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 서 명 : 골든 메이지 11 지 은 이 : 김현우 펴 낸 이 : 신현호 출 판 사 : 파피루스 출판년도 : 2008년 11월 19일 봉 사 자 : 추성령 <차례> 1 위기의 금탑주 2 절호의 찬스 3 또 다른 제련제강의 마법, 다이아몬드 4 후퇴 5 무사귀환 6 여인의 의지 7 엘의 제안과 엘의 깨달음 8 개전 9 금탑 붕괴 계획 1. 위기의 금탑주 "너무 쉽게 물러났어." 엘리엔은 팽팽한 대결을 벌이다가 돌연 사라진 루이넨 등의 모습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그녀는 금탑을 치러 온 루이넨스 등이 너무 쉽게 물러 난 것에 일말의 의심을 갖고 있었다. "상황이 좋지 않았다지만 그들에게 딱히 불리한 것은 없었어." 골렘을 모두 잃었다. 하지만 초인들 간의 대결에서는 그들이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서부의 대마법사인 멜뤼스와 코린트는 지크리스 후작과 레이벨과의 대결에서 밀리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그레시오스 공작이 아이넨스에게 다소 밀리는 양상이었다. 하지만 자신과 루이넨스의 대결이 팽팽함 그 자체였기 에 형세로 보면 그들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더군다나 그들은 금탑을 제거하기 위해 온 자들이다. 그런 자들이 이렇게 쉽게 물러나는 모습을 보이니 엘리엔으로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그들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이 전투. 하지만 그는 결코 이런 짓을 할 인간이 아니야." 엘리엔은 한 번 보았던 루이아스의 모습을 떠올리며 나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본 루이아스. 그는 그야말로 욕망의 화신 그 자체였다. 어떻게 보면 순수하다고 느껴질 만큼. 그 런 그가 금탑을 제거하기 위해 4명의 초인만 보냈다 는 걸 결코 믿을 수 없었다. “그렇다는 건 더욱 큰 걸 노리고 있다는 뜻이 되는 데‥‥‥ 그들이 금탑보다 더욱 높게 평가하는 게 무엇이 있을까?” 엘리엔도 충분히 머리가 뛰어나기에 그들이 쉽게 물러서는 이면에는 루이아스의 노림수가 있을 것이란 것이 금 방 추측되었다. 상식적으로 루이아스가 대륙에서 금탑주보다 거치적거리는 인물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금탑주 일신의 무위는 초인들 중 하급에 해당한다. 다만 그에게는 골든 나이트가 있고, 그를 중심으로 열 명이 넘는 초인들이 뭉쳐 있다. 일신의 무위로 따지면 자신이나 아토빌 공작이 가장 거슬리지만 실제로 가장 큰 힘을 지닌 이는 바로 금탑주인 것이다. 루이아스도 그렇게 생각했기에 금탑을 공격한 것일 테다. 그런데 그러한 명령을 받고 온 이들이 너무 쉽게 물러서니 엘리엔으로서는 쉽사리 생각을 정리할 수 없었다. '만약 내가 그라면‥‥‥ 금탑을 제거하기 위해서라면, 최소 다섯 명에서 여섯 명의 초인을 보낼 거야. 그랜드 마스터는 무리지만 8클래스 마법사들은 충분히 도우러 을 수 있을 테니까. 잠깐만‥‥‥ 그렇다는 건‥‥‥ 무언가 감을 잡은 듯 엘리엔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 갔다. 자신의 생각으로도 금방 유추가 가능한 사실을 루이아스가 하지 못할 리가 없다. 그렇다는 건 이러한 사실을 모두 염두에 두었을 것이란 뜻이다. 현재 엘과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은 8클래스 마법사는 총 넷이다. 유클레이, 멜뤼스, 코린트. 그리고 아카벨 대장로. 루이아스는 아카벨 대장로에 대해 모를 확률이 높다. 이는 지크리스 후작이 아카벨 대장로와 만났다는 걸 몰랐기 때문에 하는 소리이다. 어쨌든 아카벨 대장로를 제외하면 8클래스 마법사는 도합 3명. 그렇다는 건 여차할 때 금탑이 발휘할 수 있는 최대의 힘이 초인 일곱이란 게 된다. 그걸 루이아스가 감안하지 못했을 리가 없다 만약 그가 오고, 4명의 초인이 왔다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기로 했다 한들 최소한, 아무리 적어도 6명의 초인을 파견해야 옳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4명의 초인을 보냈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을 보니 굳이 목숨을 걸어서라도 금탑을 제거하겠다는 의지는 엿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어긋나 있던 퍼즐이 하나하나 맞추어지면서 최악의 결말이 그녀의 뇌리에 조합되었다. "만약 금탑주가 금탑에 없다는 것을 그들이 처음부터 알았다면?" 엘리엔의 안색이 파리하게 변했다. 그렇게 되면 정말 최악의 결과가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내,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일 수도 있어." 너무나 끔찍한 결말이기에 엘리엔은 다시 처음부터 곰곰이 퍼즐을 맞춰 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결과가 난 사실을 가지고 다시 생각해 봤자 달라질 리가 없다. 이렇게 저렇게 해 보아도 결과는 하나로 도출되었다. 다른 결과란 결코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가 내린 결론이란 이것이다. 루이아스는 이미 금탑주의 움직임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금탑을 공격하는 척하면서 이목을 끄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최종적인 목표는...... 다름 아닌 금탑주다! 금탑을 습격한 이들이 왜 그렇게 쉽게 물러났는지, 왜 필사적이지 않았는지 그대로 납득이 되었다. 더불어 금탑이 동원할 수 있는 최대치 힘을 결코 염두 에 두지 않았기에 그러한 생각은 거의 사실로 굳어졌다. 그렇다는 건? 이미 루이아스가 금탑주의 계획을 알아차리고 함정을 파 놓았을 확률이 높다. 상대는 9클래스 마스터 만약 그가 직접 나선다면 금탑주가 살아남을 가능성은 그야말로 제로. 엘리엔은 그 자리에서 그대로 굳었다 "왜 큰 미끼를 놨는데 예상대로 걸려들었어.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자한 보람이 있군. 후후후!" 루이아스는 엘을 보며 반갑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엘로서는 결코 그가 반가울 리 없었다. 그가 왜! 왜 이곳에 일단 말인가! 9클래스 마법사와 8클래스 마법사의 수준 차이는 그야 말로 하늘과 땅 차이다. 당장 도망치려고 해도 이곳은 텔레포트를 전개할 수 없는 영역, 도망치는 것도 불가능했다. 엘의 안색이 차츰 하얗게 변해 가기 시작했다. 루이아스는 먹이를 궁지에 몰아넣은 야수의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내가 왜 여기 있는지 궁금하겠군. 간단하게 말하면 난 네가 이곳으로 올 줄 알고 있었다." 엘의 얼굴에 놀라움이 퍼졌다. "뭣이?" 자신의 계획은 그야말로 완벽에 가까웠다. 엘은 나이가 어리다. 하지만 상황 판단력과 적의 심리를 꿰뚫는 눈은 긴 세월을 살아온 이들에 비해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가 전생에서 20년 가까운 세월을 살아 왔고, 또한 그의 직 업이 다름 아닌 게이머였기 때문이다. 게이머는 상대방의 심리와 상황을 파악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전생에 그는 수많은 게임에 게임을 거듭했고, 탁월한 재능이 밑바탕이 되어 게이머들 사이에서 최고로 군림했다. 그리고 그 재능은 커다란 일을 진행함에 있어 그대로 적용되었다. 카로스만과의 대결에서도 그것이 입증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모든 것은 엘의 오만이었다. 그가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는 건 분명한 사실. 하지만 세상에서 그만 뛰어난 능력을 지닌 것은 아닌 것이다. 루이아스는 입가에 모호한 표정을 띤 채 말했다. "디벨 상단이 어찌하여 그렇게 쉽게 매직 메탈이 흘러가는 곳을 추적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중요한 골렘 생산 기지인데 방비는 왜 이렇게 허술할까? 그런 생각이 들지 않나?" "그건...... 엘은 말문이 막혔다. 루이아스의 말 모두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뒤늦게 그는 자신의 오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사태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눈앞의 루이아스는 결코 자신을 살려 보내지 않을 것이 기 때문이다. 루이아스에게 있어 자신은 최대의 골칫거리이다. 비록 그에게 미치지 못하지만 대륙 각국에 군림하는 초인들이 엘을 중심으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엘을 죽이기만 한다면? 루이아스는 구심점을 잃은 채 우왕좌왕하는 초인들을 각개 격파로 처리할 수 있다. 엘의 실력은 초인들 중 하위권이지만 그는 최강의 초인인 아토빌 공작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존재였던 것이다. “.......” 엘을 바라보는 루이아스의 눈이 변해 갔다 그의 눈이 스산한 기운을 띠기 시작했다. 멈칫 루이아스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심상치 않아 엘은 본 능적으로 뒤로 주춤 물러났다. 어느새 루이아스의 눈에는 진한 살기가 담겨 있었다. 그는 엘을 노려보며 말했다. "이곳에서 살아 나가긴 힘들 것이야. 난 결코 널 살려 보낼 생각이 없기 때문이지." 그의 전신에서 뿜어지는 기세와 함에 무시무시한 압력 이 엘의 전신을 짓눌렀다. “윽!?” 외부와 내부에서 동시에 강렬한 압박이 전해졌다. 엘은 신음을 흘리며 비틀거렸다. 루이아스가 하위 클래스 마법사에게 전개하는 클래스 프레셔를 전개한 것이다. 하지만 7클래스 이상의 경지에 이르면 어느 정도 클래스 프레셔에 대항할 수 있다. 엘은 서둘러 내부의 마나를 빠르게 안정시키는 반면 외부의 압력에도 대응하기 시작했다. "과연. " 자신의 압박에 벗어나는 엘의 모습을 보며 루이아스의 눈에 짙은 흥미로움이 생겨났다. 엘이 확실히 8클래스의 경지에 들었음을 확인한 것이 다. 사실 루이아스는 엘이 8클래스에 들었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상식적으로 8클래스의 경지에 20대인 엘이 들어섰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8클래스는 일명 마법사들의 꿈이라 불리는 지고한 경지이다. 마법사들은 일반 검사보다 그 성취가 극히 늦은 편이 다 때문에 일정한 경지에 든 마법사들은 검사들보다 나이가 월등히 많다. 가장 이해하기 쉬운 예가 바로 그랜드 마스터와 8클래스 마법사다. 그랜드 마스터는 빠르면 40대, 보통 50대에서 60대 사 이에 그 경지에 접어든다. 반면에 8클래스는 그보다 휠씬 늦은 60대에서 80대에 속한다. 만약 엘이 그랜드 마스터였다면 루이아스는 순순히 납득했을 것이다. 당장 그의 곁에는 루이넨스도 있고, 아이넨스 또한 30 대에 그랜드 마스터에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8클래스는 그러한 공식이 도저히 성립되지 않는다. 깨달음은 물론 마나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이해가 있어 야만 8클래스에 오를 수 있으니 말이다. 이는 그가 엘에게 단전호흡이라는 숨겨진 한 수와 드래곤 블러드라는 외부의 작용이 있었다는 걸 몰랐기 때문이다. 어쨌든 루이아스는 엘이 8클래스에 든 걸 시험하기 위해 클래스 프레셔를 전개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골든 나이트를 제작하고, 룬 블레이드를 제작한 뛰어난 아티팩트 제조 실력을 보아 그 또한 갖가지 아티팩트로 8 클래스에 버금가는 힘을 발휘한다고 생각했다. 그랬는데 뜻밖에도 엘은 진정한 8클래스에 이르러 있던 것이다. "아티팩트의 힘으로 대륙을 속이려 든 것인 줄 알았건 만 그것이 아니었군. 진짜 8클래스의 경지에 이르렀어." “......”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거든. 이십 대밖에 되지 않은 마법사가 8클래스에 오른다는 것은. 그 정도로 8클래스는 세월의 힘이 뒷받침되어 줘야 하는 경지지." 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루이아스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었다. “......바로 나 같은 몸이 된다 해도 불가능한 일이지." 엘은 루이아스가 무슨 뜻으로 그러한 말을 하는지 단박에 알아차렸다. 엘은 루이아스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자신의 몸에 데몬 하트를 이식한 걸 말하는 건가?" “......!” 이번엔 루이아스가 놀랄 차례였다. 그는 엘이 뜻밖의 정보를 알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다가 이내 평정을 되찾았다. 루이아스는 가벼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유클레이가 말했나? 쯧쯧, 그 녀석. 왜 입이 무겁고 을 곧은 놈이었는데 가족의 일을 남에게 말할 정도로 입이 헤퍼졌군." "더 이상 가족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 아닐까?' 침착함을 완전히 되찾은 엘이 서서히 기운을 내뿜기 시작했다. 어차피 벗어날 수 없는 상황, 최대한자신의 실력을 발휘해 보기로 결정한 것이다. 상대는 9클래스 마스터. 결코 상대로 부족함이 없다. 그런 엘의 모습에 루이아스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좋아, 어린 것치고는 기개가 아주 좋다. 그래, 너의 모든 힙을 발휘해 보아라. 그래야 희대의 천재를 죽 인 내 마음도 무겁지 않을 테니 말이다." 루이아스의 주변에 강풍이 감도며 주변의 마나가 들썩였다. "오라! 시대가 낳은 천재, 금탑주여." “마법의 실력은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 그렇다면 절대 루이아스를 상대로 마법을 사용할 수 없어.' 루이아스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엘은 냉정하게 전력을 분석했다. 데몬 하트를 몸에 이식하여 9클래스의 강인한 힘을 버틸 수 있게 된 루이아스는 의심할 것 없는 9클래스 마법사다. 그런 그에게 단순한 마법으로는 절대 상대할 수 없을 것이 분명하다. 비록 1클래스 차이지만 마법의 단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그 1단계 차이는 어마어마한 실력 차이를 뜻하기 때문이다. 물론 엘은 7클래스 마스터 시절 8클래스 마법사인 게이런즈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는 게이런즈가 다소 방심한 상태였다. 전혀 그가 예측할 수 없는 공격을 전개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마법은 아니었다. 엘은 루이아스와 마주하면서 자신이 정말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란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상황이 안 좋은 것이다. 그 까닭은 바로 루이아스가 지니고 있는 카르마 링 때 이다. 카르마 링은 대륙에 존재하는 5개의 마병 중 하나로서, 경계를 부수는 인과의 역전을 시행한다. 그렇기에 카르마 링은 마나를 다루는 마법사들에게 거의 재앙으로 통한다. 카르마 링은 마법사의 인위적인 조작으로 생성된 마법을 삽시간에 무효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카르마 링의 힘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캐스팅되던 마법을 강제로 흩어 버림으로써 마법을 캐스팅하는 전개자에게 무시무시한 충격을 주는 것이다. 만약 루이아스를 만나기 전의 엘이었다. 그는 거리낌 없이 마법을 캐스팅하여 루이아스를 공략 해 들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엘은 감히 루이아스에게 마법을 캐스팅 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미 그는 카르마 링에 의해 한차례 엄청난 타격을 입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자고로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더 낫고, 백 번 보는 것보다 한 번 행하는 것이 더 낫다고 한다. 카르마 링의 힘을 몸소 겪은 엘은 감히 마법을 전개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의 무기는 마법이다. 마법을 봉인한 상태로 는 루이아스를 이길 수 없어.' 엘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전개어로 전개가 가능한 6클래스 마법은 카르마 링에 직접적 인 타격을 입지 않는다. 하지만 5클래스 마법으로 루이아스를 이기기란 요원한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는 그것밖에 사용할 무기가 달리 없었다. 엘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일단 격돌하고 틈을 찾아내서 공략한다.' 생각을 굳힌 순간, 그의 몸이 빠른 속도로 루이아스에게 접근해 들어갔다. 엘의 신형이 순식간에 10여 m의 거리를 좁히고 루이아스에게 접근했다. 갑작스런 엘의 기습 공격에 루이아스가 눈에 빛을 냈다. "호!" 공간을 가르며 엘의 손에 생성된 윈드 블레이드가 루이 아스의 목을 베려는 순간, 루이아스의 몸이 흐릿해지며 사라졌다. 스슷! 기습 공격을 피하고자 블링크를 전개한 것이다. 하지만 엘은 이미 루이아스가 그리 할 것을 예측하고 있었다. 비록 허점을 찔리기는 했다. 하지만 그는 전생에서 수많은 심리전을 겪은 게이머다. 엘은 루이아스가 나타날 지점을 예측한 뒤 그 또한 블링크를 전개했다. 루이아스는 자신이 블링크 해 온 곳에 엘이 곧장 나타나 윈드 블레이드를 휘두르자 처음으로 놀란 기색을 띠었다. "헉 !" 이건 전혀 예측하지 못한 공격이다. 순간 루이아스의 앞에 여러 겹의 실드가 생각났다. 하위 방어 마법이지만 9클래스 마법사가 전개한 만큼 그 방어력도 만만치 않다. 쩌어어엉 ! 윈드 블레이드와 실드가 부딪치자 굉음이 울려 퍼졌다. 요란한 소리가 주변을 뒤흔들었지만 윈드 블레이드가 실드를 부수지는 못했다. 고 클래스 마법을 전개할 수 없는 점을 루이아스 또한 이용한 것이다. 회심의 일격이 실패하자 엘이 입술을 질끈 깨물며 외쳤다. “타나! 루이아스를 베어라!" 그 말과 함에 퍼기를 가르는 파공음이 루이아스의 뒤에 서 들려왔다. 부웅! 어느새 골든 나이트가 루이아스의 뒤에서 룬 블레이드를 휘두르고 있었다. 룬 블레이드의 위력은 신검에 버금가기에 일반적인 실드로 절대 막을 수 없다. 룬 블레이드가 루이아스를 가격하려던 찰나였다. 루이아스의 몸이 흐릿해지며 사라졌다. 블링크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블링크를 쓸 틈도 없었다. 엘의 눈이 크게 뜨였다. "환영 인가?” 엘이 루이아스의 마법을 이해한 순간, 엘의 주변에 공간이 접히며 날카로운 바람의 칼날이 그를 난도질해 왔다. 레이벨이 즐겨 쓰는 바람의 칼날에 공간 마법이 곁들여 진 상승의 마법인 것이다. 바람의 칼날은 적어도 6클래스 이상의 위력을 지닌 마법이다. 거기에 7클래스 마법을 곁들이다니, 9클래스 마법사가 아니라면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재주였다. '위험해.' 루이아스가 전개한 마법에 생명의 위협을 느낀 엘은 그 마법에 맞서기를 포기했다. 그리고 블링크를 전개하여 뒤로 물러난 순간, 살인적 인 열기가 그를 덮쳐 왔다. 어느새 헬 파이어가 전개되어 엘을 향해 쇄도했던 것이다. 그것도 일반적인 헬 파이어가 아니었다. 그 위력은 9클래스 마스터가 전개하는 것이기에 능히 적탑주 카로스만이 전개하는 것보다 더욱 강력했다. 8클래스 마법이 진정으로 무서운 이유는 함부로 피할 수 없다는 점에 있다. 이미 그 수준에 이르면 대자연의 법칙을 뒤틀어 버리는 것이다. 그렇기에, 자칫 공간 이동 마법으로 피하려고 했다가는 공간 자체에 타격을 입어 영원히 공간의 미아로 살아갈 수도 있다. 다른 누구보다 마법에 대해 해박한 엘이기에 그 사실은 더욱 자세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피할 수 없다. 막아야 한다.' 피할 수 없다고 판단한 엘의 눈이 번뜩였다. 그리고 8클래스 마법사가 단 3개만 할 수 있는 메모라인즈로 저장해 놓은 마법을 전개했다. "세이지 실드!" 8클래스 최강의 마법 세이지 실드가 전개되었다. 반투명한 막에 쉽싸인 엘에게 헬 파이어가 그대로 달려들었다. 콰아아앙! 거대한 굉음이 대지에 울려 퍼졌다. 세이지 실드와 충돌한 헬 파이어는 전신을 녹여 버릴듯한 지독한 열기로 단숨에 엘을 덮쳐 왔다. "크, 크윽!" 전신이 저려 오는 걸 느끼며 엘은 신음을 흘렸다. 세이지 실드가 8클래스 최강의 방어 마법이라면 헬 파이어는 8클래스 최강의 공격 마법이다. 최강의 공격 마법과 최강의 방어 마법의 충돌, 당연히 더욱 강한 힘을 지닌 쪽이 승리를 거머쥐게 되어 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8클래스 마법사가 전개하는 8클래스 마법과 9클래스 마법사가 전개하는 8클래스 마법에는 위력의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비록 엘이 동급의 마법사에 비해 위력이 강하다고 하지 만 9클래스 마법사에 비할 바는 못 되는 것이다. 쩌적 ! 쩌저적 ! 끈질기게 버티던 세이지 실드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 했다. "더 이상 못 버티겠군. 타나!" 헬 파이어에 의해 세이지 실드가 부서지기 직전에 이르자 엘은 서둘러 골든 나이트를 불렸다. 골든 나이트는 루이아스가 추가 마법을 전개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연방 그를 견제하고 있었다. 그러다 엘의 외침이 들려온 순간, 골든 나이트는 루이아스를 공격하길 멈추고는 룬 블레이드에 무려 5m에 이르는 오러를 뿜어내어 헬 파이어를 베어 버렸다. 세이지 실드와 겨뤄 힘이 약해진 헬 파이어는 오러에 의해 단숨에 베였다. 구우우웅! 엄청난 폭발이 사방을 휩쓸었다. 약해질 대로 약해졌다. 하지만 8클래스 마법의 위력은 대단하다는 말로도 부 족한 것이다. 헬 파이어가 폭발하면서 주변의 산소는 빠르게 타들어 갔고, 폭발에 의해 대지가 뒤집히며 요란한 폭발이 일어났다. 폭발의 여파가 사그라졌을 때에는 엘과 루이아스의 사이에 무려 지름 30m에 이르는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성되어 있었다. 루이아스는 자신의 마법을 막아 낸 엘을 보며 눈을 빛냈다. “그걸 버텨 내다니, 그래도 8클래스 마법사이긴 하군." 하지만 이렇게 자신의 공격을 막아 내는 것도 이번뿐이다. 자신이 이렇듯 고 클래스 마법을 사용하면 엘 또한 필연적으로 고 클래스 마법을 전개할 수밖에 없다. 그때 카르마 링이 본격적인 힘을 발휘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엘은 마나가 역류하여 삽시간에 무력화될 게 분명하다. 물론 8클래스 마법은 자신으로서도 캐스팅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 이 상황에 굳이 그가 8클래스 마법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이것도 한번 막아 봐라," 루이아스의 주변에 강렬한 뇌전이 뿜어지기 시작했다. 7클래스 마법인 썬더 스트라이크를 캐스팅 없이 단번에 전개한 것이다. 엘의 눈이 암울하게 젖어 들었다. "금탑주가 위험하다" 자신의 모든 생각을 조합한 결과 지금 엘이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는 걸 안 엘리엔은 아이넨스와 멜뤼스, 코린트를 불러 말했다. “‥‥‥‥!" 그녀의 말에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지금 이 자리에 없는 엘이 위험하다니? 대관절 무슨 소리란 말인가? 얼굴에 궁금증이 생겨나자, 엘리엔은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다. "금탑주는 적들의 의중을 꿰뚫고 적의 급소를 공격하러 갔는데 아마 적들은 그걸 알고 따로 준비한 것 같다. 그들이 비교적 쉽게 물러난 것도 그러한 이유가 있는 것 같고......” "으음‥‥‥‥ " 그래서 그랬군," 엘리엔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들도 적들이 쉽게 물러난 것에 일말의 의심을 품고 있었다. 아이넨스는 그렇다 쳐도 멜뤼스와 코린트는 거의 패배 직전까지 몰리지 않았던가. 비록 8클래스 마법 몇 개가 남아 있다 해도 시간만 좀 더 끌었다면 충분히 그들의 승리가 되었을 터였다. 그레시오스 공작이 아이넨스에게 밀렸다고 하지만 두 명의 초인이 우위를 점한 이상 전황은 그들이 더욱 유리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물러서다니? 거기에 대해서 모두가 의구심을 품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엘리엔의 말을 들으니 그들은 지금의 상황이 모둔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큰일이로군." 코린트가 심각한 표정을 짓고는 중얼거렸다. 엘리엔의 말에 사태의 심각성을 충분히 인지한 멜뤼스와 아이넨스 의 표정도 딱딱하게 굳어 갔다. “당장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거늘......” 평소 유쾌한 느낌과 다르게 멜뤼스 또한 심각한 표정을 띠며 말했다. 금탑주가 어디에 있는지만 안다면 당장 도우러 갈 수 있으나, 엘은 그들에게 어디로 향하는지를 말해 주지 않았다. 텔레포트가 있기에 위치만 알면 바로 엘을 도우러 갈 있음에도 말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사전에 엘에게 상세한 이야기를 들어 둘걸 하고 후회하는 멜뤼스였다. 하지만 자세한 깃을 모르는 이들은 멜뤼스와 코린트뿐 이었다. 엘리엔과 아이넨스는 이미 엘에게 어디로 갈지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멜뤼스의 중얼거림을 들은 엘리엔의 눈이 순간 반짝였다. '그래, 그러고 보니 마법사들의 텔레포트가 있었어.' 당장 금탑주를 구하러 갈 것에 자신의 능력에만 국한되게 생각한 게 실수였다. 바로 주변에 훌륭한 마법사들이 있지 않은가. 엘리엔이 생각에 잠겼을 때 아이넨스가 그들에게 엘의 행적을 말해 주었다. "금탑주는 청탑을 치러 갔습니다. " "청탑......!" "으음! 하필이면 청탑이라니." 엘의 소재지를 안 그들의 표정이 일순간 밝아졌다가 이 내 어두워졌다. 청탑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무슨 이유라도 있습니까?" 그들의 안색이 재차 어두워지자 아이넨스가 물었다. 그러자 코린트가 어두운 안색으로 입을 열었다. "청탑은 대륙에서 가장 공간 이동 마법에 철저한 곳이지. 제아무리 우리가 8클래스 마법사라고 하나 그들의 공 간 방해를 뚫고서 텔레포트를 전개하기란 무리라네." "그렇군요." 코린트의 설명에 아이넨스가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8 클래스 마법사의 말이니 믿을 수밖에 없는 사실이었던 것이다. 엘리엔이 멜뤼스와 코린트를 번갈아보며 물었다. "8클래스 마법사 두 명이 힘을 합해도 뚫지 못할 정도 로 견고한가?" "으음!" "그건....... 멜뤼스와 코린트는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두 사람이 힘을 합쳐도 청탑의 공간 이동 방해를 뚫지 못한다는 건 그들의 실력이 미숙하다는 걸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두 사람에게는 그동안 루이아스의 야욕으로부터 대륙 서부를 지켜 왔다는 자존심이 있다. 때문에 그들의 실력이 제국의 마법사들에 비해 떨어진 다 해도 그 자존심만은 결코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한 사실은 엘리엔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청탑의 공간 이동 방해 마법진을 뚫을 수 있느냐 없느나였다. 끙! 한동안 고심하던 코린트가 신음을 흘리더니 대답했다. "유감이지만 뚫을 수 없습니다. 청탑주의 실력은 저희들보다 엄연히 한 수 위이기 때문입니다." "코린트!" 멜뤼스가 인상을 찌푸리며 책망하는 어조로 코린트를 불렀다. 지금 그의 발언은 그들에게 상당한 손해로 작용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엘리엔은 그러한 그들의 발언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었다. 청탑으로 바로 갈 수 있느냐 없느냐. 엘리엔은 그게 중요할 뿐이었다. 한 가닥 희망을 걸었던 코린트의 입에서 불가능하다는 말이 나오자 엘리엔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렇다면 전혀 도울 수가 없어.' 금탑은 대륙 서부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그에 반해 청탑은 대륙의 동부 끝에 위치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녀 자신이 최고 속력으로 달려가도 몇 달이 걸릴 정 도의 거리인 것이다. 엘리엔이 무언가 생각난 듯, 코린트에게 물었다. "청탑의 공간 이동 방해가 미치지 않는 범위가 어디지?" 엘리엔의 물음에 코린트가 굳은 얼굴로 답했다. "키클로스프 강 하류에 해당하는 곳입니다. 하지만 그 곳에서 청탑까지는 배로 삼 일이 걸리는 거리입니다." "삼 일.......” 제아무리 엘리엔이 그랜드 마스터랄지라도 3일에 해당 하는 거리를 단숨에 좁히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포기해야 하는 건가.......” 금탑주 엘이 아무리 버틴다고 해도 루이아스의 손에서 3일을 버티기란 요원한 일이다. 3일의 거리를 자신이 최대한 줄여 본다고 해도 하루였으니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 멜뤼스가 무언가 생각난 듯 소리쳤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청탑 인근에 공간 이동 방해를 뒤트는 마법을 전개하지 않았나, 코린트?” 멜뤼스의 말에 코린트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랬군! 청탑의 공간 이동 방해가 철저해서 몰래 잠입 해서 흐려 놓은 곳이 있지." 그들의 말은 엘리엔에게 희망적인 말이 아닐 수 없었다. 엘리엔이 그들에게 시선을 주자 코린트가 말했다. "청탑과 하루 정도 떨어진 곳에 비밀 워프 지점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저희 두 사람이 힘을 합치면 공간 이동이 가능할 것입니다. 하지만!" 엘리엔의 표정이 밝아지려 할 때, 코린트가 못을 박았다. “단 한 명만이 이동할 수 있습니다. 만약 저희 몸 상태가 정상이었다면 모두 이동이 가능하겠지만 지금은 한 명 밖에 안 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코린트의 몸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한 수 위인 지크리스 후작과 레이벨의 치열한 전투를 겪었던 터라 전신 곳곳에 상처를 입은 것은 물론 마나 홀에 있는 마나마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는 남은 마나를 모두 모아 텔레포트를 전개하려는 것이다. 혼자서 텔레포트하여 청탑에 간다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발상이었다. 당장 적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도 모르고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한 상황에 혼자서 간다는 것은 함정에 단신으로 뛰어드는 꼴이다. 하지만 달리 뽀족한 수가 없었다. 여차하면 빠져나올 자신이 있기에 엘리엔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나부터 가서 금탑주를 구출해 오겠어." "텔레포트를 하면.... 그 위치가 강 바로 위일지도 모릅니다." 염려스러운 코린트의 말에도 엘리엔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것은 상관없으니 어서...... 곧장 청탑으로 가는 것도 아니라면 시간이 금이다. 한 시라도 지체되어서는 안 되는 상황이다. “......” “......” 멜뤼스와 코린트가 한차례 시선을 나누었다. 그리고 멜뤼스가 고개를 끄덕이자 코린트가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엘리엔 님을 곧장 그곳으로 보내 드리도 록 하겠습니다." 코린트가 앞으로 한걸음 나섰다. 그의 상처가 멜뤼스보다 더욱 심했기에 그는 텔레포트를 직접 전개하는 것이 아니라, 청탑 인근에 마련해 둔 좌표를 설정하는 담당을 했다. 그리고 멜뤼스는 남은 마나를 끌어 모아 텔레포트를 전개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아닌 타인을 텔레포트시키기 위해서는 훨씬 높은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 긴 시간 캐스팅이 이루어지고, 마침내 멜뤼스가 엘리엔에게 마법을 전개했다. "워프!" 그의 외침과 함께 주변의 마나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우우웅! 곧이어 푸른빛이 뿜어지더니, 그것은 엘리엔을 휘감았다. 스팟! 빛이 폭사되면서 한순간 시야를 앗아 갈 듯 강렬한 빛을 발했다. 주변을 강하게 밝히던 빛이 사라지자, 엘리엔도 그 자리에서 사라진 뒤였다. 아이넨스를 비롯한 두 8클래스 마법사는 청탑으로 떠난 엘리엔의 모습을 좇으며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무사해야 할 텐데‥‥‥‥ 2. 절호의 찬스 대륙 동부의 젖줄이라 불리는 키클로스프 강은 대륙 중부에서 시작하여 대륙의 동해까지 이어지는 대륙에서 제일 긴 강이다. 격강이 어찌나 넓은지 맞은편에서 반대쪽으로 가기 위해서는 배를 이용해야 할 정도였으며, 대륙의 중동부와 북동부를 가르는 경계선 역할도 했다. 북동부와 중동부를 가르는 강이니 만큼 키클로스프 강에는 오가는 배가 많았다. 하지만 마도 제국이 들어서고서는 오가는 배가 극히 적어졌다. 모든 물건들을 마법으로 수송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키클로스프 강에는 이따금 여행객들이 건너는 배와 귀족들이 대여한 여객선만이 간간이 다니고 있었다. 청탑은 그런 키클로스프 강 하류에 위치하고 있다. 청탑은 구 벨로세크 제국의 3대 마탑 중 한 곳으로 적탑, 녹탑에 비해 오가기가 상대적으로 쉽다. 그래서 어떻게든 마탑에 연줄을 넣어 보려는 사람. 대륙에서 단 10명뿐인 8클래스 마법사가 다스리는 마탑을 구경하려는 자. 그리고 마탑에 유입되는 갖가지 물품들까지 청탑은 그로 인해 무척 교류가 많은 곳이다. 그런 청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 배를 타고 하루 정도 거리에 떨어진 곳에 무척 숲이 우거진 곳이 있다. 인적이 드물고 오가는 배도 없어 사람의 눈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다. 그곳에 지금 새하얀 광채가 폭사되고 있었다. 스파앗! 빛이 폭사되면서 한순간 주변을 뒤덮는 듯한 착시현상을 일으켰다. 잠시 후, 빛은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빛이 사라진 곳에는 한 여인이 자리하고 있었다. 인세에 드물다고 자신할 정도로 아름다운 여인은 세르디아 인간들 그 어느 누구도 착용하지 않는 특이한 형태 의 갑옷을 걸치고 있었다. 그 가느다란 옆구리에는 한 자루의 검마저 걸려 있었다. 청탑의 인근에 모습을 드러낸 여인. 그녀는 멜뤼스, 코린트의 도움을 받아 엘을 구하러 온 엘리엔이었다. 주변의 광경이 생생하게 느껴지자 엘리엔은 감았던 눈을 뜨며 주변을 살폈다. 보석같이 아름다운 눈으로 예리하게 주변을 살피던 엘리엔이 한쪽 방향을 주시했다. "이쪽으로 가면 청탑이군." 엘프란 종족은 인간과 달리 자연에 대한 선천적인 감각 타고 태어난다. 자연의 종족이라 불리는 엘프답게 자연 그 어느 것에도 친밀감을 가지는 것이다. 워프를 해서 온 곳에서 엘리엔은 잠시간 감각을 끌어올려 주변을 살폈다. 그 후, 그녀는 본능적으로 어디로 가야 할지 가닥을 잡아 냈다. 파앗! 엘리엔의 몸이 비상하는 1마리의 독수리처럼 날아오르더니 그녀의 신형이 강 중앙으로 빠르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몸이 막 강에 닿을 무렵, 마나를 끌어올리며 그녀가 외쳤다. "운디네!" 뽀로롱. 맑은 음향이 울려 퍼지며 엘리엔의 음성에 화답하듯 그 녀가 강물에 빠지지 않고 강 위에 뜨게 되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물빛의 귀여운 꼬마 요정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운디네였다. 