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명 : 골든메이지8 저자명 : 김현우 펴낸이 : 신현호 출판사 : 디앤씨미디어 출판년도 : 2008년 6월 12일 봉사자 : 정재은 <지은이소개 /김현우> 마음만은 여전히 신인. 오늘도 매일같이 키보드를 두드린다. <차례> 1. 엘프 수호검주 엘리엔 2. 엘프 숲과 동맹을 맺다 3. 과거의 자취 4. 매직 메탈의 판매권을 따내다 5. 한밤중의 습격 6. 매직 나이트, 제자를 거두다 - 1 7. 매직 나이트, 제자를 거두다 - 2 8. 아토빌 공작과의 접촉 9. 마검의 주인 루이넨스 10. 루이아스의 등장 1. 엘프 수호검주 엘리엔 엘프들이 익히는 검은 인간들이 익히는 검과는 사뭇 다르다. 인간들은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실용적인 검술을 창안해 왔다. 그 의도는 당연히 사람을 효율적으로 죽이기 위한 것! 어떻게 하면 좀 더 효율적으로 죽일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다수와의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는가. 인간들의 검술은 항상 상대를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상대할 수 있는가에 주안점을 두고 발전해 왔다. 당연히 그들의 검술은 실용적이었다. 더군다나 오랜 세월 보완에 보완을 거듭해 온 검이기에 군더더기가 없었다. 반면 엘프의 검술은 살상을 하기 위한 도구로서 사용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검술은 자신을 스스로 지키기 위해 만든 것. 평소 분쟁이 없는 그들로서는 살기가 짙은 실용적인 검술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들이 서로에게 살기를 품을 일도 없을 뿐더러 다른 이들과 전투를 벌이는 일도 극히 적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들은 실용적인 검술이 아닌, 자연을 닮은 검술을 창안하기 시작했다. 본래 엘프란 종족은 한없이 자연에 가까운 종족. 살상을 위한 검보다 자연을 닮은 검이 그들에게 어울렸던 것이다. 그들은 그때부터 자연을 닮은 검술을 만들고자 노력하기 시작했고, 수백 년간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온 엘프의 검술은 마침내 자연과 빼닮은 검술을 보유하게 되었다. 더군다나 그들은 배움에 있어 귀천을 가리지 않는 존재. 하나하나가 모두 뛰어난 재능을 지닌 이들이고, 배우고자 한다면 그것에 아낌없이 제공되었기에 완성에 가까운 검술 또한 다시 한 번 발전을 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완성된 검술. 그것을 완벽하게 익힌 엘프 검사가 나타났으니, 그녀가 바로 엘리엔이었다. 엘리엔의 검은 여태껏 엘이 봐 온 검과는 사뭇 달랐다. 힘이나 빠르기 등이 기존의 검과는 완전히 달랐다. 마치 서로의 공간이 어긋난 듯이 빈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그녀의 검. 얼핏 보면 그리 빠르지 않지만 그것은 무시무시하다고 할 정도로 빠르게 접근해 오기에 엘의 안색은 새하얗게 변해 가기 시작했다. 검을 받아 낼 수 없다고 판단한 엘은 본능적으로 블링크를 전개하였다. 파앗! 엘리엔의 검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약 10m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엘은 분노한 표정으로 외쳤다. "다짜고짜 이게 무슨 일입니까!" 엘이 보기에 엘리엔은 인간이 아닌 듯했다. 자신을 죽이러 온 거라면 굳이 번거롭게 트랜스 포메이션을 사용할 리 없을 뿐더러, 그녀가 익혀 온 검술은 인간들이 흉내 낼 수 없는 깊은 동화의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대륙에는 여성이 그랜드 마스터에 오른 전례가 없다. 엘의 외침에 엘리엔은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후드를 뒤로 젖혔다. 그와 함께 드러나는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 여기까지 오면서 무려 1,000여 명의 사람들을 해치게 만든 그녀의 외모는 인간의 것이라 보기 힘들 만큼 완벽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여태껏 실피르나 세레나, 카이나보다 아름다운 여인을 보지 못한 엘로서도 엘리엔의 아름다움에 순간 눈을 크게 뜰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엘은 이미 초인의 경지에 이른 사람. 놀라움도 잠시, 빠르게 안정을 되찾아 갔다. 그런 엘의 모습에 엘리엔이 나직이 이채를 발했다. 여태껏 자신의 외모를 보고 이토록 빠르게 평정심을 되찾은 인간은 전무했기 때문이다. 엘리엔이 엘에게 말했다. "내 이름은 엘리엔. 저 북쪽의 엘프 숲에서 골드 스타를 찾아온 엘프의 수호검주다. 난 대륙에 나오면서 금탑주를 골드 스타로 판단한바, 우리에게 도움이 되기보다는 위험이 될 인물일 확률이 높다고 판단하여 금탑주, 너를 제거한다." 이것은 그녀가 엘프 숲에 나오기 전에 이미 결심한 사항이다. 골드 스타라면 분명 황금과 관련된 인물일 확률이 높다. 황금과 관련이 높다는 것은 즉, 돈이 많다는 것. 당연히 막대한 이익을 낳는 노예 사업 등을 할 확률이 높다. 엘리엔 또한 엘이 대륙 10대 상단 중 하나의 주인이라는 말에 그렇게 판단하여 엘을 제거하려고 마음을 먹은 것이다. 다시 한 번 그녀의 검이 새파랗게 빛나기 시작했다. "내가 왜 살기를 받아야 하는지는 승부가 난 뒤에 들으면 되겠지." 가공할 살기가 주변에 퍼져 나가자 엘 또한 감히 경시 하지 못하고 경계의 태세를 취했다. 엘의 주변에 수십 개의 마법이 생각났다. 그리고 엘이 손짓을 하자 마법들은 빠른 속도로 엘리엔에게 향하기 시작했다. 순간 엘리엔의 몸이 흐릿해졌다. 동시에 그녀의 검이 길게 쭉뿜어지더니 이내 수십 줄기의 오러가 마법들을 모두 분쇄하기 시작했다. 마치 거대한 산이 가로막는 것을 모두 부숴 버리는 듯한 어마어마한 기세였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의 시선을 빼앗기 위한 계획이었다. 마법을 전개한 엘의 몸이 블링크로 사라지면서 엘리엔의 뒤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절호의 기회를 잡은 엘이 눈을 빛내며 양손을 뻗었다. 어느새 엘의 양손에는 금빛 뇌전이 스파크를 일으키고 있었다. 이것에 적중된다면 그대로 정신을 잃을 수밖에 없으리라. 엘의 양손이 빠르게 엘리엔에게 향했다. 이대로 공격을 성공한다면 자신의 승리리라. 그리고 왜 자신에게 검을 휘둘렀는지 물어볼 것이다. 자신의 승리를 확신할 때,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엘의 마법이 적중되기 전 엘리엔의 몸이 흐릿해지더니 이내 그의 마법이 무효로 돌아간 것이다. 그리고 엘리엔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엘의 뒤였다. 마법을 어느 정도 익힌 엘리엔이 블링크로 엘의 공격을 피했던 것이다. 설마하니 그랜드 마스터에 이른 이가 블링크 마법을 전개할 줄 몰랐기에 엘의 안색은 새하얗게 탈색되어 갔다. 절체절명의 순간! 엘은 단 2개만 저장할 수 있는 메모라이즈 마법을 전개 하였다. "세이지 실드!" 8클래스 최강의 방어 마법 세이지 실드! 그것이 지금 전개된 것이다. 삽시간에 발현된 세이지 실드는 엘의 전면에 나타나 반투명한 막을 생성했고, 그것은 엘리엔의 오러를 막아 냈 다. 푸캉! 제아무리 오러가 강하다고 하나 세이지 실드를 뚫을 수 없는 법! 특히 엘은 마나의 호응과 마나 지배가 다른 8클래스보다 뛰어나다고 할 수 있기에 그 방어력은 기존의 것보다 강했다. 그때, 기이한 현상이 발생하였다. 엘리엔의 네이처 소드에서 돌연 녹빛이 뿜어져 나온 것이다.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신검, 네이처 소드! 그 검의 능력 중 하나가 마나의 흐름을 바로 잡는 것이다. 마법이란 것은 엄연히 마법사의 존재가 만들어 낸 인위적인 흐름이다. 네이처 소드는 그 흐름을 본래의 흐름으로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세이지 실드를 이루고 있던 마나가 네이처 소드에 의해 삽시간에 마나의 흐름이 느슨해졌다. 그 틈을 비집고 엘리엔의 검이 세이지 실드를 꿰뚫었다. "이럴 수가!" 자신의 마나 장악이 일시에 무효로 돌아간 것을 깨닫고 변한 엘의 안색. 그런 그에게 네이처 소드의 날카로운 검날이 향하고 있었다. 위험한 순간! 완전히 무방비가 된 엘에게 검을 휘두르던 엘리엔은 돌연 기이한 마나 흐름을 느끼고는 재빨리 네이처 소드를 휘둘렀다. 동시에 수많은 오러가 그녀의 사방에 나타났다. 따당! 땅! 땅! 부챗살같이 퍼지며 그녀의 검은 주변에 나타난 오러들을 모조리 튕겨 냈다. 한순간 검으로 전신을 보호하다니! 정말 놀라운 검술이 아닐 수 없었다. “대단하군.” 엘리엔이 모든 공격을 막아 내자 엘의 옆에 한 사내가 나타났다. 그는 다름 아닌 아이넨스였다. 아이넨스는 엘리엔이 들고 있는 검을 유심히 살피며 말했다. “설마하니 세상에 네이처 소드가 등장할 줄이야. 네이처 소드는 엘프들의 신물. 그렇다는 건 그대의 정체는 엘프로군!" "엘프." 확신어린 아이넨스의 말에 엘은 고개를 끄덕이며 엘리엔에게 입을 열었다. “말해 주십시오. 왜 갑자기 저를 골드 스타라 칭하는 것이며, 저에게 검을 겨누는 것입니까? 검을 겨누더라도 최소한 그 이유를 알려 주십시오." “......” 엘의 말에 엘리엔은 할 말이 없었다. 왜냐하면 엘을 다짜고짜 공격했던 것은 순전히 그녀의 개인적 복수심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엘리엔은 자신이 인간 따위에게 미안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당당하게 말했다. “나는 이곳에 오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같이 추악하고 더럽더군. 인간들은 모두 같은 종족이다. 욕망을 가지고 그것을 쟁취하기 위해 어떤 더러운 수단도 서슴지 않지. 나는 대장로님에게 명령을 받았다. 인간계로 나아가 골드 스타를 찾으라고. 그리고 내가 판단한 바로 너는 골드 스타다. 골드 스타는 우리 엘프들을 구해 줄 확률이 높은 이로서 이 세상을 구하거나 멸망시킬 확률이 높은 존재. 나는 네가 추악한 인간이기에 우리 엘프의 운명을 너에게 맡길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널 제거할 것이다." 긴 말이었다. 여기서 요즘을 추리면 자신이 엘프들에게 이로운 혹은 해로운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엘리엔은 자신의 판단으로 자신이 엘프에게 해로운 존재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나 보다. 엘이 입을 열었다. “어떤 인간들을 보아 왔는지 모르겠지만 인간은 모두 추악한 존재는 아닙니다. 당신도 인간을 보아 왔을 게 아닙니까? 인간들 중 상당수는 추악하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도 존재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건......“ 엘의 말에 말문이 막힌 엘리엔. 확실히 그러했다. 그녀와 충돌한 인간들은 대부분 추악하기 그지없는 심성을 지녔지만 반대로 충돌하지 않은 상당수 인간들은 순수한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 가령 갈리아스 자작령에서 만난 엘린이 그러하지 않았는가. 무언가를 가진 상층부 인간들이 추악했을 뿐, 그 아래 계층에 존재한 인간들은 그리 추악하지 않았다. 엘은 그 점을 정확하게 파고 든 것이다. 세상에 모든 인간들이 추악하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엘은 엘리엔이 이곳으로 오기까지 상당히 고약한 경험을 했을 거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엘리엔의 미모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이 정도로 아름답다면 이런저런 충돌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게 선입견이 되어 자신에게까지 여파를 미친 게 분명하리라. 엘은 그렇게 생각하였다. 엘은 멈칫거리는 엘리엔에게 차분하게 말하였다. “저 또한 당신이 보아 온 인간들과 유사한 상층부 인간이지요. 하지만 저는 스스로가 남에게 피해를 입히면서까지 저를 위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제 자신의 행복과 제 가족의 행복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무언가를 위한다는 것. 그것은 필연적으로 어느 부분에 대해서는 독해질 수 있겠지만 어떻게 보면 그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당신도 그렇지 않습니까?" “아!" 엘의 말에 엘리엔이 무언가를 깨달은 듯 탄성을 흘렸다. 이 정도까지 듣고서 어찌 못 깨달을 수 있겠는가. 자신이 인간들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과 관련된 인간은 모두 죽었다. 그리고 자신은 지금 엉뚱한 인간들에게 화풀이를 하고 있던 것이다. 자신의 부모를 죽인 인간들과 자신의 미모를 탐낸 인간들과는 엄연히 다르다. 그런데 자신은 단지 인간이란 이 유로 그들을 용서 없이 모두 죽여 버린 것이다. 힘 있는 자의 횡포. 그것은 과거 그녀가 당했던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아아......” 불현듯 깨달은 사실이 그녀로 하여금 충격의 도가니로 밀어 넣었다. “......” 엘과 아이넨스는 그런 엘리엔의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직접 엘리엔과 겨뤄 본 엘은 그녀의 실력이 엄청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아이넨스가 더욱 그러했는데, 그는 같은 검사로서 엘리엔의 실력이 짐작가질 않자 식은땀을 흘렸다. '그 실력이 파악되지 않는다는 건...... 나보다 강자라는 뜻‘ 기나긴 세월을 살아가는 엘프인 만큼 그녀가 얼마만큼 수련을 해 왔을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스르릉. 한동안 충격에 빠져 있던 그녀는 검을 다시 꽃아 넣었다. 그리고 아이넨스를 보며 말했다. “그대는 과거 마왕을 물리친 신검가의 후예인가?” "그렇소." "그럼 잘됐군." 엘과 아이넨스를 보며 고개를 나직이 끄덕인 엘리엔은 엘을 향해 말했다. "가능하다면 나와 엘프 숲으로 가 주었으면 한다. 그곳에서 대장로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향후의 일을 이야기했으면 좋겠어." "엘프 대장로를......“ 엘은 갑작스러운 엘리엔의 말에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이내 결정을 내렸다. '그래, 엘프들도 9클래스 마법사의 정체를 알아서 그런 것일 수 있어. 더군다나 신검의 주인인 저 엘프도 있으니...... 이야기를 나눠서 나쁠 건 없을 거야.' 이미 엘리엔의 힘을 겪어 보았으니 그 부분에 대해서는 걱정할 가치가 없었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결정을 내린 것이다. 그가 아이넨스에게 시선을 옮기자 아이넨스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검을 갈무리했다. "나 또한 따르지. 그나저나 네가 골드 스타였다니, 놀랍군." "골드 스타? 그게 무엇입니까?“ 엘은 아이넨스가 골드 스타를 언급하자 그게 무엇인지 궁금한 듯 물었다. 그러자 아이넨스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세상에는 대륙을 여러 가지 방향으로 이끄는 거대한 별이 있다고 점성술사들은 주장한다. 그중 하나가 바로 다크 스타인데 예로부터 다크 스타가 뜨면 대륙은 위기에 처한다고 하지. 과거 마왕이 강림했을 때엔 어김없이 이 다크 스타가 떴었다." "그렇군요." 엘이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넨스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과거 다크 스타는 강림한 마왕을 가리켰는데, 이 세상에서 그것을 저지할 수 있는 것은 홀리 스타뿐이라고 하지. 홀리 스타는 다크 스타와 상극된 힘을 지니고 있는데, 홀리 스타의 존재로 대륙은 여태껏 무사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홀리 스타라...... 그걸 언급한다는 것은 지금 현세에 다크 스타와 홀리 스타가 재림했다는 이야기인가요?" “글쎄...... 그건 모르지. 아니, 홀리 스타는 확실히 모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다크 스타는 재림했다는 거다." "그럼 흘리 스타는......?“ 엘이 궁금한 듯 되묻자 엘리엔이 끼어들었다. "그 이야기는 내가 하겠어." 엘과 아이넨스의 시선이 엘리엔에게 향했다. 확실히 엘프 숲에서 나온 만큼 어느 정도 정황을 잘 알고 있을 거란 판단이 들었다. 두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자 엘리엔이 말하였다. "본래 다크 스타가 재림하면 신께서는 홀리 스타를 이 세상에 내려 보내지. 하지만 이번에는 홀리 스타가 내려오지 못했다. 왜냐하면 누군가가 신의 의지를 바꾸어 버렸기 때문이다“ "신의 의지를?“ 엘과 아이넨스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돌연 두 사람은 흠칫한다. 신의 의지를 바꾸어 버린 것. 그것을 떠올리니 한 가지 사건이 뇌리에 스친 것이다. 놀란 엘이 말하였다. “설마...... 그것은 성녀를 말하는 것인가?” 신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면 딱 하나밖에 없다. 바로 성녀의 선택. 신의 의지가 꺾인 것은 그 일뿐이었던 것이다. “성녀라......” 엘의 말에 엘리엔은 잠시 읊조리더니 이내 말을 이어나 갔다. "덕분에 다크 스타를 견제할 어느 별도 없었지. 과거 홀리 스타의 힘을 받은 신검의 주인도 현세에 재림한 다크 스타를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인 모양이야," 엘리엔의 말에 아이넨스의 표정이 굳었다. 그리고 주먹을 확 움켜쥐었다. 자신의 힘이 부족한 건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루이아스와 상대하려던 자신이 고작 그의 부하를 조금 압도하는 정도에 그쳤기 때문이다. 8클래스 마법사가 그 정도의 힘을 지니고 있을진대 9클래스 마법사는 오죽하겠는가. 하지만 본인 스스로가 느끼는 것과 남이 직접 말하는 것은 무척 큰 차이가 있다. 때문에 아이넨스는 순간 치밀어 오르는 자괴감을 참기 위해 입술을 질끈 깨물어야 했다. 엘리엔은 그런 아이넨스를 슬쩍 바라보더니 이내 말을 이어갔다. "때문에 당금 대륙의 상황은 다크 스타의 독주라 할 수 있어. 그런데 점성술에 의외의 별이 잡힌 거야. 그 별이 바로 골드 스타지 ." "골드 스타라......“ 엘은 황금의 별이란 것에 나직이 고개를 끄덕였다. 왜 엘리엔이 자신을 찾아왔는지 알 것 같다. 골드 스타. 그것은 말 그대로 황금의 별이다. 황금의 별이라는 것은 금과 관련이 깊다는 뜻. 황금과 관련이 깊은 것은 대륙 십대 상단주일 확률이 높지만 대륙을 진동시키는 금탑의 탑주이자 디벨 상단의 실질적인 주인인 자신보다 못한 것이 사실이다. 더군다나 자신에게는 골든 나이트와 8클래스에 이른 자신의 힘이 있지 않은가. 그러한 면이 엘리엔을 이곳으로 이끈 것임이 분명했다. 엘은 엘리엔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골드 스타는 매우 위험한 별이다. 이 세상을 멸망시킬 수도, 이 세상을 부흥시킬 수도 있지. 그렇기에 대장로님께서는 나를 인간 세계로 파견하면서 골드 스타가 세상을 멸망시킬 확률이 있다면 도리어 그를 제거하라 명령하셨다. 그래서 묻겠다. 골드 스타여. 그대는 세상을 멸망시키려는 마음이 있었는가?“ 엘리엔의 눈에 은은한 푸른 안광이 서리기 시작했다. 엘프는 상대의 심중을 꿰뚫어볼 수 있는 진실의 눈을 지니고 있다. 그런 엘리엔을 속이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라 할 수 있다. “......” 엘은 엘리엔의 부담스러운 시선을 받으며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자신이 그렇게 생각했던 적이 있는지...... 깊게 생각해 본 결과 답은 '있다.' 였다. 물론 자신이 직접적으로 그런 생각을 한 것이 아니다. 그가 생각한 것, 그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힘이 부족할 때 9클래스 마법사인 루이아스와 손을 잡으려 했다는 것이다. 다크 스타가 바로 그라는 것이 결정된 이상 그와 손을 잡으려 했던 자신이 그것과 연류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엘은 솔직하게 말하였다. "후! 한때는 내 힘이 부족하여 그의 밑으로 들어갈까 생각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지요. 난 스스로 내 모든 걸 지키고 싶습니다. 그것이 지금의 나의 모습입니다." '진실이다.' 엘의 말을 듣는 엘리엔의 눈이 빛났다. 그의 말이 진심이라는 것이 그녀에게 생생하게 전해졌다. 그렇다는 건 제거 대상이 아니라는 뜻. 엘리엔은 나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그렇군. 그 말이 진실임을 알겠다. 그럼 나와 함께 엘프 숲으로 가지. 그곳에서 대장로님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보는 게 여러모로 이득이라 생각하는데......“ 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저 또한 자세한 이야기를 알고 싶던 차였습니다." "그대는?“ 엘리엔이 아이넨스에게 묻자 그 또한 고개를 무겁게 끄덕였다. “나 또한 마찬가지. 엘프 숲에 가겠소." "그럼." 엘리엔이 엘과 아이넨스에게 나뭇잎 하나를 건넸다. '스크롤!' "텔레포트 마법이 새겨진 스크롤이야. 이걸 찢으면 곧장 엘프 숲으로 갈 수 있지. 그럼 엘프 숲에서 보지." 찌직! 스팟! 나뭇잎 스크롤을 찢자 엘리엔의 몸이 빛에 휩싸이며 사라졌다. “......” 엘과 아이넨스도 서로 한차례 바라본 뒤 이윽고 나뭇잎 스크롤을 찢었다. 스팟! 새하얀 빛에 휩싸인 두 사람. 이윽고 두 사람은 빛에 휩싸여 사라졌다. 2. 엘프 숲과 동맹을 맺다 태초에 자리한 이 넓은 숲은 아직도 옛날 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자연 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이 숲에는 큰 마을이 존재했는데, 그 모습은 놀랍게도 자연을 전혀 훼손 하지 않은 채 마을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곳은 바로 엘프 숲. 대륙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엘프 들이 모여 사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조용함 그 자체를 유지하는 그런 이곳이, 지금 술렁이고 있었다. 바로 엘프의 숲에 인간 2명이 나타난 것이다. 나뭇잎 스크롤을 사용한 엘과 아이넨스 그들을 맞이한 곳은 울창한 숲에 밀도 높은 마나가 응집된 마을이었다. 상공 10여 m에 등장했지만 가벼운 몸놀림으로 착지하는 그들. 마을에 내려선 그들은 그제야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주변으로 수많은 이들이 다가와 있었다. 주변에 모인 이들 하나하나가 모두 아름답기 그지없었는데, 그들 모두가 대륙에서 보기 힘든 엘프들이었다. '엘프들이군. 정말 소문대로 아름답구나. 완전 꽃밭인걸?‘ 엘은 엘프들을 보며 속으로 감탄사를 흘렸다. 들리는 소문대로 엘프들은 아름답기 그지없는 외모를 지니고 있던 것이다. 놀란 엘과 마찬가지로 엘프들 또한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이곳 엘프 숲은 인간들에게 있어 금지와 같은 곳이다. 왜냐하면 엘프들에게 있어 인간은 자신들을 노리는 지극히 추악한 짐승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 이유 때문에 엘과 아이넨스에게 보내는 감정이 고울 리 없을 터. 매서운 적의가 전신을 따갑게 강타하자 엘과 아이넨스의 안색도 바뀌었다. "아무래도 환영받을 순 없나 보군." "저들에게 있어 저희는 경계해야 할 대상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니까요." 엘프들의 입장을 어느 정도 이해한 엘이 살짝 미소를 짓는 여유까지 발휘하며 말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엘프들의 적의가 점점 더 강해지자 돌연 두 사람은 표정을 굳혔다. 동시에 두 사람에게서 기세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콰콰콰콰-! 폭발하는 기세는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갔다. 둘은 대륙을 대표하는 그랜드 마스터와 8클래스의 경지에 이른 초인. 반면 엘프들은, 제각기 인간계에서 어느 정도 알아주는 실력을 지니고 있다 해도 단지 그뿐이다. 한계를 넘은 초인들에게 비할 바가 못 되는 것이다. "허억!" "이, 이건......“ 삽시간에 주변을 잠식해 들어가는 무시무시한 기세에 엘프들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려 갔다. 본능적으로 이 인간들이 보통 실력을 지닌 게 아님을 느낀 것이다. 선천적으로 뛰어난 마나 친화도를 지닌 엘프들은 느낄 수 있었다. 주변에 존재하는 마나가 이 두 인간들에 의해 완벽하게 지배당하고 있는 것을. 마나를 이토록 완벽하게 지배할 수 있는 경지는 딱 2가지. 검과 마법으로 그 끝을 보았다고 일컬어지는 그랜드 마스터와 8클래스 마법사가 바로 그 경우이다. 그렇다면 이 두 인간이 그 경지에 든 이들이란 말인가? 그러고 보니 방금 전 이들은 공간 이동으로 이곳 엘프 숲에 들어왔다. 엘프 숲은 대장로인 아카벨에 의해 널찍한 결계가 쳐져 있다. 두 인간이 결계를 뚫고 공간 이동을 했다는 것은 오로지 동급의 경지에 이른 인간 혹은 아카벨 대장로의 인정을 받은 인간이라는 걸 뜻한다. 이 2가지 경우 모두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경지에 이른 이들일 테니, 이 두 사람 모두가 아카벨 대장로와 비슷한 실력을 지닌 인물이란 뜻이 된다. 아니다 다를까, 멀찍이서 장로들이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모두 비켜라! 그들은 적이 아니다!" "장로님!" 엘프들은 장로가 등장하자 길을 열었다. 길을 연 탓에 쉽사리 엘과 아이넨스가 있는 곳에 도착한 장로들은 둘을 훑어보았다. 엘과 아이넨스 또한 장로라 불린 이들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시간이 잠시 흐르고, 장로들 중 한 엘프가 앞으로 나섰다. 앞으로 나서는 엘프를 보며 엘과 아이넨스의 눈이 동시에 빛났다. '강하다!' 겉모습은 하염없이 연약하기만 한 중년 엘프였지만 그 안에 자리잡은 힘은 결코 가볍게 볼 만한 성질이 아니었다. 중년 엘프의 경지는 이미 8클래스에 다다라 있었다. "허허!" 엘과 아이넨스의 시선에 중년 엘프, 아카벨 대장로는 웃음을 지었다. 그러고는 두 사람에게 입을 열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내 이름은 아카벨, 부족하지만 엘프 숲의 대장로직을 맡고 있습니다." "대장로......“ 엘은 어느새 아카벨 대장로 옆에 자리한 엘리엔을 보며 고개를 나직이 끄덕였다. 그녀가 금탑에 온 이유가 바로 대장로의 명령 때문이었다는 것을 기억해 낸 것이다. 최악의 적이 될 수도 있지만, 서로 같은 적을 상대해야 한다면 엘프는 최악의 적이 아닌 최고의 아군이 될 수 있다. 엘은 아카벨 대장로에게 공손히 인사를 올렸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대장로님. 저는 인간 세계에서 금탑주라 불리는 엘리미스라고 합니다." 엘의 소개에 아카벨 대장로의 눈이 크게 뜨였다. 분명 몸의 나이를 보아하건데 인간의 나이로 20대 초반에 불과한 나이다. 그런데 이미 자신에 비해 결코 뒤쳐 지지 않는 경지마저 다다른 것이다. '골드 스타가 왜 빛났는지 알 것 같군. 허, 고작 이십 대 나이에 8클래스의 경지라니! ......정말 놀랍구나,' 속으로 경악하며 아카벨 대장로는 웃음을 지었다. "허, 반갑습니다. 엘리미스 님." 인사를 나눈 아카벨 대장로가 이번에는 아이넨스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의 시선은 정확히 아이넨스의 허리춤을 향하고 있었다. 디멘션 소드를 단번에 알아본 것이다. 아이넨스는 디멘션 소드를 가볍게 쥐고는 아카벨 대장로에게 인사하였다. “반갑습니다, 대장로님. 제 이름은 아이넨스 슈그르빌. 당대 신검의 계승자입니다." “반갑습니다, 신검의 계승자여, 이렇게 위급한 때에 신검의 계승자가 도와준다니 정말 든든합니다." "저 또한 엘프 숲의 도움을 받게 되니 반갑기는 마찬가지 입니다." 흡족한 미소를 지은 아카벨 대장로는 엘리엔을 보며 입을 열었다. "무사히 모셔오다니. 잘했다, 네 힘이 컸다, 엘리엔." 엘리엔이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사실 할 말이 없었다. 그녀는 엘을 보자마자 죽이려고 곧장 검을 빼 들기까지 했었으니. "아닙니다, 대장로님." "이런 일에도 겸손할 필요는 없단다. 아, 일단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를 하지요." 아카벨 대장로가 손을 뻗어 엘과 아이넨스를 안내하려 하였다. 그러자 다른 장로들도 따르려 하였다. 아카벨 대장로는 그들에게 손을 들어 제지하였다. "장로들은 나중에 따로 자리를 마련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분들을 모셔 온 것은 앞으로 엘프 숲의 미래를 설정 할 수 있는 중요한 일을 결정하기 위한 것. 그런 일에 자칫 안 좋은 감정을 개입했다가는 다 된 일을 그르칠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제 말이 틀립니까?“ “......” 그의 말에 장로들은 아무런 반박도 못하였다. 왜냐하면 그의 말대로 장로들 중 대다수가 인간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아카벨 대장로의 말에 모두 설득당한 그들이 뒤로 물러나자 그는 엘리엔을 불렀다. "너는 나를 따라오도록 하여라." “네." 아카벨 대장로의 말에 엘리엔이 순순히 따라 나섰다. 그도 그럴 것이 이야기를 나누는 상대는 모두 초인의 경지에 이른 인간들이다. 행여 그들이 힘을 합쳐 아카벨 대장로를 해하려 한다면 그 혼자 결코 버텨 내지 못할 것이 분명했기에 엘리엔이 호위를 하고자 기꺼이 따라 나선 것이다. 다른 장로들도 그것을 잘 알았기에 엘리엔이 따라 나서는 걸 말리지 않았다. “허허, 그럼 이야기를 나눠 보도록 하지요. 모두 이곳으로......” 아카벨 대장로는 엘과 아이넨스를 자신의 집으로 안내 하였다. 그런 그의 곁에서는 엘리엔이 무표정한 얼굴로 호위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내가 청을 하여 당혹스러울 거라 생각합니다." 자신의 집으로 안내한 아카벨 대장로는 엘과 아이넨스를 마주하고 앉아 입을 열었다. 그에 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사실입니다. 갑자기 저를 골드 스타라 칭하는 것부터 오랫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엘프들께서 이렇듯 먼저 움직임을 보이신 것까지 모두 말입니다." "흐음." 엘의 말에 아카벨 대장로는 턱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골드 스타란 용어는 점성술사들이나 아는 용어이고, 여태껏 엘프들이 스스로 먼저 움직인 적이 없으니 엘로서는 의외일 수밖에 없었다. 생각에 잠긴 그는 곧이어 이어진 엘의 말에 혼비백산해야 했다. "게다가 저를 보자마자 다짜고짜 검부터 날리는 분 때문에 목숨까지 위협받고 말이죠." "뭐라? 그게 사실입니까? 엘리엔!" 엘의 말에 화들짝 놀란 아카벨 대장로가 엘리엔을 바라보며 노한 표정을 지었다. "대장로님, 저는......“ 그런 아카벨 대장로의 시선에 엘리엔이 살짝 당황하며 말을 끝맺지 못했다. 순간 그녀의 매서운 시선이 엘에게 향했으나 그는 빙긋 웃으며 오히려 화를 북돋았다. 목숨을 위협당한 엘 나름대로의 복수 방식이었다. "아, 결과적으로는 제가 큰 상처를 입지 않았으니 대장 로님께선 너무 야단치지 마세요. 작은 상처쯤이야 마법으로 얼마든지 치료가 가능하니까요." "작은 상처...... 그렇다는 건......“ 다시금 아카벨 대장로의 날카로운 시선이 엘리엔에게 향했다. 그 시선을 받은 엘리엔은 안절부절못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엘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상처를 입히지 않았다고 말하여도 자신이 먼저 공격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기에 아니라고 부인해 봤자 구차해질 뿐이었다. 찌릿. 다시금 날카로운 그녀의 시선이 엘에게 향했으나 엘은 고개를 돌려 딴청을 피울 뿐이었다. "그나저나 골드 스타가 무엇인지 자세한 설명을 해 주셨으면 합니다만......“ 분위기가 묘해지자 아이넨스가 적절한 타이밍에 아카벨 대장로에게 물음을 건넨다. 엘 또한 골드 스타가 무엇인지 궁금했기에 자못 궁금한 표정으로 아카벨 대장로를 바라보았다. "음! 그렇겠군요. 확실히 골드 스타란 평범한 단어는 아니지요." 아카벨 대장로는 그들의 궁금증을 십분 이해하였다. 그리고 잠시 생각을 정리하더니, 입을 열었다. "골드 스타란 말 그대로 이 세상에 빛을 발하는 별들 중 하나입니다. 찬란한 황금빛을 발하는 골드 스타는 얼핏 보면 무척 이로운 별처럼 보이지만 그 실상은 다릅니다. 왜냐하면 골드 스타는 탁월한 능력을 지닌 것, 자칫 대륙을 혼란으로 몰아넣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대륙을 더욱 평화롭게 할 수도 있습니다만...... 그 성향을 알 수 없기에 어떤 면으로는 다크 스타보다 더욱 무서운 별이 골드 스타라 할 수 있지요." “......그렇군요." 아카벨 대장로의 말에 엘은 다소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러했다. 엘은 전생이라는 남들과 차별되는 능력을 지니고 태어나 뛰어난 재능으로 마법을 익혀 20대 초반에 모두가 바라 마지않는 8클래스의 경지에 오르는 기적을 이뤄 냈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몇 개의 마법 물품과 트롤의 피라는 획기적인 사업 아이템으로 대륙 10대 상단 중 하나인 디벨 상단을 키워 냈다. 그 누가 20대 초반에 이러한 것을 이루어 내겠는가. 아카벨 대장로의 말을 들으면 엘이 마음만 먹는다면 충분히 대륙을 혼란 속으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엘이 그러한 마음을 먹을 존재가 아니란 것이다. 엘은 자신의 심정을 솔직히 이야기하였다. "솔직히 말한다면 전 굳이 대륙을 혼란에 몰아넣을 생각은 없습니다. 제가 이 경지에 이르게 된 건 그저 가족을 지키기 위함이었고, 상단을 키운 것은 제가 돈에 대한 개인적인 욕심이 있어서 그런 것뿐입니다. 모두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기 위해 그래 왔던 것이지, 결코 나쁜 뜻은 없었다고 말하고 싶군요." "음, 그렇군요." 아카벨 대장로가 엘의 눈을 들여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은 거짓을 말하고 있지 않았다.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아카벨 대장로와 달리 엘리엔은 엘의 말에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엘은 방금 말했다. 자신이 힘을 기른 이유. 그것은 바로 가족을 지키기 위한 것이란다. 그에 비하면 자신은 무엇인가. 자신은 목적 없는 복수를 위해 끊임없이 검을 휘둘렀 고, 그로 인해 힘을 얻었다. 그리고 그 힘으로 지키는 쪽보다 자기 자신의 만족을 위해 인간들을 도륙했다. 같은 힘이지만 그 쓰이는 방법에 따라 모양새가 이토록 달라지다니. 엘리엔의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렸다. 그 사이 이야기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아카벨 대장로가 말하였다. “현재 재림한 다크 스타는 과거 마왕이 강림했을 때보다 더욱 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장 든든한 중간계의 수호자 드래곤이 개입할 명분이 없을 뿐더러, 다크 스타 본인의 능력은 드래곤을 제외한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을 만큼 고강하기 때문입니다." 엘과 아이넨스의 표정이 굳었다. 그리고 그들의 고개가 무겁게 끄덕여졌다. "확실히 그렇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그의 실력이 9클래스의 영역에 다다랐다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엘의 말에 아카벨 대장로가 고개를 저었다. "그것만이 그의 힘이 아닙니다. 그는 자신의 힘보다 더욱 강한 세력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혼자였다면 진즉에 협공을 하여 대륙을 구원할 방안을 마련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는 수많은 인간 초인들을 자신의 휘하에 끌어들였습니다. 지금 그의 휘하에 있는 초인이 몇명인지 아십니까?“ 알 리가 없다. 엘이 알고 있는 것은 적의 수장이 9클래스 마법사라는 사실일 뿐, 나머지는 아무것도 모르니 말이다. 단지 짐작하는 거라면 지크릴과 카로스만 같은 이들이 수하로 있는 걸로 보아 보통 수하들이 아닐 거란 느낌만 들 뿐이다. 그런 엘에게 아카벨 대장로는 충격적인 말을 하였다. "무려 열 명입니다. 본래 아홉 명이었어야 했으나 얼마 전 그의 수하로 들어선 새로운 초인이 있더군요. 현재 그의 휘하에 있는 존재는 그랜드 마스터 다섯 명과 8클래스 마법사 다섯 명 입니다." “......!” 엘과 아이넨스의 눈이 더할 나위 없이 크게 뜨였다. 당연한 이야기다. 무려 초인 10명이 9클래스 마법사의 휘하에 존재하다니! 자존심이라면 하늘을 찌르는 이들이 바로 초인 아니던 가. 그들이 어떻게 한 사람의 휘하에 들어갈 수 있단 말인가? 지금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지금 대륙에 존재하는 절반 이상의 초인이 그의 휘하에 들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아카벨 대장로가 말하였다. "현 대륙에는 도합 열네 명의 그랜드 마스터가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전 한 명의 그랜드 마스터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바로 다크 스타의 수하에게 목숨을 잃은 탓이죠." "그렇다는 건......“ 엘은 머릿속에 주입된 정보를 떠올렸다. 대륙 전체에 퍼져 있는 디벨 상단의 정보망에 의하면 데이제크 제국에 어떠한 변고가 일어났다고 한다. 그렇다는 건 데이제크 제국에 존재하는 초인, 알비어드 대공이 죽음을 당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런데 그랜드 마스터가 무려 14명이라니. 