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공녀(貢女) 카세리아느 [1 회] 글쓴이: 썬샤인 2002-07-10 조회/추천: 9172 / 39 프 롤 로 그 - 1 모든 것이 새하얀, 그래서 더욱 순결하고 성스럽게 느껴지는 이곳은 인간들이 성역이라 부르는 천계(天界)였다. 그리고 감히 이 성스러운 성역에서 허리를 곧게 펴고 서있는 두 사람이 보였다. 모든 신들의 주인이라 불리는 주신(主神)과 생명과 평화를 관장하는 데미에르가 그 주 인공들이었다. 한명은 천진난만한 웃음을 간직한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또 한명은 부드 러움을 간직한 여인의 모습으로 있었다. 결코 그저 넘기기에는 평범하지 않은 둘의 눈동자를 사로 잡은 것은 다름 아닌 하늘에 서 빛을 발하며 떠있는 수정구였다. 너무나 깨끗하기에 손대기가 두려울 정도의 천계 의 물건. 바람하나 불지 않고, 춥지도 덥지도 않은 절대적인 공간안에서 그 둘은 물과 같이 투명 한 모습으로 빛나고 있는 수정체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응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목적은 그 수정구가 아닌 모양이었는지, 수정구의 표면에는 아스라이 한 모습이 형상으로 나타나 비춰 보이고 있었다. "정말 아름다운 아기야. 그렇지, 데미에르?" 그리고 그것은 어린아이의 모습을 한 주신의 말처럼 한아기였다. 시프르 대륙 중에서도 소국(小國)에 속하는 아르미난왕국의 고품 있는 세리오스 공작가의 여자아이. 새파란 세속에 물들지 않은 투명함이 잔뜩 어리어 있는 눈망울이 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아 버렸고, 그것은 데미에르에게조차도 적용된 것이었다. "그러하옵니다. 주신이시여." 그랬기에 데미에르는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주신이 무엇이라 말하고 나서야, 시선을 떼고서 대답했다.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저 아기는 무서울 정도로 시선을 끌어 당기는 아이였던 것이다. "분명 큰다면 더욱 아름다워 질꺼야," "분명 그렇게 되겠지요. 지금도 이렇게나 매력을 지닌 아이이니 말입니다." 어느새 데이에르는 살며시 눈을 깔고서 바닥을 향하여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데미 에르의 대답에는 왠지 모를 불만도 없지 않아 섞여 있었다. 분명 아름다운 아이임에는 틀림이 없고 부정할 생각도없었다. 하지만 아름답다는 것과 지금 저 아이를 보고 있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지 않은가. 적어도 자신들이 보고 있는 이유에는 아름답다는 것과는 전혀 무관한 다른것이 있었 다. 그리고 자신의 이런 마음을 주신이 알아 주기를 바랬다. "무엇때문에 그러는 지 알아. 하지만 나를 못 믿는 것은 아니겠지, 데미에르?" "물론...입니다. 존경하는 주신을 믿지 못하면, 어느 누구를 믿을 수 있겠습니까." "하하, 걱정하지 말라구.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있다고해서 정신까지 어려지는 것은 아 니니까 말이야." 심경에 무슨 변화라도 있었던 까닭인지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자신에게 말하는 주신을 바라보면서 데미에르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어린아이는 그저 겉모습에 불과할 뿐이다. 분명 겉모습이 어리다하여, 정신까지 어려지 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데미에르는 자신을 향하여 웃음짓고 있는 주신을 믿어야만 했 다. 그것이 못 미덥다 하더라도 믿어야만 했다. "하지만 주신이시여. 아직도 저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어째서 주신께서 저 아이를 선 택하신 것인지 말입니다." 저 아이는 아름답다는 것 외에는,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데미에르를 보면서 주신은 실망이라는 듯이 인상을 찌푸리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적어도 데미에르는 자신과 같이, 그 아이를 알아보기를 바랬다.그리고 당연히 알아 볼 것이라고 믿었다. "정말 모르겠어, 데미에르? 이 아이에게서 숨겨진 엄청난 마력을 말이야." "마력이라니요?" 약간은 심통어린 그 말에 데미에르는 의문띤 눈동자로 주신을 바라보다가 수정구로 눈 을 옮겼다. 마력? 마력이라니!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거늘, 주신은 자신 에게 마력이 느껴지냐고 묻는 것이다. "자세히 봐, 그러면 알 수 있을 테니까. 너라면 분명 알아 볼꺼야." 바라보아야만 했다. 저 아름다운 얼굴의 유혹을 뿌리치고 다른 것을 바라보아야만 했 다. 그리고 조금 있어 데미에르의 눈동자는 무언가를 발견한듯 커졌다. "주신이시여! 이, 이아이는!"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무심결에 더욱 큰 소리로 소리질렀다. 느껴졌다. 화려한 얼굴로 시선을 끌어놓고서 마력이 있음을 숨기고 있었다. 알 수 있었다. 이 아이가 가지고 있는 마력과 그리고... "다행이다. 이제서야 데미에르도 알아 보는 모양이니까. 그럼 알 수 있겠지? 난 결코 이 아이를 선택하지 않았어." 데미에르가 알아보는 듯 하자, 그제야 주신은 심통한 모습을 풀고서 해맑은 웃음을 지 어 보였다. 그리고는 약간 씁쓸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이 아이는, 데미에르가 더욱 잘알지도 모르는 이 아이는 자신 스스로 선택되어 버린거 야."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죠..." 약간 떨리는 음성으로 데미에르가 주신의 말을 받았고 주신은 데미에르를 보면서 살짝 웃어주다가 계속 말을 이엇다. "놓아주지 않을 테니까. 저 아이의 잠재의식속에 묻혀진 기억의 파편은 절대로 그 아이 를 놓아주지 않으니까 이렇게 될 수 밖에 없었겠지." 안쓰러운 주신의 눈길이 수정구 속에서 잠들고 있는 아이에게로 닿아 있었다. 편안한 모습으로 잠들어 있는 아이가 마냥 사랑스럽게만 보였다. 털썩! 데미에르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바닥으로 풀썩 쓰러졌다. 경악어린 시선에서 벗어나 고개를 숙이고서 애처로운 모습으로 바닥만을 응시하고 있는 데미에르였다. 살며시 속눈썹도 떨리는 듯도 했다. "주신께서 저의, 미천한 저의 소원을 들어주셨습니다." 고개 숙인 데미에르의 붉은 입술에서 조심스럽게 나오는 말은 상당히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샌가 천계의 바닥을 적시는 저 물방울은 분명 데미에르의 것이 었다. 투명하고 맑은 저 물방울은 데미에르의 부드러운 갈색 눈동자에서 흘러져 나와 볼을 흘 러타고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리고 천계의 바닥은 갑작스럽게 여신의 눈물로 인해 촉촉 하게 젖어 들어갔다. .자신이 사랑했던 아이, 하지만 자신이 지켜주지 못했던 아이. "별것 아니야. 알잖아. 나 데미에르 무척이나 좋아하는 것, 이 정도쯤이야 들어 줄 수 있지." "다,.다시는 못 볼줄 알았습니다. 흐윽." 왜 진작에 알아 보지 못한것인지 그것에 더욱 의문이 갔다. 저렇게 아름다운 아이. 분 명 그 아이도 저렇게 아름다웠는데. 저렇게나 닮았는데도 알아 보지 못하다니. "그리고 너의 사랑스러운 아이를 나도 사랑해." 이제는 대놓고 흐느끼는 데미에르를 주신은 살며시 다가가 등을 토닥여 주었다. 어린아 이가 어른을 토닥여 주는 왠지 모순적인 그 모습은 어찌 보면 우스꽝 스럽게 보일듯도 했으나 어찌된 일인제 마냥 따뜻하게만 보였다. 아마도 그 이유는 주신의 얼굴에 띠워진 미소가 그저 어린아이의 웃음이 아닌, 자애로 운 아버지의 미소였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흐윽.. 흑. 한없이 사랑스럽지만, 한없이 강한 아이기에 사랑한다고 말해주지 못했습 니다. 그리고 다시 태어난다면 이번에는 행복하기를... 흐윽.." "......" 데미에르의 흐느낌에 주신은 그저 아무말도 없었다. 다만 아까까지는 없던 엄청난 위압 감이 주위에 가득했다. 아버지같은 자애로운 눈길마저도 끝을 알 수 없는 고독의 눈동 자가 되어 있었다. 어린아이의 모습으로도 감출 수 없는 위압감. 그것은 역시나 주신이라는 느낌을 강하 게 주었다. "모든 것은 원하는 대로만 될 수는 없는 법이야, 데미에르. 그리고 이번에는 카세리아 느도 자신의 길을 찾아가겠지. 저번과는 달리 후회하지 않는 길을 택하기를 바랄뿐이 야." 주신의 따스함어린 시선이 그 어린아이에게 닿았는지는 모를 일이었지만, 그 어린아이 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주신을 알 수 없을 텐데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아주 천진스런 미소를. ================================================================================ 후읍; 수정했습니다; 제 목: 공녀(貢女) 카세리아느 [2 회] 글쓴이: 썬샤인 2003-01-26 조회/추천: 950 / 7 공녀로 보내지다 - 1 윤철님!!! 당신의 저의 희망이셨습니다+ㅂ+ ================================================================================= 공녀(貢女)로 보내지다 - 1 "나의 사랑하는 아이, 카세리아느. 너에게 나의 바램이 닿아주기를... 언제나 너에게 는 생명과 평화를 관장하는 데미에르의 촉복이 함께 할것이다." -천계(天界)- * * * 시피르 대륙에서 약소국으로 알려져 있는 '아르미난'의 국사를 논하는 방안에는 이상하 리 만치 조용한 정적만이 가득 메우고 있었다. 방안에 있는 사람의 숨소리마저도 들릴 만한 정적은 누군가의 대답도 요하지 않았다. 그 조용한 방안에는 아르미난의 허울뿐인 왕이 옥좌를 지키며 앉아있었고 그 앞에는 오 직 세리오스 공작만이 눈을 크게 뜬채 왕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곧 공작은 아닐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고개를 내저으며 어색하게 미소지었다. 그럴리가 없다. 자신이들은 소리는 분명 잘못 들은 것이다. "무,무슨 말씀이신지 잘 듣지 못했사옵니다.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겠사옵니까, 폐하?" 그것은 상당히 충격적인 말이었던 모양인지 공작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 거부하고 있었 다. 그리고 왕을 바라보는 눈길에는 제발 아니라고 부정해 달라는 뜻도 포함하면서 애 처롭게 매달리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이제 늙어 힘조차도 제대로 쓸 기운이 없는 왕에게도 힘든 일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자신도 할 수만 있다면 거부하고 싶었다. 아니라고, 그렇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세리오스공작. 당신도 아시지 않소. 그만 인정하시오." 힘없이 고개를 떨구면서 말하는 왕의 머리카락은 이미 새하얗게 되어버린지 오래였다. 이마에는 가득 주름살들이 자리잡고 있었고, 볼은 수척하게 들어가 있었다. 이미 늙어버린지 오래인 왕에게는 더이상 말하는 것도, 젊은 혈기를 그리워하는 것도 고역일 뿐이었다. 그러니 더이상 공작이 자신의 가슴을 더욱 아프지 않게, 인정해주길 바랄 뿐이었다. "그럼 믿으시란 말씀이십니까. '아텔린'에서 우리에게 공물과 저의 딸 카세리아느를 보 내오라고 하였단 말을 저보고 믿으시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차라리 미칠 수 있다면 지금 미치고 싶었다. 그랬다면 지금 자신은 웃으면서 아니라고 말할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이렇게 무능력하게 보내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아 도 되었으니까. "어찌하겠소. 그들은 제국인것을." '그리고 우리가 약소국인 것을..' 시피르 대륙에서 가장 강한 나라를 꼽는다면 누구나 주저하지 않고 대답할 것이다. 대 제국 '아텔린'이 이 대륙에서 가장 강한 나라라고 말이다. 그런 아텔린에서 이 아르미난에게 공물과, 공작의 딸 카세리아느를 보내올 것을 요구 한 것이다. 그것은 아텔린에서 아르미난을 자신의 아래 국가로 본다는 것과 진배없었 으며, 중요한 것은 아르미난에서는 그런 그들의 요구를 거부할 힘이 없엇다는 것이었 다. 욕해야 한다면 그것은 약한 자신들의 나라였고, 반항할수 없는. 인정해야만 하는 현실 이었다. "강하다면 그래도 되는 것입니까?" 공작은 아직도 믿기지 않는 다는 눈동자를 하고서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리고 있었다. 인정하기 싫다. 하지만 인정해야만 하는 현실이었다. 자신의 모국(母國)이 약하다는 것 을 말이다. 하지만 강하다고 해서 이럴 수는 없는 법이었다. 강하다고 해서 남의 마음에 상처를 주 는 행위는 절대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공작은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강하다는 것이 문제를 풀어줄 가장 정확한 답은 아니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것을 모르는 왕이 아니었다. "공작.." 하지만 공작에게 해줄 말은 없었다. 상실감에 젖어있는 공작에게 왕은 그저 안쓰럽게 쳐다봐 줄 뿐, 아무런 행동도 취해줄 수 없었다.어설픈 위로가 더욱 상처를 건드리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말이다. "황태자의 생일이 얼마안남았다는 이유로 저의 딸 카세리아느를 공녀(貢女)로 지명했습 니다. 차비로 맞이한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카세리아느는 저의 딸이기에 앞서 한나라 의 공작가의 공녀(公女)입니다!" 상처가 다가오기 이전에 더욱 앞서서 굴욕감과 모욕감이있었다. 한나라의 공작가의 여 식이다. 낮은 직위의 남작이나 자작도 아닌 공작가의 공녀였던 것이다. 자신의 딸 카세 리아느는 결코 낮은 신분이 아니었다. 공작이 무엇인가? 나라를 세우는데 일조를 한 명문가문들의 직계만이 지니는 것이 공작 의 지위였다. 그러한데 그런 공작의 딸을 차비(次妃)로 보내라는 것은 자존심의 문제였 다. "강하기에 그렇게 해도 되고, 약하기에 이렇게 손수무책으로 손놓고 있어야 한다면. 저 는 절대 아텔린을 용서 할수 없습니다." 자신도 모르는 새에 가슴에서 울컥 무엇인가가 복받쳐 올라오려고 했다. 말을 꺼낼때마 다 더욱 속에서 막혀오는 그것은 공작의 가슴을 가득 메워 놓았다. 조금이라도 건드린다면 터져 버릴 것 같은 가슴의 고통이 아텔린의 대한 증오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증오한다. 죽을 때까지도 이떄의 굴욕감과 이떄의 아픔을 잊지 않을 것이 다. "언젠가는 갚아야 하겠지. 이 수치감도 이 모욕감도 언젠가는 아르미난에서 갚아야 할 것이야. 그렇기에 그대에게는 더 미안할 뿐이라네." 애처로운 왕의 눈길이 세리오스공작에게 닿았다. 지금은 아무런 힘도 남아있지 않은 왕 은 그저 말로만 복수를 꿈꿨다. 눈에는 아무런 희망도 남아있지 않지 오래일 뿐인데도 공작을 위로하기 위해서 그렇게 말했다. "저에게 미안할 것은 없으십니다." "아닐세, 약하기만 한 아르미난의 왕은 나이니 말이네. 지금은, 지금은 그저 약하기만 한 아르미난을 원망하시게나. 공작." 허공을 허무한 눈으로 응시하며 그렇게 한마디 한마디, 내뱉는 왕을 보면서 공작은 눈 을 크게 뜨며 반발했다. 그것은 왕이기에 더 해서는 안될 말이었던 것이다. "약한것은 죄가 되지 않는 법입니다. 그렇기에 원망해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약 하기에 소중한 것을 잃어야 한다면 그것은 나태해진 결과가 가져온 고통일 뿐입니다." 끝까지 모든것이 원망스러울 지라도 나라마저도 원망해서는 안되는 법이다. 나라를 원 망하는 것은 곧 자신을 원망하는 것과 같은 것이며, 나라가 약하기에 원망하기 보다는 강해지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는다면, 약하기때문에 희생되어야 하는 자신의 딸 카세리아느는 너 무나 불쌍했다. 이것은 분명 고통이며 상처였다. 자신의 가슴을 자꾸만 짓이기는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되어 남아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상처에만 얽매이기 보다는 그 상처를 딛고 일어서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도 미안하기는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아르미난이 약하게 된것에는 나의 탓이 크 니.." 왕은 그저 공작에게 미안하다고만 말했다. 자신의 딸을 잃어야 하는 부모의 마음을, 살 아있음에도 헤어져야 하는 생이별을 해야하는 부모의 심정을 어찌 모르겠는가. 자신에게도 자식이 있으니, 그 심정을 모르는 바 아니었다. 그리고 더욱이 공작의 딸은 이국(異國)의 차비로 보내어지는 것이다. 그 고생길이 훤한 길로, 생이별의 고통을 감 수하면서도 공작은 보내야만 하는 것이다. 약한 나라라는 이름아래, 공작이라는 이름아래에서 그저두손놓고 바라 볼 수 밖에 없다. "그것은 폐하 혼자만의 탓이 아니지 않습니까." 고개를 숙이면서 있는 공작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조용히 내뱉는 저 말한마디에 얼마나 되는 마음이 깨어져 버릴 것인가. 그리고 그런 공작의 말을 들으면서 왕은 씁쓸 하게 미소지으면서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렇겠지. 나혼자의 잘못이라고는 할 수 없지. 결국 모든 아르미난에 살고있는 이들의 잘못이 아니겠는가. 그저 풍요로운 삶에 만족하고 주위를 둘러보지 않은 우리의 무지함 이 가져온 시련이겠지." 공작은 왕의 말을 들으면서 손을 꽉 쥐어 잡았다. 잊지 않을 것이다. 반드시 잊지 않고 서, 언젠가는 이 치욕을 갚아주고야 말것이다. 자신의 사랑스러운 딸을, 자신의 자랑스 러운 모국을 이렇게나 짓밟은 아텔린을 끝까지 잊지 않을 것이다. 몸을 부르르 떠는 공작을 보면서 왕은 다시한번 중얼거리듯 말했다. 같은 자식을 둔 아 비의 심정으로서 그렇게 안쓰럽게 말해주었다. "미안하네. 그대에게 이 말밖에 더 무엇이라 하겠는가. 그저 미안하다네." 왕의 그 말 한마디에 공작은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껴버려야 했다. 억장이 무너 질 것 같은 심정또한 계속해서 느껴야 했다. 부모라는 직위가 거저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듯, 부모의 심정또한 쉽게 버릴 수가 없 었다. 가슴이 한번 아프고 말것이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부모이기에 자식에 대한 감정이 그렇게 차갑지 못했다. 미칠것 만 같았다. 미칠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 빌어먹게도 부모의 자리는, 그 너무나 무거운 자리는. 자식의 아픔이 두 배가 되어서 오게 만들어 버리는 자리였던 것이다. 그렇게 계속해서 가슴아픈 표정을 짓는 공작을 더이상 바라볼 수 없었던 왕은 고개를 돌렸다. 다만 이제 공작이 빠른 시일 내에 그 아이를 잊어주기를 바랄 뿐이다. 그나마 덜 고통스러울 수 있도록. "카세리아느. 이 못난 아비를 용서해 다오." 사랑스러운 아이. 너무나 아름다운 아이. 유리닌의 몸이 너무 약하기에 하나밖에 가질 수 없기에 더 아껴왔던 아이였다. 그저 보살펴 주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그저 계속해서 그 아이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는데. 이제 다시는 볼 수 없 을 먼길을 떠나보내야 했다. 반드시 갚아 줄것이다. 이때의 이 감정을, 이때의 이 가슴아픔을 그대로 아텔린에게 돌려주겠노라고 그렇게 마 음먹었다. 자신이 안된다면 다음대에는 꼭 그래주기를 바라며 눈을 꼬옥 감았다. 이제는 잊어야 했다. ------------------------------------------------------------------------- 봐주시는 님들께 영원한 축복이 깃들이길 기원합니다. ☆언제나 행복하시길..★ 제 목: 공녀(貢女) 카세리아느 [3 회] 글쓴이: 썬샤인 2003-01-26 조회/추천: 615 / 9 공녀로 보내지다 - 2 "후우.." 세리오스 공작은 지금 눈앞에 보이는 투박한 문을 바라보며 때아닌 한숨을 내쉬고 있었 다. 그러다가 결국은 고개를 떨구면서 가슴아픈 눈빛을 해보이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이래서는 안돼. 단호해져야 해.' 마음속으로는 수십번을 다짐하지만 막상 문을 두드리려면, 손이 마음먹은 수만큼이나 멈칫거렸다. 자신의 손으로 해야하는 일이며, 자신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역시 나 자신의 가슴의 욱신거림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다가 자신의 꽉 쥐어져 있는 손에서 느껴지는 물체의 감촉을 느끼면서 다시 눈을 단호하게 떴다. 붉은빛이 아름다운 루비 반지. 평소에 유리닌이 즐겨하고 또한 그 만큼이나 아끼던 물건이었다. 너무나 아름다운 반지이며 또한 자신들에게 있어서는 다시없을 가슴아픈 물체인 것이 다.자신의 아내 유리닌이 가슴의 찢어짐을 느끼면서 건내 준 하나밖에 없는 반지. 공작은 반지를 손에 꽉 쥐어 잡으며 자신의 눈앞에 있는 투박하기만 한 나무문으로 손 을 가져갔다. 똑똑 "들어오십시오, 아버님." 둔탁한 나무음과 함께 아름답지만 차가운 미성이 문 안쪽에서 들려져 왔다. 아마도 카 세리아느는 자신임을 알아 본 모양이었지만, 그 목소리가 왜 그렇게 차가워 졌는지는 알 수 없었다. 매일 자신에게 말을 건네던 그 따스한 목소리는, 그 다정스럽던 목소리는 어디론가 사 라져 버렸다. 어찌되었든 공작은 자신의 문 앞에 있는 문을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고 는 힘차게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들어간 곳에서 보이는 것은 도도하게 보이는 카세리아느의 자태였다. 차갑게만 느껴지는 낯선 모습으로 자신의 딸 카세리아느는, 자신의 눈을 살포시 내리깐채 앉아 있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가볍지도 않은 드레스를 입고서 머리를 만진 모양인지 살며시 틀 어 올려져 있는 윤기나는 흑빛 머리카락을 보면서 공작은 정신이 번뜩 들었다. 자신의 딸 카세리아느는 자신이 어떻게 될것인지 알고, 예감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내가 말해주지 않아도, 알고 있었던 모양이구나." 가슴속으로는 가슴이 아프지만 겉모습으로는 공작은 단호하기 그지없었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차가운 목소리로 카세리아느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것이 카세리아느로 하여금 이곳에 조금이나마 미련을 떨쳐버리게 하는데는 더욱 효과 적인 방법이라 생각하였기에, 공작은 철저히 자신을 속이고 있었다. "들리는 것이 전부 저의 이야기 뿐인데 어찌 소녀가 모를리 있겠습니까." 공작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는 모양인지 카세리아느의 목소리는 차분하기 그지없었다. 카세리아느도 똑같이 미련을 버리려는 모양이었다. 이 아르미난과 자신의 부모를 철저 하게 말이다. "그렇다면 말하기 쉽겠구나. 네가 아텔린에 황태자의 차비로 가야 한다는 것을 아는 모 양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내가 해 줄말은 더이상 미련을 갖지 말라는 것 뿐이다." "그것은 소녀도 알고 있습니다." 잔혹하게 자신의 입에서 떨어진 말이, 과연 자신이 한 말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살 짝 눈동가고 흔들리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다행이라면 카세리아느의 눈동자가 자신을 향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흔들리고 있는 모습을 보지 않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끼고 있는 공작이었고, 카세리아느의 말에 또다시 가슴아픔을 느꼈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나의 사랑스러운 아이야.' 가슴 속으로는 수없이 그 말만을 되풀이하며, 계속해서 마음에도 없는 말만을 내어 놓 았다. "그곳에 가서 절대로 황태자의 마음을 상하게 해서는 안된다. 너의 행동떄문에 아텔린 에 해가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말이다." "명심하겠습니다." 거짓말, 자신을 속이고 남을 속이는 악질적인 거짓말이다. 자신이 지금 내뱉고 있는 이 말은 분명 그런 말들이었다. 그리고 카세리아느의 당연하다는 듯한 대답이 계속 마음 에 걸려 남아 있었다. "그럼 더 이상 할말도 없구나. 그리고 이것을 받아 두거라." 차마 바라 볼 수조차 없었다. 얼른 손에 쥐어져 있는 반지를 건네주고서 뒤돌아 섰다. 자신은 카세리아느에게 잔혹한 아버지로 남아야 했다. 조금이나마 자신의 딸의 마음이 덜 아파야만 했다. "어머님의 반지가 아닙니까." 공작이 건네준 물건을 받아든 카세리아느의 눈동자가 살며시 떨렸다. 괜찮은 척 할려고 했지만, 이 물건을 보면서는 괜찮다는 표정을 유지 할 수 없었다. "유리닌이 그것만은 건네주라고 하더구나." "소중히 여기시던 것이었는데 저에게 주시는 군요." 안쓰럽게 반지에게 눈길을 보내고 있는 카세리아느임을 공작이 알리 없었다. 하지만 가 슴 아픔만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네가 가지고 싶어헀던 것이 아니냐." "이렇게 받을 줄은 몰랐습니다." 살며시 자신의 오른쪽 두번째 손가락에 끼워 넣고서는 살며시 입맞추는 카세리아느였 다. 잊지 않을 것이다. 모질게 구는 아버지의 사랑도, 눈물어린 어머니의 사랑도 절대 로 잊지 않을 것이라 마음 먹었다. 카세리아느는 살며시 아픔어린 눈동자로 반지를 응시하다가 아련하게 슬픈 미소를 지었 다. 그러다 밖에서 낯선 인기척이 느껴지자 곧 차가운 모습으로 되돌아 왔다. 공작도 그런 인기척을 느끼고 있었다. 아텔린에서부터 자신의 딸을 데려가기 위한 사자 (使者)가 왔음을 분명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아직은 인정하 기 싫었다. 카세리아느가 이제 떠나야 할 때가 왔다는 사실을. "저를 데려가기 위한 사자가 온 모양이니, 이만 나가 보아야 겠습니다." 분명 가기 싫을 것이 분명할 텐데도, 슬플것이 분명할텐데도, 계속해서 이 현실을 부정 하고 싶을 텐데도, 카세리아느는 차분하기만 했다. 그리고 그 푸른색 눈동자는 조금의 눈물도 없이 얼음처럼 차갑기만 했다. "그래, 가보거라." 계속해서 낯선이들의 인기척이 들리고, 공작은 가슴에서 무언가가 차올라오는 것을 느끼면서도 꾹 억누르며 되도록이면 냉정하게 말을 이었다. 잔혹한 아버지로 남을 수 있도록. "카세리아느는 아버님과 어머님께서 만수무강하여 오래사시기를 바라옵니다. 다시는 뵈 올날이 없겠지만, 알아두십시오. 카세리아느는 언제나 두분을 사랑하였다는 사실 말입 니다. 그럼 안녕히 계시옵소서." 카세리아느는 자리에서 일어나 최대한 몸을 숙이고서 차갑게 인사하고는 밖으로 걸어 나갔다. 자신을 바라보지않는 공작에게 아무런 원망도 없이, 당당한 모습으로 자신의 길을 걸어나갔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카세리아느." 그리고 카세리아느가 완전히 멀어짐을 느끼고 나서야 공작은 풀썩 자리에 쓰러지며, 가 슴아픈 목소리로 말했다. 공작이 눈을 감자, 그제야 공작의 눈가에서 투명한 물줄기가 어려져 내려왔다. "너를 변하게 만든 것이 뭐라고 할 수 없을 만큼 미안하구나." 아마도 자신의 사랑스러운 카세리아느가 변하게 된것은 자신 때문일 것이다. 저렇게나 차갑게 변한 것은 분명 자신때문일 것이 틀림 없었다. 자기방어.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택해야 했던 카세리아느의 선택. 자신을 보호하기 위 해서 저 아직도 어리기만한 저 아이는 저렇게나 차가워 졌을 것이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택한 방법이었던 만큼, 카세리아느를 그렇게 만든 자신이 공작은 너무나 무능하게 느껴질수가 없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간 카세리아느는 여전히 차가운 무표정만을 고수하며 아텔린에서 온 사자들에게 스스로 도도한모습으로 걸어 나갔다. "제가 아텔린에 보내질 카세리아느입니다." 어차피 겪어야만 할 일이라면 구차해지기 보다는 당당해지길 바랬다. 그리고 그것이 올 바른 선택일 것이라고 카세리아느는 믿고 있었다. 그런 카세리아느의 모습을 보면서 놀란것은 오히려 아텔린의 사자였다. 어쩌면 저렇게 당당할 수 있단 말인가? 울며불며 분명히 오지 않을 것이라고 난리 칠 것이라고 생각했 던 이미지는 이미 깨어진지 오래였다. "아, 아아.. 이쪽으로 오십시오." 자신의 눈앞에 있는 이 신비로운 이는, 여신과도 같은 기품과 자태를 지니고 있었다. 그랬기에 사자는 감히 고개를 들지도, 함부로 대하지도 못하며 조심스럽게 길을 안내하 고 있었다. 아름답고 순결하며 고귀한 여신이 자신의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을 느끼며 자 신의 일에 충분한 만족감을 느끼는 사자였다. --------------------------------------------------------------------- ☆언제나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제 목: 공녀(貢女) 카세리아느 [4 회] 글쓴이: 썬샤인 2003-01-26 조회/추천: 587 / 5 공녀로 보내지다 - 3 황태자(皇太子)와의 만남 - 1 사자의 안내에 이끌려, 카세리아느는 대 제국이라 불리우는 '아텔린'으로 보내졌다. 불 만도 불평도 없었다. 자신이 이렇게 된 것에 대한 불만을 늘어 놓을 수록 구차해지거나 슬퍼지는 것은 자신 뿐이었으니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 편했다. "드디어 아텔린의 황성입니다." 그리고는 마차에 몸을 맡기고서 몇일 간을 지내온 지금, 드디어 아텔린의 황성에 도착 할 수 있었다. 순백을 상징하는 백색의 황궁이 눈앞에 가득 메워졌다. 백색의 황성이 가져오는 화려함과 웅장함에 사람들은 그저 말을 잃은 듯 쳐다보고 있었다. [역시나 '아텔린'답다!] 황성의 거대한 규모나 그에 모자라지 않은 압도적인 모습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런 생각 을 가지게 만들었다. 역시나 대 제국이라는 이름에 모자람이 없다는 생각을 만들어 주 기 위해서 아텔린은 의도적으로라도 이렇게 황성을 화려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아르미난에서 보내져온 사람들은 왠지 모를 패배감에 젖어 황성안을 더욱 힘겨운 발걸 음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곳이 아텔린이며, 카세리아느를 공녀(貢女)로 지명한 황태자 라는 직위의 소년이 있는 곳이었다. "카세리아느는 어디있는가?" 어느정도 황성안으로 마차가 들어갔을까? 갑자기 날카로운 소리가 카세리아느가 타고 있는 마차안을 뚫고 들어왔다. 마치 하녀의 이름을 부르는 듯한 귀족같지 않은 말투에 저절로 인상이 찡그려 졌다. 저런 물음에 절대로 대답해주고 싶은 마음따위는 없었다. "차비로 보내진, 아니 공녀(貢女)로 보내진 카세리아느는 어디있냐고 묻지 않느냐!" 명백한 카세리아느에 대한 모욕적인 발언이다. 그 백작은 카세리아느에게 당당히 공녀 로 보내진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공물로 보내진 여자라고. 무엇때문에 저 백작이 카세리아느를 보고 싶어하는 지는 다른 사람들도 익히 예감하고 있었다. 경국지색, 절세가인이라는 말이 부족하다고 유명한 카세리아느가 아니었는가? 대륙에서 가장 빼어난 미인으로 유명한 것이 카세리아느이니 한번 쯤 보고 싶어할 만도 한 법이었다. 그가 남자인 이상은. "백작님. 뭐 그리 급하시옵니까? 카세리아느는 저쪽 마차안에 있사옵니다." 백작의 신경이 날카로워 진것을 풀어주기 위하여 어느 한 사람이 카세리아느가 타고 있 는 마차를 가리키며 간사하게 웃음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의 말에 백작은 재 빨리 시선을 돌리면서 마차를 보며 기분 나쁜 웃음을 지었다. "진작 말해주었으면 좀 좋았느냐?" 자신의 턱을 매만지며 백작은 옆의 시종에게 웃음지으며 말했고, 자신의 걸음을 카세리 아느가 타고 있는 마차로 옮겼다. 그리고는 아무런 말도 없이 마차의 문을 거칠게 열며 안에 앉아 있는 카세리아느를 염탐하듯이 응시했다. "호오~! 과연 소문대로 빼어난 절색이구나!" 기대 이상의 모습의 카세리아느였다. 그리고 그런 카세리아느를 바라보며 백작의 눈은 커지면서 입에서는 듣기싫은 감탄사가 연이어 터져나왔다. 처음본다고 해도 좋을 아름 다운 소녀였다. 경국지색이 다 무엇인가? 이다지도 아름다운 사람앞에서는 그 말도 빛을 잃을 정도였 다. 그런 카세리아느의 자태를 바라보며 백작은 자신의 빼빼마른 손을 카세리아느의 턱 으로 가져가 잡아 올렸다. "이런 외모이니, 황태자가 너를 차비로 맞이하려 했겠지. 흐흐. 정말 아깝꾸나.아까워. 황태자만 아니었더라도 너는 내것이 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백작의 탐욕어린 눈길에 카세리아느는 자신의 몸이 썪어드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자신 의 턱을 만지는 백작의 손길에 더이상 참을 수 없어 눈을 뜨고서 백작을 강하게 응시 했다. "무슨짓이십니까. 저를 희롱하는 짓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탁! 그리고는 자신의 턱을 만지고 있는 백작의 손을 차갑게 내리쳤다. 이런 모욕을 받지 않 으리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자신은 이따위 모욕적인 말을 듣기위해서 이 곳에 온것은 아니었다. 명분뿐인, 허울뿐이라 할지라도 자신은 황태자의 차비로 보내진것이지, 결코 한낱 노예 의 신분으로 온 것이 아니었다. 그러한데도 이것이 황태자의 차비에게 귀족이 할 짓이 란 말인가? "뭐,뭐이런 무례한!!" "함부로 손찌검 하지 마십시오. 전 백작께서 말하신 공녀(貢女)이기 이전에, 한나라의 유서깊은 공작가의 영애입니다. 그리고 무례한 것을 따져야 한다면 그것은 백작께서 무 례한 행동을 하셨다는 것을 모르시는 것입니까." 카세리아느의 행동에 백작은 얼굴이 빨개지며 카세리아느를 바라보며 소리쳤고, 그런 백작의 말에 카세리아느는 경멸어린 시선으로 응시하며 차갑게 대답해 주었다. 그리고 그런 카세리아느의 말은 다른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게 할만큼 틀린 말이 아니었다. "뭐라 말하는 것이냐!" "대 제국이라 불리우는 '아텔린'의 귀족께서 이러한 행동을 하는 줄은 몰랐습니다." 차갑기만 한 냉정한 모습으로 카세리아느는 백작을 향해서 단호하게 말했다. 백작은 박 력까지 느껴지는 그런 카세리아느의 모습에 얼굴을 붉히면서 씩씩대고 있었다. 자신도 자신을 다른 이들이 어떤 눈으로 바라보는 지 알 수 있었기에. "으윽." 무어라 반박할 말조차 없자 백작은 카세리아느에게 맞은 손을 부여잡고서 카세리아느를 잡아 먹을 듯이 바라보다가 옆에 있던 시종을 불렀다. "거기, 그래 너말이야! 빨리 이리 오너라!" 백작의 짜증내는 듯한 말에 시종은 빠른 걸음으로 백작의 곁으로 다가갔고, 백작은 화 를 내던 얼굴에서 약간 조소를 띠우며 카세리아느를 바라보며 계속 말을 이었다. "어서 이 공작 영애를 황태자 전하께로 데려가게! 어차피 황태자 전하의 것이니 그분이 빨리 봐야 하지 않으시겠나!" 너는 결국 그것 밖에 안됀다는 듯, 조롱하는 빛이 역력한 눈웃음을 짓고서 시종에게 우 습다는 듯이 말했다. 황태자에게 어서 데려가라고. 어서 데려가서 자신의 위치를 처절 하게 깨달아 버리라고 말하는 백작이었다. 그런 백작의 말에 카세리아느의 속눈썹은 미세하게 떨렸으나, 눈을 감는 것으로 그 떨 림을 멈추게 만들고서 무표정을 고수했다. 여기서 무너질 수는 없었다. "그럼 이쪽으로 오십시오." 시종이 손을 움직이며 안내하자 카세리아느는 백작의 비웃음띤 모습을 뒤로하며 발걸 음을 옮겼다. "그래보았자 결국 첩일 뿐일텐데, 잘난척은!" 보나마나 분명히 카세리아느가 들으라는 듯 크게 했을 백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 지만 카세리아느는 들리지 않는 다는 듯, 도도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못 들은 것으로, 아무것도 없었던 것으로 생각하자고 마음먹으며 굳게 어려운 발걸음을 옮겼다. "신경쓰지 마십시오. 저런 분들은 가끔씩 계시는 분들일 뿐입니다." 황태자궁으로 들어가는 중 시종은 살짝 수줍은 미소를 띠며 그렇게 말했고 카세리아느 는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카세리아느의 옆에는 많은 꽃들이 활기를 띠며 자신들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고, 그중 가장 아름다운 것은 꽃들 중앙에 있는 분수였다. 분수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의 조각들이 햇빛과 어울려 부서지듯 환상적인 자태로 떨어 져 내렸다. 그리고 그 주위의 꽃들은 그런 물의 조각들을 받아서 더욱 싱싱하게 건강한 모습을 지키고 있었다. 황태자궁의 고작 정원이 이다지도 화려하다면 다른 전문적인 정원은 얼마나 화려하단 말인가? 각색 종류의 꽃들에 시선을 주던 카세리아느의 걸음은 어느샌가 외궁에서 내 궁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내궁으로 들어가 얼마지나지 않자 어느 거대한 문 앞에 당도했다. "이곳이 황태자 전하께서 기거하시고 있는 방입니다." 금테가 어우러진 거대한 백색의 문이 고급스럽기보다는 우아한 느낌을 주고 있는 방이 었다. 이 안에, 이 방안에 황태자가 있는 것이다. 자신을 차비로 맞이하기위해 공녀로 지명했던 황태자라는 인물이 말이다. 시종이 문앞을 지키고 있는 이들에게 무엇이라 말하자, 조용히 굳게 닫혀져 있던 문이 열리며 안에 있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자신의 눈앞에 똑똑히 황태자의 모습을 말이다. 역시나 제국의 황태자답게 황태자가 요하는 분위기는 다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흑청빛 머리카락과 흑청빛 눈동자를 지니고 또한 차가우면서도 아름다운 외모를 지니고 있는 사람이었다. 지적이면서도 강하고 또한, 왠지 모르게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연상케 하는 타입.그런 황태자의 매력적인 눈동자는 웃고있지만 웃고있지 않은 듯한 부조화또한 보이고 있었 다. 카세리아느로 하여금 황태자는 외유내강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황태자외에 황태자의 옆에 매달려 있는 붉은 머리의 여자도 보였는데, 의자에 앉아있는 황태자의 살짝 풀어진 앞섬으로 보아서 분명 놀아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카세 리아느에게 그것은 신경 쓸만한 것이 되지 못했다. 카세리아느는 그런 황태자가 무엇하는 지 상관없다는 듯, 조용히 자신의 옷자락을 손에 잡으며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아르미난의 세리오스 공작가의 공녀 카세리아느가 대 아텔린 제국의 고귀하신 황태자 전하를 뵈옵니다." 제 목: 공녀(貢女) 카세리아느 [5 회] 글쓴이: 썬샤인 2003-01-26 조회/추천: 596 / 3 황태자와의 만남 - 1 황태자의 시선은 카세리아느가 들어올 때부터 카세리아느에게로 닿아 있었다. 그리고 황태자의 눈동자는 카세리아느가 자신과 자신에게 매달려있는 세에르를 보고서도 아무 렇지도 않다는 듯이 인사하자 흥미롭다는 듯 희미한 웃음을 띠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흥미로운 대상이 아닐 수 없었다. 다른 여자하고 있는 자신을 보고서 아무렇 지도 않다는 듯 바라 볼수 있다니 말이다. 그것은 황태자에게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 왔다. "세에르, 손님이 온 것 같아서 말이야. 다음을 기약하고 나가줬으면 하는데?" 그런 카세리아느에게서 흥미를 느끼고 있었기에, 황태자는 카세리아느를 세워 둘 수만 은 없었다. 황태자의 감미로우면서도 매력적인 목소리에 세에르는 얼굴을 붉혔다. 너무 나 매력적인 웃음과 목소리가 자신을 바라보며, 말하고 있다는 사실이 기쁘기만 했다. 하지만 곧 세에르는 말의 의미를 되새기고는 카세리아느를 힐끔 보면서 인상을 찡그렸 다. 자신을 쫒아내려는 이유가 카세리아느 때문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러나 카 세리아느의 너무나 아름다우면서 신비로운 얼굴에 할말을 잃고 괜히 밀리자 재수없다는 듯이 더욱 강하게 흘겨보았다. "싫어요!" "미안해, 이만 나가줘." 황태자에게 싫다고도 해보았으나, 거부 당하자 한참을 못 마땅하게 카세리아느를 쳐다 보던 세에르였다. 하지만 곧 뭔가 생각난 게 있는 모양인지 살짝 미소를 머금으면서 황 태자에게로 안겨 들어가며 콧소리를 내며 말했다. "황태자전하, 그럼 또 불러주실꺼죠?" 예의는 어디다 두고 온 모양인지 천민과 같이 상스럽게 말하는 세에르를 보면서 카세리 아느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저렇게 상스럽게 말하는 아이가 차마 귀족가의 영애라고 도 생각할 수 없었다. 귀족가의 영애라면 분명 예절을 배웠을 텐데, 저렇게 상스러운 말투를 쓸리는 없을 테 니 말이다. "물론이야." "약속하신거에요! 사랑해요~ 황태자전하." 마치 여우와 같은 소리를 내면서 세에르는 황태자의 입술을 덮쳐들어갔다. 그리고 황태 태자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받아들이며 같이 입을 맞추고 있었다. 명백하게 카세리아 느가 없다는 듯 무시하는 행동이 아니라고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보면서도 카세리아느는 마치 남의 일이라는 듯이 담담하기만 했고 오히려 차가운 눈으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응시하고 있었다. 황태자가 저러던 말던 자 신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었고, 저런 일에 흥미도 없었다. "세에르? 이제 됐지? 나가줘. "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살며시 황태자는 떼어내며 말했다. 황태자는 여전히 매력적인 목소리로, 매혹적인 웃음으로 말하고 있었으나 카세리아느가 보기에는 지금 황태자의 눈처럼 차갑기만 한 눈동자는 없었다. 모든것에 무관심한 눈동자. 분명 저 황태자는 저 세에르라는 여자가 위험한 일에 닥쳐있어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무시할 사람이었다. "알았어요. 그럼 갈게요." 황태자에게 살며시 인사하며 나가는 세에르는 나가면서 카세리아느에게 난 이정도다! 라고 하는 것처럼 무시하면서도 잘난 척 어깨를 으쓱이며 밖으로 나갔다. 전혀 조심스럽지 못한 행동으로 세에르가 나가자 황태자는 살며시 자리에서 일어나서 살며시 카세리아느에게 다가갔다. 웃고있는 눈동자속에 얼음보다 차갑고 날카로운 비수 를 가득 담고서. "예의가 없다고 생각하는 건가?" "아신다면 물어보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자신을 바라보며 물어오는 황태자의 말에 카세리아느는 차갑게 대답했다. 황태자도 분 명 알고 있을 것이다. 이 물음의 대답을. 그냥 흘겨느끼기에도 예의없이 행동했던 세 에르가 아니였는가. 그러나 정작 궁금한 것은 황태자라는 저런 신분이 천한 것들을 데리고 놀 정도로 여자 가 없는 것도 아니고 아니 넘칠 텐데 굳이 저런 여자들을 상대하느냐는 것이었다. 한순 간의 유희라 할지라도 그것은 황태자라는 직위에 어울리지 않았다. "훗, 그래보여도 세에르는 백작가의 영애라고." "그렇다면 만나지 않는 것을 권하겠습니다." 백작정도라면 가히 낮은 직위는 아닐텐데, 백작은 자신의 딸이 저렇게 상스럽게 하고 다니는 것을 알고 있을까? 그것에 더욱 의문이 가는 카세리아느였다. 적어도 귀족가의 영애라면 당연히 기본 예절은 지켜야 한다고 알고 있었다. "그대는 이세상의 아름다움이 아닐 정도로 너무나 아름답지만, 너무 차갑기만 하군. 내 가 마음에 들지 않고 못 마땅한건가?" 너무나 차가운 카세리아느를 웃으며 응시하다가 황태자는 카세리아느의 머리카락을 살 며시 쓸어 내렸다. 부드럽게 내려져가는 머리카락의 감촉이 무척이나 좋았다. "그렇지 않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카세리아느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만지는 황태자를 바라보지 않고서 눈동자를 내리깔았 다. 분명 기분은 좋지 않지만, 백작에게 처럼 싫다고 거부할 수는 없는 일이었으니까. "훗, 그렇지 않다고는 할수없다?" 카세리아느의 말이 황태자의 마음에 들었는지, 황태자는 웃으며 머리카락에 있던 자신 의 자신의 손을 옮겨서는 카세리아느의 턱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웃고 있는 모습의 황 태자는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이었다. 분명 다른 여인들이 보았다면 그 모습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다른 여자에게만 속하는 것일 뿐, 카세리아느에게는 틀렸다. 카세리아 느의 눈에 보이는 황태자의 그 웃음띤 눈빛은 너무나 차갑기 그지없었으니까 말이다. 카세리아느는 살며시 조심스러운 행동으로 자신의 턱에 있던 황태자의 손을 잡아 내렸다. "이런 행동은 자제해 주셨으면 합니다." "어차피 그대는 나에게 보내진 것인데, 내가 그런것까지 따져야 한다고 생각하나?" "천한 분도 아니시고 제국의 황태자전하이시니 그래 주실것이라 생각합니다." "내가 황태자이기에 그렇지 않다면, 그대는 자신을 내게 보낸 약한 그대의 모국을 원 망할 것인가?" 웃음띤 목소리 속에서도 황태자의 잔뜩 가시어린 말에 카세리아느는 바닥으로 내리깔고 있던 눈을 올려 황태자를 차갑게 응시했다. 웃음띤 얼굴전체에서 보여지는 여유에서 황 태자가 무슨 대답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읽을 수 있었다. 자신이 자신의 모국을 원망한다는 소리라도 듣고 싶은 것인가? 카세리아느는 황태자를 똑바로 응시하며 잊지 말라는 듯 또박또박 말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약하다는 것은 원망스러운 이유에 들어갈 수 없으니까요." "그런가?" "하지만 조금도 원망스럽지 않다면 그것이 거짓이며 가식이 될것입니다. 하지만 알아두 십시오. 제게서 더욱 원망스러운 것은 약한 저의 모국이라기보다는 강한 황태자전하의 나라입니다." 자신의 말에 황태자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흥미롭다는 반응을 보이자, 카세리아 느는 더욱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엇다. 강하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모국을 이렇게나 몰아세운 황태자의 나라를 증오한다. "강하다고 해서 약한 한나라에게서 이것저것을 요구하며 결국은 잊을 수 없는 수치를 준 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황태자의 나라를 증오합니다." 증오라는 카세리아느의 말에 황태자는 살짝 놀란 듯한 표정을 보이더니 웃으면서 카세 리아느의 턱을 강하게 힘으로 들어 올렸다. 차가우면서도 깊은 아름다움을 지닌 푸른빛 눈동자가 경멸을 안고서 황태자의 얼굴을 가득 담고 있었다. "그러니 아텔린이 증오스러울지 몰라도 아르미난은 원망스럽지 않다?" "이 수치와 치욕은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아르미난을 떠났습니다. 그랬기에 어머님, 아버님의 가슴 아픈 모습조차도 없던 것처럼. 못본것 처럼 흘겨 보내 잊었습니다. 이젠 원망이란 단어조차 제 마음속에는 남아있지 않습니다." 차갑고 당당한 카세리아느를 바라보면서 황태자 턱을 놓아주며 크게 웃었다. 정말이지 이런 여자는 처음이다. 자신의 마음속을 이렇게까지나 파고드는 여자는 말이다. "하하하. 정말 그대는 당돌하군." 황태자의 흑청빛 눈동자가 무섭게 느껴질 정도로 강하게 카세리아느의 눈동자를 응시하 며 바라보자 카세리아느는 물러서지 않고 차갑게 응시했다. 역시나 마음에 들었다. 황태자는 입가와 눈에 미소를 지으면서 카세리아느의 붉은 입술에 끌리듯 손을 대었다. "아름다운 장미에는 가시가 있는 법이란 것을 깜빡 잊고 있었던 모양이야. 하지만 한가 지 분명한것은 그대는 나의 차비가 되기에는 아까운 사람이라는 거겠지. 그대를 내 차 비로 삼는 것은 없던 것으로 하겠어." 매력적인 붉은 입술을 살며시 어루만지며 카세리아느를 바라보며 말하는 황태자의 눈동 자에는 어느새 웃음기는 사라진지 오래였다. =============================================================================== ☆언제나 늘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제 목: 공녀(貢女) 카세리아느 [6 회] 글쓴이: 썬샤인 2003-01-26 조회/추천: 587 / 5 황태자와의 만남 - 2 어쩌면, 아니 분명 너무나 충격적이며 놀라기에도 조금의 모자람이 없는 말이었다. 그 만큼 황태자의 말은 그저 흘겨듣기에는 무리성이 짙었다. 카세리아느는 그런 황태자의 말을 들으면서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아무 반응도 없이 황태자를 응시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너무나 아름다우면서도 차갑기만 한 알 수 없는 황태자의 눈 동자를 무슨 생각에서 인지 강하게 응시하고 있었다. 그런 카세리아느의 강한 시선을 느낀 모양인지, 황태자는 언제 진지한 모습이었냐는 듯, 생긋 미소지으며 카세리아느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 않는 끊임없는 매력을 소유한 여자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대는 황태자비라는 자리조차 아깝게 느껴지게 만드는 사람이야. 그런데 후훗, 고작 후궁이라니 말도 안돼는 소리지." 황태자는 웃으며 카세리아느를 바라보며 말했고, 카세리아느는 그런 황태자를 계속 차 갑게 응시하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무슨 근거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 지 모르겠습니다." "그대의 그 아름다운 외모뒤에 숨겨진 소름끼칠정도로 냉정한 면을 있다는 사실을 알아 버렸기에 하는 소리야." "...." 황태자가 카세리아느를 뚫어 져라 응시하며 말을 꺼내자 카세리아느는 할말이 없다는 듯, 아무런말도 하지 않고서 그저 살포시 눈을 바닥으로 내리깔았다. 차갑기만 한 대 리석의 바닥이 너무나 깨끗해서 카세리아느의 얼굴이 비춰 보이는 듯 했다. 그런 카세리아느를 바라보며 황태자는 알 수 없다는 듯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창가로 걸어갔다. 아텔린의 화려하고 웅장한 내부가 눈안에 사로잡히듯 들어왔고, 그 런 황성의 위로는 청명하게 맑은 푸른 하늘이 가슴을 열고 감싸주고 있었다. 그런 풍경이 마음에 드는 듯, 황태자는 백색의 창가에 손을 대고서 계속 주위를 바라 보고 있었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자그마한 미풍에 황태자의 윤기나는 흑청빛 머리칼이 드날리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라 할만큼 아름다워 보였다. "난 황태자다. 이곳 아텔린의 제 1위 황위계승권을 가졌지." 창밖만을 계속 바라보고 있던 황태자의 입에서 갑작스럽게 엉뚱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것은 카세리아느또한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황태자로 있는 이곳 아텔린은 시피르 대륙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 도로 알아주는 강대국이지."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아도 되겠습니까." 계속해서 알고 있는 것만을 말하는 황태자를 바라보며 카세리아느는 살며시 물었다. 자 신에게 계속 알고있는 사실만을 말해주는 것을 보면 분명 하고 싶은 말이 있을 테니까. "훗, 내가 황태자로 있는 이 아텔린은 강한 나라이기에, 황제가 약해서는 안된다는 것 또한 그대가 알고 있는 사실이겠지. 약해선 절대 안돼지. 황제는 강한 군주로 남아 있 어야 한다." 황태자의 웃음띤 입가와는 다르게 눈빛은 사나울 정도로 날카로워져 있었다. 손을 뻗으 면 잡힐듯한 황궁이, 자신이 있는 이 황성이 아련히 눈안에 들어왔다. 강한 군주, 강한 절대적인 지배자가 되어야 할것이다.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 것입니까." "그런 강한 군주옆에 있어야 할 반려또한 강해야 한다는 말이다. 절대 아름답기만 해서 는 아텔린의 황후라는 자리에 오를 수 없어. 그걸 증명이라도 해주듯, 우리 아텔린의 역대 황후 중에서는 아름답기만 하고 연약하기만 한 황후들은 없었다. 물론 어머님또한 강하신 분이지." "무엇 때문에, 그런 말씀을 제게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카세리아느는 무심하면서도 차갑게, 관심없다는 듯 대답했다. 그런 말을 자신에게 할 이유따위는 조금도 없지 않은가. 그런 무관심한 모습에 무시당한다는 느낌이 들었는지 황태자는 크게 웃으며 창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후, 하하하. 후훗. 그렇기에, 나의 황태자비 또한 강해야 하기 때문에 난 내가 원하는 사람을 나의 반려로, 황태자비로 택할 수 없다. 뉴럴이라는 황태자비 후보를 교육시키 는 아카데미에서 훌륭한 성적을 거둔 귀족가의 영애가 18살 나의 생일날 나의 반려가 되어야 해."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철저하게 당연하다는 듯, 속박당한다. 하지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다. 그것이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자신이 원하지 않 는 결과를 강요당한다. 그리고 자신은 그런것이 당연한 자리에 있는 것이다. 자신의 자유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한낱 작은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다. "나의 반려를 내가 만족하고 사랑하는 사람으로 선택할 수 없다면 차비만큼은. 그래 후 궁만큼은 적어도 내가 원하는 사람으로 하겠다고 황제폐하, 내 아버지라는 사람에게 말 했더니 내 마음을 안다는 듯 쾌히 웃으시면서 승낙해 주시더군." "..그것이 제가 공녀로 지명되어 온 이유인 것입니까." 웃음띤 목소리로 말하는 황태자의 말에 다소 반항적이라 할 수 있을 만큼, 냉소적으로 대답해오는 카세리아느였다. 고작 그런 이유때문에 자신이 이곳으로 보내졌다는 사실에 분명 화가 나지 않다면 그것이 이상할 뿐인 것이다. 자신은 황태자가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지 않는가. 냉소적으로 대답해는 카세리아느에게 황태자는 살짝 미소를 드리우며 조금씩 걸어갔다. "후웃, 그건 맞는 말이야. 약간의 반항심에 누구를 후궁으로 맞아들일까 고민하고 있던 그때 그대의 소문은 너무 유명했거든. 훗, 정말 그랬어. 내 귀가 아플 정도였으니까. 경국지색. 절세가인이란 말이 부족할 정도라고 하더군." "그저 한귀로 흘겨들으실 수도 있으셨을 텐데요." 황태자의 말에 카세리아느는 차갑게 말했다. 분명 흘겨 들을 수도 있을 말이었을 것이 다. 원래 소문이라는 것은 믿을 만한 것이 되지 못하지 않는가. 계속해서 확대되는 것 이 소문인 것이다. 그런 카세리아느의 말에 황태자는 계속 웃으며 말을 이엇다. "훗, 어쨌든 너무나 아름답다던 말에 소유욕이 생겼다. 그래서 그 아름다움을 차지하고 싶었기에 공녀로 지명해 그대를 나의 차비로 아텔린에 불러 들였지." 카세리아느를 바라보며 말하던 황태자는 은근슬쩍 바닥만을 차갑게 응시하고 있는 카세 리아느의 얼굴에 자신의 손을 대어 올렸다. 그리고는 당황스럽게 자신을 쳐다보는 카세 리아느를 보면서 생긋 미소를 지으며 더욱 올려 자신을 마주보게 만들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냥 호기심이었다는 말도 맞겠군. 그것이 아니라면 괜한 충동이 라고 해도 좋을 거야. 하지만 실물을 보고 나니 역시나 라는 탄사가 나올 정도더군. 소 문에서 말하던 그 말들이 부족할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가져다 붙이지도 못할 정도였 어. 훗, 그만큼 그대는 너무나 아름다워. " "제 얼굴에 있는 손을 내려 주시겠습니까." 다른 것은 상관없었다. 그깟 소문들도, 자신에 대한 미모에 찬사도. 단지 카세리아느에 게 거슬리는 것은 자신의 얼굴에 대어져 있는 황태자의 손이었다. 살짝 인상을 찌푸리 는 카세리아느가 재밌다는 듯 황태자는 카세리아느의 얼굴을 더욱 들어 올렸다. "어쩌지? 너무 그대의 얼굴이 아름다워서 그러기가 싫은 것을. 훗. 한가지 더 말하자면 그대를 보고 확신했다. 그대가 뉴럴에 있는 거의 머릿속이 비어있다고 해도 좋을 이름 만 황태자비 후보들보다 훌륭하다는 것을 말이야." 계속 말하는 황태자는 분명 카세리아느의 얼굴에서 손을 놓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 러니 카세리아느 스스로 그 손을 내리게 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카세리아느는 살며시 황태자의 손을 내리기 위해 자신의 손을 올렸다. "이 손 내려주시고 말씀하십시오." 살며시 말하며 차갑게 응시하며 황태자의 손을 내리려 했으나, 역시나 황태자의 힘은 자신이 감당 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났다. 강한 힘. 강한 시선이 부담스럽게만 느껴 지는 카세리아느였다. "하나 더 말해줄까? 나의 내면을 마치 거울을 바라보듯이 본 여자는 그대가 처음이다. 난 이미 자신의 몸만 믿고 내게 접근하는 머리 빈 여자들에게는 질려 있었거든. " "...." "그리고 그대도 어차피 나.의.것.이 될 것이라면 후궁이나 진배없는 차비보다는 황태자 비라는 자리가 더 매력적이지 않은가?" 일부러 카세리아느의 마음을 건드리기 위해서 나의 것이라는 말을 강조하는 황태자였 다. 명백한 도발. 그런 황태자의 행동이 카세리아느의 마음에 들리는 없었다. 카세리 아느가 살짝 인상을 굳히며 날카롭게 응시했으나 황태자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저런 도발적인 행위에는 절대 넘어 갈 수는 없다. 황태자와 마주보고 있는 얼굴탓에 고 개를 숙일수도 없었기에 카세리아느는 살짝 시선을 옆으로 옮기며 입을 열었다. "아무리 저에게 말씀하셔도 결국 저는 황태자전하때문에 이국에서 보내진 공녀(貢女)일 뿐입니다. 과대평가하지는 말아주십시오." 차가운 대답. 자신과 마주하지도 않은 시선. 자신이 원하는 답을 해주지 않는 카세리아 느의 시선을 고개를 더욱 돌려 자신에게로 고정시켰다. 정말이지 이렇게나 자신의 속을 긁어놓는 여자또한 처음일 뿐이다. 황태자는 입가가득 미소를 지으며 한마디한마디 또박또박 말했다. 마치 너에게 선택권 따위는 없다는 듯. "훗, 그대에게 선택권 따위는 없다. 그대가 원하지 않더라도 그대는 뉴럴에 들어가야 해. 난 분명 말했으니까. 그대는 차비의 자리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이다." 제 목: 공녀(貢女) 카세리아느 [7 회] 글쓴이: 썬샤인 2003-01-26 조회/추천: 571 / 7 황태자와의 만남 - 3 "제가 원하지 않는다 하여도 말입니까." 매일과 같이 아름다운 여자들만 봐오던 황태자가 보기에도 충분하다 못해 잔뜩 넘칠정 도로 카세리아느의 푸른색 눈동자는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빠져들듯 했다. 깊고 깊은 푸 른 호수가 자신을 유혹하며 물속으로 끌어들이는 듯, 카세리아느의 눈동자도 그러했다. 하지만 그런 그 유혹적인 눈동자와 카세리아느의 아름다운 미성은 자신을 너 무나 차갑고 경멸스럽다는 듯이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하고 있었다. 도대체 이 여자는 무엇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일까? "그대도 내가 하는 말쪽이 더 현명한 선택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텐데, 무엇 때문인거 지?" "전 고귀하신 황태자전하의 놀이감이 되어 장단에 놀아드릴 마음따위는 조금도 아니 전 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공녀로 지명되어, 차비로 오기까지 하면 되었지 무엇이 더 필요하단 말인가? 이제는 이 런 자신을 놀이감처럼 가지고 노는 것 까지 하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다. 자신의 앞에 있는 저 오만한 황태자는 말이다. "훗, 놀이감이 되고 싶은 마음이 없다? 하지만 나는 내가 원하는 건 반드시 이루고 말아야 속이 풀리거든? 그래, 누가 본다면 철부지 어린아이와 다름없을 정도로 말이야. " 역시나 자신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듯한 말에 황태자는 살짝 웃으면서 말했다. 아마도 다른 사람들은 자신을 보고 이기적이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무엇이 어떻단 말인가? 자 신이 이기적이라고 뭐라 할 사람은 하나도 없었고 자신 앞에 있는 저 사람을 놓칠 생각 또한 조금도 없었다. 황태자는 카세리아느의 얼굴에 올려있던 자신의 손을 내렸다. 그리고 우악스럽다고 해 도 좋을만큼 거친 동작으로 카세리아느의 손을 잡은채, 자신이 아까 풍경을 바라보던 그 창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무슨 짓이시옵니까, 황태자 전하." 카세리아느는 우악스런 황태자의 행동에 인상을 찡그리면서 그렇게 말했으나, 황태자는 아무말도 하지 않으며 그저 창가로 데려갈 뿐이었다. "저 건물을 보거라." 어느새 창가에 도착하여 창밖을 바라보게 만들고서 황태자는 한건물을 가리켰다. 백색 의 황궁속에서도 가장 순백의 색으로 빛의 축복을 받고 있는 건물. 보는 것만으로도 깨 끗해지는 느낌이 드는 그런 궁이었다. "아름다운 궁이지? 꽤나 신경써서 역대황제께서 만드신 뉴럴이라는 곳이다. 황태자비 전문 교육학교라고도 불리는 뉴럴이지만 굳이 황태자비 후보만이 다니는 곳이 아니야. 황족과 황녀 그리고 황자들도 다니고 있는 곳이지." "그것이 저와 상관이 있는 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무엇때문에 황태자가 자신에게 그런말을 하는지는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카세리아느 는 황태자의 의도를 철저히 무시해버렸다. 하지만 그런것에 신경쓸 황태자도 아니었다. "그대도 예상하고 있겠지만, 난 그대가 저곳에 들어갔음 해." 황궁 내에 존재하는 아카데미여서 그다지 그렇게 큰 규모는 아니었다. 하지만 알 수 있 는 것은 멀리서 보기에도 충분히 순백의 궁은 너무나 아름다운 외형을 지녔다는 것이 었다. 순백의 외형이 찬란한 햇빛의 환호를 받으면서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상관없다. 자신과 저곳은 상관없는 곳일 따름이었다. 그 아름다운 외형도 카세리아느의 관심을 끌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기만 했다. 화려한 외 형만 가지고는 카세리아느의 마음을 움직일 수는 없는 법이었다. "저는 분명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황태자 전하." 여전히 냉소어린 말투로 대답하는 카세리아느를 보면서 황태자는 그저 화사하게 웃을 뿐이었다. 하긴, 무슨 상관이겠는가. 자신이 원하면 그만인 것을. 결국 카세리아느는 이국에서 보내진 공녀인 뿐인 것을 말이다. "훗. 그대는 나.의.것.인데 감히 나의 말을 거부할수도 있는 건가? 그대에게 나의 말을 거부할 권리는 없다. 그대도 인정했듯이 그대는 내가 후궁으로 맞이하기 위해 불러온 공.녀.이니 말이야. 그대에게 선택권은 없다." 이기적인 것이 당연한 것 처럼 말하는 황태자에게 카세리아느는 경멸어린 시선으로 계 속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황태자 전하, 당신이라는 분은..." 카세리아느가 무엇인가를 더 말하려고 했을 때, 방 바깥쪽에서는 갑작스런 인기척이 느 껴짐과 동시에 아까 보았던 시종과는 다른 시종이 문을 열고서 들어왔다. 아무런 허락 도 구하지 않고서. 그리고 그에 따라 황태자가 안색을 바꾸며 카세리아느를 품에 안으면서 창에 달려있는 커텐으로 거칠게 가려 버렸다. 그런 황태자의 모습을 보았는 지는 알수없지만 시종은 살며시 고개를 조아리며 인사를 하는 듯 하더니 입을 열어 자신이 들어온 이유를 말했 다. "황태자 전하. 프리드후작각하께서 지금 만나뵙기를 원하시옵니다." "무,무슨.." 황태자가 갑자기 자신을 끌어당기더니 자신을 커텐으로 숨겨버리자 카세리아느는 그 기 분 나쁜 행동에 반박하기 위해 무엇이라 말하려 했다. 하지만 말은 더이상 이어질 수 없었다. 말을 하기 위해 벌려진 카세리아느의 입술은 거칠게 자신의 입을 부딪혀 오는 황태자의 입술에 막혀버린지 오래였던 것이다. "으읍!" 황태자는 시종이 말을 끝내고 고개를 들려하자, 더욱 손을 움직여 카세리아느를 커텐으 로 시종이 카세리아느를 보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카세리아느의 머리에 손을 가져 다 대어 고정시키고, 무엇이라 말하려는 카세리아느의 입을 막아 버렸다. 그리고 나서 살짝 고개를 옆으로 내면서 자신의 살기가 흐르는 눈동자로 시종을 죽여버 릴듯이 차갑게 응시했다. 고작 시종이 받기에는 너무나 강하기만 한 눈빛이다. "죄,죄송합니다. 황태자 전하!!" 그런 모습, 그런 눈동자의 시선을 보기보다는 느끼면서 시종은, 이때까지 보지 못했던 황태자의 모습에 안색이 변하여 빠르게 고개를 숙이며 외쳤다. 그런 황태자의 시선을 자신은 감히 맞받아칠 수 없었다. 시종의 그런 모습을 황태자는 차갑고 냉정한 눈으로 시종을 여전히 바라보다가 살며시 이제 되었다고 느꼈는지 카세리아느를 놓아주었다. 하지만 입을 떼어내면서도 여전히 카세리아느의 자신의 손으로 살며시 입을 막으면서 시종을 살기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지금 카세리아느가 자신을 어떻게 응 시하는 지에 대해서는 조금도 신경쓰지 않고서 말이다. "지금 네가 나를 능멸하려는 것이냐?" "그,그럴리가 있겠사옵니까!!" 비웃음 어린 황태자의 말투. 황태자는 자신에게 묻고 있었다. 웃고 있는 목소리와는 다 르게 자신의 몸을 덥쳐오는 가시돋힌 시선에 몸이 부르르 떨리는 시종이었다. "그렇다면 들어오기 전에 노크하는 그 간단한 예절을 잊어버렸다고 말하고 싶은가?" "잘못했사옵니다, 황태자 전하!! 목숨만 살려주시옵소서!!" 오늘처럼 차갑게 자신을 바라보는 황태자는 본적이 없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조차 한 번도 본적 없었다. 그렇기에, 자신을 죽일듯한 황태자에게 시종은 그저 몸을 떨면서 계 속 잘못 했다는 말만 번복하고 있었다. 시종은 언제나 이렇게 들어와도, 자신이 황태자가 다른 영애들과 키스하고 있는 모습을 보아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늘 웃으면서 용서해 줬으니 오늘도 당연히 그럴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랬기에 용서해 줄거라 감히 단정짓고서 이왕이면 누이좋고 매부도 좋다고 구경거리도 할겸 들어왔던 것이었다. 자신이 어찌 황태자가 갑자기 평소와는 다르게 이렇게 격렬하 게 반응하며 나올 줄 알았겠는가? 처음보는 황태자의 모습이 두렵기 그지 없을 뿐이다. "더 보기 싫으니 꺼져라. 그리고 후작에게는 오늘은 만나기 싫다고 전하고 내일 오라고 전해라. 그리고 다시한번 이런일이 발생했을 시에는 절대로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울 것 이라는 것만 알아 두거라!" "다,다,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이옵니다!! 언제나 영광이 황태자 전하께!!" 벌벌 떨고 있는 시종이 불쌍해 보였는 지, 황태자는 시종에게 나가라고 소리쳤다. 역시나 평소의 부드럽고 매력넘치는 목소리가 아닌 차갑고 냉정한 목소리의 황태자. 하지만 자신을 살려주는 황태자의 말에 시종은 연신 필요이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재 빠르게 밖으로 나갔다. 어찌되었든 자신의 목숨은 건진 것이다. =========================================================================== ☆행복하세요.. 행복하세요..이말밖에는...★ 제 목: 공녀(貢女) 카세리아느 [8 회] 글쓴이: 썬샤인 2003-01-26 조회/추천: 551 / 6 황태자와의 만남 - 4 시종은 두려움에 떨면서도 재빠른 동작으로 조심히 문을 닫고 나갔다. 그리고 나서, 그 제야 황태자는 입가에 미소를 다시 띠우며 커텐으로 안보이게 감싸두고 힘주어 안고 있 던 카세리아느를 놓아 주었다. 물론 그런일을 당하고 나서 카세리아느의 기분이 좋았을리는 없었다. 자신이 원래 그런 것에 신경을 쓰던 쓰지 않던, 자신의 첫키스였지 않은가? 카세리아느의 경멸어린 시선 이 황태자를 향했고, 카세리아느는 자신의 입술을 더럽다는 듯이 손으로 훔쳤다. 씻이 버릴수 있다면, 지워 버릴 수 있다면 씻고 지워 버리고 싶었다. 그런 카세리아느이 모습을 보면서 황태자는 살짝 슬프다는 듯한 눈빛을 짓더니, 그러면 서도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런, 지금 그 행동은 무척이나 기분나쁘고 더러웠다는 뜻인가?" "황태자 전하께서 저의 상황이 되신다면 저와 다를 바 없을것이라 생각합니다." "글쎄, 난 전혀 그렇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적어도 내가 아는 귀족가의 영애들은 그대처럼 그런 반응은 취하지 않았으니 말이야." "더 이상 말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무엇 때문에 그런 행동을 취하신 것인지 말해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카세리아느의 입술에서 냉소적으로 흘러져 나오는 목소리는 분명 미성임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미성속에는 얼음보다 차가운 비수같은 것이 자리잡고 있었다. 모든 것을 얼려버릴 듯한 목소리. 카세리아느의 지금 마음은 수치감과 함께 당혹감으로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카세리아느의 마음을 아는 지, 모르는 지 황태자는 여전히 미소띤 얼굴로 웃으며 자신을 경멸적인 눈동자로 바라보는 카세리아느의 볼을 살짝 쓰다듬으며 말했다. "훗, 난 이렇게 아름다운 그대를 다른 사람 따위에게 보여주는 것이 싫었거든. 모습뿐 아니라 그대의 목소리조차도,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대는 나만의 것이니까." "그것은 단순한 황태자 전하의 이기심일 뿐만 아니라, 황태자 전하의 품위를 떨어뜨릴 뿐입니다. 다음부터는 이런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 황태자의 말을 듣고도 여전히 차가운 카세리아느를 보면서 황태자는 더욱 짙게 미소지 었다. 역시나 이 여자에게는 자신의 화술은 조금도 통하지 않는 모양이니, 어쩌면 그것 에 더욱 기쁨을 느끼고 있는지도 몰랐다. 이때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타입의 여자에게, 그리고 왠지 이유도 없이 끌리고 있 었다. 황태자는 자신을 냉소적으로 쳐다보는 카세리아느에게 자신의 얼굴을 조금씩 가 져가며 입을 열었다. "알고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지만, 그대는 유난히 나의 독점욕을 자극해. 말했었지? 난 철부지 어린아이 같다고 말이야."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저 어린아이의 생떼라고 생각하고 치부해도 좋다. 하지만 나의 행동을 유발한 것은, 순전히 나의 독점욕을 이렇게 처음부터 자극한 그대 잘못이야." 말도 안돼는 억지. 황태자는 그것이 정당하다며 오히려 카세리아느에게 말하고 있었다. 황태자의 짙은 흑청빛의 눈동자가 사람의 마음을 흔들듯 유혹하지만, 카세리아느는 그 러면서 자신에게로 얼굴을 가져오는 황태자에게 넘어 갈수 없었다. "황태자 전하의 얼굴을 저에게로 가까이 가져오지 말아주시겠습니까. 저는 이때까지 황 태자 전하께 다가왔던 여자들과는 다르다고 말해드리고 싶습니다." 자신딴에는 분위기 좋게 카세리아느에게 접근하던 황태자였으나, 카세리아느가 그렇게 말하자 흠칫하며 가까이 가져가던 얼굴을 멈춰서 제자리로 원위치 시켰다. 그리고는 무 엇이 그리 우스운지 소리내어 웃는 황태자였다. "하하하. 미운털이 잔뜩 박혀버린 모양이야. 하지만 이것만은 알아주겠어?" 황태자는 아직도 카세리아느의 볼에 있던 손을 볼에서 아까 유혹하듯 만졌었던 붉은 입 술로 다시 가져갔다. 그리고는 자신의 눈동자를 놓아주지 않는 붉은 입술을 살며시 쓸 어 내렸다. "내가 먼저 키스한것도, 키스하고 싶어지는 사람또한 그대뿐이라는 것. 그대가 유일하 다는 것을 잊지 말아주었으면 좋겠다. 이것은 절대 변하지 않을 진실이며 사실이니까." "....." 카세리아느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다가, 자신의 입술에서 느껴지는 황태자의 길고 아 름다우면서도 부드러운 손가락을 살며시 내렸다. 자신을 가지고 노는 것은 사양이지만, 이런짓을 하는 것은 더더욱 싫다. "황태자 전하의 놀이감이 되어, 황태자 전하의 장단에 놀아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더이 상 이런 짓은 하지 않으셨음 합니다." 냉정하면서도 도도하며 또한, 소름끼칠 만큼 차갑다. 그런 카세리아느의 모습에서는 더 이상 아무런 감정도 엿보이지 않았다. 카세리아느는 그렇게 아무 이유도 없이 황태자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훗, 하하하! 이런 대접 받기는 정말이지 처음이야. 그대는 여러가지 의미로 나로 하여 금 처음이란 단어를 사용하게 만드는 군." 그저 크게 웃으면서 황태자는 카세리아느를 바라보았고, 카세리아느는 그런 황태자를 여전히 냉정하면서도 차갑게 바라보았다. 더이상 이곳에 머물고 싶지 않다. "더이상 할말이 없으실테니, 소녀는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아텔린의 고귀하신 황태자 전하께 모든 영광이 내리길 바라오며, 옥체보존하십시오." 조금이나마 더 지체하기 싫다는 듯이, 카세리아느는 황태자를 향햐 고개와 몸을 숙이며 인사하고서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뒤돌아서서 밖을 향했다. 그런 카세리아느는 황태자 는 웃음을 거두고 한참을 응시하다가 카세리아느가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가자 조용히 중 얼거렸다. "그대가 나의 손안에 들어온 이상, 그대가 내것이라 마음먹은 이상은 나는 절대 그대를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황태자의 독점욕은, 황태자의 그 이기적인 마음은. 절대로 카세리아느를 놓아주지 않을 것이라고 이미 마음먹고 있는 모양이었다. 제 목: 공녀(貢女) 카세리아느 [9 회] 글쓴이: 썬샤인 2003-01-26 조회/추천: 530 / 8 황태자와의 만남 - 5 카세리아느가 황태자가 있는 방안에서 나오자, 카세리아느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인지 한 시녀가 어색하게 다가왔다. 핑크빛이 무척이나 귀여운 느낌을 주는, 아직까지는 앳 된 분위기가 지배적인 소녀였다. 소녀는 카세리아느를 바라보다가 황급히 고개를 숙이고서는,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면서 더듬거리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때까지 보아왔던 사람들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저,저기 카세리아느님이 되시나요?" 얼굴과 다름없이 앙증맞도록 귀여운 목소리로 부들부들 떠는 듯한 그 모습에, 카세리아 느는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카세리아느의 모습을 보았는 지, 소녀는 어색한듯 한 몸짓으로 책임의식을 가지고서 뻣뻣하게 앞장서서 걸어갔다. "이..이쪽으로 오세요. 카세리아느님이 묵으셔야 할 방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 그렇게 당당하게 얼마쯤 앞장서다가 소녀는 갑자기 살짝 고개를 돌리면서 카세리아느를 바라보았다. 눈에 가득 담겨져 있는 호기심이라는 이질적인 것을 생각할 때 무엇인가 무척이나 궁금한 것이 있는 모양이었다. 살며시 심호흡을 크게 하고서, 가슴을 탕탕치던 소녀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런데, 카세리아느님은 황태자 전하의 후궁이 되신건가요?" 후궁. 그 듣기 좋지만은 않은 소리와 카세리아느의 가슴을 찌르는 소리를 너무나 순진 한 눈동자로 물어오는 소녀에게 카세리아느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사실 대 답해 주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자신이 자신의 입으로 인정한다면 자신은 더욱 초라해 질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아무리 황태자가 자신을 황태자비로 만들겠다고 하였지만, 결국 그것은 한순간 의 놀이의 유흥에 불과한 것인 것을 알기에 말이다. 카세리아느가 그렇게 아무말도 하지 않고서, 차가운 자태로 있자, 소녀는 화들짝 놀라 며 울듯이 눈망울을 그렁 거리며, 울음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아마도 자신이 무척이나 잘못 한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앗, 죄송..합니다. 한낱 시녀가 정말, 정말 죄송해요. 용서해 주세요.." "괜찮다." 울듯한 표정으로 눈에 물기를 머금으면서 말하자, 카세리아느는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자신의 암울한 기분때문에 남까지 상처입힐 수는 없는 것이다. "정말이시죠?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카세리아느의 그 말한마디에 소녀는 울듯한 표정에서 바로 웃음 띤 모습으로 바뀌더니 몇번이나 고개를 숙이며 감사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리고는 카세리아느가 좋은 사람 이라는 인식이 생겨 버린 모양인지, 본격적으로 말을 걸어 오는 소녀였다. "그런데 말이에요. 카세리아느님. 황태자 전하께서는 정말 멋지신 분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신가요? 얼굴도 잘생기셨잖아요. 혹시 아세요? 황태자 전하게 이 아텔린 제국의 최 고의 미남이시랍니다." 분명 황태자가 매력적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카세리아느에게조차 황태자는 매력적이라는 인상을 주었으니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것은 빠져들지 않고서는 배길수가 없는 것이었을 것이다. 카세리아느의 대답따위는 애초부터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은 아닌 모양인지 소녀는 계 속 얼굴에 꽃미소를 달고서 말을 이엇다. "헤헤, 게다가 못하시는 것이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다재다능하시기까지 하시답니 다. 카세리아느님은 분명 축복받으신 거에요." "...." "게다가 매너또한 얼마나 좋으시다구요. 아니, 제가 본것은 아니지만 분명 그러실 거에 요. 다른 귀족가의 영애님들께서... 핫! 아, 아니 이건 아니에요. 어쨌든 황태자전하께 서는 신이 만든 최고의 걸작이 아니냐는 소문이 있을 정도라니까요?!" 황태자가 여자들에게 잘해준다는 것은 대충 어림잡아도 알 수 있던 사실이었으니 그다 지 신경쓸 일은 아니었다. 어찌되었든 소녀는 카세리아느가 대답을 하건 말건, 계속 얼 굴에 홍조를 띠어가며 동경하는 대상에 대해서 열렬히 말해주고 있었다. 꿈에 가득차 있는 소녀에게 하지 말라고는 하지 못하고 카세리아느는 그저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며 자신이 묵을 곳으로 가고 있었다. * * * * * 카세리아느가 밖으로 나가자, 황태자는 살며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하더니 자신의 방 으로 데스라엘 백작을 불러 들였다. 그리고 그 동안 무슨 이야기를 나우었는 지는 알 수 없었지만 황태자가 무엇이라 말하자 백작은 깜짝 놀란 얼굴을 하며 소리쳤다. "안됍니다. 황태자 전하!" 백작은 눈을 크게 뜨면서 감히 제국의 황태자 앞에서 겁을 상실한채 강경히 반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백작을 보고서도 황태자는 그저 웃음을 머금으면서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면 과연 그저 평번한 웃음을 머금으며 있는 것을 보면 과연 평번한 사람은 아닌 모양이었다. "왜 안됀다는 거지, 데스라엘 백작?" 높지도 낮지도 않은 목소리 톤. 하지만 이 정적이 흐르는 방안에서 백작이 듣기에는 충 분한 목소리였다. 황태자가 살짝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자 백작은 당연하지 않느냐라는 듯한 모습으로 황태자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황태자가 지금 자신에게 요구하는 것은 정말 터무니없는 유례조차 찾아 볼수 없는 일인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이때까지의 유례중에 새로운 것을 만들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이국의 한낱 공녀(貢女)를 입학시키라니요!" 그랬다. 황태자가는 뉴럴의 책임을 맏고 있는 자신에게 오늘 황태자의 차비로 보내져온 공녀를 입학시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흥분해서 소리치는 백작을 우습다는 듯이 바 라보며 황태자는 살짝 눈썹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그 나라에서는 공작가의 영애인데 한낱이라는 표현은 너무한것이라 생각지 않는가, 백 작?" "그 공녀가 공작가의 영애이든 그렇지 않든, 뉴럴은 아텔린의 황태자비 후보교육 전문 아카데미입니다. 어떻게 다른나라, 그것도 공녀(貢女)를 입학시키라는 것입니까. 이런 일은 있지도 않았으며 있어서도 안됀다고 생각합니다." "없다면 만들면 되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하지 않아도 이미 뉴럴에는 그 공녀보다 더욱 훌륭한 후보들도 있다고 자부하 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 말은 더이상 꺼내지 말아주십시오, 황태자 전하." 황태자의 말에 열심히 반박하는 데스라엘 백작의 모습을 바라보던 황태자의 얼굴이 굳 어져 감을 느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그 방안에는 황태자와 백작만이 있었을 뿐 아니라, 눈치채야 할 백작또한 흥분된 상태여서 남을 돌볼 여유가 없기 때문 이었다. 게다가 워낙 황태자의 표정이 잘 변하지 않는다는 이유도 있었다. 늘 웃는 모습으로 다 른 이들을 쳐다보았으며, 지금 또한 그 모습에서 거의 다르지 않으니, 어느 누가 황태 자의 모습이 굳어져 감을 느꼈겠는가? 그러던 중 황태자는 무엇이 떠올랐는 지 살며시 자신의 서랍에서 고급스런 단도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옆에 있던 실크 손수건으로 살며시 쓰다듬으면서 칼에 시선을 주며 입을 열었다. 안그래도 매끄럽고 시퍼런 단도의 표면이 더욱 빛을 발하는 듯 보였다. "그래서 안돼겠다는 말인가. 데스라엘 백작?" "그렇습니다!" 황태자가 칼을 쓰다듬고 있자, 왠지 모를 불안감이 형성되는 백작이었으나, 고작 그런 모습에 자신의 뜻을 굽힐 수는 없었다. 그래서 당당한 모습으로 소리치듯 대답하였으나 곧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버렸다. 자신의 얼굴 옆을 황금빛을 뽐내며 위험할정도로 아슬아슬하게 스쳐지나가는 황태자손 에 들려있던 단검이 이유였다. 잘 스쳐지나간 듯도 보였으나, 그것도 아니었는 지, 조금 시간이 지나지 않아 백작의 얼굴에는 살며시 혈선이 그려졌다. 백작이 살짝 느껴지는 따끔거림에 인상을 찡그리고 창백하게 굳어있었으나 황태자는 그 모습을 보며 싱긋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런, 정말 미안하군. 데스라엘 백작. 손이 갑자기 잘못 움직인 모양이야. 물론 괜찮 겠지?" 황태자의 말은 무척이나 애매하였기에 백작은 잘못 움직인 것이 다른 물체를 겨냥하다 가 자신의 볼을 스친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머리를 노렸는 데 잘못 겨냥해 볼을 스치게 만든것인지 무척이나 의문을 가졌다. 그만큼이나 황태자의 행동은 의도적이라고 해도 의심스럽지 않을 행동이었다. "괘,괜찮습니다. 황태자 전하. 고작 볼이 긁힌정도로 남자가 엄살을 부리겠사옵니까." "훗, 그래? 그럼 다행이야. 그런데 말이야. 난 긴 말하는 것은 워낙 싫어하는 성격이라 빨리 말을 끝냈음 하는데 그에 대해 불만이라도 있는가, 백작?" 싱긋 웃으며 자신의 자리에서 이탈하여 황태자는 당당한 움직임으로 백작이 서있는 곳 까지 천천히 다가갔다. 그런 황태자의 모습을 백작은 그저 살짝 내리깔고 있는 눈동자 로 대충 어디까지 왔는 지만 가늠하고 있다가 대답했다. "있을리가 있겠사옵니까." "난 적어도 당신이 관리하고 있는 뉴럴에서 백작이 말하는 그 한.낱.공.녀.라는 여자보 다 훌륭한 후보는 없다고 생각한다." 황태자가 강조하는 듯한 그 말에 백작은 내리깔았던 시선을 올려 황태자의 눈동자를 바 라보았다. 짙은 흑청빛의 눈동자가 너무나 깊어 그 속을 알 수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살며시 웃고 있는 그 모습에서 괜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어린나이임에도 놀라울 정도의 박력. "하,하지만!" "난 긴 말하는 것을 싫어한다고 이미 말했을 텐데?" 살짝 고개를 비틀어 들어올리면서 눈살을 짱그리는 황태자와 그 압도당할만한 눈빛을 감히 바라보면서 백작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두려움속에서도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이 사람이 황태자의 자리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모자람이 없는 사람임을 느낀 탓이었다. 평소에 너무나 희희낙락, 웃기만 하는 황태자를 바라보면서 저 사람은 제왕의 자리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 그 생각은 뒤집어 진지 오래였다. 한번이라도 황태자의 스쳐지나간 웃고있는 눈동자가 아닌, 진지하게 저 깊은 깊이의 눈 동자를 바라본다면 누구나 이렇게 생가할 것이다. 이 사람만큼 제왕, 황제의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은 없다고 말이다. 자신의 의지를 밀고 나가는 카리스마와 왠지 모르게 사람을 끌어드리는 흡입력은 분명 아무나 타고나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런 진지한 모습의 황태자가 원하는 여자라면 분명히 누구보다 완벽한 황태자 를 지탱해줄 반려일거라는 생각에까지 미치자 백작은 이때까지의 망설임을 모두 버려 버리며 고개를 숙였다. "황태자 전하의 그 고귀하신 뜻을 받들겠사옵니다." 