엘리엔은 오랜만에 불러 줘서 짐짓 섭섭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운디네에게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앞으로 자주 부를 테니 투정은 나중에 하도록 하렴 그리고, 지금부터 날 물에 가라앉지 않게 해 줘." 뽀로롱. 운디네가 엘리엔의 기색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실프!" 물의 정령을 소환하여 몸을 강에 띄운 엘리엔은 이번엔 바람의 정령 실프를 소환했다. 샤아아아, 그와 함께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오며 녹빛의 귀여운 꼬마 요정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람의 정령 실프였다. 장난꾸러기 실프는 모습을 드러내고는 장난치듯 엘리엔의 주변을 한 바퀴 돌며 간질간질한 바람을 자아냈다. 엘리엔은 그런 실프에게 외쳤다. "장난은 나중에 하도록 하고, 실프는 지금부터 전력을 다해 날 밀어 줘. 동쪽 방향으로. 알겠지?' 그랜드 마스터인 그녀는 일반 사람이 흉내 내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청탑으로 향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면 체내의 오러에 막대한 손실을 감수할 수 밖에 없다. 때문에 그녀는 정령을 이용한다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 을 채택하여 청탑에 도달하려는 것이다. 콰콰콰콰콰! 운디네와 실프의 도움을 받으면서 엘리엔의 신형은 무섭게 동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견디기 힘든 풍압을 받아 내면서 엘리엔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부디 늦지 않기를.....’ 이때가 바로 엘이 막 루이아스와 조우했을 무렵이었다. "큭!" 엘은 루이아스가 전개하는 8클래스 마법을 가까스로 막아 내며 신음을 흘렸다. 지금 그는 루이아스에게 정말 형편없이 당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루이아스는 엘에게 헬 파이어를 전개한 뒤 그때부터 줄 곧 7클래스 마법만 전개하고 있었다. 캐스팅 없이 전개할 수 있는 가장 최상위 마법인 7클래스 마법으로 엘을 무너뜨리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통상적으로 엘에게 7클래스 마법이 큰 효과를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절대 엘이 이길 수 없는 상황이었다. 엘은 8클래스 마법사다. 때문에 그가 캐스팅 없이 전개할 수 있는 마법은 6클래스가 한계이다. 그런데 6클래스 마법으로는 절대 7클래스 마법을 막아 낼 수가 없다. 반면 9클래스 마스터인 루이아스는 7클래스 마법까지 캐스팅 없이 자유롭게 전개할 수 있다. 한 단계 차이로 인해 엘은 반격할 엄두도 내지 못한 채 피해 다니는 처지가 된 것이다. 간간이 골든 나이트가 루이아스에게 공격을 가하고는 있지만 그것 또한 헛된 발악으로 보일 정도로 상황은 최악을 달리고 있었다. "이만 포기하는 게 어떤가?' 루이아스는 자신의 마법을 미꾸라지처럼 막아 내고 피 하는 엘을 보면서 속으로 참지 못할 짜증이 몰려왔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내색하지 않은 채 엘에게 항복을 권고했다. 사실 루이아스의 입장에서도 엘은 무척 상대하기가 까다로운 상대였다. 분명 엘은 나이가 어렸다. 그것만 보면 낮잡아 봐도 상관이 없는 존재 하지만 엘은 이미 최소한의 힘으로 최대의 효율을 이끌 어 낼 줄 아는 자였다. 자신의 7클래스 마법을 막아 냄에 있어 한 치의 실수도 하지 않았으며, 그렇다고 해서 힘을 낭비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야말로 완벽한 힘의 컨트롤, 엘은 지금 그러한 모습 을 보이고 있었다. 그런데 엘은 이 사실을 알까? 자신의 그러한 모습이 루이아스의 살심을 더욱 불러일 키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어쩌면 저놈이야말로 9클래스 마법사에 이를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루이아스의 얼굴이 무섭게 변해 갔다. 일찍이 그 또한 9클래스의 경지를 동경하던 8클래스 마법사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9클래스의 깨달음을 얻었지만 그는 9클래스의 경지에 오르지 못했다. 깨달음은 얻었되, 육신은 그 경지에 오를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 될 수가 없었다고 말하는 게 옳을 것이다. 9클래스의 경지는 그야말로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경지다. 그랜드 마스터와 8클래스의 경지는 인간이 지닌 모든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경지라면 9클래스의 경지는 그 경계를 허물고 인간이 인간이 아니게 되는, 반신과 같은 존재가 되는 경지인 것이다. 자신이 9클래스에 오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루이 아스는 절망했다. 지난 시간 노력해 왔던 것이, 목표로 해 왔던 것이 이룰 수 없는 목표란 것에 심각한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찰나에 그는 9클래스로 통하는 한 가자 방법을 찾아내게 된다. ‘나에게는 이미 깨달음이 존재했기에 필요한 것은 더 욱 강력한 육신이었다.’ 루이아스가 9클래스의 경지로 오를 수 있는 유일한 희망, 그것은 바로 과거 마왕이 강림했을 때 역소환당하며 남겨 놓은 데몬 하트였다. 데몬 하트는 그 자체가 드래곤 하트를 뛰어넘을 만큼 방대한 양의 다크 오러를 담고 있다. 파괴적인 성향의 다크 오러는 감히 인간이 담아 낼 엄두도 내지 못할 만큼 어마어마한, 제일의 위력을 지니고 있다. 루이아스는 그것을 이용하여 자신의 몸을 단련시킬 생각을 했다. 그리고 비밀리에 데몬 하트를 입수하여 그것을 자신의 몸속에 투입했다. 그러자 엄청난 양의 다크 오러가 요동치며 루이아스를 끊임없이 괴롭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9클래스의 열망이 그러한 고통을 이겨 내게끔 하였다. 거기서 그는 인간이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가를 깨달을 있었다. 인간은 상황에 맞춰 끊임없이 적응에 적응을 거듭하여 살아남는다. 그것은 루이아스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전신이 난도질되는 듯한 고통을 느끼면서도 시간 이 차츰 흐르면서 점점 괜찮아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데몬 하트에 견뎌 낼 수 있는 강한 육체를 지녔을 때, 그는 꿈에 그리던 9클래스의 경지에 오를 수 있었다. 9클래스의 경지에 오른 루이아스는 자신했다. 감히 자신을 제외한 그 누구도 궁극의 경지의 오르지 못할 것이라고 말이다. 그때부터 자신의 성격이 조금 변한 것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평범한 은거 마법사였던 그는 점점 파괴적인 성향으로 변하면서 세상의 부조리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리고 그는 능력 있는 자만이 대우받을 수 있는 세상, 마법사들의 이상향, 마도 제국을 꿈꾸고 그 계획을 추진하기에 이른다. 데몬 하트의 힘에 이끌려 찾아온 카르마 링을 얻고, 휘하로 강대한 초인들을 거두어들인 그의 힘은 사상 최강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그런데 그런 그의 원대한 계획을 조금씩 비틀어 버리는 자가 나타났다. 바로 금탑주였다. 10대 후반에 7클래스를 마스터하고 20대 초반에 8클래스에 올랐다.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속도였다. 성국에서 처음 보았을 때는 그저 잠재적인 위협거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에게 지크릴과 카로스만이 당하자 인식은 달라졌다. 고작 몇 년 사이에 강적으로 변모한 것이다 그리고 그를 중심으로 초인들이 규합할 때 어느덧 그는 사상 최강의 적으로 등장한 상태였다. '이 녀석만 죽인다면 더 이상 내 앞길을 가로막을 존재는 없겠지.' 물론 아토빌 공작과 유클레이, 신검의 주인 등 많은 적들이 있긴 했다. 하지만 엘이 없는 이상 그들을 이어 줄 구심점은 존재 하지 않다. 차근차근 각개 격파를 한다면 결코 무서울 것이 없는 게 그들이다. 루이아스의 손에 붉은 화염이 맺혔다. "플레임 스트라이크!" 콰콰콰콰! 붉은 화염이 날카로운 독니를 드러내며 엘에게 쇄도했다. "이런." 이미 한차례 7클래스 마법을 곧장 막아 낸 후였는데 곧 장 후속타가 날아오자 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그것도 찰나였다. 인상을 일그러뜨렸던 엘은 재빨리 몸을 뒤집었고, 블링크로 빠르게 물러났다. 물론 마법의 여파에 쉽쓸리지 않게 골든 나이트가 앞으로 나섰다. 골든 나이트는 룬 블레이드를 휘둘러 플레임 스트라이크를 받아쳤다. 구우웅! 뭐든지 베어 버리는 룬 블레이드가 단숨에 플레임 스트라이크를 베어 버렸으나 베어진 플레임 스트라이크가 곧 장 폭발했다. 강철이라도 녹여 버릴 듯한 열기가 골든 나이트에게 엄습했다. 하지만 골든 나이트는 그저 덤덤할 뿐이었다. 방어 마법진 수십 개가 중첩되고 마법 코팅까지 되어 있었기에 마법의 여파쯤은 얼마든지 견뎌 낼 수 있다. 플레임 스트라이크를 받아 낸 골든 나이트는 곧장 몸을 날려 루이아스를 조개 갔다. "이런." 플레임 스트라이크의 폭발에 적중당하고도 곧장 몸을 날리는 골든 나이트를 보며 루이아스는 순간 눈을 크게 떴다. 7클래스 마법의 폭발에 휩쓸리면 제아무리 그랜드 마스터라 할지라도 일순간 무력화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골든 나이트는 그러한 것에 아랑곳없이 루이아스에게 달려드는 것이다. 피륙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골든 나이트만 가능한 모습 이었다 “탐나는군. 정말 탐이 나! 이런 골렘만 있었다면 진즉에 마도 제국을 건국할 수 있었을 텐데." 자신에게 달려드는 골든 나이트를 보며 루이아스의 눈에 짙은 탐욕이 떠올랐다. 동시에 저런 예술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금탑주의 재능이 탐났다. "하지만 나에게 반하는 이상 어쩔 수 없지. 이것이 운명이라면 제거하는 수밖에." 샤앗! 루이아스의 손이 허공을 갈랐다. 그러자 반투명한 화살 5개가 생각났다. 7클래스 최강 의 관통 마법인 천공의 화살이었다. 이거라면 제아무리 마법 코팅된 골든 나이트일지라도 꿰뚫릴 수밖에 없었다. 천공의 화살이 쇄도함에도 골든 나이트는 그것을 무시 한 채 루이아스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루이아스가 비웃었다. "멍청한 것! 천공의 화살은 감히 네가 견딜 만한 성질이.......” 말을 하던 루이아스의 눈이 돌연 커졌다. 천공의 화살과 골든 나이트가 충돌한 것이다. 콰아아아아! 무시무시한 관통력이 골든 나이트를 휩쓸었다. 하지만 천공의 화살은 골든 나이트의 동체를 꿰뚫지 못했다. 7클래스 최강의 관통 마법으로도 말이다 놀라움에 루이아스의 눈이 커졌을 때, 골든 나이트가 루이아스를 공격해 왔다. "이런." 아직도 믿기 힘든 현실에 루이아스가 안색을 찌푸리며 블링크를 전개하여 뒤로 물러났다 7클래스 관통 마법까지 견뎌 낸 골든 나이트에게서 받은 충격과 자신의 전력을 가다듬기 위해서였다. 루이아스가 블링크를 전개하는 모습에 엘이 눈을 빛냈다. '이때다!' 9클래스 마법사인 그가 물러나는 경우는 결코 흔하지 않다. 특히 지금같이 약간의 충격을 받은 상태로 물러나는 경우는 더더욱 없다. '지금이 아니면 결코 승리를 할 수 없어.' 자신에게 있어 지금 이 순간이 유일한 승부처임을 느낀 엘은 곧장 블링크를 전개하였다. 그가 블링크를 전개한 곳은 루이아스가 물러섬 지한 곳 이었다. 블링크를 전개한 엘은 곧장 마법을 두 손에 전개하여 루이 아스를 공격 했다. 콰앙! 이미 예상을 했던 걸까? 루이아스는 엘의 공격을 막아 냈다. 하지만 완벽하게 예상한 것은 아니었는지 엘의 공격에 루이아스의 몸이 주르륵 뒤로 밀려났다. '때를 놓쳐서는 안 돼.' 루이아스가 물러서는 모습에 엘은 한층 몸에 가속을 붙여 루이아스를 공격했다. 몸에 헤이스트를 중첩하고 강력한 마법을 두 손에 응집 시킨 엘은 워 메이지의 정석 그 자체였다. 그런 엘의 모습은 루이아스에게 웃음거리로 보일 뿐이었다. “내가 우습게보였나 보군?” 루이아스의 주변에 보이지 않는 바람의 칼날 여덟 개가 생겨났다. 그것도 모자라 그의 손에 푸른 뇌전이 똬리를 틀었다. 녹탑주 레이벨과 청탑주 라이젠의 비기를 한 번에 선보이는 것이다. 바람의 칼날은 주변을 난도질하며, 루이아스의 양손은 대기를 찢으며 엘에게 향했다. 그것을 보며 엘이 눈을 빛냈다. '좋아! 예상대로다. ' 상식적으로 8클래스 마법사인 그가 9클래스인 루이아스와 근접전을 벌이기란 흔치 않다. 루이아스를 도발하면 공격해 올 거라 생각했는데 그것이 적중한 것이다. "헬 파이어." 접근하는 루이아스에게 엘은 메모라이즈를 해 놓은 마법 중 하나인 헬 파이어를 전개했다. 제아무리 루이아스라도 헬 파이어를 가볍게 여길 수 없다. 루이아스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방어 마법을 전개했다. "절대 방어." 엘이 메모라이즈 해 놓은 마법을 전개한 것처럼 루이아스 또한 메모라이즈 해 놓은 9클래스 마법을 전개했다. 그 어떠한 것이라도 막아 낼 수 있는 궁극의 방어 마법, 절대 방어를 말이다. 쿠구우우웅! 헬 파이어와 절대 방어가 충돌하면서 거대한 충격파가 뻗어 나갔다. "큭!" 타격을 입지는 않았다. 하지만 헬 파이어의 폭발에 절대 방어에 휩싸인 루이아스의 신형이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비장의 한 수를 꺼내 들었다는 건가. 이제 하나밖에 남지 않았군." 8클래스 마법사는 총 3개의 8클래스 마법을 메모라이즈 해 놓을 수 있다. 세이지 실드에 이어 헬 파이어까지 전개했으니 이제 엘 에게 남은 것은 단 1개의 8클래스 마법이었다. '이때다. ' 엘의 눈이 빛났다. 동시에 그가 외쳤다. '타나!" 쏴아아아아! 엘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한순간 금빛 광채가 주변을 뒤덮더니, 루이아스에게 쇄도했다. 루이아스의 시선을 잠시 끈 사이 골든 나이트가 골드 피닉스를 전개한 것이다. 금빛 피닉스는 무시무시한 기세를 내포한 채 루이아스에게 향했다. "이런." 루이아스의 안색이 급변했다. 자신이 순간 엘의 꼬임에 넘어갔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하필이면 골든 피닉스를." 주변을 일순간 진공 상태로 만들어 버리는 듯한 골든 피닉스는 일견하기에도 어마어마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자신이 성국에서 가볍게 막아 낸 것과는 차원이 다른 위력이었던 것이다. 물론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골든 나이트의 에고는 세상의 갖가지 사념들로 이루어 져 있다. 이는 강대한 힘을 지닌 골든 나이트가 엘에게 무한한 충성을 바치게 하기 위해 전제된 '절대 충성'이란 명제를 충족시켜야 했다. 엘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대신 끊임없이 사념을 끌어들이도록 설정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골든 나이트의 에고는 나날이 풍부해져 지능이 조금씩 늘어난다. 그에 따라 골든 나이트의 실력도 차츰 늘어났다. 지능이 낮지만 골든 나이트에게는 끊임없이 규합되는 사념과 전투의 경험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처음에는 둔탁한 느낌을 주던 움직임은 한층 시끄러워졌고, 힘의 운용과 힘의 수발이 한층 성숙해졌다. 그리하여 적은 힘으로 더욱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골드 피닉스를 보며 루이아스가 이를 질끈 깨물었다. 곧이어 둔중한 충격이 절대 방어와 충돌했다. 쿠우웅! "큭!" 루이아스의 입에서 짧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예상은 했지만 골드 피닉스의 힘은 전보다 더욱 강력했다. 마치 해머로 내려치는 것처럼 정신이 아득해져 오는 것을 느꼈다. "이런 실수를 하다니." 제대로 실력을 겨루면 골든 나이트는 결코 루이아스의 상대가 될 수 없다. 공간을 자유로이 오가며 막강한 마법을 전개할 수 있는 루이아스는 그 누구도 상대할 수 없는 강대한 힘을 지녔기 때문이다. 거기에 카르마 링까지 더해져 검을 다루는 기사는 물론 마법사들도 그의 상대가 감히 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뜻하지 않게 엘의 꼬임에 넘어가 이런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절대 방어에 조금씩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쩌적! 쩌저적! 그와 동시에 골드 피닉스가 더욱 맹렬한 회전과 함께 절대 방어를 파고들었다. 쩡! 소리와 함께 마침내 절대 방어가 깨졌다. 파사사! 콰아앙! 절대 방어가 부서지면서 힘이 다한 골드 피닉스가 폭발 했다. 지축이 요동치는 듯한 충격과 함께 루이아스의 신형이 뒤로 쭉 밀려났다. 타격을 받지는 않았다. 다만 폭발의 여파에 휩쓸려 뒤로 주르륵 밀려난 것이다. 거기에 엘과 골든 나이트에게 어느 정도 거리를 두어 전열을 재정비하려는 속셈이었다. "이거 쾌 빛을 졌군." 외상도 내상도 결코 없었지만 루이아스의 눈은 이글이글 타올랐다. 9클래스에 이르러 잠시나마 위기감을 느끼게 한 상대를 결코 용서할 수 없었다. 그때였다. 루이아스는 돌연 자신의 뒤에서 강렬한 기운을 느끼고는 재빨리 몸을 뒤로 돌리며 물러났다. 그러자 동시에 금빛 신형이 앞으로 쭈욱 밀려온다. 금빛 신형의 정체를 알아차린 루이아스의 양 눈이 길게 찢어졌다. "넌!?" 그에게 접근한 이근 바로 엘이었던 것이다 엘은 양손에 무언가를 쥔 채 거리를 벌리려는 루이아스 에게 따라붙고 있었다. 워낙 가까운 거리였던 터라 블링크를 전개하기도 애매 했다. 자칫 공간의 틈으로 사라지기도 전에 공격받을 수도 있기에 함부로 블링크를 전개할 수 없었다. 그래서 최대한 마나를 실어 뒤로 물러나려 했다. 하지만 루이아스는 엘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엘은 루이아스와 거리를 벌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몸에 헤이스트를 거듭 중첩해서 걸어 놓았기 때문이다. 엘의 눈은 어느 때보다 빛나고 있었다. '이번이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다.' 여태까지의 모든 행동은 바로 지금을 위한 것이었다. 자신이 단신으로 루이아스의 공세를 받아 냈던 것도, 골든 나이트가 골드 피닉스를 전개한 것도 모두 지금 순 간을 위해서였다. 바로 루이아스가 빈틈을 드러내는 그 찰나! 골드 피닉스를 피해서 물러나는 지점에 미리 대기하여 그에게 달려들어 단번에 승부를 내려는 엘의 계획이 반쯤 은 성공을 거두었다 제아무리 9클래스 마법사라 할지라도 칼에 맞으면 결 국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다. 때문에 엘은 이번 기회를 결코 놓칠 수 없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성공시킨다.' 미꾸라지처럼 교묘히 뒤로 물러나는 루이아스를 엘은 집요하게 따라붙었다. 그리고 마침내 공격을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섰을 때, 엘은 양손에 마나를 힘껏 주입했다. "올 플리체!" 파앗! 순간 엘의 양손에 찬란한 금빛이 뿜어지더니 이내 금빛 화살로 변하였다. 그리고 곧장 맹렬한 기세를 머금은 채 루이아스에게 쇄도했다. "이, 이것은!" 엘이 전개한 제련제강의 마법을 알아본 루이아스의 안색이 급변했다. 제련제강의 마법은 그 위력이 대단하다. 단순히 위력만 놓고 보았을 때 그 위력은 한정되어 있다. 하지만 올 플리체의 관통력 하나만큼은 9클래스 마법에 결코 밀리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것이 자신의 지척에서 맹렬한 기세를 머금고 전개되었으니 루이아스로서는 경악할 수밖에 없다. 루이아스의 안색이 새하얗게 탈색되기 시작했다. 3. 또 다른 제련제강의 마법, 다이아몬드 대륙 동부의 젖줄 키클로스프 강 하류. 깊은 어둠이 자리할 무렵, 배 한 척 다니지 않는 키클로 스프 강을 맹렬한 기세로 달리는 한 인영이 존재했다. 쏴아아아! 물이 좌우로 갈라지면서 거센 물보라를 일으킨다. 그럼 에도 신기하게도 인영에게는 단 한 방울도 물이 튀지 않았다. 강을 가르고 달리는 존재, 그녀는 바로 엘리엔이었다. 엘리엔이 강을 달린 지 왜 긴 시간이 흐른 뒤였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어느덧 강가에는 짙은 어둠이 자리하기 시작했고, 간간이 보이던 인기척도 완전히 존재를 감춘 상태였다. "시간이 꽤 흘렀어. 늦은 것 같아......" 강을 가로지르는 엘리엔의 얼굴에는 짙은 그늘이 생겼다. 벌써 어둠이 자리했다. 그녀가 파악한 금탑주의 특성상 어둠이 자리한 뒤 움직였을 확률이 높고, 그렇다는 건 적의 함정에 뛰어들었을 확률이 높다는 걸 뜻했다. 제아무리 엘이 8클래스의 실력에 골든 나이트까지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상대측은 엘의 전력을 정확하게, 아니 오히려 과대평가를 하여 완벽한 함정을 설치해 놓았을 확률이 높다. “조금만 더 .......” 간간이 소식을 알려오는 실프에 의하면 육지가 멀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는 것은, 청탑에 거의 다 다다랐다는 것을 의미 때문에 엘리엔은 최고조에 이른 속도로 가고 있음에도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빨리 청탑에 도착하려 하였다. "다 왔어." 남들보다 월등히 좋은 엘리엔의 눈에 육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육지 곳곳에는 격렬한 격전이 벌어진 흔적이 드러나 있었다. 곳곳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검은 연기도 동시에 피어오르고 있었다. 얼핏 보기에는 격전이 끝난 것처럼 보였다. 엘리엔의 안색이 다급해졌다. "설마 벌써 끝난 건가?" 그녀는 있는 힘을 모두 쥐어짜냈다. 파아앗! 보이지 않는 투명한 기류에 휩싸인 엘리엔의 신형이 한 층 더 빨라졌다. "이겼어 !" 엘의 얼굴에 화색이 만면했다 금빛 화살이 루이아스에게 향하는 순간 엘은 승리를 확신했다. 제련제강의 마법에 노출된 루이아스는 그야말로 무방비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저기에서 마법을 전개한다 해도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고, 블링크로도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이다. 그야말로 승리를 확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제 대륙에는 평화가 찾아올 거야." 사실 평화는 2순위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자신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과 주변인의 평화였으니 말이다. 루이아스가 죽은 이상 자신과 주변의 평화를 위협할 존재들은 그의 휘하에 존재하는 초인들밖에 남지 않는다. 그러나 전체적 초인의 숫자가 이쪽이 더 많은 걸 감안 하면 힘들더라도 충분히 제거가 가능하다. 루이아스가 있다면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그런 루이아스가 엘에게 죽었다. 운이라고 해도 좋다. 과정을 제외하더라도 루이아스를 죽였다는 데 의의가 있으니까. 그러나 엘의 기쁨은 지극히 짧았다. 금빛 화살이 루이아스의 몸을 꿰뚫으려던 찰나, 돌연 그의 앞에 붉은빛의 방패가 생각난 것이다. 갑작스럽게 붉은 방패가 생겨나자 엘이 한순간 놀랐지 만 이내 웃음을 되찾았다. 보아하니 절대 방어도 아닌 듯했다. 절대 방어가 아니라면,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금빛 화살을 막아 내려면 최소 세이지 실드를 전개해야 한다. 물론 세이지 실드를 전개한다고 하여 완전히 막아 낼 수 없다. 더군다나 붉은 화살을 보니 세이지 실드도 아니고 그저 위력을 감소시키려고 하는 것 정도로 보였다. 붉은 방패는 강렬한 회전력을 머금고 날아오는 금빛 화살과 충돌했다. 꽝! 요란한 소리와 함께 붉은 방패와 금빛 화살이 충돌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루이아스의 몸을 여지없이 꿰뚫을 것이라 예상했던 금빛 화살에 균열이 일면서 부서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파사사사. 금빛 화살이 고운 금빛 가루로 변해 갔다. 승리를 확신하던 엘이 두 눈을 부릅떴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이토록 지척에서 완벽한 기회를 잡아 제련제강의 마법을 전개했는데 실패하다니? 상대의 모든 타이밍을 다 빼앗은 채 가한 회심의 일격 이었기에 그 충격은 더욱 컸다. 더욱 믿기지 않는 사실 하나는 바로 금빛 화살은 부서 졌지만 붉은 방패는 여전히 건재하다는 사실이었다. 당혹감에 물들어 있던 루이아스의 얼굴에 웃음이 맺혔다. "완벽한 타이밍을 잡긴 했지만 한 가지 간과한 게 있군. 바로 나에게도 제련제강의 마법이 있다는 걸 말이야." “......!” 엘의 얼굴에 경악이 스쳤다. 하지만 루이아스의 말처럼 곁코 그것을 간과한 것은 아니다. 애당초 루이아스를 상대할 방법을 고안했으니 아일라스 제국에서 벌어졌던 전투 때 보여 주었던 제련제강의 마법도 충분히 전력에 끼워 넣었던 것이다. 딱 한 번 마주쳤던 레드 드래곤 브릴켄드는 제련제강의 마법이 드래곤이 창조한 것이며 다양한 종류가 존재한다고 하였다. 엘 역시 제련제강의 마법을 익히면서 그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중에서 황금을 제외한 다른 제련제강의 마법 은 익히기도 까다로울 뿐더러 전개하는 것도 무척 어렵다고 하였다. 때문에 이러한 상황이 만들어지면 제련제강의 마법으로도 절대 대응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성공한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엘의 오산이었던 것이다. 모든 것을 걸고 만들어 낸 엘의 회심의 일격을 막아 낸 루이아스는 입가에 미소를 띤 채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주변에 어둠이 깔려 있음에도 마치 스스로 빛을 발하는 것처럼 아름다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소개하지. 내가 익힌 제련제강의 마법은 바로 다이아몬드다. 레드 드래곤 베이나스를 죽이고 얻은 것이지. 이것이 나의 목숨을 구해 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 했지만." “......” 그 말에 엘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의 일격이 실패했다는 충격파 루이아스가 드래곤을 죽였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한 탓이었다. “다이아몬드 제련제강의 마법은 사용하기가 무척 까다롭지. 하지만 숙달이 되면 순간적인 공격과 방어가 가능 하다. 후후후!" 슬쩍 손을 젓자 붉은 방패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와 함께 루이아스의 전신에서 무시무시한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여유 부리는 것도 여기까지겠구나. 한차례 목숨을 위협받았으니 더 이상 설렁설렁할 수도 없겠고 말이야. 죽어라, 금탑주!" 파아아아! 강렬한 클래스 프레셔와 함께 수십 발의 마법이 난사되었다. 그것을 바라보는 엘의 눈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루이아스의 말은 결코 허언이 아니었다. 엘에게 한차례 위험을 겪은 그는 모든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후부터 엘에게 느껴지는 것은 절망뿐이었다. 사방 30m가 넘는 공간에 쉼 없이 마법이 전개되고 있었다. 위력이 어찌나 강한지 한 발, 한 발 지면에 부딪칠 때마 다 푹푹 패여 나갔다. 콰광! 콰과광! "크윽·!" 실드를 전개하여 어떻게든 버텨 보려 했지만 그것도 역부족이었다. 마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마나가 필요한데 루이아스의 마법과 충돌할 때마다 실드를 유지하기 위해 막대한 양의 마나가 소모되는 것이다. 반면에 루이아스의 안색은 변함이 없었다. 수십 m에 이르는 공간에 마법을 끊임없이 전개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의 마법은 마치 자연적인 현상처럼 끊임없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고 있었다. 이는 그가 9클래스의 경지에 오르면서 주변의 마나를 곧 자신의 마나로 탈바꿈할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는 것을 증명한다. 때문에 그는 반경 수십 m를 모조리 마법으로 뒤덮어도 주변의 마나가 끊임없이 그의 마나로 바뀌기 때문에 마나 고갈의 염려가 없었던 것이다. 그에 반해 엘은 8클래스의 경지에 오르고 단전호흡과 천부적인 재능으로 타인보다 강한 힘을 지녔다.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애당초 깨달음으로 얻은 것에 비해 부족할 수밖에 없는 법. 이는 자신의 것으로 활용하는 단계와 단지 흉내 내는 어마어마한 차이였다. 루이아스가 본격적인 공세에 나섬으로써 엘은 그가 얼마나 강한지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신체의 능력을 살려 최대한 그의 공세를 피해 그에게 다가간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경우가 닥치는데, 그럴 경우 순간 적으로 실드를 생성해야 한다. 그러나 루이아스는 엘의 마법 전개를 결코 놓치지 않았다. 엘의 주변에 마나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곧장 그의 카르마 링이 힘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마법으로 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엘로서는 마법이 봉쇄당하니 그 뒤부터는 처참함의 연속이었다. 대륙에 단 10명밖에 되지 않으며 뭇 사람들의 추앙을 받던 8클래스 마법사가 단지 몸이 단단한 사람으로 추락 하는 순간이었다. "이건 아니야......” 엘은 전신을 휘감는 무력감에 미쳐 버릴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느낌은 결코 겪어 본 적이 없다. 레드 드래곤 브릴켄드와 상급 마족 베르아문트의 전투를 보면서 자신의 힘의 부족함을 느끼긴 했다. 하지만 그것과 이것은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 그때는 단지 눈으로 보고, 자신의 힘이 부족했음을 느꼈을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온몸 전체로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엘의 장점은 누가 뭐라 해도 마법이다. 자연히 카르마 링에 의해 마법이 봉쇄된 엘은 그저 몸놀림이 뛰어난 일반인에 불과했다. 마법 하나만 봉쇄됐을 뿐인데 이렇듯 어마어마한 차이 가 나타난 것이다. 또다시 마법 한 발이 엘에게 날아왔다. 피할 수 없기에 엘은 순간적으로 마나를 끌어올려 실드를 전개했다. 하지만 카르마 링을 피해 전개한 실드가 온전한 방어력을 지니고 있을 리 없다. 콰앙! "콕!" 충격을 미처 해소하지 못한 엘의 신형이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엘이 밀려나는 사이 골든 나이트가 검을 휘두르며 루이아스에게 달려들었다. 골든 나이트의 표면에는 마법을 막아 내기 위한 수십 가지 마법진이 겹겹이 중첩되어 있다. 매직 메탈이 견뎌 낼 수 있는 한계까지 마법진을 중첩시켜 골든 나이트는 최강의 항마력을 자랑한다. 때문에 골든 나이트는 루이아스가 끊임없이 전개하고 있는 마법을 동체로 받아 내면서도 별 무리 없이 접근할 수 있었다. 만약 다른 그랜드 마스터였다면 루이아스에게 접근하기도 전에 마법에 적중되어 큰 타격을 입었을 것이다. 그러나 골든 나이트는 피륙으로 이루어진 인간이 아닌 단단한 금속으로 이루어진 골렘이다. 통각이 없는 골든 나이트가 고통을 느낄 리가 없을 뿐 더러 외피에 새겨진 방어 마법은 루이아스의 마법을 견뎌 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제법인데?” 자신의 마법을 견뎌 낸 채 달려 들어오는 골든 나이트. 그 금색 찬란한 골렘을 보며 루이아스의 눈이 미미하게 빛났다. 지금 전개하고 있는 이 마법은 그랜드 마스터나 8클래스 마법사를 상대하기 위한 것이다. 반경 수십 m를 강력한 마법으로 뒤덮는 수법 웅혼한 마나와 9클래스에 이른 마법의 파괴력이 합쳐 지지 않는다면 결코 불가능한 기술이 바로 이것이다. 그 증거로 금탑주는 자신의 마법에 맥을 못 추고 있다. 방어 마법이나 공간 이동 마법을 전개하여 피하면 되지 만 자신의 카르마 링을 의식한 탓에 섣불리 마법을 전개 하지 못하고 있다. 금탑주뿐만 아니라 다른 8클래스 마법사들도 자신의 영역에 들어서면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될 것이다. 그랜드 마스터도 다를 바가 없다. 손에 넣기 전이라면 유일하게 존재하는 사각이었다. 하지만 루이아스는 그런 사각을 완전히 없애 주는 힘을 손에 넣었기 때문이다. 그의 손에서 붉은 광채가 아른거리더니 이내 기다란 창이 생겨났다. 다이아몬드로 제련제강의 마법을 펼친 것이다. 레드 드래곤 베이나스를 사냥한 후 루이아스는 그의 레 어에서 제련제강의 마법을 손에 넣었다. 그것은 루이아스의 힘을 완벽하게 해 주는 마법이었다. 전개 시간이 짧으면서 순수한 위력은 9클래스 마법에 버금가는 것이 바로 다이아몬드 제련제강의 마법이기 때 문이었다. 마법의 영역에 갇힌 그랜드 마스터를 제련제강의 마법으로 제거하기란 무척 실운 일이었다. “이것만 있으면 내겐 약점이란 존재하지 않지.” 그것이 설사 자신의 마법을 무시할 수 있는 골든 나이트라 해도 말이다. 파밧! 붉은 창이 3줄기 빛과 함께 골든 나이트에게 쏘아졌다. 마치 빛이 지나가는 듯한 빠르기. 그것은 골든 나이트의 반사 신경을 월등히 뛰어넘고 있었다. 캉! 캉! 캉! 귀가 찢어질 듯 요란한 금속 파열음이 들려왔다 놀란 엘의 눈이 크게 뜨일 무렵, 골든 나이트의 동체가 빠르게 추락했다. 추락하는 골든 나이트의 동체에는 3개의 붉은 창이 정 통으로 관통해 있었다. 말도 안 된다! 도저히 믿기 힘들었다. 몸 전체에 수십 개의 실드 마법이 중첩되어 있는 골든 나이트다. 마법은 물론 오러조차 맨몸으로 받아 낼 수 있는 게 골든나이트다. 설령 오러 블레이드가 몸을 가른다 하더라도 금세 복구를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골든 나이트의 모습을 보라. 붉은 창에 꿰뚫린 건 이해가 간다. 하지만 그다음에 저 창을 밀어내고 수복을 해야 옳다. 하지만 지금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저 붉은 창이 골든 나이트의 자체 수복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엘의 예상보다 다이아몬드 제련제강의 마법이 더욱 강한 위력을 지니고 있음을 의미했다. ‘수십 개의 실드를 단번에 꿰뚫고 타나의 동체에 새겨 진 마법진마저 무시할 위력이라면.......’ 엘의 등이 식은땀으로 축축해졌다. 전에도 한 번 겨뤄 보았기에 엘은 다수의 그랜드 마스터가 있으면 충분히 루이아스를 견제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을 보니 그것은 자신의 착각이었다. 루이아스는 그가 했던 말대로였다. 정말이지, 그랜드 마스터 열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상대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지니고 있던 것이다. 특히 이 수십 m의 공간 전체를 뒤덮는 마법은 그랜드 마스터라 할지라도 자유로울 수 없다 거기에 제련제강의 마법. 방금 전 확인했으니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다. 그는 최 강인 것이다. 엘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입술이 찢어져 피가 흘러내렸지만 그것에 신경 쓸 틈이 없었다. '계획은 완전히 실패야. 이대로 몸을 피해야 해.' 자신의 예측은 완전히 어긋났다. 아니, 상대에게 완전히 간파당했다. 압도적인 루이아스의 힘을 본 이상 엘은 그와 맞서기를 포기했다. “타나! 물러서!” 파앗! 골든 나이트에게 후퇴 명령을 내림과 동시에 엘은 재빨리 마법의 영역에서 벗어나기 위해 뒤로 물러났다. "사태 파악이 느리군." 