기존에 알려 진 10명보다 월등히 많은 수치다 아카벨 대장로가 말을 이었다. “현재 우리 쪽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초인을 다 합치면 총 열세 명이 됩니다. 하지만 이것으로도 다크 스타를 대적하기에는 무리란 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 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초인의 숫자는 비슷하다고 하지만 문제는 9클래스 마법사인 다크 스타다. 7클래스 마법사와 8클래스 마법사의 차이도 하늘과 땅 이라 불릴 만큼 어마어마한데 8클래스와 9클래스의 차이는 얼마나 크겠는가? 이는 결코 수적 우세로 메울 수 있는 벽이 아니었다. “부족하지만 지금이라도 뭉쳐야 합니다. 안 그러면 다크 스타는 무시무시한 기세로 삽시간에 대륙 전체를 집어 삼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대륙은 곧 어둠에 잠식될 것이 분명할 터. 그것만은 막아야 합니다. 그렇기에 초인들의 힘을 하나로 결집시켜 그들에게 대항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게 쉽게 될까요?” 엘의 의문은 당연한 것이다. 초인들의 자존심은 하늘을 찌른다. 그런 그들에게 하나로 뭉칠 것을 강요해도 그들이 결코 응할 리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의 힘으로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다고 자부하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을 설득한다는 건 무척 골치 아픈 문제다. 엘은 지금 이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물론 힘든 일이 될 겁니다. 하지만 해야 합니다." 그의 말에 아카벨 대장로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후우! 그렇군요." 확실히 이것에 대해서는 방법이 없었다. 엘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카벨 대장로는 그런 그에게 웃음을 지으며 말하였다.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방법은 어디에나 있으니 말입니다. 저희 엘프들은 대륙의 평화를 위해 기꺼이 도울 것입니다. 여기 엘리엔의 힘은 대륙 그랜드 마스터 중 최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직접 겪어 보셨으니 더욱 잘 알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죠. 정말 강하더군요." 엘은 아카벨 대장로의 말에 공감을 얻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겪어 본 엘리엔의 힘은 정말 강했다. 특히 네이처 소드를 활용한 그녀의 검술은 인간들이 지닐 수 없는 웅장한 힘을 담고 있었다. 아이넨스까지 인정했을 정도니 확실히 대단한 것임이 틀림없다. 엘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확실히 엘프 대장로님이 도와주신다니 마음이 든든하군요. 그럼 저는 대륙 각지를 돌며 초인들에게 협력을 구해 보겠습니다. 문제는 누가 아군이고 적인지 모른다는 건데......" “아직 그의 수하로 들어가지 않은 이들은 동남부와 동부의 초인밖에 없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정보였다. 필시 동남부는 아일라스 제국을 지칭하는 것이고 동부는 블리어드 제국을 지칭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엘은 아카벨 대장로의 말에 빙긋 웃었다. "그 정보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군요." 아카벨 대장로도 마주 웃어 주었다. "그럼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이야기가 진척되었으니 엘프들 입장에서 껄끄러운 인간인 저는 빨리 가는 것이 서로에게 좋지 않겠습니까?“ 아카벨 대장로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미안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일이겠군요." "아닙니다, 인간들이 해 온 일이니 어쩔 수 없지요." 그렇게 엘과 아카벨 대장로가 인사를 나눌 때, 갑자기 엘리엔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놀란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 시선을 당당히 뿌리치며, 엘리엔은 아카벨 대장로에게 말하였다. "대장로님. 저는 이 인간을 따라가겠습니다." 아카벨 대장로는 놀란 표정으로 입을 떡 벌렸다. "허, 네가? 인간을 싫어하는 네가 왜 엘리미스 님을 따라가겠다고 하는 것이냐?“ "인간의 마음은 하루에도 수천수백 번 변한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이 인간이 어떤 마음을 먹고 있는지 감시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인간의 배신으로 자칫 우리 엘프들이 멸망의 길을 걸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건......“ 엘리엔의 말에 아카벨 대장로는 아무 말도 못했다. 그의 눈에 엘은 자신의 말을 분명히 지키는 사람처럼 보였지만, 실제로 인간은 약속을 해 놓고 어기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다 보니 함부로 단정 지어 말할 수 없었다. 난감한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자 엘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의심 받는 입장에 처하게 되었으니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하지만 그동안 인간에게 속아 온 엘프의 입장이니 어느 정도 이해는 갔다. 잠시 고민하던 엘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어쩔 수 없군요. 그동안 인간이 거짓을 말해 온 것은 엄연한 사실. 그러니 엘리엔 님의 말에 반박을 못하겠습니다. 좋습니다, 저를 감시하십시오. 대신 그동안은 소란을 피우지 말고 인간을 공격하지 마십시오. 그 정도는 약속해 주실 수 있으시지요?“ "물론." "그리고 인간계에서 생활하니 인간답게 행동하셔야 하고요." "물론이다." 엘리엔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사실 엘을 믿지 못한다고 그녀가 말했지만 그녀 또한 엘이 자신의 말을 지키는 위인인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녀가 이렇게 고집을 피우듯 말하여 엘을 따라 가는 이유는 딱 하나. 바로 자신의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힘을 길렀다는 엘의 모습을 확인하기 위함이다. 자신은 행복한 어린 시절에 가족을 잃었다. 그리고 분노에 몸을 맡겨 힘을 키워 왔다. 그런 자신과는 전혀 다른 이 엘리미스라는 인간. 그는 자신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힘을 길렀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궁금해졌다. 과연 엘리미스란 인간이 가족을 지키기 위해 기른 힘이 어떤 성질의 것일지. '네가 가족을 지키기 위해 힘을 길렀다고 했으니 그게 어떤 것인지 나는 지켜보겠어. 그리고 만약 나를 기만한 것이라면.' 엘리엔의 눈이 섬뜩하게 빛났다. ‘난 너를 죽이겠어. 설사 엘프 숲에 쫓겨나는 한이 있어도 말이야.' 3. 과거의 자취 벨로세크 제국 황궁의 회의실. 무릎을 꿇고 있는 두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다름 아닌 라이젠과 레이벨이었다. 정말 놀라운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대륙을 위진 시키는 8클래스 마법사인 그들이 어찌하여 남에게 무릎을 꿇는단 말인가. 일반적으로 그랜드 마스터와 8클래스 마법사는 그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기에 설사 황제 앞에서도 허리를 굽히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그들이 극공경의 자세로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은 충분히 놀라운 장면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이토록 공경의 자세를 보이는 인물이 누구인가를 알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왜냐하면 그들 앞에 존재하는 인물은 다름 아닌 그들이 소속된 조직의 마스터였기 때문이다. “......” 루이아스는 자신 앞에 무릎 꿇고 있는 두 대마법사를 조용히 내려다보았다. 평소 웃음을 자주 짓던 그의 모습은 지금 오간 데 사라진 지 오래였다. 루이아스의 눈은 고요했다. 어떠한 움직임도 없었기에 얼핏 보면 전혀 다른 느낌이 드는 시선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시선을 받는 당사자가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루이아스의 눈은 라이젠과 레이벨로 하여금 형용할 수 없는 공포 속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단순한 시선만으로 상대를 완벽하게 복종시킨 루이아스는 그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아토빌 공작을 넘지 못했다고?“ "그, 그렇습니다, 마스터. 그자는 일신의 무위가 저와 레이벨이 힘을 합친 것과 비슷했습니다. 더군다나......" “더군다나?" 루이아스가 말해 보라는 듯 고개를 까닥하자 라이젠이 말하였다. "그자는 패왕의 검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 검의 힘은 전설대로 너무나 엄청나서...... 저와 레이벨은 각각 팔과 다리가 잘리는 수모를 겪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패왕의 검이란 말에 루이아스의 눈이 빛났다. "호오, 갓 소드라......“ 갓 소드의 힘은 루이아스 또한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과거 빛의 제국 시대에 드래곤들을 공포로 몰아넣은 전설 속 신장의 힘. 수십 드래곤을 압도할 정도의 힘이 검에 모여 있으니 그 힘은 엄청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라이젠과 레이벨이 일을 실패하고 온 것도 납 득이 갔다. 자세히 살피니 루이아스의 눈에 라이젠과 레이벨의 상처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음이 보였다. 팔다리가 잘린 상처는 8클래스의 마법으로도 완벽하게 치유할 수 없었던 것이다. 루이아스가 혀를 찼다. "쯧쯧, 어쩔 수 없군." 나직이 고개를 저은 그는 손을 뻗었다. 그에 푸른 마나가 소용돌이치듯 그의 손에 응집되더니, 이내 하나의 마법을 캐스팅하였다. "회복." 파아앗! 루이아스의 나직한 외침과 동시에 캐스팅된 마법은 라이젠과 레이벨의 상처에 스며드는 듯하더니 빠르게 그들의 부상을 치료하기 시작하였다. 족히 한 달은 정양해야 할 그들의 상처가 삽시간에 아문 것이다. 라이젠과 레이벨의 눈은 더할 나위 없이 크게 뜨여 있었다. 지금 눈앞에 기적이 벌어진 것이다. 잘린 팔다리를 붙이는 것은 그들의 능력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워낙 중상이기에 상처들을 완전히 낫게 하려면 몇 달의 시간이 걸리는 것은 그들로서도 어쩔 수 없는 사항이다. 그런데 지금 그 법칙을 깡그리 무시한 채 루이아스의 마법은 그들의 상처를 단번에 낫게 만든 것이다. 루이아스가 경악하는 그들을 보며 태연스럽게 말하였다. "너희들은 무척 소중한 인재다. 카로스만이 어이없게 당한 것은 아쉽지만 그런 실수를 반복할 수 없는 법. 대계를 위해 이 정도는 당연한 것이지." 가볍게 미소 짓는 루이아스의 모습에 라이젠과 레이벨이 몸을 가늘게 떨었다. 감동한 것이다. 마스터가 자신들을 생각해 주는 것에 대해 말이다. 루이아스의 밑에는 기라성 같은 수하들이 즐비했다. 그중 자신들과 같은 초인의 영역에 다다른 존재가 무려 10명에 이르렀다. 그들 중 자신들이 다소 상위권에 속한다고 하지만 루이아스에게 그 차이는 극히 미미한 것과도 다름이 없다. 왜냐하면 그들을 대신할 고수들은 널리고 널렸으니 말이다. 루이아스는 실패한 자에게 특히 냉혹한 면을 보인다. 대부분 그들이 이행하는 임무가 성공률이 100퍼센트에 가까운 것이었기에 실패를 결코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트루먼 공작이 그 대표적인 예였다. 카로스만과 트루먼 공작은 톨리안 왕국의 국왕인 레도 프 국왕을 죽이는 데 실패한 적이 있다. 그때 본격적으로 임무를 이행했던 이가 바로 트루먼 공작이다. 하지만 그는 금탑주 엘의 개입으로 레도프 국왕을 죽이는 데 실패했다. 심지어 톨리안 왕국 제1기사인 라이어스 공작마저도 죽이지 못했다. 완벽한 임무 실패인 셈이다. 그러나 이번은 달랐다. 아토빌 공작은 대륙 제1기사라고 불리는 최강의 기사. 그런 이가 패왕의 검까지 지녔고, 아들마저 그랜드 마스터에 올랐다면 3명의 8클래스 마법사로 제거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 분명했다. 최소 성공률 90퍼센트 이상의 임무만 내리는 루이아스의 성격상 이번 일은 그 성공률이 거의 반반이었는데, 카디어스의 등장과 패왕의 검으로 10퍼센트 아니, 제로에 가까운 확률로 내려가 버린 것이다. 패왕의 검을 감안하지 못한 건 루이아스 본인의 실수라 할 수 있었기에 그는 그들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기로 마음먹었다. 루이아스가 그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다시 명령을 내리겠다. 너희들은 아일라스 제국을 완벽하게 점령하고 와라. 이번 일에 넬리어스와 데리오머, 그리고 새로 편입된 샤이어드, 실로프와 루이넨스를 대동하고 가라." 라이젠과 레이벨의 눈에 놀라움이 서렸다. "루이넨스 경까지 말입니까?“ 레이벨이 조심스레 물었다. 루이넨스는 루이아스의 호위 기사다. 9클래스인 그의 호위 기사인 만큼 당연히 그 무위는 그랜드 마스터에 이르렀다. 그 순수한 실력은 라이젠과 레이벨을 뛰어넘을 정도여서, 그랜드 마스터 중 최강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는 이가 바로 루이넨스다. 어쩌면 아토빌 공작과도 자웅을 겨룰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이까지 합류한다면 승부는 보나마나 뻔하다. 루이아스가 별것 아니라는 듯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드래곤을 처치하고 얻은 마검의 성능을 시험해 보려고 하는 것뿐이다. 게다가 패왕의 검은 인간을 뛰어넘는 힘을 사용하는 것이기에 그 지속 시간이 길지 않을 터. 아마 너희가 조금만 더 버텼다면 무너지는 것은 아토빌 공작이었을 것이다." “......” 그들은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었다. 루이아스의 말은 그들에게 있어 절대 진리와도 같았기 때문이다. "압도적인 전력인 만큼 실패는 없을 거라 믿겠다." 초인의 경지에 든 인물이 무려 7명이다. 현재 조직에 속해 있는 초인이 10명인 걸 감안하면 절반이 넘는 전력을 집중하는 것과 같다. 제아무리 아토빌 공작이 그랜드 마스터 중 최강이랄지라도 이 정도 숫자의 초인은 감당하지 못할 터. 아토빌 공작이 아니라 아토빌 공작의 할아버지라도 제거할 수 있을 것이다. "반드시 성공하겠습니다." 라이젠이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지."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든 듯, 루이아스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3개의 제국을 이미 수중에 넣은 그들의 힘은 단일 세력으로는 그 누구도 맞설 수 없을 정도로 막강했다. 아일라스 제국이 함락되는 것도 시간문제. 그렇게 그들은 한 차례 공격을 막아 낸 아토빌 공작에 게 칼을 갈고 있었다. *** 엘프 숲으로 가 개괄적인 설명을 들은 엘은 앞으로 펼쳐질 일들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지만 그것을 굳이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자신이 염려한다고 하여 해결될 일도 아닐 뿐더러 그저 자신이 할 일에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면 어떻게든 미래를 해쳐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엘은 금탑으로 돌아온 뒤 전혀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하였다. 아니, 달라진 점은 있었다. 바로 엘리엔의 합류가 그것이다. 엘리엔이 금탑에 머물게 된 것은 골든 벨리에 무척 큰 파란을 일으켰다. 왜냐하면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는 남자들은 물론 여자들마저도 반해 버릴 정도로 황홀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륙을 뒤져 보아도 찾아보기 힘든 미인들이 이곳에 있어 왔는데, 그 미인들마저 뛰어넘는 절세미녀가 나타났으니 그들로서는 경계심이 절로 들 수밖에 없었다. 특히 머릿속 빨간 경보가 켜진 것은 다름 아닌 세레나와 카이나였다. 그녀들은 엘이 한동안 이곳에 머물 거라며 엘리엔을 소개시켜 주자 순간 넋을 잃을 뻔하였다. 엘이 데려온 엘리엔의 외모가 그만큼 대단했기 때문이다. 그 어디에서 이런 미녀를 볼 수 있겠는가? 내심 자신들도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외모라 생각하던 세레나와 카이나에게 엘리엔의 등장은 경계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엘은 무척 잘난 남자다. 당금 대륙에 그와 비견되는 이들은 모두 초인의 경지에 이른 이들이다. 국가의 비밀 병기라 불리는 그랜드 마스터와 8클래스 마법사 외에 엘의 상대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것이다. 게다가 엘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다. 비록 곁에 세레나와 카이나가 있지만 엘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기에 대륙 수많은 귀족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던 것이다. 그런 와중에 나타난 미녀라니. 그 미녀가 자신들을 뛰어넘는 미녀란 사실에 세레나와 카이나가 받은 충격은 여간 대단한 것이 아니다. 실피르 또한 그 충격이 대단했다. 설마하니 자신의 아들이 세레나와 카이나를 놔두고 새로운 여자를 데리고 올 줄 몰랐던 것이다. 그녀가 엘을 찾아가 자초지종을 묻자 엘은 펄쩍 뛰었다. "그녀랑 저는 특별한 관계가 아니에요! 굳이 말하면 사신이라고 할 수 있지요. 절대 특별한 관계가 아니에요." 확고부동한 엘의 태도에 한시름 놓은 실피르였지만 그래도 한줄기 불안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 와중에 카시아스 왕국으로 떠나기로 한 날짜가 되었다. 실피르와 세레나, 카이나는 모처럼 홀가분한 마음으로 여행 준비를 하였다. 금탑에 있는 내내 엘리엔의 존재로 무언가 꺼림칙한 면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엘과 자신들이 따로 여행을 간다고 생각하자 그런 느낌이 말끔하게 사라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여행을 떠나려고 할 때 일어났다. 카시아스 왕국으로 떠나려는 엘에게 엘리엔이 폭탄선언과 다름없는 발언을 한 것이다. "너와 나는 모든 일이 해결될 때까지 한시도 떨어지지 않기로 하지 않았나?“ 그 의미가 심히 의심스러운 것이었기에 의문, 질투, 시기를 담은 시선이 엘에게 쏟아졌고, 엘은 8클래스의 경지에 올라 결코 흘리지 않을 땀을 뻘뻘 흘리며 변명했다. "그, 그러니까 그녀는 나와 계약을 맺은 것으로......“ 그럼에도 의심어린 시선이 사라지지 않자 엘은 한숨을 폭 내쉬며 자세한 이야기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실피르 등은 엘리엔이 엘프란 말을 듣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엘리엔이 엘프의 사신이며, 모종의 일이 해결될 때까지 머물 거란 이야기에 모두 납득한 것이다.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고 나서야 엘은 자유로울 수 있었고, 그는 엘리엔에게 다시 한 번 다짐을 받아야 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소란을 피우면 안 돼요. 알겠지요? 그리고 일전에 약속한 인간답게 행동하겠다는 것도요." "그렇게 약속을 했으니 지키겠다." 엘리엔의 확답을 받고 나서야 엘은 카시아스 왕국을 가는 일행에 엘리엔을 편입하였다. 그런 엘리엔을 보며 엘은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그것이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 카시아스 왕국. 100여 개의 왕국들이 난립해 있는 서부 대륙 중부에 위치한 국가이며, 주변 국가들 중 으뜸의 무력을 소유한 왕국이다. 서부 영토는 산지로 둘러싸여 있어 각종 자원이 풍부하였고, 동부 영토는 3개의 강이 만나면서 이루어진 카시아스 왕국의 젖줄이라는 키클로프스 강이 존재한다. 그런 카시아스 왕국은 자원, 식량의 엄청난 생산을 보이며 서부 왕국들 중 손에 꼽히는 부강한 국가로 꼽힌다. 군사력도 무척 강하여 인근 왕국들 중 패자로 자처할 만큼의 강대한 무력을 소유하고 있다. 그런 카시아스 왕국에서 얼마 전 매직 메탈 광산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대륙을 강타했다. 소문은 때마침 금탑주 엘리미스가 8클래스에 오르면서 사람들에게 널리 퍼지지 못하였지만 상계의 인물들에게는 새로운 8클래스 마법사의 등장보다 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매직 메탈은 대륙에서 가장 값비싼 광물이었기 때문이다. 황금에 비해 무려 10배나 비싼 매직 메탈은 그 쓰임새가 무척 다양하다. 그중 매직 메탈의 쓰임새로 대표되는 것이 바로 아티팩트이다. 매직 메탈은 광물 자체에 마나를 지니고 있다. 때문에 스스로 마나를 흡수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이것으로 아티팩트를 만들면 그 아티팩트는 그야말로 반영구적인 성질을 지니게 된다. 또한 골렘을 만들 때도 사용되며, 마법사들에게는 갖가지 실험 도구로서 가장 비싼 재료로 취급되는 것이 바로 매직 메탈이다. 그런 매직 메탈의 판매권을 따낸다면 엄청난 이득을 취득할 것은 당연한 일이다. 때문에 대륙의 상권을 좌지우지하는 대륙 10대 상단이 일제히 나섰으며, 그보다 뒤떨어지지만 대륙 상권의 기틀을 이루고 있는 대륙 100대 상단도 모두 나섰다. 앞 다투어 몰려든 상인들 덕분에 카시아스 왕국의 수도 켈베린은 때 아닌 호황을 맞이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매직 메탈의 판매권을 따내기 위해 켈베린으로 모여든 상인들과 달리 엘은 곧장 그곳으로 가지 않았다. 카시아스 왕국이라면 엘이 어릴 적 자라 온 곳이었기에 적지 않은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중 엘이 가장 큰 인연으로 꼽는 건 당연히 반자크의 마탑주 브리온과의 관계이다. 어렸을 적 여러 방면으로 도움을 줬을 뿐만 아니라 적절한 다운 그레이드로 엘이 그에게 취득한 이득은 보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나쁜 마음을 먹었다면 지금의 엘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 할 정도로 엘은 브리온을 생각하는 마음이 각별했다. 그것 때문에 엘은 켈베린을 먼저 방문하지 않고 반자크에 먼저 방문하게 된 것이다. 우우웅! 반자크 마탑에 설치된 마법진에 격렬한 마나 흐름이 일어났다. 마나 흐름은 점점 그 회전과 힘을 더해 가더니, 이내 푸른빛을 폭사시켰다. 스팟! 빛이 폭사된 곳에는 다섯 사람이 서 있었다. 브리온은 공간 이동을 한 이들 중 가장 앞에 선 청년을 보고 환한 표정을 지었다. 금발에 푸른 눈, 아찔하게 잘생긴 외모에 금빛 로브를 걸친 인물은 그가 어렸을 적 숱하게 보아 왔던 인물이었던 것이다. 브리온이 엘에게 다가가 그의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허허! 정말 오랜만이구나, 정말 오랜만이야." 살가운 브리온의 태도에 엘 또한 미소 지었다. 그 또한 브리온과의 만남이 반갑기 이를 데 없었다. "채 십 년도 되지 않았는걸요. 그나저나 정말 오랜만이에요, 탑주 할아버지." "허허허! 그래, 정말 오랜만이구나."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엘의 태도는 전혀 변하지 않았기에 브리온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엘 등이 반자크를 떠나고 불과 몇 년 사이에 최연소 7클래스 마법사에서 대륙에 단 10명뿐인 8클래스 마법사가 되어 나타난 것이다. 브리온이 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 뒤 실피르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거 엘과 인사를 나누느라 인사를 못했군. 정말 반갑다, 실피르." 실피르 또한 브리온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기에 그녀는 빙긋 웃으며 브리온에게 인사를 건넸다. "정말 오랜만이네요, 탑주님. 그런데 탑주님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네요. 세월이 비껴 가는 것 같은데요?“ 그녀의 말에 브리온이 즐거운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허허허, 고맙구나. 그런데 네가 나에게 그런 말을 할 처지가 못 되어 보이는구나. 너 또한 날이 갈수록 더 아름다워지니 말이다. 정말 나이를 거꾸로 먹는 것이더냐? 나에게 그 비법 좀 전수해다오." "무슨 비법이에요? 그런 거 없어요." 브리온의 말에 실피르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어 브리온은 세레나와 카이나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비록 많은 교분을 나누지는 않았지만 그녀들의 어린 시절을 보아 온 브리온이다. 그로서는 어느덧 성숙하게 훌쩍 커 버린 세레나와 카이나가 반갑지 않을 리 없었다. 브리온의 인사에 세레나와 카이나는 공손하게 인사를 하였다. 엘이 브리온을 특별하게 생각했기에 그녀들 또한 예의를 갖춘 것이다. "으응?“ 그렇게 세레나와 카이나에게도 인사를 한 브리온은 제일 뒤에 서 있던 여인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눈이 휘둥그레 뜨였다. 여인의 용모가 실로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엘리엔은 브리온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자 내키지 않는 얼굴로 브리온에게 고개를 까닥였다. "엘리엔이라고 합니다." 여태껏 인간들에게 모두 반말을 해 온 엘리엔이다. 하지만 예의라는 것이 머릿속에 철저히 주입되어 있는 엘은 엘리엔에게 만나는 인간들에게 예의를 차릴 것을 강요했다. 그녀가 비록 엘프라지만 인간의 나이로 치면 아직 서른도 되지 않은 연배였기 때문이다. 엘은 엘리엔에게 자신과 한 약속을 들먹이며 그녀를 설득하였고, 그녀는 자신이 한 말이기에 차마 철회를 못한 채 엘의 말에 따라야 했다. 그랬기에 고작 100살도 되지 않은 인간에게 고개를 숙이는 이례적인 일이 발생한 것이다. 그 사실을 브리온은 알기나 할까? 그저 공손히 인사하는 여인의 태도에 만족할 뿐이었다. "만나서 반갑네, 허허! 정말 아름다운 미모를 지니고 있구려." 브리온의 친근한 태도에 엘리엔은 살며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례적인 변화였다. 하지만 이런 변화도 다 엘의 설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엘은 엘리엔이 인간들에 대한 감정이 유별나게 좋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고강한 실력에 인간을 미워하는 마음을 지녔기에 엘리 엔은 통제하기 힘든 야수와도 같았기 때문이다. 자칫 그녀를 자극하다가는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을 것이 분명할 터. 때문에 엘은 엘리엔에게 조건을 들먹이며 그녀를 설득 시키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엘이 그녀에게 내세운 조건은 이러했다. "반드시! 누군가가 말을 할 때 무조건 나쁜 시각으로 볼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진심을 느껴 보도록 하세요. 진실의 눈을 지닌 엘프니까 그 정도는 가능하겠지요?“ 그의 어조에는 모하게 의심하는 투였기에 엘리엔은 순간 발끈하여 대답했다. "물론이다! 그 정도는 눈을 감고도 짐작할 수 있다." "다행이군요. 그럼 부탁드릴게요." 전말이 이랬기에 엘리엔은 브리온의 말에 무조건적으로 기분 나빠 하는 것이 아니라 말하는 진심을 느끼려고 하였고, 브리온의 말이 진심임을 깨닫고는 가벼운 미소를 지어 보인 것이다. 물론 그녀의 미모가 대단했기에 가볍게 미소 지은 것만으로도 주변이 환하게 밝아지는 듯한 현상이 발생한 것은 두말이 필요 없었다. "그나저나 이곳에 오다니...... 매직 메탈과 관련이 있는 것이겠지?“ 반가운 인사도 잠시, 응접실로 안내한 브리온은 차를 들며 묘한 눈으로 엘을 바라보았다. 이미 대륙 10대 상단 중 하나인 디벨 상단의 실질적 주인이 눈앞의 엘임을 모르는 이들은 아무도 없다. 특히 디벨 상단은 이곳 카시아스 왕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상단이기에 브리온은 그러한 사항을 더욱 잘 알고 있었다. "물론이에요. 매직 메탈은 마탑에 있어 무척 귀중한 실험 재료니까요." 엘은 브리온의 물음에 빙긋 웃으며 대답을 하였다. 그런 그에게는 여태껏 존재하지 않던 여유가 감돌고 있었다. 전생에 죽음을 당하고 환생한 엘은 늘 강박관념에 시달려 왔다. 소중한 가족을 지키고자, 더 나은 삶을 위해 매일같이 고심에 고심을 하니 긴장의 끈이 팽팽하게 당겨져 늘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8클래스에 오르면서 그는 달라졌다. 이제껏 존재하지 않던 여유가 그의 몸에 자연스럽게 밴 것이다. 그런 엘의 여유를 느껴서일까? 브리온은 눈에 이채를 발했다. "과연...... 경지에 오르면서 몸에 여유가 생겼구나. 무관하지 않은 사실이겠지?“ 엘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에는 가족에 대한 걱정 때문에 여유를 가지지 못했던 게 사실이에요. 하지만 8클래스에 오르니 달라지더군요." 그의 입에서 심오한 이야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브리온은 그런 엘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경청하였다. 다른 이야기도 아닌 8클래스 마법사의 이야기다. 그것도 경지에 올랐을 때 겪었던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브리온으로서는 경청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오랫동안 7클래스의 경지에 머물렀던 그인 만큼 엘의 이야기는 무척 귀중한 정보였다. 엘은 어릴 적 자신의 은인이나 다름없는 브리온에게 자신이 느꼈던 점을 가감 없이 풀어 이야기해 주었다. 두 사람은 그렇게 한참을 이야기하였고, 둘의 대화가 끝났을 때에는 이미 어둑한 밤이 되어 있었다. 엘이 브리온을 보며 말했다. "오랜만에 살던 곳에서 자려고요. 끝맺지 못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죠." "그래, 푹 쉬거라." 브리온은 고개를 끄덕이며 빙긋 웃었다. 엘과의 대화는 그로서 무척 많은 도움이 되었기에 내일 또 이야기를 해 준다는 엘에게 고마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가볍게 인사를 나눈 그들은 작별을 고했고, 엘은 마탑을 나서 오랜만에 반자크의 정경을 둘러볼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었다. 반자크를 둘러본 뒤 성을 나선 엘은 과거 살던 저택으로 향했다. 막대한 부를 벌어들인 후 팔았던 저택을 다시 사들였기에 엘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그렇게 저택에 도착한 엘은 먼저 도착한 실피르 등을 볼 수 있었다. 엘은 실피르를 보며 빙긋 웃었다. "이렇게 있으니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네요." "그러게, 정말 과거로 돌아간 것 같아." 실피르 또한 밝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에게 있어 엘의 유년기 시절은 그야말로 행복함 그 자체였다. 자질이 뛰어난 아들이 가족을 위해 애쓰는 모습과 일상 생활에서 소소하게 느낄 수 있던 행복함은 결코 잊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일까지 푹 쉬고 모레 수도로 가서 국왕을 만날 생각이에요." "그래, 내일까지구나." 엘의 말에 실피르의 표정이 약간이나마 어두워졌다. 오랜만에 느껴 보는 이 소소한 행복을 오랫동안 느끼지 못하니 아쉬울 수밖에 없던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다. 그들은 과거 조용히 연구만 하던 마법사들이 아니기에...... 지금 엘은 당금 최강의 마법사들 중 하나인 8클래스의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8클래스 마법사가 타국에 방문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여파를 미치게 된다. 특히 그것은 8클래스 마법사를 보유하지 못한 곳에서 더욱 그러한데, 방문한 자가 다른 8클래스 마법사가 아니라 엘이라 더욱 그 의미가 컸다. 왜냐하면 엘은 대륙 최연소 8클래스 마법사이자 후일 9클래스의 경지에 오를 수도 있는 엄청난 존재였기 때문이다. 8클래스 마법사 그 존재만으로도 국력에 엄청난 신장을 가져오는데 그와 친분을 다져 놓으면 얼마나 도움이 되겠는가? 마탑은 자고로 국가에 있어 중립적인 존재였기에 관계를 맺어 놓음에 따라 얼마든지 그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때문에 카시아스 왕국 귀족들은 엘이 자국에 방문했다 소식을 접한다면 곧장 그가 있는 곳으로 몰려올 것이 8클래스 마법사와의 친분은 그만큼 대단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잘 알았기에 실피르는 엘에게 이곳에 오래 머물자는 등의 말을 하지 못했다. 자신의 아들은 이미 대륙 사람들 모두가 우러러보는 지고한 경지에 이르렀기에. 그녀는 엘이 자신의 손을 벗어나 훌쩍 자란 데에 진한 허탈감을 느끼며 애써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럼 내일 즐겁게 놀아야겠구나.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내일뿐이니까." 엘의 표정이 미안해졌다. "엄마에게는 죄송해요. 마음껏 이곳에 머물게 해 드려도 모자랄 판에......“ 실피르가 고개를 저었다. “나에게는 이렇게 훌륭하게 자란 엘리가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단다." 빙긋 웃어 보인 그녀의 표정에는 진심이 엿보였기에 엘 또한 순순히 납득할 수 있었다. 엘은 실피르를 보며 밝은 표정을 지었다. "그럼 오랜만에 솜씨를 발휘해 볼까요? 제가 김치 볶음밥을 해 드릴게요." "정말인가요?“ 그 말에 실피르는 물론 세레나와 카이나의 표정도 밝아졌다. 다만 아무것도 모르는 엘리엔만이 영문 모를 표정을 지을 뿐이다. "훗! 나의 역작인 김치 볶음밥을 먹으면 그런 표정을 짓지 못할 거예요. 친환경적인 나의 음식 솜씨를 발휘해 보도록 하죠." 엘은 그런 엘리엔애게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엘의 확신대로 그의 회심의 역작인 김치 볶음밥을 먹은 엘리엔의 표정은 확 변해 있었다. 친환경적이면서 매콤한 맛과 달걀의 담백한 맛은 그녀의 미각을 사로잡기에 부족함이 없었던 것이다. 엘은 그런 엘리엔을 보며 만족의 미소를 지었고, 엘리엔은 엘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한 듯 두 눈을 휘둥그레 떴 다. *** 이튿날, 엘은 마탑에 찾아가 브리온과 대화를 나누며 마법에 대한 토론을 하였다. 비록 엘이 8클래스의 경지에 이르렀지만 그의 성취는 남들의 상상을 벗어나 있었기에 그 속에 가려져 있었지만 엘은 특정한 스승 없이 독학으로 익혔기에 그 기초에 대해서 부족하다고 말할 수 있다. 스승이 없었기에 보다 체계적인 체제로 마법을 배우지 못하여 기초적인 면에서 부족한 것이다. 7클래스의 경지에 머물 때는 그것을 느끼지 못했지만 8클래스의 경지에 이르자 엘은 그것을 확연히 깨달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8클래스의 경지에 이른 마법사, 카로스만과 대결하면서 그것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카로스만은 자타가 공인하는 8클래스 마법사다. 화염을 다루는 그의 마법 실력은 대륙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다고 알려져 있으며, 그의 마법 응용은 확실히 엘을 앞서 나가고 있었다. 그의 무기가 화염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것과 경험으로 터득한 마법 응용력이라면 엘의 무기는 남들보다 월등한 마나와 빠른 캐스팅이다. 하지만 그것을 카로스만과의 대전에서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였고, 결국 골든 나이트의 힘을 빌려 그를 처치했다. 카로스만과 대전 이후 엘은 자신의 약점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바로 자신의 무기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 을 제대로 터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가 익힌 마법 응용이나 빠른 캐스팅은 기존의 마법사들과 판이하게 다르기에 여태껏 어느 정도 빛을 보았지만 8클래스 같이 절대자의 경지에 이른 이들에게 그런 요행은 바라기 힘든 것이다. 때문에 엘은 브리온에게 일방적으로 베푸는 것이 아닌, 그와 대화를 함으로써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채워 나가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그가 의도했던 대로 브리온과의 대화는 엘에게 많은 것을 깨우쳐 주었다. '그래, 난 여태껏 빠른 캐스팅에만 의지해 왔는지도 몰라. 