제 목: 공녀(貢女) 카세리아느 [10 회] 글쓴이: 썬샤인 2003-01-26 조회/추천: 534 / 6 황태자비 후보 교육 전문 아카데미 - 1 찬란한 햇빛은 어둠을 조금씩 조금씩 침식해 가다가 결국은 한 방안의 침대에서 잠자고 있는 카세리아느의 얼굴에 있던 어둠마저도 가져가 버렸다. 마치 어둠때문에 카세리아 느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다는 듯. 그리고는 어둠을 다 가져가고 나서, 카세리아느의 기다란 속눈썹을 살짝 건드리면서 새 로운 아침의 시작을 알렸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곳에서의 새로운 아침이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카세리아느는 싱그러운 햇빛의 간지러움에 살며시 눈을 떠 주위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푸른 눈동자에 잡혀오는 모든 것이 예전과는 달랐다. 자신이 알아오던 모든것이 사라져 버린 낯선곳에서 홀로 남아 있었다. 자신이 아는 사람도 없는 낯선곳에 홀로 떨어졌다는 외로움이 쓸쓸함과 함께 카세리아 느를 덥쳐 왔다. 이제는 익숙해져야 만 할 외로움. 그렇게 쓸쓸하게 있던 것도 잠시, 활기찬 누군가의 등장으로 카세리아느는 살며시 고개 를 돌려 그쪽을 바라보았다. "카세리아느님! 뉴럴아카데미에 입학한다는 게 정말 인거죠?" 핑크빛 짧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숨차게 달려온 에린이 그 주인공이었다. 윗사람으로 부터 금방 듣고 온 소식이 무척이나 기쁜 소식이었는 모양이었다. 기대감과 흥분감에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서 눈을 빛내면서 에린은 그렇게 물었다. 카세리아느는 그런 에린에게 살짝 고개를 끄덕여 주었고, 에린은 그 말에 대한 확신을 듣게 되자 더욱 기쁜 듯이 몸을 떨었다. 그리고는 자신도 모르게 침대에 살며시 걸터 앉아 있던 카세리아느에게 안겨들어가며 기쁨을 행동으로 표현했다. "정말 잘됐어요, 카세리아느님! 사실은 카세리아느님이 후궁으로 들어가신다는 것에 대 해서 안됐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카세리아느님이라면 분명히 황태자비에 모자람이 없으실꺼에요!" 황태자의 길지않을 유희. 자신은 그런 황태자의 놀이에 희생될 놀이감이라고는 알리가 없는 에린이었기에 그렇게 기뻐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일도 아님에도 불 구하고 자신의 일인 듯 기뻐하는 에린이 싫지만은 않았다. 자신의 일을 자신에 일인듯 기뻐해 주는 이는 아마도 에린외에는 없을지도 모르니까. 그래서인지 카세리아느는 자신에게 무례하게 안겨든 에린을 혼내지 않고서 살며시 등을 토닥여 주었다. "앗, 죄송해요! 제가 또 실례를.." "괜찮아." 조금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무례했는 지를 깨달았는 지 에린이 황급히 놀라며 카세리아느에게 떨어져 나왔다. 그러다 카세리아느가 괜찮다고 말해주자 기쁜 듯 살짝 미소짓는 에린이었다. "감사합니다, 카세리아느님! 아참!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요!! 빨리 드레스하고 장 신구들을 준비해와야죠! 카세리아느님은 그냥 있어도 충분히 아름다우시지만 더욱 아름 답게 빛나야 하시니까요!! 그럼 잠시만 기다리세요!" 에린은 카세리아느에게 웃으며 감사하다고 말하다, 무엇인가 생각났는 지 혼자서 카세 리아느가 듣던 말든, 열심히 말했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밖으로 뛰쳐나갔고, 그런 에린 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카세리아느는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달칵! "카세리아느님~"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방문이 열리고 세벌정도의 옷을 힘겹게 들고서 들어오는 에린 이 카세리아느의 눈동자에 잡혀 들어왔다. 결코 가벼워 보이지 않는 부피의 세벌의 드 레스들은 모두다 화려함의 극치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드레스위에 어떻게 놓았는 지도 모를 화려한 장신구들은 가히 놀랍기 까지 했다. 자신이 가는 곳은 무도회장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에린이 가져온 옷들은 너무나 화려하기 그지없었던 것이다. 아마도 에린은 착각을 해도, 상당히 착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우아? 우앗!!" 뒤뚱뒤뚱 힙겹게 들고오던 에린이었으나, 역시 그 무거운 부피는 감당할 수 없었던 모 양이었는 지 몸을 비틀거리며 쓰러져 버렸다. 에린의 머리위에는 몇개의 장신구들이 떨 어져 있고 에린은 그런 장신구와 드레스더미에 파묻혀 울상을 짓고 있었다. "히잉.." 살짝 울상을 짓고 있던 에린이었지만, 곧 카세리아느와 눈동자가 마주치자 그것은 무척 아니 기대에 찬 눈망울로 바뀌어 있었다. 그런 에린의 무언가를 상당히 갈망하는 눈동 자는 카세리아느에게는 무척이나 부담스러울 뿐이었다. "어느 드레스가 마음에 드세요?" 하지만 그런 에린의 기대를 무시하고서 카세리아느는 차갑게 대답해 줄 수 밖에 없었 다. 자신이 가는 뉴럴은 황태자비 후보 교육 전문 아카데미인 것이다. 절대로 무도회장 같은 따위의 곳이 아니었다. 물론 그런 옷을 입고 갈수 있다고 하여도 자신은 다른나라에서 황태자의 차비로 보내진 공녀일 뿐인 것이다. 자신이 그렇게나 화려한 차림으로 간다면 다른 귀족가의 영애들과 귀족들의 시선은 결코 따사롭지 않을 것은 자명했다. "내가 가는 곳은 무도회장이 아니야. 미안하지만 정장 같은 걸로 가져와줘." "에엣? 하지만 그건 별로 안 예쁘단 말이에요!" "에린." 카세리아느가 자신을 향해서 차갑게 쳐다보며, 자신의 이름을 말하자 에린은 자신 특유 의 울듯한 표정으로 카세리아느를 응시했다. 하지만 그런 모습조차 카세리아느가 철저 히 무시해 버리자 결국 드레스와 장신구를 주섬주섬 챙겨서 아슬아슬하게 들고 나가는 수밖에는 없었다. 그리고 조금 있어 에린이 가져온 정장중에서 카세리아느는 가장 무난해 보이는 푸른 정 장을 택해 입었다. 게다가 거기에 새하얀 장갑까지 끼고 있어 더욱 단정해 보였다. 마 치 고귀함과 결백을 상징하는 프렌시아가 연상되는 모습에 에린은 그렇게 넋을 놓고 있 었다. 분명 화려한 드레스가 아님에도 그 아름다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 도 에린은 뭔가 부족하다는 듯이 입을 살짝 내밀었다. 그러다 무언가 생각났는 지 생긋 웃으며 카세리아느에게 다가가면서 입을 열었다. "카세리아느님! 제가 거치적거릴 테니까 머리 묶어 드릴게요!" 이번만큼은 포기하지 못한다는 듯이 에린은 카세리아느의 탐스럽고 긴 흑발을 금실로 수놓아져 있는 푸른색 끈으로 단정하게 묶었다. 그리고서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서 카 세리아느의 귀에 살짝 푸른색 피어싱을 끼워 넣으며 만족어린 미소를 지었다. 똑똑! "황태자 전하의 명을 받고 카세리아느님을 모시기 위해 왔습니다." 갑작스럽게 피어싱을 꽂아 넣은 에린에게 카세리아느가 무엇이라 말할 찰나, 밖에서는 노크소리와 중년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카세리아느는 시선을 그쪽으로 향하며 조 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들어오십시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백색의 문이 살짝 열려지며, 한 사람을 보여주었다. 날카로운 눈매가 독하게도 보이지 만 왠지 모르게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다. 지적으로 보이는 중년의 여성이 살 짝 카세리아느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카세리아느님이신가요?" 다시 고개를 올리며 여자가 고개를 들었을 때, 카세리아느의 모습을 바라보며 살짝 놀 란듯 물어왔다. 이때까지 자신이 보아오던 귀족가의 영애들과는 확실히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소녀였다. 매번 화려하게 치장하던 귀족가의 영애들과는 다르게 상당히 수수해보일 듯한 모습임에 도, 그렇다고 하여 그런 귀족가의 영애들보다 못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런 모습임에 도 압도적이라 해도 좋을만큼 아름다워 보였다. "그렇습니다." 카세리아느의 말로만 들어오던 그 아름다운 미모와 더불어 환상적인 자태는 같은 여자 임에도 불구하고 혼을 빼앗길 듯한 느낌에 잠시간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였다. "아.그러시군요. 저는 모셔다 드리기 위해 온 렌사라고 합니다. 준비가 다 되셨다면 지 금 떠나도 문제가 없으신가요?" 아무리 아름답다고 하여도 그래보았자 이국에서 보내져온 공녀(貢女)일 뿐일거라, 당당 함은 없을 줄 알았으나, 그 생각은 곧 지워야 했다. 차가움 어린 도도함까지 느껴지는 그 모습은 여신이라는 생각까지 가지게 만들었다. "물론입니다." 자신의 말에 대한 대답으로 들려오는 차가운 미성이 자신의 마음을 설레이게 만들었다. 이 소녀가 대륙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불리우는 절색의 소녀인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카세리아느를 안내하던 아텔린의 사자가 그랬던 것처럼 렌사도 살며시 고개를 숙이며 길을 안내하고 있었다. 제 목: 공녀(貢女) 카세리아느 [11 회] 글쓴이: 썬샤인 2003-01-26 조회/추천: 526 / 7 황태자비 후보 교육 전문 아카데미 - 2 카세리아느가 렌사를 따라서 도착한 곳은 황궁안의 한 건물이었다. 한번 흘겨 봄으로써 도 아름답다는 탄사를 내게 만드는 곳. 백색의 황궁속에서도 더욱 새하얀 순백의 색으 로 되어 있는 그곳은 뉴럴아카데미였다. 카세리아느도 얼핏 멀리서 보았던 외형이었지만, 역시나 가까이에서 보니 그 아름다움 은 과연 비교 될 정도였다. 빛의 조각들을 머금은 궁. 깨어질듯 보여서 더욱 신비롭게 보이는 뉴럴은 귀족가의 영애들을 허영심을 만족시키기에는 더할나위 없이 충분했다. "여기서 부터는 제가 아닌 호울즈선생께서 안내해 주실겁니다." 아직은 약간의 푸르스름을 머금고 있는, 순백의 뉴럴을 살며시 응시하던 카세리아느는 곧 갑작스레 들려온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자신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하는 렌사의 옆 에 같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한 여성이 있었다. 깔끔하게 검은 정장을 입고서 서있는 그 여선생을 살짝 응시하다가 카세리아느는 렌사 를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이때까지 안내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그럼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카세리아느님. " 카세리아느의 대답을 들으며, 렌사는 살포시 다시 인사하고서 발길을 돌렸다. 이제 자 신의 역할은 다 끝났고, 원래 자신의 일을 하기 위해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 째서 이유도 없이 자신의 발길이 가는 것을 거부하는 지는 알길이 없었다. 아마도 자신은 저 소녀의 곁에 있고 싶은 것일까? "그럼 저와 함께 가시지요, 카세리아느양." 약간은 허스키한 목소리톤에 카세리아느는 다시 고개를 돌려 호울즈를 바라보았다. 고 개를 숙이고 있어 잘 눈치채지 못하였지만, 이제 보니 얼굴에서는 여자라기보다는 남성 적인 쪽으로 더욱 치우쳐진듯 보이는 중성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다른 사람이 아마 이 여자를 보았다면, 분명 흥미를 나타내며 이것저것을 물어보았을 지도 몰랐다. 그만큼 그런 호울즈 선생의 여자이면서도 남자같은 말쑥한 인상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호기심을 자아내기에는 조금의 모자람도 없었다. 하지만 카세리아느는 그런 호울즈를 바라보고서도 약간 놀란듯 했으나, 그저 그것으로 그치고 말았다. 남이 어떤 모습이든 지금의 카세리아느에게는 아무런 행동을 유발할만 한 이유는 되지 못했던 까닭에서였다. 그래서인지 호울즈 선생의 얼굴은 실망의 기색이 보였으나, 곧 자신의 일을 떠올리고는 카세리아느에게 자신들이 가야할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는 남들이 보았다면 충 분이 매력적이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쪽으로 가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여전히 관심없다는 표정으로 어느새 호울즈에게서 고개를 돌린 카세리아느였다. 분명히 아름다운 미성임에도 너무나 차갑기에 왠지 모르게 거부감이 일었다. 자신의 눈앞에 있는 이 소녀는, 장미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있듯이, 자신의 몸속에 아주 독한 독이라도 품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직 어리기만 한 소녀인데 무엇이 이 소녀로 하 여금 마음의 여유를 빼앗은 것인지 그것이 궁금할 따름이었다. * * * * * * "세에르, 다시 한번 말해보세요. 카세리아느라는 아이가 그렇게나 이뻤단 말입니까?" "인정하긴 싫지만 이쁘긴 하더군요. 정말이지 짜증날 정도로 말이에요. 하지만 어쩌겠 습니까. 아무리 차비라는 명분으로 왔다고 해보았자 결국은 공녀(貢女)일 뿐이지 않습 니까. 그 얼굴만을 믿고 우쭐해보았자 어쩔수 없을 거에요." "훗! 그다지 상관하지 않아도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결국 카세리아느라는 그 아이 는 고작 후궁의 신세를 면하지 못할텐데 말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도 아시지 않습니 까. 황태자전하께서는 늘 신선하고 흥미로운것을 좋아하신다는 것을요. 한순간의 변덕 일 뿐이실겁니다." 황태자비 후보 교육 전문 아카데미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는 뉴럴은 그 새하얗기만 하여 더욱 아름다운 순백의 외형과는 달리 내형은 시원한 청빛의 모습을 띠고 있었다. 그 시 원하게 보이는 청빛의 내부는 청결함과 고결한 느낌마저도 주고 있었다. 하지만 청빛이 주는 단아하면서도 시원한 분위기를 지닌 클래스 중, 로얄반에서는 이상 하게도 시원하다기 보다는 뜨거운 느낌을 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뜨거운 분위기는 다 름 아닌 한 소녀무리에서 가득 뿜어져 나왔다. 개성적인 여러가지 색의 머리카락들의 소녀들이 붉은 머리 소녀를 중심으로 이야기 중 이었는데, 그 소녀들은 이곳이 뉴럴이라는 곳임을 감지할 때, 분명 귀족가의 영애들이 었다. 고귀한척 조심히 웃는 소리도 들려오고, 약간 짜증섞인 목소리도 간간히 들려오는 가운 데, 그 들의 이야기의 주제는 어제 도착했다는 자신들이 말하기로 공녀를 중심으로 흐 르고 있었다. 귀족가의 영애들이 다루기에는 상관없어 보이는 주제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들에게는 그 이야기르 나눌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그녀들은 명색이 황태자비 후보들이었고, 아 름답다고 소문난 그 공녀는 황태자를 자신들에게 꾀어낼 요녀처럼밖에는 보이지 않았으 니,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적어도 그들은 꼭 이야기를 나눠야만 했다. "하지만 황태자 전하께서 이번에는 상당히 불안하단 말이에요. 아무리 흥미로운것을 즐 기시는 분이라고는 하지만, 그런 공녀따위를 뉴럴에 입학시키려 하시다니요." "맞아요. 뉴럴은 황태자비 후보 교육 전문 아카데미인데. 도대체 무슨 생각이신건지. 혹시나 황태자 전하께서 그 카세리아느라는 공녀를 황태자비로서 염두에 두고 계신다는 뜻은 아닌지 상당히 염려된답니다." 갈색 머리카락의 쉐르시가 걱정된다는 듯, 살며시 옆의 죠에느를 바라보며 말하자, 죠 에는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혹시나 황태자가 자신들을 놔두고 그 카세리아느라 는 아이에게 관심을 가진다면? 그 아름다움에 빠져버린 것이라면 자신들은 어떻게 되는 것이란 말인가? 고작 그 한아이의 등장으로 이때까지 황태자의 사랑을 받아오던 자신들이 찬밥신세가 되어버린다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쉐르시와 죠에느가 서로 인상을 지푸리면서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자 붉은 머리카락의 익히 본적이 있는 세에르는 살짝 입가에 미소를 지으 며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않아도 어차피 곧 있으면 이곳에 도착할테니 알수 있겠죠. 우리가 지금 이렇 게 모여도 걱정하지 않아도 말입니다." "그건 맞는 말이긴 합니다만, 걱정되는 것은 어쩔수 없네요. 이 아텔린제국에까지 소문 이 난 미모가 아닙니까! 그것은 세에르양께서도 이미 언급하신 것이구요." 세에르의 말을 들으면서도 여전히 인상을 찌푸리며 걱정하고 있는 쉐르시를 바라보면서 세에르는 살짝 눈동자를 굴리더니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쉐르시양. 그건 그렇긴 하지만, 언제까지나 걱정만 할 수는 없는 법이 아니겠습니까? 저도 그 얼굴이 무척이나 이쁘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얼굴이 흉칙하게 변 하여도 황태자 전하의 마음이 그대로일 수는 없겠지요." "그럼, 지금 세에르양 말씀은 손을..봐주자는...말..이십니까?" 세에르의 말에 대답한 것은 쉐르시가 아닌 죠에느였다. 살짝 말꼬리를 흐트리며 말하는 죠에느의 눈동자는 물론, 쉐르시또한 빛나고 있었다. 마치 해결책을 찾았다는 듯. "하지만 무슨 방법으로 그렇게 한단 말씀이십니까?" 눈동자를 빛내면서 살짝 물어오는 쉐르시를 보면서 세에르는 다시 한번 빙긋 미소지으 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너무 간단한 문제라는 듯한 모습으로, 무엇이 그리 걱정이 냐는 듯이 말이다. "마법이란 그저 배운것이 아니잖습니까? 때로는 활용도 해가면서 해야 마법도 실력이 더욱 쌓이는 법이지요." "그건 그렇긴 하지만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런다면 저희만 화를 당할 것이 자명하지 않 겠습니까." 이해하는 듯한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이던 두명이었지만 곧 다시 한번 세에르에게 물어 갔다. 아무 이유도 없이 그렇게 한다면 자신들만 화를 입을 것은 정말로 뻔한 일이었기 때문에 명분을 찾아야 했다. "명분따위야 어떻게든 만들면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잊으셨습니까? 그 아이는 고작 약한 나라에서 보내져온 공녀이고 우리는 지체높은 귀족가의 영애들이 아니겠습니까? 그 아이와 저희 중, 귀족들은 누구의 손을 들어줄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세에르의 잔인하게 비틀어져 올라간 입꼬리를 바라보면서 쉐르시와 죠에느또한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너무 간단한 방법인 것이다. 황태자에게서 그아이를 떼어놓는 것은 말이다. 두 소녀는 서로의 눈동자들을 응시하며 살며시 미소지었다. 그리고 조금 있으면 들어올 자신들의 먹잇감의 미래에 대해서 구상하고 있는 그녀들의 모습들은 순진한 탈을 뒤집 어쓴 악마나 진배없었다. 황태자의 대한 사랑에 미쳐, 질투에 눈이먼 추한 모습들은 다른 사람들이 보았다면 저 절로 인상을 찌푸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달칵! 그렇게 그녀들이 열심히 떠들며 계획을 구상하고서 만족스런 웃음을 짓고 있을 때 갑작 스럽게 문이 열리며 둔탁한 마찰음을 내었다. 그리고 그렇게 그녀들이 열심히 떠들며 다른 계획을 구상중이 었을 때 새하얀 문이 열리면서 둔탁함 음이 들려왔다. 어둠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이 빛이듯, 빛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도 어둠이었다. 하지만 딱히 클래스룸안이 어둠으로 꽉차있었던 것이 아님에도 그 소녀는 어둠속에서 더욱 빛나는 빛처럼 단연 돋보이고 있었다. 호울즈 선생은 눈을 사로잡는 긴 검은 머릿결의 소녀를 안으로 데리고 들어오며, 살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새로 입학하게 된 카세리아느양이에요. " 호울즈 선생이 말하지 않아도, 다른 소녀들의 시선은 이미 그곳으로 가있었고, 말하지 않았더라도 그 소녀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모를리가 있겠는가. 이 소녀가 귀따가운 소 문의 주인공인 카세리아느임을 말이다. 좀처럼 보기힘든 귀하기만 한 흑색의 찰랑이는 긴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뒤로 묶고서 푸 른색 정장을 입고 도도히 서있는 그 소녀의 푸른색 눈동자는 깊은 호수를 연상케 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심하게 닫혀있는 피처럼, 아니 장미처럼 붉은 입술은 모든이들의 눈동자를 유 혹하며 떼어 놓지 못하게 만드는 힘까지도 지니고 있는 듯 했다. 너무나 아름다운 자태 를 지닌 그 소녀에게, 다른 소녀들은 부러움보다도 동경심을 느끼고 있었다. "카세리아느입니다." 하지만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은 너무나 차가운 미성에 정신이 든 소녀들이었다. 그 것은 세에르와 쉐르시, 죠에느에게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인듯, 그녀들은 살며시 아무말 도 하지 않고서 카세리아느를 째리듯 흘겨바라보았다. "그럼 우선은 친해질수 있는 시간을 주기위해서 오늘 1교시는 자유시간입니다." 그리고 호울즈 선생의 그 말에 셋은 눈빛을 반짝이며 만족스럽게 의견을 교환했다. 만 에 하나의 장애물까지 비켜주는 것을 보니, 아마도 하늘이 자신들이 하는 일을 돋는 것 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셋은 호울즈 선생이 문을 닫고서 나가자 살며시 자리에서 일어나 카세리아느가 있는 곳 으로 기쁜 웃음을 지으며 다가갔다. 그리고 세에르가 말함과 동시에 무엇인가 시작되려 는 조짐이 보이고 있었다. "나 본적 있죠, 카세리아느? 잠깐 우리들이랑 즐~거운 대화를 해보지 않겠어요?" 제 목: 공녀(貢女) 카세리아느 [12 회] 글쓴이: 썬샤인 2003-01-26 조회/추천: 525 / 4 황태자비 후보 교육 전문 아카데미 - 3 "황태자 전하, 대체 어디로 가시는 것이옵니까!!" 대략 어림잡아 보기에 약 17~10로 보이는 흑청발의 머리카락이 인상적인 소년이 빠른 걸음으로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었고, 그런 소년의 뒤를 쫒는 노인은 그 소년을 붙잡으 려는 듯, 힙겹게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힘든듯이 숨을 가쁘게 내쉬는 노인의 머리는 새하얗게 쉬어버린 흰 머리카락이 대부분 이었고, 눈가에 진 긴 주름들은 이때까지 노인이 지내온 세월들을 어림짐작하기에는 조 금의 모자람도 없어 보였다. 새하앟기에 더욱 부드럽게 느껴지는 수염과 한쪽 눈에만 하고 있는 안경이 왠지 모르게 지적인 분위기도 풍기고 있어 보였다. 그러한 노인이 힘겹게 자신을 부르고 있으면, 미 안함 마음에서라도 멈추어 서 줄만도 했것만 그 소년은 그렇지 않았다. 이 대륙에서 가장 강하다고 하는 대 '아텔린'제국의 고귀하신 황태자가 아니겠는가? 그런 황태자라는 제 1 황위계승권을 지닌 사람이 한낱 노인의 말을 들어야 할 이유는 분명 없었다. "그렇게 힘들게 쫒아오지 않으면 되는 것을, 왜 그렇게 날 붙잡아 두지 못해서 안달인 거지? 그리고 분명 아까도 말했었다. 내가 마음에 드는 여자를 보러 가는 것이라고 말 이다. 설마하니 벌써 노망기가 있는 것은 아니겠지?" 힘겹게 쫒아오는 노인이 불쌍하기는 한 모양이었는지, 황태자는 살짝 매혹적인 웃음을 지으며 대답해 주었으나 역시 그 발걸음은 여전히 빠르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황태자가 한 그 대답은 노인이 원한 대답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었다. "황태자 전하, 그런 것이라면 평소처럼 나중에 따로 부르시면 될 것이 아니옵니까! 지 금은 후보들이 열심히 수업하고 있을 시간입니다!! " 노인이 애원하듯 소리쳤으나, 그말이 씨도 안먹힐 것이라는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다. 남의 명령을 들어본 적이 없는 황태자가 아니겠는가. "그렇게 일일이 신경을 쓰다가는 그대의 얼마남지 않은 머리카락들마저 사라질지도 몰 라. 그리고 날 오랫동안 알아온 그대라면 더욱 잘알텐데? 내가 내 뜻을 잘 굽히지 않는 다는 것을 말이야" 황태자가 우스갯소리로 한 말이 신경쓰이긴 한 모양인지 노인은 자신의 머리에 살짝 손 을 가져다 대며 쓰다듬었다. 하지만 곧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님을 상기 시키고선 나름 대로 재빠른 동작으로 황태자를 쫒아가기 위해 노력중이었다. 다닥.. 황태자의 걸음이 일순간 멈추자 노인은 미소를 띠우며 황태자를 바라보았으나, 곧 그 미소는 지워지고 말았다. 벌써 도착해 버린것이다. 황태자와 자신은 그렇게 재빠르게 걸음을 옮기는 사이, 황태 자가 보려고 왔었던 목적지로. 결국 노인의 그 나이에 힘차게 움직였던 노력은 물거품 이 되어버리고 만것이다. 황태자의 잔뜩 미소어린 시선은 어제 도착한 카세리아느라는 천하절색으로 불리우는 소 녀가 입학했다는 로얄반으로 가있었다. "이,이런 어느새!" "훗, 어쩌지? 이미 늦은 모양인데 말이야." 살짝 허멍한듯한 모습으로 그 곳을 바라보다가 노인의 입에서는 망연자실한 듯한 말이 튀어져 나왔고, 곧 이어 그런 노인을 바라보며 황태자의 웃음기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 다. 그렇게 노인을 바라보며 웃어주던 황태자의 시선은 원래처럼 방안으로 향해있었다. 투명한 물과 같은 막으로 되어있는 창은 시원한 분위기를 더해주고 있었다. 또한 그 투 명한 막은 특별 설개한 것으로서 밖에서는 안이 보이되 안에서는 절대로 밖이 보이지 않게 되어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뉴럴이라는 국가에서 가장 힘쓰고 있는 학교에서 귀족가의 영애들을 확실히 감 시하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으며, 그럼에도 안에서는 밖을 바라보며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이중의 효과를 가져왔다. 그런 창으로 황태자는 싱긋 미소지으며 다가가 카세리아느가 있을 곳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황태자가 카세리아느가 있는 곳이 확실한지 바라봤을 때는 한 이질적인 모습이 황태자의 눈동자에 잡혀 들어왔고 또한 그다지 좋게 들리지 않는 소리가 귀를 적셨다. "거기 카세리아느? 잠깐 우리들이랑 즐~거운 대화를 해보지 않겠어요?" 카세리아느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는 소녀는 자신이 어제 심심하여 불러들였던 후작가의 세에르였고, 또한 주위에는 자신이 한번쯤은 보았던 귀족가의 영애들이 모여있었다. "세에르양과 쉐르시양. 그리고 다른 귀족가의 영애분이 아닙니까. 황태자 전하. 지금 무얼 하고 계시는 건지요?" 어느새 황태자의 곁으로 다가와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노인의 눈에도 그 모습이 보 였던 모양인지 황태자에게 살며시 물어왔다. "나도 알고 있어. 훗. 아마도 싸움을 거는 것으로 보이는군." 황태자의 재밌다는 듯한 말을 들으며 노인은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안경을 자신의 눈에 딱 맞게 고정시키며 더욱 자세하게 쳐다보기 위해 힘썼다. 그저 웃으며 넘기기에는 상 황이 그렇게나 좋지 않은 듯 보였기 때문에. 그런 모습을 바라보면서도 웃음을 지으며 눈동자에 더욱 이채를 띠는 황태자가 노인으 로서는 이해가 안 될 뿐이었다. 세명의 소녀들이 카세리아느앞에 위협적인 모습으로 서있음에도 카세리아느의 표정과 모습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어 보였다. 여전히 차갑기만 한 표정속에는 상관없다는 무관 심함과 나태에 빠진 권태로움이 잔뜩 묻어났다. "내가 그대들과 이야기를 해야 할 이유따위는 없을 뿐 아니라, 그대들도 저와 진지하게 이야기 할 마음은 없어 보이는데, 굳이 이야기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면서 웃기다는 듯, 바라보는 세명을 바라보면서 카세리아느는 눈 을 살짝 내리깔며 차갑게 대답했다. 자신에게 시비를 걸려고 하는 것 때문에 자신과 대 화를 하자고 하는 것이라면, 전혀 이야기 하고싶은 마음은 없었다. "쿡, 역시나." 마음 놓고 구경하려고 하려는 지, 황태자는 자신의 팔을 살며시 낮은 창에 눕히고서 흥 미롭다는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카세리아느의 말을 듣고서는 이미 짐작했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걸쿄 만만한 상대는 아닐 텐데?" "황태자 전하, 들어가서 무엇이라고 하셔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카세리아느가 한 말의 영향때문인지 세명의 소녀들의 모습이 굳어지고 험악해지자 노인 은 괜한 걱정에 황태자를 보면서 말했다. 하지만 자신의 그런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는 모양인지 웃으며 바라보는 황태자를 바라보며, 노인은 그저 한숨만을 내쉬었다. 그랬다. 자신이 아는 황태자는 이런 사람이었다고 느끼며 말이다. 남의 일에 조금의 관심도 보이지 않지만, 관심을 보인다면 그것은 흥미때문일 뿐이지 절대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흥미롭지 않아?" "...." 눈동자에는 여전히 재밌다는 듯한 빛을 잔뜩 담고서 계속 응시하며 입을 여는 황태자에 게 노인은 아무말도 해줄 수 없었다. 웃어 넘길 상황은 분명 아니었기에. 카세리아느의 말에 무시받는 듯한 느낌을 받은 세명의 소녀들의 마음속에는 무엇인가가 복받쳐 오르며 불타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하? 좋게 말하니 눈에 보이는 것도 없는 모양이죠?" "당신의 잘나신 면상을 믿고 이러시나 본데 언제까지 그 모습이 황태자 전하의 마음을 끌수 있을 거라 생각하시나요? 그래보았자 당신은 황태자 전하께 버림받을 께 뻔하다고 말해주고 싶네요!" 생각같아선 무엇이라 욕이라도 하고싶었지만, 그들이 누구겠는가. 기품있는 귀족가의 여식들이었다. 그런 품행이 깎이는 짓은 절대로 할 수 없었기에 마음속으로는 불만이 가득 남아도 어쩔수없이 좋게 말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상당히 굳어있는 안면근육이지만, 딴에는 웃으며 말하느라 상당히 어색한 모습을 만들 었다. 이상한 부조화라고나 할까. 하지만 그렇게나 딴에는 가슴을 찌른다고 한 말이었음에도 카세리아느의 반응은 너무나 싱겁기만 했다. 카세리아느는 전혀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대답할 뿐이었떤 것이 다. "제가 나쁘게 말한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황태자 전하의 마음을 끌 생각도 없을 뿐더러, 그 자체에 관심이 없기에, 얼굴을 가지고 어떻게 할려던 마음도 없었다는 것을 알아주십시오." "뭐라구요?" "그대들이 원하는 대답이 이것이 아니었습니까." "으윽..!!" 차갑고 무표정한 얼굴로 말하는 카세리아느의 모습과 말들이 황태자의 관심을 끌기위해 안달이 난 자신들을 비꼬는 듯이 들리는 셋이었다. 그리고 결국은 참지 못하고 세에르 의 손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높이 쳐올라져있다가 카세리아느의 뺨으로 그대로 내려 오고 있었다. "이런. 여자들이 더 무서운 법이라니까. 하지만 조금 섭섭한걸? 나에게 조금의 관심도 없다는 것이 말이야."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황태자 전하! 지금 세에르양이 하시는 짓은!!" 마치 결과가 어떻게 될것인지 안다는 듯 조금의 걱정도 없어 보이는 편안한 모습인 황 태자는 너무나 냉정하게 재밌는 놀이를 바라보는 듯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의 노인 은 너무 놀라서 동그랗게 뜬 눈동자로 소리치고 있었다. 도대체 지체높은 귀족가의 영애가 뭐하는 짓이란 말인가? 세에르의 질투심과 함께 괜히 모를 수치심이 담겨있는 손은 카세리아느의 뺨을 향해서 무척이나 빠르게 내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적지않은 힘이 담겨있어 보이는 그 손에 맞 는다면 카세리아느는 바닥에 쓰러질 것이 분명했다. 착! "처음 본 사람에게 하는 짓으로는 그다지 할만한 행동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귀족가 의 영애시라면 이런 짓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해드리겠습니다." 분명 카세리아느의 뺨을 내리칠 것이라 생각했던, 세에르의 손은 자신보다 훨씬 가녀리 고 연약해보이는 카세리아느의 손에 의해 너무나 쉽게 막혀버렸다. 놀랄정도로 빠른 반 사신경에 가히 박수라도 쳐줄 만 했다. 그렇게 카세리아느는 자신에게 향해 날라오는 손을 너무 쉽게 잡아 버리며 경멸어린 눈 동자로 차갑게 세에르를 응시하며 말해주는 것또한 잊지 않았다. "으,으으!! 놔주세요!" 자신의 생각없던 행동이 카세리아느에게 막혀버리자, 세에르의 얼굴은 수치심에 붉게 변해버렸다. 그리고는 자신의 손을 카세리아느에게서 빼내며 수치심을 없애려는 듯, 신 경질적은 날카로운 읍성으로 뒤에있는 나머지 소녀드에게 소리쳤다. "쉐르시! 죠에느! 뭐하시는 겁니까? 잊으셨습니까? 마법을 쓰세요!" 제 목: 공녀(貢女) 카세리아느 [13 회] 글쓴이: 썬샤인 2003-01-26 조회/추천: 519 / 6 황태자비 후보 교육 전문 아카데미 - 4 마법이라는 것은 재능이 없는 사람은 절대로 배울 수 없는 과목이었다. 그렇기에 마법 사들은 그렇게 많이 배출해 낼수 없는 것이었고, 7~8클래스의 대마법사는 찾아보기가 아주 희박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세에르에게는 아쉽게도 그 재.능.이라는 것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왠만큼 노 력을 하면 느끼는 마나조차도 느끼지 못하니 당연하 마법은 손을 댈래야 댈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랬기에 세에르는 자신이 직접 마법을 쓰지 못하고, 죠에느와 쉐르시를 부른것이었다. 자신대신 자신의 앞에 보이는 저 마음에 안드는 년을 해치워 달라는 의미를 담고서 말 이다. 어느새 황태자를 때문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화를 둗군 카세리아느를 용서치 못하 고 있는 세에르였다. 그리고 그렇게 날카로운 고음으로 소리치는 세에르를 보면서 정작 놀란것은 쉐르시와 죠에느였다. 분명 그 말은 자신들의 계획속에 있던 것이긴 하지만, 정말로 쓰라니? 자 신이 하는 것이 아니라고 너무 쉽게 말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문도 생겼다. 세에르는 장난삼아 한 말이 아닌, 진심으로 한말이었던 것이다. "세에르양? 무,무슨!" "무엇 그리 망설이시는 건가요?! 어차피 계획에 있던 일이니 놀랄 것도 없지 않습니까! 뭐하시는 거죠? 빨리 하세요!!" 놀라서 반문하는 죠에느를 세에르는 뭘 그리 망설이냐는 듯, 소리쳤다. 짜증난다는 듯, 죠에느와 쉐르시를 바라보는 세에르의 붉은 눈동자가 괴기스럽기까지 했다. 마치 독을 가득 품은 독사를 연상시키는 모습이 아닌가? 쉐르시와 죠에느에게 세에르의 말을 들어야 할 이유는 없었지만, 한가지 걸리는 것은 분명 있었다. '아텔린'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무와느 후작가가 세에르의 뒤에 존재했던 것이다. 후작이 만만히 볼만한 상대가 아니듯, 그 앞에서 쉐르시와 죠에느는 두려운 듯 서로 눈 을 마주쳤지만, 그래보았자 뾰죡한 수는 없었다. 서로 불안한 듯 눈빛을 주고받다가 둘 은 결국 조금씩 주문을 외웠다. "흐..흩어진 불꽃들의 자그마한 조각들이여. 나에게로 와 나의 힘이 되어주길, 파이어 볼!“ 불안한 듯 보이는 그 주문을 외는 목소리가 들려왔고, 카세리아느는 그런 둘을 바라보 며 여전히 차갑게 응시하고 있었다. 자신의 바라앞에서 마법을 왼다고 해서 그렇구나하 며 당해줄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그대들이 그렇게 하면 조용히 당할 것처럼 제가 어리석게 보이셨나요." 시동어까지 외친 쉐르시와 죠에느가 날린 그다지 세보이는 위력을 지닌 것 같지 않은 파이어볼을 카세리아느는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카세리아느의 경멸감어린 차갑기만 한 시선은 세에르를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응시하고 있었다. 세에르는 그런 카세리아느를 바라보면서 약간의 땀을 흘리고 있었다. 분명 이겼다는 승 리감은 느끼고 있었으나, 약간의 죄책감또한 느껴졌다. 카세리아느의 모든것을 얼릴듯 한 목소리가 자신에게 이것밖에 안되냐고 묻고 있는 듯 했다. 아름다운 붉은 빛의 화염구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카세리아느를 향했고, 이제와서는 되돌릴 방법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황태자 전하! 지금도 구경만 하실 것이옵니까!!!!" "화염계 마법? 하아.." 쉐르시와 젠시가 형성시킨 두개의 화염구가 눈에 들어오자, 그제야 황태자의 눈에도 당 황감이 어리기 시작했다. 지나친 놀이. 이것은 분명 자신이 생각했던 방향이 아닌것만 은 분명했다. 황태자는 들어가려는 듯, 몸을 문쪽으로 향했으나 황태자도 느끼고 있긴 했을 것이다. 이미 자신이 들어가보았자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이미 생성된 화염구는 두소녀 의 손을 떠나 빠른 속도로 카세리아느에게 가고 있지 않은가. 강한 위력의 화염구가 아니라 하여도, 그것이 사람을 상처입히기에는 조금의 모자람도 없었다. 자칫하면 재기불능이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이,이런!!" 황태자의 입에서는 다급하게 작은 신음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리고는 차마 그곳으로 들 어갈 생각도 하지 못한채 크게 떠진 눈동자로 창안을 응시하고 있었다. 카세리아느를, 자신이 처음으로 독점욕을 느꼈던 여자를 이렇게 놓쳐야 한단 말인가? 처음부터 자신은 그 장면을 웃으며 바라보는 것이 아니었다고. 그제야 후회하기 시작하는 황태자였다. 팍! 하지만 경악어린 시선이 교차하는 가운데 무언가 부딪히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 고 카세리아느를 향하던 화염구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마치 카세리아느 주위에 한겹 의 막이라도 형성되어 있는 듯, 옷깃하나 스치지 못한채 말이다. "그대들이 하고싶은 일을 하지 못하게 만들어서 미안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떤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든, 카세리아느는 아무일도 없다는 듯, 무 덤덤한 모습으로 또박또박 말했다. "그렇지만 그런 얕은 위력의 마법은 저에게 통하지 않습니다." 카세리아느의 담담한 말을 들으며, 쉐르시와 죠에느는 살며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부터 내키지는 않았던 일이기에 오히려 이렇게 된것이 잘되었다고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세에르는 그런것이 아닐것이 분명하기에 둘은 조심히 세에르쪽을 바라보았다. "어,어째서??” 제일 경악스런 눈길로 카세리아느를 바라보면서 세에르는 힘겹에 입을 열었다. 말도 안 된다. 이런 일이, 어떻게 생길 수 있단 말인가? 놀라서 크게 뜨여진 눈동자로 자신에게 말하는 세에르를 바라보며 카세리아느는 경멸어린 눈길과 얼려버릴 듯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는 이유는 알수없지만 실프들의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실프들이 그렇게 강한것은 아니겠지만, 그렇게 얕은 마법은 저를 다치게 할 수 없다는 것만 알려드리겠습니다. 제 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실프들은 나의 목숨의 위협이 되는 것으로 부터 방어하니까요." 카세리아느가 차갑게 말하며 살며시 떨구듯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무엇인가를 부르는 듯, 무엇인가를 느끼듯이 말이다. 그리고 얼마 있어 조그마한 미풍이 어디선가 불어왔다. 아주 작은 바람들은 하나의 존재로 소용돌이 치듯 뭉쳐졌고, 조금있어 그것은 형체로 눈앞에 드러났다. 푸르스름하면서도 투명한 몸을 지니고 있는 정령들이 카세리아느의 주위를 맴돌고 있었 다. 카세리아느의 주위를 맴돌고 있는 정령들때문에 멈추지 않는 바람이 클래스룸안을 떠돌고 있었다. "아마도 절 다치게 하시려면 5클래스 이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말도안돼!" 날카롭게 던지는 카세리아느의 말에 세에르의 눈동자는 더욱 커졌다. 생각하지 못했던 결과가 아니겠는가. 카세리아느의 옆을 떠도는 작은 정령들의 존재들을 거부하듯 소녀 들은 눈동자를 떴다, 감았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정령사란 말인가요?" 자연과의 친화력이 없이는 정령들을 부릴 수 없다고 배웠다. 정령들을 부릴 수 있다는 것은 곧 자연과의 친화력이 있다는 것을 뜻했고, 그것은 곧 정령사임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훗, 하하하!” 놀란 눈동자로 계속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황태자의 입에서 작은 웃음이 터져나왔다. 황태자는 카세리아느에게서 시선을 거두고서 벽에 등을 기대며 실컷 웃었다. 안도감.남 에게는 조금의 관심도 없던 자신에게 안도감이라는 것을 가지게 만든 것이다. "정말 날 놀라게 만들어." 황태자의 웃음이 어느새 그치고서, 약간 깔려진 눈동자에는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자신의 마음속의 무언가를 깨뜨리고 있는 것이다. 어디까지 자신을 놀라게 해 야 만족하는 것일까, 저여자는. "저는 정령사따위가 아닙니다. 다만 실프들이 저에게 모여드는 것일 뿐입니다." "그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지금?” 아직도 인정하지 못한다는 듯한 눈빛의 세에르가 그렇게 외쳤다. 너무나 담담한 모습 에 오히려 더 화가 났다. 그리고 쉐르시와 죠에느는 자신들의 속을 꿰뚫는 듯한 느낌에 그저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자신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아름다움까지는 질투로 넘겨 버렸다. 하지만 저 차가움어 린 도도함까지는 질투로 어떻게 될수가 없었다. 마치 얆은 얼음위에 서있는 것같은 느 낌을 가지게 만드는 데, 어떻게 그것을 질투로 몰아세우며 자신들이 어떻게 할 수 있겠 는가. 말이 되든, 되지 않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저에게 해서는 안되는 짓을 한 그대들의 행동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 분명 어떻게 할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보았자 약한 공녀가 아닌가? 곱게만 자 랐을 이국의 공녀따위가 자신들에게 반항할수 있으리라 생각 한 적은 없었다. 그리고 무력하게 자신들에게 무릎 꿇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외의 결과가 나타났고, 그것은 생각을 뒤집게 만들었을 뿐이 아니라, 자신 들을 궁지로 내몰았다. 마치 절벽을 바로 뒤에 두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 쉐르시와 죠에느였다. "그래서 어쩔수 있다는 건가요? 이 사실을 그대로 고자질해 버리겠다고 말하고 싶은 건 가요?" 한순간 압도되어 떨고있떤 쉐르시와 죠에느에 반해 세에르는 당당하기만 했다. 그래,그 래보았자 어쩔것인가? 자신은 이곳의 후작가의 영애이고 저 카세리아느는 약한나라의 고작 공녀로 보내진 아이에 불과할 뿐인 것이다. 붉은 입꼬리를 한껏 끌어올리며 해볼려면 해보라는 듯 말하는 세에르를 바라보며 카세 리아느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물론 하나하나 낱낱히 말해 일러바칠만큼 어리석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것하나는 물 어보아도 괜찮겠습니까?" "그러도록 하시죠?" "그대들은 황태자비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긴 하십니까." 카세리아느가 묻고 있는 말에 세에르와 쉐르시, 죠에느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당연한 물음을 왜 묻느냐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것은 자신들이 이곳, 뉴럴에 들어온 궁극적인 목표였으며, 자신들이 꿈이었다. 그것이 없다고 하는 것이 말이 안되는 것이었다. 카세리아느의 그 차가운 물음에 셋은 서로 앞다투어 대답했다. 자신들이 이곳에 온 이 유를 없는 것으로 부정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한낱 공녀따위가 자신들에게 저런 물음 을 한다는 것이 더 기분나쁘기만 했다. "당연한 것 아닌가요?" "저희는 당신과 달리 황태자 전하를 너무 사랑합니다. 그런 질문은 사양이군요." "황태자 전하는 완벽하신 분이십니다. 그런 분의 황태자비를 노리지 않고 들어온 사람 이 있다고 생각이라고 하는 건가요? 어리석다고에는 말못하겠습니다. 그런 질문은 다른 곳에서나 하시죠?" 그들이 하는 대답을 들으며 카세리아느의 눈동자는 실망을 가득 담고 있었다. 그리고는 똑바로 쳐다보며 또박또박 적당한 소리로 대답해주었다. "이것 하나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대들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한은, 그대들에게서 황태자비라는 자리는 멀어진다는 것을 말입니다." "무,무슨?" 카세리아느의 말에 죠에느가 살며시 인상을 찡그리며 반문했고, 카세리아느는 더욱 분 명하게 차가운 시선만을 보내주었다. 황태자비라는 자리는. 나중에 황후라는 자리에 오 르게 될 그 자리는 그렇게 가벼운 생각을 가지고 있는 자가 오를 자리가 아니다. "그대들은 절대로 황태자비가 될 수 없습니다." ================================================================================ 으음..ㅜ_ㅜ.. 엄마가..=_=..공부하라며..자꾸 나오래요..ㅜ_ㅜ.. 어쨌든..오늘은 여기까지 올리고..무슨 일이 있어도.. 내일까지는 전부 올려 넣도록 하겠습니다. 대체 이게 먼 고생이랍니까..ㅜ_ㅜ.. 이래서 고물컴은 바꿔야 한다는 거겠죠..ㅜ_ㅜ.. 정말이지..ㅜ_ㅜ..파일을 멜로 보내주신 윤철님께는 뭐라 감사하단 말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요..ㅜ_ㅜ..하지만..=_=..이소동으로.. 선호수도 하락에다..=_=..추천도 전부 물건너가버렸어요..ㅠ_ㅜ.. ...언제나 행복하시길... 제 목: 공녀(貢女) 카세리아느 [14 회] 글쓴이: 썬샤인 2003-01-26 조회/추천: 532 / 5 황태자비 후보 교육 전문 아카데미 - 5 "그대들은 절대 황태자비가 될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저 무시하며 넘기기에는 너무나 당당하고 강한 눈빛을 보이는 카세리아느였기에, 괜 한 반발도 못하고 약간의 시간동안 그저 주눅든채 있었던 소녀들이었다. 하지만 어느새 시간이 흐르자, 그들의 그 주눅이 든 마음은 사라지고 없었다. 지금 카세리아느가 하는 말은 자신들의 자존심을 건든 격일 뿐이었던 것이다. "뭐, 뭐죠? 지금 저희들을 무시하는.." "지금 저희들이 약해보여서 하는 말이시라면, 지금 당신의 주제를 알라고 해주고 싶습 니다. 알고 계십니까? 당신은 우리 아버지한테 말한다면 이대로 사라질수도 있다는 사 실을 말입니다." 쉐르시가 화난다는 듯이 말하는 말을 끊고서 세에르는 표독스런 모습으로 카세리아느를 비웃듯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쥐잡아 먹은 듯이 쌔빨간 입술은 이상하게도 보기 흉하 게만 보였다. 질투에 눈이 먼 한 아낙의 모습으로, 세에르는 카세리아느의 강한 눈빛을 되지도 않는 배짱으로 맞받아 치고 있었다. 우습게도 보였을 것이다. 고작 공녀따위가 자신에게 이 렇게 맞받아 친다는 것이 말이다. 권력을 이용해서라도 세에르는 카세리아느를 자신의 발 아래에 두고 싶은 마음인 모양 이었다. 자신보다 잘난 사람의 모습따위는 못본다는 괜한 이기심. 그런 세에르를 바라 보면서 카세리아느는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그대들이 약하게 보여서 한 말이 아니라는 사실은 앞뒤문맥을 통해서 아실것이라 생각 합니다. 그리고 제가 이렇게 확신하는 이유는 절대 그대들은 황태자가 원하는 타입이 아니기에 하는 말입니다." "무슨 말인지 물어보아도 되겠나요?" "적어도 황태자는 절대로 당신들 같은 타입을 황태자비로 원하지 않습니다. 아니 그럴 생각도 없겠죠. 제가 느꼈던 황태자는 그렇습니다.“ 카세리아느가 하는 말에 쉐르시가 살짝 되물어 오자, 카세리아느는 살짝 황태자를 떠올 리며 단호하게 대답했다. 자신이 느꼈던 황태자가 진실이라면, 적어도 황태자는 이러한 여인들을 황태자비로 맞이할 생각따위는 없었을 것이다. 자신또한 그러할진데, 그 소름끼칠정도로 마음속이 차가운 황태자가 무엇때문에 이런 영애들을 황태자비로 택할 것이란 말인가? "하아? 이제보니 하루 동안 황태자전하를 바라보고서 안다고 말하시는 거였군요. 한마 디 말해두겠는데, 웃기지 말아주세요. 저희가 황태자 전하를 만나오기도 더 만나왔고 알아오기도 더 오랜 시간을 알아 왔다는 것을 말입니다." 자신이 있다고 말하고 있음에도 약간 경직되어 있는 죠에느의 입꼬리는 과다하다 할만 큼 올라가 있었다. 그리고 카세리아느에게 헛소리 하지 말라는 듯이 소리치고 있었다. "그래요. 황태자 전하께서는 나도 좋아하셨단 말이에요. 어제만 하여도 알 수 있으셨을 텐데요?” 세에르는 그럴리 없다는 듯,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것은 쉐르시또한 마찬가지 였던 모양인듯 서로 은연중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자신들이 카세리아느보다 더 오 랜 시간을 황태자와 보내왔는데 그럴리가 없었다. 믿지 않을 것이다. 카세리아느가 하는 허튼 말따위에 속을 자신들이 아니라고 마음속으 로 그렇게 계속 내뱉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보면서 카세리아느는 여전히 차가운 모습으로, 자신이 생각한 것을 가차 없이 내뱉었다. 상처를 입을 지도 모를 정도로 잔인할 수도 있을 말이지만, 나중에 올 충격보다는 더 작은 것일 테니까. 나중에 황태자에게 처절하게 버림받을 때는 더 비참해 지지 않겠는가. "겉으로 보이는 것만이 진실이라고 믿지 마십시오. 겉으로 보이는 것만이 진실은 아닙 니다. 겉은 얼마든지 마음만 먹으면 알아 볼수 없을 만큼 교묘하게 바꿀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대들이 본것은 아마 황태자의 내면이 아닌 외면이었을 겁니다." "말도 안되는 소리!" 카세리아느의 말에 죠에느는 날카롭게 소리쳤다. 자신들이 보아온 것을 거짓이라고 말하는 카세리아느의 말을 인정하기 싫었다. "아직도 모르십니까. 그렇게 오랜 시간 황태자의 곁에 있었으면서 알지 못했다고 말하 는 그대들을 더 알지 못하겠군요. 정말 알지 못하시겠습니까. 겉과 속이 다른 사람, 그 가 바로 황태자라는 것을 말입니다." 카세리아느의 그 말에 더 놀란 사람은 소녀들이 아닌 황태자였다. 황태자는 카세리아느 의 그 말에 정곡을 찔린 듯, 눈이 커지다가 곧 입가를 올리며 허무하게 웃었다. 마음에 든다. 저런 날카로운 마저도 매력적이었다. "하하하하!! 역시나, 그대는 내가 원하는 사람이야." 그렇게 나머지 소녀들을 비웃는 듯한 황태자의 웃음이 들릴리가 없었다. 화가 나서 눈 동자가 크게 뜨고서 카세리아느를 죽일듯이 바라보는 소녀들에게는 말이다. 하지만 어째서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왠지 자신들도 모르게 은연중에 그 말에 공감이 가는 이유가! 자신들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이유를! "다,당신 보다는 우리들이 더 잘알고 있어요. 더욱 사랑도 받아왔구요. 그러니 되지도 않는 소리로 저희들을 희롱하지 마세요. 그 말에 신경쓸 우리가 아닙니다." 덜컥 가슴이 내려앉는 것 같기에 소녀들은 더욱 강하게 부정했다. 자신들의 마음속의 불안감이 증대되지 않기 위해서는 이 방법밖에는 없었다. 차라리 카세리아느를 건드리 지 않는 것이 이 소녀들에게는 더 다행일지도 몰랐다. 그런 소녀들을 바라보며, 카세리아느는 그저 고개를 내저을 뿐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냉정하게 다시 말해주었다. "그래서 그대들이 절대 황태자비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한순간의 속삭임만으로 만 족하며, 몸으로 밀고 나라려 하면서 모든것을 의지하려고만 하는 그대들은 말입니다. 강해지려는 마음이 없는 그대들은 절대로 황태자비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당신의 그 되도 않는 말에 신경이나 쓰,쓸것 같나요!" 아니라는 듯, 강하게 반박하는 쉐르시였지만 계속해서 찔려오는 가슴만은 어떻게 할수 가 없었다. 왠지 모르게 황태자에게서 느꼈던 감정들을 카세리아느는 강하게 찔러오고 있었던 것이다. 아닐것이라고, 잘못 느낀 것일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자꾸만 그것을 카세리아느가 사실이라며 말해오고 있는 것이다. "마음대로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이만 비켜 주시겠습니까. 더이상 저도 할말따위는 없 습니다." 말도 통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계속 이해하라고 말하는 것이 어리석은 짓일 뿐이었다. 카세리아느는 질린듯한 눈동자를 옆으로 옮기며, 자신의 자리에 조용히 앉았다. 어차피 자신은 이런 말을 해줘야 할 이유도 없었다. 저 소녀들의 미래가 어떻게 되든,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일 뿐이었다. "하? 우리도 할말 없습니다. 정말 재수가 없군요." "잘난척도 작작 하라고 말해주고 싶군요." "비켜달라고 하지 않았더라도, 갈 생각이었습니다." 흥분감 어린 세명의 소녀의 말을 들으며 황태자는 피식 미소지었다. "황태자 전하, 그래도 다행입니다. 아무런 사고가 없어서요. 참! 보러 가신다더니 안들 어 가십니까?“ 피식 웃는 황태자의 모습을 바라보며, 노인이 물어왔고 황태자는 그저 미소지으며 발길 을 옮길 뿐이었다.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었는 데, 자신이 더이상 이곳에 머물 이유따 위는 없었다. "훗, 정말 날 너무나 잘 꿰뚫어 보는 군. 그리고 강함가지 갖추었어. 내 선택을 후회하 지는 않을 까하여 혹시나 와봤는데, 후회하지 않게 만들어 줘서 고맙군. 쿠쿡." "황태자 전하?" 황태자의 말에 이해가 안간다는 듯이 노인은 인상을 찡그리며 황태자에게 반문했다. 무 슨소린지 자신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던 까닭에. "아, 그리고 말이야. 저 세에르라는 후작 영애와 그 외의 영애들을 퇴학시키라고 말해 둬. 그 이유는 자네도 잘 알겠지?" 하지만 황태자는 그런 노인에게 뭔가 떠올랐다는 듯, 다른 말로 회피하고서 빠르게 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런 황태자의 뒤로 눈부신 햇살이 쫒고 있었다. ================================================================================ =_=..다시..포기하실 거면서..=_=..왜 공부하라며 몰아세우셨나 몰라요; 그럼, 다시 열심히!!! 제 목: 공녀(貢女) 카세리아느 [15 회] 글쓴이: 썬샤인 2003-01-26 조회/추천: 555 / 6 우연이 아닌 필연 - 1 우연(偶然)이 아닌 필연(必然)... - 1 바람은 눈에는 보이지 않기에 그것이 어디에 존재하는 지 알 수 없지만, 눈에만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듯, 바람은 모든이들의 곁에 스치며 지나가고 존재한다. 그리고 지 금 그러한 바람은 흑요석과도 같은 빛깔의 매끄러운 검은 실같은 흑발을 가슴에 품어 아름답게 흩날리게 만들고 있었다. 푸른 풍경이 지겹다는 듯, 이색적으로 흩날리고 있는 긴 검은 실들은 부서지는 어둠의 조각처럼 불투명한 빛을 머금은 듯도 했다. 그리고 그 검은 실들의 틈사이로 아스라이 보이는 짙붉은 장미처럼, 아니 흐르는 피보다 붉은 입술이 시선을 잡아 끌었다. 얇은 듯 보이면서도, 살짝 도톰함을 지닌 붉은 그 입술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괜한 소유욕마저도 가지게 만들었다. 또한 조금의 다른 색깔은 허용치않은 흑요석과 같은 긴 흑발과 비교되는 창백하리만치 새하얀 피부는 보호본능까지도 자극했다. 동그라니 말려올라간 긴 속눈썹아래 자리잡은, 끝없는 깊이를 지닌 푸른 호수와 같은 푸른 눈동자가 빠져나오면 헤어나오지 못할 듯 보이기도 했다. 천상의 미 그것이 이런것이다. 그렇게 느낄만큼 단아한 자태로 바람을 머금은 푸른 잔디에 앉아 있는 카세리아느는 사 람들의 시선을 한번씩은 빼앗아, 황홀함을 느끼게 만들고 있었다. 붉은 장미의 화려함, 노란 장미의 편안함, 하얀 장미의 순결함이 어우러진 곳에서, 그 들의 유혹에 취한듯 감상하던 카세리아느는 갑자기 한숨 내쉬듯 조용히 중얼거렸다. "황태자.." 차비라는 이유아래 공녀(貢女)로 보내져 온지도 어느 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모든것이 시간의 거대한 흐름앞에 무릎을 꿇고 잊혀져 가듯, 카세리아느 또한 그 흐름을 거부할 생각따위는 없었다. 처음부터 잊기로 마음먹었고 왔었던 만큼 더욱더 마음을 추스리기고 스스로를 다독거리 기에는 조금의 모자람도 없던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 시간의 흐름조차 카세리아느의 입 에서 나오는 한숨어린 중얼거림의 원인은 없애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뉴럴에서 수업이 끝났음에도 카세리아느의 발걸음을 처소가 아닌 지상의 낙원이라고도 불리우는 가화궁으로 머물게 만들었던 이유. 관상용으로 키워진 꽃들을 바라보며, 왠지 모르게 빠져들게 만들었던 이유. 그 이유는 원하지 않던 뉴럴 아카데미의 입학때문은 아니었다. 시간이 흐른 지금에 와 서 그것이 무슨 이유가 될 수 있겠는가. 카세리아느는 이미 황태자에게 놀이감이 되어 준다고 했으니, 그것에 대한 원망따위는 없었다. 그렇다고 하여, 자신에게 다른 사람들이 나쁘게 대한다고 하는 것도 아니었다. 지나칠 정도로 잘해주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던 것이다. 지나칠 정도의 관심이 오히려 부담스 러울 정도일 뿐이다. 카세리아느는 그 이유의 원인을 생각하며 살짝 미간을 좁혔고, 눈또한 살작 가늘게 내 리깔았다. 지금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기에, 카세리아느의 모습을 볼 수 없지만, 분명 다른 사람들이 보았다면 지금이라도 달려가 그녀의 미간을 원래대로 해주고 싶어 할 것이다. 그리고 아름다운 눈동자도 원래대로 하여, 한순간만이라도 자신들을 응시해 달라고 말 해주고 싶을 것이다. 자신이 직접 자신의 미간을 좁히고 눈동자를 내리 깔아 버린다 하여도. 하지만 아쉽게도 그러한 사람들은 주위에 없었고, 매혹적인 향기를 뿌려대는 장미들도, 위로하려는 듯 조심스럽게 불어오는 바람도, 불타 사라질듯한 노을마저도 카세리아느의 미간을 펴게 하지는 못했다. . . . "뉴럴에 입학하였으니, 뉴럴의 기숙사로 들어가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황태자 전하." 뉴럴 아카데미는 황궁내에 있기에, 매일 같이 뉴럴에 가야하는 귀족가의 영애들은 물론 이거니와 황궁내에서도 그다지 좋지만은 않았다. 어찌 그 출입이 삼엄한 황궁을 귀족가 의 영애들을 이유로 매일 문을 열어 두겠는가. 그렇기에 뉴럴 아카데미에서는 기숙사도 포함하고 있었고 카세리아느도 뉴럴에 다니는 이상 그 기숙사에서 생활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기에, 황태자에게 떠난다 는 인사를 하기 위하여 황태자를 찾았다. "이제 떠나야 할것 같기에, 이렇게 인사드리기 위하여 찾아왔습니다." 마지막이라고 고하듯 카세리아느는 황태자를 바라보며 말햇지만, 황태자는 그말을 들으 며 비웃기라도 하듯, 웃으며 입을 열었다. "고작 그 말을 하려 온건가?" "떠나야 하는데 황태자 전하께 인사를 드리지 않는 다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 라고 알고 있습니다." 카세리아느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지만 황태자의 반응은 여전히 우습다는 듯, 웃기다 는 표정 뿐이었다. "후훗, 그런데 말이야. 그대가 그곳으로 갈 필요는 없어. 나는 그대가 그곳에 머물 필 요따위는 없다고 생각하거든. 그대는 그저 이곳 황태자궁에서 머물면 되는 거야." "하지만 뉴럴에서는 기숙사제로 알고 있습니다." "내가 가지 않아도 된다면 가지 않아도 되는 거다." 이해 할 수 없을 정도의 이기적인 발언. 황태자는 차갑고 냉정한 눈빛으로 입꼬리는 살짝 올린채 카세리아느의 눈동자를 응시하 며 말했고, 카세리아느는 그런 황태자를 바라보며 그저 고개를 숙여 버렸다. "..." 놓아 줄수없다는 의지가 가득 보이는 것을 느끼면서 더이상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 어차피 자신이 더이상 무엇이라 반박한다 하여도, 황태자는 자신의 지위와 그 특유의 성격으로 보아할 때 들어줄리 만무했다. . . . 황태자의 카세리아느에 대한 이기적인 소유욕과 독점욕은 카세리아느가 자신으로 부터 떨어지는 것을 용납하지 못했다. 숨막힐 듯한 황태자의 소유욕과 독점욕을 카세리아느 는 도저히 이해 할 수가 없었다. 한낱 놀이감에게 너무 과한 것이 아닌가. 황태자궁에서 머물러야 하는 것까지도 좋았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또 다른 것이었다. 황태자는 일주일에 네번 정도는 자신에게로 들렸고, 오늘은 그러한 황태자의 거동을 대 충 짐작하건데 올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카세리아느가 처소로 돌아가지 않고서, 이곳에 머물러 있는 이유라면 이 유였다. 자신을 찾아오는 이유는 알 수 없있지만, 황태자의 잔인할 정도로 시린 눈동자를 볼 때 마다, 그 알 수 없는 눈동자를 볼때마다 카세리아느의 기분이 좋을리는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소름끼칠 정도로 타인을 무관심하게 바라보는 눈동자로, 자신은 또 무슨 생각을 하고서 바라보고 있는 지 거의 감도 잡히지 않기에 더 답답했다. 그랬기에 황태자를 피하기도 하고, 기분전환도 할겸 나온것이었다. 어쩌면 자신과 비슷 할지도 모를 꽃들을 바라보며 답답한 마음도 지워 볼겸, 겸사겸사 말이다. 하지만 알아 야 했다. 황태자의 그 자신에 대한 이기적인 소유욕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말이다. "이제쯤이면 왔어도 돌아갈 시간이겠지." 바람에 흔들리는 꽃잎의 변화를 바라보면서, 마음이 어느 정도 진정되고, 시간도 흘렀 다고 느끼자 카세리아느는 몸을 일으켜 발걸음을 옮기려고 했었다. 분명 그러했었지만 자신에게 빠르게 다가오는 물체때문에 그 걸음은 한순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 돌아가려고 하는 카세리아느의 발길을 붙잡은 것은 다름이 아닌, 무섭도록 카세리아느 를 향해서 돌진해오는 무엇때문이었다. 그랬기에 카세리아느는 그 무.엇.이 가져온 당 황감고 황담함이 어린 눈동자로 응시하며 멍하니 서있었다. "슈피르, 왜그러는 거야! 뭠춰!!" 날카롭게 소리치며, 달려오는 소녀는 그 무.엇.은 아니었다. 그 소녀는 자신에게 달려 오는 것은 분명했으나, 그것은 끌려오는 것과 진배가 없었기에. 게다가 가녀리게 보이 는 저 소녀가 카세리아느에게 다가온다고 해서, 카세리아느가 당황할 이유도 없었다. 어깨보다 조금 긴 푸른색 머리카락을 느슨히 하얀색 끈으로 묶어 단정히 뒤로 넘겼고, 너무나 하얗기만 해서 핏줄이 보일정도로 창백한 손으로는 붉은 색 끈을 힘주어서 꽉 잡고 있는 소녀였다. 그리고 그 소녀는 그 끈에 묶여있는 것에 의해 힘겹게 끌려오고 있었다. "컹!컹컹!!" 카세리아느의 발길을 멈추게 만든 것은 다름아닌, 개였다. 귀여운 강아지라는 느낌보다 는 훌륭하고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는 그 개는 다른 개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리기 위 함이었는 지, 날카롭게 짖으며 카세리아느에게 달려왔다. 인간들에게 왕이있고, 드래곤에게 드래곤 로드가 있듯 그 개는 단연 다른 개들보다 우 위에 있다고 말하기에 조금의 모자람도 없었다. 보기 힘든 새벽녘의 이슬을 머금은 은 빛의 털들이 햇빛을 받으며 더욱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더욱이 그 빛은 지금은 불타오르는 정열을 머금어, 슈피르라는 개를 더욱 돋보이게 만 들었다. 은빛이 머금고 있는 아련한 붉음과 그 색을 지닌 개의 당당한 모습은 다른 사 람들로 하여금 탄사를 자아내게 만들었다. 카세리아느의 무릎보다 더 커보이는 그 개는, 분명 혈통이 좋은 개인듯 싶었으나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무서운 속도로 카세리아느에게 다가가고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갑자기 그렇게 뛰어가면 어쩌자는 거야, 슈피르!! " 주인의 다급하고 걱정스런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는 모양인지 괘씸하게도 계속 카세리아 느를 향해 달려오던 슈피르는 카세리아느의 앞에 당도하자 곧 자세를 잡고, 멈추어 섰 다. "컹,컹~" 딴에는 애교를 떨듯이 짖으며, 카세리아느에게 자신의 몸을 가져가서는 카세리아느를 바라보거서 쓰다듬어 달라는 행동을 하고 있었다. 최대한 사랑스런 모습을 취하면서 그렇게 관심을 나태내고 있는 슈피르였다. 그런 갑작스럽기만 했던 슈피르의 행동에 놀란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던, 카세리 아느는 곧 눈을 살짝 내리감았다. 너무 안심되었기에 긴장이 풀려 버린 모양인지 다리 를 지탱해주던 힘이 사라져 풀썩 주저앉았다. "하아.. " "혹시, 거기 누구 계신건가요?" 무섭도록 빠르게 달리던 슈피르가 갑자기 멈춰서고 나서, 몸을 추스리던 푸른 머리카락 의 소녀는 곧 이어 들려온 카세리아느의 나지막한 한숨소리에 살짝 미간을 좁히며 조심 스러운 목소리로 물어왔다. 어떻게 본다면 상당히 이상한 질문. 당신은 누구냐.라는 질문이었다면 그러려니 하고 넘길 수 있겠지만, 슈피르의 앞에 주 저앉아 있는 카세리아느를 보았다면 나올 수 없는 질문이었다. 그랬기에 카세리아느는 살짝 고개를 돌려, 의문섞인 눈동자로 소녀를 바라볼 뿐, 아무 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사람..이신거죠?" 카세리아느에게서 아무런 대답이 없자 가뜩이나 소심하던 목소리에 자신감마저 사라지 고, 더욱 인상을 찌푸리며 카세리아느에게 다시 물었다. 괜히 모를 불안감에 슈피르를 잡고 있던 소녀의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이는 자신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더욱 잘알고 있다. 자신은 자신을 지킬 수 있기에는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을 말이다. 그랬기에 소녀는 무의식중에 슈피르를 잡고 있는 끈에 더욱 힘을 주었을 것이다. 계속해서 소녀를 바라보던 카세리아느는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소녀가 자신에게 던진 말이 안되는 이상한 질문들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말이다. 카세리아느와 같은 푸른색 눈동자는 카세리아느를 응시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다른 쪽을 바라보며 불안감 어린 말을 뱉어내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사람과 대화를 하듯, 이상한 느낌을 주었던 것은 소녀가 앞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계속되는 불안감에 슈피르쪽으로 걸음을 옮기고서 슈피르를 쓰다듬는 소녀를 바라보면 서 카세리아느는 눈동자를 내리깔며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늘 그렇듯 차갑기만 한 미성임에도, 소녀의 얼굴에는 안도감이 어리기 시작했다. 여자 라는 것과 자신을 해칠 의사가 없어보인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기만 할 뿐이었다. 불안감어린 모습이 전부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괜찮을 것이란 안도감이 생긴 모양인지, 소녀는 미소를 지으며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서 입을 열었다. "후우, 다행이에요. 그런데 슈피르가 무슨 실례라도 하지 않았나요? " "시간이 조금 지체된 것일 뿐입니다." 분명 자신이 장님임을 눈치챘을 텐데도, 조금의 동정심도 어리지 않은 차가운 목소리에 소녀는 살며시 웃으면서 카세리아느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듯 붙어있는 슈피르를 살 짝 어루만졌다. 부드러운 털의 촉감을 느끼며, 슈피르의 얼굴쪽으로 손을 옮기면서, 소녀는 다시 입을 열어 카세리아느쪽을 향해서 말했다. "슈피르가 원래 이러지 않는 데, 이렇게 당신을 향해서 뛰어간걸 보니 어지간히 당신이 마음에 들었나 봐요. 그리고 목소리로 들어도 알수있듯 아름다운 사람일테죠." "컹컹컹!!" 소녀의 말이 옳다는 듯, 크게 짖어대는 슈피르를 보면서, 카세리아느는 살짝 이유없이 미간을 좁혔다. 그러다 다시 슈피르의 털에 녹아있는 노을을 느끼며, 슈피르를 떼어내 며 자리에서 일어나며 입을 열었다. "그렇지도 않습니다. 그럼 이만 가봐야 겠습니다. " 자신에게 다시 붙어 올려는 슈피르를 무시하면서, 카세리아느는 자신이 가야 할 쪽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그런 발걸음은 다시 한번 멈칫할 수 밖에 없었다. "자.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가녀릴 정도로 날카로운 소녀의 목소리가 카세리아느의 발걸음을 멈추게 만든 이유였 다. 소녀는 카세리아느의 기척이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고서 외치며, 어느새 자신또 한 일어서 있었다. "이,이름만이라도 가르쳐 주실수 없으신가요? 친구가 되고 싶어요. " 친구라는 이질적인 단어에 카세리아느는 다시 미간을 좁혔으나, 다시 고개를 돌리고 그 소녀의 눈동자를 보았을 때는 좁혔던 미간을 다시 폈다. 앞을 바라보지 못하는 소녀의 눈동자가 애처롭게 카세리아느에게 매달리고 있었다. 한치의 앞도 보이지 않아, 늘 앞이 낭떠러지와 같은 느낌을 가지게 만드는 눈때문에 그 렇게 하나의 틀을 만들어 버렸던 소녀였을 것이다. 그 정해진 틀안에서만 살아가야 한다고 강요당하며, 친구라는 것을 만들지 못했을 소녀 의 눈동자가 너무나 가슴속을 흔들어 왔다. 계절이 바뀌어도 생명이 다시 살아 숨쉬는 봄이와도 소녀의 눈동자는 그 봄을 느끼기 만 할뿐, 바라보지는 못하며, 두려우면서도 오직 자신을 감싸주는 것은 어둠뿐이라고, 그렇게 쇠뇌시키며 살았어야 할 생활이 소녀는 지겨웠을지도 몰랐다. 소외당하고 보호받기만 해야 했던 소녀를, 세상은 너무나 나약하게만 만들어 버렸다. "죄,죄송해요. 저에게는 슈피르가 있는데 주제넘은 생각을 잠시동안 했었어요. 어쩌면 슈피르가 저에게 친구를 만들어 주기 위해서 절 이렇게 끌고 왔다고 생각했었나봐요. 갈길을 방해해서 정말 죄송해요. " 멈칫 카세리아느가 다른 생각을 하는 사이에 소녀는 어느새 채념한 듯 쓸쓸한 빛을 가 득 눈동자에 담으며 고개를 떨구었다. 잠시동안 꿈을 꾼것이라 생각하자. 잠시동안 행복을 느꼈었노라고 그렇게 생각하자. "컹, 커엉." 주인의 쓸쓸한 심정을 알았는지, 슈피르는 카세리아느에게 가있던 몸을 틀어 소녀에게 다가가 살며시 소녀에게 몸을 부비적 거리며 위로하고 있었다. 그런 슈피르를 소녀는 다시 몸을 숙여 끌어 안으며 쓰다듬었고, 카세리아느는 움직임을 돌려서 소녀에게 다가가 입을 열었다. "카세리아느, 제이름은 카세리아느입니다. 그대의 이름도 가르쳐 줄수 있습니까." 쓸쓸하게 슈피르에게 눈동자를 돌리던 소녀는, 갑자기 느껴지는 인척과 함께 들려오는 미성에 고개를 돌렸다. "치,친구가 되어주시는 건가요?" 커져있는 눈동자에 놀라움이 어려있었고, 카세리아느는 그런 소녀에게 실망을 안겨 줄 마음따위는 조금도 없었다. 그랬을 거라면, 차라리 차갑게 뒤돌아 걸어가고서 말또한 건네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이렇게 말을 걸지는 않았습니다. 이름을 가르쳐 주셨으면 합니 다.“ 카세리아느의 그 말이 다시한번 자신이 들었던 것이 환청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주자 소녀의 눈에서는 기쁨이 잔뜩 배어 흘러나왔다. 핏줄까지 보이는 창백함이 가득한 손을 얼굴에 대고서 소녀는 몸을 떨며 울먹이면서 입을 열었다. "저,저는 이리스에요. 저,정말 기뻐요. 흑.." 애처롭게 느껴질정도로 심하게 어깨를 떨어대는 이리스를 보면서 카세리아느는 입을 굳 혔지만, 어느 샌가 카세리아느의 손은 이리스의 등을 토닥이고 있었다. 차갑기만 한 카세리아느에게서 이 행동이 나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겠지만, 정작 본인인 카세리아느는 알지 못했다. 친구, 그 사치스럽기만 한 이름의 상대를 자신 이 가졌다는 것 또한 말이다. 슈피르는 그런 카세리아느와 이리스의 중간에 다가가 자신의 부드럽기만 한 은빛의 털 을 자꾸만 부비적 거리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산과 산 사이에서 손톱만큼의 모습만을 보이는 태양은 이제 얼마남지 않은 시간에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듯 더욱 붉게 주위를 물들여 버렸다. 그것은 뜨겁다는 느 낌보다는 따스함에 더욱 가까워 보였다. "이리스." 카세리아느가 살며시 조심스럽게 입을 열자, 이리스는 그제야 지금의 시간이 어느 정도 나지났는 지 얼추 짐작할 수 있었다. 자신이 이 곳으로 온것은 거의 오후 늦은 시각이 었으니 지금은 모두 기숙사로 돌아갈 쯤인 것이다. 이리스는 소매로 살짝 눈물을 훔치고서, 카세리아느의 손에다가 자신의 손을 얹으며, 환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카세리아느라고 불러도 되는 거겠죠? 카세리아느. 정말 미안해요. 가야 한다며 떠나려 던 카세리아느를 붙잡아서 이렇게 시간을 지체하게 만든 것. 조금 있으면 뉴럴의 기숙 사가 문을 닫는 다는 것을 잊고 있었던 모양이에요." 어차피 이 시각에는 가야한다고 느끼고 있었던 카세리아느이기에, 이리스의 말에 무언 가 잘못됨이 있긴 했지만, 그저 고개를 끄덕이다가 입을 열었다. "미안하지만, 그래야 할것 같습니다." "지금도 늦을 시각일 텐데, 빨리 가세요!" "컹컹!!" 이리스가 한껏 웃으며 말하고는 있지만, 이리스는 앞이 안보이기에 카세리아느는 살짝 불안한 모습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곧 옆에서 같이 짖는 슈피르를 바라보면서 안심 한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슈피르가 있으니 괜찮을 거라 생각하고 이만 가보겠습니다." 떠나면서도 여전히 차갑기만 한 아름다운 미성과 딱딱한 대화체에 이리스는 살며시 안 타까운 미소를 머금긴 했지만, 곧 고래를 흔들며 자신이 지을 수 있는 최고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차피 자신에게는 친구가 생긴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살며시 옆에 있는 슈피르를 어 루만지면서 더욱 자신있게 말했다. "그럼요! 슈피르가 늘 그런 역할을 해왔는 걸요." 이리스의 말을 들으면서 카세리아느는 슈피르를 바라보다가, 다시 씁쓸하게 황태자궁이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황태자궁쪽으로 놓여져 있는 새하얀 대리석들이 노을을 머금어 주홍색으로 빛났다. 카세리아느가 걸어가는 길만을 비추어 주는 그 붉은 색의 길이 카세리아느를 마음을 더 욱 심난하게도 만들었다. 마치 그것이 자신의 운명은 그렇게 정해져 있다는 것으로만 보여졌기에. "카세리아느~ 내일도 여기 이 시간에 올거예요! " 뒤돌아서서 가는 카세리아느를 향해서 큰 소리로 외치긴 했지만, 카세리아느에게서는 아무런 대답도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리스는 그것에도 만족한 듯, 아니 분명 올거 라는 확신을 가진 듯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전투와 심판 그리고 자비의 여신인 카세리아느와 이름도 같으면서 또한 그에 버금간 다고 예측할 수 있을 만큼 아니 단정 지을 만큼의 놀라울 정도의 아름다움은 정말 한순 간에 사람의 혼을 빼앗아 버릴 정도였어." 이리스는 자신의 머리를 묶고 있는 하얀샌 끈을 풀고서 하얀색 끈을 바람에 날려보내 듯 자신의 푸른색 머리카락도 바람에 찰랑이게 만들었다. 무척이나 시원하게도 보이는 그 모습보다도 더욱 신경을 사로잡게 만드는 것은 목소리였다. 가녀릴 정도로 날카로웠던 이리스의 목소리는 분명 가늘긴 했지만, 변성기가 지난 소년 이 지니고 있는 그 목소리였다. 또하나 보이지 않는다던 멍한 눈동자는 어느새 가늘게 뜨여져서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 었다. 그러다가 슈피르쪽을 정확하게 바라보면서 싱긋 시원하게 미소지으며, 이리스는 슈피르를 한껏 손으로 세게 어루만졌다. "너도 그랬던 거지, 슈피르?" 그런 이리스의 손길이 좋기만 한지, 슈피르는 짖지도 않고서 가만히 있었고, 이리스는 그런 슈피르를 힘주어 품에 안으며 고개를 묻으며, 카세리아느를 생각하고 있었다. "소문이 하도 무성해서 그냥 한번 보기만 하자는 마음으로 이렇게 연기했었는데, 설마 하니 이렇게까지 나의 마음을 뒤흔들 줄이야. 형의 비(妃)가 된다고 했었지?" 카세리아느를 떠올리면서 눈을 빛내던 이리스는 자신의 붉은 입술을 손가락으로 살짝 쓰다듬으며 나직히 입을 움직여 혼잣말을 내뱉었다. 그러다가 살짝 눈동자를 한쪽으로 고정시키며 무언가를 생각하던 이리스는 무언가 결심 한듯, 크게 미소지으며 슈피르를 살짝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결과는 알 수 없는 거야. 그리고 형에게는 절대 건네줄 수 없어." 이리스가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피식 미소지으며 말해오자, 슈피르는 자신의 얼굴을 이 리스에게로 가져가 부비적 거렸다. 그런 슈피르를 바라보면서 키득거리던 이리스였지만 카세리아느가 걸어간 붉은 길을 바라보면서 다시 한번 나직이 조용히 말했다. "우연은 존재하지 않아. 필연만이 존재할 뿐." ================================================================================ 그냥, 챕터 단위로 묶기로 했어요; ..언제나 행복하시길.. 제 목: 공녀(貢女) 카세리아느 [16 회] 글쓴이: 썬샤인 2003-01-26 조회/추천: 533 / 3 소유욕과 이기심 혹은 어린아이 같은 질투 - 1 소유욕과 이기심 혹은 어린아이같은 질투 생각지도 못하게 그리고 이곳에서는 만들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친.구.라는 것을 만들어 버린 카세리아느는 돌아오는 길에서야 자신이 왜 그랬을까하는 의문을 가졌다. 살짝 인상을 굳히고 붉은 길을 걸었던 카세리아느였지만, 곧 살짝 자신을 위로하듯 불 어오는 바람에 살짝 고개를 돌려 바람을 느끼려는 듯 눈을 살포시 내리감았다. 포근하게 자신을 감싸주는 바람, 늘 자신의 곁에 머물러 있는 바람의 존재가 지금에서 야 소중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아마도 친구라는 것도 비슷할지도 모른다. 지금은 알 수 없지만 언젠가는 소중함을 느끼는 존재라는 것. 노을의 붉음이 머금은 길의 마지막 자락에 역시나 붉은 빛을 머금은 담이 있었고, 그 담의 둘레를 돌다보면 성문이 있었으며 그 성문에는 성문을 지키고 있는 문지기들이 창 을 엇갈리게 놓고서 눈을 부라리며 서있었다. 황태자궁에 들어오려는 사람들을 눈을 빛내면서 감시하는 문지기들이었지만, 그들의 눈 동자는 다른 의미로 크게 변할 수 밖에 없었다. 너무나 아름다운 사람. 감히 자신들은 상상할 수 조차 없었던 황홀한 심정을 가지게 만드는 사람이 자신들의 앞에 서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사람을 문지기들이 빠르게 정신을 차리고서 단호하게 쳐다볼 만큼 그들의 이성 은 단단하지 못했다. 카세리아느를 바라보고 있던 두 문지기들의 이성은 두부보다 더 부드럽기 그지없었다. 그만큼 그 사람의 아름다웠다. 그 증거로 태양마저 지금 피눈물을 흘리며 저 너머로 사라지려고 하지 않는가. 그들은 그 마약과도 같은 아름다움에 취해 해롱거리며 비틀거리듯 서있었지만, 곧 그 헤롱거리던 모습도 두려움으로 변해 버렸다. 아름다움이란 타이틀아래 잊고 있었던, 차갑기만 한 푸른색 눈동자와 긴 흑요석과 같은 흑색의 머리카락이 그들의 정신을 번뜩 뜨이게 만들었다. '저,저 긴 검은 머리카락은!! 혹시!!' '황태자 전하께서 숨겨놓으신다는!! 그 소문의!!' 검은 칠흑같은 머리카락, 그리고 빠져들고 싶게 만드는 호수빛 눈동자와 도도한 자태! 그것을 연결시키면 떠오르는 것은 이것 뿐이었다. 황태자궁의 문지기를 하면서 어디 선가 주워들었던 소문의 주인공! '금역에 살고 있는 여신!!' 문지기들의 목은 꿀꺽하는 목소리를 내면서 크게 움직였고, 눈은 헤롱거리기 보다는 경 악의 빛을 잔뜩 띠고 있었으며,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두 문지기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면서 두려운듯 고개를 힘겹게 끄덕였다. 역시나 자신 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느낀 까닭이었다. 그리고는 다시 고개를 원상태로 돌리면서 더욱더 경악했다. '어째서 렌사님의 호위를 받고 오지않고 이렇게 홀로 오신거야!' 그 여자를 가까이 한다는 황태자가 여자에게도 잘 보여주지 않으려고 하고 자신만이 독 차지 할려고 한다는 소문이 쫙 난, 황태자궁에서는 모르는 사람없이 유명한 카세리아느 였다. 물론 그 사람의 얼굴은 일부외에는 거의 보지 못한다는 것이 옳겠지만. 그런데 여자도 아닌 남자인 자신들이 그 금역의 여신을 보았다. 만약 황태자에게 자신들이 카세리아느를 보았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아주 상황이 나 쁘다면 둘은 그 황홀하기만 했던 아름다움을 보았던 대가로 저 깊은 절망의 늪의 나락 으로 떨어져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갑자기 덥쳐오는 자신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함에 문지기들은 벌써부터 절망의 늪을 헤 매면서 빠져나올 생각도 하지 못했다. 카세리아느는 그런 둘을 바라보면서 살짝 미간을 좁히며 차갑게 응시하고서 입을 열었다. "황태자궁으로 들어가야봐야 하니 창을 치워주십시오."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 대는 두명의 문지기의 정신을 흔들어 놓는 차가운 미성에 그들은 다시 고개를 돌려 카세리아느를 바라보았다. 왜 하필이면 자신들의 앞에 이렇게나 당당 히 나타난 것일까. 보초병들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만에 하나라는 부질없는 희망을 가지고 몸을 떨며 조 심스럽게 카세리아느에게 물었다. "저,저기 카세리아느님되시죠? " "그렇습니다. 무슨 일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들어가 봐야 하니 실례하겠습니다." 카세리아느의 대답에 문지기들은 역시나라는 듯, 고개를 푹 떨구며 서로 의견교환도 하 지 않았건만, 무릎을 꿇고서 카세리아느의 갈길을 막아섰다. 이렇게 된다면 자신들이 살길은 하나였다. 문지기들은 눈을 애처로운 빛을 가득 띠우고서는 절망적인 목소리로 애원했다. "카세리아느님. 저희 좀 살려주십시오. 황태자 전하의 귓가에 저희들이 카세리아느님을 보았다는 사실이 들어가면 저희는 죽습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카세리아느님을 본 것은 저희들이 원해서가 아니었다고 황태자 전하께 말씀드려 주십 시요!!! 안그러신다면 우리는!! 우리는!! 정말로 죽습니다!!" 매달릴 수만 있다면 매달릴듯 애처롭게 눈물까지 흘려가며 곧 죽는다며 말하는 문지기 들을 바라보면서 설마 그럴리가하는 마음으로 눈을 찌푸렸다. 하지만 자신이 확정적인 대답을 해주지 않으면, 절대로 길을 비켜줄 문지기들이 아닐 듯 보였기에 살짝 눈을 감고서 한숨쉬듯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번일은 내가 렌사를 따돌리고서 한 일이니 내가 책임을 질것입니다. 황태자 전하께는 그렇게 말해드릴테니 그만 일어나십시오." "정말이시죠? 저희는 카세리아느님만 믿겠습니다!! " 다른 사람들에게는 차갑게만 들릴 카세리아느의 말이었으나 적어도 그 둘에게는 그 목 소리가 천상에서 울려퍼지는 고혹적인 아리아로만 들렸다. 어느새 눈물을 닦고서 눈을 빛내며 소리치는 문지기들을 바라보면서 카세리아느는 다시 단정짓듯 입을 열었다. "물론입니다. 절대 두사람에겐 저의 잘못으로 해를 입지 않게 해드겠습니다." 카세리아느의 문지기들을 바라보는 살짝 내리깔아진 눈빛은 차갑기만 했지만, 물론 그 것은 문지기들에게는 따스하고 자비롭게만 보였고 단호한 그 말투에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살수 있을거라는 확신을 느끼게 해주는 카세리아느의 모습에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길을 비켜주며 황태자궁안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럼 조심히 들어가십시요!!" 문지기들의 우렁찬 외침을 뒤로하고서 카세리아느는 자신의 처소로 발걸음을 옮겼고, 그러는 도중 카세리아느의 입에서는 살며시 한숨이 내쉬어 졌다. 대체 자신이 무엇 그리 대단하다고 황태자가 자신을 보았다는 것만으로 자신들을 죽인 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그것에 대한 한숨이었다. 황태자의 독점욕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카세리아느의 처소로 가는 길에는, 자신이 처음 황태자의 처소로 가던 길에 보았던 분 수가 여전히 아름다운 자태로 물을 뿜어내고 있었다. 