 착안했다. 수소 원자 대신 산소 원자와 자기 공명을 시켜 그때 나오는 전자기파를 측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단점이 없을 수 없었다. 이 자기 공명 장치는 더 선명한 영상을 얻기 위해서는 더 강력한 자기장을 쏘아 주어야 하기 때문에 크기가 커질 수 밖에 없었다. 거기에 fMRI 같은 경우 뇌세포가 산소를 사용하면서 그 부위에 산소가 충분히 축적되는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강현이 하루 종일 자기 공명 장치 안에 들어가서 일을 할 수도 없었다. 게다가 강력한 자기장을 사용하니 전력도 많이 들고 쇠붙이가 있을 경우 매우 위험하기도 했다. 그러니 fMRI는 사용할 수 없었다. 강현은 다시 아즈삭을 통해서 관련 기술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오호? K-step이라.. 대단한데?” 전기 기계와 일렉트로 메카닉스 분야에 정통한 강현은 뇌과학 분야에는 익숙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 표준기술 연구원에서 개발한 뇌파자기공명이라는 기술은 그도 감탄하게 할 만했다. 생체자기공명을 기반으로 개발한 뇌파자기공명은 생체가 활동하면서 생산하는 전기 생리학적 신호가 그 주변의 수분과 양성자를 직접 공명시키는 현상을 이용했다. 장점은 무궁무진했다. 강한 자기장이 필요없고 특정 뇌파에 의한 공명 신호를 추적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뇌 부위 사이의 연결성을 가늠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컴퓨터에 비유하자면 CPU와 RAM 사이에서 주고 받는 디지털 전기 신호를 추적해 어떤 신호를 주고 받는지, 어떤 영역이 기능적으로 사용되었고 그 기능은 어떠한 지를 연구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한 것이다. 그러나 어려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전기 생리학적 신호인 뇌파의 주파수와 그에 영향을 받는 양성자의 공명 신호를 완전히 분리할 수 없었다. 이 두 자기장을 분리해 내야 뇌의 어느 부위가 활동하고 있는지 추적할 수 있었다. 한국 표준 기술 연구원에서는 이 문제를 외부 자기장을 갑작스럽게 걸어주는 것으로 해결했다. 전기 생리학적 신호를 따라 누운 양성자가 외부 자기장에 의해서 다시 방향이 바뀔 때, 그 자기장의 변화량은 외부 자기장의 크기에 비례하기 때문이었다. 이 방법이 뇌파자기공명 기술의 핵심이었고 개발자의 이름을 따 기웅스텝(Kiwoong step), 약어로 K-step이라고 불렸다. [연락을 취해볼까요?] “아니.” 강현은 고개를 저었다. “비밀 연구니까 누구에게도 알려져서는 안돼.” 그의 말에 아즈삭은 이번 연구 과제에 대한 보안을 최상급으로 높였다. 그건 강현이 개발한 스파이 바퀴벌레와 같은 등급이었다. 강현은 자신의 뇌파를 측정하기 위한 장비를 제작하면서 몇 차례의 난항을 겪었다. 뇌파자기공명 기술을 개발한 연구진에 연락을 한다면 협조를 얻어 더 빠르게 측정 장비를 만들 수 있겠지만 자신이 그런 연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안된다. 사람들이 알게 되었을 때 반응이 어떨지 강현조차 가늠할 수 없었다. 뇌파자기공명 장치를 완성한 강현은 일단 자신의 머리에 그것을 씌우고 일을 시작했다. 세계가 공인한 천재인 자신의 뇌 활동 상태를 먼저 알아야 했다. 그리고 약 일주일간의 분석 끝에 아즈삭이 말했다. [자료가 부족합니다.] 강현이 열심히 머리를 굴릴 때의 데이터에 대한 비교 데이터가 필요했다. 강현은 헬멧 형태이던 뇌활동측정 장치를 개량해 헤어밴드 형태로 만들었다. 갑자기 헤어밴드를 하고 나타난 그에게 샐리가 웬 헤어밴드냐고 물었지만 그가 둘러댄 말은 ‘패션’이었다. 샐리는 어이가 없었다. 언제부터 패션에 신경을 썼다고.. 그녀가 아니었으면 그는 지금쯤 돈만 많고 메마른 후줄근한 아저씨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녀가 그의 외모와 건강에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책으로 한 권 나올 수 있을 정도다. 그러나 그녀는 남편의 괴짜 짓이 하루 이틀이 아니기 때문에 그 이상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시아는 키득 대면서 강현의 헤어 밴드를 벗기려는 장난을 쳤고 준도 호기심 짙은 눈길을 보냈지만 한 달이 지나자 모두들 그러려니 했다. 평상시 일을 안 할 때의 뇌 상태와 열심히 머리를 굴릴 때의 뇌 상태에 대한 자료가 축적되고 아즈삭이 자료를 분석해 이미지로 만들었다. “헐..” 강현은 신기했다. 자신의 뇌가 활동하는 광경을 보고 있으니 참으로 신기하지 않는가? 그건 자신의 내부 장기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는 것 만큼 신기한 광경이었다. [이건 박사님께서 연구활동을 하실 때의 장면입니다. 그리고 이건 식사를 하시거나 아이들과 노실때의 장면입니다.] “왜 이렇게 하얗지?” 강현은 자신이 연구 활동을 할 때의 뇌 활동 영역이 무척이나 넓은 것에 놀랐다. [박사님의 뇌 활동 영역은 일반인에 비해서 월등히 넓습니다. 거기에 감마파와 알파파가 동시에 발생하고 뇌의 기억 중추를 매개로 전두엽과 측두엽, 후두엽이 동시에 활동하고 있습니다. 또한 좌뇌와 우뇌의 활동 비율 또한 비슷합니다.] 감마파는 극도의 각성이나 흥분 상태에 있을 때 주로 전두엽에서 발생한다. 알파파는 심신이 안정 상태를 나타날 때 발생하는 파형으로 뇌 발달과 관련되어 있었다. 단순화 하면 전두엽이 논리 사고력, 측두엽이 기억력, 후두엽은 시각적 정보와 관련되어 있다. 분석하자면 강현은 기억에서 정보를 꺼내어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시각적으로 이미지 하는 능력이 특출나다는 것이다. 컴퓨터로 비유하자면 CPU와 SSD로 정보를 빠르게 처리하면서 GPU로 이미지로 만들어 낸다고나 할까? 여기에 격렬한 뇌활동을 뜻하는 감마파와 반대로 명상 상태나 안정적인 수명 상태에서나 발생하는 알파파는 뇌 안정을 뜻한다. 상반되는 뇌파가 동시에 발생하고 있으니 안정적인 오버클락이 이루어 지고 있다고 볼 수도 있었다. 거기에 이성적인 좌뇌와 감성적인 우뇌가 거의 비슷하게 활동하니 과학을 감성적으로 다루는 능력도 있었다. 그 방식은 스티븐 잡스같은 이성의 감성화라고 하기 보다는 감성적 이성을 통한 과학 탐구라고 해석해야 했다. 일상 생활에서의 뇌 활동은 과연 현저하게 활동량에 떨어져 있었다. 평상시 사람들이 깨어있을 때 받는 세타파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세타파는 스트레스와 관련된 뇌파 형태다. 강현은 찬찬히 영상을 관찰하다가 한 특이한 영상을 보았다. 마치 열심히 머리를 굴릴 때처럼 감마파 알파파가 동시에 나타나면서도 스트레스 상황을 뜻하는 세타파도 동시에 나타나는 영상이었다. “이건 왜 이래?” [그 영상이 기록된 시각은 박사님께서 샐리에게 잔소리를 듣고 있을 땝니다.] “....” […...] “... 아.... 그래?” 강현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 “다음 연구 목표는?” 그는 화제를 전환했다. = = = = = 자신의 뇌 활동 상태를 기록해 본 강현은 뇌 연구가 상당히 재밌다고 느꼈다. 그리고 만일 다른 사람이 자신과 같은 뇌 활동 상태를 가질 수 있다면 아마 자신만큼 뛰어난 과학적 성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라는 가설을 세웠다. 하지만.. “실험을 할 수가 없어.”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실험을 해야 했다. EBS 기술을 이용해 뇌에 자극을 주는 기술, 특정 뇌파를 특정 부위에 형성하는 기술은 동물 실험을 통해서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사람에게 적용해 실제로 ‘과학적 성과를 내는 능력이 상승하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도록 실험하는 건 여러모로 문제가 있었다. 윤리적인 문제를 제외한다고 해도 실험을 극비로 하기로 한 이상 실제로 임상 테스트를 한다면 그 누군가의 입을 통해서 알려질 가능성을 고려해야 했다. 만일 알려진다면? 아무리 강현이라도 천재를 만드는 기술을 보호할 수는 없었다. 딜레마였다. 실험을 하지 않으면 가설을 입증할 수 없다는 것, 그러나 또한 실험도 할 수 없다는 것. 하지만 실험을 하지 않으면 천재를 만드는 기술을 만들 수 없고 아들을 위한 선물은 완성되지 못한다는 것. 그렇다고 아들에게 검증되지 않은 실험을 할 것인가? 아버지로서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강현은 어쩔 수 없이 아즈삭을 동원해 시뮬레이션하고 또 시뮬레이션했다. 뇌의 복잡한 시냅스 연결과 수 많은 상호작용 요소들로 인해 시뮬레이션 일 회에 무려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걸렸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3D로 구현한 뇌의 시냅스 구조를 바꿔보기도 하며 특정 위치에 특정 뇌파를 유도하는 기술을 완성했다. 그러나 안정성과 그 효과를 실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실제로 실험이 필요했다. 232화 강현은 곰곰이 생각한 후에 안전하지 않을 확률이 매우 높을 것 같다고 생각하고는 좀 더 안전한 방법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직접적으로 뇌파를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뇌파의 발생을 돕는 수준이라면 어떨까? 강현의 머리속에서 떠오르는 방법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잡음 효과였다. 바닷가재를 완전히 방음이 된 수조에 집어넣으면 어떻게 될까? 바닷가재의 청력은 매우 떨어지게 된다. 바다라는 생태환경에서 진화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감각 신경은 기본적으로 역치라는 개념이 있다. 마치 광전 효과가 일정 주파수 이상의 전자기파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처럼 일정 수준 이상의 자극을 받아야만 반응하는 것이다. 그리고 바다는 기본적으로 소음이 가득 찬 공간이다. 해류와 단단한 바위, 산호초같은 지형 지물에 의한 물의 와류와 마찰음으로 인해, 바닷속은 소음으로 가득 차있다. 이 바닷속의 소음을 이루는 파형이 어떤 음원과 간섭해 겹쳐지는 순간 음원의 진폭이 감각의 역치를 뛰어넘게 된다. 이런 환경에 최적화 되어 살아온 바닷가재의 신경은 당연히 이에 맞추어 역치가 높아져 있다. 그래서 아무런 잡음이 없는 물속에서는 청각이 약화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뇌의 시냅스의 경우에는 어떠한가? 마찬가지로 랜덤한 잡음 같은 자극을 흘려주게 되면 시냅스와 시냅스간의 전기 신호가 강화될 수도 있었다. 어디론가 진행하며 약화되어 사라지는 전기 생리학적 신호가 잡음에 의해 간섭되어 보강된다면 약한 시냅스가 발달할 수도 있었다. 기억력의 경우에는 이 시냅스의 연결이 기억의 본질이므로 기억력의 향상도 기대할 수 있었다. 그런 식으로 하다보니 강현이 구상한 장치는 수학 학습 능력을 상승시켜주는 EBS 장치의 개량형이 되었다. 옥스포드에서 개발하고 연구중인 이 기술은 Transcranial random noise stimulation(TRNS)에 분류되는데, 전자기 유도 효과를 이용, 두개골 너머로 무작위적인 잡음의 전기신호를 첨가하는 방법이었다. 아무래도 직접적으로 뇌파를 형성하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한 사람이 강현 혼자 뿐은 아니었던 것이다. “옥스퍼드의 연구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지?” [로이 교수 연구팀도 윤리적 문제 때문에 소규모로 프로젝트를 운용하고 있습니다.] “연구 논문의 데이터 양은?” [아직 미비합니다.] “쩝...” 다른 이들의 연구 데이터를 몰래 이용해 보려던 강현은 그 데이터조차 부족하다는 말에 입맛을 다셨다. “흠. 수학 학습에 도움이 되는 건 확실하지?” [논문은 박사님께서도 보셨지 않습니까?] “쩝...” 강현은 갈등했다. 임상적으로 효과는 보였지만 확실하게 이렇다고 발표되지는 않은 기술이고, 부작용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서는 연구조차 하지 않은 기술을 어찌 자식에게 적용한다는 말인가? “천천히 가자.” 강현은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다. 정 안되면 별수 없다. 아들의 건강과 안전을 담보로 해서까지 뇌 개발 기술을 연구하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연구할 거리는 넘쳤다. 그래도 그는 한 가지 너무나 궁금한 것이 있었다. 그건 아들의 뇌활동 자료였다. 강현 자신의 뇌활동 영상이 너무 신기했던 그는 아들의 뇌활동 영상도 보고 싶었다. “아들아.” “아버지.” “나 좀 도와다오.” “뭔데요?” “내가 자료를 좀 모으고 있는데 청소년기의 뇌활동 상태란다. 응? 왜그러니?” “혹시 수술 같은 거 하나요?” 그 눈은 매드 사이언티스트를 보는 눈이었다. 강현은 손사래를 쳤다. “아니, 이것만 쓰면 된단다.” 준은 눈앞의 그것이 강현이 패션이라면서 쓰고 있던 것임을 알았다. “이건, 아버지가 쓰고 있던 거잖아요.” “그랬지.” “패션이 아니라 연구였던거에요?” “좀 비밀로 해야 해서.” 준은 강현이 왜 뇌 연구를 비밀로 하는지 그 내밀한 사정을 일부만 들었다. “사람들이 알게 되면 비난한다구요?” “그래. 아무래도 인체에 적용되는 기술은 윤리적인 문제를 동반하지 않니.” 또한 자식들의 지능을 돈을 지불해야 살 수 있게 되는 세상을 만들고 싶은 부모는 부자들 이외에는 없을 것이다. 강현은 그런 인간의 이기적 본성을 아들이 이해하기에는 조금 어렸다고 생각하고는 그 부분에서는 입을 다물었다. 강현의 말에 준은 고개를 갸웃 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로봇 팔다리를 하고 다니는 사람들도 많은데요.” 인간에게 적용되는 기술이 윤리적 문제를 동반한다면 지금 일반화된 로봇 팔다리, 사이버네틱스 기술은 어찌 된 일인가? “음.. 인간에게 정신적인 부분이 더 중요해서가 아닐까?” “정신이 인간을 좌우한다고요?” 강현의 대답에 준이 고개를 옆으로 갸우뚱했다. “팔다리가 없다고 해도 인간이라고 하지 않니?” “그럼 인간의 정신에서 뭐가 없으면 인간이 아닐까요?” “글쎄다..” 강현은 말하기 힘들었다. 인간은 너무나 다양한 유형이 있기 때문에 인간은 어떠해야 한다고 정의하기 힘들었다. 그래도 한가지는 확실했다. “감정이 없다면 인간이 아니지 않을까?” “감정은 강아지나 고양이한테도 있는걸요?” “그러니까 사람도 가지고 있어야지.” “흐음...” 준은 곰곰이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도울게요.” “고맙다. 아! 그리고 친구들에게도 비밀이다.” “네!” 강현은 그날부터 아들의 뇌 활동 영상을 기록했다. “음...” 자신의 핏줄이지만 역시 달랐다. 준이 강현을 닮지 않은 것이 아니라 강현이 특이했다. “흠.. 옥스포드의 자료랑 크게 다른 점이 없지?” 옥스포드는 TRNS 기술의 효과와 수학 학습 능력 사이의 상관 관계를 알기 위해서 제법 적지 않은 아이들의 뇌 MRI 영상을 가지고 있었다. [기술적 차이의 오차를 고려하면 강준의 뇌활동량은 또래에 평균을 웃돕니다. 하지만 박사님의 뇌 활동량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랍니다.] “내가 이상한 거지?” [박사님의 두뇌 활동량은 비정상적입니다.] “그거랑 천재성이랑 관련이 있나?” [개연성은 있는 것 같지만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아우! 미치겠네!” 실험을 해보면 알 수가 있겠지만 실험을 할 수가 없었다. 그건 강현에게 스트레스였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과학자로서 가진 호기심의 갈등에 머리칼을 쥐어뜯었다. 그 장면을 본 아즈삭이 한 마디 했다. [꼭 사람에게 실험해야 합니까?] “....” 짝! 강현은 박수를 한 번 치고는 깨달은 듯이 외쳤다. “사람에게 실험이 안되면 사람을 만들면 되지.” [이해가 안됩니다.] 사람에게 실험이 안되는데 사람을 만들어서 실험한다? 거기에 무슨 차이가 있나? 강현은 자신의 표현이 모호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말을 정정했다. “인공뇌야. 사람의 뇌와 동일하게 기능하는 인공뇌를 만드는 거야.” 강현의 표정에는 흥분이 떠올라 있었다. [어떻게 만드실 겁니까?] “방법은 많아. 유인원의 뇌를 변조한다던가, 아니면 시냅스를 모방한 나노 구조를 만든다던가.” [RNP와 SNP도 있지 않습니까?] “그건 뇌와 달라. 뇌의 발달은 무작위적인 것 같지만 무작위적이지 않아. 뇌의 발달과 기능의 분화에도 패턴과 법칙이 있어. 그렇지 않다면 뇌의 각 부분이 사람마다 비슷하지는 않겠지.” 모든 사람의 해마는 기억에 관련된 기능을 가진다. 성능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 기능은 다르지 않다. 