지구에서 머물던 지식으로 여러 가지 마법 응용을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7클래스까지 먹혔을 뿐이야.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확고한 기초. 그리고 연륜을 뛰어넘을 수 있는 압도적인 강함이야.' 자신의 부족함이 무엇인지 깨달은 것만으로도 훌륭한 성과라 할 수 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부족함을 채워 나가고, 한 층 더 나아가는 엘의 모습은 그가 결코 과거의 향수만 느끼기 위해 이곳을 찾은 것이 아니란 걸 알게 해 주었다. 한편 실피르와 여인들은 반자크 시내를 활보하였다. 그녀들의 미모는 반자크에서 당연히 독보적이라 할 수 있었다. 한때 블리어드 제국 제1미녀라 불렸던 실피르는 물론, 그녀에 비해 결코 떨어지지 않는 세레나와 카이나, 그리고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아름다운 미녀 엘리엔. 아름다운 꽃에는 응당 벌이 꼬이기 마련이지만 그녀들 에게 섣불리 접근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왜냐하면 실피르와 세레나가 걸친 로브 때문이다. 실피르와 세레나는 마법사인 만큼 외출을 함에 있어 로브를 걸친다. 그것은 마법을 사용할 때 풍성한 로브에 가려 수인을 맺는 것을 가리기 위함인데, 엘은 그것 외에도 1가지 용도로 그녀들에게 로브를 걸칠 것을 권장하였다. 그녀들이 걸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금색 로브였다. 금색 로브가 상징하는 것은 대륙에 딱 하나뿐이다. 바로 골든 벨리라 불리는 곳에 위치한 마탑, 금탑이다. 금탑의 명성은 이미 대륙 곳곳에 널리 퍼져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성국과 블리어드 제국의 연합군과 일전을 벌였으며, 8클래스 마법사 중 한 사람인 게이런즈를 죽인 엘이 존재하는 곳이 아닌가. 더군다나 엘이 8클래스에 오르면서 적탑주 카로스만을 죽인 것은 이미 대륙에 널리 퍼져 사람들은 금탑의 전력 이 웬만한 왕국 하나를 뛰어넘는다고 예측하고 있었다. 대륙 최강국 중 하나인 성국의 집중 공세를 받고 유일 하게 버텨 낸 곳이니 사람들의 경외감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금탑의 소속이라는 금색 로브를 걸쳤으니 사람들 이 건드릴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 누가 금탑을 사칭할 수 있겠는가. 이미 골든 나이트라는 전설의 나이트 골렘을 제작한 금탑은 그 누구도 대적하지 못할 경외감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그랬기에 그녀들은 다른 이들의 시비 없이 당당하게 반 자크를 활보하며 과거의 향취를 느낄 수 있었다. "자, 저기로 가 보자, 엘리엔!" "그, 그래." 엘리엔은 활짝 웃으며 자신을 이끄는 실피르를 조용히 따랐다. 처음 인간이 모두 추악하다는 생각은 그녀의 뇌리에서 서서히 옅어지고 있었다. 여태껏 그녀가 본 인간 세상의 모습은 지극히 일부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을 납치하려던 이들도 극히 세상의 일부란 것도 깨달았다. 인간 세상은 방대한 대륙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각양각색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추악한 인간이 있는가 하면 더없이 순수한 인간도 있다. 인간들만큼 다양한 내면을 지닌 이들은 없으며, 추악한 인간보다는 순수하고 깨끗한 인간이 더 많다는 것을 엘리 엔은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추악한 인간들은 대부분 인간 계급 중 상위에 속하는 인간들이며, 그들 대부분이 이기적이고 편협하며 자기밖에 모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정반대의 경우도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실피르 등이다. 그녀들은 인간들 중 최상위 계급에 속하면서도 전혀 추악한 내면이 보이지 않았다. 도리어 경계의 태세를 취하는 자신에게 따뜻한 태도를 보일 뿐. 특히 실피르는 엘리엔을 마치 딸같이 여기며 그녀에게 인간세계에 대한 것을 하나하나 가르쳐 줬는데, 그로 인해 과거 인간들에 의해 죽은 부모님을 떠올린 엘리엔은 실피르에게만은 순순히 따르는 모양새를 보였다. 비단 그녀뿐만 아니라 세레나와 카이나와의 관계도 좋 아졌다. 처음 엘이 다른 여자를 데려온 것이 아닐까 하여 무척 경계의 자세를 취한 그녀들이지만 조금 뒤 그녀가 그런 쪽이 아닌 엘프 쪽 사자라는 것을 알자 친근하게 대하기 시작한 것이다. 천성이 워낙 착한 두 여인이었기에 엘리엔에게 호기심 반, 묘한 경계심 반을 지니고 엘리엔을 대했으며, 엘리엔은 처음에 두 여인이 자신에게 무언가를 경계하고 있음을 깨달았지만 나중에 그 이유를 알자 너무 어이가 없어 피식 하는 정도로 그쳤다. 세상에, 자신을 경계하던 것이 엘과 자신의 관계를 의심해서라니. 너무 어이가 없어 항상 포커 페이스였던 엘리엔이 피식했을 정도니 말이 필요 없다. 여하튼 엘리엔은 금탑의 인물들과 함께하면서 인간 세상이 자신이 생각하던 것과는 판이하게 다른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천성적으로 욕심이란 게 없는 엘프들은 공동 소유로 만족하지만 인간들은 아니다. 그들은 힘을 바탕 삼은 그들만의 법칙에서 계급을 나누어 군림하며,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바로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처음 그녀가 대륙에 나타났을 때 그녀의 외모 때문에 수많은 귀족들이 그녀에게 음험한 손을 뻗었지만 지금은 그 형세가 판이하게 달라졌다. 그녀에게 손을 뻗던 귀족들은 금탑의 인물들에 비해 현 저하게 뒤처지던 인물이었던 것이다. 당금 금탑주의 이름값만 하여도 처음 그녀가 나타났던 게일라스 자작쯤은 가볍게 해치울 정도로 그 위세는 대단했다. 그런 위세를 그녀 또한 실피르와 함께하면서 절로 등에 업게 되니, 그녀를 음험한 눈으로 쳐다보던 이들이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조아리기에 급급했던 것이다. 그것으로 엘리엔은 인간 사회의 전반적인 틀을 모두 파악할 수 있었다. '이게 인간 세상의 힘이구나. 힘이 모든 걸 결정해.' 엘과 했던 약속, 그것으로 엘리엔은 인간 사회에 빠르게 적응하고 있었고, 어느덧 그녀의 가슴 속 깊게 박힌 적개심은 조금씩 옅어지고 있었다. 4. 매직 메탈의 판매권을 따내다 "이제 수도로 가죠." 모두에게 유익했던 하루가 끝나고, 엘은 실피르 등을 보며 말을 꺼냈다. "그래, 가야지." 엘의 말에 실피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표정은 유독 밝았다. 이틀간의 반자크 생활은 결코 나쁘지 않았다. 과거를 떠올리게 해 줌으로써 오랜 시간 동안 금탑에 있던 그녀들에게 활력을 돋아 주었고, 엘리엔에게는 인간에 대한 적개심을 상당부분 누그러뜨릴 수 있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카시아스 왕국의 수도라...... 톨리안 왕국과는 다른 멋이 있겠죠?“ 카시아스 왕국이 대륙에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톨리안 왕국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군사력 면에서는 톨리안 왕국이 앞서나 많은 광물들과 곡식이 생산되는 카시아스 왕국이 경제적인 면에서는 톨리안 왕국을 앞서고 있던 것이다. 지난 역사를 살펴봐도 주변국들이 모두 가뭄에 굶주릴 때 카시아스 왕국은 풍부한 곡물들을 거두었으며, 오히려 주변국들에게 수출을 함으로써 자연스레 주변국의 패자로 떠오르게 되었다. "물론이지. 카시아스 왕국의 수도는 아름답기로 정평이 나 있는걸." 실피르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기대되는군요." 엘이 빙긋 웃었다. *** 켈베린. 카시아스 왕국의 수도로서 500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를 지닌 도시다. 풍부한 카시아스 왕국을 상징하는 켈베린은 그 외견이 무척 아름답다고 하며, 거지가 드물다고 할 정도로 주민 하나하나가 모두 풍족한 생활을 하고 있다. 켈베린이 유명한 것은 특이하게도 꽃이었는데, 당대 카시아스 지배자인 바이덴 국왕이 각국의 아름다운 꽃을 사 들여 켈베린에 조성된 공원에 심어 놓아 부의 상징으로 자랑할 정도다. 아름답게 꽃이 심어진 이곳을 플라워 월드(Flower World)라 부르는데, 이곳은 이미 대륙 전역에 그 유명함 이 널리 퍼졌을 정도이다. 엘이 텔레포트로 곧장 켈베린에 도착한 뒤 간 곳이 바로 플라워 월드다. 켈베린에서 가장 유명한 곳인 만큼 한 번쯤 둘러볼 요량으로 이곳을 방문한 것이다. 엘은 켈베린 곳곳을 둘러보며 감탄사를 터뜨렸다. "햐, 정말 멋지네요. 아름다움에 있어서는 베르디스와 비교가 안 되는군요." "그러게, 소문보다 훨씬 아름다운걸." 옆에 있던 실피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확실히 켈베린의 정경과 플라워 월드는 소문으로 들었던 것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플라워 월드를 구경한 일행은 곧장 켈비린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호텔 안으로 들어섰다. 호텔 안으로 들어선 엘은 카운터에서 한 사람을 찾았다. 잠시 후, 종업원과 함께 중년인 한 사람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그의 정체는 다름 아닌 디벨이었다. 디벨은 엘을 보며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오신다더니 정말 오셨군요. 꽤 오랜만에 뵙습니다." "상단주님도 오랜만이에요." 엘은 싱글싱글 웃음을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예, 그리고 실피르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디벨은 엘과 인사를 나눈 뒤 실피르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 뒤 세레와 카이나를 향해 각각 인사를 하였고, 마지막으로 엘리엔에게 향한 디벨은 순간 움찔했다. 실피르 등을 보아 오며 단련된 그의 아름다움의 기준이 산산이 깨 버리는 아름다운 미인이 서 있었던 것이다. '정말 아름답다. 그런데 위험하다.' 디벨은 여인을 보며 순간 아름답다는 생각도 하였지만 본능적으로 위험하다는 걸 느꼈다. 그것은 그가 대륙 10대 상단을 일구게 한 상인의 본능적인 감각이었다. 디벨은 내심 속으로 긴장감이 팽팽하게 당겨지는 걸 느끼며 공손하게 인사를 하였다. "디벨이라고 합니다. 부족합니다만 디벨 상단을 이끌고 있지요." "엘리엔이라고 합니다." 엘리엔은 자신에게 인사를 건네는 모습을 보고 흥미로운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분명 자신의 정체에 대해 일절 모를 텐데 본능적으로 자신에게 무언가를 느낀 듯하다. 그녀는 과연 대륙 10대 상단을 이끌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예의를 갖추어 인사를 하였다. '과연.' 엘은 적절한 대처를 한 디벨을 보며 나직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장 엘리엔에 대해 소개를 하였다. "이분은 금탑의 중요한 손님입니다. 저에 비해 하등 부족할 것 없는 신분이니 그렇게 알아두세요." 엘프의 수호검주라면 능히 한 국가의 공작과 맞먹는 위치다. 결코 엘에 비해 떨어지는 신분이 아니다. "예, 알겠습니다." 디벨은 고개를 고덕이면서 경이로운 눈으로 엘리엔을 바라보았다. 대륙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분명 범상치 않은 신분을 지녔을 거란 그의 예측이 어느 정도 적중한 셈이다. ‘만만치 않은 인원. 이 정도면 바이덴 국왕도 우리의 거래 요청을 섣불리 거절하지 못할 것 이다.' 엘이 나서기도 전에 디벨은 카시아스 왕국에 매직 메탈 광산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곧장 이곳 켈베린으로 왔다. 현재 켈베린에는 대륙 10대 상단 중 무려 다섯 곳이 온 상태이며, 대륙 100대 상단에 드는 상단 중 절반 가까이 이곳에 온 상태이다. 매직 메탈이 무척 귀한 광물인 만큼 왕국 측에서는 독점 판매보다 분할 판매를 할 확률이 높았는데, 그렇다면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게 무척 중요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디벨 상단의 힘으로는 부족하다. 왜냐하면 매직 메탈을 노리고 온 상단 중 하나인 메디엔 상단이 골드 워 상단과 함께 매직 메탈의 가장 큰 판매권을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메디엔 상단은 대륙 10대 상단 중 하나다. 거기에 골드 워 상단의 자금이 합쳐지면 제아무리 디벨 상단이랄지라도 견뎌 낼 재간이 없다. 더군다나 메디엔 상단과 골드 워 상단은 대륙 10대 상 단 중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곳이다. 아직 다섯 손가락 안에도 들지 못하는 디벨 상단의 성격상 제아무리 자금을 동원해도 두 상단의 합작을 막아낼 수 없다. 그렇다면 디벨이 사용할 수 있는 패는 자금이 아닌 인간적인 요소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엘이다. 최연소 8클래스 마법사! 디벨 상단의 실질적인 주인이 엘인 만큼 그가 직접 카시아스 왕국과 협상을 벌인다면 그것이야말로 자금을 뛰어넘는 필승 조건을 갖추는 것이다. 그랬기에 디벨은 눈을 빛내며 옆에 있는 종업원에게 일렀다. "이분은 금탑주이신 엘리미스 님이시라네," 아니나 다를까, 디벨의 말을 들은 종업원은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짓는다. 설마하니 눈앞의 청년이 금탑주라니! 당연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눈앞에 있는 청년은 당금 대륙에서 가장 유명한 존재였으니까! "예엣! 금탑주님?" “금탑주?” 종업원의 외침이 무척 컸기에 그것은 호텔 1층 식당으로 퍼져 나갔고, 삽시간에 사람들의 시선이 이곳으로 집중되었다. 안 그래도 눈부신 미녀들이 모여 있기에 시선을 받던 일행인데, 그 정체가 금탑의 인물이란 것이 밝혀지자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집중되기 시작했다. "이런." 엘은 디벨의 의도를 대번에 알아차리고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천성적으로 시선이 집중되는 걸 싫어하는데 삽시간에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 모으게 되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제가 쓸 일 인실 하나와 네 분이 머물 수 있는 사 인실 하나를 마련해 주시기 바랍니다.“ 엘은 어느새 두 눈에 가득 경외감을 담고 있는 종업원을 보며 입을 열었다. "아! 예, 예!" 잔뜩 얼어 있던 종업원은 엘의 말에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더없이 정중하게 엘을 안내하기 시작하였다. 자신이 일하는 호텔에 당금 대륙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이 방문하였다. 이런 빅 특종을 알고 혼자 있을 사람들이 아니다. 종업원은 그날 업무를 마치고서는 자신이 아는 사람들 에게 여기저기 소문내듯 이야기를 하였다. 금탑주가 천족의 숨결이라는 호텔에 머물고 있다!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비단 그뿐만이 아닌 호텔 안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도 금탑주가 나타났다고 말하고 다녔기에 소문은 삽시간에 켈베린 전체로 퍼져 나갔다. 천족의 숨결은 켈베린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호텔 중 하나였기에 그곳을 모르는 사람은 전무했다. 덕분에 소문을 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구름같이 천족의 숨결로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주로 모여드는 이들은 카시아스 왕국의 귀족들과 부유한 상단의 상단주들이었다. 그들에게는 각각 속셈이 있었다. 바로 엘과 만나 그와 친분을 나누려는 속셈이다. 엘은 아직 젊다. 게다가 최연소 8클래스 마법사인 만큼 몇 십 년 후 대륙에서 가장 영향력을 발휘할 존재는 그일 것이 분명했다. 사람들은 대부분 모르지만 대륙은 멈춰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륙 정세를 주도하는 5대 제국과 기사, 마법사들 위에 절대적으로 군림하는 10대 8클래스 마법사와 10대 그랜드 마스터가 각각 국내, 국가별로 참예하게 대립하고 있었기에 그 균형은 쉽사리 무너지지 않고 있었다. 이러한 대치가 수십 년간 이루어져 서서히 굳어 갈 때, 파문을 일으킨 존재가 나타났다. 그것이 바로 엘. 7클래스의 경지로 7클래스 최강의 마법사인 아인하트 후작과 글레톤을 협공으로 꺾었다. 게다가 당금 그랜드 마스터 중 한 사람인 클라이언 공작과 무승부를 벌인 골든 나이트가 엘의 호위를 지키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그의 여인이 성녀로 임명되었음에도 그는 감히 신의 의지에 대적하고자 하는 용기를 보였다. 성국은 성녀를 모시고자 성국 최고의 기사단을 차례로 파견하였으며, 성국의 그랜드 마스터인 다이어드 공작까지 파견하여 성녀를 모시려 하였다. 하지만 결과는 금탑의 승리 금탑주에게 원한을 가진 블리어드 제국이 8클래스 마법사인 황탑주 게이런즈를 파견하였지만 그는 도리어 엘의 손에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그는, 무슨 이유인지 톨리안 왕국의 제1왕자인 맥셀 왕자로 변장하여 왕국의 분열을 획책한 적탑주 카로스만의 정체를 간파하여 접전 끝에 카로스만을 죽이는 데 성공한 것이다. 8클래스 마법사 2명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엘은 더 이 상 운 좋은 애송이 마법사가 아니다. 그는 당당히 대륙 마법사들 정상에 군림하는 8클래스 의 경지에 든 것이며, 이 정도 발전 속도라면 추후 전설의 9클래스 경지에 오를 가능성도 높다. 그런 인재가 자국의 수도를 방문하였는데 어느 귀족이 군침을 흘리지 않을까? 게다가 운만 좋다면 자신의 딸을 금탑주의 부인으로 밀 어넣는 데 성공할 수 있다. 그렇게만 되면 그 가문은 금탑의 비호를 받게 될 것이며, 추후 공작가로 도약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 누가 금탑주와 연관된 곳의 앞길을 막으려 할까? 비록 금탑주 곁에 2명의 여인이 있다고 하지만 능력 있는 자는 능히 수십 명의 부인을 두는 것이 세르디아 대륙의 실정이다. 하다못해 첩으로라도 넣게 되면 그 가문의 앞날은 탄탄대로니 그 누가 군침을 흘리지 않을까? 디벨의 의도는 훌륭하게 성공하여 켈베린 전체에 금탑 주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퍼져 나갔다. 그리고 수십 명에 이르는 귀족들과 상단주들이 방문한 것은 두말 할 것도 없는 사실이다. 모든 걸이 디벨이 의도한 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 엘은 천족의 숨결이라는 호텔에서 꼬박 3일을 머물렀다. 그는 그때까지 호텔을 찾은 이들과 일체 만나지 않았는데, 한번 만남을 가졌다가는 끝도 없이 몰려드는 귀족들과 상단주들을 모두 만나야 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엘은 정중한 어조로 자신을 방문한 이들에게 추후 왕국에서 벌어질 연회에서 만나기로 약조를 하고 그들을 돌려보낼 수 있었다. 매직 메탈 광산은 무척 큰 가치를 지녔기에 카시아스 왕국은 자국을 찾은 수많은 상단을 위해 연회를 준비했다. 그곳에서 자국의 귀족들과 상단주들의 친분을 쌓게 하고, 왕국 측에서 상단의 신용도와 여러 가지를 조사할 시간을 벌기 위함이다. 매직 메탈 광산이 발견된 건 국가의 경사였기에 젤베린은 일주일간 축제를 벌이기로 결정된 상태다. 때문에 켈베린은 모처럼 시끌벅적한 상태였다. *** 축제 당일. 엘의 일행은 비교적 늦은 시간에 입궁할 준비를 하였다. 보통 귀족들은 연회가 시작하기 직전에 입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왜냐하면 연회 전에 귀족 간에 파벌들끼리 모여 인사를 나누고 각각 정보를 나누기 때문이다. 하지만 엘은 카시아스 왕국의 귀족이 아닌 손님이다. 더군다나 그를 목표로 하는 수많은 귀족들이 있는 만큼 일찌감치 연회에 참석하여 수많은 귀족들에게 질문 공세를 시달릴 이유가 없다. 그랬기에 엘은 연회 시간에 정확히 맞추어 입궁할 준비를 맞춘 것이다. 이미 실피르를 비롯한 여인들이 입을 드레스는 준비한 상태다. 엘프인 엘리엔은 맞는 드레스가 없었지만 돈만 있으면 뭐든 다 되는 게 세상의 이치. 엘이 제시한 막대한 금액 앞에 디자이너는 그날 제작하여 이튿날 드레스를 완성시키는 기염을 토해 냈다. 드레스를 입은 여인들의 모습은 실로 아름답기 그지없었는데, 엘은 그녀들의 아름다움에 내심 흐뭇하면서 한편으로는 불안했다. 아름다운 꽃은 필시 성가신 벌들을 죄어내기 때문이다. 물론 엘에게 그것을 지킬 힘은 있었지만 언제나 그러하듯 방심은 금물이다. 근심을 떨쳐 버린 엘은 여인들을 보며 빙긋 웃음을 지었다. 매력적인 웃음이었다. "아름다운 레이디들, 함꼐 가실까요?“ 엘의 능청스러운 모습에 실피르가 웃음을 지었다. "호호, 아직까지 레이디라니, 고마울 따름이랍니다." 그녀는 엘의 에스코트에 따라 디벨 상단이 준비한 마차에 올랐다. 그렇게 세레나와 카이나도 차례대로 마차에 올랐고, 엘은 엘리엔에게 손을 뻗었다. “......” 엘리엔은 잠시 엘의 손을 바라보다가 맞잡았고, 사뿐하게 마차에 올랐다. 모든 여인들이 마차에 탑승하자 엘 또 한 마차에 올라탔다. 상황을 조용히 지켜보던 마부가 마차를 몰기 시작했다. 지금 이 마차에 타고 있는 인물들은 현재 켈베린 전체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인물들이다. 연회 시간까지 아슬아슬하니 한 치의 망설임도 존재해서는 안 된다. 히히힝! 말이 힘찬 울음을 터뜨리며 마차가 왕궁을 향해 달리기 시작하였다. 카시아스 왕국의 왕국은 무척 아름다웠다. 작은 왕국들이 추구하는 단아한 아름다움과는 수준이 다른 웅장한 아름다움이 왕궁 전체와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짓는 것은 물론 관리비만으로도 천문학적인 금액이 들 것이 분명한데 이 정도 규모의 왕궁을 유지한다는 건 그 만큼 왕국의 재정이 풍부하다는 뜻이라. 엘과 여인들을 태운 마차는 왕궁의 정문에 다다랐다. 왕국의 정문은 왕국의 주요 인사들이 모이는 연회가 벌어지는 탓인지 그 경계가 삼엄했다. 평소 근위병들만 보초를 서는 데 반해 지금은 근위병 20명과 5명의 기사, 3명의 마법사가 보초를 서고 있던 것이다. "멈추시오." 마차가 왕궁으로 다가오자 선두에 서 있던 기사가 제지를 하였다. 마차가 속도를 줄이며 정문에 멈춰 서자 기사가 빠르게 다가갔다. 그 뒤를 다른 기사들은 물론 근위병들도 따랐 다. 그들이 그렇게 행동한 이유는 마차에 어디 소속인가를 상징하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왕궁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정확한 신분이 필요합니다." 마차를 제지한 기사가 공손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오늘 연회에 참가하는 인물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결코 만만한 존재는 하나도 없었다. 연회에 참가하는 이들은 모두 카시아스 왕국의 귀족들과 대륙 어딜 가도 알아주는 거대 상단의 인물들뿐이었다. 언뜻 보기에 귀족의 마차는 아닌 듯하니 필시 상단과 관련된 인물일 것이 분명했다. "이분은......" “잠깐." 마부가 자신의 소개를 하려고 하자 마차 속에 있던 엘이 그를 제지했다. 그리고 마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어차피 왕궁 내로 들어서면 마차는 따로 정박하는 곳에 멈추게 되니 여기서부터 걸어 들어갈 심산이었던 것이다. 뒤이어 여인들도 마차에 내려서기 시작했다. “......!” 돌연 마차 문이 열리며 사람이 나오자 기사들의 눈이 크게 뜨였다. 마차에서 내려서는 사람들의 면면이 놀랍기 그지없었던 것이다. 우선 선두에 내려선 청년은 금발에 푸른 눈을 한 인상 적인 미남이었다. 게다가 얼굴에는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무척 지적으로 보였다. 그 뒤를 따라 내리는 네 명의 여인이 있었는데, 그녀들 모두 왕국에서 찾아보기 힘든 대단한 미모를 지니고 있었다. 그들을 자세히 훑어보던 기사들의 시선이 청년과 두 명의 여인이 걸치고 있는 로브에 향했다. 금색 로브. 대륙에서 이것을 두르는 이들은 바로 하나 다. 기사들은 헛바람을 집어 삼켰다. "허억!" 그와 함께 그들의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설사 소드 마스터가 앞에 있어도 결코 떨 그들이 아니다. 하지만 눈앞의 존재는 소드 마스터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존재다. 왜냐하면 자신들 앞에 있는 마법사는 당금 대륙을 쩌렁 쩌렁 울리는 금탑주 엘리미스이기 때문이다. 그가 이룩한 전설들이 얼마나 많던가! 금탑주가 방문했다는 소식은 이미 켈베린 곳곳에 퍼진지 오래다. 아직 그가 입궁하지 않았으니 지금 눈앞의 있는 마법사가 금탑주가 확실할 터. 기사들의 몸이 뻣뻣하게 펴졌다. 그리고 고개를 힘차게 숙였다. "금탑의 주인을 뵙습니다." 세르디아 대륙이 제아무리 동쪽에 제국, 서쪽에 왕국으로 서로 대립을 이루어 평화를 지속한다고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힘 있는 자가 조율하는 평화에 불과했다. 여기서 힘 있는 자는 초인이라 칭해지는 그랜드 마스터와 8클래스 마법사를 보유한 왕국들과, 본인들이다. 그 초인들 중 후일 대륙 최강이 될 것이 분명한 금탑주를 이렇게 보게 되다니. 기사들의 눈에 존경의 염이 서렸다. 엘은 기사들을 보며 빙긋 웃었다. "수고하시네요. 기사 분들의 모습을 보니 카시아스 왕국의 미래는 밝을 것임을 확신할 수 있군요." 기사들의 고개가 좀 더 숙여졌다. 8클래스 마법사의 칭찬이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다. "가, 감사합니다, 연회장은 제가 직접 안내하겠습니다." 어차피 연회 시작 시간도 거의 다 되었고, 더 올 사람들도 없어 보였다. 그걸 감안한 엘은 기사들의 호의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고맙습니다. 그럼 부탁하지요." "저희들을 따르시지요." 몸을 곧추 세운 기사들이 앞장섰다. 제아무리 위세가 높은 귀족들이 방문을 하여도 기사가 앞장 서 길을 안내하는 경우가 없다. 이런 경우를 대비하여 미리 안내인을 준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사가 앞 장을 설 정도라니...... 왕궁 곳곳에 있던 사람들은 처음에 의아해했으나 그들을 뒤따르는 이들의 모습을 살피고는 그런 의문을 불식시킬 수 있었다. 금색 로브, 그것으로 그들의 정체를 감안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금탑주! 그의 방문은 카시아스 왕국에게 찬란한 미래를 선물할 지 음울한 미래를 선물할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무언가 목적을 가지고 온 이상 그 결과가 좋다면 앞으로 왕국의 미래도 밝으리라. "이곳입니다." 기사들은 연회장 입구까지 엘을 안내하였다. 연회장 입장 최소 조건이 기사 계급 이상이었다. 때문에 그들 또한 연회에 참석할 수 있고, 어차피 올 사람들도 없었기에 겸사겸사 엘을 안내한 것이다. "그렇군요." 엘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연회장을 바라보았다. 부유한 국가답게 무척 화려하기 그지없는 연회장이었다. '과연 부유한 국가답다.' 엘은 연회장을 둘러보며 입장했다. 그의 발걸음은 무척 조용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 만으로 판단할 수 없는 알 수 없는 소용돌이가 엘을 중심으로 휘몰아쳤다. 하수는 전혀 느끼지 못할, 고수들만 느낄 수 있는 기운이었다. 그것을 보며 엘리엔은 순간 눈을 반짝였다. 휘유우! 엘에게서 뿜어진 기운은 삽시간에 연회장을 뒤덮기 시작했다. “......!” 엘의 기세를 느낀 몇몇 이들이 몸을 움찔거렸다. 무시무시한 기세가 그들의 전신을 휩쓸었기 때문이다. 싱긋. 엘은 가장 먼저 자신의 기세를 알아차린 두 사람을 보며 웃음을 지었다. “......” 시끌벅적하던 연회장이 조용해졌다. 갑자기 연회장이 조용해진 이유는 카시아스 왕국을 양 분하는 양대 파벌 수장이 엘을 응시했기 때문이다. 카시아스 왕국은 부유한 국가답게 수많은 기사들을 거느리고 있다. 부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기사들을 많이 거느림으로써 카시아스 왕국의 부를 과시하려는 속셈이 있었던 것이다. 많은 기사들을 보유하고 있으니, 자연히 수많은 인재들 을 거느리고 있고, 덕분에 카시아스 왕국의 기사단은 주변 국가들 중 최강을 자랑했다. 그런 왕국 기사단 중 가장 강한 기사단은 바로 근위기 사단이라 할 수 있다. 왕궁을 수호하는 기사인 만큼 왕국 내에서 가장 유능하고, 가장 강한 이들만 입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근위기사단은 약 100여 명 내외라 할 수 있는데 카시아스 왕국은 특이하게 2개의 근위기사단을 거느리고 있다. 그리고 그 두 기사단의 수장은 왕국 2대 공작이 각각 맡고 있다. 버페리온 공작과 루드란 공작. 그들은 갈기 최상급 소드 마스터에 이르러있으며, 카시 아스 왕국을 대표하는 최강의 기사다. 그랜드 마스터를 목전 앞에 두고 있던 그들은 카시아스 왕국의 힘을 서로 나눠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이번 연회도 그들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매직 메탈을 노리고 온 상단의 주인들도 모두 두 공작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니, 두 공작의 위세가 얼마나 강한 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잘 모르는 사람은 카시아스 왕국의 매직 메탈 판매권이 있는 줄 알지만 사실 그 권한은 두 공작에게 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오늘 연회에서 매직 메탈 판매권 권한은 두 공작 에게 일임되었다. 정보에 밝은 상인들은 두 공작에게 잘 보여 판매권을 따내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상인들의 속내를 모를 두 공작이 아니었다. 그들은 상인들의 모습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분수에 맞지 않은 걸 원하다니......' ‘정말 쓸개도 없는 자들이군.' 그들은 애초에 다른 상인들에게 매직 메탈을 넘길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매직 메탈이라는 큰 미끼를 노리는 자들이 한둘이 아닌데 당연히 그것으로 최대한 이익을 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들이 주목한 거래 대상은 바로 두 곳이다. 골드 워 상단과 메디엔 상단의 그 1번째이고, 디벨 상단이 2번째다. 다른 대륙 10대 상단도 몇 군데 왔지만 애초에 그들의 거래 대상이 되지 못하였다. 대륙 10대 상단 중에서도 수위에 드는 두 상단의 연합과 금탑주를 주인으로 두고 있는 디벨 상단에 비해 그들이 몇 끗발 처지기 때문이다. 정적인 두 사람이기도 하지만 어렸을 적 같이 검술을 익혀 온 친구이기도 하였기에 두 사람은 매직 메탈의 판매권을 어떻게 처리할지 상의하였다. 매직 메탈은 무척 귀한 금속이다. 특히 마법사들에게 더욱 그러했는데, 카시아스 왕국에 서 발견한 매직 메탈 광산의 크기는 엄청난 크기여서 이것을 활용하기에 따라 엄청난 이득을 거둘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은 고민했다. 대륙 10대 상단 중 두 곳과 관계를 돈독히 할 것인가, 아니면 새롭게 떠오르는 금탑 주와 디벨 상단과 관계를 맺을 것인가. 메디엔, 골드 워 상단의 뒤에는 벨로세크 제국이 존재한다. 두 상단과 관계를 맺는다는 건 벨로세크 제국과 관계를 만든다는 것. 대륙 최강 제국인 그들과 간접적인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사항이다. 하지만 디벨 상단도 만만치 않다. 그들이 지닌 상품은 하나같이 놀라운 것들뿐이다. 매직 스톤을 시작으로 트롤의 피, 그리고 각종 의류. 특히, 디벨 상단의 의류는 이미 대륙의 3분의 1에 공급 하고 있을 정도로 그 영향력은 대단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두 상단을 압도하기에는 무리다. 기울어진 균형을 맞추는 것은 다름 아닌 엘의 존재다. 엘은 최연소 8클래스 마법사다 거기에 그랜드 마스터와 대등하게 맞설 수 있는 골든 나이트를 거느리고 있으며, 추측하기 힘든 각종 마법들은 이미 대륙에서 가장 대단한 것들로 알려져 있다. 무엇보다 엘은 톨리안 왕국에 적을 두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무척 많은 것을 시사한다. 옛날부터 대륙은 동쪽과 서쪽으로 나뉘어 대치 상태를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여 개의 왕국이 힘을 합해야 대등하게 맞설 수 있는 5대 제국이 서로 간의 상잔을 가급적 피하며 왕국들로 시선을 옮겨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장시키려 하였기 때문이다. 서부의 왕국들은 일찍이 제국의 이러한 의도를 파악하고 있었다. 5대 제국이 서로 간에 적지 않게 견제를 하면 서 흘러나온 정보 탓이다. 그 소식을 접해 들은 왕국들은 서로 힘을 합하기 시작했다. 당장 제국과 국경을 접하지 않고 있다지만 옆 왕국이 차근차근 멸망당한다면 언젠가는 자신의 왕국이 제국과 국경을 절하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때문에 서부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10개의 대왕국들이 서로 힘을 합쳤다. 카시아스 왕국은 그 대왕국 중 한 곳이다 대왕국의 역할은 주변 왕국을 조율함과 동시에 제국의 침공에 대응하는 역할이며, 서로 간의 친목을 위해 다른 왕국과의 전쟁을 일절 금했다. 그러던 중 희소식이 전해진다. 제국과 국경을 접한 아드라인 왕국과 덱스론 왕국에 그랜드 마스터가 탄생한 것이다. 두 왕국은 자신의 왕국에 그랜드 마스터가 탄생했다는 것에 크게 기뻐했다. "이거야! 이제 제국들에게 밀리지 않는 힘을 보유하게 되었어!" 수십 명의 소드 마스터를 상대할 수 있는 그랜드 마스터는 그야말로 국가 최강의 병기라 할 수 있다. 더군다나 그랜드 마스터를 보유하지 못한 제국까지 있었으니, 이대로라면 제국들에게 한 방 먹일 만했다. 그리고 제국을 공격하기 위해 준비를 할 때, 그들은 좋지 않은 소식을 통보받는다. 바로 제국에도 그랜드 마스터가 출현했다는 이야기다. 소식을 들은 왕국들은 즉각 제국의 침공을 포기하였다. "우리 전력으로 제국을 이길 수 없다." 제국이 달리 제국이라 불리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서로 견제를 하는 데 힘을 소모하지만 않았다면 지금쯤 대륙에는 5개의 제국만 존재했을 것이다. 현재 제국에 소속된 그랜드 마스터가 7명이며, 8클래스 마법사 또한 7명이다. 물론 여기서 게이런즈와 카로스 만이 금탑주 엘리미스의 손에 죽었으니 이제는 6명인 셈이다. 반면 왕국 측은 3명의 그랜드 마스터와 3명의 8클래스 마법사를 보유하고 있다. 거기에 금탑주가 추가되어 확실한 자신들의 편이 된다면? 왕국들은 더 이상제국의 침공을 걱정할 것이 없다. 그것을 확실하게 하는 데 있어 매직 메탈의 안정적인 공급만한 것이 어디 있는가? 하지만 벨로세크 제국과의 간접적인 연결과 대륙 10대 상단 중 최상위 두 곳을 상대로 관계를 맺는 것도 결코 만만치 않은 유혹이다. 그래서 두 사람은 암묵적으로 결정했다. 두 세력을 만나 보고 결정을 내리겠다고 말이다. 마음 같아서는 디벨 상단과 계약을 채결하고 싶지만 그에 못지않은 먹잇감이 존재하니 섣불리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그들은 언제 오는 것이지?‘ 연회장에는 이미 메디엔 상단과 골드 워 상단의 관계자가 온 상태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눠 본 두 공작은 두 상단의 인물들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다. 두 상단의 배경 조건이 마음에 들었지만 사람들의 평가가 그리 좋지 못했기 때문이다. 연회의 시작이 멀지 않았기에 두 공작은 마지막 남은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연회 시작 직전, 그들은 입구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기운에 혼비백산해야 했다. '이 기운은!' '초인이다. 초인의 기운이 틀림없어.' 버페리온 공작과 루드란 공작은 체내의 마나가 흔들리는 충격을 느끼며 황급히 기세를 뿜어내는 존재에게 시선이 향했다. 그곳에는 20대 초반의 청년이 미소를 머금은 채 오연히 서 있었다. 그리고 그를 뒤따르는 4명의 아리따운 여인은 내부가 진탕되는 듯한 두 공작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연회장에 존재하는 다른 소드 마스터들도 마찬가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전신을 짓누르는 엄청난 기세에 안색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어느 순간, 심신을 옥죄던 기운은 깨끗하게 사라졌다. "허억!" “헉!" 기세에서 해방된 이들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그런 이들을 의아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갑자기 안색이 새파랗게 변하더니, 거칠게 숨을 몰아쉰다. 어찌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 엘은 두 공작에게 다가갔다. 왠지 모를 범접하지 못할 분위기에 두 공작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물러났다. 자연스레 길이 트이자 엘은 두 공작을 향해 인사를 하 였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두 분 공작님. 저는 금탑의 탑주인 엘리미스라고 합니다." “......” 엘의 말에 연회장은 조용히 경악이 번져 나갔다. 금색 로브를 보면서 그들은 설마 설마 하였다. 그런데 정말 금탑주라니! 일견하기에 그는 20대 초반의 외모에 불과하였다. 사실 사람들은 금탑주가 20대 초반의 나이라는 것을 믿지 않았다. 어찌 믿지 않겠는가? 20대 초반에 8클래스의 경지에 오르는 것은 그야말로 허공에 뜬 구름 잡는 소리에 불과하다. 당장 20대에 7클래스에 오르는 것도 요원한데 8클래스라니 그 누가 순순히 믿을까?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은 모두 귀족 혹은 상인들이다. 