루이아스는 엘이 물러나는 모습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분명 지금 상황은 그가 후퇴해야 할 상황이다 하지만 상대가 너무 나빴다. '한 번 상대한 적은 결코 쉽게 놓아 주는 주의가 아니 라서 ." 전개된 마법은 무차별적으로 지면을 강타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쓸데없는 정신력의 소모를 막기 위한 것. 정신 집중만 한다면 마법을 집중하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다. "가라!" 파바바밧! 수백 개의 마법이 일시에 엘에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 런!"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던 마법이 갑자기 자신을 노리자 대경한 엘은 마법을 피하기 위해 몸을 틀었다. 콰광! 콰과광! 마법이 지면에 부딪치면서 폭발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땅거죽이 죽죽 패고 갈라졌다. 하지만 엘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채 몸을 피하는 데 주력했다 사방에서 덮쳐 오는 흙은 위협이 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라, 그런 흙 사이로 파고드는 마법이다. 그것은 진정 위험했기 때문이다. 엘은 거의 본능적으로 마법을 피하고 있었다. 그가 비록 몸이 허약한 마법사라고 하지만 기존의 마법사들과는 전혀 다른 수련법으로 경지에 오른 만큼 신체 능력은 일반인을 월등히 웃돌고 있었다. 피해야 할 마법은 피하고 막아야 할 마법은 순간적인 실드로 간신히 막아 냈다. 그런 엘의 모습을 루이아스는 빠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마법을 이렇게까지 피하는 엘의 모습에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과연, 어린 나이에 그 정도 경지에 올랐으니 한수 재간이 있겠지. 하지만....... 이미 그는 엘을 죽이기로 결정하여 살심을 품은 상태 다 이대로 엘을 보내 줄 수 없었다. 파아앗! 붉은 창이 루이아스의 손에서 길게 자라났다. 엘을 죽이기 위해 제련제강의 마법을 전개한 것이다. 루이아스는 여전히 마법을 피하기에 바쁜 엘에게 자신이 전개한 붉은 창을 투척했다. 쐐애액-! 대기를 가르며 붉은 창이 맹렬한 기세로 엘에게 향했다. 그때까지 엘은 루이아스의 마법을 피하기에 바빴다. 엘은 실드로 자신의 몸을 보호한 채 자신에게 향하는 또 다른 기운을 느꼈다. 그곳으로 시선을 옮기니 어마어마한 기세를 품은 창이 자신에게 쇄도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것을 단번에 제련제강의 마법임을 파악한 엘은 재빨리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엘의 손에 쥐어진 그것들은 이내 찬란한 황금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가 가지고 있는 제련제강의 마법을 전개하는 것이다. "가랏!" 외침과 함께 4줄기의 금빛 화살이 붉은 창을 향해 쏘아 졌다. 그리고 그것들은 각자 맹렬한 기세를 품은 채 그대로 충돌했다. 째-앵! 붉은 창과 금빛 화살이 부딪치자 귀가 찢어질 듯한 소음과 함께 난폭하게 찢기는 소리가 들렸다. 충돌 장면을 바라보는 엘의 눈이 더없이 커졌다. 처음 붉은 창과 충돌한 금빛 화살이 맥없이 부서지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1번째 것은 분명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자신이 쏘아 보 낸 2번째, 3번째 마지막 4번째 화살마저 부서지자 솟구치는 놀라움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분명 엘 또한 다이아몬드로 전개한 제련제강의 마법이 황금의 제련제강의 마법보다 강한 위력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이미 일전에 아일라스 제국에서 루이아스의 제련제강의 마법을 견식한 적이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그가 생각하는 위력은 이 정도가 아니었다. 비록 붉은 창이 골든 나이트에게 중한 상처를 입혔다고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3개의 힘이 극성으로 발휘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루이아스가 전개한 것은 단 하나뿐이고 긴 거리를 날아오느라 그 관통력 또한 상당히 감소한 상태다. 그런 와중에도 4개의 금빛 화살을 이렇게 간단하게 부숴 버릴 수 있다니. 이는 엘의 예상에도 없던 일이었다. 4개의 금빛 화살을 모두 부숴 버린 붉은 창은 그것만으로도 부족하다는 듯, 엘에게 향하기 시작했다. 루이아스의 구체화된 살기가 붉은 창에 담긴 듯, 엘에 게 쏘아지는 붉은 창의 기세는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엘은 그런 붉은 창을 바라보면서 서둘러 마법을 전개 했다. 붉은 창이 이토록 지척에 접근했으니 마법을 전개하여 막아 내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엘의 패턴은 루이아스가 기다리고 기다리 던 것이었다. 고위 마법을 전개하기 위해 엘의 주변에 마나가 공명하는 순간 루이아스의 손가락에 자리한 카르마 링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와 함께 카르마 링은 목표의 마나를 순식간에 흩어 버리기 시작했다. 엘은 순식간에 실드의 형태를 갖춰 가던 마나가 단박에 흩어지는 것을 느끼고는 두 눈을 부릅뜨며 루이아스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러자 루이아스는 빛을 발하는 카르마 링을 흔들어 보이며 빙긋 웃어 주었다. 그사이 붉은 창은 그 누구의 방해도 없이 막강한 기세를 품은 채 엘의 어깨를 꿰뚫었다. 심장을 향하던 것을 엘이 필사적으로 몸을 틀었기에 간신히 피한 것이다. 푸하학! 어깨가 꿰뚫리면서 붉은 피가 폭포수처럼 흘러나왔다. 그와 함께 전신을 휩쓰는 화끈한 느낌과 함께 몰려오는 극심한 고통. 엘의 표정이 극도로 일그러지면서 도저히 참을 수 없다 는 듯 신음을 흘리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크으윽!" 서둘러 치료 마법을 전개하려 했다. 하지만 어깨에 박힌 붉은 창은 항마의 기운마저 지닌 듯, 엘의 치료 마법을 튕겨 냈다. 순식간에 바닥에 피가 흥건하게 흘렀고, 정신은 가물거리기 시작했다. "쿨럭 !" 피를 토하면서 엘의 눈은 절망으로 물들었다, '이, 이게 나의 끝이란 말인가?' 몸이 엘의 의지를 철저히 배반한 듯 손가락 하나 꼼짝 할 수 없었다. 쓰러진 엘의 모습을 감상이라도 하듯 공중에 떠 있던 루이아스의 신형이 지면으로 내려오면서 천천히 엘에게 다가왔다 저벅저벅. 고요한 발소리가 마치 자신의 끝을 알리는 카운트다운처럼 느껴졌다. 한 발짝씩 다가오던 걸음이 순간적으로 멎었다. 엘의 가슴은 순간 쿵쾅 뛰었다. 이게 자신의 마지막이 라 느낀 것이다. "나를 방해해 오던 최대의 적, 금탑주 넌 정말 훌륭했다. 어린 나이에 전대미문의 성취와 탁월한 작전까지 말 이다. 하지만 넌 나를 결코 뛰어넘을 수 없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네게 없는 긴 세월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후....... 죽어 가는 적에게 이렇게 길게 말하는 것은 오히려 실례인 것 같군. 이제 그만 사라져라." 엘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지만 루이아스는 여태껏 자신 을 방해해 온 엘에게 그렇게 말한 뒤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의 손이 새하얗게 물들기 시작했다. "응?" 막 마법이 전개되려던 순간 루이아스는 방금 전 엘과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향하는 어마어마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시선을 힐끗 돌리니 마치 섬광과도 같은 속도로 쏘아지는 한 자루의 검을 볼 수 있었다. "이것은?" 루이아스는 감히 그 기운을 경시하지 못한 채 서둘러 절대 방어를 전개했다. 콰아아앙! 검과 실드의 충돌이라고 생각도 못할 만큼 거대한 충격파가 주변을 휩쓸었다. 절대 방어를 전개한 루이아스는 그 충격파에 무려 10여 m나 밀려났다. 모든 것을 막아 내는 9클래스의 절대 방어에 이 정도 충격을 줄 정도라면 정말 어마어마한 힘이 아닐 수 없었다. "이건......... 충격파가 모두 해소되자 루이아스는 비로소 자신에게 향한 것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언젠가 한 번 보았던 네이처 소드였기 때문이다. 이게 왜 이 자리에 나타났단 말인가? 루이아스의 의문이 생기기가 무섭게 쓰러진 엘의 위로 한 여 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엘리엔의 등장이었다. 엘리엔은 어깨가 꿰뚫린 채 피를 흘리고 있는 엘의 모 습을 보고 충격을 받은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 “.......” 언제나 앞장서 사람을 이끌고, 적들을 맞서던 엘의 이런 모습은 꿈도 꾸지 못했다. 이 세상을 적으로 삼아도 지지 않을 것 같던 그가 이런 모습이라니. 엘리엔은 한동안 현실과의 괴리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아!" 한동안 충격에 빠졌던 엘리엔은 서둘러 정신을 수습했다. 자신이 이러고 있는 동안에도 엘은 끊임없이 피를 흘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서둘러 엘의 어깨에 박힌 붉은 창을 뽑아낸 뒤 서둘러 치료 마법을 연달아 전개했다. 그러자 큼지막하게 꿰뚫려 있다. 차츰 엘의 어깨가 아물기 시작했다. 하지만 피를 너무 흘린 탓인지 안색은 창백하기 그지없었다. "엘, 엘!" 엘리엔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엘을 서둘러 깨웠다. 본래라면 편안히 휴식을 취하게 해 주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마어마한 적을 앞에 두고 있는 만큼 엘의 힘이 필요했던 까닭이다. 엘의 눈이 파르르 떨리더니 이내 그의 눈이 뜨였다......!" 눈을 뜬 엘은 처음 자신의 시야에 들어온 것이 엘리엔의 얼굴이자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에 엘리엔이 있을 리 없었던 것이다.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루이아에게 죽을 뻔하다가 깨어나니 엘리엔의 얼굴이 눈앞에 있다니. 피를 많이 흘려 아직까지 제대로 정신이 돌아오지 않은 엘은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엘에게 엘리엔이 단호하게 현실을 일깨워 주었다. "일어나! 아직도 루이아스가 앞에 있다고!" "루이아스가......!" 이리저리 움직이던 엘의 눈동자에 초점이 맺혔다. 그리고 엘은 엘리엔의 부축에 몸을 일으켰다 엘은 눈앞에 루이아스가 자리한 것을 보고 두 눈을 크게 떴다. "이게 어찌........ 놀란 표정을 지은 엘은 그제야 엘리엔이 자신을 도우러 왔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곳까지 도우러 와 주시다니.........정말 고맙습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냐." 엘리엔은 감사를 표하는 엘에게 고개를 저어 보였다. 그리고 시선을 루이아스에게 주자 엘 또한 루이아스를 바라보았다. 그때까지 절대 방어를 짓누르고 있던 네이처 소드가 힘이 다한 듯 그 기세가 주춤했다. 엘리엔이 손을 휘젓자 네이처 소드가 방향을 틀어 허공 을 1차례 선회한 뒤 그녀의 손에 돌아왔다. 그녀는 엘을 바라보며 말했다 '방금 전 내 모든 힘을 담아 루이아스를 공격했어. 때문에 지금 루이아스를 상대하는 건 불가능해. 지금 당장 이 자리를 벗어나야 해." 간발의 차이로 엘을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덕에 엘리엔은 일격에 모든 힘을 모두 소진해했다. 네이처 소드에 그녀의 힘을 모두 결집한 만큼 엘을 구 하고 응급 처치를 할 정도의 시간을 번 것이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지금이다. 엘을 구할 시간은 벌었지만 정작 몸을 뺄 시간은 벌지 못했던 것이다. 이는 루이아스의 힘이 엘리엔의 예상을 월등히 능가했기에 벌어진 현상이었다. 엘은 창백한 안색으로 재빨리 상황을 파악했다. 그러고는 엘리엔을 바라보며 약간 쑥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죄송하지만.....지금 저를 업고 달려 주실 수 없습니까?' "에?" 엘의 갑작스러운 말에 엘리엔이 놀란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엘의 말이 워낙 갑작스러웠던 까닭이다. 엘프들에게 남녀의 구별은 그리 심하지 않지만 그녀가 인간 세상에 나와 인간들의 모습을 관찰한 결과 인간들은 남녀의 구별이 꽤 심했다. 남자들은 일명 남자들의 자존심이라 하여 여자에게는 도움을 구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만 해결하련는 그런 성향을 보았던 것이다. 그런 남성인 엘이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하다니. 엘리엔으로서는 의외가 아닐 수 없었다. 놀란 엘리엔의 시선을 마주한 엘은 이런 말을 한 자신에게 왠지 모를 쑥스러움을 느끼며 말했다. "피를 많이 흘린 까닭에 달릴 수가 없네요. 그러니까......” 무어라 쭈뼛쭈뼛 말하지만 그 뜻을 못 알아차릴 정도는 아니었다. "알았어," 엘리엔은 엘을 안아 올렸다. 그리고 네이처 소드를 검집에 꽃아 넣고는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루이아스는 네이처 소드의 힘을 해소하고 있었다. 엘리엔의 모든 힘이 응집된 일격이니 만큼 그에게도 제법 큰 충격을 주었던 것이다. 그는 빠르게 장내를 벗어나는 엘리엔과 엘의 모습을 보 며 분노한 표정을 지었다. "이대로 벗어날 수 없다!" 우우웅! 루이아스의 주변에 수십 개의 마법이 캐스팅되기 시작 했다. 7클래스에 이르는 고 클래스 마법을 무려 수십 개나 전개하려고 하는 것이다. 다 잡은 엘을 놓친 그는 현재 분노가 머리 끝까지 치솟은 상태였다. 그는 장내의 모든 것을 파괴하여 분노를 발산할 생각이었다. 수십 개의 마법을 일시에 캐스팅하니 순간적인 허점이 드러났다. 어떻게든 루이아스의 빈틈을 노리던 엘에게는 그것이 둘도 없는 기회였다. “타나! 루이아스를 막아!" 엘의 외침과 동시에 어느새 상처를 모두 수복한 골든 나이트가 신형을 날려 루이아스에게 향했다. 주인이 위기에 처해서 그런지 골든 나이트는 수백 개의 마나석으로 이루어진 마나를 일시에 끌어올린 상태였다. 루이아스는 자신의 마법 캐스팅을 방해받자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이런 쥐새끼 같은 놈이!" 무방비로 노출된 상태였다. 그렇기에 루이아스는 캐스팅을 중지한 채 이미 완성된 마법을 골든 나이트에게 전개했다. 그때 룬 블레이드에서 금빛 오러가 뿜어져 나왔다. 푸학! 모든 것을 베어 버린다는 말은 결코 허언이 아니었다. 룬 블레이드에 어린 금빛과 마법이 맞닿는 순간, 골든 나이트가 마법을 단번에 갈라 버린 것이다. 그와 동시에 골든 나이트에게서 강렬한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여태까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한 골든 나이트의 모습에 루이아스마저 움찔했다. "보통이 아니군, 설마 이게 골든 나이트의 진정한 힘인가?' 루이아스는 감히 골든 나이트를 경시하지 못했다. 자신의 제련제강의 마법에 당하던 골든 나이트와 지금 의 골든 나이트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예상대로 골든 나이트는 지금 지닌바 힘을 모두 끌어내고 있었다. 수백 개의 마나석을 기반으로 삼아 골든 나이트는 그랜드 마스터에 비해 결코 떨어지지 않는 막대한 마나를 보유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라 다른 이들과 싸우면서 지속적인 마나 충전이 가능했다. 그래서 골든 나이트는 적절한 힘의 안배에 의해 무한대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골든 나이트는 그러한 점을 완전히 배제 한 채 루이아스에게 맞서고 있었다. 자신의 주인이 위험하다. 때문에 모든 힘을 발휘하여 루이아스를 막아야 한다. 모든 힘을 발휘한다고 해도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인 존재가 바로 루이아스이기에. 주인의 위기에 골드 나이트는 여태까지 적절히 안배하던 힘을 모조리 터뜨렸다. 즉, 일정한 상태로 무한하게 힘을 발휘하는 것을 포기 하고 유한한 대신 몇 배로 강한 힘을 일시에 내는 것을 택한 것이다. 그렇게 마나를 모두 소진한다면 다시 마나가 충전되기 까지 골든 나이트는 빈 고철에 불과하다. 허나, 그 힘이 발휘되는 시간만큼 충분히 엘을 도망치 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루이아스의 마법을 갈라 버린 골든 나이트는 연달아 공격을 퍼부었다. 쾅! 콰광! 쾅! 마법을 전개하여 골든 나이트를 단번에 날려 버리려는 루이아스의 시도는 번번이 무산되었다. 그만큼 골든 나이트의 힘은 강했던 것이다. 자신의 공격이 실패하자 루이아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품속에서 붉은색 다이아몬드를 꺼내 들었다. "이것도 막는지 보겠다." 파아앗! 루이아스의 손에 붉은 광채가 일렁이는 듯하더니 이윽고 붉은 창이 형태를 갖춘 채 골든 나이트를 향해 쏘아졌다. 자신의 동체를 1차례 꿰뚫었던 붉은 창이었다. 골든 나이트는 그것을 감히 경시하지 못한 채 룬 블레이드를 들어 붉은 창을 쪼개 갔다. 쿠웅! 붉은 창과 충돌하자 골든 나이트의 동체가 요동쳤다. 하지만 전처럼 몸이 꿰뚫리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무엇이든지 베어 내는 룬 블레이드의 힘으로 붉은 창의 관통력을 상쇄시켰기 때문이다. 그 힘은 대단했기에 육중한 거구의 골든 나이트가 10여 m나 주르륵 밀려났다. 하지만 결국 골든 나이트를 꿰뚫는 것을 실패하고는 힘이 다해 깨져 버리고 말았다. 쩌엉! 균열이 일어나면서 붉은 조각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그 조각 하나하나의 위력도 강했다. 그랬기에 골든 나이트는 부지런히 검을 휘두른 후에야 쳐 낼 수 있었다. 그 찰나의 틈을 루이아스가 놓칠 리 없었다. 붉은 창에 의해 골든 나이트가 밀려날 때 루이아스는 이미 블링크로 엘을 쫓아간 뒤였다. 루이아스가 사라진 것을 깨달은 골든 나이트에게서 안광이 뿜어져 나왔다. "임무는 주인님의 안전." 파아앗! 골든 나이트의 신형이 키클로스프 강으로 향했다. 4. 후퇴 "여기면 되는 거야?” 골든 나이트가 루이아스를 붙잡고 있는 시간에 엘리엔과 엘은 어느덧 키클로스프 강에 당도해 있었다. 하지만 청탑과 인접한 강 유역은 이미 청탑의 방해 마법진 범위에 들어가는 곳이다. 텔레포트 마법을 캐스팅해 보던 엘은 고개를 저었다. "안 되네요. 이곳도 방해 마법진의 방향이 미치는 것 같아요." 엘의 말에 엘리엔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알겠어." 그와 함께 엘과 엘리엔의 몸이 떠올라 강을 쏜살같이 달렸다. 물의 정령을 이용하여 텔레포트가 전개되는 영역으로 가려는 것이다 그러나 물의 정령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전개자의 힘이 필요한 법. 이미 루이아스를 막기 위해 막대한 힘을 소모한 엘리엔의 안색은 창백하기 그지없었다. 네이처 소드에 일순간 모든 힘을 쏟아 붓고 정령을 사용하기 위해 힘을 소모하고 있으니 당연할 수밖에 없다. 엘은 그런 엘리엔을 보고 미안함을 느꼈다. 자신의 어리석은 판단 때문에 이런 일을 자초하게 된 것. 그리고 자신을 위해 이렇게 목숨을 걸고 위험을 겪게 된 것. 그 둘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물의 정령으로 빠르게 강을 달렸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전진은 멈출 수밖에 없었다. 돌연 뒤에서 수십 개의 마법이 그들에게 짓쳐 들어온 것이다. 엘은 재빨리 몸을 돌려 방어 마법을 전개했다. "실드!" 반투명한 막이 엘과 엘리엔을 뒤덮었다. 쾅! 콰과광! 엘의 실드에 마법이 적중했다. "으윽!" 만만치 않은 반탄력에 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래도 실드를 유지한다면 마법을 모두 막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루이아스가 그걸 간과할 리가 없다. 그의 손가락에 걸린 카르마 링에 빛이 일렁이더니 이내 엘의 실드를 풀어 버렸다. 한순간 엘의 몸이 무방비로 노출되었다. 엘의 표정이 급변할 때, 엘리엔이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대부분의 힘을 소진한 터라 그녀의 검에 맺힌 오러는 이전과 같은 강한 느낌을 주지 못했다. 파방! 팡! 마법의 반탄력에 의해 엘리엔의 신형이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엘리엔 덕택에 간신히 위기를 넘긴 엘은 놀랐다. "어떻게 여기까지 쫓아온 거지?" 설마 골든 나이트가 당했단 말인가? 불안한상상이 엘의 머릿속을 헤집었지만 그럴 여유가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이 자리를 벗어나야 했다. "제가 막을게요. 먼저 가세요." 엘이 엘리엔을 보며 말했다. 다소 기력을 회복한 상태여서 루이아스를·막으려 든 것 이다. 자신을 구하기 위해 이곳까지 온 엘리엔을 위험에 처하게 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할 순 없어." 엘리엔이 고개를 저었다. 그녀 또한 엘을 구하러 온 바, 그를 두고 이대로 떠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물러서지 않겠다는 엘리엔의 의지가 전해져 왔다. 엘은 그런 그녀의 의지를 느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말해도 물러나지 않을 태세였다. "좋아요. 마지막 힘을 모두 내 보도록 하죠." 엘은 그렇게 말하면서 품속에서 황금 동전을 움컥쥐었다. 마법이 통하지 않는다면 제련제강의 마법으로 최후의 반항이라도 할 속셈이다. 도망치던 두 인영이 멈춰 서자 루이아스의 눈이 빛났다. "도망치는 걸 포기할 셈이군." 마음먹고 도망치면 잡기 성가신 존재들이 알아서 덤벼 준다는데 루이아스가 싫을 리 없었다. "골든 나이트가 곧 따라올 터. 그전에 처리해야겠지." 파아앗! 붉은 광채가 루이아스의 앞에 생성되기 시작했다. 단번 에 승부를 볼 심산으로 제련제강의 마법을 전개한 것이다. 루이아스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 제련제강의 마법을 몇 차례만 사용하면 충분히 둘을 죽일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엘리엔이 이곳에 온 것이 오히려 자신에게 도움만 된 셈이었다. "걸리적거리는 적들 중 한 명을 제거하게 되다니. 이곳 에 온 것이 오히려 나에게 도움이 되는군." 어느덧 확연한 모습을 갖춘 창을 보며 루이아스가 눈을 번뜩였다. "가라, 나의 위대한 계획을 방해하는 이들을 모두 제거 하라." 쐐애액! 붉은 창이 대피를 가르며 쏘아졌다. 그 기세는 이때까지의 것과 다른, 몹시 흉험한 기세였다. '이런!' 붉은 창이 쐐도하는 모습에 엘리엔이 발을 동동 굴렀다. 지금 상태로는 도저히 막아 낼 수 없는 일격이다. 저것은 전날 자신과 아토빌 공작, 아이넨스가 합공하던 걸 단번에 물리쳤던 그것이 아니던가. 하물며 대부분의 힘을 소진한 자신의 상태로는 절대 막을 수 없다. 엘리엔이 불안한 시선으로 엘을 바라보았다. '이건.......?' 엘에게 시선을 옮긴 엘리엔의 얼굴에 의아한 기색이 피어났다. 절망스러워 해야 할 엘이 비교적 밝은 표정을 짓고 있었던 것이다. 설마 지금 사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란 말인가? 자신보다 더욱 심했으면 심했지 결코 나을 것이 없는 엘의 상태였다. 지금 저 붉은 창을 막아 내기는커녕 단 한 개조차 감당 할 수 없는 게 엘의 상태다. 그런데 일그러지기는커녕 밝은 표정이라니? 엘리엔의 얼굴에 궁금증이 팽배해질 때, 엘은 쇄도하는 붉은 창을 보며 외쳤다. "설마 이것까지는 예상을 못했겠지. 서먼 골든 나이트!" 쿠우우우! 엘의 외침과 함께 그의 전방에 마나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인위적인 것 같으면서도 지극히 자연스러운 마나의 흐름이었다. 카르마 링으로도 제지할 수 없었다. 루이아스 또한 그것을 알았기에 카르마 링을 사용하지 않았다.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서서히 형태를 갖춘 그것은 돌연 빠른 속도로 하나의 마법을 전개해 냈다. 미처 루이아스가 방해할 틈도 없이 말이다. 그리고 마법이 완성되었을 때 요란한 공간의 균열음이 들려왔다. 키이잉 ! 키이잉 ! 치이잉 ! 치이잉 ! 거북한 공간의 균열음과 함께 허공이 길게 찢어졌다. 그리고 그 사이로 황금빛 골렘 1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루이아스가 떨어뜨리고 온 골든 나이트였다. 소환된 골든 나이트는 자체 부유 능력으로 엘의 앞에 자리했다. 그러고는 엘의 명령을 기다렸다. 엘은 그런 골든 나이트에게 외쳤다. "저것들을 막아 내고 루이아스를 최대한 견제하도록!" 골든 나이트에게서 강렬한 안광이 뿜어져 나왔다. "명령을 이행함." 콰아아아! 골든 나이트의 움직임과 동시에 룬 블레이드에서 가공 할 기세가 뿜어지기 시작했다. 루이아스와 겨루면서 폭발적인 기운을 뿜어냈던 골든 나이트다. 하지만 루이아스가 엘을 쫓기 위해 골든 나이트를 쫓아 버린 사이 소모했던 마나를 모두 충전한 상태였다. 때문에 골든 나이트는 처음부터 최대 출력으로 루이아스를 막아설 수 있었다. 쩌어어어엉! 룬 블레이드와 붉은 창이 부딪치자 엄청난 굉음이 울려 퍼졌다. 무시무시한 충격파가 골든 나이트를 휩쓸었다. 하지만 피륙으로 이루어진 인간이 아닌 골렘이었기에 충격에도 끄떡없었다. 그랜드 마스터라도 막아선다면 온전치 못할 제련제강 의 마법을 골든 나이트는 거뜬히 감당할 수 있었다. 어쩌면 유일한 천적일지도 모른다. 붉은 창 1개를 제거한 골든 나이트는 전혀 충격받지 않은 모습으로 다른 것들 하나하나를 제거해 나갔다. 그때마다 강렬한 충격파가 퍼져 나갔지만 골든 나이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골든 나이트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에고는 다름 아닌 사념의 응집체다. 때문에 골든 나이트 또한 사념에 의해 경험한 것을 자 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고, 어느 정도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이미 한차례 경험하여 붉은 창을 상대하는 요령을 터득 했으니 전력을 모두 발휘하는 골든 나이트에게 붉은 창이 큰 효과를 보기란 어려워졌다. 능숙하게 붉은 창을 막아 내는 골든 나이트의 모습에 루이아스가 이를 갈았다. "저 빌어먹을 골렘이.......” 골든 나이트가 루이아스를 상대하고 있는 찰나의 틈이었다. 조용히 마법을 캐스팅하던 엘이 눈을 빛내며 외쳤다. "하트 브레이크?" 과거 8클래스 마법사 게이런즈를 죽음으로 몰아간 엘의 비장의 한수, 원거리 캐스팅이 펼쳐진 것이다. 이미 그의 빠른 캐스팅과 활용할 수 없는 방대한 마나, 그리고 제련제강의 마법은 모두 루이아스에게 막힌 상태였다. 하트 브레이크는 이러한 엘의 무기 중에서 가장 최후의 기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물론 하트 브레이크는 움직이는 적에게는 그 효용을 보기란 어렵다. 내부에 마법을 전개시킴으로써 내부를 폭발시키는 것 인데 적이 움직이면 그저 평범한 마법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루이아스가 제련제강의 마법을 전개하느라 정신이 다른 곳으로 가 있는 상태다. 만약의 확률에 기대를 걸어 볼 만했다. 엘의 마법이 전개되자 루이아스의 내부에 빠른 속도로 마나가 배열되기 시작했다. "이건?' 9클래스에 이른 루이아스가 그것을 모를 리 없다. 자신의 몸 내부에 배열되는 마나의 흐름에 그가 두 눈 을 부릅떴다. 지금은 마나가 배열되는 수준이었기에 큰 이상이 없지 만 만약 이것이 하나의 마법을 이룬다면 자신의 목숨조차 위험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 위력이 고작 3클래스에 불과하다 하여도 내부에서 폭발한다면 루이아스는 그대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허나 그는 9클래스에 이른 마법사, 수법을 파악한 이상 단점 또한 단번에 파악한다. "블링크." 마나의 흐름을 느낀 즉시 그는 위험을 느끼고 블링크를 전개했다. 허공에 떠 있던 그의 몸은 공간의 저편으로 사라졌고, 루이아스가 있던 곳에는 자그마한 마나의 흐름만 흐를 뿐 이었다. 원래 있던 곳에서 10여 m 떨어진 곳에 모습을 드러낸 루이아스는 엘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설마 이런 수법까지 쓸 줄은.......” 그러나 그의 말은 끝을 맺지 못했다. 돌연 엘이 골든 나이트를 보며 외쳤기 때문이다. '타나! 지금밖에 기회가 없다. 어서 공격해!"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골든 나이트는 이미 루이아스에게 몸을 날린 상태였다. 루이아스가 블링크를 전개하여 찰나의 틈을 드러낸 순간 몸을 날린 것이다. "이 런." 일그러지는 루이아스의 표정과 동시에 룬 블레이드가 쇄도했다. 만만치 않은 힘에 루이아스가 손을 뻗어 룬 블레이드를 막아 갔다. 푸카앙! 룬 블레이드와 루이아스의 실드가 부딪쳤다. 아까 전이었다면 여유롭게 막아 냈을 루이아스지만 지금은 갑작스럽게 공격을 당했고, 실드 또한 급조한 것 이었다. 그랬기에 그 방어력이 그리 훌륭하지 않았다. 찰나의 힘겨루기를 하던 균형은 금세 무너졌고 루이아스가 전개한 실드는 균열이 일어나며 부서지기 시작했다. 쩌적! 쩍! "제기랄." 쉴틈없이 엘과 엘리엔을 몰아쳐야 할 판에 골든 나이트의 공격에 한 템포 물러나야 할 상황에 이르자 루이아스의 얼굴이 굳었다. 그러고는 실드가 부서지기 전에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쿠웅! 루이아스의 실드를 부숴 버린 골든 나이트는 거기서 만족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룬 블레이드를 휘둘러 따라붙어 갔다. 루이아스가 9클래스에 이른 대마법사지만 근접전에서는 엄연히 골든 나이트가 한 수 위라 할 수 있다. 캐스팅 없이 곧장 마법을 전개할 틈도 주지 않은 채 골 든 나이트가 집요하게 따라붙었다. 덕분에 루이아스는 계속해서 뒤로 물러나야 했다. "더 이상 안 되겠군." 순식간에 10여 번이나 펼쳐진 골든 나이트의 공세를 피해 낸 루이아스는 푸른 다이아몬드를 꺼내 들어 제련제강의 마법을 전개했다. 그러자 루이아스의 앞에 푸른색을 띤 방패가 생겨났다. 골든 나이트가 휘두른 룬 블레이드는 푸른 방패와 부딪쳤다. 콰앙! 요란한 폭음이 울려 퍼졌다. 하지만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무엇이든지 베어 버린다는 룬 블레이드가 푸른 방패를 부수지 못한 것이다. 골렘에 감정이 있을 리 없는 일. 하지만 루이아스는 골든 나이트가 패나 놀란 것처럼 보 인다고 생각했다. 확실히 푸른 방패는 대단한 내구도를 지니고 있었다. "이게 끝이 아니지." 골든 나이트의 공격이 막힌 틈에 루이아스는 붉은 창을 생성하여 골든 나이트를 공략했다. 위협적인 공격에 골든 나이트가 룬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하지만 그 움직임이 방금 전과는 판이하게 차이가 났다. 콰직! 미처 붉은 착의 힘을 해소하지 못한 골든 나이트의 어 깨에 붉은 창이 박혀 들었다. 뒤이어 날아온 붉은 창에 의해 골든 나이트의 복부가 꿰뚫렸다. 루이아스를 막아서기 위해 한순간 모든 힘을 끌어다 쓴 부작용이 나타난 것이다. 그 힘이 재충전되기 전까지 골든 나이트가 루이아스를 막기는 힘들게 되었다. 무력해진 골든 나이트를 보며 루이아스가 입매를 비틀었다. "아쉽게 되었군," 여기서 골든 나이트를 확실히 제거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되면 자칫 엘을 놓칠 수도 있다. 어차피 엘을 제거하면 골든 나이트를 제거하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였다. 루이아스는 무력해진 골든 나이트를 밀어내고는 어느새 사라진 엘과 엘리엔의 뒤를 쫓았다. 저 멀리 사라지고 있는 루이아스의 모습을 눈에 담은 채 골든 나이트가 조금씩 수복에 수복을 거듭하고 있었다. "거의 다 도착했어." 엘리엔은 힘겨워하는 엘을 보며 말했다 그녀의 안색도 그리 좋은 것은 아니었지만 엘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엘은 거의 최악이나 다름없는 상태에서 루이아스에게 하트 브레이크를 전개했다. 비록 수준은 높지 않지만 원거 리 캐스팅이니 만큼 엄청 난 집중력을 요하는 마법이었다. 때문에 상처는 더욱 심해졌고, 정신력도 거의 한계에 다다랐다. 체력이 부족한 것은 마법으로 회복시킬 수 있지만 정신력의 소모는 결코 회복시킬 수 없는 성질이었다. 골렘 생산 시설을 파괴하고 9클래스에 이른 루이아스를 상대한 것인 만큼 지금 이런 엘의 상태는 거의 기적과 도 같다 할 수 있다. 거의 엘리엔에게 기대다시피 한 엘은 힘겹게 강 위를 달리고 있었다. 아직 텔레포트 방해 마법진이 펼쳐지지 않은 곳에 다다르려면 멀었지만 코린트와 멜뤼스가 형성해 놓은 장소까지는 그리 멀지 않다. '이 정도 속도라면 약 오 분........’ 결코 멀지 않은 거리다. 이대로라면 금방 도착할 게 분명하다. 하지만 상대는 다름 아닌 루이아스다. 대륙의 정상에 군림하는 초인들이 다수로 덤벼도 승산을 점칠 수 없는 유일한 9클래스 마도사. 그가 상대인 시점에서 5분여 거리는 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니다. 만약 그가 추적해 온다면 단 1초에 이동할 거리가 억겁과 같이 길어질 확률이 높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이동해야 해." 있는 힘을 쥐어짠 끝에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골든 나이트가 루이아스를 무사히 잡아 놓았다는 데 안도한 엘리엔이 막 그곳으로 발을 들여놓을 무렵, 한줄기 목소리가 그녀의 귀에 천둥과 같이 들려왔다. "거기까지 ." 1 “........!" 엘리엔의 몸이 굳었다. 그리고 뻣뻣하게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어느새 쫓아 온 루이아스가 허공에 떠 있었다. "거기까지다. 하마터면 놓칠 뻔했군." 루이아스는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아 내며 말했다. 그로서는 오늘 벌어진 일을 정말 평생 동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고작 8클래스 마법사 하나와 그랜드 마스터 급 골렘을 상대하는 일이다. 고작 두 초인을 상대로 하는 일에 자신이 이 정도로 애를 먹다니. 이는 벨로세크 제국을 장악할 때 여섯 초인을 동시에 상대했을 때에도 겪어 보지 못했던 일이었다. "날 이렇게까지 애먹이다니 정말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일이군." 자신보다 한 단계 낮은 이들을 상대하면서 목숨의 위협 까지 당했다. 정말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여태껏 자신이 너무 오만했다 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9클래스에 오르면서 처음 느낀 것들이기에 루이아스는 다시 떠올리기 싫으면서도 소중한 교훈을 얻은 셈이다. 이것들은 자신을 더욱더 강하게 해 줄 것이다. "신세를 진 셈이군. 보답으로 내 전력을 보여 주지. 그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예의일 터." 쿠우우우우! 루이아스의 주변에 무시무시한 마나의 파동이 퍼져 나갔다. 엘리엔조차 그 흐름에 몸서 리 칠 정도였다. "이것이 9클래스 마법사의 힘......... 강렬한 마나의 흐름을 느낀 엘은 어느덧 정신을 되찾은 상태였다. 전신을 난자하는 듯한 기세에 엘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자신의 모든 힘을 발휘했음에도 루이아스의 힘을 끌어 내지 못한 것에 대한 자괴감이었다. 또 자신을 너무 과신한 나머지 이런 함정에 빠지고, 엘리엔마저 끌어들인 자책감이 혼합되어 버렸다. 그런 감정들이 비수가 되어 가슴을 강타했다. 현재 몸 상태로는 도저히 루이아스를 상대할 수 없었다. 그렇다는 건 엘리엔이 루이아스를 상대해야 한다는 말이 된다. '정작 이럴 때 도움이 될 수 없다니........ 아직 자신의 몸에는 방대한 마나가 도사리고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그 마나를 활용할 방도가 없다. 