시원하다기 보다는 따스함을 느끼 게 해주는 분수의 모습이 꽤나 색다르고 마음도 편하게 해주었다. 무척이나 화려한 궁과 황태자를 떠올리며 카세리아느는 힘차게 고개를 내저었다. 더이 상 생각하지 말자. 더이상 생각한다면 자신의 머리만 복잡해 질뿐이었다. 타타탁!! 표면위를 누군가 힘차게 다가오는 듯, 바닥에서는 둔탁한 음이 계속해서 들려왔고 카세 리아느는 동그란 눈동자로 소리난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카세리아느님~!!!! " "?"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인지 자신의 처소밖에 서있다가 자신을 발견하고서 뛰어오 는 듯 보이는 에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느 샌가 곧 다가온 에린은 카세리아느의 팔 을 붙잡고서 큰일이라도 난 듯 내내 안절부절,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했다. "카세리아느님!! 왜 이렇게 늦게 오신거에요!! 렌사님은 왜 따돌리셨구요!! 지금 큰일났단 말이에요!!!" 마치 심문이라도 하는 듯, 다급하게 이것저것 물어오는 에린의 모습은 초조하기 그지없 어 보였고,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는 지 울상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에린을 카세 리아느가 이해할 수 있을리는 없었다. 카세리아느는 인상을 찌푸리며 에린을 향해 책망하는 듯, 입을 열었다. "후우. 에린 진정좀 해. 왜그러는 거니?" 카세리아느의 말을 들으며, 에린은 고개를 쳐들고서 울먹이는 눈동자로 카세리아느를 응시하다가 어떡하면 좋겠냐는 듯한 투로 소리치듯 입을 열었다. "지,지금 황태자 전하께서 오셔서 계속 기다리고 계신단 말이에요!!!" "황태자 전하께서 아직까지 방에 계신다고 그런거니, 에린." "네!! 카세리아느님께서 오실시간도 안된 시각인데도 찾아 오셔서는 돌아오실 시각이 훨씬 넘긴 지금까지 계속 기다리고 계셨어요. 저..전.. 황태자 전하가 너..너무 무서워 서.." 에린의 커다란 눈망울에 아스라이 맺혀있던 물의 막은, 에린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자 더욱 부풀어 오르더니 결국 한방울의 물로 변하에 볼을 타고 내려왔다. 그것을 시작으 로 해서 에린은 계속해서 눈물을 흘렸고 카세리아느의 팔을 잡고 매달리며 울먹였다. 카세리아느는 그런 에린을 살며시 바라보다가 이곳까지도 차가운 냉기가 흘러나오는 듯 한 방문쪽을 살며시 바라보았다. 황태자의 이기심과 자신에게 보였던 그 독점욕을 조금이나마 떠올렸었다면, 이런 결과 도 결코 이상한 것임을 알았어야 했다. 자신의 품에 파묻혀서 울먹이는 에린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카세리아느는 얼어버릴 듯한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내 생각이 짧았어." 짧아도 너무나 짧았다. 미래의 일을 조금도 생각지 못하고 한 행동이 이제서야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차갑게 쏘아져 나온 카세리아느의 말을 들으며 에린은 고개를 들고서 더욱 울먹이며 소리쳤다. "카세리아느님!! 지금 그런소리나 할때가 아니란 말이에요!! 큰일이라구요!!" "그만해. 에린. 알았으니까." 에린의 걱정스러워 죽겠다는 말에 카세리아느는 차갑게 쳐다보며 대답했다. 자신의 장미빛 입술에 피라도 낼듯 세게 짓누르던 카세리아느는 조금의 시간이 흐르고 나자 살며시 떼어냈다. 이것이야 말로 오크를 피하려다 드래곤을 만난격이 아닌가. 황태자를 피하려고 마음먹었던 그때 조금이나마 황태자의 성격을 생각했었다면, 그렇게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황태자와의 만남을 피하기 위해서 한 짓이 더욱 나쁜 결과를 초래할 줄 예견했어야 헀다. 카세리아느가 머리가 아파 오는 것을 느끼고 있는 가운데, 에린은 눈망울에서 더욱 눈 물을 떨어뜨리며 카세리아느의 팔을 끌어 방으로 데리고 가고 있었다. 조금이나마 이 분이 황태자로 인해서 상처받지 않으실 수 있다면. 그 무서운 황태자 전하께서 이 분을 다치게 하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 에린의 소망이라 면 가장 큰 소망이었다. "카세리아느님!! 빨리가서 죄송하다고 사과드리세요!! 제발이요. 네? 카세리아느님께서 벌이라도 받으시면 어떡해요!!!" 카세리아느가 귀족가의 영애인 이상 벌을 주거나 할리는 없었다. 그것은 '벌'이라기 보다는 '처벌'이라는 쪽이 올바른 쪽에 가까웠다. 하지만 황태자가 벌을 줄것이라고는 생각지도 않는다. 카세리아느는 씁쓸하게 에린을 바라보다가 다시 강하게 방문쪽을 응시했다. 카세리아느는 아직도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에린을 더욱 쓰다듬어 주며 입을 열었다. "걱정할 필요 없어. 그정도 가지고 벌을 내리실 분은 아니야. 물론 잘못에 대한 용서는 구해야 하겠지. 내가 분명히 잘못한것일 테니까." 부드러운 핑크빛 머리카락을 카세리아느의 팔에 부비대면서 에린은 자신의 커다란 눈망 울을 더욱 크게 뜨며 카세리아느를 응시했다. 걱정스럽기만 했다. 자신의 이 아름다우 신 주인이 상처입을까봐, 그것만이 걱정스러웠다. "꼭 그러셔야 해요!! 황태자 전하께서 화나신거 같단 말이에요!" "그래. 에린. 넌 그냥 네 방으로 가있도록 해." "알겠어요. 카세리아느님. 황태자 전하께 잘 말씀드려야 해요." 어린나이. 순수한 영혼을 지닌 아이. 그랬기에 에린은 자신의 일과는 전혀 상관없는 자신의 일에 이렇게나 눈물을 흘리며 진 심으로 슬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너무나 깨끗해서 손대기가 두려울 정도의 순수함이 카세리아느에게는 더욱 따갑게만 느껴졌다. 카세리아느는 아직도 자신의 팔에 매달리며 말하고 있는 에린에게 고개를 끄덕여주며, 떼어놓고는 문쪽을 향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에린은 카세리아느가 자신을 떼어놓고서 걸어 가자 애처롭게 쳐다보며 울음을 그치려는 듯 입을 꽈악 물엇다. 도도한 저 발걸음으로 꼭 다시 자신에게 돌아오셨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지도 않고서 문쪽을 향해서 주저앉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달칵. 카세리아느는 자신의 바로앞에 놓여져 있는 금빛의 손잡이를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잡 고서 문을 열었다. 조용하지만 둔탁하게 울려퍼지는 문과의 마찰음을 통해서 문이 열리 고 방안에서 불타듯이 붉은 노을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노을의 꺼져가는 빛을 받으며 황태자는 자신의 방끝자락의 의자에 거만하 게 다리를 꼬고 앉아서 와인잔을 손에 잡고 있었다. 분명 카세리아느가 들어왔음을 인기척으로 알았음에도 와인잔에만 시선을 주면서, 무언 가 생각하고 있는 듯, 카세리아느를 무시하는 황태자는 오만함으로 똘똘 뭉쳐있는 땅에 뿌리를 내려, 화사하게 피어있는 장미처럼 보였다. 매혹적인 붉은 장미. 그것은 충분히 유혹적일 정도로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움에 혹해 무작정 그 줄기에 아무 생각 없이 손대고 나면 피를 요구할 정도로 도발적인면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 에도 그 장미의 유혹에서 사람들은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한 번쯤 손대고 말아버린다. 마치 무엇에 혹하기라도 하는 듯. 윤기나는 흑청빛의 머리카락. 적당히 균형잡혀 있는 몸과 타고난 거만한 자태. 알 수 없어보이는 그 흑청빛의 눈동자마저도 모든것이 매력적인 요소일 뿐이었다. 다른 귀족 가의 영애들이 본다면 무작정 그의 품에 달려들고 싶을 정도로. 화려한 모습속에 숨길 수 없는 카리스마를 가진이가 황태자였으며, 카세리아느와 마찬 가리로 누군가를 끌어당기는 매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카세리아느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 다면 분명 그런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할 것은 자명한 것이었다. 어느 정도 와인잔만을 바라보다 카세리아느를 응시하는 황태자의 얼굴에서는 늘 짓던 웃음은 어디론가 사리지고 없었다. 무서울 정도로 차가운 모습의 황태자 만이 카세리아 느의 앞에 앉아 있었다. 황태자의 그 거만하기만 한 눈빛을 무시하기라도 하듯, 카세리아느는 살짝 허리와 고개 를 숙이며 조용히 입을 열며 인사했다. "대 아텔린 제국의 고귀하신 황태자 전하를 뵈옵니다. " "훗, 이제서야 이곳으로 온 모양이군. 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정말 다행이야." 카세리아느가 인사를 하고 일어서자 황태자는 예의 그 미소를 띠우며 와인잔을 손에 들 고서 카세리아느가 있는 쪽으로 걸어가며 입을 열었다. 웃음 띤 목소리로 하는 말이었 지만 그것에는 날카로운 비수라도 가지고 있는 듯 따갑기 그지없었다. "죄송합니다, 황태자 전하." 황태자가 자신에게 다가오자 카세리아느는 더욱 낮게 고개를 떨구며 황태자와 시선이 마주치는 것을 거부했다. 그리고는 차갑게 말해주었다. 죄송하다고. 고귀하신 황태자 전하를 감히 기다리게 하신 점에 대하여 정말 죄송하다고 말이다. "무엇이 죄송하다는 거지?" 알면서도 모른다는 듯 눈썹을 살짝 찌푸리면서 카세리아느에게 말하는 황태자에게 카세 리아느는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서 짧게 대답했다. "전하께서 알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자신과 마주치려고도 하지 않는 카세리아느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인지 황태자는 더욱 인상을 찌푸리다가 카세리아느의 턱에 자신의 손을 대고서 들어 올렸다. 자신의 눈높이 까지, 그 눈동자가 자신만을 응시할 수 있도록. 카세리아느가 마주치기 싫다는 듯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기자 황태자는 더욱 카세리아 느의 턱에 힘을 주어 자신쪽으로만 바라보도록 거칠게 움직였다. 그리고 나서야 카세리아느도 황태자의 시선을 무시하지 않자, 황태자는 미소지으며 약 간 얼굴을 들어올리고서 입을 열었다. "난 아무것도 알지 못해. 그대가 가르쳐 주길 바라는 데?" 재밌는 것을 발견한 어린아이의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알고 있음에도 모르는 척, 능청 을 떠는 황태자에게 카세리아느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지금 카세리아느의 눈동자에는 황태자보다는 붉은 노을이 더욱 강하게 잡혀 들어왔다. "렌사를 따돌리고 일찍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고서 다른 것에 시간을 할애하며 늦게 들 어와 감히 고귀하신 황태자 전하를 기다리시게 만든 것. 그것이 죄송하다는 것입니다." 아직도 자신의 턱에는 황태자의 손이 놓여져 있었지만, 지금은 아무말도 하지 않고서, 그저 황태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어린아이 같은 투정에 질렸다는 듯. 오히려 황태자를 바라보고 있다기 보다는 불타 사라질 듯한 노을을 응시하며. 꺼져가는 그 불꽃에 정신을 놓아주며 황태자를 응시하는 듯 보이게 하고 있을 뿐이었 다. 그렇게 그런 카세리아느를 바라보다가 황태자는 카세리아느의 턱에 놓여져 있던 자신의 손을 떼어 놓고서 창쪽으로 등을 돌리며 크게 웃었다. 자신을 이렇게나 바보처럼 만들 다니. 고작 노을. 그것이 자신보다 더욱 그녀를 유혹한다는 말인가. "하하하하하!" 한참을 그렇게 웃다가 곧 고개를 카세리아느가 보이는 쪽으로 돌리며 깔보듯 카세리아 느를 뚫어져라 바라보던 황태자는 곧 굳어진 입술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니야. 그대가 잘못한 것은 없어. 이때까지 찾아와서는 계속 기다린 내가 잘못한 거 지. 하지만 말이야. 혹시 알고 있는지 모르겠어." 오만한 황태자의 눈동자가 카세리아느를 차갑게 응시하고 있었지만, 그때마저도 카세리 아느의 눈동자는 황태자를 바라보는 척 모방하며 노을을 찾고 있었다. 그런 카세리아느의 귓가에 차가운 한마디가 저릴 듯 울려퍼졌다. "남을 이렇게나 기다려 본적 따위 난 없다. 단.한.번.도." 장난기 어려있는 차가운 황태자의 목소리가 마치 멈춰있는 물의 표면에 고요하면서도 빠르게 번지는 파문처럼 그렇게 조용하기만 했던 방안을 가득 메워갔다. 그것은 약간은 섬뜩하게 또한 가슴 설레는 긴장감을 가지게 만드는 역할을 충분히, 조 금의 모자람도 없이 해내고 있었다. [남을 기다려 본적 따위, 난 없다. 단.한.번.도.] 귓가에 울린다기 보다는 머릿속에 울려오는 그 목소리에 카세리아느는 노을을 찾던 눈 동자의 시선을 바로잡아 황태자를 강하게 바라보았다. 늘 그렇듯 웃음기 어린 모습이긴 하지만, 그 모습에는 그것이 있었다.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질러 놓고서 어떻게 대처하는 지에 대한 의문에 대한 흥분감. 황태자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카세리아느를 여전히 웃음띤 모습으로 응시해 주다가 어느정도 시간이 흐르자, 곧 고개를 흔들었다. '대체 무엇을 기대한거지?' 따스하게 자신의 옆을 지나치는 바람에 흐트러진 자신의 앞머리를 손으로 넘기면서 황 태자는 카세리아느에게 약간은 씁쓸한듯 미소지으며 입을 열었다. 자신의 말조차 이 소 녀에게는 아무런 반응도 이끌어 낼 수 없었던 모양이다.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이 나에게 초조함이라는 것을 가져다 주는 줄은 알지 못했다. 그런 이질적인 것을 느껴보게 해준 그대에게 고마움의 말이라도 건네야 하는 건가?" "죄송합니다." "죄송할것은 없다고 말했지 않았나? 훗, 어떻게 되었든 기다림이라는 그 듣기 좋지만은 않은 그 단어는 나에게 꽤나 흥미로웠어. 그덕분에 그대를 기다리는 시간동안 그대는 볼 수 없을지 몰라도 그만큼 그대를 더욱 그리워하게 된다는 걸 알아버렸거든." 기다리는 시간은 그 상대를 보지 못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 만큼 그리움을 더욱 심어 주기 때문에 그 사람만을 생각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을 그렇게 알아 버린거다. 황태자 는 싱긋 웃으며 카세리아느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살며시 입을 열었다. "혹시나 해서 묻는 거지만, 날 그대에게 길들이기 위해서 그런것이었다면 그것은 꽤나 성공적이었다고 말해주고 싶어." 길들여 진다. 누군가에게, 누군가를 위해서, 누군가에 의해 계속해서 길들여 진다는 것. 그렇게 누군가만을 향해서 속박당하게 되어 버린다는 것. "그럴리 없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어쩌면, 이 여자라면 길들여져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자신을 사로잡는 매력을 지닌 도도하고 차갑기만 한 이 소녀라면, 길들여진다 하여도 괜찮을 것 같다고 그렇게 생각했는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 소녀는 누군가 자신에게 길들여 지는 것을 아니, 누군가가 자신에게 속하게 된다는 것이 싫은 모양이다. 누구도 믿지 못하는 자신과 같은 동족. 부정하며 답하는 카세리아느를 바라보며 싱긋 웃어주다가, 황태자는 시선을 창밖으로 옮겼다. 피눈물 흘리는 하늘이 눈 안으로 저절로 들어왔다. 그녀를 사로잡았던 핏빛 하늘이 이다지도 아름다웠던가. "훗, 내가 이곳에 도착했을 때는 분명 태양은 바로 위헤서 아름답게 빛을 내리쬐고 있 었는데, 지금은 어느새 태양이 눈물을 흘려서 주위를 붉게 만들어 버렸어. 이것도 기 다림이 내게 가져다 준 선물인가?" 붉은 노을이 유혹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사람의 마음을 흥분시키는 붉은 색이 이다 지도 찬란하다는 것을. 황태자는 미소지으며 노을을 바라보던 시선을 카세리아느에게로 돌리며 말했다. 이것이 그대가 나에게 가져다 준 선물이냐고. 웃음기 어린 황태자의 눈동자가 뚫어질 듯 카세리아느의 푸른 색 눈동자를 응시했다. 무슨 대답을 원하는 듯 계속해서 자신을 바라보는 황태자를 바라보며 카세리아느는 붉 은 입술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기다리실 거라 생각을 못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 "죄송할것 없다고 했어. " 카세리아느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인지 황태자는 시선을 바로 돌려버리며 차갑게 카세리아느의 말을 끊듯 말했다. 고작 사과따위를 바라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몰랐던 모양이다. 황태자는 자신의 손에 들고 있던 와인잔을 살짝 원을 그리듯 돌리며 바라보았다. 깨끗한 크리스탈잔에서 비춰보이는 찰랑이는 붉은 와인이 계속해서 눈을 혼란스럽게 만 든다. 자신을 마셔달라는 듯이. 황태자는 살며시 와인을 입에 머금고나서 살짝 미소지으며, 자신의 입술을 살짝 핱아 내렸다. 도발적이고 매혹적인 황태자의 모습을 다른 귀족가의 영애들이 본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제대로 서있지도 못할것이 자명했다. "난 와인을 좋아해. 그다지 독하지도 않으면서 나에겐 달콤하며 또한 내가 원할 때는 나를 완벽하게 취하게 만들어 주니까." "...." 붉은 와인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듯, 황태자의 시선은 오직 와인잔에게로만 다가 가 있었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말을 꺼내자 카세리아느는 살며시 미간을 좁혔다. 오늘 따라 유난히 자신의 미간은 좁혀지는 일이 많기만 했다. 카세리아느가 인상을 찌푸리며 황태자를 바라보자, 황태자는 허망한듯 웃으며 카세리아 느를 향해서 입을 열었다. "신경쓰지 않아도 좋아. 오늘은 그대와 둘이서 와인을 마시고 싶었기에, 꺼낸 별뜻 없 는 말이니까." 황태자의 말에 그제야 황태자가 앉아 있던 백색테이블에 놓여져 있는 초록색 천으로 둘 러 쌓여져 바구니에 들어있는 와인이 카세리아느의 눈안에 잡혀 들어왔다. 그리고 또한 그 맞은편에 놓여져 있는 황태자가 들고 있는 것과 같은 와인잔도 말이다. 황태자는 갑작스럽게 몸을 움직여 카세리아느가 바라보고 있는 테이블로 발걸음을 옮겼 다. 그리고는 투명한 와인잔에 생명을 불어넣듯 옆에 있던 와인을 집어 들어 조심스럽 게 채워 넣었다. 투명한 소리를 내며 와인이 잔에 어느정도 채워지자 황태자는 그 잔을 집어 들고서, 카 세리아느가 있는 쪽으로 다시 가져가 건네며 입을 열었다. "알 수 없어." "무엇이 말이십니까." 황태자의 말에 카세리아느가 살며시 의문을 띠우며 대답했다. 그렇게 황태자를 바라보 다가 곧 자신의 와인잔으로 시선을 옮겼다. 가까이 가져가지 않았음에도 느껴지는 향긋한 향이 콧가에 맴돌았다. 찰랑이는 붉은 와 인이 카세리아느의 눈동자를 계속해서 유혹한다. "그대를 놓아주고 싶지 않는 나의 마음이 말이야." "그것은 황태자 전하의 소유욕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에도 황태자가 말한적이 있는 너무나 이기적인 소유욕. 아마도 황태자의 그 말또한 그 이기적인 소유욕에서 나온 것이라고 쉽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남자들의 소유욕과 정복욕. 아마도 그것일 것이다. 그렇다지 않은가? 남자들은 괜히 자신의 손에 들어오지 않는 것 에 더욱 집착하면서 끝까지 가지고 싶어한다고. 아마도 황태자도 자신이 그에게 넘어간다면 자신에게 흥미를 잃어버릴 것이 확실했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이 용납하지 못했다. 고작 남자들의 소유욕과 정복욕에 놀아주기 위 해 황태자에게 넘어간 척 연기할 마음따위는 조금도 없었다. '언젠가는 모든것이 지겨워 질꺼야.' 그것이 카세리아느의 확정적인 생각이었으니 말이다. 시간이 그 거대한 흐름이 모든것 을 묻어 버릴때까지 자신은 그저 죽은 듯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카세리아느의 대답에 황태자는 다시 와인을 입에 머금으면서 입을 열었다. "훗, 그래. 그럴지도 모르겠지. 처음에도 말했었던 만큼 그대는 나의 소유욕을 자극하 니까. 하지만 그때와는 또 다른것 같은 데? 그떄는 무작정 그대를 남들에게 보여주기 싫었다면 지금은 그저 그대를 나에게 묶고 싶어두고 싶은 마음뿐이야. 무작정 나에게로 잡아 두고 싶어." "그 두가지의 마음은 똑같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무엇이 틀리겠는가. 그 두말이 황태자의 이기적인 소유욕이 아니라면 무엇이라고 더 대 답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 "둘다 똑같다라. 그대를 바라본 그 상대를 찢어 죽이고 싶을 만큼 증오하는 이 감정이 그 때와 같다고 말하는 건가?" 황태자의 지금 모습이 웃고 있는 것은 확실 했다. 웃음띤 미소가 무척이나 매혹적인 것 은 다름사람들도 인정할 테니까. 웃음기 어린 목소리도 그것을 말해주지 않는가. 하지만 카세리아느에게 황태자의 웃음기 어린 목소리와 눈동자는 알 수 없는 소름끼칠 정도의 차가움이 잔뜩 묻어 나오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고 있었다. "분명 같은 갈래인 것 같기는 하나 다른 것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남에게 보여주기 싫은 것과 무작정 가둬두고 싶고 남을 죽일 정도로 증오하는 마음. 소름끼칠 정도로 차가운 황태자의 시선을 피하며 카세리아느는 조용히 대답했다. 더 이상 이사람을 건드린다면 뒤의 일은 보장받지 못한다는 그러한 예감이 들었기 때문 이리라. 증오로까지 변해버린 소유욕이 갑자기 매섭게 카세리아느를 덥쳐 왔다. "그러나 죽인다는 말까지 하실 필요는 없으시지 않으셨습니까. 비약이 심하셨습니다." 죽인고 싶을 정도라는 말이 카세리아느의 머릿속에 파고 들었다. 자신에게 매달려 애원 하는 보초병들의 말이 거짓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고 있었다. 자신의 눈앞에 서있는 이 황태자라면 어렵지도 않을 것이다. 누군가를 죽인다는 것. 생명을 앗아간다는 것. 그것은 결코 옳은 일은 아니었지만, 그것이 자신보다 높은 사람이 명하는 것이라면 아 랫 사람은 그 말을 결코 어길 수도 없었다. 그것이 한 나라의 황제가 될 사람이라면. 한 두명의 보초병따위는 처음부터 없던 사람 취급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나의 진심을 무시하지는 말아주길 바래. 적어도 나는 지금까지도 증오로 가득차 그들 을 죽이고 싶으니까." 잔인한 폭군이 되길 원하지 않는다. 한나라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수치스럽게 장식할 황제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황태자의 웃음 섞인 말에 카세리아느는 살며시 고개를 내저으며 안쓰러이 눈을 찌푸렸 다. 폭군도 분명 그 시대 한순간에는 황제로 떠받을어 질것이다. 절대적인 군주로 그들 앞에 남을 것이다. 분명 다른 이들도 그러한 폭군앞에는 쉽게 무릎을 꿇어 버릴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 한 순간임을 알아야 한다. 나라는 폭군을 계속해서 황제의 자리에 놓아두지 않는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면 반역이 일어나 그 폭군을 내리누르고 백성들의 환호를 들으 며 영웅을 탄생 시킬 것이다. 그리고 그 폭군은 수치스러운 명예를 지니고 역사의 한페 이지를 장식할 뿐이다. 카세리아느의 푸른색 눈동자가 황태자쪽으로 들어 올려지며, 황태자를 끌어 당길듯 강 하게 응시했다. 알아 주길 바란다. 그러한 사실을. "누군가를 죽인다는 말은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말입니다. 그것이 다름 아닌 황태자 전하이신 경우는 더더욱 그래서는 안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전하께서 잘 알고 계실것이 라 생각합니다. 전하께서는 차기 황제의 자리에 오르실 분이 아니십니까. 그런 말씀은 자제하십시오." 카세리아느의 말에 황태자는 눈을 가늘게 뜨며 카세리아느를 바라보았다. 붉은 와인이 향기로운 와인이 자신을 더없이 취하게 만드는 것인가. 분명 책망하는 소 리 임에도 기분은 무척이나 만족 스러웠다. 붉은 액체의 찰랑이는 와인이 자신을 취하게 만들듯, 카세리아느라는 저 매력적인 소녀 에게 자꾸만 쉴새없이 빠져 들어가고 있다. "그대가 그런 말을 하는 이유가 뭐지? 나로인해 이곳에 공녀(貢女)로 보내어진 그대라 면 그 누구보다 이 아텔린 제국의 퇴락을 기도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그대는 나에게 그렇게 말할 것이 아니라 악명 높은 군주가 되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말속에 무엇보다 차가운 비수가 꽂혀 있다. 누군가를 쉽게 믿지 못하는 황태자의 마음이 차가운 비수와 같은 말이 되어 버렸다. 카세리아느는 황태자의 알 수 없는 흑청빛의 눈동자를 강하게 응시했다. 그리고 역시나 황태자의 눈동자는 자신의 푸른색 눈동자를 강하게 응시해왔다. 자신의 붉은 입술을 살며시 꽉 깨물던 카세리아느는, 결정한 듯 살며시 이를 떼고서 차 갑게 입을 열었다. 어차피 결국 자신은. "결국은, 결국 저는 황태자 전하의 것이 될 테니까요." 저 사람의 것이 되어비릴테니까. 당당하게 맞서자. 어차피 겪어내야만 할 과정이라면 당당하게 이겨내자. 카세리아느의 그러한 모습에 황태자는 짙은 미소를 지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아주 만 족스러운 대답이었다. "나의 것이 될테니 그렇다?" "..." 확인사살을 해야 더 만족할 모양인지 말꼬리를 잡아 올리는 황태자의 물음에 카세리아 느는 시선을 돌리며 회피했다. 두번은 말하고 싶지 않은 말이기에. "그런데 어쩌지? 그대의 말은 틀려. " "?" 황태자의 목소리에 카세리아느는 다시 시선을 황태자에게로 들어 올렸다. 그러자 그곳 에는 환하게 미소짓고 있는 황태자가 서있었다. 황태자는 카세리아느에게로 얼마되지 않는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그런 황태자의 행동 에 카세리아느는 자신도 모르게 주춤하며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카세리아느의 자존심은 계속해서 뒷걸음질 치는 것을 용납지 못했다. 황태자는 푹신한 붉은 카펫을 한발자국 밟으며 다가와서 카세리아느에게 매혹적인 웃음을 지어 보였다. 황태자는 카세리아느의 흑색 머리카락 한가닥을 조심스럽게 잡고서 살며시 입을 맞추었 다. 마치 성스러운 의식과도 같이 순결하고 고결한 모습으로. 그리고 천천히 붉은 입술을 카세리아느의 머리카락에서 떼어 내고는 조용히 속삭이듯 말했다. "결국 그대가 나의 것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대는 처음부터 나의 것이었으니까." 황태자의 말에 카세리아느는 그제야 정신이 든듯 자신의 머리카락을 쥐고 있는 황태자 의 손을 살며시 밀어 내며 말했다. "이것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전하의 것이 된다 하여도 저의 마음만은 전하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황태자전하께 해를 입히는 행동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황태자 전하의 것이 되는 한은 말입니다." 카세리아느의 말에 황태자는 참을 수 없다는 듯 웃음을 터트리며 몸을 흔들었다.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와인처럼 자신의 마음을 이렇게나 흔들어 놓는 여자는 아마 저 여 자 밖에는 없을 것이다. "하하하!! 하핫. 카세리아느라는 이름을 지닌 그대는 너무 당돌하다고 해야 하나? 지금 도 처음의 모습 그대로군. 후훗. 그래 어쩌면 그런 모습이 나를 더욱 끌어당기는 지도 모르지." "...." 황태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서 서있는 카세리아느를 차갑게 내려다 보며 카세리아 느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고, 다른 한 손으로는 카세리아느의 손목을 잡았다. "나도 한마디 하지. 오늘일은 모두 없었던 것처럼 잊어주겠어. 하지만 말해두지만 다. 음. 은 없다. 기다리는 일 따위는. 참고하고 그러지 않도록 했으면 좋겠어. 다음에 는 나조차도 날 주체할 자신 없으니까. " 자신의 손목을 으스러질 듯 꽉 잡아오는 황태자의 손길에 카세리아느는 잔뜩 미간을 좁 혀 갔다. 살기마저 머금은 듯, 꽉 잡아오는 황태자때문에 손목에 멍이 들어 버릴만큼 저릿하게 아파온다. 챙!! 힘이 가해진 것이 꼭 카세리아느의 손목만은 아닌 모양이다. 황태자의 손에 들려 있던 와인잔이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깨지며 부서져 버렸다. 황태자의 손에서 흘러내리는 붉은 액체가 와인인지 아니면 다른 것인지는 몰라도 그러 한 황태자의 손에서 크리스탈 조각들은 비집고 나와 점점 바닥으로 비참하게 추락했다. 살기마저 어려있는 목소리와 죽일듯 바라보는 강렬한 눈동자에 카세리아느는 황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살짝 떨려오는 입술을 움직였다. 그렇지 않는다면 뒤의 일은 굳이 상 상하지 않더라도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알겠습니다." 황태자는 카세리아느의 말을 듣고서야 만족한 모양인지 살며시 손에 힘을 풀었다. 그리고 다시 미소지었다. 차갑기만 한 눈동자에는 어울리지 않는 너무나 매혹적인 미소 가 역시나 이 사람은 알 수 없는 사람임을 느끼게 만들었다. "소,손은 괜찮으십니까?" 붉은 액체들이 떨어져 내리던 황태자의 손이 무척이나 마음에 걸렸던 모양인지 카세리 아느는 저릿한 손목의 아픔도 상관치 않고 황태자의 손을 잡아 들었다. 손으로 와인잔 을 깨버렸으니 멀쩡할리는 없을 거라는 생각에서. "걱정해주다니 기쁘지만, 유감스럽게도 난 아무렇지도 않아." 살며시 주먹을 쥔 손을 펴내며 아무런 상처도 없는 손을 흔들며 말하는 황태자였다. 짙은 붉은 와인과 작은 크리스탈 조각들만이 손에 남아 있을 뿐이었다. "다행입니다." 황태자는 카세리아느의 말에 피식 웃으며 눈동자를 창으로 향했다. 붉은 눈물을 흘리던 노을이 어느새 어둠으로 물들어 가고 있는 풍경이 눈안에 가득 잡 힌다. 너무 늦은 시각. "시간이 늦어졌어. 난 이만 가봐야 할 것 같군." "조심해서 가십시오. 고귀하신 황태자 전하.” 쌀쌀하게 자신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대답하는 카세리아느를 바라보며 황태자는 놀리듯 입을 열었다. "뭐 지금 가지 않는다고 해서 누가 뭐라 할 사람도 없겠지만 가는 것이 좋겠지. 다시 한번 말해두지. 다음이란 말은 존재하지 않는 다는 걸. 훗." 황태자는 차갑게 다시 한번 웃으며 저벅저벅 문을 향해 걸어갔다. 황태자의 발걸음뒤에 남겨진 와인과 크리스탈 조각들이 쓸쓸하게 남겨져 있다. 황태자가 문을 닫고 어느 정도 떠나자 카세리아느의 다리는 이유없이 힘이 빠져 주저 앉고 말았다. 오랬동안의 긴장이 한순간에 풀려 버렸음이리라. 그리고 자신의 한쪽 손목을 다른 손으로 꽉 부여 잡았다. 붉은 자국이 선명하게 새하얀 손목에 그려져 있었다. 카세리아느는 살며시 한숨을 내쉬며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침대로 가서 앉아 힘들다는 듯 눈을 내리 감으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기적인 소유욕, 그다음은 어린아이와도 같은 질투라." . . . 밖으로 나와 발걸음을 옮기고 있던 황태자는 갑작스레 한쪽 눈썹을 찡그리며 와인잔을 깨뜨렸던 손을 들어 올렸다. 아까는 보이지 않았던 붉은 혈선과 그 혈선을 비집고 흘러 내리는 붉은 피. 살짝 피를 핥아 내리며 황태자는 피식 미소지으며 중얼거리듯 입을 열었다. "쿠쿡, 이 내가 질투를?" ================================================================================ 왜, 진작 이 방법을 생각하지 못한 것인가=_=!! ..언제나 행복하시길.. 제 목: 공녀(貢女) 카세리아느 [17 회] 글쓴이: 썬샤인 2003-01-26 조회/추천: 531 / 5 두명의 황태자비 후보들 - 1 . #1 실비제느 드젤 폰 엘비레느 어둠만이 세상을 감싸안은 어두운 밤이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의도적인 생각도 있었던 모양인지 방안은 꽤나 어두웠다. 두터워 보이는 짙은 보라색의 커텐은 창을 가려 아름 다운 별들을 감상하는 것을 방해했다. 오직 방을 밝혀 주는 것이라고는 화려하게 장식된 장식용 촛불 몇개. 초의 불빛은 주홍빛으로 은은하게 방안 구석구석을 비춰 주어 왠지 모를 은밀한 분위기 마저 조성했다. 그러한 방안의 중앙에 자리잡은 투박해 보이는 나무 테이블의 위는 새하얀 테이블 보가 덮여 있었고, 그런 테이블 보 위에는 방안을 밝히는 초와 하나의 와인잔이 주인을 기다 리듯 우아한 모습으로 놓여져 있었다.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은 와인잔을 한손으로 이유없이 만지작거리며 앉아 있는 늙어가 는 중년의 남자의 눈동자는 야심으로 가득차 있어 보였다. 그리고 그런 중년 남자의 앞 에는 살짝 눈꼬리가 올라가 고집스러워 보이는 붉은 머리카락의 여자가 앉아 있었다. 20대 초반으로 보임에도 넘칠듯한 색스러움이 풍기는 붉은 머리카락의 여자가 중년 남 자에게는 충분히 만족스러운가 보다. 남자는 얄팍한 입 꼬리를 올리며 기쁘다는 듯 입 을 열었다. "오랜만에 너를 보니 뿌듯한 생각이 먼저 드는 구나, 나의 아름다운 딸 실비제느. 갈수 록 너의 아름다움은 빛을 더해져 가니 말이다." 칭찬을 듣고서 기분 나빠할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것은 비꼬는 듯한 칭찬도 아니었으 며,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이 었다면 그 확률은 더더욱 줄어드는 것이다. 게다가 그것이 아름다움에 대한 칭찬이었고, 듣는이 또한 아름다움에 민감할 나이의 여 자였기에 말을 듣고서 입가에 가득 미소를 머금었다. "칭찬 감사하옵니다. 아버님.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로 이렇게 깊은 야심한 시각에 몰 래 빠져나오게 시킨 것인지요? " 실비제느의 목소리는 아름답운 미성이라기 보다는 남자를 유혹하려는 듯, 촉촉히 젖어 있는 요염한 목소리였다. 왠만한 절제심이 없는 남자라면 한번에 그녀에게 넘어가 버릴 만큼 실비제느는 충분히 매혹적인 여인의 향기를 풍겼다. 자신의 딸이 그렇게 자라 주었다는 사실이 기쁘기만한 남자였다. 손으로는 계속 와인잔 을 손으로 만지며 입을 여는 남자다. "너도 알지 않느냐. 이번 아텔린 제국력 1349년 12월의 30일. 황태자의 이번 생일을 맞 이해서 황.태.자.비.가 뉴럴에서 가장 훌륭한 성과를 거둔 귀족가의 영애 중에서 간택 된다는 것을 말이다." 황태자비라는 말에 특히 힘을 주며 말하는 남자를 바라보며 실비제느는 살짝 입 꼬리를 들어 올렸다. 황태자비. 그 얼마나 매력적인 자리의 이름인가. 자신이 여자로, 그것도 지체높은 귀족가의 영애로 태어난 이상은 그자리를 꿈꿔보지 않 은 여자는 없을 것이다. 황태자비가 무엇인가. 나중에 제국의 국모가 될 황후의 자리를 차지할 매력적인 자리인 것이다. 그것을 이때까지 바라오던 실비제느에게는 너무나 탐이나는 자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자리를 남에게 빼앗길 생각도 해본적도 없었다. "그것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아버님." "물론 알고 있겠지. 귀족가의 영애라면 당연히 알아야 하는 것이고, 또한 너도 황태자 비의 자리를 노리기 위해서 뉴럴 아카데미에 들어간 것이 아니었더냐." "그렇지요. 아버님." 눈빛을 엄하게 바로잡으며 남자는 와인잔에서 손을 내려 탁자위를 조심스럽게 토닥거렸 다. 그리고 여전히 웃고 있는 실비제느를 바라보며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 "오늘 너를 몰래 불러온것은 뉴럴에서 상위권의 만족할 만한 성적을 유지하고 있는 지 물어보기 위해 부른 것이다. 뉴럴에서 집으로는 그 성적을 알려주지 않은 알길이 없으 니 이 방법밖에는 없지 않으냐. " "그렇습니까." 의무적으로 대답하는 듯 보이는 실비제느를 바라보며 중년 남자는 더욱 눈빛을 강하게 만들었다. 촛불이 아슬아슬하게 자태를 유지하며 불지 않는 바람에라도 휩쓸리는 듯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알고 있겠지? 네 성적이 상위권이 되지 못한다면 아무리 공작가의 직위에 있는 네 아 비라고 할지라도 어떻게 할수가 없다는 것을. 그만큼 전통을 자랑하는 뉴럴아카데미에 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영애가 황태자비가 된다는 것은 확정적인 사실이다. 실비제느." 대 아텔린 제국의 얼마 되지 않는 공작의 자리에 앉아 있는 엘비레느 공작인 동시에 실 비제느의 아버지가 되는 남자는 걱정스러운 듯,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계속 탁자위를 토닥거리는 손가락을 바라보며 실비제느는 편안한 모습으로 입을 열었다. "걱정마세요. 아버님. 제가 누구겠습니까. 바로 아텔린 제국의 권위높으신 공작이신 아 버님의 딸입니다. 저를 못 믿으시는 것입니까? " "그럴리가 있겠느냐.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보니, 성적이 상위권임은 분명한 듯 보이는 구나."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말하는 실비제느의 말에 공작은 이제야 안심스러운지 크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아까부터 자신이 만지작 거리던 와인잔에 붉은 와인을 채워 넣고서 입 에 넣어 목을 축였다. "물론입니다. 그것도 최상위권을 자랑하고 있지요. 아버님의 딸인데 당연한 것 아니겠 습니까. 후훗." "과연 나의 딸이다. 크크큭. 그렇다면 이제 조금 편하게 그때가 되면 압력만 넣으면 되 는 것이겠구나." 기분나쁜 웃음을 지어 보이는 엘비레느의 눈동자가 무섭도록 빛났다. 자신의 꿈이 실현되려는 기미가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자신의 자랑스러운 딸에 의해 말이다. 그렇게 눈빛을 빛내며 부어넣듯 와인을 마시던 공작이었으나, 실비제느의 말에 곧 손길 은 멈추어 지고 말았다. "그러나 말입니다. 아버님. 저 말고도 또 다른 강력한 후보가 있습니다. 프리시아를 아 시지요?" "프리시아? 그 약하기 그지없다던 또다른 샤르니아 공작가의 영애 말이냐? 그애는 그렇 게 강력한 후보가 되지 못할 텐데? " 약하다고 하는 샤르니아 공작가의 영애가 강력한 후보라? 실비제느의 말에 엘비레느 공작의 입가에는 허탈한 미소만이 감돌았다. 공작가의 영애 대 공작가의 영애. 정말 기묘한 배치가 아닌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 프리시아라는 공작가의 영애는 강력한 후보가 될만한 아이가 아니었다. 허탈해 보이는 미소를 짓고 있는 공작을 바라보며 실비제느는 또다시 말했다. "저도 약해빠진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마법실력은 무시할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이미 5클래스의 마스터입니다. 그리고 필요는 없겠지만 가사도 뛰어나고 말입니다. " "5,5클래스의 마스터? 하지만 프리시아는 너보다도 어린 나이가 아니냐!" "그러니 지금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겠사옵니까. 아버님. " 변수였다. 프리시아라는 샤르니아 공작가의영애는 엄청난 변수이기만 했다. 한낱 자작이나 남작, 백작의 지위의 영애가 아니기에 더욱 그러한 것이다. 오히려 그러한 낮은 작위의 귀족이었다면 공작이라는 자신의 배경앞에 무너뜨릴 수도 있지만 자신과 동등한 위치에 있는 샤르니아 공작가의 영애가 아닌가? 탕! 엘비레느 공작의 손길에 테이블은 둔탁한 비명을 질렀고, 초와 와인잔은 불안정하게 위 태롭헤 흔들렸다. 샤르니아 공작, 그는 야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또 모르지만 그 또한 자신 못지않게 야심이 가득한 자였다. "제길! 하필이면 왜 샤르니아 공작의 영애. 프리시아가. " 입술을 쥐어 뜯으면서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는 엘비레느 공작의 마음을 풀어주려는 모양인지 실비제느는 다시금 요염한 미소를 띄우면서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입가에 검지 를 가져다 대면서 말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요. 아버님. 황태자를 저에게 푹 빠지게 만들 자신이 있습 니다." "뭐라 했느냐. 실비제느." 나긋나긋한 목소리에 고민하듯 고개를 숙이며 머리를 굴리던 엘비레느 공작은 고개를 들면서 실비제느를 보았고 실비제느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저는 황태자를 저에게 빠지게 할 자신이 있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하지만 순진하기만 한 프리시아는 글쎄요, 말이나 한번 걸어보겠습니까? " 유혹적인 목소리로 말하는 실비제느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엘비레느 공작의 한쪽 입 꼬 리는 빠르게 올라갔고 자신의 딸 실비제느를 감탄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오호. 그렇단 말이냐? " "물론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아버님. 이번 12월 30일은 제가 황태자비에 간택되어 있을 테니 아버님은 축하의 말을 들으실 준비만 하면 되시는 것이옵니다. " 실비제느의 말을 들으면서 공작은 더욱더 짙은 웃음과 더욱 야심에 찬듯한 미소를 지으 면서 걱정할 것이 없다는 것에 대한 안정감인지 편한 얼굴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는 호 탕하게 웃으며 자신의 딸 실비제느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하하하. 샤르니아 공작은 이제 끝났다 이말이구나. 크크크. 내가 너같은 딸을 낳은 것 이 얼마나 행운이란 말이냐." 크게 웃으며 자신을 자랑스럽다는 듯, 바라보는 엘비레느 공작을 바라보며 실비제느는 더욱 요염하게 미소지으며 미래를 그렸다. 나중에 황태자비를 거쳐 황후의 자리에 올라 있을 자신의 모습을 말이다. 후보 넘버 2. 프리시아 루젤 론 샤르니아 새하얀 마법구 하나가 새하얗게 방안을 비추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 방안은 지금이 밤인지 낮인지 구분이 안갈정도로 환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밤이라는 것을 알려주 는 것을 알려주는 단 한가지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창밖에서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는 별빛 들이었다. 별 중에서도 크고 아름답게 자신들을 뽐내는 별들이 있는 가 하면 그런 큰 별들의 뒤에서 개성없이 묻혀 버리는 작은 별들도 있었다. 그리고 지금 순백의 새하얀 테이 블에 앉아서 창밖을 내다보는 순수해 보이는 소녀는 작은 별을 좋아했다. 큰별들도 빛을 더욱 뽐내는 만큼 아름답긴 했다. 그러나 작은 별들은 하나의 낱개로 보면 작기만 하고 초라해서 알아볼수도 없지만 여럿이 모이면 하나의 강줄기 처럼 지금의 '미리르의 영원의 강'이라 불리는 아름다운 모습을 지닐수 있는 것이다. 큰별이라면 차마 나타내지 못했을 그 모습을 작은 별들은 수없이 모여서 사람들의 마음을 적셔주는 잊지 못할 모습을 보여 줄수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소녀는 그런 작은 별들 속에서 초라하기만 한 자신을 찾고 있었는 지도 모를 일이었다. "프리시아. 내말을 듣고 있긴 한거냐?" 그렇게 별빛 속에 빠져 있던 새하얀 리본으로 자신의 노란 금색 머리카락을 묶고 있는 소녀. 프리시아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황급히 돌리고는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자신의 작은 입술을 조심히 열어말했다. "죄송해요. 아버님. " 프리시아의 앞에 앉아 있는 지적으로 보이는 남자는 프리시아의 아버지였다. 그리고 대 아텔린 제국의 권위높은 공작의 지위를 지닌 사람이기도 했다. 샤르니아 공작. 그 사람이 바로 프리시아의 아버지라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어쨋든 별빛에 빠져서 자신의 말을 놓치고서 우물쭈물하며 자신에게 죄송하다 사과를 하는 프리시아를 보면서 공작은 인상을 찌푸렸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순진하다고도 착하다고도 할수 있는 자신의 딸 프리시아의 성격이. 자신보다 지위가 낮은 사람에게도 미안하다 사과하는 모습은 그다지 반기고 싶을만한 모습이 아니었다. 지금 자신이 사고 있는 세계는 착하다. 순수하다. 순진하다.같은 말따위는 불필요 했다. 그것이 약점이 될수 있을 지언정은 말이다. 하지만 자신의 너무나 착하고 유약하기 그지없는 딸은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꾸짖었음에도 어째서인지 착하기 순수하기 그지없었다. "프리시아. 너는 그 너무 착한 성격을 고치라고 내가 그렇게나 말하지 않았느냐." 한숨이 나올정도의 모습에 공작이 꾸짖자 프리시아는 더욱 고개를 숙이고서 아무런 소리도 못하고 있었다. 자신과 같은 공작의 지위에 있는 엘비레느의 여식은 듣기로 그렇게 야무지며 독하기 그지없다고 하던데 자신의 딸은 어째서 이렇게 착한 것인지. "너의 그 유약하기만 한 성격을 고치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했거늘 어찌하여 전혀 낳아질 기미도 보이지 않는 것이란 말이냐!" 착한 것은 죄가 되지 못하는 것이지만 지금 샤르니아 공작은 인상을 찌푸리면서 괜히 소리를 치고 있었다. 착한 것을 고쳐라. 유악한 마음도 버리라고 강요하듯이. 그런 강한 샤르니아의 모습에 말 그대로 약하고 순진하기만 한 프리시아가 어떻게 맞받아 칠수 있겠는가. 어깨를 살며시 떨면서 고개를 숙이고서 묵묵부답일 뿐이었다. "그렇게나 유약해서는 이 독사들이 눈을 사리고 있는 세계에서 살수 없다고 하지 않 았었느냐! 프리시아!" 계속 어깨를 떨면서 아무대답도 없는 프리시아를 보면서 답답한 모양인지 샤르니아 공작은 테이블을 치면서 말했다. 그렇게 공작이 테이블을 칠때 프리시아의 몸은 더욱 흠칫했고 결국은 이를 악물면서 눈물을 참을 정도였다. "하아. 우선 물어 볼것이 있다. 내가 널 부른 이유도 그것이지. 뉴럴에서의 너의 성적은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구나. 상위권이 아니면 안됀다는 사실. 알고 있겠지?" 떨고 있는 프리시아에게서 고개를 돌리며 한숨을 내쉬며 말하는 공작이었다. 그리고 프리시아는 그런 공작의 물음에 살며시 떨리는 손을 다른 손으로 꼭 잡고서는 무척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거.걱정하지 마십시오, 아버님. 아버님이 원하시는 대로 상위권입니다." 떨리는 목소리는 무척 마음에 안든듯 미간을 좁히는 샤르니아 공작이었다.그러나 뒤의 상위권이라는 말에 사실 조금 걱정이 되었었던 까닭에 안도의 한숨도 내쉬었다. "후우. 사실 걱정이 되긴 했었는데 상위권이라니 안심이 되는 구나. " "네." 한가지에 깊이 몰두하는 경향이 있는 프리시아였기에 마법분야는 뛰어난 능력을 발휘 했다. 그래서 뉴럴에서 마법은 가장 우수한 편이었다. 5클래스. 나이에 비해 엄청난 성작속도 였기에 가르치는 궁정 마법사들까지도 눈을 빛낼 정도였다. 그러니 다른 분 야에서 조금 뒤쳐진다 하여도 상위권을 유지 할수 있었던 프리시아였다. "흠. 내가 그렇게나 가기 싫어하는 널 왜 억지로 뉴럴에 보냈는 지는 알고 있겠지. 프리시아야." "알고 있습니다." 뉴럴아카데미의 또다른 이름이 황태자비 후보 교육 전문 아카데미였다. 그러니 모를 래야 모를수가 없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프리시아가 전혀 그것을 원하지 않고 가는 것을 거부했었다는 것에 있었다. '저와 친한 친구들과 적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전.' "그래. 당연히 알고 있겠지. 넌 꼭 황태자비가 되어야 한다. 엘비레느 공작의 여식인 실비제느에게도 뒤쳐져선 절대 안된단 말이다." "네." 그저 의례적으로 대답할 뿐 프리시아의 마음은 답답하기만 했다. 실비제느는 분명히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었다. 그리고 그 당당한 성격과 자신보다 뛰어나다고 느낄 정도 의 외모. 마법은 자신이 뛰어나지만 계속 자신이 실비제느보다 모자라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었다. "그리고 네가 황태자비가 될려면 그 유약하기만 한 성격은 반드시 고쳐야 할것이다. 그것도 이곳이 대 아텔린 제국인 한 그런 성격으로는 황태자비의 발끝자리도 구경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알겠습니다.아버님." "후우. 다시한번 말하지만 꼭 넌 황태자비가 되어야 한다." '나의 야망을 위해서. 그리고 엘비레느 공작의 야심을 막기 위해.' 뒷말은 마음속으로 되뇌이면서 강렬한 눈빛으로 프리시아를 바라보면서 말하는 공작 이었다. 그런 공작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면서 여전히 떨리는 손을 잡으면서 프리 시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노력하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저 평범한 사람의 아내이기만 하면 만족합니다. 아버님. 그런 큰자리 는 저에게 어울리지 않아요.' 고개를 숙이면서 조용히 말하는 프리시아가 못마땅한 샤르니아 공작이었지만 어떡할 수 없었다. 그저 믿는 수 밖에는. 할말을 다하고 나자 그나마 속이 편한듯 아직도 라일락 향기가 나고 있는 따뜻해 보이는 차를 바라보았다. 이제서야 마실 마음이 든 모양인지 사기에 금빛 문양이 새겨져 있는 고급스러운 찻잔을 집어들어서 살며시 입 에 가져다 된 공작은 금방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누가 끓였는 지는 모르겠지만 향기롭고 또한 부드럽게 거친 마음을 녹여주는 구나. 정말 훌륭하게 끓였어. " 공작의 말에 프리시아는 숙였던 고개를 그제서야 살며시 들면서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눈을 감고 음미하는 공작을 보았다. 그리고 나서 프리시아의 입가에는 순수한 미소가 잔뜩 어려있었다. 기뻐하는 어린아이처럼 순진하기 그지없는 맑은 미소가. '아버님이 좋아하시는 라일락 향기가 나도록 제가 끓인 것입니다.' 마음속으로 말하는 프리시아의 목소리가 공작에게는 들릴리 만무한 것이었다. 그리고 또다시 미소를 짓던 프리시아의 눈이 가라앉았다. '아버님. 아버님의 기대에 저는 만족시켜 드릴수 없을지 모릅니다. ' 프리시아의 작은 소망은 오직 자신이 낳은 아이들을 자비롭게 보살피면서 자기가 한 음식을 먹이면서 키우고 싶은 아주 작은 것이었다. 황태자비. 나중에 황후가 되는 그런 큰자리에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닌 아주 작은 소망. 제 목: 공녀(貢女) 카세리아느 [18 회] 글쓴이: 썬샤인 2003-01-26 조회/추천: 513 / 4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처럼 - 1 아텔린 제국의 고고한 천재라고 불리고 있으며 그렇게 알려져 있는 제 2황자. 그는 가인박명이라는 말을 감히 어길 생각이 없는 모양인지 몸이 허약하다고도 알려져 있 었다. 하지만 어느 대부분의 사람 중 그 누구도 그 이리스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가지 고 있는 제 2황자가 남을 한번에 속이는 데는 탁월한 연. 기. 라는 재주를 머리의 뛰 어난 천재성 뒤에 더욱 뛰어난 것으로 자리 잡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이 아텔린 제국 안에서 그것도 아주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이 아주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어쨋든 그런 이리스라는 아리따운 이름을 지닌 2황자는 자신의 푸른색의 시원하게 보 이는 윤기 나는 머리카락을 어깨까지 기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푸른 머리색은 창백 할 정도로 흰 피부와 조화를 이루어서 연약하고 병약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중성적인 외모라 신비해 보이는 미모의 소유자. 그가 바로 이리스였다. 그리고 지금 이리스는 지금 아무 죄도 없는 자신의 아름답게 다듬어져 있는 엄지손톱 을 이마에 인상을 찡그리고서 물어뜯고 있었다. "이래서는 불안해." 짧게 내뱉는 한마디였지만 그 말에는 괜히 신경질 적인 기운이 물씬 녹아 있었다.그 리고 그런 이리스를 보면서 이리스의 애견(愛犬)인 슈피르는 감히 가까이 갈 생각조차 하고 있지 않았다. 물론 지금의 이리스 또한 자신이 무척이나 아끼던 은빛의 고급스러 운 느낌을 주는 털을 자랑하는 왕족들만이 키울 수 있다는 희귀하면서도 보기 힘든 슈 페르티드종의 견(犬)인 슈피르를 보고 있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정확하게 알려져 온 소식에 의하면 어제 형은 카세리아느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었 다. 그래 분명히 내귀로 똑똑히 그렇게 들었어. " 이제는 맛이 있을리가 절대 전무한 무(無)맛의 손톱을 자신의 이빨로 잘근잘근 씹으며 이리스는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머리색과 같은 차가운 느낌을 주는 푸른 눈동자를 천천히 이쪽저쪽으로 굴리면서 미간을 점점 좁히고 있었다. 또한 무슨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자신의 빠른 회전력을 자랑하는 머리를 돌려 가면서 무엇인가 한 가지 결론을 내리려고 하는 것은 분명한 듯 보였다. 지금 이리스 의 모습은 무엇인가 생각하는 듯 했으니까. "그리고 내가 아는 형은 무척이나 자신에 것에 대한 이기심에 가까운 집착..그래 그런 독점욕이 강하다. " 조용히 내뱉는 이리스의 목소리는 계속 무엇인가 연구하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었고 슈피르는 어느새 그런 이리스의 곁에서 멀리 벗어나서 괜한 벽을 긁어 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신의 가장 훌륭한 성공작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신의 모습이라 찬 양할 만한 아름다움을 지닌 피조물이라면? " 그러고 나서 의문띈 목소리로 다른 말을 끄집어내는 이리스. 그렇게 조용히 한마디 한마디 내뱉던 이리스는 결국 차가우면서도 이것은 아니다. 라는 듯한 눈빛을 하며 눈을 빛내고서 화를 내며 자신의 불쌍한 손톱과 마찬가지로 아무 죄도 없는 자신이 앉고 있던 의자와 한 쌍인 고급스러운 책상을 자신의 가녀린 새하얀 손으로 빠르게 내리쳤다. "젠장!! 독점욕이 배가 되어 버리겠지." 그리고는 역시나 자신의 손이 감당하기에는 그 책상의 단단함은 장난이 아니었는지 살 며시 내리친 주먹을 어루만지는 이리스였다. 그러나 곧 또 다른 한 가지 사실에 부닥 치면서 다시 아픔도 잊은 채 또다시 주먹을 내리쳤다. "그렇다면 카세리아느를 그 독점욕에 묻혀서 못 만날지도 몰라. 제길!" 또 다시 주먹으로 단단한 책상을 아픈 주먹으로 내리치고 나서야 이리스는 배가 되어 오는 아픔을 느끼기 시작했고 괜한 화풀이로 튼튼한 나무책상을 성난 눈초리로 쳐다보 기 시작했다. 튼튼한 것이 한순간에 죄가 되어버리는 순간이었다. "호오." 그리고는 입술을 깨물 으면서 책상주위를 살벌한 눈초리로 훑었고 곧 이어서 무엇인가 를 발견한 듯 입에서는 살며시 탄성이 나왔다. 그것은 어제 자신이 애독했었던 무척이 나 두터운 분량과 또한 무척이나 무거운 질량을 자랑하는 아텔린 제국의 국보급고서 (古書)였다. 학자풍의 2황자 이리스이기에 감히 보는 것을 허락 받았던 귀한 고서. -타탕 그리고 이리스에게 아주 많은 죄를 지었던 책상은 그대로 그 무겁고 두꺼운 고서에 의 해서 내리 찍힘을 당했다. 물론 아무런 타격도 없긴 했지만 그 들려온 소리만으로 이 리스는 충분히 만족한 듯 보였다. 그리고 다시 두 손으로 고서를 들고서 책상에게 내 리칠려던 찰나. "고귀하신 황자 전하.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이리스가 했던 일의 결과물인 이리스에게 만족감을 주었던 소리를 들었던 모양인지 보초병이 놀란 얼굴을 하고 뛰어 들어 왔다. 몸이 허약한 이리스를 위해서 특별히 매 일 방문을 지키고 있어야 하는 보초병이었기에 그런 소리를 듣고 안 들어오려야 안들 어올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보초병이 들어옴과 동시에 내리찍을 포즈를 하고 있던 이리스는 어느 샌가 살며시 앉아서는 내던지려던 고서의 책장을 한장 한장 넘기고 있었다. 물론 보초 병은 그런 모습의 변화는 조금도 알지 못했다는 것에서 이리스는 무척이나 놀랍다는 말을 듣고도 남아야 했다. 그래놓고서도 못마땅 한듯 검은 뿔테안경까지 쓰고서 살짝 손으로 안경을 만지면서 무슨 일이 있냐는 듯한 투의 의문띈 눈동자로 보초병을 바라보는 이리스였다. "나는 독서 중이었는데 갑자기 무슨 일이지? " "갑자기 큰소리가 들려왔기에 들어온 것입니다." 그런 이리스를 보면서 보초병은 씩씩하게 대답했고 이리스는 못마땅하다는 듯한 표정 을 지으면서 보초병을 쳐다보았다. "그런 소리는 책을 읽다가 듣지 못했다. " "하지만 분명 밖에서는 그런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고귀하신 황자 전하." "분명히 난 아무소리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분명 무슨 일이 있었습니다. 고귀하신 황자 전하." 계속해서 자신의 말에 토를 다는 보초병을 보고서 이리스가 무엇을 생각했는지 보초병 은 알길 이 없을 것이다. '이거 정말 끈질긴 놈이군.' "아. 무. 일. 도. 없. 었. 다." "하..하지만!" 차가운 시선을 보초병에게도 던지면서 한글자마다 힘을 주어 말하자 그제야 보초병은 움찔거리며 몸을 사렸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버리는 보초병을 보면서 이리스의 입가에 미소가 걸리고 있다는 것을 보초병은 영원히 모를 진실이었다. "감히 황족을 기만하려 드는 것이냐. 무례하구나! " "그런 것은 아니오나.." "그렇다면 내가 거짓말이라도 하거나 아니면 이상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아니옵니다. 고귀하신 황자 전하. 한낱 보초병이 어찌!" "그렇다면 말꼬리를 계속 잡는 것이 과연 황자에게 할 짓이었단 말이냐? " 창백할 정도로 흰 피부에 검은색 안경을 쓴 이리스의 모습은 무척이나 연약하고 여린 병약한 이미지였다. 그러나 그 모습에 고서를 들고서 위엄 있는 눈초리로 말해오자 그런 여린 모습이 무척이나 도도해 보이는 보초병이었다. 중성적인 황자였음에도. 그리고는 자신이 잘못 들었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고개를 숙이면서 보초병은 말할 수 밖에 없었다. "고귀하신 황자전하의 귀한 독서시간을 방해드린것 정말 죄송하옵니다. " 그런 보초병을 보면서 이리스는 이제 입 꼬리를 올리면서 피식 웃고 있었다. '니가 그래봤자 별수 있겠느냐.' 이런 의미가 담겨 있는 웃음이었고 곧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보초병에게 말하면서 같 이 나가라는 듯 손도 움직였다. "괜찮다. 몸이 허약해 널 고생시켰던 내 잘못일 테니. 제자리로 돌아가거라." 살짝 웃는 이리스의 모습은 남자라 하기에는 약간 너무나 아름답게 보였다. 중성의 분 위기를 풍기는 이리스의 웃음은 이제껏 아름다운 여자라고는 보지도 못하고 오직 이상 하게 생긴 시녀들만 보아왔던 보초병의 마음을 녹이기에는 너무나 넘칠 정도로 충분한 것이었다.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랬기에 보초병은 넋을 놓고 있다가 아쉽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죄송했습니다. 그럼 이만. ” “아. 그리고 다시 그런 소리가 들려도 환청이겠거니 하고. 들어오지 말아줬음 좋겠 군. 난 무척이나 기분이 나쁘니.“ “알겠습니다. 고귀하신 황자 전하.” 그렇게 말하면서 사라지는 보초병을 보면서 이리스의 얼굴을 다시 처음처럼 찡그려졌 고 손에 읽는 답시고 들고 있던 고서와 안경은 이미 바닥을 향해 추락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보았다면 이것이 과연 매일같이 즐겨 읽고 아끼던 이리스의 모습인지에 의문이 갔을 것이고 또한 연기를 잘하다는 것을 아는 극소수의 사람이 보았다면 이것 도 연기인가..하는 의문을 가졌을 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걸 보는 슈피르는 동물의 감 각으로 인해서 이리스가 예전의 책을 아끼던 이리스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타탕 다시 한번 고서가 떨어지면서 둔탁한 소리가 보초병의 귓가에 들어왔으나 보초병은 환 청이겠거니 하면서 계속 앞을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고서를 던진 후 다시 무엇인가에 열심히 몰입하면서 생각 중이던 이리스는 잘 풀리지 않는 모양인지 고민하며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다가 슈피르와 눈이 마주치자 갑자기 미 소를 짓고 있었다. “그래. 우연은 없는 법이었지? ”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으면서 슈피르에게 성큼성큼 다가가면서 슈피르의 은빛 보드라운 털을 거칠게 쓰다듬는 이리스였다. 그러고 나서 창밖을 바라보고서는 살며시 눈을 가 늘게 떳다. “지금쯤 뉴럴에 간다면 그때는 점심시간이겠군. ” 정오의 태양은 아텔린 제국의 한 중앙에서 날카로우면서도 따사롭게 황궁안을 비추고 있었고 그런 이리스의 눈동자에는 오직 백색의 황궁안의 아카데미 뉴럴을 향해 있었다. “슈피르. 너도 카세리아느 보고 싶지? ” “멍멍” 알 리가 없는 슈피르에게 이리스가 웃으면서 말하자 슈피르는 알아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짖으면서 이리스의 몸에 자신을 부비적거리는 것으로 긍정의 의미를 보였다. 그리고 그런 슈피르를 다시 부드럽게 만져주면서 창밖을 보면서 다시 미소 짓는 이리 스였다. * * * * "저기. 카세리아느. 휴식시간인데 같이 정원으로 나가지 않겠어요? " 쑥스럽게 카세리아느에게 물어오는 이리스를 보면서 차갑기만 하던 카세리아느의 눈 동자에는 놀람의 빛이 살짝 차올라 있었다. 오늘 못 갈것이라고 에린을 보내서 말해줄 려고 했는데 이렇게 자신을 찾아올 줄은 알지 못했던 까닭에. "이리스. 사실 오늘 그곳에 못 간다고 말하려고 했었는데 이렇게 만나서 다행이네요. 그리고 미안하군요. 찾아오는 거 힘들었을 텐데. " "괜찮아요. 카세리아느를 찾아오는 거였는데 어려웠을 리가 없죠. " "컹컹!" 역시나 푸른 머리카락을 하얀색 끈으로 살짝 느슨하게 묶어서 옆으로 내놓은 이리스 의 모습은 가녀리고 순수한 소녀의 모습이었다. 안타까운 것은 아름답고 투명한 푸른 색 눈동자가 허공만을 응시하듯 초점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살짝 안타까움이 맴 돌았던 중에 활기차게 짖는 슈피르를 보면서 카세리아느의 눈동자는 그쪽으로 움직였 다. "슈피르가 반가운가봐요. " "그런가요." 살며시 카세리아느가 슈피르의 은빛 털을 쓰다듬어 주었고 이리스는 그렇게 고개숙여 있는 카세리아느를 보면서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그럼 저쪽으로 가면 안 될까요, 카세리아느?" "안될 리가 없죠." 살며시 슈피르를 쓰다듬느라 숙였던 허리를 일으키면서 말하는 카세리아느를 보면서 이리스는 살짝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그리고는 붉은 끈을 살짝 잡아당겨서 카세리 아느에게로 향해있는 슈피르의 모습을 자신 쪽으로 돌리는 이리스였다. "슈피르. 날 정원으로 안내해줘." "컹!" "슈피르가 그런 말도 알아들을 수 있는 건가요? " "우선 제가 잠자는 곳. 그리고 내가 공부하는 곳. 그리고 정원. 이렇게 세 가지만은 알아듣고서 절 안내해줘요. 고마운 친구에요. 슈피르는. " 카세리아느가 묻자 이리스는 수줍은 듯 살짝 미소 지으면서 대충 슈피르가 있는 지점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슈피르를 보면서 자랑스럽게 말하는 이리스를 보면서 카세리아는 알수없는 씁쓸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그렇군요." 어느 샌가 정원의 바로 가까이에 도착한 모양인지 향기로운 꽃내음이 부드럽게 불어오 는 바람을 타고서 카세리아느와 이리스의 콧가에 와 닿았다. 슈피르는 후각이 뛰어난 지라 둘이 향기에 취하기도 전에 멍멍 짖어왔었지만. "꽃향기가 모든 마음을 뒤흔들어 놓을 정도로 향기롭네요. 꽃이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이유가 아름다운 모습과 향기 때문일꺼예요." "그렇죠." "꽃들은 아름다운 모습과 더불어 그 자신들만의 독특한 매혹적인 향기로 사람들은 물 런 동물들까지도 유혹하죠. 그렇게 매료되어 버리는 거죠.“ 오전의 찬란한 햇살은 그들을 따사롭게 내리쬐었고 그 빛이 약간은 덥다고 느낄쯤이 면 어김없이 바람은 살며시 불어와 그들을 시원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그런 햇살의 따스함도 볼 수 없는 이리스는 초점이 없는 눈동자로 오직 앞만을 바라보면서 이야기하 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에 카세리아느는 그저 듣고서 고개를 끄덕이면서 의무 적 대답을 하고 있었다. "가끔씩. 내 눈이 안 보이는 것이 원망스러울 때도 많아요. 특히 지금은 더 그러네요." "이리스?" 살며시 슬픈 눈동자로 앞을 바라보면서 이리스는 안타깝게 가슴이 저린 듯한 사라질 듯 위태로운 미소를 지었다. 그런 갑작스런 이리스의 말에 놀라면서 반문하는 카세리 아느였다. 갑자기 눈이 안 보이는 것이 원망스럽다니. "체념하면서 살기엔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렸죠. 깜깜한 암흑. 그것만을 느끼면서 살 아가야 한다고 인정하기엔 말이죠. 그것도 선천적인 것이 아니었으니 더욱 그랬어요. 선천적이었다면 세상의 아름다움을 몰랐을 테니 조금이라도 덜 억울했을 테니까요." "..." 안타까움의 빛이 카세리아느의 눈동자 가득히 맺혀있었지만 그렇다고 위로의 말을 건 넬 생각은 없었다. 이리스가 말하는 말에 어설픈 위로를 건네는 것은 더욱 잔인한 일 임음 알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지금은 그저 들어주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 고 있는 카세리아느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미 세상의 빛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고 난 다음이었어요. 아름 다운 것들이었죠. 기억에 남는 것은 더럽고 추악한 것보다 아름다운 것이 더욱 많았 던 걸로 기억해요. 그래서 더욱더 절망해버렸어요. 지금 이렇게나 향기로운 꽃들의 아름다움을 눈으로 볼수 없어요. 그리고.. " 그렇게 까지나 감정적인 이리스는 아니었으나 갑자기 한가지 생각이 떠오른 모양인지 눈빛을 더욱 슬프게 하면서 무릎을 꿇어 슈피르를 끌어안았다. "사랑스러운 친구.. 슈피르도 볼 수 없죠. 물론 카세리아느도 볼 수 없어요. 그래서 인지 오늘따라 더욱 가슴이 미어져 오네요." 안타깝게 초점 없는 눈빛에 한 겹의 물막을 만들어 버린 이리스를 보면서 카세리아 느는 커다란 벚꽃나무에서 흩날리면서 떨어지는 핑크빛 꽃잎들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난 이리스가 날 못 봐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잔인하군요." 카세리아느의 말에 가슴이 저밀 듯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이리스였다. 그리고 그런 이 리스를 카세리아느는 바라보지 않고 그저 떨어지고 있는 꽃잎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가요? 하지만 정말 그래요. 이리스가 눈이 보였다면 슈피르의 소중함을 더욱 느 낄 수 없었을 거예요. 그리고 내모 습이 보였다면 전 절대로 이리스를 내 친구로 두지 않았습니다.“ "어설픈 위로는 오히려 마음을 휘저어 놓는다는 거 알아요, 카세리아느?" "난 눈으로만 보고서 그것에 빠져드는 것이 싫어요. 이리스. 그렇기 때문에 아무말 하지 않으려고 했음에도 말하는 거에요. " 모든 사람들을 끌어드린다고 해도 좋을 정도의 마력을 지닌 얼굴. 그것 때문에 자신 이 얼마나 고통스러워했는지 다른 사람은 모를 것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카세리 아느느 그랬다. 이곳으로 오게 된 것도. 황태자의 이기적인 소유욕도 그것때문일테니까. 카세리아느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카세리아느의 주위에 늘 머물러 있는 실프들이 눈치 챘을리 만무하겠지만 바람은 세차게 불어 주위의 꽃잎을 카세리아느의 배경으로 내어 주었다. 그리고 그런 바람에 카세리아는 손을 들어 자신의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손으 로 가지런히 만졌다. 하지만 떨어지고 있는 꽃잎만을 씁쓸히 바라보던 카세리아느는 이리스가 놀란 눈동자와 빠져드는 듯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은 알지 못 했다. "한번만.. 단 한번만 얼굴을 만질수 있게 해줄 수 있나요. 볼 수 없으니 한번 만질 수 있게 해주면 기쁠꺼예요." 갑작스러운 아무런 상관도 없는 말을 내뱉는 이리스 쪽으로 눈길을 돌리면서 살며시 미간을 좁히는 카세리아느였다. 뜬금없는 소리. 그렇지만 초점 없는 눈길이 자신이 아닌 다른 쪽을 향하고 있자 살며시 다가가 안타까운 눈빛으로 이리스의 손을 자신의 얼굴에 가져다 대었다. "고마워요. 그리고 미안하지만 눈을 감아 줄래요?" 이리스의 말에 카세리아느는 차갑게 이리스를 바라보다가 눈을 감았다. 그러고 나서 야 이리스의 눈은 초점을 찾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 있는 모습조차 너무나 아름다운 카세리아느의 얼굴을 살며시 떨리는 손으로 볼을 쓰다듬었다. 부드럽고 깨끗한 하얀 피부. 그리고 긴 속눈썹으로 덮여있는 눈. 오똑하기만 한 코. 살며시 감탄에 어린 눈동자로 바라보며 만지던 이리스의 눈에는 어느 샌가 피처럼 붉 은 입술이 들어왔고 자신의 떨리는 손은 조심히 입술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자신의 눈을 잡고서 놓아주지 않는 매혹적인 붉고 가는 입술에 이리스의 눈동자는 안보일 때처럼 초점이 풀리더니 눈을 감으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신의 입술을 천천히 가져갔다. 조금씩 자신의 약간은 창백한 빛을 띠는 입술을 가져가던 이리스의 머릿속은 백지처 럼 하얗게 비워져 있었다. 아무생각도 할수없었고 자신이 무슨 행동을 하는지조차 이 리스는 알고 있지 않았다. 꽃에 나비가 모여들고 벌이 꿀을 찾듯 당연하다는 듯 느낌 을 가지고 있을 뿐. 조용한 공간. 조금의 숨소리만 간간히 들려오는 멈춰버린듯한 시간속에서 그렇게 이 리스의 두근거리는 심장소리만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슈피르가 있는 걸 보니 거기 이리스인가요? " 갑자기 들려오는 부드러운 톤의 목소리에 이리스는 멈칫하며 고개를 돌렸다. 마치 자 신이 무슨 짓을 하다가 들킨 범죄자의 깜짝 놀란 모습으로. '내가 무슨짓을 한거지?' 자신의 마음에 의문을 던져보았지만 그 어두운 암흑은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않았다. 그런 혼란스러운 마음을 추스릴 사이도 없이 자신의 앞에 서있는 소녀를 보면서 이리 스 자신도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프리시아." "뭐하고 있었길래 그렇게 놀라는 거죠? " 새하얀 하늘거리는 순백의 원피스를 입고서 옅은 금발을 어깨까지 늘어뜨리고 있는 프리시아는 놀란 이리스를 보면서 자신 특유의 순수함을 머금은 미소를 지었다. 카세리아느와는 다른 의미의 공녀(公女)인 샤르니아 공작가의 영애. 프리시아 루젤 론 샤르니아. 소심해 보이는 성격인데도 한나라의 황자인 이리스와 친구인 것은 무척 의외인 느낌은 지울수 없게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사이 카세리아느도 계속 눈을 감고 있을리는 없었고 살며시 눈을 떠 고개를 돌리고 있는 이리스와 프리시아를 바라보았다. "거기 계시는 그분은 이리스의 친구분이신가요? " "프리시아. 그게 말이야." 프리시아가 카세리아느를 발견한듯 톤을 낮추면서 수줍게 묻자 이리스는 복잡한 심정 으로 말해주기 위해 다급하게 말했다. "이리스. 절 속였나요? " 차갑게 가라앉은 냉기까지 흐를정도의 미성에 이리스는 다시 황급히 고개를 돌렸고 너무나 급하고 다급했던 모양인지 입술까지 깨물고 있었다. 그런 이리스를 보면서 카세리아느는 무엇하나를 느낀 모양인지 차갑기 그지없는 눈을 가늘게 뜨고서 붉은 입술을 움직였다. "눈의 초점이 잡혀있군요. " "!!" "이리스 내 말에 대답을 안해줬어요." 카세리아느의 말에 이리스는 그제서야 자신이 카세리아느를 정확하게 보고있다는 사 실을 알수있었고 자신의 연기에 차질이 생겼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냉정을 잃지않고 늘 자신의 연기를 들키지 않았었던 이리스였기에 그 충격은 배로 돌아왔다. 뒤에서는 프리시아가 말을 걸어오고 있고 앞에서는 카세리아느가 자신을 경멸스럽게 쳐다보고 있었다. 이 상황을 두고서 아마 사면초가라는 것이 아닐까. 어떻게 해결해 야하는지 막막하기만 한 이리스였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말. 어떤 망할 현자가 했더라? 있으면 지금 와서 그 구멍을 찾아보란 말이다!' 괜한 현자를 탓하면서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이리스는 프리시아에게로 고개를 다시 돌렸다. 그곳에는 여전히 엄마같이 포근한 미소를 지으며 서있는 프리시아가 있었고 이리스는 원망어린 시선을 던졌다. 그런 눈길을 프리시아는 살며시 이해가 안간다는 듯 바라보다가 이리스의 모습을 보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이리스. 오늘따라 무척 여성스러워 보이네요. 여성스럽게 보이는 게 싫 다고 늘 어울리지도 않는 두툼한 복장을 입던 이리스 아니었나요? " 뒤에서 괜한 냉기가 자신의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것을 느끼며 이리스는 믿지도 않았 던 신을 부르고 싶을 정도였다. 너무나 혼란스러워 하나씩 정리하기도 힘든 이리스의 마음을 대변해 주려는지 분홍빛이 도는 벚꽃 잎이 하늘하늘 어지럽게 떨어져 내렸다. '이렇게 되면 털어놓는 수밖에 없어.' 마음을 굳히고서 프리시아를 뒤로한 채 다시 고개를 둘리며 진지한 모습으로 카세리 아느를 바라보는 이리스. 그런 이리스를 싸늘하게 식어버린 눈동자로 변명이라도 해 보라는 듯 카세리아느는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얼마 후에는 알려줄 생각이었어요." "그런가요." 카세리아느느 이리스의 말을 듣고서 불신의 눈동자로 이리스를 보다가 곧 보기도 싫 다는 듯이 고개를 돌렸다. "얼마 후에 무도회가 열리잖아요. 그때 밝힐 생각이었어요. 놀라게 해줄 생각이었다 고요. 절대로 계속 속이려는 생각은 없었어요." 진지한 눈동자에서 카세리아느가 자신을 보기도 싫다는 듯 고개를 돌려버리자 이리스 는 안타까운 눈동자로 바꾸며 또한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그런 이리스를 프리시아는 바라보다가 살며시 다가가고 있었다. 안타까운 이리스의 목소리에도 카세리아느는 조용히 꽃잎을 바라보다가 살며시 입을 열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뉴럴에서 남자라면 황자전하가 되시겠군요. 의도적인 접근이었나요." 살며시 꽃잎에서 이리스로 눈동자를 돌리면서 바라보는 카세리아느. 그리고 카세리아 느의 말에 이리스의 눈동자는 크게 떠지고 있었다. "그..그런.." 살며시 떨리는 이리스의 음성에 확신을 내린 듯 차갑고 경멸스러운 눈동자로 바라보 며 카세리아느는 살며시 속았다는 것에 대해서 차오르는 감정에 입을 열었다. "재밌었나요?" "짧은 기간이에요. 카세리아느. 겨우 어제 만났다고요.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죠? 재미로 카세리아느를 속였을 거라 생각하는 건가요, 지금? " “그럼 아니라고 말할 수 있나요? 실망했어요. 이리스는 적어도 외면이 아닌 내면을 알아주면서 친구가 되어달라고 한 건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제 보니 속은 거였네요. 저에게 접근한건 황태자전하 때문이었던 건가요? “ “카세리아느. 물론 아니라고 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 ” “내가 아까 말했었죠? 이리스가 눈이 보였다면 친구하지 않았을 거란 말. 더 이상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아요. 다음에.. 다음에 이야기했으면 합니다. 고귀하신 황자 전하.“ 카세리아느는 경멸적인 눈빛을 지으며 차갑게 이리스의 눈동자를 바라보다가 곧 고개 를 숙이며 일부러 황자전하란 말까지 사용하며 뒤돌아서 빠르게 걸어갔다. 그 뒤로 꽃잎은 지겹도록 어지럽게 바람에 흩날리며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컹컹!” 슈피르가 안타깝게 짖었지만 카세리아느는 떠났고 프리시아는 대화를 끼어들 자리가 아니라 듣고 있다가 살며시 이리스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이리스가 잘못한거에요. 자신이 속여졌다는 것은 무척이나 배신감을 느끼는 일이 죠. 지금 이리스가 해야 하는 일은 용서를 구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멍하니 카세리아느가 떠나는 쪽을 바라보는 이리스의 눈동자는 너무나 허무한 빛을 띠고 있었고 어쩌면 밝혀지게 만든 프리시아에게 분노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리스는 그저 살며시 고개를 돌려 프리시아의 어깨에 자신의 머리를 대면서 조용히 눈을 감으며 생각했다. ‘그럴지도 몰라. 특히나 공녀(貢女)로 보내져 온 카세리아느라면 형보다는 내가 지 금 더 미울지도 모르지. ‘ 프리시아는 그런 이리스를 엄마같이 포근하게 어깨를 두드려 주었고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푸르른 이리스의 머리카락이 조금씩 부드럽게 프리시아 의 어깨에서 밑으로 떨어져 내렸다. 눈을 감고 있던 이리스의 푸른 눈동자가 떠졌고 이리스의 약간 창백한 입술은 하얀 이로 살짝 눌러졌다. “이번 황실 무도회에서 확실하게 용서를 구하겠어. ” 상당히 결의에 차있는 이리스의 말을 들으면서 프리시아는 아무말도 없이 그렇게 살짝 안타까운 빛을 띠면서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고 있었다. 제 목: 공녀(貢女) 카세리아느 [19 회] 글쓴이: 썬샤인 2003-01-26 조회/추천: 526 / 2 황궁무도회 - 1 눈이 부실정도로 화려하기 그지없는 오직 무도회만을 위해서 만들어진 무도회장. 지금은 벌써 10시 정도의 어두워진 밤이었음에도 그 실내 안은 마치 낮인지 밤인지 구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눈부시게 환했다. 곳곳에는 마법구가 아름다운 모습으로 빛을 발하고 있었고, 또한 높디높은 천장위에는 샹들리에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부서져 내릴듯한 아름다움을 지닌 수정과 황금 으로 장식되어 있는 큰 샹들리에는 특히 눈길을 무척이나 끌었다. 샹들리에의 화려함만 볼수 있어도 알수 있듯 무도회장은 바로크와 로코코양식으로 꾸 며져 있었다. 바로크와 화려함과 로코코양식의 셈세한 아름다움이 조화롭게 어울려 무도회장은 많은 귀족가의 영애들과 귀족가의 귀부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악단들은 그런 분위기를 아는 모양인지 무척이나 부드러운 곡을 연주하고 있 었다. 그리고 그런 음악탓에 몇몇의 눈이 맞은 귀족들은 중앙홀에서 열심히 서로에게 눈빛을 던지며 열정을 불태웠다. 물론 그곳에서 소외된 다수의 영애들은 모여서 놓여져 있는 고급스런 음식에 손을대고 있기도 했지만 대체로 분위기는 흥분과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기대로 웅성거렸 다. 오늘은 황태자를 볼수있고 또한 그 황태자는 안되더라도 황자들을 볼수 있으니 그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것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런 지금 카세리아느는 일찍 도착한 무도회장 구석의 한 테라스에서 우연히 만난 프리시아와 같이 있었다. 오늘따라 무척이나 밝은 아름다운 달을 구경하며 조용 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둘이었다. "카세리아느. 이리스 나쁘게 생각하지 말아 주세요. " 진한 와인은 약해 마시지 못하고 과일음료를 마시고선 웃으며 프리시아는 카세리아느 를 보며 말을 걸었다. 자신의 순수함을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연하지도 진하지도 않 은 녹색의 발랄한 드레스를 입고 있는 프리시아는 약간 곱슬기 있는 머리에 단 하나 의 장식만으로 돋보이게 장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카세리아느는 쇄골선이 살짝 보이는 푸른 실크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그 푸 른색이 카세리아느의 차가움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 괜히 근접할수 없을 만큼의 분 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마치 신성한 여신이 강림한듯한 느낌. 그리고 보석도 맞춘듯 전부 푸른색의 계통이라 그 느낌은 더욱 강하게 다가왔다. 오직 다르다면 아무손도 대지 않은 검은 머리카락만이 다를 뿐이었다. 아무것 도 꾸미지 않은 머리카락임에도 그것이 더욱 카세리아느의 머리카락을 돋보이게 만들 고 있었으니 신기하기만 했다. "이리스..를 나쁘게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생각하기 싫다는 듯 눈빛을 더욱 차갑게 만들면서 달을 쳐다보는 카세리아느였다. 그 러나 프리시아는 계속해서 그 문제를 꺼내고 있었다. "그럼 어제는 왜 그러신 거에요?" "절 속인것을 인정하고 용납할수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그건 카세리아느와 친해지고 싶어서 그런거에요." 프리시아의 말에 카세리아느는 씁쓸하게 눈동자를 바꾸며 달을 바라보던 눈길을 깔며 달빛이 배어 있는 새하얗게 빛나는 테라스를 바라보며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 " "분명히 그런거라고요. 그러니 이해해 줄수도 있잖아요?" 프리시아는 살짝 인상을 찡그리면서 과실음료를 내려놓으며 카세리아느를 용서해달라 는 눈동자로 애처롭게 바라보면서 말했다. 카세리아느는 자신의 일도 아닌데 이렇게 나 신경을 쓰면서 용서해 달라고 말하는 프리시아가 보기 힘든 모양인지 계속 테라스 의 난간만을 바라보다가 살짝 다가갔다. 그리고는 테라스에 손을 기대었다. 그러다가 살짝 고개를 숙이며 오늘따라 더욱 붉은 입술을 움직였고 그 입에서는 모습 보다도 더욱 차가운 미성이 흘러져 나왔다. "이해해 줄수도 있습니다.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요. "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죠? 이해해 주고 용서해주기만 하면 되는 건데요." 프리시아는 카세리아느의 말에 희망이 보인듯 미소를 띄우면서 부드럽게 접근해 들어 갔다. 그렇게 부드러운 미소를 띄며 다가오는 프리시아를 카세리아느는 고개를 올려 그 차디찬 눈동자로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친구라고 생각했기에 그것이 힘든겁니다." 분명히 카세리아느는 이리스를 친구라고 생각했다. 아텔린에서 친구란 불필요하고 만 들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던 카세리아느에게 그 의미는 더욱 크기도 했다. 그리고 카세 리아느는 이리스를 믿고 있었다. 그 하루밖에 안되는 짧은 시간임에도. 그런데 아니었다. 자신의 친구였던 이리스는 지금의 이리스가 아니다. 그것은 꾸며진 모습이었고 믿었던, 친구라고 생각했던 친구 이.리.스.는 없었다. 믿었던 것의 배신. 그것은 엄청난 의미로 카세리아느를 덥쳐왔다. "친구니까 더욱 이해해 줘야 하는것 아닌가요?" "제가 친구라고 믿었던 이리스는 지금의 황자 전하의 모습인 이리스, 아니 이리스 전 하가 아닙니다." 프리시아가 카세리아느의 마음을 안다는 것이 불가능하고 카세리아느와 프리시아의 마음이 같은 것도 불가능하다. 카세리아느는 카세리아느고 프리시아는 프리시아일 뿐 같은 사람이 아니기에 말이다. 날카롭고 차가우면서 냉정하게 말하는 카세리아느를 보면서 프리시아는 아무말도 하 지 못하면서 멀뚱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렇게 멀뚱히 바라보다가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모양인지 프리시아는 인상을 찡그리면서 안절부절하지 못하고 있었다. "전 언제든지 그때의 이리스로 돌아갈수 있어요!" * * * 주인공은 늘 마지막에 나타난다. 라는 불멸의 진리처럼 무도회가 거의 불타오르고 있 을 무렵 황제와 황태자 그리고 황후는 그 모습을 드러냈다. 절대적인 왕권을 행사하 고 있는 이 아텔린에서는 그런 황실이 주는 위압감은 가히 엄청났다. "황제폐하 납시셨습니다!" 그 시종의 목이 터질 듯한 큰소리에 무도회에서 즐기고 있던 귀족들의 웅성거림은 마 치 누군가 죽기라도 한듯 고요해 졌다. 악단들은 그런 황제의 등장을 압도적인 분위기의 음악을 연주함으로써 고조 시켰다. 그런 분위기를 즐기며 조용히 무게감을 주면서 기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등장하는 건장한 남자. 아텔린의 절대적인 군주인 황제의 모습은 인자하기보다는 강렬한 날카로운 인상을 주는 사람이었다. 황태자와 같은 블루블랙의 짙은 청색머리카락과 눈동자를 지닌 압 도적인 카리스마를 행사하는 이. 그 절대적인 군주의 모습 앞에 무도회장의 모든 귀족들은 앞 다투어 고개를 숙였다. 그 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황제에 대한 충성을 증명하고 있었다. "황후마마와 케이론 황태자께서 납시셨습니다!" 또 다시 들려오는 또 한명의 목 터질 듯한 큰소리와 함께 거의 모든 영애들의 시선이 그쪽에 가서 내리 꽂혔다. 이리스와 같은 푸른색 머리카락의 아름답지만 왠지 모르게 강해보이는 황후는 물론 그 대상이 아니었다. '저분이 황태자전하. 너무 잘생기셨어.' '아.. 황태자전하. 오랜만에 뵙게 되는 군요.' '저분의 반려가 되고 싶어.' 영애들로 하여금 이러한 생각을 끌어내게 만드는 오직 한사람. 매혹적인 미소를 지어 주며 등장하는 황태자였다. 오늘은 늘 늘어뜨려 놓던 머리를 푸른색 끈으로 묶어 놓 아서 상당히 지적으로 보이면서도 위험한 향기를 풍기고 있었다. 