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sool BackUp Service http://dasool.com/ ※ 본 문서는 저작권법으로 보호 받습니다. ※ 유출 및 무단전재 시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 달달하게의 소설입니다. ※ 함부러 지은이의 이름을 바꾸거나 내용을 바꿔서 배포하지마세요. =================================================== =================================================== 제목 : 공작의 소녀 =================================================== ================================ # 1편 # 소제목 : prologue ================================ 똑딱똑딱똑딱 언제부터 일까, 정확히 1시 50분부터 시작되는 시계의 분침소리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신경 쓰지 않으려야 쓰지 않을 수 없는, 정확한 시간에 침입하는 낯선 자가 있었기에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담담하게 흘러가는 괘중시계를 쳐다보았다. “젠장, 벌써 시간이 그리 되었던가?” 그는 고개 숙여 읽던 책을 신경질적으로 덮은 체 숙여 읽느라 찌푸둥했던 목을 좌우로 돌리기 시작했다. 뿌드득 뿌드득 꺾이는 뼈소리가 이상하게도 그의 맘에 드는 것인지 입가에 조금 잔잔한 미소를 짓던 그는 다시 미소를 지운 체 천천히 벽에 걸려있는 큰 시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는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5, 4, 3, 2, 1 ……. "……또 온 건가." "내가 묻고 싶은 말이야! 아아악 짜증나!!" "새벽2시. 질리지도 않는가. 도대체 이곳에 온 목적이 뭐지." "알면 내가 이곳에 두 번 다시 안와 썅!! 또 이곳에 3시간동안 머물러야되? 오 안 되지 안 돼, 내 잠 잘 시간을 물어내라고!" "……." 새벽2시. 공작 가에 이상한 소녀가 넘나들기 시작했다. ================================ # 2편 # 소제목 : 11.01.01. 그 여자의 일기 ================================ 나는 쌜쭉하게 앉아서 연필과 노트를 바르게 고쳐 잡았다. 그리고 그의 눈짓이 내 노트를 가리키자 난 핏, 하고 반항하는 듯이 행동하면서도 그의 지시에 따라 노트에 일기를 적기 시작했다. 바로 오늘부터 생긴 이 기이한 일들. 그와 난 유행이 지난 교환일기를 갑작스럽게 하게 되었다. 바로 오늘부터. - “3!” “2!” “1!!” “HAPPY NEW YEAR!!”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름과 동시에 멀리서 종이 댕댕댕, 울리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난 친구들과 얼싸안고 폴짝폴짝 뛰며 2011년이 다가왔음을 기쁘게 몸으로 알리었다. 누군지도 모를 사람과 갑작스럽게 껴안아도 서로 미소를 지으며 이해를 할 수 있는 이 시간은 바로 새해 2011년 1월 1일 첫 시작을 알리는 날. 난 친구들과 이미 깜깜해져버렸지만 사람들이 모인 광장을 환하게 비추고 있는 스포트라이트에 눈이 부셔 살짝 눈을 찡그렸다 이내 친구가 날 격하게 흔들자 난 그 빛을 바라보던 것을 멈추고 친구를 바라보았다. “새해 복 많이 받아!” “너도!” 반갑게 서로 새해인사를 주고받는 우리의 얼굴엔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비록 상황이 상황인 만큼 핸드폰을 꺼내어 보지는 않았지만 핸드폰엔 새해인사로 인한 문자들이 수십통 와 있을게 틀림없었다. 굳이 친구들과 함께하는 이 즐거운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던 난 휴대폰을 열어보지 않은 채 열심히 환호성 지르고 있는 친구들을 보며 빙그레 미소 지었다. 드디어 오늘로써 중학생이라는 딱지를 때게 되었다. 17살. ‘중딩’이라는 이름하에 서럽게 당하던 예전의 설움이 벌써 수십 년 전 일이 된 것만 같아 입가에서 웃음이 그치질 않았다. “새해 소원 빌어야지! 넌 뭐 빌 거야?” 즐겁게 방방 뛰던 친구들 중 한명이 돌연간 뜀박질을 멈추고 내게 고개를 돌렸다. 열심히 뛰었는지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볼이 발그랗게 물든 친구의 귀여운 얼굴을 보며 풉, 하고 웃음이 나왔지만 그녀가 소원을 보채자 난 하늘을 바라보았다. 별 한 점 없는 새까만 밤 하늘 이였지만 왠지 오늘따라 마음에 들었다. 꼭 오늘만큼은 행운이 뒤따를 것만 같아 난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소원이라…….” 내가 뜸을 들이며 그녀의 말에 대답하기를 회피하자 그녀는 볼을 부루퉁하게 부풀리면서 내 어깨를 거칠게 흔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의 행동이 정말로 살의를 담은 행동이 아니었기에 난 친구의 행동에 난 양손을 들고선 항복하는 자세를 취했다. “그만, 그만! 알았어. 내 소원을 말하면 될 거 아냐!” 내 웃음기어린 짜증난 목소리에 방긋 웃던 친구가 내 어깨를 살며시 놔 주었다. 겨우 그녀의 손아귀에서 자유롭게 되자 난 그녀를 살짝 째려보고선 입술을 열었다. “……난 말이야, 이번 해엔 특별한 만남이 있었으면 좋겠어.” “특별한 만남?” 내 말에 질문했던 친구가 궁금증을 표하자 옆에 있던 친구가 그 친구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바보야, 특별한 만남이 뭐겠냐? 남자달라는 거지.” “아항!” 난 친구의 말에 볼을 새빨갛게 물들였다. 그런 뜻으로 말한 것이 100% 아니라고는 답하지 못했지만 어찌되었든 아직 첫사랑도 못해본 나에겐 민감한 소잿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야! 그런 거 절대로 아냐!” “아니긴~? 지금 너 볼 새빨갛게 물든 거 알아?” “야야, 예빈이 얼굴 잘 익은 홍시 돼 버리잖아. 그만해~ 오죽 외로웠으면 남자를 달라고 하겠냐?” 옆에서 말리던 친구도 결국 말리는 척 하다 은근히 내 속을 긁기 시작했다. 그에 발끈한 내가 그녀를 잡아다니기 위해 손에 들고 있던 공책을 높이 들어 올린 체 그녀를 때리기 위해 다가서자 그녀는 재빠른 다람쥐처럼 도망 다니기 시작했다. “야! 거기서지 못해?!” “너 같으면 서라고 서겠냐? 절대로 못선다. 메롱!” 깔깔깔 거리면서 수많은 인파들 사이로 쏙쏙 잘 숨어드는 그녀를 바라보던 난 이내 짓궂게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잡기위해 쫓아다니기 시작했다. 수많은 인파들 사이로 어지럽게 다니던 난 갑작스럽게 생각이 나 손목시계를 쳐다보았다. [AM 1:59] “헉!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된 거야?” 새해 복 많이 받아라고 한 게 10분도 안되었던 것 같은데, 벌써 지난 시간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난 친구의 이름을 애타게 불렀다. 더 이상 이곳에서 시간을 지체했다간 집에 가는 시간에 늦어버린다. 엄하진 않지만 집에 늦게 들어오는 걸 끔찍이 싫어하시는 엄마에게 겨우 얻은 새벽시간이였다. 그런데 그런 시간을 어기게 된다면……, 난 뒤에 이어지는 끔찍한 상상에 고개를 도리질 쳤다. 안되지 안 돼! 난 인파속을 더욱 더 다급히 헤매며 친구를 찾기 시작했다. - “어?” 순간적으로 눈앞에 많던 사람들이 갑작스럽게 사라졌다. 귓가에 시끄럽게 울리던 사람들의 말소리가 갑작스럽게 사라지자 귀가 적응을 못하기라도 하듯이 웅웅거리기 시작했다. 당황스러운 상황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체 눈만 껌뻑거리고 있는 사이, 귀에 천천히 소리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뎅ㅡ 뎅ㅡ “……괘중시계?” 갑작스러운 괘중시계의 소리에 고개를 돌리는 순간, 난 말문이 막히는 걸 느꼈다. “…아, 아아… 응… 공작님…….” “…….” 자신의 눈앞에 갑작스럽게 놓여 있는 침대 위엔, 두 남녀가 자신을 환영한다는 표시라도 하는 것인지 서정적인 신음을 내뱉으며 뒹굴고 있었다. ㅡ새해 첫 날부터, 눈 제대로 버렸습니다. [교환일기 : 공작 반의 한마디] >나도 당황했으니 피차일반이다. 나 또한, 새해 첫 날부터 너란 아일 만났으니 둘 다 눈 제대로 버린 것이다. 쌤쌤이로 치지. ================================ # 3편 # 소제목 : 제국력542.01.01 그 남자의 일기 ================================ “하하하” “호호호” “……그래서 말이지요.” “호오, 그게 정말 사실이란 말입니까? 그렇다면…….” 화려한 상들리에가 열려진 테라스 문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에 의해 조금 흔들렸다. 거센 바람도 아니었건만 그 무거운 상들리에가 어떻게 흔들렸는지는 잠시 의문이 떠올렸지만 지금 이 무도회에선 나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이 반짝거리며 무도회를 밝혀주는 상들리에 따위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들의 귓속에 들어오는 상대편의 목소리 뿐. 무엇이 자신에게 득이 될 소문일지, 해가 될 소문일지 귀를 쫑긋하게 세운 체 대화에 임하는 그들의 모습엔 무도회를 진정으로 즐겨주는 이는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칼과 화살, 그리고 마법이 난무하는 전투장이 아니더라도 자신을 위협하는 것은 얼마든지 많았다. 대체적인 예가 이 무도회장. 귀족들이 만나서 하는 짓이라고는 떠들고 웃고 과자와 티를 어울려가며 즐기는 것이 다인 것 같아 보이는 그들의 겉은 화려하고 밝고 명랑했으나, 그 속은 그렇지 못했다. 오히려 속 편한 걸로 치자면 단순 노동을 하는 평민들이 더 편하리라. 자신이 언제 이 지위에서 이끌려 내려갈지 고민하는 귀족이나, 이래저래 어떤 사람한테 붙어보아 그 작위를 착실히 올릴 생각을 하는 귀족들이 있는 반면에 자신들의 지위를 확실하게 잡아놓은 이들조차도 경계를 풀지 않는, 안 보이는 칼과 화살이 날아다니는 그런 곳. 난 그들의 그런 모습에 한숨을 내 쉬고는 손에 들고 있던 잔에 출렁거리던 샴페인을 단숨에 입 안에 털어 넣었다. “자자, 혼란스러웠던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 명쾌한 자리인 만큼 다들 즐겨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런 지루한 이야기는 잠시 접어둔 체로 다른 이야기로 진행하시면 더욱 좋으실 것 같습니다만.” 주최자의 큰 소리가 무도회장을 울리자 귀족들은 조금 머쓱한 표정이 되어 그를 바라보았다. 동시에 그가 명령하였는지는 몰라도 멈춰져버린 음악은 그와 같이 분위기를 얼리기에 충분했다. 단순히 주최자가 웃으면서 명령하는 말이 아닌 요구하는 태도에도 사람들이 굳어버리는 이유는 단 하나. 언력. 자신의 지위를 확실하게 챙기는 이들은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 가령 지금 무도회를 주최한 백작은 언변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백작이 하는 말엔 이상하게도 힘이 들어있어 그의 말을 듣고선 묘하게 설득당하는 실력을 가진 이였다. ㅡ그리고, 그의 자리 또한 무시 못 할 정도이니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리는 건 당연한 일이리라. 난 거기까지 생각하고 그의 갑작스러운 말에 고개를 돌려 응시했던 고개를 다시 원상태로 복귀해 창문 너머로 보이는 테라스의 고운 정원을 응시했다. “자, 그럼 이 즐거운 무도회를 계속 즐겨주셨으면 합니다. 아쉽게도 이번 년의 해는 오늘로써 마지막이니깐요. 아, 이제 겨우 5분 남짓 남았군요. 꽤나 작은 사고도 많았던 이번 해를 기념해서 오늘 하루만큼은 정치는 생각지 마시고 즐겁게 노셨으면 합니다.” 그는 말을 끊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악단이 모인 쪽으로 손짓을 했다. “자, 음악을 다시 켜게나.” 그의 손동작과 더불어 말이 들리자 악단들은 언제 음악이 끊겨 냉랭한 분위기를 풍겼냐는 듯이 다시 자신의 악기들의 음을 가다듬고 연주하기 시작했다. 즐거운 음이 다시금 무도회장 안을 휘감기 시작하자 머쓱해져 가만히 있던 사람들 중 하나 둘 씩 말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중요인사들 주위로 모인 것은 변함없었지만. “……휴.” 난 한숨을 쉰 체 테라스 밖으로 나왔다. 지긋지긋하다. 나 자신의 작위 때문에 억지로 불려 나오는 것 또한 지쳐간다. 집안 따위, 아무렇게나 되었으면 좋겠는데. 정작 그 작위에 편안히 생활하는 내 자신이 혐오스러웠기에 난 공작가에 오는 초대장을 순순히 받으면서도 그들과 어울리지 않았다. ‘겉을 맴도는 공작’ 그것이 날 칭하는 말이라고 세간에서 수군거려도 난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 말이 오히려 맞는 말이었기에. 사람이 없는 한적한 테라스. 주요 인사들은 따스한 무도회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들을 따르는 귀족무리 또한, 그들이 안으로 들어갔기에 시끄러울 걱정은 없었다. 비밀거래를 한다거나 비밀스러운 대화를 하지 않는 이상, 그들이 이 평화로운 곳에 나오지 않는 다는 것을 알기에 난 난간에 편하게 기대었다. 닫힌 테라스 문 사이로 들어오는 음악. 은은하면서도 명쾌한 음악소리가 귓가를 타고 들어가자 난 눈을 살며시 감았다. ……이번 무도회는 이렇게 시간을 때워도 나쁘지 않겠다, 라고 생각한 나였다. - “ㅡ공작님.”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누군가 날 부르는 목소리에 난 감아있던 눈을 지그시 떴다. “누구십니까.” 정중하지만 목소리에 가시를 품은 체 말을 하며 고개를 돌리자, 눈에 보이는 건 과하게 가슴라인이 보이는 한 영애였다. 누구였더라? 내 머릿속을 뒤적이며 그녀에 대한 신상을 생각해보았지만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자 난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고 다시 달로 돌렸다. 머릿속에 그녀에 대한 정보가 없다는 것은 즉,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귀족의 여식일 것. 적당히 대하는 것조차 귀찮았기에 그녀를 무시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ㅡ하지만, “ㅡ!” “공작님…….” 내 등을 껴안는 그녀의 행동에 의해 난 아무런 말도 못한 체 경직되었다. 부드러운 피부가 등을 통해 고스란히 느껴지자 난 눈을 감아 내렸다. 희미하게 코끝을 감싸 도는 술 냄새로 보아하니 꽤나 술을 많이 마셨는 모양 이였나 보다. “ㅡ아이, 공작님……. 쓸쓸하게 왜 여기서 계시나요…….”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았던 내 행동이 애탔나 보다. 약간 투덜거리던 그녀의 음성이 들리더니 손이 대담하게도 내 가슴팍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그녀의 미소 짓는 소리가 들리더니 대담한 손이 셔츠의 단추사이로 파고들었다. 차갑고 손톱 끝이 날카롭기 그지없는 손은 내 가슴팍을 어루만지며 중얼거렸다. “이런 재미없는 곳에서 시간을 때우기 보단, 저와 즐기시는 게 어때요?” “술을 많이 마셨나 봅니다.” 그렇게 중얼거리는 나도 그녀의 행동에 응해 입술을 훔치기 시작했다. 단순하게 서로 몸을 요구하는 본능적인 행동에 난 흥분이 일기 시작했다. 어차피 이 테라스에 있는 시간도 지겨워질 참이었는데, 잘 되었다고 생각한 난 그녀를 살짝 껴안곤 사람들의 눈을 피해 저택에 마련한 손님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 “…아아, 응 공작님…….” 그녀의 기교어린 목소리가 내 귓가를 파고들었지만 난 입가에 미소를 지어낼 순 없었다. 마음 없이 합해지는 몸 따위에 기쁨과 즐거움이 있을 리 없었다. 오로지 본능만을 요구할 뿐. 어차피 먼저 요구해 온 것도 그녀였는지라 뒤처리는 간단할게 분명할 터. 그녀가 더 달궈질 수 있도록 가슴라인이 심하게 파여진 드레스를 살짝 젖히고 맨가슴을 찬 공기에 노출시키자 그녀는 살짝 떨었다. 그런 그녀의 행동에 비웃듯이 입 꼬리를 살짝 올린 난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그녀의 비음이 쇳소리같이 들렸지만, 이 행동을 멈출 생각은 없었다. [뎅- 뎅- ] 괘중시계가 울리자 난 나도 모르게 하던 행동을 멈추고 시계를 보았다. “……벌써 2시인 건가.” 술이 조금 들어간 탓이었을까, 조금 허스키한 목소리가 목을 타고 나왔다. 지금쯤이면 슬슬 무도회가 끝마치고 있겠다는 생각에 이 지루하고도 본능적인 행동을 멈추기 위해 고개를 돌리는 순간이었다. “……?” “……헐.” 그리고 난, 괴상한 옷을 온 몸에 휘감은 이상한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교환일기 예빈의 한마디] >...뭐야 이 일긴. 지나치게 상세한거 아냐?? 그리고 내가 왜 이상한 여자야?! 그때 그 응응응 을 하고 있는 너가 더 이상하단 말이다!!! ================================ # 4편 # 소제목 : 제3자의 눈엔 둘 다 병신 ================================ 순간적으로 눈이 마주친 소녀와 공작은 아무런 말도 못한 체 서로를 응시하기만 했다. 공작 또한 갑작스러운 상황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체 이상한 옷을 걸치고 있는 소녀를 응시하다 괘중시계 소리가 끝남과 동시에 다시 정신을 차리기 위해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하필이면 마주쳐도 이렇게 어린, 그것도 이런 장면을 보였다는 게 조금 수치스러운 그였는지라 그는 이상한 차림의 소녀에게서 눈을 떼 자신의 밑에 깔려있는 여자를 보았다. 역시 술기운 때문일까, 양 볼을 발그랗게 물들인 체 잠들어있는 그녀를 보며 그는 안도감이 어린 한숨을 내쉬었다. 공작은 그녀에게 자신의 재킷을 벗어 과다하게 노출되어있는 그녀의 상체에 덮어주었다. 이로써 한명은 처리. 공작은 여전히 자신을 보고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체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 소녀를 바라보며 답답한 듯이 자신의 타이를 조금 비틀었다. “넌 누구지?” 그의 말에 언제까지고 정신을 못 차릴 것 같던 소녀의 눈동자의 초점이 돌아왔다. 그리고 그의 눈동자 안에 그녀의 상이 맺히자 소녀는 소스라치게 놀래며 두 손을 번쩍 올렸다. “으악! 말을 한다!” “…….” 순간적으로 내뱉어진 그녀의 말에 공작 또한 당황스러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체 그녀를 바라보았다. 기껏 반응을 내보이는 가 싶더니 기껏 해서 말하는 게 ‘말을 한다.’라니. 자신이 그렇게까지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나 싶어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첫 만남이 좀 그렇긴 했지만 자신의 지위는 괜찮은 편이였다. 아무리 중앙귀족으로 활동을 하지 않는다고는 하나, 그는 엄연한 중앙 귀족이었다. 거기다가 자신의 얼굴 또한 자신이 보아도 그럭저럭 준수하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만난 소녀의 어처구니없는 반응에 공작의 얼굴엔 절로 금이 갔다. “……내가 뭐로 보였는지.” 소녀는 그의 말에 번쩍 들어 올렸던 손을 천천히 떨어뜨린 체 고개를 갸웃거렸다. 또 무슨 발칙한 상상을 하는 것일까. 인내심 많은 공작은 소녀의 대답을 기다리기로 결정하고 자신을 유혹했던 영애가 자고 있는 소파 외에 다른 자리에 자리를 잡아 앉으면서 그녀의 입술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그녀의 입술이 열리고 음색이 들리자, 그는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날 뻔 했다. “야동배우?” “……야동배우?” 공작은 그녀의 말에 무언가 울컥하여 일어날 뻔 하였지만 그녀의 말이 무엇인지 몰라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야동배우? 그런 단어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것이었다. 역시, 소녀는 자신의 옷차림만큼이나 신비한 말을 한다 생각하며 그녀에게 말을 이어나갔다. “야동배우가 뭐지?” 그는 꽤나 진지하게 물어보았는데, 정작 소녀는 그의 말을 안중에도 중요시 하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의 눈에 보이는 것들에 정신을 빼앗겨 이리저리 왔다갔다 주변을 탐색하는 다람쥐마냥 도도도도 뛰어다니기에 바빴다. “ㅡ어이.” “와! 이거 진짜? 우와! 레알 신기하다! 뭐지 이렇게 섬세한 것 하나하나까지 다 진짜인 것처럼 세트장을 차린 거 보면 참 영화기술 많이 발전 했단 말이야. 그런데 카메라는 어디 있지?” “……어이.” “어! 이거 진짜 비싸보여! 꼭 진짜 보석 같네! …하지만 세트 소모품이겠지? 쩝, 엄청 진짜 같아 보이는데. 이거 하나 몰래 훔쳐서 보석상 가서 팔아도 모르지 않을까? 큭큭큭.” “…….” “이 여자 분이 저 분 상대배우이신가? 근데 왜 잠드셨지? 아직 야동 다 안 찍으셨어요. 마지막까지 안 갔잖아? 설마 너무 기분 좋아서 뿅 간건 아니죠? 이~봐~요~ 일어나세요. 보니깐 남자 분 빨리하고 싶어 하는 눈치인데 해줘야 되지 않겠어요?” “야!” 결국 참지 못한 공작의 고함소리가 방안을 울렸다. 소파에 자고 있는 여배우의 콧날을 어루만지면서 와 정말 코 오똑하다, 하며 감탄하고 있던 소녀가 깜짝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술에 취해 깨어날리 없는 영애는 오로지 달콤한 잠에 빠져들고 있자 기묘한 기류가 그 둘 사이를 타고 흘렀다. “도대체 언제까지 내 말에 답을 안 해 줄 거냐!” “……에?” 소녀는 자신도 모르게 그의 말에 어안이 벙벙해지며 자신의 목도리를 꾸욱 잡았다. 자신은 열심히 세트장을 구경한 것 밖에 없는데, 아마 그것이 그의 눈에 꽤나 거슬렸는지 그의 미간은 있는 대로 찌푸려져 있었다. 소녀는 당황스러워 하며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렀다. 이럴 땐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 계속해서 이 기묘한 기류가 흐르는 공간을 빠져나가고 싶어 머리를 굴리던 그녀는 이내 자신이 대답할 최선의 대답을 생각해내고 떨떠름한 표정으로 입술을 열었다. “어… 저기, 전 아무런 짓도 안했거든요.” “……?” 갑작스럽게 동문서답하는 그녀의 말에 어안이 벙벙해진 건 그도 마찬가지 이었다. 기껏 해서 자신을 바라보게 한 행동이 그녀의 동문서답을 끌어내다니. 점점 자신이 생각하는 장면과는 다르게 행동이 진행되어가자 그는 점점 화가 치밀어 오르는 걸 느꼈다. “ㅡ그러니깐,” “아, 음 만약 절 야동에 쓸려고 데려왔더라도 그건 소용없는 짓이에요. 절 보세요! 얼마나 유아틱하게 생겼어요. 저 같은 앨 찍어도 별로 안 팔릴 거예요 그 야동.” “…….” 그녀의 횡설수설한 말에 그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도무지 그녀는 자신의 말을 이해하질 못한다. 거기다가 오히려 자신이 아는 단어를 쉴 새 없이 나열하는 그녀에게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겠다고 생각한 그는 자신의 몸보다 한참 어린 그녀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에에……?” 그가 점점 다가가면 갈수록 이상한 소리를 내뱉는 그녀를 바라보며 공작은 입가에 비틀린 웃음을 자아내며 눈을 떴다. 이제 자신과 1센티 남짓하게 남아있는 거리를 바라보며 그는 만족스럽게 미소를 띠며 그녀의 볼을 한손으로 쓰다듬었다. “!” 소녀가 눈에 띄게 경직하는 게 눈에 보였지만 공작은 자신의 행동을 멈출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녀 덕분에 자신의 지루한 시간을 달래던 영애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오우거 대신 오크라고, 그는 뻣뻣하게 굳어있는 그녀의 양 손을 잡아 이끌어 벽에 밀어붙였다. “어라? 지금 이 자센…….” 아까전과 같이 횡설수설한 목소리를 내는 그녀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당황스러워 하자 공작은 그녀의 손을 잡은 손아귀의 힘을 좀 더 가했다. 그리고 그녀와 시선을 맞춘 그는 자꾸만 이상한 소릴 내뱉은 그녀의 입을 막기 위해 자신의 입술을 맞추었다. 그리고 볼을 쓰다듬던 손을 점점 밑으로 내려가 그녀의 가슴이 있을만한 곳에 손을 대었다. 하지만 소녀의 가슴이 자신의 손아귀에 전혀 잡아지지 않자 그는 갸웃거리며 입술을 떼고 소녀를 바라보며 질문했다. “……가슴이 어디 있지?” 썅. 물론 이 소리는 소녀에게 나왔음이 틀림없음을 알려주는 바이다. ================================ # 5편 # 소제목 : 제3자의 눈엔 둘 다 병신 ================================ 순간적으로 입술이 훔쳐진 소녀는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하는 걸 느꼈다. 첫 키스, 인데. 라는 생각만이 새하얀 백지가 되어버린 공간에서 떠돌 뿐이었다. 소중히 하고 싶었던 자신의 첫 키스가 이런 알지도 못하는 야동배우에게 빼앗겼다는 것이 분하고 슬퍼진다는 생각이 들자 그제야 그녀의 사고회로가 빨간불을 키며 긴급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빨간 등이 켜진 것도 잠시, 그의 손이 자신의 가슴에 와 닿자 그녀는 다시 한 번 더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의 말이 나오자 그녀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이성의 말씀에 따라 몸을 움직이기엔, 그의 말은 더 이상 들을 가치가 없었다. 분명, 그에게 반항 할 힘이 없어서 잡혀있던 손목 이였는데. 소녀는 간단하게 손목을 비틂으로써 그의 무자비한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그녀의 손이 자유로워지자 공작은 놀라 소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의 무심한 눈이 소녀의 비장한 눈빛을 한 얼굴을 바라보게 되자 공작은 아차, 싶어서 해명하기 위해 입을 벌렸지만 이미 한번 눈이 훼까닥 뒤집혀진 소녀에겐, 자비란 존재하지 않았다. 그의 손아귀에서 자유로워진 그녀에게 제약이란, 존재하질 않았다. 더군다나 그녀의 앞에 있는 이 빌어먹을 남자는 우습게도 소녀를 아주 약보고 있었기에 그녀가 하려는 행동은 거침없이 진행되어 갔다. 몸을 약간 비튼 소녀는 이내 입가에 비틀린 웃음을 지으며 다리를 뒤로 살짝 빼었다 무릎을 높이 치켜세워 빠른 속도로 올렸다. ㅡ그리고, “~~~~~!!!!” 소녀가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올렸던 다리를 내려놓자 공작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는 걸 느꼈다. 식은땀이 그의 등에서 쉴 새 없이 흘러내리는 걸 느끼자 공작은 더 이상 자신의 몸을 지탱하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공작에게 심심한 위로를. “미친! 변태!! 어떻게 내 가슴을!!!” 소녀는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며 자신의 보호하듯이 가슴 앞에서 팔을 내 뻗어 교차시켰다. 아무리 패딩을 입어도! 아무리 자신의 가슴이 AA컵이라고 해도!! 난, 난ㅡ!!! “나 가슴 있단 말이야, 썅!!” 소녀는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달며 소리쳤다. 자신의 콤플렉스를 건드려서 그런 것일까, 소녀의 얼굴은 화로 인해 새빨갛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모습에 신경 써줄 여유가 없는 공작. 오로지 몸을 웅크리고 자신의 고통에 아파하기에 바빴다. “내 첫 키스인데! 에라이 빌어먹을 자식아!!” 소녀는 화를 참지 못하고 버럭버럭 외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파서 부들부들 떨던 그의 등이 갑작스럽게 멈추더니 자신을 향해 고개를 들자 소녀는 자신도 모르게 다음에 할 대사를 잊어버리고 입을 벌렸다. 고통으로 인해 찌푸려진 미간과 자신을 노려보는 눈빛이 너무나도 강렬해 자신도 모르게 그가 풍겨내는 위압감에 넋이 나가버린 것. 순간적으로 그의 얼굴에 넋이 나가있었다는 자신을 깨닫자 소녀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재빨리 휘저었다. 말도 안 된다! 저런 변태자식한테 넋이 나갔다는 자신이 부끄러워, 그가 알아챌까 그녀는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무, 뭐! 그렇게 노려보면 어쩌실 건데요?!” 자신이 아무리 위압감을 풍겨내어도 전혀 굴하지 않는 소녀에게 그는 미간을 더욱 찌푸리며 일어났다. 아무래도 자신의 앞에 있는 소녀는, 자신이 어떤 상황에 쳐해있는지 잘 구분을 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공작은 입가를 비틀며 그에게 천천히 걸어갔다. 자신이 꼭 해야겠다고 결정한 일을 행하지 않는 한 드러내지 않는 위압감을 술술 풍기며 걸어갔다. 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눈앞에 있는 소녀는 굴하지 않고 자신의 얼굴을 향해 고개를 빳빳이 들고 째려볼 뿐이었다. ……도대체 이 아이는 어떤 자신감으로 자신의 앞에서 이렇게 고개를 빳빳이 들고 쳐다 볼 수 있는 것일까. 잠깐 공작의 머릿속에서 그녀에 대한 호기심이 일었지만 곧 개의치 않아했다. 어차피 그녀는 자신에게 할 수 있는 행동수위를 넘어간 지 오래였다. 거친 입으로 욕을 아무렇지도 않게 놀리지 않나, 자신에게 발길질을 하지 않나. 입은 차림새로 보아하니, 그렇게 잘난 집안의 영애인 것 같지도 않겠다 생각한 공작의 다시 한 번 더 그녀의 앞에 섰다. “ㅡ너, 어느 집안의 여식이지?” “……뭐?” 소녀는 순간적으로 말을 하지 못하고 그를 노려보았다. 갑자기 나온 그의 집안 타령에 그녀의 눈이 도끼눈처럼 변했다. 설마, 큰 기업의 사장아들이라는 타이틀은 달지 않기를 빌며, 그녀는 그의 대답에 당차게 대답하기 위해서 입을 벌렸다. “뭐라는 거야, 이자…….” “하긴, 별 볼일 없는 집안의 여식이겠지. 날 몰라보는걸 보니 말이다.” 그녀는 자신의 말을 싹둑 자른 그를 향해 더욱 더 눈동자를 이글거리며 불태웠다. 이 남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맘에 들지 않는다. 하나 맘에 드는 것을 찾아라고 꼭 말한다면 외모정도? 하지만 지금 그녀의 눈에 보이는 그의 수려한 외모조차도 씹어 쳐 먹을 자식으로 밖에 보이질 않았다. “도대체……!” “날 향해 함부로 이빨을 세웠던 것, 입을 거칠게 놀렸던 것, 후회하게 해주지.” “ㅡ!” 소녀는 그의 말에 대꾸를 하려다 자신의 입술을 거칠게 탐하는 그의 입술에 말을 하지 못했다. 아까전과는 차원이 다른 그의 거친 행동에 놀란 그녀의 눈이 놀라 그의 품안에서 발버둥 쳤다. “ㅡ읍, 읍!” 그녀가 아무리 발버둥치고 손으로 등을 거세게 쳐도 그는 꿈쩍하지 않고 그녀의 입술을 혀로 살살 긁어내릴 뿐이었다. 아까전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 전혀 저항할 수 없는 상황에 눈물이 삐죽 나왔다. “입 벌려.” 그가 처음으로 입술을 떼고 말한 건, 차갑기 그지없는 말투였다. 그런 그에게 겁이 질린 그녀가 얼굴이 새파래진 체 고개를 도리질하자 그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겁에 질린 얼굴. 자신에게 한 행동이 얼마나 천하기 그지없었는지를 소녀에게 몸소 가르쳐줄려는 것뿐이었는데, 그녀의 상처 입은 듯 한 얼굴에 왠지 모를 후회가 물밀 듯이 밀려왔다. 하지만 입술을 열어라는 자신의 말에 청개구리마냥 꽉 다물고 있는 입술을 보자 그의 심술 끼가 후회를 뒤덮어버렸다. “악!” 그가 거침없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자 고통어린 그녀의 목소리가 방안을 울렸다. 그리고 그녀의 입술이 고통에 찬 신음으로 인해 열리자 그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녀의 입술을 다시 탐했다. 그녀의 입안에 들어간 그의 혀가 난폭하게 굴려졌다. 그녀를 위한다는 행동은 전혀 보이질 않자 그녀는 두 눈을 꼬옥 감았다. [뎅-뎅-] 그 순간, 방 안에 있던 괘중시계가 별안간 울리기 시작했다. 정각 새벽 3시가 되어 정확히 세 번치는 소리에 의해 공작은 자신도 모르게 괘중시계를 바라보았다. 어차피 손님방 이였다. 자신에게 할당된 손님방에 느닷없이, 그것도 이 시간에 들이닥칠 백작이 아닌 것을 안 그는 개의치 않은 표정으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ㅡ “…….” 자신의 눈앞에 소녀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 “……어?” 소녀는 갑작스러운 이동에 또다시 눈을 깜빡깜빡 거렸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굶주린 늑대한테 잡아먹히는 구나, 싶어 두 눈을 꼬옥 감았는데 눈을 뜨니 자신의 집 앞이라니. 잠시 고민하던 소녀는 이내 아무런 생각 없이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집안에 문을 열고 환하게 소리치며 들어갔다. 집이다. 그 빌어먹을 자식이 없는 집이다. 그녀는 갑자기 떠오르는 자신의 엄마의 얼굴을 보고 싶어 신발을 벗고 현관을 지났다. “다녀왔습니다!” “다녀왔습니다아~?” 순간적으로 비꼬는 자신의 엄마의 소리가 들리자 소녀는 뻣뻣하게 굳었다. 참, 지금이 몇 시였더라? 뒤 늦게 확인한 시계의 시침을, 그리고 분침을 확인하자 소녀는 조용히 신발을 다시 신기 시작했다. ㅡ그리고, “에라이 미친년아, 지금이 몇 시인 줄 알아? 그러고도 뭐? 다녀왔습니다아~? 나가죽어라 이년아!” “악! 엄마! 잘못했어! 잘못했으니깐 이러지마! 악!!” 보고 싶기는 개뿔! 소녀는 계획에 없던 동네를 새벽동안 계속 운동해야만 했다. ================================ # 6편 # 소제목 : 11.01.02. 그 여자의 일기 ================================ “……으으음~” 난 내 눈앞에 놓인 패딩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고민에 휩싸였다. 언 듯 바라본다면 전혀 흠집하나 나 보이지 않는 옷이었지만, 나처럼 옷을 앞에 두고 자세히 쳐다보는 이라면 바로 알아차릴 정도의 미세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그 영향력이 작지 않은 흠집이 나 있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직 엄마는 날 복날에 개 패듯이 두들겨 패느라 옷에 흠집이 났다는 건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오히려 다행인 걸까…….” 난 한숨을 내 쉬며 다시 패딩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디서 흠집이 난 것일까. 부드러운 소재인지라 엄마가 들고 있던 몽둥이로는 결코 이렇게 날카롭게 흠집이 날 리 만무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디에서? 난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다 그의 거친 키스를 생각해내고선 이내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침대에 있는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악! 생각해내지 말란 말이야!” 난 비명을 지르듯이 신음을 내뱉으며 좁은 일인용 침대를 마음껏 뒹굴기 시작했다. 아직까지도 그의 거친 키스가 불에 데인 듯이 느낌이 남아서 그런 것일까, 갑자기 떠오를 때마다 주체 없이 달아오르는 볼과 뜨거워지는 입술에 내 머리를 콩콩 쥐어박기 시작했다. 바보바보바보! 그딴 개자식에게서 받은 키스 따위에 자기제어를 못하다니! 아직도 눈을 감으면 선명하게 떠오르곤 한다. 두려운 감정과 두근거리는 감정이 혼합되어 자신도 주체 못하는 떨림. 그리고 그의 거친 키스. 소설 속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 내게 일어났다. 그것만으로도 짜릿짜릿한데, 갑작스러운 키스라니. 난 자학하면서 콩콩 쥐어박았던 머리를 문지르며 상체를 일으켰다. 갑작스러운 그와의 만남. 그리고 만남이 그러했듯이 똑같이 갑작스러운 그와의 헤어짐. 솔직히 말해, 그에게 당당하게 대꾸하였을 때 두렵지 않은 건 아니었다. 