만약 기사였다면 오러를 뽑아내어 최후의 저항이라도 시도했겠지만 불행히도 자신은 기사가 아니고, 오러를 어떤 식으로 발현시키는지도 모른다. 마법을 전개하려면 정신력과 주변 마나의 호응도, 그리 고 복잡한 수식어를 계산해야 하기에 이런 급박한 상황에 서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특히 자신같이 정신력의 바닥까지 긁어 쓴 상태에서는 말이다. 잠시 자괴감에 빠져 있던 엘은 엘리엔을 바라보았다. 지금 이 순간에 믿을 건 그년밖에 없었다. "잠시‥‥‥ 잠시면 됩니다. 루이아스를 막아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엘의 말에 엘리엔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보기에 현재 엘은 텔레포트 마법조차 전개하기 힘겨워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잠시나마 루이아스를 붙잡고 있을 이는 자신밖에 없었다. 엘리엔은 대답 대신 고개를 살짝 끄덕여 보임으로써 자신의 결정을 내비쳤다. 엘은 미소 지으며 텔레포트를 캐스팅하기 시작했다. 채앵! 루이아스의 앞을 막아선 엘리엔이 네이처 소드를 곧추 세웠다. 그와 함께 검에서 예기가 뿜어지기 시작했다 전신을 난자해 버릴 듯 날카로운 기운에 루이아스는 자세를 바로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엘리엔을 노려보면 서 말했다. "혼자서 나를 막으려고 하다니. 정말 가상하다고 밖에 할 수 없군. 분명 엘리엔도 자신의 대업을 방해하는 큰 적이다. 하지만 모든 초인들과 연계를 가진 엘의 가치에 비교할 수 는 없다. 파앗! 루이아스의 손이 번개처럼 뻗어 나왔다. 그러자 수십 개의 마법이 기세를 머금은 채 엘리엔에게 쇄도했다. 내색은 안 했지만 오늘 그는 제련제강의 마법을 너무 남발했다. 전에도 엘이 겪었지만 제련제강의 마법은 마나의 소모가 만만치 않다. 엘과 같이 그보다 고위 마법사를 상대하게 되면 정신력의 고갈로 마나 고갈에 대한 염려를 덜 수 없다. 하지만 마음껏 공격하는 입장이었던 자신의 입장에서는 만만치 않은 마나를 소모한 셈이었다. 게다가 골든 나이트를 상대로 많은 마법을 낭비했다. 아직 실전이 모자랐기에 이런 실수를 한 것이고, 그로 인해 루이아스 또한 만만치 않은 마나를 소모해야만 했다. 거기에 눈앞의 적은 상당한 힘을 소모한 상태다. 굳이 자신이 전력을 기울이지 않고도 적당한 힘의 완급으로 충분히 요리할 수 있다. 수십 개의 마법이 공격해 오자 엘리엔은 네이처 소드의 힘을 발현시켰다. 우웅! 파아앗! 검이 한차례 떨림과 동시에 진한 녹색 빛이 뿜어져 나와 마법들을 휘감았다. 파사사사사! 네이처 소드에 닿은 마법들이 마치 모래성처럼 부서져 나갔다. 네이처 소드의 힘은 흐름을 바로잡는 것이다. 자신의 마법이 너무나 쉽게 막혔음에도 루이아스의 태도는 여유 만만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신검의 힘을 발현시키려면 전개자의 힘을 적잖게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아마 지금도 엘리엔이 신검의 힘을 사용한 까닭은 그보다 더욱 효율적으로 마법을 막아 낼 자신이 없어서 그랬던 것일 것이다. 루이아스의 입장에서 이보다 더 간단하게 적의 힘을 소모시키는 방법은 없을 것이다. 간단하게 의지를 불러일으키면 그에 따라 수십 개의 마법이 전개되니 말이다. 그의 주변에서 끊임없이 마법이 생성되었다. 콰광! 콰콰콰광! 심상치 않은 위력을 지닌 마법들이 지면에 부딪칠 때마다 강한 폭발을 일으켰다. 평소와 같았다면 엘리엔은 마법들을 모두 막아 냈을 테지만 지금은 결코 몸 상태가 좋은 것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그녀는 마법을 캐스팅하는 엘까지 보호해야 하기에 엘에게 위협적인 마법과 자신에게 향하는 마법만 막아 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벅찼기에 어느새 그녀의 이마에 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갔다. 그 모습에 루이아스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맺혔다. 어느 순간 마법이 멈추더니 동시에 루이아스의 손에서 붉은 창이 생겨났다. "마무리다." 텔레포트를 캐스팅하는 엘을 붙잡기 위해서라도 루이아스는 엘리엔을 먼저 끝장 봐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이대로 마법을 끊임없이 전개한다면 엘리엔은 무너졌을 게 뻔하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엘을 놓칠 수도 있었다. 이미 여유를 부리다가 엘에게 한 수 호되게 당한 적이 있기에 루이아스에게 결코 방심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쐐애액! 혼신의 힘이 담긴 붉은 창이 자신에게 쇄도하자 엘리엔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것을 막아야 어떻게든 한시름을 놓을 수 있게 된다. '모든 힘을 끌어올려야겠어.' 츠츠츠! 네이처 소드에 오러가 뿜어지기 시작했다. 남아 있는 모든 힘을 끌어올린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설사 붉은 창을 막아 낸다 하더라도 다음 공격에는 무방비 가 된다. 하지만 엘리엔에게 남은 방법은 없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저 붉은 창을 막을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모든 힘을 끌어올린 그녀의 네이처 소드가 붉은 창과 부딪쳤다. 쿠웅! 두 힘이 충돌하면서 무시무시한 충격파가 뿜어졌다. 골든 나이트였다면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감내했을 터. 하지만 엘리엔은 피륙으로 이루어진 엘프. 그녀는 전신을 짓이기는 듯한 고통에 신음을 흘렸다. "으으윽" 신음과 함께 그녀의 자세가 조금 무너졌다 그러자 붉은 창이 더욱 기세를 피워 올리며 그녀를 공격해 왔다. 점점 밀리는 자신의 모습에 엘리엔이 입술을 다시 깨물었다. 강하게 깨문 탓에 피가 흐르자 그 고통에 엘리엔은 정신이 깨는 듯했다.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없어!' "이야압!" 기합을 지르며 그녀는 모든 힘을 끌어올리며 붉은 창을 쳐 냈다. 그런 그녀의 시도는 성공적이었는지 네이처 소드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을 이기지 못한 채 붉은 창은 허공에서 산산조각이 났다. 붉은 창이 사라지는 걸 본 엘리엔이 순간 몸을 가누지 못한 채 비틀거리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하아! 하아!"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남기지 않은 채 그녀는 모든 힘을 소진했다. 지금 서 있는 것도 검에 의지해 있는 것이 고작이었다. 한눈에 봐도 모든 힘을 소진했음을 알 수 있었다. 엘리엔의 그러한 모습에 루이아스는 비틀린 웃음을 지었다. '패 버티기는 했지만 그게 한계로군." 그 말과 함께 루이아스의 손에서 붉은 광채가 뿜어지기 시작했다. 엘리엔이 그토록 힘겹게 막아 냈던 붉은 창이 다시 생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이게 도대체‥‥‥‥ 자신이 혼신의 힘을 다해 막아 낸 공격을 적이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전개하자 엘리엔의 얼굴에 절망감이 어렸다. 절망감 어린 엘리엔의 표정을 보며 루이아스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엘리엔과 같이 아름다운 미녀의 절망 어린 표정을 본다는 것은 그에게 어떠한 만족감을 가져다주었다. 어느덧 완성된 붉은 창으로 시선을 주며 루이아스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좋은 표정이군. 더 감상하지 못한다는 게 아쉬울 정도로." 죽이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미모를 지닌 엘리엔이었지만 그녀의 검 실력은 루이넨스와 자웅을 겨룰 수 있을 정 도로 대단했다. 자신의 대업을 위해서는 과감하게 버려야 할 대상이었다. "하지만 죽여야겠지." 마음을 굳힌 루이아스가 붉은 창을 막 엘리엔에게 투척 하려 할 때였다. 그때 어마어마한 기운이 루이아스를 향해 쇄도했다. "이, 이건?' 엘리엔에게 투척하려던 붉은 창을 거둔 채 루이아스가 강렬한 기운이 느껴지는 곳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그러자 그곳에는 황금빛 화살이 대기를 가르며 루이아스에게 향하고 있었다. 바로 골든 나이트의 골드 피닉스였다 왜 여기서 갑자기 이것이 등장한단 말인가! 모든 힘을 소진하고 자빠져 있어야 할 골든 나이트가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 공격을 가하다니! 루이아스의 표정이 순간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제기랄!" 이렇게 되면 엘리엔을 끝장 낼 수가 없다. 그렇게 하다가는 자신 또한 골드 피닉스에 당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엘리엔에게 투척하려던 붉은 창을 재빨리 골드 피닉스에게로 돌렸다. 그리고 쇄도하는 골드 피닉스와 붉은 창이 충돌했다. 끼이이잉! 강렬한 회전을 머금은 골드 피닉스는 금방이라도 붉은 창을 조갤 듯 맹렬하게 회전에 회전을 거듭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팽팽히 맞서던 국면은 붉은 창에 균열이 일어남으로써 끝나게 되었다. 쩌적! 쩌저적! 균열이 일자 붉은 창이 부서지는 속도는 더욱 가속되었다. 쩌엉! 마침내 골드 피닉스의 힘을 이기지 못한 붉은 창이 붉은 가루가 되어 부서졌다. 하지만 루이아스는 이미 이러한 사태를 예상했기에 푸른 방패를 생성한 상태였다. 붉은 창을 격파한 골드 피닉스는 그대로 푸른 방패와 부딪쳤다. 쏴아아아아아! 골드 피닉스와 푸른 방패의 충격파가 어찌나 컸던지 강이 뒤집혀 거센 물보라를 일으킬 정도였다. "제법 거세지만 못 막을 정도는 아니군." 푸른 방패를 생성한 루이아스는 조금씩 약해지는 골드 피닉스를 보며 중얼거렸다. 위력이 줄어드는 걸 보아 소멸하기까지 얼마 남지 않은 듯했다. 그때였다. 여태껏 죽은 듯 조용하던 엘이 엘리엔에게 메시지 마법을 보냈다. - 텔레포트마법 캐스팅이 완료되었습니다. 어서 이리로 오세요! “....!” 잠시 넋을 잃고 골드 피닉스와 푸른 방패의 충돌을 지켜보던 엘리엔이 정신을 되찾았다. 그러고는 루이아스가 눈치 채지 못하게 조용히 걸음을 옮겨 엘에게 다가갔다. 그사이 루이아스는 골드 피닉스를 파훼한 상태였다. 골드 피닉스를 흔적도 없이 소멸시킨 그는 급격하게 흐르는 마나의 흐름에 눈을 부릅떴다 "이것은....... 이노옴!" 시선을 옮긴 루이아스의 눈에는 어느덧 텔레포트가 전개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대로라면 그대로 사라질 터. 그 순간 루이아스는 자신의 카르마 링에 마나를 주입했 다. 아직 텔레포트가 전개되고 있는 도중이기에 이대로 마법을 흩어 버린다면 엘과 엘리엔은 그대로 공간에 끼여 존재 자체가 사라져 버릴 것이다. 이는 텔레포트가 전개되고 마법이 끝날 때까지 루이아스를 잡아 둘 것이라 생각한 골드 피닉스가 생각보다 일찍 소멸되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자칫하면 존재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 그런 위기의 순간에 나타난 것은 바로 골든 나이트였다. 엘은 결코 바보가 아니다. 골드 피닉스가 예상보다 일찍 소멸될 수 있음을 알았기에 이미 사전에 골든 나이트에게 아주 잠깐의 시간을 벌어 놓으라고 지시해 놓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명령을 골든 나이트는 충실하게 이행했다. 루이아스가 카르마 링을 사용하려 하자 어느새 룬 블레이드를 뽑아 든 골든 나이트가 이를 막아 갔다. 생각해보라. 한순간 면전에 나타나 목을 베어 가는데 다른 일에 신 경 쓸 수 있겠는가? 그건 드래곤이라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익!" 골든 나이트의 방해에 루이아스가 이를 갈며 하는 수 없이 카르마 링의 힘을 해제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분풀이를 골든 나이트에게 하기 시작했다. 쾅! 콰광! 순식간에 골든 나이트의 동체 여러 곳이 움푹 파여 들어갔다. 골든 나이트의 실드를 한순간 모두 깨부술 만큼 가공할 위력이었다. 하지만 골든 나이트는 그러한 것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루이아스에게 달려들었다. 골든 나이트의 임무는 카르마 링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 것이었다. 그사이 엘과 엘리엔을 휘감은 빛은 찬란하게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텔레포트가 전개된 것이다. 지금이라도 카르마 링을 사용하면 되지만 골든 나이트가 루이아스를 놓아 주질 않았다. 거머리와도 같은 골든 나이트의 행동에 루이아스는 마침내 분노가 폭발했다. "좋다! 금탑주는 포기하지. 대신 네 녀석만큼은 반드시 갈아 마셔 주겠다." 골든 나이트 정도 되는 골렘에게 가로막혔으니 텔레포트가 전개되는 것을 막을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이렇게 된 이상 루이아스에게는 한 가지밖에 남지 않았다. 바로 골든 나이트를 철저하게 파괴하는 일이다. 화르륵! 루이아스의 양손에 붉은 화염이 일어났다. 골든 나이트를 제거하기 위해 양손에 헬 파이어를 전개 한 것이다. 마음먹은 루이아스의 양손이 골든 나이트를 후려치려 할 때, 돌연 골든 나이트의 동체가 90m 뒤로 물러났다. 그것을 인지한 루이아스가 골든 나이트가 피한 곳으로 시선을 옮길 때, 골든 나이트의 뒤에 검은 아공간이 나타나 골든 나이트를 삼키고 있었다. 엘은 골든 나이트에게 명령할 때 이렇게 명령을 해 놓았다. '나와 엘리엔 님이 텔레포트를 할 때까지 루이아스를 막고 우리가 피한 뒤 너도 공간의 저편에 대기하라." 엘과 엘리엔은 텔레포트로 사라진 지 오래였다 임무를 완수했으니 골든 나이트로서는 마지막 임무까지 이행한 것이다. ‘.........’ 졸지에 닭 쫓던 개의 꼴이 된 루이아스는 한동안 멍한 표정을 지었다 “큭큭큭.....크하하하!" 한동안 멍한 표정을 짓던 루이아스가 돌연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이 얼마나 컸던지 강 전체가 일렁일 정도였다. 얼마나 웃음을 터뜨렸을까. 돌연 루이아스는 웃음을 뚝 멈추었다. 그의 눈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 불꽃의 근원은 바로 분노라는 이름의 장작이었다. "오냐, 그렇게 도망까지 갔으니 다음에는 내가 찾아가 주겠다. 그리고 금탑을, 너의 소중한 것들을 모두 내 손으로 부숴 주겠다. " 루이아스의 조용한 독백. 하지만 그것은 아직 엘의 위험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 5. 무사귀환 엘이 루이아스의 치명적인 마수에 벗어났을 무렵, 카시 아스 왕국의 왕궁에서는 연일 심각한 회의가 잇달아 주최 되고 있었다. 평소 왕궁을 호위하던 근위병의 숫자는 3배나 늘어난 상태였다. 좀처럼 모습을 볼 수 없던 근위 기사들은 왕궁 요소요소에 물샐틈없이 완벽한 경호망을 구축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카시아스 왕궁에는 10명이 넘는 국왕들이 기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국왕들이 다스리는 국가를 하나하나 나열하면 대륙 사람들은 눈을 부릅뜰 것이다. 왕궁에 모인 국왕들 하나하나가 모두 서부 왕국에서 강대한 힘을 지닌 왕국이기 때문이다. 각국의 국왕들이 이곳에 모인 이유는 하나다. 바로 새로 건국된 마도 제국에 대해 의견을 나누기 위 함이다. 제국에 관한 사실은 언제나 왕국들에게 갈 영향을 끼쳐 왔다. 단순히 제국이 강대한 힘을 지녔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대륙 문명의 시초이기도 했으며, 그 의 흐름은 곧 서부 대륙의 흐름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당장 제국에서 내분이 발생했다 치자. 그럼 왕국들은 촉각을 곤두세워 제국의 움직임에 눈을 떼지 않는다. 혹여 제국의 내분이 한쪽의 압승으로 끝날 경우 그 팽창한 힘으로 인해 한동안 제국은 안정하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될 경우 황제들이 택하는 방법은 대개 한 가지다. 바로 그 힘을 외부로 분출하는 것이다. 내전으로 인해 극도로 팽창된 군사력을 서부의 왕국들 에게 뿜어내는 것이다. 그들은 결코 타 제국을 침공하지 않는다. 벨로세크 제국을 제외한 타 제국들은 그 힘이 엇비슷하기에 자칫하면 기나긴 국지전으로 치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제국 특유의 자존심으로 인해 어느 한 곳이 항복할 때까지 끊임없이 싸운다. 그렇기에 그들은 상대적으로 약한 왕국들을 공략하는 것이다. 제국이 왕국들을 침공하기 시작하면 한두 왕국이 멸망 하는 수준이 아니다. 주변국들이 똘똘 뭉쳐 대응했음에도 제국을 견제하기 에는 턱 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렇게 수많은 왕국들이 제국에 흡수당했고, 서부의 강대한 왕국들과 제국의 국경선이 직접 맞닿았을 때 왕국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했다. 그리고 현재 제국과 국경을 맞닿은 덱스론, 아드리안 왕국이 주축이 되어 서부 대륙의 모든 국가들이 제국의 움직임에 반응하기로 결정을 보았다. 사정이 급한 것은 비단 덱스론 왕국과 아드리안 왕국뿐 만이 아니었다. 두 왕국은 서부에서도 손꼽히는 강대국. 만약 그들까지 무너진다면 대륙은 5개의 제국에 의해 오분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혼자서는 도저히 제국의 힘을 감당할 수 없기에 왕국들이 일치단결하여 제국에 대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이 무너진다면 다음 대상은 자신이 되기에 그들로서는 필사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마도 제국이 건국되었다는 선언이 대륙에 퍼져 나갔다. 이는 왕국들이 결코 흘려들을 수 없는 엄청난 내용이었다. 대륙의 종주국이던 벨로세크 제국과 데이제크 제국, 루이디스 제국이 합병되어 하나의 제국이 되었다. 벨로세크 제국이 기존의 제국보다 약 3배에 달하는 국력을 지니고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마도 제국은 남은 블리어드, 아일라스 제국에 비해 5배에 달하는 국력을 보유했다는 말이 된다. 말이 5배지 실제 그 규모를 상상해 보아라. 지난 수백 년 동안 벨로세크 제국은 큰 전쟁을 벌인 적이 없다. 이는 즉 병사들이 전쟁 경험이 없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존재했다. 하지만 동시에 평범한 사람들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어마어마한 국력이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만약 마도 제국이 벨로세크 제국과 같은 종주국으로서의 최소한의 권한만 행사하려 했다면 굳이 왕국들이 이렇게 회담까지 열 필요는 없다. 하지만 마도 제국의 황제 루이아스는 선언했다. 대륙의 모든 국가들은 마도 제국 앞에 무릎을 꿇으라고. 그렇지 않으면 모두 제거하겠다고. 미친놈 소리를 들을 법한 소리지만 그 장면을 목격한 이들은 결코 그 소리를 할 수 없었다. 무려 600명의 소드 마스터와 헬 파이어를 여러 개 전개하는 루이아스의 모습은 허황된 소리가 아닌, 진실된 소리로 들렸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각국의, 그것도 한 사람의 불참도 없는 회담 이 성립하게 된 것이다. 회의의 내용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그들의 선언은 이러하였다. 마도 제국의 황제인 루이아스란 자는 대륙을 제패하기 위해 욕심에 눈이 먼 자다. 그자에게 대항하는 것은 대륙의 일원으로서 당연한 일이며, 그동안 오랜 시간 동안 제국의 야욕에 시달려 온 자신들은 모두 일치단결하여 그를 벌해야 한다. 일견 그들의 말만 듣고 본다면 그들의 말은 한없이 옳게 느껴진다. 하지만 달리 관점을 바꾸면 왕국의 국왕들에게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음을 알 수 있다. 가급적 싸움을 피하고 싶은 것이 그들의 솔직한 마음이나 마도 제국이 이미 자신들에게 굴복하지 않는 이상 용서하지 않겠다고 공표했으니 애당초 왕국들에게 선택권 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순순히 국가를 마도 제국에게 헌납하는 어리석은 이는 없을 테니 말이다. 그것은 모든 국왕들의 생각이 같았기에 문제가 없다. 문제는 다른 곳에서 발생하였다. 바로 마도 제국을 상대할 군대의 총사령관을 누구로 삼을지에 대해 치열한 의견 대립이 펼쳐졌던 것이다. 예전 같으면 덱스론 왕국과 아드리안 왕국의 그랜드 마스터들에게 지휘권을 맡겼을 것이다. 전쟁의 신이라 불리는 그랜드 마스터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아 주기에 부족함이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그랜드 마스터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정체 모를 이들에게 암살당한 것이다. 그로 인해 현재 서부 대륙에 존재하는 그랜드 마스터는 다이어드 공작이 유일했다. 그렇다는 건 다이어드 공작에게 총사령관의 자리를 맡기면 모든 게 해결된다. 허나 성국은 이번 회담에 참석조차 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각국의 국왕들은 다이어드 공작을 총사령관으로 삼는 것에 적극적이지 못했다. 다이어드 공작을 총사령관으로 삼으려면 마치 자신들 이 성국에 고개를 숙이는 상황 같았기 때문이다. 성국이 비록 그들의 각국보다 결코 떨어지지 않는 국력을 보유했다고 하나 그들은 여태껏 독립된 노선을 걸어 왔다. 그리고, 지금같이 중요한 순간에도 독자적인 길을 걸으려 하는 모습에 누구도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다이어드 공작이 후보에서 제외되고 남은 것은 8클래스 마법사들 뿐이 었다. 서부 대륙에는 총 4명의 8클래스 마법사가 존재한다. 유클레이, 멜뤼스, 코린트, 엘리미스. 누구하나 부족함이 없는 8클래스 마법사임이 분명했다. 각국의 국왕들은 일단 금탑주 엘리미스를 먼저 후보에서 탈락시켰다. 금탑주 엘리미스의 실력에 대해서는 누구나 인정하는 국왕들이다. 하지만 엘에게는 그러한 막강한 실력에 불구하고 한 가지 갖추지 못한 것이 있다. 바로 세월이 가져다주는 '경험' 이다. 경험은 결코 노력으로 채워질 수 없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세월이라는 것 앞에 자연스럽게 쌓이는 경험은 인간에게 있어 가장 공평하고 때로는 가장 큰 무기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왕들은 유클레이, 멜뤼스, 코린트 셋을 두고 연일 회의를 벌였다. 3명의 8클래스 마법사는 각각 지닌 장점과 단점이 있었기에 누구를 선택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우선 실력으로 따지면 유클레이가 가장 높다고 소문났으나 유클레이는 나이가 너무 많다 그런 그에게 군대를 이끌어 달라는 것은 너무 무리한 부탁이라. 멜뤼스는 실력에 비해 약간 행동이 경망스러운 편이고 코린트는 지나치게 신중하여 과감함이 부족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법사 출신으로 총사령관의 직책을 맡은 이가 없다는 것이다. 국왕들이 고심에 고심을 거듭할 때, 여태껏 행동을 보이지 않던 성국이 나섰다. 교황이 직접 나서서 마도 제국과 맞서 싸울 것이며, 모 든 힘을 투입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는 한줄기 자존심으로 다이어드 공작을 총사령관으로 지목하지 않은 왕국들의 체면을 살릴 수 있는 기회로 작용했다. 성국의 사신이 카시아스 왕궁에 도착했을 때, 각국의 국왕들은 미리 정해 둔 사실을 가지고 다시 한 번 회의를 열어 다이어드 공작을 총사령관으로 임명하고, 각국의 군 대 5만씩을 파견하여 마도 제국과의 일전을 준비하게끔 하였다. 무려 2달에 걸친 준비 기간이었다. 사방이 험한 지형으로 둘러싸인 넓은 분지에는 작은 도시가 형성되어 있었다. 유명한 건축가가 계획적으로 지은 것처럼 아름다운 도시의 중심에는 찬란한 빛을 발하는 금빛 탑이 상징처럼 우뚝 서 있었다. 주변이 험한 계곡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곳의 이름은 골든 벨리. 과거에는 트롤 벨리라 불리던 죽음의 장소 중 하나다. 트를 벨리에 서식하던 트롤들의 숫자가 너무나 엄청나서 강대국 톨리안 왕국에서도 감히 토벌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던 곳이다. 그런데 몇 년 전 이곳을 토벌하고 마탑을 세운 이가 있었다. 그랬으니 바로 그가 대륙에 혜성처럼 등장한 금탑주 엘리미스였다. 금탑에 관해서는 누구에게도 알려진 것이 없다. 정확한 구성원과 골든 벨리에 사는 사람들, 그리고 금 탑주가 무엇을 생각하는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극히 드물다. 하지만 확실한 것 한 가지는 그가 의심할 나위가 없는 완벽한 8클래스 마법사란 점과 나이가 20대 초반에 이른 이로써 장차 9클래스를 넘볼 수 있는 대마법사라는 점이다. 사람들은 20대 초반에 그렇게 지고한 경지에 오른 엘을 두려워하고 부러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질투했다. 그들은 생각했다. 금탑주는 20대 초반에 경지에 올랐기에 무척 오만할 것이라고. 그 누가 알까. 금탑주는 자신들이 모르는 사이 대륙을 위해 싸우고 있는데. 그것이 자신을 위한 일이지만 넓게 보면 모두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러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 잘나가는 사람들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좋지 않은지 단편적으로나마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금탑에 위치한 공간 이동 마법진. 이곳은 공간 이동을 할 수도 있고, 외부에서 금탑으로 공간 이동을 할 수 있는 장소다. 금탑은 금탑주 엘리미스가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계 곡 전체에 마나의 흐름을 비꼬아 놓았다. 때문에 금탑은 엘과 금탑에 소속된 마법사들 이외에는 마법을 캐스팅함에 상당한 고역을 치러야 한다. 뭐........ 그래 봤자 금탑에 소속된 마법사들은 기껏해야 실피르와 세레나뿐이지만 말이다. 지금 공간 이동 마법진에는 실피르와 세레나, 카이나 등 많은 사람들이 걱정 섞인 표정으로 서성이고 있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엘이 함정에 빠져 들었기 때문이다. 실피르와 세레나, 카이나는 엘이 금탈을 떠나기 전에 자신들에게 계획을 알려 주었다. 초인들을 금탑으로 유인하고 자신은 마도 제국의 중추 시설 중 하나인 골렘의 생산 기지를 파괴하는 것. 적의 움직임을 미리 파악하고 한발 앞서 적에게 큰 타격을 주는 엘의 계책에 모두가 감탄했다. 만약 엘의 계획이 성공한다면 마도 제국은 한발 주춤거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적의 계책이었단다. 엘리엔에 의해 모든 이야기를 전해 듣자 사람들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깊게 생각해 보니 그녀의 의문이 하나하나 모두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엘이 위험하다! 그것이 그들이 느낀 것이다. 적들이 엘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다면 결코 그가 빠져 나을 수 없는 단단한 그물을 쳐 놓았을 것이 분명했다. 네 명의 초인이 이곳 금탑을 쳤으니 다섯은 마도 제국에 남아 있다. 그 정도 숫자라면 충분히 엘을 압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엘의 곁에는 골든 나이트가 있으니 말이다. 그랜드 마스터에 준하는 힘을 발휘하는 골든 나이트를 방패삼아 물러난다면 엘에게도 충분히 물러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거기에 엘리엔이 늦지 않는다면 충분히 빠져나을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루이아스가 직접 나섰을 때이다. 루이아스는 9클래스의 대마법사. 그런 그가 직접 나섰 다면 제아무리 엘이 8클래스 마법사이고, 골든 나이트가 그랜드 마스터의 힘을 발휘한다 해도 빠져나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9클래스 마법사! 그는 측정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여태껏 대륙에 9클래스 마법사가 등장한 적은 없다. 워낙 지고한 경지인 탓에 대륙인들은 물론 심지어 마법사들마저도 9클래스의 경지를 환상의 경지라고, 인간의 몸으로는 도저히 오를 수 없는 경지라 생각했다. 마법사들의 추측은 거의 확실했다. 일반적으로 9클래스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극도로 단련된 육체가 필요하다. 허나 마법사들이 육체를 단련할.리가 없는 노릇. 비록 최근에 와서 어릴 적부터 꾸준히 육체를 단련하는 것이 좋다는 게 밝혀졌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최근. 불과 이십 년도 안 된 발표였다. 그렇다 몸을 단련한다 하여도 9클래스에 오를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는 것은 아니다. 마법사들이 오랜 기간 연구 끝에 알아낸 것은 9클래스 마법사의 기반이 되는 건 그랜드 마스터급, 극한으로 단련된 신체여야 한다는 거 였으니 말이다. 외부의 마나를 공명시키는 마법사들은 9클래스에 가서야 그 구분아 완전히 없어진다고 한다. 즉, 이론적으로라면 9클래스 마법사들은 그랜드 마스터가 발휘하는 힘을 그대로 발휘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그걸 본 사람은 아무도 없기에 아직 이론에 불과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 정도로 대단하다는 9클래스 마법사의 힘이다. 아무리 엘이 천재이고, 골든 나이트가 그를 보좌한다고 하나 엄연히 한단계 높은 루이아스의 손에서 벗어나기는 힘들다. 이는 소드 마스터와 7클래스 마법사가 8클래스 마법사를 압도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높은 경지로 올라갈수록 그 차이는 더욱 치지니...... 엘 이 함정에 빠져도 단단히 빠진 것임이 틀림없다. 실피르를 비롯한 여인들의 얼굴에 짙은 근심이 서렸다. '엘이 무사해야 할 텐데....... 만약 루이아스를 만났다면.......’ 정황상 엘을 제거하기 위해 루이아스가 나섰을 확률이 높기에 그녀의 근심은 더욱 깊어졌다.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에리스 공주는 그러한 사람들의 모습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아는 엘은 8클래스 마법사이다. 대륙에 단 9명뿐인 8클래스 마법사! 그런 지고한 경지에 든 엘은 비록 세월이 흐르면서 축적된 경험 부족으로 최약체로 평가되지만 그 누구도 무시 할 수 없는 경지를 이룩한 이다. 거기에 골든 나이트까지 합세하면 엘의 힘은 단순한 1 이 아닌 2 또는 3이 될 수도 있다. 아까 전 초인들의 대결로 많이 놀랐지만 지금은 그런 감정이 가라앉은 상태다. 상대가 9클래스 마법사이고 그가 엘의 힘을 월등히 웃도는 걸 모르기에 그런 수 있는 것이다. "도대체 왜 그렇게 걱정하는 거죠? 금탑주님은 대륙의 한 축인 8클래스 마법사잖아요?”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한 에리스 공주가 의문을 던졌다. 아직 적의 구체적인 정체를 모르기에 할 수 있는 질문 이었다. ".......” 에리스 공주의 물음에 일순간 장내는 어색한 침묵이 지배했다. "그건 말이죠, 공주님." 그러고 보니 에리스 공주가 제반 사항을 아무것도 몰랐다는 걸 알아차린 세fp나가 그녀에게 차근차근 설명을 해 주기 시작했다. 세레나의 이야기가 지속되자 에리스 공주의 안색이 눈 에 띄게 창백해졌다. 이야기를 모두 듣고 나자 에리스 공주는 한차례 몸을 휘청 였다. 도저히 믿기 힘든 사실이 아닐 수 없었다. 9클래스 마법사가 엘을 노리고 있다니. 에리스 공주의 표정이 다급해졌다. 그렇다는 건 정말 큰일이 난 게 아닌가. 하지만 현 시점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8클래스 마법사인 멜뤼스와 코린트조차도 엘리엔을 힘겹게 텔레포트 시킨 것이 전부이지 않는가.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이렇게 초조한 마음으로 엘과 엘리엔의 무사 기원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불안한 마음으로 얼마나 기다렸을까. 갑자기 공간 이동 마법진에서 찬란한 빛이 뿜어지기 시작했다. 점점 급격해지는 마나의 흐름에 사람들의 얼굴이 밝아 졌다. "오! 이건......... 조금씩 증가하던 마나의 양은 이윽고 텔레포트를 전개 할 만큼 정도가 되어 빠르게 마법을 만들어 나갔다. 평소보다 조금 긴 흐름에 마법을 익힌 이들의 얼굴에 의아함이 피어날 때, 공간 이동 마법진에서 새하얀 빛이 터져 나왔다. 스파앗! 강렬한 빛 때문에 모두가 일순간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그들이 눈을 떴을 때 공간 이동 마법진 위에 서 있는 일남일녀를 볼 수 있었다. 바로 엘과 엘리엔이었다. 그들의 등장에 모두가 밝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엘과 엘리엔의 모습이 드러나자 그들의 얼굴에 놀라움이 서렸다. "헉!" "이런.......” 그도 그럴 것이 엘의 전신이 피로 물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까맣게 말라붙은 어깨에는 큼지막한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위급한 상황임이 분명해 보였다. "이게 뭐예요. 이게 무슨....” 놀란 카이나가 재빨리 엘에게 다가갔다. 엘은 이미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극심한 부상과 과도한 정신력의 사용으로 탈진한 것이 엘리엔은 그때까지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찢어질 듯한 자이나의 목소리를 듣고는 곧장 정신을 되찾았다. "흐윽!" 몸을 움직이려던 그녀는 전신이 물먹은 솜처럼 무겁자 가벼운 신음을 홀렸다.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에 든 그녀가 언제 이런 몸 상태를 겪어 보았겠는가. 겪었다면 과거 그랜드 마스터에 오르기 전에 극도로 자신을 단련할 때밖에 없었다. 그랜드 마스터에 오른 이후로는 극도로 단련된 신체와 체내에 존재하는 마나가 한데 어우러졌기에 결코 체력의 끝을 보이는 법이 없었다. 그런데 이런 느낌이라니. 오랜만에 겪어 본 이러한 현 상은 그녀에게 무척 생소한 느낌을 가져다주었다. 그사이 어떠한 상황에 처했는지 상황을 파악한 그녀가 엘의 모습을 힐끗 보더니 외쳤다. "어서, 금탑주부터 치료를 해야 해요!" 엘리엔의 외침이 장내를 휩쓸었다. 그러한 그녀의 외침은 엘의 귀환을 기뻐하던 사람들의 정신을 흔들어 놓았다 카이나가 세레나를 보며 말했다. "언니 ! 엘님을 어서 치료해 주세요!" 과거 성녀로 임명될 뻔한 까닭에 세레나의 몸에는 감히 신관들조차 범접할 수 없을 방대한 양의 신성력이 도사리고 있다. 세레나는 그 신성력을 바탕으로 백마법 계열을 익혔고, 그로 인해 그녀는 치료와 회복 마법에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응. 알았어." 카이나의 외침에 고개를 끄덕인 세레나는 서둘러 엘에 게 치료 마법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그만큼 엘의 상태는 그녀가 보기에도 위중했다. 파이앗! 세레나의 손과 전신에 은은한 신성력이 아른거리며 치료 마법이 캐스팅되기 시작했다. 치료 마법이 전개되자 엘의 외상이 눈에 띄게 아물기 시작했다. 이윽고 세레나가 치료 마법을 중지하자 엘의 외상은 말끔히 치료된 상태였다. 놀라운 치료 마법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여전히 안색은 창백했다. 내상과 과도한 정신력의 사용으로 인한 부상은 아직 남아 있던 것이다. "외상은 치료했지만 내상까지는 치료해 드릴 수가 없어요. 우선 며칠간 요양을 하시게 하고 스스로 치료를 하시게 할 수밖에 없겠어요." 