중앙의 황금으로 된 옥좌에는 당연히 황제가 자리하여 앉아 있었고 황제의 왼쪽에는 황후가 그의 오른쪽에는 황태자는 다음의 황제가 될 황태자가 앉았다. 그 옆으로는 줄줄이 다른 황비. 황자. 황녀들이 자리를 갖춰 앉아있었고. 하지만 황태자는 알지 못했다. 그 자리들 중 하나가 비어있다는 사실과 그 자리의 주 인이 누구인지도 말이다. "그럼 계속 무도회를 진행하라!" 호탕한 목소리의 황제가 손을 들어올려 말함으로써 쥐죽은 듯 고요하던 분위기는 원 래의 활기를 되찾아 가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시작된 무도회에서 황태자의 눈동자는 이곳저곳을 누비고 있었다. 오직 찾는 것은 희귀한 흑색의 윤기 나는 머리카락이었다. 그리고 오늘은 더욱 눈이 부실 한사람. 그러나 보이질 않았다. 무도회장의 너무 커다란 크기가 그 사람을 잡아 먹었 을리는 불가능했을 텐데도. 구름이 태양을 가릴지언정 그 빛은 가리지 못함과 같이 그 사람의 아름다움은 알아서 황태자의 눈 속에 들어왔을 텐데 말이다. "오라버니. 누구를 그렇게 찾으시는 것입니까?" 주위를 자꾸 둘러보는 황태자가 눈에 들어왔는지 황태자의 옆에 자리하고 있던 어린 황녀 샤이나는 홍조를 띈 얼굴로 물어왔다. 의문 띤 초롱초롱한 눈동자로 황태자에게 무언가를 기대하며 묻는 샤이나를 보면서 황태자는 웃으며 말했다. "그럴 리가 있겠느냐. 샤이나. 훗. " 늘 그렇듯 환상적인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는 황태자를 보면서 샤이나는 얼굴에 더욱 홍조를 띄다가 실망했다는 듯 볼을 부풀리며 새침하게 말했다. "아쉬워요. 이번에는 장난감이 아닌 진실한 반려를 찾은 줄 알았는데. 핏." "훗. 진실한 반려라.. 그런 말도 알고 있구나. 샤이나. 후훗." "오라버니는 제가 모른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 "훗." "오라버니의 웃음은 너무나 매력적이니까 그렇게 함부로 낭비하지 마시고, 진실한 반려가 될 사람이나 찾아보시라고요!" 그런 샤이나의 말에 황태자는 그냥 웃음으로 무도회장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옆 에서는 황제가 귀족들의 인사를 받으며 의례상으로 대답해 주고 있었다. 황제. 그 권위 높은 절대적인 언젠가 차지할 자신의 자리. 그것도 그곳이 강대국이니 만큼 그 자리의 매력은 너무나 달콤했다. 하지만 그 황제라는 자리도 황태자의 마음 을 완벽하게 사로잡지는 못하고 있었다. 언젠가는 자신이 가지게 될 자리가 무엇 그리 탐날 리가 있겠는가. 지금 황태자가 가장 매력을 느끼고 있는 것은 다른 것이었다. 언젠가 자신의 손안에 들어올 텐데도 끊임없 는 매력을 가지고 있는 것. 살짝 미소를 지으며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황태자를 보면서 샤이나는 알 수 없다는 듯이 볼을 부풀리면서 못마땅한 듯 노랫소리를 감상하고 있었다. "신 엘비레느공작이 아텔린 제국의 차기 군주이신 황태자 전하께 인사드립니다." "소녀. 엘비레느공작의 여식인 실비제느가 아텔린 제국의 차기 군주이신 황태자 전 하께 인사드립니다." 황태자는 생각하는 듯 다른곳을 응시하다가 갑자기 들려오는 소리에 자신의 앞을 바 라보았다. 익히 알고 있긴 했지만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 엘비레느공작과 그의 딸 이라는 처음 보는 붉은 머리의 성숙해 보이는 소녀였다. "일어나도록 하시오." 마음에 들든 들지 않던 황태자는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고 둘은 고개를 들었다. 그리 고 고개를 든 실비제느를 보면서 황태자의 눈은 놀랍다는 듯한 빛을 띠고 있었다. "소인의 하나밖에 없는 여식입니다. 황태자전하. 전하께서 예뻐해 주시고 아껴주신다 면 무척이나 소인은 기쁠 것이옵니다." 엘비레느공작이 괘심스레한 눈으로 황태자에게 기분 나쁘게 미소 지으며 자신의 딸을 소개했다. 그리고 엘비레느공작의 손이 가리키는 곳에는 무척이나 파격적인 옷을 입고 있는 실비제느가 유혹적인 웃음을 짓고서 도발적인 시선을 보내며 황태자를 쳐 다보고 있었다. 붉은 머리카락과 도발적인 짙은 와인색의 몸에 달라붙는 드레스인지도 의심스러운 귀 족들의 눈을 집중시키는 옷을 입고 있는 실비제느였다. 황태자는 그런 실비제느를 보 면서 모든 영애들을 매료시켰던 웃음을 지으며 말을 걸었다. "훗. 그대가 실비제느라고 했었나? " "그렇습니다." "엘비레느공작의 영애가 이렇게 아름다울 줄은 몰랐습니다. 후훗." 황태자의 말을 들으면서 실비제느는 더욱 유혹적인 웃음을 지었고 황태자의 옆에 있 던 샤이나는 괜히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저 여자는 불여우야! 근데 오라버니는 무엇이 좋다고 자꾸만 웃음을 흘기시는 거지? 저딴 여자보다 예쁜 여자들은 얼마든지 있단 말이야! 뭐. 하루 동안의 놀이 상대일 뿐 일 테지만. 열 받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샤이나의 마음을 알 리 없는 황태자는 계속해서 자신을 유혹하려는 웃음을 짓고 있는 실비제느에게 미소를 지어주었다. '황태자의 마음을 뺏는 것은 의외로 쉬울 것 같은 걸? 호호호!' 황태자의 웃음을 그런 쪽으로 해석하는 실비제느는 황태자의 눈동자가 얼마나 무심하 게 자신을 쳐다보는지는 알지 못했다. 웃고 있는 것은 입일 뿐, 황태자의 그 눈동자 가 얼마나 차갑게 자신을 내려보고 있는 지 말이다. "황태자전하. 제 여식을 이렇게 세워두실 작정이십니까? " 황태자가 여간해서 춤을 권하지 않자 다급했던 모양인지 공작은 그렇게 말해왔고 황 태자는 더욱 진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실비제느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름다운 그대와 춤을 추는 것을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그렇게 황태자가 일어나 자신의 딸과 손을 잡고 나가자 엘비레느공작의 입가에는 그 제서야 웃음이 지어졌다. 자신의 딸은 지금 이곳에 있는 모든 영애들의 질투어린 시 선을 받으며 춤을 추고 있으니 웃음이 안 지어질수가 있겠는가. '마음에 안 들어. 이 할방탱이는 완전히 늑대잖아?!' 그런 공작의 모습으로 한 소녀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알지 못한 채. * * * * * 중성적이어서 더욱 매력적인 목소리가 카세리아느와 프리시아의 귓가를 울렸다. 커튼 을 손으로 잡고서 서있는 이리스가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었다. "이리스.." 그런 이리스를 보면서 프리시아는 안타까운 듯 그런 말을 내뱉었다. "프리시아. 미안하지만 나가줄래? 카세리아느와 둘이서만 이야기 하고 싶어." 오늘따라 강한 눈빛을 내보이면서 프리시아를 발견하고서 나가달라고 말하는 이리스 였다. 프리시아는 결의가 찬 이리스의 눈동자를 보고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았어요. 그럼 둘이서 이야기 잘 해봐요." "전 황자전하와 둘이서 이야기 할 마음 없습니다." 프리시아의 말 다음에 그대로 차갑게 말하는 카세리아느를 보면서 프리시아는 안타깝 게 이리스를 쳐다보았다. "괜찮아. 프리시아는 나가줘. " 그런 프리시아를 보면서 이리스는 미소를 띠며 안타깝게 말했다. 그리고 프리시아 가 나가고 난 다음에서야 이리스는 카세리아느가 있는 난간 쪽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지금은 황자인 이리스가 아닌 카세리아느의 친구인 이리스에요." "분명히 말했습니다. 다음에 말하자고 말입니다." "그 다음이 대체 언제라는 거죠? 제가 죽은 다음에서야 그때서 이야기 하자고 할건 가요?!" 이리스는 싸늘하게 식어서 자신을 쳐다보려고도 하지 않는 카세리아느에게 소리쳤다. 자신의 말을 들어줄려고도 하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알지도 못하는 카세리아느가 너 무나 답답하기 그지없는 이리스였다. 이리스의 격한 감정이 실린 말에 카세리아느는 아무 말 없이 달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미안해요. 용서해 줘요. 카세리아느. 내가 잘못했어요." 달만을 바라보며 자신을 바라보지도 듣지도 않는 듯한 카세리아느를 보면서 이리스는 조용히 아래만을 쳐다보면서 중얼거리듯 말했다. 젖어오는 이리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그제야 카세리아느는 고개를 돌려 이리스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무척이나 차가운 눈동자지만 쳐다본다는 것은 그나마 이야기 할 마음이 있다는 것이다. "머리로는 용서하고 있지만 마음이 용납하지 않고 있어요. 황태자전하 때문에 내게 접근한 이리스를 말입니다." "황태자, 형때문에 호기심으로 접근한 것은 맞아요. 하지만 전 카세리아느를 좋아한다 고요. 왜 그걸 몰라주는 건지 모르겠어요." 이리스는 강한 눈빛을 보내면서 말했고 그 눈빛을 카세리아는 받아치고 있었다. 그 얼음 같은 차가움을 지닌 눈동자로 말이다. "얼마 안 되는 동안에 좋아한다는 것이 가능한가요? 그리고 그 감정은 황태자전하와 같은 소유욕이 아닌가 모르겠군요." "얼마 안 되는 동안에도 좋아하는 것은 가능해요. 그리고 소유욕일리 없잖아요." "그렇다면 그 감정이 내 모습이 추했더라도 생겼을 거라 장담할 수 있나요?“ “그..그건.” “아마 불가능했겠죠. 결국 이리스도 황태자전하와 다를 게 없는 겁니다." 차갑게 말하는 카세리아느를 보면서 이리스는 얼굴을 찡그리면서 화가 난모양인지 몸 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리고 그 화가 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이리스는 눈을 부릅뜨면서 카세리아느의 가녀린 손목을 잡았다. "틀려요. 날 형과 비교하지 말아요. 전 카세리아느를 형보다 사랑해요." 카세리아느는 차가운 눈동자로 이리스를 쳐다보며 손목을 풀려고 손을 흔들었지만 여자 같아 보이는 이리스도 남자인지라 그 힘은 무시할 수 없었다. "놔줘요. 이리스." "말로 해서 알지 못한다면 행동으로 밖에 표현할 수 없겠죠. 이런 방법 사용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리스는 안타깝다는 듯한 눈동자를 하며 카세리아느에게로 다가와 강제로 자신의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카세리아느의 붉고 촉촉한 입술에 이리스의 입술은 닿았고 카세리아느의 눈동자는 크게 떠졌다. -찰싹 "다른 손이 남아있었네요. 이리스가 이런 사람인줄 몰랐습니다. " "..." 이리스의 볼과 카세리아느의 새하얀 손에서 나온 찰싹이라는 소리와 함께 이리스의 얼굴을 돌려졌다. 그리고 카세리아느를 잡고 있던 손도 그 바람에 놓아져 있었다. 잡힌 손의 다른 쪽으로 손을 들고서 더럽다는 듯 입술을 훔치며 경멸스럽다는 듯한 눈 동자와 목소리로 말하는 카세리아느였다. "다시는 보지 않겠습니다." "!!" 갑자기 들려온 충격적인 말에 자신의 맞은 뺨을 손에 대고서 가만히 아무 말도 있던 이리스는 고개를 돌려 경악적인 시선으로 카세리아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시선 을 받으며 카세리아느는 차갑게 쳐다보며 마지막을 알리며 테라스 밖으로 뛰쳐나갔다. * * * * * 귀족 영애들의 부러움과 질투어린 시선을 받으며 춤을 추고 있던 실비제느는 더욱 황태자의 몸에 자신의 몸을 붙이며 최대한 요염한 자태를 유지하며 말했다. "전하. 이 춤이 끝나면 테라스로 가지 않으시겠습니까?" "후훗. 못 갈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데?" "그럼 조금 있다가 같이 가주셨으면 해요. 전하와 이야기 나누고 싶은 것이 많이 있어서.." "그러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차가운 눈동자로 실비제느의 모습을 바라보면서도 여전히 환상적인 미소를 지으면서 말하는 황태자였다. 그리고 황태자의 말에 실비제느는 기쁜 듯 미소를 지으면서 더욱 황태자에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 음악은 멈췄고 동작을 멈춘 사람들은 음식이 놓여져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물론 황태자와 실비제느도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황태자는 그 곳에 있는 와인 잔에 와인을 부으며 손에 들었다. "전하. 저쪽 테라스의 달빛이 아름답습니다." "후훗. 그래. 괜찮겠지. 그대 같은 사람도." 실비제느가 무도회장의 수도 없는 테라스 중에서 가까운 곳을 바라보며 말하자 황태자 는 살며시 와인을 입으로 끌어들이면서 매력적인 웃음을 지으며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었다. 그리곤 차가운 시선으로 실비제느를 쳐다보자 모습에 실비제느는 살며시 빠진 듯 하면서도 매혹적인 웃음을 흘렸다. * * * 카세리아느가 이리스를 피하며 자신이 있던 테라스를 빠져 나왔다. 차갑게 이리스를 바라보며 나간 카세리아느의 모습에 정작 그 눈길을 받은 이리스는 망연자실하고 있 었다. 그렇게 멍하니 있던 이리스였지만 곧 이래선 안된다는 것을 느꼈는지 빠르게 카세리아느의 뒤롤 쫒아 테라스를 뛰쳐 나갔다. “카세리아느~!” 그렇게 외치는 이리스의 목소리가 카세리아느에게는 들렸을 것이다. 하지만 카세리아 느는 노골적으로 외면하며 이리스를 피해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서 한쪽에 마련되어 있는 커텐이 살며시 쳐져 있는 테라스가 카세리아느의 눈에 들어왔고 이리스를 피해야겠다고 생각해 문을 연 테라스 안에는 황태자가 있었다. 물론 혼자가 아니라는 것이 카세리아느의 눈을 더욱 크게 뜨게 했다. 황태자의 앞에는 붉은 와인같 은 여인이 뒷모습으로 서있었다. 황태자는 카세리아느가 들어오자 눈을 가늘게 뜨며 카세리아느를 바라보면서 키스하 고 있었다. 와인을 들고 있는 손의 반대쪽 손으로 여자의 머리에 손을 올린 황태자의 지금 모습은 카세리아느로 하여금 마치 보라는 듯한 행동이었다. 황태자의 행동에 붉은 머리의 여자, 실비제느는 살짝 놀란 듯 했으나 곧 기쁘다는 듯 황태자의 어깨에 자신의 손을 올렸고 이 모습을 보고 있을 어느 영애에게 괜한 우월 감에 빠져 있었다. 그런 모습에 카세리아느의 눈은 놀란 듯 크게 변했으나 곧 평정을 유지하고서 평소의 모습인 모든 것을 얼려버릴듯 차가운 모습으로 돌아왔다. "카세리아느!" 그리고 그런 카세리아느의 모습을 황태자가 보고 있을 때 황태자의 시선에 또 하나 잡혀 들어오는 푸른색 머리카락을 지닌 미소년. 그리고 그런 이리스를 카세리아느는 뒤로 살짝 고개를 돌려 바라보다가 눈을 감았다. 힘겹게 눈을 다시 뜬 카세리아느는 아름다운 푸른 실크 드레스자락을 잡고서 고개를 숙이며 붉디붉은 입술을 움직였다. "죄송했습니다. 좋은 시간 보내십시오. 고귀하신 황태자 전하. " 약간은 답답한 마음. 이해할 수 없는 지금의 심정. 그런 마음을 가지고 밤하늘과 같 은 흑색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빠르게 고개를 돌리고 나가는 카세리아느를 보면서 황 태자의 마음도 알게 모르게 조여 오고 있었다. 살짝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인지 미간을 좁히는 황태자를 보면서 이리스는 살며시 비릿 하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는 살짝 꼬인 듯한 목소리로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말하는 이리스였다. "오늘따라 무척이나 보기 좋은 모습이시군요. 하지만 그러시다가 무엇인가 빼앗겨도 저와는 상관없는 일이니 책임못집니다. 어쨌든 즐거운 시간되시죠. 형, 아니 아텔린 의 고귀하신 황. 태. 자. 전. 하." 황태자에겐 무척이나 마음에 안 드는 비웃는 듯한 웃음을 지으며 나가려던 이리스는 순간 멈칫하면서 깜빡 잊었다는 모습으로 황태자를 쳐다보며 말했다. "깜빡 했네요. 또다시 이런 일이 있으면 안 되니 커튼을 완전히 쳐드리겠습니다. 물 런 문도 꽉 닫아 드리죠. 그럼 방해받지 않는 좋은 시간되시길 바랍니다. " 이리스는 여전히 웃음을 지으면서 자신의 새하얀 손으로 검은 커튼을 치고서 문을 닫 고서 빠르게 카세리아느를 뒤쫓아 갔다. 이리스가 나가고 나자 황태자는 알 수 없이 감정이 격해진 탓에 괜히 자신과 아직도 키스하고 있던 실비제느를 끌어 들이며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그 행동때문에 오히려 더욱 기분이 나빠진 모양인지 눈살을 찌푸리며 거칠게 실비제느를 떼어 놓는 황태자였다. "화..황태자 전하." 뺨에 어울리지 않는 홍조가 띄는 얼굴로 무척 매혹적인 모습으로 황태자의 얼굴을 응 시하면서 이제 넘어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실비제느였다. 그리고 다른 남자들 같 은 반응을 기대하면서 실비제느가 매혹적인 미소를 지었으나 정작 돌아온 반응은 너 무나 싸늘한 것이었다. "전하? " 황태자의 시선은 자신을 향하고 있지 않았다. 무언가 다른 것을 생각하는 듯 시선을 자신이 아닌 한곳에 집중하는 황태자는 손에 들고 있던 와인을 조금 입에 물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담담하기만 한 황태자를 보면서 답답한 것은 실비제느 일뿐 그 누구도 아니었다. 싸늘하기만 한 블루블랙의 차가운 눈동자. 테라스에 살짝 기대고 있는 그 모습은 무 척 매력적이었지만 이것은 자신이 바라던 반응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모습이었다. '뭐, 머야! 이 반응은!' 참담한 심정이 밖으로도 들어나는 듯 인상을 찡그리고 있던 실비제느는 신경도 쓰지 않고 있는 황태자의 붉은 입술은 살며시 열렸다. "내 것이야." "네? " 뜬금없는 황태자의 말에 놀라서 반문하는 실비제느였으나 황태자는 역시나 무시하면 서 시선을 테라스바깥쪽으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빠른 속도로 걸어가는 카세리아느가 있었다. 의외인 것은 이리스가 쫒아 가고 있지 않았다는 것 일뿐. 달빛에 비쳐져 더욱 신비스럽게 보이는 카세리아느는 뛰어가고 있었다. 자신이 쉴 수 있는 처소로 푸른색 드레스를 손에 쥐고서 말이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면서 황태 자는 굳은 얼굴로 차갑게 말하며 다시 와인을 입가에 가져갔다. "내 것을 다른 사람도 탐을 낸다는 것은 그다지 유쾌한 일은 아니군. 그래. 전혀 유 쾌하지 않아. 지금 내 마음은..“ * * * * * * * * 한편 뒤쫓아 갈려던 이리스의 움직임이 멈춘 것은 이리스를 붙잡는 프리시아때문이었 다. 이리스가 인상을 찡그리면서 프리시아를 바라보자 프리시아는 살짝 안타까운 표 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냥 우선은 생각할 시간을 줬으면 해요. 이리스." "어째서? 프리시아. 넌 참견하지 마." 신경질적으로 자신을 붙잡는 프리시아를 보면서 말한 이리스는 거칠게 프리시아의 손 이 잡힌 팔을 내리쳤다. 그리고는 다시 쫒아갈려는 듯 빠르게 뛰는 이리스를 향해서 프리시아는 살며시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말했다. "적어도 카세리아느는 그런 방법의 사과는 원하지 않았을 거에요. 이리스." 그말에 살며시 멈칫한 이리스는 프리시아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런 이리스를 보고 있지 않은 프리시아는 안타까운 듯한 미소를 짓더니 조용히 말했다. "적어도 제가 보기엔 지금의 카세리아느는 사랑이란걸 믿지 않는 것 같으니까요." 조용한 한마디에 이는 이리스의 마음속의 파문은 고요했지만 파격적이었다. 놀란듯 커지는 눈동자와 부들부들 떨리는 몸은 그걸 증명해 주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떨구고 알고 있다는 듯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알고 있어." "그렇다면.." 다못한 프리시아의 말을 끊으면서 이리스는 약간 격한 음성으로 말했다. "하지만 기회가 없어. 프리시아. 다음의 기회는 보이지 않아. " 그 말에 고개를 돌려 이리스를 바라본 프리시아는 움찔 하다가 곧 늘 그랬던 것처럼 엄마와 같은 포근한 미소를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가세요. 후회해도 할 수 없는 거죠. 저쪽으로 나갔으니.."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면서 손으로 나간 쪽 까지 가리키면서 말하는 프리시아를 이리스는 고맙다는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다가 한마디 말하고선 늦었다는 듯이 나갔다 는 곳을 향해 뛰어갔다. "고마워. 넌 좋은 친구야. 프리시아." 그런 이리스의 말을 들으면서 놀란듯했던 프리시아는 눈길을 커튼이 활짝 열려 달이 보이는 테라스로 향하면서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 말은 듣고 싶지 않았어요. " * * * * -챙그랑 수없이 많은 조각들이 아름답게 반짝이며 부서져 내렸다. 그것은 크리스탈의 투명함 과 같은 투명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고 자신의 몸속의 붉은 피들을 토해냈다. 절대적인 군주가 될 황태자의 아름답고 긴 손아래에서 추락한 크리스탈 와인잔은 눈 을 즐겁게 해주듯 아름답게 부서졌다. "황..태자 전하?" 실수로 떨어뜨린 것이 아닌 충분히 고의적으로 떨어뜨린 것으로 보여지는 모습에 실 비제느는 조심스럽게 그를 불렀다. 그러나 싸늘하게 식어 있는 황태자의 블루블랙의 눈동자가, 그리고 비릿하게 올려져 있는 그의 붉은 입술이 실비제느의 등줄기에서 식 은 땀이 흐르도록 만들었다. 황태자의 싸늘하게 식은 눈동자가 자신을 향하자 실비제느는 자신도 모르게 헛바람을 삼켰다. 아니다. 이것은 자신이 아까 보았던, 자신이 쉽게 손에 넣으리라 생각했던 황태자가 아니다. 이 사람은 자신이 알던 황태자가 아니었다. "어..어째서." '그런 모습으로 절 보시는 것이옵니까!' 차마 다음말은 하지 못한채 두려움에 잠긴듯한 실비제느의 붉은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자신의 붉은 눈동자를 바라보는 황태자의 차갑게 가라앉은 블루블랙의 눈동 자로 인해서 말이다. 미소가 사라져 버린 황태자의 모습은 너무나 압도적이었다. 실비제느가 가만히 멈춰서 더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황태자는 곧 시선을 거두어 밖을 향했다. 자신의 가슴속에 남아있는 이 혼란스러움이 자신의 이성을 흔들어 놓아 버렸다. 그 혼란스러움이 남긴 가슴의 두드림이 아직까지 계속 되고 있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그렇게 빠르게 뛰어갈수는 없었던 모양인지 카세리아느는 아직도 얼마 되지 않은 위치에서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서 아까 보이지 않던 또 하나의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알수있다. 그 푸른 머리카락만 보아도 누군지 짐작할수 있었다. 자신과 같은 어머니 의 몸속에서 태어난 몸이 약한 자신의 동생. 그래서 냉철하고 강한 황후의 사랑을 받 고 자란 여리디 여리지만 머리는 천재가 울고간다는 그 황자. "이..리스." 황태자의 눈동자가 가늘어 지면서 내뱉는 냉소적인 음성에 실비제느는 한순간 몸을 떨었다. 어째서 누구보다 월등하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이런 비참한 심정을 맛 보아야 하는 지는 아직도 알수없었다. '억울해!' 실비제느는 어느샌가 풀려버린 다리로 인해 황태자만을 원만스럽게 바라보며 주저앉 아 있었다. 붉은 몸에 착 달라붙는 자신의 드레스와 남들보다 성숙한 몸도 자신이 원 하는 상대가 보지 않으면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 사람은 자신에게 조금의 흥미도 관 심도 보여주지 않으니 말이다. 흥미와 관심은 커녕 그 무심한 눈동자와 차갑게 가라앉아 있는 마치 물건을 보는 듯 한 시선은 실비제느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어 놓을 뿐이었다. "황태자 전하!" 그런 심정에 내뱉은 그 한마디도 황태자는 시선을 빼앗겨 버린 것에 팔려 닿지도 못 했다. 그리고 황태자의 차갑게 식은 날카로운 눈동자는 여전히 이리스와 카세리아느 를 향해 있었다. 어느새 따라잡혀 있는 카세리아느와 카세리아느를 향해 손을 뻗는 이리스. 그것을 보 며 황태자는 알수없는 감정에 눈을 찡그렸다. 그리고 이리스가 카세리아느의 손목을 잡아 멈추게 했을 때 황태자의 눈동자는 크게 떠졌다. 갑자기 불어온 바람이 그 순간 황태자의 블루블랙의 청빛이 도는 머리카락을 휘감았다. "하아." 갑자기 나온 탄성과 함께 벌려진 입술을 황태자는 우악스럽게 깨물었다. 그리고 더욱 차가워진 눈동자는 모든 것을 얼려버릴 듯 했다. "이런 감정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아." 제 목: 공녀(貢女) 카세리아느 [20 회] 글쓴이: 썬샤인 2003-01-26 조회/추천: 541 / 2 과거와 미래를 지켜보는 자-관찰자 - 1 고급스러운 벨벳과 같은 짙은 청색의 밤하늘. 사람의 마음을 감상적으로 만들기에는 조금의 모자람도 없는 그 하늘이 오늘따라 유난히 그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그 화려한 벨벳의 메인으로 신비스러운 달을 내어 놓은채. 황궁 무도회가 오랜만에 열린 까닭에 무척이나 시끄럽고 활기가 넘친 황궁. 그리고 더욱 활기가 띄어 흥분되기에는 조금의 모자람도 없을 지금 시각, 무도회장의 뾰족한 탑 위에 서있는 검은 인영이 흐릿하게 비추어 졌다. 크다고는 할수 없는 왜소해 보이는 키와 온통 검은색으로 통일한 옷차림. 그것도 제 국의 사람이라고 할수없는 파격적인 옷차림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너무 짧아 보이는 바지, 딱 달라붙는 위의 민소매 옷과 그로 인해 알수있는 평평한 가슴. 검은 붕대로 일부러 감싸 놓은 듯한 팔이 눈에 가득 잡혀 들어왔다. 짧아 보이는 검 은 머리카락과 손에 들려있는 얇은 나무로 된 화려한 검은 부채. 검은색이 아닌 것이 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그 주위에는 검은 색의 약 10마리의 기분 나빠보이기까지 하 는 나비들까지 있었으니 더 말할 것도 없었다. 핏줄까지 보이는 창백하기 그지없는 피부를 지닌 그 인영의 모습은 검은 색의 부채로 인해 2/3이 가려져 있었다. 오직 보이는 것이라고는 창백한 푸른색 입술 뿐이었다. 문양으로 인해 살며시 파여진 틈 사이로 어딘가를 바라보던 인영의 입술이 움직였다. 음영이 져 더욱 창백해 보이는 푸른 입술이 기분을 묘하게 만드는 역할까지도 똑똑히 해냈다. "혼란.. 하지만 그것과는 다른 것이구나." 여전히 검은색의 부채로 얼굴을 가리며 인영은 푸른 입술을 살며시 들어 올렸다. 검 은 색의 나비들은 그런 그의 주위를 계속 날아다녔다. 화려한 자신의 검은 날개를 자랑이라도 하듯이 뽐내며 펄럭 거렸다. 그리고 그럴때마 다 검은 나비의 날개에서는 반짝이는 가루가 마치 부서지듯 떨어져 내렸다. 고개를 살짝 돌리며 나비를 보던 인영은 손을 내밀며 다시금 자신의 푸른 입술을 움 직였다. 괜한 연륜이 느껴지는 인영의 목소리는 알수없는 기억을 되살리는 듯 했다. "너희들이 잘못 느낀 모양이구나. 그러니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다. 너희들이 그렇게 걱정하며 날아다닐 필요는 없으니. "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알수없었다. 인영의 비릿하게 올라간 푸른 입꼬리가 괜히 눈의 시선을 잡고서 놓아주지 않을 뿐이다. 보이지 않는 모습이어서 더욱 집착하게 만드는 인영이다. 그런 인영의 손에 한 마리의 검은 나비가 조심히 내려앉았다. 계속 흔들던 나비의 날 개짓과 그에 따라 반짝이는 가루. 하지만 곧 그 가루들은 마치 환상처럼 눈의 환각이 라고 말하듯 사라졌다. 화려한 날개무늬를 지닌 여러 마리의 나비들이 곧 인영을 잡아 먹을듯 달려 들었다. 인영의 팔과 어깨에 10마리의 나비들은 자리를 잡으며 앉았고 인영의 입술은 다시 열 렸다. "하지만 전에 없던 혼란이라는 감정을 느낀것은... " 부채에 의해 보이지 않는 얼굴이어서 표정은 알수없다. 하지만 인영의 푸른 입술은 살며시 찡그려져 있었다. 나비들은 마치 시간이 멈춘듯 가만히 앉아 조금의 미동도 없었다. 인영은 나비들이 앉아 있는 자신의 가는 팔을 달을 향해 들어올렸다. 오늘따라 더욱 큰 만월이 그런 나비들을 없애려는 듯 환하게 비추었다. 신비스러운 달의 빛이 어둠 을 가득 머금은 나비들의 존재를 없애려 하는데도 인영은 무작정 손을 내밀었다. "역시나 깨어지고 있다는 징조를 알리는 것이겠지." -샤라락 단호한 차가운 목소리와 함께 검은 나비들은 달을 향해 날아갔다. 분명 10마리 정도 였으나 어느 샌가 그 나비의 숫자는 형언할수 없을 정도로 많아지며 달을 잡아먹을 듯 달려들었다. 마치 달을 잡아 먹을려는 기세였으나 그 수없이 많던 나비들은 흩어지며 없었던 것처 럼 눈을 희롱하더니 사라졌다. 보이는 것은 땅으로 떨어져 내리는 반짝이는 가루들 뿐이다. 자신의 주위를 맴돌던 나비들을 보내버린 인영은 달을 등지며 돌아섰다. 가뿐한 그의 몸놀림. 살며시 불어오는 바람이 그의 팔에 매달려 있던 붕대를 흔들었다. "하지만 아직은 때가 되지 않았다. 그것은 아직 먼 시간뒤의 일." -착 계속해서 인영의 모습을 가리고 있던 부채가 소리를 내며 한손에 잡혀 들어왔다. 하 지만 너무나 밝은 빛이 뒤에서 비춰주기에 더욱 인영의 얼굴을 볼수가 없었다. "과거를 보아 왔다는 것과 미래를 안다는 것." 가녀린 인영의 몸은 꿎꿎이 서있었다. 뾰족한 탐에 중심을 한번도 잃지 않으며 마치 기적을 보는 듯 했다. 살며시 고개가 어딘가를 향해 돌려졌다. "원하지 않아도 알수밖에 없는 현실.. 그리고.." 그의 보이지 않는 시선이 어느 곳을 향해 있었다. 시선이 위치한 곳에 있는 것이 무 엇일지는 알수없다. 그저 살짝 알수 있는 것은 그의 입꼬리가 허무한듯 올라가져 있 다는 것이다. "알고 있음에도 그저 방관할수 밖에 없는 저주받은 운명." 살며시 떨리는 음성과 함께 그의 얼굴은 숙여졌다. 그리고 부채를 다시 펴들며 푸르 게 보이던 입술을 움직이며 인영은 사라졌다. 아무런 흔적도 남아있지 않았다. 오직 남아 있다면 그것은 나비들이 남겨 놓은 반짝이는 가루들. 환영이 환영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은 그것 뿐이었다. "과거와 미래를 지켜보는 자.. 깨어져 가는 봉인..의 조각들." 제 목: 공녀(貢女) 카세리아느 [21 회] 글쓴이: 썬샤인 2003-01-26 조회/추천: 515 / 9 달빛이 가져오는 환상 - 1 "제발! 제발 내말 좀 들어 봐줘요. 카세리아느!" 안타깝게 외치는 이리스의 목소리가 어두운 밤의 정원 곳곳을 헤집고 다녔다. 하지만 정작 안타까운 것은 그것을 들어야 할 사람은 듣지 않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싸늘 히 외면당해 버리는 이리스가 그저 불쌍하게 느껴질 뿐이다. 가까스로 카세리아느 곁까지 다가가 손끝을 부여잡자 그제야 이리스를 피하고 있던 카세리아느의 고개가 돌려졌다. 싸늘하고 차갑게 가라앉은 모습이다. 늘 그렇듯이. 달빛에 반사되어 오늘은 또 다른 매력을 풍기는 카세리아느를 보며 이리스는 살짝 슬픈듯 눈빛을 돌리다가 다시 강하게 바라보았다. "카세리아느." 마음을 잡은듯 이리스가 조용히 카세리아느의 이름을 불러보았으나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런 대답도 아무런 모습도 카세리아느는 들려주지 않았다. 마치 이리스라는 사람조차 모르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런 카세리아느의 모습에 이리스는 미간을 좁히며 원망스럽다는 듯이 손을 더욱 꽉 부여잡으며 소리쳤다. "어째서죠? 왜 그러는 거예요! 다른 것은 다 괜찮으니 제발! 제발.." 푸른 눈동자에 부풀어 오르는 눈물을 억지로 삼키며 애타게 말하는 이리스를 카세리 아느는 싸늘히 무시하며 고개를 돌렸다. 이리스의 유난히 푸른 머리카락이 새찬 바람 에 흔들렸고, 그 바람은 이리스의 눈에 억지로 달려있던 눈물마저 건드렸다. 살며시 도로록 떨어지는 눈물을 고개를 저으며 털어내고서 침을 삼켰다. 그리고 나서 이리스는 조심스럽게 한마디 한마디 내뱉었다. "날 봐줘요. 카세리아느. 날 모르는 척, 없는 척 무시하지 말아달란 말이에요.." 이리스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자 카세리아느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곧 고개를 잔인하게 돌렸다. “그것도, 지금 그 모습조차도 연기인 건가요?” 이제야 대답해 주는 구나하고 기쁜 얼굴로 카세리아느를 바라보던 이리스였지만 카세리아느의 입에서 나온 말에 그대로 굳어 버렸다. 연기? 거짓? 자신이 하는 모든 행동을 카세리아느는 그렇게 받아 들이고 있었던 것인가. “무슨.. ” “지금 내 앞에서 하는 이리스의 모습이 어느 것이 진실이고 어느 것이 거짓인지 전 구분할 수가 없어요. “ 이 경우는 생각해 본적이 없는 이리스였기에 지금 머리에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도 생각나지도 않았다. 흐릿하게 말을 끊는 이리스를 보며 카세리아느는 확정 짓는 듯 눈살을 찌푸리며 이리스를 바라보았다. 계속해서 끊임없이 엇갈린다. 하루가 지금 지나가는 또 하루들조차 어쩌면 모두 거짓투성이의 모순이 아닐까. 자신이 이렇게 고생해야 하는 것도, 이런 상황에 놓이 게 된 것도 어쩌면 자신이 신의 노여움을 산 것은 아닐까. 카세리아느의 심정은 복 잡하기만 했다. “그리고 아까도 말했듯이 이리스를 다시는 보고 싶지 않습니다.” 늘 차가웠던 카세리아느의 목소리가 아주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무척이나 예민한 사람들이라면 그런 카세리아느의 반응에 놀라기도 했을 터였다. 하지만 이리스도 충 분히 놀라고 있었다. 그것이 비록 목소리의 반응을 알아챈 것은 아니었지만 카세리 아느가 한 말에 의해서.. 그래서인지 카세리아느의 가는 손목에 잡고 있던 자신의 손에 힘이 빠지는 것도 알 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틈새를 놓치지 않고 카세리아느는 이리스의 손을 빼내며 몸 을 돌렸다. 아마도 이 선택은 옳을 것이다. 나중에 분명 이리스도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할 날이 올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멍하게 서있는 이리스를 뒤로 하며 발길을 옮기 는 카세리아느였다. 카세리아느는 자신과 가까이의 사람과 사귀며 더 이상 상처 입는 것을 본능적으로 피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이리스는 자신에게 다시금 그 말을 내뱉으며 뒤돌아서는 카세리아느를 보면서 눈동 자를 차갑게 내려 깔았다. 그리고는 무엇인가 자신의 뇌리에 떠오르는 것을 생각 하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두려운 건가요?” “!!” “속여진다는 것이 그렇게 두려운 건가요, 카세리아느?” 알 수 없는 혼란스러운 감정을 계속해서 느끼며 어두운 밤길을 다시 걷고 있던 카 세리아느의 등 뒤로 들려온 이리스의 목소리는 놀라울 정도로 차분했다. “아니면 상처 받는 것이 두려운 건가요.” 두 가지의 말, 그중 어느 것도 틀린 것은 없었다. 그 말에 그대로 멈춰서며 카세리아 느는 뒤를 돌아섰다. 그 자리에는 차분한 모습으로 서있는 이리스가 있었다. 아까의 모습은 거짓말과 같이 놀라울 정도의 차분한 모습으로 카세리아느를 응시하 며 바라보고 있는 이리스였다. 그리고 격차가 생겨버린 거리를 다시 자신의 발걸음 으로 조금씩 줄이며 이리스는 카세리아느에게로 다가갔다. 아까처럼 급하지 않게 조심스럽게 접근해가며 이리스는 입을 열었다. “그것은 혼자라는 것 보다 더욱 두려운 것이었나요?” 가슴속을 흔들어 놓는 말만 계속 말하며 걸어오는 이리스를 보며 카세리아느는 아무 런 행동도 하지 않으며 눈을 크게 뜬 채 있었다. 혼자라는 고독과 가슴에 지워지지 않을 상처. 어느 것이 더 두렵냐고 묻는 다면 아마도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카세리아느는 그 둘중 하나를 선택했다. 상처를 피하자고. 그리고 차라 리 혼자를 택하기로 말이다. 하지만 지금 그 선택은 너무나 흔들리고 있었다. 자신의 앞에서 천천히 다가오는 이리스에 의해서. “사랑이라는 말로도 치유되지 못할 만큼 카세리아느의 마음은 깊게 상처를 입어서 다 시는 치유되지 못하게 된 건가요?“ “다가오지 말아요. 이리스.” 이미 한걸음 정도만 앞두고 다가온 이리스를 보면서 카세리아느는 당황한 듯 말했지만 그런다고 멈추어 설 이리스는 결코 아니었다. “내가 카세리아느에게 커다란 상처를 입혔다면 그것을 치유하는 역할도 내가 할 수 있게 해줘요. 카세리아느.“ 나머지 한걸음도 주저 없이 걸어 들어오며 당황하고 있는 카세리아느의 가녀린 어깨 를 자신의 손으로 잡았다. 하지만 카세리아느는 그 손길을 피할수 있었음에도 피할 생각 은 조금도 하고 있지 못했다. 지금의 이 혼란스러운 마음이 분명 이리스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금 한쪽 가슴이 이 유없이 조금 아려오는 것도 이리스 때문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왠지 위로 받고 싶은 심정이 조금 있었는지 이리스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이리스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카세리아느를 보며 살짝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품으로 조금씩 끌어 당겼다. “사랑해요. 처음 본 그 순간부터 쭉 그래왔어요..” 첫눈에 반하는 사랑 따위는 믿지 않는다. 카세리아느는 적어도 그랬다. 분명 그 첫 눈에 반하게 된 이유는 자신의 외모 때문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아무말도 하지 않 으며 그저 그렇게 이리스의 등 뒤의 배경을 응시하고 있었다. “미안하지만 떨어져 줬으면 하는 데. 사랑하는 동생.” 아무런 생각도 없이 등 뒤의 어둠을 응시하던 카세리아느의 변함없던 눈동자가 갑자 기 커졌다. 그리고 들려오는 목소리를 들으며 그 눈동자는 흔들리고 있었다. 커다란 나무에 손을 가져다 대며 살기어린 눈동자로 이리스를 바라보며 말하는 사 람은 다름 아닌 황태자였다. 어느새 이까지 따라왔는지 왜 이곳에 있는 지는 의문일 뿐이다. 카세리아느가 알기로는 지금 황태자가 있어야 할곳은 여기가 아니었다. “형?” 그리고 그런 목소리에 이리스가 등을 돌려 바라보자 입을열었다. 그리고 이리스가 본 것은 이때까지 한번도 본적 없던 차갑고 살기어린 모습의 황태자였다. 웃음을 짓고 있는 모습인데도 괜히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모습을 황태자는 보여주며 자신 의 입을 열었다. “더 이상 내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인다면 너라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 니 좋은 말로 할때 내앞에서 사라져라. " "싫습니다." 처음보는 차가운 황태자의 모습에 당황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거짓말이었다. 유유부단 해 보이던 사람이 갑자기 이렇게나 냉정하게 변했는데 어떻게 당황하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이리스는 카세리아느의 놀란 듯한 커다란 눈동자를 바라보고선 헛바람을 삼키 며 황태자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싫다?" "분명히 싫다고 했습니다. 전 그럴 생각 조금도 없습니다. 고귀하신 형님." 황태자가 눈을 가늘게 뜨며 반문하자 이리스는 하나하나 또박하게 대답했다. 둘중에 누구하나도 포기할 수 없다는 듯 눈을 피하지 않으며 대립하고 있는 둘이었다. 이리스는 그렇게 황태자의 차가운 눈동자를 응시하고 있었으나 곧 자신이 먼저 고개 를 돌릴수 밖에 없었다. '더이상은 위험하다.' 이유도 모르게 그렇게 느낀 까닭이었다. 웃음띄었던 눈동자가 아닌 너무나 차갑게 식어버린 압도적인 눈동자를 더이상 마주하고 있을 자신이 없었다. 무표정의 모습에 살기어린 차가운 눈동자가 이리스의 마음속을 죄어오고 있는 듯도 했다. '이것이 제왕의 기질을 타고난 사람이란 말이지.. 하하..' 그리고 언젠가 책에서 읽었던 제왕의 기질에 대한 것이 떠오르자 허무한듯 피식 웃음 을 지었다. 자신은 타고나지 못한것을 자신과 다름없다고 생각한 사람이 가지고 있었 다. 남들 위에 군림하는 군주 혹은, 황제라고도 칭하고 있는 사람들이 가진다는 제왕 의 기질을 말이다. 황자들 중 누군가 한명은 타고났을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것을 자신의 형이 가 지고 있었을 줄을 꿈에도 알지 못했었다. 자신이 가끔씩 보았던 형은 언제나 웃음만 을 지으며 일을 해결하려고 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늘 보이는 것은 주위의 여자들 뿐 이기도 했었다. 언젠가는 황태자의 직위에서 물러나게 될것이라 생각했었다. 다른 귀족들도 알고 있 을까? 황태자의 지금 모습을 말이다. 그러나 제왕의 기질과 카세리아느의 행복하고 는 틀리다. '형은 절대로 카세리아느를 행복하게 해줄수 없다.' 결국 결론은 그것이었다. 이기적인 소유욕과 황제라는 자리는 카세리아느를 불행하게 만들지언정 행복하게는 해줄수 없을 것이다. 이리스는 다시 고개를 돌리며 비릿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형은 절대로 카세리아느를 행복하게 해줄 수 없습니다. " 그 말과 함께 황태자의 눈썹은 미세하게 흔들리며 눈살은 찌푸려졌다.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자신의 동생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다는 것이 말이다. 황태자의 차가 운 시선은 이리스에게서 카세리아느의 눈동자로 옮겨졌다. 카세리아느의 아무런 생각도 없는 듯한 눈동자가 황태자의 차가운 시선에 맞대응하듯 바라보았고 황태자는 다시 이리스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것은 네가 상관할 바가 아닌 걸로 아는데?” “제가 카세리아느를 사랑합니다. 상관없을 수가 없죠. 형은 아까 그 여자 분에게나 돌아 가셔서 마저 재미를 보시면 될 것이 아닙니까. 하지만 전 카세리아느뿐입니다.“ 이리스의 미세하게 움직이는 눈동자와 흔들리는 어깨를 보면서 황태자는 입가에 살짝 미소를 머금은 채 이리스에게로 다가갔다. 찰랑이는 블루블랙의 머리카락이 무척이나 보기 좋은 장관을 연출했지만 이리스에게는 그 모습이 너무나 부담스럽게만 보였다. 카세리아느는 그저 이리스의 품에 안겨 황태자와 이리스를 바라보기만 하고 있었다. 지겹다. 모든 것이 너무나 허무하다. 자신이 이렇게 되어야 하는 이유가 증오스럽다. 혼란스러운 마음들이 갑자기 정리된 듯 조용했다. 하지만 황태자의 눈동자를 본순간 그 혼란스러움은 요동치듯이 자신의 마음속을 흔들어 놓고 있었다. 천천히 다가오는 황태자의 모습에 더욱 압박감을 느끼는 이리스였고, 황태자는 그 것을 즐기듯이 조금씩 다가갔다. 입에는 실소를 머금으면서. 그리고 어느 정도까지 다가가자 갑자기 황태자의 행동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라졌다. “헉!” “재롱도 어느 선까지는 귀엽게 봐줄 수 있지만 도가 지나친다면 더 이상 내 이성은 그걸 용납하지 못한다. 동생.“ 어느 샌가 자신의 목에 닿아 있는 시퍼렇게 날이 선 단도에 이리스는 헛바람을 삼켰다. 달빛에 반사되어 더욱 날카롭게 보이는 단도에 누가 깜짝 놀라지 않겠는가. 그리고 황태 자는 여전히 실소를 머금으며 이리스의 목에 단도를 가져다 대며 입을 열었다. “그 약한 몸에 피를 보고 싶지 않다면 꺼져라.” 카세리아느는 이미 황태자의 손에 의해 이리스의 품에서 벗어난 지 오래였고 황태자는 칼날을 이리스의 목에 가져다 대며 냉소적인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그렇게 보기 싫은 모습을 카세리아느의 앞에서 보이란 말이야?’ 자신의 목에 맞닿아 있는 단도의 서늘함은 이미 느끼고 있었고 등줄기까지 한번 쭉 홅고 지나갔다. 하지만 떨리는 눈동자와 몸으로 버티고 있는 이유는 카세리아느 때문 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 하지만 차마 싫다는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말도 나오지 않으며 부들부들 떨리던 다리는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주저앉게 만들었다. -털썩 그런 이리스를 보면서 황태자는 차가운 눈동자와 무표정한 모습으로 내려다 보았다. 잔인하다고 느껴지기도 하는 황태자가, 당연하다는 듯이 바라보는 황태자의 모습에 이리스는 고개를 흔들며 실소어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정말 형이란 사람은 언제나 저를 비참하게 만드는 군요.” 감정어린 말을 내뱉으면서 이리스는 고개를 들고서 황태자를 죽일 듯이 쳐다보다가 자신을 아무렇지도 않게 바라보는 카세리아느를 보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밖으로 걸어갔다. “언젠가 당신을 능가하는 사람이 되어 당당히 카세리아느에게 손을 내밀수 있는 사람이 될겁니다. 아텔린의 잔인한 피를 이어받은 황제가 되실 고귀하신 황태자 전하.“ 지금은 황태자를 능가할수 없다. 패배자로 돌아섰지만 나중에는 꼭 황태자를 능가해서 카세리아느를 찾으러 올 것이다. 역대 아텔린의 황제가 그러했듯 그런 역대 황제들의 피를 진하게 이어받은 잔인함을 지닌 황태자는 결코 카세리아느를 행복하게 해줄수 없을 테니까. “기대해 보도록 하지.” 그렇게 돌아서는 이리스에게 한마디 던져주며 차갑게 카세리아느를 응시하는 황태자였다. 무엇이 지금의 자신을 이렇게나 혼란스럽게 만드는 지 이제는 알수 있을까. 뒤돌아서 있는 카세리아느의 뒷모습을 보면서 황태자는 눈을 가늘게 떴다. 차가운 모습에서 변할 생각이 없는 지 미소를 잃어버린 황태자의 모습은 너무나 냉혈 적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것 나름대로 매력이 있어서 다른 여자들은 쉽게 빠져들듯한 모습이었다. 여자들 또한 남자의 첫 모습에 반해버리니까 말이다. 이리스가 억울한듯 걸어가고 모습이 보이지 않자 황태자는 차가운 모습으로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그대를 본 순간부터 내 시간은 그대를 중심으로 비정상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대가 이렇게 만들었으니 나로 하여금 화나게 하지 말아 줬으면 좋겠어.” “억지입니다. 황태자 전하께서 지금 하시는 말씀은.” 차가운 미성이 주위에 감싸고 카세리아느의 귓가에도 들려왔다. 지극히 냉소적이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비웃는 듯한 느낌도 아니며 웃음띤 목소리도 아닌 지극히 차가운 정도의 목소리였다. “알 수 없다. 이런 감정도. 또한 이 혼란스러움도.” 알 수 없는 황태자의 소리에 그저 카세리아느는 살짝 동그래진 눈동자로 여전히 뒤돌 아 서있었다. 황태자가 하는 말들 또한 그저 헛소리에 지나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살짝 흔들리는 마음은 어쩔수 없었다. “오직 알 수 있는 것은 그 중심에 그대가 있다는 거야.” 황태자의 차가운 모습은 차갑기만 한 눈동자는 오직 변하지 않고 카세리아느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조금의 혼란스러움도 섞이지 않는 차가운 미성은 왠지 모르게 계속 듣고 싶어지는 효과까지도 가지고 있는 모양인지 그 소리에서 정신을 떼어 놓을 수도 없게 만들었다. 살짝 바람이 불어와 시원하게 자신의 얼굴을 어루만져 줄때조차 변하지 않는 황태자 의 모습은 마치 황태자가 아닌 것 같다는 느낌도 주고 있었다. 황태자는 살며시 카세리아느의 가는 손목을 잡고서 카세리아느로 하여금 자신을 볼 수 있도록 돌리게 만들었다. 카세리아느의 약간 혼란을 띈 모습을 보며 황태자는 다시 입을 열었다. “나 외에 다른 사람은 보지 말았으면 좋겠어.” 잡힌 손목이 갑자기 너무나 아파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카세리아느였다. 저번에 잡혔던 손목의 아픔이 재발하는 듯 하다. 황태자의 이기적인 소유욕이 갑자기 답답하게 자신을 죄여 오고 있었다. “전하는 너무나 이기적입니다.” “그 사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어 부정할 생각도 없다. 그리고..” 황태자는 여전히 차가운 눈동자로 카세리아느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카세리아느의 손목을 급하게 잡아 끌며 자신의 품으로 끌어 들였다. “나의 심장이 그대를 원해.” 갑작스런 황태자의 행동에 커진 눈동자. 황태자의 차가운 목소리가 가슴에 와 닿았다. 어째서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하는지 조차 알 수 없다. 이것도 소유욕인가. “카세리아느. 그대를 놓아주고 싶지 않다. 소유욕이라고 해도 좋아. 그것이 그대를 끌어 들일 수 있는 이유가 된다면 말이야. “ “황태자..전하?” 카세리아느.. 라고 황태자의 입에서 처음으로 불려졌다. 이름은 마력을 가지고 있는 모양인지 그 말이 계속 카세리아느의 마음속에 알 수 없는 아련함과 함께 남아 있었다. 그런 황태자에게 놀랐는지 갑작스럽게 황태자를 부르자 황태자는 카세리아느를 살짝 떨어 뜨려 놓으며 입을 열었다. “론이라고 이름을 불러. 그대에겐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을 허락할 테니까.” “..론.” 황태자의 무척이나 닭살스럽다고 느낄 말을 들으며 카세리아느의 입은 무엇에라도 끌린 듯 그 이름을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동그랗게 눈을 뜨면서 자신의 이름을 말하는 카세리아느를 보며 그제야 차가운 얼굴을 풀고서 싱긋 웃는 황태자였다. 이때까지와는 다른 부드러운 웃음이라고 느끼며 다가오는 황태자의 얼굴을 보면서 가만히 카세리아느는 눈을 감았다. 아무래도 좋다. 이제는 자신조차 신용할 수 없을 정도까지 너무나 멀리 와버렸으니까. ================================================================================ 묶어서 올리니, 좋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니..모양새가 볼품이..없어..ㅜ_ㅜ.. 내용도..이상하고..;; 으윽..ㅜ_ㅜ..추,추천..ㅜ_ㅜ.. 가슴이 찢어져요.. ..언제나 행복하시길.. 제 목: 공녀(貢女) 카세리아느 [22 회] 글쓴이: 썬샤인 2003-01-26 조회/추천: 579 / 2 알 수 없는 불안한 조짐 - 1 온통 새하얀 벽뿐이라 질리게도 보일듯한 한 방안에서 새하얗게 칠해져 있는 원목의 탁자에 두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 중 테크백작이 자신의 앞에 웃으며 앉아 있는 젊은 왕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군사력을 말씀하시는 것이라면 예상했던 정도만큼 모였습니다.폐하." 약 20대로 보이는 젊은 왕이 있는 곳은 그리 많지 않을 뿐더러 희귀하다. 그리고 이 대륙에서는 20대의 젊은 왕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새하얀 예복같은 것을 입고 있는 짧은 백금발의 소유자의 왕이 있는 곳은 신성 레이닌 왕국 뿐이었던 것이다. 고결과 순결의 여신, 레이니아의 축복을 받는 신성 레이닌 왕국의 얼마전에 왕위를 부여받은 젊은 왕이 지금 테크백작의 앞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페리어스 네르안 드 안트로 레이니안. 레이닌 왕국에서 그 왕이라는 직위를 지닌 이는 곧 신의 대리자였다. 그리고 그 왕 은 함부로 접할수도 없었다. 너무나 평화주의적인 라이니안왕국의 역대 왕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고자 노력했으며 가장 싫어하는 것이 전쟁이라는 비인간적인 것 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젊은 왕, 페리어스는 지금 군사력이라는 이야기를 야기시킴으로서 전 쟁이라는 것에 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페리어스는 상큼한 미소를 전반에 띄우며 만족한 듯한 웃음을 지으며 테크백작을 보 며 입을 열었다. 모든것을 새하얗게 정화시켜 주는 듯한 그 웃음은 역시나 고결과 순 결의 여신 레이니아의 축복을 받는 나라의 왕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주고 있었다. "그렇다면 얼마후에는 아텔린 제국을 압도할수 있을 정도가 될수 있을것 같습니까?"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괜한 우월감을 주는 부드러운 목소리의 페리어스를 보면서 테 크백작은 고개를 숙이며 가로저었다. 그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 모습을 보면서 페 리어스는 직접적으로 인상을 찌푸리지는 않았지만 보일듯 말듯 눈썹을 찌푸렸다. "아텔린 제국을 압도하지 못한다는 건가요?" "황공하옵게도 지금의 군사력으로도 아텔린 제국을 약간 위협하는 정도일 뿐입니다." "그런가요." 냉정하게 말하는 테크후작을 보면서 페리어스는 눈을 살짝 감았다 떴다. 역시 아텔린 이라는 군사강국이 가진 벽은 높구나하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던 것이다. 뜨여진 페리어스의 얼굴은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그 금빛 눈동자는 무엇인가 잔뜩 불 만에 가득차 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다는 듯. 하지만 그것을 테크백작이 알아차리 지는 못했다. "곳곳의 용병길드를 끌어 모은다고 해도 그것은 불가능할 겁니다." "그렇군요." 확인사살까지 하듯 끝까지 그렇게 말하는 테크백작을 보면서 페리어스는 고개를 떨궜 다. 대륙 최강의 나라라는 타이틀을 약 600년 이라는 시간을 가지고 있었던 아텔린, 그리고 그로 인해 차지해왔던 제국이라는 이름을 가질수 있게 했던 넓은 영토. "하지만 물이 고이면 썪기 마련 아닌가요?" 그렇다. 그 아텔린이라는 물은 너무나 오랫동안 고여있었다. 약 600년이라는 시간동 안 한자리에서 물러날지 모른채 계속 욕심을 내며 다른 물들까지 자신의 썪어가는 물 속에 끌어 들이며 썪고 있었을 것이다. 페리어스의 고개는 계속 숙여져 새하얀 테이블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눈동자 는 테이블도 자신의 손도 응시하지 않고 있었다. 흐려진 초점이 잡혀있지 않은 눈이 무엇을 응시하고 있는지는 알수없었다. "영원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테크백작도 모르는 것은 아닐텐데요?" 살짝 고개가 들려지며 테크백작을 바라보는 페리어스의 얼굴은 웃고 있었다. 너무나 깨끗해 보이는 미소에 백작은 눈을 약간 동그랗게 떴다. 영원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아텔린이라는 그것이 누려왔던 영원해 보이는 영광또한 언젠가 사라질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아니었다. 자신의 눈앞에서 웃고 있 는 저 신성한 왕을 실망시키고 싶진 않지만 백작은 고개를 흔들며 말할수 밖에 없었다. "분명 영원이란 존재할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600년이라는 시간도 그 저주받을 큰 아텔린의 웅덩이를 썪게 하기에는 모자랐나 봅니다. 지금의 아텔린은 최강입니다." 고개를 떨구며 백작자신은 자신의 왕에게 그렇게 밖에 말할수 없었다. 테크백작의 그 말이 무척이나 충격적이었는 지 페리어스의 입에 걸려있던 미소가 한순간 사라졌다. "최..강이라고요?" "알고 계실것입니다. 아텔린 제국은 영토만 넓은 것이 아니라 기사들을 배출해내는 것에도 군사들을 단련시키는 것에도 가장 강하다고 할수 있습니다." "알고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왕이 되기전부터 백작에게 부탁해서 이렇게나 비밀리에 훈련시키고 군사력을 키우게 만든것이 아니었습니까!" 입꼬리만 살짝 올리며 말하는 페리어스를 보면서 백작은 다시 고개를 들면서 말을 이 었다. 그것이 비록 절망적인 사실을 말해 자신과 자신의 앞의 왕을 절망의 늪으로 빠 지게 만드는 일이라 할지라도 그는 말해야 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 사실도 알고 계실것이라 생각하옵니다. 아텔린 제국의 천재 황자에 대해서 말입니다." "천재..황자.. 앗!" 천재 황자라는 말을 조용히 내뱉던 페리어스였으나 곧 알았다는 듯 탄성을 내뱉으며 눈을 크게 떴다. 잊고 있었다. 그 천재 황자의 존재를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안 순간부터 그대로 막상 적을 대하지도 않고 패배감을 느낄수밖에 없었다. 뛰어난 두뇌를 자랑해 늙은 학자들도 입을 벌리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오 히려 배우고 갈정도라는 그 황자가 아텔린에 있다는 것에 말이다. 안그래도 자신쪽이 모자란 판국에 엄청난 손실부터 입은 것이다. "알고 계시겠지요. 그 천재황자가 손대지 않은 분야는 없습니다. 그는 대충 지리만 보고도 대충 적이 올곳을 몇군데씩이나 예측한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이미 10살무렵 아텔린의 허술한 전략도 전부 재정리했다고 들었습니다." "존경하는 주신과 레이니아 여신이시여. 어찌하여 잔인한 그들에게.." "그리고 듣기로는 그곳의 황태자또한 무시할수 없을 정도의 검사라 합니다." 어찌하여 신들은 그들에게 그런 인재들을 내어준것인가. 이것은 안되는 일이지 않는 가. 어렸을적부터 자신이 잔인한 아텔린의 만행을 보고서 그들을 짓밟겠다 마음먹었 거늘. 어찌하여 신들은 그들을 도와주는 것인가. 페리어스의 금안이 무척이나 불안정하게 이곳저곳으로 움직였다. 이미 상큼한 미소는 사라지고 없었다. 페리어스는 자신의 손으로 새하얀 예복을 쥐어 잡았다. 그렇게 있 는 페리어스를 보면서 백작은 슬그머니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꼭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닐것입니다. 폐하." "무슨 소립니까. 백작?" 백작의 말에 황급히 페리어스의 눈동자가 그쪽을 바라보았다. 살며시 벌어진 그 입과 눈이 충분히 놀랐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즐기듯이 백작은 조 금씩 입을 열었다. "남자가 미색을 밝히지 않는 다고 할수는 없지 않습니까." 처음에는 희망을 가지고 백작의 말을 듣고 있던 페리어스의 눈은 곧 실망의 눈으로 바뀌어 버렸다. 겨우 그딴 것에 넘어갈 아텔린의 황태자와 황제, 황자가 아니었을 테 니 말이다. 더욱 결정적인 것은 따로 있었다. "백작은 아텔린에 공녀(貢女)로 보내진 경국지색이라는 이름을 달고다니는 카세리아 느에 대해서 듣지 못하신 겁니까?" "모를리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황태자는 한 여자에게만 매달리는 성격이 아닙니다." 실망했다는 투로 말하는 페리어스에게 백작은 바로 눈빛을 빛내며 대답했다. 듣기로 아텔린의 황태자는 한여자만을 꾸준히 데리고 있지 않았다. 물론 카세리아느라는 대 륙 최고의 절색이 황태자의 후궁으로 보내졌다고는 하나 그 성격을 남 주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문제는 아텔린의 황제이지 황태자가 아니지 않습니까." "지금은 아직도 우리가 불리합니다. 그러니 다음 때를 노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음 때라니요? 몇년을 기다린 절더러 더 기다리란 말입니까?" 얼굴을 찌푸리며 말하는 페리어스를 보면서 백작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은 때까 아니다. 그런 백작을 보면서 페리어스는 고개를 돌렸다. "황태자가 황위에 오를때까지 기다리십시오. 폐하. 황태자가 검술이 출중하다 하나 그 성격으로 보아할때 그렇게 절대적인 황제는 되지 못할것이며, 그때는 우리가 더욱 탄탄해진 모습으로 쳐들어 가면 될것입니다." "그럼 그때는 무슨수로 황태자의 눈을 현혹하겠단 말씀이십니까, 백작?" "세상에는 마음만 먹는다면 못 해낼 일은 없습니다. 그점에 대해선 염려하지 않으셔 도 될것입니다." "무슨 수가 있는 것입니까?" 반문하는 페리어스를 보면서 백작은 그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자신의 눈앞에 있는 이 젊은 왕의 발 밑에 언젠가는 꼭 아텔린을 바칠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신성 라이니 안 왕국은 더이상 왕국이 아닌 제국이 될것이고, 자신은 후작 아니 공작의 자리까지 노릴수 있을 것이다. 백작의 자신감 어린 모습에 페리어스는 미소를 지으며 백작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럼 백작을 믿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물론입니다. 하지만 폐하께서 황공하옵게도 해주실 일이 있습니다." "무엇을 못하겠습니까. 내가 할 일이 무엇입니까?" 백작이 갑자기 해줘야 할 일이 있다고 말하자 페리어스는 말해보라는 듯 손을 내밀며 말했다. 그리고 그런 페리어스를 보면서 백작은 고개를 숙이며 입을 움직였다. "다만 이번에 아텔린에서 여는 무도회에 가셔서 한 소녀를 축하선물로 주시고,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약점을 알아 오시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군요. 하지만 왕이 나라를 뜬다는 것은 말이 아니되지 않습 니까." 유례가 없다. 왕이 나라를 뜬다는 것은 나라를 버린다는 것과 같은 의미가 아닌가. 의심어린 페리어스의 눈동자에 백작은 황급히 손을 흔들며 말했다.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폐하. 그 점에 대해서는 부왕께 부탁드려 놓았으니 그 동안은 부왕께서 정치를 다스릴 것이옵니다." "아, 부왕께서요? 그렇다면 안심이군요." 부왕이라고 해서 엄청난 늙은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아니다. 단지 신성 레이닌 왕국 의 왕의 신성력이 가장 강한 시기가 지금의 페리어스의 나이이며 또한 쇠퇴해 가기 시작하는 나이가 지금 부왕의 나이이기에 왕의 직위를 내어주고 노후를 보내는 것이 니 말이다. 깨끗한 미소를 짓는 페리어스의 주위를 갑자기 청광이 감싸기 시작했다. 그 청광이 페리어스를 갑자기 숭고한 존재로 만들어 버렸고 백작은 자리에 일어나 바닥에 무릎 을 꿇었다. "성스로운 레이닌의 왕이시여." "이제 기도드리러 갈 시간이 되었나 보군요." 갑자기 울리는 듯한 페리어스의 목소리와 푸르른 청광이 근접할수 없는 모습을 만들 었고 백작은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하였다. 페리어스는 미소지으며 손을 뻗어 백작의 머리에 가져다 대며 입을 열었다. "백작의 지위를 가진 그대에게 고결과 순결의 여신 레이니아의 축복이 영원히 깃들 기를 바랍니다. 그럼 나가주세요." 페리어스의 말이 끝나자 백작은 계속 고개를 숙이며 문밖까지 감히 등뒤로 돌지 못 하고 뒷걸음 치며 나갔다. 지금의 페리어스는 너무나 신성한 존재. 신의 대리자의 역 할을 하는 왕의 또다른 모습이었으니까 말이다. 페리어스는 새하얀 방속에서 어느 곳으로 발길을 옮기며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잔인한 그들에게 레이니아의 여신의 분노가 감싸이길.. 그리고 모든 순결한 사람들 에게 축복을.." * * * “레이닌의 성제(聖帝)가 보낸 사신이 이곳에 왔다?” 레이닌의 성제는 신성 레이닌 왕국의 왕이라는 의미다. 그냥 왕이라고 부르면 될 것을 성제라 칭하여 부르는 이유는 레이닌이 신성 왕국이기 때문이었다. 서로 나쁜 감정을 만들 이유는 없기에 '성스러운 왕'이라고 조금 높게 부를 뿐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성제가 다스리는 레이닌 왕국의 사람들은 꽤나 베일에 쌍여 있었고 그 점에 유의할 때 그 사신이라는 사람이 주는 의미는 꽤나 클수밖에 없었다. 그랬기에 그들의 존재가 갑자기 무도회장을 더욱 떠들썩하게 만드는 데는 당연히 그리 오래 걸 리지 않았다. “레이닌에서 사신이 왔다고요?” “그렇다고 하네요. 그 철저한 보수주의 국가에서 용케 보냈습니다.” “이것은 도대체 무슨 의미인거죠? 그들은 비밀국가였지 않나요?” "이렇게 며칠 간 여는 무도회에서 레이닌의 사신이 오게 되는 것을 볼 줄이야. 생각 지도 못했어요." 몇몇 입담좋은 귀족의 고품있는 부인들에 의해서 이미 그 사신들은 화제로 떠올랐다. 부채로 서로 자신들의 흉측한 입을 가리며 눈을 빛내며 말하는 그들의 모습은 그다지 좋은 모습은 아닌 듯 보였다. “그럼. 설마하니 오는데 빈손으로 오지는 않았을 것 아닙니까.” “듣자하니 라이니안에서는 보석 세공술이 그렇게나 발달했다고 들었는데요?” “레이닌 영토내의 로이안 산맥에 쓸만한 훌륭한 광산이 많아 그 광산을 원하는 드워프들과 협상을 맺었기에 보석 세공술이 발달할 수밖에 없죠. 어쨌든 정말 기대가 되는데요? 특히나 수정이나 에메랄드계통이 아름답다고 들었어요.“ 결국에는 보석분야로 이야기가 돌려지며 그들의 입은 쉴 새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신의 팔에 있는 이 세공품이 유명한 세공사의 작품이라느니, 혹은 이 다이아몬드가 구하기 힘들다는 핑크 다이아몬드라는 지, 하는 말들을 말이다. 사치스러운 물건들로 자신들의 몸을 잔뜩 채우고 있는 그들을 보면서 과연 평민들은 무엇이라 생각하려는 지 그것도 의문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시끄럽게 떠들기도 잠시 쉴 새 없이 부채에 가리어져 움직이던 입들이 한순 간에 멈춰졌다. 조용한 정적만이 잠시 동안 무도회장 홀을 감싸 안고 있었다. 누군가 그들의 입을 막으며 봉쇄해버린 것 같은 모습. “신성 레이닌 왕국에서 성제폐하를 대신하여 온 사신들께서 입장하십니다.” 새하얀 은발인가? 아니 저것은 분명 찬란한 금발이다. 새하얀 예복 같은 것을 입고 있는 서너 명의 사신들 중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의 머리색이 그것이었다. 입에는 기분을 맑게 해주는 미소를 띠면서 등장한 그 사신을 보면서 몇몇 귀족부인들과 영 애들은 벌리며 그 장면을 바라보았다. ‘와아.. 저 상큼한 미소 좀 봐.’ ‘황태자 전하의 미소와는 또 다른 느낌.’ 황태자의 미소가 매혹적인 느낌을 주어서 자신들의 넋을 잃게 만든다면, 저 사신의 미소는 햇살과 같았다. 보는 이로 하여금 같이 미소를 짓게 만들게 해주는 미소였다. 그리고 너무나 새하얀 그의 예복이 괜한 성스러운 느낌마저도 자아내고 있었다. 그 사신의 금색 눈동자가, 새하얀 은발 같으면서도 확실히 찬란한 금발이 움직일 때마다 여인들의 가슴도 같이 흔들렸다. “저..정말 잘생겼군요. 저 레이닌의 사신 말이에요.” “그러네요. 저 정도라면 황태자 전하께도 비견될 정도일 것 같은 데요?” ‘저 정도의 사신이라면 그냥 따라가도 좋을 거 같아.’ 황태자가 자신에게 넘어올 가능성은 아주 없을 정도이니 영애들이 그런 맘은 가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옛말에도 이런 것이 있지 않는가. 해츨링대신 오크라는.. 그 렇다고해서 저 사신이 오크라는 것은 아니었다. 저것은 해츨링과 또 다른 해츨링과 같은 격이었으니 말이다. 순정적인 로맨스를 꿈꾸 는 소녀들에게 그깟 사신이라는 신분쯤은 아무런 장애도 되지 않았을 테니 더욱더 사신에게 눈을 빛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한 번 잘하면, 괜찮을 거 같은데..’ 가뜩이나 요즘 들어서는 자신들을 불러주지도, 찾지도 않는 무심한 황태자를 생각 하며 영애들은 상상의 나락에 자신들을 집어넣었다. 물론 거기의 남주인공은 그 백금 발의 사신이었으며 여주인공은 말할 필요도 없이 자기 자신들이었다. 그리고 황제와 황태자가 앉아 있는 앞까지 조심히 걸어가며 그 사신이 미소를 띠며 바라보자 더 이상은 말도 필요 없을 정도였다. 저 상큼한 미소로 보아할 때 여자에게 도 잘해 주면 잘해주었지 못해줄리는 없어 보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저건 뭐야?’ 하지만 곧 그런 영애들과 그 주위에 있던 귀족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것이 있 었으니 그것이 바로 검은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는 사람이었다. 일부러 궁금함을 유도 하려고 하긴 한 모양인지 얼굴을 절대 내어 보이지 않는 그 사람을 보면서 다른 귀족 들이 무엇이라 생각했을지는 알 수 없었다. ‘하필이면 전부 하얀색을 입은 무리 속에 기분 나쁘게도 검은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는 이유는 또 뭐람? ‘ 어떻게 로브를 썼는지 흐릿하게도 보이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귀족들은 인상을 찌푸 리며 궁금한 눈길로 그곳을 계속 쫒아 따라가고 있었다. 사신들은 귀족들이 스르르 비켜 길을 만들어 주자 그곳을 따라 황제와 황태자가 있는 곳으로 유유히 걸어갔다. 마치 구경거리가 된 듯한 느낌도 없지 않게 받았으나 그저 그것을 미소로 넘기면서 말이다. 그리고 어느새 그들의 발걸음은 황제가 앉아 있는 곳에서 7개의 계단 아래에 멈춰졌다. “아텔린 제국의 고귀하시며 훌륭하신 황제폐하를, 레이니아 여신의 이름으로 축복 드리오며 미천한 레이니아 여신의 종인 저희가 감히 뵈옵니다.“ “감히 뵈옵니다!” 백금발의 사신이 맨 앞에 서서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 나자 곧 뒤에 있던 사신들도 같이 고개를 숙이며 황제를 향해 인사했다. 보통 황제에게는 무릎을 꿇는 것이 관습이었으나, 라이니안 왕국은 예외라는 것을 알 기에 좀 기분 나쁘기는 하여도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는 없었다. 그곳은 신성 왕국. 곧 왕보다는 신이 중시되는 곳에다 대고 다짜고짜 욕을 할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오느라 수고가 많으시었소. 고개를 드시오.” 황제의 말에 사신들은 고개를 들며 황제를 바라보았다. 역시나 강함이 강하게 느껴 지는 카리스마가 있는 사람이었다. 남들 위에서 군림하는 자질이 있는 자. 그러한 황제를 백금발의 사내는 미소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곧 뒤에서 누가 귓 속말로 무엇을 전하자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황제폐하. 훌륭한 것은 되지 못하지만 작은 성의로 레이닌 제국에서 자랑하는 보 석 세공품 몇 점과 그 외 선물들을 가지고 왔사옵니다. 받아 주시면 감사할 것이옵니다.“ “그런가?” 황제가 살며시 반문하자 사신은 웃으며 손바닥을 마주 쳤다. 그리고 곧 이어 어디에 들고 온 건지 품에서 상자들을 꺼내며 열어 보였다. 하나같이 가치를 따질수 없을 정도로 훌륭한 세공품들이었다. 보기 드문 커다란 다이 아몬드에, 귀하다는 미스릴로 꾸며진 붉은 루비 써클릿은 황후의 눈을 무척이나 크게 뜨도록 만들었다. 결국은 황후도 여자였기에 그런 쪽으로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곧 이어 뒤에서 등장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품에 안고 있던 천들을 벗기자 구하기 힘든 고서들부터 검까지 여러 가지 물품들이 밝은 빛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흐음. 보석에는 조예가 없고 그저 감만으로도 보기에 전부다 가치를 말할수 없을 정도로 훌륭한 것들뿐이로군. 레이닌의 이런 고마움을 아텔린은 잊지 않을 것이네. 나중에 따로 다시 이야기 하도록 하고 그 동안 그대들은 무도회를 즐기던지 아니면 푹 쉬도록 하게.“ “황공하옵니다.” 고개를 다시 한번 숙이며 말하던 백금발의 사신이 고개를 다시 들어 본 것은 황제가 아니었다. “그리고 아텔린의 고귀하신 황태자 전하께는 따로 드릴 선물이 있사옵니다.” 블루 블랙의 윤기나는 머리카락을 지닌 아텔린의 황태자, 론이었다. 황태자는 그런 사신의 말에 다른 것에 신경을 빼앗고 있다가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그곳을 바라 보았다. “나에게?” 손으로 턱을 바치며 흥미롭다는 듯이 말하는 황태자를 보면서 사신은 더욱 짙게 미소를 지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나오너라.” 그리고 그런 사신의 말에 뒤에서 가만히 있다가 앞으로 조금씩 걸어나오는 아까 부터 다른 귀족들의 안좋은 시선을 받았던 검은색 로브의 인영이었다. 그리고 그 인 영은 살며시 그 로브를 벗더니 자신의 모습을 환한 불빛 아래에서 드러내었다. “나에게 줄것이란게 저 것인가?” 일부러 저것이란 말을 사용하면서 살짝 입꼬리를 올린 황태자를 보면서 사신의 눈은 잠시 흔들렸다. 하지만 곧 자신의 상큼한 미소를 되찾으며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황태자 전하.” 사신의 상큼한 미소를 뒤로하며 황태자는 뒤의 있는 인영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자신 에게 주는 것을 마다하는 성격의 황태자는 아니었기에, 그것을 흥미로운 눈길로 바라 보았다. 검은 로브를 손에 잡고서 고개를 숙이고 있던 인영은 황태자의 눈길이 느껴지자 살며 시 고개를 들었다. 다크엘프와 같은 검은 피부, 그리고 짙은 갈색 머리카락이 어깨까 지 길러져 있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당한 키와 늘씬한 몸을 자랑하듯 당당히 소 녀는 서있었다. 입가에 띄어져 있는 너무나 자신감 넘치는 미소가 괜히 황태자의 신경에 거슬린다. 하 지만 곧 그 기분나쁘던 신경은 어느 한곳에 닿자 사라지고 말았다. 너무나 붉어, 사람의 마음을 흥분시키는.. 짙은 홍안(紅眼). '뭐야? 저 기집애는? 도대체 왜 오라버니한테는 이렇게나 여자가 꼬이는 거냐고! 그 것도 하나같이 요물같은 것들만! 이번에는 다크엘프와 사람사이에 태어난 하프엘프야?' 그것을 보면서 황태자 옆에 앉아 있던 귀여운 소녀가 그렇게 생각했는 지는 다른사람 은 모르는 일이다. 그 앙증맞게 귀여운 소녀에게는 그 거무잡잡한 피부의 건강미 넘 치는 인영이 요물로 보인 모양이었다. 인상을 찌푸리며 여자를 보다가 황태자에게로 고개를 돌린 샤이나는 입을 벌릴수 밖에 없었다. '에? 저 기집애는 그렇게 이쁘지도 않은데?' 확실히 이쁘긴 했다. 하지만 저것이 보통 수준이라고 계산할때 저런 얼굴은 황태자가 질릴정도로 보아올 정도의 얼굴인 것이다. 하지만 황태자의 저 눈빛은 아무래도 수상 했다. 그 소녀에게 빠져 든듯한 황태자의 블루블랙의 눈동자가 무척이나 샤이나에게 거슬렸다. "론 오라버니. 저 여잔 안 예뻐요." 자신이 조용히 한말에 아무런 대답도 없는 황태자가 속상하게만 느껴지는 샤이나 였다. 언제부터 황태자의 눈이 낮아진 건지 알 길이 없으니 답답할 뿐이다. '어제는 붉은 머리의 불여우더니, 오늘은 또 뭐냐고!! 난 저 검둥이도 싫어! 차라리 오빠는 무도회장에 나와있지 말아야 해! 그래야 여자가 안 꼬일것 아냐!!' 겨우 어제 한시름 놓았나 했더니, 결국 이번에도 요물이 꼬여 버린 황태자를 보면서 소녀는 황태자가 차라리 무도회장에서 나가길 바라고 있었다. 도대체 저 황태자에겐 왜 이렇게나 여자들이 알아서 꼬여 드는 걸까? 그것은 영원히 풀리지 않을 미스테리가 아닐수 없었다. "쳇. 난 갈꺼야!" 심통하게 한마디를 내뱉더니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샤이나는 자신의 방으로 짜증을 내 며 걸음을 옮겼다. 살며시 걸음을 옮기면서도 샤이나는 그 검은 소녀에게 타오르는 분노의 눈길을 보내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아마도 샤이나는 특별히 검은 소녀가 아니라 할지라도, 그 대상이 황태자를 향한 여. 자.이기만 한다면 이 눈빛을 끊임없이 보여 줄것이다. '그래봤자, 너도 하룻밤 놀이 상대일 뿐이야! 어디서 이번에는 얼굴도 안되는 것이! 아!! 열받아!!!' 조심스럽던 걸음걸이도 언젠가 터벅거리는 걸음으로 바뀌어 버렸다. 그런 샤이나를 보면서 옆의 유모는 제발 조심히 걸으라고 타이를 뿐이었으니, 여러모로 고생하는 것 은 본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 아직 앳된 나이로 보이는 데도 그 소녀에게서는 숨길 수 없는 요염함이 있었다. 약간 가무잡잡해서 더욱 건강해 보이는 몸은 그 요염함을 더욱 잘 표현하고 있었다. 그리 고 그 소녀의 붉은 홍안(紅眼)은 이상하게도 사람들의 눈을 현혹시키며 다른 것으로 눈을 돌리지 못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그것을 같은 여자인 샤이나에게는 느낄수 없었지만 다른 이성인 황태자에게는 틀렸던 것이다.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저 소녀는 분명 그렇게 빼어나게 아름답지는 않았지만 뇌에서는 너무나 매력적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뭐..뭐지?' 이렇게 의문은 느끼면서도 계속 황태자의 눈길은 그 소녀의 붉은 홍안으로 끝도없이 빠져들고 있었다. 알 수 없는 무언가의 힘이 황태자를 놓아주지 않으니 그것을 벗어 나는 것도 100% 황태자의 힘일 수 밖에 없었다. 약간 풀린듯한 황태자의 눈동자를 보면서 백금발의 사신이며, 레이닌 제국의 성제인, 페리어스는 슬적 입가에 미소를 더욱 진하게 드리웠다. '역시. 결국은 홍안에 벗어나지 못하는군.' 처음의 그 관심없어 보이던 황태자의 눈동자도 걱정할 것이 없어졌다. 결국 저 황태 자는 저 소녀의 유혹에 넘어가고 말것이니 말이다. 황태자는 조금씩 절제력을 잃어 갈것이 자명했다. "마음에 드십니까?" 살며시 물어들어가는 페리어스의 말에도 황태자는 여전히 자신의 눈동자를 소녀의 홍 안에서 떼지 못하고 있었다. 약간 인상을 찌푸린 것을 보아하니 벗어날려는 것 같기 도 하지만 그것이 쉬운 일 일리는 없었다. '너의 얕은 절제심으로는 절대로 벗어 날수 없을 것이다.' 페리어스는 여전히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황태자를 쳐다본후 자신의 옆의 소녀를 보 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제 당신은 아텔린의 황태자전하의 것입니다. 지금 황태자 전하께서는 몸이 불편하 신듯 하니, 가서 전하를 부축해 드리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페리어스에게 살며시 인사를 하며 살며시 황태자에게로 다가가는 소녀였다. 소녀가 가까이 다가가자 황태자는 그 소녀를 향해 고개를 올렸다. 황태자의 늘 총명하면서도 차갑던 눈동자가 오늘따라 유난히 풀려있다. 하지만 역시 나 황태자는 그런 모습조차도 매혹적이다. 지금 황태자의 머릿속에는 오직 한 단어 만이 배열되어 있었다. '카세..리아느..' 오늘은 무도회장에 나오지 않은 카세리아느가 왜 지금 다른 소녀를 눈앞에 둔 황태 자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지는 알수없다. 하지만 조금씩 황태자는 무엇에 홀린듯 조금 씩 그 단어를 기억하며 힘이 빠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황태자의 눈이 스르르 감길듯이 감겨오자 소녀는 얼굴 가득이 농염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팔을 벌렸다. 이제 이 매력적인 아텔린 제국의 황태자는 자신의 손안에 들어 왔으니 자신의 역할은 완수한 셈인 것이다. '이제 황태자는 절대로 나에게서 벗어날수 없을거야.' 붉디 붉은 핏빛의 홍안이 자꾸만 황태자의 머리속에서 어른거리며 현실로 놓아주는 통로를 막아버리고 있을 뿐이었다. 황태자는 무엇인가에 끌린듯이 서서히 소녀의 팔 안으로 조금씩 안겨들어가고 있었다. "으으.." 약간의 신음소리를 내면서 소녀의 품에 안긴 황태자, 그리고 그런 황태자를 품에 안고서 소녀는 몸을 틀었다. "그럼 소녀가 방까지 뫼셔 드리겠사옵니다." 소녀의 웨이브진 탐스러운 회색머리카락이 살며시 흔들렸고, 황태자는 소녀의 품에 안겨 서서히 소녀의 처소로 발을 옮기고 있었다. 소녀의 얼굴 가득이 만족스러운 성 공했다는 미소만이 감돌고 있었다. * * * 붉은 색의 투명한 휘장들이 온통 방을 장식하고 있는 이곳은 마치 소녀의 방이 아니 라 어느 한 창녀촌의 한 방과 같았다. 온통 유혹적이게 꾸미려고 노력한 듯한 모습만 이 눈에 들어올 뿐이다. 하지만 그것도 정상인 사람들만이 그렇게 생각할 뿐, 여색에 빠진듯한 사람들의 눈에 는 더욱 탐욕에 젖게 만드는 역할만 해줄 뿐이다. 하늘하늘 거리는 붉은 색의 투명한 휘장들이 바람에 흔들려 더욱 사람의 마음을 흔들리게 만들고 있다. -달칵 붉은 색으로 통일된 이 방안으로 곧 있어서 두명의 인영이 들어왔다. 한명은 갈색의 웨이브진 머리에 거무잡잡한 몸을 지니고 있는 가녀린 몸의 소녀였고, 다른 한명은 블루블랙의 머리카락을 지니고 있는 황태자였다. "후우." 소녀는 자신의 품에 안기다시피 한 황태자를 침대에 조심스럽게 눕히며 나직히 힘들 긴 한 모양인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곧 긴 속눈썹으로 눈을 가리며 잠을 자고 있는 듯한 황태자를 보면서 이내 미 소를 띠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이 사람은 너무나 매력적인 사람이었으니 더욱 기쁜 마음이 생기기도 했다. '이 사람이 나한테 영원히 빠질 사람이란 말이지?' 자신의 붉은 입가에 미소를 띠우며 황태자의 새하얀 얼굴을 더듬어 보는 소녀였다. 깨끗한 피부, 그리고 여자인 자신보다 더욱 섬세한 선을 가진 사람이다. 그 뿐만 아니라 저기 보이는 저 입술은 질투가 날 정도로 유혹적이다. 남자가 어째서 여자보다 더욱 매력적인 붉은 입술을 가지고 있는 지 조차 의문이 생길 정도로.. 윤기나는 블루블랙의 머리카락. 살며시 황태자의 긴 속눈썹을 어루만지며 그 너머에 있을 매혹적인 블루블랙의 눈동자를 생각하면서 잠시 환상의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언제부턴지는 알 수 없지만 피워지고 있는 향의 새하얀 연기가 방을 계속 감싸며 열려 있는 방문 밖으로 조금씩 새어나가고 있었다. 화려한 침대에도 잔뜩 걸려있는 투명한 붉은 휘장 속으로 보이는 둘의 모습이 무척이 나 다른 사람이 보기에 의심을 자아낼 만 했다. 소녀가 다시 황태자의 얼굴을 쓰다듬자 갑자기 소녀의 손을 황태자가 쥐어 잡으며 입 을 조심히 열었다. "카..세..리아느?" "으읏?" 어디선가 들었던, 아텔린의 황태자는 매력적이지 않은 것이 없다는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모양인지 황태자는 그 목소리마저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을수 가 없었다.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 이름은 자신을 부르는 이름이 아니기에, 자신을 그리는 말이 아니기에 소녀는 자신의 입술을 살며시 눌렀다. 그러나 곧 황태자는 저 매력적인 목소리로, 자신만의 이름만을 불러 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샤리아나는 황태자의 귓가에 자신의 입술을 가져다 대며 입을 열었다. "소녀는 샤리아나 이옵니다." "카세리아느.." 그렇게 말했는데도 다른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황태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살며시 째려보았다. 그러다 무언가 생각난 모양인지 샤리아나는 살며시 자신의 발걸음이 이끄 는 곳으로 걸어갔다. 어느 한곳에 다다르자 살며시 주위를 의식적으로 둘러보던 샤리아나는 곧 만족감에 어 린 미소를 지으며 어느 장소에서 보석함을 꺼내 들었다. 먼가 비밀스러운 느낌을 자아 내는 보석함을 쓰다듬으며 샤리아나는 입을 열었다. 즐겁다는 듯. "내 홍안에 게다가 이것까지 있으면 완전히 내 사람이 된다고 했었지?" 보석들이 박혀있는 보석함을 샤리아나가 살며시 열자 그곳에는 실크천으로 동동 쌓여 져 있는 것이 있었다. 그 실크천을 보며 미세하게 샤리아나는 미소짓다가 조심히 실크 천을 조심히 풀었다. “그래. 이거야.” 실크천으로 쌓여져 모습을 감추고 있던 의심을 자아내는 물체는 다름아닌 하나의 병이 었다. 크리스탈의 투명한 병에 들어있는 붉은색 물약. 『아셀로나 : 영원한 사랑을 성취할수 있게 해주는 미약』 크리스탈 병에 적혀있는 한마디의 구절을 바라보며 샤리아나는 더욱 농염한 미소를 지으며 자그마한 물약을 손에 쥐고서 침대에 누워있는 황태자를 바라보았다. "홍안의 위력은 얼마가지 못해. 길어봤자 1주일이지. 하지만 이 미약은 틀려. 영원 한 사랑을 약속하거든." 아셀로나는 예전에 한 천재 마법사가 심심하던 중에 만들어낸 희대의 실패작이며, 또 한 희대의 비약이었다. 그것은 지독히 싫어하던 사람들도 영원히 사랑하게 해버렸기 에 한동안은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그것을 마시고 난 다음에 본 사람을 영원히 사랑하게 해버리는 아셀로나. 하지만 결국 그것은 나쁜일에도 쓰이게 되었으며, 심심한 사람들은 그것을 가지고 사 람의 감정을 가지고 놀기도 했다. 결국 사랑을 관장하는 아셀로니아 여신의 신전에서 는 그것을 아셀로니아 여신의 이름으로 금지시키기에 이르렀다. 인간의 감정은 다른 인간이 가지고 논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 일이었으므로, 그 것은 다른 사람들의 동의에 의해서 제조법과 그 모습이 사라지게 되었던 것이다. "기다리세요. 영원히 저만을 사랑하게 해드리겠습니다." 샤리아나는 황태자를 보면서 더욱 기쁜 미소를 짓다가 아셀로나를 가지고 황태자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두근거리는 설레는 맘으로 아셀로나의 뚜껑을 열어 황태자의 입을 벌려 부어 넣는 샤리아나였다. 조금 후에 있을 황태자의 모습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누군들 안 그렇겠는가.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대륙의 최고 권력자가 될 사람이며, 또한 저렇게나 아름다운 미모를 가졌다면 말이다. 아셀로나가 황태자의 입속으로 전부 들어갔다. 이제 그것을 황태자가 삼키고 나서 자 신을 보는 일만 남았다는 생각에 샤리아나는 머리를 정리하면서 황태자의 얼굴 가까 이 자신의 얼굴을 가져갔다. 그리고서 살며시 황태자의 팔을 건드리며, 자신이 낼수 있는 최상의 목소리로 전하라 는 이름을 되뇌이고 있었다. "전~하! 전하!" 그리고 건드린 효과가 있었던 모양인지 황태자의 눈동자는 살며시 뜨여졌다. 블루블랙의 눈동자가 분명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자신에게 빠져들은 거라 생각해 좋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샤리아나는 미소를 지었다. 이제 이 사람은 완벽히 자신만을 영원히 사랑할 인형이 될것이다. 하지만 무언가 이상하다. 사랑하는 이를 보는 사람의 모습이 저런 모습이었던가? 한쪽 입꼬리와 차가운 눈동자로 비웃듯이, 그렇게 바라보았던가? "전하?" 그래서 살며시 반문하는 샤리아나를 보면서 황태자는 슬쩍 매혹적인 웃음을 띠우며 샤리아나의 팔을 잡아 당겨 자신에게로 더욱 가까이 다가오게 만들었다. "저., 전하?" 무척이나 유혹적인 모습에 정신의 혼란이 온 모양인지 살며시 반문하는 샤리아나를 황태자는 푹신한 베게에 자신의 몸을 살짝 기대면서 자신의 품으로 끌어들이며 입을 맞췄다. 처음에는 좋아서 반기던 샤리아나였으나 그 반응은 곧 바뀌고 말았다. “으..으읍~!” 샤리아나의 입술 주위로 붉은 액체가 떨어뜨려 지고 있었고 샤리아나의 눈은 놀람으 로 인해서 크게 떠져 있었다. 역으로 자신이 당해 버릴줄은 생각도 못한 결과였다. 황태자는 자신의 입안에 있는 모든 것을 샤리아나에게 옮기고 나서야 불쾌하다는 듯 눈을 찌푸리며 입을 떼어냈다. “그런 방법을 쓸 것이라고는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단지 그냥 넘어간 척 했을 뿐 이지.” “그..그런!” 황태자에게 그런 정신력은 없다고 분명히 들었었거늘!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 가? 어떻게 황태자가 저런 관심없는 눈동자로, 경멸스런 눈동자로 자신을 쳐다볼 수 있단 말인가. 그는 자신의 홍안에 충분히 빠져 있었는데? “나에게 그런식으로 접근해 온 여자들이 한두명이 아니라서 말이야. 그리고 아쉽게 도 넌 내 취향이 아니다. 샤리아나. 그리고 이미 약효과는 시작되고 있는 가 보군.“ 자신의 입술을 천으로 닦아내면서 차갑게 말하는 황태자였다. 그리고 그런 차가운 황태자의 모습을 보는 샤리아나의 눈동자는 지극히 풀려있었다. 