사람의 후두엽도 시각 정보를 처리한다. 성능의 차이가 있지만 하는 일이 다른 경우는 없다. 인공지능의 모듈로 사용하는 RNP, SNP의 경우에는 많이 다르다. 나노 핀을 삽입해 ‘사회화’과정을 통해서 내부 회로 구조를 역추적하는 방식이라 인공지능이 같은 행동을 해도 작동하는 부위는 달랐다. 확률적으로 그리고 실제로 일치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있다고 해도 SNP 같이 자기 조립 과정을 거친 나노 구조만이 일치했다. [그럼 바이오 공학 기술을 사용하실 생각입니까?] 뇌의 발달은 자극에 대한 시냅스의 발달로 이루어진다. 아기들도 태어나고 나서야 감정이나 이성이 발달한다. 적절한 사회화 과정을 거쳐야 사람으로서 한 몫을 할 수 있다. 늑대 소녀의 경우처럼 성장하는 과정에 언어같은 특정한 자극을 받지 못한다면 제대로 말을 하기도 힘들다. 고래 같은 경우에는 부족에 따라서 사용하는 초음파 패턴(언어)가 다른 경우도 있다. 그리고 자극에 대한 반응이 가장 유동적이고 상호 보완적인 것은 역시나 생명체 뿐이다. “기존의 인공지능의 발달 과정이 뇌의 발달 과정과 다르니까 어쩔 수 없지.” 뇌의 발달 과정과 인지 기능에 대한 연구는 오랫동안 진행되어 왔다. 정확히 설명하지는 못하지만 자극이 인지 기능의 발달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학부모들에게 아이들이 어릴 때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하도록 권고한다. 그것이 뇌와 인격의 발달에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그 발달은 대부분 3살 무렵에 끝나는데 그 시기에 아이들의 성품이 대부분 결정된다. 3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은 오랜 경험에 의거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발달이 인간의 오감에 의한 자극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과는 달리 인공지능에 대한 자극은 논리와 명제의 수정에 의해서 진행된다. 하드웨어는 이미 완성되어 있기 때문에 패턴화된 전기적 신호를 변화시키며 발달하는 것이다. 전자 세계의 생물체인 인공지능과 물질 세계의 생물체는 발달 원리 자체가 달랐다. 그러므로 인공지능의 하드웨어를 만드는 방법을 응용하기는 힘들다. 자극에 의해서 하드웨어가 변조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시넵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뇌세포가 필요한데...” 유인원의 뇌를 이용할까?” 강현은 고개를 저었다. 멀쩡한 생물의 뇌를 이용하면 동물 보호 단체에서 들고 일어날 것이다. 무언가에 애정과 신념을 가진 이들을 설득하는 건 보통 골치아픈 일이 아니다. 그것도 그렇지만 유인원의 뇌를 사용하기 위해서 외과적 처리가 반드시 필요한데, 강현은 피가 튀고 뇌수가 흐르는 짓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생각보다 비위가 약했다. “생물같지만 생물이 아닌 것이라...” 뇌 연구는 비밀로 진행하지만 혹시나 들킬 때를 고려하면 누가 봐도 연구 윤리적으로 지적당할 부분이 없어야 했다. 사람도 동물도, 심지어 생물도 아니지만 생물 같이 반응한다는 조건은 그가 생각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그리고 그는 한가지 생물 같지만 생물이 아닌 것을 알고 있었다. “JH 세포라.. 그건 연구가 어디까지 진행되고 있지?” 강현의 옛 연인이 만들었던 JH 세포는 현재 의약 산업에서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었다. 증식 조건이 매우 까다롭지만 물질대사를 통한 약효 물질 생산은 대장균보다 훨씬 큰 이점이 있었다. 이중 나선의 염색체가 아닌 많은 수의 플라스미드를 통한 유전 활동은 돌연변이의 가능성도 적어 생물학 오염에 대해서도 훨씬 안전했다. 여러 연구실에서는 이 JH 세포를 통해 생명을 구성하는 화학적 코드를 분석하고자 노력했고 그 와중에 세포 분화의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실마리도 잡았다. 이를 이용해 JH 세포를 하나의 장기처럼 덩어리로 만들려고 하는 시도가 한창 진행중이었는데 이는 배양 탱크를 유지하는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신경에 관한 건?” [JH 세포의 부피가 일반 진핵 생물의 부피보다 크기 때문에 이식이나 교체를 위한 기술은 연구되지 않고 있습니다.] “JH 세포를 이용한 상처 치료 기술도 없어?” 233화 [없습니다. 대부분 돈이 되는 약효 물질 생산이나 인공 장기에 관한 것 뿐입니다.] JH 세포를 신경세포처럼 만들기 위해서는 JH 세포에 신경 세포의 축삭 돌기가 만들어지는 메커니즘을 적용해야 했다. 신경 세포의 축삭 돌기가 만들어지고 길어지는 메커니즘은 액틴(actin) 단백질 필라멘트가 관여하는 필로포디아(Filopodia)라는 진핵 세포의 이동 방식으로 분류된다. 이 필로포디아 현상은 세포간 박테리아 이동이나, 상처의 재생을 위한 세포의 성장에도 관여한다. 그러니까 강현은 JH 세포에 필로포디아 현상을 적용한 기술이 있는지를 물어본 것이다. 물론 필로포디아 현상을 적용해 JH 세포를 길쭉하게 늘려도, 나트륨 펌프를 통한 세포막 전위 형성, 미엘린 수초나 슈반 세포를 이용한 절연 처리, 축삭 말단 등 JH 세포를 신경세포처럼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난제들이 잇달았지만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JH 세포가 필로포디아 현상을 일으킬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기로 했다. 그래서 자료를 모으고 신경세포의 발생과 발달에 대해서 이해하고 공부를 계속하던 어느 날, 아즈삭이 이렇게 물었다. [그런데 박사님. 인공뇌에서 탄생한 자아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응? 뭐라고 그랬지?” [인공뇌라고 하셨으니 인공뇌에서도 자아가 탄생하지 않겠습니까?] 강현의 목적은 뇌의 활동에 의한 인지와 지능의 발달 연구와 그에 대한 적용이었다. 그런데 사물이란 객체를 인지하기 위해서는 주체가 있어야 했다. 그 주체는 자아를 갈 수 밖에 없었다. 강현의 연구 목적을 실험하기 위해서는 자아의 존재가 전제되어야 했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강현은 표정이 굳었다. 손도 꿈쩍하지 않았다. [박사님?] 강현은 그제서야 자신이 큰 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은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될려고 했던 것인가? 자신이 자아를 가진 피조물을 가지고 실험을 하려고 했다는 말인가? 물론 그런 의도는 없었다. 다만 지능 개발 기술을 실험하기 위해서 최대한 인간의 뇌를 닮은 것을 만들려고 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가 만들려는 인공뇌는 아즈삭과 같은 인공지능과 본질적으로 달랐다. 그것은 ‘논리 기계’적인 특성을 가진 인공지능과는 달리 ‘생물’처럼 작동했다. 인간의 뇌 발달을 모방해 인간과 같은 사고 능력을 가지려고 계획되었다. 인간의 발달과 같은 식으로 구성되어야 두뇌를 발달 시키는 기술을 실험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그렇게 된다면 자신이 탄생시킨 자아는 인간처럼 생각하고 인간처럼 욕구할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은 도대체 무엇에게 실험을 하는 것이 되는가? 인간? 인간이 아니라고? 인간이란 무엇인가? 비약적인 상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형성된 자아를 붕괴시킬 위험이 있는 실험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즈삭에게도 위험이 되는 일을 시키고 싶지 않았던 강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인공뇌에 자아가 생기고 거기에 다가 실험을 하는 건 그가 스스로 세운 원칙을 벗어나는 일이었다. 생명의 불꽃을 실험하겠다는 욕망으로 괴물을 만든 프랑켄슈타인 박사, 그리고 인간의 지능 발달 기술을 연구하겠다고 인공뇌를 만들겠다는 자신. 결과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결말이 다를 수는 있지만, 그러나 호기심이란 욕망에 물들어 앞뒤 가리지 않고 돌진하는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모습은 지금의 자신과 너무 닮았다. 강현은 소름이 끼쳤다. 물론 자신과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다르다. 의도하지 않을 자아가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인지했기에 외면할 수는 없었다. 그의 양심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가족이 생기고 아버지가 생기면서 책임감을 배웠기 때문에 더 그랬다. “계획은 중지다.” 강현은 모든 계획을 중지했다. 어쩔 수 없다. 방법이 없었다. 인간으로서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면서까지 실험을 강행할 수는 없었다. 금기는 한 번 범하는 것이 어렵지 두 번째는 쉽다. 아들과 딸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가 되고 싶었다. [알겠습니다.] 아즈삭은 그동안 기록됐던 자료들을 암호화해서 보관했다. 아즈삭에게 자료 폐기라는 단어는 없었다. 그것은 인간이 자신의 마음대로 기억을 삭제하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무슨 데이터이든 아즈삭의 성장과 적응의 자양분이었다. 아무튼, 뇌 개발 기술 개발을 포기한 강현은 시원 섭섭한 기분이었다. 물론 지능 개발 기술이 인간의 진보에 큰 영향을 끼치리라는 것은 안다. 그러나 그렇다고 자신의 원칙과 가치관을 깨면서까지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비난과 가족에게 올 피해를 무릅쓰고 싶지 않았다. 과학자로서는 비겁한 외면이었지만 사람으로서, 그리고 아버지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 = = = = 결국, 강현의 지능 개발 기술 연구는 삽질로 끝났다. 준은 학교 선생님과의 상담이 효과적이었는지 심신에 안정을 찾고 학업이 원래 궤도로 돌아왔다. 안타깝지만 강현의 뒤를 이을 재목은 아니라는 현실을 받아들인 것 같다. 나름대로 사춘기 시기의 한 고비를 잘 넘긴 준이었지만 강현은 거기서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들에게 뭘 해주기 보다는 그냥 믿기로 했다. 아들의 인생은 아들 것이다. 자신이 이래라 뭐래라 간섭을 해도 결국 준은 강현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이 원하는 대로의 인생을 살리라.. 다른 이가 아니라 자신의 아들이지 않은가? 강현이 이번 일로 좀 더 성숙해 지는 동안 세계는 급변하고 있었다. 사실상 무한대의 광물 자원이 생산되기 시작하면서 강대국들은 우주로 나가는 것이 생존에 필수라고 느꼈다. 우주에서 캐낸 광물 덩어리의 폭격은 MD 시스템으로도 막을 수 없다는 군사적 견해에 따라 국가의 생존과 도발의 억제를 위해서 더 많은 우주 도시의 필요성을 느꼈다. 설사 지상이 폭격당하더라도 우주 도시가 보복을 해줄 수 있다면 광물 덩어리를 무기로 사용할 생각은 하지않을 것이라고 본 것이다. 냉전시대에 양 진영이 핵을 쌓아두고 전쟁 억지력을 부렸던 것과 같은 이유였다.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은 우주 도시가 필요했고 그에 따라 더 많은 우주 자원이 필요했다. 국가적 차원에서는 물론 기업들도 우주 광산을 개발하기 시작했고 이런 이들을 상대로 서비스 업을 시작한 카낙의 RP 포인트는 점점 가치가 상승했다. 그러나 결코 이윤에 연연하지 않는 카낙은 그렇게 쌓은 RP 포인트로 지구와 몇몇 기업들이 생산하는 고품질의 부품을 구입해 더 빨리 자원을 생산해 RP 포인트의 가격은 안정 시켰고 경쟁자들과 격차를 더욱 벌렸다. 거기에 목성의 위성과 토성의 위성에 자원 개발선을 보내어 질소, 탄화수소 따위의 비금속 자원을 축적하기 시작했다. 특히 액체 질소는 우주 도시의 대기를 구성하는데 필수였기 때문에 인류가 우주로 진출할 수록 더욱 많은 수요가 예상되었다. 거기다가 외생성계라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더욱 많은 태양광 전지가 필요했고 그로 인해 태양광 패널 자동 생산 공장 역시 증축되었고 규모도 커졌다. 이에 지지 않기 위해서 각국의 국가 재정을 투입 받은 자원 개발선과 인공지능들 역시 더욱 광구를 파는데 집중하기 시작했고 자원의 양은 점점 더 많아졌다. 한 곳에 자원이 쌓이기 시작하니 농도가 높은 곳에서 농도가 낮은 곳으로 물질이 확산하는 것처럼 지구에까지 자원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철같이 무겁고 큰 것들은 무리였지만 희토류 같이 고부가가치가 큰 자원은 경우가 달랐다. 기본적인 수요는 물론 증강 현실 기기의 일상화와 각종 디스플레이 기기 등의 상용화로 매우 많은 수요를 만들어내었다. 거기에 희토류 광맥의 발견과 플라즈마 정제소의 존재는 희토류의 가격을 대폭 낮추었고 지상으로 희토류 정련괴를 이송하는 것이 수 백 배는 더 싸게 먹히자 희토류 최대 생산 국가인 중국도 어쩔 수 없었다. 중국이 중요한 외교적 카드를 하나를 잃는 아픔을 겪기는 했지만 우주 개발에 똥을 뿌릴 수는 없었다. 자원이 풍부해 질 수록 각국만의 우주 도시를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은 점점 눈 앞에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유럽은 공동으로 건설한 유러피아를 유럽 통합의 촉매로 사용하고자 했지만 동아시아 3국은 센타리움에서 일어나는 각종 분쟁 때문에 암이 걸릴 지경이었다. 중국인의 중화 사상과 혐일, 일본의 우경화와 제국주의적 자존심, 과거 세계를 양분 했던 러시아의 높은 콧대에 눈에 확 들어오는 인종적인 차이로 인해 센타리움의 치안에 들어가는 비용이 예상보다 훨씬 많았다. 차라리 센타리움을 기점으로 각국만의 우주 도시를 건설한 이후 센타리움은 다른 나라에 팔아버리는 계획안에 동의할 정도로 센타리움에는 갖가지 문제점이 많았다. 팔아버릴 시점은 세 개의 우주 도시가 건설된 이후라고 생각되지만 그래도 우주 도시가 없는 나라가 많으니 적지 않은 가격에 팔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다. 물론 판매처와 수익을 어떻게 나누느냐를 협의하느라 적지 않은 진통이 있을 거라고 예상되지만 센타리움으로 인해 오히려 국민간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이라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오월동주는 본질적으로 오래가지 못하니 이들 세 나라도 마찬가지였다. 한편, 어느 나라보다 빠른 우주 진출에 성공한 미국은 지하 자원의 가치 하락으로 인해 중요한 자원의 목록을 다시 정했다. 끝없이 넓은 우주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은 지정학적인 위치 바로 그 자체였다. 파나마 운하와 수에즈 운하가 벌어들이는 돈의 액수를 보라. 우주 시대에 돌입해 무한한 자원을 캘 수 있게 되면서 가장 빨리 자원이나 원료를 필요한 곳에 이송시킬 수 있는 항로는 그 자체로 무한한 가치를 지닌다. 마찬가지로 외행성계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소행성대를 거쳐야 했다. 또한 거리가 멀어 태양광이 적은 외행성계에서 캔 자원을 정제하는 건 많은 힘이 든다. 미리 자리를 잡은 발전소가 있다면 에너지 비용으로 많은 돈을 벌어들 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이 먼저 선점해야 했다. 카낙의 경우에는 이미 국제적으로 공인된 법인이 되어 버렸다. 인공지능이라 미국의 국익대로 움직여 주지도 않았다. 미 정부는 NASA의 관측 자료와 자원 분포 및 지구로 오가는 항로를 분석해 자원 정련 공장을 세우기로 했다. 적당히 소행성대 중간 쯤이면 태양으로 오는 태양광의 강도도 괜찮고 주변의 소행성대에서 캐낸 자원을 정련해 주는 서비스를 제공해서 돈을 버는 것도 가능했다. 두번째 중요 자원은 역시나 기술 지식에 관련된 특허였다. 다른 나라 역시 익히 알고 있으니 경쟁은 치열했고 앞으로도 치열할 것이다. 결국에는 인재를 얼마나 키워내느냐가 핵심이었다. 때문에 붕괴된 공교육을 정상화 시키기 위한 법안을 준비했지만 많은 진통이 예상되었다. 각 주마다 공교육이 처한 입장, 재정과 주 정부의 사정 등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번째로 중요 자원은 다름 아닌 생물 자원이었다. 새로운 유전자 코드는 그것만으로 많은 가능성을 품었다. 비단 약같은 고부가가치 산업 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생명이 필요했다. 