그런 그들의 안목을 속이기는 어려운 노릇. 더군다나 최상급 소드 마스터 2명이 있으니 금탑주가 외모를 속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절호의 기회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자신의 안목을 믿는 이들도 금탑주가 나이를 속이는 것이라 생각하고, 그가 마법 혹은 다른 수법으로 얼굴을 젊게 한 것인지 눈여겨보았다. 한동안 엘의 얼굴을 눈여겨본 그들은 알 수 있었다. 엘이 결코 외모를 젊게 한 것이 아님을. 그는 자신의 나이에 걸맞은 외모를 지니고 있던 것이다. 그것은 두 공작도 마찬가지다. 버페리온 공작이 먼저 엘의 인사를 받았다. "대륙 전체를 진동시키는 금탑주닙을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버페리온가를 맡고 있는 버페리온 이즈밀입니다." 버페리온 공작은 엘에게 경어를 사용하였다. 그 또한 일국의 공작이지만 8클래스 마법사인 엘에게 감히 말을 놓을 수 없었던 것이다. 8클래스 마법사는 제국에서 후작의 대우를 받는다. 제국에서 후작이라 함은 웬만한 왕국의 공작보다 한 단계 높은, 대공과 비슷한 직위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왕국에 존재하는 8클래스 마탑주의 높이는 왕 국의 공작도 함부로 못하는 자리니, 지금 벼페리온 공작은 엘을 대륙의 초인 중 하나인 8클래스 마법사로 인정하는 것과 같다. 그 예로 자신을 소개할 때 공작이라는 작위로 소개하지 않고 이름으로 소개한 것이 엘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엘이 그런 버페리온 공작의 말뜻을 알아차리고는 빙긋 웃었다. “반갑습니다. 그랜드 마스터에 근접하셨다는 버페리온 공작님을 뵙게 되어 무척 반갑네요. 버페리온 공작님의 쾌검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는 명성이 골든 벨리까지 전해져 오더군요." 빈말이지만 칭찬은 칭찬이다. 더군다나 그 칭찬을 하는 사람이 8클래스 마법사이지 않은가? 버페리온 공작으로서는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다. "허허, 금탑주님이 그렇게 말해 주시니 영광입니다." 서로 간에 덕담이 오가며 분위기가 급속도로 화기애애해지자 그 사이를 루드란 공작이 끼어들었다. 협력 관계지만 경쟁 관계이기도 한 버페리온 공작만 엘과 친분을 쌓는 걸 두고 볼 수 없었던 것이다. "루드란 레드빌입니다. 위명이 자자한 금탑주님을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아, 루드란 공직님이시군요. 카시아스 왕국에 쾌검으로는 버페리온 공작님이 있고, 중검으로는 루드란 공작님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엘의 말에 밝은 표정을 짓는 루드란 공작. 그가 비록 카시아스 왕국 한 파벌을 이끌고 있지만 선천적으로 정치보다는 검을 수련하길 더 좋아하는 전형적인 기사였다. 그러니 엘의 말에 기분이 좋을 수밖에. 루드란 공작은 예의 바른 엘의 모습에 호감이 확 이는것을 느꼈다. 어린 나이에 8클래스에 이르렀다기에 무척 오만할 줄 알았다. 그런데 예의 바르고 인간성도 좋아 보이니 어찌 호감이 가지 않겠는가. "하하핫! 금탑주님에게 들으니 빈말도 진실같이 들리는 군요. 하하핫!" 루드란 공작이 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은 무척 호탕하여, 엘은 빙긋 웃었다. "루드란 공작님은 카시아스 왕국에서 제일 호탕하다고 하더니 그것도 사실이었군요." "허, 그걸 이제 아셨습니까? 이 루드란, 어딜 가도 본인 보다 호탕한 사람은 본 적이 없습니다." 버페리온 공작에 이어 루드란 공작도 엘과 두터운 친분을 쌓아 가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엘에게 집중되었다. 일이 이렇게까지 된 이상 매직 메탈은 누가 차지할지 보나마나 뻔하였다. 메디엔과 골드 워 상단의 자금력이 강력하다고 하지만 8클래스 마법사인 엘의 힘을 무시할 수 없는 법. 더군다나 지금 분위기는 지극히 화기애애했으므로 결과는 보나 마나였다. 이번 매직 메탈의 상행을 책임진 메디엔 상단의 부상단 주인 오카란이 두 공작과 웃고 떠드는 엘을 보며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매직 메탈의 판매권을 따내기 어렵겠어. 어쩔 수 없지. 그분들의 힘을 빌리는 수밖에.' 마음을 굳힌 그가 총총히 연회장을 벗어났다. 엘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의 인간성에 빠져드는 두 공작. 전권을 지닌 그들이 어디로 마음이 기우는지는 보나마나 뻔했다. 엘은 두 공작에게 앞으로 돈독한 친분을 유지하며 자주 오갈 것을 약속하며 매직 메탈의 판매권을 따 내는 데 성공하였다. 때로는 돈이 능사가 아님을 간접적으로 보여 주는 예였다. 5. 한밤중의 습격 오카란은 매직 메탈의 판매권이 디벨 상단에게 넘어갔다고 곧장 상층부에 보고를 올렸다. 그러자 상층부에서는 알았다는 메시지와 함께, 동시에 일단의 무리를 켈베린으로 파견하였다. 우우웅! 메디엔 상단 소속 마법사가 그려 놓은 워프 게이트 마법진에 마나가 요동치며 새하얀 빛을 뿜어내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순간 최고조에 다다른 빛이 폭사하였다. 스팟! 빛이 사라지면서 동시에 수십 명의 사람이 등장하였다. 그들은 하나같이 두터운 갑주를 걸치고 있었는데, 절제된 몸놀림이나 심상치 않은 기도는 그들이 범상치 않은 인물들이란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 주고 있었다. 그들의 선두에는 두 중년인이 거대한 산처럼 버티고 서 있었는데, 뒤에 선 이들과 다르게 그들의 전신에서는 아무런 기운이 발산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 중 한 사람과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오카란은 숨이 넘어갈 듯 헛바람을 집어 삼켰다. ‘헉!’ 중년인의 눈은 한없이 깊었다. 그와 동시에 강렬한 살기를 동반하고 있어 오카란은 순 간 자신의 몸이 갈가리 찢겨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주륵. 그 살기가 얼마나 강했는지 오카란은 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며 저도 모르게 오줌을 지렸다. 오카란의 추한 모습에 다른 중년인이 인상을 찡그리며 살기를 내뿜는 이를 제지했다. "트루먼 공작, 그만 하게." 쏴아아아! 그의 제지와 함께 동시에 중년인의 눈에 떠올랐던 살기가 씻은 듯 사라졌다. 전신을 옥죄던 기운이 사라지자 오카란의 몸이 축 늘어 졌다. "쯧쯧, 이래 가지고 메디엔 상단의 부상단주라고?“ 쓰러진 그의 모습을 보며 중년인이 혀를 찼다. 혀를 참과 동시에 그는 자신 옆에 선 중년인을 바라보았다. 그의 정체는 트루먼 공작. 벨로세크 제국의 3대 그랜드 마스터 중 한 사람이다. 중년인은 그런 트루먼 공작을 향해 충고하듯 말하였다. "우리의 목적이 부합되기에 방금 전 살기를 용인하지만...... 부디 그 살기 좀 억제하길 바라네. 나 원, 이래가 지고 다른 길을 이용할 수가 있겠나?“ 그러자 트루먼 공작의 시선이 중년인에게 향했다. 그는 살기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중년인에게 말했다. "어찌 살기가 끓지 않겠습니까, 그레시오스 공작님? 금탑주는 저를 지금의 위치로 끌어내린 결정적인 인물인데 말이지요. 저는 이번에 금탑주를 갈가리 찢어 죽일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처참한 모습으로!" 말이 끝남과 동시에 트루먼 공작의 전신에서 짙은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뒤에 서 있던 30명의 기사들이 움찔할 정도로 짙은 살기였다. 살기가 짙게 뭉쳐 있는 트루먼 공작을 보며 그레시오스 공작이 고개를 저었다. "쯧쯧, 그러다 살기에 잠식될지도 모르는데......“ 그레시오스 공작과 트루먼 공작은 벨로세크 제국을 대표하는 그랜드 마스터 중 한 사람이다. 그들은 일찍이 루이아스의 강대한 힘에 감복하여 그의 휘하에 든 적이 있는데, 그중 트루먼 공작이 톨리안 왕국의 국왕인 레도프 국왕의 처리를 맡은 적이 있다. 그 당시 레도프 국왕을 처리하는 일은 무척 손쉬웠다. 왜냐하면 트루먼 공작의 휘하에만 물경 100명이 넘는 소드 마스터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트루먼 공작은 손쉬우면서 비중이 상당히 높은 일을 자신이 맡겠다 하였고, 소드 마스터 3명과 소드 익스퍼트 기사 50명을 파견하여 레도프 국왕을 제거하려 하였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 우연찮게 개입한 금탑주로 인해 소드 마스터와 기사들을 몽땅 잃는 사태가 발생했던 것이다. 그 결과 트루먼 공작은 조직에서 끝없이 위치가 하락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의 조직에는 유능한 존재가 무척 많다. 당장 대륙에서 초인이라 불리는 존재가 물경 10명이 있는데 오죽하겠는가. 그들 모두 협력 관계임과 동시에 경쟁 상대가 분명하였다. 루이아스는 무척 공평했다. 그는 공을 세우는 만큼 수하를 중용하였고, 반대로 실패하는 자에게는 무척 엄격했다. 트루먼 공작은 쉬운 임무를 실패한 만큼 그 사건으로 조직에서 그의 위치는 끝없이 추락하였다. 금탑주가 개입을 했다고 해도 그것은 핑계일 뿐이다. 모든 변수를 감안하지 못한 트루먼 공작의 잘못이 컸고, 결과적으로 조직 내 초인 중 트루먼 공작의 위치는 최하에 머물게 되었다. 이번 일만 해도 총책임자는 그레시오스 공작이다. 그는 벨로세크 제국 중 가장 강하다고 추앙받는 그랜드 마스터 로, 유일하게 아토빌 공작과 자웅을 겨룰 수 있다고 알려 진 그랜드 마스터다. 루이아스는 이번 일을 처리함에 있어 그레시오스 혼자서 무리라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금탑주 본인의 실력이 8클래스에 이르렀으며, 그의 수하인 골든 나이트도 함께일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그레시오스 공작이 강하다고 하나 2명의 초인은 무리. 더군다나 때마침 아일라스 제국을 병탄하기 위해 상당수 초인이 움직였기에 다른 곳에서 임무를 수행 하고 있는 초인을 빼내기 여의치 않았다. 그래서 루이아스는 제일 아래에 위치하고 있던 트루먼 공작에게 임무를 내렸다. 금탑주를 제거하라고. 그렇게 한다면 과거의 위치로 복귀시켜 주겠다고 말이다. 사실 금탑주는 마도 제국을 세움에 있어 무척 껄끄러운 존재였다. 그들 조직에서는 마도 제국을 세우는 데 걸림돌이 되는 존재들을 따로 등급을 매기는데, 그중 금탑주는 아토빌 공작과 함께 유일하게 SS 랭크에 올라가 있다. 주로 금탑에 머물러 제거하기 어렵거니와 골든 나이트와 함께 힘을 합친 그는 결코 초인 혼자서 제압할 수 없는 막강한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상대가 골든 나이트와 금탑주라고 하나 그레시오스 공작과 트루먼 공작이라면 충분하다. 당장 적탑주 카로스만도 금탑주 혼자서 죽인 것이 아닌, 골든 나이트와 힘을 합쳐 제거한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비록 8클래스의 경지에 올랐다지만 엘의 실력은 초인들 중 최하일 것이 분명했다. 그런 실력으로 초인들 중 상급에 해당하는 트루먼 공작이나 그레시오스 공작을 당해 낼 리 없다. 그레시오스 공작은 지독한 살기를 내뿜는 트루먼 공작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안타깝군. 아직 그 실력의 발전 여지가 충분했는데.' 설사 이번 일이 성공하여도 트루먼 공작이 중용되기는 힘들 것이다. 그가 단기간에 제일 아랫자리로 좌천당했던 동안, 초인 들은 모두 제각기 자신의 영역을 확고히 해 놓았기 때문 이다. 그 틈을 가장 적은 세력을 지닌 트루먼 공작이 뚫고 올라오기란 무척 어려울 것이다. "금탑주가 머무는 곳으로 간다." 트루먼 공작을 바라보던 그레시오스 공작이 명령을 내렸다. 두 그랜드 마스터를 선두로 30명의 소드 마스터가 조용히 그들의 뒤를 따랐다. 그들의 목표는 금탑주의 제거였다. *** 엘은 매직 메탈의 판매권을 성공적으로 따내자 기분이 무척 유쾌한 상태였다. 그 활용도가 무궁무진한 매직 메탈을 대량으로 들여올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엘 특유의 호기심은 앞으로 매직 메탈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해서 고민하기에 바빴다. "그나저나 매직 메탈 판매권을 따냈으니 무언가 움직임이 있을 텐데......“ 엘은 9클래스 마법사의 배후가 벨로세크 제국에 있음을 간파하고 있었다. 얼마 전 엘과 격전을 벌인 카로스만의 적탑이 벨로세크 제국에 존재한다. 더군다나 최근 데이제크 제국이 전복되었다는 소문에 청탑주와 녹탑주가 개입되었다는 말이 흘러나오고 있다. 청탑주와 녹탑주는 모두 벨로세크 제국의 마탑주들. 그런 초인들이 단순한 원한으로 제국을 전복시키지 않았을 터. 그렇다는 건 그들의 배후에 누군가가 있다는 이야기고, 다시 말하면 그들의 보스인 9클래스 마법사가 벨로세크 제국에 있다는 걸 뜻한다. 그렇기에 엘은 이번 매직 메탈 판매권을 몸소 나섬으로써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고 한 것이다. 이는 두 가지 이득이 있는데, 하나는 금탑에 대량의 매직 메탈을 공급할 수 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적국의 매직 메탈 공급을 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한 가지 노림수가 더 있었다. 돌연 엘의 눈이 반짝였다. "왔군." 그 말과 함께 엘의 몸이 흐릿해졌다. 블링크가 전개된 것이다. *** "이곳인가." 그레시오스 공작은 금탑주가 머물고 있는 저택에 도착 하고는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눈에 보이는 저택은 숲이 무척 울창한 곳이었다. 그레시오스 공작 본인은 지형이 어떻건 간에 문제가 없었으나 그들을 따라온 소드 마스터들이 본연의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넓은 공터가 필요했다. 그는 저택으로 다가가다가 마법의 기운을 느끼고는 순간 멈춰 섰다. "설마 우리를 알아차린 것인가?“ 그러나 그런 의문도 곧이어 사라졌다. 마법사들은 항상 침입자들을 경계하여 갖가지 경계 마법들을 설치해 놓는다고 한다. 지금도 그런 마법의 한 종류를 사용한 거라 생각하며 그레시오스 공작은 저택을 넘어 마법의 기운이 느껴지는 곳으로 향했다. 그 뒤를 따라 트루먼 공작과 30명의 소드 마스터가 함께 하였다. 나무들을 헤치고 1분 정도를 달리자 작은 공터가 나타났다. 그곳에는 한 사람이 서 있었는데,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20대 초반의 청년이었다. 그는 마치 그들을 기다렸다는 듯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청년은 다름 아닌 엘이었다. "설마하니 진짜 올 줄은 몰랐군요. 저는 금탑의 탑주를 맡고 있는 엘리미스라고 합니다. 괜찮다면 그쪽의 정체를 알 수 있을까요?“ 엘은 그레시오스 공작을 보며 반가운 듯 인사를 건넸다. "우리를 기다렸군." 자연스러운 엘의 모습을 보며 그레시오스 공작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엘이 어깨를 으쓱하였다. "혹시나 했는데 말이죠. 제가 그동안 그쪽에 입힌 피해가 조금 크지 않습니까? 그래서 모처럼 금탑에 나온 저를 제거하기 위해 나설 것이라고 생각했죠. 더군다나 매직 메탈이 걸려 있으니 말이죠." "음! 당했군." 그레시오스 공작의 표정이 밝지 못했다. 엘의 말대로 매직 메탈은 그들에게 무척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매직 메탈은 그들의 주 전력이 될 수 있는 골렘의 주 생산 재료였기 때문이다. 골렘들을 양산하기 위해서는 많은 양의 매직 메탈을 필요로 했고, 이번에 매직 메탈을 한몫 단단히 챙김으로써 골렘의 전력을 증강하려 했다. 그런데 돌연 금탑에게 그 판매권을 빼앗겨 버린 것이다. 때문에 그들은 이번 기회를 빌어 금탑주를 제거한 뒤 매직 메탈을 차지하려는 속셈을 가지고 있었다. 그레시오스 공작이 입을 열었다. "함정에 걸린 것 같지만...... 고작 네가 과연 우릴 막을 수 있을까?“ 광오하다고 할 수 있는 그레시오스 공작의 말에 엘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으며 그의 정체를 물었다. "당신의 정체를 알 수 있을까요?" “난 그레시오스 공작, 벨로세크 제국의 위대한 검이다." “......” 그레시오스 공작의 소개에 엘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는 그의 말대로 벨로제크 제국이 자랑하는 위대한 검이다. 아토빌 공작과 자웅을 겨룰 수 있다 불리는 유일한 그랜드 마스터니 그 실력은 확실할 것이 분명했다. "정말 놀랍군요. 그레시오스 공작님이라니...... 그렇다면 옆에 분도 그랜드 마스터이겠군요." 엘은 아까부터 짙은 살기를 내뿜는 기사를 보며 물었다. 그러자 그레시오스 공작이 트루먼 공작을 힐끗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트루먼 공작이라고 하지," "트루먼 공작! 벨로세크 제국의 그랜드 마스터군요?“ 벨로세크 제국의 그랜드 마스터는 나이에 관계없이 그랜드 마스터 중 상위의 존재로 인정받는다. 그도 그럴 것이 제국의 그랜드 마스터들은 서로 간에 실력을 끊임없이 비교하며 본신의 실력을 늘려 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그랜드 마스터들 중 비교적 젊은 나이 였고, 그 실력은 여타 그랜드 마스터보다 한 수 위의 경향 을 보였다. '위험할 수도 있다.' 엘은 자신을 처치하기 위해 초인이 올 거라는 걸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2명이나 온 것과 그중 1명이 그레시오스 공작이라는 것은 엘로서도 뜻밖이었다. 당장에 트루먼 공작은 골든 나이트가 상대한 다이어드 공작보다 최소 한 수 위의 존재로 평가 받으며, 그레시오스 공작 같은 경우 그런 트루먼 공작보다 족히 두 수 위 이상이라 평가 받기 때문이다. '엘리엔 님이 그레시오스 공작을 이길 수 있을까?‘ 엘이 숨겨 둔 비장의 카드는 바로 엘리엔이었다. 그는 엘리엔에게 사전에 허락을 구하였다. 자신이 매직 메탈을 얻음으로써 다크 스타의 부하들이 올 수 있다고. 그리고 그들의 실력은 족히 그랜드 마스터, 8클래스 마법사라고 말이다. 엘의 말에 엘리엔은 흔쾌히 동의했다. "좋아, 그들이 다크 스타의 부하라니 기꺼이 제거해 주겠어." 다크 스타는 추후 엘프 숲을 위협할 존재다. 그런 존재의 부하라면 제거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기에 엘리엔은 기꺼이 힘을 빌려 주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엘은 아직 엘리엔의 힘을 정확하게 판단하지 못하고 있다. 그 당시 자신의 힘은 막 8클래스에 올랐을 상태여서 힘의 응용에 덜 성숙했고, 아이넨스 또한 부상에서 덜 회복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일단 승리는 하지 못하여도 버틸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면 내가 골든 나이트와 힘을 합쳐 최대한 빨리 한 사람을 제거하고......‘ 그렇게 생각하던 엘은 끝까지 생각을 이어 가지 못했다. 두 그랜드 마스터 뒤에 존재하는 기사들의 기도가 만만치 않음을 느꼈다. ‘그들의 힘은 최소 소드 마스터 이상. 그렇다면......어렵군.' 30명의 소드 마스터가 체계적으로 공격해 온다면 제아무리 그랜드 마스터라도 곤욕을 면하기 어렵다. 그것을 감안한 엘은 자신이 기사들을 상대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엘이 자신 뒤편에 있는 나무를 향해 소리쳤다. "엘리엔 님!" 나뭇잎이 가볍게 스치는 소리와 함께 가냘픈 인영 하나가 나타났다. 엘프 특유의 갑옷을 입고 있는 여인, 그녀는 바로 엘리엔이었다. “......!” 갑자기 나무 위에서 눈에 띄게 아름다운 미녀가 등장하자 그레시오스 공작과 트루먼 공작을 제외한 30명의 기사들은 모두 눈을 크게 떴다. 엘은 그레시오스 공작을 보며 입을 열었다. "그레시오스 공작님은 이분이 상대해 주실 것입니다. 아, 실력은 이미 그랜드 마스터에 들었으니 공작님의 상대로는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그 말과 함께 엘의 뒤편에 공간이 열리기 시작하였다. 키이잉! 키이잉! 치이잉! 치이잉! 공간의 균열음과 함께 공간이 쩍 갈라지고, 그 속에서 황금빛 골렘 하나가 등장하였다. 골든 나이트의 화려한 등장이었다. "골든 나이트는 트루먼 공작님을 상대해 드릴 것입니다. 그리고......“ 엘의 시선이 기사들에게 향했다. "당신들은 제가 상대해 드리지요." 상대를 모두 정한 엘이 기사들을 보며 빙긋 웃었다. *** 휘아아! 날카로운 바람이 전신을 할퀴고 지나갔다. “......” 그레시오스 공작의 시선이 엘리엔에게 향했다. 그녀의 모습은 20대 중후반에 한 번도 보지 못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여인이었다. 하지만 기사로서 닦여진 날카로운 그의 감각은 말하고 있었다. 이 여인은 강하다고. 자칫 자신이 방심할 때에 당하는 건 자신이라고 말이다. '강하군......‘ 그레시오스 공작은 엘리엔과 마주하자 그녀의 기도가 결코 자신의 아래가 아님을 느꼈다. '어디서 이런 여인이 나타났단 말인가.' 20대 초반의 나이에 8클래스 마법사인 금탑주에 이어 20대 중후반의 그랜드 마스터가 나타나다니. 엘리엔을 바라보던 그레시오스 공작의 눈이 순간 가늘어졌다. '아니, 아니다. 인간이 아니다.' 여인에게서 풍겨 나오는 기운은 인간과 미묘하게 달랐다. 결코 인간이 지닐 수 없는 자연의 기운 방금 전 자신이 여인의 기척조차 파악하지 못했다면 그녀의 정체는 인간이 아닌 게 분명하다. "인간이 아니군." 그레시오스 공작의 말에 엘리엔의 몸이 순간 움찔했으나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엘에게 언질을 받은 상태다. 결코 자신의 정체를 발설하지 말라고. 그렇게 하면 다 크 스타가 엘프 숲부터 공격할 거라고. 엘리엔이 어느새 뽑아 든 네이처 소드를 그레시오스 공작에게 겨누며 입을 열었다. "그게 무슨 상관이지? 어차피 이 자리에서 죽어 나갈 텐데." 그녀의 전신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엘프 최강의 검사이자 네이처 소드의 수호검주인 그녀의 힘은 이미 인간의 그랜드 마스터 중 최강에 다다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시에 인간에 대한 악감정이 고개를 곧추 세우며 진한 살기가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강렬한 기세에 그레시오스 공작은 놀라며 자신 또한 기운을 뿜어내 그녀의 기운을 물리치기 시작했다. '정말 대단하군. 방심할 수 없다. 그랜드 마스터 중 내 상대는 오로지 아토빌 공작과 루이넨스뿐이라 여겼거늘.' 그는 오늘 하늘 위 또 다른 하늘이 있었음을 깨닫고는 검에 오러를 주입하기 시작했다. 카가각! 그들이 대치하고 있는 곳에 벌써부터 대기가 갈라지며 심상치 않은 폭풍이 일어날 것을 예고하고 있었다. "비켜라, 깡통." 트루먼 공작은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골든 나이트를 보며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 그러나 골든 나이트가 그런 그의 말을 들을 리 만무하였다. 일체 감정이 없는 골렘답게 골든 나이트는 뽑아 든 룬 블레이드를 트루먼 공작에게 겨눌 뿐이었다. "어쩔 수 없군. 막는다면 베고 지나갈 수밖에." 트루먼은 진한 살기를 뿜어내며 검을 뽑아 들었다. 비록 진한 살기를 머금고 있지만 그는 그랜드 마스터. 더군다나 대륙에서 상위권으로 평가받는 그랜드 마스터다. "오늘 이곳이 너의 무덤이 될 것이다." 트루먼 공작의 외침과 함께 검에서 푸른 오러 블레이드가 솟아났다. 파앗! 그러자 골든 나이트에게서 푸른 안광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골든 나이트가 엘에게 명령을 받은 것은 단 한 가지. "주인의. 명령은. 적군의. 완전한. 종말뿐." 동시에 룬 블레이드에 거대한 오러 블레이드가 솟아나기 시작했다. 심상치 않은 골든 나이트의 오러 블레이드. 그것을 보며 트루먼 공작은 씨익 웃음을 지었다. "지루하지는 않겠군." *** 기사들이 엘을 보며 표정을 굳혔다. "우리를 얕보는군." "그럴 리가요. 단지 당신들을 상대하는 데엔 골든 나이트보다 제가 적합할 것 같아서 제가 나선 것뿐입니다." "그렇게 생각한 걸 후회하게 해 주지!" 스르릉! 기사들은 모두 검을 뽑아 들었다. 그들은 얼핏 보면 개개인이 뛰어난 소드 마스터인 것처 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그러하지 않았다. 30명의 소드 마스터는 대그랜드 마스터전을 위해 구성된 기사들이었다. 그들은 개개인이 상대하는 실력보다 다수가 1명의 초인을 공략하는 포메이션을 익혔고, 실제로 그들 30명의 합력은 1명의 그랜드 마스터와 대등하게 맞설 수 있을 만큼 대단한 힘을 발휘했다. 파밧! 잠깐의 시간에 30명의 기사들은 모두 엘을 둘러싼 채 진영을 구축하고 있었다. 동시에 푸른색 오러가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상대는 마법사다. 거리나 쉴 틈을 주지 말고 공략하라!" 한 기사의 외침과 함께 5명의 기사가 엘에게 접근했다. "매직 아이!" 엘은 기사들이 검을 휘두르며 다가오자 안경에 인챈트 된 마법을 전개하였다. 매직 아이는 마나의 흐름을 자세하게 볼 수 있는 마법이다. 그것으로 엘은 적들의 포메이션을 침착하게 살폈다. “힘을 한데로 응집하는 거로군. 일순간 모든 힘이 응집되니 결코 그랜드 마스터에 밀릴 이유가 없지." 그와 함께 엘의 손에 붉은 기류가 생겨났다. 그리고 팔을 뻗어 적의 검과 맞서 나가기 시작했다. 차앙! 엘의 손과 기사들의 검이 부딪치자 불똥이 튀며 눈부신 접전을 보였다. 맨 처음 엘을 공략한 기사들의 검은 현란하게 움직였다. 가볍게, 여러 가지 움직임을 보이는 검은 일견 별것 아닌 것처럼 보였지만, 각각 30명 기사들의 모든 힘이 응집 된 오러였다. 소드 마스터 30명의 힘이 합쳐진 오러의 위력! 그것은 무시무시한 힘을 내포하고 있었다. 결코 그랜드 마스터에게 뒤처질 성질이 아니었다. 그 증거가 지금 여기에 드러나고 있었다. 꽝! "크윽!" 엘은 자신의 마법이 응집된 손과 오러가 부딪치자 손이 아릿해지는 걸 느끼고는 뒤로 물러났다. 적의 오러는 무지막지 할 정도였다. 엘이 직접적으로 그랜드 마스터와 충돌해 본 적이 없기도 했지만 이 정도라면 그랜드 마스터의 오러보다 충분히 강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역시 정면 대결로는 어렵군." 정면 대결을 할 것이라면 엘은 골든 나이트에게 이들을 상대하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을 상대하는 데 있어서는 굳이 정면 대결을 고집하지 않아도 된다. 자신에게는 정면 대결보다 다른 곳에 응용 가능한 마법이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블링크!" 스팟! 엘의 몸이 흐릿해지며 공간을 격하고 사라졌다. 그가 모습을 드러낸 것은 10여 m 뒤였는데, 엘을 공격해 들어오던 기사들은 추호도 당황하지 않은 채 곧장 방향을 바꿔 엘에게 달려들었다. 그것은 엘이 바라던 바였다! 엘은 다시 몸을 뒤로 물렸다. 그리고 그 순간-무언가가 반짝였다. 그러고는 다시 블링크로 사라지는 엘. 동시에 다섯 기사에게 오러를 집중하던 기사 하나가 비명을 질렀다. "크아악!" 순간 모든 기사의 시선이 비명이 들린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한 기사가 목숨을 잃은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기사의 목에는 금빛 화살이 꽃혀 있었다. 바로 제련 제강의 마법이 펼쳐진 것이다. "아니! 어떻게?" "마커스!" 기사들은 죽은 기사의 이름을 부르며 강한 불신감을 표했다. 그들이 펼치는 포메이션은 그야말로 무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0명의 소드 마스터가 오러의 힘을 집중시킴으로써 그 오러의 힘이 그랜드 마스터의 힘을 뛰어넘는다. 게다가 상대가 다른 상대를 노릴 경우 얼마든지 노리는 상대에게 힘을 집중시킬 수 있기에 응용이 자유롭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그들이 한 가족같이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힘을 자유롭게 응집하고 분해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지만 그것은 이미 그들에게 어떠한 장애도 되지 않는다. 무적이라 생각한 그들의 포메이션이 단번에 깨져 버렸으니 놀랄 수밖에. 엘은 기사들을 보며 빙긋 웃었다. "분명 대단한 포메이션이기는 하지만...... 마법사, 특히 나 같은 마법사에게는 통하기 힘든 포메이션이로군요." 그 웃음이 기사들의 분노를 자극하기에는 충분했다. 세 명의 기사가 엘에게 쏜살같이 달려들었다. 분노한 와중에도 그들은 서로의 힘을 합쳐 엘이라는 대상을 공격해 오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포메이션의 허점을 발견한 엘에게 그들의 합공은 자신들을 죽여 달라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엘의 몸이 헤이스트로 빠르게 물러나면서, 동시에 엘의 손에 반짝이는 것이 맺혔다가 사라졌다. 반짝임이 사라짐과 동시에 2명의 기사가 비명을 질렀다. "커헉!" “큭!” 정확히 심장을 관통당하고 쓰러진 2명의 기사. 그들의 심장에는 선명한 금빛 화살이 꽃혀 있었다. “......” 자신들의 동료가 너무나 허망하게 당해 버리자 기사들 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엘은 기사들을 보며 말하였다. "분명 힘의 응집은 강하지만 그 응집으로 다른 이들은 허점을 노출하게 되더군요. 뭐, 그런 적에게 일격을 먹이는 건 간단한지라." 엘의 말대로 기사들이 공격하는 이들에게 힘을 보탬으로써 공격하지 않는 나머지 기사들은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만약 엘이 그들을 공격하려는 시늉을 하였다면 기사들은 그 기사에게 힘을 모아 엘의 공격을 막아 내겠지만 엘은 그런 의도를 노출시킬 만큼 멍청하지 않았다. 그는 물러나는 순간 제련 제강의 마법을 펼쳐 기사들을 공격한 것이다. 제련 제강의 올 플리체는 오러 블레이드와 비견되는 위력을 지니고 있다. 물론 그것이 보인다면 기사들은 막아 냈겠지만 문제는 그것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 엘은 올 플리체를 전개하는 순간 화살에 투명화 마법을 전개하여 그 존재를 감추었던 것이다. 보이지 않고, 빠른 속도로 쏘아지는 올 플리체에 대응할 수단이 기사들에게는 전무했다. 올 플리체의 기운을 느끼는 순간, 이미 그것은 기사들의 몸을 꿰뚫고 있으니 말이다. 무려 10명의 기사들이 당하자, 그들은 그제야 엘이 무엇으로 공격하는지 알아냈다. 한 기사가 울분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비겁하다! 보이지 않는 화살로 공격하다니!" 그러나 그 외침은 엘로 하여금 비웃음만 흘리게 하였다. "훗, 한 명에게 서른 명이 달려드는 것은 안 비겁한가요? 거참......“ "크윽!" 엘의 말에 기사들은 모두 분한 표정을 지었다. 10명의 기사가 당한 이상 그들의 포메이션은 깨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포메이션이 없는 그들의 실력은 참혹했다. 오로지 그랜드 마스터를 상대하기 위해 합격술만 익힌 그들에게 개개인의 기량으로 싸운다는 건 기대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명령을 받는 자들이다. 이곳에서 도망쳐 봤자 조직에서 끝까지 추격해 올 것이고, 결국 목숨을 부지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되느니 이곳에서 명예롭게 죽는 게 낫다. 기사들의 눈에 독기가 서렸다. ‘죽더라도 팔 하나는 가지고 갈 것이다.’ 그들의 기질이 변했다. 극히 흉흉해지기 시작했고, 목숨을 도외시한 공격을 펼치기 시작했다. 엘은 기사들의 변화를 알아차리고는 인상을 찡그렸다. 자신이 실수했음을 깨달은 것이다. 목숨을 아끼지 않고 달려드는 그들의 기세는 정말 무서웠다. 카앙! “윽!” 벌떼 같이 달려드는 기사들의 공격을 막아 내던 엘이 신음을 흘리며 뒤로 주르륵 물러났다. 오러의 힘은 아까에 비할 바가 되지 못했으나 그들의 공격은 아까보다 더욱 위협적이었다. 이것은 엘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전개였다. '포메이션을 깨면 지리멸렬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목숨을 버리고 달려드니 엘로서도 난감하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오러의 위력은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 물론 그들 또한 제거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럴 경우 최소한 신체의 한 부위를 각오해야 한다. 절대 그럴 마음이 없는 엘로서는 기사들의 공격을 막아 내며 물러서기에 급급했다. '이런.' 엘은 자신이 밀리는 것을 깨닫고는 이를 질끈 깨물었다. 앞으로 더욱 더 강한 적들을 상대해야 할 자신이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다. 그의 몸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동시에 수십 개의 매직 애로우가 생성 되었다. 그것들은 맹렬한 기세로 지면을 향해 내리꽂히기 시작했다. 파바바밧! 매직 애로우는 엘의 주변에 끝도 없이 생겨나며 기사들에게 쏘아졌다. 소드 마스터에 오르면서 항마력이 상당히 강해진 기사들에게 매직 애로우는 그리 큰 위협이 되질 못하나 8클래 스에 이른 엘의 매직 애로우는 기존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위력을 내포하고 있었다. 경지에 오르면서 그의 마나 호응도가 훨씬 강력해졌을 뿐더러 클래스의 성장으로 본연의 위력 또한 더욱 강력해 졌기 때문이다. 덕분에 지금 엘이 전개하는 매직 애로우는 거의 4클래스 마법과 맞먹는 위력을 지니고 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말이 있다. 분명 한발두 발 정도는 무리 없이 받아 낼 수 있으나 그 숫자가 점차 불어난 다면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 된다. 때문에 매직 애로우에 막혀 기사들이 섣불리 전진하지 못할 때, 엘은 마법을 캐스팅하고 있었다. 바로 그랜드 마스터도 함부로 받아 내지 못하는 궁극의 마법, 8클래스 마법을 말이다. 엘의 손에 모든 것을 얼려 버릴 듯한 차가운 마나가 모이더니, 이내 마법이 완성되었다. "블리자드." 휘아아아! 마법이 전개됨과 동시에 새하얀 눈보라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8클래스 최강의 빙계 마법인 블리자드가 전개된 것이다. 제아무리 소드 마스터의 항마력이 뛰어나다 하여도 블리자드까지 버텨 낼 수준은 아니다. "모두 피해!" 엘의 전개어를 들은 한 기사가 외쳤으나 이미 사태는 끝나 있었다. 블리자드는 그들이 피할 모든 방위를 점하고 새하얀 눈보라에 덮여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헬 파이어와 자웅을 겨룰 수 있는 블리자드에 적중된 기사들의 전신은 새하얗게 얼어 가고 있었다. 기사들은 체내의 마나를 끌어올려 블리자드에 맞서 보려 하였지만 설사 그랜드 마스터라도 버텨 내기 힘든 블리자드를 견디기란 요원했다. 결국 하나 둘 그들의 전신은 얼어 갔고, 엘은 그 모습을 보며 서서히 착지하였다. 엘의 전신에는 실드가 전개되어 있었다. 실드에는 체온을 보존해 주는 마법이 전개되어 있어 엘의 몸에는 블리자드의 한기가 전혀 미치지 않았다. 엘은 블리자드에 의해 전신이 얼어붙은 기사들의 몸을 포스 해머로 부숴 버렸다. 쩌적! 쩌저적! 포스 해머에 적중할 때마다 기사들의 몸은 부서져 나갔고, 그것은 그들의 허무한 최후를 알리고 있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20명의 소드 마스터가 세상을 떠났다. 빠른 캐스팅으로 매직 애로우를 전개하고 그 틈에 블리자드를 전개할 수 있는 엘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전략이다. 엘의 시선이 골든 나이트와 트루먼 공작의 접전에 향했다. *** 차아앙! 두 오러가 서로 부딪치며 눈부신 빛을 내뿜으며 부서져 나갔다. “큭!" 충돌과 동시에 트루먼 공작과 골든 나이트가 서로 두 걸음씩 물러났다. 골든 나이트의 동체는 3m에 이른다. 그런 골든 나이트와 동수를 이루었다는 건 트루먼 공작의 힘이 골든 나이트보다 미세하게 우세하다는 걸 뜻한다. 골든 나이트는 본신의 실력도 실력이지만 성물과 자웅을 겨루었던 룬 블레이드를 사용하고 있다. 룬 블레이드는 이 세상 모든 것을 베어 버리는 강력한 절삭력을 지니고 있다. 그런 골든 나이트와 동수를 이루는 트루먼 공작의 실력은 소문대로 다이어드 공작보다 한 수 위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당사자인 트루먼 공작은 죽을 맛이었다. 분명 미세하게 우위를 점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처음 검과 검이 부딪칠 때 트루먼 공작은 자신의 검이 단번에 부서질 뻔하였다는 것을 깨닫고는 본래 그랜드 마스터를 상대할 때보다 족히 2배 이상의 오러를 주입하여 골든 나이트를 상대하는 중이다. 그럼에도 대결의 결과는 그의 미세한 우세가 전부였다. 골든 나이트는 영악하게도 본신의 힘은 물론 찬 층 무거운 동체를 활용한 파괴적인 힘으로 밀어붙였고, 몸놀림 또한 트루먼 공작 못지않게 빨랐다. 힘과 속도에서 엄연히 골든 나이트가 한 수 위를 점하고 있던 것이다. 그러나 트루먼 공작은 지난 세월 끊임없이 그랜드 마스 터를 배출한 벨로세크 제국의 3대 공작가 중 한 곳의 출신이다. 이미 트루먼 공작가에서는 자신보다 힘과 스피드가 우월한 존재를 상대하기 위한 비법을 가지고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압도적인 오러의 능력을 사용하는 방법이다. 트루먼 공작가의 오러의 힘은 여타 다른 기사들보다 무척 강하다. 그것은 힘이나 스피드로는 극복할 수 없는 요소에 해당 되었다. 때문에 트루먼 공작은 자신의 오러의 힘을 일순간 응집 시켜 골든 나이트의 검을 부숴 버리려 하였다. 저 검의 성가신 능력만 없앤다면 단숨에 골든 나이트를 제압할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골든 나이트는 영악했다. 트루먼 공작이 압도적인 오러의 위력으로 밀어붙이자 정면 대결을 펼치지 않고 가급적 그의 힘을 흘려 버리며 빈틈을 비집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면으로 부딪칠 경우 골든 나이트 또한 모든 힘을 응집하여 트루먼 공작과 부딪쳤다. 그 경우 골든 나이트가 받는 충격도 충격이었지만 트루먼 공작에게 가해지는 충격 또한 엄청났다. 더군다나 골든 나이트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지 않는가. 그 이점을 활용하여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었기에 대결은 팽팽함 그 자체였다. "이노옴! 날 이렇게 애먹이다니!" 골든 나이트와 수십여 합을 겨룬 트루먼 공작의 눈에 핏발이 섰다. 