무척이나 사랑을 갈 망하는 눈동자로 황태자를 바라보며 다가가려는 몸짓을 하고 있는 샤리아나. “이번에는 꽤 고급수단을 썼더군. 홍안에 거기다 아셀로나라..” 자신의 옆에 놓여져 있는 아셀로나의 약병을 집어 들면서 비아냥 거리듯 말하던 황태자 는 자신을 무척이나 풀린 눈동자를 바라보는 샤리아나를 보면서 비웃음을 흘렸다. “사랑받지 못하는 괴로움을 실컷 느껴보는 것도 정말 즐거운 일일 것 같지 않나?” 눈동자는 경멸한다는 듯이 샤리아나를 바라보면서도 여전히 입에는 실소어린 조소를 띄우 며 말하는 황태자를 바라보면서 샤리아나는 절망적인 눈동자로 바라보았다. “저..전하~!” 붉은 실크로 장식된 침대위에서 자신을 애타게 부르는 샤리아나를 뒤로하며 황태자는 문을 열고서 밖으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나갔다. ================================================================================ 제 목: 공녀(貢女) 카세리아느 [23 회] 글쓴이: 썬샤인 2003-01-27 조회/추천: 602 / 2 어둠의 속삭임 그리고 엇갈리는 인연 - 1 아슬아슬한 달의 희미한 움직임이 눈을 희롱하며 정신까지 이리저리 휘젓고, 이상하게도 차가워 보이는 달때문에 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완전하지만 불완전한, 가득 차오른 만월의 달은 빛을 반사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불완전한 만월의 달의 모습에 이상하리 만치 가슴이 저려왔다. 불완전한 달은 모든 이들을 거부하면서 빛대신 차가움을 내보낸다. 그리고 그 달을 등지고서 절벽위에 쓰러질듯, 아스라이 서있는 한 그녀의 자태는 애처롭기만 했다. 아슬아슬하게 절벽의 낭떠러지의 끝자락에서 위태롭게 서있는 그녀에게 누군가 소리쳤다. "거기서, 멈춰! 움직이지 마." 그다. 이유도 없이 그렇게 납득 시킨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말에 대답도 없이 그를 바라보는 듯, 움직임에 미동도 하지 않았다. "...." 아스라이 보인다. 그녀의 모습이. 그리고 그런 그녀를 붙잡으려고 하는 그의 모습이 왜 인지는 모르지만, 카세리아느의 눈에 잡혀 들어왔다. 그리고 누구지? 하는 의문을 떠오르려는 순간, 대답없는 여인에게 다시 그가 말했다. "제발.. 제발, 부탁이야. 더 이상 움직이지 말아줘." 너무 애처로워 보이는, 하지만 왠지 모를 서늘함이 느껴지는 그의 목소리에 그녀는 멈칫거리며 절벽위에 멈춰서 있었다. "이러지 말아요. 내게, 제발 이러지 말아요." 노래를 부르는 듯한 느낌이 들정도로 기분이 좋지만, 그 들떠올랐던 기부은 그 너무나 차가운 미성에 한순간에 내려가 버린다. 소름끼칠 정도로 차가운 미성을 그녀는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조금씩 다가오려는 그에게 다가오지 말라며 말한다. "옳지 않은 일이야. 그건 옳지 않아." "무엇이 옳지 않다는 거죠?" 고개를 설레 설레 흔들며, 그녀에게 어떠한 행동을 하지 말라고 말하는 그에게 그녀는 차갑게 물었다. "그대가 하려는 짓, 그대가 행하려고 하는 것." "알고 있잖아요? 그대도 알고 있잖아요. 너무 지쳤어요." 그가 말하자, 그녀는 살짝 고개를 떨구며 체념어린 목소리로 대답한다. 여전히 뒤에서는 차가움을 연신 뿜어내는 달이, 불완전한 모습의 가득 찬 만월의 달이 그녀의 뒷배경을 장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모습은 이상하게도 비춰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달이 빛을 강하게 뿜어내지 않는다고 하지만, 흐릿하게 나마 주위가 보이는 데도, 이상하게 달을 등지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마주보고 있는 그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 다. 카세리아느는 그런 그 둘을 바라보며 이상하다는 듯, 그들을 바라본다. 꿈. 분명 이것은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적으로도 충분히 느끼고 있다. "그래서 날 두고 혼자 떠나겠다는 거야?" 질책어린 말투. 날 혼자 버리고 가겠느냐는 그의 말. "그런 건 아니에요. 다만, 다만, 너무 지쳤기에 이젠 쉬고 싶은 거에요." 지쳤다고 말하는 그녀. 힘들다고 말하는 듯한 차가운 미성이 귓가를 간지럽힌다. 아주 흐릿한 영상들인데도 카세리아느에게는 그 말들만은 귓가에 아주 정확하게 들어왔다. "그래서! 그렇게 가버린다 해도! 또 같은 일의 반복일 텐데도? 이래가지고는 근본적인 원인은 해결되지 않는 걸. 그대가 이렇게 가버리면, 홀로 남겨진 나는? 그대는 나를 잊어버릴 테지만, 나는 어떻게 하라는 거야?" "그렇지 않아요. 난 당신을 잊을 수 없어요. 알잖아요. 당신을, 나는 당신만을 바라본다는 걸. 이렇게 가버려도 당신을 잊을 수 없을 거에요." "정말 모르는 거야? 이대로 그대가, 그렇게 가버리고 나면! 그리고 다시 그대가 태어나면, 그때는! 그땐 정말 그대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해. 나같은 것, 나란 존재는 그대의 머릿속에 조금도 남아 있지 않을 거라고!" "설령, 내가 다시 태어나 그땐 당신을 알아 보지 못한다고 해도." 그녀의 모습은 조금도 보이지 않는 데도, 오직 보이는 것이라고는 흩날리는 긴 검은 머리카락 뿐인데도 이상하게 그녀가 웃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살짝 말을 끊은 그녀는 다시 그를 바라보며 말한다. "당신은 날 알아볼 테니까 괜찮아요. 그렇기만 하다면, 당신은 반드시 날 찾아내서 또다시 당신만을 바라보게 만들테니까, 괜찮아요. 당신만, 그대만 나를 알아보면 되는 거에요. 그럼 난 반드시 그대만을 바라보게 될꺼에요." 숙명처럼- 그것이 올바른 정석이라도 되듯이, 오직 그만을 바라볼거라고 자신있게 그녀는 말했다. "못 알아볼지도 몰라. 내가 당신을 못 알아볼지도 모른다고! 못 알아볼꺼야. 그러니까, 가지마. 내 옆에 있어줘." "거짓말하지 말아요. 그대가 날 못 알아 볼리 없어요." "내가, 그대를 알아봐도 그대에게 이미 다른 사람이 있다면, 그대를 먼저 알아본 이가 있다면, 그때는 난 그대를 놓아 줄 수 밖에 없잖아." 안쓰러운 목소리로 말하는 그에게 그녀는 조용히 있다가 말한다. "그럴리 없어요. 날 제일 먼저 알아보는 이가 당신이 아니여도, 나의 무의식중에 존재하는 모든 감정들은 당신을 향해 있을 거에요. 나의 모든 것은 당신과 함께 존재해요. 다음에 태어나면 나의 모든것은 당신만을 위해서-" "으윽. 제발, 제발, 제발! 그냥, 내 옆에만 있어줘. 내가 그대 옆에서 그대가 지치지 않도록 해줄께." "....그대에겐 있잖아요. 지켜야 할것이." "!!!!" "지키지 않으면 안되잖아요." "그러지마." "그대야 말로 그러지 말아요. 자꾸 나의 마음을 흔들지 말아요." 힘겹게 말하는 그녀에게, 마치 지금이라도 바람에 더 세차게 불어온다면 부서져 버릴 것 같은 그녀에게 무작정 그들이 이야기 하는 중, 어느곳에선가 가만히 서있던 카세리아느는 조금씩 손을 뻗는다. 잡아주기 위해서. 흔들리는 그녀를 잡아주기 위해서 조금씩 손을 뻗는다. "이제 더 이상 갇혀 있는 것을 원하지 않아요. 인형은 이미 부서질만큼 부서지고, 고장날대로 고장나고, 닳을 만큼 닳아서 움직이지 못해요. 이 세상이 원하지 않는 모순덩어리인 그 인형은 이제 더 이상 반항할 힘이 없다구요." "그대는 인형이 아니잖아." "적어도 그분에게는 그렇게밖에 느껴지지 않다는 걸 알잖아요. 그분께서는 잔인하게도 자아를 가진 인형을 만들어 놓고서 내팽겨 두셨어요. 그리고 그렇게 가둬 버리셨죠. 혼자서 썪어 가도록. 미쳐가도록. 그렇게 즐기시고 계셨죠." "그렇지 않아!" "제발, 제발 이제 그만해요. 이제 그만 납득해요. 이제 놓아줘요." 간절하게 소리치는 그녀에게, 싫다는 듯, 고개를 흔들어대는 그녀에게 손을 뻗은 카세리아느는 그녀에게 닿을 때까지 손을 뻗어대다가 한순간 손을 멈췄다. "힘들어요. 이젠 너무 지쳤어요. 이제 쉬고 싶은 마음 뿐이에요." 힘겹다는 듯 말하는 그녀. "사랑해."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그는 조용히 중얼 거리듯 말한다. 그리고 그녀가 말도 없자 다시 한번 말한다. "난 오직 그대만 사랑해." 여전히 카세리아느는 굳어진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다시 한번 그를 바라본다. 그리고 그런 그를 바라보며 그녀는 슬픈 목소리로 말한다. "알아요." 살짝 말을 끊은 그녀가 다시 자신을 바라보며 웃는 듯한 그에게 말한다. "나도 오직 그대만을 사랑하는 걸요." 슬프게 웃고 있는 그녀의 얼굴이 보인다. 아니, 카세리아느에겐 이미 아까부터 보였던 얼굴이다. 카 세리아느의 얼굴은 이제 확인까지 하게 되자, 더더욱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돌린다. "카세리아느." 미치도록 아름다운 신의 피사체. 신의 조각! 그리고 거부할려는 듯, 고개를 흔드는 카세리아느에게 그것은 진실이노라고 그는 못을 거세게 박아 버린다. 자신과 똑같은 얼굴로 슬프게 웃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며 카세리아느의 눈동자가 커진다. 그렇다면 대체 그녀앞에 웃고 있는 그는?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그는? 그녀도 사랑한다고 말하는 그는 누구란 말인가? 그녀가 자신이며, 자신이 그녀이다! "그럼 이만 갈게요. 잠시 쉬다가 올게요. 다시 태어나면,그때도 당신만을 바라볼테니까. 그러니까 그때는 당신이 날 빨리 알아봐줘야 해요." ".....카세리아느." 혼란스러운 머리를 카세리아느가 미처 정리하기도 전에, 또다른 자신인 그녀는 그를 보며, 웃다가 눈을 감고서 단호하게 외친다. "멸(滅)!" 그리고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녀는 부서지듯 그렇게, 모습을 지워 버린다. 아름다운, 미치도록 아름다운 그 모습을 세상에 보여주기 싫다며 사라져 버린다. 그녀는, 그렇게 자신은 사라져 갔다. 허무한 카세리아느의 눈동자가 어디를 향해야 할지도 모르는 데, 그는 그렇게 그녀가 떠나고 나자, 쓸쓸히 그녀가 있던 곳으로 걸어 올라 간다. 따뜻한 이별의 입맞춤도 없었고, 포옹따위도 없었다. "증표따위 없어도, 그대를 나는 알아 볼 수 있을 거야. 한번도 그대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을 테니까." 조용히 꿇어 앉으며 그는 나지막이 중얼 거린다. "하지만 어떡해?" 괜한 슬픈 기운이 여기까지 몰려 들어온다. "나, 그대가 없으면 숨을 쉴수가 없어." 카세리아느는 믿기지 않는 다는 눈동자로 그를 바라본다. 뭘까? 그는 대체 누굴까? 대체 누구지? 라는 의문만이 머릿속에 가득하다. 이 상황조차 카세리아느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의 일부일 뿐이다. "그래서 그대가 없다는 건, 내게 산소가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야. 그래사 살 수 없다고. 하지만 걱정마. 그대보다 조금 일찍 태어나서 그대를 찾아 다닐테니까." 살짝 고개를 숙이며 중얼거리던 그가 갑자기 차가운 달을 향해 고개를 힘차게 들어 올린다. "그대는 나의 반려니까." 흐릿했던, 보이지 않았던 그의 모습이, 아까 그녀가 그랬듯 보이기 시작한다. 부서질듯한 은빛 머리카락도, 은빛 눈동자도! 차갑기만 한 그의 얼굴도 보인다. 카세리아느는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무엇에 이끌린 듯 걸음을 옮기려고 하고 있었다. "영원히 사랑해, 카세리아느." 그리고 조심스럽게 손을 뻗으려고 했다. "멸(滅)!" 그녀와 같은 방법으로, 자신과 같은 방법으로 그는 얼음 조각을 남기면서 사라져 버렸다. 이젠 알것 같다. 그가 누구인지. 그에게 닿을 듯 했던, 손에 그가 없자 카세리아느는 무너져 버린다. 이젠 안다. 그가 누구인지. "으윽.." 어느새 현실로 돌아와, 살작 내리감은 카세리아느의 눈에 눈물이 가득 어리고 있었다. 왜 이제서야 알게 된걸까? 왜 이제서야 이런 기억들이 이런 꿈속으로 들어 온걸까. 왜 잔인하게도 꿈속에 이런 모습이 들어 온걸까. 그는, 다름아닌 그는!! 자신이 사랑했던, 아니 지금도 사랑해야 할 사람이다. "그럼 이젠 혹시나 모를 장애물을 처리할 차례인건가." 샤리아나와 황태자가 무도회장에서 나가는 것을 바라보면서 만족한 듯한 웃음을 짓던 페리어스는 사신들이 묵는 처소에서 자신의 새하얀 관복을 벗으며 입을 열었다. 혼잣말이 분명한 페리어스의 말에서 유난히 거슬리는 말은 '장애물'이다. 그리고 그 장애물은 대충 후려잡기에 황태자의 정신을 돌려놓게 만들 수도 있을 존재, 특히나 황태자가 소유하게 될 수많은 여인들 중에 한명이다. '카세리아느' 대륙의 남자들이라면 한번쯤은 손에 넣고 싶어할만한 존재. 그리고 지금은 아텔린의 케이론 황태자의 수중에 있는 절색의 미인. 아마도 그녀가 이번 일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 페리어스는 생각한 것이다. 행여나 나중에 그녀가 자신들이 원하는 일을 그르치게 만들면 안 되는 것이 아닌가. 페리어스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쓸어내리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어두운 밤, 조금씩 귓가에 울리는 음악소리, 환한 빛들. 살며시 이유 없이 미소 짓는 페리어스다. 아마 모든 것은 자신의 뜻대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 질수 있을 것이다. 그녀도 인간인 이상, 아름답다 하나 그 아름다움에도 한계가 있을 것이며 또한 역시 인간이므로 결점이 없을 리는 없을 테니 말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녀가 아텔린의 사람이 아닌 아르미난에서 보내어진 공녀(貢女)라는 것이다. 상큼한 미소를 전반에 드리우면서 페리어스는 옷을 갈아입으며 입을 열었다. “드래곤을 잡으려면 드래곤 레어로 쳐들어가라고 했었던가? 그렇다면 나도 앞날에 거치적거릴지도 모르는 싹을 밟기 위해서 그곳으로 가야겠군.“ 새하얀 관복이 아닌 편해 보이는 모습의 옷은 신관 같았던 청결해 보이는 모습과는 또 다른 느낌을 줬다. 편한 오빠 같은 느낌이랄까. 벗은 관복을 조심히 한곳으로 올려놓던 페리어스는 곧 몸을 일으키며 문을 열고 밖으로 걸음을 향했다. “모든 것은 고귀하시며 순결하신 레이니아 여신을 위하여..” 조용히 읊조리는 페리어스의 목소리와 함께 페리어스의 주위에는 성스러워 보이는 청광이 감싸져 있었다. 그가 어디로 무엇을 위해 향하는지 레이니아 여신은 알 수 있을까? 어둠을 밝히는 조그만 달빛과 백금발이 닮은 것 같은 느낌을 준다. * * * 새하얀 테라스의 난간에서부터 물들기 시작했던 짙은 검은색의 어둠은 조금씩 밝은 빛을 배척하려는 듯, 천천히 자신의 품으로 빛을 끌어 들여 타락하게 만들어 버렸다. 아무 생각 없이 밖을 바라보던 카세리아느도 그런 미세한 변화를 알아차렸다. 찬란한 빛으로 따뜻하게 감싸고 있던 주위의 풍경이 끝없는 나락으로 젖어드는 은근한 추위 까지 선사하는 어둠으로 물들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얇은 잠옷차림으로 계속해서 창밖만을 이유 없이 바라보고 있었던 카세리아느를 보면서 마냥 걱정이 된 것은 핑크머리 소녀뿐이었다. "카세리아느님. 벌써 어두워 졌다고요. 무도회는 벌써 시작된 지 오래구요! 계속 이 렇게 밖만 바라보고 계실꺼에요?" 도대체 무엇 때문에 한참동안의 시간을 밖의 배경을 바라보는데 허비하는 지 이해불 가능한 에린이었으나 지금은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다른 황태자비후보들이 눈을 빛내며 무도회장으로 간 이때, 자신이 모시고 있는 아름 다운 카세리아느가 이렇게 있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인 것이다. "한마디라도 말씀해 보세요!!" 카세리아느 주위에서 알짱거리며 소리치는 에린을 카세리아느는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않으며 무시하고 있었다. 아니, 들리지도 않는 다는 듯 너무나 담담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곧 어둠을 바라보던 눈길을 거두며 입을 열었다. “내가 그곳으로 간다면 지금의 난 무너질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에린.” 늘 그렇듯 차가운 미성의 목소리에는 아무런 감정도 깃들여져 있지 않다. 무너져 버릴 것 같다? 그 말뜻도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에린이 알 수 있는 것은 지금 카세 리아느의 눈동자가 무도회장을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슨 말씀이에요?” “나 자신을 잃어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그리고 난 누군가에게 얽매이는 것을 원하지 않아.“ 사랑이라는 것을 하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 이질적인 것을 하게 된다면 자신은 그것에 얽매이게 되어 끝없이 추락하여서 다시는 일어 설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거대한 폭풍처럼 휘몰아쳐 자신의 가슴을 찌르고 있다. “카세리아느님?” 조용히 가만히 있으면 그의 목소리가 들릴 것 같다. 조용히 눈을 감고 있으면 그의 모습이 보일 것만 같다. 그래서 조용히 눈을 감을 수 없고, 조용히 귀를 기울이지 않 는다. 하지만 지금 자신의 눈동자는 어디를 향하고 있는 곳은 어디지? 머리로는 이해해도 몸은 그것을 받아 들여 주지 않는다. 이성보다는 본능이 훨씬 자신에게 충실하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고 있어서 본능을 잡아두고 싶다. 하지만 가슴속 저편으로 감춰두었던 본능이 머리를 내밀고 일어서려 하는데도 그것을 막아둘 힘이 없다. “내 마음이 흔들려선 안돼는 데. 어째서...” 가슴이 아프다. 짖겨질 듯 아파오는 가슴의 통증을 막을 수가 없다. 그가 잘못한 거다. 거짓이면서도 진실인 듯한 모습으로 자신의 마음속을 휘저은 그가 나쁜 거다. 그런데 그가 휘저어 놓은 마음을 원상태로 되돌릴 수 없다. “왜 그러시는 거예요. 카세리아느님...” 무표정한 모습으로 혼잣말을 내뱉는 카세리아느가 애처롭게 까지 보인다. 에린은 그런 카세리아느를 젖은 눈망울로 바라보면서도 아무런 행동도 할 수가 없었다. 다가가서 위로해 드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가슴 아파 보이는 카세리아느이지만 다가갈 수 없었다. ‘다가오지 마.’ 그렇게 한 겹의 막이 쳐져 있는 것만 같다. 그 필요 없는 부실하기만 한 보호막은 자신의 보호하기는커녕 같이 상처를 입고 짖겨져 버릴지도 모르는 데도 굳이 그걸로 보호하고 있는 걸까? "그리고 이대로 마음이 흔들려 그를 사랑하게 된다면..." ‘아직 찾지도 못한 그는 날 경멸어린 눈동자로 바라볼 거야.’ 오늘 아침 갑자기 머릿속을 채워놓았던 거대한 기억의 파편들 속에서 찾아낸 자신을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그는 아마 슬퍼할 것이다. 저 창밖에 보이는 달을 닮은 그는.. 차라리 자신의 마음을 흔들어 놓은 그가 그라면 좋았을 것을. 처음부터 마음의 문에 커다란 자물쇠를 잠그고 거부하고 있었는데 어째서 그는 그 자물쇠를 손쉽게 열어버리고서 그 자물쇠 너머의 자신의 문을 두드린 걸까. -똑똑똑 “카세리아느님을 만나고 싶습니다.” 페리어스의 상큼하게 느껴지는 목소리가 투박한 노크소리와 함께 문 너머로 들려왔다. 무표정하게 앉아서 혼란스러운 마음을 추스르고 있던 카세리아느의 차가운 눈동자가 문밖을 향했고 에린은 훌쩍이며 조심스럽게 문을 열기위해 걸음을 옮겼다. -달칵 "누구시죠?" 약간 울먹이는 에린의 목소리와 어설픈 몸짓으로 열린 문 틈에서 유난히 카세리아느의 눈길을 사로 잡는 것은 단 하나였다. 조심스러운 페리어스의 발걸음도 상큼하기만 한 페리어스의 목소리도, 카세리아느의 눈길을 사로잡지는 못할 것이었다. 유난히도 아름다운 백금발 이 짙은 어둠이 차지하여 버린 방안에서도 알아 볼수 있는 단 하나의 것. 조그만 빛조차도 그 쪽만을 비추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달빛처럼 아름다운 백금발이다. 가는 실같은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린다면 무척이나 아름다울 거라는 생각을 들게 할만큼 말이다. 그런 백금발을 보면서 카세리아느는 무 언가 떠오를 듯 눈살을 찌푸렸다. "라이닌의 사신으로 온 페릭이라고 합니다." 부드럽고 깔끔하게 느껴지는 페리어스의 목소리를 들으며 카세리아느는 살며시 눈을 감았다. 분명 어떻게 이곳으로 들어왔으며, 황태자의 후궁이 될 자신을 찾아오면 안 되는 것이라고 말을 해야 하는데 그 말이 나오질 않았다. '그인건가..' 모습이 일치해서 인지는 알수 없지만 그 달과 같은 아름다움을 지닌 오직 백금발때문 에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 하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서 페리어스쪽을 강하게 응시하려 는 카세리아느였다. '부딪혀 본다면 알 수 있겠지.' 방법? 그런것 따위는 있을리가 없다. 오직 부딪혀 보는 것 만이 방법이라면 방법이 아 닐까. 강하게 부딪혀 보고서 확인하는 것이 길이라고 생각한다. 유난히 차갑기만 한 카세리아느의 눈동자가 무척이나 빠져들듯 아름답다. "그런겁니까." 살며시 들려오는 차가운 미성에 페리어스는 살며시 눈을 크게 떴다. 무엇인가 의문을 표해오면서 물어 올 것이라 생각했었기 때문에 그런 행동이었다. '총명하다고 하더니 그것도 아닌건가?' 살며시 실망한 듯한 페리어스의 시선이 카세리아느의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움직였다. 어째서 인지는 모르지만 이 어두운 밤에 자그마한 마법구만이 비추고 있어서 그 마법 구와는 상관없는 곳에 있는 카세리아느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다. "제가 어떻게 이 곳으로 들어왔으며, 카세리아느님을 만나러 왔는지 긍금하지 않으신 건가요?" "황태자 전하께 무슨 일이 있으신 거에요?" 오히려 페리어스의 말에 대답한 것은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 있던 에린이었다. 설령 문을 열어 남자를 방에 들인 것이 잘못이라면 카세리아느에게는 잘못은 없었다. 무작 정 혼란스러운 마음에 카세리아느의 동의도 얻지 않고서 문을 열어버린 에린의 잘못이 라면 잘못일 망정은 말이다. "궁금해 할 까닭은 조금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질문을 하기 위해서 오신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제가 묻는 것은 시간낭비가 아니겠습니까. 이미 당신은 황태자의 것이라 할 수 있는 제 방에 목숨을 담보로 들어 왔으니 말입니다." 페리어스의 눈에는 카세리아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오직 보이는 것이라면, 카세리아느의 환상적인 자태의 실루엣 뿐이다. 실루엣 만으로 그 목소리 만으로, 얼마만큼의 모습을 연상시킬수 있겠느냐 마는 그것 만으로도 너무나 넘칠만큼 그 목소리는, 그 자태는 페리어스로 하여금 감히 라이니아 여신을 연상시키게 만들었다. "황태자전하께는 아무런 일도 있을리가 있겠습니까. 어쨌든 그것이 궁금하지 않으시다 니 다행입니다. 저는 다만 경국지색이라 소문이 자자하신 카세리아느님과 길을 거닐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을 뿐입니다." "지금 그 말은 나의 소문에 대한 것 때문에 하신 말씀이십니까 그렇지 않다면, 후에 황태자전하의 많은 총애를 받아 정치에 영향을 끼칠지도 모르는 그때의 나. 카세리아 느에 대해서 한 말인지 물어보아도 괜찮겠습니까." 아마도 자신의 바라보는 카세리아느의 시선은 저 냉정한 목소리와 마찬가지로 차가울 것이라고 생각하는 페리어스였다. 어떻게 본다면 날카롭다. 저 말에는 아무런 대답도 할수 없을 정도로 직접적인 질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니 말이다. 페리어스는 살짝 눈을 크게 뜨며 굳어 있다가 입가에 미소를 띠우고선 입을 열었다. "두가지, 전부 다 라고 말하면 경멸의 눈동자로 보실 생각이신가요?" "그럴리가 있겠습니까. 아텔린과 라이닌은 친하게 지내고 있다고는 하지만 결국은 적 의 관계가 아니겠습니까. 미래를 파악해 둘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여자는 진짜다. 한낱 나라를 망하게 한다는 요부와는 다른 향기를 뿜어내고 있다. 다시금 페리어스의 입가에는 진한 미소가 띠어졌다. 무척이나 탐나는.. 그리고 라이닌의 앞날에 방해가 될 것이 분명한 여자. 이런 여자에게 빠지지 않을 남자가, 어디있을 것인가. 게다가 나라를 다스릴 군주에게 있어, 이만큼 적합한 여자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것은, 황태자는 분명 이 여자를 기억속에서 놓아주지 않을 것이란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될것이라면 차라리. '내가 가질까?' 페리어스의 입가에 드리워진 미소는, 늘 상큼하던 미소와는 달리 무척이나 위협적인 향기를 풍기는 미소여서 위험해 보였다. 예전의 상큼하던 미소가 순수함을 뜻하는 백합같다면 지금은 꽃봉오리를 활짝 피워 그 유혹적인 자태로, 그 위험한 향기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검붉은 장미같다고나 할까? '나쁘진 않겠는 걸?' 살며시 머릿속에서 생각을 정리하면서 띤 그 미소는 페리어스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을 준다는 것을 짙은 어둠도 알았나 보다. 그래서 그 타락한 어둠은 자신을 희생 하여 페리어스의 그 미소를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오직 보이는 것은 백금발의 그 눈을 현혹시키는 아름다움 뿐이다. 살짝 올라간 페리어스의 하얀 손가락이 자신의 붉은 입술을 쓸어 내렸고, 조심히 그 입술은 열려졌다. "저에게 같이 걸으며 이야기를 나눌수 있는 영광을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오늘따라 유난히 그 금색 눈동자가 빛나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반짝였다. 그리고 그 소리를 들으면서 카세리아느는 이유없이 밤하늘의 달을 응시했다. 자신을 분해하여 빛을 뿜어내는 모양인지 부서질듯 아슬아슬한 달을 보면 무엇이 떠오르기라도 할듯. "왜 카세리아느님께서 페릭님과 같이 가신단 거에요!" 카세리아느가 대답을 하지 않자 에린이 심통난 듯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어째서 황 태자전하도 아닌 주제에, 그리고 황태자전하가 아프신 것도 아닌데 왜 들어와서는 이 제는 자신의 아름다운 주인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이란 말인가! "귀여운 시녀앙은 좀 빠져주셨으면 좋겠는 데요." "무슨 소릴 하시는 거에요! 카세리아느님은 황태자전하의 비가 되실 뿐이에요! 넘보 시면 큰일 나신다구요!" 눈살을 찌푸리면서 페리어스의 말에 대들며 소리치는 에린의 목소리가 방안을 가득 메 웠고, 정작 중요한 카세리아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게 답답해보였던 모양인지 에린은 카세리아느에게로 다가가며 다시 조용히 말했다. "카세리아느님~! 저 사신을 혼내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사신이 들어오게 된것이 자신 때문이라 결국 혼나게 될 대상에는 자신도 속한다는 것 을 에린은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런 에린을 뒤로 하며 카세리아느는 사신쪽을 응시하 며 입을 열었다. "나쁘진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조용히 내뱉는 목소리는 꽤나 충격적인 말이라서 황태자가 들었다면, 분명 큰일났을 것이 분명했다. 분명히 자신 특유의 소유욕으로 카세리아느를 어느 한방에 붙잡아 두 거나, 그 사신을 잔인하게 죽이고 싶은 충동에 휩싸일지도 모를 일이다. 당당히 페리어스쪽을 응시하는 눈동자는 이미 마음을 잡은듯 보인다. "무슨소리세요! 카세리아느님!" "에린. 황태자전하께는 비밀로 해줘." "네?" "네가 말한다면 그때는 아마 다시는 넌 날 볼수 없을 지도 몰라." 에린은 끝까지 반대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더이상 반대할수 없었다. 마지막에 한 그 말이 무척이나 애처롭게 들려서, 다시는 못 만난다는 말에 도저히 반대할수 없었다. 자신은 누가 뭐래도 카세리아느님이 좋으니까. 이 분을 만났기에 시녀가 된 자신의 생 활도 행복하다고 생각할수 있었으니 말이다. "알겠어요." 고개를 숙이고 꾹 다문 입술이 피를 낼듯 하다. 핑크빛의 머리카락이 조금씩 흔들리는 것을 카세리아느는 눈치 챘을까? "고마워." 괜찮다. 속상해도 그 목소리 하나면 행복해 질수 있을 것 같다. 차가운 미성이 아닌 따뜻한 그 목소리에 만족한다. 그렇기에 웃으며 말해줄수 있다. "저는 카세리아느님을 믿어요!" '카세리아느님께는 황태자전하밖에 없다는 사실을..' 엉뚱한 소리에 살짝 미간을 좁히는 카세리아느였지만 에린은 그래도 만족한 듯 웃으며 자신의 방으로 조심히 걸어갔다. 아름다운 저 분은 내가 모시고 있는 분은, 누구보다 아름답다고 자부할수 있으며 그 차가운 외면속에 따뜻하기만 한 내면을 가지고 있음을. "그럼 같이 나가시겠습니까?" 가만히 서있는 카세리아느에게로 다가가며 페리어스는 손을 내밀며 말했다. "..." 손을 내민 페리어스가 무안하게 만들 마음은 없었겠지만, 카세리아느는 무시하며 밖 으로 걸음을 향했다. 그런 카세리아느의 행동에 멋쩍은듯 손을 다시 모으는 페리어스 였다. '정말 그인지는 알수없지만..' 밖으로 나가자 환한 마법구들이 밖을 밝혔다. 새하얀 빛들이 어둠을 몰아내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그에 따라 자연히 카세리아느의 얼굴을 감싸고 있던 어둠도 비명을 지르며 사라졌다. 이 사람을 위해 우리가 존재한다. 오직 빛이라는 것이 이 사람을 비춰주기 위해 태어난것 같다는 충동이 일정도다. 눈이 번뜩 뜨여진다. 상상 이상.. 아니 상상도 하지 못했던 아름다움. "여..역시나.." 살며시 나오는 감탄사를 막을수 없을 정도였다. 카세리아느가 식은듯한 차가운 눈동자 로 바라보자 숨이 막혀오는 것을 느낀다. 살짝 내리깔아져 있는 눈동자 위로 긴 속눈 썹. 붉은 입술. 그 우아한 자태가 더욱 황홀히 뿌리칠 수 없는 유혹으로 다가온다. 어째서 이런 여자를 두고서 미인계를 생각할 수 있었을까. 아셀로나가 없었다면 생각 도 못할일이 아닌가. 이런 사람을 보고나서 그런 소녀가 눈에 들어올리가 없지 않는가. 손에서 놓아주고 싶지 않다는 소유욕을 일게 한다. 그리고 저 자태와 저 모습이 감히 인간이라 생각할수 없다. 저 모습이야 말로 인간들이 꿈꿔오던 여신(女神)이 아닌가..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시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잠시 들려온 미성에 다시 눈을 크게 뜬 페리어스가 미소를 띠우며 입을 열었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하려고 하지만 아직도 당황한 듯 보이는 것은 없지 않아 있었다. "역시 너무나 아름다우신 미모에 넋이 나가버렸습니다." '내가 이렇게나 소유욕을 느낄정도인데 황태자는..' "그런 말은 듣고 싶지 않습니다." 여자라면 누구나 아름답다는 말에 행복을 느끼는 것이 당연한 줄 알고 있었다. 아름 다움에 대한 찬사를 싫어할 여자는 존재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저 눈부신 아름다움 에 그 말을 아낌없이 들어왔기에 그런건가? "그럼 저쪽으로 걸어가면서 이야기를 나눴으면 합니다." '황태자에게 실망을 하게 한다면, 앞으로의 일은 쉬워 지겠지.' 황태자와 샤리아나가 있을 곳으로 걸음을 옮기며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웃음을 지으며 손을 가리키는 페리어스였다. 카세리아느는 마법구의 빛보다 더욱 밝아 보이는 페리어스의 백금발을 보며 눈을 살포 시 내리깔았다. 알 수 있겠지? 갑자기 왠지 모를 불안감이 드는 이유는 알수 없지만, 살며시 카세리아느는 고개를 들었다. '느껴지는 그리움 따윈 없어. 하지만 달의 아름다움을 지닌 그였으니까..' 파란.. 왠지 모르게 가슴속의 불안이 커져지며 가슴속을 울리고 있다. 폭풍전야와 같이 조용하기만 한 카세리아느의 가슴속의 작은 호수를 하나의 물방울이 떨어져 흐트려 놓으려 하고 있다. * * * "어디로 가는 것인지 물어봐도 괜찮겠습니까?" 의혹어린 카세리아느의 시선이 차갑게 페리어스를 훓어보았고, 곧 이어 입이 열렸다. 조금의 변화도 없는 목소리였지만 그 눈길만 보아도 무엇인가 의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기에는 조금의 모자람도 없을만큼 충분했다. 발걸음의 소리를 되도록이면 줄이기 위하여 황태자궁 전체의 복도에 깔아놓은 붉은 카 펫이 오늘따라 유난히 의심을 돋구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카세리아느의 처소가 황태 자궁 안의 어느 한곳이기에 어느정도는 알고 있다고 자부할수 있지만, 황태자궁은 그 렇게 좁은 곳이 아니었다. 짙은 어둠이 지배하는 어두운 밤. 달빛조차 가려져 들어오지 않고서 오직 마법구와 횃불만으로 의지해야 하는 곳. 게다가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곳을 낯선이와 깊숙이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탁 "하아. 절 의심하시는 건가요?" 아주 낮은 소리를 내며 멈춰선 페리어스는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입을 열었다. 마법 구를 등지고 있는 위치여서 그런지 백금발이 금발이라기 보다는 더욱 빛나는 은발과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눈이 부셔 눈을 뜨지 못할만큼의 빛이 카세리아느의 눈동자안으로 빨려 들어져 온다. 그러다가 페리어스의 말을 들으며 시선을 옆으로 가늘게 내리깔고서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의심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순진한 것일 겁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나는 이 상황을 의심하지 않을 만큼 순진하지 못합니다." "아.. 그러신가요? 조금 슬프긴 하군요. 제가 그런 사람으로 보였다면 말이에요. 휴. 앗! 그렇게 제가 의심스러우시다면, 이것을 드리겠습니다." 카세리아느를 보면서 살짝 씁쓸한 미소를 짓던 페리어스였으나 곧 먼가 생각 났다는 듯 입을 벌리다가 자신의 손을 슬쩍 자신의 오른쪽 소매로 가져갔다. 그런 페리어스의 움직임을 살짝 바라보던 카세리아느의 시야에 곧 반짝이는 것이 잡혀 들어왔다. "제게 있는 유일한 무기랄까요? 예전에 선물받은 비상용 단도에요. 아무리 눈장식용 이라고는 하지만 보세요." 빛에 반사되어 유난히도 반짝이던 은색 단도는 장식용이라고 하기에는 수수한 편이긴 했다. 징식용보석치고는 보석이라고는 붉은색의 루비, 그것 단 하나밖에 없으니 말이 다. 하지만 가까이에서 자세히 본다면 그 놀랄만한 정교한 문양에 충분히 가치 있는 것이라고 느낄 수 있다. "날카롭죠?" 페리어스는 그 단도를 살짝 빼어내면서 단도의 날카로움까지도 새로이 확인시켜 주었 다. 검날에까지도 세심한 신경을 실어넣은 모양인지 검날에까지도 문양은 정교하게 새 겨져 감상용으로도, 보효용으로 사용하기에도 조금의 모자람이 없어 보이는 단도다. 그렇게 단도의 날카로움까지도 확인시켜 주다가 살며시 단도를 카세리아느의 손에다 올려다 놓았다. "만약에 제가 허튼짓을 하려고 한다면 이것으로 저의 가슴을 찌르셔도 좋습니다. 물론 그럴일은 절대 없을테지만 말입니다. 그런 짓은 제가 모시는 레이니아 여신께서도 노 여워 하실테니까요. 그럼 계속 가면서 이야기 하도록 하죠." "믿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햇살같은 미소를 보여주면서 페리어스는 다시 멈추었던 걸음을 움직였다. 움푹 패여 들어가는 카펫의 발자국들이 페리어스가 가고 다면 다시 조금씩 기를 쓰고 일어난다. 원상태로 돌려놓겠다는 듯이. 카세리아느도 페리어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단도를 손에 꽉 쥐어 잡으며 걸음을 옮겼다. 조금의 발소리도 나지 않는 조심스러운 움직임이 우아하게 보이면서도, 도도 한 느낌을 풍긴다. "아..! 저쪽에 누가 있는 모양인데요?" 얼마까지 앞서가던 페리어스의 놀란듯한 목소리에 카세리아느도 페리어스가 보고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조용히 귀기울이면 무언가가 아주 조그맣게 들려온다. 그것만 으로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입증된 셈이다. "저쪽방이에요." 이곳은 손님접대방으로 알고 있는데, 지금 황태자를 찾아온 사람들이 있었던가? 황궁 무도회의 시기라 하여도 사람들이 있을 곳이 모자라 황태자궁의 접대실에 있을리는 만 무한 것이다. 누구지? 페리어스가 살며시 손으로 가리킨 곳에서는 이상야릇한 불그스름한 빛이 꽤나 열려진 문틈으로 스멀스멀 기어나오고 있었다. 상당히 불쾌하게 만드는 불빛. 그리고 알 수 없는 불길한 느낌. 그런 느낌들이 분명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카세리아느도 사람이었기에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채 조심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지금 자신이 가는 이길이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미래를 알지 못하는 이상 모르는 일이다. 그저 서있어서는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 가만히 있어 멈추는 것보다는 부딪혀서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보다 낳은 일이다. 그것이 비록.. 자신에게 커다란 상처와 절망을 안겨준다고 할지라도, 절대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다. 열려진 문틈사이로 보여진 것은 붉은 빛과, 온통 붉은 휘장들과 장식들이었다. 사람의 본능을 건드리는, 사람들을 흥분시키게 만든다는 붉은 색이 주를 이루는 방이었다. "저 분은 케이론 황태자전하가 아니십니까?" 그리고 또 하나 보이는 것은 결코 모르지 않는 사람이었다. 붉은 휘장들이 늘어뜨려져 있는 붉은 색의 침대에 매혹적인 자태로 앉아서는 누간가를 잡아 끌고 있는 사람은, 황태자다. "그렇군요. 혹시나 도둑이 들었을까 염려하였는데 아니어서 다행입니다." 황태자는 갈색머리카락의 소녀를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기며 조용히 입맞추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저런 모습을 보면서도, 가슴이 더욱 혼란스럽긴 커녕 오히려 아까의 혼란 스러움이 가라앉은 듯 침착해진다. 없었던 신뢰여서 그런가 배신감조차 느껴지지 않 는다. 그는 원래 저런 사람이라고 이해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자신을 원한다고 하던 저 입술이 다른이의의 입술에 닿아있어도, 자신을 안던 저 품이 다른 이를 안고 있어도, 자신을 잡던 저 손이 다른 이를 잡아도 아무렇지도 않다. '이렇게 될줄 대충 예상하고 있었던 것 같아.' 황태자는 자신 하나로는 부족할 것이라고 생각해왔으니까 더 이상 아무렇지도 않다. 오히려 속이 편하다. 달을 닮은 그를 만난다면 주저없이 그를 택할수도 있을 것 같으 니 말이다. "그럼 자리를 비켜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 예." 하지만 이상하게도 단도를 잡은 손에는 힘이 더욱 들어간다. 더 이상의 모습을 보는 것은 실례일 거라 생각하며 눈을 감고서 걸음을 옮기는 카세리아느였다. 그런 카세리 아느를 보면서 무엇인가 실망한듯이 허망한 표정을 짓는 듯한 페리어스였으나 곧 짙 은 웃음을 지으며 잡다한 생각을 지웠다. '생각보다 무서우리만치 강한 여자야.' 사실 조금은 놀란듯한 반응이라든가, 배신당했다는 듯한 상처받은 눈동자를 할 줄 기 대를 하지 않았다면 그것이 거짓말이었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카세리아느가 황태자 가 있는 쪽에서 고개를 돌렸을때 살짝 눈이 뜨여졌다. '이제 됐어.' 결심한 듯이 결의에 찬 파란 눈동자가 정면을 응시한다. 이제 어느정도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선택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생긴다. "케이론 황태자전하께서 여자들을 좋아하신다더니 사실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럴지도 모르겠죠." '황태자전하도 나도, 사랑이라는 감정을 모르니..' "카세리아느님이 아까우시네요. 저라면 카세리아느님만을 바라볼텐데 말이에요. 앗! 방금 그말은 그냥 헛나온 말이었어요. 못 들은 걸로 치세요. 하하.." 지금의 페리어스의 미소는 햇살같다기 보다는 달빛과 겹쳐 보인다. 감정이 실리지 않 은 눈동자로 페리어스를 응시한다. 그리고는 페리어스의 강하게 쳐다보면서 카세리아 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아까 받았던 단도를 내밀었다. "단도를 돌려받으시고 싶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네?" 차갑게, 모든것을 얼릴수 있을 듯한 목소리로 한마디씩 내뱉는다. 당신이라면 그렇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면서, 뒤의 생길 상처들까지도 알고 있으면서도 냉정한 선택을 해버린다. "저를 이곳에서 데려가주지 않으시겠습니까?" 더 이상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아니 더이상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다. 자신은 그저 조금이라도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을 뿐이다. . . . 샤리아나에게 비웃음을 흘겨주고선 열려져 있는 방문을 더욱 밀치며 황태자는 밖으로 나왔다. 억지로 참아내긴 했지만 역시나 홍안은 지독했는 지 황태자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서 좌우로 고개를 흔들었다. 큰일날뻔 했다. 정말로 이성을 잃어버리고서 그 샤리아나라는 소녀에게 빠져들 뻔 했 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홍안에 끊어져 버릴 듯한 이성을 잡아준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으로 인해 없던 정신력까지 동원해 이성을 끈을 잡았던 거다. 억지로 시력을 잡으면서 바닥을 바라보던 황태자의 눈에 하나가 잡혀 들어왔다. 살짝 눈을 내리깔면서 그 잡혀들어온것을 보기 위해 더욱 시선을 잡으려는 황태자다. 붉은 카펫에 남겨져 있는 긴 검은 실. "머리카락?" 손으로 카펫에 있는 머리카락을 잡아 들면서 황태자는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찌푸 려 졌던 인상도 곧 놀란듯한 표정에 묻혀졌다. 검은 머리카락은 대륙에서 흔하지 않 다. 게다가 이 황태자궁에는 오직 한 사람밖에는 없다. 황태자는 살며시 앞쪽으로 고개를 돌리면서 굳은 듯 풀리지 않는 모습으로 열리지 않는 입을 움직여 하나의 단어만을 힘들게 내뱉었다. "카...세..리아느..?" ================================================================================ 오늘안에 반드시 예전 분량을 다 올릴께요!! 하지만 지금은..또다시 물러가야 할 시간이네요..ㅠ_ㅠ.. 하,학원..정말 눈물이 쏟아져요..ㅠ_ㅠ.. ..언제나 행복하시길.. 제 목: 공녀(貢女) 카세리아느 [24 회] 글쓴이: 썬샤인 2003-01-27 조회/추천: 448 / 3 떠나가는 길목에 남겨진 그리움 - 1 백색의 테이블에 한쪽팔을 올려놓고서 편안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 황태자다. 황태자의 블루블랙의 머리카락은 테이블에 늘어뜨려져 있고, 황태자의 머리카락과 같은 색인 눈동자는 수심을 알 수 없는 깊은 호수처럼 유난히 빠져 들 듯 보인다. 그런 황태자의 눈앞에는 유혹하는 듯한 자태의 붉은 와인이 담겨 있는 크리스탈 잔이 놓여져 있다. 마시다 만 모양인지 반쯤 정도 따라져 있었으나, 곧 황태자가 손을 가져가 그 잔에 입술을 가져다 댄 덕분에 완전히 자취를 숨겨 버리고 말았다. 한숨에 마셔버리고 나서는 다시 독해보이는 붉은 와인을 다시 채워 넣는다. 아까부터 같은 동작, 같은 움직임만 황태자는 반복하고 있었다. 어느 샌가 꽉 차있던 와인들은 3/4는 마셔 버리고 이제 1/4만 남아 있었다. 독한 와인인 듯 보이는 데도, 그 것을 마신 이는 황태자뿐인 듯 보이는 데도 , 황태자는 조금도 취한 듯 보이지 않았다. 취한이의 눈동자가 저렇게나 분명하게 사물을 바라볼 리는 없으니 말이다. 와인을 마셔버리고 나고서 황태자는 자신의 입가에 작게 미소를 띠웠다. 우습다. 이 상황 이 우습기만 한 황태자였다. 취하고 싶어서 일부러, 제일 독한 와인을 가져오라고 했는데 이 붉은 와인은 조금도 자신을 취하게 하지 못했다. 마시면 마실수록 이성이 흐려지기는커녕, 더욱 또렷해지기만 한다. 맑게 투명하게 이성이 자리 잡아 간다. 사람이 술을 마시다가, 나중에는 술이 술을 마신다는 것을 경험해 보고 싶었는데, 자신은 그것을 경험해 보지 못할 것 같다. 황태자의 시선이 조심히 백색 테이블에서 뚜렷한 윤곽을 드러내는 검은 머리카락에 향 했다. 가늘어지는 눈매와 굳게 닫혀져 버리는 입술. “훗. 그럴 일은 없을 텐데.” 하지만 곧 입술은 미소를 띠며 올라갔다. 그래 그럴 일은 없다. “그녀가 날 떠날 일 따위는, 그대가 처음 보았던 그녀인 이상은..” 그녀가 자신이 처음 보았던 그 당당하고, 사리 분별할줄 아는 여자라면, 그녀는 절대로 자신을 떠날 일 따위는 없다고 자신할 수 있다. 그녀는 자신의 부모에게 해가 되는 일 따위 할 리가 없으니 말이다. 게다가 아르미난에 해가되는 일도 할 리가 없다. 해가 될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여자 였다면 공녀(貢女)로 보내지는 것을 거부하고 도망쳐 버렸을 테니까. 하지만 왠지 모르게 불안한 마음이 생긴다. 검은 머리카락을 바라보는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린다. 왠지 그녀가 떠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그래서, 그랬기 때문에 이렇게 와인을 마시고 있었던 것이었는데, 그런 생각 따위는 안하기 위해서. 차라리 취해서 잠자리에 든다면, 이 불안한 마음도 씻은 듯이 없어 질텐데. 또렷해진 정신은 자꾸만 불길한 쪽으로만 생각을 몰고 가고 있다. 그 생각을 떨치기 위해서 황태자는 이리저리 고개를 흔들었다. “훗.” 그녀가 아름답다고 해서, 그녀에게 소유욕을 느낀 것은 아니었다. “아름다운 것에는 이미 질려있었으니까.” 아름다움이란 것에, 너무 익숙할만큼 질려 있었기 때문에, 그녀가 그렇게 아름답지 않아도 상관없을 것이다. 카세리아느. 그 이름을 들었을 때부터, 그 당당함을 보았을 때부터 그 아름다움에는 상관없이 빠져 들었으니까. 그저 그녀이기에 손에서 놓아주고 싶지 않았다. 이유 따윈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그저 그녀를 내 안에만 가둬 두고서 남에게 보여주지 않고, 자신에게만 얽매이게 하고 싶다. “아마 그대는 모르겠지, 그대는 내가 그대의 아름다움 때문에 빠져 들었다고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 말이야. “ 물론 아름다움에 놀라긴 했었다. 그 눈부실 정도의 아름다움에 이때까지 자신이 보아온 아름다움들은 모두 거짓이었다고 생각할 정도였으니까. “혹시라도 내곁을 떠나지 마라. 카세리아느.” 억지 같은 말, 명령조의 말인데도, 권위 높은 자리에 있는 황태자여서 그런지 조금도 이상하게 들리지 않는다. 본능적인 예감이라는 것을 느끼는 모양이다. 알게 모르게 카세리 아느가 자신의 곁을 떠나려 한다는 걸 말이다. “나의 잔인함을 들추어 내려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그대가 내게서 떠난다면, 지옥 끝까지 찾아가 그대를 붙잡아 올 것이다. 그리고 그대를 내게서 떠나게 만든 상대를 잔인하게 죽여 버릴지도 모른다. 그대에게는 잘못이 없다고 생각해 버리고, 어쩌면 그로 인해서 그대가 날 증오하게 될 지라도 그 행동에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그대가 날 떠남으로서 상처입는 자는 그대가 아니라 그대를 도망치게 된 사람이 될 것이라는 것을,. 황태자는 다시 테이블위의 와인을 입가에 가져다 대면서 매혹적인 웃음을 지었다. 그녀에게 자유라는 이름의 날개가 주어진다면, 주저하지 않고 그 날개를 갈기갈기 찢어 버릴 것이다. 속박이라는 이름의 사슬로, 그녀를 자신에게서 떠나지 못하게 묶어 둘 것이다. “미치기엔 아직 너무 젊은 나이잖아?” 이것은 부탁이나 다름없다. 자신을 미치게 만들지 말아달라는, 조그만 카세리아느에게 는 들리지 않을 혼잣말. 그러나 알고 있다. 불길하면 불길할수록, 그 예감은 저주스러울 정도로 잘 맞아 떨어진다는 사실을.. * * * "후회하지 않으십니까?" 조심스러운 페리어스의 목소리가 카세리아느의 귓가에 와 닿았다. 밖에서 아까부터 들 려오던 달그락,달그락 거리는 규칙스런 소리를 제외하고는 그 소리가 카세리아느에게 들리지 않을 이유는 조금도 없었다. "..." 하지만 카세리아느의 붉은 입술은 그 도도한 자태만을 유지할 뿐, 조금도 열릴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굳게 닫힌 입술은 그녀의 고집을, 바닥을 향하고 있는 차가운 눈길 은 그녀의 긍지를.. 마치 하나의 예술 조각상과 같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카세리아 느였다. "카세리아느님?" 침묵은 긍정의 줄임말이라고 그 누군가가 말했던가? 아무 대답이 없는 카세리아느를 보면서 페리어스는 살며시 눈살을 찌푸렸다. 정말 후회라도 하고 있는 것이란 말인가? 페리어스가 다시 한번 물어오자 그제서야 카세리아느는 움직임이 없던 몸을 움직여, 정확히는 아무 생각없이 바닥만을 내려다 보던 차가운 눈동자를 페리어스 쪽으로 움 직였다. 맑고 깊은 푸른 눈동자가 빠져 나오지 못할 마의 늪과 같은 효과를 주는 듯, 그 눈동 자에서 눈을 뗄수 없을 듯한 페리어스였다. "후회란 것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차갑게 울려퍼지는 맑고 투명하면서도 차가운 얼음과도 같은 미성이 페리어스 의 정신을 돌려 놓았다. "지금 와서 후회한다고 해서 되돌릴 수도 없을 테니까요. 굳이 확인사살을 하실 필요 는 없습니다." 다시 한번 증명이라도 해주는 듯 또박또박하게 들리는 목소리를 들으면서 페리어스는 안도감을 느끼면서 찌푸렸던 인상을 풀었다. 그래. 이것을 원했었다. 처음부터 이 대 답을 들려주길 원하면서 질문을 던졌었던 거다. "황태자전하를 좋아하시는 걸로 아는 데, 정말 괜찮으신 거죠?" 이것은 그저 의무적인 물음. 카세리아느가 황태자를 사랑하지 않는 다는 것을 대충 짐작으로도 알고 있는 사실이기에 정확한 대답은 알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인지 페리 어스의 입가에는 살며시 웃음이 띠어져 있다. "황태자 전하를.." 페리어스의 입에서 황태자라는 단어가 나오자, 카세리아느는 살짝 인상을 굳히며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황태자라.. 익숙한 단어다. 자신이 매일 거르지 않고 불렀던 호칭이며, 자신을 가지고 싶어했던 이기적인 사람의 호칭이기도 하니 말이다. '론..' 그리고 그것이 그 황태자란 직위를 가지고 있던 자의 이름. 도발적이면서도 매혹적이며, 더할나위 없이 매력적이었던, 하지만 날카로운 가시를 지 니고 있던 사람. 워낙 존재감이 강한 사람이어서 눈을 감아도, 지금 눈앞에 있지 않아도 생생하게 기억 할 수 있다. 그의 머리카락과 그의 눈동자, 그의 목소리, 손가락 하나까지도 생생하게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카세리아느가 말을 중간에 끊어 버리며, 무엇인가를 회상하는 것 같은 모습을 취하자 페리어스는 황급히 말을 돌렸다. 왠지 모를 불안감이 계속해서 형성되는 것 같았기 때 문에,.. "그런데 아르미난에 대해서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 가요?" 자신이 말을 해놓고도 실수 했다는 것을 확실히 느끼고 있는 페리어스다. 어째서 자신 이 그런 쪽으로 말을 돌렸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지배적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어째서 말을 그쪽으로 돌린거지!' 그저 자신의 모자란 머리를 탓하는 수 밖엔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페리어스가 걱정을 하고 있을 때, 정작 장본인인 카세리아느는 담담하기만 했다. 저 호수같은 눈 동자에는 조금의 파문도 일지 않은 듯이 고요함만을 간직하고 있었다. "아르미난에 대해서 걱정이시라면, 처음부터 내가 도망치게 해달라고 말해 드렸을 때 날 안데리고 오셨으면 되는 일일 텐데요. 그리고 그것이 걱정이시라면 걱정하지 않으 셔도 됩니다. 마음의 정리는 끝난 상태입니다." 아르미난을 위해서 공녀로 보내져온 자신, 카세리아느는 이미 죽었다. 그렇게 생각한 다. 자신은 그.만.을 위해서 새로 태어난 그.만.의 카세리아느다. 그리고 또 하나 자 신이 이런 선택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황태자는 이 일로 인해서 아르미난에 피해를 주진 않을 거야.' 왠지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르미난은, 아니 자신의 부모님을 무사하실 수 있 을 것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들어왔다. 황태자에게 그런 신뢰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시다니 다행이네요." 상큼하게 웃는 페리어스를 보면서 카세리아느는 살며시 눈을 가늘게 떴다. 역시나 닮 았다. 그.와 너무 닮아 있다. 그 이유도 많은 작용을 했다. 자신이 떠나게 하는 결정 을 하는데 말이다. 100에 1이라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그를, 황태자를 떠났다. 아마도 황태자의 성격이라면, 자신을 찾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다. 본능은 분명 그럴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지금 네가 하는 짓은 황태자의 소유욕을 확인 시키는 일 에 불과한 어리석은 짓이라고 말이다. 지금도 가만히 앉아 있으면 이런 소리가 들려온다. 배신자라는 소리가, 이곳 아텔린에서 들려온다. 자신들의 주인이 될 황태자를 이렇게 떠난 것을 분명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그렇게 들려온다. 후회하는 길이 무척이나 가시돋힌 길인데도, 멍청히 걸어가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지 모른다. 아니 알지만 생각하기 싫다. 아무렇지 않다고 한 것은 거짓말이었다. 자기암시 난 괜찮다. 난 괜찮다. 아무렇지도 않다. 사실은 상처투성이가 되어버린 마음인데도, 짖겨져 더는 짖겨질 것이 없는 마음인데도 괜찮다고 생각하면서 납득하고 있다. 사실은 자신을 쓰다듬던 저 손이, 자신의 입술을 빼앗던 저 입술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던 저 목소리가 다른 여자를 취하는 것이 싫다. 그 매력적인 사람이 자신만을 바라봐 주었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느지도 모른다. 그를 처음 본 순간부터, 아마도 이런 감정을 느꼈을 지도 모른다. 다만 모른척, 가슴 한 구석에 작은 방하나를 만들고, 그 방안에 억지스럽게 밀어 넣고 서는 자물쇠를 여러개 채워 놓았을 뿐이다. 너무 쉽게 풀려버릴 자물쇠를, 그는 너무 쉽게 풀어버린 자물쇠를 채워 놓았었다. 카세리아느의 새하얀 백옥같은 볼 위로 투명한 물줄기 하나가 지나갔다. 그리고는 턱 에서 멈춰 조용히 아름답게 빛나며 추락한다. * * * "카..세리아..느...님?" 아침에 카세리아느를 찾아, 방문을 연 에린의 눈동자는 무척이나 동그랗게 커져 있었 다. 어쩌면 당연하기만 한 이유일지도 몰랐다. 싸늘하게 정적만이 감돌고 있는 차가운 방안이 그 이유를 알려주고 있었다.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는 방안에는 중요한 것 하.나.가. 없어져 있었다. 아니 사라져 있었다는 것이 올바른 표현일 것이다. 가만히 주위를 두리번 거리던 에린은 곧 이어서 덩그라니 물방울을 떨어뜨리며 바닥으 로 주저 앉아 버렸다. 없다. 자신이 믿었던 사람이 자신을 배신해 버렸다. "왜 떠나신 거에요.." 조용히 울리는 에린의 목소리가 조용한 새벽이어서 그런지, 더욱 애처롭게 들리는 효과를 주고 있었다. "카세리아느님을 보면서 웃으면서 아침을 시작하고 싶었다구요." 이럴 줄 알았으면 몇번이고 카세리아느의 말을 듣지 않고 붙어있었을 텐데, 무척이나 후회가 되는 에린이었다. 하지만 이미 늦은 일일 뿐이다. 이미 일은 벌어져 버렸으니 까. 이미 에린이 찾는 그녀는 이곳에 없는 것이다. 에린은 그저 바닥에 꿇어 앉아 계속해서 눈물만을 흘리며 흐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탕 "헉?"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의한 놀람 때문이었을까. 에린은 어느새 울음을 그치고, 자동적 인 반사로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핑크빛 머리카락에 귀여운 얼굴엔 흐느낌 자국으로 지저분하게도 보이는 에린이 본 것 은 무척이나 이질적인 것이었나 보다. 에린의 눈동자는 무척이나 커져 있었고, 입술과 몸은 조금씩 떨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화..황태자 전하!" 에린은 황급히 몸을 바닥에 기대면서 일어 날줄 생각도 못하며 그렇게 외쳤다. 이 곳 아텔린에서 가장 고귀하신 분이며 이 황궁에서 가장 매력적이신 분이시고 그리고... 자신이 모셨던 분을 소.유.하셨던 분이시다. 황태자는 살며시 고개를 높게 쳐들고서 그 냉정한 눈길로 몸을 숙이고 있는 에린을 쳐다보고 있었다. 가늘게 뜨여진 그 눈길과 알 수 없는 블루블랙의 눈동자가 살기를 담고 있는 모양인지 섬뜩하게 느껴진다. 검은색 정장을 입고 있는 황태자의 한 팔은 문쪽에 걸터져 있었는데 그 오만하게 보일듯 한 자태는 역시나 이 사람은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임을 확신 시켰다. "카세리아느는 없는 건가." "네.." 가라앉아 무게감이 서려있는 그 목소리에 에린은 부들부들 떨면서 대답했다. "어디 간거지?" "저..저도 모르옵니다. 고귀하신 황태자전하.." 모든것을 부숴 버릴수도 있을 것 같은 위압감에 고개를 감히 쳐들지 못하고서, 행여나 실수할까 조심스럽게 대답하고 있는 에린을 황태자가 알리 없었다. 황태자는 고개를 들지 않는 에린에게도 다가가 손으로 강하게 턱을 잡고 치켜 올렸다. "아앗." 갑작스럽게 올려진 탓에 턱에는 저릿한 아픔이 느껴졌다. 그리고 감히 마주하게 된 얼 굴은 역시나 무척이나 매력적이었다. 장미, 그것을 떠올리게 만드는 분이다. 그런데 무엇인가가 부자연 스럽다. 웃고 있는 데도, 웃고 있지 않다. 웃고 있는 입인 데도, 눈동자는 자신을 죽일 듯이 살벌하기만 하다. 본능적으로 그것을 느끼고 있는 에린이었다. "카세리아느를 모시는 역할을 하는 네가 모른다면 누가 알고 있다는 거지?" 가늘게 뜨여져 있는 저 눈동자는, 저 광기어린 눈동자는, 아마 자신을 죽일지도 모른 다는 생각을 강하게 주고 있었다. 두려움에 대답소리도 나오지 않고서, 눈에서는 쉴 새없이 눈물만을 떨어 뜨리며 에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에린의 모습에 황태자는 진하게 웃으며 잔인하게 손을 놀렸다. -찰싹 에린은 저릿하게 느껴지는 뺨의 통증을 느끼며 손을 뺨으로 가져갔다. 황태자는 아무 감정도 없이 에린을 치면서, 쳐다 보며 입을 열었다. "카세리아느를 묶어두지도 못한 너 따위, 필요하지도 않다. 하지만 죽이진 않겠어. 지금 놓아줄 테니, 널 죽이고 싶지 않을 때 떠나라." 저벅저벅거리는 발자국 소리를 내면서 차갑게 돌아서는 황태자가 두렵게 까지 보인다. 저 가라앉은 눈동자에는 이성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느낌까지도 들고 있었다. 그런 황태자를 보면서 떠올려 지는 것은 오직 한사람뿐이었다. '카세리아느님.' 아마도 그 분밖에는 저 고귀하신 분을 되돌려 놓지 못할 것이다. * * * * 가만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듯 했던, 황태자의 앞에 한 여인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황태자전하.” 상당히 유혹적인 붉은 머리카락으로 짐작하건데, 그녀는 실비제느가 분명했다. 하지만 실비제느의 그런 소리에도 황태자는 시선조차 주지 않고서, 정면만을 응시했다. 마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다는 듯, 그녀의 존재조차 부정하고 있는 듯이,. 턱을 괴고서 여전히 생각하는 듯한 황태자가, 아니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황태자가 상당히 마음에 안들었던 모양인지 실비제느는 미간을 좁혔다. 하지만 곧 황태자가 혹시나 알아볼새라 금방 미소를 지으며, 황태자에게로 조금씩 다가갔다. 무표정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 황태자를 바라보면서 실비제느는 강하게 미소지었다. ‘그래. 지금은 날 무시해도 상관없어. 하지만 당신은 꼭 나에게 빠지고 말거야.’ 조심히 바로 앞까지 다가가서는 조심히 자신의 얼굴을 황태자의 얼굴과 겹쳤다. 비참 하다고도 생각할 수 있을 정도의 키스. 상대는 눈조차 감지 않았고, 자신이 입맙추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듯 하다. 하지만 곧 반응은 왔다. 황태자의 손길이 조심히 실비제느의 허리에 감겨 왔다. 그리고 그 부드러운 입술도 열렸다. 황태자가 자신임을 알아 본 것일까? 살며시 감긴 황태자의 눈도, 조심스러운 황태자의 손길도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실비 제느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황태자의 눈은 한순간 떠졌다. 처절한 배신감으로 얼룩진 눈동자에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조차 모르는 듯 보인다. ‘무슨 일을 하고 있었던 거지. 이 여자는 카세리아느가 아니야.’ 그리고 아까까지 생각하고 있었던 것과는 틀린 현실에 눈을 똑바로 떴다. 그리고 살며시 실비제느의 허리에 올려져 있던 손을 점점 위로 올렸다. 등위로 올라가 그 다음에는 목 언저리까지 부드러운 손길로 올라갔다. 아직도 입맞춤에 정신을 잃고 있는 실비제느는 그 손길에 더욱 만족했을지 모르지만 지금 황태자의 눈길을 본다면 더 이상 그 생각조차 할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잔인한 폭군의 눈동자 그것이 지금 황태자의 눈동자였다. =============================== 리메가 아니에요ㅜ_ㅜ.. 그럴리가 없잖아요..ㅜ_ㅜ.. 날린거라구요..훨훨..2회수정하다가.. 왜 하필이면 2회를 수정하고 있었던 것인지 저로서도 막막해요..ㅠ_ㅠ.. ..언제나 행복하시길... 제 목: 공녀(貢女) 카세리아느 [25 회] 글쓴이: 썬샤인 2003-01-27 조회/추천: 440 / 2 영광의 빛에 머물러 있는 여신의 그림자 - 1 -달그락,달그락 . . . -다닥 어느샌가 멈추어 버린 마차의 움직임에 페리어스는 카세리아느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 다. 드디어 도착한 것이다. 자신이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자신이 숭배받는 자리가 있는 곳으로 말이다. "도착한 모양이네요." 역시 자신의 나라가 편하긴 한 모양인지 한껏 드리워진 저 웃음은, 승리자의 미소임이 틀림없어 보였다. 카세리아느는 그런 페리어스의 말을 들으며, 살며시 창밖으로 시선 을 향했다. 이곳이 레이니아 여신을 숭배하는 나라인 신성왕국 레이닌이며 또한 자신이 도망쳐온 곳인 것이다. 커다란 성문을 바로 앞에 두고서 서 있는 마차였기에, 성안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렇게 화려하지 않은 성을 보면 대체로 소박할 거란 생각 을 들게했다. "그렇군요." 약간을 쓸쓸한 감정을 품고 있는 카세리아느의 대답을 들으며 페리어스는 여전히 싱긋 웃고 있었다. 이제 후회해도 더이상 되돌릴수 없기에 신경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 그 이유일 것이다. 페리어스는 살며시 카세리아느에게로 손을 내밀었다. "아름다우신 레이디, 저에게 당신의 손을 강탈할 수 있는 행운을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손을 자신에게 조심스럽게 내밀면서, 강하게 자신을 응시하는 페리어스를 보면서 카세 리아느는 대답대신 눈동자를 내리깔며, 페리어스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올려놓았다. 자신의 손위에 카세리아느의 손이 올려지자 페리어스는 살며시 그 손에 자신의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밖으로는 감사의 말을, 속으로는 이루어지길 바라는 주문을 외면서,. "영광입니다." '당신을 꼭 나의 것으로..' 거대한 성문이 열리기 시작한다. 약간의 둔탁한 마찰음을 내면서 조금씩,조금씩 자신 의 속을 보아달라는 듯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비밀속의 상자를 여는 것처럼 카세리아느로 하여금 약간의 설레임을 가지게 만들었다. -레이닌 만세! 성제(聖帝)폐하 만세! 그리고 완전히 문이 열렸을 때는 무엇이 무엇인지, 알 수 없을 정도의 거대한 함성이 들려왔다. 약간은 이질적인 기분을 주게 하는 함성. 그 중에서도 성제(聖帝)라는 그 한마디가 유난히 귓가에 거슬렸다. 그렇게 무엇인가 생각을 하려던 카세리아느를 페리어스는 손을 끌어 당기며 입을 열 었다. "그럼 나가야 할것 같네요." -레이닌 만세! 성제폐하 만세! 페리어스의 웃음, 너머에 보이는 창밖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줄에 줄을 서 있었다. 그 리고 그들은 하나같이 외치고 있었다. 자신의 나라를, 그리고 자신들의 절대군주를! 그랬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그들의 절대군주인 것이다. "어째서 그래야 하는 것입니까." 결코, 페리어스나 카세리아느 그 둘을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랬기에 카세리아느는 의문을 띠면서 당혹감에 물든 눈동자로 페리어스를 바라보았다. 그런 의문을 풀어 달 라는 행동에도 페리어스는 그저 짙은 미소만을 보여주었다. 그러던 사이 누군가 마차의 문을 열자, 페리어스는 카세리아느의 손을 끌어서 마차 밖으로 조심스럽게 걸어 나갔다. -와!! 그리고 그런 둘을 반긴것은 어마어마한 함성이다. 조용한 정적을 깨어버리는 거대한 함성이 귓가에 저릿하게 울려퍼졌다. 새하얀 벨벳이 성안까지 깔려져있는 중앙의 길은 그들만을 위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깨끗하고 새하얗기만 했다. 멀리서 본다면 눈이 내려온듯한 착각까지도 일으킬 정도였 으니 말은 이미 다 한 셈이다. 음악소리가 옆에서 들려져 왔고, 옆에서는 어린 소녀들이 새햐얀 깃털을 뿌리고 있었 는데 마치 중요한 사람을 맞이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무언가 이상하다. 어디서부턴가 잘못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마치 어긋나 버린 시계속 태엽바퀴들 처럼 말이다. 뭔가 이상한 듯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카세리아느가 그 길을 걷자 사람들의 함성은 배가 되어서 성을 부숴버릴듯 거대해 졌다. 여신이 강림한다. 새하얀 결백과 순백, 축복의 길을 걸으며,모든것의 축복을 받으면서 천상에서 이곳, 지상으로 친히 강림하신다. 날지못하는 새하얀 날개들이 나래를 펴 하늘위로 높게 올라갔다가, 그녀의 품에 살짝 머무르며 아래로 추락한다. 그녀의 고결한 모습과 도도한 자태, 천상의 아름다움은 모든이들을 압도하며 그녀의 매력속에 빠져 그녀만의 노예로 만들어 버린다. 가끔씩 닿는 새하얀 깃털들이 부러우 며, 그녀의 발길이 닿는 새하얀 벨벳이 부럽기만 하다. 보아라. 우리들의 여신을! 아름다우시며 고결하시고, 감히 손대지 못할 성스러움을 가지신 여신을 칭송하라! 그리고 말하여라. 우리는 그분의 사랑을 머금었노라고.. * * * 황태자의 손이 어느 샌가 실비제느의 목근 처까지 다다라, 이제는 그 목위로 손길을 옮기고 있었다. 그런 황태자의 손길은 무척이나 부드럽고, 또한 섬세해서 실비제느로 하여금 괜한 쾌락이라는 이름의 감정을 심어주었다. “으윽!” 하지만 그 행복의 절정이었던 쾌락은 황태자의 단 하나의 손 움직임으로 인하여 처절한 절망의 나락으로 추락해 버렸다. 그리고 어느 샌가 사이가 벌어져 있는 실비제느와 황태자의 얼굴에서, 실비제느의 자유로운 입술을 비집고 나온 음성은 이질적인 고통의 신음소리였다. “화,황태자 저..하.. 어..째서..” 숨이 막히는 고통으로 찡그러져버린 실비제느의 얼굴과 차마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끄집어내어, 말한 그 말은 이렇게 묻고 있었다. 어째서 당신이 이런 행동을 내게 하는 것이냐고. 어째서 그렇게 자신을 죽일 듯이, 하찮은 동물을 보듯 보고 있는 것 이냐고 말이다. 황태자의 섬세하고 긴 손가락이 머물고 있는 곳은, 다름 아닌 실비제느의 목이었다. 조금씩 등부터 목까지 올라가던 황태자의 손은 목에 이르자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꽉 잡아 버린 것이다. “어차피 사람은 죽을 것인데, 조금 일찍 죽는다고 무엇 달라지는 것은 없겠지.” 목이 죄여오는 고통가운데서도 실비제느의 귓가를 자극하며 울려퍼지는 감미롭고 매혹적인 목소리가, 그리고 그 목소리가 담고 있는 뜻이 실비제느를 더욱 고통의 나락으로 밀어 넣었다. ‘제정신이 아니신 거야!’ 그것 밖에는 다른 것은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당장 중요한 것은 황태자가 미쳤든, 미치지 않았든 자신의 목숨이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이 대제국 아텔린의 황후도 되기 전에 죽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야 한다, 아니 살고 싶다. 자신에게는 자신이 원하는 꿈이 있으니 말이다. 설령 그것이 이루어지지 못할 꿈이라 하여도, 인간이기에 살고 싶은 욕망이 꿈틀대고 있었다. 힘없는 손이었지만 살겠다는 이유로 자신의 목을 잡아, 살려고 하는 자신을 죽음 으로 밀어 넣으려는 황태자의 손을 끌어내리려고 했다. 하지만 그렇기에는 자신의 힘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리고 그런 실비제느의 행동하는 짓을 보면서 입가에 차가 운 조소를 띠우며 입을 열었다. “나를 사랑한다고 하지 않았었나, 그렇다면 내게서 죽는 것 또한 행복해야 하는 것일 텐데, 그대는 지금 살고 싶은 건가?“ 착 가라앉은 블루블랙의 광기어린 눈동자를 바라보기에는 자신은 너무나 조그마한 사람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두렵다. 빠져들 듯 자신을 유혹하면서도, 자신을 파멸 로 이끌려는 저 사람이. ‘난 살고 싶어!’ 황태자를 사랑? 그래, 물론 사랑한다. 하지만 그것은 황태자의 내면이 아닌 그의 뒷 배경과 그의 모습이다. 자신의 꿈을 이뤄줄 수 있는 사람인 동시에, 누구보다 매력 적인 사람이니 말이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지 않는 가. 하지만 지금 하는 말은 너무나 억지다. “으, 으윽.. 허어억..” 그리고 조금씩 숨이 차오르고 간신히 잡고 있던 현실의 끈을 실비제느는 놓아 버렸 다. 그래서 힘없이 흐트러 지는 실비제느에게서 황태자는 손을 떼버렸다. -털썩 그나마 지탱해 주던 황태자의 손이 자신의 몸에서 사라지자 실비제느는 바닥으로 쓰 러졌고, 그제야 가쁘게 숨을 내쉬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의 시간이 흐르자 실비 제느의 목에는 빨간 다섯 개의 손가락의 자국이 남았다. 황태자는 자신이 그렇게 만들어 놓았음에도 마치 자신은 이런 것은 모른다는 듯한 무심한 눈동자로 내려다보았다. “내가 원하면 언제나 달려올 것들은 수없이 많은데도, 상처입은 듯한 여린 날개를 지니고 있는 그대는 어째서, 내 손에 닿을려고만 하면 도망치는 거지?“ 쓸쓸한 듯 안쓰런 모습으로, 황태자는 아련히 젖어있는 모습을 취하며 조용히 말을 내뱉었다. . . . . “론아, 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너의 것이다! 그리고 네가 원하는 것은 모두 너의 소유로 만들 수 있단다. 그것이 우리 대제국 아텔린의 힘인 것이다! 잊지말 아라. 너는 모든 것을 너의 손에 넣을 수 있는 아텔린의 군주가 될 황태자라는 것을 말이다.“ 강인해 보이는 모습의 아텔린의 현 황제는 어린 나이에 황태자의 자리에 있던 론에게 분명 그렇게 말했었다. 네가 원한다면 모든 것은 너의 손에 넣을 수 있다고. 네가 가지지 못할 것은 없다고 말이다. “알고 있습니다. 아바마마.” 그리고 그 나이에도 그사실을 알고 있었던 론이었다. 모든 것은 자신이 원하기만 하면 알아서 자신의 손안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그랬던것인지 현황제의 말조차도 그렇게 마음에 와닿도록 감흥이 오지 않았다. 당연한 것을 왜 또 말하시는 건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황제의 말은 그저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만약 네가 원하는 것이 네 손안에, 네 소유가 되지 못한다면, 넌 그것을 절대 포기하진 말아라. 너에겐 그것을 네 소유물로 만들 힘이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텔린의 자존심과 같은 것이다.“ “물론입니다. 그리고 전 제 손안에 넣고 싶은 것은, 설령 그것이 상처투성이로 죽어 버린다고 하여도, 저의 소유로 만들것입니다.“ 론은 잔인한 아텔린의 피를 진하게 타고난, 잔혹하고 매혹적인 황제가 될 기질을 그때부터 이미 다른사람에게 보이고 있었다. 자신이 가지고 싶은 것이 자신의 손 안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그것이 죽은 것이 되어서라도 가지고 말 것이다. 상처입고, 부서져 버린 것이어도 그것이 손안에만 들어오면 된 것 아닌가. 모든것이 자신이 원한다는 말한마디면, 아무리 위대해보이던 것들도 자신의 외모나 뒷 배경에 손안으로 저절로 들어왔다. 그랬는데 지금 그 연약해보이는, 상처입은 작은새는 그 도도한 자존심만을 지키면서 자신의 손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은 아름다움과 높은 자존심을 지닌 그 상처입은 작은새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가져버렸다. 소유라는 이름아래 그 사실을 아니라고 부정하고 있지만, 어쨋든 그것은 사실일거라고 지금은 가슴속에서 말하고 있었다. 지금 자신을 미치게 하는 것이 사랑이라는 감정이든 아니면 소유라는 감정이든 아무 래도 좋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그녀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으니, 이젠 그녀가 상처입고 부서져버리 더라도, 설령 죽여버리는 결과를 낳더라도 손에 넣어 소.유.하.면. 되는 것이다. 살포시 감겨져 있는 황태자의 눈동자가 지금 어떤 모습인지는 알 수 없다. 그저 외향 으로 알 수 있는 것은 굳게 닫혀있는 황태자의 입가일 뿐이다. 제 목: 공녀(貢女) 카세리아느 [26 회] 글쓴이: 썬샤인 2003-01-27 조회/추천: 424 / 3 숨겨진 고독의 아리아 - 1 모든것을 유혹하듯 자신의 품으로 끌어들이며, 다시는 그 자태를 확인시켜 주려 하지 않는 어둠은 오만하기 짝이 없었다. 마치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것을 손에서 놓아 주려 하지 않는 어린아이의 이기심처럼 그렇게 어둠은 자신의 것을 내어놓는 것을 거 부하고 있었다. 어둠은 조금의 빛도 허용치 않았으며, 자신의 짙은 고독으로 이루어진 칠흑같은 검정 투성이에서 영원히 머물러 있기를 바랬다. [이 짙은 고독에서, 나에게서 영원한 안식을 찾아라.] 어둠은 마치 말없는 고통을 지니고 있는 이들에게 그렇게 유혹하듯이 말하고 있는 듯 보였다. 어둠이 주는 두려움의 말없는 공포와 편안함의 영원한 안식. 살며시 느껴지는 희미한 숨결의 주인공은 그런 어둠의 이면성 중에서 어느것을 느끼고 있을까? 어둠은 계기만을 만들어 놓을 뿐, 숨결의 주인공이 자신이 생각하여 만들어 놓은 공간이므로, 무엇을 느끼고 있을 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단시 알 수 있는 것은, -끼이이익 그런 짙은 고독의 칠흑같은 어둠의 조각들이 깨어지고 있다는 사실 뿐이었다. 조금의 빛도 존재하지 않던 완벽한 어둠은 조금씩 자신들의 공간을 침투해오는 빛들에 의해 산산히 파편이 되어 부서져 내렸다. 그와 함께 어둠의 이기심에 숨겨져 있던 물체들은 그들의 자태를 뽐내었으며, 아까의 숨결의 주인공으로 보이는 한 소녀의 무겁게만 보이는 눈이 뜨여졌다. "쉐리아님. 또 여기에 계셨습니까?" 고독의 공간을 내리누르고 부드럽게 들리는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새하얀 옷에 금빛으로 수놓인, 레이니아 여신을 상징하는 프렌시아가 그 여인이 레이니아 왕국의 여신관임을 알려주었다. 여러겹으로 프렌시아 꽃을 둘러싸고 있는 테두리로 보아할때 꽤나 높은 자리에 있는 여신관이라는 사실까지도 말이다. 어둠으로 질식할 듯 차여있던 방안에 문을 연 여인 은 그 중앙에서 앉아 있는 소녀를 바라보며 애틋한 눈길을 지어 보였다. "쉐리아님." 자신의 말에 대답이 없자 다시한번 입을 열면서 조심스럽게 소녀가 있는 곳으로 다가 갔다. 분명히 자신의 기척에 자신이 왔음을 알면서도 아무런 미동이 없는 쉐리아임에 도 그다지 화나거나 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마치 익숙하다는 듯이, 아니 무척이나 안쓰럽다는 듯이 무릎을 꿇고 허리를 세우고 있 는 아름다운 은빛 머리카락의 소유자인 쉐리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페리어스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한번도 자른적이 없는 윤기나는 은빛 머리카락을 묶어주려는 모양인지 머리카락을 손 으로 다듬으면서 여신관은 입가에 안쓰러운 웃음을 띤채 말했다. 누군가 자신을 만지 는 손길에도, 자신에게 하는 말에도 쉐리아는 여전히 미동이 없었다. "아마도 조금 있다가, 보셔야 할테니 빨리 꾸미셔야죠?" 살짝 아래로 깔리는 여신관의 눈동자에서 무언가가 부풀어 올랐다. 부드럽기만 한 은 빛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손길도 점점 무거워 지는 듯 하더니, 결국은 눈에 가져다 대는 여신관이었다. 살짝 흐느끼는 여신관이 느껴진 모양인지 쉐리아는 살며시 몸을 움직여 여신관쪽을 바라보았다. 아니 정확하게는 그 위치쪽을 응시하는 듯 보였다는 것이 맞는 말일 것 이다. 쉐리아의 눈동자는 앞을 볼 수 없으니 말이다. 새하얗기만 한 투명한 눈동자는, 은빛의 머리카락과 새하얀 피부와 어우러져, 이것이 바로 '순수'의 이미지라는 느낌을 강하게 주었다. 그것이 비록 애처로워 보이는 절망 의 순수라 할지라도, 그것은 순결하고 성스러워 보이는 이미지에 너무나 근접해 있었다. 신들이 바라는 순수하고 순결한 순백의 어린 양과 같은 희생양의 모습. "라엘, 날 위해 흐느끼지는 말아줘. 이것도 레이니아 여신이 주신 나의 운명일 테니, 난 원망하지 않아. 그리고 슬퍼하는 이도 어마마마 하나로 족해. 오라버니의 숨겨진 그림자의 노릇도 날 슬프게 하지 못하니까, 그러니까.." 보이지 않는 눈동자임에도 마치 앞이 보이기라도 하듯이 정확하게 여신관, 라엘의 볼 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손으로 잡으며 입을 열었다. "날 위해 슬퍼하지는 말아줘." 쉐리아의 그런 말은 여신관의 울음을 더욱 흐느끼게 하는 원동력이 될 뿐, 조금의 효 과도 없었다. 어째서, 어째서, 이런 왜소한 몸을 가진, 이 연약하기만 한 소녀에게 신은 손을 들어 주지 않은 걸까. 어찌하여 이런 고독의 공간에서 혼자 외로이 만들게 한 것일까. 쉐리아는, 자신의 눈 앞에 있는 이 소녀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저 신의 한순간의 유희에 희생된 희 생양일 뿐인 것이다. 그것도 최상의 모습을 갖춘 완벽한 희생양이 말이다. '순수'라는 이름아래, 더렵혀지고 싶어도 더럽힐 수 없는 절대적인 순수아래, 신들이 원하는 가장 훌륭한 희생양의 모습으로 짙은 공포와 고독의 공간에 뭍혀 신들이 선택 한 인간의 그림자가 되어야 했다. "쉐리아님.. 흑.." 라엘은 쉐리아의 몸을 부서질 듯 세게 끌어 안았다. 왜소하고 연약하기만 한 몸이 라 엘의 눈시울을 더욱 뜨겁게 달궈 놓았다. 잔인한 성제. 잔인한 레이니아 여신이 원망 스럽기만 했다. 처음부터 페리어스가 왕으로서의 권능과 신성을 함께 타고났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신은 이 연약한 어린아이에게 무슨 생각으로, 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만들어 버린 걸까. 페리어스는 왕으로서의 권능을 타고났다. 그리고 그것이 문제였다. 페리어스가 왕으 로서의 권능만을 타고 났다는 것이 말이다. 다른 나라라면 왕으로서의 권능만을 타고 나도 왕은 혼쾌히 기뻐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틀리지 않은가. 이곳은 신성왕국 레이닌인 것이다. 레이닌의 왕은 성 제이다. 성제는 신성스러운 왕. 곧 왕으로서의 권능과 함께 신성까지도 타고나야 했다. 그리고 그런 신성을 페리어스가 타고 나지 못했다는 것은, 페리어스는 성제가 될 조건 을 갖추지 못한 미완성이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몇년 뒤에 태어난 쉐리아는 그 페리어스가 갖추지 못한 나머지 반쪽, 신성을 타고 태어났다. 그리고 그것이 미완성인 페리어스가 완성이 될 수 있는 조건인 동시에, 쉐리아의 존재가 은폐되는 계기가 되었다. "걱정마, 라엘. 나는 외롭다거나 무섭거나 하지 않아. 여기 나를 위해주는 라엘이 늘 나의 곁에 있고, 때로는 고독과 어둠이 친구가 되어주니까. 그리고 나에게는 명분이 있잖아. 페리어스 오라버니를 내가 도와줄 수 있다는 사실로 행복할 수 있어." 즐겁다거나 하지 않은, 차분한 목소리. 쉐리아는 자신의 이 생활을 숙명으로 여기며 그것에 불만을 토하거나 하지 않았다. 그것을 더욱 잘알고 있는 라엘이기에 더 슬프기 그지없었다. 쉐리아는 모를것이다. 쉐리아를 처음 본 페리어스가 쉐리아를 어떤 모습으로 쳐다보았 는 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 소름끼친 미소를. 자신의 그림자 역할을 하게 될 쉐리아를 보면서 자신을 위해 희생하다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어린 나이의 페리어스를 말이다. "...라엘. 나에게 데려와 주었음 하는 사람이 있어." "네?" 갑작스런 쉐리아의 목소리에 라엘이 반문하듯 말하자 쉐리아는 투명한 눈동자로 응시 하며 라엘을 보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라엘은 알고 있지? 나의 이 눈동자는 현실을 보지 못하는 대신, 누군가의 운명을 보 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야. 지금 그 주인공이 이곳으로 오고 있어. 그리고 내가 할일은 레이니아 여신께서 나에게 지어준 숙명과 같은 거야." "무슨 말씀이신건지..." 늘 약해보이기만 했던 쉐리아가 이렇게나 당당하고 강해보이기도 처음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이 모습은, 잊고 있었던 것을 생각나게 헀다. "이제 성녀로서의 역할을 할 때가 온거라는 거야." 쉐리아가 신성을 타고난 자라는 것. 그것도 왕으로서의 권능을 타고난 페리어스의 모 자란 부분인 성스러움의 부분을 채워주는 역할을 해왔다는 사실을 말이다. * * * “아무리 생각해도 말입니다.” -타칵 페리어스가 테이블에 찻잔을 내려놓으면서 살며시 입을 열었다. 싱긋 웃는 그 미소는 여전한 것이어서 그런지 이제는 아무런 감흥도 주지 않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런 페리어스의 앞자리에는 무표정한 모습의 카세리아느가 앉아 있었다. “그대는,.” 이제는 자신이 성제라는 신분이라는 것이 밝혀진 뒤이기에 그런 것인지 어느새 카세 리아님이라는 호칭에서 그대라는 호칭으로 바뀌어 있었다.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 는 어감에 카세리아느는 살짝 인상을 굳혔다. 친근하게 들리는 그대라는 단어에 상당히 기분이 나빠져 버린 카세리아느였다. 그 단어를 부르는 사람이 달라져서 인지, 아니면 단지 페리어스이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는 문제였지만... 그런 카세리아느임을 알리없는 페리어스는 눈가를 살짝 가늘게 떠서 웃으면서 짙은 미소와 함께 다시 입을 열었다. 카세리아느를 바라보며 너무나 다정한 모습으로 말이 다. 찻잔에서 풍겨져 나오는 라일락의 향기가 정신을 나른하게 만들었다. “성제의 반려로서 조금의 모자람도 없습니다.” 나른했던 정신은 페리어스의 그 말로 완전히 뚜렷하게 돌아왔다. 방금 페리어스의 입에서 떨어진 그 말은 곧 성제의 반려, 그러니까 자신의 반려가 되어 달라는 말이나 진배없었다. 그리고 그 말의 의미를 모를 리 없는 카세리아느의 안색은 더욱 굳어졌다. 그리고 페리어스를 바라보면서 자신의 푸른색 눈동자에 티끌만한 다른 것은 넣지 않고, 오직 경멸만을 담아놓았다. 결국 당신도 다른 사람과 다른 것이 없는 것이냐고 말하는 듯한 눈빛에 페리어스는 그저 생긋 미소만을 지어 보일 뿐이었다. “영광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신가요? 다른 레이디들이라면 눈물이라도 흘리며 기뻐했을 텐데, 상당히 반응이 기대이하인걸요?“ 페리어스의 그 말에 카세리아느의 눈빛은 한층 더 차가워져서 페리어스를 응시했다. 이젠 지겹기까지 할 정도다. 어째서 자신을 이렇게나 놓아주려 하지 않는지, 그들의 일방적인 이기적인 모습들에 경멸스런 눈길을 거둘 수가 없다. “원하지 않던 말에 기뻐할 만큼, 저는 순수하지 않습니다. 성제폐하.” 차갑게 식은 목소리로 카세리아느가 말하자, 페리어스는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손가락으로 자신의 입술을 훑다가 인상을 찡그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대에게는 좋은 일이 아닌가요?” “무엇이 말이십니까. 성제폐하에게 속여져 멍청하게 되어버린 저의 모습이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었습니까.“ 시리도록 강하게 페리어스를 응시하며 카세리아느가 응대하자, 페리어스는 눈살을 살짝 찌푸리면서 살짝 입 꼬리를 올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이것은 결정타라는 듯한 모습으로. “그대가 아텔린에 있었다면, 황태자의 차비(次妃) 즉, 애첩밖에 더 되었겠습니까?” 페리어스의 그 한마디는 상당히 효과가 있었던 것인지를 증명해 주듯, 카세리아느의 눈동 자는 상당히 커져서 페리어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붉은 입술은 수치감에 살짝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곧 카세리아느가 이로 입술을 누르자 떨림은 멈췄다. 