그 말이 일리가 있었기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엘의 치료를 끝내자 이번에는 엘리엔을 치료하기 시작 했다. 그녀는 주로 외상을 입었기에 세레나의 치료 하에 빠르게 상처가 아물기 시작했다. 엘을 구하기 위해 과도한 마나를 사용했다고 하나 그녀는 내상을 입지 않았기에 외상을 모두 회복하자 곧장 무리 없이 일어날 수 있었다. "치료해 줘서 고마워." 엘리엔의 인사에 세레나가 빙긋 웃었다. "아니에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인걸요. 오히려 제가 고맙다고 해야지요. 엘리엔 님이 가 주셨기에 저희 엘 님이 살아 돌아오실 수 있었던 건데요." “.......” 세레나가 되레 고맙다 하자 엘리엔의 표정이 모해졌다. 그녀의 말이 자신의 가슴을 쓰라리게 만든 것이다. '무슨 이유로? 스스로도 알 수 없다 여기며 엘리엔이 작게 고개를 저었다. 근원을 알 수 없는 감정을 털어 버리기 위함이다. 하지만 그 감정은 끈질기게도 엘리엔의 마음에 남았고, 그녀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녀는 그 감정을 숨긴 채 세레나에게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게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표현이었다. 미소를 지어 보인 그녀는 어느덧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와 주변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며칠 뒤, 몸이 회복된 금탑주를 대동 하여 하도록 하겠어요." 엘리엔의 말에 누구·도 반대를 표하지 않았다.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라도 몸이 모두 회복되어야 하니 말이다. "이의가 없다면 이만 쉬도록 하겠어요." 루이아스에 의해 생사가 오가는 경험을 해서일까. 엘리엔의 음성은 무척이나 차가웠다. 그렇게 그들은 청탑에서 살아 돌아왔다. 햇살이 눈부시게 빛나면서 창에 의해 산산조각 부서져 방 전체를 환하게 밝혔다. 절로 나른해질 듯한 온화한 햇빛, 그것이 비추는 곳에는 한 청년이 정신을 잃은 채 누워 있었다. 눈부신 금발이 햇빛에 반사되며 눈부신 빛을 발하고 있었다. "으음.......” 햇빛 때문일까? 눈부신 빛에 적응을 못했는지 침대에 누워 있던 청년이 몸을 뒤척이며 살며시 눈을 떴다·. 흐릿한 푸른색 눈동자. 초점이 제대로 맞춰지지 않은 모습이 지금 청년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었다. "내가 살아 있었나........” 엘은 눈 안에 들어오는 익숙한 광경에 흥분에 겨워하며 다시 눈을 감았다. 최후에 모든 마나를 쥐어짜서 전개한 텔레포트가 성공 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사실 그는 마법을 전개하면서 가능성을 반반으로 점쳤다. 정신력의 고갈로 마법의 확률이 하락한데다가 엘리엔이 루이아스를 상대했기에 그로서는 최대한 빠르게 마법을 캐스팅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마 자신이 전개한 텔레포트는 불안정하기 짝이 없는 마법이었을 게 분명했다. 여기에서 혹시나 모를 때를 대비하여 한 가지 안배를 한 게 빛을 발했다. 금탑의 공간 이동 마법진에 유도 마법을 걸어 놓은 게 주효했던 것이다. 만약 그것이 아니었다면 불완정한 마법은 골든 벨리 어딘가로 전개되었을 것이고, 잘못했으면 계곡의 틈에 끼여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후, 일단 살았구나.' 살아났다는 것에 엘은 안도치 한숨을 내쉬었다. 루이아스의 힘을 직접 목격했을 때 이재로 끝이 아닌가 싶었다. 압도적인 힘과 빈틈없는 전투의 진행. 자신의 공격 하나하나가 실패할 때 엘은 자신이 얼마나 오만했는지를 여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전투능력, 경험 등 모든 면에서 뒤처졌고, 모든 변수를 예측하는 면에서도 루이아스를 넘지 못했다. 자신의 오만함을 깨닫고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보았을 때 엘은 자살하고 싶을 만큼 큰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가. 세상에 불가능이란 없다고 여겨 온 자신이다. 누구도 모르는 차원이동으로 새 삶을 얻었으며, 누구도 이룩하지 못한 20대에 8클래스의 경지를 이룩했다. 그렇게 전진에 전진을 거듭한 사이 사람들이 불가능이라 칭하는 것들은 자신을 가로막는 가소로운 벽에 불과하게 되었다. 루이아스를 상대하는 것도 그와 같은 맥락이었다. 불가능한 벽이지만 자신에게는 충분히 넘을 수 있는 그러한 벽. 상대가 비록 자신보다 한 단계가 높은 존재라지만 자신과 다른 이들의 힘을 합하고, 전생에서 얻은 상황 판단력을 적절히 사용하면 충분히 그를 제거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착각이었다. 그래서 엘은 자신이 이곳에 멀쩡하게 살아 있는 것에 자괴감을 느꼈다. '그토록 자신 있어 해 놓고 이렇게 되다니..... 정말 얼굴을 들기 힘들구나,' 자신 때문에 하마터면 엘리엔이 목숨을 잃을 뻔하였고, 골든 나이트가 파괴당할 뻔하였다 '전부 내 탓이야. 이렇게 적의 함정에 빠져드는데 내가 앞으로의 일을 잘 해결해 나갈 수 있을까? 한 번의 실괘는 자신감의 상실로 이어졌고, 자신감의 상실은 현 상태에 대한 포기로 이어질 수 있다. 엘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이으며 점점 그 크기를 키 워 나갈 때,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한줄기 목소리가 엘에게 들려왔다. "우음..... 깨셨어요, 엘 님?” 긴 시간 동안 생각에 잠겨 있었기 때문일까. 엘을 간호 하다가 잠든 듯한 카이나가 침대 머리맡에서 일어나서 엘을 바라보았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거의 보이지 않겠지만 백옥같이 새 하얀 카이나의 피부에 약간 거무스름한 것이 생겨 있었다. 그것은 필시 피로하다는 증거일 터. 딱히 생각해 보지 않아도 카이나의 얼굴을 본 것만으로도 그녀가 몇 날 며칠을 잠들었을 자신을 밤새 간호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안 그러면 소드 마스터인 카이나의 몸에 피로가 축적될 리 없으니 말이다. 엘은 그런 카이나에게 힘없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 직까지 자괴감이 가시지 않은 채였다. "응. 이런, 안색이 안 좋네. 밤새 간호해 준 거야? 고마 워, 카이나.....” 고마움을 표하는 엘의 모습에 카이나가 얼굴을 살짝 붉혔다. "예? 아, 아니에요. 전 그저 엘 님이 언제 깨어나시나 본 것밖에 없어요." 엘의 입가에 웃음이 맺힌다. "그래도 고마운 건 고마운 거야." 단순히 고민에 빠져 있다 카이나를 본 것뿐인데 그것만 으로도 엘의 기분은 급속도로 나아졌다. 그것은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나서야 느낄 수 있는 집에 대한 편안함이었다. 엘은 자신이 느끼고 있는 이 기분이 편안함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눈을 감았다. '내가 그동안 잊고 있었구나. 나에게는 여기가 집이고, 이곳이 나에게 가장 편안한 곳이었지.' 최근 들어 워낙 바쁘게 움직인 탓에 엘은 금탑에 붙어 있는 날이 드물었다. 각지의 초인들과 협력 관계를 맺어야 했고, 성국을 설득하고 톨리안 왕국도 드나들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금탑에 있는 날은 줄어들었고, 세레나와 카이나의 얼굴을 보는 날도 줄어든 것이 사실이었다. 그래서인지 카이나의 얼굴을 보니 엘은 반가움이 치밀어 올랐다. ‘밖을 돌아다니면서 나는 정작 소중한 것을 망각하고 있었던 거야. 내 진짜 소중한 이들은 여기, 금탑에 있는데.......’ 이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세레나의 얼굴이 무척 보고 싶어졌다. 마음이 동하니 그것은 절로 행동으로 옮겨졌다. "아, 안 돼요! 아직 몸이 다 낫지 않았는데......” 카이나는 엘이 갑자기 몸을 일으키려 하자 깜짝 놀라 그를 만류했다. 하지만 엘은 그런 카이나에게 미소 지어 보이며 손을 들어 자신을 부축하려는 카이나를 제지했다. "몸은 괜찮아. 못 움직일 정도는 아니야." 물론 움직이면 통증이 느껴졌지만 엘은 그걸 달게 감수 했다. 몸을 일으킨 엘은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카이나에게 말했다. '난 괜찮아.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 카이나. 날 모두 가 있는 곳으로 안내해 줘."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엘의 말에도 불구하고 카이나의 표정은 펴질 줄 몰랐다. 이미 그녀는 엘의 몸 상태에 대해 엘리엔의 대략적인 설명을 들은 상태였다. 9클래스 마법사인 루이아스에게 벗어나기 위해 한계 이상으로 마법을 전개한 엘은 몸뿐만 아니라 정신력까지 극한의 상태로 몰렸다고 했다. 뭐든지 한쪽으로 치우치면 좋은 법이 없는 법이다. 정신과 육체가 한계까지 간 상태에서 마지막에 무리를 했으니 엘의 몸 상태가 좋을 리 없었던 것이다. 당장 엘의 안색이 극도로 창백한 것이 그의 상태가 좋지 않음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었다. 완력을 써서라도 엘을 말리고 싶은 카이나였지만 자신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 차마 그럴 수 없었다. 카이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제가 어찌 엘 님을 말리겠어요. 하지만 제발 무리는 하지 마세요. 엘 님은 저와 언니는 물론 어머님의 모 든 것이나 마찬가지니까요." 그렇게 말한 카이나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엘의 면 전 앞에서 자신의 모든 것은 당신이라 말했으니 부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건 마치 뭐랄까. 고백과도 같았다.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힌 카이나를 보며 엘은 미소 지었다. 그의 눈에는 카이나가 정말 사랑스러워 보였다. 곰곰이 돌이컥 보면 자신은 여인들에게 해 준 것이 거의 없었다. 어릴 적 보살펴 준 것과 각자의 특기를 살리는 데 약간 의 도움밖에 준 게 없다. 그럼에도 그녀들은 자신에게 모든 것을 다 주려 한다. 정말 남자로서 기쁠 수밖에 없다. '부족한 나에게 이런 사랑이라니....정말 내가 그동안 너무 무심했구나.' 죽음의 경계에서 다시 건너온 탓인지 엘은 지금 세레나와 카이나의 행동 모두가 너무나 고맙게 여겨졌다. 엘은 빙그레 웃어 보였다. "알았어. 카이나를 위해서라도 무리는 절대 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 네가 걱정하면 내가 무리 안 하기도 힘 들어지니까." "네, 엘 님." 카이나는 엘의 모습을 보면서 그가 평상시보다 더욱 자상해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어릴 적부터 같이 커 왔으니 엘의 사소한 변화도 금방 알아차리는 그녀였다. 하지만 자신의 남자가 더욱 자상해지는데 싫어할 여자가 어디 있겠는가. 카이나는 엘에게 다시 한 번 빠져 드는 마음을 느끼며 조심스럽게 그를 안내했다. 카이나가 엘을 안내한 곳은 금탑에 마련된 회의실이었다. 평소에는 회의할 일이 거의 없는 금탑은 그곳을 가족간의 대화 장소로 종종 이용했다. 엘이 회의실에 들어서자 여러 시선이 그에게 꽃혔다. 엘은 회의실에 있는 인물들을 훑었다. 회의실에는 실피르와 세레나를 비롯하여 아이넨스, 그리고 금탑 방어를 위해 도움을 요청한 멜뤼스, 코린트도 자리하고 있었다. 가장 뜻밖인 것은 엘리엔도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루이아스와 겨루면서 상당한 부상을 입었을 그녀가 이렇게 자리해 있다는 것이 엘에게는 무척 의외였다. 회의실에 들어선 그를 보며 모두가 반색했다. "몸은 괜찮은 거니, 엘리?" 실피르가 안색이 창백하고 걸음걸이가 아직 불안정한 엘을 보며 불안한 얼굴로 물어 왔다. 그녀의 걱정 담긴 말에 엘은 미소 지으며 짐짓 활기찬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심각하지 않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러면서 엘의 시선이 세레나에게 향한다. 그녀의 얼굴 이 유독 반갑게 느껴졌다. "심각한 상태였던 나를 이렇게 치료할 사람은 세레나 밖에 없지, 고마워, 세레나 " 엘의 변화에 민감한 세레나는 그의 표정이 평소와는 다르다는 것을 금세 파악했다. 허나 그의 표정이 자상하고 따뜻하게 변한 것이었기에 세레나는 그런 엘의 변화를 무척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엘 님이 한층 더 우리를 사랑하게 된 거야.' 죽음의 위기를 넘긴 그가 곁에 있는 자신들의 소중함을 깨달은 게 분명하다. 무척 긍정적인 변화였다. 그녀는 엘에게 포근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니에요. 저는 응급처치를 한 것에 불과한걸요. 일단 응급조치를 취했지만 몸이 다 나은 게 아니에요. 그러니 무리하지 마시고 치료를 하셔야 해요." 그 말은 사실이었다. 그녀의 능력으로 외상을 치료하는 건 가능하지만 내상을 치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내상이란 것이 오래 간직하면 나중에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에 세레나는 혹시 엘 이 내상을 별거 아니게 여길까 봐 조언한 것이다. 그녀의 그런 걱정이 어찌 엘에게 전해지지 않으랴. 엘은 고개를 끄덕 였다. "알았어. 한동안 요상을 할게." 미소 지으며 말한 엘의 시선이 이번에는 엘리엔에게 향했다. 그녀가 없었다면 자신은 루이아스의 마수에 살아남지 못했을 게 분명했다. 엘은 진심으로 감사함을 담아 그녀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루이아스의 함정에 빠진 저를 도와주신 것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엘리엔 님." 엘리엔은 그런 엘의 인사에 모한 느낌을 받으면서도 그 것을 내색하지 않은 채 짐짓 냉정하게 대꾸했다. "그렇게 고마워할 필요는 없다. 넌 우리 엘프들에게 무척 중요한 존재이기도 했으니까." 자신이 말해 놓고도 그 내용이 무척 냉정한 것임을 꼈다. 그녀는 서둘러 말을 덧붙였다. "게다가 넌 혼자의 몸도 아니다. 넌 우리 엘프들을 중 간에서 연결하는 인간이자 대륙의 초인들을 한데 규합하는 인물이다. 즉, 너의 목숨이 혼자의 목숨이 아닌 셈이 지, 그러니 앞으로는 경솔하게 행동하지 마라.” 엘은 엘리엔의 말에 다시 한 번 자신의 위치를 돌아볼 있었다. 정말 자신은 혼자의 몸이 아니라는 것과 자신은 대륙에 서 무척 비중 높은 위치에 있다는 것. 그리고 자신이 사라지면 여태껏 힘들게 엮어 온 초인들 간의 관계가 단번에 흩어져 버릴 것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작은 깨달음이지만 이것은 한층 자신의 목숨을 중하게 여길 수 있게 될 깨달음이었다. 엘의 목숨이 자신만의 목숨이 아니게 된 만큼 작은 깨달음이라도 추후 큰 영향을 끼칠 것임이 분명했다. 엘은 양손을 모아 엘리엔fl게 허리를 숙여 보였다. "예, 정말 감사합니다." 엘리엔은 그런 엘의 인사에 약간 부끄러움을 느꼈지만 그것을 내색하지 않았다. 그렇게 엘리엔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넨 엘은 이번엔 멜뤼스와 코린트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이들이 없었다면 금탑을 방어하기란 불가능했을 것이다. "두 분도 정말 감사합니다. 만약 두 분의 도움이 없었 다면 이렇게 금탑이 온전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저는 결코 두 분의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엘의 인사는 세레나와 엘리엔에게 했던 것과는 상당히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세레나는 자신의 여인이고, 엘리엔은 대륙의 평화를 위해 엘프 숲에서 자신을 지원해 준 여인 이다. 하지만 멜뤼스와 코린트는 다르다. 그들은 인간 세계에서 지대한 영향을 끼치면서 여러 국가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큰 마탑을 다스리는 수장 들이다. 그런 그들에게 도움을 청해 놓고 단순히 감사함을 표한 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그건 좁게는 금탑에 먹칠하는 것이 고 나아가서는 두 대마법사를 모욕한 꼴이 된다. 때문에 엘은 등가교환의 법칙으로 그들이 무얼 해 줬으니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겠다고 말한 것이다. 수십 년 동안 노회한 각국의 귀족들과 마법사들을 상대 한 그들이 엘의 그러한 말뜻을 모를 리 없다 때문에 그들 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맺혔다. 엘리엔이 말해 주었기에 자신의 가치를 어느 정도 파악한 엘이지만 그는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큰 존재 이다. 그건 제국들이 존재하는 대륙 동부보다 왕국들이 난립한 대륙 서부에서 더욱 그러했다. 추후 금탑주가 9클래스의 관문에 돌파하여 제국을 정 벌하고 왕국들의 세상을 만들 것이라 여길 정도니 오죽하겠는가. 그런 그에게 이런 말을 들었으니 금탑을 도와준 것치고 는 엄청난 대가를 얻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진중한 성격을 지닌 코린트와 다르게 상당히 유쾌한 성 격을 지닌 멜뤼스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허허허!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데........큼! 아, 물론 그렇다고 안 받겠다고 하는 건 아닐세. 단지 말이 그 렇다는 거지 금탑주가한말, 난꼭 기억하고 있겠네. 허 허헛!" 노골적으로 좋아하는 멜뤼스의 반응에 코린트가 눈총 을 주었으나 그 또한 기분이 상당히 좋았기에 굳이 그의 말을 제지하지 않았다. 아이넨스에게도 고마움을 표한 엘은 그가 그레시오스 공작을 상대로 압도했다는 말에 감탄했다. "그레시오스 공작이라면 아토빌 공작님과 비견되는 그랜드 마스터인데 정말 대단하군요!" 엘의 감탄 섞인 말에도 불구하고 아이넨스는 고개를 저었다. "그 말은 조금 과장된 것이더군. 실제로 겨뤄 보니 그레시오스 공작은 아토빌 공작에게 한참 미치지 못하는 실력이었어. 순수 실력으로 겨룬다면 채 백 초도 견디지 못 하고 패할 게 분명하지. 아마 신검을 쓴다면 한 세 번의 공격이면 충분히 벨 수 있을 거야." 그런 아이넨스의 말에 엘리엔이 제지를 걸었다. '마검과 겨루면서 잠시 소강상태일 때 겨루는 걸 봤지. 그 당시 신검의 위력을 거의 봉쇄당한 상태에서 압도한 것이니 굳이 자신의 실력을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고 보는데." 실제로 그레시오스 공작은 무척 노련한 검사로 상대방의 약점을 잘 파악하는 검사다. 그는 아이넨스와 겨루면서 디멘션 소드의 힘을 단번에 파악하고는 그 힘을 봉쇄한 채 아이넨스를 압박했다. 그러면서도 아이넨스는 순수한 검술로 그레시오스 공작을 몰아쳤으니 그의 실력이 결코 부족하다고 할 수 없었다. 엘리엔이 말을 덧붙였다. "나와 걱룬다 해도 쉽게 제압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어. 예전이라면 자신했겠지만 무척 강해졌거든. 인간, 네 가 강해진 걸까, 아니면 내가 약해진 걸까? 아이넨스가 손을 저었다. "그렇게 말하시다니 정말 영광입니다만 전 아직 엘리엔 님에게 멀었다는 걸 느끼고 있습니다. 굳이 절 그렇게 띄워 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난 일부러 인간을 띄워 줄 만큼 입이 가벼운 존재가 아니야. 그리고 내 말은 사실이고. 특히 너의 검술을 펼칠 때는.......” 엘리엔의 말에 아이넨스는 바짝 정신을 차린 채 그녀의 말을 경청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딱히 네이처 소드의 힘을 발휘하지 않고서도 마검의 주인이자 천재인 자신의 누이와 대등한 대결을 펼친 존재다. 현존하는 그랜드 마스터들 중 그녀를 뛰어넘는 존재는 아무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말이다. 그런 그녀가 자신의 검술에 대해 이런저런 말을 해 주니 절로 집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엘리엔의 설명에 아이넨스뿐만 아니라 멜뤼스와 코린트도 귀를 기울였다. 마법을 단순히 그 테두리에 고정시키면 절대 발전시킬 수 없다. 끝없는 탐구심과 외부에서 오는 깨달음을 얻어야 마법을 한층 발전시킬 수 있다. 그런 면에서 그랜드 마스터의 끝자락에 오른 엘리엔의 말은 그들에게도 큰 도움이 되는 것이었다. 백탑주 유클 레이와는 또 다른 그녀의 설명에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감탄했다. 초인들의 교류는 그들을 서로 한 단계씩 끌어올리는 원동력이 된다. 순식간에 네 초인이 정신없이 토론을 펼치자 엘은 빙그레 웃었다. 자신들과 루이아스가 다른 점이라면 바로 이런 점일 것이다. 그들은 서로를 견제한 나머지 끝없이 편협한 길로 빠져 들고 있고, 자신들은 서로를 인정하고 서로의 실력 증진 을 위해 아낌없이 공개하는 점이 말이다. 엘은 실피르를 비롯하여 세레나와 카이나에게 시선을 한 번씩 주며 말했다. "이야기가 상당히 길어질 것 같으니 저희는 잠시 자리를 비켜 주지요." 마음 같아서는 엘 본인도 그들의 토론에 참여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카이나의 염려대로 몸이 썩 좋지 않았다. 서둘러 상처를 치교하여 온전한 몸 상태를 만들어야 다 음 사태에 대비할 수 있기에 엘은 아쉽지만 회의실을 벗어났다. 자신의 수련실로 돌아온 엘은 서둘러 치료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온전한 몸 상태를 만들기 위해서! 루이아스에게 죽음의 위기를 넘긴 후 깨달은 점이 무척 많았기에 그것을 정리하기 위해서라도 당장 몸 회복에 전력을 다해야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6. 여인의 의지 엘이 금탑으로 복귀한 지 일주일이 흘러갔다. 그사이 멜뤼스와 코린트는 자신의 마탑으로 돌아갔다. 여러 국가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마탑의 주인들이니 만큼 한가롭게 금탑에 체류할 수 없었던 까닭이다. 자신들의 마탑으로 돌아가는 그들의 얼굴에는 안타까움이 가득했다. 그들은 이번에 금탑에 와서 정말 많은 것을 얻었다고 생각했다. 혼인을 하지 않은 그들에게 손녀같이 귀여운 세레나, 카이나와 친분을 맺게 되었고, 금탑에게 상당한 대가를 받기로 했으니 말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엘리엔과 아이넨스와의 토론으로 각 각 작은 깨달음을 하나씩 얻었다. 이는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귀중한 것으로, 자신들의 경지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 큰 영향을 끼칠 것임이 분명했다. 마음 같아서는 더욱 오래 머물러서 더욱 큰 깨달음을 얻고 싶었지만 지나친 욕심은 오히려 독이 된다는 걸 알기에 어쩌면 그들은 가장 적절한 때에 돌아간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사이 자신의 수련실로 들어간 엘은 일주일이 지나도 나을 줄을 몰랐다. 하루에 두 번씩 세레나가 준비하는 식사를 해결하는 것이 그에게 큰 변고가 없다는 것을 알려 줄 뿐, 지난 일주 일 동안 엘의 모습을 본 이가 아무도 없었기에 실피르를 비롯한 여인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여인들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엘의 수련실 문은 열릴 기색을 보이지 않았고, 일주일이 더 흘렀다. 그리고 일주일이 더 흐른, 엘이 수련실에 들어선 지 2 주가 되었을 무렵 마침내 2주간의 침묵을 깨고 그가 모습 을 드러냈다. 수련실을 나선 엘은 부상의 잔재를 말끔히 털어버리 고, 혈색이 도는 평상시의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금탑 사람들은 부상을 모두 회복한 엘을 한 번씩 찾았다. 엘은 그들을 만나 자신이 부상을 모두 회복했음을 알렸다. 엘을 한 번씩 만난 사람들은 무언가 의아함을 느껴야 했다. 엘의 기질이 과거와는 상당한 차이가 느껴졌던 것이다. 과거에 엘을 대하면 마치 뭐랄까, 정제되지 않은 어마 어마한 힘이 그의 주변에 산재해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때문에 그 누구도 그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고, 은연중 강렬한 기운을 내뿜었다. 그런데 오늘의 엘은 그런 모습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통제되지 않은 듯하던 힘의 잔재는 찾아볼 수 없었고, 엘에게서 느껴지던 극단적인 느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무척 부드러운 기운이 그를 감싸고 있었다. 사람들은 엘이 그동안 너무 바쁘게 대륙 각지를 돌아다녀 알게 모르게 예민해졌던 기분이 풀려서 그렇게 되었다 고 생각했다. 엘리엔과 아이넨스가 그렇게 판단했을 정도였으니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엘은 단지 예민했던 기분이 풀린 게 아니다. 그는 한차례 죽을 위기를 넘기고 얻은 깨달음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사람들을 모두 만나 본 뒤 엘은 다시 수련실 안으로 들어섰다. 그가 2주 동안 수련실에 있다가 외부로 나온 까닭은 사람들이 행여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걱정할까 우려한 탓 이다 아직 자신은 모든 걸 정리한 상태가 아니었다. 수련실로 들어선 엘은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았다 가부좌를 틀고 앉은 엘은 눈을 감은 채 천천히 숨을 내 쉬고 들이쉬기를 반복했다. 그러자 대기에 흩어져 있던 마나가 작게 소용돌이치며 엘의 호흡에 의해 그의 내부로 흘러 들어가기 시작했다. 바로 단전호흡이었다. 단전호흡에 빠져 들면서 엘의 내부에 있는 마나가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히 그랜드 마스터가 보유한 것과 비견될 정도로 방대 한 마나양. 루이아스와의 전투에서 이 마나를 활용하지 못한 엘은 자신이 엄청난 힘을 잠재우고 있었다는 걸 깨달을 수 있 었다. 나의 힘은 마법뿐만이 아니었어.' 눈을 감고 생각해 본다. 일이 지닌 힘. 그것은 단전호흡에 의해 극도의 친밀도를 띠고 있는 마나 호응과 지구의 수학 공식을 변형시킨 마법의 빠른 캐스팅이다. 이 두 가지로 엘은 대륙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 마법사가 될 수 있었다. 비록 최하위권에 속하기는 했지만 그에게는 골든 나이트가 있다. 그랜드 마스터와 자웅을 겨뤄도 결코 밀리지 않는 골든 나이트! 8클래스 마법과 그랜드 마스터의 힘이 조합되면 그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힘이 된다. 그것으로 엘은 누구에게도 무시당하지 않을 수 있었고, 대륙의 강자로 군림할 수 있었다. 실제로 엘은 다른 초인들과 겨룬다면 누구에게도 패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비록 경험과 실력, 모든 면에서 뒤처지지만 그의 무기는 그러한 차이점을 메우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골든 나이트까지 합세한다면 그는 누구라도 상대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것은 루이아스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다수의 초인을 상대할 수 있었다고 말했지만 엘에게는 제련제강의 마법도 있고, 원거리 캐스팅과 골든 나이트의 숨겨진 힘까지 보유하고 있기에 그가 단독으로 나서면 기꺼이 제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형편없이 패했으니 말이다. 루이아스에게 처참한 몰골이 되어 도망도 못 친 채 모 든 것을 포기하려던 엘은 자신에게 한 가지 무기가 더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바로 자신의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방대한 마나다. 이걸 어떻게 활용할 수만 있다면 최소한 루이아스에게 아무것도 해 보지 못한 채 몰리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엘은 지난 2주 동안 몸을 치료하면서 조심조심 내부의 마나를 움직여 보기 시작했다. 아무런 대책 없이 마나를 움직인다는 것은 자살행위와 마찬가지다. 검사들이 가장 경계하는 마나 폭주가 바로 무분별한 마나의 운용으로 일어나는 것이니 말이다. 그런 일이 엘에게도 벌어지지 않으리란 법이 없었고, 그것을 인지한 엘은 내상을 치료하면서 천천히, 마나를 외부로 표출해 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외부로 표출되던 마나를 내부로 갈무리할 때, 엘의 주변에 산재해 있던 마나까지 엘의 내부로 갈무리되었던 것이다. 사실 주변에 산재해 있던 마나는 엘이 단전호흡으로 더 이상 흡수하지 못한 마나가 밀도 높게 뭉쳐 있는 것이었다. 체내에 수용할 수 있는 마나의 한계량이 넘었기에 엘은 더 이상 그 마나를 체내에 갈무리하는 것을 포기하고 주변에 산재시켜 놓은 것이다. 그렇게 한 까닭은 외부에 산재한 마나가 그의 마법 시 전 속도에 다소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어찌 됐든 이미 자신의 몸은 한계치까지 마나를 수용한 상태였다. 더 이상 마나를 끌어들이다가는 온몸이 터져 죽을지도 모르는 노릇이었다. 놀란 엘은 필사적으로 마나를 운용하기 시작했다. 단전호흡을 통해 어떻게든 마나를 갈무리하려고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그때, 엘의 내부에서 변화가 생겨났다. 한계치까지 차 있던 마나가 조금씩 응축되더니 이내 전체적으로 마나가 응축되기 시작한 것이다. 마나가 응축되자 마나로 온통 꽉 차 있던 그의 단전에 다소 여분의 공간이 생겨났다. 외부에서 흡수된 마나는 응축된 마나에 덧대어져 덩달아 응축되기 시작했다. 엘은 그것이 나쁜 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마나를 외부로 표출했다가 흡수하길 반복했다. 약 다섯 번의 반복 끝에 자신의 주변을 떠돌던 마나를 모두 흡수 할 수 있었다. '이게 나에게 이득이 되는 일인가?' 그건 알 수 없다. 하지만 지금 이 현상은 여태껏 한 번 도 겪어 본 적 없는 상황임이 분명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일지도 모르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응축된 마나는 그렇지 않은 마나를 끌어당기는 성질이 있다!' 큰 발견이라면 큰 발견이었고, 작은 발견이라면 작은 발견이었다. 일단 한 가지 사실을 알아냈으니 이것을 연구해서 어떻게든 자신의 힘으로 만드는 일이 중요했다. 자신이 느끼기에 마나를 이런 식으로 갈무리하는 것은 그랜드 마스터도 하지 못하는 것이니 말이다. "다른 사람들과 의논을 해 봐야겠어. 일단 모든 마나를 수습했으니 말이야." 수련실에 들어서고 꼬박 세 시간 동안 마나를 체내에 흡수한 엘은 더 이상 자신 혼자서는 발전할 수 없음을 깨닫고 수련실을 나섰다. 그러자 수련실 밖에서 엘을 기다리는 이가 있었다. 바 로 세레나였다. "세레나? 네가 왜 여길?" 엘은 세레나를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세레나가 이곳 수련실에 오는 건 하루에 두 번이다. 아침 겸 점심때와 저녁때 물론 그건 엘에게 식사를 전달하기 위해 오는 것이다. 가급적 엘의 수련을 방해하지 않고자 식사 때를 제외하고는 수련실에 오지 않는 세레나인데 그녀가 이렇게 밖아서 기다리고 있으니 엘로서는 의외일 수밖에 없다. 엘이 나오자 세레나가 가볍게 미소 지어 보였다. "엘 님에게 할 말이 있어서 이렇게 왔어요." "이런, 오래 기다리지는 않았고?' 자신이 수련실에 들어서면 언제 나올지 모른다. 세레나 가 오래 기다렸을 거라 생각하자 엘은 까닭 없이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네, 다행히 엘 님이 일찍 나와 주셨네요." "그래? 그럼 다행이네." 다행스럽게도 세fl나가 오래 기다리지 않았단다. 그녀 의 눈을 보고 그년가 거짓을 말하지 않았음을 느낀 엘은 그녀의 말을 순순히 납득했다. 그러고는 세레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데 무슨 일로 날 찾아온 거야◎ 궁금함을 담은 채 엘이 물었다. 자신에게 할 말이 있다면 밤에 찾아와도 될 텐데 굳이 수련실 앞까지 온 세레나 의 행동에 의문을 느꼈다. 엘의 의아한 시선을 느꼈는지 세레나가 입을 연다. "잠시 시간 내 주실 수 있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낼 수 있는 게 시간이다. "응. 물론이지." 직감적으로 세레나가 무언가 할 말이 있음을 느낀 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불안했다. 자신은 세레 나에게 해 준 것이 없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모두 내가 잘못했기에 일어난 일. 내가 감당해야 옳은 거야.' 내심 마음의 준띠를 단단히 하는 엘, 근래 들어 자신이 세레나와 카이나에게 얼마나 소홀했는지 깨달으면서 느낀 감정이 더욱 심화되고 있었다. “........?” 세레나는 엘이 심각한 표정을 짓자 의아한 기색을 띠었 지만 이내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엘은 그런 그녀흔 뒤를 따랐다. 잠시 후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세레나의 방이었다. 세레나가 엘에게 자리를 권한 뒤 자신 또한 자리에 않았다. 엘이 그런 그녀를 보며 물었다. '할 말이 있어, 세레나?" 궁금한 것처럼 물어본 엘이었지만 실제 그의 마음은 떨 리고 있었다. 도대체 세레나가 왜 자신을 찾아온 것일까. 설마 자신을 떠난다고 말하려는 건가. 조급하고 불안한 감정이 그의 얼굴에 그대로 투영됐다. 전혀 예상치 못한 엘의 모습에 세레나는 살짝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 실은 에리스 공주님에 대해서 할 이야기가 있어서요............” 그런 세레나의 말은 엘에게 무척 의외였다. 엘의 표정이 급변했다. "응? 에리스 공주? 그걸 왜......... 엘로서는 세레나의 말이 무척 의외일 수밖에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에리스 공주는 레도프 국왕에 의해 자 신에게 청혼을 하였다. 고귀한 귀족들이 사랑하는 이에게 하는 청혼. 그것은 그들의 드높은 자존심의 상징이자 누구도 거부하기 어려운 달콤한 사랑의 속삭임이었다. 물론 이것은 겉으로 보인 면일 뿐 실제로는 정적을 제 거하기 위한 빌미를 만들기 위해, 정략적인 요소를 성립시키기 위해 행해지는 경우가 많다. 에리스 공주가 엘에게 청혼을 한 것도 그런 것과 같은 맥락이다 톨리안 왕국의 입장에서는 엘의 마음이 행여 왕국을 떠나지 않았을까 무척 불안할 게 분명했다. 7클래스 마법사였던 엘이 어느덧 8클래스의 경지에 이르렀으며, 그의 수하인 골든 나이트는 그랜드 마스터와 자웅을 겨룰 수 있는 강한 힘을 보유하고 있으니 말이다. 톨리안 왕국으로서는 소화하기 힘든 먹잇감이라 할 수 있었다. 서부 왕국에 마탑을 세운 8클래스 마법사들은 적게는 세 곳에서 많게는 다섯 곳의 왕국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마탑을 세운다. 그런 반면 톨리안 왕국은 손대기도 어렵고, 자국의 영토라기에도 뭐하던 애물단지 트롤 벨리 하나를 양도하고 8클래스 마탑을 꿀꺽했으니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제 스스로 불안했을 것이다. 그런 불안감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어떠한 계기가 필요했다. 금탑주인 엘이 톨리안 왕국에 영원한 충성을 맹세하든가, 아니면 직접적으로 인척 관계가 되는 방식 등이 말이다. 마법사들은 지극히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존재이기에 그들의 충성심을 끌어내는 건 무척 어렵다. 그렇기에 톨리안 왕국은 가장 간단하면서도 가장 어려운 방법인 인척 관계를 맺는 방법으로 엘에게 접근한 것 이다. 그들로서는 일생일대의 모험이었을 것이다. 엘은 그런 그들의 제안을 멋지게 거절했다. 