본래 계획대로라면 단숨에 골든 나이트를 제압해야 하는데 여기서 이렇게 발목이 잡히다니, 당장이라도 엘을 제거하고 싶었던 그는 골든 나이트가 자신의 발목을 잡자 극도로 분노하였다. 쏴아아아! 트루먼 공작의 검에 서린 오러 블레이드가 더욱 세차게 뿜어졌다. 그들의 검술은 압도적인 오러의 위력을 응용한 베기의 결정판. 그는 골든 나이트의 룬 블레이드를 직접 상대하지 않고 단숨에 골든 나이트의 동체를 베어 버리려 하는 것이다. “......” 그것을 파악했는지 골든 나이트의 눈에 새파란 안광이 뿜어졌다. 동시에 룬 블레이드가 빠르게 움직였다. 완벽하지는 못했지만 룬 블레이드로 트루먼 공작의 검을 막는 데 성공 하였다. 하지만 완벽하게 막아 내지 못하여 골든 나이트의 다리가 베이고 말았다. 쿵! 균형을 잃은 골든 나이트의 몸이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절체절명의 위기! 트루먼 공작이 검을 치켜들며 소리쳤다. "이게 끝이다!" 그의 마음을 투영한 탓인지 검에 서린 오러가 한층 더 강렬하게 뿜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트루먼 공작의 검이 막 골든 나이트를 베려 할 때, 그의 검 앞으로 등장하는 한 인영이 있었다. "세이지 실드!" 트루먼 공작 앞에 등장한 것은 다름 아닌 엘이었다. 엘은 트루먼 공작의 검을 보며 메모라이즈를 해 놓은 방어 마법 세이지 실드를 전개하였다. 오러를 머금은 검과 세이지 실드가 충돌하였다. 콰앙! "으윽!" 세이지 실드 너머 전해져 오는 강렬한 충격에 엘이 신음을 흘렸으나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여기서 물러서면 골든 나이트가 회생 불가능의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큭!" 엘이 전개한 실드가 깨지지 않자 트루먼 공작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팟! 동시에 실드의 반탄력을 이용하여 뒤로 물러났다. 트루먼 공작이 싸늘한 표정으로 엘을 바라보았다. "죽고 싶어서 온 것이로군." 그가 뿜어내는 살기는 엘이 견뎌 내기 힘들 정도로 대단했다. 하지만 엘은 물러나지 않았다. "제가 상대한 적들은 너무 약해서 말이죠." 트루먼 공작의 시선이 엘이 격전을 벌였던 곳으로 향했다. 그곳은 온통 얼음 천지였다. 필시 모두 얼음에 얼어 버렸을 것이다. 그가 코웃음을 쳤다. "쓸 만했지만 어디까지나 조무래기에 지나지 않는 이들을 처리하고 자신감이 넘치는군. 설마 내가 그들과 같은 부류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설마요." 엘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가 본 트루먼 공작은 정말 강했다. 살기가 넘치는 그의 일격 하나하나에는 일격필살의 힘을 담고 있어 하나의 공격을 막아 낼 때마다 목숨을 걸어야 했다. 방금 전 골든 나이트와의 싸움도 그러하다. 한 차례 충돌을 일으키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승부가 났다. 룬 블레이드의 힘으로 호각을 이뤘지만 트루먼 공작은 그보다 한 수 뛰어넘는 실력을 지니고 있던 것이다. "제가 상대해 드리겠습니다." 엘은 경계의 자세를 취했다. 트루먼 공작은 방금 전 상대했던 기사들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포메이션 같은 힘을 빌어 싸우는 게 아닌 순수 자신의 실력으로 싸우기에 결코 방심할 수 없다. 트루먼 공작이 엘을 보며 진한 살기를 내뿜었다. "오래 전부터 널 제거할 생각을 해 왔지. 넌 모르겠지만 난 너 때문에 조직에서 그 위치가 아래로 떨어질 대로 떨어졌다. 오늘 너를 죽임으로써 내 원한을 풀겠다." 동시에 검에 푸른빛이 폭사되었다. 파앗! 섬전과 같이 쏘아지는 그의 검! 하지만 이미 엘에게는 트루먼 공작과 정면으로 맞설 생각이 존재하지 않았다. 한걸음 뒤로 물러난 엘이 방어 마법을 전개하였고, 오러에 의해 방어 마법이 부서지면서도 그의 공격을 막아 내는 데 성공하였다. 차자장! 실드가 유리처럼 부서져 나갔지만 엘은 일체 반격을 하지 않았다. "무슨 꿍꿍이지?“ 순식간에 세 번의 공격을 펼쳤지만 트루먼 공작은 엘이 공격을 하지 않자 인상을 찌푸렸다. 엘은 트루먼 공작을 보며 말했다. "굳이 당신을 상대하는 데 혼자일 필요가 없잖아요. 안 그래요?“ "뭣이?“ 트루먼 공작의 몸이 움찔하는 순간 그의 뒤를 향해 맹렬한 기세로 짓쳐 드는 것이 있었다. 카앙! 푸른 오러가 부딪치며 불똥이 튀었다. 그러나 그 힘의 우위는 극명하게 드러났다. 트루먼 공작의 몸이 비틀거리며 순식간에 다섯 걸음을 물러난 것이다. "큭!" 내부가 뒤집히는 듯한 충격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의 눈에 들어오는 3m의 거대한 신형. 거대한 실루엣의 정체는 다름 아닌 골든 나이트였던 것이다. 짧은 시간에 손상 입은 부위를 모두 수복한 뒤 재차 트루먼 공작을 공격했던 것이다. "그 사이 파손된 부분을 모두 수복했단 말인가?“ 물러난 트루먼 공작의 눈에 놀라움이 서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상대가 둘이라고 하여 겁먹을 그가 아니었다. "모두 제거해 주겠다!" 그의 검에 서린 오러가 서릿발같이 뿜어지기 시작했다. 그때, 요란한 폭음이 울려 퍼졌다. 콰아앙! 일순간 모든 시선이 폭음이 올려 퍼진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두 인영이 대립하고 있었다. 바로 엘리엔과 그레시오스 공작이었다. 두 사람의 모습은 판이하게 달랐다. 처음과 별달리 바뀐 모습이 없는 엘리엔에 비해 그레시오스 공작의 전신은 낭패를 당한 모습이 역력하게 드러났다. 누구의 실력이 우위에 있는지 판가름되는 순간이었다. "쿨럭!" 짙은 패색을 띤 그레시오스 공작이 기침을 하자 피가 한 움큼 흘러 나왔다. 손에도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손아귀가 터져 나간 것이다. 그가 놀란 안색으로 엘리엔과 터져 나간 손아귀를 번갈아 보았다. 정녕 믿기 힘든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아토빌 공작과 루이넨스가 아니면 자신의 적은 없다고 생각했거늘, 지금과 같은 결과는 그에게 무척 충격적이었다. '이대로 물러서야 한단 말인가?‘ 후퇴를 생각한 그의 몸이 순간 움찔했다. 이대로 물러선다는 것, 그것은 임무 실패를 뜻한다. 임무를 실패한 자에게 자비를 베풀 만큼 그들의 조직은 너그러운 곳이 아니다. 가령 트루먼 공작만 하여도 강한 실력을 지녔으면서도 단 한 번의 실패로 모든 권한을 잃지 않았던가. 비록 자신이 조직의 상위권에 해당하는 실력을 지니고 했다고 하여도 실패한 자에게는 결코 자비가 베풀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보다 실력이 약간 뒤지지만 그를 대신할 자들은 넘치고 넘치니까 말이다. 그레시오스 공작은 자신 앞에 선 엘리엔을 보았다. 자신에 비해 너무나 여유로운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그의 고개가 가로저어졌다. '어쩔 수 없다.' 검을 다시 쥐려던 그레시오스 공작이 더 이상 공격하려던 마음을 접었다. 상대는 자신보다 한 수 위의 실력자다. 이대로 돌아간다면 필경 처벌이 있겠지만 허무하게 목숨을 잃는 것보다 낫다. 더군다나 트루먼 공작 또한 금탑주와 골든 나이트에게 합공을 받으려 하지 않는가. 둘의 합공에 적탑주 카로스만이 목숨을 잃은 것을 감안 하면 더 이상의 싸움은 무의미하다. 트루먼 공작의 실력이 카로스만보다 뛰어나다고 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한걸음 뒤로 물러난 그가 트루먼 공작에게 외쳤다. "후퇴한다." 크게 외친 그레시오스 공작이 머뭇거림 없이 품 안에서 스크롤을 꺼내 들어 그대로 찢었다. 스팟! 새하얀 빛이 곧장 그의 신형을 휘감으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사라지는 그레시오스 공작의 모습을 쫓으며 트루먼 공작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큭!이번에도 실패라니......“ 그 또한 실패가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죽음을 불사하고 싸우고 싶었지만 물러날 수밖에 없다. 자신보다 상급자인 그레시오스 공작이 명령을 내린 이상 반드시 따라야 했기 때문이다. 상하명복을 가장 철저히 하는 조직이었기에 트루먼 공 작 또한 품속에서 스크롤을 꺼내 들어 그것을 찢었다. 그러자 그의 몸 또한 새하얀 빛에 휩싸이며 순식간에 사라졌다. 미처 엘과 골든 나이트가 반응할 틈도 없는 찰나의 순간이었다. "가 버렸네." 엘은 사라진 트루먼 공작의 모습을 쫓으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상대방의 조직은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다. 그중 수뇌부를 구성하고 있는 이들은 당연히 초인일 터. 저쪽에는 무려 10명의 초인이 있다고 하니 그중 2명을 제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쳐 버린 셈이다. "중요한 인물인 만큼 그만큼 관리가 철저하겠지. 그래도 아쉬운 건 어쩔 수 없군." 못내 아쉬운 마음을 고개를 흔들어 덜어 버린 엘은 검을 들고 서 있는 엘리엔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만약 도와주지 않으셨다면 무척 어려운 싸움이 되었을 거예요." “......” 엘리엔은 엘의 말에 반응하지 않았다. 그녀는 방금 전 대결에서 다소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자신은 그랜드 마스터에 오른 지 물경 100년이 되었다. 그에 비해 인간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그랜드 마스터 는 100살이 넘었으며, 그랜드 마스터에 오른 기간은 채 50년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방금 전 자신을 상대한 기사의 실력은 자신과 거의 비슷했다. 단지 우위를 본 거라면 네이처 소드의 힘 때문이랄까. 만약 네이처 소드가 없었다면 그녀는 무척 힘겨운 대결을 펼쳐야 했을 것이다. "인간들...... 정말 방심할 수 없어." 한참동안 생각에 잠겨 있던 그녀의 입에서 놀라운 감정이 그대로 투영된 한마디가 흘러 나왔다. "이런, 이런." 엘은 충격을 받은 듯한 엘리엔의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인간에 대한 지식이 거의 제로나 다름없는 그녀가 앞으로 인간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에 놀랄 것을 생각 하니 대책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일단 이것으로 매직 메탈의 판매권을 따낸 셈이니 전황은 이쪽이 한 수 우위를 점했다고 할 수 있지. 상대는 제국을 아우르는 거대 세력이니 이쪽도 그에 걸맞는 세력을 지녀야 해." 아직 적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미리 준비해 둬서 절대 나쁠 것은 없다. 9클래스 마법사 루이아스가 만들어 놓은 거대한 세력에 대항하기 위해 엘이 첫 걸음을 내딛었다. 매직 메탈 판매권을 따낸 것이 그 시작이었다. 6. 매직나이트, 제자를 거두다 - 1 대륙 북부의 작은 왕국 요켄 왕국은 인구가 고작 10만 밖에 되지 않는 작은 소왕국이다. 국토는 대부분 산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경작할 경작지가 많지 않아 늘 식량 부족으로 허덕이는 국가이기도 하다. 요켄 왕국의 영지는 총 5개로 나뉘는데, 가장 큰 영지는 국왕의 직할지로, 요켄 왕국의 경작지는 대부분 이곳에 모여 있어 요켄 왕국은 왕권이 무척 강한 국가이기도 하였다. 나머지 4곳은 하나의 공작령과 3곳의 후작령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들은 산에서 간간히 발견되는 광산과 각종 약초, 몬스터의 가죽 등으로 연명해 나가고 있다. 크루더 후작령은 요켄 왕국 세 후작령 중 한 곳으로 요켄 왕국에서 가장 살기가 어렵다고 알려진 곳이다. 지형이나 조건으로 따져 보면 크루더 후작령은 국왕의 직할지 다음으로 살기 좋은 곳이다. 그리 크지는 않지만 경작할 경작지가 존재하였고, 비교적 치안이 튼튼하고 강한 기사들을 다수 보유하여 몬스터의 부산물을 많이 얻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곳이 살기 어려운 것은 다름 아닌 크루더 후작의 폭정 때문이다. 다른 왕국민들에 비해 가난한 요켄 왕국민들인데 크루더 후작은 그런 영지민들에게 무려 80퍼센트에 해당하는 세금을 걷어 간다. 당연히 수입 대부분을 빼앗기는 영지민들은 가난에 허덕일 수밖에 없고, 살 만한 영지에 비해 크루더 후작령은 요켄 왕국에서 가장 거지와 부랑자들이 많은 곳이 되어 버렸다. 그런 크루더 후작령을 지나는 한 청년이 있었다. 청년은 영지를 한 차례 둘러보고는 인상을 찡그렸다. "요켄 왕국에서 그나마 살 만한 곳인데 어째 이곳 사정이 제일 좋아 보이지 않는군." 청년의 이름은 마이더. 금탑에 소속된 매직 나이트 중 한 사람으로 30대 초반의 나이에 소드 익스퍼트 상급에 이른 실력자다. 마이더는 엘의 명령을 발아 이곳 요켄 왕국으로 오게 되었다. 매직 나이트의 후임을 키우기 위해 엘은 매직 나이트들 에게 한 가지 명령을 내렸다. 바로 자질이 뛰어난 아이들을 데려오라고. 그러기 위해서 매직 나이트들은 대륙곳곳에 파견되었고, 마이더는 이곳 요젠 왕국으로 파견된 것이다. 매직 나이트의 후임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몇 가지 조건을 필요로 한다. 첫째는 일가친척이 없는 아이여야 한다는 것이다. 가족이 있다면 가족까지 골든 벨리에 데려와야 하는데, 엘은 다른 주민들의 유입을 별로 원하지 않았다. 둘째는 자질이 뛰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골든 벨리에 살고 있는 아이들은 자질이 그리 뛰어나지 못하다. 그랬기에 당연히 자질이 뛰어나야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사실이다. 마지막은 절대적인 충성심을 바쳐야 할 충성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원한을 가진 아이가 가장 수월한데, 원한을 갚아 줌으로써 금탑에 대한 충성심을 절로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일가친척이 없고 자질이 뛰어나며 원한을 가져야 한다라...... 어려운 조건이야." 마이더는 이미 요켄 왕국의 여러 곳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그의 눈에 모든 조건을 충족한 아이들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아이들 중 자질이 뛰어난 이들이 몇이나 있겠는가. 더군다나 요켄 왕국의 거지들은 대부분 가족 단위여서 가장 기본적인 1번째 조건마저도 충족되지 않았다. 요켄 왕국의 마지막 영지인 크루더 후작령을 둘러보는 마이더의 표정도 그리 밝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리 어려운 임무가 아니었다고 생각하던 것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이러다가는 언제 임무를 수행할지 모르겠군." 마이더는 엘의 명령을 이행하지 못한다는 불안감이 엄습하자 애써 고개를 저어 불안감을 털어 버렸다. 그는 이미 엘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바치고 있었다. 만약 엘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들은 트롤들의 습격을 받아 트롤의 한 끼 식사거리로 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엘의 등장으로 그는 금탑의 매직 나이트로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되었고, 지금은 무엇보다 풍족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준 엘에게 충성심이 생기는 것은 당연지사, 게다가 늘 자신들의 입장을 고려해 주는 엘의 배려에 마이더는 이미 엘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바치고 있었다. "이곳도 없다면 다른 곳을 가는 수밖에." 그렇게 길을 걷던 마이더는 돌연 자신 앞에 한 소녀가 뛰어오는 것을 보았다. "아앗!" 소녀는 마이더의 앞을 지날 때 순간 비틀거리더니 균형을 잡지 못하고 그대로 그를 향해 넘어졌다. 마이더는 쓰러지는 소녀를 향해 저도 모르게 손을 내뻗어 부축해 주었다. "괜찮니?“ 자신을 부축해 주며 안위를 묻는 마이더에게 소녀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제 갈 길을 가려던 찰나, 소녀의 손목을 쥐는 이가 있었다. 순간 움찔한 소녀가 고개를 돌려 마이더를 바라보니, 그가 웃는 낯으로 소녀에게 입을 열었다. "갈 길을 가는 거라면 내 품 안에서 가져간 돈 주머니를 돌려주면 안 될까? 그게 여비라서 말이지." “......” 마이더의 말에 소녀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소녀가 마이더의 팔을 뿌리치고 도망가려 했으나 어찌 제대로 먹지도 못한 소녀가 소드 익스퍼트 상급의 기사에게 벗어날 수 있을까. 결국 도주를 포기한 소녀의 몸이 축 늘어졌다 그리고 처음으로 마이더에게 입을 열었다. "저를 어쩌실 거죠?“ 그녀의 음성에는 힘이 없었다. 멀리서 얼핏 보았을 때 마이더의 행색은 평범한 여행자에 불과했다. 먼지가 낀 가죽 갑옷에 여행자들이 입는 회색 계열 여행복 말이다. 하지만 가까이서 보니 그가 입고 있는 옷 전체가 매우 고급스러운 소재로 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런 이라면 분명 신분이 범상치 않을 터였다. “......” 마이더는 그런 소녀를 묵묵히 바라보았다. 처음 소녀가 자신 앞에서 비틀거렸을 때 마이더는 놀랐다. 그는 소녀의 손이 미처 자신의 품속을 파고들어 주머니를 훔쳐 낸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소녀가 주머니를 훔쳤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은 다름 아닌 도난 경보 마법이 주머니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마이더의 손을 거쳐 주머니가 품 밖으로 나오면 문제가 없지 만 다른 이의 손을 거쳐 주머니가 나오게 되면 곧장 마이더에게 신호가 간다. 그랬기에 알아차린 것이지 만약 마법이 없었다면 주머니를 훔쳤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 분명했다. '눈부신 손의 움직임이었다. 그것도 나의 이목을 속일 정도였으니까. 어쩌면 탁월한 재능을 타고 났을지도 모른다.' 마이더의 눈이 반짝였다. 자신의 눈이 정확하다면 이 눈앞의 소녀는 검에 있어 탁월한 재능을 타고 난 것임이 분명했다. "혹시 검을 잡아 본 적이 있느냐?“ 마이더의 말에 소녀의 몸이 순간 움찔했다. 그리고 형언할 수 없는 얼굴을 재빨리 돌려 그의 시선을 외면했다. '역시.' 마이더는 소녀의 얼굴에 무언가를 숨기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만약 내 말에 대답한다면 너를 이대로 놓아 줄 수 있다." 그는 한결 부드러워진 음성으로 소녀에게 말했다. “......!” 소녀는 마이더의 말에 한줄기 희망을 본 듯 순식간에 표정이 밝아졌다. 사실 눈앞의 청년에게 발각된 순간부터 그녀는 내심 삶을 포기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지 못했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청년은 영락없는 기사 그 자체였다. 기사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그녀 본인과 같이 남의 돈을 훔치는 도둑들이다. 더군다나 자신의 신분은 거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기에 기사의 검에 죽는다 해도 누구 하나 처벌받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몇 가지 대답을 하면 놓아준다니 당연히 희망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무엇을 물어보실 거죠? 말해 보세요." "방금 전 질문이 그것이다. 검을 잡아 본 적이 있느냐?“ 소녀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세상에 검을 잡아 보지 않은 이가 어디 있겠어요." '이런.' 마이더는 소녀가 자신의 말에 다르게 대답한 것임을 알아차리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정색한 표정으로 말했다. "질문을 바꾸지. 검을 잡아 본 게 아니라 검을 수련해 본 적이 있느냐?“ "그건......“ 마이더의 말에 소녀가 잠시 멈칫 거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일단 이 자리를 벗어나는 것이 우선이었기에 소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어렸을 때 검을 수련했던 적이 있어요. 이제 되었죠?“ '역시 그랬군.' 소녀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마이더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자질이 충분한 아이를 찾은 것이다. 하지만 금탑의 매직 나이트가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을 더 충족시켜야 한다. 마이더가 물었다. "혹시 가족이 있느냐?“ 소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한 가지를 대답했으니 다른 것을 대답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어머니와 남동생이 있어요." "으음." 소녀의 말에 마이더가 약간 인상을 찡그렸다. 가족이 있다면 첫 번째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탑주님께서는 항상 융통성을 가지라 하셨으니.' 이렇게 발견한 아이를 놓치기 싫었기에 마이더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이 소녀를 금탑에 끌어들이기로 하였다. 그는 소녀에게 조용한 어조로 말했다. "어디 조용한 곳으로 나를 안내해다오." “그건......” 소녀의 눈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무언가를 걱정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이런.' 마이더는 자신의 실수가 무엇임을 깨달았다. 꼼짝 할 수 없는 소녀를 조용한 곳으로 안내하다니, 충분히 오해를 살 법한 소리를 한 것이다. 그는 재빨리 말했다. "이상한 짓은 하지 않겠다. 내 명예를 걸고 맹세하니 조용한 곳으로 안내해라. 너에게 할 이야기가 있단다." “......알겠어요." 마이더의 확언에도 소녀는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며 이 내 체념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자신의 생명줄을 쥐고 있는 청년에게 대항할 마음을 갖지 못했다. 소녀가 앞장을 서고, 마이더가 바짝 붙어 그녀를 따랐다. 그리고 누구의 이목도 미치지 못하는 조용한 곳에 이르자 마이더가 불안한 듯 안절부절못하는 소녀에게 말을 꺼냈다. "내가 너를 이곳으로 부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너에게 검에 대한 자질이 충분하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아마 넌 어렸을 때 체계적인 교육을 받았을 확률이 높다. 안 그러냐?“ 이미 모든 것을 알려 주기로 마음먹은 소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어렸을 때 검을 익혔어요. 그런데 그게 무슨 상관이죠?“ 마이더는 소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어렸을 적 체계적으로 검을 배운 소녀가 지금 소매치기를 하고 있다는 것은 무언가 곡절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한결 금탑으로 끌어들이기 쉬울 것이다. 그가 자기소개를 하였다. "짐작하고 있겠지만 난 기사다. 내가 너에게 물었던 질문들은 바로 너를 내 종자로 삼기 위함이다." “......!” 마이더의 말에 소녀는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지금 이 시대 대륙 그 어디에도 여자를 종자로 삼는 기사는 없었다. 극소수의 여자 기사들이 존재하지만 그녀들 대부분이 귀족 출신이었고, 종자로 활동한 적은 없다. 마이더가 모든 사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너를 종자로 삼겠다는 말에 놀라는 것도 당연하다. 대륙 그 어디에도 여자를 종자로 삼는 경우는 없지. 왜냐하면 관습적으로, 또 국가적으로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너를 종자로 삼는 것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나는 국가에 얽매인 기사가 아니거든." 마이더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소녀는 쉽사리 의혹을 떨쳐 버리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약한 소녀를 이런 으슥한 곳에 데려 와 놓고 이런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상대방에게 믿음을 주기 더없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안절부절못하는 소녀를 본 마이더가 쓴 웃음을 지었다. '이런, 실수했군.' 소매치기를 한다면 항상 주변을 경계하며 살아왔을 것이 분명했다. 당연히 여러 가지 위험을 겪어 왔을 것이고, 그중에는 목숨의 위협이나 여자로서 정조의 위협을 느끼는 위험 등 을 겪었을 것이다. 자신의 실수를 자각한 마이더는 말로 이 소녀에게 믿음을 주기 힘들다는 것을 느꼈다. 어쩌랴, 자신이 실수한 것을. 가볍게 한숨을 내쉰 그는 오른쪽 가슴에 달린 브로치를 만지작거렸다. '어쩔 수 없지. 본 모습을 보여 신뢰를 얻는 수밖에.' 마이더는 브로치에 마나를 주입하며 전개어를 외쳤다. "마테 리 얼라이즈!" 우웅! 스팟! 브로치에 눈부신 빛이 뿜어지며 순식간에 마이더의 전신을 휘감기 시작했다. 금탑 소속 매직 나이트들만이 지닌 전유물, 매직 아머가 요켄 왕국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빛에 휩싸인 마이더의 모습은 신비롭기 짝이 없었다. 그 모습은 마치 천신과도 같아 경계심을 갖고 있던 소녀의 얼굴에 놀라움이 가득 생겨났다. 전신을 휘감던 빛이 사라지고 화려한 전신 갑주로 무장한 마이더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 갑옷이 기존의 기사가 착용하는 갑옷보다 훨씬 고급 스럽고 모든 방면에서 뛰어나다는 걸 소녀는 어렸을 적 검을 익혀 온 감각으로 대충 알 수 있었다. 자신의 모습을 소녀에게 보인 마이더는 잔잔한 어조로 말하였다. “나를 믿지 못하는 듯하여 내 모습을 보였다. 다시 소개를 하마. 나는 금탑 소속 매직 나이트 마이더라고 한다." 마이더의 말에 소녀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반문했다. "매직 나이트?“ 매직 나이트라면 소녀도 익히 들어 본 이름이다. 최근 대륙을 들썩이게 만드는 금탑의 소속된 기사들을 가리켜 매직 나이트라 칭한다. 그들은 개개인이 모두 소드 익스퍼트의 경지에 이르렀으며, 두세 명이 힘을 합치면 소드 마스터와도 대등하게 맞설 수 있다고 한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그들이 지닌 마법 아티팩트 덕분이며, 사람들은 매직 나이트의 위용을 보지 못했지만 그 힘만큼은 인정하는 추세였다. 당장 금탑주가 8클래스의 경지에 든 대마법사였으니 그의 아티팩트로 무장된 매직 나이트의 힘은 오죽하겠는가. 마이더는 매직 소드 대신 자신에게 주어진 매직 스피어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이건 나의 애병으로 매직 스피어라 불리는 마법 창이다. 나의 주군이신 금탑주님께서 특별히 제작해 주신 것이지." "이, 이것이......“ 소녀는 여전히 놀라움이 담긴 눈으로 마이더와 매직 스피어를 번갈아 보았다. 그녀로서는 지금 눈앞의 이 사실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어찌 안 그러하겠는가. 눈앞에서 눈부신 빛과 함께 전신을 휘감은 갑주가 나타났다. 그리고 일견하기에도 범상치 않은 창을 보여 주며 자기소개를 하니 믿음이 갈 수밖에 없다. 뭐든지 말로 하기 전에 행동으로 보여 주는 것이 제일이다. 행동을 행하니 절로 믿음이 가는 것이고, 지금 이 상황이 그러하다고 할 수 있다. "정말 매직 나이트이신가요?“ 소녀가 두려움에 벗어난 음성으로 마이더에게 물었다. 두려움에 역력히 질려 있던 방금 전과는 그 모습이 판이 하게 달랐다. 그도 그럴 것이 매직 나이트는 금탑의 수호기사로서 기 사도에 충실하고, 결코 약자를 괴롭히지 않는다는 소문이 대륙 전역에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금탑의 이미지를 좋게 하기 위해 디벨 상단이 약간의 공작을 벌인 것이지만, 실제로 그 소문이 그리 틀리지 않았다. 소문은 어느 정도 사실이라 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당금 대륙에서 가장 유명한 금탑 소속의 기사라는 것 또한 한몫 하였다. 본신의 실력과 마법 아티팩트의 조합. 그 조합으로 실력 이상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 어찌 유혹으로 와닿지 않겠는가. 힘을 추구하는 기사의 입장에선 유혹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자유 기사는 금탑에 소속되길 간절히 원하는 입장이었고, 기존의 귀족 가문에 속해 있는 기사들 또한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지만 금탑 소속 기사들에게 부러움을 느끼고 있다. 높은 봉록과 뛰어난 아티팩트, 그리고 알 수 없는 신비함이 어우러지니 그런 요소들이 상승 효과를 이루어 더욱 그러하게 보이는 것이다. 소녀 또한 금탑에 대한 동경심을 가지고 있다. 검을 다루는 이로서 그러한 감정은 자연스러운 같았다. 평소 동경해 왔던 대상이 눈앞에 있다는 것은 그녀가 지금 처해진 상황을 잊게 하기에 충분했다. 소녀가 다소 들뜬 표정으로 물었다. “정말 매직 나이트시라니 놀랍네요! 매직 나이트 분들은 오러 블레이드가 서린 검과 대등하게 맞설 수 있는 아티팩트가 있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인가요?” '이런, 아직 믿지 못하는군.' 마이더의 말에 다소 경계심이 풀어졌다고 해도 여전히 한줄기 경계심이 남아 있는 소녀의 말에 마이더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여태껏 소녀의 인생이 평탄하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함부로 보여 줄 수 없는 것이지만 앞으로 금탑의 소속이 될 아이니...... 보여 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마음을 굳힌 마이더는 매직 스피어를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매직 스피어에 힘껏 마나를 주입하며 외쳤다. "디유 레임!" 마이더의 외침과 함께 매직 스피어에 눈부신 빛이 생겨났다. 동시에 매직 스피어에 찬란한 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 빛이 너무나 황홀했기에 소녀는 말을 잊은 채 매직 스피어를 바라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마이더가 소녀를 보며 말하였다. "이것이 바로 디유 레임이라는 것이다. 매직 스피어와도 능히 맞설 수 있는 탑주님의 최고 역작이라 할 수 있지. 이제 나를 매직 나이트라고 믿을 것이냐?“ 소녀가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 물론이죠, 매직 나이트고말고요." 그녀는 디유 레임이 발하는 빛에 완전히 정신을 빼앗긴 듯하다. 마이더는 그런 현상이 바람직하다고 여기며 소녀에게 아까 했던 대화의 내용을 이어 나갔다. "자, 그럼 아까 했던 이야기를 계속하자. 나는 너를 종자로 삼을 생각이다." 아까 전에는 경계하느라 미처 인식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마이더 스스로가 매직 나이트임을 증명했으니 그의 말 진실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소녀는 기뻐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그 말을 곱씹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매직 나이트의 종자라면 누구나 지원할 자리가 분명 해요. 그런데 왜 소매치기에 불과한 저를 매직 나이트의 종자로 삼으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설마 금탑주님이......“ 말끝을 흐리며 소녀의 안색이 변하는 걸 보아 무언가 좋지 않은 상상을 하는 듯했다. 마법사가 인간을 잡아다가 종종 생체 실험을 한다는 소문은 대륙에 익히 퍼져 있기에 마이더는 소녀가 무슨 상상을 하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마이더는 고개를 저음으로써 그런 소녀의 걱정을 불식 시켰다. "우선 네 상상과는 다르다는 말을 하고 싶다. 내가 너를 종자로 삼으려는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너에게 자질이 있기 때문이다." 소녀는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에 마이더가 설명을 이어 나갔다. "본래라면 굳이 우리가 금탑에서 나을 필요가 없다. 금탑에는 모든 것이 풍족하기 때문이지. 하지만 금탑에 유일하게 풍족하지 않은 것이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마이더의 말대로 금탑에는 부족한 것이 없다. 각종 사업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익은 어마어마하였고, 디벨 상단이 그 뒤에 있다. 게다가 금탑주라는 대륙 최고의 8클래스 마법사가 버티고 있으니 무력 면에서도 결코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금탑의 주변에 사는 인구는 채 몇 만이 되지 않았다. 그런 이들 중 마법사 자질이 있거나 기사의 자질이 있는 아이들이 많지 않을 터. 순간 그것을 떠올린 소가 무의식적으로 대답했다. "인재?" “그렇다. 바로 인재가 부족하다." 소녀가 정답을 맞히자 마이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금탑, 골든 벨리에 거주하는 인구는 무척 적다. 그리고 금탑은 탑주님 그 자체만 빼면 별 볼일 없는 곳이라 할 수 있지. 때문에 탑주님은 우리의 뒤를 이을 매직 나이트를 양성하기로 하신 것이다. 아쉽게도 골든 벨리에 기사가 되기에 뛰어난 자질을 지닌 아이들이 없다. 그래서 탑주님은 우리를 외부로 파견함으로써 각지에서 자질이 뛰어난 아이를 종자로 삼으라 하신 것이다." "그렇군요." 어느 정도 제반 상황을 이해한 소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마이더가 미소 지어 보였다. "매직 나이트가 되기 위해서는 탑주님께서 세우신 몇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분명 어렸을 적 체계적인 검술을 익힌 네가 이러한 생활을 하는 데에는 어떠한 곡절이 있을 터, 그것을 내게 말해 줄 수 있느냐?“ “......” 마이더의 말에도 불구하고 소녀는 쉽사리 말을 하지 못했다. 소녀가 겪은 일들은 제아무리 강한 힘을 지닌 매직 나이트라 하여도 함부로 알면 안 되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만약 사실을 알게 되면 눈앞의 매직 나이트는 물론 자신과 동생의 목숨도 위험해질 것이 자명했다. 소녀가 말하길 꺼려하자 마이더가 심상치 않은 일임을 느꼈다. 하지만 이런 자질을 지닌 아이가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은 그만큼 큰일을 겪었기 때문이라 생각하며 엘이 말했던 것을 떠올렸다. 한 가족이 될 이에게 결코 남은 앙금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더군다나 금탑의 가족이 되는 일임에야 그들의 원한은 곧 금탑의 원한이라 할 수 있는 일과 같다. "탑주님이 말씀하셨지. 금탑에 소속된다는 것은 곧 한 가족이 되는 것이라고. 그런 가족의 원한은 곧 금탑의 원한이라고 말이야. 그러니 머뭇거리지 말고 내게 털어놓아 보거라 나의 행사는 곧 금탑의 행사와 같으니 말이야." 마이더의 말에 소녀의 얼굴에 희망이 떠올랐다. "저, 정말인가요?“ 소녀가 믿기 힘들다는 얼굴로 물어오자 마이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소녀의 몸이 돌연 부르르 떨리더니 그녀의 눈가에 한줄기 눈물이 흘러 내렸다. 마이더가 화들짝 놀라 소녀를 바라보니, 소녀는 눈물을 슥슥 닦으며 약간 당혹한 어조로 말했다. "죄, 죄송해요.기쁘다 보니 그만......“ 그렇게 말한 소녀는 마이더에게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말하기 시작했다. *** 소녀의 이름은 메이린으로 크루더 후작의 휘하 기사 중 한 명인 라인필드의 일남일녀 중 장녀라 한다. 라인필드는 크루더 후작의 휘하 기사 중 비교적 뛰어난 실력을 지닌 기사로, 소드 익스퍼트 상급에 이르러 후작 가의 많은 지원을 받아 실력을 갈고 닦았다. 그런 그의 딸인 메이린의 자질이 뛰어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메이린은 라인필드의 가르침 아래 어렸을 때부터 탄탄한 기초를 갈고 닦기 시작했고, 라인필드가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에 오르면서 후작가의 지원도 더욱 늘어났다. 소드 마스터의 경지를 눈앞에 두게 되었으니 당연한 것 이다. 주군의 기대를 한몸에 받는 라인필드는 매우 만족해했고, 그런 아버지의 모습에 메이린 또한 매우 행복했다고 한다. 이때가 그녀의 어린 시절 중 가장 행복했을 때라고 한다. 그러던 중 사단이 발생한다. 바로 라인필드가 크루더 후작의 아들을 호위하면서 일이 발생한 것이다. 크루더 후작의 아들은 요켄 왕국의 망나니 중 망나니로 예쁜 여자를 보면 평민이고 귀족이고를 가리지 않고, 술이면 환장을 하는 주색가다. 그런 그가 인근 왕국을 관광하고 돌아가던 도중 무척 아름다운 여자를 보게 되었다.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칠 수 없는 이치처럼 크루더 후작의 아들은 아리따운 여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크루더 후작의 아들이 얼마나 유명하던가. 그의 정체를 단번에 알아차린 여인은 크루더 후작의 아들이 환심을 사기 위해 하는 행동에 정면으로 면박을 주기에 이른다. 그러자 분노한 크루더 후작의 아들이 화를 내며 여인을 겁탈하려 하였고, 그것이 여인의 호위에 막혀 무산으로 돌아간다. 화가 머리끝까지 뻗힌 그는 대결을 요구하게 된다. 