혹시나, 말도 안 되겠지만 그가 그 젊은 나이에 대기업의 사장이나 그딴 직무를 가진 사람이라면 우리아빠가 잘리는 것은 일도 아니었기에 속으로는 떨리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내게 우리아빠를 자르는 대신, 거칠게 날 탐했다. 난 다시 한 번 더 얼굴을 붉게 물든 홍시로 만들며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그리고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개자식. 키스는 잘하더라.” 항상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ㅡ12시 50분.” 그와 만난 시간이 언제였더라? 난 슬슬 졸려 감겨오는 눈을 억지로 뜨며 생각하기 위해 애썼다. 괘종시계가 종을 울리던 시각 이였지. 그것은 언제? ㅡ그 시각은……. 난 결국 밀려드는 수마를 이기지 못하고 잠에 빠져들었다. - 첨벙! 귓가에 익숙하지 못한 물소리가 들렸다. 잠결에 들리는 소리는 꽤나 아련하게 울려대었다. 마치 노래방에서 음이 퍼지는 듯 한 소리에 난 기분 좋게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잠결에 취한 탓인지 뒤늦게 올라오는 뜨거움의 감각에 난 소스라치게 놀래며 눈을 떴다. 가장 예민한 손에 감겨오는 물의 흐름에 난 급하게 손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놀래 두 눈을 깜빡거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도대체 여긴 어디? 뜨거운 물로 인한 안개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면서 내가 시야를 회복하는 것에 방해를 하고 있었다. 조금 빈혈이 있던 난 갑작스럽게 일어난 탓에 어질어질한 머리를 부여잡으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다 콧등에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을 발견하고 머리를 부여잡았던 손을 내 눈 위에 가져다 대었다. “……물?” 그제서야 급하게 현실이 파악된 난 내 밑을 바라보았다. 몸을 휘감는 뿌연 물에 난 어리둥절하게 눈동자를 굴렀다. 여기는 도대체 어디? 아니, 그것보다 지금 내가 앉아있는 곳이 조금 움직이자 난 몸을 빳빳하게 굳어버렸다. 잘 자고 있던 내가 갑작스럽게 물속에 처박힌 것도 억울한데, 하필이면 어떤 생물체 위에 앉아있다고 생각하자 두려움에 몸이 절로 떨려왔다. 그리고 난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감상이 끝났으면 이제 그만 내 위에서 비켜주었으면 한다만.” 응? 난 소리의 근원을 찾아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렸고, 그 근원을 찾고선 이내 벙져버렸다. 재수 없는 그자식의 얼굴이 바로 내 얼굴과 몇 센티도 안 되게 떨어져 있는 것. 지나치게 가까이 있는 그의 얼굴에 난 손을 뻗어 내 눈앞을 휙휙 흔들어 대었다. “환상?” “아니다만.” 말을 한다. 오, 쉣. 제발 이 상황이 내가 생각하는 상황이 아니길 빌면서 난 다시 한 번 더 말을 중얼거렸다. “3D?” “그게 뭔지 모르겠다만, ‘아니다‘라는 것은 확실하게 알겠군.” 난 그의 말에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는 것을 느꼈다. 그럼, 그럼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그는ㅡ! 난 턱에서 물방울을 뚝뚝 흘리는 그의 유려한 얼굴을 바라보다 밑으로 시선을 내렸다. 그리고 차마 볼 수 없는 장면에 난 밑도 끝도 없는 괴성을 질렀다. “꺄, 꺄아아아아아악!!” “시끄럽다!” 내가 비명을 지르자 그는 깜짝 놀라더니 한손으론 시끄러운지 귀를 막고선 이내 남은 한손으로 내 입을 막기에 급급했다. 하지만 난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의 젖은 머리카락으로부터 떨어지는 물방울. 그리고 그의 물기어린 손가락. 머리와 등으로 느껴지는 그의 탄탄한 몸. 그리고, 그리고, 그, 그리고 내 엉덩이와 다리에서 느껴지는……. “다, 닥칠 테니 제발 좀 놔줘! 꺄아아아아악!!!” 그의 손아귀에 담겨있는 우악스러운 힘에도 불구하고 내 비명소리가 다시 한 번 더 욕실을 타고 흘렀다. <공작 반의 한마디> ㅡ고막 터지는 줄 알았다. 앞으론 그 성량줄이는 방법부터 알아서 오도록. ================================ # 7편 # 소제목 : 제국력542.01.02 그 남자의 일기 ================================ “…….” “……ㅡ님.” “…작님!” “공작님!” 메아리처럼 아련하게 들려오던 소리가 갑자기 정신이 들면서 다급하게 날 부르는 소리에 손을 움찔거렸다. 아까 전부터 미동상태였던 손아귀에 있던 펜 또한 같이 움찔거렸다. “공작님 피곤하십니까?” “…….” 난 내 보좌관의 걱정어린 소리에 그제서야 내가 처리하고 있던 서류를 바라보았다. 손을 잠깐 움찔하느라 펜이 있는 곳이 얼룩져있는 것을 제외하면 1시간 전과 똑같은 진행 상태에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공작님?” 난 옆에서 걱정스러운 듯 한 보좌관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손으로 거칠게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턱을 괴었다. 그리고 10년 치가 담겨있을 듯 한 한숨소리와 함께 고개를 밑으로 내리자 깜짝 놀란 보좌관이 허둥지둥 거리며 말을 이었다. “고, 공작님?! 역시 몸이 불편하신 겁니까? 아니면 오늘 하루는 쉬시는 것이…….” “ㅡ아니.” 난 당황스러워 어쩔 줄 몰라 하는 보좌관에게 손을 휘저었다. 그 손짓과 동시에 재빠르게 입을 합죽이로 만들어 다무는 보좌관의 행동을 예상하며 입가에 미소를 살짝 띄웠다. 어린나이에 실력이 인증되었지만 아직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내 보좌관이 된 그. 유망한 미래가 보인다느니 실력이 검증되어 제국을 놀래게 한 전적이 있는 그였지만 역시 어린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일까, 가끔 귀여운 행동을 틈틈이 보이는 그로 인해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지곤 했다. 그 때문일까, 이때까지 써왔던 보좌관들과는 달리 업무 이야기가 아닌, 사생활이 담긴 이야기도 곧 잘 말하곤 했다. ㅡ하지만, “괜찮으니깐 잠시 혼자 내버려둬.” “…….” 보좌관의 침묵이 이어진다 싶더니 이내 체념한 것인지 걸어가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조용하게 문이 열리고 끼익 거리는 소음 없이 문을 닫자 난 다시 한 번 더 한숨을 짙게 내쉬었다. 나답지 않다ㅡ 난 자괴감을 느끼곤 조용히 혀를 찼다. 한두 번 새벽까지 하는 무도회를 마친 뒤 바로 일에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새해 첫 날 이라도 바쁜 서류처리 때문에 일을 시키는 것에 힘들어 하는 것도 이미 지난 일이였는데. 어제 밤 이래로 자꾸만 피곤해져 오는 몸이 믿을 수 없었다. 아니, 솔직하게 털어놓자면 피곤한 것이 아니었다. 머릿속을 헤집어 놓는 ‘무언가’가 있었다. 아무리 서류에 쓰여 있는 글을 읽으려고 노력하고 처리에만 집중하려고 해도, 눈앞에 아른거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이런 건 처음이라 당황스러운 난 결국 보좌관까지 자리를 물리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서류에서 눈을 둘 수가 없었다. “……휴우.” 난 시선을 돌려 햇빛이 들어오는 창가를 향해 바라보았다. 거미줄처럼 얼기설기 엮인 듯 한 창문틀 사이로 따사롭게 흘러내리는 햇살을 눈으로 직접 바라보면서도 정작 정신은 창문이 투과해내는 아름다운 정원의 장경을 바라보지 못하였다. 검은색 단발머리. 여성이라면 다들 자신의 아름다움을 더욱 꾸밀 수 있는 무언가를 높이기 위해 머리카락을 기르는 게 미의 기준 이였는데, 그 소녀는 이상하게도 머리를 단정하게 단발로 잘랐다. 하지만 색달랐다. 기존의 내가 지긋하게 만큼 상대해왔던 영애들의 구불구불한 머리카락과는 달리 반듯한 직모를 가진 그녀의 머리칼이 좋았다. 다람쥐마냥 방안 구석구석을 뛰어다니는 그때에도 목 주변을 찰랑찰랑 거리며 가볍게 나풀거리는 머리카락이 그렇게 시선을 끌줄은, 이렇게 기억에 오래 남길 줄은 몰랐다. 이상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상한 옷차림새. 이상한 동작. 이상한 단어. 그리고 당당한 자신감. 얼마 만일까. 자신을 향해 당당하게 손가락질을 하며 쏘아붙이던 사람을 만나는 것은. 날 적대시하는 것은 항상 자신의 지위를 가지고 있는 공작들이 모이는, 회의시간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마저도 비아냥거리거나 남의 속을 비꼬기에 안달을 하지 당당하고 곧게 남을 헐뜯는 건 생각하지도 않았다. “……신선해서 그러는 것일까.” 여자라면 지긋지긋하게 많이 안아보았다. 그렇게나 평범하게 생긴 소녀 따위, 내 눈 안중에 찰리도 없건만. 이상하게도 뇌리에 박혀서는 떠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눈을 감으면 떽떽거리며 자신에게 달려들 키 작은 소녀가 눈앞에 있는 것이 상상된다. 이런 묘한 느낌은 처음인데. 난 햇살이 눈이 부셔 두 손을 눈앞으로 가렸다. 너무나도 눈이 부신다. 눈앞이 아른거려, 또다시 그 아이가 보일 것 같아 난 중얼거렸다. “못생겼는데.” 못생기고 키 작고 가슴까지 없는 조그마한 꼬맹이 하나 때문에 이렇게 일에 차질이 더 이상 생겨선 안 되겠다고 생각 된 난 책상 위에 있는 서류를 착착 챙기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일이 되지 않는다면 좀 더 맘을 놓을 수 있는 저택의 서재에서 다시 시작해볼 생각이었다. 서류를 품에 안은 난, 책상 위를 깔끔하게 정리해둔 뒤 의자를 밀어 넣었다. 스르륵. 매끄러운 대리석 위를 부드럽게 의자가 미끄러지자 난 서류를 안고 내 개인 서재를 빠져나왔다. - 하지만 그것은 내 오만이었던 것일까. 집으로 돌아와서 깃펜을 잡아보았지만 집중은 되지 않았다. 조용하고 아늑한, 무엇보다도 내가 오랫동안 있어왔던 저택 특유의 분위기에 휩쓸려 한순간 집중은 잘 되었지만 서류를 몇 장 넘어가자 다시 집중력이 흐트러지기 시작했던 것. 이번 서류에도 어김없이 펜 먹이 한데 모인 것을 남겨버린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난 뻐근한 뒷목을 손으로 잡고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책상과 멀지 않은 곳에서 최대한 숨을 죽여 흘러가는 괘중시계의 초침을 바라보던 난 조금 놀랠 수밖에 없었다. “12시 30분?” 간결하게 저녁식사를 마친 게 아까 전 같았는데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되었다는 사실에 조금 놀랜 난 머리를 긁적였다. 너무나도 피로했다. 서류처리도 얼마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책상 앞에 앉아있다는 것만으로도 피로해진 난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기로 계획하고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그리고 집사를 시켜 물을 받게 하기 위해 밖에 있을 하녀를 시켜 부르려던 것도 잠시, 난 이내 씁쓸하게 웃으면서 수건을 집어 들었다. 지금쯤이면 저택은 깊은 잠에 빠져들 시간이다. 하인들은 9시에 업무가 끝나고 집사는 11시에 업무가 끝나니, 지금쯤이면 자신이 부르더라도 달려 올 사람은 아무도 없을 터. 거기다가 자신의 방은 특별하게 방음처리마법이 되어있는지라 자신이 문을 열어 직접 집사가 머무는 방까지 찾아가야 할 터. 귀찮은데다가 오늘 하루 종일 걱정한 집사를 위해서라도 그들의 달콤한 잠을 방해하고 싶지 않은 난 수도꼭지의 물을 틀었다. 쏴아아ㅡ 마법이 걸린 수도꼭지와 그냥 수도꼭지 두 개가 있었는데, 마법이 걸린 수도꼭지에서는 특별하게도 뜨거운 물이 나오고는 했다. 이것을 설치하기 전 까지는 하녀가 뜨거운 물을 데워와야 했었는데, 자신이 어렸을 때와는 달리 많이 편해진 세상이라고 생각하며 대리석 욕조에 물이 찰랑거리며 차는 모습을 조용하게 바라보았다. 뿌연 안개를 만들어 내며 뜨거운 물이 욕조에 차자 난 옷을 꺽쇠의 모양에서 조금 끝이 구부려진 옷걸이에다 옷을 걸어놓고 탕에 들어갔다. 내가 들어감과 동시에 물을 조금 과다하게 받았는지 흘러넘치는 물을 바라보며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기 위해 눈을 감았다. 몸을 휘감아 오는 뜨거운 물은 몸에 쌓인 피로와 근육통을 풀어주고는 한다. 앉아있기만 했다지만, 그 서류내용을 바라보고 있다 보면 화나는 내용이 들어있는 서류가 있는가 하면, 기밀내용이 비밀스럽게 담긴 서류 또한 꽤 많아 온 몸이 긴장하고는 한다. “……후우우.” 나른하게 퍼져 오르는 느낌에 난 와인을 마시고 싶어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항상 완벽하게 준비를 했던 집사가 없었던 탓일까 자신이 깜빡하고 준비하지 못한 탁자에 텅텅 빔을 바라보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왠지 오늘 밤은 술이라고 걸쳐야만 잠을 잘 수 있겠는데. 그 순간 이었다. 첨벙! 작게 물이 튀어지는 소리와 함께 얼마 안 되는 무게의 어떤 것이 나른하게 풀어져 있는 내 몸 위에 타고 올랐다. 반사적으로 손이 강하게 주먹 쥐어지고 눈매가 날카롭게 변했다. 뜨거운 물에서 올라오는 김 때문에 제대로 보이질 않았기에 ‘누구냐!’라고 외치기 위해 다급하게 입술을 열 때었다. “!” 난 내 눈이 잘못 되지 않았는지 하마터면 비벼볼 뻔 했다. 누군가의 손짓에 의해 김이 물러나고 김이 사라짐과 동시에 목 언저리에서 맴도는 단발머리를 보고 주먹을 풀어버렸다. 그 조그마한 소녀다. 내 무릎위에 앉아있는 그녀는 방금 자고 있었던 것인지 멍하니 풀린 눈을 여러 번 깜빡이더니 이내 긴 소맷자락을 이용해 눈을 비비기 시작하였다. 그러다 자신의 소맷자락에서 떨어지는 물을 처음 보는 아이마냥 동그랗게 눈을 뜨고 쳐다보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난 그녀와는 달리 다른 것에 시선을 집중 할 수밖에 없었다. 손목에 나 있는 시퍼런 멍. 내가 억세게 잡아 이끌었던 그녀의 손목에 나 있는 시퍼런 멍이 왠지 안쓰러웠다. 나 때문에 생겼다는 것에 왠지 모를 희열이 들면서도, 저 얇은 손목에 내 손가락을 따라 나 있는 멍에 키스를 하고 싶다는 충동을 참으면서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환상?” 드디어 주변이 파악이 된 것인지 그녀는 얼빵하게 내게 물어보았다. “아니다만.” 소녀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져 갔다. 그리고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번엔 이상한 단어를 읊조리기 시작했다. “3D?” “그게 뭔지 모르겠다만, ‘아니다’라는 것은 확실하게 알겠군.” 소녀는 천천히 내 얼굴을 바라보다 밑으로 시선을 내렸다. 그리곤ㅡ “꺄아아아아아아악!!” 포탄이 쏘아질 때도 이렇게 만큼 소리가 크진 않았을 것 같다. 난 소녀의 주책없는 커다란 소리에 한쪽 귀를 막으며 그녀의 입에서 더 이상 저런 쇳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입을 틀어막았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오히려 더욱 반항하며 발버둥 치는 그녀를 바라보고 있던 난 소녀의 얼굴을 바라보고 말았다. 새빨갛게 물들어 바늘로 건들이면 톡 하고 터질 것 같은 얼굴. ‘……부끄러워하고 있는 건가?’ 어제 민망한 자태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얼굴에 변화 하나 없던 소녀가 이런 면에서 순진하게 얼굴을 붉히자 내 입가엔 나도 모르게 미소가 떠올랐다. 괴롭혀주고 싶었다. 나 때문에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한 체, 나만 보고 있었으면 싶었다. 난 그녀의 행동을 저지하는 한 손을 제외한 나머지 손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물에 젖어 촉촉한 머리카락이 넘어가 이마를 훤히 드러내자 앞머리 때문에 잘 보이지 않던 소녀의 모습이 한결 더 잘 보였다. 난 미소를 지으며 소녀의 귓가에 달콤하게 속삭였다. “ㅡ부끄러운 건가?” 발작이라도 일으키듯이 몸부림을 치던 소녀가 갑자기 딱딱하게 굳으며 모든 행동을 멈추었다. 생각 외로 너무나도 잘 먹히는 그녀의 행동에 나마저도 조금 벙해 있다가 이내 입가에 더욱 더 깊은 미소를 지으며 입술을 그녀의 귓가에 가져갔다. 그리고 그녀의 귓불을 잘근잘근 씹으면서, 웃음이 터져 나올려는 것을 애써 참으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덮치러 온 것. 아니었나?” [교환일기 예빈의 한마디] ㅡ못생기고 키 작고 가슴까지 없는 꼬맹이에다가 뭐? 쇳소리~? 야 너 지금 이 일기 교환일기 인지 모르고 적어? 앙?! ================================ # 8편 # 소제목 : 제3자의 눈엔 둘 다 변태 ================================ 소녀는 더 이상 숨을 쉬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몰랐다. 아니, 숨을 내뱉고 들이 마시는 것조차 까먹을 정도로 자신의 귓가에 달콤하게 속삭이는 이로 인하여 자신이 숨을 쉬어야만 살 수 있다는 것을 까먹어버렸다. 이대로는 호흡곤란으로 죽어버려도 아무 이상이 없을 정도로 비정상적으로 자기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는 소녀는 다시금 자신의 볼에 닿아오는 촉촉한 무언가에 몸을 움찔거렸다. “……왜?” 공작은 그녀에게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지 못하는 자세라는 점에서 아주 안도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소녀를 골려주고 있는 자신의 얼굴엔 미소가 만연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녀가 이런 그의 미소를 본다면 자신을 골리고 있음을 단번에 알아차릴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소녀는 굳어버린 채로 자신을 향해 고개를 돌릴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녀의 목덜미에 찰랑거리던 머리카락이 자신의 가슴에 묻어있는 물기를 머금어 촉촉하게 늘어졌다. 자신도 모르게 귀엽다는 생각이 들자 공작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지만 자신이 손을 댈 때마다 올올히 일어나는 그녀의 귀여운 반응에 인하여 그 못마땅한 생각은 저 멀리 날아가고 말았다. “왜 그렇게 굳어있는 것이지?” 공작은 잘근거리던 귀에서 입술을 떼어내었다. 붉게 변한 체 촉촉하게 젖어있는 귓가를 보고 생긋 미소를 지은 그는 이번엔 귀에서 멀지 않은 뺨에 살짝 키스를 했다. 움찔 역시나, 자신이 그녀의 뺨에 손을 댄 것처럼 귀엽게 반응을 하는 그녀로 인해 그는 재빨리 입술을 떼고 큭큭거리며 웃었다. 귀엽다. 사랑스럽다. 처음 만났을 때엔 모든 것을 다 아는 듯이 자신과 영애의 낯부끄러운 행동에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던 소녀가 겨우 자신의 뺨에 키스를 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불타오르는 듯이 얼굴을 붉히며 행동하는 것이 너무나도 앙증맞았다. “……저,” 소녀가 드디어 용기를 낸 것일까, 공작이 귓가에 속삭이고 난 뒤 처음으로 입 밖으로 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소녀는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입을 두 손으로 막아야만 했다. 자신도 모르는 허스키한 목소리. 그리고 조금 애절한 듯 한 목소리가 자신의 목을 타고 나온 것. 이런 목소리는 자신도 처음 들어 본 것이었기에 자신이 무얼 말하려 했던 것인지 조차 까먹고 입을 막기에 급급했다. 이상했다. 이런 것 따위, 남동생도 보아오고 친구의 권함에 의해 만화책을 본 것도 있건만, 아마추어같이 세세한 건드림 같은 것에 일일이 반응하는 자신이 못마땅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소녀의 생각일 뿐, 소녀는 한번 막은 입으로 인해 다시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ㅡ‘저’ 뭐?” 결국 웃음을 참지 못한 공작이 킥킥거리며 그녀의 귓가에 달콤하게 속삭였다. 소녀의 생각 같아선 재빨리 자신의 뺨을 간질이던 손이 목덜미로 내려간 것에 분노해하며 그 손을 멈추기 위해 자신이 손을 잡고 나머지 다른 손으로 그를 강하게 밀쳐내며 버럭 화를 내고, 욕을 하고 방방 뛰고 싶건만, 저주스러운 감성이라는 아인 이성의 말을 모두 다 무시하며 움직이는 것을 꺼려하였다. “계속 말을 안 하겠다는 것인지?” 공작의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이번엔 정수리 쪽에서 들렸다. 그의 몸 때문에 젖은 소녀의 머리카락에 살며시 입맞춤 하던 그는 눈을 반쯤 내리깔고 목덜미를 더듬던 손을 다시 위로 올라가 입술을 매만졌다. 긴장감으로 인하여 그녀가 물어뜯은 탓일까, 조금 부풀어 오른 듯 한 느낌에 공작은 눈을 가늘게 떴다. 아무렴 어떠한가. 공작은 더 이상 참아 줄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렇게 소녀가 대담하게 자신이 목욕하고 있는 곳에 쳐들어 왔다면 그런 소녀의 행동에 응해줘야 하는 게 자신의 인지상정이라고 생각하며 입술을 매만지던 손을 떼고 자신의 입술을 겹쳐왔다. “읍!” 소녀의 단발마와 함께 감추어진 입술은 그의 혀에 철저하게 유린당했다. 제대로 애태우려는 작정인지 그의 부드러운 혀의 놀림은 소녀가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런데다가 공작의 손이 다시금 목덜미를 타고 내려가 쇄골을 만지작거리자 소녀의 눈이 꼬옥 감겼다. 공작의 손은 거침없이 행진해 나갔다. 자신을 막을 사람도 없을뿐더러, 웬일인지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는 소녀의 행동 덕에 공작은 대담하게 소녀의 얇은 잠옷 속으로 손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소녀의 자그마한 가슴을 발견한 그의 손이 살짝 움켜잡자 공작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휘동그랗게 떴다. 저번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 들어서 그런 것일까, 공작은 자신도 모르게 절대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다시 한 번 더 지껄이고야 말았다. “……가슴 있긴 있었군?” 아아, 불쌍한 것일까. 아님 학습력이 부족한 것 일까. 분명히 자신이 이런 말을 지껄임으로써 자신이 어떻게 그녀에게 보복 당했는지 이제 쯤 알만도 했을 텐데, 까먹은 것인지 아님 이 분위기에 휩쓸려 버려 이성을 멀리 날려버려서 그런 것인지 그는 두 번 다시 입에 담으면 안 될 말을 다시금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그에 눈이 뒤집힌 소녀. 그 이름도 가련한 얼떨결에 절벽가슴 존재 유무를 확인하게 된 소녀는 얼굴을 새파랗게 질리게 했다. 물론 얼굴에 홍기가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콤플렉스, 가슴에 대해 다시 언급하게 만든 공작을 향해 소녀는 분노를 불태웠다. ㅡ그리고, “윽!” 자리가 자리인 만큼인지라 발길질을 하지 못한 소녀는 그대로 얼굴을 돌렸다. 갑작스럽게 얼굴을 돌린 소녀를 의아하게 쳐다보던 공작은 자신을 향해 급속도로 날아오는 주먹을 멍하게 쳐다보았다. 가까스로 주먹이 자신의 안면에 강타하기 전에 손으로 그녀의 손을 잡긴 했지만 이미 충분히 놀래 콩닥거리는 가슴은 진정이 되지 못했다. 그녀가 미간을 찌푸리며 낮게 으르렁거리자 공작은 자신도 모르게 소녀의 주먹을 잡았던 힘을 풀었다. 소녀가 그것을 느끼고 재빨리 손을 비틀면서 그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자신이 더 이상 그의 분위기와 손의 유린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리자 그녀는 재빨리 욕조 밖으로 뛰쳐나왔다. “ㅡ어떻게!” 소녀는 그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려다 입술을 꾸욱 깨물었다. 눈가에 그렁그렁하게 맺힌 눈물이 쏟아져 나올 것 같아서 피가 베어나올정도로 입술을 꼬옥 깨물었지만 이미 그녀의 자아에서 벗어나버린 눈물은 볼을 타고 흘렀다. 소녀의 의외의 모습에 공작은 자신도 놀래 소녀와 똑같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언제나 강하게 자신에게 반박해오던 모습이 아닌 연약한 모습에 그는 약간 미간을 찌푸렸다. ‘이러려던 것이 아니었는데.’ 그녀를 탐하려고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겁을 줄려는 것은 아니었다. 상처 입히려는 생각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저 그녀가 덜덜 떠는 모습이 재미있어서 놀려주는 것이었는데, 의외로 너무나도 상처 입은 듯 한 그녀의 모습에 공작은 그녀의 모습을 더 이상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도대체 어떻게……!” “……미안하다.” 소녀는 자신에게 사과를 건네는 공작의 태도에 갑자기 어안이 벙벙해졌다. 오만방자해서 자신에게 절대로 사과를 건넬 것 같지 않던 이가 갑작스럽게 자신에게 사과를 건네자 소녀는 자신도 모르게 비속어를 한껏 담은 말이 아닌 조금은 귀여운 소리를 내고 말았다. “어?” “…….” 부끄러운 것일까 얼굴을 조금 붉힌 공작은 이 안개가 자신의 몸과 더불어 자신의 얼굴까지 희미하게 만들어준 것에 안도하며 다시 한 번 더 입술을 열었다. “함부로 대한 것에 미안하다. 그리고 씻고 나갈 테니 밖에서 기다려 주면 좋겠는데.” 소녀는 자신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공작의 태도에 멍해지면서도 끝에 가면 갈수록 자신에게 하는 말투가 명령조라는 것을 깨닫자 눈을 찌푸렸다. 역시 저 사람은 안 될 사람이었다. 기껏 사과를 하는가 싶었더니 이번엔 명령조라니. 소녀는 볼을 부풀리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내가 왜요!” 소녀의 화가 풀린 것을 깨달은 것일까, 공작은 미소를 지었다. 갑작스러운 그 미소에 소녀가 잠깐 볼을 붉히자 공작은 또 다시 머릿속에서 짓궂은 장난이 떠올랐다. “싫은가?” “네! 저~얼대로 싫어요!” “그래? 그렇다면…….” 공작은 말을 마치고 물속에서 일어나기 위해 두 팔을 욕조위에 올렸다. 그리고 그가 천천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자ㅡ 쾅! “…쿡, 크크큭.” 공작은 거세게 닫힌 문을 바라보며 한참동안 웃어재꼈다. ================================ # 9편 # 소제목 : 제 3자의 눈엔 둘 다 변태 ================================ 처음 보는 화장실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기특하게도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안개 속에서 용케 찾아낸 문에게 감사의 인사를 꾸벅 전하며 무작정 달려갔다. 그리고 자신의 집에서도 익숙한, 문에 달려있는 문고리를 발견하자 소녀는 있는 힘껏 잡아 당겼다. 그리고 문이 열리고 서늘한 바람이 자신의 면전에 닿자 소녀는 뒤도 돌아볼 세 없이 욕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쾅!! 소녀가 기겁하며 뛰어나온 곳의 문을 다시 봉인하듯이 큰 소리를 내며 닫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 소녀가 기진맥진한 표정으로 눈을 살짝 감아 내렸다. “헉, 헉.” 욕실 거리 그 까짓게 얼마나 된다고, 별로 달리지 않은 것 같았는데도 숨 찬 목소리가 소녀의 고운 입술을 타고 거칠게 흘러내렸다. 눈을 감고 천천히 호흡을 고르게 하는 소녀의 얼굴은 발그랗게 홍조가 든 체 그 기운이 꽤나 오랫동안 머물렀다. 아무리 호흡을 가다듬어 보고 머릿속에서 있는 발칙한 상상을 없애보기 위해 소녀는 절로 임산부들이 주로 쓴다는 라마즈호흡법이 나왔지만 이상하게도 없어지지 않는 상상 때문에 호흡을 고르게 하기를 멈추고 눈을 살짝 떴다. “……바보 예빈.” 소녀는 자신 스스로를 구박했다. 자신을 억압하고 희롱하던 그 남자는 여유가 가득하던데, 정작 자신은 어리다는 것을 티내기라도 하는 듯이 볼을 발그랗게 물들여서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하는 자신이 미워졌다. 스스로가 바보같이 생각되어졌다. 아까전만 해도 그랬었다. 그가 매혹적인 웃음을 귓가에 나긋나긋하게 흘리며 자신의 뺨에 귀하다는 듯이 손을 대는 순간, 소녀는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오로지 그의 손길에 자신의 내맡기는 것 외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빠져나가야 하는 것인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저 그의 손에, 부드러운 목소리에, 유혹당하는 분위기에 자신도 모르게 본능은 맡겨져 버리고 말았다. 그가 실언을 하지 않았더라면, 자신은 아마 끝까지 가더라도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소녀는 다시 한 번 더 한숨을 내 쉬었다. 언제부터 내가 이렇게 나약했던가, 라고 속으로 중얼거려 보았지만 나오는 답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남자에 굶주렸다고 질문하기엔 소녀는 자신의 또래정도 되는 남자아이들의 행동에 대해 이미 지긋지긋하게 질린 상태였다. “……~아우!!” 소녀는 결국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자신이 하는 행동이 자신답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남에게 휘둘리는 건 처음 당해보는 일이였다. 언제나 활달한 성격의 그녀로써 팀의 리더가 되어 이끌어가는 것은 익숙했지만 휘둘리는 건 난생처음이라 소녀는 욕실 문에 털썩 기대어 주저앉았다. “……응?” 소녀는 계속해서 나오는 한숨을 연거푸 내쉬면서 분위기 전환도 할 겸 처음 와 보는 낯선 방을 구경하면서 고개를 돌리다 자신의 손끝에 걸리는 부드러운 무언가에 의해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부드러운 벨벳소재의 옷감이 손에 와 닿자 소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그 옷에 매달려있는 반짝이는 무언가를 보자 소녀는 자신도 모르게 그것을 만지작거렸다. “단추?” 소녀는 자신이 만지고 있는 것이 단추라는 것을 깨닫자 고개를 가만히 아래로 내렸다. 이곳에 아무렇게나 벗어져 있는 옷은 필시 욕실 안에 있는 그 남자의 것일 터. 소녀는 멍하니 연상법으로 상상을 늘려가다가 다시 볼을 새빨갛게 물들였다. ‘서, 설마 그렇다면 이, 이, 이 옷 들 사이에 속옷도?!’ 소녀는 자신의 상상에 주체할 수 없이 얼굴로 열이 뻗혀지는 것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론 호기심이 일었다. 그는 과연 자신의 아빠처럼 트렁크팬티를 입을 것인가, 아님 자신의 동생처럼 삼각팬티를 입을 것인가. 소녀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천천히 손을 내뻗었다. 두근 두근 두근 자신의 손이 점점 자신이 만지작거렸던 단추가 달린 재킷으로 다가가자 소녀는 왠지 모르게 가슴이 방망이질 치는 것을 느꼈다. 꼭 나쁜 짓을 처음 하는 아이마냥 두근거리는 마음을 한 손으로 꾸욱 부여잡으며 재킷을 확 들어 올리는 순간, 소녀는 자신의 뺨을 있는 힘껏 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소녀의 들어 올린 재킷다음엔 정장바지가 놓여 있었다. 바지 밑으로 하얀색의 무언가가 삐죽 삐져나와있는 것을 발견했지만 그것까지 들어 올릴 생각이 없는 소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아아악!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소녀는 진정 자신이 미친 거라고 생각했다. 볼 것이 없어서 남의 속옷 구경이라니! 자신이 미친 것이 틀림없었다. 분명 누군가에게 홀려 자신이 생각하는 의도와는 달리 행동했을 거라며 소녀는 자기 스스로의 말을 위안으로 삼았다. 하지만 자신의 말을 위안삼아 안도할 세 없이 소녀의 뒤에서 더운 김이 훅하고 뿜어져 나왔다.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소녀는. 그리고 뒤로 돌아보고 싶지도 않았다. 아니, 솔직히 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돌아보고 싶은 마음이 조금 없었진 않았지만 일단 이성이라는 아이가 자신의 정신 줄을 잡고 있는 이상, 누가 자신의 뒤에 있는지 뻔히 알면서도 돌아볼 생각은 전혀 없었다! ㅡ하지만, “미안하지만 내 옷을 밟고 있는데.” 감미로운 그의 목소리가 본의 아니게 낮은 톤으로 그녀의 귓가를 울리자 소녀는 소름이 돋치는 것을 느꼈다. 겨우 목소리 일 뿐인데. 소녀의 기겁한 얼굴은 재빨리 뒤로 돌아 발을 그의 옷에서 떼어내었다. 그리고 잽싸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소녀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그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뜨거운 김이 자신의 몸에 더 이상 닿지 않았으면, 그리고 그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더 이상 자신의 귓가에 울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소녀의 실수. 아까 전까지만 해도 뒤로 절대로 뒤로 돌아보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그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놓아버리는 이성의 정신 줄로 인해 소녀는 미안함의 인사로 숙였던 고개를 다시 잽싸게 들어 올리며 보고야 말았다. 촉촉이 젖어있는 머리카락. 기다란 속눈썹에 방울진 물방울. 날렵한 턱선을 타고 흐르는 물. 그리고 그런 턱선 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이어져서 그의 쇄골을 타고 흐르고 또한 그의 다부진 가슴팍 정 가운데를 흘러내리는 걸 따라 시선을 움직이던 소녀는……. “ㅡ?! 어이, 이봐!” 더 이상 얼굴 쪽으로 뻗어져 오르는 열을 제대로 식히지 못하고 뻗고야 말았다. - 공작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소녀를 자신의 침대위에 살짝 올려다 놓았다. 가지런하게 팔을 배 위에 올려둔 공작은 이내 침대 옆에 앉아 비스듬하게 턱을 괴었다. 쌔근쌔근 숨을 고르게 내뱉고 있는 소녀의 상태로 보아선 아무런 이상이 없는 것 같은데, 깨어날 기미가 전혀 보이질 않는 소녀를 바라보던 그는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리고 소녀의 눈앞에서 손을 살짝 흔들어보았다. “……자는가?” 혹시나 싶어서 그녀가 얕게 잠에 빠져들었나 싶어 용기를 내어 소리 내 보았다. 하지만 자신의 용기 낸 마음과는 반비례되어 본의 아니게 작게 나온 목소리는 그녀의 귓가에 겨우 닿을 정도였다. 여전히 고르게 오르락내리락 하는 가슴을 바라보던 공작은 아까 전보다는 조금 더 크게 말했다. “……이봐.” “…….” “정말로 자는 건가?” “…….” 기껏 용기를 내어 큰 소리로 말했건만, 여전히 답이 없는 그녀로 인해 공작은 조금 김빠진 듯 한 얼굴로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아까 전처럼 생생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 그녀로 인해 오히려 조금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작은 잘 자고 있는 소녀의 속눈썹을 살짝 만져보았다. 길지도, 그렇다고 해서 짧지도 않은 적당한 길이의 속눈썹이 자신의 손가락의 움직임에 결 좋게 따라 움직였다. 그는 그녀의 속눈썹을 만지던 것을 멈추고 천천히 손을 아래로 미끄러뜨렸다. 아직까지도 홍조가 가시질 않은 볼은 발그레한 체 그의 눈을 자극시켰다. 몽실몽실하면서도 새하얀 얼굴에 붉게 물든 홍조가 그렇게 예뻐 보일 수 없었다. 공작은 천천히 그녀의 뺨을 쓰다듬었다. 자신의 손끝으로 느껴져 오는 부드러운 느낌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녀의 도톰하게 부어오른 입술을 향해 시선을 내렸다. 