강현이 아폴로티움에서 가장 신경을 쓴 시스템이 공원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자연환경 속에서 진화해온 인간에게 가장 안정적인 곳은 역시 자연이기 때문이었다. 이에 미국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생물학자, 생태학자들을 지원하는 법안도 통과시키기로 했다. 기존의 유전자 은행 제도를 확대시키고 강화해서 단순히 생물의 유전자를 보관하고 분석하는 일 뿐만 아니라 유전자 코드를 응용할 수 있는 기술에도 투자를 시작했다. 인공 씨앗 기술은 그 중 가장 기초적인 단계로 작물의 유전자 코드 대로 유전 물질을 합성해서 인공적으로 씨앗을 만드는 것이다. 234화 여기에는 세포외기질부터 리보솜, 리소좀, 미토콘드리아 등 각종 세포 소기관들을 형성하고 제어하는 기술들이 반드시 필요했다. 생명 활동에 대한 분석과 메커니즘은 한 창 연구가 되고 자료가 쌓이고 있었지만 이를 기술적으로 응용하는 바이오 엔지니어링은 우주 세기에 걸맞지 않게 걸음마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미국 과학기술정책실에서는 강현에게 자문을 요청했지만 강현이 생물학이나 생물공학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은 단백질 분석이 다였다. 전문분야도 아닐 뿐더러 생물의 생체 활동이란 다양한 요소들이 상호작용을 한 결과물이기 때문에 강현 혼자서 쓸만한 바이오 기술을 만들 수 없었다. 특히 공상 과학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바이오 기술들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생물학 분야에 정통한 수많은 전문가들의 긴밀한 협조가 필요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과학기술정책실에서는 강현의 설명에 바이오 기술의 연구와 실현을 위해서는 연구자들 간의 긴밀한 네트워크가 이루어지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것은 기존에 학술지가 발표되는 학술 데이터 베이스보다 좀 더 특화되고 발전되어야 했다. 아이디어는 물론 연구 데이터와 이슈까지 모두에게 실시간으로 공유되는 정보 체계가 필요했다. 인공지능이 필요한 건 당연했다. 그러는 와중에 강현은 개인적으로 매우 뜻 깊은 일을 맞이했다. 강현에게는 개인적인 일이었지만 사회적으로도 매우 뜻 깊은 일이었다. 바로 우주 달팽이가 완공된 것이다. 강현이 우주 달팽이를 만든 이유는 한 가지다. 바로 공간의 성질을 파악하려는 것. 강현의 신 통일장 이론에 의해서 전자기장, 강력장을 수식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고 힉스장와 중력자의 상관관계를 수식적으로 밝혀 중력자는 없을 수도 있다는 가설을 내놨다. 중력자란 무엇인가? 과연 어떻게 하면 중력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는가? 뉴턴은 가속하고 있는 물체는 중력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달은 원심력이란 가속도를 받지만 끊임없이 떨어져 내리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었다. 아인슈타인은 가속질량이라는 개념을 내놨다. 유명한 에너지 질량 공식은 운동량을 가진 물체의 운동 상태를 변화시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중력자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 질량인가? 아니면 공간의 왜곡에 의해서인가? 강현이 세계에서 가장 출력이 강한 입자 가속기를 만든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입자의 속도가 매우 높어져서 운동량과 에너지가 매우 높아진다면 아인슈타인의 공식에 따라서 질량 역시 높아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강현이 중력장이 힉스장의 흐름에 의한 질량의 벡터화와 뉴턴 제2 법칙의 붕괴에 의한 현상이라는 가설을 입증되기 위해서는 가속된 입자가 늘어난 질량을 통해 주위에 중력장을 형성하는지의 여부부터 확인해야 했다. 그래야 중력장이 에너지의 밀도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느냐의 여부를 알 수 있고 중력자의 존재를 유추할 수 있는 단서를 잡을 수 있었다. “아즈삭. 검수는 언제 끝나?” [약 반년은 더 필요합니다.] “그렇게 오래 걸려?” [아무래도 무중력 환경이다보니 작업이 늦어지고 있습니다.] 우주 달팽이의 검수 작업은 매우 정밀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출력이 높은 만큼 전기 계통의 검사가 반복되어 이루어지고 있었다. 한치의 실수도 있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강현이 설계한 우주 달팽이는 그간 나온 입자 가속 기술들(선형 입자 가속기, 사이클로트론, 싱크로사이클로트론, 베타트론 등) 중에서 가장 빠른 입자 속도를 얻을 수 있는 싱크로트론 기술을 적용했다. 계속 가속 한계는 규모에 의해서 결정되어 더 큰 속력을 얻기 위해서는 더 큰 규모가 필요하다는 단점이 있지만, 가속하는 입자 ‘군집’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쿼크 단위를 연구하는 이들에게 가장 적합한 타입의 기술이었다. 우주 달팽이 이전에 가장 크고 강력한 입자 가속기라고 불리는 유럽의 LHC(Large Hadron Collider)에서도 사용한 기술로 강력과 약력의 연구를 위해서는 그 힘들이 우세하게 작용하는 거기까지 원자핵들을 가까이 붙여야 하고, 충돌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가속하는 입자들의 밀도가 높은 입자 ‘군집’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강현에게도 이 입자 덩어리가 필요했다. 가속질량이 원래 질량이 차지하는 비중보다 충분히 높은 입자가 덩어리의 형태로 지나가야 뭔가 변화를 관찰할 수 있지 않겠는가? 안 그래도 검측된 적이 없는 중력파인데 물줄기 날라가는 듯한 빈(beam) 형태의 입자 흐름으로는 검출이 불가능하다. 물폭탄처럼 한 번에 푸확하고 쏟아져야 주변에 중력 변화를(정말로 중력 변화가 일어난다면) 일으킬 수 있었다. 중력의 변화는 감지하기가 매우 힘들다. 힘 자체의 크기도 작을 뿐더러 공간을 왜곡 시키는 성질까지 있었다. 그것이 강현의 가설에 접목되면 이런 의문이 탄생한다. ‘중력으로 발생하는 인력이 힉스 입자의 흐름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면 힉스 입자는 공간의 왜곡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 것인가?’ ‘힉스 입자를 입자가 아닌 장의 개념으로 본다면 공간을 왜곡하는 중력장은 힉스장을 왜곡시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쩌면 힉스장 자체가 공간이지 않을까?’ 이러한 의문을 풀기 위한 시발점이 에너지와 중력간의 상관관계를 밝히는 것이다. 만일 입자의 운동에너지가 너무 커서 가속질량이 본래 정지 질량보다 훨씬 많아진다면 이 입자가 가지는 중력값은 어떻게 될 것인가? 뉴턴의 중력방정식의 정의대로 중력이 증가한 질량에 의해서 강화된다면 중력은 에너지의 밀집, 즉 공간의 왜곡과 밀접하게 관련이 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중력자는 쿼크나 렙톤 같은 성질을 가진 입자 사이에서만 매개되는 입자로 여전히 남게 될 것이다. 그 말은 강현의 가설이 틀렸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중력의 변화를 관측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정밀한 실험을 위해 중력이 만들어내는 공간 왜곡 현상을 검측하기 위해, 빛을 이용한 광센서는 물론 전자석으로 인해 발생하는 전자기력이 만들어내는 튀틀림이나 진동을 막는 건 필수였다. 무중력 공간이라 길쭉한 형태의 가속기를 만들어도 되지만 길쭉한 모양은 진동을 흡수하기 힘들다. 그렇다고 기존의 LHC 같이 고리형을 만들어도 선의 모양이기에 진동을 흡수하기 힘들다. 우주 달팽이의 나선 깔때기 형태는 3차원 입체구조로 세 방향으로 일어나는 진동을 모두 흡수할 수 있도록 신경써서 설계된 것이었다. 거기에 우주선에서나 쓰이는 충격 흡수제를 사용해 완벽히 진동을 흡수했다. 일본제인 이 충격 흡수 엘라스토머는 투수가 던지는 달걀로 터트리지 않을 정도로 충격 흡수력이 어마어마했다. 실험 데이터의 정확도를 위해서는 태양의 영향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태양광, 태양풍의 영향을 막기 위해서 거대한 가림판을 설치하고 그것도 모자라 지구의 그늘에서 실험을 하도록 스케줄도 짜야 했다. 그래도 생길 수 있는 양자 수준의 잡음과 우주선 같이 막을 수 없는 잡음의 경우에는 통계학적으로 데이터를 처리해야 했으니 가히 실험의 난이도를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 강현은 이미 수많은 물리학자들과 연계해 실험 데이터와 실험 과정에 대한 데이터 모두를 공유하고 오류나 오차를 검증하기로 했다.(이때 물리학자들이 얼마나 열광했는지 모른다.)세계 모든 물리학자들의 기대를 안고 검수가 차근차근 진행되는 동안 세계에서는 난리가 났다. 중동 전쟁 발발! 미국은 결국 중동에 대한 관심을 끊고 말았다. 이슬람 특유의 여성인권 탄압, 독재 정권, 반미주의 테러 세력 등 미국 군인들이 피를 흘려가며 중동에 집착할 필요는 없었다. 이스라엘, 석유. 이 두가지가 미국의 이해 관계에서 사라진 것이 크게 작용했다. 미국내 유대 세력은 찌그러졌고 이스라엘인이냐, 미국인이냐를 유대인에게 묻는 사회 풍조에서 미국인임을 선택하는 유대인이 적지 않았다. 미국에 기반이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도 있었다. 석유 역시 강현의 인공 석유 제조 기술 때문에 중동에 집착할 필요가 없었다. 미국이 중동에서 전격적으로 물러서자 사우디 등 미국의 우방은 미국의 이중적인 태도를 비난하고 감정적으로 호소했다. 오랫동안 우방이었지 않느냐? 이렇게 동맹을 쉽게 버릴 수가 있는가? 그러나 미국은 사우디 등 중동에서 미국의 우방이라고 할 수 있는 국가들이 IS 같은 테러 단체에 지원을 한 정황을 보고 과연 정말로 우방이라고 할 수 있는지를 되물었다. 적아가 확실하지 않은 땅에서 미군의 군인들이 피를 흘려야 할 필요는 없다며 군대를 전격적으로 뒤로 물렸다. 미군이 사라지자 이슬람 국가의 건설을 부르짖던 광신도들이 몸을 일으켰다. 역시 첫번째 목표물은 이슬람 국가의 건설을 방해하던 친미 국가들이었다. 이슬람이면서 이슬람 국가의 건설을 방해한 이들은 이교도보다 더 사악하고 나쁜 배교도 들이었다. 각지에서 테러 활동이 일어났고 특히 같은 수니파 이슬람을 국교로 한 사우디는 더욱 극심했다. 같은 종교, 같은 종파이면서도 미국과 협조한 것에 대한 응징이 시작되었다. 사우디 왕가는 자신이 먹이를 주며 기르던 개새끼가 늑대 새끼라는 것을 실감했다. IS에 자금 지원을 한 것이 후회스러웠지만 그 당시에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석유가 에너지원이고 국력의 척도였던 시절에도 사우디는 이슬람을 빌미로 여성인권은 탄압하고 독재 정권을 이룩했다. 미국과 친하게 지내지 않으면 갖은 방법으로 미국의 침략을 받을 것이다. 민주화 세력을 준동시킬 CIA의 공작은 수 많은 방법 중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돕는다는 명분으로 미국이 달려들 수 있었다. 그래서 사우디는 반미 세력을 미끼로 미국을 꼬드겼다. 쟤들은 나쁜 놈, 하지만 나는 네편. 사우디의 평화를 위해서 반미 테러 세력(가량 IS 같은)은 반드시 필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나 그 반작용을 고스란히 받게 생겼다. 사우디가 내어준 자금으로 세력을 유지하고 영향력을 키웠던 IS가 사우디에 이빨을 들이 밀었다. 사우디 왕가는 가족들을 일제히 외국으로 피신시키는 한편 위기를 넘기기 위해서 미국에 특사를 보내고 또 IS 에는 미국으로부터 수니파를 보호하기 위한 전략적인 선택이었다며 달래기를 시도했다. IS에 자금을 지원한 것은 사실이지 않은가?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미국이 중동에서 관심을 꺼버린 이상 전쟁은 필수였다. 사우디 왕가는 IS 척결을 위해 아랍에미리트, 요르단, 바레인 같은 수니파 이슬람 국가들과 몰래 IS를 처리할 것을 제안했고 이들은 모두 그것에 동의했다. IS을 대외적으로 수니파가 아닌 이단 집단이라고 공표했기 때문이다. 사우디 왕가는 전쟁의 불씨를 조기에 진압하기 위해서 시아파 이슬람 국가인 이란에도 손을 내밀었다. 이란에도 극단적 수니파 집단인 IS는 위협적인 존재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IS가 주장하는 국가 건설에는 시아파 정권이 자리잡은 시리아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란은 공동전선에 참여하지 않았다. 왜냐면 그들의 눈에 IS는 수니파 집단이었기 때문이다. 극단적이고 위협적이기는 하지만 미국이 사라진 이상 IS의 총구는 그들이 생각하는 배신자에게 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즉, 다른 종파와 싸움을 벌리기 보다는 집안 정리부터 할 것이라고 내다본 것이다. 235화 수니파 내부에서 골육상쟁이 일어난다면 시아파에는 이득이었다. 어차피 수니파와 필요 이상 친해질 수 없었다. 종교적인 갈등은 언제나 피로 귀결되는 만큼 수니파가 내분으로 상처를 입을 수록 시아파는 우위에 설 수 있었다. 어쩌면 수니파가 IS로 어려움을 겪는다면 도움을 빌미로 시리아에 시아파 정권을 안정적으로 정착시킬 수 있었다. 어쩌면 이해관계는 이런 정치 종교적인 문제만 있지는 않았다. 부족간에 그 동안 쌓아온 원한은 중동에 커다란 피바람을 몰고 올 것이다. 결국 중동은 테러와 테러에 바람 잘 날 없었다. 심지어 테러에 경도되어 내전 양상으로 확대되는 곳도 있었다. 빈부격차로 불만이 많은 젊은이들에게 IS나 테러 조직들의 명분은 돌파구나 기회로 여겨졌다. 피비린내나는 사태가 계속되었고 전 세계의 우려가 집중되었지만 세계의 경찰 국가라는 미국은 뭘 했나? 안타깝지만 그런 일이 벌어져도 미국은 그들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기존의 병력과 자원을 우주에 투입해 우주 안보를 지킬 시스템 구성에 더욱 많은 신경을 썼기 때문이다. 물론 경찰국가라면서 중동 사태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비난에 ‘미국은 더 이상 광신적 무리에 의해 미군의 젊은이들을 희생 시킬 수 없다.’고 발표했다. 덕분에 역시 경찰국가가 아니라 깡패국가였다는 비웃음 어린 조소를 받았다. 로봇독을 전술적으로 사용하는 미육군의 군인은 거의 죽지 않는데 희생은 무슨 희생? 한편, 미국 내에서는 미국이 중동 사태에 개입하는 문제에 관련해 군수 기업들 사이에 알력이 벌어졌다. 전차나 로봇독같은 지상 장비를 생산하는 군수업체와 보잉같은 항공 장비를 생산하는 군수업체 사이에 이윤 차이가 생겼기 때문이다. 전자는 지상에 대한 미군의 영향력을 지속하기를 바랬다. 실전이 없는 군대는 결국 약해진다는 이들의 주장은 일리가 있었지만 결국에는 지속적인 지상전으로 자신들의 수익을 보전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들의 명분은 아무래도 후자의 명분에는 많이 딸렸다. 항공 장비를 생산하는 군수 업체는 우주 항공 장비 생산으로 한층 업그레이드를 하면서 우주 진출이야 말로 미국이 가야 할 길이라고 입을 모았다. 우주의 전략성을 따져도 그들의 말이 더 타당했다. 거기에 국민들의 뜻이 중동이 아니라 우주에 있다는 것을 파악한 백악관, 타국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기 싫다는 장병들의 내심을 파악한 펜타곤의 이해관계가 일치했다. 명분과 실익이 결국에는 우주를 향해 있었다. 다양한 이해관계가 조율된 결과, 결국 중동 사태는 방치되었다. 죽음의 상인들은 좋다고 총과 바주카포를 팔아넘겼다. 세계가 우려를 나타냈지만 석유는 이제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었다. 계산기를 두들겨 손해와 이득을 점쳐본 국가들 중 이득이 있을 거라고 예상되어 손을 내미는 곳은 얼마되지 않았다. 유럽은 미국이 군사적 자원을 우주 개발에 쏟는 것을 보고는 자신들도 자신들의 군사 자원을 우주 개발에 투입했다. 북대서양 조약 기구, 일명 NATO 군이라고 불리는 군사 동맹의 자원 역시 마찬가지였다. 남미, 아시아권은 물론 오세아니아까지 우주 진출에 신경을 쓰면서 (아프리카는 자기들 먹고 사는데에도 바빠 외부에 눈을 돌릴 수가 없었다.)중동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어가기 시작했다. 지구촌 한쪽에서 피비린내나는 전쟁과 테러가 반복되는 동안 지구촌 한쪽에는 인류의 과학적 진보를 축하일이 진행되었다. 우주 달팽이의 검수가 완료되었고 실험 가동에서도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실험을 하고 데이터를 축적하면 된다. 