차갑게 식은 시선을 받으면서도 페리어스는 무엇 그리 만족스러운 듯, 싱긋 미소지으면서 살며시 카세리아느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선 살며시 카세리아느의 턱을 자신의 손으로 잡아 올렸다. “그러니 이것이 그대에게 좋은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찰싹 카세리아느는 그 말을 듣고서 페리어스를 더욱 경멸스럽게 쳐다보다가, 자신의 턱에 와 있는 페리어스의 손을 쳐냈다. 자신의 몸에 손을 댄 페리어스의 손길이 너무나 징그럽게 느껴졌다. 너무 기분이 나빴다. 카세리아느가 자신의 손을 쳐낸 것에 놀란 듯 페리어스는 황당하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며 카세리아느를 응시했다. 마치 이것이 뭐하는 짓이냐는 듯한 페리어스의 모습이 무언가 해명을 요구하는 듯 보였다. “제가 아텔린에서 도망쳐 나온 이유가 황태자전하의 첩(妾)이 되기 때문이 아니며, 또한 그렇다고 하여 결코 성제폐하의 비(妃)가 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러니 저에게 그런 말씀은 저에 대한 모욕이나 다름없는 것입니다.“ “하아?” 카세리아느의 말이 상당히 황당했는지 페리어스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한숨을 또 한번 토했다. 이것은 또 웬 말도 안돼는 상황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자신을 따라올 때 대체 무슨생각으로 따라 온 것이었는지 궁금할 따름이었다. "내가 아텔린의 애송이 황태자보다 못하단 겁니까?“ 마치 인정할 수 없다는 듯이, 이해가 안간다는 듯한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페리어스는 그렇게 카세리아느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샌가 상큼하던 이미지는 깨어진지 오래였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페리어스의 물음에 차갑게 카세리아느가 대답하자, 페리어스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다른 사람이 이런 모습을 했다면, 빈정거리는 건달처럼 보였을 지도 모르지만 페리어스는 그런 모습임에도 괜한 무게감이 서려 있었다. “그럼 이제 보니 황태자의 첩이라도, 그곳이 대 제국인 아텔린이니 만큼 꽤나 자리를 차지 할 수 있겠다는 느낌이라도 든 모양이군요.“ 약간의 비웃음까지 섞어가며 그렇게 말하며 페리어스는 카세리아느에게로 더욱 다가 갔다. 카세리아느는 그런 페리어스를 보면서 인상을 찌푸리면서 차갑게 쏘아보았지만 페리어스는 그저 웃어 넘길 뿐이었다. “성제폐하 같으시지 않은 말씀과 행동은 자제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분인줄 알았 다면, 아니 성제폐하인줄 알았다면 만날일 조차 없었을 겁니다.“ 남에게 모욕을 주는 발언을 하는 사람이 그.일리는 없다. 어째서 겉모습에 혹해서 조금 이라도 이런 사람이 그.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만것일까. 이미 엎질러진 물이기데 되돌릴수는 없지만 그때의 판단을 한 자신이 원망스럽기만 했다. 더욱 카세리아느의 곁으로 다가온 페리어스는 비릿하게 웃으며 카세리아느의 가는 손목을 쥐어 잡았다. 상큼했던 미소는 어느새 사라지고 진지한 눈빛을 지닌 진지한 모습 만이 페리어스에게 남아있었다. “웃기는 군. 너무 웃겨. 하지만 상관없어.” 달과 닮았다고 생각했던 미소는 깊숙이 사라지고, 얼음같이 차가운 미소를 드리운 냉정 한 모습의 페리어스만이 남아있었다. 백금발이 부서질 듯 아름답다기 보다는 차가운 냉기만을 머금은 것 같다. 부드럽던 그 말투도 어느새 남을 깔보는 듯한 느낌의 말투로 변해있었다. 다시금 입꼬 리를 살짝 올리던 페리어스는 자신의 손에서 손목을 빼내려는 카세리아느를 등뒤의 벽 으로 밀쳐버리고선 두손목을 한손에 움켜잡고 틀어 올렸다. “난 그대가 필요해.” 금색의 눈동자가 마치 그때의 그 눈동자와 너무나 겹쳐 있었다. 오래전 쉐리아를 바 라보던 그 눈빛으로 변해 있다. 페리어스는 다른 한 손으로 우악스럽게 카세리아느의 턱을 자신쪽으로 쳐올렸다. “무슨짓이.." 그리고는 자신에게 무어라 더 말하려고 하는 그 아름다운 신이 만든 조각품이라 해도 좋을만한 피사체의 탐스러운 붉은 입술을 자신의 입술로 막아 버렸다. 더 이상 무엇이라 말하지 못하게. 남의 것을 탐한다는 미묘한 흥분감에 섞인채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 여유조차 없었다. 마치 새하얗게 비워진 백지처럼 머릿속이 비 워진 카세리아느는 페리어스의 거칠게 자신의 입술을 덮친 행동에도 무슨 일이 있었는 지 알지 못하는 것처럼 그렇게 멍하니 서있었다. -똑똑 "성제폐하, 들어가겠습니다." 둔탁한 나무에서 나오는 마찰음과 의무적인 듯한, 기계적인 목소리의 시종이 자신의 머릿속을 흔들어 깨워놓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런 시종의 목소리와 함께 카세리아느의 머릿속은 빠른 속도로 제자리를 찾아갔다. 결박되어 있는 두손이 위로 올라가 있고, 자신의 입술을 덮쳐온 페리어스의 얼굴이 너무나 가까이에서 보인다. 그리고 너무 기분 나쁜 감촉에 몸에서 소름이 아래서부터 위로 돋아온다. 그런 느낌을 조금이나마 빨리 자신의 몸에서 떼어내기 위해서 자신의 입술을 덮치고 있는 페리어스의 입술을 있는 힘껏 깨물었다. "읏." 곧 이어 카세리아느의 행동이 효과가 있었던 모양인지 페리어스의 얼굴은 카세리아느 에게서 떨어져 나갔고, 페리어스는 인상을 찌푸리며 카세리아느를 결박하던 손으로 선혈이 흐르는 자신의 입술을 훔치고 있었다. -삐그덕 그리고 곧 이어,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고개를 숙인 시종이 조심스럽게 들어왔 다. 성제는 성스러운 왕. 그런 성스러운 왕을 한낱 시종따위가 고개를 들고서 바라볼 수 없었기에, 다행히도 페리어스는 자신이 입술에 흐르는 피를 닦아내는 그런 모습을 시종에게 보이지 않을 수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아까까지의 그 비아냥 거리던 말투와는 다르게 여느때와 같은 여유만만한 목소리로 페리어스는 어느새 돌아와 있었다. 하지만 부드럽고 여유로운 그 말투와는 다르게 카 세리아느를 바라보는 페리어스의 눈길은 날카롭기 그지없었다. 자신의 입술에서 느껴지는 비릿한 아픔과 입속에서도 느껴지는 비릿한 맛이 자신이 카세리아느에게서 거부당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려주고 있었기 때문에. 한낱 여자에게 자신이 거부당했다는 것은 페리어스에겐 너무나 우스운 일일 뿐이었다. 그것도 힘없는 약한 나라의 공녀(貢女)출신 주제에. 그리고 그렇게 자신을 날카롭게 쳐다보는 페리어스를 카세리아느또한 경멸어린 시선으 로 강렬하게 맞받아 치고 있었다. 이대로 물러선다면 그것은 자신의 자존심과 긍지에 상처를 입히는 결과가 될 뿐이니까. 그런 카세리아느와 페리어스임을 물론 알리없는 시종은 여전히 고개를 숙이며 조심스 럽게 입을 움직였다. "라엘대신관님께서 카세리아느님을 만나뵙고자 하십니다, 성제폐하." 날카롭게 카세리아느를 응시하던 페리어스의 눈길이 시종의 그 기계적인 음정의 한마 디에 그대로 시종에게로 옮겨졌다. 라엘이라면, 쉐리아를 돌보아주는 그 여신관을 말 하는 것일 테고, 그렇다면 쉐리아가 카세리아느를 만나길 원한다는 것인가? 당장이라도 그 이유가 무엇때문이냐고 묻고 싶은 페리어스였지만, 그것을 저 시종이 당연 알리가 없었다. 쉐리아는 베일에 숨겨진 자신의 그림자였으며, 라엘 대신관은 그 런 자신의 그림자를 지켜주는 역할을 하는 이였을 뿐일 아니라, 지체높은 대신관의 자 리에 있는 인물인 것이다. 살며시 복잡해지는 머리에 이마를 손으로 잡고서 페리어스는 인상을 찡그리며 시종에 게 말했다. "알았으니, 밖으로 나가 있어 주세요." 쉐리아가 자신의 그림자속에서 밖으로 나오려 할리는 없을 텐데, 도대체 무엇 때문에 자신의 앞에 있는 이를 보려한단 말인가? 페리어스는 자신의 앞에서 여전히 자신을 강하게 응시하면서 도도한 자태로 서있는 카 세리아느를 바라보면서 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모양인지 살짝 웃었다. "훗, 그런건가?" 자신이 사람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의 이 아름답고 매력적인 여인을 반려로 맞이하려 는 것을 예감으로 알기라도 하고서 자신을 축복이라도 해주려는 것인가? 이미 한번 그런 생각이 페리어스의 머릿속에 떠오르자 다른 것은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페리어스는 다시금 자신의 입술에 흐르는 선혈을 손으로 닦아 바라보다가, 자신을 이 렇게 만든 카세리아느를 다시 응시하면서 입꼬리를 올리며 입을 열었다. "길들이기 힘들것일 수록 길들이는 보람이 있는 법이겠지." 한마리 야생마를 보는 듯한 그런 눈빛이 무척이나 마음에 안드는 카세리아느였다. 하 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 자신은 그런 그의 그물안에 걸려 버린채니, 도망칠래야 도망칠수도 없다. 거미줄에 걸려버린 한마리 나비처럼. 연약한 여인의 모습으로 움직일 수도 없는 거미 줄에 걸린채로 그렇게 경멸어린 눈길로 쳐다보는 수 밖에는 말이다. "난 그대를 놓아줄 생각 없습니다. 그대는 내게 꼭 필요하니까 말입니다. 뭐, 아텔린 에서 도망쳐 나온것처럼 도망칠 수는 없다는 것도 똑똑한 그대라면 더욱 잘 알겠죠?" 페리어스는 움직이지 않고서 자신을 응시하는 카세리아느의 턱을 다시 우악스럽게 잡 아 올리면서 입에 비웃는 듯한 웃음을 띠면서 말하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자신을 우습다는 듯이 바라보는 페리어스에게 무엇이라 말하고 싶지도 않다. 어느샌가 마음속에서 페리어스에게는 말 할 가치도 없다고 정해 놓아 버렸다. 그것이 조금이나 마 더 이성을 지킬수 있는 방법이었다. 페리어스가 원하는 것은 자신이 아닌, 이 신성왕국에 필요한 여신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자신은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 남에게 숭배받는 것도, 남이 원하는 모습으로 남아 있는 것도 싫다. 페리어스는 카세리아느를 등지고서 문을 열고 나갔다. 그리고 나서 밖에 기다리고 있 던 시종이 라엘에게로 카세리아느를 데려가 주기 위해 안으로 들어왔다. 경멸을 띠고서 페리어스를 바라보던 카세리아느의 눈동자는 어느샌가 차갑기만 한 눈 동자로 돌아왔고, 분노가 어렸던 붉은 입술은 단호한 모습으로 원래 제자리를 찾았다. 그리고 어느 샌가 카세리아느의 모습은 최고급의 인형과 같은 차갑고 아무런 표정도 없는 모습으로 변해있었다. 조금만 닫고 있자. 빛을 침식해가는 어둠을 자물쇠로 마음을 닫아 두자. 분명히 그라면 나를 찾아와 이 자물쇠도 늘 그랬던 것 처럼 쉽게 열어 버릴테니. 그가 올때까지만. 그때까지만. 조용히 닫고서 기다리도록 하자. 제 목: 공녀(貢女) 카세리아느 [27 회] 글쓴이: 썬샤인 2003-01-27 조회/추천: 452 / 1 오직 너만을 미치도록 - 1 “하아?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창밖에서 따스한 햇살이 넘실 출렁이면서 방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고, 그 따스해 보 는 방안에는 푸른 머리카락의 가녀린 선을 지닌 소년과 흑청빛의 머리카락을 지닌 소 년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 흑청빛 머리칼의 소년이 푸른빛 머리칼의 소년에게 무엇이라 말하자, 푸른색 머리의 소년은 자리에서 일어나 기가막히다는 듯이 소리쳤다. 강한 부정. 자신이 들은 말에 대한 강력한 부정의 뜻. 그럴 리가 없다는, 그리고 그것이 아니라 고 말해달라는 의미를 가득 내보이며 이리스는 황당한 눈동자로 흑청빛의 머리카락의 소년, 황태자를 응시하고 있었다. “.....” 대답해 줄 사람은, 부정해 줄 사람도 황태자뿐이건만 그 당사자인 황태자는 아무런 대 답도 없이 눈을 살포시 내리깔고서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리스를 무시하면서 무 엇을 그리 눈동자에 가득 담고 있는 것일까? 황태자가 아무런 대답도 없이 자신을 무시하자 이리스의 황당하다는 듯한 눈빛도 이 럴 줄 알았다는 듯한 눈빛으로 바뀌어 버렸다. 그러고는 자신의 입술을 세게, 아주 세게 무언가를 잊어버리고 싶은 모양인지 꽈악 깨물었다. 그때 알았어야 했다. ‘당신이란 사람은 남을 사랑하지 않는 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어야 했어.’ 그리고 황태자의 이기적인 소유욕에 그녀가 상처받을 것도 알아야 했다. 일이 이렇게 되리라는 것을 어쩌면 조금은, 자신의 무의식중에서 짐작하고 있었을 지도 몰랐는데, 그때 그녀를 놓아주지 말았어야 했었다. 탕!! 이리스의 가녀린 손은 무엇이 그리 억울했는지 어느 샌가 자신의 앞에 있던 탁자를 힘 차게 내리치고 있었다. 억울했기에, 너무나 억울해서 그렇게 내리쳐 버린 이리스였다. 쨍그랑!! 그리고 곧 이어서 흔들리는 탁자에 중심을 잃고 떨어진 찻잔이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 며 산산히 부서졌다. 이렇게까지 된다면 조금은 시선을 이리스에게 돌려도 될 것이건 만 황태자는 여전히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으며 무엇을 눈에 가득 담아야 하는 듯, 창밖만을 응시했다. “잊고 있었습니다. 잠시 형이 고. 귀. 하. 신. 황. 태. 자. 전. 하. 이셨다는 사실 을 말입니다. 어떻게 고귀하신 황태자 전하께서 남을 돌보실 여유가 있으셨겠습니까. 자신의 마음대로 휘둘러도 부족하실 텐데 말입니다.” ‘당신은 남을 담기에는 마음의 여유가 너무나 부족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왜 그때 잊 었던 걸까.’ 자기 자신조차 용납되지 않았다. 그녀가 소중하다면서, 그녀를 사랑한다면서 왜 그녀 를 행복하게 해줄 사람조차도 알지 못했던 것인지 말이다. 비웃음어린 자조적인 어조 로 황태자를 바라보면서 말하며 이리스는 속으로 그렇게 자신을 원망하고 있었다. 그녀가 떠났는데도 불구하고서 저렇게 담담하기만 한 황태자의 행동이 너무나 경멸스럽 게만 보였다. 자신과 같은 핏줄이라는 것이 증오스러울 정도로, 저렇게 잔인하기만 한 사람과 자신의 피가 이어져 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당신에게 그녀란 이 정도밖에 안되는 존재였는데.’ 스스로 쓰디쓴 말을 내뱉으면서 여전히 창밖만을 응시하고 있는 황태자를 바라보고선 입을 열었다. 더 이상 저자랑 같이 있어야 할 이유는 없으니, 한시라도 이곳에서 벗어 나고 싶은 마음뿐이다. 분명히 황태자는 그녀에게 스스로 떠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옭아 매었을 것이다. 얼마 전에 라이닌에서 황태자에게 주었다는 그 소녀를 생각한다면 더이상 뒤의 일은 보지 않아도 눈앞에 그려졌다. 소유욕으로 그녀를 옭아 매어 놓아주지 않으면서, 자신은 그런 그녀를 철저하게 농락 하면서 자신에게서 벗어나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어쨌든 하실 말씀이 그것이었다면, 더 이상 용건은 없을 테니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 다. 제가 더 이상 여기에 있어야 할 이유는 없는 것 같으니까요.” 차가움이 흘러내리는 말투와 경멸스럽다는 강한 눈빛을 황태자가 모를 리는 없을 텐데 도, 분명 저런 행동헤 화가 나기도 할 법한데도 황태자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무표 정. 무반응. 마치 생명체가 없는 인형과 같은 모습에 더욱 이리스는 강하게 쳐다봐 주 었다. ‘늘 고귀하기만 한 당신도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미쳐버리기라도 할 것 같은 감정이 솟구쳐 올라오려고 하니, 이렇게라도 해서 필사적으로 참고 있는 것이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목구멍까 지 솟구쳐 올라오는 모든 말들을 이성을 잃고 내뱉게 되어 버릴 것 같아서. 오지 그 이유만으로 필사적으로 참으며 쳐다보고 있었다. “그럼 고귀하신 황태자 전하. 언제나 영광이 함께하기를 간절히 바라겠사옵니다.” 한마디에 비수를 꽂아 말하면서 고개를 끄덕도 하지 않고서 발걸음을 문 쪽으로 향했 다. 처음부터 이런 말을 들을 줄 알았으면 들어오지도 않을 곳이었다. 그리고 괜히 와 서 저 사람이 저런 인간이었다는 사실만 확인하는 꼴이 되어버렸다. 이런 곳에 부른다고 오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처음부터. 자신이 그렇게나 알아오고도 몰랐던 것일까. 저 사람이 그런 사람이었단 사실을. 한 공간안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몸이 썪어옴을 느끼는 이리스는 발걸음을 더욱 재촉 했다. ‘나중에 결국 당신주위에는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조금이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에 조금씩 빨라지는 발걸음이다. 그리 고 언젠가 황태자도 분명 알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알고 싶지 않은 진실일지라도 결 국 알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신의 주위에는 아무도 없고, 자신 혼자라는 사실 을 말이다. 아니 있다고 해도, 그들은 황태자의 카리스마나 황위계승자에 얽매인 사람들일뿐, 진 실적인 사람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황태자는 자신에게 누군가 다가오 는 것을 철저하게 거부한다. 그것은 어렸을 적에도 어렴풋이 느껴왔던 느낌이었다. 남을 거부한다는 느낌을 지울래 야 지울 수가 없었다. 웃고 있음에도 불구하고서 그 눈동자는 너무나 차갑게 남을 응시 하며 무시하고 있었다. 그래. 남을 그렇게 철저히 무시하고 있었으니, 자신에게 달라붙는 여자들에게도 웃을 수 있었을 테고, 이런 썪어빠진 귀족들 세계에서도 늘 같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문을 잠궈두고서 열어주지 않는 황태자인데 누가 그의 그런 문을, 절대 열리지 않는 문을 열고서 들어갈 수는 없었다. 그것이 더욱 말이 안 되는 일일 뿐인 것이다. 남을 사랑할 여유가 없는 저런 사람이 똑같이 남을 사랑할 여유가 없는 카세리아느가 받아들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는 카 세리아느에게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자신에게서 떠나갈 기회를 제공하는 역할밖에는 하지 않았을 테니까. 늘 언제나 그렇듯이, 당연하다는 듯이 쉽게 다른 이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 자신의 형 이었으니까. ‘어쩌면 그녀에게는 잘된 일일지도 몰라. 황태자를 떠난 것은.’ 약간은 쓸쓸한 감정도 교차되는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어느새 이리스의 발걸음은 문까 지 닫아 있었다. 그리고는 당연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가는 손을 내밀어 손잡 이를 잡아당기려고 했다. 분명 그 소리가 들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멈춰라.” 권위주의적인 황태자의 명령에 가까운 목소리가 들리기 전까지는. 물론 무시하고 나가 면 그만이지만, 방안의 조용한 적막을 깨고서 말하는 황태자의 말에는 거부할 수 없 는 힘이 담겨 져 있었기에 그럴 수 없었던 이리스였다. 이때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던 황태자가 말했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그에 분명 속해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자신의 멈추게 만드는 황태자의 목소리에 이리스는 살짝 고개를 돌려 황태자를 응시했다. "더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약간 눈썹을 찡그리고서 이리스가 반문해오자 황태자는 살짝 시선을 옮겨 이리스 쪽으 로 향하여 바라보았다. 한번도 본적 없는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듯한 황태자 의 모습은 이리스로 하여금 엄청난 이질감을 느끼게 만들고 있었다. 적어도 전에는, 적어도 예전에는 거짓으로나마 웃음을 보였었는데 지금은 그 미소 띤 모습조차 찾을 수가 없다. 차분히 가라앉은 깊은 무게감이 이리스의 어깨를 무겁게 짓 눌렀다. 그런데 무엇인가 이상했다. 황태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이 자신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을 바라보 고 있음에도 자신을 바라보는 것 같지 않다. 황태자의 저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은 깊 이를 지닌 눈동자가 향하는 곳은 자신이 아니라는 그런. “너에게 할 말이 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황태자의 일자로 굳게 닫혀져 있던 입술은 조금씩 열려 어느 샌가 이리스를 향해 말하고 있었다. 아무런 감정도 담지 않고 자신을 무덤덤하 게 바라보고 말하는 황태자에게 두려울 정도로 소름이 끼쳤다. 예전에 없던 강한 위압감이 황태자에게서 뿜어져 나온다. 황태자가 있는 공간만이 이 곳과는 다른 곳인 양 기묘한 분위기를 풍겨내고 있었다. 단순한 그 한마디에는 엄청 난 힘이 있어, 감히 나가지도 못하고 그 말에 묶여 있었다. “고귀하신 황태자전하께서 저 같은 사람에게 말 할 것이 있으십니까?” 힘겹게 목에서 마른침을 삼키면서 힘을 내어 비꼬는 듯이 황태자에게 대답하는 이리스 였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는다면, 왠지 모르게 자신은 황태자의 종이 되어버리는 듯 한 느낌을 받았기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인정하고 싶지도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한다면, 여기서 다시 한번 그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 싫기도 했다. 황태자가 저런 모습을 보임으로써 황태자가 황제(皇帝)로서의 기질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자신의 머릿속에 인식시켜야 한다는 것이 싫었다. '당신은 늘 그렇게 잘난 사람이니까.‘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은 너무나 비참해지지만 역대 황제를 능가할 황제의 등장을 기대 하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 살며시 미소를 짓고 말아버리니 말이다. 결국 자신 또한 황 태자의 매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 중에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아 버리기 에 이렇게 또다시 황태자의 본모습을 보는 것이 싫었다. “우선 다시 자리에 앉아라.” 이리스의 심정을 알리 없는 황태자는 다시 자신의 시선을 돌리며 명령아닌 명령을 내 렸다. 그리고 이리스는 그러한 황태자의 말에 살며시 씁쓸한 듯 입술을 깨물다가 조심 스럽게 다시 발걸음을 옮겨 자리에 앉았다. 약해지지 말자.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이 사람을 상대로 절대로 약해지지말자. 조금 씩 자기최면을 걸면서 눈을 힘껏 감았다가 힘차게 눈을 떠 황태자쪽을 응시했다. “하실 말씀, 되도록이면 빠르게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더 이상 이곳에 머물고 싶은 마음 따위 없으니까요.” 이리스가 황태자를 향해서 말하자 황태자는 여전히 창밖을 응시하면서 입을 열었다. 창밖에서 실려온 따스한 바람이 살며시 황태자의 흑청빛 머리카락을 휘감아 품에 넣었 다. 따스한 햇살조차도 저 황태자를 축복하듯 그곳만을 맴도는 듯도 했다. “그녀를 데려오기 위해서 너의 도움이 필요하다.” 조용한 방안에 고요한 충격을 동반한 그 말은 이리스로 하여금 인상을 찌푸리게 만들 었다. 저 무슨 말도 안돼는 소리란 말인가? 자신이 상처를 주어 떠나게 해 놓고서 다 시 그렇게 카세리아느를 자신이 차지해 버리겠다니, 저렇게 이기적일 수가 있단 말인가. 이리스는 살며시 떨려오는 주먹을 다른 손으로 잡고서 눈빛을 강하게 하여 황태자를 흘기며 기가 막힌다는 듯 입을 열어 말했다. 황태자가 자신이 원하는 것은 늘 손에 넣 지 않은 적이 없다는 것을 안다. 그는 황태자라는 직위에 있는 이였으니까. 그럴 수 있는 조건은 늘 갖추어져 있었고, 그가 그렇게 말한다면 누구하나 그의 말에 거부없이 자연히 그의 손에 넣어다 주었다. 하지만 이것의 경우는 다르지 않은가? 자 신이 그렇게나 카세리아느를 몰아세웠으면서도, 도망치고 나니 다시 찾는 이유가 무엇이 란 말인가? “그녀가 무엇 때문에 황태자 전하를 떠났는지 아시면서도 그런 말을 하실수 있는 것 입니까? 카세리...” 무언가 감정에 복받쳐 계속 말하려던 이리스의 말을 끊어 버린 것은 황태자였다. 갑작 스럽게 느껴지는 시린 얼음과도 같은 느낌을 주는 물건이 자신의 목에 어느 샌가 닿아 있자 이리스는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날카롭기 그지없는 단도가 지금 자신의 목을 위협하며 시퍼렇게 세워진 날 부분이 닿 아있는 것이다. 그것도 새하얗고 긴 손가락을 지닌 자신의 형, 황태자가 더 이상 말 을 꺼낸다면 죽이려는 듯이 그렇게 자신을 차갑게 응시하면서 위협하고 있었다. “그 이름 부르지 마라.” 그리고 어느 때보다도 차가운 목소리로 가늘게 뜬 차가운 눈동자로 자신을 얼려 버릴 듯이. 조금의 감정도 없어보이는 모습이기는 아까와 마찬가지였지만 지금은 엄청난 살 기가 이리스의 몸을 떨게 만들었다. 그리고 황태자가 말한 말한마디에 눈동자는 크게 뜨여져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황태자 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행동에 그의 말에 감히 거부 할 수는 없었다. “나의 것을 부르는 것을, 난 용납하지 못한다.” 강한 오직 그녀를 향한 소유욕으로 뭉쳐버린 황태자를 이해 할 수가 없었다. 비정상에 가까울 정도의 카세리아느에 대한 집착. 자신의 친동생한테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칼을 겨누는 저 모습에 화가 나려고 한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집착하면서 그녀를 찾는 것이란 말인가? 어차피 또다시 상처 주 며 놓쳐버릴 것이면서 왜 소유욕이라는 명분으로 그녀를 다시 괴롭게 만들려는 것인 지 알 수가 없었다. 생각 같아선 당신은 지금 정상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을 뿐이다. “형님 것의 이름, 부르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이것 놔주시죠?” 자신의 목을 겨누고 있는 황태자의 손을 살며시 응시하면서 이리스가 비꼬듯 말하자 그제야 황태자는 단도를 거두었다. 황태자가 차가운 눈빛을 풀며 단도를 거두어들이 자, 이리스는 그런 황태자를 경멸어린 눈길로 바라보면서 차갑게 내뱉었다. “그리고 한번이라도 생각해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녀가 형님과 있으면 과연 행복 할지를 말입니다. 그리고 그녀를 힘들게 밖에 하지 않을 형님에게 전 도움을 드릴 수 없다는 것을 말해드리고 싶습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카세리아느를 불행하게 만들 수는 없다. 황태자가 카세리아느를 독점 욕 때문에 다시 찾는 것이라면 절대로 그 일에 도움이 되는 행동은 할 수 없다. 그녀 가 행복해지기를 바라기에 절대로 황태자의 행동대로 하지 않을 것이다. 이리스는 더욱 강한 눈빛으로 황태자를 응시하며, 아무 말이 없는 황태자를 보면서 다 시 한번 입을 열었다. “형님께서는 얼마든지 다른 여자를 가지실 수 있지 않으십니까.” 그녀가 없어도 황태자에게는 그녀를 대신해 줄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못해, 넘칠 정도 였다. 고작 소유욕을 채우기 위해서라면 그녀를 보내달라고 이리스는 말하고 있었다. 당신은 그녀가 없어도 되니 그녀를 보내주라고. 그녀는 당신을 떠나고 나면 행복할 테니, 당신만 그녀를 놓아주면 될 테니, 제발 그 냥 놓아주라고 말하고 있었다. 고작 황태자의 소유욕에 희생되기에는 그녀는 너무나 아까운 사람이니 말이다. “나는 나의 멈춰버린 시간과 마음을 되찾게 해줄 사람은 오직 그녀밖에 없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갑작스럽게 말하는 이해할 수 없는 황태자의 말에 이리스는 눈썹을 살짝 찡그리면서 되물었다. 무슨 소리인지 이해할 수 없는 단어다. 황태자는 여전히 무덤덤한 모습으 로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쥐어 잡았다. “그녀가 떠난 후로 멈춰져 버린 나의 시간과 잃어버린 나의 마음을 되찾고 싶다고 했 다.” 아무런 감정도 깃들이지 않은 말을 들으면서 황태자의 말에 계속 의문을 표하는 이리 스였다. 카세리아느가 떠난 뒤로 무엇 때문에 시간이 멈추었단 말인가? 그리고 마음 을 잃어 버렸다니 그것은 또 무슨 이상한 말이란 말인가? 황태자는 눈썹을 찌푸리면서 알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취하는 이리스를 보면서 다시 가슴에 있던 손을 눈동자로 가져갔다. 너무나 깊어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흑청 빛의 눈동자가 무엇인가를 가득 담고 있다. 그것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음에도 자신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며, 자신이외에 다른 것 을 가득 담고 있는 듯 했다. 사물을 보지 않는 눈동자. “내 눈동자는 지금 오직 미치도록 그녀만을 그리고 있다.” ‘이 눈동자는 다른 것은 보지 못해.’ 눈을 감으면 그녀만이 떠오르고, 가슴이 답답하게 막혀온다. 그리고 결국은 멈춰버렸 다. 그녀가 없기에 시간이 멈추어 버렸다. 언제나 지금 그녀가 떠난 그 순간에서 멈추 어서 고장이라도 난 듯 시간이 움직이지 않고서 정지해 버렸다. "내 눈동자에 보이는 오직 단 한 사람을 데려오고 싶다." 그리고 어느새 눈을 뜨고 있어도 그 눈동자는 그녀만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 간부터 다른 것은 눈에 담지 않았다. 오직 그녀만을 눈동자 속에 담아 버렸다. 다 른 것을 볼 여유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것을 눈에 담게 되면 그녀를 그릴 수 없기에, 눈동자로 오직 그녀만을 그린다. 그런 황태자를 바라보던 이리스의 뭐하는 짓이냐는 듯했던 경멸적인 눈빛이 어느새 달 라지기 시작했다. 어째서 자신은 몰랐던 걸까. 황태자가 그렇게나 강한 집착을 보이던 여인 따위는 없었단 사실을, 강한 소유욕을 느 끼던 여자는 그녀 하나밖에 없었던 사실을 말이다. 다른 여자들에게는 늘 냉소어린 시 선만을 주었던 황태자임을 왜 몰랐던 걸까. 오직 그녀를 바라볼 때만 무시하는 듯한 눈빛도 냉소어린 시선도 아니었다는 것을. 이제 알 것 같다. 자신을 바라보고 있음에도 자신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던 눈동자를. 그녀를 그리고 있기에 다른 것을 바라볼 여유가 없었던 거다. 오직 눈동자에 그녀만을 그리기에도 턱없이 부족했던 거다. “그리고 도와달라는 것은 내가 너에게 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부탁이다. 다시는 너에 게 부탁하는 일 따위는 없을 거다.” 눈에 가져갔던 손가락을 내리면서 여전히 감정하나 실리지 않은 모습으로 황태자는 이 리스에게 말했다. 따사로운 햇살이 황태자를 축복해줌에도 황태자의 얼굴에는 조금의 미소도 어려 있지 않고, 그렇다고 해서 차가움도 어려 있지 않다. 그녀가 그의 시간도 마음속 감정까지 가져가 버렸으니, 그리고 그의 시각까지도 차단 해 버렸으니까. 이리스는 살며시 그런 황태자를 보면서 안쓰럽게 미소 지어 버렸다. "제가 형님을 부탁을 들어주는 것도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입니다." * * * 대 제국 '아텔린'에서 신성왕국 '레이닌'에 보내온 사절들은 라이닌에서 결코 무시하 며 넘어갈 수 없는 아주 높은 지위의 사람들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아텔린의 차기 군 주인 황태자와 천재라 불리우는 천재황자가 그 주인공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레이닌에 찾아온 명분은 이것이었다. 몸이 약한 아텔린의 황자 이리스의 몸을 신성력으로 치유하게 해달라는 것. 신성왕국으로 유명한 '레이닌'에게는 그것은 너무나 간단한 일이나 다름없긴 했으나, 문제는 아텔린에도 충분히 황자의 몸을 치유할 능력의 성직자들 혹은 마법사들이 충 분히 넘칠 정도로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황자의 몸을 치유하기 위해서 찾아왔다는 것은 겉으로의 명분일뿐, 무슨 속셈 으로 그들이 라이닌에 찾아온 줄 알 수 없기에, 레이닌에서는 잔뜩 숨을 졸이며 환대 히 그들을 맞이 했다. 어찌되었든, 그들이 대 제국 '아텔린'의 황태자와 황자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런 그가 찾아오는 이유를,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결국은 찾아오고 마는 군요. 하지만 제가 그녀를 고귀하신 황태자 전하께 보여주기 라도 할 것이라고 생각했나 봅니다." 입가에는 가득 상큼한 미소를 띠운채 앞의 사람을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이는 백금발 이 아름다운 성제, 페리어스였다. 그리고는 자신의 앞에 있던 향기나는 찾잔을 집어 들면서 살며시 입을 축였다. 그리고 그렇게 웃고 있는 성제를 바라보며 앞에 앉아있던 이는 그에 대답이라도 해주 듯 간사하게 웃으며 동의한다는 듯 말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더욱이 이곳에서 데려갔다는 확증도 없지 않습니까." 간사하게 들려오는 웃음끼 어린 데크후작의 말을 들으면서 성제는 눈을 가늘게 뜨면 서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물론 확증은 없겠지만, 황태자라면 어떻게든 명분을 만들 어 버릴지도 모르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황태자도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할것이다. 어렵게 잡은 여신이니까. "확증이 있다고 들이민다고 하여도, 저는 그녀를 놓아주지 않을 겁니다." 확정짓듯 말하는 페리어스의 말을 들으면서 데크 후작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언제 성제가 이렇게나 소유욕을 보인적이 있었던가. 자신 이외는 모든것이 불필요하다고 느 끼던, 자신이외에는 모든것이 필요없던 성제가 아니었던가. 그런 모습이 마음에 안드는 것이 아니었기에, 후작도 그저 간사한 미소만을 지어 보였 다. 자신이 본 그 여자는 분명 라이닌에게 득이 되었으면 되었지, 해가 될리는 없어 보이는 여자였기에 말이다. 그녀는 자신이 보기에도 충분히 보석이었다. "그래야지요." 페리어스는 그런 후작의 말을 들으면서 차를 입으로 담아 넣었다. 향기로운 향기와는 다른 씁쓸한 맛이 입가에 가득 머물렀다. 겉으로 보는 것과 속은 다른 법이다. 그녀도 분명 그러하니까. 겉은 형언할 수 없이 아름답지만 속은 누구보다 차가운 사람. 그리고 빛나는 여신. 자신이 이때까지 그려오던 여신의 이미지였던 것이다. 놓아주지 않는다.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옆에 여신의 모습으로 남아 있어야 할 것이다. "훗, 그녀는 여신의 존재로 남아있어야 하니까요." 결국 카세리아느도 페리어스에게는 희생양일 뿐이었다. 자신을 더욱 돋보이게 해줄 여신이 카세리아느였던 것이다. 페리어스는 입가에 가득 미소를 머금었고, 후작도 조 용한 방안의 정적을 깨뜨리듯 둔탁한 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 -똑똑똑 "무슨일이냐?" "아텔린에서 오신 사절들이 도착하였다는 전갈이옵니다." 노크소리에 데크후작은 약간 신경질적으로 밖을 향해 소리쳤고, 밖에서는 조심스러운 시비의 목소리가 방안으로 들려왔다. 아텔린의 그 어린아이들이 도착하였노라고. 그 들이 이곳에 발을 들이밀고 있노라고 말이다. 그 말을 들으며 페리어스는 살며시 눈을 감았다가 부드럽게 떴다. 결국은 만나게 될 인연이었나 보다. 그 거만한 애송이 황태자와 자신은. 그때는 사신과 황태자라는 신분 으로 만났지만 지금은 성제와 황태자의 직위를 가진이로써 만나게 되는 것이다. "기막힌 인연이라니까요." 입가에서 웃음을 거두지 않은채 페리어스는 손에 들려져 있던 찻잔을 내려놓았다. 조 금의 소리도 들리지 않을 만큼 조심스러운 행동으로. 그리고 그런 페리어스를 보면서 후작은 괜찮냐는 듯 바라보았다. "정말 이대로 황태자를 만나실 것이옵니까, 폐하?" 다른 나라의 고위 직위인 그것도, 황제가 될 황태자를 속였다는 것은 결코 가벼운 일 이 아니기에 하는 말이었다. 그것은 어찌보면 황태자인 그를 능멸하였다고도 볼 수 있는 행위였던 것이다. "걱정하지 마세요. 어떻게는 되지 않겠습니까." 후작을 보면서 부드러운 미소를 보여주며 말하며 페리어스는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섰 다. 하지만 그 말은 후작을 안심시켜 주기에는 너무나 부족하였기에 후작은 인상을 찌푸리면서 그의 행동을 막듯이 소리쳤다. "하지만!" "모든일은 잘 될것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에게는 레이니아 여신이 계십니다. 레이니아 여신께서는 뒤에서 저를 돌보아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황태자가 그렇게나 어리석지 않은 이상은 뭐라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페리어스가 여신의 이름까지 들고 나온다면, 후작도 더이상 무엇이라 말할수가 없었 다. 그저 저렇게 미소짓는 페리어스를 믿는 수 밖에는 말이다. 자신이 알아오던 저 페리어스라면 분명 자신을 실망시키는 않을 것이지만 왠지 모르게 걱정되는 기분은 떨 치기 힘들었다. "그렇게 까지 말씀하신다면 더이상 막지 않겠사옵니다." 고개를 숙이며 그래도 걱정스러운듯 말하는 후작을 바라보면서 페리어스는 미소짓다가 밖을 향하여 크게 소리쳤다. "지금 사절을 맞이하러 갈테니 준비하세요." 부딪히다 보면 어떻게든 결론은 나지 않겠는가. 입가에 걸린 페리어스의 미소는 갈수 록 짙어졌고, 그것은 어찌보면 비웃음같다고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것이었다. '찾을 수 있다면, 찾아보라지. 그대와 카세리아느가 운명으로 엮인 사이가 아닌 이상 그대는 절대로 그녀를 찾지 못할 테니." * * * * * "카세리아느가 있을 만한 곳은 아마도 '프렌시아궁'일 것입니다. 레이닌의 왕성안에 서 카세리아느가 있을 만한 곳은, 그리고 숨기기에도 그대로 방치해두기에도 이곳만 큼 성제와 가까우며, 측근들이 모여있는 곳은 드물기 때문입니다." 이리스는 레이닌으로 가는 마차안에서 황태자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그것은 강한 확 신이 담긴 말이었기에 누구도 뭐라고 무엇때문이냐고 반문하기에는 어려워 보였다. 게 다가 괜히 이리스가 천재라는 이름을 달고 사는 것은 아니였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황태자는 그런 이리스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서, 그저 듣는듯 마는 듯 맞은 편에 앉아서 한곳만 응시하고 있었다. 아무런 설레임도 흥분감도 없이 그저 당연히 자신의 것을 가지러 간다는 모양으로 말이다. 그런 황태자를 바라보면서 이리스는 살며시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 제일 흥분되는 것 은 황태자여야 할텐데 오히려 더 흥분하는 것은 자신같았기에 말이다. 어쨌든 이리스 는 더 말할 것이 있는 모양인지 다시 눈빛을 강하게 하면서 강하게 입을 열었다. "그리고 '프렌시아궁'의 또다른 말이 '여신의 궁'이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카세리아느에게 가장 어울리는 말이 말이다. 그리고 성제가 그녀의 가치를 알아보았다면, 그곳이야 말로 그녀가 있기에는 가장 적합한 곳이 아니 겠는가. 물론 그것은 확신적인 이유는 될수 없을지 모르지만 말이다. "제가 할만한 말은 이때껏 오면서 다 말해 들렸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형님의 몫인 것입니다. 기회는 그다지 많지 않으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황태자는 이리스의 말에 살며시 눈을 돌려서 이리스를 응시했다. 모든 것을 잃어버렸 음에도 카리스마는 여전히 그의 모습, 그의 자태 여러군데에 남아있었다. 그것은 분명 그녀를 찾아올 것이라는 확신을 이리스의 마음 깊은 곳에 은연중에 자리잡게 만들었다. 타닥,타그닥.. 달칵 "고귀하신 황태자 전하, 황자 전하를 뵙사옵니다." 말하고 있는 사이 어느새 레이닌에 도착한 모양인지 마차는 살며시 멈춰졌고 문은 조용히 열려졌다. 그리고 누군가 조심스럽게 인사를 하면서 입을 열며 들어왔다. "이제 다온 모양이구나." "그렇사옵니다. 이제 이곳부터는 레이닌의 왕성. 아무래도 이제부터는 밖으로 나오셔 서 궁안으로 들어가셔야 할 것 같사옵니다." 아무말도 없는 황태자를 대신하여, 이리스가 말을 꺼냈고, 시종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나와야 할 것 같노라고 말했다. 이제부터는 성안이 아니라 바로 궁앞이었던 것이다. 말을 다 끝내고 다시 나가는 시종을 보면서 이리스는 다시 황태자를 응시하며 말했다. "이제 들어가시면 꼭 혼자가 아닌 둘이 되셔서 아텔린으로 가셔야 합니다." 조용히 말하는 이리스의 말을 들으면서 황태자는 이리스를 강하게 바라보았다. 저 말 이 무슨 뜻인지 모를리는 없었다. 그리고 그 말처럼 되지 않을리도 없을 것이다. 분명 아텔린으로 돌아갈때는 혼자가 아닌 둘일 테니까. "마음을 찾을 곳이 여기있는 것을 알고도, 마음을 찾지 않고서 갈 생각따위는 없다." 그제야 조용히 있던 입을 열며 황태자는 이리스에게 더이상 눈길을 주지 않고 마차밖 으로 나갔다. 마차안에서만 있을 때는 몰랐던 찬란한 빛이 황태자를 잡아 끌었다.그리 고 오직 이 사람만이 빛의 사람이라는 듯 그만을 비추었다. 바람에 흩날리는 흑청발의 물결이, 당당한 그의 눈빛이 가져오는 절대적인 긍지와 신 념이, 고귀하기만 한 그의 자태가 닫혀있던 귀를 뚫고서 들려오는 함성에 더불어 절대 자의 이미지를 나타내고 있었다. '당신이 원하는 것을 이곳에서 손에 넣으십시오. 절대적인 군주시여.' ========================================== 황망해요..무척이나 황당해요;; 원래는 한 60편에 있는 것인데..;; ..언제나 행복하시길... 제 목: 공녀(貢女) 카세리아느 [28 회] 글쓴이: 썬샤인 2003-01-27 조회/추천: 516 / 2 황태자와의 재회 - 1 자신을 향해서 웃어보이는 성제를 보면서도 황태자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아마도 예감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 사람은 결코 웃어 넘길 이는 아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랬 기에 조금의 충격도 없었고, 놀라움도 없었다. '카세리아느..' 다만 황태자는 카세리아느가 있는 곳만을 열심히 찾고 있었다. 자신에게 사신으로서 왔던 이가 성제이건 아니건, 지금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은 카세 리아느였다. 이성만이 남아있는 차가운 상태에서 오직 카세리아느만을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늦은 시각이 되어서야 '프렌시아궁'을 침입해 들어갔다. 이제 남은 것이라고는 이 넓지도 그렇다고 좁지도 않은 궁에서 카세리아느를 찾아야만 하는 것이었다. 자신의 멈춰져 있는 시간을, 차단되어 있는 시각을 그리고 잃어버린 마음을 되찾아 줄 오직 단 한사람을 위해서 황태자는 프렌시아궁안에서 가만히 서있었다. 살며시 눈을 감고서 미친듯이 그리는 한 사람만을 향해 있는 시선으로 한 곳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황태자의 눈이 다시 살포시 떠졌을 때는, 황태자의 시선은 오직 한 곳만을 향 하고 있었다. 가늘게 깔려진 눈꺼풀속에 가려져 있는 흑청빛의 눈동자가 바라보고 있 는 곳을 향해서 황태자는 조심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대가 나의 인연이라면, 나의 발걸음이 머무는 곳에 그대가 있겠지.' 한 손에는 은빛 롱소드를 들고서 걷고 있는 황태자의 달빛에 비춰 더욱 아름다운 흑청 빛 머리카락이 바람에 드날렸다. 황태자의 조각과도 같은 얼굴과 자태를 다른 사람들 이 보았다면 넋을 잃을 듯도 했지만, 아쉽게도 그 주위에는 그 얼굴을 감상할 줄 모르는 경비병들만이 있을 뿐이었다. "누,누구냐!" 황태자의 존재를 눈치챈 경비병들은 감탄을 내뱉기보다는 두려운 눈동자로 그를 응시 하며 소리치고 있었다. 그 아름다운 침입자에게 경악에 가까운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무의식 중에 창을 들이미는 경비병이었고, 황태자는 그런 경비병을 보면서 싸늘하게 아주 싸늘하게 미소지었다. 그녀에게 가는 길을 방해하는 것들은 용서치 않을 것이다. 황태자의 손에 들려져 있는 은빛 롱소드가 소름끼칠 만큼이나 시리게 보였다. * * * 달빛은 넘실거리며 한 테라스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소녀를 비추었다. 청빛이 도는, 그래서 오늘따라 더욱 시리게 느껴지는 달빛은 카세리아느의 마음과도 같아 보였다. 가까이 하지 못할정도로 시리도록 차갑다. 그것이 지금 카세리아느의 옆에 있는 시녀가 느끼고 있는 감정이었다. 아름다운 사람 인데, 이제껏 보지 못한 놀랄 정도로 아름다운 사람인데 어째서 저런 모습을 하고 있 는 걸까? 마치 여신과도 같은 자태로, 여신과도 같은 아름다움으로, 그 성스러움으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온 사람이 저래서는 안되지 않은가? "이만 주무십시오, 카세리아느님." 하지만 감정은 드러내지 않았다. 불만스러운 모습이든 만족스러운 모습이든, 지금 이 시간에는 잠을 자는 것 만이 중요했다. 너무나 늦은 시각이다. 아무리 밤하늘의 별들 이 아름다워도, 달빛의 자태가 유혹적이어도 이만 그녀가 잠자리에 들기를 바랄뿐이다.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어." 갑작스럽게 카세리아느가 달을 바라보던 몸을 돌려서 시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무척이나 아름다운 미성. 그리고 신비스러운 자태에 시녀는 잠시 넋을 잃었으나, 곧 말을 되새기면서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못 들은것으로 하겠습니다." 성제의 말을 시녀는 거부할 수 없었다. 성제의 말을 어긴다면 자신은, 그리고 자신의 가족은 이 세상의 빛을 더이상 볼 수 없었다. 그렇기에 저 아름다운 이의 말은 못들 은것으로 여겨야 했다. -적어도 오라버니는 당신이 찾으시는 그.가 아니라는 것을 모르셨습니까?- 성녀가 했던 말들이 카세리아느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그 말은 알고 있던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데, 그칠 뿐이었지만 마음속은 그로 인해 더욱 홀가분해 졌다. 자신이 황태자를 떠나온 이유가 완벽하게 무너져 버리게 되어버렸으며 자신이 이곳에 묶여져 있어야 할 이유또한 사라져 버렸으니 말이다. -더 늦기전에 행복을 찾으십시오- 카세리아느는 자신의 차가운 눈으로 시녀를 계속 응시하다가 눈을 감았다. 머릿속에서 계속 그 말만이 지배하듯 차지하고 있었다. 행복을 찾으라고, 더 늦기전에 자신의 행 복을 찾으라고 말했었다. 그 말은 무슨 힘이라도 있는 듯, 카세리아느를 잡고서 놓아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 은 카세리아느로 하여금 행복, 그 사치스러운 것을 손에 넣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자신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이는 한 사람 뿐이었다. 눈을 감으면 보이는 오직 단 한사람. 다른 사람은 감히 생각할 수도 없다. 부모님조차 지금 이 순간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거만하고 오만하며 사랑을 모르던, 검붉은 장미와도 같던 사람. 그리고 자신의 닫혀진 마음을 열수 있는 오직 한 사람. -나중에는 행복이라는 것을 느끼지도 못할 만큼 시간은 당신을 몰아갈테니까요- 행복해질 수 있는 기회가 지금 뿐이라면, 카세리아느는 그 기회를 무슨일이 있더라도 잡아야 했다. 이렇게 무력하게 남아있을 수 없었다. "난 행복을 잡고 싶어." 카세리아느의 꿈결같은 목소리를 시녀는 안들린다는 듯, 무시해 버렸다. 넘어가서는 안된다. 차라리 귀를 막고 있을 지언정, 저 목소리에 끌려서는 안되는 것이다. 마력을 지닌 듯한 카세리아느의 목소리를 차라리 듣고 싶지 않았다. 테라스를 등지고 서서 달빛의 받으면서, 눈을 감고 서있는 카세리아느의 모습은 신비 로운 여신을 자꾸만 연상케 했다. 이제 구원따위는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 차가운 모습이어도 좋았다. 그냥 저 모습을 그저 바라보기만 하여도 행복 할 수 있게 될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으니까. 성제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 성제는 싫다고 말하는 저 여인을 가둬두고라도 그녀가 보여주는 여신의 그림자를 놓치기 싫었던 것이 다. 그리고 지금의 자신도 같은 마음이었다. 여신을, 자신들의 여신을 놓칠수는 없다. "카세리아느님은 언제나 저희들 곁에 계셔 주셔야 합니다." 시녀의 이기적인 말을 들으며, 카세리아느는 단호하게 눈을 떴다. 이들에게 무슨 말로 자신을 놓아달라고 부탁할 수는 없었다. 이들은 자신을 묶어두고서라도 자신을 이곳에 남게 할 인간들이었던 것이다. '말로 통하지 않는다면..' 창백하게 보이는 카세리아느의 새하얀 손이 장신구들로 장식되어 있는 머리쪽으로 다 가갔고, 무언가를 손으로 만져보는 듯 하더니 한번에 머리에서 빼냈다. "카세리아느님?" 카세리아느의 모습에 넋을 잃고 있다가, 카세리아느의 손에 있는 물건이 무엇인지 감 지하자 시녀는 눈을 크게 뜨고서 카세리아느를 불렀다. 검집에서 빼어져 나온 은빛의 단도가 카세리아느의 손에 들려 있었다. "서, 설마 아니시겠죠? 카세리아느님. 그 위험한 것을 내려 놓으세요, 네?" 그 단도는 페리어스가 카세리아느가 준것이었다. 페리어스는 그것을 이런 용도에 사용 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페리어스는 카세리아느에게서 조금이라도 빨리 이 단도를 돌려 받았어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단도의 시퍼런 검날이 카세리아느의 가는 손목으로 옮겨지자 시녀는 당황 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으며 설득하듯이 조용히 속삭이며 다가갔다. 설마하니 정말 저런 위험한 놀이를 하는 것은 아닐거라 믿으며. 자신에게 다가가는 시녀를 놀리기라도 하듯, 카세리아느는 차갑게 응시하다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검날로 자신의 손목을 그었다. "카세리아느님!!!!" 새하얀 피부에서 흘러져 나오는 붉은 액체는 무척이나 아름다워 보였다. 하지만 그것 은 단순히 아름답다고만 하기에는 위험한 향기를 풍기고 있었다. 창백하게 변해가는 카세리아느의 모습을 보면서 시녀는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누군가 있다면, 빨리 이곳으로 와주길 바랄 뿐이었고 시녀는 빠른 속도로 카세리아느 에게 다가가며 자신의 치마를 찢어 상처를 동여매려고 했다. "왜, 왜 그러시는 거에요. 이,이러실 필요까지는 없..잖아요." 깊게 찌른 것은 아닌 듯 했지만, 시녀의 몸은 이미 피를 보았다는 이유만으로 부들부 들 떨리고 있었다. 상처를 동여매는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자신의 상처를 차갑게 응 시하는 카세리아느가 두렵게 보였다. 카세리아느는 그저 자신의 상처를 차갑게 응시하면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있었다. 자신의 가는 손목에 베어진 상처에서 흘러져 나오는 피가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양. "아,아프시지도 않..으.세요?" 두려움에 떨리는 시비의 목소리도 카세리아느에게는 들리지 않는 것일 뿐이었다. 아프 지 않다. 이따위 아픔따위는, 그를 보지 못한다는 것이 자신에게는 더욱 큰 아픔이라면 아픔일 것이다. 카세리아느는 자신의 손목에서 흘러져 내리던 피를 바라보던 눈동자를 다시 달로 옮겼 다. 그리고 여전히 차갑게만 보이는 달을 바라보면서 시선을 강하게 고정시켰다. 신이 있다면. 자신을 이렇게나 몰아간 현실에서 벗어나게 해주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쾅! 아픔도 느끼지 못하는 듯한 카세리아느의 차가운 시선은, 크게 소리가 나며 열리는 문쪽을 향하며 굳어져 있었다.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하는 지 조차, 머릿속에서는 아무런 명령도 내려주지 않았다. . . . "당신은 누구인데, 이곳에 들어온거죠?"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서있는 카세리아느를 바라보고서, 다시 문앞에 서있는 한 사람을 바라보고서 시녀는 날카롭게 소리쳤다. 이곳에 들어 올 수 있는 사람은 성제 혹은 그의 측근밖에는 없는 데 저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 한손은 문에 대고서, 다른 한손에는 은빛 롱소드를 손에 쥐고 서있는 흑청빛의 머리카 락이 인상적인 저 사람은, 분명 성제의 측근은 아닌 듯 보였다. 시녀가 알기로는 성제 또한 저런 매혹적인 자태는 지니지 못했고, 그의 측근조차 저런 절대적인 압도감은 주 지 못했었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였다. 카세리아느를 데리고 가려는 침입자. "경,경비병을 부르겠어요! 좋은 말로 할때, 나가주세요!!" 시녀는 황태자를 향해서 그렇게 소리쳤고, 황태자는 그런 시녀에게는 아랑곳없이 당당 하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살짝 깔려있는 눈동자가 계속 소리를 지르는 시녀를 향 해있었고, 그것에는 살기마저 느껴졌다. "꺄아아악!!" 그리고 누군가의 도움을 바라며, 계속해서 소리치던 시녀의 목소리는 비명으로 이어졌 다. 숨막힐 듯한 살기, 제대로 서있을 수조차 없을 정도의 두려움. 시녀는 몸을 부들 부들떨며 자신의 팔을 거칠게 잡고서 살며시 입을 여는 황태자를 바라보았다. "죽음을 원한다면, 그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매혹적이어서 빠져들듯한 목소리. 그러나 그것은 자신을 타락으로 인도하는 목소리였 다. 소름끼칠정도로 잔인하다. 황태자의 웃고 있는 모습에서 오히려 두려움을 느끼고, 살며시 자신의 목으로 올라오는 은빛 롱소드를 보면서 창백하게 질려버렸다. 자신의 목에 닿아있는 소름끼친 물체를 느꼈으나, 너무 압도적인 두려움에 아무런 말 도 할 수 없었던 시녀였다. 하지만 곧 그 소름끼친 물체는 자신의 목 주위에서 사라 졌다. 황태자에게는 자신의 앞에 바로 자신이 원하는 사람이 있는 데, 다른 것을 위해 서 낭비할 시간 따위는 없었으니까. "꺼져라." 황태자는 시선을 시녀에게서 저 테라스에서 아련한 자태로 서있는 카세리아느에게로 옮기며 그렇게 말했고, 시녀는 이를 놓칠새라 재빨리 도망쳤다. 카세리아느의 시선도 오직 황태자를 향하고 있었고 둘은 그저 아무런 말도 없이 그렇게 응시하고 있었다. 말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렇기에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황태자는 애틋하게 미소지으며, 자신을 향해 굳어있는 카세리아느를 향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보고 싶었다. 너무나 보고싶어서, 자신의 시간이 멈추고, 시각이 차단되어 버 릴 만큼. 오직 자신의 눈앞에 있는 사람만을 마음속으로, 눈동자로 그리고 있었다. 카세리아느는 황태자쪽을 응시하고는 있었지만, 그를 향한 시선은 차갑기만 했다. 저것은 환상이다. 자신이 피를 흘려서, 그래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환상이라고, 거짓이라고 치부해 버렸던 것이었지만, "카세리아느." 그 한마디에 그것은 진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신의 닫아두었던 마음이 한 순간에 열려 버렸다. 자신앞에 서있는 저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이렇게나 저려오게 만드는 저 사람은 환상 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던 그 사람이다. 저 앞에 있는 저 사람이 그.가 아니어도 좋다. 자신의 심장이, 자신의 마음이 오직 저 사람만을 향해 있는데 다른 것이 무슨 상관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와의 약속을 저버리고서라도 자신의 행복을 잡고 싶다. 그렇게 처절할 정도로 미치도록 갈망한다. 카세리아느의 시리도록 차갑게만 느껴지던 눈동자가 살며시 부풀어 올라, 단 하나의 빛의 구슬을 토해내었다. 늘 차갑고 도도하기만 한 카세리아느의 모습이 무척이나 가 녀리게만 느껴졌고 황태자는 그런 카세리아느를 향해서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도망친 그대를 다시 찾기 위해서 찾아온 내가 원망스울지도 모르겠지." 어느새 카세리아느의 앞에 서서 황태자는 카세리아느를 바라보면서 미소지었다. 늘 보 아왔던 매혹적인 미소였으나, 그 미소에 이상하게 가슴이 저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황 태자를 보면서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가 원망스러운 것이 아니라고, 그렇다고 말해주어야 하는 데, 가슴만이 저리게 아플 뿐 이상하게도 무엇이라 말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말했었나? 난 그대가 싫다고 해도 그대를 놓아줄 마음이 없다. 이제 그대가 없으면, 난 살수 없거든." 아무런 대답이 없는 카세리아느였지만, 그런 것에는 상관없다는 듯 황태자는 말을 이 으며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황태자의 시선은 어느새 밑으로 내려와 붉은 피가 흐르는 손목에 가있었다. 엉성하게 무언가 그 피를 막으려는 듯이 동여매려고 한 흔적이 있지 만, 여전히 그 손목에서는 피가 흘러 내리고 있었다. 그렇게 깊은 상처는 아닌 모양인지 다량의 피는 흘러내리고 있지 않았지만, 혈션을 중 심으로 피는 조금씩 흘러내리고 있었다. 황태자는 그 상처를 바라보다가 카세리아느의 다른 손에 쥐어진 단도를 보고서 다시 더 짙게 미소지었다. 황태자는 갑작스럽게 피가 흐르는 카세리아느의 손목을 자신의 손으로 쥐어잡고는 들 어 올려 살짝 입맞추었다. 그리고는 조금씩 흘러내리는 피를 핥았다. 상처를 핥아내리는 황태자때문에 아까까지 없던 아픔이, 따끔거리듯 느껴졌지만 카세리아느는 자신의 입술을 살짝 내리 누르며 고통을 참았다. 혈선을 따라 피를 핥아 내리던 황태자는 갑자기 고개를 들고서, 카세리아느를 바라보 다가 무엇이라 말한다음 쥐어 잡았던 카세리아느의 손목을 강하게 당기며 카세리아느 를 자신의 품에 안기게 만들고서 거칠게 입 맞추었다. "다시는 그대를 놓지 않아." * * * . 톡…톡…톡… 물방울이 위에서부터 추락해와 밑바닥의 고요했던 물의 표면을 일깨웠다. 이때까지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던 물의 표면이 경쾌한 소리를 내며 물방울들로 인해 원을 그리며 조용히 번져 나갔다. 토도독… 마치 반항이라도 하듯. 이 바닥아래에 고여 있는 자신의 신세가 싫다는 듯. 어둠이 싫고 미쳐버릴 듯한 조용함이 변화 없는 지금이 싫다는 듯. 토독…토독… 밑바닥에 존재하던 물은 위에서 떨어져 내려오는 그 이질적인 물질들을 받아 들이며 중심에서 시작하여 저 끝까지 번져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어둠 속에서 간간히 빛을 내며 떨어지는 그 물방울들을 계속해서 받아 들이던 물이었지만 곧 비명을 지르며 그 물방울을 거부하듯 아스라이 떨었다. 붉다. 잔혹할 정도로 그 물방울들은 짙은 붉음을 머금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붉은 물방울들은 아주 작은 소량이었음에도 자신들마저도 붉게 물들 이기 위하여 조금씩 번져나가고 있었다. 약간의 비릿한 향도 머금으면서 어둠 속에 존재하던 자신들을 썩어가게 만들었다. 파아앗. "우욱. 싫다~! 아직도 그런 악질적인 장난을 그만두지 못했어?!" 어둡던 방안에 빛은 약간의 효과음과 어느 한 소녀의 목소리와 함께 등장했고, 그런 빛의 존재에 어둠은 자신들의 존재를 황급히 작은 곳으로 감추어 버렸다. 빛과 어둠은 결코 공존(共存)할 수 없었으니까. 그런 너무나 환하기만 한 빛에 거부감이라도 이는 모양인지 이제껏 어둠 속에 서 있었던 걸로 보이는 한 소년은 눈살을 찌푸리며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 를 돌렸다 "마샤님, 안녕하셨습니까." 곧 그 존재가 누군지 확인하자 소년은 자신이 하고 있던 행동을 멈추고, 벌떡 일어나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그런 소년을 바라보며 녹색 머리카락의 마샤라 라고 불린 소녀는 방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보면 몰라? 나야 물론 잘~지냈지. 그런데 유즈 너는 그렇게 못 지낸 거 같아 보이네? 또 이.런.짓. 을 하고 있었던 걸 보면 말이야." 마샤의 유난히 강조하는 말에 유즈는 시선을 살짝 옆으로 옮기며 손을 뒤로 움 직였고, 마샤의 푸른색 눈동자는 유즈가 서있는 뒤쪽의 물체를 바라보며 살며시 웃고 있었다. 마샤는 다시 시선을 옮겨 유즈를 바라보면서 여전히 웃으며 자신의 손을 내밀 며 상큼하게 말했다. "유즈, 손!" 방긋 웃으며 말하는 마샤의 말에 유즈는 약간 어벙한 눈동자로 마샤를 바라보 며 의문을 표했지만, 마샤는 계속해서 자신의 손만 유즈에게 가져가며 흔들어 보이고 있었다. 어서 잡지 않고 뭐하냐는 책망어린 눈길로 자신을 바라보는 마샤를 유즈는 살 짝 인상을 찌푸리며 바라보다가 곧 체념한 듯, 마샤의 새하얀 장갑을 끼고 있는 손위에 자신의 손을 올려다 놓았다. 새하얗고 가는 유즈의 손가락에 묻어져 있는 붉은 선혈을 눈치 채지 못할 마샤 는 아니었고, 오히려 그 선혈을 바라보면서 더욱 방긋 미소 짓고 있었다. 예상했었으니 놀랄 일도 아니었다. 유즈의 뒤에 있는 저 물체를 보았다면. 그리고는 자신의 시선을 피하고 있는 유즈의 은빛 머리카락을 다른 한손으로 힘차게 쓰다듬으며 마샤는 입을 열었다. "호호호호! 잘했어~" 그저 슬쩍 지나쳐 보아도 유즈보다는 마샤가 훨씬 어려 보였기에, 지금 이상황 은 무척이나 황당하기 그지없어 보였다. 이제 13살 정도로만 보이는 마샤가 18 되어 보이는 유즈를 자신의 아이 다루듯 하는 모습은. 마샤의 손길이 무척이나 거북스러운 유즈였지만 감히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었 다. 감히 건들 수 없는 위치의 있는 마족이 마샤였으니까. 계열이 존재하고, 힘이 생존을 가능케 하는 이 마계(魔界)에서 이 소녀를 무시 할 수 있을 정도의 마족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은 자신 앞에 있는 이 작은 소녀를 무시할만한 마족은 아니었다. 마샤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유즈가 귀엽다는 듯 힘차게 부드럽기만 한 은빛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다가 계속 입가의 미소를 거두지 않으면서 입을 열었다. "정말 말을 잘 듣는다니까? 이렇게 내 말을 잘 들으면서 왜 자꾸 내가 하지 말 라는 짓은 계속 하는 거야, 응? 난 정말 이런 거 싫어한다는 거 알.잖.아." 깜찍하기만 한 얼굴에 걸쳐져 있는 그 웃음은 무척이나 귀엽기만 했지만, 그런 모습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소름끼칠 만큼 싸늘했다. 얼굴과 목소리가 전혀 매치가 되지 않는다. "다음부터는 마샤님 앞에서 이런 모습 보이지 않겠습니다." "헤에? 그 말은 나 없는 곳에서는 하겠다는 거야?" 마샤가 살짝 비꼬듯 반문해오자, 유즈는 그저 시선을 떨구며 입을 봉해 버렸다. 침묵은 긍정의 줄임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마샤는 그런 유즈를 강하게 바 라보았다. "아무 말이 없는 걸 보니, 그러겠다는 거 같은데 알고 있지? 유즈 같은 마족 때 문에 우리 마족들이 피를 즐기는 변태라는 말을 듣는 거라는 거 말이야! 소수의 변태 마족들 때문에 왜 우아한 나까지 변태라는 소리를 듣는 것은 정말 잘못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아?" 마샤는 아니꼽다는 듯이 그렇게 눈살을 찌푸리며 소리치다가, 가슴이 아프다는듯한 모습으로 유즈의 손을 잡고 있던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쥐어 잡았다. "변태라는 말도 싫지만 저쪽에 있는 불쌍한 비둘기한테도 정말 안 된 일이잖아. 난 정말 생물이라는 것들을 사랑한단 말이야. 그래서 너무 유즈가 한 행동 때문에 슬퍼." 유즈의 뒤쪽에 보이는 피를 흘리고 있는 비둘기를 슬프다는 듯 바라보면서 눈 물을 글썽이듯 말하는 마샤였다. 하지만 유즈는 그 말에 그것은 긍정이노라고 답해주지 않았다. 저 순진하게 보이는 어린 얼굴에 다른 마족은 그 말을 믿을지도 몰랐다. 아방하 게도 보이는 저 모습에 다른 마족들은 속아 넘어 갈지도 모르지만 그녀를 잘알 고 있는 소수의 마족들은 잘 알고 있었다. 마샤는 자신보다 더 잔인하면 잔인하였지, 고작 저. 딴. 생. 물. 에게 불쌍하다 는 감정도 사랑이란 감정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을. 아무 말도 없이 계속해서 있는 유즈를 고개를 들어올려 바라보다가, 다시 피를 흘리는 비둘기를, 피가 묻어있는 유즈의 손을 바라보면서 마샤는 차갑게 조용히 중얼거리듯 말했다. "사실대로 말해. 무엇 때문이야?" 유즈로 하여금 이런 모습을 또다시 만들어 버리게 만든 이유. 그렇기에 자신이 유즈를 안아서 가지고 놀지 못하고 이렇게 어정쩡한 상태로 있어야 하는 이유. 마샤의 말에 유즈의 은색 눈동자가 불안정하게 흔들리기 시작했고, 입술은 무엇 때문인지는 알 수 없어도 파리하게 질려 버리며 힘겹게 열렸다. "관찰자가 알려왔습니다. 그녀가…그녀가 지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은색 눈동자가 가득 차버린 그리움에 계속해서 흔들리고만 있었다. 그런 유즈의 말을 들으며 그제야 이해가 간다는 듯, 유즈의 뒤에 놓여져 있는 새하얀 테이블위에서 싸늘하게 식어있는 피에 젖은 비둘기를 쳐다보며 피식 미소 짓는 마샤였다. 그녀가 그것이 이유였다. 이제야 다시 나타난 그녀의존재가 말이다. 그녀가 나타났다는 말에 놀람보다는 웃음이 앞섰다. "기억은 전부 하고 있다고 그래?" 유즈는 웃으며 말하고 있는 마샤를 바라보며 멈칫 하면서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 기억은 전부 다 깨어나고 있지 않다고 들었으니까. "다른 기억은 아직 묻혀 있고, 오직 그. 에 대한 기억만 깨어난 모양입니다." "다행이네? 그것밖에 기억하지 못해서 말이야. 호호홋! 그나저나 예전에도 무척 아름다웠으니까 이번에도 아름답겠지?" 엉뚱하게 빠져버리는 마샤의 말을 들으면서 유즈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마샤는 머가 그렇게 놀라냐는 듯 계속 말을 이었다. "알고 있지? 나 요즘 미소녀들 수집하잖아. 호호홋! 그녀정도라면 내 최고의 걸 작품이 되는 거야!" "마샤님!" 걱정스런 눈길로 자신을 쳐다보는 유즈를 바라보면서 마샤는 깜찍하게 미소지 으며 발길을 문 쪽으로 돌렸다. 그리고 유즈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소리차자 문에다 손을 대고서 고개만 살짝 돌린 채 입을 열었다. "내가 누구지, 유즈?" 어린 외모에 어울리지 않는 위압감을 내보이는 마샤의 모습에, 냉소적으로 흘러 나오는 얼음 같은 말들을 들으며 유즈는 살짝 눈동자를 굳히면서, 자신의 약간 창백한 입술을 천천히 움직였다. "마그네샤 올리즈 드 레피아 유라비아 펠 네엘르다............베르리오즈 아즈피 라아비아 시미즈 케디오스님이십니다." 끝없이 나열된 그 이름들은 마샤의 존재를 알게 하기에는 조금의 모자람도 없었다. 성으로 케디오스라는 이것을 쓸 수 있으며, 그다지도 긴 이름을 소유한 사람은 이 마계에서는 소수뿐이었으니까. "그래, 알면 됐어." 자신의 이름을 들으면서 마샤는 순진한 듯 보이게 미소 지으면서 짤막히 말하고는 손을 흔들며 뒤돌아서서 계속 걸어갔다. 그 손짓이 왠지 모르게 너무나 불안감을 형 성했고, 유즈는 가빠오는 가슴을 느끼며 힘껏 눈을 내리 감았다. * * * 테라스에서 서있는 두 명을 비춰주는 은은한 달빛은 더 이상 차가움을 머물고 있지는 않았다. 달빛이 조각조각 부서져 내려 수많은 가루로 흩어져 바람에 휩쓸려 그 둘 주위 만을 맴돌고 있는 듯 보였다. “후훗, 정말 기막힌 일이야.” 황태자의 얼굴이 카세리아느에게서 떨어져 나가며 붉은 입술은 한마디만을 토해냈다. “그대가 없으면 나란 존재가 무디게 되어 버린다는 것은.” 계속해서 말을 잇는 황태자의 목소리를 들으며 카세리아느의 푸른색 눈동자는 황태자 의 흑청 빛의 눈동자로 향해 있었다. 조금이라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눈동자에 보고 싶었던 이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더 담아 두고 싶었다. 아무런 말도 없이 그렇게 황태자의 모습만을 찾아 다녔다. 황태자의 차가운 손길이 대답 없이 굳어 있는 카세리아느의 얼굴 쪽으로 올라와 살며 시 어루만져 주었다. 이다지도 보고 싶었던 사람이 아닌가. 자신의 심장을 가져가고 눈동자를 멀게 만들었던, 미치도록 그리워했던 사람이 아닌가. 계속해서 카세리아느의 얼굴을 바라보던 황태자의 입은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나 서야 또다시 열렸다.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한마디를 내뱉기 위해서. “정말 보고 싶었다.” 그 검은 머리카락도 긴 속눈썹도, 나의 마음을 가져가 버린 푸른색 눈동자도, 소유욕을 일으키는 그 붉은 입술도 모든 것이 보고 싶었다. 나의 것. 나만의 것이라 생각했었기 에 그것이 사라질 것이라고는 조금도 생각해 본적이 없었기에 그만큼 더 그리웠다. -지금 잡을 처절할 정도의 행복이 잔인할 정도의 아픔을 동반한다는 것. 그것만을 알아 두세요.- 갑작스레 머릿속을 아련하게 울려오는 성녀의 말과 같이 섞여 들려오는 황태자의 말에 카세리아느의 눈동자는 평형을 잃고서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성녀의 그런 말이 결국 황 태자의 말을 뒤엎고 혼돈속으로 밀어 넣었다. 카세리아느는 싫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다가 눈을 꼬옥 감아 버렸다. 지금은 그런 말따위 생각하기 싫다.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카세리아느의 눈동자가 황태자에게는 자신의 보고 싶어 했다는 말의 거부의 의미로 보였던 모양이다. 황태자는 카세리아느의 턱을 강하게 자신 쪽으로 들어 올렸다. “이것을 알아둬.” 갑작스레 턱이 올려지자 카세리아느는 두려운 듯 내리 감았던 눈동자를 떠 황태자 쪽 으로 들어 올렸다. 카세리아느가 자신을 바라보는 듯하자 황태자는 카세리아느의 턱에 올려져 있던 자신의 손을 내리며 비웃듯 입을 열었다. “나를 피할 것이었다면 처음부터 그대가 나에게 오는 것을 거부했어야 했었단 걸.” 황태자는 두려운 듯 흔들리는 카세리아느의 불안정한 눈동자를 계속해서 응시하며 계 속 말을 이었다.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자신을 원하지 않는다고 해도, 자신을 무척이나 싫어한다고 해도. 그녀 없이는 자신이 살 수 없을 것 같으니까. 그녀가 원하지 않는다고 하여도 상관없다. “그대가 나에게서 도망칠 정도로 싫어해도 이미 너무 늦었어. 난 그대를 묶어서라도 날 떠나는 모습을 보지 않을 거야.“ 카세리아느의 눈동자가 아련히 떨리고, 그 붉은 입술도 무엇을 말할 듯이 웅얼거렸다. 하지만 말할 듯 보였던 카세리아느의 입은 갑작스럽게 싸늘하게 스치는 바람의 존재에 의해서 묻혀 버렸다. 몇 번이고 수천 번이고 말해주고 싶다. 난 이제 당신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언제나 당신 곁에만 머물러 있겠노라고. 자신의 손목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아프게 힘주어 잡고 있는 황태자에게 몇 번이라도 그렇게 말해 주어서 안심시켜 주고 싶었다. 하지만 말할 수 없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한다면, 그대는 나에게서 떠나가 버릴 테니까.’ 황태자라면 분명 자신이 황태자 자신에게 빠져든 것을 안다면 자신에게서 떠나가 버릴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카세리아느는 그 말을 그저 마음속에 묻어 버렸다. 아직은 말할 수 없다. 행복을 잡기 위해서 말할 수 없다. “황태자 전하.” “론이라고 불러. 그대에게 그런 호칭을 듣고 싶진 않아.” 카세리아느의 말에 황태자는 차갑게 대답했다. 황태자라는 호칭이 왠지 모르게 타인을 가져다 대고 이야기 하는 것 같아 무척이나 기 분이 좋지 않다. “허무하군. 난 그대 없이는 살 수 없을 정도인데 그대는 이렇게나 멀쩡하다는 것이 말 이야.” 보지 못했는가 보다. 황태자는 처음 자신을 바라보았을 때 카세리아느의 눈동자에 매달려 있던 아픔의 조각 을. 오지 그에 대한 그리움으로 매달렸던 슬픔의 결정체를. 황태자는 달을 향해가는 옅은 구름들의 무리를 바라보며 자신도 모르는 새 잡고 있던 카세리아느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나 혼자만이 목을 매어도 좋아. 다른 이유는 필요 없어.” 피가 흘러내리는 손목의 아픔도 이제는 희미해져 간다. 황태자의 한마디가 자신의 마음속을 깊이 파고 들어가 지워지지 않을 정도로 새겨져 버렸다. “내가 그대를 미치도록 원하니까.” 다른 이유가 무엇 필요하겠는가. 그녀가 원하지 않아도 자신이 미치도록 원하는데 다른 이유따위는 필요 없었다. 그녀가 자신을 원하지 않는 만큼 자신이 그만큼 그녀를 그리워하며 원한다면 그걸로 만족한다. 이제 돌아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원래 머물러 있어야 했던 그곳, 아텔린을 향해서 말이다. =================================================================== 분명..이것은..70몇회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28회라니..-_-.. ...언제나 행복하시길... 제 목: 공녀(貢女) 카세리아느 [29 회] 글쓴이: 썬샤인 2003-01-27 조회/추천: 498 / 1 잔혹하게 부서져 내리는 달의 환영 - 1 . 두터워 보이는 옅은 날개들이 달을 덮고 빛을 가렸다. 그리고 검은 벨벳 같던 하늘은 옅은 절망적인 짙은 회색의 빛이 되어버리고 별빛마저 감추어 버렸으며, 이러한 현상을 슬퍼하는 달의 눈물을 천상에서 지상으로 조금씩 떨 어져 내리게 만들었다. 볓빛보다 더욱 은은한 빛을 머금으며 떨어지는 달의 눈물들이 무척이나 포근하게 여린 이들의 어깨로 떨어져 내려와 달을 애도하게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시리도록 아름다 운 달의 눈물들이 주위를 시원할 정도로 차갑게 했다. 달의 눈물들은 모여 땅을 헤집고 들어가 웅덩이를 만들고 그 웅덩이는 거울이 되어 사 람들의 모습마저도 비춰 주었다. 그런 거울들에 비춰 보이는 두 사람의 바쁘게 움직이 던 발걸음은 누군가에 의해서 멈추어 졌다. "그 걸음 멈추시죠." 상큼하기만 한 목소리. 빛이 비춰지지 않는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순백의 의관. 차가 운 공기와 따스한 공기가 마주쳐 나타난 아련한 하얀 연기들을 입가에서 뿜어내며 달 의 눈물을 받으며 서있는 사람. 푸르스름한 입술이 꽤나 오랜 시간을 이곳에 서있었음 을 알려주었다.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안타깝다면 그런 그를 더욱 알기 쉽게 해주 던 백금발의 존재가 빛이 사라진 밤에 묻 혀 버린 것이 안타깝기만 했다. 페리어스. 이 레이닌 왕국의 성제이며 또한 레이니아 여신을 섬기는 자. “죽음을 원한다면.” 짧게 말하는 매혹적인 목소리 톤을 지닌 한 사람이 페리어스의 말에 대답해 주었다. 뒤의 말은 차마 다 말하지 않아도 페리어스라면 그 사람의 말의 의미를 알아 들었을 것이다. 발걸음이 멈춰지는 그때는 자신은 이 세상에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저 상쾌하지 만은 않은 말의 의미를. 죽고 싶다면 발걸음을 멈추어 주겠다고 말하고 있는 말의 의미를 모를 리 없었다. 그렇게나 죽음을 원한다면 멈춰 주겠다. 페리어스는 그 말에 아무런 말도 없이 그 매혹적인 목소리의 주인공만을 진지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짧은 백금 발에 아스라이 맺혀있는 달의 눈물의 결정체들이 새하 얀 의복에게로 떨어져 내렸다. 저벅저벅 그리고 그 매혹적인 자태를 지닌 아텔린의 황태자라는 지위를 지닌 흑청발의 소년은 흑발의 소녀를 데리고 발걸음을 옮겼다. 당연하다는 듯이. 원래 자신의 것을 가지고 가는 주인의 모습으로. 그러한 모습으로 자신이 빼앗아 온 것을 가져가고 있었다. 조심스러운 발걸음. 당당하기만 한 그의 발걸음. 발걸음이 옮겨질 때마다 조금씩 파여지는 발자국들이 성스러운 여신이 머물렀음의 증거가 되고 빗방울들은 그 움푹 팬 자리를 가득 매어 조심스럽게 감싸 안았다. 자신에게서 떠나려는 여신의 발자국을 페리어스는 아무 말도 없이 응시하고 있었다. 무엇이 여신의 발걸음은 되돌린 걸까?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도망치듯 벗어난 그곳으로 되돌아 가게 만든 것일까. 자신의 옆에만 머물러 있어야 할 여신이 떠나야 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아니 이유를 안다고 해도 놓아줄 생각따위는 처음부터 없었다. “저는 당신들이 도망치려는 이곳, 이 나라의 주인입니다.” 자신이 원하던 여신이 다른 이의 손을 잡고서 자신의 앞을 지나쳐 가고, 눈동자하나 깜빡이지 않던 페리어스의 파리하게 식은 입술은 떼어졌다. 바로 눈앞에서 도망치도록 두고 보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녀를 데리고 나온 그 순간부터, 여신의 그림자를 발견한 그 순간부터. 그녀는, 여신은 자신의 마음속에 머물렀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렇기에 절대 놓아줄 수 없다. 저벅저벅 페리어스의 싸늘하게 울렸던 말을 비웃듯 황태자의 발걸음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계속해서 움직였다. 어둑해진 주위가 달의 울음에 소름끼칠 만큼 조용했다. 조금씩 흔들리는 나무들의 움직임도 약간은 푸르스름하게 빛나는 대리석의 바닥도. 그들의 움직임에, 달의 서러운 눈물에 입을 다물고 있었다. “제가 이대로 당신들을 보내줄 것이라 생각한건가요.” 오직 페리어스만이 싸늘하게 말하고 있었다. 차가운 빗물이 그를 창백하게 식어가게 만들어도 그의 눈동자에 잔뜩 드리워진 그의 열정만은 식어버리게 하지 못했다. 차갑게 젖어 있는 몸을 떨게 만드는 차가운 의관조차, 지금 자신에게서 등을 돌리고 떠나려는 여신의 존재조차 자신에게서 자신의 정열을 가져가지 못한다. 저벅저벅 빠르지도 그렇다고 해서 느리지도 않은 황태자와 카세리아느의 발걸음. 페리어스의 말은 전부 빗물에 잔뜩 녹아 들어가 그들의 귀에는 근처에도 가지 못했는 가 보다. 그럴리 없을 텐데도. 오히려 비라는 것이 그 목소리를 더 잘들리게 해주는 역할을 해줄 텐데도. 그들은 소리가 달의 울음에 묻혀 버렸다는 듯,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걸어가고 있었다. “제 손안에 있었던 그 완벽한 여신을 제가 쉽사리 놓아 줄 것이라는 어마어마한 착각 은 하지 말아 주세요.” 자신의 손에서 떠나가는 여신을 놓아줄 것이라는 착각은 하지 말아주길 바랬다. 조금 은 저 어린 오만하기만 한 황태자가 그렇게 생각해 주길 바랬다. 페리어스의 금색 눈 동자가 바라보고 있는 움푹 팬 발자국은 어느새 빗물로 가득 차 넘치고 있었다. 마치 아텔린처럼. 달이 차면 기울고 물은 너무 많이 고여 있으면 넘치는 법이다. 그 고약한 악취를 동반하며. 저 차기 군주가 될 황태자도 그 사실을 알아주길 바란다. 그래야 자신은 조금이나마 이 행동에 명분을 세울 수 있었을 테니까. 탁 황태자와 카세리아느의 발걸음이 약속이나 한 듯 그 자리에 멈춰 버렸다. 달이 갑작스럽게 더욱 서럽게 울고 있다. 그리고 검기만한 옅은 날개들은 완전히 달을 가려 완벽하게 빛을 차단했다. 너무나 차가운 달의 눈물들이 시야를 가리고 앞을 흐릿하게 만들었다. 짙게 깔려진 어둠 속에서 그림자들은 자리를 들고 일어나 고요한 적막을 내리누르고 몸을 움직였다. 그들에게서 등을 돌리고 있는 페리어스의 푸르게 변해버린 입술이 조금씩 움직였다. “죄송하지만 저는 그럴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제 손에 들어오지 못할 것이라면 없어지는 것이 낫습니다.“ 살며시 올라간 페리어스의 입 꼬리가 괴기스럽다. 가늘게 뜨여진 페리어스의 눈모양도 그다지 보기 좋지만은 않다. 놓칠 생각도 없지만 붙잡을 생각또한 처음부터 없었다. 차가운 빗방울은 쉴 새 없이 어깨를 무겁게 만들고, 짙은 어둠에 더욱 활기를 찾은 모양 인지 살기는 더욱 깊게 자리 잡아 왠지 모르게 기분을 싸하게 만들어 주었다. 침묵속의 어둠보다, 살기에 넘치는 어둠은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그 어둠 속에서 자리 를 틀고 일어서는 그림자들의 존재조차도 무시하며 넘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이 점점 자신들을 압박해오기에 살며시 고개를 들고 차갑게 그들을 비웃어 주었다. 구슬프게 들려오는 달의 노래를 감히 너희들 따위가 방해 하냐는 듯한 피해자 의 눈동자로. "절 원망하지 말아주세요. 그리고 걱정 마세요. 대 제국의 황태자인 당신에게는 손끝 하나 대지 않을 테니까요. 후훗." 싸한 빗방울이 이제야 버겁게 느껴졌는지, 페리어스의 어깨는 살며시 흐느끼듯 떨 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떨리는 어깨와 파리한 입술과는 상관없이 페리어스의 말 은 여유로움이 잔뜩 묻어 나오고 있었다. 이유 없이 흘러나오는 페리어스의 자조적인 웃음은 살짝 떨려오는 듯도 했지만. 어쨌든 페리어스는 그것이랑은 상관없다는 듯, 등을 뒤돌아 자신을 떠나려던 두 사람에게로 말 을 이었다. "그들이 노려보고, 죽이려 하는 것은 다름 아닌 당신의 손을 잡고 있는, 그들을 배신하 고 떠나려는 여신이니까요." 페리어스의 말에 가녀린 카세리아느의 손을 잡고 있는 황태자의 손에 힘이 가득 들어 갔다. 쉽게 놓아 줄 수 없다. 힘들게 손안에 넣은 만큼, 절대로 놓아 줄 수 없다. 이 손을 놓는다면 자신은 또 멍청하게 남아 있어야 하기에, 자신이 아닌 상태로 남아 있어야 함을 알기에, 그녀를 너무나 필요로 하기에 놓아 줄 생각은 없었다. 확고한 의지. 그녀를 놓지 않겠다는 듯한 확고한 의지를 담은 눈동자로 정작 페리어스가 아닌 자신 들을 덮쳐 오려는 정면을 응시했다. 검은 인영들이, 빛에 속하지 못한 어둠의 그림자들이 바라보는 눈동자에 이성이라는 것은 조금도 담겨 있지 않다. 오로지 배. 신. 이라는 잔혹한 단어만이 그들을 움직이게 만들고 있었다. 먼발치에서 보았던 환상속의 여신. 꿈꿔왔던 환상을 현실로 만들어 줄 여신의 등장에 기뻐했던 만큼, 배신이라는 이름이 가져오는 무게는 큰 법이다. 그리고 그것의 대가는. 그들은 배신의 대가로 피를 요구했다. 우리에게 돌아와 줄 수 없는 것이라면 떠날 수조차 없도록. 챙! 그다지 좋지 않게 들려오는 금속의 마찰음이 날카롭게 카세리아느와 황태자의 귓가에 확실히 들어왔다. 빛이 없는 어둠 속이지만, 그 날카로운 예기에 소름이 돋아옴을 느 낄 수 있었다. 굳이 보지 않아도 그 날카로운 금속은 자신에게서 피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데 는 시간이란 필요하지 않았다. 카세리아느를 향한 검은 그림자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는 것을, 그 시선에서 살기가 묻어 나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내가 어떤 존재인지 안다면, 이것이 얼마나 헛된 짓인지는 알 수 있을 텐데? 당신이 그렇게 어리석은 사람이었나, 성제?" 날카롭게 빛나는 검을 들고 서있는 대충 열은 넘어 보이는 인영들을 바라보며, 황태자 는 비웃듯 입을 말했다. 대 아텔린 제국의 황태자를 기만하려는 셈이 아니라면 무모 한 짓은 그만두라는 경고 어린 물음. "후훗, 당신이라는 사람이 고작 여자 하나 때문에 위험한 모험을 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러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기에 있는 저 여신은 죽고, 당신은 처. 음. 부. 터.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처럼 떠나면 되는 겁니다." 황태자의 물음에 페리어스는 뒤를 돌며 웃으며 입을 열었다. 없었던 것처럼, 처음부터 저 카세리아느라는 여자는 없었던 것처럼 돌아가라고 말하고 있었다. 카세리아느의 눈동자는 이상할 정도로 고요하기에,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할 수도 없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도 생길 정도다.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들을 앞에 두고서도 이렇게 나 멀쩡할 수 있다는 것이 경이롭기 까지 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저렇게나 카세리아느는 침착하기만 한 것인지에 대해서가 더 궁금 했다. 황태자는 입가에 비웃음만을 머금으며 살짝 입을 열었다. "그것이 가능했다면 지금 이곳에 와있지도 않을 것이다." "그거 다행이군요." 황태자의 말에 페리어스는 더욱 반갑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다가, 천천히 눈을 가 늘게 내리 깔았다. 그리고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가능하도록 만들면 쉬운 일일 테니까요. 오히려 저한테 고맙게 생 각해야 겠는데요? 여자에게 연연하지 않게 도와준 셈이니 말입니다. 그러니 이제 그 여신에게서 떨어져 주시죠. 그래야 어서 일이 끝나지 않겠습니까." 페리어스의 웃는 얼굴로 말하는 말속에 담긴 섬뜻함에 황태자는 눈썹을 찌푸렸다. "결국 해보자는 건가?" 황태자의 살기어린 말에 페리어스는 발걸음을 살짝 뒤로 옮기며 고개를 들어 올리며, 상큼하게 입을 열었다. "원하신다면." 페리어스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황태자는 잡고 있던 카세리아느의 손을 끌어 자신의 등 뒤로 오게 만들었다. 그리고 롱소드를 잡아들며 카세리아느의 목숨을 노리며 다가 오는 검은 인영들에게로 들어 세웠다. 카세리아느는 황급히 황태자의 등 뒤로 숨겨지자,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입을 움직였으나 황태자의 말을 듣고서 고요했던 자신의 눈동자를 숨겨 버렸다. 서로 맞닿아 있는 등의 따스함이 무척이나 좋다. "나 이외에 누구도 그대를 상처 입힐 수 없다." 