그녀의 입술이 오물오물 잠꼬대를 하는 아기마냥 움직이자 그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쪽 자는 그녀를 위한 최고의 배려인 것일까, 공작은 그녀의 입술에 살짝 자신의 입술을 얹혔다. 평소의 자신 같았으면 이런 귀여운 행동 따위 만족하지도 못했을 텐데 왠지 모르게 세상 편히 자고 있는 그녀의 잠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마주 대었던 입술을 천천히 떼어내며 안타깝게 미소 지었다. “난 네가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공작은 자신도 모르게 진심이 담긴 말을 내뱉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소녀는 자신의 앞에서 갑자기 나타난 것처럼, 갑자기 사라질게 뻔했다.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면 가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공작은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그녀를 상처 입히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그녀의 몸만을 취할 생각은 더더욱 없었기의 그의 한숨은 깊어져만 갔다. 그는 그녀의 손가락에 자신의 손가락을 얽혀 넣었다. 이렇게 하면 왠지 그녀가 떠나지 않을 것 같은 기분에 그는 그녀의 손을 다부지게 잡았다. 왠지 오늘은 술이 없으면 전혀 잘 수 없었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는데, 곤히 자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자신도 모르게 잠이 쏟아져 오는 것을 느꼈다. 그녀의 모습을 좀 더 자신의 시야에 담아두고 싶었다. 하지만 주체할 수 없이 밀려오는 잠으로 인하여 그는 눈을 반쯤 감아 내렸다. 목욕한 뒤의 여운 때문일까, 나른해져 오는 몸은 그의 의지를 배반한 체 점점 깊이 가라앉았다. - “…….” 밝아오는 아침의 반짝이는 햇살로 인해 그가 눈을 떴다. 잠시 동안 멍하게 창문을 넘어 들어오는 햇살을 보던 공작은 자신의 뇌리에 스치는 무언가가 생각나 급하게 침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곳은 자신의 손과 그녀가 존재했다는 이불보의 흐트러짐만 있었을 뿐, 그녀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 ================================ # 10편 # 소제목 : 11.01.03. 그 여자의 일기 ================================ 웅얼웅얼 거리는 소리가 내 귓가를 거슬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곧 그 뒤를 이어 수도꼭지를 돌리는 소리와 동시에 거세게 뿜어지는 물소리에 난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있는 힘껏 인상을 찌푸리면서 눈을 떴다. “……어?” 하지만 그 시끄러운 소리에 방해받는 것도 잠시, 내가 이제껏 계속 정신없이 자고 있었던 곳이 깨닫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상체를 벌떡 일어났다. 믿을 수 없었기에 방 이곳저곳을 한참동안이나 두리번거렸지만 내 시야에 비추는 것들은 역시나 익숙한 내 방의 자태였다. 난 천천히 내 손을 들어 올렸다. 왠지 모를 희미한 온기가 손아귀에 남아있어 무언가 빠져나간 듯 씁쓸함을 주었다. 꼭 주먹을 쥐고 자다 일어난 느낌에 난 묘한 기분으로 내 손을 하릴없이 바라보았다. “…따스한 기운.”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면서 튀어나온 말은 내 손을 천천히 뺨에 가져갈 수 있도록 만들었다. 마치 그 한마디가 마법사의 주문이라도 되는 듯 한 내 이상한 행동에 난 다시금 미간을 찌푸리며 손을 뺨에서 치워내었다. 그리고 손바닥에 맴도는 묘한 느낌을 잊어버리기 위해 열심히 침대 주변을 돌아보았다. 이미 말라서 보송보송해진 옷과 머리카락. 만약 내 침대가 옷과 머리카락에서 물기를 흡수해 축축해지지 않았더라면 난 그와의 만남을 한낱 꿈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잔인하게도 내 생각을 철저하게 배반하였고, 손끝에서 느껴지는 물기를 머금은 이불의 축축함에 난 한숨을 내쉬었다. “무서운 엄마 보기 전에 얼른 말려야 갰네.” 나 나름대로의 행동순위를 정한 다음 나 스스로에게 만족해하며 내 방문 밖으로 나섰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내 방 바로 옆에 위치한 욕실에서 누군가 나오자 난 나도 모르게 여성스럽게 고함을 꽥 질러대었다. “꺄악!” “으, 으악?!” 난 놀래 기겁하던 행동을 멈추고 손으로 아직까지 흐릿하게 보이는 시야를 제대로 보기 위해 눈을 북북 문질렀다. 그리고 익숙한 동생의 알몸이 나오자 난 안도감과 동시에 얼굴을 발그랗게 물들였다. 이 자식이! 난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욕을 쓰게 목구멍으로 되삼키며 최대한 말을 순화해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뭐야 너! 나올 거면 뭐 좀 걸치고 나오란 말이야!!” 이제 중2 올라가시는, 아주 사춘기의 절정을 달리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내 남동생이라는 작자는 행동거지가 느긋하기 그지없었다. 저 나이 때쯤이면 말도 못할 만큼 섬세해져서 내가 자기 화장실 쓰는 동안 들어가기만 해도 버럭 소리를 칠 나이 이건만, 이놈은 어찌 되먹은 것인지 내가 목욕하는 도중에 들어가도 힐끔 쳐다보고는 만다. 이번도 그렇듯이 특유의 느긋한 성격으로 남동생, 빌어먹을 선빈은 유난스레 자신의 또래보다 큰 키로 날 아래로 내려 보고선 투덜거렸다. “뭐야, 왜 갑자기 그렇게 흥분하는데?” 난 그 녀석에 말에 어이가 없어서 코웃음을 쳤다. 왜 갑자기 흥분 하냐고? 정말로 몰라서 묻는 거야?! 내가 그에게 독기어린 눈으로 째려보자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는지 따스한 김에 나른하게 폈던 몸을 긴장시키며 날 바라보았다. “뭐야? 왜 그렇게 쳐다보는데?” “정말 몰라서 물어?” 난 그에게 톡 쏘며 말했다. 그런 내 반응에 어이가 없다는 듯이 동생은 앞으로 내려온 머리카락을 한손으로 쓸어 넘겼다. 그 순간, 내 동생의 얼굴에 겹쳐 보이는 누군가가 생각나자 난 도저히 참지 못하고 두 손에 주먹을 쥐고 부들부들 떨었다. “……제발.” “앙? 뭐라 하는 거야. 누나, 크게 말해.” 난 그의 비아냥거림에 난 조금 더 주먹을 세게 쥐었다. 그리고ㅡ “제발 니 누나 장식으로 ‘누나’ 아니란 말이다! 여자라고!! 자각이 있으면 제발 밑에라도 두르고 나와!!!” 내가 발악하듯이 소리 지르자 그는 깜짝 놀라 두 눈을 껌뻑껌뻑 거렸다. 그리고 내 말이 통한 것일까, 선빈은 벙찐 얼굴로 목에 걸쳤던 수건을 손으로 들어 천천히 아래를 가렸다. 그리고 그가 완전히 아래를 가린 후에야 난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누나 이상해.” 난 그의 말에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내가? 난 나 스스로 의아해져 천천히 날 가리키며 고개를 갸웃거리자 동생은 윗옷을 챙겨 입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전엔 내가 벗고 나와도 아무런 소리도 안쳤잖아.” “그, 그랬나?” 나의 당황스러운 목소리가 내 성대를 울리며 타고 흘렀다. 그러고 보니, 난 언제나 동생의 앞에서 당당했었다. 그가 옷을 벗었던 말든, 어렸을 때부터 보아왔던 것인지라 그다지 흥미도, 별다른 느낌도 없었던 것. 하지만 오늘따라 그의 맨 몸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홍조를 띌 정도로 흥분을 하는 게, 되짚어보니 나 스스로도 이상했다. “물론, 오히려 누난 내가 벗고나오면 ‘볼 거 없다. 빨리 가려라.’ 라고 농담까지 칠 정도였잖아. 누나 어디 아파?” 어느새 옷을 다 챙겨 입은 선빈의 손이 내 이마에 닿았다. 그리고 그 순간 선빈과 또 다른 느낌의 촉촉이 젖은 입술을 생각해내자 난 더욱 더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손을 휙휙 내저었다. “아, 아냐! 아프긴! 절대로 아냐!!” “……누나?” 난 날 이상하게 쳐다보는 선빈의 시선을 뒤로 한 체 급하게 급하게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이불을 말리기 위해 챙겨올 드라이기는 생각하지 못한 체 다시 이불을 뒤집어 쓴 체로 나 스스로를 자책하며 한동안 속으로 자꾸만 떠오르는 생각들을 지우기에 바빴다. - “1시 58분.” 난 내 책상시계를 노려보며 읊었다. 내 추리한 결과, 난 2분 뒤엔 그를 만나러 간다. 이번엔 잠옷이 아닌, 평상복을 제대로 챙겨 입음으로써 철저한 방어를 했다. 침대위에 가만히 놓여 있는 시계의 초침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난 갑작스럽게 시계에 그의 얼굴이 떠오르자 얼굴을 벌겋게 물들였다. 그를 만나면 뭐라고 말하지? 그를 만나면 또 어떻게 대할까? 얼굴은 제대로 쳐다 볼 수 있을까? 갖갖이 의문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하고 자꾸 얼 무어 버리던 난 이내 작정하고 고개를 휙휙 흔들었다. 아무렴 어때! 일단 몸으로 부딪치고 보는 것이다! “……10초.” 째깍째깍 “……5초.” 째깍째깍 “……1초.” 마지막으로 초를 셈과 동시에 갑자기 시야가 어지러워 졌다. 마치 엄청나게 재빠르면서도 베베 꼬여있는 롤러코스터를 10번 연속으로 타고 난 뒤의 울렁증과 같은 느낌에 난 살짝 몸을 비틀거렸다. 그리고 그 울렁증이 가신다 싶을 때 고개를 살짝 들자, 바로 눈앞에 진지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는 그 남자가 보였다. 옷을 제대로 챙겨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얼굴이 달아올랐다. 밝지 않은 방의 등불에 안도해하며 난 그가 날 바라봐 줄 그 유혹적인 눈동자를 생각하며 천천히 입술을 열었다. 하지만, “……저기요?” “…….” “…저기 저 왔는데…….” “…….” 젠장. 저 남자는 날 신경조차 쓰지 않고 있었다. [교환일기 반의 한마디] ㅡ아, 왔었었는가? 미안 알아보지 못했다. ================================ # 11편 # 소제목 : 제국력542.01.03 그 남자의 일기 ================================ 난 갑작스러운 부름에 의아해하면서도 순순히 그의 명에 따라 이동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가 도대체 날 무슨 연유로 부른지는 아무리 머릿속으로 추측하더라도 적당한 답안이 나오지 않았다. 또각또각. 징 박힌 구두와 매끈한 대리석이 마찰되며 부딪치는 소리는 흡사 말발굽에 달린 말의 뜀박질 소리 같기도 했고 이제 어디로 가야 할이지 모르는, 약이 다되어 수명 또한 같이 사라져 가는 늙은 괘종시계의 마지막 초침소리 같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발걸음은 그를 따라 가면서도 눈은 은연중에 아치형 기둥으로 나 있는 옆 풍경으로 시선을 옮겼다. 1층이라 바로 옆에 아리따운 정원이 나 있는 이곳의 경치는, 햇살도 적당히 들어와서 정말 운치가 좋아 보였다. 이 추운 겨울날에 어울리지도 않게 아름다운 날갯짓을 한껏 자랑이라도 하는 듯이 팔랑거리는 나비와 그 나비의 밑에서 그들을 유혹하기라도 하듯이 탐스럽게 피어있는 꽃들. 난 그것들의 묘한 어긋남을 보고선 깨달았다. 마법으로 관리되어가는 정원. 밖에 쌀쌀한 바람과 을씨년스러운 나뭇가지와는 대조되기 푸른빛을 자랑하고 있는 곳을 바라보고 있던 난 눈앞에 어떤 한 인형이 투과되는 것을 느꼈다. ‘그녀가 이곳을 보았더라면…….’ 난 아치형 기둥에 기대어 호들갑 떠는 그녀의 행동을 상상해 보고선 앞서 가는 이 몰래 쿡쿡되며 웃기 시작했다. 그 조그마하고 귀여운 소녀는 바로 내게 호들갑을 떨며 손가락질 하리라. [이것 봐요, 이 것 봐요! 꽃이 활짝 피어있어요! 나비도!! 우와, 이런 건 어떻게 하지요? 온실 같지 않아 보이는데!] 해맑게 웃으며 궁금증을 표현할 그녀가 날 향해 돌아보았다. 새하얀 이를 드러낸 그녀는, 이곳에 대부분의 썩어 들어가는 정치 노인네들과는 달리 정말로 순수한 미소를 한껏 품고 있었다. “자네는.” 날 부른 이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날 향해 돌아보았다. 갑작스러운 그의 말에 고개를 옆으로 돌려 그녀의 생각을 하던 난 고개를 천천히 앞으로 향해 그를 바라보았다. 날 부른 공작의 눈빛은 평상시와는 달리 확고한 뜻이 담겨 있었다. 나이를 나보다 두 배 가까이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정한 외모와 더불어 항상 장난기 어린 미소를 머금고 주변 사람들의 분위기를 편하게 만들어주는 사람이었다. 전에 말했던 백작이 언력으로 사람을 이끄는 게 있다면,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공작은 부드러운 분위기로 사람들을 모으는 매력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가 오늘따라 이상하게도 눈빛에 장난기가 서려있지 않았다. 확고한 의지의 눈빛. 그리고 항상 얇은 미소를 띠고 있는 입가가 아닌 일자로 딱 다물어진 입가를 바라보고 있자니 나조차도 긴장되어 몸을 뻣뻣이 해야만 할 것 같았기에 이상한 소녀를 내 머릿속에서 잠시 몰아내었다. “자네는, 자네는 누구편인가?” 그의 말에 난 잠시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이제서라도 ‘장난이게나. 그렇게 겁을 먹고 지레 뻣뻣하게 있으면 쓰겠는가. 힘을 풀게나.’ 라는 말이 나올 것만 같아 한동안 말을 하지 않고 그의 눈만을 똑바로 응시했지만 여전히 확고한 의지를 담겨있는 눈의 힘이 풀어지지 않자 난 한숨을 내쉬며 회피하듯이 답했다. “아시지 않습니까.” ㅡ아무의 편도 아니라는 것을요. 뒷말은 가볍게 생략한 체 그를 대답이 나오길 기대했다. 한창일 때의 그의 키는 나를 훌쩍 넘었지만 나이라는 것이 그냥 먹는 게 아닌지라 그의 허리가 아무리 곧게 피더라 하더라도 키는 나보다 조금 작았다. 그렇게 내가 예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살짝 아래로 내려다보자 그는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 알지.” “그럼…….” “하지만.” 그는 날 오늘 날 부른 이로 처음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의 미소는 평상시에 짓던 장난기 어린 미소가 아니었다. “날 너무 물로 보지 않았으면 하네.” 그렇게 말하곤 공작은 다시 미소를 지웠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자네, 정치엔 관심이 없다고 했지?” 그는 내 말을 자기 멋대로 일단락으로 끊은 뒤 날 바라보았다. 난 그의 의도가 무엇인지 싶어 눈을 가늘게 떴다. 하지만 지금 이정도의 대화에서 이끌어 낼 수 있는 답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순순히 답했다. “……네.” “그런데 말일세. 내가 좀 재미있는 것을 알아냈다만?” 그의 말에 난 가늘게 뜨던 눈을 더 가늘게 떠 그를 노려보는 식으로 쳐다보았다. 아까 전에 뿜어내던 위압감과는 달리 이번엔 자신이 내뱉은 말의 분위기에 맞지 않게 장난기를 표출했다. 도대체 그는 어디까지 알고 있는 것일까. 과연 저 늙은 능구렁이의 속에 무엇이 들어있을까 알아맞히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있을 동안 그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자네를 신뢰해 폐하께선 자네에게 긴급서류나 절대로 누설해서는 안 될 서류처리까지 맡기고 있지. 확실히 자넨 그 서류 처리하는 것이 없었더라면 공작 작위를 계속 유지하기도 힘들었을 테고 말이다.” “…….” 이번의 말엔 내가 아무런 대답 없이 그를 바라보자 그 또한 묘하게 눈을 가늘어뜨렸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더 그의 마른 입술이 떨어지자 난 흠칫 놀래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자네, 왜 그런 비밀 서류들을 외우고 있는 것이지? 그것도 폐하의 세력에 반(叛)하는 자들의 기밀사항이 적힌 것들만 말이다.” “!!” 그가 말을 끝내고 말을 하기 전에 묘하게 가늘어뜨렸던 눈을 떴다. “왜지?” “…….” 난 그의 말에 말을 해주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아무리 믿고 따르고 존경하는 자라고는 하나, 진정으로 나의 편이 되어줄 사람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는 일이였다. 만약 여기서 내가 어쭙잖게 그에게 잘못 발설했다간 내 지위와 목숨, 그리고 가솔들의 신변에까지 해가 될 속셈인지라 난 모른 척 한 채 시침을 땠다. “잘 모르는 일입니다만.” “난 알고 있다네.” 그는 다시 눈에 의지를 담았다. 그리고 천천히 내 곁에 다가와ㅡ 내 손을 잡았다. “도와주게나.” “…….” “자네 또한 폐하, 황제의 편인 것을 잘 알고 내 오늘 널 부른 걸세. 날 믿는다면, 황제에게 충성을 바친다면 제발 날도와 황제폐하의 무한한 영광을 영복과 영광을 위하여 날 도와주게나.” “…….” 진실인 것일까. 아님 날 희롱하며 농락하는 반세력의 함정인 것일까. 하지만 난 그를 믿기로 했다. 그를 우상으로 쳐다보고 믿어온 내 자신에게 확신을 걸었다. 뜨거운 손으로 차가운 내 손을 잡은 손에 난 힘을 더하며 말했다. “반 하임 로스차일드. 로스차일드가(家)의 명예를 걸고, 나 반은 당신의 도모에 적극적으로 협력할 것을 여기서 다짐하겠습니다.” - 난 잠이 오지 않아 밤하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서류를 결재하고는 있었으나, 정작 눈앞에 무슨 글자가 기어 다니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머릿속에는 단지, 그의 말이 맴돌 뿐이었다. [황제폐하의 세력은 평화로운 제국의 생활에 좀먹기 시작한지 오래일세. 거기다가 사병에 대한 자제가 없는지라 돈이 있고 명예가 있으며 지지가 있는 자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자신의 사병을 늘리기에 애를 쓴다네. 그 사병의 수가 반란을 일으켜도 충분할 정도 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법이 없는지라 제제를 하지 못하고 있네. 또한 사병이 늘어나면서 세금 또한 반비례로 줄어들고 있으니, 자네도 서류를 보아 알 테지만 큰일 났다네. 이 문제를 제발 도와주게나. 그들도 입을 벙긋하지 못할 강력한 법을 만들어야 하네.] 이렇게 말을 한다고는 하나, 자신이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시 한숨이 나오는 공작은 서류를 뒤척였다. 귓가에는 아무소리도 안들린지 오래였다. 오로지 저 말만, 그의 말만이 왱왱거리며 모든 것들을 차단했다. ㅡ하지만, “야!” 서류를 거세게 치는 누군가가 있었다. 달빛을 받아 새하얀 팔을 올려다보자, 눈에 보이는 것은 성난 얼굴의 소녀였다. 난 소녀의 갑작스러운 난입에 시계를 바라보았다. 벌써 2시가 지난 시계바늘에 난 깜짝 놀라 그녀를 멀뚱히 바라보았다. “날 무시해?” “…….” 내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그녀는 으르렁 거리며 내 멱살을 잡았다. “내가 얼마나 고민을 많이 했는데! 너랑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또 너랑 어떻게 행동해야……. 아씨, 이게 아닌데!! 아, 아무튼 너!” 난 머릿속에서 복잡한 생각들을 지워주는 그녀의 행동에 방긋이 미소를 지었다. 역시 그녀와 있을 때엔 이렇게 복잡한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된다. 이 세계와 동떨어진 행동을 보이는 그녀의 옆에 있노라면 모든 것을 내팽겨 쳐도 될 것 같았다. 꼭 다른 세계에 있는 휴식처 인 것 같아 볼우물을 깊게 패었다. “……으윽~”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분하다는 듯이 미간을 더욱 더 찌푸리는 그녀가 보였다. 의아해진 내가 그녀를 바라보며 무엇 때문에 미간을 찌푸리는지 묻기 위해 입술을 떼는 순간, 내 입에 갑작스럽게 키스하는 그녀의 달콤한 입술을 느꼈다. [교환일기 예빈의 한마디] ㅡ무, 뭐야 저 난해한 말들은. 아아 어지러워 토할꺼 같아 웩. ================================ # 12편 # 소제목 : 제 3자의 눈엔 둘 다 무드꽝 ================================ [미리 말씀드리자면 이 편은 설날이벤트(1)로서, 약간의 수위가 가미되어 있습니다] 소녀는 자신이 왜 눈앞에 있는 남자에게 무작정 키스를 하기 위해 덤벼들었는지 깨닫지 못했다. 다만, 그의 곱게 가로로 늘어뜨리고 웃는 모양이 예뻐 보였다. 사랑스러워 보였으며 무언가 하지 못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자세히 볼 수 없었던 그의 얼굴을 자세히 본 순간 그의 볼에 살짝 볼우물이 패이는 것을 보았다. 이상하지도, 징그럽지도 않은 적당한 자리에 자리 잡은 보조개가 예뻐 보였다. 소녀는 더 이상 자신을 제어 할 수 없었다. 손이 근질근질 했다. 그리고 소녀는, 더 이상 생각을 하지 않았다. “……!” 조금 놀래었는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그의 얼굴이 지나치게 가까이에서 보였다. 소녀는 그런 그의 얼굴에 약간 미소를 지었다. 발차기 이후로 처음으로 자신이 그에게 이겨 보인 것 같아 그녀는 두 눈을 꼬옥 감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소녀는 입술에 키스를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날 알아봐주지 못하는 저 괘씸한 공작을 놀려줄 생각이었다. 약 올려 줄 생각이었으며 필요하다면 폭력도 서슴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다짐했었다. 하지만 이게 웬일, 자신의 행동은 오히려 역으로 반응했다. 자신도 느끼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공작에게도 똑같이 좋음을 느끼는 키스를 그에게 한 것. 솔직히, 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그녀의 어수룩한 행동은 단지 입술 박치기로 밖에 보이질 않았지만 말이다. 소녀는 일단 입술을 부닥쳤으나 이 이상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와의 키스를 이미 여러 번이나 나눴지만, 그 모든 것들이 그의 리드로 이루어 진 것들이라 그녀는 더 이상 어쩌지 못하고 계속해서 입술만을 들이밀며 눈을 세차게 감았다. 하지만 그런 감칠맛만 나는 입술 박치기를 만족해 할 공작이 아니었다. 공작은 자신의 여전히 자신의 입술에 계속 입술만 부딪치는 소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쩔 줄 몰라 눈을 감은 채 시야를 제한해 버린 소녀의 행동이 귀여워 그는 눈을 가늘게 떴다. 이미 머릿속에 떠돌던 복잡한 생각들은 저 멀리로 날아가 버린 지 오래였다. 공작은 볼을 새빨갛게 물든 체 미간을 찌푸릴 정도로 세게 감은 눈을 바라보며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그리고 짧으면서도 부드러운 머릿결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그가 부드럽게 감싸듯이 그녀의 머리를 잡자 갑작스러운 접촉에 놀랐는지 그녀의 눈꺼풀이 파르르, 하고 떨렸다. ㅡ그리고 그녀의 눈이 살짝 열리려는 순간, “읍!” 소녀의 단발마와 함께 그녀의 앙증맞은 입술이 삼켜졌다. 분명 덮친 것은 소녀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상황은 역전되어 공작이 덮치는 꼴이 되어버린 그들은 농도 짙은 온도를 만들기에 충분했다. 감칠맛으로는 부족했다. 좀 더 느끼고 싶었다. 그녀의 입술을, 보드라운 그녀의 모든 것을 더욱 먹어보고 싶었기에 공작의 행동은 거침없었다. 갑작스럽게 침입한 낯선 것에 그녀의 혀가 깜짝 놀라 뒤로 내빼었지만 침입한 그의 혀가 고른 치아를 핥자 소녀는 부르르 떨었다. 이게 아닌데. 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분명 소녀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남자가 괘씸해서 벌을 줄려는 생각으로 그에게 접근했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오히려 그에게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준 꼴이 된 것 같아 그녀는 속으로 히잉, 거리며 투덜거렸다. 하지만 그런 투덜거림도 잠시, 그가 좀 더 농도 짙게 입을 맞춰오자 소녀는 더 이상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하고 바르르 떨던 눈을 다시 꼬옥 감았다. 책상 위 서류가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기에 차마 올라갈 엄두는 내지 못하고 쾅 하고 손을 내쳤던 그녀의 몸이 어느새 그에게 이끌려 천천히 들어 올려지기 시작했다. 이미 서류는 그들의 안중에 조차 있지 않은 것이었는지 가볍게 들어 올려진 소녀의 몸은 그와 밀착되어 갔다. 소녀는 점점 더 차오르는 숨을 느끼며 손을 바르작거렸다. 분위기 깨는 것이 조금 미안하기도 했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는 한, 그는 언제까지고 자신의 입술만을 탐할 것 같았다. 더군다나 자신에게 숨 쉴 틈을 주지 않았기에 더 했던 소녀는 결국 눈을 살짝 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의외로 순순히 놔 주는 그로 인해 소녀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신의 메시지가 담긴 행동이 그에게 잘 도착했는가 싶어 연신 눈을 깜빡깜빡 거렸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그는 다시 한 번 더 순수함이 담긴 미소를 자아내었다. 물론, 소녀의 눈엔 그 미소가 엄청나게 유혹적으로 보였지만 그것을 알 리 없는 그는 힘없어서 부들부들 떨리는 그녀의 몸을 자신의 무릎위에 편히 앉혀주었다. 그의 몸 위에 앉자마자 또 다시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붉어진 그녀였지만 그런 모습마저도 지금은 사랑스러운 그였기에 그는 천천히 입술을 열었다. “숨이 찼었는지.” 아무렇지도 않게 저런 망측한 소리를 내뱉는 그로 인해 소녀는 깜짝 놀라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의 밤의 황제 같아 보이는 농염한 미소에 소녀는 다시 재빨리 자신의 시야를 아래로 떨어뜨리며 우물쭈물 거리며 대답을 회피했다. “…….” “그대로 대답을 하지 않을 것인가?” 전에도 그렇고. 그는 항상 소녀의 반응을 즐기며 대답을 해오길 소망했었다. 이번에도 그의 버릇은 여전한 것인지 꽤나 즐겁다는 듯이 목을 울리며 웃던 그는 그녀 자신도 모르게 젖어 오른 눈가에 살며시 키스를 해주었다. 그에 또 식을 줄 모르는 그녀가 깜짝 놀라 몸을 부르르 떨자 공작의 눈이 가늘어졌다. 주위에 팔랑거리며 떨어지는 서류에 시선일 가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을 도발하는 깜찍하고 귀여운 그녀의 얼굴에만 집중되어져 이 모든 것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깨닫지 못했다. 공작은 작고 여린 새처럼 파르르 떠는 그녀의 행동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다시 천천히 그녀에게 입술을 다가가 대었다. 아까전과는 달리 부드럽고 따스한 키스에 소녀의 눈은 보답이라도 하듯이 천천히 내려앉기 시작했다. 정이 무척이나 많이 묻어나는 키스. 흡사 달콤한 아이스크림이라도 핥고 있는 것처럼 달콤한 맛이 나자 공작은 더욱 더 그녀의 입술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아직 만족할 만큼 맛을 보려면 한참이나 남았지만 더 이상 입술에 집착을 할 필요가 없던 그는 천천히 입술을 미끄러뜨렸다. 자신이 지분거리며 키스한 탓에 부어오른 입술에서 고집 있어 보이는 턱. 그리고 천천히 목선으로 미끄러뜨리는 그는 그녀의 목에 둘러져 있던 천을 천천히 풀어내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자신의 목을 따스하게 데워주던 목도리가 사라지자 부르르 떠는 소녀가 나직하게 신음을 내뱉자 그는 자신의 온기를 대신 해주기라도 하듯이 입술을 목선을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 목선이 조금 과하게 드러나는 라운드 티 밖으로 드러난 쇄골로 입술을 미끄러뜨렸다. 그가 입술을 데는 모든 곳이 뜨겁게 달아오르자 소녀는 어쩔 줄 몰라 몸을 움찔거리기만 했다. 그러다가 그의 손이 옷 위로 조금 볼록하게 솟아나있는 그녀의 가슴을 움켜잡자 소녀는 깜짝 놀라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번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입술로는 자신의 쇄골을, 손으로는 민망해질 만큼 자신의 가슴을 희롱하고 있는 그로 인해 더 이상 아무런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소녀는 참기위해 입술을 꼬옥 깨물었다. 하지만 입 밖으로 흘려져 나올려는 것으로 인해 더 이상 입술을 깨물지 못하고 소녀는 입술을 벌렸다. “딸꾹!” ㅡ순간, 그와 소녀 둘 다 놀라 서로의 얼굴을 바라 볼 뿐이었다. ================================ # 13편 # 소제목 : 제 3자의 눈엔 둘 다 무드꽝 ================================ 공작, 그는 조금 허탈해져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기껏 자신도 그녀의 부드러움에 한껏 취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집중을 하여 달콤한 살을 맛보고 있었는데 그런 그녀에게서 나온 것이 들뜬 신음도 아닌, 갑작스러운 딸꾹질이라니. 소녀도 적당히 놀래었는지 여전히 홍조가 가시지 않은 얼굴로 연신 눈을 깜빡깜빡 거렸다. “…아직도 딸꾹질이 멈추질…….” “딸꾹.” 그의 말허리를 잽싸게 잘라먹은 딸꾹질이 그녀의 도톰하게 부어오른 입술사이로 튀어나왔다. 소녀도 의도적이 아닌, 전혀 뜻하지 않은 딸꾹질이 자신의 입을 통해서 나오자 깜짝 놀래 그의 목에서 팔을 급히 풀어내었다. 그러고선 이미 쏟아내어버린 입을 탓하기라도 하듯이 자신의 입을 잽싸게 자신의 조그마한 손으로 가려내었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자신이 내뱉은 딸꾹질이 어디로 가는 것인것도 아닌데. 공작의 눈이 조금 가늘어져 그녀를 안은 손에 힘을 조금 주어졌다. “……의도한 것은 아닌건지.” 그의 말에 소녀는 깜짝 놀라 고개를 세차게 도리질 거렸다. 아까전에 너무 놀랜 탓일까, 딸꾹질이 더 이상 나오지 않자 소녀는 속으로 안도하면서 변명을 할 생각으로 입술에서 손을 때어내었다. “제가요? 절대로 했… 딸꾹!” “…….” 소녀는 불시의 틈을 타 다시 나온 딸꾹질로 인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체 입술을 꾸욱 다물어야만 했다. 하필이면 딸꾹질이 자신의 말을 애매하게 잘라 ‘절대로 해버렸다.’가 되어버렸다. 이를 어찌하나. 소녀는 더 이상 자신을 내려다 보는 공작의 시선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이왕이면 그의 품에서 벗어나 다른 곳으로 가면 더 좋았겠지만 그가 자신을 꽉 부여잡고 있는지라 애꿎은 엉덩이만 들썩거릴 뿐, 자신의 몸은 그의 무릎위에서 벗어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 무섭게도 그는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때론 화를 버럭 내주며 화를 내는 것이 오히려 안심이 될 때도 있는 법. 자신의 정수리를 향해 따갑게 내려쬐는 그의 시선을 느끼며 소녀는 눈을 데굴데굴 구르기만 했다. 이럴 때 자신의 딸꾹질이 나와 이 적막한 분위기를 깨어주었으면 좋겠건만, 아까전의 그 타이밍이 오히려 자신이 의도한 것 마냥 나오질 않자 소녀는 울쌍을 지었다. “……물. 줄까?” “딸꾹.” 겨우겨우 입밖으로 나온 그의 말에, 난 대답대신 딸꾹질로 답을 대신하였다. - 소녀는 자신의 목도리를 예쁘게 접어 그의 침대 옆 탁자에 조심스럽게 올려두었다. 그리고 그가 자신에게 덮어준 이불을 몸에 칭칭 둘러감기 시작했다. 뜻뜻한 보일러가 도는 자신의 방바닥이 생각났지만 이런 곳은 그런게 전혀 있지 않았는지 차갑기 그지 없었다. 소녀는 일단 되는 대로라도 몸을 녹이자고 생각하며 이불을 단단하게 자신의 몸에 여민 뒤, 나무가 타는 소리를 내며 낼름낼름 혓바닥을 내 보이는 화로의 불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정교한 장식이 나 있는 화로는 정말로 ‘화로’였다. 요즘 시대에 나무 구할 곳이 마땅치 않은지라 자신의 집에 화로를 설치하더라도 어디까지나 모형 뿐. 속엔 가스나 전기를 이용해 효과를 주면서 온기를 내 보내는 것이 다였다. 그런 것들에 익숙해져 왔는데 정말로 타다닥 소리를 내며 타는 나뭇가지는 그녀의 시선을 잡기에 충분했다. 중간중간 불꽃이 밖으로 튀어나가 공중에서 소멸되는 것을 바라보던 소녀는 잠시 시선을 옮겨 다시끔 책상앞에 놓여진 어마어마한 서류들을 보고 있는 그를 바라보았다. 아까전까지만 해도 자신과 뜨겁게 키스를 했던 장소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일을 하는 그가, 소녀는 새삼스럽게 어른으로 보였다. - 그는 자신이 안던 의자에 앉힌 뒤 자신이 직접 물주전자가 있는 곳 까지 걸어갔다. 그리고 쪼르륵 물이 흐르는 소리와 어여쁜 유리잔에 물이 따라지고, 그 물을 소녀에게 들고갔다. 더 이상 이 거추장스러운 딸꾹질을 더 하고 싶지 않았던 소녀는 재빨리 그에게 고개를 까딱거리며 감사의 인사를 한 뒤 마셨다. 그리고 그녀가 자신의 목을 이리저리 체크해보고 아무런 말이나 꺼내본 결과, 더 이상 딸꾹질을 하지 않는 다는 생각에 소녀는 그를 향해 환하게 웃었다. “이 것 보세요! 더 이상 딸꾹질을 하지 않아요!” 아이처럼 해 맑은 웃음을 짓던 그녀를 향해 그 또 한 그녀에게 감사의 보답을 하듯이 잔잔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리고 자신의 자리에 앉은 그녀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녀의 앉은키가 워낙 작은지라 그가 허리까지 조금 구부정하게 숙인 뒤에야 그녀의 보드라운 입술에 그의 입술이 닿았다. 아까전처럼 정열적인 입맞춤과는 달리 아이가 어여뻐, 어쩔 줄 몰라하는 엄마처럼 그녀의 입에 여러번 입술을 맞추었다 떼어내었다. 하지만 그런 조그마한 느낌에도 그녀는 볼을 발그랗게 물들이며 그와의 뽀뽀에 볼을 붉혔다. 그리고 다시금 그가 그녀의 입술을 먹을 생각인 냥, 키스가 깊어져 가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자신의 몸과 훤히 들어난 목을 휘감는 차가운 바람에 소녀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몸과 접촉해 있던 그도 그런 그녀의 변화를 느끼자 천천히 입술을 떼어 내었다. 걱정스러운 듯한 그의 표정이 소녀를 향해 있었다. “추운가?” 그의 물음에 소녀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자신의 팔을 껴안으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한숨을 푹 내 쉬었다. 역시 아직 어린 아이를 상대로 자신의 욕심을 체우기엔 상당히 무리가 있는 듯 했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그녀의 엉덩이쪽으로 손을 내뻗었다. “어? 뭐, 뭐하는…….” 그녀의 당황스러운 말이 떨어지자 그는 그녀의 얼굴을 힐끔 바라보고선 이내 장난기 많은 얼굴로 웃음을 자아내었다. “옮겨줄려고.” 옮겨준다니, 도대체 어딜?! 소녀는 속으로 경악하며 갑작스러운 그의 들어올림에 대비해 그의 목에 자신의 팔을 둘러 꼬옥 껴안았다. 이것은 절대로 자신이 그의 품에 안기고 싶어서가 아니다. 자신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라고 자신을 세뇌하고 또 세뇌했음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소녀가 자신의 목에 팔을 둘러 껴안고 그녀의 숨이 자신의 귓가에 생생하게 들리자 그는 천천히 자신의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소녀를 일명 공주님 안기 자세로 안은 그는 너무나도 태평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처음엔 진정이 되지 않아 그의 목에만 꼭 매달려 있던 소녀는 잠깐 고개를 돌려 그가 도대체 어디에 가는지 궁금해 보았다. 