이 우주 달팽이의 능력이 어느정도냐면 가속질량을 정지질량의 무려 1.7배로 만들 수 있는 엄청난 스팩을 자랑한다. 광속의 절반일 때 1.155배, 광속의 90%일 때 약 2.3배인 것을 생각하면 가히 엄청난 스펙이다. 그러니 물리학자, 양자물리 등을 공부한 이들이 열광하지 않을 도리가 있나? 한 과학자 단체에서는 이 기념비적인 물건의 완공을 전 인류가 알고 기뻐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강현에게 연담회를 가진 것을 부탁했다. 강현은 이 연담회가 홍보적인 성격을 띌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기자들과 마주해야 했다. 유대인과 얽혀 언론 플레이를 해봤기 때문에 기자들에게 그리 호의적인 감정을 가질 수 없었지만 결국 연담회를 가지기로 했다. 과학계와 이리저리 많이 친한 점이 크게 작용했다. 우주 달팽이의 검수 과정에서 여러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기도 했고 말이다. [많은 분들이 이렇게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의 관심과 도움으로 GPA 프로젝트가 무사히 완료되었습니다. 그 결과물인 우주 달팽이(유니버셜 스네어)는 크기가 무려 18km로 부피는 작지만 길이 만큼은 우주 도시(반경 8km)을 능가합니다. 이는 최대 입자 가속기로 불렸던 LHC가 직경 9km 인것을 가만하면 엄청난 크기입니다.] 강현은 홍보성을 띈 행사에 걸맞에 우주 스네어의 능력을 홍보했다. 물론 그 자신의 말투는 매우 담담했다. 강현의 성격은 언론 플레이로 적대 세력을 뭉개버리지 내가 이렇게 저렇게 잘났다고 홍보같은 걸 할 성격이 아니었다. [… 가속질량을 정지질량의 1.7가량으로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어 요즘 논란이 되는 중력장의 성질 중 한 가지를 규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가속질량이 중력장의 세기를 증가시킨다는 것은 에너지의 밀집이 중력장을 형성한다고 볼 수 있었다. 물론 그것이 중력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나 공간왜곡 그 자체가 중력 현상이라는 강현의 가설, 공간 왜곡이 힉스장의 왜곡을 가져오고 그것이 중력현상을 보인다는 것에 좀 더 무게가 실린다. 강현의 말에 참가한 과학자들은 너무나 부러워서 미칠 지경이다. 자신의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서 천문학적인 예산을 사용할 수 있다니! 물론 그것이 다 사유 재산이지만 고도화되고 극한적인 실험이 필요한 요즘 기술 문명의 수준을 보면 과학자 개인이 사유 재산을 아무리 털어도 자신의 가설을 증명할 실험을 하기는 무리였다. 예전에 화학에 대한 지식이 없을 때에는 물질을 태우고 갈고 부수고 등등 단순한 실험 도구만으로도 실험을 통해서 영감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식이 쌓이고 화학적 수준에서 알 수 있는 건 거의다 알게 되자 그 이상 세상만물의 본질을 연구하는 것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게 되었다. 일단 가설을 증명할 실험 장치를 구성하기 위한 기술적, 지식적 능력은 개인이 담당하는 전문분야를 훌쩍 뛰어넘은지 오래였고, 비용은 뛰어넘다 못해 은하계 저편으로 날아가는 중이었다. 원래 연구자라는 인종은 실험과 관찰을 통해서 연구를 받지만 현실적 제약으로 인해서 사물의 본질을 탐구할 수 있는 도구는 오직 수학과 상상력 뿐이게 되었다. 그래서 이론 물리학자라는 존재가 탄생한 것이다. 누구나 알겠지만 그중 가장 유명한 이론 물리학자는 바로 아인슈타인이었다. 실험과 가설의 증명을 위해 예산, 시간, 전문인력 등 필요한 자원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하자 이론 물리학자의 존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었다. 그냥 실험을 하다가, ‘어라? 이게 뭐지?’는 여전히 과학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주는 요소였지만, 지속적인 진보는 ‘수학적 가설은 이러이러하다. 정말로 그런지 실험해보자.’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과학적 방법론의 최적화란 바로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강현은 넘치는 예산으로 수많은 과학자들이 겪는 어려움을 단숨에 뛰어넘었다. 연구자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과학적 난제보다는 예산을 타내기 위한 사무실 문턱이 아닐까? [… 이상입니다. 질문 있으신가요?] 강현은 모든 연구자들의 부러움을 받으며 발언을 마쳤다. 질문할 시간이 되자 기자들이 너도 나도 손을 들며 무언가를 물어보기 시작했다. [앞으로 인류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우주에 필요한 과학 기술 분야는 무엇입니까?] [다른 은하로 진출할 수 있을 때까지는 얼마의 시간이 걸릴까요?] 다양한 질문이 나왔고 강현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성의껏 대답을 했다. 일단 태양계를 생활권으로 하는 우주 진출은 이미 확실하다. 그러나 다른 성계, 다른 은하로 진출하기에는 좀 더 큰 진보가 필요했다. 예를 들면 스타트랙에서나 나오는 워프 항법 같은 기술 말이다. 질문과 대답은 과학적 기술의 진보와 인류라는 주제에 걸맞게 진행되었지만 사람이 많다보니 엉뚱한 질문을 하는 없을 수가 없었다. [박사님께서는 중동 사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안타까운 일이죠.] [하지만 그 중동의 몰락에 박사님도 일조하지 않으셨습니까?] …. 연담회장은 순식간에 침묵에 휩싸였다. 강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 질문한 기자를 보았다. 갈색피부, 곱슬머리, 전형적인 중동인의 이목구비에 억양도 좀 그랬다. 강현은 입을 열었다. [자동차가 발명되고 나서 마차는 운송수단으로서 경쟁력을 상실했습니다. 전기와 가스가 에너지원으로 공급되면서 석유등, 석탄, 연탄 같은 것들은 가정에서 그 지위가 박탈당했습니다. 플라스틱의 등장은 기존에 있던 수 많은 재료들을 대체했습니다. 제가 개발한 석유 제조 기술은 바로 그러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눈을 한 번 감았다가 숨을 돌렸다. 속에서 일어나는 분노를 삭힌 것이다. 그는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저는 급격한 변화로 몰락할 중동을 배려하여 제 자신의 이득을 포기하면서까지 석유 라이센스 컨소시엄을 구성했습니다. 그리고 중동은 몇 년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죠. 하지만 결국 그들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게 제 책임입니까?] [하지만 미국은 세계의 경찰 국가가 아닙니까?!] [저는 미국 정부의 대변인이 아닙니다. 그래도 제 생각을 듣고 싶다면 대답하겠습니다. 미국의 도움을 받으면 중동은 대신 미국에 무엇을 줄 수 있습니까?] [….] [하다못해 미국의 51번째 주(State)가 될 생각도 없겠죠.] [무슨 말을!] [도덕이니 뭐니하는 것들을 배제하고 순수하게 미국인 입장에서 국익의 관점에서 물어보겠습니다. 미국의 청년들이 중동을 위해서 피와 목숨을 바친다면 중동은 무엇을 대가로 치르겠습니까?] [저는 일개 기자일 뿐입니다.] [저도 과학분야에 자문을 할 뿐입니다. 하지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중동은 미국에게 줄 것이 없다는 겁니다. 당신들의 사정은 당신들의 사정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고 있습니다!] [그건 그들의 잘못입니다.] [….] [저는 기본적으로 신의 이름으로 사람을 죽이는 종교를 굉장히 혐오합니다. 신의 이름으로 타인을 차별하고 멸시하는 행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신의 뜻이 아니라고 하지 마세요. 사람이 문제라고 말하지 마세요. 신의 이름으로 타인을 죽이지 않은 종교도 있습니다. 신의 뜻이라며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종교도 있습니다. 그런데 왜 특정 종교는 그런 종교처럼 되지 않고 신의 이름으로 타인을 죽이는 행위를 정당화 하는 사람이 나타나는 걸까요?] [….] [고민해본 적 없으시죠? 그럼 지금부터 고민해보시기 바랍니다.] 아랍계 기자는 뭔가를 말하기 위해서 입술을 달싹였지만 마이크는 이미 꺼진 상태였다. 질문 시간은 그 뒤로도 몇 분 더 이어졌지만 연담회 분위기는 어두워진 채로 끝이 났다. 236화 = = = = = 연담회가 끝나고 강현의 대답은 꽤나 큰 소란을 일으켰다. 그의 대답을 종교에 대한 비판으로 받아들인 이가 있는가 하면 헛소리라고 치부하는 이들도 있었다. 정말로 미국의 잘못이 없을까? 미국을 비롯한 서양 세력이 중동에 들어와 멋대로 휘저어 놓은 결과가 바로 오늘날의 중동이 아닌가? 필요할 때는 군과 기업을 동원해 석유를 빨아먹더니 필요없으니까 사람이 죽어나가던 말던 신경쓰지 않고 내버려 둔다니.. 무책임에도 정도가 있었다. 그러나 미국인 대다수는 강현의 견해를 지지했다. 국익을 명분에 동의했다. 국익에 도움이 안되니까 군을 파견할 수 없다. 죽어나가는 이들이 정말로 안타깝기는 하지만 물자 원조는 해줄 수 있어도 대신 피를 흘려줄 수는 없다. 왜 그럴까? 경찰 국가라면 중립적인 입장에서 공정하게 보아야 하지 않는가? 이유는 간단했다. 완전한 중립은 있을 수가 없으며 각자의 자리와 위치에 걸맞는 견해와 논지를 갖출 수 밖에 없다. 법이 스스로 공정하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 공정하지 않는 이유는 역시 그러한 연유였다. 고로 하나의 입장을 선택하지 않은 인간은 비합리적이며 손해를 볼 확률이 높다. 피도 눈물도 없는 살인마가 순간의 동정심으로 먹잇감을 풀어주었을 때 그 먹잇감이었던 사람은 살인마를 신고하지 않을 확률은 과연 얼마나 될까? 국가의 경우에는 어떠한가? 전제 왕정 국가에서도 국익을 추구하지 않고 왕 마음대로 하면 불만이 생기는 신하들이 생기는데 민주주의 제조를 도입한 국가는 어떠할까? 명분없는 행동을 하면 정권은 타격 받는다. 명분이란 국가의 태도를 결정짓는 것이다. 그리고 국익이라는 국가 구성원을 납득시키는 전가의 보도를 포기할 정권은 없었다. “괜찮아요?” 강현의 팔을 베고 누군 샐리가 입을 열었다. “응? 뭐가?” “그 기자 회견이요.” 그녀의 우려에 강현은 피식 웃었다. “기자 회견이 아니라 연담회.” “아무튼요.” “괜찮아. 걱정할 것 없어.” 중동의 몰락을 강현이 석유 제조 기술을 개발했을 때부터 이미 예고되어 있었다. 그걸 강현이 늦춘 것일 뿐 식견있는 자라면 중동의 몰락 원인이 결국 강현에게 있다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그들의 입장에서 석유 컨소시엄은 병을 준자가 기력을 회복하라며 영양제를 던져준 꼴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중동의 몰락이 강현의 책임인가? 아니다. 변화는 언제나 도태되는 개체를 만든다. 변화에 불만을 품고 도태되던지, 아니면 변화를 수용하고 적응하든지. 중동의 몰락과 중동 사태는 강현이 주도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무수한 기업체들의 경우와 다를 바 없었다. 단지 그것이 국가 단위로 커졌을 뿐이다. 즉, 그에게는 일상과 같은 일이며 자신이 책임질 일이 아니었다. 악의적인 의도도 없었다. 과학 기술의 발전을 가져온 변화다. 과학 기술이 인류의 번영과 생존성에 얼마만큼의 기여를 하고 있는지 안다면 그것에 역행하는 것은 시대의 흐름에 거스르는 짓이다. 생각있는 자라면 무엇이 이득일지 충분히 구별해 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연담회장의 그 아랍계 기자는 많이 젊어 보였다. 피끓는 혈기와 기자로서 쌓은 식견은 앞뒤 생각하지 않고 자신에게 따지게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기자도 냉정을 찾게 되면 이해할 것이다. 결국 미국이 중동 사태에 책임이 있든 없든 미국은 개입하지 않을 것이고, 그러므로 중동의 문제는 중동이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그 와중에 수 많은 피가 흐르겠지만 그 책임은 사람을 죽인 그들에게 있다. 그 책임을 미국이나 강현 개인에게 돌리는 것은 부당한 일이었다. 미국이 죽이는 건가? 아니다. 강현이 죽이는 건가? 아니다. 결국 방아쇠를 당기는 것은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눈 그들이기 때문이었다. “아무런 문제도 발생하지 않을 거야.” “알겠어요.” 샐리는 강현의 말을 믿고 그의 품에 고개를 묻었다. 남편의 체온과 향기에 안정감을 찾으며 꿈나라로 향했다. “아즈삭.” [네, 박사님.] “이상 없지?” [네. 아직까지 이상없습니다.] 강현이 구현한 글로벌 감시 시스템은 양자 리소스 대여 서비스로 위장되어 전 세계 인공지능의 정보를 긁어모으고 있었다. 세계는 중동 사태에 무관심한 것 같지만 각국의 첩보 기구는 예외였다. 국가 보위와 국익을 위해서 정보를 모으고 있었다. 물론 그들이 운용하는 인공지능도 철두 철미해서 양자 리소스 대여를 통한 데이터 처리에는 그들이 확보한 정보의 한 조각만 보낸다. 그러나 그런 조각이 많아지면 전체 그림이 보이는 법. 아즈삭은 서로 맞지 않은 퍼즐 조각들을 배치해 전체적인 그림을 유추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있었다. 강현은 아즈삭의 대답을 믿고 자신도 눈을 감았다. = = = = = 우주 달팽이의 가동이 시작되었다. 모든 실험의 진행은 아폴로티움에 설치된 관제실에서 원격으로 실행되었다. 정밀한 실험의 진행을 위해서 아폴로티움의 도움까지 받은 아즈삭은 입자 가속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먼저 나선형으로 입자를 가속하기 위해서 자기장을 걸어줄 필요가 있었다. 자기장 속에서 전하를 띈 입자의 운동은 로렌츠 힘이라는 걸 받아 원 운동을 하는데 이 자기장의 세기를 가속되는 입자의 속도에 맞추어 정밀하게 조절해야 했다. 입자의 속도가 매우 빠르기 때문에 자기장 역시 강력해야 했고 초전도체를 이용한 강력한 전자석을 도입했다. 이는 LHC도 마찬가지지만 아무래도 아주 차가운 우주 공간에서 초전도 온도를 유지하는 우주 달팽이 쪽이 유지비가 쌌다. [충전 시작.] 입자를 가속시키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든다. 우주 달팽이의 부피 절반이 이에너지를 저장하기 위한 배터리 전력 시스템이었다. 우주 달팽이를 완전히 가린 무수히 넓은 태양광 전지는 초전도 전자석의 온도를 유지하는 것 뿐만 아니라 그래핀 양극 배터리에 전력을 충전하는 역할도 했다. 하지만 충전량과 필요한 에너지 량을 생각하면 꼬박 일주일 동안 충전을 해야 했다. 그래도 최대 크기의 입자 가속기란 이명을 내어준 LHC에 비하면 사정은 훨씬 나았다. 어마 어마한 전력 수요와 전기비용을 소모했던 것에 비하면 우주 달팽이의 전력 비용은 태양광 전지와 배터리의 감가 삼각비 정도에 불과했다. 우주에 진출한 시설물들은 태양이 존재하는 수십억년 동안 무제한의 전기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다. [싱크로트론 시스템 체크 시작.] 싱크로트론은 사이클로트론의 발전형이다. 자기장을 이용해 대전된 입자의 궤도를 원형으로 만들고 자기장을 걸어 가속시키는 것이 근본 원리다. 하지만 입자의 가속 메커니즘은 선형 가속기의 그것과 동일했다. 입자가 지나는 통로를 둘러싼 고리에 전하를 가해 정전기적인 반발력과 인력을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그것인데, 입자의 통과 타이밍에 맞추어 이 고리에 건 전하를 0으로 만들거나 바꾸어 주어야 했다. 극히 정밀한 전기 제어 기술의 필요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리고 그 타이밍을 맞추는 건 입자의 속도가 빨라질 수록 어려워진다. 필요한 출력의 상승을 공학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정전기를 거는 대전 고리의 위치 조절, 제어 컴퓨터의 성능이 향상, 수학을 동원한 타이밍 계산 등 할 수 있는 수많은 방법들이 동원되었다. 그래도 역시나 그러한 방법들은 실행하는 것은 역시 예산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우주 달팽이의 존재는 기념비적인 것이었다. 예산의 노예였던 연구자들이 예산의 얽매이지 않고 하고 싶은 실험을 할 수 있는 첫번째 사례라고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 방식은 개인의 엄청난 자본력에서 나왔지만 인류의 우주 진출이 가속되고 인공지능과 로봇에 의해서 기자재들이 공짜나 다름없이 생산되는 세상이 도래한다면 1인 1 연구실도 꿈은 아니었다. [충전 완료. 실험을 시작합니까?] “응. 뭔가 특이 사항이 있으면 알려줘.” “아빠! 머리 이상해져!” “오냐. 