이는 라인필드가 최상급 소드 익스퍼트인 것을 자신했기 때문이기도 하였고, 여인을 호위하는 기사가 고작 두 명에 불과하다는 것에 여인이 별 볼일 없는 귀족가 영애란 걸 감안했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크루더 후작의 아들은 당연히 라인필드에게 대결에 나갈 것을 요구하였다. 그의 호위 중 가장 강한 실력을 지닌 이가 바로 라인필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라인필드는 그런 그의 참전 요구를 거절했다. 여성을 겁탈하려다 실패해 놓고 도리어 뻔뻔하게 대결을 요구하는 것은 기사도에 어긋난다는 게 바로 그 이유였다. 그에 크루더 후작의 아들은 화를 내며 다른 기사에게 대결에 임할 것을 명령했고, 그의 명령에 따라 나선 기사가 대결에 참가하게 된다. 그러나 결과는 크루더 후작의 아들의 예상과는 판이하게 흘러갔다. 별 볼일 없는 귀족가 영애의 호위기사가 펼친 일검에 그대로 크루더 후작가 기사의 목이 날아가 버린 것이다. 그 검에 서린 것은 틀림없는 오러 블레이드였다. 혼비백산한 크루더 후작의 아들에게 귀족가 영애의 분노 어린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소개를 하였다. 놀랍게도 그녀의 정체는 요켄 왕국 바로 옆에 위치한 카루일 왕국의 공주였다. 비밀리에 여러 왕국을 여행한 그녀에게 카루일 왕국 10대 소드 마스터 중 2명이 호위로 참가하게 된 것이며, 귀국하던 도중 크루더 후작의 아들과 마주치게 된 것이다. 카루일 왕국의 국력은 요켄 왕국보다 강하다. 그러니 카루일 왕국의 공주와 요젠 왕국 후작가 아들의 위치는 비교도 할 수 없다. 정식으로 항의 공문을 받은 요켄 왕국에서는 그 분노를 크루더 후작가에게 돌렸고, 향후 10년간 크루더 후작가의 외부 활동을 금하였다. 어디에도 변명하지 못하게 된 크루더 후작은 극도로 분노했다. 그리고 그 분노의 화살은 라인필드에게 향했다. 이때는 추후 소드 마스터가 되고 뭐고 없었다. 분노한 그에게는 오로지 분노를 풀 상대만 필요했을 뿐이다. 크루더 후작은 라인필드의 기사 작위를 박탈했으며, 상대가 무서워 대결을 회피했다는 대목을 앞세워 그를 참수형 시켜 버린다. 라인필드는 그런 크루더 후작의 모함에 끝까지 도망치며 맞섰다. 바로 그의 부인과 메이린, 그리고 그의 아들 루인이 도망칠 기회를 벌기 위함이다. 천신만고 끝에 그들은 도망치는 데 성공하였고, 가족이 도주에 성공했다는 걸 알아차린 라인필드는 순순히 체포 되어 죽음을 받아들인 것이다. *** 메이린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사실 저희는 도망친 게 아니에요. 성 밖으로 도망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거지로 위장하여 추격을 따돌린 거예요. 아버지라도 도망치기 바라는 마음에 도망치는 데 성공했다고 말한 것인데......“ 설마하니 도망치지 않은 채 순순히 체포될 줄이야. 거기까지 말한 그녀의 눈에 다시 눈물이 흘러내렸다. 라인필드가 죽음을 당하자 그의 부인은 몸져눕게 되었다. 거지로 위장을 해야 했기에 가진 돈이 있을 턱이 없었다. 아직 어린 남동생에게 이 험난한 세상에 던져 놓을 수 없었기에 메이린은 여인의 몸으로 이 세상에 뛰어들게 된다. 그녀가 택한 것은 바로 소매치기였다. 어렸을 적 라인필드에게 사사받은 검술은 빠르게 검을 뻗어 단번에 상대를 제압하는 쾌검이다. 그 쾌검의 모리를 살려 그녀는 소매치기에 접목하게 되었고, 덕분에 채 그녀가 소매치기를 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거지가 많은 요켄 왕국에, 돈을 많이 갖고 다니 는 이가 몇이나 되겠는가. 뛰어난 소매치기 실력을 지녔음에도 그녀의 수입은 많지 않았고, 그렇게 얻는 돈으로 몸져누운 어머니와 동생의 뒷바라지를 하기도 힘들었다. 파란만장하게 살아온 그녀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마이더의 얼굴에 분노의 표정이 떠올랐다. 소문과 다르게 마이더는 기사도가 무엇인지 자세하게 모른다. 하지만 그는 최소한 약자를 보호하고 인간이 지켜야 할 도리는 알고 있다. 그런데 감히 주군에게 사사 받은 기사를 그런 하찮은 이유로 죽여 버리다니...... 물론 소녀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럴 때 사용하라고 엘은 디벨 상단의 정보망을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며칠 뒤 정보원은 확실한 정보를 가지고 올 것이고, 그 때 모든 일의 방향이 확실하게 정해질 것이다 마이더가 소녀에게 말했다. "며칠 뒤 널 찾도록 하겠다. 그때까지 기다리고 있도록 하거라." "네, 제 이야기를 들어 주셔서 감사해요. 사실 이렇게 이야기를 해 본 것이 처음이거든요." 메이린이 눈물을 닦으며 마이더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리고 빠르게 골목을 벗어났다. “......” 골목에 홀로 남은 마이더가 조용히 눈을 감은 채 생각에 잠겼다. 7. 매직나이트, 제자를 거두다 - 2 날이 밝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마이더는 아침에 디벨 상단 정보원이 가져온 정보를 보고 있었다. 그가 부탁한 정보는 당대 크루더 후작의 성격과 그의 아들에 대한 여러 가지 소문의 진위 여부, 그리고 그들에 대한 주변에서의 평가였다. 그리고 크루더 후작가의 기사 라인필드에 대해서도 부탁했는데, 과연 대륙 10대 상단답게 3일도 되지 않아 자세하게 조사를 끝마쳤다. 메이린의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크루더 후작의 아들 라프리는 인간 말종 중 말종이었으며, 그의 아버지인 크루더 후작 또한 만만치 않았다. 정보에 의하면 그의 영지민 절반이 그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하며, 그 빛 때문에 평민들조차 이동의 자유가 허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한마디로 말이 평민일 뿐이지 실제로 농노와 다름없다 것이다. 그리고 라인필드는 체포된 후 분노한 크루더 후작에게 연거푸 뺨을 3대나 맞았다고 하며, 온갖 저열한 방법으로 고문을 당한 뒤 오체분시되고 목이 잘려 효시가 되었다고 한다. 제아무리 후작이라 하여 그런 식으로 휘하 기사를 죽인 경우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자신의 기사를 죽이다니, 인간도 아니군." 라인필드에게 얽힌 이야기를 읽은 그는 분노한 표정으로 다음 정보를 훑었다. 거기에는 크루더 후작가의 정보가 낱낱이 적혀 있었다. 크루더 후작가에는 소드 익스퍼트 기사 20명이 존재하며, 4클래스 마법사가 수석 마법사직을 맡고 있다고 한다. "익스퍼트 급 기사 스무 명이라...... 매직 아머와 매직 스피어로 상대해도 조금 벅차겠는걸?“ 게다가 후작가를 지키는 병사 500명이 가세하면 어림도 없는 일이 되어 버린다. 제아무리 그가 강하다고 해도 체력적인 면에서 따라 주지 못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마이더의 뇌리에 한 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바로 이곳에 오기 전에 엘에게 하사받은 골렘, 골든 매직 나이트를 말이다. 그것만 있다면 결코 500명의 병사들을 겁낼 이유가 없다. "일단 가서 말해야겠군. 진실이 입증되었으니 이제 너는 금탑의 한 가족이다." 마이더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 디벨 상단의 정보원에 의해 메이린이 어디서 살고 있는지를 확인했기에 마이더의 발걸음은 거침이 없었다. 크루더 후작령 곳곳에는 다 쓰러져 가는 움막집이 즐비 했다. 그래도 이 정도가 양호한 편이니 요켄 왕국이 얼마나 가난한 국가인지 반증하고 있었다. 약 10여 분을 걸어서 마이더는 메이린이 살고 있는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녀가 살고 있는 집은 다른 곳과 다를 바 없는 다 쓰러져 가는 움막이었다. 위생 상태는 최악을 달리고 있었고, 곳곳에 질 안 좋은 이들이 기웃거리는 걸로 보아 치안도 최악의 상태를 달리고 있음이 분명했다. 마이더가 인상을 살짝 찡그리며 움막 문을 두들겼다. 똑똑. 차 한 모금 마실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시죠?“ 메이린의 목소리였다. "얼마 전에 종자로 삼겠다고 말한 사람인데......“ 덜컥! 마이더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문이 열렸고, 메이린이 모습을 드러냈다. 메이린은 설마 마이더가 진짜 찾아올 줄 몰랐는지 뜻밖의 기색을 띠며 인사를 건넸다. "어, 어서 오세요." "그래, 잠시 볼일이 있어 지금 왔다." "들어오세요." 습관적으로 마이더를 맞아들이려던 메미린의 몸이 순간 움찔했다. 집이 너무 누추하여 차마 들이기에도 뭘 했던 것이다. 그에 마이더가 살짝 웃으며 집으로 발을 들였다. 메이린이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문을 닫았다. 집 안은 밖과는 달리 상당히 깨끗한 편이었다. 악취도 풍기지 않았고, 나름 깨끗이 정리한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좁은 집안에는 하나의 침대가 놓여 있었는데, 그곳에는 중년 여인이 힘겹게 누워 있었다. 집 안으로 마이더가 들어오자 침대에 누워 있던 여인이 힘겹게 몸을 일으키며 입을 열었다. "어서 오세요, 기사님. 메이린에게는 말을 들었답니다." "이런, 굳이 일어나실 필요가 없습니다.“ 마이더가 일어서려는 중년 여인을 만류했다. 그러자 힘겹게 몸을 일으키던 중년 여인이 침대에 몸을 맡겼다. "죄송해요, 몸이 좋지 않아서......“ 그녀가 다시 몸을 눕히자 마이더는 메이린이 가져온 의자에 앉았다. 그러고 나선 3일 전 메이린에제 했던 말을 하였다. "이미 들으셨겠지만 저는 기사의 작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귀족을 모시는 기사가 아닌 마탑주님을 모시는 기사입니다. 사람들은 저와 제 동료들을 일컬어 매직 나이 트라 부릅니다. 저는 탑주님의 명령을 받아 제 뒤를 이을 인재들을 찾아다니게 되었고, 이곳에서 메이린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분명 훌륭한 기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 마이더의 긴 말에 중년 여인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은 채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 모습을 보며 마이더는 조용히 침묵을 지켰다. 아마 중년 여인의 결정이 곧 메이린의 결정이 될 것이다. 마이더는 한껏 긴장했다. 약 5분여 시간이 흘렀고, 중년 여인이 눈을 떴다. 결정을 내린 것이다. "앞으로 메이린을 잘 부탁드립니다." 마이더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훌륭한 기사로 키워 보겠습니다." 그때, 문이 열리며 한 소년이 들어왔다. 밖에서 싸움을 하고 왔는지 옷 곳곳에 피가 묻어 있었다. 메이린이 소년에게 쪼르르 달려갔다. "루인! 또 밖에서 싸운 거야?“ 그에 루인이라 불린 소년이 소리쳤다. "어쩔 수 없었어. 그 녀석들이 시비를 먼저 걸었단 말이야!" "하지만 우리는 눈에 띄면 안 돼. 그러니 앞으로 자제 좀 해." 메이린도 딱히 루인을 타박하지 않았다. 참을성 있는 루인이 이렇게 싸울 정도라면 그들이 어떻게 행동했는지 능히 짐작이 갔기 때문이다. "근데 이...... 분은 누구?“ 루인이 마이더를 발견하고는 흠칫 경계의 태세를 취했다. 마이더는 그런 루인을 조용히 살펴보았다. 얼핏 보니 루인의 나이는 기껏해야 십사오 세 정도에 불과했다. 그런 그가 싸웠다면 그 대상은 집 밖에서 얼쩡거리던 건달들일 것이 분명했다. '성인을 상대로 지지 않았다니, 대단하군. 이 아이의 자질도 상당히 뛰어나.' 기사의 피는 사라지지 않았는지 메이린은 물론 루인이라 불린 아이의 자질도 상당히 뛰어나 보였다. 그는 자신을 경계하는 루인에게 자기소개를 하였다. "내 이름은 마이더라고 한다. 들었을지 모르겠지만 금탑에 소속된 매직 나이트지." 순간 루인의 눈이 반짝였다. "매직 나이트?“ 루인이 마이더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를 살피며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 매직 나이트인가요? 그 대마법사 금탑주님이 세운 금탑의 매직 나이트?“ 너무나 열렬한 반응에 마이더가 조금 당황한 태도로 대답했다. "그, 그래." "와! 매직 나이트라니! 검술과 아티팩트가 조합된 매직 나이트는 동급의 기사보다 월등히 강하다고 들었어요! 그런 매직 나이트를 보게 되다니...... 정말 꿈같네요." 방금 전 살벌한 모습과는 달리 지금은 동경하던 대상을 본 것처럼 눈이 초롱초롱했다. 그 모습이 무척 귀여웠기에 마이더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래,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맙구나. 나는 탑주님의 명령을 받아 이곳에 오게 되었다. 바로 우리 매직 나이트의 뒤를 이을 기사를 키우기 위해서지. 너 또한 그 자질이 무척 뛰어나 보이는구나. 어떠냐, 너 또한 누나와 함께 매직 나이트가 되지 않겠느냐?“ "제, 제가요?“ 루인이 움찔하며 믿기지 않는 듯 반문했다. "그래." 마이더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루인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물론이죠! 매직 나이트는 모든 기사 지망생의 꿈이라고요. 저 또한 기사 지망생에서 상당히 멀어졌지만 매직 나이트가 되고 싶은 건 변함이 없고요." 그러면서 루인이 어머니인 중년 여인을 바라보았다. 루인의 그러한 눈빛이 의미하는 바를 모를 그녀가 아니다. 잠시 생각하던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식의 미래를 위해서인데 그 정도도 못해 주겠는가. "그래, 너도 할 수 있다면 하여라. 부디 흘륭한 기사가 되어 돌아오너라." "네, 고마워요, 어머니. 훌륭한 기사가 되어 돌아올게요" "저희는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니." 메이린도 힘든 얼굴로 말을 건넸다. '응?‘ 마이더는 대화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그들이 착각을 하고 있음을 알아차리고는 웃음을 지었다. '이런 내가 실수했군.' 이들은 지금 기사가 되려는 자신들과 어머니가 서로 떨어져서 살아야 한다는 걸로 알고 있나 보다. 그런 오해를 해소시켜 줄 의무가 있었기에 마이더는 급히 대화에 끼어들었다. "잠깐! 착각하고 있는 게 있습니다." “......?” 세 사람이 의아한 기색으로 바라보자 마이더가 말을 이어 나갔다. "지금 기사가 되려면 떨어져서 생활해야 한다는 것으로 알고 계신가 본데 그럴 필요 없습니다. 제가 보고를 한다면 탑주님께서 기꺼이 골든 벨리 주민으로 받아들일 테니 말이지요." "그게 사실인가요?“ 메이린이 믿기 힘든 얼굴로 묻자 마이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다. 설마 오해를 하고 있을 줄은 나도 미처 몰랐다." “다......행이네요." 감격한 어조로 메이린이 중얼거렸다. 그것은 루인이나 중년 여인 모두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럼 내일까지 모두 떠날 채비를 하세요." 마이더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메이린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디 가시려고......“ 그가 빙긋 웃었다. "해결해야 할 일이 있어서 말이지." 그 말의 의미를 알아듣지 못한 메이린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마이더는 그저 빙긋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내일까지 준비를 하라고 한 뒤 마이더는 집 밖으로 나왔다. 집 밖으로 나온 마이더의 눈매가 날카롭게 변했다. "이제 남은 건 한 가지이군. 그것만 처리하면 되겠어." 마이더의 발걸음이 숙소가 아닌 다른 곳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가장 큰 건물이 위치한 곳. 바로 크루더 후작이 머물고 있는 저택이었다. *** 크루더 후작가 저택에는 여덟 명의 경비병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 모두 덩치가 당당하여 하나하나 그 기세가 만만치 않아 보였다. 거대한 체구의 병사가 창을 들고 부리부리한 눈으로 정문에 버티고 서 있는데 그 누가 함부로 저택에 접근할 수 있을까. 덕분에 크루더 후작가 저택 근처를 배회하는 사람은 단 1명도 없을 정도였다. 그런 크루더 후작가 저택 앞에 한 사람이 나타났다.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창을 든 청년이었다. "응?“ 병사들은 갑자기 저택을 향해 접근하는 청년을 발견하고는 의아한 기색을 띠었다. 국왕에 의해 10년 동안 외부 활동 금지령을 받은 크루더 후작을 찾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이곳에 접근하는 이라니? 경비병 중 하나가 앞으로 나서며 마이더를 제지했다. "정지, 무슨 일로 온 것이오?“ 혹시 크루더 후작에게 볼일이 있을지 몰라 경비병은 함부로 말을 놓지 않았다. 경비병의 제지에 마이더는 빙긋 웃음을 지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미소였다. 그는 경비병에게 말을 건넸다. "영주님에게 전해 주지 않겠나?" “무엇을 말입니까?” 크루더 후작을 언급하자 경비병의 태도는 급속도로 공손해졌다. 그 모습에 마이더는 피식 웃음이 흘러나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과연 저들이 자신의 말을 들은 뒤 저 태도를 유지할 수 있을까. 마이더가 한 차례 목소리를 가다듬은 뒤 그들이 벌떡 일어날 만한 소리를 하였다. "지금 내가 그대를 벌하러 왔다고 말이야." "뭐, 뭣이?“ 화들짝 놀라는 경비병들. 그도 그럴 것이 감히 크루더 후작 영지 앞에서 그를 벌하러 왔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도리가 없던 것이다. 놀라움도 잠시, 경비병들이 창을 들어 마이더를 경계하였다. 마이더는 그런 경비병들을 보고는 살짝 웃음을 지었다. "그대들의 실력으로 날 막는 것은 요원한 일. 그러니 괜한 객기를 부리지 말고 기사들을 불러오기 바란다."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마이더에게서는 어떠한 기세도 느껴지지 않았기에 경비병들은 그를 미친놈으로 치부하며 창을 들어 찔러 들어갔다. 그 순간 마이더의 눈이 번뜩였다. 동시에 그의 등에 매인 창이 뽑히더니, 경비병들의 창을 비껴 내며 그들을 후려쳤다. 이들에게 오라를 사용할 필요도 없다. 퍽!퍽! "어이쿠!" 창대에 얻어맞은 경비병들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순식간에 달려든 2명의 경비병을 때려눕힌 마이더가 느긋하게 창을 어깨에 멨다. 그는 다른 경비병들을 보며 느긋하게 말했다. "이제 알았겠지? 어서 기사들이나 불러와," "이익!" 마이더의 느긋한 태도에 경비병들은 이를 악물고는 저택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자신들만으로 대항할 수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 남은 병사들은 마이더를 힐끔힐끔 보며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마이더는 그들에게 신경도 쓰지 않았다. 어차피 저들은 피라미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자 12명에 이르는 기사들이 저택 밖으로 나왔다. 그들 모두 심상치 않은 기세를 품고 있었다. 10여명 모두 익스퍼트에 다다른 기사였던 것이다. 기사들 중 한 기사가 앞으로 나서며 마이더에게 물었다. "너는 누구냐?“ “나는 마이더라고 하지. 기사이긴 한데 어디에 속해 있다고 말해 주기는 조금 뭐하군." 장난스런 대답을 하는 마이더의 태도에 기사들의 표정이 굳었다. 그렇다고 굳이 흥분할 것은 없다. 잡아서 무릎을 꿇리면 되니까. 기사들이 검을 뽑아 들자 마이더도 창을 양손으로 움켜 쥐고 경계의 자세를 취했다. 12명의 기사들이 모두 검을 뽑아 들었지만 마이더에게 달려든 기사는 1명이었다. 기사의 검에서 오러가 뿜어져 나왔다. 의심할 필요 없는 소드 익스퍼트의 경지인 것이다. 마이더는 기사의 검에 오러가 생성되자 그 또한 창에 오러를 생성하였다. 그리고 기사의 검과 충돌하였다. 번쩍! 오러와 오러가 부딪치며 눈부신 빛을 발했고,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힘의 충돌이 일어났다. "크윽!" 충돌의 결과는 기사의 패배였다. 창에 서린 오러의 힘에 기사가 형편없이 뒤로 물러난 것이다. "아니!" 동료가 뒤로 밀려나자 기사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소드 익스퍼트 중급의 동료가 맥없이 밀려 버린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눈앞의 창수가 최소 익스퍼트 상급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말이 된다. "최소 상급의 경지다. 합공해라." 한 기사의 외침에 3명의 기사가 검에 오러를 뿜어내며 마이더에게 달려들었다. 3명의 기사가 합공해 들어오자 마이더가 브로치에 마나를 주입하며 외쳤다. "마테리얼라이즈!" 스팟! 그의 전신이 빛에 휩싸이며 전신 갑주에 휩싸인 모습이 드러났다.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기사들을 상대하기 위해 창에 걸린 힘을 모두 끌어냈다. "디유 레임." 창에서도 환한 빛이 뿜어졌다. 동시에 오러가 발하는 빛이 한층 강렬해졌다. 그의 창이 기사들의 검과 부딪쳐 나갔다. 콰앙! 오러가 충돌하는 소리가 사방으로 올려 퍼졌다. 디유 레임이 전개된 마이더의 창은 오러 블레이드도 견뎌 낼 수 있을 만큼 견고하다. 거기에 오러가 주입되어 있는 상태니 기사들의 검이 이겨 낼 재간이 없다. 마이더와 충돌한 세 기사가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이럴 수가!" "우리가 밀리다니." 그들의 얼굴에는 놀라움이 가득했다. 소드 익스퍼트 중급 이상의 기사 3명이 합공을 했는데도 밀려나니 놀라지 않을 도리가 없다. 놀라는 그들에 비해 마이더는 여유가 넘쳤다. 화려한 전신 갑주에 빛을 발하는 창을 들고 있는 그의 모습은 방금 전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한 기사가 그런 마이더의 모습을 알아보았다. 저런 모습을 소문으로 들어 본 적이 있다. 본신의 실력과 마법 아티퍽트가 조합되어 동급의 실력자 여러 명을 상대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기사들의 정체를 말이다. "매직 나이트인가?" “매직 나이트?” 다른 기사들도 들어 본 적이 있는 듯 중얼거리며 놀라움을 표했다. 금탑의 매직 나이트라면 소문으로 익히 들어 본 기사다. 그런데 그가 어째서 이곳 요켄 왕국에 왔단 말인가? "알아봤군." 마이더는 기사들이 자신을 알아보자 자세를 바로 했다. "어째서 우리를 공격하는 것이지? 이것이 금탑의 입장인가?“ 한 기사가 나서 금탑을 물고 늘어졌다. 금탑이라면 당금 대륙 마탑 중 최강이라 불리는 곳이다. 탑주 본인이 8클래스 마법사에 그가 만든 최고의 걸작 골든 나이트까지 도합 초인 2 명을 보유한 셈이니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디벨 상단이 의도적으로 퍼뜨린 매직 나이트의 기사도는 무척이나 유명했다. 그걸 꼬투리 잡다니 여간 골치 아픈 것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 마이더에게 통용되지 않는 말이다. 그는 빙긋 웃음을 지으며 창을 한 바퀴 돌렸다. "유감스럽게도 이것이 금탑의 입장이라서 말이지. 크루더 후작가는 금탑의 매직 나이트가 될 아이에게 크나큰지를 저질렀다. 그래서 내가 그것을 대신하여 원한을 갚아 주고자 할 뿐이다. 탑주님께서는 한 가족이 될 이에게 원한이 남는 걸 결코 원하지 않거든." "원한, 원한이라......“ 기사들의 표정이 다시금 딱딱하게 굳어갔다. 마이더의 말이 사실이라면 정말 골치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금탑은 요켄 왕국으로서도 감당하기 힘든 큰 세력이었기 때문이다. 상황이 그럴진대 요켄 왕국의 후작가에 불과한 크루더가가 어찌 금탑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당장 눈앞의 매직 나이트조차 자신들의 실력으로 감당하기 힘든 실력자가 아닌가. 본신의 실력에는 큰 차이가 없는데 단순히 아티팩트의 힘으로 저 정도 힘의 증진을 보이다니. 정말 놀라울 수밖에 없다. 마이더가 창을 겨누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대충 알 것 같군. 과대 해석을 하나 본데 그럴 필요 없어. 왜냐하면 나로서 모든 일은 해결 될 테니까. 만약 날 꺾는다면 모든 일은 불문에 붙여질 테니 말이야." 그 말에 기사들의 눈이 빛났다. 매직 나이트의 말이니 결코 허언은 아닐 터.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눈앞의 기사를 꺾는 것이다! 실력은 비슷하니 다대일로 싸운다면 이기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니라. 기사들의 기세가 다시 강렬하게 뿜어지자 마이더가 웃으며 창에 오러를 뿜어냈다. 마이더의 창과 기사들의 검이 부딪치기 시작했다. 오러의 위력이나 실력 면에서 기사들과 마이더의 실력은 그리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마이더에게는 매직 아머와 매직 스피어가 있다. 게다가 매직 스피어는 디유 레임을 전개하여 다른 기사들의 오러보다 더욱 강한 힘을 발휘하는 상태다. 당연히 일대일 아니, 다대일로 싸워도 마이더가 우위를 점하기 충분했다. 그러나 그것도 어느 정도의 숫자일 때 가능한 일. 상대할 기사가 20명에 육박하고 500명의 병사까지 합세하자 마이더로서는 힘이 부칠 수밖에 없다. 약 30여 분 동안 정신없이 공방을 펼친 마이더가 거칠 게 숨을 몰아쉬었다. "허억, 헉!" 체력도 오러도 한계에 임박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에 비해 기사들은 차륜전을 통해 체력과 오러틀 보존 하였기에 아직 생생한 편이었다. 이대로 미길 수 없다고 판단한 마이더는 쓰게 웃음을 지었다. 내 한계는 여기까지인가? 사실 이만큼 버틴 것도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그에 비해 결코 떨어지지 않는 기사 20명을 상대로 약 30여 분을 버텨 냈으니 말이다. 하지만 마이더는 이 정도로 만족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가 바라는 것은 더욱 높은 고지였기 때문이다. '그래, 써 보자.' 이때를 위해 남겨 둔 체력과 오러가 아직 어느 정도 남아 있다. 마이더가 품속에서 작은 스퀘어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스퀘어에 마나를 주입하며 외쳤다. "서먼 나이트" 키이잉! 키이잉! 공간이 찢어졌다. 마이더의 외침에 공간이 벌어지며 황금빛 찬란한 빛을 발하는 나이트 골렘 1기가 나타났다. 골든 매직 나이트. 기존의 힘을 3배가량 발휘할 수 있는 엘의 회심의 역작 골든 매직 나이트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 골든 매직 나이트의 등장에 장내는 삽시간에 침묵에 빠져들었다. 5m에 이르는 황금빛 골렘. 그 모습은 전투를 위한 나이트 골렘이 아니라 마치 하나의 예술품을 보는 듯했다. 마이더는 골든 매직 나이트를 밟고 조종석으로 올라섰다. 이미 이곳으로 파견되기 전에 골든 매직 나이트를 조종하는 연습을 마친 뒤다. 조종자를 위한 공간에 마이더가 들어서자 골든 매직 나이트의 가슴 부분이 닫혀 조종석과 외부의 공간을 격리했다. 우웅! 전신에 마나가 흐르며 골든 매직 나이트에 푸른 안광이 뿜어져 나왔다. 무려 10m에 이르는 금빛 장창을 치켜든 채 골든 매직 나이트가 기사들과 병사들을 휩쓸기 시작했다. "으악!" 곳곳에 비명이 난무하며 기사들과 병사들이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죄 없는 기사들과 병사들을 죽일 필요를 못 느낀 것이다. 삽시간에 기사들과 병사들을 무력화시킨 골든 매직 나 이트는 거침없이 저택 안으로 진입했다. "허억!" 한쪽에서 마이더와 기사들의 대결을 지켜보던 크루더 후작이 혼비백산한 얼굴로 뒷걸음질 치며 도망치려 하였다. 그 옆에는 크루더 후작의 아들 라프리도 있었다. 조종석에서 골든 매직 나이트를 조종하던 마이더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기사들과 병사들은 용서해도 라프리 는 용서할 수 없었다. 여자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탐하는 인간쓰레기. 그런 놈이 살아 있을 이유는 하등 존재하지 않았다. 순간 골든 매직 나이트의 장창에 오러가 뿜어졌다. 그것은 예기라기보다 둔기에 가까운 둔중함을 내포하고 있었다. 마이더는 장창을 그대로 라프리에게 휘둘렀다. 퍼억! 둔중한 오러에 적중된 라프리의 신형이 그대로 실 끊어진 연처럼 날아갔다. 그리고 바닥에 사정없이 처박혔다. 바닥에 처박힌 라프리의 몸은 그대로 축 늘어졌다. 오러에 적중된 시점에 이미 절명한 상태였다. 라프리를 죽인 마이더가 골든 매직 나이트 조종석 밖으로 나왔다. 그의 눈에 벌벌 떨고 있는 크루더 후작이 눈에 들어왔다. 마이더는 크루더 후작에제 창을 겨눈 채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이 모든 것은 금탑의 행사라 할 수 있다. 자신의 배경을 믿고 수많은 여인들을 탐한 쓰레기는 내가 처리했다. 너는 앞으로 금탑에게 원한을 품지도 아니, 품을 생각도 하지 마라. 그렇게 된다면 죽는 이는 바로 네가 될 것이다." 눈앞에서 아들이 처참하게 죽는 모습을 본 크루더 후작은 벌벌 떨며 고개를 Rm덕이기에 바빴다. '정보 그대로군.' 디벨 상단의 정보에 의하면 크루더 후작은 자식에 대란 애정이 별로 없다고 했다. 단지 혈육이라 그의 능력으로 수습이 되는 일을 덮어 주었을 뿐, 실제로는 별다른 애정이 없다고 정보에 기채 되어 있었던 것이다. 마이더는 크루더 후작fl게 다시 한 번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후환이 두렵다면 가급적 선행을 베풀기 바란다. 금탑의 힘을 보고 싶지 않다면 말이야." 크루더 후작의 고개가 다시 한 번 맹렬하게 끄덕여졌다. 일국의 후작치고는 너무나 밸이 없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이 보기가 싫어 마이더는 몸을 돌려 저택을 벗어났다. 그의 눈에 쓰러진 기사와 병사들이 눈에 들어왔지만 외면한 채 발걸음을 옮겼다. *** 이튿날 한 사람에 의해 크루더 후작의 저택이 쑥대밭이 되었다는 소문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소문을 접한 메이린과 루인의 얼굴에 파랗게 변했다. "세상에!" 제아무리 소왕국의 후작이라지만 크루더 후작가에 머물고 있는 기사는 20명이 넘는다. 그것도 오러를 뿜어낼 수 있는 익스퍼트 급 기사들만 말이다. 그런데 그들을 모조리 때려눕힌 것도 모자라 후작의 아들 라프리까지 죽였다고 한다. 정말 대단한 능력이 아닐 수 없다. 마이더가 말하길 그의 실력은 익스퍼트 상급에 이르렀다고 한다. 익스퍼트 상급의 힘으로 익스퍼트 기사 20명과 병사 500명을 모두 쓸어버렸단 말인가? 대륙에 퍼진 소문도 소문이지만 이건 너무 강했다. 소문을 접한 사람들은 역시 금탑의 힘이라고 고개를 끄덕이기 바쁜 한편 악명이 자자한 크루더 후작을 벌한 매직 나이트를 칭송하기에 바빴다. 그 이유가 금탑 소속이 될 이들의 원한을 갚은 거란 것에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는 한편 금탑 소속 이들을 끔찍하게 챙긴다는 것에 경외감을 느꼈다. 그 정도의 힘으로 부하들을 끔찍이 여기는 금탑주의 평가가 다시 한 번 상승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러한 일은 비단 요켄 왕국에서만 벌어진 게 아니다 서남부의 소왕국 비즈틴에서도 벌어졌고, 각국에서 크고 작은 귀족 가문이 큰 타격을 입었다. 이들에게는 모두 큰 공통점이 존재했다. 바로 타격을 입힌 존재는 금탑의 매직 나이트들이고, 그들이 귀족 가문을 공격한 이유가 제일 처음 요켄 왕국 에서 일어난 일과 같다는 것을...... 대륙 사람들은 금탑에서 인재를 모집해도 떠들썩하게 모집한다고 말하면서도 그들에 대한 경외심을 감추지 못했다. 8. 아토빌 공작과의 접촉 매직 메탈의 판매권을 따낸 엘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아직 그에게는 할 일이 다수 남아 있기 때문이다. 엘의 예상대로라면 매직 메탈이 벨로세크 제국으로 흘러들어가는 양은 이번 일로 인해 상당히 줄어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 그칠 수 없다. 매직 메탈의 유입을 줄인 것은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9클래스 마법사를 경계하기 위해서는 초인들을 포섭해야 한다. 저쪽은 단일 세력으로 무려 10명의 초인이 그 주축이 되어 있다. 그에 반해 이쪽은 4명의 초인과 초인에 맞먹는 힘을 발휘하는 나이트 골렘 1기가 전부다. 그들에게 맞서기 위해서는 남아 있는 초인 전부를 포섭 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되면 이쪽의 초인이 더 많아지지만 그렇다고 해도 단일 세력으로 뭉쳐 있는 적보다 그 밀도에 있어 뒤처질 수밖에 없다. 그런 걱정을 하는 것도 일단 그들을 모두 포섭하고 나서의 일이란 게 문제였다. 때문에 엘은 아카벨 대장로가 말을 했던 것에 기반 삼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엘이 목적지로 정한 곳은 바로 아일라스 제국이다. 아카벨 대장로의 말에 의하면 아일라스 제국에 존재하는 2명의 초인이 아직 적에게 넘어가지 않았다고 한다. 2명의 초인이 모두 넘어가지 않았다는 것, 그것은 아일 라스 제국이 아직 적의 마수에서 무사하다는 결론이 된다. 첼은 그 이유를 간단하게 결론지었다. 아일라스 제국에는 아토빌 공작이 있다. 대륙 제1기사라 불리는 최강의 그랜드 마스터. 그가 있으니 적도 쉽사리 아일라스 제국을 점령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 자명했다. 아토빌 공작만 아군으로 만들어 놓는다면 무척 든든할 것이 분명했기에 엘의 발걸음은 아일라스 제국으로 향했다. 아일라스 제국으로 가는 데는 아이넨스와 엘리엔이 함께 했다. 두 사람 모두 검사이다 보니 대륙 제1기사라 불리우는 아토빌 공작의 실력이 어느 정도일지 궁금했던 것이다. 엘 또한 강자들이 자신과 함께 가 준다니 기꺼이 환영 하는 바였다. 텔레포트로 단숨에 아일라스 제국으로 온 엘은 아일라스 제국의 황도가 엄청난 경계에 휩싸여 있는 것을 보고는 놀랐다. ‘저번에 습격을 받았다고 해도 아직까지 이 정도 경계라면 정말 대단하군.' 왜 오랜 기간 동안 경계를 서 왔을 것임이 분명했는데 병사들은 아직 흐트러진 자세를 보이지 않았다. 정말 충성심이 높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문제는 저 충성심이 황제가 아닌 아토빌 공작에게 향하고 있다는 거지.' 엘은 그렇게 생각하며 앞서 걸어 황도로 들어가는 성 정문으로 향했다. 성 정문의 경계는 무척 삼엄했다. 무려 50여 명의 병사들이 경계 태세를 취하고 있었으며, 다섯 명의 기사가 쉴 새 없이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었다. 그들은 신분이 확실한 자만 황도로 들여보내 주고 있었다. 용병패를 지녔거나 신분이 불확실한 자는 따로 격리하여 황도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그런 조치에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했으나 아토빌 공작이 내린 명령이었기에 감히 불만을 겉으로 표현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애초에 몰래 들어갈 생각이 없었던 엘은 당당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몰래 들어갈 것이라 생각하던 아이넨스와 엘리엔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정지!" 엘이 다가가자 기사가 그를 제지했다. 한눈에 봐도 예사롭지 않은 엘은 특별한 인물임을 알 수 있게 하였다. 기사 1명이 다가가 엘에게 입을 열었다. "신분을 명확하게 제시하여야 황도로 들어가실 수 있습니다." 기사의 말에 엘이 자기소개를 하였다. "저는 금탑의 탑주 엘리미스라고 합니다. 아토빌 공작님을 뵙고자 이렇게 왔으니 보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엘의 소개에 성문에 있던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금탑주!" 금탑이라면 서부 끝에 위치한 톨리안 왕국에 존재한다. 그런데 여기까지 오다니? 이것이 급한 게 아니다. 우선 그가 금탑주를 사칭하는 것인지 아닌지부터 알아볼 필요가 있다. 엘은 그것을 알아차리고는 손을 들었다. 그러자 다섯 가지 빛깔의 화염이 생겨나며 자유롭게 허공을 유영하다가 소멸되었다. 이런 기예를 보여 줄 이는 그리 흔치 않다. 엄청난 마나 컨트를만 가능한 사람이 펼칠 수 있는 신기였기 때문이다. 그것만으로도 엘이 스스로 금탑주란 걸 증명한 것과 같다. 더구나 금빛 로브와 금발, 금빛 안경이 모든 것을 증명 하고 있다. 기사의 허리가 절로 굽혀졌다. "금탑주님을 환영합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공작 전하께 보고 드리겠습니다. 그때까지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엘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에요." 기사가 재빨리 달려갔다. '금탑주라...... 그가 도대체 왜 이곳에 온 것이지?‘ 아토빌 공작은 아일라스 제국에 금탑주가 왔다는 말에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도대체 금탑주가 왜 이곳에 왔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금탑주와 그는 대륙의 초인 반열에 든 존재지만 활동 영역이 엄연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제아무리 대륙 위에 군림하는 초인이라도 그 활동 영역이 정해져 있기 마련이다. 아토빌 공작의 활동 반경은 당연히 아일라스 제국이다 그의 영향력이 아일라스 제국 곳곳에 퍼져 있었고, 주변 다른 국가에도 퍼져 있었다. 그런 반면 금탑주의 활동 반경은 톨리안 왕국을 벗어나지 않는다. 서로의 영역을 침범할 리 없거니와 서로 얼굴 볼 일도 없는 것이 그들의 입장인 것이다. 각자의 영역에 있으며 살아가도 될 그들이 왜...... "어차피 나쁜 의도는 아닐 터. 나쁜 의도라도 상관없겠지." 설사 나쁜 의도를 가지고 왔다고 해도 상관없다. 자신의 실력은 이미 그랜드 마스터 중 최강의 영역에 다다라 있으니 말이다. 설사 그가 나쁜 마음을 먹는다고 해도 카디어스까지 있다면 금탑주의 할아버지가 온다고 해도 이겨 낼 자신이 있다. "알았다. 금탑주를 들라 하라. 물론 그의 동행들까지," 그의 앞에 있던 기사가 고개를 숙였다. "예, 공작 전하." 기사가 다시 빠르게 집무실을 벗어났다. "안녕하십니까, 공작님. 금탑의 탑주 엘리미스라고 합니다." 엘은 아토빌 공작을 보며 인사를 건넸다. “......“ 하지만 아토빌 공작은 그 인사를 받지 못했다. 