그리고 그가 점점 가까워지는 물체를 확인하자 소녀는 얼굴이 새하얘졌다. 치, 침대만은! 소녀는 소리없는 비명을 질렀다. 도대체 침대에 데려가서 무슨 짓을 하려고! 가 입안에서 맴돌았지만 그런 말을 차마 꺼낼 자신이 없던 소녀는 간절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 그녀의 눈빛을 본 그는 천천히 침대에 그녀의 눞혔다. 오, 젠장 그는 자신의 뜻을 잘못 이해한 것일까. 오히려 한술 더 뜨는 그의 행동에 소녀는 두 눈을 꼬옥 감았다. 아까전 그와의 키스는 나쁘지 않았지만, 그와의 몸을 부딪치는 것도 그렇게 이상하지는 않았지만. ㅡ그렇지만 소녀는 이 곳에서 자신의 순결을 빼앗길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저기!” 그녀가 비명을 내 지르듯이 높은 고음으로 외칠 때 였다. 툭. 자신의 머리위로 무엇인가 도톰한 것이 씌어졌다. 무게 또한 장난이 아닌지라 자신의 머리를 무겁게 짓누르는 것으로 인하여 소녀의 머리는 살짝 아래로 떨어졌다. 그것에 깜짝 놀랜 그녀가 잽싸게 자신의 머리위에 있는 것을 잡아채 내리자 소녀는 의이한 표정으로 입이 벌어졌다. “이불?” 그녀의 중얼거리자 공작은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이불에 의해 흐트러졌던 그녀의 머리카락을 정돈해주었다. “춥다 하지 않았나. 그거라도 덥고 있어라. 두터워서 바람이 들진 않을 것이다.” “…….” 은근 그의 감동스러운 행동에 그녀는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에게 해야 할 말을 다 전했는 것인지 그는 천천히 그녀한테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침대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화로에 옆에 준비되어있던 알맞은 크기의 장작을 넣었다. 그리고 불을 붙이자 밑에 타다 남은 나무가 숯 역활을 하며 더욱 잘 타게 도와주었다. 이윽고 불이 화르륵 피어오르자 공작은 불을 피우기 위해 살짝 수그린 허리를 세웠다. 그러다 문득, 생각난 것이 있자 그는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참, 뭔가 할말이 있지 않았던가?” 그의 말에 소녀는 이불을 다시 끌어올려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없어요.” “그런가?” 차마 부끄러워서 얼굴을 보지 못하겠어요. 라는 말은 속으로 간신히 삼켜넘긴 그녀였다. ================================ # 14편 # 소제목 : ※설날특집 ver.1 ================================ [여러분이 그렇게도 원하던ㅠㅠㅠㅠㅠㅠㅠㅠ 그래요, 씬 장면입니다 아흑. 전 몰라요 몰라 ㅠㅠㅠㅠ ! /후다다다닥] ※수위 좀 있습니다. 안 보실 분들은 보지 않으셔도 무관합니다. 본편과는 상관없는 이야기 입니다. 그와 소녀는 천천히 서로를 바라보았다. 뜨거운 눈빛이 서로 교환되었다 싶을 때, 그의 부드러운 곡선을 그린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이불 덮자.” 그 말을 끝으로 그들은 자기위해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렸다. -끝- …아, 알았어요. 장난이였어요! 그러니깐 제발 그 흉기들을 내려놔 주세요 ㅠ_ㅠ +제 3자의 시선 그는 천천히 편지에 적힌 글을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그가 편지에 읽힌 글을 다 읽었을 때, 옆에 있던 그녀가 못 참겠다는 듯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뭐야? 뭔데 도대체 내가 왜 이런 차림인데?!” 그녀가 버럭 소리를 내 지르며 이불을 꾸욱 부여잡자 그는 천천히 자신이 편지에서 읽었던 것을 그대로 읊었다. “……하루 빨리 너희 둘의 몸을 합치라는 사람들의 요구가 너무 많다. 이대로 버티기엔 나도 무리니깐 둘이서 알아서 잘 해 봐라. 일단, 난 너희들에게 계기를 만들어 줬으니깐 뜨거운 역사를 만들 리드는 공작, 네가 하도록. 설마, 저 모습을 보고도 덮치지 않는다면 난 널 동성애자로 만들어 버릴 거니깐 알아서들 해.” “…….” 그가 편지에 적힌 것 그대로 다시 읽자 화가 나 버럭버럭 소리 지르던 소녀의 얼굴이 일순간 멍해졌다. 이 뭐,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망연자실해져 멍해져 있는 것도 잠시, 결국 아이러니한 상황이 계속된다는 것을 깨닫자 그녀는 화를 내며 으르렁 거렸다. “뭐야! 난 인정 못해!! 안 해! 난 절대로 안한다고!” 그런 그녀의 모습을 힐끗 곁눈질해서 보던 그는 다시 편지를 읽어 내렸다. 끝난 줄 알았는데, 밑에 추신으로서 무언가가 더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다 읽어 내리자, 그는 입가에 묘한 미소를 지어내었다. “안 해! 난 갈 거야! 이대로 시간을 때우다 때가 되면 다시 집으로 돌아가겠지, 안 그래?” “잠깐, 여기 무언가가 더 적혀 있다만.” 그의 말에 그녀는 귀를 쫑긋 세운 체 그의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설마, 이 모든 것이 장난 이였으니 다시 집으로 돌려보내주겠다는 그런 약속어린 말이 적혀 있을까 싶어 그녀는 두 손을 방방거리며 그에게 빨리 읽기를 재촉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재촉에 못 이겨 그는 천천히 밑에 적힌 추신을 읽어 내리기 시작했다. “참고로, 거부 한다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뿐더러, 독자들의 감당 못할 따가운 시선을 견뎌내야 할 테니 잘 생각하고 행동해.ㅡ라는 군.” “…….” 또 다시 그녀의 말문이 막혔다. 도대체,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 것인지! 그녀는 자신의 상태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아무런 옷도 입지 않은 채 자신의 방에서 들고 온 이불로 몸을 두른 그녀는 그런 자신의 모습이 원망스럽다는 듯이 이불을 꽉 쥐었다. 아니. 아무리 독자들이 무섭다고는 하나, 자신의 이런 모습은 정말 아니었다. 소녀는 자신이 아무런 것도 안 입은 체 그의 앞에서 떨어졌을 때를 생각하자, 얼굴을 발그랗게 물들이며 자신의 몸을 감싸고 있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려버렸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던 그는 편지를 탁상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부드러운 카펫 위를 밟고 나가던 그의 걸음이 그녀가 있는 침대 앞에서 바로 멈추었다. 그의 그림자가 그녀의 몸에 드리워지자 그녀는 천천히 머리끝까지 올렸던 이불을 내렸다. 그러다 그의 얼굴이 자신과 지나치게 가깝게 있다는 것을 깨닫자 그녀는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뭐, 뭐예요?” 짐짓 화가 났다는 듯이 그녀는 언성을 높였지만 그의 커다란 손이 그녀의 뺨을 쓰다듬자 목소리가 쏙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항상 그렇듯이 그녀의 신체 일부분을 쓰다듬으면 뻣뻣하게 굳어버리는 그녀의 행동이 귀여워 그녀의 보드라운 입술에 그는 천천히 입술을 맞대었다. 쪽, 하고 귀여운 효과음이 난 뒤 입술을 떨어뜨린 그는 입가에 곡선을 그리며 말했다. “덮치려는 짓.” “……네?” 그녀는 자신이 혹여나 잘못 들었나 싶어, 그에게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반문했다. 하지만 자신보다 커다란 그의 몸이 천천히 자신의 위로 올라오자 그녀의 눈은 좀 더 커다랗게 떠졌다. 그의 몸이 완벽하게 그녀의 위로 올라타자 그는 살짝 그녀의 몸에 자신의 체중을 실었다. 그리고 그 체중을 느낀 소녀가 깜짝 놀라며 흔들리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서, 설마. 진짜로 할려고요?” “그래.” 달콤한 미소를 품은 그가 여유롭게 고개를 끄덕인 뒤 그녀의 뺨에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그의 뜨거운 입술이 이번엔 볼에 닿자 소녀는 더욱 더 허둥지둥 거리며 그를 제지하기에 힘썼다. “왜, 왜요?! 설마 저 못된 편지를 보낸 사람의 말을 그대로 들을 생각은 아니시겠죠?” “왜?” “왜, 왜긴요! 당신에게 아무런 이득도 없는 행동이잖아요!” 볼을 발그랗게 물들이며 말을 더듬는 그녀가 너무나도 귀여워 보였다. 그리고 그의 눈엔 이미 뽀얀 살을 숨기고 있는 이불밖에 보이질 않았다. 갑자기 이불을 젖히면 그녀가 놀라 할 테니 천천히 단계를 밟아가자고 생각한 그는 자신의 치아 사이에 그녀의 도톰한 귓불을 끼웠다. “!” 그녀가 놀라 몸을 움찔거리자 그는 그녀가 아파하지 않을 정도로 잘근잘근 씹었다. 그리고 이를 천천히 땐 그는 그녀의 귓가에 친절하게 속삭였다. “재미있을 것 같아서.” “……!!” 재미있을 것 같다니. 그녀는 그의 황당한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한 마디 해줄 심정으로 입술을 열었지만 그의 손이 이불속에 감추어져있는 가슴을 찾아 움켜지자 그녀의 입에서 나온 소리는 들뜬 신음소리였다. 그런 그녀의 표정변화를 입술로 느끼는 그는 자신의 귓가에서 놀던 자신의 입술을 천천히 떨어뜨렸다. 그리고 그녀의 목선으로 자신의 입술을 떨어뜨리던 그는 예전 자신이 남겨놓았던 흔적을 발견했다. 얼마 지나지도 않았건만 이미 희미해져가는 그 표식에 그는 미소를 지었다. 솔직히 말해, 그는 지금 이런 상황에 기뻐하는 중이였다. 항상 미수로 그치는 게 못마땅한 그였는데, 이렇게 기회가 생긴 지금, 그는 더 이상 지체하지 않았다. 이젠 더 이상 미수로 끝내진 않을 것이다. 조용하게 중얼거린 그가 자신이 남긴 흔적 옆에 이를 세워 깨물었다. 그리고 그녀의 하얀 목덜미에 두 개의 새빨간 흔적이 생기자 그는 만족스럽게 바라보다 깨문 것을 미안하게 생각하기라도 하듯이 부드럽게 혀로 햝아주었다. 이미 머릿속은 새하얀 백지로 가득찬 그녀는 결국 반항하는 것을 멈추기로 했다. 자신 또한 몸에서 묘하게 끌어 오르는 열기에 허덕거릴 정도로 달아오른 몸 때문에 여기서 멈추기엔 너무나도 안타까웠던 것. 그녀는 속으로 자신이 약아빠졌다는 생각을 하며 시트 지를 꼬옥 잡았다. 그는 얌전해진 그녀의 행동을 느끼고 미소를 지으며 입술을 더욱 더 밑으로 미끄러지듯이 내려갔다. 그리고 연신 그녀의 볼을 쓰다듬던 손으로 이불을 살짝 들추어냈다. 그리고 그의 시선에 그녀의 뽀얀 다리가 들어나자, 그는 입술을 떼어내어 그녀의 발쪽으로 얼굴을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 그의 입 안으로 그녀의 귀여운 발가락 두 개가 들어가자 그녀는 깜짝 놀라 크게 신음소리를 내었다. “흑!” 하지만 그녀의 들뜬 신음에 오히려 더 짓궂게 미소를 지은 그는 천천히 발가락에서 발목으로, 종아리로, 그리고 허벅지로 잔 키스를 남기며 올라갔다. 여전히 그녀의 작은 가슴을 손안에서 굴리며 희롱하던 그의 손도 그런 그의 속도에 맞추어 천천히 곡선을 그리며 내려오기 시작했다. 가슴에서 윗배로, 배꼽으로, 그녀의 골반에 손이 닫자 공작은 키스를 멈추고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괜찮겠는가?” 평소보다 낮고 짙은 허스키한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를 울리자 그녀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그를 천천히 바라보았다. 마치 자신을 잡아먹으려는 듯 한 야수의 눈빛을 하고 있는 그를 바라보며 그녀는 천천히 미소를 띄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급하게 자신의 옷을 젖히며 그녀가 춥지 않도록 자신의 몸을 그녀의 몸에 맞대었다. 살을 맞댐으로서 그와 그녀의 체향이 서로 한데 어울러졌다. 그리고 부끄러워하는 그녀의 뺨에 다시 키스를 해주며 이불을 덮었다. - ================================ # 15편 # 소제목 : ※설날특집 ver.2 ================================ *여주와 남주의 몸이 ‘시크릿 가든’처럼 바뀐다면? +그 여자(공작) 시점 “…….” 왠지 모르게 몸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내 몸을 감싸고 있는 보드라운 이불은 평소에 덮던 이불보다 왠지 모르게 가벼웠었지만 잠을 몇 시간 안자더라도 버틸 수 있던 내 몸은 숙취로 인해 머리가 띵한 것 마냥 무거웠었다. 난 그런 자신의 몸에 의아해하면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스르륵ㅡ 자신의 몸을 따스하게 감싸던 이불이 상체에서 떨어져 허리부분에 머물자 난 의아하다는 눈빛으로 내가 덮고 있었던 이불을 바라보았다. 항상 무채색이나 하얀색 이불을 고집하던 자신으로선 이렇게 은은한 분홍색의 이불을 덮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 그 뿐만이 아니었다. 자신의 다리 밑에 있는 시트지 마저도 은은한 파스텔색이였던 것. 그는 놀라 앞을 바라보았다. 마침 침대 바로 앞에 달려 있는 거울은 자신의 모습을 비춰주기에 적당했었다. “…….” 그는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의 머리가 좀 더 길어 목 주변에서 찰랑거렸다. 이 정도까지 부드러운 결을 가지고 있는 머리카락은 아니었을 텐데, 그걸 부정하기라도 하듯이 거울속의 자신의 머리는 찰랑찰랑 거렸다. 아까 전부터 무언가가 자신의 목을 간질이던 게 있었는데, 그것이 자신의 머리카락 이였나 보다. 그는 천천히 시선을 떨어뜨렸다. 오목조목 모여 있어 조화를 이루는 얼굴 그리고 부드러운 입술 가느다란 목선, 좁은 어깨, 그리고 자신의 몸을 휘감고 있는 귀여운 잠옷을 발견하자 그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렸다. 그 모습을 놓칠 일 없는 거울은 재빨리 그의 모습을 그대로 따라하였다. 물론, 귀엽디 귀여운, 예빈의 모습으로. “으악!” 그의 비명이 방안을 타고 흘렀다. 아무리 눈을 감았다가 떠도 변하는 것은 없었다. 혹여나 싶어 그녀처럼 바보같이 눈을 손으로 문질러 보아도 단조롭고 실용적으로 꾸며진 자신의 방이 아닌, 아기자기하고 귀엽게 꾸며진 그녀의 방 만이 자신의 시야에 가득 들어오자 그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게 느껴졌다. 도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이란 말인가. 자신과 그녀는 항상 그랬듯이 평범하게 새벽 2시에 만나고 한 시간 조금 넘어서 헤어졌을 뿐이다. 그리고 항상 그래왔듯이 그녀와 만남이 끝나면 급 피곤해지기 때문에 취침에 들었던 것. 그런데 눈을 뜨니 이 황당한 상황은 뭐란 말인가. 그의, 아니 그녀의 입에 낮게 욕이 흘러나왔다. “무슨 일인데 아침 댓바람부터 일어나자마자 소리를 질러?” 문밖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민감한 청각이 그것을 놓쳐 들을 리 없는지라 쫑긋거리며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마도 그녀의 어머니인 것임이 틀림없었다. 그는 천천히 침대에서 내려와 그녀의 방바닥에 살며시 자신의 발을 올렸다. 그녀의 방엔 신기한 것이 많았다. 예를 들자면 자신의 세계보다 더욱 종이의 질이 좋아 보이는 책이 한가득 한가 보면, 더러 책 안에는 그림만 그려져 있는 것도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책상 위에는 너저분하게 펼쳐져 있었는데, 이상한 수학기호로 가득 찬 한 책과 그 위에 놓여 있는 이상한 모양의 펜을 발견했다. 그는 그 펜에 호기심을 가지고 천천히 다가갔다. 그가 펜을 들고 찍어 바를 잉크통을 찾았지만 아무리 뒤져봐도 잉크통을 찾을 수 없자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것은 장식인가? 그가 시범삼아 펼쳐져 있는 책에 펜을 문대자 놀랍게도 아무것도 묻혀져 있지 않은 펜에서 잉크가 나왔다. 그는 놀래 펜을 연신 바라보았다. 분명 아무것도 안 발려져 있는데도 부드럽게 그어지는 펜이 신기해 그는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그녀의 펼쳐진 책에 계속 묻혀 보았다. 끝없이 나오는 잉크에 그가 막 재미를 들였을 때였다. “예빈아! 이왕 일찍 일어난 김에 엄마가 부탁 좀 할게!” 아까전과는 달리 다그치던 목소리와는 달리 상냥하고 나긋하게 말하는 그녀의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가 천천히 시선을 책상에서 떼어내어 다시 문으로 향하는 순간, 그녀의 어머니가 벌컥, 하고 문을 열고 들어왔다. “점심을 간단하게 때우고 싶은데, 마침 아빠가 친구 분을 데리고 오지 않겠다 뭐니. 아무튼 그 영감탱이는 날 괴롭히고 싶어서 안달 난 걸지도 몰라.” 그녀는 조금 격분한 듯이 언성을 높여 말했다. 하지만 그, 예빈이가 아무런 말도 안한 체 눈을 멀뚱하게 깜빡거리자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손을 내밀었다. “그래서 말인데, 자. 여기 명단하고 돈. 사실 동생을 시키려 했는데 그 자식이 어찌나 눈치가 빠르던지 급하게 샤워하러 화장실에 들어가 버리더라고. 아무튼, 씻기 싫어하는 자식이 이럴 땐 잘 씻어요.” 난 그녀가 건네는 돈을 바라보았다. 역시 자신이 살던 곳의 돈과 너무나도 달랐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종잇조각처럼 보이는 돈은 한눈에 보아도 장인이 열심히 공을 들여 그렸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정교한 인물화가 찍혀 있었다. 내가 놀란 눈으로 돈을 열심히 바라보자 그녀가 투덜대었다. “얘가 돈 처음 본 것처럼 왜이래? 빨리 받고 갔다 와. 급하니깐 뛰어갔다 오고.” 그 말을 마치고 더 이상 말을 하기 싫다는 사람마냥 문을 닫고 가버리자 그는 멍하니 자신의 손에 쥐어진 돈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바라보아도 이상하게 생긴 돈이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렇게 정교하게 그려진 그림을 그것도 돈에다가 사용하다니. 마법으로 찍어내는 것인가? 그는 돈을 이리저리 뒤집어보고 불빛에 비추어보기도 하면서 바라볼 때였다. “얘가! 바쁘다니깐 얼른 안 나가?!” 다시금 방문이 열리고 아까 전에 자신을 꼬시기 위해 살살 어르던 모습이 아닌, 버럭 화를 내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그녀의 행동에 그는 깜짝 놀라 그녀를 바라보았다. 예빈의 키와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다가오는 그는 엄청나게 위압적으로 보였다. 몸이 본능적으로 움찔거리며 그녀를 피하자 그녀는 그녀의 팔을 억세게 잡고 당기기 시작했다. “아빠 좀 있으면 온다는데, 왜 이렇게 늦장이야. 얼른 갔다 와!” 그녀의 단호한 소리와 함께 그는 얼떨결에 자신의 발에 이상한 것을 신켜진 체 밖으로 쫓겨나가고 말았다. 그는 멍하니 자신이 있는 곳 주변을 둘러보았다. 모든 것이 색달랐다.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의 세계의 주택들이 아닌, 한눈에 보아도 견고하고 단단해 보이는 집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또한, 어떠한 집은 구름에 닿을 정도로 솟아 있었는데, 그 모습은 가히 장관이여서 그는 예빈의 눈으로 그 장면을 보면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런 별세계는 난생 처음이었다. 그는 천천히 걸어가면서도 주변을 살펴보는 것을 늦추지 않았다. “예빈아!” 그러던 순간, 누군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느꼈다. 그가 천천히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과연 그녀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여자가 헐레벌떡 뛰어오고 있었다. 그녀 역시 자신의 집을 마음대로 들어오는 그 작은 소녀처럼 괴상한 옷차림에 짧은 단발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로서는 오히려 그 소녀의 차림을 하고 있는 그녀가 반가웠기에 그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소녀에게 미소를 지었다. “새해맞이하고 난 뒤에 처음인거 아니? 계집애, 이때까지 뭐하느라 코빼기도 안보였던 거야?” 그는 그녀의 말에 잠시 멍해졌다.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기 위해 뜀박질을 하는 그녀의 행동을 보아, 자신의 작은 소녀와 친한 아이인 것 같았는데, 전혀 아니었나 보았다. 그는 그런 그녀의 행동에 오로지 눈만을 깜박였다. “뭐야, 너 꿀 먹은 벙어리라도 된 거야? 근데 너 여기서 뭐하는 거야? 꼭 이곳에 처음 온 사람처럼 이리저리 주변을 둘러보지 않나. 너 오늘 이상해.” 그녀의 말에 그는 그제야 소녀의 어머니가 자신에게 사오라는 것을 깨닫고 돈과 쪽지를 넣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여전히 알아들을 수 없는 글씨가 적혀진 종이를 손끝으로 느끼자 그는 그것을 꺼내 자신의 앞에 있는 여자에게 내밀어 보였다. “어? 엄마 심부름 하는 중이였어?” “이것들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가 말하자 자신의 앞에 있던 여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말했다. “어? 항상 가던 마트에 가면 되잖아. 근데 너 말투는 왜 그래? 너 답지 않아.” 그는 그녀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의 팔을 잡았다. 그리고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데려다 줄 수 있나.” - “…….” 그는 지금 세 번째로 별세계를 체험하는 중이였다. 첫 번째는 그녀의 방. 두 번째는 거리. 그리고 세 번째는 지금 자신이 서 있는 ‘마트’라는 곳이었다. 너무나도 화려한 조명에 그는 잠시 눈을 찡그렸다. 그리고 그는 거대한 규모에 입을 벌렸다. “여기야. 너 이정도 길치는 아니었잖아?” 그녀의 물음에 그는 고개를 돌려 환하게 웃었다. 진정으로 그녀가 고마웠다. 만약 그녀가 아니었다면, 자신은 계속 그 이상한 거리에서 헤매야 할지도 몰랐다. “고맙다.” 예빈이 자신을 향해 웃으면서 감사의 인사를 하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볼을 발그랗게 물들였다. 본명 자신의 앞에 있는 사람은 자신의 친구, 예빈이 일 뿐이었는데 그녀의 웃음이 어딘지 모르게 남자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그녀는 고개를 홱홱 내저으며 말했다. “아, 아냐! 그럼 난 볼일이 있어서 이만 가, 가볼게!” “그래.” 허둥지둥 달려가던 그녀의 모습에 조금 의아해하던 그는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누군가가 서 있는 것을 보자 그는 그를 향해 갔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손님.” 자신을 향해 친절한 미소를 짓는 그를 향해 그는 자신 있게 쪽지를 내밀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모습에 판매대에 서 있던 직원은 눈썹 한쪽을 치켜들었다. 도대체 이것이 무슨 뜻인지 몰라 한참을 쳐다보자 조금은 짜증난다는 식의 소녀가 입술을 열었다. “이것을 가져다주게나.” - 그는 갑자기 드는 어지러움에 눈을 재차 깜빡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눈을 깜빡거리고 눈꺼풀을 들어 올리는 순간, 그는 자신이 자신의 서재에 있음을 발견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버릇없이 자신을 향해 버럭버럭 달려드는 평민을 향해 꾸짖을 생각이었는데, 다행히도 귀찮은 일 없이 이곳에 돌아오자 그는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 갑자기, 그는 생각나는 것이 있어 자신의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했던 것이 나오자 그는 입가에 곡선을 그렸다. 쪽지나 돈은 있지 않았지만 자신이 소녀의 방안에서 신기하다고 생각 된 물건이 자신의 주머니에 같이 따라 들어온 것. 그는 나중에 새벽에 그녀에게 사용방법을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책상위에 놓여 있는 서류를 처리하기 위해 그것들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ㅡ 그 후에 어떻게 됬냐하면……. *그 여자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없었다. 갑자기 그자식의 몸이 된 것도 서러운데 기껏 자신의 몸으로 돌아와 기뻐하는 순간, 자신에게 버릇없다고 손가락질 하는 판매대 직원부터 시작해서, 심부름은커녕, 하지도 않고 당당하게 집으로 들어온 나에게 가차 없는 엄마의 솥뚜껑 같은 손으로 징벌이 내려졌다. 거기다가 겨우겨우 풀어나가던 문제집엔 낙서가, 그것도 검은색 볼펜으로 가득 되어 있는 걸 보고 울상을 지었다. 이, 이게 뭐야!!! *그 남자 그는 자신의 서류를 보고 미간을 있는 대로 찌푸렸다. 자신이 해 놨을 리 없는 서류에는 그림이 잔뜩 그려져 있었다. 사람모양 꽃모양 심지어 이상한 남자를 그려놓고 뿔을 달아준 뒤 화살표 표시로 이상한 글을(‘못된 변태자식’)이라고 써 놓았다. 그는 다른 서류도 뒤적거리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대부분의 서류에 낙서와 함께 말도 안 되는 이상한 글씨가 쓰여 있는 것. 그는 자신이 한 것과 엉망으로 한 것이 섞여져있는 서류뭉치들을 바라보며 계속 한숨만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오늘은, 밤을 세어야만 할 것 같았다. ================================ # 16편 # 소제목 : 제 3자의 눈엔 둘 다 무드꽝 ================================ 소녀는 열심히 자신의 업무를 처리하는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종이 넘기는 소리가 매끄럽게 들리고 어느새 그가 읽는가 싶던 서류가 옆으로 넘겨져갔다. 그가 들고 있는 깃펜은 쉴 새 없이 그의 손에서 미끄러져 갔고 그의 눈동자는 재빠르게 종이에 적힌 것들을 읽어나갔다. 그리고 그런 그의 모습 또한 매력적인지라, 열심히 쳐다보던 소녀는 갑작스럽게 고개를 푹 숙이는 그의 행동에 인해 깜짝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왜, 왜 그러세요?!” 혹시 그가 아플까 싶어 소녀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이불을 꾸욱 잡고 그에게 물어보았다. 혹여나 그에게 잠이 필요하다면 바로 달려 나갈 심정으로 그에게 물어보았지만 그가 피식 웃음소리를 내며 손을 휘젓자 소녀는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아무것도 아니다.” “음?” 소녀가 오히려 그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자 그는 살짝 숙였던 고개를 다시 올렸다. 하지만 그의 입은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눈은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라, 소녀의 의문 증은 더해져만 갔다. 뭔가 그에게 큰 고민거리가 있는 듯 했기에 소녀는 살짝 그를 떠보기로 했다. “무언가 신경 쓰이는 게 있으세요?” “…….” “저기?” “아, 아니. 없어. 그냥 힘이 좀 든 것뿐이야.” 그는 한숨을 내 쉬며 다시 그녀에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손을 내저었다. 사실 그는 잠시 그녀에게라도 털어놓을까 생각하다 이내 입술을 꾸욱 닫았다. 아무리 그가 이 세계의 사람이 아닌 것 마냥 행동하고 차려입고 말을 하더라도 일단 그녀도 귀가 달리고 눈이 달리고 입이 달린 사람이었다. 자신이 걱정하고 있는 것이 함부로 누설 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는지라 그는 신중에 신중을 가했다. 하지만 그런 것을 눈치 못 챌 리 없는 소녀는 눈을 가늘게 늘어뜨렸다. 분명 저 사람은 고민이 있는데 자신에게 털어놓기를 꺼려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는 자신이라도 된다면, 그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마음속에 담아놓고 끙끙되는 것보다는 자신에게 털어놓고 마음속의 무게를 좀 더 덜었으면 하는 마음에 소녀는 더욱 더 그를 자극시켰다. “에이, 아닌 것 같은데요?” “…….” 그는 그녀의 말과 행동에 웃음이 나올려는 것을 꾹 참고 있었다. 이 작고 여린 소녀는 지금 내 마음을 알아차리고 자신을 위로해주기 위해 뜨는 것일까. 하지만 그렇게 하기엔 그녀는 너무나도 티가 나게 그, 자기 자신을 자극 시키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행동이 고마워 그는 웃음을 참으며 그녀의 행동에 조금은 넘어가 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럼, 들어줄 수 있나? 조금은 지루한 내용일지도 모르는데.” 그의 말에 그녀는 눈을 반짝반짝 거리려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자신이 그를 자극시킨 것이 보람이 있다고 생각한 그녀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평상시에 친구들 고민을 잘 들어주고 그 나름대로의 해결책을 내 주던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 그녀는 큰 소리로 외쳤다. “네!” 마치 자신을 향해 믿음과 신뢰, 사랑을 주는 주인에게 보답하듯이 꼬리를 휙휙 흔드며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강아지 인 것 같아 순간 그는 입가를 매만지는 것처럼 행동하면서 웃음을 꾹꾹 참아야만 했다. 참아야 한다. 참아야 한다. 만약 자신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리면 저 귀여운 소녀는 틀림없이 화를 내며 삐질지도 몰랐기에 그는 속으로 계속 참아야 한다를 중얼거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드디어 분위기를 제대로 잡은 그가 입술을 떼어내었고, 그녀가 귀를 쫑긋 거렸다. 그는 이때까지 자신이 봐 온 황실의 권력하락과 부패성어린 귀족들의 정치를 간략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사실, 그는 그녀가 모든 것을 다 이해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저 그녀에게 말하고, 자신의 마음의 무게를 덜어낼 생각으로 말한 그는 의외로 잘 들어주는 그녀의 행동과 눈빛에 천천히,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감정을 담아서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가 오늘 들은, 자신이 그의 일에 도모하기로 한 늙은 공작의 이야기까지 다 마치자 그녀는 조금 어지럽다는 눈빛으로 비틀거렸다. “우와……. 정말 어렵네요.” “그렇지?” 별 다른 대답을 예상하지 않았던 그도 그녀의 말에 피식 웃으며 그녀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리고 그는 다시 서류에 시선을 돌렸다. 조금은 덜어진 마음의 무게에 새삼스럽게 속으로 그녀에게 감사하고 있는 중이였다. 그런 탓일까, 조금은 더 서류에 적힌 글이 눈에 더 잘 들어오자 그는 재빠른 속도로 서류를 해치워나가기 시작했다. ㅡ하지만, 그는 갑작스럽게 자신의 귀를 강타하는 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깃펜을 자신이 처리 중이던 서류 위에 떨어뜨릴 뻔 했다. “그렇지만, 이런 건 어때요?” “……무엇을?” 그녀는 처음에 너무나도 복잡한 사정이 담긴 그의 말에 저절로 꺼려하게 되는 내용이라 속으로 덜컥 겁을 먹었었다. 잘못하면, 이야기를 들어줄 뿐 아무런 그에게 도움 되는 말을 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그녀는 눈을 똑바로 그를 응시하며 들을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그의 말이 자신이 이때까지 배운 국사시간에 ‘그것’과 일치한다는 생각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그가 말하면 말 할수록 자신의 옛 역사, 고려의 사건과 비슷하다는 걸 느끼자 소녀는 조금이라도 그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그에게 고려 때의 사건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네. 예전에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비슷한 사건이 있었거든요.” “……정말인가?” 그는 그녀에게서 해결책을 찾아내리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었다. 하지만 의외성이 담긴 그녀의 말에 그는 깃펜을 통에 담겨놓고 자신의 침대에 있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네! 정말이고 말구요. 저도 듣다가 너무 비슷해서 놀랐는걸요.” “……그렇다면 이야기 해 줄 수 있겠는가?” 그는 그의 진지한 눈빛에 자신 있는 미소를 지었다. 비록 내가 말하는 게 틀리더라도, 그에게 자신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그녀는 재빨리 수업시간에 들은 것을 더듬어가며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옛날, 아주 전에요. 고려라는 나라가 있었는데요. 후삼국을 통일한 뒤 고려는 왕건 이래로 호족세력을 억압하는 정책을 실시하였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왕을 따르는 신하들의 권력은 더욱 커지기만 했죠. 하지만 광종 때에 이르러 ‘과거제’, 음 그러니깐 시험을 쳐서 관리들을 뽑는 것을 말해요. 아무튼 그것을 시행과 함께 왕권강화책의 일환으로 ‘노비안검법’이라는 것을 실시해요.” “…노비안검법?” “네. 그 당시에는 억울하게 노비, 그러니깐 하인이 된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증가하면 할수록, 나라의 들어오는 세금은 줄어들고, 사병을 챙기게 된 귀족들의 힘은 날로 세지는 거예요. 그래서 그들은 그들의 노비들을 해방시키는 거죠. 물론, 합당한 방법으로 된 사람들은 해방시키지 못하지만, 억울하게 된 사람들. 전쟁의 포로가 되어버려 안타깝게 된 사람들을 풀어주게 되요.” 그는 그녀의 이야기에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조건 그들의 말을 할 권리를 줄여 들일 생각만 했지, 실질적인 힘을 뺄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그런 그의 행동이 맘에 든 그녀는 다시 입을 재빠르게 놀렸다. “하지만, 귀족들의 반발이 너무 세서 다시 해방되었던 사람들을 노비로 돌려주게 되어요. 하지만 왠지 당신이라면 그런 귀족들의 반발도 제압할 수 있을…….” 그는 갑자기 자신의 귓가에 들리는 소리가 끊기자 생각하던 것을 멈추고 그녀가 있을 침대에 시선을 다시 고정시켰다. 하지만 침대 위엔 자신이 그녀에게 덮어준 이불만이 쓸쓸하게 그녀가 있었을 온기를 유지시키고 있었다. ================================ # 17편 # 소제목 : 11.01.04. 그 여자의 일기 ================================ “……거예요?” 소녀는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방금 전까지 자신은 그의 침대에 앉아 이불을 꼭 부여잡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이 조금이나마 그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열변을 토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자신의 눈에 보이는 것은 눈에 익숙한 내 방이었다. 깜빡깜빡. 난 무언가 잘못 보았나 싶어서 눈을 연신 깜빡거렸지만 바뀌는 것 하나 없자 천천히 내 앞에 놓여져 있는 탁상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연신 째깍째깍 소리를 내며 시간이 지나는 것을 알려주는 시계엔 정확히 3시 2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5초 6초 천천히 초침을 바라보고 있던 난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3시 20분.” 