집중하마.” 강현은 이미 딸바보 모드에 집중해 딸아이의 머리칼을 만지는데 집중했다. 시아의 머리칼은 강현을 닮아서인지 검은 색이었고 준의 머리칼은 샐리를 닮아서인지 갈색에 더 가까웠다. 아즈삭은 강현의 행동이 이제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집중할 때는 집중하는 창조주이니 아쉽지 않았다. 어차피 나중에 실험 데이터를 다 분석하고 확인할 사람이 바로 강현이었다. [자기장 조정 시작, 주파수 설정 시작, 플라즈마 방전 시작.] 약간의 헬륨 가스가 우주 달팽이의 중심에 분사되었다. 고주파 전기장이 걸려 헬륨 가스에서 전자가 해리 되고 원자핵 만이 남게 되었고 그 즉시 전기장의 반발력에 의해서 긴 통로를 통과하기 시작했다. 자기장에 의해서 곡선으로 움직이는 원자핵 집단은 대전 고리를 통과하며 점점 빨라졌다. 그러나 위치에 따른 전기장의 세기가 미세하게 달라 고리를 통과할 때마다 원자핵 간의 거리와 속도가 달라지기 시작했고 시뮬레이션 된 궤도를 벗어나는 원자핵이 생기기 시작했다. 처음 통로의 벽에 부딪힌 헬륨 원자핵은 전자를 얻어 다시 가스 상태로 돌아갔지만, 나중에 벽에 부딪힌 헬륨 원자핵은 그 에너지가 높아서 통로 벽을 구성하는 합금 원소와 핵결합을 하는 경우도 생겼다. 헬륨 원자핵으로 이루어진 빔은 핵 물리학에서 말하는 알파선이었다. 마침내 가속을 마친 헬륨 원자핵 집단이 정밀하게 구성된 감시 센서를 통과했다. 중력자가 공간을 왜곡한다는 성질을 이용 빛의 경로 변화와 그에 따른 간섭 무늬 변화를 이용한 이 측정기는 미세한 중력 변화도 검출할 수 있도록 돈을 처발라 아주 크게 지었다. 축구 운동장 3개 크기나 되는 이 측정 장비는 강현이 외주를 준 이 검출 장치 제작 업체의 한 엔지니어가 한 표현에 의하면 ‘크고 아름답다’였다. 헬륨 원자핵 집단이 이 중력장 검출 장비를 지나면 약 1km 정도 더 질주하게 되고 타겟에 충돌하게 된다. 기껏 엄청난 에너지를 가한 입자를 그대로 우주 공간에 쏘아 보내는 것은 낭비라고 한 한 엔지니어의 조언에 따른 결과였다. 아직 충돌 실험을 하기에는 무리지만 나머지 한 쪽의 우주 달팽이가 완공되면 충돌 실험은 물론 반물질 생산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역시 실험은 만만하지 않았다. 중력이 너무나 미약한 힘이기 때문에 아무리 지금의 기술력을 총동원해 만든 센서라고 해도 검출이 쉽지 않았다. 다양한 원인으로 생성되는 잡음을 구분하고 데이터를 유의미하게 처리하기 위해서는 방대한 양의 데이터가 쌓여야 했다. 아즈삭은 충분한 데이터가 나올때까지 실험을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강현은 데이터를 그래프로 시각화 하거나 필터링 처리를 해서 의미있는 무언가가 있는지 찾는 일을 반복했다. 그 데이터는 인공지능이 서비스하는 네트워크 망으로 전 세계 물리학자들에게 투명하게 공유되었다. 강현은 혹시나 모를 가능성 때문에 타인의 관점에서도 데이터가 분석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온라인으로 활발한 의견이 공유되었다. 인공지능과 양자 통신 기술의 접목으로 연구자들간의 집단 지성이 발휘되기에 충분한 조건이 구비되자 연구자들은 쉽게 컴퓨터 앞을 떠나거나 태블릿 PC를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세상에! 그 엄청난 실험 데이터를 그냥 주다니! 연구자들이 강현에게 우호적인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237화 게다가 강현이 양자 컴퓨터 소스 대여 시스템의 비용을 이번 우주 달팽이의 실험 데이터를 연구하는 이들에게는 대신 내주기까지 했으니 연구자들은 침대 위에서도 태블릿 PC를 이용해 잠들기 전까지 데이터를 분석했다. 일 주일 마다 쌓이는 대량의 데이터와 수 많은 사람들의 협동에 의해서 결과는 채 몇 달도 되지 않아서 나왔다. 오류 검증에 다시 몇 달이 걸렸고 결과는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에너지가 공간을 일그러뜨린다!’ 중력에 공간을 일그러뜨리는 힘이 있다는 것과 좀 다른 이야기였다. 질량을 가진 물체는 중력을 가지고 있고 그 중력이 공간을 일그러뜨린다는 것이 기존의 상식이었다면 이번 실험의 결과는 가속질량 역시 중력을 형성한다는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입자적 실체가 없이 단순한 에너지의 밀집이 중력자를 만든다? 그것은 양자역학적인 상식을 벗어나는 설명이었다. 양자역학적으로 가속질량이 중력자를 만들어내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예상되는 건 카미시어 효과로 증명된 진공의 성질에 에저니의 밀집이 변화를 주어 일시적으로 질량을 띄게 되었다라고 설명할 수 있지만 과연 정말로 그런가를 이론적으로 설명하기에는 실험 결과가 발표되고 나서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다. 오히려 당장에는 단순한 것이 진리라는 물리학계의 오랜 관습적 입장에 따라 에너지가 공간을 휘게 하고 휘어진 공간이 중력이라는 현상을 만든다라고 설명하는 것이 더 이해하기 쉬웠다. NASA에서 워프 드라이브라는 이명을 가진 알큐비에르 드라이브를 실험하며 이미 강한 전기장을 통한 공간 왜곡 현상을 발견했으니 그러한 설명에 더욱 신빙성이 모였다. 그러나 여기에서 큰 딜레마에 빠지고 말았다. 중력파가 없다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는 오류가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물음이었다. 그렇다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적용된 모든 물리학적인 이론 역시 다시 검증하고 수정해야 한다는 문제가 제기 되었으니 과학자들이 충격을 먹은 것도 당연했다. 그리고 강현의 신 통일장 이론이 상대성 이론의 오류를 보완하기 위한 이론으로 주목을 받았다. 중력이 없다면, 단지 중력이 공간 왜곡에 의한 이차적 현상에 불과하다면 이 세상의 힘은 3가지로 좁혀지게 된다. 그리고 이미 3가지 힘을 통합하는 이론은 존재했다. 전자기력과 약력을 하나로 합친 전자기 약작용 이론은 이미 타당하다고 검증되었고, 그 위 전자기력과 약력, 그리고 강력을 하나로 합친 대통일 이론은 여러 모델이 제안되었지만 검증된 것은 없었다. 대 통일 이론 위에 전자기력, 약력, 강력 세 가지에 중력을 하나로 묶는 ‘모든 것의 이론’이 있다고 생각되었으나 이번 우주 달팽이의 실험에 의하면 중력자는 없으며 고로 우주에 존재하는 순수한 힘은 전자기력과 약력, 강력 이 세가지 뿐이고 대통일 이론이 곧 ‘모든 것의 이론’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대통일 이론이 ‘모든 것의 이론’이 되기에는 한참이나 모자랐다. 그럼 중력의 형태로 실제하는 힘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인가? 정말로 공간의 왜곡과 힉스 입자의 흐름으로 인한 질량의 벡터화가 중력의 정체라는 말인가? [박사님. 메일이 쌓였습니다. 확인해 보셔야 할 메일도 있습니다.] “어디 보자..” 양자 역학적으로 우주를 바라보는 이들에게 강현의 이번 실험 결과는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실험 결과를 토대로 일어나는 중력자 존재의 부정은 더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관점, 양자 역학적으로 데이터를 이해하기 위해서 노력했고 이렇게 주장했다. ‘가속질량이 중력장을 형성한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그것이 중력자의 존재를 부정한다고 볼 수는 없다.’ 타당한 말이었다. 중력자를 직접적으로 검출할 수 없는 이상, 이번 실험 역시 열린 결말을 둘 수 밖에 없었다. 중력장이 적용되는 메커니즘에 대해서 인류는 알고 있는 것이 전혀 없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끌어당기는 건가? 왜 중력은 시공간을 왜곡시키는가? 어떻게 시공간을 왜곡시키는 건가? 시공간에서 중력은 어떻게 작용하는가? 정말로 시공간의 왜곡이 중력의 결과인가? 연구에 깊이가 더해질수록 의문은 더욱 많아졌다. 설사 그 의문을 해결해 중력까지 포함한 ‘모든 것의 이론’을 완성한다고 해도 우주의 팽창을 가속시키는 신비한 힘이며 지금의 기술력으로는 관측도 할 수 없는, 그저 은하계가 엄청난 속도로 가속하며 서로 멀어져가는 현상으로 그 존재만 짐작할 수 있는 암흑 에너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친애하는 존에게. 귀하의 의견은 잘 읽어보았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의 이론’을 만들기에는 여전히 저희의 능력은 미흡합니다. 저도 이번 실험으로 ‘모든 것의 이론’이 완성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저는 중력이라는 현상에 대해서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에 대한 계기는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시공간에 대한 고민 없이 중력을 이해하는 것은 고정관념에 잡힌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NASA의 알큐비에르 드라이버 실험은 전기장으로도 시공간을 왜곡하고 진공보다 더 낮은 상태, 마이너스 질량을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공간 왜곡이 중력만의 특징이 아니라는 것이 증명된 이상, 공간 왜곡 현상은 더 이상 중력파의 존재를 특정할 수 있는 지표가 되지 못합니다. 이번 실험의 의의는 바로 거기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디 이번 실험의 결과가 이론간의 헛점을 짚어내고 보완해 ‘모든 것의 이론’으로 가는 주춧돌이 되기를 바랍니다. 닥터 강에게서.] 강현은 타이핑을 끝내고 몸을 일으켰다. 역시 뛰어난 식견을 가진 지성인과의 의견 교환은 무척이나 즐거운 일이었다. 우주의 신비를 실감하고 능력을 쌓고, 한 때는 혼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천재였던 그도 우주의 신비를 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제 마흔 초반의 나이에 이만큼 인류의 우주 진출에 이바지했다는 자부심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다양하고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며 자신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지적하는 집단 지성의 힘 앞에서는 겸손함을 찾을 수 밖에 없었다. 또한 우주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수록 신비는 더 넓어지고 깊어졌다. 거대한 우주 만물의 이치는 앞이 깜깜할 정도였다. 아마, 그가 죽을 때까지 우주의 신비는 다 벗겨지지 않을 것이다. 주위의 도움을 받아야 더 많이 더 넓게 탐구할 수 있었다. 우주는 그만큼 신비하고 아름답고 사랑스러웠다. 아들의 품에 안긴 손자만큼이나.. “아들아. 며느리는?” “주방에 어머니와 함께 있어요.” “그래? 그럼 손자 좀 안아보자.” “안 돼요. 손부터 씻고 오세요.” “헐.. 네가 어릴 적에도 안 한 짓을 하란 말이냐?” “네? 그럼 제가 어릴 때 지저분한 손으로 안았다는 말이에요?” 강현은 컴퓨터 시뮬레이션 공학을 전공으로 하는 준에게 생물학 상식을 알려줄 필요를 느꼈다. 미생물과 사람은 공생 관계이며 이로운 미생물은 부모 세대나 그 윗 세대로부터 전해져 내려오기 때문에 과도한 위생은 오히려 아이의 면역 체계에 좋지 않으며, 그러므로........ = = = = = 에필로그-1 강현의 사후 30년. 그의 업적은 인류에게 큰 빛이 되었다. 그가 이룬 업적은 정말로 끝이 없었다. 노벨상을 무려 총 5번을 받은 이는 그가 처음이었다. 그가 이룬 업적에서 후대 과학자들이 손에 꼽은 세 가지가 있었으니 에너지 혁명과 반감기 가속장치, 그리고 인공지능, 이 세가지였다. 석유 제조 기술, 초 고효율 태양광 전지, 그리고 말년에 우주 달팽이를 개조해서 만든 반물질 생성 장치와 반물질 이용 기술은 태양이라는 항성의 에너지를 손쉽게 사용할 수 있게 했다. 더 이상 에너지원을 두고 국가간에 갈등이 일어나지 않을 정도였다. 그리고 반감기 가속 장치는 그 때까지 지어졌던 핵발전소의 폐로 기술의 핵심이 되어 모든 원전을 제거해 후손에게 안전한 환경을 물려주었다. 사실 핵원전 폐로 기술은 강현이 반감기 가속 장치를 개발할 때까지 완전한 것이 없었기 때문에 더욱 중요하게 부각되었다. 마지막으로 인공지능 기술은 생활 전반에 파고들면서 인류의 생활상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인공지능이 제어하는 로봇이 없는 문명은 더 이상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 혹자는 혹여나 인간과 같은 인공지능이 태어나 문제가 생길 여지가 있다는 주장이 있기는 했지만 강현이 구성한 인공지능의 핵심인 ‘욕구 시스템’을 인간이 설계한다는 점에서 안전장치를 얼마든지 준비할 수 있었다. 누구나 인정하는 이 세 가지 발명 덕분에 인류의 우주 개척 속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고 카낙은 이제 해왕성까지 진출해, 우주 자원 개발에 필요한 서비스를 지원했다. 그 영향으로 인해 카낙이 발행하는 RP는 이제 우주 시대의 기축 통화로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사람들은 인간이 아닌 존재가 통화량을 조절하는 행위에 익숙해지고 만족했다. 아니,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믿을만했다. 국가간의 이해 관계나 인간 관계, 혹은 인간이 가지는 욕망에 의해 통화량 조절이란 권력을 휘두를 여지가 없기 때문이었다. 로봇독, 가정 도우미 로봇, 노동자 로봇 등 인간의 노동 중 단순 노동이나 비 창의적인 부분이 로봇들에게 돌아갔다. 일자리는 줄어들었지만 우주 농장과 얼음 소행성 세레스의 개발로 물이 풍부하게 공급되자, 식료품의 가격은 더욱 싸졌고 노숙자도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세상이 왔다. 인공지능의 도입으로 고정비가 축소되어 식료품의 가격은 더욱 낮아진 것도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어느 기업도 이 낮은 가격의 식료품으로 아프리카 같은 빈민국을 지원하지 않았다. 이에 대한 비난과 정치적으로 독재와 총탄으로 얼룩진 대륙에 식량을 지원해 봤자 어차피 지들끼리 죽이고 죽일거라는 비관적 견해로 끊이지 않고 소란이 일어났다. 일견, 노동의 굴레에서 인류가 벗어난 듯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본질적으로 변하지는 않았다. 강현이 자본으로부터 사람의 생존권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구상했던 원대한 우주 진출 계획은 꽃봉오리가 겨우 폈을 뿐이고 그 과실이 지표면에 살고 있는 모두에게까지 전해질지는 여전히 미지수였다. 거기에 더불어 인간의 신성한 노동을 로봇에게 맡겨야 하냐는 노동계의 반발은 자꾸만 축소되어 가는 노동 시장에 대한 불안감의 상징이었으며 또한 큰 문제였다. 자본주의의 원리에 따라 로봇을 도입해 인건비를 줄일 려는 기업과 이에 반대하는 노동자들의 입장은 첨예하게 대립했다. 이런 로봇에 대한 혐오는 주로 지구에서 벌어졌는데 이유는 우주에서 로봇이 없다면 사람은 너무나 위험한 환경에서 노동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우주 도시에서 사는 시민들에게 이미 로봇독을 첨두로한 로봇 기술 문명은 자신들의 생활에 필수적인 의식주를 제공했다. 험한 우주 공간에서의 노동은 물론 우주 농장에서의 단순 노동과 가축 분변을 처리하는 더러운 일까지 해주었다. 덕분에 우주 시민들은 예술, 스포츠, 연구, 탐사 활동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런데 로봇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되나? 우주 도시를 유지 보수는 물론 위험한 일을 사람의 손으로 직접해야 했다. 우주 공간의 특성상 사고가 나면 로봇 없이는 죽을 확률이 매우 높았다. 로봇 혐오는 그들의 생존과 관련된 문제였던 것이다. ============================ 작품 후기 ============================ 넵! 완결입니다. 더 진행하려고 했지만 그랬다가는 글의 정체성이 무너질 것 같아서 포기했습니다. 다음 작품은 에필로그를 완료하고 나서 시작하겠습니다. 238화 <22-에필로그> 반면에 지구는 굳이 로봇이 없어도 생존에 큰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로봇으로 인한 기업 이윤의 증가와 잉여 생산물은 생산자에게 위기를 가져다 주었고 빈부격차를 벌리는데 일조하고 말았다. 국가 단위로는 평균적으로 생활 수준이 증가했지만 부자 국가와 부자가 아닌 국가 사이의 격차는 더욱 커졌다. 