이미 그에 게는 사랑하는 두 여인이 있으니 그런 여인들에게 미안해 서라도, 뻔히 보이는 톨리안 왕국의 계략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서라도 절대 승낙할 수 없었다. 그 결과 한 여인이 크나큰 상처를 입는 결과가 나왔지 만 그것은 엘로서도 어쩔 수 없는 희생이었다. 엘 때문에 앞으로 결혼을 할 수 없는 몸이 된 에리스 공주, 그녀를 세레나가 언급하고 나선 것이다. 자연히 엘로서는 마음이 답답하고 찜찜할수밖에 없었다. 엘이 입을 열었다. "세레나가 믿을지 안 믿을진 모르겠지만 난 맹세코 에리스 공주에게 마음이 없어. 그건 그녀 또한 마찬가지일 거야. 레도프 국왕은 왕국을 위해서 날 인척 관계로 맺어 두려고 한 것일 터. 이번 일로 그녀가 왕국에서 어떤 취급 을 받을지는 상상이 가 무척 미안하지만 그때는 나로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무척 잔인한 말이었다. 하지만 엘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일국의 공주는 그 존재만으로도 상당한 전략적 가치를 지닌다. 국왕의 딸이라 함은 곧 국왕과 혈연관계라는 뜻. 그런 그녀와 혼인을 한다면 한 나라의 국왕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걸 의미한다. 거기에 공주의 외모가 아름다우면 아름다울수록 그 왕국에서는 더욱 훌륭한 전략적 가치를 보유하게 되는 셈이다. 국력이 약한 왕국은 강대국의 고위 귀족이나 왕족들과 혼인을 시켜 그들의 배경을 얻을 수 있고, 강대국은 세력이 강한 귀족과 혼인을 꾀하여 강한 왕권을 보유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에리스 공주는 톨리안 왕국에 있어 무척 훌륭한 전략적 무기였다. 당장 주변국들과 자국의 고위 귀족들에게서 청혼이 쏟아졌으니 그런 그녀의 가치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그랬기에 엘과 관련된 일로 다시는 결혼할 수 없게 된 에리스 공주는 그야말로 따보지도 못하는 애꿎은 감이 되어 버린 셈이다. 왕국의 입장에서도 청혼을 실패한 그녀의 가치는 한없이 추락할 것이 분명하고, 에리스 공주에 대한 관리는 과거에 비해 한없이 소홀해지고, 초라해질 게 분명했다. 세레나는 엘을 보며 말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겠어요. 그리고 그 말이 저희를 위한 것이라는 것도 알겠고요." 그렇게 말하면서 세레나의 입가에 저도 모르게 미소가 맺혀 나왔다. 엘이 자신들을 위해 일국의 공주가 하는 청혼을 마다했으니 그의 여인으로서 감동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신의 배경은 어느 것 하나 공주보다 나은 게 없는데....... 세레나가 말을 이어나갔다. "저희를 생각해 주셔서 정말 감사하지만........” 지금 이 곳에 에리스 공주님이 와 계세요." "뭣이?” 엘의 표정이 급변했다. 에리스 공주가 이곳에 왔다는 것은 그로서도 정말 의외의 말이 아닐 수 없었다. 엘의 표정을 본 세레나가 말했다. "그녀는 엘 님에게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했어요. 그 리고 금탑에 온 것이지요. 카이나는 에리스 공주를 보고 많이 불평을 했어요." 그 말에 엘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라도 자신의 연인에게 다른 이성이 호감을 가진 채 접근하려 든다면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이건 인간으로서 당연한 감정이다. "그래서 그녀는 어떻게 되었지?" 지금 이곳에 있다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음을 엘은 느꼈다. 그걸 세레나에게 묻는 것이다. 엘의 물음에 세레나가 잠시 우물쭈물했다. 그러더니 이 내 결심을 굳힌 듯 말했다. "에리스 공주님은 금탑을 습격한 초인들을 격퇴하는 것은 물론 엘 님이 금탑에 돌아오셨을 때의 상황까지 모두 목격한 상태예요. 아마 엘 님이 상대하는 적들의 대략 적인 윤곽은 모두 알았을 게 분명해요." "허어..........” 엘의 입에서 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설마하니 에리스 공주가 이렇게 공교로운 타이밍에 금탑을 찾았을 줄 몰랐거니와 자신 또한 에리스 공주가 금탑을 찾아올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엘로서는 자연히 에리스 공주가 금탑을 찾은 이유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무언가 할 말이 있었기 때문인가?' 그의 의문은 당연했다. 아직도 엘은 에리스 공주가 자 신에게 딱히 이렇다 할 호감이 없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 이다. 그런 그녀가 왜 금탑에? 이미 목격해서 어쩔 수는 없지만 마도 제국과정이면 좋을 게 하나 없다는 게 엘의 생각이었다. 특히 검과 마법을 하지 못하는 에리스 공주 같은 일반인에게 더욱더 말이다. 떠오르는 여러 생각에 엘이 잠시 침묵을 지키자 세레나가 에리스 공주가 금탑을 찾아와서 했던 말을 해 주었다. "에리스 공구님은 엘 님을 사랑하신댔어요." 엘의 눈이 부릅떠졌다. "뭐, 뭐라고?” 마음을 다스리는 데 능한 엘조차도 이번 맡만큼은 정말 예상하지 못한 바였기에 한동안 표정을 수습하지 못할 정 도였다. 엘은 의문이 가득 담긴 눈으로 세레나에게 묻고 있었다. 정말로 에리스 공주가 그런 말을 한 것이냐고, 농담이 라면 설령 세fp나라도 가만히 두지 않겠다고 말이다. 혹여 에리스 공주를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 세레나가 거짓을 말하고 있는가를 염두에 둔 상태였다. 그녀의 착한 심정을 안다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런 엘의 눈빛을 이해한 세레나는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 말에는 한 치의 오차도 없답니다" 세레나의 말에 엘이 머리를 부여잡았다. "후우! 정말 골치 아프게 되었군." 엘로서는 정말 골치 아픈 문제에 직면한 것이 아닐 수 없었다. 그가 에리스 공주의 청혼을 과감하게 뿌리칠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어디까지나 정략적인 요소로 자신에게 접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생각해 봐라. 누군가가 목적을 가지고 결혼을 해 달라 하면 그 누가 선뜻 그것에 응해 주겠는가. 이것은 에리스 공주가 얼마나 아름다운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당장 그 마음이 달린 문제였다. 그런데 그녀가 자신을 사랑한다? 이렇게 되면 문제가 달라진다. 에리스 공주는 정말 매력적인 여 인이다 두 눈에 담긴 별빛 같은 눈빛과 일국의 공주로서 절로 갖춘 기품과 매력, 그리고 박식함은 누구도 거부하기 힘든 매력 요소라 할 수 있다. 당장 대륙에서 그 비견될 이가 없는 아름다움을 보유한 세레나와 카이나마저도 에리스 공주를 뛰어넘지 못한다. 그런 여인이 자신을 사랑한다니, 엘로서는 정말 의외이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알 수 없는 감정이 불쑥 자라났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공은 공이고 사는 사다. 엘은 결코 자신의 인생 중대사에 정략적인 요소를 포함시키고 싶지 않았다. 엘이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에리스 공주가 날 사랑한다 하여도 난 그녀를 받아들일 수 없어 내게는 세레나와 카이나가 있으니까. 난 너희 둘의 사랑만으로도 벅차다고 생각해." 대륙을 위진 시키는 젊은 영웅의 말로는 정말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이 엘의 마음이고, 다짐이었다. 그가 마법을 익힌 것은 가족과 오순도순 살아가기 위함이었지, 정략적인 이유로 여기저기 혼담을 받아 수많은 여인들을 거느리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엘의 말에 세레나의 표정이 밝아졌지만 크게 변함은 없다. "엘 님의 말씀은 정말 감사드려요. 하지만 에리스 공주님과의 일은 어떻게든 엘 님과 공주님 사이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봐요. 공주님이 계속해서 엘 님에 대한 사랑 을 품고 있다면 그것 또한 공주님에게 큰 비극 아니겠어요? 저 또한 에리스 공주님을 받아들이는 건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모든 건 엘 님이 처리하셔야 할 문제. 그래 서 저는 공주님이 엘 님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그 걸 알고 계신 상태에서 엘 님이 한 번쯤 그녀를 만나 봐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었던 것뿐이에요." 나긋나긋한 세레나의 말에는 한 껌 틀림이 없었고, 구구절절 옳은 말들뿐이었다. 그런 그녀의 말에 엘로서도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사랑한다고 찾아온 여인이 있는데 그녀를 만나 보지도 않는다는 건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가혹한 처사였다. "세레나의 말이 무엇인지 잘 알겠어. 그럼 세레나의 말 대로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지." 세레나가 미소 지었다. "네, 제 말을 들어주셔서 감사해요." "감사하다니. 세레나, 넌 내 부인이 될 여자야. 당연히 나에게 조언을 해 주고, 내 행동에 관여할 권한이 있어. 그러니 다시는 그런 일로 감사하다는 말을 하지 마. 내가 섭섭하니까." '내 부인' 이라는 구절에서 세레나는 마음이 찡해졌다. 그러고는 다시 빙그레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알겠어요, 엘 님. 그럼 감사하지는 않고 정말 고마워요" 끝까지 고맙다고 맡하는 그녀의 모습에 엘도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하하, 내가 졌군," 그렇게 말하면서 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가시려고요?" "이왕 말이 나온 김에 가는 게 낫겠지. 괜히 시간만 끌 어 봤자 좋을 게 없잖아. 안 그래?' "그건 그렇죠." 남녀 간의 일은 시간을 끌수록 좋지 않은 게 다반사다. 연애 맹탕인 세레나도 최소한 그것은 알았기에 엘의 말에 순순히 동의했다. "잘 이야기해 볼 테니까 너무 걱정은 하지 마." "네, 알겠어요." 세레나를 다독인 엘은 그녀의 방을 벗어났다. 그리고 긴 금탑의 복도로 나온 엘. "에리스 공주가 금탑에 왔단 말이지. 그렇다면 접객실에 있겠군." 엘의 발걸음이 손님이 편하게 머물게 하기 위한 접객실로 향했다. '도대체 내가 왜 이러지?' 에리스 공주는 불안했다. 무엇이 불안한지는 그녀도 처음에는 잘 몰랐다. 처음 금탑주를 보았을 때 까닭 없이 그가 불안해 보였고, 두 번, 세 번 그를 볼 때마다 그에 대한 불안감이 점점 증폭되는 걸 느꼈다. 그것은 그 누구도 모르는 여인의 직감. 상대방에게 호 감을 가졌을 때에서야 비로소 느낄 수 있는 그런 감각이었다. 사람들의 눈에는 금탑주의 모습이 분명 이러할 것이다. 어린 나이에 8클래스라는 지고한 경지에 오른 천재 마 법·라. 왕국의 중추를 이루는 마탑의 탑주. 자신감이 넘치고 추후 대륙의 판세를 좌지우지할 인재. 하지만 에리스 공주의 눈에 비친 엘의 모습은 결코 그러한 모습이 아니었다. 겉으로는 당당함을 표현하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 속에 포함된 내용물은 마치 뭐랄까, 극도의 긴장감과 불안감이 아슬아슬한 균형을 이루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에리스 공주는 당연히 그것이 자신의 착각이라 여겼다. 대륙에서 금탑주에게 불안감을 심어 줄 것이 무엇이 있는가! 그는 단신으로 성국과 맞섬으로써 전설이 되었고, 8클래스 마법사 게이런즈를 단신으로 죽인 뒤 8클래스의 경지에 올라 스스로 그 명성을 확고히 했다. 그렇게 앞날이 창창한 금탑주에게 불안감이라니? 그것은 당치도 않은 말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의문은 오늘이 되어서야 풀렸다 그녀는 여태껏 금탑주에 대한 단면밖에 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엘은 그녀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거대한 존재와 맞서 왔던 것이다. 9클래스 마법사. 이 얼마나 지고한 경지란 말인가. 마법사들 사이에서 클래스 간의 차이란 매우 까다롭고 부담되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이 보기에는 단지 숫자 하나의 차이로 보이 지만 정작 마법사들 본인들이 느끼기에는 그 숫자 하나 차이가 절대적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당장 7클래스 마법사들이 수십 명 모인다고 해도 8클래스 마법사 하나를 어쩌지 못한다. 이 예가 마법사들 간에 한 단계 차이가 얼마나 큰지 단적으로 알려 주고 있지 않은가. 마치 소드 마스터 이하의 검사들이 그랜드 마스터의 마나 장악에 의해 본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처럼. 사실 한 단계 차이가 이토록 극심한 차이를 보이는 만큼, 8클래스 마법사와 9클래스 마법사 간의 차이가 어느 정도일지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거기에 그를 따르는 다수의 초인들. 직접 눈으로 목격했으니 그녀가 할 말이라고는 정말 대단하다는 감탄사 섞인 말밖에 없었다. 초인들 간의 격돌은 마치 세상이 뒤집히는 듯한 어마어마한 여파를 발휘했으니 말이다. 단지 그녀가 본 것은 온 세상이 부서지는 듯한 강렬한 힘의 여파와 간혹 흐릿하게 보이는 초인들의 움직임뿐이었다. 그런 그들과 여태껏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니. 그제야 그녀는 엘이 왜 불안해하고 긴장했어야 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대륙의 모든 사람들은 이런 금탑주의 모습을 모르고 있어. 만약 그가 없었다면 마도 제국은 진즉에....... 대륙을 통일했을 거라 말하려던 에리스 공주는 그 자리에서 흠칫했다. 아무리 자신이 한 왕국의 공주라 하여도 대륙의 전력을 너무 낮게 잡아 평가한 것이다. 비록 제국들의 틈바구니에서 언제나 신음을 흘리는 왕국들이지만 지난 긴 세월 동안 그들이 비축한 힘은 결코 만만하게 볼 성질이 아니었다. 왕국들은 틈이 나는 대로 막대한 지원을 퍼부어 기사들 의 성장을 장려했으며, 그 결과 각 왕국에서는 상당수의 소드 마스터가 탄생하게 되었다. 거기에 제국과 거듭된 전쟁으로 단련된 각국의 정예병 들 또한 결코 만만하게 볼 성질이 못 되었다. 즉, 엘이 대륙을 위해 힘써 온 것이 맞으나 그가 없었다면 대륙이 마도 제국에 의해 제패되었을 거란 말은 조금 어폐가 있었다. 물론 그 사실에 동의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테지만 말이다 "내가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다니....... 후우, 내 처지가 참으로 기구하네." 문득 자신이 무슨 생각에 빠져 있나 고민하던 에리스 공주는 한숨을 내쉬었다. 당장 자신은 금탑주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자 이곳 에 왔다. 헌데 자신은 금탑에 벌어진 일 때문에 받은 충격으로 엉뚱한 고민을 하고 있으니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마침 금탑주님의 몸이 모두 나았다고 하셨으니 내 마음을 전하자. 그리고 홀가분하게 왕궁으로 돌아가는 거야." 그녀는 금탑주가 자신의 마음을 받아 줄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금탑주에게 전하고 싶었다. 그것은 여태껏 공주의 삶을 살아오면서 한 번도 자신의 마음에 솔직할 수 없었던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이기도 했다. 게다가 이번에 카시아스 왕국에서 주최된 왕국들 간의 회의가 끝났다고 한다. 총사령관을 다이어드 공작으로 하 고, 각국에서 정예병들을 차출하여 전선에 파견하기로 말이다. 모든 회의가 끝난 만큼 각국의 국왕들이 자국으로 돌아 갈 것이 분명했다. 레도프 국왕이 왕궁에 도착하였는데 자신이 왕궁에 없다면 뭐라 할 것이 분명할 터. 금탑주와 혼인하는 데 실패한 자신이 여러 가지 걱정거리를 국왕에게 안겨 준다면 왕국에게도 더욱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이다. 때문에 에리스 공주는 내일쯤 모든 일을 끝맺음하려는 것이다. 그렇게 그녀가 결심을 굳힐 때였다. 그녀가 머무는 방 밖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에리스 공주는 순간 긴장한 기색을 띠었다. 현재 시간은 야심한 밤. 따라서 자신의 방으로 올 인물은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도둑?' 잠시 밖에 있는 존재에 대해 의문을 품은 그녀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어떻게 도둑 따위가 감히 금탑에 들어설 수 있겠는가 설사 황궁에 침입할 수 있는 도둑이랄지라도 다크 포그에 의해 입구가 완전 차단된 금탑을 침입할 수는 없다. '그럼 도대체 누가....... 빠르게 회전하던 그녀의 머리는 방 밖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굳어 버릴 수밖에 없었다. "엘리미스입니다. 공주님, 들어가도 괜찮겠습니까?' 전혀 예상치 못한 이의 방문에 잠시간 굳은 에리스 공주. 설마하니 엘이 찾아올 줄이야. 에리스 공주로서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놀란 에리스 공주가 한동안 침묵하자 방 밖에 서 있던 엘의 음성이 다시 들려온다. "공주님. 주무십니까?” 아직 밤이 깊지는 않았지만 일찍 잠을 잔다면 충분히 잘 수 있는 시간이다. 방밖에 서 있던 엘은 방 안에서 아무런 대꾸가 없자 에리스 공주가 잠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발걸음을 막 돌리려던 찰나, 방 안에서 에리스 공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자고 있지 않아요. 들어오셔도 됩니다, 금탑주 님." 에리스 공주의 목소리에 엘의 몸이 멈칫했다. 이윽고 그는 방 문고리를 잡았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엘이 방문을 열었다. 그러자 다소곳하게 앉아 있는 에리스 공주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볼 때마다 느끼는 점이지만 정말 아름다운 여인이다. 카이나는 활발하고 건강미가 넘쳐나고 세레나는 무엇이든지 포용해 줄 것 같은 포근한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면, 에리스 공주는 마치 인형과 같은 단아함과 지적인 느낌이 동시에 들었다. 비록 그 마음은 받아들일 수 없다지만 이런 여인이 자신을 좋아해 주다니, 남자로서 정말 만족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엘이 방 안에 들어서자 에리스 공주가 그에게 자리를 권했다. "이곳에 앉으세요, 금탑주님." "예,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엘은 약간 멋쩍은 표정을 지으면서 에리스 공주가 권한 자리에 착석했다. 사실 이런 야심한 밤에 여성의 방에 들어서는 것은 무척 실례가 되는 행동이다. 자칫 레이디에게 씻을 수 없는 소문을 제공하고 그녀의 명예에 누를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은 금탑이다. 소문을 퍼뜨릴 그 누구도 없으며, 이미 에리스 공주는 금탑주에 의해 그런 소문이 퍼질 여지가 일찌감치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조건들이 충족되었기에 엘이 아침까지 기다릴 것 없이 이렇게 밤에 그녀를 찾은 것이다. 자리를 권한 에리스 공주는 엘을 조용히 바라본다. 다시 봐도 정말 멋진 청년이 아닐 수 없다. 사람을 좋아하는 데 외모가 결정적일 수는 없지만 그래도 가장 먼저 보게 되는 것은 외관이다. 그리고 그 사람을 겪으면서 그 사람의 내면을 단편적으로나마 알게 되고, 모든 요소들이 종합되어 어떤 사람인 가에 대해 판단을 내리게 된다. 그런 면에서 엘은 일단 외모로 따진다면 백 점 만점을 주고 싶은 인물임이 분명했다. 부드러운 실크와 같은 금발과 그의 어머니인 실피르를 빼닮은 아름다운 얼굴. 거기에 금빛으로 은은하게 빛나는 안경까지. 그 요소 하나하나가 그의 외모를 더욱 돋보이게 해 주고 있었다. 자리에 앉은 엘은 잠시 에리스 공주를 응시하다가 입을 열었다. "우선 야심한 밤에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엘의 정중한 사과에 에리스 공주가 손사래를 쳤다. "아니에요. 딱히 잠이 오지 않는 밤이기에 결코 실례될 것이 없답니다." "예, 공주님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제가 공주님을 찾아온 것은 드릴 말이 있어서입니다” 에리스 공주가 조금 놀랐다. "제게 할 말이 있다고요" “예, 아마 저나 공주님에게 중요한 내용이 될 것입니다" 엘의 말에 에리스 공주는 절로 긴장감이 팽팽하게 당겨지기 시작했다. 서로에게 중요한 내용이라면 한 가지다. 바로 두 사람 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 일 것이다. 에리스 공주는 갑작스러운 엘의 말에 순간 당황했다. 그러다가 이내 표정을 수습하고는 당당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래, 무슨 내용인지요?" 어차피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만큼 그녀는 당찼다. "예, 그러니까........ 일단 이곳까지 찾아오신 공주님께 제가 인사를 드려야 하는 게 당연하고.... 그때 파티에서 의 말도 더하고자 해서입니다." 너무 당당한 에리스 공주의 태도에 순간 당황한 엘은 말까지 더듬었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수습하고는 에리스 공주에게 시선을 주었다. "예, 우선 금탑에 방문해 주신 공주님을 진심으로 환영 하는 바입니다. 머무시는 동안 금탑을 둘러보시길 원했는데......음, 안 좋은 것들을 보게 되어서 탑주인 제 입장에 서 무척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엘이 말하는 안 좋은 것들이란 금탑에서 벌어진 전투들을 말하는 것이리라. 에리스 공주는 그 말에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안 좋은 모습이라 말씀치 마세요. 제가 보기에 그 모습은 대륙을 위해, 그리고 저희들을 위해 싸우시는 모습 이었던걸요. 엘 님이 그렇게 말하시면 그때 전투를 위해 나서셨던 분들 모두에게 누가 되는 것이라 생각해요." "아....... 그녀의 말에 무언가를 느낀 엘 느낀 바가 있는지 엘이 사과했다. "그렇군요. 제가 실수를 했습니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모습에 에리스 공주는 미소 지었다. "보통 높은 경지를 개척하신 분들은 그 자존심이 남다르죠. 때문에 남의 말을 쉽게 인정하려 들지 않는답니다. 그것이 그분들의 유일한 결점일지도 모르지요. 그런데 금 탑주님께는 그런 모습조차 볼 수 없군요. 정말 금탑주님은 대단하세요." 이보다 더 극찬일 수가 없다 에리스 공주의 말에 엘이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과찬에 어쩔 줄 모르게 만드시는군요. 저는 공주님이 생각하시는 것처럼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에리스 공주가 웃음 지었다. "세상에 금탑주님이 대단하지 않다면 과연 누가 대단 할까요. 금탑주님은 너무 자신을 폄하하지 마세요. 대륙 사람들의 눈에는 정말 대단한 존재가 당신이니까요." 말을 잠시 멈춘 에리스 공주가 말을 이었다. "그 누가 이십 대에 8클래스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을 까요? 그 누가 대륙을 위해 초인들과 맞설 생각을 할까요? 안 그런가요, 금탑주님?" 이미 세레나에게 대략적인 이야기를 모두 들은 터라 에리스 공주의 말에는 거침이 없었다. 하지만 그 말은 엘에게 적잖이 부담되는 말이었다. 엘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 "공주님의 말은 반 정도만 맞았습니다. 분명 제가 나선 것은 맞으나 전 남을 위해 나선 것이 아닙니다. 8클래스의 경지를 개척한 것은 제가 앞으로 살아감에 있어 도움 이 되기 위함이며 대륙의 초인들과 맞서게 된 것은 그들의 사상과 내 사상이 맞지 않아 결국 대립할 수 밖에 없기 에 택한 것입니다. 결코 대륙인들을 위한다는 거창한 대의명분은 없습니다. " 엘은 진심이었다. 세상 사람들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남을 걱정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걱정한다. 그러한 맥락으로 생각하면 된다. 엘은 자신을 위해서 8클래스의 경지를 개척한 것이고, 마도 제국과 맞서는 것 또한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이다. 대륙인들을 구하겠느니 뭐니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부수 적인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것은 에리스 공주에게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 인가 보다. 그녀는 한 치의 물러섬없이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백 명을 죽이면 살인마이며, 만 명을 죽이면 영웅이라 합니다. 어떠한 것에 중점을 두었는가는 오직 금탑주님에 게만 국한될 뿐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은 금탑주님의 행동이 자신들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까지 말하니 엘로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의도하지 않아도 자신이 하는 행동은 어느덧 대륙 전체를 위한 일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왕이면 누이 좋고 매부가 좋다고, 자신을 위한 일을 하면서 다른 이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것 또한 더욱 좋은 것이다. 그렇게 여긴다면 좋겠다고 생각한 엘은 피식 웃으며 에리스 공주를 바라보았다. 왠지 자신을 납득시키려는 그녀의 행동에 웃음이 흘러나온 것이다. '사람을 비판하여 깎아내리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드높여 주려고 애쓰는 모습이라니...... 정말 재미있구나.' 굳이 자신을 높여 주려는 에리스 공주의 행동에 엘은 거절하지 않았다. "그렇군요. 공주님의 말씀 명심하겠습니다." "제 말을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완벽하게 무시당할 수도 있는 말을 엘은 끝까지 들어주고 수긍하는 빛까지 보이자 에리스 공주가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엘은 고개를 저었다. "옳은 말을 수용하는 건 당연한 것입니다. 오히려 제가 감사해야 할 상황인데 공주님이 감사하다니요." 그렇게 말한 엘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조금씩 사라졌다. 어느덧 진중한 표정으로 돌아온 엘이 입을 열었다. "이제 제가 공주님에게 찾아온 연유를 밝혀야겠군요. 전 솔직히 공주님이 금탑에 찾아온 게 무척 의외입니다." 엘의 말에 에리스 공주의 표정이 스르르 가라앉았다. 그리고 물었다. "왜 의외지요? 제가 금탑에 찾아온 것이 그렇게 잘못된 일인가요?' 엘이 고개를 젓는다. "그런 뜻이 아닙니다. 단지 공주님에서는 엄연히 한 나라의 공주이시며 외부로 쉽게 외출할 수 있는 신분이 아닙니다. 게다가 왕궁에서 금탑까지는 무척 먼길이지요." “......” 에리스 공주는 묵묵히 엘의 말을 들었다.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에 엘이 계속해서 말을 잇는다. “다시 말하지만 공주님은 고귀하신 분입니다. 그런 분 이 이렇게 먼 길을 왔다는 건 조금 문제가 있습니다. 제가 내일 워프 게이트를 열어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전 더 이상 고귀한 신분이 아니에요." 에리스 공주가 엘의 말을 끊었다. 자신의 말이 끊기자 엘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사이 에리스 공주가 할 말을 내뱉고 있었다. "금탑주님에게 청혼이 거절당한 순간부터 전 더 이상 왕국의 고귀한 공주의 신분으로 있을 수 없게 되었어요. 전략적으로 무척 유용한 가치를 지닌 제가 한순간 결혼할 수 없는 몸이 되었으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요. 물론 금탑 주님을 원망하는 건 아니에요. 제가 이곳까지 온 까닭은 금탑주님에게 할 말이 있어서랍니다." 애절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에리스 공주의 눈빛에 엘은 순간 마음이 철렁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재빨리 마음을 추스른 엘은 애써 에리스 공주의 시선을 외면했다. "공주님은 고귀하신 분입니다. 공주님께서 청하신다면 제가 얼마든지 왕궁으로 갈 수 있습니다." 자신을 피하려는 기색이 역력한 엘을 보자 에리스 공주의 표정이 처연해졌다. 짧은 순간 에리스 공주의 표정이 여러 번 변했다. 그리고 무언가 결심을 굳혔는지, 입술을 꼬옥 깨문 그녀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 내용은 엘에게 있어 청천벽력의 소리였다 "전 당신을 좋아해요." “.........” "처음에는 몰랐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당신을 좋아한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어요. 무엇이 계기인가 고민해 보면 그건 잘 모르겠어요. 그러나 당신을 좋아하는 건 틀림없어요. 저 에리스는 엘리미스, 당신을 사랑해요." 직설적인 에리스 공주의 말에 엘은 극도로 당황했다. 세레나에게 이야기를 듣긴 했어도 설마하니 그녀가 이렇게 직설적으로 나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게다가 자신을 사랑한다니. 엘로서는 당혹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한참 동안 긴 침묵을 유지하던 엘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공주님의 마음, 무척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하지만 전 이미 책임져야 할 두 여인이 있습니다. 공주님의 마음은 그저 제 마음에 묻어 두고 싶을 따름입니다" “..........” 완곡한 엘의 거절에 에리스 공주가 입술을 강하게 깨물었다. 살갗이 터져 피가 흘러내렸지만 그녀는 그것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에리스 공주가 엘의 눈을 응시하며 말했다. "당신이 제 마음을 받아 주지 않아도 제 마음은 이미 정해진 상태예요. 어차피 왕국에서도 버려질 몸, 제 남은 삶을 다 바쳐서라도 당신의 마음을 얻고 말겠어요. 금탑은 대륙 십대 상단 중 하나인 디벨 상단을 거느리고 있다고 들었어요. 설마하니 여인 하나를 금탑에 들여 놓을 능력이 없을 거라 생각하지 않아요." 방금 전까지만 해도 왕궁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던 에리스 공주가 계획을 급히 변경했다. 엘은 정말 자신의 마음을 가슴에만 묻어 둘 생각이었던 것이다. 에리스 공주의 입장에서 이대로 절대 물러설 수 없었다. 인간은 무척 욕심이 많은 동물이라서 처음의 목적을 이루면 그다음 더욱 큰 것을 성취하려 든다. 에리스 공주 또한 처음에는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것으로 만족하려 하였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마음을 받아들여 주지 않고, 예상 보다 더욱 차갑게 대하는 모습에 울컥하여 금탑에 남겠다고 한 것이다. 엘의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고 당혹스러웠을 터였다. 하지만 에리스 공주 또한 그에 못지않게 당혹하고 있었다. 이미 멈출 수 없는 길을 오고 말았다. 이대로 물러서는 것은 애초에 자신의 마음을 밝히지 못 한 것보다 더욱 못하다. 그녀가 결연한 표정으로 엘을 바라보며 말했다. '마법을 전개하고, 무슨 수를 써서 저를 떼어 놓으려고 해도 마찬가지예요. 전 당신이 저를 받아 줄 때까지 결코 물러서지 않을 거예요." 에리스 공주의 말에 압도된 엘은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에리스 공주는 금탑에 남게 되었다. 7. 엘의 제안과 엘의 깨달음 왕국들의 회합이 끝난 후, 레도프 국왕은 곧장 왕궁으로 귀환했다 카시아스 왕국의 왕궁이 화려하고 더욱 편하다고 해도 자신의 집에 돌아온 기분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불편한 이 곳이 오히려 천국이었다. 하지만 레도프 국왕은 왕궁으로 돌아온 기분을 마냥 즐길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왕궁으로 귀환한 그의 귀에 에리스 공주가 금탑으로 갔다는 소식이 들려왔던 것이다. "도대체 에리스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냐!" 어이가 없는 나머지 레도프 국왕은 평소와 다르게 벌컥 화를 냈다. 그런 그의 추궁에 할 말이 없는 마법사들과 기사들은 고개를 푹 숙였다. 기사들은 에리스 공주를 끝까지 만류하지 못하였기 때 문이고 마법사들은 에리스 공주와 함께 떠난 데실론 때문에 호된 질책을 들어야 했다. 한동안 기사들과 마법사들을 질책한 레도프 국왕은 그 들을 내보낸 뒤 자리에 털썩 앉아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에리스 그 아이는 무척 현명한 아이인데, 설마 그런 짓을 할 줄이야. 내가 왕궁에 없었던 것이 오히려 불행이 되었구나." 겉으로는 화를 내지만 실제로는 레도프 국왕의 마음은 안타까움이 가득했다. 누구보다 아꼈던 딸이 바로 에리스다. 무척 영리한 그녀는 제1왕자파와 제2왕자파가 팽팽하게 대립할 때 레도프 국왕에게 해결책을 제시하기도 했었다. 뿐인가, 고민이 많을 때 항상 그 고민을 들어 주던 하나 뿐인 딸이자 상담 상대였다. 그런 딸을 정략적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고, 막상 엘에 게 거절을 당했을 때 레도프 국왕은 그 누구보다 안타까워하고 슬퍼했다. 편치 않은 마음으로 왕국들의 회합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그에게 이런 참담한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한동안 착잡한 표정을 짓고 있던 레도프 국왕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에리스가 어리석지는 않으니 스스로 손해가 될 짓은 하지 않겠지. 일단 지켜보는 쪽으로 결정을 내려야겠구나." 에리스 공주의 얼굴을 떠올리니 자연히 금탑주의 얼굴 또한 떠올랐다. 금탑주를 떠올리니 레도프 국왕의 얼굴 표정이 복잡해 졌다 왕국들의 회합에서 노골적으로 금탑주에 대한 욕심을 보인 덱스론 국왕과 아드리안 국왕이 못내 걸렸던 것이다. 하지만 모든 선택권은 애초에 엘에게 있다. 그의 결심 하나면 금탑은 당장 이사할 수 있는 능력을 충분히 지니고 있다. 자국에 소속되어 있으면서도 그들을 제한하지 못한다. 현실이 레도프 국왕을 더욱 착잡하게 하였다. "제국과의 일전을 앞둔 지금 상황에 이러한 감정은 좋지 않거늘.........레도프 국왕의 얼굴에 서린 근심이 더욱 깊어졌다. 그런 레도프 국왕과 비슷한 표정을 짓는 이가 있었다. 바로 엘이었다. 엘은 어젯밤에 벌어진 일을 떠올리며 표정을 굳혔다. "일이 이렇게 악화가 되다니........” 에리스 공주를 잘 설득하여 왕궁으로 보내야 할 일이 복잡하게 꼬이자 엘의 표정 또한 복잡하게 변했다. 설마하니 에리스 공주에게 그런 면이 존재했을 줄이야. 감성에 비해 이성이 월등히 강한 그녀라면 사태를 냉정 하게 판단하여 자신의 말을 순순히 듣고 물러날 줄 알았다. 그런데 그녀는 엘의 말을 듣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마음을 받아 줄 때까지 금탑에 남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정말 난감하고 어이가 없는 상황이었다. 여러모로 방법을 강구하던 엘은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법이 없으니 일단 국왕을 만나서 이야기를 해 봐야겠다." 