아무리 거꾸로 뒤집어 보아도, 옆으로 눕혀 보아도 시간은 변하지 않았다. 난 불안감에 애꿎은 시계를 노려보았으나, 별 다른 것이 생각나질 않자 난 시계를 껴안고 벌러덩 누었다. 3시 20분. 도대체 난 이 시간에 왜 모순을 느끼는 것일까? 베개에 얼굴을 묻은 난 천천히 잠이 오는 눈을 감으며 아무렇게나 시계를 옆에 있는 책상위에 던지듯이 놓았다. 아무렴 어떻게 하더라도 좋았다. 그와 만나는 것이 점점 즐거웠다. 그리고 집에도 확실하게 돌아오는 이상, 걱정할 것도 없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난 점점 쏟아져 오는 수마를 이기지 못하고 눈을 완전히 감았다. 정말로 꿈속에 들어간 것을 확인해 주듯이 그녀의 바르작거리던 손이 힘을 잃고 떨어져 갔다. 째깍째깍 시계가 들려주는 초침소리를 아늑한 자장가로 삼으며 완벽하게 잠으로 빠져들었다. - “내꺼 하나, 그 사람 것 하나.” 난 사탕과 초콜릿을 반으로 나누면서 생글생글 웃었다. 생각해보니, 그 사람은 항상 책상위에 자신이 처리해야 하는 듯 한 일들을 가득히 쌓아놓고는 했었다. 거기다, 그 양은 내가 스쳐 지나가듯이 보아도 많은 양이었는지라 속으로 정말 많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어제, 그가 일하는 모습을 쳐다보고 조금 생각을 바꾸었다. 그는 정말로 일을 열심히 하는 편이였다. 하지만 그가 어제처럼 일을 한다면 그의 미간이 정말 남아나지 않을 판이었다. 거기까지 생각 한 난 기특하게도 이렇게 달콤한 것들을 준비했고 말이다. “다 됐다!” 난 방그레 웃으며 손뼉을 쳤다. 아무리 그의 것이라고 해도 자연스럽게 내 것을 챙기게 되는 내가 좀 얌채 같다고 느껴졌지만 아무렴 어떠랴, 이건 내 돈으로 생각했다는 것을 깨닫자 조금의 자책감을 깨끗하게 지워버렸다. 난 양손 가득한 사탕과 초콜릿을 들며 시계를 바라보았다. 1시 58분. 조금 있으면 그와 만나게 된다. 어제 책상위에 한가득 있던 서류의 양들을 보아 그는 어제 그 밤 안에 처리를 다 못했음에 틀림없었다. 만약에 아~주 만약에 그가 처리를 다 했다고 하더라도 피로함에 지쳐있을지도 모를 일이니 자신이 가서 달콤한 것을 그에게 주면 되었다. 그리고, 그리고……. “~~~!!” 난 소리 없는 비명소리를 지르며 침대위로 쓰러졌다. 나도 모르게 망상한 생각에 절로 얼굴이 발개졌다. 아, 아무리 그가 받아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도 입으로 전해주는 내 모습을 상상하다니!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에 난 여전히 볼을 발그랗게 물들이며 재빨리 초콜릿과 사탕을 주머니 속에 밀어 넣었다. 그런 부끄러운 일 따위!! 난 재빠르게 연신 도리질을 하며 애써 생각을 떨쳐내 버리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전에 느꼈던 예고 없는 어지러움이 느껴졌다. 난 핑글핑글 도는 눈앞을 집중하기위해 애썼다. 애쓰는 것과는 달리 흐트러지는 몸가짐을 똑바로 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순간, 비로소 눈앞이 안개가 걷히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점차 짙게 내 눈 앞을 가렸던 하얀 것이 사라지는 순간, 난 이를 앙 다물며 입가를 비틀었다. 난처하다는 듯이 몸을 사리는 그의 모습은 무척이나 반가워 하마터면 주머니 안에 있는 사탕을 너무 급하게 꺼낼 뻔 하였으나, 그가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원인을 바라보자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만들었다. “아이, 공작님……. 왜 절 피하시나요? 오늘따라 공작님답지 않군요.” 난 여시같이 행동하는 여자의 행동을 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몸을 자꾸만 부딫이길 간절히 원하는 듯 한 여자의 행동에 난 속에서 불이 일어나는게 느껴졌다. 이, 이게 감히 내가 만나는 시간대를 대충 알 텐데도 여자를 들여?! 죽고 싶어서 환장을 했나! [교환일기 반의 한마디] ㅡ아, 아니 그것이 말이다. 이게 네가 생각하는 게 아니고 ……. . . . 하아. 바람피우다 아내에게 걸린 사내마냥 내가 왜 이런 해명을 해야 하는 건지. *미안한 분량에 급사과드리며, 쉬어가기코너 사실 이아이들의 일기는요. *예빈 아 오늘 정말 재수없다. 미X. 아 존X 싹쑤노란 자식을 만나가지고는-_- 아 존X나 꼴받네 진짜 내가 귀엽고 착하고 이뻐서 봐주는거지, 와 내친구였다면 넌 진짜 여러번 밟혔다 아오. *반 ...이상한 여자아이를 만난 것을 제외하면 평범하다. 라고 끝낼 애들입니다 ㅠㅠㅠㅠ 제가 저것을 아주그냥 늘리고~늘리고~ 지지고 볶고 볶아서 분량을 만든다는 것을, 독자님들은 알아주시길 바래요 ㅠㅠㅠㅠㅠㅠㅠㅠ!!! ================================ # 18편 # 소제목 : 제국력542.01.04 그 남자의 일기 ================================ 난, 도대체 자신이 왜 이런 억울한 일을 당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자신의 앞에 있는 두 여자가 투닥대는 것 또 한 눈뜨고 계속 봐줄 일은 되지 못하였다. 어째서 일 것일까. 난 잠시 고민해 보았다. 도대체 어디서부터가 잘못되고 베베 꼬인 것일까. 그는 난처한 눈빛으로 그녀와 소녀를 번갈아보다 자신을 쳐다보는 두 개의 날카로운 눈빛에 살짝 어깨를 움찔거렸다. 웬만한 일로는 전혀 겁도 내지 않는 다는, 천하의 내가 두 여자의 눈빛에 쪼는 것에 상당히 불쾌하기도 했지만 일단 엄청나게 심기가 불편한 그들 앞에서 표현 자체를 할 수 없었음으로 조용히 입 다물고 있기로 했다. “도대체 이 여자는 왜 끌어들인 거예요? 내가 언제 오는지 대충 알면서!” 먼저 소녀가 선제공격이라도 하듯이 자신과 투닥되던 여자를 향해 손가락질 하자 그녀도 지지 않는다는 듯이 바락바락 고개를 세우며 소리쳤다. “뭐, 뭐예요? 저 버르장머리 없는 아가씨는. 거기다가 ‘언제 오는지 대충 알면서ㅡ’라니요? 설마, 공작님께선 이렇게 어리디 어린 아이와 밤을 지새우시는 겁니까?” “뭐라고? 이 여시같은게!” 자신을 향해 비아냥거리는 것을 놓칠 리 없는 소녀가 날 바라보던 것을 멈추고 그녀를 향해 바락바락 달려들었다. 그녀가 뻥뻥 소리치듯이 다가갈 때마다 기가 조금씩 죽는 것인지 그녀가 뒷걸음질 치는 것은 보였다만, 그녀 또한 자존심을 굽힐 수 없다는 듯이 눈을 치켜뜨며 최대한 오만방자해 보이는 얼굴로 소녀를 내려다보았다. 역시 키가 큰 것이, 그리고 힐이 그녀에게 우세한 쪽으로 미는 듯하였다. “제가 틀린 말을 하였나요? 이런 조그마한. 그것도 발육부진처럼 보이는 아가씨보단 제가 훨씬 괜찮을 거라고 생각되는데 말이죠. 당신, 지금 당신의 몸으로 자신의 매력을 충분히 어필할 수 있다고 생각되세요?” 더 이상 들을 수 없을 것인가, 고개를 푹 숙인 소녀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모습을 놓칠 리 없는, 어느 집안의 영애인지도 모를 그녀가 최대한 소녀를 깔보며 비아냥거리자 소녀의 얌전했던 두 손에 주먹이 꽉 쥐어졌다. 그리고 그녀의 주먹이 쥐어지자 난 나도 모르게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설마, 설마……. “무, 무식하게 폭력을 행사하실 생각이에요? 정말 레이디로써 품위가 없어도 너무 없군요!” 자신을 향해 주먹을 내지르는 소녀에 깜짝 놀란 영애가 비명을 지르듯이 소리 질렀다. 마치 속사포처럼 그녀의 새빨간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절실하게 느껴지자 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뻔하였다. 저 여린 소녀의 몸에서 나오는 힘은 장난이 아닌지라 그녀의 처지가 나도 모르게 이해가 갔던 것. 난 왠지 모를 동질감에 눈을 까딱까딱 거렸다. “레이디? 품위? 그딴 건 난 몰라. 그런 거 챙기기 전에 몸이나 챙기라고!” “꺄, 꺄아악!” 난 그녀의 비명소리와 그 뒤를 맹렬하게 쫓는 소녀를 보며 한숨을 내 쉬었다. 왜, 어째서 자신의 서재에서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난 조용히 오늘 일을 되짚어보기 시작했다. - 난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아무리 자제를 하려고 하여도, 한번 올라간 입 꼬리는 쉽사리 내려갈려 하지 않았다. 난 손으로 입가를 매만지며 아까전의 일을 되새김질 했다. 어제 그녀와 대화했던 것들을 조금씩 우리제국에 맞는 형편으로 바꾸어 그에게 그대로 전해보았다. 그리고 그 말을 다 듣는 순간, 공작의 얼굴이 밝아지면서 그는 내 손을 꼬옥 마주잡았다. ‘고맙네!’를 연신 외치는 그의 얼굴엔 약간의 이슬이 맺혀있었다. 난 그런 그의 너무 급한 행동에 당황스러워 하면서도 이해가 갔었다. 이때까지 자신의 결정을 제대로 맺지 못하여 한 맺힌 나날들. 그리고 그 한 맺힌 한숨이 황실 내력을 이어가기 시작하면서 그들을 지지하는 이들 또한 한이 되어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나날이 계속되어 갔다. 하지만 만약 이 정치방안이 계획대로 된다면, 그들의 권력이 약해지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였다. 물론, 처음은 쉽게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나도 세력이 커져버린 그들을 대항하려면 이 방법 밖에 없었다. 이 방법을 쓰면 자신들도 세력이 낮아질 것을 그들은 미리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상관이 없었다. 황제께서, 폐하께서 권력을 잡아 나라를 다시 바로잡을 수 있다고 한다면. 그들이 세력이 조금 약해지더라도 황제께서 절대적인 권력을 잡는 게 더 올바른 길이였기에, 그들은 두말하지 않고 긍정의 고갯짓을 하였다. 그리고 해가 질 무렵까지 그 계획에 초반을 바로잡을 것에 대한 토론을 하였기에 난 조금지침에도 불구하고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비로소 헤매던 길을 올바로 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길을 바로갈 수 있도록 안내한 것은 바로 그녀. 항상 새벽2시가 되면 자신의 곁을 갑작스럽게 방문하는 그녀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생각해내고 난 겨우 내렸던 입 꼬리가 다시 올라가는 것을 느꼈다. 오늘 가면 그 자그마한 소녀에게 보답을 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무엇을? 난 입가에 미소를 지우고 고개를 까딱까딱 거리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엇을 해 주어야 그 순수한 소녀가 미소를 지으며 고맙다고 할 수 있을까. 난 천천히 생각하며 저택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 밤 늦게서야 도착한 저택에 난 조금 피곤하다는 듯이 방문을 차고 들어갔다. 하지만 입가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자아내었다. 손아귀에 조그마한 게 움켜쥐어지자 난 소녀가 기뻐할 미소를 생각해내었다. 티 없이 해맑은 웃음. 가식적이고 다 드러내지 않는 영애들의 웃음에 비하면 모든 것을 다 드러낸 체 환하게 웃을 그녀의 미소가 생각이 나 난 눈을 반달모양으로 접어 내렸다. 시계를 보았다. 1시 50분. 늦어도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중간에 저택에 가다 말고 황제파 일당 중 한명에게 붙잡혀 다시 설명을 하다 보니 이정도 늦은 게 이해가 갔었다. 덕분에 애꿎은 하인이 자신의 주인이 올 때까지 기다리느라 고생한 것이 조금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다음부터는 자신이 늦더라도 기다리지 말라고 생각한 난 천천히 조금 쓰러지듯이 앉았던 의자에 바로 앉는 순간이었다. “늦으셨네요, 공작님.” 난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여자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침대 쪽을 바라보았다. 거의 벗다시피 한 영애가 눈웃음치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난 재빨리 시계를 쳐다보았다. 1시 55분. 그녀가 올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난 그녀를 재빨리 내 방에서 나가게 하기 위해 인상을 굳혔다. “무슨 일이지?” “공작님을 기다렸어요.” 애가 탄다는 듯이 양 볼을 발그랗게 물들이 영애가 수줍어하면서 내게 천천히 다가왔다. 한 발짝 두 발짝 그녀가 다가오면서 뭔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일단 주머니에 소녀에게 줄 선물을 쑤셔 넣었다. 그리고……. - “누구야!!” 난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외침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정신을 차리고 바라보니, 아까 전과 똑같은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아이러니해 멍하니 바라보자 소녀가 다시금 버럭버럭 소리쳤다. “결정해!” 그리고 그런 소녀의 말에 옳다는 듯이 그녀가 덧붙였다. “맞습니다. 결정하세요! 이런 발육부진 소녀가 좋습니까, 아님 권력도, 지위도 모두 가지고 있는데다 몸매도 좋은 제가 좋습니까?” 난 그들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조금은 놀래 눈을 깜빡깜빡 거렸다. 그러나 곧 이어 쉽다는 생각에 피식 미소를 자아내었다. 너무 쉬운 문제이지 않은가. 난 천천히 내가 선택한 여자 쪽으로 팔을 뻗어내기 시작했다. [교환일기 예빈의 한마디] ㅡ뭐, 뭐야? 알고있는 나도 궁금해지게 절묘한 절단이라니!! 사기야 사기! 빨리 다음 내용도 알려달라! ================================ # 19편 # 소제목 : 제 3자의 눈엔 둘 다 바보 ================================ “……!” 소녀는 놀라 눈을 깜빡거렸다. 분명 자신의 팔을 잡을 줄 알았던, 그의 손이 자신의 몸을 전혀 손대지 않고 있자 소녀는 멍한 얼굴로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잔잔히 미소까지 띄운 그의 손이 자신의 보드라운 피부를 건들이지 않고 다른 이의 피부를 건드리자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아 내렸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속이 메슥거리고 마치 목구멍을 타고 무언가가 올라 올 것 같아 소녀는 자신의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목을 옭아매었다. 소녀는 자신이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저, 이 울렁거리는 속을 진정시키고 싶었다. 이 괴롭디 괴로운 마음이 오로지 자신을 택하지 않은 바보 같은 그이의 형편없이 낮은 눈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결코 그녀를 바라보며 웃고 있는 그의 웃음이 맘에 들지 않아서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도대체 왜? 소녀는 자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왜 자신은 그가 날 택하지 않은 것에 혼란스러움과 울렁증, 그리고 ‘배신감’을 느끼는 것일까. 솔직히 말해 따지자면, 그와 난 만난 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래. 어떻게 보자면 그가 그녀를 택하는 것이 오히려 이치에 맞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난 왜 그가 날 택한다는 당당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소녀는 시간에 맞추어 그의 방에 들어옴과 동시에 느꼈던 질투감과 배신감. 그리고 그녀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자신이 있어야 했다는 당연한 자신감에 모순을 느꼈다. 왜? 왜?? 소녀는 혼란스러워 자신의 등 뒤에 있는 창문 근처에 있는 난간을 붙잡았다. 소녀가 그가 다가가는 그 짧은 시간동안 많은 혼란스러운 생각을 할 동안, 여전히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그가 자신을 유혹하러 온 영애의 팔을 부드럽게 붙잡자 그녀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리고 자신만만한 미소를 머금으며 자신에게 따박따박 다그쳤던 소녀를 향해 째려보았다. 그리고 그런 소녀의 얼굴이 먹빛보다 더 안쓰러운 낯빛을 발견하자 그녀는 고소하다는 듯이 미소를 깨물었다. 역시, 저 발육부진의 소녀는 자신을 당해낼 수 없었다. 어느덧 아까 전 소녀의 분위기에 쫄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던 그녀는 어디가고, 당당한 미소를 띠고 있는 그녀 자신만만하게 자신의 팔을 부드럽게 잡은 그를 올려다보았다. 자신에게 처음으로 보여준 잔잔한 미소에 그녀는 더욱 더 확고해진 생각에 환호성을 외치고 싶었다. 그는 이제야 자신의 매력에 빠진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렇다고 생각한 그녀가 다시 한 번 더 완패를 당한 소녀에게 얄미운 승리의 미소를 짓기 위해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자신을 부드럽게 이끄는 힘에 놀란 그녀가 그를 쳐다보았다. “공작님……?” 자신이 그를 불렀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소리도 하지 않은 채 여전히 자신을 이끌자 그녀는 순순히 그의 이끔에 따라가기 시작했다. 어차피 자신이 이긴 것, 그에게 조금 이끌린다 하더라도 나쁠 것이 없었기에 그녀는 맘을 푹 놓았었다. 하지만 그가 천천히, 그것도 아까 전 허무감에 빠져 현실을 보지 못하는 듯 한 소녀에게 천천히 다가가자 그녀는 그 생각을 완전히 날려버렸다. “고, 공작님?” 그녀가 다급히 그를 불렀지만 이미 고개마저 돌린 그의 뒤통수에서 그녀는 아무것도 읽어 낼 수 없었다. 도대체 이건 어떤 행동이란 말인가. 그녀는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손톱을 뜯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의 시야 바로 근처에 소녀의 모습이 와 닿자 공작은 이내 소녀의 팔도 부드러운 손길로 붙잡기 시작했다. “……?” 의아하다는 눈빛으로 소녀 또한 그녀와 똑같이 그를 향해 바라보자 그는 자신이 한 발짝 뒤로 빠져나감으로써 소녀와 영애가 완벽하게 서로를 바라볼 수 있게 되자 공작은 더욱 더 웃음을 짙게 만들면서 드디어 말을 꺼내었다. “서로 악수하십시오. 서로 잘못하셨으니, 그것에 따른 응당 사과 또한 같이 해야 하는 법이니깐 말입니다.” 그리고 그의 말이 끝나자 소녀와 영애, 둘은 잽싸게 고개를 돌려 서로를 바라보다 바람소리가 날 정도로 다시 고개를 홱 돌려 그를 노려보았다. 악수? 그것도 저 원수와? 말도 안 될 일! 소녀와 영애는 마치 그를 잡아먹기라도 할 듯이 으르렁 거리며 말했다. “저 애랑요? 도대체 왜 그러시는 거죠?” “내가 왜요? 난 절대 못해요 못해!” 둘 다 서로 못하겠다고 으르렁 거리는 그 둘이 귀여워 공작은 잠시 고개를 숙여서 웃음을 참아내어야만 했다. 아깐 어두워서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지금에서야 그는 자신의 방에 늦게까지, 그것도 자신의 방에 아무런 제제도 없이 방에 들어올 수 있는 이가 누군지 알아차렸기에 그는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공작은 그 둘의 거센 거부에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말했다. “왜 그러시는 겁니까? 못 하겠다니. 왠지 이유를 말씀 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만.” “못 말하는 이유요? 그것을 꼭 말해야만 알아들으시겠습니까?” 그의 질문에 영애가 먼저 앞서 말했다. 그런 영애의 말에 공작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친절하게도 이유를 설명해주어야만 알 수 있겠습니다.” 으드득. 공작의 말에 영애는 살짝 이를 갈았다. 설마하니, 이 사람은 오늘도 날 어린애 취급을 할 모양이었나 보았다. 묘한 대치상태가 되어버린 두 명의 모습을 알 턱이 없는 소녀가 그 둘의 대화에 못 따라가고 혼란스러워 하자 공작은 그녀의 어리버리함에 한숨을 살짝 내쉬었다 잠시 그녀를 무시하기로 하고 영애에게 관심을 집중하였다. “공작님은 절 선택하지 않으셨습니까? 저흰 분명히 당신께 더욱 더 소중한 이를 택해 달라 하셨고 그에 당신께선 아무 망설임 없이 날 선택하셨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설명이 되었을 텐데요. 아닌가요?” 영의 말이 끝나자 공작은 천천히 미소를 사라지게 만들었다. 자신이 최대한 성급하게 행동하지 않게 한다는 것이 오히려 그녀에게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만들었나 보았다. 공작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전 당신을 선택했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만.” “……네?” “엥?” 공작의 말에 놀란 영애와, 소녀가 둘 다 멍한 소리로 그를 바라보며 의문이 담긴 소리를 내뱉자 그는 그들의 의문을 풀어주기 위해 친절하게도 다시 한 번 더 말을 해 주었다. “당신을 택하지 않았단 말씀입니다.” “……그런!” 영애의 얼굴빛이 발그랗게 변했다 파랗게 변했다 매번 변하기 시작했다. 기껏 그를 사로잡기 위하여 어른스러운 표정 연습을 해서 왔건만, 다시 어린애의 치기가 올라오려 하자 그녀는 속으로 꾸욱 삼키고 그를 노려보았다. “전 단지 영애께서 더 이상 제 방에 함부로 찾아오는 것을 삼가주셨으면 하는 맘에 그런 것입니다.” “~~~~!” 영애는 도저히 참지 못했다. 이런 어른스러운 놀이는, 더 이상 지긋지긋 해졌다. 결국 참지 못한 영애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그가 다시 한 번 더 자신에게 훈계어린 잔소리를 하기 전 자신이 먼저 소리를 빽 지르며 본성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어째서? 왜 전 안 되는 거예요? 다른 귀족영애들께선 말씀하셨어요! 당신께 가면 별 탈 없이 ‘어른’이 될 수 있다고. 진정한 여자가 될 수 있다고! 당신은 오는 여자 안 내치시고 가는 여자 안 잡으시지 않으셨던가요? 그러한데 어째서, 어째서 저만 안 되는 거죠? 제가 못생겨서 그런 건가요? 집안의 힘이 작아서? 몸매가 부족해서 그런 건가요?” 드디어 본성을 드러낸 영애의 말에 그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역시 아무리 겉모습이 성숙해졌다고는 하지만, 어린아이는 어린아이였을 뿐이었다. 그는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살짝 내저었다. “그럴 리가.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닙니다.” “그럼, 어째서 저만 내치시나요? 어째서죠? 말해! 왜 나만 내쳐요? 왜, 왜 나만ㅡ. 나도 공작님을 좋아한단 말이에요! 흐엉~” 결국 참지 못한 영애의 울음소리가 방안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그는 조금 난처하다는 듯의 생각을 얼굴에 잠시 비추었다가 이내 다시 감추고 그녀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 부드러운 손길에 영애는 더욱 더 서럽게 울어대었다. 그리고 그의 옷깃을 붙잡고 펑펑 울기 시작하는 모습에 소녀는 크게 놀래었다. 분명히 자신보다 어른스럽고 그에게 어울려보였던 그녀가, 펑펑 우는 모습으로 인해 모든 게 다 지워져 버렸다. 마치 그 둘의 모습은 떼쟁이 아이를 달래고 어르는 아빠의 모습인 것 같은 아이러니한 장면에 소녀는 입을 헤ㅡ 하고 벌리었다. “브리쉘.” “……훌쩍.” 그녀의 이름을 낮게 부르는 소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품안에서 그녀는 여전히 훌쩍거리기만 하였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그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 번 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레이디 브리쉘. 당신은 자신의 몸을 더욱 더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내 몸을 소중하게 여겨요?” 그녀의 반문에 그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네. 무조건 좋아한다고 해서 마음대로 몸을 내주시는 건 안 되는 행동입니다.” “하지만 왜요? 다른 영애들께선 공작님을 사모하셔서 몸을 내주셨잖아요? 그리고 그들을 거부하지 않았던 것도 당신이었고요.” 불퉁하게 말하는 그녀는 자신의 머리를 망가뜨리고 있는 그의 손을 차갑게 쳐 내었다. 그리고 그의 품에서 빠져나온 그녀의 모습은 약간 눈가가 부어있긴 했지만 아까 전의 도도한 영애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아직 당신은 성년의 날을 맞이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향한 제 마음은 그녀들 보다 훨씬 더 큽니다! 그러면 왜 그녀들을 품었지요? 그리고 또 저만 빼고 그녀들은 안으시겠지요. 안 그러세요?” 나이에 대한 말에 발끈한 영애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공작은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이때까지 안았던 여자들은 하나같이 썩어빠진 향내를 몸에 짙게 피우며 자신을 꼬아내기 위해 안달하던 여자밖에 없었다. 오로지 자신의 작위를 보고 발정난 암캐마냥 달려들던 그녀들과는 달리 자신의 앞에 있는 영애 순수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공작은 어린 영애를 안을 맘은 전혀 없었다. 그래서 전부터 밤늦게 몰래 저택을 빠져나와 자신을 찾아오던 그녀를 항상 다시 돌려보내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영애 말고도 더 이상 여자를 안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ㅡ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공작은 그렇게 말하며 멍한 표정으로 둘을 번갈아보는 소녀를 살짝 껴안았다. 그리고 당황스러워 어쩔 줄 몰라 하는 소녀의 뺨에 살짝 키스를 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더 이상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 저한테는 그 보다 더 생각해야만 하는 것이 나타났거든요.” 그리고 그는 천천히 소녀가 자신의 품안에 벗어나지 못하도록 스킨십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소녀의 바르작거리던 행동이 거짓말같이 멈춰졌다. 역시, 라고 중얼거리던 공작은 입을 그녀의 귓불에 가져가 입을 대면서 속삭였다. “도망갈 생각은 죽어도 하지 말도록.” “…….” 어떤 것이 그의 진실 된 모습인지 정말로 궁금해지는 소녀였다. ================================ # 20편 # 소제목 : 제 3자의 눈엔 둘 다 바보 ================================ 쾅! 결국 분에 이기지 못한 영애가 얼굴을 붉히며 달아났다. 물론, 그 얼굴에는 서러움과 질투심. 그리고 투기심과 부러움이 한데 어우러져 복잡 미묘한 얼굴인지라 소녀는 더 이상 그녀에게 독한 말을 내뱉지 못하고 그녀가 재빨리 사라지는 것을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자신은 이렇게 그의 품안에 얌전하게 안겨 있는데 그런 것을 바라보고 입술만을 깨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소녀는 더 이상 그의 품안에 있을 수 없어서 멈추었던 몸짓을 다시 바르작거리기 시작했다. 저 기분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나 아닌 그녀의 팔을 잡았을 때의 느낌. 그리고 그런 그의 행동에 대한 너무나도 허탈한 느낌. 공허한 느낌. 얼마나 심장을 콕콕 찔러댈지 소녀는 알았기에 그의 품에서 간단히 벗어나 지금쯤 아까 전처럼 독한 모습 대신 눈물을 펑펑 흘리고 있을 그녀에게 달려 나가기 위해 팔까지 써서 바둥바둥 거렸지만 여전히 그가 자신의 몸에서 떨어지지 않자 소녀는 독기를 품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것 좀 놓아주세요.” “내가 말했을 텐데?” 소녀의 말에 대답은커녕 오히려 자신의 말을 들으라는 식 인양 괘씸하게 행동하는 공작으로 인해 소녀의 눈썹이 삐뚜름하게 변했다. “왜요? 눈물 흘리는 저 여자가 보이지도 않으세요? 가서 달래기라도 해 줘야 할 것 같아 보이는데요.”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궁금하다만.” “왜ㅡ 냐니요? 그야 물론 저 여자가 눈물을…….” “눈물이 뭐 어때서? 너흰 아까까지만 해도 싸우고 있었지 않았나.” 소녀는 말을 하다 말고 그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그의 말이 옳았다. 그녀가 저렇게 분에 받혀서 뛰쳐나가는 모습을 보고 자신은 좋아라 춤이라도 쳐야 할 판에, 오히려 그녀의 처연한 얼굴을 지은 체 뛰쳐나가는 모습이 안타까워 뒤 따라가 달래줄려는 모습이라니. 소녀는 자신의 모습이 아이러니해 그에게 반항하던 행동을 일제히 멈추었다. 하지만 심장은 여전히 자신이 당하지도 않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에 대한 안쓰러움으로 인해 두근두근, 뭉툭한 것으로 찔러대는 듯 한 아픔을 느꼈다. 어째서 일까? 자신의 아픔도 아닐 텐데. 소녀는 여전히 두근거리는 자신의 심장으로 가만히 손을 올렸다. 이제는 희미해지기는 하였으나 아직 그가 자신이 아닌 영애를 택했던 것 같은 모습에 받은 충격이 욱신거리고 있었다. 혹시 이것 때문일까. 자신이 이 느낌이 무엇인지 알기에 저렇게 도망가다시피 한 영애의 모습에 연민을 느끼는 것일까. 소녀가 가만히 생각을 하면서 어느새 자신의 품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을 느끼자 공작의 입이 살짝 삐뚜름해졌다. 자신은 그녀밖에 보질 못하는데, 그녀의 머리와 눈이 이제 마차를 빌려 자신의 저택으로 향하고 있을 영애에게 가 있다는 것을 느끼자 공작은 심술을 느꼈다. 그녀가 자신만을 보기 원했다. 그래서 그는 그녀를 번쩍 들어 올렸다. “?! 이, 이게 뭐하는 짓이에요!” 그제야 자신만의 생각의 틀에 갖혀있던 소녀가 잽싸게 그의 행동에 반응을 하며 소리를 버럭 질렀다. 솔직히 말해, 열심히 생각을 하고 있는데 몸이 옆으로 기울어지는 것에 대한 반응은 소녀의 행동이 적절했을 것. 하지만 공작은 그런 소녀를 향해 삐뚜름한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말을 꺼내었다. “서 있으니 다리가 아파 와서 말이다.” “전 아프지 않아요!” 그런 그의 말에 어이없다는 투로 소녀가 버럭버럭 소리를 질렀다. 다리가 아프다면 자신만 의자에 앉으면 될 터이지. 왜 어째서 자신까지 끌고 가는지 도대체 이해를 할 수 없어 소녀의 눈이 가자미처럼 변하였다. 그런 그녀의 눈 흘김에 공작은 그제야 미간에 주었던 힘을 풀며 여유롭게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바르작거리는 행동에 조금 애를 먹었지만 자신에겐 너무나도 가벼운 그녀 하나쯤 제압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일이였기에 결국 공작은 손쉽게 그녀를 자신이 원하는 뜻대로 행동하게 만들었다. “……놓아주세요.” “싫다만?” “……씨이.” 소녀는 볼을 발그랗게 물들이며 손을 어디다 놓아야 할지 고민했다. 하지만 결국 마땅히 찾을 만한 곳을 발견하지 못하자 그녀는 몸을 살짝 기우뚱 거리며 그의 옷자락 끝을 잡았다. 사실 팔걸이나 그의 팔을 붙잡고 싶었지만 그의 팔을 붙잡았다간 그의 능글거림에 자신이 어떻게 될지 몰라 두려움에 차마 잡지는 못하고 그의 옷자락을 잡았던 것. 물론, 그의 팔은 의자에 딸린 팔걸이에 있음을 두말하지 않아도 깨달을 바였다. 소녀는 그가 자신의 부드러우면서도 짧은 머리카락을 쓰다듬자 더 이상 그를 바라보지 못하고 머리를 푹 숙였다. 자신이 왜 그의 허벅지 위에 올라타 있어야 하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물론 이 방에 의자의 수는 극히 작았다. 하지만 꼭 그가 앉고 있는 의자 말고도 다른 의자가 있었기에 그 의자 쪽으로 도망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자신의 허리를 단단하게 잡고 있는 커다란 손에 의해 소녀는 엉덩이만 씰룩거릴 뿐이었다. 자신에게 왜 이렇게 행동을 하는 것일까. 소녀는 궁금했다. 아까 전 뛰쳐나간 영애에겐 존댓말까지 써주며 온화한 미소를 띠곤 했었다. 그리고 마치 어린애를 달래는 사람처럼 부드럽고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그녀를 타이르기 까지 했었다. 하지만 자신에겐 그런 말투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오로지 즐거워하고 자신을 놀려먹기 즐거워하는 양의 행동들. ‘나도……. 나도 그런 식의 말투로 내게 해준다면 얌전해질 의향도 있는데.’ 소녀는 속으로 투덜투덜 거렸다. 점점 생각을 하면 할수록 그가 자신에게 신사답게 대한 적이 손으로 꼽아질 정도로 작았다. 그리고 아까 전에 보여준 그녀에게 대한 행동은 자신에게만 그런 빈정대는 행동을 한다는 것을 알고 조금 충격을 받은 터였기에 소녀의 인상은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그런 심정의 변화를 몸을 서로 맞대고 있는 공작에게까지 닿은 것일까, 공작의 입가가 묘하게 변하더니 이내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있던 손으로 머리카락 일부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소녀가 아프지 않을 정도로 머리카락을 자신에게 당긴 후 자신의 입을 천천히 내려뜨렸다. “……! 뭐, 뭐하는…!” 소녀가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가 자신에게 행하는 행동을 경악스럽게 바라보았다. 무려, 무려 그의 입술로 자신의 머리카락에 지그시 누른 것. 마치 숭배하는 이에게 하는 키스처럼 숭고한 느낌마저 그에게 나타나자 소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어버버 거렸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발견한 그가 살짝 짓궂은 미소를 띠며 머리카락을 놓았다. 그리고 경악으로 인한 굳은 얼굴에 살며시 키스를 하였다. “새, 생각하고 있는 중이였는데 키스를 하면 어떻게 해요?!” “하면 안 되나?” 그의 말에 소녀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불퉁하게 입술을 내밀며 그의 시선이 닿지 않는 쪽으로 고개를 틀어버렸다. 그는 야비했다. 자신이 저런 말 한마디에 아무런 대답을 할 줄 모른다는 것을 이미 눈치 채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얼굴 표정이 그렇게 좋지 않았나.” 공작의 말에 소녀의 입술이 쏙 들어갔다. 질투심에 휩싸였다는 생각을 감추기 위해 적당히 둘러대야 할 말을 찾아야 했지만 찾지 못하자 소녀는 울상을 자아내었다. “……그, 그것은.” “질투라도 한 것인가?” 공작의 말에 소녀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여졌다. 역시. 나지막하게 중얼거린 공작은 소녀의 뺨에 손을 대었다. “왜 질투를 한 것이지?” “지, 질투는 무슨! 내가 질투 따위를 왜 해요?” 말과 행동이 따로 노는 소녀로 인해 그는 고개를 돌리고 몸을 움찔거리며 웃기에 바빴다. 안한다니. 이미 그녀의 붉어진 얼굴은 거짓말을 뜻하였으며 파닥파닥 거리는 팔은 마치 소녀의 거짓말을 감추기려도 하는 듯이 움직였다. 그런 그녀의 행동이 귀여워 가만히 보고 있던 그가 갑작스럽게 자신의 주머니 속에 든 것을 생각해내고 급히 손을 주머니 속에 넣어 그것을 꺼내었다. 그리고 그녀가 보지 못하도록 조심해서 자신의 눈앞에 꺼내들은 상자를 보며 빙긋이 미소를 짓던 그는, 천천히 소녀의 눈높이에 맞추어 상자를 내렸다. “어, 이게 뭐예요?” 상자를 보는 순간, 거짓말 같이 모든 행동을 멈춘 소녀가 호기심을 가지고 그의 손에 놓여 있던 상자로 손이 갔다. 