아마도 이래서 자신은, 그랬기에 카세리아느의 눈동자는 아무렇지도 않은 침착함을 유 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것이 카세리아느의 눈동자가 고요함을 간직하고 있던 이유일 것이다. 누군가를 강하게 믿는 절대적인 신뢰. 황태자가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들이 바로 눈앞에서 도사리고 있어도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었던 거다. 생각같아선 계속해서 이 믿음직 스러운 등에 맞닿은 채로 계속 있고 싶다. 황태자의 보호아래, 동화속에 나오는 연약한 공주님처럼 무작정 그렇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안들리 없었다. 하지만 계속 신뢰라는 이름아래 황태자에게 의지할 수만은 없다. 연약하기만 한, 여자가 되기는 싫다. 카세리아느는 눈을 떠 구름 속에 자취를 감춘 달을 바라보다가 다시 시선을 내려 자신 을 향해 비웃듯 웃고 있는 페리어스를 바라보며 조용히 중얼거리듯 말했다. 너무 힘들 고, 너무 그리웠기에 한 착각이었다. "당신도, 그리고 나도 틀렸습니다." 뭐라고 중얼거리는 카세리아느의 입술을 페리어스가 본 듯 했으나, 워낙 작은 말이었 기에 페리어스의 귀에는 닿지 않았다. 진작 알았더라면 좋았을 지도 모른다. "나는 당신이 원하는 여신이 되어 줄 여신이 아니며, 당신도 내가 찾던 그.가 아닙니다." 페리어스가 닮은 것은 밝고 은은하게 빛나는 달이 아니라, 지금 구름속에 모습을 감추 어 버린 달처럼. 달의 발자취를, 달의 환영을 닮아 있었다는 사실을. 고요하게 가라앉은 호수의 표면 같은 카세리아느의 눈동자가 무언가 확신에 찬 듯 보였 다. 카세리아느는 페리어스를 차갑게 쳐다봐 주다가 아직도 서로의 틈을 노리며 서있는 인영들과 황태자의 앞으로 몸을 움직였다. 부딪히기 싫다고 해서, 누군가의 등 뒤로 숨어 피하기만 할 수는 없다. 피하기만 해서는 결국 원하는 답은 나오지 않는 다는 것을 안다. "여신을 죽이기 원한다면 얼마든지 죽이십시오." 낮게 떨려오는 미성이 어둠을 가르고 빗물속을 가르며, 모두의 귓가를 찾아 들었다. 그렇게 자신들을 향해 말해오는 카세리아느의 반응에 검은 인영들은 멈칫, 행동을 멈 추었고 황태자는 놀란 얼굴로 카세리아느의 잡아 당기려는 듯, 손을 뻗었다. "잡지 말아 주십시오." 하지만 그러한 황태자의 움직임은 자신을 향해 차갑게 말하는 카세리아느의 말에 순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차가운 카세리아느의 눈동자가 그 눈동자에서 보이는 단호한 의 지가 카세리아느에게로 향하는 황태자의 손을 붙잡았다. 황태자의 놀란듯한 눈동자에 카세리아느는 다시 조용히 입을 열었다. 자신을 놓칠까봐 안타까워 하는 황태자의 눈빛이 너무나 애틋해 보여서, 이렇게 말해 주지 않으면 그가 너무 상처입어 버릴까봐. 허공에 홀로 놓여져 있는 그의 손이 너무나 외로워 보였기에. "약한 저를 원한 것이 아니였잖습니까. 론이 원한 카세리아느는 남자에게 보호받는 연 약한 여자가 아니였잖아요." 따뜻한 말, 달콤한 한마디는 분명 아니겠지만. 황태자의 귓가에 들려오는 그 말은 너무나 따스하고 달콤했다. 카세리아느의 감정이 섞인 듯한 그 말에, 황태자는 살며시 허공에 홀로 있던 손을 내 렸다. 분명 자신은 연약한 카세리아느를 원했던 것이 아니라는 걸, 처음보았던 그 도도함을 높게 샀었다는 것을 잠시 잊었던 모양이다. "전 약하지 않아요." 카세리아느의 이어오는 그 말한마디에 황태자는 살짝 미소를 머금고 뒤로 물러섰다. "알고 있어." 서로와 같은 신뢰의 감정. 그것은 절대로 놓을 수 없는 하나의 끈이 되어, 둘을 사로잡아 버린다. 수줍게 떨려오는 눈물들의 속삭임도 더 이상 둘의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카세리아느는 황태자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다시 고개를 돌려 앞의 인영들을 향해 살 짝 고개를 들어 올렸다. "하지만 잊지마. 그대가 상처가 입는다면, 그 상처는 나에게 몇배로 확대되어 나에게 상처를 입힌다는 것을. 그리고 조금만 기다리면 여기에 이렇게 머무를 이유도 없어 져." 뒤에서 황태자의 목소리를 들으며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는 카세리아느다. 그리고 검은 인영들에게 차가운 시선을 강하게 내리꽂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제가 당신들이 원하던 여신이었다면, 몇번이고 죽어 드리겠습니다." 살며시 팔을 벌렸다. 언제든지 죽어 주겠다는 것처럼. 몇번이고 그대들의 칼에 몸을 맞기겠다는 듯. 오히려 당당한 행동에 검은 인영들은 멈칫하고 고개를 갸우뚱 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 카세리아느를 바라보는 페리어스의 얼굴은 상당히 차갑게 굳어 있었다. 무엇을 말하려는 지 대충 짐작이 오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그대들이 원하던 여신이 어떤 것이었나요." 검은 인영들의 얼굴을 감싸고 있는 복면들이 상당히 움찔거리며, 인상을 찡그리고 있 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원해오던 여신. 절대적인 여신의 존재. 자신들을 포근하게 어 루만져줄 어머니와 같은 존재였던가? 하나의 주제를 놓고 본다면 쉽게 납득할 수 없다. 자신들이 원해오던 여신이 어떤 존재였는 지, 자신들이 무엇때문에 저 소녀를 여신이 라 생각하게 되어 버렸는 지도 이제와서는 희미하게 사라져 버렸다. 청아하게 울려퍼지는 소녀의 목소리에 혼란스러운 듯, 올려져 있던 검의 끝은 살짝 아래로 향해 떨어져 내렸다. 그 소녀를 죽일듯, 검을 세워오던 그들로 하여금, 소녀의 그 목소리는 혼란을 가져다 줌으로써 자신들의 행동에 의문을 가지게 만들었다. 어째서? 어째서 자신들은 저 소녀를 여신이라 생각했고 또한, 그 소녀를 자신들을 배신한다는 이유로 죽이려 했던 것일까. 작은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들의 머리를 지배하 며,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단지 남들보다 아름답다는 것이 여신이 될 수 있는 조건이었다면, 그것은 당신들을 구원해줄 여신이 아닌, 숭상받는 나약한 여신이 될 뿐일 겁니다. 당신들은 숭상하고 싶은 여신을 원하셨나요." 아름답다. 절대적인 미. 분명 그것을 저 소녀는 전부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절대 저 말에 변명따윈 할 수 없었다. 자신들도 저 환상적인 아름다움에, 꿈속 에서 보았던 여신의 자태에 그냥 그녀를 여신이라고 치부해 버렸으니까. 아름다움에 취해, 절대적인 그 아름다움에 취해 소녀에게 여신이라는 타이틀을 가져 다 줘 버린거다. 그리고 그랬기에 자신들을 바라보는 저 소녀의 푸른 눈동자에 경멸 이라는 것이 가득차 버린걸꺼다. 차갑고 당당한 모습. 소녀의 몰아붙이는 듯한 말에 괜히 손에 들고 있는 검의 존재가 무색해지기 시작했다. "뭘 그렇게 망설이고 있나요. 그녀의 말에 이제서야 혹하기라도 하는 건가요? 그녀는 충분히 여신입니다. 그것도 우리를 버리고 떠나려는, 그대들을 배신한 여신이란 말입 니다." 검은 인영들이 그대로 멈춰서며 검을 떨어뜨릴 듯, 서있자 페리어스는 입가에 한껏 미소를 머금으며 입을 열었다. 그녀는 충분히 여신이라고. 그 아름다운 자태를 지닌 저 소녀는 충분히 여신의 자격을 가지고 있노라고 말이다. 페리어스의 발걸음이, 촉촉히 젖은 관복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달라 붙는 모양인지, 너무나 느긋하게 움직였다. 움푹 패이는 발걸음에 빠르게 스며드는 빗물이 비가 바닥 에도 넘칠만큼 많이 내렸음을 알려 주었다. 달의 눈물. 달의 흐느낌. 모든것이 하늘에서 이 아래로 떨어져 내리며 슬픔을 자아냈다. "어떻게 인간이 신(神)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하십니까. 성제폐하 당신은 당신에게서 존재하지 않는 신의 자리를 어떻게든 메꾸기 위하여 저를 택한 것일 뿐입니다. 폐하 께서 그 사실을 더 잘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황제로서의 권능을 타고난 페리어스에게는 없는 것. 군주로서 모자람이 없는 자질을 타고난 그에게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은 것. 신성 라이닌왕국에 가장 치명적으로 와 닿을 수 있는 그조건 신성(神聖) 그것이 성제에게는 존재하지 않다보니,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해도, 자신도 모르는 사 이 그것에 더욱 집착하게 되었던 것이다. 자신에게는 없는 그 모자람에 애타게 매달 리다 카세리아느를 만난거다. 그리고 찾은 거다. 자신의 모자란 부분인 신성을 다른 사람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채 워줄 여신의 발자취를. "떠나려는 여신을 붙잡지 않으실겁니까." 카세리아느의 말에 페리어스는 얼떨떨하게 서있는 검은 인영들을 바라보며 짙게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그들을 기만하시는 것입니까." 혼란. 너무나 뒤엉켜 버렸다. 머릿속이 복잡해져 오는 검은 인영들이었다. 저 소녀를 이해하려다가도 그렇게 꼬여오는 머릿속에 결국은 처음에 존재하던 것만 이 당연하다는 듯 자리 잡았다. "그대들은 뭘 하시나요? 배신하는 여신의 대가를 알려주세요." 그리고 페리어스의 웃음기 어린 그 한마디가 열쇠를 풀어주는 키워드와 같은 역할을 하듯 그 말과 함께 멈칫 거리며 멈춰 있던 검은 인영들은 눈을 빛내며, 떨구었던 검을 집어 잡고 카세리아느를 향해 달려 들었다. 그들의 눈에 존재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이미 그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자신들을 배신한 여신의 존재일 뿐, 그 이상도 그이하 도 아닌 것이다. 빠른 몸놀림. 황태자가 움직일 겨를도 없이 그렇게 열명의 검은 인영들은 카세리아느 를 향해서 검을 움직였다. 갑자기 구름이 거둬지고 드러난 황홀한 달빛아래 그 검신 은 너무나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차갑게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카세리아느를 향하 여 달려 들어갔다. 그리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녀를 향해 내리찍어 졌다. 막상 검들이 카세리아느를 내리찍는 순간 카세리아느는 천천히 눈을 내리 감았다. "카세리아느!!!" 바람의 가르는 소리조차 빗소리에 묻혀 버렸지만, 경악에 차버린 황태자의 그 외침만 은 비조차도 그쳐버리게 할만큼 애절했다. 마치 한순간이 멈추어져 버린것 처럼. 아주 느리게 시간은 흘렀지만, 황태자가 카세리아느게에 다가가기에는 너무나 멀리 있었다. 몸이 너무 무겁고, 아주 느리게 보이지만 자신은 그것보다 더욱 느리다. 챙! 날카로운 마찰음들이 서로 맞부딪혀오고, 황태자의 커다랗게 뜨여진 눈동자는 한곳에 고정되어 다른 곳으로 옮겨갈 생각따윈 하지도 못했다. 그렇게 경악에 빠졌던 황태자였 지만 곧 그의 얼굴은 안심된듯 한숨쉬듯 미소지으며 풀려 졌다.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보이지 않는 얇은 막. 그곳 안에서 그녀에게만 빗물은 닿지 않았다. 조금의 걱정도 없어보이는 표정으로 살짝 눈을 내리감고 있는 카세리아느가 보인다. 왜 이제서야 기억난 걸까? 그녀는, 그녀를 지켜주고 있는 정령들을 지니고 있었단 걸. 그리고 그녀를 지켜줄 기사들이 그녀의 주위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허리까지 내려오는 푸른 머리카락의 이리스가 다른 기사들을 데리고서 카세리아느의 주 위로 와서 검은 인영들을 향해서 검을 겨누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 카세리아느의 감겨져 있던 눈은 살포시 뜨여지며, 그녀의 붉은 입 술은 조심스럽게 벌어 졌다. "여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제 목: 공녀(貢女) 카세리아느 [30 회] 글쓴이: 썬샤인 2003-01-27 조회/추천: 465 / 1 [특집]빨간모자 패러디! - 1 우선 Merry Christmas! 그런 고로 예전에 폐기되었던 빨간 모자를 약간 수정해서 올립니다>_<(아무상관없음) ※본 내용은 원작을 그대로(!) 따라갑니다. 다만 아주 약간의(!!) 수정이 있을 뿐이죠. 이제 님들께서는 손에 짱돌을 들고 계시다가 이 글을 다 읽으신 후, 썬샤인에게로 날 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 * 아주 오~랜 옛날, 어느 한 시골에 아직은 젊기만 한 실비제느와 그녀의 딸, 빨간 모자 카세리아느가 오붓하게(!) 살고 있었답니다. 예? 아버지가 어디에 있냐구요? 후훗, 세 상에 대해서 너무 많은 것을 알려고 하지 마세요. 가끔은 모르는 것이 좋답니다. 세상의 진실은 그렇게 묻혀져 가는 것이니까요. 이런 훌륭한 말도 있지 않습니까. 모르는 것이 약이다! 라는 아주 훌륭한 명언 말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 은 썬샤인의 세계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요? 그녀에게 너무 깊은 것을 요구하시면 그녀는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릴 지도 모릅니다. 그녀는 너무 단순한 단세포 생물이기 때문이죠. 그저 나중에 짱돌을 날리시는 것으로 참아 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러던 중, 햇살이 너무나 따사롭게 잔디를 내리쬐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실비 제느는 갑작스레 누군가를 떠올렸습니다. 누구냐구요? "오호호! 그러고 보니 할머니를 본지도 오래되었지, 카세리아느? 오랜만에 할머니 댁 에 먹을 것 좀 가져다 드리고 오너라!" 카세리아느의 집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던 자신의 어머니이자, 카세리아느에게는 할머니를요! 오. 랜. 만. 에. 떠올리게 되어버린 거죠. 아무리 그녀가 할머니와 떨어져 산다고 해도, 그녀는 역시 자신의 어머니를 가. 끔. 씩. 떠올리는 효녀였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유난히도 붉은 입가에 손을 대어 올리고서 웃고 있는 실비제느를 바라 보는 카세리아느의 푸른색의 예쁜 눈동자가 무척이나 차갑습니다. '이번에는 또 누구를 만나시는 거지.' 아, 그렇군요! 카세리아느는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녀의 붉은 머리카락과 잘 어울 리는 뇌쇄적적으로 보이는 와인색 이브닝드레스의 이유를요. 너무도 어린나이에 어른 들만의 오묘한(!) 세계를 알고 있다니, 기특하기 그지없습니다. 똑똑! 그런데 갑작스럽게 문을 두드리는 둔탁한 소리가 들려옵니다. "내가 왔습니다. 사랑하는 실비제느." 상큼한 톤의 남자 목소리가 들려오자 실비제느의 안색이 심상찮게 굳어지며 카세리아 느를 바라보며 멈칫합니다. 아아, 역시 가슴이 따끔한 모양이죠? 아무래도 그렇겠죠. 이렇게 갑작스럽게 불.륜.현.장.을 자신의 사랑하는 딸아이에게 들켜버린다는 것은 아무래도 가슴 아픈… "카세리아느! 뭐하니 빨간 모자 빨리 쓰지 못하겠니?! 빨리 너의 그 흉한 모습을 가리 고 할머니께 음식을 가져다 드려!" 일이 아니었나 봅니다. 그녀의 붉은 눈동자에는 두려움이 넘실거립니다. 그리고는 빨 리 카세리아느에게 빨간 모자를 쓰라고 하는 군요. 그랬습니다. 그랬던 겁니다. 그녀는 불륜현장을 들키는 것이 가슴 아픈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랑하는 연인을 너무 나 아름다운 자신의 딸아이에게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것이 두려웠던 겁니다. 사실 그 녀도 그녀의 얼굴에 자신이 있었지만, 카세리아느는 보는 이로 하여금 모든 시선을 빼 앗아 버리기에 방심할 수 없습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카세리아느는 어느새 빨간 모자를 얼굴을 못 알아 볼만큼 뒤집어 덮어써 버렸습니다. 카세리아느는 믿고 있었거든요. 자신의 얼굴이 무척이나 흉하다는 실비제느의 말을요. 예전에 자신의 얼굴을 보고서 굳어 버렸던 어떤 남자의 모습을 보고서 말이죠. 카세리아느는 그렇게 빨간 모자라는 별명 아닌 별명을 가지게 되었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새하얀 손을 들어 아무것도 없던 테이블위에 갑자기 생긴 바구니를 들고서 걸음을 옮깁니다. "어머, 너 지금 어느 쪽으로 가는 거니! 뒷문으로 나가!" 하지만 역시 자신의 어머니 실비제느는 이해심이 많은 여인이었습니다. 앞으로 가면 자신의 연인이 서있다는 것을 알고, 카세리아느의 존재조차 알 수 없도록 뒷문으로 가 라고 말하고 있으니 말이에요. 카세리아느는 문을 열려던 손을 멈추고, 자신의 눈앞마저 가려버리는 빨간 모자에 자 신의 차가운 눈동자를 숨기고서 다시 발걸음을 돌립니다. 어떡하겠습니까. 어머니가 뒷문으로 가라면 뒷문으로 가야죠. 카세리아느는 뒷문을 열고서 자신의 할머니 댁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귓가에 다가오는 저 소리만큼은 어쩔 수 없이 카세리아느의 인상을 찌푸리게 만 듭니다. "오호호! 페리어스~ 어서 와요. 그대를 정말 기다리고 있었던 거, 알아요?" "미안해요, 사랑하는 실비제느.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그대와 닮은 이 아름다운 장 미를 꺾어왔어야 했거든요. 물론 이 꽃조차 그대의 아름다움을 대신하지 못하지만 말 이에요." "어머, 몰라요~" "오오! 실비제느! 그대의 손길은 왜 그다지도 사랑스럽단 말입니까." "아아! 페리어스~" 누가 보면 꼴값을 떤다고 말하겠지만, 적어도 그런 포즈를 하고 있는 그들을 욕할 수 는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썬샤인의 세계에 희생된 희생물이니까요. 어찌 되었든, 이 세계 속에서의 그들은 행복합니다. 카세리아느의 여리고 순수한(?) 가슴에 상처를 주면서도, 그들은 그들의 그 아름다운 사랑에 너무나 행복해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젊은 날의 열정과 로망이 아니겠습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 실비제느, 그녀는 아직 너무나 젊고, 그런 그녀의 옆에 남편은 없 다는 것. 그러니 그녀의 사랑은 정당한 것이고, 그러기에 행복합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이 어떻게 하고 있든, 카세리아느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습니다. 차가웠던 그 눈길도 경멸을 머금었을 뿐, 입으로는 내뱉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정말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그렇죠. 이것이 세상의 현실이며, 인정해야 할 세계이니까요. 카세리아느는 다른 또래의 아이들보다 조금 더 현실을 빨리 직시했을 뿐입니다. 그렇게 노란 길을 따라서, 아름다운 새들의 지저귐을 듣고, 생명의 푸르름을 느끼며 카세리아느가 걷고 있을 때였습니다. 휘이이잉!(인위적인 바람소리;) 갑작스레 커다란 바람이 불어와 카세리아느를 덮쳐버렸습니다. 연약하게 부드럽게 카세리아느를 감싸던 바람이, 무엇이 그렇게 마음에 안 든다는 듯, 교묘하게 카세리아느의 얼굴을 가리던 빨간 모자를 향해서 말이에요. 매서운 바람에 바구니를 쥐고 있던 카세리아느의 팔에 힘이 들어가고, 미처 모자를 지 켜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던 카세리아느입니다. 다만 카세리아느는 살짝 몸을 움 츠리며 눈을 감고서 바람이 그치길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바람이 그치고, 카세리아느는 자신의 눈꺼풀을 조심스 럽게 들어 올렸습니다. 푸른 눈동자가 무척이나 아름답네요. 이제는 조심스럽게 불어 오는 바람에 긴 흑발이 흩날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언가 굉장히 허전한 느낌이 드는 카세리아느입니다. 그녀의 뽀얀 피부도, 매혹적인 붉은 입술도, 푸른 눈동자도, 흩날리는 검은 흑발도, 가장 중요한 바구니도 그대로인데 무언가 빠진 듯한 느낌이 들어옵니다. 그리고 카세리아느의 눈동자에 매혹적인 웃음을 지으며 다가오는 누군가가 보입니다. 흑청 빛의 머리칼을 흩날리면서, 손에는 빨간 모자로 보이는 것을 들고서 카세리아느 에게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카세리아느에게 허전한 느낌을 들게 했던 이유. 그것은 빨간 모자였습니다. 카세리아느는 당황한 듯, 살짝 눈썹을 찌푸리면서 황급히 고개를 숙여 버립니다. 자신의 흉한 얼굴을 누가 보면 안 되잖아요. 실비제느가 절대로 남에게 자신의 얼굴을 남에게 보이면 안 된다고 그렇게 교육 시켰는데, 절대로 그래선 안 되는 겁니다. 고개를 푹 숙이고서, 그저 저 남자가 자신에게 빨간 모자를 건네주길 바랄 뿐입니다. 휙! "앗!" 그렇게 얼굴을 숙이고 있는 카세리아느였지만, 갑작스레 올려지는 턱에 의해서 카세리 아느의 고개가 들어 올려지고, 카세리아느의 탐스러운(?) 붉은 입술은 외마디를 토해 냅니다. "무엇 때문에 그런 아름다운 얼굴을 숨기려는 거지?" 매혹적인 웃음을 지으며, 예의 그 매혹적인 목소리로 말하는 론. 아아- 드디어 늑대의 등장입니다. 론의 매혹적인 웃음과 목소리, 자태에 어느 여인이 얼굴을 붉히지 않겠습니까. 론의 그러한 모습은 오직 여인들만을 위한 것이었는데 말이죠. 케이론. 그는 이 근방에서는 모르는 여인들이 없는 알아주는 카사노바였던 겁니다. 물론 그렇다고해서 함부로 다른 여인들에게 마음을 주지는 않지만요. 그것이 또한 바 람둥이들의 매력이죠.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론이 다른 여인네들에게 마음을 줘버리 면 썬샤인이 그 여인네들에게 눈을 번뜩인다는 것이 문제였죠. 왜냐구요? 모두, 알시잖아요. 론은 썬샤인의 소장품 1호이자 그녀가 만들어 놓고서도 후회하고 있는, 카세리아느의 반려로 만들어 졌다는 것을 말이에요. 어쨌든간에, 론이 매혹적인 웃음을 입에 걸치고 자신을 바라보자, 카세리아느의 입술 이 이유없이 살포시 벌어집니다. 전에도 말했었죠? 탐스러운(!) 입술이라고요. 그런 카세리아느의 입술에 론은 돌연 먹고 싶다는 충동이 일어 버립니다. 변태냐구요? 아닙니다. 다만 그는 본능에 충실한 한 마리의 늑대일 뿐입니다. 그렇게 자신의 충실한 본능(!)을 론은 거부할 수 없었습니다. 아니, 거부할 생각은 조 금도 없었구요. 게다가 살짝 벌린 카세리아느의 입술은 분명 자신을 유혹하고 있었는 데, 그러한 유혹을 무시한다는 것은 그의 바람기를 모독하는 행위(!)였던 것입니다. 론은 자신의 손으로 카세리아느의 턱을 더욱 들어 올리며, 자신의 붉은 입술을 가져 갑니다. 정말 아름다운 장면이죠? 선남선녀의 두근거리는 키스신, 갑자기 바람에 흔들 리던 나뭇잎들도 가만히 가라앉고, 토끼들이 잠자다 나와 구경을 하고 있습니다. 썬샤인은 어딨냐구요? 바로 토끼 옆에서 눈을 빛내고 있는 일명, 광년이가 바로 그녀입니다. 역시 그녀는 알 아주는 변녀(!)중에 하나였던 겁니다. "제 빨간 모자나 돌려주시고, 그 얼굴은 치워 주십시오." "!!!" 쒜에에엥! 갑자기 바람은 세차게 불어 나뭇잎을 흔들고, 토끼들은 옆에 있던 당근을 쥐어 입에 물어 버립니다. 썬샤인, 그녀는 옆에 있는 꽃을 머리에 끼고서 어디론가 달려가 버리 고 맙니다. 예. 뭘 바라겠습니까. 역시 그녀에게 러브모드는 무리였던 것을요. 카세리아느의 입술을 비집고 나온 차가운 말에, 론은 충격을 먹은 듯, 한동안 굳은 모 습으로 카세리아느를 바라봅니다. 그럴 수밖에요. 론을 거부하는 여자는 한명도 없었 으니 당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럼 이만 가봐야겠습니다." 그러다 카세리아느가 자신의 턱에 있던 론의 손을 기분 나쁘다는 듯 내리고, 다른 한 손에 있던 빨간 모자를 가져가 버리자, 크게 웃어 버립니다. 그래요, 미친 듯이 웃어 버립니다. "하하하하!! 장미의 가시에 독이라도 있는 모양이야. 하하하!" 아마도 제정신이 아닌듯한 론을 바라보며, 카세리아느는 다시 빨간 모자를 쓰고서 노 란길을 따라 걸어갑니다. 아니 걸어가려고 했습니다. 탁! 론의 손길이 카세리아느의 걸음을 멈추게 만들기 전까지는요. 론의 손이 카세리아느의 새하얀 손을 붙잡았습니다. 그리고 론의 눈빛이 묘하게 빛나며 조용히 카세리아느에게 물어옵니다. "어디로 가는 거지?" 생긋, 띠고 있는 저 미소에 저 느끼한 듯도 하는 듯한 말투에 다른 여인네들이라면 황 홀지경에 빠져 무의식중에 대답을 했겠죠. 하지만 카세리아느는 다른 여인네들이 아닙 니다. 차갑게 쏘아보며 단호하게 대답합니다. "알려줄 의무 따위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새초롬한 그녀의 입술이 유난히 돋보입니다. 그런 카세리아느를 바라보며, 역시 론은 자신의 매력을 최대한으로 살리며 다시 입을 엽니다. 하지만 알까요? 그런 매혹적인 웃음이 카세리아느에게는 버터 몇 개는 쳐 바른 느끼한 웃음으로 보인다는 것을요. 그런 그를 나무 뒤에서 바라보는 어두운 여인. 이제는 꽃을 입에 물고서 눈을 번뜩이 는 언제 다시 돌아온 썬샤인, 그녀가 그 주인공이네요. 언덕위의 하얀 집에서는 아직 도 소식이 없나보네요. 분명 제가 아까 탈옥수가 이곳에 있다고 전화를 드렸는데 말이 죠. 다시 한번 전화해 봐야겠습니다. “의무가 없지 않을 텐데? 그대는 그 빨간 모자 속에 감추어진 아름다운 그대의 모습 으로 날 사로잡아 버렸으니 말이야.“ 역시 버터 백만 개의 위력은 위대합니다. 카세리아느의 모습이 아주 차갑게 굳어 버리 게 만들었으니까요. 도대체 자신의 추한 얼굴이 뭐가 아름답다고 저러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카세리아느입니다. 황태자의 웃음도 아주 징그러워 보이기만 할뿐 이구요. 그리고 그런 론의 웃음을 아주 황홀한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던 썬샤인은 갑작스레 자 신의 팔을 꿰차는 사람들의 존재에 당황해 합니다. 아아- 뭘 그렇게 놀라나요. 그대의 고향으로 데려가 주려는 고마운 사람들에게 감사의 표시는 보이지 않을망정 말이죠. 여기는 당신과 전혀 인연이 없는 곳이에요. 그리고 내가 특별히 철창에 더욱 힘쓰라고 그랬으니 다시 탈출하는 일도 없었으면 좋겠네요. 탈옥은 나쁜 짓이랍니다. 자자. 울부 짖지 말고 빨리 떠나주세요. 그리고 님들, 수고하세요. 카세리아느는 론을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다가 노란 길로 황급히 발걸음을 돌립니다. 그렇죠. 신경 쓰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겁니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는 것은 아니죠. 더러워서 피하는 겁니다. 도대체 따사로운 햇살이 오늘을 축복하는 데, 도대체 왜 저런 남자가 자신의 앞을 가 로막아 태클을 걸어오는 지, 기분이 나쁜 카세리아느입니다. 그렇게 카세리아느가 차갑게 돌아서 버리자, 막상 다급해 지는 것은 론입니다. 이렇게 떠나면 안 되잖아요. 입에 머금었던 웃음이 어느새 사라지고 없습니다. 자신의 여자에 대한 바람기에 대한 자부심(!)이 무너지고 있어요. 방법을! 빨리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렇게 눈을 번뜩이던 그때, 론의 눈에 카세리아느의 팔에 있는 바구니가 들어옵니다. 그리고 갑자기 그림을 그리듯 생각이 무럭무럭 떠오르는 것을 느끼는 론입니다. 놓칠 수야 없죠. 저 아름다운 소녀를, 자신을 처음으로 무력하게 만드는 저 소녀를 꼭 잡고 말리라 생각합니다. “누군가에게 음식을 가져다주러 가는 것이라면, 꽃도 가져간다면 더욱 기뻐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나?“ 멈칫 카세리아느의 발걸음이 한순간 멈추어 버립니다. 아무래도 론의 말이 설득력이 있었나 봅니다. 분명 좋아하겠죠. 꽃을 가져다준다면 오~랜만에 만날 할머니는 분명 기뻐할 테죠. 그리고 오랜 외로움마저 이겨낼 수 있을거에요. 거기에까지 생각이 머물자 카세리아느는 황급히 뒤로 돌아 론을 바라봅니다. 역시나 싱긋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론이 보입니다.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지만, 별수 없습니다. 카세리아느는 살짝 입을 엽니다. “꽃이 있는 곳을 가르쳐 주세요.” 부탁하는 카세리아느의 아름다운 미성에 론은 손을 살며시 옆으로 향합니다. “저쪽이야. 아름다운 꽃들이 잔뜩 피어있는 화원과 같은 곳이지.” 황당합니다. 바로 옆에 있는 꽃밭이 아닙니까. 어찌 되었든 아름다운 꽃들이 만개하는 꽃밭을 바라보다가 카세리아느는 만족한 듯 론을 바라보며 다시 말합니다. “감사합니다.” 착한 카세리아느.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하고 론의 곁을 지나쳐 꽃밭으로 향해서 조심 스러운 발걸음으로 걸어갑니다. 이제 꽃을 꺾으면 되는 거네요. “후훗, 나야말로 고마워.” 론은 걸음을 옮기는 카세리아느를 바라보면서 웃으며 그렇게 나지막이 말합니다. 고맙다니요? 무엇이 고맙다는 건지는 모르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 습니다. 이봐요, 론! 주소를 물어봐야죠! 원작대로라면 빨리 카세리아느가 음식을 가져다주려는 할머니 댁의 주소를 알아내서 일을 해결(?)해야 하잖아요. 빨리, 빨리 물어보라구요. 그렇게 미소나 지을 때가 아니에요! 샤라라랑-(무언가 팔랑이며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소리) 갑자기 무엇인가가 투명한 하늘에서 우아하게 떨어져 내립니다. 그리고 론은 그것을 제대로 바라보지도 않고,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미소 지으며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 어 그것을 손에 쥡니다. 새하얀 종이에 무언가 검은색으로 쓰여 있습니다. [카세리아느의 할머니 이리스의 집 가는 길! 이대로 노란길만 쭈욱 따라가시오, 그러 다 초록색 지붕이 보이는 집이 보이면 그곳으로 쳐들어 갈 것!] 아아- 그랬던 모양입니다. 론의 회심의 미소의 이유가 저것이었던 모양입니다. 론은 알고 있었군요. 이 허접한 세계의 비밀을. 설정상 어쩔 수 없이 단서는 주인공에 게로 떨어져 내린다는 것을 말입니다. 정말 영악하기 그지없는 론입니다. “후훗, 결국 그대는 내 손안에 들어오게 되어 있어.” 그렇게 작게 중얼거리더니, 론은 뒤를 돌아 노란 길을 꽤나 빠른 속도(!)로 걸어가기 시작합니다. 네, 그렇겠죠. 조금이라도 늦으면 그것도 차질이 생길 테니까요. 빠르게 걸어가는 론의 입가에 미소는 한 가득입니다. 카세리아느는 어느새 꽃밭으로 계속 들어가 중앙까지 들어와 꽃들을 감상하고 있습니 다. 정말 아름다운 꽃들과 향기로운 향들이 축복하는 아름다운 꽃밭이 아닐 수 없습니 다. 각양각색의 꽃들이 자리 잡아 서로 자기가 잘났다는 양 뽐내고 있습니다. 꿀벌과 나비들이 분주하게 이리저리 돌아다닙니다. 그렇게 꽃밭의 풍경을 감상하고 하 고 있던 카세리아느의 눈동자에 푸른색 꽃들이 눈에 잡혀 옵니다. 그리고 무엇에 홀린 듯 카세리아느는 노란 길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고, 꽃밭에서도 거 의 끝에 맞닿아 있는 푸른 꽃에게로 다가갑니다. 그리고 그 꽃의 존재를 확인하자 카 세리아느의 눈동자가 살짝 동그랗게 뜨여집니다. 카세리아느의 눈동자와 같은 색인 푸른 장미입니다. 환상속의 그 푸른 장미 말이에요. 처음 보는 것이라 그런지, 아니면 불가능하다고 불리는 푸른 장미여서 그런 것인지 왠 지 모르게 엄청나게 유혹적입니다. 아마도 다른 어느 꽃들보다도 푸른 머리카락의 이리스에게는 이 꽃이 가장 잘 어울릴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똑- 카세리아느는 자신의 새하얀 손으로 아름다운 푸른 장미의 줄기를 잡고 살며시 꺾어 바구니에 채워 넣습니다, 그런데 분위기 탓인지 푸른 장미가 너무나 시리게 보입니다. “아앗!” 장미의 가시입니다. 가시에 찔려 백옥 같은 카세리아느의 손가락은 붉은 이슬을 매달 아 버렸습니다. 분명 아름다워 보이기는 하지만, 카세리아느에게는 갑자기 불안감을 가지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유도 없이, 불안감이 생깁니다. 카세리아느는 손가락을 입에 물고서 꽃들을 챙기더 니 빠르게 이리스할머니의 집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설마하니 정말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니겠죠. 한편, 우리의 늑대 론군은 어느새 이리스 할머니 집 앞에 도착했네요. 그런데 그런 집 앞을 바라보던 론의 눈썹이 살짝 찌푸려지며 인상이 굳어집니다. 못 볼 것을 봤다는 표정이에요. 아앗! 저, 저 여자가 여기 왜 또 있는 겁니까? 분명 아까 언덕위의 하얀 집으로 갔잖 아요? 이제는 아주 제정신이 아닌 모양인지 입에 꽃을 물고서, 문에 기대어 팔을 벌리 고 있다가 론이 보이자 론을 향해서 윙크를 날리며 다가오고 있습니다. 썬샤인, 딴에는 뇌쇄적으로 보이겠다고 저러고 있는 모양이지만 다른 사람이 본다면 저 모습은 미친년일 뿐이라는 것을 왜 모르는 걸까요? 그런 썬샤인에게로 론은 이렇 게 말해줍니다. “꺼.져.주.겠.어? 변태들 따위는 질색이라서 말이야.” 론의 그 한마디에 썬샤인은 털썩 주저앉아 버리고, 론은 그런 그녀가 기분 나쁘다는 듯 빠르게 지나쳐 버립니다. 그리고 썬샤인, 그녀는 갑자기 입을 쫘악 벌리면서 절망 적인 모습으로 있다가 갑자기 헤실헤실 웃습니다. 조금 있다가, 그렇게 망가진 그녀를 언덕위의 하얀 집의 사람들이 다시 와서 팔을 끼 고서 끌고 갑니다. 정말 수고를 많이 하시는 고마운 분들이시죠. 그리고 그녀는 아무 런 반항도 없이 그저 허망한 듯 웃으면서 떠나갑니다. 아아- 잘 가요. 이제 다시는 만나지 않도록 해요, 우리. 달칵! 론은 문을 확 열고서 집 안으로 들어가 방안을 두리번거립니다. 그러다 무언가 눈에 띈 모양인지 희미하게 미소 짓습니다. 침대에 앉아 자신을 놀란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는 이리스가 보였기 때문이겠죠. 론보다도 더 젊어 보이고 병약해 보이는 저 이리스가 카세리아느의 할머니이며, 실비제 느의 어머니인 것입니다. 어찌 되었든, 이리스는 론의 등장에 놀란 모양인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경악에 찬 목소리로 외칩니다. “누, 누구야!” 너무 놀랐는지, 안색이 푸르게 변한 이리스의 말에 론은 아무런 대답도 없이 그저 이 리스에게로 다가갈 뿐입니다. 그리고는 카세리아느에게도 그랬듯 손으로 이리스의 턱 을 들어 올리면서 조용히 말합니다. “잡아먹히겠어, 아니면 이곳에서 나가주겠어?” 분명 론의 매혹적인 미소는 할머니들에게도 효과가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저 말을 들었다면 분명 할머니들은 잡아먹히겠다(;)고 말했겠죠. 하지만 이리스는 다른 모 양입니다. 안색이 더욱 창백하게 굳어서 말도 안나오는 지, 입을 움찔움찔 거립니다. “잡아먹히고 싶어?” 하지만 곧 다시 물어오는 론의 말에 이리스는 창백하게 굳어져 몸을 부르르 떱니다. 그리고는 힘차게 소리치는, 이리스입니다. "따, 딸꾹! 나, 난 남자야!“ 얼마나 놀랐으면 딸꾹질까지 하겠습니까. 정말 처량해 보이는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 다. 그런데 남자랍니다. 여자보다 예쁜 얼굴로, 딸하고 손녀까지 둔 상태에서 남자라고 말하는 이리스입니다. 그리고 론은 그런 이리스의 말에도 조금의 변화도 없이 다시 말합니다. “잡아먹히고 싶지 않다면 나가주시지?” “난 남자라구! 딸꾹!” 론의 말에 다시 한번 소리치는 이리스입니다. 그리고 이제야 손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알 수 있게 된 모양인지 주먹을 쥔, 손을 황태자에게로 가져갑니다. 탁! 하지만 역시 당할 론군이 아니죠. 론은 이리스의 턱에 있던 손을 내려 날아오던 이리 스의 앙증맞은(?) 주먹을 막고, 손목을 잡아 침대에 넘어뜨립니다. 그리고 침대에 눕혀 진 이리스를 향해서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 조용히 속삭입니다. “남자라고 못 먹을 것은 없어.” 론의 그 매혹적인 웃음과 목소리에 이리스는 몸에 소름이 쫘악 돋아 오는 것을 느낍 니다. 그리고 정말 안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이리스의 머릿속을 가득 메워 옴을 느낍니다. 정말, 정말 위험합니다. “아아아악! 딸꾹!” 그리고는 재빨리 자신을 덮치는 자세로 있는 늑대, 론을 밀치고 밖으로 뛰어 나갑니 다. 이리스는 살고 싶었던 겁니다. 이리스는 비명을 지르며 그렇게 자신의 집을 떠나 가 버렸습니다. 론은 그렇게 뛰어나간 이리스를 바라보며 피식 미소를 짓다가, 침대에 몸을 눕히고 이불로 몸을 덮습니다. 이제 방해물도 나가주었으니 카세리아느를 기다리기만 하면 끝 난 일인 겁니다. 우리의 카세리아느는 그러한 사정도 모르고 무작정 불안감에 빠르게 이리스 할머니집 으로 다가와 문을 다급히 두드립니다. 똑똑! “할머니, 카세리아느 왔어요.” 그런데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불안한 마음에 카세리아느는 빠르게 집안으로 들어와 주위를 둘러봅니다. 설마 아니겠죠? 위험한 일이 생긴 것은 아닌 거겠죠? 그러던 카세리아느의 눈에 침대에 누워있는 사람이 보입니다. “후우. 할머니 음식하고 꽃을 꺾어 가져왔어요. 마음에 드시려나 모르겠네요.” 카세리아느는 살짝 안도감어린 한숨을 토해내고, 테이블에 바구니를 내려놓고서, 꽂을 빼내어 침대 옆에 있는 꽃병으로 가져갑니다. 꽃병에 장미를 꽂아 넣자 유혹적인 푸른 장미의 향이 누워 있는 론의 코를 자극하네요. 카세리아느는 의자를 가져와 침대에 가까이 가져가 걸터앉습니다. 그리고 이리스 할머 니를 향해서 시선을 돌립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이리스 할머니의 머리카락이 저런 색이었나요? 푸른색이긴 하지만 검은색이 더욱 많이 섞인 흑청발이 보입니다. 할머니의 눈동자가 흑청 빛이었던 가요? 그리고 언제부터 할머니의 약간 창백한 빛이 보이던 입술이 저 렇게나 매혹적인 입술로 변한 거죠? 분명 어디선가 본 듯한 모습인데. 아! 아까 보았던 그 남자랑 상당히 비슷하게 변해 버린 것 같습니다. 카세리아느의 눈동자가 살짝 의문에 차고, 입술은 살며시 열려 그 의문을 토해냅니다. “할머니, 언제부터 머리카락의 색이 그렇게 변하신거죠?” 카세리아느의 말에 론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답합니다. 정말이지 의외입니다. 카세리 아느에게 저런 아방한 면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하지만 물론 여러분들은 알고 계시 죠? 단지 설정일 뿐입니다. “너를 너무나 생각했기에 머리색이 이렇게 되어버린 모양이다.” 론은 손을 카세리아느의 볼에 가져가 부드럽게 쓰다듬습니다. 부드러운 카세리아느의 볼의 촉감이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 론입니다. 카세리아느는 다시 입술을 움직여 다시 물어옵니다. “그럼 눈동자의 색은 왜 그렇게 변하셨나요.” “너를 너무 그리다 보니, 눈동자의 색이 변했나 보구나.” 론의 눈동자가 카세리아느의 붉은 입술을 향합니다. 역시나 먹어 버리고 싶은 유혹 적인 입술입니다. 그런 론의 눈길을 카세리아느는 알려는지 모르겠네요. 다만 카세리 아느는 설정상 또다시 물어올 뿐입니다. “목소리는 왜 그렇게 변하셨죠?” “계속 너의 이름만을 부르다보니 이렇게 변해버렸다.” 론의 긴 손가락이 볼에서 미끄러지듯 내려와 카세리아느의 붉은 입술로 내려옵니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쓰다듬어 봅니다. 영원히 가지고 싶은 입술을. 카세리아느도 어 쩌면 이미 이 누워있는 사람이 할머니가 아님을 알고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다만 자신의 입술에 닿아있는 그 손가락의 촉감이 좋아서, 그저 자신을 바라보는 그 눈길과 자신을 향한 목소리가 너무 좋았기에, 그저 말도 안돼는 대답을 들을 것을 알 면서도 묻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론의 손가락이 머물러 있는 카세리아느의 붉은 입술이 다시 한번 열립니다. “그럼 그 푸르던 입술은 왜 그렇게 붉어 진 것인가요?” 도발적인 유혹을 던지는 푸른 장미의 향에 취해, 론은 입술에 머물러 있던 손을 내려, 카세리아느의 가는 손목을 잡아 자신에게로 우악스럽게 끌어당깁니다. “영원히 가지고 싶은 너의 입술을 취하기 위해서.” 조용히 들릴 듯 말 듯, 그렇게 중얼거리며 론은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자신만의 붉은 장미를 끌어안습니다. 그리고 방안에는 푸른 장미의 향만이 감돌았고, 더 이상의 말소 리는 들리지 않았답니다. 결론은 원작과 조금(?) 다르지만 어쨌든 해피엔딩이네요. 여담이지만 이리스는 그렇게 나갔다가, 지나가던 프리시아라는 사냥꾼에게 딱 걸려서 지금은 행복하게 산다죠? 그럼 빨간모자 패러디! T.H.E. E.N.D. 제 목: 공녀(貢女) 카세리아느 [31 회] 글쓴이: 썬샤인 2003-01-27 조회/추천: 539 / 2 잔혹하게 부셔져 내리는 달의 환영 - 1 물에 푹 젖어버려 더이상 물을 흡수하지도 못하는 관복은 검은 날개아래에서 눈물을 흘리는 달의 희미한 빛을 받아, 누구도 모를만큼 아주 작게 빛을 뿜어냈다. 검은 인영들은 이미 기사들에 의해 제압당한지 오래였고, 페리어스는 허무하게 그들을 바라보며 카세리아느를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부터 여신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희미하게 얇은 막이 눈에 보여, 그것이 그녀를 감싸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비를 튕겨내는 그 막의 존재가 카세리아느를 차가운 비속에서도 당당하게 만들어 주었 다. 자신은 차가운 비속에서 몸을 떨어 추하게 되어버렸는데도, 카세리아느는 더욱 도도한 모습으로 그 성스런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아마 자신과 같은 생각일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녀가 여신이 아니라면, 여신은 정말 존재하지 않는 것일거다. 하지만 여신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신에 대한 모독인 것이다.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저 당당한 소녀는 분명 여신의 자태를 가지고서도 여신은 없다는 말을 꺼내고 있었다. 페리어스는 자신의 이미 차갑게 식어버린지 오래인 손을 자신의 파리하게 식어버린 입 으로 가져가 꽈악 막아 버렸다. 웃음이라도 나올 것 같다. 페리어스의 얼굴에 자조적 인 미소가 어렸다. "모든것은 성제폐하, 당신이 무의식중에 만든 환상속의 여신이었을 뿐일 것입니다." 어쩌면, 저렇게도 차가운 말이 쉽게도 나오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울컥, 피라도 토해낸다면 오히려 이렇게 더럽기만 한 자신의 가슴속이 후련해 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가슴에서 토해낼 피는 없었다. "하하하.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군요." 자신의 가슴은 이미 오래전에 굳어 버린지 오래니까. 피라는 것은 없다고 해도 좋을만 큼 차갑게 식어 버렸으니 말이다. 자조적으로 웃으며 말하는 페리어스의 얼굴이 이상 하게도 애처롭게 보였다. 저벅저벅. 물에 충분히 젖어있는 부드러운 흙의 감촉이 발에 와닿자, 무척이나 기분이 좋았다. 어느 누구의 발걸음도 닿지 않았던 땅에 그러한 발자국이 남자, 마치 자신이 미지의 대륙의 개척자라도 된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챵! 하지만 그 미지의 대륙을 탐험하려는 개척자의 발걸음은, 원래부터 그 대륙을 지켜오던 사람들에 의해 완벽하게 차단당해 버렸다. "훗, 제가 그대들의 여신에게 상처라도 입힐 것 같습니까?" 자신의 말이 무슨 말인지, 자신의 앞에서 검을 들고서 자신의 걸음을 막는 저들도 알 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여신이 누구를 가리키는 지에 대해서 말이다. 비웃음처럼 한 쪽 입 꼬리만 올라간 페리어스의 모습이 기사들에게는 자신들을 무시하는 듯 보였다. 그리고 페리어스의 말이 카세리아느에게도 좋게 들리지는 않은 모양인지, 카세리아느의 얼굴은 찡그려 졌다. 여신. 그 듣기 싫은 단어가 자꾸만 카세리아느에게로 들어왔던 까닭에. 더욱이 자신을 감싸고 지켜주고 있는 기사들은 그 말뜻을 은연중에 인정하고 있는 듯 보였기에 말이다. 페리어스는 살짝 고개를 들어 올리며 카세리아느를 바라보며, 우습다는 듯, 미소를 짓 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페리어스를 바라보며 카세리아느는 다시 입을 열었다. 자신 을 원한것이 아니라 자신에게서 여신이라는 환상을 쫓았던 사람이다. 분명 자신의 곁에는 정말 여신과도 같이, 신성의 부분을 채워줄 성녀가 있었음에도, 이상하게도 자신에게서 여신의 존재를 찾아 곁에 두려고 했다.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바로 옆에 당신의 모자란 부분을 채워줄 사람이 있었음에도 다른사람으로 그 부분을 채우려는 것을 말입니다. 그것도 전혀 채워줄 수 없는 사람으 로. " 알아주길 바랬다. 달은 밤하늘아래에서 자신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 주는 별을 바랬던 것이 아니라 자신과 다른 밝은 하늘아래에서 홀로 찬란하게 빛나는 태양을 바랬다는 사실을. 자신은 비록 그러한 태양의 빛을 반사시킬 운명일 뿐이라도, 그런 태양을 동경하고 가지고 싶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구름속에 갇혀있는 달의 환영일 뿐인 자신은 더더욱 그러했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았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있어서 카세리아느, 그녀가 그러한 존재였음을. 여신의 발자취를 무작정 쫓고 있었음을 눈치채 주었다면 지금 자신의 감정이 이렇게나 복받치듯 혼란스럽지는 않았을 것이다. 검은 날개가 달을 드리우고, 검은 날개에 자신의 자취를 숨겨 버리고서 희미한 자태만을 보이는 달은 수치스럽게도 아주 얕은 빛만을 어둠속에 자리잡게 만들었다. 그리고 비는 자꾸만 그러한 어둠을 담아 사람들의 몸을 축였다. "만약, 내 생애에 가장 후회되는 순간이 있다면 지금 이 순간일 것입니다. 시간을 되 돌릴수 있다면, 더 완벽하게 그대를 이곳에서 없앨겁니다. 후훗." 울 수 없다면, 자신의 지금 이 복받쳐 울고 싶은 심정을 밖으로 표현할 수 없다면 차 라리 시원하게 웃으며, 가장 잔혹한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페리어스는 싱긋 웃으면 서 계속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으니 너무 아쉬울 뿐입니다. 하하. 빨리 떠나 주시죠? 말해두지만 이곳은 저의 영역입니다. 언제 상황이 역전될지 모릅니다." 아쉽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인지, 살짝 인상을 찡그리며 말하는 페리어스의 모습을 바라보며 카세리아느는 인상을 찌푸린다기 보다는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저렇게 망 가지는 페리어스가 왠지 모르게 불쌍하게만 보였다. "죄송합니다." 그래서 아마도 이유도 없이 카세리아느의 입술을 비집고 그러한 소리가 나온 것일지도 몰랐다. 앞뒤 문장에 어울리지도 않는 대답이. 그리고 그 말에 의해, 페리어스의 얼굴 에는 이상한 표정이 어렸다. 이상한 의문감과 괜한 만족감같은 것이 말이다. "그럼 이만 떠나도록 하지." 황태자, 론은 살며시 떨리듯 나온 카세리아느의 말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는 지,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카세리아느에게로 다가가 팔을 잡아 끌며, 이리스와 기사들을 향해서 말을 던졌다. 이미 우리들이 할일은 전부 끝났노라고. 끝을 알리는 말을 내뱉 었다. 그리고는 다시 페리어스가 있는 쪽을 바라보며, 차갑게 입을 여는 론이였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서로 묻어 두는 것이 좋을 것 같군. 이런 사소한 일을 문제삼아 전쟁이라는 말도 안돼는 일을 벌리기는 싫으니 말이야. 게다가 그렇게 된다면 더욱 비 참해지는 것은 아마도 당신일 것 같으니까." 챠창. 저벅저벅 기사들은 검을 검집에 채워넣고, 론과 카세리아느, 이리스를 보호하듯 뒤에서 조심스 럽게 발걸음을 옮긴다. 묻혀져 가는 그녀의 발걸음 소리. 짙밟혀버리는 그녀의 발자 국. 자신의 어쩌면, 하나밖에 없을 여신이 떠나는 모습을 아스라이 바라보는 페리어스 다. 닿지 않아. 필사적으로 손을 내미는데도, 이 손은 절대로 그대에게 닿지 않아. 자신의 너무나 작은 빛은 저 찬란한 빛에 묻혀서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다는 듯이 비참하게 고개를 숙여 버린다. 조금씩 힙겹게 키워왔던 자신의 새싹은, 숨을 죽이며 커왔던 자신의 싹은 한순간에 가장 비참한 몰골로 잔혹하게 짓밟혀 버렸다. 희미하게 숨쉬고 있는 상처잎은 새싹이, 다시는 이러한 상처를 입지 않겠다고, 몸을 떨었다. 촤라락- 페리어스의 무릎은 힘없이 바닥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금안의 눈 동자가 무언가를 잃어버린 모양인지 하염없이 눈물을 토해냈다. 억울하다면 그것은 자 신이 약하다는 것이고, 가슴이 아프다면 이제야 자신의 약함을 깨달은 것이다. 달이라고 주장하던 달의 희미한 환영은 잔혹하게 부서져 내린다 * * * * 짙은 황금빛의 무리들이 쓰러지듯 황홀하게 빛을 뿜어낸다. 싸한 아름다움이, 싸한 황홀한 자태가 부서질듯 아련하기만 했다. 그 그리고 그녀와 또다른 그녀. 모든것이 알 수 없는 것 투성이다. 짙은 의혹의 바다에서 그들은 절대로 헤어나올 수 없다. 그리고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의혹의 바다에 가려져 있는 해답을 찾는다. . . . "과거도 알겠지만 미래의 일도 알고 있지? 넌 원하지 않아도 알 수 밖에 없잖아." 탁_ 고급스러워 보이는 붉은빛 찻잔을 하늘색 체크무늬 테이블보로 감싸져 있는 테이블에 내려 놓으며, 마샤는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을 바라보며 생긋 웃으며,말했다. 분명 어디선가 본적이 있는 사람이다. 짧아보이는 검은 머리카락과 새파란 입술, 그리고 온통 검은색으로만 도배되어 있는 왜소해보이는 소년. 그 소년의 주위로 검은 나비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저번과 다른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얼굴을 가리던 부채가 사라지고 없다는 것 뿐이다. 핏줄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창백한 얼굴에는 생기라고는 찾아 볼 수 없다. 그리고 마샤의 말에 창백한 얼굴에는 심각함이 잔뜩 드리우고 눈동자가 굳어져 버렸 다. 분명 알고 있다. 자신은 과거도 미래도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기에 소년의 얼굴은 심하다 싶을 정도로 굳어져 버렸다. "어어? 왜 그렇게 심각한 표정을 지어? 너한테서 미래의 일을 캐낼 생각은 없으니 그 렇게 심각해 지지 않아도 돼." 그렇게 소년의 얼굴이 변해버리자, 마샤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아니라는 듯 손을 휘휘 내저어 보였다. 미래. 아직은 먼 훗날의 일을 알 생각따위는 결코 없다고 증명하 기 위해서 웃음까지 어리면서 마샤는 계속 입을 열었다. "넌 '관찰자'의 역할만 하면 되는 거니까. 나도 그이상은 바라지 않아." "감사합니다." 자신의 입으로 자신이 바라본 미래를 말할 수는 없다. 자신은 그저 바라보기만, 할 수 있는 존재. 그저 바라보기만 해야 하지, 결코 미래를 말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것이 자신의 운명인거다. 자신이 미래에 대해서 말한다면. 여러가지 바퀴들로 짜맞추어져 있는 미래는 하나의 이질적인 자그마한 바퀴가 끼어들은 것에 의해서 한순간에 걷잡을 수도 없을 정도로 망가져 버릴테니까. 복잡하게 뒤엉켜 풀수없는 실타래와 같이. 그래서 '관찰자'라는 위치에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될 수 없다. "그런데 조금은 실망했어. 설마 모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 날 바보라고 생각한거 야? 응? 그런거야?" 고개를 숙이고서 감사하단 말을 내뱉고 있는 소년을 바라보면서, 마샤는 다시 눈빛을 빛내며 따지듯 물어왔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자신의 말에 여전히 고개를 숙이며 전혀 궁금하지 않다는 투로 대답하는 소년을 보면 서 마샤는 살짝 눈썹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그 모습이 마음에 안든다는 듯이 소리치 며 입을 열었다. "처음부터 넌 내게 알려줄 수 있었잖아!! 그.녀.가 태어난 그 순간부터 말이야. 그녀 의 감정마저도 느낄 수 있는 넌데, 이제와서야 그녀의 존재를 알리다니 정말 영악해." "!!" 마샤의 말에 그제야 소년의 고개가 빠르게 들어 올려졌다. 주인의 그런 반응에 놀란 모양인지 검은 나비들도 분주하게 움직이며 반짝이는 가루들을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내가 어린 아이를 해칠것이라고 생각한거야? 날 뭘로 보구! 난 악질이 아니란 말이 야!" 뾰루퉁하게 입에 바람을 집어 놓고서는 삐진듯이 말하는 마샤를 보고서, 소년은 자신 의 앞에 놓여진 찾잔을 집어 들었다.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자신의 앞에 있는 귀여운 소녀는 자신이 오래전부터 그녀의 존재를 알고 있었단 사실을. 식어버린 차가운 씁쓸함이 입안에 가득 머물었다. 향기로웠던 차의 향도, 따뜻하게 입 안을 감싸줄 따뜻함도 이제는 시간이 흘러 사라져 버렸다. "어머, 부정도 하지 않는다 이거지? 뭐, 어쨌든 좋아. 너도 때를 기다리고 있었겠지. 어느 정도 그녀의 기억이 깨어져 나오기를, 그리고 그녀의 봉인이 조금씩 풀리는 시점 을 말이야. 그렇지?" 마치 추리라도 하듯이 물어오는 마샤를 보면서 소년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또다 른 것도 알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정확하게. " 그리고 나머지는 내가 꺠뜨릴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서야 나에게 그 사실을 알린 거야. 그리고 그건 이제 네가 보았던 미래에 가까워져 왔다는 거지?" "..." 자신이 이제서야 그녀의 존재를 알린이유를. 그렇다면 더 이상 뭐라고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자신을 호기심어린 눈동자로 바라 보는 마샤의 푸른 눈동자를. 그녀와 같은 푸른 눈동자를 바라볼 뿐이다. "정말 짜증난다니까! 하지만 그래도 제일 힘들었을 너일테니까. 으음. 이제 뭘 바래? 과거에도 그랬듯이 네가 본 그녀의 마지막을 보길 원해?" 소년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살짝 인상을 찌푸리다가 다시 물어오는 마샤. "원하지 않습니다. 그냥 물러서게 해주시면 됩니다." 살짝 눈을 감으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을 거다. 방관할 수 밖에 없는 자신의 짐을 이제는 놓아버리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한두번이 아 니다. 그리고 이제야 그걸 놓을 수 있게 된거다. 그것이 비록 그녀를 다시 볼 수없는 다는 조건이 붙는다고 할지라도. 이제는 그것에서 벗어나고 싶다. 두번다시 그녀의 마지막을 보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이미 한번 본것으로 만족하니까. 자신이 바라본 그녀의 미래를 또다시 보는 것도 바라지 않으니까. "그럴줄 알았어. 이제 너를 붙잡는 거미줄에서 놓아줄께. 너의 저주받을 운명의 끈. 내가 놓게 해줄께. 그 끈은 나밖에 놓게 해줄 수 없으니까."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말하다가 마샤는 다시 말을 이었다. 하늘하늘 부드러운 빛의 조각같은 가루를 흩날리며 날아다니는 검은 나비들이 보인거 다. 그리고 아름다운 것을 수집하는 마샤에게 그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리 없었던것 이다. "그런데 그 예쁜 나비들 내게 줄 수 없어? 내가 이쁘게 보관해줄수 있는데, 응?" 자신과 그녀를 이어주던 유일한 것. 그녀를 수천번이고, 수만번이고 내 눈동자속에서 확인시켜 줄수 있었던 유일한 매개체. 소년이 손을 들어올리자 검은 나비들은 고혹적 인 자태로 우아하게 내려 앉았다. 샤라락_ 한마리가 내려앉자 또다른 나비들이 떼를 지어 소년에게로 달려들어 자리를 잡아 내려 앉았다. 그걸 보는 소년의 눈동자에 안타까운 빛이 어리고, 결국 자신을 말똥말똥한 눈으로 바라보는 마샤에게 고개를 저어 버리고 만다. "쳇! 이왕 갈거면 주고 가면 어디가 어때서!! 나쁜 놈!" 그리고 역시나 삐진듯 소리치는 마샤를 바라보면서 씁쓸하게 나비들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그녀를 잊고서 가야하는데 이것마저 없다면, 영원히 그녀를 찾을 수 없어. 나중에라 도 그녀를 찾을 수 있기 위해서. 그녀가 수없이 많은 삶을 거쳐도 또다시 그녀를 발견 할수 있도록...' 수도없이 그녀를 찾는다. 그리고 결국 그녀를 찾아내고나면 웃음지으며 수없는 조각으로 나뉘며 흩어진다. 찾고 놓아주고 바라보고, 반복되는 것들도 이번이 마지막이 되어 버렸다. 모든것은 먼 훗날의 일, 아니 가까이 다가오는 일. 나중에 환상속에서 그녀를 만난다면, 가장 먼저 그녀의 존재를 찾는 사람또한 나이길 강하게 염원한다. 환상속으로 손짓하는 검은 나비들의 움직임이 현란하기만 하다. "움직이기 시작해. 조금씩. 예전과 같은 모양의 운명이 말이야. 정말 잔혹한 분이야, 그분은. 그럼 이제 그녀를 만나러 가야겠지." 검은 나비의 움직임을 바라보던 귀여운 소녀의 마음속도 현란한건 마찬가지다. 의외로 식어버린 차의 여운의 씁쓸함은 길게 자리잡아 버렸다. * * * "마샤님! 대체 어디로 가시겠다는 것입니까!" 귀여운 프릴들이 잔뜩달린 핑크빛 드레스. 쉽게 소화시킬 수 있는 옷이 아님에도 초록 빛 머리의 소녀에게는 앙증스러울 만큼 잘 어울렸다. 그리고 어디론가 향하는 소녀의 발걸음을 붙잡으려는 우락부락하게 생긴 중년 남자의 목소리는 처절했다. 그곳은 동굴과 비슷한 곳이었던 모양인지, 남자의 목소리는 약간의 기분나쁨마저도 요 구하며 희미하게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테를백작은 몰라도 되는 일이야! 내가 하는 일에 신경쓰지마!" 약간의 불만을 지닌듯한 마샤의 푸른색 눈동자가 무릎을 꿇고 자신에게 외치고 있는 테를백작에게로 향했다. "어떻게 신경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마샤님은..." "조용히좀 해! 내가 간다면 가는 거지,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무언가 말하려는 테를백작의 말을 소리치며 끊어 버리며, 마샤는 옆에 있는 유즈의 옷 자락을 살며시 움켜 잡았다. 백색의 와이셔츠를 잡은 마샤의 손이 유난히 작아 보인다. 그 손을 유즈는 살며시 바라보고 있다가, 씁쓸히 미소지으며 다시 시선을 옮겼다. 싸할정도로 차가운 대리석바닥에 무릎을 꿇고서 말을 하면서도 테를백작은 단 한번도 고개를 들어 마샤를 보지 않고 있었다. 아니 볼 수 없다는 것이 정답일 거다. 이 소녀를 감히 똑바로 고개를 들고 볼 수 있는 이가 과연 이곳에서, 몇이나 될것인지 아는데도 오래 걸리지 않으니까.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그리고 마샤를 똑바로 고개를 들고 볼수있다고 해서, 마샤에게 함부로 대할수 있다는 것도 아니다. 이곳 마계(魔界)에서 마샤는 이곳의 주인과도 같은 존재였다. 새하얀 대리석으로 만들어 진 곳. 수도없이 박혀있는 여러종류의 보석들. 수없이 많은 그녀의 수집품들이 쌓여있는 이곳 또한, 그녀가 주인이다. "이제껏 이곳에서 잘계시다가 무엇이 마음에 드시지 아니하신 것입니까!" "내 마음에 안드는 것이 있다면 어쩔건데?" "그, 그야 당연히 마음에 드시도록 조치를 취할 것입니다." "호오?" 테를백작의 말에 마샤는 빙긋 웃으면서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장난감 같 아 보였다. 자신에게 무릎을 꿇는 이곳의 모.든.것.들이 자신에게는 말 잘듣는 여러개 의 장난감 같아 보인다. 그리고 그 장난감들은 이상하게도 "난 백작 당신이 마음에 안드니까, 죽어줄꺼야?" "....그것이 마샤님이 원하시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죽을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반항하지 않았다. 자신이 아무리 심한 말을 해도, 장난감들에게는 가슴이 없어 가슴 아파하지 않고, 부 러뜨려 버려도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았다. "...짜..증나." 감정하나 어리지 않은 살기어린 마샤의 눈동자가 테를백작을 향해 있었다. 귀를 기울 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았을 마샤의 목소리가 유즈에게만 들려왔다. 유즈의 셔츠자락을 잡고 있는 마샤의 손에 힘이 들어가고, 주름이 가득 생겨 버렸다. 부서진 장난감. 끈을 잃어버린 마리오네트. 그것은 수도없이 많이 보아와서 이제는 지겨울 정도였다. 자신의 앞에서 망가져 가는 모든 것들에게 이제는 경멸감마저 느꼈다. 주인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약해빠진 것들. "됐어! 그냥 잠시 싫증났을 뿐이니까! 그냥 유희를 떠나는 것 뿐이야! 난 갈테니까, 혹시라도 따라붙으면 죽여버릴테니까 그런일 하지마?" 살기어린 눈빛은 어디로 가고 사라지고, 지금은 웃음띠며 소리치는 마샤뿐이다. 새하 얀 레이스들이 움직임에 팔랑팔랑 몸을 움직이고 핑크빛의 잔물결들이 파도가 되어 크 게 흔들렸다. "마샤님!" "부르지 말랬는데, 왜 자꾸 불러! 말했잖아! 유희 떠난다고! 몇번이나 말해야해!! 한 번 말하면 좀 알아들을 수 없어? 내가 간다면 가는거야! 더이상 말안해!" 유즈의 셔츠자락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아버리고, 마샤는 빠르게 걸음을 옮겨 버렸다. 그리고 그런 마샤를 따라서 당연하다는 듯, 유즈는 발걸음을 옮겼다. 조그만 행동에도 엄청난 냉기가 그를 따라 흘러 내리는 듯 하다. 차갑고 싸한 기운이 주위를 감싸고 도는 듯한 느낌도 든다. 얼음같이 차가워 보임에도 유즈의 주위에는 늘 그향이 났다. 혈향(血香), 같은 마족임에도 거부감이 일정도로 짙 은 향이 말이다. 마샤가 자신을 지나치고, 유즈가 바로 앞까지 다가오자 테를 백작은 작은 목소리로 입 을 열었다. "유드리즈." 유즈의 발걸음이 살짝 멈추며, 은색의 얼음같은 눈동자가 밑으로 내려가 테를백작을 향한다. 그리고 테를백작도 살며시 고개를 들어 유즈를 바라봤다. 냉기가 어리는 차가 움. 얼음조각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듯한 머리카락과 눈동자가 사람들의 마음마저 얼어 붙게 만들정도다. 말하라는 듯 계속 차갑게 유즈가 테를백작을 바라보자, 백작은 자리에서 일어나 유즈 와 마주서며 다시 입을 열었다. "넌 '수호자'다." 각인이라도 시키듯한 백작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없이, 유즈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앞에선 걸어가는 마샤의 움직임이 보이고, 뒤에서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을 백작의 시 선이 느껴진다. '수호자.' 머릿속에는 수호자라는 말을 되뇌어 본다. 그리고는 입으로 혼잣말을 하듯 조용히 중 얼 거린다. "알고 있어, 그딴것." 그래, 자신은 수호자다. 그리고 그녀는... 제 목: 공녀(貢女) 카세리아느 [32 회] 글쓴이: 썬샤인 2003-01-27 조회/추천: 649 / 6 환상속의 달빛 로맨스 - 1 황태자와 이리스가 황궁의 정문으로 들어가고, 카세리아느가 뒷문으로 몰래 들어가, 자신의 처소로 들어갔을 때, 카세리아느의 눈 안에 처음으로 잡혀 들어온 것은 에린이 었다. 빛을 잃어버린 핑크빛의 커트머리카락과 수척하게 변해버린 얼굴로, 비실하게 만지면 무너질 듯 가녀린 모습으로, 멍하니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그러다 카세리아느가 방 안으로 들어오고, 멍하던 눈동자에 카세리아느가 들어오자 에린의 핑크빛 눈동자에는 한 방울, 두방울, 조금씩 볼을 씻어 내리듯 떨어져 내려왔다. “카세리…아…느…님이죠? 그렇죠?” 심각하다 싶을 정도로 부르튼 조그마한 에린의 입술을 비집고 힘들게 그 말이 뱉어져 나오자 카세리아느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사랑스럽던 분위기는 어디로 가고, 저런 주인을 잃은 불쌍한 강아지 같은 에린이 자신의 눈앞에 놓여져 있자 울컥 미안한 마 음이 먼저 들어왔다. 그리고 카세리아느가 고개를 끄덕이자, 에린은 소리 없이 흐르던 눈물을 닦아내려고 소매를 눈으로 가져가 쓰윽 닦아 내렸다. 하지만 눈물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도 없이 흘러내리는 모양이다. 닦아내도 눈동자에는 물방울들이 덩그러니 맺혀 있었다. “기쁜데…에린은…카세리아느님 만나서 지금 너무나 기뻐야 하는데…왜 자꾸…눈물 이…눈물이…흐흑. 보고 싶었는데…눈물을 흘리면…흐흑. 제대로…볼 수…없는데…흑. 정말 보고 싶었어요. 카세리아느님.“ 웃으면서 맞이해 줘야 하는데, 닦아내려고 아무리 눈 주위를 닦아내도 눈물은 계속 흘 러내리기만 했다. 계속 소매로 눈물을 닦아내리다가 에린은 그냥 울부짖으며 크게 울 어버렸다. 속상하다. 정말 자신의 말을 듣지 않고 흐르는 눈물 때문에 카세리아느님을 제대로 맞이해주지 못하는 자신에게 속상하다. 이해할 수 없지만, 카세리아느는 그렇게 울부짖는 에린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이것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카세리아느는 주저앉아 있는 에린에게로 다가가 허리를 숙이고 입을 열었다. “나도 보고 싶었어. 에린.” 자신이 자신의 손을 내밀어 준다면, 저 소녀가 더욱 기뻐할 수 있으리라는 사실. 자신이 차갑게 저 소녀를 뒤돌아 떠났어도, 자신을 이렇게도 반겨주는 저 소녀에게 손 을 내밀어 주면 분명 핑크빛 눈동자에는 더욱 커다랗게 눈물이 맺힐 것이다. 에린은 눈물만 덩그러니 매달고 카세리아느를 쳐다보다가 눈을 감아 눈물을 흐르게 만들고 얼굴을 찡그려 울부짖으며 카세리아느의 목에 팔을 가져가고 카세리아느가 힘들다는 듯 무릎을 꿇자, 거세게 안겨 들어갔다. “우아아앙~! 카세리아느님!” 자신에게 돌아와 주었다. 전보다 더욱 따스한 모습으로 자신에게 돌아와 주었다는 것에 자신을 버리고 돌아섰다는 마음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가슴에 복받치듯 솟아오르던 배심감과 허망감도 한순간에 사라져 버리고 만다. 차갑게 돌아섰던 것도 모두 이해해 줄 수 있다. 자신의 아름다운 주인. 자신의 사랑스런 주인이 차갑게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것을 거 부하는 이유도 상처입고 싶지 않아서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누군가를 상처 입히기 싫어서라는 것도 알고 있다. 강한 모습으로 자신을 감싸 고 있지만, 속은 누구보다 여린, 누구보다 따뜻한 자신의 주인이다. 그런 자신의 주인 에게 매달려 에린은 한없이 울었다. 토닥토닥 카세리아느는 자신에게 매달린 에린을 자신도 같이 안아서 토닥여 주었다. 살이 빠진 모양인지 전보다 더 앙상한 등이 손에 느껴져 온다. 전에 자신에게 안겨왔던 에린의 팔도 전보다 앙상한 것이 느껴진다. 왜 그랬을까? 아주 간단한 일이었을 뿐일 텐데도. 그렇게 매몰차게 이 아이를 가슴속 에서 밀어낼 필요는 없었는데 그저 거부해 버렸었다. “미안해. 미안해.” 자신의 품에서 훌쩍이는 에린을 토닥여 주던 손을 멈추고서 카세리아느는 꼬옥 안아 버리며 조용히 중얼 거렸다. 창을 타고서 들어온 달빛의 온화함이 모든 것을 포용해 줄 듯 따뜻하게만 보였다. “정말 보고…싶었어요… 정말.......” 조용히 사그라지는 에린의 목소리와 울음소리가 나중에는 완전히 끊겨 버렸다. 며칠을 보아하니 이 방안에서 새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데, 피곤하기도 했을 것이다.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잠도 제대로 자지 않고서 힘들게 울기까지 했으니. “다시는 널 버리지 않을게.” 잠이 든 듯 보이는 에린을 꼬옥 안으면서 중얼거리던 카세리아느는 조심스럽게 고개 를 돌렸다. 어둠에 물들어 있어도, 희미한 달빛만으로도 알 수 있다. 자신이 이 방안을 떠나던 그 순간과 변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조그마한 물건들의 이동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에린을 안고 있는 팔에 힘이 들어간다. 살짝 에린을 떼어놓자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인상을 찡그리고 힘겹게 자고 있는 에린 이 보였다. 그런 에린이 안쓰러웠는지, 카세리아느는 에린을 잡아 올려 침대로 데려갔다. 여전히 깨끗하기만 한 침대의 모습에 살짝 인상을 굳히면서도 카세리아느는 조심스럽게, 소중 한 것을 대하듯 눕혔다. 에린이 침대위로 옮겨지자 침대는 부드럽게 에린을 받아 주었다. 무척이나 가벼운 에린이 침대도 싫지만은 않았나 보다. 카세리아느는 에린에게 이불을 덮어주며, 에린 의 머리카락을 살짝 쓸어 올렸다. “너한텐 고마워.” 눈물자국이 난 볼을 살짝 손으로 어루만졌다. 수척해지긴 했지만, 역시 아직까지도 그 귀여움은 여전했다. 카세리아느의 말을 들었는지, 아니면 침대의 부드러움이 편했는지 에린의 찡그려졌었던 얼굴에 미소가 가득 어렸다. 차갑게, 매몰차게 대하는 것만이 옳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 것은 카세리아느에 게 있어서는 아마도 에린일 거다. 천진난만한 미소로, 누구보다도 순수한 모습으로, 카 세리아느의 마음을 처음에 녹여 버렸을 지도 몰랐다. 누군가를 거부한다는 마음을 강하게 먹고 있었는데, 그 사이의 약한 틈새를 용하게 알 았서 그것을 노리고 들어와 버린 거다. 에린은. 자신의 사랑스러운 동생과도 같은 이 아이는 말이다. 카세리아느는 살짝 에린의 이마에 입 맞추고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레이닌에서는 검은 날개아래 빛을 잃고 있던 달이, 이곳 아텔린에서는 유난히 아름답 게 사람의 마음을 유혹하듯 빛나고 있었다. 검은 하늘아래, 수없이 많은 별들 속에서 유난히 그것하나만이 빼어난 자태를 유지했 다. 검은 하늘아래에서, 이 지독할 정도의, 숨 막힐 정도의 어둠 속에서 달은 오직 그 자태하나만으로도 빛을 발한다. 이곳, 어둠 속에서 달은 주인이다. 쌕쌕거리며 자고 있는 에린을 다시 한번 바라보다가 카세리아느는 무엇에라도 이끌린 듯 방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조심스럽게. 짙은 어둠에 혹해서 어디론가 가버릴지도 모 르는 만큼 아주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밖을 향한다. 이곳에서는 달의 아름다움을 다 바라볼 수 없으니까. 그래서 나가는 거다. 달의 유혹을 거부할 수 없다. 달칵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고, 다시 이 방안을 나간다. 자신을 속박하는 듯, 굳게 잠겨버린 문을 자신 스스로 열고서 무작정 이끌어지는 대로 발길을 옮겼다. 무엇을 바라고 있는 지는 자신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아득하다. 마법구들이 비추고 있는 붉은 카펫, 여왕의 길을 걷고서 이미 모두가 잠들어버린 지금 이 고요한 시각, 발걸음을 계속해서 움직였다. 오늘 만큼은 모두들 쉬는 모양인지 이 상할 정도로 경비병들도 보이지 않았다. 휘이잉_ 복도를 걸어가던 카세리아느를 시원한 바람이 잡아끌었다. 카세리아느의 발걸음이 복도에 나있는 시원한 창가로 향하고 창에서 밖을 바라봤다. 시원한 물의 소리가 귓가 에 들려온다. 처음 자신이 황태자궁으로 들어올 때, 감탄했던 아름답고 화려한 정원이 눈에 잡혀 들어왔다. 고개를 들어올리자 자신의 환상의 나락으로 초대한 달이 보였다. 그리고 카세리아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황태자궁의 밖, 정원을 향해서 뛰어 갔다. “하아..하아!” 카세리아느의 입에서는 힘든 모양인지 연신 큰 호흡이 가쁘게 나왔다. 모든 것이 마법 같은 하룻밤의 기적 같다. 조용하기만 한 황태자궁에 사람하나 없었다. 밖으로 나가는 카세리아느의 발걸음을 잡 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괜히 마음은 더욱 들떴다. 끼이익 기분 나쁜 소리를 내는 문을 열고서 카세리아느는 정원으로 계속 발걸음을 옮겼다. 쏴아아_ 달빛아래에서 수도 없이 부서져 내린다. 꽃들의 아름다움조차 그것 앞에서는 무릎을 꿇어 버렸다. 어둠 속에서 더욱 아름답게 빛나는 분수에서 뿜어져 나오는 하나하나의 물들에게로 카세리아느는 뛰어가던 걸음 을 멈추고, 조심스럽게 걸어갔다. 그러다 무언가의 존재에 손을 입으로 가져가 막으며 눈을 크게 뜨는 카세리아느다. 눈을 감았다가 뜨면 이것이 환상일 것만 같아서, 조금이라도 누군가 자신을 건든다면, 이대로 무너져 버릴 것 같아서, 누가 이것이 환상이 아니라고 말해주길 간절히 바랬다. 무슨 생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가쁘게 뛰어왔다. ================================================================================ 일애가...공지를 올렸어요...하지만 아닐거라고 믿고 있어요. 그래서 괜시리 비축분으로 써놨던 걸 올리면서 이렇게 말해봐요. 취화비님도 공지를 올리셨던데..-_-...그런것을 보면...갑자기 저도 그러고 싶다는 충동이 무척이나 가슴속에서 출렁거려요. 왜 그런거 있잖아요. 남이 하면 나도 하고 싶다라는...-_-....하지만 얼마전에 또다른 곳에서 연재하게 되버려서..-_-....그렇 게 하면 무책임할꺼라는 생각이 들어서...꾸욱 참고 있어요. 처음 시작은 가볍게 심심 풀이로 시작했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많은 일을 겪은 만큼, 애착이 가서 꼬옥 가지고 있고 싶어요. 일애야..일애야.. 너 삭제하지마..나도 삭제하고 싶어진단 말이야ㅜ_ㅜ 얼마전만 해도 의욕 만땅이었는데 우울해요. 저보다 더 잘쓰는 사람들이 글을 접어서.. 에잇(>_< )( >_<)..다른 님들과 비교하지 않을래요. 열심히 해야죠.... 일애야-_-너 삭제하면 죽어-_-(아까까지와는 다른 협박모드) ☆언제나 행복하세요★ 제 목: 공녀(貢女) 카세리아느 [72 회] 글쓴이: 썬샤인 2003-01-04 조회/추천: 1506 / 24 환상속의 달빛 로맨스 - 2 . 그것은 위험한 향기를 풍기고 있었다. 손을 대버린다면 자신마저도 타락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만큼, 위험한 유혹. 하지만 그러한 유혹은 지독할 정도의 유혹이라서 타락해도 좋다고 생각할 만큼 가슴을 죄여 왔다. 낮에는 느낄 수 없었지만 밤이라 더욱 쉽게 느낄 수 있었다. 낮에는 볼 수 없던 분수 의 유혹적인 자태를 말이다. 야광석으로 만들어진 분수대는 밤이라서 그런지 푸른색의 빛을 뿜어내는 자신의 신비스러우면서도 유혹적인 자신의 모습을 여김 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커다란 면적을 차지하는 동그란 분수대는 그 중앙에 물을 뿜어내는 가장 큰 물기둥이 있었고, 그것을 중심으로 각각 동서남북이라고 쓰인 커다란 문자위로 중앙의 물기둥 을 수호하듯 작은 물기둥이 있었다. 그것들은 사람들의 눈을 현혹시키며 자신에게로 시선을 끌어 모으게 만들었고, 감탄사 를 이끌어내게 하기에는 조금의 모자람도 없어 보였다. 이 고독한 밤에 자신에게로 빛 으르 모두 끌어 모아 자신을 돋보이게 만드는 저 분수는 말이다. 그 분수의 주위로는 각각의 꽃들이 자신의 향기를 뿜어내고 있었고, 나무들 또한 바람 에 흩날리며 자신들의 잃어버린 푸름을 노래했다. 하지만 그것들보다도, 아름다운 분수들보다도 카세리아느의 눈길을 경악으로 몰고 갔던것은 다른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정원에 있는 어느 것들보다도 가장 위험 한 향기를 지니고 있었다. 쏴아아_ 쏟아져 내리는 수만 개의 물방울들의 사랑을 받으며 서있는 이. 바람을 타고 느껴지는 촉촉한 차가움. 가끔씩 스쳐지나가는 싸늘한 기운에 더울 리는 없을 텐데도 황태자는 무슨 생각인지 분수 속으로 들어가 물을 받으며 서있었다. 이때 까지중 가장 위험한 향기를 풍기는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서있었다. 팔을 걷어 올린 검은색 정장은 척 보기에도 무거워 보이는 것이 푹 젖어 있었고, 흑청 빛의 머리카락에서는 청빛의 기운이라고는 조금도 느낄 수 없었다. "어째서 그렇게 서계시는 거예요." 입을 막아버려 보이지 않는 입에서 조용히 중얼거림이 새나왔다. 약간의 처연함이 묻어 나오는 그 조그마한 중얼거림은 황태자에게는 들리지 않았지만, 주위를 떠도는 바람들에게는 자신들조차 우울해 질만큼 자세히 들려왔다. "마치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처럼-" 저렇게 서있으니 더더욱 이것이 현실이 아닐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어오는 카세리아느였다. 만약 누가 자신의 곁에 있다면 말해주기를, 저것이 환상이 아니노라 고. 자신의 귓가에 속삭여 주기를 저것은 환상이 아니어서 자신이 그를 보고 있는 것 이라고.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카세리아느의 눈동자에 꽃들은 더욱더 자신의 짙은 향을 바람에 실어 보내고 있었다. 고독하게 홀로 서있는 유혹적인 황태자의 자태가 카세리아느의 눈동자에 가득 잡혀 오지만 괜시리 곁에 갈 수 없었다. "갈수가 없잖아요." 지금 다가가 손을 댄다면 사라져 버릴 것 같아서. 저 아름다운 신의 조각품은 자신의 손에 닿음으로서 더러워져 사라져 버릴 것 같아서. 위험한 향기로 가득 공간을 채워놓고서 자신을 유혹하고 있지만, 그것을 만지고 나서 그것이 사라진다면 자신은 비참해 질 것 같아서 뒷걸음질 치고 있다. 앞으로 걸어가기에도 빠듯한데도 괜한 두려움에 뒷걸음치는 카세리아느였다. 자신 또한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하나의 환상속의 여신과 같다는 사실을 모른 채 자신 또 한 환상 속에서 상처 입을까 두려워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바스락. 그러다 무엇을 밟았는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나자, 카세리아느는 소스라치게 놀라 며 황급히 발밑을 바라보았다. 말라비틀어진 나뭇잎들을 모아놓은 것을 하필이면 뒷 걸음 치다가 밟아 버린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소리를 황태자는 들어 버린 모양인지 곧이어 짜증스런 목소리가 카세리아느 의 귓가에 들려왔다. "거기, 누가 있는 건가?" 자신만의 공간을 깨버린 것에 화가 난 모양인지, 황태자의 목소리에는 소름끼칠 정도 의 차가움이 가득 묻어 나왔다. 자신만의 공간. 누군가만을 애타게 그리고 있던 그 공 간을 다른 누군가가 깨버린것에 대한 강한 불만이 황태자를 짜증나게 만들었다. 찌푸린 눈썹이, 짜증난다고 말하는 차가운 눈동자가, 새초롬하게 굳게 닫힌 입술이 황 태자의 불만을 가득 반영하고 있었다. 어느새 분수에서 미소 지으며 물을 받아들이고 있던 황태자의 모습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내 말이 들리지 않나?!" 당당하게 나가면 그만이지만, 황태자는 분명 자신을 추궁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지만, 카세리아느의 몸은 굳어서 움직이지 않았다. 이유라면 단하나, 지금 황태자에게서 묻 어 나오는 차가움이 이유였다. 지금 들려오는 황태자의 목소리에 이것은 환상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러오지만, 반 대로 갑작스럽게 이런 생각이 들어 버렸다. '지금까지의 모든 것이 환상이 아니었을까.' 자신에게 따뜻하게 속삭였던 황태자의 말들이, 자신을 찾아와 달콤하게 입 맞추었던 황 태자의 모습이, 그것이야 말로 이때까지 모두 환상이 아니었을 까라는. 아주 바보 같은 생각이 우습게도 카세리아느의 발걸음을 묶어두고 있었다. 갑자기 자신이 그었던 손목의 아픔이 카세리아느의 인상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이때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아픔이 갑작스럽게 몸을 타고 올라오자, 손목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카세리아느는 손목을 꼭 부여잡았다. 새하얀 붕대로 꼭 동여매져 있는 상처에서 붉은 피가 흘러져 나올 것 같다. 너무 꽉 잡은 카세리아느의 손 때문이었을까? 다 치료한 듯 했던 손목의 상처를 비집고 나와, 순백을 밀어내고 붉은 선혈이 당연하다는 듯 순백을 물들였다. "귀머거리인건가?" 따끔거리는 손목의 아픔보다 비웃는 듯하면서도 뼛속까지 얼게 만드는 황태자의 목소 리에 몸이 더 떨려왔다. 이대로는 차마 있을 수 없을 것 같아서 카세리아느는 몸을 틀어 다시 되돌아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움직이지 마라. 한걸음이라도 움직인다면 너의 목은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청벙첨벙- 카세리아느가 움직이자 황태자는 다시 짜증 섞인 싸늘한 목소리로 경고하듯 입을 열며 분수대 속에 있던 자신의 몸을 분수대 밖으로 옮겼다. 황태자의 걸음이 움직일 때마다 분수대 바닥에 깔려있던 물들이 찰랑이며 춤을 추듯 흔들렸다. 젖어서 황태자의 몸에 달라붙은 듯한 검은 정장이 무겁기도 할 텐데도 황태자의 걸음은 젓기 전처럼 가벼워 보이기만 했다. 그리고 그렇게 황태자가 자신을 향해 걸어오고 있다 는 것이 느껴지자 카세리아느의 발걸음은 빠르게 움직였다. 싫다. 인정하기 싫어져 버렸다. 황태자의 손에 잡히고 나면 모든 것이 환상이었다는 것을 알아 버릴까봐, 인정해야만 하 게 될 것 같아서 무작정 피하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카세리아느의 발걸음이 빨라지자 화가 나는 것은 황태자 쪽이었다. 갑자기 자신만 의 공간을 방해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빌어먹을 일인데, 이제는 잘 보이지도 않는 저 인영 이 자신의 말조차 무시한 채 빠르게 도망치고 있는 것이다. 황태자는 자신의 눈썹을 잔뜩 찌푸리며, 물기어린 자신의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빠르게 뛰어가 결국은 자신의 앞에서 뛰어가던 인영의 손목을 부여잡았다. "움직이지 말라고 했을 텐데? 지금 네가 하는 짓이 황실모독죄에 속한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겠지? “ “아앗!” 어두워서 일거라고 생각했었다. 찰랑이는 긴 머리카락이 검은 색으로 보이는 이유는. 그리고 단지 자신을 찾아온 어느 한 대담한 영애의 행동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카세리아느는 다시 상처가 벌어져 버린 손목을 꽉 잡아버린 황태자의 행동에 자신도 모 르게 조그만 비명을 토해냈다. 아프다. 정말 다시 벌어진 상처가 무척 아팠다. 홱- 그러다 갑작스럽게 어깨를 잡고 돌리는 황태자의 행동에 카세리아느의 몸은 황급히 돌려 져 버렸다. 자신을 확인하는 듯한 눈동자로 바라보는 황태자의 눈동자와 불안한 듯 흔들 리는 카세리아느의 눈동자가 서로 마주쳤다. “하? 카세리아느…!” ================================================================================ 변명은 아니지만..썬샤인은 정말 1월 1일에 올리려고 했었답니다 ㅇ_ㅇ;; 다만 하필이면 그때 우울모드가 겹치고 자신감을 상실해 버렸었다죠;; ㅠ_ㅠ..ㅜ_ㅜ.. 타지에 계시판이 생겼는데 그분들이 다 잘쓰시거든요, 후아아암~ -○- 정말이지 열심히 썼어요..ㅠ0ㅠ..양은 짧지만..(찔끔) 썬샤인은 이제 잠들러 가야겠어요 ㅜ_ㅜ..지금 시각 오전 7시 37분.. 요즘들어서.. 아침 9시에 자서 일어나니까 밖이 껌껌하구..엄마가 혀를 차면서 저를 보시길래..참...민망했더랍니다..ㅇㅁㅇ;; 오늘만은 제발 4시쯤에 깨어나길 바라면서 모두들 굿나잇>_<♡(헛소리만 만빵 짓기는 미친년 사양모드를 가동시키십시오;) 늦었지만 새해 복 마니마니 받으세요~ ☆언제나 행복하세요★ 제 목: 공녀(貢女) 카세리아느 [73 회] 글쓴이: 썬샤인 2003-01-07 조회/추천: 1575 / 24 환상속의 달빛 로맨스 - 3 . 보지 말아 주었으면. 지금 무척이나 흔들리는 자신의 눈동자 따위 보지 말아 주었으면 하고, 바랬지만 야속 하게도 자신의 눈동자는 황태자와 너무 정확하게 마주보고 있었다. 자신의 흔들리는 눈동자처럼 황태자의 눈동자도 무척이나 흔들리고 있다고, 조금의 망 설임도 없이 말할 수 있었다. “그대가…어떻게?” 허탈하기까지 한 황태자의 목소리에 카세리아느는 그저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을 뿐이 었다. 지금 이 순간은 다른 어느 것보다도 잡혀 있는 손목이 무척이나 아파왔다. 그리 고 그것을 핑계로 아프다는 듯, 신음을 흘리며 고개를 푹 숙여 버렸다. “아앗_” 멍하니 카세리아느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황태자지만, 다시금 들려오는 카세리아느 의 고통어린 신음에 다시 고개를 숙여 자신이 잡고 있는 카세리아느의 손목을 바라보 았다. “어디 아픈 건가?!” 손에서 느껴지는 까칠한 천의 감촉이 느껴졌다. 카세리아느가 더욱 인상을 찌푸리자 그제서야 황태자는 그 손목을 들어 올린다. “그때 그 상처가 벌어진 건가?” 어둠 속이지만 새하얀 붕대이기에 검게나마 그 자태가 희미하게 보였다. 하얀 배경 속에 핀 단 하나의 붉은 장미. 그것은 분명 피이리라. “괜찮아요.” 카세리아느가 고개를 숙이고 대답하자, 황태자는 살짝 눈을 동그랗게 뜨다가, 싱긋 웃 으며 상처 입은 손목을 놓으며 다른 손목을 잡아끌었다. “그대는 괜찮아도 난 그렇지 않아.” “하지만…!” 황태자가 카세리아느를 이끌고 발걸음을 빠르게 움직이자, 카세리아느는 고개를 들어 올려 황태자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보이는 것은 오직 황태자의 흩날리는 머리카락뿐, 그리고 자신에게서 뒤돌아서 자신의 손목을 끌고 어디론가 데려가고 있었다. 그곳의 목적지가 어디인지 모른다는 것이 아쉬울 뿐. 카세리아느가 무엇이라고 더 말하려는 듯, 입을 열려고 했지만, 곧 바람을 가르고 고 요히 들려오는 황태자의 부드러운 음성에 입을 다물었다. “그대가…” 황태자는 계속 어디론가 발걸음을 그렇게 옮기며 말하다 살짝 말을 끊었다. “날 믿고 의지해주길 바래.” 아련한 꽃의 향이 코를 간질이고, 그의 손이 잡힌 손목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차가운 물속에 있었던 여운이 길어서 그런지 황태자의 손은 시리도록 차가웠지만, 이상하리 만치 잡힌 손목은 데일 듯 뜨겁기만 했다. ‘그러고 싶어요, 나도.’ 안쓰러운 듯 살짝 눈썹을 찌푸리다가 무작정 황태자의 발걸음에 이끌려 걸었다. 어쩌 면 그것은 황태자보다도 자신이 더 원했던 걸지도 모르지만, 자기 자신은 그것을 용 납하지 못하니 안쓰러울 뿐이다. 그러던 사이 어느새 카세리아느의 눈앞에는 빛을 뿜어내는 빛의 분수가 있었다. 그리 고 그 분수 앞에서 황태자가 걸음을 멈추고 카세리아느의 손목을 더욱 강하게 잡으며 뒤로 돌았다. “그대가 이곳으로 온 것이 아주 작은 우연이라도 상관없어. 난 지금 그대가 나의 바램 으로 이곳에 왔다고 믿고 싶을 뿐이거든.“ 카세리아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자 황태자는 빙긋 웃음 지었다. 