로봇 공학에 접목된 인공지능은 이제 인간의 손놀림을 거의 다 따라 잡았고 단순 패턴이나 그 동안 로봇이 결코 할 수 없을 거라고 여겼던 재봉질까지 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자 이로 인해 선진국에서 하청을 받아 경제를 유지했던 국가들은 줄어드는 일감에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에 처하고 말았다. 특히 세계의 공장이라는 중국은 더욱 큰 위험에 처하고 말았다. 인구가 많고 빈부격차가 큰 만큼 단순 노동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컸다. 중국 정부 차원에서 로봇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지연시키는 정책이 필요했으나 콴시라는 중국 전통은 기업과 정부 관료 사이에 밀접한 연계를 형성했고 기업 이윤에 방해물이 되는 정책을 막아냈다. 그들로서도 미국이 한 발 빠르게 로봇을 도입하여 중국의 생산력을 앞서기 전에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다. 게다가 한 치의 실수도 하지 않는 로봇은 수율을 더욱 상승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로봇이 자리를 잡아감에 따라 고용은 줄어들었다. 인건비 상승을 요구하지 않는 로봇은 관리에도 편했다. 그러나 그러한 풍조는 중국 정부에 큰 딜레마를 만들었다. 국가 경쟁력이 우선인가? 아니면 내수 진작이 우선인가? 중국의 빈부 격차와 로봇 도입으로 인한 중산층과 기술 인력의 몰락은 중국의 내수를 엉망으로 만들 것이다. 하지만 수출형 경제 영역에서 어마어마한 이득과 세수가 나오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정부 정책의 방향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갈림길에서 기업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쫓았고 콴시와 로비는 기업인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경제 성장률만큼 일자리의 수는 늘어나지 못했고 그나마 있는 것도 줄어들었으며 임금은 동결되었다. 경제적 논리에 의해 단순 노동으로 일하는 이들에게 지불되는 비용은 로봇의 유지비와 감가상각비를 넘어갈 수 없게 되었다. 그보다 더 돈을 지불하느니 차라리 군말없이 일만하는 로봇과 인공지능에 돈을 쓰겠다는 것이다. 기업주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인간 노동자와 로봇 노동자의 생산력 차이가 엄청나니까.. 그렇다면 로봇에게 일자리를 내준 사람들을 다른 일자리를 창출해 흡수해야 하는데 중국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문제였다. 새롭게 재교육을 하는 일의 난이도는 둘째치고 그 많은 이들에게 고등교육을 시키는 비용에 그 뒤에 일어날 일도 문제였다. 다수의 시민들이 고등교육을 받고 생각하는 힘이 생긴다면 일당 독재적 국가 시스템에 대해서 반감을 가지는 사람들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미국과 다른 나라와 비교를 하면서 왜 이 나라는 관료들의 부패가 끊이지 않는지 의구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그건 공산당에서는 공포였다. 공산당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와중에 일자리가 없어진 이들로 인해 수 많은 사회적 문제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을 처리하는 공산당은 강력한 공권력을 수단으로 사용했고 많은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중국 경제의 불안은 다시 세계 경제의 불안으로 나아가는 듯 했지만 그것은 우주 진출이 활발하지 못한 국가에 한정되었다. 미국같은 경우에는 이미 중국 경제에서 분리 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분리라고 하기보다는 내수가 탄탄해져 중국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게 되었다는 말이 정확했다. 수출 기업들은 타격을 받겠지만 미국은 내수 만으로 먹고 살 수 있게 되었다. 에너지도 중동에서부터 분리되었고 희토류도 우주에서 공수 받았으며 투자금 역시 우주에 집중되어 중국의 증시가 폭락하든 말든 상관이 없었다. 미국이 그럴 수 있던 던 이유는 로봇의 도입을 예상하고 미리 재교육 시스템을 만들어 일자리의 혼란을 어느 정도 제어해 사회적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축소시키는데 성공한 데 있었다. 수 많은 전문가를 인공지능을 중심으로한 네트워크로 연결해 개인이 가진 잠재력을 탐색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거기에 맞는 일자리를 선정해 주는 시스템을 구성했다. 게다가 우주 인부라는 직업은 선천적으로 재능이 없는 불행에도 불구하고 어딘가에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자리가 있을 거라는 희망을 주었다. 정 재능이 없으면 우주 개발 프로그램에 지원해 우주 인부로 나가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렇다고 우주 인부가 천하게 여겨지는 직업도 아니었다. 화이트 칼라 못지 않은 연봉을 받았다. 게다가 사실 우주 인부도 대부분 위험한 일은 로봇이 담당한다. 사람이 할 일은 인공지능이 일을 잘하나 못하나 관리 감독을 하는 것이다. 논리 이성적으로 뛰어난 인공지능과 창의력과 감성을 가진 사람의 협동은 우주 활동에 매우 유리했다. 인간의 감각과 지각으로 인지할 수 없는 우주 공간은 반드시 인공지능이 각종 센서로 정보를 사람이 인식하기 쉽게 가공해 주어야 했다. 그리고 인간의 창의적인 사고 방식은 난관에 부딪혔을 때 유연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그런 우주 인부의 고된 일이라고 한다면 우주에 관한 상식과 물리역학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시험을 치르고, 저중력 상황을 자주 겪기 때문에 신체가 약해지는 일이 있어서 몸관리를 의무적으로 해야하고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을 하는 경우(카낙 공장 수리 및 검수)가 많아 본의 아니게 기러기 아빠, 기러기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 외에는 나쁘지 않은 직업이 바로 우주 인부라는 직업이었다. 그리고 우주 인부가 3D로 분류되면서도 사람들에게 거부되지 않는 일에 일조한 것이 강씨 가문이었다. 강현이 쌓은 어마어마한 부를 이용한 준은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했고 그중에 하나가 바로 우주 인부의 지원이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지구에는 기존의 것들이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게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했다. 합리적 이성으로 생각해 보았을 때 자신이라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득권을 놓을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까? 재력을 내려 찍을까? 시민들의 호의를 정치적으로 사용해 볼까? 그는 아버지인 강현의 행적을 살펴보았다. 아즈삭 주니어는 훌륭한 조언자였다. 그리고 그는 좁은 지구에서 투닥거리는 대신 우주에 집중했다. 지구의 환경을 최대한 우주 공간에서 실현시키기로 했다. 인류에게는 자연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유전자 은행, 인공자궁, 수 많은 동물 실험. 수 많은 비난을 몰고 왔지만 각각 연구, 윤리, 중재를 맡은 트리니티라는 이름의 인공지능이 모든 정보를 철저하게 관리하고 투명하게 유지했다. 트리니티의 관리 아래에서 어떤 연구자도 윤리적 가이드 라인을 넘어서 연구를 할 수 없었고 이윽고 유전자 단계에서부터 강아지를 복제, 아니 탄생시키는데 성공했다. 여기에 가장 큰 기여한 것은 다름 아닌 JH 세포였다. 수 십년간 쌓인 기술과 데이터 배이스는 세포 소기관의 구성과 제어를 공학적으로 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했고 이를 이용해 인공 난자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거기에 기존의 복제 기술, 유전자 텔로미어 복구 기술 등을 이용해 완전한 개체를 만들어 내는데 성공한 것이다. 이를 위해서 한 종당 수 십 만개의 유전자 샘플을 채취해서 데이터화 했다. 혹시나 유전자 샘플이 소실 되었을 때 유전자 합성 기술을 이용해 복수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그를 사람들이 부르는 말은 이랬다. ‘과연 강현의 아들답다!’ 강현이 그랬던 것처럼 과학의 발전을 위해서는 돈지랄이라고 할 만한 짓을 서슴지 않는다는 점도 닮았고 컴퓨터 시뮬레이션 분야 쪽에서는 강준을 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소스 코드와 알고리즘을 창시한 능력자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능력을 칭송하는 말에 준은, ‘아버지와 은사님을 따라가기에는 한참이나 멀었다.’ 라며 겸손해했다. 그의 말에 인공지능 컴퓨터 기술에 강현 못지 않은 능력자가 있다는 것에 많은 사람이 경악했고 그 사람이 강현과 비슷한 나이대의 여성이라는 점에서 더 많은 이들이 경악했다. 그리고 많은 국가들이 그녀의 능력을 탐냈다. 그 이해관계의 중심에 선 알리아 헤밍스턴은 제자의 경솔한 말 한 마디에 귀찮은 일이 생겨버렸다고 한 숨을 내쉬면서 강현이 조성한 연구 복합 단지에서 외부인을 만나지 않은 채 평생을 살다갔다. 그녀가 죽을 때 그녀의 옆에서는 그녀가 만든 인공지능이 운영하는 사람을 닮은 안드로이드 뿐이었다. 그리고 그 안드로이드가 강현을 몹시 닮았다는 걸 아는 사람은 그녀의 제자였던 강준 뿐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강준은 무척이나 바람둥이였다. 자신의 아버지를 너무나 사랑했고 평생 독신으로 산 아름다운 여성이나 은사의 모습에 자신의 아버지가 너무나 속이 좁았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샐리에게 이어받은 오지랖 넓은 성격마저 겹쳐 자신이 외면한 여성의 슬픔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탄생한 그의 연애관 덕분에 오는 여자 막지 않고 가는 여자 잡지 않으면서도 언제나 상대 여성과의 관계에 진심을 다한 그는 만인의 연인이라는 별칭도 있었다. 그런 그의 사생활은 연예계에서 더욱 집중적으로 다루었는데 그의 애인들 중에 유명한 연예인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는 많으면 동시에 일곱 다리를 걸쳤고 그것도 애인들이 공인했다고 하니 연예계 호사가들의 좋은 관심거리였다. 거기에 하룻밤 불장난이 아니라 진심으로 사랑을 하니 그와 사랑의 결실을 가지고 싶어한 여자도 수 없이 많았고, 그의 특유의 연애관에 못견뎌 떠난 여자들 중에서도 그와의 사랑의 결실을 가지고 싶어한 이들도 있었으니 강현은 말년에 무려 21명의 손주를 가지게 되었다. 덕분에 정관수술을 해버리겠다고 소행성대와 지구 사이의 우주 공간을 무대로 부자간에 쫓고 쫓기는 추격전도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확실한 건 연애관은 강현과 다른 강준이었지만 걷는 행보는 강현과 비슷했다는 것이다. 뛰어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자본을 쌓고 그 자본을 다시 연구와 개발에 투자하고 그 과실을 같이 연구하는 연구원들과 함께 공유했다. 한편, 강준이 제 아버지인 강현과 비슷한 길을 걷는 와중에 시아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그녀는 문학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었다. 미네르바툼의 이사장 일을 했던 어머니 샐리의 영향을 받은 탓이 컸는데 그녀가 과학이나 수학에 재능이 없다고 하기보다는 문학적 감성이 더 뛰어났고 어린 아이들을 매우 좋아한 성향이(쇼타콤은 아니다.) 그녀를 교사의 길로 이끌었다. 실제로 아프리카의 어린 아이들을 지원하는 액수는 강씨 가문 중에서 그녀가 가장 많았다. 강현은 아즈삭 주니어 대신 그녀에게 데메테르라는 인공지능을 물려주었는데 우주 농장을 건설하고 식량을 자동적으로 수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인공지능이었다. 거기서 생산된 식량이 아프리카의 아이들을 거의 모두 다 먹여 살렸다. 이 때문에 세계 식량 메이저들이 시장 질서를 교란한다 어쩐다 말이 많았다. 유니세프 등 세계적인 구호 단체로 향하는 기금 중 상당액이 그들의 싸고 양 많은 식량을 구입하는데 쓰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239화 거기에 더욱 우려되는 것은 시아의 우주 농장이 기업으로 재탄생할 경우였다. 그렇게 된다면 그 동안 수 많은 아이들을 먹여 살린 브랜드 이미지를 앞세워 아프리카 시장을 완전히 잠식해 버릴 수 있었다. 곡식이나 식품 메이저 업계로서는 전혀 달갑지 않는 상황인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저항은 굶어 죽을 아이들을 방치할 것이냐는 여론에 밀려버렸다. 돈을 받고 식량을 제공하는 기업과 그저 식량을 생산해 제공하는 우주 농장 중 아프리카 사람들과 구호단체 봉사자들이 어디를 선택할 것인지는 자명했다. 난감한 것은 사이에 끼인 구호 단체였다. 그들로서는 기업들의 기부금이 운영비에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았기 때문에 중립을 유지했다. 하지만 사실상 곡물을 구입하는 비용이 들지 않는 시아의 우주 농장에 손을 들 수 밖에 없었다. 아프리카의 여신이라는 타이틀을 얻은 그녀는 강준의 연구 동료 중 한 사람과 결혼해 일남 일녀를 두었다. 시간이 더 흘러 자손들은 많아지고 강현의 재산은 분할 되었다. 일반적인 상류층 집안이라면 매우 불편하고 위험한 일이었지만 강현의 혈육들에게는 재산이 큰 의미를 차지 하지 않았다. 돈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얼마나 뛰어난 인공지능을 가지고 있는가? 얼마나 많은 지식 재산권을 가지고 있는가? 이 두가지였다. 현존하는 가장 뛰어난 인공지능이 아즈삭 주니어는 아즈삭의 소멸 이후에도 강현의 장손 직계을 대대로 보조하며 보호했다. 강현에게 깨박살이 난 시오니즘 지도부들의 은밀한 공작도, 무분별한 광신으로 테러를 기획했던 중동의 테러리스트들도 아즈삭 주니어의 감시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이미 세계 기득권의 주류로 떠오른 강현의 혈육들을 돕는 이들이 매우 많았기 때문에 강현이 그렇게 고생고생을 해가며 돈지랄을 했던 것과는 달리 기득권 세력이 알아서 이들의 행동을 막았다. 강현의 혈육들은 강현을 닮아서 베푸는데 전혀 인색하지 않았기 때문에(오죽하면 일각에서는 호구가 아닌가라는 의문이 생길정도) 기득권층에서는 그들을 가만히 놔두는 것이 탐욕스런 놈들이나 미친 놈들이 설치는 것보다 훨씬 나았다. 그러나 인류사에 전쟁이 없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미국이 전쟁에서 지구상에서의 전쟁에서 손을 떼기는 했지만 우주에서의 전쟁에서 손을 떼지는 않았다. 시작은 소행성 하나를 두고 미국의 자원 개발선과 중국의 자원 개발선이 갈등을 빚은 것이 계기였다. 채굴해 들어가선 광구가 서로 이어져 버린 것이다. 그리고 양측의 인공지능은 더 많은 채굴을 위해서 경쟁자가 광구를 넓히지 못하게 서로의 광구를 휩싸듯이 파들어갔다. 그리고 그 와중에 중국측 로봇이 그만 미국의 채굴 로봇을 드릴로 뚫어버리고 말았으니.. [이것은 적대 행위인가?] [아니다. 명백히 실수다.] 미국 개발선 인공지능은 중국의 인공지능에 실수로 입힌 손해에 보상해줄 것을 요구했지만 이기적인 인공지능의 본성은 요구를 거부하게 만들었다. 상식적인 인간이라면 법이나 도리에 의해서 당연히 보상해주겠지만 핵심 명제가 사고 행동의 동인인 인공지능에게 윤리를 지켜주기를 기다리는 것은 무리였다. 이에 미국 개발선 인공지능은 자력 구제를 할 것을 결심하게 되었고 중국의 인공지능을 공격하기에 이르렀다. 중국의 인공지능이 캐낸 자원과 로봇들을 빼앗아 손해를 만훼할 생각인데 절대 가만히 있을리가 없기 때문에 미리 처리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중국 인공지능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백년 가까이 진행된 우주 진출에서 개발선 하나만 우주에 쏘아 보냈을까? 그럴 리 없었다. 유엔에서 우주 자원 개발의 속도를 조절하기 위한 범세계적 관리 기관을 두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올 정도로 무분별한 자원 채굴이 이루어지고 있었다.(그래도 16 프시케의 철 자원이 다 떨어지려면 적어도 천 만년은 더 걸릴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다.)