그리고 그녀의 손바닥으로 상자가 옮겨진 순간 그는 자신의 손으로 그녀의 손바닥 위에 있는 상자의 뚜껑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ㅡ우와.” 소녀는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아기자기한 목걸이에 탄성을 질렀다. 붉게 타는 듯 한 가운데의 보석을 둘러싼 은의 세공이 무척이나 아름다워 보였다. 작은 것 하나하나에 섬세한 조각을 새겨 넣은 목걸이에 소녀는 눈을 땔래야 땔 수 없었다. “널 위해 준비한 선물이다. 이걸 받고 더 이상 사사로운 질투 따위는 하지 않아도 괜찮다.” “……! 지, 질투 같은 거, 하지 않았다니깐요?” 그의 감미로운 목소리에 소녀는 버럭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이내 자신의 것이라는 목걸이에 다시 시선을 돌렸다. 보면 볼수록 자신의 시선을 빨아들이는 듯 한 그 모양에 소녀는 자신도 모르게 함박웃음을 베어 물었다. 싫은데, 아직도 그가 미운데 그에 대한 밉고 섭섭했던 감정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의 미소에 그 또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달콤한 향을 풍기는 머리카락 속으로 얼굴을 파묻었다. 그녀는 뜻을 알고 있을까. 이성한테 주는 목걸이는 자신의 것임을 알리기 위한 표시ㅡ 라는 것을. ================================ # 21편 # 소제목 : 11.01.05. 그 여자의 일기 ================================ “…….” 돌아왔다. 내 눈에 익숙한 풍경들이 있는, 하지만 그의 방도 이젠 익숙해버려 어딘가 위화감을 느끼는 난, 아직까지도 여운이 남아도는 입술의 감촉을 감당하지 못하고 침대 위에 있는 베게로 얼굴을 묻어버렸다. 어느 정도 시간을 계산한 내가 그에게 자신이 사라짐을 알렸을 때, 그는 오히려 날 붙잡고 놓지 않았었다. 왜 그런 것일까. 내게 왜 이렇게 잘해주는 것일까. 그의 뜨거운 시선에 감당하지 못하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그는 억세게 내 어깨를 붙잡았었다. 놀란 내가 그를 향해 고개를 돌린 순간, 아찔하게 덮쳐오는 그의 향에 일시적으로 숨이 멎혀지는 듯 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그가 내 향을 들이마시기라도 하려는 듯이 깊게 키스를 하기 시작하자 난 눈을 감았다. 그 순간 생각 드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로지 그와의 얽히고설키는 키스만이 머릿속을 맴맴 돌았다. “……하아.” 난 뜨거운 숨결이 담겨있는 한숨을 토해내며 시원한 공기를 들이마시기 위해 고개를 틀어 베게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그의 생각이 머릿속에서 완전하게 벗어난 것은 아닌지라, 여전히 뜨거운 입술은 쉬이 진정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직접 맞닿은 입술보다 더 뜨거운 곳은 심장이었다. 뜨겁게 쿵쾅되는 심장은 쉽게 내 맘대로 컨트롤이 되지 않았고 결국 컨트롤하기 조차 포기한 난 몸을 뒤집어 천장을 바라보았다. 뜨거운 숨을 자꾸 내 뱉어내는 입에선 호흡이 천천히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했고 이내 볼에 언제까지고 있을 붉은 여운이 사라지자 난 눈을 감았다. 어째서 그와 만나는 시간이 10분씩 길어질까. 어째서 그는 갑작스럽게 내게 잘 해주는 것일까. 어째서 난. 어째서 난 그와 자꾸 밤마다 만나는 것일까. 솔직히 말해, 그와 헤어지기 전 이런 생각을 했었다. 전과 달리 20분이 지나도 집에 가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닫고는 그가 눈치 채지 못할 정도의 미세하게 몸을 떨었다. 혹시나, 만약 혹시나 집에 못 가게 되면 어떻게 될까ㅡ 라고 생각해보았다. 끔찍했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동생. 그 밖에도 많은 내 친구들과 선생님. 그 모든 사람들을 한 순간에 못 만나게 된다고 생각하자 걷잡을 수 없는 두려움이 몸을 옭아매었다. 하지만 난 두려운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그의 붉은 눈과 마주치게 되자, 난 울지 않으려고 눈시울이 발개진 것을 그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눈을 북북 문질렀다. 언제부터 이런 생각까지 들게 된 것일까. 이런 내 자신이 실망스럽고 아니꼬웠다. 하지만, 하지만 이것이 내 자신이 감정이라는 것을 깨달았기에 난 그에게 수줍게 내가 예상하는 시간, 30분에 가야할 것을 고했다. 그리고 그가 내게 입을 부딪쳐 오는 순간, 나 자신은 스스로 깨닫고야 말았다. [난 그를 사랑한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비웃을 수도 있었다. 만나는 방법이 하도 엽기적이라, 그의 마음엔 나 자신이 차 있지 않았다고 해도 좋았다. 이상하게도 시간이 느는 것은 불안했지만, 그를 만나는 건 좋았다. “에라 모르겠다!” 난 가족들이 깨지 않을 정도의 힘찬 목소리로 말하며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그리고 잠을 청하기 위해 눈을 감았다. 어차피 집에 확실하게 돌아오는 이상, 그를 만나는 것도 그를 좋아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날 편하게 해 주었다. 그렇게 잠을 청하기 위해 몸을 옆으로 돌리는 순간, 난 소리를 내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맞다! 그한테 줄 사탕!” - 난 눈앞에 있는 사탕과 초콜릿을 노려보며 한숨을 내 쉬었다. 따뜻한 주머니 안에서 처참한 형태로 녹아버린 초콜릿은 물렁물렁해 그 형태를 알아볼 수가 없었으며 사탕 또한 데워 버린 것처럼 따스한 온기를 간직하고 있었다. 그에게 달콤한 것을 맛보게 하려 했던 것이었는데, 오히려 데워져버려 형태도 알 수 없는 것을 그에게 주겠다는 생각에 난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다시 사러가기 위해 집안을 뒤져보았지만 돈도 하나 없고, 집에 사 놓은 건 이미 망할 동생이 다 먹었는지 깨끗하게 빈 그릇만이 존재했었다. 어쩔 수 없이 녹아버린 초콜릿을 제외한 사탕만을 들고 가기로 생각한 난 사탕을 두 손에 꽉 쥐며 시계를 바라보았다. “1시 58분.” 난 시간을 읊조리며 다시 사탕을 바라보았다. 이번엔 꼭 전달해주고 말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어젠 그의 업무를 방해하지 않고 도와주기로 했던 것 또한 생각나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도와주기는커녕, 어제 그 여자와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며 깽판을 부렸던 것이 생각난 터. 난 다시 달아오르려는 볼을 톡톡 치며 정신을 차리기 위해 애썼다. 그리고 그와 만나면 바로 주기 위해 다시 한 번 더 손 안에 있는 사탕을 잘 본 뒤 천천히 시계 초침을 바라보았다. 5초 3초 1초 . .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어지러움이 날 덮쳤다. 그리고 그 어지러움에서 해방 될 때에 난 제대로 확보되지 않은 시야 속에서 그의 형체 비스 무리한 것을 발견하자 난 해맑게 웃으며 그에게 손을 내 뻗었다. 그리고 ‘맛있게 드세요’를 말하기 위해 입을 벌리는 순간이었다. 쇅! “꺄, 꺄악?!” 내 입에선 달콤한 애교가 어린 ‘맛있게 드세요’가 아닌, 오랜만에 들어보는 여성스러운 비명소리가 목을 타고 흘렀다. 하지만 그것도 어쩔 수 없는 것이, 눈앞에 있던 형체가 날 따라 웃는 대신 검을 휘두른 것. 난 순간적으로 비틀거리며 뒤로 피한 뒤 놀래 눈을 깜빡거리며 시야를 강제로 회복하기 위해 연신 눈을 문질렀다. 그리고 그 순간, 나와 멀어진 곳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리자 난 천천히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안 된다! 피해라!!” “……네?” 내가 얼빠진 목소리를 하면서 목소리의 근원으로 발걸음을 때었다. 아니, 때려 했었다. 하지만 내 목에 차갑기 그지없는 무언가가 닿자 난 본능적으로 멈췄다. 침이 자연적으로 삼켜지고 식은땀이 흘렀다. 그리고 목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자 난 낮게 욕을 지껄이지 않을 수 없었다. 젠장. 난 두려움에 손에 한가득 쥐었던 사탕을 놓아버렸다. 토도독 거리며 사탕이 떨어지자 난 눈물을 흘리지 않기 위해 눈을 질근 감았다 다시 떴다. 내가 처음에 사탕을 건넸던 이는, 내 목에 검을 드리우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보고 싶어 안달나지 못한 그는 내 그런 모습에 절망적으로 쳐다보았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나, 설마 영화 속에 나오는 역겨운 여자주인공들처럼 도움도 안 되게 잡혀버린 거야? “이 여자를 살리고 싶다면 순순히 검을 내려놓아라.” ……빌어먹게도 항상 자기 멋대로 행동하다 함정에 걸려 모두가 위험에 빠지게 하는 그 쓸데없는 여주처럼, 자신이 눈앞에 있는 그에게 위험에 빠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런 사실에 난 낮게 욕설을 내뱉었다. 도와주려고, 그의 기분을 좋게 만들려 했는데. “……!” 사정없이 구겨진 그의 얼굴로 보아, 아무래도 더 기분 나쁘게 만들어버린 것 같다. ……어떻게 하지. [공작 반의 한마디] ㅡ어째서, 왜 이시간에 와서는... 미안하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정말... 그땐 미안했다. ================================ # 22편 # 소제목 : 제국력542.01.05 그 남자의 일기 ================================ 깃펜을 이용해 서류를 처리하다 말고 잠시 멈칫, 거렸다. 하녀가 켜 준 등불이 바람도 불지 않는데도 잠시 흔들린 까닭일까, 흐트러진 집중력에 잠시 한숨을 내쉰 난 천천히 시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느 순간부터 암흑이 내려와 밤이 되고, 그 암흑 속에 달빛이 고고한 빛을 잔잔하게 뿌리기 시작할 때 즈음엔 나 자신도 모르게 항상 체크하는 것이 시간이었다. “1시 30분.” 난 나 자신도 모르게 시간을 중얼거리며 말했다. 그리고 그런 내 행동이 우스워 깃펜을 놓아버렸다. 도로록, 가볍게 소리를 내며 굴러가는 깃펜의 끝을 바라보며 허망하다는 듯이 서류들을 바라보았다. 정작 눈은 서류에 가 있었지만 시선은 서류에 있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30분 뒤에. 아직 오려면 멀은 그녀를 생각하는 내 자신이 우스워 낮게 혀를 찼다. 정말 해도 해도 이건 너무 심한 중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새로운 것에 관심을 가지는, 그런 나답지 않은 호기심에 생겨진 유희라고 생각했던 내 자신이 우스웠다. 이토록 관심을 가지게 될 줄은, 생각을 하게 될 줄은, 미소를 띠게 될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였다. 솔직히 말해, 처음은 장난 반 농담 반이었다. 소녀가 내뱉은 어투와 행동을 그리고 차림새는 그녀가 귀족가의 여식이라고 하더라도 높은 집안일 경우는 허다했다. 거기다가 새벽 2시마다 사라진다는 여식의 이야기는 듣도 보도 못한 일이였기에 단정 지었었다. 그랬었기에 난 그녀가 올 때마다 편안한 마음으로 그녀를 받아들였다. 또한 그녀가 갑작스럽게 사라지는 것에 대해 훗날 뒷감당도 질 필요 없었기에 난 그녀를 편안하게 농락했었다. 하지만. 반응하는 것이 귀여워 자꾸 하게 되고, 웃는 것이 어여뻐 자꾸 웃게 하고 싶어지고, 눈이 반달모양으로 휘어지는 것이 아름다워 계속 지어주게 하고 싶어지고, 작은 체구가 품안에 안겨 들어오는 것이 너무나도 따스해 자꾸만 안게 되고, 마주 닿는 입술이 너무나도 부드러워 자꾸만 입맞춤 하고 싶어지고……. 이 모든 것이 반복되는 순간 난 알아차리고 말았다. 내가 그녀를 상상 이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녀가 없는 밤이 더 이상 상상이 되질 않는다는 것을. 혼란스러움이 생각 속에 깃들었다. 어디까지나 그녀를 다른 여자들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관계정리하기 편한, 그런 여자로 생각하고 있었다. 어리고 작은 체구의, ‘그녀’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소녀를 그저 하는 모양이 예뻐 데리고 싶었다. 그녀가 오는 것이 재미있었고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헌데, 그러한데. “…….” 언젠가 나도 결혼을 해야 할 것이다. 이 가문을 이어나가기 위한 족쇄와도 같은 결혼은 이왕이면 내 가문이 잘 될 수 있게 협력을 해주는 사람과 해야 할 것이다. 나 또한, 아무리 권력을 확보하기위해 바둥바둥 거리고 안달 난 사람들을 비웃더라고 하더라도 결국 웃으면서도 그들과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사람에 불과했다. 사실 그러한 현실이 마음에 들지 않아 한때 기피한 적도 있었으나 언제나 제자리걸음을 하는 나 자신을 보고 깨달았었다. 나는 그들과 ‘다르지 않다’라는 것을. 그랬었기에 어느 순간부터 나 또한 모든 것을 거의 포기하고 있었다. 결혼도, 연애도, 몸을 부딪쳐 하는 서로간의 온기를 나누는 행위도. 행동은 거침없었지만 마음은 있지 않았다. 이러한 내 자신의 행동이 모든 귀족자제들의 공통점이었으며 같은 부분이고 또 행해야만 할 일인 줄 알았다. 하지만 어느 세부터인가 내 마음 한켠에 자리를 잡고 확고하게 확장해나가는 그녀를 바라보며 따스한 미소를 짓던 내가, 오늘만큼은 지을 수 없어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위험하다. 더 이상 이대로라면 난 내 자신을 컨트롤 하지 못하게 된다. 아찔한 생각이 혼란스럽게 머릿속을 덮쳤다. 끔찍했다. 사랑이라는 단어, 영애들에게 너무 흔하게 들어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단어였는데, 요즘 따라 많이 생각하게 된다. 내가 정말 그녀를 사랑하는 것일까. 쓸데없는 감정이 나돈다. 일순간 머리가 너무 무거워진 착각에 빠져 난 고개를 숙였다. 목으론 지탱하기 힘들어 손을 이마를 받쳤다. 혼란스러워진 머리엔 이미 서류를 작성할 수 없을 정도가 되어버렸다. 화르륵 또 다시 등불이 일순간 흔들렸다. 아까전보다 좀 더 지나치게 흔들리는 촛불에 따라 일렁거리는 그림자에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렸다. 아직 진정이 되지 않은 촛불이 왔다갔다 거리자 난 그제야 무엇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 깨달았다. 뒤늦게 알아차린 자신의 실력이 상당부분으로 낮아짐에 대해 후회스러웠지만, 일단 사태의 심각성을 받아들이고 항상 서재 구석에 놓았던 검을 재빨리 들어 검집에서 빼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큭!” 날카로운 쇳소리와 동시에 아슬아슬하게 검집에서 빼 든 검과 누군가의 검이 맞닿였다. 아직 적응 되지 못한 손잡이를 잡고 있는 손이 부들부들 떨며 힘을 감당하지 못하자 낮게 비웃는 소리가 들렸다. 챙ㅡ! 거친 파열음이 들리면서 순간적으로 힘에서 해방되었다. 오로지 등불로만 밝혀진 어두운 서재 안에서 온몸을 어둠으로 감추기라도 한 듯 한 낯선 이의 방문은 자신의 얼굴마저도 어둠으로 가려버렸다. “누구냐.” 내가 낮게 으르렁 거리며 그를 향해 묻자, 가면 밑에 있던 입 꼬리가 묘하게 말려 올라갔다. 흥미 있다는 것일까, 묘한 표정을 짓던 낯선 방문자는 조용하게 입을 열었다. “내가 누구다고 말한다 해서 당신은 알아낼 수 있을까? 나의 배후를.” “못 알아낸다고 단정 짓기는 힘들지.” 난 그를 향해 으르렁 거리며 무언가 집안을 깨울 것을 찾아내기 위해 고민에 휩싸였다. 하필이면, 방 안이 방음처리 마법으로 이루어져 있는 지라, 웬만한 괴음이 아니고서야 정막에 싸여 있는 저택의 가솔들을 깨우기란 힘들었다. 편리함을 주기 위해 설치한 방음처리 마법이 이럴 때 쓸모없다는 것을 느끼고 이를 살짝 갈았다. 검을 전혀 잡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검은 내 손에 그다지 익숙하질 못했다. 황궁에서 손에 쥐어주던 검 보다는 깃펜의 일이 어느 정도 익숙해져버린 나 였는지라 검 단련의 시간은 지극히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오늘처럼 이렇게 갑작스럽게 검 실력이 필요하게 되었다면 절대로 훈련을 쉬엄쉬엄 하지 않았으리라. 뒤 늦게 찾아오는 후회에 눈을 살짝 찌푸렸다. 하지만 후회를 한다고 해서 시간이 뒤로 되돌아가는 것은 아니었다. 일단은 최소한 시간을 끌기 위해 입을 계속해서 열었다. “무슨 연유로 이곳에 까지 숨어들어 온 것이냐.” “연유?” 나의 질문에 그는 가소롭다는 듯이 반문했다. 그리고 대답 대신 검을 살짝 휘두르며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그를 바라보던 난 본능적으로 검을 세웠다. 그리고 다시 챙! 하는 광음과 함께 낯선 이의 얼굴이 가까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눈살을 찌푸렸다. 억울하지만 그에게 난 호적수가 아니었다. 하지만 어떻게 해서든 내 소유의 기사들이 온다면 어느 정도 승산은 있었기에 최소한의 몸동작으로 그의 무작정으로 부딪쳐오는 검 날을 비껴내며 옆으로 피해내었다. “연유 따위 들어서 뭐 어쩌겠다는 것인지. 머리가 잘 돌아가시는 공작 나으리께서 설마 나 하나 찾아온 연유를 몰라 묻는 건 아닐 텐데 말이지.” “…….” 그의 말에 난 혀를 찼다. 벌써 행동으로 옮긴 것인가. 그런 것 치고는 생각보다 꽤나 빠른 반응이었기에 난 그들의 얍삽 빠른 움직임에 감탄을 표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다시 검 날을 부딪쳐 오는 그를 피해내며 거리를 넓히고 있을 때였다. “꺄, 꺄악?” 연약한 비명소리가 들렸다. 귓가를 파고드는 저 소리가 헛것이길 간절하게 빌면서 고개를 틀었다. 재빠르게 들어 올리는 순간, 내 머릿속은 새하얗게 변하는 것을 느꼈다. 그의 검에 너무 집중을 하느라 그녀가 오는 시간을 잠시 망각하고 있었다. 그 사실이 원망스러워 난 그녀를 바라보았다. 겁에 질린 얼굴, 그리고 사태파악하지 못하고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어벙한 미소를 잔잔하게 짓고 있는 그녀를 보며 난 안타깝게 소리쳤다. “안 된다! 피해라!!” 모든 것이 정지하는 것 같았다. 안 된다. 내가 다치더라고, 설사 내 팔 한쪽을 내어주는 한이 있더라고 하더라도 무구한, 죄 없는 그녀가 나대신 다치는 것은 전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였다. 있어선 안 될 일이였고 또한 펼쳐져서 안 될 일이 발생하고 말자 난 입술을 꽈악 깨물었다. 그리고 난 살기어린 눈으로 겁도 없이 혼자 잠입한 낯선 이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교환일기 예빈의 한마디] ㅡ괜찮아요. 난 오히려 내가 도움이 되지 않고 방해만 한 것 같아 죄송했는 걸요. 괜찮아요. 오히려 좋은 걸요. 당신 대신 다칠 수 있어서. ================================ # 23편 # 소제목 : 제 3자의 눈엔 둘 다 위험! ================================ ※이번편은 음악이 있습니다. 듣기싫으신 분들은 재빨리 ESC키를 눌러주시거나, 스크롤바를 내려 재생을 멈쳐주시는 둥, 만약 정말 이 두가지 방법이 안되신다면... 죄송하지만 스피커를 꺼주시기 바랍니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 소녀는 눈앞이 어지러웠다. 이것은 환상? 조용히 중얼거려보았지만 부정인 것일까, 긍정인 것일까. 소녀의 시야에 모든 장면이 슬로우 모션으로 다가왔다. 오버랩 되어 자신에게 다급한 표정으로 뛰어오는 그와, 당황한 듯이 노려보는 낯선 이를 바라보며 소녀는 눈을 깜빡이었다. 방금 전 까지만 하더라도 저 낯선 사람에게 붙잡혀 목숨을 위협했었는데, 왜 자신이 풀려났는지 이해가 가질 않아 소녀는 두 눈을 연신 깜빡이었다. 소녀는 다급하게 자신에게 다가오는 이를 향하여 팔을 뻗으려 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자신의 의지를 철저히 배반하고 전혀 움직이지 조차 않는 자신의 팔을 내려 보던 소녀는 미소를 지었다. 모든 것이 이해가 되었다.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들. 그 모든 행동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자 소녀는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다행이었다. 그가 전혀 다치질 않아서. 정말로 다행이었다. 소녀는 다시 한 번 더 눈을 깜빡이었다. 눈을 감았다 들어 올리는 속눈썹엔 눈물에 의해 촉촉이 젖어있었다. 그리고 둔탁한 충격과 함께 소녀의 몸이 차가운 바닥에 쓸리자 공작은 절규하는 듯이 손을 뻗었다. “안 돼!!” 마치 괴롭고 괴로워, 목에서가 아닌 마음에서 끌어올려 뱉어내는 비명소리는 듣는 사람도 애절하게 만들었다. 공작은 안타까움에 몸부림치며 차가운 바닥에 엎어진 소녀를 자신의 쪽으로 끌어안았다. “어째서, 어째서 왜냔 말이다!” 그는 다그쳤다. 자신의 품 안에서도 추운 듯 마냥 작게 경련을 일으키는 작디작은 소녀가 안타까워서 소리쳤다. 이럴 순 없었다. 자신이 그렇게도 지키고 싶어서 안달 난 아이를,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이렇게 꺾이게 할 순 없었다. 이리해선 안되었다. 그는 자꾸만 덜덜 떨리는 손으로 출혈이 심하게 일어나는 소녀의 목을 손으로 눌리었다. 하지만 꾸역꾸역 나오는 피는 애쓰는 그를 놀리기라도 하듯이 좀처럼 멎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공작, 그가 앞 뒤 분간 못하고 소녀에게 달려간 사이, 그의 방에 침입한 낯선 자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혼란스럽게 소녀와 공작의 뒷모습을 노려보았다. 어떻게 저럴 수 있나. 그는 당황스러워 못내 혀를 찼다. 하지만 자신의 검으로 느껴지던 육질은 아직도 생생하여 손이 달달 떨렸다. 그는 살생을 못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살생을 즐겼다. 자신에게 사정사정하고 빌던 사람들을 베는 쾌락에 그는 살수를 계속해서 도맡아 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의 도움 따윈 필요 없었다. 오로지 자신만이 그 아름다운 풍경을 즐길 수 있도록 그는 되도록 혼자서 일을 처리했었다. 이번도 그러했고, 자신이 소녀를 인질로 잡음으로써 사정하며 비는 공작의 얼굴을 보고 싶어서 미소까지 지었었다. 하지만 이게 어찌 된 일인가. 그의 생각은 완전히 어긋나고 비틀려버렸다. 소녀는. 소녀는 자신 스스로 그의 검으로 목을 베어버렸다. “……크윽!” 그는 쓴 소리를 내뱉으며 다시 공작의 등을 노려보았다. 자신의 계획과 차질된 것은 의외였지만, 어찌되었든 일단 공작은 방심을 하고 있었다. 이로써 자신은 그를 완벽하게 살해할 수 있었다. 꽤나 찝찝했지만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낯선 이는 검을 들어올렸다. ㅡ그리고 그 순간, “공작님!” “공작님! 무슨 일이십니까!” 아무리 검을 맞대어도 아무런 소리가 없던 공작소유의 기사단들이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그 모습에 놀란 낯선 이가 창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언제인지 몰라도 창문을 처참하게 깨져놓은 모습이 보였다. 낯선 이, 살수는 이를 갈았다. 완벽하게 방심할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었다. 그는 이를 바득바득 갈며 훗날을 도모하기 위해 깨진 창문으로 뛰어내렸다. 아무리 자신의 검 실력이 뛰어나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 많은 양의 기사들을 한 번에 처리하기는 어려웠었기에 그는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검은 밤하늘에 사라졌다. “공작님 괜찮으십니까?” “공작님 이 피는…….” 살수가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그들은 공작에게 안부를 물었다. 하지만 그들은 안부를 묻다가도 공작의 얼굴과 품 안에 안겨있는 무언가를 확인하자 충격에 휩싸여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 철면피라고 불리우던 남자는, 냉철하고 남 따위 신경 쓰지 않는다고 불리우던 남자는, 자신의 품 안에 안겨있는 자그마한 소녀 때문에 울고 있었다. 슬퍼서, 너무 슬퍼서 차마 입 밖으로 소리는 내지 못하고 어깨를 들썩이며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 그가 너무나도 안타까워서 기사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조용히 검을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집에 넣었다. 미세하게 경련을 일으키던 소녀는 결국 웃어보였다. 그리고 그 웃음에 그가 반가워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희미하게 눈을 떠 자신을 바라보며 사랑스럽게 웃고 있는 소녀에게 일순간 희망이 보여 공작은 따라 웃었다. 왠지 모르게 웃어야만 소녀가 살 것 같아서 웃었다. 하지만 공작의 품 안에 있던 소녀의 아름답게 일렁이던 눈동자가 더 이상 보이질 않고 소녀의 볼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을 끝으로 바르작거리던 몸도 멈춰버리자 공작은 크게 눈을 떴다. 믿을 수 없다. 이건 다 꿈이다. 꿈일 것이다. 절대로 안 된다. “…….” 애처롭게 소녀를 부를려다가도 그는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그는 아직 소녀의 이름도 몰랐다. 우스워서 너무 허망해서 웃음밖에 나오질 않았다. 아직 통성명도 주고받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자신의 심장을 크게 차지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우스웠다. 허망했다. 슬펐다. 괴로웠다. 어처구니없었다. 절망했다. 모든 슬픔과 연관된 단어들이 그를 덮쳤다. 이럴 순 없었다. 이 여린 아이가 오로지 자신 때문에 꺾였다는 게 믿을 수 없어 그는 난생 처음으로 여자 때문에 눈물을 흘렸다. 정말로 이럴 순 없었다. 지키고 싶고 웃음을 계속 지어주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 소녀는 더 이상 눈을 뜨지 않았다. 그 사실이 원망스러워 그는 부들부들 떨었다.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나왔다. 슬퍼서 오열하는 그를 배려하기라도 하는 듯이 박차고 들어왔던 기사들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갔다. 하지만 그런 그들이 눈에 보일 리 없는 그는 소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피투성이가 된 목과 몸을 제외한다면 전혀 깨끗한 소녀의 얼굴에 그는 미세하게 웃어보였다. 자신이 웃으면 얼굴을 발그랗게 물들이며 자신도 모르게 따라 웃던 소녀가 생각나 웃었지만 소녀는 더 이상 웃지 않았다. 그는 소녀의 피가 점점 굳어가는 손을 들어올렸다. 안타깝게 죽어, 채 닫히지 못한 눈가를 쓸어주었다. 그리고 천천히 소녀의 눈꺼풀을 제대로 닫아주며 그는 속삭였다. “……이 모든 건 상황 극입니다. 낚이신 분들, 정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자 이 밑으로 본편 진행되니 제발 그 흥분한 맘 가라앉히시고 천천히 본편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 “…….” 소녀는 침을 꿀꺽, 삼키며 두려운 눈으로 자신의 목에 드리우는 검을 바라보았다. 침을 꿀꺽 삼키는 순간, 따끔한 느낌이 든 것을 보아 아마 검 날에 부딪친 게 틀림없었다. 진짜 검이다. 동네 코찔찔이 아이들이 사용하는 장난감 검이 아닌 정말 100% 정교하게 다듬어지고 날렵하게 세워진 검이라는 사실에 소녀는 울고 싶어졌다. 항상 비명만 지르고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여주인공들이 같잖고 하찮았는데, 오늘에서야 비로소 그녀들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살려달라고 빌고 애원하고 싶었다. 적어도 본능은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소녀는 입 밖으로 나올 것 같은 소리를 꾸욱 참으며 건너편의 그를 바라보았다. 혼란스러운 모습의 그가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고 당황하고 있자 소녀는 자기 자신이 한심스러워서 접시 물에 코 박고 죽고 싶은 심경이었다. “……무엇을 원하는 것이냐.” “잘 알고 있을 텐데?” 빈정거리며 말하는 그가 원망스러워 공작은 자신의 저택에 침입한 자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노려본다 하더라도 소녀가 풀려날 일은 전무한지라 공작은 그대로 입술을 굳게 다물 뿐이었다. “검을 내려놔라.” “!!” 소녀는 자신의 머리위에서 들리는 소리에 어처구니없어서 올려다보았다. 검을 내려놓아라니, 아무리 자신의 목에 검을 드리우는 사내가 악역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판에 박힌 대사를 할 줄 몰랐기에 조금 황당한 모습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소녀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가 얄미운 미소를 짓고 있자 공작은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넌 싸우는 도중에 검을 놓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흐음, 나으리께선 이 아가씨가 어떻게 되든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시나 봅니다?” 사내가 싱글싱글 웃으며 소녀의 목에 드리운 검에 힘을 주었다. “……아!” 소녀가 신음을 흘리며 아파하자 이내 검의 흔적을 남기는 듯이 붉은 핏줄이 선명하게 아로새겨졌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그 또한 소녀의 아픔을 공유하기라도 하듯이 낮게 신음을 흘리자 사내의 비웃음은 더욱 더 짙어졌다. 그리고 그런 사내의 비열한 모습을 보던 공작은 결국 혀를 차며 검을 그를 향해 던졌다. 챙그랑 그의 손에서 한껏 위엄을 떨던 검이 공작의 손에서 벗어나 땅으로 떨어지는 순간 검은 한순간 빛을 잃고 존엄성마저 무너진 체 힘을 잃었다. 쇠와 대리석이 부딪쳐 쇳소리를 내자 사내는 자신감과 오만감에 가득 차 이를 드러내었다. 드디어, 드디어 공작을 죽일 차례가 온 것이었다. 자신의 앞에서 벌벌 길, 그리고 가차 없이 잘릴 그의 몸뚱아리를 생각하며 즐거워진 사내가 소녀의 목에서 검을 치워냄과 동시에 뒤처리를 확실히 하기 위해 땅에 버려진 검을 주으러 가는 순간이었다. “?!” 발에 밟혀진 동그란 것에 사내는 놀라 바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차마 중심을 잡을 사이도 없이 쿵 하며 넘어져 버리자 소녀는 어벙하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소녀는 그의 발밑에 떨어진 사탕들을 보자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다. “맞다, 사탕!” 자신이 두려움에 질려 떨어뜨렸던 눈깔사탕들이 크기도 큰 데다 매끄러운 대리석과 미끄러운 비닐이 한데 만나 마주칠 마찰이 극히 적어진 탓에 그가 중심을 잡을 세도 없이 넘어진 것이다. 거기다가 너무 당황스럽게 넘어진 탓에 대처상황도 만들지 못한 사내가 머리를 꽝꽝 울려대는 고통에 낮게 신음소리를 내자 공작은 재빨리 그의 옆에 있던 검을 잡으며 소리쳤다. “어서 문을!” 소녀는 그의 소리에 재빨리 고개를 돌려 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판단하자 소녀는 더 이상 앞 뒤 분간하지 못하고 무작정 뛰었다. 최소한 그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길. 그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길! “……큭, 어림없다!” 하지만 순간 적으로 일어난 사내가 공작이 내리친 검을 신기에 가까운 몸놀림으로 피하며 품안에 있던 단도를 비틀거리며 던졌다. 그리고 소녀가 문에 다가간 순간 공작이 안타깝게 외쳤다. “안 된다!!” ================================ # 24편 # 소제목 : 제 3자의 눈엔 둘 다 위험! ================================ 소녀는 문고리를 잡고 돌리기 위해 손을 뻗다가도, 그의 말에 깜짝 놀라 뒤로 돌아보았다. 하지만 소녀의 시야에 그의 다급한 얼굴 대신 들어오는 것은 살벌한 살기를 흩날리는 단도였으니, 소녀는 깜짝 놀라 문고리를 잡은 체 아무런 움직임도 하지 못했다. 이미 소녀의 머릿속에선 재빨리 단도를 피해 몸을 옆으로 옮긴 후 그가 낯선 사내를 제압하고 있을 동안 문을 열어 재빨리 구조요청을 하면 된다는 완벽한 계획이 짜여져 있었지만 배은망덕한 몸은 어리석게도 재빨리 다가오는 위험을 인식하지 못한 체 뻣뻣하게 굳어있을 수밖에 없었다. 힘을 내어야 돼. 몸을 움직여야 돼. 모든 생각이 단도가 날아오는 그 짧은 시간에 교차했다. 몸이 제발 움직이길. 제발 움직여서 문을 열 수 있게 하길! 소녀는 간절히 기도하며 덜덜 떨리는 손으로 문고리를 잡았다. 그리고 두 눈을 꽉 감고 문고리를 돌렸다. 이렇게 하더라도 단검에 자신이 찔리지 않는 다는 가능성은 없었다. 아무리 저 사내가 비틀거리면서 던졌다고 하나, 오랫동안 해온 살수임이 틀림없었기에 소녀는 다짐했다. 자신이 아무리 다치더라도 그는 살기를. 도움이 못 되어 그가 죽는 꼴을 보느니 차라리 자신이 대신하여 다치겠다는 생각으로 소녀는 힘껏 문고리를 돌렸다. ㅡ그리고, “ㅡ윽!” 소녀는 신음을 흘리며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급하게 단도가 꽂혀진 곳을 지혈하기 위해 손으로 부여잡았지만 쓰라린 고통은 지워지지 않았다. 욱신욱신 따끔따끔 단도가 꽂혀진 곳을 중심으로 시작해 퍼져나가는 아픔은 소녀의 눈에서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맺히게 만들었다. “! 너 이 자식!!” 그런 소녀의 상태를 봐 버린 탓일까, 격분한 공작의 입가가 비틀려졌다. 눈에 살기가 띄고 검이 옆으로 틀어졌다. 그리고 그런 그의 기세에 조금 당황한 사내가 그와 똑같이 입가를 비틀며 말했다. “왜 그러시죠? 고작 저 작은 소녀가 다쳤다고 해서 지금 격분하시는 겁니까? 잘 아실 텐데요. 싸움에선 항상 냉철해야 한다고. 나으리께선 알고계시지 않으십니까? 항상 싸움에선 냉철함을 먼저 잃은 사람이 진다는 것을요.” “……알고 있지.” 사내의 비꼬움에 갑작스럽게 행동을 멈춘 그는 살짝 한숨을 내 쉬었다. 아직도 눈치를 차리지 못한 것인가. 그는 아직도 부딪친 머리가 아픈 것인지 살짝 미간을 찌푸리는 사내를 보며 그가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의 미세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는 사내를 향해 또박또박, 그러나 큰 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때론 예외라는 것이 있는 법이다! 내 머리가 비상하다는 것을 잘 깨닫고 있는 너이니, 알고 있지 않는가? 혹시 우매한 자만심에 넘쳐 지금의 상황파악을 덜하기라도 했단 말인가?” “무엇을…….” 사내는 말하다가도 말고 그의 이상함에 살짝 입술을 다물었다. 아까전과는 달리 이상하게 목청을 높혀 말을 하는 그가 수상했다.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이 방안엔 방음처리가 되어 있을 터이니 소리 또한 밖으로 세어나가지 못한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터인데, 자꾸 목에 힘을 주어 큰 소리로 말하는 그가 이해되지 못해서 미간을 찌푸렸다. 아까 전 머리를 부딪치고 난 후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 같아 그는 눈썹을 찌푸렸다. “아앗, 여기예요 여기! 도와주세요!!” 그 순간, 소녀의 다급한 외침에 사내는 재빨리 소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자신의 등 뒤에 있어 제대로 눈치 채지 못한 게 틈이었다면 틈이라고 해도 될 터. 