상대방의 인사를, 하물며 그와 대등하다 할 수 있는 엘의 인사를 무시하는 것은 무척 무례한 행동이었지만 그는 그것을 미처 인지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는 엘 양쪽에 앉아 있는 일남일녀를 보고 경악에 빠졌기 때문이다. '이럴 수가. 금탑주 양옆에 있는 이들 모두가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에 이르렀다. 그것도 갓 이른 것이 아니라 완숙의 경지다! 카디어스보다 월등히 강해.' 그의 충격은 무척 대단한 것이었다. 대륙에는 그랜드 마스터가 딱 10명만 존재한다. 과거 전성기 때 그랜드 마스터가 불과 5명에 불과했던 것에 비해 현 대륙의 기사 수준은 그야말로 최고조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그런 그랜드 마스터들 모두가 국가의 막대한 지원에 힘입어 탄생한 초인들이다. 그들 하나를 키워 내는 데 제국의 튼튼한 제정이 순간 휘청거릴 정도로 엄청난 지원을 한 것이다. 엄청난 지원 아래 탄생하는 것이 그랜드 마스터다. 실제로 아토빌 공작이 카디어스를 그랜드 마스터로 만들기 위해 천문학적 자금을 소요했다. 마나를 증진시치는 데 펄요한 각종 약초들과 체질에 맞는 마나 연공법, 그리고 검술 등을 얻는 데 모두 막대한 자금이 소요된 것이다. 때문에 그는 대륙에 더 이상의 그랜드 마스터가 출현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제아무리 검의 천재라 불리는 이들도 그랜드 마스터외 벽에 좌절하는 만큼 국가적인 막대한 지원 아래 탄생할 수 있는 그랜드 마스터가 더 이상 출현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그의 예상이 깨졌다. 그의 눈앞에 무려 2명의 그랜드 마스터가 그를 마주하고 있던 것이다. 두 사람 안에 내재된 힘은 아토빌 공작으로서도 쉽사리 승산을 점칠 수 없을 정도였다. 아토빌 공작은 내심 식은땀을 흘렸다. '수하는 아닌 것 같은데...... 그랜드 마스터 두 사람을 데리고 오다니...... 정말 대단하다.' 2명의 그랜드 마스터와 알고 지낸다는 것은 그만큼 대인 관계도 받쳐 준다는 것을 의미했기에 아토빌 공작은 최종적으로 엘에게 감탄을 하였다. 하지만 놀란 것은 비단 그뿐만이 아니다. 아이넨스와 엘리엔도 아토빌 공작을 보면서 충격에 휩싸였다. 당대 제1검사라고 해도 그들은 어느 정도 자신감이 있었다. 각자 신검을 지닌 채 모든 힘을 발휘하면 능히 아토빌 공작을 압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보니 압도는커녕 우위를 점하기도 힘들어 보였다. 그의 내부에는 당장이라도 터질 듯 엄청난 양의 오러가 내재되어 있었고, 보이지 않지만 엄청난 압력이 사방에서 짓눌러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초인의 경지에 이른 그들에게 그것은 아무런 영향도 줄 수 없었다. 단지 짓눌러 오는 그 압력이 그만큼 대단하다는 걸 느낄 뿐이었다. 한참만에 아토빌 공작이 입을 열었다. "허, 정말 대단하군. 설마하니 그랜드 마스터 두 명을 대동하고 올 줄이야. 아, 내가 나이가 더 많아 말을 놓았는데 이해해 주겠나?“ 아토빌 공작의 나이는 엘의 4배가 넘는다. 단순히 연배로 치면 할아버지뻘이 된다. "물론이죠. 편히 놓으세요." 그랬기에 엘은 기꺼이 동의했다. 사실 아토빌 공작정도 되는 사람이 존대를 하면 그것이 더 거북했다. 엘의 말에 아토빌 공작이 눈을 반짝였다. "허허, 요새 젊은 사람들과 다르구먼." 확실히 달라도 달랐다. 요새 젊은 것들은 말 그대로 배경만 믿고 망나니짓을 서슴지 않는 귀족들이 다반사였다. 수련에 수련을 거듭하여 고수의 반열에 든다면 오만한 것도 대부분. 그렇다면 8클래스의 경지에 들었다면 오만의 극을 달리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엘은 달랐다. 오만하지도 않고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지도 않았다. 그저 차분함만이 보일 뿐이다. 엘이 아토빌 공작에게 말을 꺼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얼마 전 이곳이 침공을 당했다는 사실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 아토빌 공작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런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엘은 말을 이어 나갔다. "저는 그들의 정체를 대략적으로나마 알고 있습니다. 저 또한 그들의 습격을 받은 적이 있으니까요." “......!” 방금 전은 침묵이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아토빌 공작의 표정이 판이하게 달라진 것이다. 엘은 아토빌 공작을 보며 빙긋 웃었다. 그리고 자신이 겪어 온 일들을 말하기 시작했다. "대륙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흑탑의 습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흑탑은 마계의 대공을 소환하여 금탑을 제거하려 들었지요. 게다가 알려진 사실이지만 적탑주 카로스만도 그들의 수하였습니다. 상당히 엮여도 고약하게 엮인 것이죠. 이제 믿을 수 있나요?" “음" 아토빌 공작 신음을 흘렸다. 엘이 이렇게 사실을 틸어 놓아도 아직 그를 완벽하게 신뢰할 수 없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하지만 사실들을 숨기기에는 카디어스의 표정 관리가 되질 않았다. 숨기려고 해도 이미 모두 털어 놓은 것과 다름없는 사실인 것이다. 아토빌 공작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후! 어쩔 수 없군. 그래, 얼마 전에 습격을 받았네. 세 명의 8클래스 마법사와 오백여 기의 골렘들이 왔다네. 더군다나 세 명의 8클래스 마법사 중 한 사람은 넬리어스더군." "허어!" 엘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아일라스 제국의 초인은 아토빌 공작과 넬리어스 두 사람이다. 그런데 엘은 이곳에 들어서면서 카디어스가 그랜드 마스터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아본 상태였다. 때문에 아일라스 제국에 3명의 초인이 존재하는 게 아닌가 의구심을 가졌는데 설마하니 넬리어스가 배신을 한 것일 줄이야...... 그렇다는 건 카디어스가 한 사람의 8클래스 마법사를 감당했다고 해도 아토빌 공작이 두 사람의 8클래스 마법사를 상대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설마 공작님께서 두 명의 8클래스 마법사를 상대하신 건가요?“ 엘의 놀라운 외침에 아토빌 공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청탑주 라이젠과 녹탑주 레이벨이 합공을 해 오더군. 팔과 다리를 잘라 버렸지만 마법이 있으니 금세 회복할 것이 분명하지." "마법사에게 팔다리가 잘린 건 시간만 있으면 회복이 되니까요." 이것이 바로 마법의 무서움이다. 팔다리가 잘려도 치료 마법만 사용한다면 금방 회복을. 하니 말이다. 엘이 말을 이어 나갔다. "그래서 저는 아토빌 공작님에게 제안을 하러 온 거예요. 바로 서로가 어려울 때 힘을 합치자는 것이지요." "흐음. 힘을 합친다......“ 아토빌 공작이 제법 구미가 당기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의 입장에서 아직 엘을 완벽하게 신뢰하기 어려웠다. 하기야 갑자기 찾아와서 동맹을 맺자고 하니 그 누가 쉽게 믿을 수 있겠는가. 그런 아토빌 공작의 생각을 모를 엘이 아니다. 엘은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렇게 된다면 당면한 문제를 일깨워 그에게 사태의 심각성을 심어 줘야 한다. "공작님께서는 적의 규모가 어느 정도 되시는지 아십니까?“ “......” 알 리가 없다. 왜냐하면 그는 아일라스 제국에 암약하는 비밀 세력만 추격하기에 여념이 없었으니까. 그러니 엘의 정보에 귀가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엘이 그런 아토빌 공작에게 차분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적의 세력의 정점에는 9클래스 마법사가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 밑으로 무려 열 명의 초인이 존재합니다." “뭐......” 아토빌 공작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엘의 말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세상에 그랜드 마스터와 8클래스 마법사들을 규합할 이가 존재하지 않을 거라 믿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자존심이 하늘을 찌를 뿐만 아니라 각자 확고한 영역을 굳히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는 비밀 세력의 규모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초인 서넛이 합작을 한 것이 아닌가 의문을 품고 있었다. 그것도 그에게 있어서는 많이 포함시킨 것이다. 그런데 서넛이 아니라 무려 10명이라니? 더군다나 그 정점에는 9클래스 마법사가 존재한단다.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당장 9클래스 마법사라면 그보다 높은 경지에 다다른 이였기 때문이니 말이다. 대륙에 자신보다 강할 자가 없을 것이라 은연중 확신하던 아토빌 공작에게는 이 말이 무엇보다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역시 노장 중 노장. 그런 감정을 굳이 드러내 지 않은 채 물었다. "그 말이 모두 사실인가? 금탑주, 그대의 명예를 걸고?“ 높은 위치에 선 사람은 그만큼 명예를 중시하기 마련이다. 금탑주 또한 그것이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린 나이에 이 정도 위치까지 올랐으니 은연중 명예에 대한 집착이 대단할 것이다. "물론입니다. 제 명예를 걸지요." 엘은 시원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자신은 명예에 연연하지 않을 뿐더러 이렇게 해 서 아토빌 공작에게 믿음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이 최선이라 여겼다. "음, 좋네. 그래, 동맹을 맺자 했지? 사실 나로서는 그 제안이 그리 손해 보는 게 아닌 듯하군. 얼마 전에 나는 그들에게 습격을 받았으니 말이네. 게다가 그쪽에는 8클래스 마법사와 그랜드 마스터가 둘, 더군다나 골든 나이튼가 하는 나이트 골렘까지 있으니 나로서는 아주 만족스럽네. 자네가 바라는 건 내 힘이겠지?“ 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아토빌 공작님은 대륙 제 1기사로 그 이름이 높으니까요. 직접 이렇게 뵈니 그 소문이 사실인 것 같고요." "허허, 그렇게 봐 주니 기분이 좋군." 아토빌 공작은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다. 한참 신진 고수로 떠오르는 엘에게 칭찬을 들으니 제아무리 칭찬에 익숙한 그라도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행동거지나 마음가짐을 보아하니 추후 대륙을 주도할 인물일 것이 분명하다.' 엘을 바라보며 아토빌 공작은 눈을 빛냈다. 당대 제1기사라 불리는 그가 엘의 실력을 파악하지 못할 리가 없다. 게다가 그가 지닌 심정이나 대인 관계를 고려했을 때 추후 대륙을 주도할 인물은 눈앞의 금탑주일 것이 분명했다. ‘카디어스와 정식으로 인사를 시켜야겠군. 이참에 좋은 관계로 만들어 놓으면 좋을 테니까.' 그렇게 마음먹은 그는 자신의 옆에 앉아 있는 카디어스를 가리키며 소개했다. "앞으로 한 배를 타게 되었으니 이참에 제대로 인사를 나눠 보게나. 이 아이는 내 아들 카디어스라고 하네. 후일 내 자리를 물려받을 아이기도 하지." 카디어스가 엘에게 인사를 하였다. "카디어스라고 합니다.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금 탑주님." "저 또한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아토빌 공작님의 뒤를 이어 그랜드 마스터에 오르실 거라 기대 받던 카디 어스님이 이렇게 그랜드 마스터에 올라 계신 건 조금 뜻밖이지만요." "적탑주를 죽인 금탑주님에 비할 바가 되겠습니까." 겸양의 말을 내세우며 몇 마디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엘은 옆에 있는 아이넨스를 슬쩍 바라보았다. 엘이 아이넨스를 소개하려면 어느 정도 경계를 두어서 해야 할지 아니면 전부 소개해야 할지 애매했다. 왜냐하면 동맹 관계가 성립되었다고 해도 아직 완벽하게 믿을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항 때문에 엘은 아이넨스에게 어디까지 소개해야 할지 엘은 아이넨스의 사전 허락을 구해야 했다. 엘의 시선을 받은 아이넨스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깨닫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것을 말해도 좋다는 것이다. 아마 아이넨스는 대 륙 제1기사라는 아토빌 공작에게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싶지 않은 듯했다. 하기야 신검가의 자존심이 있으니...... 나직이 고개를 끄덕인 엘은 아이넨스를 소개하였다. "이분은 잠시 저와 함께 하고 계신 분으로, 대륙 오대 신검 중 하나인 디멘션 소드의 주인인 당대 신검가의 가주 아이넨스 님이라고 합니다. 요전에 제게 큰 도움을 주셨죠." 아토빌 공작과 카디어스의 얼굴에 놀라움이 서렸다. 디 멘션 소드라면 아토빌 공작이 지니고 있는 갓 소드와 함께 대륙 5대 신검 중 하나가 아닌가? 더군다나 디멘션 소드는 과거 마왕을 무찌른 전설의 검사가 쓰던 신검이다. 설마하니 그것을 계승한 당대 신검가의 가주가 대륙에서 활동하고 있었다니 아토빌 공작으로서는 정말 뜻밖의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아이넨스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반갑습니다, 설마하니 신검의 주인이었을 줄이야. 검을 다루는 이로서 신검의 주인을 꼭 만나 보고 싶었습니다." “대륙 제일 기사라 불리우는 아토빌 공작님의 명성은 익히 들어왔습니다. 아이넨스라고 합니다." 두 사람 모두 검으로 오를 수 있는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기에 서로에게 친밀감을 느꼈다. 아이넨스는 카디어스와도 인사를 나누었다. 그는 카디어스와 인사를 나누는 순간 그의 실력을 꿰뚫어볼 수 있었다. '과연 아토빌 공작가답다. 갓 그랜드 마스터에 들었지만 결코 대륙 십 대 그랜드 마스터에 처지는 실력이 아니야.' 속으로 감탄하며 아이넨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이 그랜드 마스터를 나누는 기준은 소드 마스터 보다 월등히 강력해진 오러의 위력과 주변의 마나를 한순 간 지배할 수 있는 마나 장악력이다. 소드 마스터가 부단히 수련에 매진한다고 해도 수백 중 한 사람만 오를 수 있는 경지가 바로 그랜드 마스터인 것이다. 비록 카디어스가 갓 그랜드 마스터에 올랐다고 하지만 그의 내부에 정돈된 마나는 지극히 차분했고, 그랜드 마스터에 오르면서 얻은 깨달음을 모두 자신의 것으로 체득 한 듯했다. 보통 그랜드 마스터에 오르고 나서 이런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만으로도 어렵다. 바로 한발 먼저 앞으로 나간 스승 혹은 선배가 앞길을 제대로 잡아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카디어스는 아토빌 공작이라는 훌륭한 스승이자 선구자의 도움으로 그랜드 마스터의 힘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든 상태였다. 그를 보고 있자니 아토빌 공작이 얼마나 뛰어난 실력을 지녔는지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아이넨스가 인사를 나누자 엘은 옆에 있던 엘리엔을 슬쩍 바라보았다. 그녀 또한 숨길 것 없다는 듯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엘은 엘리엔을 가리키며 그녀를 소개하였다. "이분의 이름은 엘리엔. 머나먼 엘프 숲에서 파견된 엘프들의 수호검주이십니다. 대륙이 피로 물들 것을 염려한 엘프 대장로님께서 그녀를 파견하여 저희에게 힘을 보태 주고 계시죠." "엘프의 수호검주?“ 아토빌 공작의 눈이 다시 한 번 빛났다. 사실 그는 엘프의 수호검주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 왜냐하면 엘프에 대한 정보가 인간에게 전해진 것은 극히 미미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토빌 공작이 눈을 빛낸 까닭은 바로 엘리엔의 기도 때문이다. 이렇게 눈부신 여인이 말로만 듣던 엘프라니. 하기야 엘프가 아니라면 이렇게 아름다운 외모를 지니고 있지 못할 것이다. 그제야 아토빌 공작은 이토록 젊은 여인이 이렇듯 고강한 실력을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랜드 마스터에 오른 검사는 상대가 그 기세를 숨기지 않을 경우 한눈에 상대방의 실력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이미 그랜드 마스터 중 최상위의 경지에 이른 아토빌 공작은 엘리엔의 실력이 자신의 실력에 비해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은연중 느끼고 있던 것이다. 순수한 실력으로 따지면 아마 엘리엔이 아이넨스보다 한수 위일게 분명하다. 물론 신검의 위력과 실전 경험을 모두 종합한다면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엘프라면 아토빌 공작 본인보다 나이가 많을 확률이 높았기에 그는 정중하게 인사를 하였다. "아토빌 공작이라 합니다. 부족하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허허." “......” 엘리엔은 아토빌 공작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사실 그녀는 아토빌 공작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고강한 실력에 비해 그의 속내는 따로 있는 듯했다. 엘프들은 그 특성상 거짓을 말하거나 속내를 숨기는 자를 무척 싫어한다. 거짓과 진실을 꿰뚫어보는 그들의 눈은 그런 특징을 가 진 자에게 매번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토빌 공작이란 사람은 전형적인 인간이었다. 다른 꿍꿍이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걸...... 하지만 그녀는 이미 엘과 약속을 한 상태다. 인간들을 마냥 나쁘게 생각하지 않고 가급적 인간 세상에 적응하고 함부로 검을 뽑지 않기로 말이다. "엘리엔이에요." 엘리엔은 아토빌 공작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것이 끝이었다. “......” 짤막한 인사로 장내는 잠시 침묵에 잠겼다. 이런 분위기를 타파한 것은 다름 아닌 아토빌 공작이었다. "이러지 말고, 어떻게 식사라도 함께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는 노장답게 허허 웃음을 지으며 분위기를 바꾸려 하였다. 사람들의 정체를 알게 되니 엘에게 함부로 말을 낮출 수도 없었다. 그만큼 신검의 계승자가 주는 무게감과 엘프 수호검주의 무게감은 아토빌 공작에 비해 결코 꿀릴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저야 상관없습니다. 어떻습니까, 아이넨스님, 엘리엔님?" 엘은 두 사람을 보며 묻자 그들은 상관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는군요." 엘이 아토빌 공작을 보며 말하자, 아토빌 공작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섭섭하지 않을 만한 대접일 것입니다." 똑똑. 그때, 노크가 들려오더니 다급한 안색의 한 기사가 빠르게 아토빌 공작에게 다가왔다. "무슨 일인가?“ 아토빌 공작의 물음에 기사가 잠시 머뭇거렸다. 손님을 맞이하고 있는 자리에서 할 말이 아닌 듯싶었기 때문이다. 그 뜻을 알아차린 아토빌 공작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카디어스에게 눈짓을 하자 카디어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기사에게 다가갔다. 기사는 카디어스의 귓가에 사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설명이 이어질수록 카디어스의 표정이 굳어지기 시작했고, 모든 이야기가 끝나자 그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기사가 예를 취하며 방을 벗어났다. "아버지!" "무슨 일이냐?“ 카디어스는 아토빌 공작을 보며 심상치 않은 표정을 짓자 아토빌 공작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 엘 등에게 양해를 구한 카디어스는 아토빌 공작에게 작은 소리로 방금 들었던 것을 속닥거리기 시작했다. "으음!" 카디어스의 말이 이어질수록 아토빌 공작의 안색이 급속도로 굳기 시작했다. 모든 이야기를 듣고 나서도 아토빌 공작의 굳은 안색은 한동안 풀어지지 않았다. 한참 후에 아토빌 공작이 입을 열었다. "허허, 거참 큰일이로고. 금탑주." "예, 공작님. 무슨 일이 있으신지요?" “막 동맹을 맺었으니, 지금 당장도 유효한 것이겠지?" “물론이죠. 그런데......” 아토빌 공작의 말에서 심상치 않은 기류를 느낀 엘이 그를 슬쩍 바라보자 아니나 다를까, 아토빌 공작이 침중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그럼 나를 도와주게. 아마 적들이 한 번 실패를 하고 마음을 단단히 먹은 듯하네." "그들이 왔다는 거로군요." 엘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갔다. 지금은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미 저쪽에서는 아일라스 제국을 장악하려다가 한차례 실패를 하였다. 그렇다면 아일라스 제국을 차지하기 위해 충분한 힘을 보냈을 터. 분명 처음 파견한 8클래스 마법사 3명보다 월등히 많은 전력을 파견했을 것이다. "물론이에요. 이번 기회가 어쩌면 절호의 기회일 수도 있어요. 왜냐하면 저들은 저희들을 감안하지 못했을 확률이 크니까요." 엘의 말이 사실이었다. 적들은 분명 그들을 감안하지 않고 병력을 파견했을 테니 이번 일을 오히려 기회로 삼아 적들을 일망타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전환시킬 수 있다. "도와주실 거죠?“ 엘이 아이넨스와 엘리엔에게 시선을 옮기며 물었다. 두 사람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이참에 루이아스가 직접 온다면 좋겠군." "엘프 숲을 위한 것이라면 기꺼이." "좋아......“ 두 사람의 찬성에 엘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아토빌 공작을 보며 말했다. "도와드리겠습니다. 이참에 아일라스 제국을 노리는 그들의 야망을 송두리째 없애버리도록 하죠." "허허, 고맙네." 아토빌 공작은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했다. 만약 자신이었다면 돕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에게는 하등 득이 될 것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극도로 이기적인 인물이다. 때문에 대륙의 안위에 큰 신경을 쓰지 않는다. 지금 침공한 적도 그러하다. 자신이 금탑주였다면 아일라스 제국과 적 세력이 서로 상잔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확실한 아군이 될 수 없는 이를 적과 상잔시키는 것만 큼 이로운 전개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그러지 않았다. 어려움에 처하게 된 자신을 외면하지 않았다.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라면 최소한 한 가지를 뜻한다. 바로 그들이 자신을 확실한 아군으로 여긴다는 것. 사람의 믿음은 모름지기 상대에게 호감을 자아내기에 아토빌 공작은 눈앞의 금탑주에게 호감이 생기는 걸 느꼈다. "그럼 곧장 그곳으로 가지요. 황궁으로 곧장 갈 수 있는 마법진이 설치되어 있으니 말입니다." 아토빌 공작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카디어스도 뒤따라 일어섰다. "알겠습니다. 과연 적들이 얼마나 왔을지 궁금하군요." 엘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아이넨스와 엘리엔도 뒤따르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섯 사람이 방을 나섰다 그리고 황궁으로 통하는 마법진을 통해 곧장 황궁으로 향했다. 그들 중 초인이 아닌 이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무려 5명의 초인! 이들의 앞을 누가 막을 것이란 말인가! 9. 마검의 주인 루이넨스 "이럴 수가......“ 엘은 갑작스런 마나 유동과 함께 황궁 앞에 나타난 존재들을 보고는 입을 떡 벌렸다. 그처럼 반응이 격하지는 않았지만 아토빌 공작 등 또한 그 반응이 딱히 다르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모습을 드러낸 이들 중 사람이 7명에 골렘이 500여 기였기 때문이다. 저번 침공 때 사람은 딱 3명이었다. 바로 청탑주 라이젠과 녹탑주 레이벨이 그 둘이었다. 그들은 아토빌 공작과 맞서다가 갓 소드에 의해 팔과 다리가 잘려 급히 도망갔다. 마법으로 잘려진 사지를 회복시킨다 해도 최소 몇 달은 정양해야 할 상처인 것이다. 하지만 지금 모습을 드러낸 그들의 모습은 멀쩡하기 그지없었다. 불과 1달밖에 지나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그들 의 회복은 너무 빠르다고 할 수 있었다. 이번 침공에는 그들 둘만 온 것이 아니다. 저번에 공식 적으로 아일라스 제국을 배신했던 넬리어스도 함께 했으며, 이미 장악당한 데이제크 제국의 갈탑주 데리오머도 함께 했다. 게다가 1명의 중년인과 1명의 노인도 그들과 함께 하고 있었으며, 마지막으로 전신을 흑색 갑주로 감싼 기사 1명이 서 있었다. 엘이 놀란 것은 바로 그들에게서 풍겨 오는 기세 때문 이었다. 골렘들과 모습을 드러낸 일곱 사람 모두가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그랜드 마스터 혹은 8클래스 마법사였기 때문이다. 세상에 초인의 경지에 다다른 이가 무려 7명이나 모습 을 드러내다니! 이는 적들이 아토빌 공작을 얼마나 확실하게 제거하려는지 반증해 주는 바였다. 한차례 실패를 겪었으니 그만큼 아토빌 공작을 높게 평가하는 것일 수도 있다. 만약 평상시대로 대비하고 있었다면 아토빌 공작과 카디어스는 저들을 막아 낼 수 없었을 것이다. 제아무리 그랜드 마스터 중 최강의 경지에 다다랐다 하여도 무려 7명, 그중 5명이 달려들어도 아토빌 공작이 막아 낼 재간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지금은 엘 등이 이곳을 방문한 상태다. 엘이 있다는 것은 곧 그의 수호기사인 골든 나이트도 있다는 뜻, 그뿐만이 아니라 그를 잠시 따라다니는 신검의 주인 아이넨스와 엘프의 수호검주 엘리엔이 그와 함께 있는 상태다. 저쪽에 초인이 무려 7명이나 존재했다면 이쪽에는 무려 6명의 초인이 버티고 있던 것이다. 대륙에 20명밖에 없다고 알려진게 바로 초인이다. 그런데 그 초인이 아일라스 제국 황궁 앞에 무려 13명이나 모여 있었다. 세상이 알면 하늘이 놀라고 땅이 경을 칠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모습을 드러낸 라이젠 등은 한동안 아토빌 공작 등과 함께 서로를 노려보기만 하였다. 지난날 서로에게 씻을 수 없는 원한이 얽힌 만큼 결코 그 시선이 고울 리 없는 것이다. "오랜만이다, 아토빌 공작." 라이젠이 으르렁거리며 말하자 아토빌 공작은 입가에 살짝 웃음을 띠었다. 지난번 대결 승자의 여유였다. “난 별로 반갑지 못하군. 그때 팔이 잘려 돌아가던 모습 그대로 남은 생을 살길 바랐는데 말이야." “......” 조롱기 가득한 아토빌 공작의 말에 라이젠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지만 함부로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이미 그는 아토빌 공작의 압도적인 실력을 겪어 보았기 때문이다. 가볍게 한숨을 쉼으로써 호흡을 가다듬은 라이젠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말했다. "그때는 우리가 패했지. 그걸 인정한다. 하지만 오늘은 어떨까." "허허, 같이 온 동료들을 믿는가 보군?“ 아토빌 공작이 옆에 선 이들을 가리키며 묻자 라이젠은 표정이 풀어지며 입가에 웃음이 떠올랐다. "그렇고말고. 믿을 수밖에 없는 동료들이지, 왜냐하면 이들 모두가 초인의 경지에 다다른 이들이기 때문이다." "음." 이미 짐작은 했지만 신음이 흘러나오는 건 어쩔 수 없다. 초인 7명이 자신을 제거하기 위해 오다니. 하마터면 야망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제거당할 뻔했다. 그런 전개를 생각하니 절로 가슴이 서늘해짐을 느끼는 아토빌 공작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도 지금 믿음직한 아군이 존재한다. 순식간에 여유를 되찾은 아토빌 공작 또한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분명 대단한 동료라 할 수 있군, 만약 하루라도 일찍 왔다면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겠어. 하지만 지금은 나에게도 든든한 아군이 왔지. 동료들을 데리고 온 그대들에게 내 동료를 소개시켜 주고 싶군." 아토빌 공작의 시선이 엘에게 향하자 엘이 앞으로 나서며 라이젠을 향해 입을 열었다. "대륙에 위명이 자자한 청탑주 라이젠 선배님을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저는 부족하지만 금탑을 이끌고 있는 엘리미스라고 합니다." 엘의 소개에 라이젠이 잠시 석상이 되어 굳었다 그리고 경악이 담긴 어조로 입을 열었다. "금......탑주?" “제가 바로 금탑주입니다. 청탑주님." 엘이 살짝 웃음을 지은 채 자기소개를 하자 아토빌 공작이 빙글빙글 미소를 지은 채 입을 열었다. "어떤가, 내 새로운 동료가, 꽤 든든하지 않은가?“ 금탑주라면 적탑주 카로스만을 죽인 그들의 최우선 척살 대상이다. 그런 그가 설마하니 아토빌 공작과 손을 잡을 줄이야. 루이아스는 아토빌 공작과 금탑주가 자신의 대계에 가장 방해가 될 인물이라 지정하였다. 아토빌 공작은 이미 대륙 제1기사로 이름이 높은 절대 검사였고, 금탑주는 한창 실력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신진 고수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7클래스 경지였던 것이 순식간에 8클래스로 올라섰으니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다. 때문에 그는 아토빌 공작보다 위험한 인물로 지정되어 있는 상태이며, 신검의 주인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기에 막상 전력을 동원하기도 무척 난감한 상태이기도 했다. 게다가 그에게는 골든 나이트가 있다. 즉, 그가 있다면 그 혼자가 아닌 골든 나이트도 함께 있다고 가정을 해야 한다. 단번에 제거 대상이 2명에서 넷으로 늘어나 버렸다. 하지만 이쪽의 초인은 무려 7명. 더군다나 아토빌 공작을 루이넨스가 감당할 수 있다는 가정하에 그들은 자신들 두 명을 감당해야 하는 실정이다. 개개인의 실력 면에서 자신들의 우위가 분명한데 2명이 협공을 하게 되면 누구에게 승산이 있을지 뻔했다. 그러나 라이젠은 아토빌 공작의 입가에 서린 미소가 불안했다. 금탑주라는 패를 숨겨 두고 있을 줄 누가 알았는가. 엘의 정체를 알고 나니 라이젠은 엘의 양옆에 서 있는 일남일녀의 정체도 범상치 않아 보였다. 라이젠의 시선이 아이넨스와 엘리엔에게 못 박혀 있자 엘은 빙긋 웃으며 그들을 간략하게 소개하였다. "이분들은 결코 저에게 뒤처지지 않는 실력자들이십니다. 그러니 그렇게까지 기대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으음, 역시......“ 라이젠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로서 4대7에서 단번에 6대7로 되어 버렸다. 압도적인 구도에서 단번에 팽팽한 구도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루이넨스가 있는 시점에 초인의 우위는 그들에게 존재한다. 예상보다 힘들어질 거라 생각되지만 패배는 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라이젠의 시선이 흑색 갑주를 입은 인영에게 시선이 향했다. 그의 정체는 다름 아닌 루이넨스. 루이아스의 호위기사이자 그들이 속한 조직에서 루이아스를 제외하고 가장 강한 힘을 보유한 그랜드 마스터가 바로 루이넨스다. 지금 이곳에서 가장 서열이 높은 자는 다름 아닌 루이넨스였기에 라이젠은 루이넨스에게 보고하듯 말하였다. "나와 레이벨은 금탑주를 맡겠습니다. 경께서는 아토빌 공작을 맡아 주시기 바랍니다." 라이젠의 말에도 불구하고 루이렌스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묵묵히 시선을 들어 한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바로 아이넨스가 서 있었다. 아이넨스 또한 루이넨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 동안 서로를 바라보던 그들은 비슷한 시기에 서로에게 시선을 뗐다. 그러고는 루이넨스가 투구 사이로 가는 목소리를 내며 입을 열었다. "분명 마스터의 안배에 의하면 내가 아토빌 공작을 맡는 게 의당 옳다. 하지만 이번 일에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있군. 저자는 바로 당대 신검의 계승자다." "신검이라면......“ 놀란 라이젠의 시선이 아이넨스에게 향했다. 범상치 않은 자라 여겼지만 설마하니 신검의 계승자일 줄이야. 이미 신검의 계승자가 그랜드 마스터에 이른 것은 그들의 조직에 포착된 상태였다. 그랜드 마스터에 이른 실력과 신검의 조합이라면 그 어떤 존재라도 쉽게 제압할 수 없다. 당장 라이젠 본인조차 그에게 승리를 점칠 수가 없었으니 아토빌 공작에게 버금가는 성가신 존재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런 라이젠에게 루이넨스의 음성이 들려왔다. "나는 저자와 해묵은 원한이 있다. 그러니 너와 레이벨은 아토빌 공작을 맡아라. 이미 한 번 상대한 경험이 있으니 또다시 어처구니없이 당하지 않을 거라 믿는다." 라이젠의 음성이 불퉁스러워졌다. "물론입니다. 우리를 얕보지 마십시오." "한번 쓴 경험을 당했으니 괜찮겠지. 그리고 넬리어스는 저 카디어스와 겨뤄 보았다고 하니 그를 제거하게 하고 샤이어드와 실로프는 금탑주와 골든 나이트를 제거하게 하라. 금탑주와 골든 나이트의 합공은 주의할 만한 것이라 하셨으니 합공에 능한 그들이 나서는 게 좋다." 거기까지 말한 루이넨스가 짙은 안광을 뿜어냈다. 그리고 엘리엔을 가리키며 말했다. "데리오머에게는 저 여인을 상대하라. 명심해라. 데리오머에게 공격할 생각은 하지 말고 방어만 하라고 해라." "그게 무슨 말입니까?“ 분명 강해 보이기는 하지만 저 여인은 자신이 상대해도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 거라 보였다. 그런 자신에 비해 한 수 떨어지지만 결코 부족하지 않은 실력을 지닌 데리오머 더러 방어에만 몰두하라니...... 라이젠으로서는 의문이 아닐 수 없었다. 루이넨스가 엘리엔을 바라보았다. 주변에 퍼진 마나와 완전한 일체감을 이루고 있는 그녀는 일견하기에 그리 강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루이렌스는 알 수 있었다. 엘리엔의 힘이 결코 자신에 못지않다는 것을...... 단번에 엘리엔의 실력을 파악한 그는 라이젠에게 말했다. "저 여인은 결코 나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 실력이다. 아마 아토빌 공작과 붙어도 결코 지지 않을 거라고 장담 할 수 있다. 그러니 방어만 하라고 하라. 내가 최대한 신검의 주인을 제거하고 돕겠다. 그러니 방어에만 치중하라고 해라." 놀라운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랜드 마스터 중 최강이라 불릴 만한 루이넨스와 팽팽하게 맞설 수 있는 강자가 또 존재했다니...... 과연 세상은 넓다는 것을 새삼 느끼며 라이젠은 수긍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강자를 파악하는 실력은 루이넨스가 월등했기 때문이다. 라이젠의 시선이 데리오머에게 향했다. 생각해 보니 데리오머는 공격보다 방어에 훨씬 능한 마법사였다. 주로 대지 계열의 마법을 사용하는 그는 파괴적인 면보다 방어적인 면이 강했으니 말이다. 데리오머라면 저 여인의 공세를 충분히 막고도 남을 것이다. 그것을 모두 감안한 루이넨스가 굳이 한 수 떨어지는 데리오머를 저 여인을 상대하게끔 한 것이다. "이미 모든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부탁하겠다, 데리오머." "물론입니다. 제게 맡기시지요." "그럼 각자의 적을 상대하도록 하지. 최대한 빨리 적을 제거하고 아군을 돕도록, 상대를 얕보다가 어이없이 당하지 말길 바란다." 모두의 상대가 각각 배정되자 라이젠과 레이벨이 제일 먼저 앞으로 나섰다. 이미 황궁 앞은 그들의 대결을 위해 텅 비어 있는 상태였다. 무려 10만의 군대를 주둔 시킬 수 있는 집결지인 만큼 그들이 싸울 공간은 넓고 넓었다. 초인들이 첨예하게 대립하기 시작하자 기사들과 골렘들은 반사적으로 물러났다. "한 달 전에는 신세를 졌다. 하지만 오늘은 당하지 않을 것이다." 라이젠이 사나운 어조로 으르렁거리자 아토빌 공작은 여유롭게 대꾸했다. "기대해 보도록 하지." "그때는 신세를 졌으니 쉽게 당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레이벨도 그때의 경험을 떠올리며 인상을 일그러뜨린 채 그의 말을 맞받아쳤다. "말로는 절대 믿음을 줄 수가 없지. 행동으로 보여 봐라." 아토빌 공작의 말과 함께 그들의 폭발적인 기세가 치열 하게 대립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시작으로 곳곳에 대립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 아이넨스는 굳은 얼굴로 흑색 갑주를 걸친 루이넨스를 응시했다. 전신이 흑색 갑주로 감싸 있어 그 용모를 확인할 수 없었지만 그는 루이넨스를 보는 순간 단번에 그 정체를 간파할 수 있었다. 얼굴을 가린다고 그 사람이 지닌 고유의 기세가 어디 사라지겠는가. 아이넨스는 루이넨스 특유의 기세를 기억하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그는 루이넨스의 하나뿐인 동생이었으니 말이다. 루이넨스가 자신에게 다가오자 아이넨스가 드물게 떨 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야......" “그래, 오랜만이네." 아이넨스의 말에 루이넨스가 담담하게 대꾸했다. "그동안 잘 지냈어?