에리스 공주의 청혼을 거절한 뒤로 알게 모르게 레도프 국왕을 만나는 게 꺼려졌던 엘은 하는 수 없이 레도프 국왕을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데실론이 돌아가야 하니 그와 같이 간다면 조용히 입궁할 수 있을 게 분명했다. "일단 왕궁으로 들어가야겠군. 어차피 할 이야기도 있었으니 이번 기회에 같이 해 두는 게 좋겠지." 그러면서 자리를 벗어나는 엘의 눈에는 여태까지 보이 지 않던 새로운 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금탑주님?" 데실론의 노안에는 감출 수 없는 불안감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왕궁으로 돌아가려던 그는 에리스 공주 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를 들었다. 바로 에리스 공주가 금탑주에게 왕궁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소리를 했다는 것이다. 당황한 데실론은 어떻게 해서든 그녀를 설득하려 했다. 하지만 이미 그녀의 결심은 확고한 상태였다. 엘에게 달려가 그에게 설득해 주길 부탁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게 부질없는 일임은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이미 에리스 공주와 이야기를 나누어 그녀의 확고한 결심이 흔들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알았기에. 결국 데실론의 예상대로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데실론은 왕궁으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굳혔다. 물론 그 혼자 왕궁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엘이 그와 함에 왕궁으로 입궁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그런 엘의 말에 데실론의 표정이 환해졌다. 엘이 함께해 준다면 그로서도 상당한 책임을 덜 수 있고, 왕궁에 온 김에 마법사들을 불러 마법 강연을 부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들이 왕궁으로 가는 일정이 빠르게 정해졌고, 엘과 데실론은 공간 이동 마법진 위로 선 상태였다. 톨리안 왕궁에서 곧장 금탑으로 들어서는 것은 금탑주의 허락 없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금탑에서 왕궁으로 들어서는 것은 엘의 실력으로 충분히 가능하다. 엘이 마법진을 활성화시키며 데실론에게 말했다. "에리스 공주님에 대한 모든 사실은 제가 말씀드릴 것 입니다. 데실론 님은 그저 조용히 복귀하시면 됩니다." 엘의 표정에는 무척 중요한 이야기도 함께 곁들일 것이 라는 게 포함되어 있어 데실론으로서는 순순히 납득할 수 밖에 없었다. 이윽고 마법진에서 찬란한 빛과 함께 그들의 몸이 사라 졌고,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톨리안 왕궁이었다. 이미 공간 이동 마법진에서 신호가 왔기에 상당수 마법 산들이 공간 이동 마법진 주변으로 모여든 상태였다. 데실론 혼자 공간 이동을 해 왔다고 생각하던 마법사들은 금색 로브를 걸친 젊은 마법사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두 눈을 크게 떴다. 이런 모습을 한 마법사는 대륙에서 단 1명뿐이다! 그것을 인지한 순간 마법사들인 공손하게 인사했다. "금탑주님을 뵈옵니다!" 마법사들이 취하는 예는 참으로 애매했다. 그들의 모습을 보면 얼핏 국왕에게 취하는 예와 거의 다른 게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마법사들이 8클래스 마법사를 대하는 것과 기사들이 그랜드 마스터에게 취하는 예와 일맥상통 한다고 할 수 있다. 한 나라의 수장인 국왕은 그 자체만으로 존귀한 존재이기에 예를 취하는 것이고, 8클래스 마법사나 그랜드 마스터는 극한의 수련으로 누구도 넘보지 못할 절대적인 경지를 개척한 자들이다 당연히 그 분야에서 한 나라의 왕과도 같은 위치에서 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각국의 군주들도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바 였다. 자신들이 충성의 대상이라면, 8클래스 마법사와 그랜드 마스터는 마법사들과 기사들의 숭배대상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엘의 등장으로 조용하던 왕궁이 시끌시끌해졌다. 금탑주가 등장했다는 말에 마법사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내면서 그에게 예를 취했고, 한동안 엘은 그들의 예를 받으면서 인사를 나누기에 바빴다. 이대로 가다가는 끝이 없을 것 같아 데실론이 만류했다. "허허, 이만 금탑주님을 놓아주시게. 금탑주님은 국왕 전하께 드릴 말씀이 있어서 온 것이니 말이네. 대신 왕궁 을 떠나기 전에 자네들을 불러 마법에 대한 강의를 해 주신다고 했으니 그때 꼭 참가나 하게나." 엘이 마법 강의를 해 준다는 말에 모든 마법사들의 눈이 반짝였다. 8클래스 마법사가 하는 마법 강의는 자신들의 마법 경지에 새로운 한 획을 그어 줄 것이 분명하다. 그런 마법사들의 심정을 꿰뚫은 데실론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허허, 내가 이렇게 말을 했는데도 이 자리에 있는가? 어서 질문할 것들과 여러 가지 자료를 준비해야지." "아, 알겠습니다 저희가 실수했군요." "이따 뵙겠습니다, 금탑주넘." 데실론의 말에 마법사들이 황급히 자리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평소 마법을 익혀 오면서 산더미 같은 궁금증을 쌓아 놓은 상태라 그것을 정리하지 않으면 자칫 소중한 기회를 놓칠 수 있음을 안 것이다. 마법사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데실론이 미소 지은 채 엘을 바라보았다. "허허, 이따가 단단히 각오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엘은 빙그레 미소 지었다. '마법사들이 강해진다는 건 왕국의 큰 힘이 된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이왕 마음을 먹었으니 오늘 제 밑천을 낱낱이 드러내도록 하겠습니다." 엘의 말에 데실론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허허, 그렇다면 저도 참가하지 않을 수 없겠군요. 저 또한 궁금한 것이 산더미같이 많으니 제 질문은 꼭 받아 주셔야 합니다?" "물론입니다. " 엘이 빙그레 미소 지으며 대답하자 데실론이 미소를 머 금은 얼굴로 고개를 꾸벅 숙인 뒤 사라진다. 데실론을 일별한 엘은 공간 이동 마법진 근처에서 있던 기사에게 말을 건넨다. "국왕 전하를 뵙고 싶습니다. 가능하겠습니까?" 기사가 부동자세를 취한 채 대답한다. "먼저 국왕 전하께 보고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때 까지 잠시 대기실에서 기다려 주십시오. 제가 안내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부탁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엘 또한 먼저 기별하지 않고 갑자기 찾아온 점을 인정 했기에 순순히 기사의 뒤를 따랐다. 결국 엘은 약 세 시간 동안 대기실에서 기다려야 했다. 그것도 레도프 국왕이 시간을 가장 앞으로 당겨 주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꽤 오랜 시간 왕궁을 떠나 있던 탓에 국왕의 결재를 필요로 하는 일들이 상당히 쌓여 있는 상태였던 것이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엘은 오히려 무리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무척 여유 있는 모습으로 레도프 국왕을 기다렸다. 그런 엘의 모습을 보고 받은 레도프 국왕은 서두르던 업무를 제 페이스대로 처리할 수 있었고, 애초에 정해 놓은 시간보다 일찍 엘과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엘은 레도프 국왕을 보자 먼저 인사를 건넸다. "국왕 전하를 뵙습니다." 레도프 국왕 또한 엘을 반겼다. "어서 오십시오, 금탑주." 엘을 반겼지만 레도프 국왕의 태도가 뭔가 어색함이 존재했다. 그에 린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러십니까, 국왕 전하?' 예리한 엘의 반응에 레도프 국왕이 움찔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허허 !" 웃음으로 넘기면서 그는 한 줄기 식은땀을 홀려야 했다. 왕국 회합의 자리에서 각국의 국왕들이 금탑주를 탐냈기에 자신도 모르게 금탑주를 대함에 있어 어색함이 존재 한 듯했다. 엘은 어딘지 어색한 레도프 국왕의 태도에 무언가 있음 을 느꼈지만 굳이 깊게 파고들 필요가 없었기에 더 이상 묻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실은 제가 국왕 전하께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이렇게 청하게 되었습니다." "무슨 할 말이?" 레도프 국왕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태연한 안색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가슴이 철렁했다 각국의 국왕들의 반응 때문에 혹여 엘이 타국으로 망명 하겠다는 말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레도프 국왕의 오해에 불과했다. 엘은 전혀 다른 화제를 들었다. "우선 에리스 공주님의 건은 무척 유감입니다." “....!” 엘의 말에 레도프 국왕의 표정이 굳었다. 에리스 공주의 일이 언급되자 엘을 대하던 어색함은 사라지고 한 여인의 아버지로 변모한 것이다. 그러나 레도프 국왕은 그 건에 대해 엘을 추궁할 수 없었다. 엘이 마음에 들었다면 그 자리에서 에리스 공주의 청혼 을 받아들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엘에게는 이미 장래를 약속한 여인이 있고, 그것을 알면서도 에리스 공주에게 청혼을 종용한 레도프 국왕 본인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죄송하다는 말밖에 달리 할 말이 없습니다."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는 엘. 그럼에도 레도프 국왕의 굳은 표정은 펴질 줄 몰랐다. 레도프 국왕이 굳은 표정을 유지한 채 입을 열었다. "그 점에 대해서는 다른 말이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잘못을 따지자면 나의 잘못이 큰 터! 금탑주님이 미안해 할 이유는 없습니다. " 레도프 국왕이 이렇게까지 말하니 더 이상 엘이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엘은 에리스 공주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조금 각색하여 들려주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공주님께서는 조금 마음을 추스를 기간이 필요한 듯합니다. 그런 면에서 공주님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없는 왕궁은 부적합하다고 여기셨는지 저희 금탑에 찾아오셔서 한동안 머물고 싶단 의견을 보이셨습니다. 국왕 전하께서 허락만 하신다면 당분간 공주님을 금탑에 머물게 하고 싶습니다." 엘은 차마 레도프 국왕에게 에리스 공주가 자신의 마음 을 얻을 때까지 금탑에 머물겠다고 말했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으음! 에리스가.......” 레도프 국왕은 엘의 말에 신음을 홀렸다. 청혼을 거절당한 이상 에리스 공주를 주목할 이는 사실 상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에리스 공주는 왕실에 있어 불명예스러운 인물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금탑에 머문다는 건 사실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허나 혹여 그걸 가지고 입방아를 찧는 이가 존재한다면 에리스나 금탑주에게 하등 도움될 것이 없다. '어차피 귀족들은 이권을 차지하기 위해 눈에 불을 컥 고 있는 상태. 굳이 에리스에게 정신을 쏟고 있는 이는 없으렷다.' 제1왕자파와 제2왕자파를 모두 숙청한 톨리안 왕국의 왕권은 왕국 역사상 최고를 달리고 있었다. 절대 넘보지 못할 왕권 아래 자그마하게 남은 이권이라도 차지하기 위해 귀족들이 눈에 불을 켜고 치열한 암투를 벌이고 있는 형국이었다. 그런 와중에 굳이 에리스 공주의 위치를 파악하려고 애 쓰는 인물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레도프 국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것도 괜찮은 방법입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안 좋은 소문이 퍼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 엘이 웃음을 띠며 말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염려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 명성도 있고 디벨 상단도 있습니다. 공주님은 현재 저의 여 인들이 말동무도 되어 주고 있으니 오랜 시일이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 마음이 몹시 찔렸지만 엘로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레도프 국왕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으로서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에리스 공주가 다시 예전의 모습을 되찾게 하는 것이다. 안 그래도 왕국 회 합에 가기 전에 궁에만 있던 에리스 공주 때문에 적잖게 마음고생을 했다. 그런 점을 엘이 해결해 주겠다 하니, 레도프 국왕으로 선 고마울 따름이었다. "알겠습니다. 금탑주님의 말씀을 따르기로 하지요." "감사드립니다." 자신의 말을 모두 들어주자 엘은 레도프 국왕에게 감 의 인사를 건네고는 작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가 할 말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던 것이다. "사실 이것 말고 제가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더 있단 말씀이십니까?” 레도프 국왕이 무척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그는 엘이 할 말이 있어 찾아왔다고 했을 때 그 내용이 어렴풋 에리스에 관련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모두 종결되었는데, 할 말이라니? 전혀 뜻밖의 말에 레도프 국왕은 어리둥절했다. '왕국 차원에서 금탑에 지원할 것이 더 있단 말인가? 짧은 시간 수많은 생각이 지나갔지만 결론은 없다, 였다. 현재 금탑의 능력은 굉장하단 한 마디로 일축할 수 있 자체적인 골렘의 생산은 물론이며, 디벨 상단의 방대한 재력으로 못 구할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왕국에서 금탑에 원하는 것이 있으면 있었지, 금탑에서 왕국에 무언가를 요구할 만한 것은 전혀 없다고 할 수 있었다. 레도프 국왕의 얼굴에 의아함이 서리자 엘이 목소리를 낮추며 입을 열었다. "제게 땅이 필요합니다. 아니, 정확하게 영지가 필요합니다. " “.......” 레도프 국왕의 얼굴에 놀라움이 서렸다. 엘의 말이 무척 의외였기 때문이다. 금탑주가 도대체 왜 영지를 필요로 한단 말인가? 트를 벨리는 그야말로 1만의 군대로 백만 군대의 공격을 막아 낼 수 있는 최고의 요새다. 그런 요새를 놔두고 영지라니? 도대체 금탑주의 저의 가 무엇이란 말인가? 의아함이 서린 레도프 국왕의 의문을 엘은 풀어 주지 않았다. "자세한 사정을 말씀드리지 못하는 점에 대해서는 정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영지는 제게 꼭 필요합니다. 그래서 부탁드리는 것입니다. 이번 내전 이후로 수 많은 영지가 국왕 전하에게 귀속된 것으로 압니다. 제값을 치르고 구입을 할 테니 국왕 전하에서는 부디 영지를 제게 내려 주시기 바랍니다." 영지를 공짜로 달라는 것이 아니라 제값을 치르겠단다. 레도프 국왕으로서는 결코 거부할 수 없는 달콤한 유혹 이었다. 실제로 이번 내전에 의해 왕국 국토의 절반 이상이 국왕 직할령으로 귀속되었다. 본래 국왕의 직할령이 많으면 많을수록 왕권의 힘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왕의 힘이 강해져 귀족들을 억누르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톨리안 왕국도 마찬가지로 일어나고 있지만 실제로 지금 그것은 무척 위태롭다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레도프 국왕에게 귀속된 영지 중 다수가 무척 황폐한 영지였기 때문이다. 황폐한 영지를 복구하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자금이 필요하다. 당연히 영지를 복구하기 위해 왕실에서는 내전의 승리로 몰수한 귀족들의 재물을 모두 쏟아 부었다. 하지만 그것은 마치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같은 것이어서, 재물을 쏟아 부어도 부어도 도저히 영지가 본래 모습을 찾을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투자한 금액이 가히 엄청나서, 이번 내전으로 노획한 모든 재물들을 쏟아 붓고도 왕실의 재정을 투자해 야 할 지경이었다. 허나 그렇게 되면 왕실의 힘은 다시 약해질 것이 분명 하고, 귀족들의 힘이 다시 강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방법이 있다면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영지들을 매매하는 것인데, 그 방법 역시 귀족들이 구입하게 되면 추후 위협 이 될게 분명했다. 국왕을 따르는 충신들 중에 재력이 넉넉한 이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에 그 영지들은 왕실의 골칫덩어리가 되고 있었다. 그것을 떠올린 레도프 국왕은 우선 사정이 궁금하지만 가장 적임자를 찾았다고 생각했다. 금탑의 막강한 재력이라면 황폐화된 영지도 모두 복구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레도프 국왕은 크게 인심을 쓰기로 결정하였다. "그 점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금탑주. 내 어찌 왕국에 큰 도움을 준 금탑주님에게 영지를 매매할 수 있겠습니까. 이번 내전으로 국왕의 직할지는 넘치는 지경입니다. 그중 왕국 남부의 네 곳 영지를 금탑주님에게 양도하도록 하겠습니다." "예? 매매하지 않으시겠단 말씀이십니까?" 레도프 국왕의 말에 엘은 무척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설마하니 레도프 국왕이 영지를 공짜로 주겠다고 말할 것이 라고는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놀란 엘을 보며 레도프 국왕은 웃었다. "허허! 왜 그리 놀라십니까? 여태껏 금탑주님이 본 왕 국에 해 주신 것에 비하면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영지들이 내전으로 황폐화된 탓에, 복구하는 데 상당한 자금을 소요할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무척 예민한 부분이었기에 말끝을 흐리면서 은근슬쩍 엘의 반응을 살피는 레도프 국왕. 그러나 엘의 반응은 레도프 국왕이 생각한 것과 전혀 달랐다. "국왕 전하의 선심을 정말 감사하게 받아들이도록 하겠습니다." 선뜻 승낙하는 엘의 모습에 레도프 국왕의 얼굴에 미소가 맺혔다.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미소 짓는 레도프 국왕을 보며 엘은 마주 미소 지었다. 다행이야 황폐화되어 있다면 내 의도대로 할 수 있겠어.' 엘은 다행이라고 생각했고, 레도프 국왕은 자신의 노림수가 먹혀들자 속으로 크게 기뻐했다. '이로써 본 국과 금탑주 간의 관계를 의심하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레도프 국왕이 엘에게 영지를 양도한 까닭은 영지가 큰 재물을 필요로 하는 것도 있지만 가장 큰 의도는 자국의 영토에 금탑주를 소속되게 하게 하기 위함이다. 타국의 실세들이 탐을 내는 금탑주의 실력이니 만큼 그를 확실히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어 두는 것이 훨씬 이득 이니 말이다. 이제 영지를 하사받은 금탑주를 상대로 톨리안 왕국과 메어 놓으려는 왕국들은 확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레도프 국왕은 자신의 입장에서 골치인 영지를 활용하여 금탑주를 확실한 톨리안 왕국의 사람으로 암묵적으로 선언한 셈이 되는 것이다. 물론 엘 또한 그런 레도프 국왕의 의도를 알았지만 어차피 자신은 톨리안 왕국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기에 상관없었다. 그렇게 이야기가 마무리되자 서로 목적한 바를 이룰 수 있어 그 마음이 무척 흡족했다. 특히 엘은 일이 더욱 쉽게 해결되자 마음이 무척 편했다. '이제 마음 놓고 일을 추진할 수 있겠다.' 그가 루이아스의 마수에서 빠져나오고 몸이 회복되던 순간에 생각해 냈던 계책. 그것을 시행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셈이었다. 레도프 국왕과의 만남을 파하고, 왕궁의 마법사들에게 마법에 대한 강의를 하는 내내 엘의 눈은 무언가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누구도 알 수 없는 그만의 계획이 천천히 세밀함을 갖추어 나갔다. 톨리안 왕궁에서 모든 볼일을 끝낸 엘이 이번에 찾은 곳은 바로 백탑이었다. 백탑은 엘이 4명의 초인에게 습격을 받았을 당시 비슷하게 2명의 초인이 습격해 왔다. 다행히 백탑주 유클레이의 실력은 아토빌 공작과 비견 될 정도로 대단했다. 그랬기에 마탑의 마법사들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그들을 격퇴할 수 있었다. 두 명의 초인 또한 애초에 유클레이를 제거하는 것이 목져이 아니었기에 순순히 물러났다. 유클레이는 나중에 멜뤼스와 코린트에게 그들의 진짜 표적이 금탑이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무사히 그들의 습격을 막아 냈다는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후 금탑의 습격까지 모두 위장이었으며, 진짜 목적 이 엘이었다는 말에 유클레이는 하마터면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엘이 자신을 찾아오자 유클레이는 엘을 무척 반겼다. "어서 오게나, 금탑주. 루이아스를 만났다고 하더니 이렇게 무사한 모습을 하고 있어 무척 마음이 놓이는군. 자, 내가 아끼는 차를 대령할 테니 안으로 들어오게나." 엘은 유클레이의 환대에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유클레이의 집무실에 들어선 엘은 유클레이가 대접하는 차를 마실 수 있었다. 차를 들고 향을 음미하던 유클레이는 한 모금 마신 뒤 엘을 보며 입을 열었다. '그래, 일단 루이아스에게서 무사히 살아 돌아온 것을 진심으로 축하하네. 멜뤼스와 코린트에게 그 소식을 전해 듣는 순간, 나는 자네가 살아 돌아올 수 없을 거라 생각했어." 유클레이의 말에 엘은 차를 마시고는 빙그레 웃음을 지어 보였다. "저 또한 제가 그의 손에서 살아남은 것이 무척 신기하였습니다." 유클레이가 물었다. "어느 정도였나?”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실력이었습니다." 8클래스와 9클래스의 차이는 그 정도로 컸다. 하지만 유클레이가 원하는 답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단순히 마법으로만 겨루었는가?" "아닙니다. 마법을 주로 겨루었지만 루이아스에게는 카르마 링이 있었습니다. 전 마법을 제대로 발휘할수 없었고, 골든 나이트의 엄호 아래 그와 겨루었습니다." 지금도 생각하면 그때만큼 자신의 무기력함이 절실하게 느껴질 때가 없었다. 유클레이가 계속해서 물었다. "그의 실력은 어떻던가?" "공격과 수비가 완벽했습니다. 단순한 마법이었다면 제가 어떻게든 수를 마련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저를 상대하는 데 마법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단지 제련제강의 마법으로만 저를 농락하듯 천천히 죽이려 들었습니다.” 골든 나이트를 꿰뚫던 제련제강의 마법을 생각하면 가슴 한쪽이 서늘해졌다. 반면 유클레이는 루이아스가 제련제강의 마법을 사용한다는 말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제련제강의 마법을? 어떤 종류던가?" “다이아몬드였습니다." "허어........ 유클레이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다이아몬드 제련제강의 마법은 여러 가지 제련제강의 마법들 중에서 최강에 속한 것이다 "허허, 이건 완전 오우거에 날개가 달린 격이로군."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심한 경우였지만 유클레이가 할 수 있는 비유는 그것이 최선이었다. 엘은 그런 유클레이의 말에 동의했다. '맞습니다. 그는 정말 지독하게 강했습니다." “방법이 없어 보이던가?” 한 번 겪어 본 것과 안 겪어 본 것은 그 차이가 하늘과 땅만큼 심하다. 유클레이는 비록 처참하게 괘했지만 루이아스와 겨루어 본 엘의 경험을 무척 중시했다. 그것을 알았기에 엘은 잠시 침묵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선 루이아스에게 있어 초인의 숫자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다이아몬드, 그 제련제강의 마법이 있는 한 그에 게 공격과 수비는 완벽함을 자랑하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9클래스 마법까지 곁들여진다면 오히려 다수의 초인이 순식간에 몰살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에게는 아홉 명의 초인까지 있잖은가?” 엘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 갔다. 단순히 루이아스를 상대하는 것도 이렇게 벅찬데 문제 는 그의 휘하에 다수의 초인이 존재했던 것이다. "그것이 더욱 문제입니다. 저는 루이아스를 견제하기 위해서는 최소 다섯 명의 초인이 나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최고의 실력을 지닌 아토빌 공작님과 유클레이 님, 그리고 엘리엔 님과 아이넨스 님, 그리고 저까지 해서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가 전개하는 제련제강의 마법은 그의 것 보다 더욱 약하기 때문이죠." "그 정도란 말이로군." 루이아스가 혼자라면 10명이 넘는 초인들을 동원하여 어떻게든 결말을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허나 그것이 불가능한 만큼 사태는 절망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유클레이가 암담한 심정을 담은 채 물었다. "그럼 정녕 루이아스를 상대할 방법이 없단 말인가?" 그의 물음에 엘은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한 가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가능성이 있는 방법 이 있습니다." "뭣이? 정말, 정말 방법이 있단 말인가?" 유클레이가 대경허서 엘에게 되묻는다. 루이아스를 상대할 방법이 있단다! 다수의 초인도 큰 위협이 되지 않을 거라 말하던 엘이다. 아마 초인들 중에서 가장 루이아스의 힘을 잘 파악하고 있는 게 바로 엘이란 말이다. 그런 엘의 말인 만큼 결코 허언이 아닐 확률이 높았다. 루이라스, 그를 상대할 방법이 있다니! "어서, 어서 말해 보게." 평소 성격답지 않게 유클레이가 엘을 재촉했다 유클레이는 엘이 말한 방법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루이아스만 쓰러뜨린다면 사실상 마도 제국은 무너진 것이나 마찬가지. 승리에 가까운 열쇠라 할 수 있다. 유클레이의 물음에 엘은 고개를 저어 보였다. "아직 확신은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하길 꺼려한 것이고요. 제가 이곳까지 찾아온 이유가 바로 유클레이 님에게 이 방법이 루이아스에게 적용될지 알아보기 위함입니다. 대륙에서 루이아스를 제외하고 가장 마법에 박식한 분이 바로 유클레이 님이시니까요." 엘의 말대로 유클레이는 대륙에서 마법에 박식한 것으로 무척 유명했다. 그는 자신이 익히고 있는 백마법을 비롯하여 청마법, 적마법은 물론 흑마법까지 정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그라면 엘에게 속시원하게 길을 제시해 줄 것이 분명했다. 엘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깨달은 유클레이가 눈을 냈다. "그렇군. 무언가를 깨달은 상태이고, 그것을 확인해 보기 위해 나를 찾아온 것이었군" 기분이 나쁠 법했지만 유클레이는 전혀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자신 또한 타인에게 볼일이 생기지 않으면 거의 찾지 않으니 말이다. 마법사들이란 지극히 이기적인 존재다 그걸 알았기에 유클레이는 엘을 타박하지 않았다. "따라오시게." 유클레이가 앞장서자 엘이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그들이 들어선 곳은 다름 아닌 수련실이었다. 수련실에 들어선 엘은 자신이 깨달은 것을 유감없이 선보였다. 마나와 마나는 서로 연관성을 가지며, 더욱 응축된 것으로 끌어들인다는 사실. 그리고 자신에게 벌어진 현상들을 말이다. 수련실에서 엘의 몸에 벌어진 현상을 함께 연구하던 유클레이가 엘에게 말했다. "이건 나로서도 함부로 결단을 내리기 힘든 현상이네. 충분한 연구와 실험을 통해서 그 결과를 입증해야 하네. 그리고 이론적으로 성립하게 되면 분명 큰 무기가 될거야." 만족할 만한 유클레이의 말에 엘이 미소 지었다 "알겠습니다. 협력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유클레이는 미소 지은 채 고개를 저었다. '나 또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서로가 도움이 되었을 뿐이네." 그 모습에 엘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추후 결과가 나며 그때 고마워하는 게 옳겠지요.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허허, 살펴가시게" 유클레이에게서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은 엘은 금탑에 들어서면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제 시작이다. 각오하라, 루이아스." 새로운 무기와 새로운 계획. 그것이 엘의 내면에 거세게 타오르고 있었다. 8. 개전 세월은 눈 깜짝할 사이에 흘렀다 왕국들 간의 회합이 끝난 지 3개월이 흘러갔다. 그 시간 동안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우선 왕국 연합의 선포이다. 대륙 서부에 위치한 왕국들은 자신들 스스로 하나의 연합체임을 공표하며 마도 제국이 선언한 내용을 정면으로 반박하였다. 그리고 마도 제국이 멸망할 때까지 전쟁을 멈추지 않겠다는, 이른 바 선전포고를 하였다. 여태까지 대륙의 유구한 역사 속에 왕국이 제국에게 선전포고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보통 왕국이라 함은 아무리 그 국력이 강하다 하여도 결코 제국을 뛰어넘을 수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왕국입장에서 감히 제국에게 선전포고를 할 담량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경우가 달랐다. 마도 제국은 여태까지 존재한 제국들과는 그 차원을 달리하는 제국이었다. 기존의 제국보다 5배는 넓은 영토와 끝을 알 수 없는 방대한 국력은 대륙 전체를 상대하고도 압도할 정도로 어마어마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도 제국은 그 역사가 무척 짧다. 각국의 국왕들과 참모들은 마도 제국의 거대한 덩치가 민첩하게 움직이기 위해서는 쾌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 판단했다. 시간을 길게 주고 마도 제국이 본래 힘을 발휘하게 기다리느니 차라리 먼저 선전포고를 하여 마도 제국에게 왕국의 힘을 보여 주겠다는 쪽으로 가닥이 잡힌 것이다. 거기에 왕국은 하나가 아닌 다수였기에 그들은 한목소리로 마도 제국의 타도를 외칠 수 있었다. 이번 마도 제국의 타도에 앞장 선 것은 의외로 성국이었다. 성국은 결코 선제공격을 하지 않는 평화로운 나라로 유명하다. 그들이 선제공격을 하는 것은 언제나 상대방이 빌미를 제공한 성전이었고, 지금과 같이 마도 제국을 타도하는 데 앞장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왕국들은 그런 성국을 중심으로 뭉쳐 나갔다. 자신들 앞에 성국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들의 사기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성국이 가장 무서운 힘을 발휘할 때가 바로 전쟁이라 할 수 있다. 신앙심으로 완전 무장을 한 성군들은 오로지 여신의 이름을 외치며 자신의 목숨을 초개처럼 버린다. 지휘관의 명령에 대해 단 한 점의 의혹도 없으며, 군 자 체가 전멸할 때까지 여신을 외치며 끝까지 전투에서 물러서질 않는다. 그런 존재가 적이라면 더없이 두렵겠지만 그런 존재가 아군일 때는 한없이 든든하다 총사령관은 성국의 그랜드 마스터이자 대륙 서부의 유일한 그랜드 마스터인 다이어드 공작이 맡았다. 다이어드 공작은 성국 최고의 정예병인 5만 명의 군대 와 각지 왕국에서 파견된 최고의 정예병들을 중심으로 구성한 30만 군대를 이끌고 왕국과 제국 간의 국경에 군대를 주둔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마도 제국에서도 군대를 이끌고 그들의 군대 맞은편에 대치하듯 군을 배치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숫자는 도합 50만. 군대를 이끄는 자는 바로 백전노장 그레시오스 공작이 었다. 그랜드 마스터가 이끄는 두 군대는 서로 치열한 전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거참, 힘들게 되었군." 다이어드 공작은 맞은편에 진을 친 마도 제국 병사들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각국이 엄선한 정예병들로 구성된 35만의 왕국군들은 그 질에 있어서 마도 제국의 군사들을 월등히 능가한다. 하지만 숫자에서는 엄연히 마도 제국 병사들보다 부족 하며, 각각 소속 국가가 다르기에 유기적인 전투의 지휘 가 상당히 힘들어 보였다. 게다가 적의 지휘관은 바로 벨로세크 제국의 수호신이 던 그레시오스 공작이다. 아토빌 공작 다음으로 강하다고 평가되는 그레시오스 공작의 검은 그랜드 마스터들 중에서도 수위에 꼽힌다고 한다. 다이어드 공작은 그런 그레시오스 공작에 대한 호승심 이 솟아나는 걸 느끼면서도 함부로 움직이지 않았다. 자칫 자신의 잘못된 판단이 왕국군의 치명적인 패배로 이어질 수 있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다이어드 공작이 왕국군의 총사령관이 된 데는 그가 그랜드 마스터인 것뿐만 아니라 신중하면서 주변 사람들의 말을 무시하지 않는 그의 성품도 한몫을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이어드 공작은 마도 제국군을 훑어보다가 이번 왕국 군의 부사령관을 맡은 카시아스 왕국의 버페리온 공작을 바라보며 물었다. "질로 따진다면 이쪽이 우위고 숫자로 따지면 저쪽이 우위인데 어떤 식으로 전투를 했으면 좋겠소, 버페리온 공작?” 다이어드 공작의 물음에 버페리온 공작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전투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병사들의 사기입니다. 우선 사기 면에 있어서는 이쪽 왕국측이 유리합니다. 