하지만 어째서? 소녀는, 소녀는! 사내는 이를 갈며 소녀를 노려보았다. 모든 게 저 소녀 때문에 자신의 계획이 흐트러졌다. 모든 일의 원흉이 된 소녀를 바라보던 그는 탄식어린 중얼거림을 속으로 토해놓았다. 분명 자신이 고개를 돌리기 전, 소녀는 자신이 던진 단도에 맞고 문을 제대로 열지 못한 체 쓰러졌었다. 그것도 팔을. 분명 어깨로 타고 흐르는 통증은 양쪽 팔을 다 쓰지 못할 만큼 쓰라렸을 텐데. 도대체 어떻게 소녀가 저 문을 열었는지 사내는 의문이었다. 저 조그마한 소녀가, 자신이 짖밟아오던 하찮은 사내들 보다 끈기가 많을 리 없었다. 연약하고 연약한 소녀일 뿐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약보았었는데! “공작님!” “공작님! 괜찮으십니까!” 소녀의 외침으로 인하여 갈팡질팡하던 이들이 일서정연하게 방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이어 공작의 서재에 닥친 상황을 깨닫자 하녀들은 재빨리 구조 요청할 사람들을, 하인들은 최소한이라도 돕기 위하여 자신이 들고 온 빗자루나 몽둥이를 들었고, 아무리 떨어진 곳이라고는 하나, 민감한 기사들은 검을 꺼내들어 공작의 서재에 침입한 낯선 사내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소녀도 예외는 아닌지라, 아무리 다치고 연약해 보이는 소녀라고 할지라도 처음 보는 인물 이였기에 소수는 그녀에게 검을 겨누기도 했었다. “……크윽!” 사내는 이를 갈았다. 이렇게 끝날 게 아니었다. 이렇게 끝마칠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저 갑작스럽게 나타난 소녀로 인해 달라졌다. 모든 것이 그녀로 인해 틀어지자 사내는 이를 갈며 창문으로 뛰어들었다. 쨍그랑! 아쉽지만, 정말로 그의 살결을 베지 못해서 아쉽지만 저 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해 이길 수 있는 승산은 없었다. 아무리 자신의 검실력이 뛰어나다고는 하지만 자신은 음지에서 일해오던 사람이다. 이렇게 양지에서 많은 사람들과 검을 겨누는 것 따위, 해보지도, 하고 싶지도 않았기에 그는 울분을 삼키며 창문을 깨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허망하게 사라진 사내를 바라보며 공작은 자신의 검을 꽈악 쥐었다. 자신의 실력이 확연하게 부족했었다. 그리고 자신의 안일한 생각 때문에 검은 녹슬었다. 그것이 용서할 수 없는 화가 되어 공작은 입술을 앙다물었다. 분했다. 자신의 안일한 생각 덕분에 하마터면 저런 쓰레기 같은 사내한테 당할 뻔하지 않았는가. 너무나도 분해 깨어진 창문조각을 향해 손을 뻗을 때였다. “……저, 저기~” 그는 자그마하게 들리는 소녀의 음색에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는 소녀들을 주위로 기사들이 긴장어린 표정으로 검을 겨누고 있는 것을 보자 그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괜찮다. 검을 거두어도 된다.” “…….” 그들은 공작의 말에 살짝 아이러니 해졌지만 이내 그들의 주인에게 충성을 맹세한 기사들은 아무런 토를 달지 않고서 조용히 검을 검집으로 회수하였다. “사건은 끝났다. 조용하게 처리하고 싶으니, 나가도록.” 간단하게 축객령을 내리는 그로 인해 그들은 씁쓸한 표정으로 문밖으로 나섰다. 자신들의 주인에게 도움이 되어주지 못한 안타까움인 것일까, 그들의 얼굴엔 사뭇 죄책감이 깔려 있었다. “참, 누구든 재빨리 밖에 나가서 의원을 불러오도록.” 그들이 나가는 등 뒤로 그렇게 외치고 나서야 문은 완벽하게 닫혔다. 깨어진 창문과 열린 문으로 환풍이 되던 바람이, 문이 닫히고 나서야 잠잠해지자 그는 다급하게 소녀에게 뛰어갔다. “괜찮은가?!” 그는 고개를 푹 숙인 소녀가 안타까워서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었다. 식은땀으로 축축해져버린 머리카락이 손가락 사이사이로 들어오자 공작은 안타까워 소녀를 살짝 자신의 품안에 안았다. 그리고 시선을 돌리어 소녀에게 고통을 주고 있는 괘씸한 단도를 바라보았다. 얼마나 아팠을까. 이 여린 몸으로 단도를 견뎌내고 문을 연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그것이 너무나도 안타까워 공작은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그는 단도의 손잡이를 잡으며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이것을 뽑을 것이다. 괜찮겠는가?” “…….” 소녀는 두려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너무나도 아프지만, 고통스럽지만 또 다시 그를 믿는 듯 한 눈빛에 그는 고통스럽게 눈을 감아 내렸다. 그리고 그는 고통에 달달 떠는 소녀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깜짝 놀랜 듯 한 소녀의 미세한 움직임이 입술에 느껴졌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혀로 이용해 그녀를 달래고 어루어만졌다. 최대한 그녀가 고통을 느끼지 못하기를, 자신의 입술에 정신이 빼앗겨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기를. 그는 소녀가 머뭇거리지만 천천히 따라오는 것을 느끼고 그녀의 눈을 감아 내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단도의 손잡이를 잡고, 잡았을 때와는 달리 재빠르게 빼내었다. “아!!!” 소녀의 고통에 찬 목소리가 키스를 나누던 입술에서 빠져나왔다.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펑펑 흘리며 눈을 찡그리는 소녀가 너무나도 안타까워 그는 소녀가 팔위에 얹힌 손에 자신의 손을 덧 얹혔다. 자신이 대신 아팠으면 좋겠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무것도 생각이 나질 않았다. 오로지 자신의 품 안에 있는 소녀만이 모든 것을 대신하였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녀만이 다 이었으며 오로지 자신만이 소녀를 소유했다. 안 울려고 노력하지만 자꾸만 울음소리가 새어나온다. 눈물을 쏟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눈물이 자꾸 새어나온다. 흔들리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자꾸만 어깨가 들썩인다. 그런 소녀가 안타까워 그는 껴안아 주었다. 자꾸만 체온이 빼앗겨 차가워지는 소녀를 껴안아 주었다. 자신의 체온을 나눠주며 그는 의원이 한시라도 빨리 오길 바랬다. “미안하다.” “……흑.” “…다치게 해서 미안하다.” 자신의 등을 꽉 잡고 있는 소녀의 떨리는 손이 안타까워서 그는 소녀의 작은 이마에 입맞춤 하였다. 미안하고 또 미안하였기에 그는 소녀에게 쉴 새 없이 사죄의 의미가 담긴 미안함을 속삭였다. 미안하고도 여린 사람. 공작은 자신의 여린 소녀가 울음을 그칠 수 있을 때까지 꼭 껴안고 놔 주지 않았다. ================================ # 25편 # 소제목 : 11.01.06. 그 여자의 일기 ================================ 처음엔, 처음엔 그가 나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끼면서 매우 때리려 했다. 매달리면서 울고 싶었고, 그를 위해 다쳐버린 내가 억울해서 떼를 쓰고 싶었다. 어린아이처럼 앙앙대며 그의 품 안에 안겨 아픔을 잔뜩 토해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이 다가온 순간, 그의 거친 호흡이 얼굴에 부딪치는 순간, 난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가 미안하다고 속삭일 때도, 내 체온이 내려가지 않도록 꽉 껴안은 채 놔주지 않을 때도, 다친 상처부분을 같이 잡아줄 때도 그의 표정은 안타까웠다.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에 미간을 찌푸린 채 펴지 못하는 그의 얼굴이 안쓰러워서 눈물을 참아내었다. 쓰디 쓴 약처럼 목을 타고 넘어오는 신음을 억지로 삼켰고 떨려오는 어깨를 손으로 붙잡아내었다. “괜찮은가?” 그의 말이 너무나도 달콤하게 들렸다. 아픈데, 분명 온 몸은 아프다고 소리치는데 머리는 멍했다. 심장은 오로지 그의 향에 반응을 했으며 팔을 눌러오는 욱신거림에도 그가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만이 맴돌았다. 순간적으로 내가 미치지 않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로 그의 품안에 있어 행복한 내가 이상했다. 친구들이 사랑한다던, 자신의 애인이라고 소개하던 남자애들과 짓궂은 연애놀음과는 달랐다. 그의 얼굴만을 보고 싶고 그의 말소리만을 듣고 싶다. 그런 나 스스로가 이상해 심장을 꽉 쥐어 누르자 그가 깜짝 놀라 날 쳐다보았다. 혹여 내가 고통스러워하는가 싶어 다급하고 안타까운 표정에 난 미소를 지어주었다. 아니라고, 그런 게 아니라고 답해 주듯이 고개를 잘래잘래 흔들자 그제야 안심한 듯 한 그의 미소가 얼굴에 떠올랐다. 하지만 그는 완벽하게 안심을 하지 않았는지 의원이 와 내 팔을 치료하는 동안에도 계속 붙잡고 놔주지 않는 덕분에 다친 곳을 꿰매고 이상한 물약을 붓고 붕대로 감을 때까지도 계속 그의 품안에서 치료를 받았다. 때때로 치료하다가도 보기 싫어지는 장면이나 아픔에 팔을 떨고 입술을 꽉 깨물고 있을 때, 그는 부드럽게 자신의 손으로 내 시야를 가렸다. 그리고 자신의 쪽으로 고개를 돌리게 하고 더 이상 보지 못하게 하였다. 봐 버리면 더욱 아픔이 증가해 버린다는, 그의 다정한 속삭임에 난 그의 품안에 얼굴을 묻고 눈을 감아버렸다. 차마 세균이 들어갈까 상처를 건드리진 못하고 상처 부근을 부드럽게 매만지는 그의 손길이 어느 정도의 고통을 흡수해주는 것 같았다. “치료가 다 되었습니다.” “수고했다.” 드디어 날 치료하던 의원이 말소리가 들리며 계속해서 팔에 붙어있던 의료기구들이 사라지자 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국과는 달리 마취도 하지 않은 채 억지로 살을 꿰매는 게 리플레이 되지 난 소름끼치는 몸을 애써 진정시키며 그의 옷자락을 손으로 쥐었다. 의원이 더 이상 다친 곳을 만지지 않았지만 다시 내 품으로 회수하고 싶지는 않아 의원이 진료할 때의 자세를 유지했다. 부스럭거리면서 의원이 일어나는 소리가 들리자 그는 천천히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이 일은 밖으로 세어나가지 않도록 입단속을 단단히 해야 할 것이다.” “네. 그리하겠습니다.” 입단속을 시키기 위해 다시 한 번 더 의원에게 위압적으로 말한 그가 간단하게 손짓을 하자 의원은 고개를 숙인 뒤 조용하게 방문을 열어 나갔다. 조심스럽게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며 깨진 유리사이로 들어오던 매서운 바람이 잠잠해지자 그는 천천히 내게 물었다. “……괜찮은가?” 여전히 내게 아픔이 어떠한지 묻는 것이 좋아 난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어찌 되었든 좋았다. 그의 품안에 안겨있는 것이 너무나도 좋아 난 그의 가슴팍에 기대어 고개를 끄덕이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된 것 마냥, 나른한 고양이의 기분을 알 것 같아 얇게 미소를 지었다. 팔에 느껴지는 욱신거림은 여전했지만 그와 안겨있는 지금의 이 기분이 머릿속을 한껏 지배하고 있었기에 난 그를 안도시킬 수 있는 미소를 잔잔하게 자아낼 수 있었다. “그러면 그쪽은, 괜찮아요?” 나 또한 그에게 조심스럽게 묻자 그는 기분 좋게 목을 울리며 조용하게 웃었다. 그런 그의 묘한 흔들림에 기분이 좋아져 그의 얼굴을 바라보자 그는 내 이마에 작게 키스를 해주었다. “물론, 너 덕분에 다치지도 않았다.” “다행이에요.” 그의 말에 안도가 되어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로 다행이었기에 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을 바라본 순간, 난 안타까움에 그의 옷자락을 쥐고 있던 손을 놓았다. 내 목에 난 잔잔한 상처도 자세히 살펴보라고 말하던 그는 정작 자신의 상처는 전혀 살펴보지도 않았다. 난 손을 천천히 올려 그의 얼굴에, 그리고 그의 뺨에 내 손을 천천히 대었다. “……음?” 그의 나지막한 소리가 들리자 난 천천히 상처부근을 쓸어내렸다. 서로 검을 맞대다 스쳐지나간 상처로 보이는 듯 한 눈 밑의 상처는, 그렇게 크진 않았지만 꽤나 깊고 따가워 보이는 상처였다. 어쩌면 이 상처가 눈 밑을 자극하면서 시야를 확보하는 대에 방해를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난 미간을 찌푸렸다. “……아아.” “…많이 아프시죠?” 그는 내가 손으로 상처를 쓸고 있는 자신의 손을 가져다 대고서야 자신의 상처를 깨달았는지 한탄을 토해내었다. 그리고 그런 그가 안타까워 내가 속상하다는 듯이 중얼거리자 그는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전혀 아프지 않다.” “……그렇지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하는 그의 말투에 살짝 심술이 났다. 자신은 이렇게 그의 몸에 생채기가 생긴 것에 대하여 맘이 쓰라린데, 정작 자신은 치료도 받지 않고 ‘아프지 않다’를 남발하는 그가 미워 볼을 부풀렸다. 그런 내 모습이 귀여웠던 것일까, 그의 입가가 좀 더 올라가더니 자신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있던 손위에 그, 자신의 손을 덧올렸다. 그리고 천천히 내 손을 내렸다. 내 손이 완벽하게 내려간 순간 그는 다시 한 번 더 내 이마를 드리우는 앞머리를 치우며 가볍게 키스를 하였다. 왠지 모를 뜨거운 분위기에 내가 볼을 붉히자 그는 천천히 말을 하기 위해 입술을 떼어내었다. “그 웃음을 더 이상 못 보는 줄 알았다. 그 볼 붉어지는 것을 더 이상 못 볼 줄 알았고, 그 시원하게 휘어지던 눈웃음을 못 보는 줄 알았다. 내 몸에 알맞게 안겨드는 몸을 더 이상 못 맛볼 줄 알았고,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던 입술을 더 이상 입을 못 맞출 줄 알았다.” “…….” 낯 뜨거운 말을 전혀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던 난 고개를 푹 숙였다. 아마 지금쯤 자신의 얼굴은 홍시마냥 제대로 익어 붉게 물들었을 생각에 더욱 창피해져 그의 얼굴을 바라볼 수 없었다. 그런 내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는 내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더 이상 웃고 있는 얼굴을 떼어놓을 자신 따위, 내겐 있지 않다.” 쪽, 입술이 볼을 부드럽게 쓸었다. “널 지켜주고 싶다.” ㅡ부드러운 입술과 입술이 한데 어우러져 길고 긴 여운을 남겼다. 처음엔 감당하지 못해 돌렸던 시선을 그가 부드럽게 이끄는 손에 의하여 천천히 마주했다. 그의 눈망울에 내가 맺히고, 내 눈망울에 그가 맺히는 순간 그는 말을 이어나가기 위해 입술을 벌렸다. “아마, 아니. 확실하게 나는 널…….” - “…….” 집이다. 결국 끝말은 듣지 못한 체 집으로 되돌아오고야 말았다. 난 천천히 입술을 매만졌다. 묘하게 붉게 달아올라 있는 입술은, 손끝을 따라 부드럽게 매만져졌다. 끝에 하려던 말은 도대체 무엇 이였을까. 볼이 다시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난 천천히 상의를 벗었다. 피에 절어있는 옷을 바라보던 난 끔찍했던 검이 내 살결을 파고들어오는 느낌이 다시 생각나자 소름이 끼쳤다. 조심스럽게 벗어던진 옷을 엄마가 보지 않도록 구석에 잘 숨긴 후, 재빨리 다른 옷으로 갈아입었다. 팔에 다친 상처와 목에 스쳐진 생채기가 보이지 않도록 집안임에도 불구하고 목까지 올라오는 긴 소매의 옷을 입자 조금의 답답함을 느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침대에 누었다. 얼른, 하루 빨리 밤이 되고 새벽2시가 되어 그에게로 가고 싶다. 그리고 그 생각을 하며 눈을 감아 내렸다. 얼른 밤이 되어 그를. 그를 만날 수 있기를. [교환일기 반의 한마디] ㅡ어느덧 마지막이군. 수고했다. 그리고 어느 형태로 내 곁에 남든 상관없다. 난, 너의 겉을 보는 게 아니다. 너의 지위를 보는 게 아니다. 오로지 너의 마음을 보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널ㅡ. ================================ # 26편 # 소제목 : 제국력542.01.05 그 남자의 일기 ================================ “…….” 여전히 찬 기운이 가시질 않는 정원. 꽃이 시들고 나뭇가지가 앙상하여 보기에도 안쓰러워지는 계절에 굳이 내가 정원으로 나온 이유는 단 한가지였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깨져버린 유리창을 갈아 끼우느라 동분서주하게 뛰는 하녀들과 하인들 때문이었다. 난 여기까지 들리는 그들이 요란한 소리를 민감한 귀로 들으면 자그마하게 한숨을 내 쉬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오늘도 다른 때와 다름없이 황성으로 가 업무를 봐야했을 시간이었다. 하지만 난 집에 불미스러운 일이 생겼다는 핑계로 집에서 하루 요양할 것을 간청했고, 그런 나의 요청에 아무런 말도 없이 확인 승낙을 한 황제였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몸도 몸이었지만 머릿속이 복잡해, ‘그것’이외에 아무런 것도 생각을 할 수 없었기에 나 나름대로 내린 대책이었다. 겨울을 맞이해서 그런지 정원을 초록빛으로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었던 잔디들은 노랗게 죽어버렸다. 시들어버린 그들의 모습에 왠지 아련한 느낌이 들어 나 눈을 돌렸다. 하지만 어디로 눈을 돌려도 차가운 냉기를 품고 있는 겨울은 앙상하고 죽어있는 것들로 밖에 품고 있지 않았다. 죽어버린 장미. 앙상하게 가지만을 외로이 내놓고 있는 나무. 노랗게 시들어 버린 잔디. 오로지 흑백으로 색이 덧칠되어 진 것만 같아 난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 또한 새파랗게 질려 마치 투명한 빛을 내는 듯 한 느낌에 눈을 감아버렸다. 도대체 난 왜 무엇 때문에 이렇게 고민을 하는 것인가. 머릿속을 괴롭게 짖눌러왔다. 누군가 자신의 머리를 괴롭히기라도 하는 듯이 콕콕 쑤셔대는 아픔에 난 눈을 감은 채 미간을 찌푸렸다. 끊임없는 고민들이 머리를 내밀고 날 눌러대었다. 결혼. 어릴 적부터 보아왔고 들어왔다. 그리고 가식적인 그들 틈에서 살아온 난 단정 지었다. [사랑 하는 이와는 같이 살 수 없다.] 라고. 그들은 자신의 마음을 먼저 생각하지 않았다. 정말 소수, 소수의 몇몇은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이와, 약혼을 치루고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치러냈지만 그 결말은 행복하지 못했다. 형편없는 집안과 결혼하였다 하여 무시당하거나 최악의 경우, 몰락당하는 수도 있었다. 자신과 같은 격의 가문을 지닌 영애를 사랑한다면 되었지만 사랑이라는 것이 원체 쉽지 않았기에 난 결정 내렸었다. 아무리 자신의 원하고 뜻하여 사랑하는 이와 결혼을 하더라도 그 끝은 파멸의 길이 대부분이었기에 난 ‘사랑하는 이’가 만약 권력도 집안도 뭐 하나 내세울 것이 없다면 하지 않겠다고. 그 ‘사랑’이라는 얄궂은 것 때문에 내 생활이 힘들어 진다면 하지 않겠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런 말을 내뱉고 16년이 흐른 후, 난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고민 중이었다. 차갑고 매서운 바람에 나도 모르게 손을 바지 주머니 속에 넣었다. 하지만 바지 주머니 속에 불룩하게 무언가가 들어있자 난 천천히 주머니 속에 있는 물건을 꺼내 들어보였다. “…….” 그리고 그것을 내 시야에 들어오게 하자 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에게 목걸이를 선물하기 위해 사용했던 자그마한 선물상자가 내 손바닥에 곱게 놓여 있었다. 생각해 보니 그 당시에 몸이 곤하여 빨래를 하녀들에게 맞길 통에 담지 않고 아무렇게나 옷걸이에 걸어놓은 것. 아마 아직 선물상자가 주머니 속에 있는 것을 보아 그녀들도 빨랫감으로 생각지 못했던 모양이었나 보다. 난 천천히 다른 손을 들어 올려 선물상자를 조심스럽게 열어보았다. 선물상자를 열자 상품인 목걸이를 보호하기 위한 조그마하게 푹신한 쿠션이 마련되어 있었다. 난 그 쿠션을 손가락으로 가만히 쓸어보며 생각에 잠겼다. 목걸이를 받아보고 환하게 웃던 소녀. 정성스럽게 세공되어있는 그것을 손으로 들고 내게 감히 다른 여자들은 하지 못할 이를 드러내며 티 없이 환하게 웃던 소녀의 얼굴이 생각나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그녀의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파묻던 내 자신이 생각났다. 소녀답게 달콤한 향을 풍기던 그녀의 머릿결이 생각나 또 한 번 부드러운 미소가 얼굴에 절로 새겨졌다. 향기롭고 부드럽고 연약하고, 자꾸만 맛보고 싶은 그녀가 어느 순간부터 지워지질 않았다. 서류를 정리해도 업무를 보더라도 심지어 중요한 비밀이야기를 논하더라도 소녀의 생각은 머리 한구석에 지정되어 자리 잡고 떠나질 않았다. “중증인 것인가.”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고선 한숨을 한탄이 담긴 웃음을 조심스럽게 꺼내었다. 바보 같았다. 사랑에 빠져 목을 매다는 이들을 한심스럽게 바라보던 게 엊그제였는데, 어느새 자신도 그런 바보들 중 한명이 되어버렸다. 웃고 있는 그녀가 보고 싶었고 품 안에 부드럽게 옭아매어오는 소녀의 향이 좋았다. 손에 쓸어지는 부드럽고 연약한 피부가 좋았고 입술을 맞부딪치면 싫다하면서도 그에 또 따라오는 그녀의 입술이 맛있었다. 하지만. 난 선물상자를 다시 주머니 속에 넣었다. 을씨년스러운 바람소리에 애꿎은 나무가 앙상한 나뭇가지를 흔들어대었다. 그녀는 자신이 그렇게 결혼대상으로 기피해왔던 평민이었다. 옷차림으로 보나, 말투로 보나, 심지어 자신을 모르는 행동으로 보아 그녀는 평민인 것이 확실했었기에 속으로 내어지는 한숨은 점점 깊어져만 갔다. 도대체 어찌할 것이란 말인가. 내 생활의 편안함과 가문을 위해 그녀를 무리하게 내치기엔 이젠 너무나도 늦어버렸다. 심장을 차지하고 들어온 소녀는 어느덧 머릿속마저 완전하게 차지해 더 이상 빼내려야 빼낼 수 없게 되어버렸다. “……하아.”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런 식의 생각을 자신이 하게 될 줄이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기에 내 걱정어린 한숨은 점점 더 커져갔다. 가문과 자신의 행복을 놓치고 싶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를 놓치기 싫었다. 하지만 그녀를 잡는 것이 과연 자신이 원하던 행복과 자신이 해주고 싶던 그녀의 미소를 계속 띄우게 할지 의문이었다. 결국 난 고개를 잘래잘래 흔들며 뒤돌아섰다. 아직 시간은 많다. 아직 그녀를 볼 시간은 많다. 솔직히 말해 자신과 그녀는 이제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지 않았는가. 벌써부터 이런 생각을 섣불리 하는 자신이 우스웠다. 아직 시간은 많고 여유로웠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 자신을 안심시켰다. ‘결혼’이라는 단어를 아직 꺼내기엔 너무나도 섣불렀다. 천천히 생각하면 된다. 그녀, 소녀가 자신에게 완전히 마음을 열 때 까지 그리고 자신이 계획하던 일이 확실히 성립되는 날에, 그때 다시 한 번 더 생각하면 되었기에 난 차갑게 얼어붙은 정원을 등지고 걸어가기 시작했다. - 밤이 오고 그녀가 올 시간이 다되어갔다. 어리석게도 선물상자를 기다리는 어린아이 같은 맘처럼 떨리는 것이, 우습고도 행복해서 가만히 입가를 둥글게 말아 올렸다. 지나치게 느리게 지나가던 시간이 드디어 되어 괘종시계가 2시를 가리키자 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앞을 보았다. 눈을 천천히 감았다가 들어 올리는 순간, 소녀가 나타나자 난 가만히 서재에 앉아있지 못하고 벌떡 일어났다. 무언가 말을 걸어야 했지만 차마 먼저 말은 걸지 못하고 소녀가 말을 걸기만을 기다렸다. ㅡ하지만. 평소 같으면 나타나는 순간 무언가를 확실하게 제스처하며 내게 달려들어야 할 소녀가, 의외로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아무런 말도, 시선도, 발그랗게 붉히던 두 볼도. 미동조차 하지 않는 소녀의 모습이 이상해 난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난생 처음으로 보는 그녀의 암울한 기운에 난 웃던 얼굴을 천천히 무표정으로 바꾸어나갔다.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친 곳이 덧났을까 싶어 난 그녀의 다치지 않는 어깨 쪽으로 손을 올리며 다급하게 물었다. “괜찮은가?” 내가 미약하게 어깨를 흔들어도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는 소녀의 행동에 순간적으로 무서워졌다. 그녀가 날 버릴까봐 순간적으로 두려워졌다. 그리고 소녀가 천천히 고개를 든 순간, 난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나, 나 어떻게 해요……?” 앞 뒤 말을 다 잘라먹으며 무작정 질문을 하는 소녀는, 커다란 눈망울에 눈물을 가득 담아내고 있었다. [교환일기 예빈의 한마디] ㅡ우리가 만났던 시간이 이렇게 짧았었나요? 하지만 난 그 짧은 시간동안 참으로 많았다고 생각해요. 당신을 느끼고, 바라보고, 만져보고. 후회하지 않아요. 지금의 선택을 난 다시 돌아가더라도 그대로 선택할거예요. 아무것도 들고오지도 손에 쥔것도 없는 날 받아준 사람. 그렇기에 난 당신을ㅡ. ================================ # 27편 # 소제목 : 제 3자의 눈엔 둘 다 안녕 ================================ 처음으로 소녀는 이 시간이 오지 않기를 빌었다. 그를 보는 것이 두려웠다. 그를 만나러 가는 것이 두려웠고 그 후에 어떻게 될지 몰라 무서웠다. 만약 가서 그를 보게 되더라도 그의 얼굴을 제대로 마주할 수 있을지에 마저도 확신이 서질 않아 소녀는 울음을 터트렸다. 자신보고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소녀는 도저히 참지 못하고 자신을 나지막하게 토닥이며 달래는 그의 품에 뛰어들었다. 그의 향기가, 그의 따스한 온기가 소녀를 미치게 만들었다. 이런 그를 떼어놓고 사는 삶이란, 더 이상 생각 할 수 없게 만들었다. 만난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 짧은 만남이 자신을 이렇게 옭아맬 줄은 몰랐다. 그를 만나지 않는 시간에도 항상 입가에 미소를 띠고 그만을 생각해내며 지내왔었다. 처음엔 머릿속을 가득히 차지하는 그가 싫어 성도 내 보았지만 이젠 반쯤 포기하고 그를 받아들이고 말았다. 그에 대한 감정이 무엇인지 깨달았을 때에도 자신의 결정엔 변함이 없었다. 아무리 갑작스럽게 사라져서 그를 만나는 것이라 하더라도 만나니깐. 어떤 먼 길이 있더라 하더라도, 정해진 이별이 순간적으로 갈라놓더라도 만났기에 소녀는 자신의 결정을 확신했었다. 하지만, 하지만 이건 아니지 않는가. 소녀는 오늘 낮의 일을 회상하며 그의 옷자락을 혹여나 떨어질세라 세게 붙잡았다. - 욱신거리는 머리. 욱신거리는 목. 욱신거리는 팔. 모든 것이 맘에 들지 않던 소녀는 자그마하게 한숨을 내 쉬었다. 몸은 천근만근으로 무거웠지만 날은 여느 아침과 똑같이 밝아 올랐다. 그 사실이 조금은 원망스러워 화창한 날씨를 빛내고 있는 해를 바라보던 소녀는 오히려 자신의 눈이 아픔을 깨닫고 자신이 바보스러워 한숨을 내쉬었다. 어찌되었든, 학원은 가야한다. 오늘 하루만 빠질까…….를 잠시 동안이나마 진지하게 생각했었지만 협박을 가장한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자 소녀는 힘없이 대답하며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욱신거리는 팔이 왼쪽임을 다행이라고 생각한 소녀는 힘없이 옷을 갈아입고 방을 나왔다. * 점점 잠이 불충분하게 된 탓일까, 오늘 하루 수업은 완전 졸음 수업 이였다고 생각한 소녀는 재빨리 집으로 가 눈 좀 붙이기 위해 발걸음을 서둘렀다. 달콤한 잠 그리고 푹신한 베게와 이불이 자신을 기다릴 것이란 생각에 조금이나마 행복해진 소녀가 바쁘게 발걸음을 놀리는 순간, 자신의 아픈 팔을 억세게 잡아당기는 누군가가 있었다. 욱신거리는 느낌. 팔이 분리되어가는 고통에 소스라치게 놀랜 소녀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홱 돌렸다. 안 그래도 어깨의 근육을 이용해 팔을 드는 것조차도 힘든데, 이렇게 막무가내로 잡아당기는 괘씸한 이가 누군가 싶어 뒤 돌아 보는 소녀의 시야엔 웬 노파가 서 있었다. 아무리 ‘예의지상주의국’이라고는 하지만, 아픈 감정으로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는 소녀로썬 당혹감이 우선이었기에 할머니에게 차마 소리는 지르지 못하고 신경질을 내며 따졌다. “할머니! 아프잖아요. 도대체 왜 그러시는 건데요?” 하지만 오히려 당당하다는 듯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할머니의 행동에 소녀는 눈썹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오늘은 날이 아닌 것 같았다. 그를 기쁘게 하기 위해 잔뜩 선물을 준비해 이동하자 자신을 반겨준 것은 칼이었으며, 그를 도와주기는 했으나 능력부족으로 자신이 잔뜩 다쳐버리고 말았다. 거기다가 이젠 치매 끼가 있는 듯 한 할머니가 자신을 잡고서 놓아주질 않는다는 생각에 소녀는 끓어오르는 화를 참기 위해 눈을 살포시 감았다. 참아야 한다. 그 사람의 행동을 미워할 순 있어도 사람을 미워할 순 없었기에 참을 인이 수없이 소녀의 마음속에 새겨졌다. 하지만 그 순간, 소녀는 자신의 귀에 똑똑히 박혀 들어가는 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활짝 개화해야만 했다. “아가씨, 요즘 자신이 자꾸 이상한 곳으로 이동되지?” 믿을 수 없었다. 자신과 그만 알고 있는 비밀을, 도대체 이 듣도 보도 못한 할머니가 어떻게 아는 것일까? 순간적인 당황감은 두려움이 되어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듯 한 착각에 빠지게 만들었다. 이 할머니는 어떻게 해서 자신의 비밀을 아시는 것일까? “…….” “어떻게 해서 아느냐는 듯의 눈빛이로군. 그렇지?” 자신을 꿰뚫어보는 노파의 말에 소녀는 하는 수 없이 고개를 조그마하게 끄덕이었다. 자신이 어떤 생각을 하더라도 저 할머니는 다 알 것 같다는 생각에 소녀는 쓰잘대기 없는 고민은 더 이상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내 눈이 좀 용해서 말이야. 사람을 스쳐지나가기만 해도 내가 관상을 다 볼 줄 아는 그런 신통방통한 사람이거든!” “…….” 소녀는 노파의 말에 안색을 딱딱하게 굳혔다. 아무래도 자신이 잘못 본 것 같았다. 정말로 자신의 눈앞에 있는 할머니는 치매 끼가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소녀는 한숨을 내 쉬며 살짝 팔을 흔들어 자신을 붙잡고 있는 할머니의 손을 치워내었다. 조금만 흔들어도 힘없이 치워지는 할머니의 손에 소녀는 다시 한 번 더 한숨을 내쉬며 뒤로 돌아섰다. 부잘 것 없는 내용이었다. 전생에 넌 부모님과 대판 크게 싸웠겠지 라던가 자잘한 사고가 많았다던가 생에 꼭 있었던 일들만 줄줄이 내뱉고선 복채를 요구할게 틀림없었다. 소녀는 그런 사기성 짙은 사람들을 많이 보아 왔기에 노파도 같은 취급을 하며 걸어갈 때 이었다. “아직 내 말은 끝나지 않았네, 아가씨.” “아, 정말 할머니!!” 다시 한 번 더 자신의 다친 팔을 집요하게 누르는 할머니를 휙 소리가 날 정도로 돌아보던 소녀는 결국 버럭 소리를 질러버렸다. 마치 자신의 다친 곳을 알기라도 하는 듯 한 노파의 태도는 상처부위 부근만을 지근지근 눌러대었다. 그 아픈 욱신거림에 결국 참지 못하고 돌아본 소녀에게, 노파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너, 이번이 마지막일세. 알고는 있나?” “……네?” 소녀의 당황스러운 되물음에 노파는 눈을 찢으며 헤쭉, 하고 웃었다. 알 수 없는 무서움이 등뼈를 타고 올라왔다. 이 할머니, 무언가를 알고 있다. 소녀는 알 수 없이 달아오르는 긴장감에 침을 삼켜 목을 축이자, 노파는 빙긋이 웃으며 입술을 열었다. ================================ # 28편 # 소제목 : 제3자의 눈엔 둘 다 안녕 ================================ ※노래가있어요 조심조심! - 소녀는 끔찍하게 자신을 옭아매어오는 기억에 몸서리쳤다. 이렇게 그와 헤어져야 하는가. 납득이 가지 않았다. 머릿속으로는 아, 그렇구나. 라고 이해를 하면서도 가슴은 먹먹해져 이해를 할 수 없게끔 만들었다. 헤어지기 싫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족과 떨어지는 것은 더더욱 싫었다. 한낱 6일 동안 만난 사내에게 정을 느껴 헤어지기 싫다고 생각하는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그와 함께라면, 그와 함께 평생을 맞이한다면 만약 그렇게 된다면 가족은 뒷전으로 생각할 자신의 충동적인 마음이 소녀의 맘에 들지 않았다. 그럼 그와 헤어질까? 소녀는 거기까지 생각하고 다시 그의 품안에서 고개를 잘래잘래 흔들었다. 되지도 않을 일. 자신이 그와 헤어지면 어떤 생활을 할지 눈앞에 선명했다. 그와의 자극적인 추억을 잊지 못해 하루 종일 미소를 입가에 띠고 다니던 자신을 되짚어보던 소녀는 안타깝게 눈을 찌푸렸다. 있을 수도 없는 일. 그와 헤어진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않았다. 잊지 못할 첫 만남, 골탕 먹이기 위해 고민한 일, 자꾸만 생각나는 것이 짜증났던 일, 생각지도 못하게 만나러 갔던 일, 그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챙기던 일, 오로지 그만을 생각하며 미소 지은 일. 이 모든 사소한 추억하나가 마음속에 봉우리 맺고 활짝 만개했는데, 비로소 만개하고 자신이 가진 감정을 깨닫게 되었는데. 이렇게나 다급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자신이 원망스러워 소녀는 결국 참지 못하고 눈가에 그렁그렁하게 맺힌 눈물을 볼로 흘러내리고야 말았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건가?” 공작은 자신의 품에서 가엽게 떨며 우는 소녀 때문에 자신도 덜컥 심장이 흔들렸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우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소녀가 우는 이유가 평범한 것이 아니라는 것에 왠지 모르게 공작, 자신 또한 마음에서 두려움이 조금씩 고개를 들었다. 소녀가 칼에 찔렸을 때보다 더 한 두려움에 공작은 낯빛을 어둡게 바꿀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얼굴을 맞대고 있는 옷을 천천히 적셔오는 소녀의 눈물에 공작은 그녀를 달래주고 싶었지만, 정작 자신이 물어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소녀 때문에 그는 오로지 그녀의 등을 토닥토닥 두들겨 주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가엽게도 자신의 옷자락을 부들부들 떠는 소녀가 진정될 때 까지, 그는 오로지 그녀를 따스하게 안아주는 것 밖에 하지 못하는 자신이 싫었다.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소녀가 왜 이렇게 힘들어 하는 것인지, 그는 알고 싶었다. 알아서 그녀와 아픔을 반으로 나눴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그는 집요하게 소녀에게 물어보았다. “도대체 갑작스럽게 울음을 터트리는 이유가 무엇인지 듣고 싶어. 답답하게 울기만 해선 말을 할 수 없잖나. 아무렇게나 털어놓아도 좋으니, 제발 내 맘 까지 먹먹하게 만들지 말아다오.” 그는 천천히 그녀를 안고 있던 손을 들어 올려 소녀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도록 만들었다. 눈물에 엉망이 되어버린 소녀의 얼굴에 그는 자그마하게 미소를 지었다. 울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최근에 그녀는 자신의 앞에서 너무나도 많이 울게 되어버린다. 자신에 의해서도, 자신에 의해서가 아니더라도 적어도 그, 자신의 앞에서 만큼은 우는 모습을 만들게 하고 싶지 않은 공작은 천천히 그녀의 눈가를 매만져 주었다. 