“ “지금 이 자리에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지 않나. 너는 지금 나의 앞을 가로막는 적의 입장이야. 적에게 나의 근황을 말할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우리는 가족이잖아." 아이넨스의 말에 루이넨스가 코웃음을 쳤다. 그것은 가식적인 것이 아닌 진심으로 비웃음을 내포하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이어져온 차별적인 대우로 난 스스로 가족을 버렸어. 너 또한 내가 가족을 버린 순간부터 남이 되었어. 비록 한 부모 밑에서 태어났고, 한 부모 아래서 자라났다고 해도 지금은. 너와 난...... 남이야." 루이넨스의 말이 충격적이라는 듯 순간 비틀거리는 아이렌스. 그는 절규하듯 소리쳤다.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난 인정 못해. 왜냐하면 내 누나잖아!" 누나! 그렇다면 루이넨스는 여자란 말인가? 아이넨스의 말에 루이넨스가 비웃었다. "그래, 너의 누나였지. 그리고 그것 때문에 내 운명은 기구해졌고......“ 루이넨스는 그녀 본인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아이넨스와 루이넨스가 태어난 가문은 대륙 5대 신검 중 하나인 디멘션 소드를 계승하는 신검의 가문이다. 마왕을 벤 그들의 가문은 대륙에서 경외의 대상으로 존경을 받으며 수많은 검사들 위에 군림했다. 하지만 그 명성도 힘이 있어야 유지가 가능한 법이다. 그들은 선대의 마나 연공법에 당대 신검 계승자의 깨달음이 첨가되어 보완에 보완을 거듭해 온 최고 수준의 마나 연공법을 익히고 어렸을 때부터 체계적인 가르침을 받아 그 실력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다. 신검가의 가문은 보통 1명의 후손을 본다. 왜냐하면 신검의 힘이 워낙 막강하여 만약 그것을 차지하기 위해 형제끼리 피를 볼 경우 엄청난 파장이 되어 주변으로 번져 나갈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례적으로 신검가에 2명의 아이가 태어나게 된다. 바로 남녀 쌍둥이가 태어난 것이다. 처음에 신검가 사람들은 그 사실을 별달리 신경을 쓰지 않았다. 여성들이 검을 익히는 데 극도로 제한된 시대에 후계가 될 아이는 엄연히 하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커 검술을 본격적으로 익힐 나이가 되었을 때 사태는 심각하게 된다. 여자 아이가 지닌 검에 대한 재능은 그야말로 천재들도 울고 갈 만큼 엄청난 것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남자 아이의 자질도 떨어지지 않는다. 그 아이 또한 천재들보다 월등히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남자 아이조차 차마 여자 아이에게 견줄 수 없을 정도로 그 자질이 뛰어났다. 하나를 알면 열을 아는 정도가 아니라 그 열애 곱의 곱을 하여 백이고 천이고 깨달으니 그 재능이 얼마나 대단하단 말인가. 단순히 호신용으로 가르친 기초 검법으로 여자 아이는 신검가의 검법과 견줄 수 있는 검법을 3년 만에 창안하였다. 그뿐만이 아니라 남자 아이를 검술 대결로 꺾어 버리는 엄청난 일을 벌인다. 신검가의 후계자는 단순히 마나 연공법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가문 어른들의 수많은 지원 아래 나이에 허용할 수 있는 마나를 극으로 지니게 되며, 때가 되면 마스터의 경지에 들기 위해 깨달음을 전수하기 시작한다. 앞으로 나아간 선구자들의 수많은 지원 아래 수련을 하게 되니 그 실력은 독보적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아이를 아무런 도움도 받지 않은 여자 아이가 꺾은 것이다. 그것도 단순히 검술로 이긴 것이 아닌 막강한 오러의 위력도 동반된 상태였다. 그 당시 아이넨스와 루이넨스의 나이는 열다섯이었다. 아이덴스는 열다섯의 나이에 소드 익스퍼트 상급의 경지에 이른 상태였다. 역대 신검가 계승자들 중 가장 빠른 성취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때 루이넨스는 이미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나이의 한계를 완전히 깨 버린 것이다. 이 믿을 수 없는 사실에 신검가 어른들은 회의에 회의를 거듭하였다. 루이넨스의 자질이 너무 뛰어나 그들로서는 미처 감당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루이넨스는 신검의 계승자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그녀는 모든 혜택이 아이넨스에게 돌아감에도 그보다 자신이 뛰어난 것을 증명하고자 잠까지 아껴 가며 수련에 몰두했다. 신이 내려 준 재능과 노력이 결합되니 그 실력의 증진은 엄청날 수밖에 없었고, 아이넨스가 소드 마스터에 이르러 본격적인 신검 계승 수업을 받을 때 루이넨스는 그랜드 마스터를 목전에 바라보는 최상급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이른다. 이것이 바로 20살의 나이에 이룬 성취니 그것은 그야 말로 인간의 성취라 보기 힘들 정도였다. 때문에 지난날 수십 수백 번 회의를 거듭하던 신검가 어른들은 마침내 루이넨스의 검술을 박탈하자는 의견을 내게 된다. 신검의 계승을 여자가 하면 안 된다는 편견에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이다. 그와 같은 어른들의 결정으로 루이렌스는 마음에 엄청난 상처를 입게 된다. 모두가 자신을 보아 주었으면 했기에, 신검의 계승자가 되고 싶었기에 그토록 열심히 수련에 몰두했는데 그것이 역으로 그녀에게 돌아온 것이다. 루이넨스는 극도로 분노했다. 자신을 버린 가문의 어른들이 싫었고, 자신이 했어야 할 신검의 계승을 이어받은 아이넨스가 싫었다. 그녀의 눈에 아이넨스는 한없이 둔재로만 보였던것이 다 자신보다 못한 아이넨스가 신검을 계승하다니. 만약 아이넨스가 없었다면 신검의 계승을 그녀가 했을 것이다. 고작 여자라는 이유로 모든 것을 빼앗으려 한 것에 분노한 그녀는 신검가를 나가기에 이른다. 그리고 7년 전 돌연 20명의 사람을 데리고 와 신검가를 철저히 파괴하였다. 신검가 사람들은 침입자들을 막으려 했지만 이미 그랜드 마스터에 이른 그녀의 검을 막을 자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그녀가 데려온 부하들 또한 모두 소드 마스터에 이른 이들이었기에 신검가는 그날 바로 멸망하게 된다. 하지만 그때 그녀는 아이넨스를 죽이지 못한다. 그는 이미 신검을 모두 계승하고 대륙을 둘러보라는 명령하에 대륙을 떠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륙을 여행하고 돌아온 아이넨스를 반긴 것은 처참하게 짓밟힌 가문뿐이었다. 그는 유일한 생존자를 만나 루이넨스가 루이아스라는 사람에게 몸을 의탁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그가 대륙 최초 9클래스 경지에 이른 마법사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정보들 모두가 아이렌스가 자신을 찾아오도록 하게끔 하려는 루이덴스의 함정임을 그는 꿈에도 몰랐다. 그 정보들을 바탕으로 아이넨스는 다시 대륙에 나와 루이넨스를 찾아 대륙을 떠돌았고, 그 과정에 엘을 만나고 여러 가지 일에 얽힘으로써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난 네가 무척 싫었어. 너만 없었다면 신검의 주인은 내가 되었을 거야.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너보다 월등히 뛰어나던 나를 내치다니. 나이만 잔뜩 먹은 그들은 너무 어리석었어." 루이넨스가 검을 들어보였다. 검은 전체적으로 검은색을 띠고 있었는데, 검날에서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예기는 단번에 베어 버릴 듯한 폭발적인 기도를 품고 있었다. 그녀는 검을 가리키며 말했다. "신검의 주인이 되는 데는 실패했지만 난 염원을 이룰 수 있었어. 바로 마검의 주인이 되었거든." “마검......!" 아이넨스가 경악에 찬 표정을 지었다. 이 세상에서 마검이라 불릴 만한 검은 바로 하나밖에 없다. 분노를 괴리하는 절망의 마검. 디스피어 소드(Despair) 소드라 불리는 마검은 대륙 5대 신검에 비해 결코 부족함이 없는 최강의 검 중 하나다. 5대 마병은 5대 신검에 비해 결코 부족함이 없는 저주 받은 마물이기 때문이다. 아니, 살상을 하는 면에 있어서 디스피어 소드는 신검을 뛰어넘는 면이 있었다. 아이넨스가 검을 뽑아 들었다. 디멘션 소드였다. "마검이라면 주인의 정신을 갉아먹는 마물. 그것에 잠식되는 걸 보고만 있을 순 없습니다." "네가 날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해? 넌 어렸을 적 날 한 번도 이기지 못했어." 루이넨스의 입가에 가소롭다는 미소가 떠올랐다. 실제로 어린 시절 그는 그녀를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오히려 압도적인 패배만 당했을 뿐. 그것을 떠올린 그녀가 그런 말을 할 만도 했다. 하지만 아이넨스의 의지는 확고했다. "난 포기하지 않아요. 고된 수련을 버티고 신검의 계승자가 된 것처럼 난 누나가 나쁜 길로 가는 것을 끝까지 막을 것입니다. 비록 가족을 해쳤다고 하나 누나는 저의 가족이니까요." "네가 날 막을 수 있다면 그걸 진지하게 생각해 보겠어." 두 사람 사이에 폭발적인 기세가 서로를 향해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한때 가족이었던 두 사람이 지금은 서로의 목숨을 노리고 검을 겨눈 사이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것도 검사들의 정점이라는 그랜드 마스터가 되어서 말이다. 선공은 아이넨스가 하였다. 그는 자신의 실력이 루이넨스보다 부족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상태였기에 선기를 잡아 최대한 승기를 살리고자 초반부터 강수를 두어 공격해 들어갔다. 번쩍! 디멘션 소드에서 뻗어 나간 오러가 세 갈래로 나뉘며 번개 치듯 빛을 발하며 루이넨스를 조깨 갔다. 동급의 실력자라고 해도 움찔 할 법한 절정의 쾌검이었다. 하지만 그런 공격에도 루이넨스는 눈썹 하나 꿈틀하지 않았다. 아이넨스의 공격이 시작되는 순간 그녀는 그가 무슨 공격을 펼치려는지 단번에 파악했다. 한 배에서 태어난 쌍둥이다. 서로의 생각을 모른다면 말도 안 되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녀는 신검가의 일원이었기에 신검가의 검법에 더없이 해박하다. 아이넨스의 검이 뻗어 오는 순간 루이넨스의 몸이 흔들거리더니 그가 쏘아 보낸 세 줄기 오러를 간단한 고갯짓으로 모두 피해 버렸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검이 매끄럽게 뻗어 나왔다. 마치 뱀과 같은 영활한 궤적을 그리면서 동시에 파악할 수 없는 검의 움직임은 아이넨스를 당혹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헉!" 헛바람을 집어삼키며 아이넨스가 재빨리 검을 치켜들었다. 신검가의 검법을 꿰고 있는 루이넨스에 비해 그는 루이넨스가 구체적으로 무슨 검법을 익힌지조차 모르는 상태였다. 넓게 검을 펼친 그는 루이넨스가 뻗어 오는 검 전체 영역을 방어하고자 하였다. 루이렌스의 입가에 미소가 서렸다. "좋은 판단이야. 하지만......“ 따앙! 그와 그녀의 검이 부딪쳤다. 그 순간 서로의 푸른 오러가 자욱하게 뿜어졌고, 곧이어 눈부신 폭발과 함께 부서진 오러의 파편이 사방에 튀겼다. 파바박! 여기서 그들의 우열이 단번에 드러났다. 루이넨스의 공격을 받은 아이넨스가 그녀의 오러가 지닌 위력을 견뎌 내지 못하고 뒤로 주르륵 밀려난 것이다. 오러의 위력에서 루이넨스가 훨씬 위를 점하고 있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루이덴스가 훈계하듯 말했다. "오러는 몸속에 고이 모셔 두는 보물이 아니야. 대장간의 쇠처럼 끊임없이 두들겨야 더욱 단단해지는 것처럼 오러 또한 단련에 단련을 거듭해야 그 위력이 강해지는 법이지. 대결에서 오러의 위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잖아? 그런 점에서 신검가는 수련법이 잘못되었어. 오러의 위력을 세월에 의지하여 강화할 생각이나 하다니. 그러니 결국 몰락했지만 말이야." 아이넨스는 얼굴을 찡그린 채 아무런 말도 못했다. 사실 그는 루이넨스의 말에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설마하니 오러를 그런 식으로 강화시켰을 줄이야. 그 또한 여태껏 오러는 세월이 지날수록 그 위력이 강해진다는 걸로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신검가의 어른들이 그렇게 가르쳤기 때문이다. 이것은 비단 신검가뿐만 아니라 대륙에 존재하는 기사들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설마하니 루이넨스는 그런 발상을 깨버리고 오러를 단련할 생각을 할 줄이야. 만약 결과를 보지 않았다면 허황된 사실로 생각할 만한 이론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루이넨스는 방금 전 충돌의 결과로 그녀의 이론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했다. 그녀의 오러는 무지막지하다고 할 정도로 엄청난 위력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과연...... 정말 대단해. 하지만 난 지지 않아. 내가 당대 신검의 계승자가 된 것은 그만큼의 자격이 있기 때문이야. 대륙을 수호하는 신검의 힘을 보여 주겠어!" 가까스로 충격에서 벗어난 아이넨스는 이를 악물고 루이넨스를 향해 말했다. 루이넨스에게는 여유가 넘쳤다. 그에게는 신검이 있다면 그녀에게는 마검이 있다. 결코 꿀릴 것이 없는 것이다. 오히려 미소를 지어 보이며 그녀는 검을 까닥였다. "능력이 된다면 얼마든지, 하지만 디멘션 소드의 힘은 내게 먹히지 않아." “......” 사정없이 깔아뭉개는 그녀의 말에 아이넨스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디멘션 소드에 오러를 불어넣었다. 차원을 지배하는 신검은 공간 그 자체를 지배한다. 신검가의 검술은 이 신검에 맞게 발달되어 있으며, 이 검법을 완벽하게 익혀 낼 경우 디멘션 소드의 검을 피해 갈 검 사는 없다고 한다. 아이넨스는 이 검법을 거의 완벽하게 익힌 상태였다. 이 정도라만 대륙 그 어느 그랜드 마스터라도 그의 검을 받아 내기 힘들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아이넨스는 알고 있을까? 루이렌스는 이미 그 검술을 완벽하게 다 익힌 상태라는 것을...... 즉, 신검을 사용하는 순간부터 아이넨스는 한수 지고 들어가는 상태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그것을 모를리 없는 아이넨스지만 그에게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한 가지 비장의 수도 있고...... 아이넨스의 검이 움직이는 순간, 수십 갈래의 오러가 루이넨스를 뒤덮기 시작했다. 공간을 지배하는 디멘션 소드의 힘이 본격적으로 발휘되기 시작한 것이다. "제법인데?“ 루이넨스의 눈에 감탄이 떠올랐다. 아이넨스의 오러 수발과 신검의 응용이 극도로 자유롭다는 걸 느낀 것이다. "만약 마검이 없었다면 상당히 까다로운 싸움이 되었을 거야. 하지만 아쉽게도 나에게는 마검이 있어. 마검의 힘은 너와 상극이야." 그녀의 몸이 보랏빛으로 감싸이기 시작했다. 보랏빛, 그것은 절망의 힘이 극성으로 발휘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뜻한다. 흔히 마치에는 4퍼 마왕이라는 4명의 마왕에 의해 사분되어 있다. 그들은 각각 분노, 절망, 탐욕, 질투로 대변된다. 분노를 괴리하는 절망의 마검은 과거 마계에서 대대적인 전투가 벌어졌을 때 탄생한 검이다. 당시 절망을 대표하는 마왕은 분노의 마왕과 싸움을 벌였는데, 그때 사용했던 검이 분노를 괴리하는 절망의 마검이다. 마검의 힘으로 그때 전투는 절망의 마왕의 승리로 돌아갔고, 마검에는 마왕의 권능이 스며들게 되었다. 디스피어 소드는 검 자체에 스며들어 있는 디스피어 포스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마검미다. 그것은 방어도 자유로우며, 공격할 때도 자유롭다 지금 루이렌스는 디스피어 포스로 전신을 감싸 철벽의 방어를 전개한 것이다. 보랏빛으로 휩싸인 루이넨스를 보며 아이렌스의 눈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이것은......“ 언젠가 이런 광경을 본 적이 있다. 얼마 전 그가 베르아문트와 싸움을 벌였을 때였다. 그 때 베르아문트도 이런 식으로 전신을 방어했다. 그때와 유사한 모습을 지금 여기서 보게 된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사실일지도 모른다. 베르아문트는 바로 절망의 마왕을 지척에서 보필하는 측근이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 또한 절망의 힘을 사용하고, 그러했기에 비슷한 모습이 나타난 것이다. 차자자장! 공간을 격하고 날아간 수십여 개의 오러가 루이렌스의 방어를 꿰뚫지 못하고 튕겨져 나왔다. 디멘션 소드의 힘을 완벽하게 막아 낸 루이넨스가 미소를 지었다. 그녀에게 절망의 힘이 있는 이상 신검의 힘에 당할 요소는 없다. 그녀의 검이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죽어라, 나의 앞길을 망친 동생이여." 그때, 아이넨스의 눈이 빛났다. "아직 끝이 아니다." 디멘션 소드에 푸른 오러가 타오르며 폭발적으로 뿜어지기 시작했다. 한순간 모든 오러를 응집시켜 폭발적인 힘을 끌어낸 것이다. "실전은 사람을 더욱 발전의 길로 이끄는 법이지." 아이넨스는 대륙으로 나와 여러 번 실전을 겪었다. 대륙인들에게 있어 공포의 대명사인 흑탑주와도 겨뤄 보았고, 마계의 대공과도 겨뤄 보았다. 게다가 엘이 8클래스에 오른 이후 수차례 대련을 했으며, 엘리엔과도 검을 나누어 보았다. 애시당초 신검의 활용도는 무궁무진했기에 아이넨스는 여러 번의 실전을 겪으면서 한 가지 검을 창안해 냈다. 바로 모든 힘을 한순간 응축시켜 폭발시키는 공간의 검이었다. 그가 익힌 검법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기에 단 한 번의 필살 공격이라 할 수 있었다. 엄청난 오러가 응축되면서 한순간 그것을 견뎌 내지 못한 신검이 그 힘을 일시에 뿜어냈다. 아이넨스는 그 힘을 루이넨스에게 뿜어내기 위해 검을 내리 그었다. 동시에 오러가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대기를 찢어 버리며 뿜어졌다. "이, 이건," 루이넨스는 아이넨스가 뿜어낸 힘을 보고는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지금 다가오는 힘은 보통이 아니었다. 그랜드 마스터가 한순간 끌어올린 모든 힘을 폭발시킨 것이니 대단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이런 공격은 방어를 해 봤자 손해다. 때문에 그녀는 이 공격을 맞받아치기 위해 본신의 힘을 모두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이넨스의 공격은 이런 적의 심리까지 모두 파악한 공격이다. 단순히 힘을 폭발시킨 공격이라면 그랜드 마스터에게 이 공격을 성공시킬 수 없다. 왜냐하면 그랜드 마스터들은 이 공격을 충분히 피할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 공격의 위력이 그대로 나타난다. 공간의 힘을 빌린 힘은 한순간 공간을 격하고, 먼 거리에서 단숨에 적의 지척까지 다가가는 것이다. 채 힘을 끌어올기도 전에 아이넨스의 공격이 자신의 지척에 이르자 루이넨스는 당혹의 소리를 흘렸다. "아, 안 돼!" 그녀의 외침과 함께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쿠우우웅! 황궁 전체를 울리는 듯한 엄청난 폭발! 그것은 아이넨스의 공격이 얼마나 강한 힘을 내포하고 있었는지 여실히 보여 주고 있었다. 아이넨스가 폭발에 휩싸인 곳을 바라보며 눈을 감았다. 제아무리 루이넨스라도 이 공격에 적중된 이상 무사할 리 없을 것이다. "부디 다음 생애에는 사이좋은 남매로 태어나길." 아이넨스는 그것을 간절히 기원했다. 10. 루이아스의 등장 초인끼리의 대결은 더없이 팽팽했다. 이미 절대자의 경지에 이른 이들인 만큼 약간의 실력이 처질지언정 결코 쉽게 허물어지지 않았다. 라이젠과 레이벨은 아토빌 공작과 맞서 싸우면서 한 치의 밀림도 없었다. 한 달 전의 패배는 그들을 바꾸어 놓기에 충분했다. 합공을 함에 있어 더욱 정교하게 해 주었고, 우위를 점함에 있어 결코 방심을 하지 않게 해 주었다. 아토빌 공작의 실력은 정말 대단했다. 10대 8클래스 마법사 중 상위에 속하는 라이젠과 레이벨의 합공에도 팽팽함을 유지하는 그의 실력은 왜 대륙 제1기사라 불리는지 확실하게 보여 주고 있었다. 그런 펑펑함을 깨려면 누군가가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 승부수는 아토빌 공작이 가지고 있다. 그가 지니고 있는 패왕의 검. 갓 소드의 능력을 발휘하면 라이젠과 레이벨을 제압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갓 소드는 사용자의 체력을 급속도로 갉아먹는다는 단점이 있다. 이미 한 차례 겪어 보았을 테니 적들 또한 그것을 알아 차렸을 확률이 높다. 강한 힘을 사용하면 그만큼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저들 또한 잘 알고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니 시간이 걸리더라도 본신의 힘으로 제압하는 것이 좋다. 아니, 지금 이대로 팽팽함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상황은 그에게 유리하게 돌아갈 것이 분명했다. 왜냐하면 엘프의 수호검주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실력은 한눈에 보아도 자신과 비슷한 실력이었다. 현재 그녀는 1명을 상대로 하고 있으니 조만간 적을 제압하고 합세할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되면 누구의 승리 일지 명백해진다. 그랬기에 아토빌 공작은 승부를 서두르지 않으며 적들을 붙잡아 놓으며 간간히 위력적인 일격을 가하기에 바빴다. 라이젠과 레이벨은 꼼짝없이 아토빌 공작에게 발을 붙잡혀 함부로 몸을 뺄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 엘은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중년인과 노인을 번갈아보았다. 그들은 의심할 나위 없는 그랜드 마스터와 8클래스 마법사임이 분명했다. 그는 그들에게 자기소개를 하였다. "엘리미스라고 합니다. 남들은 저를 금탑주라고 하더군요." 노인이 앞으로 나섰다. "명성이 자자한 금탑주를 만나게 되어 반갑네. 내 이름은 샤이어드라고 하네." "샤이어드...... 로이디스 제국의 자탑주님이 아니십니까?" “허허, 내 이름을 금탑주가 알아주다니, 영광이로군." 샤이어드의 너털웃음에 엘은 안색을 굳혔다.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이가 대륙 10대 8클래스 마법사 중 한 사람인 것이다. 그렇다면 옆에 있는 자 또한 만만치 않을 터. 엘의 시선이 중년인에게 향하자, 그는 어깨를 피며 자기소개를 하였다. "내 이름은 밀바르폰 실로프다." "실로프 공작!" 엘이 소리쳤다. 예상대로 그 또한 로이디스 제국의 단 1명뿐인 그랜드 마스터였던 것이다. 즉, 지금 엘의 앞을 가로막은 두 사람은 로이디스 제국을 대표하는 두 초인인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데이제크 제국에 이어 로이디스 제국도 그들의 수중에 넘어갔다는 말이 된다. 대륙의 최강국인 제국 세 곳이 적의 수중 안에 있다고 생각하자 엘은 사태가 생각보다 급하게 진전되어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샤이어드와 실로프 공작을 보며 말했다. "사정이 있어 기습을 하는 저를 용서해 주시길." “......!” 엘의 말에 움찔한 두 사람은 순간 뒤에서 엄습해 오는 강렬한 기운에 재빨리 자리를 피했다. 샤이어드는 순간 블링크를 전개하였고, 실로프 공작은 마나를 극도로 운용하여 자리를 피하려 하였다. 쑤엑! 대기가 갈라지는 소리가 나며 그들이 끽한 자리에 거대한 칼이 스치고 지나갔다. 스스스! 기습이 무효로 돌아가자 마법이 풀리며 3m에 이르는 골든 나이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엘은 골든 나이트를 미리 소환하여 그것에게 투명화 마법을 전개해 놓은 상태였던 것이다. 하지만 기척을 지울 수 없었기에 골든 나이트의 공격을 느낀 적들이 피해 버려 실패로 돌아갔다. 30여 m 떨어진 곳에 모습을 드러낸 샤이어드가 인상을 찡그렸다. "하마터면 당할 뻔했군. 정말 간담이 서늘했어." "마법을 걸 생각을 하다니. 골렘이 아니었다면 하지 못했을 생각이다." 실로프 공작이 안색을 굳힌 채 입을 열었다. 샤이어드 같은 경우 블링크로 안전하게 피할 수 있었지만 실로프 공작 같은 경우 직접 피해야 했기에 방금 전 공격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골든 나이트의 힘은 정말 강력했다. 자칫 잘못 했으면 공격의 여파에 휩쓸리는 것만으로도 큰 타격을 입을 뻔했으니 말이다. 정면대결로 상대하기 힘들다. 하지만 정면대결을 할 수 밖에 없다. 다행히 자신과 샤이어드의 합공은 뛰어나다. 그 점을 살린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 실로프 공작이 샤이어드를 바라보자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오랫동안 서로에게 친분을 나눈 만큼 눈빛만 보아도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힘들겠군.' 엘은 실로프 공작과 샤이어드를 번갈아보며 생각했다. 골든 나이트는 그들 중 한 명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지만 아직 자신의 실력은 이들에 비해 한 수 처진다. 빠른 캐스팅과 제련제강의 마법이 있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한 실력을 단번에 매우기는 어려운 일이다. '좀 더 수련에 매진해야겠어.' 자신의 부족한 실력이 발목을 잡는다고 생각하자 엘은 입술을 질끈 깨물며 각오를 다졌다. 대결이 생각보다 길어질 듯하자 엘은 수비를 중심으로 튼튼한 방어를 펼치기로 생각했다. 그 또한 아토빌 공작과 같은 생각이었다. 넬리어스와 카디어스는 치열한 대결을 벌이는 중이다. 아마 단기간에 승부가 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아토빌 공작도 마찬가지이고 아이넨스도 마찬 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이쪽에는 엘리엔이 있다. 이미 그녀의 실력을 경험해 본 엘로서는 엘리엔의 실력을 굳게 믿고 있었다. “그녀에게 고작 한 명을 붙인 건 큰 실수라고." 엘은 자신의 판단이 틀리지 않을 거라 확신하며 세이지 실드를 펼쳤다. 그들의 싸움 또한 장기전으로 치닫고 있었다. *** 아토빌 공작과 엘의 예상대로 엘리엔과 데리오머의 대결은 일방적이었다. 데리오머는 의심할 나위 없는 8클래스 마법사다. 그의 수준은 이미 오래 전 8클래스의 경지에 들었으며, 데이제크 제국을 대표하는 갈탑의 탑주이기도 했다. 대지 계열 방어 마법을 주로 사용하는 그는 탄탄한 방어 마법으로 철벽의 마법사라는 호칭을 들을 정도로 방어에 정평이 나 있다. 그의 방어를 뚫으려면 최소한 그보다 두 수 위인 실력자가 공격을 해야 했으니 말이다. 라이젠이나 레이벨이 데리오머보다 한 수 강했지만 그의 방어를 꿰뚫고 타격을 주기란 어려웠다. 때문에 데리오머는 그들에게 이기지는 못하지만 지지도 않는 힘을 지니고 있다. 루이넨스는 그것을 모두 감안하고 데리오머를 엘리엔에게 붙였다. 자신이 최대한 아이넨스를 빨리 처리하고 데리오머를 도우겠다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아이넨스는 그동안 겪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더욱 강한 힘을 보유하고 있는 상태였다. 때문에 루이넨스도 아이넨스를 단기간에 제압하기 어려웠다. 데리오머는 처음부터 엘리엔을 상대로 방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가 할 일은 탄탄한 방어로 시간을 끄는 것! 루이넨스의 명령이었기에 그는 군말 없이 처음부터 탄탄한 방어로 엘리엔의 공세를 막아 내기 시작했다. 엘리엔이 그런 데리오머의 의도를 모를 리 없다. 몇 차 례 공격을 퍼붓던 그녀는 데리오머가 공격에 별다른 뜻이 없다는 것을 단번에 간파했다. 그래서 강한 힘을 실어 몇 차례 공격을 하였지만 데리오머의 방어가 워낙 탄탄하여 타격을 주기 힘들었다. '이렇게 하면 부득이 신검의 힘을 쓸 수밖에 없어.' 엘리엔은 데리오머의 탄탄한 방어를 뚫기 어렵다고 느끼며 네이처 소드의 힘을 개방하였다.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검답게 네이처 소드는 모든 현상을 조화롭게 돌리는 현상을 지니고 있다. 네이처 소드의 힘이 순간 발휘되자 데리오머의 방어에 한순간 틈이 생겼다. “헛! 이럴 수가!” 자신의 방어가 약화되자 데리오머가 헛바람을 삼켰다. 무적을 자랑하는 자신의 방어에 균열이 간 이유를 도저히 짐작할 수 없었던 것이다. '틈!' 순간 엘리엔의 눈이 빛났다. 네이처 소드의 힘에 의해 데리오머의 방어가 현격히 약해진 걸 한눈에 간파한 것이다. 엘리엔의 검에 마나가 극도로 응집되기 시작했다. 200여 년 동안 엘프 숲에서 쌓아 온 정순한 마나가 폭발적으로 끌어올려지며 네이처 소드에 맺히기 시작했다. 단번에 방어막을 부숴 버려야 하기에 그녀는 검에 허용 되는 모든 힘을 끌어올린 것이다. 좌아아앙! 엘리엔의 검과 방어막이 충돌하자 데리오머를 감싼 방어막이 눈에 띄게 흔들렸다. 그러더니 곧이어 방어막 전체에 균열이 일어나더니 급속도로 금이 가기 시작했다. 쩌적! 쩌저적! 쩌엉! 한순간 부서진 방어막은 산산조각 나며 흩어졌다. 그 틈을 타 엘리엔이 검을 휘둘렀다. 마법사는 순간의 틈을 주면 공간 이동을 할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쐐액! 눈부신 쾌검이 데리오머에게 향했다. 블링크를 전개하려던 데리오머는 어느새 엘리엔의 검이 코앞에 이른 것을 보고는 안색이 새하얗게 변해 갔다. '피할 수가 없다.' 그것이 그가 생각할 수 있는 생각의 끝이었다. 푸욱! 쾌검은 단번에 데리오머의 심장을 꿰뚫었다. 심장이 꿰뚫린 데리오머는 그대로 절명하였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마탑주의 최후치고 너무나 허망한 결말이었다. 검을 뽑아 든 엘리엔은 허물어지는 데리오머를 보며 피를 털어 버렸다. 인간의 피를 검에 묻혔다니 알 수 없는 거부감이 느껴졌던 탓이다. "이게 끝이 아니지." 엘리엔은 시선을 옮겨 장내 상황을 살폈다. 이쪽은 이미 승패가 났지만 다른 곳은 한 치의 밀림없는 팽팽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었다. 얼핏 보기에 아이넨스도 승리를 거둔 것처럼 보였기에 엘리엔은 머뭇거림 없이 엘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곳을 향해 뛰어들었다. 아토빌 공작과 엘 중에서 그나마 정이 가는 건 엘이었다. 콰앙! 엘리엔의 검과 실로프 공작의 검이 부딪쳤다. 눈부신 오러의 폭사와 함께 실로프 공작이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크윽!" 실로프 공작이 신형을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그것은 엘리엔에 비해 오러의 위력이 한없이 처지는 것을 의미했다. 엘리엔이 가세하자 엘이 밝은 표정을 지었다. "와 주셨군요!" "네가 말했던 것을 지켜 나가는지 봐야 하니까."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지만 실은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게 정이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함께 지내고 함께 다니고 그랬으니 절로 배어드는 그런 정. 무뚝뚝하지만 그녀의 행동이 말과 다르다는 것을 알았기에 엘은 애써 웃음을 지어 보였다. 시선을 옮기니 한쪽에는 데리오머가 시신이 되어 누워 있었다. 저쪽에 소속된 10명의 초인 중 1명을 제거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번 기회는 절호라고 할 수 있어 앞으로 이런 기회는 오지 않을지도 몰라. 그러니 최대한 적을 제거해야 해.' 그렇게 생각하며 엘이 샤이어드에게 달려들려 할 때였다. 갑자기 거대한 폭음이 울려 퍼졌다. 쿠우웅! 폭음이 들려온 곳으로 황급히 시선을 옮기니, 그곳에는 아이넨스가 낭패한 몰골로 서 있었다. 그런 그의 맞은편에는 여기저기 우그러진 흑색 갑주를 입고 있는 한 인영이 서 있었다. 투구가 부서진 사이에 긴 생머리가 흘러내리고 있었는데,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30대 초반의 미녀가 짙은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 "이런! 엘리엔 님! 아이넨스 님을 도와주세요!" 아이넨스의 위기라 여긴 엘이 외치기도 전에 엘리엔은 이미 몸을 날리고 있었다. 이미 루이넨스의 실력이 보통이 아니라고 여기고 있던 엘리엔은 네이처 소드의 힘을 발휘했다. 동시에 오러가 충만하게 뿜어지며 루이넨스의 검과 부딪쳤다. 꽝! 둔탁한 폭음이 울려 퍼지며 엘리엔과 루이넨스가 서로 두 걸음씩 물러났다. 서로 평수를 이룬 것이다. 엘리엔과 루이넨스의 얼굴에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들이 한 생각은 서로 같았다. ‘나의 오러와 비슷한 위력을 품고 있다니!' 엘리엔은 무려 200년 동안 축적해 온 오러를 지니고 있다. 그만큼 위력이 대단하여 대륙에서 그녀보다 강한 위력을 지닌 오러의 소유자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면 루이넨스는 특유의 오러 강화법으로 인하여 최강의 오러를 손에 넣었다고 자부하는 몸이었다. 설령 아토빌 공작과 겨룬다 해도 오러의 위력에서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둘은 각자 신검의 힘을, 마검의 힘을 극대화 시켜 충돌했다. 그런데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하자 상대가 특별한 검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대로 이기기는 힘들겠어. 수비가 탄탄한 데리오머가 당할 정도라면 저 여자는 아마 신검이나 그에 준하는 것을 지니고 있는 모양이다. 저 정도면 결코 나에 비해 부족하지 않아.' 이쪽의 힘이 열세란 걸 느낀 루이넨스는 물러나기로 결정했다. 그녀는 한창 싸우고 있는 라이젠 등을 향해 소리쳤다. "데리오머가 당했다! 모두 물러난다." "물러난다고 했습니까?“ 아토빌 공작과 한창 전투를 벌이던 라이젠이 인상을 한껏 일그러뜨리며 물었다. 그의 몰골은 엉망이었다. 아토빌 공작과 연이은 전투를 벌이면서 상당한 타격을 입은 것이다. 그것은 레이벨이라고 해도 다를 바가 없었다. 아토빌 공작은 놀랍게도 두 마법사를 상대로 압도했다. "더는 전투를 지속하기 어렵다." 루이넨스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녀는 아이넨스의 공격에 의해 심각한 내상을 입은 상태였다. 더군다나 방금 전 엘리엔의 공격을 맞받아치면서 그 부상은 더욱 심해진 상태였다. 만약 엘리엔과 전투를 벌인 다면 그녀의 패배가 될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실로프 공작 또한 엘리엔에 의해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라이젠과 레이벨 또한 아토빌 공작에게 당하여 더 이상 전투를 지속하다가는 당할 것이 분명했고 말이다. 그렇다는 건 넬리어스와 샤이어드 빼고는 온전한 이가 없다는 말이 된다. 그런 반면 적은 아직 대부분이 전투가 가능했다. 2명이서 6명의 초인을 감당한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더 힘을 잃기 전에 물러나는 것이 현명하다. “......” 루이넨스의 말 한마디에 내포된 뜻을 파악한 라이젠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는 한걸음 뒤로 물러난 뒤 레이벨을 보며 말했다. "더 이상 힘들 것 같다. 물러나자." 레이벨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뒤로 물러났다. 싸움이 모두 멈추자 카디어스와 넬리어스도 싸움을 멈췄다.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던 곳에는 삽시간에 침묵이 감돌았다. 루이넨스는 그들을 모두 둘러보며 말했다. "물러난다." "알겠습니다." 상황이 어렵게 되었음을 느낀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리고 공간 이동 스크롤을 꺼내 들자 엘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외쳤다. "이 기회를 놓칠 순 없다!" 엘은 단전에 웅크린 마나를 모두 개방했다. 그가 지닌 마나의 양은 그랜드 마스터에 필적하는 무시무시한 양이다. 그것을 바탕으로 강력한 마법 방해장을 만드니, 스크롤에 새겨진 마법의 발현이 상당히 늦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엄청난 기회였다. 스크롤에 새겨진 텔레포트에 의해 몸이 분해되는 그들의 몸에 작은 타격만 줘도 그들은 엄청난 타격을 입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최소 중상, 십중팔구 공간의 틈에 끼여 미아가 되거나 신체 일부가 텔레포트 되지 않아 불구가 되어 버릴 것이다. "이럴 수가!" 마법에 해박한 라이젠 등은 설마 엘이 이토록 강력한 마법 방해장을 만들 줄 몰랐는지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다. 설사 그들이라 하여도 이토록 강력한 방해장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엘이 단전호흡으로 익힌 마나의 양이 그만큼 엄청나다는 걸 그들이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엘은 텔레포트를 펼치는 그들에게 곧장 공격을 가하려 하였다. 그러나 갑자기 들려온 박수 소리에 의해 엘의 행동은 멈출 수밖에 없었다. 짝짝짝! “빠른 판단이었다, 루이텐스. 그런 판단력이라면 앞으로의 일도 믿고 맡길 수 있겠어. 하지만 금탑주가 지닌 숨은 한 수를 간과한 게 실수였다. 이것만 없었다면 너의 판단은 정말 완벽했을 텐데 말이지." 모두의 시선이 말을 꺼낸 이에게 시선이 향했다. 그곳에는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청년이 여유로운 모습으로 서 있었다. 그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으며, 행동 하나하나에 는 여유가 넘쳤다. 루이렌스 등이 청년을 보고는 반가운 듯 외쳤다. "마스터!" 그들이 마스터라 부르는 존재는 딱 1명뿐이다. 이 모든 일의 주모자! 대륙 최초 9클래스 마법사이자 마도 제국을 염원하는 자! 루이아스. 마침내 그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거, 꽤 일이 재미있게 되었군. 강적들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 주다니." 루이아스는 하얗게 웃음을 지었다. (골든 Wl이지 9권에서 계속)