황태자의 뒤 로 수없는 물의 알갱이들이 부서지듯 떨어져 내렸다. 하나같이 푸르스름한 빛을 담은 채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그대가 와주길 얼마나 바라고 있었는지 몰라. 훗. 바보같이 이곳에 그대가 와주기를 계속해서 달에게 빌고 있었는지도 모르지. 오직 그대만을 생각하며 말이야.“ “론…” 카세리아느의 입술을 비집고 황태자의 이름이 불러져 나오자, 황태자는 못들은 것인지 아무런 대답도 없이 카세리아느의 손목을 잡았던 자신의 손을 놓았다. “!!” 카세리아느가 살짝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았지만, 뒤로 돌아버린 황태자에게는 보일 리 만무했다. 그리고 무슨 생각에서인지 과감히 분수대 안으로 발을 집어넣었다. 푸르른 야광 빛의 분수대바닥 때문에 물이 무척이나 푸르게 보였다. 어두움 속에서 빛이 나는 물은 충분히 발을 집어넣고 싶을 만큼 매력적이었고, 자신을 향해 손을 내미는 황태자는 그것보다 더욱 매력적이었다. 싱긋 눈웃음을 짓고 있는 황 태자가 자신만을 위하여 손을 내미는 데, 그것을 거부할 레이디는 아마 거의, 아니 아 무도 없을 것이다. 자신의 고급스런 드레스의 치맛자락이 물에 젖는다고 한들, 자신의 고상한 품위가 상 한다고 한들 그것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한순간의 고상과 품격을 위하여, 이 매혹 적인 유혹을 거부한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이 아닌가! 누구보다 매혹적인 황태자, 자신만을 향하여 미소 짓는 황태자를 거부한다니! 새하얗게 내밀어져 있는 황태자의 손을 카세리아느가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 황태자는 살짝 손을 흔들며 반응을 유도했다. “잡지 않을 건가?” 약간 뚱한 표정으로 황태자가 카세리아느를 바라보자, 카세리아느는 손을 내밀기 위해 살짝 손을 내밀었다가 곧 다시 주먹을 쥐며 치맛자락을 쥐어 잡았다. 이제는 사소한 이런 것에도 고민하고 있다. 고민할 것도 없는 문제인데도. 그냥 잡으면 끝나는 데도. 잡아도 될까? 그의 손을 잡아도 괜찮은 것인지 확정이 서지 않았다. 카세리아느는 살 짝 고개를 숙여서 바닥을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를 들고 황태자를 응시했다. 그리고 그 런 모습을 보면서 황태자는 다시 인상을 찌푸렸다. 결국 그렇게 되면 더욱 답답한 것은 황태자뿐이었던 것이다. 고개를 숙이다가 다시 고개를 들어 자신을 차갑게 응시하는 카세리아느를 바라보며, 황태자는 한숨을 내쉬었다. 또 뭐가 그렇게 불만인 것인지. 자신의 손을 잡는 것이 그렇게도 싫단 말인가? 자신의 손길이? 자신의 모습조차? 레이닌에서 다시 데려오고 난 후에는 그래도 차갑기만 하던, 자신을 싫어하던 모습이 달라졌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것은 자신의 착각이었던가? 한순간의 마법처럼, 다시 풀려버린 마법이기에 다시 예전처럼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란 말인가? 자신을 바라보며 눈물 흘리던 카세리아느도 한순간의 마법이고, 사실은 레이 닌에서 자신을 데려온 것조차도 싫어한다? 자신을 싫어하니까 이만 놓아주라는 신의 암시? 이제 카세리아느를 그만 얼토당토 않는 소유욕에서 놓아주라는 말인 건가? “아직도 내가 그렇게 싫은 건가?” 웃음기 사라진 황태자의 모습이 카세리아느의 눈동자에 가득 잡혀오지만 입은 무엇이 단단히 동여맨 모양인지 열리지 않았다. 황태자의 살벌한 기운에 자연까지도 싸늘한 바람으로 카세리아느를 스쳐가게 만들었다. “미안하군. 정말 미안해.” 웃기지 말아달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죽어서 사라지지 않는 이상, 그녀를 놓아줄 생 각 따위는 조금도 없다고 그렇게 신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이 관여할 문제가 아니라 고. 제발 참여하지 말아달라고 말이다. 황태자는 비릿하게 미소 지으며 몸을 움직여, 굳은 건지 아니면 차갑게 비웃는지 모를 카세리아느의 치맛자락에 잡혀 있는 손을 자신이 힘껏 잡아서 자신에게로 끌어 당겼 다. 그리고 자신에게 잡혀 들어오는 게 느껴지자 다른 한손으로는 카세리아느의 허리를 잡고서 놀란 눈동자로 다가오는 그녀의 귓가에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하지만 난 그대를 놓아주지 못해.” 가득 차오른 만월의 달이 하늘을 메우고 있는 아래, 갑작스럽게 카세리아느를 끌어당긴 황태자에 의해서 중심을 잃고서 카세리아느와 황 태자는 쓰러졌다. 야광 빛으로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하는 물이 차있는 분수대의 바닥으로. ================================================================================ -_-...-_-....;;; 이제는 올리기 더 힘들어질것 같은 예감이 빡시게 드네요..-_-;;; 으아..ㅜ_ㅜ.. 캐릭들이 전부 망가져 버렸어..=ㅂ=.. 훔냥;;훔냥;;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어..ㅇㅁㅇ...(나태니즘) ☆언제나 행복하시길★ 제 목: 공녀(貢女) 카세리아느 [74 회] 글쓴이: 썬샤인 2003-01-12 조회/추천: 1551 / 38 환상속의 달빛 로맨스 - 4 . 촤락_ 카세리아느를 꽉 안고 있었던 황태자는 바닥과 몸을 부딪쳤고, 카세리아느는 그런 황태자의 위에서 아픔보다는 포근함을 느끼며 안겨 있었다. 하지만 곧 뒤이어서 느껴 지는 소름끼칠 정도의 물의 차가움에 몸이 거부하며 살짝 떨려왔다. “훗, 정말 이렇게 있으면, 그대가 내 것인 것만 같은데…” 카세리아느의 귓가에 황태자의 기분 좋은 음성이 들려오고, 당황해서 몸을 일으키려는 카세리아느를 황태자는 더욱 붙잡아 꽉 안았다. “놓기 싫어. 이 모습, 이대 로면 충분히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아?” 다시금 들려오는 황태자의 말에 카세리아느는 고개를 들어 올렸다. 아름답다. 말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푸르스름한 빛을 내는 분수대바닥 에 깔려있는 얕은 물들을 배경으로 삼고서 미소 짓는 황태자는. “뼛속까지 와 닿는 싸늘함을 느끼면서까지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황태자…전하.“ 자신의 등 뒤로 쏟아지는 물방울들 하나하나가 모두 비수인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황태자의 자신을 바라보던 시선이 갑작스레 그 한마디로 차갑게 굳어 버렸기에, 아마 도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대체 뭐가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 거지?” “황태자 전하?” “황태자라고 부르지 마.” 자신을 붙잡고 있던 황태자의 팔에 힘이 풀리자, 카세리아느는 황태자에게 눕혀져 있 던 자신의 몸을 일으키며 물었고, 황태자는 그의 말에 신경질을 내며 카세리아느를 바 라 보았다. 왜 알아주지 않는 걸까? 아니면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건가? 그리고 자신의 몸도 일으켜, 어느새 저 옆으로 비켜나 앉아 있는, 카세리아느를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모르겠어? 내가 그대에게 론이라는 이름을 불러도 좋다고 말한 건 그대에게 황태자 라고 불리기 위해서가 아니야.“ "....." "그렇게 그대에게 멀게 느껴지는 명칭 따위로 불리기 싫어서 그랬던 거라고." 황태자가 쏘아붙이듯 그렇게 말하자, 카세리아느는 눈을 크게 뜨고서 황태자를 쳐다 보고 있을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투명하기만 한 푸른색 유리알 같은 눈동자 속에 황태자의 모습이 비춰 들어왔다. 그렇게 놀란 듯 커다란 카세리아느의 눈동자를 바라보면서, 황태자는 허무한 듯 피식 미소를 지었다. 대체 자신이 왜 화를 내고 있는 것이란 말인가. 화를 내야 할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자신의 앞에 있는 카세리아느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미안해. 미안해. 정작 화를 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닌데도 내가 화를 내고 말았어." 이기적인 자신때문에 이렇게 자신에게서 벗어나지도 못하고 있고, 지금은 물에 젖은 생쥐꼴로 변해버린 그녀가 아닌가? 황태자는 너무나 차가운 기운에 새파랗게 질려버린 그녀의 입술을 바라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손가락을 가져가 버렸다. 물에 촉촉이 젖은 카세리아느의 흑색 머리카락에서 물방울들이 맺혀 떨어져 내려갔고, 입술은 새파랗게 질려있지만, 역시나 촉촉하기만 했다. 촉촉이 젖어있는 푸른빛 입술 도 상당히 매력적인 선을 가지고 있었다. “왜 그러시는 건가요.” 자조적인 미소를 어린 황태자가 한손으로 자신의 입술을 만지며 입을 열자, 카세리아 느는 자신의 입술에 머물러있는 황태자의 손을 내리며 눈살을 찌푸리며 조용히 물었 다. 찡그린 모습조차도, 애처롭게 질려있는 모습조차도 그녀는 그 존재자체로서 충분히 빛 을 발하고 아름답기만 했다. 아니 오히려 젖어 있는 옷들이라던가, 머리카락, 얼굴, 그 모든 것들이 그녀에게는 어울리지도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묘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그대를 레이닌에서 데려온 후 변한 게 있다면 그것은 하나뿐이군.” “무엇이 말인가요?” 자신에게 또다시 알 수 없다는 듯 물어오는 부드러운 음성. 카세리아느의 새파란, 그래서 깊은 호수를 연상케 하는 눈동자가 황태자에게 또 다시 가득 잡혀 들어왔다. 그러자 황태자의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아니, 두개인가? 그대가 나에게 하는 말투가 부드러워 졌다는 것과.” 자신의 말에 놀란 듯한 카세리아느를 보면서, 황태자는 살짝 말을 끊었다. “나를 바라보는 그대의 눈동자에 더 이상 차가움은 아니더라도 경멸은 담아져 있지 않다는 것. 훗. 그래. 그것 두개뿐이지. 하지만 만족해. 아니 이정도로 만족해야지. 그래, 어떻게 하겠어. 여기서 만족해야지, 안 그래?“ 황태자는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카세리아느의 눈동자를 바라보다가, 아직까지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그녀의 손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손을 잡아 내리 려고 붙잡고 있었던 그녀의 손을 다시 자신이 힘주어 잡고서 일어섰다. 그녀는 자신을 싫어할지 몰라도 자신은 그녀를 무척이나 갈망한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자신을 잡아 일으키려는 황태자의 손길에, 카세리아느는 따라 일어섰다. 물에 푹 젖어서 무겁기만 한 치맛자락보다도, 자신의 긴 머리카락이 푹 젖어버려서 물 을 떨어뜨려내려는 것보다도, 싸한 물의 감촉이 맨살에 와 닿는 것보다도 황태자의 말 이 더 신경 쓰였다. 커다랗게 한껏 차오른 달을 등지고서 희미하게 미소 짓는 황태자의 모습이 괜히 슬퍼 보였다는 것도 그것에 한 몫을 차지했다. 주위 차갑긴 한 모양인지 카세리아느와 황태 자의 입가에는 연신 새하얀 입김이 떠나지 않고 있었다. “내게 그만큼 그대가 소중하다고 말하는 거야.” 황태자는 그렇게 말하며, 카세리아느의 손을 자신의 가슴으로 가져갔다. 알아 달라고, 자신의 이러한 마음을 그대도 알아 달라고 그렇게 말하면서 말이다. “무슨…!” 카세리아느가 살짝 손을 빼내려는 듯, 손목을 비틀었지만, 황태자는 더욱 손목을 꽉 잡아당기며 입을 열었다. “느껴져? 그대가 없으면, 그대가 아니면 이 심장이 움직이질 않아. 움직이는 것을 거 부하고 숨쉬는 것조차 힘들게 만들어.” “.......” 빠르게 뛰어오는 심장의 박동이 분명 느껴져왔다. 분명 다른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바로 자신의 눈앞에 있는 황태자의 것이다. 그리고 그래서 괜시리 카세리아느는 아무런 말도 못한 채 고개를 푹 숙였다. 황태자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귓가에 와 닿아서, 그리고 그 귓가에 와닿은 말이 자신 의 가슴에도 와 닿아서 그래서 고개를 숙여 버렸다. 자신의 손에서 느껴지는 심장이 뛰는 움직임에 마음마저 편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내 심장의 주인은 카세리아느, 그대뿐이야. 나의 눈도 그대 외에는 바라보지 못하고 하다못해 나의 시간도 그대가 없으면 흐르지 않아. 그리고 이게 그대가 날 거부해도 내가 그대를 놓아주지 못하는 이유야.“ “.......” 황태자는 알고 있을까? 황태자의 심장보다도 훨씬 빠르게 뛰고 있는 자신의 심장을. 그가 아니면 자신의 마음의 문은 아주 깊게 닫혀 버린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문은 그 가 아니면 열 수 없다는 것을. 갑자기 가슴이 벅차오르고, 숨이 가빠 와서는 자신의 입을 꽉 봉해 버렸다. 그래서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카세리아느가 아무런 말도 없이, 고개만 푹 숙이 고 있자, 황태자는 예상했었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약간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씁쓸했던 그 미소도, 무언가의 결심 앞에 아주 완벽하게 부서져 버렸다. 탁_ 황태자는 카세리아느의 손목을 놓고서 카세리아느 앞에 무릎을 꿇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 아텔린 제국의 황태자의 지위에 있으면서도 한낱 자신의 앞 에 있는 공녀로 보내진 카세리아느에게 무릎을 꿇은 것이다. 물결은 부산할 정도로 찰랑거리며, 나름대로의 혼란스러움을 표현했고, 이리저리 번잡 하게 퍼져 나갔다. 말도 안됀다는 듯이. 웃기지도 않는다는 듯이 말이다. 그리고 바람 도 싸늘하게 주위를 스쳐 지나갔다. 모두가 황태자의 행동에 거부반응을 일으켰지만, 정작 황태자는 담담하게 입을 열고 있 었다. 어쩌면 너무도 충격적일 말들을 말이다. 그리고 그것을 돌이키기에는 황태자의 마음은 너무 굳건하게 잡혀 있었다. “그대를 사랑합니다.“ “.....!!!!!” 나긋나긋하면서도 매혹적인 음성이 귀에 닿자, 카세리아느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동 자를 크게 뜨고 자신 앞에 무릎을 꿇고서 말하는 황태자를 바라보았다. 아까는 너무 기뻐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면 지금은 너무 당혹스러워서 입이 열리지 않았다. 평소와 같은 말이 아닌 사람을 존중하는 말투. 소중히 여기는 듯한 말투에 가득 커져버린 눈동자는 원상태로 돌아올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분명 다른 사람에게 물으면 지금 이 모습은 황태자가 아닐 것이라고 말할 것이 자명했 다. 이것은 분명 오만한 황태자의 모습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으니 말이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이런 말을 꺼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텐데도 그렇게 내뱉고 있었다.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아마 오지 않을테니까. “카세리아느, 저의 오직 하나뿐인 반려가 되어 주시겠습니까?“ 여전히 매혹적인 황태자의 목소리에 물들이 찰랑이는 소리들조차 들리지 않았다. 오직 이 공간속에 황태자와 그리고 자신만이 있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그렇게 자신의 앞에 있는 황태자 밖에 다른 것은 보이지 않았다. 만약 지금 이것이 꿈이라면 너무 매혹적이고 달콤한 꿈이다. 그런 반면 또한 매우 잔 혹하기만 한 꿈이다. 그것은 결코 현실에서는 이루어지지 않을 꿈일 테니까. 그리고 자신이 무의식중에서 그렇게나 바라던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카세리아느의 맨살에 비수처럼 꽂아 들어와 추위를 선사하는 차가운 물들은 지금 이것이 꿈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었다. 카세리아느의 입술은 놀라서 벌어져 있을 뿐 말을 끄집어 낼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다만 너무 행복해서, 지금 이대로 너무 행복하기에 불안했다. 불행이 자신을 덥쳐 올까봐. 카세리아느가 아무런 대답도 없자, 황태자는 씁쓸한 미소를 띠우다가, 다시 고개를 젓 고서 손을 내밀며 입을 열었다. “그대의 대답을 듣고 싶습니다.” 받아들여 주겠다면 자신의 손을 잡아줄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냉정하게 뒤돌아서 가 버릴 것이다. 황태자의 마음속은 복잡하기만 했지만, 정작 겉은 자신 있다는 듯한 표 정뿐이었다. 카세리아느는 자신을 향해서 옅은 매혹적인 미소를 짓고 잇는 황태자를 바라보면서 불안하면서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렁거리는 푸른 눈망울로 떨리는 목소리로. “웃을 수 있게 해주실 거죠?” 아무런 상관도 없는 듯한 말에 황태자의 얼굴에는 의아한 기색이 스쳤으나, 황태자는 아무런 대답 없이 그저 얼굴에 너무 밝은 화사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그런 미 소를 바라보던 카세리아느의 볼을 타고 눈물이 내려왔다. 자신 앞에 놓여져 있는 이 손을 잡아도 되는 거겠지? 영원히 믿어도 되는 것이라고 굳게 믿으며 다시 한번 조심스럽게 카세리아느의 입이 열려 졌다. 그리고 이때껏 한번도 보이지 않았던 그 미소를, 볼을 타고 내려오는 뜨거운 눈물과 함께 오직 황태자만을 위해서 지어 보였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서 내밀어져 있던 그 손에 자신의 새하얀 손을 얹었다. “카세리아느 엘 류느 세리오스는 케이론 드 페리온 베리어스 세즈 아르디어스를 사랑 하며 또한 영원히 사랑할 것입니다.“ 황태자는 그 말을 듣고서 자신의 손에 얹어진 카세리아느의 손을 잡아 당겨 꼭 끌어 안았다. 불안감 같은 것은 어느새 사라져 버린 지 오래일 뿐이다. 자신의 손에 들어온 이 소중한 것을 이제는 절대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검은 벨벳과 같은 하늘아래 중앙에 놓여져 있는 달의 축복을 받는 그 한 쌍의 위로 빛을 머금은 조각들이 수도 없이 부서져 내리며, 그런 둘의 모습을 흐려서 더욱 아름 답게 만들었다. . . . 말해주세요. 그대의 입으로 말해주세요. 이 유희의 끝은 없노라고 그렇게 말해주세요. 그래서 이 유희의 끝은 절망이 아니라고 말해주세요. 만약 이 유희의 끝이 절망이라면 난 타락의 길을 걸어 버릴테니까요. 그리고 그대는 절망, 그 홀로 남는 고독아래 나를 버리고서 처음부터 나란 존재는 몰 랐다는 것처럼 아니 나란 존재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고 치부하면서 싸늘하게 저의 뒤를 돌아서 버릴테니까요. 그렇다면 정말 이 유희의 끝이 절망이어서 그대가 나를 떠날 것이라면 내게 남겨진 그대의 기억과 그대의 모든것을 가지고 떠나주세요. 그대에게 길들여진 나를 죽이고 떠나주세요. 모든 것을 남겨둔 채 그대만 나를 모르는 척 떠나지 말아 주세요. 난 그대가 그렇게 떠나버려도 난 욕조차 할 수 없으며 잊지도 못할테니까요. 그래서 이 유희의 끝이 절망만 아니길 기도합니다. 떠나지 말아주세요. 날 절망의 나락으로 밀어넣지 말아요. 나에게 유희의 끝은 없노라고 말해주세요. 그래야 내가 그대만을 바라보며 그대에게 웃음 지어 줄 수 있을 테니까요. 제 목: 공녀(貢女) 카세리아느 [33 회] 글쓴이: 썬샤인 2003-01-27 조회/추천: 1111 / 10 황태자비?황태자비!(25일분까지) - 1 요즘들어 뉴럴은 유난히 소란스러웠다. 그것은 황태자가 태어난 12월 31일이 가까워 왔기 때문이라는 것이 공식적인 이유였 지만, 누구든 그 이유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황태자의 반려(伴侶)를 맞아들이는 날. 황태자가 태어난 12월 31일, 그것도 다른 년도 아닌, 이번년! 황태자가 18살이 되고, 성인이 되는 날이기도 한, 올해 12월 31일은 대 제국 '아텔린' 의 차기 황제가 될, 황태자의 황태자비가 결정되는 날인 것이다. 게다가 명색이 다른 명칭이 황태자비 후보 교육 전문 아카데미인 '뉴럴'이니, 그러한 사실이 가져오는 여파가 다른 어느 곳보다도 크면 컸지, 작지는 않을 것이 분명했다. 자신들이 이때까지 뉴럴에서 힘들게 교육받으며, 평가받은 이유도 바로 여기에 목적 을 둔 것이 아니었던가. '아텔린'의 차기 황제의 반려, 황태자비라는 자리를 차지하기 위하여 말이다. 아텔린의 황후는 그저 높은 귀족가의 자제라는 것만으로는 될 수 없으 니까. 그것이 아니었다면, 그녀들은 결코, 힘들게 검술과 마법을 익히지는 않았을 것이 분명 했다. 그냥 평범하게 자신과 비슷한 귀족가의 자제와 결혼을 하면 그만인데, 힘들게 그 런 것들은 뭣 하러 배운단 말인가? 자신들의 그 고운 손에 물 하나 묻히지 않고서, 교양 있는 척, 눈에는 뵈지도 않는 책들 을 보는 듯, 눈길한번 주다가 그냥 시간이 되면 넘기면 그만인 것이다. 아름다운 드레 스와 아름다운 보석들을 몸에 걸치고서 우아하게 차나 마셔도 아무도 그들에게 뭐라 할 사람들은 없을 테니까. 어쨌든 그랬기에 지금 뉴럴은 너무나 소란스러웠으며,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흥분'에 가득 들떠 있었다. 그리고 그렇기에 서로를 보는 눈들도 서로 매서워져 있기도 했다. 가슴에는 가시를 가득 품고서 서로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것도 12월 31일이 된 후면 없어질 것이 뻔했다. 단 한명의 승리자와 다수의 패배자의 모습으로 말이다. 물론 지금도 그 모습은 어느 정도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기도 했다. 상위권의 학생들과 하위권의 학생들의 모습이 그러했으니까. 특히나 엘비레느공작의 여식인 실비제느의 위세는 하늘을 찌를 듯도 보였다. 마치 자신이 황태자비가 된 듯 행 동하고 다녔으나, 그런 그녀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그렇게 우수한 학생이었고, 강력한 배경을 지닌 가장 유력한 후보였으며, 황태 자와 가장 가까이 지냈었던 것처럼 보였으니 누가 그녀에게 당신은 될 리가 없다고 말 할 수 있었겠는가? 오히려 잘 보이기 위해서 노력하는 이들이 더 많은 것이 지금 일 뿐 이었다. 미래의 황후에게 잘 보여 두면, 나쁠 것은 없지 않은가? 하지만 누구도 미래의 일까지 는 알 수는 없는 법이란 사실을 그녀는 모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휘익_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올 만큼 빠른 움직임으로 부드럽지만 강하게 검 날이 허공 을 가르며 움직이다가 어느 점에서 멈췄다. 그리고 그렇게 조금의 움직임도 없이 계속 멈추어 있었다. 정적 속에서, 가만히 멈추어서 무엇을 찾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가늘고 약해보이지만 그 검이 가진 소름끼칠 정도의 날카로움에는 한순간 소름이 돋 을 정도였다. 부드러움이 가진 강함이 이런 것이라는 듯, 부드러운 움직임 속에 들어있 는 강함에 더없이 매료되어 버린다. 그리고 그 검의 끝을 아주 싸늘한 시선으로 다른 것에는 신경도 쓰지 않는 듯, 집중하 고 있는 카세리아느는 그 모습 그대로가 성스로운 의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을 조각해 놓은 조각품 같아 보이기도 했다. 대충 뒤로 묶은 머리, 편하게 입은 평상복일 뿐일 텐 데도. " 카세리아느." 뒤에서 누군가 그런 그녀의 이름을 불렀으나, 카세리아느에게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 었다. 그러자 론은 그런 그녀 쪽을 바라보며 피식 미소 지으며, 그녀의 등 뒤로 조심스 럽게 다가갔다. " 더 이상 움직이지 말아 주세요." 하지만 싸늘한 음성과 더불어 자신의 턱에서는 소름끼칠 정도의 싸늘한 예기가 느껴 져 왔기에 론의 움직임은 멈췄고 눈동자는 커다랗게 커져 있었다. 그러다가 자신을 무 표정하게 바라보는 카세리아느에게 실망한 듯,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 그대를 만나는데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줄은 몰랐는걸?" " 마법연습 중이 아니었던 것을 고맙게 생각하셔야 할 거에요. 마법 연습이었다면 지금 목을 노리고 있었던 것은 이 검이 아니라 화염 구였을 테니까요." 냉정한 눈길로 자신을 올려다보며 자신에 한말에 대답하는 카세리아느를 바라보며, 론은 그녀를 향해 웃으면서 한 손을 검으로 가져가며 입을 열었다. " 뭐, 난 그대 손에 죽어도 나쁠 것은 없어. 오히려 그대 손에 죽는 것에 억울하기 보다 는 영광이라고 생각할거야." " 그런 말을 하면 기뻐할 거라 생각하시는 건가요?" 자신의 검에 론이 손을 가져가자, 카세리아느는 살짝 검을 론의 손에서 검을 빼내어 밑으로 내리고서, 한쪽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론은 계 속 싱글거리며 대답했다. " 나빠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진 않아." “그렇게 되면 한낱 약한 나라의 일명 공녀(貢女)출신인 제가 감히 고귀하신 황태자 전 하를 살해했다는 이름 하에 그 여파는 저의 나라는 물론이거니와 부모님께도 미칠 텐 데 어떻게 기뻐할 거라 생각하시나요? 저는 상관없지만, 저로 인해 그렇게 되는 일은 피해하지 않겠습니까.” “후우, 그렇게 까지 이성적으로는 생각할 필요 없잖아? 그 말이 그렇게 힘든 거야?” “무슨…말이에요?” 카세리아느의 말에 론이 포기했다는 듯, 웃으며 말하자 카세리아느는 모르겠다는 듯 반분했다. 처음 카세리아느를 만났을 때는 상상도 못했던 모습이 아닐까. 저렇게 부드 러운 말을 내뱉는 저 아름다운 입술에서는 가슴 저릴 정도로 차갑고 냉랭한 말투만 나 왔으니까.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던 저 눈동자에는 모든 것을 거부하는 듯한 경멸어린 차가움만이 가득했으니까. 이렇듯 사랑스러운 모습은 기대도 못했을 것이 분명했다. 어쨌든 론은 지금 무척이나 행복했다. 론은 눈을 가늘게 뜨며 웃음 지으며 카세리아느의 볼에 두 손을 가져다대며 말했다. “내가 죽길 원하지 않는 다는 말.” 행복해서, 너무 행복해서 불안해질 정도로 행복하다. 론의 말에 카세리아느의 눈동자가 정곡을 찌른 모양인지 살짝 커지면서, 얼굴과 목덜 미가 붉게 변해 버렸다. “무, 무슨! 무엇 때문에 오신 것인지 그것에 대해서나 말해주세요.” “아니라는 거야?” “아닙니다.” 쑥스러운 듯, 론이 자신의 볼에 가져다 손을 끌어 내리고서, 시선을 피하며 소리치듯 말하던 카세리아느는 자꾸만 자신의 검을 잡지 않은 시원한 다른 한 손을 얼굴에 가져 다 대었다. 얼굴이 너무나 뜨거워서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으니까. 이 행복에 익숙해지다가 이 행복을 놓치게 되어 버리면, 아마 자신은 살아가지 못할 지 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미쳐버릴 정도로 갈망한다. 론은 자신의 시선을 피하는 카세리아느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웃으며 조심스럽게 한 손 을 턱으로 가져가 천천히 부드럽게 들어 올리며 말했다. “키스해도 될까?” 설사 이것이 행복이 아니라고 하여도, 놓치고 싶지 않다. "……" 론의 말에 카세리아느는 그저 아무런 대답도 없이, 그를 차가운 눈길로 올려다보고만 있었다. 그것은 긍정의 표시도 거절의 표시도 아닌 아주 애매한 것이라서, 론 살며시 눈썹을 들어올리다가 다시 물어왔다. " 허락의 표시야?" "……" " 침묵은 긍정의 줄임말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해석해도 좋아?" "……"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말하는 론을 향해서, 카세리아느는 자신의 푸른색 눈동자로 무 언가 뚫어 볼 듯이 론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을 뿐, 이번에도 대답은 없었다. 조용한 침 묵, 굳게 다물어진 붉은 입술이 무척이나 고집스럽게 보였다. 침묵은 긍정의 줄임말이라는 말을 인용시키기에는 더없이 카세리아느의 눈동자는 침 착할 정도로 차갑기만 하기에, 론은 계속 카세리아느를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휘이잉_ 살며시 바람이 불어와, 론과 카세리아느의 머리카락을 엇갈리게 만들어, 이마를 간지 럽히고, 그제서야 카세리아느의 입술이 조심스럽게 벌어졌다. " 사양하겠습니다." " 하아.." 아까까지 얼굴을 붉혔다고는 생각도 못할 만큼의 단호한 목소리와 도도한 모습. 유혹 하듯 벌어졌던 입술사이를 비집고 나온 말은 차가운 거절의 한마디였다. 그리고 그런 카세리아느의 대답에 론의 입에서도 한줄기 한숨이 내쉬어져 나왔다. 조심스럽게 불어오는 바람보다 더욱 조심스럽게 내쉬어진 한숨 속에는 알 수 없는 웃 음도 섞여 나왔다. " 대충 짐작은 했어." 그다지 실망하지는 않은 모양인지, 싱긋 미소 지으며 말하는 론을 향해서 카세리아느 는 여전히 시선을 거두지 않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 무엇 때문에, 연습 중에 찾아오신 건지 용건을 말해주세요." 뉴럴, 황태자비 후보 교육 전문 아카데미에 황태자가 찾아온 이유. 웬만해서는 황자들과 황태자는 뉴럴에 발걸음을 하는 것은 극히 드물었다. 그리고 뉴 럴내에서도 교육중일때, 황태자와 황자들이 이곳에 발걸음을 두는 것은 거의 금지하 고 있기까지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러다가 괜히 황태자나 황자의 눈에 특정 영애들이 들어오기라도 해서 이상한 소문이라도 퍼진다면 황태자비 후보를 고르는 데, 좋은 영향은 끼칠 리 없을 것은 불 보듯 뻔했고, 그렇게까지 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 영애가 나중에 다 른 영애들에게 좋은 일을 당할 리는 없기 때문이었다. 되도록 공정성 있게, 그리도 더욱도 영애들이 교육에 힘쓸 수 있도록, 황실 내에서도 뉴럴에는 웬만하면 발걸음을 옮기지 않는 것이 당연하게 되어 버렸다. 그런데 지금 황태자가 뉴럴에 와있는 것이다. 그것도 한 특정영애의 개인 혼자서 연 습하고 있는 곳에 말이다. 그러니 카세리아느가 그렇게 묻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 다. " 대충 짐작은 하고 있을 거라 생각하는 데, 내가 틀린 건가?" " 제가 어떻게 알거라고 생각하나요."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카세리아느를 바라보며 말하는 론에게, 카세리아느는 모 른다고 잡아떼며 단호하게 대답했다. 대충 짐작 가는 것도 없지 않아 있었으나, 그것 은 자신이 생각해서는 안 될 종류의 것이었다. " 영특한 그대라면, 잘 알고 있을 텐데?" " 모릅니다." " 그대가 그렇게 말하는 건, 지금 그대의 눈과 귀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다고 말 하는 것과 같아. 그렇지는 않잖아?" "……" 카세리아느가 모른 다는 듯, 말하자 론은 카세리아느의 얼굴을 감싼 두 손에 힘을 주 며 목소리에 힘을 주며 말했다. 카세리아느는 그런 론의 눈동자를 어느 정도 가만히 응시하다가 한손으로 자신의 볼에 있는 론의 손을 내리며 유연한 몸동작으로 돌아섰 다. 빛을 빨아들일 듯이, 윤기 나는 긴 검은 머리카락이 사라락 움직였고, 살며시 꽃향기 도 풍기는 듯 했다. 그리고 론의 나머지 손도 카세리아느의 볼을 떠났고, 가늘어진 론 의 눈동자에 그녀의 뒷모습만이 잡혀 들어왔다. 그리고 그와 함께 차가운 미성이 론의 귓가에 들려왔다. 마치 노래하는 듯한 착각마 저 불러일으키는 마력이 담긴 듯한 미성. " 그렇다면 저의 눈은 지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어느 것도 볼 수 없고, 귀는 아무것 도 듣지 못한다고 말해드리겠어요. 그래서 론이 무얼 말하는지 모르겠어요." "모르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척 하는 것은 아니고?" 론의 말에 카세리아느가 살짝 움찔하며 고개를 살짝 뒤로 돌렸으나, 곧 고개를 살짝 가로 저으며, 카세리아느는 자신의 검을 들어 올렸다. 여성이 쓰기에는 가장 알맞은 형태의 은청빛의 레이피어가 카세리아느의 가슴 높이로 들어 올려졌다. 검이 딱히 미(美)를 추구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카세리아느가 들고 있는 레이피어는 계속 가만히 들여다본다면 누구나 눈을 동그랗게 뜰만큼 단아한 아름다움이 스며들어 가 있었다. 은은한 은청빛의 레이피어는 황태자가 카세리아느에게 선물한 것이었다. 태양의 빛을 반사해 눈부시도록 빛나는 레이피어를 바라보다가, 카세리아느는 살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 모르는 척 하는 것이 저에게는 더 올바른 일이 아닌가요." 너무 눈부신 태양의 햇살에 감히 눈을 뜨지 못하고 다른 팔을 눈쪽으로 가져와 빛을 가렸다. 구름 한점 없는 하늘이 무척이나 푸르러서 마음마저 상쾌하게 만들 정도였다. 싱그러운 푸른 잎들이 햇살에 만족한다는 듯이, 바람과 함께 화음을 만들어 냈다. 사라라락- 녹색의 수도 없이 많은 나뭇잎들이 햇빛을 받으면서 바람에 휩쓸려 몸을 움직였고, 그런 잎들이 서로 서로 부딪히면서, 기분 좋은 소리를 냈다. 싱그러운 자연, 대지의 노 래에 마음이 편해짐을 느꼈다. "그렇지 않아." 론의 단호한 말에, 카세리아느는 더욱 검을 들어올리다가 나뭇가지에서 떨어져 나온 하나의 나뭇잎에게로 빠르게 내리 그었다. 휙- 그렇게 검이 나뭇잎을 가르고 지나갔으나, 나뭇잎은 하나로 붙어 있는 듯 그 모습을 유지하며, 떨어져 내렸다. 카세리아느의 차가운 눈동자는 그것을 계속 응시하다가 조 용히 입을 열었다. " 당신은 홀로도 빛을 발하는 태양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빛없이는 자라지도 못하는 한낱 나무 한그루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런데 제가 어떻게 그 자리를 탐내겠습니까. 나무가 백번을 바란다고 한들 계속 자라서 태양에게는 다가설 수 없습니다." 휘이잉_ 곧이어 바람은 살며시 불어와 카세리아느의 머리카락을 흩날렸고, 계속 바닥으로 추 락하던 나뭇잎도 조심스럽게 건드렸다. 그리고 나뭇잎은 정확하게 반으로 갈라지며 서로 떨어짐을 안타까워하며 바닥으로 추락했다. "…… 태양은 가까이 할 수도 없을 정도로 너무나 뜨겁기에,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질 테니까요." 카세리아느가 그렇게 말하자, 론은 허무한 듯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 웃기지마. 태양은 내가 아니라 그대니까. 나는 그런 당신만을 중심으로 해서, 돌고 있는 달이야." 론의 말에, 카세리아느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서 희미하게 보이는 론을 바라보며, 고 개를 저으며 말했다. "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 말이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건 그대야. 어쨌든 그대가 아무리 그렇게 말해도 난 포기 하지 않아. 그리고 그대에게 이런 말을 들으려고 이렇게 일부러 찾아온 것도 아니야. 알고 있지? 난 이기적이야. 그대의 대답 따윈 들어도 그만, 듣지 않아도 그만이라고!" 론은 신경질적으로 말하며 카세리아느가 검을 잡고 있는 손 쪽으로 재빨리 손을 움직 여, 카세리아느가 들고 있던 검을 빼앗아 들었다. " 론!" 카세리아느가 놀란 듯, 몸을 틀어 론을 바라보면서 소리치자, 론은 검을 슬쩍 한번 바 라보다가 다시 카세리아느 쪽으로 고개를 들어 단호하게 말했다. " 분명 말했었어. 나의 하나뿐인 반려가 되어 달라고 말이야. 그러니까 당연한 것이라 고 생각하지 않아?" " 하지만 이건 틀린 일이에요." " 틀리지 않아. 나의 반려도 오직 그대 하나 뿐이고, 그렇기에 나의 반려인 황태자비 도 그대가 아니면 그 누구도 될 수 없어." " 억지에요." 될 수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카세리아느는 공녀의 신 분이었다. 아무리 아르미난에서는 공작가의 귀한 영애였다고 하여도, 이곳에는 차비 로 보내어진, 그러니까 속된말로 공녀일 뿐이었던 것이다. 그랬기에 뉴럴에서도 카세리아느라는 이름의 소녀는 얼굴이 너무나 반반하기에 황태 자를 꼬셔서 감히 황태자비를 억지로 들어온 곳으로 통할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되 지 못했다. 그리고 데스라엘 백작또한 황태자의 압도적인 모습에 반하여 한순간 들여보내기는 했지만, 사실적으로 말해서 황태자비의 가능성은 생각조차 해 볼 수가 없었다. 황태자비. 아텔린의 백작의 직위를 지닌 가문의 영애조차도 아득한 자린데, 그것도 다른 나라에서 보내진 영애가 황태자비가 된다? 그것은 정말이지 웃긴 소리일 뿐이었 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모를 황태자도 아니었으나, 황태자는 그것조차는 어떻게 되도 상관치 않을 만큼, 지금 카세리아느를 잡고 싶었다. 황태자의 아련한 눈길이 차갑게 굳어 있 는 카세리아느의 눈동자에 비춰 들어왔고, 카세리아느는 다시 말을 이었다. "… 왜 모르는 거예요. 난 그때해준 말만으로도, 그때 해준 고백만으로도 충분해요." 카세리아느의 부드럽게 들려오는 말에 론은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 내가 충분하지 않아. 모르겠어?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는 달은, 그 중심인 태양이 사라지면, 자신도 중심을 잃고서 방황하다가 사라져 버리고 말아." " 로,론.?" 아스라이 웃는 그 모습과 론의 그 한마디에 카세리아느의 몸이 살며시 떨려왔다. 맑 디맑은 깊은 푸른 눈동자가 불안한 듯 흔들리며, 그 안에 비치었던 그의 모습도 흐려 졌다. ' 어째서? 어째서!' 혼란스럽게 요동치는 가슴을 힘들게 부여잡고 있는 카세리아느에게 론은 여전히 아 슬아슬한 미소로 보여주다가, 검을 만지작거리며 응시하다가 입을 열었다. " 그대는 그냥 이렇게 있기만 하면 돼. 그것이면 충분해. 그럼 난 이만 가보도록 할 테 니, 연습 열심히 해." 살며시 카세리아느에게 자신이 빼앗았던 검을 다시 건네어 손에 쥐어 주며, 론은 걸 음을 옮겼다. 푸르렀던 나뭇잎들의 향긋한 노랫소리도 들리지 않아. 하늘의 푸름도 태양의 눈부신 빛도 눈에 들어오지 않아. 오직 보이는 건, 흐려져 가는 론의 뒷모습뿐이다. 론의 바람에 흔들리며 찰랑이는 머리카락이 햇빛을 받아 검은 색과 청빛이 어우러져 가히 장관을 이루어 냈다. 털썩- 챙! 그리고 론의 모습이 카세리아느의 눈동자에 더 이상 비치지 않았을 때, 카세리아느는 무슨 긴장이 풀렸는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그와 함께 카세리아느의 손에 들려있던 레이피어는 바닥에 꽂혀 아슬아슬하게 자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 그러지 말아요, 그러지 말아요. 론." 카세리아느의 떨리는 손에 의해 검이 흔들리는 건지, 아니면 땅에 강하게 꽂혔던 충 격 때문에 검이 몸을 떠는 것인지, 혹은 다른 무언가 때문에 검이 떨리는 것인지는 모 르지만, 검은 아주 힘겹다는 듯 몸을 떨고 있었다. " 나 당신만 바라보게 해줘야 하잖아요. 제발, 당신에게서 그.를 떠올리게 만드는 잔인 한 짓은 하지 말아줘요. 그.를 계속 내게 남기려 하지 말아요. 그렇게 되면, 나중에 그.가 혹여 라도 나타나게 된다면, 당신에게 한 맹세는 거짓이 되어 버리잖아요." 아까 보였던 그 웃는 모습이 마치 달을 닮은 그. 의 웃음과 너무 닮아 있어서, 매혹적 인 론의 웃음과 그. 의 웃음은 너무나 틀린 것이었는데도 그를 떠올리게 되어 버려서 카세리아느의 마음은 혼란스러웠다. 그. 와 론은 분명 틀린 향기를 지니고 있다. 그. 가 신비로운 달의 향내 음을 지녔다 면, 론은 도발적이고 매혹적인 검붉은 장미의 향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카세리아느 는 그와 론이 동일인이 아님을 느끼면서도 론을 선택한 것이다. " 나 당신을 선택한 거 후회하지는 않지만, 론에게서 그. 의 모습을 발견한 지금은 무 작정 불안해지기 시작해요. 혹시라도 내가 그.를 너무나 생각하고 있어서, 론에게서 그. 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일까 봐. 그러니까…그러니까…" 그러면 당연히 다른 하나를 가졌음으로 다른 하나는 손에서 놓아버려야 했다. 그런데! 그런데! 그것을 론이 다시금 카세리아느의 기억에서 꺼내고 있는 것이다. 마 치 죄를 지었다는 것을 깨닫게라도 만들듯이, 그를 떠올리게 만들고 있었다. 찰랑- 고개를 숙이고 무언가를 중얼거리던 카세리아느는 금속과의 마찰음이 들려오자 살며 시 고개를 들어 검을 응시했다. 도발적인 붉은 루비 목걸이가 레이피어와 부딪혀 마찰 음을 내며 걸려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미스릴로 테를 만들고 보석이라고는 루비 하나만을 포인트로 만든 수수해 보이면서 도 아름다운 목걸이. 화려하거나 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카세리아느에게는 충분히 그 것만으로도 아름다워 보였다. 목걸이의 앞면에서 보이는 루비를 뒤로 돌려보면 작게 이렇게 이니셜이 새겨져 있었 다. L&K라고. 그리고 더 자세히 보면 그것보다 더 작은 글씨로 이렇게 새겨져 있다. [에프리트] 고대어로 해석한다면 '구속'이라는 의미를 지닌 구절이. 카세리아느는 그 목걸이를 손에 꽉 쥐어 잡으며 자신의 얼굴로 가져가며 눈을 꼭 감 으며 최면을 걸듯이 중얼거렸다. " 흔들리지 않게 잡아줘요." 왠지 모르게 목걸이에서 론을 연상시키는 매혹적인 장미향이 느껴지는 듯도 했다. * * * 싱그러운 초록색의 머리카락의 척 보기에도 귀엽기만 한 소녀가, 바위 위에 앉아, 그 어린 모습에는 어울리지 않을 만큼, 심각한 얼굴로 고민 하는 모양인지, 턱을 괴고 서 자신의 순수해 보이는 푸른색 눈망울을 이리저리 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소녀의 앞에는 순백의 은빛 머리카락의 차가운 인상을 주는 소년이 소녀 를 보호하는 듯, 서있었는 데, 소녀가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지자, 곧 소녀의 이름을 부르며, 소녀가 생각에서 빠져나오게 만들었다. " 마샤님? 마샤님!" " 에, 에엣?" 냉랭한 유즈의 목소리에 무언가 생각하고 있는 포즈를 취하고 있던 마샤는 자신의 푸 른 눈동자를 동그랗게 뜨고서 외마디를 지르며, 마치 무언가를 훔치다가 들킨 도둑의 모습으로 주위를 황급히 들러봤다. 그리고 그 눈동자에 다른 사람이 아닌, 유즈의 인상 찌푸린 모습이 들어오자, 자신 도 유즈의 모습을 따라하려는 듯, 한쪽 눈썹을 살짝 들어올려 기분 나쁘다는 모습을 보이며 소리쳤다. " 뭐야? 놀랐잖아!" 불만이 가득한 듯, 입에 바람을 부풀리고선, 서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유즈를 마샤는 눈을 잔뜩 치켜 올리며 올려다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 날 내려다 보지 마! 나 올려다보는 거 싫어해! 난 내가 내려다 봐야 한단 말이야!" " 그게 그렇게 불만이시면, 마샤님께서 앉아 계시는 바위위에 서서 절 내려다보시면 되는 일일 텐데요" " 뭐야?" " 마샤님께서 제가 올려다 볼 수 있도록 모습을 취해 달라는 말입니다." 말 한마디에 얼음조각이라도 부서져 나올 것 같은 차가움에도, 마샤는 그것이 문제 가 아니라, 자신에게 말대답한 유즈가 마음에 안든 다는 듯이 다시 강하게 째려보며 맞받아쳤다. " 유즈, 네가 지금 날 기만하려는 거야?" "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감히 마샤님의 얼굴을 바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영광인 것을요." " 흐음?" 유즈의 말에도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마샤는 팔짱을 끼고서, 콧소리를 냈으 나, 유즈는 여전히 차가운 모습으로 마샤를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 특별히 유즈니까 이렇게 날 내려다보는 것도 용서해 주겠어. 다른 놈이었다면, 지 금 세상에 있지 않았을 거야." " 영광입니다." " 그.러.니.까." "?" 마샤가 모든 것을 용서한다는 듯, 아주 편한 모습으로 그렇게 말하다가, 다시 말을 또박또박 끊어서, 자신을 강렬한 눈빛으로 바라보자, 유즈는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 은빛 눈동자에 의문이 섞인 것으로 보아, 기분 나쁜 의미는 아닌 듯싶었다. 그리고 마샤는 유즈가 자신을 말을 못 이해하는 듯 보이자, 눈썹을 꿈틀꿈틀 거리다 가 소리쳤다. " 날 내려다보지 말라구!! 말로 일일이 설명해 줘야해?" " 죄송합니다." 마샤의 말에 알겠다는 듯, 유즈는 고개를 숙이면서 대답했고, 마샤는 그 모습이 더 욱 마음에 안든 다는 듯 눈썹을 찌푸렸다. " 요즘 기강이 빠졌어! 빠졌다구! 응?" 심술 난 어린아이처럼 그렇게 되뇌는 마샤였으나, 그 말에 유즈가 아무런 응답도 없 이 그저 고개를 숙이고서 오랜 시간을 가만히 있자, 가만히 고개를 내려 유즈를 상태 를 확인하려는 듯,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 에? 유즈, 삐졌어?" "......" " 에이, 농담이었어~ 내가 유즈한테까지 그런 장난감들을 대하듯 하지는 않잖아~ 잠 깐 심심해서 그런 말을 해본 거였어~ 응?" "......" " 넌 나 내려다 봐도 용서할게~ 이거 파격적인 조건이다?" "......" 휙! 마샤의 말에 유즈가 반응도 보이지 않자, 마샤는 눈을 꽉 감았다가 다시 뜨고서, 자 리에서 일어나, 고개 숙이고 있는 유즈의 얼굴을 번쩍 자신에게 향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는 유즈가 놀란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보자,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 어쭈구리? 네가 지금 날 무시한다 이거야? 네가 날 무시해?" 마샤가 화를 내면서 말을 하는 데도, 유즈의 모습은 마치 뉘 집 개가 짖느냐는 듯, 담담하기만 했다. 살아있음에도 마치 살아있지 않은, 숨을 쉬지 않는 차가운 조각상처 럼, 유즈는 그런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움직이지 않던 눈동자에 푸른 눈망울이 가득 잡혀 들어오자, 살 짝 눈을 가늘게 만들며, 힙겹게 닫혀있던 입술을 열었다. " 무시한 것은 아닙니다." "그게 아님 뭐야? 어쭈, 지금 네가 날 놀려?" 다만, 그 눈동자에 마음이 지나치도록 흔들리는 것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 다. 그리고 여전히 뾰루퉁한 모습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마샤를 바라보며 다시 한번 말을 이었다. 거짓임을 알고 있다. 지금 이런 모습도 그녀가 가진 여러 개의 모습들 중에서 일부 에 지나지 않는 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은 지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저 눈동자가 말해주고 있었다. 밑도 끝도 찾을 수 없는 지극한 무관심의 눈동자. 모든 일에 어느 정도의 관심도 가지지 않고, 자신의 밑바닥에 가라앉은 진실은 누구 에게도 알려주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남들을 기만한다고 말하면, 그것은 자신보다 도 그녀가 더 가깝다. 남들에게는 그저 거짓으로 만들어진 모습만을 보여줄 뿐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그런 그녀의 거짓의 모습에 익숙해져 가고,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게 되는 것 뿐, 그것 뿐이다. 그리고 그녀에게서는 적어도 그것이 유일한 재미였을 테니까. 그녀에게는 지금 이 순간마저도 자신에게 속한 무한한 시간중의 하나의 유희일 뿐이 라는 것을, 그녀의 시간에 속한 자신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 이렇게라도 있으면, 마샤님께서 무엇을 이때껏 그렇게 궁리하셨는지, 가르쳐 주지 는 않을 까하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유즈가 살짝 은빛 눈동자로 그녀의 눈동자를 뚫어질 듯 응시하며 조용히 입을 열었 다. 여전히 무심하게 느껴질 정도의 차갑기만 했다. 그녀가 진실을 보여주지 않는 다면, 자신이 그녀의 밑바닥으로 내려 갈 수밖에, 방법 은 없다. 물론 그 밑바닥까지 내려간다고 해도, 그 숨겨진 것에 강한 보호막이 쳐져 있다면 더 힘들 테지만 말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자신은 그럴 생각은 조금도 가지 고 있지 않았다. " 에이, 뭐야? 그런 거였어? 그럼 진작 말하지!! 괜히 심각하게 고민했었잖아!" " 그러니 뭘 그렇게 생각하셨는지, 말해 주십시오." 고민은커녕, 투정만 부렸다고 해도 믿을 판에 그 말은 상당히 어색해 보였지만, 유즈 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답했다. 활짝 웃고 있는 마샤의 모습은 설사 아무것도 모르 는 천진한 어린아이도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순진해 보였다. 그녀의 밑바닥까지 내려가도, 그 보호막을 벗겨냈다고 해도, 그녀의 그 철저한 자물 쇠까지는 열지 못 할 테니까. 자신의 생각을 잠깐 정리하는 듯, 눈동자를 위로 올려서 굴리다가, 마샤는 다시 유즈 를 바라보면서 눈을 빛내며 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 그녀가 '아텔린'이라는 나라의 황궁에 있다고 하더라?" 왠지 모르게 유즈의 마음은 살짝 불안해 지기 시작했다. " 그래서 어쩌시겠다는 겁니까, 마샤님?" 유즈가 살짝 찡그리며 물어오자, 마샤는 '너 정말 유즈 맞아?'라고 말하는 듯 보이 는, 실망이라는 눈초리로 유즈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다가, '인심 썼다'라는 표정 으로 다시 손가락을 튕기면서 말했다. " 어쩌긴 뭘 어째?! '아텔린'의 황궁으로 쳐들어가야지!" " 어떻게 말입니까?" " 우선은 이 근처 강한 나라의 공주가 돼야지. 그렇게 되면, 어떻게 해서든 들어가는 일은 식은 죽 먹기 아냐? 왕을 구어 먹든, 아니면 억지를 부리든지 해서, 어떻게 해서 든 아텔린의 황성으로 들어가면 되는 거란 말이야. 이정도도 모르겠어?" 마치 어린아이가 자신에게 너무 흡족한 다는 듯한, 오만한 모습으로, 유즈를 바라보 면서 말을 잇는 마샤를 보면서, 유즈는 살짝 눈동자를 내리 감다가 뜨고는 조용히 물 었다. " 무엇 때문에 꼭 공주가 되어서라는 귀찮은 조건으로, 힘들게 아텔린에 가야 하는 겁 니까. 마음에 먹는다면, 지금 이 순간도 어렵지는 않을 텐데요." 핵심을 찌르는 듯한 질문에도, 마샤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으면서, 어린아이보다 더 순진한 미소를, 천사보다 더 순수한 미소를 지으며 재밌겠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 황태자비가 돼야지!" 그리고 그런 마샤를 유즈는 한참을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다가, 고개를 내저으며 어 디론가 걸음을 옮겼다. 하긴 어쩌겠는 가? 고귀하신 여왕과도 같으신 분께서 하신다 면 따르는 것이 신하된 도리가 아니냔 말이다. 그리고 다만, 그녀를 볼 수 있다는 마음에, 그녀란 말에 그냥 무작정 마음이 혼란스러 워 지기 시작했다. ======================================== 이걸로 전부 올리는데는 성공했지만..역시나 씁쓸한 마음은 주체할 수가 없네요.. 전부다 날려버렸잖아요. 이때까지 쌓아온 모든것들을..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80회가..33회로 줄었다는 것..ㅜ_ㅜ.. ...언제나 행복하시길... 제 목: 공녀(貢女) 카세리아느 [34 회] 글쓴이: 썬샤인 2003-02-08 조회/추천: 1210 / 11 황태자비? 황태자비! - 1 . 주루륵- 조심스럽게 연분홍빛 찾잔에 라일락향이 나는 차를 부어 넣던 에린은 멈칫 손을 멈추고서 정성스레 차를 붓느라 숙였던 고개를 들어 올렸다. 짧은 분홍색 머리카락이 어느새 자라 가까스로 어깨에 다달아 있었고, 얼굴에는 여전히 홍조가 가득 띠고 있었다. 하지만 전이랑 조금 다르다면,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눈동자에 왠지 모르게 다른 이채가 어려 있다는 것 정도였다. 타앗_ 그리고는 백색의 주전자를 조심스럽게 하늘빛 테이블보로 덮여 있는 테이블에 올려다 놓고서 살짝 창쪽으로 고개를 돌려, 잠시동안 이상한 눈길로 밖을 바라보았다. 에린이 차를 부어 넣었던 찻잔에는 채 반도 되지 않은 옅은 갈색빛의 액체가 담겨 있었고, 그것에서는 뽀얀 김이 어리며 하늘위로 조금씩 두둥실 피어 올랐다. 그와 함께 기분이 아늑해 질정도의 라일락 향이 주위로 하늘하늘 퍼져 나갔다. "..... 아니겠지?" 분홍빛 눈동자에 살짝 이채의 빛이 어리면서, 조그마한 분홍색 입술을 달싹이며, 조용히 그렇게 중얼 거린다음, 살며시 허리에 손을 언지고서 쉬이 한숨을 내쉬었다. " 그래,......아닐거야." 그렇게 창밖을 응시하던 에린의 눈동자가 살며시 작아진듯 싶었으나, 그렇게 작아진 눈동자에도 분명히 옅은 구름들로 둘러싸인 푸르른 하늘은 조금의 모자람도 없이 눈안에 들어왔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비만 주루룩 주루룩 내리면서 마음을 우울하게 만들던 하늘은, 카세리아느가 돌아옴을 시점으로 해서 맑게 개여 화창한 하늘을 보여주고만 있었다. 그리고 빛을 잃은 듯 했던 백색 황궁도 그와 함께 여전히 순백의 빛을 잔뜩 뿜어냈다. 만족, 만족! 이정도면 대 만족이었다. 자신을 아주 무심하고 싸늘하게 쳐다보던 황태자, 론의 그 잔혹함이 빛을 잃은 듯 보였으니까. 정말이지 이정도면 정말이지 만족이었다. 모든것이 다시 정상대로 돌아온듯 싶어서. 푸른 하늘, 살며시 자신의 코를 자극하는 꽃의 향기..꽃의 향기? 한없이 하늘과 백색 황궁의 아름다움에 빠져 넋을 잃고 있던 에린은 갑자기 고개를 빠르게 돌려 테이블을 바라보았다. 하늘빛 체크무늬의 테이블보는 여전히 그대로였고, 옅은 뽀얀 김을 어려내는 차주전자도 그대로였다. 그리고 연분홍빛 찾잔도 그래로였고, 뭔가 다른 것은 알아 내지 못했다. 처음부터 다른 것은 존재하지도 않았으니까. " 뭐, 뭐더라? 뭔가 생각 날것 같은데?" 후각을 마비시킬듯한 짙은 꽃의 향기...숨막힐 정도로 짙은 꽃의 향기.. ' 그렇게 그대를 기억해 드리겠어요.' 아른이 기억속에 아플정도로 짖이겨 들어오는 이상한 소리. 무엇이 생각날 듯도 싶었으나, 에린은 살며시 고개를 휘휘 저으며, 다시 찾잔을 바라보다가 반만 따라져서 식어 있는 차를 바라보며 이상하다는 듯 한쪽 눈을 내리며 중얼 거렸다. " 내가 차를 반만 따르고 가만히 있었나? 에이, 아무렴 어때!" 그리고는 다시 찾잔에 들어있는 차를 비우고서 다시 차주전자를 따뜻하게 만들어 집어 들고서, 이쁜 연분홍빛 찾잔에 다시 차를 따라 넣었다. 바람을 타고 연한 라일락 향기가 기분을 나른하게 만들며 뿜어져 나왔다. " 흐음- 이제쯤 카세리아느님이 오실때가 되었는 데? 늦게 오시면 또 차가 식어 버릴 텐데." 다시 자신에게로 찾아와준 자신의 주인을 기다리며, 에린은 두근두근 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방문 쪽을 바라보았다. 차가 식기전에- 이 차가 식어서 다시 버려야 하기 전에 빨리 방문을 열고 들어와 주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 에린이었다. " 뭐, 그럼 버리고서 다시 끓이면 되는 거니까! 오시기만 하시면!" 꿈이 아니라고, 카세리아느님이 돌아 온것이 꿈은 아니라고, 혼자서 저 방문이 열리기를 바라면서 이렇게 차를 끓이던 날과는 다르다고! 달칵_ 문이 조심스럽게 열리고, 그 모습 뒤로, 검은 머리카락이 찰랑이는 모습이 아스라이 들어오자, 에린은 한껏 함박 미소를 지으며 카세리아느에게로 다가가 힘껏 안겼다. " 카세리아느님! 카세리아느님!" " 에린? 기다리고 있었던 거니?" 갑작스럽게 방문을 열고 들어오자, 안겨오는 분홍색 물체에게 멍하니 가만히 있다가, 곧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카세리아느는 물어왔다. " 다행이에요. 차가 식지 않을때 들어와 주셔서, 정말이지 다행이에요." 에린은 다시 몸을 떼고서, 조용히 중얼거리다가, 자신의 큰 눈동자를 떠서 한동안 카세리아느를 바라보더니, 다시 미소 짓고서 카세리아느의 손을 잡고서 테이블로 끌고가며 입을 열었다. " 카세리아느님! 차드세요! 에린이 차를 맛있게 끓여놨어요!" " 알았어, 알았으니까. 그렇게 급하게 움직이지마." 다급히 움직이는 에린의 손에 이끌려, 푹신한 의자에 앉은 카세리아느는 살며시 분홍빛 찾잔에서 김이 올라오는 모습을 응시하다가, 다시 말똥말똥한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보는 에린을 바라보면서 살짝 입을 열었다. " 끓여 놓고 기다린거니, 에린?"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찻잔. 그리고 코를 풍겨오는 연한 라일락 향기. 손을 대니 뜨겁게 달아 올라 있는 연분홍빛 찾잔. 그렇게 묻자 에린은 그 분홍색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 네!" " 잘 마실께." 계속 자신을 말똥말똥 바라보는 에린을 바라보면서, 카세리아느는 살짝 찾잔을 들어 올려 조심스럽게 입에 가져다 댔다. 향긋한 꽃내음은 상당히 좋긴 하지만, 혀에 살짝 와닿는 이 씁쓸함은 영 익숙해지기에는 무리일 듯 했다. 하지만 에린의 차끓이는 솜씨가 굉장히 늘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자신을 바라보며 마냥 좋다는 듯, 웃고 있는 에린의 웃음을 보면서 그냥 어째서 이렇게 잘끓이게 되었냐고는 물어 보려다가, 괜히 입술을 꽉 눌렀다. " 맛있어요? 카세리아느님? 에린은 카세리아느님 줄려고 몇번이고, 몇번이고 끓였었는 데?" " 그래, 맛있어." " 헤에." 그리고 에린의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에린의 새하얀 손에 있는 몇개의 데인 자국을 그저 아련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워낙 덤벙이는 에린이니까, 차를 끓이는 데도, 저렇게 데이는 자국을 많이 낸 것이리라. 그것도 자신을 위해서 끓이느라 말이다. 그렇게 몇분을 향긋한 차를 마시고 있었을 때, 에린이 입을 오물조물 거리다가, 약간 흥미로운 눈동자로 카세리아느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 카세리아느님! 그 목걸이요, 분명 아침에는 없었던 거잖아요!" 카세리아느의 모든 코디라는 것은 자신이 담당하니까, 당연히 카세리아느의 목에 잘 안보이게 걸려있던 목걸이가 에린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몰랐다. 하물며 귀에 건 아주 작은 피어싱 하나라도 에린은 정확하게 알아내니 말이다. " 그래." " 어디서 나신 거에요? 정말 이뻐요!" " 그래." " 에이~ 말해주세요! 선물 받으신 거에요? 누구 한테서요? 오늘은 황태자 전하께서 오시지도 않았는 데, 다른 사람이 주던가요? 그러면 안되는데? 황태자 전하께서 질투하시 잖아요! 카세리아느님?" " 글쎄." 에린의 말에 애매하게 대답하면서 카세리아느는 말하기 싫다는 듯, 입가를 내렸다. " 우웅, 그러시면 정말 그러시면 안되는 데? 으음. 하지만 어쨌든 그 목걸이, 정말 이뻐요. 카세리아느님의 목이 워낙 가늘고 새하얗기 때문에 무척이나 잘어울려요. 사파이어 계통의 푸른 계통도 어울리시지만, 왠지 모르게 그 붉은 루비도 무척이나 잘어울리시는 데요?" " 고마워." 카세리아느는 살짝 손으로 자신의 목에 걸려있는 목걸이를 더듬으면서 살짝 입술을 찍어 눌렀다.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루비가 보이는 뒷부분에 무언가 새겨져 있는 부분을 조심스럽게 손으로 쓰다듬었다. " 아, 맞다!" 카세리아느가 그렇게 손으로 목걸이를 어루만지고 있을 때, 에린은 갑작스레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손바닥을 마주 쳤다. 그리고 그모습에 카세리아느는 의문띤 눈동자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 무엇 생각난 거라도 있는 거니, 에린?" " 네! 이 소식 알고 계세요?" 흥분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는 에린은 그다지 기쁜 소식은 아닌 모양인지, 살짝 볼을 불려서 말했다. 카세리아느가 대답도 없이 그저 자신을 계속 바라보자, 에린은 다시 눈썹을 찌푸리다가 입을 열었다. " 이번에 '베르디'에서 에이리스황녀가 이 곳에 온다고 하던데요?" 에린이 그렇게 심각한 듯, 얘기하자, 카세리아느는 별로 흥미가 당기는 이야기가 아니었던 모양인지, 다시 찻잔을 집어 들어 조금 남은 차를 입안으로 가득 채워 넣었다. 약간 식어버린 차가 쉽지 않게 입안으로 들어와 목을 타고 내려갔다. " 어어? 그렇게 쉽게 생각하실 일이 아니에요! 황태자비를 자청하면서 오길 청했단 말이에요!" " 그러니." 탁_ 카세리아느는 찻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으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차가운 눈동자로 에린을 향하면서 그게 어떻냐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유도 없이, 자신의 손이 루비 목걸이로 다시 돌아가 새겨진 홈을 만지고 있는 이유는 알지 못했다. 또다시 파란이, 그리고 왠지 모를 아주 거대한 폭풍이 올듯했다.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럽게 도시를 메울 폭풍을 하루 앞둔, 폭풍전야의 모습을 띠면서 하루는 아주 조용하게 흘러가는 듯 보였다. 제 목: 공녀(貢女) 카세리아느 [35 회] 글쓴이: 썬샤인 2003-02-10 조회/추천: 1279 / 13 황태자비? 황태자비! - 2 "이곳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에이리스 황녀." 떠뜰석한 무도회장에서 이리스는 와인을 손에 든채, 자신의 옆에 있는 에이리스를 향해 입을 열었다. 에이리스와 이리스가 있는 곳은 말하자면 특별석과 같은 곳이었기에 황족과 에이리스밖에는 다른 귀족들은 접근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황족들이 에이리스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자 이리스가 말을 걸어 온 것이었다. 초록빛 머리카락의 푸른색 눈동자의 에이리스는 생각보다 젋어보이는 동안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이리스의 말에 에이리스는 귀여운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이리스 황자." 에이리스의 웃음은 분명 이리스를 향한 것이었지만, 그 푸른색 눈동자는 이리스가 아닌 이리스의 뒤에 있는 황태자를 향해 있었다. 흑청빛의 머리카락을 그냥 늘어뜨리고서 무심한 눈길로 무도회장을 바라보면서 와인을 마시고 있는 론에게 에이리스의 눈빛은 노골적이다 싶을 정도로 향해 있었다.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가 황태자비를 노리고 왔음이라는 사실을 모를리는 없을 텐데도 저렇게나 무심한 황태자가 이해되지 않았던지 에이리스의 입술이 비스듬하게 올라가며 곧 이어 이리스에게 물어갔다. "그런데, 황태자 전하께서는 저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으신 모양이에요? 제가 황태자비를 노리고 이곳으로 왔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계실텐데도 말이죠." 투정어린 투의 말이 에이리스의 입에서 튀어져 나오자 이리스는 눈동자를 크게 떴다가 살짝 고개를 옆으로 돌려 자신의 옆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먼곳에서 여자들조차도 뿌리치고 혼자 와인을 마시고 있는 황태자를 응시하고서는 빙긋 미소를 지었다. 그에게는 이제부터 오직 그녀 하나 뿐일테니, 다른 여자들이 보일리가 없는 것은 어찌 생각한다면 너무 당연한 것이었다. 이리스는 다시 고개를 돌려서 에이리스를 바라보며 대답해 주었다. "글쎄요. 어째서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예전에는 저러시지 않았는데요." 예전에는 여자들이 자신에게 모여들면 모두다 응해주는 딴에는 아주 착실한 사람이 바로 자신의 형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놀랍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를 사랑한 이상은 그것도 불가능 할 수 밖에 없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때는 자신이 그녀를 다시는 그에게로 돌아가지 않도록 만들테니까. "우웅. 정말 아름다운 분이신데 속상해요." 귀엽게 속상하다고 말하는 에이리스를 이리스는 싱긋 웃으며 바라볼 뿐이었다. 에이리스는 자신의 바라 앞에 있던 과일주스를 두손으로 들고서 찔끔찔끔 마시면서 여전히 눈동자로 황태자를 쫒고 있었다. 매혹적인 선을 지닌 사람. 주위의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 못하게 만들만큼의 존재감을 지닌 사람이다. 그 존재자체가 사람들을 끌어 당기게 만드는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이리스가 잠시 눈을 돌리고 있는 사이, 에이리스의 눈동자가 살짝 빛나고 있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아야 할것같습니다. 충분히 즐기시다가 쉬러 가시기 바랍니다." "그럴께요." 이리스의 눈동자에 홀로 있는 프리시아가 잡혀 들어오자, 이리스는 여전히 주스를 홀짝이는 에이리스를 향해 살짝 고개를 숙이고서 걸음을 옮겼다. 에이리스의 눈동자가 또다른 하나의 와인잔을 들고서 프리시아에게 다가가는 이리스에게 살짝 머물렀다. 싱긋 웃으면서 이리스가 내미는 잔을 받는 프리시아와 그런 프리시아를 향해서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 이리스. 프리시아는 비웃듯 한쪽 입꼬리를 올리면서 조용히 중얼 거렸다. "외딴곳이나 다름없는 곳에 온 날 떨어뜨리고 가다니 나쁜사람이야. 정말." 에이리스는 다시 시선을 돌려 황태자쪽을 향했을 때는, 황태자외에 다른 무언가가 같이 잡혀 들어왔다. 이때까지 홀로 있던 황태자가, 무심하게 무도회장을 바라보던 황태자가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면서 여자와 함께 있었다. 찰랑이는 검은색의 머리카락을 지닌 무도회장의 눈길을 사로잡을 만큼, 신의 조각이라 해도 좋을만한 미모를 지니고 있는 카세리아느가 그 주인공이었다. 순백의 새하얗지만, 단조로운 드레스를 입고 있음에도 초라하다거나 하는 느낌은 없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는 분명 에이리스 그녀에게는 강력한 라이벌이었음에도 이상하게도 그녀의 눈동자는 무언가 먹이감을 찾았다는 야수의 눈동자로 변해 있었다. 가늘게 떠진 눈동자로 카세리아느를 바라보면서 또다시 한번 중얼 거렸다. "아아, 찾았어." 에이리스는 그렇게 중얼거리고서 뒤를 살짝 훔쳐보다가 그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어째서인지는 자신도 모른다. 자신이 왜 그녀를 찾는 건지도 알지 못하며, 찾아서 무엇 하려는 건지도 아직은 확실하지 않았다. "유즈, 네 눈에도 보여?" 에이리스는 자신의 뒤에서 마치 그림자처럼 따라오는 거미줄같은 은빛 머리카락을 지닌 이에게 그렇게 다시 웅얼거리면서 그들을 향해 앳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은빛 머리카락의 차가운 이미지를 지닌 소년, 유즈의 눈동자는 불안정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매번 목을 태우는 듯 했던 갈증이. 물을 계속 마셔도 타는듯 했던 갈증이 이제서야 해소되는 듯 했다. 드디어 자신의 캄캄한 암흑속에서 단하나의 빛줄기가 스쳐 지나가며 빛의 시대가 도래함을 알리고 있었다. "감히 고귀하신 황태자 전하를 뵈옵니다. 베르디에서 온 에이리스입니다. 설마, 모른다고 하시지는 않으시겠죠? 그리고 옆에 분은 정말 아름다우시네요?" 그리고 그렇게 유즈가 불안한 눈동자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을 무렵, 에이리스는 귀여운 미소를 지으면서 론과 카세리아느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유즈의 눈동자에 들어온 단 하나의 빛의 조각때문에 눈동자가 더더욱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제서야, 이제서야 그녀를 만났다는 사실에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이제서야 모든것이 바라던대로 이루어졌는데도 발걸음은 정작 움직이지 않으면서 한곳에 머물러 있었다. 이래서야 제자리걸음밖에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유즈는 힘겹게 발걸음을 옮겨 에이리스를 따라갔다. "에이리스 황녀님을 뵈옵니다." 카세리아느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고, 에이리스는 더욱 깊게 미소지으며 카세리아느의 고개 숙인 모습을 바라보았다. 왜 그토록 찾는지는 알 까닭이 없었다. 전혀 알 수 없었다. 인연따위는 처음부터 없었음에도 그냥 무작정 만나고 싶었다. 찾지 않아도 될일이었지만 일부러 찾으면서까지 만나고 싶었던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왠지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아무래도 자신은 만족하는 모양이었다. 다시 들어올린 고개로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보지 않고서 다른 곳을 무심히 바라보지만 그래도 만족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에이리스 황녀?" 카세리아느를 바라보고 있는 에이리스의 시선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인지, 론은 카세리아느의 새하얀 손을 자신의 손으로 붙잡으면서 차갑게 에이리스를 향해 입을 열었다. 명백한 거부. 더이상 다가오지 말라는 거부의 말이 소름끼치도록 차갑게 들렸다. "그렇게 노골적으로 싫다는 모습을 지으시면 상처받아요. 그러지 말아주세요." 흔들리는 일따위는 이제는 더이상 없어야 한다. 더이상 그녀에게 불안감을 줄수는 없다. 언제나 나의 곂에 편안히 머물수 있도록 그녀에게 불안감을 지워주고 휴식터를 내어 주어야 했다. 언제나 쉽게 머물렀다 갈수 있을 편안한 곳이 되어 그녀옆에 있어야 했던 것이다. 론은 투정부리듯 말하는 에이리스를 차갑게 바라보면서 카세리아느의 손을 잡았던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절대로 놓지 않을 것이다. "더 볼일 없으시다면 이만 자리를 옮겨도 되겠습니까?" 귀여워서 깨물어주고 싶을 듯 보이는 에이리스의 모습임에도 론은 더욱 차가운 눈빛으로 에이리스를 응시하면서 차갑게 내뱉었다. 그리고 더이상 말을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이 론은 카세리아느의 손을 잡은 채로 에이리스의 뒤를 스쳐 지나갔다. 갑작스레 론이 손을 잡아 끌자 카세리아느는 이끌리듯 끌려갔고, 살며시 바람이 불어 두사람의 머릿결이 허공으로 흩날렸다. 그 머리카락이 살며시 에이리스를 건드리고 지나가자 에이리스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서 여전히 귀여운 투로 입을 열었다. "그 손 말이에요." 에이리스의 말에 론이 살짝 뒤를 돌아보았고, 그것을 느꼈는지 에이리스는 다시 중얼거리듯 입을 열었다. "꼭 잡고서 절대 놓지 말아주세요. 너무 쉽게 풀려버리면 재미 없을테니까요. 꼭 잡고서 놓지 말라구요." 어린아이같이 순수한 말투치고는 상당히 가시가 돋힌 말이었지만, 론은 그것을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이 다시 뒤돌아섰다. 하지만 왠지 마음에 걸리긴 하는 모양인지 잡은 손에는 힘을 더욱 주어 꽉 쥐어 잡으며 입을 열었다. "그대는 절대로 이 손을 놓게할 수 없습니다. 그대가 죽는 그날까지." 세상이 멈추어버리거나, 세계가 사라져버리거나, 태양이 뜨지 않거나 하지 않는 다면, 절대로 이 손을 놓는 일은 없을 것이다. 죽는다고 해도 언제나 함께일테니까. 그렇게 론이 에이리스에게 말하는 동안, 정면을 바라보던 카세리아느의 눈동자는 충격적인 것을 바라본양 굳어 있었다. "!!" 이때까지 불안했던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던 걸까. 힘겹게 날개짓을 하던 나비가... 이제야 거미줄에서 간신히 벗어난 나비가 날개짓을 하며 날아오르자, 또다시 거미줄이 나비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것도 이제는 피할수도 없이 사방으로 투명한 거미줄이 가로막고 있었다. 선명하게 아주 선명하게 보이는 거미줄이지만, 분명 너무 선명하게 보이지만, 피할 방도는 보이지 않았다. 절망하며 아래로 추락하는 나비의 발밑에는 검은 물방울이 모여 호수를 이루고 나비에게 유혹의 손짓을 하고 있었다. "카세리아느?" 은빛의 머리카락. 얼음의 조각이 모여서 만들어진듯한 은빛의 머리카락이 아련히 눈에 새겨지듯 들어왔다. 선명하게 보이는 거미줄. 빛을 반사시키면서 좌우앞뒤로 위세를 자랑하고 있는 거미줄이 자신을 잡아 먹을듯이 죄어 들어왔다. 론이 갑작스레 걸음이 멈춘 카세리아느를 향해서 물어왔지만, 카세리아느는 아무런 대답도 없이 다만 두사람을 이어주고 있는 손에만 힘을 가득 주고 있었다. 론이 의아해하며 앞을 바라보자, 처연한 눈빛으로 카세리아느를 바라보고 있는 소년이 보였다. 카세리아느의 푸른 눈동자에 눈물이 가득 고이며, 더이상은 받아낼 수 없다는 듯이 볼을 타고 흘러 내렸다. 왜 나타난걸까. 이번에는 100에 1이라는 아주 가느다란 확률이 아닌 100에 100이라는 확실한, 분명 그.였다. "...어째서?" 요즘들어 흔들렸던 이유가 바로 이때문이었을까라는 의문도 솟구치며 들었다. 나비가 거미줄을 피하려고 밑으로 내려가려 해도, 밑에는 검은색의 호수가 도사리고 있었다. 미소짓고 있었다. 차가움이 물씬 풍기던 유즈는 카세리아느를 향해서 희미하게 미소짓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쪽만 바람이 불어 달의 가루를 뿜어낼듯한 유즈의 머리카락을 살며시 흩날리게 만들었다. 부서지는 달의 아름다움을 머금은 은빛 머리카락. 은은한 달의 아름다움과 달의 미소에 아찔해 졌다. 나비가 조심스럽게 날아올라 거미줄로 가려고 했다. 미안하다며 그렇게 움직이려 했다. 하지만 그럴수는 없었다. 그것은 명백한 덫이었으니까. 그렇다면 살아날 방도는? 나비가 피해서 달아날수 있는 방법은 정말 없단 말인가? "카세리아느!" 갑자기 너무나 흔들리는 카세리아느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인지 황태자가 다른 손으로 카세리아느의 어깨를 잡아 자신을 바라보게 만들면서 크게 소리쳤다. "론." 복잡하게 흔들리면서 분열증상까지 일으키는듯 보였던 카세리아느의 눈동자가 희미하게 풀어지면서 카세리아느는 론에게로 쓰러지듯 안겨 들어갔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조금도 없었던 거다. 처음부터. 아찔한 매혹적인 장미향이 나비를 향해 날아들었다. 나비가 고개를 쳐들자 맑게 개인 하늘이, 밝은 태양이 나비를 향해 미소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수도 없이 흔들리리는 듯 방황하던 나비는 다시 고개를 들고서 하늘과 태양을 향해 미소 짓는다. "쉬는게 좋을거 같아." 카세리아느의 등을 토닥이면서 론이 중얼거리듯 말했고, 카세리아느는 다시 유즈를 희미한 눈동자로 바라보다가 고개를 떨구며 론에게 매달렸다. 다시는 흔들리지 않고 이 사람곁에 머물테니까. 과거는 어찌되었든 현재는 이 사람의 손을 붙잡고 있을테니까. 그렇게 카세리아느는 론에게 이끌려 유즈를 지나치며 처소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희미한 달의 향이 코에 와닿지만, 잊지말아달라고 말하는 달이 외치지만 당당히 걸음을 옮겼다. 아마도 예전의 나비는 거미줄에 일부러라도 걸려들었을지도 모를일었지만, 지금은 장미의 향에 취해서, 다른 유혹에 취하여 자신을 향해 미소짓고 있는 하늘을 향해 날아 오르고 싶어했다. ================================================================================ 아아..ㅜ_ㅜ..미소년할렘..할렘..의 계획이 무산되어 버렸어요..ㅜ_ㅜ.. 키냐냥...미워..ㅜ_ㅜ..(애꿋은 키냐냥에게만=_=;;) 심심하신 님들도 오시면 즐거울텐데>_< http://cafe.daum.net/fantasynovellist 심심하신 님들은 오세요>_<같이 놀아요>_< 할렘을 위하여=_=a(제 정신이 아님) ...언제나 행복하시길... 제 목: 공녀(貢女) 카세리아느 [36 회] 글쓴이: 썬샤인 2003-02-18 조회/추천: 1044 / 28 모든것은 당신을 위해 - 1 * * * "가자." 론은 카세리아느의 손을 꽉 잡고서 그렇게 중얼거리듯 내뱉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에따라 카세리아느도 당연하다는 듯이 론을 따라서 발걸음을 움직였다. 그렇게 론을 따라 움직이면서 매달렸다. 혼자서 견딜수 없다는 듯이. 아직은- 아직까지는 이렇게 기대있고 싶었다. 달의 유혹은 너무 아름답지만 분명 빠져들어야 할 유혹이지만, 그 유혹에 빠질 수 없었다. 장미의 유혹적인 향이 너무 강했다. 장미가 너무나 강한 향기로 자신을 유혹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은 분명 장미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카세리아느는 유즈를 그렇게 모른다는 듯이 지나쳐 버렸다. 달을, 자신을 향해 눈물 흘리고 있는 달을 무시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카세...리아느..." 자신의 귀에만 들렸을 그 작은 목소리조차도 들리지 않았다는 것 처럼. 마치 처음부터 그런 속삭임은 없었다는 듯이 눈을 질끔 감고서 유즈를 지나쳤다. "무엇 때문이냐고는 묻지 않을거야." 어느정도까지 처소를 향새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을때, 론은 앞을 바라보면서 그렇게 중얼거리듯 입을 열었다. 론의 흑청빛의 눈동자는 차갑게 앞을 쏘아보고 있었고, 카세리아느는 살짝 고개를 들어올려 그런 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아까 그대가 흔들렸던 이유, 난 묻지 않아." "론." 단호하게 말하는 론을 향해서 카세리아느는 조심스럽게 그의 이름을 중얼 거렸다.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달의 자태. 부서질듯 아련한 그의 자태. 그의 눈동자. 그의 모든것. 그것이 카세리아느를 흔들리게 만든 이유. 론은 여전히 마법구를 어둠속에 간간히 보이게 놓아서 어둡지만은 않은 앞을 눈동자를 강하게 떠서 바라보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대가 흔들리고 있다면 흔들리지 않게 하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일테니까. 그대가 떠나려고 한다면 붙잡는 것이 나의 일이니까." 차갑게 론의 입술을 비집고 나오는 말속에 녹아있는 강한 신념에 카세리아느는 살짝 눈을 내리감았다. 자신은 분명 달에게 흔들리고 있지만, 흔들리기 이전에 장미의 유혹에 미치도록 취해있었다. "론." 해줄말이라고는 그 말 한마디밖에 없었다. 론. 그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 그를 안심시켜 주는 것. 그렇게 카세리아느가 론의 이름을 중얼거리자 론은 앞을 보던 시선을 옮겨서 옆을 바라보았다. 감겨져 있던 카세리아느의 눈동자가 떠지며 론을 응시했다. 론은 카세리아느의 손을 잡고 있는 다른 손을 들어 카세리아느의 볼쪽으로 가져가며 조용히 중얼 거리듯 말했다. "그대는 날 떠날 수 없어." 강한 속박의 말. 론은 자신의 손가락으로 카세리아느의 볼을 살짝 쓰다듬으며, 눈으로는 카세리아느의 눈동자를 강하게 응시하며 그렇게 말했다. 카세리아느를 응시하는 론의 눈동자가 마치 카세리아느에게 무언가를 새기는 것만 같았다. "그대가 날 떠나려고 한다면, 난 그대를 죽여서라도 내가 있는 곳에 묶어둘거야. 그렇게해서라도 그대를 내가 있는 곳에 묶어둘거다. 그대가 날 떠나는 모습따위는 내가 눈동자를 잃지 않는 한 절대로 보지 않을 거야." 낮게 으르렁거리면서 하는 론의 말은 달콤한 사랑의 말은 아니었다. 사랑의 말이 아닌 '경고'였다. 떠나면 그렇게 만들어 버릴 것이라는 잔혹함이 어린 죽음의 경고. 자신은 살아있지 못할거라는 경고였다. 흑청빛의 눈동자가 금방이라도 자신을 죽일듯이 강하게 바라보며 경고의 말을 내뱉자, 카세리아느는 옅은 미소를 지으면서 자신의 붉은 입술을 열었다. "나는 론을 절대로 떠나지 않을겁니다. 죽어서라도 론의 곁에 남을거예요. 절대로 떠나지 않아요. 나는..." '당신곁을 떠나면 나도 살수없으니까.' 차마 다 내뱉지 못한 말을 가슴으로 삼키면서 카세리아느는 그렇게 말해주었다. 벌써 돌이킬수 없을만큼 너무 멀리 와버린 모양이니까. 짙은 소유욕이 이제는 담담해져 버렸고, 오히려 그것없이는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렇게 익숙해져 버렸다. 중독되 버린거다. "그래. 난 그대가 떠난다면 정말 카세리아느. 그대를 죽여버릴테니까. 내가 그렇게 하도록 만들지 말아주길 바래." "그렇게는 만들지 않을 겁니다."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면서 자신을 바라보며 말하는 론에게 카세리아느는 여전히 차갑다고도 할수있는 톤으로 대답했다. 취해버린거다. 아니 너무 위험하다 싶을 정도로 중독되 버린거다. 장미의 유혹에 너무 취해있어서, 장미를 만지다가 가시에 찔려 손에서 피가 흐른다고 해도 그것을 모를만큼 취해 있었다. 위험하지만 너무 매혹적인 장미의 유혹에. 론은 카세리아느의 볼에 있던 손의 위치를 카세리아느의 턱으로 가져가고서는 살짝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다시 확인시키듯 입을 열었다. "절대로 날 떠나지마라." 매혹적인 목소리가 귓가에 그렇게 울려 퍼졌다. 또박또박 각인시키듯, 절대로 떠나면 용서치 않을 것이라고 자신에게 입력시켰다. "절대로 떠나지 않을 거에요." 그리고 카세리아느도 론을 향해서 강하게 응시하면서 흔들리지 말라는 듯이 강하게 입을 열었다. 절대로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이미 장미의 향에 너무 취해서, 너무 빠져 있어서, 그것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노라고. 론은 그런 카세리아느를 바라보면서 턱에서 손을 내리고 그 손으로 다시 어깨를 잡아 자신에게로 강하게 끌어 당기며 중얼 거렸다. "그대는 나의 이 불안한 마음을 모를거야. 아니 모르겠지. 그대는 내가 아니니까. 그대가 나의 곁을 떠날것 같은 불안함 마음을 말이야." 아까의 각인시키는듯 했던 강한 목소리가 이제는 약간의 불안함에 떨고 있었다. 왠지 모를 불안감. 알지 못하는 불안감의 원인을 알지 못하기에 막연히 불안감에 떨고 있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모든것을 얻은듯이 행복하기만 했었는데, 지금은 막연히 불안했다. "난 떠나지 않습니다. 지금도 론의 옆에 있잖아요." 카세리아느의 말에 론은 카세리아느의 손을 잡고 있던 손마저 풀어버리고 카세리아느의 몸을 힘주어 자신의 품으로 끌어 당겼다. 자신의 곁에, 언제나 자신의 품에 머무르게끔 만들고 싶었다. "사랑해. 미치도록 그대만을 사랑해." 카세리아느를 안은 팔에 힘을 주면서 반복해서 그 말만을 중얼 거리며, 론은 눈을 살짝 감았다. 그리고 카세리아느는 그런 론의 행동에 몸을 맡기고서 아련히 떠오르려 하는 달을 지우고서 눈을 감았다. * * * [그대만을 위해서 태어나겠어요.] 이제는 거짓말이 되어버린 중얼거림에 카세리아느의 가슴속이 막힌듯이 답답하게 막혀왔다. 자신이 그에게 한 말도 이제는 전부 거짓말이 되어 버렸다. [그대만을 사랑해. 난 오직 그대만을 사랑할거야.] 그리고 그가 자신에게 주었던 사랑과 믿음을 배신해 버렸다. 카세리아느는 그렇게 자신이 사랑했던 그.에게서 뒤돌아 섰다. 그리고 지금은 아련히 그.의 말이 귓가에 머물러 있었다. 어째서였을까? 분명 사랑했을텐데. 다음에는 그대만을 위해서 태어난다고 말했었는데, 지금 이렇게 된 이유가 무엇 때문일까. 그것에 대한 의문은 꼬리를 잡고 마음속에서 자리를 틀고 일어섰다. 그에게서 시선을 돌리고서 론에게 몸을 맡기고 그를 지나쳐왔을 때, 살짝 흘겨 보았던 그 얼굴을 잊을 수 없다. -날 잊은거야?- 부서지는 달을 닮은 그의 은빛 머리카락이 혼란스럽게 흔들렸다. 그의 가슴아린 은빛 눈동자가 자신을 향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날 잊은거냐고. 그렇게 질책했다. 이렇게 자신을 버릴 것이냐고. 금방이라도 아련하게 부서질것 같은 모습으로 그렇게 말하자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어 주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 손을 잡아 줄 수 없었다. -죽일거다. 죽여서라도 내 손안에 넣을거다.- 멀리있는 달보다 가까이에서 매혹적인 장미가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달은 아련한 자태로 자신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어오지만, 장미는 그 매혹적인 향으로 자신의 가슴을 짓이겨 놓았다. 달은 늘 그렇듯 부서질듯 아련한 자태로 슬퍼하겠지만 장미는 틀렸다. 위험한 향기로 유혹해오는 장미는 달과는 틀린 방법을 택할 것이다. 슬퍼하면서 있지는 않을 것이 분명했다. -날 떠나는 모습을 보지는 않을 거야.- 장미는 자신의 가시로 자신을 옭아매어 스스로 피를 내며 죽어버릴것이다. 그것을 알기에 달에게 손을 내밀수는 없었다. 홀로 있는 방안에서 카세리아느는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봤다. 창백한 달이 덩그러니 외롭게 홀로 빛을 내며 있었다. 자신에게는 보이지 않는 태양의 빛을 반사하면서 그렇게 밤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부서질듯 아련하게, 혹은 미련스럽게 빛을 내는 달을 향해서 카세리아느는 조용히 중얼 거렸다. "당신에겐 미안해요. 하지만 내가 지금 사랑하는 것은 당신이 아닙니다." 매혹적인 선과 목소리를 지닌 사람. 그 사람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카세리아느는 눈을 내리 감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 "당신을 잊을 겁니다." ================================================================================ 기다려주신 님들이 없을거라고 그렇게 말했건만 샹이가 무섭게 없는 패거리들을 몰고 저를 다그치기에 열심히 썼어요ㅇㅂㅇ; 샹아=_=!! 정말 없으시단 말이다!! 하지만 무작정 썼기에 역시 별 내용도 없는 편이라고 밖에 말해드릴수가 없어요 ㅇㅅㅇ;; 냐냥..~ 요즘은 카페에 들어가서 아주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그렇게 지낸답니다. ㅇㅂㅇ..~ 냐냥..그렇게 샹이를 만나기도 하고.. 우리 귀여운 고양이 샤이도 만났죠..+ㅂ+ 은빛털에 금빛 색기어린 눈동자를 지닌 앙탈스런 고양이랍니다+ㅂ+ 그 외에 다른 분들도 만났죠. 조아라에 계신 분들 많아요>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