마 도 제국은 건국된 지 얼마 안되는 신생 국가입니다 때문 에 적군은 아직 마도 제국에 대한 충성심이 깊지 않을 뿐 더러 벨로세크, 데이제크, 루이디스라는 서로 섞이기 힘든 군대가 섞여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일단 병사들의 사기 면에서 확연한차이를 벌여 놓은 뒤 단순한 돌격 명령 만 내려도 대승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버페리온 공작의 말이 다이어드 공작이 고개를 끄덕 였다. "나 또한 공작의 말에 찬성이오. 하지만 공작은 간과한 게 있소. 난 왕국군에 무조건적인 승리를 가져다 줘야 하 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마도 제국에 게 본때를 보여 줘야 하오." 군대의 피해를 최소화하라는 것은 인명 피해가 너무 심화될 것을 우려한 다이어드 공작의 염려였다. 당장 대승을 한다 해도 이쪽의 피해가 극심하면 그것은 허울뿐인 승리가 아니겠는가. 게다가 중요한 것은 승리를 한다 하여도 숫자가 적은 이쪽 입장에서 장기전이 되면 치명적인 약점을 드러낼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버페리온 공작의 의견을 들어 본 다이어드 공작이 이번 에는 반대쪽에 위치한 이에게 시선을 준다. 이번 원정군은 총사령관 한 명과 두 명의 부사령관이 최고 수뇌부직을 차지하고 있다. 부사령관의 첫 번째는 카시아스 왕국의 버페리온 공작 이라면 두 번째 부사령관은 다름 아닌 톨리안 왕국의 라이어스 공작이다. 다이어드 공작은 라이어스 공작에게 물었다. “공작의 생각은 어떻소?” 라이어스 공작은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저 또한 버페리온 공작님과 크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지만 병사들의 사기를 높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대장의 활약입니다. 만약 다이어드 공작님이 그레시오스 공작을 려는다면 첫 전투는 왕국군의 대승으로 끝날 것입니다. " 라이어스 공작의 말에 장내는 침묵에 잠겼다. 그는 지금 노골적으로 다이어드 공작에게 그레시오스 공작을 이길 수 있냐고 물은 것이다. 그랜드 마스터는 그 자존심이 하늘과 같다. 지고한 경지를 개척한 그들의 자존심도 경지에 걸맞게 높은 것이다. 때문에 그들은 패배를 용납하지 않으며 오로지 자신이 최고라는 생각을 한다. 그것은 다이어드 공작 또한 마찬가지였다. 다이어드 공작은 그랜드 마스터 중에서 가장 어리다 게다가 가장 뒤늦게 그랜드 마스터에 올랐기에 사람들의 평가는 언제나 최하위권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의 평가에 다이어드 공작은 억울했다. 실제로 겨룰 수만 있다면 자신은 얼마든지 승리할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허나 그랜드 마스터는 국가의 최고 비밀 병기이다. 그런 그들을 외부로 내돌려 대결을 하게 할 만금 대담 한 심장을 지닌 군주는 존재하지 않았다. 도박을 하기에 는 잃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리하여 다이어드 공작은 자신이 약하다고 평가받는 것은 곧 여신에게 죄송한 일이라 생각하여 끊임없이 수련에 매진했다. 거기에 기연이 겹쳐서 3대 성물 중 하나인 세인트 해머가 그의 수중에 들어왔다. 그 덕에 그는 자신의 힘이 급증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고, 그랜드 마스터 중에서 가장 강하다는 아토빌 공작과 겨뤄도 기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 자존심이 꺾인 것은 다름 아닌 골든 나이트와의 대결에서이다. 골든 나이트는 그랜드 마스터 급 힘을 발휘한다고 한다. 그것은 클라이언 공작과 겨루면서 증명되었다. 다이어드 공작은 세인트 해머로도 골든 나이트를 제압 하지 못하자 자신의 실력이 클라이언 공작과 비슷하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클라이언 공작이 제국에 소속된 그랜드 마스터라지만 그에 대한 평가는 대륙의 하위권 그랜드 마스터였다. 그는 불명예를 씻고 싶었다. 그래서 지난날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수련에 수련을 거듭했다. 그리고 그 결실을 오늘에서야 보여 줄 날이 온 것이다 상대는 그레시오스 공작. 결코 자신의 상대로 부족함이 없다. 다이어드 공작의 시선이 라이어스 공작에게 향했다. "그 제안, 받아들이겠소." “......!” 다이어드 공작의 승낙에 모두가 놀란 시선으로 바라본 다 설마하니 그가 정말 승낙할 줄 몰랐던 것이다 버페리온 공작이 물었다. "공작님. 정말 위험한 도박입니다. 공작님의 승리를 의심치는 않지만 공작님이 패할 시 아군의 사기는 그야말로 바닥까지 추락할 것입니다." 다이어드 공작이 미소 지어 보였다. “날 믿으시오, 버페리온 공작. 난 누구에게도 지지 않소" 당당하게 말한 다이어드 공작은 거대한 해머를 챙긴 채 전장의 앞으로 나섰다. 갑자기 왕국군 진형에서 순백의 갑옷을 차려입은 성기사가 출현하자 마도 제국의 군대에서는 한동안 시큰둥한 분위기가 흘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워낙 유명한 다이어드 공작의 얼굴을 알아보는 이들이 하나 둘은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다이어드 공작이다!" "성국의 그랜드 마스터!" 마도 제국군들의 입에서 다이어드 공작에 대한 수많은 말들이 흘러나왔다. 그중에서 가장 많이 나온 말이 바로 성물에 대한 것이다. 3대 성물은 대륙의 5대 신검과 5대 마병에 버금가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것의 주인이라면 결코 범상치 않은 힘을 보유했을 것 이 분명했다. 성물의 힘으로 몸에 신을 강림시킬 수 있다는 것과 신 성력을 무한으로 사용한다는 둥, 믿기 힘든 말들이 구구 절절 흘러나왔다. 그 말의 공통점은 바로 그레시오스 공작이 다이어드 공작을 제압하기 힘들 거란 이야기였다 성물의 이름은 그만큼 대단했다. 다이어드 공작의 정체가 알려진 것만으로도 마도 제국군이 술렁거리자 병사들을 통솔하는 기사들이 나서서 병사들의 입단속을 시키기 시작했다. "모두 조용히 하라! 저자에 대한 소문은 절반이 거짓에 불과하다. 모두 알지 않는가! 다이어드 공작은 그랜드 마스터 중에서도 최하위에 머무는 인물이라고. 그런 이가 그레시오스 공작님에게 상대가 될 리가 없다." 하지만 웅성거림은 그치지 않았다. 기사들의 타이르는듯한 말이 전혀 병사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애써 그의 실력을 폄하하는 모습이 더욱 병사들 의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웅성거림이 더욱 심해지자, 마침내 기사들이 보다 강하게 병사들의 입을 단속시켰다. "모두 닥쳐라! 앞으로 쓸데없이 입을 놀리는 놈은 목을 베어 주겠다!" 흉악한 기사들의 기세에 병사들이 입을 다물었으나 전 체적인 어수선한 분위기는 사라지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그런 분위기는 마도 제국군 중앙에 위치한 막사에도 생생하게 전해지고 있었다. 그곳에는 한 노기사가 눈을 감은 채 검을 품고 있었다. 그는 소란스럽던 진형이 조용해진 걸 느끼고는 두 눈을 떴다. "소란은 가라앉았지만 병사들의 의심은 더욱 커지는 법이군. 왕국군에서 방법을 제대로 사용했구나." 나직한 어조로 중얼거리는 노기사. 그의 정체는 바로 마도 제국군을 이끌고 있는 그레시오스 공작이었다. 그는 별다른 말을 하지 못하고 있는 참모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 "이번에는 꼼짝없이 당한 셈이지. 방법이 있나?" 그레시오스 공작의 물음에 참모들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런 말도 못했다. 차선책이라고 할 만한 방법은 무척 많았지만 그것만으로 사태를 뒤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다이어드 공작의 저런 등장에 왕국의 그랜드 마스터와 제국의 그랜드 마스터의 대결을 염원하고 있는 이 들이 대다수였기에 피하기란 무척 어려웠다. 참모들도 아무런 말을 못하자 그레시오스 공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결국 방법은 직접 맞붙는 것이로군." 그것은 그레시오스 공작이 내심 바라는 바였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다이어드 공작, 정말 재미있는 수를 썼군. 하지만 그것이 너를 죽이는 일이 될 것이다. " 엘리엔과 아이넨스에게 절망을 겪은 그레시오스 공작 지난 3달 동안 뼈를 깎는 수련을 거듭했다. 그리고 마침내 원하던 것을 얻고, 그토록 원하던 한 단계 앞의 경지를 향해 나아갈 수 있었다. 2번의 패배감과 그로 인해 솟아난 수련 욕구가 그의 벽을 깨는 데 일조한 것이다. 벽을 깬 그레시오스 공작은 자신의 힘이 어느 정도나 될지 궁금했다. 그래서 이번에 왕국군을 이끌고 오는 다이어드 공작과 겨루고자 군의 사령관을 자처한 것이다. 설마하니 이렇게 빠르게 맞붙게 될 줄은 몰랐지만..... 그레시오스 공작이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걸어갔다. 막사 입구에서 멈춰 선 그가 참모들에게 말한다. "내가 다이어드 공작의 목을 베는 순간, 모두 돌격 명령을 내리게. 알겠나?” "옛! 공작님!" 그레시오스 공작의 명령에 모두가 한마음으로 대답했다. 그들은 결코 그레시오스 공작이 패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신기하게도 두 그랜드 마스터가 패하지 않을 거라 생각 하는 양측의 반응은 모두 비슷했다. 그렇다면 두 검사 모두 각자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격돌할 것이며, 더 약한 쪽은 철저하게 부서질 것이다. 객관적은 평가는 당연하게도 그레시오스 공작의 우위였다. 단지 소속된 국가 하나로 그의 위치는 대륙 최고를 다투는 그랜드 마스터가 되었다. 벨로세크 제국의 그랜드 마스터! 무려 3명의 그랜드 마스터를 거느린 벨로세크 제국은 서로의 검을 연구하면서 자신들의 검을 끝없이 발전시켰다. 그러한 세월이 누적되면서 무려 수백 년에 이르니, 세상 사람들 그 누구도 벨로세크 제국 초인들의 힘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레시오스 공작은 그런 벨로세크 제국의 그랜드 마스터들 중 정점에 존재한다. 본래대로라면 대륙 최고의 평가를 받아도 부족함이 없는 이가 바로 그레시오스 공작인 것이다. 단지 동시대에 아토빌 공작이라는 검의 천재가 존재했기에 늘 이인자의 자리에 존재했어야 했던 불운한 검사이기도 했다. 때문에 그레시오스 공작은 아토빌 공작에게 늘 열등감에 시달려야 했다. 그는 다이어드 공작을 응시하면서 어쩌면 자신은 예전 의 모습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다. 과거라면 오로지 아토빌 공작을 목표로 검을 휘둘렀겠지만 지금은 목적을 알 수 없는 검으로 변모해 있었기 때문이다. 마음 속 열등감도 더욱 커졌다. 난세로 접어든 대륙에 영웅이 출현하듯, 검사의 시대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현 시대에 그보다 강한 그랜드 마스터가 무려 셋이나 존재했기 때문이다. 마검의 주인 루이넨스와 신검의 주인 엘리엔, 그리고 아토빌 공작. 거기에 얼마 전에 금탑을 습격했다가 아이넨스에게 밀리는 모욕까지 당하고 말았다. 그레시오스 공작은 이를 꽉 물었다. '더 이상 나에게 패배란 존재하지 않는다!' 금탑을 공격하고 난 뒤 깨달음을 얻어 1단계 강해졌다. 눈앞에 있는 다이어드 공작을 제거하고 자신이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루이아스에게, 대륙에 알릴 필요가 있었다. 다이어드 공작을 응시한 그레시오스 공작이 입을 열었다. "그레시오스 공작이네." 다이어드 공작은 정말 그레시오스 공작이 나오자 긴장감이 팽팽하게 당겨지는 걸 느끼면서 자신의 소개를 하였다. “다이어드 공작입니다. 벨로세크 제국의 위대한 검 중 한 분과 겨루게 되어 영광입니다." 비록 적이지만 다이어드 공작은 예의바르게 인사를 하였다. 상대는 그레시오스 공작이다. 그랜드 마스터 중에서 최고령에 속하는 존재며, 위대한 벨로세크 제국의 검은 대륙 검사들에게 꿈이나 다름없는 존재이다. 다이어드 공작의 인사에 그가 실없이 미소를 흘렸다. "후후후! 언제부터 그랜드 마스터 간의 대결에 영광이 있었나. 우리는 각자의 목적을 지니고 이렇게 만나게 되었음이니 후회 없이 검을 나누도록 하세." 다이어드 공작이 피식 웃었다. '말씀이 틀렸습니다. 전 해머 입니다." "허허, 그렇군, 그럼 인사는 이쯤 하도록 하고 슬슬 시 작해볼까." 그레시오스 공작은 늘어뜨리고 있던 손에 힘을 주면서 천천히 검을 치켜 올렸다. 그 모습에 다이어드 공작은 감히 경시하지 못하며 그 또한 해머로 서서히 방어 자세를 취했다. 물끄러미 다이어드 공작의 틈을 살피면서 그레시오스 공작은 먼저 선공을 해야 함을 느꼈다. 성기사의 방어력은 대륙에서 제일이다. 처음에 기선을 제압하고 빈틈을 만들어 내지 않는다면 다이어드 공작과의 대결은 상당히 길어질 것이 분명했다. 그레시오스 공작의 겁이 먼저 빛을 발했다. 검끝이 바르르 떨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그의 검이 다이어드 공작을 쪼개 오고 있었다. 다이어드 공작은 해머를 들어 올려 검의 기세를 차단해 갔다. 꽈앙! 두 무기가 부딪치면서 눈부신 빛을 발했다. 자신의 선공이 막혔지만 그레시오스 공작은 이대로 공격을 끝맺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는 이어 제2격, 제3격을 날렸다. 파바밧! 그의 검이 움직이면서 강렬한 바람을 동원했다. 다이어드 공작은 마치 폭풍과도 같이 이어지는 그레시오스 공작의 공격에 한껏 신성력을 불어넣어 해머로 부딪쳐 나갔다. 꽈광! 꽝! 순식간에 해머와 검이 얽혀 들어가며 세 번의 공방을 나누었다. 서로 공격을 하면서 그들은 자신의 힘을 마지막 일격에 퍼부었는데, 결과는 무승부였다. 다이어드 공작과 그레시오스 공작이 두 걸음씩 뒤로 물러나며 신음을 흘렸다. "으음!" 설마하니 자신이 물러날 줄 몰랐던 그레시오스 공작의 안색이 일그러졌고, 예상보다 상대가 더욱 강하자 다이어드 공작은 신중해졌다. '과연 그레시오스 공작이다. 이대로 걱룬다면 내가 패할 확률이 높다.' 이는 딱히 실력의 차이라기보다는 세월의 차이였다. 그 차이를 없애기 위해서는 자신이 성물을 사용하는 수 밖에 없다. 다이어드 공작의 해머가 강렬한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파아아아! 강렬한 신성력을 주입받은 해머에서 찬란한 광채가 흘러나왔다 순백의 빛에 휩싸인 해머는 그 무엇보다 성스럽게 보였다. 왕국군은 물론 마도 제국군 또한 홀린 듯 다이어드 공작의 해머에 시선을 주었다. 그런데 돌연 해머에서 기이한 힘이 용솟음치기 시작했다. 강렬한 신성력을 주입받은 해머에서 서서히 다른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성스러운 순백의 빛은 어느새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고,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마치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칠흑의 힘이었다. 마로써 마를 멸한다. 사마를 멸하는 신성한 해머가 그동안의 잠을 깨고 마침 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세인트 해머는 신성력을 제외한 이 세상 모든 기운을 소멸시키는 권능을 가지고 있다. "세인트 해머인가." 본격적으로 나오는 다이어드 공작의 행동에 그레시오스 공작의 표정도 신중해졌다. 세인트 해머는 그의 입장에서 정말상대하기 까다로운 것이 아닐 수 없다. 다시금 검을 움켜쥐면서 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모든 기운을 배척하는 세인트 해머. 그것을 상대하는 최적의 방법은......... 그가 눈을 부릅뜨고 안광을 뿌렸다. “바로 무기를 들고 있는 자를 죽이는 것이지!" 그레시오스 공작의 오러가 섬광처럼 뿜어져 나갔다. 다이어드 공작은 세인트 해머를 휘둘러 그 오러를 쪼개 나간다. 쾅! 칠흑같이 검은빛에 휩싸인 해머가 단숨에 오러를 부숴 버렸다. 오러 자체가 소멸되자 그레시오스 공작이 주춤주춤 밀려나기 시작했다. "우웃!" 한순간 드러난 틈을 노리며 달려드는 다이어드 공작, 그의 해머가 무섭게 휘둘러지고 있었다. 이를 악문 그레시오스 공작이 흩뿌리듯 수십 개의 오러로 다이어드 공작을 견제했다. 그러자 다이어드 공작의 해머도 허공을 누빈다. 콰광! 콰과과과과광! 그들의 공방이 이루어질 때마다 엄청난 폭음과 함께 번쩍이는 빛이 난무했다. 양군은 그런 초인들의 대결을 넋을 잃고 바라보느라 여념이 없다. 정말 대단한 대결이 아닐 수 없었다. 그들의 대결은 일반 병사들은 물론 웬만한 경지에 다다른 기사들의 눈으로도 제대로 확인할 수가 없었다. 두 초인의 검이 얽히는가 싶으면 이미 다른 곳에서 수 십 번의 공방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빛과 폭음은 그들의 자취를 완전히 지워 주고 있었다. 두 초인의 대결이 시작되고 나서 10여 분이 흐른 지금 주변의 대지는 완전히 초토화가 되어 있었다. 땅거죽이 죽죽 패여 있었으며, 오러가 폭발할 때마다 대지가 뒤집히고 있었다. 대결이 지속되던 어느 순간, 두 사람의 사이에서 쾅! 하 는 소리와 함께 두 신형이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대결이 끝난 것이다. 대결의 결말은 누구의 승리도 아니었다. 다이어드 공작의 옆구리에는 깊은 검상이 생겨난 상태였고, 그레시오스 공작의 흉갑은 해머의 힘을 미처 해소 하지 못했는지 움푹 깍인 상태였다. 그레시오스 공작의 눈가에 웃음이 맺혔다. 입을 여는 그의 입가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나왔다. "그대와의 대결, 무척 만족스러웠네." 다이어드 공작은 들고 있던 해머를 늘어뜨렸다. "저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말과 함께 두 초인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몸을 돌려 자신의 진영으로 되돌아갔다. 서로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상처는 족히 몇 달을 정양해야 하는 중상이었다. 옆구리를 베인 다이어드 공작은 내부로 오러가 흘러가 엉망진창이 된 상태였으며, 그레시오스 공작 또한 가슴으로 흘러들어간 신성력이 내부를 뒤흔들었다. 부상을 완전히 회복하기 전까지는 서로에게 검을 겨누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렇게 전장에서의 첫날 그레시오스 공작과 다이어드 공작의 대결이 무승부로 끝나면서 전쟁의 양상은 점점 장기전을 띠기 시작했다. 왕국 연합과 마도 제국 간의 전쟁이 발발했을 무렵 전쟁 준비로 바쁜 곳이 있었다. 바로 아일라스 제국이었다. 아토빌 공작은 엘과 동맹을 맺은 이후부터 군대를 정비하기 시작했다. 루이아스가 거대한 제국을 세운다면 우선 제국들에게 감정이 많은 왕국들과 충돌할 확률이 높다. 그 점을 간락한 아토빌 공작은 우선 마도 제국과 왕국 들이 전쟁을 하게 놔둔 뒤, 마도 제국을 공격할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단독으로 마도 제국을 공격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자칫하면 강력한 반격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아토빌 공작은 혼자서 마도 제국을 공격하지 않았다. 그는 블리어드 제국에 사절을 보내어 함께 힘을 합쳐서 마도 제국을 처단하자고 하였다. 블리어드 제국으로서는 결코 거절할 수 없는 제의였다. 알카이드 황제는 이번 기회를 발판 삼아 마도 제국의 영토를 빼앗고 싶어 했다. 위기는 곧 기회로 이어지는 법. 제아무리 왕국 나부랭이들이 힘을 합쳐 봤자 어디까지 나 왕국에 불과했다. 그들 따위는 얼마든지 힘으로 눌러 줄 수 있으니 이참에 아일라스 제국과 협력하여 영토를 넓히는 쪽이 블리어드 제국에 엄청난 이득이 될 수 있다. 아토빌 공작의 제의를 받아들인 알카이드 황제는 곧장 30만 정예병을 차출하여 마도 제국 정벌단을 조직하였다. 무려 100여 명의 소드 마스터까지 정벌단에 포함시켰으니 블리어드 제국으로서는 온 국력을 기울인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알카이드 황제가 클라이언 공작에게 명령했다. '마도 제국의 몰락은 곧 블리어드 제국의 영광을 재현 할 발판이 될 수 있다! 공작은 본 제국과 맞닿아 있는 마도 제국의 동부 영토를 모두 흡수하라!" 마도 제국의 동부를 차지하게 된다면 세르디아 대륙 동해의 패자가 될 수 있으며, 키클로스프강 하류를 차지하게 됨으로써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다. 여러모로 블리어드 제국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지역이 아닐 수 없었다. 알카이드 황제의 명령에 클라이언 공작이 외쳤다. "그 뜻을 받들겠습니다, 폐하! 모든 것은 제국을 위하 여!" 클라이언 공작을 따라 기사들도 외친다. "제국을 위하여 !" 그렇게 블리어드 제국도 출병했다 블리어드 제국의 출전 소식은 곧장 마법 통신을 타고 아토빌 공작에게 전해졌다. 아토빌 공작은 블리어드 제국의 출전 소식에 웃음을 지었다. "허어, 블리어드 제국의 젊은 황제가 급하기는 왜 급했나 보구나. 설마하니 이렇게 빠르게 움직일 줄이야." 말만 들어 보면 아토빌 공작이 이러한 상황을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였다. 그는 이미 블리어드 제국이 이렇게 움직일 거라고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토빌 공작은 벽에 걸려 있는 세르디아 대륙 전도를 보며 말했다. "블리어드 제국은 전대 오스칼 황제 대부터 벨로세크 동부 지역을 탐냈지. 이곳만 차지하면 블리어드 제국은 동해의 패권을 차지할 수 있을뿐더러 무역에서 막대한 이득을 챙길 수 있을 테니까. 미끼를 풀어 놓으니 너무 쉽게 움직여서 낚시의 묘미도 없구먼, 이거." 그 말과 함께 지도를 일별한 아토빌 공작은 곧장 카디 어스를 호출했다. 오늘도 수련에 매진하던 카디어스는 아토빌 공작의 호출에 수련을 멈추고는 곧장 그의 집무실로 찾아왔다. 얼마 전 카디어스는 스스로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다고 공표했다. 더군다나 그는 그랜드 마스터의 상징인 마나 장악을 펼치고 수십 명의 소드 마스터를 쓰러뜨리는 신위를 발휘했다. 그와 함께 카디어스는 지금은 죽은 알비어드 대공을 대 신하여 대륙 10대 그랜드 마스터의 자리에 올랐다. 뿐인가, 아토빌 공작의 직위를 이어받아 현재는 아일라스 제국의 근위 기사단장직을 맡고 있다. 카디어스는 아토빌 공작을 보며 정중하게 검례를 취했다. "부르셨습니까, 공작님." 사적으로는 자신의 아버지이기도 했다. 하지만 카디어스는 아토빌 공작이 자신을 사적으로 부른 것이 아님을 알았기에 정중하게 예를 취했다. 아토빌 공작은 그런 카디어스를 보며 말했다. "출전 준비는 어떻게 되고 있나?” '다 끝났습니다, 공작님. 현재 폭풍 기사단도 출전 준비에 있으며, 각 귀족들에게서 차출한 기사들도 출전 준비를 완료한 상태입니다." "상대는 강대한 마도 제국이다. 전쟁 준비를 함에 있어 한 치의 소홀함도 없어야 한다." 아토빌 공작이 표정을 굳히며 말하자 카디어스의 표정도 덩달아 굳었다. 그 또한 마도 제국 황제 루이아스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저번 기회에 목격했기에 상대가 얼마나 강한지 잘 알고 있다. 그의 무위를 생각한다면 지금의 준비도 미흡하게 느껴 질 정도였다. 카디 어스가 말했다. "더욱더 준비에 박차를 가하겠습니다." 아토빌 공작이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고해 주게." 카디어스가 예를 취하고 집무실 밖으로 나갔다. 그런 카디어스의 뒷모습을 쫓으며 아토빌 공작이 중얼 거렸다. "내 어찌 너의 심정을 모르겠느냐." 아토빌 공작 또한 알고 있다. 더 이상 전쟁 준비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하지만 아토빌 공작은 카디어스에게 끊임없이 준비를 하라 일렀다. 왜냐고? 그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시간을 끌기 위함이다. 루이아스의 강한 힘을 몸으로 겪은 아토빌 공작은 마도 제국이 결코 쉽게 무너질 것이 아님을 알았다. 아니, 이긴다는 확신도 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시간을 끄는 것이다. 마도 제국이 건국을 선포하면서 난세는 이미 시작되었다. 난세에는 수많은 영웅들이 등장하기 마련이며, 이때를 잘 노린다면 중간에서 엄청난 이득을 취할 수도 있다. 아토빌 공작은 마도 제국이 왕국 연합군과 블리어드 제국과 싸워서 엉망진창이 되길 바랐다. 물론 왕국 연합과 블리어드 제국도 엉망진창이 되면 더욱 좋고 말이다. 그렇게 하여 그들이 약해졌을 때 아일라스 제국의 대 군은 국경을 넘을 것이다. "금탑주. 너를 이용하도록 하지." 아토빌 공작의 입가에 맺힌 미소가 짙어졌다. 9.금탑붕괴계획 - 1 블리어드 제국의 참전! 왕국이 아닌 제국마저도 마도 제국과 전쟁을 선포하자 대륙이 술렁였다. 5대 제국은 지난 시간 서로 경쟁 상대이기도 했지만 한 편으로는 같은 길을 걷는 동업자이기도 했다. 그들이 서로를 의식하고 끊임없이 발전에 발전을 거듭 하였기에 당금에 이르러서는 왕국들이 감히 따라갈 엄두 도 내지 못할 만큼 성세를 이루었다. 그런 제국이니 만큼 왕국들은 남은 두 제국이 행여 마도 제국과 손을 잡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그런데 상황이 고맙게도 블리어드 제국이 먼저 마도 제 국에게 선전포고를 한 것이다. 거기에 아일라스 제국마저도 전쟁 준비에 한창이라 하 자 대륙은 그야말로 난세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기 시작했다. 마도 제국! 이 거대한 대제국에 대륙의 모든 국가들이 검을 빼 든 것이다 이는 대륙 역사상 존재하지 않던 전무후무한 일 이었다. 대륙의 모든 국가들을 적으로 삼았음에도 마도 제국에 서는 이렇다 할 반응이 없었다. 아니, 그저 침묵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그것은 침묵이 아니었다. 그들이 숨죽이고 있던 건 단지 사전에 준비하고 있었던 게 있었기 때문이란 걸 4명의 초인이 등장으로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그들이 등장한 것은 전선이 막 왕국 연합군과 블리어드 제국군에게 유리하게 흘러가려 할 때였다. 마도 제국은 왕국 연합군을 요격할 총사령관에 그레시오스 공작을 임명하고, 부사령관으로 라이젠과 레이벨을 파견했다. 게다가 골렘까지 파견하여 단번에 전선의 우위를 점하기 시작했다. 소드 마스터도 제거하기 힘든 골렘은 전장에서 압도적인 힘을 발휘했다. 블리어드 제국군이 침공한 동부 전선도 마찬가지다. 실로프 공작을 총사령관으로 하여 샤이어드와 넬리어스를 파견하자 블리어드 제국은 당장 전선을 유지하기도 버거워졌다. 각각의 전선에 3명의 초인이 힘을 보태고 있으니 그 효과가 엄청났던 것이다. 블리어드 제국군은 마도 제국이 이런식으로 나을 것을 예상했는지 아인하트 후작의 지휘 아래 수십 명의 마법사들이 고심하여 만든 마법 방해진으로 8클래스 마법사의 역할을 상당히 제한하는 데 성공했다. 그에 반해 왕국 연합군은 라이젠과 레이벨에 의해 엄청 난 피해를 입어야 했다. 여러 날 동안 극심한 타격을 받은 그들은 서부의 8클래스 마법사인 멜뤼스와 코린트가 합류하고 나서야 전선을 유지할 수 있었다. 큰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그들이 재빨리 전열을 가다듬었기에 마도 제국은 결정적인 공격을 할 수 없었고, 상대적으로 피해가 큰 왕국 연합군도 수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마도 제국군에 함부로 공격을 가할 수 없었다. 전선은 그렇게 소강상태를 맞이한 채 3개월의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마도 제국의 황궁, 그랜드 홀이라 불리는 이곳은 본래 벨로세크 제국의 황궁이었던 곳을 더욱 증축한 곳이다. 대륙의 종주국이라 불리는 벨로세크 제국의 황궁은 그 어떤 제국의 황궁보다도 웅장하고 아름다웠다. 황궁을 다 둘러보려면 1년의 시간이 있더라도 부족하다는 말이 사실처럼 들릴 정도로 그 규모는 정말 방대하다 할 수 있다. 거기에 규모를 더욱 키웠으니 이 얼마나 거대한가. 하지만 추후 대륙을 통일할 대제국의 황궁이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게 바로 루이아스였다. 어차피 대제국의 황제인 그에게는 재물이 엄청났으므로 이 정도 대공사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랜드 홀은 마도 제국의 황제 루이아스가 주로 머무는 곳이다. 이곳에 드나들 수 있는 인물은 마도 제국에서 단 10명 만 존재한다. 그중 한 사람이 당연히 황제인 루이아스다. 그리고 다른 아홉 명은 바로 마도 제국의 중추를 이루고 있는 초인 들이다. 루이아스는 루이넨스를 불러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그는 루이넨스를 보며 말했다. "계획은 모두 끝났다고 했나?" "예, 폐하. 라이젠과 레이벨은 모두 분신을 내세운 채 조용히 황궁으로 입궐하였으며, 실로프와 넬리어스 또한 입궁하였습니다." 루이넨스가 언급한 4명의 초인은 모두 8클래스 마법사다. 도대체 그들을 왜 비밀리에 불러들인 것일까. 만약 이 사실이 알려진다면 마도 제국군은 단번에 전선에서 패퇴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초인 3명이 있음으로 유지하던 전선이 두 명이 빠져나감으로써 단번에 붕괴될 가능성은 높으니 말이다. 하지만 분신까지 내세운 마당에 그들의 부재가 알려질 확률은 희박했다. 따라서 현재 소강상태가 깨질 확률은 무척 희박하다 할 있다. 자신이 불러들인 초인들 모두가 황궁으로 들어섰다는 말에 루이아스가 웃었다. "그래, 잘했군. 하기야 무려 세 달에 걸친 계획이었으니 실패할 리가 없겠지. 트루먼과 지크리스는?" 6명의 초인이 전장에 파견 나가고 남은 세 초인은 황궁 에 대기하고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은 바로 루이넨스다. 그녀는 현재 마도 제국의 근위기사단장을 맡고 있다. 그녀의 휘하에는 도합 200명의 소드 마스터가 존재하며, 그레시오스 공작과 지크리스 공작, 트루먼 공작과 실로프 공작은 4명의 부단장이다. 그들의 휘하에는 각각 100명의 소드 마스터가 존재한다. 근위 기사단장이 된 루이넨스는 그 시점부터 루이아스 와 떨어질 수 없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 근위 기사단장이라는 뜻은 황제를 가장 지척에서 보호 하는 인물이라는 말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루이넨스는 두 사람에 대해서도 말해 주었다. "준비가 완료되었다고 합니다. 언제라도 출발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 잘되었군." 루이아스는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루이넨스를 바라본다. "조만간 여우같은 아토빌 공작이 움직일 것이다. 갓소드를 다루는 그 녀석의 힘은 결코 만만치 않다. 이길 수 있나?" 루이아스의 물음에 루이넨스가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마검의 모든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된 상태에서 폐하를 제외한 누구도 제 상대가 될 수는 없습니다." 오만함이 넘치는 태도였다. 세상에 강자는 많고 특히 그랜드 마스터들 중에서 아토 빌 공작과 엘리엔의 강함은 독보적이라 할 수 있다. 루이넨스는 그 둘과 겨루면서 평수를 이룬 것이 고작이었다. 헌데 이제는 그들을 넘을 수 있단다. 그동안 진전이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루이아스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넌 결코 오만한 여인이 아니니 그 말이 사실이겠지. 아토빌 공작을 제거할 때에는 네가 선봉을 맡아라." 루이넨스가 고개를 숙이며 예를 취했다. "알겠습니다, 폐하." "일단 그것은 이번 일이 성공한 뒤에 벌어질 계획이지. 우선 이 계획이 성공해야 한다." 루이아스는 평소 그답지 않게 과민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 오늘을 위해 장장 반년에 걸친 방대한 계획을 세웠다. 그가 세운 계획, 그것은 다름 아닌 금탑을 멸망시키기 위한 계획이었다. 루이아스는 금탑주를 함정에 빠뜨려 자신과 마주치게 하였을 때 자신의 손에서 살아남으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마법, 제련제강의 마법, 경험 등 모든 것 하나 부족함이 없는 자신이 금탑주를 놓쳤으니 실로 큰 실책이 아닐 수 없다. 계획이 실패한 금탑주는 더욱 몸을 사릴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를 죽이는 것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신의 힘을 온몸으로 은 금탑주는 어떻게든 대책을 세울 것이 분명했다. 의도적으로 자신의 힘을 제한하여 적은 힘을 발휘해서 적들의 방심을 유도하는 계획은 산산조각 났다. 이대로 시간을 주면 유리한 것은 금탑주지 자신이 아니다. 시간을 주면 줄수록 금탑주는 무언가 대책을 세울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루이아스는 한 가지 계획을 세웠다. 바로 전쟁을 이용하여 금탑주를 제거할 계획을 세운 것이다. 현재 대륙의 모든 이목은 마도 제국과 왕국 연합군, 블리어드 제국 간의 전쟁에 쏠려 있다. 그리고 그 전쟁에서 등장한 마도 제국의 초인이 도합 여섯 명이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이런 시점에서 금탑주는 방심할 수 있는 여지가 존재한다. 왜냐하면 루미넨스는 근위기사단장으로서 황궁을 벗어나지 않을 테니 남은 2명의 초인이라면 충분히 금탑이 막아낼 수 있는 전력이라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루이아스의 속임수에 불과했다. 루이아스는 모두가 속게 하기 위해 여섯 명의 초인을 전장으로 파견한 것이다. 그들로 하여금 막강한 힘을 발휘하게 하여 강한 인상을 심어 준 뒤 적들의 전력도 더욱 증원하게 하여 소강상태로 이끈다. 소강상태가 되면 딱히 그들이 할 일은 없어진다. 그걸 노려 루이아스는 그들을 비밀리에 황궁으로 불러들인 것이다. 그들을 불러들인 이유는 바로 하나. 팔탑을 제거하기 위함이다. 현재 금탑의 전력으로는 4명의 초인까지는 무리 없이 막아 낼 힘을 보유하고 있다. 5명까지는 어찌어찌 막아 내겠지만 6명의 초인이 공격 을 하게 되면 도저히 막을 방법이 없다. 2명의 초인밖에 동원이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점을 이용하여 루이아스는 비밀리에 4명의 초인을 더 동원하여 도합 6명의 초인으로 하여금 금탑을 공격하게 하려는 것이다. 제대로 방비하지 못한 금탑은 여섯 초인에 의해 처참하게 짓밟히고 불타오르리라. 불타오를 금탑을 생각하며 절로 흡족한 표정을 지어 보인 루이아스는 어느새 자신 앞에 도열한 여섯 초인에게 시선을 주었다. "이제 너희들에게 중대한 임무를 맡길 것이다. 너희들 이 맡을 임무는 바로 금탑을 이 세상에서 제거하는 것이다.” "......!" 루이아스의 말에 여섯 초인의 몸이 움찔했다. 그리고 그제야 자세한 제반 상황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왜 자신들을 전장으로 파견하고 비밀리에 소환했는지, 그리고 왜 금탑을 제거하려는지 말이다. 정말 방대한 계획이 아닐 수 없다. 결국 금탑을 제거하기 위해 루이아스는 전 대륙을 속인 것이다 하지만 그들도 금탑이라면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만약 금탑이 없었다면 현재 마도 제국은 오대 제국을 모두 통합한 초거대 제국이 되었을 테니 말이다. 엘에게 직접적인 원한이 있는 트루먼 공작의 눈이 활활 타올랐다. 그는 자신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 손으로 엘의 피를 묻힐 수만 있다면...... 그 어떠한 대가라도 치를 수 있을 것 같았다. 루이아스는 그들을 보며 명령을 내렸다. "너희들을 전장에 파견하여 존재감을 각인시킨 이유가 바로 금탑을 제거하기 위함이다. 금탑은 위험한 곳이다. 당장 금탑주 엘리미스의 능력이 초인들 중 아래에 속한다고 하나 그 잠재 능력을 생각한다면 제일 위험하다 할 수 있지. 아니, 지금도 제일 위험한 인물이다. 금탑주는 모든 초인들과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그를 제거한 다면 초인들은 분열할 수밖에 없고, 하나로 힘을 모으지 못할 것이다. 때문에 금탑주를 죽인다면 우리 마도 제국의 승리는 확실해질 것이다. 반드시 금탑주를 제거하라." "알겠습니다. 폐하!" 여섯 초인이 허리를 숙이며 힘차게 대답했다. 금탑을 제거하는 것! 그것은 마도 제국이 대륙 통일을 향한 위대한 일보가 될 것이다. 무려 여섯 명에 달하는 초인들을 금탑이 어찌 막아 내랴. 루이아스의 입가에 웃음이 맺혔다. "후후후, 금탑주여. 너와의 질긴 악연을 이제 모두 끊어주겠다." (골든 메이지 12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