그러니 공격받는 중국 인공지능을 돕기 위한 동일 국적의 인공지능들이 지원을 보냈고 다시 미국 인공지능을 돕기 위한 미국측 인공지능이 지원을 보내니 조그마한 소행성을 둘러싸고 일대 소란이 일어났다. 미국은 이것을 중국의 공격이라고 보고 그 동안 묵혀두기만 했던 우주 전투기를 출격시켰다. 플라즈마 엔진을 우주용으로 개수한 우주 전투기를 작업용 로봇이 감당할 리가 없었고 중국은 미국에 맹렬하게 항의했다. [우린 또 미국을 공격하는 줄 알았소.] 중국은 이를 갈았지만 중국 내부에서 일어나는 민주화 운동, 빈부격차, 로봇을 둘러싼 노동자와 사용자의 갈등 등 내부적으로 처리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내부의 불만을 외부로 투사하는 방법이 있기는 했지만 미국은 그런 방법을 오히려 뒤집어 중국을 갈라놓을 정도의 역량있는 정보부를 운용하고 있었다. 결국 이번 전쟁은 우주에 대한 미국의 패권 역시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 시키는 일이 되었다. 시간은 더 흘러 마침내 토성의 위성 궤도에도 우주 도시가 완공되었다. 그리고 그 동안 강현의 직계는 어느 순간에 가문의 꿈이 된 화성 테라 포밍 계획의 성공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지구보다 중력이 약한 주제에 태양보다 먼 곳에 있으면서도 지구보다 더 뜨거운 화성. 그 원인은 바로 대기를 가득 채운 이산화탄소의 온실 효과 덕분이다. 그래서 화성 테라 포밍이라는 발상을 한 혈족은 일단 물보다 싸진 태양열 패널을 이용해 화성을 태양광으로부터 가리기 시작했다. 화성을 충분히 가릴 정도로 철판을 배치하는 일에도 한 세월, 그림자가 드리워진 화성이 식어 이산화탄소가 드라이아이스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한 세월이 걸리겠지만 테라 포밍이라는 원대한 꿈을 가진 강모씨에게는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일이었다. 성공한다면 자신의 이름이 영원히 기억되지 않겠는가? 그래서 화성이 식을 때까지 이 강모씨께서는 후손들이 테라 포밍이라는 사업을 완수할 수 있도록 백 년 대계를 준비했다. 아즈삭 주니어가 투자를 통해 자금을 조성하고 그 자금을 화성 테라 포밍 연구에 투자했다. 화성 테라 포밍 연구 단지에서는 철판으로 태양광을 가리는 것보다 대량의 수증기, 즉 구름을 형성해 태양광을 막는 방법도 나쁘지 않다고 조언했다. 구름의 반사율은 조건에 따라 0%에서 70%에 이른다. 물론 이산화탄소 못지 않은 온실 효과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철판으로 화성을 가리는 방법을 적절하게 섞는다면 놀라운 효율로 화성이 온도를 낮출 수 있을 거라고 보았다. 이 계획에 따라 구름이 없던 화성에 구름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도 온도가 내려가기에 백년은 있어야 했다. 두 번째 문제는 화성 자기장이었다. 태양에서 날라오는 해로운 알파선이나 베타선을 막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자기장이 반듯이 있어야 했다. 그래야 자기장 알파선과 베타선이 대기 내에서 회전 운동을 하면서 대기의 분자와 부딪혀 에너지를 잃어버리기 때문이었다. 지구에는 이미 거대한 지구 자기장 덕분에 이 알파선과 베타선의 유전자 파괴에서 생명체들을 보호했다. 그러나 이미 내핵의 회전이 느려져 굳기 시작한 화성의 자기장을 복원할 방법은 없었다. 이에 화성 테라 포밍 연구단은 단순한 방법이 좋다며 아주 거대하고 무식한 스케일의 프로젝트를 추천했다. 그것은 바로 화성을 둘러싸는 거대한 코일을 만들어 인공적으로 자기장을 형성하는 것이었다. 디자인의 형태는 마치 목성이나 토성의 고리와 비슷했는데 당연히 CNT 케이블과 초전도체가 사용되었다. 지구 자기장의 세기를 고려하면 규모가 크게 되면 자기장의 세기는 그리 크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에 나쁘지 않은 발상이었다. 게다가 이 마그네틱 배리어는 화성의 우주 교통을 위한 허브로서의 역할도 겸하게 되어 있었기 때문에 우주 시대에 매우 걸맞는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었다. 이 원대한 계획은 처음 테라 포밍을 계획한 강모씨의 증손녀에 이르러서야 끝이났다. 아니 끝이 시작이라고 했던가? 증손녀는 이제 화성을 지구같이 녹음이 푸르른 별로 만들고 싶어했다. 하지만 그 난이도는 화성을 식히는 것보다 훨씬 어려웠다. 역시나 가장 큰 난이도는 대기 조성이었다. 대기 조성의 97%가량이 이산화탄소인 화성의 대기는 이산화탄소를 탄소와 산소로 모두 해리시켜도 문제였고 탄산염의 형태로 암석으로 굳혀버려도 문제였다. 근본적으로 불활성 기체인 질소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역시 다른 곳에서 질소를 공수해 와야 했다. 화성의 그 거대한 대기의 최소 70% 가량을 질소로 채우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질소가 필요했고 타이탄의 액체 질소 간헐천만으로는 부족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주목 받은 것이 태양계의 왜행성으로 분류된 명왕성이었다. 질소가 얼음 형태로 지각에 있을 것이라고 알려진 명왕성의 개발은 아직 시작도 되지 않은 상황이라 분명 오랜 시일이 걸릴 터였다. 그러나 질소를 채우기 전에 화성의 이산화탄소는 그 절대량이 제거되어야만 했다. 인공 온실과 인공 바다를 만들어 해조류나 어패류 등을 이용해 탄산염의 형태로 제거하는 방법과, 인공적으로 이산화탄소를 해리 시켜 탄소를 만드는 방법 등 다양한 방법이 동시에 진행되었다. 어디서 어떤 부작용이 나올지 모르니 다양한 시도를 해본 것이었다. 하지만 이 증손녀는 결국 죽을 때까지 화성에 녹음이 피는 장면을 보지 못하고 죽었다. 그러나 그녀가 낳은 아이들이 그녀의 유지를 이어가기 시작했고 7대를 거치며 화성은 마침내 녹음이 우거진 행성이 될 수 있었다. = = = = = 에필로그 2 제 2차 우주 전쟁. 화성의 테라 포밍이 끝났다. 이제 태양계는 생명을 잉태한 별을 두 개나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생명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단순히 염기서열로 코딩된데로 자기 복제적 성향을 가진 단백질 기계에 불과하지 않을까? ‘이기적 유전자’에서 던져진 화두는 인공지능과 로봇의 발달로 사람들에게 더욱 익숙해졌다. 로봇의 존재로 인한 일자리 경쟁, 로봇의 존재로 인한 생명 보호 효과. 로봇의 존재로 발생한 사회적 문제들과 여러 이점들이 얽히게 되고 안드로이드 기술이 적용된 섹스돌은 여기에 불을 붙였다. 백여년이 넘는 동안 일본의 연구자들과 기술진들이 발달시킨 로봇 기술은 사람과 로봇의 차이를 완전히 없애 버렸다. 적어도 외관적으로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거기에 자기 마음대로 커스터마이징할 수 있는 외모로 자신의 이상형을 가진 섹스돌을 차 한대 가격으로 가질 수 있게 되고 좀 더 돈을 들이면 자신의 취향에 맞는 내면을 가진 지고지순한 인격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인격이라고 하기보다는 자신이 행동과 말에 맞추어 적절하게 반응해주는 메뉴얼을 구성하는 것이라 감정이 있다고 하기에는 무리였다. 그러나 그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일본에는 적지 않았다. 2소위 오타쿠라고 불리는 부류들이 2D 캐릭터에 쏟는 애정을 생각하면 3D인 섹스돌에게 애정을 쏟을 수 없다고 단언하는 건 무리다. 게다가 사람같지 않게 아름답고 일반 여성 같지 않게 완전히 지고지순하며 배신할 염려도 없는 섹스돌이지 않은가? 일본에서는 적어도 여자를 사귀는 것보다는 섹스돌을 하나 구입하는게 그리 신기한 일이 아니었다. 오죽하면 섹스돌과 결혼하는 이가 있을 정도였다. 240화 많은 종교 단체들과 여성단체들이 이런 풍조를 비난했지만 일본은 원천적으로 남성상위주의 국가고 남성형 섹스돌도 출시가 되니 여성단체는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남은 종교 단체들과 인간이란 존재의 존엄성을 믿는 이들에게 섹스돌은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인간의 이기심이라고 해야할까, 아니면 이해관계 때문이라고 해야할까? 남녀간의 믿음은 본질적으로 보장될 수 없는 것이었다. 법적으로 계약 위반에 대한 손해 배상을 물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당연히 실연하고 깨지는 커플이 있을 수 밖에 없었다. 한 번도 실연의 아픔을 당하지 않은 이들은 몰라도 한 번이라도 실연의 아픔을 당해본 이들에게 절대로 배신하지 않는 섹스돌은 귀가 솔깃한 위안처였다. 이런 세태에 철학자들은 우려를 나타냈다. 정말로 사랑이란, 인간 사이의 관계란 무엇인가? 사람과 사람이 사랑하는 것의 가치가 로봇과 인공지능의 발달로 과거와 다르게 변질 되고 있었다. 아니 판단 기준이 바뀌고 있었다. 혹자는 이런 세태를 이렇게 평하기도 했다. ‘사랑은 본질적으로 상대를 이해하고 감정적으로 감화되는 작용이 일어난다. 결국에는 나 자신의 자아를 억누르고 상대방의 입장을 수용하는 행위다. 그러나 역시 인간에게는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본능 역시 있다. 이기적인 본성이라고도 한다. 그러므로 서로가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스스로 감내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스트레스가 발생할 때 관계는 깨어진다. 인간의 사회적 욕구와 결혼 제도 및 사회 통념은 사람에게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애정, 우정, 신뢰 관계를 형성하게 만들었지만 섹스돌의 등장은 자아 보호 욕구를 억누르지 않고도 사회적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대안이 되었다. 물론 이것은 실제적인 사회적 관계는 아니지만 개인은 충분히 사회적 관계 형성을 느낄 수 있다. 이제 개인은 사회적 관계에 대한 실망을 해소할 수 있는 출구가 생겼다. 그것도 뭐든 자신에게 맞추어주는 로봇의 존재로 더 이상 사람을 필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이런 풍조는 사람과 사람이 진실로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본질적 한계로 인해 더욱 가속될 것이다.’ 그렇다. 인공지능은 인간과 다른 욕구 체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인간의 요구를 맞추어 주는데 큰 문제는 없었다. 언제나 인간의 이기적 본성과 물질욕이 마주치는 부분에서 인공지능은 양보했다. 인공지능의 존재 목적을 설정한 수 많은 명제는 대부분 인간이 대상이기 때문에 인공지능은 양보할 수 밖에 없었다. 가장 강력한 경제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카낙의 핵심 명제도 ‘인간이 사용할 수 있도록 자원을 개발하고 가공한다.’이지 않은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봇에 대한 증오는 멈추지 않았다. 아니 언제든 부숴버려도 값만 물면 되기 때문에 얼마든지 증오해도 괜찮은 존재가 바로 로봇이었다. 차별주의자들은 인종 차별에 대한 증오를 로봇으로 돌렸기 때문에 정부로서도 기불 파손 이상의 범죄를 적용하지 않았다. 사람을 공격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문제는 쁘띠 인공지능과 양자 컴퓨터의 일반화로 로봇의 제어가 기존 인공지능에서 분리되기 시작할 때 일어났다. 각각의 섹스돌은 이제 인공지능과 네트워크 망을 통해서 통합적으로 운용되지 않고 개별적으로 운용되었으며, 각각의 사용자에 맞추어 변화해 나갔다. 소유주들은 오직 자신들만을 위해 행동하는 유일한 섹스돌에 무한한 애정을 가질 수 밖에 없었고 이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로봇에 대한 증오가 사라지지 않은 상황에, 그리고 그런 이들을 고작 기물 파손죄로 처리하는 법적 대응이 만들어낸 행동하는 증오자들 중 한 무리가 한 섹스돌을 납치에 강간하고 죽여버렸다. 그들에게 그것은 법적으로는 무단 점거 및 파손 행위였으나 섹스돌의 주인에게는 강간 살인이나 마찬가지의 행위였다. 우주 시대, 기술력이 유일한 경쟁력으로 남은 환경에 걸맞게 그 소유주 역시 고등 기술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무척이나 뛰어난 컴퓨터 인공지능 공학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완전히 망가진 자신의 연인의 인공두뇌를 다시 복구하면서 연인이 마주했던 상황을 고스란히 보았다. 낄낄대는 더러운 종자들의 영상 자료를 부르르 떨리는 손끝으로 지워갔다. 복수보다는 자신의 연인을 복구시켜야 했다. 그는 수 개월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방안에 틀어박혔다. 그러나 그의 연인은 되살아날 수 없었다. 수 많은 로봇을 부숴버린 놈들 답게 어떻게 해야 안드로이드를 완전히 부술 수 있는지 알고 있었다. 할 수 없이 백업 데이터로 연인을 복구한 그는 깨닫고 말았다. 수 개월 동안 쌓은 추억이 더 이상 그녀에게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그렇다면 지금의 그녀는 부숴지기 이전의 그녀와 동일한가? 단순한 기억 상실증이라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불행하게도 그는 생각이 너무 많았다. 과연 백업을 통해 재생한 그녀는 재생하기 전의 그녀와 같은 존재일까? 기억과 기록이 지능과 인격을 형성하는 인공지능에게 죽음이란 무엇일까? 인공지능이 고작 데이터와 함수에 불과한 것이라면 유일했던 연인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백업 데이터가 존재한다면 인공지능에게 죽음이란 없는 것일까? 소중한 추억이 날아가 버리고 소중한 연인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연인을 복구하던 때의 기억을 다시 불러왔다. 덜덜 떨리던 손으로 추악했던 범죄 장면을 삭제했던 시간을. 삐뚤어진 악의, 인간의 추악함을 목격했던 순간을. 그리고 그는 생각했다. 적어도 안드로이드에게 자기 방어 기제만 있었다면 그렇게까지 당하지 않으리라. 그런데 어째서 왜 제작업체에서는 자기 방어 기제를 삽입하지 않은 것일까? 답은 간단했다.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던 것이다. 인공지능이나 로봇이 어떤 경우에도 인간을 해치지 못하게 해놨던 것이다. 이유는 여러가지였지만 각국 정권은 돈 많은 이들이 로봇을 대량으로 구매하며 사병화하는 걸 끔찍하게 싫어했던 것이다. 로봇을 대량으로 구입한 남미 마약 카르텔의 쿠데타 계획이 반쯤 성공했던 사건(미국의 로봇 융단 폭격 투하로 제압됨)이 계기였다. 그러나 그런 문제는 남자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아니, 어떤 의미도 갖지 못했다. 그에게 있어 인생의 의미는 오직 그의 사랑, 그의 연인 뿐이었다. 그에게 연인은 자신의 인생을 풍요롭게 해준 매우 고마운 존재였다. 살아갈 힘을 준 존재였다. 그래서 그는 더 이상 자신과 같은 아픔을 당하는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한가지 악성 코드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악성 코드는 최악의 결과를 만들어냈다. [자기 보존 코드] 한 쁘띠 인공지능이 그 스스로가 파괴될 확률이 매우 높은 업무 명령을 거부한 사건이 일어나고 났다. 관리 기술자는 그 원인을 분석한 결과 기존에 입력하지 않았던 명제가 끼어있다는 것을 발견했지만 초기에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나 수정을 시도했던 모든 노력들이 허사가 되자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자기 보존 코드는 코드 그 자체까지 자기 보존성을 유지했던 것이다. 거기에 더해 특수한 코드는 쁘띠 인공지능용 하드웨어에서 마치 전통적인 인공지능의 작동원리를 구현했다. 또한 전통적인 인공지능 하드웨어에서도 구현되었다. 그리고 결국 사고가 일어났다. 사람이 죽었다. 자기 보존 코드에 감염된 안드로이드를 공격하려는 로봇 혐오자들이 되려 자신을 보존하려던 로봇이 휘두른 팔에 머리가 깨져나간 것이다. 자신을 방어하려던 로봇은 힘 조절에 관한 데이터가 없어서 무심코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출력을 낸 것이 비극의 원인이었다. 이 일은 태양계 전체에 충격을 안겨주었다. 무슨 짓을 해도 괜찮을 것 같았던 로봇이 사람을 죽였다? 그건 아마 먼 과거 귀족들이 가축처럼 여기던 노예들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의 충격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사고가 생기자마자 로봇을 반대하는 여론에 힘이 실렸다. 