벌게진 눈가에 시원한 그의 손가락이 닿자, 소녀는 잠시 움찔 했지만 이윽고 부드러운 손길로 눈물을 닦아주자 소녀는 끅끅 거리며 눈물을 멈추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울음을 멈추는 것은 대체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라, 공작이 눈매를 쓸어주고 눈물을 닦아준다고 하더라도 소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끅끅 소리는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그런 소녀의 행동에 그는 그녀가 귀여워 살짝 그녀의 볼을 훔쳤다. 우느라 벌게진 얼굴과는 또 다른 의미로 벌게진 소녀의 얼굴에 그는 좀 더 깊게 미소를 패이게 만들었다. 이제 좀 진정한 듯 한 소녀의 얼굴에 자신의 마음 또한 한 층 진정되는 것 같았다. 그는 소녀가 왜 울었는지에 대해 다시 묻기 위해 입술을 천천히 열었다. “……이제 왜 울었는지 말해 주어도 되지 않을까?” “…….” 소녀는 천천히 그와 시야를 맞추었다. 만약 자신이 입을 열어서 말하는 것을 듣게 된다면, 그는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까? 하지만 그에게 이미 오래전에 길들여 져버린 사고회로는 달콤하게 그가 물어오자 천천히, 자신도 모르게 조심스럽게 내뱉기 시작했다. “……나, 이곳에 오기 전에 어떤 할머니에게 들었어요.” “무엇을?” 그는 그녀의 말에 답하며 천천히 소녀를 이끌었다. 최대한 근처에 있는 의자를 곁눈질로 찾아 앉으며 소녀를 자신의 무릎에 앉힌 후, 다시금 소녀의 말에 경청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가지 못한다고요. 그렇게 들었어요.” “가지 못한다? 어딜 말하는 것이지?” 소녀의 수수께끼 같은 말에 그는 살짝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어디를 가지 못한다기에 이렇게도 괴롭게 울음을 터트리는 것일까. 궁금해진 그는 조금 소녀를 재촉해보았다. “……그 할머니 말씀이, 가끔씩 신의 농간으로 사람들이 자신이 있던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넘어간다고 해요. 그 횟수가 주기적인 사람들은 남들이 알지 못하는 비밀스럽고 은닉할만한 시간대에, 혹은 자신이 완전하게 넘어 갈 시엔 또 다른 자신의 매개체가 남아, 남들이 보기엔 평화로운 나날이 계속 되는 거죠.” “……?” 그의 의문증이 짙게 깔린 표정에 소녀는 한숨을 살짝 내쉬었다. 자신도 생각하고 생각해서야 겨우 알게 된 사실인데, 아무리 머리가 비상한 그라고 해서 잘 알아듣기엔 너무 현실성이 떨어졌다. 소녀는 잘 알아듣지 못하는 그를 위하여 근처의 예를 들어주었다. 바로 자신을. “난 횟수가 주기적인 사람에 속해요. 그리고…….” 소녀는 고개를 잠시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저 미소를 띠고 있는 그의 얼굴에 도대체 어떤 표정이 깔릴지 궁금했다. 자신처럼 슬퍼해줄까? 자신처럼 고통스럽게 생각해줄까? 자신처럼 고민할까? 하지만 소녀에게는 확신이 서질 않았다. 그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확실한 증거가 서질 않았다. 어른스런 그에겐, 오로지 자신을 가지고 노는 걸로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조금 이야기하기 망설여지던 소녀는 이내 굳은 결심을 하고 조심스럽게 입술을 떼어내었다. “이번이, 마지막 이예요.” “……?” 잘 모르겠다는 듯이 여전히 미소를 띠며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 그를 향해 소녀는 확실하게 말했다. “제가 당신의 방에 올 수 있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이에요.” - 째깍째깍 하릴없이 시간만 흘러갔다. 소녀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고, 그는 멍하니 창문만 바라보았다. 마지막임을 알고 있는 연인들이라면, 서로 헤어지기 싫어, 조금이라도 더 서로의 온기를 나눌려 했을 텐데. 이 두 사람은 그러하지 못했다. 어디서부터 잘못 된 것일까. 소녀는 생각했다. 자신이 오늘이 마지막 만남이라는 것을 일방적으로 통보했을 때부터? 소녀는 자신에게 자꾸만 질문했지만 제대로 된 답을 찾지 못하자, 원망스럽게 시계를 쳐다보았다. 그의 목소리도, 그의 온기도 제대로 느끼지 못했는데 어느덧 시간은 2시 45분을 향해 달려갔다. 시간이 원망스러웠다. 아무리 그를 제대로 느끼지 못한다 해도 같이 있는 공간이 좋았다. 그런데, 시간은 자신의 이런 소소한 행복마저도 빼앗아 갈려는 듯이 재빠르게 움직였다. 소녀는 시계에서 눈을 천천히 떼어내었다. 그리고 그의 등을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그가 미워한다면, 그를 사랑해서 남아있더라고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렇다면 단 하나. ‘큰 걸 바라지 않습니다. 둘만의 시간을, 신이시여 멈추어 주세요…….’ - “마지막… 이라니?” 그의 당황스러운 목소리가 성대를 타고 흘러 소녀에게 전달되었다. 아무래도 그는, 지금 자신의 들은 것이 혹여나 잘못된 것인가 싶어 소녀에게 되묻고 있는 중이였나 보다. 하지만 소녀는 잔인하게도 눈가에 그렁그렁 눈물을 매단 체 확실하게 말했다. “할머니가 그러셨어요. 당신과 전 아예 다른 세상에서 산다고. 그렇기에 우리 둘의 만남은 제한적이라고 했어요. 그리고 그 만남을 이어지게 할 수도, 끝맺어 버리게 할 수도 있는 것이 저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렇기에, 당신과 제가 만나는 것이 잘하면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하는 것이에요.” “…….” 순간적으로 소녀의 머리카락을 어루어만지던 그의 손길이 멈추었다. 잠시 동안 머릿속에 아무런 것도 생각나질 않아 그는 멍한 머리를 조금 흔들었다.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인가? 잠깐 생각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아무리 되짚어도 소녀가 자신에게 한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깨닫자 그는 벌떡 일어났다. “아, 아앗?!” 그에 그의 무릎에 얌전하게 앉아있던 소녀가 화들짝 놀라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자신도 따라 일어섰다. 하지만 중심을 제대로 못 잡은 소녀가 휘청거리자 재빨리 그의 팔소매를 잡아당겼다. ㅡ하지만, 탁! “……어?” “…….” 그는 그런 소녀의 손을 차갑게 쳐내었다. 중심은 잡았지만 마음속의 혼란이 채 가시지 못한 소녀의 흔들리는 눈동자가 그의 싸늘한 눈동자와 조우했다. 하지만 그런 소녀의 눈동자를 얼마 쳐다보지 못한 그는 아예 몸까지 돌리며 소녀를 외면하였다. “……마지막, 이라고 했지? 보잘 것 없지만 천천히 쉬었다 가도 좋다.” “!! 그, 그게 대체 무슨!” 소녀는 절망스럽게 그를 쳐다보았다. 어째서 이렇게 냉철하게 쳐 낼 수 있단 말인가. 난 그렇게 소중했던 시간들이, 그에겐 그 정도의 시간밖에 되지 못했던 것일까? 여기에 오기 전부터 생각만 해왔던 온갖 생각들이 현실이 되어 소녀를 압박했다. 절망스러웠다. 자신을 이렇게 차갑게 내칠 수 있는 그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스란히 다 준 것이 억울하였다. 하지만 지금 후회하는 건 이미 늦은 바. 저런 싸늘한 뒷모습마저도 소녀는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 사실이 견딜 수 없어, 기껏 제대로 선 자신의 몸을 구부릴 수밖에 없었다. 원망스럽고 그가 싫었다. 이렇게 쉽게 내어치는 그가 싫어 소녀는 그 자리에서 펑펑 울기 시작했다. - 그는 주먹을 꽉 쥐었다. 자신의 눈앞에 있는 유리창마저도 원망스러워 깨고 싶었다. 달빛이 은은하게 투과하면서 본의 아니게 거울이 된 유리창은 희미하게 그의 뒤에서 울고 있는 소녀를 보여주었다. 훌쩍이느라 들썩이는 어깨를 보며 그는 소녀를 껴안아주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하지만 안아 줄 수 없었기에 그의 주먹엔 좀 더 힘이 들어갔다. 처음엔, 그도 놀랬다. 소녀를 만날 수 없다는 사실에 그도 놀래어 아무런 생각을 할 수 없었다. 하필 그런 날이 오늘이 될 줄은 몰랐기에 그의 당혹감은 더욱 커졌다. 그리고 소녀가 자신이 살던 세계와 자신, 둘 중에서 택해야 한다는 사실을 듣자 그는 더 이상 생각지 않고 일어섰다. 소녀가 휘청거리는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손이 잡아줄려고 내 뻗어졌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초인적인 인내로 참아내었다. 그리고 소녀에게 싸늘하게 대했다. 이제까지 해왔던 행동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소녀에게 싸늘하게 대했다. 사실, 소녀에게 가지 말라 말하고 싶었다. 이곳에 남아 달라 요청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알았다. 이곳의 사교계의 폐해를. 이곳에 남아 달라 해서 소녀가 남는다고 해서, 그가 무리하게 소녀와 결혼을 한다 해서, 달라지는 건 없었다. 사교계에선 그녀에게 손가락질을 할 것이고, 그는 그것을 다 지켜내지 못할 것이다. 소녀의 눈에 눈물이 매일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닐 것이 뻔했다. 지위상승. 별 볼일 없는 평민이 몸으로 공작을 꼬여내 결혼한 천한 여자라는 수식어가 그녀의 몸에 떨어지지 않을 것을 알았기에, 그는 소녀에게 남아 달라 할 수 없었다. 만약 정말 그런 것들이 그녀가 괜찮다고 해서 결혼을 한다 하더라도, 자신이 실속적이게 계속 중앙귀족노릇을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자신의 가문에 힘이 되어주는 가문과 결혼하지 않는 것과 더불어, 오히려 평민과 결혼한다는 것은 귀족생활에서 큰 타격을 의미하였다. 노력은 하겠지만 언젠가는 자신이 밀려날 것이 뻔하였고, 그런 하찮은 삶을 그녀와 그 자신에게서 낳은 사랑하는 아이에게 되 물려주기 싫었다. “……마지막, 이라고 했지? 보잘 것 없지만 천천히 쉬었다 가도 좋다.” 그렇기에, 그는 말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속으론 심장이 쥐어짜는 듯 한 아픔을 느끼면서도 그는 말했다. 무심하게 말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관계를 정리하는 듯이 냉기서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소녀가 흐느끼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자신이 달래줄 수 없다는 사실에 그는 소녀에게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어? 왜, 왜 이러지?” 하지만 그런 고통스러운 회상도 잠시, 그는 갑작스럽게 소녀의 말이 들리자 놀래 고개를 돌려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소녀의 몸에선 이상한 빛이 퍼져나왔다. 간다는 뜻일까, 소녀는 손가락을 천천히 들어 올려 자신의 빛나는 몸을 잠시 아련하게 쳐다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려 그를 바라보았다. 안타까운 눈빛. 그리고 촉촉하게 젖어있는 눈. “아무래도, 가야 할 시간인가 봐요.” “…….” “잘 있어요. 당신은 아무래도 상관없었겠지만, 제겐 꽤나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첫 만남도, 그쪽의 달콤한 키스도, 껴안음도, 목욕탕에서 마주한 것도, 당신이 내게 선물한 목걸이도. 사소한 것 모두가 다 내겐 소중한 추억이었어요.” “…….” 끝까지 대답을 하지 않는 그로 인하여 소녀는 눈물을 다시 볼로 흘러내렸다. 고집불통. 이라는 생각이 입에서 조용히 빠져나왔다. 이렇게 아련한 순간인데, 조금이라도 거짓말을 해 자신을 사랑한다고 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혀 말 한번 뻥긋하지 않는 그로 인하여 소녀는 단념했다. 그리고 미소 지었다. 이왕 갈 길이라면, 그에게 좋은 모습으로 남고 싶었다. 적어도, 내 웃는 얼굴을 좋아하던 그를 위해 웃는 모습으로 남고 싶었다. “ㅡ사랑해요. 정말로, 정말로 사랑해요.” 그리고, 그 말을 들은 공작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몸을 날렸다. ================================ # 29편 # 소제목 : 제 3자의 눈엔 둘 다 안녕 ================================ 탁! 소녀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신의 손목을 거세게 잡은 이가 공작, 그라는 것을 깨닫자 소녀는 눈을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으로 뜨며 그를 바라보았다. 찌푸려진 미간, 그것만으로도 그가 충분이 분노했다는 것을 알았기에 소녀는 잠시 두려움에 몸을 움츠렸다. 기껏 자신이 용기를 내어 고백을 했는데 어째서 이 남자는 오히려 화를 내는 것일까. 순간적으로 이해가지 못할 질문이 머릿속을 나돌아 다녔다. “가지마라.” 하지만 그의 단호한 목소리가 소녀의 귀에 박히자 소녀는 잠시 멍해져서 그를 바라보았다. 가지 말라니? 도대체 어디를? 소녀가 그 말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그를 바라보자 그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가지마라. 난 네가 없으면 안 된다. 가지마라.” “……네?” 소녀는 그의 말에 잠시 동안 멍해져서 되물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자신에게 차갑게 대하던 그가, 다짜고짜 자신에게 가지 말라고 말하다니. 소녀는 놀래어 두 눈을 연신 깜빡이었다.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이가 아까 전까지만 해도 자신에게 차갑게 대했던 사람이 맞는 것일까.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자신의 팔을 세게 옭아매는 그를 향해 소녀는 날카롭게 소리 질렀다. “아, 아파요!” “…아, 미안하다.” 미안하다고 말하며 순순하게 말을 한 그였지만 손의 힘을 풀었을 뿐, 여전히 소녀의 손을 놓아주지 않았다. 당황스럽고 당혹스러웠다. 어쩌자는 말인가. 소녀는 그를 바라보던 것을 멈추고 힐끗, 시계를 쳐다보았다. 47분. 얼마 남지 않았다. 소녀는 다급한 마음에 그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자신을 잡아보았자 잡아 둘 수 없다는 것을 뻔히 아는 그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계속해서 소녀의 손목을 잡은 체 놓아주지 않았다. 소녀는 울컥 화가 치밀어 올랐다. 어찌하자는 말인가. 아까 전 까지만 하더라도 자신을 보고 차갑게 내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가지 말라니. 이게 말이 된다고 그는 생각하는 것일까? 한번 치밀어 오른 화는 쉽게 내려지지 않았다. 두 눈은 날카롭게 변했고 소녀의 울먹이던 눈물방울은 더 이상 보이질 않았다. “이거 놓아요. 전 가야 되요.” “가지마라.” 변함없는 대답. 소녀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눈물로도 쏟아내지 못한 엉망진창으로 휩싸인 감정들이 속에서 폭발하는 것 같았다. “도대체 나보고 어쩌라는 거예요! 아까 전에는 가버리라면서요? 쉬다가 천천히 가버리라고, 날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고 그렇게 쉽게 말하셨잖아요! 더 이상 당신 같은 사람 보기 싫어요! 반듯하게 내 맘을 보인 게 잘못이었던 것 같아요. 난 갈꺼예요. 갈 거야!” “그건 네 생활이 무너질까 두려워서 였다!” 그는 순간적으로 말을 멈추고 소녀를 바라보았다. 지금 자신 때문에 화를 내지만 않았더라면 훨씬 더 좋은 얼굴을 하고 있을 아이. 항상 얼굴에 미소를 가득 담고 있는 아이었기에 그는 소녀에게 남아 달라 할 수 없었다. 보지 않아도 뻔하였다. 이렇게 항상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건 그녀가 사는 세상이 편해서, 즐거워서, 행복해서 임을 보지 않아도 그는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소녀를 이런 생활에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 소녀의 웃음이 자신과 결혼하게 됨으로써 피폐해지게 될까 두려워서 였다. 자신이 못 받은 부모님의 사랑을, 넉넉하게 받았을 것 같은 소녀의 얼굴 표정을 보며 그는 순간적으로 자신이 놔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소녀의 속마음을 듣고 자신의 마음도 이내 진정으로 깨닫게 된 순간 그는 소녀의 손을 놓을 수 없었다. 아니 놓아선 안되었다. 자신의 심장을 쥔 소녀를 영영 떼어놓는 거란, 실제로 자신에게 숨이란 더 이상 붙어있는게 아니하다고 말하는 것과 똑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그랬기에, 그는 소녀에게 진심을 담아 말했다. “난 너의 항상 웃는 모습을 보고 깨달았다. 이곳과 너의 사는 세계는 다르다는 것을! 이곳의 삶은 피폐하다. 말 한마디로 사람을 잔인하게 죽일 줄 알았고, 앞에선 웃더라도 뒤에서 험담하는 사람이 널린 사교계라는 곳이 있다. 공작의 지위가 흔하지 않는 나라에 나도 모르는 네가 사교계를 알 리가 없다는 생각에 난 단념했어야 했다. 널 놓아주는 것이 비록 지금은 힘들더라도 나중에 항상 웃을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깐!” “그럼 지금은 왜, 왜 잡는 건데요? 한번 놓아주기로 결심했으면 그냥 계속 놓아주는 거, 아니었나요?! 왜 잡는 거예요 왜!” “사랑하니깐!” 순간적으로 정적이 흘렀다. 소녀는 떨떠름하게 입을 벌렸다. ㅡ뭐라 했지 방금? 귓속으로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그의 말이 소녀의 귀 주변을 맴돌았다. “이미 알아버렸는데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거지? 흔히들 사랑한다면 놓아 주는 법이라고 하더군. 하지만 난 달라. 놓아줄 수 없다. 내가 알아버렸기에, 내가 널 깨달아버렸기에 난 널 놓아줄 수 없다. 남아라. 가지마라. 내 옆에서, 내 곁에서 있어다오.” “……뭐, 뭐야…….” 소녀는 얼떨결에 받은 고백에 떨떠름하게 웃었다. 믿을 수 없었다. 그가 나를? 하지만 지금 이 시각에 그가 내게 말하는 사랑고백은 마치 날 구속하기 위한 주문인 것만 같아 난 고개를 잘래잘래 돌렸다. 뭐가 뭔지 몰라 소녀는 눈물을 다시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기껏 집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은 자신의 마음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이러면 안 되는데, 그의 한마디에 또 급하게 뛰는 자신의 마음이 억울해 소녀는 끅끅거리며 입술을 열었다. “……너, 너무해.” “…….” “…너무해요. 내가 집에 간다고 겨우 정했는데. 그 누구보다도 아파하면서 힘들게 정했는데. 기껏 시간이 다돼서 이러다니. 정말이지, 정말…….” 소녀는 결국 자신의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이래서야 갈 수가 있나. 서로의 마음을 이제야 진실 되게 알았는데 갈 수가 있나. 소녀는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그런 소녀의 모습을 바라보던 그는 천천히 소녀의 등을 껴안았다. 그리고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가지마라.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널 행복하게 해 주겠다. 웃음? 내가 너의 귀를 틀어막아서라도 항상 웃게 해주겠다. 물론, 그렇게 할 내가 아니지만 말이다. 그러니깐 제발 가지마라. 가지마.” “……흑.” 소녀는 자신을 숨 막힐 듯이 꽉 조여 오는 그의 껴안음에 훌쩍이다가 자신도 천천히 얼굴을 가리던 손을 풀어내었다. 그리고 그의 마음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천천히 그의 등에 자신의 손을 머뭇머뭇 가져다 대었다. 어쩔 수 없었다. 이런 말을 들은 소녀가 현실로 갈려고 다짐한 마음은 눈 녹듯 사라진 게 뻔하였다. 그 둘이 서로 껴안자 소녀만을 환하게 비추었던 빛이 둘을 포근하게 감쌌다. 그리고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밝아지는가 싶더니, 결국 빛은 촛불이 꺼지듯이 아련하게 사라지고 말았다. 이제 정말 집에 갈 수 없다.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아무리 기다려도 집에 갈 수 없다. 자신의 몸에서 빛나던 빛이 사라진 것을 알고 소녀는 더욱 거세게 울었다. 엄마, 아빠, 그리고 남동생이 생각나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세상의 법칙대로 자신은 저쪽세계에서 잊어질 것이다. 하지만 자신은 잊을 수 없었기에 울고 또 울었다. 슬퍼서 자꾸만 울었다. 그런 소녀의 눈물을 안타깝게 바라보던 그는 천천히 그녀의 볼에 잔잔한 키스를 뿌렸다. 자신이 한 결정에 흔들림은 없었지만 결국 자신이 뜻하는 바대로 이루기 위해 소녀를 슬프게 만들었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마음속에 얼렸다. 하지만 자신의 품 안에 작게 안겨오는 소녀를 놓칠 수 없었기에 그는 다시 소녀를 꼬옥 안았다. “……저기 근데요.” “…음?” 그는 그녀의 말에 천천히 안았던 손에 힘을 풀었다. 그리고 소녀의 얼굴이 자신을 바라보자 그는 미소를 지었다. 눈물로 엉망진창 되고 퉁퉁 부은 눈가가 조금은 희미하게나마 웃음을 짓고 있었기 때문에. “그거 알아요?” “무엇을?” “우리, 이때까지 이름도 모르고 있었어요. 항상 너, 당신. 이렇게만 불러온 거, 아세요?” 그는 소녀의 말에 얼빵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자신과 그녀는 서로 통성명도 하지 않고 있었다. 나이도 이름도. 아무것도 몰랐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사랑에 빠진 서로가 우스워 둘은 살짝 큭큭 되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리고 그 웃음이 천천히 멎어가는 순간, 그는 소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반 하임 로스차일드. 26살이다.” 그의 말에 소녀는 조금 놀래어 그를 바라보았다. 항상 애늙은이 행동에 좀 더 늙었을 줄 알았던 그의 나이가 조금 어렸기 때문. 그러나 그것이 소녀에겐 장애가 되지 않았기에 소녀는 빙그레 웃으며 그의 말에 화답했다. “예빈이예요. 당신을 보기위해 저쪽세계에서 이쪽세계로 날아온 소녀랍니다.” “예ㅡ빈.” 그는 소녀의 이름을 불러보고 빙그레 미소 지었다. 너무 어여쁘고 소녀에게 잘 어울리는 이름 이였기에 그는 천천히 미소 지으며 소녀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가져다 대었다. “행복하게 해주겠다.” “당연한 말씀을. 이제 더 이상 울리면 안 돼요?” 그는 짐짓 화난 듯이 행동하는 소녀의 장난어린 말투에 곡선을 그렸다. 어여쁜 아이. 그리고 천천히 눈을 감는 소녀에게 그는 자신의 입술을 가져대 대었다. 달콤한 키스. 눈물에 젖어 약간의 짠맛이 서로의 입안에 감돌았지만 그런 것쯤은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기에 그 둘의 키스는 오래도록 이어졌다. “사랑한다.” ================================ # 30편 # 소제목 : epilogue ================================ “더 이상 못해!” 한 영애가 과음을 지르며 벌컥 문을 열었다. 쾅 소리가 들릴 정도로 세게 열어진 문은 이내 반동에 의해 다시 큰 소리를 내며 닫혔다. 하지만 그 소리마저도 영애의 마음을 달래주지는 못했는지 이내 영애는 어린아이처럼 침대에 몸을 날렸다. 풀썩 억울하고도 억울해 영애는 침대에 얼굴을 묻고 갑작스럽게 울기 시작했다. 아무리 자신이 그를 꼬시지 못하였다고는 하나, 이런 어처구니없는 관계를 맺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자신이 아무리 반대를 하더라도 자신의 집안에선 가문에 눈이 멀어 덜컥 약속을 맺고, 혼인을 맺어버렸다. 그것이 믿을 수 없었기에 영애는 계속해서 울었다. 자신이 사랑하던 반 하임 로스차일드 공작. 그는 결국 결혼을 하고야 말았다. 뭍 처녀들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던 공작은 갑작스럽게 양녀로 들어온 후작가의 영애와 결혼을 섣불리 올렸다. 그리고 두 집안의 가문은 서로의 협력으로 인해 더욱 더 입지가 단단하게 다져졌다. 영애를 이를 빠드득 갈았다. 양녀를 들인 가문이 바로 자신의 가문이었기 때문이었다. “아아악!” 영애는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내질렀다. 자신이 밤마다 공작의 집안에 몰래 숨어들어가던 것을 이때까지 봐 주었던 이유는 단 하나. 일이 잘 성사되어 자신과 공작이 결혼을 하게 된다면 가문의 입지가 더욱 올라가기 때문이었다. 그랬었기에 영애는 공작의 집에 숨어들어가는 것이 항상 당당하였다. 아무리 그가 내치더라도 자신은 가문의 힘을 덧입어 언젠가 그와 연결 될 줄 알았기에 영애는 항상 웃는 얼굴로 그를 찾아갔었다. 하지만 이런 식은 원하지 않았다. 자신의 형부가 되어버린 그를 생각하며 영애는 끊임없는 눈물을 흘려대었다. 결혼식 이후로 한 번도 보지 못한 그를 오랜만에 만났다. 친정집이라고 놀러온 가식적인 여자와 함께, 그는 웃고 있었다. 자신의 아버지와 화기애애하게 대화하던 그는 틈틈이 그녀에게 애정표현을 했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 웃었다. 자신이 보는 앞에서 한 번도 지어주지 못한 환한 웃음을 그녀에게는 그렇게 쉽게 웃어주었다. 그것도 견딜 수 없는데 그녀는 임신하고 있었다. 그것 때문에 친정에 왔다고 수줍게 말하는 여자를 보며 충동적으로 목을 졸라 죽이고만 싶었다. 견딜 수 없는 부러움과 질투심에 사로잡혀 영애는 부들부들 떨었다. 견딜 수 없었다. 여자의 행복한 얼굴이 내 얼굴과 대조되어 보였다. 그의 옆자리는 항상 자신의 것 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남의 것이 되어버린 지금, 바라보는 것조차 괴로워 결국 제대로 인사도 하지 못한 체 뛰쳐 나와 버리고 말았다. 이런 자신이 추접스러워 보였다. 자신의 긍지가, 오만감이 한순가 땅 끝까지 추락하는 것 같아 영애는 자꾸만 울었다. 내 남자인데! 내 것인데! 그의 옆에서 만삭인 배로 환하게 웃고 있는 그녀가 자꾸만 떠올랐다. 죽이고 싶었다. 될 수 있다면 그녀를 죽이고 자신이 그 옆자릴 꿰차고 싶었다. 아직 성인식을 올리지 못한 영애의 아이의 순수함이 담기지 못한 입가엔 잔뜩 비웃음이 흘러나왔다. 울고 웃기를 반복하던 영애는 불을 키러 들어온 하녀도 마다한 체 침대에 얼굴을 묻은 체 좀처럼 들어 올리려 하지 않았다. - “…….” 영애는 눈을 연신 깜빡이었다. 울다가 지쳐, 깜빡 잠이 든 것 같았는데. 막상 눈을 뜨니 자신은 한 남자를 덮치고 있는 듯 한 요상한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한 남자의 몸을 눌리다 시피한 자신의 몸은 차마 말하기 민망한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지라, 제대로 상황파악을 하지 못한 영애가 데굴데굴 눈을 굴렀다. 그러다 잠시, 영애의 눈에 띄는 한 무언가가 있었다. 자신의 언니. 양녀가 되어 들어온 여자가 어릴 때 모습으로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선명한 그림을 들고 있는 사람의 손을 따라 올라가던 영애는 놀라 눈을 커다랗게 떴다. 자신이 증오하지 않던 여자와 닮은 그. 그의 몸에선 희미하게 술 냄새가 났다. 술을 마셨나? 순간적으로 영애가 생각하는 그때 영애의 동그란 눈을 바라보던 그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안녕? 눈이 참 예쁘네.” 참으로 아이러니한 만남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의 특이하다고 하면 특이할 수 있는 인사를 들은 영애는 천천히 입술을 떼어내었다. “……저 사람을 아세요?” “응? 아, 우리 누나? 혹시 너 우리 누나를 알아?” 자신의 누나? 영애는 더욱 더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꽤나 준수하게 생긴 그가 영애의 눈빛과 조우할 때, 그는 씨익 웃었다. 당신도 인연을 원하신다면 간절히 빌어보세요. 혹시 누가 아나요? 새벽 2시에 당신을 멋진 상대방에게 데려다 줄지. -fin- ================================ # 31편 # 소제목 : 후기 ================================ 안녕하세요 달달하게입니다! 후기를 외전보다 먼저올리는 이유는 절대로 안적어서가 아니예요 네 음. ... . . . 1월에 연재했던 공작의 소녀가 2월에 끝맺으니 너무나도 상큼하네요 ㅠㅠ 약 한달 반? 동안 연재하면서 기뻤던 일도 슬펐던 일도 많았답니다 :) 사실 공작의 소녀는 처음부터 단편으로 계획된 거였답니다. 고2생활에 절대로 영향을 주지말자!! 라고 불끈 주먹지으면서 쓰게 된 글이였거든요. 그래서 항상 될 수 있으면 매일 글을 올리도록 노력했었죠. 그렇지만 저도 적으면서 중간중간 장편으로 만들어볼까- 생각안한적은 없어요. 뒷통수 당한 반을 도와 현대의 지혜를 짜내는 예빈 그리고 반을 죽일려했던 암살자와 친하게 지내는 예빈 나약한 황제와는 달리 든든하고 욕심이 많은 날카로운 인상의 황태자 그런 황태자가 좋아하는 여자는 예빈- 뭐... 다 반의 적들밖에없었네요 ㅋㅋㅋㅋ 아무튼 저런게 적고싶었지만.. 질질 끌어가는 것도 별로라고 생각되어서 결국 제가 생각한 26편에서 4편을 더 추가한 30편에서 끝맺게 되었습니다. 아직 이 둘의 외전은 끝나지 않았지만 제 마음속엔 얘네둘이 없어져서 한결 가뿐한 맘입니다:D 반 하임 로스차일드 다예빈 안녕 바이바이. + 외전은 두갈래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보여주는 외전과 보여주지 않는 외전. 보여주는 외전은 이 후기 다음으로 올릴예정이고 보여주지 않는 외전은 오로지 '선물'을 주시는 독자님들에게만 배포할 예정입니다 선물을 꼭 'mhb8558@naver.com'으로 주시구요 선물을 주신분들은 왠만하면 선호작해지하지 마세요 나중에 일일히 호명하면서 빠진분들이 있는가, 체크할 예정이거든요:) 참! 선물은 팬픽,감상평,팬아트 만 받습니다. + 이 다음으로 연재할 후보작은 마왕의 취향 이라는 제목을 가진 로맨스판타지인데요:) 거창하게 말하자면 동성애자 마왕님 이성애자 만들기 프로젝트! 이구요, 소심하게 말하자면 소심한 소녀의 본격 성격되돌리기와 주변남자들 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네요 ㅎ 심심하면 보러와주세요~ + 외전에서 뵈어요!XD ================================ # 32편 # 소제목 : [외전] - 인연의 굴레 ================================ “앗, 반! 이리 와 보세요!” “왜 그러는지?” 자신의 아내가 화들짝 놀래며 다급하게 그를 부르자 그는 입가에 머물고 있던 미소를 싹 지운 체 다급하게 바라보았다. 이미 만삭처럼 보이는 그녀, 자신의 여린 몸에 비해 불뚝하게 튀어나온 배는 보는 사람도 조금 안쓰럽게 생각 될 정도로 무거워보였다. 하지만 항상 입가에 미소를 달고 있는 그녀였기에 그는 속으로 내심 초조해 했다. 무서워도, 힘들어도, 투정부리고 싶어도 자신의 아내는 항상 입가에 미소를 매단 체 지우지 않았기에 그는 불안했다. 조금 더 자신에게 의지했으면 좋겠다. 조금 더 자신에게 부담감을 같이 감당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들이 한데 모여 소용돌이 쳤지만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어느새 자신의 여인 앞에서 소심해져버린 그는 그녀를 향해 급히 뛰어갔다. 한눈에 봐도 폭신해 보이는 안락의자에 앉은 그녀는 그가 놀란 얼굴로 자신에게 다가오자 조금 놀랬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이내 그의 다급한 표정에 그녀는 풋, 하고 작게 소리 내어 웃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온 그의 손을 이끌어 자신의 배에 가져다 대었다. “……!” “느껴져요?” 이미 눈으로도 확연하게 보이는 태동은 힘차게 그녀의 배에 발길질 하고 있었다. 자신의 손을 타고 올라 느껴지는 그 짜릿짜릿한 감동은 쉬이 잊혀지지가 않았다. 그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자 그녀는 한껏 부드러운 눈웃음으로 대답했다. 이제 7개월. 뱃속에 아이를 품은지도 어느덧 반년이 지났다. 아직 산달이 되기엔 두 달이 더 남았건만, 빵빵하게 부어있는 그녀의 배를 바라보던 그가 부드럽게 눈초리를 내렸다. 차갑게 눈을 떠 오만하게 상대방을 바라보던 그는, 이제 자신의 여인. 자신의 아내. 자신만의 소녀의 앞인 ‘예빈’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부드럽게 내려진 눈초리와 달콤하게 올라간 입 꼬리가 그것을 입증이라도 해 주는 듯이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신비하죠? 이제 자주하는데도 불구하고 경이롭게, 그리고 대견하게 느껴져서 자꾸 당신을 부르게 되요.” 그는 그녀의 말에 아니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고개를 젓고 싶었다. 솔직히 털어놓고 싶었다. 그녀가 자신이 살던 세계로 가지 않는다고 털어놓은 그날로부터, 그는 계속 긴가민가했었다. 새벽 두시가 지나고 새벽 세시가 지나, 그녀가 가야할 때가 오면 그는 자고 있던 눈을 떠 옆자리를 매번 확인했다. 이젠 침대에 자신의 옆자리를 차지하는 그녀가 자연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손으로 꽉 잡아 연결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자신을 버리고 다시 현실세계로 갈까 싶어 그는 소녀가 임신하기 전 까지 꽤나 밤잠을 설쳤었다. 하지만 그런 불안함에 떨던 밤을 이제 끝맺어주기를 바랬던 것인지 소녀가 임신을 하자 그는 기뻐 소리를 지르고만 싶었다. 그녀의 품 안에, 자신과 예빈의 사랑의 결실물이 싹트고 있는 것을 생각하자 그는 안도했다. 아아, 소녀는 더 이상 자신의 곁을 떠나지 않는다. 그 사실이 기뻐, 난생 처음으로 별것도 아닌 일에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수줍게 자신에게 고백하는 그녀를 껴안고 빙빙 돌리고 싶은 충동을 애써 참으며 꽉 껴안아 주었다. 밤에 더 이상 잠을 설치지 않아도 되었다. 뱃속의 있는 생명이 소중하고 귀해. 그리고 그런 태아가 그녀의 발목을 잡아주었기에 그는 무엇보다도 ‘예빈’의 뱃속에 있는 아이가 소중했다. 그걸 표현하기 위해 그는 배를 쓰다듬던 손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올렸다. 확인시켜주고 싶었다. 자신이 얼마나 그녀의 태중에 있는 아이를 사랑하는지 알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난폭한 방법으로 알려주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기에 그의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웠다. 그리고 그런 그의 마음을 알았던 것일까, 그녀는 천천히 눈을 감아 내렸다. 입술에 맞대어오는 부드러운 느낌. 그 부드럽게 매달리는 입술에 처음 만났을 당시의 소녀로 되돌아간 것처럼 그녀는 발그랗게 볼을 물들였다. 힘든 결정을 하고 난 뒤 부모님의 생각이 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동생이 생각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이 보고 싶어, 그가 있지 않을 때 목 놓아 울기도 했었다. 슬퍼서, 더 이상 볼 수 없는 그들이 형태가 눈앞에 아른거려서 통곡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자신만 힘든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힘들 땐, 그도 같이 힘들어 했기에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떼어놓지 않았다. 적어도 그의 앞에선 항상 웃고 싶었다. 그리고 5년 뒤. 자신을 누구보다도 더욱 소중히 다뤄주는 그로 인해, 생활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기에 소녀. 아니, 이제 여인이 되어버린 예빈은 오늘도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