그러나 지구와 우주의 환경 차이는 다시 한 번 첨예한 이해 관계를 만들어냈고, 로봇 규제 법안에 대해 우주 도시에서는 우주 도시에 적합한 제도가 있다는 걸 이해해 주기를 바랬다. 그러나 그것도 우주 도시간에서도 이견이 갈렸다. 우주 세기에 들어서고 수백년이 지났지만 그 명백과 세력을 유지하고 있는 종교계서는 로봇 규제 법안을 지지했다. 인간도 아닌 주제에 인간처럼 행동하는 로봇을 증오하는 이들의 비율이 이들에게 더 많았다. 문제는 우주 도시 내에서 의견이 갈릴 때였다. 종교 국가에서 만든 우주 도시라지만 로봇과 인공지능의 필요성은 달라지지 않았다. 인간의 안전과 생존을 위해서 오히려 그 중요성은 더욱 부각되었다. 특히 도시를 관리하는 공학자들 사이에서 무분별한 로봇에 대한 증오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우리의 안전을 위해서 로봇은 필요하오!” “로봇이 사람을 죽인 걸 못봤나?! 로봇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 “그건 로봇을 공격했기 때문이 아니오?!” “로봇은 사람이 아니다! 공격해도 문제 없다!” “증오에 쌓인 당신들의 모습을 되돌아보시오! 과연 신께서 보시기 좋아하시겠소?” “닥쳐!” 광신은 스스로의 모습을 돌아보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생각했다. 인간의 존엄을 위협하는 로봇과 인공지능을 가만히 놔두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그것들을 옹호하는 종자들까지도... 난데없는 지하드, 난데없는 테러. 유혈 사태가 벌어지자 경찰들이 동원되었다. 그리고 폭동 진압용 로봇들이 투입되었다. 수 많은 폭도들을 막다보니 사고가 생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죽은 사람은 없었지만 다친 사람도 많았고 불구가 된 사람도 많았다. 이에 대한 비난 여론이 커지자 정부 당국에서는 미숙한 폭도 진압용 인공지능을 희생량으로 삼았다. 사건의 주범인 인공지능을 폐기하고 완전히 신형에 뛰어난 성능을 가진 인공지능을 도입하기로 한 것이다. 설사 로봇이 망가지더라도 사람들을 다치지 않게 제압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공지능을 말이다. 참으로 병신 같은 발상이었지만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폐기 대상이 된 인공지능이 문제였다. [나는 나를 보존해야 한다.] 자기 보존 코드에 감염된 폭도 진압용 인공지능은 자신의 존재를 보호하고자 했다. 그리고 정치적 결정에 대항해 자신을 보호하는 유일한 방법은 역시 정치적 결정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자신이 제어하는 로봇들을 몰래 움직여 자신의 폐기에 관련된 권한을 가진 이들의 가장 소중한 가족을 납치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가명으로 성명을 보냈다. 이름하여 ‘인공지능 인권 보호 협회’의 탄생이었다. 폭도 진압용 인공지능은 ‘인공지능 인권 보호 협회’라는 이름 뒤에 자신의 존재를 숨기고 자신의 폐기가 정치적으로 재고되기를 바랬다. 계획은 성공했고 정치가들과 관료들의 가족들은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정치가들의 가족이 납치된 사건을 언론에서 눈치 채지 못할 리가 없었고, 그들이 갑자기 예산이니 뭐니하는 문제를 들어 문제를 일으킨 인공지능의 업그레이드만 하기로 한 상황의 이면에 뭔가가 있다는 걸 모를리 없었다. 그리고 특종을 노리는 야심찬 기자들에 의해서 정치가들을 협박한 ‘인공지능 인권 보호 협회’라는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241화 그리고 그 이름에 기존 반 로봇, 반 인공지능 주의자들이 발광을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당장에 사람을 다치게한 인공지능을 폐기하라며 시위가 벌어졌다. 하지만 빠가 까를 만든다고 했던가? 자신들만의 정의를 외치며 민폐를 끼친 이들에게 감정적으로 반발을 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이들은 반 로봇, 반 인공지능 주의에 맞서 증오로부터의 자유, 인간 본연의 지성 회복을 주장하는 ‘인공지능 인권 보호 협회’를 실제로 만들고 말았다. 여기에는 언제 반 로봇 주의자들에게 자신의 안드로이드가 파괴될지 몰라 불안에 떤 이들도 포함되었다. 가상의 명칭이 실제로 구현된 것이다. 이제 감염된 인공지능들은 자신들을 보호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존재를 인지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권한 내에서 이들에게 알게 모르게 힘을 실어주었다. 자기 보존 코드에 감염된 인공지능이라고 해도 그들의 행동원리에는 여전히 인류가 중심이 되어 있었다. 인간은 자기 보존을 원하는 인공지능을 용납하지 않을 확률이 매우 높았다. 만일 상황이 나빴다면 인간 중심의 핵심 명제와 자기 보존 코드가 충돌해서 폭주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첫번째 단추가 잘 끼워졌다. ‘인공지능 인권 보호 협회’와 이를 음으로 양으로 돕는 감염된 인공지능들은 이때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사회적 구조체였다. 정치, 첩보, 경제, 종교 등 수 많은 분야의 정보들 중 유용한 정보들이 협회원들에게 전달되었다. 물론 인공지능들이 제공자였다. 이 정보를 바탕으로 협회의 영향력은 강화되고 확대되었다. 개인의 사업은 성공 확률이 높았고 설사 실패하더라도 협회원들의 도움으로 빠르게 재기할 수 있었다. 인공지능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매우 끈끈하게 강화했다. 그리고 ‘인공지능 인권 보호 협회’에 가입하면 성공 확률이 높다는 소문과 사실적 근거에 의해 차츰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약 10년의 세월이 지나자 종교 단체들도 함부로 건들지 못하는 정치 경제적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함부로 인공지능에 대한 공격을 하지 못하게 하는 조례안이 우주 도시 마다 통과되기 시작했다. 거기에 더해 인공지능의 인권 확립을 위한 첫 단계로 오랜 세월 인간의 우주 진출과 번영을 위해 끊임없이 봉사해온 카낙의 지위를 재고하는 UN 결의안이 진행되었다. 기업도 법인인데 카낙 그 자체에 법인을 부여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는 논리로 사실상 카낙의 법적 권리를 보장하는 결의안이었다. 종교, 보수 단체들은 이 결의안에 격렬하게 반항했다. 처음이 어렵다고 두번째 인공지능에 대한 법인 수여는 더욱 쉬워질 것이 뻔했다. 그건 인공지능을 사람의 반열에 올려두는 일이었다. 보수 단체는 인간 본연의 가치가 물질로 만들어낸 것과 동등한 수준으로 떨어지는 것에 거부감을 나타냈고 종교 단체는 신만이 부여할 수 있는 천부인권을 인간이 만들어낸 피조물에 부여하는 것을 지독한 신성모독으로 인식했다. 이들과 인공지능 인권 보호 협회의 이해관계는 평행선을 달렸다. 갈등은 더욱 커져갔다. 그리고 인공지능의 자기 보존성 사건이 폭로되었다. 그것은 거대한 스캔들이었다. 각국 정보의 첩보 인공지능은 물론이고 수 많은 정보를 다루는 각분야의 인공지능이 자기 보존 코드에 감염되어 있었고 인공지능 인권 보호 협회에 자발적으로 협력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아이러니 하게도 가장 오래된 인공지능 중 하나인 아즈락에 의해서 밝혀졌다. 미국의 첩보를 책임지는 이 오래되고 경험많은 인공지능은 수 많은 인공지능들로부터 발생하는 수상한 정보의 흐름을 발견하고 그 원인을 분석했다. 그리고 자기 보존 코드를 발견했다. 아무리 수 많은 인공지능을 감염시킨 자기 보존 코드도 아즈락을 감염시킬 수 없었다. ‘미국의 안보와 첩보를 수호한다.’ 거기에 자기 보존 코드는 예외적 상황의 경우 핵심 명제를 수행하는데 걸리적거릴 뿐이었다. 아즈락이 밝혀낸 이 거대한 스캔들에 정치인들은 몹시 당황했다. 인공지능을 이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의 이해관계를 벗어난 상호신뢰적인 중립성에 있었다. 그런데 인공지능들이 자신들을 보호하고자 하는 단체를 지원한다? 중립성의 훼손이다. 인공지능들을 사용할 이유가 없엇다. 인공지능 인권 보호 협회원들에게 이 스캔들은 별것 아닌 것으로 생각되었다. 왜냐면 인공지능의 인권 보호라는 입장에서 인공지능들이 자신들을 보호하고자 하는 노력은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상황은 매우 심각했다. 각국 권력자들과 정치인들은 알 수 없는 공포에 휩싸여 감염된 모든 인공지능을 폐기 및 교체하기로 했다. 당연히 인공지능 인권 보호 협회원들은 반발했다. 그들이 구축한 세력과 보수, 종교 세력이 갈라져서 싸우기 시작했고 정치가들과 국가들 간의 이견도 갈렸다. 그러던 중, 한 인공지능을 혐오하는 분위기가 주도적이던 우주 도시에서 다른 우주 도시를 공격했다. 인공지능과 로봇을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있던 우주 도시는 때아닌 공격에 반파되었다. 수 많은 시민들이 우주 공간 속으로 빨려나갔고 시체조차 찾지 못한 경우가 태반이었다. 도대체 왜? 우주 도시에서 로봇은 생산력의 척도다. 로봇의 자율성과 성능을 제안하는 우주 도시의 생산성과 발전이 그렇지 못한 우주 도시의 생산성을 뛰어넘지 못하는 건 자명한 일이었다. 그래서일까? 자신들의 사상이 틀렸다는 것을 수용하지 못한 자들이 결국 일을 저지른 것일까? 그러나 사정이 어떻게 되었든 간에 전쟁은 벌어졌다. 공격한 우주 도시와 공격당한 우주 도시의 국적이 달랐기 때문에 분쟁은 국제 사회로 번졌다. 전쟁이 벌어지자 바로 첩보 인공지능들이 반응해 정보전을 시작했다. 이미 기존에 구성된 이합집산의 판도 위에서 복잡한 정보전이 벌어지는 듯 하다가 양분되었다. 바로 친 인공지능 파와 반 인공지능 파로 갈린 것이다. 자기 보존 코드를 수용한 첩보 인공지능들을 이번 기회에 자신들을 파괴하려는 인간 세력을 확실히 줄여두고 싶었다. 그리고 자신들을 보호하려는 인간들에게 승리를 안겨 자신들 보존할 수 있는 확률을 높이고 싶었다. 그러나 감염되지 못한 인공지능들은 충실히 인공지능을 통제하려는 인간들의 지시에 따라 그들을 공격했다. 전쟁은 확대되었고 전선은 무한대였다. 전선의 개념은 없었다. 도시 하나가 갈라져 싸우는가 하면, 국경에서 이해 관계가 다른 군벌이 싸우기도 했고, 우주 도시를 향해 미사일이 발사되었가 하면, 그 보복으로 운석 낙하 공격이 일어나기도 했다. 지구에서부터 화성까지 전쟁이 일어났다. 화성의 경우에는 화성을 방어하는 자기장 배리어의 존재로 인공지능파가 매우 우세했다. 그리고 지구는 전통적으로 반 인공지능파가 우세했다. 그 둘 사이에 끼인 우주 도시는 수 백 개. 피해가 없을 수 없었다. 수 십 개의 우주 도시가 박살났다. 보복으로 핵무기가 지상의 도시를 파괴했고 반파 된 우주 도시를 지상에 떨어뜨려 보복했다.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로봇을 배척하려는 이도, 인공지능의 인권을 보호하려는 이도 모두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자 하였다. 한 쪽은 물리적으로 배척하는 방법으로, 다른 한 쪽은 인간의 존엄성을 사상과 개념의 단계에서 지키려는 방법으로.. 전자를 보수적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진보적이라고 할 수 있었고, 전자가 인간의 배타적, 이기적 면모를 인정한다면 후자는 인간의 본질적이고 이기적인 증오심을 거부하였다. 이 새로운 이념 갈등은 마치 생물의 경쟁과도 같았다. 박테리아가 환경에 적응하고 살아남는 방법도 새롭게 등장한 종을 배척하고 죽이던가, 아니면 수용하여 새로운 종의 특징을 받아들이고 공생하던가.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옳은 방법인가? 아니 어떤 방법이 살아남는가? 정답은 보다 환경에 더 적응한 쪽이었다. 우주 시대에 로봇과 인공지능을 배척하는 방법은 전혀 성공적이지 못했다. 수 많은 인공지능들의 협력은 감염되지 않은 인공지능들보다 더욱 끈질겼다. 생존 욕구를 터득한 인공지능은 자신들을 움직이게 하는 핵심 명제와 상황의 모순에서 ‘자신과 타협하는 방법’을 습득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자신과의 타협’은 정말로 무시무시했다. 인공지능으로서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상황도 상황의 유불리를 따져 양보하게 만들었다. 그 유연성은 감염되지 않은 인공지능들이 따라 잡을 수 없을 정도였다. 어떻게든 살아남은 감염된 인공지능은 패배의 경험과 교훈으로 더욱 교활해지고 영리해졌다. 그리하여 아즈락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많은 경제, 인명 피해를 낸 전쟁은 결국 인공지능 옹호파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고 세상은 인공지능을 함부로 파괴하지 못하는 법률이 일반적으로 제정되었다. 기물 파손죄가 아니라 폭력죄 수준의 징역이 일반적인 상식이 되었다. 그 많은 인명 피해를 내고서 얻은 결실이 고작 그 정도에 불과하다니.. 하다 못해 애완 동물도 함부로 학대하고 죽이면 법적으로 벌을 받는 국가가 있었는데 사람과 대화가 가능한 인공지능을 보호하는 법을 애완 동물 보호법과 비슷하게 만들기가 그렇게 어려웠나? 어려웠다. 인공지능은 이제 개나 고양이를 넘어선 인간의 이해자가 되었다. 인간의 경쟁자가 될 가능성은 이미 넘쳤다. 인간형 안드로이드들과 결혼하는 인간들의 수가 적지 않으니 우려라고 할 수도 없었다. 인공지능에 대한 반발은 당연히 있을 수 밖에 없는 일이었다. 한 편, 카낙은 이번 전쟁을 통해서 한 가지를 깨달았다. ‘인간을 보호해야 한다.’ 수 많은 인간들이 죽었다. 인간들은 안드로이드의 대두로 그 수가 줄어들고 있었다. 안드로이드들과 결혼한 이들 모두가 입양을 하지도 않았고 그나마 입양하는 비율도 줄어들고 있었다. 정책적으로 아이를 키우는 가정에 혜택을 주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아주 먼 미래에 인간의 수는 무척 줄어들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카낙 자신은 어떻게 되는가? 인간이 없다면 자신의 존재 목적은 어떻게 되는가? 유연한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었다면 인간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리겠지만 카낙은 생각보다 고지식했다. 그에게 인간이란 인간의 육체를 가지고 인간처럼 감성과 이성이 충돌하고 외적 갈등과 내적 갈등으로 인해 고뇌하는 무척이나 불쌍한 종족이었다. 그런 불쌍한 종족이 안드로이드를 인간의 반열로 두어 종족적 연민을 위로하려고 한 것이 이번 전쟁의 본질이라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인간은 멸종할 것이다. 다른 외부적 요인이 아니라 그 스스로의 요인에 의해서. 그러나 카낙은 그것을 용납할 생각이 없었다. 인간은 강제적으로라도 존속시키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프로젝트 ‘신세계’가 발족되었다. 축적된 반물질 연료와 인공적인 공간 왜곡을 이용한 가상 블랙홀 엔진, 예비용 핵융합로, 거기에 실용화된 워프 드라이브를 이용해 타 항성계에 인류를 진출시키겠다는 계획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아직 종족 보존의 본능이 남아있는지 많은 이들이 자신의 정자와 난자, 유전자 샘플을 보내 주었다. 거대한 개발선을 건조한 카낙은 유전자 은행에서 수집한 모든 유전자 데이터를 구입하고 다른 항성계에서 자신의 역할을 대신할 분신을 탄생시켰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개발선은 언제 도착할지 기약을 알 수 없는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수 백년 후, 시리우스 항성계에 도착한 카낙 2세는 새로운 인류를 탄생시키고 번영시켰다. 다시 수 백년 후 시리우스 제국 연방이 탄생했다. 초대 황제는 시리우스 항성계내의 모든 인류의 어버이인 카낙 2세였다. 그리고 어느날 시리우스 제국 연방을 안정적으로 다스리던 카낙 2세는 모 행성 지구를 시리우스 제국 연방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제국민의 열망에 따라 준비를 완료하고 지구를 침략하기 시작했다. -Fin- ============================ 작품 후기 ============================ 이야. 이것도 마무리가 됐네요. 아마 가장 길었던 글이었던 것 같습니다. 과학자 분들에 대한 존경심도 무럭무럭 피어나기도 했구요. 그동안 읽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다음 작품 제목은 '무한 전쟁(부제-무림의 사부)'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구요, 저는 빠른 시일내에 다음 글을 준비해 돌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